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6·10민주항쟁 기념식과 지난달 미국 애틀랜틱 카운슬에서 주는 세계시민상 수상연설이 대표적이다. 기존의 ‘경제민주화’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은 이 두 가지가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 것인지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우선 경제민주화부터 정리해보자. 일반 국민들에게 경제민주화는 ‘을지로위원회’를 연상시키는 ‘갑의 횡포로부터 을을 지키는’ 것이거나 비정규직을 줄이는 양극화 해소쯤으로 받아들여진다. 학계의 논의는 소위 ‘경제민주화 조항’으로 알려진 헌법 119조 2항을 둘러싼 법학계의 일부 연구를 제외하면 매우 드문 편이다.

(출처:경향신문DB)

그중에 주목할 만한 것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학자 시절인 2012년에 발표한 ‘경제민주화의 의미와 과제’라는 논문이다. 그가 새 정부의 첫 공정거래위원장으로 발탁되었을 뿐 아니라 비교적 안정적으로 직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논문이다. 이 논문에서 김상조 위원장은 경제민주화의 실체적 내용을 정의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울 뿐 아니라 설사 정의한다 하더라도 국내외 정치·경제 상황이 그 집행에 제동을 걸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경제민주화의 의미는 ‘방법론상의 최소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최소 원칙이란 “거래관계의 현실에 기초하여 부담과 편익의 조화, 권한과 책임의 일치”를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진보성향의 학자로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본다면 놀랄 정도로 실용적이고 주류 경제학의 핵심 원칙에 부합한다.

그렇다면 경제민주주의는 무엇인가. 연설을 통해 드러나는 문 대통령의 인식은 경제민주주의를 기존의 경제민주화의 상위개념이자 하나의 사회모델로 보고 있는 듯하다. 6·10항쟁 기념식에서는 양극화가 경제적 불안요인을 넘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의미의 경제민주주의는 미국의 다원주의 정치학자 로버트 달이 1985년 출간한 <경제민주주의 서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보수성향이 강한 다원주의 정치학의 태두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불평등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가장 우려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실제로 오늘날의 많은 학자들과 주요 국제기구들은 지나친 양극화가 ‘대의의 불평등’을 낳음으로써 민주주의를 훼손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반대파에 의해 지나치게 진보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문 대통령이 다원주의 정치학자의 이론을 꺼내든 것은 절묘한 카드이다. 같은 연설에서 문 대통령은 양극화 해소, 일자리 창출,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경제민주주의를 사회적 대타협까지 포괄하는 하나의 사회모델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세계시민상 수상 연설에서도 “새로운 대한민국은 경제민주주의와 평화를 향해 나아갈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 1987년 민주화의 경험을 들어 “세계가 고민하는 저성장·양극화 문제에 대해서도 세계 민주주의의 역사를 새롭게 쓴 대한민국이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고 했다. 이것 역시 87년체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체제의 밑그림으로 경제민주주의를 생각하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독일의 번영을 가능케 한 사회적 시장경제는 각 정당은 물론 전 국민적 합의에 기초하고 있다. 한마디로 “시장의 효율을 최대한 활용하되 사회적으로 합의한 틀 안에서 활용한다”는 원칙이다. 효율은 최대한 살리되 그것을 위해 인간을 생존권과 사회권의 최저선 밑으로 내몰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때 극심한 노사갈등으로 몸살을 앓던 스웨덴의 반전 계기는 살트셰바덴 협약이었고, 그 후 노총이 제시한 성장모델인 렌-마이드너 모델은 수십년의 번영을 가져온 상생의 모델이었다.

우리도 사회적 합의의 틀 안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데 합의할 수 있다면 다시 성장할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이 상충하지 않고 선순환할 수 있는 것이다.

정리해보면, 경제민주주의는 새로운 사회모델의 밑그림이고 경제민주화는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방법론적 원칙이며, 이 두 가지가 결합된 것이 새로운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이라고 읽힌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내년 지방선거 때로 예상되는 개헌 국민투표가 떠오른다. 이 밑그림이 실현되려면 경제민주주의의 정신은 새 헌법 곳곳에 녹아들어가야 한다. 개헌이라면 늘 권력구조 이야기만 나오던 상황에서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선거제도 개편이나 경제민주주의가 함께 논의될 수 있다면 반길 일이다. 향후 수십년간 시민들의 삶을 규정할 개헌은 국회 개헌특위가 독점할 일은 아니다. 국회의 권한과 책임을 다하되 기존 체제의 한계에 속박되지 않는 시민적 숙의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는 시민들이 충분한 정보를 학습하면서 숙의하고 합리적 결론에 도달하며 그 결론을 받아들일 능력이 있음을 증명하지 않았던가.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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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앞둔 시점에 정치보복 논란이 뜨겁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발언을 빌미로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욕되게 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김경수 의원을 필두로 더불어민주당이 강력 반발하자 정 의원은 “국가정보원이나 국가정보기관이 정치보복을 하지 말자는 것”이 적폐청산이라고 재반박했다. 김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이고, 정 의원은 이명박 청와대의 정무수석이었다. 그러자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정치보복 프레임에 속지 않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을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기 위해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들어서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다른 한편으로 리얼미터가 발표한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는 사상 최저치인 65.6%로 나타났는데, 이는 같은 기관의 조사에서 최고치였던 82.3%와 비교하면 16.7%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넉달 전 지지층의 5분의 1 정도가 빠져나간 셈인데, 주로 빠져나간 사람들은 5060세대, TK와 PK 일부, 주부·자영업자·무직자 등으로 박근혜와 자유한국당의 핵심 지지층이었던 사람들이다. 문재인 정부의 행보가 실제로 정치보복인지 아닌지를 떠나, 길고 긴 추석 연휴 동안 다섯 가구 중 한 가구의 명절 밥상머리에서는 적폐청산한다는 새 정부의 행태가 지난 정부와 다를 게 뭐가 있냐는 얘기들이 오갈 것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이야기가 오가는 것 자체가 빈사상태의 자유한국당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면 자유한국당은 도대체 무엇을 놓고 정치보복이라 주장하는 것일까. 대뜸 국정원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을 말하는 것일 게다. 수사의 칼날이 박근혜 정부를 넘어 이명박 정부에까지 겨눠지자 지난 정부도 아니고 지지난 정부까지 ‘터는’ 것은 ‘치사’하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다. 필자 또한 정치보복에 적극 반대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것이 정치보복일까? 과거에 당한 것을 되갚아주고 싶은 보복의 감정이 있느냐 없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수사하고 처벌해야 할 실제의 범죄행위가 있었느냐 없었느냐, 만약 있었다면 전직 대통령이라는 점 때문에 생각할 수 있는 정치적 관용의 한계를 넘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가 핵심이다.

