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어제 고조되는 북핵 위기를 타개할 방안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5대 긴급 제안’을 내놓았다. 문재인 정부를 향해 북한에 특사를 보내 조건 없는 대화를 시작하고, 6자·4자회담 등 다자회담을 재개하면서 중국 등 주변국과의 외교를 강화하라고 촉구했다. 청와대 외교안보 참모들의 전면적 쇄신도 요구했다. 국가적 위기 앞에서도 정부 비판에만 열을 올리는 다른 야당들과 달리 건설적인 비판과 함께 대안을 제시했다. 오랜만에 보는 신선한 야당의 모습이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5일 오전 정론관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5대 제안 기자회견을 열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임시배치를 중단하고 지난 정부 안보 적폐세력의 밀실 외교에 의한 사드 조기배치의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표가 “강대강 대결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과감한 대화 제안에 나서야 한다”고 한 것은 현실을 정확히 본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한반도 문제를 주도하겠다고 선언해 놓고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 원칙도 전략도 없이 오락가락하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를 이끌어나가기는커녕 그에 휘둘리며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대응수위만 높여왔다. 북한의 핵동결과 한·미 연합훈련 축소·전략자산 배치 철회라는 이른바 ‘쌍중단’을 해법으로 제안한 것도 타당하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최근 종료된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 때 북한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며 훈련을 축소했다고 말한 바 있다. 북한이 꺼리는 한·미 군사훈련을 축소하고 나아가 일부 훈련을 중단함으로써 북한의 핵동결부터 이끌어내는 방안은 현실적이다. 실현불가능한 전술핵 재배치 등 강경 입장만 관성적으로 되풀이하는 보수 야당과 대비된다.

정의당은 그동안 문재인 정부의 인사와 정책에 협조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난맥상을 매섭게 비판하며 대안을 제시했다. 협조할 것은 협조하되 비판할 것은 냉정하게 비판하는 자기 원칙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정의당의 시의적절한 제안을 받아들여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여·야·정 평화협력체 구성 제안도 즉각 시행할 필요가 있다. 대화를 통한 과감한 해법이 필요하다는 정의당의 제안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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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북핵 대응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 큰 틀의 전략과 정교한 실천계획을 마련해 대응해도 모자랄 판에 현안에 대한 임기응변식인 데다 그나마 군사적 대응 위주다.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에 탄도미사일 발사나 고성능 폭탄 투하 훈련으로 맞대응하는 게 대북정책의 전부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북한의 도발적 행태에 대한 임시적 조치일 뿐 적절한 북핵 문제 해결책은 아니다. 북핵 도발에 대한 도덕적 응징이나 분풀이는 될지 몰라도 북핵 문제를 푸는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정부의 북핵 대응과 관련해 최근 현안으로 등장한 것이 전술핵 재배치와 미사일 탄두중량 제한 해제다. 송영무 국방장관이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처음 공개 거론한 전술핵 재배치 전략은 소규모 핵무기를 주한미군에 배치해 북핵과 이른바 ‘공포의 균형’을 이루자는 것이다. 송 장관은 그제 국회 답변에서도 “깊이 검토해봐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야당의 의견을 말했을 뿐이라는 당초 설명과도 다르다.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에서 회원국 대사들이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러나 북한 김정은 정권의 비이성적 핵위협을 고려하면 과연 “공포의 재균형” 전략이 먹힐지 의구심이 든다. 1991년까지 미국이 한반도 전술핵을 배치했을 때 북한이 그 핵을 두려워했다면 핵개발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전술핵 재배치 방안은 북핵 대책으로서의 실효성은 떨어지면서도 한반도 비핵화 명분 상실과 북한 핵무장 명분 제공, 동북아 핵경쟁 촉발 등의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정부 일각에서는 전술핵 재배치 검토를 통해 이에 반대하는 중국으로 하여금 북핵 해결에 적극적인 자세로 전환하도록 하는 효과를 노릴 수 있지 않으냐고 말한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오히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사태처럼 북핵 대응 효과는 없으면서 경제보복만 당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미사일 탄두중량 제한 해제 역시 적절한 북핵 대응책인지 의문이다. 500㎏으로 묶여 있는 미사일의 탄두중량 제한을 풀어줘 파괴력을 높이자는 것이지만 이것이 북핵 억지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알 수 없다. 탄두중량 제한 해제는 사실상 미사일 사거리 연장 가능성을 의미하지만 이는 좁은 한반도 국토를 고려할 때 사실상 불필요한 일이며 중국의 반발을 부를 수 있다. 정부는 대북 제재에서도 강경으로 치닫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통화에서 “최고 수준의 제재·압박”을 거론하더니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는 “차원이 다른, 북한이 절감할 수 있는 강력하고 실제적인 대응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언어에서 대화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있다. 물론 전반적인 북핵 로드맵에 따라 강경·온건책을 적절하게 구사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정부의 강경 대처에서는 전반적인 북핵 대응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위기관리 능력도 미흡하다. 제재와 대화의 병행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북핵 정책 원칙 자체가 무너진 것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정부의 단선적 북핵 대응이 북핵 위기라는 전체 판을 보지 못한 결과라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북핵 문제 전반의 흐름을 지켜보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지 못한 채 눈앞의 현상에만 급급하다 보면 북핵 사태는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 이것이 외교안보 라인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제 대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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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높고 들판은 풍요로운 한반도의 가을, 지금 이곳에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다. 수십년 동안 전쟁의 위협에 무감각해진 국민들은 사뭇 태연하게 일상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내면에 불안과 공포가 커져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본능이다. 날로 험악해져가는 북·미관계에 속수무책인 정부에 대한 비판도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오래전 돌아가신 조부께서는 1970~1980년대 남북관계가 악화될 때면 얼른 짐을 싸서 고향 부여로 내려오라고 하셨다. 제아무리 참혹한 전쟁이라 해도 재래전을 떠올리던 그 시절이 차라리 그립다. 21세기 첨단 전쟁수단 앞에 시골 고향이라고 해서 서울과 다를 바가 무엇이랴? 지금 전쟁이 일어나면 결과는 한반도의 초토화고 우리 모두의 공멸이다.

왜 이토록 극단으로만 치닫는 것일까? 핵을 통해서 체제보장을 받고 존속의 길을 모색하려는 북한과 자기들 중심의 세계질서를 위협하는 ‘악의 축’을 용납할 수 없다는 미국의 대립이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원인이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 볼 때, 지난 10년간 경색되어온 남북관계로 대화채널이 완전히 붕괴되어 ‘코리아 패싱’이라는 유행어가 나올 만큼 속수무책이 된 것이야말로 사태 악화의 핵심적인 원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대화의 채널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정부에 아이들의 목숨과 미래를 맡겨야 하나?

도발, 무력시위, 긴장고조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대화뿐이다. 일방적이고 논쟁적인 선언들이 오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뿐더러 사태를 더 악화시킨다. 6차 핵실험 이후 미국은 원유공급 중단과 북한노동자 송출금지 등 더 강력한 대북 제재를 하겠다고 선언했고 우리 정부도 이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북한은 더 강한 도발을 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북한이 갖고 있는 뿌리 깊은 사고틀이다. 북한 정권은 ‘미국이 언제 무력으로 북한을 괴멸시킬지 모른다’는 공포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고 이 때문에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해왔다. 핵이 본질이 아니라 체제보장이 본질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북한은 웬만한 제재로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1990년대 중후반 국제적 고립과 자연재해로 수백만명이 굶어죽은 소위 ‘고난의 행군’이 단적인 예이다. 인류역사상 그 정도 극한의 상황에서 붕괴되지 않은 정권은 없었지만, 북한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결국 모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화의 통로를 만들어내는 것만이 초토화의 위험에 처한 한반도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갈등은 서로 다른 집단의 의지와 목표가 충돌할 때 발생한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의 사고틀을 이해해야 한다. 사고틀을 이해하면 상대방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무엇을 양보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대립되는 당사자 간에 승리와 패배(Win-Lose), 패배와 승리(Lose-Win)의 결과를 예측하고 서로 공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는 위 두 가지 시나리오는 존재하지 않는다. 양쪽 모두 패배(Lose-Lose)하거나 양쪽 모두 승리(Win-Win)하는 극단의 시나리오만이 존재한다.

