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비평'에 해당되는 글 4188건

  1. 2018.10.16 [사설]‘조양호 불구속, 조현민 무혐의’, 재벌 비위 근절되겠나
  2. 2018.10.15 [정동칼럼]부총리의 국회 임명동의 문제
  3. 2018.10.15 [기고]남북 군사합의서와 군의 역할
  4. 2018.10.15 [사설]사립유치원의 회계 투명성, 국공립 수준으로 강화해야
  5. 2018.10.15 [사설]정쟁과 파행, 한탕주의 ‘쇼’로 오염되고 있는 국감
  6. 2018.10.10 [기고]대통령의 ‘식언’
  7. 2018.10.10 [서민의 어쩌면]남성과 여성, 연대의 차이
  8. 2018.10.10 [정동칼럼]성장친화적 소득재분배가 답이다
  9. 2018.10.10 ‘적극적 평화’를 위하여
  10. 2018.10.10 [사설]한반도 평화 대열에서 점점 고립돼가는 자유한국당
  11. 2018.10.08 [사설]개점도 못하고 종료 두 달 남긴 국회 사개특위
  12. 2018.10.08 [아침을 열며]고단하고 외로운 한국당에게
  13. 2018.10.04 [사설]민주사회의 적 가짜뉴스,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14. 2018.10.04 [사설]“야당 반대는 다수 여론 아니다”라는 청와대의 위험한 인식
  15. 2018.10.04 [이대근 칼럼]정치가 숫자를 다루는 세 가지 방법
  16. 2018.10.02 [송두율 칼럼]‘9월 평양선언’에 부쳐
  17. 2018.10.02 집 나가는 토끼에 대하여
  18. 2018.10.02 [사설]군사 퍼레이드 생략한 국군의날 기념식 뭐가 문제인가
  19. 2018.10.02 [사설]남북 국회회담 본격 논의, 초당적 협력으로 성사시키기를
  20. 2018.10.01 [정동칼럼]공무원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70억원대 배임·횡령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른바 ‘물컵 투척’ 사건으로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검찰과 경찰, 관세청 등 11개 기관이 수사·조사해온 한진 총수일가 비리 의혹에 대한 첫 단죄 치고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불법과 탈법, 갑질을 일삼으며 사익만 추구하는 재벌 일가의 구태를 근절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검찰은 또 외면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 10월 16일 (출처:경향신문DB)

조 회장은 배임·횡령·사기 및 약사법·국제조세조정법·공정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아왔다. 검찰이 인정한 공소사실을 보면, 재벌기업의 전형적 비리 행태를 총망라하고 있다. 납품업체들로부터 항공기 장비 등을 사들이며 중개 수수료를 챙기고, 어머니를 계열사 직원으로 등재해 허위급여를 지급하도록 하고, 자녀들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을 해당 기업이 비싸게 매입하도록 한 혐의 등이 그것이다. 조 회장은 맏딸 조현아씨의 ‘땅콩 회항’ 사건 당시 변호사비용 17억원을 회삿돈으로 내게 하고, 인하대병원 앞에 ‘사무장약국’을 열어 건강보험 요양급여를 부정하게 타낸 혐의도 받고 있다. 이 정도 혐의로도 구속을 면했다니 납득하기 어렵다. 구속영장을 기각한 법원에 1차적 책임이 있겠으나, 검찰 또한 수사에 최선을 다했는지 의구심이 든다.

조 전 전무에 대한 수사결과는 길게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특수폭행은 물컵을 사람 없는 방향으로 던졌다는 이유로, 업무방해는 대한항공 업무 처리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이유로 각각 무혐의로 결론났다. ‘반의사 불벌죄’인 단순 폭행 혐의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해 ‘공소권 없음’ 처분됐다. 피해자는 광고대행사 직원이다. ‘갑’인 재벌 기업과 계속 거래해야 할 ‘을’이 어떻게 갑의 처벌을 바란다고 할 수 있겠는가.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수사 결과에 씁쓸할 따름이다.

한진 총수일가와 관련된 수사가 모두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조 회장 부인 이명희씨의 특수폭행·상습폭행 혐의, 딸 조현아씨의 밀수·외국인 불법고용 혐의 등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다. 남은 수사에서는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상식이 반드시 지켜지기를 바란다. 조 회장은 구속을 면했다고 안심할 때가 아니다. 이제라도 가족경영의 폐해를 근절하는 전면적 쇄신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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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은 규범의 하나로서 법률·명령·조례·규칙 등 다른 규범들과 구분되는 특색을 가진다. 이를 헌법의 ‘규범적 특질’이라 부른다. 이 특질들 중에 헌법의 ‘수권규범성’과 ‘권력제한규범성’이 있다.

헌법 제40조는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고 규정하고 제66조 제4항은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고 규정하며 제101조 제1항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들 조항은 권력분립원리의 헌법상 근거조항인 동시에, 입법권·행정권·사법권이라는 중요한 권한들이 각각 어느 헌법기관에 주어지는지를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 대목에서 헌법은 헌법기관들에 ‘권한을 준다’는 의미에서 ‘수권(授權)’규범이 된다. 헌법의 이 ‘수권규범성’에서 논리필연적으로 따라나오는 것이 헌법의 ‘권력제한규범성’이다. 수권규범으로서의 헌법이 그 헌법기관에 부여한 권한 이외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위헌이 된다는 측면에서, 헌법은 헌법기관의 월권 및 권한 남용을 방지하는 ‘권력제한규범’이 되기 때문이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1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부, 국사편찬위원회 등 7개 기관 국정감사에서 위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따라서 헌법기관의 권한 행사에 관해 규정하고 있는 헌법규정들은 엄격하고 좁게 해석되어야 한다. 헌법이 수권한 권한 이외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헌법의 권한조항들을 해석하는 것은 헌법의 권력제한규범성에 위배되는, 위헌적인 헌법의 ‘확대해석’이라 볼 수밖에 없다.

최근 교육부총리 임명과 관련해 국회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상태에서 교육부총리가 임명되자, 두 야당이 국무총리 임명뿐만 아니라 부총리 임명 시에도 국회 동의를 얻도록 국회법과 인사청문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러한 법 개정은 법 개정의 정치적 필요성과는 별론으로, 합헌 여부의 판단에서 위헌일 가능성이 높다.

행정부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임면권은 헌법에 의해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에게 주어져 있다. 그러나 우리 헌법은 이러한 대통령의 고위공직자 인사권이 민의를 반영하여 합리적으로 행사되도록 고위공직자의 임명에 국회의 견제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것이 제도화된 것이 국회법이나 인사청문회법에 규정된 인사청문제도이다. 주목할 점은 이 고위공직자의 국회 인사청문은 두 가지로 이원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임명 전 국회 동의를 요하는 인사청문과, 임명 전 국회 동의를 요하지는 않지만 헌법이 아닌 국회법 등 법률에 의해 국회 인사청문을 거치게 하는 인사청문이 그것이다. 전자는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에서 하고 후자는 국회의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하도록 국회법에 규정되어 있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고위공직자 중 국무총리, 대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감사원장에 대해서는 국회 동의를 얻도록 하지만, 장관, 즉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게 할 뿐 국회의 동의를 요하게 하고 있지 않다. 대통령을 보좌하며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 전체를 통할하는 국무총리와, 개개 행정 각부의 장인 장관의 무게를 달리 보면서, 국회의 대통령 인사견제권의 강도도 달리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국무총리에 대해서는 국회 본회의의 동의안 표결 통과를 요구하면서, 장관에 대해서는 인사청문 과정에서 국민의 참여를 실현하고 국민 여론에 의한 검증을 받게 할 뿐 국회에 임명 동의권까지 주고 있지는 않다.

더욱이 ‘부총리’는 헌법상의 용어도 아니다. 헌법에는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및 ‘행정 각부의 장’이라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경제부총리가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국가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며, 교육부총리가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고용, 문화정책 전반을 조정한다고 하더라도 헌법하에서는 ‘부총리’도 한 명의 국무위원이자 장관으로서 국회 동의 없이 법에 규정된 국회 인사청문을 거쳐 임명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이후에 채택하는 인사청문보고서는 공직후보자 임명에 참고자료일 뿐 대통령을 법적으로 구속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국회 ‘동의’와 다르다.

결론적으로 장관인 ‘부총리’에 대해 국회의 동의권을 인정하는 법률을 만들면 그것은, 헌법기관의 권한조항에 대해서는 헌법의 ‘권력제한규범성’에 근거해 좁고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헌법해석의 원칙에 비추어 봤을 때, 헌법의 확대해석하에 만들어진 법률로서 위헌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회가 대통령의 고위공직자 임명에 대한 국회의 견제권을 꼭 강화하고 싶으면, 법 개정을 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뜻을 묻고 널리 수렴해서 개헌으로 나아가야 한다. 개헌 사항인지, 법 개정 사항인지는 정확히 구분되어야 한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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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군사분야 합의서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제기되고 있는 상당부분 주장들이 정치와 군사관계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국론을 분열시켜 국정운영의 동력을 훼손하게 만든다. 게다가 이번 군사합의 의미를 폄훼하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 군 고위 장성 출신이라는 점은 문제가 심각하다. 고위 군장성 출신 인사가 정치적 결정을 군사적 관점에서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올바른 민군관계가 자리 잡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적 결정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수행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군대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예비역 고위 장성들이 안보 현안에 대해 국가 정책에 반대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 전역했기 때문에 정치적 결정을 부정하고 비판하는 것이 당연한 시민적 권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군 고위 장성으로 연금과 예우를 받으면 정치와 군사의 원칙을 충실하게 준수해야 한다.

