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e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Friend~’로 시작되는 편지의 발신인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었습니다. 놀라지는 마십시오. 2008년 미 대선 때 국제부에 있으면서 오바마 선거캠프의 메일링 리스트에 주소를 올려놓았더니 지금도 이따금 메일이 날아옵니다. 주로 새로운 정책이나 캠페인을 설명한 뒤 ‘Please donate(기부하세요)’로 끝을 맺곤 하지요. 이번 메일의 제목은 ‘Marriage(결혼)’였습니다. 이미 보도된 것처럼 동성결혼 지지 입장을 밝히는 내용이더군요. 오바마 대통령은 “게이와 레즈비언들이 공정하고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믿어왔지만 ‘결혼’이라는 말이 연상시키는 강한 전통 때문에 이를 동성커플에게 사용하는 것을 주저했다”고 털어놨습니다. 하지만 “동성커플의 자녀를 친구로 둔 두 딸 사샤와 말리아를 보며, 그 친구들의 부모가 다르게 대우받아선 안된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래서 나의 개인적 신념을 밝히기로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미국에서 동성결혼은 종교·사회·문화적으로 휘발성이 큰 사안입니다. 한국의 보수진영이 기회만 되면 색깔론을 제기하듯, 미국에서 동성결혼 문제는 보수가 선호하는 선거 이슈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진보 성향의 오바마가 도박을 했습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동성결혼 합법화 찬성론이 반대론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그 차이가 크지는 않습니다. 진보세력은 오바마의 발언을 미국 민권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역사적 선언으로 평가하는 반면,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불붙은 ‘문화전쟁’이 오바마에게 유리할지, 불리할지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동성애자인 미국 남성이 오바마 대통령의 동성결혼 지지 선언을 TV로 지켜보고 있다. ㅣ 출처:AP연합뉴스/경향DB

# “이번 남북 약혼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는 4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무디스는 대한민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로 상향조정했습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전환된 것입니다.”

드라마 <더 킹 투 하츠>에서 남한 국왕 이재하(이승기)와 북한 여군장교 김항아(하지원)의 약혼식을 전하는 방송기자는 흥분된 어조로 이렇게 말합니다. 대한민국이 입헌군주국이라는 전제 아래 펼쳐지는 드라마에서 남북 결혼을 추진한 것은 이재하의 형인 선왕 이재강(이성민)입니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소망하는 그는 남북한 장교로 단일팀을 구성해 세계장교대회에 출전시키는 방안을 밀어붙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단일팀에서 만난 남남북녀 이재하와 김항아의 결혼까지 추진하지요. 그러나 자신들의 ‘놀이터’인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탐탁잖아 하는 글로벌 군산복합체 ‘클럽 M’에 암살당하고 맙니다. 이재강은 죽음을 예상이라도 한 듯 동생 커플의 약혼식 주례를 위한 영상을 미리 녹화해 두었습니다. 그는 예비부부에게 “이 땅의 모든 전쟁 위험을 없애기 위해 솔선수범하며, 불가피한 전쟁 상황이 닥치더라도 끝까지 힘을 합쳐 막아내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판타지인 줄 알면서도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며칠 전 영화 <코리아>에서 본 남북 탁구단일팀이 떠올랐습니다. 그 주역인 현정화·리분희 선수가 19년 만에 재회하려 했지만 무산됐다는 기사도 머릿속을 스쳐갔습니다.

# “진보적인 미국, 보수적인 미국은 없습니다. 흑인의 미국, 백인의 미국, 라틴계의 미국, 아시아계의 미국도 없습니다. 하나의 미국이 있을 뿐입니다. 불안 속에서도 담대한 희망을 가집시다.”

무명의 주 상원의원이던 오바마는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하면서 ‘전국구 스타’로 부상합니다. 그는 넉 달 뒤 흑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연방 상원에 입성하고, 이태 후에는 자신의 연설 내용을 딴 책 <담대한 희망>을 펴내면서 사실상의 대선 출사표를 던집니다. 다시 이태가 지나고 그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오릅니다. 취임 후 오바마의 국정운영이 지지자들을 만족시킨 것은 아닙니다. 건강보험 개혁안과 재정적자 감축안 등에서 공화당에 지나치게 양보한다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동성결혼 지지를 선언한 것도 등돌린 지지층을 되찾기 위한 승부수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 의미를 폄훼할 수는 없습니다. 뉴욕타임스의 표현대로 “오바마의 발언이 결혼권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을 끝내지는 못하겠지만, 발언 자체로 대단히 큰 상징적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답답합니다. 정치판이 특히 그렇습니다. 사방에서 부정, 부패, 폭력, 불통, 오만, 독선 같은 말들이 들려옵니다. 이럴 때 누군가 꿈을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개헌론 같은 권력자들의 관심사 말고, 담합인지 단합인지 헷갈리는 ‘그들만의 연대’ 말고, 시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담대한 희망 말입니다. 오바마처럼, 이재강처럼 당당하고 용기있게 고정관념에 맞서는 지도자를 보고 싶습니다. 그저그런 잠룡에 머물고 싶지 않다면 정치적 득실이나 현실적 유불리를 뛰어넘어 ‘다른 세상’을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현실에서든 드라마에서든 세상을 바꾸는 힘은 꿈이요, 상상력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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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동 | 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


국방부는 지난 8일 “일본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및 상호군수지원협정(ACSA)을 체결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르면 5월 안으로 김관진 국방장관이 일본을 방문해 일본 측과 협정들을 체결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 국방부 측에서는 한·일군사협정 체결에 대해 알고 있으나 미국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한·일군사협정은 미국의 숙원사업이다.

미국은 1954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직후부터 한·미·일 3국동맹의 성립을 희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한·일관계는 국교수립도 되지 않은 상태여서 동맹을 논의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러다가 박정희 군사정부는 1965년 6월 일본과의 매국적인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했다. 이때 기본조약 제2조에서 “1910년 8월22일 이전에 대한제국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조약 등은 모두 ‘이미 무효임’이 확인된다”고 넘겨버렸다. 또 부대협정으로 ‘청구권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을 맺었는데, 이때 ‘3억달러의 무상공여’로서 모든 청구권을 해결한 것처럼 일본은 지금도 계속 고집하고 있다.

 

‘한·일군사협정 결사반대 범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ㅣ 출처:경향 DB

그야말로 뼛속까지 친미이며 친일인 이명박 정권에 1965년의 한·일협정을 개정하는 것은 기대할 수가 없다. 그리고 새누리당에도 이러한 기대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야당의 대선 후보자는 반드시 1965년 한·일협정의 개정을 추진하기를 바라고 이것을 공약으로 내세우기를 바란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이 맺어진 후 냉전시대의 미국은 미·일과 한·미 두 상호방위조약뿐만 아니라 한·일군사협정이 체결됨으로써 한·미·일 3국의 동맹관계를 보다 공고히 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민적인 반대가 너무나 명확해 공식적으로 한·일군사동맹은 추진하지 못하며 지내왔다. 이제 정권 말기에 친미, 친일을 넘어 그야말로 철저한 종미주의자인 이명박 정부에서는 새 국회가 열리기에 앞서 한·일 간의 부분적인 군사동맹이라고 볼 수 있는 ‘군사정보보호협정’과 ‘상호군수지원협정’을 슬쩍 맺으려는 것으로 보여진다.

