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스라엘을 방문 중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문재인 정부에 대해 “이전 정권을 때려잡느라고 정신이 없다. 국가의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복수하려고 서로 정권을 잡느냐. 나라를 잘되게 해야지 무슨 복수를 하려고…”라고도 했다. 그는 자신의 발언이 파문이 일자 6일 “적폐청산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적폐청산이란 정치기술을 배척한다”는 해명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정치 지도자가 해외에 나가 정쟁 발언을 하고 이를 다시 주워 담는 모습은 참으로 꼴불견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4일(현지시간) 독일 인공지능연구센터를 찾아 안드레아스 덴겔 교수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야당 대표가 정부 실정(失政)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정도가 있고 이치에 맞아야 한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 일정이 1박2일로 정해지자 “품격 있는 나라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나라 체면이 말이 아니다”라고 개탄했다. 촛불집회 1주년을 맞아서는 “촛불정신을 독점하려는 세력 때문에 나라 안보가 불안하고 사회가 갈등한다”고 했다. 거의 ‘기승전 문재인 비판’이다. 오죽하면 당내에서도 “적폐청산은 철저히 하는 것이 맞다”(유성엽 의원), “자고 깨면 문재인 비판이고, 모든 건 문 대통령 잘못이라고 한다. 정당 대표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이상돈 의원)는 비판이 나오겠는가.

안 대표는 지난 8월 “제 미래보다 당의 생존이 더 중요하다”며 대표에 출마했다. 하지만 국민의당 지지율은 그의 대표 취임 후에도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그의 발언에 시민들이 동의한다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안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 여론조사에 따르면 서울·부산시장 후보 적합도에서 모두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안 대표는 대선 패배 후 정치에 복귀하면서 “실천적 중도개혁정당이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확립하겠다”며 “배타적인 좌측 진영이나 수구적인 우측 진영에 매몰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것은 양비론과 반대를 위한 반대였다. 정치는 누구를 반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의 미래, 시민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도 반문(反文)을 뛰어넘는 국가적 비전과 가치는 내놓지 못하고, 문 대통령 비판으로 일관하느라 자기 정체성도 잃어가고 있다. 바른정당과의 설익은 통합논의로 당내 갈등을 촉발한 것이 말해주듯 리더십도 보여주지 못했다. 시민들은 점점 안 대표의 모호성과 양면성에 짜증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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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예산안 심사가 본격 시작됐다. 언제나 그랬듯 올해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야당은 공무원 일자리 증원, 최저임금 지원, 사회간접자본(SOC) 삭감 등을 놓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이를 일부 언론은 ‘눈먼 나랏돈 새는 것을 막기 위해서 국회 심의가 시작된다’고 썼다.

예산안을 칭할 때 흔히 쓰는 표현이 ‘나랏돈’이다. ‘나랏돈 국민 위해 푼다’, ‘나랏돈 마중물로 일자리 늘린다’, ‘사람 중심 소득주도 성장에 나랏돈 푼다’. 문재인 정부의 429조원짜리 첫 예산이 공개된 지난 8월, 상당수 언론은 예의 ‘나랏돈’이라는 용어를 썼다.

새 정부 예산안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꽤 고민했다. 경향신문이 정한 제목은 ‘시민으로부터 받은 세금을 시민에게 되돌려 준다’였다. 예산은 정부가 한 해 동안 쓸 돈이니까 ‘나라살림’이나 ‘나라곳간’은 맞다. 

그런데 예산 자체를 나랏돈이라고 표현하는 데는 어폐가 있다. 나랏돈이라고 하면 국가소유의 돈으로 시민과는 상관없는 돈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벌어서 시민들에게 베푸는 돈이라면 맞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정부 재정은 경제주체인 개인과 기업이 낸 세금을 모아서 마련된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었을 때 소득세와 법인세를 낸다. 세금을 떼고 남은 돈으로 소비를 하면 부가가치세를 낸다. 그러고도 남은 돈이나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면 증여세나 상속세를 낸다. 집을 사면 취득세와 거래세를, 집을 갖고 있으면 보유세를, 팔 때 차익이 남는다면 양도소득세를 낸다. 이렇게 해서 정부가 내년에 걷어들일 국세 총액이 268조원이다. 시민과 기업이 잘못해 내는 벌금과 과태료 등 국세외수입과 각종 기금수입까지 합치면 내년 447조원의 총수입이 예상된다. 여기에 정부관료가 해외에 나가서 벌어들인 돈은 단 한 푼도 없다. 기업도 시민이 운영하는 것이고 보면 결국 모두가 시민의 돈이다. 정부는 이렇게 모은 돈을 내년에 쓰기로 했다. 그게 예산 429조원이다.

시민들은 429조원을 정부에 상납한 것이 아니다. 그저 위탁했을 뿐이다. 정부는 이 돈을 분배할 권리는 있지만 소유할 권리는 없다. 그래서 나라살림은 맞지만 나랏돈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아버지와 아들, 딸이 벌어온 돈을 어머니에게 맡겼다면 그 돈을 ‘가정살림’으로는 표현할 수 있지만 ‘어머니 돈’으로 볼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시민들이 정부에 돈의 분배권을 주는 이유는 한국사회에 대한 정부의 정보력과 분석력이 개인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국사회 어디에서 돈을 필요로 하는지, 어떻게 쓰면 더 가치가 있을 것인지를 안다고 시민들은 기대한다. 당연히 그 돈은 사사로이 쓰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박근혜 정부가 국가정보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를 상납받았다는 얘기는 그래서 충격적이다. 특수활동비는 어디에 쓰는지 용처를 묻지 않는다. 시민들은 정부가 밝히기는 어렵지만, 좋은 일에 쓸 것이라 철석같이 믿고 국정원의 주머니에 꽂아줬다. 그런데 그 돈이 ‘문고리 3인방’을 거쳐 대통령의 주머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고 한다. 역대정부에서도 그랬다는 것은 변명이 안된다. 박근혜 정부는 쓸 데가 많다며 담뱃값을 올렸고, 연말정산 세액공제도 도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둑부터 줄였어야 했다.

박근혜 정부는 예산을 ‘나랏돈’이 아니라 ‘나라님 돈’으로 생각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예산은 나랏돈이 아니라 시민의 돈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내 돈이다. 누가 대낮 노상에서 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자기 주머니로 ‘인 마이 포켓’을 했다는 데 가만있을 사람은 없다. 나의 분노는 정당하다.

<경제부 | 박병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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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2월20일 오전에는 김대중-조지 W 부시의 한·미 정상회담이 있었고 오후엔 파주 도라산역에서 두 정상이 전 세계를 향한 공동연설을 했다. 이때 행사요원으로 현장에서 부시의 연설을 듣던 감회가 새롭다.

전달 미 의회에서 부시는 북한, 이라크, 이란을 악의 축으로 단정하고 극단의 대북 적대정책을 표명했던 터라, 한국 최전선에서 그가 하는 연설 내용에 남북 모두의 관심이 집중된 터였다.

‘북한을 공격하지 않겠다. 인도적 지원도 하겠고 북한과의 대화도 고려한다’는 요지의 연설 내용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부시의 태도 변화는 오전의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집요하게 설득한 것이 주효했기 때문이었다. 예정된 시간을 넘겨 진행된 회담에서 김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의 대북 인식 전환 그리고 포용정책의 필요성을 설득하기 위해 ‘정치인의 삶 중 가장 힘든 시간 중의 하나’ ‘젖 먹던 힘까지 다하여’라는 본인의 표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후일담을 동행했던 분에게서 들은 기억이 있다.

7~8일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는 문재인 대통령은 그때보다 더 힘든 상황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트럼프 취임 후 이제까지 그의 북한 관련 언급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한반도 분단 역사는 물론 북한의 3대 세습이 왜 가능한지, 그토록 핵·미사일에 집착하는 근본 이유와 북한 군부의 특성 등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고 그저 세계 패권국으로서의 자존감과 국내 정치에 대한 불만 여론을 밖으로 돌리기 위한 방편으로 북한 문제를 이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문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을 북한 문제의 해법은 압박·제재로는 한계가 있고 반드시 대화를 통해야만 가능하다는 점을 그간 남북관계 역사를 통해 설명하며 트럼프의 대북인식을 전환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미 정상이 공동 기자회견장에서 조건 없는 북한과의 대화 메시지를 발표한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회담 시 이제는 제재와 함께 대화를 병행해야 할 시점이라는 점, 그리고 북한과의 대화를 우리 정부가 먼저 시도하면서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유도하겠다는 생각을 전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1980년대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칭하면서도 고르바초프와 대화를 통해 핵감축 협상에 성공했던 사례를 인용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북한엔 굴복이 없다는 사실, 그래서 나름의 명분을 세워줘야 한다는 사실도 꼭 주지시켰으면 한다.

