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봐도, 4·27 남북정상회담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처음 명문화한 ‘판문점선언’은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은둔했던 과거 북한 최고지도자들과 달리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카메라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는 등 국제사회로 나왔다는 것도 새로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말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나는 이제 세상에서 둘도 없는 좋은 길동무가 됐다”는 문재인 대통령 만찬 발언이었다.

문 대통령의 말은 단순한 정치적·외교적 수사로 들리지 않았다. 두 사람의 도보다리 단독 벤치회담을 본 뒤끝이었기 때문일까. 두 정상이 무슨 대화를 나눴을지가 핵심이겠지만, 카메라에 비치는 두 정상 모습에서 서로에 대한 인간적 호감과 이해가 느껴졌다. 하루 종일 회담을 지켜보며 차곡차곡 쌓였던 긴장이 둘의 대화를 지켜보면서 한순간에 풀어졌다.

정상외교도 결국 ‘사람 대 사람’의 만남이다. 국가 최고책임자 사이의 관계는 물론 공식적인 것이지만, 그 못지않게 인간적 신뢰가 관계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도보다리 위에서 보여준 모습이 진짜라면, “좋은 길동무가 됐다”는 문 대통령 말에 김 위원장도 공감한다면, 앞으로 남북관계를 낙관할 수도 있겠다는 조심스러운 기대감이 들었다.

정상 간 우정의 중요성은 역사도 증명한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 등 100년 동안 앙숙으로 지냈던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에는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과 콘라트 아데나워 서독 총리의 신뢰가 깔려 있었다. 1962년 7월8일 두 정상은 프랑스 랭스 대성당의 미사에 함께 참석했고, 드골은 “아데나워 총리와 나는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를 다짐하기 위해 왔다”고 성당 바닥에 새겼다고 한다. 1963년 1월22일 양국은 우호조약을 맺었다.

회고록 <드골, 희망의 기억>엔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1962년 중반까지 아데나워와 나는 서로 40여차례나 서한을 교환했다. 우리가 만나기도 15회. … 회담 100시간, 단독형식이 아니면 때로는 우리 장관들을 대동시키기도 했고, 우리 가족들을 동반해서 가기도 했다. … 프랑스의 원수와 독일의 원수는 (랭스 대성당) 라인의 양편에서 우정의 과업으로 영원히 전쟁의 불행을 사라지게 해달라고 함께 기도를 드렸다. … 위대한 나의 벗이 서거할 때까지 우리 두 사람의 관계는 변함없는 우정과 한결같은 자세로 계속되었다.”

물론 김 위원장의 비핵화 행보에 대한 비난과 의심이 있다. 자유한국당은 위장평화쇼라고 비난한다. 집권 기간 동안 4차례의 핵 실험, 90여 차례의 미사일 시험발사 등 김 위원장이 보여온 행보를 고려하면 이런 의심과 비난들은 어쩌면 피해갈 수 없는 것일지 모른다. 고모부와 형을 죽였다는 패륜아 이미지도 섣불리 마음을 열기 어렵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가 어떻든, 비핵화 행보의 의도가 무엇이든,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보여줬던 태도는 진심이기를 희망한다. 둘의 관계가 드골과 아데나워 관계 이상으로 인간적인 것이 되기를 기대한다. 비핵화 과정에서 남북의 이해관계와 주장이 엇갈리더라도, 얼굴을 붉힐 사건이 터지더라도, 인간적 믿음이 깔려 있다면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남북 정상의 핫라인이 늘 분주했으면 좋겠다. 요즘 말로 ‘브로맨스’가 생겨도 좋을 것이다.

며칠 전 점심을 함께한 이부영 전 의원의 말이 귀에 꽂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북한을 완전히 섬멸할 수 있다’고 했을 때, 문 대통령이 뭐라고 한 줄 기억하나. ‘한반도에서 우리의 동의 없이 어느 나라도 다시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이었어. 전시작전통제권도 없는 한국 대통령이 ‘우리의 동의 없이’라며, 미국 대통령의 최후통첩을 (감히) 가로막고 나선 거야. 그때 트럼프 대통령은 ‘선제공격을 곧 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발 물러섰고. 아마 김 위원장은 그때부터 문 대통령과 무언의 신뢰를 나누게 됐을 걸세.”

올가을 평양 정상회담은 두 사람이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4·27 회담 때 북측에서 ‘평양냉면’을 공수했으니, 평양 정상회담 때는 남쪽 음식으로 대화를 풀어나가는 것은 어떤가. 잔칫집에 초대받은 이웃사촌이 음식을 보태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문 대통령이 ‘최고’라고 칭찬했던 돼지국밥도 좋을 것 같다. “어렵사리 부산에서부터 돼지국밥을 가져왔습니다. 멀리서 왔습니다. 허이고, 멀다고 하면 안되겠지요. 허허허”라고 하는 문 대통령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이용욱 정치부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6·13지방선거에 출마하는 국회의원 4명의 사직서 처리 시한이 14일이다. 더불어민주당 김경수(경남 김해을)·양승조(충남 천안병)·박남춘(인천 남동구갑), 자유한국당 이철우(경북 김천) 의원의 사직서가 14일 본회의에서 처리되지 않는다면 이들 지역의 보궐선거는 내년 4월에나 가능하다. 국회가 해당 지역의 국회의원직을 열달 이상 비워두는 건 명백한 직무유기다. 지역 주민들의 참정권을 박탈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직권상정으로라도 ‘14일 본회의 소집’을 언급한 바 있다. 민주당과 민주평화당·정의당은 본회의에 참석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본회의 자체를 열 수 없도록 실력 행사도 불사하겠다”며 반발하고 있다. 꽉 막힌 정국은 여야가 극한 대치를 지속하면서 도대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국회가 이렇게 장기간 공전한 것은 여당의 책임이 크다. ‘드루킹’ 사태는 자고 나면 새로운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검경 수사에 대한 신뢰도 낮은 상태다. 드루킹 특검은 ‘찬성’(54%) 의견이 ‘반대’(24%)보다 배 이상 높게 나타나고 있다. 과반의 시민이 댓글조작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진실 규명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깜도 안되는 특검을 들어줬더니 도로 드러누웠다” “빨간 옷 입은 청개구리당” 운운하며 한국당을 비난한 것은 적절치 않다. 여당 대표의 정치적 수준이 실망스럽고, 꽉 막힌 정국을 풀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때마침 민주당 새 원내대표에 친문계 3선 홍영표 의원이 선출됐다. 홍 원내대표와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둘 다 노동계 출신이다. 홍 원내대표는 “국회 정상화를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며 “성심성의껏 대화하고 타협하겠다”고 했다. 옳은 얘기다. 홍 원내대표 선출을 계기로 민주당은 더 이상 시기에 연연하지 말고 특검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국회 경색을 푸는 가장 빠른 길이다. 야당도 지난해 대선 전체를 다 털어보겠다는 식으로 뜬금없이 문재인 대통령까지 수사 대상으로 거론하며 특검 수용을 부르짖는 건 지나친 요구다. 그러니 “대선 불복 특검이냐”는 지적을 받고, 정치적 셈법에 골몰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이젠 여야가 한발씩 물러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의원 사직서 처리를 시작으로 국회 정상화의 물꼬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지난달 29일 대한의사협회가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담은 e메일을 보냈다. 전국 의사 대표자들이 서울에 모여 ‘문재인 케어’ 등을 주제로 대토론회를 연 뒤 그 내용을 당일에 정리한 것이었다. 여러 한글파일 중 ‘제1분과 토의 회의결과’에 눈길이 갔다. 소제목이 ‘문케어의 대회원 및 대국민 홍보’였다.

의사협회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방안’, 이른바 문재인 케어를 놓고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3월 초 정부, 병원협회 등과 함께 앉아 있던 대화 테이블에서 홀로 빠졌다. 보건복지부는 의사협회가 빠지자 개별 학회 등과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3월23일 ‘극우 발언’으로 논란이 된 최대집 후보가 제40대 회장으로 선출된 뒤에는 투쟁 기조가 더 강해졌다. 남북정상회담일(4월27일)에 집단 휴진을 하겠다 예고했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이를 유보했다. 의사협회를 향한 주변의 시선은 더 싸늘해졌다.

큰 기대 없이 의사협회가 보내온 자료를 열었다. 그동안 수차례 내놨던 입장을 다시 되풀이하겠거니 지레 짐작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꼼꼼히 읽어봤다.

깜짝 놀랐다. 그간 의사협회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아쉬워했던 것들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특히 ‘대국민 홍보 시의 전략적 고려사항’ 항목에는 정확한 현실 인식이 들어 있었다. ‘의사가 국민의 지지를 얻기 쉽지 않은 현실을 받아들이자’며 ‘서울지하철 노조의 홍보방식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까지 나왔다. 서울지하철 노조가 임금 인상요구를 직접 하지 않고 기관사의 근로여건과 안전요원 확충을 앞세우듯이 의사들도 수가 인상을 요구하지 않고 정부가 스스로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인 대국민 홍보방식’은 30가지로 정리했다. 문재인 케어 철폐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문재인 케어를 찬성하면서 제대로 시행할 수 있는 재정 지원 방안 등에 대해 강조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고 ‘4대강 등 역대 정권의 잘못된 정책을 열거하고 이 정권의 문케어도 잘못된 정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홍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남북정상회담을 홍보에 이용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국민에게 다가가기 위해 정상회담을 축하하고 평화 번영을 기원하고 남북의료에 대해서는 의사가 책임지겠다라는 내용의 메시지로 홍보를 하는 것이 필요함. 통일 이후의 의료에 대해서도 준비를 통해 주도적으로 정책을 제안하는 것이 필요함’이라는 의견이 홍보방식으로 제시됐다.

