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비평'에 해당되는 글 3623건

  1. 2012.08.08 [사설]‘부자 감세’ 기조 여전한 정부의 세법개정안
  2. 2012.08.08 [사설]민주 국민경선, 제도 아닌 내용에 성패 달렸다
  3. 2012.08.08 [사설]‘평화의댐’에 또 막대한 혈세 투입하는 의도 뭔가
  4. 2012.08.08 [경향시평]산업역군 기리는 ‘존중의 자리’
  5. 2012.08.08 [김종철의 수하한화]‘언덕 위의 구름’서 ‘하산의 사상’으로
  6. 2012.08.08 [기자 칼럼]또 시험대 오른 ‘미래권력’ 수사
  7. 2012.08.07 [사설]검찰과 새누리당, ‘돈 공천’ 수사 공조 안된다
  8. 2012.08.07 [경향논단]권력은 왜 부패하는가
  9. 2012.08.07 [윤여준칼럼]박근혜·문재인·안철수 비전의 음영 (1)
  10. 2012.08.05 [사설]‘박근혜당’ 실체 드러낸 새누리 경선 보이콧 파동
  11. 2012.08.05 [손호철의 정치시평]처음엔 비극, 두 번째는 희극
  12. 2012.08.04 [사설]새누리 ‘돈 공천’ 파문, 미봉책으론 수습 어렵다
  13. 2012.08.03 [사설]정치권의 정년 60세 이상 의무화 추진 공감한다
  14. 2012.08.02 [사설]용역폭력 업체 회장이 여당 당직자라니
  15. 2012.08.01 [사설]박지원 출석 이후 검찰과 정치권의 과제
  16. 2012.07.31 [이일영칼럼]‘안철수 현상’과 87년체제의 종말
  17. 2012.07.31 [사설]‘대선후보 안철수’와 정치인 검증의 중요성
  18. 2012.07.31 [기고]정치판에 휘둘린 공영방송 이사 선임
  19. 2012.07.29 [사설]민주, ‘안철수 현상’ 극복 없이는 대선 연대도 없다
  20. 2012.07.29 [사설]‘김재철 이대로’를 고집하는 불통정권

정부는 어제 ‘2012년 세법개정안’을 발표하면서 내수 활성화와 민생 안정을 꾀하는 동시에 재정 건전성을 높이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한편으로는 세금을 깎아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금을 더 거둬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현 정부의 ‘부자 감세’ 정책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세법개정안대로라면 5년에 걸쳐 1조6600억원의 세수 효과가 생기는 데 그친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도 “전반적인 감세 기조를 유지하면서 소득 과세의 취약점을 미세조정하고 공평과세를 확립하려 했다”고 말했다. 세법개정안이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부자 증세’로 방향을 튼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세제개편안 보고하는 박재완 장관 (경향신문DB)


증세 부문에서 정부의 세법개정안은 민주통합당이 지난 6일 발표한 ‘2012 세제개편안’과 큰 차이가 있다. 민주당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22%에서 현 정부 이전 수준인 25%로 높였지만 정부는 현 수준을 유지했다. 각종 비과세나 감면 혜택을 받더라도 최소한 내야 하는 세금 기준인 최저한세율을 현행 14%에서 15%로 올리는 것만 같을 뿐이다. 정부는 소득세 부문도 손대지 않았다. 정권 말기에 소득세제를 개편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민주당은 소득세 최고세율 38%를 적용하는 구간을 현행 3억원 초과에서 1억5000만원 초과로 크게 낮췄다. 정부가 부자에게 세금을 더 물리는 것을 얼마나 꺼리고 있는지 거듭 확인된다.


그러면서 정부는 ‘부자 감세’ 방안을 줄줄이 내놓았다. 해외 골프 수요를 국내로 끌어오기 위해 회원제 골프장에 대한 개별소비세를 감면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내수 진작에 별 효과도 없으면서 연간 3000억원의 세금 수입만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새누리당도 반대하고 있으나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이라며 밀어붙이고 있다. 중견기업 가업상속 공제 대상을 확대해 상속세 부담도 덜어주기로 했다. 중견 장수기업 육성으로 고용 창출을 꾀한다는 것이 명분이지만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값비싼 에너지 고효율 가전제품에 대한 개별소비세 면제나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세 폐지도 부자에게만 혜택을 줄 뿐이다.


정치권에서는 여야 모두 대선을 앞두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복지 확대를 약속하고 있다. 더욱이 경기마저 침체하면 정부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 복지를 확대하고 정부 역할을 강화하려면 재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충분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공평과세를 꾀하면서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세금을 더 거두는 길밖에 없다. 감세 정책을 통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현 정부의 정책은 명백히 실패로 끝났다. 그런데도 정부는 아직도 그것에 집착하고 있으니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여야가 올 정기국회에서 세법(세제)개편안을 진지하게 논의하길 바란다. 당리당략 차원을 떠나 나라 장래를 위하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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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이 어제부터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에 참여할 선거인단 모집에 들어갔다. 민주당은 이날 국민의 눈과 귀를 붙잡기 위해 빈 화분에 민초들이 쓰는 모자를 닮은 패랭이 꽃씨를 심고 물을 주는 등 이벤트를 연출했다. 완전국민경선은 말 그대로 일반 국민들이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라는 점에서 선거인단 모집에 경선의 성패를 거는 듯한 민주당의 모습이 이해된다.


패랭이 꽃에 물주는 민주당 지도부 (경향신문DB)


현실은 열악하다. 무엇보다 경선 분위기가 좀처럼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 런던올림픽이 끝나고 나면 국민의 시선이 경선으로 쏠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막연하다. 야권 지지층의 관심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행보로 쏠리는 데다, 자체 후보들이 오십보백보식으로 경합하는 상황에서 이를 반전시킬 만한 전기를 마련한다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선거인단 모집을 경선 후보 5명의 캠프별 총력 체제에 의탁해야 할 판이다. 2002년 160만명, 2007년 193만명의 선거인단이 참여했던 전례에 비춰 200만명 이상을 모집한다는 계획이나 많아야 150만명 선이 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국민경선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되지 않을지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민주당의 완전국민경선은 2002년 ‘노풍’을 발현시킨 추억을 밑자락에 깔고 있다. 당내 대선주자들이라는 소중한 불씨를 살린 뒤 국민의 관심과 지지를 불쏘시개 삼아 경쟁력 있는 후보로 키운다는 구상이 그것이다. 문제는 그 때의 제도적 틀만 빌렸을 뿐 내용은 채우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국민경선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민주당이 경선에 관한 한 새누리당에 비해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10년 전 당시 정치공학으로는 풀 수 없을 만큼 변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던 ‘노풍’처럼 국민을 흡인할 내용이 빈약해 보인다. 


국민경선은 그 제도 자체만으로 경쟁력 있는 후보를 만들어내는 요술방망이가 아니다. 그 틀에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의 집합체라 할 수 있는 내용을 채울 때 폭발력을 갖는다. 사실상 경선 출정식인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경선후보를 겨냥한 공격만 있었을 뿐 정작 자신들에 대한 목소리가 없었다는 사실은 뭘 의미하는가. ‘안철수 현상’이나 ‘노풍’은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과 미래 정치에 대한 갈망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것으로 상징되는 시대정신을 외면한 채 제2의 노풍을 기대하는 건 면목 없는 일이다. 지금 민주당에는 선거인단 늘리기보다 어떤 대선을 치를지에 대한 고민이 더 시급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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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임기 후반 갑자기 추진한 평화의댐 보강공사가 다시 논란을 빚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지난해 10월 평화의댐을 2003년부터 진행해온 댐 치수능력증대사업 대상에 뒤늦게 포함시키고 1650억원의 사업비를 배정했다. 평화의댐은 북한 임남댐이 200년 내 최대 강수량(하루 378㎜)에 붕괴될 수 있다는 가정하에 건설·보강한 대응댐이다. 그런데 1만년 빈도의 홍수를 의미하는 극한강우(하루 587㎜)에도 견디도록 기존 댐의 하류사면을 콘크리트로 보강하겠다는 것이다. 1만년 빈도의 홍수와 임남댐 붕괴가 동시에 일어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댐 경사면 포장에 1650억원을 투입하는 것 또한 과도한 예산 배정이라는 게 당시 논란의 요체였다. 국토부가 이런 의문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오는 11월 공사 시작을 목표로 입찰 사전심사와 현장설명회를 연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재점화한 것이다.


평화의댐은 이미 크게 두 차례에 걸쳐 3800억원에 이르는 국민 성금과 세금을 들여 건설 및 보강공사를 한 바 있다. 지금 돈 가치로 따지면 조 단위의 혈세가 투입된 셈이다. 댐 건설의 명분으로 삼았던 북한의 수공 위협과 2단계 보강공사의 빌미가 됐던 임남댐 붕괴 우려 등은 뒷날 그 근거나 정당성이 미약한 것으로 밝혀져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 ‘정치적 목적에 의한 5공 정권의 유물’이자 ‘불신과 낭비의 기념비적 상징물’이라는 평화의댐이 이번에는 기후변화를 이유로 세 번째 공사를 벌이며 또다시 논란에 휩싸인 것이 묘하고 얄궂다.