지난달 북한 최선희 외무성 국장이 러시아에서 한 발언 내용, 이후 북한 매체 보도들의 행간 내용, 그리고 지난 9월 마지막 미사일 실험 이후의 북한 행보를 읽어보면 분명 북한은 대화를 희구하고 있음이 간파된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이 북한 핵·미사일 문제가 대화모드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소문이지만, 북한의 식량사정이 1990년대 고난의 행군시대에 준하는 심각한 상태라는 소식, 대북 제재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 북한 지방 주민들의 삶이 매우 피폐해져 가고 있다는 최근 방북 인사들의 전언 등을 감안할 때 빠른 시일 내에 대북 제재를 해제하고 남북관계를 정상화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성원 | 한라대 초빙교수·동북아경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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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정당은 5일 의원총회를 열고 오는 13일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연기하고 자유한국당과 통합 전당대회를 추진할지를 논의했다. 바른정당은 ‘보수 대통합’을 주장하는 김무성 의원 등 탈당파와 ‘개혁보수’를 주장하는 유승민 의원 등 자강파로 쪼개져 있는 상태다. 이날 의총은 양측이 접점을 찾기보다 탈당파들이 예정된 수순을 밟기 위한 ‘이별 의식’ 성격이 짙었다. 결국 탈당파 의원들은 6일 탈당을 결행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회 연설 이후인 9일쯤 한국당으로 복당할 계획이라고 한다.

보수정당들이 가치와 정책을 재정립하고 혁신의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무너진 보수의 재건을 위해 통합하는 것은 탓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바른정당 일부 의원들의 한국당 복당은 어떤 명분도, 원칙도, 가치도 찾아볼 수 없다. 바른정당은 지난해 촛불정국 때 새누리당 내 친박세력의 국정농단 비호를 비판하며 ‘새로운 보수’의 깃발을 들고 탈당해 만든 정당이다. 그런 의원들이 다시 한국당에 들어가려면 시민이 납득할 만한 원칙과 명분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당은 박근혜 정부 국정실패의 한 축이자 공동책임자다. 그런데도 지금껏 진정한 반성 한마디 없었고, 환골탈태하려는 변신 노력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케케묵은 퇴행적·수구적 태도에서 달라진 게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출당시킨 것으로 보수 혁신을 다한 것처럼 우겨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바른정당 의원 13명은 지난 5월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집단 탈당해 한국당으로 돌아간 바 있다. 이번엔 8명 안팎이 추가로 복당할 것이라 한다. 큰 상황변화가 없는데도 이렇게 다시 돌아갈 것이라면 애초 당은 왜 뛰쳐나왔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촛불이 활활 타오를 때는 불이 옮겨붙을까 피해 있다가 국면이 정리되자 다시 옛집을 찾아가는 꼴이다. 결국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이합집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민의와 동떨어진 한심한 정치공학적 술수에 불과하다.

오로지 이기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철새정치’는 한국 정치의 오랜 폐습으로 비판받아 왔다. 이는 보수 혁신과도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덩치만 키운다고 강한 보수정당이 되는 것은 아니다. 건강한 보수로의 발전이 담보되지 않는 묻지마식 통합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야합이자 협잡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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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만 전 총무비서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국가정보원에서 40억여원을 상납받았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충격적이다. 국정원 돈의 최종 귀착지가 박 전 대통령이라는 의미이다. 도대체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의 끝이 어딘지 가늠조차 어렵다. 40억원 중 일부라도 박 전 대통령이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면 이는 국민 세금을 유용한 중대 범죄다. 국정원은 2일 국회 정보위 국정감사에서 청와대에 상납한 돈이 특수공작사업비에서 빠져나갔다고 설명했다.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 국정감사에서 서훈 원장(오른쪽) 등 참석자들이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검찰은 이 전 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이 국정원 자금을 매월 1000만원 넘게 받아 챙긴 사실도 적발했다. 공교롭게도 이 전 비서관과 안봉근 전 비서관은 국정원에서 정기 상납을 받던 2015년 각각 서울 강남에 아파트를 매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뭔가 켕기는 구석이 있었는지 이들은 지난해 7월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관련 의혹 등이 불거지자 국정원에 상납을 중단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국정원 돈은 조윤선 전 정무수석, 현기환 전 수석,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 등에게도 매월 수백만원씩 현금으로 전달됐다. 청와대는 비공식 여론조사 등에도 국정원 돈을 끌어다 썼다. 지난해 4·13총선을 앞두고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 경선 결과를 예측하기 위해 여론조사를 한 뒤 국정원에 비용 5억원을 지불하게 했다. 당시 정무수석은 한국당 김재원 의원이다.

국정원이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현금지급기 역할을 한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한국당은 정치 보복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국정원 예산의 청와대 상납은 일종의 관행이라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있었던 일이므로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역대 정부 관계자들도 모두 조사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전형적인 물귀신 작전이다. 관행이라면 왜 ‘007작전’을 펴듯 5만원짜리 현금으로 비밀리에 전달했을까. 왜 총액으로 한번에 주지 않고 매월 1억원씩 금액을 쪼개 지급했을까. 대통령 외에 일부 실세들에게 따로 준 것도 수상하다. 당시 문고리 3인방과 조 전 정무수석 등이 국정원 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국정원 수뇌부밖에 없었다고 한다. 국정원 자금의 청와대 전달이 관행이라는 주장은 이런 점에서 근거가 약하다.

국가 안전 보장을 위해 사용돼야 할 국정원 자금이 만에 하나 대통령 옷값이나 실세들의 아파트 매입에 사용됐다면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검찰은 좌고우면할 것 없다. 국정원 자금의 청와대 상납 과정을 규명하고 용처를 밝혀 관련자를 엄벌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 예산 낭비를 막고, 청와대와 국정원을 바로 세워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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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 민간의 경영기법 등을 배울 목적으로 도입한 ‘민간근무 휴직제도’가 한계에 직면했다. 당초 공무원과 민간의 교류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겠다는 취지는 탈색되고 부작용만 부각되고 있다. 1일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정부부처 연도별 민간근무 휴직제 휴직자 신청·선발 현황’을 보면 이 제도를 통해 얻고자 했던 ‘정책의 현장 적합성과 공무원의 전문성 향상’에 의문이 간다.

최근 5년간 이 제도의 운영 현황을 보면 공무원들이 민간기업에 간 목적이 무엇인지 의심이 들 정도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선발인원은 5~7명 수준이었으나 2015년에는 57명으로 급증했는데, 그 이유가 놀랍다. 인사혁신처가 공무원법을 고쳐 대상을 대기업으로 확대하자 지원자가 몰린 것이다. 중소·중견기업으로 묶었을 때는 회피하다 대기업으로 늘리자 너도나도 나선 것이다. 그 목적은 금전적인 이익이라는데 이의를 달기 힘들다. 이들은 삼성·SK 등 굴지의 대기업과 교보생명 등 금융기관에서 일하면서 많게는 1억원이 넘는 보수를 받았다. 민간과의 교류가 돈벌이 기회로 전락한 것이다.

게다가 민간에서 근무했던 경력을 디딤돌로 이른바 ‘힘쓰는 자리’로 영전되는 특권을 누리기도 했다. 공정위의 한 간부는 민간경제연구소에 갔다가, 기획재정부 간부는 보험사에서 일한 뒤 이를 배경으로 청와대로 자리를 옮겼다. 더 큰 문제는 이들 민간기업에서 일했던 공무원들이 복귀한 뒤 해당 기업과 유착관계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원칙적으로 ‘업무연관성이 있는 기업’에는 가지 못하고, 복귀 후 ‘해당 민간기업과 관련된 부서 배치가 금지’돼 있으나 실효성이 떨어진다. 실제로 공정위와 금융위 간부가 이전에 일했던 민간기업과 연관된 업무를 맡고 있다. 대형 로펌인 김앤장에서 근무했던 공정위 간부가 김앤장 사건을 맡는 것과 유사한 일이 상시화할 수 있는 것이다.

민간근무 휴직제도는 2002년 시행되다 고액연봉·민간과의 유착 논란이 빚어지면서 폐지된 뒤 2012년 다시 도입됐다. 정부와 민간의 교류를 통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결과를 보면 실망이 앞선다. 공무원의 돈벌이 수단이자 부적절한 인맥 쌓기용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차제에 민간근무 휴직제도의 존폐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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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적인 학습, 토론, 그리고 숙의를 통해 470여명의 시민참여단은 신고리 5·6호기 건설재개와 원전 축소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원탁시민주권의 탄생’이라는 찬사도 있지만, 정부가 결정해야 할 사안에 대해 일반시민들에게 떠넘긴 책임 회피라면서 ‘한바탕 소동’이라고 하는 혹평 역시 존재한다.

