난 말주변이 별로 없는 편이다. 그래서 아주 절박할 때가 아니면 입을 열지 않게 됐다. 학교에서 하는 회의 때 자발적으로 말을 한 적은 거의 없고 혹시 누가 내 의견을 물을까봐 전전긍긍하곤 했다. 그렇다고 내가 말 잘하는 것에 대한 욕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잘생긴 사람보다 말 잘하는 사람이 훨씬 더 부러웠고, 특히 1~2분이면 충분한 얘기를 10분씩 하는 분들을 보면 아예 넋을 잃었다. 달변가의 꿈을 품고 혼자 연습을 하기도 했지만 말주변은 잘 늘지 않았다. 이 말재주로 방송에 나갔을 때 남들은 이렇게 날 격려했다. “너에겐 어눌한 데서 오는 매력이 있어.”

처음 박근혜 대통령을 봤을 때 난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꼈다. 더구나 대통령은 정치인이었으니, 말을 못한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도 컸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눌변이 이해 안 가는 건 아니었다. 다들 알다시피 대통령은 터놓고 대화할 사람이 거의 없는 청와대에서 10대와 20대를 보냈고, 유신이 몰락한 이후에는 20년 가까이 칩거를 했다. 그 기간 중 책이라도 열심히 읽었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말을 잘한다면 그게 더 이상할 터였다. 정치판 입문의 기회로 삼았던 1998년 대구 보궐선거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가 했던 연설은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아버지가… 아버지는… 아버지를… 아버지!” 여기서 떨어졌다면 스피치 학원이라도 다니면서 화술을 키웠을 텐데, 박 후보는 경쟁자로 나왔던 엄삼탁 후보를 엄청난 표차로 이기면서 국회의원이 됐다. 그 후에도 대통령은 굳이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유세 도중 아버지를 몇 번만 부르면 표가 쏟아졌으니까. 설마 이러다 대통령까지 될까 했는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 버렸다!

대통령은 일반 정치인과 달랐다. 대선후보 시절 TV 토론회도 이리저리 피해 다닌 대통령이었지만, 대통령이란 자리가 끊임없이 국민과 소통해야 하는 만큼 마이크 앞에 설 기회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통령은 다음 두 가지 전략을 취했다. 첫째, 가급적이면 말을 하지 않기. 다들 대통령의 입만 쳐다볼 때조차 말하기를 회피했고, 아랫사람을 시켰으니까. 메르스 파동때 황교안 총리가 대국민사과를 하게 만든 게 대표적인 예다.

둘째, 돌발 상황 피하기. 어쩌다 말을 해야 할 때는 미리 원고를 준비해 프롬프터에 띄운 뒤 그냥 읽었고, 신년 기자회견처럼 피할 수 없는 행사에선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를 사전에 받음으로써 말주변이 드러나는 것을 막았다. 심지어 할 말만 하고 질문은 받지 않는 황당한 회견도 있었으니, 대통령이 얼마나 말하기에 공포감을 갖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이러면서도 대통령은 자신이 눌변가라는 세간의 인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국무회의 때처럼 자신이 일방적으로 말하는 자리에서 대통령은 말을 길게 늘여 함으로써 달변가의 이미지를 심으려 했다. ‘밥을 먹었다’는 것보단 ‘입을 통해 밥을 몸 안에 집어넣었다’가 훨씬 더 지적으로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게 무슨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고, 그런 가운데 우리의 핵심 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할 것이 이것이다 하고 정신을 차리고 나아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셔야 된다.” 박근혜 어록으로 남은 이 말은 달변가에 대한 대통령의 욕망을 너무도 잘 드러냈지만, 너무 말을 길게 하려다보니 주어가 뭔지 스스로 헷갈렸고, 그 결과 정체불명의 문장이 탄생해 버렸다. 그런데 이 말이 나온 뒤 국무위원 중 “그게 무슨 뜻이죠?”라고 묻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걸 보면 그들도 대통령으로부터 의미 있는 말을 듣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던 모양이다. 이 밖에도 대통령은 많은 어록을 남겼는데, 그 대부분이 문장을 길게 늘이다 발생한 참사였다.

총선이 새누리당의 참패로 끝났다. 선거 참패의 원인이 유승민 등 소위 배신자를 쫓아낸 뒤 자신과 친한 인사들을 국회에 보내려고 무리수를 둔 대통령에게 있건만, 대통령의 반응은 좀 어이없었다.

선거 다음날 청와대 대변인의 말이다. “20대 국회가 민생을 챙기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새로운 국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불리할 때 침묵하고, 정 말해야 할 때는 아랫사람을 시킨다는 첫 번째 원칙이 잘 구현되긴 했지만, 너무한 것 아닌가? 스스로도 그렇게 느꼈는지 며칠 뒤 비서관회의에서 대통령은 총선에 대해 추가로 언급한다. “앞으로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민생에 두겠다.” 문장을 억지로 늘이지 않고 짧게 말한 건 잘했다고 칭찬할 만하지만, 그토록 열을 올리신 이벤트의 결과에 대한 반응으로는 적절하지 않다. 대통령이 말을 잘하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달변인 사람만이 대통령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조금 어눌해도 자신이 해야 할 말을 해주는 대통령이라면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하지만 대통령은 그럴 생각이 없는 듯하니, 그가 해야 할 말을 역시 눌변가인 내가 대신 해준다. “제가 국민을 우습게 보고… 어 그러니까… 너무 오만하게 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겸허한 정치를 하겠습니다.”


서민의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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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가 내놓는 예측은 여간해선 들어맞는 법이 없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는 것도 한 이유지만, 경제주체들이 꼭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게 더 큰 이유다. 예컨대 어느 가정에서 적자가 늘어나면 씀씀이를 줄이든지, 야근이라도 해서 적자를 줄이려고 노력한다. 이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어서 경제학을 동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기는커녕 계속 은행에서 빚을 당겨쓴다면? 실제 이런 나라가 있다. 눈치 빠른 분들은 알겠지만 그 나라는 우리나라로, 대통령은 세금을 올리지 않는다는 자신의 공약을 지키기 위해 늘어나는 재정적자를 바라만 보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가 경제예측이 유난히 안 맞는 나라인 건 이렇듯 ‘비합리’라고 표현하기도 어이없는 선택들이 쌓인 결과다.

정치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누가 봐도 모자란 후보가 비교적 괜찮은 후보를 꺾고 당선되는 일이 번번이 일어난다. 이건 다 투표를 하는 주체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투표결과만 보면 유권자들이 일부러 나라를 망치기로 작정한 것 같은데, 얘기를 들어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란다. 그들의 항변이다. “이런 사람인 줄 나도 몰랐다.” 물론 헷갈릴 수는 있다. 양쪽 후보 모두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니 말이다. 여기서 따져봐야 할 것은 그 후보가 지난날 어떤 삶을 살았는지, 평상시 소신은 어떤 것인지 등등이다.

예를 들어 복지를 하려고 할 때마다 ‘빨갱이’라며 거품을 물고 반대하던 이가 갑자기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씩 노령연금을 지급한다” “4대 중증질환의 진료비를 국가가 부담하겠다” “무상보육을 실시하겠다” 같은 공약을 남발한다면, 이건 단순히 표를 얻기 위한 것일 뿐 진심은 아닐 확률이 높다. 그러니 정말 복지확대가 필요하다면 그 후보에게 표를 던져선 안 되지만, 결국 당선되는 건 그런 후보다. 한두 번이면 몰라도 매번 “속았다”를 되풀이하는 건 유권자의 판단력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런 의심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예를 들어 현 정부의 업적으로 칭송되는 개성공단 폐쇄를 보자. 남북한 상황에 관계없이 개성공단은 유지한다는 약속을 어긴 건 둘째치고, 그게 과연 누구에게 이득을 가져다준 것일까? 국내 최고의 개성공단 전문가 김진향이 쓴 <개성공단 사람들>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개성공단은 퍼주기다? 아니다. 북측에 비해 오히려 우리가 몇 배는 더 많이 퍼오는 곳이다. 매년 1억달러에도 못 미치는 금액을 투자해서 최소 15억~30억달러 이상의 가치를 생산하고 가져오는 곳이다.”

2013년 개성공단이 중단됐을 때 대체할 만한 곳을 찾던 기업들이 “해외 어디를 가 봐도 개성공단만큼 경쟁력을 가진 곳은 없다”라고 했단다. 개성공단의 수익이 미사일 개발에 쓰인다는 게 직접적인 폐쇄 이유지만, 개성공단에서 북한 근로자들이 받는 임금은 월 15만원에 불과하고, 이들이 중동에서 받는 임금이 1000달러임을 감안하면 이 조치가 북한에 얼마나 타격을 줬는지 의문스럽다. 우리 기업들만 일방적으로 손해를 본 이 자해적 조치에 찬성하는 비율이 50.7%로 반대(41.2%)보다 높았고, 대구·경북 지역의 찬성률은 71.9%였다. 정말 궁금하다. 이분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개성공단을 폐쇄했어도 같은 대답을 했을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일명 사드(THAAD)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그 미사일을 요격해 우리 국민과 시설을 보호한다는 게 바로 사드의 배치 이유. 저 멀리 바다를 건너 날아온 미사일이면 모를까, 코앞에 있는 북한이 쏜 미사일을 사드가 지켜준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사드를 배치하면 중국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재를 가한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67.1%가 찬성했고, 반대는 26.2%에 그쳤다. ‘사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물으니 이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 이런 분들이 모여서 내는 목소리에 기대어 “국민여론이 사드를 더 찬성하고 있다”고 우겨도 되는지 의문이다.

4월13일,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된다. 선거 때마다 투표하자는 캠페인이 펼쳐지고 있다. 이런 무조건적인 투표 독려는 괜찮은 걸까? 유권자들이 정보를 찾아보고 투표한다면 모르겠지만, 우리 동네에 누가 나왔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투표를 강요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투표를 하기 전에 각 정당의 정책과 후보자를 꼼꼼히 살펴보고 찍을 후보를 정하자. 그 정도 노력을 할 만한 여건이 안 된다면 차라리 투표하지 않는 것도 괜찮다. 생각 없는 투표는 나라를 산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에 대한 무관심보다 더 위험하니까. 투표 독려 캠페인 덕분에 투표율이 이전에 비해 10% 이상 올라갔던 지난 대선을 떠올려보자. 그 대선 이후 이 나라는, 산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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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3.22 20:40:46 수정 : 2016.03.22 20:48:30

“한국형 알파고를 만들겠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이 끝난 지 이틀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미래창조과학부가 내놓은 폭탄선언이다. 앞으로 5년간 국가가 1조원, 민간에서 2조5000억원, 모두 3조5000억원을 투자한단다. 바둑의 최고수인 이세돌을 압도적으로 이기는 알파고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도 저런 게 있으면 좋겠다’고 탄식하던데, 미래부의 발 빠른 선언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물론 바둑 좀 둬본 어른들에게도 큰 희망을 선사했으리라. 인터넷의 반응도 뜨거웠다.

“유행에 민감한 대한민국.” “만날 뭐만 하면 한국형, 지겹다.” “돈 버리는 소리가 들린다.” “로봇 물고기는 뭐하냐?”

문제는 방향이다. 즉 어떤 기능을 가진 알파고를 만들지가 관건이다. 바둑 잘 두는 알파고는 이미 구글이 만들었다. 물론 우리나라 기술이라면 구글 알파고에 불계승을 거둘 알파고를 만들 수 있겠지만, 그래 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미 구글에 열광한 사람들이 뒤늦게 나온 한국의 알파고에 관심을 둘 것 같진 않고, 또 바둑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구글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알파고를 만든다면, 그래서 우리 실정에 맞게 잘 이용한다면 3조5000억원의 비용도 아깝지만은 않다. 그렇다면 한국형 알파고에 어떤 기능을 탑재해야 할까? 혹자는 대통령을 대신할 알파고를 만들자고 한다. 현 대통령에게 반감을 가진 좌파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데, 그들이 간과하는 것은 아무리 잘 만든 알파고도 현 대통령만큼의 정치력을 보일 수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의 국가부채는 올 초 600조원을 돌파했다. 놀라운 점은 이명박 정부가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5년간 309조원에서 440조원을 만드는 데 그친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3년 만에 160조원을 더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는 점. 그럼에도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니, 대통령의 목표는 아마도 세계 최대의 부채국가일 것이다. 하지만 알파고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런 건 꿈도 꾸지 못한다. 오직 합리적인 판단만 하는 알파고는 집권하자마자 세금을 올리고 나라의 쓰임새를 줄여버릴 테니까. 부채의 규모보다 세계 1위가 주는 소소한 기쁨이 있다는 걸 알파고는 알 턱이 없다. 북한이 잃는 것보다 우리의 손실이 수십배에 달하는 개성공단 폐쇄도, 성적(性的)으로 문제가 많은 분이 대변인이 되는 것도 알파고가 대통령이라면 불가능한 일들이다.

