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수 | 변호사


 

올해 4월 발표된 ‘유엔세계행복보고서’에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덴마크가 뽑혔다. 덴마크는 에너지, 교육, 복지 등 여러 측면에서 관심을 가질 부분이 많은 국가이다. 특히 덴마크는 원자력발전을 아예 시작하지도 않았고, 1970년대부터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발전시켜 온 나라이다. 지금도 풍력으로 전기의 20%를 생산하고 있고, 2020년까지는 풍력으로만 전기의 50%를 생산하려 노력하고 있다. 원전이 없으면 당장 나라가 망하고 전기도 못 쓸 것처럼 얘기하는 정치인들이 많은 우리나라가 꼭 참고해야 할 국가이다.


덴마크의 행복 비결은 물질과 소비에 있지 않다. ‘유엔세계행복보고서’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건강한 사회공동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소득이 높다고 해서, 그리고 소비를 많이 한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게 유엔세계행복보고서의 결론이다. 실제로 덴마크 국민들은 유럽연합(EU) 평균보다 전기를 15% 적게 쓰지만, 각종 조사결과에서 삶의 질이 높고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행복이 물질적 풍요나 소비와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사회공동체가 건강하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정치다. 정치가 잘돼야 사회적 불평등이 심각해지지 않고, 정부가 시민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지속가능한 미래도 보장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가장 행복하다는 덴마크의 정치는 한국 정치와 무엇이 다를까?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투표율이다. 덴마크는 1980년 이후에 치른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이 모두 80%를 넘었다. 2011년 국회의원 선거의 투표율은 81.83%에 달했다. 지난 4·11 총선 투표율이 54.3%에 불과했던 우리 현실과는 대조적이다. 이렇게 높은 투표율은 사회공동체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보여준다. 덴마크는 이런 높은 관심과 참여를 통해 민주주의의 질을 높이고, 이를 통해 삶의 질을 높여 온 것이다. 이런 높은 투표율은 좋은 정치제도 덕분이기도 하다.



덴마크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사전투표제’를 도입해 선거일 기준 3주 전부터 유권자들이 미리 투표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고 있다. 또한 비례대표성이 강한 선거제도를 통해 다양한 정당이 경쟁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래서 덴마크는 8개 정당이 원내에 존재하고, 어느 한 정당이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하기 어려운 의석분포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거대 기득권 정당 중심으로 정치가 좌우되면서 정책경쟁이 실종된 우리 정치의 모습과는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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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진보정의당 대선 후보가 어제 선거대책위원회 발족식을 열고 대선 레이스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땀이 정의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심 후보는 “낡은 질서가 허물어지고 성장제일주의, 시장만능주의, 개발토건주의가 붕괴하고 있다”면서 “가장 낮은 곳, 가장 아픈 곳, 정치로부터 가장 먼 곳에서 퍼올린 새로운 힘으로 진보적 정권교체를 이뤄내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를 향해선 “우리는 진보적 정권교체의 공동 책임자다. 새로운 연대, 승리하는 연대, 단단한 실천연대를 이뤄야 한다”며 야권 후보 단일화에 참여할 가능성을 열어놨다. 앞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 후보도 선대위를 출범시켜 진보 진영의 대선 경쟁이 뜨거워지게 됐다.


심상정 의원 대통령선거 출마 선언 (경향신문DB)


진보정의당은 창당한 지 아흐레밖에 안된, 소속 의원 7명의 신생·미니 정당이다. 그러나 대선 공간에서 물리적 조건을 넘어서는 존재감을 보일 책무가 있다. 50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진보정치가 사실상 실종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는 통합진보당의 4·11 총선 비례대표 경선부정이 근인(根因)인 만큼 진보정당 자체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여기에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안 후보가 모두 중도를 지향하면서 진보의 공간이 좁아진 점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비정규직과 청년실업, 서민복지와 재벌개혁 등 진보정당이 발언할 수 있고 발언해야 하는 의제들이 산적한 상황에서 진보정치의 실종은 아쉬움이 컸다. 오죽하면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민주노총이 생기고 처음으로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가 없는 대선을 맞게 됐다”고 탄식했겠는가.


심 후보는 지난 19일과 25일 울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공농성 현장을 찾았다. 그는 현대차 노사와 고용노동부가 불법파견 실태를 공동조사하고, 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규모 및 방법에 합의하자는 등의 5대 해법을 제시했다. ‘정리해고 없는 쌍용차, 비정규직 없는 현대차, 백혈병 없는 삼성전자’를 위한 대선 후보들의 공동성명 발표를 제안하기도 했다. 과거 통합진보당의 위기가 ‘노동자의 정당’을 표방하면서도 노동자 대표성을 상실한 데서 비롯했음을 생각할 때 심 후보의 초기 행보는 주목할 만하다. 노동가치 중심성을 확립하는 문제는 진보정치의 부활 여부를 가름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진보정의당과 심 후보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소외된 진보의 목소리를 되살리고 빛바랜 진보의 가치를 회복하는 길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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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 | 중원대 교수·경찰행정학


 

최근 국민권익위원회는 ‘2012년 국내 기업인, 외국 기업인 부패인식 조사’를 발표했다. 조사에 응한 기업인 가운데 우리 사회가 부패했다고 답한 이는 전체의 40.1%에 달했다. 공무원에 대해서도 36%가 부패했다고 답했다.


독일에 본부를 둔 세계적 반부패 시민단체인 국제투명성협회도 한국의 부패가 근절되지 않고 있고, 부패인식도 지수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부패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치유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부패가 척결되지 않는 첫번째 이유로 우리 사회가 혈연, 지연, 학연을 앞세우는 문화적 요소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웬만하면 아는 사람끼리 청탁과 뇌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회 구조적인 분위기가 문제이다.


대통령후보들에게 반부패정책 제안 (경향신문DB)


두번째로는 일부 공직자의 윤리적인 자질이나 관행에 문제가 있고, 이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도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공무원이 공복의 자세가 아니라 탐욕에 어두워 부정부패에 연루되면, 주인인 국민은 대리인인 공무원을 파면해야 하는데 현 법규에 규정된 신분상의 보장으로 처벌이 만만치가 않다. 선출직 공직자처럼 소환명령제를 만들어야 해결한다.


세 번째로는 우리나라의 고비용 정치구조가 문제이다.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에 출마하려면 공천헌금이 기다리고 있다. 지방의원 선거 시 정당 소속 국회의원이나 지역구 당협위원장의 추천없이는 공천받기가 쉽지 않다. 여기서부터 돈 다발이 오간다. 그러니 당선되고나면 지역발전이나 풀뿌리민주주의가 어디 보이는가? 자기 돈부터 챙기려 들기 십상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부정부패를 척결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공직자의 부패를 발본색원할 수 있도록 제도적·법률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싱가포르는 1만원만 받아도 공직에서 추방된다고 한다. 또 태형을 가한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취업을 못하도록 한다.우리나라는 공직자 징계도 있고 형법상의 뇌물죄도 있는데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부패사범에 대해 강력한 법적용과 실행이 필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공직자 개개인이다. 공무원들이 변하지 않으면 부패척결이나 개혁은 연목구어에 불과하다. 다산 정약용은 “천하의 나쁜 일들은 모두 돈을 버리지 못한 데서 온다”고 했다. 공직자가 청렴하지 못하다면 국민들은 그 누구를 믿겠는가? 공직자들의 윤리성과 공복정신을 재정립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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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정 |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 교수


 

최근 새누리당과 정부에서 나온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일부 발언들은 반역사적이며, 위험하고도 무책임하다. ‘NLL 부정은 영토 주권의 포기.’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 총회 정면에 걸려 있던 구호이다. 이 구호가 최근 이어진 발언들의 인식의 근거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인식은 역사적 사실에 반대된다. 1974년 1월 미 중앙정보국이 작성한 비밀보고서는 “북방한계선은 국제법상 법적인 근거를 갖지 않고 있으며, 일부분에서는 영해의 분리에 관한 최소한의 조건조차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확인하고 있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NLL 진상규명 요구서를 국회 의안과에 제출하고 있다. (경향신문DB)


