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어제 김문수 경기지사 등 비박 경선주자 4인과 오찬 회동을 했다. 박 후보는 이 자리에서 정권 재창출을 위한 4인의 협조를 구하고, 4인은 흔쾌히 수용했다. 경선에 참여하지 않은 정몽준·이재오 의원과의 회동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전날 박 후보는 20대들을 만나 반값 등록금 추진을 약속했다. 나흘 전에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다.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후 나흘 동안 보여준 박 후보의 행적이다. 가히 광폭 행보라 할 만하다.


좌우, 앞뒤를 가리지 않는 박 후보의 대선행보는 진보진영의 정책 차용은 물론이고, 사람을 구하는 일도 진보와 보수의 기존 울타리를 뛰어 넘을 기세다. 정책의 경우 박 후보가 경제민주화와 복지에 이어 반값 등록금까지 꺼내들자 민주당에서 ‘모든 공약을 다 빼앗기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이 나돌 정도라고 한다. 민주당은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를 비롯한 진보 정책 차용의 허구성을 파헤친다는 방침이나 자칫 박 후보의 의제 선점 효과만 부각시킬 수도 있다. 박 후보의 전방위 행보 중에는 진정성에 의심이 가는 대목이 더러 있지만 소기의 성과는 충분히 달성하고 있는 것 같다. 강화된 박 후보의 권력 의지가 느껴진다.


당 대표 옆에 자리하는 박근혜 후보 (출처 :경향DB)


문제는 이러한 박 후보와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듯한 새누리당 지도부의 현실이다. 박 후보의 광폭 행보가 겨냥하는 포인트 중 하나가 소통부재와 1인 사당화라는 비판 불식에 있음은 명약관화하다. 그러나 지도부는 박 후보를 여왕 받들 듯하는가 하면 정책적 지원 역시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당당하게 정책 대결을 펼쳐야 하는 야당에 대한 자세도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묻지마식 강력범죄가 횡행하는 것까지 민주당에 책임을 떠넘기려 하는 게 일례다. 대선 경선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낸 김종인 전 경제수석을 비롯한 비상대책위원회 출신들이 박 후보를 실질적으로 보좌하고, 당 지도부는 마지못해 따라가는 모양새다. 후보만 있고, 당은 없다는 비판이 나올 법하다.


이 같은 엇박자가 박 후보의 행보에 대한 신뢰를 떨어트린다. 대선에서 후보 못지않은 검증 대상은 집권세력이다. 박 후보가 집권할 경우 새누리당은 그와 함께 각종 정책을 이끌어가야 할 집단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집권에 대한 준비 없이 과실만 나누려 하는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역대 대통령들의 실정은 대개 집권자 탓으로 돌아갔지만 그 절반의 책임은 집권세력에 있었다. 후보와 소속 당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그것이 정당정치의 요체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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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영 | 국제부

지난 5월 프랑스 대선 취재 당시 유권자들과의 인터뷰를 취재수첩에 받아적으면서 이해하는 데 애먹은 말이 있었다. 중도보수인 니콜라 사르코지 대중운동연합(UMP) 후보가 내건 ‘진짜 노동(le vrai travail)’ 슬로건에 대한 진보진영의 깊은 불쾌감이었다. 요약하자면 이랬다. “노동자를 어떻게 진짜와 가짜로 나눈다는 것인가? 노동자를 서로 대립시키겠다는 것인가? 사르코지는 재선 욕심에 눈이 멀어 사회대립을 부추기고 있다.”


말을 되새김질한 뒤에 아찔함을 느꼈다. 한국 사회에 속한 이에게 그 같은 이분법은 익숙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노동가요 ‘단결투쟁가’는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진짜 노동자”라고 자부한다. 정부 공익광고는 국기 의례부터 축구 응원에까지 애국심의 진짜 가짜 감별을 시도한다. 진보든 보수든, 정치적으로 선명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때로는 이익을 꾀하기 위해 구분짓기의 프레임을 쉽게 부리는 경향이 있다.


이 같은 차별을 통한 ‘분리통치’의 사회적 비용을 보여주는 사례가 러시아의 ‘푸시 라이엇’ 재판이다. 정교회 성당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에 반대하는 노래를 부른 여성 펑크 록그룹 멤버 3명에게 지난주 징역 2년형의 중형이 선고된 이후 러시아 사회는 두 쪽 날 듯 찬반논쟁을 벌이고 있다. “너무 민감한 소재라 식탁에서 말 꺼내기가 금기시되고, 논쟁이 일단 시작되면 친구들은 다시는 말섞지 않겠다며 자리를 뜬다”(파이낸셜타임스 20일자)고 할 정도다.


철창 안에 앉아 있는 러시아의 여성 펑크록그룹 ‘푸시라이엇’ 멤버들 (출처 :경향DB)

‘현대판 차르’ 푸틴이 보수진영을 지지기반으로 삼는 대신 개혁을 요구하는 자유민주진영을 탄압하는 분리통치를 편 탓이 크다. 지난해 말 대규모 민주화 시위로 위기에 처했던 푸틴 정권은 민주진영을 서방의 사주를 받은 사회혼란 조장세력으로 몰아붙였다. 푸시 라이엇의 배후에도 서방정부가 있다고 믿는 듯하다. 한국에 ‘레드 콤플렉스’가 있듯이, 러시아에는 냉전시대의 흔적인 ‘서방 콤플렉스’가 있다.


푸틴은 시대에 뒤처진 ‘분리통치’를 지렛대로 집권 3기에 철권을 행사할 기세다. 하지만 그 이득을 누리는 것은 푸틴 정권뿐이다. 알렉세이 쿠드린 전 러시아 재무장관까지 “국가 이미지와 투자매력이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고 국익을 걱정했다. 서방 같으면 훈방 정도로 끝날 경범죄를 2년형에 처한다면, 국가홍보에 수백만달러를 쏟아붓는데도 현대적이고 공정한 나라라는 인상을 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집권 초기임에도 지난 6개월간 전례없는 지지율 추락을 목도하고 있는 푸틴 정권은 야권 탄압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른 장기적 사회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러시아 국민들이다. 정치를 개혁할 기회도, 통합된 사회를 가꿀 기회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프랑스의 그 유권자들은 이 같은 ‘분리통치’의 부작용을 알기에 경계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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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건호 | 글로벌정치경제硏 연구실장


지난 4·11 총선에서 복지 의제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정치권, 특히 말로만 보편복지를 다루는 야권이 원망스러웠다. 대선에선 다르겠지 생각했는데 상황이 심상치 않다. 어느새 후보선출 투표 시점인데도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들로부터 복지국가 그림을 접할 수 없다. 몇 가지 사안별 복지 공약을 발표할 뿐 총괄적인 복지국가전략이나 복지재정방안을 내놓는 후보가 아직 없다. 


민주통합당이 얼마 전 세제개편안이라고 내놓은 건 고작 연 5조원 증세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약 1300조원 기준 0.4%다. 이것으로는 GDP 19%대의 부끄러운 조세부담률에 수치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의 연 1조원 증세안과 오십보백보다. 토목지출을 어떻게 절감할지, 어떤 항목에서 조세감면을 할지에 대한 로드맵도 없다. 실현 방안이 명확하지 않은 장밋빛 약속을 ‘포퓰리즘’이라 한다면 이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복지국가를 주창한다면 근래 국제경제 환경에서 ‘재정’ 의제가 처한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 20세기 서구에서 복지국가가 확장되는 과정에서는 ‘재정’이 복지를 충당하는 적극적인 거름이었다. 복지와 증세에 대한 국민적 합의로 조세부담률, 국민부담률이 오르면서 재정은 복지국가를 뒷받침하는 디딤돌로 여겨졌다. 

 

민주통합당 대선 예비후보가 TV토론회에 앞서 손을 맞잡고 있다. (출처 :경향DB)



그런데 21세기 들어 고령화에 따른 의료·연금지출 증가,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증폭된 재정위기 등으로 재정이 지니는 정치적 성격이 변화하고 있다. 재정건전성 프레임이 작동하면서 재정 의제가 보수적 효과를 내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대응이 발 빠르다. 작년 4월부터 ‘재정위험관리위원회’를 설립해 운영하고, 12월부터는 ‘장기재정전망협의회’를 가동해 구체적으로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기구들은 미래 한국이 직면할 고령화 위험을 강조하는 재정수치를 생산하고 재정안정화를 위해서는 복지확대가 곤란하다는 메시지를 던질 것이다. 이미 기획재정부는 야당의 보편복지 소요재정을 검증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올해 말에는 국민연금 장기 재정추계 결과를 발표해 연금 소진 불안을 상기시키고, 노인 의료 지출에 대한 위기감도 조성할 것이다.