대통령을 대신할 알파고를 만들지 못한다고 할 때, 차선책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건 대통령을 도울 알파고다. 바로 사람의 마음을 읽는 알파고. 국회의원 선거에서 집권여당의 공천이란 나라는 어찌 되든 대통령에게만 충성할 사람들을 가려내는 과정, 하지만 이게 쉽지 않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대통령에게 충성할 사람이 누군지 알 방법이 없어서다. 공천 여부가 화제가 된 유승민 의원을 보라. 2004년 당시 초선이던 유승민은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에게 충성한 덕분에 비서실장으로 발탁됐고, 그 뒤에도 쭉 대통령만 바라보는 정치를 해왔다. 전문용어로 말하자면 ‘원조 친박’인 셈, 하지만 그의 충성심은 가짜였다.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세월호 시행령 파동이 아니었다면 그가 대통령을 배신할 것임을 우리는 절대로 알지 못했으리라. 비단 유승민뿐만이 아니다. 지금 수많은 이가 ‘친박’ ‘진박’, 심지어 ‘진진박’을 자처하며 자신을 공천해 달라고 울부짖지만, 그들 중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대통령에게 배신의 칼을 겨눌 사람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의원으로서 권력을 향유할 2016년, 2017년이 대통령의 레임덕과 겹친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사람을 공천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한국형 알파고가 필요하다. 누가 대통령의 사람인지 잘 따져서 대통령의 업무를 도와줄 알파고가. 그런 걸 어떻게 만들겠느냐고 하겠지만, 꼭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이세돌과 바둑을 둔 알파고를 떠올려 보라. 이세돌이 뒀던 판을 모조리 학습하고, 이세돌이 바둑돌을 둘 때마다 십여수 앞을 내다보는 게 가능하다면, 한 정치인의 삶을 입력하고 그의 앞날을 내다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게 어렵다면 ‘박 대통령은 늘 옳다’ ‘박 대통령이 잘되는 게 나라가 잘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아이큐는 430이다’ 같은 말로 끊임없이 사람들을 세뇌시켜 충신을 양성하는 알파고라도 만들어 보자. 우리나라엔 이 분야 전문가들이 아직 많이 생존해 계시니, 비용절감의 효과도 있다.

집권 초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를 선언한 바 있다. 아쉽게도 그 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었고, 집권 4년째가 다 되도록 창조경제의 실체는 밝혀진 바가 없다. 하지만 한국형 알파고가 만들어져 정치개혁을 이루고, 또 미얀마나 수단, 파키스탄 등 여러 선진국들에 수출까지 된다면, 더 이상 창조경제가 무엇인지 묻는 이는 없을 것 같다. 한국형 알파고가 기대되는 이유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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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침팬지는 DNA 서열이 98% 이상 일치한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인간이 지구의 지배자가 된 반면, 침팬지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DNA대로라면 침팬지도 도구와 언어를 만들고, 나름의 문명도 이룩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바르키와 브라워가 쓴 <부정본능>이란 책은 그 해답을 제시한다. 인간이 성공한 이유는 제목 그대로 현실을 부정하는 능력 때문이라는 것.

침팬지를 예로 들어보자. 무리들과 함께 어울려 놀던 ‘침팬지1’은 정신세계가 다른 침팬지들보다 약간 뛰어나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따르던 ‘침팬지2’가 늙어 죽는 것을 본다. 다른 침팬지들은 거기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던 반면 ‘침팬지1’은 언젠가는 자신도 그렇게 죽을 거라고 생각하며,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된다. 그럼 어떻게 될까? ‘침팬지1’은 조금이라도 위험한 일은 하지 않으려 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두려움은 커져,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점점 더 아무것도 안 하려 했다.

다른 침팬지들이 보기에 ‘침팬지1’은 그냥 ‘또라이’다. 이런 침팬지와 결혼하려는 침팬지는 없었으며, 자연선택은 ‘침팬지1’을 도태시켰다. 하지만 인간은 이와 달랐다. ‘침팬지1’보다 정신세계가 훨씬 진화된 인간은 여기에 맞설 방어기제를 만들어 냈으니, 그게 바로 ‘현실부정’, 더 정확히 말하면 ‘필멸성의 부정’이다. 사람들이 죽음을 잊은 채 살아가는 건 그 덕분이다. 동갑 친구의 장례식에 다녀온 그 날은 우울하겠지만, 현실로 돌아가는 데는 불과 며칠이 걸리지 않는다. 이게 어떻게 인간의 성공을 가져왔을까? 미지의 땅을 개척하고, 오래 존속하는 건물을 짓고, 빠르지만 사고 위험이 있는 교통수단을 타는 것 등은 현실부정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1987년 10월 공포된 10호 헌법에 의하면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며, 딱 한 번만 할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 대통령이 되면 우울해질 수 있다. ‘5년이 지나면 영락없이 물러나야 하니, 대통령 자리도 무상하구나!’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이 목표한 바를 5년 동안 부지런히 하려고 애를 쓰는 게 정상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힘썼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수도이전으로 서울의 과밀화를 해소시키려 애썼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통해 자신의 지인들에게 화끈하게 일감을 몰아줬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무얼 하셨을까? 취임 첫해에는 대변인에 윤창중씨를 임명한 걸 제외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며, 2년차에도 특별히 한 일이 없었다. 임기 중반이라고 할 3년차가 되자 대통령이 드디어 일을 시작했는데, 가장 먼저 하신 일이 바로 역사교과서 국정화였다. 반대하는 여론이 더 높았지만 대통령은 흔들림 없이 밀어붙였고, 얼마 전 기사를 보니 친일과 독재가 미화된, 아이들의 혼을 맑게 해주는 교과서가 만들어진 모양이다. 지금은 노동개혁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를 압박하고 계신데, 이 법안만 통과된다면 우리 청년들이 비정규직에서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좋은 시대가 온다니 이것 역시 기대가 된다.

굵직한 일을 두 개나 하긴 했지만, 좀 이상하긴 하다. 5년이라는 기간이 막상 일하려면 그리 긴 시간도 아니니, 하려던 바가 있다면 취임 초부터 화끈하게 밀어붙여야 했다. 그런데 왜 대통령은 이렇게 띄엄띄엄 일할까? 2년차 때는 세월호 사고가 있었고, 3년차 때는 메르스가 있어서 일하는 데 지장이 있었긴 하다. 그런데 대통령은 이 두 가지 일을 수습하는 데 있어서도 그다지 한 일이 없으니, 이걸 핑계 삼기엔 좀 궁색하다. <부정본능>을 읽고 난 뒤에야 이해가 됐다. 대통령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것에 대한 방어기제로 ‘임기부정’을 구현하고 계신 거였다! 임기가 무한정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드니 일 때문에 서두를 필요가 없고, 대신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레임덕만 걱정하면 된다.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정치인에게 배신자 낙인을 찍으면서 펄펄 뛰셨던 것도 그런 연유다. 남는 게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쓴소리를 해도 잘 듣지 않는다. 예컨대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는 대통령의 국가부채를 걱정한다. 노무현 정부 때 재정적자는 10조원에 불과했지만, 이명박 정부 때는 100조원의 적자를 봤고, 박근혜 정부는 불과 3년 만에 167조원의 신화를 이루었다는 것. 이런 말도 대통령에겐 별 소용이 없다. 임기부정의 달인답게 “그깟 부채, 천천히 갚지 뭐”라며 여유를 부리고 있을 테니까.

하기야, 임기부정을 대통령만 하고 있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뜻있는 국민들은 이미 대통령의 임기를 19년쯤 되는 걸로 느끼고 있지 않던가?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을 하고 투표를 하자. ‘침팬지1’은 자연선택으로 도태됐지만, 대통령은 그럴 수가 없으니 말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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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오랫동안 속일 수도 있고, 많은 사람을 잠깐 속일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을 오랫동안 속일 수는 없다.”

당연해 보이는 말이지만, 최소한 우리나라에선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사람들, 특히 애국보수세력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판결이 자기 믿음과 다르게 나온다 해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모양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 주신씨의 병역비리 의혹이 대표적이다. 주신씨는 허리디스크로 4급 판정을 받았는데, 그 MRI가 가짜라는 게 그들의 주장. 논란이 확산되자 세브란스병원에서 공개검증을 받았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의혹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애국보수의 클래스를 살펴보자.

첫째, 그들은 주신씨가 병역면제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박 시장의 아버지-박 시장-주신씨 이렇게 3대가 병역면제라고 하기도 한다. 정말일까? 박 시장 아버지는 일제시대에 살았고, 박 시장은 부선망독자라고,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신 독자라 8개월 방위로 병역을 해결했다. 문제의 주신씨는 신검을 받은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는데, 공익요원을 보고 면제라고 하는 사람은 애국보수세력이 유일하다. 그런데 그분들에게 남는 건 시간, 3대가 면제라고 인터넷에 도배를 어찌나 해대는지 그게 진짜인 줄 아는 분들이 생겨나고 있다. 특정인을 비판하기 위해 거짓말을 동원하는 건, 사실을 가지고 깔 게 없기 때문이 아닐까?

둘째, 주신씨의 비리 의혹을 제기한 분은 부산 동남권원자력의학원에 근무하는 의사 양승오씨다. 그는 애국보수세력으로부터 “영상의학 최고의 전문가”로 여겨지고, 이건 ‘동남권’이란 이름 때문에 빚어진 듯한데, 심지어 “아시아 최고의 명의”라고 칭하는 분들도 있다. 자료를 검색해본 결과 논문이 많은 것도 아니고, 수도권에 사는 환자가 그를 만나기 위해 부산까지 가는 것 같지도 않은데, 그가 왜 최고의 전문가가 되는 것일까? EBS <명의> 팀은 왜 그분을 놔둔 채 세브란스병원의 정태섭 교수를 촬영한 것일까? 아무래도 그들에게 명의란 좌파를 까는 의사인 듯하다.

셋째, 2월17일 서울중앙지법은 양씨의 주장이 허위라면서 1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그러자 그들은 판사를 욕한다. 판사가 좌파이며, 서울시장의 권력에 매수당했다고 한다. 또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의학 관련 문제에 대해 당대 최고 권위 전문의와 판사 중 누가 더 잘 알고 있을까요?” 야당 정치인인 박 시장의 권력이 집권당의 그것을 능가한다는 그들의 망상도 놀랍지만, 허위사실 유포에 관한 재판을 ‘의학 관련 문제’라고 단정짓는 창의성은 절로 고개가 수그러지게 만든다. 그런 논리라면 내가 “애국보수들은 뇌에 기생충을 가지고 있다”고 떠들어대도 판사는 판결을 내리지 못할 것이다. 기생충에 대해선 내가 판사들보다 훨씬 잘 아니까.

넷째, 창의성의 결정체는 주신씨의 공개검증이었다. 2012년 주신씨는 병원 관계자와 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MRI를 다시 찍었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이들은 즉시 사과를 했지만, 애국보수세력은 물러서지 않았다. MRI가 바꿔치기됐다는 것. 그 옆방에서 다른 사람이 MRI를 찍고 그 사진이 주신씨의 것으로 둔갑했다는데, 그 사람이 어디 사는 누구인지는 3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알려진 바가 없다. 신기한 점은 그들이 여전히 주신씨의 공개신검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 의사들이 보고 있는데도 MRI 바꿔치기가 가능하다면, 열번을 찍든 백번을 찍든 아무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그들이 영국에 있다는 주신씨를 소환하려는 진짜 이유는 그냥 주신씨가 보고 싶어서가 아닐까? 좋으면 니들이 가는 방법도 있다.