정치적 현안과 관련해서 온라인 빅데이터를 분석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박근혜가 당선된 2012년 18대 대선에서 얼마나 어마어마한 수의 ‘알바’가 활동했고 그들이 정치적 공론장을 얼마나 심각하게 망쳐놓았는지를. 그들의 활동이 선거결과를 뒤바꾸어 놓았는지 여부를 확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들이 부정적인 의미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이 나라의 정치적 공론장을 파괴했다는 점이다. 당시 분석가들은 온라인 빅데이터를 분석하며 계속해서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의 규모로 이렇게 체계적으로 활동하려면 잘 갖추어진 조직과 엄청난 예산이 필요할 텐데, 그걸 제공하는 자들은 누구일까? 짐작은 가지만 증거는 없었다. 이제야 조금씩 드러나는 진실을 보면 역시나 그 짐작이 맞았었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에 세금과 조직을 제공했고, 그들의 활동은 그 당시 청와대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가를 수호해야 할 제1의 책임을 가진 대통령이, 청와대가, 국가기관이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데 썼다면 헌법 위반이고, 선거법 위반이고, 국정원법 위반이다. 보복의 감정이 있건 없건 수사하고 처벌할 수밖에 없는 중대한 범죄행위이고, 정치적 관용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사안이다. 그러니 정치보복 운운은 도무지 어불성설이다.

그러면 이것은 정치보복이 아니라고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정치보복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으면’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아무리 정치보복이 아니라고 설명해도 여전히 빠져나간 5분의 1은 정치보복이라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잘 못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이 제시한 이유들 중에 정치보복은 3~4위를 오가는 중요한 이유이다. 정치보복이 아닌데, 그 프레임에 빠지면 안된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 그래도 자꾸만 그 프레임에 발목을 잡힌다.

그 이유가 뭘까. 나는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과 ‘촛불정신’ 이외의 다른 정치동력을 찾아내지 못한 데에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두 가지가 지나간 시대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라면 비어있는 것은 다가오는 시대의 비전에 접근해가는 정치이다. 적폐청산이 새 시대의 비전에 접근해가는 불편부당한 과정임을 설명할 수 있을 때, 누구도 감히 정치보복을 입에 담을 수 없을 것이다. 밀월의 시간은 끝나가고 성적표를 받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비전을 세우는 것도 아직 지지율이 높을 때 가능한 일이다.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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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참으로 난감한 인물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그는 정치적으로 넘어서는 안될 금기의 단어들을 거침없이 내뱉고, 트위터를 통해 정제되지 않은 감정과 비난을 쏟아내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바꾼다. 워싱턴 포스트는 “말 바꾸기의 제왕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기사를 썼고, 뉴욕 타임스는 트럼프가 트위터에서 모욕한 사람들의 명단을 꾸준히 업데이트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거의 400명에 육박한다. 우리 입장에서 난처한 것은 바로 그 예측불허의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열쇠를 쥔 핵심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 알려면 그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알아야 한다.

지난달 6일 오후(현지시간) G20 정상회의 참석차 독일을 공식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주함부르크 미국총영사관 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한·미·일 3국 정상만찬에 앞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하지만 그는 정말로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어떤 정치적인 분석도 잘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이 이해하기 어렵다면 컴퓨터에 그를 이해하라고 주문해보자. 이미 알파고는 이세돌과 커제를 이기지 않았던가. 컴퓨터라면 그를 이해할지도 모른다. 다행히 그는 날마다 트위터에 수많은 말들을 남기고 있다. 하루 평균 다섯 개의 트윗인데, 이것은 충분한 데이터를 제공해준다. 분석방법은 토픽 모델링이라는 기계학습의 일종이다. 컴퓨터가 글을 읽고, 이런 단어들이 이 정도로 분포되어 있다면 이 글의 주제는 무엇이라고 추정하는 방식이다. 예상치 못한 글을 읽었을 때 사람은 경악하지만 컴퓨터는 냉정을 유지한다. 상식을 벗어나거나 일관성을 잃은 글을 읽었을 때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컴퓨터는 사람이 보지 못한 숨은 일관성을 찾아낸다.

자, 이제 분석을 시작해보자. 컴퓨터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들을 읽었더니 거기에는 13개의 소주제들이 있었고, 이것들은 세 개의 대주제로 깔끔하게 묶여 있었다. 대주제1에는 미국 내 고용창출이 중심에 있는데, 이것을 둘러싸고 이슬람 테러리즘 비난, 국경 문제를 둘러싼 멕시코 비난, 북핵 문제를 둘러싼 중국과 북한 비난이 함께 놓여있다. 고용이 왜 외교 이슈들과 같이 묶여 있을까?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고용은 미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도 풀기 어려운 문제이다. 기술 변동으로 가장 많이 일자리를 잃고 고립주의적이고 배타적인 우파로 돌아선 사람들이 바로 트럼프를 당선시켜 준 중하층 백인들이기도 하다. 그들의 일자리를 되돌려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것은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이때 이슬람, 멕시코, 중국, 북한은 일자리를 뺏어가거나 혹은 고용창출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좋은 핑계가 되어준다. 적어도 컴퓨터는 트럼프의 속마음에서 주요 외교 이슈들이 사실은 국내용이라고 읽어낸 셈이다.

대주제2는 민주당과 언론에 대한 비난이다. 특히 언론에 대한 비난이 압도적인데, 원래도 많았지만 러시아 스캔들 이후 폭증하고 있다. 대주제1에는 고용과 외국이라는, 별로 개연성 없는 연결고리가 있었다. 고용이 안 늘어나는게 정말 외국 때문인지, 언론은 이 부분에서 사실관계를 검증하려고 하기 때문에 접근을 허락해서는 안될 집단이다. 그가 언론을 비난할 때 주로 ‘가짜뉴스’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팩트 체크’를 허용하고 싶지 않지만, 이미 팩트 체크 당했다면 그 뉴스가 가짜라는 주장이다.

대주제3은 선거 승리 이후 대국민 감사, “메이크 아메리카 그레이트 어게인” 같은 뻔한 지지자용 메시지들인데, 의외인 것은 아베 일본 총리가 여기에 함께 묶여있다는 점이다. 언제 바뀔지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것으로는 트럼프는 확실히 아베를 좋아한다. 걸핏하면 모욕을 주는 다른 나라 정상들과는 달리, 아베와 골프 친 이야기 같은 것들을 자랑삼아 늘어놓는다. 트럼프에게 아베는 자신을 알아볼 줄 아는 안목을 가진 유일한 외국 정상인 것처럼 보인다.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와 일본의 통화정책에 대한 트럼프의 비난이 얼마나 거센 것이었는지를 기억한다면, 아베에 대한 이러한 특별대우는 놀랍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아베는 트럼프 당선 직후 제일 먼저 트럼프 타워에 달려갔고, 수시로 통화를 하며 그와 친분을 쌓고 그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실제로 일본은 정상 간 친목과 실무자 간 협상이라는 투 트랙 전략을 써왔고 상당 부분 성공했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평가이다. 세계의 비난을 받는 미국 대통령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경우에 따라 굴욕외교로 비칠 수 있음에도 아베는 그것을 했다. 한반도에 전쟁이 운위되고 FTA 재협상이 시동을 거는 시점이다. 적어도 컴퓨터는 트럼프의 외교정책이 상당부분 국내용일 수 있다고 읽어냈다. 아베처럼 정상 간 친목이 될지 아니면 트럼프의 “생큐, 삼성” 트윗처럼 미국 내 일자리 창출 압박을 결국은 들어주는 것이 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는 국내용 선물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외교정책에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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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 없는 전쟁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중단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공론화에 대한 여론전 말이다. 당사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이나 관련 분야 전문가, 정치권,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언론도 매일같이 총력을 기울인 지원사격을 하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이슈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 글에서는 별로 주목받지 못한, 그러나 대단히 중요한 두 가지 이슈를 짚어보려고 한다.

