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행태가 심상치 않다. 촛불민심은 이미 잊은 듯하다. 개혁에 앞장서도 모자랄 판에 개혁과제 앞에서 머뭇거리거나 얄팍한 계산을 튕기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의 말조차 무시하는 듯하다. 여당이 맞는지 의문스럽다.

지난 8월16일 문재인 대통령과 5당 원내대표가 회동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제도 개혁 얘기를 먼저 꺼냈다. 본인이 비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도 개혁을 그 누구보다 일찍 주장해 왔고, 2012년 대선과 작년 대선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공약으로 제시했다는 것을 환기시켰다. 또한 3월에 발의했던 대통령 개헌안에도 그런 내용을 담았다며, “비례성과 대표성을 제대로 보장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편에 대해서 대통령 개인적으로는 강력하게 지지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먼저 선거제도 개혁 얘기를 꺼낸 것은 파격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런 대통령의 발언에 화답한 것은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원내대표들뿐이었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침묵했다고 한다. 과연 여당에 개혁 의지가 있는지를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날의 행태만이 아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민주당 대표 경선에 나온 후보들의 발언도 수상하기 짝이 없다. 후보들 중에 송영길 후보만이 야당들과 협력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겠다는 뜻을 명확하게 밝혔을 뿐이다. 나머지 후보들은 엄밀하게 해석하면 ‘하지 말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

이해찬 후보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선거제도 개혁은 개헌과 같이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그런데 지금 개헌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은 ‘2020년 총선 전에는 개헌 논의를 하지 말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두 얘기를 조합하면, 결국 지금은 선거제도 개혁을 하지 말자는 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김진표 후보도 언론 인터뷰에서 선거제도 개혁만 따로 할 수는 없다면서, 올해 내에는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어렵다고 얘기했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올해 하반기가 선거제도를 개혁할 수 있는 적기라고 주장하는데, 김진표 후보는 올해는 시기가 아니라고 하니, 이것 역시 하지 말자는 얘기다.

사실 정치권 주변에서는 민주당이 사실상 선거제도 개혁을 안 하려 한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2015년부터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당론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말로는 반대하지 않는 것처럼 위장하지만, 실제 속마음은 반대라는 것이다.

선거제도 개혁을 하지 말자는 얘기는 지금과 같은 국회, 지금과 같은 정치를 그대로 두자는 얘기다. 의정활동에는 관심이 없고 특권만 누리려고 하는 국회, 우리 삶의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안될 뿐만 아니라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키는 정치, 선거에서 이기면 독주하려 하고 선거에서 지면 ‘발목잡기’로 일관하는 정치. 이런 엉터리같은 국회, 비생산적인 정치를 그대로 두자는 것이다. 이것이 ‘촛불민심’과 ‘적폐청산’을 얘기하는 정당이 취할 태도인가? 

그리고 이것은 배신이다. 자기 정당 대통령 후보의 공약에 대한 배신이고, 그것을 믿었던 유권자들에 대한 배신이다.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감수할 수 있다’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배신이기도 하다.

돌아보면 지금처럼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좋은 여건이 만들어진 때도 없었다. 각 정당이 얻은 득표율대로 전체 국회의석을 배분함으로써 1표의 가치를 동등하게 하고, 정당들이 정책경쟁에 몰두하게 하자는 것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의 핵심이다. 그러나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늘 자유한국당(전에는 새누리당)의 반대로 좌절되어 왔다. 그런데 6·13 지방선거 이후에는 한국당조차 반대는 하지 않는 태도로 돌아섰다. 이런 좋은 시기를 놓친다면, 정말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다.

선거제도 개혁만이 아니라 모든 정치개혁 과제에 소극적인 것이 지금 여당의 태도이다. 국회 특수활동비 폐지만 하더라도, 민주당은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다 정의당과 바른미래당이 반납하겠다고 압박하고,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마지못해 폐지 방향으로 돌아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개혁 앞에 미적대는 이상 지지율 하락은 계속될 것이다.

해법은 간단하다. 지금이라도 민주당이 나서서 야당들과 협상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하면 된다.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문제가 있지만, 이것 역시 대안을 갖고 국민들을 설득하면 된다. 국민들이 싫어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의 과도한 특권이다. 따라서 특권을 없애고, 그렇게 절감한 예산으로 국회의원을 늘린다면 국민들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이번에 특수활동비를 대폭 삭감했듯이, 국회의 다른 낭비되는 예산을 삭감하고 국회의원들의 과도한 연봉(수당 포함 연간 1억5000만원)과 개인 보좌진 규모(1인당 9명)도 줄이면 된다. 그렇게 해서 현재의 국회 예산을 동결한 상태에서 360명 정도로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된다.

시간이 많지 않다. 올해를 넘기면 개혁은 어려워진다. 아마 민주당 내부에도 개혁에 적극적인 국회의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조용하다. 우선은 그들부터 침묵하지 말고 목소리를 내기 바란다. 그래서 민주당이 개혁의 편에 설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 노력조차 보이지 않는다면, 민주당은 반개혁세력으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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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탁월한 연설가였다. 그가 했던 연설의 대목 중에 지금도 기억나는 부분이 있다. 이 연설은 유튜브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자신의 친구에 관해 얘기한 것이다. “그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 친구를 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말은 떠듬떠듬 유창하지 않게 원고를 보면서 읽었습니다만, 제가 아주 존경하는, 나이는 저보다 적은 문재인을 제 친구로 둔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대통령감이 됩니다. 제일 좋은 친구를 둔 사람이 제일 좋은 대통령 후보가 아니겠습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신뢰관계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후에, 그의 친구 문재인은 정치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1년 쓴 책인 <운명>의 제일 마지막 문장은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23일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에 참석, 추모시를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이후에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력을 이어받아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를 녹여냈다. 그리고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어내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역사적 과업을 이뤄내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숙제 한 가지를 성공적으로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또 한 가지 중요한 숙제를 이룰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바로 정치를 정상화하는 선거제도 개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개혁의 핵심은 정치를 비정상화하고 지역주의를 강화시키는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이 신념이 너무나 강하고 절박했다. 그래서 그는 2003년 12월 국회에 정치개혁 입법과 관련된 편지를 보냈다. 그는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중대선거구제 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제대로 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고, 비례대표 의석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것도 제안했다. 그러나 이 제안은 국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다시 2005년 7월 선거제도만 바꾼다면 야당에게 총리 추천권을 주는 ‘대연정’을 할 수 있다고 발표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의 국가들에서는 ‘대연정’이 흔한 일이었지만 대한민국의 정치현실에서는 낯선 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루려 했던 것은 대연정을 해서라도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것이었다. 그는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선호하지만 다른 선거제도도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언급도 했다. 당시 대연정 구상에 대한 반발이 여당 안에서도 거세자 그는 “되물어보고 싶습니다. 이 낡고 고장 난 정치제도로 비정상적인 정치를 계속하자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언제까지 그렇게 하자는 것입니까?”라고 여당 당원들을 설득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런 희망은 실현되지 못했다. 척박한 한국의 정치현실에서 그의 생각은 너무 앞서나간 것일 수도 있었다. 그 이후 2015년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당 득표율대로 전체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안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선거제도 개혁을 현실로 만들 기회가 왔다. 그동안 선거제도 개혁에 반대해 왔던 자유한국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승자독식 선거제도의 피해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6·13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은 수도권, 충남, 충북, 강원, 제주, 부산, 울산 등지에서 정당 득표율보다 훨씬 적은 광역지방의회(시·도의회) 의석을 얻었다. 지역구에서 1등을 해야 당선되는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로 대부분의 시·도의원을 뽑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였다. 대표적으로 경기도에서 자유한국당은 25.47%의 정당 득표율에도 불구하고 경기도의회 의석 중 2.96%(135석 중 4석)만 차지했다. 그동안 90% 이상의 의석을 독차지해오던 부산에서도 자유한국당은 36.73%의 정당 득표율에도 불구하고 12.77%(47석 중 6석)의 의석만 얻었다.

그래서 자유한국당도 더 이상 선거제도 개혁을 거부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합리적 보수라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받아들이고, 정책으로 경쟁하는 보수정당으로 거듭나는 것이 옳다. 그렇지 않으면 대구·경북 지역정당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물론 지금 자유한국당은 극도의 혼란 상태지만, 김성태 원내대표만 하더라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수용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선거제도 개혁에 이만 한 기회가 다시 오기는 어렵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 하반기 정기국회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합의해내고, 개헌 등의 과제에 대해서도 큰 틀의 일정과 원칙 정도라도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제도 개혁은 협상과 타협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이 중대한 일을 국회와 여당에만 맡겨놓아서는 안된다.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현실적으로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 290쪽에는 이런 얘기가 나온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이 권력을 한번 잡는 것보다 훨씬 큰 정치 발전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이런 노무현의 꿈과 신념을 현실로 만들 때가 되었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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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가 눈앞으로 다가왔지만, 북·미 정상회담의 개최 여부 등 굵직굵직한 이슈에 묻힐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반도에서 평화체제가 자리 잡을 수 있느냐는 워낙 중요한 문제이므로 여론의 관심이 쏠리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6·13 지방선거는 촛불 이후에 처음 치르는 지방선거이다. 그리고 이 선거결과는 우리들의 삶에 여러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데 지방선거가 대통령에 대한 지지여부나 중앙정치의 분위기에만 쓸려가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정치개혁에도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번에 거대정당들이 한 공천만 보더라도 그렇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는 공천과정에서 많은 잡음이 있었다. 높은 대통령 지지율 덕분에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된다는 인식이 오히려 공천의 문제를 키웠다. 한 가지 예만 든다면, 수뢰 후 부정 처사,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천안시장을 전략공천했다.

현직시장이 수사를 받고 기소당하는 문제가 있는데도 경선도 하지 않고 전략공천을 한 것은 누가 봐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물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도 공천과정에서 여러 잡음이 있었던 것은 마찬가지이다. 공천결과에 납득할 수 없다며 자유한국당을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들도 여럿이다. 특히 자유한국당의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에서 그런 사례가 여럿 발생했다.

거대정당들의 공천결과를 보면, 여성, 청년, 소수자들은 이번에도 소외됐다.

전국적으로 광역지방자치단체장 후보로 등록한 71명 가운데 여성후보는 6명에 불과했다. 더불어민주당은 0명, 자유한국당은 1명이었고, 나머지는 녹색당 2명, 대한애국당 1명, 민중당 1명, 정의당 1명이었다.

이처럼 촛불 이후에도 한국의 정치는 변하지 않고 있다. ‘거대정당 공천=당선’이면 굳이 선거를 할 의미도 사라진다. 소수정당이나 무소속 후보들이 아예 출마를 포기하는 경우들도 생긴다. 그래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미 무투표 당선된 후보자가 86명에 달한다.

정책 경쟁도 사라진다. 어차피 거대정당의 공천만 잘 받으면 당선되는데, 굳이 정책에 신경쓸 이유가 없다. 대충 개발공약이나 내세우고 다른 후보들 정책을 참고해서 급조된 공약을 만드는 식이 된다.

이런 식의 선거는 우리 삶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악영향을 끼친다. 지역에 적폐가 쌓인다. 주민들을 위해 사용해야 할 예산이 엉뚱하게 사용된다. 여기저기서 벌이는 공사로 인해 미세먼지를 들이마시게 되고 생활환경도 악화된다. 비싼 전세, 월세는 해결되지 않고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열심히 일해 온 상인들이 쫓겨난다. 부실한 규제로 인해 안전이 위협받는다. 이것이 ‘나쁜 지방자치’로 인해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이다.

반면에 지방자치를 통해 문제가 개선된 사례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무상급식이다. 2009년 경기도 교육감 보궐선거 때 무상급식이 선거이슈가 되었고, 2010년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전국적으로 무상급식이 확산됐다. 그 외에도 성남시가 시작한 청년배당, 주민들이 예산편성에 참여하는 주민참여예산 등은 지방자치가 정책을 선도하고 있는 좋은 사례들이다.