다섯째, 그들은 1997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아들이 공개신검으로 모든 의혹을 해소했다면서 박 시장을 비난한다. 이건 사실일까? 물론 아니다. 이 후보에겐 아들이 둘 있었는데, 둘 다 체중미달로 병역이 면제됐다. 특히 첫째는 179㎝에 45㎏이라는 드문 체형이어서 의혹을 한 몸에 받았는데, 대선 직전 서울대병원에 나타난 이는 첫째가 아니라 둘째 아들이었고, 그나마도 키만 측정하고 몸무게는 재지 않았다. 이 후보가 두 번이나 대선에 떨어진 건 이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 정도가 애국보수에게 ‘의혹 해소’라면, 공개검증에 응한 주신씨는 ‘의혹 완전말끔대박정리’가 돼야 마땅하다.

결론적으로 말해 애국보수세력은 그 투철한 애국심을 엉뚱한 곳에 낭비하고 있다. 물론 달리 할 일이 없어 그러는 건 알지만, 안타깝다. 애국보수라는 좋은 단어가 웃음거리가 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 박 시장 아들은 놔주고 다른 곳에 관심을 쏟으시라. 국가부채라든지, 김무성 의원 본인의 병역 의혹, 물고기 떼죽음 등등 애국보수의 관심이 필요한 일들은 도처에 있다. 애국보수의 각성을 기다린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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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기생충 박사님 아니세요?”

지하철에 서 있는데 나이 드신 여성분이 내게 말을 건넨다. TV에서 나를 봤다고 했다. 지금은 이런 것에 제법 익숙해졌지만, 처음 이런 일을 겪을 땐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날 알아봐줘서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고, 한편으로는 ‘이제 나쁜 짓도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오래 날 지배한 감정은 우쭐함이었다.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살았고, 누군가가 날 모른 체하고 지나가면 속으로 ‘아니 날 몰라보다니!’라고 외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존경하는 분과 팟캐스트를 녹음했다. 녹음이 끝나고 같이 밖으로 나갔는데, 길을 가던 몇몇 분들이 날 알아본다. 의아했다. 내 옆에 계신 분은 <헌법의 풍경>을 비롯해 몇 권의 베스트셀러를 내신, 나와는 비교도 안될 훌륭한 분인데, 그분을 몰라보고 날 알아보다니 이건 세상이 잘못돼도 보통 잘못된 게 아닌 것 같았다.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을 해본 뒤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방송은 거기 출연한 사람을 유명하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그 유명세는 그 사람이 훌륭한 것과는 무관하다. 그러니 남들이 알아보는 사람이 됐다는 게 결코 우쭐해할 일은 아니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 나니 혹시 누가 날 알아봐도 들뜨지 않으려 애썼는데, 나중에 방송에서 잘리고 다시 일반인으로 돌아간 뒤에도 의기소침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다 이런 정신수련 덕분이다. 물론 “훌륭한 사람이니까 방송에 나가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고, 방송에 나가는 분들 중 실제로도 훌륭한 분들이 많을 테지만, 원래 훌륭했던 분들도 우쭐하게 만드는 게 방송의 무서운 점이리라. ‘방송 나가더니 변했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리는 게 괜한 일은 아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 박 대통령은 ‘원칙과 신뢰’라는 말이 연관 검색어로 뜰 만큼 훌륭한 분이셨다. 대표 시절 멀쩡한 당사를 놔두고 천막에서 업무를 보신 건 전설적인 일화고, 빗발치는 환원 요구에도 불구하고 정수장학회를 지켜내는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대통령이 된 뒤 박 대통령은 변했다. 야당 시절 “역사를 정권이 재단해선 안된다”고 해놓고선 지난해 말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단행했고, 대선 때 댓글을 단 국정원에 셀프개혁을 주문함으로써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 그 밖에도 복지공약을 외면한 채 민주주의의 기본인 삼권분립을 유린하는 데 앞장서는 등 비판받을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여기에 대해 좌파들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고 하는 모양인데, 방송활동을 몇 년이라도 했던 내가 보기엔 이게 다 방송 탓이다. 미디어오늘이 2015년 1월부터 191일간 지상파 3사 메인뉴스의 박 대통령 관련 보도를 조사해 본 결과 대통령의 출연 빈도는 실로 엄청났다. SBS는 162건, KBS 155건, MBC 152건이었는데, 그 기간 중 휴일이 30일가량 껴 있다는 걸 감안하면 거의 매일 한 번씩, 그것도 지상파 황금시간대에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물론 대통령이 하는 일 중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이 많다보니 그랬을 수도 있지만, 저 보도들 중엔 대통령의 근황을 보도해야 한다는, 독재정권 시절부터 내려온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것도 많다. 예를 들어 ‘xx와 밥을 먹었다’든지 ‘xx와 만나서 환담했다’ 같은 것도 있던데, 이런 걸 모든 국민이 알아야 할까? 이런 식으로 매일 나오다보면 제 아무리 간디 같은 성인이라 할지라도 변할 수밖에 없는데, 간디에 조금 못 미치는 박 대통령이 변한 건 너무도 당연했다. 시간이 많다면 정신수련으로 극복할 수 있겠지만, 워낙 바빠서 7시간의 짬도 내기 힘든 대통령에게 그런 걸 요구하긴 어렵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최소한 지상파만이라도 대통령을 그만 놔줬으면 좋겠다.

비단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TV에서 보도할 만한 뉴스는 차고 넘친다. 아리랑TV 사장의 비리를 밝히는 데 공을 세운 따님을 출연시킨다든지, 요즘 진정한 충신이 뭔가를 보여주고 있는 최경환 전 부총리의 일대기를 보도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물론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을 할 때는 보도를 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지난 3년을 돌이켜보라. 대통령이 한 중요한 일이 대체 몇 개나 되는가?

변하기 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 말고도 지상파의 대통령 외면이 가져올 긍정적 효과는 많다. 그 대표적인 게 욕을 덜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천만이 넘는 좌파가 살고 있고, 그들은 대통령이 말씀을 하실 때마다 거품을 문다. 하지만 아예 대통령 보도를 안 해 버리면 그들은 목표를 잃은 미사일처럼 방황하다 제 풀에 쓰러질 테니, 잘만 하면 좌파척결도 이룰 수 있다. 다행히 종편에서 박 대통령 보도에 열을 올리고 있으니 대통령 입장에선 그리 서운할 것도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제안한다. 지상파 뉴스는 대통령 보도를 중단하라. 원칙과 신뢰의 대통령을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서민 | 단국대 의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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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이 종영된 날, 모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혜리가 해낼 줄이야! 무시해서 미안해.” 제대로 연기수업을 받은 적이 없는 걸그룹 가수가 인기시리즈의 주인공 역할을 해낼지 걱정했는데, 그게 기우였다는 것. 아닌 게 아니라 <응팔>이 기록한 20%의 시청률은 공중파에서도 잘 보기 힘든 수치다.

이 드라마에 나온 출연자들의 연기는 다 출중했지만, 극중 주인공 ‘덕선이’를 위해 태어난 듯 보이는 혜리가 아니었던들 <응팔>이 이렇게 화제가 됐을까 싶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혜리가 천재 바둑기사 최택과 함께 중국에 갔을 때였다. 말이 안 통하는 호텔직원에게 몸짓 발짓을 동원해가며 “방이 너무 추워서 입이 돌아갔다”는 얘기를 하는 장면은 나처럼 혜리를 불신했던 모든 사람을 겸연쩍게 만들었다.

혜리가 빛나는 연기를 한 비결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극중 배역이 혜리의 삶 그 자체였기 때문이 아닐까. <응팔>의 ‘덕선’이 그랬듯 실제의 혜리 역시 상대가 누구든 기죽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염치 불구하고 일단 먹고 봤을 것 같다. 만약 김태희였다면, 지금보다 나이가 십년쯤 더 젊다 해도, 이 배역을 소화하는 게 쉽진 않았을 것이다. 오해 없기 바란다. 지금 난 김태희가 연기를 못한다고 하는 건 아니다. 그녀의 연기력은 작년 후반기의 화제작 <용팔이>를 비롯해 수없는 히트작을 낸 것으로 이미 증명됐다. 그럼에도 김태희에게 ‘덕선이’가 어울리지 않다고 한 이유는 그녀의 삶이 엄청난 자기관리로 점철됐으리라는 추측 때문이다.

한창 놀고 싶은 중·고교 때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나처럼 못생겨서 할 수 없이 공부한 거라면 모를까, 빛나는 미모를 가진 그녀에게 얼마나 많은 유혹이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그녀의 자기관리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김태희가 데뷔 이후 16년째 톱 탤런트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다 그 덕분이리라. ‘덕선이’에 김태희가 어색한 것처럼, 혜리 역시 <용팔이>에서 김태희가 맡았던 ‘한여진’ 역을 소화하는 건 버거울 것이다. 드라마마다 요구하는 스타일이 다른 만큼, 혜리 같은 천방지축도, 김태희로 대변되는 진중한 연기자도 꼭 있어야 한다.

정치판도 마찬가지다. 다는 아니라도 정치인 중 일부는 혜리처럼 좌충우돌하면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줘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려 보자. 5공비리를 다룬 청문회 때 모르쇠로 일관한 전직 대통령에게 명패를 던졌고, 3당합당이란 폭거가 자행될 때는 자신의 정치적 아버지와 절연했다. 번번이 지면서도 지역주의에 맞서 싸웠고, 그래서 ‘바보 노무현’이란 별명을 얻었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그는 달라지지 않았다. 검사와의 대화 때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라고 한 것처럼, 하고 싶은 말은 거침없이 했다.

이런 그를 보수세력은 품위가 없다며 비판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재임 기간 국민들의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지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이 있지만, 그가 많은 매력을 지닌 정치인이었던 건 분명하다. 그가 ‘노사모’라는, 정치인 최초의 팬클럽을 거느린 것도 그 덕분이다.

노 전 대통령 이후 혜리형 정치인을 보는 건 힘들어졌다. 새누리당을 보자. 명백한 불의가 자행돼도 다들 침묵으로 일관하는 게 아예 체질이 됐다. 당 원내대표였던 유승민은 국회의 권위를 지키려다 대통령에게 야단을 맞자 90도로 허리를 굽혀 사과했다. 당 대표 김무성은 납작 엎드리는 것도 모자라 대통령에게 아부를 해댄다. “이렇게 개혁적인 대통령은 앞으로 만나기 힘들 것이다”라니, 이렇게까지 해서 대표직을 유지해야 하는지 한숨이 나온다. 혜리형 정치인이 없는 건 야당도 마찬가지다. 차기 대선주자로 유력한 문재인을 보자.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낼 당시 부인을 백화점에 못 가게 하고, 청탁을 안 받으려 친구도 일절 만나지 않는 등 자기관리가 뛰어난 점은 십분 인정하지만, 그 이외에 어떤 매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안철수는 어떨까? 입대 전날까지 백신을 만드느라 바빠 가족들에게 군대 간다고 말도 안한 채 입대했을 만큼 자기관리의 화신인데, 너무 말을 아끼느라 침묵으로 일관하는 게 답답할 때가 많다.

그럼 지금 정치판엔 혜리형 정치인이 없는 것일까. 혜리형 정치인의 덕목이 ‘좌충우돌’이라면, 딱 한 분이 생각난다. 교과서 국정화로 한바탕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자신의 일을 남의 일처럼 얘기하는 유체이탈화법을 즐겨 쓰는 데다, 바람같이 사라졌다 7시간 만에 나타나는 분, 이 정도라면 혜리형이 되기 충분하지 않을까? 물론 차이는 있다. 혜리의 좌충우돌은 보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반면, 이분의 좌충우돌은 주변을 어둡게 한다는 것. 아무렴 어떻겠는가? 있으면 그만인 것을.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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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파 병원에 온 사람을 의사가 진료한다고 해서 감동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의사는 환자를 보고 월급을 받으니,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학생이 숙제를 하거나 택시기사가 승객을 안전하게 모시는 일도 마찬가지다. 이런 일들은 그 자체로 감동을 주지 못하며, 오히려 이 당연한 일을 제대로 못했을 때 처벌이 따르기도 한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감동을 주고 있는 모양이다. 발단은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국민이 간절히 바라는 일을 제쳐두고 무슨 정치개혁을 한다고 할 수가 있겠나?” “일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잃어버린 시간, 인생을 누가 보상할 수 있겠나?” 얼핏 보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올인했던 스스로에 대한 반성 같지만, 놀랍게도 이건 국회한테 한 말이었다.