 이 보고서에 따르면 북방한계선은 1965년 1월14일 당시 한국 해군 작전통제권을 보유하고 있던 유엔사령부 해군구성군 사령관이 설정했다. “유엔사 해군 단위들이 특별허가 없이는 이 선의 이북으로 항해하는 것을 금지하여 사고를 회피”하는 것이 그 유일한 목적이며, “북방한계선은 한국 해군사령관의 지휘권 및 작전통제권 하에 있는 군사력에만 적용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세상에 이런 성격의 영토선은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다. 북방한계선은 군사작전상의 필요에 따라 자국군의 활동 범위를 정해놓은 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러한 선을 두고 이명박 대통령이 연평도를 방문해 “우리 NLL을 목숨 걸고 지켜야 한다”고 부추기는 것은 위험하다. 군인도 국민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는 모든 국민을 보호할 헌법적 의무가 있는 대통령이 북방한계선에 군인의 목숨을 걸으라고 공개적으로 부추기는 것은 반헌법적이기까지 하다.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것이 최상이라는 손자병법을 언급할 필요도 없다. 대통령은 대한민국 군인이 목숨을 걸지 않아도 서해의 평화를 지킬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에 반해 “북한이 도발할 경우 백배, 천배 보복한다는 정신을 갖고 있으라고 주문하는 것은 전쟁 억제를 위한다는 명분으로도 합리화하기 어렵다. 군 최고통수권자의 발언, 그것도 첨예한 연평도에서 행한 발언을 군은 명령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이를 집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군사적 긴장이 팽팽한 북방한계선 일대는 앞으로 작은 사고가 “백배, 천배”로 확대될 수도 있는 위험지대가 된 것이다. 


지난 3월 김관진 국방장관은 연평도를 방문하여 “적 도발시 사격량의 10배까지 대응사격하라”며 한국군 대응 수위를 높인 바 있다. 이에 대응해 8월 북한의 김정은 비서는 최고사령관 자격으로 “자주권이 행사되는 수역 또는 지역에 단 한발의 포탄이 떨어져도 지체없이 섬멸적인 반타격”을 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제 이 대통령의 “백배, 천배 보복” 명령이 맞물리면서 서해 일대의 긴장은 최고조로 치솟아 ‘일촉즉발’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이러한 위기를 해소하기는커녕 부추기는 것은 책임 있는 군 최고통수권자의 모습이 아니다.


더군다나 김관진 국방장관은 작년 3월 “쏠까요 말까요 묻지 말고 선조치 후보고 원칙에 따라 대응하라”며 대응의 책임을 하위 지휘관들에게 전가한 바 있다. 조치는 하위 지휘관들에게 떠넘기고 위에서는 열배, 백배, 천배 보복을 주문하는 것은 책임 있는 지휘자의 모습이 아니다.


작년 연말에 서명될 것으로 알려졌던 공동 국지도발 대비계획은 이번 44차 한·미안보협의회에서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군이 부대 지휘관들에게 공세적인 작전지휘권을 부여하여, 공세적인 한국군의 작전에 미군까지 가담해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감을 미국 측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 대한민국의 안보를 책임지는 정부와 보수정당이라면 동맹국마저 우려하는 정책과 발언은 거두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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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가 어제 “40년 동안 꼼짝도 않는 투표시간을 이제 국민이 바꿔달라”고 말했다. 안 후보 측은 이를 관철하기 위해 ‘투표시간 연장 국민행동 출범식’을 갖고 인터넷 온라인 등을 통해 캠페인을 벌여나가기로 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도 “선진국은 투표시간(마감)이 밤 10시인 나라도 많다”며 연장론을 재차 거론했다. 문·안 두 후보가 공동 대응에 나서면서 투표시간 연장 문제가 대선 이슈로 부상하는 양상이다.


다소 색다른 안 후보의 접근법을 주목하고자 한다. 안 후보는 투표시간 연장을 국민들의 헌법적 권리 차원으로 보고 있다. “(국민은) 국민청원법에 의거해 정부에 투표시간 연장을 공식적으로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투표시간 연장을 정치 쇄신의 차원으로 부각시켜 새누리당의 거부 논리를 격파하겠다는 셈법이 엿보인다. 더 나아가 안 후보 측으로선 자신들이 설파한 바 있는 ‘무소속 대통령론’의 효력을 실험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그냥 해보는 소리로 그칠 것 같지 않다. 유일한 현역인 송호창 의원을 국민행동 단장에 임명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선거일은 유급휴일로 하자 (출처: 경향DB)


문제는 요지부동인 새누리당의 태도다. ‘투표일이 공휴일이니 연장하지 않아도 된다’거나 ‘관리·운영의 문제가 있고, 사회적 비용이 증가한다’는 등의 이유를 접지 않고 있다. 속마음은 다르다. 이주영 선대위 특보단장은 “전략이 관계된 문제”라 했고, 한 핵심 관계자는 “(야당이) 젊은층의 투표율을 자극하기 위해 전략상 계속 언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새누리당이 투표시간 연장에 선거의 유불리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관측을 자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젊은층의 투표율이 올라가면 안된다는 논리인데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100%의 대한민국’을 외치는 상황에서 앞뒤가 맞는 얘기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후보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박 후보가 찬성하든 반대하든 그것은 정책적 선택에 속하는 문제로 치부할 수도 있다. 지금껏 방치하다 이제야 카드를 빼든 야당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야당 역시 정략적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밝혀두고자 한다. 투표율 상승을, 특히 젊은이와 비정규직 등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투표율 상승을 두려워하는 정당과 후보는 정치혁신과 민주주의 발전을 말할 자격이 없다. 더구나 재·보선 투표시간은 이미 오후 6시에서 8시까지로 2시간 늘어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투표시간 연장을 반대하는 논리는 그 어떤 이유로도 납득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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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희 전 청와대 대통령실장은 지난 6월 한 방송에서 자신이 2009년 10월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싱가포르에서 북측 김양건 통일전선부장과 비밀접촉을 한 사실을 상세히 공개했다. 남북한 간 비밀접촉을 당사자가 공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어서 논란이 일었다. 그는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는 지난 24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류우익 통일부 장관에게 임 전 실장이 말한 내용을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류 장관은 그런 기록이 통일부에 남아있지 않은 데다 임 전 실장에게 물어보았지만 “더 할 말이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했다.


이 대표는 임 전 실장을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고발해야 한다고 다그쳤다. 류 장관은 별다른 답을 하지 못했다. 정부 관계자는 “임 전 실장이 비밀접촉 사실을 자기 입으로 말한 이상 ‘법과 원칙’에 충실하자면 임 전 실장의 위법 사실을 반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연설하는 임태희후보 (출처 : 경향DB)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고위 당국자들의 ‘가벼운 입’은 임 전 실장에 국한되지 않는다.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은 지난 12일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이 이뤄진 지 며칠 되지 않아 언론 인터뷰에서 ‘미사일 지침을 일방적으로 폐지하는 것도 고려하면서 미국을 압박했다’고 말하는 등 자신이 관여한 협상 내용을 공개했다.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지낸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5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내용이라며 ‘노무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주장했다.


외교·안보 부처 관계자는 “최소 몇 년이 지나 회고록에나 나올 법한 내용들이 너무나 쉽게 공개되고 있다”라며 “공직에서 물러난 지 몇 개월도 되지 않아 이런 얘기를 경쟁적으로 내놓는다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발언이 평소 그들이 강조해온 ‘국익’을 위해 나왔다고 보는 이들은 거의 없다. 문제의 발언들에 대해 자신의 주가를 올리거나 야당을 정치적으로 몰아붙이기 위해서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들에게 엄청난 윤리의식을 요구할 생각은 없다. 정상적으로 행동해주기만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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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규 정치부 차장

‘정치’. 우리나라에서 이 단어만큼이나 부정적 요소를 내포한 게 있을까. 싸움·부정·부패·범죄·붕당·왜곡·담합·철새·편가르기·지역주의…. 웬만한 나쁜 단어를 갖다 대도 정치가 풍기는 인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정치권을 향해 늘 두 가지 요구가 나온다. “제발 싸움 좀 그만하라.” “여야가 힘을 합하라.” 맞는 말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틀리다. 거칠게 정의하면 ‘정치의 본질은 싸움’이다.


