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불파불입(不破不立)이라는 말이 있다. 파괴가 없으면 새로운 건설도 없다는 의미이다. 지금까지 촛불혁명은 구체제에 균열을 내는 데 성공했다. 불립불파(不立不破)라는 말도 있다. 건설이 없으면 파괴도 없다는 뜻이다. 구체제에 균열을 내어도 새 체제 건설에 실패하면 죽 쒀서 개 주는 격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탄핵 결정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다음의 질문을 서둘러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해야 새로운 체제를 건설할 수 있는가? 여러 측면에서 말기적 증상을 보이는 소위 ‘87년 체제’를 새로운 체제로 전환시키는 길은 무엇인가? 87년 체제는 1987년 헌법을 제도적 기초로 하기 때문에 개헌이 이를 위한 주요 수단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개헌안이 체제전환은 차치하고라도 정치제도라는 면에서 어떤 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체제전환의 핵심적 내용에 대한 진지한 논의 없이 수단과 관련한 논의만이 분분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제기되는 개헌론에 정치적 사심이 개입되어 있지 않은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단과 경로에 대한 논의에 앞서서, 체제전환의 목표와 과제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그 속에서 개헌이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개헌의 핵심내용은 무엇인지를 논의할 수 있다. 지금의 87년 체제를 더 인간적이고 활력이 있는 체제로 전환시키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과제는 다음 세 가지이다.

첫 번째, 수구세력의 정치적 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동안 절차적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서구 정당정치의 모델을 한국정치에 적용시키려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분단체제로 인해 우리의 정치현실은 서구와 다르다. 수구세력은 최소한의 민주주의적 절차도 무시했고, 민주주의는 큰 위기에 빠졌다. 그 위기는 ‘광장의 정치’를 통해 극복되고 있다. 우리가 참여하고 목격하고 있는 광장의 정치는 정치의 낙후성만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광장의 정치는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가능성을 열고 있다. 그렇지만 수구세력의 통치기반에 대한 제도적·인적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또 다른 정치적 퇴행이 나타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두 번째, 불평등·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담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그 실행에 나서야 한다. 경제영역에서는 최저임금 인상과 복지확충은 물론이고, 재벌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시스템 건설을 공론화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재벌이 주도하는 한국경제의 성장모델이 붕괴 과정에 접어들고 있다는 조짐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과도한 중앙집권은 우리나라의 활력을 억누르는 주요 원인이다. 대통령으로의 권력집중을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그보다 심각한 문제는 중앙으로의 과도한 권력집중이다. 비대한 중앙권력의 문제가 대통령으로의 권력집중 문제처럼 보이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연방제 수준으로 분권화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제도개선 없이는 어떤 권력구조를 택하더라도 권력의 과도한 집중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정치적 불균등·불균형 해소도 중요하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선거법 개정이 시급하다. 국회의원 선출에서 비례성을 강화하고 주요 선거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것을 통해 제도권 정치가 다양하고 폭넓은 민의를 대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87년 헌법 논의가 정치적 독재를 청산하기 위한 권력구조 개편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앞으로의 개헌논의는 불평등·불균형 해소를 핵심 의제로 삼아야 한다.

세 번째,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 및 국제 협력을 진전시켜야 한다. 현재처럼 남북이, 북·미가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쉬운 과제는 아니다. 이 의제는 수구세력에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가 민주개혁세력에 불리하다고 생각할 일만은 아니다. 대북정책에 대한 수구적 노선과 태도가 안보를 오히려 위협하는 상황을 낳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우려가 국민 여론 속에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기들을 잘 활용하면 안보담론을 평화, 안전, 생명 담론으로 재구성해 갈 수 있다. 이 작업의 진전에 따라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이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을지가 결정될 것이다.

새 체제로의 전환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성장을 위해 재벌에 의존하거나 분단에 대해 체념하는 태도 등과 같은 구체제 중독에서 벗어날 각오를 다져야 한다. 우리는 정말 중요한 전환기에 서 있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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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촛불집회에서 중고생들이 “중고생이 앞장서서 혁명정권 세워내자”는 플래카드를 들고나왔다. 중고생의 패기와 치기, 그리고 생경함을 동시에 느꼈다.

‘혁명’은 사회변화에 대한 열망을 집약하는 표현이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혁명이라는 표현이 점차 담론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20세기 혁명을 대표했던 사회주의 혁명이 대부분 비인간적 체제로 귀결된 것이 주요 원인이었을 것이다. 혁명이라고 하면 새로운 사회의 건설보다 폭력과 파괴가 지배적 이미지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래서 혁명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의 담론에 다시 진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중고생의 구호는 현재 상황을 혁명과 연결시키며 이러한 생각에 문제를 제기해 주었다.

‘중고생연대’ 소속 회원 등 10대 청소년들이 서울 보신각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집회를 열고 있다. 정지윤 기자

혁명이 무엇인가는 매우 복잡한 문제이다. 한나 아렌트는 <혁명론>이라는 책에서 혁명은 해방을 넘어 ‘자유’(사적인 자유와 구분되는 공적·정치적 자유)를 확립하는 과정임을 강조했다. 미국 혁명의 타운홀 미팅, 러시아 혁명 초기의 평의회 등 자유를 확장시키는 공간의 형성을 혁명의 핵심으로 보았다.

현재 전개되는 상황은 국가를 급진적이고 전면적으로 개조하고 있지는 않지만, 아렌트적 의미에서 혁명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해볼 여지가 충분히 있다. 무엇보다 광장은 해방의 공간이 되고 있다. 더 나아가 광장은 공적인 자유가 실현되고 진전되는 장이기도 하다. 연령, 사회적 위치 등과 관계없이 모두가 떳떳하게 자신의 주장을 외치고 있다. 유례가 없이 평등한 정치적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다.

몇 번의 시위가 과연 혁명적인 변화를 만들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만도 하다. 광장이 어떤 정치적 결정을 하는 공간은 아니라는 점, 따라서 바로 새로운 사회의 건설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가 뚜렷하다. 그러나 이미 이룬 것도 많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국정혼란을 우려하고 있으나, 현재 우리는 심각한 국정혼란을 극복 중이다. 박근혜 정부의 온갖 비행이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특히 박근혜 정부는 최근까지도 강경한 대북정책을 내세우며 남북 사이에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었다. 지금 광장의 정치는 박근혜 정부의 무모한 행동에도 제동을 걸고 새로운 시작의 기회를 제공한 것만으로도 큰 해방적 의미가 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번 광장의 정치가 일과적인 것이 아니라 멀게는 1987년 6월항쟁, 가깝게는 2009년 촛불집회와 이어지며 자유와 민주주의의 한국적 실천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는 점이다.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전진과 후퇴를 반복했지만, 시민이 참여하고 자신들의 요구를 표출시킬 수 있는 공간은 꾸준히 확장되어 왔다.

이번 촛불집회는 6월항쟁보다도 시민의 정치와 사회에 대한 태도에 더 크고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당시 국민 중 다수는 정치권에 기대를 걸었다. 광장의 에너지가 정치권으로 빠르게 흡수되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시민들은 정치권에 할 일을 요구하고는 있지만 정치권에 문제해결을 전적으로 맡기지 않는다.

정치권은 사태 초기부터 빠른 수습책을 먼저 구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광장의 목소리는 빠른 수습책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일관되게 요구해왔다. 무엇보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사태가 진전되더라도 4·19 이래 유구한 역사적 전통을 가진 광장의 정치는 소멸되지 않고 한국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중요한 원동력으로 계속 작동할 것이다.

혁명을 변화의 속도가 아니라 변화의 깊이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혁명적 과정에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는 일종의 ‘장기 혁명’이고, 한국적 혁명이다. 우리 국민이 혁명적 공간과 상황을 만들어, 신자유주의의 도래에 따른 민주적 공간의 축소에 끊임없이 저항하고 또 이를 확장시켜왔다는 점에서 세계사적으로도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이러한 정치적 실천이 어떤 구체적 결실을 맺을 수 있는가도 중요한 문제이다. 그렇지만 단기적 결과만을 갖고 광장의 정치를 평가하려는 태도는 사태를 오도하기 쉽다. 더구나 우리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거대한 변환의 시기로 진입하고 있다. 이 시점에 우리가 원하는 큰 변화가 무엇인지를 찾고 그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 자체가 혁명적 의미를 갖는다. 다가오는 26일 촛불집회도 이 장기적 과정의 하나라는 생각으로 임할 일이다. 그러한 태도가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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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나라인가”라는 절망감이 국민을 짓누르고 있다. 대통령 비서실장도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다”고 일축했던 일들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으니 국민들의 충격은 얼마나 크겠는가? 더 심각한 것은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보다 더 충격적인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이 정도면 대통령직의 정상적인 수행은 어렵다. 국가위기 극복을 위한 다양한 주장들이 백가쟁명식으로 출현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당도 대통령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거국내각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에서 빠뜨려서는 안 되는 질문이 있다. 바로 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는가라는 물음이다.

이 물음에 제대로 답을 찾지 않고 해결방안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또 다른 잘못된 길로 들어서기 쉽다. 이 국면에서도 개헌론에 불을 지피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과도한 권력집중 문제가 있지만, 작금의 비정상적인 상황은 이 문제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현재 권력구조 개편에 초점을 맞춘 개헌안들이 과연 이러한 사태를 막을 수 있는지도 매우 의심스럽다.