현재의 남북이나, 북·미 상황이 이대로 치닫는다면 두말할 것 없이 ‘Lose-Lose’ 게임이다. 남한도 북한도, 북한도 미국도 패배하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Lose-Lose’ 게임의 참혹한 결과를 예측할 정도의 두뇌가 있는 당사자들이라면 윈-윈(Win-Win) 시나리오를 만들어낼 수 있다. 지금 우리는 남한과 북한이, 북한과 미국이 서로 얻고자 하는 것을 모두 얻는 ‘윈-윈 게임’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모색하는 대화의 장을 열어야 한다. 대화는 실무급이든 정상급이든, 휴전선에서 하든 제3국에서 하든 직접 당사자 간에 면 대 면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마주 보고 상호작용을 해야 서로의 의중을 알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한국 정부는 유엔 안보리 상정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유엔으로 가기 전에 ‘남·북·미·일·중·러’가 참여하는 2+4 회담을 통해 윈-윈 시나리오를 만들어보는 것은 너무 한가한 이야기일까?

<신좌섭 | 서울대 의대 교수·의학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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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한 3일 광화문광장은 휴일 나들이 인파로 북적였다. 눈부신 초가을 햇살 아래 시민들의 표정은 밝았다. 아이들은 달리고 소리치고 웃었다. 보수층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안보불감증이라고 개탄했다. 하지만 엄중한 정세라고 해도 이 정도의 행복과 평화조차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은 과도한 엄숙주의다. 70년 가까이 머리띠 두르고 북한 규탄 구호를 외쳤어도 달라진 것은 없지 않은가.

1주일 전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 화성-12형이 일본 상공을 통과해 날아갔을 때 일본은 발칵 뒤집어졌다. 학교가 휴교하고 신칸센이 멈춰서고 신문들은 앞다퉈 호외를 냈다. 일본 정부는 긴급 대피령인 ‘J얼러트’를 발령했다. 지진 때 침착하게 대응하는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반대로 한국인은 지진을 더 두려워한다. 북핵을 머리 위에 이고 사는 한국과 남의 동네 일로 보는 일본의 반응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한 3일 오후 도쿄 거리에서 한 시민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진을 배경으로 한 북한 핵실험 관련 보도를 보고 있다. 도쿄 _ AP연합뉴스

김정은은 핵 도박판을 키우는 데 성공했다. 일본은 기대 이상으로 부응했다. 하지만 북한의 핵·미사일쇼의 가장 충실한 관객은 도널드 트럼프다. 누구보다 빨리, 자주 반응한다. 반응 패턴은 불가측하고 피아를 넘나든다. 북한이 도발을 멈추면 김정은을 극찬하고 도발하면 장롱 속 군사옵션을 꺼내든다. 트럼프가 중심인 국제사회 북핵 대응체제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트럼프의 발언에는 사실과 의견이 섞여 있다. “미국은 지난 25년간 북한과 대화를 해왔고 터무니없는 돈을 지불했지만 대화는 답이 아니다”라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북한과 대화를 죽 해온 게 아니라 하다 말다 했다. 클린턴이 대화 창구를 열어놓으면 부시가 창구를 닫는 식이었다. ‘터무니없는 돈’이란 말도 사실과 다르다. 미국은 북·미 제네바 합의로 북한에 중유와 식량을 제공했지만 북한은 그 대가로 핵프로그램을 중단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북핵 사태의 수혜자인 트럼프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트럼프는 북핵 사태를 주도하면서 러시아 스캔들 등으로 흔들리는 국내 정치적 기반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터무니없이 돈을 쓰는 건 북한이다. 가장 발사비용이 싼 스커드미사일만 해도 1발에 600만~1000만달러인데, 북한은 지난 6년간 60발이 넘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이 나라 곳간을 털어 도발하는 것을 트럼프는 감사해야 할 입장이다. 사학스캔들로 지지율이 폭락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북한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김정은의 핵도박은 지금까지는 성공적이다. 의도치 않게 아베와 트럼프의 정치적 환경을 개선해주기도 했지만 한반도 정세 주도권을 쥐고 강대국들을 호령하는 편익이 훨씬 더 크다. 그러나 앞으로도 성공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김정은은 핵보유국 지위와 영구적 체제생존을 최종목표로 추구한다.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려면 미국과 대등한 핵억지가 형성돼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게 핵무기 종류의 다양화와 운반체계 완비를 뜻하는 다종화다. 북한은 핵무기 종류는 구비하고 있지만 운반체계는 그렇지 못하다. 일종의 소모품으로 200대가량 보유 중인 미사일 발사대가 대표적인 사례다. 제작 기술은 없는데, 유엔 제재로 수입할 길은 막힌 상태여서 언제 동이 날지 모른다. 향후 발사대 부족으로 미사일이 무용지물이 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북한은 과거 병뚜껑 제조기술 부족으로 생활필수품인 병 생산에 애를 먹은 적이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 법이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용 잠수함도 버거운 문제다. 발사관 3개짜리 대형 잠수함을 건조해야 하는 데 비용, 시간, 기술 모두 북한 편이 아니다. 미국과의 핵경쟁은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려는 것과 유사하다.

기술적 난관을 극복했다고 해도 문제가 끝나는 건 아니다. 미국이 자신을 핵으로 위협하는 북한에 핵보유국 지위를 내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6차례 핵실험 후 핵보유국 지위를 획득한 ‘파키스탄 사례’를 내심 기대하고 있겠지만 두 나라는 차이가 크다. 파키스탄은 미국을 위협하지 않았고 국제사회와 반목하지도 않았다. 파키스탄의 핵이 숙적 인도만을 겨냥하고 있다는 믿음도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북한은 이 중 어느 대목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김정은의 핵도박은 갈수록 위험해지고 있다. 핵무력 교리도 어느덧 안보와 생존의 수단에서 공격 중심으로 변질됐다. 자위 차원의 핵개발 명분도 상실했다. 생존을 넘어 국제정치 현실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강대국을 꿈꾸는 것 아닌가 의심스럽다. 불가능하고, 추구하면 안되는 끔찍한 망상이다. 묻고 싶다. 북한은 왜 핵국가가 되려고 하는가.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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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국회가 개원했다. 문재인 정부는 시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매우 성공적으로 출범하기는 했지만, 이제 본격적인 시험대에 들어섰다. 그 어지럽기로 소문난 ‘여의도 정치’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야당들은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새 대표는 ‘강한 야당’에 대한 결기를 분명히 했고, 자유한국당은 엉뚱한 트집을 잡아 아예 국회 보이콧을 선언했다. 정의당을 제외한 야 3당은 이른바 ‘반문연대’를 형성할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자칫 정국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많은 개혁과제 해결이 때를 놓치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벌써부터 몇몇 논객들은 문 대통령이 시민들의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열망이나 국정운영에 대한 높은 지지율에만 기대려 한다며 우려하던 터였다. 문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만 내세우고 의회정치와 정당정치의 문법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심지어 문 대통령이 대의제를 채택한 헌법 정신을 부정하고 있다거나 ‘지지율 독재’를 한다며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그러면서 협치를 주문하고 타협과 양보를 요구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아직도 진행 중인 ‘시민혁명’의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핵심 과제의 하나가 바로 정치적 체제 전환이다. 촛불시민혁명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87년 체제의 통상적인 정부들과는 달리 이 체제를 끝장내고 더 좋은 질을 가진 새로운 민주주의 체제를 탄생시켜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을 갖고 있다. 촛불시민들은 무엇보다도 자유한국당으로 대변되는 반민주 적폐세력을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시키라고 명령했다. 툭하면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지만, 자유한국당은 이념적 편협함으로 보나, 그동안의 정치행태를 보나 도무지 다원적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건강한 보수 정당이라고 보기 힘들다. 이번의 국회 보이콧 작태만 보더라도 이는 너무도 분명하다. 이 당은 사법부의 판단을 정부의 언론장악 시도와 연결시키지만, 그것은 자신들이 집권기에 사법부도 조종하고 언론도 장악해 왔음을 사실상 고백하는 것일 뿐이다. 자신들이 그랬으니 현정부도 그럴 것이라고 말이다. 비록 우리가 자유한국당의 현실적 위상을 무턱대고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이제 저 당이 자유민주주의를 팔면서 우리 정치의 중심축이 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보아서는 안된다. 만약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여소야대 현실을 빌미 삼아 이런 반자유민주주의적 수구 정당과 섣부른 타협을 해서 촛불정신을 배반한다면, 그런 선택이야말로 오히려 커다란 민심이반을 낳을 것이다.