야당의원들이 외통위 남경필 위원장에게 한미FTA 비준동의안 직권상정에 대해 항의 (출처: 경향DB)


 미국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은 “정치란 한정된 자원과 가치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마 가장 잘 알려진 정치의 정의 중 하나일 것이다. 한정된 자원과 가치를 그대로 놔뒀다가는 누구나 달려드는 정글의 쟁투가 벌어질 것이다.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태가 되기 전에, 대신해 싸우는 게 정치다. 그 싸움의 결과로 한정된 자원과 가치를 나누게 된다.


문제는 무엇을 위해 싸우느냐다. 잘 배분하기 위해 싸우느냐, 독식하려고 싸우느냐. 어떻게 싸우느냐도 중요하다. 룰을 지키느냐, 힘 세다고 룰도 맘대로 고치고 아예 어기느냐.


독식과 힘을 내세운 싸움이 판을 칠 때 그건 짐승의 싸움과 다르지 않다. 이때 정치 혐오감이 고개를 든다. 정치 혐오는 무관심을 불러온다. 그럼 그 이득은 자원과 가치를 이미 가진 이들이 가져간다. 정치 혐오는 기득권층만을 이롭게 할 뿐이다.


정치 혐오로 득을 본 이중 한 명이 이명박 대통령 아닐까 싶다. 이 대통령은 소위 ‘여의도 정치’를 싫어했단다. 대선 캠프도 여의도를 벗어나 종로구 견지동에 마련했다. ‘탈 여의도, 실용주의적 리더십’을 내세웠다. 


대통령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2008년 12월29일 김형오 당시 국회의장이 쟁점 법안 연내 직권 상정에 거부 입장을 밝히자,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이 “경제살리기 위한 속도전에 나서기로 했는데 그 속도전에 걸림돌이 되어선 안되겠다”고 했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정치관을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여의도 정치’를 싫어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정치 자체를 비능률적인, 걸림돌로나 본 것이다.


‘안철수 현상’을 불러온 것도 기존 정치권에 대한 혐오다. 새 정치를 하라는 요구였다. 최근 안 후보는 한 발 더 나아간 듯하다. 지난 23일 “국민은 서로 싸우고 나눠먹고 부패한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꾸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의원 수는 줄여야 한다”고 했다. 이어 “국회가 민생 법률을 못 만든 게 숫자가 적어서 그런 거냐. 의원 수를 줄인 만큼 예산이 절약된다”고 했다.


그러자 그에게 호의를 보였던 진보진영과 시민단체에서 연이어 비판이 터져나왔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안 후보가 제시한 안에 따질 게 있다. 정치 개혁은 정치 삭제 또는 축소가 아니라 정치 활성화다”라고 말했다. 참여연대도 “국회가 견제와 감시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해결책이 의회를 약화시키는 방향이어서는 곤란하다”고 했다. “역시 착한 MB였다”는 힐난까지 나왔다.


오히려 보수당인 새누리당은 “아마추어적”이라고 논평하는 정도에 그쳤다. 보수 언론들도 그다지 크게 다루지 않았다.


다시 정치의 본질 문제로 돌아가보자. 중요한 것은 제대로 싸우게 하는 것이다. 나쁜 것을 욕할 게 아니라 좋은 것을 북돋아야 한다. 그게 혁신이다.


안철수 후보가 존경을 표시했던 고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 같은 이가 정치의 중심에 서서 1%만을 위하는 기득권에 맞서 싸우도록 해야 한다. 고 김대중 의원, 김영삼 전 의원 같은 이가 의회에서, 가택연금 상태에서도 독재와 싸우고 “민주주의”를 포효하도록 해줘야 한다. 고 제정구 의원처럼 빈민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게 해야 한다. 박선숙 전 의원처럼 재벌의 잘못된 관행과, 그 뒤를 봐주는 듯한 정부 부처와 싸우도록 해야 한다. 그런 의원들이 많아지는 게 정치 혁신의 핵심이다.


단연코 말할 수 있는 건 이런 정치인들이 수십 년간 안온함과 이득을 버려가며 싸우지 않았으면 안철수 현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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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공기업 경영이 방만하다고 민영화가 꼭 대안이 아니듯이, 또 정부의 예산 운용에 잘못이 있다고 감세가 최선이 아니듯이, 정치가 문제라고 정치를 줄이거나 없애는 것이 능사일 수는 없을 것이다. 좀 더 책임감 있는 공기업 운영 방안을 찾고, 때로 증세를 통해서라도 정부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정치 쇄신'의 길 역시 정치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데서 찾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최근 안철수 후보가 내세운 정치개혁안이 '정치의 다운사이징'만 말한 것 같아 안타깝다.


 정치를 '기득권' 내지 '특권'과 동일시하고, '정치권'을 사회로부터 단절된 권역으로 소외시키는 언어 사용도 걱정스럽다. 우리가 권위주의 독재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하고 있다면, 정치는 누가 뭐라 해도 시민주권의 결과물이다. 아무리 부족하고 보완해야 할 것이 많다 해도, 시민으로부터 합법적으로 주권을 위임받은 정당과 정치인을 대체할 권위체는 없다. 그렇기에 정치에 대한 과도한 비난은 정치인을 선출한 시민을 모멸하는 일이 될 때가 많다. 정치를 줄이라는 주장이 새로운 것은 물론 아니다. 한국정치를 3류도 아닌 4류라고 규정했던 삼성 이건희 회장의 주장이나, 전경련 내지 재벌연구소가 내놓는 정치개혁안을 관통하는 것도 같은 정치관이다. 정당과 국회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는 관료들이나, 정치를 야유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주류 언론들도 늘 같은 주장을 해왔다. 그러다보니 안철수 후보의 정치개혁안에 대해 이들은 모두 "방향은 옳다"라는 말로 반기는 데 반해, 대조적으로 비판언론들만 나서서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 벌어지게 됐다. 


정의화 국회부의장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통과를 선언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지금의 중앙당이 문제가 많고 국고보조금 지급 방식도 개선할 것이 많지만 그렇다고 방향을 축소하고 없애고 하는 식으로 갈 수는 없다. 많은 시민들이 안철수 후보에게 기대를 건 것은 그런 개혁을 원해서가 아닐 것이다. 복지와 재분배를 위해 세금을 더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민이 다수가 되었듯이, 정치가 제 기능을 한다면 정치에 대한 공적 지원과 투자를 지금보다 더 늘려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수 시민의 진정한 의사라고, 필자는 믿는다.


파당적인 의견에 휘둘리지 않는 전문가들이 좋은 정책을 연구해서 정부를 운영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며 정당의 기능은 줄여도 좋다는 것이 이번 정치개혁안의 또 다른 기조인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운영이 당파를 초월한 전문적 연구에 의해 계도될 수 있다면, 민관의 협치를 이끄는 효율적인 행정 기능만으로 충분할지 모른다. 괴롭지만 그것은 인간의 현실이 될 수 없다. 정치란 인간이 갖고 있는 싸움과 갈등, 적대의 요소를 비폭력적으로 표출하고 해결하고 통합하는 기능을 하며, 이미 안철수 후보도 정치적 싸움을 개시한 지 오래다. 정치적 결정은 늘 갈등적 상황 속에서 내려질 수밖에 없고, 해결하기 어려운 윤리적 딜레마에 봉착할 때도 많다. 전문가의 조사와 연구, 통계자료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것으로 정치적 결정을 대신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망상이다. 최종적으로 정치적 결정을 인도하는 것은 특정의 사회적 가치와 비전 내지 삶의 경험이고, 그것을 집단화한 것을 우리는 정당이라 부른다. 가난한 보통사람들에게도 평등한 자유가 보장될 수 있어야 좋은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과, 실제로 그들을 대표하는 경험을 쌓아가면서 하나의 팀으로서 집합적 열정을 공유하는 조직적 실체를 형성해가는 과정 없이, 무슨 수로 새로운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


