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비평'에 해당되는 글 3966건

  1. 2016.07.22 [기고]광우병 사태와 동일한 정부의 사드 전략
  2. 2016.07.22 사드 대안을 달라고?…대통령에 답한다 “외교다”
  3. 2016.07.19 사드, 피할 수 없는 민주적 안보 논의
  4. 2016.07.19 [기자메모]외부 세력이라니…사드 배치가 성주만의 일인가
  5. 2016.07.18 ‘나향욱’의 나라에서 민주공화국으로
  6. 2016.07.13 [서민의 어쩌면]박 대통령이 바라는 나라
  7. 2016.07.07 [김종철의 수하한화]브렉시트, 민주주의의 실패라고?
  8. 2016.07.06 ‘밑 빠진 독’에 물 부은 이유, 정부는 왜 설명 안 하나
  9. 2016.07.05 ‘서울공화국’ 일극체제를 양극체제로
  10. 2016.06.29 [서민의 어쩌면]대통령님, 기생충에게 배우세요
  11. 2016.06.28 지금이 개헌논의를 할 때인가
  12. 2016.06.27 기후변화·미세먼지의 몸통, 자본주의
  13. 2016.06.22 [시대의 창]협치의 미학, 갈등의 정치학
  14. 2016.06.22 “금남로 군사 행진 몰랐다”…광주시장의 ‘유체이탈 화법’
  15. 2016.06.22 타당성 논란 빚은 도의원 성과금, 경기지사는 왜 침묵하나
  16. 2016.06.21 탈북 12인을 위험에 빠뜨린 건 정부
  17. 2016.06.21 [사설]우왕좌왕 국민의당, ‘새정치’는 선거용 슬로건일 뿐인가
  18. 2016.06.20 [사설]야권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 공조 주목한다
  19. 2016.06.20 [사설]국정 내팽개치고 소란 피우는 정권, 이게 나라인가
  20. 2016.06.17 [정동칼럼]면피형 협치와 혁신형 협치

민중을 개·돼지로 본다는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발언 이후 사회 기득권의 보수 입장을 대변하는 자유경제원의 토론회에서 어느 교수는 천민민주주의를 언급하면서 귀족들이 ‘천하고 상스러운 떼의 논리’를 지닌 우중(愚衆)을 이끌어야 한다고 했다. 동일한 논리로 또 다른 교수는 ‘87 민주화항쟁’으로부터 ‘광우병 촛불시위’까지도 폄하했다. 귀족 정신의 현 정권과 기득권층이 지닌 시각이다.

사드 배치지역으로 선정된 경북 성주군 지역 주민들이 13일 밤 성주군청 앞에서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강윤중 기자

정권의 이런 인식과 연동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정부의 대응 방식이다. 사드 배치 과정을 보면 계속 부정하던 사드 국내 배치는 급작스레 공표됐고, 설치 위치마저 해당 지역 주민들과의 논의 없이 결정됐다. 사드 배치의 실질적 문제는 해방 이후 남북 분단과 더불어 반세기가 넘도록 외국 군대가 수도 안에 주둔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이 외국 군대가 추가 배치된다는 점과 미군의 해외 경찰력 증강을 위해 우리나라가 감내해야만 하는 국내외의 악영향, 민족 간 갈등의 고착화다.

일방적 사드 배치 결정이나 지역 선정에 항의하는 국민과 주민을 향해 정부는 여론을 통한 철저한 우민화 작업으로 대응한다. 사드는 일개 포병중대에 불과하다느니, 전자파 위해성이 어떠하다느니 하면서 사드 논란의 초점 자체를 국내 지역 갈등 형태로까지 몰아간다. 지역 주민들 반발에 대한 정부 대책 역시 총리와 국방부 장관을 보내 달래는 것이었다. 장소 재논의를 요구하는 주민들에게 정부 입장을 일방적으로 강조하고 통지하는 것으로 이들의 방문 일정은 끝났다.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는 방식이라기보다는 사육하는, 이들이 본인 소유의 개나 돼지에게 하는 방식이다. 또한 정부의 일방적 결정에 분노하는 주민들이 총리에게 달걀을 투척하자, 정부는 전담 수사반을 편성하고 관련자 색출에 나섰다. 이 또한 저항하는 개·돼지를 길들이는 힘의 방식과 결코 다르지 않다.

보수 인사들이나 매체들도 정부에 비판적인 이들을 향해 2008년 광우병 사태를 언급하면서 거침없이 괴담에 선동된 어리석은 대중으로 호도한다. 이는 사드에 반대하는 이들을 ‘광우병 때처럼 선동된 집단’으로 표현하는 데서 잘 나타난다. 그러나 2008년 광우병 사태에서 여론몰이로 대중을 선동하고 속인 측은 정부였다. 당시 국제기준을 무시하며 미국 입장만을 반영한 미국 쇠고기 수입 개방조건이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전염병이 아니라든지, 5년 내로 사라지는 병이라든지, 한국 사람의 유전자형과 발병 위험성은 상관없다는 등 여러 근거 없는 내용으로 논란의 초점을 비켜가면서 마치 학계의 과학적 위해성 논란인 양 촛불시민을 기만했다.

현실에서는 2008년 한국의 개방 이후, 정부 주장과는 달리 광우병 촛불시위대가 주장한 30개월 이하로 멕시코, 대만, 일본, 홍콩 등이 수입을 마무리했다. 중국 본토와 호주는 지금도 여전히 미국 쇠고기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쪽이 어리석은 자들이고 거짓 선동한 자들인가는 분명하다. 그러나 사드 배치 과정에서 나타났듯이 국민을 천민으로 보는 귀족 정신의 정부는 국민 요구의 옳고 그름은 무시한 채 의도적으로 문제의 초점을 흐리는 전략을 펴면서 자신들의 의도를 달성하기 위해 국민을 거짓 선동한다.

21세기 들어 한국 사회가 보다 나아졌는가를 묻는 것은 이제 사치에 가깝다. ‘87 민주화항쟁’을 거쳐 21세기에 들어섰지만, 이명박 정권과 현 정권은 국민을 개나 돼지로 전락시키고 있다. 광우병 사태 때 정부의 본질 흐리기와 여론몰이에 의한 선동 전략이 통했기에 민중이 개·돼지요, 국민 천민론이 등장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개·돼지와 다른 점은 반복해서 속지 않으며 귀족을 위한 지배자에게는 분노하고 행동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못하면 진정 저들의 말처럼 된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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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21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대한 반발을 겨냥해 “사드 외에 북한 미사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부디 제시해보라”고 했다. 대통령의 말은 순서가 틀렸다. 사드 배치를 결정하기 전에 먼저 이렇게 물어보았으면 ‘소통하는 대통령’이라는 평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밀실에서 다 결정하고 도장까지 ‘쾅쾅’ 찍은 뒤 이렇게 말하면 그저 호통이 되고 만다.

경북 성주군민 2000여명이 21일 서울역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준헌 기자

박 대통령은 사드 말고 다른 방법이 뭐가 있느냐고 호통치기에 앞서 국민 보호를 위해 들여오는 사드가 왜 국가 주요 기관과 전체 인구의 절반이 모여 있는 수도권을 방어하지 못하는지 먼저 설명해야 한다. 사드는 미군시설 지역에 배치하고 수도권에는 기존 패트리엇 미사일을 보강해 방어한다는 국방장관의 계획이 사실이라면 사드가 국민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은 애초부터 성립되지 않는다.

사드와 같은 미사일방어(MD) 체계는 기본적으로 적으로부터 공격받았을 때 반격하는 시스템으로, 자국의 군사적 자산 보호가 우선이다. 선제공격을 하면 다 같이 죽게 된다는 ‘상호확증파괴’ 논리에서 출발해 상대 공격력을 무력화시키고 전략적 우위를 점하는 단계로 진화한 것이 MD다.

만약 북한이 공격을 해온다면 군사적 관점에서 가장 먼저 보호해야 할 대상은 반격에 필요한 군 시설과 장비다. 미군이 사드를 수도권이 아닌 군 시설, 그중에서도 핵심적 전력인 미 군사기지를 보호할 수 있는 곳에 배치하려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사드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미국 요구에 따라 사드를 들여오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

사드는 군사적 효용성이 검증되지 않은 미완성 무기체계다. 북한이 사드를 피해 남측을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은 너무 많고 다양하다. 이 때문에 사드가 북한의 도발을 막아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북한이 도발을 계획했다가 자제한다면 그것은 사드가 아닌 다른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한·미가 사드를 사용해야 할 상황이라면 이미 전면전이 벌어진 상태임을 의미하기 때문에 인명과 재산 피해는 발생한 뒤다. 결국 ‘사드 배치→북한 미사일 공격 차단→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논리는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3단계 방법’만큼 허망하다.

사드로 전쟁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국민 보호는 사드가 아니라 ‘외교와 전략’으로 하는 것이다. 정말 국민 안전이 목적이라면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국제 공조를 통해 평화유지 메커니즘을 만들고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단계적으로 동결·폐기시키기 위한 외교적·전략적 노력을 기울이는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길을 차분히 한발씩 걷는 방법 외에는 대안이 없다. 평화를 유지하고 국민 안전을 도모하는 일이 사드 배치와 같은 단순한 조치로 이룰 수 있다면 한반도 문제가 왜 이 지경까지 왔겠는가.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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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한·미가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결정한 이후 이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14일 “지금은 사드 배치와 관련된 불필요한 논쟁을 멈출 때”라며 “이해당사자 간에 충돌과 반목으로 정쟁이 나서 국가와 국민 안위를 잃어버린다면 더 이상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로 만들고자 했다.