정치적 결정을 군사적 관점에서 평가할 수는 있다. 그러나 보완책을 제시하는 등 범위에서 그쳐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군사적 관점에서 정치적 결정을 뒤집어서는 안된다. 군사적 관점에서는 타당한 것 같지만 국가지도자의 정치적 결정과 결단은 그런 일부 전문적 영역 범주를 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번 남북 군비통제 협상은 한반도에서 위협을 낮추어서 국가 안보를 강화하겠다는 차원이다. 이러한 결정에 군사력을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도록 했으니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면 본말이 전도된 주장이다. 군은 강력한 대응을 통해 국가 안보를 지켜나가지만 정치는 위협 수준을 낮추어서 국가 안보를 지킨다.

이번 군비통제 합의는 북한도 지켜야 한다. 북한이 그동안 믿을 수 없었다고 해서 남북정상 간 결정까지도 믿을 수 없다면 우리는 북한과 어떤 관계가 가능할 것인가. 지금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유리하고 덜 유리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남북군사분야 합의서에 대한 논쟁의 출발점은 과연 지금 서명한 합의서 내용으로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을 여하히 방지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번 남북 간 군사분야 합의는 매우 성공적이라고 평가받아야 한다.

이번 합의로 인해 북한도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북한군부 반발을 무마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합의에서 우리에게 무엇이 유리한지를 몇가지만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북한은 군비통제 원칙을 완전하게 양보했다. 1974년 남북공동성명 발표 이후 북한은 즉각적인 군비축소를 주장했다. 반면 우리는 신뢰구축을 거쳐 운용적 군비통제와 구조적 군비통제 이후 군비축소의 단계적 과정을 주장했다. 수십년간 남북 간 군비통제 역사에서 서로 양보하지 않았던 원칙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번 합의를 통해 신뢰구축과 운용적 군비통제를 먼저 실시하는 데 동의함으로써 김일성 이후 지속해오던 원칙을 포기했다.

두번째, 북한은 서해평화수역을 수용함으로써 NLL을 잠정적으로 인정하는 입장을 보였다. 북한은 기존에 주장해오던 ‘서해해상군사분계선’을 주장하지 않았다. 구체적 내용은 앞으로 남북 군사당국 간 논의될 것이다. 서해평화수역을 놓고 NLL을 포기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점에서 어긋난다.

세번째, 북한은 정찰 수단이 많지 않다. 그러다보니 북한은 무인기로 청와대를 위시해 남한 전역을 정찰했다. 비행금지구역 설정 합의로 북한은 군사적으로 훨씬 많은 제약을 받게 됐다. 반면 우리는 한·미동맹의 전략자산을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오히려 이번 비행금지구역 설정으로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를 통해 전략자산을 협조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려해야 할 상황이다.

이번 합의서는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적 결정이다. 군은 국군통수권자의 의지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국가방위의 최후 보루인 군은 합의가 잘 준수되지 않았을 때 대응방안도 같이 강구해야 한다. 그것이 군의 역할이다.

<한설 | 전 육군 군사연구소장 (예비역 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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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비리 사립유치원’ 명단을 공개하면서 후폭풍이 거세다. 유치원장이 교비로 명품 가방을 구입하는 등의 비리 행태에 학부모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비리 유치원을 처벌해달라는 청원이 잇달아 올라온다. 지난 5일 박 의원 주최로 열린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사립유치원 관계자들의 반발로 파행을 겪은 배경을 이제 짐작할 만하다.

박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의 2013~2017년 감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사립유치원 1878곳에서 비리 5951건이 적발됐다. 전수조사도 아닌, 각 교육청이 자체 기준에 따라 선별해 이뤄진 조사 결과다. 사례를 살펴보면 더 기가 막힌다. 경기도의 한 유치원 원장은 정부 지원금과 매달 학부모가 내는 돈으로 노래방·숙박업소에서 결제하고 명품 가방과 성인용품까지 사들였다. 인천의 한 유치원은 교육업체와 짜고 교재비를 실제보다 많이 지급한 뒤 차액을 차명계좌로 돌려받았다. 서울에선 교직원 복지적립금 명목으로 설립자 개인 계좌에 1억여원을 쌓아두거나, 설립자 명의로 6000여만원을 만기환급형 보험에 적립한 사례가 적발됐다.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립유치원에는 국가예산이 해마다 2조원 이상 지원된다. 그럼에도 국공립유치원과 달리 정부가 회계를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없다. 2017년 2월 국무조정실은 ‘유아교육종합정보시스템’ 구축을 핵심으로 하는 ‘사립유치원 재정 투명성을 위한 회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2017년 하반기부터 2018년 사이 구축을 마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다. 교육당국이 사립유치원들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올 법하다. 교육부는 박 의원의 명단 공개로 논란이 커지자 뒤늦게 사립유치원도 국공립처럼 회계 시스템을 도입하고, 시·도교육청 감사 결과를 실명 공개하는 방안 등의 종합 대책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번에도 대책이 좌초하는 일이 생겨선 안될 것이다.

사립유치원들도 억울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에는 심각한 비위도 있지만, 고의성이 없는 단순 실수도 섞여 있다. 국공립유치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사립유치원이 유아교육의 큰 몫을 책임져온 사실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거액의 예산을 지원받으면서 감시는 받지 않겠다는 태도는 누구도 납득시킬 수 없다. 사립유치원은 학원이 아니다. 유아교육법과 사립학교법에 따른 ‘학교’이다. 유치원 설립·운영자들은 이러한 위상에 걸맞게 처신해야 한다. 정부도 모든 사립 교육기관의 공공성과 책무성을 강화하는 데 적극 나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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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질적인 첫 국정감사가 지난 10일부터 시작됐지만 초반부터 정쟁과 파행, 한탕주의 ‘쇼’로 얼룩지고 있다. 첫날 법사위 국감은 자유한국당이 김명수 대법원장의 대면질의를 요구하고, 여당은 삼권분립 훼손을 이유로 반대하면서 파행을 빚었다. 교육위 국감은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자격을 문제 삼으며 한국당 의원들이 퇴장해 정상 진행이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12일 정무위 국감은 정무위원장 민병두 의원실 직원의 금융위원회 채용 관련 의혹 등을 놓고 여야가 대립, 정회를 거듭했다. 법사위는 이날도 문재인 대통령의 ‘강정마을 주민 사면’ 발언에 항의해 한국당 의원들이 집단 퇴장하면서 굴절됐다. 하루도 빠짐없이 여야의 대립으로 상임위 파행 사태가 초래된 셈이다. 국정감사가 초반부터 여야의 정쟁과 일탈로 오염되는 것 같아 실망스럽다.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이낙연 총리의 연설문을 민간인 작가가 작성했다는 논란 관련 질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극적인 소품을 동원한 보여주기 이벤트, 근거 없는 폭로 행태도 여전하다. 퓨마와 닮았다며 벵골고양이를 국감장에 들고나온 한국당 김진태 의원, 선동열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상대로 맥락 없는 질문 공세를 퍼부은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 ‘가짜뉴스’ 대책을 비판한다며 암세포 사진을 활용한 현수막을 펼친 한국당 박대출 의원 등이 그런 구태를 재현한 경우다. 국감과 상관없는 논쟁과 ‘깜짝쇼’ 등으로 시간을 허비하기엔 다루어야 할 국정 현안이 너무 많다.

정상궤도 이탈 조짐을 보이는 국감 진행에 대한 여야의 평가도 ‘사돈 남 말 하는’ 격이다. 민주당은 “한국당이 떼쓰기와 정치공세로 막장국감을 만들고 있다”고 비난하고, 한국당은 “민주당과 청와대는 막장국감, 정쟁국감으로 국정감사가 마비되는 것을 획책한다”고 공격한다. 공방에 앞서 상대에 대한 비판을 자신에게 돌려 자성해보길 바란다.

정부가 제대로 정책을 수행하고 예산을 쓰는지를 따짐으로써 국정을 감시·견제하는 것이 국감의 본령이다. 여기서 야당이 정부의 정책과 예산 집행의 잘잘못을 파헤치고 지적하는 건 당연한 책무다. 그렇다고 ‘아니면 말고’식 폭로나 무분별한 정치공세까지 용인되는 건 아니다. 여당도 무조건 정부를 비호하는 방패막이 역할에 매몰되거나 야당의 합리적인 문제제기까지 정쟁으로 내몰아서는 안된다. 이제부터라도 여야를 떠나 입법부의 일원으로서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 국감다운 국감을 펼쳐보이길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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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또다시 국회에서 인사청문회 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한 유은혜 후보자를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현 정부 들어 이 같은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강경화 외교·송영무 국방·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도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으나 임명했다. 처음부터 일방적인 임명을 하고자 했다면 불필요한 인사청문회는 왜 했는지 그 속내가 궁금하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전입, 논문 표절’ 등 5대 인사 배제 원칙을 제시하고 이에 관련된 인사는 각료로 임명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공약한 바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1기 내각 조각을 모두 마치고 5대 인사 배제 원칙에 ‘음주 운전’과 ‘성범죄’ 항목을 추가했다. 결과적으로 인사 배제 7대 원칙이 된 것이다.

‘인사청문회법’은 대통령이 행정부의 고위 공직자를 임명할 때 국회의 검증 절차를 밟도록 함으로써, 대통령의 인사권을 통제하고 견제하고자 2000년 만들어졌다. 그런데 국무총리 등 일부를 제외하고 장관 등의 인사청문회는 구속력이 없다. 청문회 결과, 국회에서 부적격 보고서를 내도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거부하면 그만이다. 청문회는 통과의례일 뿐, 국회 청문회나 국민의 잣대가 아니라, 대통령이 가진 고유의 기준에 의해 임명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이 같은 사례는 10건을 넘었다. 문재인 정부 인사도 과거 정부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통령 자신이 후보 시절 공약한 인사 배제 원칙마저 무시한 채, 이런저런 군색한 변명과 함께 이번까지 6번째 임명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사청문회 무용론도 끊임없이 대두되고 있다.

