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되었다. 그동안 북핵 등 여러 일이 있었다. 사드배치, 인사파동 등 불만스러운 점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자면, 문재인 정부는 기대 이상으로 여러 문제들을 잘 풀어나가고 있다. 여기에는 문재인 대통령 그리고 그의 핵심측근들이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겪은 시행착오에 대한 교훈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불통의 박근혜 정부와 비교되어 더욱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몰라도, 소통 등 대국민 정치는 그 어느 정부보다도 잘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대국회, 특히 야당에 대한 여의도정치에서는 문제가 많다. 단적으로 평가하자면, 대국민정치가 A학점이라면 대여의도정치는 C학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여소야대와 다당제라는 현실적 조건을 고려할 때 처음부터 협치와 연정이라는 새로운 정치방식을 택했어야 했다. 예를 들어 각료구성으로부터 여러 우호적인 정당들과 연정을 고민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 같은 방식보다는 국회를 거칠 필요가 없는 대통령령 등 시행령에 의존하는 ‘시행령주의’에 의존해 왔다. 그리고 국회의 협조가 꼭 필요한 경우 협치보다는 여론에 의해 국회를 압박하는 방식을 선호해 왔다.

물론 문재인 정부와 야당 간의 관계가 이렇게 된 데에는 야당, 특히 자유한국당과 같은 냉전적 보수정당의 책임도 크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지금까지 취해온 승자독식의 정치방식에도 책임이 많다. 문재인 정부는 다당제와 여소야대에 걸맞은 새로운 통치식을 채택하기보다는 높은 지지에 기초해 과거식의 승자독식의 정치방식을 계속해 오고 있다. 이 같은 방식은 지금처럼 인기가 높고 임기 초기에는 작동할지 모르지만 지속될 수 있는 모델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아직도 국회의 임기가 2년 반 이상 남아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더 늦기 전에 안정적인 협치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최소한 작지만 우호적 관계라고 할 수 있는 정의당으로부터 같은 뿌리에 기초해 있지만 치열한 경쟁관계인 국민의당, 촛불혁명의 일원이었던 바른정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준의 협력 틀을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

북핵, 사드, 증세 등 여러 난제들이 산적해 있는 것도 큰 문제이다. 특히 임기 초기 이라크 파병이라는 복병을 만나 지지기반이 되어야 할 진보세력과 대립함으로써 보수와 진보세력 양쪽으로부터 샌드위치가 돼야 했던 노무현 정부의 비극을 반복해선 안된다. 그러려면 사드배치, 증세 등 갈등적인 핵심의제들을 지혜롭게 풀어가야 한다. 사실 지금까지 문재인 대통령이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정책적 내용보다는 스타일과 다양한 행사방식 등 청와대 관련 이벤트의 ‘연출’과 메시지 전달방식에 더 의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말 내공과 실력을 보여줘야 하는 어려운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 만큼 적폐청산은 문재인 정부의 중요한 과제이다. 촛불혁명이 주장했던 적폐청산에는 현재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적폐청산들도 있지만 사드배치 철회와 같은 대립되는 것들도 있다. 이와 관련, 특히 주목할 것은 국가정보원(국정원)의 댓글사건 등 문재인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과거청산문제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등 보수정권하에서 국정원 등 공안권력기관들이 보여준 행태는 근대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상식 밖의 작태였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가 국정원개혁발전위원회를 만들어 강력한 과거청산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국정원 과거청산 등 대대적인 과거청산작업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빨갱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어간 인혁당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회복이 이루어지는 등 성과가 많았다. 그러나 댓글사건이 보여주듯이 국정원은 정권이 바뀌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과거의 행태로 돌아가 불법적인 정치개입을 일상화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학계대표로 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약칭 진실위원회)에 직접 참여해 3년간 국정원 과거청산과 개혁작업을 주도했던 당사자로서 참담함과 부끄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노무현 정부의 과거청산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느냐는 것, 즉 어떻게 하면 과거청산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제도화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나의 방법은 국정원이 국내정치에는 전혀 관여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국회 구성상 이 같은 법을 통과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설사 그 같은 법을 만든다고 해도 그것 역시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다. 왜냐하면 정권이 바뀌고 국회의 주도세력이 바뀌면 그 법을 다시 바꿔 원위치를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법과 상관없이 불법적인 반민주적 개입을 할 수 있다. 사실 국정원 댓글사건은 국정원법이 이 같은 활동을 허용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경험 속에 그 답이 있다. 과거청산은 반드시 해야 한다. 그러나 최고의 과거청산은 과거청산 그 자체가 아니라 이명박·박근혜 정부처럼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정치세력이 집권하여 역사와 민주주의를 되돌리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다시 어떻게 해야 하나? 답은 국민들이 다시 이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도록, 박정희 향수가 다시 살아나지 않도록, 정치를 잘하는 것이다. 특히 민생을 잘 해결해 2007년 대선과 같이 “부패가 무능보다 낫다”며 보수에 대한 ‘묻지마 지지’가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사실 97년 대선에서 가난한 사람일수록 김대중 대통렁을 찍었지만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겪은 2017년 대선에서는 가난할수록 이명박을 찍었다.

따라서 민생파탄과 유례없는 양극화를 가져온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양극화 해소를 통해 헬조선을 벗어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헬조선이 계속되는 한 문재인 정부, 나아가 촛불혁명은 성공할 수 없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민생이 최고의 과거청산이다.

<손호철 서강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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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과 김대중. 한국 민주화의 두 큰 나무다. 하지만 사당정치와 지역주의를 두 축으로 한 ‘3김 정치’라는 부정적 유산을 남겼다. 사당정치와 관련된 것이 친·인척과 비선을 중심으로 한 측근정치이다. 측근정치는 삼엄한 군사독재의 감시와 공작정치에 대항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불가피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부작용이 커서 양김이 대통령이 된 후 자식들과 측근들이 줄줄이 감옥을 가야 했다. 양김과 함께 사라졌던 측근정치가 다시 쟁점이 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측근 문제가 제기된 것은 ‘십상시’ 문제이다. 이 문제가 일단락되면서 사라지는가 싶었던 측근 문제가 하루가 멀다고 다시 터져 나오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그 중심에는 최순실씨와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이 자리 잡고 있다. 청와대와 친박계는 이를 근거 없는 억측과 정치공세라고 일축하고 있는 반면 야권은 여권의 관련자 증인 채택 저지로 특검이 필요해졌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청와대에서 공식 방한한 루이스 기예르모 솔리스 코스타리카 대통령 내외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친박계를 중심으로 여당은 이들의 증인 채택을 결사적으로 막고 있고 국정감사는 ‘식물 국정감사’가 되고 있다. 청와대와 여권의 주장대로 이 모든 것이 억측에 불과하다면, 이를 일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막고 있으니 답답한 일이다. 그러나 비관할 필요는 없다. 시간은 언제나 진실의 편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1년 반만 기다리면 된다. 1년 반 뒤면 이 모든 의혹들이 억울한 모함과 억측에 불과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사실이었는지 밝혀질 것이다.

미르와 K스포츠 재단 해체 움직임이 보여주듯이 이에 대한 은폐작업이 진행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흔적은 남고 꼬리는 밟히게 마련이다. 또 노태우 정권의 5공 청문회와 김영삼 정부의 전두환·노태우 사법처리가 보여주듯이, 설사 여당이 정권재창출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이 문제를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아니 피해가지 않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청와대와 여당이 의혹 규명의 기회를 봉쇄함으로써 박 대통령에게 따라다니는 ‘불통’의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생각나는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을 치고 있고 그 반작용으로 보수진영의 대선 예비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의 인기가 치솟던 2007년 봄 필자가 썼던 글이다.

본인들과 그 지지자들은 싫어하겠지만, 노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은 수많은 정치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이 있다는 내용이다. 그것은 여론과 상관없이 본인이 옳은 일을 위해 순교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 비판에 귀를 막는 순교자주의다. “노 대통령은 평생을 주류에 도전하고 살아온 반주류의 순교자주의자다. 특히 지역주의에 저항해 돈키호테처럼 싸워 ‘바보 노무현’이란 별명도 얻었다. 그러나 순교자주의가 잘못돼 올바른 여론에 대해서도 ‘여론은 무시하기로 했고 역사는 내가 옳았음을 평가할 것’이라고 위험하게 나가고 있다. 박근혜 의원 역시 순교자주의자이다. 다만 차이는 주류 중에서도 최상류 주류로 살아온 ‘기득권 수호적’, 반공주의 순교자주의자라는 점이다. 대한민국이 친북좌파에 의해 존폐의 위기에 처해 있으며 자신은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순교하겠다고 믿고 있다.” 안타깝게도 박 대통령의 순교자주의는 강해졌으면 강해졌지 변할 것 같지 않다. 불통 뒤에는 국민이 아니라 역사와 대화하고 국민과 여론이 아니라 역사에 의해 평가받겠다는 순교자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1960년대 미국에서 생겨난 학문이 대통령학이다. 과거에 대통령을 평가할 때 주목한 것은 올바른 정책을 만들 수 있는 지적 능력과 리더십이었다. 그러나 핵전쟁시대를 맞아 미국 대통령이란 자리가 지구를 파멸로 이끌 핵보복 여부를 불안정한 정보에 기초해 짧은 시간 내에 결정해야 되면서, 주목하지 않았던 대통령의 성격, 정서적 안정성, 성장과정 등을 연구하게 된 것이다.