물론 국회가 일을 잘한다고 할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대통령과 비교하면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은 데다, 국회가 이렇게 된 건 대통령에게도 책임이 있다. 유승민 원내대표를 찍어낸 것에서 보듯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쫓아내 버리는데, 국회가 소신껏 일할 수나 있을까? 대통령이 통과시키라고 강조한 소위 노동개혁 법안이 비정규직 허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파견근로자가 허용되는 업종을 확대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 젊은이들이 별반 좋아할 것 같지 않지만, 대통령이 간만에 민생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건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국회선진화법이었다. 3년 전 국회를 통과한 국회선진화법은 법안 통과에 의석 과반이 아니라 60% 이상의 동의를 얻도록 기준을 강화한 법안이다.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과반수를 얻지 못할 경우 야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만들었는데, 그 법안을 통과시키기로 결정한 건 당시 비대위원장이던 박 대통령이었다. 현재 새누리당 의석수는 157석으로 53.4%에 불과하니, 대통령이 국회, 특히 야당을 욕하고 있는 것이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처리하는 ‘직권상정’이란 게 있었던 것. 대통령의 명이 떨어지자 삼권분립 같은 건 예전에 갖다버린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은 국회의장실로 달려가 정의화 의장을 협박한다. 여야 합의가 안되고 있는 노동개혁 법안과 경제살리기 법안을 직권상정해달라고 말이다. 새누리당 입장에선 의장이 자기 당 출신인 만큼 설마 거절하랴 싶었을 테지만, 정 의장은 뜻밖의 말을 한다. “직권상정은 국가비상사태에나 가능하다고 국회법에 돼 있는데, 지금 경제상황을 그렇게 볼 수 있겠느냐?” 그는 자신에 대한 비난에 불쾌한 감정도 드러냈다. “국회선진화법에 찬성해 놓고 (그 법에 반대했던)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 이럴 시간 있으면 차라리 야당을 설득하라.”


‘국회를 대표하고 의사를 정리하며 질서를 유지하고 사무를 감독하는 기관.’ 국회의장의 사전적 정의다. 그렇다면 청와대의 외압에 굴하지 않고 국회의 명예를 지키는 것은 국회의장이 해야 할 당연한 의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의장의 행동이 감동을 주는 것은 그간 우리 사회 요직에 있던 분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왔기 때문이다. 환경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환경부는 4대강을 반대하기는커녕 대대적인 홍보 활동에 나섰고, 간첩을 잡아야 할 국정원은 대선 때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댓글을 달았다. 군통수권을 가진 대통령은 당연히 해야 할 전시작전권 환수를 무기한 연기했다. 검찰은 대통령에게 누가 되는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일본 기자를 무리하게 기소했다 망신을 당했다. 해경은 배가 침몰하자 아이들 대신 선장과 선원들만 구했다. 이번에도 그렇다. ‘IMF 사태’를 거론하며 경제위기가 다시 올 수 있다는 새누리당의 주장에 경제부처 장관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경제가 말 몇 마디로 요동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이건 명백한 직무유기다. 이런 와중에 국회의장이 대통령에 맞서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으니 사람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다.

물론 정 의장의 앞날이 그리 평탄할 것 같지는 않다. 애국단체들은 벌써부터 정 의장 규탄 집회를 열고 있고, 새누리당 의원들도 ‘국회의장 해임건의안’을 제기하는 중이다. 더 두려운 분은 바로 박 대통령으로, 역대 대통령 중 ‘마음에 안 드는 사람 찍어내기’와 ‘뒤끝 작렬’ 부문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1위 자리에 올라 있어서다. 국정원 댓글사건을 열심히 수사한다는 이유로 검찰총장을 찍어낼 때는 ‘혼외자식 의혹’이란 방법을 썼고, 여당 원내대표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던 유승민을 찍어낼 때는 그를 배신자로 몰면서 다음 선거에서 떨어뜨려 달라고 윽박질렀는데, 이번에는 어떤 방법을 쓸지 살짝 궁금하기도 하다. 정의화, 그가 어떻게 되든 그의 이름은 기억해 놓자. 어쩌면 그가 이 정부에서 ‘해야 마땅한 일을 한 마지막 인물’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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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7년간 복직투쟁을 해온 KTX 승무원들에 대한 고등법원 판결이 있었다.

KTX가 처음 출범하던 2004년, 공채를 통해 선발된 280명의 직원들은 당장은 계약직이지만 2년 뒤 정규직이 된다는 철도공사 측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계약만료에 의한 해고였다. 승무원들은 여기서 물러나는 대신 소송을 제기했다. “철도공사가 자신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해고 기간 동안 지급받지 못한 임금도 달라”는 게 그들의 요구였다.

1심과 2심은 철도공사가 그간 밀린 임금을 지급하라고 판결이 났지만, 대법원의 판결은 달랐다. 대법원은 이들이 철도공사의 직원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고, 뒤이어 열린 파기환송심도 결국 원고패소로 결말이 났다. 이제 승무원들은 정규직 채용은 고사하고 이전에 지급받은 임금 8600여만원을 다시 토해내야 한다.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 판결은 별반 화제가 되지 못했다.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지난 7년간 이들의 투쟁이 주목을 받은 적도 없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많은 이들이 KTX 승무원들의 욕심을 탓했다.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란 책에는 20대 대학생들이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적나라하게 나와 있다.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되잖아요.” 한 학생이 이렇게 말했을 때 저자는 이 학생을 걱정했다고 했다. 이 발언으로 인해 그 학생이 혹시 왕따가 되지나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그건 기우였고, 다른 학생들 모두 이 학생의 말에 동감을 표시했다. 많은 젊은이들의 꿈인 공사 정규직을 계약직으로 들어온 이들이 쉽게 차지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 것도 전혀 이해 안되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생각을 좀 달리해보자. KTX 승무원들로 인해 ‘비정규직으로 2년간 근무하면 정규직이 된다’는 약속이 지켜지는 사회가 된다면, 지금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수많은 젊은이들도 정규직의 꿈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난 KTX에 대한 사회의, 특히 젊은층의 무관심이 아쉽다. 판결이란 게 법을 토대로 이뤄지는 것이긴 해도, 세간의 여론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이번 승무원들의 소송에서도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 민사1부의 판단은, 같은 사안을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달랐으니 말이다.

이보다 먼저 있었던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해고무효 확인소송을 보자.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본 1심과 달리 2심에서는 사측이 해고회피 노력을 하지 않았다며 해고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에도 문제는 대법원이었다. 2014년 말, 대법원은 해고가 적법하다며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런 판결이 내려진 데는 우리 사회의 여론도 한몫을 했다는 게 내 생각이다. 25명의 해고자와 가족들이 자살 등으로 목숨을 끊었지만, 사람들은 기이하리만큼 무관심으로 일관했으니까. 오히려 젊은층은 “해고도 마음대로 못하면 회사 망하라는 거냐?” “잘리면 다른 일 하지, 왜 파업하고 앉았느냐?”며 해고자들의 복직투쟁을 조롱했다. 그들의 단견이 아쉬운 이유는 이 판결로 인해 앞으로 우리나라 기업은 정리해고 요건을 갖추지 않고 직원을 해고해도 상관없게 됐고, 이 부담은 고스란히 젊은층에게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청년실업 문제가 우리 사회를 짓누른 건 벌써 십년도 더 된 일이다. 이들을 가리켜 삼포세대니 오포세대니 하는 말이 만들어지곤 하는데, 안타까운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이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당하게 해고된 근로자들의 편에 서지 않는 것도 그렇지만, 자기들끼리 뭉쳐서 뭔가를 이루려는 움직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건 더 큰 문제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라고 정부를 압박하거나, 정규직을 많이 안 뽑는 기업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인다든지 하는 일을 지금의 20대가 벌였다는 기사를 본 적이 없다. 미약한 개인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지만, 연대하면 힘이 커진다. 현재 7년째 동결된 대학등록금은 대학생들이 하나가 되어 이룬 빛나는 성과가 아닌가?

2006년, 프랑스 대학생들은 정부의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에 반발해 거리로 나왔다. 4년이 지난 2010년에는 노동자들의 정년을 2년 연장하는 것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면서 고교생들까지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와는 달리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지금도 토익점수를 몇 점 더 올리기 위해 영어책을 뒤적이고, 짬이 날 때마다 댓글을 단다. “정규직 날로 먹으려 하면 안되잖아요.”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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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한 해 동안 H신문에 칼럼을 썼다. 당시 기억은 그리 좋지 않다. 글쓰기 훈련이 덜 된 데다, 내가 쓴 글을 전 국민이 본다는 착각 때문에 그나마 있는 실력을 다 발휘하지도 못했다. 그보다 더 나를 힘들게 했던 건 당시 대통령이 처한 현실이었다. 칼럼을 쓸 때 나름의 원칙이 있긴 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되, 권력을 가진 대통령을 더 비판하자. 하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대통령보다 대통령을 공격하는 야당과 보수언론의 공세가 비상식적이었으니까. 무슨 일만 하려 하면 ‘친북’ 딱지를 붙였고, 사람을 하나 쓰면 ‘코드인사’라고 거품을 물었다.

기록적인 영남편중인사를 자행하는 현 정부에 아무 소리도 안하는 걸 보면, 그들의 비판은 그저 ‘비판을 위한 비판’이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노무현을 지지했던 진보세력들까지 비판대열에 가세했다. 모두가 대통령을 욕하다 보니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유행어가 나올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나까지 욕할 필요가 있을까? 3주에 한 번씩 칼럼이 연재됐는데, 늘 쓸 게 없어 고민이었다. 할 수 없이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면 죽을까?” 같은 시답잖은 글만 쓰다 잘렸다.

2010년, 경향신문에서 불러준 덕분에 다시 칼럼을 쓰게 됐다. 한번 실패했던 경험이 있던 터라 걱정이 됐다. 게다가 이번엔 2주마다 한 번씩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건 다 괜한 걱정이었다. 맛집의 비결은 좋은 재료를 충분히 쓴다는 것, 글쓰기도 이와 다르진 않다. 좋은 소재만 있다면 글쓰기 실력이 좋지 않다고 해도 남들이 읽을 만한 글이 나오기 마련이니까.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명박은 하루가 멀다 하고 글을 쓸 소재를 제공해 줬는데, 그 하나하나가 다 충격적인 것들이라 도대체 뭘 가지고 써야 할지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20조원을 써가며 멀쩡한 강바닥을 파서 자신의 모교인 동지상고 출신들이 운영하는 기업들에 큰 이익을 안겨줬고, 대선 때 약속한 전 재산 헌납도 결국 ‘꼼수’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자원외교라는 명목으로 4대강보다 더 많은 돈을 퍼부었고, 국민 세금으로 아들에게 내곡동 땅을 사주려다 발각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이명박의 언행도 큰 화제가 됐다. 웬만한 일에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로 상대의 입을 막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전매특허처럼 돼 있는 유체이탈화법도 사실은 이명박이 원조였다. 예컨대 내곡동 사저가 문제가 됐을 때 이명박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본의 아니게 사저 문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게 되어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이 시절은 칼럼니스트들의 전성기였다. ‘나는 꼼수다’를 비롯해 팟캐스트들이 유행하게 된 것도 이명박의 얘기를 다루기엔 신문지면이 너무 좁았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식이면 매주 쓸 수도 있겠어!”라고 말하기도 했고, 실제로 경향 측에 칼럼 두 개를 보낸 뒤 “알아서 선택하시라”고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칼럼니스트의 호시절은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끝났다. 박 대통령은 기이할 정도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말씀을 많이 하시냐면 그런 것도 아니었고, 어쩌다 하시는 말씀은 일반인이 알아듣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2015년 5월 국무회의 도중 하신 말씀을 보자. “우리의 핵심 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될 것은 이것이다, 하는 것을 정신을 차리고 나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걸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셔야 될 거라고 생각한다.”

해석이 돼야 칼럼으로 쓸 텐데, 무슨 말인지 당최 알아듣지 못하니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2주라는 마감기간은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억지로 짜내듯 보내는 글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되겠다 싶어 “칼럼을 그만 쓰겠습니다”라고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던 차 대통령이 드디어 일을 시작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그간 소재 고갈로 힘들어하던 분들이 가뭄에 단비를 만난 듯 환호했고, 신문 오피니언난의 대부분이 국정화 관련 글들로 채워졌다. 한편으론 걱정이 된다. 당분간은 국정화로 끌고 나갈 수 있지만, 임기가 끝날 때까지 앞으로 50여번 더 글을 써야 하는데, 무슨 수로 채워야 할까? 남은 임기 2년이 두렵게 느껴지는 이유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다. 내가 기억하는 고인은 깜짝쇼를 좋아했고, 자화자찬 기질도 좀 있었다. 실명제를 발표한 뒤 기자들에게 “놀랬지?”라며 즐거워한 대목이라던가,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일성이 사망하자 “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죽었다”라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고인의 명복을 비는 와중에, 그분이 대통령을 하던 시절에 내가 칼럼을 썼다면 어땠을까 잠시 생각해봤다. 스스로 내린 결론, “지금보다야 나았겠지!”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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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나는 직접 만든 태극기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체포되었습니다.”