현재의 문제는 제도가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들었다. 그리고 대통령과 몇몇 측근들만의 탈선이 아니라 우리나라 보수, 특히 그 지도층의 탈선이 초래한 문제다. 이에 대한 명확한 비판과 이들의 자기성찰이 없이 몇몇 인물들의 거취나 때 이른 제도개혁 논의에 매달려서는 비극의 순환을 피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보수 지도층은 박근혜 개인에 대해 제기됐던 많은 문제들에 눈을 감고 대통령 후보로 만들고 대통령에 당선시킨 원죄가 있다. 누가 됐든 자신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만 되면 자신들의 세상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직무수행에 심각한 결격사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국내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국가안보를 전가보도처럼 휘두르지만, 막상 국가에 대한 책임의식이라고는 전혀 없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정부 출범 이후 전개된 비상식적인 행태들에 눈을 감거나 이를 조장한 것이다. 이들은 대통령이 각종 유체이탈 화법으로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해도 용비어천가를 불러대고, “역사를 잘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으로 된다”는 황당한 주장을 내세워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여도 이에 영합해왔다. 멀게는 이미 이명박 정부 출범부터 한국사회를 역주행시키는 작업을 함께해왔다. 현재 위기의 근원도 여기에 있다.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들은 이제 와서 박근혜 대통령과 거리를 두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현재의 사태를 개인의 일탈로 몰면서 자신들의 살 길을 만들려는 이 수법은 손자병법의 36계 중 하나인 금선탈각(金蟬脫殼·매미가 허물을 벗는 식으로 위기에서 벗어난다)에 해당된다. 이 수법도 효과를 발휘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나갔다.

이들은 얼마 전까지도 세월호 진상조사를 가로막고, 백남기 부검을 고집하며, 명백한 국가폭력으로 시민이 사망한 사태의 본질을 덮으려는 시도 등을 엄호해왔다. 검찰, 국정원 등의 권력기관을 정권의 하수인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반복되고 이에 대해 국민의 비판이 계속됐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침묵해왔다.

이러한 행태들에 대한 반성이 없이 박근혜 대통령과 거리를 두려는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에 대한 반성이 없는 수습책은 미봉책 혹은 또 다른 권력놀음에 불과하다. 여소야대를 만들어준 민의를 제대로 받들지 못한 야권의 책임도 적지 않다. 총선에서 박근혜 정부 심판이라는 민의가 드러났음에도 박근혜 정부의 엽기적인 국정운영을 제대로 추궁하지 못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 협치라는 허상에 매달렸다. 이제 막상 대통령의 정상적 직무수행이 문제가 될 수 있는 사태가 출현하자 오히려 당황하고 있는 형국이다.

대통령 임기가 1년4개월 남은 상황에서 권력 공백이 출현하는 유례없는 상황은 모두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당황의 근원에 정치적 유불리에 대한 계산이 작용하고 있다면 큰 문제다. 대선까지 박근혜 정부가 적당한 실정을 반복하기만 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식의 계산들은 머리에서 철저하게 지워야 한다.

야당들은 총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데 힘을 집중해 현 사태에 책임 있는 자들의 금선탈각 시도가 성공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리고 정치적 유불리를 넘어 그것이 하야 요구든, 탄핵 요구든 진실을 가리키고 국민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갈 각오를 해야 한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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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9일은 2006년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한 지 10년이 되는 날이었다. 북한의 핵실험은 한국의 대북정책에 큰 영향을 주었다. 무엇보다 햇볕정책으로 지칭되었던 대북 화해협력정책이 핵실험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10년 전 북의 핵실험은 지금도 대북 대화정책을 반대하는 주장의 주된 이유가 되고 있다.

햇볕정책이 북의 핵실험을 초래했다는 주장에는 논리적 문제가 있다. 북한이 1차 핵실험을 감행하는 과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일은 2005년 9월 미국 부시 행정부가 발표한 대북제재였다. 북한의 1차 핵실험 원인이 햇볕정책 때문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정권의 자세가 아니다. 따라서 당시 노무현 정부는 국민에게 사과했고 대북정책 관련자의 책임을 물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뉴욕협의회가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중심에 북한의 5차 핵실험을 규탄하고 북한 핵의 폐기를 주장하는 광고판을 설치했다. 이 광고는 4주 동안 진행된다. 연합뉴스

햇볕정책이 사실상 중단된 이후에만 북한은 4차례의 핵실험을 진행했으며 당장 또 다른 핵실험을 하더라도 놀랍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박근혜 정부가 자신의 임기 내에서만 핵실험이 두 차례 진행되었고, 북의 핵능력이 고도화되고 있음에도 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의 암울한 상황을 초래한 정책을 계속 고수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1차 핵실험 때 정부의 책임을 묻고 정책변화를 요구했던 것과 완전히 상반된 태도이다.

이처럼 무책임한 태도에 국민의 불만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의 2016년 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에 대한 지지도는 2013년 57.6%에서 45.1%까지 하락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진행된 북의 핵실험까지 과거 정부의 재정지원 탓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궁색하기 이를 데 없는 논리이다. 또한 북한의 붕괴가 임박하고 있거나 이를 촉진할 수 있다는 식의 주장으로 자신의 지금까지의 정책을 정당화하고자 하고 있다. 심지어는 선제공격도 가능하다는 식의 분위기도 조장하고 있다. 야권이 현 정부의 이처럼 무책임하고 위험한 행태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야권은 정부를 그저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한 출발점 중의 하나가 햇볕정책에 대한 재평가이다. 야권이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에는 나름 애를 써왔지만 햇볕정책 등 대북 대화정책에 대한 비판에 제대로 대응했다고 보기 어렵다.

북한의 위협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과의 대화를 주장한다면, 이는 안보문제에 유약하고 안이하게 대처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지레 걱정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도 문제이지만, 그보다 더 먼저 극복해야 하는 문제는 햇볕정책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시류에 영합하는 태도이다. 햇볕정책은 10년 가까이 북한의 핵능력 강화를 지체시켰다. 북한에 대한 지원이 북의 핵개발을 도왔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규모 등을 고려할 때, 남한과의 경제협력이 없었다면 북이 핵개발을 위한 기술과 자원을 확보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더 명백한 사실은 진지한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북의 핵실험이 중단되었다는 점이다.

핵개발 의지가 있는 것과 실제 핵폭발 실험 등을 통해 핵탄두 소형화와 운반수단 개발이 진전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지난 6년 동안 반복되어온 핵실험이 없었다면 북이 아무리 은폐된 방식의 연구를 진행하더라도 현재의 핵능력을 확보할 수 없었다. 이제 북의 핵무기가 실전에 배치되는 일이 진행될 수 없도록 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하고, 그럴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 할 때이다.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견지해 온 제재 일변도의 정책이 심각한 후과를 초래하고 있다. 그렇다면 햇볕정책과 같은 관여정책으로 현재의 악순환을 방지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많이 확산된 오해와는 달리 햇볕정책이 대북 유화정책은 아니다. 제재보다는 남북간의 활발한 접촉이 북한 사회에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통일의 경험도 지속적 교류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북한의 햇볕정책에 대한 초기 반응이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았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북한과 대화와 교류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

따라서 현재 우리는 햇볕정책의 반복이 아니라 그보다 더 큰 구상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는 햇볕정책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것이지, 햇볕정책을 부정하거나 외면하면서 갈 수 있는 길은 아니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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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의 전당대회 결과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선거결과가 예측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갑작스럽게 정치 흐름에 큰 변화가 생긴 느낌이다. 실제가 주는 무게감은 머릿속의 상상과는 확실히 다르다.

무엇보다 추미애 대표체제가 출범하면서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는0 한국정치에 일단 하나의 상수가 등장했다. 문재인 전 대표의 대선후보로서의 지위가 굳어진 것이다. 2017년 치러질 대선은 87년헌법으로 직선제가 부활한 이후 치러진 어떤 대선보다 복잡한 구도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여권에서 유력 후보가 등장하지 않고 있다. 선거를 1년 남짓 남겨놓은 상황에서도 30% 후반대의 득표율은 일단 확보하고 출발하는 보수세력의 후보가 아직도 전면에 등장하지 못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여권이 단일후보를 낼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크다.

추미애 대표가 29일 서울 광화문 세월호 유가족 단식농성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유가족을 안고 있다. 연합뉴스

야권의 사정은 더 복잡하다. 세 당으로 나누어져 있고, 연합이나 단일화의 명분도 과거보다 크게 약화되었다. 정권교체가 야권의 가장 중요한 정치목표임에는 이견이 없으나, 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연합과 단일화가 꼭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이론이 적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대선의 상수로 거의 자리를 잡은 것은 이후 대선 레이스에 어떤 영향을 줄까? 상수가 하나 만들어지면서 내년 정국의 불확실성이 줄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상황은 그와 반대로 전개될 수 있다.

야권의 분열구도가 고착되면서 여권 내의 원심력이 커지고 있었는데, 이 추세가 더 강해질 것이다. 친박과 비박의 갈등은 단순히 당내 분란으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런 상황은 야권에 유리할 수도 있고, 불리할 수도 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여권의 분열이 구조화되면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다른 시나리오도 현실화될 수 있다.

여권에서 역동적인 경쟁과정을 거쳐 등장한 후보가 상당한 파괴력을 가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 후보는 이미 오래 노출된 야권 후보들에 비해 신선하고 미래지향적으로 보이는 이미지를 가질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여권 지지층은 야권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균열요인이 적기 때문에 유력 후보가 등장하면 선거 국면에서 결집력이 커진다.