이 연구의 선구자는 대통령을 활동성을 기준으로 적극적이냐 소극적이냐, 성격을 기준으로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에 따라 네 가지 유형으로 제시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케네디처럼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대통령이다. 문제는 최악의 대통령인데 그것은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대통령이 아니라 닉슨처럼 부정적이면서 적극적인 대통령이다. 부정적이되 소극적인 대통령은 최소한 사고는 치지 않는다. 사실 어느 분야건 가장 위험한 지도자는 부지런하고 용감하고 헌신적이면서 ‘무식한’ 지도자, 즉 ‘잘못된 확신’에 차 있는 지도자이다. 쟁점이 되고 있는 측근 문제는 1년 반 뒤에는 규명될 것이다. 오히려 문제는 차기 대통령이다. 대통령학의 시각에서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차기 대통령 지망생들의 여러 면면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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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두렵다.” 지난번 이 면에 썼던 칼럼의 제목이다. 연말을 장식한 정윤회 파동, 땅콩 회항,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의 청탁사건,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라는 네 가지 사건은 박근혜 정부의 불통정치로부터 재벌, 제1야당과 한국민주주의의 현주소를 각각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절망적이지만 진짜 문제는 새해에도 희망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라는 주장이었다. 구체적으로, 정윤회 파동에 대한 대응을 볼 때 박 대통령의 불통정치가 바뀔 것 같지 않고 새정치연합은 더더욱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글이 나간 뒤 진행된 현실은 이 우려를 더욱 확실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새정치연합과 한국정치의 미래가 달려 있는 2월 전당대회가 DJ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간 대결로 치러지게 됐다는 것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전후 좌파운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안토니오 그람시는 일찍이 “위기란 낡은 것은 죽어 가고 있는데 새로운 것은 태어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한국정치가 위기인 것은 낡은 것은 죽어가고 있지만 새로운 것은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죽어가는 낡은 것에는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만이 아니라 진보정당들도 포함되어 있다. 한심한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 결정이 아니더라도 진보정당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통진당의 2년 전 내분사태를 계기로 사실상 한국진보정당운동의 하나의 순환이 끝났다. 즉 일제와 해방공간의 제1기, 4·19 이후 나타났던 제2기에 이어 1987년 민주화 이후 이어져온 진보정당운동 제3기가 끝났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정의당과 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들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 존재감을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 점에서 주목할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지만 세월호를 계기로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정치의 맹아’이다. ‘국민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건설을 촉구하는 국민모임’(‘국민모임’)이라는 모임이 그것이다. 노동현장으로부터 세월호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은 여기저기서 죽어가고 있는데도 이들을 살려내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들의 눈물조차도 닦아주지 못하는 정치권에 분노한 시민사회의 각계인사들이 새정치연합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의 건설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특히 새정치연합의 무능과 세월호 문제에 대한 새누리당과의 담합적 합의로 상징되는 개혁의지 부족은 이 움직임에 기폭제가 되었다.

12월 24일 국회 정론관에서 명진스님, 김세균 교수 등 진보진영 인사들이 참여한 '국민모임'이 새로운 정치세력 건설을 선언하고 있다. _ 연합뉴스


특히 대통령 후보였던 정동영 상임고문이 이 부름을 외면할 수 없었다며 어제 새정치연합 탈당을 선언했다. 사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핵심이었던 정 고문은 2010년을 기점으로 전혀 다른 정치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는 두 정권의 관계자 중 유일하게 민생파탄을 가져온 두 정권의 신자유주의정책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문을 발표했고 노동현장 등 가장 고통받는 민초 속으로 내려가 그들과 함께해 왔다. 새정치연합의 또 다른 개혁적 거물정치인인 천정배 전 의원도 새로운 정치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민모임은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국민운동이지 신당 창당조직은 아니다. 그리고 새로운 정치세력의 태동을 돕기 위해 신당추진위를 발족시키기로 했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기만 하다. 그러나 아직 추진위도 뜨지 않은 신당의 지지율이 18.7%를 기록해 새정치연합의 코밑까지 추격했다는 사실은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적 여망이 어떠한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국민모임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지, 아니면 거대한 태풍이 되어서 한국정치를 바꾸어 놓을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운동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과거의 진보정당과 같은 좁은 정파적 운동을 넘어서야 한다. 대신 정동영 고문으로 대표되는 새정치연합 내 진보파와 기존 정당에 참가하지 않았던 무당파적인 진보세력,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 그리고 정의당과 노동당과 같은 기존 진보정당세력들이 하나로 합쳐져 ‘일종의 진보 빅텐트’를 이루어야 한다. 단 이는 정치공학적인 합종연횡이 아니라 이윤이 아닌 생명과 같은 새로운 가치에 기초한 진정성 있는 가치연합이어야 한다. 그것만이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를 성공시킬 수 있다.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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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국시인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이름 아래 자유민주주의를 압살해온 ‘자유민주주의의 압살사’.” 나는 해방 60주년에 <해방 60년의 한국정치>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서문에서 한국현대사를 이처럼 요약한 바 있다.

그렇다. 자유민주주의란 이 땅의 냉전적 보수주의자들이 생각하듯이 단순히 반공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사상, 표현, 집회, 결사의 자유와 같은, 유엔인권조약의 ‘자유권’이 보장되는 정치체제이다. 80년대 ‘제3의 물결’이라는 범지구적인 민주화의 흐름을 정리한 세계정치학계의 권위 있는 집단연구는 특정한 이념이나 정당을 금지시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명확히 규정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공산주의’와 같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이름 아래 그 핵심인 사상의 자유 등 자유권을 압살해 왔다. 그 결과 한국현대사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이름 아래 자유민주주의를 압살해온 ‘자유민주주의의 압살사’라는 ‘자유민주주의의 비극’, 아니 ‘희극’의 역사가 되어 왔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통합진보당의 해산심판에 대한 정부의 최종 변론을 접하면서 떠오른 것이 위에 인용한 내 책의 서문이었다. 정부는 최종 변론에서 “통합진보당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고 대한민국을 내부에서 붕괴시키려는 암적 존재”이기 때문에 해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내란음모혐의에 무죄가 선고됐음에도 불구하고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키는 것이야말로 사상의 자유 등 자유권을 보장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는 ‘자유민주주의의 파괴행위’라고 할 수 있다.

헌법재판관들이 25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해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마지막 공개변론을 기다리고 있다. 이날 공개변론에는 황교안 법무장관(아래 왼쪽 사진)과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아래 오른쪽 사진)가 각각 정당해산심판 청구인과 피청구인으로 참석해 최후변론을 했다. (출처 : 경향DB)


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은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하기를 거부하는가 하면 북한의 핵무장을 자위권의 발로라고 옹호하는 등 친북적인 언행으로 ‘종북주의’라는 비판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이 같은 민주노동당의 노선을 신랄하게 비판해 왔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이 민주노동당을 계승했다는 이유로 해산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새누리당이 12·12와 5·18학살을 주도해 군사반란과 내란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전두환 등 5공 반란세력의 민정당을 계승했기 때문에 해산해야 한다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아니 순수가정으로 통합진보당의 노선이 설사 종북주의라고 하더라도 종북주의의 자유도 보장돼야 한다. 왜냐하면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틀린 주장도 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주목할 에피소드가 ‘조갑제 사건’이다. 대표적인 극우논객인 조갑제씨는 노무현 정부를 ‘친북비호독재정권’으로 규정하고 군인을 포함한 국민들에게 사실상의 무장봉기를 선동했다. 그러자 친노단체들이 그를 내란선동죄 등으로 고발했다. 이에 대해 나는 “조갑제를 위한 변명”이란 글을 통해 그의 주장이 틀린 것이지만 진보의 사상만이 아니라 그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처럼 우파건 좌파건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이를 억압하고 사법적으로 처벌하려는 것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거리가 멀다. 종북주의이건, 극우주의이건, 그것은 사법적 판단이 아니라 ‘사상의 시장’에서 국민들의 선택에 의해 걸러져야 한다. 그리고 이제 우리 사회는 종북주의에 넘어가지 않을 만큼 충분히 성숙했다.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가를 따지기에 앞서서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키려는 정부의 움직임은 정치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킨다 하더라도 이들이 새로운 정당을 만들면 해산조치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데 왜 무리수를 두는가? 또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켰다가 지지자들이 어두웠던 시절의 지하당으로 들어가 버리면 어쩌려는 것인가? 답답한 노릇이다. 헌법재판소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고 그 핵심인 자유권을 압살하는 것이 과연 이를 지키는 것인지 반문해봐야 한다. 통합진보당도 이번 기회에 종북주의라는 비판을 듣는 노선들을 정비하고 발본적인 혁신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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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철 헌법재판소장님, 우리의 헌법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최근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정치권에 난리가 났습니다. 국회의원 선거구별로 인구가 3.5배까지 차이가 나는 현 선거법이 위헌이기 때문에 인구격차를 2 대 1 이내로 줄이라는 결정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 결정이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이번 결정은 헌법재판소가 과거의 전국구제도를 위헌이라고 판결하여 현재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게 만든 것에 이어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중요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장님도 잘 아시겠지만, 민주주의의 기본은 보통평등선거입니다. 사실 근대민주주의가 시작된 프랑스대혁명 이후에도 투표권은 남자 유산자들에게만 주어졌고 보통평등선거가 실현된 것은 채 10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전까지는 자유주의자들이 “인구의 다수가 가난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보통선거권을 도입할 경우 이들이 다수결로 사유재산제를 폐지시켜 사회주의가 될 것”이라고 걱정해 보통선거권에 격렬히 반대했습니다. 그러다가 보통선거권이 불가피해지자 이번에는 자본가들은 1인당 네 표, 노동자들은 한 표를 줘야 한다는 차등선거제를 주장했습니다. 이 같은 저항에도 불구하고, 힘 없는 민초들의 오랜 투쟁 끝에 모든 국민이 한 표씩을 행사하는 보통평등선거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보통평등선거제에 따라 형식적 평등은 이루어졌지만 선거구 간 인구의 불평등으로 투표가치의 불평등, 즉 실질적인 불평등이 심각했었습니다. 따라서 이번 결정은 그 의미가 큽니다.

그러나 아시는지 모르지만, 우리 사회에는 이번 결정도 주목하지 못한 투표가치의 불평등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특히 이 불평등은 위헌 결정을 받은 선거구별 불평등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거대보수지역정당’들과 ‘군소진보정당’ 간의 불평등입니다. 2008년 총선을 예로 들겠습니다. 이 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인 통합민주당과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득표율에 비해 의석수가 각각 20%와 5%씩 과대 대표됐습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과 같은 진보정당들은 8.5%를 득표하고도 의석수는 불과 1.7% 얻는 데 그쳤습니다.

