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들께서 학교에서 아이들이 먹는 식사에는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아이들 머릿속에 어떤 것이 들어가서 자리 잡을지에는 관심 없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1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한 말이다. 평소 비판적이었던 무상급식에 대해 빈정거리면서, 여야 전선이 명확해진 ‘역사 전쟁’에 학부모 동요를 일으켜 우호적 여론을 형성하려는 의도였다.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한국사 교과서를 한 번이라도 보셨다면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런 말을 하는 김 대표는 그동안 아이들 ‘머릿속’에 얼마나 관심을 가졌나. 백번 양보해 그가 말하는 ‘반대한민국’ 교과서들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쳐 정식 발행될 때까지 여당 요직을 독차지했던 그는 뭘 하고 있었나. 급식 요구는 ‘공짜 복지, 복지병’이라고 비난했고, 대선 유세 때는 남북정상회의록 내용을 줄줄 읊으며 ‘편 가르기’에 바빴다.



역사교과서를 제대로 봤는지도 의문이다. 김 대표는 지난 7일 회의에서 “(현 교과서는) 스탈린 지령을 받아 북한에서 먼저 정부를 구성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완전히 뒤집어서 이승만 대통령에게 분단 책임이 있다고 가르친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은 1948년 8월15일, 북한의 ‘공화국 창건일’은 이보다 늦은 9월9일인데 순서를 거꾸로 안 것이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의도적인 부분 발췌를 통해 ‘검정교과서=친북·종북’이라고 외치는 그에게 유신정권 때 발행된 교과서라도 읽어 보길 당부한다.

김 대표는 차라리 “내가 유신정권 이전에 중·고교를 다녀서 ‘올바른 국정교과서’로 교육을 못 받았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을 잘못 알고 있으니 ‘국정교과서’가 필요하지 않겠나”라고 호소하는 편이 더 나은 여론 설득 전략이 아닐까.

상도동에서부터 청와대까지 김 대표와 동고동락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현철씨는 최근 트위터에 그를 향해 이런 글을 남겼다. “어설프게 대권은 꿈도 꾸지 마라.”


정환보 | 정치부 botox@ kyunghyang.com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몹시 화가 난 듯했다. 평소보다 목소리 톤이 높았다. 미간은 찌푸려져 있었다. 단문으로 이뤄진 그의 발언은 거침이 없었다. 심 대표는 지난달 11일 국회에서 열린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의사진행 발언을 했다. 당시 장면을 찍어 유튜브에 올린 1분51초짜리 동영상은 조회수 180만을 넘어섰다. 누리꾼들은 “심 대표가 토해낸 사자후(獅子吼)” “속이 다 후련해지는 사이다 발언” “심 대표의 ‘포스’ 작렬”이라며 격하게 호응했다. 이유는 딱 하나다. 맞는 말만 했기 때문이다.

심 대표는 “장관도 임금피크제에 동참하고 계십니까? ‘짝퉁’ 임금피크제, 이게 임금상한제인데 왜 이 사회에서 고액 연봉받는 사람들은 임금상한제에 포함 안 시켜요? 장관은 왜 1억2000만원씩 다 가지고 가요? 국회의원은 왜 1억4000만원을 다 받아야 되고? 5000만~6000만원 받는 늙은 노동자들, 3000만원짜리 청년 연봉 만들어 내라고 하면서 왜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고액임금 다 받아갑니까. 왜? 양심이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라고 했다. ‘불편한 진실’이 까발려지자 움찔했을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터이다. “양심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는 말에 대꾸할 장관이나 국회의원은 과연 몇이나 될까.

심 대표의 격한 발언에는 ‘고통분담’이란 허울 좋은 명분을 들이대며 노동자들을 사지로 몰고 있는 정부에 대한 ‘날선 비판’도 들어 있었다. 그는 “유럽에 ‘살찐 고양이법’이라고 있어요. 살찐 고양이들 살 드러내는 거 그게 고통분담입니다. 졸라맬 허리띠도 없는 사람들이 무슨 고통분담합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 대표가 언급한 ‘살찐 고양이법’은 2013년 3월 스위스가 국민투표를 통해 제정한 법안이다. 주주가 기업 경영진의 보수를 규제하고, 인수·합병이 성사됐거나 임원이 퇴직할 때 지급하는 특별보너스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살찐 고양이(fat cat)’는 배부른 자본가를 빗대 쓰는 말이다.


정의당 심상정 신임대표가 취임식에서 두 손을 불끈 쥐고 있다._경향DB


국민투표 청원운동을 벌여 법안을 통과시킨 주역은 치약회사 ‘트라이볼’의 최고경영자(CEO)이자 국회의원인 토마스 마인더이다. 그는 2001년 자금난에 시달리던 항공사 스위스에어가 물품 공급 계약을 취소하는 바람에 부도 위기에 몰렸다. 각고의 노력 끝에 회사를 되살린 마인더는 스위스에어 경영진이 막대한 보수를 챙기는 것에 분노해 2008년부터 5년간 국민투표 청원운동을 벌여 ‘살찐 고양이법’을 통과시켰다.

스위스와 달리 ‘살찐 고양이’들에겐 살 맛 나는 세상을 열어주고, 노동자들에겐 포기와 좌절, 절망을 안겨주는 ‘고통 전가’ 정책만 내놓는 정부에 대한 분노가 끓어올랐던지 심 대표는 “졸라맬 허리띠가 없어요. 200만원도 못 받는 940만 노동자들, 허리띠 졸라매는 게 아니라 목 조르는 거예요”라고 했다. 그는 정부가 결단만 하면 시행할 수 있는 청년 고용대책도 제시했다. 심 대표는 “청년고용할당제 5%만 해도 23만개 일자리 만들 수 있어요. 대기업 사내유보금 1%만 조세로 거둬도 6조원입니다. 왜 못합니까? 왜 안합니까?”라고 따졌다.

‘열정 페이’를 강요당하며 ‘호모 비정규니언스’가 돼 핍진한 삶을 이어가는 청년들에게 정규직은 ‘넘사벽’이 되고 있다. 심 대표의 지적대로 청년고용할당제를 현행 3%에서 5%로 늘리고, 적용대상을 공공기관에서 민간기업으로 확대하면 청년고용률을 높일 수 있다. 대기업들이 쌓아놓은 사내유보금의 1%를 청년고용세로 물리고, 고액연봉자에 대한 최고임금제 신설도 논의해볼 만하다.

심 대표가 국정감사에서 격한 발언을 쏟아낸 뒤 ‘9·13 노사정 합의’(일각에선 ‘9·13 노사정 야합’ 또는 ‘9·13 노동재앙’으로 부르기도 한다)가 이뤄졌다. 심 대표는 노사정 합의문을 접하고 허망했을 듯하다. 그가 제시한 고용대책과는 배치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적했듯이 노사정 합의문은 “‘임금피크제 도입, 쉬운 해고, 비정규직 확대, 근로시간 연장’을 쓸어 담은 재앙 모음집”일 수 있기 때문이다. 노사정 합의문대로라면 나이든 아버지는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다 ‘쉬운 해고’를 당해 직장에서 내쫓기고, 자녀들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마지막으로 웃는 자는 노동자가 아닌 자본가이다. 노동력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자본가는 이윤을 챙기고, 노동자는 혹사당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심 대표가 바라는 ‘양심이 살아있는 사회’나 마르크스가 원한 ‘노동자가 마지막으로 웃는 사회’는 ‘이상(理想)’에 불과하다. 양심 없는 ‘살찐 고양이’들이 넘쳐나고, 노동자들은 졸라맬 허리띠가 없어 목이 졸리는, 그게 한국사회의 ‘민낯’이다..


박구재 | 기획·문화에디터 goodpark@kyunghyang.com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박근혜 정권이 기어코 건너서는 안될 강을 건너고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한 것이다. 입만 열면 국민통합을 부르짖으면서 하는 일마다 분열책이다. 정부가 승인한 검인정교과서를 좌편향으로 몰면서 또 편가르기 한다.

광복 70주년이면 역사의 순환법칙에서 경장기에 속한다. 이명박 정권이 크게 퇴행시킨 국정의 민주화, 서민경제, 남북화해협력 등 바로잡을 과제가 산적해 있다. 경제 살리기와 청년실업 등 단임제 대통령으로 해야 할 일이 태산 같다. ‘편가르기 대통령’의 역사전쟁은 6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용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색깔론으로 보수층을 결집하고 중도층을 끌어들인다는 전략이란 것이다. 야당대표와 사법부, 교과서 집필자들을 좌파로 몰고 거부여론이 많으니 ‘올바른 교과서’란 꼼수를 쓴다. 정권의 천박성이 극에 달한다. 이렇게 가다가 심장이 왼쪽에 붙어 좌경이니 오른쪽으로 옮기자고 할까 우려된다.

건국절과 교과서 국정화는 한 뿌리 두 줄기의 독초이다. 보수세력의 우상인 이승만과 박정희를 ‘건국의 아버지’와 ‘부국의 아버지’로 치켜세우려는 속셈이다. 한데 곳곳에 무지가 드러난다. 이승만도 임시정부 법통승계 원칙을 제시했고, 대한민국정부 수립을 ‘임정 원년’으로 표기했다. 박정희가 경제 성장의 역할을 했다고 해서 그의 공적만은 아니다.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 독일 총리 에르하르트나, 한국보다 더 경제성장을 이룬 대만의 장제스 부자, 전후 일본 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룬 이케다 하야토 총리를 ‘부국의 아버지’ 따위로 부르지 않는다.