현재 여권 내부 사정을 볼 때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는 무시할 수 없는 변수이다. 상황의 주도권은 여전히 여권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야권이 샴페인을 일찍 터트려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한편, 야권에서는 문재인 전 대표를 지지하지 않는 정치적 에너지가 더민주 외부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는데, 이 역시 새로운 변수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문제는 더민주의 전당대회 과정에서도 지적되었다. 그러나 더민주의 당원과 지지세력은 일단 당내 경쟁의 불확실성을 낮추는 선택을 했다.

이것이 정권교체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내년 대선은 누구도 예상하기 힘들기 때문에 그러한 판단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다만 2012년 대선 패배의 원인 중 하나가 대권후보를 일찍 확정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고, 더민주가 조기에 대선체제를 구축하는 것으로 내년 대선 승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다. 당시 민주당이 대선 막판까지 단일화 논의에 시달리며 후보를 확정하지 못했던 것은 민주당이 야권 지지층의 열망을 모으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민주당의 확장성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안철수 현상이 등장했던 것이지, 안철수 현상이 등장해서 야권 분열이 나타났던 것은 아니다.

2012년에 들어서는 시점에서는 2012년의 총선과 대선에서 야권 승리에 대한 희망이 매우 컸으나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다. 지금도 그 원인을 더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더민주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을 1년 반 앞둔 현재 대권후보 지지율(리얼미터 조사)을 비교해 보면, 2011년 7월 셋째 주 박근혜 후보는 33.6%를 기록했으나 올해 7월 하순 문재인 전 대표는 20% 전후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더민주가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더민주 내에서 일사불란한 대오를 구축하는 것만으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이번에 더민주는 전당대회를 통해 당내 변수는 줄었지만, 여권 내는 물론, 야권에도 변수를 더 증가시킨 면도 있다. 변수는 불확실성과 역동성을 동시에 내포한다.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이 변수들이 한국사회의 대전환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만드는 노력이 중요하다. 야권 내에서도 누가 야권 전체의 역동성을 주도할지를 둘러싼 경쟁이 끝나지 않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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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박근혜 대통령이 성주군이 제안하는 다른 지역을 검토할 수 있다는 발언과 이에 국방부가 우왕좌왕한 모습은 사드 배치 결정의 졸속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졸속성은 물론이고 사드 배치의 비합리성을 적극적으로 추궁해야 할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은 여전히 입장을 분명히 정리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지층 내에서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지만 안보문제와 관련한 정부 결정을 반대하는 것이 대선에 유리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내년 대선에서 사드 문제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현재 단언하기 어렵다. 확실한 것은 선거가 1년 반 가까이 남은 지금부터 선거를 의식해 안보 관련 쟁점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면 선거 때는 이 이슈에 대한 주도권을 더 확실하게 여권에 넘겨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인 국민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대안을 갖지 못한 세력에게 국민들이 지지를 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민주 내에서도 개별적으로는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는 의원들이 증가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의 주장이 당론으로 결정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국민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가도 문제이다. 신념과 장기적 비전에 따른 것이 아니라 지지층 내의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여론을 의식한 행동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지난 3일 더민주 의원들이 성주군을 방문했을 때, 성주군민이 들었던 “열심히 하겠습니다 말고, 육하원칙으로 대답해주십시오”라는 피켓이 그러한 의구심과 정치권에 대한 요구를 잘 표현하고 있다.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일찍부터 밝혀온 국민의당에도 이 요구는 마찬가지로 제기된다.

이제 정치권은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반대를 넘어 자신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안보문제에 대해 정정당당히 입장을 밝히지 못하는 것이 큰 문제이지만 이 쟁점을 정치적으로 소비만 해서는 역풍을 부를 수 있다.

야당 내 사드반대론에 이 같은 우려를 하는 이유는 야당에서 남북관계를 포함한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해 초점에 어긋나는 주장이 여러 차례 출현했기 때문이다. 특히 총선 전에는 정부의 무책임한 대북제재론에 추수하는 태도를 보여준 바도 있는데 이에 대한 명확한 정리가 없는 상태에서 사드 배치에만 반대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박근혜 정부도 이 틈을 노려 증가하는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 사드 배치라도 해야 하는데 야당은 대안도 없이 이를 반대만 한다고 역공하고 있다. 따라서 남북관계와 한반도평화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 없이는 야권이 앞으로, 특히 내년 대선까지 사드 논쟁을 주도해 가기는 어렵다. 현재 이 문제에 대한 새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한국의 안보를 강화했는가라는 물음부터 제기해야 한다.

두 정부의 임기 동안 북한은 단지 한번의 폭발력이 핵폭탄으로 사용되기에는 크게 모자란 핵폭발 실험을 한 수준에서 핵탄두를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정도로 소형화하고 여러 운반수단을 발전시키는 수준으로 핵능력을 강화했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제재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자기최면만 걸고 있다.

이번 사드 배치 결정도 제재 일변도의 무책임한 대북정책의 필연적 귀결이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실험을 반복하면서 제재로 문제를 해결하리라는 기대가 물거품이 되면서 중국에 정책실패의 원인을 돌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중국이 유엔 결의 내에서 진행하고 있는 대북제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자초하고 있다. ‘대북제재-북의 핵능력 강화-더 강한 제재’의 사이클이 한반도의 안보상황을 악화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외교와 경제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한번 잘못 채워진 단추가 이후 행보를 계속 어긋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 정부는 안보에서도 실패하고 있는 정부이다.

야당들은 박근혜 정부의 이처럼 무책임하고 적반하장식의 행보에 정면으로 맞서고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위한 새로운 경로를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사드 논쟁을 개별 무기체제의 합리성을 따지는 것을 넘어서 한반도의 평화비전을 둘러싼 경쟁으로 만들어야 이 논쟁에서 이기고 또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 야권이 안보를 회피할 의제나 약점이 아니라 강점으로 만들어야 할 때이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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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한·미가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결정한 이후 이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14일 “지금은 사드 배치와 관련된 불필요한 논쟁을 멈출 때”라며 “이해당사자 간에 충돌과 반목으로 정쟁이 나서 국가와 국민 안위를 잃어버린다면 더 이상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로 만들고자 했다.

민주주의가 정상 작동하는 나라라면 나올 수 없는 발언이다. 배치 직전까지 국방장관이 모른다는 식으로 연막을 쳤고, 기습적으로 배치를 결정한 이후에는 그에 대한 논의가 필요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사드배치 반대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관련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태도는 국가를 자신의 사유물로 생각할 때만 가능하다. 사드 배치는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큰 논란을 초래한 문제다. 그런데 당사국의 국민이 이것이 국가안보에 유리한지 아닌지를 논의할 수 없다는 것이 정상인가? 다행히 상황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사드 배치의 합리성을 따지는 논의가 경북 성주군민으로부터 국회에 이르기까지 활발하게 진행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권위주의 시기부터 안보 관련 정책결정은 행정부가 사실상 독점해왔다. 전쟁을 경험하고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 나라에서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운 결정에 이견을 제기하기는 어려웠다. 관련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은 탓에 시민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는 더 어려웠다. 민주화 이후에도 이 같은 상황은 계속돼 왔다.

그러나,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반대투쟁이나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 반대투쟁 등이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었다. 이 활동들이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운 정책결정이 진정으로 안보에 도움이 되는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민의 삶의 안정을 해치면서까지 진행될 가치가 있는지 등의 질문을 공론장에 제기했다. 그 과정에서 안보 문제에 대한 국민적 차원의 학습도 진행됐다.

이제 우리 국민은 권위주의 정부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 “국가안보를 위해서”라는 한 마디에 위축되지 않는다. 사드 배치 결정은 이런 학습과정을 한단계 높여주고 있다. 당장 성주군민들도 이제 레이더 전자파 문제부터 사드가 한반도에 필요한 무기인지에 대해 인터넷을 뒤져 스스로 학습하고 있다.

더욱이 사드 배치는 성주군민에게만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국방장관 스스로 사드 배치가 수도권을 방어하지 못한다고 인정했다. 사드가 북핵을 완전히 방어할 수 있다는 식의 신화를 퍼뜨린 당사자가 만약의 사태에 북의 첫 번째 공격목표라고 할 수 있는 지역도 방어를 못한다고 말한다.

최근 안보문제를 내세운 여러 조치들은 계속 국민의 삶을 불안하게 만들어왔다. 금강산 관광 중단은 강원도민의 삶을, 개성공단 사업 중단은 중소기업과 관련된 시민의 삶을, 그리고 사드 배치는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나아가 사드 배치는 동북아의 군비경쟁을 촉발하며 남한을 겨냥한 중국과 러시아의 미사일을 크게 증가시킬 수 있다.

이런 식의 안보가 진정한 안보인가? 군사적 긴장만 고조시키고 정작 시민의 안전은 보장하지 못하는 것이 어떻게 안보강화인가? 이제 국민의 삶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줄 수 있는 안보는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불가피해졌다. 시민적 입장에서 안보를 이야기하고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가는 것은 우리 민주주의를 질적으로 발전시키는 데도 중요하다.

이에 대한 인식이 정치권, 특히 야당들 내에서 점차 확산되고 있지만, 초기 대응에는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특히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사드 배치의 정당성을 따지기보다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안보 문제를 자신에게 불리한 의제로 판단하고 가능하면 이를 이슈화시키지 않고 피해가려는 관성적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남북이 분단되어 있고 한반도가 미·중이 힘겨루기를 하는 무대로 전락할 위험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안보 문제는 피할 수 있는 의제가 아니다. 내년 대선까지 한반도 내부와 주변 상황도 녹록지 않다. 정권안보를 국가안보로 포장하려는 유혹도 커지는 시기이다.

