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기적은 없었다. 아니 기적은 있었다. 민주통합당이 그렇게 감동 없고 죽을 쑤는 선거운동을 하고도 3%차로밖에 지지 않은 것은 기적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선거결과에 실망은 했지만 ‘멘붕’ 상태는 아니다. 황석영 작가처럼 “선거에서 지면 프랑스로 이민 가 밥장사나 하겠다”고 대중들에게 으름장을 놓을 정도로 선거결과에 목을 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황 작가가 2007년 대선 때도 이명박이 당선되면 세상이 끝장날 것처럼 난리를 치다가 정작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이 대통령을 따라 해외순방까지 간 전력을 생각하면, 얼마 뒤 이민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을 따라 해외순방이나 가지 말기를 빈다. 충정은 이해하지만 제발 책임도 지지 않을 이민 운운하는 협박으로 대중을 윽박지르는 지식인의 사기는 그만하자).


 물론 문재인 후보가 패배한 것은 노령화에 따른 보수적인 5060세대의 증가 등 구조적 원인이 작동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민주통합당의 주체적 대응이다. 제1수권 야당이 무능하기 짝이 없는 데다가 집권당 이상으로 현실에 안주해 자기개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기껏 한다는 것이 ‘구원자 안철수’만 쳐다보고 있었으니 패배는 당연한 결과이다. 이번 선거결과를 요약하라면 나는 “노무현의 저주” “이명박의 저주”라고 부르고 싶다.


캠프 관계자 위로하는 문재인 후보 (출처 : 경향DB)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2002년 대선패배와 2004년 탄핵에서 민심의 심판을 받으면서 천막당사로 이사가는 등 뼈를 깎는 혁신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민주당은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참패를 하고도 혁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다.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은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면서 민주당의 지지율을 상승시켰다. 그러자 민주당은 현실에 안주해버렸다. 노 전 대통령은 목숨을 던져 위기에 처해 있는 민주당을 구원했지만 민주당을 안주하게 만듦으로써 혁신의 기회를 박탈하고 말았다. 이어진 것이 이명박 정부의 실정이다. 특히 이 대통령의 덕으로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면서 기고만장해졌다. ‘노무현의 저주’ ‘이명박의 저주’인 셈이다.


중요한 것은 민주통합당이 현실에 안주하다가 올봄 총선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하고도 혁신을 하지 못하고 낡은 이해찬-박지원 체제가 다시 등장했다. 불행하게도 민주통합당의 무능과 개혁의지 실종의 중심에는 문재인 후보 자신이 자리잡고 있다. 문 후보가 후보로 당선됐을 때 개인적으로 이 지면을 통해 그의 성패는 이해찬, 박지원의 2선 퇴진을 포함한 민주통합당의 혁신이라고 주장했지만 그는 혁신에 전혀 성공하지 못했다. 또 이 지면을 통해 박근혜 후보가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그토록 싫어하는 빨간색으로 당의 색을 바꾸고 있을 때 민주당은 바꾸는 척하는 ‘쇼’도 못하느냐고 비판했지만 끝내 ‘쇼’조차 못하고 대선을 끝냈다. 이해찬의 2선 퇴진조차도 안철수가 배수진을 치자 마지못해 수용한 것이다. 문 후보는 막판에 “마누라 빼고 다 바꾸겠다”고 약속했지만 무엇 하나 바꾸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없다. 사실 박 후보가 패배 시 정계은퇴를 약속하고 배수진을 치고 있을 때 문 후보는 국회의원직조차 던지지 않았다. 그러고도 3%차로밖에 안 졌으니 기적이 아니고 무엇인가? 게다가 선거에서 패배하자 대단한 새로운 발견이라도 한 양 “민주당만으로는 새 정치를 제대로 하기 어렵고 정권교체도 어렵다는 걸 이번 선거에서 확인했다”니 그동안 민주당에 가해진 비판들에 귀를 막고 있었던 것인지, 화가 난다.


민주통합당이 천막당사를 넘어 토굴당사 수준의 완전한 해체와 발본적인 혁신 없이는 미래가 없다. 발본적 혁신만이 대선결과를 새누리당에 ‘박근혜의 저주’로, 민주통합당에 ‘박근혜의 축복’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그럴 능력이나 의지가 없는 민주통합당의 대수술을 누가 이끌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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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나를 잊지 마세요.’ 물망초꽃의 꽃말이다. 그렇다. 대선 때만 되면 북한은 나를 잊지 말라고 자신의 존재를 알려온다. 1987년 KAL기 폭파사건이 대표적 예이다. 이번에도 북한은 로켓 발사로 자신의 존재를 알려왔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로켓 발사가 그들이 싫어하는 냉전보수세력을 돕는 것이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북한 지도층이 대대손손 멍청한 것일까? 아니면 겉으로는 대립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안보논리로 국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우리의 냉전정권은 북한에 군사세습정권이, 북한은 남한에 냉전보수정권이 필요한 적대적 상호의존관계 때문에 냉전보수세력이 이기기를 바라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행동으로 어느 쪽이 득을 보느냐는 관심이 없고 단순히 몸값을 올리기 위해 가장 극적인 순간에 ‘나를 잊지 말라’고 시위를 하는 것일까. 답답한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북한이 이명박 정부를 교묘하게 속임으로써 입만 열면 안보를 이야기하는 냉전보수세력들이 얼마나 안보에서도 무능한가를 보여준 것이다.


투표참여 약속 (출처 :경향DB)


 역사적인 대선이 이틀 뒤로 다가왔다. 바라던 후보단일화에도 불구하고 기대감보다는 불안감이 앞선다. 단일화 과정을 비롯해 야권이 제대로 선거운동을 했다면 이 같은 불안감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단일화 과정을 포함해 야권은 선거과정에서 한 번도 국민들을 진정으로 감동시키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 5년에 대한 국민의 절망감 덕분이 아니라면 지금 같은 판세를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특히 안타까운 것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진영의 무능이다. 그들은 제대로 된 혁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무능을 넘어서 과연 이들이 혁신 의지라도 갖고 있는 것인지 의심하게 만들고 있다. 국민을 분노시켰고 안철수 전 후보가 지적한, 국회의원 세비 인상만 해도 그렇다. 민주통합당은 새누리당과 담합해 이번 국회부터 세비를 20% 인상했다가 비판을 받자 이달 초 세비를 30% 삭감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예산심의 과정에서 민주통합당 소속의 예산결산소위 위원장이 내년 세비를 3% 다시 인상하는 안을 슬그머니 통과시켰는데 운영위 전체회의에서 새누리당이 동결하는 것으로 수정하여 내년도 세비를 동결시켰다”고 폭로함으로써 세비 삭감은 ‘정치 쇼’라는 비판만 받고 말았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세비 인상이라니 이게 제 정신인 정당인가? 이 같은 혁신 의지의 부재와 무능을 보고 있자니 설사 이번에 민주통합당이 승리하더라도 과연 이들이 앞으로 5년간 나라를 제대로 이끌어 갈 것인지 걱정부터 앞선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을.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것은 무엇일까? 우선 문 후보와 민주통합당이 늦었지만 국민을 움직일 수 있는 무언가 혁신카드를 내놓아야 한다. 안철수 전 후보도 지금까지와 같은 선문답 같은 방식이 아니라 결정적인 한방을 문 후보를 위해 날려줘야 한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 역시 조건 없이 사퇴함으로 정권교체를 돕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이와 관련, 이 후보는 지난번 이 지면에서 필자가 예측한 바 있듯이 어제 제3차 TV토론을 앞두고 전격사퇴했다. 그러나 이 모두에도 불구하고 결국 문제는 투표율이다. 특히 투표율이 낮은 젊은층이 투표장으로 쏟아져 나와야 한다.


유명한 프랑스의 정치철학자인 장 자크 루소는 선거에 의해 선출된 정치인이 민의를 대변해서 지배하는 현대대의민주주의제도에 대해 “투표를 할 때만 주인이 되고 선거만 끝나면 노예로 돌아가는 제도”라고 혹평한 적이 있다. 맞는 이야기인지 모른다. 특히 선거 때는 별별 감언이설을 늘어놓다가도 선거만 끝나면 표변하는 한국의 정치꾼들을 보면 그러하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루소의 논리를 따르더라도 최소한 투표를 할 때만은 우리가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된다는 의미가 아닌가? 따라서 투표를 통해 최소한 19일만은 주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기권함으로써 투표일조차도 노예로 남아 있을 것인가? 선택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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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역시 안철수 후보는 달랐다. 국회의원 수 축소 등 구체적 제안들은 문제가 많고 개악적 요소가 강했지만, 전격적인 후보사퇴가 보여주듯이 진정성만은 증명된 셈이다. 안 후보의 사퇴로 이번 대선은 오랜만에 보수 대 자유진보연합세력의 1 대 1 구도가 되어 가고 있다. 진보정의당의 심상정 후보는 예상대로 야권 단일화를 위해 사퇴했다. 민주통합당과 교감이 있는 심 후보와 달리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는 고민에 빠져 있을 것이다. 문 후보가 연대를 제의할 경우 기꺼이 사퇴하겠지만 종북이미지에 도덕적으로도 만신창이가 된 통합진보당에 손을 내밀 리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 후보는 후보 등록을 했다. 그러나 그동안 입만 열면 정권교체와 야권연대를 역설해온 것이 사기가 아니라면, 그도 TV토론 등 선거국면을 최대한 이용해 지지율을 높여 야권연대를 압박하다가 문 후보가 응하지 않을 경우 적당한 때에 “정권교체를 위해 후보를 사퇴한다”는 살신성인의 모습을 연출할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현상이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정권재창출이냐 아니면 정권상실이냐가 달려 있던 2002년 대선과 2007년 대선은 말할 것도 없고, 사상 최초의 여야간 평화적 정권교체와 최초의 자유주의정권 출범이 달려 있던 1997년 대선에도 권영길이라는 ‘제3의 진보후보’는 선거를 완주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진보후보들이 사라져버렸다. 하다못해 야권단일화냐, 독자후보냐라는 논쟁조차도 공론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만큼 정권교체에 대한 시대적 절박함이 1997년 대선 때보다 더 크기 때문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정당정치, 특히 진보정치라는 면에서, 한국정치는 ‘권영길 이전’으로, ‘1997년 이전’으로 후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정치가 그만큼 이념적으로 다시 협소해지고 있다는 의미로서 우려되는 바가 크다.