2단계 증축공사 완료된 평화의 댐 전경 (경향신문DB)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환경단체는 이번 공사가 1억년에 한 번 발생하는 희귀한 상황을 가정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오히려 댐 좌안에 있는 터널로 강한 수압이 작용해 그쪽이 먼저 붕괴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한다. 설사 국토부의 말이 맞다고 하더라도 1650억원에 이르는 비용은 과도하며 그 5분의 1로 가능한 대안이 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이런 의문을 투명하게 해소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국토부에 두 차례에 걸쳐 공개토론회 개최를 공식적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국토부 홈페이지에 가면 ‘투명하고 깨끗한 국토해양부’라는 구호가 있다. 평화의댐을 또다시 불신과 낭비의 상징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국토부는 이런 의문에 투명하게 답해야 한다. 공개토론회마저 외면하고 임기말에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한다면 사업의 정당성 확보는 고사하고 의혹만 더욱 증폭될 뿐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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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철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선거 등 대사를 앞두고 정치인들이 꼭 방문하는 곳이 있다. 서울 동작동 현충원과 광주 5·18 묘역이다. 두 ‘국립묘지’는 당선 이후 가장 먼저 찾는 곳이기도 하다. 호국영령과 민주화 열사를 모신 곳으로, 대한민국 정치적 의례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상징적인 장소이다.


나는 그 두 곳에 더해 ‘금강휴게소’ 인근을 추가하고 싶다. 그 이유는 ‘대한민국 경제를 바꾼 가장 위대한 순간 1위’로 꼽히는 경부고속도로 순직자 위령탑이 서있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그늘’에 가려 주인공으로 조명받지 못했던 이 나라 ‘산업역군’의 서러운 영혼이 깃들어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인 것이다.


 그곳에 위령탑이 있는 이유는 옥천터널(옛 당재터널)을 비롯해 가장 험난한 공사 구간이어서 희생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경부고속도로 순직자는 77명이다. 실제 희생자는 훨씬 더 많았다는 것이 공사감독관 등을 지낸 이들의 증언이다.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스러진 산업역군’이 너무도 많았다는 것이다. 77명조차 정부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하니, 희생자 대부분이 ‘산업화의 길’을 터준 ‘자원봉사자’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부고속도로 공사 중 숨진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탑에서 묵념하는 박정희대통령 (경향신문DB)


하지만 이제는 그들을 포함한 산업역군에 대해 ‘국가적 보상’을 하는 것이 도리라 생각한다. 물질적 보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보상, 즉 대한민국 역사 속에 그들에 대한 ‘존중의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보다는 그들을 대한민국 산업화 주역으로 세우고 기억해야 한다. 5·16을 둘러싼 작금의 역사 논쟁이 그 일환이 될 수 있다.


누군가는 말할는지 모른다. 그들은 그저 못 배우고 가진 것 없어 힘든 일을 자처하고 나섰던 것이라고. 호국영령과 민주화 열사와는 동급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러나 누구의 주도로 이루어졌든, 어떤 방식이었든 그들의 노역을 바탕으로 했던 산업화와 경제성장 없이도 이 나라를 외부의 침탈과 전쟁 위협에서 지켜내야 한다는 호국의지를 가질 수 있었을까. 또 사회적 자원의 자유롭고 평등한 향유를 위한 민주주의적 열망이 퍼져나갈 수 있었을까.


대한민국은 여타의 선진국가들과 달리 국가건설과 산업화, 민주화 과정에서 유독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취약했던 나라였다. 병역기피를 포함, 독재권력과의 이러 저러한 유착에 의존한 각종 부정부패는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이 나라가 점점 더 정치적, 사회적 갈등 해소에 곤란을 겪고 있는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통해 형성된 권위가 부재한 탓이기도 하다. 이런 나라에서 갈등 해결에 필요한 정치적, 사회적 권위는 자신의 삶을 격변과 고난의 근현대사 속에 고스란히 내다바쳤던 산업역군과 같은 ‘무명의 전사들’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할 때 만들어질 수 있다. 권위는 지위와 돈에 기댄 소수의 권력이 아니라, 헌신적 삶의 애환에 대한 다수의 공감과 존중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을 기려야 할 산업역군이 어디 경부고속도로 순직자뿐일까. 꽃다운 젊은 나이에 머나먼 독일에 건너가 광부와 간호사로 죽을 고생하며 번 봉급을 나라 빚의 담보로 기꺼이 내주었던 이들. 아예 목숨을 담보로 ‘용병’ 오명마저 뒤집어쓴 채, 베트남전에 참전해 외화벌이에 큰 몫을 했던 이들 역시 그러하다.


한 나라의 품격은 역사 속 이름 없는 자들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번 런던올림픽 개막식 때 우리는 ‘노동자에 대한 존중의 퍼포먼스’를 보았다. 노동자들이 영국 역사와 각국 선수단을 맞이하는 주역으로 등장했다. 더 이상 초강대국이 아닌데도 영국을 공부하는 이들이 많은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세계 10위권에 달하는 경제규모와 세계 일곱번째로 ‘2050 클럽’에 진입한 대한민국은 이제 그런 품격을 갖춰야 할 때가 되었다. 정치권이 앞장서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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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일본이 달라지고 있다. 평소에 자기의사를 명확히 잘 표현하지 않는 일본인들이 데모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1960년 안보투쟁 이후 50년 동안 자취를 감췄던 대규모 항의집회가 지금 일본의 주요 도시들에서 가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물론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문이다. 그러나 ‘사요나라 원전’이라는 슬로건 밑에서 진행되는 이 데모는 후쿠시마 사고 직후보다도 사고 1년이 넘은 지금 훨씬 더 강도 높게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다.


데모에 익숙한 한국인들의 감각으로는 일본의 데모가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될지도 모른다. 또, 그동안 일본이라고 해서 가두에서 전혀 시위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흔히 극우단체들에 의한 시대착오적인 일탈행동의 표출에 지나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양심적인 일본 지식인들 중에는 민주화 투쟁을 통해서 군사정권을 종식시킨 한국의 경우를 내심 부러워하며 콤플렉스를 느낀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들의 생각으로는 데모를 할 줄 아는 한국사회야말로 어떤 점에서 일본인들이 본받아야 할 선진사회였다.


 

일본 도쿄 시내 총리관저 앞에서 열린 탈원전 시위 (경향신문DB)



사실, 일본이 경제적으로는 대국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인권의식과 민주주의가 깊게 뿌리를 박은 성숙한 선진사회라고 말하기는 매우 어려운 나라로 존재해왔음이 분명하다. 말할 것도 없지만,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는 패전의 결과로 외부에서 주어진 선물이라는 측면이 강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근원적으로 한계가 명백한 민주주의였다. 일본이 식민지 침략과 전쟁 책임에 대해서 언제나 머뭇거리고, 아시아 이웃나라들과 선린관계를 유지하는 문제에서 늘 애매한 태도를 취해온 것은 무엇보다 그러한 한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손으로 민주주의를 만들지 못한 사회가 어른스럽게, 책임있게 행동한다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민주주의의 미성숙 혹은 취약성을 생각할 때, 결코 빠트릴 수 없는 것은 한때 ‘재팬 넘버원’이라고 자타가 공인한 경제적 번영일 것이다. 전후 일본사회에서 드물게 ‘불량정신’의 고귀함을 늘 역설했던 정치사상가 후지타 쇼조의 용어를 빌리면 일본 민주주의의 성장을 가로막아온 결정적 저해요인은 ‘안락을 위한 전체주의’였다. 다시 말해서, 한국전쟁으로 인한 특수(特需)와 미국의 동아시아 냉전전략 덕분에 빠른 속도로 경제적 번영을 달성한 일본사회는 ‘안락’에 취했고, 그 ‘안락’의 유지를 위해서 국내외적 모순과 불의,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구조적 차별에 대해서 대체로 침묵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습성이 굳어졌던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나무젓가락 때문에 필리핀의 산들이 민둥산이 되고 있다는 극히 기초적인 사실도 생각하지 않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후쿠시마 원전사고라는 대참사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다수 일본인은 자신들이 누려왔던--그러나 근년에 이르러 점점 멀어져가는--번영과 안락이 근본적으로 허구적 토대 위에 구축된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물론 일차적으로 지금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데모는 원전 재가동을 허용하려는 정부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강한 이의제기이다. 그래서 작년에 방사능이 대량 방출된 사고 이후 원전 54기가 전면적으로 가동 중단된 상황에서도 우려했던 것처럼 전력대란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정부가 국민의 이익보다 산업계와 보수언론의 의사를 더 중시한다는 비판적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원자력처럼 위험한 전력생산 시스템은 이제 그만두고 장기적으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재생가능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단순한 전력생산 시스템의 변경에 지금 일본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원전반대 데모 참가자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드러내는 의견이나 최근 일본에서 쏟아져 나오는 관련 자료와 문헌을 보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 근원은 에너지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생활방식 그 자체임을 의식·무의식적으로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일본에서 높은 판매부수를 기록하고 있는 <하산(下山)의 사상>이라는 책이 있다. 요컨대 일본사회가 끝없는 진보와 성장이라는 환상을 좇는 것을 그만두고 이제부터는 ‘성숙’ 사회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이다. 근대국가 형성 초기부터 줄곧 계속된 부국강병 혹은 대국 지향 논리를 이제는 단념하고 어떻게 하면 평화로운 공생의 삶이 가능할 것인가를 생각해보자는, 이 메시지는 따져보면 별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때는 근대일본의 ‘웅비’ 과정을 묘사한 유명한 소설 <언덕 위의 구름>에 열광했던 일본사회가 이제는 그 ‘웅비’가 결국 ‘후쿠시마’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게 중요한 것이다.


