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초엽, 남북한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였다. “탈북자 이혁철씨(28)가 연평도에서 어선을 절취해 NLL을 통과해 월북했다.” 선주가 북으로 향하는 이씨에게 휴대전화로 돌아올 것을 종용하니 “개××, 있을 때 잘하지 그랬냐”라고 욕설을 하며 그대로 도주했다(군당국의 발표). 그 후 이씨는 북한 방송국이 주최한 좌담회에 출연해서, 남한 체류기간에 겪었던 곤경을 토로했다고 전한다. 희극적이면서도 “있을 때 잘하지”라는 말이 목의 가시처럼 걸린다.

(경향DB)


박근혜 정부의 통일정책인 ‘신뢰 프로세스’는 말 그대로 믿음이 핵심이다. 이불리(利不利)를 따지는 계산속에서는 신뢰가 생길 수 없다. 신뢰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성실한 의지, 곧 성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다만 상대방에게 성의를 요구하기에 앞서, 스스로 성의로 대하는 것이 우선이다. 즉 신뢰 프로세스는 상대방을 탓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먼저 책하는 성찰적 자세가 요건이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을 ‘햇볕정책’이라고 이름 붙였을 때, 좋은 명칭이 아니라고 보았다. 남한은 햇살을 비추는 주체로, 북한은 햇빛을 수용하는 객체로 대상화하는 시각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기관의 비밀 프로젝트 이름이라면 몰라도, 정부의 공식적인 외교정책 명칭으로서는 무례하다 싶었던 것이다. 결국 퍼주기 논쟁으로 비화된 까닭의 일단도 여기 있지 싶다. 햇볕정책의 관점으로는 서로를 경제적 이불리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십상이다. 이제 남북이 폭력으로써 상대방을 굴복시킬 수가 없고 또 경제적 이익으로써 상대방을 유인할 수도 없는 형편이라면 결국 서로의 마음을 열고 신뢰를 쌓는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신뢰 프로세스’는 역사적 당위성이 있다. 이즈음 고전으로부터 평화의 지혜를 빌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2500년 전 춘추전국은 이름 그대로 ‘전쟁의 시대’였다. 짐승이 사람을 잡아먹고 급기야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으리라는 비관으로 짓눌린 시절이었다. 맹자가 천하통일의 조건으로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자’로 못박을 정도였으니, 그때의 참혹함은 미뤄 짐작할 만하다. 매양 윤리도덕이나 운운할 것 같던 공자가 전술적인 언어로써 평화의 방법을 논한 것도 의외다. 이 또한 절박한 사정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인 듯하다.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먼 곳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을 경우, 문덕(文德)을 닦아서 오게끔 하고, 이미 왔거든 그들의 삶을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논어)


공자의 처방전은 급박한 조건에서 나왔다. “먼 곳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는 경우”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다만 자기성찰로 눈길을 돌리는 것이 이 처방의 특색이자 어려운 대목이다. 폭력이나 이익으로는 갈등이 유예될 뿐 근본 해결책이 아니라는 생각도 밑에 깔려 있다. 상대방이 아닌, 내 탓을 헤아리는 자기성찰은 어렵다. 그럼에도 신뢰의 핵심요건이 여기 있다.


자기성찰의 내용으로 그는 문덕, 곧 ‘문화의 힘’을 들었다. 무력의 힘이나, 경제력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겠다. 즉 공자는 나라 안에서 확보한 문화의 힘을 평화의 조건으로 보았다. 그것이 “먼 곳 사람들을 오게끔 하는” 전망 속에 들어 있다. 문화의 힘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의 근원인 점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싸이의 ‘젠틀맨’에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춤추는 모습이 그 상징이다.


북한에 납치된 것으로 설정된 싸이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앞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는 장면. (경향DB)


그리고 “왔거든 그들 삶을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라는 끝 대목에도 주목을 요한다. 탈북자들에 대한 경제적 안정과 인권의 보장을 뜻한다고 해석할 수 있으리라. 오늘날 통일의 길은 탈북자들에 대한 우리의 대접에서 시작된다고 공자는 권하고 있다. 경제적 필요든, 인간다운 삶을 갈망해서든 이 땅으로 자발적으로 찾아든 사람들이 탈북자들이다. 탈북자들에게 최소한의 경제적 안정을 제공하고, 손님으로 대하는 정중한 자세 그리고 한 데 어울려 살려는 우리의 의지에 평화통일의 길이 열린다. 즉 통일의 길은 무력이나 경제력, 외교적 전술전략에 있지 않고, 도리어 우리 속에 있다.


그러니 탈북자들의 정착을 돕는 하나원에서 인권침해가 자행된다는 고발 내용은 걱정스럽다. 문전축객은 조상들이 금했던 짓이다. “부자가 교만하지 않긴 쉬워도, 가난한 자가 원망하지 않긴 어렵다”고도 했다. 살길이 없어서 찾아든 사람에게 원망하는 마음을 남겨선, 평화는커녕 증오심을 돋울 따름이다.


일본 연안으로 표류한 탈북자 9명이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을 빠져 나가고 있다. (경향DB)


우리 처지는 강대국들의 동북아 전략도 감안해야 하고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도 헤아려야 한다. 그러나 남북한의 신뢰를 확보하지 않고서는 삼각사각의 파도를 헤쳐 나갈 힘을 얻을 데가 없다. 젊은 탈북자가 이 땅을 떠나면서 “있을 때 잘하지 그랬냐”라고 남긴 말은 그래서 무척 우울하다. 찾아온 이들의 생활을 편안케 해줄 여력이 없다면, ‘마음을 사기’라도 해야 한다. 그 출발은 우리가 탈북자들을 손님으로 대하는 마음가짐에서부터다. 이것은 돈이 들지 않는 일이다.



배병삼 |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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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인간에게 하냥 달가운 것은 아니었다. 역사는 그 자체로 가치중립적이지만, 그것을 손에 쥐려는 인간의 의지에 따라 선한 ‘교훈’으로도, 불한당의 ‘광기’로도 다가왔다. 때로 그러한 집단적 광기들은 병든 사회의 신호이기도 했다.


문화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명저 <슬픈 열대>에서 “역사가 인간에게 가까이 올 때 사회집단 내부에서 일어나는 온갖 어리석음과 병적 징후들”을 탄식한 바 있다. 유태계 프랑스인으로 패전한 조국을 탈출해 미국으로 가면서 겪은 인간적 모멸에 대한 충격 때문이었다. 


350명이 짐짝처럼 구겨넣어진 채 2주간 항해 끝에 처음 도착한 프랑스령 섬. 그곳 사람들은 그들을 ‘매국노’라며 경멸했다. ‘어떤 사람들은 히틀러가 예수 그리스도로서 2000년 동안 그의 가르침을 잘 따르지 않은 벌을 주려고 이 땅에 강림한 것’이라고도 했다. 전쟁의 소동에선 격리된 채 바람에 실려온 공포만 접한 섬 사람들은 일종의 정신착란처럼 보였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병적 징후들이 보인다. 소위 ‘일베 현상’이라고 한다. ‘일베=일간 베스트 저장소’라는 이름부터 선동적이다. 그들은 증오와 분노를 양분 삼아 역사를, 인간성을 비트는 것에서 존재 근거를 찾는다. 그들의 5·18 민주화항쟁 비하는 인간적으로 참혹하다. 5·18 희생자들 관이 늘어선 체육관 사진에 ‘배달된 홍어들 포장 완료된 거 보소’라고, 진압 군인들에게 폭행을 당해 죽음의 문턱에 선 시민 사진을 보며 ‘회를 뜨기 직전 모습’이라고 한다. 반면 시민을 학살한 전두환에 대해선 ‘진정한 민주주의 열사’라며 영웅시한다. 레비-스트로스를 모욕하던 섬 사람들처럼 일베들의 전복된 가치를 보노라면 집단적 ‘정신착란’의 혐오를 느낀다.

(경향DB)


실상 모든 선동에는 과장과 왜곡이 ‘진실’을 가장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격동과 흥분을 계산한 거짓이다. 나치 정권의 나팔수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다 보면 결국 믿게 된다. 무엇보다 한없는 증오를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분노와 증오의 집단적 정신착란은 거짓과 진실의 경계를 허물고 거짓을 더욱 강력하게 만든다.


실제 일베들에 의해 ‘민주화’는 집단괴롭힘이나 왕따, 비추천 등 부정적 의미로 왜곡되고 있다. 그 왜곡은 걸그룹 멤버인 전효성의 ‘민주화=왕따’ 발언이 촉발한 논란에서 보듯 이미 일정 부분 우리 사회에 암종처럼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 배경엔 그간 일부 언론 등 우리 사회 보수들이 근현대사 교육을 ‘좌파 교육’이라고 공격하면서 왜곡을 용이하게 만든 탓도 있다.