이는 정치공학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주목할 것은 승패가 뻔했던 2007년 대선은 그렇다고 치고, 1997년과 2002년 대선의 경우 진보후보의 독자출마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세력이 승리했다는 사실이다. 사실, 진보후보가 반한나라당 표 중 약 3%의 지지를 갉아먹었지만 진보후보의 존재가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자유주의 후보에 대한 색깔론을 중화시켜 이들이 훨씬 많은 중도세력 표를 얻도록 만들어줬다. 그러나 이번에는 의미 있는 왼쪽의 진보후보가 사라져 그렇지도 못하게 생겼다. 이정희 후보가 존재하지만 완주도 불확실한데다가 이미 종북과 도덕적 파탄 이미지로 그 같은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노동자 대통령 후보 김소연 (출처: 경향DB)


이 같은 사실들과 관련해, 관심을 끄는 것은 김소연 노동자 대통령 후보이다. 그는 일반인에게는 무명의 인물이지만 노동계에서는 전설적인 투사이다. 노무현정부가 노동법을 개악해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던 바로 그 때, 그는 기륭전자 노조위원장으로 94일간의 단식을 비롯해 무려 1895일간의 처절한 농성을 주도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얻어냈다. 민주노동당 당원이었던 그는 당이 이정희 대표의 주도 아래 유시민계의 국민참여당과 통합하자 반노동적인 자유주의 세력과 같이 할 수 없다며 탈당을 했다. 그리고 민주노총과 통합진보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정당운동이 최근 도덕적 파탄으로 사실상 종말을 고하자, 좌파 노동 현장 활동가들의 지지를 받아 이번에 노동자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것이다(김순자라는 또 다른 노동자 후보도 있지만 그는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진보신당의 방침을 깨고 탈당해 개인적으로 출마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


대중적 진보정치인으로 잘 알려진 심상정, 이정희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1% 미만의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무명의 노동자가 많은 지지를 얻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존재는 1997년, 2002년, 2007년에 이어 이번 대선에서도 진보후보의 기치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아니 이미 실패한 진보정당의 한계를 넘어서 노동자 대통령, 노동자정당이라는 보다 뚜렷한 기치를 통해 새로운 좌파정당의 씨앗을 뿌려준다는 의미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묻고 싶다. 김소연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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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답답하다. 일단 해결은 됐지만,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단일화 협상 중단 때문이다. 일차적 책임은 문 후보에게 있다. 그에게 가장 시급한 것이 당의 혁신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손 놓고 있음으로써 안 후보의 공격을 자초했다. 자기 자신을 혁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안 후보 측과 마주앉아 아무리 거창한 정치개혁을 합의한들 누가 믿겠는가? 답답하긴 안 후보도 마찬가지다. 안 후보 측은 이번 사태의 도화선이 된 것으로 보도되고 있는 안 후보 양보론 등과 상관없이 민주통합당의 자기개혁을 훨씬 이전부터 공개적이며 적극적인 방식으로 요구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다가, 문 후보 측에서 안 후보 양보론을 유포했다는 등을 이유로 협상을 중단했다니 답답하다. 안 후보는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그 정도는 당연히 각오했어야 한다. 따라서 이를 웃어넘기든가, 항의를 해서 시정을 요구할 일이지 협상을 중단할 일은 아닌 것 같다. 한마디로, 온실에서 자란 부잣집 외동아들의 투정을 보는 것 같다. 또 문재인 진영에 시한을 정해 민주통합당의 혁신을 요구하되 협상은 진행하는 양면전술을 쓸 수 있음에도 협상을 중단하고 벼랑 끝 전술을 쓰는 것을 보니, 안 후보가 정치입문 한 달 만에 배운 것이 기껏해야 이 같은 낡은 구태 정치인가 하는 생각에 한숨이 나온다. 안 후보가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는 대범한 새로운 정치의 모습을 보여줄 때 더욱 인기를 얻을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해 답답하다. 


 사실 두 진영의 후보 단일화 과정을 보면 전체적으로 안 후보의 지지가 필요한 문재인 진영이 안 후보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정치개혁 협상의 경우도 이번 소동으로 그 논의가 중단됐지만 문 후보 측이 안 후보의 요구를 수용해 국회의원 수를 축소하기로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큰일이다. 많은 정치학자들이 한국의 국회의원 수는 오히려 적으며 국회의원 수 축소가 국회개혁의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음에도 민주통합당까지 국민들의 반정치 정서에 기대는 안 후보의 나쁜 포퓰리즘에 굴복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소동으로 양측의 협상이 중단되어 숨고르기에 들어간 이상, 이 같은 합의가 사실이라면 이를 재고해야 한다. 관건은 국회의원의 특권을 줄이고 시민통제를 강화하는 것이지 국회의원 수를 줄이는 것이 아니다.


협상테이블 가는 두후보들 (출처: 경향DB)


양측이 합의한 것으로 알려진 비례대표 의석 확대에 대해서도 발상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 양측은 비례대표 확대에 합의하고 확대의 폭에 대해 조율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비례대표 확대는 사표를 줄이고 표의 등가성을 높이는 중요한 개혁이라는 점에서 박수를 쳐 환영할 일이지만 이를 넘어서 비례대표 방식 그 자체를 바꿔야 한다. 비례대표 방식에는 독일식과 일본식이 있는데 우리는 일본식을 택하고 있다. 일본식은 비례대표 의석을 득표율대로 나누는 방식으로 여전히 사표가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A당이 지역구에서 전패하고 10%를 얻었다고 할 때 비례대표 의석이 전체의 3분의 1인 경우 득표율의 3분의 1 수준인 3.3%의 의석을 갖게 되어 6.7%의 표가 여전히 사표가 된다.


반면에 독일식은 비례대표 의석만이 아니라 전체 의석을 득표율대로 나누어 해당 정당의 의석수를 정해줌으로써 의석수와 득표율이 일치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따라서 사표가 안 생긴다. 결국 독일식을 도입하면 A당이 10%를 얻었다면 의석수는 10%가 되는 것이다. 이 같은 배정 방식 때문에 경우에 따라 할당한 의석이 전체 의석을 넘어서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지만 이는 그 장점에 비해 극히 지엽적인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얼마 전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이의 도입을 주장한 바 있고,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학술단체협의회, 교수노조 등 대표적인교수학술단체들도 최근 공동성명을 통해 독일식 선거제도로의 전환을 촉구했다. 클린턴의 유명한 선거구호를 변형시킨다면, “멍청하긴, 독일식이 답이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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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진보적 정치학자로서 소련과 동구의 몰락을 보면서 깨달은 것은 대중의 현명함과 대중의 힘이다. 대중이 잘못된 결정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긴 호흡의 역사로 볼 때는, 대중이 철인왕보다도 현명하다. 또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지만 때가 되면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이라는 한 시의 표현처럼 대중은 무력한 것처럼 보여도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다.”


지난 10월8일에 이 지면에 썼던 ‘민심의 힘’이라는 내 글의 핵심내용이다. 그러나 최근 대중에 대해 곰곰이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는 국회의원 수를 현재의 300명에서 200명으로 축소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한 안철수 후보의 정치개혁안 때문이다. 이 안이 잘못된 처방이며 국민의 반정치정서에 기대는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민주통합당뿐만이 아니라 시민사회와 학계에서 거세게 일어났다. 나아가 나와 최장집 교수 등 많은 정치학자들은 비례대표 확대를 전제로 오히려 국회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자 안 후보는 이를 “기득권층의 반발”이라고 일축하며 자신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기존 정치를 싫어하고 새 정치를 갈망하는 국민의 요구를 대중의 어리석음으로 폄훼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국회가 담합해 세비를 16% 인상한 것, 나아가 국민의 70%가 자신의 개혁안을 지지하고 있는 것을 내세워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국민들의 정치 불신을 고려할 때 국회의원의 특권 축소 등 정치권의 혁신은 시급하다. 이 점에서 안 후보의 문제의식은 맞다. 그리고 앞에서 지적했듯이 긴 호흡의 역사로 볼 때 대중은 철인왕보다 현명하다. 그러나 대중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히틀러에 대한 열광적인 지지로 나치즘의 비극을 잉태한 것이나, 안 후보도 비판적인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상 최대 차이의 승리를 선사한 것도 대중이었다. 물론 정치혁신에 대한 국민의 열망은 옳은 것이지만 의원 수 축소와 같은 혁신의 구체적 방법에 대한 판단까지 항상 대중이 옳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국회의원 수를 줄인다고 안 후보가 비판한 세비 인상과 같은 담합을 막을 수 있을까? 천만에다. 수가 적어진 만큼 담합은 더 쉬워질 것이고 국회의원은 더욱 소수 특권층화될 것이다. 문제는 국회의원의 특권을 줄이고 국민의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지 수를 줄이는 것이 아니다.


안철수 대선 후보가 정치쇄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문제의 핵심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안 후보가 비판을 경청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기득권층의 반발로 폄훼하고 대중의 지지를 근거로 해서 모든 것을 정당화하려 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대중은 무조건 옳다는 무서운 대중맹신주의, 대중메시아주의이다. 정치권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최장집 교수 등이 무슨 기득권 때문에 안 후보의 안에 반발한다는 것인가? 나와 최 교수 등이 국회의원 수 축소라는 구체적인 안을 비판하는 것이지 누가 새 정치를 갈망하는 국민의 요구 그 자체를 “대중의 어리석음”이라고 부정하고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후보가 이 같은 비판을 기득권의 반발이자 대중을 어리석다고 폄훼하는 것이라고 몰고 가는 데에서는 히틀러의 대중선동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안 후보가 대중을 그토록 신뢰하고 대중이 항상 옳다고 생각한다면, 왜 대선 캠프를 만들고 많은 참모와 자문교수들을 거느리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저 여론조사 전문가들만 고용해 사안별 여론조사를 실시해 대중이 바라는 것을 전부 공약으로 내걸면 될 것 아닌가? 그리고 안 후보가 집권하면,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들을 대폭 없애고 여론조사를 통해 정책을 펴나갈 것인가?