민주주의가 정상 작동하는 나라라면 나올 수 없는 발언이다. 배치 직전까지 국방장관이 모른다는 식으로 연막을 쳤고, 기습적으로 배치를 결정한 이후에는 그에 대한 논의가 필요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사드배치 반대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관련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태도는 국가를 자신의 사유물로 생각할 때만 가능하다. 사드 배치는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큰 논란을 초래한 문제다. 그런데 당사국의 국민이 이것이 국가안보에 유리한지 아닌지를 논의할 수 없다는 것이 정상인가? 다행히 상황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사드 배치의 합리성을 따지는 논의가 경북 성주군민으로부터 국회에 이르기까지 활발하게 진행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권위주의 시기부터 안보 관련 정책결정은 행정부가 사실상 독점해왔다. 전쟁을 경험하고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 나라에서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운 결정에 이견을 제기하기는 어려웠다. 관련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은 탓에 시민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는 더 어려웠다. 민주화 이후에도 이 같은 상황은 계속돼 왔다.

그러나,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반대투쟁이나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 반대투쟁 등이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었다. 이 활동들이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운 정책결정이 진정으로 안보에 도움이 되는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민의 삶의 안정을 해치면서까지 진행될 가치가 있는지 등의 질문을 공론장에 제기했다. 그 과정에서 안보 문제에 대한 국민적 차원의 학습도 진행됐다.

이제 우리 국민은 권위주의 정부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 “국가안보를 위해서”라는 한 마디에 위축되지 않는다. 사드 배치 결정은 이런 학습과정을 한단계 높여주고 있다. 당장 성주군민들도 이제 레이더 전자파 문제부터 사드가 한반도에 필요한 무기인지에 대해 인터넷을 뒤져 스스로 학습하고 있다.

더욱이 사드 배치는 성주군민에게만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국방장관 스스로 사드 배치가 수도권을 방어하지 못한다고 인정했다. 사드가 북핵을 완전히 방어할 수 있다는 식의 신화를 퍼뜨린 당사자가 만약의 사태에 북의 첫 번째 공격목표라고 할 수 있는 지역도 방어를 못한다고 말한다.

최근 안보문제를 내세운 여러 조치들은 계속 국민의 삶을 불안하게 만들어왔다. 금강산 관광 중단은 강원도민의 삶을, 개성공단 사업 중단은 중소기업과 관련된 시민의 삶을, 그리고 사드 배치는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나아가 사드 배치는 동북아의 군비경쟁을 촉발하며 남한을 겨냥한 중국과 러시아의 미사일을 크게 증가시킬 수 있다.

이런 식의 안보가 진정한 안보인가? 군사적 긴장만 고조시키고 정작 시민의 안전은 보장하지 못하는 것이 어떻게 안보강화인가? 이제 국민의 삶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줄 수 있는 안보는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불가피해졌다. 시민적 입장에서 안보를 이야기하고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가는 것은 우리 민주주의를 질적으로 발전시키는 데도 중요하다.

이에 대한 인식이 정치권, 특히 야당들 내에서 점차 확산되고 있지만, 초기 대응에는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특히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사드 배치의 정당성을 따지기보다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안보 문제를 자신에게 불리한 의제로 판단하고 가능하면 이를 이슈화시키지 않고 피해가려는 관성적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남북이 분단되어 있고 한반도가 미·중이 힘겨루기를 하는 무대로 전락할 위험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안보 문제는 피할 수 있는 의제가 아니다. 내년 대선까지 한반도 내부와 주변 상황도 녹록지 않다. 정권안보를 국가안보로 포장하려는 유혹도 커지는 시기이다.

이럴 때일수록 야당들은 정부의 입장에 적당히 동조함으로써 안보정당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반대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고 한반도 평화를 실현할 수 있는 담대한 비전을 갖고 사드 배치가 촉발한 논란에 대응해야 한다. 나아가 어떻게 해야 시민의 안전과 평화로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가에 대한 민주적 논의의 장을 확보하고, 국민의 판단을 구해야 한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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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경북 성주 배치에 반대하는 목소리에 ‘외부세력’이 개입했다는 주장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외부세력이 폭력시위를 유도했다고 주장하고 보수층 인사들은 외부의 종북세력이 선동한 결과라고 맞장구친다. 사법당국은 기다렸다는 듯 수사에 착수했다.

18일 태평양 괌 미국기지에서 한국의 국방부 관계자들과 취재진이 사드포대를 살펴보고 있다. 한국 국방부 관계자들과 취재진은 경북 성주지역으로 사드 배치지역이 결정된 후 제기되는 논란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괌 사드 포대 운용 실태와 레이더 전자파 인체 위해성 여부, 발전기 소음, 환경피해 등을 확인했다. 연합뉴스

이들이 말하는 외부세력은 성주에 거주하지 않거나 연고가 없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표현에는 사드 배치 문제가 ‘오롯이 4만5000명의 성주 군민들과 정부 간의 일’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사드 배치를 ‘일개 포대중대 배치 문제’로 치부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단순하고 저급한 인식이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는 동북아시아의 전략적 균형을 깨고 군비경쟁을 촉발해 역내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은 물론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악화시켜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요원하게 만드는 사안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 관한 한, 대한민국 국민 중 외부세력이라고 구분해 제외시킬 수 있는 사람은 없다.

18일 태평양 괌 기지에 배치된 사드 포대에서 미군이 한국 취재진에게 관련 설명을 하고 있다. 이날 한국 국방부 관계자들과 취재진은 경북 성주지역으로 사드 배치지역이 결정된 후 제기되는 논란을 객관적으로확인하기 위해 괌 사드 포대 운용 실태와 레이더 전자파 인체 위해성 여부, 발전기 소음, 환경피해 등을 확인했다. 연합뉴스

외부세력을 찾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성주 군민들이 사드를 받아들이면 다른 지역 국민들은 사드 배치에 반대하면 안된다는 말인가. 만약 성주가 끝내 반대해 다른 지역을 찾아야 한다면 그때는 성주 군민들이 외부세력이 되는가.

‘외부세력론’은 사드 배치 문제를 성주 군민과 정부 간의 사안으로 국한시키고 이들을 보상으로 회유하든 종북세력으로 몰아 겁박하든 입만 다물게 하면 된다는 불순한 의도를 담고 있다. 

굳이 외부세력을 색출하고 싶다면 멀리 갈 것도 없다.

북한 핵미사일과 관련이 없는 전략자산을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해 한반도에 배치하고 이로 인해 빚어질 수 있는 외교적·경제적·국내적 혼란을 감수하라고 팔을 비틀고 있는 미국이 바로 가장 심각한 외부세력이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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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하철에서 낯선 분이 아는 척을 했다. 본인이 예전에 재벌그룹 핵심부에서 근무했었다고 말했다. 십수년 전 그곳에서 일할 때 당시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던 나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내가 활동하던 시민단체가 그 재벌그룹의 불법행태를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분은 그 후에 다른 외국계 기업으로 옮겼다가 부당해고를 당해 소송을 하고 있다고 했다. 얘기 중에 그분은 자신이 경험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부족국가’라고 말했다. 그분이 말한 ‘부족국가’의 의미는 기득권을 가진 족속들끼리 해 먹는 국가라는 것이다. 본인도 거기에 기여한 것이 아닌가하는 자책도 하는 듯했다. 자신이 예전에 살았던 모습도 돌아보면 떳떳하지 못하다고 토로했다.

"민중은 개·돼지"라고 발언해 물의를 빚은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11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자리에 앉아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강윤중 기자

그분과의 우연한 만남 이후에 ‘부족국가’라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전 ‘나향욱’이라는 교육부 고위 공무원의 발언을 접했다. 그는 그가 속한 1%의 부족이 나머지를 지배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 듯했다. 그의 잘못은 그 진실을 입 밖에 낸 것이다.

그래서 그가 파면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기쁘지 않았다. 수많은 또 다른 ‘나향욱’들이 대한민국의 입법·행정·사법·언론·대기업·대학 등에 깔려 있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나향욱’들은 국가의 중요한 정책결정을 자기들 마음대로 한다. 나머지 99%의 사람들은 그저 따르기만 하는 통치대상으로 본다. 특히 서울에서 떨어져 있는 변방의 주민들은 자신과 다른 ‘2등 국민’으로 본다. 그래서 원전이든 송전탑이든 사드든 자신들이 밀실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하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국가공동체를 위해 과연 그것이 필요한지를 토론하는 것도 회피한다. ‘나향욱’들이 가끔 변방의 2등 국민들 앞에 나타날 때에는 ‘모양새’를 만들기 위해 필요할 때이다. 다 결정해 놓고도 얘기 들어주는 시늉만 하면, 2등 국민들은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달걀이나 물병을 맞거나 욕을 듣는 일이 발생하면, ‘감히 자신들의 권위를 훼손했다’고 생각하고 공권력으로 보복하려고 한다. ‘나향욱’들은 결코 자신들이 저지르는 반민주적인 독선과 전횡을 성찰할 줄 모른다.

‘나향욱’들은 자신들의 집 앞에는 절대로 원전, 송전탑, 사드가 들어설 일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반면에 자신들과 다른 2등 국민들은 당연히 그것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로만 같은 ‘국민’이지, 실제로는 다른 계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향욱’들을 비판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자신도 ‘나향욱’인 이들도 있다. 특권은 같이 누리면서 입으로만 비판을 할 뿐이다. 대한민국의 ‘나향욱’들은 1%의 자신들을 어떻게든 나머지 99%와 구분짓고 싶어 한다. 그래서 99%는 쓰지 못하는 ‘눈먼 돈’을 쓰고, 99%와는 다른 차량을 타고, 다른 식당에서 밥을 먹고, 다른 출입문을 사용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을 구분짓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묻고 싶다. ‘나향욱’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나향욱’을 보며 자존감을 훼손당한 우리에게 묻고 싶다. 언제까지 ‘나향욱’들이 만들어놓은 규칙에 따라 경쟁하고 압박감을 느끼며 살 것인가? 그들이 만들어놓은 노동법과 최저임금을 받아들이고, 그들이 결정한 원전과 송전탑, 사드, 토건사업들을 받아들이기만 해야 하는가? 투표 때면 그들이 만들어놓은 답안지를 놓고 ‘차악’을 고민하고, 평상시에는 그들이 당연시하는 불평등과 격차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살 것인가?

