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4·13 총선 공천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유승민 의원 공천 여부가 남았지만 이미 평가는 나왔다. 새누리당의 이번 공천은 한마디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무조건 충성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찾아내 제거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원내대표 당시 박 대통령과 국회법 문제로 갈등했던 유 의원 공천 여부는 일단 미뤄두고 유 의원계로 분류되는 사람들을 모두 초토화했다. 조해진·이종훈·류성걸·김희국·권은희 의원이 경선도 없이 축출된 것이다. 이재오 의원 등 친이계도 대부분 공천에서 배제됐다. 복지정책을 두고 박 대통령과 의견차를 보였던 진영 의원도 탈락했다. 박 대통령이 말한 ‘배신의 정치 심판’이 현실화된 것이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공천의 기준으로 정체성을 제시했다. 그런데 결과를 보면 정체성 평가란 곧 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 테스트였음을 알 수 있다. 여론조사도 앞서고, 평판도 좋은 의원들을 친박이 아니란 이유로 경선도 없이 탈락시켰다. 조해진 의원이 “누구도 납득하지 못하고, 옳지 않고, 떳떳하지 못하고, 국민에게 드러낼 수도 없는 이유로 낙천시켰다”고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정인의 생각을 기준으로 정체성을 판단했다면 이는 스스로 공당이 아닌 박근혜 사당임을 시인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부산 사하구 괴정동 사하사랑채노인복지관을 방문한 뒤 밖으로 나와 환하게 웃으며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_연합뉴스

박 대통령은 18대 총선 당시 친이계의 친박 몰아내기 공천에 대해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되고 (특정 계파) 입맛에 맞춰 해서는 안된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본인이 입맛에 맞지 않는 세력을 솎아내는 보복공천을 아무렇지 않게 강행했다. 이에 맞서 비박계인 김무성 대표는 이재오 의원 지역구 등 단수추천된 7곳과 우선추천 지역 2곳의 보류 또는 재의를 요청했다. 당이 내분 상황으로 빠져든 것이다. 콘크리트 지지층과 야권 분열을 믿고 어떤 공천을 해도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한 오만함의 결과다.

비 박 후보들을 솎아내는 공천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자 박 대통령은 이제 ‘진실한 사람 선택’을 위한 선거 지원에 나섰다. 박 대통령은 지난 10일 대구에 이어 16일에는 부산의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찾았다. 박 대통령의 이날 동선은 진박 후보들이 출마한 지역이나 인접 지역들에 집중됐다. 선거 중립 의무를 위반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은 이제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박 대통령은 공천을 좌우하고, 원하는 후보를 지원할 수 있지만 그들을 선택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유권자인 시민들이다. 20대 국회가 국정은 뒷전이고 선거에만 몰두하는 대통령을 향해 쓴소리 한마디 못하고 눈치만 살피는 그런 의원들로 채워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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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이 대거 공천에서 탈락했다. 어제 발표된 7차 지역구 공천 심사 결과 옛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의원,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박근혜 대통령과 갈등을 빚은 진영 의원이 낙천했다. 유승민 의원과 가까운 김희국·이종훈·조해진 의원도 컷오프됐다. 박 대통령에게 미운털이 박힌 의원들은 모조리 배제된 셈이다. 반면 ‘진박(진실한 친박)’ 후보들은 단수추천되거나 경선 기회를 얻었다. 친박계에선 막말로 논란을 빚은 윤상현 의원만 탈락했다. 사실상 ‘화요일 밤의 비박 대학살’이었다.

관심의 초점이던 유승민 의원에 대해선 일단 결정이 보류됐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내부 의견이 통일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승민계’가 모두 배제된 데 비춰볼 때 유 의원 탈락도 발표만 남은 듯하다. 공천관리위원인 박종희 제2사무부총장은 “유 의원은 대통령 방미 과정에서의 혼선을 ‘청와대 얼라들’이라고 지칭하고, 당명 개정에 반대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 부총장이 밝힌 ‘공천 불가’ 사유를 뜯어보면 황당하다. ‘청와대 얼라들’은 유 의원이 2014년 국정감사에서, 박 대통령의 방미 중 발언자료가 배포됐다 취소된 일을 두고 질타한 말이다. 집권여당 의원이 청와대 참모들에게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라고 한 발언이 어떻게 공천 배제 요건이 될 수 있나. 당명 개정에 반대했다는 지적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수준이다. 대통령 뜻에 따라 찍어내기는 해야겠으되, 탈락시킬 만한 객관적 사유가 없음을 말해줄 뿐이다.

새누리당 2차 경선 및 6차 공천 결과_경향DB

박 대통령은 지난해 6월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원내대표이던 유 의원을 향해 “배신의 정치”라고 직격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대통령에게 겁먹고 자신들이 뽑은 원내대표를 쫓아냈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분노는 가시지 않았다. 유 의원이 사퇴 회견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헌법 1조 1항의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며 청와대를 비판했기 때문이다. 이후 일어난 일은 모두 아는 바다. 박 대통령은 진박 마케팅에 이어 대구를 방문하며 ‘유승민 축출 작전’을 진두지휘했다. 이제는 복수극의 마지막 장(章)만 남은 셈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기어코 유 의원을 쳐내겠다면 막을 길은 없다. 다만 대통령직의 권위와 공당의 신뢰는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을 것임을 경고해둔다. 유 의원 공천 배제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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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의 청년 비례대표 선출 과정이 구설에 휘말렸다. 청년 비례대표제는 만 39세 이하 청년 남녀 1명씩 선발해 정치참여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제도다. 더민주는 현재 면접을 통해 남녀 2명씩 후보를 압축한 상태다. 그런데 최종 후보군에 든 김규완 후보는 홍창선 공천관리위원장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관을 지낸 것으로 드러났다.

최종 후보를 골라야 하니 면접자의 희비는 엇갈릴 수밖에 없다. 중요한 점은 선발 절차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유지하고 그에 따른 결과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다. 그런데 특수 관계라 할 수 있는 홍 위원장이 김 후보자 선발에 관여했으니 공정성 시비가 이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방식은 더민주가 공언했던 시스템 공천과 거리가 멀다. 비례대표후보자추천위를 별도로 꾸리지도 않고, 지난 총선 때 운영했던 공개 오디션 등의 절차를 없애버린 것부터 잘못이다.

더불어민주당 홍창선 공천관리위원장이 10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공천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_경향DB

젊은 정치인 등용을 제도화하기 위한 청년 비례대표 선발 과정은 제도의 취지만큼이나 개혁적이고 진취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정치에 대한 청년의 관심도 높이고 참여도 이끌어낼 수 있다. 뒤늦게나마 여론을 따라 김 후보자의 자격을 박탈한 것은 다행이다. 이번 사태가 남은 공천 과정에서 교훈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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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노동자 정당 심판.’ 노사정 합의가 파기되고 한 달 만에 열린 대의원대회에서 결정된 한국노총의 4월 총선 방침이다. 노동5법과 저성과자 해고 등 양대지침을 밀어붙인 정부·여당에 대한 심판이 상반기 투쟁계획의 핵심이 된 것이다.

그러나 대의원대회가 열린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지난 14일 ‘심판투쟁 대오’에서 이탈한 이들의 윤곽이 나오면서 한국노총은 충격에 빠졌다. 새누리당 비례대표 신청자 중에 현직 임원 3명(이병균 한국노총 사무총장·김주익 수석부위원장·임이자 여성 담당 부위원장)이 포함돼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한국노총 지도부 일부가 총선을 앞두고 ‘여의도행 묻지마 티켓’을 끊는 고질병이 또 도진 것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노동계의 숙원사업 중 하나다. 이를 위해 노동운동 출신 인사의 여의도행은 되레 장려돼야 할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여의도행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몸담은 조직이 심판 대상으로 삼은 정당의 품에 안기려는 것은 더욱 그렇다.