우리 국토의 일부를 자기들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적대적 행동이 분명하다. 더구나 냉전이 종결된 마당에 한·일군사협정 체결이나 제주도에 군항을 건립하는 것은 우리의 적이 아닌 중국을 적대시하는 행동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우리의 최대 수출 대상인 중국을 적대시하는 것은 국가의 이해관계로 보아서도 납득가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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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당권파가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최악의 폭거를 저질렀다. 엊그제 비례대표 부정경선 파문 수습을 위해 열린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는 공당으로서 상상조차 하기 힘든 폭력사태로 얼룩지며 중단됐다. 이날 중앙위는 통합진보당에 주어진 중요한 기회였다.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에 표를 던진 200만명 이상의 유권자, 그리고 진보정치의 대의에 공감하는 모든 시민들은 숨을 죽이고 회의를 지켜봤다. 당내 제세력이 극적 합의를 통해 파국을 피하고 새 출발의 길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속절없이 배반당했다. 당권파 당원들은 1980년대 ‘용팔이 사건(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을 연상케 하는 난장판을 연출했다. 참담한 심경과 함께 개탄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당권파는 중앙위가 시작된 직후부터 중앙위원 불법교체 의혹을 제기하며 구호와 욕설로 회의 진행을 방해했다. 이들은 의장을 맡은 심상정 공동대표가 첫번째 안건인 강령 개정안 가결을 선포하자 단상에 난입했다. 주먹질과 멱살잡이 속에 조준호·유시민 공동대표는 얻어맞고 안경이 벗겨지는 등의 수난을 당했다. 공당의 대표가 당원들에게 집단폭행당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결국 심 의장은 회의 진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무기한 정회를 선언했다. 어제 중앙위 의장단은 혁신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등 핵심 안건을 전자투표에 부쳤으나 당권파는 이 투표도 인정할 수 없다며 버티고 있다.



운영위원들과 대화나누는 공동대표들 (경향신문DB)



모두가 보란듯이 폭력을 휘두른 당권파의 속내는 분명해 보인다. 어떠한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기득권을 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중앙위를 무산시켜 19대 국회 임기가 시작되는 이달 30일까지 시간벌기를 하려는 모양이다. 이후엔 당권파의 핵심인 이석기·김재연 당선자 등이 국회의원 신분이 돼 당 차원에서 사퇴시킬 방법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당권파에게 묻고 싶다. 진보정치의 대의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칠 만큼 국회의원이란 자리가 대단한가. 부정과 폭력까지 동원해 금배지를 달고 난 뒤 누구를, 무엇을 대표하려 하는가.


진보진영은 당권파의 반민주적·몰이성적 행태를 바라보며 깊은 탄식을 내뱉고 있다. 그러나 진보를 자처하는 세력과 인사들은 당권파만 탓하며 충격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진보진영의 구성원들은 모두 통합진보당 당권파라는 괴물이 생겨나는 데 방관하거나 방조하지 않았는지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낡은 진보는 확실히 죽었다. 그 시체 위에서 새로운 진보로 부활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낡은 진보에 조종(弔鐘)을 울리고 새로운 진보의 싹을 틔우는 데 진보진영 전체가 힘을 합쳐야 한다. 특히 통합진보당을 구성하는 핵심 세력인 민주노총의 역할이 중요하다. 민주노총은 예고한 대로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 철회를 포함해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당권파를 압박해야 한다. 통합진보당 내부의 양심적 세력도 조속한 시일 내에 경쟁부문 비례대표 당선자·후보의 총사퇴를 관철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이들의 국회 입성은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 진보정치의 재구성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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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살다보면 어떤 사건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어떤 막장드라마보다도 더 막장인 통합진보당 사태가 그러하다. 이를 지켜보고 있자니 대학 시절 군사독재에 저항하다가 투옥·제적·강제징집을 당한 일, 기자가 된 뒤 강제해직을 당해 유학을 떠나야 했던 시절, 교수가 된 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의장 등 궂은일을 맡아 현장을 뛰어다녀야 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사실 대학에 들어가 정치의식을 가진 이후 개인적으로 “진보란 모든 억압, 착취, 차별, 배제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진보적으로 살려 노력했고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왔다.



통합진보당의 앞날은? (경향신문DB)



 그러나 이번 사태를 보면서 정말 내가 진보라는 것이 너무도 부끄럽다. 물론 진보라는 것을 부끄럽게 느낀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대 초인가 학생운동세력이 경찰 프락치를 잡아 심문을 한다며 고문해 죽인 것을 보면서 너무도 부끄러웠다. 또 진보세력의 다수파가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침묵할 때, 탈북자들의 인권을 두고 보수 정치인이 단식농성을 하는데도 진보라는 사람들이 침묵할 때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러나 이번만큼 부끄럽지는 않았다. 이승만 시대를 연상하는 부정선거도 선거지만, 이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말도 되지 않는 궤변으로 정당화하려는 경기동부연합 등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행태는 정말 나를 절망하게 만든다. 아니 여러 표가 한꺼번에 붙어서 나온 몰표에 대해 ‘풀이 다시 붙었기 때문인지 모르지 않느냐’고 답하는 사람들에 대해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이런 사람들이 진보의 대표이고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라니, 믿고 싶지가 않다. 정말 진보가 저런 것이라면, “나는 진보가 아니다”라고 서울광장에 나가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 부정 시비가 이는 선거에 의해 당선된 비례대표 당선자들의 사퇴론에 대해 진성당원제도를 내세워 당원투표를 하자는 당권파의 논리도 그러하다. 비례대표에 당선시켜준 것, 통합진보당이 막대한 국고보조금을 받도록 만들어준 것은 한 줌밖에 되지 않는 당원들이 아니라 그들의 수십배에 달하는 200만의 유권자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말이 되지 않는 주장이다.


비분강개를 넘어서 정작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해서 이 같은 괴물을 만들어냈느냐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파시즘의 야만에 대항해 싸운다는 이름 아래 적을 닮아가 적보다 더 흉악한 괴물이 되고만 스탈린주의의 비극처럼 군사독재와 광주의 비극은 적과 싸운다는 이름 아래 ‘적보다 더 흉물스러운 괴물’을 진보진영 속에 만들어내고 만 것이 아닌가? 최소한 이승만 정권도 몰표에 대해 풀이 다시 붙어서 그랬다는 식의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 진보를 자처해온 사람으로서 진짜 부끄러운 것은 이처럼 진보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준 사이비 종교집단’들이 진보를 대표하는 다수가 되도록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자괴감 때문이다. 그들이 지역으로 내려가 사람들을 조직하고 힘을 키우고 있을 때 소위 ‘건전한 진보세력들’은 세미나 룸에서 고상한 논쟁만 하고 있었던 것이 현재와 같은 상황을 낳은 것이 아닌가? 사실 민주노총, 나아가 진보언론을 포함한 언론조차도 다 알려진 이들의 패권주의적 행태에 대해 그동안 침묵함으로써 현재에 이르는 데 일조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번 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서, 일부 보수언론들이 보여주듯 통합진보당의 당권파에 소위 ‘종북주의’를 이유로 공안적으로 대응해서는 안된다. 물론 이들의 비민주적 관행과 패권주의가 이들의 또 다른 특징인 종북주의와 상당한 관련이 있지만, 이번 사태에 공안적으로 대응하는 경우 ‘비상식 집단’을 다시 한번 반북주의와 공안정치의 희생자 내지 순교자로 만들어줄 우려가 있다. 이번 사태의 단기적 해결을 넘어서 ‘왜곡된 진보정당’이라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건전한 진보’ ‘진정한 진보’가 힘을 기르는 한편 유권자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언론이 현재와 같은 경마중계식의 강자 중심 보도방식을 넘어서 다양한 진보세력에 대한 정보를 객관적으로, 그리고 풍부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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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중남미 등의 진보정당, 더 정확하게는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붉은 장미’를 당의 상징으로 삼고 있다. 장미의 촘촘한 꽃망울은 노동자들의 단결을, 날카로운 가시는 투쟁을, 붉은 색깔은 노동자들이 흘린 피를 의미한다고 한다. 총선 등 각급 선거가 있을 때 진보정당들은 당선자의 이름 위에 붉은 장미를 꽂아주거나 본인에게 직접 장미꽃다발을 안겨준다. 이처럼 진보정당은 보수정당에는 없는 고유한 문화를 갖고 있고, 다수 대중도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통합진보당 등 한국의 진보정당은 ‘붉은 장미’ 외에도 또 다른 전통이 있다. 당내 행사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합창으로 구성되는 국민의례 대신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민중의례를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민중의례는 군사독재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서 연유했고, 나중에는 국가주의적 의식을 거부한다는 차원에서 당의 전통으로 확립됐다고 한다.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7일 국회에서 열린 대표단회의도중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경향신문DB)



