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8일이면 촛불 1주년입니다. 1주년을 맞는 마음이 어떠신지요? 촛불을 들었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래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히 편지를 써 봅니다.

먼저 문재인 대통령께 꼭 드리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꼭 성공한 대통령이 되셔야 합니다. 그러려면 지금 시점에서 세 가지를 꼭 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나를 도와준 사람들은 잊어버리고 국민만 생각하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문 대통령을 만든 1등 공신은 어려울 때를 같이 해 준 측근들도 아니고 지금의 참모들도 아닙니다. 촛불시민들입니다. 누구보다도 이 점을 잘 아실 분이지만, 그동안 있었던 몇몇 인사 실패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이 사실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이벤트보다는 대통령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임에 집중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대통령께서 보여주신 진솔하고 선한 모습 덕분에 지난 9년 동안 말도 안 되는 권력의 행태에 상처 났던 국민들의 마음은 많이 치유됐습니다. 이제는 위기에 처한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일과 정치시스템 개혁에 집중하셨으면 합니다. 특히 대통령께서 공약하신 선거제도 개혁과 국민참여 개헌을 이번에는 이뤄내야 합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위기를 겪었던 이유는 정치시스템에 하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표심을 왜곡시키고, 정치다양성을 억압하며 참정권을 제약하는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합니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개헌도 밀실개헌이 아니라 국민들이 참여하는 최초의 개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대통령께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해 주십시오. 이것만 돼도 역사에 남을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세 번째는, 적폐청산과 함께 개혁 협치를 해야 합니다. 지금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이 추진하는 모든 개혁을 무산시키기 위한 정치기획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일부와의 통합은 그 신호탄이 될 것입니다. 그쪽의 목표는 명확합니다. 국회에서 120석 이상만 확보하면 국회선진화법 체제하에서 모든 개혁입법을 좌초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기획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야당들의 공통관심사인 ‘민심 그대로’ 선거제도 개혁을 매개로 개혁 협치의 틀을 만드는 것입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당이든 야당이든 양심적이고 국가를 생각하는 정치인들께도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개인의 정치적 미래나 내가 속한 당의 정치적 이익이 중요한 때가 아닙니다. 지금 시스템 개혁을 하지 못하면 대한민국 정치는 다시 ‘퇴행의 길’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을 떠나서 시스템을 개혁하기 위해 협력하고, 시민사회와도 손을 잡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촛불을 들었던 동료시민들에게 제안드립니다. 누구에게 기대하는 것과 의존하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는 문 대통령이나 양심적 정치인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모든 개혁은 국회 앞에서 멈춰있습니다. 정치개혁, 재벌개혁, 검찰개혁 모두가 무산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5년 단임제 대통령의 임기는 짧습니다. 임기 후반부에는 개혁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집권 초기 1년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간만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개혁의 첫걸음은 국회를 바꾸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전히 모든 개혁을 가로막고 특권만 누리려는 국회의원들을 그대로 두고 무슨 변화를 바랄 수가 있겠습니까? 지난 11일 뉴스타파는 상당수 국회의원들이 국민세금을 지원받아서 ‘베끼기 정책자료집’을 발간했다는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안상수(인천 중·동·옹진·강화), 홍문표(충남 예산·홍성), 박덕흠(충북 옥천·영동·괴산·보은), 이종배(충북 충주), 이헌승(부산진을) 의원이 1차로 지목됐습니다. 정부부처 보도자료나 타 기관 연구보고서를 통째로 베껴서 정책자료집을 발간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원들이 공직후보자 인사청문회 때는 ‘표절은 도둑질’이라고 호통을 쳤다니 정말 한심한 일입니다. 학생들이 이렇게 보고서를 낸다면 0점을 받을 것이고, 연구자가 이렇게 했다면 학계에서 매장될 것이며, 공직후보자가 이렇게 했다면 사퇴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엉터리로 의정활동을 하고 국민세금을 도둑질해도, 지역구 관리만 잘하면 다음번에도 국회의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일 것입니다. 이런 의원들을 퇴출시키는 것은 주권자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광화문 촛불을 여의도 촛불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제는 정권교체를 넘어서서 정치교체로 가야 합니다. 지금의 낡고 썩은 정치를 바꿔야 앞으로 우리 삶이 편안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11월11일 광화문광장에서 전국의 시민단체들이 모여 정치개혁과 국민주도 개헌을 요구하는 주권자대회를 연다고 합니다. 촛불이 일어났던 광화문에서 모여 주권자들의 의지를 다지고, 그 이후에는 여의도로 가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차가운 바닥에서 촛불을 들지 않아도 되는 나라, 정치가 내 삶을 위기로 몰아넣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통해 내 삶의 문제를 풀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한 번 더 촛불을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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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핀란드는 대한민국과 유사한 면이 많은 나라다. 1917년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선포한 핀란드는 곧바로 좌·우 간의 내전을 치르게 된다. 당시 핀란드 인구가 300만명 정도이던 시절이었는데, 내전의 와중에 3만6000명의 핀란드인이 사망했다. 인구의 1%가 넘는 숫자였다. 전투 중에 죽은 경우뿐만 아니라, 테러와 질병, 포로수용소에서의 굶주림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었다. 비참한 상황이었다. 내전에는 독일, 소련의 외국군대까지 개입했다. 내전의 결과는 우파의 승리였다. 우파는 왕이 있는 군주국을 선호했다. 그러나 우파를 지원했던 독일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핀란드는 공화국의 길을 가게 된다.

그러나 공화국의 권력구조를 둘러싸고도 이견들이 존재했다. 내전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강력한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입장과 그것에 반대하는 입장이 존재했다. 그런 와중에 치러진 1919년 핀란드 총선에서는 특정 정당이 과반수를 차지할 수 없었다. 핀란드가 택하고 있던 비례대표제 선거제도 덕분이었다.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이 배분되는 선거제도인데, 1위를 차지한 정당이 얻었던 득표율은 40% 정도였다. 그래서 여러 정당들이 타협해서 내각을 구성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1919년에는 핀란드 헌법이 만들어졌다. 이 헌법은 양쪽 입장의 타협물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통령제와 의회제가 혼합된 형태를 택했다. 이원집정부제(준대통령제, 분권형 대통령제라고 불린다)가 만들어진 것이다. 대통령이 의회해산권, 군통수권, 총리임명권 등 강력한 권한을 갖지만, 총리 중심의 내각은 의회 주도로 운영되는 모델이었다.

이와 같은 타협안이 만들어지게 된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사람은 1919년 핀란드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카를로 유호 스톨베리’였다. 그는 당시 외국의 헌법과 정치제도를 깊이 연구했던 법학자이자 정치가였다. 그는 우파였지만, 자유주의자였다. 여성참정권을 지지했고, 공화국을 지지했다. 그는 혼합형 정부형태라는 타협안이 성사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다만, 스톨베리는 대통령 직선제를 지지했지만, 이 부분에서는 그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았다. 당시 핀란드는 대통령 간접선거제를 택했고, 1994년에야 대통령 직선제로 바뀐다(결선투표제까지 도입됐다). 스톨베리는 1919년 간접선거를 통해 핀란드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스톨베리는 내전의 후유증에 시달리던 핀란드에서 입헌주의 정치가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1925년 대통령 연임 시도를 하지 않고 물러난다.

그러나 핀란드의 시련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1930년에는 극우파들이 스톨베리 전 대통령을 납치하는 사건을 일으키고, 쿠데타까지 일으키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좌절되었다. 핀란드는 1939년과 1941년 소련과 두차례 전쟁을 치르면서 영토의 15% 정도를 잃고 전쟁배상금까지 물어주는 상황에 내몰리기도 한다. 그러나 핀란드는 내전과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고, 복지국가를 만들어 왔다. 핀란드의 교육은 세계적인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부패가 없는 나라에 속하고, 행복도나 ‘삶의 질’도 높은 편에 속한다. 핀란드가 시련 속에서도 지금의 핀란드를 만들 수 있었던 원인은 정치인들의 높은 책임감 등에도 있지만, 선거제도를 빼놓을 수 없다. 핀란드는 처음부터 국회 구성에서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이 제도는 표심이 그대로 반영되는 의회 구성을 가능하게 했다.

핀란드 국회는 자연스럽게 다당제 국회가 되었다. 좌파, 우파, 중도파 모두 국회에 들어오게 되었다. 어느 한쪽이 마음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숱한 갈등 속에서도 토론과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 수밖에 없었다. 극단적인 주장은 자연스럽게 도태되게 되었다. 이런 국회를 가능하게 한 선거제도야말로 핀란드 민주주의 시스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선거제도 개혁과 개헌이 동시에 논의되고 있다. 국회에서는 정치개혁특위와 개헌특위가 가동 중에 있다. 그러나 국회 내부에서 합의점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의 국회는 생산성이 제로에 가까운 상황이고, 이 난국을 헤쳐 갈 ‘정치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대통령 탄핵 같은 상황을 겪고도 정치시스템을 개혁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다시 퇴행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핀란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100년 가까운 핀란드 공화국의 역사에서 가장 지속성을 갖고 있는 것은 선거제도이다. 오히려 권력구조는 계속 변화해 왔다. 초기에는 내전과 전쟁 같은 상황을 겪으면서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강력한 권한을 가졌다. 그러나 1990년대에 냉전이 종식되고 평화분위기가 만들어지자 핀란드는 헌법을 정비하여 대통령의 권력을 의회로 좀 더 분산시키는 개헌을 했다. 권력구조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대내외적인 여건에 따라 변동가능한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선거제도이다. 민주주의를 한다면서 민심을 반영하는 선거제도를 갖추지 못한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함이다. 그래서 정치시스템 개혁의 입구는 선거제도 개혁일 수밖에 없다. 이것을 이뤄내야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부패를 없애고, 토론이 가능하고 문제해결 능력이 있는 정치를 만들 수 있다. 국회 스스로 하지 못한다면, 주권자들이 나서서라도 이것 하나만은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 그래야 촛불혁명이 완성된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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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문 앞에는 매일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국회 정문 앞은 1인 시위 장소로는 그리 좋지 않다. 지나다니는 행인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굳이 국회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이유는 국회의원들이 피켓 내용을 한 번이라도 보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대개 차량을 타고 경비대원들이 지키는 정문을 통과해버린다. 결국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의 절박한 목소리가 국회의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는 알 수 없다. 이런 풍경을 보면, 대한민국 국회와 시민 간의 거리가 느껴진다. 국회는 시민 옆에 있지 않다. 국회 담장에 둘러싸여 여의도 면적의 8분의 1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자기들끼리 존재할 뿐이다. 그 넓은 땅은 시민들이 평화롭게 의견을 표명하고, 휴식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국회 담장에서 100m 이내는 집회도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국회 정문 앞에서는 기자회견이 열린다. 집회를 못하게 해 놓으니,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기자회견’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언론을 상대로 한 기자회견은 ‘집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찰·검찰이 기자회견을 한 것을 두고 ‘집회’를 했다면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수사·기소를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것이 기자회견이고, 어떤 것이 집회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사법기관 맘대로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법해석이 벌어진다.

이 모든 것은 국회 담장이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국회 담장이 없다면 국회 건물 앞에 가서 1인 시위도 할 수 있고, 지금 국회 정문이 있는 위치에서 집회도 할 수 있다. 국회 안의 넓은 잔디마당에서 시민들이 휴식도 하고 문화행사도 열 수 있을 것이다. 진짜 ‘열린 국회’ ‘국민의 국회’라면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의 여의도 국회 자리로 국회의사당이 옮겨진 것은 1975년의 일이다. 그전까지는 지금의 서울특별시의회 자리에 국회의사당이 있었다. 그때에는 이런 담장이 없었다. 외국의 국회도 대부분 담장이 없다. 국회 건물에 들어갈 때에야 검색도 하겠지만, 국회 건물 바깥은 열려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국회 담장을 철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철거 못할 이유가 없다. 담장 철거는 국회의 특권을 무너뜨리는 상징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20대 국회가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를 표방했지만, 성과는 민망한 수준이다.

국회의원 체포동의안을 72시간 내에 본회의에 자동상정되게 하고, 친·인척을 보좌직원으로 채용할 때 신고의무를 부여했다지만, 너무 당연한 것들이다. 만 40세 미만 국회의원은 민방위 훈련에 참여하도록 법개정을 했다는데, 작년 4월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 중 만 40세 미만인 사람은 3명뿐이었다. 그 외의 ‘특권 내려놓기’는 말만 무성했을 뿐, 실제로 된 게 없다. 정작 시민들의 불만이 높은 문제들은 개선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노동자 평균연봉의 4배에 달하는 국회의원 연봉(2016년 1억4700만원), 인턴 2명을 포함해서 9명에 달하는 개인 보좌진, 81억원에 달하는 특수활동비, 전직 국회의원에게 지급되는 특혜성 연금 문제는 개선된 것이 없다.