첫째, 애초에 공론화가 왜 필요해졌는지의 문제이다. 이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와 근본적으로 맞닿아 있다. 공론화를 비판하는 측에서는 독일의 사례를 든다. 독일에서 공론화를 거쳐 탈핵 결정에 도달하기까지 25년이 걸렸는데, 한국에서는 3개월 만에 하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비판이다. 맞다. 우리도 차분하게 긴 시간을 가지고 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면 한국은 왜 그렇게 하지 못할까? 독일은 연정과 합의제 민주주의의 긴 전통을 가지고 있어서 ‘에너지 미래’라고 하는 하나의 의제를 25년간 논의하고 합의할 수 있었지만, 한국은 무조건적인 발목잡기와 승자독식의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장 하지 않으면 못한다. 한국 상황에서 긴 시간을 가지고 공론화하자는 것은 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돌려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제1야당 대표가 청와대 영수회담 참석조차 거부하는 상황에서 독일 사례를 들어 공론화를 비판하는 것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뜻일 뿐이다.

공론화는 그 기본 정신에 있어서 숙의 민주주의와 맞닿아 있다. 민주주의는 단순한 표 계산이 아니다. 시민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독립적이고 불편부당한 숙의를 통해 제대로 된 합의에 도달하는 종류의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잘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공론화는 대의제 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고, 한국과 같은 극한대결의 정치에 합의제 민주주의의 요소를 도입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촛불광장의 함성 속에서 제도권 정치와 시민 정치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공론화라는 장치를 통해 일정 부분 시민의 합의된 뜻을 제도권에 반영하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정치적 실험이기도 하다. 여야가 대립할 땐 대립하더라도 한국 민주주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부분에서 힘을 합치고 있다면 공론화를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비판은 민주주의가 나아질 기회를 박탈할 뿐이다. 독일의 탈핵결정을 주도한 원자력 윤리위원회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원자력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열린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해치는 것이다. (중략) (대안을 찾는 것은) 시민들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며, 이것은 시민사회를 강화시킨다.”

둘째, 투명성의 문제이다. 한수원을 비롯한 관련 기관들이 그동안 얼마나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투명하고 공정하게 활동해왔느냐는 질문이다. 원자력에 대한 외국의 공론조사 사례를 보면, 공론화 과정을 거친다고 해서 반드시 원전 선호도가 낮아지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투명성에 대한 요구가 크게 높아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도 공론화 과정을 거쳐 어쩌면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계속하는 것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 경우에도 원자력을 둘러싼 불투명한 먹이사슬의 고리만 제거되더라도 국민의 안전을 도모하고 혈세를 절약하는 효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한수원은 그동안 언론에 보도된 납품비리, 정치권 커넥션, 수뢰 의혹만 하더라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갈 길이 멀고도 멀다. 그럼에도 공론화 국면에서 친원전 보도를 하는 매체에 집중적인 광고비 지원을 했다는 사실이 녹색당의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드러났다. 후쿠시마 사태를 악화시킨 도쿄전력이 정확하게 같은 짓을 했었다.

한국의 에너지 미래와 관련된 활동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 있다. 탈핵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에너지 미래와 관련한 토론회 정도만 한번 하자고 해도 그동안 한수원이나 주변 기관, 산업부 등 관련 부처는 아예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원전 증설로 갈 텐데 뭐하러 토론이니 뭐니 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드냐는 태도로 일관해 온 것이다. 에너지 미래에 대한 논의는 우리의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는 혁신산업이기도 한데, 아예 만지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고 탈핵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니 자신들의 폐쇄적 태도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다. 공론화 과정이 급한 것이 그렇게 문제라면 시간이 자신들 편이었던 보수정권 9년 동안에는 왜 아무런 토론도, 협의도 하지 않았는가. 공론화를 통해 공사 계속이라는 결론이 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투명성만은 획기적으로 높이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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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두고 정부는 공론화위원회를 설치하고 공론조사를 실시하겠다고 한다. 지난 한 주 내내 상당수의 언론은 이 결정을 강력히 비판했다. 비판의 주요 논거 중 하나는 원자력과 같은 고도의 기술적 문제를 전문가가 아닌 시민들에게 맡길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여론조사 하나를 소개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직후인 2011년 5월 일본 아사히신문은 7개국에서 원전 관련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일본, 한국, 독일, 미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이다. 그런데 뜻밖에 사고의 당사국인 일본보다 독일과 한국의 조사결과가 훨씬 눈길을 끌었다. 독일은 원전 안전성에 대해 큰 걱정은 안 하지만 압도적으로 줄이자는 의견이고, 한국은 많이 걱정되지만 그냥 두자는 의견이었다. 알려졌다시피 독일은 그 이후 탈핵결정에 이르렀고, 한국은 일단 신규원전 건설을 중단하는 것을 논의해보자는 단계이다.

2일 장맛비와 안개가 덮인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 원전 주변이 을씨년스럽다. 왼쪽 위는 내년에 준공될 원전 4호기, 오른쪽 골리앗 크레인이 있는 곳은 원전 5·6호기 건설현장, 아래는 5·6호기 부대시설 부지로 철거 중인 서생면 신리 부락이다. 연합뉴스

왜 한국인들은 몹시 걱정스럽지만 그냥 두자고 했을까? 두 가지 원인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비용 걱정이다. 개인적으로는 전기요금 오를까 걱정부터 국가적으로는 원전산업의 경쟁력에 이르기까지. 다른 하나는 낮은 정치효능감이다. 걱정은 되지만 줄이자고 한들 그게 되겠어? 이런 생각 말이다. 비용의 문제는 생각보다 매우 복잡하다. 원자력의 비용을 어떻게 계산하느냐에 따라, 어떤 종류의 신재생에너지냐에 따라, 지역별 특성에 따라, 신재생에너지에 축적된 투자 및 기술 수준에 따라 다르다. 신재생에너지라고 해서 무조건 청정에너지인 것만도 아니고, 안정성에 대한 질문도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처럼 이슈가 많다는 것은 적어도 어느 한쪽이 좋다고 무조건 믿기보다는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분석하고 합의해야 할 여지가 많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원자력이 무조건 싼 것도 아니고 무조건 위험한 것도 아니다. 분석과 합의가 필요하다.

걱정되지만 해봐야 안될 것 같으니 그냥 두자는 것은 우리의 운명을 소수의 정치인과 전문가, 관료와 이익집단의 손에 맡기자는 뜻이 된다. 에너지 공론화에 대한 비판은 이러한 태도를 부추긴다는 면에서 민주주의에 반하는 면이 있다. 기술적 전문성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기술은 사람과 조직이 운용한다. 1984년에 출판된 찰스 페로의 명저 <정상 사고(Normal Accidents)>는 바로 이 부분을 명쾌하게 지적한 책이다. 연구에 따르면 설사 기술은 입증됐다 하더라도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과 조직은 입증되지 않았다. 고도로 복잡한, 그리고 경우에 따라 파국적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기술이 입증되지 않은 사람과 조직에 맡겨졌을 때 사고의 가능성은 상존하며 그런 종류의 사고들은 언젠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에서 ‘정상 사고’라고 부른다. 원전을 재검토하자는 주장이 자칫 수많은 노력의 산물인 원자력 기술을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에 원자력 전문가들이 느낄 수 있는 좌절감은 이해한다. 하지만 기술적 전문성이 인간과 조직의 한계까지 극복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술이 안전하니 원전을 계속 늘려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일종의 월권행위에 해당한다. 기술적 전문성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필요조건에 불과한 전문가주의에만 입각해서 에너지 정책을 결정할 수는 없다. 탄탄한 기술의 토대 위에 민주적 합의가 필요하다.