19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김동만 위원장이 노사정합의를 파기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_경향DB


한국노총 내부에서도 정부·여당에 대한 협조와 공천을 교환하는 옛 관행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4년 위원장 선거 당시 김동만 후보(현 위원장)가 임기 중 총선 불출마를 공약으로 내건 것도 이를 바꿔보기 위한 것이었다. 이 공약은 지난해 대의원대회 때 ‘위원장·상임임원은 국회의원 등 정당 소속의 선출직 공직을 담당할 수 없다’는 규약 제정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현직 임원들이 비례대표 신청을 강행하면서 제도적 견제 장치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는 점이 확인됐다.

조직 내부에선 “임원 3명이 조합원을 팔아 금배지를 달려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비난만으로 바뀌는 건 없다. 원칙 없는 정치권 진출의 토양이 된 조직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21대 총선 때도 비슷한 일이 재연될 수밖에 없다.


김지환 | 정책사회부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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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의 4·13 총선 공천이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다. 살생부, 여론조사 결과 유출, 녹취록 파문까지 연일 죽기 살기로 계파싸움을 벌이더니 뒤늦게 내놓은 공천 결과 역시 국민의 눈높이에는 한참 모자라 보인다. 인천 남동갑의 문대성 의원과 남동을의 조전혁 전 의원 공천은 주권자 무시 공천의 상징적 사례라 할 만하다. 문 의원은 학위논문 표절 사실이 드러나 19대 총선 당선 직후 쫓겨나다시피 새누리당을 탈당했다가 2014년 복당했다. 20대 총선 불출마도 선언한 상태였다. 그런 인물이 하루아침에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도 아닌 인천의 후보로 결정됐다. 새누리당이 공직 후보자를 결정하는 기준에 원칙과 도덕성이란 잣대가 있는지 의문이다.

조 전 의원은 2010년 교육부에서 넘겨받은 전교조 교사 명단을 무단으로 자신의 홈페이지에 공개했다가 2014년 대법원으로부터 3억4000만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다. 국회의원 신분을 활용해 일반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위법 행위를 한 사실이 인정된 것이다. 그는 19대 총선 공천에서도 탈락했지만 지난해부터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온몸으로 앞장섰고 결국 이번에 공천을 받아냈다. 막말을 일삼아 4차례나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됐고 지역 시민단체가 낙천대상자로 지목한 강원 춘천의 김진태 의원도 공천을 받았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말한 공천 기준의 하나인 당 정체성에는 부합할지 몰라도 상식과는 거리가 먼 후보들이다. 지역 유권자와 시민을 우습게 알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공천이다.

새누리당 문대성 의원이 국회 정론관에서 총선 불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_연합뉴스

새누리당 지역구 의원 130명 중 공천에서 탈락하거나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은 10%를 조금 넘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19대 총선 현역 교체율이 41.7%에 달했던 것과 대조되는 현상이다. 결국 정치 신인 앞에 진입 장벽을 세워 놓고 현역 의원들끼리 치열하게 공천경쟁을 벌인 셈이다. 물갈이 자체가 선은 아니다. 그러나 교체율 최소화가 19대 의원 활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결과가 아닌, 현역 밥그릇 지키기라는 점에서 개혁과 거리가 먼 것은 분명하다.

유승민 의원 찍어내기를 위한 공천 탈락 여부, 막말을 한 친박 윤상현 의원 공천 여부 등 몇 가지 쟁점은 남았지만 새누리당의 20대 총선 공천은 이미 낙제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절차와 과정이 투명하지도 않고, 시민의 요구를 반영하지도 못하고, 그 결과 문제의 인물이 다수 선정됐다. 180석을 얻을 수 있을지가 아니라 과반 의석이라도 지킬 수 있을지를 두고 고민하는 상황이었다면 이렇게 오만한 공천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시민을 무서워하지 않는 정당은 결국 시민들이 심판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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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현역의원들의 공천탈락이 이어지고 있다. 물갈이라는 면에서는 더민주가 다른 정당들에 앞서고 있다. 그 결과 더민주가 선거에서 선전할 가능성이 뚜렷이 높아졌는가? 그렇게만 보이지 않는다. 물갈이가 선거승리를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갈이를 통해 드러나는 정치적 지향과 이에 대한 유권자들의 판단이 더 중요하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관건이다. 물갈이를 통해 만들어진 정치공간을 새로운 야당에 부합하는 인물들로 채워야 한다. 그리고 이를 분열된 야당들의 연대로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우선 인물교체라는 면에서 방향이 불분명하다. 물갈이가 지지층의 적극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물갈이의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더민주가 자신의 정책노선을 명확하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관련이 더 크다.

김종인 비대위 대표 체제가 출범한 이후 반복된 당의 정체성과 관련한 논란들이 혼란을 더 키웠다. 최근에도 테러방지법을 저지하기 위한 필리버스터를 안보프레임으로 폄훼하는 발언이 나왔음에도 이렇다 할 해명도 없이 넘어갔다.

남북관계가 심각한 위기로 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변변한 대응을 못 하고 야당의 기존 정책에 주된 책임이 있다는 입장을 보였던 사람도 등장했다. 당의 정체성에 여러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일부 개인적으로 능력과 신망이 있는 인물들을 공천하더라도 이는 그들의 개인적인 인기를 활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물갈이가 제대로 된 혁신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남은 지역구 전략공천이나 비례대표 공천이 야당의 정체성을 흔들고 여전히 계파 이익을 앞세우는 방향으로 진행되면, 사태는 더 악화될 수 있다. 공천탈락자들의 반발이 명분을 얻고 물갈이가 야당의 선거동력을 강화하기는커녕 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야권연대를 대하는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현재 수도권에서 ‘일여다야’ 구도가 만들어지는 지역이 점차 증가하면서 총선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조짐이 보인다. 야권이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연대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부분의 지지세력이 동의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를 실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지지세력들의 의지를 모으고 현실에 부합하는 방법을 제시할 때만 가능성이 열린다. 단기적인 정치이익에 따라 추진할 경우 그 실현가능성은 더 떨어진다.

지난주 관심을 모았던 김종인 대표의 통합론은 목적이 통합에 있기보다 국민의당 흔들기에 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만들었다. 현실성이 낮은 통합을 먼저 내걸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국민의당 지도부 중 일부를 빼 오는 방식으로 제안했기 때문이다. 국민의당 내의 안철수 의원 등은 이에 연대부정론으로 맞서며 야권의 선거연대는 더 어려워졌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의 발언 _경향DB

야권 분열은 심각하지만 그 부정적 영향을 줄이고 총선에서 야권 승리의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이 없지는 않다. 지금 호남에서의 경쟁은 지지층에 부정적인 현상으로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비호남 지역에서는 정당간 세력의 차이로 야권이 전면적인 분열로 나아가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비호남지역, 특히 수도권 지역의 선거연대만으로도 이번 선거에서 야권 중 누가 수권야당으로서의 자격을 더 갖고 있는가를 둘러싼 경쟁을 전개하는 동시에 통합에 값하는 정치적 효과를 낼 수 있다. 야권은 시급히 비현실적인 통합론과 무책임한 연대부정론의 대립을 해소하고 실현가능한 연대 방식에 대한 논의에 나서야 한다.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에서 외부의 훈수가 현실정치의 벽을 넘기는 힘들다. 야권 지지층도 어떻게든 선거에서 승리만 하면 좋겠다는 절박함으로 당선 가능성이 더 높은 세력을 밀어줄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현실론으로 기울어질 수도 있다.