통합진보당 유시민 공동대표가 엊그제 전국운영위원회에서 “우리 당은 왜 공식행사 때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가”라며 “국민의례를 거부하는 것이 그렇게 가치 있는 일이냐”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또 “왜 애국가를 부르지 않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가”라며 “이런 문제에 대한 토론이 금기처럼 돼 있는데 나중에라도 과감히 검토해서 국민들과의 관계에서 벽을 쌓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당내 비례대표 선거부정 사태로 당의 존립마저 불투명한 상황에 처한 통합진보당에서 애국가 문제가 불거진 것은 다소 생뚱맞다는 인상을 준다. 지금 시점에서 이 문제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벌이는 것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은 만큼 결코 바람직하지 않으며, 또 실제로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부정선거 문제가 슬기롭게 마무리되고, 당이 정상화된 이후에 차분하게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번의 문제 제기가 당내에서는 당연시되지만 정작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서는 생경하게 받아들여지는 관행과 전통, 습속 등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와 성찰의 계기를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군사독재 정권과 치열하게 싸우던 운동권 시절의 행동양식이나 문화가 언필칭 원내 제3당이 된 지금에도 관성적으로 통용된다면 대중과의 소통과 교감은 그만큼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이번의 선거부정도 자신들이 지향하는 가치와 실천행위는 무조건 옳다는 당권파의 독선과 교만이 빚은 필연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놓고 봐도 명백한 부정선거이고, 당내 상당수 인사들과 다수의 일반인들이 그렇게 여기고 있는데도 ‘부실선거’라고 강변하고 있는 사실이 그것을 입증한다. 통합진보당이 진정 대중적 진보정당을 지향한다면 자신들만의 좁은 우물에서 과감히 뛰쳐나와 대중의 열망과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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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4·11 총선이 끝난 지 한 달이 지났다. 예전 같으면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읽기 위한 치열한 논의와 공방이 전개될 시점이지만, 요즘 정치 기상도를 보면 상황이 생뚱맞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총선 공약은 내팽개친 채 대통령 선거와 관련한 내부 권력구도와 지도체제 개편 논의에만 매몰돼 있고, 통합진보당은 비례대표 부정선거 논란으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진흙탕 싸움에서 허우적대는 중이다. 총선 결과를 복기하면 단순하다. 이명박 정부의 부패와 실정에도 새누리당 우위의 여대야소가 유지됐고, 진보정당의 성장은 지체되었으며,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은 실패했다.


통합진보당은 진보정당 역사상 가장 많은 13석의 의석을 얻었다. 그러나 의석수가 증가했음에도 득표율은 2004년 총선 결과에 못 미쳤고, 노동자 밀집지역인 울산과 창원, 거제 등 전략지역에서 모두 낙선했다. 매우 유리했던 상황 조건을 고려하면 이러한 결과는 실질적 패배로 규정하는 게 옳다. 왜 이렇게 됐을까? 진보정당에 걸맞은 정책의제와 실천의지를 서민대중에게 제시하지 못한 채 야권단일화에 매몰된 것이 주원인으로 보인다. 근본적으로 진보정당이 ‘앙꼬 없는 찐빵’이 되었기 때문이다. 선거 패배의 평가 지점과 새로운 출발을 위한 계기는 결국 노동 없는 진보정치, 세력화하지 못한 노조운동에서 찾아야 한다.


 올해는 한국의 노동자들이 ‘공돌이’ ‘공순이’가 아닌 노동자로서 시민권을 회복하게 된 계기인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발생한 지 25주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도 인간이다”라는 절박한 노동자 인권 선언의 불기둥이 터져 나온 지 벌써 사반세기가 지났다. 하지만 노조 역량의 바로미터인 노조조직률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1989년 19.8%를 기록한 이후 매년 평균 1%가량 떨어져 2010년 현재 9.8%이다. 전체 노동자 10명 가운데 노조 가입자는 1명도 안된다.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치다. 



외환은행노동조합 조합원들이 한강시민공원에서 임시 조합원총회를 열고 있다. (경향신문DB)



기업별노조의 폐쇄적 울타리가 ‘계급’으로서 노동의 연대와 결집을 가로막고 있다. 또한 조합원 500인 이상의 대기업노조 조합원 수가 130만5000여명으로 전체 조합원 수의 78.3%를 차지한다. 노조에 속한 노동자 수도 적지만 노조의 주된 기반은 그나마 근무 조건이 좋은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정규직 노동자들인 것이다. 다수의 중소기업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포괄하지 못하는 노동조합운동은 계급 연대성 약화와 사회적 고립에 직면해 있다.


한 자릿수도 되지 않는 낮은 노조조직률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노동조합을 아직도 ‘뿔난 도깨비’로 보는 전근대적인 사용자의 태도와 인식, 글로벌기업 삼성 등의 시대착오적인 무노조전략, 노조가입권이 박탈되어 있는 200만명의 특수고용직 노동자들, 중립적 위치를 망각한 정부의 사용자 편향 정책, 산업구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제조업 중심의 노조운동 관행, 전체 노동자 수의 반을 훌쩍 넘어버린 비정규 노동자들의 급증, 대기업노조의 폐쇄성 등이 주된 요인으로 지적된다.


노조조직률 하락은 보통사람들에게 부과되는 사회적인 리스크가 한계치에 왔거나 이미 넘어섰음을 가리키는 ‘빨간 신호’다. 노조조직률 하락은 노동조합의 교섭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노조원뿐만 아니라 전체 국민들에게 미치게 된다. 이명박 정부 4년, 서민 대다수의 삶에 드리운 사회 불평등 악화와 고용 불안정 심화는 결국 노조의 약화와도 연동돼 있다. 노동조합은 기업경영과 국가정책의 잘못을 지적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요구하는 사회적 제어장치로서 기능한다. 노동조합이야말로 일터의 민주화와 권리 회복을 위한 버팀목이다.


한국 사회 진보와 개혁의 출발점 역시 노동의 집합적 목소리 회복에 있다. 노동 현장에 기반을 두지 않는 진보정당은 바람 앞의 촛불과 같다. 노동의 세력화야말로 오른쪽으로 쏠린 한국 사회의 무게중심을 바로잡는 저울추가 될 것이다. 진보정치 복원과 정상화의 해법도 노동 현장에 있다. 바로 그곳으로 뛰어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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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논설위원

 


리처드 루거 미국 상원의원의 모습을 가까이서 본 것은 2000년대 초반 워싱턴의 상원의원 회관에서 처음이었다. 루거 의원은 달변이 아니었지만 외교위원회 공청회가 열리면 오랜 연륜에서 오는 해박함과 식견으로 회의를 생산적으로 이끌었다. 가히 상원 외교위원회의 터줏대감이라고 할 만했다. 런 그가 지난 8일 인디애나주 공화당 경선에서 극보수주의자들의 벽을 넘지 못하고 낙선했다고 한다. 루거 의원의 패배에서 미국 정치의 양극화 현상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미국 정치에서 초당파들의 몰락은 이미 시작됐다. 루거 의원과 같은 공화당 소속인 올림피아 스노우에 상원의원이 두 달 전 정치 현상에 넌더리를 치면서 불출마를 선언했다. 스노우에 의원은 루거 의원과 함께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경기부양 정책에 찬성표를 던진 공화당 3인방 중 한 사람이다. 양극화 현상이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민주당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또 초당파인 짐 웹·켄 콘라드 상원의원이 정계은퇴를 밝혔으며 클래드 매카스킬·존 테스터 상원의원은 각각 버지니아와 몬태나주 당내 경선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사실 초당파로 불리는 중도파가 겪어야 하는 정치적 곤경은 역사적으로 증명됐다. 1990년대 초반 구소련 체제 붕괴 후 등장한 러시아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두고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급진 개혁파와 이에 저항하는 공산당이 대립하고 있을 때 알렉산드르 루츠코이 부통령 등이 중도적인 ‘시민동맹’을 결성해 힘을 얻었다. 하지만 정치 현실은 이들을 역사의 뒤안길로 내몰고 말았다. 이 시기에 러시아 주재 공관에서 근무했던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도 저서 <격동하는 러시아 정치>(1994)에서 양식있는 중도파의 숙명적 어려움을 지적한 것으로 기억한다.