앞서 최대집 의협회장은 해당 토론회가 열리기 이틀 전인 4월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북정상회담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비판을 받았다. 이틀 사이 의사협회의 입장에 큰 변화라도 생긴 것일까. 반가운 마음에 확인 전화를 걸었다. 반가움은 금세 실망으로 바뀌었다. 실무진의 실수로 공식 입장이 아닌 내용을 함께 보냈다는 것이었다. 다시 보니 의사협회의 공식 입장은 다른 파일에 들어 있었다. ‘대한의사협회 13만 회원은 정부가 문케어와 관련된 모든 정책 추진을 중지하고 (…) 총파업 등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을 천명한다’는 전국의사 대표자 일동 명의의 결의문이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의사협회가 문재인 케어 철폐를 주장하면서 내놓은 이유들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다. 정부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하는 지적도 있다. 기득권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의사들이 불필요한 오해를 받고 욕을 먹는 경우도 있다. 너무나 억울할 것이다. 그렇다고 싸우려고만 든다면 외로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럴 때일수록 여론을 살피고, 스스로 주변도 돌아봐야 한다. 의사협회 내부에서조차 저런 의견이 나왔다면 과감하게 채택하고 실행도 해볼 일이다. 의사협회의 주장대로라면 어차피 지금도 최악의 상황에 있지 않은가.

<홍진수 정책사회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취임 1년을 맞았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83%(한국갤럽 조사)에 이른다. 대선 득표율(41%)의 두 배에 이르는 놀라운 지지율이다. 긍정 평가 1~3위는 ‘남북정상회담’, ‘북한과의 대화 재개’, ‘대북 정책·안보’였다. 문 대통령은 북핵 해결의 단초를 마련해 ‘한반도의 봄’을 현실화할 가능성을 한껏 끌어올렸다. 전쟁위기로 내몰렸던 1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극적인 변화다. 4강 외교도 복원되고 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의 성과가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으로 이어지도록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외교는 비핵화가 이행되는 것을 봐야 최종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촛불혁명이 탄생시킨 문재인 정부가 불의하고 부정한, 국민주권을 유린한 권력을 단죄하고 역사적 교훈을 남긴 것은 평가할 만하다. 촛불민심이 탄핵을 이뤄냈다면 촛불에 담긴 시민의 갈망을 법적·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은 전적으로 새 정부의 몫이었다. 그러나 국정농단 사태를 초래한 정치·재벌·검찰·언론 등의 적폐는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대한민국이 대도약의 전기를 마련하고 미래로 가기 위해서는 대변혁의 발걸음이 부분적 개선에서 멈추는 일이 반복돼선 안될 것이다.

문제는 경제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고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까지 내걸었다. 하지만 지난 3월 말 실업률은 4.5%로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청년실업률은 11.6%로 치솟았다. 올해 성장률은 당초 예측했던 3%대에서 2.8%로 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경제정책에 대한 긍정평가가 47%로 가장 낮은 평가를 받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 등 선의의 경제정책들에 대한 부작용을 더 늦기 전에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시민의 체감도가 가장 높은 민생경제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민심은 언제든 떠날 수 있다.

협치는 미진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제안한 여·야·정 상설 국정협의체는 아직 구성조차 되지 못했다. 높은 지지율이 임기 내내 유지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야당을 설득하지 않고는 어떤 정책도 생명력을 가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주요 현안마다 정쟁의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야당의 태도도 문제지만, 문 대통령도 좀 더 정교하게 협치를 이행하는 데 공을 들여야 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푸른 도보다리가 분단의 38선을 단숨에 지웠습니다. 우발적인 오보로 베를린 장벽이 하룻밤 만에 무너졌듯 남북의 70년 장벽도 한번에 허물어지려나요. 박노해 시인의 말처럼 쌓인 그리움에 간절한 염원이 보태져야겠지요. 어떤 순간이 벼락처럼 왔을 때 다 함께 달려나가 허물어뜨리려면 말입니다.

이런 설렘쯤은 괜찮을 줄 알았던 계절, 전 어제 밤새 뒤척였습니다. 당신과 긴 통화를 한 뒤였지요. 어두운 목소리가 도무지 잊혀지지 않더군요. “여성 후배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해서….” 더불어민주당 6·13 지방선거 경선을 넘지 못한 당신의 소회는 차라리 눈물이었습니다. 사실 남성들에 견줘 돈도 조직도 경험도 많지 않은 여성들에 ‘마을 정치’는 쉽지 않지요. 골목을 장악한 세력들의 굳건한 동맹. 오죽하면 “남성 의원들은 낮에 의회에선 꼼짝 못하다가 밤에 동네로 나오면 활개치더라”는 경험치가 때만 되면 나올까요. 차라리 총선은 바람(시대정신, 중앙정치)에라도 기댈 수 있지요. 내심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성 후보들의 도약을 기대했습니다. 기존 ‘변명’이 통하지 않는 환경 때문입니다. 미투(#MeToo) 운동의 불씨를 성평등 정치로 살릴 수 있는 적기였지요.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앞장설 거라 확신했답니다. 이번처럼 승리를 낙관한 적도 없었기에 본선 경쟁력 구호에 밀렸던 여성들이 이제 어깨 펴겠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공천 결과는 강력한 백래시였습니다.

17개 광역단체장 후보 전원이 남성이라니, 좀 과장하면 소름 돋았습니다. 기초단체장, 광역·기초의원 경선도 여성에겐 무덤이었습니다. 들여다보니 지독한 내전이었더군요. 지방선거가 차기 총선을 앞둔 지역위원장(지역구 국회의원)들의 담합 무대나 다름없었습니다. 민주당 승리 예보는 내전을 부추기는 무기였습니다. “권리당원 2000여명을 입당시켰지만 투표를 못한 사람이 많았다. 알아 봤더니 ‘서류 입력을 잘못해서 당원 명부에서 빠졌다. 당비 줄 테니 받아가라’ 했다고 한다.” 지역위원장들이 본인 지지자들만 관리했을 뿐 경쟁자 측 권리당원은 방치했다는 하소연입니다. 권리당원 비중이 공천의 절대 변수였던 경선에서 지역위원장이 밀지 않은 예비후보는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요. “지역위원장이 ‘나는 (광역·기초단체장으로) ○○○ 후보를 지지한다. 지지자 명단을 달라’고 하더라. 지역위원장과 내가 미는 후보가 다르면 가번이 절실한 내 입장에선 지역위원장 눈치를 보게 된다.” 큰 단위부터 결정하는 공천 방식이 지역위원장들의 입김을 강화하는 기제가 된 거지요. 민주당이 기초의원 4인 선거구제 무산에 집착했던 이유가 짐작되지 않습니까.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여성을 비롯한 약자들입니다. ‘내전’이 심각했던 민주당 경선만 해도 여성 전략공천, 여성할당제가 여성혐오 공천으로 변질됐습니다. “여성 30% 공천 원칙이 있지만 2인 선거구에선 여성 한 명 뽑으면 50% 공천이라는 이유로 안 지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성 전략공천 약속을 지키라고 했더니 ‘페미질’, ‘메갈후보’라는 욕설이 쇄도했다.” 미투운동, 정당 정치 폐해가 얽혀 남성 약자들이 더 약자인 여성을 노골적으로 공격한 현상입니다. 이 와중에 여성 할당제·전략공천, 가산점 제도 취지도 훼손되더군요. 하나 같이 여성 과소대표성을 교정하기 위한 조치 아닙니까. 저, 설득과 대응에 진이 빠졌습니다. 여성 인재가 많아지면 뭐합니까. 당선 가능성 낮은 지역에 몰아버리는데요. 경쟁력을 갖추면 또 뭐합니까. 컷오프로 뒤통수치는데요. ‘가산점 받고도 떨어지는 능력없는 여성들에게 웬 특혜냐’고 몰아붙입니다. 아니, 남성들의 능력이 대단해서 정치가 지금 이 지경인가요. 능력과 경쟁력은 왜 여성에게 더 가혹한 기준이 돼야 하나요. 여성 할당제·전략공천은 특혜가 아닌 방향이라고 이해합니다. 성평등 정치라는 큰 방향 말입니다. 이마저도 동의 못하면 왜 지역에서 여성들이 성장 못하는지, 민주당 부산 사례(비례의원만 있다가 이번엔 기초단체장 여성 후보 2명)만 보더라도 그간 준비된 여성들이 왜 무대에 못 올랐는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여성 리더들의 책임감도 필요합니다. 여성 국회의원들은 총선 때 30% 의무공천엔 사활을 걸면서 정작 지방선거 때는 내 문제라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5·18 가두방송 주역 김선옥씨가 고문 수사관에게 성폭행 당했다는 말을 38년 만에 꺼냈습니다. 86도, 운동권도 아니어서 홀로 견뎠을 모진 세월을 헤아리니 너무 가슴 아픕니다. 분노가 치밀지만 이제라도 용기를 내서 고맙습니다. 성평등 정치는 이런 일을 원천 봉쇄하려는 것이지 능력 있는 여성들에게 배지를 달아주기 위해서가 아니란 걸 확신하게 됩니다.