하지만 ‘악마’는 어둠과 함께 온다. 근인은 증오에 찬 선동이 먹힐 수 있는 토양, 즉 삶의 ‘비루함’과 무지일 것이다. 바이마르인들의 이성은 1차 세계대전 전쟁 배상금 문제와 높은 실업률,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마비됐다. 10여년 전 ‘톨레랑스(관용)’의 프랑스를 ‘인종주의’로 긴장케 한 장 마리 르펜의 극우당 부상 역시 고실업 고통과 극에 달한 좌우 동거정부의 갈등이 동력이었다. 연일 침략과 학살의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 극우의 뻔뻔함은 20여년 일본을 멈춘 ‘장기 불황’에서 나온다. 타인의 절망은 윤리적 금제를 벗어버린 그 짐승들의 먹잇감이다. 


동양대 진중권 교수는 지난 15일 트위터 글에서 “전효성은 원인이 아니라 증상이다. 보수정권 6년 만에 극우적 사유가 암암리에 젊은 세대의 정신세계에까지 침투했음을 보여주는 슬픈 징조”라며 “개인을 비난할 게 아니라 우리 사회 이성의 실패를 한탄해야 할 일이다. 일본은 아베, 한국은 일베”라고 했다.


역사가 한 시대의 광기와 거짓 욕망을 포장하는 장식품으로 전락할 때 그 사회는 병든 것이다. 역사의 암세포들은 점차 퍼져 결국 우리를 죽게 만들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1기인가, 2기인가, 3기인가. 병의 깊이를 떠나 이들 병적 징후가 우리 사회 건강성에 켜진 경고등으로 기능할 때 그나마 역사의 병리현상들은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일베 현상 (경향DB)



김광호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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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문제가 다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추징금을 받아낼 수 있는 법적 시효가 오는 10월로 만료되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에서는 전 전 대통령의 불법재산 환수를 촉구하는 한편 은닉재산 추적 운동에 돌입했다. 때맞춰 채동욱 검찰총장도 주목할 만한 언급을 했다. 채 총장은 그제 간부회의에서 “전직 대통령이 미납한 추징금의 시효가 임박했다”며 미납액 징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검찰은 곧바로 태스크포스 구성에 착수했다. ‘100일 작전’ 식으로 시한을 정해 집중적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한다. 검찰의 의지를 긍정 평가하며 이른 시일 안에 가시적 성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전 전 대통령은 1997년 대법원에서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받았으나 아직도 1672억원을 내지 않은 상태다. 3000여만원의 지방세도 4년째 밀려 가산금을 더한 체납액이 4000여만원까지 불어났다고 한다. 그는 2003년 “예금 29만원이 전 재산”이라고 주장했으나 이듬해 숨겨뒀던 서울 서초동의 금싸라기 땅이 발견돼 압류당했다. 추징금과 세금 낼 돈도 없다면서 육군사관학교에는 1000만원 이상의 발전기금을 ‘쾌척’했다. 그뿐만 아니다. 며느리는 자녀를 외국인학교에 부정입학시킨 혐의로 약식기소되고 손녀는 최고급 호텔에서 초호화 결혼식을 열었다. 오죽하면 초등학생이 “우리 동네 사시는/ 29만원 할아버지/ 아빠랑 듣는 라디오에서는 맨날 29만원밖에/ 없다고 하시면서/ 어떻게 그렇게 큰 집에 사세요?”라는 시를 썼겠는가.


(경향DB)


전직 대통령이 삼척동자도 믿지 않을 거짓말을 방패삼아 호화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던 데는 검찰의 책임이 크다. 보다 적극적으로 은닉재산 추적에 나섰더라면 오늘날의 사태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채 총장은 1995년 전두환 비자금 수사팀에 참여해 전 전 대통령이 법정에 서는 데 일익을 담당한 인물이다. 지금이라도 미납액 징수를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함으로써 사실상 ‘직무유기’를 해온 검찰의 전비를 씻기 바란다. 시효가 끝날 때까지 검찰이 은닉재산을 더 찾아내지 못하면 1672억원은 영원히 ‘부패한 전직 대통령’의 것으로 남게 된다. 검찰은 전 전 대통령의 재산 환수가 법적 당위를 넘어 사회 정의와 민주주의 차원의 과제임을 깊이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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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제2차 아시아·태평양 물 정상회의 참석차 태국을 방문한 정홍원 국무총리 일행이 인턴 3명을 모두 남성으로 선발했다고 한다. 국무조정실 측은 “일부러 여성을 배제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으나 수행원들에게 금주령까지 내렸다고 하니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순방 중 발생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 때문 아니냐는 관측이 나올 만하다. 그간 해외공관들이 대통령이나 총리의 순방 때 여성 위주로 인턴을 뽑아온 관행과 비교하면 그러한 의구심은 커진다.


전대미문의 사건을 겪은 정부가 ‘돌다리도 두들기면서 건너고’ 싶어하는 자세를 탓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남성이 문제를 일으켜 놓고 여성이 원인을 제공한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본다. 성추행 사건이 술과 여자 때문이라는 전근대적인 사고도 모자라 정부도 공직자들을 믿지 못해 ‘금녀(禁女)령’으로 피해 가고자 하는 발상은 유치하기 그지없다. 가해자 격인 정부가 성추행을 예방한다며 피해자 격인 여성으로부터 일자리나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하겠다는 것인가. “남자 교사가 성추문을 일으킨다면 여학생들을 학교에서 추방할 것인가”라는 야당 대변인의 촌평이 정곡을 찌른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번 사건은 공직사회에 팽배한 권위주의 문화와 왜곡된 성의식이 빚어낸 참사다. ‘대통령의 입’이라는 고위 공직자가 자신의 직위를 악용해 하급 직원 격인 여성 인턴에게 부적절한 성적 접촉을 시도한 것이다. 이를 외면한 채 여성과의 접촉을 차단함으로써 ‘제2, 제3의 윤창중’을 막겠다는 접근법은 또 다른 성 차별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사건 발생 열흘이 훌쩍 지나도록 여성이 장관으로 재직 중인 여성가족부가 입장 표명 한마디 없는 것도 그런 정부 내 분위기를 반영한 게 아닌지 의심이 간다.


대형 사건·사고는 그 자체로 충격적이지만 대응 과정에서 정부나 사회의 수준을 드러내기 십상이다. 성숙한 사회는 본질을 헤아리고 이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교훈을 새기지만 후진적 사회일수록 그 파장의 축소나 은폐에 더 주력하는 법이다. 정부의 대응을 지켜보노라니 국제적으로 망신을 산 윤 전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은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게 아니고,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 터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경향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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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언론 뉴스타파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자료를 받아 분석한 결과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한국인 245명이 페이퍼컴퍼니(실체 없이 서류상으로 존재하는 기업)를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당초 예상보다 많은 숫자여서 충격적이다. 이들 중에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을 지낸 이수영 OCI 회장 부부를 포함해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막내동생 조욱래 DSDL(옛 동성개발) 회장 장남인 조현강씨,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 부인 이영학씨가 들어 있다고 한다. 이번에 발표한 명단은 빙산의 일각이고,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재벌 그룹도 곧 발표한다고 하니 일파만파로 파장이 번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조세피난처 프로젝트 (경향DB)


조세피난처는 법인 소득의 전부나 일부에 세금을 매기지 않는 국가나 지역을 말한다. 따라서 조세피난처에 세우는 페이퍼컴퍼니는 상당수가 기업 탈세의 온상으로 꼽히고 있다. 조세피난처를 찾는 돈은 한국 기업만 있는 게 아니다. 절세나 탈세를 위해 전 세계 60곳의 조세피난처에 적어도 21조달러(2경3000조원)의 천문학적인 돈이 흘러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총액의 30%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다. 물론 조세피난처에 계좌나 법인이 있다고 해서 모두 탈세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법인을 세웠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세금을 내지 않겠다는 의도일 것이라는 의혹을 살 수밖에 없다. 