갈등의 시대를 겪고 있는 우리의 사정은 어떨까. 


‘동지들은 여전히 입술을 깨물고/고개를 숙인 채 저벅저벅 걸어간다. / 친척도 애인도 따르는 이 없어도/저승길까지 지긋지긋 미행이 붙어서 / 조가(弔歌)도 부르지 못하는 산송장들은/관을 메고 철벅철벅 무악재를 넘는다.’


소설 <상록수>의 작가 심훈의 시 ‘만가’의 마지막 구절을 루거의원처럼 자의든 타의든 정계를 떠나는 초당파 정치인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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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고시 출신 공무원이 3급 부이사관 자리를 버리고 4급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갔다. 직급만 떨어진 게 아니다. 현직에 있으면 정년이 보장되는데 보좌관은 다음 총선까지 4년이다. 민주통합당 은수미 당선자와 함께 일하게 된 김은정 전 여성가족부 인력개발과장 이야기다.


김씨가 17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끝내기로 결심한 직접적 계기는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이라고 한다. 행시 출신의 이른바 ‘공무원 엘리트’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사찰에 가담한 걸 보고 같은 공무원으로서 자괴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김씨가 언급한 ‘공무원 엘리트’는 민간인 불법사찰·은폐조작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진경락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을 가리키는 듯하다. 고용노동부 요직을 두루 거친 진씨는 총리실 파견 중 승진을 위해 불법을 무릅쓰고 은폐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진수 전 주무관이 증거인멸 과정을 폭로한 뒤에도 그는 “골프채 한 번 안 들 정도로 철두철미하게 법을 지켜왔다”고 강변했다. 검찰 소환에 불응하며 도피하던 진씨는 지명수배범으로 전락하고 결국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소위 ‘영혼 없는 공무원’의 전형이다.



고양이 가면 쓴 시민들 민간인 불법사찰 규탄 (경향신문DB)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이명박 정부 출범 직전인 2008년 1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국정홍보처 업무보고에서다. 당시 인수위원들이 홍보처 폐지를 강조하자 홍보처 직원들은 “대통령중심제하에서 국정홍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다”라고 하소연한 데서 비롯했다. 이후 ‘영혼 없는 공무원’은 일종의 관용구처럼 회자돼왔다. 일반인들에겐 무소신 공무원을 비꼬는 도구가, 공무원들에겐 자기합리화의 기제가 됐다. 김은정씨는 이러한 자기합리화를 정면으로 거부했다. 그는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하지만 국민에게 영혼을 맞추면 된다”고 했다. 수많은 공무원들의 안일함을 후려치는 매서운 죽비 소리에 다름 아니다.


현 정권 들어 공직사회의 코드 맞추기는 도를 넘고 있다. 근본 원인은 공무원을 사병(私兵)처럼 여기는 정권의 인식에 있지만 그렇다고 개별 공무원들이 모두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김은정씨는 공무원 사회의 ‘침묵의 카르텔’에 조그만 균열이라도 내고 싶다고 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공복으로서의 자부심을 지키려는 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날 때 공직사회도, 시민의 삶도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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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서울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구’의 주택투기지역을 9년 만에 해제하는 내용 등을 담은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표면적으로는 ‘주택거래 정상화와 서민·중산층 주거안정’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노무현 정권 때 도입된 투기억제 제도를 완전히 걷어내는 동시에 투기수요를 자극해서라도 부동산 경기를 띄우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 발표에 앞서 강남 3구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은 투기지역인 데다 주택시장에서 차지하는 강남 3구의 상징성 때문에 이곳의 투기지역 해제가 투기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 점을 우려하기는커녕 오히려 시장을 향해 ‘강남 3구를 마지막으로 부동산 규제를 모두 풀었다’고 선언함으로써 투기수요 자극을 꾀했다.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은 “주택시장 과열기에 도입된 규제를 걷어낸다는 차원에서 시행했다. 이번 조치로 주택거래 관련 규제들은 대부분 없어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강남 3구 부동산대책 발표후 활기 (경향신문DB)



투기지역에서 풀리는 강남 3구에서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 완화돼 주택대출을 더 많이 받아 집을 살 수 있게 됐다. 3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가산세율도 적용되지 않는다. 강남 3구 이외의 대책들도 주택 구입 자극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수도권 공공택지와 개발제한구역 해제지구의 분양권 전매제한 기간도 절반 수준으로 대폭 줄였다. 민영주택 재당첨제한 기간은 아예 없앴다. 1가구 1주택 비과세 요건도 ‘3년 보유’에서 ‘2년 보유’로 완화됐다. 집을 2년 미만 보유했다 파는 경우 적용하는 양도세 중과세율도 낮췄다. 규제만 없앤 것이 아니라 ‘대출 더 해줄 테니 집 사라’는 대책도 포함시켰다. 보금자리론 한도를 1억원에서 2억원으로 늘리고 주택금융공사의 대출보증한도도 2억원에서 3억원으로 확대했다.


이번 대책이 실제로 주택거래 활성화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현재의 주택경기 침체 원인이 전반적인 경기부진, 과도한 집값 수준, 향후 집값 하락 전망 등에 있지 규제나 세금부담, 대출제한 등의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수요를 늘릴 뾰족한 수단은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없애고 집부자들의 세부담을 낮추는 대책을 계속 내놓는 것은 투기수요를 부추겨서라도 부동산·건설 경기를 띄워야 한다는 강박증을 보여주는 것이다. 과거의 망국적인 부동산 투기 광풍을 상기한다면 참으로 위험천만한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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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용 디지털뉴스편집장


이쯤되면 뭔가 근본적인 대책이 서야 할 것 같다. 경향닷컴에서 이명박 대통령 친인척 측근비리를 인포그래픽(정보+그래픽)으로 만들어 봤더니 유전자 게놈(genome) 지도처럼 배열구조가 어지럽고 퉁퉁하다. 그림에 등장한 인물을 보면 청와대 참모·가신이 5명, 대통령직인수위·서울시 출신이 5명, 안국포럼이 4명, 손위 동서에 처사촌과 사촌처남 등이 8명이다. 최고원로기구라는 6인회 멤버는 대통령을 빼고 3명이 사법처리됐거나 수사를 받고 있다. 부패율 60%다. 집권 내내 공정사회를 입에 달고 살았던 정권이 이 정도니 그런 구호라도 외우지 않았으면 교도소 한 동이 다 찰 뻔했다. 대통령이 “보급품은 자체 해결하라”고 한 것도 아닐 텐데 수인(囚人)조합에 둘러싸인 그래픽 한가운데 MB의 모습이 꼭 범죄조직 대부 같다.

위에서 돈을 벌면 밑으로 내려갈 것이라는 트리클다운(적하) 효과는 경제 분야보다 비리 쪽에서 더 활발했던 듯하다. 왕(王)차관이란 박영준은 인사를 주무르랴 사찰 보고 받으랴, 거기에 업자 돈까지 받느라 두 손이 부족했을 것이다. 대통령의 멘토 최시중은 ‘슈킨(集金)’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가늠하기 어렵고, 그의 양아들은 업체를 상대로 재혼 축의금까지 박박 긁어 해외로 내뺐다. 여당의 한 이론가가 “지금의 우파는 공공에 대한 사명감과 가치가 미흡한 사익 우파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는데 이들에게 애초 공공의 사명감 같은 게 있기나 했는지 궁금하다. 앉아있는 자리, 손에 쥔 권력을 대선 승리의 상훈이나 전리품으로 여겼으니 강냉이튀밥 주워 먹듯 사방팔방에서 금은보화를 챙겼을 것이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경찰과 세무서 직원이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면 커피값은 누가 내겠느냐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답은 다방 레지가 낸다는 것이다. 어떤 공무원은 식구들과 주말 외식을 하고 그냥 나가더라는 얘기도 있다. 한번도 식당 카운터에 서서 제 손으로 밥값을 내본 적이 없기 때문이란다. 지금은 달라졌나. 천만의 말씀이다. 신문을 펼치면 누가 얼마를 먹어 구속됐다는 기사가 하루도 빠진 날이 없다. 객관적인 지수로도 한국의 부패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27위로 최하위권이다. 국제투명성기구 조사에서도 세계 183개국 가운데 43위로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아시아 16개국 중에선 11번째다.