교육부가 만든 국정교과서 홍보 광고는 유관순 열사의 관점에서 3·1운동을 소개하며 시작된다. 부모님이 일본 헌병에게 피살된 이야기와 서대문형무소에서 매질과 고문을 당한 이야기가 이어지더니, 갑자기 배경음악이 꺼지고 한 여학생이 뚱한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 검정제인 지금의 역사교과서에 유관순의 이름과 사진이 나오지 않는다는 뜻. 이 광고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끝난다.

광고를 보면 볼수록 정말 잘 만들었다 싶다. 독립운동의 상징이라 할 유관순을 동원한 것도 훌륭한 전략이지만, 자신들의 약점을 국정교과서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데는 그저 감탄만 나온다.

대통령이 갑자기 교과서를 국정화하는 이유는 추측하건대 당신 아버지의 과오를 미화하기 위함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에 자원해 일본을 위해 싸운 분을 위대한 대통령으로 밀기는 좀 부담스럽다. 비단 박정희 대통령 말고도 우리나라 보수세력이 추종하는 분들은 대개 친일의 경력이 있는지라,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하는 보수세력은 우리나라의 건국시점을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대신 1948년 정부수립으로 하려고 한다. 그래야 친일파들에게 면죄부가 주어지고,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가 되니 말이다. <친일인명사전>을 각 학교에 배포하는 것에 불편한 심기를 내비칠 정도로 친일에 관대한 보수세력이 ‘독립운동을 위해 애쓴 이를 잊지 않겠다’며 유관순을 전면에 내세웠으니, 기가 막히지 않는가? ‘유관순에 대해 초등학교에서 다 배워서 넣지 않았다’는 진보 측의 말이 치졸한 변명으로 느껴질 수밖에. ‘김일성 주체사상을 아이들이 배우고 있다’는 식의 선동도 기가 막힌다. 실제 교과서에서 북한 관련 내용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주체사상도 비판적으로 기술돼 있지만, 저런 선동을 하는 이유는 실제로 교과서를 훑어보며 그 말이 맞는지 확인해 볼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진보세력이 뒤늦게 “사실과 다르다”고 우겨보지만, 이미 기선을 제압당한 뒤라 뒷북에 그친다. 비단 요즘만의 일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종부세가 부과됐을 때 보수언론은 ‘세금폭탄’이란 용어를 쓰며 반대를 표시했다.



종부세가 상당액 이상의 재산을 가진 사람에게만 부과될 뿐 서민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지만, 그 표현은 종부세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을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 사람들의 구미를 끌어당기는 선동에 능하다는 것, 앞으로도 보수의 시대가 계속될 것 같은 이유다.

영악한 전략도 전략이지만, 보수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 건 콘크리트 같은 지지층의 힘이 크다. 더 무서운 건 이 지지층 중 상당수가 아무 생각이 없다는 점. 예를 들어보자. 며칠 전 발표된 국정교과서 여론조사 결과 반대가 52.6%, 찬성이 42.8%였다. 반대가 더 많긴 하지만, 시대착오적인 국정화에 40%가 넘는 이들이 찬성한 게 더 불가사의다. 아마도 이들은 교과서 국정화를 문재인이 주도했다면 가스통을 들고 거리로 나와 반대시위를 했으리라.

노무현 대통령 시절을 생각해 보자. 보수는 당연히 노무현을 물어뜯었지만, 노 대통령에 대한 진보세력의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2006년 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5%대까지 떨어진 것도 진보세력이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 ‘대통령직을 잘 수행하고 있는가?’만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반면 보수층은 그런 생각 자체가 없다. 국정수행 지지도를 무슨 대선투표 정도로 아는지라 대통령이 아무리 삽질로 일관해도 무조건 ‘잘한다’를 선택한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늘 50%에 육박하는 것은 바로 그 이유다. 정치라는 게 원래 지지층을 빼앗아 오는 게임일진대, 생각 자체가 없으니 이들을 설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진중권 교수가 다음과 같이 한탄한 것도 이해가 된다.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니 이길 수가 없다.”

세상에 많은 대통령이 있겠지만, 박 대통령만큼 행복한 대통령은 드물 것 같다. 하고 싶은 걸 지시만 하면 참모들이 신출귀몰한 전략을 짜주고, 콘크리트 지지층은 그게 자신들의 이익과 상충될지언정 열정적으로 옹호해 준다. 아무리 삽질을 해도 선거는 다 이기기까지 하니, 얼마나 좋은가? 이건 비단 박 대통령뿐 아니라 앞으로 대통령이 될 보수인사들에게도 해당되는 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겠다. 대한민국, 보수 대통령의 천국.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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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극일 (金克一)은 조선시대 김해 사람으로 부모님을 극진히 모셨다. 어머니가 종기로 고생할 때 극일은 입으로 상처를 빨아 낫게 했으며, 아버지가 병이 들었을 때는 대변까지 맛보며 간호를 했다.”

효자. 듣기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단어다. 인터넷이 없던 조선시대에도 효자에 관한 미담은 도의 경계를 넘어 전국에 회자됐고, 나라에서는 이들을 불러 표창하기도 했다. 이렇듯 효자는 해당 지역의 자랑이기도 했지만, 요즘 들어서는 효자의 인기가 그전만 못한 느낌이다. 여성들 사이에서 효자가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데이트 도중 별일 아닌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집에 가버리는 남자를 좋아할 여자는 그리 많지 않다. 여성들은 이런 남자들을 ‘마마보이’라 부르며 경계했다.

더 큰 문제는 결혼 뒤에 발생한다. 효자남편과 결혼하면 시부모를 모셔야 하거나 그에 준할 만큼 시댁에 잘해야 하니, 아내로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과거와 달리 요즘엔 효자가 직접 몸으로 뛰기보단 아내를 시켜서 효도를 하는 경우가 크게 늘어난 것도 부담을 가중시킨다. 인터넷에서 ‘효자남편’을 검색하면 숱한 미담이 나오는데, 대부분의 결론이 “효자남편은 싫다”고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김극일이 직접 아버지 대변을 맛보는 대신 아내에게 시켰다면 그 아내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하지만 지금 효자들은 하나같이 바빠, 온갖 수발을 아내에게 시킨다. 그러다 보니 다음과 같은 일도 생긴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는 대신 집에서 모시는데, 대소변을 받아내고 옷을 갈아입히는 일은 모두 아내의 몫이다. 효자남편은 밤늦게 집에 와서 “이렇게밖에 못 모셔?”라며 아내를 타박하는 것으로 효성을 과시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을 낳아주신 할아버지, 할머니한테까지 정성스러운 제사상을 차리게 하니, 명절까지 합치면 아내 허리가 휠 지경이다. 아내들이 효자에게 거부감을 갖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런데 높은 사람, 예를 들어 대통령이 효자면 어떨까? 아랫사람은 당연히 피곤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국민들까지 피곤할 수 있다. 하필이면 지금 대통령께선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 중 가장 효성이 지극한 분이다. 대통령의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지만, 대통령의 효성은 갈수록 더 커지는 느낌이다. 게다가 대통령은 다른 면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아버지에 관해서는 기억력이 출중해서, 아버지 욕을 했던 사람은 잊지 않고 뒤끝을 작렬시킨다.


문제는 대통령의 아버지가 보통 사람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오랜 기간 대통령을 하신 박정희라는 점이다. 다들 알다시피 박정희는 경제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다음과 같은 전력도 가지고 있다. 일제시대 때 일본 육사에 들어가기 위해 혈서를 썼고, 졸업 후 관동군 중위로 활동했다. 해방 후엔 북한을 추종하는 남로당에 가입해 군인 신분을 박탈당한 적이 있고, 쿠데타로 헌법과 민주주의를 유린했으며, 영구집권이 가능한 유신헌법을 만들었고, 긴급조치를 선포함으로써 대통령에 대해 욕만 해도 영장 없이 체포하도록 했다. 따라서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공과를 따져서 객관적으로 해야지, 무조건 숭배만을 강요해선 안 된다.

하지만 효성이 지극한 대통령께서는 나이든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자라나는 세대만큼은 아버지를 숭배하게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산적한 이슈도 많을 텐데 갑자기 교과서를 국정화하자고 들고나온 것도 자신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해야 했고, 또 아버지 탄생 100주년인 2017년에 맞추려면 지금부터 서둘러도 늦다는 인식 때문이었으리라. 벌써부터 박정희가 비밀 광복군이었다는 얘기를 흘리는 걸 보면 앞으로 만들 교과서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새 교과서로 역사를 배운 이들이 사회로 나갈 때쯤엔 곳곳에 박정희 동상이 만들어지고, 박정희를 신처럼 추종하는 종교가 생기지 않을까? 난 국정화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기존 검정제에 문제가 있다면 국정화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니까.

하지만 국정화 방침을 먼저 정한 뒤 거기에 맞는 논리를 억지로 만들려다 보니 모두가 피곤해진다. 그 결과 역사학자들이 국정화 반대 서명을 하고, 국정화에 관심이 없던 국민들마저 찬반으로 갈라져 싸우고 있다. 대통령 뜻이라면 무조건 받드는 새누리당이 “현 교과서는 주체사상을 가르친다”며 예의 색깔론을 펴는 것을 보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 사태를 초래한 건 다 대통령의 효심, 앞으로 대통령을 뽑을 때는 효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먼저 따져본 뒤 선택을 하자. 효자 대통령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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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극일 (金克一)은 조선시대 김해 사람으로 부모님을 극진히 모시었다. 어머니가 종기로 고생할 때 극일은 입으로 상처를 빨아 낫게 하였으며, 아버지가 병이 들었을 때는 대변까지 맛보며 간호를 했다.”

효자. 듣기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단어다. 인터넷이 없던 조선시대에도 효자에 관한 미담은 도의 경계를 넘어 전국에 회자됐고, 나라에서는 이들을 불러 표창하기도 했다. 이렇듯 효자는 해당 지역의 자랑이기도 했지만, 요즘 들어서는 효자의 인기가 그전만 못한 느낌이다. 여성들 사이에서 효자가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데이트 도중 별 일 아닌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집에 가버리는 남자를 좋아할 여자는 그리 많지 않다. 여성들은 이런 남자들을 ‘마마보이’라 부르며 경계했다.

서민 교수
더 큰 문제는 결혼 뒤에 발생한다. 효자남편과 결혼하면 시부모를 모셔야 하거나 그에 준할 만큼 시댁에 잘 해야 하니, 아내로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과거와 달리 요즘엔 효자가 직접 몸으로 뛰기보단 아내를 시켜서 효도를 하는 경우가 크게 늘어난 것도 부담을 가중시킨다. 인터넷에서 ‘효자남편’을 검색하면 숱한 미담이 나오는데, 대부분의 결론이 “효자남편은 싫다”고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김극일이 직접 아버지 대변을 맛보는 대신 아내에게 시켰다면 그 아내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하지만 지금 효자들은 하나같이 바빠, 온갖 수발을 아내에게 시킨다. 그러다보니 다음과 같은 일도 생긴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는 대신 집에서 모시는데, 대소변을 받아내고 옷을 갈아입히는 일은 모두 아내의 몫이다. 효자남편은 밤늦게 집에 와서 “이렇게밖에 못 모셔?”라며 아내를 타박하는 것으로 효성을 과시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을 낳아주신 할아버지, 할머니한테까지 정성스러운 제사상을 차리게 하니, 명절까지 합치면 아내 허리가 휠 지경이다. 아내들이 효자에게 거부감을 갖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런데 높은 사람, 예를 들어 대통령이 효자면 어떨까? 아랫사람은 당연히 피곤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국민들까지 피곤할 수 있다. 하필이면 지금 대통령께선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 중 가장 효성이 지극한 분이다. 대통령의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지만, 대통령의 효성은 날이 갈수록 더 커지는 느낌이다. 게다가 대통령은 다른 면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아버지에 관해서는 기억력이 출중해서, 아버지 욕을 했던 사람은 잊지 않고 뒤끝을 작렬시킨다.

