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엊그제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만나 기존 순환출자의 의결권을 제한토록 하는 경제민주화 공약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행추위가 마련한 대기업집단법 제정과 경제범죄 기업인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제, 재벌 총수·임원 급여 공개 등 핵심 공약도 거부했다고 한다. 이어 열린 선거대책위 회의에서 박 후보는 “기존 순환출자 고리를 끊으려면 몇 조원씩 들어가는데 경제위기 시대에 이를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쓰는 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조만간 (경제민주화 공약을) 정리해서 발표하겠다”고 밝혔으나 ‘김종인 표’ 공약은 이미 형해화하고 있다. 오랫동안 박 후보의 경제정책을 보좌해온 김광두 힘찬경제추진단장의 시기조절론은 그 증좌 중 하나다. 김 단장은 박 후보를 옹호한 뒤 “국내외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땔감(성장)을 마련하면서 구들장(경제민주화)도 고치자”고 주장했다. 대선 후보들의 경제민주화론에 맞서 경제사막화론을 제기하며 강력히 저항하는 재계의 논리와 별반 차이가 없다. 박 후보의 김종인표 공약 거부가 사실상 경제민주화의 폐기로 비쳐지는 까닭이다.


손인사 하는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 (경향신문DB)


시기조절론은 허망하다. 5년 단임의 우리 대통령제 아래서 지지율이 가장 높은 취임 6개월 동안 역점사업을 수행하지 못하면 어렵다는 사실은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다. 시기조절론이란 표가 된다면 내걸긴 하겠으나 꼭 실행할 의사는 없다는 자인과 같다. 경제위기론도 덧없기는 마찬가지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주장해온 대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된 1980년대 말 이후 재계 입장에선 경제위기가 아닌 적이 없다. ‘총체적 난국론’을 시작으로 ‘산업공동화론’ ‘샌드위치론’ ‘촛불경제위기론’을 거쳐 ‘경제사막화론’에 이르렀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경제위기를 내세워 개혁을 회피해온 재계의 프레임은 견고했다. 그 적폐가 ‘1% 대 99%의 세상’ 즉, 극심한 양극화이다.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이 제기된 배경이기도 하다.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론이 눈길을 끈 것은 듣기 힘든 보수진영의 목소리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지난 4·11 총선 때 경제민주화를 핵심공약으로 내세워 제1당을 차지했고,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도 국민 행복을 위한 3개 핵심 과제 중 으뜸으로 꼽았다. 그런 박 후보가 경제위기론을 들어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 어떤 정치적 분석을 떠나 친재벌적인 DNA는 숨길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쯤이면 차라리 경제민주화라는 구호를 접는 게 옳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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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민주통합당,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가 어제 양 캠프에 경제복지정책팀과 통일외교안보정책팀, 단일화방식 협의팀 등 3개 팀을 구성키로 합의했다. 현재 운영 중인 새정치 공동선언 실무팀 외에 3개의 협상팀을 추가로 가동하는 것이다. 단일화가 정치 쇄신 차원을 넘어 가치와 정책 연대의 장으로 확장되는 국면이다. 양측이 새정치 공동선언문을 발표한 뒤 본격적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과 달리 단일화 논의의 호흡도 빨라지고 있다.


그간 진행돼온 양측 협상은 새정치 공동선언을 비롯해 정치 쇄신에 국한된 느낌이 없지 않았다. 단일화 논의가 정치뿐만 아니라 노동과 복지, 경제 등 각종 정책 경쟁으로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이유다. 민주당은 지난 4·11 총선 때도 통합진보당과 야권연대를 하면서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 실현 등을 포함한 범야권 공동정책에 합의한 바 있다. 따라서 정책팀 가동은 정치 쇄신 논의가 사실상 합의점에 이르렀고, 다음 단계인 정책 논의로 접어들고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정치 쇄신을 바탕으로 해서 가치와 철학을 공통분모로 하는 정책 연대 논의가 본궤도에 오르고 있다는 얘기다.


협상시작한 야권 단일화 (출처: 경향DB)


합의에 이르는 방식도 주목된다. 두 후보는 이날 정책 발표를 하면서 각각 공동 정책연대와 경제·외교안보팀을 구성하자는 안을 내놨고, 얼마 후 전화통화로 3개 팀 구성에 합의했다. 두 후보가 직접 만나 ‘후보 등록 전 단일화’를 비롯해 7개 항의 공동합의문을 발표할 당시를 연상시킨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협상이 교착에 빠졌을 때 후보들 간 ‘통큰 결단’이 나올 수도 있다는 기대까지 내비치는 모양이다. 안 후보가 적극성을 띠기 시작한 것도 흥미롭다. 협상을 서두르고자 했던 문 후보와 달리 안 후보 측은 미루려 했던 게 사실이다. 후발 주자인 안 후보 측으로서는 자신의 경쟁력을 홍보하는 시간이 필요한 측면이 있었겠지만 경선을 선호하는 문 후보와 달리 막판 여론조사를 염두에 둔 전략상의 차이도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안 후보의 태도 변화는 단일화 논의의 틀을 견고하게 한 것은 물론이고, 논의의 투명성도 높여놨다. 양측의 단일화 논의에 민주적 소통 방식이 자리할 여지가 그만큼 커졌다고 본다.


야권 후보 단일화는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단일화 성사라는 외형적 틀도 중요하지만 실질적 성패를 가르는 요소는 어떤 단일화인가라는 내용의 문제로 귀착된다. 1997년 DJP연대나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는 성공한 연대나 단일화 사례에 들지 않는다. 과정이 불투명하거나 공유하는 가치가 없어 권력 나눠먹기라는 비판을 자초한 탓이다. 이번 단일화는 그 틀을 넘어야 한다. 두 후보가 민주적 소통을 통해 단일화를 성사시키고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도록 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내용뿐만 아니라 진행 과정 또한 새정치로 채울 일이다. 그것이 감동을 주는 단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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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삼 |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문재인 대선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에 합의했다. 단일화란 하나가 되는 것인데, 쉬운 일이 아니다. 단일화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 다 양보할 마음이 있을 때라야 단일화가 ‘되는’ 것이다. 이게 쉬울 리가 없다. 


30년 전쯤의 광고이지 싶다. 매양 2등이던 라면회사가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카피로 1등으로 올라섰다. 이를 계기로 회사 이름도 농심으로 바꿨다. 이 광고에는 코미디언들이 출연했다. 형은 구봉서씨가, 아우는 고 곽규석씨가 맡아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면서, 그릇을 서로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다가 형인지 아우인지, “그럼 내가 먼저, 헤헤!”라며 독차지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끝마무리의 얌체 짓이 얄밉지 않게 보이려면 코미디 형식을 빌릴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광고는 제법 뜻이 깊다. 형제간이라도 ‘맛있는 것’을 놓고는 진정한 양보가 어렵다는 메시지가 들어 있다. 그렇다면 권력의 세계에서 양보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 하리라. 결국에는 ‘내가 먼저’라는 욕심이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비관주의가 그 밑에 깔려 있다. 


이익-손해의 관점에서, 권력을 놓고 다투는 것을 우리는 ‘현실’ 정치라고 부른다. 적과 동지를 구별하고, 사자의 힘과 여우의 간계로 상대방을 제압하고 권력을 쟁취하는 것, 이것을 우리는 정치의 전부로 안다. 함께 나누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따위는 ‘이상’ 정치라고 칭한다. 이것은 이상(理想)이기도 하지만, 이상(異常)한 정치이기도 하다. 이상한 까닭은 이것이 비현실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이익을 탐하는 존재이며, 누구나 원하는 것을 차지하려 들기 때문에 싸움이 필연적이라는 비관주의가 전제되어 있다. 


손잡은 야권단일화 (출처: 경향DB)


안철수 후보가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며 나섰을 때 대부분의 국민들이 ‘좋은 사람 또 하나 망치겠다’며 염려했던 것도 정치세계를 야합과 모리의 세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요즘 단일화 합의를 두고 일각에서 야합, 꼼수, 눈속임이라며 비난이 터져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실정치적 관점에서 ‘합의’란 나와 너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타산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이 속에는 진정성이니 마음이니 가치니 하는 질적 차원은 부재한다. ‘옳다’ ‘그르다’라는 도덕적 판단도 설 자리가 없다. 