이승만의 독재와 헌정유린, 박정희의 쿠데타와 인권탄압 등 역사적 사실을 서술하면 ‘부정적 서술’이 되고 좌파적 사관이라면, 일본의 역사 왜곡을 어떻게 비판할 것인가. 한국의 보수와 일본의 우익은 행태면에서 일란성쌍둥이다.


일본우익은 난징학살 등의 기술을 ‘자학사관’이라 비난하고 한국보수가 독재자 비판을 똑같은 용어로 따라한다. 여기에 좌파 딱지도 붙인다.

정부수립일을 건국절로 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첫째는 개천절과 더불어 건국절이 두 개가 된다. 둘째는 헌법전문의 임시정부법통 승계와 ‘한반도와 부속도서’를 규정한 헌법 3조의 위배가 된다. 한국이 1948년에 ‘건국’했다면 북한영토권을 주장할 헌법적 근거를 스스로 포기한다. 셋째는 일본에 대한 성노예, 문화재반환 등을 비판 요구할 권한이 없다. 넷째는 친일파의 죄상을 밝히거나 죗값을 물을 수 없다. 박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바라는 대목이다.

교과서 국정화의 위험성도 따져보자. 첫째는 국제화에 역행한다. 선진국 대부분이 검인정이고 북유럽에서는 자율화가 진행된다. 둘째는 유엔의 권유 위배다. 유엔인권위원회 보고서는 국정교과서나 정치사 위주의 교과서 편찬을 하지 말라고 권유한다. 셋째는 유신시대로의 회귀다. 해방 후 유지해 온 검인정교과서를 박정희가 유신 때 국정으로 바꾼 것을 33년 만에 회복했다. 넷째는 헌법위반이다. 헌법 31조 4항은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보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학문의 다양성을 억누르려는 발상이다. 역사해석을 국가가 독점하는 체제는 파쇼이다.

모름지기 역사는 공정·엄격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역사가 된 역사학자’로 불리는 마르크 블로흐는 “역사는 심판과 감계(鑑戒)”라 했다. 잘못된 역사는 후대에 심판을 받고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선대들의 친일행적을 덮기 위해 교과서까지 뜯어고치려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것과 같으며 전혀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지 않으려는 태도다.

박근혜 대통령과 식민지근대화론자들에게 전한다. 1951년 9월8일 일본이 미군지배에서 벗어난 날을 ‘주권회복의 날’로 정했을 뿐 건국일로 기념하거나 왜곡투성이 후소샤판 교과서를 만들어도 감히 교과서 국정을 시도하지 않는다.


김삼웅 | 전 독립기념관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이 그제 서울 여의도 국회 앞을 비롯해 전국에 내건 현수막 문구다. 검정체제로 발행되는 현행 역사교과서가 마치 북한 김일성 주체사상을 고무·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학교 현장에서 이를 교사가 학생에게 무비판적으로 가르치기라도 하는 것인 양 대국민 선전전을 펴고 있는 것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정당성을 국민에게 설득할 논리가 아무리 궁하다고 하지만 그런 정치구호는 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친 것이다.

새누리당 현수막은 교과서에 김일성 주체사상을 소개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만일 우리 아이들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배워서는 안되는 것이라면, 그 책임은 주체사상에 대해 서술하도록 교육과정에 명시하고 그것을 제대로 기술했는지 검정해 합격시킨 교육부와 그것을 용인한 박근혜 대통령과 집권당에 있다고 할것이다. 교과서 집필자와 출판사, 그것을 채택해서 학생에게 가르친 교사를 탓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지난달 23일 교육부가 고시한 ‘2015 개정 교육과정’의 고등학교 사회과 한국사 성취 기준은 주체사상 기술 의무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발전과 현대 세계의 변화’ 단락에서 ‘북한의 변화와 남북 간의 평화 통일 노력’이라는 소주제의 ‘학습 요소’로 “주체사상과 세습 체제, 천리마 운동, 7·4 남북공동성명, 이산가족 상봉,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 남북기본합의서, 6·15 남북공동선언, 탈북자”를 들고 있다.


그런데 ‘어른들이 모르는 사이에 우리 아이들이 주체사상으로 세뇌되고 있다’는 식의 자극적인 선동을 앞장서서 하는 이가 놀랍게도 여당 수뇌부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7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기존 교과서가) 김일성 주체사상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며 마치 충격적인 사실을 고발하듯 정치공세를 편 바 있다. 11일에는 김영우 수석대변인이 “북한의 세습정권을 미화하고 김일성 주체사상을 가르치는 교과서는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고 가세했다. 그제는 황교안 국무총리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북한에서 주장하는 주체사상을 무비판적으로 게재하고 6·25전쟁에 대해 남한에도 책임 있는 것처럼 서술된 부분이 있으며 국군에 의한 양민학살만 소개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명백한 사실 왜곡이다. 김일성 주체사상을 무비판적으로 게재한 내용은 어느 교과서에도 찾아볼 수 없다. 정부·여당이 좌편향이라고 비판하는 금성출판사 교과서는 “주체사상은 김일성의 항일 유격대 활동을 혁명 전통으로 삼은 김일성 중심의 유일사상 체계였으며 결국 김일성 개인 숭배로 이어졌다”고 서술했다. 또 같은 쪽 아래 ‘참고자료’ 코너에서 “주체사상은 ‘김일성주의’로 천명되면서 반대파를 숙청하는 구실 및 북한 주민을 통제하고 동원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며 비판적으로 기술했다. 천재교육 교과서도 “김일성이 1967년 주체사상을 통치이념으로 확립하였으며 이는 김일성의 권력독점 우상화로 이용되었다”며 주체사상을 분명하게 비판했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진행된 외교통일안보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_경향DB


그런데도 정부·여당의 지도자는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면서도 시민을 상대로 한 거짓 선동 행태를 멈출 줄도 모르고 부끄러워할 줄도 모른다.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국회에서 황교안 총리에게 “역사교과서에서 김일성 주체사상을 미화한 부분을 확인했느냐”고 물었다. 이에 황 총리는 바로 답하지도 못하면서 “일부 교과서가 주체사상을 무비판적으로 소개하고 있다”고 얼버무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왜 황 총리가 자신 있게 사실을 제시하지 못했는지 더 따져볼 필요도 없는 일이다.

6·25전쟁 서술 문제도 마찬가지다. 당시 국군의 양민 학살에 대해선 상세하게 소개하고 북한 사례는 소개하지 않았다는 황 총리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미래엔 교과서는 “전쟁 중 북한군은 물론 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발생하였다”고 기술했다. ‘민간인 학살에 대해 정부가 배상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교육부의 수정권고에 따라 북한군의 함남 함흥과 전남 영광 등지의 학살 사건, 미국에 의한 노근리 학살 사건, 국군에 의한 거창 양민 학살 사건을 나열했다. 6·25전쟁 책임에 대해서도 정부·여당이 “애매하게 남북 양쪽이라고 쓰여 있다”고 지목한 미래엔 교과서에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은 전면적으로 남침을 해왔다”고 기술하고 있다. 6·25 책임론 서술 문제도 근거가 없다는게 드러난 것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정당성을 선전하기 위해 새누리당이 펴고 있는 주체사상 교과서 공세는 이처럼 거꾸로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부당성만 부각시키고 있다. 현행 교과서가 하나같이 주체사상을 부정적으로 기술하고 있는데도 마치 학생에게 주체사상을 찬양하도록 교육하고 있는 것처럼 여론몰이하는 것은 설사 국정화가 정당한 것이라 해도 해서는 안될 일이다. 주체사상이란 단어만 나오면 자극받은 시민들이 맹목적으로 자신들을 지지해주고, 진실이 무엇인지 헛갈리도록 국론을 양분시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랬다면 그거야말로 주권자를 우롱하는 것이다. 그런 태도는 집권세력이 자기 발등을 찍는 일이자 교과서 집필진과 출판사, 이를 채택하고 가르친 교사와 배운 학생, 나아가 학부모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다. 새누리당은 이 나라를 통합하고 건강하게 발전시키는 책임을 위임받고 있는 집권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역사교육은 결코 정쟁이나 이념대립에 의해 국민을 가르고 학생들을 나누어서는 안된다.” 야당 대표가 한 말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언급이다. 박 대통령은 어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치권이 불필요한 논란으로 국론분열을 일으키기보다 올바른 역사교육 정상화를 이뤄 국민통합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며 이같이 말했다. 박 대통령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번 발언이야말로 그 진수라 할 만하다. 역사교육을 정쟁이나 이념대립의 소재로 만든 사람이 과연 누구인가.