기업은 조세피난처를 이용하면 세금을 내지 않지만, 정부는 세수가 줄게 된다. 135조원에 이르는 복지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지하경제 양성화를 국정목표로 삼은 박근혜 정부로서는 역외탈세 방지가 급선무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대기업의 역외탈세를 본격적으로 추적해 과세한 적이 없었던 만큼 이번에는 정부가 발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국세청은 뉴스타파 발표 명단과 관련한 자료를 서둘러 입수해 본격적으로 세무조사를 벌여야 한다. 이와 함께 영국·미국·호주 국세청이 이미 확보했다는, ICIJ를 능가하는 규모의 조세피난처 명단을 입수하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대충 넘어갈 일이 아니다. 페이퍼컴퍼니의 관련 계좌를 철저히 조사해 탈세 혐의를 밝혀내고 처벌해야 한다. 세무조사와 함께 검찰 수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져야 효과가 크다. 시시비비를 가리되 잘못이 드러나면 책임을 묻고 빼돌린 세금을 거둬야 한다. 검찰은 이미 CJ그룹을 비롯한 일부 대기업이 역외탈세를 통해 조성한 비자금에 대한 혐의를 잡고 강도 높은 수사에 착수한 만큼 역외탈세 수사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CJ 본사 앞에 서 있는 검찰 차량 (경향DB)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기업들도 국세청이 세무조사에 나설 때까지 기다릴 상황이 아니다. 서둘러 국세청에 관련 사실을 신고하고 탈세한 부분이 있으면 세금을 내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눈치만 보고 넘길 일이 아니다. 그저 시간만 끌면 국민의 기억 속에서 잊혀질 것이라는 생각은 아예 버리는 게 좋다. 억울한 측면이 있으면 법적 절차에 따르면 된다. 기업들은 국민정서 등 기업을 둘러싼 환경을 탓할 게 아니라, 자신들의 잘못부터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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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갑을(甲乙) 관계에 대해 여러 가지 말이 많다. 제가 병(丙)이다. 서울 노원병 국회의원이다 보니 저는 병의 처지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지난 18일 광주를 찾은 자리에서 “아주 썰렁한 농담”이라면서 했다는 말이다. 안 의원으로선 양대 기성정당에 끼인, 힘 없는 무소속 의원으로서의 처지를 빗대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안 의원의 ‘썰렁 개그’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안 의원이 ‘병’이 아니라, ‘갑’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지난 4·24 재·보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한 뒤 한 달 동안 그를 둘러싸고 벌어진 ‘소극(笑劇)’을 떠올려 본다면 더욱 그렇다. 


(경향DB)


이번 소동은 ‘재·보선으로 국회에 입성한 신임 의원은 전임 의원의 소속 상임위에 배정되는 게 관례’라는 주장에서 발생했다. 이에 따르면 안 의원은 전임인 진보정의당 노회찬 전 의원이 속했던 정무위에 배정돼야 하지만,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안랩 주식의 백지신탁 문제로 다른 상임위를 희망했다. 안 의원 측은 야당 의원들을 접촉하면서 상임위를 바꿔줄 수 있는지 타진하기도 했다고 한다.


안 의원의 상임위 배정 문제가 이슈가 되자 여야가 나섰다. 민주당은 보건복지위 소속 이학영 의원을 정무위로 보임시키고 안 의원에게 보건복지위 자리를 양보하기로 결정했고, 이를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강창희 국회의장이 “무소속 의원의 상임위 배정은 국회법상 국회의장 고유 권한”이라며 제동을 거는 일까지 벌어졌다. ‘안철수가 뭐길래’라는 생각까지 들게 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 안 의원이 적어도 ‘병’은 아닌 것 같다. 


안 의원 측은 그 ‘관례’라는 게 근거가 없고, 안 의원에게만 혹독한 잣대를 들이댄다고 억울해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안 의원 측이 처음부터 국회법에 따르겠다는 원칙을 밝혔으면 됐을 일을 복잡하게 만든 책임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안 의원이 회사와 소액주주들의 피해를 우려해 주식 백지신탁을 피하려는 상황이 이해되는 일면도 있지만, 그가 이미 백지신탁 대상인 대통령 후보로 나섰고, 서울시장 후보 출마를 고심할 때부터 안랩 주식이 출렁거렸다는 점에선 명분이 약하다. 게다가 그는 부동산까지 백지신탁해야 한다는 대선 공약을 내걸었다. 어느 상임위에 가든 이해상충 문제가 안 생길지도 의문이다. 


안 의원은 “기성 정치권이 기득권에 물들었다”고 비판해왔다. 상임위 교환을 위한 사전작업에 나서고, 주식 백지신탁 문제를 돌아가려는 모습이 과연 기득권에서 자유로운 것일까. 안 의원이 내건 ‘새 정치’의 실체는 여전히 모호한 가운데 이런 소동만 부각되는 상황도 안타깝다. 


“안 의원은 정치를 다르게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국회에 들어오니 변했더라. ‘사람들을 구하면 10월 재·보선에 도전하겠다’는 말에선 예전의 겸손한 모습은 없고, 수평적 관계보다 1인 중심의 세력화가 떠오르더라.” 기득권에 물들었다는 기성 정치권 인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은 왜일까.



김진우 정치부 기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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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국정 비전은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다. 박 대통령은 지난 2월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습니다’라는 제목의 취임사에서도 행복을 강조했다. 5300여자로 이뤄진 취임사에 등장한 단어 중 ‘행복’은 42회로 ‘국민’(58회)에 이어 두번째로 많았다.


대통령이 행복을 강조한 것은 지금 국민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이명박 정부는 전체 부의 규모를 키우면 국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대기업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세금은 깎아주고, 환율은 높게 해 수출이 잘되도록 했다. 대기업이 돈을 잘 벌면 중소기업과 서민도 잘살 수 있을 거라고 여긴 것이다. 컵에 물이 넘치면 주변을 적시는 이른바 ‘낙수효과’를 기대했다. 하지만 대기업은 돈을 더 많이 벌어도 자신의 컵 크기를 키우는 데 열중했다. 물은 넘치지 않았고, 주변은 여전히 메말랐다.


일부만 더 행복해졌고, 많은 사람이 더 불행해졌다고 여겼다. 양극화가 심해지자 경제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거세졌다.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은 물론 여당 후보도 경제민주화를 실천하겠다고 강조했다. 헌법 조항이나 경제학자의 어려운 해석을 빌리지 않더라도 경제민주화의 의미는 간단하다. 국민 모두가 일한 만큼 공평하게 잘산다면 그게 경제민주화일 것이다.


당선 이후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의지가 퇴색했다고는 하지만 아예 접은 것은 아니다. 박 대통령은 첫 작품인 국민행복기금에 이어 엊그제 행복주택 건설 계획과 외환위기 당시 연대보증 채무자 구제책을 잇따라 내놨다. 서민의 빚을 탕감해주고, 집 없는 이에게는 싼 비용으로 살 수 있도록 해주겠다니 환영할 일이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말은 옛날 속담일 뿐이다.


행복주택 시범지구 (경향DB)


그런데 곳곳에서 불만이 들린다. 행복주택은 당초 계획한 것보다 보증금과 월세가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저소득층이나 장애인, 노인 등 소외계층보다는 대학생, 신혼부부 등 젊은이를 우선 입주대상으로 하겠다는 얘기도 나온다. 건설비용이 많이 들어 계획했던 20만가구를 다 짓기도 어렵다고 한다.


행복기금 역시 신청자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건 아니다. 행복기금과 채무조정 협약을 맺지 않은 금융회사에 채무가 있다면 빚을 줄여주는 채무조정을 받을 수 없다. 전체 금융회사의 99%가 협약을 맺었지만 1만1700개 대부업체 중 협약을 체결한 곳은 2%뿐이다. 빚을 빌린 지 오래돼 어디서 빌렸는지 확인할 수 없는 경우도 채무조정 대상이 아니다. 행복기금을 신청하러 갔다가 자격이 안된다는 답변을 듣고 발길을 돌리는 서민이 부지기수다.


외환위기 당시 연대보증을 한 탓에 10년 넘게 정상적인 금융거래를 할 수 없었던 사람을 구제하겠다는 방안에도 2003년 카드대란 사태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연대보증 채무를 진 사람은 제외했다.


가득찬 국민행복기금 가접수 창구 (경향DB)


어찌보면 행복은 제로섬 게임과 비슷한 것 같다. 누군가 행복하면 그 이면에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한쪽의 행복과 다른쪽의 불행을 더하면 제로(0)가 되는 셈이다. 채무조정 대상이 돼 빚이 줄어들면 새출발을 할 수 있겠지만 신청대상에서 탈락한다면 상대적 박탈감만 더 심해질 것이다. 행복주택도 잔뜩 기대했다가 대상이 안된다면 더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행복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행복은 규모가 정해져 있어 그 안에서 서로 나눠갖는 것이 아니라 그 크기를 키울 수 있다. 행복한 나라 순위가 나올 때마다 상위권 나라로 거론되는 부탄은 ‘국민총행복(GNH·Gross National Happiness)’ 개념을 도입해 국민 전체를 행복하게 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남의 행복을 보면서 나는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사회가 공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행복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음을 푸념하며 불공평한 현실에 분노하는 것이다. 문제는 형평성이다.