7개항의 합의문을 읽으면서 눈길을 끈 것은 네 번째 항목이다. “단일화를 추진하는 데 있어 유리함과 불리함을 따지지 않고”라는 대목이 특별히 가슴에 닿는다. 유·불리를 따지지 않음이란 이해관계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정치를 이익·손해의 차원이 아니라 의·불의의 차원에서 사고하겠다는 선언이다. 문득 “우리나라에 무슨 이익이 될 것을 가져오셨냐!”고 인사말을 던지는 양혜왕에게, 하필왈리(何必曰利)라, “정치가라면서 하필이면 이익을 논하시냐!”라던 맹자의 공박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불리가 이익이든 권력이든 외부의 가치를 두고 다투는 경쟁을 전제한다면, 의·불의는 ‘옳다’ ‘그르다’는 가치판단이므로 마음의 문제가 된다. 사람의 육신은 먹어야 움직일 수 있으니 이·불리를 따지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은 육신만으로 이뤄져 있지는 않다. 어쩌면 육신마저도 마음이 동해야 움직이는 법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정의에 대한 인식이다. 연전에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였던 것은 우리 사회에 정의에 대한 목마름이 절실하다는 방증이다. 


사람다운 정치의 동력은 정의를 세우는 데서 나온다. 안철수의 ‘새로운 정치’와 문재인의 ‘공적 가치에 대한 지향’이 합의하는 지점이 이쯤일 것이라고 본다. 분명한 사실은 정치가 권력투쟁이기만 해서는 사람다운 세상을 만들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람다운 세상은 사람들 마음속에 든 정의감을 바탕으로 수립되고, 또 그것을 동력으로 형성해간다. 이심전심이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뜻을 전한다’든지,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속담들은 정치에 있어 마음의 결정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미 정치의 한 발은 마음속으로 들어와 있는 것이다. 


여태껏 우리는 증오와 질시, 경쟁과 투쟁을 현실정치라는 말로 묵인해왔다. 혀를 차고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그것을 정치의 전부라고 알고 감내해왔다. 그러나 정치란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의 기술이기도 하다. ‘이·불리를 따지지 않겠노라’는 합의문이 결국 휴지조각이 될지도 모르지만 이 한 문장 속에서 새로운 정치의 싹을 발견한다. 


이것은 나의 희망이다. 희망을 뜻하는 한자어 희(希)는 ‘드물다’는 뜻도 갖고 있다. 즉 희망은 바람이면서, 희박한 것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뤄지기 어렵다는 의미다. 그러나 동물들 가운데 오로지 사람만이 희망을 품는다. 인류의 역사는 희망을 건져올려 그것을 상식으로, 또 일상으로 만들어온 과정이기도 하다. 지금 ‘이·불리를 따지지 않는다’는 짧은 문장 속에서 정의로운 세상에의 희망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사람다운 정치를 전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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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민주통합당,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가 투표시간 연장을 위한 공동 캠페인에 합의했다고 한다. 투표시간 연장 문제를 다루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공전하는 상태여서 두 후보의 향후 행보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제24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고 밝히고 있다. 투표시간 연장은 헌법이 명시한 ‘국민주권’의 원리를 구현하는 길이다. 국민의 67%가량이 투표시간을 연장하는 데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보도된 바 있다. 문·안 후보의 지지율을 합친 것보다 높은 수치다. 투표시간 연장이 단순히 당리당략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경향신문DB)


투표시간 연장 문제는 문·안 후보가 합의한 ‘국민연대’의 성패와도 직결될 수 있다. 국민연대가 양측의 느슨한 집합체가 될지, 신당 창당으로까지 이어질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느 쪽이 되더라도 문·안 후보 세력에 ‘플러스 알파’를 보태지 않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두 후보는 투표시간 연장을 관철함으로써 국민연대의 지향점을 선명히 하는 동시에 야권 후보 단일화가 실질적으로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입증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명확한 전선을 그을 수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경제민주화, 복지 등에서 세 후보의 정책이 크게 차별화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두 후보는 국회에서 투표시간 연장을 관철하기 위해 구체적 행동에 나서야 한다. 필요하다면 문 후보가 ‘후보 사퇴 시 국고보조금 환수법안’ 동시 처리를 제안했던 것처럼 새누리당을 설득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새누리당과 박 후보는 이중적 태도를 버리기 바란다. 국회에서 논의할 사안이라고 해놓고 행안위에서 법안 심의를 거부하는 행태는 납득하기 어렵다. 해외 사례를 들며 ‘미국은 선거일이 휴일이 아니다’ ‘호주는 한국보다 투표시간이 짧다’는 등 물타기를 하는 행태도 볼썽사납다. 미국에선 조기투표 제도가 정착돼 있고, 호주는 투표에 불참하면 벌금을 물리는 의무투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야권 후보 단일화를 ‘범죄’니 ‘소몰이’니 폄훼할 시간에 주권자를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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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정치부 기자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대선 후보등록일(11월25~26일) 이전까지 단일후보를 결정하기로 합의했다. 두 후보는 단일화 추진에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새 정치와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의 뜻만 보고 가며, 국민의 공감과 동의를 구하겠다고 약속했다. 안갯속이던 단일화 논의가 ‘국민 우선 정신’을 바탕으로 시작됐다는 점에서 일단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런데 논의 출발선상에 선 시점에서, 두 후보가 그토록 강조하는 국민에 대한 예의와 도리를 조금 더 생각해봤으면 한다. 양측의 합의대로라면 국민들은 앞으로 3주도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진행될 단일화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 


 또 단일후보가 결정된 후 대통령 선거일까진 한 달도 남지 않게 된다. 사퇴한 후보를 지지했던 국민들 입장에선 단일후보를 충분히 지켜보고 지지 여부를 결정하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다. 제대로 검증해볼 시간도 주지 않고 무조건 지지해달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낡은 정치 행태임을 부인하기 힘들다. “병아리 부화하는 데도 3주가 걸리는데 단일화가 병아리 낳는 것보다도 못하느냐”(새누리당 이정현 공보단장)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경향신문DB)


두 후보는 이르면 나흘 뒤 ‘새 정치 공동선언문’을 내놓을 예정이다. 여기에는 정당 혁신의 내용과 정권교체를 위한 연대의 방향이 들어간다고 한다. 두 후보가 진정 국민을 존중한다면 공동선언문에 제대로 된 후보 검증과 공약 제시에 대한 제도 개선안을 담아야 한다. 


차기 대선 때부터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기로 하든지, 아니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제안했듯이 선거일 몇 개월 전까지는 대통령 후보를 확정하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감동있는 단일화를 연출하려고 애쓸 게 아니라 대선 때마다 되풀이되는 비합리적인 단일화 과정을 더 이상 안 봐도 되도록 해주는 것이 국민에 대한 진정한 도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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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책 | 변호사·자유경제원장 


버락 오바마는 시쳇말로 벼락출세한 정치인이다. 그는 중앙 정치무대에 선 지 4년 만에 미국 대통령이 됐다. 경력이라고는 로스쿨 교수와 주 상원의원 그리고 연방 상원의원 초선이 고작이었다. 게다가 흑인이다. 애송이 흑인 정치초년병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을 때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그건 그의 책 제목처럼 <담대한 희망>에 불과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 오바마에게 청년들과 지식인들이 열광한 것은 그가 변화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그는 소수자였지만 참신했고, 기득권과는 거리가 먼 서민 결손가정 출신이었다. 오바마는 월스트리트를 강타한 금융위기로 실의에 빠진 미국민에게 정치개혁과 금융개혁을 내걸고, 워싱턴 정치를 20년 넘게 경험한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를 손쉽게 눌렀다. 난세를 구한 영웅처럼 오바마는 워싱턴을 점령했다. 오늘은 그런 오바마의 재선 여부가 결정나는 날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경향신문DB)


우리 대통령 선거는 40여일 남았다. 나라 안이 온통 뒤숭숭하다. 유럽발 금융위기가 여전한 탓에 성장은 둔화되어 경제가 어렵다며 난리다. 먹고살기 힘들어진 중산층은 상대적 박탈감으로 정권에 등돌린 지 오래됐다. 고용없는 성장 탓에 늘지 않는 일자리로 별다른 희망을 가지지 못한 백수 청년들은 그저 아프다며 징징대는 중이다. 다들 변화를 기다리고 메시아를 기다린다. 


가히 난세라 할 만하다. 그래서인지 우리도 정치신인들이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되어 있다. 문재인은 노무현 정권의 핵심참모로 있었지만 정치는 이제 초선 1년차에 지나지 않은 신인이다. 안철수는 아예 정치 문외한이다. 그는 의사였고, 벤처기업가로 유명해진 뒤 이를 발판으로 대학교수를 한 경력이 전부다. 그런 그가 기존 정치에 염증을 느낀 청년층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배경으로 대통령 후보로 떠올랐다. 그러니까 이 두 사람 중에 대통령이 나온다면 오바마보다도 더 빠르게 정상에 오르는 셈이 된다.