분명한 것은 합의회의, 시민배심, 공론조사와 같은 숙의민주주의 모델이 서구사회뿐만 아니라 중국, 몽골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선거제도개혁이나 헌법 조항 개정과 같은 중대한 정치 사안에 대해서도 자문 수준을 넘어서는 실질적 권한을 부여받은 시민의회 방식의 숙의민주주의 모델이 운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흐름들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좀 더 정치와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우리 사회에서도 촛불혁명을 통해 시민의 직접참여에 대한 욕구가 어느 때보다 팽배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을 계기로 숙의민주주의가 확산될 것으로 기대된다. 

숙의민주주의는 ‘평등한 참여’와 ‘충분한 숙의’를 보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모든 국민이, 최대한 많은 국민이 참여해 결정에 이르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최소한 전체 국민의 모습을 간직한 축소판으로서 성, 연령, 지역 등을 고려한 ‘작은 공중’을 선정한다면 특정 계층이 아닌 보다 ‘평등한 참여’가 가능할 뿐 아니라 학습, 토론, 심의를 통한 정보 제공과 함께 시간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충분한 숙의’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러한 숙의민주주의를 통한 공론화가 절실한 사안이 무엇이 있을까? 바로 선거제도개혁이다. 이해충돌이나 기득권 챙기기 때문에 정치권 차원에서 제대로 논의되기 어려운 선거제도개혁을 위한 공론화 과정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2004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는 선거제도를 바꾸기 위한 시민총회가 1년 가까이 성공적으로 운용된 바 있다. 시민총회의 구성은 추첨을 통해 선거구별 남녀 한 명씩 158명에 원주민 공동체로부터 2명을 추가하여 모두 160명, 임명된 의장까지 총 161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선거제도 학습, 공청회를 통한 의견수렴, 숙의를 통한 선거제도 권고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작년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구 획정조차 여야의 밥그릇 싸움으로 기한을 지키지 못할 정도였는데, 정치판을 뒤흔들 수 있는 선거제도개혁이 과연 다음 국회의원 선거 전까지 가능할까 하는 점에서 회의적이다. 국회 차원에서 추첨을 통해 인구 통계적 대표성을 갖춘 일정 규모의 시민들로 선거제도개혁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학습, 전문가들과의 찬반 토론, 정당 입장 및 시민사회 제안 역시 검토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부여하고 홈페이지를 통해 국민들의 의견수렴 역시 충분히 될 수 있도록 한 후 시민대표 간의 숙의를 통해 권고한 내용을 본회의에 부의한다면 국회의 입법권 역시 침해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선거제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확산될 수 있을 것이며 선거제도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높아짐으로써 투표 참여에도 보다 적극적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정치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함으로써 대의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이지문 연세대 SSK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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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면서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을 동시에 추진할 것을 촉구했다. 문 대통령이 지방분권·자치 강화라는 기본 방향까지 언급하며 정치권을 향해 개헌을 요구한 것은 대선 공약을 실천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본다. 그러나 현 정국을 고려하면 실현 가능성에 회의가 든다. 개헌안에 담아야 할 내용은 많은데 가장 민감한 정부 형태에 대한 의견조차 중구난방이기 때문이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지난 1월부터 개헌을 논의해왔지만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는 원칙에 겨우 공감했을 뿐이다. 대선이 끝나면서 개헌에 대한 관심도 떨어졌다. 현행 헌법으로도 무능하고 부패한 대통령을 탄핵하고 순조롭게 정권교체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 결과일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 때까지 7개월 남짓한 기간에 여야 간 개헌안 합의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개헌만큼, 아니 어쩌면 개헌보다 더 개혁 효과가 큰 선거제도개혁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바람직한 개편 방향에 대해서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정당의 득표수와 국회 의석수 간 비례성을 확보하자는 데 대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런 민의를 모아 독일과 유사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제안해놓고 있다. 이런 선거제도 개편은 개헌 여부와 상관없이 실행해야 한다. 개헌은 더 많은 시민의 참여와 관심을 필요로 하지만, 선거제개혁 요구는 이미 꼭짓점에 이르렀다.

정당 간 의견도 어느 때보다 잘 모아진 상태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나머지 여야 4당은 이미 시민단체까지 참여하는 ‘선거제도개혁을 위한 민정연대’를 꾸려 논의하고 있다. 어제는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가 “한국당의 정우택 원내대표도 선거제도 개편 논의에 적극 동참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선거제도를 고치는 것은 정당들이 고도로 협력해야 가능한 일이다. 선거제도 개편을 고리로 정당 간 협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갖게 한다.

개헌 논의는 시간을 갖고 계속하더라도 정치권은 우선 선거제도를 뜯어고치는 데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현명하다. 각당은 지금부터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당론을 모을 필요가 있다. 시민이 원하는 성숙하고 건강한 사회는 정치개혁을 요구하며 정치개혁의 요체는 선거제도개혁이다. 이것이 바로 정치권과 국회가 촛불시민들의 요구에 응답하는 길이다. 대표성, 비례성, 책임성에 기반을 두고 다양한 색깔을 가진 다당체제를 구축함으로써 다원적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과제를 더 미루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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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tbl_start_1--><table border=0 cellspacing=2 cellpadding=2 align=RIGHT width=200><tr><td><!--imgsrc_start_1--><img src=http://img.khan.co.kr/news/2017/11/01/l_2017110201000116600012381.jpg width=200 hspace=1 vspace=1><!--imgsrc_end_1--></td></tr><tr><td><font style=font-size:9pt;line-height:130% color=616588><!--cap_start_1--><!--cap_end_1--></font></td></tr></table><!--imgtbl_end_1-->저기 가는 저 각시 본 듯도 한뎌이고

천상의 백옥경을 어찌하여 이별하고

해가 다 저문 날 누굴 보러 가시난고

 

어와 네여이고 내 얘기 들어보오

구중궁궐 호의호식 엊그제 일 같은데

세월이 빠르구나 촛불의 난 벌써 일년

재벌 등쳐 뇌물 받고 일곱 시간 들통나서

헌재에 파면되고 검찰에 구속되니

감옥 생활 불편하다 옥중 인권 주장해도

들어주는 사람 없고 비웃음만 살 뿐이라

내시기춘(淇春) 집사종범(鍾範) 모두 수감되고

법비병우(柄宇) 블랙윤선(允旋) 각자 도생이라

어버이들 태극기가 유일한 희망인데

해는 점점 짧아지고 풍우까지 몰아치니

고립무원 사고무친 내 한 몸 뉠 곳 없네

이제라도 맘 돌리고 국선 변호 받을 건가

쪽팔리고 존심 상해 그렇게는 못하겠네

 

촛불이 없었다면 지금은 한창 대선

공안교안(敎安) 밀까 백신철수(哲秀) 영입할까

계산기 두드리며 노후 생활 꿈꿀 텐데

광장의 촛불들로 민심이 이반되니

여의도가 흔들리고 자객들이 출몰했네

청와대 압수수색 특검영수(英洙) 피했지만

그동안 가만있던 주구수남(秀南) 표변했네

믿었던 도끼날에 발등을 찍게 되니

염부한기 무섭구나 노통 심정 알 것 같네

 

순실이 딸 정유라가 이대생이 됐다길래

공부하고 말 잘 타서 합격한 줄 알았더니

입시요강 조작하고 면접관을 매수했네

그러고도 제 잘났다 페북에 적반하장

돈도 빽도 실력이다 너네 부모 원망해라

이런 애를 거두려고 재벌재용(在鎔) 들볶다니

미르재단 케이재단 수천억 쌈짓돈을

한 푼도 못 건지고 공중에 날리다니

몸종 같은 순실이에 어찌 내가 속단말가

부끄럽고 한심하다 누구를 탓할쏘냐

 

세월호 사건 당일 나는 정말 억울하네

대통령도 노동자니 재택근무 가능하고

모친 본뜬 올림머리 국민과의 약속인데

해양경찰 잘못한 걸 내가 왜 책임지나

다만 나는 궁금해서 구명조끼 말했을 뿐

팽목항도 찾아갔고 눈물도 흘렸는데

보고시간 사후 조작 뭐가 그리 대수인가

파란집서 늘상 하는 페이퍼 작업인걸

광주살인 비적두환(斗煥) 지금도 모르쇤데

어찌하여 사람들은 나만 갖고 뭐라 하나

 

이 몸이 영어되니 서생명박(明博) 순망치한

대선댓글 정치공작 사면초가 몰렸구려

혼외아들 약점 잡아 무사동욱(東旭) 쫓아내고

검객석열(錫悅) 귀양보내 안심하고 있었더니

정권교체 일진광풍 속수무책 신세로다

첩자세훈(世勳) 고생 덕에 대선에선 이겼지만

뒷단속 실패하여 피박까지 쓰게 됐소

그나저나 알고 싶소 다스는 누구 거요

옆방이 비었으니 수하들과 어서 오오

 

