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을 명령하는 대법원 판결로 한·일관계에 파장이 불가피해졌다. 1965년 국교정상화와 양국관계의 근간인 한일청구권협정 및 한일기본조약의 취지를 부정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국제법에 비춰볼 때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고 했고, 고노 다로 외무상도 “한·일 우호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저부터 뒤엎는 것”이라고 했다.

“마침내 이겼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구 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13년 만에 대법원에서 원고 승소로 최종 확정된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원고 4명 중 유일하게 생존한 이춘식씨가 소감을 밝히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왼쪽은 강제징용 피해자인 고 김규수씨의 부인 최정호씨.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일본 정부의 반발은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있다. 사법부 판단이지만 한국이 또다시 ‘과거사의 골대를 옮겼다’고 여길 소지를 제공한 셈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2005년 한·일 국교정상화 외교문서를 전면 공개하면서 민관합동위원회에서 청구권 교섭과정을 검토한 결과 ‘강제징용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이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고 결론지었고 이후 정부는 이를 유지해왔다. 앞서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말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밝히면서 ‘파기’ 논란이 일었던 것까지 감안하면 ‘한국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약속을 뒤집는다’는 비판을 들을 단초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를 거론하면서 국제 여론전을 펼칠 경우 결코 유리하지 않다. 일본 내에서 또다시 ‘혐한’ 분위기가 고조될 가능성도 우려된다.

우리 정부의 대응이 중요하게 된 셈이지만 딱히 해법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정부의 기존 입장과 판결 간의 ‘불일치’를 해소하면서도 한·일관계가 외교분쟁으로 치닫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낙연 총리가 이날 담화에서 “제반 요소를 종합 고려해 대응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인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 정부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한·일관계 악화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하는 데도 장애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판결이 한·일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상황관리에 최선을 다해 줄 것을 정부에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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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노동 문제는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뉴스에도 잘 안 나온다. 그래도 지치지 않고 싸우는 이들이 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 ‘최저임금 인상’을 외치는 그들의 목소리는 처참하게도 다른 이들의 가슴에 닿지 못한다. 노동자들의 대규모 집회를 알리는 뉴스에 누군가는 교통체증이 먼저 떠오르고, 누군가는 ‘귀족노조’ 운운하며 쥐어박는 소리를 할 뿐이다.

그러나 외면하고 싶은 이 문제들은 잠시만 헤아려봐도 우리네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출근길에 들리는 커피숍이나 만원에 4개짜리 맥주를 사러 드나드는 편의점의 알바생, 택배를 챙겨주는 경비원, 귀갓길을 동행한 대리기사…. 우리는 이들이 나와 내 가족, 내 아이의 현실이며 미래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접어둔 채, 그들의 노동에 기대어 살아간다. 때론 그들을 향해 냉담함과 오만함을 내보이면서 말이다.

사회가 잘못을 알아채는 것은 대부분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난 다음이다.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외주업체 비정규직 19살 김군의 죽음이 그랬다. 생일을 하루 앞두고 숨진 김군 가방에서는 밥 먹을 시간조차 없어 급히 끼니를 때우려 했을 컵라면이 들어 있었다. 그제야 세상은 김군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무기계약직으로 받아들였고, 서울시는 서울교통공사 소속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방침을 발표했다. 그러자 청년 정규직들이 집단 반발했다. 정규직 전환에 ‘합리적 차이’를 두기로 하면서 지난달에야 노사가 극적으로 합의했지만. 이 과정에서 무기계약직 한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반발은 서울교통공사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에도 정규직 교사들과 임용시험 준비생들이 거세게 반발했고, 인천공항공사에서도 정규직 노동자들이 불공정한 입사를 막아달라고 호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와중에 서울교통공사의 직원 친·인척 ‘고용 특혜’ 의혹이 터져 나왔다. 취업절벽 시대에 채용비리 문제는 일자리 ‘도둑질’로 받아들여져 국민 공분을 일으킬 사안이다. 분명한 것은 공공기관 채용비리는 사회에 만연한 반칙과 특권을 상징하는 반사회적 범죄로 뿌리뽑아야 하지만, ‘비정규직 정규직화’ 자체를 문제 삼아선 안된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다. 교통공사의 특혜 의혹이 불거지면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는 게 공정하고 정의로운가를 청년들은 다시 묻는다. 정의의 관점에서 보면 경쟁은 공정해야 하고 약자는 보호돼야 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주된 근거에는 입사 시험이 있다. ‘바늘구멍’을 뚫고 입사한 자신들과 달리 시험도 안 보고 정규직이 되는 것에 분노가 치밀 법도 하다. 비정규직은 어떤가. 그들은 이 사회가 누가 어떤 일을 하는지보다 출발선을 기준으로 영원히 맞닿지 않을 평행선을 그리게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일부 정규직들의 주장대로 비정규직을 그대로 두고 차별만 없앨 수 있을까?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활동가는 “비정규직 문제는 고용불안에서 출발한다. 비정규직과 차별은 사실상 같은 말이다”라고 했다. 이는 고용불안을 걱정해야 하는 사회가 공정한가에 대한 물음이라는 것이다.

김훈은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고 노동의 비애를 얘기한다. 밥벌이를 위해 낚싯바늘을 삼킨 비정규직·정규직 노동자들 모두가 원하는 것은 안정된 일자리다. 그렇다면 나 역시 이들과 다르지 않은 노동자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차별을 없애고, 사회 양극화를 줄일 수 있는 출발점이다.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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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올 줄은 알았다. 정치권의 ‘통합론’ 바람 말이다. 이번엔 보수다. 싸늘하게 추우니 일단 뭉치자고 한다. 총선까지 1년6개월 남은 시점이다. 숨이 턱까지 차야 뭐가 되어도 되는 게 이 판 생리니, 일러도 한참 이르다. 그만큼 마음이 급하다는 방증일 터다.

통합 자체는 실상 중요치 않다.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민심이 궁금해하는 것은 ‘보수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이다. 더 콕 집으면 ‘보수가 집권하면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일 것이다. 그 답을 내지 못하면 어떤 시도도 무용하다. 이는 한국보수가 몰린 막다른 길을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보수의 이미지는 ‘반지성’이다. 낡은 특권에 연연하는 꼰대적 태도가 한 축이고, 드글드글한 사적 욕망과 아스팔트 보수의 폭력성이 다른 축이다. 무지·부패·폭력성이 이미지의 전부인 꼴이다. 한국보수가 한번도 책임 있는 ‘정치담론’을 낸 적이 없음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다. ‘통일 대박’을 외치다 색깔론을 꺼내고,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다 ‘복지 망국’이라고 하는 게 그들의 정치였다. ‘희생·헌신·책임’과 때로 애국이 포함되는 보수 가치를 실천한 ‘진짜 보수’는 존재치 않았다.

일부 보수들은 말할 것이다. 그들의 정치담론은 성장·산업화·자유라고 말이다. 하지만 모두 구시대 유물처럼 들린다. 성장은 기본이다. 지금 요구되는 건 ‘어떤 성장’이고, 내 삶과 연관된 성장이다. 여권의 ‘소득주도 성장’이 당장은 성공적이지 못함에도 기대를 받는 건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자유도 더 일관되고 명료해야 한다. 지금까지 보수의 자유란 ‘재산권의 자유’에 불과했다. 신체·사상 등 인간의 근원적 자유를 부정한 전력마저 있다. 지금은 정치·경제·사회적 자유 속에서 자신의 선택에 대해 아주 작은 차별도 받지 않을 자유가 쟁점이다.

가치는 세력을 통해 힘을 발휘하는 게 아니다. 선명함과 호소력이 무기다. 하지만 지금 보수엔 그저 닥치는 대로 끌어모아 탄핵 이전으로 복귀하려는 욕망만 있다.

내용 없는 끼리끼리의 통합론은 ‘헤쳐모여식 미봉’으로 그칠 것이다. 늘 그랬듯 선거용 기술로 말이다. 하지만 이번엔 그마저 성공할 것 같지 않다고 보수들도 느낀다. “보수는 지금 초상집이다. 친이·친박이 피 터지게 싸우는 동안 일관된 정치 행보를 한 사람도 없다. 전망이 남아 있지 않다”(야권 한 인사)는 ‘패배주의’만 가득하다.