안철수 후보는 이미 정치를 하고 있고 사실상의 정당이 되어 가고 있는 바, 현실 정치를 비난하는 것으로 '아웃사이더의 이점'을 계속 향유하려는 것은 불공정한 행위이다. 그 자신의 최대 미덕이 그러하듯, 잘못된 방향 설정이라면 인정하고 수정하는 것이 한국정치 발전에 기여하는 일이라 생각하며, 그렇게 된다면 더 큰 기대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한국 정치의 여러 문제가 제대로 토론되고 개선되는 계기가 마련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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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봄, 가을이면 인천 옹진군 연평도, 대청도, 백령도 부근에는 배들이 줄지어 선다. 꽃게를 잡기 위해서다. 많을 때는 500척이 넘는다. 이 중 상당수는 중국 어선들이다. 산란기 꽃게 보호를 위해 조업이 금지되는 7~8월에도 하루 평균 100여척이 바다 위에 떠 있다. 육상의 군사분계선(MDL)처럼 바다 위에 철조망은 없지만, 이 배들을 선으로 연결하면 북방한계선(NLL)과 비슷해진다. 


남한 어선들은 NLL 2~3㎞ 아래에 있는 어로한계선을 넘지 못해 중국 배들이 황금어장에서 꽃게를 쓸어담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처지다. 북한도 성어기에는 하루 10척 안팎의 배들이 NLL 부근에서 조업을 하다 NLL을 넘어선다. 서해를 두고 ‘위기의 6월’이란 말이 나온 건 꽃게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 때 두 차례 서해교전이 모두 6월에 일어났고, 특히 1999년 6월15일 1차 교전 때는 꽃게잡이 어선을 앞세운 북측 경비정이 NLL을 넘어섰다가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꽃게 어장을 둘러싼 경제적 갈등과 군사적 긴장이 맞물린 것이다.


NLL분쟁 이후 꽃게잡이 어선들의 출어가 끊겨 생계에 곤란을 겪고 있는 연평도 어민들 (출처: 경향DB)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에 합의한 것은 ‘한반도의 화약고’가 돼버린 서해에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정착하기 위해서였다. 그 구상 중 중요한 내용이 공동어로구역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정상회담을 준비할 때 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제기한 것은 해양수산부였다. 어떻게 하면 어장, 어로를 넓힐 수 있느냐는 현실적 고민이 깔려 있었다. 공동어로구역은 1992년 남북기본합의에서 양측이 존중키로 한 NLL을 중심으로 남북 해군력을 어로구역 밖으로 배치하고 양측 경무장 해양경찰선이 구역 내를 순찰하는 가운데 어선들이 조업하도록 하는 것이다. 공동어로구역이 힘든 지역은 평화수역을 만들어 남북이 무력 행위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방안들은 정상회담 이후 진척되지 못했다.


5년 만에 다시 불려나온 NLL은 ‘남남갈등선’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시 정상회담에서 ‘NLL 포기’ 발언을 했다고 새누리당이 전방위적 공세를 펴면서다. 당시 정상회담 배석자들이 노 전 대통령의 그런 언급 자체가 없었다고 해도 막무가내식이다. 새누리당이 무엇 때문에 이토록 ‘확신’을 갖게 됐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전임 정권의 정상회담 기록을 공개하자고 하고, 국가기록원에 있는 정상회담 대화록을 뒤져보자는 주장에까지 이르는 것을 보면 과연 집권 여당이 맞는지 의아하게 한다. 


정작 새누리당은 서해 평화 정착을 위한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당장은 ‘NLL 사수’ 이외에는 보이지 않는다. 서해에서 무력 충돌을 방지하면서도 경제력을 증진시킬 새누리당만의 ‘창조적 해법’이 있는지, 만들 의지가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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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철 |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대선 후보들이 정치쇄신안을 쏟아낸다. 그런데 아무 감흥이 없다. 정치학자의 관점에선 새롭지도 않고, 국민의 관점에선 ‘저게 뭔 말이래’ 하는 것 같다. 정치쇄신을 오로지 대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까지 하다.


박근혜 후보는 그저 의제선점을 위해 발빠른 행보만 했던 것 같고, 문재인 후보는 단일화를 위한 유인책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안철수 후보는 누구도 싫다 말할 수 없는 추상적 원칙과 개념어만 제시하고 있는 것 같다.


뭔가 가슴에 팍 와닿거나 뒤통수를 탁 치는 것 같은 ‘맛깔나는’ 방책을 선보이고 있지 못한 것이다. 물론 나도 그런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런 것이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적어도 여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것이 있기는 하다. 바로 ‘인간’이다. 이타적이어야 한다면서도 인간은 실제로 이기적 존재라고 믿는 인간, 깨끗한 정치를 원한다고 하면서 더러워도 유능한 것을 더욱 좋아하기도 하는 인간, 제 눈 속의 들보를 먼저 빼내야 한다고 소리치면서 타인을 먼저 탓하는데 더 익숙한 인간, 현상타파를 외치면서 현상유지를 더 편하게 여기는 인간.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의외성을 통해 진심을 깨닫고 인정하는 인간’ 말이다.


 

발언하는 안대희 정치쇄신특위위원장 (출처: 경향DB)




<자유론>으로 세계 지성사에 큰 족적을 남긴 존 스튜어트 밀이 1865년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때였다. 밀은 당시 전대미문의 출사표를 던졌다. “나는 의원이 되고 싶지 않다” “출마하면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을 것이다” “당선된다 해도 내 시간과 정열을 선거구를 위해 바칠 수는 없다. 의원은 선거구에서 출마하지만 전 국민의 대표가 되어야 한다” 등이 바로 그것이다. 또 그는 다수의 유권자가 거부했던 여성참정권 실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도 했다(실제로 그는 당선된 후인 1866년 영국 의회에서 최초로 여성참정권 보장을 주창하였다). 


하지만 그의 당선을 도운 것은 그러한 공언이 아니었다. 그는 ‘의회개혁에 대하여’라는 팸플릿에서 “영국의 노동자는 외국의 노동자에 비해 진실한 편입니다. 그러나 거짓말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거짓말을 합니다”라고 썼다. 이를 경쟁후보가 악용하기 위해 노동자가 대부분인 밀의 유세장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에 써놓았다. 이를 본 노동자들이 분노하여 “그 후보자가 어떤 놈이냐”고 따져 묻고, 밀에게 죽은 고양이까지 내던지며 “이거나 먹어라” 하고 야유하였다. 하지만 밀은 피하지 않고 당당히 자신이 썼노라고 말했다. 자신이 쓰지 않았다고 부인할 줄 알았던 노동자들이 의아해 침묵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 후 박수가 터져나왔고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이어서 “이렇게 정직한 사람을 믿을 수 없다면 누구를 믿겠는가” “우리 노동자는 참된 친구가 필요합니다. 위선자가 아닌 진실한 지도자가 우리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라는 외침과 함께 환호소리가 뒤를 이었다. 노동자들이 예상했던 것과 다른 ‘의외의 정직함’이 밀에게 선거승리를 가져다 준 것이다.


나는 ‘쇄신 불가능’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처럼 “국민의 직접적 관여가 없는 한 정치쇄신은 어렵다”고 솔직히 시인하는 후보를 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쇄신을 향한 진심을 인정받아 “국민이 직접 자신과 함께 정치쇄신을 위해 실천하자”고 제안하고, 힘이 없기에 가슴속 깊이 쌓인 한을 풀어주려는 실제 행동에 나서는 것을 보았으면 좋겠다. 아마도 지금으로선 그것이 정치쇄신의 ‘진짜 방안’이 아닐까 싶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행동은 없고 ‘그게 그거 같은’ 말만 앞세운 채, 마치 자신만이 정치쇄신을 할 수 있다는 식의 모습을 보이면서도 사실은 몸을 사리고 있는 듯해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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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의 대선 후보 단일화 논의가 예열되고 있다. 그동안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측의 끊임 없는 구애에도 딴청을 피우던 안철수 무소속 후보 측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후보등록 등 대선 일정과 야권 지지세력의 압력을 감안할 때 단일화 논의를 마냥 미룰 수는 없다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때마침 소설가 황석영씨를 비롯한 문화예술·종교인 100여명도 정치개혁과 야권 단일화를 위한 ‘유권자 연대운동’을 천명하고 나섰다.