안 후보는 청춘콘서트 등을 통해 ‘소통의 리더’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소한 정치개혁 논쟁을 통해 지금까지 보여준 것은 ‘소통’이 아니라 비판에 귀 닫은 일방적 ‘설교’의 모습이다. 소통의 지도자가 아니라 대중이라는 이름 아래 최장집 교수와 같은 시대적 양심의 비판을 기득권층의 반발로 폄훼하는 ‘대중교 교주’의 모습이다. 안 후보에게, 나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대중은 항상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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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이제 대선이 60일 앞으로 다가왔다. 대선 전날 밤 대사건이 일어나 판세를 완전히 뒤바꾼 2002년 대선이 잘 보여주듯이, 격변하는 한국정치의 속성을 생각하면 60일이면 세상이 몇 번 바뀌고도 남을 긴 기간이다. 그러나 앞으로 남은 60일간에 생겨날 가장 중요한 변수는 뭐라고 해도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 간의 후보단일화 여부일 것이다.


현재 대선은 60일밖에 안 남았지만 후보단일화는 별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두 진영은 오히려 날 선 신경전만 벌이고 있다. 그리고 한국정치의 가변성을 고려할 때, 단일화 여부에 대해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현재 양 진영의 대립은 치킨게임이라는 벼랑 끝 담력싸움에 가깝고,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단일화가 성사될 가능성이 안 될 가능성보다 상당히 높다고 생각한다.


 우선 단일화가 되지 않아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승리할 경우 두 사람은 정권교체를 바라는 지지층으로부터 몰매를 맞을 것이고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단일화를 하지 않고 3자구도로도 박 후보를 압도해 승리가 확실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한, 양 진영은 지지세력의 압력에 밀려 막판 단일화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둘째, 두 진영이 단일화하는 데 중요한 장애는 두 후보 옆에 포진해 있는 측근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안철수 진영에 포진한 참모들은 대부분 오랫동안 민주통합당과 같이해온 세력인 만큼 상대적으로 양 진영이 소통하기에 어려움이 적기 때문이다. 세 번째, 무소속 대통령이 가능한가라는 무소속 대통령 논쟁이 벌어졌지만, 안철수 후보가 국회에서 달랑 송호창 의원 한명 데리고 청와대에 입성하는 경우 일을 해나가기가 너무도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어떤 방식이든, 민주통합당과의 공동정부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안철수 대통령, 문재인 총리 티켓’이거나 ‘문재인 대통령, 안철수 총리 티켓’ 중 하나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종북논쟁 등으로 부담이 되는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출마를 선언한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까지 후보단일화를 이루어 심상정 노동부 장관과 같은 카드로 세 세력의 공동정부 단일화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DJ묘역에 나란히 놓인 문재인, 안철수 조화 (출처: 경향DB)


그러면 단일화의 가장 큰 장애는 무엇인가?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문재인 후보의 ‘무감각’ ‘무신경’ 내지 ‘무능’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문 후보가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로 결정될 당시 이 지면에 쓴 “문재인의 첫 번째 할 일”(2012년 9월17일자)에서 지적했듯이, 문 후보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이자 경쟁력을 갖는 최고의 비결은 “대선 공약을 다듬는 것도, 안철수 후보와 후보단일화를 이루는 것도 아니고 민주통합당의 혁신”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안 후보가 민주통합당의 입당이나 후보단일화 요구에 대해 국민적 요구인 정치쇄신이 먼저라고 화답하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검증된 것이 별로 없고 정치경험도 전무한 안 후보가 문 후보를 제치고 박근혜 후보의 대항마로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민주통합당의 구태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 때문이다. 이를 뒤집어 이야기한다면, 민주통합당이 근본적인 쇄신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국민들이 안 후보에게 보내고 있는 지지를 문 후보가 단번에 흡수해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기이한 것은 정치쇄신이라는 안 후보의 요구에 화답하여 단일화의 전제조건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스스로 경쟁력을 제고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이해찬, 박지원 의원의 2선 퇴진을 비롯한 민주통합당의 발본적인 혁신인데도 불구하고 문 후보는 이에 대한 노력을 전혀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선거운동이라며 바쁘게 엉뚱한 곳만 돌아다니고 있으니 답답하다. 민주통합당의 쇄신이 핵심이라는 사실을 문 후보가 모르는 것이라면 이는 ‘무감각’ 내지 ‘무신경’이고, 이를 알고 있지만 당의 구조상 자신의 능력으로 쇄신이 불가능해 포기하고 있는 것이라면 ‘무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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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대중의 현명함과 대중의 힘. 그렇다. 진보적 정치학자로서 20년 전 소련과 동구의 몰락을 보면서 깨달은 것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두 가지였다.


물론 대중이 잘못된 결정을 하는 경우도 많다. 또 세종대왕과 같은 훌륭한 왕도 적지 않고 대중과 비교할 수 없는 지식과 혜안을 가진 천재들도 상당히 많다. 그러나 긴 호흡의 역사로 볼 때는, 대중이 철인왕보다도 현명하다. 결국 민주주의란 이 같은 원리에 기초해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원리를 포기하고 당이 진리를 독점해온 사회주의권의 당독재가 민주주의에 밀려 일거에 무너지고 만 것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 대중은 무력한 것처럼 보여도 결국 그 힘으로 역사를 움직인다. 김수영 시인이 ‘풀’이란 시에서 절창했듯이 대중과 민초들은 무언가 큰일이 닥쳐오면 풀처럼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고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지만 동시에 때가 되면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즉 민초들이 많은 경우 비겁하고 비굴하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요한 순간에 결국 일어나 역사를 이끄는 것이다.


이번 대통령선거는 한국 정치사상 처음으로 복지가 중심 화두가 되고 있는 선거이다. 그러나 이렇게 만든 것은 정치권이 아니라 민초들이었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민주당은 대선 패배 후 정세균 대표 체제하에서 당을 재건하기 위해 뉴민주당 플랜이라는 이름으로 우경화를 시도했다. 그리고 이 같은 계획하에 민주당은 분배만이 아니라 성장을 이야기할 수 있는 정당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자신들이 패배한 것은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분배에 실패했기 때문인데도 분배는 잘했는데 성장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엉뚱한 진단을 한 것이다. 그러나 김상곤 교육감이 경기도교육감 선거에서 무상급식을 들고 나왔고 민심은 김 교육감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놀란 민주당은 갑자기 복지노선으로 급선회했고 이 같은 노선으로 지방선거 등에서 승리하자 한나라당(이후 새누리당)도 허겁지겁 이를 따라가게 되었다. 결국 민심이 한국 정치의 지형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최근 이 같은 대중의 힘, 민초의 힘, 민심의 힘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과거사 문제이다. 박 후보는 복지 등 다른 면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전향적 태도로 적극 변화해 나갔다. 그 한 예로, 당의 색깔을 보수세력이 그토록 싫어하는 빨간색으로 바꾸기까지 했다. 그러나 유독 아버지 문제가 걸려 있는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는 계속 버티기로 일관했다. 급기야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난 인혁당 사태에 대해 이 같은 판결을 부정하는 것처럼 들리는 발언까지 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같은 과거사 문제로 지지율이 떨어지자 결국 민심에 굴복하고 과거사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기에 이른다. 다시 말해, 과거사에 대한 박 후보의 고집을 꺾은 것은 바로 민심이다.


(출처: 경향DB)


생각해 보면 정치 문외한인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를 일약 유망 대선 후보로 만들어준 것도 민심이었다. 오는 12월19일 대선에서 최종 승리할 사람은 민심을 가장 잘 읽은 후보일 것이다. 이 점에서 대중과 민심의 외면을 받고 있는 진보정당들을 바라보면, 답답하기만 하다. 특히 현재의 위기 원인을 제공하고도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나선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의 모습에서는 그 오만함에 측은한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대중을 외면하고 강경노선만 내세우는 진보신당 등 진보좌파들도 답은 아닐 것이다.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이 ‘우매한 대중’을 계도하고 이끌어갈 소수 철인왕들의 전위정당은 아니지 않은가? 반대로 몸집 불리기를 위해 이념과 역사가 다른 세력들이 정략적으로 모여 있는 노회찬, 심상정, 유시민 그룹의 새진보정당추진회의가 민심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가장 변혁적이면서도 가장 대중적인 진보정당,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가장 변혁적인 진보정당은 정녕 불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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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너무 오래 뜸을 들여 김이 빠진 감은 있지만 그의 출마선언으로 올 대선구도는 이제 3강체제로 본격적인 막을 올리게 됐다. 


안 후보의 출마선언을 들으면서 문득 떠오른 것이 엉뚱하게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이제는 유명을 달리한 제정구 전 의원이다.


 이 전 총재가 정치에 입문할 당시 안 후보 정도는 아니었는지는 모르지만, 평소 올곧은 판결로 명성이 있었던 만큼 엄청난 기대를 모았다. 그리고 정치입문 당시 그의 별명이 ‘대쪽’이었다. 개인적으로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이 전 총재의 과거 별명이 대쪽이었던 이유가 무엇인 줄 아느냐고 묻곤 한다. 대부분의 답이 “그가 청렴하고 원칙을 지켜서”라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것도 맞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없느냐”고 되묻는다. 한참을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내가 주는 답은 “그가 정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그가 대쪽이었던 이유는 원래 깨끗한 성품을 지니고 있다는 것에 연유하기도 하지만 정치를 하지 않아 타락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이후 그의 최측근들이 2002년 대선자금과 관련해 차떼기로 줄줄이 쇠고랑을 차야 했다는 사실이 잘 보여주고 있다.


서강대학교에서 열린 故 제정구 전 의원 10주기 추모식 (출처; 경향DB)


이 같은 논법을 확대하면 안 후보가 깨끗한 것은 다른 것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정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안 후보가 정치를 했어도 지금 같은 이미지를 지킬 수 있었을까? 사당정치 등과 관련해 한때 3김을 많이 비판했었다. 이후 386정치인들의 행보를 보면서 어느 면에서는 ‘3김 존경론’으로 입장이 바뀌었다. 정치 몇 년 만에 엉망이 되어버린 386을 보니 정치를 수십 년 하고도 그것밖에 타락하지 않은 3김이 존경스러워진 것이다. 누군가 ‘탱자론’으로 표현한 바 있지만 아무리 좋은 귤도 한국정치에 심어놓으면 한국정치의 구조적 특성에 의해 익어서 수확할 때면 탱자가 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이 같은 측면을 너무 강조하면 구조적 숙명론과 허무주의에 이르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현재 안 후보에게 필요한 것은 한국정치의 여러 문제들이 단순한 인물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패 등 기존 정치를 무조건 비판하기에 앞서 정치 현실 앞에서 겸손해지고 보다 숙연해져야 한다.