일각의 ‘공화주의’ 논의들은 진전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시민들이 열망하는 공화의 내용을 추출하고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기껏 마련된 토론회에서 김무성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좌파사회주의 포퓰리즘 극복을 위해 공화주의 정신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선에 대한 헌신, 시민의 참여, 공직의 사회적 책임’이 본질인 공화를 문재인 정부 견제로 협소화한 것이다.

자유한국당 한 중진 의원은 “지금 이 당에 오는 사람들은 좋은 재원일 수가 없다. 시민들 사이에서 새로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시민들을 끌어당길 진짜 보수라면 다음의 6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보수가 생각하는 지금의 경제적 정의(正義)는 무엇인가. 선택의 자유가 우선인가, 격차 해소인가. 이는 필연적으로 양극화가 개인 선택의 결과일 뿐인지, 국가·사회적 제도의 미비인지를 답해야 하는 일이 될 것이다.

한국사회의 경제적 부정의를 인정한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여전히 ‘성장’인가. 그럼 보수의 ‘성장동력’은 뭔가. 재벌의 투자인가.

보수가 제시하는 한반도 미래는 무엇인가. 여전히 미국 옆에만 나란히 서면 되는 것인가. 이는 한반도 평화와 한·미동맹 중 어느 것이 우선적 원칙인지를 묻는 것일 수 있다.

‘박근혜, 태극기 부대, 특권의식’으로 상징되는 보수의 시대착오들과는 결별할 준비는 되어 있는가. “촛불은 혁명이고 태극기는 왜 부대인가”(전원책) 같은 항변을 보면 참 기대난망으로도 보인다.

보수가 생각하는 차별 없는 사회의 비전은 무엇인가. 성소수자 등 그들이 만들거나 동조해온 혐오에 대해 사과할 뜻은 있는가.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집약한 ‘보수의 정치 이념, 국정 철학은 무엇인가’에 답해야 한다.

한국정치의 비극성은 그 비주체성과 수동성에 있다. ‘자신의 정치’가 아닌 ‘남의 정치’에서 정치적 수단을 찾는다. 흔히 반사이익의 정치라고 한다. 자신의 가치를 펼치는 ‘연설의 정치’는 실종되고, 상대를 향해 말의 칼을 세우는 ‘논평의 정치’만 횡행해온 이유다.

보수가 이들 질문에 답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 한국사회에 대한 그들의 의무다. 현대 정치철학의 핵심인 ‘복지, 자유, 미덕(공동체)’을 3요소로 한 보수의 정의(正義)를 지금 이야기해야 할 때다. 통합이 아니다.

<김광호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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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시작된 인사청문회는 한국 사회 기득권층이 얼마나 공정과 도덕의 ‘밖’에서 살았는지를 시민들에게 생생히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정권마다 숱한 인사청문회가 실시되었지만, 도덕성에 하자가 없는 고위공직 후보자는 ‘천연기념물’ 같은 존재였다. 오죽하면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탈세, 논문표절이 고위공직 후보자의 ‘5대 필수과목’으로 지목되는 희극이 벌어졌을까 싶다. 곧잘 ‘의혹백화점’을 방불케 하는 역대 인사청문회에서는 ‘구린’ 후보자들의 해명 과정에서 갖은 황당 어록이 탄생했다.

인사청문회 도입 이래 첫 낙마자는 2002년 장상 국무총리 후보자다. 장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부동산 투기용 위장전입 의혹에 대해 “시모가 한 일이라 나는 몰랐다”거나 “재산 문제는 모두 시모가 처리했다”고 ‘시어머니’ 답변을 했다가 혼쭐이 났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2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물을 마시면서 의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권호욱 기자

인사청문회의 기막힌 어록은 인사참사가 빚어진 이명박 정부 조각 때 양산됐다.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절대농지 투기 의혹에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 투기와는 상관없다”고 했다가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자는 “서초동 오피스텔은 내가 유방암 검사에서 아니라는 결과가 나오자, 남편이 감사하다고 기념으로 사준 것”이라고 답변, 서민들 억장이 무너지게 했다. 2009년에는 백용호 국세청장 후보자가 등장했다. ‘집부자’였던 백 후보자는 “책을 보관할 장소가 없어서 (강남) 오피스텔을 구입했다”고 말해 질책이 빗발쳤다.

인사청문회 어록(?)이 또 하나 등장했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엊그제 인사청문회에서 만 2살 손자가 보유한 예금 2200만원의 출처를 묻는 질문에 “저와 직계가족이 차비 같은 걸 준 걸 모은 것 같다”고 해명했다. “2살이 무슨 차를 타냐” “무슨 이재용 아들도 아니고”라는 힐난이 뒤따랐다. 2년에 걸쳐 차비 명목이든, 세뱃돈을 모은 것이든 두 살 손자의 ‘2200만원 통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는 그 감수성에 아연할 따름이다. 조 후보자도 결국엔 청문보고서 채택 여부와 상관없이 임명은 될 수 있겠지만, ‘차비로 모은’ 두 살 손자의 2200만원은 그 유치찬란한 인사청문회 어록 열전에 길이 남게 됐다.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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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이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선언과 남북군사합의서를 비준한 것을 ‘초헌법적 행위’라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24일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판문점선언이 아직 국회 비준동의가 이뤄지지 않은 마당에 평양공동선언과 남북군사합의서는 국회 비준동의가 필요없다는 건 법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법원에 두 합의서의 효력을 정지시켜 달라는 가처분신청을 냈다.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계획도 밝혔다. 이에 청와대는 “국회 동의가 없는 군사합의서 비준이 위헌이라는 주장은 법리관계를 오인한 것으로, 그 자체가 위헌적 발상”이라고 반박했다. 격화하는 남남갈등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왼쪽에서 두번째)가 24일 문재인 대통령이 전날 비준한 ‘평양공동선언과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하기 앞서 국회 기자회견에서 같은 당 곽상도·최교일·임이자 의원(왼쪽부터)과 함께 신청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권호욱 기자

남북관계는 법률만으로 평가·재단할 수 없는 영역이다. 때로는 법률의 한계를 벗어난 담대한 접근으로 새 지평을 열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남북 간 합의를 법리 싸움으로 몰고 가려는 한국당의 태도는 지극히 유감스럽다. 한국당은 헌법 60조(국회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를 근거로 평양선언도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청와대가 밝힌 것처럼 북한과의 합의는 일반적인 ‘국가 간의 조약’으로 보기 어렵다.

헌재와 대법원이 모두 남북합의서를 한민족 공동체 내부의 특수 관계를 바탕으로 한 당국 간의 합의로 보고 헌법상 조약 규정을 적용하지 않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특수성을 무시하고 남북합의서를 헌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법리 오인이자 현실을 무시한 처사이다. 더욱 유감스러운 것은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동의에 대한 한국당의 자가당착적 태도이다. 판문점선언을 꼼꼼히 따져보고 비준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뜻이 강하다. 이런 식이라면 가처분신청과 권한쟁의심판에 대해 법원과 헌재가 한국당과 다른 판단을 내릴 경우 그 역시 승복하지 않을 게 뻔하다.

한국당은 문 대통령이 북한에 퍼주기만 한다는 의심과 낡은 대북관부터 버려야 한다. 판문점선언을 막아서기만 할 게 아니라 국회에서 제대로 심의해 비준동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합리성을 보여야 한다. 이런 식으로 가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종전이 선언되면 한국당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문 대통령이 야당 대표들을 초청해 판문점선언 비준에 협조를 요청할 것이라고 한다. 청와대는 북한과 미국을 설득하는 노력만큼이나 야당 설득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내부 지지 없이는 결코 외치에 성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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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3일 ‘평양공동선언’과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군사분야 합의서’를 국무회의의 심의·의결을 거쳐 비준했다. 두 합의서를 비준함으로써 남북 간 교류협력에 안정성을 더해 남북 간 군사 긴장완화 조치를 이어가는 한편 한반도 비핵화에 속도를 내겠다는 뜻이다. 더불어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문 대통령의 평양선언 비준을 부득이한 조치라며 환영했다. 그러나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의 순서가 뒤바뀌었다고 반발했다.