 


부패는 성장세가 꺾이지 않는 거대 시장이다. ‘사바사바’ 관행을 외면하고는 장사도, 출세도, 생존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삶의 방식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뒷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이다. 이게 부패인지 문화인지 죄의식마저 희미해졌다. 준 공식문화다. 알면서도 묵인하고, 문제가 생기면 재수없이 걸렸을 뿐이다. 걸린 사람도 반성의 기미가 없고, 바라보는 국민도 놀라지 않는다. 수천억원을 빼돌리고 밀항선을 타고 도망치려다 붙잡힌 무슨 저축은행 회장은 수없이 많은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북은 미쳤고 남은 썩었다.” 황장엽의 남북 비교는 지금 다시 봐도 정확히 맥을 짚은 말이다. 프랑스혁명과 러시아 10월혁명은 귀족의 부패에서 비롯됐다. 중국의 장제스(蔣介石) 정부와 월남은 극에 달한 부패 때문에 무너졌다. 영국의 재상 글래드스턴은 “부패는 국가를 몰락으로 이끄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대한민국도 지금 몰락의 지름길을 달리고 있는 중일 것이다.

이 정권만 뭐라 할 것도 아니다. 대통령 직선제가 재도입된 1987년 이후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네 정권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 얼굴에 겨 묻고 누구 얼굴에 똥 묻었는지 구분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 앞서 독재정권은 더 말할 나위없다. 어느 정권 할 것 없이 권력 주변에선 말똥구리 쇠똥 파먹듯 신들린 부패경쟁을 벌였고, 종국엔 줄줄이 감옥소로 향했다. 이들에겐 역사의 학습효과도 없는 모양이다.

의식이 부족하면 제도를 만들 수밖에 없다. 사정 책임자를 끼리끼리 인사로 임명해 놓으니 감시는커녕 거꾸로 비리를 감춰주는 방탄 커튼 역할을 했다. 그러니 온 사방에서 돈빨대를 쭉쭉 빨고 있는데도 “우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나왔을 것이다.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은 “4년 전부터 일종의 112신고를 했는데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흉악범보다 더 무서운 게 무능한 경찰이고, 비리를 저지른 놈보다 더 나쁜 게 눈 감은 사정 책임자다.

새 국회, 새 정권에선 친인척과 측근의 비리를 감시할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반부패 입법의 대표적 케이스로 공직부패수사처(공수처)는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공수처의 수사 대상은 차관급 이상 공무원과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법관과 검사 등 5000여명이 망라돼 있다. 여기에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들도 포함시켜 1년 365일 공수처 특별수사관들의 상시 관찰 대상으로 올려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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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나는 몹시 당황했다.” 카프카의 단편 <시골의사>에 나오는 첫 구절이다. 중환자를 치료하러 급히 가야 하는데 거센 눈보라가 막고 있기 때문이다. 타고 가야 할 말도 없다. 지금 야권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의 심정이 이와 다르지 않다. 지금이 어느 땐가. 무척 당황스럽고, 이 때문에 참 갑갑한 심정이다.

통합진보당의 겯거니틀거니 하는 꼴에 대해 더 말을 보탤 것이 없다. 다만 억울하고 기막혀도 대중을 믿고 다 내려놓으라고 권하고 싶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길게 보면 오늘의 시련은 진정한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벼려지는 담금질이나 성장통일 게다.

지금 시선을 주고, 지탄을 날려야 할 대상은 민주당이다. 오는 12월 대선에서 감당해야 할 역할이 더 크고 막중하기 때문이다. 그런 민주당이 헤매고 있다. 지금 민주당에 절실한 것이 뭐냐고 한마디로 묻는다면, 그것은 변화다. 새롭게 달라져야 한다는 말이다. 스스로 내걸었듯이 민주시대에서 복지시대로 넘어가려면 새로운 주체세력을 제시해야 한다. 사람이 곧 정책이라 하지 않나. 복지시대를 이끌 주체를 보여주지 않으면, 그들이 공언한 정책변경도 결국 구두선이 되고 만다. 이런 점에서 이번에 처음으로 의회에 진출한 56명의 초선 의원들에게 맡겨진 책무는 대단히 크다.

 

민주당 비대위 회의 ㅣ 출처:경향DB

그들이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모습만 보면 아쉬운 점이 더 많다. 초선 의원들이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 성명을 발표하긴 했지만 아직 예기가 부족하다. 흔히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곧장 움직여야 한다는 명제를 두고 ‘땅을 박차고 뛰어나가라’(hit the ground running)라고 표현한다. 민주당의 초선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오는 30일부터 임기가 시작되므로 아직 의원 신분이 아니라는 말은 한가한 핑계다. 낙선 의원들이 ‘절름발이 오리’가 돼 무력한 것처럼, 초선들이 ‘갓 부화된 비둘기’처럼 어물거리면 기성 프레임에 매몰되기 십상이다.

민주당 초선의원 56명이 누군가. 그들의 상징어는 시민, 노동, 복지, 경제민주화, 평화 등 우리 사회의 핵심 아젠다들이다. 정당과 정치인이 해야 할 역할은 사회적 관심을 쟁점화하는 것이다. 특히 진보나 민주를 표방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이라면 보통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국가적 의제로 부각시키는 것이 존재 이유다. 또 그들에겐 무능한 기성정치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라는 시대적 소명도 주어져 있다.

하지만 당내 역학구도에서나 아젠다 세팅에서 초선 당선자 56명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이들이 변화의 동력이 되기를 바라는 게 실망으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미 당내 기성체제는 성을 쌓고 담을 높여가고 있다. 총선 패배의 충격효과도 거의 사라진 듯하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선거 후 국면에서도 민주당은 새누리당에 뒤지고 있다. <나꼼수> 등을 둘러싼 내홍도 염려스럽다. 이대로는 안된다.

변화는 언제나 불편하기 마련이다. 저항도 따른다. 하지만 변화는 불가피하다. ‘그 나물’로는 이길 수 없고, ‘그 밥’으로는 새 시대를 못 연다. 어떤 정치인이나 정당이 불편하다고 변화를 거부하면, 유권자들이 그들을 불편하게 생각할 것이다. 대중은 불편한 선택을 싫어한다. 대중은 선악의 이분법이 아니라 다양한 것 중에 차이를 보고 판단한다. 그들에게 불편한 선택을 강요하면 패배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초선 56명은 변화의 촛불이 되어야 한다.

그들이라고 왜 할 말이 없겠는가. 정치현실을 거론할 수도 있고 시간을 달라고 할 수도 있다.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러나 총선 패배 후 한 달이 지났는데도 변화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대선이 눈앞이다. 인정을 봐주고, 사정을 고려할 시점이 아니다. 그들에게 <시골의사>의 한 대목을 던져주고 싶다. “저더러 그 따위 변명으로 만족하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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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우 논설위원


조조의 군대는 원소군의 맹장 안량과 문추의 활약으로 위기에 처한다. 이때 조조에게 억류된 몸이지만 극진한 예우를 받던 관우가 앞에 나선다. 조조가 기뻐하며 술 한 잔을 따라 권하지만 관우는 “술이 식기 전에 안량과 문추의 목을 베어와서 마시겠다”고 말한다. 과연 관우는 바람같이 말을 달려 두 적장의 목을 베어 돌아와 땅바닥에 내팽개친 뒤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술잔을 단숨에 들이켠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명한 장면이다.