안 후보의 출마선언을 들으며 떠오른 또 다른 사람은 제정구 전 의원이다. 학생운동 지도자에서 빈민운동가로 변신해 빈민들과 함께 살며 아시아의 노벨평화상이라는 막사이사이상까지 수상한 제 전 의원은 1987년 민주화 이후 3김정치에 저항하며 정치입문을 결심한다. 그를 아껴 정치입문을 막으려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는 ‘걸레론’을 내세워 자신의 정치행을 해명했다. 정치가 더럽다고 모두들 외면하면 그 더러움은 영원히 계속될 것임으로 자신이 걸레가 되어 정치를 청소하겠다는 것이다. 즉 걸레는 자신의 몸을 더럽혀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어주는데 자신이 바로 그 같은 역할을 할 것이며 이를 위해 자신의 몸이 어느 정도 더러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이 같은 걸레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마음의 병을 얻어 암으로 자신이 선언한 ‘걸레의 사명’을 완수하지 못한 채 세상을 달리했다.


제 전 의원의 실험 결과와는 별개로, 안 후보가 배워야 할 또 다른 측면이 바로 이 걸레론이다. 안 후보가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결벽증을 가지고 현실정치의 타락을 비판하며 현실정치를 멀리할 것이 아니라 정치를 청소하기 위해 어느 정도는 그 타락과 구정물 속에 발을 담그고 제 전 의원의 걸레론을 실천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하긴 베일을 벗은 안 후보의 주변 인물들을 보니 결벽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이미 오염된 인물들이 많이 눈에 띄지만 말이다. 그러나 주변이 그러한 것과 후보 자신이 그러한 것은 다른 것인 만큼 안 후보는 걸레론, 그리고 탱자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안철수의 미래는 탱자일까, 걸레일까? 걸레이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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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문재인 의원이 민주통합당의 대통령 후보로 확정됐다. 이는 여러 면을 고려할 때 당연한 일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문 후보가 본격적으로 부상하기 전인 1년여 전에 쓴 한 글에서 문 의원이 민주통합당의 대통령 후보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예측한 바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문 의원이 가진 여러 자질에 연유하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국의 지역주의가 ‘우리가 남이가’라는 식의 정서적 지역주의로부터 상대방을 이기기에 어느 후보가 유리한가라는 전략적 지역주의로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전략적 지역주의 때문에 호남 등 민주통합당의 지지세력이 역설적이게도 호남 출신 정치인들을 지지하지 않고 지역적 확장성이 있는 타 지역 출신 후보를 선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역적 확장성이 있는 것으로 믿어지는 손학규 후보는 ‘짝퉁 한나라당’이라는 원죄가 있다. 따라서 지역적 확장성도 있고 정통성에도 하자가 없는 문 의원이 간판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었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가 앞으로 갈 길은 멀고도 멀다. 사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누리고 있는 높은 인기를 고려할 때 문 후보는 아직 대선의 결선에 오른 것이 아니다. 이제 막 예선 하나를 끝낸 것에 불과하다. 


문 후보가 안고 있는 문제는 6개월 전 이 지면에 쓴 ‘문재인의 운명?’에서 지적했듯이 크게 보아 세 가지다. 그것은 정책적 콘텐츠를 갖추는 것, 노무현을 넘어서는 것, 너무 깨끗하다는 이미지를 넘어 권력의지를 갖추는 것이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현재, 이 세 가지 다 아직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상태이다. 따라서 문 후보는 국민들이 갖는 이 세 가지 의구심을 풀어주고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


정견 발표하는 문재인 후보 (출처: 경향DB)


문 후보가 우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문 후보의 ‘정치적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후보가 되자마자 저지른 패착들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민주당 경선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대통령 후보가 됐지만 일련의 정치적 패착으로 지지율이 급락해 위기에 빠졌다가 정몽준 의원과의 후보 단일화를 통해 기사회생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노 전 대통령은 후보가 되자마자 자신의 정치적 스승인 김영삼 전 대통령을 찾아가 인사를 했다. 정치노선은 달라졌지만 옛 스승을 찾아가 인사하는 것이 무슨 큰 흠이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노 전 대통령이 오버를 한 것이다. 즉 김 전 대통령에게 잘 보이기 위해 부산시장 후보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민주적 경선에 의해 당선된 후보가 주요 선출직 자치단체장 후보를 3김의 한 사람에게 낙점해달라고 부탁했으니 말이 안되는 행보였다. 이를 계기로 노 전 대통령은 지지율이 계속 떨어져 후보 교체 압박에 시달렸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즉 후보가 되더라도 유연하되 원칙을 지켜야 한다.


문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대선공약을 가다듬는 것도, 안철수 원장과 후보 단일화를 이루는 것도 아니다. 그 무엇보다 민주통합당의 혁신이다. 지난 총선에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민주통합당을 보고 있노라면, 이건 정권을 잡기 위한 정당이 아니라 정권을 상납하기 위한 자해특공대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은 낡은 정치의 잡음뿐이지 희망의 메시지가 아니다. 평소 유시민 전 장관이 이념적으로 훨씬 가까운 민주통합당을 놔두고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진보정당 동네에 가서 기웃거리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의 민주통합당을 보고 있노라면 충분히 이해가 가기도 한다. 


이제 문 후보는 낡은 정치의 상징이자 국민에게 감동을 주기 어려운 ‘이해찬-박지원’ 담합체제를 비롯해 낡은 민주통합당을 앞장서서 혁신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민주통합당 하나 개혁하지 못하는데 한 나라를 개혁하겠다고 아무리 외쳐봐야 어느 국민이 믿어주겠는가? 민주통합당의 혁신, 그것이 문 후보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이자 대선에서 경쟁력을 갖는 최고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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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이건 아니다. 이건 정말 아니다. 사방을 둘러보면 과연 역사가 후퇴하는 것이 아니고 전진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대선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건만 정책논쟁은 사라지고 정치권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이전투구뿐이라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대통령직선제가 다시 도입된 1987년 이후 치러진 역대 대통령선거 중 이 같은 선거는 없었던 것 같다. 세계는 지금 레이건과 대처 이후 추진해 온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의 결과로 경제가 파탄이 나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이에 따라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 역시 그 전망이 불투명한 실정이다. 게다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초석을 닦고 이명박 정부가 가속화시킨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민생은 임계점에 이른 지 오래이다. 사방에는 무한경쟁으로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고, 이명박 정부의 4개강 사업으로 이 땅의 젖줄마저 죽어가고 있다. 북쪽에서는 북한주민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가운데 3대 세습정권은 생존을 위한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밖으로 눈을 돌려보면 21세기 세계패권을 놓고 미국과 일본의 동맹 대 새로운 패권 도전세력인 중국 간의 긴장이 동북아를 중심으로 서서히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그러나 대선이 100일도 남지 않았지만 이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국민적 논쟁은 찾아볼 수가 없다. 즉 21세기 한국의 미래에 대한 정책토론은 찾아볼 수가 없고 허구한 날 이전투구의 싸움질만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이 같은 정치실종, 정책실종, 그리고 이전투구의 중심에 있는 것이 비극적이게도 민주통합당이다. 현재 민주통합당은 오는 12월에 정권탈환에 나설 제1야당의 대권주자를 뽑는 경선을 벌이고 있지만 산적한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찾아볼 수가 없다. 대신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것은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는 모바일 경선의 공정성 등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문재인 진영 대 비문재인 진영 간의 이전투구뿐이다.


아니 다른 것도 있기는 있다. 초상집에서 당 원로와 당의 원내대표가 시비를 벌이다가 물을 끼얹는 추태까지 보였다는 뉴스이다. 민주통합당을 보고 있노라면 이들은 민심을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느낌,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차기 대권을 상납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마디로, 현재의 민주통합당은 정권을 추구하는 정당이 아니라 정권을 잡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자해집단, 자살특공대에 다름 아니다.


대선 경선 대회장에 걸린 '지도부 사퇴 촉구' 플래카드 (출처: 경향DB)


진보의 대표주자인 통합진보당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대선 국면에서 산적한 문제들에 대해 진보적 대안을 제시해 21세기 한국의 미래건설에 기여하기는커녕 부정선거와 폭력사태 등으로 민심의 외면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뼈를 깎는 자기 혁신은커녕 문제의 핵심 당사자인 옛 당권파의 이정희 전 대표가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는 뉴스가 들려오고 있다. 또 현실적 고충은 이해하지만 쇄신파 역시 의원직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가 자신을 제명하는 셀프제명이란 꼼수로 소탐대실의 길을 가고 있다.


이 모두는 기존정치에 대한 불신을 강화시켜 안철수 현상에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역시 이 같은 이전투구의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것 같지 않다. 물론 안철수 원장을 둘러싼 이전투구는 안 원장을 낙마시키기 위해 각종 의혹들을 가지고 네거티브 캠페인에 나서고 있는 새누리당과 일부 언론에 있지만 이번 안철수 불출마협박 소동에서 보여주듯이 안 원장 역시 이 같은 이전투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특히 안 원장은 대선이 100일도 남지 않았는데도 당당하게 출마를 선언하고 자신의 정책을 가지고 정면승부하기보다는 출마 시기를 늦추는 것이 유리하다는 정치적 계산에 따라 치고 빠지는 게릴라식 꼼수정치에 나섬으로써 이전투구의 정치라는 판을 자초한 측면이 적지 않다. 이제, 이전투구의 정치는 그만하고 제대로 된 정책 논쟁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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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008년의 완벽한 반복이다. 그렇다. 통합진보당의 쇄신파가 집단 탈당 후 신당 창당이라는 분당의 길을 선택했다. 결말까지도 2008년 민주노동당의 소수파와 마찬가지로 분당을 택한 것이다. 이로써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략적 필요성에서 추진한 통합은 1년도 못 가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됐다.


이제 문제는 분당 이후이다. 주목할 것은 진보신당의 선택이다. 진보신당은 분당을 결정한 쇄신파의 한 축인 노회찬·심상정 의원 등 통합연대와 2008년 분당 이후 당을 같이해온 세력으로서 통합진보당에 대해 민주노동당의 맹주인 경기동부연합 등의 패권주의와 종북주의를 이유로 합류를 거부한 바 있다. 그리고 지난 4월 총선에서 독자노선을 걸었지만 1%대의 지지율로 정당 해산을 당하고 재창당을 준비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옛 동지들이 신당을 창당하려고 나선 이상 이들과 재결합하는 것은 상정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시나리오다. 그렇게 될 경우 향후 진보정치는 지난해 통합진보당 창당 이전과 마찬가지로 경기동부연합이 중심을 이루며 패권적이고 ‘종북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민주노동당계의 진보정당과 당내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북한에 비판적인 새 진보정당의 이분구도로 나가게 될 것이다.