한국은 고령화 속도가 어느 나라보다 가파르다. 고령화 담론이 심화될수록 미래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불안이 증가하고, 보편복지세력이 내거는 ‘재정 확충을 통한 복지 확대’보다는 보수세력이 주장하는 ‘재정 관리를 위한 복지 억제’ 주장이 세를 얻을 수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복지국가를 역설하는 정치권이 내놓은 게 선언적인 소규모 증세 페이퍼뿐이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보수세력의 재정건전화 공세를 이길 수 없고, 복지국가를 향한 국민들의 열의를 이끌어내기도 어렵다.


복지국가 후보라면 그에 걸맞은 재정혁신을 국가프로젝트로 내걸어야 한다. 올해 우리나라 재정규모는 GDP의 30.0%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42.5%, 유럽 평균 49.2%에 비해 현격히 낮다. 선진국에 비해 우리는 세입을 확충할 여력이 매우 크다.


물론 장벽이 만만치 않다. 국민들의 재정불신, 조세 저항이 크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를 넘어서려는 ‘증세정치’가 없다는 점이다. 모두들 복지국가를 위한 재정확충을 말하지만 이를 구현하기 위한 증세정치에 나서지 않는다. 자신이 복지국가 후보로서 재벌증세를 주창한다지만 재벌총수를 만나고 이를 압박하는 민심을 조직한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국민들이 정작 문제를 느끼는 과세형평성이나 토목지출 개혁 방안도 속시원하게 내놓지 못한다. 이렇게 증세정치가 없는 곳에서는 국민들의 조세 저항이 미래 복지국가를 향한 조세 정의로 전환되기 어렵다. 대한민국 복지국가도 요원해진다. 


이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 맞설 야권 후보를 뽑을 차례다. 복지국가 재정혁신전략을 국가프로젝트로 삼는 후보가 나오길 바란다. 민주통합당 후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직 선거전에 등록도 하지 못한 안철수 원장, 진보정당 후보에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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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제민 정치부 기자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0일 독도에 다녀온 뒤 열흘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대통령이 우리 영토에 다녀오는 것은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국민들이 속 시원하다며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지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 해결에 무성의하게 나와 행동으로 보여줬다는 이 대통령의 설명에도 공감한다. 일왕이 한국에 오려면 독립운동가 자손들을 찾아가 사과하는 게 먼저라는 것도 백번 옳은 말씀이다. 


 그러면 이 대통령의 방문으로 독도에 대한 한국의 실효적 지배가 더 공고해졌을까. 이 대통령의 질타로 일본인들이 대오각성하고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런 것 같지 않다.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행을 공언한 뒤 독도는 한발 더 국제 분쟁지역화했다. 일본 사회 역시 반성하기는커녕 반한 감정만 키웠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에 대한 사과 요구는 한국에 우호적이었던 일본 내 좌파세력까지 반발하게 했다”는 강상중 도쿄대 교수의 전언은 그래서 뼈아프다.


일본 보수성향의 시민단체 회원들이 16일 도쿄 한국대사관 부근에서 일장기를 들고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및 일왕 사과 발언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경향신문DB)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태도를 보면 실망을 넘어 분노를 금할 수 없다. 그러나 분노를 표출하는 것과 일본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는 별개다. 감정만 갖고 대응할 일이 아니다. 무력으로 일본인들을 굴복시키려는 게 아니라면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그들과 관계는 유지하면서도 잘못을 계속 지적해 반성하게 할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 독도 방문의 뒤처리는 이제 외교 실무자들과 국민 몫이 됐다. 이 대통령은 전에 북한에도 ‘농지개혁을 해야 한다’ ‘지도자가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말인즉슨 옳지만, 남북관계는 악화됐다. 시원한 말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를 어떻게 변화시키느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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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홍 |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만주 서쪽 변방인 열하에서 복무하던 만주군 중위 박정희가 일제 패망과 한반도 해방이라는 뜻밖의 소식을 접한 것은 1945년 8월17일이었다. 만주군은 일본 관동군의 통제를 받았고 일본군 장교가 직접 지휘하기도 한 ‘황군’이었다. 


 일제 패망 소식을 들은 박정희는 같은 부대에 있던 만주군관학교나 일본육사 선배들인 신현준 상위(해병대 사령관, 모로코 대사 지냄)와 이주일 중위(5·16 쿠데타 후 최고회의 부의장, 감사원장 지냄) 등과 함께 북경으로 갔다. 이들이 9월21일경 북경에 도착했을 때는 그 주변지역 일본군에 복무하던 많은 한국인 청년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군국주의 체제에서 더 출세하기 위해 교사직을 버리고 황군에 가담한 박정희와는 처지가 전혀 다르게 대부분 강제 징용군으로 끌려 온 이들이었다. 


당시 충칭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국에서 일본군에 복무하는 10여만명의 한국 청년들을 광복군으로 편입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박정희가 도착한 베이징에는 최용덕을 광복군 지대장으로 한 북평 잠편지대가 설치됐다. 박정희는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광복군에 들어간다. 그의 생애에 첫 번째 큰 변신이었다.


일본군에 학도병으로 징용당한 장준하는 일본의 패망이 보이지 않던 1945년 1월 부대를 탈출한다. 그는 중국 장쑤성 쉬저우에 주둔하던 일본군 부대를 벗어나 윤경빈 등과 함께 무려 6000리 길을 석 달 이상 걸어서 충칭 임시정부에 도착했다. 그는 광복군에서 먼저 합류해 있던 김준엽과 만나 평생 동지가 되기도 했다. 


장준하는 광복군에서 김준엽과 함께 미국의 아시아지역 전략정보기구인 OSS에 파견돼 특수부대원 훈련을 받는다. 연합군이 한반도에 진주하기 전 침투해 민중 항일운동을 조직하고 일본 측 요인 암살과 주요 시설 파괴를 담당하는 특수전 요원이었다. 그러나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과 이범석 광복군 참모장이 미군 측과 합의한 이 특수전은 실행되지 못했다. 


1945년 8월 초 장준하가 소속된 광복군 국내 정진대가 훈련을 마치고 막 작전을 개시하려 할 무렵 8월6일과 9일 미국은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한다. 그러자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준비했고 미국 등 연합국은 한반도를 38도선의 남반부와 북반부로 나누어 분할 점령한다는 합의를 마련했다. 임시정부와 광복군은 연합군의 일원으로 전투에 참가하고 발언권을 행사할 기회를 잃고 만 것이다. 1945년 11월 장준하가 김구 주석의 수행비서로 입국했을 때는 미군정이 남한을 통치하고 있었다. 미군정 당국은 임시정부나 김구의 주석직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 장준하는 월간 ‘사상계’를 발행하는 등 출판·언론사업에 투신한다. 


한편 박정희는 광복군과 함께 입국한 후 조선경비사관학교 2기로 입교해 국군 장교의 길로 들어선다. 그러나 그의 둘째 형인 박상희가 1946년10월 구미지역에서 농민봉기를 주도하다가 경찰 토벌대에 사살되는 사건이 그를 또 한번의 변신으로 몰아넣었다. 박상희의 절친한 친구로 남로당의 군사부 책임자인 이재복이 박정희에게 남로당 가입을 권유한다. 거기다 1946년 10월 당시는 남로당을 중심으로 한 좌익계가 정국을 주도하고 있었다. 박정희는 집권 가능성이 큰 남로당에 입당하고 군내 남로당 프락치가 됐다. 


당시 박정희가 소속한 남조선국방경비대의 주요 임무는 좌익계열에 의한 폭동을 진압하는 일이었다. 그런 조선경비대의 장교가 대립적인 공산주의 남로당에 가입한 것은 변신을 넘어 ‘반란’이 아닐 수 없었다. 실제 당시 조선경비대에 침투한 남로당 조직은 1948년 한 해만 제주 4·3 사건, 10·19 여·순반란사건, 11·2 대구반란사건 등 일련의 사건들을 일으켰다. 박정희는 여·순반란사건으로 체포된다. 그러나 박정희는 여기서 군내 남로당 프락치 수백명의 명단을 진술한 뒤 풀려났다. 이 또한 박정희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변신으로 꼽힌다. 박정희의 수차례에 걸친 변신은 최소한의 철학·인생관과 관계없는 권력욕과 처세술의 발로였다. 1975년 일본군 출신 권력자 박정희는 극악한 유신독재자였고 광복군 장준하는 그것을 준엄하게 비판하는 언론인이며 야권의 지도자였다. 자신의 출세와 권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박정희였기에 그 하수인들인 중앙정보부가 1973년 8월 김대중을 납치, 수장하려 기도하지 않았던가. 그로부터 2년 후인 장준하의 의문사 때도 유일한 목격자가 중앙정보부와 접촉선이라는 진술이 나왔다. 


1975년 장준하, 의문의 죽음 (경향신문DB)


박정희의 유신독재는 고문, 테러, 의문사와 같은 체제폭력으로 유지됐다. 체제폭력에 대해서는 국가가 나서서 제대로 진상을 규명할 의무가 있다. 역사적 정의가 결국 살아 움직인다는 사실을 반드시 입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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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의원이 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새누리당 후보로 확정됐다. 박 의원은 어제 당내 경선 개표 결과 84%를 득표했다. 압도적 1위다. 이로써 그는 한국 정치 사상 처음으로 유력 정당의 여성 대통령 후보가 됐다. 승리한 박 후보에게 축하를, 선전한 김문수·김태호·안상수·임태희 경선후보에게 위로를 보낸다.