미국의 인사청문회는 우리와 달리 인사청문특별위원회에서의 청문 절차를 거쳐 본회의에서 토론 없이 표결하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미국 인사청문회의 핵심은 바로 소요 기간이다. 보통 대통령의 사전 인선에 평균 270여일, 행정부 인준 준비에 평균 28일, 상원 인준에 50일 등 총 350일 정도가 소요된다. 즉 1년 가까이 선정된 후보자를 검증한 후 인준을 한다.

반면에 우리는 청문회 기간이 하루, 길어야 이틀이다. 제대로 된 검증이 이루어질 수 없는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따라서 정치 선진국이 되려면 우리도 이제는 인사청문회의 검증 기간을 충분히 늘리고, 도덕성과 능력 위주의 검증제도로 바꿔야 한다. 사실 현재와 같은 인사청문회 제도라면 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더 낫다. 시간, 세금, 전파 낭비만 가져오기 때문이다.

크든 작든 범법행위를 한 인사가 국무총리나 장관이 된다면 정상적인 나라라고 할 수 없다. 특히 박근혜 정권과 별반 다름없는 정부 탄생을 염원하며, 국민들이 엄동설한에 촛불을 든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국민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에도 스스로 국민과 한 약속을 여러 차례 식언(食言)한 바 있다. 이런 까닭에 대통령의 많은 선거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는 것은 아닌지,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윤배 | 조선대 명예교수 컴퓨터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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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회로(CC) TV 속의 남성이 여성 쪽으로 걸어간다. 남성이 지나가자마자 여성은 남성을 불러 세우고 격하게 항의한다. 그 남성이 자기 엉덩이를 만졌다는 것이다. 소위 ‘곰탕집 성추행 사건’이다. 이 사건이 화제가 된 것은 해당 남성-A씨-의 아내가 인터넷에 글을 올린 뒤였다. 그 글에 따르면 A씨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며, 높은 분을 모시는 자리여서 성추행을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해당 여성, 즉 피해자가 사건 직후 합의금 1000만원을 요구했다는 것도 수상쩍다. 그럼에도 판사가 피해자의 말만 믿고 징역 6개월을 선고했으니 억울하다는 것이다. 수많은 남성들이 이런 판결을 내린 판사를, 그리고 피해자를 욕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의 말처럼 해당 CCTV로는 성추행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웠지만, 그게 곧 피해자를 안 만졌다는 얘기가 되는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남성들은 마치 자신의 일처럼 흥분했고, A씨에게 공감했다. 심지어 A씨를 위해 모금운동을 하자는 의견도 제법 있었다. 요즘 놀이터로 전락한 청와대 청원은 물론,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두 번째로 공개된 CCTV는 성추행 여부에 대한 판단을 보다 잘 내릴 수 있게 돕는다. A씨가 현관 쪽에 서 있는데, 피해자 여성이 걸어와 복도 쪽 방문을 열려고 한다. A씨가 그 여성을 돌아보더니 그쪽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손을 바깥쪽으로 뻗는다. 곧바로 A씨가 항의하고, 그 뒤 양쪽 진영 간에 대치가 이어진다. 이 와중에 A씨는 도망친다. A씨 아내가 쓴 글에도 문제점이 발견됐다. 피해자는 합의금을 요구한 적이 없었고, 먼저 합의금 얘기를 꺼낸 쪽은 오히려 A씨였다. 어려운 자리였다는 아내의 글과 달리 A씨는 폭탄주 15잔을 마셨다고 했다. 게다가 A씨는 진술이 일관되지 않았고, 거짓말탐지기 결과도 ‘거짓’이었다. 남성들의 분노를 촉발한 첫 글에 A씨에게 불리한 대목은 들어 있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쯤 되면 판단을 달리할 법도 하지만, 남성들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래서 만졌다는 증거는 있어요?” “증거 없이 징역을 때린 게 문제다.” “판사는 각성하라!”

사실 성추행은 증거가 남지 않는 범죄다. ‘슴만튀’ ‘엉만튀’라는 말처럼 슬쩍 만지고 도망치는데 진술 말고 무슨 증거가 남겠는가? 대부분의 성추행과 달리 곰탕집 사건은 오히려 증거가 많은 사건이다. 그럼에도 ‘증거’ 운운하는 이들은 성공한 성추행은 처벌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음주운전, 살인, 사기 등등 범죄와 관련된 기사가 인터넷에 올라올 때마다 남성이 주를 이루는 네티즌들은 일단 가해자를 욕하고, 다음으로 ‘처벌이 약하다’며 판사를 비난한다. 하지만 성범죄의 경우 남성들이 가해자에게 동조하며 그편을 드는 일이 꽤 자주 일어난다. ‘그랩’으로 유명한 윤창중이 박근혜 정부의 대변인이 아니었다면, 그의 편에 서서 피해자를 국제꽃뱀으로 몰았을 남성이 한둘이 아니었으리라.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실수로 여자의 신체부위를 만져서 성범죄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이유가 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여성은 고의와 실수를 구분할 능력이 있다. 그렇다면 왜? 어쩌면 성범죄의 90% 이상이 남성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통계가 이유일 수 있겠다. 같은 남성으로서 만지고픈 네 마음을 이해한다, 네 마음이 곧 내 마음인데 어찌 너를 욕할 수 있겠느냐, 이걸 문제 삼는 여성이 나쁜 거야, 라는 게 그들이 가해자에 빙의하는 이유가 아닐까?

‘성전카페’라는 곳이 있다. 성범죄 전문 상담 카페의 준말로, 4000명이 넘는 회원들이 활동 중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가관이었다. 한 남성이 성범죄를 저질렀는데 어떻게 하면 형을 덜 받을 수 있는지 묻는 글을 올리면 경험자와 법률가들이 댓글로 방법을 알려준다. “미성년자인지 몰랐다고 잡아떼세요.” “합의하에 즐겼다고 하세요.” “쪽지 보내주시면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성범죄자가 결국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는 글을 올리면 축하세례가 이어진다.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오늘부터 발 뻗고 주무세요.” “부럽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 카페 덕분에 무혐의를 받았다고 고마워한다. 성범죄의 재범률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카페는 더 많은 성범죄가 저질러지는 세상을 위해 애쓰는 중이다. 이런 카페가 한둘이 아니라는 것도 문제지만, 이런 카페에 가입을 안 한 이들도 인터넷 댓글로 성범죄자를 응원함으로써 피해여성의 싸우고자 하는 의욕을 짓밟는다. 이렇게 남성들이 가해자를 위해 연대하는 반면, 여성들은 대부분 피해자를 위해 연대한다. 강남역에서 한 여성이 묻지마 살인의 피해자가 됐을 때, 수많은 여성들이 강남역에 모였다. 피해자의 일이 남의 일 같지 않고, 자신이 살아남은 게 단지 운이 좋아서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혜화역에서 열리는 규탄시위 역시 몰카범이 남성인 경우도 엄하게 처벌해 달라는 것일 뿐, 가해 여성을 편들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정부가 혜화역에 모인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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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가 소득주도성장이란 단어에 본능적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보수 가치와 상극에 있는 소득재분배 정책으로 보수의 성배인 경제성장을 달성한다고 하니. 게다가 성장이 형평한 소득분배를 가져온다고 그렇게 외쳤었는데 거꾸로 형평이 성장을 촉진시킨다고 하다니. 신성모독에 인과전도까지 가세한 꼴이다. 그래서 보수는 소득재분배가 성장 정책이 될 수 있다는 이론은 정통 경제학에는 족보도 없는 황당한 좌파 이론이라는 일부 학계와 언론의 주장에 쉽게 현혹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사실 그동안 주류경제학에서 고소득층에서 저소득층으로의 소득재분배는 시장의 효율성과 경제성장을 희생시켜야만 얻을 수 있는 도덕적 가치라는 인식이 대세였다. 그러나 금세기에 들어와 이런 인식에 큰 변화가 생겼다. 그 한 축은 소위 ‘포용적 성장론’의 등장이다. 당대 최고의 성장이론가라 할 수 있는 아세모글루는 경제 자원이 소수의 권력층에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는 제도를 구축해야 국민의 인적자본과 창의력이 최대로 활용되어 높은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이론을 세웠다. 또한 형평한 소득분배와 보건과 교육에 대한 공공지출 확대가 성장친화적 효과를 가져온다는 실증 연구가 연이어 발표되었고, IMF와 OECD 같은 권위 있는 국제기구가 이러한 연구를 수용함으로써 포용적 성장론은 주류에 편입되었다.

변화의 다른 축은 ‘장기침체론’의 대두다. 크루그먼, 서머스, 스티글리츠와 같은 노벨상급 경제학자들은 소비와 투자 수요의 부족은 일시적 불황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오래된 케인지언 이론을 부활시켰다. 이들은 수요 부족이 많은 선진국에서 지속적 저성장의 배경이 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 원인의 하나로서 소득양극화를 지목했다. 소득이 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에서 소비성향이 낮은 고소득층으로 이동함으로써 만성 소비 부족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속적 토론의 대상이 되어야 하겠지만 필자는 이러한 경제학자들의 시각이 한국 경제에도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혁신이 성장의 엔진인 것은 분명하지만 과도하게 기울어진 소득분배는 트랜스미션의 성능을 저하시킨다. 자동차의 출력이 엔진의 마력에만 달려 있다는 생각은 순진하다. 문제는 ‘형평한 소득분배를 어떻게 달성하는가’이다. 세 가지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최저임금 상승을 통하여 저소득층의 소득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둘째는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를 재원으로 저소득층의 임금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근로장려세제가 대표적 예다. 셋째는 역시 증세를 재원으로 하여 성장친화적이라 판단되는 보건과 교육 등에 대한 공공지출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바로 포용적 성장론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정책이다.