그래서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도 정당기호만 보고 투표하는 것은 최악이다. 정당과 후보들이 내세우는 정책이 선거이슈가 되어야 선거를 할 의미가 있다. 당선되는 후보의 정책도 중요하지만, 낙선하더라도 의미 있는 정책을 내건 후보가 의미 있는 득표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그 정책에 힘이 실리고, 당선된 후보가 그 정책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

무상급식 같은 정책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보더라도 그랬다. 처음부터 무상급식이 유권자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졌던 것은 아니다. 낙선하더라도 무상급식을 정책으로 내걸었던 후보들이 있었고, 그 후보들의 정책에 반응을 보이는 유권자들이 있었기에 무상급식은 현실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세상은 변해 왔다.

그래서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내 삶을 바꾸려면 어떻게 투표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방선거의 투표용지는 7장(다만, 국회의원 보궐선거 지역은 8장, 제주도는 5장, 세종시는 4장)이나 된다. 분명 그중에는 내 마음을 움직이는 정책을 제시하는 정당이나 후보자가 있을 것이다.

최근의 미투운동, 낙태죄 폐지 주장, 불법촬영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책을 통해 풀어나가야 한다. 어떤 문제이든 선거에서 이슈가 되고, 유권자들이 그 이슈에 대한 정당·후보들의 입장을 투표의 기준으로 삼을 때 문제가 풀릴 수 있다. 그래야 그 문제가 정치의 영역에서 진지하게 다뤄질 수 있다.

선거에서 최악은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다. 투표장에 가서 ‘나는 찍을 데가 없다’며 기권표라도 던져야 최소한의 정치적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정당 기호만 보고 투표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 정당을 자만하고 방심하게 만들어서, 결국 그 정당을 나쁜 방향으로 몰고 간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정책을 살펴보고, 내 삶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7장의 투표용지에 투표하는 것이다. 7장의 투표용지 중에는 분명 내 삶에 도움이 되는 ‘한 표’가 있을 것이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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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6일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했다. 필자는 대통령 발의 개헌안을 준비하는 국민헌법자문특위에서 활동했다.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을 보면 아쉬운 부분들도 많다. 국민헌법자문특위에서 제안했던 내용보다 후퇴한 부분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직접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헌법개정안 국민발안제가 빠졌다. 그러나 대통령과 국회만 헌법개정안을 발의할 수 있는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국민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 헌법개정안 국민발안제는 국회 논의과정에서라도 반드시 도입되어야 한다.  

대통령 발의 개헌안에는 여성의 동등한 참여와 정치적 대표성 확대에 관한 부분이 명시되지 않았다. 교육, 환경 등의 기본권 영역에서도 미흡한 점들이 있다. 지방분권과 대통령 권한 분산의 측면에서도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은 기본권 강화와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해 의미있는 내용들을 많이 담고 있다. 또한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함으로써, 30년 만에 최초로 조문화된 개헌안이 공식문서로 발의되었고, 시한을 둔 개헌논의의 장이 열렸다.

그동안 국회에서 개헌논의는 숱하게 반복되었지만,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했다. 심지어 각 정당은 당론조차 내지 않았다. 정치에서 있어서는 안될 무책임한 행태들만 반복되었다. 그런 속에서 개헌의 동력은 거의 사그라들던 상황이었다.

이번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는 꺼져가던 개헌의 불씨를 살린 셈이다. 각 정당들이 당론을 정하도록 강제하는 효과를 이미 거두고 있다. 그러나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무책임하고 격이 떨어지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지난 3월30일 홍준표 대표는 사회주의개헌저지투쟁본부를 구성했다고 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의 어느 부분이 사회주의라는 것인가?

동일한 노동을 하면 동일한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사회주의라면, 임금격차가 적은 유럽의 선진국가들은 전부 사회주의라는 것인가?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시하고 있는 독일이 사회주의 국가인가? 사적 소유권을 인정하되, 부동산 투기나 지나친 소유집중을 막자는 것은 건전한 자본주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것이 어떻게 ‘사회주의’일 수 있는가? 보수의 격을 떨어뜨리는 이런 주장을 걸러내지 못하면 보수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해야 할 일은 개헌저지 투쟁본부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당론을 내놓는 것이다. 막연한 당론이 아니라 조문화된 형태로 당론을 밝혀야 한다. 그럴 능력도 없는 정당이라면, 정당 문을 닫아야 한다.

대통령과 여당도 ‘정치’를 해야 한다. 아무리 상대방이 말이 안되는 얘기를 하더라도, 붙잡고 얘기해서 일을 되게 하는 것이 ‘정치’다. 사회운동은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정치는 문제를 해결할 때에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 개헌에 대한 진정성은 개헌이 되게 하려는 노력으로만 증명될 수 있다.  

개헌이 되게 하려면 여소야대의 의석분포를 현실로 인정하고 문제를 풀어야 한다. 어느 나라든 개헌은 타협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타협하지 않고 개헌을 하겠다는 것은 개헌을 하지 말자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개헌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방법은 야당들을 붙잡고 설득도 하고 타협도 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개헌시기를 늦추자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지방선거가 끝나면 개헌동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지금 개헌동력이 살아난 것은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했기 때문인데, 지방선거 동시 개헌국민투표가 무산되면 또다시 기한 없는 논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2020년 총선이 다가오고, 정당들 간의 이해관계 계산 때문에 개헌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밀실야합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과 여당이든, 야당이든 이번 개헌은 국민개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논의태도를 가져야 한다. 각 정당들이 당론을 내놓으면, 쟁점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에 들어가야 한다. 몇몇이 하는 밀실협상은 곤란하다. 국회에서는 공개토론을 하고, 방송사, 언론사들은 토론내용을 상세하게 보도해야 한다. 정당들끼리 도저히 해소되지 않는 쟁점에 대해서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토론의 장을 열고 의견을 수렴하는 방법도 있다. 

이번에 대통령 발의 개헌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국민헌법자문특위는 ‘숙의형 시민토론회’를 5차례 열었다. 무작위로 추출된 시민들은 6시간 반 동안 진지하게 개헌의 쟁점들에 대해 토론했고 자신의 의견을 표명했다. 토론이 끝난 후에 만족도 조사를 했을 때, 97% 이상의 시민들은 토론이 만족스러웠다고 답했고, 다시 이런 기회가 있다면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토론에서 시민들은 기본권 강화에 대해 높은 관심을 표명했고, 직접민주제 도입과 지방분권에 찬성했다. 개헌의 최대쟁점인 정부 형태에 관한 토론에서도 진지한 모습을 보였고 상호 경청하는 태도였다. 끝내 정치권이 합의하지 못하는 쟁점에 대해서는 이런 방식을 참고해서 주권자인 시민들의 의견을 들으면 된다.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들의 공감대는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개헌이 실제로 될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 정치가 가능성의 예술이라면, 지금 필요한 것은 개헌이 되게 하는 정치이다. 그런 정치를 하는 정치인과 정당을 보고 싶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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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가 100일도 남지 않았다. 그런데 풀뿌리 지방의회인 기초지방의회 선거구는 아직도 획정되지 않았다. 국회가 공직선거법 개정안 처리를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뒤늦게 국회가 5일 본회의를 통해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한다고 하지만, 본래 작년 12월13일까지 끝났어야 하는 기초지방의원 선거구 획정은 늦어도 너무 늦어졌다.

더더욱 우려되는 것은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기초지방의원 선거구 획정을 기존대로 졸속처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기초지방의원 선거구는 이재명 성남시장의 표현에 따르면 ‘살당공락’의 결과를 초래하는 적폐 중의 적폐이다. 직접 지방행정을 8년간 운영해 본 이재명 시장이 오죽하면, “살인자도 거대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고, 공자님도 공천 못 받으면 떨어진다”는 얘기를 하겠는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D-100일을 하루 앞둔 4일 경기 수원 영통구 직녀광장에서 경기도선관위 직원들이 6·13 지방선거를 홍보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 기초지방의원 선거제도는 흔히 중선거구제라고 불린다. 하나의 지역선거구에서 2명, 3명, 4명을 뽑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2인선거구가 70%를 차지하고, 3인선거구는 얼마 되지 않으며, 4인선거구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하나의 지역선거구에서 1등, 2등이 당선되는 2인선거구는 1등만 당선되는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 못지않은 문제를 낳는다. 2개의 거대정당이 1석씩 나눠 먹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남이나 호남에서는 그 지역의 정치를 지배하는 정당이 2석 모두 차지하기도 한다. 그래서 소수정당과 정치신인의 진입을 쉽게 한다는 중선거구제 도입 취지와는 전혀 거리가 먼 결과가 초래된다.

거대 양당의 나눠 먹기가 가장 심한 곳은 서울이다. 지방선거에서는 서울시장-구청장-시의원-구의원을 한꺼번에 투표하기 때문에 정당기호에 따라 줄투표를 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1번, 2번 기호를 받는 정당의 후보로 공천만 받으면 2인선거구에서는 당선이 거의 보장된다. 그래서 소수정당이나 무소속 후보자들은 2인선거구에서 아예 후보등록 자체를 포기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서울지역의 지역구 구의원 당선자 중에서 무투표 당선자가 22명이나 나왔다. 비례대표 무투표 당선자 4명을 합치면 무려 26명의 구의원이 서울에서만 무투표당선된 것이다. 서울 은평구의 경우 총 17명의 지역구 구의원 당선자 중에서 6명이 무투표 당선됐다. 2인선거구에서 거대 양당이 1명씩만 공천하고, 다른 정당과 무소속 후보들은 등록 자체를 포기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무투표 당선이 아닌 지역이라도 특별하게 다르지 않다. 2인선거구에서는 2개의 거대정당 외에 다른 후보들이 나오더라도 현실적으로 당선되기 어렵다. 20%가 넘는 득표를 한 소수정당 후보, 무소속 청년후보도 낙선한다. 결국 1등, 2등은 거대정당의 공천을 받은 후보가 차지하기 마련이다. 2014년 서울시 구의원 선거에서 거대정당 소속이 아닌 당선자는 419명 중에서 4명에 불과했다. 무소속으로 당선된 사람이 3명, 노동당 소속이 1명이었는데 모두가 2인선거구가 아닌 3인선거구였다.

그래서 올해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2인선거구를 줄이고, 4인선거구를 대폭 확대할 것을 요구해 왔다. 전문가들도 같은 의견들을 제시해 왔다. 다행스럽게도 학계, 언론계, 법조계, 시민단체, 시의회, 선거관리위원회의 추천으로 구성된 서울시 선거구획정위원회는 작년 11월 2인선거구를 대폭 줄이고, 4인선거구를 35개 이상으로 확대하는 구의원 선거구 개혁방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은 물론이고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하고 나섰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힘으로 막으라’는 얘기를 하는가 하면, 민주당 서울시당도 기득권 유지를 위해 개혁안에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그래서 서울시 선거구획정위원회의 개혁안이 위태로운 상황이 되었다. 선거구획정위원회에서 안을 만들어도 서울시의회에서 최종통과가 되어야 하는데, 서울시의회의 다수당인 민주당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시 선거구획정위원회의 안이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눈앞의 작은 이익 때문에 2인선거구에 매달리는 것은 정치개혁을 파탄으로 이끄는 선택이 될 수 있다. 국회에서는 한국당이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반대해서 선거법 개혁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그리고 민주당은 한국당의 반(反)개혁적 태도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런데 기초지방의원 선거구 획정과 관련해서는 민주당이 한국당과 같은 입장을 취한다면, 어떻게 시민들이 민주당의 진정성을 믿을 수 있을까? 그리고 민주당이 앞으로 어떻게 다른 야당들의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겠는가? 기초지방의원 선거에서 2인선거구는 다양한 정당 간의 경쟁구조를 없애고, 거대정당 공천이 곧 당선되는 구조를 만든다. 이것은 공천비리나 공천을 둘러싼 비민주적인 행태의 원인이기도 하다. 이런 식의 나눠 먹기 구조는 이번에 반드시 혁파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 없는 상황이다. 5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3월 중순까지 기초지방의원 선거구 획정이 마무리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더 이상 민주당이 소탐대실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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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12일 대구·경북지역 일간지인 매일신문은 사설을 통해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매일신문은 “홍 대표는 대구에서 정치를 하고 싶다는 뜻을 누차 피력한 바 있는데, 지방분권 개헌 열망에 찬물을 계속 끼얹는다면 그 꿈 일찌감치 접기를 권고한다”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이 사설은 개헌을 둘러싼 현재의 논의지형을 잘 보여준다. 지금 자유한국당 소속 권영진 대구시장은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지지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 홍준표 대표가 원색적인 비난을 하며 제동을 걸고 있고, 그것이 대구·경북지역에서도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최근 자유한국당이 국회 개헌특위의 자문위원회 보고서 중 일부 내용을 문제 삼고 있는 것도 이런 비판 여론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개헌을 색깔논쟁으로 끌고 가서라도 비판적인 여론을 잠재워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홍준표 대표가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국민투표를 하겠다’는 자신의 대선공약을 뒤집은 것은 누가 봐도 명분이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 주권자들은 보수-진보를 떠나서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매일신문은 1월2일에도 사설을 통해 ‘국가의 미래가 달린 지방분권개헌 이슈를 당리당략과 선거 유불리로 접근하고, 정치적 소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특정 정치인에 대해 혐오를 드러내는 태도는 온당치 않다”고 홍준표 대표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하라’는 것은 보수-진보를 떠난 요구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더라도,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동의가 70%를 훨씬 넘는다.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에 대해서도 지역에 관계없이 찬성여론이 높다.