이럴 때일수록 야당들은 정부의 입장에 적당히 동조함으로써 안보정당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반대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고 한반도 평화를 실현할 수 있는 담대한 비전을 갖고 사드 배치가 촉발한 논란에 대응해야 한다. 나아가 어떻게 해야 시민의 안전과 평화로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가에 대한 민주적 논의의 장을 확보하고, 국민의 판단을 구해야 한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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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EU 탈퇴를 결정했다. 적어도 투표 직전에 했던 예측과는 상반된 결과이다. 세계의 이목은 곧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 것인가에 모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당장 세계경제에 심각한 위기가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2008년 지구적 차원의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후 사람들이 반복되는 세계경제 위기에 그럭저럭 견디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같은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겠는가?

지난주 한국을 방문했던 데이비드 하비가 이 문제와 관련해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그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에 탁월한 업적을 내놓은 학자이다. 공개강연에서 그는 반자본주의를 추구하는 자신보다 자본가들이 자본주의에 더 큰 해를 끼치고 있다는 풍자로 최근 사태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드러냈다.

따로 진행되었던 소규모 토론모임에서는 자본가들이 개별적으로는 큰 이득을 볼 수 있을지 몰라도 자본가계급으로서는 심각하게 분열돼 있어 현재의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본가계급이 단결해 신자유주의 드라이브를 걸었던 1970년 후반의 상황과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에 심각한 위기가 출현할 가능성이 높은데 좌파들은 그에 대한 대안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쓴소리도 보탰다.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그의 판단은 비판적 이론가의 상투적 주장으로 간주되기 쉽다.

그러나 하비의 주장은 미국 대선후보 트럼프의 부상, 영국의 브렉시트 등 현재 출현하고 있는 이례적 현상들을 이해하는 데 나름 유익한 시각을 제공해준다. 이 같은 현상들이 일과적이고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의 무능력을 드러내는 사례이며,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 진행되고 있는 어떤 중요한 변화의 징후라는 것이다. 통념으로는 예측하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가 세계적 차원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하비의 지적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눈을 한반도로 돌리면 사태는 더 심각하다. 영국이 브렉시트를 결정하는 시점에 북한이 (북한은 ‘화성-10’이라고 명명한) 무수단 미사일 발사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핵탄두 폭발실험만 하면 북한의 핵개발이 완료되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 비핵화는 물 건너가고 군사적 긴장이 한층 고조될 수밖에 없다. 이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북의 미사일 실험을 놓고 여러 논평이 이어졌지만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북에 대한 강경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이는 의례적 반응에 지나지 않는다. 그저 북을 비판할 수 있는 다음의 또 다른 위기나 기다리는 격이다.

상태가 이에 이르면 당연히 정치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정치가 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가라는 상투적인 비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는 현재 정치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문제에 대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위기를 정치적으로 활용할 뿐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새 국회가 현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는 이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논의보다 개헌이 가장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과연 이것이 총선 때 표심이 원했던 것이며 현재 위기에 대한 올바른 대응이라고 할 수 있는가? 개헌이 필요하다면 절차에 따라 진행할 수 있다. 내년 대선에서 공약으로 내거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나 현재 국민은 개헌을 가장 중요한 정치과제로 보고 있지 않으며, 개헌을 주장하는 사람들 내에서도 생각이 모두 다르다. 권력구조 문제만 해도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내각제 등 양립하기 어려운 아이디어들이 제각각 등장하고 있다. 위기 대응과는 별 관계도 없다. 개헌을 놓고 구체적인 논의에 들어가면 의미 없는 정쟁만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

부정적으로 보자면, 현재처럼 방향이 불분명한 개헌논의는 안팎의 위기에 대해 실질적인 대안을 논의할 의지와 능력도 없는 상황에서 정치권의 기득권만 유지하려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야권은 총선을 통해 대책 없이 위기만 심화되고 있는 현재 상황을 변화시키라는 국민의 뜻을 부여받았다. 야당이라는 조건에서 당장 뚜렷한 변화를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점은 국민도 알고 있다. 그러나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은 보여줘야 한다. 적어도 당분간은 개헌논의가 국민의 절박한 요청을 수렴할 수 있는 틀이 될 수 없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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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대권 레이스에 불이 붙은 느낌이다. 총선 직후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여당은 총선패배로 차기 운운할 형편이 아니었다. 총선에서 선전한 야권에서는 개인 욕심을 앞세운다는 비판을 초래해 모처럼 얻은 좋은 분위기를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이 문제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분위기를 바꾼 전환점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한이었다. 올해 12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한국을 방문한 그는 예상과는 달리 대권에 대한 야망을 꽤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갑자기 여권에 유력후보가 등장한 셈이다. 그 이후 야권에서 잠재적 차기 후보들이 대권을 향한 행보에 나서기 시작했다. 두 흐름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시기적으로 이들의 움직임이 겹치면서 여론의 관심을 대권경쟁으로 이동시키는 효과를 발생시킨 것은 사실이다.

반기문만이 후보로 전면에 부상해 있는 여권에 비해 야권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김부겸 의원,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등이 무대에 오를 채비를 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의외의 인물들은 아니다. 다만 현역 자치단체장이거나, 당내 기반이 약하거나, 정계은퇴를 선언한 적이 있는 등 이들에게 각자 대권경쟁에 뛰어드는 것을 주춤하게 만드는 문제들이 있다. 또 이미 문재인과 안철수가 유력한 후보로 자리하여 세를 양분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후보군이 이처럼 빠르게 움직일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들의 움직임이 여론 떠보기에 그칠 수 있지만, 당분간 이들의 탐색은 적극적으로 진행될 조짐을 보인다. 문과 안이 유력한 차기 후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이들이 승리할 수 있는 후보인가라는 점에 의문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여론조사에서 반기문이 차기 후보 중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며 야권에서 다른 후보들이 나설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 반기문이 이 지지율을 본선까지 유지할지는 두고 봐야 하지만 당분간 야권 후보들에게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

이들 중 과연 누가 경선국면까지 살아남을지는 미지수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변화는 야권에 긍정적이다. 최근 두 차례의 대선에서 야권 후보군의 스펙트럼은 지나치게 좁았다. 대부분 참여정부 출신이었다. 대권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경선은 다소 싱겁게 끝났다. 손학규나 안철수 등 정치인으로서의 성장 경로가 다른 후보들이 등장했으나 경쟁에서 막상 힘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패배하거나 물러났다. 그 결과 야권이 참여정부의 연속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어려웠고 지지층을 넓히는데 제약을 받았다. 야권이 좋은 분위기에서 출발했던 2012년 양대 선거에서 패배한 데에는 그런 원인 역시 크게 자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지난 29일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자신의 자택을 찾았던 광주 시민들을 만나 인사하고 있다._정소앙씨 제공


그런데 이제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인물군이 후보로 나설 조짐이고 각자 상당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모처럼 야권에서 지도자 풀을 확대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 여러 후보가 무대에 오르면 이에 따른 부담도 있다. 야권이 분열되어 있는 상황에서 후보군의 증가가 원심력을 증가시키고 야권 분열을 더 고착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그렇지만 실상은 그와 반대이다. 문과 안의 양자구도가 강화되는 것이 오히려 분열을 더 고착화시킬 수 있다. 이 경쟁구도는 그동안 쌓인 사연과 감정들로 인해 정서적 대립과 배제의 논리의 지배를 받기 쉽다. 이 점이 야권이 더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양한 스펙트럼에 걸쳐 있는 여러 후보가 참여함으로써 이러한 대결구도를 비전의 경쟁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 더 많은 유권자가 그 경쟁에 참여할 수 있고 여기서 승리한 후보는 야권을 폭넓게 묶을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또 대권경쟁을 조기에 과열시킨다는 비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적어도 막 몸을 풀기 시작한 경쟁자들에게는 적절한 비판이 아니다. 내년 대선은 누가 봐도 심각한 위기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한국의 운명을 좌우할 주요 선거이다. 한국을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가를 놓고 다양한 주장이 나오고 서로 경쟁하는 것을 막을 이유는 없다. 현재의 유력한 후보들끼리의 경쟁으로 대권 경쟁이 굳어지는 것이 더 문제이다.

물론 여러 야당들에서 선출된 후보들이 어떤 식의 합종연횡을 할지는 불분명하다. 꽤 오랫동안 마지막 퍼즐이 맞추어지지 않은 채 남아 있을 것이다. 정치에서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갖고 행동을 결정할 수는 없다. 당장은 물을 고이게 하기보다는 물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그 흐름이 만들어내는 힘을 통해 앞으로 나가야 한다. 더 많은 잠룡들의 기지개를 기대한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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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대통령과 3당 원내대표·정책위원장 회담이 진행됐다. 정기적으로 회동하기로 하는 등의 성과가 있었다고 한다. 정부가 소통의 필요성을 들며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의 문제점을 인정한 것은 긍정적이다.

그렇지만 회동 전후에 일제히 “협치”를 주요 화두로 삼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협치”에 대해 정치주체마다 부여하는 의미가 불분명한데도 이를 정국운영의 합의된 원칙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정치가 제자리를 찾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혼란을 증가시킬 것이다.

협치라는 용어는 외래어인 거버넌스(governance)의 번역어로 종종 사용돼 왔다. 거버넌스는 모든 종류의 관리(governing)가 이루어지는 구조와 절차를 의미하고, 정부에 적용될 경우에는 통치를 의미한다. 다만 정책 결정과 실행에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권장한다는 함의를 갖기 때문에 통치보다는 공치 혹은 협치라는 번역어가 선호돼 왔다. 그렇지만 공치 혹은 협치가 거버넌스의 의미를 지나치게 과장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그 사용에 있어 조심스럽고 신중할 필요가 있다.