필자는 정부가 선택한 첫째 정책은 잘못이라 생각한다. 기업양극화가 온갖 사회문제의 뿌리가 되고 있는 한국의 현실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이 정책이 성공하려면 두 가지 전제가 충족되어야 한다. 먼저 임금 상승을 감당하는 기업주가 양보할 잉여가 있어야 노동수요 감소를 최소화할 수 있다. 또한 받는 노동자의 소비성향이 주는 기업주의 소비성향보다 크게 높아야 총소비가 늘어난다. 최저임금 상승의 대부분을 감당해야 하는 소상공인은 나누어 줄 잉여도 부족하고 지출성향도 노동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최저임금 상승이 물가상승을 유발하여 임금 상승을 상층부로 확산하고 가계의 부채부담도 완화할 수 있다는 기대도 허망하다. 소상공인들은 임금을 가격에 전가할 시장지배력도 없어 보인다. 오래 기다려도 최저임금 상승 정책이 좋은 결과를 낼 가능성은 희박하다.

반면 다른 정책에는 노동수요 감소라는 부작용이 없다. 임금보조금은 노동공급을 증가시켜 고용을 높일 수 있고, 보건과 교육에 대한 공공지출 증가는 직접적으로 고용을 창출한다. 문제는 재원이다. 야당의 협조가 필요하다. 보수는 처음부터 소득주도성장을 최저임금 상승으로 좁게 정의하고 사냥꾼처럼 최저임금 상승의 부작용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소득주도성장 정책가들은 최저임금 상승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제 불행하게도 소득재분배 정책이 통째로 코너에 몰려 있다. 다행히 상당수의 보수가 근로장려세제 강화와 포용적 성장에는 우호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세금 좀 올리려 하면 국제 추세에 역행한다고 하고, 공공지출 좀 늘리려 하면 그리스 꼴 난다고 하던 사람들이 많아 얼마나 진심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보수의 입장은 정부가 현실적인 성장친화적 소득재분배 정책을 강화해나갈 발판이 될 수 있다. 그 정책을 뭐라고 부르든 말이다.

<송의영 | 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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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북·미 간의 비핵화 논의가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의 수립이 점점 더 분명하게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다. 이제 한반도에 전쟁이 끝났다는 종전선언을 넘어 평화협정이 체결될 것이고, 우리는 지금껏 가보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역사의 노정에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단순히 전쟁 없는 상태가 평화는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어떤 ‘적극적 평화’(요한 갈퉁)의 상태여야 한다. 다시 말해 분단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폭력마저 제거해서 한반도의 모든 사람에게 존엄한 삶을 가능하게 해 줄 지속적인 삶의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아마도 남과 북이 상호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될 때 가장 적극적인 의미의 평화가 도래할 조건이 마련될 것이다. 민족통일은 한반도 평화체제의 가장 자연스러운 지향점이다. 그 당위의 호소력도 커서 남북을 아울러 사람들의 강한 헌신과 열망을 끌어낼 수 있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도 평양 능라도에서 행한 감동적인 연설에서 ‘우수하고 강인하며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을 이야기하면서 70년을 적대하며 떨어져 살았던 우리 민족이 함께 살아야 함을 강조했으리라.

그러나 통일은 쉽게 이루어지기도 힘들고 반드시 바람직하기만 할지도 의문이다. 같은 민족이라고 해서 반드시 하나의 국가를 이루어야 하는 법은 없다. 우리 민족이 단순히 동질성이 약해서 비극적 전쟁을 치르고는 오랫동안 갈라져 살아오지는 않았다. 평화체제를 세우기로 한 지금도, 남북의 이질적인 체제나 현격한 경제적 격차를 생각하면, 통일은 가능하더라도 아주 먼 미래의 과제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

지금과 같은 ‘1민족 2국가’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적극적인 평화가 불가능하지는 않다. 평화의 이상에는 전쟁의 상처와 고통으로부터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 줄 도덕적 질서를 만들어 내려는 고귀한 열망이 담겨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민족이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했지만, 냉정하게 보면 인류 일반이든 우리 민족이든 언제나 평화 지향적이기만 하지는 않았다. 평화는 어떤 자연발생적 상태가 아니라 사람들의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고도의 규범적 질서다. 문제는 통일이냐 양국체제냐가 아니라 이러한 평화의 본성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이다.

칸트식으로 말한다면, 참된 평화는 인간의 ‘도덕적 이성’이 폭력적 갈등과 전쟁이 빚어내는 참혹한 비극의 원인과 결과를 제대로 인식하고 성찰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관건은 서로 갈등하는 당사자들이 서로 다른 처지와 이해관계를 존중하고 평등한 존엄성을 인정하는 지속적 관계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치유하기 힘든 원한과 증오조차도 모두의 공존과 번영에 대한 희망으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평화는 남과 북 모두에서 이런 도덕적 진보를 이루어낼 때 하나의 역사적 성취로서만 가능하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서로의 관계만이 아니라 각 나라 내부의 삶의 양식이 지닌 도덕적 질을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해 나가야 한다.

우리 사회 내부만 보자.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기는 원인과 해법이 분명한데도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때 구조적 관계는 폭력적이 된다.

그 폭력은 무엇보다도 통일을 외치면서도 사실은 분단을 악용하며 강화해 온 분단체제 기생 세력들의 불의와 이어져 있다. 그들은 지금껏 국가보안법이 헌법보다 더 상위에 있는 법이라고 우기며 국민들의 인권을 짓밟고 민주주의를 일그러뜨려 왔다. 이러한 불의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일촉즉발의 위기까지 갔던 북한과 미국의 갈등을 중재하여 평화의 길로 이끌 수 있었던 건 단순히 우연은 아니다. 분단의 질곡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상처 입히고 왜곡시켰는지를 잘 알고 있는 우리 시민들의 더 성숙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평화를 추동했다고 보아야 한다. 시민들은 또 그런 열망을 모아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냉전 수구 세력에 대해 분명한 사망선고를 내리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 세력은 죽은 줄도 모르고 정치적 좀비가 되어 지금도 평화를 위한 노력 하나하나를 물어뜯고 있다. 그동안 남북 사이의 냉전을 이용하고 부추길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끊임없이 동서갈등을 조장하며 거기에 기생해 온 반평화적 정치 질서 자체가 온존하고 있어서다. 이 질서를 제대로 개혁해 내지 못하면 한반도에 적극적인 평화가 정착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한 질서의 혁파는 이제 평화를 지향하는 모든 사람들의 가장 우선적인 도덕적 의무가 되었다.

<장은주 | 와이즈유(영산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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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자유한국당의 대응은 예상대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네 번째 방북 결과에 대해서도 한국당만 “진전이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그러면서 판문점선언 비준동의 절대 불가, 평양 국회회담 불참을 못 박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이 “(김정은과)또 한 걸음 내디뎠다”며 빠른 시일 내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공식화했는데도, 한국당은 협상 진전을 한 걸음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태세다. 여당은 물론 보수정당인 바른미래당까지 적극 평가하고 있음에도, 한국당만 딴 곳을 쳐다보고 있다. 판문점선언 당시 홍준표 대표가 “남북정상회담을 지지하는 계층은 좌파뿐”이라며 ‘위장평화쇼’라고 한 인식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결과다. 한국당에 유일한 ‘언덕’인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 한반도 평화를 논의하는 격변의 상황에서도 외눈박이 색깔론을 고집하다 지방선거에서 궤멸적 패배를 당한 교훈도 까마득히 잊은 듯하다.

그러하니 한국당 혼자 세계가 주목하는 9월 평양공동선언에 대해 “공허한 선언”이라고 외치고, 군사 분야 합의에 대해 “송이 받고 땅 내줬다”고 독설을 퍼붓고, 남북경협에 대해 “퍼주기”라고 단죄부터 해대는 것이다. 판문점선언 비준동의 등 한반도 평화를 제도화하는 작업에는 아예 빗장을 걸고 있다. 가시화된 ‘평양 국회회담’에도 갖은 이유를 대며 불참 명분을 쌓고 있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한반도 평화 장정’에 제동을 거는 세력이 한국당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연일 증명하는 꼴이다.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을 제거하고 공고한 평화를 구축하는 데 여야, 진보·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바른미래당은 8일 의원 워크숍에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참석시켜 판문점선언 등에 대한 보고 자리를 마련했다. 손학규 대표는 “냉전적 안보관을 탈피하고 평화 프로세스에 당당한 야당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했다. 남북 국회회담에도 바른미래당은 전향적이다. 한국당이 국회회담에마저 불참한다면 그야말로 ‘국회 갈라파고스섬’으로 전락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번영으로의 변화를 이끌지는 못할망정 뒤처지지는 말아야 할텐데 아예 변화를 거부하고 저항하는 꼴이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대전환 흐름에 끝내 한국당 홀로 방관자, 아니 방해꾼으로 남을 작정인가. 그렇다면 ‘평화’가 정착된 한반도에서 한국당이 설 땅은 없을 것이란 점을 각오해야 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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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사법개혁특위가 지난 7월26일 국회 본회의에서 구성 결의안을 의결한 지 70여일이 지났지만 아직 출범도 못하고 휴업 중이다. 여야는 지난 4일 8(더불어민주당) 대 6(자유한국당) 대 2(바른미래당) 대 2(비교섭단체)로 특위 위원 배분에는 가까스로 합의했지만, 한국당은 아직 특위 위원 명단을 내놓지 않고 있다. 사개특위는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가동한다고 해도 2개월밖에 시간이 없다. 이달 내내 진행될 국정감사 기간을 빼면 매일 밤을 새워도 모자랄 판이다.  

