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가 13일 댄 베이커 수석편집국장 이름으로 소셜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자사 기자들의 트위터·페이스북 사용 안내다. 핵심 사항 첫째는 다음과 같다. “우리 기자들은 당파적 의견을 표현하거나 정치적 관점을 고취하고,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뉴욕타임스의 명성을 깎아먹는 어떠한 공격적인 코멘트를 해선 안된다. 뉴욕타임스가 객관적으로 다루려는 이슈를 두고 한쪽 편을 드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도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새삼스러운 내용은 아니다. 언론인 E P 데이비스가 “기자들은 개인 의견이나 언론사 의견을 말하는 것이 예외적인 경우를 빼곤 불필요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말을 한 게 1884년이다. ‘기자 개인’ 의견 표명 자제는 저널리즘의 오랜 원칙 중 하나다.

소셜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디지털 저널리즘’에서 기자와 소셜미디어는 논쟁적인 사안이다. 언론사들은 독려하든가 자제시키든가, 또는 둘을 조합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왔다. 뉴욕타임스가 ‘제한 사항’을 늘린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건 왜일까? 가이드라인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우리 기자들과 에디터들의 트윗은, 비록 트럼프 담당이 아니더라도, 뉴욕타임스의 입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는 게 중요하다”고 썼다. 베이커가 가이드라인 발표 전날 조지워싱턴대 포럼에서 한 발언에선 더 구체적인 이유가 나온다. 폴리티코는 베이커가 “뉴욕타임스 기자는 그들이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절대로 소셜미디어에 말해서는 안된다. 신문의 (비판 보도) 동기가 대통령에 대한 ‘벤데타’(vendetta·보복)가 아니라 ‘건전한 저널리즘’이라는 점을 대중에게 분명히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맹렬한 비판 보도’를 이어가는 뉴욕타임스는 몇몇 기자들의 소셜미디어 활동이 팩트에 근거한 비판 보도나 불편부당 원칙에 흠이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 뉴욕타임스를 ‘가짜뉴스’를 만드는 곳이라고 여러 차례 비난한 트럼프에게 빌미를 주지 않으려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가이드라인은 뉴미디어와 저널리즘, 표현 자유, 독자 소통, 권력 비판, 진보·보수 등 여러 문제가 얽혀 있다. 보수 쪽은 공격했다. 미디어리서치 센터 부회장 댄 게이너는 “트위터가 생긴 지 10년이 되었는데 뉴욕타임스는 이제야 직원들이 멍청하고 좌파적인 것들을 트윗한다는 걸 깨달았나”라고 했다. 보수매체 폭스뉴스가 대표로 지목한 기자는 백악관 담당 글렌 트러시다. 이 매체가 문제 삼은 트윗 하나는 “당신은 인종주의자, 반유태주의자, 백인우월주의자와 거리 두기를 지속적으로 거부하는 상관과 계속 일할 것인가”다.

‘편향’과 ‘정치 의견’의 기준이 무엇인지 되묻는 의견이 나온다. 진보 성향의 트위터 이용자는 “기후변화, 편견, 불법이민자 말살에 어떻게 ‘한쪽 편’을 들지 않을 수 있나”라며 비판한다.

나는 KBS·MBC 노조원들의 파업을 지지한다. 차별금지법 제정도 찬성한다. 둘 다 ‘정치 의견’이다. 한국 사회 한쪽에선 ‘편향’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칼럼에 밝히는 것은 괜찮고, SNS에 글을 올리면 안되는 것일까? 한편으론, SNS를 ‘눈팅’만 하고 글을 올리지 않게 된 건 내 의견과 경향신문의 입장을 동일시하는 시선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경향신문 소속이라 팔로한 이들에게 ‘SNS 글은 개인 의견이니 회사 입장과는 무관합니다’라며 무작정 편의를 봐달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다. 소속을 밝히고 공개적으로 SNS를 한다면 마땅히 감당해야 할 것들이 있다.

SNS에 다시 글을 올린다면 뉴욕타임스의 가이드라인의 16가지 핵심 사항 중 다음을 새기려 한다. “소셜미디어 독자들을 항상 존중하라. 독자의 기사·포스트에 관한 질문이나 비판에 응답하려 한다면, 사려 깊게 하라.”

<모바일팀 김종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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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1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 일정이 1박2일로 확정됐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날 백악관의 트럼프 대통령 아시아 순방 일정 발표 때 이미 결정된 내용이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백악관 발표 몇시간 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일정을 공지했을 때도 “한·미 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확한 도착 및 출발 일정을 계속 협의 중”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트럼프 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보안 브리핑을 한 후 기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정부는 애초 트럼프 대통령의 일본 방문 일정이 2박3일~3박4일로 예상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도착 시간을 7일 오전에서 6일 저녁으로 앞당겨줄 것을 요구해왔다. 방한 일정이 1박2일에 그치면 일본과 비교된다는 이유였다.

백악관 발표 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숙박 일수를 늘리는 데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모양새나 의전이 외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들르지 않는다면 모를까 한국보다 일본에 더 오래 머무른다고 해서 미국이 한·미동맹에 부여하는 의미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모양새가 좋다고 실질이 좋은 것도 아니다. 의전, 모양새에 신경을 쓰며 귀중한 외교적 자산을 트럼프 숙박 일수 늘리기에 쏟은 정부도 실질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이른 시점인 취임 50일 이전 미국을 방문한 것에 야단스럽게 공고한 한·미동맹 의미를 부여한 것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당시 외교안보 라인이 ‘신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을 다자외교 무대(G20)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며 강하게 주장해 문 대통령은 정책 기조나 전략은 물론, 외교안보 인선조차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치밀한 준비 없이 정상 방미를 했다. 그 결과 미·일의 의도대로 한·미·일 3각 안보 협력 구도가 강화됐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지 않았던가.

<정치부 | 손제민 기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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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외교안보 위기를 문재인 대통령이 잘 헤쳐 나갔으면 하는 기대가 높았던 7월11일. 문 대통령이 말했다. “우리가 뼈저리게 느껴야 하는 것”이 있다고. 그건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한반도의 문제인데도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해결할 힘이 있지 않고, 합의를 이끌어낼 힘도 없다는 사실이다.” 놀라운 고백이었다. 취임 두 달 만의 무력감 토로라니. 북핵·미사일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음을 강조하려는 과장법이려니 했다. 난제에 직면한 지도자가 한 번쯤 할 수 있는 푸념일 거라고 넘겼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서울 ADEX) 2017' 개막식에 참석해 블랙이글스 T-50 1호기에 올라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두 달이 흘렀다. 한반도 문제가 나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되고 그에 비례해 한국은 더욱 존재감을 잃어갔다. 트럼프 추종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널리 펴졌다. 놀랍게도 정부는 이번에도 부인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의원은 모욕을 참고 가랑이 밑을 긴 한신을 문 대통령과 동일시했다. 며칠 뒤인 9월22일 문 대통령이 김 의원 발언을 뒷받침했다. “지금처럼 잔뜩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는 섣불리 다른 해법을 모색하기도 어렵죠. 압박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트럼프 추종은 이제 가설이 아닌, 입증된 사실로 확정됐다.

이때만 해도 기대감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정부가 한신처럼 반전의 기회를 노리며 뭔가 도모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국은 충분히 그럴 역량을 갖고 있다. 한국은 인구, 산업능력, 군사력과 같은 하드 파워로 보나 기업혁신, 문화, 정부, 교육과 같은 소프트 파워로 보나 명실상부한 중견국이다. OECD 가입국이자 여러 국가의 역할 모델이기도 하다. 주변 강국으로 인해 중견국에 걸맞은 역할을 다 하지는 못하지만, 한 세대 전, 한 세기 전과 같이 주변국의 요구를 무조건 따라야 했던 약소국은 더 이상 아니다. 영화 <남한산성>이 굴욕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약소국의 처지를 새삼 부각하지만 381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취임 5개월째인 10월10일 문 대통령은 자신을 둘러싼 의구심과 미련을 깨끗이 씻어주었다. “안보 위기에 대해 우리 주도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합니다.” 세 번째다. 우리는 그가 세 번이나 무기력증을 호소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더 이상 푸념도 과장도 아니다. 역전의 순간을 위해 일부러 힘을 감추려는 전략도 아니다. 그의 정직한 안보인식이자 정부 능력에 대한 자가 진단의 결과다. 또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곧 다른 경로가 열리지 않을까 하고 가슴 한쪽에 품고 있는 낙관론을 접으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의 무기력증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최후의 생존게임을 하고 있다. 자원을 최대로 동원해야 하고 무얼 하든 결사적이어야 한다. 남한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미국은 이번 기회에 북한의 무릎을 꿇리려 한다. 게다가 남의 말 잘 안 듣는 트럼프가 대통령이다. 하지만 이런 북·미 대결 상태도 한국이 손 놓고 물러선 상황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그 반대다. 한국이 더 많은 힘을 쏟고, 다른 방법을 찾고, 비상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내놓은 해결책은 이런 것이다. ‘긴장이 완화되고 북한이 도발을 스스로 중단하면 그때 근본적 해법을 모색한다.’ 그렇게 기다리면 위기는 누가 해소하나? 문 대통령도, 트럼프도 아니라면, 김정은밖에 없다.