따라서 통합민주당과 한나라당에 투표한 표는 진보정당에 투표한 표에 비해 각각 6배와 5.2배나 크게 반영되었습니다. 투표가치의 불평등이 무려 6 대 1, 5.2 대 1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진보신당입니다. 심상정 의원, 노회찬, 조승수 전 의원 등이 민주노동당 다수파의 ‘종북주의’와 ‘패권주의’를 비판하고 탈당해 만든 진보신당은 2.94%를 얻고도 한 석의 의석도 얻지 못해 3%에 가까운 표가 모두 쓰레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의석을 한 석도 못 얻었으니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에 던진 표 대 진보신당에 던진 표의 가치의 불평등은 무한대인 셈입니다. 주목할 것은 만일 투표가치가 평등하도록 디자인된 독일식 선거제도였다면 진보신당은 전체 의석의 2.94%에 해당되는 9석을 얻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랬다면 진보신당이 제도정치권에 뿌리를 내리고 진보정당들 내에서 ‘종북주의’에 비판적인 ‘건전한 진보정당’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헌재, '선거구 획정' 선거법 헌법불합치 결정 (출처 : 경향DB)


2012년 총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누리당은 43%를 득표하고도 의석수는 52%를, 민주통합당(새정치민주연합)은 36.5%를 득표하고도 43%의 의석을 차지해 둘 다 20%씩 과대대표됐습니다. 그러나 정의당, 통합진보당, 노동당, 녹색당과 같은 진보정당들은 11.4%를 득표하고도 의석수는 3.7%밖에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진보정당에 던진 표에 비해 새누리당과 민주당에 던진 표의 가치는 3.7배에 달합니다. 이 같은 격차는 2008년에 비해 줄어든 것이지만, 위헌 결정을 받은 선거구 간의 불평등보다도 더 불평등한 것입니다. 이제 헌법재판소가 이 같은 불평등에도 관심을 기울여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지역구제도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투표가치의 평등이 유지되고 사표가 생기지 않도록 배려한 독일식 선거제도가 가장 이상적입니다.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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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잔인한 달.” 잘 알려져 있듯이, 엘리엇의 ‘황무지’라는 시의 도입부이다. 만물이 살아나는 4월을 왜 ‘잔인한 달’이라고 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4월이 아니라 5월과 6월이 잔인한 달이다. 5월은 민주주의를 짓밟은 5·16쿠데타와 비극적인 1980년 광주학살이, 6월은 동족상잔의 전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10월도 잔인한 달에 추가할 만하다. 전후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절이었던 유신이 선포된 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10월의 잔인한 역사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우려가 생겨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었다고 공개적으로 분개하면서 검찰이 인터넷 업체들과 협조해 인터넷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겠다고 나섰고 이에 대대적인 사이버 망명이 일어나는가 하면 ‘신유신’, ‘사이버 유신’에 대한 우려가 야권을 중심으로 일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신유신’이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야당에 쓴소리를 토해낸다. 이들은 “진보를 표방하는 야당이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은, 걸핏하면 이렇게 ‘과거’와 싸우려 하기 때문이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신유신’이라는 표현이 선동문구일 뿐 과장된 것이고 과거와 싸우는 것인가?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신유신이라는 표현이 적합한지는 논쟁적이지만, 민주주의가 사방에서 확연하게 후퇴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주목할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평가기관인 미국 프리덤하우스의 평가이다. 매우 보수적이지만 거의 유일무이하게 오래전부터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 점수를 내온 이 기관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정치적 자유’와 ‘시민의 권리’라는 두 기준을 가지고 최저 7등급에서 최고 1등급까지 나누어 평가한다. 우리나라는 군사독재 시절 6등급이었다가 김영삼 정부 들어 전체적으로 2등급으로 올라갔고, 노무현 정부 들어 정치적 자유가 1등급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에 의한 사상의 자유에 대한 규제 때문에 시민권은 2등급에 머물러 1등급을 맞은 대만보다도 뒤처진 1.5등급을 차지했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정치적 자유가 다시 2등급으로 추락해 전체적으로 2등급으로 후퇴한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표현의 자유, 영혼의 자유를 짓밟지 마라 팻말을 들고 있는 한 시민 (출처 : 경향DB)


더욱 충격적인 것은 언론과 인터넷의 자유이다. 프리덤하우스는 이에 대해 ‘자유’, ‘부분적 자유’, ‘부자유’라는 세 단계로 평가하는데 우리나라는 둘 다 ‘부분적으로만 자유롭다’는 평가를 받았다. 구체적으로 우리 언론의 자유는 2010년까지는 자유로운 단계였는데 이후 부분적 자유로 추락했고 점점 떨어져 올해는 창피하게도 사모아, 가나 등보다 낮은 70위를 기록했다.

언론의 자유에 대한 평가로 정평이 나 있는 ‘국경 없는 기자회’의 평가도 마찬가지다. 우리 언론의 자유는 이명박 정부 때만 해도 44등이었는데 박근혜 정부 들어 50등, 올해는 57등으로 추락했다. 인터넷의 자유는 더 한심하다. 기자회는 북한 등 12개국을 ‘인터넷의 적’으로 규정하고 있고 그 다음 단계로 ‘인터넷 감시국’으로 14개국을 지목했는데 거기에 우리나라가 터키, 이집트 등과 함께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이 평가는 이번 사이버 실시간 감시 소동 이전의 평가이니 올해 평가는 더 추락할 것이 뻔하다. 현실이 이러하건만, 최근 일본 산케이신문 전 지국장 기소조치와 관련해, 외교부 대변인이 외신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자유롭게 질문하는 것이 “언론의 자유현장이 아니고 뭐냐”고 반론을 제기했다니 할 말이 없다. 국제사회를 상대하는 정부의 대변인이 우리 언론의 자유가 국제적으로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가에 대해 이렇게 무지해서야 말이 되는가?

현재 우리 민주주의의 후퇴는 심각하다. 다만 이를 유신이라고 부를 정도인지는 논쟁적이다. 또 1970년대의 유신과 달리 ‘신유신론’에 대해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공감할지 회의적이다. 그런 만큼 더 우려되는 바가 크다면 크다. 게다가 유신 시절보다 오히려 후퇴한 중요한 현실이 무척 마음에 걸린다. 그것은 무력하기 짝이 없는 야당이다. 그러기에 묻지 않을 수 없다. 10월은 아직도 우리에게 잔인한 달인가?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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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영화 <명량>을 통해 유명해졌지만, 원균이 칠천량해전에서 참패하자 감옥에서 돌아온 이순신 장군이 해군을 없애라는 선조의 명령에 대해 명량대첩을 준비하며 올린 답변이다. 불굴의 의지로 무장하고 배수진을 친 장수의 심정을 잘 보여준 말이다. 그리고 이순신은 단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선과 싸워 대승을 거둠으로써 임진왜란을 끝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풍전등화에 놓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비대위가 첫 외부행사로 현충원을 방문했고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방명록에 바로 이 문구를 한자로 남겼다고 한다. 새정치연합의 사활을 결정할 비대위원장을 맡은 문 위원장의 비장한 각오를 상징적으로 잘 표현한 적절한 구절이다. 그러나 실제 새정치연합이 현재 취하고 있는 길이 과연 이순신이 걸어갔던 ‘명량의 길’인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남는다. 아니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명량의 길’이 아니라 ‘선조의 길’, ‘원균의 길’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게 만들기까지 한다.

사실 외형적으로 보자면, 현재 새정치연합이 처해 있는 상황을 명량해전을 앞둔 이순신의 상황과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순신은 불과 12척의 배밖에 남지 않아 그 적은 수의 전선을 가지고 330척의 왜군과 싸워야 했지만 새정치연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새정치연합은 ‘무려’ 전체 의원수의 43%에 달하는 130명의 국회의원을 거느리고 있다. 또 ‘적군’인 새누리당은 전체 의원수의 과반수인 53%를 차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새정치연합보다 ‘겨우’ 28명 더 많은 158명에 불과하다. 따라서 명량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해 볼 만한 싸움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새정치연합이 사즉생의 자세로 죽음을 각오하고 배수진을 친 명량의 길을 갈 수 없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 “명량의 길을 가기에는 너무 몸집이 크고 아직 등이 따뜻하고 배가 부른 것 아닌가” 싶다. 그간의 행적을 볼 때 새정치연합이 내부적으로 혁신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사실 남아있던 유일한 희망은 대중적 지지를 무기로 안철수 의원이 밖에서 강력한 대안정당을 만들어 새정치연합을 깨거나(‘외파’), 새정치연합에 들어가 안에서 당을 폭발(‘내파’)시키는 안철수 카드였다. 그러나 이 카드는 안 의원의 한계로 인해 실패하고 말았다(이 점에서 안 의원은 너무 일찍 새정치연합에 들어간 것이 아닌가 싶다).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대위원장과 비대위원들이 23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김대중 대통령 묘소를 참배를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안철수 카드까지 실패한 마당에 유일한 대안은 당의 리더들이 대승적 자세에서 스스로의 목을 단두대에 올리고 계파에 연연하지 않고 당을 혁신할 수 있는 외부인사에게 비상대권을 주어 당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은 그 같은 ‘명량의 길’이 아니라 안전하고 편한, 그러나 결국 죽음으로 가는 ‘선조의 길’, ‘원균의 길’을 택했다. 덕을 갖춘 덕장으로 위기 때마다 비대위원장이 전문인 문희상 의원이 다시 불려나왔고 비대위는 주요 계파의 수장들로 채워졌다. 심하게 말하자면 ‘혁신의 대상’들을 ‘혁신의 주체’로 앉힌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현재의 비대위가 차선일 수는 있다. 즉 당의 실세들이 모인 만큼 실질적인 권한을 갖지 못한 들러리식의 외부영입 비대위가 혁신 흉내만 내다마는 것보다는 최소한 낫다. 이제 당의 실세들이 모인 만큼 과거처럼 뒤에 숨어서가 아니라 공개된 경기장에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민낯을 드러내고 한번 싸워보고 국민들에게 당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초·재선 의원들이야 어차피 대권 등과 관련이 없는 만큼 국회의원 재선에 주로 관심이 있겠지만, 이들은 그 이상의 야심을 가지고 있을 것인 만큼 당의 혁신이 대선 등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지금과 같은 당으로는 현상유지는 몰라도 더 큰 정치적 꿈의 실현을 위해서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비대위원들이야말로 잘 알 것 아닌가 하는 사실에 그나마 기대를 걸어본다.