박 대통령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의식적으로 거리를 둬왔다. 대통령 의지로 추진되고 있음을 온 나라가 아는데도, 새누리당과 교육부 뒤에 숨어 침묵했다. 국정 최고책임자의 직무유기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박 대통령이 방미를 위한 출국 3시간 전 예정에 없던 수석비서관회의를 소집한 것은 이런 비판론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본다. 그러나 박 대통령 발언에선 논리도 소신도 찾아볼 수 없었다. 논점 이탈, 자가당착, 책임전가로 일관했을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 '역사' 관련 발언들_경향DB


가장 황당한 대목은 국론분열과 국민통합에 대한 언급이다. “불필요한 논란으로 국론분열을 일으킨” 장본인은 박 대통령 자신이다. 지금의 모든 혼란은 박 대통령이 역사교과서 발행 체제를 뜬금없이 국정으로 바꾸겠다고 나서면서 야기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올바른 역사교육’을 강조했는데,역사해석의 다양성을 배제한 채 권력의 독점적 해석만 가르치는 것은 올바른 역사교육이 아니라 전제적 역사교육이다. 박 대통령은 또 “세계의 지평이 날로 넓어지고, 세계가 하나가 되고 있다”며 “대한민국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박 대통령의 ‘결단’으로 북한·방글라데시 등과 함께 국정제를 전면 채택하는 극소수 국가에 들게 되었다. 국제적 추세와 배치되는 퇴행적 조치를 강행하면서 세계화나 자긍심을 말하는 것은 비논리의 극치다. “(국정화를 하지 않으면)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을 수도 있다”는 대목에 이르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이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어떠한 당의(糖衣)로 포장한다 해도 민주주의 퇴행이고 국가적 수치에 불과함을 대통령이 자인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지금 나라와 국민경제가 어렵다”고 염려했다. 이 말이 진심이라면 당장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부터 철회하기 바란다. 국론을 분열시켜 나라와 국민경제를 어렵게 만드는 ‘주범’이 국정화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가 내년 4·13 총선부터 적용할 새 선거구 획정안을 어제까지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기로 돼 있었으나 결국 법정시한을 지키지 못했다. 김대년 획정위원장은 대국민 성명을 내고 “정치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여망을 담아내지 못했다”며 사과했다. 김 위원장은 “획정위가 위원 간 의견 불일치에 따라 합의점을 찾아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며 내년 선거가 차질없이 치러지도록 국회가 정치적 결단을 내려달라고 했다. 선거구 획정위를 사상 처음으로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시킨 의미가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획정위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독립기구로 만든 취지는 정치권의 이해를 떠나 국민의 입장에서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선거구를 정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3개월간 위원회는 이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지역구 수를 현행 246개로 유지한다는 원칙에만 합의했을 뿐 다른 내용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다. 이렇게 된 데는 중앙선관위 사무차장을 겸직하는 위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위원들을 여야가 4명씩 추천한 탓이 크다. 정당 추천 위원들 때문에 획정 논의가 시종 여야 정당의 대리전 양상으로 진행된 것이다. 획정위 활동을 이끌어야 할 중앙선관위도 제 역할을 못했다. 획정위의 거듭된 요청에도 지역구와 비례대표 수를 정하지 못한 여야 정치권의 책임 역시 작지 않다. 특히 새누리당은 비례대표 확대라는 시대적 소명을 처음부터 외면하고 자기 당에 유리한 농촌지역구 지키기에만 골몰했다. 의원 정수를 늘려 양쪽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기회를 처음부터 차단해 버렸다. 획정위가 조정할 여지를 주지 않은 것이다.

사과인사하는김대년선거구획정위원회위원장_경향DB


이번 선거구 획정은 선거구별 인구편차를 2 대 1 이내로 바꾸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지만, 차제에 선거제도를 개혁하라는 여론도 높다. 이제 공은 정치권으로 넘어갔다. 이대로 갈 경우 총선 5개월 전(다음달 13일)까지 선거구 획정안을 확정하도록 한 선거법 규정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현역 의원들만 유리해진다. 여야는 지금부터라도 당리당략을 떠나 오로지 정치개혁을 위해 선거구 획정에 임해야 한다. 농촌지역구 유지도 필요하지만 원칙은 더 중요하다. 소수의견을 반영 못하는 양당 체제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게 비례대표를 확대하는 게 필수다. 필요하다면 의원 정수를 늘려서라도 비례대표 의석수를 더 확보해야 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훌륭한 과학자는 어떤 자질을 가지고 있어야 할까? 다른 데 일절 눈을 돌리지 않고 실험만 잘하면 훌륭한 과학자라고 생각하겠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첫째, 자신이 뭘 하려는지 확실한 목표를 정하고, 둘째, 거기 맞는 인재를 모아 연구팀을 꾸리며, 셋째, 그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게 잘 관리하는 것, 그게 훌륭한 과학자가 할 일이다.

최근 출간된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는 네안데르탈인의 DNA 서열을 분석함으로써 스타 과학자가 된 스반테 페보 박사가 자신의 30년 연구인생을 정리한 책이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페보가 성공적인 연구생활을 한 이유였다. 위에서 언급한 첫째, 둘째야 남들도 웬만큼 할 수 있지만, 페보에겐 남들이 어려워하는 세 번째를 잘하는 비결이 있었다. 팀장인 페보가 일방적으로 팀을 좌지우지하는 대신 납득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팀원들이 언제든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 것.

이렇게 민주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면 장점이 많다. 첫째, 좋은 아이디어는 팀원들이 자유롭게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와중에 나올 수 있다. 페보가 숱한 난관을 뚫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둘째, 연구원이 주인의식을 갖는다. 교수가 하라는 대로 하면 의욕이 생기지 않고 일도 수동적으로 하게 되지만, 자기 의지가 반영된 연구라면 사정이 다르다.

실제로 페보의 연구원들은 며칠씩 집에 안 들어가도 좋다는 태도로 연구에 임했다. 하지만 페보가 보기엔 이 시스템이 답답할 때도 여러 번 있었다. 이 분야 최고 전문가인 자신이 하자는데 남들이 반대를 하면 짜증이 나지 않겠는가? 그래서 페보는 “교수의 말이 곧 법이던 독재 시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씩 했”지만, 민주적 분위기의 장점이 사라질까봐 “다수의 의견에 잠자코 따랐다. 우리 팀의 값진 자산인 생각을 자유롭게 교환하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획기적인 업적을 만들 수 있었다.



그 중요성과 업무량에서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대통령이 하는 일도 과학자와 다를 바 없다. 달성 가능한 국정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에 맞는 사람들을 불러다 일을 나누어 주고, 그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게 대통령의 일이니까.

안타깝게도 현 대통령은 그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 국정목표부터 그랬다. 최우선 과제로 꼽은 ‘창조경제’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 측근은 드물었다. 해당 분야 장관으로 오는 이들은 “창조경제가 뭐냐?”는 질문공세에 진땀을 흘렸다. 목표가 뭔지도 모르는 판에 사람들이 열심히 일할 수는 없는 노릇, ‘안전과 통합의 사회’를 비롯해서 5대 국정목표가 대부분 달성되지 못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목표에 맞는 사람들을 모으려 노력한 것도 아니었다. 현 정부의 인사기준은 오직 ‘대통령과 친하냐?’였고, 친한 사람들을 주로 등용하다보니 역대 어느 정부보다 더 심한 영남 편중 인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은 “인재 위주로 인사를 하다 보니 어떤 때는 이쪽이 많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저쪽이 많기도 하다”며 겸손해했지만, 차라리 “내가 영남에 오래 살아서 그렇다”고 하는 게 훨씬 더 설득력이 있을 듯하다.

하지만 대통령이 가장 못하는 것은 세 번째였다. 페보 박사처럼 민주적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신이 나서 일을 더 잘할 텐데, 대통령은 자신의 말에 토를 달지 못하는 분위기를 조성했고, 혹시라도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 있다면 철저히 응징했다. 물론 뜻이 안 맞는 사람을 내쳐야 할 경우도 없지는 않다. 페보 박사 역시 낡은 기법만 고집하는 과학자와 결별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몇몇 측근들에 대한 대통령의 응징은 그저 어이를 상실한다. 검찰총장은 국정원 댓글 수사를 열심히 하다 쫓겨났고,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도움을 주려다 굴욕을 당했다. 최근 김무성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는 건 그가 내년 총선에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하겠다고 야당과 합의해서다. 안심번호 공천제가 나쁜가? 아니다. 청와대는 민심이 왜곡되느니 국민세금이 들어간다느니 하는 걸 반대이유로 내걸지만, 속내는 이 제도로 인해 대통령 자신이 국회의원 공천권을 마음껏 휘두르지 못하는 게 싫어서다. 이런 분위기에서 국민을 위하려 나설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다들 숨을 죽이는 세상에서 대통령의 친위대인 ‘친박’들의 목소리만 날로 높아진다.

“자기 형제를 죽이기 위해 오랑캐와 야합했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여야 사이뿐 아니라 같은 당 계파 사이에 오가는 말을 듣다 보면, 이들이 정치를 하고 있는 건지 싸움을 하고 있는 건지가 구분이 안 된다. 정치에서 웃음이 사라진 지도, 정치가 시민들을 웃게 만든 지도 오래다. 더 큰 문제는 그다음이다. 뭐든 상대방 탓으로 만들고자 하고 마치 ‘거울 이미지 효과’처럼 모진 말을 반사하듯 주고받는 동안, 정작 중요한 사안을 실체적으로 다루고 해결하려는 노력은 안 해도 되는 일처럼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분명히 해두고 싶다. 우선 싸움이 있는 곳에 정치가 있다고 할 수는 있지만, 싸우기 위해 정치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인간 사회에서 갈등과 다툼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정치의 역할과 기능이 있는 것이지, 거꾸로 정치가 갈등을 더 심화시키고 싸움을 인위적으로 조장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반(反)사회적인 일이다.

우리가 처한 여러가지 상황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 대신, 없는 갈등을 만들고 사소한 갈등을 즐겨 최대화하려는 것을 정치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왜 정치가 필요하겠는가.