여야가 협치를 한다면 이는 연립정부, 거국내각 정도의 상황에 해당된다. 현재 정부·여당이 말하는 협치가 이를 의미하지 않는다. 야당이 이 같은 협치를 상정하고 있다면 김칫국부터 먼저 마시는 격이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는 협치라는 말을 통해 마치 현재 상황을 야당과 함께 관리하며, 여기서 발생되는 문제도 야당이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야당은 권한도 없이 책임만 뒤집어쓰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편의적으로 협치를 “타협의 정치”나 “협상의 정치”로 이해하는 경우도 많다. 제 길만 고집하며 정치적 불능을 초래해온 사태에 대해 국민의 불만이 많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방향처럼 보인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야 3당 원내지도부와의 회동에서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_청와대사진기자단

현 정권은 그동안 국정운영에서 대선공약 파기에서 시작해 주요 현안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있으면 이를 힘의 논리로 일축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는 타협과 협상의 정치가 작동할 리 만무하다. 따라서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정부·여당의 책임을 묻고 국정운영 방식의 획기적 전환을 계속 요구해야 한다. 정부의 실정에 대한 비판이 총선에서 나타난 일차적 민의이다. 그런데 어느덧 민의의 핵심이 타협의 정치로 둔갑했다. 보수 언론들이 더 적극적으로 협치를 강조하고 나선 데는 이런 의도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정치의 역할을 협소화시킬 우려도 있다. 대화가 중요하지만 정치는 본래 시끄러운 것이다. 문제가 없는 것처럼 연기하는 것이 정치가 아니라, 당장 드러나지 않은 문제까지 끌어내 논의해야 하는 것이 정치이다. 그렇지 않으면 소외되고 억울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어떻게 공론장으로 들어올 수 있겠는가?

그런데 협치라는 표현이 협력 통치를 의미하는가, 타협의 정치를 의미하는가와 관계없이 정치적 논쟁을 억누르는 도구로 사용될 우려가 있다. 이렇게 되면 총선을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민심과도 멀어지게 된다. 국민은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고 기득권 유지에 연연하는 세력들끼리 지루한 싸움만을 일삼는 정치에 실망한 것이다. 여야가 적당히 타협하며 즐기라는 것이 민의는 아니다.

다수당이 정부를 구성하는 내각책임제와는 달리 대통령제하의 다수 야당의 처지는 원래 어렵다. 실제 권한은 없는데 책임은 공유해야 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야당 본연의 역할과 다수당으로서 통치에 대한 책임을 나누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어렵다. 총선 승리가 정권교체에 유리하게만 작용하지 않으리라는 전망도 대개 이에 근거한다. 현재 야당은 협치를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최소한 자신들이 생각하는 협치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말할 혹은 요구할 필요가 있다. 정부·여당과 언론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끌려가는 것은 문제해결을 위한 좋은 출발이 아니다. 듣기에 그럴듯하지만 내용은 불분명하거나 잘못된 ‘사이비’적 용어에 스스로 취할 일은 더욱 아니다.

타협과 투쟁 사이의 양자택일이 야당이 직면한 난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길은 아니다. 문제해결의 열쇠는 어떻게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를 정책에 반영하는가에 있다. 모든 사안에 대해 야당의 의지를 관철시키기는 힘든 것이 현실이다. 야당으로서는 타협해야 할 사안과 아닌 사안을 구분해야 하지만, 국민의 요구가 높거나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서는 분명한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적당한 절충에 기대어 균형을 잡으려고 한다면 국민의 마음을 잃을 것이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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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정국운영 기조가 변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내에서도 제기되었다. 소통의 필요성이 많이 언급되었다. 그렇지만 소통을 위한 첫 번째 시도였던 지난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의 대통령 발언은 국민의 기대에서 또 빗나갔다. 총선 결과를 놓고 대통령은 양당체제와 국회에 대한 심판이었다고 말했다. 비판의 소리가 컸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도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대통령의 말처럼 총선 결과에 대한 해석은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청와대와 여당에 대한 심판이라는 거의 논란이 없는 사실까지 무시하는 대통령의 태도를 보면 앞으로도 어떤 변화를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불안하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내외의 위기를 고려할 때, 이는 심각한 상황이다.

총선 과정에서 꽤 많은 정치인이 국민 앞에서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 무릎도 꿇고 삭발도 했다. 막상 왜 사과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일종의 무조건적인 사과인데, 많은 경우 이는 진정한 사과이기보다는 눈앞의 곤경을 모면하기 위한 일시적 방편에 불과하다. 부부싸움에서도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 일단 잘못했다고 치자’라는 식으로 말하고 넘어가려는 태도가 상대를 더 화나게 만든다고 하지 않는가! 뭐를 잘못했는지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진정성이 있는 사과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어떤 잘못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신이 이런 정치인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과시했다. 우리 국민은 왜 박 대통령으로부터 진정성이 있는 사과를 듣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이쯤 되면 박 대통령의 권력에 대한 철학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고대 정치철학 중에 권력자의 이러한 행태를 정당화시키는 논리가 있다. 한비자(韓非子)의 “명군의 도는, … 공이 있으면 군주의 현명함이 있다고 하고, 과가 있으면 신하가 그 죄를 지게 하며, 그럼으로써 군주의 명예는 궁해지지 않는다(有功則君有其賢,有過則臣任其罪,故君不窮於名)”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법가의 권력관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이 구절은 중국에서 전제주의적 전통을 만들어낸 뿌리이다. 이 권력관 아래에서 군주의 사과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주자(朱子)는 이러한 권력관을 “군주를 귀하게 하고 신하는 천하게 만든다(尊君卑臣)”고 비판했다. 군신관계에서만 보면 군주를 귀하게 만든다는 한비자의 권력관에 긍정적인 면이 없지 않다. 신하들이 기득권 구조에 매여 있는 경우에는 군주의 지위를 강화해야 민을 위한 통치가 가능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행사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_청와대사진기자단 한국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그렇지만 이를 위해 신하를 천하게 만들 필요까지는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권력관을 국민과의 관계에 적용하는 경우이다. 법가의 권력관이 중국 전제주의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이기는 하지만 만약 이것이 전부였다면 중국의 전통적 정치제도가 그렇게 오래 유지될 수 없었을 것이다. 군주와 민의 관계에 대한 인식에는 법가보다 유교가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유교적 전통은 하늘 혹은 민의 이름으로 군주의 자의적 통치를 막고 또 군주에게 민을 중시하는 통치를 요구했다. 가뭄과 같은 천재가 있을 때에도 이를 군주의 부족한 덕과 연관시키고 군주의 반성과 수양을 요구했다. 우리를 포함한 유교 영향을 받은 사회에서 이 전통이 꽤 강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정치지도자라면 국민의 목소리를 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함이 마땅하다. 이제는 하늘이 아니라 민이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유일한 원천이다.

그럼에도 상황이 계속 거꾸로 흘러가니 우리 국민의 답답함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예상을 크게 벗어난 총선 결과도 이러한 답답함의 표현이다. 총선 전이라면 대통령이 국회에 대해 이런저런 불만을 표시할 수 있지만 총선 이후에도 국회를 탓하는 것은 뭔가 한참 잘못되었다.

대통령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어려운 것은 그것이 자신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자신을 천하게 만들 수 있다는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권력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요구되는 리더십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 이대로라면 대통령 스스로도 불행해진다.

이제라도 남을 탓하지 말고 자신을 먼저 탓하고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를 기대한다. 하루아침에 큰 변화를 보여주지 않아도 좋다. 여당 등의 비협조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세월호 특별법을 연장하는 일처럼 의지만 있으면 변하고 있다는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일들은 많다. 귀해지고 싶다면 먼저 국민을 귀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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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총선 결과는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필자는 4월5일자 정치시평에서 야권 분열이 여당의 압승을 보장하지 않으며 야권이 분열된 채 치러진 선거에서도 여소야대 결과가 출현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여소야대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떠올렸던 것은 여당 성향의 무소속 당선자들을 포함하면 여권이 과반수를 차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여당이 제2당으로 몰락하고 어떻게 해도 과반수를 확보할 수 없는 결과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이번 총선이 박근혜 정부의 실정에 대한 유권자들의 단호한 심판이었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반면 총선 결과가 야권에 주는 의미는 복잡하다. 호남에서는 국민의당이 압도적 지지를 받았고, 다른 지역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선전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 대해 국민의당은 기존 정치권에 대한 심판으로 규정하나 더민주가 자신이 승리한 선거라고 주장할 근거도 있다.

호남유권자들의 전략적 선택이 이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호남유권자들의 선택이 갖는 의미를 파악하기 위한 작업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지역주의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상황에서 총선 결과를 특정 지역의 민심과 연결시켜 해석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 되기 쉽다는 점에서 이해할 만하다.

문제는 제대로 된 평가가 진행되지 않는 동안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호남유권자들의 선택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들이 등장해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데 있다. 호남과 특별한 연고가 없는 필자로서 이에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두 가지 흐름이 우려스럽다.

먼저 선거과정에서 출현한 호남홀대론이다. 국민의당 내에서 호남홀대론으로 더민주를 비판한 경우가 있고, 더민주는 호남을 홀대한 바 없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호남에서 홀대받았다는 정서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것이 국민의당을 지지한 핵심 원인은 아니다. 호남유권자들이 지난 대선에서는 우대를 받아 문재인 후보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냈는가? 이들이 2년도 되지 않아 갑자기 홀대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민주에 채찍을 들게 되었겠는가?