협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교과서적인 의회정치의 문법이 아니라 진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내기 위한 정치적 동맹이다. 과거로 회귀하려는 반문연대의 시도에 맞서 촛불시민들의 명령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동참했던 정치세력들의 연대, 말하자면 ‘촛불연대’를 새로운 차원에서 복원해 내야 한다. 그 연대야말로 민주공화국의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를 지켜내기 위한 연대였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극중주의가 자유한국당과 민주당 사이를 기계적으로 저울질하지 못하게 막아야 하고, 바른정당이 보수대연합을 명분으로 자유한국당을 기웃거리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야당들이라고 그저 들러리만 서려 하지는 않을 터이다. 민주당이 앞장서서 자유한국당이 없거나 소수화된 미래의 새로운 정치 체제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제시하면서 다른 야당들에 분명하고 실질적인 정치적 이익을 줄 수 있는 연대의 끈을 제시해야 한다. 소수 정당의 생존과 위상을 확실하게 보장해 줄 수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확대하는 방향의 선거제도 개혁이 그런 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개혁을 통해 진보 정당이 더 커지고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자유한국당의 자리를 대체하는 다당제가 성립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양당중심제보다는 민주당을 위해서나, 사회개혁을 위해서나 훨씬 낫다. 그런 방향의 선거제도 개혁은 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지 않는가.

직접민주주의가 그 자체로 언제나 민주주의의 질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가 단적인 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시민들의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기본적으로 우리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했다. 우리 대의제는 다름 아니라 시민들을 제대로 대의하지 못해서 위기에 빠졌다. 무엇보다도 승자독식을 원칙으로 하는 현행 단순다수결 소선거구제에서는 패배한 후보를 지지한 시민들의 의사는 전혀 대변되지 못한다. 정치권은 시민들의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그 열망에 고장 난 대의제를 수리함으로써 응답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바람직한 선거제도에 대한 숙의의 과정을 ‘시민배심원단’에 맡겨도 좋겠다.

<장은주 | 영산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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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안보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4일 국회 본회의가 열렸지만 자유한국당은 불참했다. 국회는 북한 핵실험을 규탄하고 강력하고 실효적 제재 방안 마련을 촉구하는 대북결의안을 채택했지만 결과적으로 제1야당이 빠진 ‘반쪽 결의’가 됐다. 그 시간에 한국당은 MBC 김장겸 사장 체포영장에 반발해 국회 로텐더홀에서 “문재인 정권은 공영방송 장악음모를 중단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한국당은 “안보 문제만은 초당적으로 임한다”면서 이날 열린 국방위·정보위 등 안보 관련 상임위에 참여하긴 했다. 하지만 다른 의원들은 국회를 뛰쳐나와 고용노동부와 대검을 항의 방문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다. 말이 앞뒤가 맞지 않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7년9월4일 (출처: 경향신문DB)

 

지금 우리는 북핵이 턱밑까지 다다른 최악의 안보위기에 처해 있다. 자고 일어나면 국제사회는 대북 제재를 더하거나 새로운 방안을 내놓는 등 눈이 핑핑 돌 지경이다. 이 판국에 한국당은 국회 보이콧도 모자라 장외에서 문재인 정부를 규탄하는 대규모 국민보고대회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시민의 공감대와는 동떨어진 정략적 이벤트다. 홍준표 대표는 “전대협 주사파, 안보·북핵 경험이 전무한 청와대 국가안보실, 4강 외교 경험이 전혀 없는 외교수장, 무기 브로커 출신 국방부 장관, 대북 협상만 하던 국정원장 등 이런 참모들이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야 간 대북정책은 다를 수 있다. 정부 대응이 잘못됐다면 따질 건 따져야 한다. 하지만 비판도 때가 있다. 야당에 지금 필요한 것은 정부와의 차이를 접어두고 합심협력, 북핵 대책을 강구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고 무슨 호재라도 잡은 양 정치공세의 불쏘시개로 삼아 오히려 위기를 부추기고 정부 발목이나 잡는 건 책임 있는 정당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예측 불가능한 북한 정권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분열과 방심이다. 북한 도발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도 우리의 단결되고 결연한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가안보 차원의 중대한 사태를 맞아 정치권이 단합된 모습을 보일 때 민심도 안정될 것이다.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사명 앞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마침 어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각당 대표를 청와대에 초청해 회동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야당 대표가 적극 호응, 정쟁을 중단하고 안보위기 극복을 위한 결의를 과시하기 바란다. 국가위기 상황에서 초당적으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북의 도발을 억제하고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이 건재함을 알리는 분명한 메시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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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어제 기어코 6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지난해 9월9일 5차 핵실험 이후 1년 만에, 그리고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모색하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넉달 만에 핵실험을 한 것이다. 북한은 핵실험 3시간 뒤 조선중앙TV를 통해 “대륙간탄도로켓(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에서 완전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ICBM 시험발사에 이은 북한의 6번째 핵실험 도발로 한반도 정세는 중대 국면을 맞이했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한 인공지진 규모는 5.7이다. 폭발위력이 지진규모 5.04(10㏏)였던 5차 핵실험의 5~6배에 달하는 것이다. 진짜 수소탄의 폭발위력 100㏏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동안의 핵실험 중 폭발력이 가장 강했다. 북한은 ICBM급 ‘화성-14형’에 탑재할 수소탄 핵탄두를 개발했다고 주장하면서 관련 사진까지 공개했다. 이 때문에 당국도 인공지진 규모로 미뤄 수소탄 실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수소탄을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수소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핵 기술을 최고 수준으로 진전시키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한 북한은 핵탄두 소형화 등 핵무장화 마지막 완성 직전 단계에 도달했을 가능성이 높다.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위협 이후 25년 만에 핵 무장을 완성하기 일보직전까지 온 것이다.

4일 새벽 동해안에서 육군의 지대지 탄도미사일인 현무를 발사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우리 군은 오늘 새벽 일출과 더불어 공군 및 육군 미사일 합동 실사격훈련을 실시했다"며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한 강력한 경고 차원"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격에는 육군의 지대지 탄도미사일인 현무와 공군의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동해상 목표 지점에 사격을 실시해 명중시켰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은 비핵화·탈핵 흐름에 역행하고 한반도를 위시해 평화를 원하는 전 세계 시민들의 뜻을 거스르는 망동이다. 문재인 정부의 평화적 해결노력도 북한은 철저히 묵살했다. 김정은 정권 하나의 보위만을 위해 전 세계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볼모로 핵도박을 강행하는 북한을 강력히 규탄한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경고를 무시하고 자기 일정표에 따라 움직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핵개발의 명분을 미국의 핵위협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그런 주장은 명분을 잃었다. 북한의 핵개발 수준은 자위적 차원을 넘은 지 오래다. 공세적 도발의 주체가 북한인 것은 어떤 논리로도 덮을 수 없는 사실이며, 피해자인 양 행세하는 것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혈맹이라는 중국도 핵개발에 극구 반대하고, 북핵에 관한 한 북한을 두둔하는 나라는 한 군데도 없다. 한국 정부마저 등을 돌리면 북한은 기댈 곳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고립무원 속에서 김정은의 광기 어린 핵무기 집착이 계속되는 한 국제사회가 어떤 제재와 압박을 가해도 북한은 항변할 수 없다. 북한은 당장 도발을 중단하고 국제사회가 내민 손을 잡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 전체회의를 긴급 소집한 뒤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등 단호한 대응을 천명했다. 한·미 양국 합참의장은 전화 통화를 하고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군사적 대응 방안을 준비해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북한은 한반도에 전운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도발로 어떤 것도 얻어낼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인민의 희생을 강요하며 핵개발에 몰두하는 정권이 오래갈 리 없다. 북한이 핵무장 완성에 이르려면 핵탄두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 마지막 관문을 넘어야 한다. 남은 시간이 길지 않은 만큼 미국, 중국 등 관련 당사국들은 북한의 폭주를 멈출 실효성 있는 카드를 만들어내야 한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특단의 대책이 화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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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야당은 빈곤의 악순환에 깊이 빠져들고 있다. 오랜 기간 그 쳇바퀴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다. 몰락을 인정하지 않고, 다시 설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이 그들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한 그렇다.