부산일보 신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방선거 동시 개헌 국민투표’에 대한 찬성 여론이 부산·경남지역에서 77%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신문이 작년 12월 말에 대구·경북지역 여론을 조사한 바에 따르더라도, 이 지역의 찬성률이 61.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자료들을 줄줄이 언급하는 이유는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 발의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더 이상 국회논의를 기다리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국회가 작년 말에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해서 올해 6월까지 활동하기로 했지만, 이 특위에서 개헌안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작년 1년 동안 국회 개헌특위는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게다가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에 소극적인 자유한국당 측이 새로운 특위 위원장을 맡기로 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런 특위에 무슨 기대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국민들 다수가 바라는 개헌과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대통령이 나서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헌법이 대통령에게도 개헌안 발의권을 준 이유는, 이처럼 국회가 제 역할을 못하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 개헌안 발의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대통령의 직무를 소홀히 하는 셈이 된다.

물론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는 것은 많은 정치적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벌써부터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개헌 반대’와 같은 수준 낮은 정치공세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정치공세가 쉽게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앞서 언급한 근거들을 봐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개헌논의가 본격화되면, 스스로의 대선공약을 어기고 개헌을 사실상 방해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은 더욱 궁색한 처지가 될 것이다. 그들이 ‘색깔 덧씌우기’ 등 여러 시도를 하겠지만, 현명한 대한민국의 주권자들은 쉽게 말려들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 발의를 본격 추진해야 한다.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1월부터 본격 추진을 할 필요가 있다. 다만 시작부터 대통령이 개헌의 내용에 대해 언급할 필요는 없다.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의 내용은 여·야당의 의견도 충분히 수렴하고, 국민들의 의견도 수렴하여 최종 확정하겠다고 하면 된다. 그러면 반대할 명분이 없다.

개헌의 내용과 관련해서는 포괄적이고 제한 없는 논의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기본권 강화와 지방분권 외에도, 직접민주주의 확대,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선거제도 개혁 같은 내용이 논의의 주된 대상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또한 가장 논란이 되는 권력구조(정부형태)와 관련해서도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나갈 필요가 있다. 어차피 개헌과정은 다양한 의견들이 합의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아마도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할 것인지와 관련해서 가장 고민되는 것은 국회 통과 가능성일 것이다. 국회의원 3분의 2가 동의해야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국민투표에 부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헌안의 국회 통과 가능성을 처음부터 비관할 필요는 없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개헌은 이미 보수-진보의 프레임을 넘어서고 있다. 보수든 진보든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국가운영시스템을 만드는 것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이 진정성 있게 개헌을 추진하겠다면, 대한민국의 주권자들이 지지하고 개헌논의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개헌안을 논의하는 과정은 민주주의에 관한 거대한 집단학습과 토론의 과정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자들에게는 그런 역량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 논의의 물꼬를 틔워주기를 기대한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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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은 6·10민주항쟁 31주년이다. 30주년이었던 올해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를 평화적으로 극복하고 대통령을 교체했다. 31주년에는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국가적인 숙제를 마무리해야 한다.

마침 31주년 직후인 내년 6월13일에는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이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이 공약이 현실로 된다면, 문 대통령은 30년 동안 손보지 못한 정치시스템을 바꾼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문제는 그동안 국회논의를 지켜봤지만 해법이 안 보인다는 데 있다. 국회 개헌특위는 합의점을 찾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게다가 최근 들어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하자던 자신의 공약까지 뒤집었다.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 자체를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최소한의 정치적 양식도 없는 행태이지만, 116석의 의석을 가진 자유한국당이 조직적으로 반대하면 개헌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재적 국회의원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편 국회에는 정치개혁특위도 구성되어 있다. 개헌과 함께 선거제도 개혁을 해내기 위해서다. 문재인 대통령도 ‘개헌과 함께 국민의 뜻이 정확하게 반영되는 선거제도로 개혁해야 한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각 정당의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이 핵심이다. 문 대통령은 ‘선거제도 개혁이 되면 권력구조 부분은 양보할 수도 있다’는 뜻을 밝힐 만큼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그런데 국회 정치개혁특위도 합의점을 찾을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역시 자유한국당이 반대하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개헌도 물 건너가고 선거제도 개혁도 물 건너갈 상황이다.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은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국회에 맡겨 왔다. 국회를 존중하는 적절한 태도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국회에서는 합의가 안된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이대로 아무것도 안되는 상황을 방치할 것인가? 이미 국회에는 충분한 시간을 줬다. 개헌특위는 올해 1년 동안 활동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정치개혁특위도 지난 6개월 동안 지지부진한 논의만 계속하고 있다.

그렇다면 더 이상 국회에만 맡겨놓을 것은 아니다. 헌법에 의하면, 개헌안은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가 발의할 수도 있고, 대통령이 발의할 수도 있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 발의권을 행사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봐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이 발의한다면, 개헌안에는 핵심쟁점인 권력구조(정부형태)와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내용을 담아야 한다. 기본권 강화와 직접민주주의 확대, 지방분권은 꼭 필요하지만, 이 내용만 담은 개헌안은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없다. 야당들은 핵심쟁점인 권력구조(정부형태) 문제를 개헌안에 담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것을 피해가서는 안된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의 소신인 선거제도 개혁도 개헌안에 담아야 한다. 핀란드, 오스트리아 같은 국가는 헌법에 ‘정당득표율에 비례해서 의석을 배분하는 비례성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헌법에 명시되면, 국회가 법개정을 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수밖에 없다.

물론 대통령이 곧바로 개헌안을 발의하라는 것은 아니다. 일종의 입법예고 같은 것을 하고 공론화하는 과정을 밟으면 된다. 쟁점인 권력구조(정부형태)와 관련해서도 2가지 안 정도로 압축해서 의견을 수렴하면 된다.

어차피 대한민국은 대통령직선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국가이다. 그리고 대통령 임기를 몇 년으로 하느냐, 중임제냐 아니냐는 핵심이 아니다. 실질적인 쟁점은 ‘국무총리 선임방법을 어떻게 할 것인지?’이다. 지금처럼 국회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할 것인지, 아니면 책임총리를 제도화하는 차원에서 국회가 총리후보를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할 것인지를 놓고 토론하면 된다.

총리추천권을 국회에 주려면 국회를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서 선거제도의 비례성 원칙도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 이런 방안을 대통령이 제안해서 자유한국당 내부의 잠재적 개헌 찬성파들을 논의에 끌어들여야 한다.

자유한국당 내부에도 개헌을 바라는 국회의원들이 있다. 그리고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당연히 국민들의 의견도 수렴해야 한다. 내년 초에 대통령의 의지를 담은 개헌발의 예고안을 공개하고, 2개월 정도 집중적인 의견수렴을 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3월에 최종적인 개헌안을 발의하면 국민들의 지지도 받을 수 있고, 통과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낡고 문제 많은 정치시스템을 고치지 못하면, 대한민국 정치는 국민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정치로 바뀌기 어렵다. 그래서 어렵더라도 문재인 대통령이 결단을 하길 바란다. 국민들이 지지할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국민 70~80% 이상이 개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본권 강화, 직접민주주의 확대는 촛불시민들의 바람이기도 했다. 지난 10월 국회의장실에서 의뢰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2.9%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찬성했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이런 여론을 받아들여 개헌안을 발의하는 것은 헌법상 대통령의 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결단을 기대한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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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개헌

10월28일이면 촛불 1주년입니다. 1주년을 맞는 마음이 어떠신지요? 촛불을 들었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래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히 편지를 써 봅니다.

먼저 문재인 대통령께 꼭 드리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꼭 성공한 대통령이 되셔야 합니다. 그러려면 지금 시점에서 세 가지를 꼭 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나를 도와준 사람들은 잊어버리고 국민만 생각하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문 대통령을 만든 1등 공신은 어려울 때를 같이 해 준 측근들도 아니고 지금의 참모들도 아닙니다. 촛불시민들입니다. 누구보다도 이 점을 잘 아실 분이지만, 그동안 있었던 몇몇 인사 실패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이 사실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이벤트보다는 대통령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임에 집중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대통령께서 보여주신 진솔하고 선한 모습 덕분에 지난 9년 동안 말도 안 되는 권력의 행태에 상처 났던 국민들의 마음은 많이 치유됐습니다. 이제는 위기에 처한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일과 정치시스템 개혁에 집중하셨으면 합니다. 특히 대통령께서 공약하신 선거제도 개혁과 국민참여 개헌을 이번에는 이뤄내야 합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위기를 겪었던 이유는 정치시스템에 하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표심을 왜곡시키고, 정치다양성을 억압하며 참정권을 제약하는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합니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개헌도 밀실개헌이 아니라 국민들이 참여하는 최초의 개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대통령께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해 주십시오. 이것만 돼도 역사에 남을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세 번째는, 적폐청산과 함께 개혁 협치를 해야 합니다. 지금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이 추진하는 모든 개혁을 무산시키기 위한 정치기획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일부와의 통합은 그 신호탄이 될 것입니다. 그쪽의 목표는 명확합니다. 국회에서 120석 이상만 확보하면 국회선진화법 체제하에서 모든 개혁입법을 좌초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기획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야당들의 공통관심사인 ‘민심 그대로’ 선거제도 개혁을 매개로 개혁 협치의 틀을 만드는 것입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당이든 야당이든 양심적이고 국가를 생각하는 정치인들께도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개인의 정치적 미래나 내가 속한 당의 정치적 이익이 중요한 때가 아닙니다. 지금 시스템 개혁을 하지 못하면 대한민국 정치는 다시 ‘퇴행의 길’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을 떠나서 시스템을 개혁하기 위해 협력하고, 시민사회와도 손을 잡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촛불을 들었던 동료시민들에게 제안드립니다. 누구에게 기대하는 것과 의존하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는 문 대통령이나 양심적 정치인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모든 개혁은 국회 앞에서 멈춰있습니다. 정치개혁, 재벌개혁, 검찰개혁 모두가 무산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5년 단임제 대통령의 임기는 짧습니다. 임기 후반부에는 개혁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집권 초기 1년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간만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개혁의 첫걸음은 국회를 바꾸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전히 모든 개혁을 가로막고 특권만 누리려는 국회의원들을 그대로 두고 무슨 변화를 바랄 수가 있겠습니까? 지난 11일 뉴스타파는 상당수 국회의원들이 국민세금을 지원받아서 ‘베끼기 정책자료집’을 발간했다는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안상수(인천 중·동·옹진·강화), 홍문표(충남 예산·홍성), 박덕흠(충북 옥천·영동·괴산·보은), 이종배(충북 충주), 이헌승(부산진을) 의원이 1차로 지목됐습니다. 정부부처 보도자료나 타 기관 연구보고서를 통째로 베껴서 정책자료집을 발간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원들이 공직후보자 인사청문회 때는 ‘표절은 도둑질’이라고 호통을 쳤다니 정말 한심한 일입니다. 학생들이 이렇게 보고서를 낸다면 0점을 받을 것이고, 연구자가 이렇게 했다면 학계에서 매장될 것이며, 공직후보자가 이렇게 했다면 사퇴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엉터리로 의정활동을 하고 국민세금을 도둑질해도, 지역구 관리만 잘하면 다음번에도 국회의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일 것입니다. 이런 의원들을 퇴출시키는 것은 주권자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광화문 촛불을 여의도 촛불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제는 정권교체를 넘어서서 정치교체로 가야 합니다. 지금의 낡고 썩은 정치를 바꿔야 앞으로 우리 삶이 편안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11월11일 광화문광장에서 전국의 시민단체들이 모여 정치개혁과 국민주도 개헌을 요구하는 주권자대회를 연다고 합니다. 촛불이 일어났던 광화문에서 모여 주권자들의 의지를 다지고, 그 이후에는 여의도로 가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차가운 바닥에서 촛불을 들지 않아도 되는 나라, 정치가 내 삶을 위기로 몰아넣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통해 내 삶의 문제를 풀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한 번 더 촛불을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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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핀란드는 대한민국과 유사한 면이 많은 나라다. 1917년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선포한 핀란드는 곧바로 좌·우 간의 내전을 치르게 된다. 당시 핀란드 인구가 300만명 정도이던 시절이었는데, 내전의 와중에 3만6000명의 핀란드인이 사망했다. 인구의 1%가 넘는 숫자였다. 전투 중에 죽은 경우뿐만 아니라, 테러와 질병, 포로수용소에서의 굶주림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었다. 비참한 상황이었다. 내전에는 독일, 소련의 외국군대까지 개입했다. 내전의 결과는 우파의 승리였다. 우파는 왕이 있는 군주국을 선호했다. 그러나 우파를 지원했던 독일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핀란드는 공화국의 길을 가게 된다.