두 후보 다 변화와 개혁을 내거는 것도 오바마를 빼닮았다. 아니 박근혜까지 그렇다. 다들 정치쇄신을 외치는 걸 보면 우리 정치판이 썩긴 썩었던 모양이다. 안철수가 주장하는 국회의원 숫자 줄이기, 중앙당 폐지는 늘 듣던 말이다. 문재인은 방향이 틀렸다며 비례대표를 늘리자고 나왔다. 도대체 이런 쇄신이 오바마가 한 것처럼 대중의 갈증을 풀 수 있을 것인가? 정치쇄신이 화두가 된 건 정치판의 부패와 무능 때문이다. 


부패를 청산하려면 패거리 정치를 치워야 한다. 사무총장이니 대변인이니 하는 난센스 같은 자리부터 없애고 크로스보팅(cross voting)을 도입하면 된다. 그러면 지금 같은 ‘보스정치’는 사라질 것이고 정당은 이념과 정책으로 뭉칠 것이다. 정치의 생산성을 높이려면 국회를 상설화하면 간단히 해결된다. 박근혜는 여성대통령론을 들고나왔다. 여성대통령 자체가 쇄신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정치에 신물이 난 대중에게 이 말이 얼마나 먹히겠는가? 그나마 그녀는 상향식 공천으로 밀실공천을 없애겠다고 나섰다. 듣던 중 반가운 말이지만 민도(民度)가 따라줄 것인가?


무엇보다도 삶 자체가 빠듯한 서민과 중산층에게 그들이 말하는 정치쇄신이 무슨 희망이 될 것인가? 변화를 구하는 대중에게 그들의 감언(甘言)이 무슨 구원이 될 것인가? 그래선지 후보들 간 설전은 가열되지만 선거 열기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선거가 코앞에 닥친 여태 한쪽은 최종 주자조차 결정되지 않았다. 후보들의 정책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세 후보 다 경제민주화, 일자리, 복지를 똑같이 외치고 있을 뿐 4년 전 오바마가 보여준 것 같은 희망의 메시지는 없다. 마거릿 대처처럼 국민들에게 헌신과 인내를 요구하는 강단도 없다. 있다면 달콤한 사탕발림 말뿐이다. 그리고 단일화 쇼만 있을 뿐이다. 토론이 없다고들 하지만 정책이 없으니 토론이 없는 것이다. 토론이 없으니 검증도 없는 참으로 이상한 선거가 되고 있다. 이러니 누가 난세의 메시아인지 오리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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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엊그제 외교·안보·통일 공약을 발표함으로써 다음달 대선을 앞두고 주요 후보 3명이 제시하는 한반도 정책의 밑그림이 드러났다. 박 후보가 북한 주민들의 인간적인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인도적 지원과 정치적 상황을 구분하겠다고 밝힌 것은 최소한 이 문제에서만큼은 맹목적 반북(反北) 정서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읽힌다. 이산가족 문제의 실질적 성과를 도출하겠다는 다짐도 환영할 만하다. 남북교류협력 사무소를 서울과 평양에 두고, 전력·교통·통신 인프라 확충 및 국제투자유치를 지원하겠다고도 약속했다. 문제는 ‘언제’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정치쇄신안 발표하는 박근혜 (경향신문DB)


박 후보는 “(북한의) 비핵화 진전에 따라 상응하는 정치·경제·외교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해 비핵화가 최종 목표일지언정 이를 북핵 협상과 남북대화의 전제로 삼지 않겠다는 유연성을 보였다. 그러나 비핵화에 진전이 없을 경우 어떻게 하겠다는 구상이 없어 본질적으로 화려한 선거용 구호로만 끝난 ‘비핵·개방·3000’과 같은 운명에 처할 여지를 남긴다. 북방한계선(NLL)을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면서도 남북이 머리를 맞대고 이 문제를 어떻게 풀지에 대한 고민도 보이지 않는다. 북한인권법을 제정하고, 냉전시대 서방이 인권을 지렛대로 삼아 동유럽 공산블록의 체제전복을 유도했던 헬싱키 프로세스를 ‘서울 프로세스’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들어내겠다는 약속도 냉전시대 미·소 간의 대립구도와 미·중의 G2시대를 혼동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 박 후보의 대북정책 공약이 이명박 정부가 차린 반찬들을 그릇만 바꾸어 내놓았다는 비판이 가능한 이유다.


박 후보 스스로 밝힌 바 지난 시절 유화 아니면 강경이라는 이분법적 집착에서 벗어나 최소공배수를 찾으려는 자세는 긍정 평가할 만하다. 대북정책이 극명하게 온·냉탕을 오갔던 지난 15년의 경험을 비추어볼 때 여야 간에 공감대를 찾는 자세는 정권의 향배와 무관하게 소중하기 때문이다. 누가 되든 냉전 이후 남북이 평화를 위해 기울여온 노력을 수렴하되, 통일의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굵직한 방향성을 공유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문제에 관한 한 정파다툼을 그만두겠다는 탈정치화의 공감대가 확산돼야 한다. 선거판을 흐려놓은 NLL 논란을 뒤로하고, 박 후보가 대북정책 공약에 담은 균형잡힌 의식이 청와대에서건 국회에서건 구현되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신뢰의 정책, 신뢰의 정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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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민주통합당,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가 어제 단독 회동을 열고 ‘후보 등록 전 단일화’ 등 7개 항의 공동합의문을 발표했다. 두 후보는 “대선 승리와 정권교체를 위한 단일화, 가치와 철학을 함께하는 단일화, 미래를 바꾸는 단일화라는 원칙 아래 새누리당의 집권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의 뜻을 하나로 모아 나가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또 “단일화 추진에 있어 유리함과 불리함을 따지지 않고, 국민의 뜻만 보고 가야 하며, 국민의 공감과 동의가 필수적이라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단일화에 쏠린 눈들 (경향신문DB)


문·안 후보가 내놓은 합의문은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회동 전에는 단일화의 대원칙을 확인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달랐다. 통큰 합의가 이뤄졌다. 우리는 특히 공동합의문 가운데 3개 항에 주목한다. 첫째, 단일 후보는 후보 등록일(25~26일) 이전까지 결정한다는 부분이다. 단일화 시기를 둘러싼 불확실성을 제거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등록 이후로 단일화가 미뤄질 경우 공직선거법의 규제 등 변수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양쪽 지지층 결집을 위해 국민연대를 결성하고, 그 일환으로 ‘새 정치 공동선언’을 내놓기로 한 점이다. 단일화는 후보 개개인의 물리적 결합을 넘어 이들을 지지하는 세력의 화학적 결합으로 이어져야만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두 후보 모두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고 다짐해온 만큼 국민참여의 정신을 합의문에 담은 것은 옳은 방향이다. 셋째, 투표시간 연장을 위해 공동캠페인을 펼치기로 한 대목이다. 정치쇄신의 첫걸음은 국민주권을 보장하는 데서 출발한다. 더욱이 이 문제는 문·안 후보 지지층뿐 아니라 대다수 시민이 공감하는 사안이다. 단일화의 대의와 명분을 제대로 입증할 만한 소재라는 얘기다.