‘나향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민주주의이다. 그래서 그들은 결코 시민들에게 결정권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참여의 기회를 보장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 혐오와 차별, 공포를 무기로 99%를 조종하려고 한다.

그래서 이 땅의 ‘나향욱’이 아닌 사람들에게 제안한다. 우리의 자존감을 위해 이제는 ‘나향욱’들의 지배에서 벗어나자. 시작은 특권을 폐지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들이 만들어놓은 1%의 특권들은 실질과 상징 모두 폐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향욱’들이 두려워하는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년은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30년이 되는 해이다. ‘나향욱’들의 나라를 만들려고 30년 전에 그 많은 사람들이 피땀을 흘린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제는 ‘나향욱’들이 결정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시민들이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정치기득권을 깨는 선거제도 개혁, 관료기득권을 깨는 고시제도 폐지 등 행정개혁, ‘눈먼 돈’을 없애는 예산개혁이 필요하다.

공식 권력에 있는 ‘나향욱’만이 아니라, 거대자본과 언론에 있는 ‘나향욱’들을 통제하고 견제하는 것도 필요하다. 내년에 대선에 나오겠다는 정치인들이라면, 이런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만 맡길 것은 아니다.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라면 뭐든 해야 할 것이다.

‘나향욱’들의 나라를 민주공화국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정치와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은 일시적 분노의 폭발이 아니라 현실을 바꾸는 행동이 필요한 때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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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7일 이재명 성남시장이 11일간의 단식을 중단했다. 고등학교 때 어머니가 바지를 안 사준다고 딱 하루 동안 밥을 굶은 게 가장 긴 단식인 나로서는 열흘이 넘게 단식한 이 시장이 존경스럽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긴 하다. 예로부터 단식은 주로 힘없는 이의 수단이었다.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때 택하는 방법이 바로 단식 아닌가? 그런데 잘 사는 동네의 시장을 하는 분이 단식을 해야 할 사정은 도대체 뭘까? 그건 자신이 바라는 성남시의 모습이 박근혜 대통령의 그것과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 경향신문DB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집권 시 자신이 우선적으로 추구할 가치를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중점을 둔 가치는 남북관계 개선이었다. 이를 위해 김 전 대통령은 금강산관광을 시작했고, 온갖 난관을 다 이겨내고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고 돌아온 뒤 “전쟁은 없다”라고 선언한 그의 모습은 50년간의 적대에 찌든 우리에게 “통일이 머지않았구나”라는 환상을 갖게 해줬다.

하지만 남북화해보다는 대결을 더 선호하는 세력이 집권하면서 남북관계는 점점 뒷걸음질 쳤고, 그 시대의 상징인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도 이제는 과거의 유물이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 해소’를 핵심가치로 삼았다. 지역주의에 도전했다 번번이 실패한 것이 그가 대통령이 된 이유였던 만큼 사람들은 이제 지긋지긋한 지역주의가 청산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지역주의의 골은 생각보다 깊었고, 지역을 기반으로 한 각 정당들도 지역주의 청산을 바라지 않았기에, 노 전 대통령의 가치는 아쉽게도 실패로 돌아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을 따르는 측근들이 보다 윤택한 삶을 살기를 원했다. 이 전 대통령은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4대강의 강바닥을 파헤친 것도 이 때문인데, 여기에 투입된 돈은 무려 22조원이나 됐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4대강 사업이 국민들의 삶에 어떤 이득을 가져다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의 두 대통령과 달리 이 전 대통령이 원했던 가치는 충분히 실현된 듯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집권 3년여를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박 대통령은 우리 국민들을 독립적인 인간으로 만들고 싶었나 보다. 국가에 뭔가를 바라지 말고 모든 것을 제힘으로 알아서 해결하는 그런 인간형, 이를 이루기 위해 박 대통령은 안 그래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인 복지를 점점 줄여나가고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이제 국가에 대해 별 기대를 하지 않는다. 경기불황으로 삶의 수준이 밑바닥까지 떨어졌어도 국가에 의존하려 하지 않고, 심지어 큰 재난이 났을 때 국가기구가 나를 구해 줄 것이라는 기대도 버린 지 오래다.

이재명 성남시장의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그는 무슨 무슨 ‘장’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다면 그 휘하에 있는 사람들을 잘 챙겨줄 의무가 있다는, 저 옛날 요순시대의 가치관을 갖고 있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는 성남시의 유치원과 초·중학교에 친환경 무상급식을 시행했고, 1인당 15만원 정도가 드는 교복값도 지원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공공 산후조리원을 만들어 산모 1인당 25만원을 지원해줬다. 게다가 청년배당이라고 만 24세 청년에게 연 50만원을 지역화폐로 줬는데, 이는 지역에서 이 돈을 소비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하려는 정책이었다.

성남시민들은 시장을 칭송했고, “나도 성남에서 살고 싶다”는 사람들의 하소연이 전국에 메아리쳤다. 더 놀라운 사실은 성남시민들이 세금을 추가로 더 내게 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소위 증세 없는 복지의 기적, 박 대통령이 국가채무를 기록적으로 늘려나가는 것과 정반대로 이 시장은 그전 시장이 진 빚까지 모두 갚아버렸다!

국민들을 독립적인 인간으로 키우려던 박 대통령이 화들짝 놀란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한 저작권의 소유자가 아닌가? 정부의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됐다. 성남시가 자체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을 빼앗는 게 그 방법이었다.

심지어 성남시를 ‘부자 자치단체’라고 부르며 “부자들한테 5000억원씩을 갈취해 다른 지자체에 나눠 주겠다”는, 말도 안되는 법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얼마 전 행정자치부가 입법예고한 ‘지방재정법 시행령 개정안’이 바로 이것인데, 이게 시행되면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는 물 건너간다. 이것이 이 시장이 무려 11일간 밥을 굶은 이유였다.

안타까운 점은 시민들의 반응이었다. 보수세력이 성남시장을 포퓰리즘의 화신처럼 묘사하는 것이야 예상할 수 있는 일이지만, 많은 이들이 거기에 동조해 이 시장을 욕하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성남시민이 부러우면 자기네 시장·군수에게 “왜 우리는 저렇게 못 하냐?”고 떼를 쓸지언정, 너희도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해야 한다며 성남시장을 깎아내리는 게 과연 옳은가? 이런 걸 보면 국민들을 국가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인간으로 키우겠다는 박 대통령의 가치는 거의 성공한 모양이다. 바람직한 가치는 줄줄이 실패하고,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가치는 죄다 성공하는 나라, 박 대통령의 성공이 슬픈 이유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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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4일, 영국의 국민투표 결과가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쪽으로 결론이 나자 온 세계가 화들짝 놀라고, 온갖 미디어가 폭포처럼 분석·논평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흥분상태가 가라앉는 듯하지만, 여전히 세계의 언론들은 ‘브렉시트’ 사태의 추이와 전망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문제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극히 당연하다. 브렉시트란 유럽의 중핵 국가가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제주의적’ 연대체로부터의 이탈을 결정한 엄청난 사건이니 말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운데)가 6월 27일(현지시간) 런던의 하원에 출석해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런던 _ AP연합뉴스

실제로 브렉시트는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이 가능한, 복합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가령 세계 현실을 ‘아래에서 위로’ 보는 데 익숙한 사람의 눈으로 볼 때, 그것은 무엇보다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지난 수십년간 세계 전역의 민초들과 자연세계를 난폭하게 짓밟고 유린해온 신자유주의의 횡포에 대한 사회적 약자들의 분노와 항변의 표출로 읽을 수 있다. 게다가 신자유주의의 발상지인 영국에서 이런 반응이 나왔다는 게 매우 흥미롭다. 그러나 세계의 주류언론은 이 점에 주목하기보다는 국민투표에서 ‘탈퇴’ 쪽에 몰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진 주요 계층, 즉 (자신들의 경제적 곤경이 이민자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하층민들의 ‘무지’와 시대착오적인 ‘국수주의’ 정서를 비웃고, 또한 그러한 ‘어리석은’ 대중적 정서를 이용하려는 정치적 야심가들을 규탄·비판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그리고 그 비판의 연장선에서 상당수 언론인·지식인들은 -좌우파를 가리지 않고- ‘민주주의의 실패’를 거론하고 있다. 영국이라는 국가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에 영향을 미칠 중차대한 문제를 결정하는 데 국민투표라는 ‘직접민주주의적’ 방식을 채택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가를 이번 사태가 명확히 드러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이 가능하려면 두 가지 전제가 성립돼야 있다. 즉 유럽연합 탈퇴 결정이 과연 ‘잘못된’ 선택인지가 확실할 때, 그리고 현행의 국민투표가 진정으로 민주주의적인 제도라고 인정할 수 있을 때이다. 이 두 가지 전제조건이 결여된 상태에서 브렉시트를 비난하고, 민주주의가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은, 그렇게 비판하는 사람(들) 자신의 선입관과 편견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영국의 이번 국민투표는 결함이 없는 게 아니었다. 투표가 시행되기 전 영국 사회는 이 문제에 대한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갈라져 들끓었고, 그 과정에서 이성적인 토론보다 격정적인 주장들이 난무했다. 따라서 일반시민들이 현안을 충분히 숙지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온갖 형태의 미디어를 통해 사실상 발언권을 독점했던 것은 하층민이 아니라 지배층 엘리트들이었다. 물론 ‘탈퇴’를 외치는 보수 혹은 극우파 정치가들의 목소리도 컸지만,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엘리트 정치가, 지식인, 언론인들은 유럽연합 탈퇴의 부당성과 무모함을 줄기차게 말했다. 그런 점에서 극우파 정치꾼들의 선동에 ‘무지한’ 대중들이 휘둘렸다고 말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도 않고, 또 대중(하층민)을 깔보는 발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번 국민투표의 정작 중요한 문제점은 따로 있다. 그것은 투표율 72.2%에 51.9%의 지지로 탈퇴가 결정됐다는 사실이다. 단순 다수결 원칙으로는 탈퇴파의 승리임이 분명하지만, 투표권자 전체를 고려하면 탈퇴 쪽 득표는 그 비율이 36%도 안된다. 그러니까 이것은 영국 국민의 ‘압도적인’ 선택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사활적인 중요성을 가진 국가 중대사를 이런 식으로 결정하는 게 과연 옳으냐는 물음이 있을 수 있고, 그 물음은 완전히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지금 ‘예상 밖의’ 국민투표 결과에 대해 언론들이 호들갑을 떠는 분위기 속에서 주로 런던 등 대도시 주민들 사이에 국민투표를 다시 하자는 여론이 끓고 있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지금과 같은 국민투표는 문제가 많은 게 사실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현안에 대한 충분한 토의와 숙의 과정을 결여하고 진행되기가 쉽고, 그 결과로 국가 구성원들의 ‘일반의지’가 정당하게 표현될 수 있는 제도로 인정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국가의 중대사는 ‘대표자들’에게 위임해서 그들이 의회나 정부에서 결정하도록 하고, 국민투표와 같은 위험한 ‘직접민주주의’ 제도는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과연 사리에 맞는 일일까?