새누리당 경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박근혜 대세론’이 지배했다. 이변도 드라마도 없이 조용히 치러졌다. 투표율(41.2%)은 전신인 한나라당을 포함해 새누리당의 대선후보 경선 중 가장 낮았다. 반면 박 후보의 득표율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본선은 다를 것이다. 장외 주자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지지율 선두를 다투고 있고, 민주통합당 유력주자인 문재인 의원과의 지지율 격차도 좁혀지고 있다. 박 후보는 이제 대세론이라는 보호막을 떨치고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야 한다.


(경향신문DB)


박 후보는 수락연설에서 “이념과 계층, 지역과 세대를 넘어,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모두가 함께 가는 국민 대통합의 길을 가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다짐이 수사에 그치지 않으려면 역사 인식부터 새롭게 해야 할 것이다. 박 후보는 5·16을 두고 “쿠데타가 아니며, 나라 전체가 공산화될 수 있는 위기에서 나온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어제도 “과거로 자꾸 가려고 하면 한이 없다. 미래지향적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도자의 미래비전은 과거에 대한 평가, 역사에 대한 인식의 토대 위에 형성된다. 집권여당의 대선후보가 된 이상 특정인의 딸로서가 아닌, 국가지도자로서의 역사관을 보여줘야 한다. 정수장학회 사회환원 문제나 장준하 선생 타살 의혹에 대해서도 전향적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박 후보가 오늘의 위치에 오른 자산은 ‘원칙’과 ‘신뢰’의 이미지다. 하지만 4·11 총선 돈 공천 의혹에 대처하는 자세는 원칙주의자로서의 면모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는 당내에 정치쇄신특별기구를 설치해 공천비리를 뿌리뽑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제도 개혁이 아니다. 기존의 진상조사위조차 파행을 빚고 있는데 새로운 기구를 만든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총선을 지휘한 만큼 진솔한 사과를 하는 게 우선이다.


박 후보는 정책 변화와 가족 문제에 대해서도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2007년 경선 당시 ‘줄·푸·세’로 대표되는 감세·성장론을 내세우다 최근 ‘경제민주화’로 전향했지만 변신의 근거를 제대로 밝힌 적이 없다. 지금도 법인세를 낮춰야 한다며 경제민주화 기조와 배치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핵심정책의 모순적 요소는 정리해야 마땅하다. 동생 박지만씨와 올케 서향희 변호사를 둘러싼 의혹도 적극적으로 해소해 나갈 필요가 있다. 경선 과정에서 빚어진 ‘불통’ ‘사당화’ 논란을 거울삼아 당내 민주주의 회복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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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선 논설위원


 

민주통합당의 존재감이 좀체 되살아날 기미가 없다. 대선이 4개월도 남지 않았으나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은 ‘마이너리그’를 면치 못하고, 이를 타개할 만한 후보들이나 당 지도부의 의지도, 능력도 안 보인다. 후보들은 참여정부의 책임론과 같은 과거 타령을 일삼고, 당은 여당을 겨냥해 삿대질을 해댈 뿐 미래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이대로는 상대의 실수에 따른 반사이익조차 챙기기 힘든 지경이다. 우연한 대반전의 계기가 찾아들 성싶지도 않다. 제1 야당이 후보도 내지 못하는 미증유의 대선이 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현실이 돼 가는 것 같다. 총체적 난국이다.


 

민주, 오픈프라이머리 거리 홍보 (경향신문DB)



그 한가운데 선거 전문가를 자임하는 6선 관록의 이해찬 대표가 있다. 그가 국민의정부 탄생과 참여정부 출범의 주역 중 한 사람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다. 문제는 그가 과거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새삼 거론하기조차 민망한 대선후보와 당 대표, 원내대표 후보들 간 담합이 단적인 예다. 그 일로 민주당의 대선 밑그림이 담합 굴레에 묶여 버렸다. 후보 단일화를 통해 야권 표를 긁어모으는 제2의 노무현 만들기가 그의 대선 방정식일 터이다. 하지만 ‘노풍’ 껍데기만 빌렸을 뿐 내용을 채우는 데 실패했다. 무슨 일을 모색해도 친노 대 비노 대결 구도다. 2002년 정치공학으로 2012년 대선을 바라본 결과다. 스스로도 경선 비책을 물으면 당이 후보를 앞서 나갈 수 없다고 한다. 속수무책이라는 실토다. 이 대표의 원죄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풍부한 경륜이나 정보력, 관리 능력에서 정평이 났다. 노회한 정객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에도 불구, 의원들이 그를 원내사령탑으로 택한 이유다. 그가 방탄국회 논란을 자초했다. 패착이다. 검찰의 표적 수사라는 그의 말을 믿고 싶다. 그럴수록 당당하게 맞서야 했다. 뒤늦게 자진출석했지만 실기했다. 정치적 사건은 정치적으로 맞대응하면 휘말린다. 그를 지켜줄 수 있는 건 국민이다. 불체포특권도, 동료 의원도 아니다. 역풍이 만만치 않다. 19대 국회 개원 지연에 대한 온갖 비판을 감수하면서 얻어낸 민간인 사찰 국정조사나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특별검사제 도입, MBC 장기파업에 대한 국회 문방위 차원의 청문회가 모두 날아갈 판이다. 국정을 감시해야 할 제1 야당, 나아가 원내대표라는 그의 책임이 막중하다.


문재인 경선 후보는 당내에서 변함없는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지지율에 확장성이 없다. 다른 데서 원인을 찾을 일이 아니다. 자신이 문제다. 경선 승리를 의식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난데없이 공동정부론을 제안하면서 발목이 잡혔다. 상호 보완을 의도했겠지만 한쪽 지지율이 오르면 상대는 내려가는 시소 게임을 하는 대체재로 자리매김하고 말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승계하고자 하는 뜻도 나무랄 수는 없다. 방법이 틀렸다. 성공한 대통령으로 치켜세우며 그 그늘에 안주하려는 모습이어선 안된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염(念)은 성공적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서민의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그의 뜻과 불행한 죽음이 겹쳐진, 그래서 가슴을 아리게 하는 그 무엇이다. 그런 문 후보의 태도가 경선 자체를 과거 타령으로 만들어버렸다. 정작 이종걸 최고위원의 ‘그년’ 발언을 두고는 사과를 종용한 후보가 단 한 명도 없다. 후보들이 국민들을 쳐다보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박영선·이인영 의원을 비롯한 소중한 인재들은 어디서 뭘 하는가. 경선에서도, 당직에서도 자유로운 두 사람에게 하는 일이 없어선 곤란하다. 그들은 당 지도부가 흥행 차원에서 경선 실시 1년 이내에 최고위원을 지낸 인사들은 참여할 수 없도록 한 당헌 변경까지 검토하면서 역할을 기대했던 인사들이다. 박 의원은 모 캠프 합류설이 돌지만 당이 이 지경이면 지도부 쇄신을 촉구하고, 후보군의 분발을 독려하면서 다른 의원들도 대선 대오에 함께할 수 있도록 전면에 나서는 게 옳다. 의원 127명 중 50여명이 어느 캠프에도 이름조차 올려놓지 않은 채 구경꾼으로 전락한 현실도 이러한 분위기와 맞물려 있다고 본다. 대선은 주자들끼리 겨루는 1대1 게임이 아니다. 후보와 당의 역량을 결집해야 하는 총력전이다.


민주당의 추락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사람들, 변화를 바라며 대선을 기약하던 사람들에 대한 배신이다. 민주당의 상징성을 감안하면 민주진보 진영의 패퇴라고 할 수도 있다. 당장 미래 비전을 겨루는 경쟁에 나서야 한다. 반향을 낳은 손학규 후보의 슬로건 ‘저녁이 있는 삶’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슬로건은 중산층과 서민의 최대 관심사인 노동과 복지, 교육 문제의 해결을 함축한다는 데서 그 힘이 나온다. 노동시간이 단축되지 않으면, 사회안전망이 뿌리 내리지 않으면, 교육 현실이 달라지지 않으면 ‘저녁이 있는 삶’은 불가능하다. 왜 이 지경인가에 대한 성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 미래 건설에 대한 확고한 비전이 절실한 때다. 민주당은 지금 대선 승리를 꿈꾸는가. 대변신이 없는 한 들러리가 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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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오늘 전당대회를 열어 12월19일 대통령 선거에 나설 후보를 선출한다. 모두 짐작하다시피 박근혜 의원의 당선이 확정적이다. 박 의원 경선캠프에선 득표율이 너무 높게 나와 ‘추대대회’로 비칠까 염려할 정도라고 한다. 관심은 오히려 박 의원이 후보수락연설에 어떤 메시지를 담을지에 쏠리고 있다.