순서로 보면 판문점선언이 국회에서 비준동의된 뒤 평양선언이 비준되는 게 바람직하다. 판문점선언이 시기적으로도 앞서는 데다 상위 개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간 진행 과정을 보면 문 대통령의 평양선언 비준은 불가피했다. 문 대통령이나 정부로서는 마냥 손을 놓은 채 상황이 풀리기만을 기다릴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내년으로 미뤄지는 등 북핵 협상이 더뎌지는 상황에서 하루라도 빨리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고 비핵화를 추동하는 조치가 절박하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10월18일 (출처:경향신문DB)

한국당은 평양선언 비준동의는 국회 논의를 통해 결정할 사안이라고 주장한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23일 “판문점선언은 국회 비준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그 알맹이에 해당하는 평양선언과 군사분야 합의는 비준이 필요 없다고 하는 인식 자체가 대통령이 독단과 전횡을 일삼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을 여태 막아선 것도 모자라 그 하위 합의문의 대통령 비준까지 하지 말라니 이런 억지가 없다. 국회 동의가 필요 없다는 법제처의 해석을 비판한 것도 말이 안된다. 그동안 6·15 남북공동선언이나 10·4 남북정상선언 등도 국회 동의 없이 정부 비준으로 절차가 마무리됐다. 이를 계속 문제 삼는다면 억지 주장으로 안보 불안을 조성해 당리를 꾀한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평양공동선언은 남북 철도·도로 연결 등 남북 교류협력 강화는 물론 미국의 상응 조치에 따른 북한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를 명문화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평양선언 비준이 향후 한반도 군사 긴장완화 조치를 넘어 완전한 비핵화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할 일은 더욱 분명해졌다.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의 비준 선후를 시비하지 말고 즉각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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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때만 해도 김정은·트럼프와 협력하며 남북관계, 비핵화 문제를 잘 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다. 세 사람은 너무 달라서 대화가 가능한 사이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 이들이 아무도 하지 못했던 일을 할 수 있게 된 건 이들 간의 이질성 때문이다. 서로 다르기에 상대를 인정해야 했고, 동질성을 바랄 수 없기에 상대를 존중해야 했다. 그런 자세를 견지했기에 적극적 관여정책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다름을 존중했던 건 도덕적 당위라서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국내 정치를 다룰 때 그러지 않았다. 자유한국당이 집권세력의 지향점과 너무 다르다고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한국당은 합리적 보수를 내세우면서도 수구적 태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태극기 부대와도 합치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대야 협력을 포기해야 할 이유가 아니라, 김정은·트럼프에게 적용했던 적극적 관여정책을 써야 할 이유를 말해준다. 시간을 지체할수록 상호 거리는 멀어지고 대립은 심화될 것이다. 김정은·트럼프와 함께할 일을 찾고 문제를 개선할 수 있었다면, 한국당과도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트럼프와 좋은 관계를 맺으려 한 것은 그들을 피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핵을 기어코 가지려는 자와 전쟁을 불사해서라도 핵을 해체하려는 자 사이에 피란처는 없었다. 그들과 직접 부닥치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고, 그걸 위해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맺어야 했다. 지금 문 대통령 앞에는 북핵 문제만큼 피할 수 없는 국내 과제가 있다. 불평등 해소, 사회경제 개혁이다. 문재인 정부에 맡겨진 이 개혁과제를 완수하기 위해 어느 길로 가든 결국 한국당과 맞닥뜨리게 된다. 한국당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한국당을 우회해왔다.

문재인 정부는 북핵 위기 고조로 대화 전망이 흐렸을 때도, 북·미 정상회담 이후 협상이 막혔을 때도 돌파구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비공식 협상과 막전 막후 접촉을 가리지 않았다. 진전이 없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상황이 나아지길 무작정 기다리지 않았다. 정의용·서훈같이 신임하는 요직의 인사를 특사로 파견해서라도 교착 국면을 돌파하려 했다. 한국당이 정말 대화하기 까다로운 상대라면, 한국당에 대해서는 특히 그런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한국당과의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청와대에서 여야 대표 회동을 하고 여·야·정협의체도 구성했다. 그러나 단기 성과가 없자 더 이상 야당과의 협력에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판문점 공동선언을 성사시키기 위해 김정은에게 들인 정성과 노력도 국회 비준이라는 정치 과정으로 전환되면 이상하게 시들해진다. 정부와 여당은 당위론을 앞세워 비준에 협조하라고 한국당을 압박하기만 했다. 야당이라도 정부의 업적을 정당하게 평가해주는 여야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정치 환경 조성 노력은 하지 않았다. 한국당의 자세를 돌려놓기 위해 막후 협상하거나 핵심 인사를 보내 설득했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대통령과 여당지도부는 한국당 지도부와 인내심 있게 비공식 대화를 지속해야 한다. 좀 더 중량감 있는 정무수석을 두고 일상적으로 대야관계를 책임지도록 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존재감 없는 정무수석을 고수해 왔다. 그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의 정자도 모르는 외교관 출신 정무수석을 임명함으로써 대야관계에 어떤 신호를 보냈는지 알았다면 피했어야 할 일이다.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넘쳐도 남한에는 정치 갈등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다. 한반도 분단이 무너져 내려도 남쪽 내부 분단은 더 단단해지고 있다. 지금 한반도에서 대결하는 세력은 남북이 아니라, 남남이다. 남남 적대의 냉기로 인해 평화는 좀처럼 정치세력 사이에 스며들지 못한다. 평소 공기를 느끼지 못하듯 우리는 대결정치를 그리 유별난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언제나 목격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때의 협치, 연정론이 낯설었던 것이고, 이제는 철지난 유행어가 되었을 것이다. 한국 정치는 과연 비관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그렇지 않다. 낙관주의의 증거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요즘 부쩍 자신감이 붙었다. 그는 지난주 유럽을 돌 때 비핵화 진전에 맞춰 대북 제재를 해제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미국보다 앞서 가는 것으로 오해받지 않기 위해 신중했던 태도와 다르다. 상황을 주도해 나가겠다는 의지가 뚜렷하다. 70년 쌓인 적의가 소멸하고 있다. 남북협력을 할 수 있으면 남남협력도 가능하다. 왜 남남 대결이 계속될 것이라고 믿어야 하는가?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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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진전으로 청와대의 대외 행보에 자신감이 붙었다. 남북관계 개선이 외교적으로 얼마나 큰 지렛대를 가져다주는지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감이 지나쳤는지, 최근 밖으로 드러나는 청와대의 언행에는 외교적 고려가 없다.

유럽 순방 기간 문재인 대통령은 프랑스·영국 등을 상대로 대북 제재 완화 필요성을 공론화했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추동하기 위해 제재 완화를 논의해야 할 시점인 것은 분명하다. 이제 북핵 문제는 제재 완화와 같은 행동적 조치가 없이는 더 나가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이 제재 완화 문제를 놓고 북한과 물밑에서 치열하게 협상을 벌이고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유럽의 동맹국들을 상대로 제재 완화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한국의 시도를 미국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는 것은 문제다.

영국·프랑스 등은 중동 문제를 포함해 다양한 측면에서 미국과 협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미국이 반대하는 대북 제재 완화를 공개 지지하기 어렵다. 외교적 노력은 유럽이 아니라 제재 완화에 가장 부정적인 미국을 ‘조용히’ 설득하는 데 집중되어야 한다. 미국이 제재를 완화하면 다른 나라들은 따라오게 된다. 유럽에서 제재 완화를 공론화하고 여론몰이를 하는 것은 미국을 외곽에서 압박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청와대의 외교 무감각증 노출은 처음은 아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뉴욕 방문 때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평화협정 체결 이후에도, 심지어는 남북통일 이후에도 동북아 안정과 평화를 위해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이처럼 공개적으로 중국을 긴장시키는 발언을 하면서 중국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협조하기를 기대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북핵 문제의 또 다른 관련국인 일본과는 거의 외교가 중단된 상태다.

이럴 때일수록 미국은 물론 중국·일본 등 주변국과의 정밀한 외교가 필요하다. 남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통일로 다가가기 시작하는 과정을 주변국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세밀하게 주시하고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지금 청와대는 그런 ‘외교적 감수성’이 없어 보인다.

<유신모 |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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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작년부터 국회의 예산 사용실태를 조사하는 일에 참여해 왔다. 내가 속해 있는 ‘세금도둑 잡아라’라는 시민단체와 ‘좋은예산센터’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라는 세 단체가 연합을 했다. 독립언론인 ‘뉴스타파’까지 협업했다.