망하지 않았다는데, 왜 버림받았는지 반성을 할 턱이 없다. 억한 심정 탓에 남의 흠만 크게 보인다. 반등의 출발점이 성찰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들 앞에 놓인 ‘어둠의 터널’은 끝을 헤아리기 어렵다.

그들은 “모든 게 박근혜 때문”이라고 착각한다. 박 전 대통령을 쫓아내고 친박근혜계 일부를 정리하면 고생 끝이라는 자유한국당의 헛된 기대는 거기서 나온다. 박 전 대통령 출당을 핑계로 호시탐탐 한국당 복귀를 노리는 바른정당 절반의 의원들 생각도 같을 터다. 물론 박 전 대통령과 친박 청산은 필요하지만 그게 다는 아닐 것이다. 박근혜 그늘에서 10년간 단물을 빼먹었던 그들은 국민들에게 국정농단 공범일 뿐이다. 박 전 대통령은 감옥에라도 갔지만 이들은 벌을 받지도, 참회하지도 않았다. 몇 사람 정리해도 여론은 안 돌아선다.

특히 한국당과 민심의 거리는 지구에서 안드로메다만큼이나 먼 것 같다. 지난달 24~25일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에선 맨얼굴이 보였다. “한국당이 부활하기 시작했다”는 홍준표 대표의 궤변에 뒤이어 등장한 홍문표 사무총장은 “돈 없고, 조직 없고, 정권 빼앗겼다”고 했다. 대표는 당이 부활했다는데, 당 살림을 책임지는 사무총장은 파산을 선언한 것이다. 당 홍보책임자는 “홀딱, X됐다”며 무질서 드라마를 코미디로 끝냈다.

요즘 한국당 분위기는 어수선하다. 당 지도부인 최고위원회의 수준은 한참 떨어진다는 말이 들린다. 중앙정치 경험이 없는 원외에 극우성향 인사들로 채워지다 보니, 현실 인식이나 발언 내용이 한심하다는 것이다. 극우보수들로 채워진 혁신위원회가 주도한다는 쇄신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머리가 그런데, 비대한 몸통이 잘 굴러갈 리 없다. MBC를 망가뜨린 김장겸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를 언론파괴 공작이라며, 정기국회 보이콧까지 결정한 것은 비웃음을 살 것이다. 명백한 증거가 있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국정농단을 두고 “집요한 보복”이라고 우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올린 담뱃값을 다시 내리자며 ‘서민감세’를 주장하는 뻔뻔함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현실이 암울하고, 출구가 안 보일수록 빠지기 쉬운 것이 집단최면과 과대망상이다. 이런 병적 징후를 보이는 집단은 현실을 외면한 채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난다. 홍 대표가 “연말이면 과거 지지층이 회복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모습이 딱 그렇다. 홍 대표가 극우인 류석춘 연세대 교수를 혁신위원장에 앉힌 것도, 그로부터 듣기 좋은 말만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보수개혁을 내세웠던 바른정당은 비틀거리고 있다. 절반에 이르는 의원들이 박 전 대통령 출당을 고리 삼아 한국당에 돌아갈 것이란 소문으로 어수선했던 터에, 당 대표 금품 수수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 대선 때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데려오기 위한 ‘떴다방’을 만들기 위해 한국당을 떠났던 다수 의원들은 오히려 몰락을 반길지 모른다. 수구보수와 결별하겠다며 몸부림쳤던 일부 의원들이 떠오르지만, 안타깝게도 이게 현실이다.

이런 난장판에서 보수야당들이 내놓은 해법은 고작 통합이다. 박 전 대통령도 정리수순으로 접어들었으니, 통합으로 일어설 일만 남았다고 이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흉한 것들끼리 합치면, 꼴도 보기 싫은 흉물이 될 수 있다. 한국당과 바른정당이 어떤 형태로 합치든 두 배로 보기 싫은 모습이 될 것 같다.

최근 <쫓겨난 사람들>이란 책을 읽으면서 맥락없이 보수야당을 떠올렸다. 미국에서 네번째로 가난한 도시라는 밀워키의 도시 빈민들이 잘못된 주거정책 등의 이유로 살던 집에서 반복적으로 퇴거되는 등 가난과 불평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세밀하게 담은 책이다. 구조적 모순에 신음하는 책 속 빈민들에게 죄송스럽지만, 이 책을 보수야당과 연관짓게 된 것은 ‘퇴거’라는 말 때문이었다.

책 속 빈민들은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쫓겨나기(퇴거)를 반복하는데, 보수야당이 이런 악순환에 빠졌다는 데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 집권당에서 야당이라는 작은 집으로 쫓겨났지만, 곧 극우정당이라는 단칸방으로 밀려나고, 이대로라면 거리에 나앉을 수도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모든 반등의 출발점은 성찰이다. 왜 이 꼴이 됐는지 생각하고, 잘못에 대한 진지한 용서를 구하라. 보수통합이라는 어설픈 정치공학으로 덮으려 한다면 정치권 보수들의 추락은 끝없을 것이다.

<이용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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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벼락처럼 떨어지자 여름이 게 눈 감추듯 사라져버렸습니다. 흩날리는 봄꽃 속에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어느덧 4개월. 그동안 새 정부는 어려움 속에서도 국민들이 원하는 많은 일을 추진해왔습니다. 불철주야 정부를 진두지휘하는 대통령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부 과학기술 관련 인사는 실패였습니다. 박기영 교수와 박성진 교수의 고위직 지명은 과학기술자들에게 큰 실망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에 대한 청와대의 해명이 나올 때마다 실망은 좌절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번 인사 실패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과학기술에 대한 새 정부의 철학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마저 듭니다.

과학기술은 누적적으로 발전합니다. 어제의 실험결과를 바탕으로 오늘의 실험을 이어가고, 다른 연구자의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연구를 계획합니다. 지뢰밭을 지나갈 때, 앞사람이 안전하다고 꽂아놓은 표시를 뒷사람이 밟고 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빨리 가기 위해서 거짓표시를 꽂는 사람에게 관용은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공(功)이 크더라도 연구결과 조작에 연루된 사람은 과학계에 발붙일 수 없습니다. 과학계에서 황우석 교수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창조론 논란에 이어 뉴라이트 사관 문제 등 '이념논란'이 불거진 박성진 초대 중소기업벤처부장관 후보자가 8월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논란 해명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혹시라도 청와대에서 ‘누구나 과(過)는 있게 마련이고 일만 잘하면 그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면, 그는 과학의 본질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조작은 과학에서 조금의 관용도 받을 수 없는 범죄입니다. 과학기술계는 구호를 앞세우고 필요하다면 거짓도 서슴지 않는 불도저형 리더십보다 과학을 제대로 아는 정직하고 소통하는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과학은 의심에서 출발합니다. 의심에 대해 가설을 세우고 물질적 증거를 모아 결론을 내리는 것이 과학입니다. 태양이 정말 돌고 있을까 의심했던 갈릴레오는 별의 운동 자료를 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지구가 돈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미리 결론을 내려놓고 그것에 결과를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은 과학이 아닙니다.