국회가 쓰는 예산 관련 정보를 비공개하는 것도 여전하다. 입법 및 정책활동에 쓰라고 지급되는 ‘입법 및 정책개발비’ 지출증빙서류조차 비공개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회는 여전히 특권의식으로 무장된 국회이다. 이런 국회를 바꾸기 위한 첫 단추로 ‘담장 철거’가 반드시 필요하다. 다행히 국회 내에서도 이런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과거에 국회담장 허물기를 제안했었다. 지난 5월 바른정당은 국회담장 허물기를 당론으로 채택했다고 한다. 국회 담장을 허무는 것과 함께 정치개혁, 국회개혁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토론을 국회 안 잔디마당에서 한판 벌여보자. 스웨덴은 각 정당들, 시민단체, 학계, 언론이 참여하는 정치박람회를 매년 열고 있다. 수백개의 부스가 차려지고 수천개의 세미나가 열린다. 이런 토론마당을 국회 안 잔디마당에서 열고, 한국정치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대안들에 대해 토론을 펼쳐보자.

정치개혁, 국회개혁은 보수·진보의 문제도 아니다. 합리적인 토론이 가능한 정치를 만들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국회는 영원히 불신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시민들의 삶에 필요한 정책들이 제대로 토론되지 못하는 국회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제대로 된 국회의원이라면, 한 번쯤은 ‘국회다운 국회’에서 의정활동을 해 보고 싶어야 하는 것 아닌가?

국회에 설치된 정치개혁특위의 논의방식도 바꿔야 한다. 이제는 국회의원들끼리 하는 정치개혁 논의가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하는 정치개혁 논의가 되어야 한다. 민심을 왜곡하고 수많은 사표를 양산하는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 내년 6월로 다가온 지방선거제도는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를 놓고 시민들과 함께 토론해야 한다. 여의도 8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국회는 이런 토론의 광장으로 변신해야 한다.

10월28일로 다가온 촛불 1주년에 국회의 담장이 철거되면 어떨까라는 상상도 해 본다. 한꺼번에 담장을 철거하지 못한다면, 국회 출입을 개방하고 앞서 얘기한 정치개혁박람회를 국회 안마당에서 여는 것으로 시작해도 좋다. 이런 변화도 하지 않겠다면 ‘이제는 국회를 바꿀 때’라는 민심이 터져나올 것이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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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들이 문제다. 충청북도의원 4명이 물난리가 난 지역을 뒤로하고 외유성 해외연수를 떠나서 시민들의 분노를 샀다.

충청북도의원만이 문제는 아니다. 5월 말에는 광주 서구의회 의원들이 여행사의 패키지 여행상품으로 공무 국외연수(해외연수)를 다녀와서 논란이 되었다. 의원들이 일반인과 섞여서 관광지 중심의 일정을 다녀와 놓고, ‘공무 해외연수’라고 한다니 한심한 일이다.

지방의회만이 문제가 아니다. 국회에서는 21일 추경예산을 통과시키는 본회의가 열렸는데, 정족수가 모자라서 1시간 가까이 회의가 지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에서 26명이 본회의에 불참하는 바람에 발생한 일이다. 그 26명 중에는 불가피한 일정이 있었던 사람도 있겠지만, 뚜렷한 이유가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지역구 행사에 참석한 사람도 있다고 하니 한심한 일이다.

새로운 대통령 취임 이후에 첫 번째 추경예산을 통과시키는 일보다 여당 의원들에게 더 중요한 일이 있는가? 추경예산 편성방향이 타당하냐 아니냐를 떠나서 정치인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책무성에 관한 문제이다. 이러니 국회나 지방의회가 신뢰받을 수 없다. 그래서 시민들 중에는 국회나 지방의회가 아예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는 분들도 있다. 심정은 이해가 간다. 의원 숫자를 줄이자는 ‘포퓰리즘 공약’이 나오는 배경도 이런 이유다. 지난 대선에서도 몇몇 후보들이 국회의원 숫자 줄이자는 것을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의회를 없앨 수는 없다. 대의민주주의를 하는 이상 의회는 필요하다. 의원 숫자를 줄이는 것도 답이 아니다. 그것은 ‘더 나쁜 의회’를 만드는 방법이다. 숫자를 줄이면, 특권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300명 국회의원 중 1명이라고 해도 특권의식에 찌들어 있는데, 200명 중에 1명이 되면 목에 힘이 더 들어가기 마련이다. 진짜 국회개혁을 원한다면, ‘특권은 줄이고, 의석은 늘리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우리와 인구가 비슷한 나라들의 국회의원 숫자를 보면 대체로 우리보다 많다. 인구가 6400만명 남짓한 영국의 국회의원 숫자는 650명이다. 인구가 8000만명이 조금 넘는 독일의 국회의원 숫자는 현재 630명이다. OECD 국가 평균을 보면 대략 인구 10만명당 1명의 국회의원을 뽑는다. 그렇게 따지면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숫자 300명은 적은 편이다.

주권자인 시민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지금의 국회예산으로 300명이 아니라 360명의 국회의원을 쓰는 것이 이득이다. 올해 국회예산 5744억원이면 충분히 360명을 쓰고도 남는다. 진짜 제대로 된 국회를 원한다면,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되,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고, 중앙선관위도 지지하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제로 도입하려면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360명으로 의석을 늘리고 비례대표 의석을 100명 이상으로 늘리면,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와 함께 정당의 공천개혁을 병행하면 대한민국 정치는 혁명적으로 바뀔 것이다. 1993년 뉴질랜드도 선거제도 개혁을 하면서 99명의 의원정수를 120명으로 늘렸다. 그렇게 해서 제대로 된 국회를 구성하는 것이 주권자에게는 이득이다.

지금 시민들이 국회의원을 보기 싫어하는 이유는 그들이 누리는 과도한 특권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은 ‘우리가 무슨 특권이 있냐’고 하지만, 누구의 시선으로 보느냐가 중요하다. 예를 들면 국회의원들이 받는 연봉 1억4700만원(2016년 기준)은 장차관급 연봉에 맞춘 액수라고 한다. 그런데 왜 국회의원들이 장차관급 대우를 받아야 하나? 국회의원 연봉이 맞춰야 할 기준은 장차관 연봉이 아니라, 노동자 평균임금이 아닐까? 실제로 스웨덴 같은 유럽 복지국가들의 국회의원은 그 나라 노동자 평균임금보다 조금 더 많은 수준의 연봉을 받는다.

이처럼 국민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지금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모든 것이 문제다. 왜 국회의원들은 개인보좌진 7명에 인턴 2명까지 둘 수 있어야 하나? 물론 열심히 일하는 국회의원은 ‘지금 개인보좌진으로도 너무 바쁘다’고 얘기하지만, 그것 역시 국회의원의 시선일 뿐이다.

지금 국회의원 개인보좌진이 하는 일 중 상당수는 불필요하거나 효과적이지 못한 일들이다. 지역구 관리, 비생산적인 정쟁, 건수 채우기 식의 법안 발의에 드는 에너지 빼고, 어떻게든 언론에 한 번 나기 위해서 몰두하는 에너지를 빼고 나면, 진짜 국가를 위한 정책개발에 쏟는 에너지는 얼마나 될까? 지방의원 해외연수, 국회의원 해외출장도 마찬가지다. 왜 관행적으로 해외연수, 해외출장을 가나? 정말 필요한 것이라면 당연히 가야 하지만, 실상은 예산이 책정되어 있기 때문에 가는 것에 불과하다.

이제는 이런 수준의 국회, 지방의회는 보고 싶지 않다. 그래서 국회, 지방의회의 전면개혁이 필요하다. 개혁을 하려면, ‘특권폐지 시민위원회’ 같은 것을 구성해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들이 스스로 할 가능성이 없기에, 주권자들이 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국회와 지방의회를 구성하는 규칙인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다양한 정당들이 정책으로 경쟁하도록 만들고, 특권과 부패에 찌든 정당·정치인들을 퇴출시키는 방법은 선거제도 개혁뿐이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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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시가 시작한 청년배당 정책이 2년째를 맞고 있다. 성남시는 2016년에 분기당 12만5000원의 청년배당을 만 24세 청년들에게 지급하기 시작했다. 올해는 분기당 25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기본소득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청년배당은 지역상품권 형태로 지급되기 때문에, 지역경제에도 보탬이 된다.

청년배당을 지급받으려면 3년 이상 성남시에 거주해야 한다는 조건만 충족하면 된다. 그 이외에 다른 조건은 없다. 그래서 성남시에 거주하는 청년 1만1000명 정도가 청년배당을 지급받는다. 1년에 들어가는 예산은 100억원 정도이다. 이 청년배당 정책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해왔다. 왜 ‘조건 없이 돈을 지급하느냐’는 반론도 많았다. 그리고 찬성하는 입장에서도, ‘1년에 100만원으로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까’라는 의문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2016년 녹색전환연구소와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가 청년배당을 지급받는 성남시 청년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청년들이 느끼는 것은 다르다. ‘청년배당이 생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습니까?’라는 질문에 40.3%가 ‘매우 그렇다’라고 응답했고, 55.0%가 ‘어느 정도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청년들 중 95.3%가 1년에 50만원, 100만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청년들에게는 돈이 부족한 것이다.

조사결과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한 청년의 얘기였다. 그 청년의 얘기를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돈이 없어서 취업을 하려 함 → 취업하는 데에 어느 정도 스펙이 필요 → 스펙을 위해 공부를 해야 함 → 공부할 돈이 없음 → 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함 → 돈은 버는 데 공부할 시간을 빼앗김. 악순환.”

이 얘기를 읽으면서 깊이 공감했다. 미래를 준비하려 해도 돈이 필요한데, 기성세대는 돈을 지급하기보다는 ‘요즘 청년들은 열정이 부족하다’는 꼰대질을 해 왔던 것이 아닐까?

청년들 중에는 ‘기성세대가 청년을 바라보는 시선이 가장 두렵다’는 얘기를 한 청년도 있었다. ‘젊을 때에는 고생해야 한다’ ‘우리 때는 얼마나 고생했는데 배부른 소리한다’는 시선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청년세대야말로 ‘경제적 시민권’을 박탈당한 세대이다. 말로만 시민일 뿐, 시민으로 살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나 기회는 부족하기 짝이 없다. 그나마 찾을 수 있는 일자리도 저임금·불안정 노동밖에 없는 청년들이 많다. 이런 청년들에게 ‘열정’을 강요하는 것이 정당한 일일까? 자립해서 살아가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어 놓고, ‘자립하라’는 강요를 하는 것도 모순이다.

진정한 자립은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 속에서만 가능하다. 청년들이 일찍 자립하는 나라는 청년들에게 ‘비빌 언덕’을 마련해주는 나라이다. 청년들에게 지급되는 각종 수당과 혜택들이 잘 갖춰진 나라일수록 청년들의 자립이 쉽다는 것은 검증된 사실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어떤가? 아스팔트 깔고 쓸데없는 건물 짓는 데 들어가는 돈만 줄여도, 그리고 새고 있는 세금만 제대로 걷어도 청년들에게 몇 년간이라도 청년배당을 지급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만약 청년이 되었을 때에 일정 기간 동안 청년배당을 받을 수 있다면, 청소년들의 삶도 달라질 것이다. 덜 불안하고, 좀 더 여유 있게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청년들이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성남시의 청년배당을 받은 청년들은 배려와 존중을 받은 느낌이라고 한다. 말로만 ‘시민’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시민으로 대우를 받은 느낌인 것이다. 그래야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정치적 시민권’도 문제이다. 대한민국의 상당수 청년들은 참정권조차 박탈당한 상황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만 19세 선거권 연령을 규정하고 있고, 지방의원이라도 출마하려면 만 25세가 되어야 한다. 그나마 만 25세가 넘어서 피선거권을 획득하더라도 승자독식의 선거제도 때문에 청년들이 국회나 지방의회에 진출할 수도 없다. 비례대표가 ‘장식품’에 불과한 지역구 중심의 선거제도 때문이다. 청년들이 기득권 정당에 들어가 당선가능한 지역구에서 공천을 받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국회에서는 2030세대가 1%, 지방의회에서도 2~3%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래서 청년배당과 함께,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참정권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논의의 판은 열렸다. 지난 15일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국회 내에 정치개혁특위를 구성하기로 잠정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정치개혁특위에서 논의될 핵심 쟁점은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이지만, 청년들의 참정권 확대도 중요한 의제로 다뤄져야 한다. 높은 선거권·피선거권 연령을 낮추는 것은 물론이고, 청년들의 정치참여를 가로막는 다양한 장벽들을 제거해야 한다.