새정치연합 비대위원들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고통스럽지만 미래를 위해 불가피한 ‘명량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계파 수장 간의 담합에 의한 편안하지만 패배를 향한 ‘선조의 길’을 갈 것인가?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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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함 없는 비상대책위.’ 재·보궐선거 참패 후 출범한 새정치민주연합의 비대위를 보면서 지난 칼럼에서 지적한 문제점이다. 패배에 익숙해져 습관적인 비대위를 꾸려나가서는 미래가 없기 때문에 박영선 원내대표가 겸임하고 있는 비대위원장에 외부인사를 영입해 당 해체 차원의 발본적인 혁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세월호 협상 과정에서 리더십에 상처를 입은 박영선 위원장이 외부인사 영입에 나섰다.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입 대상자들은 고사를 하고 대안으로 채택한 안경환, 이상돈이라는 ‘진보·보수 투톱 공동위원장 체제’가 당내 반발로 무산되고 말았다. 박 위원장은 리더십에 또 한 차례 상처를 입었고 당은 끝없는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15일 오전 박영선 원내대표의 거취 논란으로 이날 예정된 원내대책회의 마저 취소되자 국회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회의실이 텅비어 있다. (출처 : 경향DB)


이상돈 카드가 엄청난 반발을 가져왔지만 개인적으로 그렇게 나쁜 카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 정부 출범의 일등공신을 어떻게 당의 얼굴로 모셔올 수 있느냐고 반발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박근혜 정부 출범의 일등공신이 박 정권과 새누리당을 버리고 새정치연합으로 왔다는 사실을 이들을 공격하는 데 공세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돈 교수의 그간의 발언을 살펴볼 때 그가 새정치연합 공동비대위원장을 맡지 못할 정도로 보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상당수의 새정치연합 의원들보다 진보적일 것이다. 오히려 개인적으로 의문을 가졌던 것은 이 교수와 달리 정치와는 거리를 멀리해왔던 안경환 교수가 당을 이끌어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적합한 인물인가 하는 점이다. 이 같은 의문과는 별개로 안타까운 것은 일방적인 세월호 협상으로 당내외의 반발을 사고 리더십에 타격을 입은 박 위원장이 이번에는 좀 더 광범위한 당내 의견 수렴과정을 거쳐 이 같은 소동을 사전에 막지 않은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안경환·이상돈 카드를 무산시키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이 교수의 전력도 전력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새정치연합의 고질적인 문제인 정파주의인 것 같아 답답하기만 하다. 특히 내가 보기에는 이 교수보다 더 보수적이라면 보수적이고 당의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차기 당권을 노려 가장 강력하게 이상돈 카드에 반대했다는 이야기를 접하면서 이 당에 희망이 있는 것인가 하는 걱정이 든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새누리당도 친박, 친이 등 정파가 존재하고 치열하게 갈등을 하지만 그래도 삐꺽거리면서도 당을 위해 큰 방향에서는 대승적으로 나가고 있다면 왜 새정치연합은 그렇지 못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물은 엎질러졌고 문제는 새정치연합이 앞으로 나아갈 길이다. 이미 김은 다 빠졌지만 그래도 더 늦기 전에 외부에서 덕망 있고 혁신 의지와 능력을 갖춘 인사를 영입해 발본적인 당의 혁신을 해야 한다. 둘째, 세월호법과 중요한 민생법안을 분리시켜 처리해야 한다. 민생법안을 볼모로 하지 않으면 세월호법을 통과시킬 수 있는 무기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보다 큰 그림을 봐야 한다. 구체적으로, 유가족의 존재와 여론을 믿어야 한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세월호 법안을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재협상하는 것을 지지하는 여론이 더 높아지면서도 이 같은 입장에 가까운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은 계속 추락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셋째, 일부 의원들이 송광호 체포동의안 부결에 동참한 것에 대해 당이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국회의원의 불필요한 특권 축소에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앞장서야 한다. 넷째, 지금은 지지율이 낮지만 2016년 총선 때는 박근혜 정부 심판 분위기가 비등할 것이기 때문에 걱정할 것이 없다는 식의 정치공학적인 낙관론을 버려야 한다. 심판론에 기초한 그 같은 낙관론이 최근 몇 차례의 선거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를 직시해야 한다. 물론 다음 총선이 타이밍상 박근혜 정부의 말기에 치러지기 때문에 여론이 정권심판론으로 흘러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2017년 대선이다. 대선은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아니라 차기 주자와의 싸움이다. 지난날 반이명박 투쟁과 심판론에 올인하다가 당의 혁신과 경제민주화를 들고 나온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한 전철을 반복해선 안된다.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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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와 박근혜 정부의 인사 참사를 고려할 때 질 수 없는 선거를 새정치민주연합은 또다시 죽을 쑤고 말았다. 지난 칼럼 “차라리 지역구를 없애자”(7월21일자)에서 지적했듯이 당 지도부가 현 정부의 인사 이상으로 한심한 공천을 했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이 칼럼에서 비판했듯이 거물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지역구와 전혀 연고도 없는 손학규, 김두관을 공천했다가 지역일꾼론을 내세운 새누리당의 토박이 신인들에게 전패한 것은 지도부가 얼마나 민심을 모르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언론이 지적했듯이 이 모두가 자신들의 경쟁자가 될 특정 정치인을 배제하려는 정략에서 시작했다니 한심하다. 전혀 연고도 없는 지역에 손학규, 김두관을 공천하면서 비슷한 중진인 정동영, 천정배에게는 왜 공천을 주지 않았는가? 주목할 것은 새누리당이다. 지난 지방선거와 당 대표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새정치연합과 다르게 정파주의를 넘어서 남경필 경기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 권영진 대구시장, 김무성 당 대표 등 대외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인물을 내세움으로써 오히려 비주류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새정치연합의 가장 큰 문제는 “당이 잘되고 우리 계파가 잘못되느니 당이 잘못되더라도 우리 파가 잘되는 것이 낫다”는 정파주의가 만연해 있는 것이다.

선거 패배로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가 퇴진하고 비상대책위가 들어섰지만 별 희망이 없어 보인다. 비대위라는 이름에 걸맞은 ‘비상함’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비대위원장을 맡은 뒤 박영선 위원장이 한 첫 작품이 ‘세월호특별법 항복’이었으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아니 ‘비상하게 항복’했다. 새정치연합은 2007년 대선 후 패배에 익숙해진 탓인지 패배해도 ‘비상함’을 찾아보기 어렵다.

10일 오후 서울 구로동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 지역구 사무실 앞에서 한신대 신학생과 시민들이 '세월호 특별법 여야 합의안'을 규탄하는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나는 민주당이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 패배 후 혁신을 하지 않고도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과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으로 지방선거에서 승리해 독이 됐다고 비판하며 혁신을 촉구했다. 그러나 ‘대답 없는 메아리’였다.

문재인 의원이 대통령 후보가 됐을 때도 민주당은 “정권을 상납하기 위한 자해특공대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문 의원이 해야 할 제1과제는 당의 혁신이라고 지적했지만 혁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12년 대선 패배 후 비대위를 내세웠지만 “이름만 비대위지 비대위 위원장 선출에서부터 그 내용은 비상한 해법과는 거리가 멀다”며 2017년 대선도 희망이 안 보인다고 쓴 바 있다. 이번에도 습관적이고, 통과의례적인 비대위가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실 새정치연합의 대부분의 관심은 비대위가 아니라 비대위 이후, 즉 2016년 총선 공천권을 쥔 차기 당권에 쏠려 있는 것 같다. 안철수 의원에 대해 한마디해야겠다. 안 의원이 측근들에게 “다시 시작하자”고 말했는데 “선거일정에 쫓겨 실현하지 못한 정치혁신 과제들을 제대로 추진하겠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측근이 언론에 밝혔다. 안 의원이 선거일정에 쫓겨 정치혁신 과제를 실현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위험한 생각이다. 공천과 선거는 정치의 꽃이고 혁신의 핵심이다. 이를 놔두고 정치혁신을 하겠다고? 소도 웃을 이야기이다.

안철수 실험의 실패는 혁신을 할 수 있는 당권을 쥐고도 정파적 이익에 사로잡혀 공천과 선거혁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후퇴시킨 데 있다. 두 번의 공천과 선거에서 새정치도, 안 의원이 입만 열면 이야기하던 국민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안철수계인 조배숙 전 의원이 안 의원이 “민주당 내의 강고한 기득권 세력의 벽을 넘지 못해 새정치를 실천한 기회가 없었다”고 말한 것도 문제다. 이번 선거의 공천이 기득권층의 저항으로 실패한 결과란 말인가?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이다. 다만 안 의원이 김한길 전 공동대표에게 속아서 허수아비 노릇만 하고 혁신을 못했을 가능성은 있다. 즉 기득권 세력이 김 전 공동대표를 칭하는 것이라면 말이 되는데 실제 그랬는가는 모를 일이다.

‘비상함’ 없는 비대위와 반성 없는 안 의원으로는 새정치연합의 미래는 없다. 더 늦기 전에 의원총회를 통해 합의안의 무효화를 선언하는 한편 박영선 원내대표가 책임을 지고 비대위원장을 사퇴하고 비대위원장과 위원들을 외부로부터 영입해 원점에서 당 해체 수준의 발본적인 혁신 작업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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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그러려고 해도 그렇게 잘못된 사람만 고르기도 어려운 선택.”

지난 칼럼에서 나는 국민들에게 절망감만 주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인사를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그러나 현 정부의 인사를 신랄하게 비판해온 야당을 포함한 정치권의 행태가 정부와 다르지 않다. 정당의 가장 중요한 ‘인사’는 공천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7·30 재·보궐선거의 공천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박근혜 정부의 인사를 바라볼 때보다도 더 큰 절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새누리당이야 현 정부와 한통속이라고 쳐주자. 문제는 현 정부의 인사를 비판해왔고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천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정권이 바뀌어봐야 별 희망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국회의원 공천도 이 모양인데, 집권한다고 갑자기 인사를 잘하게 될 것인가?

두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하나는 이번 공천으로 선거의 지역구라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경기지사를 지낸 사람을 연고도 없는 동작에 공천하겠다니 말이 되는가? 그러다가 김문수 전 지사가 거절하자 중구가 지역구였던 나경원 전 의원을 공천했다. 새정치연합은 한술 더 뜬다. 광주에 신청한 사람을 동작으로 끌어올리는가 하면 경남지사를 지낸 사람을 김포에 공천했다. 경기지사를 했으면 경기도는 어디를 가도 상관없는 것인지,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광명에서 분당으로 지역구를 옮기더니 이번엔 수원에서 출마한다. 거주지역이 어디든 필요하면 아무나 공천하고 그리로 주민등록을 옮기는 것이 안철수 공동대표가 말하는 새 정치인가? 그러면서 장관 후보들의 위장전입은 왜 비판하는가? 하긴 안 대표가 정계입문한 것 자체가 노회찬 전 의원이 삼성 X파일 폭로와 관련해, 의원직을 상실하자 기다렸다는 듯 아무 연고도 없는 그 지역으로 날아가 의원이 됐다. 그러니 거주지역을 무시하고 공천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알 리가 없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11일 국회에서 열린 7·30 보궐선거 후보자 공천장 수여식에서 기동민 서울 동작을 후보(오른쪽)에게 공천장을 수여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국회의원 선거만이 아니다. 지방선거에서는 서울의 대학에서 근무했고 서울에서 살아온 사람이 갑자기 경기도로 주소를 옮겨 경기도교육감에 출마했고 게다가 당선까지 됐다. 경기도에 근무하지도, 살지도 않았던 사람이 경기도 교육을 책임진다? 웃기는 일이다. 이처럼 과거에는 공천에 지역연고를 중시했다면 이제는 아무 데나 공천하고 출마하는 기이한 행태가 생겨났다. 지역주의 등 여러 병폐에도 지역구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지역에 뿌리를 두고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을 대표로 뽑아 지역문제를 잘 풀어나가라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거주지와 상관없이 제멋대로 공천할 바엔 차라리 지역구를 없애는 것이 낫다. 그리고 전국을 하나의 선거구로 하는 대선거구제 내지 순수비례대표제를 채택해야 한다. 즉 전국에서 300명을 뽑는 것이다. 그러면 ‘대구 국회의원’, ‘광주 국회의원’은 사라지고 모두가 전국을 대표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될 것이기 때문에 망국적인 지역주의도 없어질 것이다. 아니면 최소한 출마자격을 ‘2년 이상 거주’ 식으로 제한해야 한다.