호남유권자가 더민주에 채찍을 든 주요 원인은 지난 대선에서의 패배를 극복할 전망을 더민주가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판단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 더민주에 대한 비판이 과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국민의당을 지지한 유권자들의 생각이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하고 대응해야 한다. 즉 호남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호남우대론이 아니라 호남유권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수권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호남유권자들의 선택을 지역주의로 모는 경향이다. 야권은 오랫동안 지역주의 극복을 중요한 정치과제로 삼아왔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 사회의 지역주의는 특정 지역의 패권주의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지역주의에 기대었던 경향도 없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둘이 같은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야권 내에서도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게다가 이번 선거에서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호남출신의 유권자들을 포함한 넓은 의미에서의 호남유권자들은 지역주의에 따라 선택하지 않았다. 수도권에서는 이들 중 상당수가 여권을 이길 수 있는 후보를 지지했다. 더민주가 정당투표에서 얻은 득표율과 지역구에서 얻은 득표율의 차이가 이를 잘 보여준다. 자신과 다른 정치적 선택을 했다고 이를 지역주의로 모는 주장은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정신은 물론이고 객관적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유권자들의 민심을 해석하는 데 있어 위의 혼란들이 정리되지 않으면 “호남이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과 “호남지역주의를 극복하자”는 잘못된 주장이 대립하는 구도가 출현할 수도 있다. 눈앞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러한 잘못된 담론들에 기댄다면 야권은 모처럼 얻은 기회를 다시 상실할 것이다.

국민의당이나 더민주 모두 호남유권자들의 선택의 의미를 지역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 누구를 지지했든 호남유권자들의 선택은 헬조선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의 참담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큰 흐름 속에 있었으며, 다른 지역의 유권자들도 그 흐름에 합류했기 때문에 이번 선거의 놀라운 결과가 만들어졌다. 누구든 이 흐름을 확대하고 우리 사회의 큰 전환을 이루어내기 위한 설득력이 있는 비전을 제시할 때 야권을 새롭게 구성해가는 주체가 될 수 있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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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은 결국 ‘1여다야’ 구도로 진행될 모양이다. 영남과 수도권에서 일부 여권 성향 무소속 후보들이 선전하고 있지만 여권 전체의 분열은 아니다. 반면 야권에서는 나름의 지지기반을 갖고 있는 세 정당이 각축하고 있다. ‘1여다야’가 수도권에서 15~20개 지역의 결과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이에 따른 여야간 의석수 차이만 30~40석에 달한다. 영남에서 무소속과 야당 후보가 지난 총선보다 많이 당선권에 진입하고 여당의 비례의석수가 감소하기 때문에 그 차이를 15석 정도는 줄일 수 있다. 그래도 산술적으로 여당 의석수는 지난 총선 때보다 20석 정도 증가한다.

야권은 뻔한 결과를 예상하면서도 왜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내지 못했는가? 보수세력은 꾸준히 선거연대를 정치적 야합으로 비판해왔다.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단순다수결로 당선자를 정하는 조건에서 선거연대는 정치적 야합이 아니라 정치를 활성화시키는 수단이다. 정당명부제 비례투표를 확대하거나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면 현재 방식의 선거연대는 불필요하다. 이러한 정치개혁은 거부하면서 선거연대를 야합으로 모는 것은 기득권 유지를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 이 점에서 국민의당의 연대거부론은 문제다. 야권에서 선거연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발목을 잡는 일이다. 따라서 야권 내에서는 연대를 거부하는 국민의당에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상황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당장 야권의 주요 지지기반인 호남에서 국민의당 지지도가 더 높다. 이들을 분열세력으로 몰고 야권이 미래를 기약할 수 있겠는가? 이런 태도는 목전에 다가온 선거결과에 긍정적이지 않으며 총선 이후 야권 재편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야권연대의 동력은 2012년 대통령선거 이후 계속 약화됐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창당으로 야권의 결집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였으나 이는 야권연대의 회광반조였다. 겉으로 세력이 커지는 것으로 보였으나 내부에서 균열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결국 작년 말에는 분당으로 이어졌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가 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4.13 총선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안 대표는 3당 경쟁체제 정립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야권 연대에 대한 반대 입장에 변화가 없음을 밝혔다._강윤중 기자


일견 정체성을 둘러싼 논란이 분당의 중요한 원인이다. 정당은 정치적 정체성을 명확히 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논란이 발생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이 논란이 생산적 결과를 만들어내는가, 그렇지 못하는가가 문제다. 새정치연합 내의 정체성 논란은 정치적 경쟁세력을 비판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고 야권 결집을 위한 정치적 비전은 생산하지 못했다.

2012년의 야권연대는 막연하기는 했지만 야권연대가 체제전환을 이루어낼 수 있으리라는 열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단지 선거패배를 피하기 위해 연대가 필요하다는 식의 소극적, 방어적 논리만으로 야권 내의 복잡한 상황을 극복하고 연대를 실현시킬 수 없다.

비전이 결여된 채 진행되는 연대 관련 논란은 정파갈등의 자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현재의 야권 분열에 차기 대권을 둘러싼 갈등이 내재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실제로 한국정치사에서 정당 분열은 대부분 대권 경쟁에서 비롯됐다. 2012년 총선에서 야권연대가 잘 작동할 수 있었던 데에는 압도적인 대권후보가 없었던 것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먼저 파이를 키우자는 주장에 대부분이 동의할 수 있었다. 2012년 이후에는 잠재적 대권 경쟁자들의 갈등이 야당 내의 갈등을 증폭시켜왔으며 지금도 분열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최근까지도 경쟁상대를 압도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발상이 더민주와 국민의당에서 작동하고 있다. 야권 내에서 차기 대권을 위한 공정한 경쟁의 틀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앞으로도 분열 상황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투표일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전국 차원에서 야권연대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더라도 실망하기는 이르다. 몇몇 지역의 결과라도 바꿀 수 있는 국지적 선거연대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야권 분열이 여당의 압승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2008년에는 야권이 현재처럼 분열되지 않았어도 여당이 압승했고, 88년과 96년에는 야권 분열에도 여소야대라는 결과가 나타났다. 한국정치에서는 산술적 계산에 포함되지 않는 정치적 에너지라는 변수를 무시할 수 없다. 다만 이러한 결과가 출현하더라도 이는 정당의 역량이 아니라 유권자들의 현명한 판단에 의한 것이다. 현재와 같은 야권의 난맥상을 초래한 주요 정당들의 책임이 면해지지는 않는다. 분열된 야권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는 이미 이번 총선이 야권에 제기하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 됐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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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현역의원들의 공천탈락이 이어지고 있다. 물갈이라는 면에서는 더민주가 다른 정당들에 앞서고 있다. 그 결과 더민주가 선거에서 선전할 가능성이 뚜렷이 높아졌는가? 그렇게만 보이지 않는다. 물갈이가 선거승리를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갈이를 통해 드러나는 정치적 지향과 이에 대한 유권자들의 판단이 더 중요하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관건이다. 물갈이를 통해 만들어진 정치공간을 새로운 야당에 부합하는 인물들로 채워야 한다. 그리고 이를 분열된 야당들의 연대로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우선 인물교체라는 면에서 방향이 불분명하다. 물갈이가 지지층의 적극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물갈이의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더민주가 자신의 정책노선을 명확하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관련이 더 크다.

김종인 비대위 대표 체제가 출범한 이후 반복된 당의 정체성과 관련한 논란들이 혼란을 더 키웠다. 최근에도 테러방지법을 저지하기 위한 필리버스터를 안보프레임으로 폄훼하는 발언이 나왔음에도 이렇다 할 해명도 없이 넘어갔다.

남북관계가 심각한 위기로 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변변한 대응을 못 하고 야당의 기존 정책에 주된 책임이 있다는 입장을 보였던 사람도 등장했다. 당의 정체성에 여러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일부 개인적으로 능력과 신망이 있는 인물들을 공천하더라도 이는 그들의 개인적인 인기를 활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물갈이가 제대로 된 혁신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남은 지역구 전략공천이나 비례대표 공천이 야당의 정체성을 흔들고 여전히 계파 이익을 앞세우는 방향으로 진행되면, 사태는 더 악화될 수 있다. 공천탈락자들의 반발이 명분을 얻고 물갈이가 야당의 선거동력을 강화하기는커녕 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야권연대를 대하는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현재 수도권에서 ‘일여다야’ 구도가 만들어지는 지역이 점차 증가하면서 총선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조짐이 보인다. 야권이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연대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부분의 지지세력이 동의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를 실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지지세력들의 의지를 모으고 현실에 부합하는 방법을 제시할 때만 가능성이 열린다. 단기적인 정치이익에 따라 추진할 경우 그 실현가능성은 더 떨어진다.