청년들이 직접 청년배당과 참정권 확대를 요구하는 것도 필요하다. 물론 더 나이 많은 세대들도 함께해야 한다. 이 두 가지만 실현되더라도, 팍팍하게 살아가는 많은 청년들의 삶에 숨통이 트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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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5·18기념식에서 열사 4명의 이름을 불렀다.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고 군사정권의 억압에 맞서 목숨을 던졌던 이들이다.

다가오는 6월10일에도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 있다. 1987년 1월1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당해 목숨을 잃었던 박종철, 6월9일 최루탄에 쓰러져 목숨을 잃은 이한열. 그리고 6월18일 부산 범천동 고가도로에서 시위 중에 최루탄을 맞고 추락해 숨진 ‘이태춘’이라는 이름도 기억해야 한다. 그해 여름 거리에 섰던 수많은 시민들도 잊을 수 없다. 그중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있었다. 그는 6월항쟁 당시 30만명이 참여하는 부산시위를 이끌었던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 부산본부’ 상임집행위원장이었다.

30년 전 최루탄 속에서 발표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의 결의문은 “동장에서부터 대통령까지 국민들의 손으로 뽑게 될 수 있을 때에도 소중한 국민주권을 신성하게 행사할 것임을 온 국민의 이름으로 결의한다”로 끝맺고 있다.

제37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기념식이 18일 오전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거행된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그렇다. 대통령을 직선으로 뽑으면 민주주의가 진전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군사정권의 일원이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87년 12월 대선에서 당선되었고, 10년의 민주정부 후에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을 거쳤다. 그러나 1987년의 결의는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작년 가을부터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은 ‘우리가 국가의 주권자’임을 보여주었고,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다. 개혁의 길은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은 바꿨지만, 국민들의 신뢰를 잃은 국회는 전혀 바뀌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국회만 바뀌지 않은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의 기득권 구조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를 거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한 듯하다. 세월호 참사 당시 순직한 기간제 교사의 순직 인정부터 시작해서 대통령 권한으로 우선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있다. 청와대 특수활동비 53억원을 줄이겠다고 선언한 것도 그 일환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노력은 명백한 한계가 있다. 결국 법률을 바꾸고 예산을 통과시키려면 국회를 거쳐야 한다. 재벌개혁, 검찰개혁, 조세·예산개혁을 하려고 해도 국회를 거쳐야 한다. 개헌을 내년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에 부치려고 해도, 국회가 국민들의 의견을 잘 수렴해서 ‘좋은 개헌안’을 만들어야 한다. 개헌과 연결된 문제인 선거제도개혁도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국회가 이런 일들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오히려 대한민국 국회는 온갖 적폐의 온상이 되어 버린 듯하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특수활동비’도 1차적으로 개혁해야 할 곳은 국회다. 국회 스스로가 연간 81억원이 넘는 특수활동비를 사용하다보니 행정부의 특수활동비 사용을 감시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국회 특수활동비는 의장단, 원내대표단, 상임위원장단의 쌈짓돈처럼 쓰이고 있다고 한다. 어디에 쓰는지도 공개되지 않는다.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는 여당 원내대표 시절에 특수활동비를 받아 생활비로 썼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특수활동비만이 문제가 아니다. 국회는 업무추진비, 예비금, 의장단 및 정보위원회 해외출장비의 사용내역을 공개하지 않아서 지난 4월30일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국회의원 1인당 연간 4500만원까지 쓸 수 있는 ‘입법 및 정책개발비’의 지출증빙서류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가의 일에 집중해야 할 국회의원들은 지역구 관리에 매달리고 있다. 지방의원인지, 국회의원인지 분간이 안된다. 그런 와중에 특권만 챙긴다. 연봉이 1억4700만원이 넘고, 개인보좌진 숫자도 독일 국회의원의 2배 수준이다. 정당은 ‘세금 먹는 하마’일 뿐 제 역할을 못한다. 정책기능이 부실해서 선거 때마다 캠프 중심으로 정책이 급조된다.

정당의 가장 중요한 일인 ‘공천’도 엉망이다. 지금대로면 내년 6월로 예정된 지방선거에서 또다시 국회의원, 당협위원장이 공천권을 휘두르는 반민주적인 일이 벌어질 것이다. 최소한 당원들이 후보자를 선출해야 정당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아닌가? 독일처럼 당원들이 뽑지 않은 후보는 후보등록을 거부하도록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

국회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권고한 개혁도 하지 않고 있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기득권을 지키려고 개혁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15년 2월과 2016년 8월, 두 차례에 걸쳐서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만 18세 선거권 연령, 유권자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규제 개선 등을 국회에 권고한 바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공정한 선거제도를 도입하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국회에서는 제대로 된 논의조차 안되고 있다. 이런 제도개혁 논의를 하려면 국회 내에 정치개혁특위부터 구성해야 하지만, 국회는 이런 일을 미루고 있다.

그래서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맞는 마음이 기쁘지만은 않다. 적폐 덩어리인 국회를 개혁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의 진전은 불가능하다. 그 어떤 개혁도 좌초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범국민적인 ‘정치판갈이’ 운동이 필요하다. 선거제도개혁, 국회개혁, 정당개혁을 이뤄내야 한다. 1987년에 이루지 못했던 개혁이지만, 이제는 해야 한다. 국회다운 국회를 만들지 못하면, 나라다운 나라는 불가능하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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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1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5·9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감개무량한 일이다. ‘내년 2월까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집권했다면?’이라는 상상을 해보면 정말 아찔하다. 지금까지 드러난 부패와 국정농단이 그때까지 지속되었다면 대한민국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갔을 수 있다. 그래서 5월9일은 4·19, 6·10과 함께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켜낸 또 다른 기념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5월9일에 잊지 말아야 할 것들도 있다.

첫째, 탄핵과 조기 대선을 함께 이뤄낸 동료 시민들 중 상당수가 투표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 19세로 정해진 선거권 연령 때문이다. 작년 10월 이후 청소년들은 촛불시민혁명의 주역이었다. 광장에서 발언하고 함께 촛불을 들었다. 그런데 투표는 하지 못한다. 최소한 만 18세부터라도 투표를 할 수 있도록 선거권 연령을 낮췄어야 했지만, 국회에서는 그것조차 통과되지 못했다. 그래서 지난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한 청년들도 생일이 5월9일 이전이 아니면 투표권이 없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오스트리아, 스코틀랜드 같은 나라는 만 16세로 선거권을 낮췄고, 이웃 일본조차도 만 18세로 선거권을 낮췄는데 대한민국이 여전히 만 19세라는 것은 정말 국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그래서 청소년 단체들이 모의투표 사이트(www.18vote.net)를 만들고 투표운동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만 19세가 안된 시민들의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표권 문제도 있다. 당장 5월9일에도 근무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공직선거법 제6조의2에 따르면, 노동자가 사전투표기간과 선거일 모두 근무하는 경우 투표에 필요한 시간을 고용주에게 청구할 수 있고, 고용주는 이를 보장해 줘야 한다. 위반하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법조항도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설사 안다고 해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고용주에게 이런 요구를 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선거일을 법정유급휴일로 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어야 한다. 그리고 당장 5월9일로 다가온 대선에서 투표의사가 있는 노동자들은 모두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철저하게 감독해야 한다.

둘째, 우리 삶이 바뀌려면 대통령 교체를 넘어서서 ‘정치시스템 교체’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탄핵되었지만 비인간적인 사회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광화문에는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그래서 대선 이후가 중요하다. 특히 5월9일부터 한두달 정도의 기간이 촛불시민혁명이 더 진전할 수 있을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시간이 될 것이다. 이 시간 동안 시민들은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람이 ‘영웅’처럼 뭔가를 해결해 주겠지 하고 기대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사실 새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람은 당선 직후부터 최악의 환경에 둘러싸일 가능성이 높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국회는 여소야대 상황이 될 것이다. 총리와 장관 인선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고, 사드 등 현안을 푸는 데 매달리다 보면 시간은 훌쩍 지나가버릴 것이다.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정책들도 국회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아무것도 안되는 상황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새로운 대통령에게만 기대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핵심은 국회다. 국회를 바꾸지 않고서는 촛불시민혁명은 진전할 수 없다. 개혁을 위한 입법도, 우리 삶을 위한 정책예산도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5·9 대선 이후에는 ‘대통령도 바꿨으니 국회도 바꾸자’는 목소리를 함께 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는 광화문 광장에 모인 촛불이 여의도로 이동할 때가 되었다.

국회 개혁은 단지 국회의 잘못된 행태를 비판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된다. 국회 개혁의 핵심은 국회를 구성하는 규칙을 바꾸는 것이다. 바로 선거제도 개혁이 정치 특권계급화되고 있는 국회를 개혁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이번에 유력 대선후보들도 약속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정당득표율대로 국회의석을 배분하는 제도) 도입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래야 공정하게 민심을 반영하는 국회 구성이 될 수 있고, 다양한 정당이 정책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국회를 만들 수 있다. 물론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과도한 특권을 폐지하고, 지역구 예산 나눠먹기 등 국회의 잘못된 행태를 타파하는 것도 필요하다.

마침 6·10 민주항쟁 30주년이 다가오고 있다. 6·10 때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지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국회를 포함한 전체 정치시스템을 바꾸지 못했던 탓이 크다. 이번 6·10 항쟁 30주년에는 국회를 바꾸고 잘못된 정치시스템을 바꾸자는 데 전국의 시민사회가 함께 목소리를 냈으면 한다.

지방자치 개혁도 필요하다. 지금 지방자치에 부패, 예산낭비 등 온갖 적폐들이 쌓이고, ‘내 삶에 도움이 되는 지방자치’가 되지 못하는 것은 지방선거제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한국의 지방선거는 특정정당의 1당 지배체제, 거대정당의 정치독과점 구조를 만들었다. 여성과 청년들, 소수자와 약자들은 지역정치에서도 소외되고 있다. 풀뿌리민주주의가 아니라 풀뿌리 기득권주의가 고착되고 있다. 그래서 내년 6월로 다가온 지방선거 전에 선거제도의 전면 개혁이 필요하다. 물론 지방선거제도를 바꾸려 해도 국회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모든 것을 만든 곳이 국회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5월10일 아침을 국회 앞에서 1인시위하는 것으로 시작하려고 한다. 30년 만에 온 기회를 또다시 ‘미완의 시민혁명’으로 끝내지 않겠다는 다짐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하기 위해서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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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31일 오후 1시. 3년 가까운 긴 기다림 끝에 세월호가 목포신항으로 들어왔다. 이렇게 인양할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을 지체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나고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이 이런데, 미수습자 가족들, 유가족들의 마음은 어떨까? 이미 너무 늦었지만, 하루빨리 미수습자들을 찾고, 참사의 진상이 철저하게 규명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하늘에 있는 영령들에게 최소한의 예를 갖출 수 있을 것이다.

그날 새벽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들어온 날과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된 날이 같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방해해 왔다. 또한 세월호 참사 당일 자신의 행적에 대해 숱한 의혹이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무언가를 감추려 해 왔다. 박 전 대통령이 그토록 감추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것은 앞으로의 숙제이다.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청와대에 있는 기록물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박 전 대통령의 기록물을 분류해서 국가기록원에 이관하는 것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이관을 하면서 박 전 대통령 기록물들에 대해 최소 15~30년짜리 보호기간을 지정하려 한다. 그렇게 되면, 세월호 참사는 물론이고 개성공단 폐쇄,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 등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웠던 사건들의 진상을 밝히기가 상당히 어려워진다.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 이상 찬성, 고등법원장의 영장 등 아주 엄격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관련 기록물들을 15~30년 동안 열람도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 대행의 이런 행위는 위헌이다. 법적 근거가 없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현행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는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임기를 만료했을 경우를 전제로 이관 및 보호기간 지정 절차를 규정해 놓았다. 대통령이 탄핵되었을 경우에 대한 법조항은 전혀 없다. ‘입법의 공백’이 있는 것이다.