특수활동비, 업무추진비, 정책개발비 등 국회 예산 중에서 엉뚱하게 쓰이고 있을 확률이 높은 예산부터 조사를 시작했다. 정보공개 청구를 하고, 국회가 정보를 비공개하면 무조건 소송을 제기했다.

그렇게 해서 첫 번째로 ‘입법 및 정책개발비’라는 예산 항목부터 자료를 받게 되었다. ‘입법 및 정책개발비’는 국회의원들이 불법 정치자금을 받지 말고, 열심히 정책 개발을 하라고 만들어진 예산이다. 2005년부터 국회 예산에 신설됐는데, 1년에 86억원 정도가 책정된다.

그런데 공개된 자료를 본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입법 및 정책개발비’ 중 일부는 국회의원들이 500만원 이하의 소규모 정책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데 사용되는데, 용역을 수행한 연구자들이 전혀 전문성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대학생, 자유기고가, 인턴비서 같은 사람들이 연구자로 되어 있는 용역들이 여럿이었다. 게다가 국가의 보건복지정책 전반에 관한 연구를 제약회사 주임이 하는가 하면, 토목회사 과장이 인사청문회 제도에 대한 연구자로 되어 있었다.

더 충격적인 사실들도 밝혀졌다. 이은재, 황주홍 의원은 거짓으로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명목상의 연구자로부터 돈을 돌려받았다. 백재현 의원은 정체불명의 단체에 8건, 4000만원의 연구용역을 줬는데, 그중 2건은 완전히 다른 기관의 보고서를 베낀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비리도 빙산의 일각에 불과해 보인다. 국회가 정책 연구용역 보고서 원문을 비공개하고 있어서, 민간 차원에서 조사를 하는 것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보고서가 공개된다면, 표절 보고서, 엉터리 보고서들이 수없이 발견될 것이다.

그렇다면 국회의원들이 연봉이나 지원이 적어 이런 비리를 저질렀을까? 그렇지 않다. 국회의원들의 연봉은 수당을 포함하면 1억5000만원이 넘는다. 그리고 사무실 운영비, 공과금, 소모품비, 주유비, 차량유지비까지 깨알같이 국민 세금으로 지원받는다. 9명의 개인 보좌진도 주어진다. 의장단, 상임위원장, 특별위원장 같은 보직을 맡으면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 같은 예산도 쓸 수 있다. 그런데도 뭐가 부족해서 정책 개발에 쓰라고 준 돈까지 빼먹었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대한민국 국회는 감시받지 않는 특권집단이다.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회는 전면 개혁을 해야 한다.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독립된 감시기구를 두고 감시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들의 과도한 연봉을 줄이고 개인 보좌진 규모도 줄여야 한다.

흔히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이 장차관급 대우를 받아야 한다 생각하는데,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국회의원은 행정부·사법부의 엘리트들, 재벌과 같은 자본권력을 견제하고 국민의 시선에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국회의원의 연봉은 장차관급에 맞출  게 아니라 노동자의 평균 연봉 수준에 맞추는 게 옳다.

이렇게 국회의원 특권을 없애면서, 국회 의석은 늘려야 한다. 내년도 국회 예산이 6300억원에 달할 예정이다. 이 돈으로 300명의 국회의원을 쓸 게 아니라, 360명을 쓰는 것이 국민들에게 이득이다. 개인 보좌진과 연봉을 줄이면서 낭비되는 예산을 없애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어떤 직역이든 숫자를 늘려야 특권이 줄어든다. 변호사 숫자가 늘어나면서 변호사 사무실 문턱이 낮아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반면에, 국회의원 숫자를 줄이자는 주장은 특권을 더 강화하자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민주주의가 잘되는 국가들을 보더라도 대체로 인구 대비 국회의원 숫자가 우리보다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은 인구 10만명당 한 명 정도의 국회의원을 뽑는다. 국회의원 숫자를 늘리면 선거제도 개혁도 쉬워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 노회찬 전 의원도 ‘국회의원 숫자를 늘려서라도 선거제도를 개혁하자’고 주장했다.

대안은 나와 있다. 각 정당이 받은 득표율에 비례하여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 대안이다. 이렇게 되면 정당들이 정책으로 경쟁하고, 일하는 국회가 될 수 있다. 다양한 세력들이 국회에 들어가 서로 감시하게 되므로 부패도 없어질 수 있다. 그러려면 현재 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으로 되어 있는 국회 구성을 바꿔야 한다. 비례대표 의석을 100석 정도로 늘리고 국회의원 총수를 360석 정도로 하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마침 올해 말까지 국회에 정치개혁특위가 구성되어 이 논의를 할 예정이다. 시간이 많지는 않다. 국회의원들의 특권을 없애고 현재의 국회 예산을 동결한 상태에서 국회의원 숫자를 360명으로 늘리자. 그리고 동시에 선거제도를 개혁하자. 이것이 부패 없는 국회, 일하는 국회를 만드는 지름길이고, 진정한 정치개혁이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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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하게 부자가 되려면 이른바 글로벌 상품을 만들어서 팔 수 있어야 한다. 글로벌 상품이란 설탕, 커피, 자동차, 반도체, 스마트폰 등 세계 어디에서도 팔 수 있는 상품이다. 예를 들어 평양냉면은 우리에게는 잘 팔리는 로컬 상품이지만, 우리의 국경을 넘어서면 구매자를 찾기가 어렵다. 한편 양복과 같은 옷들은 처음에는 서양인들이 입는 로컬 상품이었지만, 양복이 세계 표준이 되어가면서 글로벌 상품이 되었다. 로컬 상품이 글로벌 상품이 되고, 글로벌 상품이 로컬 상품이 되는 다양한 경로들이 존재하는데, 그와 관련된 복잡한 논의는 별도로 하고, 어쨌든 기본적으로 글로벌하게 팔리는 상품들은 그 상품 경쟁력을 장악한 사람이나 기업을 어마어마한 부자로 만들어준다. 한국의 냉면집이 스타벅스와 같은 글로벌 대기업과 부의 축적 면에서 경쟁이 안되는 이유다. 일반적으로 근대 강대국의 역사를 보게 되면 경쟁력 있는 여러 글로벌 상품을 생산, 판매하는 기업을 많이 보유한 국가가 부자국가가 되고, 강대국이 되었다. 면직과 옷, 그리고 관련 방적기계, 철도, 자동차, 철강, 반도체, 컴퓨터, 스마트폰, 글로벌 금융기관 등 이런 산업으로 강대국들이 성장하고 저물고 하였다. 그리고 예전에는 글로벌 상품 혹은 그 원료를 독점적으로 획득하기 위하여 식민지 개척 및 전쟁 등도 서슴지 않은 것이 근대 인간과 강대국의 역사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소위 빅데이터 생산, 처리 기술과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글로벌 상품이 몇 개의 큰 시장을 중심으로 매우 분절적으로 로컬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물론 글로벌과 로컬의 기준과 정의가 무엇인가의 논쟁이 있겠지만, 하나의 표준화된 제품이 전 세계에서 공통으로 팔릴 수 있을 때 글로벌 상품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글로벌의 정도가 높은 상품의 종류는 앞으로 현격히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어떤 의미에서는 로컬의 수준이 매우 개인적인 차원으로까지 내려올 수도 있다.

그 이유는 개인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고, 고도로 발달된 인공지능이 본래 글로벌한 상품을 그 개인적 데이터에 부합하는 상품으로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직접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는 무인자동차를 팔 때, 그 자동차 안의 인공지능이 운전자의 언어, 운전습관, 생활패턴, 기호, 자주 다니는 길과 지형, 지인의 안면인식, 차 안에서 할 수 있는 작업의 종류와 성격 등의 데이터를 학습하여 매우 개인화된 자동차를 만들어서 팔 수 있게 된다. 물론 개인화되기 이전에 이미 국가별로 표준, 규제, 지형, 문화에 관한 데이터가 다르기 때문에 이른바 국가 수준에서 로컬화되는 자동차로 판매되어야 할 것이다. 이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방대한 데이터의 양과 그걸 처리할 수 있는 기술, 그리고 인간수준으로 진화, 학습된 인공지능의 기술인데, 현재 데이터의 양과, 국가의 데이터 인프라 통제(구글, 페이스북 등의 사용불가), 그리고 엄청난 투자와 인적자원 및 기술발전으로 인하여 이 분야에서는 중국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으로 앞서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여기에 데이터 전송의 보호기술 역시 양자통신 등 중국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데이터가 산업의 기본 연료가 되는 미래의 경제에서 중국이 세계를 제패할 가능성은 매우 커 보인다. 자국의 로컬 시장 규모를 중국 경제권으로 확대하여 중국 중심의 인터넷 플랫폼으로 장악하게 되면 데이터 산업과 인공지능 기술이 중국을 중심으로 축적되면서 선순환하게 되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 패권국가로 중국이 등장할 수도 있다.