내 덕에 인생역전 한두명이 아닐진대

보은은 고사하고 헐뜯기만 하려 하니

배신에 치떨려서 자다가도 벌떡 깨네

발정준표(準杓) 고마하소 그렇다고 달라지나

청원(淸源)경환(炅煥) 제명한들 누워 침뱉기고

호박에 줄 그어도 수박은 아니 될세

저승완종(完鍾) 불러내어 좋을 것이 무엇 있나

녹음파일 공개되면 은팔찌는 시간문제

 

부모님이 고생하여 이내 몸 길러낼 제

공후배필 못 바라도 군자호구 원했건만

전생의 원업으로 감방에서 홀로 늙고

근령(槿令)지만(志晩) 혈육과 인연도 끊고 사니

기구하다 이내 팔자 언제부터 꼬였을까

 

효도는 모름지기 인륜의 기본이라

아버지 이름 석자 자손만대 전파하고

유신비판 교과서로 비정상된 백성들에

우주 기운 넣어주려 국정 역사 펼쳤는데

공짜로도 안 보겠다 돈 줘도 필요없다

학생들이 어리석나 전교조가 부추겼나

여보게들 기억하소 친일파가 건국 공신

사람들아 잊지마오 창조경제 통일대박

 

<b>민</b>주주의 무섭지만 내 어찌 굴복하랴

<b>주</b>권자 시민 앞에 석고대죄 어림없다

<b>주</b>야장천 생각해도 정치보복 분명하니

<b>의</b>미 없는 재판에는 보이콧이 최고 전략

<b>만</b>명은 믿어주리 나의 결백 나의 무죄

<b>세</b>상 구름 한데 모아 달빛을 가리고저

 

각시님 달은커녕 궂은비나 되소서

 

※두 여인의 대화 형식인 송강 정철의 ‘속미인곡(續美人曲)’을 패러디했습니다.

<오창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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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중국은 지금 페이스북, 구글 같은 기업과 경쟁하는 기업을 키우려 노력하고 있어요. 인터넷은 국내가 아닌 전체 시장을 봐야 합니다.”

네이버 ‘총수’ 이해진 전 이사회 의장은 지난달 31일 이틀간의 국회 국정감사를 마친 뒤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회사와 내가 부족했다’는 전제를 달고 한 말이었지만, 짧은 말에는 안팎의 지적을 대하는 이 전 의장의 본심이 녹아 있는 듯했다. “지금은 해외 기업과 대결해야 하니 지적보다 힘을 실어줄 때”란 것이다. 하루 종일 네이버 검색광고 폭리부터 자사 결제서비스에 대한 특혜, 웹 생태계 파괴 문제 등을 지적한 의원들은 맥이 빠지는 상황이 됐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겸 글로벌 투자책임자가 31일 오후 국회 정무위원회 종합 감사에서 증언대에 서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전 의장의 발언은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해외를 상대로 맞설 힘을 달라’고 했던 기존 재벌의 구태의연한 논리와 닮았다. 삼성 역시 박근혜 정부 시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익을 지키는 것”이라며 애국심 마케팅을 벌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최순실 게이트와 연결돼 있어 시민의 공분을 불렀다.

재벌의 애국심 마케팅은 구시대의 유물이 돼 가고 있는데, 기존 재벌과 다르다던 네이버는 구시대의 핑계를 또다시 들고나온 것이다.

네이버가 해외 경쟁력을 확보함으로써 애국을 할 수 있는지도 미지수다. 네이버의 해외 진출 성공작이기도 한 계열사 라인의 자산총계는 2조6000억원대인데 일본 현지법인이다. 라인은 국내 법인으로 잡히지 않아 네이버가 대기업집단에서 제외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위기 때마다 한국 기업임을 홍보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지법인 형태로 자산을 해외에 쌓으며 국내 기여를 늘리지 않는 기존 재벌의 행태가 연상된다.

무엇보다 국내에서의 불공정 문제 해소를 해외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와 양립하기 힘든 것인 양 생각하는 틀이 문제다. 국내에서 자사의 행태로 피해를 받는 다른 경제주체를 살피는 것도 중요한 애국이고, 성장 못지않은 기업의 중요한 가치다. 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회사를 키우는 게 먼저이고, 국민 경제에 기여하겠다고 주장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이 전 의장은 국감에서 ‘엔지니어이기에 사회적 문제는 잘 알지 못한다’고 해명했고, 공정거래위원회 측은 ‘네이버가 미래의 산업이라 장기적으로 신중히 봐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총수가 엔지니어라고 해서 사회적 책임을 회피할 수 없으며, 미래 산업이라고 대중에게 당장의 피해를 감내하라고 할 수는 없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말한 대로 기술의 존재 이유는 ‘인간’에 있다. 해외 진출 등 허울 좋은 핑계를 대기 전에 이웃에게 피해를 주면 그것부터 살펴보는 것이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기본적 도리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네이버는 ‘미래의 흉기’ ‘외세보다 무서운 애국자’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박용하 |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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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7일부터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국빈 방문한다. 미국 대통령의 방한이 중요하지 않았던 적은 없지만 이번 방한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에 이루어진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은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미국과 북한은 전쟁 직전과 같은 험악한 말폭탄을 주고받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일본, 한국, 중국을 차례로 방문하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기업인들과 만나 트럼프 정부가 추진 중인 감세 등 세제 개혁안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 _ EPA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에서 우려되는 부분은 위기국면에서 불에 기름을 부을 수도 있는 그의 돌발적인 스타일이다. 그는 국내외 현안을 구분하지 않고, 참모진과 조율되지 않은 메시지를 던져왔다. 북한 문제도 예외가 아니다. 유엔 총회 연설에서 김정은이 자살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자들을 상대로 북한은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트위터를 통해 북한과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틸러슨 국무장관에게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무안을 주었다. 통상적인 정상외교는 사전에 실무진에 의해 철저하게 조율된다. 회담 의제는 물론 발언 수위, 합의사항과 공동기자회견 내용이 조율된 후에 정상회담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과는 이런 조율이 쉽지 않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언제, 어디서나 불쑥불쑥 내던진다. 지난 6월 말,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공동성명에 없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를 들고나왔다. 철저하게 미국 내 지지세력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이번 방한과정에서 그의 태도를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그가 그동안 보여주었던 스타일을 고려하면 크게 변할 것 같지는 않다. 매우 우려되는 부분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전에 회담을 잘 준비해야 할 것이다. 문 대통령도 사업가적 협상에 능숙한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양국의 국익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만큼 모든 것이 좋을 수는 없다. 핵심적인 내용에서 합의를 이끌되 약간의 이견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 친구 사이도 일방적인 추종만 존재한다면 진정한 우정을 기대할 수 없다. 국가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 언론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돌출발언이나, 한·미 간의 작은 이견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의 발언 스타일은 미국 주류사회에서도 큰 비난을 받고 있다. 우리만 그의 발언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국익과 자존은 대통령만 지키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국민 모두 의연하게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편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에 대한 기대도 크다. 필자는 2000년 6월, 제1차 남북정상회담 계기에 북한을 처음 방문하였고, 2개월 후 제2차 남북장관급회담 시에 다시 북한을 방문하였다. 당시 필자는 북한을 나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북한을 직접 방문했을 때 북한의 상황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차량을 볼 수 없는 평양의 도로, 수시로 정전이 되는 호텔, 도로를 오가는 초라한 행인들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과연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방한에서 서울이 북한과 얼마나 가까운지 알게 될 것이다. 서울에 트럼프타워가 있는 뉴욕 맨해튼만큼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아마도 문 대통령이 왜 그렇게 평화를 강조했는지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지난달 28일, 북한은 흥진호를 나포했다가 6일 만에 되돌려 보냈다. 북한은 조선중앙통신 방송을 통해 흥진호를 돌려보낸다고 알려왔다. 남북 간 아무런 소통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남북 간 최소한의 연락채널이 필요하다는 점도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를 방문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캠프 험프리스는 여의도 면적의 5.5배 크기이다. 107억달러의 공사비가 투입되었다. 미국의 해외 주둔기지 중 최대·최고 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한국이 이 비용의 94%를 부담했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이 방위비 분담에 결코 인색하지 않다는 점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번 방한이 ‘백문불여일견’의 경험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일부 시민단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일 예정이라고 한다. 호불호를 떠나 우리를 찾아온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입장을 바꾸어서 우리 대통령이 외국을 방문할 때, 외국인들이 반대시위를 한다면 유쾌할 국민이 누가 있겠는가? 다만 소규모 시위가 있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의 넓은 이해를 바란다. 이 같은 시위가 가능한 것은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미국의 가장 큰 선물이 아니었던가?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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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과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이 국가정보원 자금을 정기적으로 상납받은 혐의로 검찰에 체포됐다. 매년 10억원씩 총 40억여원이나 된다고 한다. 세금으로 조성된 국정원 예산이 정권 실세들에게 뇌물로 바쳐진 것이다. 안 전 비서관과 이 전 비서관은 구속 기소된 정호성 전 제1부속비서관과 함께 ‘문고리 3인방’으로 불렸지만 그동안 제대로 수사를 받지 않았다. 국정농단의 공범이나 다름없는데도 국회 국정조사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증인 출석을 회피하며 법을 우롱했다. 검찰은 철저한 수사로 이들의 비위를 밝혀 엄벌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참모들이 국정원에서 특수활동비 명목으로 뇌물을 받은 혐의를 검찰이 포착했다. 31일 핵심 피의자인 조윤선 전 정무수석(오른쪽 사진)이 블랙리스트 사건 항소심 재판을 받기 위해 서울고법에 출석하고 있으며,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왼쪽)과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이 체포돼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김기남 기자·연합뉴스