지난주 관심을 모았던 김종인 대표의 통합론은 목적이 통합에 있기보다 국민의당 흔들기에 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만들었다. 현실성이 낮은 통합을 먼저 내걸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국민의당 지도부 중 일부를 빼 오는 방식으로 제안했기 때문이다. 국민의당 내의 안철수 의원 등은 이에 연대부정론으로 맞서며 야권의 선거연대는 더 어려워졌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의 발언 _경향DB

야권 분열은 심각하지만 그 부정적 영향을 줄이고 총선에서 야권 승리의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이 없지는 않다. 지금 호남에서의 경쟁은 지지층에 부정적인 현상으로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비호남 지역에서는 정당간 세력의 차이로 야권이 전면적인 분열로 나아가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비호남지역, 특히 수도권 지역의 선거연대만으로도 이번 선거에서 야권 중 누가 수권야당으로서의 자격을 더 갖고 있는가를 둘러싼 경쟁을 전개하는 동시에 통합에 값하는 정치적 효과를 낼 수 있다. 야권은 시급히 비현실적인 통합론과 무책임한 연대부정론의 대립을 해소하고 실현가능한 연대 방식에 대한 논의에 나서야 한다.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에서 외부의 훈수가 현실정치의 벽을 넘기는 힘들다. 야권 지지층도 어떻게든 선거에서 승리만 하면 좋겠다는 절박함으로 당선 가능성이 더 높은 세력을 밀어줄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현실론으로 기울어질 수도 있다.

여권의 독주를 저지하기 위한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총선 자체의 승리 여부만이 아니라 야권이 앞으로 어떤 길을 갈 것인가도 심판대에 올라 있다. 당면한 선거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이유로 야당 내의 정체성 혼란과 계파적 행동의 득세를 방조하면 야권과 야당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선거승리와도 멀어질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퇴행을 더욱 더 가속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야권이 제대로 된 혁신의 길을 가도록 감독하고 채찍질하는 것이 여전히, 더 중요하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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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을 둘러싼 논란이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공천과정이 시끄러운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시간은 많이 지체됐다. 3월 초면 선거 대진표가 나와야 하는데 공천 규칙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20여일 안에 모든 공천이 마무리돼야 하는 상황이다. 유권자들은 후보검증을 위한 시간을 갖지 못하고 투표장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공천과정에서의 혼란은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인데 이번에는 정도가 더 심하다. 물론 선거과정에서 혼란과 소란은 정치의 역동성을 보여준다.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는 공천으로 가기 위한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현상이기도 하다. 권위정부 시기 여당의 공천은 일사불란하게 진행됐고, 야당의 경우는 분란이 없지 않았지만 ‘제왕적 총재’의 권위와 영향력에 의존해 공천이 진행됐다. ‘위로부터의 공천’이라는 점에서는 모두 같았다. 정당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면서 상황이 바뀌었고, 공천권을 당원 및 유권자들에게 돌려준다는 원칙이 점차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이 원칙의 실현이 간단치 않다. 백가쟁명식 방안들이 제출됐지만 만족할 만한 방안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내의 컷오프와 전략공천을 둘러싼 논란은 정무적 혹은 전략적 판단이 공천에 얼마만큼 영향을 행사해야 하는가라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지금까지 공천 논란은 대부분 이 두 쟁점을 둘러싼 것이었다.

문제의 근원은 아래로부터의 공천이 제대로 작동하기에는 당원과 유권자들의 참여가 너무 저조하다는 데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진행되는 경선은 소수의 적극적 지지층을 동원하는 세력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어 다른 세력들의 불만을 사고, 유권자 다수의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고 원칙을 포기할 수는 없다. 다소의 문제와 불만이 있더라도 당원과 유권자들의 목소리가 공천과정에 반영되는 원칙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정당의 민주화와 정치발전의 장기적 방향이다. 이를 위해 최소한 경선규칙은 미리 확정돼야 한다. 미국 민주당의 샌더스 열풍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프라이머리나 당원투표라는 과정이 없었으면 출현하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특히 그가 승리한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저녁 늦게까지 줄을 서가며 투표했던 유권자들이 미국의 풀뿌리 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주었다. 우리 경우에는 참여경선은 아예 포기하고 여론조사로 경선이 진행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려 있다. 제도적이고 절차적인 면에서 각 정당은 이미 낙제점을 받았다. 선거결과에 관계없이 반드시 짚고 넘어갈 문제이다.

더민주전략공천1호양향자출마회견_연합뉴스

전략적 판단이 공천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서 발생한다. 아래로부터의 공천이 가지고 있는 결함을 정치적 행위로 보완할 수밖에 없다. 정치신인의 발탁, 전략적 지역에서의 승리, 당의 정체성 강화 등이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 주요 내용들이다. 이 점에서 시스템 공천만을 강조한 더민주의 혁신안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일리가 있다. 계파 갈등에 대한 우려를 피하기 위한 고충이 있기는 했지만 이는 정치의 자율성을 지나치게 축소시킨다. 시스템 공천도 공정성 논란에서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선거를 앞두고 만들어진 절차 자체가 특정 계파에 유리하다는 논란이 제기된다. 합의된 수준 내에서 전략적 판단이 작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제왕적 총재나 살생부와 같은 괴담이 판치는 시대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제도의 부족한 점을 리더십으로 보완해야 하고, 논란과 갈등이 불가피하지만 이를 통해 리더십을 평가받으면 된다. 이도 선거의 중요한 기능이다. 주요 정당들의 공천에 전략적 판단의 영향이 커지고 있는 것은 객관적 원인이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리더십이 사적이거나 계파 이익을 추구하는가, 아니면 지지층의 열망을 반영하며 대국을 위해 결단하는가이다.

본격적으로 선거국면으로 들어가면서 공천이 유권자들의 이목을 모으고 있고, 주요 정당들이 다른 영역의 경쟁에서 큰 차별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공천의 적절성에 대한 유권자들의 판단이 선거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몇몇 지역의 공천이 지금까지의 유리한 흐름을 불리하게 또는 불리한 흐름을 유리하게 뒤바꿀 수도 있다. 이 점에서 각 정당들은 비슷한 출발선에 서 있다. 유권자들도 공천과정에서의 논란을 무조건 백안시할 것이 아니라 이를 즐기고 그 속에서 드러나거나 감추어져 있는 정치성을 투표의 주요 기준으로 삼을 일이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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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벽두에 감행된 북의 핵실험이 지난주 개성공단 폐쇄로 이어지며 남북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이 사태가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증가하면서 정치권에서는 “북풍” 논란이 일고 있다. 야당은 정부·여당이 북의 위협을 빌미로 정권심판 요구를 누르려 한다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정부·여당은 야당이 당리당략에 눈이 어두워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을 외면한다고 반박한다.

남북관계를 둘러싼 논란이 당분간 계속될 터인데 야당의 입장에서 보아도 북풍론은 사태의 본질을 짚는 비판이 아니다. 정부·여당이 남북대치 국면을 선거에 활용할 의도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통일부 장관이 나서서 개성공단에 들어간 남측 자금이 핵개발에 사용된 증거가 있다고 발언하면서 정부가 현 국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의심을 스스로 사고 있다. 이 발언은 현 정부가 개성공단 관련 자금과 북의 핵개발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해온 것과 상충한다. 또한 정부가 이런 사실을 미리 파악하고 있었다면 유엔 상임 안보리의 결의를 위반해왔다고 자백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이는 북의 핵개발을 남북화해 정책의 책임으로 몰면서 야당을 공격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없었다면 생각하기 힘든 자해행위이다.

 북풍론이 사태의 본질을 짚지 못한다고 주장한 이유는 현 상황이 북풍론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며 북풍론이 사태를 잘못 이해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현 상황이 정부가 과장한 북풍에 불과하며 그래서 선거가 끝나면 다시 정상화될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 형편이다. 현재 상황은 선거 때문에 출현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남북 사이의 부정적 상호작용이 반복된 결과이다. 문제의 핵심은 선거용 북풍이 아니라 재앙적 군사충돌의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고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한반도 상황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응방안도 선거 담론을 넘어서는 수준에서 제기되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북한이 안전판으로 핵무기 개발을 추진한 지는 오래되었다. 이에 대한 대응방안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그 계획을 강제적 방식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안은 이미 김영삼 정부 시절에 폐기된 바 있다. 둘째는 북의 핵개발을 막기 위한 국제적 공조와 제재를 강화하면서도 북이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북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러한 논리에 따라 진전되었다. 햇볕정책도 이러한 정책 패키지의 한 측면이다.


북한 핵 실험에 관한 대응방안 논의를 위한 한미일 6자회담_경향DB


그런데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기본적으로 핵개발을 중단시키기 위한 제재에만 역량을 집중시켜왔다. 이는 북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북이 핵개발에 더 집착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보수정부 시기 진행된 북의 세 차례 핵과 로켓 실험, 그리고 이에 따라 심화되고 있는 한반도 위기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북에 대한 계속적 압박을 통해 강제적 방식으로 북의 핵개발 계획을 포기시키는 선택만이 남는다. 현재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은 과거 군사충돌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일찍이 포기되었던 첫 번째 선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만약 남북이 군사적으로 충돌하게 된다면 그것이 초래할 재앙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이 사태는 미·중 갈등을 매개로 한반도 위기를 동북아 차원의 위기로 비화시킬 가능성도 높다. 따라서 현재 한반도와 동북아 상황은 한국전쟁 이후 가장 위험스럽다고 할 수 있다.

이 상황을 고려하면 정부·여당이 선거를 위해 남북대치 국면을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위기의 본질을 분명하게 직시하고 대응방안을 만들어내는 데 더 관심을 쏟아야 한다. 야당 역시 현 사태에 북풍론으로 안이하게 대응하려고 한다면 안보문제를 당리당략적으로 생각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안보문제가 부담스럽다고 민생문제로 화제를 돌리려는 발상도 바람직하지 않다. 현 위기의 본질을 직접 거론하는 것이 북의 핵실험에 대한 국민의 불만과 분노가 높은 상황에서 부담스럽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정치가 위기의 본질을 다룰 때만 우리 공동체의 생존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 국민도 이러한 선택에 지지를 보낼 것이다. 북의 행동에 불만이 높다고 해도 국민은 파국과 재앙을 원하지 않는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직후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여러 언론과 전문가가 안보문제로 인한 야권의 참패를 예상했음에도 결과는 야권의 승리였다.