최근 형평성 문제에 가장 민감한 이들은 ‘58년 개띠’다. 1958년생은 전후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나 고등학교 추첨제(1974년)를 처음 겪었다. 대학 재학 때 광주민주화운동(1980년), 사회 초년병 시절 민주화(1987년)를 체험했다. 외환위기(1997년) 때는 갓 마흔의 나이에 직장에서 밀려나기도 했다.


살아남은 1958년생은 지금 정년연장 기로에 서 있다. 정년을 60세로 한 정년연장법이 국회를 통과해 대기업·공기업 등은 2016년, 300인 미만 중소기업은 2017년부터 적용된다. 현재 정년이 57세 이하인 회사라면 1958년생은 2015년까지 퇴직해야 해 정년연장 혜택을 받지 못한다. 정년이 58세여야만 2016년부터 2년을 더 일할 수 있다. 정년이 58세라도 회사가 300인 미만이라면 2017년부터 법이 시행돼 2016년 퇴직해야 한다. 운이 억세게 나쁜 사례가 나올 수 있으니 형평성 탓만 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안호기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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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그제 통상임금 문제를 풀기 위한 노사정 대화를 제안하면서 “최근 대법원 판례가 혼란을 촉발시킨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대법원 판결이) 전원합의체 판결도 아니고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지가 일률적으로 판결된 거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정부 잘못으로 촉발된 통상임금 문제를 대법원 탓으로 돌리면서 사법부 결정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노동정책을 책임진 수장의 발언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다. 장관의 인식 수준이 이 정도라면 노사정 대화가 무슨 소용 있겠는가. 정부는 변명만 늘어놓을 게 아니라 과오를 인정하고 대법원 판례대로 통상임금 관련 규정을 고치는 게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방하남 장관 노사정 대화 제안 (경향DB)


방 장관 발언은 궤변에 가깝다. 통상임금 문제를 사법부 탓으로 돌린 것은 무책임하다. 문제의 불씨는 1988년 노동부의 ‘통상임금 산정 지침’이다. 이 지침에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돼 있다. 대법원은 정부 지침이 상위법에 맞지 않는다고 결론냈다. 정부가 잘못된 지침을 만들어 화를 키운 것이다. 기업들도 정부 지침을 믿고 따른 것일 뿐 희생양이나 다름없다. 정부 책임을 덜자고 법 취지에 맞게 해석한 대법원을 탓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사법부 경시 태도는 더 문제다. 그는 “(대법원) 판례가 곧 법 제도의 개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례가 정부 지침에 우선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대법원 판례는 법률과 같은 효력을 갖는 데 비해 정부 지침은 법률적 효력이 없는 하위 규정일 뿐이다. 방 장관이 전원합의체 판결 운운한 것은 무지에 가깝다. 전원합의체 판결은 기존 판례를 수정하거나 4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이견이 있을 경우 전체 대법관의 뜻을 묻는 절차다. 소부나 전원합의체 모두 동일한 효력을 갖는 대법원 판례다. 그럼에도 이를 들먹인 것은 법치를 부인하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이래놓고 노사정 대화를 하자는 저의는 뭔가. 노동계를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여 해법을 찾아야 할 정부가 판을 깨자는 것이나 다를 게 없다. 법 위에 군림하겠다는 오만함은 버려야 한다. 정부가 대타협을 원한다면 중재자 역할에 충실하면서 합리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법 규정을 벗어난 꼼수는 더 큰 혼란을 부를 뿐이다. 노사정 대화는 대법원 판례를 존중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차제에 정년 60세 시대에 걸맞은 새 임금구조와 왜곡된 임금체계를 바로잡는 대타협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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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해탄 넘어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이 계속되고 있다. 일일이 논평할 가치조차 있는지 회의감을 갖게 할 정도다. 하지만 단순한 역사해석의 문제라고만 보기에는 너무도 엄중한 도발이 거듭되고 있다. 선거를 앞둔 국내용 선동 발언이라고 치부할 선을 넘어선 지 오래다. 일본유신회 공동대표인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은 어제 “한국군도 베트남전쟁에서 성적 문제로 여성을 사용하지 않았느냐”면서 일제의 위안부 강제동원을 합리화했다. “위안부가 (태평양전쟁) 당시 필요했다”던 기왕의 망언에 이어 해괴 논리를 거듭 내놓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물이 멀쩡하게 정치 지도자 행세를 하고 있는 일본의 현실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아베 총리는 하시모토 공동대표의 ‘위안부 발언’에 대해 “정부와 자민당은 전혀 다른 입장”이라면서 선을 긋고 나섰지만 초록은 동색일 뿐이다. ‘무라야마 담화’의 계승 의지를 밝히는 등 한발 물러서는 제스처를 보이더니 엊그제는 A급 전범들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와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가 마찬가지라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내놓은 아베 총리가 아니던가. 


일본 오사카 시장 선거에서 당선된 하시모토 도루(왼쪽에서 두번째) 전 오사카부 지사


거듭 강조하지만 이제는 일본 지도자들이 쏟아내는 망언에 한탄하고 유감을 표하는 것에 그칠 때가 아니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응책을 도모해야 할 시점이다. 박근혜 정부는 그럼에도 일본 측의 태도가 바뀌기만을 기다리면서 손 놓고 있는 듯하다. 강 건너 불보듯 하다 북한의 위협을 빌미로 슬그머니 일본과 다시 협력하는 과거의 패턴을 반복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아베 총리와 하시모토 공동대표의 발언은 결코 일회성 일탈로 볼 수 없다. 서로 다른 듯하면서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공동목표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뒤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주도면밀한 계획 속에 진행되고 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일본 방문을 취소하는 수준의 소극적인 대응으로는 곤란하다. 막말에 막말로 대응하라는 주문이 아니다. 일본의 과거사 도발을 적극적으로 양자, 다자간 외교문제로 발전시켜 국제사회와 공동대응을 모색해야 한다. 일단 일제 피해를 입었던 아시아 국가들과 연대를 모색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일본의 역사도발이 계속되는 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사치스러운 생각일 수밖에 없다. 일본 우익 지도자들은 발언 수위를 높이다가 주변국의 반발이 잦아들면 조금씩 기정사실화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망언에 국민 전체가 굴욕감을 느끼는 상황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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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고령화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최하의 수준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나라별 순위를 매기는 것이 눈에 거슬리는 일이기는 하지만, OECD에 가입한 이상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비교를 통해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정책의 내용 자체가 아니라 정책에 관한 정부와 정치권의 인식이다. 정치 지도자들이 날마다 일어나는 여러 사건에 대응하느라 일상이 바쁜가, 아니면 21세기 한국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하루를 보내는가에 따라 한국의 미래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많은 OECD 보고서들이 때로 2050년 미래의 상황을 예측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성세대는 다 죽고, 요즘 태어나는 아이들이 한창 일할 나이가 되는 ‘오지 않은 미래’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오지 않은 미래를 준비하는 여러 가지 정책 논의들이 활발하게 제시되고 있다.


한국에서 정책을 만드는 정치인이나 관료들은 어떤 시간 지평을 가지고 있을까? 태어나지도 않은 세대가 살 21세기 한국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고민하는가? 아니면 이제 곧 사라질 세대의 관심과 이해관계를 염두에 두고 정책을 고민하는가? 아니면 그때그때 돌출하는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을 하는가? 그것도 아니면, 임기 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이는가? 


(경향DB)


안타깝게도 우리가 목격하는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대체로 현안을 처리하기에 급급한 것 같다. 향후 10년, 20년은 고사하고 매일같이 새롭게 등장하는 현안을 해결하는 데 연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다음 세대의 한국, 더 나아가 21세기 한국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것에 대응하는 정책을 마련하려는 정치 지도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스웨덴 사회민주주의를 연구하기 위해, 스웨덴 국회를 방문해 복지위원장을 만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추운 겨울이라 해가 일찍 져서 오전에 약속을 잡고, 국회의사당 사무실로 찾아갔다. 스톡홀름에서도 관광객이 많이 찾는 감라스탄에 위치한 국회의사당은 경비병이 입구 안쪽에 두 명만 있어서 밖에서는 국회의사당 건물인지도 모를 정도였다. 


안내를 받아 찾아간 복지위원장실은 좁은 복도를 지나 3층에 있었고, 안으로 들어가니 동네 아주머니처럼 보이는 50대 여성을 포함한 세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를 하고 명함을 나누면서, 허름한 복장을 한 50대 여성이 복지위원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수수한 복장과 소탈한 모습에서 권위주의적인 정치인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스웨덴 간호사 노조위원장을 지냈고, 국회에 진출해 복지위원장을 맡고 있다고 했다.