사개특위는 법원과 검찰 개혁,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등 사법 전반에 걸친 개혁방안을 마련하고 관련 법안을 심의·의결한다. 모두 권력기관을 제자리로 돌려놓거나 시민의 일상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중요 사안들이다. 앞서 20대 국회 전반기에 출범한 사개특위는 회의다운 회의 한번 하지 못한 채 지난 6월 빈손으로 끝났다. 당시 시민단체에선 무능과 무성의, 무기력으로 점철된 ‘3무(無) 특위’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래서 활동기한을 6개월 연장하고 새롭게 구성한 게 지금의 사개특위다. 이마저 앞의 전철을 그대로 되밟고 있으니 한숨만 나온다. 한국당 지도부는 시간 끌기로 사법개혁을 좌초시키려는 전략이 아니라면 하루속히 정상 가동에 힘을 합쳐야 할 것이다. 

법원은 지금 사법농단 의혹으로 정의의 최후 보루이기는커녕 불신의 대상이 돼 있는 상태다. 검찰은 시민의 개혁 대상 1호로 꼽힌 지 오래다. 만약 법관과 검사를 수사 대상으로 삼는 공수처가 진작 있었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란 말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의 사법·검찰개혁에 대한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고, 사개특위에 거는 기대 또한 크다. 이는 당리당략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적 과제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더는 우물쭈물할 여유가 없다. 한국당의 맹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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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이 왜 막말을 하는지 알 것 같다.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다는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그대들의 어조는 쓸데없이 높고, 발언 내용은 맥락없이 자극적이다. 아마 이렇게라도 관심받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이 계속되면 곤란하다. 당장 주의를 끌지언정 격조없는 언어들이 반복되면 결국 외톨이가 된다는 것이 삶의 진리다. 종국에는 그대들이 무슨 말을 해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게 될 것이다. 

한반도 평화국면에 대한 그대들의 독설을 보면서 ‘막말의 악순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남북정상회담=위장평화쇼’라는 홍준표 전 대표의 아무말 대잔치가 6·13 지방선거 참패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게 불과 넉달 전이다. 하지만 홍준표만 물러났을 뿐 고장난 위장평화쇼 공세에 대한 집착은 그대로다. ‘9월 평양공동선언=속빈 강정’ ‘군사분야 합의=무장해제’. 홍준표를 대신한다는 김성태 원내대표는 그 못지않은 막말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지난 1일 국회 외교·통일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그대들의 저열한 인식을 접하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일부 의원들은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 당시 태극기가 어디로 갔느냐”는 질문을 던졌다가,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에 오면 한복판에 인공기를 휘날릴 수 있겠느냐”(이낙연 국무총리)는 되치기를 당했다. “김정은은 극악무도해서 고모부도 처형하고 회의에서 졸았다고 처형하는 사람인데 이런 극악무도한 김정은과 문재인 대통령이 협의하는 게 맞느냐”는 분풀이성 발언도 들었다. 같은 보수야당인 바른미래당의 “보수도 새 시대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하태경 의원)는 주장과도 대조가 됐다.

지켜본 결과, 그대들의 생각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북한 비핵화 의지를 믿을 수 없고, 형과 고모부를 죽인 김정은과 마주앉는 것은 말이 안된다’ ‘김정은을 무릎 꿇리지 못한다면 차라리 대화도 하지 말라’. 하지만 협상 상대를 굴복시키라는 주장은 막무가내로 들린다. 북한이 망할 때까지 사실상 방치하자는 주장은 한가하다. 지난해 한반도에 드리웠던 전쟁의 그림자를 생각하면 지금은 테이블에 앉아서 평화적 해법을 모색하는 게 우선이다.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어긴다면 그때 테이블을 박차고, 문재인 대통령 말대로 “제재를 다시 강화하면 그만”이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올 한해 동안 이미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치러졌다. 연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 제2차 북·미 정상회담 등 아직도 굵직한 이벤트가 남아 있다. 경향신문 창간 여론조사 결과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에 85.6%가 찬성했다. 한국당이 그토록 신뢰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현 국면을 이끄는 주요 당사자다. 남·북·미 정상 간에 쌓이는 신뢰, 그간의 합의 등을 지켜보면 긴장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졌던 한반도의 기운이 변화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전 세계가 한반도를 주목한다.

안다. 그대들은 춥고 배고프고 고단하고, 또 외로울 것이다. 부동산 폭등, 고용악화 등에서 떨어질 떡고물을 기대했건만 허기는 가시지 않았다. 지지율은 여전히 10% 안팎을 맴돈다. 그사이 집안은 거덜나고 있다. 자유당·공화당·민정당·민자당 등 조상 대대로 배불리 먹고살게 해줬던 ‘색깔론·반공’ 곳간은 텅 비었다. 위장평화쇼를 준엄하게 심판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미국 대통령님’은 동아줄을 내려주지 않았다. 어렵사리 모셔온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의 ‘국가주의’ 논쟁도 온데간데없다. 뒷배인 조선일보의 위세는 예전 같지 않고, 그대들이 잘나갈 때 간이라도 빼줄 듯했던 일부 보수신문과 방송은 언제 그랬냐는 듯 슬금슬금 등을 돌린다.

너무 오랫동안 부잣집 철부지로 살았으니 상실감은 더 클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 1번지가 평양이 될 지경” “11시 넘어서 야근하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사 먹으면 된다” 등 상식의 궤도를 벗어나 안드로메다로 향한 발언들은 이판사판에서 나온 절규일 것이다. 단숨에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로또라도 긁고 싶겠지만 그런 확률은 천만분의 일도 안된다. 로또를 긁는 행운도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그대들은 부잣집 게으른 자식들이 얼마 남지 않은 재산을 탕진하는 길을 따르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기둥뿌리라도 보존하고 싶다면 막말의 악순환에서 일단 발을 뺄 것을 권한다. ‘지금은 평화를 이야기할 때’라는 현실을 똑바로 응시하라. 한반도 이슈에 대한 감정적 대응은 자제해야 할 것이며, 비판은 반드시 이성적이어야 한다. 내키지 않는다면, 차라리 입을 다물라. 그나마 가산 탕진 속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용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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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국무총리가 2일 국무회의에서 “유튜브,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등 온라인에서 악의적인 가짜뉴스가 급속히 번지고 있다”며 범정부 차원의 대응을 지시했다. 이 총리는 “가짜뉴스는 표현의 자유 뒤에 숨은 사회의 공적, 개인의 인격을 침해하고 사회의 불신과 혼란을 야기하는 공동체 파괴범”이라며 “검찰과 경찰은 유관기관 공동대응체계를 구축해서 가짜뉴스를 신속히 수사하고, 불법은 엄정히 처벌하시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가짜뉴스와 이를 제작해 유포하는 사람들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2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 도중 의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가짜뉴스는 통상 인터넷을 중심으로 유통되는, 사실과 다른 내용을 담은 콘텐츠를 말한다. 이들은 허위사실을 기반으로 억지 논리로 자기 주장을 그럴듯하게 포장한다. 과학적 사고나 보편적인 진리를 외면한 채 성소수자를 공격하거나 증오를 조장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이들 가짜뉴스에서 언론 보도의 필수 요소인 당사자 사실 확인이나 반론 제공은 찾아보기 어렵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정보를 전달한다는 언론의 명제를 외면한 채 정보와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가짜뉴스는 민주사회의 적이 분명하다. 외형적으로는 방송의 뉴스 전달 형식과 비슷해 새로운 기술에 익숙지 않은 노년층 등에서 이를 정규 방송으로 오인하는 사례도 많다.

문제는 이런 가짜뉴스가 개인에 대한 악의적인 공격을 넘어 국가안보와 같은 국가 정책에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적 식견이 없는 시민을 가짜뉴스로 흔들면 공동체의 견해가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에는 특정 종교의 일부세력과 결부되었다는 의심까지 제기됐다. 가짜뉴스의 주요 출처가 보수 지지층이었던 터에 이런 사실까지 드러났으니 불법성 여부에 대한 수사는 불가피하다. 가짜뉴스를 방치해서는 건강한 여론이 형성될 수 없다.

가짜뉴스는 시장의 선택에 의해 자율적으로 축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실은 쉽지 않다. 기성 언론의 오보처럼 규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관련 규정이 미흡하다. 가짜뉴스 자체에 대한 엄단은 물론 유통 경로인 매체에 대한 대응책도 필요하다. 하지만 가짜뉴스에 대한 대응이 언론자유를 위축시키지 않도록 하는것도 중요하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그 자체다. 자정을 통한 여론의 자율규제는 포기하면 안된다. 가짜뉴스를 솎아내는 시민사회의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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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2일 야당이 반대해온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를 임명했다. 그동안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은 “유 후보 임명을 강행하는 것은 반의회적 폭거”라며 강하게 반대해왔다. 유 장관은 여느 장관 후보자들에 비해 의혹과 흠결의 건수가 많고 종류도 다양했던 게 사실이다. 이는 야당 말마따나 장관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문제들일 수 있고, 한편으로 과거 장관 후보자들에 비해 결정적인 하자라고 보기 어렵다는 반론도 있었다. 청와대의 임명 강행은 찬반 양론이 맞서 있는 상황에서 교육부 수장의 공백 사태를 더 두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4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청와대의 인식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현재 인사청문 절차에 반대하는 야당의 뜻을 일반 국민의 여론이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유 장관 임명에 반대하는) 여론이 국민 다수의 여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위험천만한 생각이다. 권력자가 시민을 앞세워 국회를 공격하고 나설 경우 자칫하면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반(反)정치주의로 흐를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박근혜 정부의 치명적인 잘못은 야당과 반대 시민을 적으로 몬 것이었다. 여론조사기관 알앤써치가 지난달 초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유 장관은 ‘적합(40.7%)’, ‘부적합(39.0%)’ 여론이 팽팽했다. 청와대는 무엇을 근거로 ‘다수 여론’을 거론했는지 모르나 최소한 임명에 앞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후보를 청문회에 올린 데 대해 먼저 사과라도 했어야 한다. 야당이 반대하든 말든 임명할 거면 인사청문회는 뭐하러 하느냐는 것이 정확한 민심이다.