이런 ‘입법의 공백’은 해석으로 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국회에서 신속하게 법을 보완해야 한다. 그런데 황 대행은 행정자치부 자문변호사 3명의 의견서가 근거라며, 이관과 보호기간 지정을 강행할 태세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국회는 이 문제에 대해 입법적 조치를 취했어야 하지만, 손을 놓고 있다. 당연히 박 전 대통령의 기록물은 동결조치하고, 독립적 주체가 이관절차를 관리하고 보호기간 지정도 해야 한다. 그리고 각종 의혹의 진상규명을 위해 필요한 정보는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공개되어야 한다. 이 당연한 일들이 가능하도록 입법을 하는 것이 국회의 역할 아닌가?

보다 못해서 녹색당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이번주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예정이다. ‘황 대행의 법적 근거 없는 기록물 이관과 보호기간 지정은 위헌’임을 주장하는 헌법소원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국가라면, 국회가 이 문제를 입법으로 풀었어야 한다.

이 문제뿐만 아니라 숱한 적폐청산과 개혁과제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재벌개혁, 검찰개혁 입법은 물 건너갔다. 청년 63만여명이 5월9일 대선에서 투표할 수 있는지가 걸려있었던 만 18세 선거권 연령 입법도 물 건너갔다. 뭐 하나도 분명하게 진행되는 것이 없다. 국회는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정당들과 정치인들은 말만 무성하게 쏟아낼 뿐 아무런 문제 해결을 못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책임이 크지만, 야당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 야당 원내대표들이 ‘1월에 하겠다’, ‘2월에 하겠다’, ‘3월에 하겠다’고 약속했던 개혁입법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책임정치’는 완전히 실종된 상황이다.

5월9일 대선에서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된들, 이런 상황이 나아질 수 있을 것인가? 벌써부터 정치권 주변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되는 게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것이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이뤄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이 답답함을 느끼는 이유이다. 대통령 한 사람 바꾸자고 촛불을 든 것이 아니라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국회를 바꿔야 한다.

지금 국회는 힘이 없는 척하지만, 힘이 없는 게 아니다. 국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권력’을 아주 나쁘게 행사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국민의 위임을 배신하고, 기득권에 봉사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재벌, 검찰 등 온갖 기득권세력은 유지된다. 국회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가계부채, 청년부채, 낮은 최저임금, 미세먼지, 농민들과 영세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개선되지 않는다. 지금 국회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시민들의 삶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국회개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대통령 탄핵과 구속 이후에는, 국회를 해산하는 수준으로 개혁을 해야 한다. 그 핵심은 국회가 끝내 하지 않으려는, 선거제도개혁이고, 국회개혁, 정당개혁이다. 이것을 이뤄내야만 촛불 시민혁명은 완성될 수 있다.

그것이 가족을 잃어버린 비통함 속에서도 기약없이 3년을 기다려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없는 국가, 특권계급화된 소수가 모든 것을 사유화하지 못하는 국가를 만드는 길이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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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결정이 임박했다. 8명의 헌법재판관들에게 대한민국의 운명이 맡겨진 느낌이다. 헌법재판관들의 평소 성향이 어떻든 간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인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 보더라도 탄핵은 열 번 인용되어도 지나치지 않다. 국회 소추위원단이 최종변론에서 얘기한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을 광범위하게, 그리고 중대하게 위반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서,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시스템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된다. ‘왜 탄핵 여부에 대한 결정을 헌법재판소에 맡길 수밖에 없는라?’라는 것이다. 대통령을 국민들이 뽑았다면, 파면시킬지 여부도 국민들이 결정하는 것이 원칙일 것이다. 오스트리아 헌법의 경우에는, 연방 하원에서 대통령을 해임시키자는 발의안이 통과되면, 해임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도록 되어 있다.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국민들이 탄핵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리에 맞지 않을까? 국민들 대다수가 탄핵을 원하는데도, 탄핵 여부에 대한 판단이 8명의 법률실무가들에게 맡겨지는 시스템은 문제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변론이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등 8명의 재판관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불출석한 박 대통령은 대리인단 이동흡 변호사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

이처럼 대한민국의 정치시스템에는 생각해봐야 할 점들이 많다. ‘민주주의’라는 말을 쓴다고 해서 다 똑같은 민주주의 국가는 아니다. 대한민국은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이다. 정치시스템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다. 특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좋은 선거제도’와 ‘보완장치로서의 직접민주주의 제도’가 모두 없는 나라이다.

그래서 탄핵이 이뤄진다면, 그 이후에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정치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와 관련된 ‘사이비 논의’가 많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국회 일부에서 나오는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논의이다. 국회에 설치된 개헌특위 소위원회에서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에 동의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이들의 주장은 국회의원 다수의 지지를 받는 총리 중심의 내각이 많은 권한을 가지게 하고, 대통령은 매우 축소된 권한을 갖게 하자는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 때문에 이런 상황이 생겼으니, 국회로 권력을 가져오자’는 얘기이다.

그러나 이 얘기는 거의 ‘기만’에 가까운 얘기이다. 오스트리아가 갖고 있는 정치시스템 전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보고 싶은 아주 일부분만을 가지고 얘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의 권력구조에서 총리 중심의 내각이 많은 권한을 행사하고, 대통령은 평상시에 명목상의 지위만 갖는 것은 사실이다. 헌법상으로는 대통령이 의회해산권, 총리 및 장관 임명권 등 무시 못할 권한을 갖고 있지만, 평상시에는 스스로 권한행사를 자제하는 정치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정치시스템에는 이런 측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오스트리아는 매우 공정하면서도 민주적인 선거제도를 갖고 있는 국가이다. 오스트리아의 연방하원 의원 선거는 비례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정당이 얻은 득표율에 비례하여 하원 의석이 배분되게 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대로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통령을 뽑을 때에도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얻는 사람이 없으면, 1등과 2등 후보를 골라서 결선투표를 한다. 이런 선거제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는 다양한 정당들이 정책으로 경쟁하며 합의점을 만들어나가는 정치구조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국회에서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한다는 국회의원들 중에 상당수는 오스트리아의 선거제도에 대해서는 언급 자체를 회피하고 있다. 한 국가의 정치체제를 얘기하면서 자기 입맛에 맞는 부분만 취사선택해서 얘기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실 지금의 지역구 중심 소선거구제를 유지한 채로,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고 총리 중심으로 권력구조를 개편한다면, 그것은 오스트리아식이 아니라 영국식이 될 수밖에 없다. 영국의 총리는 ‘선출된 독재자’라고 불릴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이다. 그 이유는 영국의 선거제도가 지역구에서 1등 하면 당선되는 소선거구제 중심이고, 그것을 통해 거대정당이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회 과반수 정당의 지지를 등에 업은 총리는 대통령 못지않은 권력을 가질 수 있다. 일본의 아베 총리도 그런 사례이다. 그래서 정치시스템을 논의할 때에도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오스트리아는 선거제도만 좋은 것이 아니라 직접민주주의 제도도 채택하고 있는 국가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통령을 파면할지도 국민들이 직접 결정한다. 10만명이 서명하면 국회에 안건을 제출할 수 있는 국민발안 제도도 도입되어 있다. 원전 폐쇄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쳐 원전 폐쇄를 결정했을 정도로 국민들의 직접 참여를 중시하는 국가이다. 인구가 900만명도 안되지만, 연방제를 실시할 정도로 지방분권이 잘되어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만약 오스트리아의 정치시스템을 배우겠다면, 이런 모든 면을 배우길 바란다. 그리고 국회의원들끼리 하는 개헌논의는 중단하고 폭넓은 공론장을 열기를 바란다. 최근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국민의당 원내대표들이 모여 자신들만의 단일 개헌안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는데, 그런 시도는 안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 식의 정략적이고 졸속적인 개헌은 결코 국민들의 동의를 받을 수 없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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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는 천막들이 들어서 있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복직, 용산참사 진상규명,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원전과 송전탑 건설 반대를 외치던 사람들이 친 천막들이었다. 이 천막들을 친 사람들은 정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밀려나고 쫓겨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이 천막농성이었다.

대통령 선거가 임박하면서 천막 안에서도 대선에 대한 얘기들이 떠돌아다녔다. 정권교체가 된들 크게 달라지겠느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래도 정권교체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들도 많았다. 그래서 박근혜 후보에게 밀리던 문재인 후보가 막판에 역전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박근혜 당선이었다. 정권교체 실패로 인한 후폭풍은 천막들로 밀려 왔다. 천막이 불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고, 결국 천막은 철거되었다. 더 이상 천막을 칠 수 없도록 중구청이 천막 자리에 화단을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복직을 요구하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박근혜 당선자의 인수위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려다, 깔개와 비닐마저도 빼앗긴 채 엄동설한을 뜬눈으로 새워야 했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의 길도 멀어졌다. 강정 해군기지 공사와 경남 밀양의 송전탑 공사가 강행됐고,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구속되고 벌금을 맞았다. 경남 밀양에서는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던 농민 한 분이 농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벌어졌다.

정권교체를 외치던 정치인들은 실패의 헛헛함을 따뜻한 방안에서 달랬을지 모르지만,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맨몸으로 폭력을 견뎌야 했다. 그리고 4년여가 흘렀다.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들어맞는 것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박근혜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되어 있고, 아마도 한달 후면 대통령직을 상실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또다시 대선이 눈앞으로 다가와 있다.

이번에도 야당 후보들은 ‘정권교체’를 외친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얼마나 절박한지 모르겠다. 그들은 정권교체에 실패한들 ‘더 큰 권력을 누릴 기회’를 잃을 뿐이지만, 촛불을 들고 나온 시민들은 희망을 잃게 된다. 지금까지 풍찬노숙을 해 온 이들의 거친 삶은 기한 없이 연장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정권교체도 그들에게만 맡겨 놓을 수는 없다. 정권교체가 된다고 해도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바꿔야 할 것투성이다. 억울함이 흘러넘치고, 불평등과 불공정함, 불합리함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다음 정권은 적폐도 청산해야 하고, 개혁도 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시간이 흘러가면 개혁이 어려워진다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개혁의 골든타임은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되고 6개월 정도일 것이다. 그 기간 내에 가시적인 개혁 성과를 내지 못하면, 곧 지방선거가 다가온다. 지방선거는 1년 남짓한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의 무대가 될 것이고, 그 선거 이후에는 죽도 밥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시민들도 막연하나마 이런 걱정들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추운 겨울에도 절박하게 매주 촛불을 들고 있다. 이 절박함을 대선후보나 국회의원들이 정말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 촛불시민들도 이제는 전략이 필요하다.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바꿔야 할 목록을 뽑아보면 100개가 아니라 200개는 넘을 것이다. 그 모든 개혁들을 해야 하지만, 개혁은 과제를 나열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개혁의 첫 단추는 정치개혁이고, 그 핵심은 선거제도 개혁일 수밖에 없다. 지금의 정치구조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는 개혁과제 하나하나가 암초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개혁을 위해서는 결국 입법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재선을 위해서는 지역구 관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국회의원들로 채워져 있는 국회에서, 재벌개혁, 검찰개혁에 정치생명을 걸고 매달릴 국회의원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대통령 탄핵소추 결의가 통과된 지 2달이 되어 가지만, 개혁입법 하나 통과 못 시키고 있는 국회의 꼴을 보면 탄식이 나오는 상황이다.

그래서 지혜가 필요하다. 가장 우선은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선거제도를 바꿔서 정당이 책임 있게 정치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개혁에 소극적인 정당은 그다음 선거에서 반드시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개혁과제들이 국회의 핵심 화두가 될 수 있다.

방법은 이미 나와 있다. 2015년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안한 대로 선거법을 바꾸면 된다. 정당이 얻은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해법이다. 이렇게 해야 정당들이 정책을 중심으로 정치를 하게 되고, 책임정치가 실현될 수 있다.