두 번째는 이미 언론에서 정략공천이라는 비판을 듣는 전략공천이다. 이는 정략성을 넘어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설사 전략공천이 정략이 아닌 순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주민들의 자기결정권을 박탈하는 반민주적인 상명하복식 밀실공천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물론 주민들이나 당원들이 후보를 뽑는 경선이 개혁적이고 좋은 후보를 뽑는다는 보장은 없다. 아니 어쩌면 현재의 우리 여건에서는 나쁜 후보를 뽑을 확률이 더 높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번처럼 전략공천을 남발할 바엔 왜 선거를 하고 민주주의를 하는가? 국민들이 올바른 후보를 뽑는다는 보장이 있어 대통령 선거를 하는가? 국민이 올바른 대통령을 뽑을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대통령도 정치 지도자들이 ‘대통령 선발위원회’를 만들어 ‘전략선발’하지, 무엇 때문에 복잡한 선거를 치르는가? 전략공천은 한마디로 “해당 지역 당원들과 주민들은 우매해서 제대로 된 후보를 뽑을 능력이 없으니 우리가 대신 뽑아준다”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위험한 발상이다. 선거와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대중에 대한 신뢰, 대중의 선택에 대한 신뢰를 가져야 한다.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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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를 연구하는 한국정치연구자로서 안타까운 것이 많다. 그 중 하나가 역대 대통령들이 자신의 장점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경우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주 좋은 예이다. 노 전 대통령은 뛰어난 소통능력 등 어느 대통령도 가지지 못한 탁월한 능력을 많이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 같은 능력을 발휘하기보다는 정제되지 않은 표현 등으로 불필요한 정쟁만 불러일으킨 측면이 많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이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공사와 중앙차선제 도입이 보여주듯이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을 끊임없이 만나 설득하여 엄청난 잡음이 일어날 문제를 별 잡음 없이 해결하는 능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자 이 같은 ‘소통의 정치인’ 이명박은 사라지고 불도저식 현대건설 사장 이명박만 나타나고 말았다.

박근혜 대통령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박 대통령이 가진 많은 장점 중의 하나는 품격이다. 어려서부터 대통령의 딸로서 훈련을 받아서 그런지, 박 대통령은 한국정치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품격을 갖췄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다른 것은 몰라도 한국정치의 품격은 한 단계 높여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집권 초기 윤창중 대변인 등 일련의 인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박 대통령처럼 품격을 가진 정치인이 저렇게 품격이 없고 막말을 하는 사람들을 중용할 수 있을까 충격을 받았다. 그것도 한 나라를 대변하는 대변인으로 말이다. 박 대통령이 그동안 보여준 품격과 이들이 종편에 나와 뱉어냈던 정치포르노 수준의 논평의 대비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러다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박 대통령이 어려서부터 훈련을 받아 몸에 밴 절제와 품격이 무언가 격의 없이 막 지껄이고 마구 행동하고 싶은 억압된 욕망을 축적시켜 왔던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이들의 정치포르노 수준의 발언을 보면서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느껴 보상심리에서 이들을 중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4년 6월 19일


요즈음 박 대통령을 보고 있노라면 초등학교 친구가 떠오르며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초등학교 시절의 사지선다형 문제는 이론적으로 보자면 답을 찍기만 해도 확률적으로 4분의 1은 맞아야 한다. 그러나 그 친구는 답을 몰라 찍으면 틀린 답만 골라 찍는 특이한 ‘재주 아닌 재주’가 있어 꼴찌를 도맡아 했다. 박 대통령도 꼭 그 꼴이다. 박 대통령의 인사를 보고 있노라면 “세상에 찍어도, 찍어도 그렇게 틀린 답만 골라 찍는 것도 재주”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골라도, 골라도 그렇게 문제가 있는 사람들만 골라 선택하기도 정말 어려운 일이다. 정말 천운이 따르지 않아 그렇게 문제 있는 사람만 골라서 걸리는 것인가? 아니면 박 대통령이 중시하고 쓰고 싶은 인재풀이 원래 그렇게 문제가 많은 사람들인지? 다시 말해, 박 대통령이 좋아하는 인재들이 원래 그같이 문제가 많은 사람들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국민들은 답답하고 짜증이 나다 못해 절망감마저 든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부도덕하고 문제가 많은 사람들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절망감이다. 하긴 평소 존경하던 국민검사 안대희까지도 단지 몇 달 사이에 그처럼 엄청난 수임료를 받았다는 데는 할 말을 잃고 배신감마저 들었다. 아니 절망감과 배신감은 자책감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들이 그렇게 사는 동안 나는 위장전입 하나 못하고, 군대 다니며 요령 피워 근무시간에 대학원 다니며 석사학위 하나 못 따고, 미련하게 뭐하고 살았나 하는 자책감이다.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박 대통령에게 두 가지만 건의하고 싶다. 우선 공직자 추천 시 치매검사를 꼭 해달라는 것이다. 치매환자가 아니라면 자기가 살아온 길을 뻔히 알 텐데 그 많은 문제들을 알고도 총리 등 공직을 사양하지 않고 덥석 받을 수가 있는가? 다른 하나는 “정홍원 총리를 유임시켜 주십사”하는 것이다. 어차피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할 텐데 강한 성격의 안대희, 문창극, 김문수 같은 사람들보다는 있는 듯 없는 듯 처신해온 정 총리가 적임자이고 별 흠도 없고 이미 청문회를 거쳤으니 최고의 적임자인 것 같다.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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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자뷰. 어디선가 본 듯한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요즈음 이 단어가 불쑥불쑥 떠오른다. 어디서 본 것인가 기억을 더듬어 보다가 무릎을 쳤다. 갑자기 떠오른 것은 6년 전인 2008년 5월이다. 그렇다.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초 미국을 방문해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대폭 양보했다. 그러자 광우병을 우려한 광우병 촛불집회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와 집권 두 달 만에 엄청난 위기에 몰려야 했다. 광화문에 컨테이너로 ‘명박산성’을 짓는 등 진압에 나섰지만 시위는 일파만파 커져만 갔다. 저항이 위험수위에 이르자 이 대통령은 끝없이 이어지는 촛불을 청와대 뒷산에서 보며 ‘아침이슬’을 불렀다며 굴욕적인 대국민사과를 해야 했다.

박근혜 정부도 최근 비슷한 위기에 처해 있다. 이명박 정부에 비해 일년 늦어졌다는 차이는 있지만 세월호 참사 때문에 비슷하게 심각한 위기에 처하고 만 것이다. 세월호는 여러 면에서 광우병 사태와 다르다. 광우병 사태는 소고기 수입에 따라 일어날지도 모르는 잠재적 위험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일어난 것인 반면 세월호는 꽃 같은 우리들의 자녀들을 포함한 수백명이 실제로 목숨을 잃은 비극적인 사건이다. 원인도 다르다. 광우병 사태는 이명박 정부가 방미 선물로 국민의 건강을 생각하지 않고 미국에 지나친 양보를 했다는 국민적 분노가 원인이었다. 세월호 참사는 대형 여객선의 어이없는 침몰이라는 사건 자체는 규제완화라는 이름 아래 낡은 선박의 구입을 허가한 이명박 정부의 무책임한 살인정책으로부터 황금에만 눈이 먼 악덕기업과 비정규직 시스템, 이 모두의 가치전도를 가져온 신자유주의 등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 그러나 사고도 사고지만 정작 문제는 소중한 인명을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한 한심하기 짝이 없는 구조시스템, 나아가 구조과정에서 보여준 관료, 언론, 국회, 나아가 사회지도층의 민낯에 있었다. 한마디로, 세월호 참사는 우리의 정치·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의 총체적 부실과 무능을 응축적으로 보여줬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행정수반으로서 당연히 책임이 있지만 광우병 사태와 비교하자면 상대적으로 일차적인 책임은 적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잘못된 대응으로 비판이 자신에게 향하도록 자초해 왔고 그 결과 일부에서는 대통령 퇴진론까지 나오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서울광장에 세월호 희생자 추모 촛불리본


박 대통령이 이번에 보여준 문제점은 한둘이 아니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희생자들, 나아가 국민들과 함께 슬퍼할 줄 아는 ‘공감능력’의 부재이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은 국민 위에 초월적으로 군림해야 한다는 ‘권위의 정치’ 내지 ‘초월의 정치’에 너무 익숙해 국민과 고통을 함께하는 ‘공감의 정치’를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누적된 적폐 운운하며 자신의 책임보다는 이전 정권과 관료들만 탓하다가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고 눈물을 흘리며 직접 사과를 했지만 많은 국민들이 여전히 그 진정성을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빗발치는 경질 여론에도 불구하고 김기춘 비서실장을 끌어안고, 유가족들이 국회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데도 새누리당이 김 비서실장을 증인으로 채택할 수 없다고 며칠씩 버티는 상황에서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박 대통령의 눈물의 진정성을 받아들이겠는가? 시급한 것은 공감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사실 공감능력의 부재라는 면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광우병 사태와 현재의 유사성을 바라보며 우려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촛불이 꺼진 이후이다. 민주당은 2007년 대선 패배에 대한 뼈를 깎는 자기반성이 없이 촛불시위, 이어진 비극적인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덕으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승리, 오만에 빠지고 말았다. 그 결과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패배해 박근혜 정부를 만들어줬다.