이들에게 건네진 자금은 국정원 특수활동비다. 국정원 수뇌부의 지시와 허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검찰이 남재준·이병기·이병호씨 등 박근혜 정부 국정원장의 출국을 금지하고 자택 압수수색 등을 벌인 것은 당연하다.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썼는지 용처도 의문이다. 개인적으로 유용하기도 했겠지만 박 전 대통령의 ‘통치 자금’으로 활용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은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정무수석 시절 국정원 돈을 주기적으로 받은 정황도 포착했다. 조 전 장관이 당시 청와대와 정치권을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정원 자금이 당시 여당 의원들에게 전달됐을 수도 있다. 국정원 특수활동비 규모는 연 4800억원에 이른다.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수집이나 사건 수사에 사용된다는 이유로 지금도 기획재정부 예산 심사와 감사원 감사를 받지 않고 있다. 이번 기회에 국정원 특수활동비 제도도 뜯어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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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이 일어난 지 1년이 됐다. 현재의 시점에서 이 혁명을 어떻게 볼 수 있는지를 시민사회와 민주주의를 공부하는 사회학 연구자의 시각에서 살펴보고 싶다.

촛불혁명에 대한 가장 온당한 평가로 나는 독일 에베르트재단이 촛불혁명에 참여한 우리나라 국민을 올해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들고 싶다. 에베르트재단은 “민주적 참여권의 평화적 행사와 평화적 집회의 자유는 생동하는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구성요소다. 대한민국 국민의 촛불집회가 이 중요한 사실을 전 세계 시민들에게 각인시켜 줬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며 지난해 10월29일부터 시작된 촛불집회 1주년을 맞아 지난 28일 서울 광화문광장 등 전국에서 이를 기념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시민들이 광화문광장에 나란히 놓아둔 종이컵들에서 촛불이 타오르는 가운데 한 시민이 ‘촛불은 계속된다’고 적힌 종이컵을 놓고 있다. 이준헌 기자

에베르트재단이 적절히 지적했듯, 촛불을 관통하는 정신은 민주적 참여권과 생동하는 민주주의다. 지난해 수많은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인 것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정신을 파괴한 국정농단 세력을 심판하려는 적극적 참여와 정당한 저항의 권리 표출이었다. 이 당연한 권리의 행사는 ‘인민(demos)의 지배(kratia)’라는 민주주의(democracy) 본래의 이상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려는 시도였다.

민주주의의 요소로 ‘마음의 습관’을 주목한 이는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다. 박근혜 정부 아래서 적지 않은 국민들은 마음이 찢겨지고 상처받았다. 공동체의 규범과 질서를 제공해야 할 정부와 정치가 더 이상 희망을 안겨주지 못할 때 마음은 고통을 느끼게 된다.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적 기초마저도 부정한 박근혜 정부에 대해 국민들은 촛불이라는 ‘마음의 저항’의 빛을 환히 밝힐 수밖에 없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중요한 까닭은 ‘마음의 정치’에 있다. 이기주의와 냉소주의를 극복하고 참여와 연대의 경험을 통해 깨어 있는 시민으로 거듭나는 것이 오늘날 민주주의에 요구되는 마음의 정치라고 주장한 이는 파커 파머다. 마음이 변화해야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고, 행동으로 나타나야 정치를 바꿀 수 있다. 광장에 나와 촛불을 든 시민들은 두 가지 점을 자연스럽게 깨달았던 것으로 보인다. 참여 없이 민주주의 없다는 게 하나라면, 나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였다는 게 다른 하나다. 참여와 연대의 자각 및 실천은 다시 한번 강조하면 민주적 참여권과 생동하는 민주주의의 중핵을 이룬다.

1년 전, 촛불시민들의 요구는 크게 세 가지였다. 불평등을 해소하는 ‘경제민주화’, 낡은 질서를 거부하고 해체하는 ‘적폐청산’, 민주주의의 성숙을 추구하는 ‘정치개혁’이 그것이었다. 촛불혁명의 결과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요구들을 국가비전과 국정과제에 담았다. 첫 번째 국정목표는 ‘국민이 주인인 정부’이고, 첫 번째 국정전략은 ‘국민주권의 촛불민주주의 실현’이다. 그리고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첫 번째는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이다. 더하여, 대통령 어젠다라 할 수 있는 4대 복합·혁신과제의 첫 번째는 ‘불평등 완화와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일자리경제’이며, ‘국민주권적 개헌 및 국민 참여 정치개혁’은 일곱 번째 국정과제다.

이러한 국정목표와 전략과 과제의 선정이 물론 정부의 성공을 절로 담보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국정 운영의 결과다. 정부든 국회든 정치는 기본적으로 정책의 결과로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할 ‘책임윤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5월10일 출범 이후 6개월에 가까운 지난 시간을 돌아볼 때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 불평등 완화, 참여의 제도화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 왔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 최저임금 상승, 공론화위원회를 통한 갈등 해소 등은 구체적인 사례들이다.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한 비판이 없지 않다. 국회를 우회하려는 직접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앞서 말한 ‘생동감 있는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볼 때 대의민주주의를 과도하게 중시하는 일면적인 시각이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생명력은 참여와 연대의 실현, 다시 말해 대의민주주의의 대표성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국민 정책제안의 제도화, 다양한 거버넌스의 활성화, 숙의민주주의와 민주시민교육의 정착 등에 달려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촛불혁명 1년을 돌아볼 때 분명한 사실은 지난 1년간 결코 적지 않은 국민들의 마음이 변화해 왔다는 점이다. 그 마음의 한가운데 놓인 것은 내가 ‘나라의 주인’이라는 국민주권의 자각이었다. 촛불혁명으로 등장했더라도 문재인 정부 역시 주인이 아니라 대리인일 따름이다. 집권을 마무리할 때까지 정부는 이 점을 부디 잊지 말아야 한다. ‘국민이 주인인 정부’, 그것이 바로 촛불혁명의 정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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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사면발니에 걸렸어요. 도와주세요.”

포털 사이트에 가보면 이런 식의 질문이 이따금씩 올라온다. 사면발니는 음모에 기생하는 ‘이’의 일종인데, 사는 곳의 특성상 성적 접촉으로 전파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사면발니에 감염된 남편들은 펄쩍 뛴다. 자신은 외부인과 성적 접촉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대신 그들은 ‘찜질방에서 걸렸다’거나 모텔, 사우나 탈의실 등에서 옮았다고 말한다. 물론 수건이나 팬티 등을 공유함으로써 사면발니에 감염되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런 일은 ‘지극히 드물다’고 문헌에 나와 있다. 게다가 찜질방에서는 새로 소독한 수건을 쓰지, 남이 음모를 닦던 수건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사면발니 환자들의 거의 전부가 찜질방을 통해 전파된다는 건 의학적으로 말이 안되는 얘기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처럼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는 방법 중 가장 흔히 쓰이는 게 바로 거짓말이다. 사면발니에 걸리는 게 검찰이 관여할 일은 아니지만, 만일 검찰이 불러서 추궁한다면 끝까지 버틸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거짓말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고, 어느 정도의 내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016년 말을 뜨겁게 달궜던 국정농단 청문회의 최고 스타는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이었다. 그는 시종일관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부인해 질문하는 이를 미치게 했는데,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은 그로부터 블랙리스트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실토받기 위해 같은 질문을 18번이나 던져야 했다. 결국 조윤선은 “그런 명단은 있었던 것으로 판단이 되고 있습니다”라고 답변함으로써 이용주 의원이 쓰러지는 사태를 막았다. 문체부 서기관에 따르면 작년 9월과 10월,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조윤선에게 보고했다는데, 논리와 집요함을 모두 갖춘 국회의원들 앞에서도 꿋꿋이 거짓말하는 그를 보면서 감동한 이는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위증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받고 만다. 사람들은 조윤선이 구속을 피했다고 아쉬워했지만, 그는 한술 더 떠서 항소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항소심에서 조윤선 측이 내세운 논리가 절묘하다. “9473명에 대한 리스트를 부인한 것이지 블랙리스트의 존재 자체를 부인한 허위증언은 아니다”라는 것도 그렇지만, “해당 증언을 할 당시 선서하지 않았으니 법리적으로 무죄”라는 주장은 국회 출석을 앞둔 이들이라면 외워둘 가치가 충분하다. 물론 조윤선에게도 약점은 있다.