요즘 여러 지역에서 토론의 자리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다양한 목소리들 속에서 공통적인 것은 ‘그들에게 맡겨놔서 될 일은 없다’는 것이다. 결국 탄핵이 이뤄지고 대통령이 바뀌더라도 개혁의 동력은 촛불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촛불의 힘으로 선거제도 개혁부터 시작해서 숱한 개혁과제들을 밀어붙여야 한다. 아마도 대선 후에는 국회를 포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에 개혁하지 못하면 언제 또 기회가 올지 알 수 없기에, 최선을 다해보는 수밖에 없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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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경남 창원에서 열린 촛불집회 연단에 24세 청년이 올라왔다. 유튜브를 통해 본 영상에서, 그는 20세에 취직해 4년째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 전기공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세금 떼고 나면 손에 쥐는 월급이 120만원인데, 방세와 교통비, 식비, 공과금을 내고 나면 저축을 할 돈이 남지 않는다고 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만, 지금의 월급으로는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궁금해서 촛불집회에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퇴진 이후에 자기 삶이 나아질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고 했다. 1987년에도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고, 그다음에 노동자들이 대투쟁을 해서 임금도 오르고 삶이 나아졌다고 알고 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건지 궁금하다고 했다. 이 청년노동자의 소망처럼, 이번 촛불은 우리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유튜브에 떠 있는 자유발언 영상들을 보면, 이런 희망 섞인 기대들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반면 하루하루 밝혀지는 대한민국의 민낯은 참담하기만 하다. 소설가로 알려진 대학교수가 ‘정유라’에게 학점을 주기 위해 부정행위를 서슴지 않았다는 뉴스가 나온다. 국회에서는 태연하게 ‘최순실을 몰랐다’고 잡아떼던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사실은 최순실·정유라에게 수백억원을 지원하라고 직접 지시했다는 뉴스도 나온다. 힘과 돈을 가진 이들이 나라를 이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런 나라를 바로잡겠다고 알바비 7만원을 포기하고 왕복교통비까지 들여서 촛불집회에 나왔다는 청소년이 있는 게 이 나라의 기막힌 현실이다.

(출처: 경향신문DB)

그래서 이번에는 ‘박근혜’라는 한 사람이 물러나는 것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쌓여 있는 이 나라의 적폐를 청산하는 것과 함께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것이 없지는 않다. 많이 훼손되어 왔지만, 소중한 대한민국만의 유산도 있다. 일본의 식민지가 된 조국을 떠나,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독립운동가들이 꿈꿨던 나라의 모습이 여러 문서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 문서들을 보면, 대한민국의 참된 헌법정신, 건국정신을 찾아볼 수 있다.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은 ‘고르게 인간답게 사는 민주공화국’이다. 무슨 근거로 이런 얘기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1941년 11월2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공포했던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 문서에서 독립운동가들은 ‘삼균주의(三均主義)’를 표방하고 있다. 조소앙이 이론적 기반을 세웠던 삼균주의는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을 의미한다. 보통선거를 통해 정치의 균등을, 토지 국유를 통해 경제의 균등을, 무상교육을 통해 교육의 균등을 도모하고, 불평등을 해소한다는 것이었다. 독립운동가들이 꿈꿨던 나라는 이런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런 내용은 1948년 제헌헌법에도 반영된다. 제헌헌법은 이승만 세력, 한민당 등 우파로 분류되는 집단들도 참여해서 만들어졌지만, ‘대한민국 건국강령’의 연장선상에서 ‘만민균등주의’를 기본정신으로 택했다. 그래서 ‘모든 영역에서 사람들의 기회를 균등히 한다’는 것이 헌법 전문에 담겨 있다. 헌법 제정 과정에서 많은 역할을 했던 법학자 유진오는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정신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의 조화를 꾀하는 데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제헌헌법이 만민균등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좀 더 구체적으로 규정한 내용도 있다. 대표적으로 노동자에게 이익균점권을 보장했다. 사기업의 근로자가 기업의 이익 분배에 참여할 수 있다는 이익균점권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그만큼 제헌헌법을 만들 당시에는 만민균등주의에 대한 공감대가 존재했던 것이다. 만약 이런 정신만 실현되고 있다면, 24세 청년노동자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낫지 않았을까?제헌헌법은 토지 자체를 국유로 하지는 않았지만, 광물 등 지하자원은 국유로 한다고 규정했고, 운수·체신·금융·보험·전기·수도·가스 등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한다는 규정도 두었다. 농민이 농지를 가질 수 있도록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을 정했고, 이 조항을 근거로 이승만 정권도 농지개혁을 단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이후의 과정은 끊임없는 헌법정신의 훼손이었다. 노동자 이익균점권은 5·16쿠데타 이후인 1962년 삭제되었다. 공공성 있는 기업을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한다는 조항은 그보다 앞선 1954년 삭제되었다.

물론 지금 이런 조항을 단순히 부활시키자는 얘기를 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조항을 두었던 헌법의 기본정신을 복원하자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독립운동가들이, 그리고 제헌헌법이 꿈꿨던 나라는 ‘고르게 인간답게 사는 나라’였던 것이 분명하다. ‘헬조선’은 헌법정신과는 정반대의 결과이다.

그래서 박근혜 퇴진은 정경유착과 특권·기득권 구조의 퇴진이 되어야 하고, 제헌헌법의 정신을 부활시키는 강력한 개혁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선거제도 개혁, 재벌 개혁, 검찰 개혁, 관료기득권 개혁, 중앙집권적 국가구조의 개혁이 필요하다. 일하는 사람에게는 정당한 대가가 보장되고, 누구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비빌 언덕’이 권리로 보장되어야 한다. 이런 나라를 이제는 만들어야 한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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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 시민혁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혁명은 체제(시스템)의 교체를 의미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결의안이 통과되었지만, 아직 탄핵이 된 것도 아니고 박근혜·최순실을 만든 시스템도 여전히 그대로다. 그래서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너무 빠르다. 아직은 혁명이 아니다.

물론 탄핵소추가 성사된 것은 시민의 승리이다. 그러나 지금의 승리는 견고하지 못하다.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시스템의 교체는커녕 정권교체도 이루지 못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1987년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87년 6월 100만명이 거리에서 최루탄과 맞서서 ‘독재타도 민주쟁취’를 외쳤다. 그러나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이겠다는 6·29선언이 나온 후에 상황이 급반전했다.

여당과 야당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8인회의’라는 것을 구성하고, 그 안에서 헌법개정안을 만들었다. 거리에 나왔던 시민들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헌법개정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했지만, 그해 12월 치러진 대선의 승리자는 군사정권의 한 축이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었다. 야당은 지리멸렬했고, 시민들이 만들어준 기회마저도 발로 차 버렸다.

10일 서울 청운.효자동사무소 앞에 모인 제 7차 촛불 문화제 참가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구속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며 하늘로 폭죽을 쏘아올리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시위를 주도하던 세력의 한계도 있었다. 당시 민주화운동의 주류는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는 것에 집중했지만, 사실 그것만으로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 체제를 만들 수 없었다. 더구나 대통령 직선제를 주장하면서도, ‘결선투표제’처럼 당연히 필요한 제도를 논의하지도 못한 것은 결과적으로 큰 실책이 되었다. 대통령제를 택한 많은 국가들이 이미 도입하고 있었던 결선투표제만 됐더라도, 1987년 12월 대선에서 득표율 36.6%를 얻은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1987년 당시에는 국회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에 관한 논의도 없었다. 1970~1980년대에 민주화가 되었던 스페인, 포르투갈과 중남미의 많은 국가들은 정당득표율대로 국회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국회의원 선거제도로 택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논의 자체가 없었다. 결국 지역구 소선거구 선거제도를 택한 결과 국회는 지역주의 정당, 기득권 정당들이 채우게 되었다. 이들은 필요하면 정계개편과 이합집산을 거듭했다. 이것은 정치에 대한 환멸과 냉소를 불러일으켰다. 결국 87년 6월 민주항쟁은 ‘미완의 시민혁명’으로 끝났다.

지금의 상황은 1987년의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 박 대통령은 물러나게 될 것이지만, 그러나 집권세력 교체와 시스템 개혁의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

벌써부터 정치권은 다음번 대통령을 누가 차지할 것인지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야당의 대선후보들은 자기중심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을 뿐, 집권세력 교체와 시스템 개혁의 전망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탄핵에 찬성함으로써 ‘박근혜 꼬리 끊기’를 한 새누리당 세력들은 재결집을 시도할 것이다. ‘개헌’을 매개로 한 정계개편의 불씨도 살아있다. 자칫 죽 쒀서 남 줄 상황이다.

따라서 이번 촛불이 또 다른 미완의 시민혁명이 되지 않으려면, 시민들이 긴장을 놓지 않아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특검의 수사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리가 신속하면서도 철저하게 진행되도록 하고, 황교안 국무총리 대행체제가 또 다른 국정농단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앞으로 우리가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얘기다. 이번에 촛불을 들고나온 시민들의 공통된 마음은 ‘이게 나라냐’는 것이었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지금부터는 부패하고 낡은 국가 시스템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지에 관한 얘기가 곳곳에서 토론될 필요가 있다.

국가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서는 핵심을 잘 잡아야 하고 순서도 잘 세워야 한다. 시스템 개혁의 입구는 선거제도의 개혁이다. 그래야 정치판을 바꾸고, 내 삶에 도움이 되는 정치가 이뤄질 수 있다. 민주주의 역사를 볼 때, 정치판을 바꾸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선거제도 개혁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권고하고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만 19세로 되어 있는 투표권 연령을 만 18세로 낮추는 것이 그 시작이 될 것이다.

한편 시스템의 개혁 과정에서 기득권 구조의 청산을 반드시 해야 한다. 재벌개혁, 검찰개혁, 행정·사법개혁이 필요하다. 개혁을 위해서는 시민들의 직접·참여민주주의를 도입하고 확대해야 한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국민소환제도, 국민발안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중앙으로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는 지방분권도 시스템 개혁의 핵심이다.

한편 개헌논의도 국회에서 할 일이 아니다. 국회 중심의 개헌논의는 결국 대선을 염두에 둔 정략적인 논의가 될 수밖에 없다. 이번 개헌은 역사상 최초로 시민들이 참여하고 시민들이 주도하는 개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 국회는 가만히 있으라. 국회에서 해야 할 일은 개헌의 내용을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참여 개헌절차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추첨으로 뽑힌 시민들이 개헌의 내용에 대해 토론하고, 온·오프라인으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최근 이런 방식으로 개헌을 추진한 아일랜드, 아이슬란드의 사례도 있다.

이번에는 여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미완의 시민혁명이 아니라, 부패한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만드는 시민혁명이 될 수 있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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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날 뜻이 없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그러나 검찰이 수사한 결과만 보더라도 박 대통령은 제3자 뇌물죄 등을 저지르고, 국정을 파탄으로 이끈 몸통이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스스로 물러나지 않겠다면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물러나게 해야 한다. 이것은 특별검사가 진행해야 할 수사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원내 야당이 해야 할 몫과 광장의 촛불이 해야 할 몫도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그래야 박 대통령이 ‘국정복귀’ 운운하는 행태를 막을 수 있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를 지킬 수 있다. 원내 야당은 탄핵 절차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처럼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계속되어서는 안된다. 야 3당 대표들이 모여서 범국민 서명운동을 결의했다고 하는데, 자기 역할을 못 찾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국회 내에 있는 야당들이 해야 할 일은 서명운동이 아니라, 어떻게든 탄핵을 성사시킬 길을 찾는 것이다. 탄핵이 눈앞으로 다가와야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를 해도 할 것이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도 탄핵이 현실화될 것 같으니까 사퇴했다.

탄핵 절차로 갔을 때 우려되는 것은 네 가지이다. 첫번째는, 국회 내에서 탄핵 소추 의결에 필요한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 찬성을 얻을 수 있느냐다. 그러나 이것을 두고 좌고우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야당이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미 새누리당 안에서도 탄핵 얘기가 나왔다. 이들이 탄핵에 동의하도록 설득과 압박을 병행해야 한다. 뇌물죄를 저지른 대통령을 탄핵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가 누구든 퇴출명단에 올릴 준비가 국민들은 돼 있다.

두번째는,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이다. 그러나 이 문제 역시 고민해봐야 소용없다. 만약 헌법재판관들이 탄핵 소추를 기각한다면 헌재가 문을 닫게 될 것이다. 국민들의 여론이 그렇다. 따라서 아무리 보수적인 헌법재판관들이라고 하더라도 법리적으로든, 상식적으로든 탄핵을 결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탄핵 심판에 걸리는 기간도 최대한 단축하도록 여론의 압력을 가해야 한다.

세번째는, 국회가 탄핵 소추 결의를 하게 되면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야당들은 진작에 총리 문제를 풀었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것 때문에 망설여서는 안된다. 만약 황 총리가 대통령 탄핵 소추 결의 이후에도 박 대통령을 비호하거나 국정을 농단하려 할 경우에는 황 총리까지 탄핵시켜야 한다.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 소추 의결은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이면 가능하다. 역사를 보면, 권력서열 3위자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한 사례도 있다. 과거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던 때에도 권력서열 3위인 외교장관 허정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했었다.