역사의 반쪽 서사는 곧 온전한 하나로 채워지겠지요. 정치의 반쪽 서사는 언제쯤 제 짝을 찾을까요. 압니다. 질 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해 피는 꽃의 다른 이름은 상처란 걸요. 꽃일 때보다 상처인 때가 많았던 당신. 여기저기 긁힌 상처로 정치의 38선을 넘는 당신에게, 간절한 염원을 담은 도보다리가 돼 드리겠습니다.

<구혜영 정치부 데스크>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여야는 7일 국회 정상화 협상을 재개했으나 ‘드루킹 특검’ 등과 관련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드루킹 특검과 추가경정예산안의 ‘24일 동시처리’를 제안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선(先) 특검, 후(後) 추경안 처리’를 요구하면서 협상이 결렬됐다. 한국당은 지난 3일 남북정상회담 비준 동의안과 추경안 처리를 조건으로 한 민주당의 특검 수용 제안도 거부한 바 있다. 이번엔 비준 동의안이 빠졌으나 역시 퇴짜를 놓았다. 여야는 정세균 국회의장이 국회 정상화 시한으로 꼽은 8일 오후 2시까지 계속 물밑 조율에 나설 것이라고 하니, 막판 극적 타결을 기대해볼 수밖에 없게 됐다.

‘8일 시한’은 9일로 예정된 정세균 의장의 멕시코 등 순방 일정과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의 임기 만료(10일)를 감안한 것이다. 민주당은 새 원내대표를 11일 선출하지만, 누가 되든 원내대표단을 새로 갖추려면 2주는 걸린다. 그동안 여야 협상은 중단될 수밖에 없다. 법안 한 건 처리하지 못한 채 문을 닫은 4월 임시국회에 이어 5월에도 빈손으로 끝날 판이다. 청년일자리 지원 등에 쓰일 추경안 등 밀려있는 민생과 경제 현안이 산더미다. 정부가 중소기업 취업 때 소득을 지원해주는 청년 공채 사업에 5만명이 몰렸으나 예산이 바닥나 추경예산 투입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한다. 국회는 이런 비명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더욱이 6월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현역 국회의원 4명의 의원직 사퇴 시한(5월14일)까지 국회 본회의에서 사퇴안이 처리되지 않을 경우 4곳에선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치르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 국회가 꽉 막힌 것은 정치력 부재와 정치권의 의지 부족 탓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이다. 서로 한 걸음 물러서고 절충점을 찾는 것이 정치력이다. 여당이 특검을 수용하겠다는데 ‘선 특검’만을 고집하는 것은 어떠한 타협도 하지 않겠다는 뜻과 진배없다. 특검을 요구하며 시작한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의 단식은 다수 시민은 물론 다른 야당들한테도 지지를 얻지 못할 만큼 명분이 약하다. 이도 모자라 매일 의원 10명씩 릴레이 단식을 벌인다니 더 할 말이 없다. 드루킹 특검이 최대 선거 전략이라고는 하나 스스로를 고립무원의 곤경에 빠뜨리는 어리석은 행태다. 이대로 지방선거를 치르려 한다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야당은 한 걸음 물러나 접점을 찾는 정치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2018년 5월 7일자 지면기사 -

첫째도 둘째도 ‘신뢰’였다.

사실 정상회담의 성패는 얼마나 신뢰를 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어떤 면에선 완전한 비핵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경제협력 같은 선언 내용보다 더 중요한 대목이었다.

그동안 남북이 여러 차례 의미 있는 성과와 합의문을 만들어냈지만, 이행 과정에서 번번이 원점으로 되돌아간 전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불신이 쌓였고, 이는 실행 동력을 잃게 만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판문점선언이 국민과 전 세계로부터 성공작으로 평가받고, 찬사가 쏟아지는 것도 어느 때보다 ‘이행에 대한 신뢰와 기대감’이 높다는 점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정상회담 곳곳에서 풍겨 나온 모습들이 그랬다. 손을 맞잡고 군사분계선 북측 땅을 밟은 뒤 돌아올 때 많은 이들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꼈고, 박수가 터져 나왔다. 도보다리 벤치 회담. 아무런 소리 없이 30분 동안 전 세계에 생중계된 이 장면은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두 정상이 마주 앉아 다정한 형제처럼 진지하고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만으로도 전 세계에 큰 울림을 주었다. ‘이번에는 뭔가 되겠구나’ ‘더 이상 전쟁은 없겠구나’ 하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북한 지도자가 최초로 전 세계에 자신의 목소리로 ‘철저한 이행’을 약속했고, 한국과 미국 대통령의 임기가 많이 남아 ‘정권교체 위험도’가 적다는 점도 신뢰의 무게를 높였다. 북한 핵실험장 폐쇄 시 대외 공개, 남북 표준시 통일, 확성기 철거, 북한 억류 미국인 석방 등 숨 돌릴 틈 없이 전개된 후속 조치들도 기대를 한껏 끌어올렸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90% 이상이 정상회담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인식도 크게 호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문 대통령 지지도는 80%를 넘나든다. 이 또한 커다란 이행 동력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두 정상과 판문점선언에 찬사를 쏟아내는 등 연일 북·미 정상회담 전망에 청신호를 켜고 있다. 미국은 전 세계의 핵 확산을 막아야 할 핵심 책임자다. 또한 북·미 교류는 궁극적으로 미국 경제에 이익을 안겨준다. 미국도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결국, 이제는 누구도 되돌아갈 수 없게 됐다. 남북 합의 역사에서 지금처럼 전 세계의 찬사를 받으며 기대를 갖게 한 전례가 드물기 때문이다. 판문점선언이 낳은 최대 성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한반도를 전쟁 위험 지역에서 북방경제의 새 시대를 열 블루오션으로 바꾸어 놓았다. 북한이 정권의 중심을 군사에서 경제로 옮긴 상황에서 남북, 북·미 관계 개선을 통한 북방경제 활성화는 그야말로 역사적 대전환이 아닐 수 없다.

모든 분야가 포화 상태로 한계에 도달한 한국 경제에 이보다 좋은 반등점도 없다. 한반도 주변 국가들에도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가져다줄 신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하기에 따라 한반도가 새로운 경제 모델로 세계 경제를 주도할 수도 있다. 말 그대로 하늘이 준 기회이다.

야당의 협조가 중요해졌다. 자신이 집권했던 시기의 대선 공약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의 공약에는 기존 남북 합의문 정신 실천, 신뢰와 비핵화 진전에 따라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 개성공단 국제화와 지하자원 공동 개발,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한 다방면의 교류, 남북 철도(TKR·TSR·TCR) 연결 등이 있다. 야당이 국민에게 약속하고 실천하지 못한 이 내용들은 판문점선언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반도 평화와 번영에 여야, 진보·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지난해 네팔 카트만두 대학에서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 자문관으로 1년 동안 네팔과 한국 헌법을 가르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학생들이 자주 했던 질문이 있다. “한국 같은 선진국이 왜 남북으로 분단되어 계속 싸우느냐”는 물음이었다. 구구하게 설명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보다 창피함을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이번 정상회담이 그 학생들에게 훌륭한 답변이 되었으면 좋겠다.

<임종인 변호사·전 국회의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국회 윤리특별위원회가 국회의원과 보좌진을 대상으로 실시해 지난 2일 발표한 ‘국회 내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성희롱을 직접 당했다는 피해자가 66명, 가벼운 성추행이 61명이었다. 이어 심한 성추행이 13명, 음란한 전화·문자·e메일을 받은 경우가 19명이었다. 심지어 강간 및 유사강간 피해자도 2명, 강간미수 피해자가 1명 있었다. 150건 이상의 성범죄가 국회에서 저질러진 것이다. 가해자 중에는 국회의원도 있다. 성범죄 대응에 앞장서도 모자랄 국회에 성폭력이 만연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심각한 것은 성범죄 건수만이 아니다. 조사 결과 피해자는 여성이면서 낮은 직급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가해자는 높은 직급의 남성에 집중됐다. 성희롱 가해자에는 국회의원 8명이 포함됐다. 국회 내 성폭력이 위계질서와 권력 관계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희롱이 가장 많이 발생한 장소는 의원회관 사무실이고, 근무 중이나 퇴근 후를 가리지 않았다. 더욱 큰 문제는 피해를 당해도 이를 알리지 못하거나 제대로 도움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피해자 중 42%가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도움받지 못했거나 오히려 2차 피해를 당했다고 호소했다. 이쯤 되면 성폭력을 당해도 신고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직접 피해를 당하지 않았지만 강간·유사강간을 당한 사례를 보거나 들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50명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강간미수에 대해서도 52명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피해사례가 더 많을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국회가 스스로 성폭력 실태를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첫 조사에서 만연한 성차별 구조와 허술한 성폭력 대응 시스템이 드러났다. 그런데 유승희 특위위원장은 “이번 설문은 현황파악을 위한 것이지 가해자를 색출해서 처벌하는 게 목표일 수 없고, 또 가능하지도 않다”며 “피해자들이 익명으로 응답했기 때문에 조사와 처벌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상급 보좌직에 여성 채용을 늘리거나 성범죄 신고의무를 신설하는 등 제도 개선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피해자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미온적인 대응이다. 국회 내 성범죄가 만연한 조직 문화를 근절하는 과제는 피할 수 없다. 피해 사실이 드러났으면, 가해자를 확인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사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것이 재발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2018 스웨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 중인 남북한 여자탁구가 전격적으로 단일팀을 구성했다. 대한탁구협회는 대회에 참가한 남한 여자대표팀이 북한과의 단체 8강전을 앞두고 단일팀 구성에 합의함에 따라 경기 없이 4강에 올랐다고 3일 밝혔다. 남북한이 탁구 단일팀을 구성한 것은 1991년 지바탁구선수권대회 이후 27년 만의 일이다. 당시 단일팀 코리아는 중국을 꺾고 단체전 정상에 오른 바 있다.