한국의 안보와 미래가 달린 일이다. 북한과 미국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면 한국은 왜 그렇게 하면 안되는가? 미국에선 요즘 대안 논의가 활발하다. 트럼프의 외교 멘토 키신저는 주한미군 철수 대가로 중국이 북한을 붕괴시키는 안을 백악관·국무부에 제시했다고 한다. 백악관 실세였던 스티브 배넌은 미군철수와 북핵동결 구상을 말한 적도 있다.

그런데 문정인 대통령 특보는 한·미연합훈련 축소 한마디 했다가 경고를 받았다. 주한미군 철수론은 말할 것도 없다. 그건 한국인이 말할 수 없는 말이다. 미국은 한국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상을 마음껏 논하는데 한국인은 그러면 안되는 이유를 누가 좀 설명해주면 좋겠다.

김정은도 세계를 흔들었다. ‘당당한 외교’를 하겠다던 문 대통령은 왜 흔들리고 있나? 문 대통령은 광야에 홀로 선 존재가 아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를 이끄는 강력한 통치자, 시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민주사회의 지도자다. 트럼프·김정은이 아니라 문 대통령을 믿고 싶다.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운명, 우리 손으로 개척할 수 있다. 문재인은 힘이 있다. 그 힘을 보고 싶다.

<이대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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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백남기 농민 사망 원인을 물대포(살수차) 직사살수로 인한 외인사(外因死)로 결론 내리고,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과 신모 전 서울경찰청 제4기동단장, 물대포 조작 경찰관 등을 기소했다. 검찰은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 집회 당시 경찰이 물대포 운용 지침을 어기고 백남기 농민의 머리에 2800rpm의 수압으로 13초 직사살수하고, 백씨가 넘어져 두개골 골절을 입은 후에도 다시 17초 직사살수했다고 밝혔다. 사건 당시 공개된 폐쇄회로TV 영상을 통해 초등학생도 알고 있던 사실이 이제야 검찰에서 확인된 것이다. 만시지탄이다. 사건 발생 1년11개월, 백남기 농민 사망 1년1개월 만이다. 정권교체 덕분이라고 위안을 삼기엔 고인과 유족, 시민들의 상처가 깊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그러나 검찰은 백남기 농민 사건이 국가 공권력 남용 사안이라면서도 당시 치안 총수였던 강신명 전 경찰총장에게는 면죄부를 줬다. 검찰은 강 전 청장을 소환도 하지 않고 한 차례 서면조사만 진행했다. 현장 지휘관과 살수 요원 등을 지휘·감독해야 할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주의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강 전 청장은 민중총궐기 집회 때 최고 단계인 갑호비상령을 내리는 등 경찰의 강경 진압을 결정하고 실행한 장본인이다. 검찰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 아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백남기 농민에게 가해진 물대포의 수압은 건물 50층 높이인 150m까지 물을 쏘아올릴 수 있을 정도다. 물대포의 이런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경찰이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뒤에도 계속 쏘아댔는데 검찰은 이를 실수라고 판단했다. 소극적인 수사를 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검찰은 경찰의 공범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9월25일 백남기 농민 사망 때 경찰이 서울대병원의 병사(病死) 판정을 근거로 고인의 시신 부검까지 시도하는 억지를 부린 것도 검찰의 수사 지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족의 고발에도 정권이 바뀌기 전까지는 눈 한번 끔벅하지 않았다. 검찰은 유족에 사과하고, 서울대병원이 백남기 농민의 사망 원인을 외인사 아닌 병사로 조작한 의혹에 관해서도 밝혀야 한다. 서울대병원 수뇌부는 사건 처리 과정에서 경찰은 물론이고 청와대와도 수시로 접촉한 정황이 드러난 바 있다. 백남기 농민 사건의 진상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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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관 8명이 그제 입장문을 내고 “헌재 소장 및 재판관 공석 사태의 장기화로 인해 헌법재판소의 정상적인 업무수행은 물론 헌법기관으로서의 위상에 상당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며 “조속히 임명절차가 진행돼 헌법재판소가 온전한 구성체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청와대와 야당이 다투면서 헌재의 비정상적인 상황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재판관들이 직접 해결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재판관들이 자기 기관에 대해 단체로 입장을 표명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로, 그만큼 사태가 엄중하다는 뜻이다.

헌재 재판관들이 입장을 밝히게 된 직접적 원인은 청와대가 제공했다. 국회에서 헌재소장 인준이 거부된 김이수 소장대행이 야당에 의해 국감 업무보고를 거부당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야당을 비판했다. ‘헌재 재판관 전원이 김 권한대행 체제에 동의했다’며 김 대행 체제에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권한대행 체제에 찬성한 것은 한시적으로 김이수 재판관이 대행을 맡는 것에 동의한다는 뜻이지 언제까지나 권한대행 체제에 찬성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헌재 소장 임기 문제가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닌데 입법 미비가 해소돼야 소장을 임명하겠다고 한 것도 논리가 박약하다. 야당 또한 청와대를 탓할 처지가 못되는 것은 물론이다. 당초 이번 사태는 야당이 이념공세를 펴다 종국에 김 대행 인준안을 부결시킨 것에서 촉발됐다. 이것도 모자라 야당은 국감장에서 보고를 거부하는 볼썽사나운 꼴을 연출하며 국감을 마비시켰다.

헌재의 비정상적 상황은 헌법재판소법에 재판관의 임기를 6년으로 하고 재판소장의 임기에 대한 규정을 두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이 때문에 현직 재판관이 소장으로 임명될 경우 새로 6년을 보장해야 할지, 아니면 잔여 임기만 인정할지를 두고 논란이 반복돼왔다. 국회가 이 입법 미비를 해소해야 문제가 풀린다. 국회에 제출된 관련 법안이 있는 만큼 여야가 당장 심의에 나서야 한다.

이와 별도로 청와대도 조속히 새 헌재 재판관과 소장 후보를 지명해야 한다. 자칫 김 소장 대행체제가 그의 재판관 임기가 끝나는 내년 9월까지 갈 수 있다. 이는 말이 안된다. 청와대는 새 재판관을 임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청와대와 헌재 재판관 입장에 근본적 차이가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재차 입장을 밝혀 국회 입법을 촉구하는 방안도 논의하는 모양이다. 이 문제를 놓고 야당과 계속 대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협치할 여지를 남겨 두어야 한다. 청와대나 야당 모두 헌재 재판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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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4차 산업혁명, 혁신성장이 새 정부의 경제정책 의제로 부상하면서 이를 위한 규제개혁론이 주목받고 있다. 국무조정실이 주도한 새 정부 규제개혁의 핵심은 이른바 ‘규제 샌드박스’ 제도 도입이다.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출시될 때 일정 기간 동안 기존 규제를 면제, 유예시켜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특정 지역’을 ‘특정 산업이나 기술, 제품, 서비스’로 대체했을 뿐, 특정 대상에 대해 사전규제의 예외를 두겠다는 점에서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되었던 ‘규제프리존법’과 동일한 논리구조를 갖고 있다.

박근혜 정부하에서 민주당이 반대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비판했던 ‘규제프리존법’과 동일한 구조인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새 정부의 규제개혁론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은 한마디로 난세스다. 어쩌다 이리 되었을까. 대통령의 네거티브 방식 규제 전환 공약을 기존 관료들이 기존 사고로 변질시킨 이른바 ‘관료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한국의 규제시스템은 강한 사전규제-약한 사후규제 구조이다. 이에 비해 미국은 약한 사전규제-강한 사후규제를 특징으로 한다. 인허가 조건을 엄격하게 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전규제라면, 징벌적 손해배상, 집단소송과 같이 피해가 발생할 경우 기업에 사후 손해배상 책임을 강하게 묻는 것이 대표적인 사후규제책이다. 사전규제는 행정 관료의 권한이 강하게 작용하는 반면, 사후규제는 사법절차에 의한 제재가 주된 것이다. 사전규제는 관료의 권한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경쟁자(기업, 기술, 상품)의 시장 진입을 어렵게 해서 시장의 기득권을 유지시켜주는 효과를 낳는다. 그런 점에서 강한 사전규제제도는 과거 경제성장기에 관료와 기존 시장 기득권 간의 담합의 산물이기도 하다. 강한 사전규제제도하에서 재벌은 정경유착을 통해 예외를 인정받아 특혜를 누려왔고, 정치권력과 관료는 그 대가로 검은 뒷돈을 챙겨왔다.

4차 산업혁명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규제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빅데이터와 이에 기반을 둔 인공지능이고, 빅데이터의 축적에는 개인정보의 활용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개인정보의 활용은 개인정보보호라는 공익적 법익과 상충될 수밖에 없다. 해법은 무엇일까.