만약 우리가 중국에 미래 산업의 제품을 수출하고자 한다면, 매우 중국적인 제품을 만들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중국에 수출을 하면 할수록 중국의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수출을 하는 우리보다 오히려 중국이 더 이익을 볼 수 있는 구조가 예상된다. 만약 중국이 일대일로를 거치는 국가를 중국의 데이터 인프라 안으로 묶어버린다면, 이러한 중국에 대한 의존은 중국의 시장이 개방되면 될수록 더욱 의존이 늘어나는 역설적인 종속의 수준으로 갈 수도 있다. 이러한 미래를 우리는 어떻게 보고 준비해야 할까? 미국도 자신의 데이터 인프라를 중심으로 시장을 확대하려 할 터인데, 그렇다면 미래에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개의 서로 배타적인 거대 플랫폼이 존재하는 새로운 형태의 양극체제가 될까? 그 국제정치적 의미는 무엇일까?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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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인적 쇄신과 당 혁신에는 반보도 내딛지 못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이 이제는 아예 반동으로 회귀할 분위기다. 시대정신과 동떨어진 이념과 정책, 인물 등 모든 영역을 밑동부터 갈아엎는다는 각오로 임해도 폐허가 된 보수의 재건까지는 갈 길이 멀다. ‘김병준 비대위’가 출범했지만 3개월이 넘도록 습관처럼 정부·여당을 공격하고, 행동 없는 구호로만 ‘보수 가치 재정립’을 외쳐댄 것 빼고는 한 일이 없다. ‘좌표·가치 재정립위원회’가 제시한 자유·민주·공정·포용 등 ‘4대 가치’라는 것도 당의 지향으로 실천이 담보되지 않기에 아무런 울림이 없다.

[시사 2판4판]들꽃 (출처: 경향신문DB)

비대위체제로 바꾸고도 침체와 무기력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낮은 지지율에서 탈출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한국당이 ‘보수통합’을 들고나섰다. 턱도 없어 보이는 보수 ‘대통합’의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고, “문재인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누구든 뭉쳐야 한다”(김용태 사무총장)는 통합의 명분부터가 문제다. 이념이고 노선이고 가릴 것 없이, 무조건 세력만 불리고 나뉜 보수야당만 합치면 문재인 정부에 대항할 힘이 생기고, 잃어버린 지지를 회복할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그러니 바른미래당을 향해 연대와 합당을 손짓하다가, 소위 ‘태극기부대’와의 통합을 공공연히 꺼냈을 터이다. 인적 쇄신의 권한을 위임받은 전원책 조직강화특별위원은 “태극기부대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가장 열렬한 지지자로 극우라는 표현을 써선 안된다”면서 태극기부대도 통합 대상이라고 했다. 대체 박 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한테 극우라는 표현을 써서는 안된다고 하는 발상부터가 황당하다. 박근혜 탄핵이라는 ‘과거’와 완전히 결별하고 냉전수구의 ‘구체제’를 청산하지 않고는 한국당의 출로는 열리지 않는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들며 “문재인 빨갱이”와 “박근혜 구출”을 외쳐대는 태극기부대가 보수통합의 상대라면, 더는 ‘보수 혁신’이나 ‘보수 재건’을 운위하지 말아야 한다. 판문점선언과 북·미 정상이 만나 한반도 평화를 논의하는 대전환의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한 채 “위장평화쇼” 운운하며 낡은 이념에 매몰되어 있다가 지난 선거에서 궤멸적 패배를 당한 교훈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더욱이 태극기부대와 통합하는 마당에 바른미래당이 동참하라는 건, 정치 도리도 저버린 뻔뻔스러운 발상이다. 애초 지지율 10%대에 고착된 ‘늙은 공룡’이 구심이 되어 보수통합을 이뤄내겠다는 것 자체가 몽상에 불과하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실패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채, 한 줌 기득권을 붙잡고 문재인 정부의 실정만 고대하는 정당에 지지를 돌려줄 합리적 보수 유권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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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왔다는 판단이 선다면 유엔 제재의 완화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더욱 촉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이런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단계적 제재 완화론’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번 구상은 문 대통령의 그간 발언들에 비해 반 발짝 더 나아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일 영국 BBC 인터뷰에서 “북한이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를 계속 실천하고 되돌릴 수 없는 상태까지 왔다고 판단되면 그때는 유엔 제재가 완화돼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당시 발언에 비해 이번 구상은 적절한 시기의 제재 완화가 비핵화를 추동할 수 있다는 데에 강조점이 찍혀 있다는 점이 다르다.

프랑스를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파리 엘리제궁에서 정상회담을 연 뒤 공동기자회견을 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북·미 비핵화 협상 시나리오를 조금만 진지하게 그려본다면 문 대통령의 구상이 결코 과도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북한이 비핵화 단계를 밟아 나가는 과정에 대해 철저하게 점수를 매기고 그에 합당한 조치를 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핵화의 ‘입구’부터가 아니라 국제사회가 납득할 만한 정도로 비핵화가 진척된 단계에 이르러 ‘당근’을 주자는 구상에 이의를 달 이유는 없다. 비핵화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문 대통령의 능동적인 판단을 지지한다.

문제는 대북 제재에 대한 미국의 태도가 여전히 완고하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상을 앞두고도 대북 제재를 강력하게 고수하고 있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지난 4일 “미국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의 비핵화에 깊이 전념하고 있으며 그때까지 제재 이행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에는 북한 관련 제재 대상자 및 법인과 거래할 경우 세컨더리 제재를 받을 수 있다며 주의를 촉구하기도 했다. 미국은 대북 제재가 느슨해질 경우 비핵화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는 북한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단선적인 사고다. 북한은 오랜 제재 속에서도 나름의 체제 내구성을 유지한 채 경제를 성장시켜왔다. 북한이 강력한 대북 제재를 견디지 못해 대화노선으로 전환했다고 보는 것도 오산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오히려 제재를 유지하면 북한이 핵을 버리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낮아질 것으로 본다. 이른바 ‘제재의 역설’이다. 

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에 대해 본격적인 재검토를 해야 할 시기임을 환기시키고 있다. 비핵화의 수단에 불과한 대북 제재를 불변의 목표로 간주하는 듯한 ‘가치전도’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 것이다. 문 대통령의 구상은 북·미 비핵화 협상 2라운드를 앞두고 제재 문제에서 현격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는 미국과 북한에 대해 중재안을 내놓은 셈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오는 19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도 이 구상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것으로 보인다. 대북 제재의 오랜 관성에 길들여진 국제사회를 상대로 한 공론화 작업이 쉽지는 않겠지만 북·미 협상의 촉진자를 자임한 문 대통령이 짊어져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의 구상이 국제사회의 ‘비핵화 공론장’에서 진지하게 검토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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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용품에서 라돈의 건강위험 공포가 끊이질 않는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겪었지만 정부 대응은 달라진 게 없다. 대진침대 매트리스, 까사미아 매트 등에 이어 입주 아파트 실내에서도 방사성물질인 라돈이 허용기준을 훨씬 넘는 수준으로 검출되었지만 정부의 체계적인 대응이 없다. 의도적으로 방사성물질을 섞어서 만든 제품, 시설 등에서 라돈이 발생되고 있다. 라돈 발생 생활제품이나 시설물 전수조사, 노출 또는 사용 규모 파악 및 건강위험 추적 등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대책조차 볼 수가 없다. 라돈이 일으키는 폐암 등 치명적인 건강위험과 어린아이, 노인, 환자, 임산부 등 민감 집단을 포함한 상당수 시민들의 과다한 라돈 노출 가능성을 고려할 때 이해할 수 없다.