제 19대 총선 선거운동 당시의 김순자 씨 (출처 :경향DB)


 하지만 이 같은 시나리오를 가로막는 변수가 있다. 그것은 쇄신파의 또 다른 축인 유시민 전 의원 등 국민참여당 계열이다. 물론 진보신당 세력이 통합진보당 합류를 거부한 것은 경기동부연합 등 민주노동당의 패권주의와 종북주의에 변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국민참여당과의 통합 역시 말이 되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국민참여당계는 정치공학적 이유에서 통합진보당에 합류했지만 그간의 정치적 행보나 정강 등을 볼 때 진보세력이라기보다는 자유주의세력이라고 봐야 한다. 


따라서 문재인 의원처럼 민주통합당에 합류하는 것이 맞다. 이 같은 국민참여당계가 쇄신파 내에서 다수파를 구성함으로써 이들이 만들 새 진보정당은 기존의 진보정당들에 비해 훨씬 우경화할 것이 확실하다. 이는 쇄신파가 최근 진보정당의 대중성을 강화해야 한다며 미군 철수, 재벌해체 등의 당 강령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혁신안을 내놓은 것이 잘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진보신당은 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제안자 모임 등 노동의 중심성을 강조하는 진보좌파세력들을 규합해 새로운 진보좌파정당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통합연대계가 국민참여당계와 갈라서지 않는 한 진보신당과 진보좌파세력이 쇄신파의 신당에 합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세 개의 진보정당이 경쟁하는 ‘진보 다당제’가 자리 잡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즉 경기동부연합을 중심으로 한 구 민주노동당 계열의 진보정당과 이들의 패권주의와 종북주의에 비판적인 두 개의 진보정당, 즉 진보적 자유주의 노선으로 우경화한 통합진보당 쇄신파의 진보우파정당과 보다 왼쪽에 위치한 진보신당 등이 만드는 진보좌파정당이 경쟁하는 구도이다.


그러나 세 번째 시나리오로 쇄신파가 독자적인 정당을 구성하는 대신 민주통합당에 합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쇄신파의 다수파인 국민참여당 계열의 강동원 의원이 이 같은 가능성을 여러 차례 시사한 바 있다. 유시민 전 대표 역시 민주노총과 민주통합당의 전면적 결합이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진보정치세력이 민주통합당으로 들어가 진보블록을 형성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피력했다. 다수파인 국민참여당계의 정치적 성격을 고려할 때, 나아가 쇄신파가 우클릭을, 민주통합당이 반대로 좌클릭을 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이 시나리오가 가장 합당하며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경우 민주통합당의 진보블록이 강화되어 민주통합당의 진보성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진보정치는 이석기 의원의 민주노동당계와 진보좌파정당의 양분구도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할 것이다. ‘통합진보당, 그 이후’는 어느 길이 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진보정치의 또 다른 격변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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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선가 헤겔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은 두 번 반복된다고 쓴 바 있다. 그러나 그가 빠트린 것이 있다. 그것은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반복한다는 사실이다.” 자주 인용되는 이 구절은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보나파르트가 정치적 혼란 덕분에 나폴레옹에 이어 황제에 오른 것을 목도하면서 마르크스가 쓴 명문장이다.


 김제남 의원의 배신으로 이석기·김재연 의원 제명 등 당 쇄신이 물 건너가면서 분당 사태에 직면한 통합진보당을 바라보면서 떠오른 것이 바로 마르크스의 이 구절이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은 두 번 반복된다는 헤겔의 주장처럼,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는 2008년에 있었던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의 반복에 다름 아니다. 즉 2008년의 분당 사태 이후 4년이란 세월이 지났음에도 한국의 진보정당 운동을 장악한 경기동부연합 등 다수파는 변하지 않았다. 그 결과 우리의 진보정당 운동은 발목이 잡힌 채 발전하지 못하고 좋게 말해 제자리걸음을, 솔직히 말해 뒷걸음을 치고 있다.


반공주의의 불모지대에서 별 성과 없이 몸부림쳐온 한국의 진보정당 운동은 2004년 총선에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도입에 크게 힘입어 민주노동당이 10명의 의석을 가진 제3당으로 급부상함으로써 도약의 기회를 맞게 됐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도 문제가 된 경기동부연합 등 비민주적인 패권주의와 종북주의는 한국의 진보정당을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위기와 분당 사태로 끌고 갔다. 이들은 북한의 핵무장에 대해 자위권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2007년 대선에서 신자유주의에 의한 민생파탄 문제가 아니라 코리아연방공화국이라는 생뚱맞은 구호를 들고 나와 죽을 쑤게 만들었다. 


게다가 당의 중심간부가 당내 주요 인사들의 성향을 작성해 북한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 일심회 사건까지 터져나왔다. 이에 조승수 전 의원을 중심으로 한 강경파가 종북주의와 패권주의를 문제삼으며 탈당했다. 놀란 당권파는 심상정 의원을 비대위원장으로 앉혔고, 심 의원은 일심회 관련자의 처벌 등을 내용으로 한 쇄신안을 내놓았지만, 당권파가 이를 부결시킴으로써 쇄신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심상정 의원과 노회찬 의원 등은 조 전 의원 등과 합류해 진보신당을 창당해야 했다.


김제남, "당을 위한 선택이었다" (출처 : 경향DB)


이로부터 4년 뒤에 발생한 이번 사건은 진보신당의 다수파가 2008년의 트라우마를 이유로 재합당을 거부한 반면 그 자리를 유시민 전 의원이 이끄는 국민참여당이 대신했다는 차이만 있을 뿐 2008년의 반복에 다름 아니다. 분란의 핵심에 비민주적인 패권주의와 종북주의가 자리잡고 있는 것, 쇄신을 위한 최후의 노력이 경기동부연합 등 다수파의 비토로 실패하고 만 것 등이 그러하다. 2008년 일심회 관련 당직자 징계안이 부결되면서 쇄신 노력이 좌초하고 분당 사태로 달려갔듯이, 이석기·김재연 의원 징계안이 부결되면서 통합진보당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아가고 있다. 특히 심상정 의원이 2008년에는 비대위원장, 현 국면에서는 원내대표라는 쇄신의 지휘관으로 고전분투하다가 좌초하고 말았으니, 역사의 장난치고는 너무 가혹하기만 하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마르크스가 잘 지적했듯이, 2008년 사태가 비극이었다면 이번 사태는 희극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 이번 사태는 비극적이다 못해 정말 희극적이다. 약속을 깨고 기권표를 던져 쇄신을 무산시킨 김제남 의원이 “이석기 의원에게 승리를 선사한 것이 아니라 강기갑체제에 노역형을 준 것”이라며 중단 없는 혁신을 위해 무효표를 던졌다고 주장했다니, <개그콘서트>는 명함도 못 내밀 희극의 최고 수준이다. 이제 문제는 어차피 실패한 통합진보당의 실험의 피날레가 어떤 모양을 갖출 것이냐는 것이다. 다시 2008년처럼 분당 사태로 귀결될 것인가? 아니면 대안은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이든, 확실한 것은 그것이 안티클라이맥스일 따름이라는 사실이다. 두 번째 반복하는 역사가 희극이라면 희극에 합당한 결말이 적합하다고 해야 하나? 그러기엔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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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일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


 

재벌그룹에 대한 출자총액제한 규제에 반대하면서 경제민주화보다 복지국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장하준과 나 같은 사람에 대한 최근의 비판은 ‘왜 이건희 가문과 타협해서 복지국가를 만들려 하냐’는 물음으로 요약되는 듯하다. 제대로 된 복지국가를 만들려면 재벌과 비타협적으로 싸워야 하고, 더구나 재벌 가문이 뭐가 아쉬워서 복지국가와 타협하겠느냐는 것이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경향신문DB)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유하며 더구나 정치, 경제를 좌우하는 재력을 가진 대재벌 가문의 권세와 영향력에 맞서 비타협적으로 대결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꿈꾸는 복지국가를 만들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지난 6월20일자 경향신문 칼럼에서 “복지국가는 재벌과의 타협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백만, 수천만 시민의 동의와 지지, 열렬한 참여가 없다면 복지국가는 일장춘몽에 불과하다”고 썼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우리가 재벌과의 타협을 우선시한다고 비판한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비타협적으로 싸울 사안이 있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사안이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재벌 가문을 비롯한 한국 사회 최고 부유층에 대한 과세에서만큼은 비타협적이어야 한다고 본다.


프랑스의 올랑드 사회당은 연 100만유로를 초과한 개인소득에 대해 75%의 소득세율로 과세하겠다고 공약했다. 우리 역시 연 10억원을 초과한 개인소득에 대해 75% 과세하는 것을 지지한다. 이 경우 재벌 가문의 개인소득은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고, 재벌 가문들은 이런 공약을 내세우는 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타협적으로 맞설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역시 부자 증세와 보편적 증세는 복지국가의 재원 조달과 재정건전성 확보에 절대적인 까닭에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주주자본주의를 먼저 규제하지 않은 채 시행되는 재벌 대기업에 대한 출자총액제한 규제는 국내외 주식투자자 세력의 이익을 증진시킬 뿐이며 따라서 재벌 대기업 규제에 관한 한 적절한 타협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현재 야당들은 주주자본주의 규제보다는 재벌 규제가 시급하며, 총수 자본주의 타파에 관한 한 타협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말한다. 


그런데 총수 자본주의를 비타협적으로 타파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삼성과 현대차, LG와 SK 같은 대기업 집단을 해체하는 것이다. 즉 재벌 해체야말로 총수 자본주의를 비타협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논리적으로 일관된 해법이다.


실제 재벌 해체를 공약한 정당이 있는데 바로 통합진보당이다. 통합진보당은 지난 총선 공약에서 실질적인 재벌그룹 해체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지금도 그것을 유지하고 있다. 그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총수 자본주의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는 논리적으로 일관된 해법이라는 점에서 재벌그룹 해체를 나는 높이 평가한다. 