어제 박 의원 캠프의 핵심 관계자는 “이번 경선 과정에 크게 세 번의 고비가 있었다”면서 비박근혜(비박)계 김문수·김태호·임태희 경선 후보의 보이콧 논란을 두 번째 고비로 꼽았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다 잘 (대응)해서 넘어갔다”며 안도했다고 한다. 실제 비박 주자 3인이 ‘돈 공천’ 파문과 관련해 경선일정에 불참한 것은 경선 전체를 파행으로 몰고 갈 만한 중대 사태였다. 당시 지도부와 후보들은 연석회의를 열어 당 차원의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황우여 대표가 책임진다는 데 합의했다. 지난 5일 상황이다.


새누리당 공천 금품수수 의혹 진상조사위원회 (출처: 경향DB)


내분이 봉합된 뒤 보름간 벌어진 일을 짚어보자.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돼 5차례 회의를 열었지만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돈 공천 의혹의 당사자인 현기환 전 의원과 현영희 의원은 출석을 거부하다 제명됐다. 조사받을 필요가 없는 당 밖 사람이 됐다는 얘기다. 4·11 총선 당시 공천작업에 깊이 관여한 권영세 전 사무총장도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급기야 지난 주말 임태희 경선 후보 측 김기홍 조사위원은 “당에 진상조사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위원직을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박 의원의 최측근이자 조사위원인 김재원 의원이 “(박근혜) 책임론을 얘기하는 건 정권을 민주통합당에 갖다주자는 것”이라고 했을 때부터 예견됐던 사태다. 도대체 이런 진상조사위는 왜 만들었는가. 역시 비박 주자들을 경선에 복귀시키기 위한 당근에 불과했던 것인가. 앞서 황 대표는 돈 공천 의혹과 관련해 자신이 책임져야 할 수준을 두고 “당이 인지했거나, 비호했거나, 연관이 있을 때”라며 선을 그었다. 사건이 개인비리로 드러나면 대표직을 유지하겠다는 의미다. 연석회의 합의사항은 모두 휴지조각이 돼버린 셈이다.


선거를 일컬어 민주주의의 꽃이라 한다. 새누리당은 이번 대선후보 경선이 이러한 정의에 부합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돈 공천 의혹이라는 희대의 스캔들을 규명하는 문제까지 ‘박근혜 후보 만들기’란 목표 아래 종속시킨 까닭이다. 진상조사위 파행은 새누리당의 한계를 다시 한번 드러내는 계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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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 | 전 독립기념관장


“여러 번 낙선했지만 IMF사태를 보고 하늘이 나를 이때 쓰려고 예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제15대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후보는 마지막 TV합동토론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외환위기로 나라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수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다. IMF체제는 경술국치에 빗대 제2국치, 6·25전쟁에 빗대 제2국란으로 불렸다. 정부 곳간에는 달랑 37억달러가 남아 있었다. 국가부도 일보 직전이었다.


당선자 신분으로 IMF외환위기 극복에 나섰다. 2년만 시간을 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했다. 그러나 국가위기를 불러온 세력은 총리인준도 거부하면서 발목을 잡았다. 청와대 주인만 바뀌었을 뿐 국회·공직사회, 검찰, 족벌신문은 여전히 반DJ로 똘똘 뭉쳐 있었다. 개혁은 쉽지 않았다. 그런 속에서 수십 년 닦고 준비해온 정책을 펴나갔다.


민주주의, 시장경제, 생산적 복지가 국정의 3대 목표였다. 그는 이미 14년 전에 복지를 내걸었다. 지금 망가질 대로 망가진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해 노사정, 의문사, 제주4·3, 민주화 등 각급 위원회를 설치하고, 국민기초생활보장제 등 취약계층의 권익신장과 국가폭력에 희생된 아픈 역사의 치유에 나섰다.


 

김대중 대통령의 묘. (출처: 경향DB)



햇볕정책을 통해 대립과 증오로 살벌해진 남북관계를 풀고, 마침내 6·15선언으로 화해협력의 길을 텄다. 분단구조와 냉전체제로 기득권층이 된 수구세력의 완강한 저항이 따랐지만 민족과 세계를 상대로 평화정책을 추진했다. 금강산이 열리고 이산가족상봉이 잦았다. 국제사회가 평가하여 노벨평화상이 주어졌다. 군나르 베르예 노벨위원회 위원장이 “자기나라 대통령에게 노벨상을 주지 말라는 로비는 처음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훌륭한 궁수는 과녁보다 약간 높여 화살을 날린다고 한다. 김대중이 그랬다. 1970년대 초 ‘멸균실’ 수준의 냉전시대에 4대국보장론, 남북유엔동시가입, 동구권 수교를 제창하고, 박정희에게 쫓긴 망명지에서 ‘선민주 후통일’의 원칙, 5공과 맞서면서 ‘비반미·비용공·비폭력’의 3비(非)정책, 용공으로 몰리면서도 ‘1동맹 3우호외교론’을 폈다.


서거하기 전 <평전>의 몇 가지 확인을 위해 뵀을 때 ‘개념어’를 물었다. 망설이지 않고 “행동하는 양심”을 들었다. 망명 시절 펴낸 책이름, 3·1명동구국선언사건의 ‘상고이유서’ 제목, 6·15선언 9주년 기념강연 연제도 “행동하는 양심”이었다. 뒤이어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가 따른다. 거창한 것도 아니다. 권력을 감시·비판하고 좋은 정당, 좋은 신문, 좋은 정치인을 가려내고 투표할 때 양심껏 하고, 권력이 못된 짓을 할 때 항의하고 하다못해 담벼락을 향해서라도 소리치라는 것이다.


그가 평생 추구한 목표는 민주주의와 한반도평화였다. 이 때문에 혹독한 고난과 음해가 따랐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올려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4년반 동안 민주주의는 반동기를 겪고 한반도평화는 6·25 이래 가장 위험한 상태에 이르렀다. 서민생계를 비롯해 국가경제는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서민경제와 민주주의, 한반도평화를 송두리째 망친 보수냉전세력이 다시 집권하면 국가의 재앙이 될 것이다.


김대중은 역사에서 자신이 서 있어야 할 자리를 아는 흔치 않은 인물이었다. 많은 정치인들이 일국주의(一國主義)에 머무를 때 국제사회에 눈을 돌렸고, 모두 국내정치에 몰두할 때 민족사에 비중을 두었다. 흡수통일 배제, 무력사용 불용, 화해협력 추진의 대북정책은 어느날 비서들이 써 준 시험 답안지가 아닌 ‘30여년 숙성’된(셀리그 해리슨) 것이다. 정직한 역사는 소중한 것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고 했다. 서거 3주기를 맞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원한 안식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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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규 | 정치부 차장


11세기 영국은 북유럽 바이킹 데인족 출신 왕 ‘크누트 1세’의 폭정에 시달렸다고 한다. 런던에서 가까운 코번트리 영주 리어프릭(Leofric)도 데인족이었다. 그의 부인 고다이바(Godiva)는 토착민인 앵글로색슨족으로, 농민들의 고달픔에 가슴 아파하며 남편에게 세금을 깎아달라고 요청했다. 리어프릭은 “알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라. 그러면 세금 감면을 고려해보겠다”고 대답했다. 


고다이바는 번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농민들은 영주 부인의 헌신에 감동받았다. 그녀가 마을을 도는 순간 그 누구도 바깥을 내다보지 않기로 했다.


고다이바는 벌거벗고 말을 탄 채 마을을 돌았다. 코번트리는 쥐죽은 듯한 적막과 의도적 무관심에 휩싸였다. 이 모습은 존 콜리어라는 19세기 신고전주의 화가가 그린 작품 ‘고다이바 부인’에 잘 묘사돼 있다. 고개를 푹 숙인 고다이바는 흰 알몸으로 붉은 마구를 씌운 말을 타고 간다. 문과 창문은 모두 굳게 닫혀 있다.


모든 일에는 곡절이 있는 법. 양복 재단사 톰은 성적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커튼을 들췄다. 알몸을 보려는 순간 그는 눈이 먼다. 신의 징벌이다. ‘관음증 환자’를 뜻하는 ‘Peeping Tom(엿보는 톰)’이 예서 유래했다. 이는 역으로 고다이바 헌신의 숭고함과 치열함을 보여준다.


이 일화의 건너편에 한국 유력 정치인이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경선 후보다. 박 후보는 14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 롤모델로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을 꼽았다. “파산 직전에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었다. 불행을 겪었기 때문에 남을 배려할 줄 알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국정을 이끌었다”는 이유에서다.


그럴 법도 하다. 어머니 앤 불린의 참수형, 언니 메리 1세 사후 25세에 즉위한 엘리자베스 1세는 유럽 최강국인 에스파냐 왕 펠리프의 구혼을 거절했다. “나는 국가와 결혼했다”고 선언하고 45년간 영국을 통치했다.