그러나 공화국의 권력구조를 둘러싸고도 이견들이 존재했다. 내전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강력한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입장과 그것에 반대하는 입장이 존재했다. 그런 와중에 치러진 1919년 핀란드 총선에서는 특정 정당이 과반수를 차지할 수 없었다. 핀란드가 택하고 있던 비례대표제 선거제도 덕분이었다.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이 배분되는 선거제도인데, 1위를 차지한 정당이 얻었던 득표율은 40% 정도였다. 그래서 여러 정당들이 타협해서 내각을 구성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1919년에는 핀란드 헌법이 만들어졌다. 이 헌법은 양쪽 입장의 타협물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통령제와 의회제가 혼합된 형태를 택했다. 이원집정부제(준대통령제, 분권형 대통령제라고 불린다)가 만들어진 것이다. 대통령이 의회해산권, 군통수권, 총리임명권 등 강력한 권한을 갖지만, 총리 중심의 내각은 의회 주도로 운영되는 모델이었다.

이와 같은 타협안이 만들어지게 된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사람은 1919년 핀란드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카를로 유호 스톨베리’였다. 그는 당시 외국의 헌법과 정치제도를 깊이 연구했던 법학자이자 정치가였다. 그는 우파였지만, 자유주의자였다. 여성참정권을 지지했고, 공화국을 지지했다. 그는 혼합형 정부형태라는 타협안이 성사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다만, 스톨베리는 대통령 직선제를 지지했지만, 이 부분에서는 그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았다. 당시 핀란드는 대통령 간접선거제를 택했고, 1994년에야 대통령 직선제로 바뀐다(결선투표제까지 도입됐다). 스톨베리는 1919년 간접선거를 통해 핀란드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스톨베리는 내전의 후유증에 시달리던 핀란드에서 입헌주의 정치가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1925년 대통령 연임 시도를 하지 않고 물러난다.

그러나 핀란드의 시련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1930년에는 극우파들이 스톨베리 전 대통령을 납치하는 사건을 일으키고, 쿠데타까지 일으키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좌절되었다. 핀란드는 1939년과 1941년 소련과 두차례 전쟁을 치르면서 영토의 15% 정도를 잃고 전쟁배상금까지 물어주는 상황에 내몰리기도 한다. 그러나 핀란드는 내전과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고, 복지국가를 만들어 왔다. 핀란드의 교육은 세계적인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부패가 없는 나라에 속하고, 행복도나 ‘삶의 질’도 높은 편에 속한다. 핀란드가 시련 속에서도 지금의 핀란드를 만들 수 있었던 원인은 정치인들의 높은 책임감 등에도 있지만, 선거제도를 빼놓을 수 없다. 핀란드는 처음부터 국회 구성에서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이 제도는 표심이 그대로 반영되는 의회 구성을 가능하게 했다.

핀란드 국회는 자연스럽게 다당제 국회가 되었다. 좌파, 우파, 중도파 모두 국회에 들어오게 되었다. 어느 한쪽이 마음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숱한 갈등 속에서도 토론과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 수밖에 없었다. 극단적인 주장은 자연스럽게 도태되게 되었다. 이런 국회를 가능하게 한 선거제도야말로 핀란드 민주주의 시스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선거제도 개혁과 개헌이 동시에 논의되고 있다. 국회에서는 정치개혁특위와 개헌특위가 가동 중에 있다. 그러나 국회 내부에서 합의점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의 국회는 생산성이 제로에 가까운 상황이고, 이 난국을 헤쳐 갈 ‘정치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대통령 탄핵 같은 상황을 겪고도 정치시스템을 개혁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다시 퇴행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핀란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100년 가까운 핀란드 공화국의 역사에서 가장 지속성을 갖고 있는 것은 선거제도이다. 오히려 권력구조는 계속 변화해 왔다. 초기에는 내전과 전쟁 같은 상황을 겪으면서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강력한 권한을 가졌다. 그러나 1990년대에 냉전이 종식되고 평화분위기가 만들어지자 핀란드는 헌법을 정비하여 대통령의 권력을 의회로 좀 더 분산시키는 개헌을 했다. 권력구조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대내외적인 여건에 따라 변동가능한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선거제도이다. 민주주의를 한다면서 민심을 반영하는 선거제도를 갖추지 못한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함이다. 그래서 정치시스템 개혁의 입구는 선거제도 개혁일 수밖에 없다. 이것을 이뤄내야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부패를 없애고, 토론이 가능하고 문제해결 능력이 있는 정치를 만들 수 있다. 국회 스스로 하지 못한다면, 주권자들이 나서서라도 이것 하나만은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 그래야 촛불혁명이 완성된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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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문 앞에는 매일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국회 정문 앞은 1인 시위 장소로는 그리 좋지 않다. 지나다니는 행인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굳이 국회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이유는 국회의원들이 피켓 내용을 한 번이라도 보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대개 차량을 타고 경비대원들이 지키는 정문을 통과해버린다. 결국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의 절박한 목소리가 국회의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는 알 수 없다. 이런 풍경을 보면, 대한민국 국회와 시민 간의 거리가 느껴진다. 국회는 시민 옆에 있지 않다. 국회 담장에 둘러싸여 여의도 면적의 8분의 1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자기들끼리 존재할 뿐이다. 그 넓은 땅은 시민들이 평화롭게 의견을 표명하고, 휴식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국회 담장에서 100m 이내는 집회도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국회 정문 앞에서는 기자회견이 열린다. 집회를 못하게 해 놓으니,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기자회견’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언론을 상대로 한 기자회견은 ‘집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찰·검찰이 기자회견을 한 것을 두고 ‘집회’를 했다면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수사·기소를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것이 기자회견이고, 어떤 것이 집회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사법기관 맘대로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법해석이 벌어진다.

이 모든 것은 국회 담장이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국회 담장이 없다면 국회 건물 앞에 가서 1인 시위도 할 수 있고, 지금 국회 정문이 있는 위치에서 집회도 할 수 있다. 국회 안의 넓은 잔디마당에서 시민들이 휴식도 하고 문화행사도 열 수 있을 것이다. 진짜 ‘열린 국회’ ‘국민의 국회’라면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의 여의도 국회 자리로 국회의사당이 옮겨진 것은 1975년의 일이다. 그전까지는 지금의 서울특별시의회 자리에 국회의사당이 있었다. 그때에는 이런 담장이 없었다. 외국의 국회도 대부분 담장이 없다. 국회 건물에 들어갈 때에야 검색도 하겠지만, 국회 건물 바깥은 열려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국회 담장을 철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철거 못할 이유가 없다. 담장 철거는 국회의 특권을 무너뜨리는 상징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20대 국회가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를 표방했지만, 성과는 민망한 수준이다.

국회의원 체포동의안을 72시간 내에 본회의에 자동상정되게 하고, 친·인척을 보좌직원으로 채용할 때 신고의무를 부여했다지만, 너무 당연한 것들이다. 만 40세 미만 국회의원은 민방위 훈련에 참여하도록 법개정을 했다는데, 작년 4월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 중 만 40세 미만인 사람은 3명뿐이었다. 그 외의 ‘특권 내려놓기’는 말만 무성했을 뿐, 실제로 된 게 없다. 정작 시민들의 불만이 높은 문제들은 개선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노동자 평균연봉의 4배에 달하는 국회의원 연봉(2016년 1억4700만원), 인턴 2명을 포함해서 9명에 달하는 개인 보좌진, 81억원에 달하는 특수활동비, 전직 국회의원에게 지급되는 특혜성 연금 문제는 개선된 것이 없다.

국회가 쓰는 예산 관련 정보를 비공개하는 것도 여전하다. 입법 및 정책활동에 쓰라고 지급되는 ‘입법 및 정책개발비’ 지출증빙서류조차 비공개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회는 여전히 특권의식으로 무장된 국회이다. 이런 국회를 바꾸기 위한 첫 단추로 ‘담장 철거’가 반드시 필요하다. 다행히 국회 내에서도 이런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과거에 국회담장 허물기를 제안했었다. 지난 5월 바른정당은 국회담장 허물기를 당론으로 채택했다고 한다. 국회 담장을 허무는 것과 함께 정치개혁, 국회개혁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토론을 국회 안 잔디마당에서 한판 벌여보자. 스웨덴은 각 정당들, 시민단체, 학계, 언론이 참여하는 정치박람회를 매년 열고 있다. 수백개의 부스가 차려지고 수천개의 세미나가 열린다. 이런 토론마당을 국회 안 잔디마당에서 열고, 한국정치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대안들에 대해 토론을 펼쳐보자.

정치개혁, 국회개혁은 보수·진보의 문제도 아니다. 합리적인 토론이 가능한 정치를 만들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국회는 영원히 불신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시민들의 삶에 필요한 정책들이 제대로 토론되지 못하는 국회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제대로 된 국회의원이라면, 한 번쯤은 ‘국회다운 국회’에서 의정활동을 해 보고 싶어야 하는 것 아닌가?

국회에 설치된 정치개혁특위의 논의방식도 바꿔야 한다. 이제는 국회의원들끼리 하는 정치개혁 논의가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하는 정치개혁 논의가 되어야 한다. 민심을 왜곡하고 수많은 사표를 양산하는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 내년 6월로 다가온 지방선거제도는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를 놓고 시민들과 함께 토론해야 한다. 여의도 8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국회는 이런 토론의 광장으로 변신해야 한다.

10월28일로 다가온 촛불 1주년에 국회의 담장이 철거되면 어떨까라는 상상도 해 본다. 한꺼번에 담장을 철거하지 못한다면, 국회 출입을 개방하고 앞서 얘기한 정치개혁박람회를 국회 안마당에서 여는 것으로 시작해도 좋다. 이런 변화도 하지 않겠다면 ‘이제는 국회를 바꿀 때’라는 민심이 터져나올 것이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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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들이 문제다. 충청북도의원 4명이 물난리가 난 지역을 뒤로하고 외유성 해외연수를 떠나서 시민들의 분노를 샀다.

충청북도의원만이 문제는 아니다. 5월 말에는 광주 서구의회 의원들이 여행사의 패키지 여행상품으로 공무 국외연수(해외연수)를 다녀와서 논란이 되었다. 의원들이 일반인과 섞여서 관광지 중심의 일정을 다녀와 놓고, ‘공무 해외연수’라고 한다니 한심한 일이다.