관료적 발상은 규제를 완화하거나 규제의 예외를 두었다가 문제가 되면 사후에 ‘사전’규제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규제 샌드박스가 바로 이런 방식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이미 해온 방식이다.

2009년 신용정보법 전면개정을 통해 신용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사전규제를 대폭 완화했다가 연이은 신용정보 유출사고에 이어 2014년 1월 카드사들에서 무려 1억건이 넘는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대형사고가 발생하자 다시 강한 사전규제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사전규제 중심의 규제 패러다임을 그대로 두고 사전규제를 완화하거나 그 적용을 유예하고 면제해주는 방식으로는 과거의 사례를 반복할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은 사전규제 중심에서 사후규제 중심으로 규제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만 실현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1억건의 개인정보 유출사건만 해도 그 과정은 실로 어처구니가 없다. 해당 카드사들은 고객 원데이터의 제공, USB 작업 허용 등 외부 용역직원이 손쉽게 고객정보를 가져갈 수 있도록 업무를 처리했다. 미국이라면 기업의 생존이 어려울 수준의 천문학적 손해배상을 해야 했을 것이고, 따라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엄격히 업무를 처리했을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는 비식별 정보의 활용 역시 폐지 수준으로 사전규제를 대폭 축소하되, 식별화 방지를 기술적으로 의무화하고, 식별화해서 유출될 경우 기업이 망할 수 있는 수준의 사후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한다면 기업이 스스로 예방조치를 해서 그 어떤 사전규제제도보다 강하게 작동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면 사전규제 없는 외국 사례를 들며 규제 개혁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들은 미국 같은 사후규제 강화에 대해서는 외면하거나 반대한다. 한마디로 사전규제도, 사후규제도 싫다는 것이다.

미국을 창업의 나라라고 한다. 징벌적 손해배상과 같이 기업에 사후적으로 엄청난 부담을 주는 제도를 발전시키고, 반시장범죄인 분식회계를 한 60대가 넘은 월드컴의 CEO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하고, 회계법인을 파산시킨 미국 사법부의 엄격함이 바로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가능하게 한 조건이다.

사전규제에서 사후규제로의 규제 패러다임 전환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새 정부가 변형된 규제프리존법인 ‘규제 샌드박스’ 도입이 아니라 규제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정부가 되기를 기대한다.

<김기식 | 더미래연구소장·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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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지방분권을 통한 국가 균형발전을 국정의 4대 복합·혁신과제로 선정하고 중점 국가전략으로 채택해 청와대 정책기획위원회의 출범과 더불어 세부 추진계획과 로드맵을 수립하고 있다.

지역균형발전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국가의 책무이자 기본권에 해당한다.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균형발전보다는 지역 경쟁력에 중점을 두고 지역발전 정책을 통한 지역균형발전을 추진했지만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더욱 심화되었을 뿐이다. 지역균형발전 사업이 중앙정부 각 부처에 흩어져 있고 통합·조정 기능이 없는 분절적인 사업 추진으로 지역발전의 효과는 미미한 실정이다.

특히 지역균형발전의 바로미터인 지역인재의 유출은 심각할 정도이다. 진학, 취업 등을 이유로 지방인력이 지방을 이탈해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이미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이 제정되어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은 이뤄졌지만 이에 상응하는 인재의 균형발전과 국가경쟁력 강화에는 소홀한 감이 있었다. 그동안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채용규모도 형편없는 정도였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보면 지역발전 정책 지원을 위한 노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차원에서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2016년 포용적 지역발전 정책을 통해 전국 어디에 살든 동일한 수준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기초생활권(National Mininum)에 기초하여 정책과 시설이 소외된 계층, 지역, 국가에 도움이 되는지를 고려하여 지방 소멸이나 인구 감소지역에 대한 지역발전 정책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지역인재 채용률이 13.3% 정도에 머무르고 있는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의 신규 채용 시 지역인재를 30%까지 채용할 수 있도록 기준을 수립하고 독려한 점은 긍정적으로 보인다. 다만, 이를 세부적으로 수행하는 데 다음과 같은 사항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 신규 채용 시 지역인재를 30%까지 채용할 수 있도록 확실한 기준을 수립하고 독려할 필요가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국토교통부와 교육부 등 정부 부처 간 협의가 필요하다.

교육부의 경우 지역인재 채용을 의무화하면 수도권의 역차별과 같은 반감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청년고용할당제’에 대한 헌법소원이 여성채용목표제나 지방인재채용목표제에서는 제기되지 않고 있는 것을 살펴보면 심리적 저항감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 본다.

둘째, 지역인재 30% 채용을 통해 공공기관과 지역대학 간의 연계성을 강화하는 데 바람직한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처음에는 이전 공공기관이 필요로 하는 전문인력이 부족하겠지만, 지역대학과 협력해 맞춤형 인재를 교육하고 채용할 수 있는 방안들(계약학과)이 정비되고 있고, 더 나아가 지역 산업적 특성을 반영한 민간기업 및 지역대학의 혁신클러스터 토대를 구축하면 보다 큰 인력시장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이렇게 된다면 보다 장기적으로 우수인재의 지역 이탈을 막는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셋째, 지역인재 30% 채용목표제 방식의 지역인재 채용의무제의 경우 ‘적극적 평등실현조치(Affirmative Action)’의 일환으로 정책의 합목적성을 구현할 수 있다. 지역의 균형발전이라는 정책에 평등이라는 가치가 적극적으로 투영된 방안으로 ‘인간의 존엄성 구현’이라는 정책의 목적에도 부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인재 30% 채용목표제 이외에도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 직원들의 정주율 제고에도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주말만 되면 혁신도시의 많은 공공기관 직원들이 수도권으로 대거 이동하는 모습도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지속적 추진을 통해 바꿀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전광섭 | 호남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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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세기에 출산을 경험했다. 출산휴가 두 달. 육아휴직이라는 용어는 들어본 적도 없던 때였다. 요즘이야 출산 1~2주 전부터 휴가에 돌입하기도 하지만 그땐 출근길에 양수가 터져서야 병원으로 실려가는 경우도 꽤 있었다. 두 달밖에 안되는 휴가 기간에서 하루도 허투루 빼먹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 역시 출산 전날까지 출근을 했고, 뒤집기도 못하는 아이를 두고 회사로 복귀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너무 야만적인 환경이었네요.” “출산하고 고작 두 달 만에 몸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나요?” 동정과 놀라움으로 질문을 던지는 여자 후배들 앞에서 나를 포함한 ‘20세기 출산 경험자’들은 무용담을 늘어놓듯 떠들어댔다. 사무실에서 담배도 마구 피워대던 시절이었다는 둥, 유세 떤다는 이야기 듣기 싫어 야근도 다 했다는 둥. 기업의 한 간부는 “ ‘임신=퇴사’였던 때라 6개월까지 임신 사실을 숨겼다”고 해서 듣는 이들을 기함하게 했다.

여러 직종의 20~40대 여성들이 서로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나누자고 모인 자리. 하지만 몇몇이 침을 튀기는 동안 저들의 눈빛은 “그래서요?”라고 되묻는 듯했다. 어쩔거나, 이 싸한 분위기. 예전에 밭 매던 호미로 아이 탯줄 끊고 마저 밭을 맸다는,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 법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꼈던 시큰둥함. 딱 그것이었다. 그 찜찜함이 느낌이 아닌 ‘실화’라는 것은 며칠 뒤 40대끼리 다시 모인 자리에서 확인됐다. “불편했대요. 자기들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 같았다나 뭐라나.” “우리야 물어보니 옛날이야기를 한 것뿐인데, 좀 어이없고 당황스럽고 그러네요. 예전 상사들에 비하면 우린 정말 괜찮은 편 아닌가요.” “앞으로는 그저 묻는 말에 대답만, 그것도 단답형으로.”

맞장구는 쳤지만 절감했다. 멘토고 뭐고 간에 그냥 우린 ‘꼰대’였던 거다. 조언이나 연륜을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고 착각했을 뿐, 그저 내면화된 꼰대 근성이었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회사뿐 아니라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다른 엄마들과는 다르지 않으냐”며 확인받고 싶어했고 딸아이는 “도대체 그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냐”고 되물었다. 난 그럴 때마다 “너희들이 밀레니얼 세대면 난 ‘영포티(young forty)’다”라고 응수했다.