문제는 대통령의 아버지가 보통 사람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오랜 기간 대통령을 하신 박정희라는 점이다. 다들 알다시피 박정희는 경제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다음과 같은 전력도 가지고 있다. 일제시대 때 일본육사에 들어가기 위해 혈서를 썼고, 졸업 후 관동군 중위로 활동했다. 해방 후엔 북한을 추종하는 남로당에 가입해 군인 신분을 박탈당한 적이 있고, 쿠테타로 헌법과 민주주의를 유린했으며, 영구집권이 가능한 유신헌법을 만들었고, 긴급조치를 선포함으로써 대통령에 대해 욕만 해도 영장 없이 체포하도록 했다. 따라서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공과를 따져서 객관적으로 해야지, 무조건 숭배만을 강요해선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6년도 예산에 대해 시정연설하고 있다._ 김창길 기자


하지만 효성이 지극한 대통령께서는 나이든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자라나는 세대만큼은 아버지를 숭배하게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산적한 이슈도 많을 텐데 갑자기 교과서를 국정화하자고 들고 나온 것도 자신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해야 했고, 또 아버지 탄생 100주년인 2017년에 맞추려면 지금부터 서둘러도 늦다는 인식 때문이었으리라. 벌써부터 박정희가 비밀 광복군이었다는 얘기를 흘리는 걸 보면 앞으로 만들 교과서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새 교과서로 역사를 배운 이들이 사회로 나갈 때쯤엔 곳곳에 박정희 동상이 만들어지고, 박정희를 신처럼 추종하는 종교가 생기지 않을까? 난 국정화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기존 검정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국정화를 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니까.

하지만 국정화 방침을 먼저 정한 뒤 거기에 맞는 논리를 억지로 만들려다보니 모두가 피곤해진다. 그 결과 역사학자들이 국정화 반대 서명을 하고, 국정화에 관심이 없던 국민들마저 찬반으로 갈라져 싸우고 있다. 대통령 뜻이라면 무조건 받드는 새누리당이 “현 교과서는 주체사상을 가르친다”며 예의 색깔론을 펴는 것을 보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 사태를 초래한 건 다 대통령의 효심, 앞으로 대통령을 뽑을 때는 효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먼저 따져본 뒤 선택을 하자. 효자 대통령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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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과학자는 어떤 자질을 가지고 있어야 할까? 다른 데 일절 눈을 돌리지 않고 실험만 잘하면 훌륭한 과학자라고 생각하겠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첫째, 자신이 뭘 하려는지 확실한 목표를 정하고, 둘째, 거기 맞는 인재를 모아 연구팀을 꾸리며, 셋째, 그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게 잘 관리하는 것, 그게 훌륭한 과학자가 할 일이다.

최근 출간된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는 네안데르탈인의 DNA 서열을 분석함으로써 스타 과학자가 된 스반테 페보 박사가 자신의 30년 연구인생을 정리한 책이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페보가 성공적인 연구생활을 한 이유였다. 위에서 언급한 첫째, 둘째야 남들도 웬만큼 할 수 있지만, 페보에겐 남들이 어려워하는 세 번째를 잘하는 비결이 있었다. 팀장인 페보가 일방적으로 팀을 좌지우지하는 대신 납득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팀원들이 언제든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 것.

이렇게 민주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면 장점이 많다. 첫째, 좋은 아이디어는 팀원들이 자유롭게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와중에 나올 수 있다. 페보가 숱한 난관을 뚫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둘째, 연구원이 주인의식을 갖는다. 교수가 하라는 대로 하면 의욕이 생기지 않고 일도 수동적으로 하게 되지만, 자기 의지가 반영된 연구라면 사정이 다르다.

실제로 페보의 연구원들은 며칠씩 집에 안 들어가도 좋다는 태도로 연구에 임했다. 하지만 페보가 보기엔 이 시스템이 답답할 때도 여러 번 있었다. 이 분야 최고 전문가인 자신이 하자는데 남들이 반대를 하면 짜증이 나지 않겠는가? 그래서 페보는 “교수의 말이 곧 법이던 독재 시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씩 했”지만, 민주적 분위기의 장점이 사라질까봐 “다수의 의견에 잠자코 따랐다. 우리 팀의 값진 자산인 생각을 자유롭게 교환하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획기적인 업적을 만들 수 있었다.



그 중요성과 업무량에서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대통령이 하는 일도 과학자와 다를 바 없다. 달성 가능한 국정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에 맞는 사람들을 불러다 일을 나누어 주고, 그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게 대통령의 일이니까.

안타깝게도 현 대통령은 그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 국정목표부터 그랬다. 최우선 과제로 꼽은 ‘창조경제’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 측근은 드물었다. 해당 분야 장관으로 오는 이들은 “창조경제가 뭐냐?”는 질문공세에 진땀을 흘렸다. 목표가 뭔지도 모르는 판에 사람들이 열심히 일할 수는 없는 노릇, ‘안전과 통합의 사회’를 비롯해서 5대 국정목표가 대부분 달성되지 못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목표에 맞는 사람들을 모으려 노력한 것도 아니었다. 현 정부의 인사기준은 오직 ‘대통령과 친하냐?’였고, 친한 사람들을 주로 등용하다보니 역대 어느 정부보다 더 심한 영남 편중 인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은 “인재 위주로 인사를 하다 보니 어떤 때는 이쪽이 많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저쪽이 많기도 하다”며 겸손해했지만, 차라리 “내가 영남에 오래 살아서 그렇다”고 하는 게 훨씬 더 설득력이 있을 듯하다.

하지만 대통령이 가장 못하는 것은 세 번째였다. 페보 박사처럼 민주적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신이 나서 일을 더 잘할 텐데, 대통령은 자신의 말에 토를 달지 못하는 분위기를 조성했고, 혹시라도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 있다면 철저히 응징했다. 물론 뜻이 안 맞는 사람을 내쳐야 할 경우도 없지는 않다. 페보 박사 역시 낡은 기법만 고집하는 과학자와 결별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몇몇 측근들에 대한 대통령의 응징은 그저 어이를 상실한다. 검찰총장은 국정원 댓글 수사를 열심히 하다 쫓겨났고,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도움을 주려다 굴욕을 당했다. 최근 김무성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는 건 그가 내년 총선에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하겠다고 야당과 합의해서다. 안심번호 공천제가 나쁜가? 아니다. 청와대는 민심이 왜곡되느니 국민세금이 들어간다느니 하는 걸 반대이유로 내걸지만, 속내는 이 제도로 인해 대통령 자신이 국회의원 공천권을 마음껏 휘두르지 못하는 게 싫어서다. 이런 분위기에서 국민을 위하려 나설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다들 숨을 죽이는 세상에서 대통령의 친위대인 ‘친박’들의 목소리만 날로 높아진다.

“자기 형제를 죽이기 위해 오랑캐와 야합했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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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은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이다. 새해를 시작하는 설도 큰 명절이긴 하지만, 풍성한 수확과 함께하는 추석이야말로 몸과 마음이 좀 더 풍요로운 때다. 그래서일까. 좀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살아보고자 연휴 동안 대통령님의 장점을 찾아 헤맸다. 주변 좌파들은 “설마 장점이 있겠어?”라며 냉소했지만, 막상 찾아보니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첫째, 시간을 잘 활용하게 해준다.

나이가 들면 시간이 참 빨리 간다는 걸 느낀다. 10대는 시간이 시속 10㎞로 가고, 50대는 시속 50㎞로 간다는 말이 있듯이, 새해가 밝은 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연말이곤 했다. 서유석이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라며 탄식했듯이 시간이 간다는 건 안타까운 측면이 더 많은데, 현 대통령이 집권한 뒤 놀랍게도 세월이 가는 속도가 늦춰졌다. 이제 2년 남았나 싶으면 3년도 더 남았고, 그로부터 한참을 더 지난 것 같은데 아직도 2년 반이나 남았다.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군대 있을 때보다 시간이 더 느리게 가는 것 같은데, 이 느낌을 잘 이용한다면 의외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6개월은 걸릴 일을 석 달에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둘째, 늘 긴장할 수 있게 해준다.

먼바다에서 잡히는 청어는 운송 도중 거의 죽어버려 수산시장에서는 냉동청어밖에 접할 수 없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청어를 살린 채 운반하는 게 가능해졌다. 비결은 수조에 청어의 천적인 메기를 함께 넣는 것으로, 청어가 메기한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긴장하다보니 배가 부두에 도착할 때까지 살아있을 수 있었다.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의 ‘메기효과’ 이론이다. 사람도 살아가는 데 적당한 긴장이 필요해서, 너무 나태해지면 일도 안되고 건강도 해칠 수 있다. 세월호에 이어 메르스까지, 현 정부 들어 해마다 큰 사건이 터지고 있다. 할 수 없이 사람들은 ‘내 안전은 스스로 지킨다’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는데, 이는 우리의 생존력을 더 높여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셋째, 투자 대비 효과가 뛰어나다.

지난 8월14일,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서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라는, 어느 정부도 하지 못한 선물을 국민들에게 안긴다. 뜻밖의 조치에 놀란 국민들이 우르르 차를 갖고 고속도로로 나간 덕분에 메르스로 인해 침체됐던 우리나라 경제는 극적으로 회생한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대통령은 추석을 맞아 장교를 제외한 56만명의 사병 전원에게 1박2일의 특별휴가증을 주고, 멸치와 김가루, 약과 등으로 구성된 특별간식을 하사했다. 덕분에 지뢰사건 등으로 침체됐던 군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는데, 간식을 사는 데 든 돈이 청와대 예산이 아니라 ‘군 소음피해 보상금’을 가져다가 쓴 것이라니, 이쯤 되면 박 대통령의 ‘한턱 정치’가 신의 경지에 이른 게 아닌가 싶다. 미국이 국산 전투기 개발에 필요한 기술이전을 하지 않으려는 것도 군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박 대통령의 능력을 무서워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넷째, 지역인재를 육성시킨다.

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대탕평 인사”를 약속했다. ‘골고루 인재를 등용해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취지였는데, 며칠 전 경향신문이 파워 엘리트 218명을 분석한 결과 영남 출신이 38.1%로 가장 많았다. 일전에 대통령은 영남 편중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인재 위주로 하다 보니까 어떤 때는 이쪽이 많기도 하고 저쪽이 많기도 하다”고 답했다. 하기야,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 영남 출신이 무려 7명에 달하니, 영남 사람들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긴 하다. 고무적인 건 다른 지역 분들이 “우리 마을에서도 대통령이 나와야 해!”라며 자기 지역의 인재를 키우려 한다는 것. 이렇게 경쟁적으로 인재를 키우다 보면 결국엔 ‘대탕평 인사’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으니, 단기적인 영남 편중을 시비할 일은 아니다.

다섯째, 국정원을 세계적 정보기관으로 키우고 있다.

<파리의 생활 좌파들>이란 책에는 한 프랑스 고위공무원의 인터뷰가 나온다. “이명박이 권력을 잡으면서 국정원 활동이 활발해졌고 우리를 압박해 오기 시작했다. …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뒤로는 더 심해졌다. 일단 파리에 주재하는 국정원 직원의 숫자가 더 늘어났다.”(183쪽)

우리는 국정원이 모사드나 CIA에 비해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후자의 기관들은 세계와 싸우는데 국정원은 댓글을 단다든지 간첩을 조작하는 등 찌질한 일만 했던 게 그 이유. 하지만 박 대통령 집권 이후 우리 국정원도 전 세계를 상대로 싸움을 시작한 듯하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우리도 모사드 같은 훌륭한 정보기관을 가질 수 있을 텐데, 대통령이 단임인 게 아쉬워진다.

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50%대라는 것에 놀라는 좌파들이 많다. 하지만 대통령의 장점을 생각하면 이 지지율은 오히려 낮은 것이다. 대통령의 장점이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져서 청와대 하늘에 늘 슈퍼문이 빛나기를 빌어본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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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서른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늦게 시작한 독서는 내 삶을 180도 바꿔 놨다. 나밖에 모르고, 사회에 대해 일말의 관심도 없던 내가 이제는 사람들 앞에 서서 사회 정의에 대해 떠들고 있으니, 뽕나무밭이 바다가 된 격이다. 책은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킬까?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독서가인 CBS 정혜윤 PD는 이렇게 말한다.