지방의회만이 문제가 아니다. 국회에서는 21일 추경예산을 통과시키는 본회의가 열렸는데, 정족수가 모자라서 1시간 가까이 회의가 지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에서 26명이 본회의에 불참하는 바람에 발생한 일이다. 그 26명 중에는 불가피한 일정이 있었던 사람도 있겠지만, 뚜렷한 이유가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지역구 행사에 참석한 사람도 있다고 하니 한심한 일이다.

새로운 대통령 취임 이후에 첫 번째 추경예산을 통과시키는 일보다 여당 의원들에게 더 중요한 일이 있는가? 추경예산 편성방향이 타당하냐 아니냐를 떠나서 정치인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책무성에 관한 문제이다. 이러니 국회나 지방의회가 신뢰받을 수 없다. 그래서 시민들 중에는 국회나 지방의회가 아예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는 분들도 있다. 심정은 이해가 간다. 의원 숫자를 줄이자는 ‘포퓰리즘 공약’이 나오는 배경도 이런 이유다. 지난 대선에서도 몇몇 후보들이 국회의원 숫자 줄이자는 것을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의회를 없앨 수는 없다. 대의민주주의를 하는 이상 의회는 필요하다. 의원 숫자를 줄이는 것도 답이 아니다. 그것은 ‘더 나쁜 의회’를 만드는 방법이다. 숫자를 줄이면, 특권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300명 국회의원 중 1명이라고 해도 특권의식에 찌들어 있는데, 200명 중에 1명이 되면 목에 힘이 더 들어가기 마련이다. 진짜 국회개혁을 원한다면, ‘특권은 줄이고, 의석은 늘리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우리와 인구가 비슷한 나라들의 국회의원 숫자를 보면 대체로 우리보다 많다. 인구가 6400만명 남짓한 영국의 국회의원 숫자는 650명이다. 인구가 8000만명이 조금 넘는 독일의 국회의원 숫자는 현재 630명이다. OECD 국가 평균을 보면 대략 인구 10만명당 1명의 국회의원을 뽑는다. 그렇게 따지면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숫자 300명은 적은 편이다.

주권자인 시민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지금의 국회예산으로 300명이 아니라 360명의 국회의원을 쓰는 것이 이득이다. 올해 국회예산 5744억원이면 충분히 360명을 쓰고도 남는다. 진짜 제대로 된 국회를 원한다면,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되,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고, 중앙선관위도 지지하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제로 도입하려면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360명으로 의석을 늘리고 비례대표 의석을 100명 이상으로 늘리면,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와 함께 정당의 공천개혁을 병행하면 대한민국 정치는 혁명적으로 바뀔 것이다. 1993년 뉴질랜드도 선거제도 개혁을 하면서 99명의 의원정수를 120명으로 늘렸다. 그렇게 해서 제대로 된 국회를 구성하는 것이 주권자에게는 이득이다.

지금 시민들이 국회의원을 보기 싫어하는 이유는 그들이 누리는 과도한 특권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은 ‘우리가 무슨 특권이 있냐’고 하지만, 누구의 시선으로 보느냐가 중요하다. 예를 들면 국회의원들이 받는 연봉 1억4700만원(2016년 기준)은 장차관급 연봉에 맞춘 액수라고 한다. 그런데 왜 국회의원들이 장차관급 대우를 받아야 하나? 국회의원 연봉이 맞춰야 할 기준은 장차관 연봉이 아니라, 노동자 평균임금이 아닐까? 실제로 스웨덴 같은 유럽 복지국가들의 국회의원은 그 나라 노동자 평균임금보다 조금 더 많은 수준의 연봉을 받는다.

이처럼 국민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지금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모든 것이 문제다. 왜 국회의원들은 개인보좌진 7명에 인턴 2명까지 둘 수 있어야 하나? 물론 열심히 일하는 국회의원은 ‘지금 개인보좌진으로도 너무 바쁘다’고 얘기하지만, 그것 역시 국회의원의 시선일 뿐이다.

지금 국회의원 개인보좌진이 하는 일 중 상당수는 불필요하거나 효과적이지 못한 일들이다. 지역구 관리, 비생산적인 정쟁, 건수 채우기 식의 법안 발의에 드는 에너지 빼고, 어떻게든 언론에 한 번 나기 위해서 몰두하는 에너지를 빼고 나면, 진짜 국가를 위한 정책개발에 쏟는 에너지는 얼마나 될까? 지방의원 해외연수, 국회의원 해외출장도 마찬가지다. 왜 관행적으로 해외연수, 해외출장을 가나? 정말 필요한 것이라면 당연히 가야 하지만, 실상은 예산이 책정되어 있기 때문에 가는 것에 불과하다.

이제는 이런 수준의 국회, 지방의회는 보고 싶지 않다. 그래서 국회, 지방의회의 전면개혁이 필요하다. 개혁을 하려면, ‘특권폐지 시민위원회’ 같은 것을 구성해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들이 스스로 할 가능성이 없기에, 주권자들이 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국회와 지방의회를 구성하는 규칙인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다양한 정당들이 정책으로 경쟁하도록 만들고, 특권과 부패에 찌든 정당·정치인들을 퇴출시키는 방법은 선거제도 개혁뿐이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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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시가 시작한 청년배당 정책이 2년째를 맞고 있다. 성남시는 2016년에 분기당 12만5000원의 청년배당을 만 24세 청년들에게 지급하기 시작했다. 올해는 분기당 25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기본소득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청년배당은 지역상품권 형태로 지급되기 때문에, 지역경제에도 보탬이 된다.

청년배당을 지급받으려면 3년 이상 성남시에 거주해야 한다는 조건만 충족하면 된다. 그 이외에 다른 조건은 없다. 그래서 성남시에 거주하는 청년 1만1000명 정도가 청년배당을 지급받는다. 1년에 들어가는 예산은 100억원 정도이다. 이 청년배당 정책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해왔다. 왜 ‘조건 없이 돈을 지급하느냐’는 반론도 많았다. 그리고 찬성하는 입장에서도, ‘1년에 100만원으로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까’라는 의문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2016년 녹색전환연구소와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가 청년배당을 지급받는 성남시 청년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청년들이 느끼는 것은 다르다. ‘청년배당이 생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습니까?’라는 질문에 40.3%가 ‘매우 그렇다’라고 응답했고, 55.0%가 ‘어느 정도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청년들 중 95.3%가 1년에 50만원, 100만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청년들에게는 돈이 부족한 것이다.

조사결과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한 청년의 얘기였다. 그 청년의 얘기를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돈이 없어서 취업을 하려 함 → 취업하는 데에 어느 정도 스펙이 필요 → 스펙을 위해 공부를 해야 함 → 공부할 돈이 없음 → 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함 → 돈은 버는 데 공부할 시간을 빼앗김. 악순환.”

이 얘기를 읽으면서 깊이 공감했다. 미래를 준비하려 해도 돈이 필요한데, 기성세대는 돈을 지급하기보다는 ‘요즘 청년들은 열정이 부족하다’는 꼰대질을 해 왔던 것이 아닐까?

청년들 중에는 ‘기성세대가 청년을 바라보는 시선이 가장 두렵다’는 얘기를 한 청년도 있었다. ‘젊을 때에는 고생해야 한다’ ‘우리 때는 얼마나 고생했는데 배부른 소리한다’는 시선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청년세대야말로 ‘경제적 시민권’을 박탈당한 세대이다. 말로만 시민일 뿐, 시민으로 살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나 기회는 부족하기 짝이 없다. 그나마 찾을 수 있는 일자리도 저임금·불안정 노동밖에 없는 청년들이 많다. 이런 청년들에게 ‘열정’을 강요하는 것이 정당한 일일까? 자립해서 살아가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어 놓고, ‘자립하라’는 강요를 하는 것도 모순이다.

진정한 자립은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 속에서만 가능하다. 청년들이 일찍 자립하는 나라는 청년들에게 ‘비빌 언덕’을 마련해주는 나라이다. 청년들에게 지급되는 각종 수당과 혜택들이 잘 갖춰진 나라일수록 청년들의 자립이 쉽다는 것은 검증된 사실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어떤가? 아스팔트 깔고 쓸데없는 건물 짓는 데 들어가는 돈만 줄여도, 그리고 새고 있는 세금만 제대로 걷어도 청년들에게 몇 년간이라도 청년배당을 지급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만약 청년이 되었을 때에 일정 기간 동안 청년배당을 받을 수 있다면, 청소년들의 삶도 달라질 것이다. 덜 불안하고, 좀 더 여유 있게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청년들이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성남시의 청년배당을 받은 청년들은 배려와 존중을 받은 느낌이라고 한다. 말로만 ‘시민’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시민으로 대우를 받은 느낌인 것이다. 그래야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정치적 시민권’도 문제이다. 대한민국의 상당수 청년들은 참정권조차 박탈당한 상황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만 19세 선거권 연령을 규정하고 있고, 지방의원이라도 출마하려면 만 25세가 되어야 한다. 그나마 만 25세가 넘어서 피선거권을 획득하더라도 승자독식의 선거제도 때문에 청년들이 국회나 지방의회에 진출할 수도 없다. 비례대표가 ‘장식품’에 불과한 지역구 중심의 선거제도 때문이다. 청년들이 기득권 정당에 들어가 당선가능한 지역구에서 공천을 받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국회에서는 2030세대가 1%, 지방의회에서도 2~3%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래서 청년배당과 함께,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참정권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논의의 판은 열렸다. 지난 15일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국회 내에 정치개혁특위를 구성하기로 잠정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정치개혁특위에서 논의될 핵심 쟁점은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이지만, 청년들의 참정권 확대도 중요한 의제로 다뤄져야 한다. 높은 선거권·피선거권 연령을 낮추는 것은 물론이고, 청년들의 정치참여를 가로막는 다양한 장벽들을 제거해야 한다.

청년들이 직접 청년배당과 참정권 확대를 요구하는 것도 필요하다. 물론 더 나이 많은 세대들도 함께해야 한다. 이 두 가지만 실현되더라도, 팍팍하게 살아가는 많은 청년들의 삶에 숨통이 트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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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5·18기념식에서 열사 4명의 이름을 불렀다.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고 군사정권의 억압에 맞서 목숨을 던졌던 이들이다.

다가오는 6월10일에도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 있다. 1987년 1월1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당해 목숨을 잃었던 박종철, 6월9일 최루탄에 쓰러져 목숨을 잃은 이한열. 그리고 6월18일 부산 범천동 고가도로에서 시위 중에 최루탄을 맞고 추락해 숨진 ‘이태춘’이라는 이름도 기억해야 한다. 그해 여름 거리에 섰던 수많은 시민들도 잊을 수 없다. 그중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있었다. 그는 6월항쟁 당시 30만명이 참여하는 부산시위를 이끌었던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 부산본부’ 상임집행위원장이었다.

30년 전 최루탄 속에서 발표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의 결의문은 “동장에서부터 대통령까지 국민들의 손으로 뽑게 될 수 있을 때에도 소중한 국민주권을 신성하게 행사할 것임을 온 국민의 이름으로 결의한다”로 끝맺고 있다.