역사상 가장 젊다는 40대. 1970년대에 태어나 1990년대의 문화자본을 충만히 누리며 자란 나이든 X세대들. 그때 데뷔했던 이병헌, 정우성, 박진영이 여전히 대중문화를 주름잡고 있는 모습을 보며 우린 위 세대와는 다르고 젊은 세대와는 통한다고 자족했다. 하지만 ‘영포티’를 다룬 기사에 붙어있던 “그래 봤자 나잇값 못하는 꼰대”라는 댓글이 아프게 와닿기 시작한 것은 얼마 전부터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사안이나 뉴스, 대중문화 콘텐츠에 대해 여혐 문제를 지적하거나 젠더감수성의 부재를 문제 삼는 논의 앞에 말문이 막히는 사례가 잦아졌기 때문이다. 나름 상식적으로 산다고 생각했지만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조차 인지할 수 없는 사안들이 늘어나면서 그저 막막했다. “선배, 이건 정말 문제 아닌가요”라고 심각하게 지적하는 후배 앞에서 “으응, 그러게” 하고 얼버무린 뒤 지적의 핵심을 파악하려 애쓰는 딱한 내 모습은 내게 존재의 의미와 정체성을 매섭게 묻고 있었다.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은 입을 닫는 것, 그리고 머리와 마음을 여는 것이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는 명제가 천명으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을 살던 사람들은 아무리 나이가 먹고 지혜가 쌓여도 만인이 평등하다는 사실을 절로 깨치지 못한다. 자신을 내려놓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며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저것 책을 사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오른 글을 뒤적이다 눈에 번쩍 뜨이는 제목의 글을 발견했다. 한 온라인 콘텐츠 회사에서 발간한 이 유료 콘텐츠를 덥석 결제했다. ‘요즘 애들의 사적인 생각들’, 궁금하지 않은가.

<문화부 |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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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은 이른바 ‘독사파’다. 1969년 1명만 선발하는 유학시험에 합격해 서독 육사를 졸업했다. 생활비가 모자라 번듯한 식사 한 번 못했다고 한다. 당시 서독의 탄광 막장과 병원에서 일하던 광부·간호사들도 신산한 삶을 이어갔다. 고된 삶은 당대 한국인 모두의 숙명이었다.

군을 아는 몇 사람에게 군인으로서 김 전 실장의 평판을 물었다. ‘카리스마 있는 지휘관’이란 평가가 다수였다. 야전 지휘관과 작전, 전략 등 거의 전 분야에서 폭넓은 경험을 쌓았고, 합리적 사고와 강력한 추진력을 겸비했다는 평가였다. 국방장관 취임 직후인 2010년 말 이순신 장군의 노량해전 출사표를 인용한 ‘장관 지휘서신 제1호’를 장병에게 보낸 것이 화제가 됐다. “원수를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내용으로 군의 수장다운 기백을 보였다는 말도 있었지만 봉건시대의 충성심을 연상케 한다는 평가도 나왔다. 직선적인 성격을 잘 보여주는 일화다.

그는 관운이 좋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국방장관을, 박근혜·문재인 정부에서 국가안보실장을 지냈다. 관사에서 짐을 다 빼냈다가 유임 통보를 받고 다시 짐을 들여놓는 촌극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국방장관 재임 3년6개월은 해병대 총기난사와 북한군 노크 귀순 등 나라를 뒤흔든 6건의 대형 병영사고로 얼룩졌다. 보통의 경우였다면 그중 1~2개 사건만으로 책임을 지고 물러났을 법하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사이버사령부의 민간인 동향 파악 및 대선 댓글 공작이 시작된 것도 장관 재직 때 일이다.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하고도 숱한 의혹만 남긴 채 유야무야된 차세대 전투기(FX) 사업에도 관여했다. 정치군인이 된 그가 국가안보실장으로 승진한 것은 대한민국에 비극이었다. 그가 안보실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개성공단 가동 중단,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조기 배치 등 동북아 정세와 국가안보상 중대한 결정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그럼에도 국가안보는 악화됐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7년 5월 5일 김관진 캐릭터 (출처:경향신문DB)

국가안보실장은 외교와 정치적 감각이 필요한 자리다. 그는 그런 자질이 부족해 보인다. 지난 1월 “중국이 반대해도 사드를 배치하겠다”고 공개 발언한 것이 좋은 사례다. 중국으로서는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보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한·중관계는 수교 이후 최악의 상황에 빠졌다. 정상 간 교분은커녕 비상시 전화통화마저 여의치 않다. 경제보복은 심화됐다. 사드 배치에 앞서 발생가능한 모든 상황을 예측했는지 의심스럽다. 사드에 대한 맹목적 믿음 하나로 우직한 군인처럼 밀어붙인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역량으로 배신과 음모가 판을 치는 국제사회에서 국익을 지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사드 조기 배치는 무모한 일이었다. 당초 2017년 9월로 예정된 사드 배치 시점을 5월로 바꿨다가 최종적으로 4월26일로 두 차례에 걸쳐 앞당겼지만 실익은 거의 없었다. 군사적 실효성은 여전히 의심스러웠고, 변덕스러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마음을 사지도 못한 듯하다. 북핵 위협은 더 심화됐고, 국내 여론은 두 쪽으로 갈라졌다. 애초 사드는 교환가치가 높은 외교 자원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대선 과정에서 “사드 문제를 주변국과의 협상 카드로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가장 낮은 가격에, 아니 사실상 거저 넘겼다. 심각한 국익 손상 행위다.

김 전 실장의 사드에 대한 맹목적 집착은 유난스러운 대북 적대감에서 비롯됐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군 지휘관과 국방장관 시절 그는 ‘도발 원점 타격’ 등 북한군에 대한 강한 감정을 드러내곤 했다. 장관 서신에서 ‘원수’란 표현을 사용한 것도 그런 인식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그럴듯한 분석이지만 사실인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군인으로서야 북한을 적으로 보는 게 당연하지만 외교까지 고려해야 하는 국가안보실장은 때로 증오를 숨길 줄도 알아야 한다. 자칫하면 국익은 물론 당사자도 해칠 수 있다.  

김 전 실장의 어두운 그림자는 외교안보에만 드리워져 있지 않다. 청와대는 그가 세월호 참사 부실 구조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국가위기관리지침을 고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법제처 허가 등 법적 절차를 지키지 않고 빨간 볼펜으로 지침 원본에 줄을 긋고 필사로 수정하도록 한 것이다. 그가 저지른 국정농단과 불법적 행태의 끝이 어디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김 전 실장은 빚만 가득한 ‘불량 유산’을 남겼다. 통상 질 나쁜 유산은 법원에 포기 각서를 제출하면 거부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의 유산은 그럴 수 없다. 정부와 시민이 오래도록 엄청난 고통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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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1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서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재판부의 구속기간 연장 결정에 반발해 헌정유린과 국정농단, 부정부패 재판을 싸잡아 정치보복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 정치적 외풍과 여론의 압력에도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란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했다. 이날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 7명은 모두 사임계를 제출했다. 사실상 재판을 보이콧한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1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공판을 마치고 구치소로 돌아가기 위해 법원을 나서고 있다. 이날 재판은 구속기간 연장 이후 처음 열린 것이다. 연합뉴스

박 전 대통령은 18개 혐의로 기소돼 이날까지 80차례 공판이 진행됐다. 함께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최순실·김기춘·안종범 피고인 등 공범들에겐 줄줄이 실형이 선고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을 정점으로 이뤄진 뇌물, 직권남용 등의 범죄에 법원이 속속 단죄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정치보복’ 발언은 이런 상황에서 유죄 선고를 피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절박감에 마지막 저항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사법적 절차를 정치적 이슈로 돌려보겠다는 반헌법적·반법치적 작태가 아닐 수 없다. 파직당하고 감옥에 들어가서도 끝까지 버티겠다는 오만방자한 태도에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박 전 대통령은 국회의원 234명의 압도적 찬성으로 탄핵안이 가결된 때도,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만장일치로 파면 결정을 한 이후에도, 온갖 죄목으로 구속 수감되고 나서도 시민들 앞에 제대로 사과 한마디 한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반년간의 침묵을 깨고 법정에서 한 첫 발언이 ‘정치보복’이라니 그 뻔뻔함에 충격을 금할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사법부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헌법에 대한 도전이자 법치주의에 대한 부정”이라고 누차 강조해온 바 있다. 하지만 심판의 날이 다가오자 이젠 사법부를 모욕하며 재판을 거부하겠다고 한다. 언어도단이다.

박 전 대통령 측의 반격은 세월호 참사 보고 시점 조작, 국가정보원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흑막 등 공작정치의 실상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때를 맞춰 자유한국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 유족을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대규모 집회를 열고 폭력적인 언동을 일삼고 있다. 적폐청산에 맞서 조직적 반격에 나선 양상이다. 여기서 밀리면 공멸할 것이란 위기감의 발로일 것이다. 정치보복론을 내세워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수구세력을 선동해 정치적 부활을 꾀하려는 얄팍한 의도일 수도 있다. 과거 위기 때마다 국면을 전환시켰던 수법 그대로다.

지금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오랜 국정공백을 끝내고 국가를 정상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시점이다. 하지만 수구세력의 이런 반격을 보면 새로운 갈등, 새로운 싸움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불길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또다시 국론분열과 혼란이 증폭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짐작도 할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의 발언은 나라야 결딴나든 말든 나 하나 살고 보자는 치졸한 수작이다.

그는 사법부와 주권자에 정면 도전을 선포했다. 한때나마 최고 지도자로서 기대했던 최소한의 책임감과 도덕, 상식도 찾아볼 수 없다. 당장 변호인 사임으로 향후 재판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시간 끌기와 버티기, 변명으로 죄상을 덮고 넘어가려는 그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법과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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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역사가 온통 부정부패와 친일 독재로 점철된 과정으로 인식하게 한다.” “북한 이탈주민 학생들마저 ‘김일성 주체사상을 이렇게 자세히 배울 줄은 몰랐다’고 할 정도다.”