<언덕 위의 구름>에서 <하산의 사상>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일본의 변화를 가리켜주는 중요한 증거이다. 지난 7월17일 총리관저 앞에서 17만명의 데모 참가자들을 향해 세계적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는 “알고 보면 시시한 것. 시시한 전기 때문에 목숨을 위태롭게 하고 아름다운 나라와 아이들의 미래를 망쳐야 하는가”라고 절규했다. 여기서 ‘시시한 전기’라는 말은 결코 간단한 표현이 아니다. 따져보면 그동안 일본을 포함한 이른바 선진 산업사회를 뒷받침해온 것은 한마디로 전기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전기를 ‘시시한’ 것이라고 통매(痛罵)한다는 것은 그 산업체제의 근원적인 허구와 비윤리성을 꿰뚫어보는 강인한 정신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비슷한 강인성을 드러내는 인상적인 예는 또 있다. 그것은 일찍이 태평양전쟁에 끌려갔다가 생환한 후 근대국가의 야만적인 본성을 통절히 깨닫고 자주적 정신으로 자급 농사에 평생 전념해온 90세의 현역 농부 나카시마 다다시의 발언이다. 그는 최근 출판된 대담집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대체에너지 따위를 말할 때가 아니다. 전력부족으로 산업이 후퇴하면 수출경쟁이 안되겠지만, 인력은 더 필요해지고, 그러면 실업자도, 취직난도 해소될 것이다. 그리고 에너지 부족으로 생활이 불편해지면 인류의 존속에 유리한 라이프스타일이 부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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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혁 사회부 기자


 

새누리당의 돈 문제가 또 터졌다. 지난 4·11 총선 때 현영희 의원이 3억원을 주고 비례대표 순번(25번)을 따냈다는 의혹이 매우 구체적인 증언과 함께 제기됐다. 요컨대 지난 총선 때 새누리당 일각이 대목을 맞은 상인처럼 공천장사를 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돈에 얽힌 추문으로 곤욕을 치르는 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말에는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이 터졌다. 2008년 전당대회 때 당 대표 후보로 나온 박희태 전 국회의장 측이 대의원들의 표를 매수한 사실이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총선 직후에는 파이시티 비리 의혹이 불거졌다.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라는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업자로부터 청탁과 함께 8억원의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최 전 위원장은 법정에서 “2007년 대선 경선자금으로 받은 것”이라고 했다.


땀 닦는 현기환 전 의원 (경향신문DB)


지난달에는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이 영업정지된 솔로몬저축은행과 미래저축은행 측으로부터 청탁과 함께 6억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이 전 의원이 돈을 받은 시점은 2007년 대선 직전이다. 검찰은 이 돈이 대선자금으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에 터진 돈 공천 의혹은 앞선 추문들과는 정치적 의미가 전혀 다르다.


박희태·이상득·최시중 모두 이 대통령의 사람들이다. ‘현재권력’의 끝물에서 단죄를 받곤 했던 실세들의 전형적인 사례다. 사람들은 유력한 ‘미래권력’인 박근혜 의원을 이 대통령의 동류로 보지 않는다. 이 대통령 주변의 권력형 비리에도 아랑곳없이 박 의원의 지지율이 고공행진하는 이유다.


그러나 돈 공천 의혹의 핵심으로 거명되는 현기환 전 의원은 박근혜 의원의 사람이다. 현 전 의원은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으로 있으면서 현영희 의원으로부터 공천헌금을 받은 의혹을 받고 있다.


4·11 총선은 박 의원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진두지휘한 선거다. 현 전 의원이 공천심사위원으로 임명된 데는 박 의원의 의중이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현 전 의원의 돈 공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박 의원도 정치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게다가 지금 드러난 돈 공천 의혹은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새누리당 주변에 나도는 흉흉한 얘기처럼 다른 사례들이 줄줄이 드러나면 대선의 판도를 뒤흔들 수 있다.


검찰은 대선이 있는 해 ‘미래권력’을 겨눈 수사에 유독 소극적이라는 의심을 받아왔다. 2007년 대선 직전 BBK 의혹 수사도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이미 새누리당 사람들은 ‘오간 돈은 500만원이 전부’라거나 ‘배달사고’ 가능성을 언급하며 선긋기에 나섰다. ‘미래권력’이 검찰에 제시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해석될 소지가 다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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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돈 공천’ 의혹의 당사자인 현기환 전 의원이, 돈이 건네졌다는 날 중간전달자로 지목된 조기문씨와 같은 휴대전화 기지국 내에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서울의 경우 기지국 반경이 200m인 만큼, 기사 내용이 사실이라면 두 사람이 접촉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정황 증거가 된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내용 자체보다 취재원이다. 일부 언론에선 취재원을 ‘여권 관계자’로 밝히고 있다. 이 관계자는 “현영희 새누리당 의원의 전 비서가 조기문씨에게 3억원을 전달했다는 당일, 현 전 의원과 조씨가 같은 시간대 같은 기지국 내에 있었다는 것을 검찰이 확인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현 전 의원은 검찰에서 ‘당 행사가 있어 인근 호텔에 간 것뿐’이라고 진술했다”며 당사자의 해명까지 전했다. 이러한 발언은 공천헌금 의혹 수사의 공정성에 심각한 의문을 갖게 한다. 검찰이 공식 부인했다고는 하나, 발언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수사를 맡은 것은 검찰인데 수사상황을 설명하는 것은 피의자가 속해 있는 새누리당이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여기에 박근혜 경선캠프에서는 배달사고나 횡령 가능성을 언급함으로써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는 의심까지 받고 있다.


출처: 경향DB


사태가 여기까지 이른 데는 검찰의 책임이 크다. 대검찰청이 부산지검에 수사를 맡긴 것 자체가 문제의 출발점이다. 법조계에서는 관할권이 부산지검에 있다 해도, 사건의 중대성에 비춰볼 때 서울중앙지검 공안부에서 맡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가 많다. 실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설립한 선거홍보대행사 CNC 사건은 광주지검 순천지청이 맡다가 서울중앙지검으로 넘어간 바 있다. 야권 수사는 수많은 언론이 지켜보는 서울에서 하고, 여권 수사는 지역에서 한다면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부산지검은 지난 2일 수사 사실이 공개된 이후 브리핑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단 한 차례 브리핑에서도 “밝힐 수 없다” “조사해봐야 안다” 등의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검찰은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의혹과 관련해 당사를 압수수색하는 초강수를 뒀다. 새누리당 돈 공천 의혹도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훼손했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그에 못지않다. 검찰은 통합진보당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뿌리까지 샅샅이 파헤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권재진 법무부 장관과 한상대 검찰총장은 ‘현재 권력’을 향한 충성만으로도 모자라 ‘미래 권력’에까지 줄서기 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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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책 | 변호사·자유경제원장


임기 말이 되자 대통령의 측근들이 줄지어 감옥에 간다. 그 중엔 실세도 있고 캠프에 가서 충성을 바친 덕분에 한 자리 꿰찬 분도 있다. 그리고 정해진 수순처럼 대통령의 형이 감옥에 갔다. 그는 전(前) 정권의 봉하대군에 빗대어 영일대군으로 불렸고 대통령도 어려워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래서 취임 전부터 만사형통이라고 수군대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그런데도 대통령만 몰랐다는 말인가. 아니면 형의 결백을 믿었던 것일까? 누가 권불오년(權不五年)이라는 우스개를 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세도가들이 줄줄이 망신당하는 걸 두고 이런 허망한 우스개로 아직은 이 땅에 정의와 법치가 살아 펄떡인다고 자위해야 하나. 