한술 더 떠 김 대변인은 야당의 반발로 민생법안 처리 등에 난항이 예상된다는 지적에 대해 “유 장관을 임명하지 않는다고 해서 과연 협치가 이뤄지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현재 상황을 보면 그게 보장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고 했다. 한마디로 유 장관 진퇴에 상관없이 지금 국회 상황을 ‘협치 난망’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들이 민생 살리기를 위한 초당적 협력과 협치를 약속한 게 불과 두 달 전이다. 가뜩이나 정국은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의 ‘예산정보 유출’ 논란으로 꼬여 있는 상황이다. 서로 마주 달리면 충돌은 불가피하다. 그래서 대통령과 여당은 항상 야당의 올바른 지적과 비판을 수용할 줄 아는 포용성을 요구받는 것이다. 문 대통령과 여당은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삼고 소통하며 협치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김 대변인의 발언은 그런 약속과는 한참 거리가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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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가 한국정치를 휩쓸고 지나갔다. 고용 쇼크, 소득 분배 악화, 경제성장 하락, 국정 지지율 추락에 홍역을 앓았다. 겉보기에 지금 한국 정치는 숫자 폭풍을 견디고 멀쩡히 살아남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국적 현실을 감안할 때 정치가 언제 다시 숫자에 휘청거릴지 알 수 없다. 정치는 숫자를 다루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주먹구구의 한국 정치에 숫자가 발언권을 갖게 된 건 분명 좋은 소식이다. 너무 오랫동안 한국 정치는 설명할 수 없는 의견, 근거 없는 주장, 방증할 수 없는 당위론에 사로잡혔다. 이런 정치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숫자의 합리성일 것이다. 숫자는 복잡한 현상이나 잘 드러나지 않는 실체를 눈에 보이는 사실로 압축해주는 힘이 있다. 하지만 한국 정치가 고용률과 소득 분배율을 대하는 방식은 합리성과 거리가 있다. 고용률 부진을 알리는 숫자는 정책 재검토든 고용 구조 개선이든 해결책을 요구한다. 그런데 여야는 이런 문제를 안중에 두지 않는다. 여권은 단기 일자리라도 늘려서 숫자를 채우고 싶어 한다. 야당은 물러나라고만 한다. 가계 소득 분배가 악화됐다는 숫자가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다.

여야는 불평등 완화 방안에 초점을 두고 이 숫자를 다루지 않았다. 여권은 표본 오류 주장, 통계청장 경질이 말해주듯 불평등 문제를 통계기술 및 인사 문제로 대체했다. 이번에도 야당은 물러나라는 소리뿐이었다. 숫자가 권력투쟁의 도구로 동원된 것이다. 한국정치에 내재한 비합리성이 숫자의 합리성을 밀어낸 결과다. 모든 숫자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복잡한 현실을 드러내기에는 너무 단순한 숫자도 있다. 경제성장률이 좋은 예다. 한국 사회에는 3.0%를 넘으면 국정에 성공한 것이고 2.9% 성장이면 실패했다는 식의 인식이 퍼져 있다. 하지만 양극화된 사회 현실을 고려하면 그것은 현실과 괴리된 채 표류하는 공허한 숫자다. 두 숫자의 차이는 실제 서민의 삶이 어떤지 말해주지 못한다. 숫자는 손에 집히는 게 없는 고도의 추상성을 띨 때가 있는데 바로 이런 경우이다.

국정 지지율도 삶과 일치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지지율이 80%였다고 삶이 그만큼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40%였다고 더 나빠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여권은 오르락내리락하는 변덕스러운 숫자를 끌어올리고, 붙잡아 두는 일에 많은 자원을 투입한다. 지지율은 다른 모든 숫자를 대표하고 압도하는 숫자 중의 숫자, 숫자의 왕이다. 고용률, 소득분배율, 경제성장률 모두 지지율에 종속된다. 지지율에 기여하지 않는 숫자는 열등한 존재로 취급된다. 집권세력이 원하는 것은 ‘나중에 좋은 숫자’가 아니라 ‘지금 괜찮은 숫자’다. 그런 숫자는 실상이 어떻든 잘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숫자는 숫자라는 이유만으로도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당장 숫자로 내놓을 수 없는 것도 있다. 고용 개선을 위한 경제 생태계 조성, 불평등 완화를 위한 사회개혁과 같은 중장기 과제가 그런 것이다. 정부가 이런 문제에 집중한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

이 또한 숫자의 힘을 믿기에 채택할 수 있는 전략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왜 규제완화, 재벌 의존, 그린벨트 내 주택건설 추진 등 보수정부의 정책을 계승하는지 설명해준다. 과학소설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이런 내용이 있다. 슈퍼컴퓨터에 ‘인생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컴퓨터는 750만년 동안 계산한 끝에 ‘42’를 출력한다. 알 수 없는 숫자다. 42가 무엇인지 또 답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것은 곧 인생은 무엇인가라는 본래의 질문으로 돌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숫자로 축약할 수 없는 질문 앞에서는 스스로 물을 줄 알아야 한다. 우리도 스스로 물어야 할 게 있다. 국가의 행로는 미리 정해져 있어서 정권 교체에도 변경불가인가? 여야가 단기 숫자에 매달리는 동안 국가는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오래전부터 가던 길을 그대로 가고 있다. 집권자가 국가의 고삐를 쥐고 있는 게 아니라, 국가가 집권자의 고삐를 쥐고 있는 것 같다. 정권교체해도 국가의 진로가 크게 바뀌는 일이 드물기는 하다. 문재인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이성론’이 있다. 국가가 자기 생존을 위해 스스로 필요한 일을 하고 집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는 특별한 임무가 주어져 있다는 믿음이 여전하다. 그 믿음에 따르면, 개혁의 필요성을 웅변하는 숫자는 무시하고,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숫자에는 집착하고, 숫자로 환원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는 방치하는 현상이 해명되지 않는다. 집권자는 주권자의 의사를 대리하는 존재다. 그런데 국가에 주권자의 의지가 작용하지 않는다면 정치란 과연 무엇인가?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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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장에는 흰색과 검은색의 부석(浮石)이 놓여있다. 부석은 화산이 폭발하면서 뿜어낸 용암이 식어 돌처럼 굳어졌지만 물 위에서도 뜰 정도로 가볍다. 흰 부석은 백두산 정상에서 1980년대 말에 내가 직접 주워 온 것이다. 한라산의 검은 부석은 2004년 여름 서울구치소에서 나와서 40여년 만에 찾은 고향 제주도에서 한 친지로부터 기념품으로 받은 것이다. 백두산의 천지를 찾은 남북 정상이 맞잡은 손을 높이 든 사진을 보면서 두 화산석이 담고 있는 내 삶의 흔적도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조종(祖宗)의 산인 백두산에서 시작된 땅에서 대대로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을 태평양의 거센 바람으로부터 보호하는 한라산, 이 두 성산(聖山)의 이름만 들어도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뿌리를 생각하게 된다.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카시러(1874~1945)는 물리학에서 논의되는 ‘이론적’인 공간은 물론 조형예술에서 문제되는 ‘심미적’인 공간의 근원에도 상징적이며 주술적인 힘을 지닌 ‘신화적’인 공간이 자리한다고 주장했다. 우리에게는 백두산과 한라산이 바로 그러한 공간이다. 중국인에게는 태산, 일본인에게는 후지산이 그렇다.

그러나 ‘백두에서 한라까지’ 하나의 지맥으로 연결된 우리 땅은 70년이 넘도록 한가운데가 잘려있다. 휴전선은 우리를 긴장과 적대관계로 내몰고 우리의 자유로운 영혼도 억누르고 있다. 공간은 단순히 인간과 사물을 담고 있는 컨테이너가 아니며, 인간의 사회적 관계가 공간을 규정한다고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게오르크 지멜(1858~1918)은 지적했다. 이 해석에 따르면 사회적 공간인 민족공동체의 단절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지리적 의미의 국토분단이다.

