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파 병원에 온 사람을 의사가 진료한다고 해서 감동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의사는 환자를 보고 월급을 받으니,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학생이 숙제를 하거나 택시기사가 승객을 안전하게 모시는 일도 마찬가지다. 이런 일들은 그 자체로 감동을 주지 못하며, 오히려 이 당연한 일을 제대로 못했을 때 처벌이 따르기도 한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감동을 주고 있는 모양이다. 발단은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국민이 간절히 바라는 일을 제쳐두고 무슨 정치개혁을 한다고 할 수가 있겠나?” “일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잃어버린 시간, 인생을 누가 보상할 수 있겠나?” 얼핏 보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올인했던 스스로에 대한 반성 같지만, 놀랍게도 이건 국회한테 한 말이었다.

물론 국회가 일을 잘한다고 할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대통령과 비교하면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은 데다, 국회가 이렇게 된 건 대통령에게도 책임이 있다. 유승민 원내대표를 찍어낸 것에서 보듯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쫓아내 버리는데, 국회가 소신껏 일할 수나 있을까? 대통령이 통과시키라고 강조한 소위 노동개혁 법안이 비정규직 허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파견근로자가 허용되는 업종을 확대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 젊은이들이 별반 좋아할 것 같지 않지만, 대통령이 간만에 민생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건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국회선진화법이었다. 3년 전 국회를 통과한 국회선진화법은 법안 통과에 의석 과반이 아니라 60% 이상의 동의를 얻도록 기준을 강화한 법안이다.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과반수를 얻지 못할 경우 야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만들었는데, 그 법안을 통과시키기로 결정한 건 당시 비대위원장이던 박 대통령이었다. 현재 새누리당 의석수는 157석으로 53.4%에 불과하니, 대통령이 국회, 특히 야당을 욕하고 있는 것이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처리하는 ‘직권상정’이란 게 있었던 것. 대통령의 명이 떨어지자 삼권분립 같은 건 예전에 갖다버린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은 국회의장실로 달려가 정의화 의장을 협박한다. 여야 합의가 안되고 있는 노동개혁 법안과 경제살리기 법안을 직권상정해달라고 말이다. 새누리당 입장에선 의장이 자기 당 출신인 만큼 설마 거절하랴 싶었을 테지만, 정 의장은 뜻밖의 말을 한다. “직권상정은 국가비상사태에나 가능하다고 국회법에 돼 있는데, 지금 경제상황을 그렇게 볼 수 있겠느냐?” 그는 자신에 대한 비난에 불쾌한 감정도 드러냈다. “국회선진화법에 찬성해 놓고 (그 법에 반대했던)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 이럴 시간 있으면 차라리 야당을 설득하라.”


‘국회를 대표하고 의사를 정리하며 질서를 유지하고 사무를 감독하는 기관.’ 국회의장의 사전적 정의다. 그렇다면 청와대의 외압에 굴하지 않고 국회의 명예를 지키는 것은 국회의장이 해야 할 당연한 의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의장의 행동이 감동을 주는 것은 그간 우리 사회 요직에 있던 분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왔기 때문이다. 환경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환경부는 4대강을 반대하기는커녕 대대적인 홍보 활동에 나섰고, 간첩을 잡아야 할 국정원은 대선 때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댓글을 달았다. 군통수권을 가진 대통령은 당연히 해야 할 전시작전권 환수를 무기한 연기했다. 검찰은 대통령에게 누가 되는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일본 기자를 무리하게 기소했다 망신을 당했다. 해경은 배가 침몰하자 아이들 대신 선장과 선원들만 구했다. 이번에도 그렇다. ‘IMF 사태’를 거론하며 경제위기가 다시 올 수 있다는 새누리당의 주장에 경제부처 장관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경제가 말 몇 마디로 요동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이건 명백한 직무유기다. 이런 와중에 국회의장이 대통령에 맞서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으니 사람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다.

물론 정 의장의 앞날이 그리 평탄할 것 같지는 않다. 애국단체들은 벌써부터 정 의장 규탄 집회를 열고 있고, 새누리당 의원들도 ‘국회의장 해임건의안’을 제기하는 중이다. 더 두려운 분은 바로 박 대통령으로, 역대 대통령 중 ‘마음에 안 드는 사람 찍어내기’와 ‘뒤끝 작렬’ 부문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1위 자리에 올라 있어서다. 국정원 댓글사건을 열심히 수사한다는 이유로 검찰총장을 찍어낼 때는 ‘혼외자식 의혹’이란 방법을 썼고, 여당 원내대표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던 유승민을 찍어낼 때는 그를 배신자로 몰면서 다음 선거에서 떨어뜨려 달라고 윽박질렀는데, 이번에는 어떤 방법을 쓸지 살짝 궁금하기도 하다. 정의화, 그가 어떻게 되든 그의 이름은 기억해 놓자. 어쩌면 그가 이 정부에서 ‘해야 마땅한 일을 한 마지막 인물’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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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총선에 출마하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등 5개 부처 장관을 교체하는 개각을 단행했다. 신임 경제부총리에는 새누리당 유일호 의원, 사회부총리에는 이준식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를 내정했다. 역시 총선에 출마하는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도 교체했다. 이번 개각은 총선을 앞두고 진작부터 예고된 바 있었다. 게다가 한 달 전 ‘찔끔 개각’ 논란과 함께 정종섭 행자부 장관이 사퇴 선언까지 하고도 계속 장관직을 수행하는 촌극까지 벌였다. 그래놓고 또다시 내용과 형식 모두에 문제가 있는 인선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유일호 경제부총리 내정이다. 불과 한 달여 전 총선에 출마한다며 장관에서 물러난 사람이 경제사령탑으로 되돌아온 것은 상식 밖이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유 내정자는 경제 정책과 실물 경제에 대한 풍부한 식견과 정무적 역량을 바탕으로 4대 개혁을 통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경기 활성화를 추진해나갈 적임자”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조세재정연구원장을 지낸 재정조세 전문가이다. 경제 운용의 중심에 서보거나 실물 경제에 밝아서 경기 활성화를 추진할 적임자라고 보기 어렵다. 경제 관료들을 통솔하며 경제 운용을 앞장서 이끌어나가는 경제사령탑에 반쪽짜리 경제전문가를 앉힌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유일호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_경향DB


더구나 박 대통령은 한 달 전 장관직을 떠난 사람을 다시 불러들였다. 한 달이면 뒤집어질 인사를 하는 박 대통령에게 어떻게 국정안정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렇게 무계획적, 임기응변식으로 운영해도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 경제정책은 청와대 직할이라는 생각으로 부총리의 역할을 경시한 것은 아닌지도 걱정된다. 청와대가 추진 중인 경제·노동 법안을 놓고 야당을 설득하는 일도 그의 몫인데 나간 사람을 다시 자리 바꿔 재활용하는 ‘관리형’ 부총리로 돌파가 가능할지 의구심이 든다. 교육 정책 전반과 역사교과서 문제를 다룰 사회부총리에 기계공학자를 인선한 것이나, 기업인 출신으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앞장선 강은희 의원을 여가부 장관에 기용한 것도 전문성을 살린 인선인지 의심스럽다.

인사는 만사라고 한다. 경제가 위기에 처해 있다면서 이런 상식 밖의 인사로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회는 여야를 떠나 인사청문 과정에서 이들의 전문성과 정책수행 능력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박 대통령의 한계를 또 목격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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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희 전 합참의장이 결국 전역 2개월 만에 방산비리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됐다.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은 최 전 의장에게 뇌물수수 및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 등을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다. 국내 무기 개발을 주도하는 국방과학연구소 정홍용 소장도 재판에 넘겨졌다. 1996년 검찰이 이양호 전 국방장관을 구속한 이래 군 수뇌부가 방산비리 피의자로 기소된 것은 최 전 의장이 처음이다. 군 수뇌부와 방산기술 최고책임자까지 방산비리에 손을 뻗치고 있었다는 것은 실로 충격적이다.

재판 결과를 봐야 하겠지만 최 전 의장과 정 소장이 연루된 것만으로도 사안이 심각하다. 최 전 의장은 그가 해군참모총장 시절인 2012년 해상작전헬기 와일드캣 도입 과정에서 해군의 작전요구성능을 충족한 것처럼 허위 시험평가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무기를 중개한 함모씨는 자신의 소유인 고급 음식점에서 최 전 의장과 부인에게 매달 공짜 식사를 제공하고, 부인이 다니는 사찰에 2000만원을 시주했다. 부인도 남편의 뜻이라며 기종 선정에 압력을 넣었다고 한다. 최 전 의장은 아들이 함씨로부터 받은 사업비 2000만원이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하지만 설득력이 없다. 군의 최상급자가 무기 중개상과 지속적으로 그것도 자신뿐 아니라 가족들까지 친분을 맺은 것 자체가 부적절한 행태이다.