<삼국지>의 이 광경이 느닷없이 대한민국의 정치판에 등장했다. 이준석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이 어제 자신의 페이스북에 일본 작가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만화 삼국지>를 패러디하면서 땅에 뒹구는 적장의 머리에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의 얼굴사진을 집어넣은 것이다. 이 위원은 또 관우의 얼굴에는 이번 총선에서 문 고문에게 패배한 손수조 후보의 사진을 삽입했다. 이 위원 자신과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조조의 측근들로 그려졌다. 요컨대 관우가 된 손 후보가 문 고문의 목을 베어 땅바닥에 내던지고, 박 위원장과 이 위원이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가상의 상황을 설정한 셈이다.

 

새누리당 이준석 비상대책위원 l 출처:경향DB

페이스북에 이 만화가 올라가자마자 “뭐 하자는 짓이냐” “너무 엽기적이고 저질스럽다”는 등 누리꾼들의 집중적인 질타가 이어졌다. 파문이 일자 이 위원은 서둘러 만화를 삭제하고 문 고문에게도 사과했다지만 일과성 해프닝으로 넘어갈 사안은 아닐 성싶다. 우선 집권여당의 비상대책위원이라는 자리가 주는 무게감 때문이다. 평당원이나 당 밖의 여당 지지자들이 이런 짓을 해도 문제가 될 터인데 몇 달 동안 당을 주물러온 비대위의 멤버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겠다. 총선 기간 중 발생한 ‘김용민 막말 파문’에서 새누리당이 보여준 태도에 비추어 봐도 ‘엽기 삼국지’는 상식과 통념이 용인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 당시 새누리당은 김용민 후보의 8년 전 인터넷 방송 발언에 ‘패륜’ 등으로 무차별 공세를 퍼붓지 않았던가. 만일 야당 인사가 땅에 뒹구는 머리에 박근혜 위원장의 사진을 넣었다면 새누리당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이제 박 위원장과 대결을 펼치려는 야당의 대선주자들이나 새누리당 내의 비박(非朴) 인사들은 얼굴 전체를 감싸는 투구를 써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한칼에 목이 날아가 땅에 뒹구는 것은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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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측근 챙기기와 회전문 인사로 끊임없이 논란을 빚어왔다. 임기를 1년도 채 남기지 않은 이 대통령이 그제 차관급 인사에서 남주홍 주 캐나다 대사를 부임 8개월 만에 국정원 1차장으로 내정했다. ‘8개월짜리 대사’의 탄생이자 측근 챙기기와 회전문 인사의 전형적 사례다. 여론의 따가운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태연하게 구습을 되풀이하는 이 대통령의 용인술에 할 말을 잃을 뿐이다.

국익을 최일선에서 다루는 외교는 정권이 가장 신경을 써야 할 분야다. 그래서 각국은 외교관들의 임기를 3년 안팎으로 정하고 나름대로 주재국의 위신을 배려하고 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직업 외교관들의 임기는 일반적으로 3년을 전후해 순환근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8개월짜리 대사’는 주재국에 대한 큰 외교적 결례라고 할 수 있다. 남 대사 내정 문제는 이뿐 아니다. 그의 전임자는 직업 외교관 출신으로 현재의 자리에 간 지 1년여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 그를 몰아내고 대통령 측근이라는 이유로 남 대사를 내정한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설득력이 없다.

 

출처:경향DB

임기말 인사의 대표적 사례는 측근인 유인촌 전 문화부 장관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월 유인촌 전 문화부 장관을 임기 3년의 예술의전당 이사장 자리에 앉혔다. 또 2007년 대선 당시 선거 캠프에서 방송 특보단장을 지낸 양휘부 전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을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회장에 선임했다. 임기말 외교부도 마찬가지다. 지난 3월 취임한 국립외교원의 김병국 초대 원장은 국제교류재단 이사장으로 1년 반 동안 일했다. 또 김 원장의 후임자인 김우상 이사장은 2008년 초부터 주 호주 대사로 일하다 이 자리를 물려받았다. 지난 2월 임명된 박태호 통상교섭본부장은 서울대 교수 출신으로 현재의 자리를 꿰찼다. 이명박 인사의 상당수가 가히 ‘봐주기 인사’의 모범사례라는 느낌마저 준다. 정권 말에 임명된 고위직 인물들로 인해 현 정권 초기와 마찬가지로 다음 정권에서도 임기 중 사퇴 시비로 국정 혼란이 재연될까 벌써 우려스럽다.

이명박 정부가 임기말에 측근 챙기기와 회전문 인사를 되풀이하는 이유는 가용한 인재 자원이 부족할 뿐 아니라 이명박 정권 탄생에 기여한 측근들의 자리에 대한 욕심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번 인사는 현 정부가 출범 초 내걸었던 ‘국격(國格)있는 외교’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8개월짜리 대사가 과연 국격있는 외교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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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세 중의 실세’로 통하는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파이시티 비리로 구속됐다. 구치소행 차량에 오르는 그의 모습은 이명박 정권의 도덕성에 ‘파산 선고’가 내려졌음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박 전 차관과 이 대통령 일가의 각별한 인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의 보좌관으로 대통령 형제와 인연을 맺은 그는 정권 출범 후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과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등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왕차관’으로 불릴 만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온 그가 수많은 비리 의혹에 휘말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터이다. 과거 박 전 차관의 권력사유화를 비판했던 정두언 의원은 “4년 전부터 일종의 112 신고를 했고, 여러 차례 경고하고 언질을 줬는데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전 차관의 구속영장에서 드러난 혐의는 이정배 전 파이시티 대표에게서 1억7000만원을 받고 그 대가로 인허가와 관련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혐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박 전 차관의 형 계좌에선 수상한 뭉칫돈이 수시로 입출금된 흔적이 발견됐다. 총액이 10억원을 넘는다고 한다. 검찰은 이 돈이 파이시티에서 추가로 받은 것인지, 다른 기업에서 수수한 자금인지 살펴보고 있다.

 

박영준 전차장 출두 ㅣ 출처:경향DB

박 전 차관의 금품 수수액도 문제이지만, 금품을 챙긴 경위와 사후 대응을 살펴보면 더 기가 막힌다. 박 전 차관은 현 정권 초기 청와대에 근무할 때도 서울시 관계자에게서 파이시티 인허가 업무를 수시로 보고받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검찰 조사에서는 이정배 전 대표를 알고 지낸 사실만 인정할 뿐 돈받은 혐의는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뒤 “죄송하다”고 말했지만 과연 누구에게, 무엇을 죄송해하는지 알 길이 없다.

박 전 차관은 파이시티 비리 외에도 갖가지 의혹을 받고 있다. 우선적으로 규명해야 할 사안은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및 은폐조작 과정에 개입했는지 여부다. ‘카메룬 다이아몬드 스캔들’로 불리는 CNK 주가조작 연루 의혹과 포스코 회장 선임과정 개입 의혹도 검찰 수사에서 밝혀야 할 부분이다. 앞서 무혐의 처분된 SLS그룹 구명로비 관련 의혹도 필요하면 재수사해야 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검찰의 의지다. 그러나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큰 틀에서 마무리 단계로 보면 된다”는 대검 관계자의 말에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이어 박 전 차관을 구속하는 데 성공했으니 그만 손을 털고 싶은가. 박 전 차관의 ‘여죄’를 캐다 불법 대선자금 등 정권에 치명타를 가할 사안이 드러날까 두려운가. 하지만 정권의 비리를 낱낱이 알고 있을 박 전 차관이 수인(囚人)의 처지가 된 이상, 검찰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그 무엇이 나오든 덮을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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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22개 연구단체로 구성된 학술단체협의회(학단협)가 표절 의혹이 제기된 19대 국회의원 당선자 7명의 학위·학술 논문을 검증한 결과 모두 표절이라고 판단했다. 학단협은 “새누리당 강기윤·정우택·염동열·유재중·신경림, 민주통합당 정세균, 무소속 문대성 당선자의 논문에서 ‘심각한 수준의 표절’이 드러났다”며 이들의 의원직 사퇴를 촉구했다. 당초 문 당선자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비롯된 표절 파문이 다른 당선자들로까지 번지면서 19대 국회를 강타하기에 이른 것이다. 학단협은 4·11 총선 전에 문 당선자의 국민대 박사논문을 표절로 판정했으며, 문 당선자는 총선 직후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학단협에 따르면 당선자 7명은 모두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표절 가이드라인’에 저촉되거나, 2011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규정한 연구부정 행위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복사 수준의 베끼기, 여러 논문 짜깁기, 인용과 도용의 혼동, 데이터 위·변조 등이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문 당선자는 이미 표절로 결론난 박사논문 외에 석사논문도 표절했으며, 이를 다시 전문 학술지에 싣는 등 ‘이중 도용’을 한 것으로 지적됐다. 또 염 당선자는 박사논문을 쓰면서 학부생의 4쪽짜리 리포트를 베꼈다는 판정을 받았다. 학단협 관계자의 표현대로 “표절을 넘어 박사학위의 권위를 포기한 것”에 다름 아니다.

