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이 그제 국회 정보위원회 간담회에서 해외 북한식당 종업원 집단탈북 관련 내용을 추가 공개했다. 당초 20명이 탈북하려고 했으나 그중 7명은 북한 가족을 걱정해 마지막에 빠졌다는 것이다. 북한의 소환 지시를 받은 지배인이 종업원들의 의사를 일일이 확인한 뒤 한국행을 결행한 사실도 밝혔다. 이로써 집단탈북 사건의 의문이 일부 풀렸다. 그렇다고 해서 탈북자들과 북한 가족의 신변 안전을 도외시한 처사라는 사실을 가릴 수는 없다.

북한식당 종업원 7명이 막판에 탈북 대열에서 빠졌다는 것은 한때나마 탈북 의사를 갖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북한 당국이 이들을 의심할 단초를 제공한 셈이다. 특히 탈북을 주도한 사실이 드러난 지배인의 가족은 안전을 담보하기 어려울 듯싶다.

이 원장은 국회 간담회의 비공개 원칙을 내세워 책임을 모면하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국정원의 국회 간담회 내용은 특별하게 비밀을 요청하지 않는 이상 공개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이 원장이 민감한 집단탈북 경위를 추가 공개한 것은 반인권적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이 정보위원회 간담회에서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_경향DB

국정원으로선 북한의 ‘유인납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을 터이다. 하지만 그 말을 믿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실이 아니라면 무시하면 그만이다. 국정원 주변에서는 이 원장의 추가 내용 공개가 북한식당 종업원 13명의 탈북 사실을 일찍 공개하는 바람에 남겨진 7명이 강제 북송돼 신변이 위험해졌다는 일각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말도 나온다. 그렇다면 국가 기관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탈북자와 북한 가족의 안전을 내건 셈이다.

이 원장의 국회 발언은 탈북자를 대하는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입만 열면 북한 인권을 부르짖으면서 정작 탈북자들과 북한 가족의 안전은 고려하지 않는 이중성을 이해하기 어렵다. 국정원만 탓할 일은 아니다. 이 원장의 발언을 무분별하게 공개한 국회의원이나 보도한 언론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정부는 탈북자 문제를 인권 친화적으로 다뤄야 한다. 그들은 피를 나눈 동포이자 헌법상 국민이다. 비단 인류 보편의 인도주의 정신이 아니라도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다시는 체제 우월성의 산 증거로 선거에 활용하려 해선 안된다. 누구도 그런 권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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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수사는 제조·유통업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800만명이나 되는 소비자가 아무 규제 없이 팔리는 살균제를 의심 없이 써왔고, 그중 239명이 목숨을 잃은 대형참사다. 사망자 대다수가 병명도 모른 채 숨졌고, 지금도 피해자가 속출하는 어이없는 참사의 책임을 해당 기업들에만 물을 수 없다. 뒷북치기 규제와 부처 간 책임 떠넘기기로 위험을 방치했고, 피해자들의 호소를 간과한 정부의 책임 역시 묵과할 수 없다.

정부는 살균제에 사용하는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와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 성분이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을 예견했음에도 걸러내지 못했다. 예컨대 2003년 SK케미칼이 호주 정부에 제출한 수출용 보고서에 ‘PHMG를 흡입하면 위험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환경부는 “업체들이 원래 카펫 살균제(PHMG)와 고무·목재 항균제(PGH)로 심사를 받아놓고는 후에 가습기 살균제로 용도를 바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민의 생명을 돌봐야 할 정부가 카펫 및 고무·목재의 살균·항균제가 사람이 직접 흡입하는 일종의 의약품으로 용도변경됐는데도 독성검사를 하지 않은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인가. 환경부와 보건복지부, 산업부 등이 서로 업무를 떠넘기는 사이 피해자가 속출했다. 정부는 살균제의 위해성이 인정된 2011년 이후에도 미온 대처로 일관했다. 3차에 걸친 피해자 접수 기간 내내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그나마 지난해 12월 말에는 접수를 마감해버렸다. 피해자들은 시민단체를 통해 뒤늦게 살균제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고서 분통을 터뜨렸다. 정부는 독성물질들이 다른 장기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보고서들을 도외시하고 폐섬유 관련 질환만 피해로 인정했다. 정부의 직무유기는 이처럼 일일이 열거하기도 벅찰 정도로 많다. 그사이 해당 업체들은 ‘살균제와 피해의 인과관계가 뚜렷하지 않다’며 시간을 벌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28일 옥시레킷벤키저가 입주해 있는 서울 여의도 IFC몰 앞에서 옥시 제품들을 발로 밟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_경향DB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철저한 조사와 피해자 구제책을 주문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의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뒤늦었지만 당연한 조치와 반응들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국회 청문회를 열어 정부 책임론의 진상까지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 언제까지 세월호·가습기 살균제 사건 같은 대형참사를 감내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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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에게 세월호 참사란 무엇일까.