여권의 독주를 저지하기 위한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총선 자체의 승리 여부만이 아니라 야권이 앞으로 어떤 길을 갈 것인가도 심판대에 올라 있다. 당면한 선거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이유로 야당 내의 정체성 혼란과 계파적 행동의 득세를 방조하면 야권과 야당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선거승리와도 멀어질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퇴행을 더욱 더 가속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야권이 제대로 된 혁신의 길을 가도록 감독하고 채찍질하는 것이 여전히, 더 중요하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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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총선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 총선은 시민들이 자기 지역 여야 후보들을 비교평가해서 한 사람을 고르고, 그 투표 결과들이 모여 4년간 대한민국 입법부를 책임질 국회의원 300명을 선출하는 시민 주권의 장이다. 하지만 총선 30일을 앞둔 여야의 모습을 보면 온전한 시민 주권이 행사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새누리당은 아직도 공천갈등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의 공천개입과 진박 지원 논란, 친박계의 비박 당대표 깎아내리기,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유승민 죽이기 등 노골적인 밥그릇 싸움만 계속되고 있다. 살생부 논란, 여론조사 유출 등 구설수도 끊이지 않고 있다. 시민의 눈이 무서웠다면 과연 저렇게 선거에 임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야권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도 이제야 공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탈락자들의 반발도 계속되고 있다. 국민의당은 야권연대를 두고 지도부 간 이견을 보이며 내분 상태에 빠져 있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 정치권의 혼란이 계속된다면 피해는 유권자인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이미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면서 유권자들은 선거 40여일 전까지도 자신의 선거구조차 모르는 상황이 계속됐다. 또 선거가 30일밖에 남지 않은 현재까지도 자기 선거구의 여야 후보가 확정되지 않은 유권자들이 상당수다. 후보 확정이 미뤄질수록 그 지역 유권자들의 주권행사를 위한 평가의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또 살생부 논란 등 공천 과정에서 벌어지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전투구 행태는 정치혐오를 키우고 시민들의 투표 참여율을 떨어트리게 된다. 정치 무관심은 기존 정치권의 퇴행적 행태를 유지시키는 악순환의 원인이 된다.

공천 배제에 반발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전병헌 의원이 13일 재심 신청서를 제출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당사로 들어서다 지지자를 안아주고 있다._강윤중 기자


정당의 공천은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한 출발점이다. 유권자들이 선택의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후보 개인의 신상이나 경력뿐 아니라 그의 공약, 그가 속한 정당의 정책까지 종합적으로 비교평가해야 한다. 테러방지법 제정, 노동법 개정 등 논란이 되는 사회 현안에 대한 후보들의 입장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럼에도 마치 공천이 곧 당선인 것처럼 사생결단으로 내부 경쟁에 매달리는 여야의 모습은 유권자의 힘을 무시하는 행태에 다름 아니다. 여야는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된 시민 주권이 행사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공정한 절차를 거쳐 하루빨리 후보를 확정하고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아무도 관심 없는 정책을 밀린 숙제하듯이 던져놓는 식으로는 곤란하다. 다른 당과의 차별적인 정책은 무엇이며 어느 것이 더 합리적인지를 두고 경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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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의 공천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비박근혜(비박)계 황진하 사무총장과 홍문표 제1사무부총장이 친박근혜(친박)계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의 중립성을 문제 삼으며 공관위 보이콧을 선언했다. 발단은 이 위원장이 2차 공천심사 발표에서 김무성 대표 지역구를 제외한 데서 비롯했다. 어제 오후 늦게 이 위원장과 황 총장 등이 소통을 위해 노력한다는 데 합의하며 공관위가 정상화되긴 했으나 미봉일 뿐이다. 정당의 공천은 공정성과 객관성, 독립성이 생명이다. 이 같은 기준에 비춰볼 때 새누리당 공천은 이미 신뢰와 권위를 상실했다. 아무리 참신하고 유능한 인물을 공천한다 해도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게 됐다.

친박계와 비박계의 사생결단식 권력투쟁 배후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고 있음은 이제 정가의 상식에 속한다. 공천 살생부 논란, 여론조사 결과 유출, 윤상현 의원 막말 파문에 이어 이한구 위원장과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이 비밀리에 회동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총선개입’이라는 비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구를 방문했다. 그리고 진박(진실한 친박)으로 분류되지만 고전 중인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의 손을 웃으며 잡아줬다. 이 모든 사건들이 우연히, 개별적으로 돌출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청와대의 끈질기고 노골적인 선거개입 시도이다. 사실상의 대리전을 펼치고 있는 친박계를 향해 자제를 촉구해본들 아무런 소용 없는 일이다.

새누리당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20개 지역구에 대한 경선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_경향DB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박 대통령의 대구 방문을 두고 비판론이 제기되자 “경제행보라고 말씀드려도 그렇게 안 받아주니 참 답답하다”고 말했다. 후안무치하다. 국민에게도 눈과 귀가 있다. 보고 듣고 판단할 줄 안다. 대통령의 대구행에는 이례적으로 중앙정부 예산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2차관까지 동행한 터다. 누가 봐도 선거개입인데, 청와대에서 경제행보라고 고집하면 경제행보가 되나. 청와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여당의 공천 갈등과 관련해 “어떻게 이렇게 대통령 국정운영을 안 도와줄 수 있느냐”며 새누리당 탓을 했다고 한다. 낯부끄럽다. 청와대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고 있다.

거듭 밝히거니와 대통령의 공천 관여는 정당 민주주의 훼손이며, 선거중립 의무 위반 소지가 짙다. 계파갈등으로 일그러진 새누리당을 정상적인 공당으로 돌려놓는 길은 청와대가 ‘보이지 않는 손’을 거두는 것뿐이다. 박 대통령은 총선에서 손을 떼고 안보와 경제 등 산적한 국정현안에 집중하기 바란다. 국민은 집권당의 수준 낮은 권력다툼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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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대구를 방문했다. 청와대는 이번 방문은 창조경제 현장 점검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총선을 한달 앞둔 시점에 대통령이 굳이 자신의 정치적 고향이자 여당의 핵심 지지기반인 대구의 창조경제센터를 찾아야 할 이유는 딱히 없다. 지금 친박계의 비박계 ‘죽이기’가 노골화되면서 새누리당의 공천갈등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대구는 친박·비박 전투의 결과를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특히 친박계가 공언한 ‘유승민 죽이기’를 실행할지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시점이 미묘한 만큼 친박 선거 운동을 한다는 시비를 피할 생각이 있었다면 박 대통령은 대구를 방문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래전에 정해진 일정이라도 시급한 일이 아닌 만큼 선거 후로 조정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기필코 방문을 강행했다. 선거개입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특별한 정치적인 발언은 하지 않았지만 동선을 보면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첫 방문지인 창조경제혁신센터는 공천 살생부에 오른 유 의원의 옆 지역구다. 두번째 방문지인 국제섬유박람회 전시장은 이른바 진박 후보인 하춘수 전 대구은행장이 뛰고 있는 지역이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육상진흥센터는 새누리당 김문수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가 대결하는 지역구다. 세 곳 모두 박 대통령의 방문 자체로 후보들의 유불리가 갈리고 결과적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곳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_청와대사진기자단

박 대통령의 선거개입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유 의원 등 자신에게 반기를 든 사람을 찍어낼 때는 노골적이었다. 박 대통령은 2015년 7월 “배신의 정치 심판”을 당부했고, 11월 “진실한 사람 선택”을 강조했다. 그리고 당내 공천이 마무리될 시점에 대구를 직접 찾아 자신의 뜻을 다시 각인시킨 것이다. 친박계 공천개입의 기획자가 박 대통령이란 평가가 나올 만하다. 관권선거 논란도 있었다. 박 대통령은 2014년 7·30 재·보선 후보등록일에 맞춰 농산물 유통구조 점검을 이유로 선거구인 경기 김포의 로컬푸드 직판장을 찾았다가 선거개입이란 비판을 받았다. 그해 6·4 지방선거에서는 “정말 능력 있는 사람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유정복 인천시장 후보를 편든 발언이 공개돼 선거법 위반 논란이 일었다.