무조건 부인하는 그 뚝심은 대단하지만, 거짓말은 뚝심만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상대가 결정적인 증거를 들이밀었을 때 의외로 쉽게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단한 점은 여기에 있다. 국정농단을 수습하기 위해 마련한 대국민담화에서 세 번 모두 거짓말을 한 것도 놀라 자빠질 일이지만, 자신을 위해 일하던 변호인을 모두 자르면서 발표한 ‘자신의 입장’은 그의 거짓말 내공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이해를 돕기 위해 그의 말과 실제 하려던 말을 적어본다.

“무엇보다 저를 믿고 국가를 위해 헌신하시던 공직자들이 피고인으로 전락해 재판받는 걸 지켜보는 것은 참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제 보복이 두려워 제게 헌신하시던 공직자들이 재판받을 때 모든 책임을 제게 떠넘기는 걸 지켜보는 건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사사로운 인연을 위해서 대통령 권한을 남용한 사실이 없다는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믿음”(“대통령 권한을 오직 사사로운 인연에만 사용했다는 진실은 절대로 밝혀져서는 안 된다는 믿음”)

“저는 롯데나 SK뿐 아니라 재임 기간 그 누구로부터도 부정한 청탁을 받거나 들어준 사실이 없습니다”(“재임 기간 중 부정한 청탁을 받거나 들어준 곳이 롯데나 SK뿐이겠습니까? 왜 얘네들만 가지고 그러는지?”)

“재판 과정에서도 해당 의혹은 사실이 아님이 충분히 밝혀졌다고 생각합니다”(“저와 변호인의 노력으로 인해 해당 의혹들이 제대로 밝혀지지 못했습니다”)

“법원이 6개월 동안 재판을 했는데 다시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는 결정을 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6개월이 아니라 6년을 해도 저는 재판을 훼방 놓겠습니다”)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합니다”(“정치보복은 제 특기였는데, 그걸 제가 당하니 기분이 참 더럽습니다”)

“이 사건의 역사적 멍에와 책임은 제가 지고 가겠습니다”(“다 제가 저지른 사건이지만, 책임은 티끌만큼도 질 수 없습니다”)

이런 명문이 왜 화제가 되지 않았는지 의아할 정도다. 박근혜의 뛰어난 점은 거짓말이 일상이 된 탓에 스스로를 속이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런 분한테는 거짓말탐지기도 무용지물이고, 아무리 증거를 들이밀어도 별 소용이 없다. 그에게 있어서 불리한 증거는 다 조작이고, 사실을 털어놓는 증인은 정부가 회유한 이에 불과하니까. 희대의 거짓말쟁이가 청와대에 있어서 모든 비극이 초래됐다면, 지금 그가 있는 구치소는 자신에게 딱 맞는 자리일 터다. 그가 오래도록 그 자리에 머물기를 빈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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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양국 국방부가 지난 주말 서울에서 안보협의회(SCM)를 열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논의한 끝에 한미연합사령부를 대체할 ‘미래연합군사령부’ 창설안 승인을 유보했다. 국방부가 최근 국정감사에서 양국군이 미래사 창설안 승인을 장담한 것과 다른 결과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미 당국자의 말을 빌려 “미국이 전작권을 포기할 뜻이 없다”며 전작권 환수 문제가 양국 간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보도했다. 양측이 공식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전작권 환수가 또다시 늦춰질 가능성이 커졌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부 장관이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제49차 한미 연례 안보협의회(SCM) 공식 기자회견에서 악수한 뒤 각자 자리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한반도 상황은 전작권을 보유하지 못한 한국 정부의 처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반도 긴장의 출발점이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인 것이 사실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트럼프가 ‘북한 파괴’를 공언하며 “전쟁이 일어나도 미국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일어난다”고 남 말 하듯 해도 한국 정부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보다 못해 미 상·하원 의원 60여명이 트럼프의 대북 선제공격을 봉쇄하는 법안을 제출하고, 한 시민단체는 대통령의 전쟁을 막는 소송을 제기했다. 한반도 평화를 주도하려면 전작권을 조기 환수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한국인의 운명을 남의 정부에 맡기는 것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동북아 군비경쟁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전작권 환수는 서둘러야 한다. 최근 중국과 일본의 군사력 강화는 종전의 안보 위협 수준을 넘어섰다. 자주국방은 단순히 명분이 아니라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된 것이다.

문민정부 이후 역대 모든 대통령이 후보 때 전작권 환수를 공약하고도 집권하면 환수를 미뤘다. 한반도 위기 상황에서 전작권 전환은 시기상조라는 이유 때문이다. 특히 보수세력은 전작권 환수 추진을 미국과 갈등하는 의제로 몰아가며 제동을 걸었다. 자주적 안보역량을 갖춘 후 전작권을 되가져오자는 말이 일견 현실적인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현실론이 의지 부족을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된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을 자부하면서 유독 전작권 환수에서만 소극적인 것은 비정상이다. 전작권 환수에는 능력과 함께 의지도 중요하다. 조기 환수를 당면 목표로 정하면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주한미군 철수론이 나올 때마다 전전긍긍해야 하는 상황을 한국민들의 자존심이 더 이상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을 미국도 알아야 한다. 정부와 군은 적극적인 자세와 효율적인 준비로 전작권 환수 시기를 최대한 당겨야 한다. 북한 핵 문제가 초래하는 평화의 위기는 전작권 환수를 늦출 이유가 아니라 하루빨리 앞당겨야 할 이유를 웅변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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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 1주년을 맞은 요즈음 민주주의 논쟁이 한창이다. 그 혁명에 참여해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외쳤던 시민들의 열망을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처럼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로 이해하는 것이 옳은지가 쟁점이다. 최장집 교수와 박상훈 박사의 비판은 아주 신랄하다. 그런 식의 이해는 대의제를 본성으로 하는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오해에서 비롯되었단다. 심지어 의회를 우회하려는 문 대통령 식의 정치는 군주정의 행태일 뿐이라고 극언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런 비판이야말로 오히려 촛불혁명이 열어 놓은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지평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 한다.

임채원 교수가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촛불혁명은 전형적인 ‘마키아벨리언 모멘트’에서 일어났다. 이것은 포칵의 개념으로, 시민들이 위기 상황에서 자신들이 속한 공화국의 불안정성을 확인하고 충만한 시민의식을 갖고 해법을 찾아 나서는 계기를 가리킨다. 우리 시민들이 딱 그랬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며 지난해 10월29일부터 시작된 촛불집회 1주년을 맞아 지난 28일 서울 광화문광장 등 전국에서 이를 기념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시민들이 광화문광장에 나란히 놓아둔 종이컵들에서 촛불이 타오르는 가운데 한 시민이 ‘촛불은 계속된다’고 적힌 종이컵을 놓고 있다. 이준헌 기자

우리나라가 민주공화국이라고는 하지만 주권자 시민들이 언제나 이 나라의 일을 자신의 일로 여기며 살아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시민들은 국정농단 사태에 직면해서 우리의 민주공화국이 심각하게 고장 나 있음을 깨닫고 “이게 나라냐?”고 물으며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놀라운 시민적 덕성을 발휘하면서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외쳤다.

우리 시민들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민주공화국이 일부 특권 세력의 사익 추구를 위한 도구로 전락한 데 대해 분노했다. 그리고 그 세력의 충실한 하인들이었던 일부 ‘정치계급’에 대해서도 깊은 실망을 드러냈다. 본디 민주공화국은 ‘데모스’, 곧 인민들이 전적으로 지배를 행사하는 좁은 의미의 민주정의 요소와 함께 엘리트들의 일정한 지위와 역할을 인정하는 귀족정의 계기도 가진 ‘혼합정체’이기는 하다. 실제로 대의민주주의는 그런 엘리트들의 정당한 통치를 보장하는 기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허울뿐인 민주공화국에서는 지금까지 과두 특권 세력과 그 세력을 대변하는 정치계급이 전체 정치를 자신들의 부패를 은폐하고 사익을 추구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해 왔다.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현행 선거제도를 악용하고 공론장의 민주적 정당화 과정을 악랄하게 왜곡한 덕분이다. 지난 촛불혁명에서 시민들은 그 불편한 진실을 깨닫고 스스로가 나서 그런 상황을 바로잡고자 했던 것이다. 시민들의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시민들이 새삼 주권자임을 확인하고 스스로 정치 과정의 중심에 서겠다는 선언을 했을 때, 그것은 대의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은 당연히 대의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시민들이 의회와 정당들을 불신하는 것은 그것들이 정작 가장 본질적인 책무, 곧 시민들을 대의하는 데서 근본적으로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는 국민들이 모든 사안을 직접 결정하는 무슨 ‘국민투표정치’ 같은 걸로 의회정치를 대체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 요구의 핵심은 정치가 시민들의 요구에 더 잘 반응하게끔 정치의 행태와 양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또 그렇게 하기 위해 시민들이 더 많이 참여하고 감시하며 견제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을 갖겠다는 것이다. 요점은 현재의 사실상의 과두정을 혁파하고 참된 ‘민주적’ 공화정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추구하는 과두 특권 세력의 ‘귀족정치’에 대한 거부와 경계를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나 정치혐오라 해서는 안된다.