창조과학은 성경에 있는 문자 그대로의 내용을 입증하기 위해 과학을 끼워 맞춥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과학은 아닙니다. 과학으로 신을 입증하려는 것이 제대로 된 기독교신앙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 내용은 조악하다 못해 황당한 수준이라 여기서 논할 가치조차 없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창조과학을 과학이라 주장하며 그 세를 넓히기 위해 조직적으로 행동해왔다는 점입니다. 2012년 이들의 청원으로 교과서에서 진화론이 빠질 뻔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생물학계의 개입으로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이 사건이 과학저널 네이처에 소개되며 한국이 국제과학계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박성진 후보는 한국창조과학회의 이사를 맡았던 핵심인물입니다. 청와대가 그를 비호하며 내놓은 해명은 “개인이 가진 종교는 공직자로 임명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신앙은 검증 대상이 아니다”입니다. 하지만 창조과학은 종교가 아니라 과학의 문제입니다. 저는 박성진 교수가 ‘신에 의한 세상의 창조’를 ‘믿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신에 의한 세상의 창조’를 ‘과학’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사이비과학의 폐해를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20세기 초 구소련에서는 과학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트로핌 리센코가 스탈린의 총애로 과학계 지도자가 됩니다. 그는 반(反) 마르크스주의 이론이라며 유전자의 존재조차 믿지 않습니다. 결국 그의 엉터리 정책으로 소련의 농업은 붕괴합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일부 사이비과학 추종자들이 백신접종을 거부하여, 박멸되었던 홍역이 귀환하는 비극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창조과학과 같은 사이비과학은 과학에 대한 심각한 위협입니다. 미국 국립과학원은 창조과학은 과학이 아니라고 못 박았습니다. 그런데 창조과학의 핵심인물이었던 사람이 과학기술 관련 부처의 장이 된다면 이것은 그 자체로 코미디입니다. 저는 제가 지지하는 정부가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김상욱 | 부산대 교수·물리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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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국무총리께.

지난 8월29일 국무회의에서 “홀트아동재단(복지회) 등을 포함해 우리 아이들을 입양해주는 해외기관에 정기적으로 감사편지를 보내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하셨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저는 입양제도 개선을 위해 일했던 사람으로서, 사석도 아닌 국무회의에서 하신 말씀을 접한 뒤 참담함을 금할 수 없어 이 글을 씁니다.

총리께서는 ‘감사할 줄 아는 국가 이미지’를 주자고 하셨습니다. 그럴 만한 일이면 마땅히 그래야지요. 지난해 해외입양된 아이는 334명. 예전보다 줄긴 했으나 저출산을 걱정하는 판국에 하루 한 명꼴로 해외입양을 보냈습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가장 오래 해외입양을 보내왔고, 지금도 OECD 회원국 중 해외입양을 보내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GDP 규모 세계 12위인 나라에서 친생부모가 버린 아이들 300여명을 사회가 거두지 못해 여태 해외로 보냅니다. 이게 감사할 일입니까?

게다가 ‘입양해주는 기관’에 감사하자고 하셨지요. 국가가 아닌 민간기관이 입양을 맡는 게 한국 입양제도의 가장 큰 문제인데, 여기에 감사하자고 하시니 아연할 뿐입니다. 2012년 입양특례법 개정으로 최종 단계에서 법원이 허가하는 모양을 갖추었으나 여전히 입양 절차의 시작은 민간기관에 맡겨져 있습니다. 한국이 1991년 유엔 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하면서 채택을 유보해 여태 국제사회에서 비판받는 항목이 있습니다. 입양 과정을 공공기관이 책임져야 한다는 21조 (a)항입니다. 입양을 보내면서 이 조항 채택을 유보한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뿐입니다. 해외입양 과정에서 인신매매를 방지하기 위한 헤이그 국제아동협약에도 한국은 아직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감사할 일입니까? 

정부가 책임지지 않아 팔려가듯 해외로 입양 간 아이들은 종종 생사의 위기에 놓입니다. 2014년 초 세 살배기 입양아 현수를 폭행해 숨지게 한 미국인 양아버지는 심한 정신적 장애가 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미국 국내입양이었더라면 기준 미달로 허가받지 못했겠지만 해외에서 온 현수에겐 다른 기준이 적용된 것이죠. 그뿐 아닙니다. 가정법원이 입양허가를 시작하기 이전에 미국에 입양된 한국 아이들은 입양부모가 따로 시민권 취득 절차를 밟지 않으면 무국적 상태에 놓였습니다. 한국 정부도 해외입양을 보내는 순간 자동으로 아이들의 국적을 박탈했습니다. 입양이 민간기관들 사이에서 이뤄지다보니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은 것이죠. 그렇게 무국적자가 된 해외입양인 2만여명 중 한 명인 김상필씨는 한국에 돌아와 자신에 대한 기록을 찾다 실패하자 지난 5월 결국 한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습니다. 이게 감사할 일입니까?

흔히들 해외입양이 6·25 직후 전쟁고아를 대상으로 했다고 생각하지만, 해외입양은 한국 경제 초고속 성장기인 1980년대에 가장 많았습니다. 그 대다수는 미혼모의 아이들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지난해 입양된 아이들의 92%는 미혼모의 자녀입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결혼한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정상가족’의 틀을 벗어나면 입양을 통해 아이에게 ‘제대로 된’ 가족을 찾아주는 게 더 좋다는 인식, 즉 강력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그 혐의를 둡니다. 정상가족의 순수함을 훼손했다고 여겨지는 미혼모들의 가슴에 주홍글씨를 찍어온 탓에 지금까지 그 많은 미혼모 자녀들의 해외입양이 진행됐던 것이지요.

미혼모 자녀를 입양으로 몰아가던 관행은 과거 서구 사회에서도 있었습니다. 2013년 호주 정부는 무지막지한 입양으로 “어머니에게서 아이를 분리하도록 강요했던 정책과 관행들이 그들에게 평생 고통을 남긴 것”에 대해 공개 사과했습니다. 한국에선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미혼모와 해외입양인들의 오래된 고통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제 부끄러운 역사인 해외입양은 중단돼야 합니다. 정부가 우려하는 저출산 극복을 위해서라도 미혼모에 대한 차별을 걷어내고 가족의 형태와 무관하게 모든 부모가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국내입양에서도 입양 절차의 시작부터 끝, 그 이후까지 정부가 책임져야 합니다. 입양과 관련하여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감사’가 아니라 과거에 대한 사과와 마땅한 공적 책임을 지는 것임을 총리께서 다시 한번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김희경 인권정책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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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무 국방장관이 미국의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및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의 연쇄 회담에서 전술핵 한반도 재배치 문제를 공식 거론했다. 송 장관은 핵잠수함 도입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그러나 전술핵 재배치와 핵잠수함 도입은 보수층이 북핵 문제로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꺼내들었던 비현실적이고 위험한 카드다. 정부가 그간 국제사회와 함께 기울여온 북핵 문제의 평화로운 해결 노력을 송두리째 부정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마저 위험한 역주행을 시작한 것인지 묻고 싶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취임 후 첫 미국 방문을 위해 29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송 장관은 30일 워싱턴DC 미국 국방부 청사에서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과 회담을 한다. 연합뉴스

소형 핵무기를 의미하는 전술핵은 수십년간 주한미군에 배치돼 있었으나 1991년 철수했다. 미국의 핵무기 감축 선언과 남북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계기였다. 따라서 이제 와서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것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무력화하고, 북한에 핵개발 명분을 제공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전술핵 재배치는 북핵 억지력을 높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동북아에 핵개발과 군비경쟁을 가속화하는 자해행위에 가깝다. 게다가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핵우산 보호를 받고 있다. 정부의 입장도 전술핵 재배치 반대다.

핵은 핵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공포의 균형’ 발상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적대국가 간에 핵무기를 보유하면 평화가 찾아오는 게 아니라 첨단화, 정교화 경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핵개발의 원인인 적대감을 해소하는 것이 유일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 대비해 핵잠수함이 필요하다는 주장 역시 무모하다. 핵잠수함은 한반도의 좁은 해역을 감안할 때 불필요할 뿐 아니라 중국 등 주변국을 자극할 게 뻔하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송 장관의 발언이 무력시위 맞대응 등 정부의 대북 대처가 점점 강경해지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전술핵 재배치를 검토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도 마음에 걸린다. 국방부는 송 장관 발언 직후 “야당과 언론에서 그런 요구를 하고 있다고 미국에 전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 해명이 더욱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왜 야당의 의견을 양국 국방장관 회담 의제로 삼았는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평화를 추구한다는 정부가 전술핵 도입 문제를 미국 국방부 장관과 논의한 것 자체가 심각한 자가당착이다. 정부는 한·미 사이에 무슨 얘기가 오가고 있는지 당장 진실을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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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이 관리하는 국가기록유산 사이트(www.memorykorea.go.kr)는 한국의 우수한 기록문화유산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만든 곳이다. 예를 들어 검색창에 ‘삼국유사’를 넣으면 삼국유사의 서지, 해제, 원문 텍스트를 볼 수 있다. ‘이순신’을 치면 난중일기는 물론 징비록에서 이순신이 언급된 부분도 금세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경향신문 취재 결과 이 사이트에 오른 국보 제76호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 중 상당수에 오·탈자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자를 같은 발음의 다른 글자로 표기하거나, 아예 글자나 문장 전체가 누락된 사례도 있었다.