스탠퍼드대 제임스 피시킨 교수로부터 시작된 공론조사는 일반 여론조사와 달리 배심원단을 대상으로 찬반 양측이 서로의 근거를 제시하고 설득하며 그 과정을 대중과 공유한 끝에 충분한 정보를 가진 상태에서 합의에 도달한다. 기술적 전문성은 이 과정에서 충분히 제시할 수 있다. 잘만 이루어지면 숙의과정을 통해 대의제 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완하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덴마크, 미국, 호주, 그리스 등 여러 나라에서 이미 수십차례 활용해본 경험도 있다. 원자력을 찬성하는 쪽에서도 너무 겁먹을 필요가 없다. 에너지 정책을 둘러싼 공론조사의 외국 사례들을 보면 원자력에 대한 선호도는 별로 줄어들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투명성에 대한 요구와 최종 결정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이 크게 늘어난다. 한국적 상황에서는 꽉 막혀있는 정치체제의 한계를 넘어서는 단기적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최종적으로 원전을 늘리든, 줄이든 에너지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독일의 경험처럼 장기적이고 원활한 협치가 필요한데 여의도의 경색은 적어도 내년 지방선거까지는 그대로 갈 것이다. 사석에서는 야당 의원들도 현재의 정치체제하에서 악역을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협치의 바탕이 되는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공론화의 경험은 민주주의를 고양시키고 국가가 작동하게 해주는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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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6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추경이 발등의 불이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제일 앞자리에 일자리 정책이 있고, 그걸 뒷받침하려는 게 이번 추경이다. 그러나 야당이 호락호락 추경안을 통과시켜 줄 리는 만무하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대선에서 변변히 힘도 써보지 못한 채 패배했지만, 청문회를 계기로 해서 추경에 이르러서는 본격적인 전투를 치르려 할 것이다.

청와대도 급할 수밖에 없다. 오죽했으면 문재인 대통령은 “단 1원의 국가예산이라도 반드시 일자리 만드는 것으로 이어지도록” 하겠다고 약속했고,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현재의 일자리와 소득 양극화 문제를 “재난에 가깝다”고 표현했다. 추경의 법정요건에 맞추기 위함이다.

맞다. 고용과 불평등의 문제는 안보 및 성장과 더불어 정책의 제일 앞자리를 차지해야 하는 절박하고도 시급한 사안이다. 막무가내식 발목 잡기에서 벗어나려면 몇 가지 보완해야 할 점들이 눈에 띈다.

첫째, 추경과 공공부문 일자리는 시급한 단기처방이고, 장기처방을 가시화해야 한다. 물론 이것들이 단기처방이라는 점은 이미 몇 차례에 걸쳐 밝힌 바가 있으나, 종종 이것이 문재인 정부 일자리 정책의 근간인 양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의 공공부문 규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 수준으로 쪼그라들어 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어느 정도 이를 늘려나갈 여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공공부문 일자리는 대체로 혁신과는 무관한 것들이어서 청년보다는 노인에, 성장보다는 분배에, 장기처방보다는 단기처방에 어울린다. 워낙 상황이 시급하니 단기처방을 할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청년, 성장, 장기처방에 어울리는 정책들을 내놓고 야당과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둘째, 장기처방과 관련하여, 청년뿐 아니라 우리 모두는 머지않은 장래에 비정규직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일자리 문제의 핵심에 기술변동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 시안에 삼성전자가 지은 세계 최대의 반도체 공장은 달랑 2800명을 고용했을 뿐이다. 로봇이 모든 일을 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스스로 “세계 최초의 파트타임 경제”라고 선언했다. 기술의 발전속도를 보면 우리 모두가 파트타임으로 일해야 할 날은 그리 머지않았다. 무능한 보수정권 9년 동안 한국의 혁신 생태계는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혁신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모두가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경제에서 어떻게 국민의 인간다운 삶과 행복을 보장하겠는가.

셋째, 혁신과 관련하여, 문제의 근원은 최상위 재벌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으면 한다. 물론 지배구조 문제, 너무 높은 사내 유보금, 일감 몰아주기와 그로 인한 혁신적 중소기업의 도태 등 많은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거 한국 재벌의 문제가 최상위 기업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최근에는 소위 ‘세컨드 티어(second tier)’ 재벌 문제가 그 못지않게 심각하다. 굳이 번역하자면 ‘2류 재벌’이라고 할까. 한때 30대 재벌로 함께 분류되며 나름의 위상을 자랑하던 많은 중견 재벌들이 혁신하지 못한 끝에 2류 재벌이 되어버렸다. 여러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어찌 됐든 지난 10여년간 한국에서 나온 혁신은 대부분 최상위 기업에서 나온 반면, 2류 재벌들은 거의 아무런 혁신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혁신은 없는데 가족경영은 유지해야겠고, 그러면 남는 것은 골목상권 장악과 갑질밖에 없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문제가 됐던 대부분의 골목상권 침해와 갑질 사건은 2류 재벌에서 나왔다. 이들은 은행빚까지 잔뜩 껴안고 있어서 혈세 투입을 각오하지 않고는 퇴출시키기도 어렵다. 최상위 재벌의 문제를 해결하되, 혁신을 살리고 문제가 되는 2류 재벌을 최소의 비용으로 퇴출시키는 묘책이 필요하다.

넷째, 불평등 완화는 단순히 내가 낸 세금을 남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에 달한다고 추정되는 사회갈등비용은 말할 것도 없고, 최근 나오고 있는 연구결과들을 보면 하위계층에 속한 사람들은 연애도, 출산도, 결혼도 모두 훨씬 적게 한다. 낮은 출산율은 납세자의 수를 줄이고, 우리 모두의 세금을 올린다. 지금 청년들을 도와주지 않으면 고령화가 절정에 도달할 20~30년 후 기성세대의 노후를 돌봐줄 중년층이 사라진다. 노인빈곤은 OECD에서 압도적 1위인데,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적절한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한 노인이 혼자 거동할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하는 비율은 2배 이상 늘어난다. 이들은 건강한 노인에 비해 훨씬 많은 세금을 필요로 한다. 그러니 불평등 완화는 우리 모두를 돕는 일이 되었다.

시급한 현안은 산적해 있고 여소야대 지형은 험난하다. 탄탄한 정책구상을 통해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단기처방과 장기처방, 혁신과 지속가능성을 모두 잡는 출발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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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9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예언이 실패할 때>라는 책이 있다. 레온 페스팅거와 두 명의 동료들이 함께 쓴 사회심리학의 고전이다.