2015년 11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위한 행정예고 기간에 ‘국정화 찬성 의견’으로 제출된 내용이다.

의견서의 작성자는 ‘이완용’으로, 주소는 ‘대한제국 경성부 조선총독부’다. 전화번호는 경술국치일 1910년 8월29일을 딴 ‘010-1910-0829’였다. 찬성 의견을 올린 사람 중에는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1번지 청와대’에 사는 ‘박정희’와 ‘박근혜’도 있었다.

또 찬성 의견서 작성자 이름에는 ‘대통령말씀대로하는게맞습니다’와 ‘뻘짓’ ‘미친짓’ 등도 있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지난 정부가 국정화 찬성 여론을 조작했다는 비난이 들끓었다.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의견서를 지어낸 이들도 잘못했지만, 더 큰 문제는 교육부 공무원들이 이런 찬성 의견들을 ‘심사’해놓고도 정상적인 의견서로 분류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교육부는 동일한 기관과 단체, 개인의 서명은 1건으로 처리했다고 했으나, 하나의 주소로 찬성 의견을 낸 1613장을 ‘정상 의견서’로 분류했다.

교육부는 의견서들을 살펴보고 유효심사를 했다고 했다. 그런데도 ‘이완용’과 ‘박정희’를 버젓이 두었다면 직무유기다. 당시 찬성 의견서는 그대로 둔 채 반대 의견서만 집중적으로 걸러냈음을 의심하게 한다. 실제 걸러진 반대 의견서는 걸러진 찬성 의견서의 수십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 여의도의 한 인쇄소에서 찬성 의견서 한 트럭 분량이 무더기로 ‘제작’돼 제출된 일명 ‘차떼기 제출 사건’이 불거졌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사실무근이라며 입을 닫았다.

그러더니 이제 새 정부가 들어서자 ‘정부 정책대로 할 수밖에 없는 공무원이 무슨 책임이 있겠느냐’고 말한다. ‘영혼 없는 공무원’임을 자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달 출범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는 ‘차떼기 제출 사건’을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검찰은 이르면 16일 사건을 일선 지방검찰청에 보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교육부 공무원들은 이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김경학 | 정책사회부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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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미국 뉴욕에서는 두 가지 중요한 행사가 열렸다. 하나는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 운동 27주년을 기념하는 국제학술대회가 퀸스 대학교에서 열렸고, 다른 하나는 맨해튼 한인회관 내 한인이민사박물관에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있었다.

미 동북부 최초이고 미국 전역에선 네 번째 ‘소녀상’이라고 한다. ‘2015 한·일 합의’ 이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동 문제에 대한 상호 비난·비판을 ‘스스로’ 자제”하기로 한 한국 정부의 무기력한 행보에 대한, 초국적 시민사회의 대항적 움직임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 정부가 관련 시민단체를 상대로 공작정치를 했다는 정황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는 시점이라 더 의미심장하다.

‘2015 한·일 합의’를 통해 우리는 포스트식민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현실, 이로 야기되는 식민지 청산의 어렵고도 험난한 길을 식민지배자의 입을 통해 재확인하게 되었다. 자기모순적이며 굴종적인 식민화된 지식인과 관료들의 현주소도 확인했다. 제국주의는 사그라지기는커녕 동아시아 냉전체제를 먹잇감 삼아 연명하고 있으며, 분노와 저항을 관리하는 통치전략을 통해 확장되고 있음도 확인했다. 그러나 역사적 진실을 외면하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전략이 지속될수록 이에 당당히 대면하고자 하는 도덕적 행위자들 또한 늘어나게 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정치와 외교라는 수사로 시민적 운동의 탈정치화를 노렸으되, 애초에 부정의에 저항하는 정치적 동력에서 출발한 시민들의 운동은 ‘정의롭기’라는 감각으로 거세게 재점화되어 초국적 시민정신으로 재정치화되어 왔다.

퀸스 대학에서 개최한 국제학술 행사는 바로 그러한 초국적 시민정신을 반영하듯, 한국을 비롯해 일본, 미국, 중국의 활동가와 연구자들을 망라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 대표와 나눔의집 안신권 소장이 참석해 피해 당사자국의 폭넓은 활동의 내용과 의미를 짚어 주었고, 워싱턴 소재 ‘워싱턴정신대문제대책위원회’와 미국 최초의 평화비를 글렌데일시에 설치한 단체와 지난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세인트 메리 스퀘어 공원에 ‘성노예 소녀상’을 건립한 연대단체의 당사자들이 참석해 미주에서 이 운동을 초국적 차원에서 계승한다는 의미를 폭넓게 제시했다.

오랜 운동의 동지로서 연구를 통해 세계에 이 문제를 알리는 데 기여해 온 한국, 중국, 일본, 미국 학자들의 발표가 있었다. 문서를 발굴하고 분석하며, 당사자 지원 운동을 함께하며 운동을 의미화하고, 심지어 높은 이론적 차원으로 승화시키며 학제의 변화를 이끌어 온 바니 오, 마거릿 스테츠, 알렉시스 더든, 페이페이 퀴, 도모미 야마구치, 김부자, 안젤라 손, 민병갑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마침 소녀상 제막식 참석을 겸해 뉴욕을 방문 중이던 김서경, 김운성 두 소녀상의 작가도 함께했다.

그들은 가치중립적 과학, 객관적 관찰, 학문과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거나 심지어 왜곡해 온 지식인들이 아니다.

국가안보와 경제발전의 우선성, 동북아 정세 안정이라는 미명하에 석화된 과거사, 심지어 미래지향적 국제관계의 걸림돌로 운동사를 인식해 온 관료들이 아니다. 남성중심적 과학과 권력 체제에 도전하면서 국제인권규범과 정치동학의 변화를 주도하고, 그 과정을 낱낱이 기록하고 전파한 당사자들이다. 포스트식민 국가에서 탈식민화된 상상력과 대안적 이미지를 어떻게 생산할 수 있을지, 남성의 얼굴을 한 일국적 차원의 민족주의와 식민주의 틈새에서 어떻게 여성들의 경험을 드러낼 수 있을지, 오랫동안 고민하고 현실화해 온 활동가들이다.

반면 일본 정부는 여전히 잘못을 부인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심지어 시민사회의 활동에 제동을 걸고 방해하고 있다. 이번 두 행사를 준비한 조직위원회도 수많은 ‘헤이트 콜’을 받고 위협을 느꼈다고 한다. 뉴욕의 소녀상이 그 답답한 건물 6층의 한쪽 벽면을 바라보고 있는 한 가지 주요 이유이기도 하다. 필자는 소녀상의 자리가 지난 세월 동안 외쳐도, 외쳐도 들어주지 않던 일본 정부와 때때로 시늉만 하는 한국 정부의 자화상을 비추는 듯해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현재 ‘2015 한·일 합의’에 대한 전반적 검증 절차가 외교부의 TF팀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수치스러운 ‘위로금’ 10억엔으로 설치된 화해치유재단의 해산도 12월 말 끝난다는 ‘검증절차’ 이후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어떻게 당사자들의 탈식민적 상상력을 발휘할지, 어떻게 당사자들의 오랜 염원을 반영할지, 인내심을 발휘해 온 정의로운 시민들이 지켜볼 일이다.

<이나영 | 중앙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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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이 이번주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한국당은 이번주 윤리위원회를 열어 바른정당 통합파 의원들이 요구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서청원·최경환 의원 등 친박근혜계 핵심 인사들에 대한 징계를 논의한다. 이에 맞춰 바른정당에서는 한국당과의 통합을 추진할 위원회 구성을 본격 논의한다고 한다. 그런데 벌써부터 보수 대통합이라는 명분과 원칙에 거리가 먼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통합만 하면 그만이라는 듯 민의와 동떨어진 한심한 정치공학이 난무하고 있다.

두 당을 다시 합치려면 우선 전제되어야 할 것이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에 대한 한국당의 반성이다. 그런데 한국당은 케케묵은 과거의 태도에서 변한 게 없다. 국정농단의 당사자인 친박 세력은 여전히 당의 의견을 주도하고 있다. 금명간 열릴 한국당 윤리위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만 탈당을 권유하고, 서·최 의원의 징계는 유야무야한다는 말이 나온다. 김무성 의원 등 바른정당 통합파들이 내세우는 명분은 억지논리의 극치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좌파 포퓰리즘과 안보위기가 생각보다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대응이 시급하다며 통합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개발은 지난 10년간 보수정권이 집권할 때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척되었다. 지금 안보위기를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것은 야당이 힘으로 정부를 막아서는 게 아니다. 여야를 떠나 초당적으로 대처하는 게 급선무다. 안보위기 대처론은 ‘묻지마 통합’을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통합의 절차·방법도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다. ‘당 대 당 통합’은 유승민 의원 등 바른정당 내 자강파의 반대로 실현되기 어렵다. 보수 일부만의 통합은 설득력이 없다. 게다가 통합파들은 홍준표 한국당 대표가 미국을 방문하는 다음주 초 이전을 목표로 통합을 서두르고 있다. 통합은 시기가 아니라 원칙이 중요하다. 바른정당의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한 달도 남기지 않은 때에, 그것도 국정감사가 진행되는 중에 보수 통합을 내세워 당을 깨는 것은 조폭 세계에서도 지지받기 어렵다.