어제 회동의 내용 못지않게 관심을 끈 것은 만남의 형식 그 자체였다. 1987년 체제 이후 김대중-김영삼의 후보 단일화 논쟁을 비롯해 1997년 DJP연합, 2002년 노무현-정몽준, 2007년 정동영-문국현 단일화 협상에 이르기까지 주로 개혁·진보 진영에서 진행돼온 단일화 논의의 장에서 처음부터 후보들이 전면에 나선 사례는 없었다. 정권교체와 정치쇄신이라는 단일화의 근본 취지를 감안할 때 직접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은 향후에도 생산적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두 후보 간 신뢰와 국민적 여망을 무슨 내용으로 채울까 하는 고민이 될 것이다. 어제 발표된 7개 항을 바탕으로 논의를 진행하되 궁극적 목표는 공동정부 구성을 위한 축대 쌓기로 모아져야 한다고 본다. 두 후보가 단일화라는 큰 틀에 합의한 이상 양 진영은 그 대의에 걸맞게 성큼성큼 나아가야 한다. 대의가 아닌 방식과 절차에 매달릴수록 단일화의 피로도는 증가하고, 감동은 줄어든다. 두 후보는 어제 단일화를 향한 의지와 결단을 국민 앞에 천명했다. 이들의 약속이 지켜진다면 개혁·진보 진영의 대선운동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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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가 어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의 야권후보 단일화 논의와 관련, “우선 문 후보와 제가 먼저 만나서 서로의 가치와 철학을 공유하고 정치 혁신에 대해 합의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야권은 물론이고 진보 진영이 강조해온 가치와 정책 연대를 위한 단일화 제안이다. 문 후보는 ‘우리가 단일화하고, 힘을 합쳐 대선에 임할 것이라는 원칙은 하루 빨리 합의하자’는 전날의 제안을 상기시키며 “호응해줘 고맙게 생각한다”며 즉각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가 5일 광주 전남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초청 강연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에게 단일화를 위한 회동을 제안한 뒤 박수가 터져나오자 주먹을 쥐어 답례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안 후보의 발언은 무엇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절반이 넘게 정권교체를 바라는 것으로 나타난 유권자들이 단일화 무산 가능성에 대해 갖고 있는 불안감과 피로감을 씻어주는 효과가 있다. 안 후보가 단일화 공식화 선언의 장소로 야권의 핵심 기반인 호남을 택한 것도 그 효과를 배가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읽힌다. 그런 맥락에서 기득권 세력을 이길 수 있는 단일화, 가치와 철학이 하나가 되는 단일화, 미래를 꿈꾸는 단일화라는 안 후보의 3원칙 천명은 문 후보가 아니라 단일화를 촉구해온 국민들을 향한 화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로써 단일화의 밑그림은 그려진 셈이다.


문제는 단일화의 실현 방식이다. 단일화 논의를 공식화한 것은 나름 진전이지만, 의미를 축소하자면 필요하다는 원칙 확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다. 더구나 안 후보의 단일화 목표는 문 후보가 주장해온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총론에서 이견이 없다고 각론에서도 같으라는 법은 없다. 모든 논의의 귀결은 결국 누가 그 일을 맡느냐로 모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말로는 간단하지만 사람과 세력이 부딪치는 일인지라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단일화의 이상과 현실이 언제든 충돌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이 얼마나 진정성 있게, 또 알차게 전개되느냐에 단일화의 실질적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안 두 후보가 오늘 만난다. 그것도 배석자가 없는 두 사람만의 만남이라고 한다. 두 사람이 격의 없는 대화를 통해 단일화에 대한 상호 공감대를 확인하는 자리가 돼야 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두 사람 모두 개인적 야심이 아니라 정권교체와 시대 교체라는 국민적 여망에 따라 출마했다고 밝혀온 터이다. 두 후보의 다짐이 제대로 지켜질 수 있다면 이번 단일화 논의는 역대 그 어느 연대나 단일화보다 ‘아름다운 협력과 경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단일화는 그 자체가 종착점이 될 수는 없다. 진정한 새정치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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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선이 44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민낯을 접할 길이 없다. 일부 대선 후보가 TV토론을 비롯한 각종 토론회 참석을 기피하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나름대로 이유를 대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듣기 싫은 말은 안 듣겠다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말끝마다 ‘국민’을 언급하는 이들이 국민에 대한 예의를 저버리고 있다.


어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 측은 오는 13~15일 순차적 개별토론 형식으로 예정됐던 KBS 토론회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불참 통보로 무기한 연기됐다고 밝혔다. 문 후보 측에 따르면 SBS 초청 대담도 박 후보의 불참 통보로 무산됐고, MBC 토론회는 박·안 후보 모두 참석 여부를 답하지 않아 유보됐다고 한다. 공직선거법상 언론사는 대통령 선거일 1년 전부터 후보 토론회를 열 수 있지만 18대 대선에서는 현재까지 단 한 차례의 TV토론도 열리지 않았다. 2007년 대선 때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TV토론에 소극적이었음에도 11회의 대담·토론이 이뤄졌다.


대선 후보 2차 TV토론 지켜보는 미국 시민들 (출처; 경향DB)


박 후보 측은 “KBS 토론회에 불참한다고 한 적이 없다. 문·안 후보가 먼저 하고 난 다음에 우리가 하겠다는 의견을 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KBS 새노조는 “박 후보의 오만이 하늘을 찌른다. 출연 순서는 추첨으로 정하는 게 공정하다는 것을 모르는가”라고 반박했다. 박 후보 측 속내는 삼척동자도 짐작할 만하다. 야권후보 단일화 전까지는 토론회에 나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일화 여부는 검증을 피하는 합리적 이유가 되지 못한다. 상대 후보가 누가 되든 박 후보는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서 국가비전과 철학, 정책을 국민 앞에 밝힐 책무가 있다.


안 후보도 토론 실종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않다. 문 후보는 3자든, 양자든 모든 토론에 응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안 후보는 문 후보와의 양자토론에 부정적이라고 한다. 단일화 프레임에 갇힐까 우려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안 후보는 “단일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천명한 터이다.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문 후보와 나란히 검증대에 서서 경쟁력을 보여주는 게 정정당당한 자세다.


대선 후보들이 시장을 찾거나 대학에서 강연하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다만 여기에 그쳐선 안된다. 일방적 홍보활동은 객관적 검증절차를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권자들의 알 권리를 생각한다면 TV토론회든 언론단체 주최 토론회든 적극 참여해야 한다. 토론을 겁내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패널리스트의 질문조차 두려워하면서 장차 껄끄러운 국가들과의 외교, 날을 세운 야당과의 관계를 어떻게 끌고 나갈 수 있겠는가. 방송사도 특정 후보가 거부한다고 해서 다른 후보들의 토론 기회까지 빼앗아서는 안된다. 특히 공영방송이 집권여당의 눈치를 보는 행태는 용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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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진보적 정치학자로서 소련과 동구의 몰락을 보면서 깨달은 것은 대중의 현명함과 대중의 힘이다. 대중이 잘못된 결정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긴 호흡의 역사로 볼 때는, 대중이 철인왕보다도 현명하다. 또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지만 때가 되면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이라는 한 시의 표현처럼 대중은 무력한 것처럼 보여도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다.”


지난 10월8일에 이 지면에 썼던 ‘민심의 힘’이라는 내 글의 핵심내용이다. 그러나 최근 대중에 대해 곰곰이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는 국회의원 수를 현재의 300명에서 200명으로 축소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한 안철수 후보의 정치개혁안 때문이다. 이 안이 잘못된 처방이며 국민의 반정치정서에 기대는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민주통합당뿐만이 아니라 시민사회와 학계에서 거세게 일어났다. 나아가 나와 최장집 교수 등 많은 정치학자들은 비례대표 확대를 전제로 오히려 국회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자 안 후보는 이를 “기득권층의 반발”이라고 일축하며 자신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기존 정치를 싫어하고 새 정치를 갈망하는 국민의 요구를 대중의 어리석음으로 폄훼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국회가 담합해 세비를 16% 인상한 것, 나아가 국민의 70%가 자신의 개혁안을 지지하고 있는 것을 내세워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국민들의 정치 불신을 고려할 때 국회의원의 특권 축소 등 정치권의 혁신은 시급하다. 이 점에서 안 후보의 문제의식은 맞다. 그리고 앞에서 지적했듯이 긴 호흡의 역사로 볼 때 대중은 철인왕보다 현명하다. 그러나 대중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히틀러에 대한 열광적인 지지로 나치즘의 비극을 잉태한 것이나, 안 후보도 비판적인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상 최대 차이의 승리를 선사한 것도 대중이었다. 물론 정치혁신에 대한 국민의 열망은 옳은 것이지만 의원 수 축소와 같은 혁신의 구체적 방법에 대한 판단까지 항상 대중이 옳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국회의원 수를 줄인다고 안 후보가 비판한 세비 인상과 같은 담합을 막을 수 있을까? 천만에다. 수가 적어진 만큼 담합은 더 쉬워질 것이고 국회의원은 더욱 소수 특권층화될 것이다. 문제는 국회의원의 특권을 줄이고 국민의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지 수를 줄이는 것이 아니다.