최윤희 전 합참의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_연합뉴스


놀라운 것은 함씨의 금품로비가 방산 관련 연구기관에까지 뻗쳐 있었다는 점이다. 정홍용 국방과학연구소장은 함씨로부터 아들의 유학비 등으로 7200만원을, 국방연구원 심모 책임연구위원은 동생의 사업자금으로 1억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국방과학연구소는 무기 개발과 함께 도입하는 무기의 기술적 적절성을 평가하는 기관이다. 한국형 전투기 사업(KF-X) 핵심 기술의 국내 개발도 이곳이 맡는다. 이런 방산기술 개발의 본산까지 비리에 물들어 있다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정부합동수사단은 지난 1년간 군인과 민간인 74명을 재판에 넘겼다. 구속 기소자가 51명이었다. 하지만 이번 수사는 비리의 근원을 밝히지 못한 채 미완으로 끝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기 중개의 큰손들이 이번 비리 수사의 칼날을 비껴갔다. 통영함 납품 비리로 구속기소된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것도 수사의 오점이었다. 방산

비리가 군 수뇌부는 물론 연구기관까지 구석구석 침투해 있음이 드러난 만큼 방산 비리 척결은 더욱 절실해졌다. 엄정한 수사로 방산 비리를 도려내고 방산의 효율적 관리와 비리 차단을 위한 제도 개선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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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똑똑하다. 워낙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의사가 되어서이기도 하지만, 의학이라는 학문의 속성 때문이기도 하다. 현대의학은 해체와 분석의 학문이다. 질병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 심장, 콩팥 등 신체 장기부터 세포와 분자, 그리고 유전자 수준까지 샅샅이 파헤친다. 대체로 의사는 어떤 문제를 파헤치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을 발휘하곤 한다.

그리고 현대의학은 시스템적 사고를 기본 방법론으로 삼고 있는 학문이다. 이런 특성은 의학교육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의사를 길러내는 전통적인 의학교육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먼저, 신체의 정상 구조를 배운다. 해부학과 조직학이 여기에 해당한다. 다음은 생리학과 생화학 등을 통해 신체 장기와 세포 수준의 정상 기능과 상호 간의 관계를 배운다. 그 다음은 신체 구조와 기능의 병적 상태와 원인을 다루는 병리학, 미생물학, 면역학, 기생충학 등을 배운다. 이렇게 기초의학 공부를 마치면, 진료과목별 임상의학을 공부한다. 소화기내과, 심장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정신과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진료과목마다 무수히 많은 질병을 다루지만, 공부의 순서는 한결같다. 해당 장기의 애초 정상 구조와 기능은 무엇인가? 이것에 어떤 문제(질병의 원인)가 발생했는가? 그 문제를 어떻게 파악(진단)할 것인가? 파악한 문제에 어떻게 대처(치료)할 것인가? 예상되는 대처의 결과(치료 예후)는 무엇인가? 이런 과정을 끝없이 반복하면서, 의사는 고도로 체계화된 사고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런 능력을 잘 활용하고, 진료 이외의 문제로 관심을 확장한다면, 의사는 어떤 분야에서건 톡톡히 제 역할을 할 수가 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적지 않은 의사는 ‘내가 바빠서 그렇지, 시간을 내어서 공부만 하면 어떤 일이든 못할 것이 없다’는 특유의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런 자신감이 도를 넘으면, 헛똑똑이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의사는 이분법적 성향이 강하다. 현대의학은 정상(건강)과 비정상(질병)을 구분하는 데서 비롯된다. 원래 건강과 질병은 단절된 단계가 아니라, 연속적인 과정의 일부이다. 그런데 건강과 질병을 연속적인 과정으로 두루뭉술하게 해석해서는 현대의학의 역할이 없다.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그 이전에는 ‘건강’으로, 그 이후에는 ‘질병’으로 단절시켜야 의학적 개입이 가능해진다. 올해 암으로 진단받았더라도 그 환자는 이미 작년, 재작년부터 암세포를 자신의 몸에 가지고 있었다. 단지 현대의학의 기술로 측정 불가능한 크기였기 때문에 작년까지는 건강한 사람으로 구분되었던 것이다. 통상 암세포 수가 10억개, 암 덩어리의 크기가 1㎝는 되어야 방사선 검사를 통해 측정이 가능하다. 현대의학의 기술이 지금보다 더 발전하면 암 진단 시기를 앞당길 수는 있겠지만, 특정 시점 기준의 건강과 질병 구분은 여전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현대의학은 양자택일의 학문이다. 의사는 매번 치료를 할지 말지, 수술을 할지 말지, 약물치료를 할지 말지를 놓고 양단 간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정보의 불완전성과 불확실성 때문에 머뭇거리거나 타협하면, 환자에게 더 큰 위험이 초래된다. 칼로 자르듯 이분법적으로 가부를 가리는 것은 의사에게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지만, 이것 때문에 자칫하면 독단과 독선의 오류에 빠질 수도 있다.

장황하게 의사의 속성을 늘어놓은 이유는 얼마 전에 야당을 탈당한 안철수 의원 때문이다. 의과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서생이 정치판의 속 깊은 뜻과 사정을 알 도리는 없다. 그러나 “안철수는 왜?”라는 궁금증이 지난 한 주 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우호적인 관찰자 입장에서 보기에도, 혁신 전대는 탈당과 맞바꿀 만큼 절체절명의 명분이 아니었다.

의사 출신의 유력 정치인에게 거는 기대가 남달랐기에 그의 선택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그는 문제를 파헤치는 데는 의사답게 발군의 능력을 발휘했다. 더 큰 혁신 주장도 그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공 신화의 자신감이 너무 컸던 탓일까? 그의 선택은 시스템적 사고의 궤적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오히려 시스템을 초월한 메시아의 선언만이 횡행한다.

의학에서 이분법적 사고는 불가피하지만, 정치나 사회 문제를 대하는 방식으로는 금기와도 같다. 정치나 사회 문제에서는 전적으로 옳은 것도, 전적으로 그른 것도 없다. 타협과 절충이 필연적이다. 양자택일의 대상이 아닌데도 마치 진실과 거짓의 대결처럼 다걸기를 하고, 종국에는 리셋 버튼을 눌러 상황을 초기화하는 것은 독단과 독선의 또 다른 이름일 수 있다. 혁신 전대와 탈당이라는 안철수의 선택은 이와 다른 것일까?


이진석 | 서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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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현지시간) 프랑스 지방선거가 끝났습니다. 르 피가로 신문은 헤드라인을 이렇게 뽑았군요. “우파는 승리했고 좌파는 견고했다. 그리고 민족전선(FN)은 추락했다.” 이번 선거는 반(反)이민과 반이슬람을 선동하는 극우정당 민족전선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었습니다. 1차 투표에서 27.7% 득표의 대약진을 기록하며 1위로 부상했던 민족전선이 최종적으로 13개 지역 모두에서 패배했기 때문이지요. 집권 사회당이 후보 사퇴 등의 초강수로 (사르코지가 이끄는) 우파 정당 공화당과 선거 공조를 실시한 끝에 민족전선의 지방권력 탈취를 저지시킨 겁니다. ‘악마’를 막기 위해 ‘원수’와 손을 잡은 셈이지요.

안철수 의원이 끝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했습니다. 하지만 그 지리멸렬한 과정을 통틀어 저는 그에 대한 비판을 삼가왔습니다. 그의 행동이 비판받을 여지가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각자 짊어져야 할 책임의 상대적 차이는 있으되, 이번 사태를 특정 세력들이 특정 정당 안에서 펼치는 상호 권력투쟁의 결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한 발짝 물러서서 보자면, 어느 일방이 완전한 선이 아니듯 다른 일방도 완전한 악이 아니었던 겁니다.

저의 마음을 움켜잡았던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이념적 스펙트럼이 명백히 다른 두 세력이 한울타리 안에서 저렇듯 끊임없는 소모적 투쟁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그 같은 갈등이 결과적으로 현 정권의 폭압과 그에 따르는 극우세력 재집권에 대한 저지·투쟁 역량을 모두 소진시키는 것은 아닌가, 라는 걱정이 컸던 거지요.

뒤엉킨 악감정의 응어리를 풀고 서로를 별도 정당 형태로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 극단적 경고 신호를 연발하고 있는 (이른바) 헬조선의 사회경제적 위기 해결을 위해 치열한 정책 대결을 펼치는 것. 그 같은 당당한 경쟁을 통해 중도·개혁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고 지지표를 최대한 확장시키는 전략이 오히려 파괴력이 크지 않겠는가, 라는 판단이 마음을 떠나지 않았던 겁니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서울 관악을 박왕규 국회의원 예비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_연합뉴스


화두는 결국 내년과 내후년의 총선 및 대선일 텐데, 이를 대비해서는 현재까지 우리 정당사에서 한 번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한 ‘선거연합’의 한 수가 남아있다고 봅니다. (정의당을 포함하여) 개혁진보 세력을 하나의 진지(陣地)로 결집시키는 대의명분에 무엇이 있을까요. 멀리는 박정희와 전두환에서부터 가까이는 이명박과 박근혜로 이어진 극우세력의 재집권을 막는 목표, 그보다 더 강력한 동인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쉽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권력과 정책의 협력 분점을 기초로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그 같은 전략적 결합이 불가능할 이유 또한 없습니다.