건강한 보수로의 발전을 담보하지 않는 한 보수 통합은 의미가 없다. 보수의 가치 운운하며 원칙 없는 통합을 추진하는 것은 보수당을 다시 원내 제1당으로 만들기 위한 야합이자 협잡일 뿐이다. 결코 시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통합 추진파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는지부터 자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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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둘러싼 정치권 갈등이 커지고 있다. 지난 13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헌법재판소 국정감사는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야 3당의 보이콧으로 무위로 끝났다. 야당 의원들은 지난 9월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김 권한대행의 자격을 문제 삼으며 국감을 거부했다. 적반하장이다. 헌재에 소장 권한대행 체제가 들어선 것은 기본적으로 야당 책임이다. 야 3당은 합리적 이유 없이 진보 성향이라는 이유로 김 권한대행을 배척했다. 그것도 모자라 국감장에서 김 권한대행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모욕하고, 기관장 인사말도 못하게 했다.

김 권한대행은 2012년 9월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이 됐고 지금껏 그 신분이 유지되고 있다. 그는 박한철 전 소장이 퇴임한 지난 3월13일 재판관회의에서 소장 권한대행으로 선출돼 역시 지금까지 직을 맡고 있다. 헌법재판소법 등에 의하면 헌재소장 궐위 시 재판관회의에서 선출된 헌법재판관이 권한을 대행하도록 돼 있다. 소장이 없는 상태에서 헌재를 대표해 김 권한대행이 국감장에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례도 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주선회 당시 소장 권한대행이 국감에 기관장으로 출석했다.

야당 지적대로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의 ‘헌재 김 권한대행 체제 유지’ 발언은 부적절했다. 박 대변인은 지난 1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후 “청와대는 김이수 권한대행 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9월18일 헌재는 재판관간담회서 전원이 김이수 재판관의 대행직 계속 수행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가 김 권한대행 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는 발표 자체에 어폐가 있다. 권한대행 결정은 헌재의 권한일 뿐 청와대가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없는 일이다. 헌재의 결정을 청와대가 발표하는 것도 이상하다.

헌재 재판관 임기는 6년이지만 소장 임기는 따로 정해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현직 재판관이 소장으로 임명됐을 때 임기가 어떻게 되는지 논란이 있다. 청와대는 국회가 헌재소장 임기를 정하는 입법을 하면 대통령이 바로 헌재소장 후보를 지명할 것이라며 국회 입법과 후보자 지명을 연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이라면 헌재소장 권한대행 체제가 길어질 공산이 크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재판에서 확인된 것처럼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지켜주는 특별재판소로서 헌재의 중요성에 관해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헌재가 흔들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된다. 대통령과 국회는 하루라도 빨리 헌재 소장과 공석 중인 재판관 1명의 임명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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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8일이면 촛불 1주년입니다. 1주년을 맞는 마음이 어떠신지요? 촛불을 들었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래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히 편지를 써 봅니다.

먼저 문재인 대통령께 꼭 드리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꼭 성공한 대통령이 되셔야 합니다. 그러려면 지금 시점에서 세 가지를 꼭 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나를 도와준 사람들은 잊어버리고 국민만 생각하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문 대통령을 만든 1등 공신은 어려울 때를 같이 해 준 측근들도 아니고 지금의 참모들도 아닙니다. 촛불시민들입니다. 누구보다도 이 점을 잘 아실 분이지만, 그동안 있었던 몇몇 인사 실패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이 사실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이벤트보다는 대통령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임에 집중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대통령께서 보여주신 진솔하고 선한 모습 덕분에 지난 9년 동안 말도 안 되는 권력의 행태에 상처 났던 국민들의 마음은 많이 치유됐습니다. 이제는 위기에 처한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일과 정치시스템 개혁에 집중하셨으면 합니다. 특히 대통령께서 공약하신 선거제도 개혁과 국민참여 개헌을 이번에는 이뤄내야 합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위기를 겪었던 이유는 정치시스템에 하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표심을 왜곡시키고, 정치다양성을 억압하며 참정권을 제약하는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합니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개헌도 밀실개헌이 아니라 국민들이 참여하는 최초의 개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대통령께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해 주십시오. 이것만 돼도 역사에 남을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세 번째는, 적폐청산과 함께 개혁 협치를 해야 합니다. 지금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이 추진하는 모든 개혁을 무산시키기 위한 정치기획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일부와의 통합은 그 신호탄이 될 것입니다. 그쪽의 목표는 명확합니다. 국회에서 120석 이상만 확보하면 국회선진화법 체제하에서 모든 개혁입법을 좌초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기획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야당들의 공통관심사인 ‘민심 그대로’ 선거제도 개혁을 매개로 개혁 협치의 틀을 만드는 것입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당이든 야당이든 양심적이고 국가를 생각하는 정치인들께도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개인의 정치적 미래나 내가 속한 당의 정치적 이익이 중요한 때가 아닙니다. 지금 시스템 개혁을 하지 못하면 대한민국 정치는 다시 ‘퇴행의 길’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을 떠나서 시스템을 개혁하기 위해 협력하고, 시민사회와도 손을 잡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촛불을 들었던 동료시민들에게 제안드립니다. 누구에게 기대하는 것과 의존하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는 문 대통령이나 양심적 정치인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모든 개혁은 국회 앞에서 멈춰있습니다. 정치개혁, 재벌개혁, 검찰개혁 모두가 무산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5년 단임제 대통령의 임기는 짧습니다. 임기 후반부에는 개혁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집권 초기 1년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간만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개혁의 첫걸음은 국회를 바꾸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전히 모든 개혁을 가로막고 특권만 누리려는 국회의원들을 그대로 두고 무슨 변화를 바랄 수가 있겠습니까? 지난 11일 뉴스타파는 상당수 국회의원들이 국민세금을 지원받아서 ‘베끼기 정책자료집’을 발간했다는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안상수(인천 중·동·옹진·강화), 홍문표(충남 예산·홍성), 박덕흠(충북 옥천·영동·괴산·보은), 이종배(충북 충주), 이헌승(부산진을) 의원이 1차로 지목됐습니다. 정부부처 보도자료나 타 기관 연구보고서를 통째로 베껴서 정책자료집을 발간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원들이 공직후보자 인사청문회 때는 ‘표절은 도둑질’이라고 호통을 쳤다니 정말 한심한 일입니다. 학생들이 이렇게 보고서를 낸다면 0점을 받을 것이고, 연구자가 이렇게 했다면 학계에서 매장될 것이며, 공직후보자가 이렇게 했다면 사퇴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엉터리로 의정활동을 하고 국민세금을 도둑질해도, 지역구 관리만 잘하면 다음번에도 국회의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일 것입니다. 이런 의원들을 퇴출시키는 것은 주권자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광화문 촛불을 여의도 촛불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제는 정권교체를 넘어서서 정치교체로 가야 합니다. 지금의 낡고 썩은 정치를 바꿔야 앞으로 우리 삶이 편안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11월11일 광화문광장에서 전국의 시민단체들이 모여 정치개혁과 국민주도 개헌을 요구하는 주권자대회를 연다고 합니다. 촛불이 일어났던 광화문에서 모여 주권자들의 의지를 다지고, 그 이후에는 여의도로 가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차가운 바닥에서 촛불을 들지 않아도 되는 나라, 정치가 내 삶을 위기로 몰아넣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통해 내 삶의 문제를 풀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한 번 더 촛불을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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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산성에 갇혔고, 역사는 굴종을 기록했다. 1636년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은 조선의 치욕적 역사를 보여준다. 쓰러져가는 명나라에 대한 사대주의는 떠오르는 청나라와의 실리 외교를 압도했다. 임진왜란으로부터 불과 40여년 후, 조선 민중은 또다시 외세의 침략과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왕과 봉건 지배층의 무능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백성들은 또다시 ‘오랑캐’의 발굽에 짓밟혔다.