안철수 대선 후보가 정치쇄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문제의 핵심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안 후보가 비판을 경청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기득권층의 반발로 폄훼하고 대중의 지지를 근거로 해서 모든 것을 정당화하려 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대중은 무조건 옳다는 무서운 대중맹신주의, 대중메시아주의이다. 정치권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최장집 교수 등이 무슨 기득권 때문에 안 후보의 안에 반발한다는 것인가? 나와 최 교수 등이 국회의원 수 축소라는 구체적인 안을 비판하는 것이지 누가 새 정치를 갈망하는 국민의 요구 그 자체를 “대중의 어리석음”이라고 부정하고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후보가 이 같은 비판을 기득권의 반발이자 대중을 어리석다고 폄훼하는 것이라고 몰고 가는 데에서는 히틀러의 대중선동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안 후보가 대중을 그토록 신뢰하고 대중이 항상 옳다고 생각한다면, 왜 대선 캠프를 만들고 많은 참모와 자문교수들을 거느리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저 여론조사 전문가들만 고용해 사안별 여론조사를 실시해 대중이 바라는 것을 전부 공약으로 내걸면 될 것 아닌가? 그리고 안 후보가 집권하면,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들을 대폭 없애고 여론조사를 통해 정책을 펴나갈 것인가?


안 후보는 청춘콘서트 등을 통해 ‘소통의 리더’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소한 정치개혁 논쟁을 통해 지금까지 보여준 것은 ‘소통’이 아니라 비판에 귀 닫은 일방적 ‘설교’의 모습이다. 소통의 지도자가 아니라 대중이라는 이름 아래 최장집 교수와 같은 시대적 양심의 비판을 기득권층의 반발로 폄훼하는 ‘대중교 교주’의 모습이다. 안 후보에게, 나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대중은 항상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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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 선거대책위원회 산하 ‘새로운정치위원회’가 지도부 총사퇴를 요구키로 했다. 새정치위는 엊그제 4시간여에 걸친 회의 끝에 “정치개혁의 출발점은 인적쇄신”이라며 이같이 결정했다고 한다. 비주류인 김한길 최고위원은 전격 사퇴함으로써 이해찬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 등을 압박하고 나섰다. 대선을 불과 40여일 앞두고 민주당에 거센 소용돌이가 이는 모습이다.


새정치위의 극약처방은 문재인 대선 후보의 지지율 정체를 타개하고 야권 후보 단일화 협상의 물꼬를 트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민주당 지도부는 출범 때부터 ‘이·박 담합’으로 비판받으면서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대선 후보가 선출되자 최고위 권한을 선대위로 넘겼지만,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의 실체적 위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대표의 ‘무소속 대통령 불가론’이 야기한 논란이 그 예다. 오죽하면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 측에서 두 사람을 가리켜 “정치의 십자로에 놓여 있는 돌덩이 두 개”라는 표현까지 했겠는가.


얘기하는 이해찬대표와 박지원원내대표 (출처: 경향DB)


민주당의 인적쇄신은 사실 늦은 감이 있다. 문 후보가 지난 9월 선출되자마자 대대적 쇄신을 단행했다면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 이 같은 혼란이 빚어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새정치위의 요구도 안 후보 쪽 압력에 밀려 나온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우리는 그럼에도 민주당에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인적쇄신이 뒤따라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많은 시민들은 민주당을 ‘문재인 당’이 아니라 ‘이해찬·박지원 당’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이 실제와 거리가 있다 하더라도, 그 책임은 문 후보와 이·박 투톱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분출하는 인적쇄신 요구에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는 유보적 태도를 보이는 모양이다. 이 대표는 “신중하게 해야 대업을 완수할 수 있다”, 박 원내대표는 “내분의 모습을 보일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두 사람 입장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2선으로 물러난 자신들에게 위기의 책임을 덮어씌우려 한다고 생각할 법도 하다. 그러나 ‘정치 9단’으로 불리는 이들이다. 야권 후보 단일화를 거쳐 대선에 이르는 도정에서 스스로의 책무가 무엇인지 자각할 때가 됐다. 문 후보가 “제게 맡겨달라. 시간을 좀 줬으면 좋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일 터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비주류도 인적쇄신론을 기화로 권력투쟁을 벌일 생각은 접어야 한다. 시민들이 민주당의 선택을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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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시간 연장 법안과 후보 사퇴 시 국고보조금 환수 법안을 동시 처리하는 방안에 대한 새누리당의 태도가 낯뜨거울 지경이다. 지난달 29일 이정현 새누리당 선대위 공보단장이 기자간담회를 통해 “대선 후보가 국민 혈세를 먹고 튀는 것을 막기 위한 ‘먹튀방지법’과 ‘투표시간연장법’을 동시에 국회에서 논의, 처리하자”고 제안한 것을 그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전격 수용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새누리당은 이 단장의 제안을 ‘개인 의견’이라며 깔아뭉갰고, 이 단장은 “(두 법안의) 교환이라는 의미로 얘기하지 않았고 그런 적도 없다”며 발뺌했다. 박근혜 대선 후보는 “개인이 법을 만들라, 폐기하라 할 수 없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사안의 중요성과 어느 쪽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 우리 정치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가 하는 탄식부터 나온다. 이 단장이 박 후보의 입장을 대변하는 측근이자 선대위의 대언론 창구임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 인사가 사석도 아닌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을 개인 의견이라고 한다면 새누리당의 공식 의견은 어떤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박 후보가 직접 하지 않은 건 모두 개인 의견일 뿐이라는 말인가. 그런 논리라면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의 경제민주화 방안도, 안대희 정치쇄신위원장의 정치쇄신 발언도 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뒤에는 모두 개인 의견이었다며 묻어버려도 된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투표시간연장 캠페인 (출처: 경향DB)


그동안 새누리당이 투표시간 연장 법안에 대해 온갖 사정과 이유를 들어 물타기를 하고 시간을 끌어온 일은 스스로가 잘 알 것이다. 투표시간 연장은 통합선거인명부관리제나 사전투표제 등과 달리 여야가 합의만 하면 이번 대선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방안으로, 근무시간에 매여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비정규직을 포함한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강력한 요구사항이기도 하다. 우리는 국민 투표권 보장과 참정권 확대 차원에서 새누리당과 박 후보가 이를 받아들이도록 거듭 촉구한 바 있다.


새누리당은 더 이상 투표시간 연장과 관련해 구차한 변명을 하지 말았으면 한다. 신뢰를 깨뜨리고 책임을 회피하는 행태는 재집권을 노리는 정당으로서뿐 아니라 일개 원내 정당으로서도 자격이 없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새누리당과 박 후보는 지금이라도 대승적 견지에서 투표시간 연장 방안을 수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선거에서 불리하니까 못하겠다고 솔직하게 자복하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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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영 국제부 기자


 

사람은 가까운 친구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가치관과 지향점이 닮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사회에 이 말을 적용해보자면, ‘그 사회는 유명인사를 보면 알 수 있다’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탈리아 하면 적잖은 이들이 떠올리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그 예일 것이다. 자수성가형 언론재벌 출신인 그는 마피아 연루설, 부패와 탈세혐의, 형사소추, ‘붕가붕가 파티’와 미성년자 성관계 같은 각종 추문에도 꿋꿋하게 2차 대전 이래 최장 집권총리라는 끈질긴 정치 생명력을 보였다. 1994년 정계 진출 이래 100번쯤인 검찰 기소와 2008년 세 번째 총리 임기 중 50번 넘는 의회의 불신임 속에 살아남았으니 ‘정계 서바이벌’과 ‘사법 서바이벌’ 교본 시리즈라도 써야 할 분이다. 물론 지난해 유로존 경제난 탓에 총리직에서 쫓겨났고, 지난주에는 드디어 탈세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으면서 운이 기운 듯하지만 그의 정치 영향력은 아직 ‘몽니’를 부릴 만큼은 된다. 상고심에서도 유죄판결이 나오면 취약한 연정을 뒤엎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밀라노 도심에서 활짝 웃으며 지지자와 악수하고 있다. (경향신문DB)


 미스터리한 그의 권력과 인기에 대해 어느 외신 특파원은 베를루스코니가 곧 이탈리아인들의 욕망을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베를루스코니처럼 부자가 되고 싶고, 법망을 피하고 싶고, 여자를 좋아하는 등 이탈리아인들의 마음속에는 ‘작은 베를루스코니’가 있다는 얘기다. 남을 미워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미워하기는 더 어려운 법인데, 어떻게 자기 자신에게 엄격할 수 있겠는가.