(경향신문DB)


게다가 재벌그룹 해체가 비현실적인 몽상만은 아니다. 1998년 이후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재벌개혁 과정에서 당시의 30대 재벌그룹 중 3분의 1이 완전 해체되었다. 대우그룹, 삼미그룹, 해태그룹 등이 그것이다. 이에 반해 총수 자본주의와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자고 하는 입장이 있다. 바로 민주통합당과 대다수의 진보적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다. 그들은 출총제를 부활하더라도 순자산 대비 출자 허용 비율을 40% 수준으로 정해 재벌그룹들이 적당히 그에 순응할 수 있도록 하자고 말한다. 즉 재벌그룹 해체가 아니라 재벌그룹 약화, 경제력 집중 해소가 아니라 경제력 집중 완화 수준에서 재벌개혁을 하자고 말한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총수 자본주의와 타협하겠다는 것 아닌가? 정말로 총수 자본주의와 비타협적으로 ‘힘 있게 부딪치려면’(이병천), 아예 통합진보당처럼 재벌 해체를 들고 나오는 것이 논리적으로 일관된 태도가 아닌가? 경제력 집중을 완화 또는 약화시키는 수준에서 적당히 타협해서는 안되며 아예 경제력 집중을 해체시켜 버리는 것이 근본 해법이 아닌가? 이것이 바로 통합진보당의 주장이며, 노무현 정부에서 금융위 부위원장을 지낸 이동걸 한림대 교수의 주장이다. 그리고 손호철과 조희연, 김동춘 등 진보적 교수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비타협적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적당한 타협을 주장하는 일관되지 못한 재벌개혁에 반해 우리의 논리는 일관되어 있다. 즉 우리나라 같은 후발공업국의 수출제조업 구축에서 대기업 집단으로의 경제력 집중은 불가피한 선택이며, 따라서 그것을 완화 또는 해체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집중된 경제력을 전제로 그에 대한 사회적, 민주공화적 통제를 구상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민주공화적 통제에 관한 한 재벌 가문 및 주식시장과의 대결은 불가피하다. 왜냐하면 대기업 및 대기업 집단을 누가 통제하느냐를 놓고 재벌 가문과 주식투자자를 한편으로 하고 사회공동체와 민주공화국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첨예한 대결 구도가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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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얼마 전 난생처음으로 위 내시경 검사를 했다. 수면 내시경 검사를 했는데 마취에서 깨어나자 의사가 심각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암인가 보다’라며 덜컥 겁이 난 나에게 의사는 ‘암 선고’만큼이나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다. “교수님, 왜 그렇게 박정희 욕을 하세요?” 마취를 하면 무의식에 있는 이야기를 한다던데, 마취가 되자 박정희 욕을 계속 뱉어낸 것이다. 물론 대학 시절 고문도 당하고 투옥도 되고 제적도 당하고 군대에도 끌려갔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나이가 되도록 깊은 무의식 속에 사랑이 아니라 누군가에 대한 증오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너무 충격적이고 부끄러웠다.

이처럼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한국현대사에서 피할 수 없는 뜨거운 감자이다. 이 뜨거운 감자는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5·16을 “최선의 선택, 바른 판단”이라고 밝히면서 대선의 중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박 전 위원장은 이 발언이 쟁점으로 부상하자 민생 등 할 일이 많은데 역사논쟁만 할 것이냐며 논쟁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단순히 지나간 역사에 대한 공허한 논쟁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무엇을 희생하면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현재의 선택에 대한 핵심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논쟁 중단 선언으로 피해갈 문제가 아니다.

 

출처:경향DB

박 전 위원장의 주장이 ‘상황론’에 기초한 매우 위험한 논리임은 여러 사람이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정작 문제는 박 전 위원장의 이 같은 주장을 비판하고 있는 이해찬 대표 등 민주통합당의 이중성이다. 김대중 정부를 계승한 민주통합당은 5·16과 유신에 관한 한, 근본적인 원죄를 안고 있다. 1999년 여름 나를 비롯한 민중운동과 시민운동 관계자들은 연일 기자회견을 열고 농성을 벌여야 했다. 왜냐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구를 방문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젠 역사 속에서 존경받는 지도자가 돼야 한다”며 갑자기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약속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주목할 것은 김 전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들 기념관이 아니라 박 전 대통령의 기념관만 꼬집어 제안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 이해찬 대표 등이 각료로 참여하고 있었던 김대중 정부는 학계, 사회운동 진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한 200억원 지원을 결정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5·16 쿠데타와 유신에 관한 한, 한국사 최초의 선거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김대중 정부의 출범 그 자체에도 원죄가 숨어 있다. 5·16이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박 전 위원장의 평가에 대해 민주통합당이 길길이 뛰고 있지만, 5·16 쿠데타를 주도한 실질적인 주역, 그리고 유신체제하에서 총리를 지내며 2인자 역할을 한 것은 바로 김대중 정부가 1997년 대선 승리를 위해 손을 잡았던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였다. 나아가 김대중 정부는 스스로 ‘제2의 건국’이라고 자임하면서도 초대 총리에 유신 총리였던 김 전 총재를 앉혔다. 5·16과 유신이 그처럼 문제라면 어떻게 5·16 쿠데타와 유신의 주역이던 김 전 총재와 손을 잡고 그를 초대 총리로 앉힐 수 있을까? 1998년 초 김 전 총재의 총리 임명 당시 개인적으로 비판했듯이, 40년 만의 소위 ‘민주정부’의 초대 총리에 유신 총리를 앉히는 것은 해방 후 세운 ‘민족정부’의 초대 총리에 이완용을 앉히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물론 민주통합당은 김종필과의 연정이 역사적인 정권교체를 위해, 박정희기념관이 영남으로의 동진정책과 지역통합을 위해, 문제가 있지만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해명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같은 선택을 상황론에 의해 정당화한다면, 5·16이 절차와 수단에 있어서는 문제가 있지만 국민들을 기아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박근혜 전 위원장의 주장과 무엇이 다른가?

중요한 것은 5·16 논쟁이 지나간 공허한 역사논쟁이 아니듯이 김대중 정부와 민주통합당의 원죄 역시 공허한 역사논쟁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민주통합당이 무엇을 위해, 무엇을 희생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현재의 문제이다. 이제는 상황론과 결과 제일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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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지나친 것은 모자람과 같다.” <논어>의 이 주장처럼 지나친 욕심은 많은 불행을 불러온다. 특히 정치에서 그러하다. 지나친 욕심에 의한 ‘과욕의 정치’는 개인, 나아가 공동체를 불행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임기말이 다가오면서 줄줄이 쇠고랑을 차고 있는 이명박 정부 실세들의 모습은 과욕의 정치의 비극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미래 권력’인 박근혜 진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새누리당의 경선 룰 개정 요구를 일축하는 등 일방통행으로 나가고 있는 과욕의 정치는 박 의원의 불통 이미지를 강화시킴으로써 그에게 오히려 해가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민주통합당도 마찬가지다. 일부 세력의 과욕이 이해찬 당 대표, 박지원 원내대표라는 밀실 담합을 야기했고 이는 지난 당 대표 선거에서 보듯 역풍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밀실 담합에 대한 부정적 민심에도 불구하고 일부의 정파논리에 의한 모바일투표 몰표 등으로 이해찬 의원에게 역전승을 가져다줬지만 이 같은 과욕도 오는 대선에서 부정적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의 두 모습 ㅣ 출처:경향DB

과욕의 정치를 더욱 절감하게 만드는 쪽은 진보세력, 즉 진보정당들이다. 진보신당은 통합진보당과의 통합을 거부하고 과욕을 부리다가 당이 해체되는 수모를 당하고 말았다. 통합진보당도 다르지 않다. 경기동부연합을 중심으로 한 당권파는 그간의 제3자를 내세운 ‘대리통치’를 마감하고 자신들이 직접 나서 ‘직접통치’를 하기 위한 과욕을 부렸다가 국민적 비판을 받고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통합진보당의 쇄신파 역시 과욕을 부리다가 당 쇄신의 기회를 날려버릴지 모르는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통합진보당 사태는 비상식적인 패권주의와 반민주주의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쇄신은 이 문제에 초점을 맞췄어야 했다. 아니 이와 함께 당권파의 여러 언행에 의해 종북주의가 엄청난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된 이상, 민주주의 문제와 종북주의 문제로 국한시켜야 했다. 그랬다면 현재 진행 중인 통합진보당의 당권 경쟁은 반민주적이고 ‘종북’적인 세력 대 민주적이고 ‘탈종북’적인 세력의 대결, 즉 ‘비상식’ 대 ‘상식’의 대결로 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쇄신파가 과욕을 부렸다. 즉 쇄신파는 이 같은 패권주의와 종북주의 문제만이 아니라 재벌정책, 주한미군 문제 등 당의 기본적 정책 전반을 문제 삼고 나온 것이다. 한마디로,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당을 이번 기회에 완전히 자신들이 바라는 노선으로 바꾸기 위해 그동안 달갑지 않게 생각했던 모든 문제들을 들고 나온 것이다. 물론 주한미군 철수와 재벌 해체 등 통합진보당의 여러 강령들은 충분히 논의할 가치가 있는 주제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같은 논쟁을 할 때가 아니다. 이 문제까지 함께 뭉뚱그려 논쟁을 하는 경우 반민주적인 종북세력 대 민주적인 탈종북세력의 대결, 비상식 대 상식의 대결이라는 대립구도가 다른 논점들에 묻혀 희석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에는 패권주의와 종북주의 문제만을 집중적으로 논의해 심판을 받고 다른 문제들은 시간을 두고 논의해 갔어야 했다.