업적은 눈부시다. 화폐제도를 통일하고, 물가를 잡았다. 빈민구제법을 실시하고 중상주의를 채용했다. 해상왕국 기초도 이때 이뤄졌다. 위대한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 철학가이자 사상가인 프랜시스 베이컨, 시인 에드먼드 스펜서의 활약 등 가히 르네상스를 꽃피웠다. 요정 여왕(Faerie Queene)으로 불리던 그녀는, 처녀 여왕으로 생을 마감했다.



마르쿠스 헤라르츠가 그린 초상화는 절대군주의 위엄을 잘 나타낸다. 근엄한 흰색 궁정복을 목까지 채워 입고 있다. ‘그녀는 주지만 바라지 않는다’ ‘그녀는 보복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다’ ‘되갚아줄 경우에 그녀는 권력을 증가시킨다’는 라틴어 명문이 초상화에 적혀 있다.


박근혜 후보도 20대 초반에 퍼스트 레이디를 경험하고, 결혼하지 않았다.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와 생애맞춤형 복지 등은 엘리자베스 1세의 빈민구제법 등 국민 사랑에 닿아 있다. 그러면서 여왕의 해상무역 확대, 중상주의는 새누리당의 주요 기조인 성장정책과 맞물린다.


엘리자베스 1세는 임종 전 마지막 의회 연설에서 “나보다 강하고 현명한 군주는 과거에 있었고 앞으로 있을지 모르지만 나만큼 백성을 사랑하는 군주는 이제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아무리 백성을 사랑했어도, 결국 군림하고 절대권력을 휘두른 것이다. 실제 엘리자베스 1세는 국왕을 종교상의 최고권위로 인정받도록 하고, 전 국민에게 국교회 의식과 기도서 독경을 강제했다. 의회에는 당근과 채찍을 함께 사용하며, 강력한 사법·행정기능을 가진 추밀원 중심의 정치를 했다.


그렇잖아도 ‘공주’로 불리던 박근혜 후보는, 온몸을 호화로운 관복으로 꽁꽁 싸매고 추밀원 등 소수 의견을 수렴하며 절대권력을 누리는 여왕을 꿈꾸는 듯하다. 


하지만 21세기 시민이 원하는 리더십은 내리사랑하는 절대군주보다는, ‘음험한 엿봄’조차 저어하지 않고 모든 것을 벗어던진 채 물심으로 헌신하는 고다이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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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선수들의 메달 색깔은 다르지만 땀의 색깔은 모두 같다.” 김제동의 이 명언에 문득 질문이 하나 떠오른다. 그럼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이유는 뭘까? 노력만으로 안되는 것이 승부의 세계다. 땀을 어떻게 흘리느냐가 중요하다. 성패는 노력의 양보다 그 질에 의해 결정난다. 이런 점에서 민주통합당 후보의 캠페인을 보면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모두 질적 전환을 모색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대로 가면 민주당 후보로 누가 뽑히더라도 안철수 원장이나 박근혜 후보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다. 더 강해져야 한다.


후보는 여럿이지만 사실 민주당 경선은 지금까지 3파전으로 진행됐다. 문재인 후보가 지지율에서 제법 앞서고, 손학규·김두관 후보가 결선투표에 진출할 2등을 놓고 각축을 벌이는 구도였다. 그런데 김두관 후보가 처음 예상했던 만큼의 기세를 보여주지 못하고 주춤하는 동안 손학규 후보에게 상당한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3파전이 2강 구도로 바뀔 조짐이 보이고 있는 셈이다. 처음 기대했던 역동적 3파전의 구도가 어렵다면 이제 엎치락뒤치락하는 2강 구도가 되느냐 여부가 흥행 포인트다. 이런 점에서 민주당 경선의 성패는 손학규 후보의 선전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손 후보의 상승세는 아직 미풍일 뿐이다. 민평련 투표에서의 1등이나, 민주당의 정체성을 이루는 햇볕정책의 설계자인 임동원 전 장관의 캠프 합류 등이 손학규 후보의 상승을 예감하게 한다. 그러나 아직은 그럴 수 있는 구도가 열렸다는 것일 뿐 본격화된 것은 아니다. 손 후보가 지금까지 하던 대로만 한다면 뚜렷한 변화를 일궈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실 선거 초반 캠페인을 내용적으로 주도한 것은 손 후보였다. 그는 ‘저녁이 있는 삶’이란 슬로건을 히트시켰고, 경선의 초반 쟁점을 주도하는 이니셔티브를 보여주었다. 문재인 후보가 친노라는 세력 기반, 부산·경남이라는 지역 기반을 바탕으로 ‘파워 플레이’를 펼친 반면 손 후보는 차분하게 정책을 제시하는 ‘콘텐츠 플레이’에 주력했다. 이쯤 되면 여론이 움직이는 것이 상례다. 그러나 손 후보의 경우엔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지지율 상승을 추동할 핵심집단이 없기 때문이다. 손 후보는 이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백범 유족과 얘기하는 손학규전대표 (출처: 경향DB)

손 후보의 지지율이 움직이지 않는 다른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민주당 지지기반의 골간을 형성하는 호남과 20~30대에 제대로 소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손 후보에 대해 “난세를 떠안을 수 있을 것 같은 임팩트”가 부족해 “사람들의 마음을 쫙쫙 빨아들이는” 데 한계가 있다고 했다. 손 대표에 대한 호남의 정서는 그가 대표 시절 보여준 리더십에 다소 실망한 데다 대체로 이길 사람에게 전략적으로 힘을 몰아주는 ‘전략적 투표(strategic voting)’ 경향을 갖고 있어 지지율이 낮은 손 후보에게 관심을 가질 동인이 별로 없었다. 호남 여론이 적극 호응할 메시지도 없었다. 20~30대는 다른 세대보다 감성적 어필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런데 손 후보의 정체성은 젊음이나 신선함보다 안정감을 특징으로 한다. 즉응적 공감이 어렵다. 말하는 방식이나 풍모에서 손 후보는 20~30대가 열광할 스타일이 아니다. 외모는 부드럽고, 말투엔 모가 없고, 메시지엔 각이 없다. 이런 미스매치로는 변화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민주당 본경선은 이미 시작됐다. 이제는 그야말로 진검승부다. 후보들이 집중해야 할 것은 일반 국민보다는 민주당 지지층과 경선 참여자들에게 먹히는 캠페인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타깃이 분명한 메시지와 정책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미국 선거의 불문율 중 하나는 예비선거에서는 당 지지층의 선호와 열망에 호응하고, 본선에서는 중도로 이동하라는 명제다. 후보들이 새겨볼 만한 말이다. 특히 손 후보의 경우 성급하게, 또 과도하게 언급해온 중도 담론의 메시지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


또 하나 후보들이 고민해야 할 대목은 민주당과 새누리당 간에 선명한 정책 쟁점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전선이 형성돼야 민주당도 살고, 민주당 후보도 산다. 그런데 이 전선은 정책의 문제라기보다 리더십의 문제다. 야심만만한 정책을 만들어서 툭 던진다고 해서 전선이 예각화되는 것은 아니다. 쟁점의 형성은 정책의 내용 문제라기보다는 그 정책을 어떻게 다루고, 어디에 방점을 찍고, 기동성 있게 차이를 드러내 보이는 노력, 즉 정치적 리더십의 문제다. 지금 야권엔 제대로 된 리더십은 없고 ‘골목대장’의 핏대만 눈에 띈다. 


손학규 후보가 2강 구도를 형성하려면 무엇보다 그냥 한 사람의 후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 야권의 대응을 주도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민주당의 변화와 야권의 재편을 추동하고, 야권이 새누리당과 차별되는 정책대안을 제시함으로써 보통사람의 눈에도 ‘쉽고 간명하게’ 와 닿는 전선을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한다. 그럼으로써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날카로운 대립각을 형성해야 한다. 손 후보도 그렇고 민주당 후보는 이것을 놓고 치열한 리더십 경쟁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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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 중앙대 교수·정치학


전격적인 독도 방문, 그리고 바로 이어진 일왕에 대한 강렬한 경고성 발언. 지난 일주일은 실용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 문제에 대해서 이례적으로 적극적인 움직임을 이어간 기간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축구팀의 한·일전 승리에 비교하자면, 국민들의 반응은 미지근할 뿐이었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아쉬울 수도 있는 대목이지만, 사실 올림픽 전후의 스포츠 애국주의를 넘어설 만한 카드는 많지 않다.