여기서 우리가 진지하게 물어봐야 할 게 있다. 즉 그동안 소위 대의제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을 했더라면, 지금과 같이 세계의 부를 1%가 독점을 하고 그들의 지배 밑에서 99%의 인간이 노예로 살아가야 하는 이처럼 암울한 상황이 만들어졌겠는가 하는 것이다. 오늘날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 세계 전역에서 대의제 정당정치는 작동불능 상태에 빠져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가 직면한 온갖 엄중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사실상 최대의 걸림돌이 되어 있다. 이렇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대의제민주주의가 다수 민중의 요구를 대변하기는커녕, 극소수 기득권층의 이해관계를 대변·관철하는 수단으로 기능해왔기 때문이다. 정당정치, 대의제민주주의라는 것은 말일 뿐이지 실질적으로 오늘날 정치는 금권정치로 변질된 지 오래다. 이 금권정치의 주역이 자본가들과 정치가계급, 그리고 이들을 뒷받침하는 지식인, 학자, 언론인 등 소위 엘리트들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100년 전, 스페인 철학자 오르테가는 <대중의 반역>이라는 책에서 문화와 전통을 모르는 어리석은 대중이 민주사회를 파괴하고 있다고 개탄했지만, 미국의 사회사상가 크리스토퍼 래시는 1990년대 중반에 쓴 글 <엘리트의 반역>에서 오늘날 ‘세계화’ 시대의 민주주의의 적은 엘리트들이라고 진단했다. 래시에 의하면, 옛날의 귀족들이 (전부는 아니라도) 땅에 뿌리를 내리고 공동체를 걱정하며 귀족으로서의 책임감을 자각하고 있었음에 반해 오늘의 엘리트들이 충성을 바치는 것은 지구적 차원의 (자본이 주도하는)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을 길러준 향토, 지역, 풀뿌리 이웃들의 세계로부터 유리되어 겉돌고 있다. 지금 민주주의의 적은 민초들이 아니라 엘리트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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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이 지난해 10월29일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4조2000억원 지원방안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서 한 기자가 질문했다. “불황이 예상되는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지 않은가.” 당시 산업은행의 정용석 기업구조조정본부장은 “현시점에 이 회사를 정상화시키지 않을 경우 발생할 채권단과 국가경제의 손실을 비교해서 어느 것이 더 합리적인가 판단했다고 이해해달라”고 비켜갔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6월10일 . 경향신문DB

발표 일주일 전인 10월22일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과 최경환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임종룡 금융위원장, 홍기택 당시 산업은행 회장 등이 청와대 서별관에 모여 대우조선 정상화 방안을 확정했다. 문제의 ‘서별관회의’다.

지난 4일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이 공개한 당시 서별관회의 문건에는 공교롭게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문건은 대우조선에 대해 ‘국책금융기관 주도 및 채권은행 협조에 의한 정상화’가 가장 적절한 방안이라고 제시하면서도 “조선산업의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추가 자금 지원도 부실화될 우려가 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비판 가능성이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대우조선에 대한 대규모 지원자금이 허공으로 날아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국책은행 자금은 사실상 공적자금인 만큼 4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돈을 쓸 때는 촘촘한 근거가 제시돼야 한다. 하지만 문건에는 세 가지 방안과 방안별 장단점이 추상적으로 나열돼 있을 뿐이다. 서별관회의는 “국가경제 및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 국내 조선업 경쟁력 유지, 대우조선의 대외신인도 유지 필요성, 자율협약·워크아웃 시 채권은행의 이탈 가능성 등 다양한 측면의 손익과 리스크 감안…” 등을 근거로 4조2000억원 지원을 결정했다.

정부의 행태는 지금도 납득하기 어렵다. 우선 대우조선의 부실 규모를 명확하게 파악해 공개한 뒤 회생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순서였다. 회생시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 뒤 자금 지원방안을 마련해도 늦지 않았다. 하지만 서별관회의는 부실 규모가 채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결론을 내렸다. 그것도 향후 업황을 낙관적으로 판단한 채 내린 결론이다.

정부는 지난달 8일 대우조선으로부터 자회사 매각 등으로 3조5000억원을 마련하는 내용의 추가 자구안을 제출받았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마련한 정상화 계획이 엇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가 올해 말까지 420%로 떨어뜨리겠다는 대우조선의 부채비율은 올해 1분기 6600%대다. 당국 스스로 우려하던 ‘신규 지원자금의 부실 우려’가 현실화될 수 있는 상황이다. 세간에선 “정권이 바뀐 뒤에 또 수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지난해 10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결정을 왜 서둘러 내려야 했는지 설명을 해야 한다.

송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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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대한민국에 있는 도시들 가운데 가장 큰 도시가 아니라 대한민국 그 자체이다.” 서울은 대한민국 그 자체라는 말은 1960년대에 <소용돌이의 정치>라는 책을 쓴 그레고리 헨더슨의 얘기다. ‘서울공화국’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배경이기도 하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나라의 초집중체제를 헨더슨이 본다면 뭐라고 할까? 놀라서 졸도할지 모른다. 우리가 ‘서울공화국’이라고 부르는 서울, 인천, 경기의 면적은 남한 국토 면적의 겨우 11.8%이다. 이곳에 국민의 절반 가까운 인구가 살고 있다. 어디 인구뿐이랴. 내로라하는 회사의 대부분이 이곳에 있고, 절반 이상의 돈이 여기에서 돌고 있다. 좋다는 대학들은 다 이 지역에 있다. ‘사람은 낳아서 서울로 보내라’는 경구는 여전히 유효하여 젊은이들에게는 ‘인’서울이 오매불망의 꿈이 되고 있다.

전북 남원시 대강면 인근 4차로로 확장 완공된 고속도로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공화국’을 제외한 나머지 도시들은 어떤가? 정반대의 모습이다. 대한민국 두 번째 도시, 세 번째 도시라고 자랑하던 부산과 대구의 몰골은 초라하다. 이 도시의 인구는 줄어들고 있다. 그냥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대거 이 도시를 떠나고 있다. 호남의 주요 거점인 광주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돈도 사람도 기회도 떠나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비유한다. 서울공화국은 영양과잉으로 온갖 성인병에 시달리고 있는 반면, 서울공화국이 아닌 지역은 영양부족으로 시들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초집중체제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이런 것은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 서울공화국에 사는 사람들은 집값도 비싸고, 공기도 나쁘고, 교통도 혼잡해서 힘이 든다고 말한다. 반대로 서울공화국이 아닌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은 좋은 학교도 병원도 없고, 사업을 하려니 돈 구할 데도 없어서 힘이 든다고 말한다. 서울공화국과 서울공화국이 아닌 지역의 차이가 점점 더 커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두 개의 나라, 두 개의 국민’이 있다는 자조까지 있다. 이런 형국이 바람직하지 않은 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국가경쟁력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서울공화국으로 자원이 집중되고 나머지 지역은 텅텅 비어가는 불균형의 확대는 모든 도시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그것은 또한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역대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균형발전 정책을 실시했다. 그 가운데 돋보이는 업적은 단연코 노무현 정부다. 노무현 정부는 국가의 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분산해 균형발전을 도모하려고 했다. 이에 따라 작년까지 거의 모든 공공기관이 이전을 완료했다. 공공기관을 이전하면서 전국 십여 곳에 혁신도시를 건설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서울공화국이 아닌 지역 발전에 마중물 역할을 할 것 같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의 공공기관 이전과 혁신도시 건설은 좋은 정책이었으나 여러 광역자치단체에 골고루 기회를 주기 위해서 너무 파편적으로 자원을 분산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서울공화국에 견줄 만한 어떤 실질적 힘을 만들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런 비판은 타당한 것 같다. 우리가 서울공화국이라 부르는 자원의 초집중체제를 수정하는 일종의 국가재구조화의 필요성은 모두가 바라는 일인데, 노무현 정부의 공공기관 이전과 혁신도시 건설의 한계를 넘어서는 어떤 비전을 만들 것인가는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

최근 모색되고 있는 하나의 비전, ‘남부경제권만들기’는 그런 문제의 해답일 수 있다. 서울공화국이라는 일극체제를 일단 양극체제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 비전이 초집중체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이 아니겠는가라는 의견이다. 남부경제권만들기란 대구, 경북, 부산, 울산, 경남, 광주, 전남, 전북을 아우르는 경제공동체를 가꾸자는 것이다. 이 지역의 인구는 대략 2000만명이다. 서울공화국에 겨룰 만한 규모다. 이 지역 광역자치단체들이 힘을 합쳐서 그럴듯한 초광역적 비전을 만들어본다면 우리나라 전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희망의 단서를 찾을 것 같다.