프랑스 지방선거 이야기를 한 것이 그 때문입니다. 자크 시라크와 사르코지를 당선시킨 프랑스 ‘대중운동연합(현 공화당)’, 2회 연속 대선 승리를 거둔 브라질의 ‘국민의 힘’ 그리고 최근의 그리스 ‘시리자(급진좌파연합)’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나라에서 성공한 ‘선거연합’이 왜 한국에서만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혹시 분열에 이골이 난 개혁진영의 소심증과 불안증 때문이 아닐까요.

안철수 의원은 제1야당을 떠났고 분당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서로를 원수 취급하기만 해서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됩니다. 어떤 이별이든지 이별은 고통스럽습니다만 정치적 이별은 조금 다르지 않겠습니까. 언젠가는 하나의 우산을 같이 쓸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별이기 때문입니다.

야당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문재인도 안철수도 박근혜보다는 천 배나 좋은 정치인입니다. 그러므로 (너무 빠르다 하실지 몰라도) 이제 양측의 골수 지지자일수록 상대에 대한 증오와 비난을 접으면 어떨까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의 노력으로 지지 세력을 확장하고, 다음의 더 큰 자리에서 손을 잡기 위해 거꾸로 서로에게 축복을 해주면 어떨까요.


김동규 | 동명대 언론광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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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광주에서 저는 지독한 일을 겪었습니다. 철이 들면서부터 아저씨라고 부르던 대한민국 ‘군인아저씨’들이 나를 우리를 몽둥이로 때리고 칼로 찌르고 총으로 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라지거나 죽고, 다치고, 감옥에 갔습니다.

군인아저씨들 중 제일 힘이 센 사람은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나라사람들이 무서워서 숨도 못 쉬게 만들어 놓고 대통령이 된 사람은 강탈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같은 짓을 반복했습니다.

신문과 텔레비전은 그를 구국의 은인, 불세출의 지도자라고 말했습니다. 스스로도 위대한 지도자라며 은인행세를 했습니다. 기막힌 일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1961년 5월16일에도 그랬습니다. 그때도 군인아저씨들을 동원해 나라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죽인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영웅, 지도자 노릇을 했으며 사람들은 그를 반신반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사람 또한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법의 이름으로 많은 사람을 공포로 몰아넣었습니다. 나라를 지배하는 권력을 갖기 위해 지독한 폭력을 쓴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폭력배들이었습니다.

이 폭력배들은 폭력의 정당성을 위해 법을 동원했으며, 언론을 나팔수로 써먹었습니다.

경찰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 근처 건물에 올라가 ‘3차 민중총궐기대회’ 참가자들을 500㎜ 초망원렌즈로 채증하고 있다._연합뉴스


국정원 등 국가권력을 동원해 불법 선거로 당선된 오늘날 대통령은 많은 사람들이 탄 배가 바다에 가라앉고 있을 때 한 명도 구조하지 않았습니다.

억울하고, 억울하고, 억울한 마음으로 울부짖으며 진상을 묻는 가족과 국민들을 폭도로 몰았습니다. 자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선거에 의문을 제기한 국회의원을 종북으로 몰아세우며 제명한다고 난리입니다.

불법이 아니라면 누구나 알아듣게 의문을 풀어주면 될 일이지만, 이 대통령은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을 모두 없애버리고 싶은가 봅니다. 질서를 어지럽힌다며 살아보겠다고 거리로 나와 장사하는 사람들을 때리고 쫓아냅니다. 그러다가 다쳐서 장애인이 되면 이 살기도 힘든 사람들을 잡초 취급을 해버립니다. 뽑아버리고 싶은가 봅니다.

이에 지난 11월14일 경찰이 쏜 물대포에 쓰러져 아직도 사경을 헤매는 백남기 농민은 이 땅의 어머니인 농사꾼으로,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은 이 땅의 아버지인 노동자로 소박하게 살고 싶다고 외친 것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우리의 소박한 외침을 폭력이라고 규정하고 우리를 폭도, 테러리스트라 합니다.

우리는 신나게 일하고, 재미있게 놀며, 사이좋게 살다가 죽고 싶습니다. 우리 없이 누가 살 수 있습니까?


이영선 | 신부 가톨릭농민회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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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부 출입기자들이 매주 정례 행사처럼 하는 일이 있다.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준거가 언제 발표되는지 물어보는 일이다.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는 지난달 3일 국정화를 확정고시하면서 편찬준거 발표일을 ‘11월30일’로 예고했다. 그러고는 발표 예정일을 “12월7일쯤”으로 했다가 “확정된 건 아니지만 14~16일쯤”으로 다시 늦췄다. 교육부 관계자는 18일에도 “다음주에 나올지 안 나올지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올해 안에는 나오느냐’는 질문에 “나와야겠지”라고 말했다.

교육부의 공식 해명은 “편찬심의위원회 심의가 끝나지 않아 발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정교과서 집필기준보다 분량이 늘어나는 점을 고려해도, 일반적인 편찬심의라면 진작에 편찬준거가 나왔어야 한다는 게 역사학계의 중론이다.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은 “정치적 고려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국정화를 결정하면서 의도했던 내용들을 청와대 입맛에 맞추면서도 최대한 논란을 적게 일으키는 방식으로 집어넣느라 지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와 여당이 지난 10일 통상 최종적인 입장 조율 절차로 해석되는 당정협의도 마친 뒤라서 의혹은 더 커지고 있다. 당정은 그날 ‘5·16은 군사정변’이라는 표현을 유지하겠다고 강조했다. ‘독재 미화’ 시비에 하나의 방어막을 친 것이다. 그러면서 1948년 8월15일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아닌 ‘대한민국 수립’의 건국절 개념을 원용했다.

김정배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이 역사교과서 집필진과 기준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_경향DB


어느새 편찬준거 발표와 동시에 시작하겠다던 집필 기간은 한 달 가까이 줄어들게 됐다. 교육부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지 않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역사를 가르친 지 9개월밖에 되지 않은 상업교사가 ‘응모자 중 괜찮았던 집필자’로 분류한 ‘복면’ 집필진에게도 충분한 시간일지는 의문이다. 졸속 집필의 경고가 적색으로 바뀌고 있다.


정원식 | 정책사회부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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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연일 정의화 국회의장을 향해 노동 및 경제 관련 쟁점법안을 직권상정해 처리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청와대는 어제도 정연국 대변인을 내세워 “비정상적인 국회 상태를 정상화시킬 책무가 (국회의장에게) 있다”고 정 의장을 비판했다. 정 의장은 “청와대가 대변인을 통해 압박을 가하는 등 삼권이 분립돼 있는 민주체계에 의심을 가할 여지가 있는 얘기는 피하는 게 좋다”고 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기자간담회에서 청와대의 쟁점법안 직권상정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_경향DB


국회의장은 행정부의 독주를 견제하면서 국정의 균형을 맞추도록 한 삼권분립의 한 축이다. 그런데 요즘 청와대는 입법부 위에서 지침을 내리는 상부 기관 노릇을 하고 있다. 국회의장이 무소속이기에 망정이지 전처럼 여당 소속이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지금 박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가 압박할 대상은 국회의장이 아니다. 법안 통과가 그토록 절박하다면 박 대통령이 직접 야당 의원들을 만나 대화하면서 설득하는 게 정도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최고의 정치지도자로 인정받는 것은 야당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결국 반대세력을 설득해 자신의 뜻을 관철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으로 야당의원을 초청해 식사를 하거나 골프를 함께하며 설득했다. 메르켈 총리는 20시간 가까이 야당 의원들을 만나 설득한 적도 있다.