영향력이 큰 만큼 대통령의 선거중립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은 이제 ‘선거의 여왕’ 시절은 잊어야 한다. 대신 과거 야당 의원 시절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았던 수준의 엄격한 잣대를 자신에게도 적용하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할 것이다. 선거 때마다 선거개입 논란을 달고 다닌다면 누가 대통령을 신뢰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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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대표님께서 민주노총을 방문하여 민주노총의 사회문제 ‘집착’에 관해 언급하신 것을 두고 오히려 외부에서 이런저런 말이 나와 당사자 입장에서 한마디 안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물론 고민도 됩니다. 내빈으로 방문한 자리에서 오간 얘기를 가지고 이렇게 다시 새기는 것이 혹시라도 예민한 정국에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대표님이 제1야당 대표로 예방한 자리에서 주요 의제로 발언하셨고 이미 사회 쟁점화될 조짐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노동자의 총연합단체가 조합원들의 이익에만 복무해야 한다는 이른바 조합주의 논리는 이전부터 민주노조를 공격하는 수구보수 정권의 논리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내빈으로 오셨던 많은 정치인들이 있었지만 이 같은 깜짝 발언은 없었습니다.

우선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용산참사를 기억하실 겁니다. 심각한 사회 문제였고 우리는 2009년 1월20일 이후 지금까지 유가족들과 연대해 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유가족과 함께하며 정부를 상대로 치열하게 투쟁했습니다. 물론 많은 단체와 시민들의 연대도 있었습니다. 그 힘으로 유가족들은 그나마 버텨낼 수 있었고 7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가까스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집착’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세월호 참사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수많은 국민들이 우울증에 시달렸을 정도로 큰 사회 문제이지요. 물론 민주노총은 이 세월호 참사에 거의 올인하다시피 ‘집착’했습니다. 한상균 위원장을 비롯한 수많은 노동자들이 세월호 투쟁이 주요 혐의 중 하나가 되어 구속되거나 현재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같은 노동자들과 시민사회의 치열한 투쟁이 있었기에 그나마 대통령이 세월호 인양이라도 발표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두 가지 사례만 들었지만 민주노총은 창립 이래 수많은 사회문제에 ‘집착’했고 국가 폭력의 피해 당사자들 곁에서 함께 비를 맞는 심정으로 같이 해왔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하실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사회문제에 ‘집착’하는지 말입니다.

민주노총은 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적 열망과 지지를 자양분으로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암울한 군사 독재를 거치면서 민주주의는 유린됐고 헤아릴 수조차 없는 수많은 국민들이 국가 폭력에 희생됐습니다. 독재를 거부하고 민주주의를 염원했던 국민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설립된 민주노총이 어떻게 이런 헬조선 속에서 우리만 살아보자고 조합원들의 이익만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노동자들이 고문당하고 핍박받던 그 시절 국민들이 보내준 지지와 성원으로 민주노총을 만들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제1야당 대표의 정국 인식 수준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대표님께서 정치적인 이유로 민주노총과 선긋기를 위해 이 같은 소신 발언을 하신 거라면 소기의 목적이 달성됐기에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겠으나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근현대사 속에서 노동의 역사를 한 번만이라도 살펴보시기를 권합니다. 그것이 상호 소통이고 상대에 대한 예의일 것으로 보입니다.

워낙 급한 일이라 지면을 통해 전합니다. 지금 국회 앞에서 세월호 가족 두 분이 삭발한 채 밤낮없이 1인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젯밤 예은 아빠께 확인해보니 이틀 밤을 지새우는 동안 정치인들은 고사하고 국회 경호대만 눈을 부라리며 찾아와 본다고 합니다. 작년만 해도 많은 정치인들이 곁에 있었던 걸로 알았는데 해결 여부를 떠나 그분들 손이라도 따뜻하게 잡아 주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꽃샘추위로 국회 앞은 정말 춥습니다.

박병우 | 민주노총 대외협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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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침팬지는 DNA 서열이 98% 이상 일치한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인간이 지구의 지배자가 된 반면, 침팬지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DNA대로라면 침팬지도 도구와 언어를 만들고, 나름의 문명도 이룩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바르키와 브라워가 쓴 <부정본능>이란 책은 그 해답을 제시한다. 인간이 성공한 이유는 제목 그대로 현실을 부정하는 능력 때문이라는 것.

침팬지를 예로 들어보자. 무리들과 함께 어울려 놀던 ‘침팬지1’은 정신세계가 다른 침팬지들보다 약간 뛰어나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따르던 ‘침팬지2’가 늙어 죽는 것을 본다. 다른 침팬지들은 거기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던 반면 ‘침팬지1’은 언젠가는 자신도 그렇게 죽을 거라고 생각하며,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된다. 그럼 어떻게 될까? ‘침팬지1’은 조금이라도 위험한 일은 하지 않으려 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두려움은 커져,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점점 더 아무것도 안 하려 했다.

다른 침팬지들이 보기에 ‘침팬지1’은 그냥 ‘또라이’다. 이런 침팬지와 결혼하려는 침팬지는 없었으며, 자연선택은 ‘침팬지1’을 도태시켰다. 하지만 인간은 이와 달랐다. ‘침팬지1’보다 정신세계가 훨씬 진화된 인간은 여기에 맞설 방어기제를 만들어 냈으니, 그게 바로 ‘현실부정’, 더 정확히 말하면 ‘필멸성의 부정’이다. 사람들이 죽음을 잊은 채 살아가는 건 그 덕분이다. 동갑 친구의 장례식에 다녀온 그 날은 우울하겠지만, 현실로 돌아가는 데는 불과 며칠이 걸리지 않는다. 이게 어떻게 인간의 성공을 가져왔을까? 미지의 땅을 개척하고, 오래 존속하는 건물을 짓고, 빠르지만 사고 위험이 있는 교통수단을 타는 것 등은 현실부정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1987년 10월 공포된 10호 헌법에 의하면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며, 딱 한 번만 할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 대통령이 되면 우울해질 수 있다. ‘5년이 지나면 영락없이 물러나야 하니, 대통령 자리도 무상하구나!’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이 목표한 바를 5년 동안 부지런히 하려고 애를 쓰는 게 정상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힘썼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수도이전으로 서울의 과밀화를 해소시키려 애썼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통해 자신의 지인들에게 화끈하게 일감을 몰아줬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무얼 하셨을까? 취임 첫해에는 대변인에 윤창중씨를 임명한 걸 제외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며, 2년차에도 특별히 한 일이 없었다. 임기 중반이라고 할 3년차가 되자 대통령이 드디어 일을 시작했는데, 가장 먼저 하신 일이 바로 역사교과서 국정화였다. 반대하는 여론이 더 높았지만 대통령은 흔들림 없이 밀어붙였고, 얼마 전 기사를 보니 친일과 독재가 미화된, 아이들의 혼을 맑게 해주는 교과서가 만들어진 모양이다. 지금은 노동개혁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를 압박하고 계신데, 이 법안만 통과된다면 우리 청년들이 비정규직에서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좋은 시대가 온다니 이것 역시 기대가 된다.