정치적이되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데, 사실 이 형용모순이야말로 정치의 본질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치가 안고 있는 근본적 어려움은 갈등적인 요구들 사이, 혹은 해결할 수 없는 윤리적 딜레마 속에서 일하는 데 있다. 그 때문에 정치라는 인간 활동은 수많은 이율배반(antinomy)을 감당해내지 않고는 실천될 수 없다. 상식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규범이나 도덕적 기준을 연장해서 정치를 다루는 것으로는 충분치가 않다. 자신의 영혼이 위태로워질 수 있음을 감수하고서라도 공익을 위해 ‘악마의 무기’를 손에 쥐어야 할 때가 있는 것이 인간의 정치다.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선택을 기꺼이 감수하면서도 자신의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는 것이 정치다. 그렇기에 이런 운명적 조건을 더 넓고 깊게 이해하면서 남다른 정치적 인식을 담은 정치적 말의 힘을 선용하는 일은 중요하고 또 중요하다. 정치 언어의 역할은 변화와 개선을 위한 ‘가능성의 공간’을 확대하는 데 있지, 상대방이 거부감을 갖도록 정형화된 이미지를 부과해 소모적인 갈등을 지속하는 데 있지 않다. 민주주의는 강제나 억압이 아닌 설득의 힘, 말의 힘을 통해 실현되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당연히 정치 언어가 좋지 않다면 그런 공동체에 가까이 가기는 어렵다. 변화와 개선을 이끌 적절한 말을 쓰는 일이 정치가의 의무이자 규범이 되었으면 한다. 공동체를 사람 살 만한 풍요로운 곳으로 만드는 데 있어서 으뜸은 생산도 성장도 기술도 아닌 좋은 말의 효과에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지 못하면 정치의 긍정적 기능은 기대할 수 없다.


여야 원내대표_경향DB


어떤 사안이든 절대적으로 옳은 결론을 갖기는 어렵다. 당연히 다양한 요구와 이견 사이에서 말하고 행동해야 할 때가 많다. 상대의 관점에서도 생각할 줄 알아야 하고, 결정에 따라서 갈리게 될 피해자와 수혜자의 관점도 균형 있게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당파적인 입장을 말하더라도 최대한 보편적이고 공정할 때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그저 자신들의 계파와 파당적 입장만 고집스럽게 내세우며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을 ‘정치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라고 할 수 있는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제목의 책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돌이켜 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됐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돼 있던 때였다.” 상황을 개선하려는 실체적 목적은 빈곤한데, 뭔가 하는 척하는 구호나 상투적인 멋진 말만 외쳐서 일이 된다면 뭐가 문제겠는가. 그렇지 않고 또 그럴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그로부터 변화를 모색하고자 한다면, 정치적이지 않을 수가 있을까?

흑인 여성이라는 정체성 속의 이중적 억압성을 날카롭게 문제 삼는 작품들로 퓰리처상과 노벨 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토니 모리슨은 덧붙여, “문학은 정치적인 동시에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말했는데, 필자 생각으로는 문학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정치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한다. 가장 위험하고 갈등적이며 이율배반적인 조건에서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데 그곳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는 사람의 말과 행동이 아름답지 않을 수가 있을까? 제대로 정치적이어야 실체적 변화의 가능성을 만들 수 있고, 그럴 때 정치는 희망적이고 또 아름다울 수 있다!


박상훈 | 정치발전소 학교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정부와 여당은 2013년 10월경부터 ‘균형 잡힌 올바른 교과서’를 내세우며 국정화를 언급했다. 그렇다고 2년이 지난 지금까지 무엇이 균형 잡힌 교과서인지 제시한 적이 없다. 그런데 2015년 개정 교육과정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대신 ‘대한민국 수립’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건국’사관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즐겨 쓰는 표현을 빌린 것이다. 정부에서 법제화한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꿀 수 없으니 꼼수를 부린 결과다.

건국사관에 따른다면 임시정부 중심의 민족운동사는 지금처럼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사회주의운동 등 진보적 항일운동 역시 설명할 필요가 없다. 더구나 친일 행위자의 상당수는 역사복권이 가능해진다. 결국 정의는 없고, 시대에 맞추어 살아가는 성실한 기회주의자를 본받도록 학생에게 권장하는 꼴이다.

사실의 측면에서 보면 ‘정부 수립’이 맞다. 1948년 8월15일 열린 기념식의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 축하식’이었다. 정부가 발행한 관보에는 임시정부의 연호인 ‘대한민국’을 받아들여 1919년에서 30년이 지났으므로 ‘대한민국 30년’으로 표기되었다. 더구나 사람들은 북한지역과의 통일을 기원하며 ‘정부 수립’이라 표현함으로써 스스로 미완의 민족국가임을 인정하였다. 사실과 민족적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건국사관을 균형 잡힌 역사인식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유은혜 의원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비판하고 있다_경향DB

정부와 여당은 9월 들어 국정화를 반대하는 여론이 거세지자 균형 잡힌 역사교과서라는 명분을 뒤로 감추었다. 대신 지난 10월2일부터 ‘만능무기’인 이념공세를 시작했다. 현행 교과서가 반(反)대한민국사관과 좌파적 세계관에 입각해 있다며.

이념공세의 선봉대는 교육부였다. 현행 교과서 집필진이 2013년의 수정 명령을 인정하지 않고 대법원에 상고하자, 지난 2일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사회적 논란을 지속하려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3심까지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조차 무시하는 권위적인 발언을 정부 고위관료가 서슴없이 내뱉은 것이다.

그러면서 교육부는 현행본 가운데 2종의 교과서가 북한책을 ‘발췌’했다는 내용이 들어간 자료를 여당에 제공했다. 신문에 보도된 내용을 보니 딱 두 단어가 떠올랐다. 무지와 후안무치(厚顔無恥).

교과서 정책을 주무르는 교육부가 제공한 자료이니 나름 설득력 있는 분석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교과서 구성의 기본인 본문과 자료, 보조설명, 그리고 사진까지의 연계성을 고려한 분석은 전혀 없었다. 1950년대 한국의 농업경제에 대해서는 이미 1970년대에 여러 편의 논문이 있음에도 최소한의 연구동향조차 고려하지 않았다. 사실과 자료, 그리고 분석을 제대로 구분하지도 못하면서, 기술하면 무조건 북한책을 발췌한 것이란다. 역사교과서를 처음 분석하는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초보적인 오류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2013년 현행 교과서에 대한 검정 합격을 최종 발표해 놓고, 재검정에서 이때까지 전혀 지적하지 못한 사항이 829건이나 나왔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렇다고 당시 검정을 담당한 공무원이 문책을 받거나 사과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 오히려 승승장구했다는 말은 들었다. 더구나 없는 내용도 만들어 냈다. 교과서에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이란 말이 없다(천재교육). 주체사상을 정당화한 문장도 없다(비상교육). 북한의 남침을 애매하게 하는 개인의 증언도 없다(미래엔). 도대체 무엇을 보고 분석했는가.

금성과 위의 세 출판사 교과서의 점유율은 86%인 반면, 교학사 교과서는 0.2%에 불과하다. 교학사 교과서가 ‘교두보’를 확보했다면, 과연 정부 여당이 국정화를 밀어붙이려 했을까. 한국사 교과서의 검정화는 1997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추진했다. 국가의 교과서 독점은 시대착오적이고 일부 후진적인 독재국가에서나 국정제를 한다는 명분이었다. 지금 여당의 대표가 의원일 때이다.


신주백 | 연세대 HK연구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새누리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이 2년 전 한국사 교과서 관련 보고서에서 “국정제는 하나의 관점만을 강요할 가능성이 높아 사실상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맞지 않다”며 국정교과서에 부정적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보고서는 “국정제를 채택하는 나라는 권위주의 내지 독재국가이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자유발행제나 인정제가 일반적”이라며 상설 독립기구 설치 등 검인정제 강화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새누리당이 최근 ‘국론통일’을 내세워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주장하는 것과 완전히 배치된다.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여의도연구원이 2013년 11월 펴낸 정책리포트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과 해법’을 보면,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문제점이 조목조목 열거돼 있다. 우선, 교과서 공급을 (정부가) 독점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맞지 않고 경쟁을 통한 교과서의 질적 수준 제고를 어렵게 한다고 밝혔다. 또한 다양성·창의성·유연성이 높이 평가되는 시대와 양립하기 어려우며, 특정 정권의 치적을 미화하는 등 역사교육의 국가주의적 편향이 심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과정 적용의 획일화를 초래하고, 과거사 관련 상대국의 삭제 요청이 있을 경우 대처가 어렵다는 점도 들었다. “국정제보다 검인정제, 검인정제보다 자유발행제를 채택하는 것이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헌법 이념을 고양할 것”이라고 밝힌 헌법재판소 결정문까지 인용했다. 보고서는 검정제로 발행한 고교 교과서 ‘한국근현대사’가 국정 교과서 ‘국사’보다 질적 수준이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음을 소개하기도 했다. “현행 역사교과서는 배우면 배울수록 패배감에 사로잡힌다”고 말해온 김무성 대표가 뭐라 답할지 궁금하다.