나라 걱정은 박 대통령만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박 대통령은 먼저 여당이 야당과 적극 협상할 수 있는 권한과 기회를 줘야 한다. 그리고 야당 인사들과 만나야 한다. 야당에 원하는 게 있다면 왜 직접 말하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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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야당이 분열했다. 아니 어쩌면 내용을 알 수 없는 소위 혁신안을 놓고 날선 목소리들만 오가며 정당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그 순간부터 이미 분열은 시작됐는지도 모르겠다. 한쪽에서는 탈당을 결행한 안철수 의원에 대해 조롱에 가까운 비난을 쏟아내기도 한다. 이런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정권교체를 희망하는 시민들이 제1야당의 분열이 또다시 총선에서 여당에 승리를 안겨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조금 다른 시각으로 현재 제1야당의 분열과 무기력함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야당의 분열과 무기력은 사실 여당의 몰락이기도 하다. 다수당으로서 여당의 지위도 야당이 자기 기능을 상실함에 따라 함께 사라졌다. 야당의 견제가 존재하지 않는 의회가 되자, 청와대 일개 수석이 국회의장에게 입법을 지시하고, 여당은 흡사 행정부 산하 법제처와 같은 수준으로 전락해 버렸다. 야당의 붕괴와 여당의 몰락. 다시 말해 그것은 국회가 그 기능을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민주주의에서 의회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엄중하다. 그것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투입할 기관과 제도를 잃어버렸다는 것이고, 자신들의 절박한 갈등을 조율, 조정해 줄 공간을 상실했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의회가 없는 정치체제를 우리는 무엇이라 부르는가? 왕조국가? 이 상황을 우리는 정치 자체의 위기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국회의 기능상실로 인한 정치의 위기는 자연스레 행정부의 독주를 초래한다. 연일 국회에 막말에 가까운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더 이상 국회나 정당을 통해 시민들의 다양한 이견과 요구를 수용할 필요가 없어지자, 행정부와 박 대통령은 자신의 핵심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있는 선정적이고 적대적인 갈등만을 반복적으로 동원한다. 임기 말 총선을 앞두고도 유지되는 대통령에 대한 강력한 지지율과 기이할 정도로 난폭한 행정부의 마구잡이식 통치는 여기에 기인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53회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과 함께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_청와대사진기자단


그러나 이런 상황은 여당에도 그리고 야당에도 견제 받지 않는 난폭한 행정독재라는 괴물이 탄생했음을 의미한다. 그 난폭한 세월 속에서 시민들 또한 날이 갈수록 사나워지고 있다. 수백명의 어린 죽음 앞에서도 조롱을 쏟아내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저들을 보라. 다시 돌아가 이 괴물의 탄생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가? 결국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야당의 부재에서라고 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이 지옥도와 같은 상황의 원인이 모두 제1야당의 무능에 있다고 책임을 전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상황을 냉정하게 짚어보는 이유는 이 상황을 타개할 해결책이 어디에 있는가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다. 결국 그것은 정당에 있다. 더 정확하게는 제대로 된 야당을 만드는 것에 있다. 대안으로서의 야당이 존재해야 여당도 존재하는 것이고 행정부를 견제할 의회정치의 복원이 가능하다. 야당의 부재로 인한 정치적 리더십의 공백을 기회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당’ 그 자체의 복원이다. 유력 대선 후보가 위로부터 조직하고 선거 패배 후에는 사라지는 임의의 조직이 아니라 사회 내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시민들의 요구를 집약하고 표출해 세상을 조금씩 바꿔내는 그런 정당 말이다.

1968년 미국 민주당은 유력한 대선 후보였던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당한 후, 반전운동의 상징이었던 유진 매카시 대신 전쟁을 지지하는 휴버트 험프리를 대선 후보로 지명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 민주당에 항의하기 위해 그 전당대회에 수많은 진보적 시민들과 전쟁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쳐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전당대회장에 들어가 보지도 못했으며, 그들이 지지했던 정당이 부른 경찰에 의해 철저히 진압되고 외면 받았다. 그렇게 정치에 절망하고 슬픔과 허무의 늪에 빠진 청년들에게 당대를 대표하던 사회운동가이자 전략가였던 사울 D 알린스키는 냉정하게 일갈했다. “울어라! 그러나 그것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미쳐라! 그러나 그럴수록 사람들은 우리를 떠날 것이다. 그러니 고향으로 돌아가라! 돌아가서 사람들을 조직하고 대의원이 되어서 다음 전당대회 때는 전당대회 안의 바로 그 자리에 서라!”

지난달 반복되던 진보정치의 분열을 딛고 각 세력의 통합을 이루어낸 정의당에는 한 달여 동안 5000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입당했다고 한다. 새정치민주연합도 온라인 입당절차를 개선하자 며칠 새 2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입당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렇다. 시민들은 이미 알고 있다. 정당은 평범한 시민들의 가장 강력하고 사실상 유일한 정치적 무기이다. 바로 지금이다. 우리 모두 정당으로 쳐들어가자.


조성주 |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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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안철수 전 공동대표의 탈당 이후 처음으로 공식 입장을 밝혔다. 문 대표는 어제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근혜 정권과 맞서 싸워야 할 엄중한 상황에서 제 할 일을 못하고 분열된 모습을 보여드려 제1야당 대표로서 부끄럽고 송구스럽다”며 “머리 숙여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향후 당 쇄신 방안과 관련해서는 “저 자신부터 일체의 기득권을 버리고 혁신을 이뤄내겠다. 비례대표를 포함한 모든 공천에서 아래로부터의 상향식 공천혁명을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관건은 실천이다. 기득권을 포기하겠다는 문 대표의 다짐이 구두선에 그쳐선 안된다. 시금석은 총선 후보 공천이 될 수밖에 없다. 당장 ‘현역 의원 20% 물갈이’를 결정할 선출직 공직자 평가위원회 종합심사가 임박했다. 심사 과정에서 문 대표의 측근에 대해선 ‘역차별’이란 말이 나올 만큼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옳다. 그럴 때만, 실체와 상관없이 운위돼온 ‘친노 패권주의’ 비판론이 힘을 잃게 될 것이다. 물론 인적 쇄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새정치연합을 실력 있는 진짜 야당으로 변모시키는 작업도 절실하다. 노동 5법과 테러방지법 등 반노동·반인권적 법안들을 치밀한 전략과 야당다운 결기로 막아내야 한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부축할 수 있는 구체적 정책대안도 만들어내야 한다. 정당은 ‘사람’과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1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문 대표는 "제1야당 분열 모습 보여 부끄럽고 송구하다"며 사과한 뒤 "기득권 버리고 반드시 혁신을 이루겠다. 당을 빠른 시일 내 총선승리체제로 전환시키겠다"고 말했다._강윤중 기자


새정치연합의 내분을 지켜보던 야당 지지자들은 실망과 분노를 넘어 이제 냉소와 체념의 단계에 이른 듯하다. 이들에게 다시 희망을 불어넣는 일은 지난한 과제다.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남는 수준의 봉합으로는 지지층을 내년 4월 총선 투표소로 불러내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최악의 환경이지만, 이를 극복해야 할 책임은 문 대표에게 있다. 치열한 자성과 과감한 결단으로 신뢰를 회복하고, 정권의 오만과 독주를 저지해야 한다.

잊어선 안될 것은, 야권 분열에 따른 감정적 충돌을 자제하는 일이다. 탈당한 안 전 대표를 향한 공세도, 당내 비주류를 향한 비난도 정치혐오만 가중시킬 뿐이다. “혁신을 무력화하고 당내 투쟁을 야기해 결과적으로 정권교체를 방해하는 세력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는 문 대표의 경고 역시 또 다른 분란을 낳는 요인이 되어선 안된다. 싸움은 이미 지긋지긋하게 봤다. 혁신하되 단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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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어제 내놓은 ‘2016년 경제정책 방향’은 단기 경기부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분기에 조기 집행할 재정을 당초보다 8조원 늘리기로 했다. 투자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풀고, 농사용으로 묶인 농업진흥지역도 대거 해제해 민간투자를 유도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연기금이 사회간접자본(SOC)이나 부동산에 투자하는 대체투자는 10조원가량 늘리기로 했다. 규제완화와 재정지원, 토건사업으로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 방안은 늘 되풀이되는 정부의 선거전략 중 하나이다. 그래서 경제정책 방향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선심용으로 보인다.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하는 상황에서는 성장 잠재력을 높이고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등의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지만 경제정책 방향은 재정과 통화를 확장적으로 운용하는 단기부양에 치우쳐 있다. 그렇게 하면 일시적으로 경기가 반짝 상승했다가 후퇴해 결과적으로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릴 수 있다. 소비침체의 주요한 원인인 가계소득 정체에 대한 해법이나 가계부채, 고령화, 청년 일자리 등의 문제도 외면했다. 지금과 같은 비상상황에서는 단기부양보다 위험관리에 경제정책의 방향을 맞춰야 한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16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 각 부처 장관들과 인사하고 있다._경향DB


국내외 대부분 연구기관이 내년 경제성장률을 2%대로 전망하는 것과 달리 정부가 3.1%를 달성하겠다고 한 것 역시 무책임하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중국 경기둔화 및 위안화 약세, 저유가 지속 등 대외환경은 올해보다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내수 증가율이 올해보다 높아지고, 기저효과를 바탕으로 수출도 회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위기를 과장하는 것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무책임한 낙관론이다. 기존 실질성장률과 함께 관리지표로 활용하기로 한 경상성장률은 착시를 일으킬 우려가 크다. 정부의 내년 경상성장률 전망치는 4.5%로 실질성장률보다 1.4%포인트 높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7월 취임 초 “가지 않았던 길을 가겠다. 한국 경제는 수술할 수 없을 만큼 체력이 떨어져 있다”고 했다. 하지만 새로운 정책이나 회복은 없었다. 재정확장과 부동산 띄우기 정책으로 국가와 국민의 부채만 불어나 오히려 경제 체력은 더 약해졌다. 한국 경제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경제 수장이 내년 총선에 출마하겠다며 경제정책 방향을 유권자에게 돌릴 선물 보따리로 여긴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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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터미널>에서 톰 행크스는 크로코지아의 내란과 함께 국적 조항에 걸려 뉴욕의 JFK 공항에 머물게 된다. 출발한 곳과 도착할 곳, 그사이 어느 곳에서 길을 잃고 억류되어 있는 2015년의 한국 청년들과 비슷하다.