더욱 놀란 것은 인터뷰를 하면서였다. 스웨덴 연금개혁이 1992년에 시작되어 1998년에 완결될 때까지 만 7년 걸렸다고 했다. 그렇게 오래 걸린 이유를 물었다. 한국 같으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복지위원장은 연금이 다음 세대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다음 세대의 문제를 현 세대가 함부로 할 수 없어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답했다. 놀라운 답변이었다. 연금문제는 현 세대보다 다음 세대가 더 큰 영향을 받을 일이기 때문에 심사숙고하고, 여야 합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연금개혁을 끝마치는 데 7년은 길지 않은 시간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국회의 날치기 관행을 오랫동안 보아온 필자에게 스웨덴 국회 복지위원장의 말은 가슴 깊은 울림을 남겼다. 미래를 생각하고, 후세까지 책임지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날치기 통과를 밥 먹듯이 했던 한국 정치인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씁쓸한 마음을 혼자서 달래야 했다. 지금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지금 한국 정치인들의 시간 지평은 몇 년이나 되는가?



신광영 | 중앙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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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하지 않으면서 남에게는 “필요하고 또한 좋은 일이니 하라”고 강요하면 어떻게 보일까.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자주 언급하는 정보공개론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박 대통령은 2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지방재정도 다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더 나은 행정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유치원·어린이집 운영 자료를 홈페이지 등에 전부 공개만 해도 비리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중앙(정부)도 정부 3.0 취지에 따라 필요한 건 다 공개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정보공개가 필요없는 에너지 소모를 없앤다”고 했다. 옳은 말이다. 납세자인 시민은 예산이 어디에 쓰이는지 알 권리가 있다. 또 정보공개는 투명하고 열린 행정의 전제다. 


그런데 정보공개 대상에서 청와대는 예외인 것처럼 보인다. 박 대통령 방미 기간 중 벌어진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에 대한 민정수석실 감찰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들의 역할을 둘러싸고 의혹이 제기됐지만 “미국 경찰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밝히지 않고 있다. 반면 윤 전 대변인이 기자회견을 통해 청와대의 귀국 종용 지시를 언급하자, 이튿날 “피해 여성의 엉덩이를 만졌다”는 그의 민정수석실 조사 당시 진술을 언론에 흘려 상황 반전용으로 활용했다.


윤창중 사건 축소 은폐 규탄 퍼포먼스 (경향DB)


국가정보원의 정치 개입 의혹도 마찬가지다. 2011년 6월 야권의 반값 등록금 정책을 ‘종북 좌파’로 모는 심리전 제안 문건을 작성한 국정원 직원의 상급자는 현재 청와대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이다. 그가 국정원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청와대에는 어떻게 들어온 것인지 의구심이 제기된다. 그러나 청와대는 “의혹의 진위 여부가 불명확한데 먼저 입장을 내놓을 일이 아니다”라고 한다. 입맛에 맞는 것만 알리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청와대가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누가 정보공개를 제대로 할까.



안홍욱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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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국가정보원의 정치·선거 개입 의혹 수사에 착수한 지 오늘로 한 달이 됐다. 그동안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이종명 전 3차장, 민모 전 심리정보국장 등 사건 당시 국정원 지휘부를 소환 조사하고 국정원을 압수수색했다. 국정원 직원들의 ‘정치 댓글’ 활동에 동원된 것으로 의심되는 e메일 주소 등 개인정보 500여건을 확보해 댓글 작업의 규모도 확인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공소시효 만료(6월19일)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수사는 감감무소식이다. 오히려 국정원 내부 제보자들에게 수사의 초점을 맞추는 인상이 짙다. 검찰 수사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구심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 안팎에서는 원 전 원장이 댓글 작업에 관여한 정황이 확인돼 조만간 국정원법 위반(정치관여) 혐의로 기소될 것이라는 관측이 잇따르고 있다. 이러한 관측은 이중의 함의를 갖는다. 우선 경찰이 국정원 직원 2명과 민간인 1명을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데 비하면 진전된 수사 성과일 수 있다. 그러나 원 전 원장을 재판에 넘기되 선거법 위반 혐의를 배제함으로써 현 정권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 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만약 이렇게 되면 ‘대선 기간 중 정치에는 관여했으나 선거에는 개입하지 않았다’는 경찰 수사 결과와 다를 바가 없게 된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검찰 소환 조사를 받고 나오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경향DB)


최근 검찰은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 문건 등을 유출한 혐의로 고발된 전직 국정원 직원들에 대해 수사의 고삐를 조이는 모습이다. 이들의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실정법(국정원직원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그러나 제보의 성격으로 미뤄볼 때 이들은 광범위한 ‘공익신고자’의 범주에 든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이러한 점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본말을 전도시키는 행태가 될 수 있음을 미리 경고하고자 한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뒤 국정원 사건에 대한 관심은 뒷전으로 밀린 측면이 있다. 러나 국가정보기관의 정치·선거 개입은 민주주의를 뒤흔들고 헌정질서를 유린하는 국기문란 행위다. 검찰은 어물쩍 넘어갈 생각 말고, 좌고우면하지도 말고, 사건의 실체를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 뼈를 깎는 자성과 개혁을 다짐해온 ‘채동욱 검찰’은 이번 사건으로 첫 시험대에 올라 있다. 검찰이 원 전 원장의 선거 개입 정황을 파악하고도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않는다면 부실·축소 수사라는 국민적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한 달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검찰의 명운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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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이 ‘반값 등록금’ 정책에 대한 여론조작을 시도한 정황이 드러났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은 국정원이 2011년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좌파의 등록금 주장 허구성 전파로 파상공세 차단’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공개했다. 이른바 ‘박원순 서울시장 제압’ 문건에 이어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 광범위하게 개입해온 증거가 추가로 확인된 것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해당 문건 작성자의 상관인 추모 국장이 현재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파견 근무 중이라는 사실이다.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저버린 국정원 간부가 징계나 처벌을 받기는커녕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다니 분노를 금할 수 없다. 검찰 수사가 확대돼야 함은 물론 청와대와 여당도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진 의원이 공개한 문건에는 “각계 종북좌파 인사들은 겉으로는 등록금 인상을 주장하면서도, 자녀들은 해외에 유학보내는 등 이율배반적 처신(을 하고 있다)”이라는 주장이 담겨 있다. 문건은 자녀를 유학보낸 인사로 민주노동당 권영길, 민주당 정동영 전 의원을 거명했다. 이어 “야권의 등록금 공세 허구성과 좌파 인사들의 이중처신 행태를 홍보자료로 작성, 심리전에 활용함과 동시에 직원 교육자료로도 게재(한다)”라고 명시했다. 대선후보를 지낸 야당 중진들에게 ‘종북’ 딱지를 붙여 여론을 조작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이다. 1960~1970년대 정치공작을 위해 반정부 인사들의 뒤를 캔 중앙정보부의 행태를 연상케 한다. 실제 정 전 의원의 경우 몇 해 동안 계속 인터넷에서 ‘종북좌파’라는 공격을 당해왔다고 한다.


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19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정보원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국내정치 개입 내부 보고문건을 공개하고 있다. (경향DB)


일련의 문건이 작성된 시기는 시사적이다. 반값 등록금 관련 문건은 2011년 6월, 박원순 시장 관련 문건은 같은 해 11월 작성됐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이 상시적, 조직적으로 국내 정치에 개입해온 정황을 보여준다. 검찰이 수사 중인 ‘정치 댓글’ 사건이 일회성 일탈이 아님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그럼에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해와는 대조적이다. 대선 직전 박근혜 대통령은 댓글 작업을 한 국정원 직원 김모씨 사건을 두고 “(민주당이) 감금했다. 인권침해”라고 적극 공박했다. 하지만 국정원 정치 개입 의혹의 실체가 드러나자 외면하는 모습이다. 새누리당도 대변인의 형식적 논평 외에는 입을 닫고 있다. 파장이 확대될 경우 정권의 정당성에까지 영향을 미칠까 우려함일 터이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외면한다고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덮으려 하면 할수록 의혹은 불어날 가능성이 높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지낸 이상돈 전 중앙대 교수가 박근혜 정부에 적극적 대처를 주문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박 대통령은 국정원의 헌정유린·국기문란 행태를 엄단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반값 등록금 관련 문건 책임자인 추 국장을 즉각 청와대에서 내보내고 검찰에 성역 없는 수사를 지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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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프를 연상해 보면 상승과 하락이 엇갈리는 지점이 있기 마련인데, 일에도 변곡점이 있는 듯싶다. 임기가 정해져 있는 선출직에게도 마냥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다. 어느 순간 내리막길로 들어서는 때가 있기 마련이다. 이를 두고 흔히 카트리나 모멘트(Katrina moment)라고 한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뉴올리언스 시내가 구석구석 물에 잠겨 있다. (경향DB)

카트리나는 2005년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초대형 허리케인이다. 도시의 80%가 물에 잠겼다. 엄청난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 자연재해 때문에 부시 정부는 치명상을 입었다. 서민의 열악한 삶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보이고 미국 사회의 양극화 현상이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됐다. 정부는 허술한 구조 활동으로 일관해 행정능력에 대한 신뢰도 땅에 떨어졌다. 구조 활동을 총괄해야 할 기구의 장이 정실인사로 임명됐다는 사실이 밝혀져 정부의 도덕성은 그야말로 무너지고 말았다. 결국 국민들이 부시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게 됐다. 카트리나 모멘트는 여기에서 비롯된 말이다. 