새누리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_경향DB


새누리당이 2년 사이 돌변한 까닭을 짐작하기야 어렵지 않다. 보고서 발간 석 달 뒤인 2014년 2월, 박근혜 대통령은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에 사실 오류와 이념적 편향성 논란이 있다”며 “사실에 근거한 균형잡힌 역사교과서 개발 등 개선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결국 새누리당은 대통령의 한마디에 자체 싱크탱크 보고서를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국정교과서 전환을 위한 여론전에 나선 것이다. ‘거수기 여당’이니 ‘청와대 여의도출장소’니 하는 비아냥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터이다.

지금 새누리당은 역사교과서 논쟁이 지지층 결집으로 이어져 총선에 유리할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무엇이든 지나치면 독이 된다. 일관된 정치철학 없이 대통령 심기에 따라 갈지자 행보를 하는 정당은 신뢰받기 어렵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검찰이 그제 전역한 최윤희 전 합참의장에 대해 해상 작전헬기 와일드캣 선정 비리 의혹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해 수사 중이라고 한다.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은 최근 최 전 의장의 부인 김모씨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은 데 이어 김씨의 계좌와 연결된 최 전 의장 주변 인물 10여명의 자금 흐름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됐다. 비리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검찰이 괜히 수사에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역 최고위직인 합참의장이 방산비리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오른 것은 창군 이래 처음 있는 일로, 군 수뇌부까지 방산비리에서 자유롭지 않다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와일드캣은 천안함 피격 후 고성능 대잠작전헬기가 필요하다고 해서 1조3000억원을 들여 도입하기로 한 무기다. 그러나 영국·이탈리아 합작사인 아구스타웨스트랜드(AW)의 기종으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온갖 비리 의혹이 제기됐다. 예컨대 실물 평가 결과를 확보하지 못하자 육군의 훈련용 헬기에 장비 대신 모래주머니를 채워 시험 비행한 뒤 보고서에 “평가 결과 모든 항목을 충족했다”고 적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식으로 시험평가서가 조작된 항목이 133개 중 87개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일이 과연 실무자들 선에서만 이뤄졌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검찰은 평가서 조작 혐의로 구속된 전 해군 전력기획참모부장(소장)이 당시 참모총장이던 최 전 의장의 지시로 보고서가 작성됐다는 진술을 확보, 이를 확인하는 데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윤희 합참의장이 22일 국회 국방위원회의 합동참모본부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위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_김영민 기자


최 전 의장은 해군으로는 처음으로 합참의장에 오른 ‘해군의 자랑’이다. 하지만 그가 최고위직에 있는 동안 해군은 방산비리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그의 후임을 포함해 전직 해군참모총장 둘이나 방산비리로 구속됐다. 지난해 11월 합수단이 출범한 이래 지난 7월 중간수사 발표 때까지 적발된 방산비리 규모는 줄잡아 1조원에 이른다. 전·현직 장성 10명을 포함해 63명이 기소됐다. 비리 액수와 연루자 모두 해군이 압도적으로 많다.

정부는 다른 예산을 다 깎으면서도 방위력 개선비 6.1% 증액 등 내년 국방예산은 올렸다. 하지만 군이 안 쓰고 폐기하는 무기들이 수두룩한 것으로 국감에서 지적됐다. 아무리 안보가 중요하다지만 이런 비리를 저지르면서 무기를 더 사야 한다고 요구하는 게 부끄럽지 않은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정치판이 가관이다. 당 대표를 둘러싼 긴장과 갈등이 야당에서 좀 조용해지나 싶더니 곧바로 여당이 격랑에 휩싸였다. 잠시 소강상태인 것 같은데 공천 과정에서 분란이 계속되리라 짐작된다. 야당의 문재인 대표는 재·보궐선거 패배 후 혁신위 구성과 혁신안 통과, 탈당과 분당의 ‘협박’ 속에서 재신임 정국을 거치며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아직 수렁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형국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리를 잡는 모양새다. 여당의 김무성 대표는 추석에 부산에서 문 대표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합의했다가 청와대와 친박계에게 포화를 맞은 후 다시 고개를 숙였다.

세상이 다 알듯이 두 대표를 흔드는 까닭이 ‘공천권’에 있고 두 대표를 흔드는 수준이 도를 넘은 듯해 두고 보기 불편하다. 공천권이라는 먹이를 두고 흉측한 이빨을 드러낸 채 덤비는 탐욕의 마당에는 부끄러움 따윈 없다. 자신들이 선출한 대표를 돌아서서 흔들고 위협하는 양당의 몰염치가 상상을 넘는다. 이 몰염치에 여론의 야만이 보태져서 우리 정치의 앞날이 혼미하다. 폭주하는 미디어가 생산하는 여론은 양당 대표들이 과연 이 위기에서 살아날 것인가 죽을 것인가라는 드라마적 상황에만 관심이 있다. 우리 정치의 발전이나 미래는 애초에 관심사가 아니다. 주류와 비주류가 펼치는 정치공학적 대결을 관전하며 계파의 득실을 셈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것이 민주주의라면 비정하고 몰염치하며 어리석기조차 한 ‘관객의 민주주의’일 뿐이다. 몰염치한 당내 의원들과 냉담한 관객민주주의의 ‘백미’는 당 대표의 리더십을 비난하고 리더십 부재의 정치를 한탄하기에 이른다. 합리적 정치라면 리더십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좋은 리더십을 따르고자 하는 ‘팔로십’이다. 이끄는 자와 따르는 자 사이에 공유된 도덕적 규범과 윤리가 필요한 것이다.


박대통령과여야대표_연합뉴스


몰염치한 정치와 야만적 여론에 도덕이 없고 윤리가 없고 규범이 사라졌다. 리더십의 부재보다 더 심각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리더십의 부재가 정치의 ‘우물’ 하나쯤 마른 것이라면, 도덕과 윤리와 규범이 사라진 정치판은 정치의 ‘바다’가 통째로 오염된 것이다. 여당의 경우, 이 오염의 참을 수 없는 징후는 청와대가 입법부 의원들을 대통령 특보로 삼고 당 대표와 선거제도 개혁에 노골적으로 훈수를 두는 불법을 천연덕스럽게 자행하는가 하면, 친박계라는 의원들이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당 대표를 면전에 두고 ‘까대는’ 철면피함을 드러내는 데서 극치를 보인다. 야당의 경우, 스스로 다른 배를 타 사실상 재·보궐선거 실패의 원인을 만든 사람들이 갓 선출된 당 대표가 다른 배를 타도록 만들었다고 우기며 모든 책임을 대표에게 돌리는 파렴치가 민망하기 짝이 없다. 또 스스로가 혁신의 대상인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당 분열을 꾀하는 것을 세상이 다 아는 데도 입만 열면 ‘통합’을 외쳐대고, 당 대표와 주류 측에 분열의 책임을 묻는 적반하장과 후안무치가 도를 넘어섰다.

여와 야의 이런 정치행태에는 최소한 공유해야 할 윤리와 양심을 찾기 어렵다. 오로지 권력을 향한 뻔뻔한 욕망만이 출렁이고 있다. 정상적인 도덕적 질서로부터 이탈하는 비정상성을 사회학에서는 ‘아노미’라고 표현한다. 2015년 한국의 정치판에 아노미적 병리가 깊다. 정치가 막가고 있다.

잘못된 질서를 바꾸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아노미적 병리의 정치는 새로운 도덕으로 무장된 사람들이 새로운 규범의 질서를 만들어야 치유된다. 자질과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하는 정치를 보고 싶다.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인에게 쥐어진 가장 특별한 수단은 ‘폭력적 강제력’이다. 정치를 하는 것은 바로 이 폭력에 내장된 ‘악마적 힘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인에게는 특별한 자질이 요구된다고 했다. 막스 베버는 그 자질로 대의를 추구하는 ‘열정’과 열정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책임의식’, 책임의식을 단련하는 ‘균형 감각’이라는 세 요소를 든다. 이 세 가지 자질을 갖춘 사람만이 진정한 정치적 ‘개성’을 발휘할 수 있고, 단순히 ‘악마적 힘’에만 마음이 뺏긴 ‘권력정치가’와 구분되는 진정한 정치인이다.

새로운 비전과 정치질서를 지향하는 양당의 개혁세력이 부디 공천혁신에 성공해서 ‘정상적 정치인’을 많이 충원하기를 빈다. 병리적 아노미의 정치를 새로운 도덕적 질서로 고치는 유일한 방법이다. 무엇보다 유권자가 죽은 ‘관객’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매의 눈으로 현실을 꿰뚫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조대엽 | 고려대 교수·사회학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2015년 국정감사가 8일 막을 내렸다. 국정감사 평가는 매년 비슷하게 나온다. 올해도 ‘맹탕’ 수준이다. 그래도 한번 주목할 필요는 있다. 나름 세태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제에서 분석하자면 재벌로 대표되는 한국 사회의 가진 자들, 소위 ‘그분’들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말 벌어진 ‘땅콩 회항’ 사건은 그분들에 대한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롯데그룹 창업자인 신격호 총괄회장과 아들들 사이에서 벌어진 상속 분쟁은 그분들의 볼썽사나운 민낯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여기에 그분들이 친 사고를 영상화한 영화 <베테랑>까지 가세하면서 올해는 어느 때보다 한층 재벌개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듯 일부 국회의원들은 국정감사장에서 그분들의 문제를 적극 제기했다. 덕분에 영화 <베테랑>에서도 다뤄지지 않았던 그분들만의 살아가는 비법이 일부나마 공개됐다. 잠시 그분들의 숨겨졌던 일상사를 엿보자.