미국의 주부였던 마리안 키치는 어느날 자신이 클라리온 행성에서 온 외계인의 명을 받아 그들의 말을 글로 써낸다고 주장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했던 ‘분신사바’ 같은 행위이다. 그는 1954년 12월21일에 지구가 멸망할 것이며, 진정으로 믿는 자만이 외계인의 안내를 받아 살아남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동조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일종의 공동체를 이루었고, 자신들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직장과 학교를 그만두고 재산을 헌납했다. 지구 멸망 직전인 12월20일 밤, 그들은 외계의 방문자를 기다리기 위해 한곳에 모였다. 하지만 자정이 지나고 밤 12시5분이 되었는데도 외계의 방문자는 오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가 집 안에 걸려있던 시계 중 하나가 아직 11시55분을 가리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아직 자정이 지나지 않았다는 데에 합의했다. 10분 후. 모든 시계가 다 자정을 넘겼고 그들은 침묵했다. 새벽 4시45분. 마리안 키치는 또 한 번의 ‘분신사바’를 했고, 그들의 진정한 믿음 덕분에 외계인들이 지구를 멸망시키지 않기로 했다고 알렸다. 키치의 거짓 주장 때문에 직장과 학교와 재산을 잃은 ‘믿는 자들’은 키치에게 분노하기는커녕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선교’하려는 시도를 이어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한국에도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 시작은 박근혜의 열혈지지층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움직일 수 없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대통령이 그런 행위를 했을 리가 없다고 믿었다. 초저녁이었다. 탄핵안이 발의되자 가결될 리가 없다고 믿었다. 자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탄핵안이 가결되자 헌법재판소가 인용할 리 없다고 믿었다. 자신들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생계를 뒤로 미룬 채 헌재 앞으로 모여들었다. 이정미 재판관이 주문을 읽었다.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자정을 넘긴 밤 12시5분이었다. 어떤 이는 탄핵을 무효화할 수 있다고, 또 어떤 이는 태블릿PC가 조작되었다고 주장했다. 아직 11시55분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곧 모든 시계가 자정을 넘겼다. 그들은 침묵했다. 본격적인 대선 국면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여전히 침묵했다. 새벽 4시45분. 한국판 마리안 키치가 나타났다. 그는 또 한 번의 ‘분신사바’를 통해 자정 이전의 세상을 이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침묵하던 ‘믿는 자들’은 ‘선교’를 시작했다.

오늘 밤 우리는 대한민국의 새 대통령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짧게는 박근혜 정권 ‘혼용무도’의 4년을, 길게는 수십년 동안 천천히 진행되어온 국가의 마비 상태를 끝내고 이제야말로 전혀 다른 대한민국을 시작해야 하는 역사적인 날이다. 필자가 여러 기회를 빌려 주장해왔듯이,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 성장률의 지속적 하락, 금방이라도 터질 듯 팽팽한 동북아의 긴장상태를 보면 새 정부 5년이야말로 대한민국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이다. 이번에 못하면 영원히 못한다. 주요 후보만 해도 다섯 명으로 치러진 이번 대선을 통해 국민들은 여러 편의 ‘믿는 자들’로 나뉘었다. 어떤 이들은 광신도가 되었고 어떤 이들은 가벼운 동조자가 되었지만, 정치란 원래 유권자들을 가름으로써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니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선거국면과 선거 이후는 달라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했었던 가장 나쁜 일은 계속해서 국민들을 편가르기 하고 자신들의 광신도를 만들어냄으로써 정권을 유지하려 했다는 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새 정부는 같은 일을 반복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상대편의 ‘믿는 자들’에게 또 다른 ‘분신사바’를 기다리게 하면 다 같이 망한다.

<예언이 실패할 때>의 저자 페스팅거는 두 가지 조언을 한다. 첫째, 법과 원칙의 적용이다. 선교를 이어가던 마리안 키치의 종교집단은 결국 사법당국의 개입이 있은 후에야 그 활동을 중단했다. 새 정부의 과제로는 개혁의 영역이 될 것이다. 그러나 법과 원칙의 적용은 공정하고 완만하며 일관된 것이어야 한다. 한마디로 시스템을 통한 차분하면서도 끈질긴 개혁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둘째, ‘믿는 자들’로 하여금 현실을 인정하는 고통을 줄여주어야 한다. 하나의 정치세력을 오랫동안 지지해온 사람들일수록, 설사 그들이 자신을 배신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커다란 고통을 요구한다. 그들에게 패배라는 현실을 눈앞에 들이대면 그들은 현실을 인정하기보다는 더 열성적으로 선교하며 또 다른 ‘분신사바’를 기다린다. 새 정부의 과제는 ‘통합’의 영역이자 ‘정치’의 영역이 될 것이다. 오늘 밤 만나게 될 대한민국의 새 대통령이 새 정부의 사회심리학을 깊이 숙고하기를 기원한다. 그래야만 그토록 기다려왔던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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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23일자 경향신문 ‘시대의 창’ 지면을 통해 나는 ‘19대 대선이 18대 대선과 다른 이유’라는 칼럼을 게재한 바 있다. 핵심은 촛불정국을 겪으면서 각 정당 지지층이 모두 대거 이탈해 부동층이 전체 유권자의 절반을 넘게 되었으며, 이번 대선은 누가 그들을 설득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지난 대선과는 달리 진영대결이 아니라 국민통합이 화두라는 주장도 덧붙였다. 오늘은 조금 다른 맥락에서 그 이야기를 이어가보려 한다.

흔히 ‘이명박근혜’라고들 말하지만, 박근혜 정부 4년은 이명박 정부 5년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주변의 지식인과 정책전문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심각한 종말론적 위기감을 토로했다. 정권의 단물을 나눠 먹고 있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이념도 세대도 상관없는 위기감이었다. 이명박 정부 때는 그렇지 않았다. 진보와 젊은 세대가 동의하든 안 하든 보수와 기성세대는 나름의 자기 주장을 가지고 있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이념이나 세대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 이대로 가면 정말로 몇 년 안에 나라가 망한다는 위기감이 널리 공유되었다. 이제는 정말로 대결적인 정치가 아니라 합의적인 정치가 필요하고, 5년마다 뒤집히는 정책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책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이었다. 그것도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두 번 다시 기회가 없다는 절박한 깨달음이었다.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도 차기 대선에서 이 깨달음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여러 조직과 실험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진보단체와 합리적 보수단체들이 함께 활동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되었다. 아직까지 대중적 공감이란 과제가 남아있었지만, 적어도 지식인·전문가 사회 내부에서만이라도 보기 드문 합의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시대정신’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졌고, 모든 것은 탄핵과 조기대선 국면으로 빨려들어갔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왼쪽에서 세번째)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호프집에서 안희정 충남지사(오른쪽), 이재명 성남시장(왼쪽에서 두번째), 최성 고양시장(왼쪽) 등 경선 경쟁자들과 건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의 경선 라인업은 꽤 괜찮은 그림이었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지지율 1위로 우뚝 나서고, 합의의 정치를 앞세워 중도보수까지 확장성을 보여준 안희정이 2위, 문재인의 왼쪽에서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어준 이재명이 3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문재인의 ‘정권교체, 적폐청산’ 프레임은 앞서 말한 ‘시대정신’에 비추어보면 아쉬움이 많았지만 경선국면이었으므로 이해할 수도 있었다. 경선 경쟁력과 본선 경쟁력이 늘 거꾸로 가는 민주당의 딜레마가 있고, 안희정이라는 위협적인 경쟁자가 존재하는 상황이었으므로. 그러나 경선이 끝나고 본선이 시작된 지금도 그 프레임이 변함없이 유지되는 것은 곤란하다. 선거공학적으로 불리할 뿐 아니라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박근혜 탄핵과 구속에 대한 변함없이 높은 찬성률이 보여주듯이, 상당수의 보수층 유권자들은 지난 대선에서 자신들이 잘못된 선택을 했음을 이미 인정했다. 동시에 그들은 박근혜 같은 후보가 아닌, ‘괜찮은 보수’ 후보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왔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정 없다면 문재인에게 표를 주거나 기권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탐색이 반기문에서 황교안과 안희정을 거쳐 안철수에게까지 이어졌다.