한반도에서 군사적인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지대를 건설하기로 합의한 이번 ‘9월 평양선언’의 첫 번째 항목도 바로 이 새로운 공간을 창출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서해 ‘북방한계선’에 대한 남북 간의 합의에 대해 일부 야당과 보수세력은 현정부가 피로써 지킨 ‘북방한계선’을 포기했다고 비난한다. 경계선은 원래부터 전투적인 개념이다. 화해와 평화를 위해서는 이 경계선을 남북이 서로 공존할 수 있는 3차원의 사회적 공간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그럴 때 평화지대라는 개념도 성립 가능하다. 이 사회적 공간을 넓히면 넓일수록 평화로 향하는 길은 더욱 탄탄해진다. 우리 땅 전체가 하나의 평화지대가 될 때 우리는 통일도 이야기할 수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두 번째 항목은 남북은 교류와 협력을 증대시켜서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철도와 도로의 연결 및 이의 현대화, 그리고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사업의 정상화에 대해서도 합의했다고 밝히고 있다. 현대사회는 시간과 공간을 응축(凝縮)하는 정보와 물자의 빠른 흐름을 가능케 하는 네트워크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1843년 5월, 독일의 혁명시인 하이네가 파리에서 기관차의 첫 운행을 보면서 이제 공간은 죽었고 시간만이 남게 되었다고 술회했다. 한말의 풍운아 김옥균도 1882년 수신사 박영효를 따라 ‘명치유신’의 일본을 둘러보고 남긴 &lt;치도약론(治道略論)&gt;에서 사람의 교류와 물자의 빠른 유통을 보장할 수 있는 도로가 사회개혁에 있어서 지니는 의의를 강조했다. 21세기에 걸맞은 민족경제의 균형적인 발전은 무엇보다도 남과 북이 상호 연결되는 ‘흐름의 공간’을 확충하면서도 ‘구체적 장소’인 남과 북이 각각 지니고 있는 경제적 구조와 특성을 살려야 한다. 지구화의 정도에 있어서 현재 많은 차이가 있는 남과 북의 경제사회가 짧은 시간 내에 같은 속도로 움직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독일통일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남북경협이 너무 속도를 낸다느니, 유엔의 대북 제재 규정을 위반할 소지가 많다고 벌써부터 어깃장을 놓는 세력이 있다. 경의선 철도의 북측 구간을 조사하려던 계획도 ‘유엔사’에 막혀 일단 무산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러나 분단으로 인해 기형화된 민족경제의 구조를 선순환적인 구조로 전환하는 과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북녘 땅에 있는 귀한 부존자원이 수시로 중국에 헐값에 넘어가고 있는 현실을 그저 보고만 있을 것인가.

세번째와 네번째 항목은 이산가족의 상봉을 포함한 인도적인 교류와 사회와 문화 분야에 있어서 교류활성화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산가족의 상봉을 속히 정례화하고 대상도 확대해야 한다. 세대가 바뀌면서 남북의 친·인척 구성도 많이 변했다. 평창올림픽 때 남북여성하키단일팀의 구성 문제에 대해서 보였던 남쪽 젊은 세대들의 부정적 반응도 곱씹어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번 선언에는 명기되지 않았지만, 미래를 함께 꾸릴 남북의 새로운 세대 간에 상호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앞으로 많이 마련해야 한다.

다섯번째 항목인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자는 합의는 이번 선언의 핵심이다. 따라서 이 내용에 대한 평가 역시 다양하고 논쟁도 많다.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를 혹평하는 측은 특히 북핵 문제에 있어서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폄하한다. 그러나 이번 선언이 남북이 먼저 함께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별,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지혜를 살려 ‘종전선언’을 거쳐 ‘평화협정’으로 가는 길목을 트고, 그동안 부진했던 북·미 간의 핵협상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지 않았는가.

북핵 문제의 핵심은 여전히 북·미관계의 발전에 달려 있다. 북·미 협상에서 항상 등장하는 ‘네가 먼저!’라는, 상대방을 향한 끈질긴 요구도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지나면서 많이 약화된 분위기다. 북·미 간에 있는 상호불신의 단단한 매듭이 아직은 풀리지 않았지만 이 역시 점차 느슨해지고 있다. 9월25일에 뉴욕에서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은 이 같은 분위기를 보여주었고, 2차 북·미 회담도 이미 가시권에 들어왔다. 지난 6월에 있었던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내용을 더 구체화시키는 2차 북·미 회담이 끝나면 북핵 문제는 분수령을 넘을 수 있고, 북·미관계의 단계적인 정상화의 내용과 시간표도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금년 초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상황이 지금 우리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다. 남북은 ‘9월 평양선언’을 확실하게 이행해서 우리 땅의 평화체제를 빨리 정착시켜야 한다. 백두산에 이어 남북 정상이 한라산에서 다시 맞잡은 손을 높이 드는 장면은 세계에 한반도의 평화정착의 과정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큰 메시지가 될 것이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코를 빌려 숨 쉴 수 없다’는 폴란드 격언이 있다. 민족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겠다는 단합된 의지, 열정 그리고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다.

<송두율 |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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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 5·1경기장에 운집한 15만 북한 주민 앞에서 남한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대중연설을 했다. 가슴 뭉클한 장면이라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3차 남북정상회담은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장 한 달 이상 내리막길을 걷던 지지율은 10% 이상 급반등해서 60%대를 회복했다. 비판자들은 지지율 하락을 가져왔던 경제정책의 실패를 평화 프레임으로 덮으려 한다고 하고, 지지자들은 역시 문 대통령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어느 쪽이 맞을까.

여기서 퀴즈 하나. 세대별로 보면, 남북정상회담은 어느 세대의 지지율을 가장 크게 견인했을까? 고령층은 반공보수가 주된 이념이고 평화 프레임은 젊은층에 잘 먹힐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정답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답은 60대 이상이다. 지지율 최저점인 9월 2주에 32% 지지율로 가장 박한 점수를 줬던 60대 이상은 3차 정상회담 직후인 9월 3주에는 58% 지지율로 급반등해서 50대보다도 훨씬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이하 한국갤럽 자료). 지지율 절대값으로만 보면 20~40대가 더 높지만, 정상회담 직전과 직후의 반등률로는 60대 이상이 압도적으로 높다. 숫자가 속내를 말해주지는 않지만, 미루어 짐작한다면 분단의 고통을 몸으로 느끼는 유일한 세대라는 점, 그리고 문 대통령 연설 직전에 있었던 소위 ‘대집단체조’와 같은 국가주의적 스펙터클에 익숙한 세대라는 점 등이 작용했으리라.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밤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평양 시민들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이 사례에서 보듯이 문재인 정부의 지지 기반은 상당히 복잡하다. 박근혜 정부 때는 몹시 단순했다. 고령, 영남, 보수, 새누리당 지지자, 주부 및 무직자면 대통령이 무슨 짓을 해도 무조건 지지, 그 반대로 갈수록 지지율 급락이었다. 문재인 정부 지지율도 앞선 모든 정부처럼 장기적으로는 하락추세이지만, 중간중간 반등하면서 완만하게 하락한다. 올해만 해도 평창올림픽 직전 남북단일팀 논란과 ‘평양올림픽 선동’으로 하락했던 지지율은 올림픽 개막 후 급반등했다. 최저임금 및 부동산 정책 논란으로 하락하던 지지율은 3차 정상회담 이후 또 급반등했다.

두 차례의 반등을 비교해보자. 평창올림픽 때는 2030세대가 급격하게 지지를 철회했다가 빠른 속도로 복귀했다. 이번에는 2030은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다. 경제정책 논란으로 40대 이상이 지지를 철회하는 동안 그들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이번에 세대별로 주목해야 할 것은 오히려 50대이다. 지난 14주 동안의 변화를 보면 50대는 최고점인 6월 2주 74% 지지에서 최저점인 9월 1주에는 38% 지지로 반토막이 났다. 회복국면에서도 50% 지지로 회복세가 가장 더디다. 앞서 말했듯이 오히려 60세 이상의 회복세가 가장 빠른 형국이다. 직업별로 보면 주목해야 할 것은 자영업자다. 평창올림픽 때도 이미 최저임금은 논란이 되고 있었지만, 자영업자층은 지지를 그리 많이 철회하지도 않았고 회복세도 비교적 빨랐다. 이번에는 6월 2주 76%에서 9월 1주 32%로 지지율이 가장 많이 빠졌고, 9월 3주 52%로 회복되긴 했지만 여전히 주부와 더불어 가장 지지가 낮은 집단이다. 두 번의 반등이 있었지만, 첫 번째 반등을 이끈 집단과 두 번째 반등을 이끈 집단은 상당히 다르다.

정치권에서는 지지층을 ‘집토끼’라 부르고 상대 당 지지층을 ‘산토끼’라 부른다고 들었다. 부동층은 ‘들토끼’라고도 한단다. 그런데 장기 추세를 보면 문재인 정부의 경우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영원한 집토끼도 산토끼도 없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최근 몇 달만 보면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던 2030세대는 집토끼인 셈인데, 그들은 평창올림픽 직전 갑자기 가출해서 산토끼가 되었던 적이 있다. 반면 영원한 산토끼인 줄 알았던 60세 이상은 3차 정상회담 이후 갑자기 집에 들어왔다. 물론 언제 또 나갈지 알 수 없다. 그나마 안정적인 집토끼라면 직업별로는 화이트칼라와 학생, 계층별로는 중상층이다(일부의 착각과는 달리 계층별 지지율은 하층에서 꾸준히 가장 낮고 중산층과 상층에서 꾸준히 높다). 그 외의 거의 모든 집단은 집과 산을 번갈아 왔다갔다 한다. 모두가 들토끼인 셈인가.

경제정책 실패를 평화 프레임으로 덮었다는 비판은 틀렸다. 50대와 자영업자는 정상회담 이후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생각지도 않았던 60대 이상이 돌아왔다. 이제야 안심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지지자도 틀렸다. 집토끼가 별로 없다. 이런 현상의 정치적 의미는 무엇인가. 수시로 번갈아가며 집 나가는 토끼를 매번 잡으러 다닐 수 없다는 뜻이다. 다수의 국민들이 동의할 합리적이고 포용적인 지점에서 정치 균열을 만들고 그것을 중심으로 정책과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지어야 한다. 상대가 산에서 들로 내려오기 전에.