국민들의 반응은 미지근했지만,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차기 정부를 이끌어야 하는 예비후보들에게는 몇 가지 의미심장한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하나는 흔히 알고 있지만 쉽게 인정하기 어려운 현실, 또 하나는 차기 정부가 씨름해야 할 장단기 과제. 먼저 인정하기 어려운 현실이란, 차기 대통령의 임기가 실질적으로는 길어야 3년 정도에 그칠 것이라는 점이다. (다음 국회의원 선거가 2016년 초에 있으므로) 이명박 대통령도, 그 이전의 노무현 대통령도 고통스럽게 보여주었듯이 단임제 임기 후반에는 커다란 역사적, 정치적 명분을 갖는 정책이라 할지라도 국민의 관심과 지지를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5년 전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비록 임기 마지막 해이기는 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굵직한 합의들을 이끌어냈었다. 하지만 당시 여당의 무관심 속에서 부속합의서 등의 국회 동의가 실종되면서 정상회담의 성과는 대부분 표류하고 말았다. 달리 말하자면, 연말에 선출되는 새 대통령의 시간은 길어야 3년이며 이 기간에 어떤 정책부터 어떻게 언제 처리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담은 실행계획이 미리 준비되어야 한다. 또한 유권자들은 이를 미리 검토하고 검증할 기회를 가져야만 한다.


독도에 도착한 이명박 대통령 (출처: 경향DB)



독도 방문은 또한 차기 지도자에게 몇 가지 중대한 생각거리를 일깨운다고 할 수 있다. 우선 모든 외교문제가 독도 이슈처럼 단순하지는 않다는 점이 상기되어야 한다. 사실 독도와 같은 영토문제, 그리고 중국과 벌이는 역사논쟁 등은 국내적으로 커다란 지지와 합의를 끌어내기에 용이한 이슈들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국민적 지지를 뒤에 업고 상대국과의 줄다리기에만 신경쓰면 된다는 점에서 이 문제들은 간단한 일차방정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차기 대통령이 마주할 외교정책 이슈의 대부분은 최소한 이차방정식(국제정치학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투레벨 게임)으로 구성되어 있다. 달리 말해 이라크 파병이나 한·미 FTA, 한·일 FTA 등에서 드러나듯이, 중대한 외교 이슈들은 필연적으로 국내에서 심각한 대립을 불러 일으키게 마련이다. 2004년 이라크 추가파병 당시에 우리사회는 극심한 분열을 경험한 바 있고, 이러한 대외관의 분열은 이명박 정부 시기에 한·미 FTA의 비준과정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결국 한국 외교는 안으로는 보수-진보의 분열과 대립을 조정하면서 합의를 도출해야 하고 동시에 밖으로는 국가이익의 최대화를 위해서 미국, 일본, 중국의 행정부와 길고도 힘든 줄다리기를 해야만 한다. 올해 대통령 선거전에서 대외 이슈가 실종되었다고 해서, 대외관의 분열이 갑자기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잠복하고 있을 따름이다.


끝으로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우리가 이른바 ‘일본문제’라는 장기적 과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라는 숙제를 다시 한번 일깨우고 있다. 독도 이슈나 위안부 문제에서 드러나듯이, 일본의 역사 인식은 수십년째 멈춰 서 있다. 이에 대해서 숱한 설명이 제시되어 왔지만, 필자가 걱정하는 것은 ‘미국의 시대’의 우등생으로서의 일본은 과연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냉전 이후 미국적 질서 속에서 독자적 사고와 행동을 접어둔 채 자신만의 경제 성취에 몰두해 온 일본 사회는, 미국의 시대를 넘어서는 새 환경 속에서 새로운 좌표를 스스로, 그리고 평화 지향적으로,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일본 사회가 이 문제를 풀지 못하는 한 한·일 간 영토문제, 역사문제는 제자리걸음일 수밖에 없고, 여기에 우리 외교의 긴 고민이 놓여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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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어제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4·11 총선 ‘돈 공천’ 파문의 당사자인 현기환 전 의원에 대해 제명을 확정했다. 현영희 의원 제명안도 추인했으나 그는 현역 신분이어서 의원총회에서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어야 최종적으로 제명된다.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현 전 의원을 제명한 것은 대선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박근혜 책임론’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새누리당이 수권정당의 자격을 입증하려면 돈 공천 문제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함을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그 첫걸음은 철저한 진상조사이며, 이후 조사결과에 따라 연루된 인사들을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의원 주변에서 걸러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새누리당은 그러나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당 진상조사위원회는 공전을 거듭하는데, 지도부는 현기환·현영희 두 사람을 제명하는 데만 매달렸다. 앞서 새누리당은 제수 성추행 의혹을 받은 김형태 의원과 논문 표절 논란에 휩싸인 문대성 의원을 탈당 형식으로 당에서 내쫓은 바 있다. 두 사람은 의원직을 버젓이 유지하고 있지만 새누리당은 소속 의원이 아니라며 나 몰라라 하고 있다. 현 전 의원 제명 역시 전형적인 ‘새누리당식 꼬리 자르기’의 재탕인 셈이다.


윤리위 출석한 현기환 전의원 (출처: 경향DB)


박근혜 의원은 어제 경선후보 합동연설회에서 돈 공천 파문과 관련해 “정치개혁을 위한 특단의 조치를 만들 것”이라며 “부패와 관련해서는 누구도 예외가 없을 것이고, 권력형 비리는 더 강력하게 처벌받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강도 높은 쇄신조치로 돈 공천 파문을 정면돌파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박 의원의 발언은 원칙적으로 옳다. 그러나 일의 선후가 바뀌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지금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돈 공천 의혹의 진상을 낱낱이 규명하고 관련자들을 단죄하는 것이다. 박 의원 본인이 총선을 지휘한 책임자로서 진솔한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러한 선행조치 없이 제도적 개혁 문제부터 들고 나온다면 공허한 책임회피론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돈 공천 의혹이 불거진 것은 법과 제도가 미비해서가 아니라, 특정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사당화(私黨化) 탓임을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보름 전 돈 공천 파문이 터진 이후 새누리당 인사들은 입만 열면 ‘위기’를 언급하곤 했다. 하지만 파문에 대처하는 방식을 보고 있노라면 위기를 실감하는 것 같지 않다. 의혹이 불거진 이후 당 차원에서 나온 조치라고는 윤리위 회부, 탈당 권유, 제명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현기환·현영희 두 사람을 당에서 떼어놓는 데만 집중할 뿐 진상 규명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렇지 않다면 당 차원의 진상조사위를 만들어놓고 당사자 한 번 부르지 못한 채 허송세월하겠는가. 새누리당은 “이번 사태를 개인(비리)의 문제로 푼다면 당이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의 경고를 그냥 흘려버리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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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홍욱 정치부 기자


민주노총이 지난 14일 새벽 통합진보당 지지철회를 공식화했다. 2000년 1월 창당한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며 노동의 정치세력화를 꾀했지만, 이 실험이 실패로 귀결됐음을 선언한 것이다. 민주노총은 곧바로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위한 모색에 들어갔다. 하지만 내부의 복잡한 사정을 감안하면 쉽게 결론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무엇이 잘못됐기에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과 결별했나. 외형적 계기는 통합진보당 구주류 당권파 때문이다. 총선 비례대표 부정경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 조준호 전 공동대표를 폭행하는 모습에서 더 이상 함께할 관계가 아니라고 봤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당과 노동이 한몸이라고 했던 지난 12년이란 시간을 되짚어보면 ‘동반 성장’은 아니었다.


민노총 갈림길에 서다 (출처 :경향DB)


당은 노동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기에 적은 의석으로 늘 힘에 부쳤을 게다. 그보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로 이어지면서 사회적 양극화 그늘이 넓고 짙어졌지만 민생 문제 해결에 당력을 총집중하지 않았다. 소수정당으론 어찌할 수 없으면서도 통일 문제 등 거대 담론을 부여잡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민주노총은 대기업 노조, 정규직 중심의 활동으로 비정규직 등 더욱 소외된 이들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그 결과, 당과 민주노총 모두 노동을 정치 주체로 세우지 못했다. 19대 총선에서 진보정당이 강세지역인 울산·창원에서 패배한 것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동계 다른 한 축인 한국노총을 보자. 한국노총이 지난해 12월 민주통합당 창당에 공식 참여하면서 시작한 ‘노동정치’ 실험은 진행형이다. 이용득 위원장은 “우리 사회에 더 많은 행복한 전태일(노동자)을 만드는 데 이바지하겠다”고 했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


당장 내부가 갈라져 있다. 한국노총이 대의원대회를 열어 ‘민주당 참여’라는 정치방침을 재확인한 지난달 27일, 한국노총 경기지역본부가 새누리당 김문수 대선 경선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머리와 손발이 따로 노는 형국이다. 한국노총이 민주당 최고위원(이용득)과 국회의원 4명을 배출했지만, 당의 정책 결정 과정에 얼마나 조직적으로 참여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인 셈이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노동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민주당이 적극적이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최저임금 등 노동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내놨다. 문재인 대선 경선 후보는 “민주노총과 함께 하겠다”고 하고, 손학규 후보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드는 것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다. 노동계 표심을 자극하기 위한 것인지, 실제 그렇게 될지는 대선 이후를 봐야 할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이 정당정치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서민 대중의 삶을 개선하는 적극적이고 필연적인 행위 말이다. 정치참여가 노동계 일부 인사들의 정치권 진출 수단으로 머무는 것을 이제는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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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수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어제 “우리 당 소속 몇몇 의원의 후원금 관련 의혹이 부당하게 부풀려지고 있다”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국민들이 균형적 판단을 할 수 있게 불법성 여부에 대한 신속한 판단과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그는 “정치자금법상 개인은 합법적으로 후원금을 낼 수 있고 의례적 범위 내에서 다과를 기부할 수 있는데도, 후원금이나 다과를 제공받은 행위 자체가 불법으로 직결되는 것이 매우 유감스럽다”며 이같이 말했다.