정당정치가 제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요구도 그 자체로는 옳다. 그러나 그런 요구는 우리 정당정치가 왜 아직도 제대로 성숙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성찰과 함께할 때라야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직도 진행 중인 촛불혁명의 가장 중요한 성취 가운데 하나는 우리 정당들, 특히 민주당과 같은 개혁적 진보를 자임하는 정당의 발전 동력이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시켜준 것이다. 그것은 곧 민주당이 ‘힘 없는 사람들의 힘’, 곧 ‘시민적 권력’을 위한 정치적 기구로서 자기 정립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겨울 시민정치와 의회정치가 서로 호응했을 때 어떤 정치적 성취를 이루어낼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목격했다. 민주당은 바로 그 역사적 교훈을 그 정체성의 중핵에 새겨둘 수 있어야 한다.

이념과 핵심 가치는 물론이고, 조직 형태와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을 주권자 시민의 합리적 이해관계와 요구라는 기반 위에 세워야 한다. 지금 민주당이 이런 일을 아직 제대로 못하고 있어서 걱정이지 너무 많이 해서 문제는 아니다.

<장은주 | 와이즈유(영산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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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서청원 의원 간 이전투구가 점입가경이다. 5일간의 방미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홍 대표는 28일 “어떻게 그리 유치한 짓을 하는지 이런 사람과는 정치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녹취록이 있다면 공개해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서 의원은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로 “홍 대표가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이야기하고 있다. 곧 진실이 밝혀질 날이 올 것”이라고 전했다. 서 의원은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정치자금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던 홍준표 당시 경남지사가 자신에게 구명을 요청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홍 대표는 방미 중엔 서 의원에 대해 “깜냥도 안되면서 덤비고 있다. 정치를 더럽게 배워 수 낮은 협박이나 한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런 추태가 없다. 전·현직 당 대표가 금품비리 내막을 놓고 물고 뜯는 이런 진흙탕 싸움의 끝이 어디일지 알 수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7년10월30일 (출처: 경향신문DB)

한국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친박계 핵심인 서청원·최경환 의원의 출당을 놓고 극심한 내분을 겪고 있다. 박 전 대통령 출당을 위해선 최고위원회의 의결 절차가 필요하지만 찬반이 팽팽하다고 한다. 두 의원을 제명하려면 의원총회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지금으로선 어느 쪽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양측의 세 대결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애초 박 전 대통령 등의 출당 조치는 진정한 보수의 혁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바른정당 의원들과의 통합을 노린 정치적 술수에 의한 것이었다. 홍 대표는 어쩌면 이도저도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당내 분란만 격화될 수 있다.   

홍 대표는 취임 이후 내부 혁신과 인적청산을 다짐해왔다. 하지만 낡은 이념과 노선을 뛰어넘는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기는커녕 특유의 독설과 막말로 정치판을 시끄럽게만 할 뿐, 어떤 정치적 역량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는 미국에 가서는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했다가 미국의 조야(朝野) 인사들로부터 퇴짜를 맞고 돌아왔다. 주말에 열린 한·미 안보협의회에서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부 장관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마디로 국제적 망신을 당한 것이다. 제1야당인 한국당은 현재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선임을 이유로 국감을 보이콧하고 있다. 하지만 당 대표는 산적한 문제를 풀기는커녕 되레 국내외에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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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공석 중인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이진성 헌재 재판관을 지명했다. 청와대는 이 재판관이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등 국민 기본권을 보호하고 헌법을 수호하는 역할에 충실했다고 설명했다. 이 재판관은 탄핵심판 사건 선고 때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응이 불성실했다고 보충 의견을 내기도 했다. 양승태 전임 대법원장의 지명으로 재판관에 임명된 그는 온건 보수 성향으로 이변이 없는 한 국회 임명 동의 절차를 무난하게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써 박한철 전 소장 퇴임 이후 9개월 만에 헌재 수장 공석 사태가 해소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진성 신임 헌법재파소장 후보자가 27일 저녁 서울 헌법재판소를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지난 9월 김이수 소장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자 청와대는 헌재 소장 임기 문제와 관련해 국회에 입법 보완을 요구하며 후보자 지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김이수 재판관의 소장 대행 체제도 계속됐다. 그러자 야당이 헌재 국감을 거부하고, 헌재 재판관들도 소장과 재판관을 조속히 임명해 달라고 대통령에 집단적으로 요청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헌법에 헌재 재판관 임기는 6년으로 명시돼 있지만 소장 임기는 따로 정해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현직 재판관이 소장으로 임명되면 임기 논란이 불가피하다.

헌법 제111조 제4항은 “헌법재판소의 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112조 제1항은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임기는 6년으로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연임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엄격하게 해석하면 헌재 소장의 임기는 그 자격의 전제로 규정돼 있는 헌재재판관의 임기와 같다. 그러나 이 경우 대통령이 재임 동안 헌재 소장을 2번 이상 임명하는 일이 발생하고, 헌재 소장의 임기도 짧게는 1일부터 길게는 6년까지 제각각이 될 수 있다.

이 재판관이 소장으로 취임해도 임기는 내년 9월까지로 1년이 안된다. 내년 여름엔 신임 소장 지명 및 임기 문제가 또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다. 현재 국회에는 헌재 소장 임기 규정과 관련한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이 10여건 발의돼 있다. 여야가 당장 심의에 나서 이번에 헌재 소장 임기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 아울러 이 지명자 임명 동의 절차와 유남석 신임 재판관 지명자 인사 청문회도 조속히 진행해 헌재를 하루빨리 정상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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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은 남 앞에 서는 데 거리낌이 없는 사람들이다. ‘지역발전 적임자’ ‘나라를 구할 사람’ 등 크고 작은 선거 때 등장하는 구호에는 국민을 대표할 만한 사람이라는 자신감이 배어 있다. 물론 정치적 자산이 풍부한 사람이 진짜 국민을 위해 나선다면 두 손 들고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다르게 마련이다. 능력은 부족하고 자격은 없는데,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런 부류들은 정치적 자산이 보잘것없거나, 혹은 가졌던 것을 잃었음에도 자신의 곤궁한 처지를 모른다. 자신의 언행이 정치적 파장을 만들고, 여론을 움직인다고 착각한다.

[시사 2판4판]홍시를 기다리며 (출처:경향신문DB)

#안철수의 불평. 요즘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에게서 후자의 모습을 본다. 당초 안 대표는 정치판에 뛰어들면서 앞세웠던 ‘새 정치’라는 재산이 있었다. 한때 호응을 얻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새 정치는 그가 정치권에 머무는 시간과 비례해 소진됐고, 지난 대선 직후 제보조작 파동이 불거지면서 바닥을 드러냈다. 그런데도 그는 현실을 바라보지 않는다. 자신을 야권 대표주자로 여기고, ‘문재인 대 안철수’의 구도에만 올인한다.

이명박·박근혜 국정농단에 대한 그의 침묵은 무엇을 말하는가. 안 대표는 촛불집회 1년을 맞은 지난 28일 페이스북에서 “가장 먼저 탄핵을 당론으로 정하고 헌신했던 것이 국민의당”이라고 했다. 그가 촛불정신을 마음에 두고, 여전히 새 정치를 가치 있게 여긴다면 그는 나쁜 권력의 폐해가 드러난 국정농단에 대해 말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문 대통령 때리기에 모든 걸 걸었다. “국민은 실험대상이 아니다” “무능 파노라마” “트럼프 따라하기”.

야당 대표의 권력비판은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지만, 그의 언사는 감정이 앞서는 듯하다. 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보다 한국에 짧게 머문다며 ‘코리아패싱’을 주장하는 보수야당과 보수언론 발언을 답습해 “속이 상하고 나라 체면이 말이 아니다”라고 할 때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대안 세력임을 자처하는 야당 대표라면 “트럼프에게 ‘한반도에서 전쟁은 안된다’는 뜻을 분명히 전해야 한다”는 주문은 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자유한국당의 ‘아무말대잔치’에서나 들을 법한 발언들을 그는 쏟아내고 있다. 같은 당 이상돈 의원이 “문재인이 싫다. 그것밖에 없는 것 같다”고 했을 정도다.