성숙단계 이전의 민주제도에서 공약이 아닌 이미지에 선거가 끌려다닐 때, 이처럼 대중이 정치인에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유권자로서 자신의 정책검증 능력을 발휘해 면밀히 따져보기보다는 ‘훌륭한 지도자’처럼 보이는 정치인이 가진 것처럼 보이는 ‘위대함’에 압도되는 것이다. 융 심리학에서는 이 같은 행동이 게으름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스스로 노력하기보다는 ‘주인의 영광을 주워담으며 광적인 찬양을 보낸다’고도 분석한다. 속된 말로 ‘빠의 정치’는 이 같은 맥락에서 발생한다. 눈 먼 열광의 정치는 사회구성원들의 자아가 약한 사회에서 등장하는 셈이다. 이 경우 구성원들은 자기반성을 못하는 것만큼이나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내리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베를루스코니 같은 정치인이 20년 가까이 처벌받지 않고 정계 거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 개인이 아닌 사실상 이탈리아 모두의 책임이 된다. 특히 선거를 통해 걸러낼 수 있는 선출직 공무원임에도 그러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상 그 사회가 ‘공범’이 되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유권자들의 눈이 두려워서라도 그릇된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정의로운 사회를 꿈꾼다면서 형편없는 지도자에게 기회를 줘놓고는 그럴 줄 몰랐다고 변명하긴 어려운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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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웃기는 소리지만, 예순을 넘긴 이 나이에도 군복차림에다가 군모를 쓰고 있는 꿈을 꾸다가 놀라서 깨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젊었을 적에 특별히 험한 군대생활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악몽’이 아직 따라다니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출생 이후 내 최초의 기억은 대개 6·25 전란과 관계되어 있다. 남해의 어떤 섬 해변에서 굴비처럼 철사에 묶여진 사람들의 시체가 떠밀려 와 있는 기괴한 모습을 본 기억, 그리고 피란에서 돌아온 뒤에도 밤만 되면 어딘가에서 터지는 포탄의 굉음에 짓눌려 지낸 기억 따위가 그렇다. 그러나 당시 네다섯 살짜리가 겪은 이 단편적인 장면의 의미를 짐작이나마 할 수 있게 된 것은 나중에 커서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책을 보면서였다. 보도연맹이니 빨치산이니 하는 것을 어린아이가 알 도리는 없었다. 


아이 때는 아무리 끔찍한 장면일지라도 그 의미를 모르는 이상, 그게 내면화되기는 어려운지 모른다. 실제로 내게 훨씬 큰 상처가 된 것은 좀 더 커서 고등학교 입학 후의 경험이었다. 그해 초여름은 유난히 가뭄이 심했다. 그래서 어느 날 1학년인 우리들이 농촌 돕기에 나섰다. 우리는 각자 양동이 따위를 들고 걸어가고 있었는데, 도중에 난데없이 출현한 지프에서 뚱뚱한 육군장교가 내렸다. 그는 우리들의 선생님을 불러 세웠다. 그러고는 지휘봉으로 마구 구타를 하는 게 아닌가. 나중에 듣기로는, 학생들의 어지러운 대열이 못마땅했다는 것이다. 5·16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시절, 지역 계엄사령부 지휘관이었다. 쿠데타를 일으켜 헌정을 중단시킨 군인들의 명분은 ‘국가재건’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스승을 구타하는 방법으로 나라를 새로이 세우고자 했다. 


군사독재가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강압적 철권통치 때문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몰상식한 짓을 보고 살아야 하는 고통이 더 컸다. 예를 들면, 해마다 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하는 대통령을 영접한답시고 길가에 늘어선 개나리들을 억지로 활짝 꽃피우기 위해서 몇 달 전부터 병사들을 동원하여 ‘개나리 조기개화(早期開花) 프로젝트’를 행하는 것을 나는 군대시절 내내 보아야 했다.


이 비슷한 일은 비일비재했다. 허위보고, 겉치레, 표리부동한 위선적 언행은 사회 전체에 구조화되어 있었다. 살아남으려면 누구든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몰상식과 독재가 결합된 대표적인 만행이 ‘장발 단속’이었다. 멀쩡한 젊은이들의 머리칼이 국가기관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길거리에서 함부로 잘리는 터무니없는 짓이 오래 계속되었다. 아무 법적 근거도 없이 단지 최고권력자 개인의 취향에 거슬린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장발 단속 (경향신문DB)


1970년대 중반 내가 재직하고 있던 어느 지방대학에서 학생들의 부탁으로 저명한 작가 한 분을 초청하여 강연회를 개최한 적이 있다. 이 나라 최고급 작가로 내가 존경하고 있던 작가였다. 그분 특유의 해박하고 진지한 강연이 끝난 뒤 우리는 저녁식사를 위해 시내로 나왔다. 그런데 같이 걷고 있던 분이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살펴보니 길 건너편에서 경찰의 ‘닭장차’에 막 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그분은 몇 해 동안 미국에 머물다가 막 귀국했기 때문인지 장발인데다가 뒷모습만 보면 청년 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필 그 시각 시내 중심가를 급습한 장발단속반에 걸려든 것이다.


잠시 멍해 있다가 나는 다급히 경찰관들에게 쫓아가 간곡한 어조로 설명했다. 그리하여 그분을 ‘닭장’으로부터 가까스로 구출할 수 있었다. 잠시 후 인근 식당으로 들어가기는 했으나 우리는 밥을 먹지 못했다. 작가는 침묵 속에서 말할 수 없는 모욕감과 수치심으로 온몸을 떨고 있었다.


되돌아보면, 박정희 시대는 실로 누추하고 야만적인 시대였다. 작가는 불온한 글로 탄압을 받거나 감옥에 갈 수도 있다. 그것은 작가로서 명예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나라 최고급의 작가가 장발 단속에 걸려 ‘닭장차’에 실린다는 이 기막히게 누추한 코미디는 대체 무엇인가. 작가·예술가에게 이보다 더 야만적인 형벌이 있을 수 있을까. 


그날 일은 어쩌면 ‘사소한’ 사건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것은 박정희 시대의 본질을 집약하는 극히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단언하고 싶다. 박정희 시대란 영웅의 시대도, 비극의 시대도 아니었다. 비극이란 원래 위대한 정신의 위대한 몰락에 관한 드라마이다. 박정희 시대는 단지 천박하고 저열한 정신이 지배하는 시대였을 뿐이다.


박정희는 농촌을 살린다면서 ‘잘 살아보세’라는 유치한 노래를 밤낮으로 틀어놓고 농민들을 바보나 어린애처럼 취급하고, 토착문화를 가차없이 파괴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삶의 근본 토대를 급속히 해체시켰다. 박정희와 그 추종자들은 이 땅에 면면히 전승돼온 선인들의 지혜와 삶의 기술, 사회적 관계망들을 폭력적으로 제거하며 그것을 ‘경제발전’이라고 불렀다. ‘경제발전’이라고 하면 모든 게 허용되는 사회, 역사도 문화도 전통도 헌신짝처럼 내던질 준비가 되어있는 사회, 그리하여 깊이도 영혼도 없는 사회가 이 시대를 통해서 굳건히 정립된 것이다.


1979년 10월 새벽, 대통령의 ‘유고’ 소식을 들었다. 문득 옛날 우리 선생님이 군인한테 폭행당하는 것을 본 이후, 나는 한순간도 자유인으로 산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시절은 물론, 대학 선생이 되고 난 뒤에도 끊임없이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에 짓눌려 살았고, 글을 쓸 때도, 글이 발표되고 나서도 늘 불안했다. 그런 비겁한 나 자신이 혐오스러운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제는 해방이다”--독재자 박정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날, 우리들은 종일 들떠 있었다. 


요즘 젊은이들과 얘기를 해보면, 그들이 박정희 시대가 어떤 시대였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언젠가부터 이 나라에서 사실상 역사교육은 사라졌다. 설령 역사를 배운다 할지라도 박정희 시대의 한국 사회 전체가 거대한 수용소였다는 사실을 그들이 체감할 리가 없을 것이다. 당대 최고의 작가가 어떤 치욕에 노출되던 시대였는지, 그것을 모르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과 같다. (위에서 언급한 작가는 지금 생존 중이다. 혹시 이 글을 보더라도 용서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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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과제로 부상한 검찰개혁을 두고 대선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정책을 내놓고 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지난주 ‘권력기관 바로 세우기’ 방안을 밝힌 데 이어 어제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사법개혁 10대 추진과제’를 제시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도 정치쇄신특위에서 만든 방안을 중심으로 조만간 최종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안 후보가 발표한 검찰개혁안은 고위공직자부패수사처 신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검찰의 직접수사기능 축소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앞서 문 후보가 내놓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중수부의 직접수사기능 폐지, 검·경 수사권 조정 등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정치적 파장이 큰 사건의 경우 기소 여부를 시민배심원단이 결정토록 하고, 판검사·경찰관의 공권력 남용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토록 한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우리는 문·안 후보의 검찰개혁안이 비교적 핵심을 짚은 것으로 평가한다. 검찰총장 직할부대인 중수부의 폐지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해 필수적이다. ‘태산명동 서일필’로 끝난 중수부의 양경숙씨 공천헌금 수사만 봐도 중수부 폐지의 당위성은 분명해진다. 중수부 자체를 폐지할 것이냐, 수사기능만 없앨 것이냐는 부차적 문제일 뿐이다. 새누리당은 특별감찰관이 대통령 친인척이나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고발하면 상설특검이 수사하는 방식을 검토 중인 모양이나, 이는 반쪽짜리 개혁에 불과하다. 중수부가 존재하는 한 각 기관의 위상과 기능을 두고 충돌이 빚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검찰개혁법안 제출하는 민주통합당 (경향신문DB)