그러나 쇄신파가 이 모든 문제들을 들고 나오면서 당권 경쟁이 원래의 의미인 상식 대 비상식의 대결이 아니라 당의 변혁적 성격(재벌 해체, 주한미군 철수 등)을 지키려는 ‘변혁노선’과 당을 국민참여당식으로 우경화시키려는 ‘개량노선’의 대결구도로 보이게 만들고 말았다. 다시 말해, 쇄신파의 과욕의 정치 때문에 엉뚱하게도 낡은 당권파는 개량주의로부터 당을 지키려는 변혁주의자로, 쇄신파는 당을 우경화시키려는 개량주의자로 보이게 만들고 말았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한 경향신문의 특집이 보여주듯이, 많은 진보적 학자들은 패권주의와 종북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면서도 재벌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 등에 대해서는 오히려 쇄신파의 쇄신안에 부정적이었다. 쇄신파의 과욕의 정치가 이들까지도 당권파를 지지해야 할지, 쇄신파를 지지해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만들고 말았다. 다시 강조하지만,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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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때로는 적당한 거리가 사물을 보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아무리 뛰어난 미인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무슨 미인으로 보이겠는가? 오랜만에 학교일로 긴 유럽 출장을 다녀왔다. 한국학에 대한 세계적인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서강대가 올봄에 국내 최초로 한국학을 영어로 가르치는 국제한국학과를 만듦에 따라 유럽의 한국학 실태를 조사하고 한국학을 공부하는 유럽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출장을 다녀온 것이다. 매일 부딪치던 일상과 한국 정치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가지게 된 만큼 이것저것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특히 역사를 많이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된 것은 출장 초반에 런던에서 유학 중이던 제자에게서 들은 충격적인 이야기 때문이었다. “교수님, 교수님 수업 시간에 읽었던 데이비드 헬드가 개망신당한 거 아시지요?” “아니. 금시초문인데.”



데이비드 헬드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 교수 (경향신문DB)



 데이비드 헬드. 세계적 명문인 런던 스쿨 오브 이코노믹스(LSE)의 간판학자이자 민주주의와 세계화에 대한 권위자로 세계정치학자 중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유명학자이다. 그처럼 잘나가던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특히 세계화에 발맞춰 일국을 넘어선 세계민주주의와 세계정치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의 세계 협치(Global Governance) 연구소 창립을 주도해온 그를 추락시킨 것은 무엇인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것은 지난해 세계를 변화시킨 재스민혁명이었다. 헬드는 LSE에 유학 중이던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의 둘째아들 사이프 카다피의 지도교수로 그에게 박사학위를 줬다. 그런데 그가 사이프에게 자신이 추진하는 세계민주주의 연구소에 대한 재정 지원을 먼저 부탁해 150만파운드를 받았고, 이 같은 부탁을 한 직후에는 카다피재단의 이사로 임명된 사실이 재스민혁명 과정에서 밝혀진 것이다. 특히 헬드는 LSE 수업시간에 카다피 체제하에서 사실상 2인자였던 사이프를 “민주주의와 시민사회, 깊은 자유주의적 가치를 갖춘 사람”이라고 칭찬하는 소개를 하기도 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결국 지난해 말 LSE를 불명예스럽게 떠나야 했다.


한마디로, 재스민혁명으로 세계적인 정치학자가 엉뚱한 혁명의 유탄, 역사의 유탄을 맞은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카다피에 대한 그의 처신은 학자로서 잘못된 것이었다. 런 점에서 그 유탄은 단순한 유탄을 넘어 스스로 자초한 ‘자살탄’인 측면이 적지 않다. 역사, 특히 역사의 유탄에 대한 생각은 영국을 떠나 독일에 가서도 그치지 않고 더욱 깊어졌다. 동독이 망한 뒤 획득된 동독 비밀경찰의 문서, 즉 슈타지 보고서가 서독 사회에 끼치고 있는 영향을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슈타지 보고서는 서독 사회에 숨어있던 동독 정보원과 협력자들의 정체를 밝혀내는가 하면 서독 정보국에서 승승장구해온 나치전범들의 인적 사항을 드러내 충격을 주었다. 


생각은 30년 전 유학시절로 돌아갔다. 당시 룸메이트가 이란인 유학생이었는데 그의 책을 보고 충격에 빠졌던 경험이다. 1970년대 말 이란혁명 후 급진적인 회교원리주의 대학생들이 미대사관을 점거하는 사태가 발생했는데 당시 미국은 일급비밀만을 소각하고 대부분의 문서들은 서류분쇄기로 분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대학생들이 엄청난 양의 분쇄한 서류를 맞춰서 복원해 책으로 출간했다. 거기에는 미국에 협력했거나 첩자로 활동한 정치인과 학자들의 보고서가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었다.


이처럼 역사는 정치인이고 지식인이고 역사의 유탄을 맞지 않기 위해서는 꼼수를 부리지 말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부도덕한 정부와의 뒷거래가 역사의 유탄에 의해 공개되어 그동안 쌓아놓은 명예를 모두 잃어버릴지 모른다. 또 우리와 독일의 경우는 다르지만, 만에 하나 동독처럼 북한이 무너져 북한판 슈타지 보고서가 공개되는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진보진영이 다치지 않도록 북한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고 스스로를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이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단순한 기우이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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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523만 몇 천 몇 개의 벽돌.’ 진보운동의 절정이었던 1990년대 초, 유학에서 돌아와 취직한 한 대학에서 발견한 팸플릿의 제목이었다. 운동권 학생회가 신입생들 교육을 위해 만든 것이었는데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건설현장 현지지도를 나와서 “저 공장을 짓는 데 (정확한 숫자는 잊어버렸지만) 523만 몇 천 몇 개의 벽돌이 들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그대로 맞았다는 내용이었다. 그 문건을 읽고 유치한 개인 숭배에 너무도 충격을 받았다. 이후 과거사 진상 조사 일을 하면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소위 주체사상파(주사파)들이 김일성 주석에게 충성 맹세문과 생일선물을 보낸 것이 조작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또 한번 충격에 빠진 적이 있다. 건전한 지성과 상식이 마비된 ‘사이비 종교집단’이 아니라면 어찌 그런 일이 가능한가?

그러나 충격에도 불구하고 명백한 내란행위가 아닌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유엔인권협약의 자유권은 주체사상도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흔들림이 없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틀린 주장도 할 수 있는 자유’의 보장에 있기 때문이다. 남의 주장이 틀렸다고 억압하면 다른 사람들도 내 주장이 틀렸다고 억압할 수 있다. 따라서 주사파의 사상의 자유도 보장되어야 하고 광화문에서 “김일성 만세, 김정은 만세”를 불러도 처벌해서는 안된다. 그래봐야 결코 체제의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며 국민들에게 “미친 놈” 취급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소위 주사파들부터 북한에 가서 살라면 못 살 것이고 가지 않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공권력이나 공안논리가 아니라 민심이다.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한 검찰의 개입은 이 점에서 잘못된 것이다. 물론 통합진보당은 지난 총선에서 10%가 넘는 240만표를 얻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당을 이끌어온 당권파는 주사파로 의심을 받고 있다. 따라서 검찰이 우려할 수도 있다. 그러나 240만명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체사상에 동조해 표를 던졌겠는가? 시선을 통합진보당, 나아가 당권파로 좁히더라도 문제는 마찬가지다. 통합진보당 당원 중 당권파 지지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 모르지만 어림잡아 4만명이라고 치더라도, 이들 중 몇 명이 주체사상을 지지하는 사람들일까? 사실 당권파라고 지칭되는 세력의 경우도 공안당국이 우려하는 주사파는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검찰이 서버를 압수해 떠나려 하자 이를 막는 통합진보당 당원과 경찰들 몸싸움 ㅣ 출처:경향DB

나는 오히려 국가보안법과 공안논리가 이들이 지하에서 자신들의 실체를 감추고 위장된 형태로 움직임으로써 대중을 호도하도록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주사파에게도 시민권을 부여한 뒤 다양한 진보세력들이 북한과 한반도 문제, 주체사상 등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쟁을 하게 하고 국민들이 이를 보고 선택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럴 경우 주사파는 몰락하고 고립될 수밖에 없다.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도 그러하다. 이석기를 비롯한 당권파는 비상식적인 언행이 폭로되면서 고사 직전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출당 조치를 피하기 위해 경기도로 주소를 옮겼지만 이는 위장전입 논쟁으로 비화돼 여론은 더욱 싸늘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결국 그들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인 민심의 심판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일부 언론들이 자꾸 문제를 종북주의로 몰고 가고 이들을 겨냥해 검찰이 공권력을 동원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지고 있다.

당의 고발도 아니고 외부 제3자의 고발을 받아 정당 내부 문제에 검찰이 개입하는 것은 위험한 전례가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번 문제 해결에도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 물론 검찰이 당권파의 부정선거와 비도덕성에 대한 결정적인 물증을 포착해 이들에게 최후의 한방을 날릴 수도 있다. 그러나 검찰의 개입이 이들을 공안논리의 희생자 내지 순교자로 생각하게 만들고 진보적 유권자들에게 동정심을 불러일으킬까봐 걱정이 된다. 게다가 검찰이 이번 수사를 종북주의 문제로 끌고 갈 경우 그 같은 동정심은 커질 가능성이 있다. 주사파에 대한 해법은 공안이 아니라 민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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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살다보면 어떤 사건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어떤 막장드라마보다도 더 막장인 통합진보당 사태가 그러하다. 이를 지켜보고 있자니 대학 시절 군사독재에 저항하다가 투옥·제적·강제징집을 당한 일, 기자가 된 뒤 강제해직을 당해 유학을 떠나야 했던 시절, 교수가 된 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의장 등 궂은일을 맡아 현장을 뛰어다녀야 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사실 대학에 들어가 정치의식을 가진 이후 개인적으로 “진보란 모든 억압, 착취, 차별, 배제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진보적으로 살려 노력했고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왔다.



통합진보당의 앞날은? (경향신문DB)



 그러나 이번 사태를 보면서 정말 내가 진보라는 것이 너무도 부끄럽다. 물론 진보라는 것을 부끄럽게 느낀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대 초인가 학생운동세력이 경찰 프락치를 잡아 심문을 한다며 고문해 죽인 것을 보면서 너무도 부끄러웠다. 또 진보세력의 다수파가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침묵할 때, 탈북자들의 인권을 두고 보수 정치인이 단식농성을 하는데도 진보라는 사람들이 침묵할 때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러나 이번만큼 부끄럽지는 않았다. 이승만 시대를 연상하는 부정선거도 선거지만, 이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말도 되지 않는 궤변으로 정당화하려는 경기동부연합 등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행태는 정말 나를 절망하게 만든다. 아니 여러 표가 한꺼번에 붙어서 나온 몰표에 대해 ‘풀이 다시 붙었기 때문인지 모르지 않느냐’고 답하는 사람들에 대해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이런 사람들이 진보의 대표이고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라니, 믿고 싶지가 않다. 정말 진보가 저런 것이라면, “나는 진보가 아니다”라고 서울광장에 나가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 부정 시비가 이는 선거에 의해 당선된 비례대표 당선자들의 사퇴론에 대해 진성당원제도를 내세워 당원투표를 하자는 당권파의 논리도 그러하다. 비례대표에 당선시켜준 것, 통합진보당이 막대한 국고보조금을 받도록 만들어준 것은 한 줌밖에 되지 않는 당원들이 아니라 그들의 수십배에 달하는 200만의 유권자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말이 되지 않는 주장이다.