단일화 논의가 두 후보 측의 정치 혁신 경쟁으로부터 시작되는 현 상황은 주목할 만하다. 문 후보가 엊그제 대통령 및 국회의원의 권한 축소와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 등 정치 쇄신안을 내놓자 안 후보도 어제 의원의 정원 축소와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 축소를 골격으로 하는 안을 제시했다. 안 후보의 안에 대해서는 정당 정치나 국회의 기능을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특히 의원 축소 주장의 경우 세금을 줄이면 결과적으로 정부의 재분배 기능을 나쁘게 해 다수 시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감세 논리와 같다는 한 정치학자의 지적은 경청할 대목이다. 그러나 정치쇄신에 관한 양측의 입장 차이가 드러난 만큼 단일화 논의 과정에서 이 부분에 대한 치열한 토론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계속되는 단일화 질문 (출처: 경향DB)


물론 단일화에 대한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단일화의 궁극적 지향점이 정치 혁신이냐 정권 교체냐는 논란이 일례다. 오로지 정권장악을 지상목표로 한 단일화 논의에 매몰될 경우 국민이 바라는 정치 혁신은 뒷전에 밀려날 수 있다. 야권이 1997년 대선의 DJP연합과 2002년 대선의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를 성공적 사례로 거론하는 것 자체가 그러한 우를 범할 여지를 안고 있다. 이 같은 방식으로 야권이 50년 만의 수평적 정권 교체를 포함해 정권을 잡은 건 사실이지만 국정 운영까지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일화가 정권 교체라는 목전의 목표를 넘어 성공적인 국정 운영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두 후보 측이 보다 큰 밑그림을 그리는 게 우선이다.


그 밑그림은 두 세력이 지향하는 가치와 정책의 공유로 채워야 한다. 과거 DJP연합과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단일화가 보여주듯 이번 단일화 논의가 또다시 정권 창출을 위한 수단으로만 전락한다면 국민에게 감동을 주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신뢰를 얻기도 힘들다. 가치와 정책이 공유되지 않은 단일화는 정치발전에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기 어렵다. 후보 단일화 논의가 수십년 동안 고착돼온 한국의 낡은 정치 구도를 혁파하는 발판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이뤄져야 하는 까닭이다. 이러한 대원칙에 공감한다면 단일화를 위한 형식과 절차는 부수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무엇을 위한 단일화인가. 그 답을 구한다면 누구인가를 가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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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의 날’이 11월30일에서 48년 만에 12월5일로 바뀐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무역의 날을 바꾸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기념일 규정)’ 개정안이 통과됐다는 것이다. 무역의 날을 바꾼 것은 지난해 무역 1조달러를 돌파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50년 가까이 유지해온 법정 국가기념일을 바꾸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변경 과정이 불투명한 것은 더 큰 문제다. 기념일 규정 개정안의 내용이 입법 과정에서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오죽했으면 무역업계조차 황당해하는 분위기일까.


무역의 날은 1964년 박정희 정부가 수출 1억달러를 달성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 처음에는 ‘수출의 날’로 정했다가 1987년 무역의 날로 명칭이 바뀌었다. 당시 수출의 날은 한국이 본격적인 개방국가, 공업국가, 수출국가가 됐음을 선포하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1조원이란 숫자에 의미를 부여해 기념일을 바꿨다. 무역의 날이 변경되면 각종 사전이나 교과서의 무역의 날 설명도 달라지게 된다. 박 대통령 시절의 수출증대 정책 얘기는 사라지고 현 정부의 성과가 부각될 수밖에 없다. 무역의 날 변경에 이명박 정부의 업적을 기리려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제46회 무역의 날 기념식 및 수출 세계 10강 진입 기념 오찬에서 축사하는 이명박 대통령 (경향신문DB )


기념일 규정을 바꾸는 과정에 국민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는 절차도 소홀했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3월 홈페이지를 통해 2주간 의견을 묻고 4월5일 고작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공청회를 가졌을 뿐이다. 이어 지식경제부를 통해 무역의 날 개정 의견이 행정안전부에 제출되고, 행안부는 지난 6월11일 기념일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행안부도 입법안을 보도자료를 통해 언론에 알리지 않고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으로 끝냈다. 전체적으로 뭔가 뚝딱 해치우려 했다는 의혹이 짙다.


최근 정부 부처가 각종 법령을 개정하면서 국민에게 적극 알리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특히 여론의 비판을 받을 만한 사안일수록 더욱 그렇다. 행정절차법을 보면 ‘행정청은 입법안의 취지, 주요 내용 등을 관보·공보나 인터넷, 신문, 방송 등의 방법으로 널리 공고해야 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정부 부처는 관보 외에 자체 홈페이지에만 슬쩍 게재하고 끝내는 경우가 많다. 법 위반은 아니지만 ‘널리’ 공고해야 한다는 입법예고 제도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것이다. 입법예고 제도가 명실상부하게 시행될 수 있도록 개선책이 강구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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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호 논설위원


 

어제 새누리당의 어떤 위원회가 대통령기록관이라는 데를 방문했다. 좀 특별한 위원회가 되게 특별한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원회 이름부터가 특별하지 않은가. 기사마다 ‘진상조사특위’라고만 써놔서 무슨 진상을 특별히 조사한다는 건지, 왜 그렇게 쓰고 있는지부터 알아봐야 했다. ‘민주당 정부 영토주권 포기 등 대북게이트 진상조사 특별위원회’라는 긴 이름이어서 그런 것 같았다.


새누리당 특위의 대통령기록관 방문 목적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의혹과 관련한 자료 요구라고 했다. 참으로 별난 정치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른바 ‘대통령지정기록물’(이하 지정기록물)에 접근하겠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특위가 대통령기록관에 가서 확인하고자 한 핵심 정보는 지정기록물로 추정되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기록의 존재 여부였다. ‘추정되는’이라고 표현한 까닭은 지정기록물 목록도 지정기록물이기 때문에 통상적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뭔가 큰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지정기록물에 대해서는 상당수 식자층, 심지어 정치권과 공직사회조차 예외가 아닌 느낌이다. 지정기록물제도란 퇴임하는 대통령이 재임 중의 기록에 대해 15년 또는 30년 이내의 기간 동안 열람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역사적으로는 조선시대 사초나 실록, 현대적으로는 미국의 접근제한기록에 비유할 수 있다. 지정기록물 열람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한 경우, 관할 고등법원장이 영장을 발부한 경우, 대통령기록관 직원이 업무상 필요해 관장의 승인을 받은 경우에만 가능하다.


국민의 알 권리를 강력하게 제한하는 이 제도의 도입 취지는 무엇보다 대통령 기록의 보호에 있다. 대통령 기록은 그 성격상 매우 파급력이 크고 민감한 내용이 많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도 인간인 이상 그런 기록은 아예 만들지 않거나 만들었더라도 그것을 남기지 않으려는 유혹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구구한 설명보다 대통령기록관에 남아 있는 역대 대통령 기록 현황을 보면 된다. 5년 재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약 825만건의 기록을 이관한 데 비해 그 이전 55년 동안 8명의 대통령이 남긴 기록은 약 33만건에 불과하다. 실제로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대통령기록법)이 제정되기 이전 대통령 기록의 유출과 파기가 극심했던 것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지정기록물제도는 대통령 기록이 안전하게 보호될 수 있게 함으로써 중요한 국가기록이 생산되고 남겨지도록 하는 데 최우선 목적이 있는 것이다.