최근에 광주와 대구를 잇는 고속도로가 4차선으로 확장됐다. 철도로 남부지역을 연결하는 계획도 추진되고 있다. 새로운 공항을 만들자는 구상은 일단 어긋났지만 그것도 남부경제권만들기라는 균형발전 비전의 틀 속에서 더 다듬을 수 있는 여지는 있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의 경제발전 전략을 짜서 남부경제권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자원의 초집중체제, 즉 서울공화국 일극체제를 양극체제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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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 파기라는 데 대해 동의할 수 없다.” 청와대 대변인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은 부산시민이 바라는 신공항을 반드시 건설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는데, 프랑스에 용역을 줘서 타당성을 따져본 끝에 기존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이 나자 공약 파기 논란에 휩싸였었다. 하려던 사업이 수지가 안 맞는다면, 그리고 그 재원이 국민의 세금이라면, 욕을 좀 먹더라도 안 하는 게 맞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말을 믿고 기대했던 해당지역 주민들에게 사과 정도는 하는 게 도리다.

경향신문DB

게다가 신공항 사업이 이렇게 결론 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신공항을 짓겠다고 공약했지만, 이리저리 따져본 끝에 내린 결론은 새 공항을 짓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이 대통령은 2011년 만우절을 맞아 영남권 신공항이 백지화된 것에 대해 사과했다. “대통령 한 사람 편하자고 다음 세대에 부담을 주는 사업을 하자고 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이렇게 일단락된 사건에 다시 불을 지피고, 보수세력의 본산이라 할 영남지역을 편을 갈라 싸우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박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사과하는 대신 기존 공항 리모델링이 사실상 신공항이라는 창조적 해석으로 공약 파기 논란을 벗어나려 한다.

미리 말해두지만, 난 박 대통령의 지지자다. 지난 대선 때 술자리에서 누군가가 박근혜 대통령을 이명박 전 대통령과 비교하면 어떨 것 같으냐?’는 질문을 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박 대통령이 더 못할 것이다라고 한 반면, 난 박 대통령이 훨씬 나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명박보다 더 못하기 힘들며, 박 대통령은 자녀가 없어서 측근비리를 저지르기 힘들다는 게 당시 내 변명이었다. 내가 박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증거는 이게 다지만, 내 의견에 대한 수많은 반박에도 끝끝내 박 대통령 편을 든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은 내가 좀 순진했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를 수익모델로 삼아 자신과 측근들의 재산을 불리는 데 주력한 이 전 대통령보다 국가 수준을 40년 전으로 돌리는 박 대통령이 훨씬 더 나빠 보이니 말이다. 물론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진솔한 사과, 그게 있어야지 그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이 위로받을 수 있고, 대통령 자신도 사과를 통해 다음번엔 비슷한 잘못을 하지 않을 수 있으니 말이다.

시모토아라는 기생충이 있다. 중남미 해안지방의 물고기에 기생하는 시모토아는 팬클럽이 있을 만큼 우리나라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잘못한 일에 대해 사과하고 합당한 책임을 진다는 게 그 비결이다. 원래 시모토아는 물고기의 혀 근처에 살면서 혀로 가는 혈관에 입을 박고 피를 빨아 먹는다. 혈액 공급이 부족해진 혀는 얼마 안돼서 썩어버리고, 결국 떨어져 나간다. 여기까지만 보면 시모토아는 굉장히 나쁜 기생충이다. 멀쩡한 혀를 없애버리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시모토아가 빛나는 대목은 그 다음부터다.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시모토아는 물고기에게 다음과 같이 용서를 구한다. “물고기야, 내가 내 욕심만 채우려고 너에게 몹쓸 짓을 했구나. 하지만 걱정 말아라. 앞으로 내가 너의 혀가 되어줄게.” 실제로 시모토아는 물고기의 혀 위치에 자리를 잡고 혀가 하던 역할을 대신한다. 물론 물고기의 혀가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먹을 게 물고기의 입에 들어가면 다시 나가지 못하게 막는 정도가 고작이지만, 그게 있고 없고는 물고기에게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혀가 없어진 물고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영양실조에 빠지지만, 혀 대신 시모토아를 가진 물고기는 정상 물고기와 비교할 때 체중변화가 거의 없었단다. 그뿐이 아니다. 물고기가 죽고 나면 시모토아는 다른 곳으로 떠나는 대신 물고기의 곁을 지키며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이 정도면 가히 사과의 아이콘으로 불려야 되지 않을까?

물론 박 대통령에게 시모토아 정도의 사과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그저 이명박 전 대통령 정도의 사과가 우리가 기대하는 한계치일 텐데, 박 대통령이 그 정도의 사과마저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과 안 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윤창중 대변인이 성추행을 했을 때는 홍보수석이 나와 국민과 대통령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는데, 사과를 해야 할 대통령이 오히려 사과를 받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적어도 기생충의 세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메르스로 인해 경제가 마비되고 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겪었을 때도 대통령 대신 총리가 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황교안씨가 사과를 했다. 세월호 사건 때도 사과를 계속 미루다 열흘이 지난 후 국무회의에서 뭐라 사죄를 드려야 그 아픔과 고통이 잠시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을지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걸 과연 사과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보면 박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사과를 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사과가 싫다면 잘못을 하지 않으면 될 텐데 그런 것도 아니니 답답하다. 멕시코에 사는 시모토아를 데려와 사과에 대한 강의를 듣는다면 좋으련만, 남의 말도 잘 듣지 않으니 방법이 없어 보인다. 대통령의 사과가 없는 나라, 지금 우리는 그런 나라에 살고 있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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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EU 탈퇴를 결정했다. 적어도 투표 직전에 했던 예측과는 상반된 결과이다. 세계의 이목은 곧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 것인가에 모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당장 세계경제에 심각한 위기가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2008년 지구적 차원의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후 사람들이 반복되는 세계경제 위기에 그럭저럭 견디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같은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겠는가?

지난주 한국을 방문했던 데이비드 하비가 이 문제와 관련해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그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에 탁월한 업적을 내놓은 학자이다. 공개강연에서 그는 반자본주의를 추구하는 자신보다 자본가들이 자본주의에 더 큰 해를 끼치고 있다는 풍자로 최근 사태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드러냈다.

따로 진행되었던 소규모 토론모임에서는 자본가들이 개별적으로는 큰 이득을 볼 수 있을지 몰라도 자본가계급으로서는 심각하게 분열돼 있어 현재의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본가계급이 단결해 신자유주의 드라이브를 걸었던 1970년 후반의 상황과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에 심각한 위기가 출현할 가능성이 높은데 좌파들은 그에 대한 대안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쓴소리도 보탰다.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그의 판단은 비판적 이론가의 상투적 주장으로 간주되기 쉽다.

그러나 하비의 주장은 미국 대선후보 트럼프의 부상, 영국의 브렉시트 등 현재 출현하고 있는 이례적 현상들을 이해하는 데 나름 유익한 시각을 제공해준다. 이 같은 현상들이 일과적이고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의 무능력을 드러내는 사례이며,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 진행되고 있는 어떤 중요한 변화의 징후라는 것이다. 통념으로는 예측하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가 세계적 차원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하비의 지적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눈을 한반도로 돌리면 사태는 더 심각하다. 영국이 브렉시트를 결정하는 시점에 북한이 (북한은 ‘화성-10’이라고 명명한) 무수단 미사일 발사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핵탄두 폭발실험만 하면 북한의 핵개발이 완료되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 비핵화는 물 건너가고 군사적 긴장이 한층 고조될 수밖에 없다. 이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북의 미사일 실험을 놓고 여러 논평이 이어졌지만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북에 대한 강경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이는 의례적 반응에 지나지 않는다. 그저 북을 비판할 수 있는 다음의 또 다른 위기나 기다리는 격이다.

상태가 이에 이르면 당연히 정치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정치가 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가라는 상투적인 비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는 현재 정치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문제에 대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위기를 정치적으로 활용할 뿐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새 국회가 현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는 이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논의보다 개헌이 가장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과연 이것이 총선 때 표심이 원했던 것이며 현재 위기에 대한 올바른 대응이라고 할 수 있는가? 개헌이 필요하다면 절차에 따라 진행할 수 있다. 내년 대선에서 공약으로 내거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나 현재 국민은 개헌을 가장 중요한 정치과제로 보고 있지 않으며, 개헌을 주장하는 사람들 내에서도 생각이 모두 다르다. 권력구조 문제만 해도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내각제 등 양립하기 어려운 아이디어들이 제각각 등장하고 있다. 위기 대응과는 별 관계도 없다. 개헌을 놓고 구체적인 논의에 들어가면 의미 없는 정쟁만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

부정적으로 보자면, 현재처럼 방향이 불분명한 개헌논의는 안팎의 위기에 대해 실질적인 대안을 논의할 의지와 능력도 없는 상황에서 정치권의 기득권만 유지하려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야권은 총선을 통해 대책 없이 위기만 심화되고 있는 현재 상황을 변화시키라는 국민의 뜻을 부여받았다. 야당이라는 조건에서 당장 뚜렷한 변화를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점은 국민도 알고 있다. 그러나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은 보여줘야 한다. 적어도 당분간은 개헌논의가 국민의 절박한 요청을 수렴할 수 있는 틀이 될 수 없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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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하는 가장 오래된 측정소는 미국 하와이 마우나로아산에 있다. 여기서 측정된 이산화탄소 농도가 올해 5월에는 평균 407.70PPM을 기록했다. 사상 최고치일 뿐만 아니라, 지난해 같은 달(403.94PPM)에 비해 무려 3.76PPM이나 증가한 수치이다.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회원들이 6월 9일 울산시청 앞에서 신고리 원자력 발전소 5·6호기 건설 중단을 촉구하는 108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해양대기청 지구시스템연구소(NOAA-ESRL) 홈페이지에서 이 수치를 확인하는 순간 숨이 턱 막힌다. 빨라도 너무 빨리 수치가 올라가고 있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 제시한 마지노선이 450PPM인데, 이 속도로 간다면 450PPM을 넘어서는 데에는 20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한심한 것은 정치이다.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나온 도널드 트럼프는 기후변화 자체를 부정한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지난해 12월 합의한 파리협약을 폐기하고 유엔에 설치한 녹색기후기금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화석연료 산업의 이해를 노골적으로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트럼프는 솔직하기라도 한 것인지 모른다. 대한민국의 유력 정치인들은 기후변화를 중요한 정치문제로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가끔 “나도 지구를 사랑해요”식의 립서비스나 할 뿐이다.