이는 초서체의 난중일기를 정자화해 디지털로 입력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오류로 보인다. 애초 디지털화의 저본으로 삼은 난중일기에 오류가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화재청은 오류 지적이 잇달아 나오자 이를 수정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난중일기를 시작으로 국가기록유산 사이트에 오른 기록문화유산의 오류 수정 작업을 계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물론 소수의 연구자들을 제외한다면 난중일기 속 한자 오류를 알아낼 시민은 많지 않다. 국가기록유산 사이트의 난중일기에 오·탈자가 있다고 해당 유산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디테일이다. <이순신의 일기>를 펴낸 최희동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기존 자료를 참고했더라도 오류가 있었다면 개선되어야 한다”며 “난중일기 원본을 보면 아름다움이 있는데, 웹사이트는 그저 글자만 전달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한 문화의 오랜 정수를 세심히 살펴야 하는 문화재 분야 특성상 떠들썩한 홍보보다는 진중한 연구와 무오류가 필요하다. 일제강점기에 재제작된 것으로 뒤늦게 밝혀진 덕종어보를 둘러싼 최근의 논란 역시 엄밀한 조사와 연구에 앞서 ‘환수’ 자체를 홍보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음식은 못 만들면서 홍보만 요란한 음식점은 결국 문을 닫는다. 진중하고 또 진중해야 하는 문화재 관련 기관은 말할 것도 없다.

<백승찬 |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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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초대 주미대사에 조윤제 서강대 교수가 내정됐다. 주중대사에는 노영민 전 국회의원, 주일대사에는 이수훈 경남대 교수가 각각 낙점받았다. 정부 출범 100여일 만에 러시아를 제외한 주변 3국 대사 진용이 갖춰진 것이다. 3명 모두 비외교관 출신이고, 문재인 대선캠프에서 일했거나 노무현 정부와 인연이 있는 인물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무난한 인사 같지만 위기의 한국외교 현실은 ‘무난함’에 만족할 상황이 아니다. 특히 조 내정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따져볼 대목이 많다.   

청와대는 그가 다양한 실무경험과 이론을 겸비한 국제경제 분야 전문가로 주영국대사를 지내는 등 외교역량을 보유한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가 실무경험과 이론을 겸비했다고 평가받는 분야는 경제다. 영국대사직이 미국대사의 자격증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재론할 필요도 없다. 그는 외교안보 현안인 북핵과 북·미관계, 한·미관계를 직접 다뤄본 경험이 전무하다. 그래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를 상대로 그가 북핵과 동맹 관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굵직한 외교현안들을 잘 다룰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렇지 않아도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이 경쟁력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판이면 주미대사라도 최선의 인물을 찾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적임자를 찾아냈는지 확신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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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이승만·박정희 독재를 찬양하고 1948년 건국을 주장하는 뉴라이트 사관을 옹호한 사실이 밝혀졌다. 박 후보자는 포항공대 교수 시절인 2015년 2월 학교에 제출한 연구보고서에서 이승만 독재에 대해 “자유민주주의를 알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만들기 위한 독재”라고 주장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치철학에 대해선 “조국근대화에 대한 열망”으로 평가하며 ‘유신과 중화학공업’을 예시했다. 유신독재를 근대화 열망으로 미화한 것이다. ‘일제 장교를 통한 일본과의 비교: 일본이 하면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대목에선 일본군 복무 경험까지 긍정적으로 해석했다고 한다. 믿기지 않는 얘기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7년8월30일 (출처: 경향신문DB)

중소벤처기업부는 중소기업·벤처기업·소상공인 전체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는 곳이다. 1996년 산업부 외청으로 만들어진 지 21년 만에 장관 부처로 새로 탄생했다. 할 일도 많지만 기대도 크다. 혁신을 선도해야 할 부처의 수장에 케케묵은 뉴라이트 사관으로 정신무장한 사람을 기용하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8·15 건국절 제정과 친일·독재를 미화한 역사 국정교과서를 적폐 1호로 규정하고 폐기를 지시한 바 있다. 그렇다면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 적폐를 앉히려는 꼴이다.

박 후보자는 진화론을 부정하고 신이 생명을 창조했다는 창조론 연구 단체의 이사 경력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 2015년 포항 아파트 분양권을 매입하면서 프리미엄 시세가 3000만~4000만원인데도 계약서에 450만원으로 신고해 다운계약서 거래 의혹도 받고 있다. 출범 100일이 지나 고르고 고른 마지막 장관 인사가 이 모양이다. 오죽하면 보수야당에서도 “유신 찬양 장관 후보자는 우리 입장에서도 레드라인을 넘었다”(바른정당 하태경 의원)는 말이 나오겠는가. 이번 인사는 하루빨리 철회하는 게 옳다.

이런 인사 실패가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한두 번은 실수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되풀이된다면 인사검증 시스템이 단단히 고장났다고 볼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잘못된 인사를 늦게라도 철회하기는커녕 그대로 강행하는 고집과 오기다. 청와대는 이미 시민의 신뢰를 잃은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도 임명을 강행할 태세다. 검증도 못하고, 문제를 알고도 고치지 않으니 보통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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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파기환송심에서 정치개입과 선거개입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돼 징역 4년을 선고받고 30일 법정 구속됐다. 당초 2심의 징역 3년형보다 처벌 수위가 높아진 것이다. 사필귀정이다.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김대웅 부장판사)는 원 전 원장 재직 당시 국정원이 장기간 조직적으로 정치·선거에 관여했다는 검찰의 기소 내용을 받아들였다. 헌법 제7조는 공무원을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규정하고 있다. 공무원은 직무 영역에서 지위 고하를 불문하고 정치적 중립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국정원도 예외일 수 없다. 특히나 국정원은 막대한 예산과 광범위한 조직을 거느린 핵심 정보 기관이다. 국정원이 정치적 중립을 잃는 순간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진다. 그러나 원 전 원장은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저버리고 이명박 정부와 여당엔 유리하고, 야당에는 불리한 내용을 인터넷에 전파하며 여론을 조작했다.

원세훈 전국가정보원장이 30일 서울 서초동 고등법원에서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원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30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돼 구치소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대선을 앞두고는 야당 후보 낙선 운동까지 벌였다. 2012년 말에 치러진 18대 대선에서 여당인 박근혜 후보와 야당인 문재인 후보 간 득표율 차이는 3.6%포인트에 불과했다. 원세훈 국정원의 불법 활동이 민의를 왜곡해 선거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재판부는 이날 판결에서 공무원 정치 관여 행위의 기준을 제시했다. 국정홍보성 글이나 현직 대통령을 옹호하는 게시글이어도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지지·반대로 이어지면 정치관여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서 특정 게시글에 찬성·반대를 클릭한 행위 1200회, 이외의 인터넷 게시글과 댓글 2027회를 정치관여 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또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사용한 인터넷 사이트 계정과 트위터 계정에서 이 같은 글 게시와 찬반 클릭이 장기간 반복된 것으로 볼 때 불법 행위가 능동적·계획적으로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원 전 원장은 이런 불법을 저지르고도 북한 선전선동에 대응해 국가안전을 지키기 위한 사이버활동이라고 궤변을 토했다. 문제의 인터넷 글에 대해서는 모르는 일이라며 1심부터 파기환송심까지 내내 부하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이런 인물이 국정원장이었으니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이라는 원훈에 따라 국가와 시민에게 진실로 충성한 국정원 직원들은 이명박 정부 내내 좌절감이 컸을 것이다.