지난 이명박 정부의 카트리나 모멘트는 취임 첫해(2008년) 5월에 시작된 촛불항쟁이었다. 촛불항쟁에 놀란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 때 내건 중도노선을 버리고 보수, 그것도 강경보수의 품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민심에 산성을 쌓았고, 반공과 시장의 자율 등 보수가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 그 결과 이명박 정부는 지지율 50%도 안되는 만성적 불안정의 위기를 겪어야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 무상급식이나 반값 등록금 등 복지 수요가 대중적 열망으로 분출하게 된 것도 이러한 보수 일변의 양극화 정책 때문이었다.


주차해 놓은 경찰버스 앞에 촛불을 이용해 만든 '명박OUT (경향DB)


노무현 정부 때의 카트리나 모멘트는 2005년 7월에 있었던 대연정 발언이 아닌가 싶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의 회고에서 확인된다. “연정은… 바로 내 전략이 보통은 옳았다라고 하는 자만심이 만들어낸 오류입니다. 내 딴엔 건곤일척의 카드라고 던졌는데, 그게 흑카드가 됐어요. … 내가 그때 내다본 것은 상대방이 상당히 난처해지고 내부에서 갑론을박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런데 상대방은 일사불란하고 우리쪽은 갑론을박이 돼 버렸어요. 거꾸로 총알이 그냥 우리한테 날아오고. 수류탄을 (적을 향해) 던졌는데 데굴데굴 굴러 와 가지고 막 우리 진영에서 터져 버렸어요. 그러니까 그때부턴 걷잡을 수 없이, 감당할 수가 없게 된 것이죠.” 그가 대연정이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에 매달렸다면 역사는 달랐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에서도 카트리나 모멘트는 있었다. 1999년의 옷 로비 사건이다. 한 신문의 사회면 작은 기사로 출발한 이 사건이 그처럼 크게 발전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이 사건은 청와대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계기로 그 에너지를 키우더니 마침내는 김대중 정부를 완전히 잡아먹는 괴물이 되고 말았다. 외환위기(IMF)의 성공적 극복 등의 성과가 어설픈 대응 때문에 일거에 물거품이 되어버린 셈이다.


국민승리21외 시민단체들의 옷로비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서울 광화문 집회현장 (경향DB)


김영삼 정부는 1997년 5월 대통령 아들 김현철의 구속으로 사실상 붕괴됐다. 당시 소통령이라 불리던 김현철은 단순히 실세라는 차원을 넘어 개혁의 브레인이자 국정의 조정자였다. 정부를 움직이던 ‘운영자’(operator)로서 그의 존재가 사라짐으로써 국정운영 시스템이 작동을 멈춘 것이었다. 이후부터 김영삼 대통령은 흐트러진 모습으로 일관하다 IMF라는 미증유의 국난을 초래하게 된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77일 만에 대국민 사과를 했다. 바로 윤창중 사태 때문이다. 차분하게 따져보면 윤창중 전 대변인이 해외에서 성추행을 저지른 돌출사고 때문에 현 정부가 카트리나 모멘트에 직면했다고 보는 건 무리다. 그런데 윤창중 사태의 또 다른 측면, 즉 그의 성추행 사실을 축소·은폐하려 한 것이나 청와대의 한심한 대응, 그리고 대통령의 ‘남 탓’ 인식을 보면 자칫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생긴다. 어떤 정부든 사고 없이 임기를 마칠 수 없다. 그러나 그 사고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카트리나 모멘트가 될 수도, 안될 수도 있다. 단순 사고와 몰락의 괴물 중 어느 것이 될지는 전적으로 그 정부를 이끄는 대통령의 몫이다.



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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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엊그제 광주를 찾아 “기득권에 물든 기성 정치가 광주 정치를 계승하기보다 열매와 과실을 향유하는 데만 열중했다”고 말했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뒤 마련한 기자간담회에서 “한동안 광주 정신은 시대의 슬픔을 넘어 대한민국의 이정표를 세우는 커다란 좌표였지만 지금 그 좌표가 흔들리고 있다”며 한 말이다. 광주가 민주당의 지지 기반임을 감안하면 민주당을 겨냥한 직격탄이다. 안 의원의 ‘새 정치’이자 ‘현장 정치’가 야권의 기득권에 대한 질타로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안 의원이 새 정치의 출발점으로 광주를 선택한 것은 자연스럽지만 적잖은 의미를 지닌다. 안 의원의 정치가 결국 야권을 발판으로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변화에 대한 열망을 온전히 받아들이겠다”면서 새 정치에 대한 광주의 성원을 역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안 의원은 그동안 자신의 위치를 여당과 야당의 중간 지대라고 자리매김해왔다. 그 연장선상에서 안 의원이 민주당에 날린 직격탄은 ‘현 야권으로 안된다’, ‘내가 기존 야권을 대신할 수 있다’는 정치적이고도 도전적인 메시지를 담았다고 본다. 정치에서 타이밍과 장소는 함축적 의미를 지닌다. 그 점에서 안 의원의 ‘광주 선언’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할 만하다.


(경향DB)


민주당은 즉자적 반응은 삼갔으나 흔쾌하지 않은 모습이다. 새 체제 출범을 계기로 미래 개척에 나서려던 상황에서 안 의원의 도전이 달가울 리 만무하다. 더구나 민주당은 이틀 전 광주에서 ‘을을 위한 정치’를 선언한 터다. 하지만 단견이다. 지금이야말로 그들이 천명한 ‘을의 정치’를 놓고, 안 의원의 ‘새 정치’와 대결을 펼칠 수 있는 기회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을의 정치’와 ‘새 정치’는 극도로 양극화가 진행되는 시대에 약자들이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별반 다르지 않다. 민주당이 127개라는 거대 의석을 제대로 활용해 법 개정이나 제도 개선에 앞장설 수 있다면 안 의원의 도전은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 작금의 상황은 대선 5개월이 다 되도록 패배 책임론도 정리하지 못할 정도로 지리멸렬한 민주당이 자초한 것 아닌가.


민주당은 안 의원의 도전을 제로섬이 아닌 윈·윈 게임으로 승화시킬 자세를 갖춰야 한다. 제1야당이 가뜩이나 쪼그라든 야권의 기득권 지키기에 정신이 팔려 있다면 공멸의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안 의원도 궁극적 경계 대상은 여권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갖은 실책에도 불구하고 견제세력조차 없는 박근혜 정부를 감시하는 선의의 경쟁을 벌일 때 야권 내 경쟁은 공생을 모색하는 수준으로 진화할 수 있다. 특정 세력의 흥망을 떠나 궁극적으로 건전한 야권의 부활이야말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는 점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그것이 바로 안 의원의 도전과 민주당의 응전이 지향해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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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은 대한민국의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또 가리기도 한다. 그가 드러낸 대한민국의 추악한 모습은 소위 “갑을관계의 동물적 모습”이다. 갑으로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윤창중은 그 지위를 이용해 주미대사관 인턴 여성인 을에게 폭력을 가하고, 을을 성적 충족의 대상으로 막 대했다. 이는 그야말로 비인간적, 즉 동물적 모습을 띤 갑을관계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동물적 갑을관계는 권력관계의 속성상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는 그 정도와 빈도가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후보가 대선과정에서 성폭력을 4대악의 하나로 규정하고 홍보했다는 것만 보더라도 이러한 갑을관계가 심각한 대한민국의 추한 모습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윤창중이 가려버린 또 다른 대한민국의 추악한 모습은 금전적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갑을관계의 탐욕적 모습”이다. 남양유업의 이른바 “밀어내기”라는 자사상품의 강매 관행으로 드러난 갑을관계의 탐욕적 모습이 윤창중 사태로 인해 언론에서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어 버린 것이다. 물론 남양유업 사태는 윤창중 사태가 식어가면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겠지만 불공정 관행을 척결할 수 있는 강한 모멘텀이 상실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아쉬운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갑을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건 바로 박근혜 대통령과 그가 무리하여 인사를 단행한 고위 관료들 사이에 형성된 갑을관계의 묘한 동학이다. 이 갑을관계의 동학이 중요한 이유는 윤창중 사태가 가뜩이나 경직된 갑을관계를 더더욱 경직시켜 정부를 과도하게 신중한 “복지부동의 정부”로 만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과 고위 관료들 사이에 형성된 갑을관계의 묘한 동학이란 무엇일까? 