한국의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는 유엔 사무총장이 풀어야 할 최대의 숙제가 실효성 있고 새로운 기후변화협약을 만드는 것이라고 스스로 얘기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타결된 파리협약은 매우 불충분한 것이었다.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워낙 기대치가 낮아져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평가가 나온 것일 뿐이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분통이 터진다. 지구의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에 비해 1.5도 이하로 최대한 억제하자는 목표만 합의했을 뿐,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계획은 없다. 그저 ‘생색내기’일 뿐이다. 각 나라가 제출한 온실가스 감축계획을 취합해보면, 지구의 평균기온은 1.5도가 아니라 2.7도가 올라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앞뒤가 안 맞는 상황이다.

반 총장은 2007년부터 유엔 사무총장을 맡아 왔다. 2007년 이후의 시기는 기후변화 문제를 풀 수 있는 가장 귀중한 시기였다. 그러나 시간은 허비됐고, 지난해에 나온 결과는 초라했다. 지금 반 총장이나 각 국가의 최고책임자들은 파리협약을 자신들의 정치적 치적으로 삼기 위해 후한 평가들을 내리고 있지만,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것은 정치가 자본의 탐욕을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의 몸통은 탄소가 아니라 자본주의이다. 캐나다 출신 저널리스트인 나오미 클라인은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에서 ‘자본주의가 바뀌지 않는 한 기후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각국 정부는 자본의 눈치를 보느라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계획을 짜지 못하고 있고, 유엔은 무능하고 무책임하다.

대한민국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대한민국에서 온실가스 배출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석탄화력발전소이다. 지금 53기가 있고, 앞으로 20기를 더 늘린다는 것이 정부계획이다. 최근에는 대기업들이 짓는 민자 석탄화력발전소들이 늘고 있다. 지금 충남 서해안에는 더 이상 지을 곳이 없을 정도로 석탄화력발전소들이 들어섰고, 이제는 동해안으로 몰려가고 있다. GS, 삼성, 포스코, SK 같은 대기업들이 동해안의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 관여하고 있다.

석탄화력발전은 미세먼지·초미세먼지 배출의 중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 정부가 삼겹살과 고등어를 미세먼지의 주범인 것처럼 지목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정부가 가진 자료상으로도 틀린 얘기였던 것이 드러났다.

그런데 정부가 애꿎은 직화구이를 탓한 것이 단지 실수이고 우연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석탄화력발전소를 건드리자니 자본의 눈치가 보이고, 만만한 대상을 찾은 것이 직화구이였던 것이 아닐까. 실제로 정부는 그 후에 발표한 대책에서도 새로 짓는 석탄화력발전소는 ‘배출기준을 강화하겠다’는 정도로만 언급했다. 발전소 건설 자체를 재검토할 엄두는 내지도 못한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나라는 원전도 줄이고 있다. 독일이 대표적이다. 독일은 온실가스 배출도 줄이고 있고, 2022년까지 원전도 없애겠다는 계획이다. 반면에 대한민국은 원전도 많이 짓고, 석탄화력발전소도 많이 지어 온실가스도 많이 배출한다. 이것은 원전과 기후변화가 쌍둥이 같은 존재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쉽게 생각하면 머리가 여러 개 달린 괴물을 연상하면 된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것도 자본의 이윤을 위한 것이고, 원전을 많이 짓는 것도 자본의 이윤을 위한 것이다. 지난 23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승인했다. 최근에 너무 많은 발전소가 완공되어 발전소가 남아도는 상황인데도 건설승인을 강행했다. 누가 이 결정으로 이익을 볼까. 신고리 5·6호기 건설공사를 수주한 기업을 찾아보니 ‘삼성물산’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결국 온실가스든 미세먼지든 원전이든, 몸통은 같다. 전 지구적으로 보든,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든 문제의 몸통은 ‘통제받지 않는 자본’이다. 이것을 바꾸지 못하면 안전도, 미래도 없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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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13 총선 이후 정치권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를 꼽으라면 아마도 ‘협치’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총선 결과가 나오자마자 협치를 강조했고 그제 여당의 원내대표도 국회에서 협치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만약 청와대와 새누리당만이 총선 이후 ‘협치’를 일방적으로 강조했다면 이는 의회의 다수를 점하게 된 야당을 대상으로 국정운영에 발목잡기 하지 말라는 경고나 사전포석으로 해석하고 고깝게 볼 만도 하다.

그러나 ‘협치’라는 용어는 야당들에서도 중요한 정치용어로 등장하고 있다. 야당들도 앞다투어 우리 정치에는 ‘협치’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나서고 있다. 이쯤 되면 지난 몇 년간 한국정치의 가장 큰 화두처럼 보였던 ‘새정치’라는 말을 이제 ‘협치’라는 용어가 대체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새정치’라는 단어가 그 안에 시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담아내는 구체성 확보에는 실패한 채 보수편향적인 정당체제로 귀결된 것처럼 ‘협치’라는 용어 역시 시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방향성과는 관련 없이 한때의 유행처럼 사용되고 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해볼 필요가 있다.

많은 이들은 최근 진영간 증오의 동원을 통한 정치적 양극화가 한국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백번 곱씹어봐도 맞는 지적이다. 한국정치는 최근에 여야 할 것 없이 상대에 대한 극단적인 비난을 통해 자기 진영의 강한 지지자들을 동원하는 것을 반복해 왔다. 이는 한쪽 극단의 입장에만 서기 힘든 평범한 다수 시민들의 목소리를 삭제한 채 목적을 잃어버린 정치적 공방만 남기는 결과를 낳았는지도 모른다. 증오만을 동원하는 정치는 정치계와 시민들 모두가 함께 극복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라는 것이 아름다운 말의 성찬 속에서 평화롭고 따뜻한 풍경만을 연출하는 것이 본질은 아닐 것이다. 정치의 풍경이 날선 비난의 진흙탕보다 품격 있는 대화와 논쟁의 장인 것이 낫다고는 하지만 그 모두가 답답한 현실의 개선 방향과 관련 없는 미학적 연출에 그쳐서는 안된다. 우리는 미학을 추구하기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진흙탕을 조금이나마 개선하기 위해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요하면 현실의 구정물을 뒤집어쓰는 것을 정치가 마다할 이유가 없다.


20대 국회 개원식에서 의원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_경향DB


그래서 지금의 한국정치가 ‘협치’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은 없는지 그리고 ‘협치’를 해야 한다면 그 목적이 무엇인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정치권에서 사용되는 ‘협치’라는 말에는 마치 현실에서의 수많은 ‘갈등’과 그것을 둘러싼 사람들의 사연이 부차적인 것처럼 치부하고 기계적으로 ‘타협’하는 것만이 유일한 갈등해결책인 것처럼 말하는 듯하다. 물론 타협은 정치의 속성이자 현실세계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갈등해결 방법이다. 그러나 타협과 협치 이전에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치열하게 논쟁하고 다투는 ‘갈등’이 없다면, 대부분의 타협은 현실세계에서 강자가 약자에게 일방적으로 가하는 굴종의 요구를 미화시키는 ‘액세서리’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더 크게 대표해야 하는 민주주의 정치는 ‘협치’의 방법론에 집중하기 이전에 갈등을 조직하고 드러내는 정치의 ‘목적’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

이즈음 오히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스크린도어와 지하철 출입구에 메모지를 붙이며 비정규직 청년노동자의 비극과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이라는 갈등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정치는 이를 더 큰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갈등으로 조직하기보다는 ‘협치’의 자세를 말하며 애써 이 갈등들을 안타까운 하나의 사건 정도로 축소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존의 위협에 놓여있는 최저임금의 인상을 요구하는 절박한 청년들의 목소리에 응답하지 않는 ‘중향평준화’의 ‘협치’는 혹여 강자들이 약자들에게 요구하는 복종의 부드러운 명령이지는 않은가?
자세히보기 CLICK

만약 ‘협치’라는 용어가 이런 방식으로만 사용된다면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목소리는 지하철 출입구와 스크린도어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제도와 시스템은 조금도 변화하지 않은 채 기존의 폭력을 반복할 뿐이다. ‘협치’라는 용어가 다수의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의미가 있으려면 그것이 강자가 일방적으로 명령하는 복종이거나 정치세력들 간의 야합이 아니라 절박한 상태에 놓여있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겪고 있는 갈등해결을 위한 도구로서 기능할 때일 것이다. 따라서 지금 한국정치는 평화로운 ‘협치’를 도모할 것이 아니라 누가 무엇을 어떻게 더 치열하게 대변하고 대표할 것인지를 두고 더 크게 ‘갈등’해야 한다.

여전히 우리에게 절실한 단어는 강자의 ‘미학’으로서의 ‘협치’가 아니라 약자의 ‘정치학’으로서의 ‘갈등’이라는 단어다.



조성주 |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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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광주 호국보훈 퍼레이드는 광주시도 동의해 공동 주관하기로 했고, 2013년 11공수여단이 참여한 군 퍼레이드에는 시가 예산까지 지원했는데 알고 계십니까?”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 진압군으로 투입돼 시민들을 학살했던 11공수특전여단의 광주 금남로 시가행진을 계획했던 국가보훈처는 지난 20일 비판 여론이 들끓자 “광주시를 이해할 수 없다”며 이같이 항변했다. 지난 2개월여 동안 6·25 행사를 협의하면서 11공수여단 등도 참여하는 퍼레이드가 주요 행사임을 광주시에 충분히 설명했다는 주장이다.