이번 단일팀은 토마스 바이케르트 국제탁구연맹 회장의 주선에 따라 현장에서 이뤄졌다. 현지에서 벌어진 국제탁구연맹 재단 창립기념회 이벤트 가운데 하나로 펼쳐진 남북연합팀의 시범 경기 도중 바이케르트 회장의 제안으로 남북 대결 없이 단일팀을 구성해 4강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남북이 사전협의 없이, 그것도 현장에서, 선수단끼리 합의한 단일팀이 그대로 성사되었다는 것은 ‘판문점선언’ 이후 완전히 달라진 남북관계의 흐름과 맥락을 같이한다. 남북한 정상이 협의 없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오간 것과 마찬가지로 민간교류 역시 아무런 준비과정 없이 갑작스럽게 추진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단일팀 유니폼이나 단일기가 준비되지 않았지만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27년 전 지바대회 때 쌓은 탁구 단일팀의 경험이 밑바탕이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46일간 합숙훈련 및 대회출전을 통해 현정화·홍차옥·리분희·유순복 등 단일팀 선수들은 작은 통일을 이뤘다. 남북한 선수들은 이후에도 각종 국제대회 때만 되면 친남매처럼 스스럼없이 지냈다. 비록 지바대회 이후 단일팀을 구성하지는 못했지만 46일간 쌓은 단단한 신뢰가 27년 만에 다시 단일팀을 구성하는 데 초석이 됐다. 또 탁구가 남북교류의 선봉장을 맡아야 한다는 책임의식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탁구 단일팀 구성이 결코 어느날 느닷없이 성사된 ‘깜짝쇼’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번 사례가 보여주듯 체육이나 문화 교류는 어떤 정치적인 고려나 절차 없이도 남북 양측의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 이뤄낼 수 있다. 이번 탁구 단일팀을 오는 8월 열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비롯한 각종 스포츠 이벤트에서 남북한이 더욱 화합할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마중물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체육 분야뿐 아니라 개성 만월대 공동발굴과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 등 문화교류도 더욱 활성화 되길 바란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4월27일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하여 사람들이 특별히 눈치채지 못한 의외의 사실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비핵화가 남북이 아니라 북·미 간의 문제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비핵화가 남북의 문제가 아니라 북·미 간 문제라고 얘기하면 친북, 종북, 북한 대변인 소리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남북정상회담이 비핵화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징검다리였다는 점에 크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 판문점선언문에 비핵화에 대한 언급이 매우 간략하게 나왔어도 사람들은 성공한 남북정상회담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건 정말 엄청난 변화다. 이제 사람들은 북한 핵이 북한 내부용이나 남침용이 아니라 미국으로부터 가해지는 위협에 자체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개발되어 왔다는 논리를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결을 위해서 앞으로 우리는 미국과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위협을 제거하고 그 대가로 북한의 비핵화를 얻어오면 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있다. 그건 바로 북한이라는 나라가 광적이고 혼란스러운 불량국가가 아닌 정상적인 국가이고, 또 최고 정책결정자가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라는 전제다. 왜냐하면 핵전략이라는 것은 정상적인 국가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한다는 전제하에서 발전되어 왔기 때문에 북한의 핵전략이 방어용이고 억지력을 위한 전략임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북한이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국가임을 확인하여야 한다. 만약 북한이 정말 정상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것이 파악되면, 북한에 핵이 필요없는 안보환경을 만들어 주면 북한은 다시 합리적으로 핵개발을 역진할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북한이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행위자로서 핵개발을 해왔는지를 파악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북한 핵개발 패턴이 다른 정상국가의 핵개발 패턴과 일치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한 가지 방법은 북한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직접 만나서 확인하는 방법이다. 물론 수집한 관련 데이터도 일관적으로 북한의 정상성과 합리성을 뒷받침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미 이와 관련한 판단을 거의 종결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북한 핵개발은 충분한 폭발력을 확보하는 핵실험, 원하는 거리까지 핵무기를 투발할 수 있는 운반수단 실험, 핵탄두의 소형화·다종화·표준화를 통한 대량생산과 2차보복능력 확보 등 기존 핵무기 개발 국가의 패턴을 그대로 답습해 왔다.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의 지도부가 얼마나 정상적이고 합리적인지는 아마도 북한을 방문한 미국의 요원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직접 확인했을 것으로 보이며, 또 4·27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도 확인되었다. 북한은 여타 정상적인 국가가 정상회담을 하는 것과 진배없는 의전을 소화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매우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김 위원장이 말한 것으로 전해지는 “무력사용은 제 손으로 제 눈 찌르기”라는 발언도 억지력 관련 핵전략을 정확히 이해하는 발언이다.

이제 남은 것은 북한이 핵을 가질 필요가 없는 외부환경을 만들고 북한 핵과 교환하는 일뿐이다. 사실 핵무기라는 것은 그 자체로 항상 위협적인 무기는 아니다. 미국의 핵무기나 영국·프랑스의 핵무기, 그리고 이스라엘·인도·파키스탄의 핵무기를 우리는 위협으로 느끼지 않는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이들 국가와 전쟁상태에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정상적이고 우호적인 국가관계라면 핵무기가 있어도 위협으로 느끼질 않는다. 반면 전쟁상태에 있는 적성국이 핵을 개발하거나 보유하면 이는 엄청난 위협이다. 지금 북한의 경우가 그렇다. 그래서 합리적 행위자들 간 비핵화의 첫걸음은 전쟁상태와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우호적인 국가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전과 평화, 수교, 신뢰구축은 비핵화의 여정에 필수적인 것이고, 이번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은 이 문제를 매우 명확히 하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선언에 축복을 부여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비핵화의 여정에서 북·미관계가 최소한 미국·베트남 관계 정도로만 발전해도 북한은 확실히 핵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전개과정을 보면 이미 북한과 미국, 그리고 우리는 막후에서 종전과 관계정상화, 수교, 그리고 비핵화의 여정으로 상당히 진전되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앞으로는 정상 간 합의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실무적 장벽들이 발생할 때마다 정상들이 신속하게 개입하여 효과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면 된다. 트럼프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의 해결 의지가 임기 초반부터 워낙 강하여 이번엔 정말 될 것 같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지난 2월4일이었으니까 약 석 달 전이다. 인천 선학 빙상경기장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스웨덴과 연습경기를 가졌다. 경기장 밖이 시끌시끌했다. 환영 집회와 반대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대한애국당 당원 수십명은 차량 앰프 볼륨을 잔뜩 높여두고 욕설 섞인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경호가 삼엄했다. 남북의 거리는 여전히 멀었다. 선수단이 도착했고, 격리나 다름없는 경호 속에 줄을 지어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몸을 푸는 모습을 통유리 창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양쪽 선수들의 표정이 여전히 굳어 있었다. 같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지만, 신발로 구분할 수 있었다. 북한 선수들은 자국 운동화를 신었다. 흰 운동화를 신은 이들이 한쪽에 따로 모였다. 서울과 평양의 거리도, 선수들 마음 사이의 거리도 아직은 좁혀지기 전이었다.

4월 27일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만찬 메뉴인 옥류관 평양냉면. 서성일 기자

평창 올림픽이 시작됐다. 훈련을 마칠 때마다, 경기를 치를 때마다 취재구역에 선 그들에게 취재진은 “얼마나 가까워졌냐”는 질문을 채근하듯 쏟아냈다. 비슷한 답이 반복됐다. “잘 지내고 있다”, “많이 친해졌다”, “남과 북 그런 거 없다”. 가끔 날 선 대답이 삐져나오듯 툭 튀어나왔다. “잘 모르겠다”, “내가 대답할 일 아니다”. 그럴 때면 긴장감이 돌았다. 찬 바람이 훑고 지나간 듯했다.