박 대통령의 취임 후 고위 관료들 인사는 누가 보더라도 상당히 무리한 인사였다. 윤창중 전 대변인의 경우는 그의 과거 글과 행적 때문에 가장 하지 말았어야 할 인사의 대표적 사례였고, 그 이후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이른바 보수언론에서조차 자격 및 자질에 오점이 있다고 여겨지는 상당수 인물들이 주요 장관으로 임명됐다. 이러한 인사를 한 정확한 이유를 알 길이 없지만 문제는 이러한 인사로 인해 형성되는 박 대통령과 고위 관료들 사이의 갑을관계가 매우 경직된 군신관계와 같은 관계가 된다는 데에 있다. 무리하여 갑이 을을 보호하고 끝까지 책임지게 되면 인지상정상 을은 갑에 대해 무한한 고마움을 느끼고, 충성심을 갖게 될 것이다. 더군다나 박 대통령의 카리스마가 겹쳐지면서 고위 관료에게 “눈치”가 “소신”과 “능력”에 앞서고, 과도한 “신중함”이 개혁적 “결단”에 앞설 가능성이 크다. 또 사고를 치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갑을관계에서 볼 때 한·미 정상회담 중의 윤창중의 추태는 박 대통령에게 충격적인 “배신”이 아닐 수 없다. 10·26 사태 이후 아버지를 모시던 수많은 군상들이 배신하는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박 대통령에게 윤창중의 배신은 갑을관계를 재점검하는 계기가 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15일 언론사 정치부장들과의 만찬에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로 그 배신감을 토로하였고 국무회의에서 윤창중 사태를 계기로 “청와대는 물론 공직 기강을 바로잡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했다. 당연히 공직사회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경제민주화나 복지, 대북정책 등에 관한 박근혜 정부의 정책방향은 이명박 정부에 비해 상당히 가운데로 이동했다. 이러한 정책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움츠러들면 안된다. 과감한 개혁과 결단이 필요하다. 공직사회의 기강이 대통령의 눈치만 보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뜩이나 경직된 정부 내의 갑을관계가 윤창중이라는 인물 하나로 정권 초부터 복지부동의 정부를 만들까 우려된다. 사실 대통령 및 고위관료의 진정한 갑은 국민이고 그들이 을이지만 세상은 그렇게 원칙대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걱정이 앞선다.

박근혜 대통령이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사과한 13일 오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무거운 표정으로 발언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_ 청와대사진기자단




이근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싱크탱크 미래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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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그제 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2000년 현행 제도가 시행된 지 13년 만에 골격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기초수급자 기준을 최저 생계비라는 절대 개념에서 소득에 따른 상대적인 개념으로 바꾸면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을 늘리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국가 지원이 절실한 저소득층이라도 등급을 나눠 차별적으로 지원하면서 자립 의지를 북돋우겠다는 얘기다. 이 같은 정부 방침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맞춤형 복지’를 구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추진되고 있다. 현행 제도는 기초수급자이냐 아니냐에 따라 국가 혜택이 전부 아니면 전무 식으로 극단적으로 나누어진다는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된 만큼 정부 방침은 일단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문제는 예상되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바꿀 경우 장점은 분명히 있다. 무엇보다 기초수급자 대상이 현재 140만명에서 220만명으로 80만명이 증가한다. 특히 현행 제도의 사각지대로 지적되는 차상위 계층으로서 혜택을 받는 사람은 현재 340만명에서 430만명으로 크게 늘어난다. 기초수급자 기준도 크게 완화돼 일정 소득이 있는 자녀가 있더라도 수급자로 선정될 수 있다. 정부가 이처럼 국가의 복지 혜택을 받는 대상을 늘리겠다는 것은 일단 한국사회가 지향해야 할 복지사회 실현에 성큼 다가가는 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 방침이 곧이곧대로 진일보한 복지 제도라 하더라도 우려가 없지는 않다. 가장 큰 우려는 기초수급자가 늘어나더라도 실질적인 혜택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현행 기초수급자에 대한 혜택도 충분치 않은 터에 혜택을 더 줄인다면 정부가 ‘조삼모사’ 정책으로 시민을 현혹시키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들이 정부의 제도 개편 방안에 대해 ‘아랫돌을 빼내 윗돌을 괴는 식이 될 수 있다’고 부작용 우려를 제기하는 것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정부는 복지사회를 지향하는 시민사회의 여론을 폭넓게 경청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정책 목표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수단은 여러 가지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성탄절을 하루 앞둔 서울 관악구 난향동에 있는 한 기초생활수급자의 집을 찾아 도시락을 배달한 뒤 집을 나서고 있다. _ 국회사진기자단


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에 따른 재원 확보도 심각한 문제다. 정부는 제도 개편으로 추가 부담해야 할 재정은 4년간 7조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추가 재원 확보 방안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조 단위 예산이 추가로 필요한데도 재원 조달 방안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정책 입안 과정이 두루뭉술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제도 개선으로 크게 늘어날 행정 수요를 처리하는 것도 예사 문제가 아니다. 자칫 복지 재원 누수를 방치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정부는 제도 개편 ‘방향’을 밝혔을 뿐, 향후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그때그때 공개하고 여론을 수렴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가 이 약속을 꼭 지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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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동시에 치러진 여야의 원내대표 경선에서 새누리당은 최경환, 민주당은 전병헌 의원이 각각 승리했다. 최 신임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통령과 정치적 고락을 같이해온 ‘원조 친박’으로 통하고, 전 신임 원내대표는 경선 과정에서 ‘대여 강경투쟁’을 천명한 인사다. 이로써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실질적인 첫 국회 사령탑은 친박 실세와 선명 야당론자가 맞서는 강 대 강 대결 구도로 짜여졌다. 두 신임 원내대표에게 우선 축하를 보낸다.


최경환 의원 (경향DB)

새누리당이 최 원내대표를 선택한 것은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을 비롯해 흔들리는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선택으로 읽힌다. 경선의 와중에서 ‘박심’ 논란이 일기도 했으나 현 국면에서는 박 대통령과 직접 통할 수 있는 원내대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음직하다. 친박은 힘이자 짐일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인 만큼 그의 책임감과 지혜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민주당도 한때 ‘호남 배려론’이 불거졌으나 의원들은 이와 무관한 선택을 했다. 대선 5개월이 다 되도록 패배의 책임론도 정리하지 못할 만큼 지리멸렬한 당의 현주소를 감안할 때 선명한 야당론을 편 전 의원의 호소가 먹혀든 것 같다.


전병헌 의원 (경향DB)

두 사람의 앞길에는 새로운 여야관계 구축이라는 원론적 과업은 물론이고, 지난 대선 때부터 공유하고 앞으로도 경쟁할 수밖에 없는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경제민주화 입법이 대표적이다. 여야는 4월 임시국회에서 10여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 중 하도급법 개정안과 대기업 등기임원 보수공개 법안 2개만 입법화했을 정도로 부끄러운 성적표를 받았다. 프랜차이즈법을 비롯한 각종 경제민주화법안 처리는 6월 임시국회로 넘겨놨다. 지난 대선 때 여야 후보들이 공통적으로 내놓은 대통령의 권한 분산과 선거·정당제도 개혁을 위시한 정치쇄신도 그 범주에 든다. 두 원내대표 선출을 계기로 여야가 치열하고도 본격적인 경제민주화, 정치쇄신 경쟁에 나설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한 대전제가 있다. 의원들의 특권 내려놓기가 그것이다. 여야는 대선이 한창이던 지난해 11월 의원 겸직·영리업무 금지와 헌정회 연로회원 지원제도 개선, 국회폭력 예방·처벌 강화,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 등 4대 쇄신 과제에 합의했다. 정작 여야는 4월 임시국회에서 특권 내려놓기를 만지작거리는 척하다 내려놨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민주화만 몰아세운다면 스스로 제 살도 못 깎으면서 경제계더러는 뼈를 깎으라고 다그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시대를 넘어 늘 정치권의 화두가 돼온 ‘새 정치’는 결국 실천이 중요하다. 의원들의 특권 내려놓기야말로 ‘새 정치’의 실천이고,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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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충남 당진의 어느 공장에서 다섯명의 근로자가 한꺼번에 사망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들이 작업하는 공간에 차 있던 아르곤 때문이었다. 이들이 작업하는 동안에는 그곳에 아르곤을 넣으면 안되지만, 공장에서는 조금이라도 일찍 생산에 들어가기 위해 미리 아르곤 주입관을 열었다. 아르곤이 공기 중에 섞여 들어가면서 산소 농도를 떨어뜨리면 질식 위험이 높아진다. 이걸 알면서도 미리 아르곤을 넣었으니 사람의 목숨보다 돈벌이가 더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현대제철 사망 근로자 영정 (연합뉴스)