세월호 사태로 인해 새정치민주연합은 오는 지방선거에서 참패를 면하게 됐고 잘하면 승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승리는 광우병 사태와 마찬가지로 ‘축복을 가장한 저주’가 될 가능성이 크다. 즉 세월호 덕분에 예상 밖의 승리에 도취해 자기혁신을 미루다가 오는 총선과 대선에서 다시 한번 패배할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떨쳐낼 수가 없다. 정말 역사는 반복하는가?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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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객들은, 그건 착하다고 말할 것이란다. 미성년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그건 나쁘다고 말할 것이란다. 그래서 싸운다. 착한 규제인가, 나쁜 규제인가를 두고 말도 많다. 한쪽은 관광활성화, 또는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학교 옆 숙박업소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고, 또 다른 한쪽은 그 악영향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는 후자가 우세한 편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학교 출입문에서 직선거리 50m인 정화절대구역에는 숙박시설 건립이 불가능하고, 200m 이내인 상대구역에는 지역 교육청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를 완화해 사업자가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들에게 직접 설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부결되더라도 사유를 고쳐 재신청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필자의 동네에도 요즘 가장 핫한 이슈는 바로 이 ‘숙박업소’이다. 얼마 전 한 숙박업소가 건축허가를 받아 공사를 시작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런데 그곳이 하필이면 초등학교와 그 옆의 아파트 단지와 매우 인접한 곳이었다. 물론 법적으로 문제는 없었다. 대략 따져보니 숙박업소로 허가된 지점은 학교에서 직선거리로 계산했을 때 400m는 떨어진 곳이었다. 하지만 건물이 완공되었을 때를 감안하면, 학교에서도 그 옆의 아파트 가구 내부에서도 이 숙박시설을 훤히 내다볼 수 있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주민들은 학교, 주거지와 가까운 곳이라는 점에 분개했고, 그럼에도 주민들 모르게 사업과 허가가 진행되었다는 점에 또 한번 분개했다. 이에 시장과의 공청회가 추진됐고, 시장은 또 다른 숙박업소의 허가는 앞으로 계획이 없다고 주민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얼마 후 다른 숙박업소가 이미 허가가 난 상태라는 말에 주민들은 다시 분개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4년 4월 29일(출처 :경향DB)


물론 숙박시설은 꼭 필요하다. 허가를 취소하거나 절대로 건립하면 안된다고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가장 큰 우려는 숙박업소의 질이다. 물론 표면상으로는 비즈니스호텔, 관광호텔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에 호텔을 가장한 러브호텔이 얼마나 많은가를 감안하면 문제는 크다. 관광호텔로 허가를 받았지만 러브호텔로 운영되는 것까지 규제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세상에는 우리의 아이들이 의도하지 않아도 접하고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유해환경들이 많다. 그런데 많고 많은 땅들 중에서 굳이 학교 주변까지 호텔, 또는 이를 가장한 유해성 숙박시설을 지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또 학교 옆에 숙박시설을 허가하지 않는 것이 왜 청년 일자리를 막는 것이며, 관광의 활성화를 저해하는 것일까?

어느 사안에 있어서 완벽하게 착하고 나쁜 것은 없다. 지금은 무엇이 착한 규제이고, 나쁜 규제인지를 두고 싸우기보다는 ‘누구’를 위해 ‘보다 나은’ 방향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무조건적인 규제 완화보다는 우리가 정말 삶의 가치를 두어야 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규제를 더욱 강화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학교 주변에는 건물의 높이와 같은 환경적 변수를 고려한 시각적 거리에까지 규제의 범위를 오히려 확대한다고 해도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는 결코 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정아 | 김포대 실내건축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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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홍 선배님, 이재정 신부님 안녕하십니까. 얼마 전 이 신부님이 경기도로 이사를 해 교육감 출마를 한다고 해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다시 윤 선배님이 서울시교육감에 나선다는 뉴스를 듣고 충격을 받고 펜을 들었습니다. 두 분 다 제가 존경하는 분이며 교육감 자격을 갖추고도 남습니다. 또 두 분의 출마가 우연인지, 서로 교감이 있었던 것인지, 친노진영의 거대한 프로젝트에 의한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느 경우이든 출마는 잘못된 것이니 재고해 주십시오. 우선 두 분 다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대표적인 친노인사’로 두 분의 출마는 정치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던 교육감 자리를 나쁜 의미에서 ‘정치화’하는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외에 두 분의 출마를 반대하는 이유는 다릅니다.

윤덕홍 선배님, 선배님은 제 바로 전에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공동의장을 지내셨습니다. 그 후 선배님은 노무현 정부의 교육부 장관이 되셨는데 교육정보를 하나의 시스템에 전산화하는 나이스를 학생인권 침해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사회단체들의 촛불시위 등에도 불구하고 강행하셨습니다. 그 결과 전교조 위원장이 구속되고 저 역시 검찰에 불려가 긴 조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제 전임 의장에게 반대했다가 대학졸업 후 25년 만에 소위 민주정부, 참여정부에 의해 조사를 받고 나오는 기분이라니. 그렇게 만든 나이스는 별 효과도 없으면서 교사들의 행정 부담만 늘렸고 여러 보완 조치에도 불구하고 학생 사생활과 인권에 대한 우려는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따라서 선배님이 교육감에 나서는 경우 ‘제2의 나이스 사태’가 우려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민주진보진영은 그동안 서울시교육감 단일 후보를 내기 위해 경선 과정을 거쳐 민교협 공동의장 출신의 조희연 교수를 예비후보로 선출했습니다. 그런 마당에, 다른 사람도 아니고 민교협 공동의장 후배가 예비후보로 당선된 마당에, 뒤늦게 출마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특히 선배님은 단일화 과정을 몰랐다고 변명하고 있지만 단일화 추진위 측은 단일화 과정에서 선배님에게 후보등록 등을 자세히 알렸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설사 단일화 과정을 몰랐다고 하더라도 이제 출마하는 것은 상식밖의 행동입니다.

출마선언하는 윤덕홍 전교육부총리 (출처 :연합뉴스)


이재정 신부님, 신부님은 성공회대를 한국을 대표하는 진보대학으로 키웠으며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많은 기여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2002년 대선 때 재벌로부터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노무현 진영에 전달한 것이 밝혀져 감옥을 다녀왔습니다. 물론 그 돈은 개인 축재를 위한 것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신부님은 노 대통령에게 사면을 받고 통일부 장관 등 공직까지 하셨습니다. 따라서 출마에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신부님도 교육감에 나서서는 안 됩니다. 불법 정치자금 등 비리 관련 전과는 시민운동의 낙선 대상의 핵심 항목으로 대통령이 사면을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 점에서 자신이 빚을 졌다는 이유로 노 대통령이 신부님을 사면하고 주요 공직까지 시킨 것은 민주적 행태와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노 대통령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신부님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성직자인데 비리 관련 유죄를 받았으면 이후 공직을 거절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교육감까지 출마하다니요? 만약 비리 전력의 선배님이 교육감이 된다면 경기도 어린이들은 새 교육감을 보면서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또 신부님은 교육감으로서 아이들에게 법을 어기고 보스에게 정치자금을 갖다 주어도 나중에 다 사면받아 장관도 하고 교육감도 하니 여러분들도 법 같은 것 신경도 쓰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치시렵니까?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출처: 경향DB)


이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두 분이 민주진보진영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고 보수후보가 되는 것보다는 나은 것 아니냐는 논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두 분이 가장 경쟁력이 있는지는 따져볼 일입니다. 그러나 설사 그렇더라도 그것이 출마를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바로 그 같은 논리가 민주진보진영의 도덕적 타락과 현재의 위기를 불러왔기 때문입니다. 평소 존경해온 두 분께 이렇게 비판적 공개서한을 쓰자니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것도 다 두 분을 존경하고 두 분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명한 결정을 기대합니다.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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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는 거품인가? 시끄러웠던 기초의원 소동이 공천으로 결론이 났다. 이를 계기로 지난 3월 안 의원이 민주당과 통합을 선언한 때부터 지금까지 40여일간을 되돌아보며 갖게 되는 의문이다. 우선 통합 당시부터 새 당의 지지율은 기대만큼 높지 않았다. 게다가 계속 하강세를 보여 왔다. 물론 두 세력이 하나로 합쳤으니 새 당의 지지율이 통합이전 민주당의 지지율보다 높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누렸던 높은 지지율, 지난 대선에서 야권통합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이 얻었던 48%대의 득표율에 비하면 새 당의 지지율은 기대 이하이다. 이는 그동안 안 대표가 누렸던 높은 지지가 안 대표 개인에 대한 지지도 있지만 새누리당과 민주당이라는 낡은 거대 지역정당에 비판적인 무당파의 지지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안 대표가 민주당과 손을 잡자 실망하여 새 당의 지지로 전환하지 않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 두 당의 통합방식이다. 그 방식이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고, 희망과 신바람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그 배경에 대해서는 뒷말이 많지만 어쨌든 안 대표가 박원순을 만나 자신이 양보하고 지지율이 낮은 박 시장의 손을 들어줄 때까지만 해도 국민들에게 감동을 줬다. 그러나 지난 대선 문재인 후보와 후보단일화를 할 때도, 이번 통합 때도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아름다운 후보단일화에, 아름다운 양당 통합에 실패함으로써 통합의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내지 못한 것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이에 따른 기대 이하의 지지율에 대한 안 대표의 반응이다. 지지율에 대한 지적에 대해 “제가 부족해 그렇습니다. 앞으로 더 노력하겠습니다”라는 식이 아니라 “민주당이 원래 지지율 10%대 정당 아니었나요”라고 시정잡배식의 빈정거림으로 쏘아대니 국민이 감동하고 지지율이 올라가겠는가?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 (출처: 경향DB)


기초의원 문제도 마찬가지다. 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전문가가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율이 하락하는 이유는 내부역사논쟁과 문재인 정계은퇴 발언, 기초의원 논쟁이라고 잘 분석했지만, 기초의원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안철수, 김한길 공동대표는 기초의원 무공천이라는 사소하다면 사소한 문제를 통합명분으로 삼음으로써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고 말았다. 기초의원 무공천이 낡은 거대양당을 비판하며 독자노선을 내걸었던 안 대표가 깃발을 내리고 민주당과 통합할 정도로 중대사안인가? 문제가 많은 두 남자가 있었다. 그래서 한 여자가 독신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한 남자와 친지들 앞에 나타나 “우리들은 점심메뉴를 비빔밥으로 하는데 의견이 같아서 결혼하기로 했다”고 선언한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논쟁이 커지자 안 대표는 기초의원 무공천에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기초의원 무공천이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 정도로 중대사안인가? 점심메뉴 비빔밥에 인생을 걸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안 대표가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단언컨대 새정치민주연합의 미래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오기로 그렇게 말한 것이라면, 그것은 또 다른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이다. 사실 지난 대선에서 안 대표는 국회의원수 축소를,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기초의원 무공천을 들고 나와 정작 중요한 민생문제는 논쟁에서 실종하고 말았다.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고 목표의 서열을 매기는 것이다. 그래서 큰 목표를 위해 작은 것은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한다. 안 대표도 이를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안 대표가 기초의원 무공천의 약속을 박근혜 대통령이 파기했다고 공격하자 새누리당에서는 안 대표가 독자노선을 가겠다는 약속을 파기했다고 역공을 취했다. 그러자 안 대표 측에서는 큰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작은 약속은 깰 수도 있다고 응수했다. 맞다. 궁극적인 목표는 ‘새 정치’이고 이를 위해 독자노선이란 약속을 깨고 민주당과 통합할 수 있다. 그러나 기초의원 무공천이 양당이 통합을 하고 안 대표가 정치생명을 걸 정도의 큰 약속인가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안철수는 거품인가? 이에 답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 답은 지난 40일간의 시행착오를 통해 그가 무엇을 배우느냐에 달려 있다.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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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과 안철수가 합쳐 신당을 만들기로 한 것은 지방선거에서 공멸을 면하게 됐다는 점에서 다행이다. 그러나 문제는 통합의 질과 콘텐츠로서 근본적인 혁신이 동반되지 않은 통합은 오히려 재앙이 될 것이다.” 두 당의 통합뉴스를 접하며 지난 칼럼(2014년 3월3일자)에서 지적한 내용이다. 이후 통합 과정을 보고 있자니 우려대로 통합 내용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선 통합 과정이다. 낡은 정치의 전형인 민주당은 그렇다고 치자. ‘새정치’를 내걸고 입만 열면 국민을 이야기해온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연합 내부의 민주적 논의 없이 혼자 합당을 결정하고 밀실에서 합의하는 것이 새정치인가? 당을 단순히 개인의 소유물로 간주하는 3김식의 사당정치, 직원들과 전혀 상의하지 않은 CEO의 일방적인 인수·합병 결정이 안 의원이 이야기해온 ‘새로운 시대의 새정치’인가? 소도 웃을 이야기이다. 잡음이 생기고 삐걱대더라도 민주적 논의를 거치는 것이 새로운 정치, 아니 ‘새로운’이란 형용사조차도 필요 없이 ‘상식의 정치’이다.