지난 26일 청와대에서 3년 만에 열린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은 ‘재정, 인건비, 세금’ 이렇게 세 단어로 축약되는 인식을 여실히 드러냈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에) 그동안 재정이 150억원 정도 들어갔고, 또 그걸 정리해서 서류를 만들려면 거기에 보태서 재정이 들어갈 것”이라며 “인건비도 한 50억원 정도 썼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진상규명’을 목표로 하는 특조위 활동에 대해선 한마디 언급도 없이 비용만, 그것도 구체적인 ‘숫자’까지 읊은 것이다.

박 대통령이 던진 메시지는 명확하다. 박 대통령은 특조위의 활동기간 보장에 대해 “국회에서 이런저런 것을 종합적으로 잘 협의하고 그렇게 해서 판단할 문제”라며 얼버무렸지만, 이에 앞서 “국민 세금이 많이 들어가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이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오찬간담회에서 사회자가 청와대 참모진을 소개하자 박수를 치고 있다._청와대사진기자단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27일 논평을 내고 “청와대의 일방적인 가이드라인”이라며 반발했다. 특조위 활동기간을 ‘보장’해달라는 희생자 유족과 특조위를 사실상 ‘세금 도둑’으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유족들은 특조위 활동기간에 대한 법조문 해석은 차치하고라도 ‘액수’를 줄줄 외고 있는 박 대통령에게 되물었다. “특조위 청문회에 나온 해경 지휘부의 증언을 한 줄이라도 들었는가.”

희생된 학생들에게 수차례에 걸쳐 한 선내 대기 방송이 청해진해운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는 세월호 여객부 직원의 새로운 증언이 나온 게 불과 한 달 전이다. 7월을 목표로 하는 세월호 인양 작업은 이제 막 ‘리프트빔’을 투하해 본격화했다. 유족들이 줄곧 온전한 인양을 요구한 건 선체 조사로 이전에 몰랐던 사실이 드러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사실상 오는 6월에 특조위 문을 닫으라고 한다.

‘진상, 희생자, 유족’ 대신 ‘재정, 인건비, 세금’만 남은 대통령의 ‘세월호’. 여기에 아이들이 죽어간 차가운 바다 위에서 뜬눈으로 인양 현장을 지키는 유족들은 호소한다. 그 세금을 낸 국민은 진상을 보다 낱낱이 알고 싶고, 이를 바탕으로 안전사회로 나아가는 길을 찾고 싶다고.


허남설 | 사회부 nshe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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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 세월호 관련 발언을 보면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참사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이 이 정도인지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세월호특별법을 왜곡하고 있는 데다, 예산을 아끼는 게 유족들의 아픔을 헤아리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박 대통령은 우선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6월까지 하고 9월까지 여러 가지 자료를 잘 만들어서 그렇게 정리해 나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특별법은 특조위가 최대 1년6개월 조사활동을 벌일 수 있으며 종료 후 3개월간은 조사보고서를 작성하는 기간으로 두고 있다. 대통령이 특조위의 활동 시점을 특별법이 시행된 지난해 1월1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합리적이지 않다. 특조위 예산배정은 지난해 8월에야 이뤄졌고 피해자들의 조사신청을 받아 처음으로 조사 개시 결정을 내린 시점이 지난해 9월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초청 오찬간담회에 앞서 박래용 경향신문 편집국장(오른쪽)과 악수하고 있다_청와대사진기자단