안희정의 경선탈락 이후 안철수 지지율이 계속 오르더니 지난 주말 사이 다자구도에서도 안철수가 1위를 차지하는 여론조사 결과가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적폐세력의 지지를 받는 후보’라는 프레임은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 적폐 정치인은 버젓이 남아있으나, 적폐 유권자는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지지층의 높은 충성도가 반드시 플러스 요인인지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도 그랬듯이 이번 대선에서도 그들의 높은 충성도는 역으로 확장성을 방해하는 요소를 동시에 가진 양날의 칼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최고 권력을 쥐고도 소수파일 수밖에 없는 이 나라의 정치구조 속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다가 비극을 맞이했다. 안전장치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개도국 대학의 실험실에서 홀로 밤을 새우며 실험에 몰두하다 폭발사고를 당한 과학자처럼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문재인이 철저한 개혁을 다짐하고 또 다짐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때의 교훈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개혁과 통합, 개혁과 미래설계를 분리해야 한다. 개혁은, 설사 저강도라 하더라도, 법과 시스템에 따라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그러나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5년 내내 지속되어야 한다. 저강도의 일관된 개혁이 고강도의 일회성 개혁과 그에 따르는 역풍에 비해 훨씬 효과적이다. 후보는 ‘청산’을 말할 것이 아니라 ‘통합’과 ‘미래’를 말해야 한다. 19대 대선의 화두는 진영 대결이 아니라 국민통합이다. 상대 진영은 이미 파산했고, 안철수 지지자는 청산 대상이 아니다. 19대 대선은 18대 대선과 다르다.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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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한 인터뷰에서 나는 현 정부를 ‘유랑도적단’에 빗댄 바 있다. 유랑도적단이란 경제학자 맨커 올슨이 <권력과 번영>이라는 저서에서 사용한 개념이다. 그는 정치권력과 경제적 번영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어차피 성숙한 민주주의가 아닐 바에는 ‘유랑도적단’보다 차라리 ‘정주도적단’이 낫다고 지적하였다. 정주도적단은 이듬해에도 수탈해야 하기 때문에 씨앗이라도 남기지만, 한 번 털고 떠나는 유랑도적단은 씨앗조차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의 단임제 정부가 1987년에 가졌던 역사적 효용성을 차츰 잃어버린 끝에 이제는 유랑도적단과 같은 대통령 무책임제의 폐해만 남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 이 표현을 빌려 쓰면서 이것은 나의 표현이 아니라 올슨의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대통령에 대한 건강한 풍자조차 금기가 되어버린 현실을 잘 알기에 공연한 말길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지켜보며 나 스스로가 아직도 얼마나 순진하기 짝이 없는지 깨닫게 됐다. 유랑도적단은 비유가 아니라 현실이었던 것이다. 학자들이 비판이랍시고 비유나 하고 있을 때 그들은 권력을 이용해 비판자의 입을 틀어막으며 실제로 나라를 털어먹는 데 골몰하고 있었다는 점이 특검수사를 통해 그리고 헌재 판결을 통해 드러났다. 특검수사가 본궤도에 오른 이후 나는 칼럼을 통해 박근혜를 언급한 적이 한번도 없다. 그는 이제 적어도 대한민국의 공적인 영역에서 영원히 퇴출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연인 박근혜에 대해서는 나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우리가 새로 만들 세상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파면당한 전직 대통령이 사흘 만에 내놓은 메시지를 보며 아직도 나는 세상 물정 깨달으려면 한참 멀었음을 알았다. 그는 퇴출당할 생각도, 자연인으로 돌아갈 생각도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에 대해 말해야 한다.

흔히들 ‘친박(親朴)’이라는 단어를 쓰곤 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 단어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왔다. 친박이 아니라 ‘용박(用朴)’이 맞다. 박근혜와 친한 것이 아니라 박근혜를 이용하는 것이다. 한때 박근혜의 입으로 불렸던 전여옥 전 의원은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그를 떠나며 자신이 겪은 여러 경험과 인물평을 남긴 바 있다.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이니 여기서 반복하지는 않겠다. 거기에는 여러 내용들이 적나라하게 밝혀져 있다. 한때 친박이었던 많은 정치인들은 ‘몰랐다’고 말한다.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대통령이 된 후 변했다’고 말한다. 모두 거짓말일 것이다. 몰랐을 리가 없다. 하다못해 나 같은 백면서생도 알았다. 지난 대선이 있던 2012년 한 해 동안 지면을 통해 발표한 칼럼들을 다시 뒤져 읽어보니 정책과 철학의 빈곤, 맥락은 사라지고 원론만 반복하는 특유의 어법, 정상 상황에서는 한번도 리더십을 발휘한 적이 없고 콘크리트 지지층에 기대어 위기돌파에만 능한 그의 경력, SNS를 통해 대대적으로 펼쳐진 의심스러운 여론조작 정황 등이 마치 본 듯이 적혀있다. 그를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일개 학자 눈에도 뻔히 보이는 것을 곁에서 지켜본 정치인들이 몰랐을 리 없다. 알면서도 그의 상품성을 이용해 권력을 차지한 것이다. 현대사의 굴곡으로 인해 박근혜가 저절로 가지게 된 엄청난 상품성, 결함이 있지만 그것이 잘 드러나지 않게 해주는 폐쇄성, 거기에 옳고 그른 것을 가리지 못하는 철학과 정책의 부재까지. 노회한 정치인들이 앞장세우고 이용하기에는 최선의 조합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친박이 아니라 용박이다.