오해는 이런 기본적인 부분, 즉 입법 취지를 무시하거나 간과하는 데서 비롯되는 듯하다. 노 전 대통령이 비밀기록의 한 단계 위인 지정기록물을 만들어 누구도 확인할 수 없게끔 조치를 취했으며 34만건에 이르는 지정기록물에 대해서는 2023년까지 목록도 못 본다는 식의 비판이 그렇다. 심지어 국가기록물을 30년 동안이나 볼 수 없도록 한 대통령기록법을 국민의 알 권리 보장 차원에서라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한다. 이런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기록학계에서는 알 권리를 제한하는 듯한 ‘지정기록물’ 대신 ‘보호기록물’이라고 표현하는 게 좋다는 논의가 오가는 실정이다.


대통령 기록관 방문 (경향신문DB)


‘기록대통령’을 자임한 노 전 대통령은 “기록하지 못할 일은 하지 말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는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전제가 들어 있다. 그런 자신감은 민감한 기록의 경우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보호될 것이라는 믿음에서 나왔을 것이다. 지정기록물 취지가 훼손되면 이런 믿음은 정반대로 바뀔 수밖에 없다. “떳떳하지 못한 일은 기록으로 남기지 마라.”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나 사후에 당하는 곤욕의 상당수는 자신이 애써 남긴 기록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 정부 들어 대통령기록제도는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지정기록물이 두 차례나 열려 그 취지가 훼손된 지 오래다. 쌀 직불금 파문 때는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동의로 국회가, 청와대 기록유출 사건 때는 법원의 영장에 의해 검찰이 각각 열어보았다. 노 전 대통령은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스스로 공개하겠다고 했으나 국회가 거부했다. 1978년 같은 제도를 도입한 미국 의회가 이런 입법 취지를 존중해 이제까지 한번도 열람 결의를 하지 않은 것과 대비된다.


봉인은 한번 풀리면 효력을 잃고 만다. 봉인의 의미는 기록을 남기라는 것이다. 이를 뜯으려는 것은 기록을 남기지 말라는 신호다. 아니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미 두 차례 봉인을 해제한 것도 모자라 새누리당 특위가 국정원에도 있다는 남북 정상 대화록을 굳이 대통령기록관에 가서 확인하고자 한 것은 정치적 시위라고 치더라도 너무나 참담하고 섬뜩하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지난 8월부터 이관을 준비 중인 이명박 대통령 기록에 자꾸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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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기 | 경북대 교수·사회학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지금 힐링이 대세다. 여기저기서 “힐링” “힐링”이다. 그만큼 아프고 상처가 나서 위로받고 싶은 이들이 넘쳐난다는 이야기다. 


이런 와중에 우리는 대선을 코앞에 두고 있다. 겉으로는 나름 동량지재인 듯 보이는 대선주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나오는 것들이란 분명한 노선 차이가 보이는 구체적인 공약이 아니고 단지 국민의 아픔을 감싸주겠다는 식의 이야기와 이미지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그것을 무조건 나쁘다고 폄훼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들이 너무 힐링에만 몰두하고, 진짜 신경을 써야 할 것들은 등한시한다는 데 있다.


 이것이 왜 문제가 될까? 비유를 위해 시야를 좀 좁혀 보자. 가정 내에서 힐링은 가장 몫이 아니다. 다른 이가 주로 그 몫을 담당한다. 한마디로 성별이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가장은 자질구레한 가족의 힐링을 담당하기보다는 가족의 생계와 안전을 보장하는 데 우선적으로 신경을 써야 한다. 그것을 도외시한 채 허구한 날 가족의 힐링에만 주력한다면 하던 사업이 망하거나 다니던 직장을 잃거나 외부에서 강도나 도둑이 들어오는 것도 몰라 가정 자체가 풍비박산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그가 공들였던 힐링조차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지금 대한민국이 필요로 하는 대통령은 바로 이 비유에서 유추해낼 수 있다.


현재 세계는 미국의 금융위기와 유로존의 채무위기로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그간 우리는 선전했지만 앞으로 어떤 일들이 우리에게 닥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세계화된 세계에서는 우리만 잘한다고 일이 다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순망치한, 즉 옆 나라가 잘못되면 우리까지 애먼 피해를 보게 된다. 국가신용등급이 조금 올랐다고 우쭐할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순간의 실수에 ‘골’로 갈 수 있는 그런 위급 상황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금융안전 보고서’ 개정판(2012년)에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에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국가 중 하나로 한국을 지목했다. 그동안 수출에 의존했던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증대와 대외수요의 악화로 여리박빙의 위험천만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점을 경고한 것이다. 그 임박한 위기의 구체적 예들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코앞에 다가와 있다. 우선 지난달 한 주 사이에만 미국·유럽·일본에서 양적완화 정책을 재차 펴서 세계는 전례가 없는 과잉유동성 공급으로 하이퍼인플레이션 위험에 직면해 있다. 넘쳐나는 화폐의 유동성이 대한민국을 쓰나미처럼 헤집고 유린할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또한 세계 경제의 성장둔화는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의 암초로 작용할 것이고, 설상가상으로 우리의 몸집이 훌쩍 커진 것을 인식한 강대국의 보호무역주의에 입각한 견제구도 빗발칠 것이다. 게다가 지중해 연안의 긴장은 날로 고조되고 있고 덩달아 유가도 상승 중이다. 어디 이뿐인가? 동아시아도 중·일 간 갈등으로 불안하고 우리는 여전히 일말의 변화 조짐도 보이지 않고 있는 북한과 대치 중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산적해 있는 이런 모든 위중한 문제들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에 대해 생각을 피력한 대선 후보를 아직 본 적이 없다.


(경향신문DB)


이러한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앞으로 대한민국을 인도해 나갈 대통령은 자질구레한 힐링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기보다는 거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대한민국이라는 배를 향도해 나가는 그런 인물이어야만 한다. 그의 손에 대한민국호의 키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세계 10위권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이 하루아침에 좌초하는 일이 없게 하는 큰 안목을 가진 자, 즉 통관규천(通管窺天)이 아닌 자가 지금 대한민국에 대통령으로 필요한 것이다. 단순한 힐링과 인기에 영합해 대의를 그르치는 소인배에게 대한민국호를 맡길 수 없는 것이다. 힐링은 스님이나 목사 등 종교인, 심리학자 또는 덕망있는 인사들에게 구하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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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탁 | 한국기계산업진흥회 상근부회장


 

대선 때만 되면 정부조직 개편 이야기가 나오고, 인수위원회를 거치면서 새 정부의 중앙부처 명칭이 정해지고 업무 영역이 구획된다. 그러나 재정위기 속에서도 굳건한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는 독일의 경우 정권이 바뀌더라도 빈번한 정부조직 개편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의 지식경제부에 해당하는 ‘독일연방경제기술부’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만들어진 ‘독일연방경제부’에서 기술 관련 부문이 1998년에 추가된 것이다. 독일연방경제기술부는 IT융합을 포함하는 다양한 산업지원 정책을 매년 발표하고 있다. 독일은 독임부처라는 거버넌스의 문제가 아니라 정권이 바뀌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산업지원 조직으로 일관성 있는 정책을 통해 세계 최강의 히든챔피언 최다 보유국가가 된 것이다.


하반기 경제전망 브리핑하는 정부부처 (경향신문DB)


그동안 우리나라는 외형적인 눈부신 성장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에는 기술에서 밀리고, 후발국가에는 가격에서 밀리는 ‘넛 크래커’ 상황에 있다. 따라서 산업·기술 융합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고, 이 외의 다른 방안을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요즘 IT융합은 기계·자동차·조선·항공·우주·화학·섬유 등 전 산업으로 보편화되고 있으며, 주력 산업을 포함하는 모든 산업에 IT뿐만 아니라 나노·친환경 등 다양한 기술을 접목해야 한다. 현실은 이러한데 대선을 목전에 둔 정치권에서는 IT 독임부처 신설을 주장하고 있다. 과연 독임부처가 능사인가는 정권이 바뀌어도 일관성 있는 정책을 펴는 독일의 사례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 행정지원의 실수요자 입장에 있는 기업은 산업·기술 융합 추세에 부응해 원스톱서비스를 필요로 하고 지원되는 정책의 내용과 연속성도 중요하다.