문·안 후보의 검찰개혁안에는 아쉬운 부분도 있다. 인사권의 독립 문제다. 문 후보는 검사의 청와대 파견을 금지하고, 검찰 인사에 시민 참여를 확대하며, 법무부를 탈(脫)검찰화하겠다고 밝혔다. 안 후보도 법무부 보직에서 검사를 배제하겠다는 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검찰의 독립성 훼손은 대통령이 검찰총장 인사권을 무기로 조직 전체를 쥐락펴락한 데서 비롯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고려대 후배인 한상대 검찰총장이 민간인 불법사찰, 내곡동 사저 부지, BBK 가짜편지 등 ‘3대 의혹’ 수사에서 이 대통령과 측근들에게 면죄부를 안긴 것을 보라. 


이 같은 사태의 재연을 막으려면 최근 신설된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를 전면 개편해 대통령의 인사권을 제한해야 한다. 규정상 추천위원이 9명에 불과한 데다 전·현직 검사가 2명 이상 들어가도록 돼 있는데 이를 바꾸자는 것이다. 추천위원 수를 대폭 늘려 시민사회와 재야법조계의 목소리를 확대하고 검찰의 발언권은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편하는 게 바람직하다. 또 법무부 장관은 물론 청와대 민정수석도 비검찰 출신 법조인으로 임명해야 한다. 평검사 인사에서는 순환인사 원칙을 적용함으로써 ‘정치검사’가 되려는 유혹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 검찰개혁은 권한 축소와 인사 개편의 양축이 뒷받침될 때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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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순 | 서울과기대 기초교양학부 교수


 

역시 진심만 가지고는 안될 일인가? 안철수 후보의 정치개혁안을 두고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아마추어 포퓰리즘이라는 비판부터 프레임 전쟁의 노림수라는 비판까지, 일파가 만파를 부르고 있다. 개혁안의 출발점이 그의 진심이었던 것만은 믿고 싶다. 그러나 과연 국회의원 수와 정당보조금을 줄여 그 돈을 청년실업에 쓰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 안 후보의 제안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하는데 역행한다는 비판이 넘치니, 여기서는 그것이 그가 대망하는 복지국가를 만드는 데 도움이 안된다는 얘기를 해볼까 한다. 


(경향신문DB)


정치학자들은 복지태도의 계급별 차이가 나라마다 편차가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컨대 스웨덴의 경우 하층계급일수록 복지확대를 더 지지하고 상층계급일수록 덜 지지하는 경향이 뚜렷이 나타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이런 복지태도의 계급적 차이가 스웨덴에 비해 현저히 낮게 나타난다. 그 이유는, 미국의 하층계급이 스웨덴에서만큼 일관되고 강하게 복지국가를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층계급의 태도는 큰 차이가 없다. 


 왜 미국의 하층계급은 스웨덴의 하층계급만큼 복지국가를 지지하지 않을까. 정치학자들은 정당체계를 그 이유로 든다. 비례제를 채택하고 있는 스웨덴의 경우 정책 차이가 뚜렷한 여러 개의 정당이 존재한다. 정당들은 사회경제적 이슈에서 선택가능한 대안과 그것의 계급적 의미를 선명히 집약해 보여주는 초점 구실을 하며, 유권자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맞는 정당을 선택하기 쉽다. 반면 소선거구제-다수대표제를 채택하고 있어 양당체제가 수립된 미국의 경우, 자유주의정당과 보수정당이 경쟁하는 구도를 가지고 있어 주요정당 간의 정책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게다가 미국의 의원들은 지구당 중심의 당 운영으로 정당기율이 약한 상태에서 교차투표를 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정당이 정책 선택의 강한 기호가 되어 주지 못한다. 결국 유권자들은 지역구 현안 중심, 인물 중심의 투표를 하게 되고, 복지나 노동 등 전국적 쟁점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이런 정당체계는 결국 시민사회 내 하층의 이해관계가 정치사회에 반영되지 못하게 한다. 교육수준이 높은 상층 및 중간층 유권자들은 이런 제도 속에서도 자신의 계급적 이해관계에 충실한 투표를 한다. 반면, 대체로 교육수준이 낮은 하층은 인종, 종교, 낙태, 이민 등의 프레임에 이끌려 자신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반하는 투표를 하는 경향을 보인다. 사고의 비논리성과 비통합성을 갖기 쉬운 하층계급은 정당이 지속적으로 이들을 호명하여 자신의 이익이 무엇인지 프레이밍해주고, 실제로 집권하여 그 이익을 실현시켜 줄 때 자신의 이해관계에 맞는 투표를 하기가 쉬워지는데, 미국은 유럽에 비해 이런 기제가 훨씬 약한 것이다.


한국의 상황은 미국보다 더 심각하다. 한국의 경우 분단체제, 보수적 매스미디어 환경, 취약한 노동시장, 지역주의 정치구도로 계급적 이해를 정치적으로 프레이밍하는 장치가 극도로 취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독점의 정당체제는 대의 왜곡 문제를 더욱 증폭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이는 하층계급이 오히려 복지국가 확대에 반대하고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역설적 상황을 만들어 냈다. 이런 문제의 극복을 위해 여러 정치학자들은 오래전부터 비례제의 확대를 주장해왔다. 그리고 국회의원 수를 줄이면서 비례제를 확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기에, 국회의원 정수 확대에도 긍정적 입장을 취했다.


이렇게 본다면 안 후보의 국회의원 정수 감축 주장은,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복지국가 발전도 저해할 수 있는 위험한 제안이다. 그 돈을 청년실업 대책에 써서 얻는 이익은 대의를 왜곡하는 정당체제의 개혁으로부터 얻는 이익에 비하면 지극히 미미하다. 논란 증폭 과정에서 나온, 주장의 핵심은 쇄신의 방향이지 숫자가 아니라는 안 후보의 반박 역시 우려스럽긴 마찬가지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고양이 스스로, 하나도 아니고 줄줄이 목걸이로 만들어 걸어야 한다는, 이 사안의 핵심 측면을 부차적 문제로 보는 현실감각도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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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점석 | 비교문학자


 

야합! ‘들판(野)에서 합궁(合宮)한다’는 말이다. 듣는 사람에 따라 이 말이 주는 여운은 다를 수 있다. 혈기방장한 젊음의 뒤안길을 벗어난 장년은 야릇한 미소를 지을 것이며, 검은 머리에 서리가 내려앉도록 요조숙녀를 꿈꾸며 살아온 여인은 ‘이런 망측할 데가 있나’는 표정으로 손사래를 칠 것이다.


하지만 사마천의 <사기>에 실린 이 말의 어원적 용례는 의외다.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은 예순 살에 세 번째 부인 안징재와 결혼하여 공자를 얻게 되었다(紇與顔氏女野合而生孔子). 이때 그녀는 열여섯 살이었다. 야생의 질서가 아닌 규범적 인륜을 강조한 공자가 ‘야합의 산물’이라니 역설적이다. 물론 공자 출생의 야합이란, 아들을 얻기 위한 일념에 불같은 정염이 끓어올라 ‘들판에서 정을 통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기>의 해설서에 따르면, ‘여자는 49세(7×7)에 음도(陰道)가, 남자는 64세(8×8)에 양도(陽道)가 끊긴다’고 했다. 양도와 음도가 생기기 전이나 소멸된 후에도 임신이 되는, 아주 특별한 경우의 통정을 야합이라고 한단다. 공자의 출생이 야합이랄 수 있는, 매우 드문 경우인 것은 사실이다. 


 바야흐로 야합과 반역이 난무하는 정치의 계절이다. 정치판의 모리배들이 교언과 허언을 일삼으며 치마끈을 풀어헤치고 날뛴다. ‘지구 한 바퀴를 도는 동안 당적을 13번 바꾸며 마침내 본집에 돌아왔다’는 이인제는 정권교체를 위한 야당의 후보 단일화를 ‘야합’이란다. 야합의 결과로 새 시대의 토대를 쌓고 질서를 부여할 공자와 같은 인물의 탄생을 예견하다니! 혜안이 아닐 수 없다.