머리 맞댄 새누리당 (출처 : 경향DB)


서 총장의 발언은 ‘돈 공천’ 파문으로 합법적 후원금을 받은 의원들까지 비리 의혹에 휘말리는 데 선을 긋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집권당 사무총장이 어떤 이유에서든 선관위를 향해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선관위가 4·11 총선 부정 의혹과 관련해 의원들을 고발한 것은 서 총장의 말대로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 내린 결정이다. 고발이나 수사의뢰 조치가 이뤄진 이상 개별 정치인의 행위가 불법인지는 1차적으로 검찰에서 판단할 일이다. 또한 검찰이 해당자를 기소해 재판에 넘기면 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심판을 내리게 될 것이다. 여당 사무총장이자 친박근혜(친박)계 핵심인사가 “우리 당 의원의 의혹에 대해 불법성을 신속히 판단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라”고 하는 것은 중립적 심판 역할을 해야 할 선관위에 일종의 ‘지침’을 내리는 것으로 비칠 소지가 있다.


새누리당은 돈 공천 의혹을 철저히 규명하겠다며 당 차원의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조사위 활동은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어제도 당사자인 현기환 전 의원과 현영희 의원을 불러 조사할 예정이었지만 두 사람의 출석 거부로 회의 자체가 무산됐다고 한다. 당 지도부와 친박계는 의혹의 진상을 낱낱이 파헤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 일보다 ‘박근혜 책임론’을 차단하는 데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치열한 자성과 쇄신의 노력은 보이지 않으면서 엉뚱하게 선관위에 화살을 돌려서야 되겠는가.


새누리당은 현기환·현영희 전·현 의원만 당에서 쫓아내면 만사가 제자리로 돌아갈 것으로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상처를 도려내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도록 덮는 데 불과하다. 적당히 봉합한 상처는 언제든 다시 터지게 마련이고, 그때는 더 곪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선관위를 압박하고 검찰에 기대어 두 사람 선에서 꼬리를 자른다 하더라도 잠시뿐이라는 얘기다. 지금 새누리당은 억울함을 호소할 때가 아니라 석고대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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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008년의 완벽한 반복이다. 그렇다. 통합진보당의 쇄신파가 집단 탈당 후 신당 창당이라는 분당의 길을 선택했다. 결말까지도 2008년 민주노동당의 소수파와 마찬가지로 분당을 택한 것이다. 이로써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략적 필요성에서 추진한 통합은 1년도 못 가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됐다.


이제 문제는 분당 이후이다. 주목할 것은 진보신당의 선택이다. 진보신당은 분당을 결정한 쇄신파의 한 축인 노회찬·심상정 의원 등 통합연대와 2008년 분당 이후 당을 같이해온 세력으로서 통합진보당에 대해 민주노동당의 맹주인 경기동부연합 등의 패권주의와 종북주의를 이유로 합류를 거부한 바 있다. 그리고 지난 4월 총선에서 독자노선을 걸었지만 1%대의 지지율로 정당 해산을 당하고 재창당을 준비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옛 동지들이 신당을 창당하려고 나선 이상 이들과 재결합하는 것은 상정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시나리오다. 그렇게 될 경우 향후 진보정치는 지난해 통합진보당 창당 이전과 마찬가지로 경기동부연합이 중심을 이루며 패권적이고 ‘종북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민주노동당계의 진보정당과 당내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북한에 비판적인 새 진보정당의 이분구도로 나가게 될 것이다.


제 19대 총선 선거운동 당시의 김순자 씨 (출처 :경향DB)


 하지만 이 같은 시나리오를 가로막는 변수가 있다. 그것은 쇄신파의 또 다른 축인 유시민 전 의원 등 국민참여당 계열이다. 물론 진보신당 세력이 통합진보당 합류를 거부한 것은 경기동부연합 등 민주노동당의 패권주의와 종북주의에 변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국민참여당과의 통합 역시 말이 되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국민참여당계는 정치공학적 이유에서 통합진보당에 합류했지만 그간의 정치적 행보나 정강 등을 볼 때 진보세력이라기보다는 자유주의세력이라고 봐야 한다. 


따라서 문재인 의원처럼 민주통합당에 합류하는 것이 맞다. 이 같은 국민참여당계가 쇄신파 내에서 다수파를 구성함으로써 이들이 만들 새 진보정당은 기존의 진보정당들에 비해 훨씬 우경화할 것이 확실하다. 이는 쇄신파가 최근 진보정당의 대중성을 강화해야 한다며 미군 철수, 재벌해체 등의 당 강령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혁신안을 내놓은 것이 잘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진보신당은 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제안자 모임 등 노동의 중심성을 강조하는 진보좌파세력들을 규합해 새로운 진보좌파정당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통합연대계가 국민참여당계와 갈라서지 않는 한 진보신당과 진보좌파세력이 쇄신파의 신당에 합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세 개의 진보정당이 경쟁하는 ‘진보 다당제’가 자리 잡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즉 경기동부연합을 중심으로 한 구 민주노동당 계열의 진보정당과 이들의 패권주의와 종북주의에 비판적인 두 개의 진보정당, 즉 진보적 자유주의 노선으로 우경화한 통합진보당 쇄신파의 진보우파정당과 보다 왼쪽에 위치한 진보신당 등이 만드는 진보좌파정당이 경쟁하는 구도이다.


그러나 세 번째 시나리오로 쇄신파가 독자적인 정당을 구성하는 대신 민주통합당에 합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쇄신파의 다수파인 국민참여당 계열의 강동원 의원이 이 같은 가능성을 여러 차례 시사한 바 있다. 유시민 전 대표 역시 민주노총과 민주통합당의 전면적 결합이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진보정치세력이 민주통합당으로 들어가 진보블록을 형성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피력했다. 다수파인 국민참여당계의 정치적 성격을 고려할 때, 나아가 쇄신파가 우클릭을, 민주통합당이 반대로 좌클릭을 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이 시나리오가 가장 합당하며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경우 민주통합당의 진보블록이 강화되어 민주통합당의 진보성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진보정치는 이석기 의원의 민주노동당계와 진보좌파정당의 양분구도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할 것이다. ‘통합진보당, 그 이후’는 어느 길이 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진보정치의 또 다른 격변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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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지도자가 국가와 국가 간 이해가 첨예한 현안에 대해 ‘역사상 첫 행동’에 나섰을 때는 마땅히 이후 상황을 관리할 복안을 마련해야 한다. 좋든 싫든 관계를 유지해나가면서 국익의 최대 공약수를 도출해야 하는 국가라면 더더욱 그렇다. 지난 10일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한·일 간에는 예상대로 외교적 균열의 조짐이 보이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는 자기만족적 논리에 갇혀 있다는 인상마저 풍긴다.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 제소와 독도 문제 등을 다룰 전담조직의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오는 25~26일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던 한·일 재무장관 회담을 일방적으로 연기했다. 양국 정상 간 셔틀외교 취소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에 독도 방문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소진한 청와대의 향후 대응에는 밑그림이 잘 보이지 않는다. 독도 방문 당일에는 ‘지방 순시’ 또는 환경 문제에 무게를 실었다가 이제는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사과가 없었기 때문에 방문했다고 새삼 강조하고 있다. 


독도에 도착한 이명박 대통령 (경향신문DB)


정치적 이벤트였건, 대통령이 강조한 ‘열린 민족주의’의 기형적 발현이었건, 논란을 무릅쓰고 독도방문을 단행한 이상 지금은 슬기롭게 출구를 찾아야 할 때이다. 청와대는 그럼에도 독도 방문 여론지지율이 84.7%라는 등 기왕에 성취한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만 몰입하고 있다. 일본의 향후 행보에 대해서는 대통령 스스로 “일본 측 반응은 예상했던 것”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영향력도 예전 같지 않다”는 등 외교적 관례에 어긋나는 자극적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그러면서도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대일 외교정책은 별개의 사안” “일본에서 당장은 시끄럽겠지만 외교는 외교대로 가는 것”이라는 자기충족적 결론을 내리고 있다. 기껏 언론을 통해 흘린 유화책이라는 게 독도 실효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추진해온 방파제 및 종합과학기지 건설의 백지화 가능성 정도다. 일본을 응징하기 위해 독도를 방문한 듯이 큰소리를 치면서, 실효지배 조치를 느슨하게 한다면 이 또한 자가당착적이다. 