만약 자동차·조선·항공과 IT 관련 부처가 둘로 나뉜다면 자동차·조선·항공기용 소프트웨어(SW)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두 배의 비용과 노력을 투입해야 한다. 부처 이기주의로 유기적인 지원이 어려워질 것은 명약관화하다. 세계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무역 2조달러 시대를 열어나가기 위해서는 융합을 가속화해야 한다. 기업이 정작 필요로 하는 것은 컨트롤타워나 거버넌스보다는 유기적이고 실효성 있는 지원정책이다. 기존 거버넌스에 의한 정책의 효과도 채 나타나기 전에 선거철마다 마구 흔들어 대는 거버넌스 논쟁은 전체 산업발전과 국익에 득보다 실을 가져오는 사본축말의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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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이제 대선이 60일 앞으로 다가왔다. 대선 전날 밤 대사건이 일어나 판세를 완전히 뒤바꾼 2002년 대선이 잘 보여주듯이, 격변하는 한국정치의 속성을 생각하면 60일이면 세상이 몇 번 바뀌고도 남을 긴 기간이다. 그러나 앞으로 남은 60일간에 생겨날 가장 중요한 변수는 뭐라고 해도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 간의 후보단일화 여부일 것이다.


현재 대선은 60일밖에 안 남았지만 후보단일화는 별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두 진영은 오히려 날 선 신경전만 벌이고 있다. 그리고 한국정치의 가변성을 고려할 때, 단일화 여부에 대해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현재 양 진영의 대립은 치킨게임이라는 벼랑 끝 담력싸움에 가깝고,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단일화가 성사될 가능성이 안 될 가능성보다 상당히 높다고 생각한다.


 우선 단일화가 되지 않아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승리할 경우 두 사람은 정권교체를 바라는 지지층으로부터 몰매를 맞을 것이고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단일화를 하지 않고 3자구도로도 박 후보를 압도해 승리가 확실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한, 양 진영은 지지세력의 압력에 밀려 막판 단일화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둘째, 두 진영이 단일화하는 데 중요한 장애는 두 후보 옆에 포진해 있는 측근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안철수 진영에 포진한 참모들은 대부분 오랫동안 민주통합당과 같이해온 세력인 만큼 상대적으로 양 진영이 소통하기에 어려움이 적기 때문이다. 세 번째, 무소속 대통령이 가능한가라는 무소속 대통령 논쟁이 벌어졌지만, 안철수 후보가 국회에서 달랑 송호창 의원 한명 데리고 청와대에 입성하는 경우 일을 해나가기가 너무도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어떤 방식이든, 민주통합당과의 공동정부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안철수 대통령, 문재인 총리 티켓’이거나 ‘문재인 대통령, 안철수 총리 티켓’ 중 하나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종북논쟁 등으로 부담이 되는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출마를 선언한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까지 후보단일화를 이루어 심상정 노동부 장관과 같은 카드로 세 세력의 공동정부 단일화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DJ묘역에 나란히 놓인 문재인, 안철수 조화 (출처: 경향DB)


그러면 단일화의 가장 큰 장애는 무엇인가?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문재인 후보의 ‘무감각’ ‘무신경’ 내지 ‘무능’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문 후보가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로 결정될 당시 이 지면에 쓴 “문재인의 첫 번째 할 일”(2012년 9월17일자)에서 지적했듯이, 문 후보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이자 경쟁력을 갖는 최고의 비결은 “대선 공약을 다듬는 것도, 안철수 후보와 후보단일화를 이루는 것도 아니고 민주통합당의 혁신”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안 후보가 민주통합당의 입당이나 후보단일화 요구에 대해 국민적 요구인 정치쇄신이 먼저라고 화답하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검증된 것이 별로 없고 정치경험도 전무한 안 후보가 문 후보를 제치고 박근혜 후보의 대항마로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민주통합당의 구태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 때문이다. 이를 뒤집어 이야기한다면, 민주통합당이 근본적인 쇄신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국민들이 안 후보에게 보내고 있는 지지를 문 후보가 단번에 흡수해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기이한 것은 정치쇄신이라는 안 후보의 요구에 화답하여 단일화의 전제조건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스스로 경쟁력을 제고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이해찬, 박지원 의원의 2선 퇴진을 비롯한 민주통합당의 발본적인 혁신인데도 불구하고 문 후보는 이에 대한 노력을 전혀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선거운동이라며 바쁘게 엉뚱한 곳만 돌아다니고 있으니 답답하다. 민주통합당의 쇄신이 핵심이라는 사실을 문 후보가 모르는 것이라면 이는 ‘무감각’ 내지 ‘무신경’이고, 이를 알고 있지만 당의 구조상 자신의 능력으로 쇄신이 불가능해 포기하고 있는 것이라면 ‘무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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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엊그제 서해 북단의 연평도를 찾아 “요즘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지만 통일이 될 때까지 북방한계선(NLL)을 목숨 걸고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현직 대통령이 연평도를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청와대는 2010년 11월23일 발생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 2주년을 앞둔 데다 최근 북한군 병사의 ‘노크 탈북’을 계기로 군 경계태세를 점검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점이나 발언 내용 등을 감안할 때 이 대통령이 작심하고 대선에 개입하려 한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무엇보다 지금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NLL 포기 발언을 했다는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의 주장을 놓고 여야가 진실공방을 벌이는 상황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는 여야 공방을 말하는 것으로, 이 대통령의 연평도 방문과 발언이 여당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리라는 점은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방문 사유도 꿰맞춘 흔적이 짙다. 연평도 포격사건 2주년은 한 달 이상 남았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주년 때 몇몇 권유에도 검토 끝에 연평도를 찾지 않았다. ‘노크 탈북’은 동부전선에서 벌어진 일인데 NLL을 찾아 기강을 점검한다는 게 생뚱맞다. 이번 연평도 방문이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지낸 정 의원의 문제 제기를 측면 지원함으로써 여당에 도움을 주려는 의도임을 읽어내는 건 어렵지 않다.


해군 2함대 기동훈련에서 초계함들이 대함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저주에 가까운 이 대통령의 대북 인식도 위험천만하다. 이 대통령은 해병대 장병, 주민들과 점심을 하는 자리에서 “북은 군이 민간인 식량을 뺏고 도망오기도 하고, 밥도 풍족하게 먹을 수 없고, 지구상에 그런 나라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 어선이 NLL을 자주 침범한다는 설명을 듣고 ”(북한 선박으로 오인해) 총격을 가할 수 있다고 중국에 말해야 한다”거나 “북한과 중국 어선이 이렇게 내려와 조업을 하는데 우리 어선도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 조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에 대한 이 대통령의 혐오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중국 어선이 아닌 북한 선박이라면 총격을 가할 수 있다거나, 우리 어선도 북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말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진 대통령의 언사라고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안보에는 임기가 없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백번 옳다. 대선을 앞두고 각 정파 간 대립과 갈등이 극심한 상황에서 대통령으로선 외교·안보에 보다 심혈을 기울여야 마땅하다. 그렇더라도 이 대통령이 앞장서서 불필요한 긴장을 조성할 일은 아니다. 안보가 걱정이 됐다면 동부전선에 가서 군령을 바로 세울 일이지 연평도에서 북한을 자극할 일인가. 퇴임 이후를 보장받기 위해 여당 후보를 도우려는 꼼수라면 당장 접어야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도 당부한다. 현직 대통령의 대선 개입에 경종을 울리고, 제2·제3의 유사 사태 방지를 위해서라도 이 같은 대통령의 언행이 적절하다고 보는지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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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세 대선 후보 진영의 경제 정책 책임자들이 잇따라 방송 인터뷰 등을 통해 이번 대선 최대 쟁점인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공약을 설명하고 있다. 이들이 제시한 세 후보의 경제 공약을 보면 총론적으로는 대동소이(大同小異)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복지확대와 재벌개혁을 하겠다는 원칙에는 후보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문제는 대선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데도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제대로 내놓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공약 실천을 위해 세금을 어떻게 더 거둘 것인가를 놓고 각 후보 간에는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1970년대 이후 손을 대지 않았던 부가가치세를 올리는 등 조세부담률을 2%포인트 상향 조정하면 세수 30조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인터뷰가 나간 다음날 현재로서는 세율 인상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서둘러 해명했다. 하지만 인터뷰 내용을 살펴보면 세율을 올리고, 비과세 및 조세감면을 정비하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새누리당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과 남경필 경제민주화실천모임대표 (출처: 경향DB)


문재인 후보 캠프의 이정우 경제민주화위원장은 2005년 참여정부 시절 도입했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 유명무실해진 종합부동산세(종부세)가 이론적으로, 실질적으로 가장 좋은 세금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집권에 성공하면 종부세를 부활시킬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영세 자영업자들을 위해 민주당은 현행 연매출 4800만원 미만 간이과세 대상자 기준을 8400만원 미만으로 올리겠다고 밝히고 있다. 안 후보는 현행보다 2배 이상 올려주겠다고 한다. 자영업자들은 간이과세 기준이 너무 낮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세금탈루와 탈세의 온상이라는 논란도 적지 않다. 추가적 논의가 필요한 대목이라고 본다. 