네번째, 헌재소장과 헌법재판관 1명의 임기가 내년 1월, 3월에 각각 끝나는 문제가 있다. 헌법재판관 9명 중 최소 6명 이상이 찬성해야 탄핵이 가능한데, 임기가 끝나는 헌법재판관 자리가 새로 충원되지 않으면 그만큼 가결이 어려워진다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뇌물수수를 한 대통령을 탄핵하지 않고 버틸 헌법재판관이 있을까?

그래서 지금은 야당들이 하루속히 결단을 내려 탄핵 절차를 밟아야 하고, 탄핵을 성사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야당이 해야 할 몫은 바로 이것이다.

물론 탄핵 절차가 시작된다고 해서 시민들은 촛불을 놓아서는 안된다. 국회나 헌재에만 맡겨놓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앞으로는 퇴진과 함께 우리가 꿈꾸는 나라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물러나는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 때문이다. 12일에 이어 19일에도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이제 헌법 제1조가 제대로 실현되는 민주공화국을 염원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담고 있는 의미는 매우 강력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문구는 다른 국가의 헌법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헌법 제1조는 입법권이 의회에 있다는 것으로 시작되고, 일본헌법 제1조는 천황 얘기부터 시작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만들어진 ‘대한민국 임시헌장’과 ‘대한민국 임시헌법’에 뿌리를 두고, 제헌헌법으로 이어진 문구이다. 이 두 문장이야말로 민주주의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응축된 문구이다.

그래서 시민들의 촛불은 헌법 제1조를 실현하는 운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제도를 손보는 것이 우선이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꾸는 것이 정답이다. 민주주의가 잘되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 선거제도를 택하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키고 시민들의 직접참여를 보장하며, 지방의 자치권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개헌을 해야 한다. 이렇게 대한민국이라는 집의 구조를 뜯어고쳐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삶이 행복하고 편안할 수 있다.

이 일은 결국 주권자인 시민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기득권을 가진 정치인들에게 이 일을 맡겨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촛불은 ‘헌법 제1조 운동’으로 계속 타올라야 한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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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되어 있다. 1948년 헌법이 제정될 때부터 이 조항은 있었다. 그러나 1968년에 태어난 나는 과연 민주공화국에서 살고 있었나? 최근 최순실·박근혜의 민주주의 유린 사태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자가 집권하고 있었다. 20살이 될 때까지 나는 자유의 공기를 맡지 못했다. 대학 1학년 때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났고, 그 결과 변화가 일어날 것 같았다.

그러나 1987년 12월 전두환의 친구였던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당시 노태우의 득표율은 36.6%에 불과했다. 그런데 100%의 권력을 차지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었다. 당시 야당과 민주화운동 세력은 대통령 직선제를 주장해서 관철시켰지만, 대통령 결선투표제는 주장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이후에 김영삼이 집권했고,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면서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민주주의가 조금씩 자리를 잡는 듯했다.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면서 민주주의가 후퇴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기본은 지키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에 불과했다.

큰 흐름으로 보면 1987년 이후에 한국의 기득권 세력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해졌다. 재벌개혁을 얘기했지만, 재벌의 힘은 더 커졌다. 언론개혁을 얘기했지만, 기득권을 가진 언론의 힘은 더 커졌다. 행정개혁과 사법개혁을 얘기했지만, 철옹성 같은 행정관료, 사법관료들의 힘은 줄어들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는 통치의 대상이었고, 국가의 주인은 아니었다. 그 와중에서 우리 삶은 더욱 나빠졌다.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예전에는 없었던 ‘비정규직’과 ‘정리해고’라는 단어가 일상용어가 되었다. 부와 지위의 세습 현상이 심해졌고, 어떤 부모 밑에 태어났느냐에 따라 ‘수저’를 가르는 ‘수저론’이 등장했다.

급기야 어느 날 ‘최순실’이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최소한 국민이 선출한 사람이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원칙마저 무너졌다. 국민들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예산을 주물렀고, 인사에 개입했으며, 불법모금을 했고, 국가적인 정책 결정에까지 개입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한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 미국의 닉슨 대통령보다 100배는 무거운 잘못을 저질렀다. 국민들이 자신에게 위임한 권력을 엉뚱한 사람들이 행사할 수 있게 한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 법적 책임과는 별개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이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이런 사태를 알고 있었을(몰랐다면 더 문제이다) 황교안 국무총리도 물러나야 한다. 내각 총사퇴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대통령을 자기 당의 후보로 내세웠고, 지난 3년7개월 동안 대통령의 눈치만 보고 있었던 새누리당도 사죄하고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상황을 수습하는 수순은 이래야 한다. 먼저 야당과 시민사회가 시국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연석회의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 연석회의에서 중립총리·거국내각 구성도 논의해야 한다. 새누리당이 제안하는 거국중립내각은 진정한 의미의 거국중립내각일 수 없다. 야당과 시민사회가 논의의 주도권을 쥐고 황교안 총리와 장관들의 사퇴를 끌어내고 내각을 구성해야 진정한 의미의 거국중립내각이 된다. 새누리당은 무조건 여기에 협조해야 할 것이다.

중립총리·거국내각을 제대로 세운 후에는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범죄행위에 대한 수사와는 별개로 국정을 농락한 부분에 대해 거국내각 차원의 진상조사가 필요하다. 그 결과에 따라 대통령 사임과 조기 대선 실시가 불가피할 수 있다. 현행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사임하면 60일 내에 대선을 치르게 되어 있다. 그러나 중립총리와 거국내각이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조기 대선을 실시해도 큰 혼란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누가 물러나는 것으로 끝낼 상황이 아니다. 이런 일을 겪고도, 비민주적인 정치시스템을 뜯어고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제2의 박근혜, 제2의 최순실이 나올 수 없는 정치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연석회의는 거국내각 구성 등의 현안뿐만 아니라 정치개혁도 논의해야 한다. 논의해야 할 정치개혁 과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대부분의 정치 선진국이 택하고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꿔야 한다. 민주주의가 잘되고 부패가 없으면서 높은 행복도를 보이는 국가들은 대부분 정당 득표율에 따라 국회 의석이 배분되는 선거제도를 갖고 있다. 또한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존재하는 이상, 결선투표제도 도입해야 한다.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제도를 바로잡는 것은 민주공화국으로 가는 전제조건이다.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헌법 개정이다. 지금처럼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고, 중앙정부에 권한이 집중되어 있는 체제로는 헌법 1조 1항의 민주공화국을 만들 수 없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토론 과정을 거쳐 보다 민주적이고 분권화된 체제를 만들어가야 한다.

정리하면, ‘중립총리·거국내각 구성 → 조기 대선 → 선거법 개정 → 헌법 개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제2의 민주화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물론 권력을 가진 쪽에서는 저항할 것이다. 거대야당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그럴수록 민주공화국에서 살고 싶은 시민들의 행동이 필요하다.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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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현 총리인 ‘저스틴 트뤼도’ 같은 사람이 한국에도 필요하다. 그의 젊은 나이나 잘생긴 외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과감한 정치개혁 의지를 얘기하는 것이다. 트뤼도는 아버지가 총리를 지낸 ‘금수저’ 출신이지만, ‘부자증세’를 내걸고 2015년 캐나다 총선에서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그가 속한 자유당은 39.5%를 득표했지만, 캐나다의 소선거구제 선거방식 덕분에 54%의 의석을 차지했다. 캐나다의 선거제도는 비례대표가 전혀 없고, 100% 지역구 선거로 국회의원을 뽑는 방식이다. ‘단순다수 소선거구제’ 방식이어서 득표율에 관계없이 1등을 하면 무조건 당선된다. 이런 선거제도 덕분에 트뤼도는 39% 득표로 과반수를 차지해 100%의 권력을 획득했다.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 . AP연합뉴스

그런데 트뤼도는 이런 캐나다의 선거제도를 전면 개혁하겠다는 것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는 캐나다의 선거제도에서는 40% 정도만 득표하더라도 과반수 의석을 차지할 수 있는데, 이것은 나머지 60% 유권자들의 의사가 무시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그는 정당이 얻은 득표율에 따라 의석이 배분되는 선거제도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2019년에 치르는 다음 총선 전까지 캐나다의 선거제도를 뜯어고치겠다는 것이 트뤼도의 공약이었다. 실제로 트뤼도는 선거제도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그래서 캐나다 정치판이 들썩이고 있다. 보수당은 현행 선거제도를 선호하기 때문에, 트뤼도의 개혁시도를 좌절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트뤼도는 선거제도 개혁을 담당할 장관을 임명하고, 올해 12월1일까지 선거제도 개혁안을 마련하도록 했다. 담당 장관은 캐나다 전역을 돌면서 시민들과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현행 선거제도의 최대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캐나다 녹색당도 트뤼도의 개혁시도에 힘을 싣고 있다. 1983년 창당한 캐나다 녹색당은 잘못된 선거제도 때문에 고전을 하다가, 2011년이 되어서야 단 1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켰다. 그 유일한 국회의원인 엘리자베스 메이 캐나다 녹색당 대표는 최근 “이것은 여성들이 투표권을 획득한 이후에 가장 중요한 민주적 개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캐나다의 시민사회도 트뤼도에게 힘을 보태고 있다. ‘공정한 투표, 캐나다’ 같은 시민단체들은 이 기회에 독일, 뉴질랜드와 같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바꾸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특히 1993년 소선거구제 선거제도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꿨던 뉴질랜드의 경험이 이들에게 좋은 참고가 되고 있다.

트뤼도는 장관 임명에서도 파격을 보였다. 30명의 장관 중에서 여성을 15명으로 했다. 장관 중에는 장애인, 성소수자, 시크교도, 원주민, 난민 출신도 포함됐다. 트뤼도는 이렇게 내각을 구성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2015년이니까”라고 단순명쾌하게 대답했다.

비민주적 선거제도를 갖고 있는 또 다른 국가들인 대한민국, 미국, 일본에서는 정치시스템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조용하다.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로 유명한 미국은 거대 양당 소속이 아닌 후보들에게 TV토론 참여 기회마저도 주지 않는다. 대통령을 뽑는 대의원을 1명이라도 더 확보한 쪽이 모든 권력을 획득한다. 이번 대선에서도 40%대의 득표를 한 대통령이 100% 권력을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절반이 넘는 유권자들의 의사는 완전히 무시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일본과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비슷하다. 지역구에서 다수의 국회의원을 뽑고, 일부 비례대표를 덧붙이는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택하고 있다.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사이비 비례대표제’라고 할 수 있다. 소선거구제와 다를 바 없다.

2014년 일본 중의원 총선에서 아베 총리의 연립여당(자민당-공명당)은 46%가 조금 넘는 정당득표율을 얻었지만 68%가 넘는 의석을 차지했다. 일본의 잘못된 선거제도 덕분이다. 그 결과 아베 총리는 원전을 재가동하고, 독단적인 국정운영을 계속하고 있다. 절반이 넘는 일본 유권자들은 아베 총리를 지지하지 않았는데,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대한민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 4·13 총선의 결과로 ‘여소야대’가 형성된 것은 유권자들이 만들어준 예외적 결과이다. 한국에서도 40% 안팎의 득표율로 국회 과반수를 차지한 적이 많았다.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42.8%의 득표율로 300석 중 152석을 차지했다. 2008년 총선에서는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37.5%의 득표율로 153석을 차지했다. 2004년 총선에서는 열린우리당이 38.3%의 득표율로 152석을 차지했었다.

이런 시스템은 명백하게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단지 국회의석의 분포만 왜곡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정당득표율에 따라 국회의석이 배분되는 나라일수록 유권자들의 의견이 정부의 정책에 잘 반영된다. 평등의 가치가 더 잘 실현되고, 기후변화 같은 생태위기에 대한 대처도 더 적극적이다. 이것은 검증된 사실이다. 그래서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야말로 우리 삶의 문제를 푸는 길이기도 하다.

대선 때가 되면 모든 대선후보들이 ‘정치개혁’을 얘기한다. 그러나 기존의 잘못된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겠다는 의지 정도는 있어야 ‘정치개혁’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국가를 운영하겠다는 대선후보라면, 트뤼도 정도의 과감한 의지는 있어야 할 것이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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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의 정치인들을 분류한다면, ‘반인권’, ‘비겁’, ‘용기’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성소수자 인권에 관한 얘기다. 세계적으로는 성소수자의 인권을 옹호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동성결혼 또는 그에 준하는 시민결합(civil union)을 인정한 국가의 숫자가 35개국을 넘어서고 있다. 이른바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은 대부분 인정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경우 동성결혼 법제화는커녕 차별금지법 제정조차도 막혀 있다.