영화 <남한산성> 스틸 이미지

역사는 굴종을 기록했지만, 영화는 치욕의 역사를 반성적으로 사유한다. 영화 <남한산성>은 조선의 지배계급이 자초한 이 굴욕의 역사를 이른바 ‘객관적 시각’으로 묘사한다. 척화파 김상헌도, 주화파 최명길도 모두 자기 나름대로 할 말은 있다는 식이다. 김훈의 원작 소설과 마찬가지로, 역사에 대한 이러한 객관적 묘사는 영화의 사실성을 높여주긴 한다. 전쟁과 평화 사이의 긴박한 대립 구도 속에서, 서로 마주치는 세력과 인물들을 중립적이면서도 다면적으로 묘사한다. 영화 속에서 김윤석의 단호함과 이병헌의 절절함은 불꽃 튀는 말과 논리의 향연이다. 여기에 박해일이 연기한 인조 임금 역시 비굴하고 무책임한 캐릭터의 극치를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는 누구의 편에서 역사를 사유하는가? 역사의 객관적 기록과 영화의 상상적 진실은 다른 문제이다. 원작 소설가 김훈도, 영화감독 황동혁도 모두 대답을 회피한다. 물론, 그것은 궁극적으로 독자와 관객의 몫이다. 다만, 영화 <남한산성>이 문제의 본질을 반쯤 가리고 있다는 점은 지적되어야 한다. 인조를 비롯하여 김상헌, 최명길 등 당시의 봉건 관료들은 광해군의 개혁정치와 자주적 중립 외교를 무너뜨린 반란의 주역들이었다. 척화파든 주화파든 사실은 썩어가는 조선의 봉건 왕정을 유지하기 위한 지배계층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므로, 영화 속에서 민중의 입장을 대변하는 대장장이 ‘날쇠’(고수)와 부모 잃은 어린아이 ‘나루’(조아인)의 캐릭터가 주변인처럼 겉돌고 있다는 사실은 아쉽다. 근왕병을 요청하는 날쇠의 활약은 허무하게 좌절된다. 나루는 그저 순진함과 귀여움의 캐릭터로 소진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인조는 왕궁으로 돌아오고, 날쇠와 나루는 대장간으로 돌아간다. 비굴한 왕은 권좌를 유지하고, ‘무지렁이’ 백성들은 일상의 삶으로 돌아간다. 이 영화의 엔딩신은 그 의도와 달리, 역사적 패배의식과 냉소주의의 혐의를 지울 수 없다.

역사 영화는 과거를 현재화한다. 과거의 역사는 현재의 맥락에서 소환된다. 영화 <남한산성>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들로 둘러싸인 오늘날 한반도의 현실과 겹쳐진다. 400여년 전, 조선의 사대주의 정책은 명나라에 대한 군신의 의리와 명분에 집착했다. 새로이 대륙의 주인으로 떠오른 청나라에 대해서는 무지와 무시로 일관했다. 실리적 등거리 외교를 펼치고자 했던 광해군의 의지는 인조반정으로 무너졌다.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던 조선의 봉건 지배층은 외세의 힘 앞에 철저히 농락당했다.

오늘날 한반도의 현실도 너무나 흡사하지 않은가?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 이후,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쪼갰다. 1991년 소비에트연방이 무너지고 미·소 냉전체제가 해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국가로 남아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를 외치면서 한반도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핵무기 개발을 통해 미국과 맞서고 있다. 한반도는 여전히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 강대국들의 세력 다툼에 휘말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분단과 전쟁을 넘어 평화와 통일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작가 한강이 말했듯이, ‘미국이 전쟁을 말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

이른바 ‘한·미동맹’의 깃발 아래 강행된 사드 배치로 인해 중국 무역에서 이미 8조5000억원의 경제 손실이 발생했다. 군사적, 경제적으로 미국에 의존하는 편향된 정책은 미국 군수업체들의 무기 장사에 휘둘릴 뿐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는 주변 강대국들의 힘 관계를 적절히 이용해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를 통해 미국과 일본을 효과적으로 견제하는 실리적 등거리 외교와 자주적 중립 노선이 절실하다. 이것이 400년의 세월을 건너 영화 <남한산성>이 던져주는 역사의 교훈이다.

<정헌 중부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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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어제 긴급 언론 브리핑을 열고 “청와대 안보실 전산 파일에서 세월호 사고 당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게 보고된) 상황보고 일지를 사후에 조작한 정황이 담긴 자료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최초 보고시간이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30분이었는데 6개월 뒤 이를 오전 10시로 30분 늦춰 보고서를 재작성했다는 것이다. 이와 별개로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 내 캐비닛에서 전 정부 청와대가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을 무단으로 개정변경한 자료도 나왔다고 한다. 박근혜 청와대가 세월호 침몰에 부실 대응한 책임을 면하기 위해 사후에 조직적으로 기록을 조작하고, 법규를 무단 수정한 것이다.

박 전 대통령 당시 청와대는 세월호 침몰과 같은 재난사고에서 대통령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했으니 30분 늦춘 것이 무슨 대수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30분은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한 때로 1분, 1초도 흘려보낼 수 없는 절체절명의 시간이었다. 박 전 대통령과 청와대가 상황을 제대로 판단해 신속한 구조를 지시했다면 희생자 상당수를 구출할 수도 있었다. 박 전 대통령 측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변론 과정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10시에 최초 보고를 받았고, 10시15분에 첫 지시를 내렸다고 했다. 침몰 상황을 접하고 45분 뒤 구조지시를 하고도 15분 만에 지시를 내린 것처럼 조작한 것이다. 또 박 전 대통령의 청와대는 세월호 사고 3개월 뒤인 2014년 7월 말 국가위기관리 지침 중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종합관리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한다’는 내용을 ‘안보 분야는 안보실, 재난 분야는 안전행정부가 담당한다’고 바꿨다. 법제처장과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정상적으로 고쳐야 하는 대통령 훈령을 무단 수정했다. 세월호 사고 후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재난 컨트롤타워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아니고 안전행정부’라고 주장한 것에 맞춰 법규를 고친 것이다. 일개 사기업도 해서는 안될 일이 국정의 최고사령탑에서 저질러졌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번 사안을 심각한 국정문란 행위로 보고 수사의뢰하겠다는 청와대 판단은 온당하다. 기록 조작은 왕조시대의 국왕도 감히 하지 못했다. 이번 조작 사건의 발표 시점과 배경에 토를 달 여지가 전혀 없다. 다른 어떤 조작이 또 있을지 모른다.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 헌법재판관 다수는 세월호 부실 대응에 대한 책임까지 묻기 어렵다고 봤지만, 그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런 국정농단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추가 수사를 통해 철저하게 진실을 밝히고 김관진 안보실장 등 관련자들을 일벌백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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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2008년 2월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했다. KTX를 타고 봉하마을로 내려갔다. 귀향 초기엔 화포천을 둘러보고,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방문객을 맞았다. 친환경 벼농사에 관심을 쏟으면서 지역주민들과 논두렁에서 막걸리 잔을 주고받는 일이 잦았다. 건배사는 “봉하마을 친환경 오리농법을 위하여!”였다. 짬이 나면 손녀를 태운 자전거의 페달을 밟았다. 그렇게 ‘바보 노무현’은 ‘농부 노무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해 7월30일.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직원들이 45인승 전세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4시간 넘게 달려 경남 김해에 있는 태광실업에 닿았다. 조사4국 직원들은 태광실업에 들이닥쳐 회계장부와 재무 관련 자료를 압수했다. 회사 관할은 부산지방국세청인데 서울에서 특별 세무조사를 전담하는 조사4국 직원들이 내려와 재계 서열 600위권의 지방 신발업체를 샅샅이 뒤진 데는 불순한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었다. 넉 달간 진행된 먼지털이식 고강도 세무조사의 타깃은 마당발 인맥과 통 큰 로비로 유명했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아니었다. 박 회장이 후원했다고 알려진 전직 대통령 노무현이었다.

#장면 2. 2008년 봄. 취임 첫해를 맞은 이명박에겐 ‘시련의 계절’이었다. 그해 4월 이명박은 굴욕적인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을 선언했다. 민심은 들끓었다. 광장을 메운 촛불시민들은 “MB 즉각 하야” “이명박 OUT” 등의 구호를 외쳤다. 경찰은 ‘명박산성’을 쌓으며 촛불집회를 원천봉쇄하려 했지만 허사였다. 이명박 지지율은 10%대로 떨어졌다.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아침 이슬’을 읊조렸지만 성난 민심은 가라앉지 않았다.

당시 이명박은 사이버 세상의 뒷공간을 이른바 ‘노빠’들이 장악하고 있다고 여겼다. 노무현 후원자들이 운영하는 업체에 대한 세무조사를 지시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우리들병원, 토속촌, 제피로스 등이 세무조사를 받았지만 의심할 만한 자금의 흐름이 포착되지 않았다. 그러자 불똥이 태광실업으로 튀었다. ‘보복성 표적 세무조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명박은 물불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지 않으면 자신이 몰락할 판이었다.