재벌개혁과 관련해 김종인 위원장은 재벌의 탐욕을 절제시키기 위해 관련 법을 마련해 경제운용의 큰 틀을 바꾸자고 말했다. 안철수 후보는 강력한 재벌개혁 공약으로 계열명령분리제를 들고 나왔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삼성전자를 분할하자는 것이 아니라, 재벌총수와 가족들이 빵집이나 골프장과 같은 엉뚱한 사업에 투자를 하지 않도록 막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금산분리, 순환출자 금지,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재벌개혁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정우 위원장은 “전선을 확대하지 않기 위해 계열명령분리제는 장기과제로 검토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세 후보의 경제 공약은 경제 좌장들의 공개 발언으로 얼추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는 각 후보마다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경제공약을 실천할지 각론을 내놓아야 할 때다. 아무리 총론이 그럴듯해도 실효성 있는 추진 방안이 나오지 않으면 유권자들이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집권을 한 다음 슬그머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발을 빼는 행태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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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혁 사회부 기자 jhjung@kyunghyang.com


 

지난 6월 끝난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의 민간인 불법사찰 재수사는 검찰 손으로 앞선 수사의 부실을 입증한 드문 경우다. 박영준 전 차관 등 1차 수사 때 면죄부를 받은 의혹의 핵심들이 줄줄이 기소됐다. 그렇다고 재수사가 잘됐다는 얘기는 아니다. 재수사는 청와대 핵심부를 비껴갔다. 누군가 쳐놓은 2차 저지선에 맥없이 막혀버린 모양새다. 저지선 너머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있었다.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를 새삼 재론하는 것은 이 건이 검찰의 반성능력 부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재수사를 통해 1차 수사의 부실이 확인됐지만 검찰은 그 흔한 유감 논평도 내놓지 않았다. 책임지는 사람도,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었다.이번 대선의 쟁점 중 하나는 과거사 문제다. 검찰도 과거사의 업보에서 자유롭지 않은 조직 중 하나다. 유서대필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강기훈씨는 지난달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수사관이나 검사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느냐’는 물음에 “아직도 술 많이 드세요? 폼이란 폼은 다 잡으시더니 펀치력은 좀 세지셨어요?(라고 묻고 싶다)”라고 했다.


(경향신문DB)


 강씨는 “지쳐 죽을 만하면 주임검사가 들어와 취조하는데 창틀에 맥주를 10개 이상 쭉 깔아놓고 질문해요. 취기가 오르니까 말이 거칠어지고 주먹으로 때렸어요. 취조 받던 곳이 11층이었는데 열어놓은 문 사이로 보이는 맞은편 방에는 포승줄, 수갑, 쇠사슬이 벽에 죽 걸려 있었어요. 저한테 ‘널 달아매겠다. 4시간이면 자백할 거다’라고 협박했었죠”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그는 지금 간암으로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다.


사법부는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취임한 뒤 과거사를 사죄했다. 국정원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과거사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은 조직이 검찰이다. 과거사에 대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사과를 놓고 진정성 논란이 일었다. 박 후보가 여론에 굴복해 내키지 않는 사과를 했다는 건데, 어쩌면 ‘내키지 않는’ 사과야말로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인지 모른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검찰은 그나마 내키지 않는 사과도 하지 않는다.


반성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된다.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또한 검찰이다. PD수첩 사건, 정연주 전 KBS 사장 배임사건,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정치검찰의 사건 목록을 작성하자면 끝이 없다. 궁극적인 피해자는 검찰 자신이다. 검사 출신으로 대법관을 지낸 안대희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검찰이란 게 존재 이유가 다 있다”고 했다. 대선을 앞둔 검찰은 ‘존재 이유’를 심각하게 설명해야 할 만큼 궁박한 처지에 놓여 있다. 


얼마 전 최교일 서울중앙지검장은 “내곡동 사저 의혹 관련자를 기소하지 않은 것은 이명박 대통령 일가가 배임의 귀속자로 규정되는 게 부담이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거의 업보를 풀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터인데, 반성해야 할 과거사는 나날이 쌓여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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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고성군 최전방 초소에서 발생한 북한군 병사의 ‘노크 탈북’이 형식적으로 일단락됐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엊그제 군의 경계작전 실패와 상황보고체계의 부실을 인정하고 관련자 문책 및 대국민사과를 했다. 하지만 무능하고 못 믿을 군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씻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결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군의 한심한 경계태세와 보고체계에 대한 수술 및 개선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차제에 군 수뇌부의 획기적인 인적 쇄신 없이는 이미 추락한 군에 대한 신뢰를 메울 길이 없어 보인다. 


김관진 국방장관이 북한군 병사 귀순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 (경향신문DB)


어찌 보면 단순한 북한군 병사의 탈북 사건이 보름 가까이 국민을 혼란 속에 몰아넣은 근본적인 이유는 일이 벌어지면 우선 숨기고 보는 군의 속성 때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김 장관과 정승조 합참의장은 사건발생 다음날인 3일 북한군 병사가 CCTV에 포착된 것이 아니라 생활관의 문을 노크해서 탈북했다는 구두보고를 받았으면서도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지난 8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CCTV 귀순”이라고 증언했다가 번복했다. 공식 계통 보고를 우선시한 데다 합참 전비태세검열단의 사실관계 확인이 안됐기 때문이라고 변명했지만,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데 지극히 안이한 자세를 가졌음을 말해준다. 정 의장의 질문에 작전본부장이 6번이나 “CCTV 귀순이 맞다”고 답한 것이나, 합참 전비태세검열단이 사건발생 6일 뒤에야 현장조사를 벌인 것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들이다. 결과적으로 군 지휘부가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자초한 셈이다. 


해당 초소의 안이한 근무태세 역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군 병사는 남측으로 넘어온 뒤 탈북 의사를 밝히기 위해 110m를 이동해 초소에 도착했지만 사람이 없어 다시 200m를 걸었다. 동해선 경비대의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 반응이 없어 다시 반대편 소초로 20m 정도로 이동해 노크를 해야 했다. 작전지역이 울창한 수목으로 뒤덮여 있고, 사각지대가 있었다는 군의 해명은 납득이 안된다. 김 장관은 그럼에도 “위관급 이하는 열악한 경계작전 여건 속에서도 정상적인 근무를 했음을 확인했다”는 이유로 문책대상에서 제외했다. 북한군 병사가 우리 측 지역을 휘젓고 다닐 동안 무인지경이나 다름없었던 우리 측의 경계태세가 ‘정상근무’였다는 궤변이다. 


올해 국방예산은 정부재정의 14.8%인 32조9576억원에 달한다. 국민이 막대한 예산을 제공했음에도 경계근무 여건이 열악했다면, 군 수뇌부가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국민이 믿지 못하는 군은 존재의 이유가 없다. 정권교체가 임박했지만 한시도 공백이 없어야 하는 것이 국방이다. 장관과 합참의장을 포함해 군수뇌부를 재구성하기 전에는 국민의 불신을 씻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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