야당은 신을 냈다. 그러나 권부의 부패를 도마에 올려 요리하기도 전에 원내대표가 검찰에 가야 했다. 부패혐의로 감옥에 갔다 온 분이다. 그는 고향의 역전에서 할복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여당이 방탄국회는 꿈도 꾸지 말라고 겁박하고 이 일이 짐이 된 야당 대선주자들의 고민이 깊어갈 즈음 이번엔 여당의 비례대표 의원이 공천심사위원에게 돈을 바친 걸 배달부가 일러바치는 통에 다시 여당 집안에 큰불이 붙었다. 그 여당은 말이 여당이지 현 권부와 거리를 둔 지 오래된, 말하자면 한 지붕 다른 가족이다. 이 바람에 야당 원내대표는 세간의 주목에서 벗어나 최대수혜자가 되었고, 부패한 권부와 선을 그으며 도덕성과 원칙을 내세우던 여당 주자만 머쓱하게 돼버렸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뒤 머리를 숙이고 있다. (출처 : 경향DB)


 ‘전국구는 전국구(錢國區)’라는 오명은 그 뿌리가 깊은 말이다. 아니 진리였다. 18대만 하더라도 친박연대라는, 급조정당이 전국구 헌금으로 된서리를 맞았다. 그때도 어느 당 누구는 얼마 내고 의원이 됐다, 누구는 외상으로 들어와서 오리발을 내밀었다 하는 말들이 여의도 정치판에 공공연히 떠돌았으니 감옥 갔거나 금배지를 떼인 사람만 억울하고 원통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니까 재수 없거나 힘없는 놈만 감방에 간다는 세간의 자조 어린 말들이 정치판에도 그대로 통용되는 것이다. 정치인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는 말도 오래됐다. 이런 말이 떠도는 건, 누구 할 것 없이 정치인은 털면 다 털린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정치판과 부패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왜 정치판은 부패하는가? 옛날에는 막대하게 드는 정치자금 핑계라도 댔다. 그러나 선거공영제를 운용하고 세금으로 몇 백억 원을 정당에다 질러주는 세상에 굳이 돈을 받고 의원직을 팔아먹는 건 무슨 까닭인가? 현 정권의 실세는 뇌물을 경선자금으로 썼다고 법정에서 당당히 말했다. 그 바람에 그의 수뢰는 대선자금 수사로 비화될 판이다. 결국 보스를 둘러싼 외곽 사조직에 돈을 썼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지금 대선주자들의 조직들은 전부 맨입에 움직이는 깨끗한 조직인가? 그렇지 않다면 그런 조직을 방치하는 건 부패를 방조(傍助)하는 게 된다. 하긴 별다른 수입원도 없던 보스들이 퇴임 후 엄청난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걸 보면 누가 누구를 나무랄 수 있을 것인가?


문민정부 4기가 지나는 동안 부패와의 연결고리를 끊지 못한 건 우리 정치판이 썩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다. 악취의 원천은 우리 정당들이다. 정당이란 이념으로 모여 정권을 획득하기 위한 결사체인데 어디 우리 정당들이 이념으로 뭉친 적이 있던가. 백년 간다던 열린우리당은 권력이 다하기 전에 산산히 부서졌다. 보수정당이라던 한나라당은 이름과 색깔과 이념을 통째 바꿨다. 명색이 복수정당제를 내건 이 나라에 십년 된 정당조차 없다. 이념으로 선 정당이 아니니 대선 캠프에는 신념 없는 꾼들이 들끓는다. 과거 MB 캠프에 모여들었던 몇 천 명의 교수 법조인 언론인들은 지금 다시 새 보스를 찾아 충성을 맹세하는 중이다. 장이 선 것이다.


권력을 향한 일편단심으로 벌어지는 이합집산이 바로 악취의 근원인 것이다. 이념으로 뭉치지 않고 탐욕으로 뭉쳤으니 결국은 썩을 수밖에 없다는 건 만고의 진리다. 썩어도 저들만 썩으면 좋겠는데 그 악취는 언제나 대중의 속을 뒤집고 토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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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준 한국지방발전연구원 이사장

연말 대통령선거의 대진표가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여야 정당후보들은 이미 모두 출사표를 던지고, 목하 당내 경선 중에 있다. 안철수 원장 역시 얼마 전 사실상의 대선 공약집 성격의 대담집을 출간, 실질적으로 대권 참여선언을 했다. 일부 이변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판세로 보아 일단은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3인 대립구도로 압축되는 듯하다. 따라서 먼저 이들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제시된 비전을 간략하게나마 비교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정치적 비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특정 정치인의 단순한 이념이나 정책적 지향점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첫째로 그것은 정치인의 총체적 삶의 역정 속에서 체화된 가치관, 철학을 의미한다. 대부분 유권자들은 후보의 정책을 일일이 따지기보다는 바로 이러한 정치인의 비전을 기준 삼아 공직후보를 선택하는 것이다. 둘째로 그것은 시대정신을 토대로 하는 문제설정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여기서 시대정신이란 어떤 특정한 교조적인 주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당대 가장 긴박한 현안을 풀려는 문제의식과 고민이 담겨 있는 열린 성격의 것이다. 문제설정이란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제기와는 다르다. 그것은 고도의 실천의지와 책임윤리를 바탕으로,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국정의 핵심과제와 그 접근방법을 선택하는 행위인 것이다.


박근혜 후보(출처 :경향DB)


박근혜 후보는 국민의 꿈 우선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여기서 국민의 꿈이란 가난을 이기는 것에서 시작해 오늘의 경제위기 극복에 이르기까지 주로 민생문제와 관련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현재 박 후보의 경제 민주화와 연관이 있지만, 멀리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잘 살아보세의 비전에도 닿아 있다는 점에서 개인을 넘어 박정희 가계의 정치적 비전이라는 특성을 강하게 띠고 있다고 하겠다. 박 후보가 품위를 토대로 원칙과 신뢰를 중시한다는, 우리 정치권에서는 흔치 않은 장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2대에 걸친 공적 헌신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비전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보다는 ‘국민을 위한’ 즉 위민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여전히 박정희 틀에 갇혀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더구나 국민에게 꿈을 심어주고 그 실현을 도와주는, 그리고 ‘고독한 결단’을 중시하는 리더십은 수평적이어야 할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나 의사소통 방식과는 거리가 먼, 수직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위계질서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열린 소통과 수평적 관계를 박 후보 리더십의 특징으로 꼽는 사람은 드물다. 특히 민생문제를 중시하는 위민적 성격의 비전이 이러한 리더십과 만났을 때 오히려 민의와 동떨어진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지적하고 싶다. 공론과 설득의 과정을 배제하고 생략한 채 시대착오적으로 폭주한 리더십의 폐해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문재인 후보 (출처 : 경향DB)


한편, 문재인 후보는 자신의 정치적 비전으로 분배와 직접참여를 전면에 표방했다. 최근에는 노무현 정부를 ‘성공한 정부’로 정의한 바도 있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일관해온 자기 삶의 역정과 깊이 연관된다는 점에서 이해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독자적인 목소리가 없다는 점에서 노무현 패러다임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문 후보는 국가 비전도 국민의 마음속에 있으며, 겸손하게 이를 받들면 길이 보일 것이라고 하면서 국민들에게 함께 비전을 쓰자고 제의한 바 있다. 정치인으로서 민심에 귀 기울이려는 훌륭한 소통 자세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문제제기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문제설정을 위해서는 충분치 않다. 그래서인지 그가 제시한 민주적이고 공정한 경제 모델과 직접참여정치 모델은 아직 현실적 의미가 분명치 않고 실현되기에는 적지 않은 전제조건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다. 그의 비전에서는 참여정부 핵심 실세들의 설익은 급진성도 감지되어, 일종의 ‘섭정정치’로 흐르지 않을까 우려된다. 결과적으로 그러한 급진성이 진정 진보적이었는지 회의적인 국민들이 적지 않은데, 문 후보의 비전에서 기시감(데자뷰)이 느껴진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SBS 토크쇼 '힐링캠프' 출연한 안철수 원장 (출처: 경향DB)


마지막으로, 안철수 원장은 자신의 정치적 비전으로 미래와 변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아무래도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기성 정치권을 구체제로 단정하면서 특히 현 집권세력을 반대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의 공적 경험 부족 논란에 대해, “나쁜 경험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장점”이라고 항변하면서, 젊은층 사이에서는 이미 시대적 아이콘이 되어 있는 IT전문가 그리고 나눔의 실천자로서 자신의 ‘성공적이고 명예스러운 삶’의 역정을, 기존 정치권 전체 혹은 현 집권세력을 거부하는 그의 비전과 효과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그러나 안 원장 본인이 그리는 미래와 변화, 특히 복지, 정의, 평화가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우리 정치부터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이나 성찰의 흔적을 발견하기 어렵다. 사실, 오랜 기간 지역적 기반을 근거로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해 오며 무능과 부패의 상징이 되다시피 한 거대정당들의 독과점 구도를 깨고, 낡고 협애한 정치 지형을 벗어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일은 안 원장 개인이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해서 저절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 일각에서 안 원장에게 쏟아지는 ‘메시아적 기대감’이 적잖이 우려되는 것이다. 또한, 그의 언행에서 드러나는 선악대결구도적 발상이나 세간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메시아적 소명감’이 평소 정치를 행정과 구분하여 배격하는 반정치적 성향, 그리고 생산성·효율성을 앞세우는 ‘CEO 정치’와 결합했을 때 과연 어떤 미래와 변화가 초래될지 걱정된다.


앞서 살펴본 대로, 유력후보들은 각자 포착한 시대정신을 토대로 야심만만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사가 모두 그렇듯이 정치적 비전 역시 빛과 더불어 그림자의 양면을 내포하고 있다. ‘국민의 꿈’을 우선시하는 박 후보에게서는 권위주의 시대의 ‘궁정정치’, ‘분배와 참여’를 앞세우는 문 후보에게서는 국정을 개혁의 실험장화했던 친노 세력의 ‘섭정정치’, 앙시앵 레짐을 타파하고 복지, 정의, 평화를 표방하는 안 원장에게서는 메시아적 ‘신정정치’라는 음영이 강하게 감지되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하는 질문은 이들 중(혹은 기타 대선 후보들 중에서) 누가 12월에 대권을 잡을 것인가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한국 정치를 혁신하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며, 그에 수반되는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은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우리 정치의 근본적인 변화가 선행되어야 비로소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각종 비리와 부조리 및 불균형 문제들을 천착하고 민생문제에 본격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중 누가 대권을 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도 어디까지나 이러한 맥락에서 따져야 할 것이다.