“책에는 좋은 말이 많잖아요. 요즘 세상에서 책이 아니면 그런 말들을 어디서 듣겠어요? 그 말들을 듣다 보면 스스로 변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지난달,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가면서 6권의 책을 가져갔다는 게 보도됐다. 휴가지에서 책을 읽는 대통령이라니, 멋져 보인다. 그가 가져간 책들은 다 나름의 의미를 지닌 것들이다. <저지대>에 대한 해설을 보자.

“1960, 1970년대 인도와 미국을 배경으로 시대와 개인,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거기에는 이런 멋진 말도 나온단다. “죽음 앞에서 우린 평등해. 그 점에선 죽음이 삶보다 나은 것 같아.”(93쪽) <올 댓 이즈>도 한 남자의 삶을 통해 미국 사회에서 사는 게 어떤 것인지를 말해 주는데, 이런 책들을 읽으면 삶이 무엇인지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섯 번째 대멸종>은 지구에서 사라져 가는 생명체들의 이야기로, 개발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메시지를 얻을 수 있겠다. 비단 오바마만이 아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2대 대통령인 존 애덤스나 3대 대통령인 제퍼슨은 장서가 수천권인 애서가였고, 후임 대통령들 중에도 알아주는 독서가가 꽤 많았단다. 나름의 한계는 있을지언정 미국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이 중요한 가치가 된 것도 이런 전통 덕분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책 하면 떠오르는 분은 1만7000권의 책을 소장했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그는 비서실장이 골프를 권하자 이렇게 말했단다. “좋은 운동이지요. 그런데 골프 한 번 치려면 서너 시간은 걸리죠? 그렇다면 책을 한 권 읽을 시간인데, 독서가 낫지 않을까요.” 노무현 전 대통령도 책을 좋아해, 휴가 때는 물론이고 탄핵 소추를 당했을 때도 책을 읽으며 보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떨까? 고백하자면 난 박 대통령에게 편견을 갖고 있었다. 책과 그다지 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대통령이 된 뒤 첫 번째로 간 2013년 여름휴가 때 박 대통령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모래밭에 글씨를 쓰며 놀고 계시던데, 그 사진은 기존의 편견을 더 강화시켜 줬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경남신문 기사의 한 구절을 보자.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원동력은 무엇일까? … 바로 ‘독서’다. 박 대통령의 삼성동 자택을 방문한 기자나 보좌관들은 누구나 놀란다고 한다. 원인은 2층 서재의 박근혜가 읽은 수많은 책 때문이다.”

이번 여름휴가 때도 박 대통령은 책만 읽으며 보냈다고 한다. 오바마와 달리 박 대통령이 휴가 때 무슨 책을 읽었는지 자랑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 좌파들은 ‘읽는 책의 수준이 낮아서’라고 생각하겠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출판사가 소외받을까봐”란다. 실제로 대통령이 읽었다고 공개한 책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은 바로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다.

독서가의 한 명으로서 대통령이 책을 좋아한다니 다행이긴 하다. 좀 의아하다 싶은 건 그렇게 책을 좋아하는 분이 왜 서른 이전의 나와 비슷한 행동을 하시는 것이냐다. 말씀에 두서가 없는 것도 그렇고,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문제가 생기면 아랫사람에게 뒤집어씌우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책과 담을 쌓은 분 같다. 세월호 유족들을 대하는 태도는 더욱 미스터리다. 책을 많이 읽었다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의 슬픔을 능히 헤아릴 수 있어야 하는데, 그분들을 무슨 기생충 보듯이 하셨으니까. 비슷한 사례가 있긴 하다. 2000년 미국 대통령이 된 부시도 독서 애호가였단다. 바쁜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2006년부터 3년간만 따져도 200권 가까운 책을 읽었으니, 대단하긴 하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그는 별 시답지 않은 이유로 이라크전을 일으켰고, 평상시 모습에서도 독서를 통해 길러지는 지성이나 배려 같은 덕목을 찾아보긴 힘들다. 이분들은 도대체 왜 이런 걸까?

문제는 앎과 실천의 괴리일 것이다. 책을 읽고 아무리 좋은 교훈을 얻는다 해도 그게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지 않겠는가? 다시금 정혜윤 PD의 말을 인용한다.

“책을 읽고 나서 나와야 할 진짜 좋은 질문은 ‘이 책을 읽었으니까 다음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것이에요. 이런 질문을 자기 자신한테 던질 때 책이 나를 변화시키는 조언이 될 수 있어요.”

이제 가을이다. 책을 읽고 그걸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자. 그렇지 않는다면 몇 트럭의 책을 읽는다 해도 변하는 건 없다.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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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서울에 일이 있어 여의도에 갔다가 나이 드신 분들(이하 어르신)이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는 모습을 봤다. 종북세력을 규탄하는 내용이었는데, 그때 든 생각은 ‘날도 더운데 고생이 많으시구나’였다. 갑자기 3년 전 대선 투표 때의 일이 떠올랐다. 투표를 마치고 근처 공원에 놀러 갈 생각에 아침 일찍 투표장에 갔는데,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내가 사는 천안이 유난히 어르신들이 많은 탓인지, 아니면 나이가 들수록 부지런해서 그런지, 그 대부분은 어르신들이었다. 흰옷을 입은 채 차례를 기다리는 그분들의 얼굴은 무료해 보였다.

선거 때마다 어르신들은 연령대별 투표율에서 늘 1, 2위를 다툰다. 2012년 대선 때 60대 이상의 투표율은 80.9%로 전체 투표율을 가뿐히 넘겼고, 2014년 지방선거에서도 70대 이상의 투표율은 67.3%로, 한창 팔팔한 20대의 48.4%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어르신들은 왜 이렇게 투표를 열심히 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분들이 국가가 부여한 의무에 헌신적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투표를 하는 것은 권리이기도 하지만 의무이기도 한데, 처벌이 뒤따라야 마지못해 의무를 다하는 젊은층과 달리 어르신들은 ‘의무’라고 하면 웬만해서는 지키려 하신다. 우리나라가 빠른 시간 안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것도 다 어르신들이 의무를 지키며 헌신한 결과였다.

그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많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짠하다. 그렇게 나라에 공헌하신 분들인데, 70세를 넘긴 뒤에도 계속적으로 선거를 통해 국가에 기여하라고 강요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지 의문이 들어서다. 나이가 들면 힘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릎연골이 다 닳아서 걸을 때마다 아프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특히 통증이 심하다. 계단이 있는 투표소가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투표 몇 번 했다가 골병이 들 수도 있다. 또한 나이가 들면 눈이 침침해진다. 투표용지의 글씨가 안 보일 수 있고, 손이 떨려 투표용지의 테두리 안에 붓두껍을 찍는 데 실패하기도 한다(테두리에 닿으면 실격이다). 간혹 판단력이 흐려지는 분도 계셔서, 지지하는 당의 기호가 몇 번인지 헷갈리시는 분도 계시다. 얼마 전 친구 문병을 갔다가 만난 83세 할아버지는 대통령 담화를 TV로 보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박근혜 대통령이 말씀은 정말 잘하셔.”

현 대통령의 유일한 약점이 언변이 약하다는 것인데, 나이가 들다 보니 판단기준이 뒤죽박죽된 것 같아 안타까웠다. 정년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놓은 것도 이제 그만 일하고 쉬시라는 취지라는 점에서, 생기는 것 하나 없는 선거의 의무를 계속 감당하게 놔두는 게 옳은지 중지를 모을 필요가 있다.




19세 미만인 학생들을 생각해 보자. 건국 이래 최고의 영어 실력을 갖춘 그 아이들이 성인에 비해 판단력이 떨어진다고 할 수 없고, 체력도 뛰어나 투표장이 5층에 있어도 하등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지 않는 것은 정치바람에 휩쓸리지 말고 공부에 전념하라는 취지다. 각 고등학교에 후보자들이 찾아가 자신을 찍어달라고 전단지를 돌리고, 학생들이 야당과 여당으로 편을 나눠 패싸움이라도 하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절로 고개를 젓게 된다.

그런데 왜 휴식이 필요한 어르신들을 정치싸움의 현장에 그대로 방치하는 걸까? 어르신들로 하여금 젊은이에게도 버거운 가스통을 들고 거리로 나가도록 떠미는 것은 효를 최고의 가치로 숭상했던 우리나라의 전통과도 맞지 않는다.

이런 우려가 나올 수는 있다. 어르신들이 투표권을 갖지 못하면 어르신들의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런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그분들이 선거권을 어느 쪽으로 행사했는지를 생각해 보라. 어르신들은 노인복지를 우선시하는 후보보다는 22조원을 들여 강바닥을 파거나, 법인세를 깎아주는 후보를 훨씬 더 선호했다. 자기 계층의 이익보다 국가발전을 우선시하는 분들이라니,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는가? 우리 어르신들은 그렇게 사심이 없는 분들이고, 그랬기 때문에 우리 후손들이 이만큼이나마 살게 된 것이다.

한 가닥 불안은 있을 수 있겠다. 어르신들의 ‘올바른’ 선택이 종북세력으로부터 이 나라를 구해준 원동력인데, 70대 이상이 선거에서 빠진다면 이 나라가 흔들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 단언컨대 그 걱정은 안 해도 될 듯하다. ‘일베’의 뛰어난 활약에서 보듯 우리 사회가 20대들을 워낙 잘 키운 덕분에 종북세력이 과거만큼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중이니 말이다. 설사 종북세력이 집권한다 한들, 메르스에 속수무책이고 지뢰 도발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화를 구걸하는 현 정부보다 못할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북한이 망하기라도 하면 종북세력은 구심점을 잃고 쓰러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어르신들, 나라 걱정은 접고 투표날 마음 편히 쉬십시오. 물 좋은 온천도 많으니까요.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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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이 이탈리아에서 해킹장비를 샀다. 장비를 판 회사 직원의 말에 따르면 국정원은 자신들에게 “카카오톡 감청 기능을 추가해달라”고 부탁했다. 게다가 국정원은 지난 대선 때 야당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다는 등 정치공작을 벌였던 전력이 있다. 사정이 이러니 여론조사 결과 “내국인 사찰도 했을 것”이라고 믿는 이가 52.9% 나온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국정원 주장대로 “대테러나 대북공작 활동을 위해서만 해킹했을 것”이라고 응답한 분들도 26.9%나 됐다. 이분들은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그 중 일부는 세상은 추호의 거짓도 없는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일 것이다.

그래서 이분들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밀문서를 줄줄 외우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부일 뿐, 26.9%의 대부분은 자신의 소신보단 “내가 어떻게 답하면 박근혜 대통령에게 유리할까”를 생각하는 분들이다. 세상에선 이런 분들을 ‘박빠’라고 부른다. 메르스 사태 등 갖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30%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것도 다 이분들 때문인데, 박빠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박 대통령을 가련하게 여긴다.

“가련한 대통령 좀 그만 흔들어라, 멍청한 남정네들아.” 박빠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문자의 첫 구절이다. 처음 이 구절을 봤을 때 난 여기서 지칭하는 대통령이 박 대통령은 아닌 줄 알았다. 행정부의 수반이며, 입법과 사법을 우습게 여기는 절대자를 ‘가련’하다고 표현할 사람은 최소한 우리나라에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다음을 보라. “박 대통령, 잘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라도 응원을 보냅시다.” 아이돌 그룹의 빠들이 자신들이 추종하는 연예인을 위대하다며 치켜세우는 것을 떠올려보면, 절대자를 가련한 존재로 승화시키는 박빠들은 확실히 특이한 존재다.

둘째, 노무현 전 대통령을 무소불위의 존재로 치켜세운다.

“참 나쁜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 박 대통령이 한 말인데, 여기서 보듯 박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을 싫어했다. 사정이 이렇다면 박빠들은 노 전 대통령을 깎아내려야 마땅하다. A가수의 팬이라면 라이벌인 B가수가 A가수보다 노래를 못한다고 하는 게 일반적인 경향이니까. 그런데 박빠들은 그 반대여서, 노 전 대통령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 뭔가가 잘 안되면 죄다 노무현 탓으로 몰아붙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살아 계시다면 얘기가 다르지만, 돌아가신 지 6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러고 있으니 정말 신기한 일이다. 일례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유력 정치인들에게 돈을 준, 소위 성완종 리스트가 문제가 됐을 때 박빠들의 논리는 “노무현이 대통령 재임 시절 성완종을 사면해서 박 대통령을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였다. 정치적 라이벌을 과대평가하는 빠라니, 정말 특이하지 않은가.