바로 ‘혐오’와 ‘비겁’의 정치 때문이다. 김무성, 박영선 같은 유력 정치인들은 지난 4·13 총선 당시 성소수자에 대해 노골적인 혐오발언을 해서 물의를 일으켰다. 혐오발언을 하지 않더라도 비겁하기 짝이 없는 행태를 보인 정치인들도 많았다. 19대 국회에서는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던 국회의원들이 법안발의를 스스로 철회하는 일까지 있었다. 이런 식의 정치로 인해 성소수자들의 인권은 더욱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한 국가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정치인이라면, 이런 인권이슈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뉴스를 검색해보면,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인물들 대부분은 성소수자 인권문제나 동성결혼 같은 이슈에 대해 발언하지 않는다. 이런 침묵은 비겁함의 표현일 뿐이다.

그나마 이 문제와 관련해서 발언한 적이 있는 사람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반 사무총장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와 동성결혼 법제화를 지지하는 발언을 해왔다. 그러나 정작 지난 5월 국내에 들어왔을 때 그는 이 문제에 대해 발언을 하지 않았다. 침묵은 곧 비겁함으로 해석될 수 있다. 더구나 그를 대권후보로 영입하겠다는 쪽은 ‘반인권’으로 분류되는 정치인들이 많은 집단이다. 그가 대권에 눈이 멀어 ‘비겁’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해 6월 28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 이준헌 기자

가장 많은 논란에 휩싸여 있는 사람은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그는 양쪽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한쪽에서는 퀴어퍼레이드 때 서울광장을 사용하게 해 줬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고 있고, 인권단체로부터는 2014년 시민들이 참여해서 만든 서울시민인권헌장 공포를 포기한 것 때문에 비판을 받는다. 인권변호사였다는 정치인이 이런 문제로 갈팡질팡하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명확하게 인권의 편에 서는 것이 정치적 입지를 위해서도 바람직할 것이다.

그래서 대권을 꿈꾼다는 분들에게 영화 한 편을 권하고자 한다. 바로 <로렐>이다. <로렐>은 비겁한 정치에 맞서 평등을 이끌어낸 사람들의 얘기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로렐>의 주인공은 미국 뉴저지주 오션카운티의 여성경찰관 ‘로렐’과 그의 동성파트너 ‘스테이시’이다. 서로 사랑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이들의 일상은 로렐이 말기암 판정을 받으면서 깨진다.

23년 동안 경찰관으로 일했던 로렐은 자신의 동성파트너가 자신의 연금을 승계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지방의회에 청원한다. 그래야만 대출로 장만한 집에서 파트너가 계속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렐이 속해있는 오션카운티의 지방의원들은 ‘반인권’이거나 ‘비겁’에 속하는 부류들이었다. 의회는 로렐의 청원을 거부했다.

그러자 의원들에게 압력을 가하기 위해서 인권활동가들과 주민들, 나중에는 동료 경찰관들까지 나선다. 인권활동가가 의원들 앞에서 외치는 구호는 “당신들에게 힘이 있다(You Have The Power)”라는 것이다. 힘을 얻기 위해 정치를 하는 이들이 ‘나는 결정권이 없다’며 비겁하게 회피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영화 <로렐>의 한 장면

그러나 그나마 로렐의 얘기에 공감하는 의원조차도 다음 선거를 걱정하며 문제를 회피하는 태도를 보인다. 죽음을 앞둔 로렐은 이런 지방의원들 앞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라 평등한 대우”라고 말한다. 결국 ‘비겁’에 속하던 의원들이 동성파트너에게도 연금이 승계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그리고 로렐이 죽은 후, 그녀가 주장했던 ‘평등’은 2015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을 인정하면서 미국에서 정착되기 시작했다.

로렐이 외친 평등은 어느 곳에서나 필요하다.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를 포함한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은 입법되어야 한다. 이것은 유엔인권이사회가 권고해 온 사항이다. 동성커플들이 실제로는 가족으로 살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법적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벗어날 수 있게 해야 한다.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 같은 나라도 동성결혼을 법제화했다. 합리적인 문명국가라면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것이 옳다.

부디 내년 대선에서는 대선후보들의 ‘비겁함’이 대한민국의 인권을 후퇴시키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차별에는 반대하지만 동성애는 지지(찬성)하지 않는다’는 이상한 말은 더 이상 하지 않기를 바란다. 타인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은 인정과 존중의 대상일 뿐, 지지나 반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대권을 꿈꾼다면 <로렐>을 보기 바란다. <로렐>을 보고, 평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길 바란다. 인터넷에서 다운로드받아서 볼 수도 있고, 주변 측근들과 ‘공동체 상영’ 방식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힘을 가지려 하기 이전에, 용기부터 가지기를 권한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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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차라리 동물국회가 낫겠다”는 발언을 했다. 동물국회와 대비되는 표현은 식물국회이다. 식물국회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국회라는 의미이고, 동물국회는 몸싸움이 좀 난무하는 일이 있더라도 다수파가 안건을 강행통과시킬 수 있는 국회를 말한다.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표현 자체가 불편하다. 식물은 아무것도 안 하는 존재가 아니다.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과정이 얼마나 치열한가? 그런 식물을 아무것도 못한다는 의미로 쓰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 비대위 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김정근 기자

동물국회도 마찬가지이다. 동물은 늘 싸우고 폭력적인 존재인가? 그렇지 않다. 동물국회라는 표현도 적절치 않은 표현이다. 정치인이라면, 좀 더 생명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표현상의 문제를 떠나서, 지금 국회의 문제를 국회선진화법 탓으로 돌리는 것이 옳을까? 물론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 하나 처리하지 못하는 국회를 보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 해법을 ‘국회선진화법’ 탓으로 돌리면 아무런 답이 나오지 않는다. 지금의 여소야대 국면에서 새누리당이 국회선진화법 개정에 합의해 줄 가능성이 있을까?

국회선진화법의 핵심은 안건을 신속하게 처리하려면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해야 하고,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할 수 있는 요건을 엄격하게 만든 것이다. 지금 국회 내에서 소수파로 전락했고 국회의장 자리도 잃은 새누리당이 이런 조항을 포기할 리는 없어 보인다.

그래서 박지원 원내대표의 발언은 표현도 적절치 않고, 내용도 현명하지 못하다. 길이 없을 때 길을 만드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지난 19대 국회 막바지에 국회법을 어겨가면서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했던 정의화 의장과 새누리당을 닮으라는 얘기는 아니다.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권력과 여당을 압박하는 야당다운 모습이 필요하다. 최소한 야당들이 한입으로 약속했던 세월호 특별법 개정 같은 사안에 대해서 우선순위를 두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 그것이 총선에서 야당에 표를 줬던 유권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다른 한편 현재와 같은 국회시스템으로는 현안을 푸는 데도 한계가 있고, 지금의 시대에 필요한 의제들을 논의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양당제(two party system)이다. 지금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라는 거대 야당이 2개 있지만, 이 두 정당이 정체성에서 뚜렷하게 구분되는 정당이라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대한민국은 양당제이다.

이 양당제는 정치에서 논의되는 의제를 좁히고, 소모적이고 불안정한 정치를 만든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퇴임연설에서 ‘두 정파가 서로 번갈아 권력을 잡는 것은 그 자체가 무서운 독재’라고 경고한 바 있다. 지금의 미국 양당제, 그리고 대한민국의 양당제를 보면 조지 워싱턴의 경고가 맞는 것 같다.

흔히 양당제의 장점으로 얘기되던 ‘정치가 안정된다’는 얘기도 사실이 아니다. 대표적인 양당제 국가인 미국의 정치가 안정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처럼 막말을 일삼고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이 거대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는 정치를 안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는 ‘양당제가 안정적’이라는 허구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한민국의 상황을 봐도, 식물국회니 동물국회니 하는 얘기가 나오는 지금의 시스템을 두고 ‘정치가 안정적이어서 좋다’는 얘기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처럼 시급하게 논의되고 통과되어야 할 법안은 가로막혀 있고, 사드배치 같은 중요한 현안도 제대로 논의되지 않는 국회가 어떻게 평화롭고 안정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물론 미국과 대한민국의 정치적 불안정성은 단지 양당제만의 문제가 아니라 강력한 대통령제가 가진 문제로 볼 수도 있다. 대통령의 눈치를 보는 여당, 그리고 대통령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야당들의 대리전이 국회에서 벌어지는 면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승자독식의 시스템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철면피’ 정치가 벌어지고, 그 와중에 유권자는 온데간데없게 되는 것이다.

세계은행에서 발표하는 정치안정지수(Political Stability Index)에서 안정성이 높은 국가들은 대체로 다당제이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비례성이 강한(정당득표율과 의석수가 일치하는) 선거제도를 갖고 있다. 또한 정부형태도 미국이나 대한민국 같은 강력한 대통령제가 아니라,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를 가진 나라들이 많다. 2014년 발표된 순위에서 대한민국은 191개국 중에 84위, 미국은 60위에 그쳤다. 물론 국가별로 특수성이 있으므로 단순히 이런 지수 하나로 얘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역사를 보면 이제는 교훈을 얻을 때가 되었다. 양당제-대통령제와 다당제-의원내각제 중에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만 뒷받침한다면, 다당제-의원내각제가 더 생산적이고 합리적인 정치를 만든다는 것은 분명하다. 시스템을 바꾸려면, 이렇게 근본적으로 바꿔야지 국회법 조항 몇 개 고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편 원내야당들은 당장의 현안을 시스템 탓으로 돌리는 비겁함을 보여서는 안될 것이다. 당장의 현안을 돌파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 시스템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하승수 |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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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1 대 99의 사회라고 한다. 상위 1%가 정치, 경제, 사회적 힘을 쥐고 있고, 99%의 삶은 팍팍하고 소외돼 있다는 의미다. 간단한 의문을 던진다. 경제적으로는 1%가 압도적 부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왜 정치적으로까지 1%가 지배해야 하나? 대기업 주식은 재벌 회장이 많이 갖고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1주도 없다고 하더라도, 선거에서는 재벌 회장이든 비정규직 노동자든 모두 1표를 갖고 있지 않나? 그런데 왜 정치적 힘에서도 평등하지 않을까?

“돈이 정치를 지배하니까 그렇지”라고 얘기하고 끝내지는 말자. 서양의 역사를 보면, 처음에는 부유한 남성들에게만 투표권이 인정되었다. 그때라면, “돈이 정치를 지배하니까 선거해봐야 소용없어”라는 얘기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의 피땀어린 노력으로 가난한 사람과 여성에게도 투표권이 인정되었다. 그런데도 왜 정치가 상위 1%의 이익을 위해 좌우될까? 이 의문을 푸는 것이 바로 한국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는 길이다.

비밀은 선거제도에 있다. 한국의 선거제도는 1인1표제임에도 불구하고 상위 1%의 지배체제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이다. 지역구에서 1등을 해야만 당선되는 소선거구제인 데다, 돈도 많이 써야 하는 선거제도이다. 지역구에서 1등을 하려면 거대정당의 공천을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연줄도 있고 스펙도 있고 돈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아무나 될 수 없는 선거제도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20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의 직업통계를 찾아 보았다. 253명 지역구 당선자들이 쓴 직업 중에 농민은 한 사람도 없었다. ‘회사원’으로 표시한 사람은 두 사람에 불과했다. 반면 변호사는 13명, 주로 교수일 것으로 추정되는 ‘교육자’는 8명이었다.

실제로 1000만명에 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국회 안에서 찾기가 어렵고, 300만 농민도 마찬가지다. 세입자, 소규모 자영업자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들이 거대정당에 들어가 당선 가능한 지역구에서 공천을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이기 때문이다.

47명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통해 약간의 보완이 이뤄지기는 하지만, 큰 틀에서 대한민국 국회의 구성은 ‘서민’과는 거리가 멀다. 뿐만 아니다. 국회의원 평균 재산이 41억원에 달한다. 이런 식의 국회에서 불평등을 완화하고 약자들의 입장에 서는 정책이 제대로 나올 수 있을까? 연령대로 보더라도 253명 지역구 국회의원 당선자 중 40세 미만은 1명뿐이다. 여성 비율은 10%를 약간 넘는 수준이다. 청년 문제, 성평등 이슈가 제대로 논의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지역구에서 1등을 해야 하는 선거제도는 거대한 기득권 정당을 낳게 되고, 그것은 결국 사회경제적 약자를 배제하는 정치구조를 만든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그것을 너무나 잘 보여준다.

북유럽의 대표적 복지국가인 스웨덴은 20세기 초반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선거제도를 도입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국회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이다. 그 결과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사회민주당)이 국회에서 몇 석을 얻는 정도가 아니라 국회의 제1당이 되었다. 스펙, 연줄, 돈이 없던 노동자들이지만, 스스로 만든 정당을 통해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다.       