굵직한 일을 두 개나 하긴 했지만, 좀 이상하긴 하다. 5년이라는 기간이 막상 일하려면 그리 긴 시간도 아니니, 하려던 바가 있다면 취임 초부터 화끈하게 밀어붙여야 했다. 그런데 왜 대통령은 이렇게 띄엄띄엄 일할까? 2년차 때는 세월호 사고가 있었고, 3년차 때는 메르스가 있어서 일하는 데 지장이 있었긴 하다. 그런데 대통령은 이 두 가지 일을 수습하는 데 있어서도 그다지 한 일이 없으니, 이걸 핑계 삼기엔 좀 궁색하다. <부정본능>을 읽고 난 뒤에야 이해가 됐다. 대통령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것에 대한 방어기제로 ‘임기부정’을 구현하고 계신 거였다! 임기가 무한정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드니 일 때문에 서두를 필요가 없고, 대신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레임덕만 걱정하면 된다.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정치인에게 배신자 낙인을 찍으면서 펄펄 뛰셨던 것도 그런 연유다. 남는 게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쓴소리를 해도 잘 듣지 않는다. 예컨대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는 대통령의 국가부채를 걱정한다. 노무현 정부 때 재정적자는 10조원에 불과했지만, 이명박 정부 때는 100조원의 적자를 봤고, 박근혜 정부는 불과 3년 만에 167조원의 신화를 이루었다는 것. 이런 말도 대통령에겐 별 소용이 없다. 임기부정의 달인답게 “그깟 부채, 천천히 갚지 뭐”라며 여유를 부리고 있을 테니까.

하기야, 임기부정을 대통령만 하고 있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뜻있는 국민들은 이미 대통령의 임기를 19년쯤 되는 걸로 느끼고 있지 않던가?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을 하고 투표를 하자. ‘침팬지1’은 자연선택으로 도태됐지만, 대통령은 그럴 수가 없으니 말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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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국민의당 상임대표님, 얼마나 바쁘십니까. 이렇게 펜을 든 것은 야권통합과 연대에 대한 안 대표님의 입장에 대해 고언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당신은 더민주가 제안한 야권통합은 “양당체제를 유지하고 현재 상황을 유지하는 하책”이며 국민의당의 “분명한 목표는 기득권 양당체제를 깨는 것”이고 “공식적이고 확고한 입장은 수도권연대가 없다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맞습니다. 양당의 공생적 기득권체제가 한국정치에 끼친 폐해는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기에, 안 대표님의 문제의식에 충분히 공감합니다. 한 예만 들어보겠습니다. 표의 등가성을 지나치게 해치는 선거제도는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과 사표를 줄이기 위해 비례대표를 늘리는 독일식 연동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선거관리위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양당은 야합해 오히려 비례대표를 줄이는 개악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안 대표님이 주장하듯이 당체제를 깨기 위해 수도권 연대까지도 거부하는 독자노선이 과연 당신이 생각하는 ‘3당경쟁체제’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착각입니다. 당신의 독자노선이 오는 총선에서 양당체제를 깰 것이라는 주장은 맞습니다.

하지만 이를 대신할 것은 3당경쟁체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야권분열로 새누리당이 압도적 의석을 차지하는, 잘못하면 새누리당이 개헌의석을 차지하는, 새누리당 ‘일당지배체제’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당신이 바라는 것인가요? 양당제라고 하지만 현재는 새누리당 55에 더민주 45의 기울어진 양당체제입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정의당과 같은 진보정당은 일단 빼고, 의석비율을 새누리 67, 더민주 19, 국민의당 14로 만드는 것이 양당체제 타파인가요? 새누리당이 압도적 의석, 개헌의석을 차지하고,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나머지를 엇비슷하게 나누어 가지면 3당경쟁체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새누리당이 야당의 눈치 보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는 일당지배체제입니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가 6일 서울 마포 당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야권 통합 제안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회견장을 들어서고 있다._경향DB

당신은 더민주의 연대제의도 거절하며 이는 기득권 양당체제를 깨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습니다만, 당신이 바로 기득권 양당체제라고 비판한 새누리는 기이하게도 더민주의 연대제의를 맹비판하고 당신의 독자노선에 박수를 치고 있습니다. 왜 그런다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거기에 답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당신의 독자노선 결과는 3당경쟁체제가 아니라 새누리당의 일당지배체제입니다. 며칠 전 광주·전남지역 재야원로들이 야당세력들은 오는 총선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의 순천을 제외한 호남에서는 자유경쟁을 보장하고 비호남에서는 연대를 하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 입장이 정답입니다.

하나 더 지적하고자 합니다. 기득권 양당체제를 깨려면 이념적 거리가 얼마 되지 않는 새누리당과 더민주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경제는 더민주, 안보는 새누리’와 같은 짬뽕형 제3당을 만드는 방식을 택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정의당, 노동당과 같은 진보정당들을 강화해 진정한 다당제로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정책경쟁이 가능합니다.

일각에서는 당신이 새누리당의 총선압승 가능성에도 독자노선을 고집하는 이유가 대통령 선거 때문이라고들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동안 보여준 공익적 리더십이나 지난 서울시장 선거와 대통령선거에서 보여준 양보의 자세를 볼 때, 당신이 개인적 욕심 때문에 우리의 미래를 망칠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오는 총선에서 독자노선을 고집해 새누리당 일당지배체제가 온다면 당신은 야권지지자들로부터 그 같은 결과에 대한 엄청난 비난을 받을 것이고 당신의 대통령 꿈은 날아가 버릴 것입니다. 아니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서의 기회는 남아있을지 모릅니다. 당신이 한국정치의 백신이 될 것인가? 아니면 일당지배체제의 악성바이러스가 될 것인가? 현명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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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내에서 야권통합론을 둘러싼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안철수 상임공동대표 중심의 ‘독자(獨自)파’와 김한길 상임공동선대위원장·천정배 공동대표 중심의 ‘연대파’가 격돌하는 양상이다. 김 위원장은 어제 “집권세력의 개헌선 확보를 막기 위해서라면 모두 죽어도 좋다는 각오로 총선에 임해야 할 것”이라며 ‘통합적 국민저항체제’ 수립을 촉구했다. 안 대표는 “익숙한 실패의 길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천 대표는 “개헌저지선을 내준다면 우리 당이 설령 80석, 90석을 가져도 나라의 재앙”이라며 김 위원장에 동조했다. ‘오너십’으로 연대파를 제압하려던 안 대표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이제 안 대표는 통합·연대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독자파와 연대파의 충돌 뒤편에는 4·13 총선을 바라보는 상이한 시각이 자리하고 있다. 안 대표에게 총선의 핵심 목표는 의미 있는 수준의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해 ‘제3당’ 자리를 확보하는 일이다. 새누리당의 개헌가능의석 확보를 막는 일은 그 다음이다. 반면 천 대표·김 위원장 쪽은 개헌선 저지가 더 시급한 과제라고 본다. 당초 함께하기 어려운 이질적 세력이 반(反)문재인을 공통분모로 뭉쳤다가 사달이 난 셈이다. 내연하던 갈등이 폭발한 만큼 ‘침묵의 동행’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국민의당을 구성하는 제 세력은 지지층 여론을 수렴하고 치열하게 토론해 노선을 정리할 시점에 이르렀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오른쪽)와 김한길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7일 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회의에 앞서 서로 다른쪽을 보고 있다._연합뉴스