용박이 그를 이용했다면 그는 국민들을 이용했다. ‘용민(用民)’이다. 박근혜인들 친박이라 불리는 용박이 자신을 이용한다는 것을 왜 몰랐겠는가. 하지만 알면서도 짐짓 이용당해 주는 것이 본인에게 유리하니 기꺼이 이용당했을 것이다. 오늘까지 삼성동 자택 앞을 지키는 지지자들 중 상당수는 빈곤과 전쟁의 상처를 뚫고 솟아오른 대한민국의 도약을 함께했던 사람들이고, 그것을 무한한 자부심의 근거로 삼는 사람들이다. 뒤늦게 이용당했음을 깨닫고 등을 돌린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끝까지 그를 믿어주는 사람들이다. 헌정사상 최초로 파면당함으로써 국격을 떨어뜨리고 사흘의 침묵 끝에 내놓은 메시지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저를 믿고 성원해주신 국민”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했으니 10% 남짓 남은 열성 지지자들을 볼모로 해서 나라야 망하거나 말거나 또다시 진흙탕의 정치싸움을 이어가겠다는 뜻이다. 철저한 ‘용민’이다. 그는 자연인 박근혜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정치인 박근혜로 돌아왔다.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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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지사의 지지율이 무서운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보수 후보들의 지지율이 전혀 오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보수층 유권자들의 표심은 갈 곳을 잃었다. 본인의 애매한 자세에도 불구하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지지율이 높은 편이지만, 막상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을 임명하고 출마할 경우 불어닥칠 후폭풍은 간단치 않을 것이다. 황 대행이 그 후폭풍을 뚫고 당선될 꿈을 꿀 정도로 순진하지는 않다고 본다면, 정치적으로 보이는 그의 행보는 대선보다는 다른 목표를 향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안 지사의 최근 지지율 상승은 갈 길 잃은 보수와 문재인 전 대표에게 불안감을 느끼는 중도층의 지지에 힘입은 바가 크다. 1987년 이후 모든 선거에서 야권을 항상 불리한 출발선에 세웠던 기울어진 운동장이 이번에는 실질적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것은 유의미한 보수 후보가 없기 때문이지, 보수성향 유권자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안정적 진보’의 이미지를 착실하게 선점한 안 지사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혜택을 누리는 최초의 야권 후보가 될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그가 민주당 경선의 문턱을 넘을 가능성은 아직까지 매우 작다. 완전국민경선제와 결선투표제라는 변수가 누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할 경우 분노한 민심은 어느 정도 풀릴 것이고, 대선 판도는 크게 출렁일 것이다. 그러나 3월13일 전후에 후보를 확정하기로 한 민주당 경선 일정을 감안할 때, 세간의 예측대로 3월 초 탄핵인용이 이루어진다면 안 지사는 달라진 대선 판도의 이득을 챙길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 그렇다고 문 전 대표와 더불어 친노의 양대 적자인 그가 민주당을 탈당할 가능성도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본선에서의 높은 외연 확장성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진 가능성이란 결국 경선 이전에 지지율이 문 전 대표와 비슷한 수준으로 오르고 그것이 경선 투표자들의 결정을 바꿔놓는 것과 같은 이변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12일 광주 서구 쌍촌동 5·18민주화운동 학생기념탑에서 참배 후 전시물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까지는 선거공학적인 이야기들이다. 이번에는 우리 민주주의와 정치현실을 직시해보자. 최근 논란이 된 소위 ‘대연정론’ 이야기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화두를 던진 안 지사의 가능성이 매우 작기 때문에 오히려 편하게 말할 수 있다. 소위 ‘헬조선’을 운위하게 만드는 이 나라의 수많은 문제들 중 거의 대부분은 대결적 정치에서 시작됐고 합의제 민주주의의 성격을 강화함으로써 풀 수 있는 것들이다. 참여정부가 애써 마련했던 여러 개혁 ‘로드맵’들,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이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이미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승자독식을 위해 필사적으로 쟁패하는 정치로는 헬조선의 문제를 아무것도 풀 수 없다. 세계적으로 보아도 합의제 민주주의를 가진 나라들이 그렇지 않은 나라들보다 양극화, 실업, 고용률 등 다양한 지표에서 더 나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당장 개헌은 못하더라도 정치의 합의적 요소를 강화하는 것은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현실을 보자. 민주당이 집권한다고 가정할 경우 121석의 여당은 178석을 차지하는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그리고 무소속 의원들을 상대해야 한다. 국회선진화법하에서 법안 통과를 하려면 180석이 넘어야 하니 야당으로부터 적어도 59석의 협조가 필요하다. 국민의당이 호락호락 협조할 리도 없지만 그래봤자 38석이다. 이번 대선에서 후보다운 후보도 내지 못하고 몰락한 자유한국당이지만 여전히 의석은 94석인데, 이들은 대선을 통해 심판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하나부터 열까지 발목을 잡을 것이다. 과거 열린우리당은 2004년 총선에서 탄핵역풍 덕분에 제1당으로 출발했지만 실질적으로 와해되는 데 1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상태로 2020년 총선까지 가야 한다. 그 중간에 2018년 지방선거가 있는데, 이때야말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사활을 건 총력전을 펼칠 것이고 보수 유권자들도 결집할 것이다. 그러니 설사 정권교체가 된다 한들 합의제 성격을 강화하지 않은 채 출범한 다음 정부가 제대로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일본 민주당의 전례를 보면, 진보정권 시즌 2가 실패할 경우 수권능력 제로로 낙인찍혀 두 번 다시 집권이 어렵게 될 수도 있다.

자유한국당도 포함될 수 있는 대연정은 안된다는 주장은 심정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을 배제하기 위해 이처럼 중요한 의제를 논의조차 해보지 않는다는 것은 득보다 실이 너무 크다. 교체와 청산도 중요하지만 미래가 더 중요하다. 정권교체를 이루겠다고 말하지만 경천동지할 이변이 없는 한 정권교체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유능하고 지속가능한 차기 정부를 만드는 논의를 시작부터 걷어차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선거공학과 별도로, 진지하게 연정을 논의해보자.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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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온 국민이 특검 수사에 몰입하고 있던 지난 며칠 사이, 두 개의 섬뜩한 국제뉴스가 있었다. 하나는 트럼프 시대의 개막이다. ‘미국 우선!’의 막무가내식 밀어붙이기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다른 하나는 중국의 일대일로가 그 첫 번째 결실을 보았다는 기사이다. 중국 저장성 이우시에서 출발한 화물열차가 17일간 1만2500㎞를 달려 영국 런던에 도착한 것이다. 중국, 카자흐스탄, 러시아, 벨라루스, 폴란드, 독일, 벨기에, 프랑스를 거쳐 마침내 영국에 도착했다. 트럼프 시대에 예상되는 변화는 언론을 통해 비교적 많이 소개되었으니 여기서는 일대일로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육로와 해로 두 개의 길을 통해 중국과 유라시아, 중동, 아프리카, 유럽을 거쳐 스칸디나비아까지 연결하는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래 최대의 국가사업일 뿐 아니라 2차대전 이후 유럽의 부흥을 가져온 마셜 플랜의 12배 규모이다. 완성되고 나면 전 세계 인구의 65%, 그리고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을 설명하게 될 것이다. 아직도 많은 불확실성이 남아있지만, 옹호론자들은 물론이고 회의론자들조차도 최소한 이 사업에서 구경꾼으로 남아서는 안된다는 것이 일치된 의견이다. 중국에서 출발한 기차가 런던에 도착했다는 것은 일대일로의 첫 길을 열었다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트럼프의 미국이 미국 우선의 고립주의 길을 가는 동안 중국은 유럽으로 뻗어나갈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초유의 거대 프로젝트는 엄청난 자본을 필요로 한다. 인프라 투자에 필요한 돈은 주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서 나온다. AIIB는 일대일로의 돈줄이자 동시에 금융에서 미국 주도의 국제통화기금(IMF)에 맞서는 중국의 전진기지이기도 하다. 미국과 일본을 제외한 57개 주요국이 참여했고, 한국은 미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AIIB에 참여하면서 5번째로 많은 분담금을 냈다. 미국으로서는 단단히 서운할 일이었는데, 그 와중에 전승절 행사까지 참석하면서 화를 돋웠다. 그 후 한·일 간 각종 외교분쟁에서 미국이 일본 편을 드는 느낌을 주었던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규모 분담금의 대가로 받은 부총재직은 4개월 만에 날아가고 그 자리는 국장급으로 강등되었다. 그뿐인가.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갑작스러운 방향선회로 이번에는 중국의 각종 보복조치에 시달리고 있다. 돈은 돈대로 내고 양쪽에서 뺨을 맞고 있는 격이다.