그분들은 쉽게 돈을 벌고 있었다. 변재일 의원이 입수한 영등포 민자역사 임대매장 계약현황을 보면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일가가 그룹 계열사 식당·프랜차이즈 매장 6곳을 운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수료도 일반 매장보다 훨씬 낮았다. 땅 짚고 헤엄치기 수준이다.



그분들은 아무리 비싼 차를 타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소유자 명단까지 공개되지 않아 아쉬움은 남지만 지난해 팔린 5억900만원짜리 롤스로이스 팬텀 5대가 모두 업무용으로 구매됐다. 2억원 이상 고가 수입차의 97.4%도 업무용이다. 이 차량 중 일부는 10대 자녀들의 통학용이나 20~30대 자녀들이 ‘폼’을 잡는 데 사용된다. 그러나 업무용 차량은 구입비는 물론 자동차세·보험료 등을 모두 회사에서 내준다. 이렇게 제공하는 혜택으로 줄어드는 세금은 서민들이 대신 분담해야 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사돈이 운영하는 업체는 원전 부품 비리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났지만 제재를 받기는커녕 추가 납품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무성 대표의 사위는 마약 투약에도 불구하고 불구속된 데다 은폐·축소 수사 의혹까지 제기된 상황이다.


압권은 ‘사내유보금’이다. 추미애 의원이 국회예산정책처와 분석한 30대 그룹의 사내유보금은 지난해 500조2000억원으로 5년 사이에 170조원이 늘어났다. 이명박 정부의 법인세 인하 정책을 재벌들이 요령껏 ‘활용’한 셈이다. 사내유보금의 급격한 증가가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점도 확인됐다.

사내유보금 대비 실물투자액은 2010년 18.9%였지만 지난해에는 12.9%에 그쳤다. 반면 재벌 총수들이 챙긴 배당금은 1조6784억원이다. 1인당 평균 560억원이다. 그분들만의 유별난 생존법은 올해도 어김없이 폭로됐지만 정치권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국정감사 증인 출석 현장은 재벌개혁에 무기력한 우리 정치권의 수준을 잘 드러내줬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신동빈 회장에게 “한국과 일본이 축구시합을 하면 한국을 응원하느냐” “우리 롯데는 국민 곁에 항상 있었던 기업” 등 듣기조차 민망한 질문만 했다. 덕분에 10대 그룹 총수 중 국정감사 증인으로 처음 출석한 신동빈 회장에 대해 ‘득이 더 컸다’ ‘말은 어눌했지만 할 말은 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그분들은 여전히 ‘땅 짚고 헤엄치기’로 쉽게 부를 축적하고, 그럴수록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른다. 하지만 정치권은 그분들께 친절까지 베푸는 게 현실이다. 내년 4월이면 정치권은 또 유권자들에게 손을 벌릴 것이다. 한 표를 달라고. 그리고 당선되면 뒷전에서 그분들과 축배를 나눌 것이 분명하다. 이젠 국민들이 직접 <베테랑>의 주인공이 되어 그분들과 한판 진검승부를 벌여야 할 때다.


한대광 | 비즈n라이프팀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청와대가 그제 민경욱 대변인과 박종준 경호실 차장의 사의 표명을 발표하고 “두 사람 외에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거취를 표명할 참모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 출마가 거론돼온 안종범 경제수석과 몇몇 비서관들도 총선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자신의 참모를 내년 총선에 공천하기 위해 새누리당 공천 룰에 개입하고 있다고 의심하니 총선에 나갈 참모들을 조기에 내보낸다는 뜻이다. 다른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은 총선이든 어떤 선거든 중립적 입장에 변함이 없다”면서 박 대통령은 오로지 국정을 챙기는 데만 관심이 있다고 전했다. 한마디로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의 공천 룰 논란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이런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 구차한 변명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공개 비난함으로써 사실상 무산시킨 것은 박 대통령의 뜻을 대변한 청와대 고위관계자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대통령이 공천 개입과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시민의 기억력을 너무 무시하는 것이다. 서청원 최고위원 등 당내 친박근혜계가 공천 문제를 두고 강도 높게 김 대표를 압박한 것 역시 청와대와 교감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온갖 방법으로 당 대표를 압박해놓고 이제 와서 중립 운운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믿기 어려운 거짓말이다.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이 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회의에 불참한 김무성 대표의 빈자리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_경향DB



설사 박 대통령이 공천에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 해도 그제 청와대 발표만으로는 그 의지를 확인하기 어렵다. 청와대 대변인은 두 사람의 총선출마 사실을 공개 발표함으로써 박 대통령이 마치 이들을 전략공천이라도 한 듯한 태도를 드러냈다. 대통령의 공천 불개입 의지가 진심인지 여전히 의심이 가시지 않는다. 정말 불개입 의사가 있다면, 공천문제를 공천제도 마련을 위한 당내 특별기구에 일임하고 당내 친박계를 동원한 김 대표 압박을 중단해야 한다. 물론 더 분명히 해두는 방법도 있다. 박 대통령이 공천은 당에 맡기고 자신은 개입하지 않겠다고 직접 천명하는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냐? 대한민국 수립이냐? 종래의 역사교육과정에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 명기했다. 그런데 지난달 박근혜 정부에서 내놓은 2015 개정 역사교육과정에서는 ‘대한민국 수립’이라 바꿨다. 뉴라이트의 ‘건국’사관을 반영했다는 논란이 일자 교육부는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으로 쓰는데 우리는 정부 수립이라고 쓰는 것이 스스로를 격하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그동안 역사 교과서에서도 건국, 정부 수립 등을 혼재해 사용했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색깔론에 기반을 둔 지적과 종전 교과서 혼용 사례에 근거한 의견에 따라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썼다는 얘기다. 역사논쟁에서 가장 공정한 잣대는 지적과 의견이 아니라 역사적 진실이다. 이번 역사교육과정이 학문이 아니라 이념과 정쟁에 기반을 둬 만들어졌고 교육부 역시 편향된 한편에 확실히 서 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대한민국 수립’ 논란을 보면서 두 가지 기억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우선, 2008년에 한껏 달아올랐던 건국절 논쟁의 불을 끈 것은 역사학계가 내놓은 한 장의 성명서였다. 1949년에 이승만 정부가 8월15일을 독립기념일로 명명하자고 제안했으나, 제헌국회가 해방과 정부 수립을 동시에 경축하고자 광복절로 바꿨다는 역사적 진실을 담은 성명서였다. 명명백백해진 진실을 아직도 모르거나 혹은 모른 척하며 건국절 주장을 하는 건 정치 행위이지 학문과는 무관하다. 또 하나, 모든 역사 교과서에 실려 있는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식 사진이 떠올랐다. 사진 속 기념식장에 내걸린 플래카드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란 글자가 또렷하게 쓰여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대한민국 수립 중 어느 것이 역사적 진실일까?


광복군 서명문이 담긴 태극기_경향DB



1948년 8월15일, 그날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자. 1948년 8월16일자 경향신문은 8월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천하에 선포한 거룩한 날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 30년 8월15일’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여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경축식,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식, 대한민국 정부 수립 축하식 등으로 불린 이 날의 기념식에서는 ‘대한민국정부수립가’가 제창되기도 했다. 왜 이날을 대한민국 수립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날로 기념하려고 했을까? 1948년 8월16일자 동아일보는 ‘이 역사적 순간을 맞아 최단기일 내에 분단된 강토를 통일하고 완전한 자주독립국가로서 세계 우방과 어깨를 같이하겠다는 맹세를 공고히 하자’는 각오를 다졌다. 같은 날 조선일보 역시 ‘통일을 못 보았다 하더라도 정부 수립을 세계에 선포한 날로 기념하자’고 쓰고 있다. 통일국가 수립을 기약하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경축하던 당시의 시각과 정서는 북한 정권 수립 기사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1948년 9월11일자 조선일보에서는 9월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초대 정부가 정식 수립되었다는 소식을 짤막하게 전하고 있다. 같은 날 경향신문에 따르면 북한에서도 김일성 내각의 출범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구성’이라 불렀다. 이렇게 남과 북에 각각 정부가 수립되었다고 보는 것이 역사적 상식이고 또한 진실이었던 것이다. 역사적 진실에 준거한다면 남한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되었다고 가르쳐야 할 것이다. 1948년 8월15일의 기억을 좇으면서 해방정국을 살아간 많은 사람들이 남북에 각각 정부가 수립되어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한 현실을 이념을 떠나 못내 안타까워했다는 또 하나의 숙연한 진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번 ‘대한민국 수립’ 논란에서 알 수 있듯이 10여년의 역사전쟁을 거치며 정쟁적 이념만이 목청을 높일 뿐, 진실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역사적 진실이고 대한민국 수립은 이념적 해석이다. 이념적 해석이 갖는 폭력성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역사적 진실’에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며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북한을 추종한다고 매도하는 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교육부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이제는 자신이 검정 통과시킨 교과서에 ‘종북좌파’ 딱지까지 붙이며 학문과 진실에 바탕을 둬야 할 역사교육을 정쟁의 광기 속으로 내몰고 있다. 이념이 실증과 진실마저 압도하는 막장의 시대, 끝이 안 보여 더 불행하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새누리당의 1·2인자인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이 총선 공천규칙 문제를 두고 공개 석상에서 정면충돌했다. 김 대표는 비박근혜계 핵심이고 서 최고위원은 친박근혜계의 ‘맏형’으로 불린다. 집권당 양대 계파의 수장이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흙탕 싸움을 벌인 격이다. ‘밥그릇’ 앞에서 체통도 염치도 모두 내팽개친 모양이다.