국민의당이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국민의당 몫이다. 다만 선택은 사실에 기반을 둬야 한다. 안 대표는 “국민의 현명한 판단을 믿는다. 퇴행적 새누리당에 개헌 저지선이 무너지는 결과를 국민께서 주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의 전형이다. 희망적 사고란, 믿고 싶은 사실만 받아들여 오판하는 경향을 가리킨다. 새누리당 승리를 저지하려면 전체 지역구의 절반에 가까운 수도권에서 야권이 선전해야 한다. 역대 선거에서 수도권은 득표율 격차 5% 내로 당락이 갈리는 곳이 상당수다. 야권이 ‘수도권 연대’조차 하지 않는다면 여당의 어부지리는 필연이다. 새누리당이 과반선을 초과하는 압승을 거둘 경우 박근혜 정권의 폭주는 누구도 멈출 수 없게 된다. 안 대표는 사실을 외면한 채 주권자에게 ‘현명한 판단’을 떠넘길 참인가.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전정희 의원이 어제 입당하며 국민의당 의석이 19석으로 늘었다. 이번주 안에 1석을 더 확보해 교섭단체를 구성할 것이라고 한다. 새정치를 외쳐온 국민의당과 안 대표가 이삭줍기에 골몰하는 모습이 딱하다. 역사와 미래를 내다보는 ‘큰 정치’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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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지역에서 교수 노릇을 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동진’정책과 노무현 대통령의 ‘전국정당화’ 정책을 지켜보았다. 동진정책은 밀라노프로젝트에서 보았듯이, 예산을 내세우면서 이 지역의 상층 토호들을 공략하였다. 그래서 이 지역 민주개혁 세력들이 적잖게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전국정당화 정책은 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이 지역 출신 인사들을 국정운영에 적극 등용하였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끝난 후에도 이 지역 정치에 계속 남아 활동하고 있는 지도자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역주의 극복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았던 두 대통령의 정책은 일정한 성과가 있었으나 이런 한계도 있었다. 두 정책 모두 이 지역에서 ‘정당’ 조직과 인재를 육성하지 않고 청와대의 힘으로 밀어붙이기만 한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완장을 찬 사람들이 ‘민원해결사’ 노릇을 하면서 ‘특수이해와 충성의 교환’을 통해 지지기반을 만들려고 했는데, 권력을 잃자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문제는 지금이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에는 한계가 있었으나 나름 ‘전략’을 가진 접근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는 ‘전략’은커녕 문제의식조차 없어 보인다. 가끔씩 이 지역을 다녀가는 정치지도자들이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정치적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으나 그것이 ‘전당대회용 사탕’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더불어민주당 홍의락 의원이 25일 국회에서 탈당 선언 기자회견을 하는 도중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다._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서 지역주의와 힘겹게 대면하고 있던 홍의락을 공천 배제한 것은 ‘아무런 생각이 없는’ 즉 ‘전략이 없는’ 더불어민주당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홍의락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지역주의의 아성을 공략하고 있는 김부겸은 그것이 ‘아군을 쏜 오인사격’이며, ‘뒤에서 얼음 칼을 꽂는 격’이라고 분노했다. 홍의락은 아예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지난 4년 동안 자신의 활동에 대한 ‘아군’의 평가가 ‘집에나 가라’는 말에 다리가 완전히 풀렸다. 그에게는 좌절과 모멸이라는 말조차 사치스러운 것이다. 더 이상 서 있을 힘조차 없기 때문이다. 4년 전, 그는 국회의원 배지를 달자마자 보따리를 싸들고 더불어민주당의 최전선 대구로 내려왔다.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었다. 지역주의 문제에 ‘아무런 생각이 없는’ 정당에서 최전방 소대장을 자임한 것이었다.

그는 아군의 총질이 ‘오인사격’이 아니라 차라리 ‘조준사격’이었으면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하는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이 자신을 ‘집으로 보내는’ 결정이 어떤 분명한 전략적 의도와 목표를 가지고 한 일이라면 ‘알았다’ 하고 집으로 가겠는데 그게 아니니 더 갑갑한 노릇이라는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당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실 걱정은 국회의원의 활동을 계량 평가하여 그것으로 일부를 공천 배제한다는 결정을 할 때부터 있었다. 이 제도를 만든 분들의 최대 관심은 공천제도의 ‘공정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계파 패권주의의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으로서는 공정한 공천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가장 큰 문제의식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적실성이 있느냐에 대한 고민은 깊이 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이 이 점수를 공천배제 판단의 ‘자료’로 삼았으면 모르겠으나 이 점수를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컷오프를 하면서 사고는 예상되었다. 이것 역시 공정성 강박을 가지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트라우마가 낳은 결정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치적 판단을 중지해버린 정치집단으로서 직무유기를 면책받을 것 같지는 않다. 홍의락을 컷오프하겠다는 결정을 할 때, 그가 지금 어디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했을 것이다. 홍의락에게 컷오프를 알려준 분의 말씀이 ‘공천배제 결정에 대한 이의제기는 부질없다. 합산은 정확했다’라고 했단다. 이거야말로 세상 물정 모르는 ‘양반집 도련님’의 말씀이 아니고 무엇인가?

더 심각한 걱정거리는 더불어민주당에 대구·경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에 대구·경북은 사석(捨石)인가, 아니면 사석(死石)인가? 바둑에서 큰 집을 얻기 위해 버리는 돌인가, 의미 없이 죽이는 돌인가? 홍의락을 쓰러뜨리고 김부겸을 망연자실하게 만들어놓은 것이 ‘잘못’이라고 하면서도 지난 두 주일 동안 아무런 조치도 없이 내버려두고 있는 정말 생각 없는 ‘아군’ 더불어민주당에 드리는 질문이다. 김대중의 동진정책, 노무현의 전국정당화 정책의 발끝도 못 따라가는 생각 없는 ‘아군’에게 정중하게 드리는 질문이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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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야권통합 제안에 대해 거부 입장을 재확인했다. 안 대표는 어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의당과 저는 지금 힘들고 두려운 광야에 있다. 저를 포함해 모두 이 광야에서 죽을 수도 있다. 그래도 좋다”고 말했다. 낮은 수준의 연대방안으로 거론되는 ‘수도권 연대’에 대해서도 “저희의 분명한 목표는 기득권 양당 체제를 깨는 것”이라며 불가론을 분명히 했다. 앞서 국민의당은 4일 의원·최고위원 연석회의에서 야권통합 제안을 거부키로 결정한 바 있다. 그러나 천정배 공동대표·김한길 상임공동선대위원장 등의 이견이 표출되며 당내 균열상도 드러나고 있다.

안 대표 입장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다. 불과 80여일 전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겠다며 탈당했는데, 총선 유·불리를 이유로 복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라 본다. 당과 자신의 지지율이 급락한 상황에서 통합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이른바 ‘철수(撤收)정치’의 오명을 벗기 어렵다는 판단도 작용했음직하다. 그러나 선거는 몽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뭉치면 승리, 갈라지면 패배다. 당장 여러 언론사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수도권에서 더민주와 연대 없이는 당선자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명분 면에서도 무조건적 연대 불가는 타당하지 않다. 안 대표는 정치를 시작할 무렵 “제가 선택하는 길의 가장 중요한 좌표는 현 집권세력의 정치적 확장 저지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수도권 연대조차 이뤄지지 않는다면 새누리당의 확장을 저지할 길은 없다. 야권 지지층 대다수는 더민주·국민의당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 공당의 선택이 당을 주도하는 몇몇 인사 대신 지지층 전체 의사를 반영해 이뤄져야 함은 자명하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가운데)가 3일 부산여성회관에서 열린 ‘부산을 바꿔! 국민콘서트’에서 야권 통합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_연합뉴스

김종인 대표의 처신도 비판받을 소지가 작지 않다. 김 대표는 안 대표 회견에 대해 “자제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말했다고 생각한다. 죽어도 못하겠다는 사람과는 이야기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지난 5일에는 “유권자들이 대단히 현명하기 때문에 (이번 총선을) 여당과 제1야당의 싸움이라고 생각하지 그 외 정당에 대해선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도 했다. 이런 식으로 국민의당을 몰아붙인다면 통합 제안의 진정성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이니셔티브를 쥔 쪽일수록 상대방을 존중하며 언행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야당 지도자들은 무겁게 처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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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권력이 돌아왔다. 국내외 정보사항뿐 아니라 범죄 수사, 군과 정부에 대한 정보·수사 활동을 조정·감독하는 권한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이 되었던 중앙정보부(중정)가 이제 ‘극강’의 무장을 하고 되돌아왔다. 국가 안보라는 냉전시대의 유산 따위는 저리 제쳐 두고, 최첨단 정보화시대에 걸맞게 모든 것을 국가정보의 틀로 휘몰아가는 테러방지법 덕분이다. 사실 중정의 위력은 군부에서 나왔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정권의 민간 이양이라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그 상당 부분을 제2의 군부인 중정에 남겨두었다. 그러기에 중정의 권력은 정보권력이라기보다는 숨겨진 잉여권력이었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김종필 초대 중앙정보부장의 표어는 이를 표상했다.