단일팀은 급조됐다. 정치권이 서둘렀다. 선수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삐걱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일”이라는 막연한 설득이 쉽게 받아들여질 리 없다. 쓰는 말이 달랐다. 전력 강화를 위해 귀화한 선수들이 여럿이었다. 영어와 남한 말과 북한 말이 얼음 위에서 자꾸 엉켰다. 전술 회의 때는 통역의 시간이 있지만 쉼없이 움직이는 경기 속 여유는 없다. 급하면 자기 말이 튀어나왔다. 패스가 빗나갔고, 수비 라인이 정돈되지 못했다. 빈 공간이 생겼고, 자꾸 골을 먹었다. 경기는 다 졌다. 어린 선수들은 엉엉 울면서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일본전에서 첫 골을 넣었고, 0-8로 졌던 스위스를 만나 0-2로 잘 싸웠다. 단일팀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말보다 몸으로 먼저 상대의 뜻을 알아챌 수 있었다. 마지막 경기 스웨덴전에서 2피리어드 막판까지 승리를 노려볼 만했다. 마지막 경기를 끝냈을 때 선수들은 조금 가까워져 있었다. 서로 다른 색의 신발끼리 모여 있던 어색함은 많이 사라졌다. 마지막 경기를 앞둔 훈련 때는 여기저기 모여서 ‘셀카’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들을 가깝게 만든 것은 몸을 부딪치며 함께한 스킨십과 훈련이 아니었다. 마음을 열게 한 것은 함께 먹은 ‘밥’이었다. 경기 일정이 모두 끝난 뒤 기자회견이 열렸다. 단일팀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을 묻는 질문에 랜디 희수 그리핀은 “이틀 전 아침 식사 때 선수촌 식당에서 북한 선수들을 만났다. 다들 맥도날드 앞에 줄 서 있길래 우리도 같이 줄 섰다. 아침 식사인데, 북한 선수들이 맥플러리(아이스크림)를 먹길래 같이 먹었다. 아침으로 맥플러리를”이라며 웃었다. 마지막 회식은 고깃집에서였다. 후식으로 시킨 냉면이 별로였단다. 북한 선수들은 “평양 오면 옥류관 냉면을 사주겠다”고 했다. 김희원은 “(김)향미 언니도, (정)수현 언니도 곱빼기로 사준다고 약속했다. 언니들이 진짜 평양냉면은 면발이 끊어지지 않는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틀 뒤 북한 선수들이 버스에 올랐다. 선수들은 마지막까지 잡은 손을 쉽게 놓지 못했다.

오랜 세월 갈라져 있던 틈을 메운 것은 햄버거와 아이스크림, 냉면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옥류관 수석 요리사가 직접 면발을 뽑은 ‘평양랭면’은 미식의 단계를 뛰어넘는 상징적 의미를 지녔다. 화해와 평화는 당위에 기반한 구호와 선동에서 오지 않는다. 깔깔거리며 함께 먹는 아이스크림과 랭면이 시작이다. 단일팀이, 스포츠가 찾아 보여준 길이다.

<이용균 ㅣ 스포츠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흔히 ‘정치는 쇼’라고 한다. 정치의 민낯을 들여다보면 진실은 오간 데 없고 대중을 현혹시키는 각종 쇼가 범람하는 게 사실이다. “쇼”라는 말을 가장 많이 쓰는 정치인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인데, 최근 들어 부쩍 “쇼”란 말을 남발하고 있다.

그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김정은과 문재인 정권이 합작한 남북 위장평화쇼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비정상적인 남북정상회담 합의가 이루어진 이면에 북한 김정은과 우리 측 주사파들의 숨은 합의가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노골적인 색깔론도 펼쳤다.

납득이 잘 안됐는데 같은 당 내에서 반발이 속출하고,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85%를 뛰어넘는 것을 봐서는 내 판단이 틀리거나 경도된 것 같지는 않다. 홍 대표의 뇌리에 박혀있는 생각과 자신이 정치행위라고 믿고 실천해 온 일들이 타인의 정치행위를 바라보는 프레임을 형성했다고 보면 무리일까.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8년5월1일 (출처:경향신문DB)

백번 양보해 남북이 합작해 ‘쇼’를 만들었다 치자. 하지만 쇼에도 품격이 있는 법이다. 어린 시절, <쇼쇼쇼>라는 TV 인기 프로가 있었다. 요즘 말로 초호화 버라이어티 쇼였다. 명사회자 ‘후라이보이’ 곽규석씨의 재치있는 원맨쇼와 코미디언의 콩트, 그리고 유명가수들의 노래가 어우러진 명품 쇼에 대한 추억은 지금도 아련하다. 시골 장터를 떠돌던 유랑 악극단도 보는 이의 애환을 달랬지만 재미와 파격 면에서 <쇼쇼쇼>와 도저히 비교될 수가 없었다.

두 남북 정상을 비롯, 동행한 이들이 11시간59분 동안 판문점을 무대로 펼친 감동의 드라마를 주말 내내 보고 또 봤다. TV 화면을 뚫고 전달되는 선의와 환한 기운에 온몸이 가뿐해지고 때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전쟁의 위협으로 그동안 얼마나 불안해하며 가슴을 졸였던가. 두 정상이 손잡고 북한 땅을 잠시 넘나드는 장면, 봄 햇살을 받은 연초록을 배경으로 평생의 길동무처럼 도보다리에서 다정하게 앉아 환담하는 파격적인 모습은 역사에 길이 남을 평화의 상징이자 통일에의 염원이 구현된 역사적 사건이었다. 두 정상의 발길이 닿은 곳곳, 물 흐르듯 이어진 모든 프로그램에서는 진정성을 멋으로 녹여내려는 정성이 역력했다. 회담장의 그림 한 점, 기념식수에 뿌린 백두·한라의 흙 한 삽, 옥류관 냉면 등은 풍성한 얘깃거리와 함께 시선을 붙잡았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이 홍 대표에게는 혹세무민하는 ‘쇼’로 보였던 모양이다. 실제로 그렇게 보였다면 홍 대표의 감성과 판단력에 대해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반면 반대편 정치인을 깎아내리기 위해 마음을 숨기거나 속였다면 자신감이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 주사파 운운하는 색깔론은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지겹고 시골 약장수의 호객행위처럼 신선함이 없다. 홍 대표의 발언은 한마디로 흥겨운 잔칫집에 찬물을 끼얹고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격이다. 평소 정쟁으로 맞설지라도 남북의 평화와 통일 분야에서는 여야가 있을 수 없다. 8000만명의 생명과 나라의 운명이 달려있는 절체절명의 사안에 남 말 하듯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모자란 점이 있다면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그 지혜를 모으는 경쟁에서 야당이 뒤처져서는 안될 것이다.

비핵화 선언이 실속이 없다는 비판도 그렇다. 말만 놓고 보면 틀린 말이 아닌 듯하지만 맥락을 보면 일종의 억지다. 비유컨대 학교에 안 가겠다고 떼쓰는 아이를 겨우 어르고 달래서 등교시켰더니 당장 90점 이상을 받아오지 않으면 퇴학하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래전 남북 여성들의 만남의 장에 몇 차례 참가한 적이 있다. 인적·물적 교류에 앞서 허심탄회한 소통이 전제돼야 하며 그 소통을 위해선 상호존중과 끈질긴 인내심이 절대적임을 절감했다. 미국의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은 “위험은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틀림없이 우리 안에서 솟아오른다”고 했다.

화창한 봄날 남북의 두 정상이 평화를 향한 2인3각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가을의 결실에까지 도달하는 과정에서 난만한 꽃들의 대잔치를 감상할 수도 있지만, 한여름의 무더위와 때론 태풍까지 견뎌내야 할지도 모른다. 모두가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러운 발걸음에 동참하고 마음을 모아야 할 것이다.

이 행렬에서 홍 대표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자유한국당은 대통령과 여당이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위장쇼”라고 깎아내리기보다는,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고 더 멋진 정치쇼로 경쟁해야 한다. 무조건 폄하하기보다 잘한 것을 가려 칭찬하는 용기가 있을 때 적절한 비판이 더 힘을 갖는 법이다.

<문경란 |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남북한 군 당국이 1일부터 동시에 최전방 지역 확성기 철거에 들어갔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7일 판문점선언을 통해 비무장지대(DMZ)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겠다고 한 데 따른 첫 조치다. 남북 정상은 “5월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한다”고 합의한 바 있다. 남북이 이처럼 판문점선언 이행에 흔쾌히 나선 것은 후속 조치를 기대하게 한다.

육군 9사단 교하중대 교하초소 장병들이 1일 경기 파주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설치돼 있는 고정형 대북 확성기를 철거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남북이 동시에 확성기를 철수시킨 것은 판문점선언 이행을 넘어 양측 간 군축의 본격적인 시작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합의 나흘 만에 반세기 넘게 체제 선전의 수단으로 이용해온 확성기를 치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첫 단추를 잘 끼웠다. 더구나 북한은 이달 중 국제 전문가들과 남한 언론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기로 약속했다. 5일에는 북한이 남한 표준시에 맞추는 조치도 취한다.