1925년부터 사민당 당수였던 페르 알빈 한손은 가난한 노동자 가정 출신에 제도교육을 4년밖에 받지 못했지만, 14년간 총리를 지내며 복지국가의 기초를 닦았다. 지금도 스웨덴 총리는 고졸 용접공 출신의 ‘스테판 뢰벤’이다.

대한민국과 스웨덴의 핵심적 차이는 바로 선거제도에 있다. 스웨덴식 복지국가는 스웨덴식 선거제도의 산물이다. 지금도 스웨덴 국회에서는 다양한 계층, 다양한 가치를 대변하는 정당 8개가 경쟁하고 있다. 그래도 모자라다며 새로운 정당이 창당되는 곳이 스웨덴이다.

꼭 계급, 계층적인 이해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면서 많은 시민들은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끼고 있다. 그런데 기후변화 문제가 정치에서 제대로 토론되는 나라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선거제도로 택하고 있는 국가이다. 녹색당과 같은 정당이 의회에 진입해 있기 때문이다.

소수자 인권, 동물복지 등의 의제들이 제대로 다뤄지는 국가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국가들이다. 다양성이 인정되는 정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세계에서 동성결혼 법제화가 가장 먼저 이뤄진 국가는 네덜란드이다. 네덜란드는 정당 득표율이 0.67%를 넘으면 국회 의석 1석이 배분되는 철저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택하고 있다. 네덜란드 국회에는 11개의 원내 정당이 존재하고, ‘동물을 위한 정당(Party for Animals)’도 2석을 가질 정도로 다양한 정당들이 제도권에 진출해 있다. 이런 선거제도가 국토 면적 4분의 1이 해수면보다 낮은 네덜란드를 높은 ‘삶의 질’을 누리는 나라로 만든 것이다.

최근 정세균 국회의장을 포함한 여야의 주요 정치인들이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의 역사를 보면, 진정한 정치 변화는 헌법 개정이 아니라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이뤄졌다. 1987년 개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헬조선’으로 전락한 이유는 선거제도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거제도 개혁이 없는 상태에서의 개헌은 ‘권력 나눠먹는 놀음’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개헌보다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더 시급한 이유다.

하승수 |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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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하철에서 낯선 분이 아는 척을 했다. 본인이 예전에 재벌그룹 핵심부에서 근무했었다고 말했다. 십수년 전 그곳에서 일할 때 당시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던 나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내가 활동하던 시민단체가 그 재벌그룹의 불법행태를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분은 그 후에 다른 외국계 기업으로 옮겼다가 부당해고를 당해 소송을 하고 있다고 했다. 얘기 중에 그분은 자신이 경험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부족국가’라고 말했다. 그분이 말한 ‘부족국가’의 의미는 기득권을 가진 족속들끼리 해 먹는 국가라는 것이다. 본인도 거기에 기여한 것이 아닌가하는 자책도 하는 듯했다. 자신이 예전에 살았던 모습도 돌아보면 떳떳하지 못하다고 토로했다.

"민중은 개·돼지"라고 발언해 물의를 빚은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11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자리에 앉아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강윤중 기자

그분과의 우연한 만남 이후에 ‘부족국가’라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전 ‘나향욱’이라는 교육부 고위 공무원의 발언을 접했다. 그는 그가 속한 1%의 부족이 나머지를 지배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 듯했다. 그의 잘못은 그 진실을 입 밖에 낸 것이다.

그래서 그가 파면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기쁘지 않았다. 수많은 또 다른 ‘나향욱’들이 대한민국의 입법·행정·사법·언론·대기업·대학 등에 깔려 있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나향욱’들은 국가의 중요한 정책결정을 자기들 마음대로 한다. 나머지 99%의 사람들은 그저 따르기만 하는 통치대상으로 본다. 특히 서울에서 떨어져 있는 변방의 주민들은 자신과 다른 ‘2등 국민’으로 본다. 그래서 원전이든 송전탑이든 사드든 자신들이 밀실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하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국가공동체를 위해 과연 그것이 필요한지를 토론하는 것도 회피한다. ‘나향욱’들이 가끔 변방의 2등 국민들 앞에 나타날 때에는 ‘모양새’를 만들기 위해 필요할 때이다. 다 결정해 놓고도 얘기 들어주는 시늉만 하면, 2등 국민들은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달걀이나 물병을 맞거나 욕을 듣는 일이 발생하면, ‘감히 자신들의 권위를 훼손했다’고 생각하고 공권력으로 보복하려고 한다. ‘나향욱’들은 결코 자신들이 저지르는 반민주적인 독선과 전횡을 성찰할 줄 모른다.

‘나향욱’들은 자신들의 집 앞에는 절대로 원전, 송전탑, 사드가 들어설 일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반면에 자신들과 다른 2등 국민들은 당연히 그것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로만 같은 ‘국민’이지, 실제로는 다른 계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향욱’들을 비판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자신도 ‘나향욱’인 이들도 있다. 특권은 같이 누리면서 입으로만 비판을 할 뿐이다. 대한민국의 ‘나향욱’들은 1%의 자신들을 어떻게든 나머지 99%와 구분짓고 싶어 한다. 그래서 99%는 쓰지 못하는 ‘눈먼 돈’을 쓰고, 99%와는 다른 차량을 타고, 다른 식당에서 밥을 먹고, 다른 출입문을 사용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을 구분짓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묻고 싶다. ‘나향욱’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나향욱’을 보며 자존감을 훼손당한 우리에게 묻고 싶다. 언제까지 ‘나향욱’들이 만들어놓은 규칙에 따라 경쟁하고 압박감을 느끼며 살 것인가? 그들이 만들어놓은 노동법과 최저임금을 받아들이고, 그들이 결정한 원전과 송전탑, 사드, 토건사업들을 받아들이기만 해야 하는가? 투표 때면 그들이 만들어놓은 답안지를 놓고 ‘차악’을 고민하고, 평상시에는 그들이 당연시하는 불평등과 격차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살 것인가?

‘나향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민주주의이다. 그래서 그들은 결코 시민들에게 결정권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참여의 기회를 보장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 혐오와 차별, 공포를 무기로 99%를 조종하려고 한다.

그래서 이 땅의 ‘나향욱’이 아닌 사람들에게 제안한다. 우리의 자존감을 위해 이제는 ‘나향욱’들의 지배에서 벗어나자. 시작은 특권을 폐지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들이 만들어놓은 1%의 특권들은 실질과 상징 모두 폐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향욱’들이 두려워하는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년은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30년이 되는 해이다. ‘나향욱’들의 나라를 만들려고 30년 전에 그 많은 사람들이 피땀을 흘린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제는 ‘나향욱’들이 결정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시민들이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정치기득권을 깨는 선거제도 개혁, 관료기득권을 깨는 고시제도 폐지 등 행정개혁, ‘눈먼 돈’을 없애는 예산개혁이 필요하다.

공식 권력에 있는 ‘나향욱’만이 아니라, 거대자본과 언론에 있는 ‘나향욱’들을 통제하고 견제하는 것도 필요하다. 내년에 대선에 나오겠다는 정치인들이라면, 이런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만 맡길 것은 아니다.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라면 뭐든 해야 할 것이다.

‘나향욱’들의 나라를 민주공화국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정치와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은 일시적 분노의 폭발이 아니라 현실을 바꾸는 행동이 필요한 때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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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하는 가장 오래된 측정소는 미국 하와이 마우나로아산에 있다. 여기서 측정된 이산화탄소 농도가 올해 5월에는 평균 407.70PPM을 기록했다. 사상 최고치일 뿐만 아니라, 지난해 같은 달(403.94PPM)에 비해 무려 3.76PPM이나 증가한 수치이다.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회원들이 6월 9일 울산시청 앞에서 신고리 원자력 발전소 5·6호기 건설 중단을 촉구하는 108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해양대기청 지구시스템연구소(NOAA-ESRL) 홈페이지에서 이 수치를 확인하는 순간 숨이 턱 막힌다. 빨라도 너무 빨리 수치가 올라가고 있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 제시한 마지노선이 450PPM인데, 이 속도로 간다면 450PPM을 넘어서는 데에는 20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한심한 것은 정치이다.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나온 도널드 트럼프는 기후변화 자체를 부정한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지난해 12월 합의한 파리협약을 폐기하고 유엔에 설치한 녹색기후기금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화석연료 산업의 이해를 노골적으로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트럼프는 솔직하기라도 한 것인지 모른다. 대한민국의 유력 정치인들은 기후변화를 중요한 정치문제로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가끔 “나도 지구를 사랑해요”식의 립서비스나 할 뿐이다.

한국의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는 유엔 사무총장이 풀어야 할 최대의 숙제가 실효성 있고 새로운 기후변화협약을 만드는 것이라고 스스로 얘기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타결된 파리협약은 매우 불충분한 것이었다.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워낙 기대치가 낮아져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평가가 나온 것일 뿐이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분통이 터진다. 지구의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에 비해 1.5도 이하로 최대한 억제하자는 목표만 합의했을 뿐,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계획은 없다. 그저 ‘생색내기’일 뿐이다. 각 나라가 제출한 온실가스 감축계획을 취합해보면, 지구의 평균기온은 1.5도가 아니라 2.7도가 올라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앞뒤가 안 맞는 상황이다.

반 총장은 2007년부터 유엔 사무총장을 맡아 왔다. 2007년 이후의 시기는 기후변화 문제를 풀 수 있는 가장 귀중한 시기였다. 그러나 시간은 허비됐고, 지난해에 나온 결과는 초라했다. 지금 반 총장이나 각 국가의 최고책임자들은 파리협약을 자신들의 정치적 치적으로 삼기 위해 후한 평가들을 내리고 있지만,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것은 정치가 자본의 탐욕을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의 몸통은 탄소가 아니라 자본주의이다. 캐나다 출신 저널리스트인 나오미 클라인은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에서 ‘자본주의가 바뀌지 않는 한 기후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각국 정부는 자본의 눈치를 보느라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계획을 짜지 못하고 있고, 유엔은 무능하고 무책임하다.

대한민국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대한민국에서 온실가스 배출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석탄화력발전소이다. 지금 53기가 있고, 앞으로 20기를 더 늘린다는 것이 정부계획이다. 최근에는 대기업들이 짓는 민자 석탄화력발전소들이 늘고 있다. 지금 충남 서해안에는 더 이상 지을 곳이 없을 정도로 석탄화력발전소들이 들어섰고, 이제는 동해안으로 몰려가고 있다. GS, 삼성, 포스코, SK 같은 대기업들이 동해안의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 관여하고 있다.

석탄화력발전은 미세먼지·초미세먼지 배출의 중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 정부가 삼겹살과 고등어를 미세먼지의 주범인 것처럼 지목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정부가 가진 자료상으로도 틀린 얘기였던 것이 드러났다.

그런데 정부가 애꿎은 직화구이를 탓한 것이 단지 실수이고 우연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석탄화력발전소를 건드리자니 자본의 눈치가 보이고, 만만한 대상을 찾은 것이 직화구이였던 것이 아닐까. 실제로 정부는 그 후에 발표한 대책에서도 새로 짓는 석탄화력발전소는 ‘배출기준을 강화하겠다’는 정도로만 언급했다. 발전소 건설 자체를 재검토할 엄두는 내지도 못한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나라는 원전도 줄이고 있다. 독일이 대표적이다. 독일은 온실가스 배출도 줄이고 있고, 2022년까지 원전도 없애겠다는 계획이다. 반면에 대한민국은 원전도 많이 짓고, 석탄화력발전소도 많이 지어 온실가스도 많이 배출한다. 이것은 원전과 기후변화가 쌍둥이 같은 존재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쉽게 생각하면 머리가 여러 개 달린 괴물을 연상하면 된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것도 자본의 이윤을 위한 것이고, 원전을 많이 짓는 것도 자본의 이윤을 위한 것이다. 지난 23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승인했다. 최근에 너무 많은 발전소가 완공되어 발전소가 남아도는 상황인데도 건설승인을 강행했다. 누가 이 결정으로 이익을 볼까. 신고리 5·6호기 건설공사를 수주한 기업을 찾아보니 ‘삼성물산’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결국 온실가스든 미세먼지든 원전이든, 몸통은 같다. 전 지구적으로 보든,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든 문제의 몸통은 ‘통제받지 않는 자본’이다. 이것을 바꾸지 못하면 안전도, 미래도 없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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