통합의 내용도 마찬가지다. 통합 논의를 보고 있노라면, 안 의원이 새정치를 민주당과 민주세력의 우경화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 민주당을 우경화시켜 새누리당에 가까이 가는 것이 새정치인가? 사실 개인적으로 안 의원이 정치를 시작했을 때부터 가장 우려한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우리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그 중간에 안철수신당이 필요할 정도로 이념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인가, 민주당은 과연 우경화가 필요할 정도로 ‘좌파 정당’인가 하는 질문이다.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두 정당은 사생결단으로 싸우고 있지만 대북정책을 제외하면 큰 차이가 없. 최장집 교수는 두 정당간의 투쟁을 “차이 없는 사생결단 싸움질”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선거제도 개혁을 조건으로 한나라당과의 연정을 제안했고 이에 당시 여당 대표였던 김근태 의원 등이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이 답했다. “사실 한나라당과 우리랑 별 차이가 없다.” 솔직한 고백이다. 한·미 FTA, 쌍용차 해외매각, 제주도 해군기지 건립 등 모두가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것이다. 그리고 연정에 격렬히 저항했던 김근태 대표는 얼마 뒤 노동계와 민주노동당의 반대에도 노동법 개악안을 한나라당과 사이 좋게 손잡고 날치기 통과시켰다.

새정치민주연합 출범 (출처 : 경향DB)


사정이 이러하거늘 새 통합야당이 우경화한다면 새누리당과의 이념적 차이는 더욱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두 정당간의 의미있는 차이는 지지기반인 지역밖에 남지 않아 지역주의가 오히려 강화될 우려까지 있다. 그럴 바엔 노태우 구상처럼 새누리당과도 통합해 일본의 자민련 같은 거대보수대연합을 만들고 군소진보정당을 키우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그것이 안 의원이 강조하는 국민통합에도 나은 것 아닌가? 그러면 중원, 즉 중도적 유권자를 잡기 위해 우경화가 필요한가? 민주당은 2007년 대선 패배 후 뉴민주당플랜이라는 똑같은 논의를 한 바 있다. 그러나 이어진 무상급식 논쟁과 이를 통한 민주당의 승리가 보여주듯이 우경화가 승리라는 공식은 착각일 뿐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이 같은 과정에서 4·19, 6·15선언 등을 정강·정책에서 삭제하겠다고 대변인이 공식적으로 밝히고도 여론의 지탄을 받자 사실무근이라고 오리발을 내민 안 의원의 낡은 정치행태이다. 소신이 그렇다면 정정당당하게 논쟁을 하거나 아니면 생각이 짧았다고 깨끗하게 사과하는 것이 새정치이다(여론이 심상치 않자 안 의원은 뒤늦게 사과를 했다).

이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안 의원은 여전히 정치개혁의 중요한 자산이다. 문제는 안 의원이 시행착오를 끝내고 빨리 제 자리를 찾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안 의원은 더 늦기 전에 초심으로 돌아가 통합 논의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것만이 안 의원이 기대에 걸맞게 낡은 정치를 혁신하고 한국정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이다. 안 의원은 자문해야한다. 사당화와 우경화가 안 의원이 원하고 시대가 필요로 하는 새정치인가?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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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선택(No Easy Choice)’. 세계적인 정치학자 헌팅턴의 책 제목이다. 경제발전이냐, 민주주의냐? 성장이냐, 분배냐? 이처럼 제3세계는 쉽지 않은 선택에 놓여 있다는 주장이다.

요즘 떠오르는 것이 이 책 제목이다. 최근 상한가를 치고 있는 김상곤 경기도교육감만 해도 그러하다. 곧 자신의 결정을 밝히겠지만, 교육감 3기인가 아니면 도지사 도전인가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진보 교수운동의 상징인 그는 교육감 선거에 나서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걸어 복지논쟁을 촉발시켰을뿐더러 혁신학교, 창의지성교육 등 낙후한 한국 교육의 혁신에 중요한 성과를 남겼다. 따라서 교육감을 더 하면서 자신의 교육혁신을 어느 정도 완성하고 싶을 것이다. 특히 마땅한 후계자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도지사 선거에 나갔다가 보수적인 교육감이 당선되어 어렵게 이루어 놓은 성과들을 허물어버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도지사 출마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러나 여야, 나아가 진보정당들까지도 희망이 되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자신을 정치의 무대로 불러내는 ‘시대의 부름’을 외면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사실 고민스러운 것은 그의 선택이 단순히 경기도지사 선거를 넘어 지방선거 전체에 중요한 함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연합이 연대를 하지 않을 경우 새누리당이 압승할 것은 자명하다. 이와 관련해 새정치연합이 영입에 공을 들여온 김 교육감의 도지사 출마는 야권연대의 촉매가 될 수 있다. 민주당 당원이 현역인 서울시와 인천에 이어 경기도지사까지 민주당 후보가 나설 경우 선거연합은 어렵다. 그러나 김 교육감이 야권 단일후보로 나설 경우 연대가 쉬워진다. 그리고 이 같은 실험에 기초해 부산에서도 지지도가 높은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을 야권 단일후보로 만드는 등 야권연대의 새로운 모형을 제시함으로써, 지방선거에 새로운 바람과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환호하는 안철수-김상곤-김한길 (출처: 연합뉴스)


정치의 딜레마, 정확히 표현해 정치적 선택의 딜레마와 이에 따른 쉽지 않은 선택은 김 교육감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야권연대를 포함한 야권의 지방선거 전략과 야권의 미래도 딜레마이고 쉽지 않은 선택이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야권연대가 없는 지방선거의 결과는 뻔하다. 그러나 문제는 야권이 연대를 해 지방선거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한국 정치의 미래가 밝아지거나 희망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연대를 통해 야권이 승리한다면 그 결과는 어차피 희망이 없는 민주당이 2010년 지방선거처럼 다시 한번 선거결과에 안주해 당의 혁신을 미룸으로써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더 큰 패배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암환자에게 진통제를 주어 일시적으로 고통만 잊게 하는 결과, 아니 근본적인 수술을 늦춰 병만 악화시키는 결과만 가져올 것이다. 사실 오는 총선과 대선, 나아가 한국 정치의 미래를 생각하면 지방선거에서 야권연대가 성사되지 않아 민주당과 야권이 참패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민주당만이 아니다. 새정치를 이야기하면서도 낡은 정치인들을 대거 영입해 사실상 ‘재활용정당’이 되고 있는 새정치연합도 참패를 해야 위기의식을 느낄 것이다. 별로 논의하고 싶지 않은 통합진보당은 논외로 하더라도 정의당과 노동당 등 진보정당들도 혁신을 위해서는 존폐의 위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야권연대를 하지 않고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압승을 거둠으로써 가뜩이나 불통으로 나가고 있는 박근혜 정부에 날개를 달아줄 수도 없지 않은가. 지방선거에서 야권연대를 할 것인가는 정치적 딜레마이고 쉽지 않은 선택이다.

원고를 보낸 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양당의 김 교육감 영입노력이 매개가 된 것 같고 공멸의 위기가 야권연대를 택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지방선거의 참패는 면하게 됐다. 그러나 두 정치세력이 근본적인 혁신을 하지 않는 한 ‘연대를 통한 지방선거 참패 회피’가 오히려 총선과 대선이라는 더 큰 패배로 귀결될 것이라는 나의 논지는 변함이 없다. 결국 문제는 통합의 질과 콘텐츠다. 내용이 담보되지 않은 통합은 지분과 계파 싸움으로 독이 될 것이 뻔하다.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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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 선배님, 잘 지내시지요. 경기도교육감으로 한국의 교육혁신을 위해 얼마나 고생이 많습니까? 이렇게 펜을 든 것은 오는 6·4 지방선거와 관련해 안철수 진영에서 선배님을 경기도지사 후보로 영입하려 노력하고 있으며 선배님이 이에 응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한 언론에 익명의 측근 발언이라며 이를 부인하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만, 노파심에서 펜을 들었습니다.


안철수 신당이 지역주의에 기초한 보수 양당체제를 혁파함으로써 한국 정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인지, 아니면 야권 분열을 통해 부정적인 영향을 더 크게 끼칠 것인지는 논쟁거리입니다. 그러나 순수가정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하더라도, 선배님은 안철수 신당으로 가선 안됩니다. 선배님은 저보다 먼저 진보적 대학교수운동을 대표하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을 지냈고 이어서 교수노조 위원장까지 지낸, 진보적 대학교수운동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민운동을 대표하는 대중 정치인이라면 선배님은 ‘진보적 민중운동’을 대변하는 대중 정치인입니다. 교육감의 경우 정당 후보로 출마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간판으로 출마할 것인가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도지사처럼 정당 후보로 나가야 한다면, 당연히 민주당보다 보수적인 안철수 신당 후보로 나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민주당보다 왼쪽의 노선을 갖는 정당 후보로 나가야 합니다.