최근 야권 분열사태 속에서 저마다 수권정당으로 거듭나겠다는 약속이 나오고 있다. 수권정당의 자세는 선거에서의 당리당략보다 가장 중요한 공동체 문제 해결을 위한 장기적 비전과 그것을 감당할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 남북관계가 그 시금석의 하나로 등장하고 있다. 야권이 북풍론을 넘어서는 비전을 갖고 현 국면에 대처하기 바란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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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이야기해야 하는 새해 벽두부터 한국 사회에서는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주에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가 모두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가 위기를 화두로 들고 나왔다. 김무성 대표는 이 시대가 “위험과 불안의 시대”라는 국민의 우려에 공감을 표시하며 말을 시작했고, 문재인 대표는 “총체적 위기”라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서민의 삶이 위기에 빠진 지 오래이기 때문에 이러한 진단에 이견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이 위기론에 동참하고 있을 뿐 아니라 위기론 확산에도 앞장을 서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가가 위기에 빠졌다면 그 일차적인 책임은 정부와 여당에 있기 때문에 이들이 위기론을 들고 나오는 것은 사실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물론 정부와 여당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현재 밀어붙이고 있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나아가 총선에서 야당을 반개혁적 세력으로 밀어붙이기 위한 단기적 정치전략으로 여기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정부·여당의 국가위기론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골든타임”이라는 표현을 남발해왔다. 골든타임은 사전적으로 “뇌졸중·심근경색 등이 발생한 응급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발병 초기의 매우 짧은 시간”을 의미한다. 심각한 위기 상황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말이다. 지난해 말에는 노골적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운운하며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압박하기도 했다. 즉 정부·여당은 이미 위기론을 통치에 활용해왔다. 위기론은 정부·여당의 주요 통치전략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매우 어이없는 상황이다. 국민 삶의 불안이 증가하는 주요 원인도 대기업에 편향된 경제구조와 낮은 복지 수준에 있다. 정부·여당 스스로도 지난 선거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집권 이후 주요 공약을 걷어차며 국민의 삶에 대한 책임을 방기했다. 북한의 핵능력도 보수정부 8년 동안 3차례 실험이 진행되며 이제 ‘수소탄 실험’을 공언할 정도로 강화됐다. 8년을 보수정부가 집권하고 있는데 국가위기 상황은 마치 자신에게 전혀 책임이 없는 사태처럼 이야기하고, 나아가 그 책임을 야당 등 다른 주체들에게 전가하는 화법은 여러 유체이탈 화법의 수준을 뛰어넘는다. 이는 정부·여당이 위기를 극복할 방안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우리 사회는 삶의 뿌리가 흔들릴 정도의 위기에 빠지는 것을 피할 길이 없다. “골든타임”에 준하는 진짜 위급한 상황이 나타날 경우 정부·여당이 어떻게 대응할지도 우려된다. 역사적으로 위기론을 앞세워 통치 정당성을 강화하려고 한 집권세력의 시도는 국민에 대한 억압을 극단적으로 강화하는 불행한 사태로 이어지곤 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현재 진행되는 사태를 신종 혹은 점진 쿠데타라고 진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관건은 야권이 어떻게 정부·여당의 위기론에 대응하고 국가위기를 극복할 비전을 제시할 것인가이다. 문재인 대표가 박근혜 정부 3년이 초래한 총체적 위기를 강조하고 그 극복 방향을 제시했지만, 이 주장들은 그의 대표직 사퇴 여부에 쏠린 관심 때문에 제대로 공유되지 못했다. 그렇더라도 현 상황을 총체적 위기로 진단한 이후 내놓은 “무너진 민생의 벽돌, 민주주의의 벽돌을 하나씩 하나씩 제자리에 놓아 무너진 대한민국을 복원하겠습니다”라는 방향은 정부·여당이 비상사태 운운하고 총선을 개혁 대 반개혁으로 몰고 가는 상황에서 다소 미흡하다는 느낌을 준다. 벽돌을 하나씩 제자리에 놓을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주어질지 의심스러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야권 내의 다른 많은 사람들이 과연 문 대표가 보여준 위기의식 정도라도 공유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승만 국부론”의 문제도 역사의식보다는 현 상황에 대한 안이한 인식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위기감각이 정부·여당보다도 둔하다는 인상을 준다.

여기에 야당 분열은 야당들이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고 설득하려 하기보다는 적당히 살아남기와 다른 야당에 대한 상대적 우위에 더 연연하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총선 승리를 이야기하더라도 내심으로는 개헌 저지선이나 여당 180석 저지 정도를 최고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 정도의 비전과 결기로는 국민과 유권자에게 국가위기를 극복할 의지와 능력이 있다는 신뢰를 주기 어렵다. 야권에서는 국가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담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위해 어떤 헌신도 할 것이라는 결기를 보여주는 사람과 세력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이제 분열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는 상황에서 국민들의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노력을 본격적으로 경주해야 하며, 그 속에서만 진정한 총선 승리의 좁은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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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을 코앞에 두고 제1야당이 분당했다. 일여다야의 선거구도에서 여당이 35%의 지지율만으로도 전체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선거제도의 탓이기도 한데, 막상 이런 사태가 출현하면 박근혜 정부의 온갖 실정에 정당성이 부여되는 정치적 효과가 발생하고 훨씬 나쁜 통치의 길을 연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사태를 피하기 위해 야권의 통합과 연합이 필요하지만 그에 대한 요구도 높지 않다. 제1야당에 대한 실망감이 얼마나 컸던가를 반증한다. 오히려 분당이 야권이 변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기대도 적지 않다. 냉정하게 보면 그 기대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사태가 이에 이른 만큼 일단 야당들에 지지자들과 유권자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혁신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현재 야권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핵심적인 혁신작업은 무엇인가? 제1야당 내에서 그동안 혁신에 대한 많은 논의와 시도가 있었지만 이것이 오히려 분당사태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의미가 있는 혁신작업이 진행되기에는 선거까지 남은 시간도 부족하다. 답이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2004년체제’의 극복이 핵심목표가 되어야 한다.

현재 야권의 토대와 성격은 기본적으로 2000년과 2004년 총선을 거치며 형성되었다. 지지기반으로는 호남과 수도권의 개혁적 성향의 유권자가 결합되었고, 정당운영에서 상향식 의사결정방식과 참여가 강조되었다. 이는 현 야권의 개혁적 성향을 강화시키고 지지세력을 정치적으로 활성화시켰다는 점에서 한국정치에 긍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렇지만 승리할 수 있다고 예상되었던 2012년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박근혜 정부의 탄생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한계도 명확하다.


내부에 변화의 요구와 새로운 사회적 역동성의 수용을 막는 기득권 구조가 형성돼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수권정당으로서의 신뢰를 얻지 못한 것이 이 체제의 가장 큰 문제였다. 2012년 선거과정에서 새로운 세력이 야권에 참여하고 선거를 역동적으로 만들기는 했지만 정작 당내의 기득권 구조를 극복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지는 않았다. 당시 문재인 대선 후보도 당내 기득권 극복을 주요 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무엇이 기득권인가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다르게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특정세력만의 문제는 아니다. 야권 내 기득권이라고 하면 호남이라는 지역기반에 안주한 정치인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수도권의 현역 의원들이나 지역위원장의 기득권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들의 구성과 성격도 2004년 이후 큰 변화가 없다. 당원 확대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상향식 정당운영도 기득권 보호장치로 작동하게 되었다. 새로운 세력이 들어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은 호남이나 수도권이나 마찬가지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의당에도 유사한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없다. 이 체제로는 수권세력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야권 위기의 핵심이고, 이에 대한 의미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 통합논의의 의미도 반감된다. 선거를 앞두고 야권에 대한 요구는 혁신을 통한 수권능력의 제고와 통합을 포함한 연합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지금으로서는 전자에 대한 요구가 더 큰 상황이다.

이 문제가 현재의 파괴적 방식으로만 해결될 이유는 없었다. 적절한 수선으로 수권정당으로서의 신뢰를 회복할 수도 있었다. 문제는 그동안 혁신작업이 2004년체제의 극복을 명확한 목표로 삼지 않았다는 데 있다. 혁신의 이름 아래 소위 수도권 주류와 비주류가 서로를 기득권 세력으로 규정하고 생존투쟁을 벌인 결과가 분당이다. 2004년체제 기득권의 두 측면이 혁신과정에서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한 측면만을 문제로 삼았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지금도 나타나고 있다.

꼴 보기 싫은 사람들과 갈라졌으니 우리끼리 힘을 모아 잘해보자는 식의 행동은 기득권끼리의 경쟁의 연속에 불과하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표적공천 운운이나 어설픈 영입경쟁도 출현한다. 이는 2004년체제의 부정적인 측면을 더 강화시키고 선거 참패를 면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분열되어 있는 야당들은 상대의 문제를 겨냥하기에 앞서 자신의 내부에 있는 2004년체제의 부정적인 측면을 극복하는 작업, 특히 기득권화된 각자의 정치적 기반에 대한 인적 혁신을 먼저 진행할 때만 변화를 원하는 유권자들의 지지를 모을 수 있다. 더 큰 통합과 연합의 길도 그 속에서 열릴 것이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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