사태의 발단은 김 대표가 전략공천을 변용한 ‘우선공천제’를 수용할 의사를 밝혔다는 한 언론의 보도였다. 서 최고위원은 어제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표가 떡 주무르듯 당헌·당규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표현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나는 참고 있다. 이제는 용서하지 않겠다”라고도 했다. 김 대표가 “언론사에서 보도된 것까지 (내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라고 하자 서 대표는 다시 “김 대표가 언론플레이를 너무 자주 한다”고 맞받았다고 한다. 새누리당 최고위원회는 어제 총선 공천방식을 결정하는 특별기구를 구성할 예정이었으나 계파 간 이해가 충돌하면서 의결에 실패했다. 입만 열면 민생을 외치던 여당이 시민의 삶과 무관한 공천권을 놓고 ‘사생결단’식으로 싸우는 모습은 낯부끄럽기 짝이 없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선거구 획정 문제에 대한 새누리당의 태도다. 선거구 획정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가장 시급히 풀어야 할 현안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법정 시한이 눈앞에 다가왔는데도, 비례대표를 줄여 농어촌 지역구를 살리자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인 ‘표의 등가성’을 강조한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도 외면한 채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유리한지 불리한지만 앞세우는 형국이다. 선거구 획정 작업이 마냥 미뤄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권자에게 돌아가게 된다. 무책임하고 오만한 여당이 아닐 수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내분 사태로 시끄럽던 지난달, 새누리당에선 이런 비판이 나왔다. “당내 분란도 조정·통합 못하는 야당이 어떻게 사회의 갈등과 이해를 조정하고 대안을 내놓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야당에는 국민과 민생은 안중에도 없는 것인지 개탄스러울 따름이다.”(황진하 사무총장) 일리 있는 지적이다. 그런데 정부와 함께 국정을 책임지는 여당의 밥그릇 다툼은 야당의 내분보다 훨씬 더 나쁘다. 새누리당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갈수록 차가워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추석 연휴에 여야 대표가 부산에서 극비리에 만나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합의했다. 이를 두고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필자는 안심번호를 활용한 국민공천 방안에 찬성한다. 안심번호제는 기본적으로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민주주의 원리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동안 우리나라 정치는 소위 명망가 중심의 계파정치로 이뤄져왔다. 독재자와 이에 반대하는 또 다른 유력 정치인이 공천권을 거머쥐고 정당을 사당화했다. 그 부작용으로 생성된 것이 바로 계파정치이다. 현대적 민주주의의 근본이 되어야 할 당내 민주주의가 자리잡을 틈이 없었다. 그래서 총선 때마다 낙하산 공천이 판을 쳤고 그 반작용으로 공천권을 쥔 권력자에 대한 정치적 굴종이 이어져왔다. 심지어는 돈을 주고 공천권을 사고판 경우도 허다하게 발각되지 않았던가.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정신이다. 민주주의의 근본인 공정한 경쟁은 당내 공천 단계에서부터 보장되어야 한다. 첫술에 배가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국민공천제가 마련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그럴 수 없는 것이 여야 모두 계파와 지역주의로 얽혀 있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조금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안심번호제는 완전한 국민공천제를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으로 용인될 수 있다고 본다.

안심번호제를 반대하는 세력이 내세우는 이유를 보면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우선 청와대가 반대하는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 조직선거가 우려된다고 한다. 그러나 인적사항이 드러나 있는 소수의 권리당원들과 인적사항이 숨겨진 다수의 일반시민들을 상대로 하는 경선 중에서 어느 방식이 더 조직선거를 예방할 수 있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둘째, 역선택을 예방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은 공직선거처럼 당내 경선도 선거관리위원회가 맡아서 관리한다면 예방할 수 있다.
셋째, 세금낭비라고 한다. 그러나 현대 민주국가는 선거공영제를 실시하고 있다. 당내 경선도 공직선거 절차의 일부라는 점에서 국고 부담이 가능한 일이다. 민주주의를 하자면 비용이 들게 돼있다.

한편 기존의 선거방식에 비추어 보면 안심번호제는 오히려 비용 절감을 기할 수 있다. 끝으로 정당정치를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여야 모두 종이당원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 정당 현실에서는 타당하지 못하다. 이는 정당원들의 경선 참여비율을 확인해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김무성(왼쪽) 새누리당 대표가 28일 국회에서 열린 광주유니버시아드대회 지원단 발대식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오른쪽 )대표에게 대회 배지를 달아 주고 있다._권호욱 선임기자


이렇게 진실을 왜곡하면서 안심번호제를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지 않고 계속 장악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 대표주자로 청와대가 나섰다. 청와대가 안심번호제를 반대하는 이유는 뻔하다. 임기 중 레임덕을 방지하기 위해 정권의 호위무사 노릇을 해줄 충성파 국회의원들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필자가 직접 체험한 기존의 공천방식에 비추어 예상되는 안심번호제의 장점을 살펴본다면 이렇다. 첫째, 정당의 하부조직을 장악한 기득권자들에 의한 민심의 왜곡을 막을 수 있다. 둘째, 경선투표장에 권리당원을 동원하느라 돈을 안 써도 된다.

셋째, 경선 때마다 권리당원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고 설쳐대는 선거 브로커들의 발호를 막을 수 있다. 넷째, 공천권을 쥐고 있는 권력자에게 줄을 서는 계파정치를 막을 수 있다. 한마디로 실력 있고 깨끗한 정치신인의 등장을 수월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안심번호제의 문제점을 과장하며 반대하는 세력은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시대정신을 외면하는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민주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동선을 향해 백 보를 나아갈 수 없다고 일 보라도 전진할 기회를 외면할 것인가? 안심번호제가 민주주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지 여부가 찬반의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김하중 |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여권이 여당 대표의 공천룰 합의를 두고 벌집 쑤신 듯 어수선하다. 청와대 직할부대를 자임하는 친박계에선 “오랑캐(야당)와 야합” “쿠데타” 등 날 선 언어들이 난무한다. 청와대까지 가세해 한바탕 난리법석이다. 친박계 표현대로라면 바야흐로 ‘골육상잔’의 드라마가 펼쳐질 참이다.

김무성 대표의 ‘부산 합의’를 두고 ‘위화도 회군’이란 말이 나올 정도니 권력 주류 중 주류들의 이런 요동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다만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준다’는, 적어도 표면적으로 외면하기 어려운 명분에 이처럼 소동 외엔 마땅한 방도가 없는 권력 주류의 왜소함이 씁쓸하다.

모든 정치적 소동엔 ‘복선’이 숨어있기 마련이다. 추석을 앞둔 여권의 가장 심각한 화두는 ‘반기문(潘基文)’이었다. 돌연 재부상한 ‘반기문 대망론’은 여권 차기후보 1등인 김무성 대표의 곤경과 맞물린 것이었다. ‘마약 사위’ 건이 불거지고, 친박계가 ‘김무성 불가론’을 드디어 꺼낸 때였다. 태풍의 전조마냥, 여권이 그냥 무탈하게 지나가진 않을 것이라 짐작은 했다.

이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은 3박4일 미국 뉴욕 출장 내내 7차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 친분(?)을 과시했다. 유엔이란 국제외교 무대에 그 모습이 어떻게 비쳤는지는 관심 밖이지만, 적어도 의도대로 국내엔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반기문 대망론’은 그렇게 이번 추석 어느 때보다 큰 보름달만큼 커지고 커졌다. 어느새 반 총장은 ‘외교대통령’이란 생소한 개념으로 포장되고, 내치(內治)는 친박계가 지원하는 소위 ‘반 대통령, 최경환 총리’설로까지 발전했다. 이대로라면 다음 대한민국호(號)를 책임질 권력은 ‘반(半·절반) 권력’인 셈이다.



어느 정권이나 정권 재창출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권력 영속’에 대한 욕망 때문이다. 어느 팔레스타인 시인은 희망이 “치유할 수 없는 질병”이라 했지만, 권력에 ‘정권 재창출’은 ‘실현할 수 없는 희망’일 것이다. 진시황이 ‘영생’을 좇았듯 말이다.

열린우리당이 17대 총선 압승을 거둔 지 나흘 만인 2004년 4월19일, 노무현 대통령은 김근태 원내대표를 은밀히 청와대로 불렀다. 모처럼 온기가 돈 그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김 대표는 나와 같은 중도진보고, 김혁규 전 경남지사나 정동영 의장은 중도보수가 아니냐”며 ‘김혁규 총리’ 카드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 김 원내대표는 “그러면 나를 도와주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지만, 노 대통령은 묵묵부답이었다. 노 대통령의 차기 구상이 시작됐다고 알려진(2006년 1월8일 윤태영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 그 시점이다.    