 

논문 표절에 관한 그래픽 ㅣ 출처:경향DB

문제가 된 7명의 당선자는 억울해할지 모른다. 국내 학계에 표절이 만연한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왜 자신들만 희생양으로 모느냐고 할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관행이었다” “실수나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표절은 아니다” 라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수준의 해명으로 어물쩍 넘어갈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헝가리의 슈미트 팔 대통령은 20년 전 발표한 논문이 표절로 드러나 사임했고, 독일에서도 총리감으로까지 평가받던 칼 테오도르 구텐베르크 국방장관이 논문 표절로 물러난 바 있다.

표절은 학문적 도둑질이다. 다른 사람의 지적재산권을 훔친 이들은 민의의 전당에 설 자격이 없다. 문제가 된 당선자들은 스스로 거취를 결단하는 것이 옳다. 정부도 이 같은 사례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논문 표절 여부를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조속히 만들어야 한다.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중·고교 시절부터 글쓰기와 관련된 윤리교육을 강화하고, 학위논문을 내는 사람은 연구윤리교육을 받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표절 공화국’의 오명을 벗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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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이 영업정지를 앞두고, 고객 돈을 챙겨 밀항하려다 붙잡힌 미래저축은행이 무려 60억원 이상을 종합편성채널에 투자한 것으로 밝혀졌다. 2652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상황에서도 이 은행은 채널A에 46억원, MBN에 15억원을 투자했다. 업계 1위 솔로몬저축은행도 지난해 MBN에 10억원, 보도전문채널인 뉴스Y에 3억원을 투자했다. 솔로몬 역시 부동산 PF 부실로 수천억원 규모의 채권을 자산관리공사에 매각한 상태였다. 이 밖에 지난해 영업정지를 당한 제일저축은행은 채널A에 30억원, MBN에 10억원을 넣었고, 토마토저축은행도 지난해 jTBC와 MBN에 각각 20억원을 투자했다.

요약하면 퇴출 직전의 경영상태인 저축은행들이 투자자가 모이지 않아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도 했던 채널A와 MBN 등 종편에 이해할 수 없는 투자를 한 것이다. 금융 관계자들은 저축은행들이 사업성이 불확실한 종편 지분에 참여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자연 어떤 외부적 압력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이 고개를 든다.

 

시민사회 원로들이 조중동 종편거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압력은 두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해당 언론사의 압력이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우리라고 투자를 하고 싶겠느냐”며 대형 언론사의 압력으로 울며 겨자 먹기로 투자를 할 수밖에 없었던 속내를 드러냈다고 한다. 또 하나는 부정적 여론을 무릅쓰고 종편을 추진한 정치권의 압력이다. 이 부분도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 얼마 전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현직에 있을 때 “종편이란 아이를 낳았는데 걸을 만할 때까지는 각별히 보살펴야 한다”는 말을 하고 다니며 종편 출범과 시장 안착을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던 사람이다. 이런 인사들의 입김을 빼놓고서는 부실 저축은행들이 그렇게 열심히 종편에 투자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고 본다.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수구족벌 신문사들이 운영하는 종편은 애당초 탄생 논의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불법·탈법·특혜의 종합판이었다. 사실 종편사들이 영업정지가 임박한 부실 저축은행에서까지 출자를 받아갔다는 사실은 이런 거대한 비리구조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종편들이 시청률이 바닥이면서도 지금도 모회사를 앞세워 과도한 광고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기업들의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글로벌 거대 미디어 기업으로 성장시킨다는 이 정권의 터무니없는 논리로부터 기형적으로 태어난 종편이 미디어 시장을 혼탁하게 하는 모습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 것인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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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회당이 31년 만에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가 지난 6일 대선 결선투표에서 51.67%의 득표율로 우파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연임을 저지하고 대권을 거머쥔 것이다. 1995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퇴임한 지 17년 만의 대권 탈환이다. 프랑스 좌파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이고 올랑드 당선자는 “좌파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했다. 극좌에서 극우까지 정치적 스펙트럼이 다양한 프랑스 정치에서 좌·우파의 교체는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지난 5년 동안 친미 성향의 사르코지가 지향했던 우파 신자유주의 노선에 대한 준엄한 심판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의 의미는 프랑스 영토를 넘어선다. 2008년 월스트리트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파동 이후 4년째 국가부채 위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유럽의 다음 행보를 가늠할 중요한 계기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사르코지가 ‘메르코지’(메르켈·사르코지)라는 신조어를 낳으면서 주도해온 유럽연합(EU) 차원의 신재정협약이 획기적으로 바뀌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성격이 달라질 것을 예고하고 있다.

 

프랑스 사회당 대통령 후보인 프랑수아 올랑드 ㅣ 출처:경향DB

올랑드는 이미 ‘메르코지’가 주도한 신재정협약에 성장 조항을 추가해 성장률이 기준 이하로 하락할 경우 긴축정책을 중단토록 하겠다고 공약하고 있다. 공공지출을 늘려 15만개의 청년층 일자리와 50만개의 중장년층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유럽연합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동 이후 국가부채 위기의 해법으로 선택한 긴축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다. 유럽연합 25개국이 지난 3월 조인한 신재정협약은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각각 국내총생산의 3%·60% 이내로 제한하고 어길 경우 제재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메르코지의 긴축정책은 그리스와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같은 날 치러진 독일 지방선거에서 메르켈의 우파연정이 패배하고, 그리스와 세르비아 총선에서 긴축정책을 펼쳐왔던 집권당이 고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르코지 집권 5년간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의 2.3%에서 5.7%로 오르고, 실업률이 10%에 달한 프랑스에서도 국민적 분노가 높아지고 있다.

올랑드의 경제정책 공약들이 얼핏 혁명적으로 비치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선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은 국가부채의 법적 한도를 16조4000억달러로 상향조정하면서까지 7870억달러의 경기부양예산을 투입, 기로에 선 보통사람들의 삶을 부축하고 있다. 세계화가 막 시작됐던 1981년 당선된 미테랑은 주요 산업의 국유화와 주당 39시간 노동 등의 실험을 시도했다가 참담하게 실패한 바 있다. 올랑드가 약속한 변화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것인지, 아니면 메르코지의 긴축정책으로 활력을 잃어가는 프랑스와 유럽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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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가 엊그제 심야에 공동대표단 및 비례대표 당선·후원자 전원의 사퇴를 의결했다. 당권파들의 극렬한 저항 속에서 무려 33시간에 걸친 논의 끝에 내린 결론이다. 최종 결정은 1주일 뒤 열리는 중앙위의 몫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결의이자 권고라 할 수 있다. 이는 진보당이 과오를 털고 재기를 모색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라는 점에서 예견했던 바다. 정작 당권파들은 ‘운영위 결정 무효’라고 맞서고 있다. 사태 수습의 출발이 아닌 또 다른 분란을 예고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괴로운 통합진보당 대표들 (경향신문DB)



운영위는 진보당이 이번 사태를 국민들에게 얼마나 잘 설명하고, 제대로 된 수습 방향을 찾아낼 것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보당이 보여준 모습은 실망을 넘어 절망을 안겨줬다. 무엇보다 이정희 공동대표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이 대표는 4·11 총선의 비례대표 경선이 ‘총체적 부정·부실 선거’였다는 진상조사위의 조사결과 자체를 거부했다. “의혹만 내세울 뿐 합리적 추론이 없다”는 것이다. 진상조사 활동은 당권파인 그들도 동의한 바다. 그 결과를 못 믿겠다면 누굴 믿겠다는 것인가. 당권파 외에는 아무도 받아들일 수 없는 ‘비례대표 2번 이석기 당선자 보호’처럼 국민들의 인식과는 한참 거리가 먼 정파적 이익에 매달린 결과라 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보여준 당권파의 행동들은 보기 민망할 지경이다. 상대편이 발언할 때마다 고성과 야유를 퍼붓기 일쑤였고, 회의를 고의로 지연시키기도 했다. 진상조사위를 겨냥해서는 “당을 X판으로 만들었다”거나 “애당심이 없다”고 몰아세웠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화나 소통은 물론 당내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 이번에 밀리면 재기할 수 없다는 위기감에서 막무가내식 저항에 나섰는지 모르지만 이런 행태들이 진보당의 맨얼굴이라면 그들과 더불어 ‘야권 연대’ 등 후일을 도모한다는 건 쉽지 않다고 본다. 당권파의 행태는 21세기 민주주의 정당이라는 이름 아래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스스로 잘 설명해주고 있다. 