라돈은 흡연 다음으로 폐암을 많이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마다 차이가 있지만, 전체 폐암 발병의 3~12%가 라돈 때문이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폐암 사망자 중 담배를 피운 적 없는 사람의 23%, 피운 사람의 11%가량이 라돈 노출 때문이라 발표했다. 최근 소아 백혈병을 일으킨다는 연구도 많이 보고되고 있다. 신장암, 피부암, 뇌암 등과의 연관성을 주장하는 연구들도 있다.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원자력안전위 등 5개 기관 국정감사에서 송희경의원이 라돈측정기를 들고 질의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우리나라에서만 매우 높은 농도의 라돈을 발생시키는 모나자이트를 의도적으로 넣은 침대, 매트 등 실내 생활제품을 10년 넘게 판매했다. 음이온이 건강에 좋다는, 근거 없는 유사과학을 이용한 제품이었다. 모나자이트에 들어 있는 방사성물질은 정확히 얘기하면 토론(thoron, Rn220)으로 라돈(Rn222)과 원자량이 같은 동위원소이다. 이 물질은 토론 함량이 g당 40~600베크렐(㏃) 정도로 천연 광물 중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사성물질은 호흡기 등 침착된 조직에서 안정화될 때까지 계속 딸 핵종으로 붕괴하면서 내놓는 알파에너지들이 세포 DNA를 파괴함으로써 암 등 건강영향을 일으킨다. 인체 내에서 딸 핵종들이 제거될 시간이 거의 없고 호흡기는 물론 다른 조직에까지 이동해 건강위험을 일으킬 수 있다.

모나자이트를 넣어 만든 생활제품은 기업의 의도적 위험 생산이다. 정부는 분명한 건강위험 제품을 사전에 차단하지 못하고 허가했지만 기업 처벌, 제품 수거, 시민 건강영향 파악 등 대응은 신속히 제대로 해야 한다. 모나자이트가 들어간 생활제품 종류는 물론 그 수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시민들은 모나자이트 사용 제품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다. 모나자이트를 이용한 음이온 특허제품만 수십만개에 이른다는 소문만 무성하다. 라돈 등 방사성물질은 사람이 볼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어서 노출을 인식할 수 없어 무섭다.

미국, 영국 등 선진 외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생활 속 라돈 관리 대책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정부는 생활 속 라돈 관리 종합대책을 세워야 한다. 전국을 대상으로 자연적으로 라돈이 높게 발생하는 지역 조사, 방사성물질이 들어간 건축 재료와 생활제품 현황 파악과 해결 방안 등이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 원자력발전소 방사성물질 관리 중심의 대책과는 차원이 다른 전문성과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감염과 급성 건강영향처럼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소홀히 해선 안된다.

라돈 사태는 사회 문제가 된 지 몇 개월이 지났는데도 공적 영역에서 진행되는 대책이 협소하거나 사실상 없다. 개인이 감당해야 할 위험으로 내버려 두고 있다. 시민들이 라돈 농도를 측정하고 건강영향이 어느 정도일지 불안해하고 있다. 얼마나 생활용품 건강위험 참사를 겪어야 예방과 신속한 대응이 구조적으로 이루어지는 정부 거버넌스를 가질 수 있을까? 아직 갈 길이 멀다.

<박동욱 | 방송통신대학교 교수 환경보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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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시절 경찰 ‘여론조작’ 사건의 전모가 발표됐다. 경찰청 특별수사단은 15일 2010년 2월부터 2012년 4월까지 경찰이 정부와 경찰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조직을 동원해 온라인에 최소 3만7800건의 댓글을 작성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수사단이 지난 3월부터 수사해 온 결과다. 수사단은 이번 수사와 관련해 조현오 전 경찰청장 등 당시 경찰 지휘부 11명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하고, 추가로 확인된 관련자 4명을 계속 수사 중이다. 앞서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과 국군 사이버사령부도 수십만건의 온라인 여론조작을 한 사실이 검찰 수사로 밝혀진 바 있다. 당시 경찰마저 유사한 행위를 했다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권력기관이 얼마나 ‘사당화(私黨化)’돼 있었는지 보여준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댓글공작을 지시해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4일 구속 전 피의자 신문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오고 있다. 김영민 기자

수사단 발표를 보면 당시 경찰은 서울지방경찰청 정보관리부와 경찰청 본청 정보국·보안국·대변인실 소속 경찰관 1500여명을 동원해 온라인 댓글과 트위터 글을 달았다. 경찰이 여론조작을 한 것은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구제역, 김정일 사망, 유성기업 파업, 반값 등록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 희망버스, 제주 강정마을 사태, 정치인 수사 등 찬반 논란이 치열했던 사안들이다. 시민의 건전한 토론을 통해 형성돼야 할 정치·사회적 사안들에 대한 여론을 경찰이 정권의 입맛에 맞게 조작하려 든 것이다. 당시 댓글조작에 참여했던 경찰관들은 신분을 감추려고 지인이나 가족 등 가명·차명 계정과 해외 인터넷 프로토콜(IP)을 사용했다. 경찰 스스로 불법행위라는 것을 인식했다는 증거다. 당시 경찰은 정부 비판 성향 누리꾼인 이른바 ‘블랙펜’ 관련 자료를 사이버사로부터 넘겨받아 영장 없이 시민단체의 게시판과 누리꾼들의 e메일 등을 불법 감청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 같은 행위를 하는 범죄자를 잡아들여야 하는 경찰이 오히려 범죄에 앞장선 셈이다.

민주 국가에서 여론은 국가 운용의 기본 요소다. 정부와 정치권은 민의가 발현된 여론을 바탕으로 정책을 세우고 조정한다. 국가기관이 여론조작에 개입했다는 것은 단순히 직권남용이라는 현행법 위반을 넘어 민주주의의 원칙과 국가의 기반을 흔든 중대 사태다. 정권의 앞잡이로 전락한 행태도 용납할 수 없다. 이번에 경찰은 자신들의 과오를 직접 수사했다. 수사 과정에서 구속된 조현오 전 청장은 검찰이 아닌 경찰 자체 수사로 구속된 첫 경찰청장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경찰로서는 제 살을 깎아내는 수사였을 것이다. 경찰은 이제부터라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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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70억원대 배임·횡령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른바 ‘물컵 투척’ 사건으로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검찰과 경찰, 관세청 등 11개 기관이 수사·조사해온 한진 총수일가 비리 의혹에 대한 첫 단죄 치고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불법과 탈법, 갑질을 일삼으며 사익만 추구하는 재벌 일가의 구태를 근절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검찰은 또 외면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 10월 16일 (출처:경향신문DB)

조 회장은 배임·횡령·사기 및 약사법·국제조세조정법·공정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아왔다. 검찰이 인정한 공소사실을 보면, 재벌기업의 전형적 비리 행태를 총망라하고 있다. 납품업체들로부터 항공기 장비 등을 사들이며 중개 수수료를 챙기고, 어머니를 계열사 직원으로 등재해 허위급여를 지급하도록 하고, 자녀들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을 해당 기업이 비싸게 매입하도록 한 혐의 등이 그것이다. 조 회장은 맏딸 조현아씨의 ‘땅콩 회항’ 사건 당시 변호사비용 17억원을 회삿돈으로 내게 하고, 인하대병원 앞에 ‘사무장약국’을 열어 건강보험 요양급여를 부정하게 타낸 혐의도 받고 있다. 이 정도 혐의로도 구속을 면했다니 납득하기 어렵다. 구속영장을 기각한 법원에 1차적 책임이 있겠으나, 검찰 또한 수사에 최선을 다했는지 의구심이 든다.

조 전 전무에 대한 수사결과는 길게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특수폭행은 물컵을 사람 없는 방향으로 던졌다는 이유로, 업무방해는 대한항공 업무 처리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이유로 각각 무혐의로 결론났다. ‘반의사 불벌죄’인 단순 폭행 혐의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해 ‘공소권 없음’ 처분됐다. 피해자는 광고대행사 직원이다. ‘갑’인 재벌 기업과 계속 거래해야 할 ‘을’이 어떻게 갑의 처벌을 바란다고 할 수 있겠는가.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수사 결과에 씁쓸할 따름이다.

한진 총수일가와 관련된 수사가 모두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조 회장 부인 이명희씨의 특수폭행·상습폭행 혐의, 딸 조현아씨의 밀수·외국인 불법고용 혐의 등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다. 남은 수사에서는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상식이 반드시 지켜지기를 바란다. 조 회장은 구속을 면했다고 안심할 때가 아니다. 이제라도 가족경영의 폐해를 근절하는 전면적 쇄신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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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은 규범의 하나로서 법률·명령·조례·규칙 등 다른 규범들과 구분되는 특색을 가진다. 이를 헌법의 ‘규범적 특질’이라 부른다. 이 특질들 중에 헌법의 ‘수권규범성’과 ‘권력제한규범성’이 있다.