하지만 ‘테러방지법’은 중정을 완전히 새롭게 업그레이드한다. 음지와 양지 모두에 걸쳐 전방위의 권력을 자가발전해낼 수 있는 창조력을 부여한 것이다. 테러방지법의 키워드는 테러가 아니다. 방점은 테러위험 인물이라는 불확정 개념에 놓인다. 그것은 가뜩이나 추상적인 테러라는 개념 위에 조직원, 선전, 모금, 기부, 기타 테러 예비·음모·선전·선동, 나아가 이런 행위를 했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 등의 애매모호함을 덧씌워 국가정보원에 무한권력을 제공하는 화수분이다. 국정원이 테러라는 이름을 걸기만 하면 어떤 사람에 대해서건 전방위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그 인물을 추적(잠입·정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테러방지법은 국정원을 어떠한 감시나 통제로부터도 자유롭게 만들었다. 국무총리 산하에 테러대책본부라는 조직을 두었지만, 실제 권한은 국정원장에게 주어버렸다. 총리와 내각의 통제권은 허울뿐인 테러대책본부에만 그칠 뿐, 국정원장이 막강한 권한을 마음대로 전횡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여기에 국정원특위 등의 사례에서 보듯, 국회의 통제권조차도 그냥 흰 종이 위의 검은 글자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국정원은 최고의 권력이 되었다. 멀리 볼 필요도 없다. 대통령에 맞서 직권상정하면 성을 바꾸겠다던 국회의장의 맹약을 뒤집게 만든 이가 바로 국정원장이다. 무슨 내용인지는 몰라도, 이것이 대통령보다 더 강력한, 정보 혹은 정보기관의 위력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반도 안보 위기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_경향DB

이는 대통령이라 해서 다르지 않을 듯하다. 말씀 받아적기에 급급한 내각과 진박·친박이 공식 용어로 된 국회, 법리보다는 정치가 우선하는 대법원 등으로 점철된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대통령에게 수렴되는 정책 정보들을 비교하고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다. 민주적 소통의 의지가 결여되고 합리적인 정책능력을 상실해버린 대통령은 오로지 국정원이 상납하는 정보를 통해서만 세상과 관계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간첩조작사건이나 댓글사건에서 보듯 자신의 권력을 위해 전방위의 정보 가공능력과 대국민 심리전술능력을 갖춘 국정원이라면 손쉽게 대통령의 권력을 타고 넘어갈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인사권으로 국정원을 통제하는 것도 쉽지 않다. 사실 정보기관이 대통령에게 기생하던 시절은 권위주의와 함께 이미 끝났다. 중정은 음지(법의 바깥)에 있었기에 자신의 존립을 뒷받침해줄 또 다른 거대권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현재의 국정원은 테러방지법을 통해 당당하게 양지로 나왔고, 그 자체로 존립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정보권한과 정보능력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돼 경찰이나 검찰 등 정보기관과 더 이상 경쟁하거나 협조를 구해야 할 이유도 없어진다. 그뿐 아니다. 대통령은 과거와 달리 단 5년만 재임한다. 대통령의 임기는 짧고 국정원은 영원하다. 이것이 박정희 시대의 중정과는 달리 현재의 국정원이 최고 권력을 누리게 되는 이유다. 국정원의 권력기반은 대통령이지만, 테러방지법은 국정원을 대통령으로부터 해방시켜버리는 일종의 반역을 성취한 것이다.

테러방지법이 공포되자 여당의 의원들이 줄이어 ‘추적’이 곤란한 아이폰이나 텔레그램으로 갈아탄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19개 조문의 테러방지법에다 대통령령으로 위임한다는 규정을 13개나 두었다. 국정원의 권한을 통제하기는커녕 자신들의 입법권까지 국정원에 맡겨 버린 것이다. 대통령조차도 어쩌지 못하게 될 ‘거대 공룡’ 국정원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자기 발등을 찍듯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려다 자신까지도 초월하는 절대괴물을 만들어 놓은 셈이다.

어쨌거나 이제 국회의장은 성을 바꿔야 한다. 그러면 대통령의 성은 안전하신가? 아니, 그보다 대통령의 카톡은 -그런 것이 있다면- 안전하신지부터 먼저 물어야 할 듯하다.


한상희 |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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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은 특정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직 사실과 법리로 판단해야 한다. 판사들이 독립된 헌법기관이라 일컬어지는 이유다.

하지만 법관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외부의 힘’은 존재한다. 법관들의 승진·징계 등을 결정하는 사법정책이 대표적이다. 불투명하고 권위적인 조치들이 이어진다면, 판사라 해도 윗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고 판결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법원의 정책 결정은 비슷한 견해를 가진 소수가 독점하면 위험하다.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달 중순 법원 내부망에 게재된 법관들의 목소리는 그래서 의미가 있었다. 지난해 말 대법원은 법관들이 직접 사법행정에 참여하게 하는 방안을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한 판사는 “법관들의 투표로 참여위원을 뽑게 해달라”는 글을 내부망에 올렸고 많은 이들이 동의했다. 그간 법원에서는 대법원장이 거의 모든 권한을 쥐고 행정을 쥐락펴락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판사들이 직접 뽑은 사람들이 행정에 참여한다면, 폐쇄적 구조를 깨뜨리고 다양한 목소리를 아우를 수 있다는 기대가 가능했다.


하지만 법원행정처는 최근 실망스러운 답을 내놨다. 행정처가 공포한 ‘법관의 사법행정 참여를 위한 규칙’은 참여위원을 고등법원장이 추천하고 행정처가 위촉하도록 정했다.

투표 제안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면 참여위원 추천권이라도 분산시켜야 하는데, 되레 ‘윗선’에 집중시킨 것이다. 판사들 사이에선 ‘반쪽짜리 참여행정’이란 지탄이 나왔다. “윗분들이 추천한 순치된 인재들이 참여한다면 과연 제대로 된 의견 수렴이 가능한가”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단음(單音)보다 화음이 더 듣기 좋듯, 조직도 다양한 목소리가 어울릴 때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법원은 행정처의 지휘 아래 하나의 목소리로 수렴하고 있다. 법관들의 다양한 소신을 원하는 국민들에게는 불행한 일이다.


박용하 | 사회부 yong14h@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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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에서 ‘현역 의원 40명 살생부’ 논란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여론조사 고의 유출’ 파문이 터졌다. 친박근혜(친박)계의 비박근혜(비박)계 찍어내기 시도는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다. 최소한의 염치와 도의도 저버린 이전투구 속에 국정은 뒷전이다. 표면적으로는 국가비상사태나 안보·경제위기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공천 다툼에만 매몰돼 있다. 새누리당은 도대체 얼마나 더 추해질 참인가.