#장면 3.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국세청장이었던 한상률은 2008년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정권이 바뀌면 국세청장도 교체되는 게 관례다. 하지만 이명박은 신임 국세청장을 임명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킬레스건인 서울 도곡동 땅의 실체와 BBK 관련 의혹을 파악하고 있던 한상률을 내치면 뒷감당을 할 수 없을 것이란 얘기가 파다했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한상률은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유임된 최초의 국세청장이 됐다. 하지만 충남 서산 출신인 한상률은 이명박 정권과 ‘끈’이 닿지 않았다. 그는 안원구 서울청 세원관리국장을 불러 “이명박 정권과 지연, 학연, 혈연이 닿지 않는다. TK 출신인 안 국장이 MB 쪽에 아는 사람이 많을 테니 도와달라”(안원구·구영식, <국세청은 정의로운가>)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실패했다. 그러자 자신을 국세청장으로 임명한 노무현을 타깃으로 한 세무조사에 나선 것이다. 당시 한상률은 태광실업 세무조사 결과를 이명박에게 직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8년 벌어진 세 개 장면은 이듬해 5월 노무현의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마무리됐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명박과 한상률만큼은 헌정사상 초유의 비극이 왜 빚어졌는지를 짐작하고 있을 터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입을 닫고 있다. 시간에 묻히고, 세인들의 기억에서 멀어지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자유한국당은 노무현을 현실정치에 끊임없이 소환하고 있다. 정진석 의원은 노무현의 죽음을 “부부싸움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홍준표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의 유족들도 (뇌물사건의) 공범”이라고 했고, 강효상 대변인은 “뇌물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재수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적폐청산의 칼끝이 이명박에게 겨눠지자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을 끌어들여 물타기하려는 저열한 행태다.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조차 갖추지 못한 한국당 의원들의 막말과 추태에 진저리가 쳐진다.

인간 삶이 제각기 다르듯 죽음도 천차만별이다. 사마천은 ‘보임안서(報任安書)’에서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처럼 가볍다”고 했다. 노무현이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을 선택한 지 8년5개월이 흘렀다. 2008년 배신과 음모로 점철된 세 장면을 목격했던 시민들은 안다. 노무현을 죽음으로 내몬 것도 모자라 ‘새털처럼 가벼운 죽음’으로 폄훼하려는 ‘미필적 고의범’이 누구인지를…. 시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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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기자의 숙명이겠지만 늘 거대담론에 둘러싸여 산다. 명절은 이 팍팍한 늪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일상의 소박한 결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나 이번 추석은 예외였다. 이명박(MB) 정부의 ‘적폐’라는 거대담론에 단단히 포위된 채 보내야 했다.

군까지 동원된 정치개입, 문화연예계 블랙리스트, 전직 대통령 비하 청부…. 끝도 없이 터져나오는 비리도 모자라 국가기관이 보수단체와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 평화상 수상 취소를 모의했다는 정황마저 불거졌다. 권력이란 게 아무리 자기 극대화와 영속성이 본질이라지만, 그래서 적과도 거래하는 진흙탕 싸움도 불사한다지만 정치적 부관참시까지 하다니. <징비록>과 <난중일기>가 시사하듯 왕조·식민지 지배세력들도 품격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게 우리 역사였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 때도 반북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대항 이데올로기가 힘을 잃지 않았고 독재의 실체적 진실이라도 알 수 있었다. 박근혜 정부는 국정 역사교과서, 테러방지법 등을 동원해 체제를 바꾸려 했던 신념 보수이기라도 했다.

그렇다면 온갖 적폐로 통칭되는 ‘MB의 시간’은 누구를 위해 존재한 것인가. ‘MB의 시간’은 도대체 무엇이었나.

그 시절, 우리는 국가를 잃었다. ‘님을 위한 행진곡’ 중단으로 광주를 뺏겼고 5월 정신을 뺏겼다. 건국절 논란은 뿌리 없는 국가 만들기 시도였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할 공무원들을 민간인 사찰, 댓글 공작이라는 사적 이익에 동원하면서 공권력을 무너뜨렸다. MB 정권의 ‘국가 무용론’은 인수위 시절, 임기 말 노무현 정부와 ‘큰 정부, 작은 정부’ 싸움을 벌였을 때부터 예견됐던 건지도 모르겠다. 한 소설가는 “국가는 국민의 마음을 닮게 마련이다. 이토록 국민의 마음을 배반하고 국가를 무력하게 한 지도자가 있었던가 절망했던 때”라고 돌아봤다.

시민의 가치가 송두리째 짓밟힌 세월이었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를 외쳤던 시민들은 생명권과 검역주권을 박탈당했다. 공영방송 시스템을 흔들고 수많은 언론인을 해고하고 마스크 금지법, 댓글 처벌법으로 표현의 자유를 가뒀다. 균형발전의 싹을 잘라 분권을 향해 나아가던 지역의 발걸음을 막았다. 한 지인은 “가슴 밑바닥까지 온통 불신밖에 없었다. 사회의 진보가 쉽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진보를 믿어야 할지조차 의심했던 때”라고 했다.

천민자본주의가 지배했던 5년이었다. 부실 자원외교는 에너지 공기업에 조 단위가 넘는 부채를 안겼다. 경제 살리기 명목으로 시작한 4대강 사업은 투기세력의 배만 불렸다. 덤핑 낙찰과 납품 비리에 얼룩진 원전 비리는 막대한 손실로 되돌아왔다. 국가 운영을 이익 중심의 비즈니스로 인식한 ‘장사치 보수’였다. 이로인한 상실감은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넘의 말로 대신한다. “대규모 부패는 청렴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파괴한다. 신뢰가 파괴되면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냉소와 체념으로 힘겨운 삶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MB의 시간’을 기억하는 방법이 온통 괴물의 악행을 성토하는 것뿐이면 안된다는 자성도 든다. 이런 세월을 지나고도 진보개혁 진영은 2012년 대선에서 패배했다. 정치권이 성찰하고 혁신하지 않는 동안 촛불이 세상을 일으켜 세웠다. 한편에선, 보수 지지층 결집 징후를 전하는 추석 민심도 적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모든 짐을 지고 인당수에 빠진만큼(구속) 보수 정치권에 대한 실망을 거두자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 역할을 불신하는 미국에서도 ‘정부는 국민을 섬긴다’는 공민학 제1의 원칙에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보수층이 앞장서 ‘MB의 시간’을 성찰해야 하는 이유일 테다.

적국(미국)조차 ‘위대한 혁명가’로 인정했던 체 게바라의 50주기에, 전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 취소를 모의했던 ‘MB의 시간’을 돌아봐야 하는 지금. 참으로 부끄럽고 괴로운 계절을 지나고 있다.

<정치부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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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우리나라의 개도국에 대한 경제·사회 발전 지원, 즉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대표하는 공공기관이다. 올해 8500억원의 예산으로 국가별 협력, 글로벌 연수, 해외봉사단 파견, 재난 구호 및 복구, 민간단체의 해외원조사업 지원, 국제기구 협력 등의 사업을 한다. 예산은 대부분 정부 출연금과 보조금으로 이루어져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은 김인식 전 이사장이 지난 4월 사직하면서 현재 신임 이사장 선임 절차를 진행 중이다. 차관급인 코이카 이사장은 임원추천위원회에서 이사장 후보를 추천한 후 외교부 장관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느닷없이 코이카 이사장에 더불어민주당의 이모 전 의원이 내정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난 대선 때 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냈다는 이유로 보은 인사를 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공공기관의 부실 원인은 무엇보다 낙하산 인사에 있다. 이야말로 청산해야 할 적폐이다.

국제사회는 2016년부터 향후 15년 동안 지속가능개발목표(SDG)를 달성하기로 합의했다. 코이카는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의 SDG 달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을 부여받고 있다. 따라서 코이카 이사장은 전 세계의 빈곤 문제와 SDG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 이에 기초해서 ODA에 대한 높은 비전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아울러 “개발은 현장에 있다”는 말처럼 개발협력의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어야 한다.

코이카는 소중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다. 그럼에도 코이카는 경직된 사업방식과 일부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에 따른 비판을 받고 있다. 따라서 신임 이사장은 개혁적인 경영 마인드를 가지고 조직을 재정비하고, ODA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특히 우리의 국익과 개발협력 본연의 목표를 적절히 조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사업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또한 대내외 이해관계자들(stakeholders)과의 상생 파트너십을 구축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코이카 직원들은 선진국이 아닌 열악한 환경의 개도국에서 근무할 수밖에 없다. 코이카는 창립 당시에 비해 예산은 40배 확대되었지만 직원 수는 1.5배 정도만 늘었다. 이에 따라 직원들은 급증하고 있는 업무에 허덕이고 있다. 기왕이면 이들과 함께 고락을 함께하며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신임 이사장이면 좋겠다.

그동안 코이카 이사장은 외교부 출신이 맡아 왔다. 김인식 전 이사장은 최초로 비외교관 출신이었지만 이 또한 낙하산 인사, 코드 인사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코이카 이사장 후보를 선임하는 임원추천위원회는 낙하산 인사와 코드 인사의 적폐를 청산해주길 바란다. 그럴 리 없기를 바라지만, 혹시 청와대에서, 정치권에서, 외교부에서 내정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리고 학연이나 그 밖의 여러 경로로 개인적인 추천이나 청탁을 하는 경우에는 임원추천위원회에서 이를 공개하고 이들을 철저하게 배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청와대가 적폐청산의 결의를 분명히 하고 이를 공표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개도국 원조기관의 책임자를 뽑는 데 개도국에서나 볼 수 있는 정실인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현훈 |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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