앞서 나온 ‘꿈’이라는 단어를 놓고 얘기해보자. 오늘 이 땅의 시민들이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그러한 꿈이 우리가 국가공동체로서 지금까지 걸어온 여정의 궤적이나 정보화·세계화에 따르는 문명사적 대전환기라는 세계사적 맥락에서 어떻게 실현되어야 할지, 특히 급격하게 돌아가는 동북아 정세와 글로벌 경제위기라는 긴박한 상황에 맞닥뜨린 지금 어떻게 이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할지 등등에 대해서 얼마나 심도있는 고민을 하고 있는지 이들 후보에게 묻고 싶다. 나아가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 폭발하듯 분출하고 있는 우리 국민들의 변화와 참여에 대한 욕구를 어떻게 수렴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각기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묻고 싶다. 


분명한 것은, 위민적 비전과 폐쇄된 리더십이 결합한 ‘궁정정치’의 연장, 국민들에 의해 무능하고 부패한 것으로 평가받은 세력의 ‘섭정정치’, 풍부한 경험이나 철저한 준비없이 메시아적 소명감에 의존하는 ‘신정정치’로는 21세기 대한민국 국민들의 꿈을 실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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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의 ‘돈공천’ 파문과 관련해 대선후보 경선 보이콧을 선언했던 비박근혜(비박)계 주자 3인이 경선일정에 복귀하기로 했다. 어제 경선 주자들과 황우여 대표 등이 참석한 연석회의에서 이같이 결정했다고 한다. 참석자들은 당 차원의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돈공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황 대표가 책임진다는 데 합의했다. 

앞서 안상수 전 인천시장 등 비박 주자들은 “공천헌금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 박근혜 의원이 후보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해 당내 긴장을 고조시켰다. 그러나 연석회의에서 합의가 이뤄지면서 내분 사태는 봉합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는 친박과 비박의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친박은 박 의원의 ‘불통’ 이미지 강화를 우려했을 법하고, 비박은 경선 파행이 계속되면 정치적 책임을 모두 지게 될까 걱정했을 것이다.


공천헌금 파문과 관련해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을 보이콧한 김태호, 김문수, 임태희 후보(왼쪽부터)가 5일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출처 :경향DB


이번의 ‘경선 보이콧 파동’은 새누리당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우선 책임론의 타깃이 된 박 의원의 안이한 인식을 짚지 않을 수 없다. 4·11 총선 때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거를 지휘한 그는 “사실 여부가 아직 나오진 않았지만, 이런 의혹이 이야기되고 있다는 자체가 안타깝고 국민들께 송구스러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는 의구심이 든다. 박 의원은 “비대위를 맡았을 때 공천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현영희 의원 사례에 대한) 제보가 있었다면 진위를 가렸을 텐데 아쉽다”고 밝혔다. “당대표로서 지방선거 치를 때도 중진의원들의 비리 제보가 있어 먼저 수사를 의뢰했다”고도 했다. 요컨대, 자신은 과거 선거든 이번 선거든 공천을 엄격히 하려 노력했으나 결과적으로 잘 안돼 “송구스럽다”는 것이다. 연석회의에서도 그는 “(현 의원 공천은) 공천위에서 독립적으로 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태 인식으로는 진상조사위를 구성한다 해도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며칠간의 ‘태업’ 끝에 경선에 복귀하기로 한 비박 주자 3인도 안이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공천헌금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황 대표가 책임지기로 한 데 만족할지 모른다. 하지만 ‘박근혜당’에서 황 대표가 물러난다고 본질적으로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공천헌금 파문의 근원인 사당화(私黨化)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제2, 제3의 ‘돈공천’ 파문이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 국민들은 새누리당 경선에 2명이 참여하는지, 5명이 참여하는지에는 별 관심이 없다. 비례대표 의원직이 ‘매매’됐는지, 그렇다면 책임져야 할 사람은 누구인지, 새누리당은 왜 ‘돈 선거’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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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선가 헤겔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은 두 번 반복된다고 쓴 바 있다. 그러나 그가 빠트린 것이 있다. 그것은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반복한다는 사실이다.” 자주 인용되는 이 구절은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보나파르트가 정치적 혼란 덕분에 나폴레옹에 이어 황제에 오른 것을 목도하면서 마르크스가 쓴 명문장이다.


 김제남 의원의 배신으로 이석기·김재연 의원 제명 등 당 쇄신이 물 건너가면서 분당 사태에 직면한 통합진보당을 바라보면서 떠오른 것이 바로 마르크스의 이 구절이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은 두 번 반복된다는 헤겔의 주장처럼,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는 2008년에 있었던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의 반복에 다름 아니다. 즉 2008년의 분당 사태 이후 4년이란 세월이 지났음에도 한국의 진보정당 운동을 장악한 경기동부연합 등 다수파는 변하지 않았다. 그 결과 우리의 진보정당 운동은 발목이 잡힌 채 발전하지 못하고 좋게 말해 제자리걸음을, 솔직히 말해 뒷걸음을 치고 있다.


반공주의의 불모지대에서 별 성과 없이 몸부림쳐온 한국의 진보정당 운동은 2004년 총선에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도입에 크게 힘입어 민주노동당이 10명의 의석을 가진 제3당으로 급부상함으로써 도약의 기회를 맞게 됐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도 문제가 된 경기동부연합 등 비민주적인 패권주의와 종북주의는 한국의 진보정당을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위기와 분당 사태로 끌고 갔다. 이들은 북한의 핵무장에 대해 자위권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2007년 대선에서 신자유주의에 의한 민생파탄 문제가 아니라 코리아연방공화국이라는 생뚱맞은 구호를 들고 나와 죽을 쑤게 만들었다. 


게다가 당의 중심간부가 당내 주요 인사들의 성향을 작성해 북한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 일심회 사건까지 터져나왔다. 이에 조승수 전 의원을 중심으로 한 강경파가 종북주의와 패권주의를 문제삼으며 탈당했다. 놀란 당권파는 심상정 의원을 비대위원장으로 앉혔고, 심 의원은 일심회 관련자의 처벌 등을 내용으로 한 쇄신안을 내놓았지만, 당권파가 이를 부결시킴으로써 쇄신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심상정 의원과 노회찬 의원 등은 조 전 의원 등과 합류해 진보신당을 창당해야 했다.


김제남, "당을 위한 선택이었다" (출처 : 경향DB)


이로부터 4년 뒤에 발생한 이번 사건은 진보신당의 다수파가 2008년의 트라우마를 이유로 재합당을 거부한 반면 그 자리를 유시민 전 의원이 이끄는 국민참여당이 대신했다는 차이만 있을 뿐 2008년의 반복에 다름 아니다. 분란의 핵심에 비민주적인 패권주의와 종북주의가 자리잡고 있는 것, 쇄신을 위한 최후의 노력이 경기동부연합 등 다수파의 비토로 실패하고 만 것 등이 그러하다. 2008년 일심회 관련 당직자 징계안이 부결되면서 쇄신 노력이 좌초하고 분당 사태로 달려갔듯이, 이석기·김재연 의원 징계안이 부결되면서 통합진보당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아가고 있다. 특히 심상정 의원이 2008년에는 비대위원장, 현 국면에서는 원내대표라는 쇄신의 지휘관으로 고전분투하다가 좌초하고 말았으니, 역사의 장난치고는 너무 가혹하기만 하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마르크스가 잘 지적했듯이, 2008년 사태가 비극이었다면 이번 사태는 희극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 이번 사태는 비극적이다 못해 정말 희극적이다. 약속을 깨고 기권표를 던져 쇄신을 무산시킨 김제남 의원이 “이석기 의원에게 승리를 선사한 것이 아니라 강기갑체제에 노역형을 준 것”이라며 중단 없는 혁신을 위해 무효표를 던졌다고 주장했다니, <개그콘서트>는 명함도 못 내밀 희극의 최고 수준이다. 이제 문제는 어차피 실패한 통합진보당의 실험의 피날레가 어떤 모양을 갖출 것이냐는 것이다. 다시 2008년처럼 분당 사태로 귀결될 것인가? 아니면 대안은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이든, 확실한 것은 그것이 안티클라이맥스일 따름이라는 사실이다. 두 번째 반복하는 역사가 희극이라면 희극에 합당한 결말이 적합하다고 해야 하나? 그러기엔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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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헌금 파문에 휩싸인 새누리당이 어제 의혹의 당사자인 현기환 전 의원과 현영희 의원에게 탈당을 권유키로 했다.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는 당 윤리위원회 회부 조치에 그쳤으나 오후에 다시 회의를 열어 입장을 번복했다. 박근혜 의원을 제외한 당내 대선주자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부랴부랴 수습책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비박 주자 중 3인은 황우여 대표 사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경선 일정 잠정 불참을 선언했다. 박 의원도 “당을 망치는 일”이라고 이들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공천헌금 사태가 새누리당 경선 판을 뒤흔들고 있다.