인사말하는 김상곤 교육감 (경향DB)



선배님은 그동안 몸담았던 진보적 민중운동을 떠나 2009년 민선 정무직인 교육감선거에 나서 한국 정치에 엄청난 기여를 했습니다. 오세훈을 낙마시키고 박원순 서울시장 체제를 만들어낸 무상급식 논쟁으로부터 현재 가장 첨예한 쟁점이 되어 버린 복지논쟁까지 촉발한 사람이 바로 선배님입니다. 민주당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유례없는 양극화를 초래하며 분배에 실패함으로써 2007년 대선에서 참패했습니다. 그럼에도 성장이 아니라 분배만 얘기해서 패했다는 엉뚱한 진단에 기초해 ‘뉴 민주당 플랜’이라는 이름 아래 당의 우경화를 추진했습니다. 바로 그때 선배님은 무상급식을 내걸어 승리함으로써 민주당의 좌경화를 견인했고 복지논쟁의 불을 붙였습니다. 이 역사적 사실과 교육감 시절 보여준 업적을 고려할 때, 선배님은 교육감을 넘어 경기도지사, 나아가 보다 중요한 공직을 향해 뛰어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나 그 같은 사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어렵더라도 정도를 걸으며 원칙을 지켜 그것을 얻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같은 사실을 멀리는 소련과 동구의 실패, 박정희의 개발독재, 나아가 민주투사 출신 양김의 사당정치, 386 정치인의 행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뼈저리게 깨우친 바 있습니다. 다시 말해, 목적만 옳으면 수단은 중요하지 않다는 결과제일주의의 비극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선배님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계승한다면서도 정치적 필요에 따라 기회주의적인 처신으로 자멸한 유시민 전 의원의 길을 가선 안됩니다. 새 정치를 이야기하면서도 고향이자 새누리당의 본거지인 부산에서 지역주의와 정면승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삼성의 불법 행동에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전 의원의 등에 칼을 꽂고 그의 자리를 차지한 안철수의 길을 가서도 안됩니다. 당장은 지더라도 원칙을 지켜 국민을 감동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승리하는 ‘바보 노무현’의 길을 가야 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무엇이 되느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어떻게 되느냐”입니다.


그렇다고 이번 선거에서 선배님이 도지사로 나갈 길이 막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야당들이 대승적으로 합의해 선배님을 경기도지사 후보로 추대하는 길이 남아 있습니다. 민주당, 안철수 신당, 진보정당 등 여러 야당들의 존재를 생각할 때 이 경우 형식은 무소속이나 선거용 ‘페이퍼 정당’의 후보가 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경기도지사 선거에 관한 한 야권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선택이 현실화하기를 기원합니다.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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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원년인 2013년은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문재인 의원의 잘못된 대응으로 일파만파 커져버린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란과 충격적인 국정원 관권선거 개입이다. 그러나 “정치학자로서 박근혜 정부의 원년을 한마디로 요약하라”고 주문한다면 나는 ‘화장발’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 경제민주화론으로 상징되는, 지난 대선과정에서 보여준 박 대통령의 개혁적 보수주의자의 모습은 대선과정에서 자신의 본 모습을 가리고 표를 얻기 위해 덧칠한 ‘화장발’에 불과하다는 것을 지난 1년은 잘 보여주고 있다. 경제민주화 등 선거 때의 화장발은 지난 1년간 다 사라지고, ‘원칙’과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이름 아래 드러난 새 정부의 ‘쌩얼’은 융통성 없는 ‘꼴보수’의 전형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시대착오적인 종북몰이가 자리 잡고 있다. 종북주의와 종북세력이란 ‘북한의 지령을 받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3대 세습, 핵무장같이 북한의 잘못된 정책까지도 (넓은 의미에서) 옹호하는 생각과 세력’을 가리키는 좁은 개념이다. 그 같은 종북세력이 존재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 수는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고 이 면에 쓴 칼럼에서 주장했듯이, 종북주의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이지만 그럼에도 사상의 자유를 인정해줘야 하며 사법적 처벌이 아니라 시민들의 표에 의해 도태시켜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종북의 개념을 제멋대로 확대해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비판적 세력들은 모두 종북으로 몰고 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민주당의 햇볕정책도 결과적으로 “북한을 도와줬으니 종북”이라는 식의 논리다. 사실상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에 표를 던진 48%의 국민을 종북으로 몰고 간 것이다. 급기야 가톨릭 원로신부까지도 종북으로 몰고가는 사태로까지 발전했다. 물론 연평도폭격, 천안함사건 등에 대해 언급한 이 신부의 발언은 그 뜻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표현 등에서 매우 적절치 못했다. 그렇다고 원로신부를, 그것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종북으로 몰고 가며 엄벌을 촉구한 것은 창피한 일이다. 이 같은 종북개념의 무한확대와 무분별한 종북몰이는 종북을 희화화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광주 시국회의가 정부와 보수세력의 종북몰이, 협박정치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경향DB)

이석기 사건을 접하면서 진보진영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 사건이 단순한 조작만은 아니고 상당한 실체가 있을 것이며 우려했던 사태가 드디어 터졌다고 생각했다. (사실 민주화진영에서 1992년 대선을 겨냥한 조작사건이라고 주장해 온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사건도 필자가 직접 참여했던 국정원 과거사 진상조사 결과 일부 과장은 있지만 대부분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이제 주체사상파와 통합진보당은 끝장이 났다고 생각했다. 일반시민들도 통진당이 정말 문제가 많은 종북세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나 이후 사정은 급변했다. 가톨릭 사제를 포함해 자신에 반대하는 세력은 모두 종북으로 몰고 가고 종북을 희화화하면서 대중, 특히 야성 유권자들 사이에는 이석기 사건과 통진당은 종북세력이 아니고 시대착오적인 종북몰이에 의한 정치적 희생양이라는 인식이 늘어났다. 박근혜 정부가 자신들의 의도와 달리 다 죽어가던 통진당을 정치적으로 복권시켜준 것이다.

중요한 시금석은 지방선거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야권연대 속에 민주노동당과 그 후신인 통진당이 약진을 한 2010년 지방선거나 2012년 총선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우선 제3의 정치세력인 안철수당이 출현할 것이다. 설사 지난 두 선거에서 위력을 발휘했던 반한나라당, 반새누리당 선거연대가 다시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민주당이 통진당과는 손을 잡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통진당이 예전 같은 성과를 거두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에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이석기 사건에 대한 사법적 판결이 어떻게 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같은 사법적 판결 결과와 상관없이 통진당은 박근혜 정부의 무분별한 종북몰이와 종북의 희화화 덕분에 정치적으로는 사실상 이미 면죄부를 받은 것이나 진배없다.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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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 첫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그것도 막무가내식의 철도 ‘민영화’ 조치 강행이 몰고온 철도파업과 노동 총파업이라는 파국으로 말이다. 엄청나게 긴 세월이 지나간 줄 알았는데 이제 박근혜 정부의 첫해가 지나간 것에 불과하다니, 남은 4년이 아득하기만 하다.

시급한 것은 ‘철도 쪼개기’라는 변형된 민영화 정책을 넘어서 철도사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그쳐선 안 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는 김대중 정부 이후 추진해왔으며 박근혜 정부가 가속화하고 있는 전기, 철도, 가스 등 국가 기간산업의 민영화, 아니 정확히 표현해 ‘사유화’(민영화는 국가 소유를 사유재산으로 만든다는 privatization을 번역한 것으로 왜곡된 번역의 극치이다)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고 대안을 찾아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반드시 참고해야 할 것이 2001년 캘리포니아의 충격적인 단전사태이다. 캘리포니아는 경쟁체제를 도입해 전력요금을 낮춘다는 명목으로 전기를 사유화했지만 그 결과는 전기요금이 오히려 폭등했을 뿐 아니라 폭리를 위한 전기회사들의 조작에 의해 낙후한 제3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단전사태가 세계 최첨단의 실리콘 밸리에서 벌어졌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이 소동 속에서도 단전사태가 벌어지지 않은 유일한 지역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곳은 전기를 사유화하지 않았던 로스앤젤레스였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당시 김대중 정부는 한전, 철도 등 기간산업의 사유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었다. 나는 캘리포니아의 UCLA 교환교수로 있으며 이를 생생히 목격했고, 한전 등 기간산업을 사유화해선 안되며, 대안적으로 각계 대표들로 구성된 공기업 개혁위원회를 만들어 합리적인 개혁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여러 칼럼을 통해 주장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한전 사유화 정책들을 계속 강행했고 그 결과가 현재의 전력위기, 나아가 철도사태이다. 예를 들어, 김대중 정부는 한전의 발전부문을 6개로 나누어 분할 사유화시켰고, 그 결과 재벌 발전회사들은 엄청난 수익을 누리고 있는 반면 국민기업인 한전은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경향DB)

주목할 것은 철도 사유화에 대한 정치권의 공방, 특히 그 중에서도 문재인 의원의 발언이다. 철도 쪼개기와 사유화에 대해 민주당이 반대하고 나서자 여권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이를 먼저 추진해 왔다며 원조 철도 민영화 정권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문재인 의원은 참여정부는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그 전 정부까지 도도하게 이어져 왔던 민영화 흐름을 입법에 의한 철도공사화로 저지했다”고 말했다. 물론 민영화 흐름을 도도하게 추진했다고 문 의원이 지목한 ‘그 전 정부’에는 당연히 현재의 민주당이 뿌리를 두고 있는 김대중 정부도 포함된다. 그뿐만 아니라 참여정부와 문 의원의 변명과 달리 진보진영과 학계에서는 공사화가 민영화의 1단계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점에서 문 의원이 단순히 참여정부를 대변하는 친노의 정파지도자가 아니라 김대중 정부를 포함한 자유주의적 정치세력과 민주당 전체를 대표했던 대권후보였고 또 차기주자라면 김대중 정부는 책임이 있지만 참여정부는 책임이 없다고 발뺌을 해선 안 된다. 오히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추진해온 민영화정책에 대해 총체적으로 반성과 사과를 하고 이번 기회에 기간산업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방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하고 나섰어야 했다.

사실 사회운동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는 누가 추진했고 쌍용자동차는 누가 해외매각했나? 김대중 정부인가? 참여정부다. 그렇다고 이들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됐을 때 김대중 정부 출신의 민주당 정치인이 그것은 참여정부가 한 것이고 김대중 정부가 한 것이 아니니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그런 사람이 민주당 전체를 대표하는 지도자가 될 수 있겠는가?

한·미 FTA는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핵심정책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이를 재협상하고 본격적으로 시행하자 민주당은 과거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이나 사과 없이 반대투쟁에 나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기간산업 사유화의 경우 이 같은 잘못을 반복해선 안 된다. 이번 철도사태를 통해 기간산업의 미래를 살리는 첫걸음은 민주당이 그간의 사유화 정책에 대한 진지한 자기반성과 공개사과를 한 뒤 범국민적인 대안논의를 조직화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박근혜 정부를 압박하는 것이다.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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