사람이건, 조직이건 갖은 풍파에도 무서운 생명력을 유지하는 건 자정 능력 때문이다. 진보당이 묵과할 수 없는 대형사고를 쳤음에도 수습에 나서는 그들을 지켜보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들의 대응 방식이 스스로 정의한 ‘총체적 부정·부실 선거’ 수위를 넘어서는 실망을 자아낸다면 사정은 다르다. 총선에서 10%를 넘는 정당 투표와 지역구 7석을 안겨준 국민들이 변함없이 지지해줄 리 만무하다. 진보당 당권파들은 당이 살아야 자신들도 산다는 평범한 진리부터 되새기길 바란다. 그들은 이미 소수정당의 비애를 충분히 겪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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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총선에 나선 비례대표들의 경선 부정 파문을 둘러싼 통합진보당 내 계파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공동대표들이 어제 첫 회의를 열어 대책을 숙의했으나 조사 결과와 수습 방안에 대한 현격한 인식차만 노출했다. 예상한 바 그대로다. 이른바 당권파의 패권적인 당 운영과 안이한 사태 인식, 기득권 지키기가 주 요인이다. 회의에서 공동대표들이 정치·도의적 책임을 지고 도덕성 회복과 당 쇄신을 이뤄나가겠다고 다짐했으나 당내 기류 탓인지 울림이 없다.



통합진보당에 쏠린 관심 (경향신문DB)



진보당 사태에 대한 당권파와 비당권파 양측의 접근법을 보면 이들이 같은 당 사람들인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다. 이번 파문의 핵심인 비례대표직 사퇴 여부를 놓고 벌이는 공방이 대표적이다. 당권파는 이정희 공동대표를 사퇴시켜도 비례대표 1, 2, 3번은 포기하지 않을 태세이지만 비당권파는 선거의 정당성이 무너진 만큼 전원 사퇴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2, 3번은 대표적인 당권파들이다. 그 이면에는 연말 대선 정국에서 민주통합당과의 야권연대에 대비한 고도의 셈법이 깔려 있다는 관측이 많다. 19대 국회의원 13명 중 7명의 자파 의원을 거느린 당권파는 비례대표 2석을 내놓을 경우 다수파의 지위를 잃을 수 있다. 반대로 유시민 공동대표를 비롯한 국민참여당파는 원내에 진입할 기회를 얻는다. 양측의 동상이몽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당권파의 왜곡된 당 운영에서 비롯됐다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비례대표 2번인 이석기 당선자가 조사 발표를 앞두고 국민참여당 출신인 유시민 공동대표를 만나 ‘담합’을 시도한 일은 도덕성은 물론이고 진보의 자존심마저 내팽개친 당권파의 추한 모습을 고발한다. 이 자리에서 이 당선자는 유 대표에게 당권을 내줄 테니 당권파의 중앙당 지분은 유지해달라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당권파들이 이번 경선 부정을 여전히 가벼운 ‘관행의 문제’쯤으로 여기고 있다는 징표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이 당선자는 당내 자주파의 두뇌로 불리는 대표적 당권파라는 점에서 충격이 더하다. 2008년 진보정당 분열도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종북주의’와 같은 이념의 문제보다 다수 정파의 패권주의적 당 운영에 대한 소수파의 불만이 크게 작용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당권파의 ‘분파 패권주의’는 이번 파문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런 당권파가 여전히 당 운영을 장악하고 있다. 비례대표 부정 경선 의혹에 대한 조사 착수 결정부터 발표 시기 조율, 향후 수습책 논의까지 거의 모든 과정이 그들의 통제 아래서 이뤄지고 있다. 그들이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책임을 엄히 추궁하며, 처절한 반성과 함께 재발 방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결국 당권파의 2선후퇴가 사태 해결의 첫걸음이라고 본다. 당권파들이 기득권을 지키려 발버둥칠수록 활로 모색은 더욱 힘들어질 뿐이다. 지금 그들에게 ‘죽어야 산다’는 경구 말고는 별다른 조언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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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치러진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박지원 후보가 선출됐다. 박 후보는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유인태 후보를 근소한 차로 눌렀다. 박 신임 원내대표는 19대 국회 개원협상을 총괄하는 한편,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다음달 임시전당대회 때까지 당 운영도 책임지게 된다. 



생각에 잠긴 박지원 후보 (경향신문DB)



이번 경선이 민주당 안팎에서 비상한 주목을 받은 것은 이른바 ‘이해찬 대표-박지원 원내대표 역할분담론’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친노’와 ‘호남’이 뭉쳐 대선 총력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며 ‘담합’이 아닌 ‘단합’이라 주장했다. 우리는 그러나 두 사람의 합의에 대해 4·11 총선에서 나타난 시민들의 요구를 배반하고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저버린 밀실·구태정치라고 비판해왔다. 경선 결과도 이들의 담합에 대한 엄중한 경고의 의미를 담은 것으로 본다. 박 원내대표 측은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얻을 것이라 장담했지만 결선투표까지 가야 했고 결국 7표 차로 신승했다. 전날 초선 당선자 21명이 ‘이-박 담합’을 공개비판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당의 정치적 역동성을 바라는 목소리가 확인된 것이다. 박 원내대표는 스스로 “저에게 엄중한 경고를 주셨다”고 밝혔듯이 겸허한 자세로 출발선에 서야 한다. 다음달 임시전당대회를 공정하게 관리하는 일은 그의 의지에 대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박 원내대표 앞에는 난제가 산적해 있다. 우선 19대 국회에서 새로운 정치문화의 주춧돌을 놓는 일이다. 여야가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몸싸움 방지법안’을 통과시킨 뜻을 새겨 정치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민간인 불법사찰·은폐조작, 이명박 대통령 측근비리, 언론사 파업 등 각종 현안에 대해선 국정조사와 청문회 등을 통해 진상 규명과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민주당 차원에서는 당의 변화와 쇄신을 선도해야 한다. 지금의 민주당을 들여다보면 도대체 어떤 비전이나 정책으로 대선에서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할 것인지 의문이 든다. 민주당은 ‘18대 총선보다 의석이 늘었으니 패배한 게 아니라’는 식의 자기합리화를 떨쳐내고 과감한 혁신을 통해 수권정당의 면모를 갖춰야 한다. 아울러 공정하면서도 역동적인 대선후보 경선의 토대를 마련하는 일도 박 원내대표에게 주어진 책무이다. 어제 그는 ‘이-박 담합’ 과정에 문재인 상임고문이 개입했다는 논란을 의식한 듯 “지금까지 우리 당내의 어떤 대통령후보도 지지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다짐이 다짐만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박 원내대표의 당선은 ‘절반의 승리’에 불과하다. 민주당의 19대 당선자들은 박 원내대표의 대여 투쟁력 등을 고려해 ‘현실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이-박 담합’을 승인한 것은 아니다. 박 원내대표가 경선 결과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느냐가 ‘박지원 체제’의 성패를 가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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