2009년 여름 무렵 사석에서 만난 이명박 정권 한 핵심 인사는 불쑥 ‘젊은 총리’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김태호 경남지사가 어떠냐”고 했다. 정확히 김 전 지사가 총리 후보로 지명되기 1년 전이다. 그는 말미에 “박근혜 (전) 대표에 맞설 만한 카드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하지만 성공한 예는 극히 드물다. 김대중 정부에 이은 노무현 정부 탄생이 그나마 가까운 사례겠지만, 민주당 분당을 생각하면 그마저도 성공으로 보긴 어렵다. 정권들마다 인물·세력·정책 등 갖가지 방편을 동원해 실험해보지만 결과는 모두 허사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 모든 실패를 보며 ‘확실한 자기 사람’으로 차기 관리를 택한 듯하다. 그것도 대권후보 한 명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어떤 ‘세력’의 도모를 꿈꾸는 듯하다. 왕조적 열정으로 무장한 ‘TK(대구·경북)’라는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 세력이다. 정권은 끝나도 ‘TK의 군주’로 여권의 정치적 상왕은 가능할지 모른다.

권력 영속의 욕망은 그러나 논리적으로도 백일몽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정권 재창출의 평가는 국민의 몫이다. 정치권이 어떤 무대를 만들어도 마지막은 국민 평가란 현실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국민의 이목을 모두 가리지 않는 한 성공하기 어렵다.

둘째, 어찌어찌해 잠시 국민 이목을 가리는 데 성공해도, 새로운 권력은 늘 과거 권력을 부인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정치권 유행어는 ‘배신’이다. 배신을 안 당하려 기를 쓸수록 배신 확률이 높다는 암시만 줄 뿐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무서운 것은 시간이다. 바로 ‘망각’이다. 이게 결정적이다. 지나간 권력은 점점 관심에서 멀어지기 마련이다. ‘망각’의 늪을 피하려 기술을 부릴 수 있지만, 그럴수록 관심보다는 짜증과 실망만 만들어내기 쉽다. 결국 그건 배신과 망각, 몰락을 더욱 앞당기는 길이다.

청와대발 정권 재창출 ‘작전’은 오히려 ‘망조’의 신호탄이기 십상이다. 박 대통령의 세력 만들기가 ‘못난 자식(친박)들 국회 취업시키기’ 같은 꼴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김광호 정치부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단 한 명이었다. 정치를 주제영역으로 선택한 학생이 전체 수강생 70명 중 딱 한 명이었다. 학생들 스스로 모둠을 구성해 우리가 사는 세계의 문제를 직접 발굴하고 해결책을 모색해 제시하는 시민활동 수업인데도 그러했다. 현 시기 대학생들의 정치에 대한 거부감이 얼마나 큰지를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어디 대학생들뿐이겠는가. 한국에서 정치에 호의적인 시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정치학을 전공한 필자마저도 정치 관련 뉴스를 챙겨 보기 싫을 정도인데 말이다.

한국의 시민들이 정치를 미워하는 이유는 뭘까.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댈 수 있겠으나, 한마디로 말하자면 민심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땅의 정치가 보통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삶과 마음을 우선 살피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혁신 혹은 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뭔가 할 때조차 그러하다. 갈수록 그 불안의 정도가 심각해지고 있는 고용과 소득과 주거 현실, 다양한 삶의 길을 열어주지도 못하면서 획일적인 스펙쌓기를 내세워 나날이 더 많은 돈을 빨아먹기만 하는 교육 현실과 같은 문제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혁신안으로 기껏 누구누구는 출마하면 안되고, 누구누구는 어디어디에 출마해야 한다는 살생부와 책략을 내놓았다. 이 때문에 당내 분란만 더 커져버린 상황이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역시 마찬가지다. 달랑 오픈프라이머리라는 공천제도 하나 갖고 개혁이 어쩌네 저쩌네 하고 있다. 그마저도 당 주도권 장악을 위한 힘겨루기로 얼룩져 있다. 시대 상황에 입각해 무엇 때문에 누구의 고통을 우선 해소하고, 그것을 위해 누가 먼저 얼마나 양보해야 하는지, 그 양보의 대가는 무엇인지 등을 둘러싼 쟁론과 합의는 도대체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우선순위의 설정과 부와 권력 자원의 배분이라는 정치 본연의 임무를 전혀 수행치 않고 있는 것이다.

제3당인 정의당이나 새로이 당을 만들고 있는 정치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군소세력이기에 시민들과 함께 사회적 고통을 해소해가기 위한 정책운동이라도 펼치지 않을까 했으나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주야장천 선거제도를 바꿔달라는 요구만 하고, 자기가 뛰쳐나온 당에 대해 욕만 할 따름이다. 최근의 쟁점인 노동개혁 문제와 관련해서도 임금피크제와 일반해고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정부와 기업 측의 안에 대해 반대만 할 뿐, 임금격차와 철밥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노동개혁에 앞서 재벌개혁을 내세우고는 있다. 하지만 사내유보금의 과도한 축적에 대한 도덕성 시비를 제기하고 있을 뿐, 대중적 설득력을 갖춘 구체적 실현 방안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새누리당 대표실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는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_경향DB



시민은 ‘주권자’이다. 사회의 주요 문제를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기에 그러하다. 이런 의미에서 시민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주체’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정치를 멀게 느낄 뿐 아니라, 스스로 정치를 멀리하고 있다. 현실의 정치가 만들어낸 ‘시민의 탈정치화’ 현상, 현 시기 한국 사회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이다.

일부 지식인과 사회운동가들은 시민의 탈정치화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논변과 언술을 찾아 펼치고 있다. 정당정치론이나 마키아벨리 다시 읽기 붐이 그 예이다. 현실의 정치가 아무리 후졌다 해도 정치는 너무나도 중요하니 결코 눈길을 거두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정치는 원래 권력을 다루는 실천으로서 사악하기도 한 것이니 현실의 정치에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다독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정치는 중요하다. 그래서 아무리 혐오스럽다 해도 회피해서는 안된다. 플라톤은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치를 멀리하면 견제와 조화라는 공화의 원리를 구현하기는커녕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그것도 ‘저질스러운 자의 지배’를 용인하게 된다.

하지만 시민들이 그 중요성과 악마성을 몰라 정치를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시민들은 정치의 중요성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부당한 현실을 보면 가장 먼저 정치를 욕하는 것이다. 시민들은 ‘다른 정치’를 원하고 있을 뿐이다. 청와대와 여의도로 특정되는 권력의 정치가 아닌, 실존의 문제를 다루고 풀어내는 삶의 정치 말이다.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든,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든, 어떻든 간에 ‘나의 처지’를 덜 나쁘게 하는 혹은 더 좋아지게 만드는 정치 말이다. 따라서 시민의 탈정치화를 극복하기 위한 길은 정치의 중요성이나 사악함을 강조하고 해명하는 데 있지 않다. 그 길은 정치의 전환을 실제로 도모하는 데 있다. ‘권력의 정치에서 삶의 정치로’의 전환, 이것이 시민 본래의 정치적 주체성을 복원하는 ‘진짜 시민정치’의 길이다.


김윤철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대한 청와대의 비판에 반발하며 당무 거부에 들어갔다. 김 대표는 어제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국군의날 기념식을 포함, 공식 일정에 모두 불참했다. 그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부산에서 만나기 전 그와의 협상 사실을 청와대에 알렸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친박계와 청와대가 공천제 합의에 대해 “대표의 독단적 행보”라고 한 것을 반박한 것이다. 공천 제도를 둘러싼 여당 내 투쟁도 격화하고 있다. 친박계와 비박계는 종일 공방을 벌였다. 청와대와 집권당 대표, 친박계와 비박계가 사생결단식 싸움에 나서 국민의 정치 혐오증을 심화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민생을 내팽개친 채 당내 투쟁을 벌이는 친박이나 비박이나 볼썽사납기는 매한가지지만 친박의 당 대표 흔들기 행태는 그야말로 목불인견 수준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라는 익명의 인물을 통해 내려온 대통령의 지시를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일사불란하게 따르고 있다. 아무리 공천이 걸린 문제라고는 하지만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의 모습이라고 하기엔 너무 구차하다. 논리도 고민도 없이 당 대표를 공격하는 행태를 보면 하나의 정치적 견해를 중심으로 형성된 정치세력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무지막지하게 몰아내던 방식 그대로다. 언론에 대고 “오랑캐와 야합했다”는 막말까지 했다는데 도대체 누가 오랑캐인지 모르겠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30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이날 비공개로 진행된 의총에서는 선거구 획정, 공천 룰 등을 논의했다. 앞서 청와대는 김 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합의한 '안심번호를 활용한 국민공천제'를 비판했다._강윤중 기자


국정 운영의 중심축인 여당의 대표가 야당 대표와 만나 합의한 내용을 청와대가 앞장서 비판하고, 또 계파 의원들을 시켜 공격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를 두고 청와대가 당을 좌지우지하며 공천권을 행사하려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국민은 없다. 더구나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때 이 제도를 통해 후보로 뽑힌 터이다. 그래놓고 하루아침에 이 제도가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누가 봐도 이율배반이다.

청와대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나올 때마다 당과 정치권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해왔다. 박 대통령 역시 “당의 입장을 존중한다”거나 “국회에서 합의하면 국민의 뜻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 청와대의 개입으로 이런 말들이 한낱 수사였을 뿐이라는 것이 입증됐다. 당 대표가 합의한 안을 당에서 논의조차 못하도록 하는 것은 3권분립 원칙과도 배치된다. 그토록 원칙을 강조하는 박 대통령이 당 대표로 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과연 어떻게 대응했을지 궁금하다. 과거 권위주의 대통령들도 외견상으로는 당 대표를 존중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박 대통령의 지금 모습은 과거보다 더한 독단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