북한이 최근 서해·동해 지구 DMZ 남북관리구역을 확대하자고 제의해온 점도 주목된다. DMZ는 정전협정에 따라 무장이 허용되지 않는 지역이지만 실제로는 무기와 장비가 집중 배치돼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이곳에서 남북이 지뢰를 제거하고, 감시소초 등을 철수한다면 군사적 긴장을 크게 완화할 수 있다.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탈바꿈시키는 일이 목전에 다가온 셈이다.

이런 점에서 보수단체들이 대북 전단 살포를 고집하는 것은 유감스럽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에서 당국이라 해도 전단 살포를 강제로 막기는 어렵다. 다만 남북정상회담이 성공리에 열리고 비핵화를 다룰 북·미 정상회담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현 정세를 외면하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특히 남북 모두 쓸데없이 상대방을 자극해 평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전단 살포로 인해 남북이 군사충돌 직전 상황으로 치달았던 과거 사례를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가려면 비단 당국만이 아니라 민간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남북관계 개선 작업은 이제 막 시작됐다. 전쟁 위험 해소를 넘어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등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역대 남북 간 합의는 후속 조치 이행과정에서 번번이 무산됐다. 더 이상 그런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 지나치게 늦어도 안되고, 서둘러도 안된다. 착실한 이행이 중요하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로간과 몰로치는 지역 엘리트들(정치가, 교수, 건축가 등)이 연합해서 개발을 통해 이익을 보는 순환 양상을 ‘성장기제(growth machine)’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사실 중견은 중견대로, 건축가는 건축가대로 거대한 사업들에 몸이 얽혀있다. 도시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가 말한 대로 이해관계로 포섭하는 방법은 폭력, 공론 형성의 차단과 함께 국가가 위기를 해소할 때 흔히 쓰는 수법이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과거에 겪었던 개발 선호 사상에 함몰되지 말고, 개발을 정치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지양하자는 스스로의 다짐들을, 어쩌면 소위 엘리트 연합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성장기제’를 위해 외면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지켜보며 안타깝다. 바로 광화문광장 이야기다.

최근 서울시에서 발표한 광화문광장 재조성 사업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역사광장은 현재 광화문 앞을 지나는 사직·율곡로를, 새문안로 5길을 확장·활용해서 우회시킨다. 역사광장에는 경복궁의 권위를 상징하는 월대와 해태상을 원위치로 복원한다. 둘째, 시민광장으로 확장·개선되는 광화문광장은 ‘태양의 도시 서울’ 프로젝트와 연계해 태양광 시설을 입혀 친환경 광장으로 조성한다. 셋째, 10차로인 세종대로와 사직·율곡로 일부 구간은 6차로로 축소하며 2021년까지 준공을 목표로 추진한다.

2009년 8월1일에 완공된 광화문광장은 ‘시민의 선택’이었다. 2006년 10월 당시 서울시가 광장 조성 장소에 대해 시민, 인터넷 여론조사와 전문가 의견 등을 종합해 시민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 5579명 중 절반에 가까운 2660명이 “중앙배치안이 좋다”고 답변했다. 현 광화문광장은 시민에 의해 일구어진 촛불집회가 열렸던 ‘기억의 땅’이며, 박원순 시장이 촛불집회로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 노벨상을 추진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조성된 지 10여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처음 시장에 당선되어, 매년 연말에 보도블록을 바꾸는 것이 예산 낭비라고 그렇게 비판하던 박원순 시장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그 생각이 여전히 유효하다면, 이미 막대한 공사비용을 투입하여 정비한 광화문광장에 다시 국민의 혈세 995억원을 낭비하고자 하는 현재 시장의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야기된 것인지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민의와 시민의식을 존중하며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구시대 개발 및 계획 논리와 이론의 대체재로 나타난 소통계획(communicative planning), 참여계획(participatory planning)이 유행한 지도 이미 수십년이 지난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진정으로 이러한 계획 방식이 제대로 자리 잡았는가? 여전히 학생들이 학교에서 이론으로만 배우는 현실과 괴리된 이상향으로 존재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2014년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에 대한 민의를 이미 수렴하였다. 서울연구원에서 발간된 ‘시민·전문가가 제안하는 광화문광장의 미래와 20개 개선안’ 중 광장 개선의 접근 방법에 대해서는 ‘전체 형태를 유지하면서 시민 이용 편의와 역사성 회복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전문가 52.7%, 방문객 80.7%, 1000인 서울시민의 78.1%로 가장 많았다. 세금을 들여 조사한 여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계획이 어떻게 합리화되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가?

계획 과잉은 무분별한 시장주의만큼이나 조화로운 삶, 조화로운 사회를 위협하기 마련이다. 단지 편향된 시장주의가 자유의 기치 아래 평등을 희생시킨다면 계획과잉은 평등의 기치 아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둘은 지난 시대가 낳은 일란성 쌍둥이다.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가들의 가족들이 옥바라지하기 위해 머물렀던 옥바라지골목나 재개발사업에 의해 사라질 위기에 처했을 때 박원순 시장은 “도시재생을 강조해온 내 임기 안에 역사의 흔적을 없애는 일이 발생해 너무 안타깝다”며 공사 중단을 지시했었다. 이렇게 역사적 시민사회의 흔적을 중요시 여기는 서울시에서 광화문광장을 또 뜯어내는 것은 서울이 역사 고도(古都)인 것을 알고서도 임기 동안의 치적을 위하여 본인의 가치관을 무시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집회로 시민사회를 일구어 냈던 ‘기억의 땅’인 광화문광장을 뜯어 고치는 것에 대해 시민들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밝히며 행정을 하는 것이 민주시장으로서의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신현돈 | 광화문포럼 위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남북정상회담을 엿새 앞둔 토요일 오후였다. 세종문화회관 근처까지 온 버스가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을 지루하게 기다린 끝에 간신히 내리니 ‘남북정상회담은 위장평화전술’이라는 팻말을 든 시민이 길을 가로막았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내건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급히 지나치느라 보지는 못했지만, 십자가 들고, 군복 입은 이도 있을 것이다.  

따로 있으면 특별한 의미가 없지만 한데 뭉치면 강렬한 메시지를 발신하는 사물(四物), 태극기·성조기·십자가·군복. 사물은 모두 북한·미국과 관련이 있다. 반공주의·숭미주의에 기반한 개신교, 인공기가 아님을 자랑하는 태극기, 북한을 응징하고 남한을 수호하는 성조기, 북한을 물리치는 힘의 상징 군복. 이 ‘태·성·십·군’ 4자 동맹을 대표하는 건 당연히 성조기다. 성조기는 개신교, 북한 응징, 남한 수호, 힘 모두를 상징한다. 18세기 유럽인이 범선을 타고 남태평양 섬을 방문했을 때, 그곳의 멜라네시아인들은 화물칸에서 쏟아진 진기한 물건에 경외심을 느꼈다. 멜라네시아인은 그들을 변장한 조상이라고 믿고 반신(半神)으로 모셨다. 태평양에서 흔한 이 ‘화물숭배’는 오늘날 한반도 남쪽에서는 성조기 숭배로 나타난다. 21세기 한국의 샤머니즘이다. 성조기 숭배자에게 우주는 북한과 미국 간 선악의 대결장이다. 그런데 요즘 선악 구도가 흐릿해지고 있다.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악마가 할 말 같지 않다. 대북 초강경파로 외교안보팀을 재구성한 극우 트럼프는 하루가 멀다 하고 김정은과 문재인에 찬사를 보낸다. 천사가 할 말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샤머니즘이 도전받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지지 기반으로 하는 제1야당의 처지도 다르지 않다. 2년 전 총선에서 민주당에 제1당 자리를 내준 이래 자유한국당은 지금까지 불운의 연속이었고, 더불어민주당은 행운의 연속이었다. 민주당이 특별히 잘한 것이 없는데도, 문재인 정부의 국정 수행이 모두 만족스러운 것이 아닌데도 그랬다. 보수세력이 구르고 뛰어봤자 집권세력에 작은 진동도 전해주지 못한다. 둘은 다른 시공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국당은 2년 뒤의 총선에 희망을 걸고 있다.

☞ ‘이대근의 단언컨대’ 팟캐스트 듣기

제2차 세계 대전 때 태평양 타나 제도에 주둔한 미 공군은 타나인 1000명을 비행장과 군사기지 건설에 동원했다. 그때 타나인은 자신들이 꿈도 꾸지 못한 것을 미군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타나인은 대나무로 송신탑을 세우고 활주로를 만들었다. 미군이 한 대로 하면 자신들도 미군처럼 놀라운 것들을 가질 수 있으리라 믿은 것이다. 또한 대나무를 깎아 모형 전투기·헬멧·소총을 만들어 그걸 성상(聖像)으로 삼았다. 가슴과 등에는 USA라는 글자를 새겨 넣었다. 그리고 미군 병사 중 한 명인 존 프롬을 메시아로 삼았다. 전쟁은 끝났고 미군은 모두 떠났다. 그러나 이들은 1957년 2월15일 성조기를 게양하고 존 프롬 교를 공식 선포했다. 이후 매년 2월15일 존 프롬의 날 행사를 연다.