셋째, 계산에 약하다.

무상급식 얘기가 나올 때마다 박빠들은 ‘나라가 거덜난다’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 충정은 십분 이해하지만, 그토록 나라의 재정을 걱정한다면 박빠들이 먼저 대통령에게 기업의 법인세를 올리자고 얘기해야 맞다. 이명박 정부 때 시작된 감세정책은 5년간 100조원에 가까운 재정적자를 냈고, 그 기조를 그대로 유지한 현 정부에서는 135조원의 적자가 날 것으로 예상된다. 무상급식 비용은 여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법인세의 원상회복에 반대한다. 신기하게도 박빠들은 여기에 침묵으로 일관한다. 왜 그럴까? 나라를 걱정하는 그들의 충정이 거짓일 리는 없으니, 아마도 숫자 감각이 없는 게 그 이유이리라. 학생들에게 경고한다. 수학을 못하면 박빠가 될 확률이 높다.

박빠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또 다른 문자는 박 대통령의 업적을 나열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꼽는 첫 번째 업적은 “노무현의 한·미연합사 전작권 환수 무기 연기”였다. 모든 나라는 평화 시는 물론이고 전시에 독자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권리를 갖는다. 어쩔 수 없이 미국에 양도하긴 했지만, 전작권은 우리가 주권국가로서 반드시 돌려받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전작권 환수를 무기 연기한 게 박 대통령의 첫 번째 업적이라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혹시 그들은 전작권의 개념을 잘 모르는 게 아닐까? 참고로 두 번째 업적은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인데, 아무리 내세울 업적이 없어도 그렇지, 이런 것들을 업적이라고 문자로 돌리고 있다는 게 참 안돼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노사모는 대통령의 이라크 파병을 반대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도 반대하는 등 비판할 점은 비판하곤 했다. 하지만 박빠는 대통령의 뜻이라면 무조건 추종한다. 지금 박 대통령이 나라를 산으로 끌고 가시는 건 물론 본인의 능력 탓이지만, 박빠의 무조건적인 지지도 여기에 한몫을 한다. 박빠가 위험한 이유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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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대선을 앞둔 2007년 12월13일, 당시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장 홍준표는 편지 한 통을 공개했다.

“나의 동지 경준에게…. 자네가 큰 집하고 어떤 약속을 했건 우리만 이용당하는 것이니 신중하게 판단하길 바라네.”

홍준표에 따르면 이 편지는 김경준과 같이 수감생활을 한 신경화가 김경준에게 보낸 것으로, 김경준이 우리나라에 온 이유가 노무현 대통령의 요청에 의한 것임을 암시하고 있었다. BBK 대표였던 김경준은 주가조작으로 미국으로 도망간 상태였는데, 대선을 앞두고 그가 귀국한 것은 BBK를 자신이 설립한 것처럼 얘기하고 다녔던 이명박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경화의 편지가 공개되면서 상황이 달라졌고, 결국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로부터 4년 뒤, 신경화의 동생이 “그 편지는 이명박씨 가족과 측근의 부탁으로 내가 날조한 것”이라고 폭로하고, 옥중에 있던 김경준은 가짜편지 작성자들을 고소하기에 이른다. 2015년 7월, 재판부는 “가짜편지로 인해 김경준이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면서 가담자들에게 1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쯤 되면 가짜편지를 쓰게 한 배후가 누구인지 궁금해지는데, 검찰의 결론은 “배후는 없다”였다. 홍준표를 비롯해 편지의 유통에 관여된 사람들은 편지가 조작된 사실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배후가 될 수 없다는 게 검찰의 말. 그 말대로라면 홍준표는 누가 썼는지도 모르는 편지를 대선의 판세를 뒤흔드는 결정적 증거인 양 기자들 앞에서 흔들었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가담자들은 왜 그런 위험한 일을 벌였을까. 대선에서 공을 세워 좋은 자리를 얻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게 검찰의 친절한 설명이다.


김경준씨가 옥중에서 경향신문 기자에게 보낸 편지_경향DB


대부분의 사람들은 뭔가 보장을 받고 난 뒤에야 위험한 일에 뛰어든다. “이번 일만 잘되면 자넨 신차장이야” 정도의 약속은 있어야 불법적인 일을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가짜편지 작성의 가담자들은 위로부터 아무런 언질도 없이 위험천만한 일을 했다니,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쉽게 수긍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게 바로 검찰이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했으며, 그 어렵다는 사법시험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한 엘리트다. 별다른 고비 없이 승승장구하다 보면 세상이 따뜻한 곳이라고 생각하기 마련. 검찰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너무 잘 믿는 집단이 됐다. 다른 면에서는 뛰어날지언정 배후를 밝히는 일은 검찰에게 거의 불가능한 미션이 된 것도 그 때문이다. “나는 몰랐다”고만 하면 더 이상 그를 의심하지 않고 수사를 종결해버리고, “배후는 없다”는 식의, 자신들 이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을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일이 검찰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굵직한 사건들은 대부분 배후가 없다. 2012년 선거 직전 대인배 김무성 의원이 비공개가 원칙인 남북 정상 간의 회의록을 피 토하듯 읽었지만, 회의록 유출 여부를 수사한 검찰의 결론은 ‘무혐의’였다. 검찰에 출석한 김 의원이 “대화록을 본 일이 없다”고 했으니, 순진무구한 검찰로서는 그 말을 믿을 수밖에. 국정원 댓글사건을 소신껏 수사하던 채동욱 검찰총장은 느닷없이 혼외아들 의혹이 불거지면서 총장 자리에서 쫓겨났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교육문화수석실, 고용복지수석실 등에서 채 총장의 아들과 그의 어머니 임씨에 대한 정보를 열람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도대체 누가 이런 일을 지시했는지 의혹이 집중됐지만, 검찰의 조사결과 이것들은 모두 개인적 일탈일 뿐 배후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청와대 관계자들이 업무에 바쁠 것을 고려해 서면조사를 하는 세심함을 보였다니, 이 세상이 살 만한 곳인 이유는 이런 분들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국가정보원이 이탈리아의 해킹업체로부터 해킹 프로그램을 주문한 것이 밝혀져 파장이 일고 있다. 국정원은 북한 공작원을 해킹하기 위해 그랬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해킹하려던 것은 카카오톡이었다. 물론 북한 공작원도 카카오톡을 쓸 수 있지만, 그 경우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을 받으면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통째로 들여다볼 수 있으니 굳이 해킹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국정원이 대선 직전 등 매우 민감한 시기에 프로그램을 구입했고, 국정원의 핵심 파트인 대북심리전단 팀이 주로 했던 일도 야당 후보를 욕하는 것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정원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힘들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모두가 아니라고 해도 검찰만은 국정원의 주장을 믿을 것임을. 만일 이 사건을 검찰이 수사하게 된다면 이번 사건 역시 국정원 말단직원 몇 명의 개인적 일탈로 마무리될 확률이 높다.

남의 말을 잘 믿지 않고 매사를 음모론적 시각으로만 바라보다 보면 사회가 혼탁해진다. 그러니 순진무구하기 짝이 없는 우리 검찰은 사회를 맑게 만드는 소중한 존재일 수 있다. 하지만 어쩌다 한 번씩이라도 검찰이 속시원하게 배후를 밝혀줬으면 좋겠다. 매번 반복되는 개인적 일탈이란 결론이, 이젠 좀 지겹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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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보면 싸움의 승패를 따지는 기준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잘못을 누가 더 많이 했는지와 무관하게 먼저 사과하는 쪽이 패자였다. 어른들은 “지는 게 이기는 거다”라는 철학적인 얘기를 하곤 했지만, 또래들이 보는 앞에서 “미안해”라고 하는 건 정말 모양 빠지는 일이었고, 그 어른들도 막상 자신들이 싸울 땐 일절 양보가 없었다. 둘째, 울면 지는 거였다.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겁을 먹었거나 싸운 것 자체를 굉장히 후회한다, 이런 의미로 해석이 됐으니까.

이런 얘기를 한 이유는 남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 대통령께서 ‘연승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일어난 사건을 보자.

세월호 사고의 진상규명을 위해 우여곡절 끝에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대해 대통령은 특별위원회의 독립적 조사를 무력화하는 내용을 담은 시행령을 만들어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이건 애써서 특별법을 만든 국회에 대한 정부의 폭력이었기에, 안 되겠다 싶었던 국회는 소위 ‘국회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다. 개정안의 내용은 국회가 정부를 견제할 수 있도록 보다 강한 권한을 갖자는 것이니,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 개정안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자신의 권한인 거부권을 행사했고, 개정안은 무효가 됐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이해가 가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은 그 직후에 벌어졌다. 대통령이 불같이 화를 냈고, 여기에 대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대통령에게 송구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면서 사과한 것. 허리를 무려 90도로 구부리면서 말이다.

생각해 보자. 민주주의는 삼권분립이 원칙이고,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입법부인 국회와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지고 보면 대통령이 먼저 시행령을 만들어 국회를 공격했고, 국회가 개정안으로 반격을 가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자 새누리당은 개정안을 폐기시킴으로써 이 사태는 종결됐는데, 마지막 공격을 한 쪽이 대통령이니 국회가 좀 더 화가 나야 정상이지만, 오히려 대통령이 펄펄 뛰며 화를 내고 있다. 유 원내대표는 90도 사과에도 불구하고 현재 쫓겨나게 생겼으니, 이건 누가 봐도 대통령의 압승이다.




대통령은 국민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6월 한 달간 우리나라를 공포로 몰아넣은 메르스로 인해 자영업자들은 장사가 안돼 울상이었고, 외국 관광객은 발길을 끊었으며, 환자들은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았다. 10조원의 손실을 냈다는 이 사태의 책임은 초기 대응을 잘하지 못한 정부에 있으니, 여기에 대해서 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사과해야 했다.

하지만 정작 사과한 분은 황교안 총리였는데, 총리가 된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은 분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사과했는지 의아하다. 반면 대통령은 아직도 사과를 안 하고 버티고 있는데, 이대로 간다면 국민에게 값진 승리를 거두게 된다.

메르스 이전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궜던 것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 여권 실세들이 돈을 받았다는 소위 성완종 리스트였다. 당사자들은 돈을 받지 않았다고 부인했지만, 그들의 변명은 하나둘씩 거짓말로 드러났다. 사정이 이렇다면 검찰이 리스트에 연루된 이들을 조사하는 게 당연할 텐데, 대통령의 인식은 국민들의 허를 찔렀다. 성 전 회장에게 돈을 받은 정치인들이 나쁜 게 아니라, 감옥에 있는 성 전 회장을 사면해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나쁘다는 것. 이런 식이면 성 전 회장을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정말 신기하게도 검찰은 성 전 회장이 어떻게 사면이 됐는지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결국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씨가 뇌물을 받고 사면을 해줬음을 밝혀내는 성과를 거뒀고, 대통령과 친하지 않은 ‘비박’ 정치인 두 명에 대해서만 기소하고 나머지는 무혐의로 처리함으로써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사법부도 엄연히 삼권분립의 주체건만, 사법부는 대통령을 견제할 생각은 오래전에 포기한 듯하니 여기서도 대통령이 가볍게 1승을 챙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월호가 침몰한 뒤 진도체육관을 찾은 대통령은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난 천안에 마련된 분향소에만 가도 눈물이 나던데, 유족들이 오열하는 현장에 가서도 울지 않은 것은 정말 대단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 이후에도 대통령은 국회 앞에서 기다리는 유족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는 등 기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으니, 유족들에게도 1승을 거둔 셈이다.

이쯤 되면 대통령을 ‘승리의 보증수표’ ‘천부적인 싸움꾼’으로 불러도 무방할 듯싶은데, 그러고 보니 박 대통령이 왜 노무현 전 대통령을 한심하게 봤는지 이해할 법하다. 노 전 대통령은 걸핏하면 눈물을 보이고, 평검사들과 대화를 시도한 데다 국민들한테 미안하다고 뻔질나게 사과하는 그런 대통령이었으니까. 승률 100%인 박 대통령이 앞으로도 계속 연승 신화를 써내려갈지 지켜볼 일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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