광주시는 지난 4월12일 광주지방보훈청의 협조공문을 받았다. 광주보훈청은 “광주 호국보훈 퍼레이드 공동 주관 개최에 협조해 달라”며 군인과 참전유공자 등 2000여명이 금남로를 행진하려 한다는 계획을 전했다. 첨부된 계획서에는 담양에 주둔하고 있는 11공수여단과 31사단 군인들의 행진 순서 등도 적혀 있었다.


윤장현 광주시장이 삼성전자 광주사업장을 찾아 생산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_광주시 제공



같은 달 28일 열린 회의에서도 11공수여단과 31사단 관계자가 참여했다. 당시 광주시는 군인들의 시가행진과 실내에서 열리는 6·25 기념식의 순서를 바꾸는 것을 빼고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특히 보훈청·31사단과 함께 공동 주관 기관에 이름까지 올리기도 했다. 이보다 앞서 광주시는 2013년 7월에 개최된 ‘광주·전남 호국문화행사’에는 300만원의 예산을 지원했다. 6·25전승 60주년을 기념해 열린 행사는 31사단과 보훈청이 주관했다. 당시 11공수여단과 31사단 군인들이 금남로를 행진했다.

하지만 윤장현 광주시장은 21일 간부회의에서 “이번 행사를 진행한 보훈처의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사고에 분노한다”고만 했다.

또 올해 행사 협의는 알지 못했다면서 부하 공무원들 탓으로 돌렸다. 윤 시장의 ‘유체이탈’ 화법은 비겁한 책임회피와 다를 바 없다.




전국사회부 | 강현석 기자 kaja@ kyunghyang.com



전국사회부 | 강현석 기자 kaja@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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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시·도의회의장협의회는 22일 대전에서 2016년 제5차 임시회를 개최한다. 전국 시·도의회의장이 정기적으로 모여 현안을 논의하고 모범적인 의정 활동을 한 의장에게는 조촐한 시상을 하기도 한다. 이날 임시회에서는 최근 주목받는 의견 한 건이 거론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의장이 의견을 내 다음 모임에서 공식 안건으로 채택할지 여부를 논의할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이 예비 안건은 지방의원들이 지방재정 확충에 성과를 나타내면 피감기관인 집행부의 평가를 거쳐 일종의 포상금 성격으로 예산성과금을 받는 것이 타당한지 여부다. 새누리당 남경필 경기지사는 지난 3일 경기도북부청사에서 열린 월례조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도의원 2명에게 예산성과금으로 각 2000만원을 지급했다. 1998년 예산성과금제가 도입된 이후 지방의원이 이를 받은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예산성과금은 예산절감과 세수증대에 기여한 공무원과 민간인에게 주는 일종의 포상금이다. 물론 지방의원들도 선출직 공무원 자격으로 의정활동을 통해 예산절감과 세수증대에 기여했다면 대상은 될 수 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



그러나 집행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 기능이 주업무인 지방의원이 피감기관으로부터 역평가를 받아 예산성과금을 받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 어디까지가 지급 대상인지 기준도 모호하다. 기본 책무를 잘했다고 포상금을 지급하는 것이 적절한지도 비판의 대상이다. 더 큰 문제는 집행부가 당근책으로 예산성과금제를 활용하면 의원들의 의정활동 제약 및 의회기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물론 지방의원들이 적극적으로 의정활동을 펼치는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다는 의견이 없지는 않다. 경기도가 이 제도가 있는지도 모르고 있던 도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포상 신청을 권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도민들은 순수성을 의심하고 있다.

전국 자치단체의 이슈가 되고 있지만 정작 포상금을 도의원들에게 전국에서 처음으로 직접 준 남경필 지사는 이에 대한 적극적인 설명이 아직 없다.



전국사회부 | 경태영 kyeong@ kyunghyang.com

전국사회부 | 경태영 kyeong@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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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입국한 중국 북한식당 종업원들 중국 닝보의 북한 식당에서 근무하다 집단탈출한 종업원들이 4월7일 한국에 들어온 뒤 경기 시흥시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로 이동하고 있다._통일부 제공


중국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에 있는 류경식당에서 근무하다 집단탈출해 지난 4월7일 한국에 입국한 북한식당 종업원들에게 다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여성 종업원 12명이 정부 발표대로 자발적 탈북인지 확인하게 해달라며 제출한 ‘인신보호구제심사청구’를 법원이 받아들여 이들을 21일 법정에 출석시키라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대 총선을 불과 닷새 앞둔 4월8일 공식 브리핑을 갖고 이들의 입국 사실을 알렸다.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한 이들이 보호시설로 이동하는 사진과 이들이 진술했다는 탈북 이유 등도 상세하게 전달했다. 여러모로 이례적이었다. 올 들어 매달 탈북자가 평균 100여명 입국하지만 정부는 일절 공표하지 않았다. 북한 내 탈북자 가족의 신변 안전, 비슷한 경로로 탈북을 준비하는 다른 북한 주민들의 안전 등의 이유를 들었다.

북한식당 종업원들의 집단탈출은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인 뉴스거리였다. 북한의 1월 제4차 핵실험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를 채택한 지 한 달 남짓 지난 시점이었다. 정부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이들의 이탈에 영향을 미쳤으며, 북한의 해외식당 종업원은 북한 사회에서 중산층에 해당한다는 ‘해설’을 내놓으며 이들에게 쏠리는 관심을 즐겼다.

정부가 설명한 대로 북한에서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집안의 젊은이들이 단체로 전광석화처럼 신속하게 탈출을 감행한 경위에 대해 의문이 제기됐지만 정부는 “그들은 자유의사에 의해 입국했다”고만 밝힐 뿐이었다. 정부는 20대 총선이 지나자 침묵 모드로 돌아섰다.

민변이 신청한 접견요청을 거부해오던 정부는 이들을 법정에 출석시켜 자유의사로 탈출한 것인지 답하도록 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여론을 유포하고 있다. 북한 당국이 가족들을 앞세워 이들이 남한 당국에 납치됐다고 주장하는 마당에 이들이 자유의사로 한국행을 택했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면 북한 가족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북한 내 가족 안전을 걱정해 “납치된 것이 맞다”고 진술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는다.

정부의 우려를 수긍한다 하더라도 이런 상황을 만든 1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 정부는 이들의 탈출을 ‘대탈주’라도 되는 양 대대적으로 홍보함으로써 관심을 최고조로 상승시켰다. 4·13 총선을 앞두고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들의 집단 이탈을 대북압박 성과로 내세우려는 의도에서였다. 북한이 이들의 가족을 앞세워 ‘납치극’이라는 선전전으로 대응하는 것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결국 정부가 잘못 끼우기 시작한 단추가 북한 내 가족의 신변 안전을 이들 북한식당 종업원의 ‘양심’에 떠넘기는 사태로 이어진 것이다..



정치부 | 김재중 hermes@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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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국민의당 비례대표 김수민 의원이 23일 검찰에 출석한다. 앞서 검찰은 왕주현 사무부총장을 불러 홍보업체들에 리베이트를 요구했는지 여부를 조사한 바 있다. 김 의원의 소환 일정이 확정된 뒤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는 “검찰 수사 결과 문제가 있을 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어떤 고려도 없이 단호하게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국민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드린 점에 대해 다시 한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안 대표가 리베이트 의혹과 관련해 유감을 표명한 것은 지난 10일에 이어 두 번째다. 2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앞두고 엄정 처리 원칙을 재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당은 이번 사건으로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우선 공당으로서의 신뢰와 도덕성에 물음표가 붙었다. ‘새정치’를 기치로 제3당을 차지한 정당이 부패 의혹에 휩싸인 것은 뼈아픈 상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사후 대처 방식이다. 국민의당은 의혹이 불거진 직후 부인으로 일관하다가 비판 여론이 비등하자 자체 진상조사단을 구성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도 않아 “기소하면 검찰은 망신당할 것”(이상돈 진상조사단장)이라고 큰소리치더니 “홍보업체 자금이 당으로 들어온 게 없다”는 중간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사건 당사자인 김수민·박선숙 의원 등에 대한 면담도 하지 않은 채였다. 또한 의혹에 연루된 업체들의 말만 듣고 “(리베이트가) 업계 관행”이라고 했다가 디자인업계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국회 부의장인 박주선 의원은 선거관리위원회에 제보한 내부자를 색출해야 한다는 상식 밖의 주장을 펴기도 했다.


본회의참석한김수민의원_경향DB


국민의당은 총선 직전 만들어진 신생 정당이다. 예기치 못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대응 시스템이 미흡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지난 10여일간의 행태를 보면 위기관리 능력 차원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선거용 슬로건으로 새정치를 외쳤을 뿐, 당 차원에서 새정치의 가치를 내면화하지 못했음을 짐작하게 된다.

최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국민의당 지지율은 총선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기존 정당과 차별화된 정치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던 시민들이 고개를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범죄 혐의는 관행으로 치부하고, 자체 조사는 ‘셀프 면죄부’로 끝내고,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기보다 문책하겠다는 것은 새정치가 아니다. 국민의당의 맹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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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의원 26명과 국민의당 의원 7명 등 33명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금지하고 검정제로 바꾸도록 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고시한 후 이를 금지하기 위한 법안이 제출된 건 처음이다. 양당 의원들은 “국정교과서는 교육의 중립성과 자율성, 학문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헌법 가치를 부정하므로 위헌”이라고 밝혔다. 정의당에서도 곧 관련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야 3당은 20대 총선 당시 국정화 폐지를 공통적으로 약속한 바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수십년간 자유·자율·개방·다원성을 기반으로 확장해온 한국 민주주의의 역주행을 보여주는 뼈아픈 징표이다. 20대 국회에서 의회권력이 야당으로 넘어간 만큼, 세 야당은 힘을 합쳐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 정부와 새누리당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되지만, 상황은 결코 비관적이지 않다. 새누리당의 4·13 총선 참패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권력누수)이 가시화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배신자’로 낙인찍은 유승민 의원의 복당이 새누리당 친박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정사실화된 터다. 친박계 내부에서도 구심력이 약해지며 강경파와 온건파로 분화하고 있다고 한다. 야 3당이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여당 내 합리적 온건파까지 견인해낸다면 국정화 저지는 충분히 가능하다.