이 행사 때는 모조 군복을 입은 노인, 대나무 소총을 든 이, 미군 기념품인 모자·티셔츠·외투를 걸친 이들이 행진을 한다. 이렇게 하면 존 프롬이 돌아와 놀라운 선물을 나눠줄 거라고 믿는다. 한국당도, 기다리면 문재인 정부 지지율이 하락하고, 이탈자들이 한국당으로 몰려올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지난 총선 이래 그런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국당이 주술에서 깨어나, 지체된 시간을 자각하고 대나무 송신탑이 아닌, 자신들의 무너진 집을 다시 세운다면 달라질 수는 있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 불과 한두 달 만에 세상이 이렇게 변할지 누가 알았겠는가? 한국당은 감당할 수 없는 속도다. 김정은·트럼프가 직접 나서서 ‘이봐 세상이 바뀌고 있어, 정신 차려’ 하며 친절하고도 분명한 신호를 보내도 알아채지 못하는 게 한국의 보수집단이다.

물론 한국당의 비상대비책이 있기는 하다. 자연의 힘을 이용하는 주술사인 드루이드 중의 드루이드가 구원해주기를 빌고 또 비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새로운 샤먼, 드루킹을 모시고 있다. 하지만 드루킹이 대나무 소총이라는 걸 깨달을 때는 너무 늦다. 2년 뒤 가속도는 상상할 수 없다. 보수의 성채였던 군은 군비통제로 군살이 빠질 것이고, 냉전에 기반한 법제도는 사라지고 신자유주의·반북주의는 유물로 변하면서 보수의 정신적, 물적 기반이 붕괴될 것이다. 지금 지구인은 문재인·김정은·트럼프라는 강력 엔진 세 개를 장착한 우주선을 타고 다른 지구를 찾아 떠나려 한다. 한국당이 당장 탑승 예약을 하지 않으면 버려진 지구에서 홀로 살아야 한다. 존 프롬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대근 논설주간>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세기의 회담, 역사적인 2018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선언’을 내놓았다. 두 정상은 한반도에서 냉전체제의 완전 해체를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이제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비핵화, 평화 체제와 관련된 모든 영역에서 대결과 갈등이 아니라 대화와 평화를 향한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판문점선언은 1989년 미소 최고지도자가 세계적인 냉전 해체를 선언한 몰타선언에 버금가는 한반도판 몰타선언이다.

지난해 전쟁위기설에서 1년도 안돼 한반도에 엄청난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양 정상이 40분에 걸쳐 군사분계선 도보다리 벤치에서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상상도 못한 파격이 일어났다. 남북 두 정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 올해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자는 데도 합의했다. 파격과 반전의 드라마였다.

엄청난 반전은 남·북·미 3국 정상의 이해관계가 들어맞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며 ‘통 큰 정치인’ 이미지를 선보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의회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5월 말로 예상되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비핵화’를 이끌어낸다면 중간선거 승리 가능성은 높아진다. 여기에 김 위원장은 핵무력 완성 상태이기 때문에 북·미관계를 주도할 수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관계를 이끄는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본다.

남·북·미 정상의 성격 역시 반전을 이끌어 낸 배경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통 큰 사고를 하면서 자신들이 회담의 판을 주도하는 스타일이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신중하고, 우직한 곰 같은 성격의 소유자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집념으로 자신을 부각시키기보다는 북한과 미국의 입장을 조율하며, 모든 공은 두 사람에게 넘기고 있다. 센 두 사람과 그들의 길잡이 역할을 잘하는 한 사람, 세 사람의 어울리는 조합이 한반도 판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판문점 회담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은 단연코 도보다리에서의 회담, 단독 정상회담이다.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두 정상 간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허심탄회한 대화가 이뤄졌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입장이 전달되고, 문 대통령의 평소 비핵화·평화체제에 대한 의지가 김 위원장에게 전달됐을 것이다. 김 위원장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문 대통령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전달했을 것이다.

판문점선언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합의한 것은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다. 구체적인 비핵화 로드맵이 나오지 않은 것에 문제 제기도 있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디딤돌, 징검다리, 마중물 역할을 한다. 실질적으로 그 모든 공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완전한 비핵화 이상의 표현이 나오긴 애초에 어려웠다. 보다 중요한 것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다룰 내용과 관련해 남북 정상이 사전에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대화를 나눴다는 점이다. 남·북·미가 하나하나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이제,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남·북·미의 입장 차이를 좁히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열어가는 것이다.

종전선언이 연내 가능한지 갑론을박이 있다. 1953년 체제를 종식시키는 작업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출발점이다. 남북한과 미·중이 종전을 선언하고 휴전협정 체제를 평화협정 체제로 바꾸고, 여기서 지속가능한 평화협정 체결을 이루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평화체제 구축 자체는 시간이 걸리지만 종전선언은 연내 가능하다고 본다. 유념해야 할 점은 종전선언이 한반도 비핵화와 연계가 돼 있기에 북·미의 한반도 비핵화 행보 역시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인상에 오래 남을 또 하나의 장면은 군사분계선을 김정은 위원장이 혼자 넘어왔다가, 두 정상이 손을 맞잡고 같이 넘어갔다가 같이 손을 잡고 다시 넘어오는 장면이었다. 두 정상은 5㎝ 높이의 군사분계선 콘크리트가 사실상 무력화된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서 국제사회를 향해서 이제는 한반도가 전쟁의 공간으로써 또는 긴장의 공간으로써만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다짐했다. 그야말로 판문점이 대결과 전쟁의 공간이 아니고 이제는 대화와 협력과 교류의 공간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국제사회에 또 남북한 구성원들에게 판문점의 해체를 명확하게 보여 주었다. 판문점이 한반도 평화의 허파, 제2의 몰타가 되는 순간이었다.

<김용현 |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합의한 판문점선언에 대해 “국회가 남북합의서 체결 비준·공포 절차를 조속히 밟아주기 바란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이는 정치적 절차가 아니라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적 절차”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여당이 남북정상회담 비준 입장만 제시하고 드루킹 특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었다”며 비준을 반대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도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또 판문점선언을 깎아내렸다. 남북관계 진전에 끝없이 제동을 거는 제1야당이 유감스럽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4월30일 (출처:경향신문DB)

판문점선언을 국회에서 비준하려는 것은 이 합의가 정치 상황에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과거 6·15 정상회담 공동선언 등이 국회 비준 절차를 거치지 않는 바람에 이행을 둘러싸고 시비가 벌어진 전철을 밟지 말자는 것이다. 또 남북 정상 간 합의를 제도화하려면 국회 협조가 필수적이다. 예산이 집행되려면 국회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북·미 정상이 북핵 문제를 원활하게 매듭짓기 위해서도 국회의 지지는 필요하다. 한마디로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은 한국당이 북한과 합의했어도 추진해야 할 사안이다.

한국당은 과거 여당 시절 외교안보 현안에 관한 초당적 대응을 주장했다. 판문점선언은 전 세계가 지지하고 있다. 국내 여론조사 결과 그 지지율이 90% 가까이 나오고 있다. 이런 합의를 제쳐두고 어떤 사안에 초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한국당이 판문점선언을 비판하는 것은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보수표를 결집해보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그러나 유정복 한국당 인천시장 후보는 이런 당 지도부를 향해 정신 차리라고 비판했다. 민심과 동떨어진 주장을 하는 당에 표를 줄 시민은 없다고 선거 현장을 누비는 후보가 호소한 것이다.

북한은 오는 5일부터 표준시간을 남한 표준시에 맞추겠다고 밝혔다. 남측도 신속하게 발맞출 필요가 있다. 한국당의 요구로 2일부터 5월 국회가 소집돼 있다. 여당은 드루킹 사건이 비준 절차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국당은 한반도 대경사에 재 뿌렸다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국회 비준에 즉각 동참해야 한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한국당이 국회 비준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세계 각지의 표준시는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정한다. 만국지도회의는 1884년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경선(經線)을 본초자오선으로 삼아 경도 15도를 벗어날 때마다 한 시간씩 시차를 뒀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지역이 다르더라도 같은 표준시를 사용한다. 하지만 미국·캐나다·러시아와 같이 국토가 동서 방향으로 이어진 국가에선 여러 개의 표준시를 쓰고 있다. 표준시는 정치적 목적으로 바뀌기도 한다. 중국은 1949년 공산혁명 이전까지 지역별로 5개의 시간대가 있었지만 마오쩌둥이 집권한 이후 베이징 시간을 표준시로 정하고 시차를 없앴다. 우크라이나에 속했던 크림반도는 2014년 러시아에 병합된 이후 러시아 표준시를 사용하고 있다.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찬 손목시계(왼쪽)의 시각이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손목시계(오른쪽)의 시각보다 30분 늦었다. 김 부부장이 평양 표준시보다 30분 빠른 한국시간에 시곗바늘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판문점 _ 공동사진기자단