비분강개를 넘어서 정작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해서 이 같은 괴물을 만들어냈느냐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파시즘의 야만에 대항해 싸운다는 이름 아래 적을 닮아가 적보다 더 흉악한 괴물이 되고만 스탈린주의의 비극처럼 군사독재와 광주의 비극은 적과 싸운다는 이름 아래 ‘적보다 더 흉물스러운 괴물’을 진보진영 속에 만들어내고 만 것이 아닌가? 최소한 이승만 정권도 몰표에 대해 풀이 다시 붙어서 그랬다는 식의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 진보를 자처해온 사람으로서 진짜 부끄러운 것은 이처럼 진보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준 사이비 종교집단’들이 진보를 대표하는 다수가 되도록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자괴감 때문이다. 그들이 지역으로 내려가 사람들을 조직하고 힘을 키우고 있을 때 소위 ‘건전한 진보세력들’은 세미나 룸에서 고상한 논쟁만 하고 있었던 것이 현재와 같은 상황을 낳은 것이 아닌가? 사실 민주노총, 나아가 진보언론을 포함한 언론조차도 다 알려진 이들의 패권주의적 행태에 대해 그동안 침묵함으로써 현재에 이르는 데 일조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번 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서, 일부 보수언론들이 보여주듯 통합진보당의 당권파에 소위 ‘종북주의’를 이유로 공안적으로 대응해서는 안된다. 물론 이들의 비민주적 관행과 패권주의가 이들의 또 다른 특징인 종북주의와 상당한 관련이 있지만, 이번 사태에 공안적으로 대응하는 경우 ‘비상식 집단’을 다시 한번 반북주의와 공안정치의 희생자 내지 순교자로 만들어줄 우려가 있다. 이번 사태의 단기적 해결을 넘어서 ‘왜곡된 진보정당’이라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건전한 진보’ ‘진정한 진보’가 힘을 기르는 한편 유권자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언론이 현재와 같은 경마중계식의 강자 중심 보도방식을 넘어서 다양한 진보세력에 대한 정보를 객관적으로, 그리고 풍부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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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이건 포기다. 그렇다. 민주통합당이 대선을 포기한 것이 확실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19대 총선에서 예상 밖의 참패를 하고도 뼈를 깎는 반성과 쇄신은커녕 더욱 오만과 나락 속으로 빠져들 수는 없는 일이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민주통합당이 충격적인 패배 후에도 국민에게 반성하고 혁신하는 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쇼’조차 왜 하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2004년 총선, 대통령 탄핵으로 역풍이 불어 한나라당은 개헌저지선도 차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박근혜 의원이 구원투수로 등장해 ‘천막당사’라는 배수진을 통해 예상 밖으로 121석을 건져냈다. 이번 총선에서도 “탄핵 때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는 일부의 우려 속에서 한나라당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박 의원을 위원장으로 추대했다. 또 박 위원장은 김종인·이상돈 같은 개혁적 인사들을 영입했고 이들은 혁신을 주도했다. 하다못해 당의 색깔까지 그들이 그토록 싫어하던 빨간색으로 바꾸는 쇼를 감행했다.


이해찬 전 총리와 박지원 최고위원 (경향신문DB)


그러나 민주통합당은 참패 후에도 ‘쇄신의 쇼’조차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한명숙 대표가 물러나기는 했지만 문성근 대표대행이 자신의 패배를 비우호적인 언론환경 탓으로 돌리며 부산 젊은이들이 <나꼼수>를 안 들어서 졌다는 식으로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기껏 한다는 것은 패배의 원인에 대한 심도 있고 냉철한 분석이 아니라 “좌클릭해서 졌으니 중도로 가야 한다”는 황당한 중도논쟁이었다. 


물론 선거에서 중도를 잡아야 이기는 것은 맞다. 그러나 중도층, 즉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지지자가 아닌 무당파층이 민주통합당에 등을 돌린 것은 민주통합당이 비리 전과자를 공천하고 김용민 파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등, 노회찬 당선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새누리당이 뼈를 깎고 있을 때 민주개혁진영은 때나 밀고 있는” 오만한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줬기 때문이지 좌클릭했기 때문이 아니다. 즉 이념이 아니라 상식의 싸움에서 졌다. 사실 총선 과정에서 민주통합당이 좌클릭한 정책들을 국민들에게 선전하고 설득하려 노력한 적이 얼마나 되는가?


며칠 전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보다가 “당이 또 구태 보이면 자멸할 수밖에 없다”는 큰 제목 아래 “민생 얘기는 어디로 가고 온통 정쟁이냐”는 쓴소리를 했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당연히 민주통합당 이야기라고 생각해 반가워 읽어 봤더니, 박 위원장이 새누리당에 쇄신을 촉구한 내용이었다. 대신 민주통합당은 대표적인 구시대 정치인들인 이해찬 상임고문과 박지원 의원이 각각 당대표와 원내대표를 하기로 밀실담합을 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쇄신을 해도 모자랄 판에 밀실담합이라니 제정신인가? 절망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민주통합당의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깨끗한 원칙주의자라는 이미지의 정치 초년생인 문재인 당선자까지 이에 대해 “담합이 아닌 단합으로 오히려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말했다는 데에서는 정말 할 말을 잃게 된다. 나는 이 지면에 쓴 2월27일자의 ‘문재인의 운명’에서 문 당선자가 “대권까지 흙탕물에서의 이전투구를 이겨내기에는 너무 깨끗하고 권력의지가 약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기우였던 것 같다. 문제의 논평을 읽고, 문 당선자가 너무 빠르게 원칙을 버리고 이전투구에 적응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미스터리는 민주통합당의 두 지도자가 밀실담합을 하면서, 나아가 문 당선자가 이 담합에 대해 논평을 하면서,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를 생각해 봤을까 하는 점이다. 생각하지 않았다면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고, 생각하고도 그런 짓을 했다면 착각도 보통 착각을 한 것이 아니다. 이들 때문에 민주통합당은 국민들에게 민주세력이 통합한 민주통합당이 아니라 호남과 친노의 맹주들이 담합한 ‘맹주담합당’으로 보이게 됐다. 맹주 담합이니 그래도 ‘박근혜 일당체제’보다는 민주적이라고 박수라도 쳐줘야 하나? 맹주담합당, 만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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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


파티는 끝났다. 그리고 이제 냉철한 평가의 시간이다. 이번 선거는 한마디로 기이하기 짝이 없는 기형적인 선거였다. 그것도 한 가지가 아니고 두 가지 측면에서 그러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정치란 객관적 조건과 주체적 실천이 변증법적으로 종합되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번 총선과 관련해 주목할 것은 객관적인 정치지형이다. 이명박 정부의 4년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데다가 한국판 워터게이트사건인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까지 터져 나왔다. 이 같은 조건하에서 민주통합당이 승리하지 못하고 새누리당에 참패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다. 민주통합당이 얼마나 바보짓을 했으면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가? 둘째로 기이한 것은 민주통합당이 선거 동안 그토록 많은 자살골을 넣고도 그 정도밖에 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민주통합당이 선거 기간에 보여준 행태를 보면 127석을 차지한 것은 정말 대승을 거둔 것이다.



경향신문DB



사실 공천에서 시작해 그동안 민주통합당이 보여준 언행을 보면 이번 선거에 이기지 않기 위해 매일 매일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새누리당도 잘한 것이 많지 않지만 그래도 민주당에 비하면 백배는 낫다. 새누리당이 ‘굶주린 야당’이고 민주당이 기득권에 ‘배불러 게을러진 여당’으로 보였다. 선거 기간에 민주통합당이 국민들에게 감동을 준 것이 무엇이 있는가? 기껏해야 기득권을 버리고 적지인 대구에 내려가 출마한 김부겸 의원, 강남에 출마한 정동영 의원의 살신성인 자세 정도일 것이다. 새누리당은 그래도 20대 손수조 후보와 같은 참신한 카드로 주목을 받았다면 민주통합당의 공천이 주목을 받은 것은 막말시리즈의 김용민 후보 정도였다. 게다가 지탄의 대상이 된 김용민 후보조차 사퇴시키지 못한 지도부의 무능이란. 


 여기에서 확실히 하고 넘어갈 것이 있다. 새누리당이 선방을 한 것은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역시 ‘선거의 여왕’이어서가 아니라 민주통합당이 워낙 많은 자살골을 넣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민주통합당은 하다 못해 비리로 확정판결까지 받았던 전과자들도 사면을 받았다는 이유로 공천을 줬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지명도 덕인지 일부는 본선에서 승리했다. 결국 승리했으니 잘한 것이라는 이야기인가? 나는 민주통합당이라는 민주개혁세력이 패배한 데에는 시민운동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참여연대 등 시민운동은 2000년 총선에서 비리전과가 있는 정치인들을 모두 낙선대상자로 지목해 낙선운동을 벌였다. 개인적으로 자문교수단장을 맡아 이 운동에 앞장선 바 있다. 이번 총선의 경우도 참여연대 등 시민운동이 낙선운동을 벌였지만 민주통합당의 비리전과자들에 대한 낙선운동은 벌이지 않았다. 민주개혁세력은 비리전과자도 반MB투쟁을 위해서는 당선시켜야 한다는 논리인가? 시민운동은 이처럼 이중잣대로 스스로의 신뢰성도 잃어버렸고 민주통합당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지도 못했다.


진짜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민주통합당이 지난 10년간의 신자유주의정책에 대해 국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자기반성 없이 형식적으로 그 같은 정책과 단절을 하고 복지노선 등 좌경화를 했지만 이는 단순한 구호에 불과하고, 선거과정에서 보여준 정치형태는 과거와 변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MB정권과 새누리당을 심판하라고 그나마 127석이나 되는 의석을 선물해줬으니 감지덕지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민주통합당이 이번 선거결과를 냉철하게 분석해 자신들의 잘못과 기득권에 대한 뼈를 깎는 자기 혁신을 한다면 이번 선거결과는 ‘저주를 가장한 축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패배로부터 무엇을 배우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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