터미널, 한국 ‘청년 알바’에 대한 은유로 이보다 기막힌 것이 또 없을 정도이다. 그렇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유부남과의 연애에 염증을 느낀 승무원 캐서린 제타 존스와의 애틋한 로맨스가 나온다. 나폴레옹이 조제핀에게 했던 선물, 그걸 톰 행크스는 터미널에서 구입한다. 사소한 디테일 하나, 공항 리모델링에서 미장이로 일하게 된 톰 행크스는 면세점에서 휴고 보스 슈트를 사서 입는다. 빌려 입는 게 아니라 사서 입는 것! 시간당 임금으로는 JFK 공항 간부들보다 높다는 언급도 영화에서 나온다.

톰 행크스가 사서 입은 휴고 보스에는 ‘적정 임금’이라는 미국의 특수한 제도가 관련돼 있다. 1929년 대공황 때 뉴딜의 일환으로 아이젠하워가 도입한 제도이다. 건설노동자 등 저임금 노동자들의 관급 공사 때에 괜찮은 임금을 줘서 사회적 수요를 만들고, 경제적 약자를 돕자는 취지이다.


영화 '터미널' 스틸.


바로 이 적정 임금 때문에 크로코지아 난민인 톰 행크스가 JFK 공항에서 휴고 보스를 사 입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만약 한국에서 이런 난민이 인천공항에 억류됐다고 했을 때, 알바 임금으로 몇 주 일하고 휴고 보스? 좀 어렵다. 루스벨트 이후 미국의 건설업계에서 이것 좀 없애달라고 계속 건의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제도이다. 게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더 강화되는 추세다.

한국에서 건설 일용직들에게 이 적정 임금을 당장 시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건설업계의 여러 가지 구조적 이유가 있지만, 일단 눈에 띄는 것은 건설현장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정부가 자국민들을 위해서는 일종의 ‘사회적 임금’ 혹은 ‘연대 임금’ 등을 이유로 최저임금 이상의 괜찮은 연봉을 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대부분이 외국인 노동자에게 간다면?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렵다.

‘이민 도입 규모, 우선 순위 등이 포함된 제3차 외국인정책기본계획(2018~2022)·수립(2017) 등을 통해 총체적 외국인 유입 관리 체계 구축. 이는 얼마 전 ‘브릿지 플랜 2020’이라는 기기묘묘한 이름을 달고 있는 정부 종합대책에 나오는 문장이다. 2017년 이후, 하여간 본격적으로 이민을 추진하겠다는 얘기이다. 참고로 일본은 저출산 고령화대책으로 이민 정책을 쓰지 않겠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소한 이 문장 하나는 왜 이 대책이 ‘브릿지’ 즉 다리라는 이중적 함의를 가지고 있는지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청와대가 보는 저출산 대책은? 하는 척만 하고, 그냥 하던 거 계속하자! 피크타임제, 노동시장 구조조정, 이런 건 청와대가 원래도 엄청 하고 싶어하는 것이고, 대기업들에 임대시장을 통한 특혜주기, 이것도 하고 싶어 했던 일이다. 정규직 대신 인턴을 늘리는 것, 이것도 ‘값싼 노동력’이라는 관점에서 청와대가 강력하게 미는 일이다. 청년 핑계로 원래 하고 싶던 일들을 하면서 약간의 모양내기 정책들, 이런 거 아닌가?

이러면 문제가 풀리나? 당연히 안 풀릴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은 저임금 노동자 이민으로 가겠다, 이게 ‘브릿지’의 진짜 의미 아닌가? 하는 데까지 하는 시늉 내다가 그냥 이민 받자, 이게 정부가 공개한 저출산 대책의 장기적 의미 아닌가? 청년은 이제 포기하고 그냥 이민 받자, 이런 대책으로 보인다. 그때까지 국민과 청년을 잠시 속이는 ‘브릿지’, 그런 의미 아닌가? 일단 총선은 넘어가고, 그때부터 준비해서 2017년에는 우선순위를 정해서 이민을 받자, 이런 안이 며칠 후면 국무회의로 올라간다. 청년 포기 청와대, 바로 ‘청포청’의 속마음이 이런 거 아니겠는가?


우석훈 | ‘88만원 세대’ 저자·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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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세다. 정겹게 해넘이 술잔을 주고받기엔 세상에 차 있는 독설과 반목이 목에 걸린다. “싸워라, 막아라, 살려내라.” 마지막 달력 한 장이 조용히 떨어진 적 없는 나라지만, 야당까지 사분오열된 올해는 유독 더 하다. 뭐 하나 정리된 것 없이, 믿음 둘 곳 없이, 앙앙불락하며 세상 살맛을 잃어가는 세밑이다.

화쟁(和諍). 12월의 살벌한 거리와 조계사에서 붙들게 된 글자다. 화쟁은 충돌을 세우고, 왜 싸우는지 묻고, 소통과 답을 찾기를 권했다. 차벽이 둘러싸려던 5일 서울광장에 ‘꽃길’을 만들고, 닷새 후 경찰이 밀어닥치는 사찰엔 ‘방패’로 내걸렸다. 화쟁의 존재감은 컸다. 밧줄과 물대포로 가려졌던 범국민대회에선 민초들의 아우성이 다시 터졌다. 대선 때 21만원을 보장한 쌀 한 가마니 값이 13만원까지 폭락했는데도 왜 밥쌀용 쌀을 수입하려는지 농민들은 따졌다. 월 200만원도 못 받는 비정규직이 절반이라고 노동자들은 절규했고, 학생들은 반대하는 60%의 혼을 비정상으로 몰고 ‘복면 집필’하는 국정교과서를 풍자했다. 슬픈 풍년가와 고달픈 노동요, 민주주의 조가(弔歌)가 서울 한복판에서 만난 것이다.

하나, 내친 길일까 속성일까. 권력은 답이 없다. 화쟁은 다시 막혔고 짓밟혔다. 1400년 전 원효대사가 ‘다툼의 화해’를 설파하며 경계했듯이 권력은 ‘갈대 구멍으로 하늘을 보며 좁은 소견에 동의하는 자만 옳다’하고 있다. 잠시 쫓기는 자의 소도(蘇塗)가 됐지만, 드러난 상처의 뿌리와 갈등은 풀지 못하고 화쟁은 미봉됐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경찰에 잡혀간 다음날, 조계종 화쟁위원장인 도법 스님은 “노동법 개정을 잠시 유보하고, 사회적 대화 마당을 열어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노동개혁안을 만들어 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그날 노동부는 경찰이 에워싼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도 3개 층을 건너뛰어 운행하며 ‘저성과자 해고’ 토론회를 밀어붙였다. 잠시 세워보라는 말이 무색한 동문서답이었다. 12일 주말 광화문 집회는 다시 중도에 경찰이 행진을 막았고, 19일 3차 민중총궐기대회는 불허됐다. 광화문 시위를 29년 전 5·3 인천사태에 견주며 소요죄를 걸겠다는 것도 뜨악하다. 50줄의 사람들은 민정당사가 불타고 파출소가 습격당하고 ‘화염병 해방구’가 만들어진 인천과 줄로 차벽을 당긴 광화문을 다르게 기억한다. 집회도 나라가 정한 대로 따라오라는 국정화로 가는 것인가. 하긴, 광화문에 꽃길을 잠시 열어준 것도 정부가 아닌 법원이었다. 12월의 화쟁은 그렇게 싹도 틔우지 못하고 빠르게 원점으로 돌아갔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조합원들이 고용노동부 주최 토론회 참석이 저지되자 시위를 하고 있다_경향DB


반환점을 돌아서일까. 집권 3년차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 거칠어지고 있다. 봄 성완종, 여름 메르스로 홍역을 치른 청와대는 가을에 국정화를 빼들고, 이제 노동법과 테러방지법을 직권 상정해달라고 국회의장을 압박하고 있다. 3권분립과 여론도 무시하고 헌법 위를 달리는 행정 독주다. 대통령은 “국민이 바라는 법”이라고 닦달하지만, 엄밀히 기간제 연장·파견 확대·수사권 확대는 ‘오너와 국정원이 바라는 법’이다. 그러고 보면, 대통령들이 곧잘 ‘역사와의 대화’에 몰입하는 세 번째 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연정’ 발언과 한·미 FTA 터 닦기가 2005년 시작됐고,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사찰과 미디어법(종편) 충돌도 2010년에 터졌다. 뭔가 세우고 남기려는 생각이 편 가르기로, 다시 오불관언의 조급함으로 바뀌면 정치는 유명무실해지고 12월 국회는 시끄러워질 수밖에 없다.