댓글 사건은 원 전 원장의 범죄 가운데 일부에 불과하다. 검찰은 국정원 직원 외에 민간인 댓글부대 운용 등에도 원 전 원장이 개입했다고 보고 있다. 원 전 원장의 배후에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청와대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국정원 댓글공작을 한 민간인들의 상당수는 ‘늘푸른희망연대’ ‘한국자유연합’ 등 이명박 전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인사가 설립하거나 이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관변단체들인 것으로 이미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 초기 검찰의 국정원 댓글 수사를 방해한 세력에 대한 수사도 필요하다. 당시 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좌천됐고 채동욱 검찰총장은 내밀한 사생활이 언론에 폭로되면서 사퇴했다. 국정원 적폐청산 TF가 진상조사 중인 이명박·박근혜 정부 국정원 당시 적폐는 13건에 이른다. 성역은 있을 수 없다. 검찰은 국정원의 정치공작을 철저히 파헤쳐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벌해야 한다. 그것이 국정원을 바로 세우고, 추락한 검찰의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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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2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홀트아동재단(복지회) 등을 포함해 우리 아이들을 입양해주는 해외기관에 대해 정기적으로 감사편지를 보내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또 “고마움을 알고 고마움을 잊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미 보훈처에는 6·25 참전국 또는 참전용사에게 편지를 보내거나 자녀의 한국 취업이나 유학 시 배려하는 등 ‘감사할 줄 아는 국가 이미지’를 주는 방안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고도 밝혔다.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해외입양이 ‘6·25 참전국’에 비견될 정도로 감사를 표할 일일까.

심지어 지난 5월에는 미국에 입양됐다가 불행하게 생을 마감한 김상필씨(43·미국명 필립 클레이)의 일이 알려지면서 과거 주먹구구식 해외입양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도 한 터다.

5월21일 경기 고양시 한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씨는 10세 때인 1984년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으로 갔다. 그러나 양부모가 시민권을 얻어 주지 않아 미국 국적이 없었다. 김씨는 폭행 사건에 연루됐다가 시민권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 2011년 7월 한국으로 추방됐다. 언어 등의 문제로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던 김씨는 노숙자 쉼터와 복지시설, 정신병원, 교도소 등을 전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져보면 김씨가 불행했던 책임은 한국 사회에 더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통계에 잡힌 입양인 24만5600명 중 국내입양은 7만9088명에 불과하다. 3분의 2가 넘는 16만6512명은 해외로 나가야만 했다.

다행히 최근 들어 국내입양 아동수가 해외입양을 넘어서고 있지만 지난해에도 입양아 880명 중 334명(38%)이 한국 밖에서 새 가정을 찾았다.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 해외입양기관에 감사편지를 쓰는 것이 큰 도움이 될까. 그 시간에 입양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하는 등 국내입양을 한 명이라도 더 늘이는 데 힘을 쓰는 것이 맞을 것이다. ‘감사할 줄 아는 국가 이미지’는 그 다음이다.

<홍진수 |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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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선언 이후, 여기저기서 기대와 불안이 섞인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주에는 일부 의사단체 회원들이 모여 건강보험 개편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전면 비급여를 철회하고 의료수가를 올려달라는 이들의 주장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결국 이번 일부 의사단체의 ‘투쟁’ 역시 성공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지난 100년간 한국 의사 사회가 이렇게 늘 ‘지는 싸움’만을 해왔다는 것이다. 한국 의사 사회는 우리나라 의료보장제도를 시작할 때 관행 수가의 55%에 불과한 낮은 수가를 채택한 것이 모든 문제의 원죄(原罪)라고 이야기한다. 이 주장은 의사 사회 내에서 서로 인용되면서 강화되어 ‘절대 진리’가 되었다.

의료 과정의 불친절, 과잉진료, 낮은 의료의 질 등 무슨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에 ‘낮은 수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 주장이 일견 타당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함께 이야기해야 할 것이 있다.

우선, 현실에 안 맞는 ‘강요된 낮은 수가’는 ‘독재’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이다. 박정희 정권은 낮은 수가만이 아니라 의료 부문에 대한 투자도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공공 병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10%조차 안되는 것도 그의 작품이다. 의사가 되는 데 들어가는 돈, 의료기관을 만들고 운영하는 데 들어가는 돈이 대부분 의사 자신에게서 나왔다.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민심 무마책의 일환으로 의료보장제도를 법제화하지만, 그 시행은 1977년이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박정희 정부가 의료보험을 도입한 주된 이유도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 아니라 ‘정권의 정당성 확보’였다. 박정희의 의료보험 시행은 비스마르크의 의도와 흡사한데, 1883년 비스마르크가 독일 노동자의 봉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유럽에서 제일 먼저 의료보험을 실시한 것처럼, 박정희 또한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노동 평화’를 사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전통은 전두환, 노태우 정권으로까지 이어졌다. 1988년 농어촌의료보험의 실시와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시대의 개막은 정권의 보위와 정당성 확보를 위한 정치적 결정이었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가 있다. 현재의 박정희식 의료보험체계는 고성장과 완전고용을 전제로 한 비스마르크식 제도이다. 따라서 고령화, 장기적 저성장, 낮은 고용률의 상황하에서 ‘비스마르크식 사회보장체계’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은 제도라는 점이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명토 박아 두자. 먼저, 의사 사회가 그 독재정권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저항했는지 성찰이 필요하다. 또한 박정희 정권은 낮은 수가만을 강요하지 않았다. 실제로는 많은 비급여와 리베이트의 뒷문을 열어주는 방식으로 일종의 ‘담합 구조’를 만들어 냈다. 따라서 한국 의사 사회는 정부에 대한 비판 못지않게, 그간의 역사를 성찰하고 스스로의 변화를 각오하고 이뤄내야 한다. 그러지 않는 한 국민의 지지를 얻기 어려울 것이며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지는 싸움’만을 계속할 것이다. 더욱이 어느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의료보장체계의 개혁은 불가피한 상황이 되었다. 비스마르크와 박정희식 의료보장을 청산하고, 건강권에 기초한 보건의료체계 구축 싸움에 의사 사회가 국민과 어깨를 겯고 함께 행진하는 날을 고대해 본다.

<신영전 | 한양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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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로 ‘노동존중 사회의 실현’과 ‘차별 없는 좋은 일터 만들기’라는 두 개의 노동정책과제를 제시하고 있지만, 노사관계정책의 기조가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일자리를 늘리고 공정한 고용질서를 구축하여 노동복지를 높여가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에는 대다수 국민이 공감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노동을 중시하는 정부라고 본다. 

그러나 일부에서 보는 것처럼 노동을 중시하는 것이 바로 노사관계를 중시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노동을 존중하고 노동법규범을 민주화한다고 하여 바람직한 노사관계가 구축되는 것도 아니다. 1987년 이후 우리나라는 정치·사회적 민주화가 크게 진전되어왔지만 노사관계의 구조적인 발전이 상응하게 이루어져온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노사 대립적인 구도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노사조직의 권력이 기업단위에 집중되고 기업별 단체교섭이 중시되는 분권화된 체제로 인한 문제점도 막대하다. 이러한 노사관계 체제의 취약성이 근로자 간의 임금격차를 야기하고 고용구조를 왜곡시켜온 핵심적인 원인이다.

바람직한 노사관계가 되기 위한 요건은 노동이 존중되는 민주적인 노사관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산업 경쟁력을 높여갈 수 있는 참여·협력적인 노사관계도 바람직한 노사관계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또 다른 요건이다.

‘시장 만능’이나 ‘국가 주도’가 아닌 참여적 거버넌스가 시장을 조정하는 새로운 한국적 조정시장경제가 구축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참여적 조정시장경제를 구축할 수 있도록 하는 핵심적인 제도적 틀로써 역할을 할 수 있는 사회정합적인 노사관계도 또한 바람직한 노사관계 요건이다.

민주적이며 생산적인 노사관계, 사회정합적인 노사관계를 요건으로 하는 바람직한 노사관계의 구축은 우리나라 경제사회의 선진화를 위한 중차대한 과제이다. 문재인 정부가 지향하는 포용적 복지국가, 노동존중의 차별 없는 공정사회를 구축하기 위해서도 불가결한 과제라 할 수 있다.

과거 참여정부 초창기에 노사정위원회에서 노사관계를 혁신하기 위한 ‘노사관계발전전략’을 추진한 바 있지만, 기대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노사관계의 틀을 혁신하여야 한다는 것은 더욱 절실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노사관계를 보는 각계의 인식도 훨씬 높아졌다. ‘노사관계의 혁신’을 핵심적인 정책과제로 삼아 추진하도록 정부에 제안하고자 한다. 바람직한 노사관계를 구축한다는 것은 노사의 이해가 동반하는 과제이므로 노사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토대로 추진하기에 적합한 의제가 될 수 있다.