새누리당 공천헌금 파문 당사자들 (경향 DB)


‘돈 공천’ 파문이 확산된 것은 새누리당 지도부의 무원칙한 대응 때문이다. 어제 종일 우왕좌왕한 당의 행태는 이를 잘 드러낸다. 오전 회의에선 의혹에 연루된 인사들이 부인한다는 이유로 윤리위 차원의 진상조사 방침을 결정했다. 윤리위에서 탈당 권고나 제명까지 가려면 여러 차례 회의를 해야 하는 만큼 시간벌기용 아니냐는 비판론이 나왔다. 당 관계자들은 “제보자가 야당 유력인사와 접촉했다는 설이 있다”며 물타기까지 시도했다. 오후 들어 비박 주자들이 경선 보이콧 가능성을 시사하자 ‘달래기’에 나섰지만 사태는 오히려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새누리당은 공천헌금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듯하다. 중앙선관위가 공개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국민의 대표자이자 독립적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직을 현금으로 사고팔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새누리당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다 경선이 위기에 처하자 뒤늦게 탈당 권유 방침을 밝혔으나 미봉책일 뿐이다. 성추문이든 논문 표절이든 탈당으로 ‘꼬리 자르기’를 해온 행태의 반복에 불과하다.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은 박근혜 의원의 태도이다. 어제 박 의원은 공천헌금 의혹과 관련해 “지금 양쪽에서 완전히 상반된 주장을 하지 않느냐. 검찰이 명명백백하게 수사해 사실관계를 밝히면, 그 결과를 놓고 법적으로 분명한 처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로 주장을 달리하고 어긋나니까 검찰에서 확실하게 밝혀야 한다”는 전날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이는 새누리당의 총선을 지휘한 책임자로서 온당한 자세라 할 수 없다.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기 전이라 해도 불미스러운 잡음이 빚어진 만큼 최소한 유감 표명을 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다. 공천헌금 파문의 기저에는 박 의원 1인을 중심으로 사당화(私黨化)한 새누리당의 폐쇄적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는 비판이 많지 않은가. 김문수 경기지사는 “검찰에 의해 모든 것이 밝혀지지 않겠느냐는 식의 한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를 지지율이 뒤처진 경쟁자의 정략적 공세로 치부하지 말고 경청해야 한다. 미봉책으로는 경선 판까지 번진 ‘돈 공천’ 파문을 수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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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 정년을 최소 60세로 법제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홍영표 민주통합당 의원은 지난 1일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민주당은 이 개정안을 당론화할 방침이라고 한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달 31일 교섭단체 대표 방송연설에서 “현재 법적으로 권고사항인 60세 정년을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새누리당은 다음주 개정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앞서 여야는 지난 4·11 총선 때 장년층과 노인층을 위한 공약으로 같은 내용을 각각 발표한 바 있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대선을 앞둔 올 정기국회에서 정년 연장을 의무화하는 쪽으로 고령자고용촉진법이 개정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사회의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현실에서 정년 60세 의무화와 정년 연장은 시급히 이뤄져야 할 과제다. 평균수명은 80세가량이나 되지만 퇴직 연령은 평균 53세에 불과하다. 기본생활에도 턱없이 부족한 국민연금은 60세가 돼야 받는다. 게다가 수급 시기는 내년부터 갈수록 늦어진다. 자녀 교육 등으로 씀씀이가 많은 50대 중반 은퇴자 중에는 퇴직금을 밑천으로 자영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더욱이 일할 능력은 있으나 할 일이 없어 노는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 국가적·사회적 부담이 되고, 결국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젊은층의 짐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정년 연장은 단순히 노인만을 위한 제도가 아닌 것이다. 한국보다 먼저 고령화 문제를 겪은 선진국이 너나없이 정년을 늘린 것도 이 때문이다.


정년 (출처: 경향DB)


정년 연장의 필요성에는 노동계와 재계, 정부 모두 공감한다. 그러나 방법과 시기 등 세부적인 방법에서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지난해 대통령 자문기구인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60세 정년 연장 법제화 문제가 합의에 이르지 못한 이유다. 사실 현행 연공서열식 급여 구조에서는 정년을 연장하면 생산성을 높인다 하더라도 기업의 부담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일부 전문가는 정년 연장이 신규 채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기업 현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년 60세 법제화는 기업 부담 증가와 청년 일자리 잠식 등 예상되는 부작용을 해결하는 방안과 함께 논의돼야 한다. 이 과정에 노사가 자기 주장만 해서는 안된다. 우리보다 앞서 같은 고민을 하고 해결책을 강구한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 합의를 도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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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자동차부품업체 SJM과 만도의 사업장에 난입해 파업 노동자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휘두른 용역경비업체 컨택터스의 끝없는 범법행각과 당국의 묵인방조 행태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도대체 이 나라가 최소한의 법과 상식이라도 작동하는 곳인지 근본적인 의심을 품게 된다. 곤봉과 쇠파이프 등으로 무장한 ‘용역깡패’들을 앞세워 수십명의 노동자들에게 중경상을 입힌 이 업체는 2009년 9월 충남지역 자동차부품업체인 한성실업의 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자사 직원을 위장취업시키는 참으로 믿기 어려운 짓까지 저질렀다고 한다. 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사측은 노조의 반대를 무릅쓰고 6명의 신입사원을 채용했으며, 이들은 곧바로 노조에 가입했는데 이 중 4명이 컨택터스의 직원이었다. ‘내부첩자’로서 노조에 침투한 이들은 주요 협상정보를 사측에 넘기는가 하면 사사건건 노조활동을 방해했고, 결국 직장폐쇄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컨택터스는 또 노동관계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파업 사업장에서의 대체인력 공급까지 시도했다고 한다.


회사 밖으로 쫓겨난 경기 안산시 에스제이엠 노조원들 (경향신문DB)


그럼에도 컨택터스가 법적 제재를 받기는커녕 보란듯이 범죄행위를 저지를 수 있었던 ‘비결’이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다. 이 업체의 문성호 회장이 2007년 이명박 후보 중앙선거대책위 특별직능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으며, 지금도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지도위원이라는 주요 당직을 맡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SJM과 만도를 포함해 전국의 수많은 사업장에서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해 백배사죄하고 법의 심판을 감수하겠다는 자세를 보여도 시원찮을 이들이 노조원들을 비난하고 문제를 제기한 야당 국회의원들을 조롱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바로 문 회장이 갖고 있는 정치적 배경이었을 터이다. 새누리당은 즉각 문 회장을 당직에서 퇴출시키고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새누리당이 추구하고 있는 쇄신의 내용에 ‘용역깡패 후원’이 들어갈 수는 없다. 


우리가 이미 수차례 촉구한 바 있지만 용역폭력은 민주국가의 기본질서를 훼손하는 범죄행위라는 차원에서 다시는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발본색원해야 한다. 폭력을 휘두른 컨택터스와 폭력을 사주한 업체, 이를 비호함으로써 크나큰 직무유기를 저지른 관련당국 등 3자 모두에 대해 전면적인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을 폭력으로부터 지켜야 할 국가의 책무라고 하겠다. ‘용역깡패’들이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곤봉과 쇠파이프 앞에서 극도의 공포를 느낀 여성노동자들이 수차례나 112에 전화를 걸어 “살려주세요”라고 절규했는데도 경찰이 묵살하는 국가는 국가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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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그제 전격적으로 검찰에 출석했다. 저축은행 2곳에서 80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박 원내대표는 앞서 세 차례 소환 통보에 응하지 않았으나 이날 자진해서 조사를 받았다. 검찰도 “긴급하게 체포해 조사할 필요성이 사라졌다”며 체포영장을 철회했다. 이로써 박 원내대표 체포동의안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은 일단 진정 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박 원내대표가 뒤늦게나마 시민적 상식과 법 감정을 존중하는 선택을 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가 검찰에 나가지 않았다면 국회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을 통과시키려는 새누리당과 이를 저지하려는 민주당의 극한 대치가 계속됐을 것이다. 그사이 국회의 본분인 민생 문제는 뒷전으로 밀리고 국민의 정치 혐오는 가중됐을 것이 분명하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대검 청사를 나서고 있다. (경향신문DB)


어제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박 원내대표는 “저에 대해 제기된 의혹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검찰도 충분히 이해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검찰은 그러나 한 차례 더 불러 조사한 뒤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박 원내대표가 갑자기 출석한 탓에 조사 시간이 부족했다는 게 이유이다. 수사기법의 문제는 검찰이 알아서 할 일이다. 다만 검찰은 박 원내대표의 자진 출석으로 공이 자신들에게 넘어왔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검찰은 제1야당 원내대표를 국회 회기 중에 소환하면서 사전에 일정 조율조차 하지 않아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1차 출석요구를 한 시점도 파이시티 금품수수 혐의로 기소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대선 경선자금으로 돈을 받았다”고 진술한 직후여서 야당의 반발을 샀다. 검찰은 공정하고 철저한 수사를 통해 이러한 논란을 불식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불법 대선자금 의혹에 대해서도 똑같이 메스를 대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정권 연장용, 야당 죽이기 공작수사”라는 민주당의 주장이 힘을 얻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정치권은 이제 민생으로 돌아가야 한다. 유럽발 재정위기의 충격이 확산되면서 경제를 이끄는 3대 축인 내수·수출·투자가 모두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경제위기 대책 수립은 여야 할 것 없이 초당적으로 머리를 맞대야 할 사안이다. 민간인 불법사찰 국정조사, 내곡동 사저 특검, 언론 청문회 등 19대 국회 개원협상 합의사항도 하루빨리 본궤도에 올려놔야 한다. 이처럼 과제가 산적해 있는데도 여야가 8월 임시국회 소집 시기를 두고 맞서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민주당은 당장 4일부터 소집하자고 하는 반면, 새누리당은 “박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제출에 대비한 방탄용”이라며 소집을 중순 이후로 늦추자는 입장이다. 여야는 당리당략에 매몰되지 말고 조속히 협상에 나서 국회를 열기 바란다. 정치의 최우선 과제는 민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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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 한신대 교수·경제학