세밑에 잔뜩 몸단 사람들은 따로 있다. 수십 대 1의 ‘유치원 로또’를 뽑지 못한 사람들은 어린이집도 좌불안석이다. 보육비가 나올지 말지 모르기 때문이다. “낳으면 키워주겠다”는 박 대통령의 무상보육 약속은 립서비스가 됐고, 정부는 10월에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고쳐 어린이집 보육비를 교육청에 떠밀었다. 예산국회는 지방채 20조원이 임박한 교육청에 학교환경개선비조로 3000억원만 우회 배정했다. 당·정·청 모두 보육비만은 이번에 교육청 몫으로 알박고 말겠다는 ‘결의’가 보인다. 세 살 아이의 출발이 운으로 갈릴 때 절망하는 부모 입에선 ‘왜 세금을 내는지’ 육두문자가 쏟아진다. 치킨게임이 이어지면 1월 보육대란은 피할 길이 없다.

아집과 반목과 시한폭탄을 가득 품고 한 해가 저물고 있다. “한상균이라는 불덩이”를 돌려 보낸 날, 도법 스님은 세상의 위아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민주주의도, 민생도 출발은 다시 화쟁이었다.

“앞으로도 불가피한 인연이 주어지면 저희들은 이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싸움의 불길이 훨훨 타오르면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은 약자, 가난한 자일 수밖에 없다. 이 세상은 함께 살도록 돼 있고, 인간도 함께 사는 길만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실이다.”



이기
수 |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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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의원(53)은 20대에 기초의학을 연구하는 의사의 길을 걸었다. 대학원 시절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한 그는 서른 초반엔 사이버 보안 전문가로 이른바 ‘전업’을 했다. 10년 뒤, 홀연히 미국 유학을 떠나 경영학을 공부하고 온 안 의원은 경영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지금은 무소속 국회의원이다.

안 의원은 이러한 자신의 이력에 대해 “제가 지금까지 몇 번 직업을 바꿨다. 그런데 도중에 그만뒀던 적은 한 번도 없다”(2012년 9월19일)고 설명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다음날인 지난 15일, 부산에 내려간 안 의원은 전날까지도 자신이 소속돼 있던 당을 ‘교체돼야 할 세력’으로 규정했다. 그는 “새정치연합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배척한다. 그러면 집권할 수도 없지만 집권해서도 안된다”고, “평생 야당만 하기로 작정한 정당이다. 조그만 기득권도 내려놓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창업주’에서 하루 만에 당을 견제해야 하는 입장으로 바뀐 것이다. 직업을 바꿔온 것처럼 정치적 입장도 선택에 따라 ‘리셋’하려는 모습이었다.

2013년에도 안 의원은 “양당 기득권 구조를 깨야 한다”며 10개월 동안 독자 신당을 추진하다 이듬해 3월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돌연 합당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안 의원의 선택에 대해 “자신이 청산대상으로 규정한 세력으로 가버렸기 때문인데 결국 일종의 자기부정이 아닌가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경영학을 공부했던 그는 정치적 고비마다 항상 ‘합리적’ 선택을 해왔다. 더 나은 선택을 위해, 때로는 자신의 낡은 말들을 부인하기도 하고 정치적 성향을 조정하기도 했다. 누적된 그의 선택 속에서 지금의 안 의원에게 국민들을 설레게 했던 ‘안철수’라는 브랜드가 여전한지는 의문이다.

안 의원의 지난 13일 탈당 기자회견문 제목에도, 이보다 1주일 전 이뤄진 최후통첩 기자회견문 제목에도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단어가 하나 있다. ‘다시.’

그러나 정치권에서의 ‘리셋’은 자신의 앞선 선택을 성공시켜내지 못한 알리바이처럼 보인다.


심혜리 | 정치부 gra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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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경제부총리 인사청탁 의혹을 무마하기 위한 중소기업진흥공단(중진공) 간부들의 행태가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기획재정부 출신의 박철규 전 이사장은 최 부총리 보호막을 자처하고 임채운 현 이사장은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는 인사담당자들을 불러 ‘최 부총리가 살아야 우리가 산다’며 뭔가 주문을 했다. 중진공이 조직적으로 범죄은닉을 한다는 의심을 받을 만한 발언이다. 중진공은 ‘직원들 고충을 이해하고 위로하려는 차원이지 강요나 회유는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변명에 불과하다.

중진공이 2013년 하반기 36명의 신입사원을 선발하면서 서류전형 순위 2299위인 최 부총리의 의원실 전직 인턴 황모씨를 최종 합격시킨 것은 정상적인 채용으로 보기 어렵다. 이미 감사원은 중진공이 서류전형과 임원 면접에서 탈락한 황씨를 최종 합격시키기 위해 점수를 조작했고 이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감사원이 지난 7월 감사결과 발표에서 최 부총리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았을 뿐 그의 외압을 확인해준 것이다. 10월 국정감사에서 김범규 전 부이사장이 ‘박 전 이사장이 최 부총리를 만나고 온 후 2차 면접결과가 뒤집혔다’고 폭로하면서 의혹은 명쾌해졌다. 당시 박 이사장으로부터 ‘내가 결혼시킨 아이니까 그냥 합격시키라’는 최 부총리의 말을 전해들었다는 직원만 2명이다. 중진공이 지난해 11월 감사원 감사를 무마하기 위해 최 부총리와의 면담을 시도하고 감사원 간부에게 청탁을 넣은 정황도 드러났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16년도 예산안을 설명하고 있다._연합뉴스


이쯤 되면 최 부총리는 도의적이든 사법적이든 책임을 져야 한다. 검찰로서는 당연히 최 부총리를 불러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누가 최 부총리 이름을 팔았건 직접 외압을 행사했건 그것은 이차적인 문제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검찰이 최 부총리를 소환조사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박 전 이사장도 ‘청탁을 받았다’는 사실만 부인할 뿐이지 부당한 인사 지시 과정에서 최 부총리를 면담한 사실 자체는 인정하고 있다. 감사원이 중진공 직원들로부터 범죄 수준의 인사비리에 최 부총리가 관련돼 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끝내 외압의 실체를 밝히지 않은 채 감사를 미봉한 경위도 명쾌하게 밝혀져야 한다.

이미 검찰이 압수한 휴대폰에서도 중진공이 감사를 무마하기 위해 최 부총리 측과 수시로 대책을 논의했음을 암시하는 문자나 텔레그램이 다수 발견됐다. 물론 최 부총리 측에서는 ‘중진공이나 감사원 누구와도 통화를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통화내역 조회만 해보면 금방 밝혀질 일이다. 검찰이 최 부총리에 대한 소환조사와 측근들에 대한 강제수사권 발동을 미루는 한 의혹은 더 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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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노동 5법, 경제 관련 법, 테러방지법 등 쟁점법안을 직권상정해 줄 것을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현기환 정무수석은 어제 국회에서 정 의장과 만나 이 같은 입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헌법 제40조는 입법권이 국회에 속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청와대가 입법부 수장에게 직권상정을 압박한 것은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위헌적 행태다.