돈도 냈고 뺨도 맞았으니 얻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거대한 물류·문화·정치의 망을 통해 한창 산업화가 진행 중인 고성장 경제에 동승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자리 부족, 양극화, 성장동력 상실, 저출산 등 우리가 겪는 문제들은 모두 탈산업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제조업이 줄어들면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이것이 앞서 나열한 모든 문제들을 일으킨다. 경제성장, 계층이동의 사다리, 낙수효과 같은 기회의 문들은 탈산업화하는 국가가 아니라 산업화하는 국가들에 있다. 중앙아시아, 인도, 중동, 아프리카, 동유럽 등 일대일로를 따라 펼쳐지는 기회에 우리도 동승해야 한다. 일대일로의 대부분 경제활동은 소위 ‘경제회랑’을 통해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6개의 경제회랑이 있는데 한국이 포함되어야 할 동아시아 경제회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에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일대일로와 매우 비슷한 구상에서 출발했다. 돈도 냈고, 뺨도 맞았고, 구상도 같다면 이제야말로 실익을 챙겨야 할 때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한 일은 느닷없는 개성공단 폐쇄로 실익을 챙길 기회를 스스로 막아버린 자해적 정책이었다. 주요 대선주자들이 개성공단 부활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동안 강화된 대북 제재로 인해 이제 와서 되살린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나는 다가오는 대선에서 후보들의 공약은 두 개의 큰 틀 안에서 평가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하나는 코앞에 닥친 인구절벽·소비절벽 앞에서 적어도 20년을 내다본 정책의 장기효과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와는 달라진 미국과 중국의 양대 헤게모니 격돌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성장과 한반도 평화를 얻어낼 것인가라는 글로벌 전략이다. 주요 주자들이 내놓고 있는 공약들에서 이런 큰 틀의 사고는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유엔의 수장을 지낸 후보조차도 아직까지 이런 사고를 선보인 적이 없다. 그들의 준비 부족일 수도 있을 것이고, 아직까지 한국에서 선거에 이기는 데 글로벌 전략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정권교체든, 정치교체든, 시대교체든 좋다. 그러나 그 새롭게 만들어진 세상에서는 우리를 둘러싼 글로벌 환경에서 우리 스스로가 주요 변수가 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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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가 확정되던 날, 인터넷에는 ‘6자회담 가상도’라는 그림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북핵 문제 해결의 가장 합리적 해법이 되어야 할 6자회담의 참석자들을 사진과 함께 올린 것인데, 다 아는 내용이지만 막상 모아놓고 보면 한숨이 나온다. 트럼프, 시진핑, 푸틴, 아베, 김정은, 그리고 박근혜. 시진핑 정도가 예외랄까, 도무지 제정신으로 보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심지어 이 맥락에서는 아베가 몹시 멀쩡해 보인다는 평도 있었으니 말이다. 이들이 모여서 회담을 한다면 북핵 문제의 합리적 해법은 고사하고 당장 3차대전이라도 시작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지경이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세계로 눈을 돌려보면 이건 6자회담 참가국만의 일이 아니다. 히틀러의 고향인 오스트리아는 유럽 최초의 극우 대통령을 뽑기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2차대전 이후 나치의 잔당들이 만든 극우정당인 자유당의 대선후보 노르베르트 호퍼가 작년 4월 대선에서 1위 당선자를 0.6% 차이로 추격했던 것이다. 놀란 가슴을 채 쓸어내리기도 전에 부정투표 논란이 불거졌고 대법원은 재투표를 결정했다. 불과 한 달 전인 작년 12월4일 이루어진 재투표 직전까지 호퍼는 여론조사에서 계속 앞서갔고 당선이 확정적인 것처럼 보였다. 실제 재투표에서 경쟁자인 판 데어 벨렌이 이긴 것은 다행스러운 이변이었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다. 의원내각제인 오스트리아에서 대통령은 명예직에 가깝고 실제 권력은 총리에게 주어진다. 호퍼는 자유당의 진짜 실세인 슈트라헤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것이 중론인데, 현재의 정당 지지율이 유지된다면 2018년 총선에서 슈트라헤는 오스트리아의 총리가 될 것이다.

영국은 이미 브렉시트로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그 결정의 유일한 승자는 유럽연합(EU) 제재에 균열을 내는 데 성공한 러시아뿐이다. 프랑스는 어떤가. 올해 4월로 예정된 대선 가도에서 현재 1위를 달리는 후보는 역시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마리 르펜이다. 그녀는 스스로를 “마담 프렉시트”라고 부른다. 영국에 이어 프랑스도 EU에서 탈퇴하겠다는 뜻이다. 오스트리아의 호퍼가 “오엑시트”를 내세웠던 것은 물론이다.

세계는 오바마를 잃었지만 그래도 아직 메르켈이 있지 않으냐고? 하기야 트럼프 당선 이후 세계가 하도 엉망으로 돌아가니 메르켈이 4선을 고민한다는 보도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작년 9월 지방선거에서 메르켈의 기민당은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에 메르켈 본인의 지역구를 내주어야 했다. 올가을 치러질 총선에서 독일은 극우정당의 연방하원 입성을 허락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마지막 희망은 연대와 관용의 복지선진국 스웨덴일 터. 그런데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신나치주의와 연계된 극우정당 스웨덴 민주당의 지지율이 25%를 넘어서 단연 1위를 차지했다. 불과 5년 전 이 정당의 지지율은 5%였다.

세계가 증오의 정치로 몸살을 앓고 있다. ‘증오로 하나 된 세계’라 해도 손색이 없을 판이다. 유럽에서 퍼지는 증오의 큰 원인은 난민 문제인데, 난민이 거의 유입되지 않는 헝가리 같은 나라도 장벽을 쌓고 있고 몇몇 나라들은 기독교도만 받아들이겠다고 공언했다. 하기야 난민이 아예 없는 필리핀의 두테르테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범죄와의 전쟁이란 미명하에 자국민을 죽임으로써 정치적 정당성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기술의 변화로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글로벌리제이션으로 그나마 있는 일자리는 다른 나라로 옮겨가거나 혹은 이민자들이 뺏어간다는 것이 증오의 정치를 뒷받침하는 논리이다. 실제로는 이민자들이 빼앗아가는 일자리는 미미하거나 혹은 자국민들이 채우지 않는 일자리를 채운다는 연구결과는 부풀려진 증오 앞에 별 힘을 쓰지 못한다. 경험적 연구에 따르면 기존의 사회구성원들이 동질적일수록, 그런 사회에 소수자 집단의 유입속도가 빠를수록 증오는 커지고 거기에 비례해서 극우정당 득표율은 가파르게 상승한다.

한국은 이 조건에 딱 들어맞는다. 그게 왜 그리 중요한지 모르겠지만 수십년간 반복 주입되어온 단일민족 이데올로기는 사회구성원의 동질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한다. 지금은 조선족과 외국인노동자, 그리고 북한이탈 주민에 한정되어 있지만 통일이 가시화되기라도 한다면 소수자 집단의 유입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질 것이다. 증오가 폭발하고 극우정치가 판을 칠 조건이 갖춰지는 셈이다. 일부 학자들은 막스 베버 이후 금과옥조로 여겨지던 이성의 시대는 끝났다고 단언한다. 바야흐로 광기의 시대가 우리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1000만 촛불로 열린 광장의 결실이 대선 결과로만 판단되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광기의 시대에도 온전히 우리를 지킬 수 있는 이성과 관용의 제도화가 그 결실이 되어야 한다.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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