#홍준표의 착각.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여전히 불법정치자금 1억원을 받았다는 ‘성완종 리스트’의 그림자를 떨쳐내지 못했다. 그간의 막말 퍼레이드, 대선 때 돼지발정제 논란까지…. 그는 대중에게 희화화된 보수꼴통 정치인으로 비칠 가능성이 높다. 홍 대표를 과거 강력한 야당 대표였던 이회창이나 박근혜의 반열로 보는 사람은 없다.

홍 대표의 통장은 텅 비었다. 그럼에도 그는 현실 바깥에서 머무는 듯하다. “연말쯤 자유한국당이 부활할 것” “내 개인기로 당을 살렸다”는 그의 장담은 같은 당에서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지지율 10% 문턱에서 헐떡거리는 야당 대표가 25명이나 되는 특보단을 거느린 까닭은 무엇인가. 국민들은 그에게서 ‘3류 코미디’를 보는데, 홍 대표는 제1야당 대표라며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있다.

그가 국회 국정감사 중 의원들까지 대동해 미국 방문을 강행했던 것도 북핵 문제 협의를 위해서라지만, 과시욕도 작용했을 것이다. 미국에서 가진 특파원 간담회에서 “(미국이 군사행동을 할 경우) 하루에 6만명의 인명 손상을 예상하고 있더라”고 발언을 한 것도, 미국 고위 인사들과 통한다는 영향력·정보력을 자랑하고 싶어서였을 터다. 하지만 방미 후 그에게 남은 것은 서청원 의원과의 진흙탕 싸움 와중에 던진 “깜냥도 안되면서 덤비고 있다” “정치를 더럽게 배워 수준 낮은 협박” 등 막말뿐이다. 본인은 억울할지 모르나, 여론은 홍 대표에게 딱 그 정도를 기대한다.

#정계개편의 망상. 이런 대표들이 주도하는 통합 논의의 앞날은 뻔하다. 강경보수로 스스로 입지를 좁히고 있는 한국당,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국민의당, ‘정치적 신용불량’ 정당들이 뭉쳐봐야 더 큰 불량정당이 될 뿐이다. 힘만 합치면 나아질 수 있다는 그들의 생각은 망상이다.

재산이 없는데도, 돈을 끌어다 쓰면 빚이 쌓이고, 종국엔 파산한다. 지금 안 대표와 홍 대표의 마이너스 통장에는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들의 지휘하에 연대나 통합을 모색하는 정치세력도, 민심에서 퇴출되는 불량주로 전락할 것이다. 자극적 언사, 명분 없는 이합집산으로 순간을 모면하려 하지 말지어다.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정치적 잔고는 안녕하십니까.

<이용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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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전 친박계 좌장 서청원 의원이 ‘성완종’을 거명할 때 눈이 TV로 돌아갔다. 대선 후 다섯 달 만에 듣는 성완종 뉴스였다. “홍준표 대표가 내게 협조를 요청한 일이 있다”는 8선의 노정객은 “진실을 얘기하지 않을 때는 진실을 증거로 내놓겠다”고 맺었다. 홍 대표는 바로 반발했다. “2015년 4월18일 서 의원에게 전화해 ‘나에게 돈을 주었다는 윤모씨(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는 서 대표 사람 아니냐. 왜 나를 물고 들어가느냐. 자제시키라’고 요청한 일이 있다”며 “노추의 유치한 협박”이라고 되받았다. 한쪽은 패의 첫 장만 뒤집고, 상대는 다 까보라고 맞선 격이다.

사달은 자유한국당에서 ‘1호당원’ 박근혜 전 대통령과 친박계 거두 서청원·최경환 의원의 출당 논의가 시작된 지 이틀 만에 불거졌다. 이렇게 써 먹을 때가 올 거라고 예감했을까. 연을 끊고 길 떠나겠다는 사람에게 2년6개월 전부터 꾸깃꾸깃 품어온 ‘뭔가’를 빼든 것이다. ‘폐족’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친박의 반격과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대표의 응전, 과거와 현재의 피비린내 나는 보수권력 쟁투가 링 위에 올랐다. 권세 높은 대감 집 사랑방에서 밤새 당파의 구수회의와 염탐이 이어지는 사극 속 풍경과 다를 바 없다.

“다 압니다. 메인에서는….” 2015년 4월9일 아침 6시, 성 회장은 마지막으로 북한산을 걸으며 통화할 때 친박계 핵심들은 저간의 사정을 다 안다고 했다. 손에 쥐고 있던 메모지엔 8명(김기춘·허태열·이병기·홍문종·이완구·홍준표·유정복·부산시장)이 있었지만, 성 회장은 더 많은 권력 실세들에게 구명활동을 했음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공교롭게도 친박 실세 서 의원은 그때 시차를 두고 성 회장과 홍 대표의 ‘SOS’ 메시지를 마주했을 수도 있다. 해서, 길을 걷거나 밥 먹다가도 문득 곱씹는 단어가 생겼다. 서 의원이 꺼내보일 듯이 압박한 ‘증거’다.

기실, 홍 대표를 유죄로 볼 정황과 증거는 널려 있다. 지난 2월 1심에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은 홍 대표에게 무죄를 때린 항소심 재판부도 ‘윤승모가 성완종에게 1억원을 받아 홍준표에게 전달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판시했다. 다섯 달 전 이완구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하며 무시한 성완종 녹취록도 다시 증거로 삼았고, 홍 지사 쪽 사람들이 “돈가방은 비서에게 주고 간 걸로 해달라” “홍 지사는 모르는 돈으로 해달라”며 윤씨에게 ‘거짓 증언’을 회유한 전화 녹음파일도 증거로 인정했다. 그러고는 급반전했다. 판결문은 윤승모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려운 사정이 있고 검찰 수사도 미흡했다며 무죄의 길을 냈다. 법정에서 채택한 물증보다도, 4년 전 공사 중인 의원회관을 기억 못하고, 어느 길로 여의도에 진입했고, 동승한 부인은 차 옆자리에 앉았는지 뒤에 앉았는지 엇갈린 진술을 톺아서 죄의 토대를 허문 ‘물음표’ 판결이었다.

윤씨는 항소심 판결 며칠 후 통화에서 “허탈하고 화도 난다”고 했다. 처벌을 감수하고, 홍 대표 쪽 지인들과 척지며 전화녹음까지 했던 공든 탑이 무너진 공허감이었다. 그 끝에 윤씨는 “성 회장이 죽기 사흘 전 내 병실에 확인하러 왔을 때 내가 먼저 ‘회장님, 그때 확인하지 않았어요’라고 물었다”며 “바로 ‘그럼. 확인했지’라는 말을 들었고, 며칠 뒤 비보를 접하고는 처벌을 받더라도 증언하겠다는 맘을 먹었다”고 했다. 그는 대법원에서 뒤집힐 가능성은 낮게 봤다. 논란 속이지만 2심까지 사실심이고, 대법원은 큰 상황변화나 새 증거가 제출되지 않으면 법률심의 틀이기 때문이다. 그랬던 홍 대표 재판에 다시 여의도의 변곡점이 생긴 셈이다.

함흥차사다. 항소심 끝난 지 이완구 재판은 13개월, 홍준표 재판은 8개월이 지났다. 대법원 판결은 언제 나올까. 공안통 검사 두 사람에게 물었다. 공통적으로 “적어도 올해 국감은 끝나고”라는 답이 나왔다. 제1야당 대표 재판의 정치적 파장도 염두에 둔 말이었다. 반전이 생길까. 홍 대표 방미로 숨고르는 한국당 대치는 박 전 대통령 출당을 의결하는 30일부터 급류를 탈 게다. 칼을 뺄까, 칼집 속에 둘까. 서청원의 밀당도 시작됐다. 단, 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는 없다. “대중의 알권리”를 저버리는 끝에는 성완종 리스트를 재차 흥정거리로 삼은 역풍에 맞닥뜨릴 게다.

“맑은 세상을 만들어달라.” 생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성 회장은 “다들 내 돈은 편하게 믿고 썼다”며 목숨과 ‘진실의 무게’를 바꾸는 선택을 했다. 하나, 해원의 길은 막혔고, 성완종의 진실은 아직 북한산 때죽나무에 매달려 있다. 해외에서 사업하며 가끔씩 카톡을 보내던 성 회장 장남의 연락도 항소심 뒤로 끊겼다. 맘이 쓰리고 태어나 자란 조국이 그리 미웠으리라. 여의도로 서초동으로 눈길 건넬 일이 많은 만추, 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기수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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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