지난 3일 새누리당에선 60여개 선거구별 예비후보 지지도가 기재된 문건이 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 등을 통해 유포됐다. 당내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이 실시한 경선 대비 사전 여론조사 결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일부 지역 예비후보들의 지지도가 최근 언론사들의 조사 경향과 달리 나왔다고 한다. 문건의 진위와 유출 의도 등을 둘러싸고 음모론이 제기되는 이유다. 유출 행위 자체에도 위법 소지가 짙다. 공직선거법상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지 않은 여론조사 결과는 공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앙선관위는 여론조사 결과가 허위일 경우 허위사실 공표, 사실일 경우 미등록 여론조사 결과 공표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할 것이라고 한다. 집권당이 경선 시작 전부터 수사받을 처지가 된 셈이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이 승마협회 살생부라는 문건을 들어 보이며 청와대 개입 의혹에 대해 질의하고 있다._경향DB

사태는 ‘유승민 공천 학살’ 발언 파문까지 보태지며 점입가경이다. 친박 핵심 의원이 지난 1월 식사 자리에서 유 의원과 측근 의원 등의 실명을 거론하며 공천 낙마를 공언했다는 게 골자다. 이 자리에는 청와대 관계자도 동석했다고 한다.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한통속이 돼 공천 과정을 ‘조작’할 의도를 만천하에 드러낸 셈이다. 만약 이런 과정을 통해 누군가 낙마하고 누군가 국회에 입성한다면, 이는 정상적인 선거라고 할 수 없다. 주권자의 참정권을 모독하는 민의 왜곡이다. 일련의 사태는 20대 국회를 자신의 수족으로 채우려는 박근혜 대통령의 집념과 떼어 생각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새누리당 공천에 개입하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제2, 제3의 ‘학살’ ‘살생부’ 논란이 계속될 것이다.

새누리당은 야권의 통합이나 연대만 막아내면 총선 필승이라 여기는 것 같다. 그러니 모로 가도 공천만 따면 된다며 사생결단식 권력투쟁에 몰두하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착각이다. 주권자를 얕보아선 안된다. 제대로 된 정책 생산도 없이, 청와대 앞에 줄서기만 하는 공당에 국민이 소중한 표를 헌납할 리 없다. 이제는 지저분한 집안싸움을 그만둬야 한다. 국회 내 대표실의 “정신 차리자, 한순간 훅 간다”는 배경판을 장식품으로 걸어놓은 게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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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비평

숫자 3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안정이나 완전함을 상징하는 긍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주역의 정(鼎)괘는 세 발 솥을 의미하는데, 이 솥은 세 개의 다리가 안정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국가의 권위를 상징한다고 한다. 만세도 세 번, 내기를 해도 세 번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세 발 청동솥은 신성하게 여겨졌다. 디오니소스 대전 때 열린 시인 경연대회에서 우승자가 받은 솥이 이것이다. 성서에서도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를 말하고, 예수도 세 가지 유혹에 빠진다. 게르만 신화에서도 최초의 신들은 오딘, 빌리, 벨 삼형제다.

정치에서도 3은 긍정적 뉘앙스가 강하다. 기성정치의 문제를 극복하려는 새로운 시도를 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제3당이 대표적이다. “제3당의 등장은 기성 정치권에 부분적 개혁조치를 강요하는 이상의 엄청난 충격을 몰고 올 것이다.” 1992년 미국 대선 직전 미국인의 60%가 신당출현을 지지할 때 코넬대 정치학과 시어도어 로위 교수가 했던 말이다.

안철수 상임공동대표가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_경향DB

하지만 양당제의 폐해를 지적하며 나선 제3당 추진 노력이 실제 결실을 맺는 경우는 드물다. 1992년 미국 대선에서 제3당 바람을 일으켰던 로스 페로는 이제 미국 정치에서 분열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공화당 주류들이 도널드 트럼프를 경선에서 떨어뜨리는 게 두려운 이유도 그가 무소속 출마 때 ‘근육강화제를 복용한 페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충청을 기반으로 창당, 한때 52석도 얻었던 자유민주연합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내걸고 17대 총선에서 10석을 얻으며 바람을 일으켰던 민주노동당도 대안세력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실패했다.

안철수 공동대표의 국민의당도 제3정당을 표방한 지 한 달 만에 휘청거리고 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수도권에서 3%대의 지지율을 기록했다는 보도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이 4·13 총선을 위한 야권 통합 카드를 꺼내면서 자칫 야권 분열의 책임까지 뒤집어쓰게 생겼다. 제3당에 대한 지지는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는 절박감뿐 아니라 그것이 가능하겠다는 기대감에서 나온다. ‘안철수 현상’이란 기대의 바람이 점점 잦아들고 있다.


박영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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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방지법 제정 문제가 여야 간 극적 타결됐다. 15년 만의 일이다. 국내외적으로 테러위협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19대 국회 내 통과라는 조급함으로 내용의 충실성보다는 핵심 사항이 빠진 형태만 남은 법안이 되지 않았나 우려된다. 향후 운영 과정에서 정보의 주도권, 사생활 침해 문제 등 세부적 사항에서 추가적 논란이 우려된다.

그래서 과연 테러방지법의 존재가 테러를 방지하는 실재적인 효율과 가치를 얼마나 갖고 있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비록 ‘법’이 존재해도 모든 불법을 무조건 막아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강도죄에 대한 처벌조항이 있어도 강도가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테러방지법 역시 테러에 대한 일정 정도의 법적 보호수단이 되어주지만 모든 행위를 차단하는 안전막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과 존엄성을 보장하는 법에 대한 ‘용인성(容認性)’이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무차별 개인정보 수집실태를 폭로한 전 NS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테러방지법은 정보 수집을 위해 국가권력이 얼마나 타당하고 적절하게 행사되었는가보다는 오히려 안보와 인권 간의 관계에서 사회규범적인 논쟁이 필요한 사항이다.

다시 말해 테러방지법 제정 문제는 단순히 여야가 부딪치는 정치적인 측면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에 대한 평화와 안전이라는 범위에서 고려되고 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관련법 제정은 입법의 타당성보다는 지나치게 정치적인 해석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과 관련한 마지막 무제한 토론을 하고 있다._연합뉴스


다만 테러 방지를 빌미로 자칫 과거와 같은 공안정국의 매카시즘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공권력 불신에 대한 일각의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번 합의에 도달한 것은 우리 역시 테러로부터 결코 안전할 수 없고 분단국가라는 우리가 처한 특수한 상황 등을 고려한 결론으로 타당하다고 본다. 더욱이 국민의 사생활 침해와 공권력 남용에 대한 우려도 제도적 안전장치와 높아지는 국민의 정치성숙도가 어느 정도 차단할 것이라 믿고 싶다.

2016년 새해 벽두부터 시작된 이스탄불과 자카르타에서의 도심 폭탄테러 등 계속되는 무차별 총성과 살상은 불안한 조짐을 예고하고 있는 증상들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언제든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 특히 북한의 도발과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차별과 소외 등에 의한 자생적 테러 문제는 가장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뇌관이다.

최근 독일 ‘슈피겔’의 편집국장 클라우스는 “이라크, 시리아 등 실패국가에서는 경제가 붕괴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무기력과 분노에 빠진 힘없는 젊은이들이 서방 및 아랍의 힘센 자들을 타격함으로써 일종의 보상심리를 얻기 위해 테러에 나서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21세기 자본>으로 소득 불평등 문제를 세계적으로 공론화했던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중동발 테러의 원인은 “경제적 불평등 때문”이라 주장하며, 테러를 막기 위해서 “유럽은 통합과 일자리 창출을 되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우리 사회 역시 갈수록 극심한 청년실업 문제로 절망의 벼랑에 몰리고 있는 젊은이들의 상태가 불안에서 좌절로, 그리고 이제는 분노로 향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국제 테러단체나 북한의 테러를 걱정하기에 앞서 한국의 경제적 불평등과 차별이 어떤 파괴적 결과를 낳을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다.

말할 것도 없이 분명 테러는 범죄다. 범죄자들은 벌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젊은이들이 폭력과 범죄, 테러에 가담하고 어떤 사상을 위해 자기 몸을 희생하였는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중동과 유럽, 동남아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 과연 무엇을 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논의하고 검토해야 한다.

결코 평화는 전쟁을 불사해야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학습하고 키워야 하는 것이다. 평화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갈등을 조율하고 여야를 떠나 국력을 총결집해 불안이 해소되고 더 큰 평화가 실현될 수 있는 따뜻하고 열린 사회가 되길 소망한다. 이제 더 이상 평화와 안보가 정치인들의 ‘프로파간다’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이만종 | 호원대 교수·한국테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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