<이선 | 전 노사정위원회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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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제1심 판결은 법리판단과 사실인증 그 모두에 대해서 법률가로서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년형을 선고받은 뒤 삼성 측 변호인이 한 말이다. 이해할 수 없었다. 판사들도 나름의 법리에 근거해 판결을 내렸을 텐데, 의견 차이가 약간 있는 것도 아니고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심지어 ‘유죄판결 모두에 대해 인정 못 하냐’는 질문에 “전부 다 인정 못 한다. 유죄 선고된 부분에 대해서 전부 다 인정할 수 없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법은 사회의 질서유지를 위해 만들어진 최소한의 규범이다. 당연히 법은 사회구성원의 보편적인 상식에 부합해야 한다. 이 부회장의 5년형에 대해 시민사회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한 기사에 따르면 시민들 대부분이 구형량에 비해 형량이 너무 적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재판부 결정에 반대하는 여론도 있긴 하지만, 그건 이 부회장의 구속이 경제를 악화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지, 이 부회장이 무죄라는 얘기는 아니다. 이 판결을 진심으로 슬퍼한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선고 직후 “대한민국이 무너졌다”며 울부짖은 바로 그분들인데, 사람들은 이들을 ‘박사모’라 부르며 정상적인 사람 취급을 안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삼성 측 변호인들은 유죄임을 인정 못 한다고 하고, 항소심에서는 죄다 무죄가 선고될 것을 확신한다고 말한다. 둘 중 하나다. 변호인들이 죄다 박사모이거나, 아니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난 후자라고 생각한다. 만일 그들이 박사모라면 정상적인 판단력이 없다는 얘기인데, 그런 사람이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건 말이 안된다. 

여기서 반론이 나올 수 있다. “국회는 힘이 넘치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여자 하나다. 법관은 약자를 생각하는 게 정도”라며 탄핵법정을 유린했던 김평우 변호사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김평우는 1945년생, 우리 나이로 73세니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해도 이해할 수 있지만, 송우철을 비롯한 삼성 변호인단의 연령은 거기에 훨씬 못 미친다. 그래서 난 삼성 측 변호인들이 이재용의 유죄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라 확신한다. 유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그의 발언은 그러니까 국민들이 아닌, 자신의 주군인 이 부회장을 향해서 한 말이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부족했습니다. 2심에서는 꼭 집행유예로 빼내 드리겠습니다!”

잠시 변호인의 존재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자. 서울에 사는 딸을 만나러 저 멀리 산골짜기에서 달려온 할머니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그 할머니가 하필 최순실과 비슷하게 생겨 경찰서에 끌려갔다. 경찰은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할머니에게 훔쳐간 말을 내놓으라고 추궁한다. 경찰과 마주 앉은 게 난생처음인 할머니로선 당황한 나머지 말을 잘 못 했고, 결국 저지르지도 않은 범행을 인정해 버린다.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게 해주는 이가 바로 변호인이다. 변호인은 할머니로 하여금 경찰의 부당한 협박에 시달리지 않게 해주며, 불리한 진술을 못하게 막아준다. 덕분에 할머니는 원래 목적인, 서울 사는 딸을 만나러 갈 수 있게 된다. 이런 게 변호인이 만들어진 취지, 그런데 지금 변호인들이 과연 이런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을까? 이재용 부회장은 거대 그룹인 삼성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다. 검사라 해도 그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하며, 법정에서 그의 말을 무시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으니, 변호인이 없다 해도 그가 불리한 판결을 받을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법률 지식이 없으니 그 부분에 대해 조언해줄 변호인이 필요하겠지만, 지금 그의 곁에 있는 변호인들은 그 역할을 훨씬 넘어선다. 이렇게 답변하면 유죄가 나오니까 기억이 안 난다고 말해라, 이 대목은 묵비권을 행사하라, 이런 식의 코치를 해주면서 삼성 측 변호인들이 노리는 것은 바로 이 부회장의 무죄방면이리라. 하지만 그들이 공부한 법 정신은 유죄가 확실한 의뢰인을 자백하게 함으로써 적정량의 형을 받게 하는 것이어야지, 범죄를 저지른 게 명백한 이를 사회로 내보내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액의 수임료에 법 정신을 내팽개치는 변호사들이 이 땅에는 너무도 많다.

1000만명이 본 영화 <변호인>에서 돈 잘 버는 변호사로 이름을 날리던 송우석(송강호 분)은 단골 국밥집 아들 진우가 시국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구치소에 있는 그를 면회하는 것만 도와주려 했던 송우석은 눈앞에 펼쳐진 진우의 처참한 모습에 격분해 모두가 마다했던 그의 변호인이 된다. 재판정에서 송우석은 정권의 편에 서서 진우를 빨갱이로 모는 차동영(곽도원 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니는 애국자가 아니고 죄 없고 선량한 국가를 병들게 하는 버러지고 군사정권의 하수인일 뿐이야. 진실을 얘기해라. 그게 진짜 애국이야.” 

여기서 ‘군사정권’을 ‘삼성공화국’으로 바꾸면 현 상황에 딱 들어맞을 것 같은데, 이 부회장의 판결을 본 송우석이 다음과 같이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 정도 뇌물이면 최소 10년은 받아야지.”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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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 희망, 따복, 효도, 섬김….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대중교통 낙후지역 주민들을 위해 운영 중인 공공형 택시의 이름이다. 택시 이용료는 지역마다 다르다. 전남 무안의 ‘부름택시’, 충남 서천의 ‘희망택시’, 충남 아산의 ‘마중택시’는 100원이다. 경남 합천의 ‘행복택시’, 울산시의 ‘마실택시’, 전북 완주의 ‘통학택시’는 1000원이다. 경기도의 ‘따복택시’, 강원 양양의 ‘희망택시’는 시내버스 요금만 내면 이용할 수 있다. 통칭 ‘100원 택시’로 불리는 이 제도를 운영 중인 지자체들은 고령층과 저소득층에게 우선적으로 이용권을 나눠준다. 100원 택시를 이용하려면 시·군청 등에 마을 단위로 신청하면 된다. 주민들이 택시 이용료를 내면 나머지 비용은 시·군이 부담하는 방식이다.

전남 무안군 현경면 가임마을 주민들이 27일 오후 행복택시를 타고 면사무소에 내리고 있다. 요금이 1만5000원 나왔으나 실제 낸 돈은 1200원이다. 전남 무안군 현경면 가임마을 주민들이 2014년 8월27일 ‘행복택시’를 타고 면사무소에 내리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현재 전국 행정리(里) 3만6792곳의 18.3%인 6739곳에선 버스가 운행되지 않거나 하루 1~3번만 다닌다. 이런 지역에 사는 주민들과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100원 택시를 타고 읍내에 나가 장을 보거나 병원과 목욕탕, 관공서에 들르기도 한다.

100원 택시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2014년 전남도지사에 출마하면서 공약으로 처음 제시했다. 메니페스토정책평가단의 전국 17개 광역단체장 공약 평가에서 최고점을 받은 정책이다. 100원 택시가 ‘전남 브랜드’로 알려지면서 충남 서천군이 이의를 제기했다. 2013년 6월부터 5㎞ 이내는 100원, 11㎞까지는 1100원을 받는 ‘희망택시’가 100원 택시의 원조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자 충남 아산시가 나섰다. 2012년 10월부터 100원만 받고 운행하고 있는 ‘마중택시’가 처음이라는 것이다. 100원 택시 원조 논쟁은 이 총리가 지난 5월 인사청문회에서 “아산의 ‘마중택시’를 참고했다”고 밝히면서 종결됐다.

정부가 29일 국무회의를 열어 의결한 ‘2018년 예산안’에는 100원으로 이용가능한 공공형 택시 예산을 9억원에서 80억원으로 늘리는 내용이 들어 있다. 예산 증액으로 전국 시·군 160곳의 주민들이 100원 택시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일각에선 “예산낭비” “선심행정”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려운 시골 사람들에게는 절실한 복지제도일 뿐 아니라 이동권 보장이라는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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