외교에는 상대방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방문을 통해 국내정치적 효과를 보았다면, 노다 요시히코 일본 내각은 만만찮은 국내정치적 압박을 받고 있을 것이다. 일본은 1954년과 1962년에 이어 빈말에 그칠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말고도 독도 인근 해양순시선 파견, 한·일 통화 스와프 규모 축소, 정부 차원의 ‘다케시마의 날’ 선포 등 한국을 실질적으로 압박할 카드를 여럿 갖고 있다. 일본 역시 한·일 관계를 파탄으로 몰고가겠다는 결정을 하기 전에는 꺼내기 쉽지 않은 카드들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국내정치적 효과에 도취돼 분별없이 대처하다간 외교적으로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아무리 느닷없는 독도 방문이었다고 해도, 이제는 결자해지 차원에서 차분한 뒷갈망에 전력해야 할 것이다. 외교는 상대방의 의표를 찌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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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 임명을 재가했다. 청와대는 “제기된 의혹들이 업무 수행에 큰 차질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청문보고서 채택이 무산된 지 25일 만이다. 이 대통령이 야당과 시민사회는 물론이고 여당인 새누리당조차 등을 돌린 현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한 것이다. 이럴 바엔 인권위원장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왜 도입했고, 이 대통령의 인권 의식을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근본적 회의가 인다.


난감한 현병철 위원장 (경향신문DB)


이 대통령의 현 위원장 임명 강행은 정권 안보의 논리 외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인다. 비판 여론을 수용해 현 후보자를 내쳤을 경우 지지율 20%를 밑도는 정권의 권력누수가 앞당겨지는 것은 물론이고, 대안을 찾기도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했을 듯하다. 여기에다 청와대가 연임 배경 중 하나로 밝힌 북한의 인권 문제 제기 등 ‘하청 임무’ 수행에 대한 보은과 그 어떤 사회적 물의를 빚더라도 자신에게 충성한 인물은 반드시 중용하는 이 대통령의 CEO형 용인술이 결합됐을 법하다. 그런 이 대통령에게 인권위원장이 갖는 ‘각별한’ 의미가 있었을 리 만무하다.


현 위원장의 부적격 사유는 필설로 다 옮길 수 없을 정도다. 무엇보다 현 위원장은 첫 임기인 지난 3년간 인권에 역행하는 갖가지 조처와 언행으로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의 권위 있는 인권단체들로부터도 지탄의 대상이 돼왔다. 국회법 개정으로 처음 시행된 인권위원장 인사청문회에서 그는 업무 수행 능력은 고사하고, 공직자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덕목도 구비하지 못했다는 혹평을 받았다. 논문 표절과 아들 병역기피 의혹, 비민주적 인권위 운영 등은 그가 정상인으로서의 판단과 이성만 갖췄더라도 스스로 물러났어야 할 만큼 심각한 결격사유다. 그럼에도 현 위원장을 재임명한 것은 인권에 대한 이 대통령의 몰이해와 이로 인해 빚어진 인권위 모독 사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국가인권위원회의 모습은 이 정권 출범 초기 위원회가 3분의 1 토막 나면서 예고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렇더라도 이번 일은 이 대통령의 용인술이 더 이상 정상적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서고 있는 징표로 봐야 할 것 같다. 내세울 업적은 없고, 퇴임 이후가 두려운 정권이 드러내는 임기말 정권의 대표적인 속성 중 하나다. 정권의 운명이야 피할 수 없겠지만 한국 민주주의와 인권 수준을 대내외에 과시한 인권위의 위상 추락이 안타깝다. 더불어 남은 임기 6개월여 동안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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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적십자사가 지난 8일 북한 조선적십자회에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실무접촉을 제안했다가 거부당했다. 정부와 한적은 제안 사실 자체를 숨겼으나 북측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로 공개됐다. 북적은 다음날 전화통지문을 통해 대북교류를 중단한 5·24조치의 해제 및 금강산 관광 재개를 전제로 제시했다. 북측은 앞서 지난 2월에도 한·미 양국군의 키 리졸브, 독수리훈련 및 5·24조치를 이유로 남측의 제안을 거부한 바 있다. 정치적인 사안을 빌미로 내세운 것은 북측 스스로 강조해온 동포애와 인도주의 정신에도 어긋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남측이 지난 2월 제안 이후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키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돌아본다면 과연 이를 관철시킬 의지가 있었는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남북 이산가족 2차 상봉 마지막 날 버스에 오른 가족들이 눈물의 이별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DB)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는 2009년 8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으로 어느 정도 논의의 계기가 마련됐던 사안이다. 이명박 정부는 그러나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를 천안함 사과와 연계시킴으로써 타협의 여지를 없앴다. 최근에는 북측이 막대한 홍수피해를 입었음에도 아무런 인도적 지원도 내놓지 못함으로써 또 다른 기회를 놓쳤다. 정부가 6개월 만에 이산가족 상봉을 다시 제안할 요량이었다면, 이같이 비정치·군사적인 사안에서부터 최소한의 정지작업을 했어야 했다. 이를 생략한 채 덜렁 제안을 던진 것은 후하게 보아 아마추어적인 접근이고, 박하게 보면 처음부터 이산 상봉을 위해 노력했다는 제스처만을 보인 것이라고 평가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김정은의 북한’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에 제안을 했다면 더욱 문제다. 이산의 고통이라는 전대미문의 민족사적 불행을 북측의 변화를 가늠하는 카드 정도로 사용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정부와 한적이 실무접촉 제안 사실을 굳이 숨긴 까닭이 과연 무엇이었겠는가. 


지난달 말 현재 남측의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중 사망자는 5만1519명이다. 한적이 올 들어 첫 이산상봉 제안을 한 지난 2월 말에 비해 1111명이 늘었다. 가족 상봉의 그날만을 고대하며 허위허위 노년을 보낸 분들이다. 남과 북이 정치적인 이유로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 ‘분단 이재민’들의 비극은 가중된다. 그만큼 남북 위정자들의 업보도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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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민주통합당 국민경선의 선거인단 모집 실적이 저조하다. 모집 나흘째인 11일 기준으로 8만여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민주당이 시민사회, 노동계 등과 통합한 뒤 대표를 뽑았던 1·15 전당대회의 절반 수준이다. 당시 참여자가 64만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150만명 모집은 어려워 보인다. 오죽했으면 이해찬 대표가 100만명만 모아도 성공이라고 했을까 싶다. 손님을 초대해놓고 집안잔치를 벌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는 지리멸렬한 민주당 분위기와 맞물려 있다. 국민경선은 경선 후보 5인 캠프에 맡겨진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당 지도부는 각종 현안에 대해 논평이나 내놓는 ‘촌평 정치’에 머물고 있다. 사과 여론이 비등한 이종걸 최고위원의 ‘그년’ 발언 파문에 대한 대처는 상징적이다. 지도부는 잘못된 일이라고 입을 모으면서도 정작 이 최고위원이 사과토록 종용하는 이는 없다. 부적격자를 공천하고, ‘나꼼수’ 파문이 일어도 대처를 제대로 못하는 바람에 다 잡았던 승기를 여당에 넘겨버린 4·11 총선 때와 흡사한 장면들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19대 국회 개원이 지연되자 의원들의 세비 반납운동을 벌이고, ‘돈 공천’ 파문이 커지자 정치후원금 공영제를 들고 나오는 새누리당과 대비된다.


연설 준비하는 민주당 경선주자들 (경향신문DB)


정치적 성과물을 사장시키는 일도 일어난다. 민간인 사찰에 대한 국정조사나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의혹을 둘러싼 특별검사제 도입, MBC 장기 파업사태에 대한 국회 상임위의 청문회 실시는 9월 정기국회 일정을 감안할 때 사실상 물건너 가고 있다. 정치색 짙은 검찰의 박지원 원내대표 수사로 촉발된 방탄국회 논란 탓도 있지만 여당의 보이콧 전략·전술에 말려든 무기력증 탓이 더 크다. 3대 이슈는 민주당이 19대국회 개원 지연에 대한 온갖 비판을 감수하면서 쟁취했다는 점에서 욕만 잔뜩 얻어먹고 실속은 차리지 못한 ‘마이너스 정치’의 전형이다.


대선 4개월여를 앞두고 이토록 존재감을 상실한 제1야당은 없었다. 야권후보 단일화라는 정치공학만 맹신하느라 어떤 대선을 치를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빠져버린 결과다. 지금이라도 민주당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박근혜 의원을 검증하려면 자신의 정책도 말해야 한다. 안철수의 지지율을 쳐다보기에 앞서 자강론에 힘 쏟아야 한다. 이를 외면하면 정권이 교체된다 해도 민주당의 몫이 아니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두 후보의 막판 단일화도 결과적 산물이지,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었다. 제1야당이 없는 대선, 그것은 민주당만이 아닌 국민들의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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