경제가 매우 어렵다. 단골 식당에 들렀더니 대뜸 하소연이다. “죽을 지경입니다. 지난 4월께부터 아주 힘들어졌습니다. 이대로 가면 버틸 수가 없습니다.” 정치는 불신의 대상이다. 식사 전 타이어를 교체하느라 카센터에 앉아 있는데, 드나드는 이들이 대선 후보를 화제에 올렸다. 선호하는 후보는 모두 달랐지만, 이구동성인 바가 있었다. “정치는 뿌리째 싹 바뀌어야 한다.” 


 일찍이 그레고리 헨더슨이 관찰한 한국 정치의 모습이 재현되고 있다. 변화에 대한 열망이 ‘안철수 현상’이라는 소용돌이로 나타나고 있다. 그간 한국의 정당·언론·지식인들은 정책적 대립을 반영하는 독자적·중간적 집단으로 기능하지 못했다. 모두 정치권력을 향해 돌진하는 행태를 보일 뿐이었다. 보수는 물론 진보 이념도 대중을 효과적으로 설득하고 통솔하는 구심점이 되지 못했다. 대중의 에너지는 종종 자기조직화해 새로운 기류를 만들어냈고 어느 순간 소용돌이가 되어 중앙권력을 향해 휘몰아쳤다. ‘안철수 현상’이 새로운 시대를 가져올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그러나 그 소용돌이가 과거의 시대를 허물고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경향신문DB)


수명이 다해가고 있는 과거의 시대는 ‘87년체제’라 할 수 있다. 87년체제론은 1987년의 민주화가 여러 측면에서 우리 사회의 중요한 전환점이었고 그 이후의 사회변동을 통일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통찰이다. 87년체제를 어떻게 정의할지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있을 수 있지만, 필자는 87년체제가 세계체제·분단체제에 조응하고 있으며 나름대로의 정치체제와 경제모델을 지니는 것으로 생각한다.


87년체제의 환경이 되었던 세계체제에서는 미국의 일극적 헤게모니 속에서 글로벌화와 금융자본주의가 전개되었다. 1980년대 이후 미국으로 금융자본이 집중되고 미국의 대외적 군사활동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는 세계 경제위기로 확산되었고 선진국 경제의 위축은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영향력은 커졌지만, 중국의 경제성장 역시 수출 중상주의 성과에 힘입은 바 크기 때문에 향후 중국의 성장세도 둔화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중심의 세계체제는, 동북아 차원에서는 냉전체제로, 한반도에서는 분단체제로 구체화된 바 있다. 분단체제에서는 남북한 국가 주도의 성장체제를 구축했으며 이로부터 형성된 기득권 세력이 과대 팽창해 있다. 한국의 민주화에도 민주주의 체제가 불안정한 것은 분단과 전쟁 속에서 이념적 대립이 구조화한 데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에서는 국가 주도로 불균형 성장을 추진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세계화 추세에 편승한 재벌체제가 그 외형을 크게 확대했으며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엄혹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한편 자본 내, 노동 내 격차와 지역 간 격차는 심화되었다. 국가 주도 성장과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속에서, 대기업·정규직·수도권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었고, 중소기업·비정규직·영세자영업·비수도권은 소외의 그늘이 깊어졌다.


87년체제를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내주는 요소는 정치체제이다. 1987년의 민주화는 군부독재통치를 경쟁적 정당체제로 이행하게 했지만, 그 정당체제는 매우 불완전한 것이었다. 1987년 이후의 정당체제는 지역정당체제였다. 유권자의 지역주의에 기반해 보수 주도의 중앙집권국가는 계속 유지되었다. 보수·진보의 이념적 선호는 국가주의와 신자유주의에 소외된 대중의 목소리를 대표해주지 못했다. 이 때문에 87년체제에서는 제도권 정치체제에 포괄되지 않는 대중의 열망이 변화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내곤 했다.


이제 87년체제를 규정하던 요소들이 변동과 이완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세계적인 장기침체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고, 북한은 해방 이후 최대의 시스템 변동의 시기에 들어가 있다. 한국의 경우 국가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조합에 의한 발전모델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제 더 이상 성과를 내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 대중은 기존의 정치질서를 불신하고 그것에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대중은 중심부와의 네트워크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대중에게는 곧바로 권력 중심부를 흔들어버릴 소용돌이의 에너지가 있다.


87년체제의 종말이 머지않았다면, 그 이후의 경로에 대해 준비할 필요가 있다. 세계체제·분단체제의 변동 시기에 남북 및 동아시아 평화체제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 국가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조합에 의한 집권적 발전모델은 네트워크형 조직에 의한 분권적 발전모델로 전환해야 한다. 보수 주도의 중앙집권적 국가모델에서 분권형 국가모델로 넘어가야 한다.


‘안철수 현상’은 새로운 질서로 이행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여기에는 핵심 과제들이 있다. 한반도 차원의 위기 관리와 서민경제 안전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발전모델의 혁신을 위해서는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 분권화 개혁으로 대중의 정치참여를 확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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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엊그제 분식회계 등 혐의로 구속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구명운동에 참여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자 안 원장은 즉각 이에 대한 비판과 지적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안 원장은 벤처기업인들과 재벌 2·3세 모임인 ‘브이 소사이어티’ 회원의 일원으로 2003년 4월 1조5000억원대의 분식회계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최 회장의 선처를 부탁하는 탄원서를 냈다. 논란이 불거지자 안 원장은 기자들에게 e메일을 보내 “인정에 치우칠 것이 아니라 좀 더 깊이 생각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안 원장의 과거 처신이 문제가 된 것은 탄원서 내용이 전형적인 친재벌 논리였기 때문이다. 안 원장은 최근 낸 책 <안철수의 생각>에서도 “(기업주의 전횡을) 행정·사법부가 입법 취지대로 집행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주장한 바 있다.


힘주어 강연하는 안철수 원장 (경향신문DB)


이 사안 자체의 심각성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를 수 있겠으나, 다시금 정치인의 검증 문제를 제기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대선을 4개월 남짓 남겨둔 현시점에도 안 원장은 명시적인 출마선언을 하지 않고 있다. 일전에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출마 여부에 대해 “조만간 결론을 내려야겠다”고 말한 것이 전부다. 우리는 그가 공식 출마선언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이미 밝힌 바 있거니와, 다시 한번 그 필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거두절미하고 정치인, 특히 유력 대선주자의 검증이 중요한 이유는 오판으로 인한 불행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 지도자에 대한 소홀한 검증은 유권자의 오판을 낳으며, 그것은 국민과 국가의 불행으로 직결된다. 우리는 그 생생한 사례를 이명박 대통령에게서 보고 있다. 5년 전 그의 당선은 노무현 정권의 경제도탄론이 부풀려지면서 경제를 살릴 지도자란 이미지가 과도하게 부각된 데 힘입은 바 크다. 오늘 그 결과는 경제 살리기도, 도덕성도, 안보능력도 기대 이하란 사실이 드러났다. 단순화한다면 이는 후보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안된 탓으로 돌릴 수도 있다.


대선 후보에 대한 검증은 누구도 피할 수 없으며 가혹하리만큼 철저해야 한다. 그 점에서 우리는 타 후보들에 대한 검증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안 원장에 대한 검증이 매우 지지부진한 것에 대해 우려한다. 시간은 많지 않다. 국민은 유력 대선 후보에 대해, 그의 정치철학과 정책에 대해 속속들이 알 권리가 있다. 


또 한 나라를 이끌 지도자가 될 생각이 있다면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국민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 한다.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불확실성과 궁금증을 해소해 줘야 한다. 안 원장은 <안철수의 생각> 서문에서 “정치참여 문제는 혼자 판단할 수 있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므로, 내게 그럴 최소한의 자격과 능력이 있는지 판단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의견을 경청하겠다고도 했다. 공감은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건가. 이런 식의 탐색전은 그만할 때가 됐다. 혹여 어떤 숨기고 싶은 약점이 있더라도 일찍 드러나는 게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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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봉 |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


 

최근 방송통신위원회가 앞으로 3년 동안 MBC 사장 선임과 방송국의 경영을 관리 감독할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진을 새로 선임했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이번에 새로 선임된 9기 방문진 이사에 지난 8기 방문진 이사로 활동했던 김재우 전임 방문진 이사장과 김광동, 차기환 이사 등 3명을 다시 추천했다. 