한국에서 이와 비슷한 사고는 수없이 일어난다. 얼마 전에는 여수에서 작업장 폭발사고로 많은 분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책임자가 조사를 받고 배상이 이루어지지만 사고는 그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런 사고를 막을 수 있을까? 인명보다 돈벌이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으니 공장을 폐쇄해 가동을 중단시키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렇게 돈벌이를 하려 한다면, 아예 돈을 벌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공장을 폐쇄하면 사고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돈벌이를 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공장의 노동자는 물론이고 납품업체, 하청업체 등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일거리가 없어 돈을 벌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정부의 감독기관에서 늘 그래왔듯, 사람 목숨보다 돈벌이를 중요시하는 기업이라도 최소한의 처벌만 하고 계속해서 돈벌이를 하게 내버려 둘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한마디로 돈벌이를 위해서는 인명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이게 아마 대통령부터 보통사람에 이르기까지 우리 국민 대다수의 생각일 것이다. 그렇다면 당진이나 여수 사고와 같은 일이 일어나도 화를 삼키며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일자리와 돈벌이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그럴 것이다. 미국의 어느 철학자에 따르면 현대사회의 임금노동은 ‘가벼운 병’이다. 이 병은 감기처럼 며칠 지나면 낫는다. 수요일쯤에 걸린 이 병은 금요일 저녁이 되면 사라진다. 가벼운 병이니 사람들은 돈벌이의 ‘부수적 피해’ 정도로 생각하고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리고 일을 그만둘 때까지 병을 달고 산다. 


그러나 가벼운 병이라도 오래 지속되면 고통스럽다. 병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구가 마음속 깊이 자리 잡는다. 그래도 돈을 벌어야만 하니 이 욕구는 억압된다. 병을 달고 다니고 그것을 치유하겠다는 생각도 억눌러야 하는 삶은 ‘행복’할 수 없다. 


병을 치유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지금 하는 돈벌이를 위한 일을 그만두고,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그 철학자는 디트로이트의 GM에서 일하는 어느 노동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회사가 어려워져 해고될지도 모르는 노동자에게 철학자는 회사 일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었는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었는지 묻는다. 노동자는 어렸을 때부터 가정, 학교, 교회 등에서 자기가 무슨 일을 해야 한다는 말만 들었지, 그런 물음은 처음이라면서 갑자기 눈물을 쏟는다. 


우리 사회에서 지금 힐링이 유행이다. 그런데 이 힐링에서 돈벌이 노동이라는 ‘가벼운 병’의 치유는 안중에도 없다. 오히려 매주 수요일에 걸리는 이 병이 매주 금요일 저녁에는 낫는다는 것을 확인시켜줌으로써 병을 참고 견디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힐링은 현 정권의 ‘국민행복시대’와 끈이 닿는 것 같다. 그들의 ‘국민행복’은 우리 사회에 ‘가벼운 병’을 가능한 한 널리 퍼뜨려야만 얻어진다. 이 병을 받아들이기 쉬운 것으로 만들어 주는 힐링은 여기에 크게 기여한다. 


새누리당사에 걸린 당선인사 현수막 (경향DB)


‘행복시대’는 많은 국민을 ‘가벼운 병’에 걸리게 해야 오는 것이 아니다. 이 병을 조금 편안하게 견디도록 해주는 힐링을 통해서도 오지 않는다. 병을 치유해야만 얻어진다. 그러려면 일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누구나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이필렬 |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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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와 한·미 정상회담이 대북정책의 한·미 공조 재확인과 박 대통령의 대북 기조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와 한·미동맹의 미래지향적 발전에 대한 공감대 등 큰 성과를 거둔 ‘성공적인 회담’으로 자평하고 있다. ‘한·미동맹 60주년 공동선언’으로 한·미동맹이 아시아·태평양지역 평화와 안정의 핵심축임을 확인하고, 한·미관계를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격상시켰으며, 확장 억지력과 재래식 및 핵전력 사용을 포함한 미국의 한국에 대한 방위공약을 재확인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52명에 달하는 최대 규모 경제수행단이 동행해 북한 위협을 계기로 국제사회에 확산되는 ‘코리아 리스크’를 진정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미 정상회담은 한반도 정세 불안을 해소하는 어떠한 대북 유인책도, 새로운 대북정책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양국 정상이 이번에 합의한 대북정책은 북핵을 불용하고, 북한이 비핵화를 이행하고 국제적 의무를 준수하면 대화와 포용을 하겠지만 도발하면 연합된 방어능력 강화, 전력 총동원으로 강력히 억제하고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20년간 지속적으로 실패한 기존 대북정책의 반복이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군산복합체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한반도 긴장 고조의 배경으로 이를 지목하고 있다. 북한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대북정책에 변화적 반응을 보일 가능성은 없을 것 같다.


한미정상회담 (경향신문DB)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한·미동맹 60주년만 외치고 정작 중요하고 절박한 당면과제, 즉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대립적·적대적 정전체제가 유지되는 한 한반도 안정과 평화는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한반도 위기와 북한의 핵 미사일 도발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한·미동맹보다 남북관계가 진전되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의 대북정책은 대화에 무게를 두면서 억지력을 병행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미국에서 강경 일색의 대북 발언들만 했다.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남북대화 없이 미국 대통령의 자국 이익을 고려한 지지와 군사적 한·미동맹 강화로 가능한 일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내외적으로 박 대통령이 천명하고 있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실천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로 남북 간 신뢰를 회복해 나가야 한다. 5·24 대북제재 조치를 풀고 북한에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주어 남북 간 대화와 협의가 생성될 수 있는 탄력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박 대통령의 구상은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해 변화하지 않으면 한·미와 국제사회가 제재를 가하자는 것이다. ‘압박을 통한 북한의 변화’는 실패한 한·미의 대북정책 연속선상에 있다. 이러한 한·미의 대북정책으로 인해 북한은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이명박 정권의 비핵·개방·3000과 동일시하고 있다.


한반도는 정치외교적으로 크게 3가지의 불안요소를 가지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도발, 미·중 패권경쟁, 일본의 우경화이다. 한·미 공동선언은 한·미동맹이 북한에는 압박공조, 중국에는 아·태지역의 ‘린치핀(linchpin·핵심축)’임을 과시했다. 그리고 한국이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재균형 전략의 핵심 국가임을 분명히 했다. 이와는 별도로 워싱턴은 미·일동맹을 코너스톤(cornerstone)으로 표현, 한·중·일 마찰과 무관하게 일본 중시를 분명히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한·미 정상회담은 현안이 되고 있는 한반도 불안요소를 해소할 그 어떤 성과도 이뤄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비무장지대(DMZ)에 세계평화공원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DMZ 출입은 유엔군사령관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DMZ를 평화적으로 이용하려면 유엔사 승인과 함께 북한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현재 24시간 긴장체제로 유지되는 지대다. 남북 간 높은 단계의 군사신뢰 관계가 구축되지 않고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비정치적인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도 중단·폐쇄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제안은 비현실적이고 실현이 어려운 일이다. 개성공단 폐쇄와 북한의 도발 위협 등 긴박한 한반도 안보위기를 해소할 만한 새로운 돌파구 마련이 절실하다.


한·미 간 중요한 현안인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해서도 이견을 해소하지 못하고 양국의 이익을 반영해 해결한다는 원론수준의 인식만 확인했다. 대규모 경제수행단의 동행은 한반도 안보위기에 따른 미국 기업들의 불안을 낮추는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지만 최종 확정도 안된 몇몇 기업의 투자 의사 정도를 유치가 확정된 것처럼 발표한 것은 과장으로 보인다. 그나마 한·미동맹의 강화와 양국의 신뢰를 확인하고 거시적 비전을 제시한 것이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창주 |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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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