한국의 표준시는 대한제국 시절인 1908년 제정됐다. 한반도의 중심인 동경 127.5도를 기준으로 세계 표준시와 8시간30분 차이였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는 동경 135도(9시간 차이)로 변경됐다. 총독부가 일본 도쿄 기준으로 표준시를 바꿨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승만 정부 때인 1954년 주권 회복 차원에서 대한제국 표준시로 바꿨지만 박정희 정권은 1961년 도쿄 표준시로 재변경했다. 북한의 표준시는 남한과 같은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삼아오다 2015년 8월15일부터 대한제국 표준시로 바꿨다. 남한보다 표준시를 30분 늦춘 것이다. 당시 북한은 “간악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표준시까지 빼앗는 범죄행위를 감행했다”며 “동경 127.5도를 기준으로 하는 시간을 표준시로 정하고 ‘평양시간’으로 명명한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평양시간’이 등장한 이후 개성공단 출입경과 남북 민간 교류 등에서 일부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평양 표준시’를 ‘서울 표준시’에 맞추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평화의집 대기실에 서울과 평양 시간을 가리키는 시계 2개가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며 북한의 표준시를 30분 앞당기겠다고 문 대통령에게 약속한 것이다. 북한은 5월5일부터 ‘평양 표준시’를 ‘서울 표준시’로 바꾸기로 했다. 조선중앙통신은 30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평양시간을 고침에 대하여’라는 정령을 채택하고, 평양시간을 동경 135도를 기준자오선으로 하는 9경대시(현재보다 30분 앞당긴 시간)로 고쳐 주체107(2018)년 5월5일부터 적용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평양시간’이 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남북은 같은 시간 속에서 동행(同行)할 수 있게 됐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이란 먼 길은 혼자가 아닌 함께 가야 다다를 수 있다.

<박구재 논설위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큰 고니 날아오르고, 아이들이 멱감는 한강. 2013년 서울시가 한강자연성회복 기본계획이란 이름으로 제시한 한강의 미래상이다. 그러나 한강은 국가하천이기에 박근혜 정부와의 협력은 불가피했다. 결국 박근혜 정부 관광자원화 계획과의 절충으로 2015년 8월 한강협력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시는 여의도 통합선착장 등 한강협력계획의 4대 핵심사업 추진을 위한 절차를 착착 진행했다. 그러는 동안 서울시의 자연성회복사업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런 불균형은 예산 사용만으로도 확인된다.

여의도 통합선착장을 비롯해 여의나루역 인근에서 한강 수변까지 상업·문화 시설을 2020년까지 들이는 이른바 4대 핵심사업은 총사업비가 1896억4000만원. 반면 이촌지구 시범사업 등 자연성회복 사업에는 지난 5년간 306억원을 들였다. 물론 생태복원 사업에 많은 돈을 투자하란 뜻은 아니다.

또한 자연성회복계획의 기본은 물길 복원이다. 2011년 박원순 시장 출범 이후 한강오염 저감을 위해 해마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고, 시민들이 부담하는 하수도 요금은 두 배가 늘었지만 수질 개선 효과는 미미하거나 오히려 악화됐다. 악화된 수질을 개선하려면 수량을 늘려야 한다며 팔당댐 수문만 바라보는 안일한 대응은 지난 시대에나 하던 일이다. 정부는 4대강 보 수문을 열어 모니터링을 하고, 올해 말이면 4대강 보의 활용방안을 제시할 것이다. 4대강 보의 원조 격인 서울 한강의 신곡수중보를 열어 물길을 복원하는 것은 시대의 요청이다.

강을 큰 배가 다니는 인공수로로 만들고자 하는 시도는 끝없이 이어졌다. 경인 아라뱃길은 한반도 대운하사업의 시범사업이다. 한반도 대운하사업은 4대강 정비사업으로 바꿔 비극이 시작됐고, 경인 아라뱃길은 이미 실패했으나 한강까지 연결해 만회해보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다.

신곡수중보는 사실상 한강하구의 분단선이다. 한강하구 양안을 감싸는 철책은 신곡수중보 인근에서 시작된다. 남북이 평화로 가는 길에 한강하구의 평화·생태적 활용 방안을 창의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다음 시대를 열어갈 지도자의 몫이다. 서해로 가기 위해 인공수로인 경인운하를 비집고 통과해보려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

서울시는 2014년 지방선거 때도 연구용역을 한다며 신곡보 철거에 대한 입장을 보류하더니, 이번 선거를 앞두고도 다시 연구용역을 한다며 시민사회의 요구를 뭉개려 들고 있다. 4대강사업이 옳다던 전문가들은 지금도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 지난해 말 신곡보 철거를 반대하는 전문가들을 불러 신곡수중보 분야별 집중회의를 추진한 것은 시작하기도 전에 결론이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난 30년 동안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기에 연구용역을 다시 해서 신곡수중보를 철거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결론이 나오더라도 반대 측을 설득하고 조율할 몫은 여전히 남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서울시의 결단과 의지다. 물론 서울시가 혼자 책임지란 뜻은 아니다. 인천시와 수자원공사는 여전히 한강을 경인운하와 연결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러 후보들이 경제성도, 환경성도 검증되지 않은 개발계획을 쏟아내고 있다. 시민사회는 이를 우려하여 여러 경로를 통해 여의도 국제무역항 지정을 취소할 것을 요구했지만, 서울시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여건이 조성되면 대규모 국제무역항을 조성할 여지를 남겨두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한강협력계획은 박원순 서울시장과 박근혜 정부의 절충으로 시작됐다. 그때는 여러 사정으로 사업 추진이 불가피했을 수 있으나, 지금은 서울시의 의지에 따라 철회할 수도 있다. 시민들의 휴식공간인 여의도 한강공원에 인공구조물을 더해 논란을 더하기보다, 신곡수중보를 터서 생태 복원과 평화로 가는 물길을 열어젖히길 기대한다.

<선상규 | 서울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북부 핵실험장을 5월 중 폐쇄하고 이를 국제사회에 투명하게 공개하기 위해 한·미 전문가와 언론인을 북에 초청하겠다고 말했다고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29일 밝혔다. 북부 핵실험장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풍계리 핵실험장은 2006년 10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6차례 핵실험이 이뤄진 북한 핵무력 개발의 핵심시설이다. 북한은 지난 20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중지하는 한편 핵실험 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기 위해 공화국 북부 핵실험장을 폐기하는 결정을 채택한 바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못 쓰게 된 것을 폐쇄한다고 하는데 와서 보면 알겠지만 기존 실험 시설보다 더 큰 두 개의 갱도가 더 있고 이는 아주 건재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의 언급은 남북정상회담 합의에서 비핵화의 내용이 빈약하다는 일각의 비판을 불식시키는 의미가 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방명록에 서명을 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북한이 정상회담 다음 날인 지난 28일 대내외 매체를 통해 ‘판문점선언’의 전문을 그대로 소개한 것도 비핵화 의지를 가늠케 한다. 조선중앙통신은 “회담에서는 북남관계 문제와 조선반도(한반도) 평화보장 문제, 조선반도 비핵화 문제를 비롯하여 호상(상호)관심사로 되는 문제들에 대하여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의견들이 교환됐다”고 보도했다.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과 대내용 라디오 방송인 조선중앙방송도 선언 전문을 그대로 전달했다. 이는 ‘완전한 비핵화’가 김 위원장의 사적 약속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의지로 실천할 뜻이 있음을 시사한다. 북한이 핵개발을 ‘선대 수령의 업적’이라고 해왔고, 지난해 11월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만큼 핵무기의 폐기를 뜻하는 비핵화를 주민들에게 공표하는 것은 정치적 부담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정도라면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평가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이를 넘는 구체적인 비핵화 방안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논의하고 확인할 과제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체제보장과 대북 적대시 정책의 폐기 등 비핵화에 상응하는 미국의 조치와 함께 구체적인 비핵화 로드맵을 완성하면 될 것이다. 김 위원장이 “미국과 신뢰가 쌓이고 종전과 불가침을 약속하면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느냐”고 한 것은 이런 예상을 뒷받침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30분 차이가 나는 남북의 표준시를 남측에 맞추겠다고 한 점도 평가할 대목이다. 행정적인 어려움과 비용이 따르는 표준시의 통일을 선제적으로 결정한 것은 남북 간 교류협력의 장애물을 제거하겠다는 결단으로 보인다.

보수세력들은 그럼에도 의구심을 품은 채 폄훼·왜곡하기에 바쁘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남북 위장평화쇼” “구체적인 비핵화 방법조차 명기하지 못한 말의 성찬”이라고 했다. 한국당은 지난 27일 “노무현 정부의 10·4 남북공동선언에서 북한이 약속했던 비핵화보다도 오히려 후퇴한 수준”이라고 논평했지만 아예 사실과도 다르다. 10·4 공동선언에는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했다”고 돼 있을 뿐 ‘비핵화’란 단어가 없다. 6월 지방선거 국면이 본격화되면 한국당의 사실 왜곡과 막말은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거대한 전환흐름에서 소외될 것을 자처하는 딱한 모습이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판문점선언의 실질적인 이행을 위해 국회 비준을 추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장정에 북한은 돌아갈 다리마저 불사르겠다는 각오로 나섰다. 이제 우리 정치권이 화답할 차례다.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정쟁으로 실종시키는 일이 또다시 있어서는 안된다. 판문점선언은 국회 비준을 통해 지속 가능한 사회적 합의가 되어야 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