 이들을 다시 방문진 이사로 추천한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의 의도는 명확하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낙하산 사장으로 공영방송 MBC를 친정부 성향의 MB방송으로 전락시켜 국민적인 지탄을 받고 있는 김재철 현 MBC사장을 해임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지난 170일 동안 차가운 길바닥에서 공정방송 사수를 외치며 개인적인 피해와 징계, 그리고 갖가지 탄압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게 맞서 싸운 MBC 노조의 눈물겨운 투쟁을 철저히 짓밟는 행동이다.


국회 문방위 출석한 김재우 이사장 (경향신문DB)


MBC의 운영과 경영을 관리감독해야 할 책임이 있는 김재우 전임 방문진 이사장은 노조의 파업으로 MBC가 파행을 겪고 있을 때, MBC노조의 파업을 정치 불법파업으로 규정하고 MBC 파업사태 해결을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등 MBC 파업을 철저히 외면해 직무를 유기해 왔다. 나아가 연일 터져 나오고 있는 김재철 사장의 비리 의혹에 대해서도 노조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며 진상규명을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김재우 전임 이사장의 이러한 수수방관과 직무유기로 김재철 사장은 사회적 비난과 압박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MBC 사장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고, 더 나아가 자신의 임기를 반드시 마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공영방송 사장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삼류 막장 드라마 같은 비리의혹이 계속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도 김재철 사장이 임기를 마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는 배경에는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이 그를 정권말까지 끌고가 올해 대선에서도 지난 4·11 총선 때처럼 온갖 왜곡 편파 방송을 통해 여당 대통령 후보에게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겠다는 의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와 여당의 이러한 의도는 김재우 전임 방문진 이사장과 이사 2명의 재임명을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편집 자율성과 공영성 말살로 공영방송 MBC를 망친 장본인인 김재철 사장과 함께 지난 8기 방문진은 엄중한 책임을 져야한다. 그럼에도 이들을 다시 3년 동안 MBC를 관리 감독하는 이사로 재임명하는 정부와 여당의 행태는 공영방송의 주인인 국민들을 우롱하는 태도다.


그런데 이처럼 새로운 방문진 이사 선임이 국민들의 공영방송 정상화 여론을 철저히 무시한 채 MBC를 기존의 MB방송으로 끌고갈 수 있는 배경에는 정치권이 방문진 구성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방문진 이사를 선임할 권한을 가지고 있는 방통위는 독립적으로 방문진 이사를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여당, 그리고 야당에서 추천한 인사들의 명단을 받아 임명하고 있어 정치적인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와함께 방통위에 방문진 이사를 추천하는 여야 정치권 역시 추천 과정에서 방송 관련 전문성을 고려하기보다는 정치적인 고려에 의해 추천 대상자를 선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사례는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도 마찬가지다. 여야 모두 이사 추천 과정에 방송분야에 대한 전문성보다는 힘 있는 국회의원들의 정치적인 영향력에 의해 추천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이 더 이상 정치적인 영향력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정치적인 영향력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공영방송의 독립과 공영성 확립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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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의 대선 후보 경선이 ‘마이너리그’로 전락할 위기를 맞고 있다. 경선 1주일이 지나고 있으나 ‘안철수 바람’에 묻혀 존재감마저 사라져가는 듯한 형국이다. 거센 안철수 바람에서 연유한 바 크지만 당 지도부가 경선을 통한 자강 노력을 등한시한 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행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 탓도 적지 않다. 컷오프 이전의 예비 경선에 불과하다고 자위하기엔 상황이 심각하다. 내실 없이 ‘이벤트 정치’에만 의존해온 한계가 아닌가 싶다.

민주당 경선은 야권의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해 안 원장에게 맞설 대항마를 뽑는 예선쯤으로 치부되고 있다. 이해찬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애초부터 안 원장과의 최종 경선을 기정사실화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지도부라면 그런 시나리오가 불가피했다 할지라도 경선을 통해 자당 후보를 널리 알리고, 지지율을 제고하는 데 집중했어야 옳았다고 본다. 127명의 의원 중 경선 후보 8인의 캠프에 이름이라도 올려놓은 인사가 50명을 밑돈다는 사실은 뭘 의미하는가. 지지자가 없다거나 특정캠프 참여 때 불이익이 예상된다는 등의 이유를 드는 모양이나 자당 후보에 대한 불신이자 안 원장에 대한 기대 때문일 것이다. 경선이 예선용으로 흐르다보니 구도조차 일찌감치 ‘문재인 대 반문재인’으로 고착됐다. 경선의 최대 이슈가 고작 참여정부의 책임론이라니 역동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말로만 2002년 대선의 ‘노풍’ 재연을 외쳤을 뿐 행동은 하지 않은 결과다.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토론회 ㅣ 출처:경향DB

‘문재인 대선 후보-이해찬 대표-박지원 원내대표’ 담합론으로 상징되는 구태정치가 그 뿌리다.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가 담합에 대한 반발로 어렵게 선출되자 당내 지지율 1위에도 불구, 초조해진 문 후보가 타 후보들의 기선을 제압한답시고 안 원장에게 덥석 공동정부론을 제안하고 나섰다. 그 순간 민주당과 안 원장은 둘이 아닌 하나로 묶여버렸다. 민주당과 안 원장은 선의의 경쟁을 벌여야 마땅하나 경쟁보다 결과를 공유해야 하는 공동운명체적 인상만 강화시켰다. 양측의 각축이 경쟁을 통해 서로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윈-윈이 아니라, 한쪽이 오르면 다른 한쪽은 내려올 수밖에 없는 시소게임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민주당은 오늘 밤 대선 후보를 8명에서 5명으로 줄인다. 그동안 분산된 유권자들의 시선을 집중시켜 2차 발진을 하자는 취지다. 민주당의 다짐과 달리 런던올림픽의 열기에다 박 원내대표의 방탄국회 시비까지 주변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안철수 현상’에 대한 민주당의 몰이해와 아전인수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안철수 현상은 고정불변의 그 무엇이 아니다. 현 정치에 대한 불만과 미래 정치에 대한 갈망이 녹아 있다. 무기력한 민주당과 소통부재의 새누리당식 정치야말로 안철수 바람을 키우는 최적의 토양이다.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안철수 현상부터 제대로 이해하고, 극복해야 한다. 안철수 바람의 실체를 헤아리는 것이 이해라면, 그 바람을 이기고자 배전의 노력을 쏟아내는 게 극복이라 할 것이다. 그것만이 민주당도 살고, 안 원장도 사는 길이다. 민주당이 안 원장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대선 연대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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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27일 김재우 이사장을 비롯해 김광동·차기환 등 8기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 3명을 재선임했다. 이들은 공영방송 MBC의 장기간 파행방송사태를 무책임하게 방치한 장본인들이다. 김재철 사장의 퇴진과 공영방송 복원을 외치며 MBC 구성원들이 170일 동안 벌인 파업을 무위로 돌리는 것은 물론, 국회 개원협상을 통해 공영방송 정상화에 뜻을 모은 정치권의 합의정신마저 흔드는 결정이 아닐 수 없다. 김재우 이사장은 공영방송을 정권의 나팔수로 만들어온 김재철 사장의 행태를 적극 비호해왔다. 지난주에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 불참해 국회마저 무시하는 태도를 내보였다.

방통위의 이번 결정은 김재우-김재철로 이어지는 공영방송의 걸림돌들을 온존케 함으로써 임기 말까지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외면하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방송을 유지하겠다는 청와대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고밖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노조가 지난 17일 정치권의 합의를 믿고 파업을 철회한 뒤 MBC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절망적이다.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들에 대해 대규모 보복성 인사를 단행한 것은 물론, 시사프로그램 <PD수첩>의 작가들까지 전원 교체하고 있다. 비판성과 공정성을 견인해온 내부역량을 스스로 허물면서 김재철 사장의 MBC가 가려는 길은 분명하다. 김재철 사장 자신에게 쏟아지는 온갖 비리의혹과 추문을 뒤로하고 되레 조합원들에게 인사상의 불이익이나 주려는 것이다. 그러면서 친정권 논조로 일관해온 ‘MB씨(氏)’의 강화를 꾀하고 있다.

 

기자들 질문에 답하는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 ㅣ 출처:경향DB

공영방송 MBC의 정상화는 필연적으로 감독 및 인사권을 갖고 있는 방문진 이사회의 정상화를 전제로 한다. 우리가 9기 방문진 이사회 구성에 앞서 김재우·김광동·차기환씨 등의 배제를 촉구했던 것은 애당초 불통으로 일관해온 이명박 정부의 방송정책이 바뀔 것이라고 기대해서가 아니다. “9기 방문진 이사회가 합리적 경영 판단 및 법 상식과 순리에 따라 조정, 처리토록 하겠다”고 약속한 정치권이 이사회 구성에서부터 그 합의정신을 관철해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정치권, 특히 새누리당의 의지에 따라 아직 유효한 기대이기도 하다. 9기 이사회는 다음달 9일 임기를 시작한다. 전체 이사 9명 가운데 사실상 여당 몫으로 새로 임명된 김충일·김용철·박천일 이사가 상식과 순리에 따른 결정을 내려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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