헌법 제40조는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고 규정하고 제66조 제4항은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고 규정하며 제101조 제1항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들 조항은 권력분립원리의 헌법상 근거조항인 동시에, 입법권·행정권·사법권이라는 중요한 권한들이 각각 어느 헌법기관에 주어지는지를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 대목에서 헌법은 헌법기관들에 ‘권한을 준다’는 의미에서 ‘수권(授權)’규범이 된다. 헌법의 이 ‘수권규범성’에서 논리필연적으로 따라나오는 것이 헌법의 ‘권력제한규범성’이다. 수권규범으로서의 헌법이 그 헌법기관에 부여한 권한 이외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위헌이 된다는 측면에서, 헌법은 헌법기관의 월권 및 권한 남용을 방지하는 ‘권력제한규범’이 되기 때문이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1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부, 국사편찬위원회 등 7개 기관 국정감사에서 위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따라서 헌법기관의 권한 행사에 관해 규정하고 있는 헌법규정들은 엄격하고 좁게 해석되어야 한다. 헌법이 수권한 권한 이외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헌법의 권한조항들을 해석하는 것은 헌법의 권력제한규범성에 위배되는, 위헌적인 헌법의 ‘확대해석’이라 볼 수밖에 없다.

최근 교육부총리 임명과 관련해 국회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상태에서 교육부총리가 임명되자, 두 야당이 국무총리 임명뿐만 아니라 부총리 임명 시에도 국회 동의를 얻도록 국회법과 인사청문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러한 법 개정은 법 개정의 정치적 필요성과는 별론으로, 합헌 여부의 판단에서 위헌일 가능성이 높다.

행정부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임면권은 헌법에 의해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에게 주어져 있다. 그러나 우리 헌법은 이러한 대통령의 고위공직자 인사권이 민의를 반영하여 합리적으로 행사되도록 고위공직자의 임명에 국회의 견제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것이 제도화된 것이 국회법이나 인사청문회법에 규정된 인사청문제도이다. 주목할 점은 이 고위공직자의 국회 인사청문은 두 가지로 이원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임명 전 국회 동의를 요하는 인사청문과, 임명 전 국회 동의를 요하지는 않지만 헌법이 아닌 국회법 등 법률에 의해 국회 인사청문을 거치게 하는 인사청문이 그것이다. 전자는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에서 하고 후자는 국회의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하도록 국회법에 규정되어 있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고위공직자 중 국무총리, 대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감사원장에 대해서는 국회 동의를 얻도록 하지만, 장관, 즉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게 할 뿐 국회의 동의를 요하게 하고 있지 않다. 대통령을 보좌하며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 전체를 통할하는 국무총리와, 개개 행정 각부의 장인 장관의 무게를 달리 보면서, 국회의 대통령 인사견제권의 강도도 달리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국무총리에 대해서는 국회 본회의의 동의안 표결 통과를 요구하면서, 장관에 대해서는 인사청문 과정에서 국민의 참여를 실현하고 국민 여론에 의한 검증을 받게 할 뿐 국회에 임명 동의권까지 주고 있지는 않다.

더욱이 ‘부총리’는 헌법상의 용어도 아니다. 헌법에는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및 ‘행정 각부의 장’이라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경제부총리가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국가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며, 교육부총리가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고용, 문화정책 전반을 조정한다고 하더라도 헌법하에서는 ‘부총리’도 한 명의 국무위원이자 장관으로서 국회 동의 없이 법에 규정된 국회 인사청문을 거쳐 임명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이후에 채택하는 인사청문보고서는 공직후보자 임명에 참고자료일 뿐 대통령을 법적으로 구속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국회 ‘동의’와 다르다.

결론적으로 장관인 ‘부총리’에 대해 국회의 동의권을 인정하는 법률을 만들면 그것은, 헌법기관의 권한조항에 대해서는 헌법의 ‘권력제한규범성’에 근거해 좁고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헌법해석의 원칙에 비추어 봤을 때, 헌법의 확대해석하에 만들어진 법률로서 위헌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회가 대통령의 고위공직자 임명에 대한 국회의 견제권을 꼭 강화하고 싶으면, 법 개정을 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뜻을 묻고 널리 수렴해서 개헌으로 나아가야 한다. 개헌 사항인지, 법 개정 사항인지는 정확히 구분되어야 한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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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군사분야 합의서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제기되고 있는 상당부분 주장들이 정치와 군사관계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국론을 분열시켜 국정운영의 동력을 훼손하게 만든다. 게다가 이번 군사합의 의미를 폄훼하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 군 고위 장성 출신이라는 점은 문제가 심각하다. 고위 군장성 출신 인사가 정치적 결정을 군사적 관점에서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올바른 민군관계가 자리 잡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적 결정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수행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군대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예비역 고위 장성들이 안보 현안에 대해 국가 정책에 반대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 전역했기 때문에 정치적 결정을 부정하고 비판하는 것이 당연한 시민적 권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군 고위 장성으로 연금과 예우를 받으면 정치와 군사의 원칙을 충실하게 준수해야 한다.

정치적 결정을 군사적 관점에서 평가할 수는 있다. 그러나 보완책을 제시하는 등 범위에서 그쳐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군사적 관점에서 정치적 결정을 뒤집어서는 안된다. 군사적 관점에서는 타당한 것 같지만 국가지도자의 정치적 결정과 결단은 그런 일부 전문적 영역 범주를 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번 남북 군비통제 협상은 한반도에서 위협을 낮추어서 국가 안보를 강화하겠다는 차원이다. 이러한 결정에 군사력을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도록 했으니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면 본말이 전도된 주장이다. 군은 강력한 대응을 통해 국가 안보를 지켜나가지만 정치는 위협 수준을 낮추어서 국가 안보를 지킨다.

이번 군비통제 합의는 북한도 지켜야 한다. 북한이 그동안 믿을 수 없었다고 해서 남북정상 간 결정까지도 믿을 수 없다면 우리는 북한과 어떤 관계가 가능할 것인가. 지금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유리하고 덜 유리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남북군사분야 합의서에 대한 논쟁의 출발점은 과연 지금 서명한 합의서 내용으로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을 여하히 방지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번 남북 간 군사분야 합의는 매우 성공적이라고 평가받아야 한다.

이번 합의로 인해 북한도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북한군부 반발을 무마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합의에서 우리에게 무엇이 유리한지를 몇가지만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북한은 군비통제 원칙을 완전하게 양보했다. 1974년 남북공동성명 발표 이후 북한은 즉각적인 군비축소를 주장했다. 반면 우리는 신뢰구축을 거쳐 운용적 군비통제와 구조적 군비통제 이후 군비축소의 단계적 과정을 주장했다. 수십년간 남북 간 군비통제 역사에서 서로 양보하지 않았던 원칙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번 합의를 통해 신뢰구축과 운용적 군비통제를 먼저 실시하는 데 동의함으로써 김일성 이후 지속해오던 원칙을 포기했다.

두번째, 북한은 서해평화수역을 수용함으로써 NLL을 잠정적으로 인정하는 입장을 보였다. 북한은 기존에 주장해오던 ‘서해해상군사분계선’을 주장하지 않았다. 구체적 내용은 앞으로 남북 군사당국 간 논의될 것이다. 서해평화수역을 놓고 NLL을 포기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점에서 어긋난다.

세번째, 북한은 정찰 수단이 많지 않다. 그러다보니 북한은 무인기로 청와대를 위시해 남한 전역을 정찰했다. 비행금지구역 설정 합의로 북한은 군사적으로 훨씬 많은 제약을 받게 됐다. 반면 우리는 한·미동맹의 전략자산을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오히려 이번 비행금지구역 설정으로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를 통해 전략자산을 협조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려해야 할 상황이다.

이번 합의서는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적 결정이다. 군은 국군통수권자의 의지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국가방위의 최후 보루인 군은 합의가 잘 준수되지 않았을 때 대응방안도 같이 강구해야 한다. 그것이 군의 역할이다.