<장덕진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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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군의날 행사는 여느 때와 달랐다. 기념식은 1일 서울공항에서 6·25전쟁 국군 전사자 유해봉환 행사로 시작됐다. 조국을 위해 산화한 지 68년 만에 돌아온 64위의 용사를 문재인 대통령은 6·25 참전 용사 대표들과 더불어 정중히 맞았다. 국군의날을 기념하는 본 행사는 오후 6시30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치러졌다. 가급적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저녁 시간대에 맞춘 것이다. 5년 주기로 해온 군사퍼레이드는 생략했다. 대신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서울 상공에서 야간 에어쇼를 펼쳤다. 건군 70돌을 기념하는 행사로 전혀 손색이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군의날 70주년인 1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실시된 국군유해 봉환행사에서 68년 만에 돌아온 6·25전쟁 참전 국군 전사자 64위 유해함에 참전기장을 수여하며 묵념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국군 유해송환은 이번이 네번째였지만 그 의미와 행사의 격이 달랐다. 북한과 미국이 북한 지역에서 공동으로 발굴한 유해 중 국군 전사자로 판명된 64명의 유해에 문 대통령은 일일이 6·25 참전기장을 수여하는 등 최고의 예우를 했다. 비록 늦기는 했지만 전몰자 등 국가 유공자들은 공동체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의지를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이날 남북 군사당국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과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 화살머리고지 일원에서 지뢰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지난 19일 체결된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실행에 옮기는 첫 조치였다. 비무장지대에서 비로소 처음으로 비무장이 실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가수 싸이가 1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서 열린 제70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장병들의 환호 속에 축하 공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수 일각에서는 이번 국군의날 행사가 지나치게 축소되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우리 군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조촐한 기념식을 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의 눈치를 보아 행사를 작게 치른 것 아니냐는 말이다. 언제 적 군대를 생각하는 것인지 참으로 안타깝다. 2015년 중국이 전승기념 70주년을 맞아 대규모 군사퍼레이드를 했을 때 지구촌은 구닥다리 행사라고 비웃었다. 미국은 무기를 앞세워 무력을 과시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장병들만 고생시키는 거창한 퍼레이드가 군을 위한 기념식이라는 주장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현 정부 들어 증강된 국방비가 퍼레이드보다 안보 증진에 더 크게 기여할 것이다. 

청와대는 이날 행사를 설명하면서 “남북이 적대 행위를 중단하기로 했지만 강력한 안보가 평화체제 구축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을 향한 적개심 고취와 대결 조장이 아니라 위기 관리 등에 내실을 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변하는 안보환경의 흐름에 맞춰 국군의날 행사도 조정할 필요가 있다. 남북 간 군사합의를 차질 없이 이행하려면 지속적인 남북 군축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국군의날 행사도 이런 취지에 맞도록 조정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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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국회회담이 본격 추진되고 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1일 여야 5당 대표와 오찬 모임인 ‘초월회’ 모두발언을 통해 “국회회담은 제가 제안을 했고, 9월27일 최태복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 명의의 동의한다는 답신이 왔다”면서 “11월로 생각하고 있고, 인원은 여야 5당 대표를 포함해 30명 규모로 시작할까 하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앞서 최태복 의장은 남북 국회회담을 제안하는 문 의장 친서에 대한 답신을 통해 “역사적인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이행하는 데 쌍방 의회와 각 정당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북남 의회회담 개최 제의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고 호응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9월 평양정상회담 대국민보고에서 “국회회담을 가까운 시일 내에 개최키로 합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이달 중순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구체적인 국회회담의 장소와 규모, 의제 등을 조율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희상 국회의장(왼쪽에서 세번째)과 여야 5당 대표들이 1일 국회 사랑재 앞마당에서 진행된 ‘초월회’ 오찬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남북 국회회담은 역설적으로 정상회담보다 성사가 더 어려웠다. 1985년 북측의 제안으로 10여차례의 예비회담까지 열었으나 불가침선언 등 의제에 대한 견해차로 본회담은 무산됐다. 이후에도 2000년, 2002년, 2004년, 2005년, 2007년, 2008년 남북관계가 변곡점에 처할 때마다 국회회담이 화두에 올랐으나 쟁점을 두고 대립각을 세우다 흐지부지되었다. 무려 33년 동안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는 데 그쳤던 남북 국회회담이 한반도 정세의 대전환 흐름과 맞물려 마침내 성사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남북 국회회담의 성사를 위해서는 초당적 협력이 필수다. 보수적이었던 바른미래당은 “국회와 함께한다는 원칙”을 밝히며 전향적 자세로 돌아섰다. 남은 변수는 자유한국당이다.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부터 반대해온 한국당은 남북 국회회담에 대해서도 미온적이다. 마치 남북관계가 악화되기만을 기다리며, 남북 문제에는 계속 방관자로 남아 있겠다는 꼴이다. 과거 한국당의 전신인 보수정당들도 앞장서 추진했던 남북 국회회담이다. 국회가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일이다. 남북 교류의 문을 더 크게 넓히고, 정부 간 협상으로만 진행되어온 남북관계 발전을 의회 차원에서 뒷받침할 수 있는 기회다. 남북 국회회담을 통해 북한의 진의를 확인하는 과정을 밟게 되면 판문점선언 비준 문제도 풀릴 수 있다. 한국당은 대승적 차원에서 남북 국회회담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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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공부는 시원찮아도 아침에 때맞춰 등교해주면 그것만으로도 신통해서 괜히 엉덩이를 토닥이는 아들바보. 달랑거리며 신나게 뛰거나 편안하게 잠든 아이 모습을 볼 때면 가슴께가 시큰해진다. 잠깐 행복해서 콧방울이 움찔하다가 우리 아이 또래의 그때 그 아이들을 떠올린다. 그때마다 깊은 한숨이 따라 나온다. 2014년 4월16일의 세월호는 현직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로운 정부를 세울 만큼 우리 사회에 충격을 준 대참사였다. 불과 4년여 지났고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활동 개시도 하기 전인데 벌써 잊히고 있는 것 같다. 생명과 안전? 그때 그 약속들은 누가 물어갔는지 추석 연휴에 상도유치원 사고 현장을 찾아가 보았다.

뉴스 보도로만 봐도 너무 이상했다. 유치원 담장 밑까지 후벼 파도록 놔둔 게 놀랍지 않은가. 유치원 옆에는 초등학교까지 있는데 어쩌자고 저리도 심하게 땅을 팠을까 궁금한 나머지 동네를 둘러보았다. 현장에 가까이 가자 지하 특유의 서늘한 냉기가 야트막한 숲의 향기에 섞여 흐르는 듯했다. 31명의 건축주가 건축면적 936.8㎡(283평)에 총면적 4758.68㎡(1439평)의 6층짜리 공동주택을 짓겠다는 안내판 너머 현장은 놀라웠다. 철거된 유치원은 사실상 절벽 위에 있었던 것이다. 수업 중에 무너지지 않은 것에 감사하다고 할 뻔했다.

올해 2월28일 건축허가를 내주었던 동작구청 관계자는 이 건축물이 지하안전영향평가 대상이 되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 유치원에서 애타게 질문하면 구청과 교육청은 담담하게 공문으로 답했다. 9월5일 오전 심각한 균열로 열린 긴급대책회의에 동작구 관계자는 선약이 있다며 회의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날 설계감리자는 “현재 공사 현장은 안전하다”고 호언장담했고 7일까지 보완대책을 수립하기로 했으며 유치원은 수업을 계속했고 9월6일 밤 11시22분경 공사 중 유치원이 기울어졌다. 이 기시감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를 깊이 성찰해온 박노자 교수는 최근 <전환의 시대>에서 이렇게 묻고 있다. “지금도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을 이상화하는 자유주의자들은 앞으로 정권을 보수세력에게 넘겨주지만 않으면 요순시절이 지속될 것처럼 이야기하곤 한다. 국가 시스템이 엉망이고 국정을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신자유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이 과연 시스템 자체를 바꿀 수 있는지, 오히려 김대중 노무현 시절에 신자유주의가 뿌리내린 것은 아닌지 하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도 않은 채 말이다. 착한 임금이 등극하기만 하면 정말 만사가 형통할까?”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신간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유발 하라리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갈 태세고, 기후변화와 핵전쟁의 위협은 묵시록적인 예언을 하고 있으며, 경제뿐 아니라 인간의 의미 자체가 변할 미래에 대비해 학생들의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교육 하면 주로 학생들만 생각하는데 실상 정부기관 공무원의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선출직이 백날 외쳐봐야 아무래도 상수는 공무원이다. 동작구청과 상도유치원 사이의 거리는 1.9킬로미터. 걸어서도 몇분 안 걸리는 거리다. 무슨 더 급한 용무가 있길래 유치원이 무너질 것 같다는 호소를 무시할 수 있었나. 공무원이 그리 나오는데 어느 업자가 긴장하겠나. 유치원이 무너졌으면 어쩔 뻔했나!

선발 기준을 보면 인재상이 보인다. 우리나라 7급·9급 공무원 선발 시험은 공통과목인 국어, 영어, 한국사와 전공과목을 본다. 5급 행정고시는 상황판단과목을 본다. 2018 기출문제 40문항에 폐기물 관련 1개를 제외하고는 환경, 안전, 생명을 묻는 질문은 단 한개도 없다. 재교육은 어떤가.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 국민안전정책과정이 있긴 하다. 재난관리 책임기관의 담당자 교육인데 공직자의 위기관리대응 등 9시간 강의, 재난유형별 역할 토의 및 액션플랜 등 11시간 참여가 전부다.

2016년 7월 전해철 의원이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규모 인명피해를 초래한 재난사고에 기업과 공무원의 책임을 물어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공중이용시설 등의 안전관리위반범죄 처벌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이 법안이 의결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세월호’ 핵심 공무원들이 줄줄이 해외파견된 것만은 알고 있다. 경영구루 피터 드러커의 언명대로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고 하더라도 그 계획이 일로 전환되지 않는 한 그저 좋은 의도에 지나지 않는다. 40도 이상 고온에 어떻게 대처할지 준비도 없이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곧 유례없는 추위와 미세먼지의 계절이 온다. 인도네시아의 쓰나미, 일본의 지진이 언제 우리에게 닥칠지 모른다. 추석즈음 유행했던 질문놀이로 마친다. 공무원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이미경 |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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