박수치는 새누리당 (경향신문DB)


야합을 일삼는 모리배의 전형을 김무성의 현란한 처세술과 무지한 독설에서 본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후보 사이에서 권력의 추를 따라 나댔던 것은 그들의 생존법이니 웃어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가계의 친일행적’(매일신보 1941년 12월9일자에 실린 부친 김용주의 조선임전보국단 대구지부 결성식 기사 참조)을 광적인 ‘레드 콤플렉스’로 상쇄시키려는 책동은 비열하기 짝이 없다. 사실을 날조하여 적의를 확산시켜 상식과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키고, 사회를 광기의 도가니에 빠뜨려 구성원들이 흑백논리에 갇히게 한다. 내부 분란을 야기하여 자신의 치부를 가리려는 게 그들의 술수다.


친일파의 후손들은 친일부역 오명의 굴레에서 자신들의 선친을 구하는 수법을 안다. 대중매체를 장악하여, 쉴 새 없이 ‘종북주의, 좌파 빨갱이, 북방한계선(NLL)’을 들먹이며 막무가내로 떠들어야 한다. 합리적 비판이나 논쟁이 시류를 주도하면 그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니까. 완장을 찬 김무성과 동업자들은 안다. 5년 전 10월에도 그들의 당대표 강재섭과 한나라당의 모사꾼들이 근거 없이 ‘북방한계선에 관한 대화록’을 들먹이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어떻게 물고 늘어졌던가를! ‘한반도와 부속도서들을 영토’로 규정하는 헌법에 비추어 봐도 북방한계선은 우리의 국경선이 아니다.


1992년 노태우 정권의 ‘남북기본합의서’에서도 북방한계선에 대한 재논의를 언급했다. 기존의 합의를 토대로 2007년 노무현 정권은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서해에서 우발적인 충돌을 방지하려는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설정하자고 합의했다. ‘10·4 선언’에 따라 그해 11월27일 제2차 남북 국방장관회담이 대동강변의 송전각에서 열렸다. 참여정부는 북측이 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해상경계선 재설정’ 주장을 철회하게 했다. 북방한계선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뚝심과 일관성이 거둔 성과였다. 


폭로를 가장한 무책임한 언동으로 정치혐오증을 유발하는 정치 모리배들을 청소하는 것이 정치판의 쇄신이다. 이번 대선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정치 쇄신은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권력을 좇아 단맛만을 빨며 야합으로 놀아났던 값싼 입들’이 더 이상 국민을 이간질할 수 없도록 도태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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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측이 어제 안철수 무소속 후보에게 야권 후보의 단일화 논의를 공식 제의했다. 후보 등록(11월25~26일) 전 단일화를 성사시키려면 더 이상 늦출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안 후보 측도 “단일화를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10일 정책안을 내놓기로 해 그 약속에 먼저 충실해야 한다”고 밝힌 안 후보의 전날 발언을 소개했다. 안 후보가 조건부이긴 하지만 단일화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거론한 것은 처음이다. 18대 대선의 최대 변수인 단일화 논의가 제 궤도로 들어서는 국면인 듯하다.


양측 입장을 보면 온도차가 있다. 경선을 치렀으면 하는 문 후보 측은 서두르는 기색이고, 여론조사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진 안 후보 측은 시간을 끄는 분위기다. 둘 다 옳지 않은 접근법이라고 본다. 먼저 문 후보 측은 단일화 내용보다 민주당 중심의 대선 승리를 위한 절차와 형식에 집착하는 인상이 짙다. 이른바 정치공학적 접근이다. 또 “방식보다 가치에 대한 합의가 중요하다”며 정치적 기득권 폐기를 강조하는 안 후보의 언급에선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듯한 고자세가 느껴진다. 안 후보가 주장하는 대로 가치와 정책을 위한 단일화를 위해서라면 논의를 더 이상 미뤄선 안된다. 단일화를 채울 내용과 방식 논의를 병행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지금처럼 단일화 논의가 두 사람의 동상이몽으로 흐르면 국민의 피로감만 커지고, 정권교체라는 가시적 목표도 퇴색할 수밖에 없다.


계속되는 '단일화 질문' (경향신문DB)


그런 맥락에서 양측이 정치쇄신을 놓고 벌이는 논쟁은 의미가 적지 않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정치는 물론이고 노동과 복지, 경제 등 각종 정책 경쟁으로 범위를 확대해나가야 한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은 지난 4·11 총선 때 후보 단일화를 위한 야권연대를 하면서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 실현 등을 포함한 범야권 공동정책 합의문에 서명한 바 있다. 하물며 국가 운영을 책임지겠다는 대선 후보 단일화를 놓고 정책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다면 그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범야권 시민사회 원로들로 구성된 ‘원탁회의’가 두 후보에게 단일화를 촉구하면서 ‘아름다운 연합정치’를 주문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단일화 논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하는 정치 게임이 아니라 수권능력을 걸고 겨루는 진검승부가 돼야 한다.


문·안 두 후보 측은 각자의 정책들을 테이블에 올려놓는 것으로 단일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가치와 정책의 공유는 물론, 후보만이 아닌 세력의 통합을 이루기 위해선 어떤 단일화냐가 더욱 중요하다. 두 사람의 정책은 외견상 차이가 없어 보이나 구체적 실행 방식이나 우선순위 등에선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두 후보 진영은 2002년 대선 당시 정책적 연대 없이 지분 나누기에 그친 노무현·정몽준의 단일화가 투표 전날 파기된 교훈을 잊어서는 안된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빠진 단일화는 그만큼 명분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정책 합의는 후보 단일화를 위한 필수 조건이다. 그것이 승리지상주의 단일화의 함정을 실질적으로 극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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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범 특별검사팀의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 의혹’ 수사가 급진전되면서 이명박 대통령 일가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핵심 피의자인 이 대통령 아들 시형씨와 그에게 매입자금 6억원을 빌려줬다는 이 대통령의 큰형 이상은 다스 회장의 행태는 말 그대로 점입가경이다. 법망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을 태세다.


시형씨는 특검 수사가 시작되자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고 있다. 검찰 조사 때와 달리 “내 판단에 따라 매입자금을 마련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진술을 바꾼 경위를 두고는 “검찰에 낸 서면진술서는 청와대 행정관이 대신 작성했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고 한다. 대통령 아들과 청와대가 공조해 형사사법 절차를 깔아뭉갠 셈이니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다. 시형씨 측의 어이없는 행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변호인은 시형씨의 재소환과 청와대 직원들의 참고인 소환을 자제해줄 것을 특검팀에 요청했다고 한다. 핵심 피의자의 변호인이 수사방향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못해 황당한 일이다. 더욱이 청와대 측 법률대리인이 아닌 시형씨 개인의 변호인이 청와대 직원 소환 문제를 언급한 것은 월권이다. 청와대가 특검에 외압을 행사하려 한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아들 시형 씨가 내곡동 사저부지매입 의혹에 대한 조사를 받기 위해 25일 서초동 이광범 특별검사 사무실에 출석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이상은 회장의 측근은 매입자금 6억원의 출처와 관련해 “이 회장 집에 현금 10억원 정도가 들어가는 붙박이장이 있는데, 6억원은 여기서 꺼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개인 계좌에서 나온 것이고, (동생인) 이상득 전 의원이 총선에 나가면 도와주려 했던 돈”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실소유주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 다스에서 6억원이 나왔다는 의혹을 차단하려 한 듯하다. 하지만 새로운 의혹만 보태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대통령의 형이 현금 수억원을 장롱 속에 쌓아놓고 살아왔다는 데 충격받지 않을 국민이 있겠는가.


내곡동 사건은 현직 대통령이 국민의 혈세로 부동산투기와 편법증여를 하려 했다는 의혹에서 비롯했다. 검찰이 부실수사로 국민적 의구심을 해소하지 못한 탓에 특검 수사까지 받게 된 ‘부끄러운’ 사건이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 일가는 갖가지 꼼수를 동원해 법의 심판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참담할 뿐이다. 우리는 대통령 일가를 향해 특검 수사에 협조하는 것이 남은 명예라도 지키는 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접어야 할 것 같다. 특검팀은 어떠한 수사 방해 시도에도 흔들리지 말고 철저한 수사로 진실을 밝혀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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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