<한설 | 전 육군 군사연구소장 (예비역 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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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비리 사립유치원’ 명단을 공개하면서 후폭풍이 거세다. 유치원장이 교비로 명품 가방을 구입하는 등의 비리 행태에 학부모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비리 유치원을 처벌해달라는 청원이 잇달아 올라온다. 지난 5일 박 의원 주최로 열린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사립유치원 관계자들의 반발로 파행을 겪은 배경을 이제 짐작할 만하다.

박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의 2013~2017년 감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사립유치원 1878곳에서 비리 5951건이 적발됐다. 전수조사도 아닌, 각 교육청이 자체 기준에 따라 선별해 이뤄진 조사 결과다. 사례를 살펴보면 더 기가 막힌다. 경기도의 한 유치원 원장은 정부 지원금과 매달 학부모가 내는 돈으로 노래방·숙박업소에서 결제하고 명품 가방과 성인용품까지 사들였다. 인천의 한 유치원은 교육업체와 짜고 교재비를 실제보다 많이 지급한 뒤 차액을 차명계좌로 돌려받았다. 서울에선 교직원 복지적립금 명목으로 설립자 개인 계좌에 1억여원을 쌓아두거나, 설립자 명의로 6000여만원을 만기환급형 보험에 적립한 사례가 적발됐다.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립유치원에는 국가예산이 해마다 2조원 이상 지원된다. 그럼에도 국공립유치원과 달리 정부가 회계를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없다. 2017년 2월 국무조정실은 ‘유아교육종합정보시스템’ 구축을 핵심으로 하는 ‘사립유치원 재정 투명성을 위한 회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2017년 하반기부터 2018년 사이 구축을 마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다. 교육당국이 사립유치원들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올 법하다. 교육부는 박 의원의 명단 공개로 논란이 커지자 뒤늦게 사립유치원도 국공립처럼 회계 시스템을 도입하고, 시·도교육청 감사 결과를 실명 공개하는 방안 등의 종합 대책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번에도 대책이 좌초하는 일이 생겨선 안될 것이다.

사립유치원들도 억울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에는 심각한 비위도 있지만, 고의성이 없는 단순 실수도 섞여 있다. 국공립유치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사립유치원이 유아교육의 큰 몫을 책임져온 사실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거액의 예산을 지원받으면서 감시는 받지 않겠다는 태도는 누구도 납득시킬 수 없다. 사립유치원은 학원이 아니다. 유아교육법과 사립학교법에 따른 ‘학교’이다. 유치원 설립·운영자들은 이러한 위상에 걸맞게 처신해야 한다. 정부도 모든 사립 교육기관의 공공성과 책무성을 강화하는 데 적극 나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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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질적인 첫 국정감사가 지난 10일부터 시작됐지만 초반부터 정쟁과 파행, 한탕주의 ‘쇼’로 얼룩지고 있다. 첫날 법사위 국감은 자유한국당이 김명수 대법원장의 대면질의를 요구하고, 여당은 삼권분립 훼손을 이유로 반대하면서 파행을 빚었다. 교육위 국감은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자격을 문제 삼으며 한국당 의원들이 퇴장해 정상 진행이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12일 정무위 국감은 정무위원장 민병두 의원실 직원의 금융위원회 채용 관련 의혹 등을 놓고 여야가 대립, 정회를 거듭했다. 법사위는 이날도 문재인 대통령의 ‘강정마을 주민 사면’ 발언에 항의해 한국당 의원들이 집단 퇴장하면서 굴절됐다. 하루도 빠짐없이 여야의 대립으로 상임위 파행 사태가 초래된 셈이다. 국정감사가 초반부터 여야의 정쟁과 일탈로 오염되는 것 같아 실망스럽다.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이낙연 총리의 연설문을 민간인 작가가 작성했다는 논란 관련 질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극적인 소품을 동원한 보여주기 이벤트, 근거 없는 폭로 행태도 여전하다. 퓨마와 닮았다며 벵골고양이를 국감장에 들고나온 한국당 김진태 의원, 선동열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상대로 맥락 없는 질문 공세를 퍼부은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 ‘가짜뉴스’ 대책을 비판한다며 암세포 사진을 활용한 현수막을 펼친 한국당 박대출 의원 등이 그런 구태를 재현한 경우다. 국감과 상관없는 논쟁과 ‘깜짝쇼’ 등으로 시간을 허비하기엔 다루어야 할 국정 현안이 너무 많다.

정상궤도 이탈 조짐을 보이는 국감 진행에 대한 여야의 평가도 ‘사돈 남 말 하는’ 격이다. 민주당은 “한국당이 떼쓰기와 정치공세로 막장국감을 만들고 있다”고 비난하고, 한국당은 “민주당과 청와대는 막장국감, 정쟁국감으로 국정감사가 마비되는 것을 획책한다”고 공격한다. 공방에 앞서 상대에 대한 비판을 자신에게 돌려 자성해보길 바란다.

정부가 제대로 정책을 수행하고 예산을 쓰는지를 따짐으로써 국정을 감시·견제하는 것이 국감의 본령이다. 여기서 야당이 정부의 정책과 예산 집행의 잘잘못을 파헤치고 지적하는 건 당연한 책무다. 그렇다고 ‘아니면 말고’식 폭로나 무분별한 정치공세까지 용인되는 건 아니다. 여당도 무조건 정부를 비호하는 방패막이 역할에 매몰되거나 야당의 합리적인 문제제기까지 정쟁으로 내몰아서는 안된다. 이제부터라도 여야를 떠나 입법부의 일원으로서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 국감다운 국감을 펼쳐보이길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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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또다시 국회에서 인사청문회 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한 유은혜 후보자를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현 정부 들어 이 같은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강경화 외교·송영무 국방·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도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으나 임명했다. 처음부터 일방적인 임명을 하고자 했다면 불필요한 인사청문회는 왜 했는지 그 속내가 궁금하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전입, 논문 표절’ 등 5대 인사 배제 원칙을 제시하고 이에 관련된 인사는 각료로 임명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공약한 바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1기 내각 조각을 모두 마치고 5대 인사 배제 원칙에 ‘음주 운전’과 ‘성범죄’ 항목을 추가했다. 결과적으로 인사 배제 7대 원칙이 된 것이다.

‘인사청문회법’은 대통령이 행정부의 고위 공직자를 임명할 때 국회의 검증 절차를 밟도록 함으로써, 대통령의 인사권을 통제하고 견제하고자 2000년 만들어졌다. 그런데 국무총리 등 일부를 제외하고 장관 등의 인사청문회는 구속력이 없다. 청문회 결과, 국회에서 부적격 보고서를 내도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거부하면 그만이다. 청문회는 통과의례일 뿐, 국회 청문회나 국민의 잣대가 아니라, 대통령이 가진 고유의 기준에 의해 임명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이 같은 사례는 10건을 넘었다. 문재인 정부 인사도 과거 정부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통령 자신이 후보 시절 공약한 인사 배제 원칙마저 무시한 채, 이런저런 군색한 변명과 함께 이번까지 6번째 임명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사청문회 무용론도 끊임없이 대두되고 있다.

미국의 인사청문회는 우리와 달리 인사청문특별위원회에서의 청문 절차를 거쳐 본회의에서 토론 없이 표결하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미국 인사청문회의 핵심은 바로 소요 기간이다. 보통 대통령의 사전 인선에 평균 270여일, 행정부 인준 준비에 평균 28일, 상원 인준에 50일 등 총 350일 정도가 소요된다. 즉 1년 가까이 선정된 후보자를 검증한 후 인준을 한다.

반면에 우리는 청문회 기간이 하루, 길어야 이틀이다. 제대로 된 검증이 이루어질 수 없는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따라서 정치 선진국이 되려면 우리도 이제는 인사청문회의 검증 기간을 충분히 늘리고, 도덕성과 능력 위주의 검증제도로 바꿔야 한다. 사실 현재와 같은 인사청문회 제도라면 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더 낫다. 시간, 세금, 전파 낭비만 가져오기 때문이다.

크든 작든 범법행위를 한 인사가 국무총리나 장관이 된다면 정상적인 나라라고 할 수 없다. 특히 박근혜 정권과 별반 다름없는 정부 탄생을 염원하며, 국민들이 엄동설한에 촛불을 든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국민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에도 스스로 국민과 한 약속을 여러 차례 식언(食言)한 바 있다. 이런 까닭에 대통령의 많은 선거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는 것은 아닌지,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윤배 | 조선대 명예교수 컴퓨터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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