제37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기념식이 18일 오전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거행된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그렇다. 대통령을 직선으로 뽑으면 민주주의가 진전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군사정권의 일원이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87년 12월 대선에서 당선되었고, 10년의 민주정부 후에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을 거쳤다. 그러나 1987년의 결의는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작년 가을부터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은 ‘우리가 국가의 주권자’임을 보여주었고,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다. 개혁의 길은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은 바꿨지만, 국민들의 신뢰를 잃은 국회는 전혀 바뀌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국회만 바뀌지 않은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의 기득권 구조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를 거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한 듯하다. 세월호 참사 당시 순직한 기간제 교사의 순직 인정부터 시작해서 대통령 권한으로 우선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있다. 청와대 특수활동비 53억원을 줄이겠다고 선언한 것도 그 일환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노력은 명백한 한계가 있다. 결국 법률을 바꾸고 예산을 통과시키려면 국회를 거쳐야 한다. 재벌개혁, 검찰개혁, 조세·예산개혁을 하려고 해도 국회를 거쳐야 한다. 개헌을 내년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에 부치려고 해도, 국회가 국민들의 의견을 잘 수렴해서 ‘좋은 개헌안’을 만들어야 한다. 개헌과 연결된 문제인 선거제도개혁도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국회가 이런 일들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오히려 대한민국 국회는 온갖 적폐의 온상이 되어 버린 듯하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특수활동비’도 1차적으로 개혁해야 할 곳은 국회다. 국회 스스로가 연간 81억원이 넘는 특수활동비를 사용하다보니 행정부의 특수활동비 사용을 감시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국회 특수활동비는 의장단, 원내대표단, 상임위원장단의 쌈짓돈처럼 쓰이고 있다고 한다. 어디에 쓰는지도 공개되지 않는다.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는 여당 원내대표 시절에 특수활동비를 받아 생활비로 썼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특수활동비만이 문제가 아니다. 국회는 업무추진비, 예비금, 의장단 및 정보위원회 해외출장비의 사용내역을 공개하지 않아서 지난 4월30일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국회의원 1인당 연간 4500만원까지 쓸 수 있는 ‘입법 및 정책개발비’의 지출증빙서류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가의 일에 집중해야 할 국회의원들은 지역구 관리에 매달리고 있다. 지방의원인지, 국회의원인지 분간이 안된다. 그런 와중에 특권만 챙긴다. 연봉이 1억4700만원이 넘고, 개인보좌진 숫자도 독일 국회의원의 2배 수준이다. 정당은 ‘세금 먹는 하마’일 뿐 제 역할을 못한다. 정책기능이 부실해서 선거 때마다 캠프 중심으로 정책이 급조된다.

정당의 가장 중요한 일인 ‘공천’도 엉망이다. 지금대로면 내년 6월로 예정된 지방선거에서 또다시 국회의원, 당협위원장이 공천권을 휘두르는 반민주적인 일이 벌어질 것이다. 최소한 당원들이 후보자를 선출해야 정당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아닌가? 독일처럼 당원들이 뽑지 않은 후보는 후보등록을 거부하도록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

국회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권고한 개혁도 하지 않고 있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기득권을 지키려고 개혁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15년 2월과 2016년 8월, 두 차례에 걸쳐서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만 18세 선거권 연령, 유권자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규제 개선 등을 국회에 권고한 바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공정한 선거제도를 도입하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국회에서는 제대로 된 논의조차 안되고 있다. 이런 제도개혁 논의를 하려면 국회 내에 정치개혁특위부터 구성해야 하지만, 국회는 이런 일을 미루고 있다.

그래서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맞는 마음이 기쁘지만은 않다. 적폐 덩어리인 국회를 개혁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의 진전은 불가능하다. 그 어떤 개혁도 좌초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범국민적인 ‘정치판갈이’ 운동이 필요하다. 선거제도개혁, 국회개혁, 정당개혁을 이뤄내야 한다. 1987년에 이루지 못했던 개혁이지만, 이제는 해야 한다. 국회다운 국회를 만들지 못하면, 나라다운 나라는 불가능하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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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1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5·9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감개무량한 일이다. ‘내년 2월까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집권했다면?’이라는 상상을 해보면 정말 아찔하다. 지금까지 드러난 부패와 국정농단이 그때까지 지속되었다면 대한민국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갔을 수 있다. 그래서 5월9일은 4·19, 6·10과 함께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켜낸 또 다른 기념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5월9일에 잊지 말아야 할 것들도 있다.

첫째, 탄핵과 조기 대선을 함께 이뤄낸 동료 시민들 중 상당수가 투표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 19세로 정해진 선거권 연령 때문이다. 작년 10월 이후 청소년들은 촛불시민혁명의 주역이었다. 광장에서 발언하고 함께 촛불을 들었다. 그런데 투표는 하지 못한다. 최소한 만 18세부터라도 투표를 할 수 있도록 선거권 연령을 낮췄어야 했지만, 국회에서는 그것조차 통과되지 못했다. 그래서 지난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한 청년들도 생일이 5월9일 이전이 아니면 투표권이 없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오스트리아, 스코틀랜드 같은 나라는 만 16세로 선거권을 낮췄고, 이웃 일본조차도 만 18세로 선거권을 낮췄는데 대한민국이 여전히 만 19세라는 것은 정말 국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그래서 청소년 단체들이 모의투표 사이트(www.18vote.net)를 만들고 투표운동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만 19세가 안된 시민들의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표권 문제도 있다. 당장 5월9일에도 근무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공직선거법 제6조의2에 따르면, 노동자가 사전투표기간과 선거일 모두 근무하는 경우 투표에 필요한 시간을 고용주에게 청구할 수 있고, 고용주는 이를 보장해 줘야 한다. 위반하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법조항도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설사 안다고 해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고용주에게 이런 요구를 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선거일을 법정유급휴일로 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어야 한다. 그리고 당장 5월9일로 다가온 대선에서 투표의사가 있는 노동자들은 모두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철저하게 감독해야 한다.

둘째, 우리 삶이 바뀌려면 대통령 교체를 넘어서서 ‘정치시스템 교체’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탄핵되었지만 비인간적인 사회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광화문에는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그래서 대선 이후가 중요하다. 특히 5월9일부터 한두달 정도의 기간이 촛불시민혁명이 더 진전할 수 있을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시간이 될 것이다. 이 시간 동안 시민들은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람이 ‘영웅’처럼 뭔가를 해결해 주겠지 하고 기대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사실 새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람은 당선 직후부터 최악의 환경에 둘러싸일 가능성이 높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국회는 여소야대 상황이 될 것이다. 총리와 장관 인선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고, 사드 등 현안을 푸는 데 매달리다 보면 시간은 훌쩍 지나가버릴 것이다.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정책들도 국회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아무것도 안되는 상황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새로운 대통령에게만 기대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핵심은 국회다. 국회를 바꾸지 않고서는 촛불시민혁명은 진전할 수 없다. 개혁을 위한 입법도, 우리 삶을 위한 정책예산도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5·9 대선 이후에는 ‘대통령도 바꿨으니 국회도 바꾸자’는 목소리를 함께 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는 광화문 광장에 모인 촛불이 여의도로 이동할 때가 되었다.

국회 개혁은 단지 국회의 잘못된 행태를 비판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된다. 국회 개혁의 핵심은 국회를 구성하는 규칙을 바꾸는 것이다. 바로 선거제도 개혁이 정치 특권계급화되고 있는 국회를 개혁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이번에 유력 대선후보들도 약속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정당득표율대로 국회의석을 배분하는 제도) 도입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래야 공정하게 민심을 반영하는 국회 구성이 될 수 있고, 다양한 정당이 정책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국회를 만들 수 있다. 물론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과도한 특권을 폐지하고, 지역구 예산 나눠먹기 등 국회의 잘못된 행태를 타파하는 것도 필요하다.

마침 6·10 민주항쟁 30주년이 다가오고 있다. 6·10 때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지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국회를 포함한 전체 정치시스템을 바꾸지 못했던 탓이 크다. 이번 6·10 항쟁 30주년에는 국회를 바꾸고 잘못된 정치시스템을 바꾸자는 데 전국의 시민사회가 함께 목소리를 냈으면 한다.

지방자치 개혁도 필요하다. 지금 지방자치에 부패, 예산낭비 등 온갖 적폐들이 쌓이고, ‘내 삶에 도움이 되는 지방자치’가 되지 못하는 것은 지방선거제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한국의 지방선거는 특정정당의 1당 지배체제, 거대정당의 정치독과점 구조를 만들었다. 여성과 청년들, 소수자와 약자들은 지역정치에서도 소외되고 있다. 풀뿌리민주주의가 아니라 풀뿌리 기득권주의가 고착되고 있다. 그래서 내년 6월로 다가온 지방선거 전에 선거제도의 전면 개혁이 필요하다. 물론 지방선거제도를 바꾸려 해도 국회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모든 것을 만든 곳이 국회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5월10일 아침을 국회 앞에서 1인시위하는 것으로 시작하려고 한다. 30년 만에 온 기회를 또다시 ‘미완의 시민혁명’으로 끝내지 않겠다는 다짐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하기 위해서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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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31일 오후 1시. 3년 가까운 긴 기다림 끝에 세월호가 목포신항으로 들어왔다. 이렇게 인양할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을 지체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나고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이 이런데, 미수습자 가족들, 유가족들의 마음은 어떨까? 이미 너무 늦었지만, 하루빨리 미수습자들을 찾고, 참사의 진상이 철저하게 규명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하늘에 있는 영령들에게 최소한의 예를 갖출 수 있을 것이다.

그날 새벽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들어온 날과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된 날이 같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방해해 왔다. 또한 세월호 참사 당일 자신의 행적에 대해 숱한 의혹이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무언가를 감추려 해 왔다. 박 전 대통령이 그토록 감추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것은 앞으로의 숙제이다.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청와대에 있는 기록물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박 전 대통령의 기록물을 분류해서 국가기록원에 이관하는 것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이관을 하면서 박 전 대통령 기록물들에 대해 최소 15~30년짜리 보호기간을 지정하려 한다. 그렇게 되면, 세월호 참사는 물론이고 개성공단 폐쇄,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 등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웠던 사건들의 진상을 밝히기가 상당히 어려워진다.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 이상 찬성, 고등법원장의 영장 등 아주 엄격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관련 기록물들을 15~30년 동안 열람도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 대행의 이런 행위는 위헌이다. 법적 근거가 없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현행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는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임기를 만료했을 경우를 전제로 이관 및 보호기간 지정 절차를 규정해 놓았다. 대통령이 탄핵되었을 경우에 대한 법조항은 전혀 없다. ‘입법의 공백’이 있는 것이다.

이런 ‘입법의 공백’은 해석으로 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국회에서 신속하게 법을 보완해야 한다. 그런데 황 대행은 행정자치부 자문변호사 3명의 의견서가 근거라며, 이관과 보호기간 지정을 강행할 태세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국회는 이 문제에 대해 입법적 조치를 취했어야 하지만, 손을 놓고 있다. 당연히 박 전 대통령의 기록물은 동결조치하고, 독립적 주체가 이관절차를 관리하고 보호기간 지정도 해야 한다. 그리고 각종 의혹의 진상규명을 위해 필요한 정보는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공개되어야 한다. 이 당연한 일들이 가능하도록 입법을 하는 것이 국회의 역할 아닌가?

보다 못해서 녹색당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이번주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예정이다. ‘황 대행의 법적 근거 없는 기록물 이관과 보호기간 지정은 위헌’임을 주장하는 헌법소원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국가라면, 국회가 이 문제를 입법으로 풀었어야 한다.

이 문제뿐만 아니라 숱한 적폐청산과 개혁과제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재벌개혁, 검찰개혁 입법은 물 건너갔다. 청년 63만여명이 5월9일 대선에서 투표할 수 있는지가 걸려있었던 만 18세 선거권 연령 입법도 물 건너갔다. 뭐 하나도 분명하게 진행되는 것이 없다. 국회는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정당들과 정치인들은 말만 무성하게 쏟아낼 뿐 아무런 문제 해결을 못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책임이 크지만, 야당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 야당 원내대표들이 ‘1월에 하겠다’, ‘2월에 하겠다’, ‘3월에 하겠다’고 약속했던 개혁입법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책임정치’는 완전히 실종된 상황이다.

5월9일 대선에서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된들, 이런 상황이 나아질 수 있을 것인가? 벌써부터 정치권 주변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되는 게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것이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이뤄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이 답답함을 느끼는 이유이다. 대통령 한 사람 바꾸자고 촛불을 든 것이 아니라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국회를 바꿔야 한다.

지금 국회는 힘이 없는 척하지만, 힘이 없는 게 아니다. 국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권력’을 아주 나쁘게 행사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국민의 위임을 배신하고, 기득권에 봉사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재벌, 검찰 등 온갖 기득권세력은 유지된다. 국회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가계부채, 청년부채, 낮은 최저임금, 미세먼지, 농민들과 영세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개선되지 않는다. 지금 국회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시민들의 삶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국회개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대통령 탄핵과 구속 이후에는, 국회를 해산하는 수준으로 개혁을 해야 한다. 그 핵심은 국회가 끝내 하지 않으려는, 선거제도개혁이고, 국회개혁, 정당개혁이다. 이것을 이뤄내야만 촛불 시민혁명은 완성될 수 있다.