현 수석은 정 의장이 선거구 미획정과 관련해 공직선거법에 한해 직권상정을 검토한다는 보도를 접하고 국회를 찾았다고 한다. 그는 “노동개혁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테러방지법을 외면하고 선거법만 (직권상정으로) 처리한다는 것은 정부 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선거법을 처리하려면 쟁점법안들을 먼저 통과시키거나, 선거법과 쟁점법안을 동시에 처리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_연합뉴스


국회는 교섭단체 간 합의를 바탕으로 운영된다. 직권상정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국회선진화법에서 직권상정 요건을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교섭단체 원내대표와 합의하는 경우로 엄격히 제한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노동·경제 법안들은 누가 봐도 직권상정 요건에 해당할 수 없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에서 “국가비상사태 직전”이라며 정 의장 해임결의안 제출까지 거론하며 압박하는 까닭은 뭔가. 현 수석의 발언에 답이 있다. “국무회의나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대통령 말씀을 들으면 답답함과 절박함이 묻어 있어 몸둘 바를 모르겠더라.” 이들에게 시급한 과제는 민생이 아니라 대통령 심기 경호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국회의 존재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내년에 선거를 치러야 하는데 (국회의원들이) 얼굴을 들 수 있겠느냐” “국회가 (노동·경제) 법안들을 방치해 자동 폐기된다면 국민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등의 발언을 거듭해왔다. 앞서 국회법 개정 파동 때는 행정부 견제라는 입법부의 권능을 부정하고, 집권여당 의원들의 대표자를 ‘배신자’로 몰아 축출했다. 이렇게 대통령은 삼권분립을 무시한 채 ‘헌법 위의 대통령’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은 청와대 지시에 따라 투표하는 거수기가 아니고, 국회의장 역시 의사봉만 두드리는 허수아비가 아니다. 정 의장은 청와대의 겁박에 굴복하지 말고 국회의 권위를 지켜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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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 않은 미국 생활 중 텔레비전을 보다가 딱 한 번 마음이 울컥했던 적이 있었다. 그것은 드라마도, 다큐멘터리도 아닌 청문회 실황중계였다. 증언대에 선 미국 백악관 대테러조정관이었던 리처드 클락은 9·11 사태 진상규명 청문회 증언에 앞서 다음과 같이 발언한다. “9·11의 비극이 왜 일어났는지를 국민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고 또 어떻게 하면 그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될 본 청문회에 서게 된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이 자리를 또 다른 이유에서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본 청문회를 통해 비로소 희생자 유족들에게 직접 사과할 기회를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청문회장에 계신 유족 여러분, 그리고 텔레비전을 통해 시청하고 계신 여러분. 여러분의 정부는 맡은 소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The government failed you). 국민들을 보호할 소임을 다하지 못했고 저 또한 그 소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실패했고, 실패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한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실패에 대해서 모든 사실들이 규명되는 과정에서 저는 여러분들의 이해와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정부라는 거대한 괴물이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빌 수도 있다는 것은 명백한 반전이며, 누가 누구에게 왜 사과하는지 이토록 간명하게 밝히는 진정성은 사뭇 감동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해당 발언이 1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회자되고, 어느 미국 드라마의 오프닝으로 쓰일 정도로 유명해진 것은 놀랍지 않다. 그러나,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감동적인 사과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공동체가 어떻게 위기에 맞서고 극복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2일 서울 중구 서울YWCA 대강당에서 열린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1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한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_경향DB


우선 나의 건망증과 둔감함과 일상에 대한 패퇴를 먼저 고백한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가 지난 월요일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불현듯 아, 벌써 2년이 다 되어 가는구나, 하고 생각했을 따름이다. 이런 둔감함에서 한발짝 더 나아간 대중적 조바심, 혹은 반감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이해한다. 우리는 계층·세대 간 양극화의 문제와 국가·시민사회 간, 그리고 여러 정치세력 간의 전례 없는 갈등을 겪고 있으며,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중국의 경제적 추격과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을 슬기롭게 극복해야 할 과제가 버겁기만 하다. 세월호 사건은 최근 우리가 겪었던, 이제는 열거하기조차 벅찬 신문·방송과 인터넷을 가득 채운 수많은 공동체의 사건들 중 하나일 따름이고, 2년이 다되어 가는 시점에 새삼 옛 상처를 열어보고 ‘슬픔을 강요’하는 것이 뜬금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는 듯하다.

그러나 앞서 길게 인용한 증언이 9·11이 일어난 지 3년 뒤인 2004년에 있었던 사실을 상기한다면 국가 실패(state failure)에 대한 검토와 반성에 유효기간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러 음모론을 믿지 않더라도 우리의 국가가 시민들의 생명을 지키고 구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며, 그 실패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우리는 아직도 모르기 때문이다. 선장의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9·11 사건이 테러리스트들의 책임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으며, 그런 의미에서 앞서 인용문의 핵심어는 ‘실패’나 ‘사과’가 아니라 ‘납득’일 것이다.

전망은 아프도록 비관적이다. 민의를 대변하는 웅장한 의회 건물이 아니라 시민단체인 YWCA에서, 청문회를 시작도 하기 전에 예산은 깎이고 몇몇 위원들은 참여를 거부했다고 한다. 언론은 외면하고 댓글들은 불평하며 소위 국회의원들은 내년 총선을 바라보며 지역구의 ‘민생’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우리는 슬픔과 공감과 분노를 그때 다 ‘지불’해 버렸으며, 마치 새로운 뉴스들이 이전 소식을 아래로 밀어내리는 타임라인처럼 마음의 바닥에 세월호가 가라앉도록 내버려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세월호가 지금 침몰해 있는 곳은 겨울의 팽목항 앞바다가 아니라 그보다 깊고 차가운 우리 마음속 심연이 아닌가 한다. 가만히 있어도 슬픔에 모래처럼 씻겨나갈 유족들이 굳이 뭉쳐서 다시 부서지고 깨지는 것은, 그리고 청문회장에 나와서 생살을 찢는 듯한 그 순간들을 다시 견디는 이유는, 길잃은 한풀이가 아니라 너무도 단순하고 사소한 ‘납득’을 위해서이다. 우리가 오늘 마음속의 세월호를 길어올려야 할 이유 또한 이들과 슬픔과 분노를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기 때문이다. 성탄과 세밑의 화려한 불빛이 너무도 어지럽다.


박원호 |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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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방지법 제정을 다그치는 대통령의 성화가 보통이 아니다. 우리나라에 테러방지법이 없음을 이슬람국가(IS)까지도 알아버렸다는 자학성 발언을 필두로 “상상하기 힘든 테러”가 발생하면 국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응석까지 나온다. 여기에 초비상사태에나 가능한 긴급재정경제명령권 운운하는 블랙코미디를 접하고 보면 정말 대통령과 그 일행들은 여기에 자신의 명운을 걸고 있음이 분명하다. “다시는 전쟁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것”을 한탄한 저 유신선포문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테러방지법안에 무슨 핵무기 같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다. 후진적인 국가들이 늘 그렇듯 이런저런 권력을 국정원에 집중시킬 뿐이다. 그리고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국정원이 1년 365일 국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서 만만한 사건 몇 개를 골라 “테러”라는 이름을 붙여 대충 처리함으로써 국민들이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게끔 한 것이 전부다.

법안 자체도 별로 새롭지 않다. 대통령이 테러방지법이 없다는 국가기밀성 정보를 흘렸지만, 그것은 허허실실의 전략에서 나온 기묘한 역정보이다. 우리나라는 33년 전부터 ‘국가대테러활동지침’을 만들어 이미 완벽한 대테러체제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러방지법안은 이 지침을 복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새롭다고 해봐야 사이버테러방지법안에 국정원이 국민들의 휴대폰이나 SNS 등을 좀 더 쉽고도 당당하게 사찰할 수 있게끔 하는 조항 몇 개를 둔 것이지만, 이것도 여태까지 해오던 것을 명문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테러방지법,복면금지법,주류기득권,평화행진,간장두종지_경향DB


그러니 국민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처럼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선량한 국민들은 말이다. 누군가 내 휴대폰이나 SNS를 좀 본다고 해서 할 말 못하거나 못할 말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대통령에게만 충성하는, 대통령의, 대통령을 위한 국정원이라 총리나 국무회의는 물론 국회조차도 어찌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걸 어찌한다고 해서 우리 인생이 바뀌지도 않는다. 옛날 중앙정보부 시절처럼 이런저런 대소사에 국정원 직원이 끼어들어 간섭하는 일이 벌어질지 몰라도 뭐, 우리가 권력의 횡포에 당하고 살던 것이 어제오늘인가? 그저 무시무시한, “상상하기 힘든” 테러만 막을 수 있다면, 그래서 없는 위험에 억지 춘향 격으로 주어진 이 불안만 덜어낼 수 있다면 이 요지경의 세상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을.