세월호 구조활동의 실패 책임, 국가정보원과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유착 의혹 등 규명돼야 할 과제가 많고, 세월호 인양은 7월에나 이뤄진다. 특조위 활동기한을 제대로 보장해야 한다는 유족의 요구는 당연한 것이다. 대통령은 국가지도자로서 최대한 유족의 요구를 수용하는 게 도리일 것이다. 박 대통령은 “특조위 활동이 6월에 마무리된다면 그동안 재정이 150억원 정도 들어갔고, 또 그것을 정리해서 서류를 만들어서 쭉 해 나가려면 거기에 보태서 재정이 들어가고 인건비도 한 50억원 정도 썼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것(특조위)을 연장하느냐 하는 문제는 국민 세금이 많이 들어가는 문제이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국회에서 이런저런 것을 종합적으로 잘 협의하고 그렇게 해서 판단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국회가 세월호특별법을 개정해 특조위 활동기간을 보장하면 모르겠으나 정부가 앞장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국가가 시혜를 베풀었으니 그만 떼쓰라는 얘기와 같다. 대통령 눈에는 세월호 문제가 돈 문제로만 보이는 모양이다.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인사청문회에서 특조위 예산 축소 논란이 제기되자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예비비를 편성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조위 예산은 올해 6월까지만 배정돼 있으나 추가 배정은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결국 대통령은 진상규명에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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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이 총선에서 참패했다. 모든 이의 예상을 깬 패배였다. 놀라운 건 누구도 여당의 패배를 ‘보수의 패배’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긴 새누리당을 보수정당이라고 하기엔 마뜩잖은 구석이 한둘이 아니었다. 4년 전 한나라당의 대선주자 박근혜 의원이 당권까지 장악하면서 비대위에서 당명과 상징 색을 바꿀 때 반발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2인자였던 김종인 비대위원은 사회민주주의 구호인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당에서 ‘보수’라는 말을 빼내야 한다고 외쳤다. 박근혜 후보는 세계적으로 전례 없는 영·유아 무상보육과 함께 스웨덴도 후퇴한 노령연금 정책을 내놓았다. 새누리당은 이미 보수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 전에 박근혜 후보는 ‘국민과의 약속’을 명분으로 세종시를 관철시켰다. 행정비효율뿐 아니라 국가위기 때 대응능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무시됐다. 충청표 때문이었다. 이처럼 모든 정책 결정엔 대선에 도움이 되는지가 잣대였다. 이러니 지난 대선은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아니라 그저 대북정책만 다를 뿐인 좌우, 지역대결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우리 정치의 민낯을 보았다.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개명하고 좌파의 상징 색인 붉은 옷을 입으면서 정명(正名)을 찾기는커녕 본색(本色)마저 버렸을 때, 이 정당이 보수를 대변할 것이라는 기대를 접었다. 새누리당 역시 박근혜라는 보스를 따라 모인 붕당에 불과했다.

그 판단이 옳았다는 건 이내 증명됐다. 청와대와 당에는 십상시(十常侍) 같은 아첨꾼이 설쳐댔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같은 국가위기가 닥쳤을 때 정부와 여당의 능력은 백일하에 드러났다. 재원 없는 복지로 국가부채는 폭증하는데도 증세는 입도 벙긋하지 못하고 공무원 연금개혁은 용두사미가 됐다. 게다가 세수 목적으로 담뱃값을 올리는 것 같은 편한 수법만 썼다. 공공·노동·교육·금융 등 4대 개혁은 여전히 추진 중이고 청년실업은 도를 넘었으며 불황으로 도산하는 자영업자가 속출했다. 중산층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런데도 모두가 착각에 빠져 있었다.

대한민국 2016년 제20대 총선 결과 지도_경향DB

솔직히 거기엔 엉터리 여론조사와 이에 편승한 언론도 한몫을 했다. 야당분열로 인한 일여다야 구도가 여당의 낙관을 불렀다. 당 대표부터 국회선진화법을 무너뜨릴 180석을 얻는다는 둥 오두방정을 떨었다. 그게 불과 두 달 전이었다. 커튼 뒤의 권력의 엄호를 받은 공관위는 무소불위의 칼춤을 추었다. 진박마케팅 같은 어처구니없는 편 가르기 작태 끝에 정권 실세의 막말 사건까지 터졌다. 권력의 오만이 선을 넘었던 것이다. 마침내 옥새 파동을 벌였을 때 새누리당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그러나 낙관은 계속됐다. ‘진박’ 수장이 광장에 꿇어앉아 표를 구걸하고 당 대표가 울산으로 쫓아내려가 노동자에게 읍소했지만 그것조차 쇼로 보였다. ‘무성이 옥새를 들고 나르샤’ 같은, 당을 희화화하고 정치를 코미디화하는 작태가 계속됐다.

이런데도 집권 여당이 중간평가에서 이긴다면 그건 기적이다. 어쨌든 선거는 끝났다. 정권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자칫 식물정부가 될 판이다. 아마도 의회는 세 정당이 어떻게 편을 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생물 국회가 될 것이다. 이걸 두고 황금분할이라고 할 것인가? 새누리당의 앞날은 정말 캄캄하다. 대권주자들은 하나같이 중상을 입었다. 그런데도 태연하다. 그들은 여전히 박 대통령이 선거의 여왕이고 정국주도권을 놓치지 않을 것이며 권력을 재창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반기문을 데려오든 전장에서 쓰러진 장수가 권토중래하든 잘만 추스르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책상물림들 생각처럼 대중이 다시 마음을 바꿀까? 나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데 걸겠다. 나부터 그들이 우리를 대변한다고 믿지 않은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의 가장 큰 의미는 이 나라 보수들이 새누리당의 집토끼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 자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들은 어디에서 새 등대를 볼 것인가?