그것이 가족을 잃어버린 비통함 속에서도 기약없이 3년을 기다려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없는 국가, 특권계급화된 소수가 모든 것을 사유화하지 못하는 국가를 만드는 길이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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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결정이 임박했다. 8명의 헌법재판관들에게 대한민국의 운명이 맡겨진 느낌이다. 헌법재판관들의 평소 성향이 어떻든 간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인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 보더라도 탄핵은 열 번 인용되어도 지나치지 않다. 국회 소추위원단이 최종변론에서 얘기한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을 광범위하게, 그리고 중대하게 위반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서,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시스템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된다. ‘왜 탄핵 여부에 대한 결정을 헌법재판소에 맡길 수밖에 없는라?’라는 것이다. 대통령을 국민들이 뽑았다면, 파면시킬지 여부도 국민들이 결정하는 것이 원칙일 것이다. 오스트리아 헌법의 경우에는, 연방 하원에서 대통령을 해임시키자는 발의안이 통과되면, 해임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도록 되어 있다.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국민들이 탄핵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리에 맞지 않을까? 국민들 대다수가 탄핵을 원하는데도, 탄핵 여부에 대한 판단이 8명의 법률실무가들에게 맡겨지는 시스템은 문제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변론이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등 8명의 재판관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불출석한 박 대통령은 대리인단 이동흡 변호사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

이처럼 대한민국의 정치시스템에는 생각해봐야 할 점들이 많다. ‘민주주의’라는 말을 쓴다고 해서 다 똑같은 민주주의 국가는 아니다. 대한민국은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이다. 정치시스템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다. 특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좋은 선거제도’와 ‘보완장치로서의 직접민주주의 제도’가 모두 없는 나라이다.

그래서 탄핵이 이뤄진다면, 그 이후에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정치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와 관련된 ‘사이비 논의’가 많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국회 일부에서 나오는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논의이다. 국회에 설치된 개헌특위 소위원회에서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에 동의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이들의 주장은 국회의원 다수의 지지를 받는 총리 중심의 내각이 많은 권한을 가지게 하고, 대통령은 매우 축소된 권한을 갖게 하자는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 때문에 이런 상황이 생겼으니, 국회로 권력을 가져오자’는 얘기이다.

그러나 이 얘기는 거의 ‘기만’에 가까운 얘기이다. 오스트리아가 갖고 있는 정치시스템 전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보고 싶은 아주 일부분만을 가지고 얘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의 권력구조에서 총리 중심의 내각이 많은 권한을 행사하고, 대통령은 평상시에 명목상의 지위만 갖는 것은 사실이다. 헌법상으로는 대통령이 의회해산권, 총리 및 장관 임명권 등 무시 못할 권한을 갖고 있지만, 평상시에는 스스로 권한행사를 자제하는 정치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정치시스템에는 이런 측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오스트리아는 매우 공정하면서도 민주적인 선거제도를 갖고 있는 국가이다. 오스트리아의 연방하원 의원 선거는 비례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정당이 얻은 득표율에 비례하여 하원 의석이 배분되게 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대로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통령을 뽑을 때에도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얻는 사람이 없으면, 1등과 2등 후보를 골라서 결선투표를 한다. 이런 선거제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는 다양한 정당들이 정책으로 경쟁하며 합의점을 만들어나가는 정치구조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국회에서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한다는 국회의원들 중에 상당수는 오스트리아의 선거제도에 대해서는 언급 자체를 회피하고 있다. 한 국가의 정치체제를 얘기하면서 자기 입맛에 맞는 부분만 취사선택해서 얘기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실 지금의 지역구 중심 소선거구제를 유지한 채로,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고 총리 중심으로 권력구조를 개편한다면, 그것은 오스트리아식이 아니라 영국식이 될 수밖에 없다. 영국의 총리는 ‘선출된 독재자’라고 불릴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이다. 그 이유는 영국의 선거제도가 지역구에서 1등 하면 당선되는 소선거구제 중심이고, 그것을 통해 거대정당이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회 과반수 정당의 지지를 등에 업은 총리는 대통령 못지않은 권력을 가질 수 있다. 일본의 아베 총리도 그런 사례이다. 그래서 정치시스템을 논의할 때에도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오스트리아는 선거제도만 좋은 것이 아니라 직접민주주의 제도도 채택하고 있는 국가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통령을 파면할지도 국민들이 직접 결정한다. 10만명이 서명하면 국회에 안건을 제출할 수 있는 국민발안 제도도 도입되어 있다. 원전 폐쇄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쳐 원전 폐쇄를 결정했을 정도로 국민들의 직접 참여를 중시하는 국가이다. 인구가 900만명도 안되지만, 연방제를 실시할 정도로 지방분권이 잘되어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만약 오스트리아의 정치시스템을 배우겠다면, 이런 모든 면을 배우길 바란다. 그리고 국회의원들끼리 하는 개헌논의는 중단하고 폭넓은 공론장을 열기를 바란다. 최근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국민의당 원내대표들이 모여 자신들만의 단일 개헌안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는데, 그런 시도는 안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 식의 정략적이고 졸속적인 개헌은 결코 국민들의 동의를 받을 수 없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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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는 천막들이 들어서 있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복직, 용산참사 진상규명,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원전과 송전탑 건설 반대를 외치던 사람들이 친 천막들이었다. 이 천막들을 친 사람들은 정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밀려나고 쫓겨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이 천막농성이었다.

대통령 선거가 임박하면서 천막 안에서도 대선에 대한 얘기들이 떠돌아다녔다. 정권교체가 된들 크게 달라지겠느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래도 정권교체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들도 많았다. 그래서 박근혜 후보에게 밀리던 문재인 후보가 막판에 역전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박근혜 당선이었다. 정권교체 실패로 인한 후폭풍은 천막들로 밀려 왔다. 천막이 불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고, 결국 천막은 철거되었다. 더 이상 천막을 칠 수 없도록 중구청이 천막 자리에 화단을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복직을 요구하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박근혜 당선자의 인수위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려다, 깔개와 비닐마저도 빼앗긴 채 엄동설한을 뜬눈으로 새워야 했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의 길도 멀어졌다. 강정 해군기지 공사와 경남 밀양의 송전탑 공사가 강행됐고,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구속되고 벌금을 맞았다. 경남 밀양에서는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던 농민 한 분이 농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벌어졌다.

정권교체를 외치던 정치인들은 실패의 헛헛함을 따뜻한 방안에서 달랬을지 모르지만,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맨몸으로 폭력을 견뎌야 했다. 그리고 4년여가 흘렀다.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들어맞는 것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박근혜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되어 있고, 아마도 한달 후면 대통령직을 상실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또다시 대선이 눈앞으로 다가와 있다.

이번에도 야당 후보들은 ‘정권교체’를 외친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얼마나 절박한지 모르겠다. 그들은 정권교체에 실패한들 ‘더 큰 권력을 누릴 기회’를 잃을 뿐이지만, 촛불을 들고 나온 시민들은 희망을 잃게 된다. 지금까지 풍찬노숙을 해 온 이들의 거친 삶은 기한 없이 연장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정권교체도 그들에게만 맡겨 놓을 수는 없다. 정권교체가 된다고 해도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바꿔야 할 것투성이다. 억울함이 흘러넘치고, 불평등과 불공정함, 불합리함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다음 정권은 적폐도 청산해야 하고, 개혁도 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시간이 흘러가면 개혁이 어려워진다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개혁의 골든타임은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되고 6개월 정도일 것이다. 그 기간 내에 가시적인 개혁 성과를 내지 못하면, 곧 지방선거가 다가온다. 지방선거는 1년 남짓한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의 무대가 될 것이고, 그 선거 이후에는 죽도 밥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시민들도 막연하나마 이런 걱정들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추운 겨울에도 절박하게 매주 촛불을 들고 있다. 이 절박함을 대선후보나 국회의원들이 정말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 촛불시민들도 이제는 전략이 필요하다.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바꿔야 할 목록을 뽑아보면 100개가 아니라 200개는 넘을 것이다. 그 모든 개혁들을 해야 하지만, 개혁은 과제를 나열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개혁의 첫 단추는 정치개혁이고, 그 핵심은 선거제도 개혁일 수밖에 없다. 지금의 정치구조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는 개혁과제 하나하나가 암초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개혁을 위해서는 결국 입법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재선을 위해서는 지역구 관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국회의원들로 채워져 있는 국회에서, 재벌개혁, 검찰개혁에 정치생명을 걸고 매달릴 국회의원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대통령 탄핵소추 결의가 통과된 지 2달이 되어 가지만, 개혁입법 하나 통과 못 시키고 있는 국회의 꼴을 보면 탄식이 나오는 상황이다.

그래서 지혜가 필요하다. 가장 우선은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선거제도를 바꿔서 정당이 책임 있게 정치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개혁에 소극적인 정당은 그다음 선거에서 반드시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개혁과제들이 국회의 핵심 화두가 될 수 있다.

방법은 이미 나와 있다. 2015년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안한 대로 선거법을 바꾸면 된다. 정당이 얻은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해법이다. 이렇게 해야 정당들이 정책을 중심으로 정치를 하게 되고, 책임정치가 실현될 수 있다.

요즘 여러 지역에서 토론의 자리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다양한 목소리들 속에서 공통적인 것은 ‘그들에게 맡겨놔서 될 일은 없다’는 것이다. 결국 탄핵이 이뤄지고 대통령이 바뀌더라도 개혁의 동력은 촛불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촛불의 힘으로 선거제도 개혁부터 시작해서 숱한 개혁과제들을 밀어붙여야 한다. 아마도 대선 후에는 국회를 포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에 개혁하지 못하면 언제 또 기회가 올지 알 수 없기에, 최선을 다해보는 수밖에 없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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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경남 창원에서 열린 촛불집회 연단에 24세 청년이 올라왔다. 유튜브를 통해 본 영상에서, 그는 20세에 취직해 4년째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 전기공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세금 떼고 나면 손에 쥐는 월급이 120만원인데, 방세와 교통비, 식비, 공과금을 내고 나면 저축을 할 돈이 남지 않는다고 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만, 지금의 월급으로는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궁금해서 촛불집회에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퇴진 이후에 자기 삶이 나아질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고 했다. 1987년에도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고, 그다음에 노동자들이 대투쟁을 해서 임금도 오르고 삶이 나아졌다고 알고 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건지 궁금하다고 했다. 이 청년노동자의 소망처럼, 이번 촛불은 우리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유튜브에 떠 있는 자유발언 영상들을 보면, 이런 희망 섞인 기대들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반면 하루하루 밝혀지는 대한민국의 민낯은 참담하기만 하다. 소설가로 알려진 대학교수가 ‘정유라’에게 학점을 주기 위해 부정행위를 서슴지 않았다는 뉴스가 나온다. 국회에서는 태연하게 ‘최순실을 몰랐다’고 잡아떼던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사실은 최순실·정유라에게 수백억원을 지원하라고 직접 지시했다는 뉴스도 나온다. 힘과 돈을 가진 이들이 나라를 이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런 나라를 바로잡겠다고 알바비 7만원을 포기하고 왕복교통비까지 들여서 촛불집회에 나왔다는 청소년이 있는 게 이 나라의 기막힌 현실이다.