바야흐로 국정원 만세인 세상이다. 오죽하면 대법원이 “인터넷 자체를 청소”하며 대선에 개입한 혐의를 받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구제하고자 나섰으랴. 초등학생에게 욕설과 성폭력적인 댓글을 퍼부었던 “좌익효수”라는 한 전투 요원에 대해 법원이 국정원 직원이라 볼 증거가 없다며 국가배상을 거부했다거나, 검찰이 그를 기소하는 데 2년6개월이나 걸릴 정도로 신중을 기한 것 또한 IS의 보복 대상에 포함돼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일 터이다. 설령 국정원이 공안사건 실적을 위해 거리낌 없이 증거조작에 나서고 종북좌파 운운하며 국민들을 이간하는 대국민 심리전쟁을 벌인다 하더라도 그 역시 무책임한 국회 때문에 불안에 빠진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눈감아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테러방지법은 도대체 왜 필요한가? 답은 간단하다. 그동안 평화시대를 살면서 국정원이 조금 나태해졌기 때문이다. 9·11 테러나 파리 테러가 발생하고 대한의 청년이 IS에 가입하고 이주민이 장난감총으로 IS를 찬양해도 국정원은 간첩잡기에만 매달려 이런 정보수집은 물론 ‘국가대테러활동지침’에 따른 테러대책회의 한 번 제대로 못했다. 원래 법률도 대범하게 무시하는 국정원이라 한갓 훈령 정도의 지침을 알 리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테러방지법은 이런 국정원을 새롭게 부활시킨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사실 간첩이니 종북좌파니 하는 것은 이제 국민들도 식상해하고 국정원 스스로에게도 너무 진부해졌을 것이다. 그런데 반테러대책 운운하는 것은 너무도 창조적인 명분을 제공한다. 국정원의 모든 권력과 활동들은 “반테러”라는 이름이 부착되는 순간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다. 게다가 지금까지 음지에만 있던 국정원이 이제는 노골적으로 국정 전반에 간섭할 수 있게 되고 이를 통해 강력한 권력을 원하는 대통령에게 무한한 충성을 바칠 수 있게 되어 일거양득인 셈이다. 성동격서라고나 할까? 테러방지법을 말하면서도 그 핵심이어야 할 국정원의 해외정보 강화대책이 불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어찌 되었거나 우리의 서민적 글쓰기에서는 국정원 만세다.


한상희 |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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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궐선거를 통해 국회 초선의원이 됐던 제1야당 정당원이 기어이 기득권 정치를 개탄하며 당적변경을 발표했다. 그가 오죽하면 당명까지 변경하며 혁신을 부르짖었을까? 그는 실패를 고백하며 지지자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의 무소속 선언은 신정치의 종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이 사태가 야당 질서 재편의 호기로 활용되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대중의 기대와 요구는 결코 거품현상이 아니다. 기성정치에 식상한 많은 이들은 정치신인의 출현과 낡은 정치의 변화를 기대해 왔고, 그 요구의 수치를 상승시켜왔다. 구정치란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담합정치, 노선과 가치와 정책보다는 지도자의 이미지나 요행, 말과 구호에 그친 공약 나열에 불과한 기성정치를 말한다. 그래서 비롯된 게 정치 불신과 냉소, 허무주의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정치는 정치노선과 정당 가치, 기본 정책이 보수정당이나 극단주의 세력과 다르거나 새롭거나 현실적합한 데서 찾아져야 한다.

정치혁신에 둔감하거나 방해, 반발하는 구정치 세력은 위기불감증 때문에 위기를 위기라 인식하지 못한다. 선거 때가 되면 흔히 등장하는 동정여론이나 지역정서에 영합하여 지지표를 모으는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위기를 기회로 전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해야 할 때임에도 불구하고 기존 지지층의 존재에 자족하면서 변화하지 않고도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관성의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보수정당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그러나 보수정치 지지층은 오랜 시간 다져온 그들 나름의 이해관계 위에서 형성된 탓에 웬만한 정치변수에도 동요하지 않는 견고한 충성심을 발휘한다. 그러나 진보나 개혁의 가치를 선호하는 유권자들은 세대나 계층에서 보수지지자들만큼 현실정치나 정당에 믿음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13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탈당을 선언한 뒤 회견장을 떠나고 있다._강윤중 기자


새로운 정치는 진보노선과 민주주의, 복지·평화·생태정책 지향을 뚜렷하게 제시하면서 당면한 선거승리의 강박증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나 만약 당면한 선거승리만을 고려한다면 정당 내 기득권 정치의 수혜층을 전면 청산해야 한다. 그래서 낡은 정치꾼들을 싹 바꿀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선거혁명의 호기를 창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임기 4년 동안 입법 활동이 전무하거나 부진했던 의원부터 모두 갈아치우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유권자들은 이런 방식으로라도 새로운 정치신인들에 의한 신선한 정치 작품이 등장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정신으로서 사회통합, 새로운 기후변화시대에서 한국경제가 세계경제에서 생존하고 재도약할 수 있는 산업모델 창출,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불평등구조 철폐를 위한 사회경제정책, 이행기 정의 실현 등 진보개혁 민주세력의 특·장점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이론적 자원이 없지 않다. 여기서 관건은 좋은 정책들의 단순한 묶음만이 아니라 소소한 정책들의 통합을 통해 정책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합의 도출능력의 활용과 이행 여부이다.

진보정치는 야당 분열이라는 여권 공세와 다당제 선거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정치발전과 혁신의 호기로 전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하고 모든 기득권 정치를 씻어내겠다는 결의를 도출해 내야 한다. 그 기반 위에서 연합정치를 실현하여 새로운 전진의 계기를 확보해 내야 한다. 그런 변화와 담대한 전략 구사가 어렵거나 실패한다면 극단주의 우파보수 전성시대를 연장하고, 패착을 자초하는 역사적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다. 유연하지 않으면 멸망할 뿐이다.

노동자와 농민, 도시영세민들이 계급투표를 하지 않는다고 투덜댈 일이 아니다. 이들 서민대중들이 진보정치세력의 가치와 노선, 정책에 주목하고 관심을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새로운 정당 이성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대중들은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세력이 어느 쪽인지 잘 눈치를 채고 깨닫는, 나름대로의 정치적 촉각과 역사적 지혜를 지니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허상수 | 지속가능한사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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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9년간 상업과목을 가르쳐온 교사를 필진으로 선정하고 5·16쿠데타를 미화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교과서의 내용과 품질 모두 수준 이하가 될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는 셈이다. 상업교사의 집필진 참여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 교사는 올 들어서야 처음으로 한국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한국 고대사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고 하지만 상식적으로도 교과서를 집필할 만큼 충분한 경륜과 전문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 집필진 선정 기준과 선발 과정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한 명의 사례를 들어 집필진 모두가 전문성이 없다고 한다면 무리한 주장일 것이다. 그러나 교과서의 중대성을 감안하면 비록 단편적 상황일지라도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국사편찬위원회(국편)는 “전문성을 고려해 집필진으로 선정했다”고 해명했지만 말이 안된다. 박사 학위를 받고 수십년간 역사를 가르친 교사들은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현행 검정교과서를 쓴 교사들도 대부분 10년 이상 역사를 가르쳤다. “각계 전문가를 고루 초빙해 권위 있고, 정확한 교과서를 쓰겠다”던 교육부는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해보기 바란다. 사실 이 같은 현실은 국편이 자초한 일이다. 전문가인 역사학자와 역사교사 다수가 국정화에 반대하자 좌파로 몰면서 집필진에서 배제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김정배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이 국정화 역사 교과서의 집필진과 집필기준에 대한 사항을 발표하고 있다._경향DB


상업교사는 “내년 1월부터 13개월간 역사교과서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대로라면 국정교과서는 2017년 1월에야 집필이 완성된다. 정부가 그해 3월부터 교과서로 보급하겠다고 밝힌 것을 감안하면 불과 2개월 새 심의와 인쇄, 배포를 모두 끝내야 하는 일정이다. 그렇다면 집필과 심의, 배포가 비전문적일 뿐 아니라 졸속으로 이뤄질 판이다. 교육 현장의 혼란이 불가피하다. 현행 검정교과서는 집필에 최소한 2년이 걸렸다. 설마 이런 식으로 만든 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치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그제 당정협의에서 논의한 국정교과서의 5·16쿠데타 기술 방침도 동의할 수 없다. ‘군사정변’ 표현을 유지하기로 했지만 미화 가능성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강은희 새누리당 의원은 “예를 들어 그동안 경제개발의 부작용만 교과서에 상당히 많이 나열했는데 (부정적인 문제는) 사소한 것이라는, 시대에 맞는 형태로 서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 성장을 부각시키고 독재는 ‘사소한 것’으로 간주해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발상은 뉴라이트가 만든 교학사 교과서에 잘 나타난다. 5·16을 쿠데타로 묘사하면서도 “반공과 함께 자유 우방과의 유대를 강조했다…미국은 곧바로 정권을 인정했다”고 썼다. 쿠데타를 했지만 정통성을 인정받았다는 인상을 준다. 국정인 현행 초등학교 사회교과서 기술은 아예 박정희 칭송에 가깝다. “일부 군인들이 국민생활의 안정과 공산주의 반대를 주장하며 정권을 잡았다. 대통령이 된 박정희는 국민들이 잘사는 것을 나라의 가장 큰 목표로 삼고 개인의 자유보다는 국가의 발전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정치를 실시했다”고 미화하고 있다. 아무리 말리고 설득해도 정부는 ‘광란의 질주’를 하려는 것 같다. 우리의 아이들이 진실과 거짓, 정의와 부정의를 거꾸로 배울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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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