국정 역사교과서·검정 역사부도 교과서 제작·적용 일정_경향DB



20대 국회가 오늘부터 열리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시작으로 본격적 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야 3당은 지난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보여준 기대에 부응해야 할 책무를 지고 있다. 여소야대 구도는 야권이 잘해서가 아니라, 박근혜 정권의 오만·독선·독주에 분노한 민심이 만들어낸 것임을 다시금 새겨야 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를 비롯해 마땅히 완수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어버이연합 사태, 정운호 법조비리 등의 진상규명과 세월호특별법 개정 등이 그것이다. 현안의 우선순위와 실현 가능성을 치밀하게 따져 집중력을 발휘함으로써 이른 시일 안에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 여당은 정국을 ‘민생 대 이념’ 구도로 몰아가며 야 3당의 공조를 무력화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해묵은 공세에 섣불리 겁먹거나 굴복해선 곤란하다. 민생과 민주주의는 대립항이 아니다. 고통받는 서민을 부축하는 일과, 퇴행하는 민주주의를 구해내는 일은 함께 갈 수 있고 함께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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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국정 내팽개치고 소란 피우는 정권, 이게 나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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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복당’으로 재연된 새누리당의 내홍 자체는 사실 놀랍지 않다. 친박·비박계가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사이처럼 싸우고, 청와대와 당 대표·원내대표가 파열음을 내는 일은 익숙한 풍경이다. 2014년 김무성 대표의 ‘상하이 개헌 발언’ 때도 그랬고, 지난해 유승민 원내대표 축출 파동 때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국정이요, 민생이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할 일은 해가며 싸워야 한다. 현 집권세력은 정반대다. 오히려 내분 사태를 국정 방기의 핑계로 삼는 것 같다. 당초 어제 열리기로 예정됐던 고위 당·정·청 회의가 취소된 것이 단적인 예다.

고위 당·정·청 회의에는 새누리당에서 김희옥 혁신비상대책위원장과 정진석 원내대표, 김광림 정책위의장, 정부에서 황교안 국무총리와 유일호 경제·이준식 사회 부총리, 청와대에서 이원종 비서실장과 안종범 정책조정·김재원 정무·강석훈 경제수석 등이 참석할 예정이었다. 지난 2월 이후 처음 열리는 만큼 다룰 의제도 많았다. 신공항 입지 선정, 맞춤형 보육, 조선·해운 구조조정, 미세먼지 대책 등이다. 신공항 문제는 발표일이 임박했고, 맞춤형 보육도 7월 시행을 앞두고 있어 조율이 시급한 현안이다. 하지만 회의는 새누리당 비대위가 탈당파 일괄 복당을 결정한 뒤 돌연 취소됐다. 김희옥 위원장이 총리실에 불참을 통보한 것이 취소 계기라지만,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김 위원장이 불참한다 해도 여당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만 참석하면 정책 조율에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유승민 복당’에 대한 청와대의 분노가 회의 취소와 무관치 않다는 게 중론이다.

유승민, 윤상현 의원 등 7명의 탈당파에 대한 일괄 복당 문제로 새누리당이 내홍을 겪고 있다. 17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혁신비대위 회의실이 텅 비어 있다._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청와대와 친박계 내부에는 일종의 ‘유승민 혐오 정서’가 존재한다. 유 의원이 원내대표 재임 당시 국회법 개정을 둘러싸고 박근혜 대통령과 충돌한 행태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정인이 아무리 밉다고, 그를 몰아내는 데 정신이 팔려 국정을 내팽개친다는 건 상식 이하의 행태다. 더욱이 지금 한국 사회는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다. 죄 없는 여성과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일자리 없는 청년과 집 없는 서민들이 울고 있다. 집권세력이 정신을 바짝 차려도 국정운영이 쉽지 않은 판국에 집안싸움에만 골몰하는 건 배임행위에 다름 아니다.

친박계는 어제도 하루 종일 유승민 타령만 했다고 한다. 정권의 무능·무책임·무기력에 분노하는 시민은 보이지 않고, 박근혜 대통령이 쏠 ‘레이저’만 겁나는 모양이다. 그러나 민심을 우습게 여기다가는 총선 참패보다 더 심각한 역풍을 맞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시민은 다시 ‘이것이 나라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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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이상하고 잘 와 닿지 않는다. 요즘 정치권에서 유행하는 ‘협치’ 이야기다. 지난 4월 총선결과 국회가 3당 체제가 되고 야당이 제1당이 되면서 정당 간 협조를 강조하는 의미에서 ‘협치’라는 말을 쓴 것으로 짐작된다. 괜찮은 표현이라 여긴 건지 야당도 덩달아 쓴다. ‘협치’라는 말은 사회과학에서는 새로운 공공관리 시스템을 뜻하는 ‘거버넌스’(governance)의 번역어로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된 개념이다.

그런데 정치권의 유행어가 된 ‘협치’는 이같은 거버넌스를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고 단순히 여야 간의 협조쯤으로 이해된다. 이미 특정한 의미로 학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협치’라는 개념을 왜 굳이 정당 간 협조나 정치적 타협의 의미로 갖다 붙이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특히 사회과학을 공부하면서 이 개념을 학습한 사람들에게는 정치인들이 쓰는 이 말이 와 닿지 않고 뭔가 강요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협치라는 말을 사용하는 정치인 누구도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무슨 말인지 알고나 쓰느냐고 묻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17일자 경향신문 칼럼에서 성공회대 이남주 교수가 ‘협치’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이 교수의 요점은, 우선 협치라는 개념이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고, 둘째는 여야의 협치를 강조함으로써 국정 실패의 책임을 야당과 나누려는 불순한 의도가 의심된다는 점이며, 셋째는 여당의 국정 실패 책임을 묻는 총선의 민의를 오히려 여야가 타협정치 하라는 것으로 왜곡시키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합리적 의심이고 타당한 비판이 아닐 수 없다. 말하자면 정치권, 특히 여당과 대통령이 자주 쓰는 협치라는 말은 총선 패배로 드러난 국정심판의 책임을 피해가기 위한 ‘면피형’ 협치인 셈이다. 20대 국회 원 구성이 법정기한을 넘기자 언론은 “실종된 협치” “협치는 없고 대치만” “협치를 걷어차다” 라고 앞다투어 머리글을 달았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면피형 협치의 프레임에 어느새 언론도 한 무리가 된 듯했다. 아니면 애초에 특정 언론이 이 면피형 협치의 프레임을 주도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중에라도 따져볼 대목이다.


정세균 국회의장(앞줄 가운데) 등 20대 국회의장단, 상임위원장단, 여야 원내대표들이 14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_경향DB



지난 20년 이상 사회과학자들이 사용했던 ‘거버넌스’로서의 ‘협치’ 개념을 잠시 떠올려 보자. 거버넌스 개념은 다양하게 사용되었지만 새로운 공공관리방식으로 주목된 것은 1990년대 이후다. 지구화, 시장화, 분권화, 네트워크화 등의 지구적 거대 경향에 따라 정부의 행정체계가 민간기업, 시민사회의 행위자와 함께 협력적으로 재구성되는 현상을 지칭한 데 따른 것이다. 거버넌스는 신자유주의 시장화 경향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기에 따라서는 부정적 이미지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른바 뉴거버넌스, 굿거버넌스라고 부르는 ‘협치’는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공적 제도를 개방적이고 참여적으로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미래정치의 새로운 비전으로 주목될 수 있다.

여기서 협치는 공적 질서의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재구성이라는 제도의 혁신을 함의한다. 말하자면 굿거버넌스로서의 협치는 기존의 질서를 바꾼다는 점에서 혁신성을 내재한 ‘혁신형’ 협치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정치권에 느닷없이 번진 면피형 협치와는 다르다.

한국에서 혁신형 협치의 실험은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학계에서도 통용된 지 오래되지 않은 거버넌스라는 개념을 다양한 위원회에 적용하여 과감하게 협치를 실험한 것이다. 비록 실험적 수준에 머물렀지만 공적 제도의 참여 민주적 재구성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혁신적이었다. 이후 혁신형 협치의 씨앗은 지역에 뿌려졌고, 오늘날 혁신적 지자체에서 협치의 실험은 실제로 확산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권영진 대구시장,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는 이 혁신적 협치의 선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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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형 협치의 핵심은 ‘협력’의 질서다. 협치하는 것은 협력적 사회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이익과 욕망으로 갈라지고 해체된 우리 시대에 협력적 사회시스템을 만드는 일은 더 미룰 수 없는 시대의 요청이다. 혁신적 지자체가 묵묵히 시대에 응답하고 있다. 이제 정치권이 응답하라. 의미가 와 닿지 않는 면피용 정치언어를 들이댈 일이 아니다. 실질적 협치를 해야 한다. 혁신형 협치는 여의도를 에워싼 정치의 벽을 의원들 스스로가 허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민형배 광주 광산구청장은 <내일의 권력>이라는 저서에서 “여의도의 정치독점은 여의도 바깥 정치 배제의 다른 말이다. 여의도보다 여의도 바깥이 훨씬 넓은 세계다. 그 세계가 사회다. 여의도 정치는 사회를 배제했고 배제당한 사회는 여의도 정치를 배척하기 시작했다”고 썼다. 귀 기울일 말이다.



조대엽 고려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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