(출처: 경향신문DB)

그래서 이번에는 ‘박근혜’라는 한 사람이 물러나는 것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쌓여 있는 이 나라의 적폐를 청산하는 것과 함께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것이 없지는 않다. 많이 훼손되어 왔지만, 소중한 대한민국만의 유산도 있다. 일본의 식민지가 된 조국을 떠나,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독립운동가들이 꿈꿨던 나라의 모습이 여러 문서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 문서들을 보면, 대한민국의 참된 헌법정신, 건국정신을 찾아볼 수 있다.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은 ‘고르게 인간답게 사는 민주공화국’이다. 무슨 근거로 이런 얘기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1941년 11월2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공포했던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 문서에서 독립운동가들은 ‘삼균주의(三均主義)’를 표방하고 있다. 조소앙이 이론적 기반을 세웠던 삼균주의는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을 의미한다. 보통선거를 통해 정치의 균등을, 토지 국유를 통해 경제의 균등을, 무상교육을 통해 교육의 균등을 도모하고, 불평등을 해소한다는 것이었다. 독립운동가들이 꿈꿨던 나라는 이런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런 내용은 1948년 제헌헌법에도 반영된다. 제헌헌법은 이승만 세력, 한민당 등 우파로 분류되는 집단들도 참여해서 만들어졌지만, ‘대한민국 건국강령’의 연장선상에서 ‘만민균등주의’를 기본정신으로 택했다. 그래서 ‘모든 영역에서 사람들의 기회를 균등히 한다’는 것이 헌법 전문에 담겨 있다. 헌법 제정 과정에서 많은 역할을 했던 법학자 유진오는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정신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의 조화를 꾀하는 데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제헌헌법이 만민균등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좀 더 구체적으로 규정한 내용도 있다. 대표적으로 노동자에게 이익균점권을 보장했다. 사기업의 근로자가 기업의 이익 분배에 참여할 수 있다는 이익균점권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그만큼 제헌헌법을 만들 당시에는 만민균등주의에 대한 공감대가 존재했던 것이다. 만약 이런 정신만 실현되고 있다면, 24세 청년노동자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낫지 않았을까?제헌헌법은 토지 자체를 국유로 하지는 않았지만, 광물 등 지하자원은 국유로 한다고 규정했고, 운수·체신·금융·보험·전기·수도·가스 등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한다는 규정도 두었다. 농민이 농지를 가질 수 있도록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을 정했고, 이 조항을 근거로 이승만 정권도 농지개혁을 단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이후의 과정은 끊임없는 헌법정신의 훼손이었다. 노동자 이익균점권은 5·16쿠데타 이후인 1962년 삭제되었다. 공공성 있는 기업을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한다는 조항은 그보다 앞선 1954년 삭제되었다.

물론 지금 이런 조항을 단순히 부활시키자는 얘기를 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조항을 두었던 헌법의 기본정신을 복원하자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독립운동가들이, 그리고 제헌헌법이 꿈꿨던 나라는 ‘고르게 인간답게 사는 나라’였던 것이 분명하다. ‘헬조선’은 헌법정신과는 정반대의 결과이다.

그래서 박근혜 퇴진은 정경유착과 특권·기득권 구조의 퇴진이 되어야 하고, 제헌헌법의 정신을 부활시키는 강력한 개혁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선거제도 개혁, 재벌 개혁, 검찰 개혁, 관료기득권 개혁, 중앙집권적 국가구조의 개혁이 필요하다. 일하는 사람에게는 정당한 대가가 보장되고, 누구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비빌 언덕’이 권리로 보장되어야 한다. 이런 나라를 이제는 만들어야 한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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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 시민혁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혁명은 체제(시스템)의 교체를 의미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결의안이 통과되었지만, 아직 탄핵이 된 것도 아니고 박근혜·최순실을 만든 시스템도 여전히 그대로다. 그래서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너무 빠르다. 아직은 혁명이 아니다.

물론 탄핵소추가 성사된 것은 시민의 승리이다. 그러나 지금의 승리는 견고하지 못하다.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시스템의 교체는커녕 정권교체도 이루지 못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1987년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87년 6월 100만명이 거리에서 최루탄과 맞서서 ‘독재타도 민주쟁취’를 외쳤다. 그러나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이겠다는 6·29선언이 나온 후에 상황이 급반전했다.

여당과 야당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8인회의’라는 것을 구성하고, 그 안에서 헌법개정안을 만들었다. 거리에 나왔던 시민들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헌법개정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했지만, 그해 12월 치러진 대선의 승리자는 군사정권의 한 축이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었다. 야당은 지리멸렬했고, 시민들이 만들어준 기회마저도 발로 차 버렸다.

10일 서울 청운.효자동사무소 앞에 모인 제 7차 촛불 문화제 참가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구속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며 하늘로 폭죽을 쏘아올리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시위를 주도하던 세력의 한계도 있었다. 당시 민주화운동의 주류는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는 것에 집중했지만, 사실 그것만으로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 체제를 만들 수 없었다. 더구나 대통령 직선제를 주장하면서도, ‘결선투표제’처럼 당연히 필요한 제도를 논의하지도 못한 것은 결과적으로 큰 실책이 되었다. 대통령제를 택한 많은 국가들이 이미 도입하고 있었던 결선투표제만 됐더라도, 1987년 12월 대선에서 득표율 36.6%를 얻은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1987년 당시에는 국회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에 관한 논의도 없었다. 1970~1980년대에 민주화가 되었던 스페인, 포르투갈과 중남미의 많은 국가들은 정당득표율대로 국회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국회의원 선거제도로 택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논의 자체가 없었다. 결국 지역구 소선거구 선거제도를 택한 결과 국회는 지역주의 정당, 기득권 정당들이 채우게 되었다. 이들은 필요하면 정계개편과 이합집산을 거듭했다. 이것은 정치에 대한 환멸과 냉소를 불러일으켰다. 결국 87년 6월 민주항쟁은 ‘미완의 시민혁명’으로 끝났다.

지금의 상황은 1987년의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 박 대통령은 물러나게 될 것이지만, 그러나 집권세력 교체와 시스템 개혁의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

벌써부터 정치권은 다음번 대통령을 누가 차지할 것인지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야당의 대선후보들은 자기중심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을 뿐, 집권세력 교체와 시스템 개혁의 전망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탄핵에 찬성함으로써 ‘박근혜 꼬리 끊기’를 한 새누리당 세력들은 재결집을 시도할 것이다. ‘개헌’을 매개로 한 정계개편의 불씨도 살아있다. 자칫 죽 쒀서 남 줄 상황이다.

따라서 이번 촛불이 또 다른 미완의 시민혁명이 되지 않으려면, 시민들이 긴장을 놓지 않아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특검의 수사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리가 신속하면서도 철저하게 진행되도록 하고, 황교안 국무총리 대행체제가 또 다른 국정농단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앞으로 우리가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얘기다. 이번에 촛불을 들고나온 시민들의 공통된 마음은 ‘이게 나라냐’는 것이었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지금부터는 부패하고 낡은 국가 시스템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지에 관한 얘기가 곳곳에서 토론될 필요가 있다.

국가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서는 핵심을 잘 잡아야 하고 순서도 잘 세워야 한다. 시스템 개혁의 입구는 선거제도의 개혁이다. 그래야 정치판을 바꾸고, 내 삶에 도움이 되는 정치가 이뤄질 수 있다. 민주주의 역사를 볼 때, 정치판을 바꾸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선거제도 개혁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권고하고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만 19세로 되어 있는 투표권 연령을 만 18세로 낮추는 것이 그 시작이 될 것이다.

한편 시스템의 개혁 과정에서 기득권 구조의 청산을 반드시 해야 한다. 재벌개혁, 검찰개혁, 행정·사법개혁이 필요하다. 개혁을 위해서는 시민들의 직접·참여민주주의를 도입하고 확대해야 한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국민소환제도, 국민발안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중앙으로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는 지방분권도 시스템 개혁의 핵심이다.

한편 개헌논의도 국회에서 할 일이 아니다. 국회 중심의 개헌논의는 결국 대선을 염두에 둔 정략적인 논의가 될 수밖에 없다. 이번 개헌은 역사상 최초로 시민들이 참여하고 시민들이 주도하는 개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 국회는 가만히 있으라. 국회에서 해야 할 일은 개헌의 내용을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참여 개헌절차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추첨으로 뽑힌 시민들이 개헌의 내용에 대해 토론하고, 온·오프라인으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최근 이런 방식으로 개헌을 추진한 아일랜드, 아이슬란드의 사례도 있다.

이번에는 여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미완의 시민혁명이 아니라, 부패한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만드는 시민혁명이 될 수 있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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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날 뜻이 없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그러나 검찰이 수사한 결과만 보더라도 박 대통령은 제3자 뇌물죄 등을 저지르고, 국정을 파탄으로 이끈 몸통이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스스로 물러나지 않겠다면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물러나게 해야 한다. 이것은 특별검사가 진행해야 할 수사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원내 야당이 해야 할 몫과 광장의 촛불이 해야 할 몫도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그래야 박 대통령이 ‘국정복귀’ 운운하는 행태를 막을 수 있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를 지킬 수 있다. 원내 야당은 탄핵 절차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처럼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계속되어서는 안된다. 야 3당 대표들이 모여서 범국민 서명운동을 결의했다고 하는데, 자기 역할을 못 찾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국회 내에 있는 야당들이 해야 할 일은 서명운동이 아니라, 어떻게든 탄핵을 성사시킬 길을 찾는 것이다. 탄핵이 눈앞으로 다가와야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를 해도 할 것이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도 탄핵이 현실화될 것 같으니까 사퇴했다.

탄핵 절차로 갔을 때 우려되는 것은 네 가지이다. 첫번째는, 국회 내에서 탄핵 소추 의결에 필요한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 찬성을 얻을 수 있느냐다. 그러나 이것을 두고 좌고우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야당이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미 새누리당 안에서도 탄핵 얘기가 나왔다. 이들이 탄핵에 동의하도록 설득과 압박을 병행해야 한다. 뇌물죄를 저지른 대통령을 탄핵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가 누구든 퇴출명단에 올릴 준비가 국민들은 돼 있다.

두번째는,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이다. 그러나 이 문제 역시 고민해봐야 소용없다. 만약 헌법재판관들이 탄핵 소추를 기각한다면 헌재가 문을 닫게 될 것이다. 국민들의 여론이 그렇다. 따라서 아무리 보수적인 헌법재판관들이라고 하더라도 법리적으로든, 상식적으로든 탄핵을 결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탄핵 심판에 걸리는 기간도 최대한 단축하도록 여론의 압력을 가해야 한다.

세번째는, 국회가 탄핵 소추 결의를 하게 되면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야당들은 진작에 총리 문제를 풀었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것 때문에 망설여서는 안된다. 만약 황 총리가 대통령 탄핵 소추 결의 이후에도 박 대통령을 비호하거나 국정을 농단하려 할 경우에는 황 총리까지 탄핵시켜야 한다.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 소추 의결은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이면 가능하다. 역사를 보면, 권력서열 3위자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한 사례도 있다. 과거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던 때에도 권력서열 3위인 외교장관 허정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했었다.

네번째, 헌재소장과 헌법재판관 1명의 임기가 내년 1월, 3월에 각각 끝나는 문제가 있다. 헌법재판관 9명 중 최소 6명 이상이 찬성해야 탄핵이 가능한데, 임기가 끝나는 헌법재판관 자리가 새로 충원되지 않으면 그만큼 가결이 어려워진다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뇌물수수를 한 대통령을 탄핵하지 않고 버틸 헌법재판관이 있을까?

그래서 지금은 야당들이 하루속히 결단을 내려 탄핵 절차를 밟아야 하고, 탄핵을 성사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야당이 해야 할 몫은 바로 이것이다.

물론 탄핵 절차가 시작된다고 해서 시민들은 촛불을 놓아서는 안된다. 국회나 헌재에만 맡겨놓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앞으로는 퇴진과 함께 우리가 꿈꾸는 나라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물러나는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 때문이다. 12일에 이어 19일에도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이제 헌법 제1조가 제대로 실현되는 민주공화국을 염원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담고 있는 의미는 매우 강력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문구는 다른 국가의 헌법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헌법 제1조는 입법권이 의회에 있다는 것으로 시작되고, 일본헌법 제1조는 천황 얘기부터 시작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만들어진 ‘대한민국 임시헌장’과 ‘대한민국 임시헌법’에 뿌리를 두고, 제헌헌법으로 이어진 문구이다. 이 두 문장이야말로 민주주의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응축된 문구이다.

그래서 시민들의 촛불은 헌법 제1조를 실현하는 운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제도를 손보는 것이 우선이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꾸는 것이 정답이다. 민주주의가 잘되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 선거제도를 택하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키고 시민들의 직접참여를 보장하며, 지방의 자치권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개헌을 해야 한다. 이렇게 대한민국이라는 집의 구조를 뜯어고쳐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삶이 행복하고 편안할 수 있다.

이 일은 결국 주권자인 시민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기득권을 가진 정치인들에게 이 일을 맡겨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촛불은 ‘헌법 제1조 운동’으로 계속 타올라야 한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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