전원책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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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손학규 민주당 고문이 내놓은 슬로건 ‘저녁이 있는 삶’은 경쟁에 내몰려 휴가는커녕 야근을 밥먹듯하며 고달프게 살던 노동자들의 가슴을 쳤다. 따지고 보면 세계 최장 수준의 노동시간,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인 사회에서 가족과 오롯한 저녁시간을 갖는 것은 아련한 꿈이었다. 성장·개발·속도 같은 용어가 난무하던 시절 노동자들에게 휴일은 그림의 떡이었다. 국가 부도상황에 몰린 외환위기 때도 설 연휴를 반납하고 수출상품 만들기에 매달렸던 게 노동자들이다. 당시엔 설 연휴 고속도로에 뿌려질 기름마저 애달파했다.

정부가 오늘 국무회의에서 상공회의소의 건의에 응답하는 형식으로 5월6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다고 한다. 1분기 성장률이 0.4%에 머무는 등 소비절벽이 현실화하는 상황에서 내수에 도움을 주자는 취지라고 한다. 물론 쉬는 것은 격무에 지친 노동자들에게는 나쁘지 않은 소식이다. 연휴가 되면 놀이공원이나 백화점이나 마트가 북적일 것이다. 하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무엇보다 영세한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하루 쉬는것도 버거운 시민에 대한 배려가 없다. 이들에게 임시공휴일은 안 하느니만 못한 휴일이 될 수도 있다. 주변에는 주 5일제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이 널려있다.

2016년 5월6일 임시공휴일 지정 건의_경향DB

몇 해 전만 해도 공휴일이 너무 많다며 펄펄 뛰던 재계의 아전인수식 상황논리는 말할 것도 없고 국가공휴일을 며칠 만에 뚝딱 결정하는 정부의 태도도 미덥지 못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이번 결정을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흥행으로 여기는 목소리가 많다. 공무원 골프 허용과 맞물려 특정 직업군만 좋은 일 시켰다는 얘기도 있다. 즉흥적 공휴일 지정으로 시민들의 사기가 올라갈 리 만무하다. 내수도 앞당겨 쓰는 조삼모사식 효과에 불과할 것이다. 지금의 소비부진은 돈이 있지만 쓰지 않기보다는 돈이 없어 못 쓰는 사람이 많은 데서 비롯된다. 내수회복을 바란다면 가처분 소득을 올려줘야 한다. 내친김에 설·추석·어린이날에 국한된 대체휴일제의 전면 시행도 추진해봄 직하다. 임시공휴일이 수시로 지정된다는 것은 대체휴일제 전면도입은 안된다는 재계 논리의 허구성을 입증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박용채 논설위원 p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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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과의 간담회에서 4·13 총선 결과 등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참패로 끝난 총선 결과를 두고 “(일하지 않는) 양당체제에서 3당체제를 민의가 만들어준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개각 등 인적쇄신 요구도 “국면전환용”으로 폄훼하며 거부했다. 여당마저 인정한 ‘박근혜 정권 심판’의 민의를 부정한 것이다. 대통령은 2016년 4월의 한국이 아닌, 다른 시공간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선거에 나타난 민의를 잘 반영해서 변화와 개혁을 이끌겠다”고 말했으나, 질의·응답에서 보여준 현실인식은 딴판이었다. 국정실패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도, 전면쇄신 약속도 없었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국민들이 볼 적에도 국회가 양당체제로 돼 있는데 서로 밀고 당기면서 되는 것도 없고 하니까 변화가 있어야 되겠다 생각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유권자는 자신이 아니라 기존 여야를 심판했다는 것이다. 모든 문제는 국회가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총선 전 입장과 달라진 게 없다. 친박계의 공천 전횡과 관련해서도 “친박이라는 말 자체가 선거 마케팅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제가 거기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신이 선거일 직전까지 ‘진박(진실한 친박)’ 후보들의 지역구를 방문해 선거개입 논란을 부른 것은 잊어버린 듯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_경향DB


총선 민의는 경제정책 실패로 인한 양극화 심화,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대표되는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심판이었다. 하지만 ‘나는 잘못한 게 없다’는 대통령의 인식은 개별 정책에 대한 입장에서도 여실했다.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역대 정권 중 가장 잘했다”는 주장을 폈다. 법인세 인상 반대를 재확인하고, 파견법 등 노동4법 개정을 밀어붙일 뜻을 분명히 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서도 “통일이 앞으로의 국가 목표인데, 지금과 같은 교과서로 배우면 북한을 위한, 북한에 의한 통일이 될 수밖에 없다”는 황당한 논리로 옹호했다.

시민은 또다시 배반당했다. 대통령은 소통의 장으로 마련한 자리에서 ‘하고 싶은 말’만 했을 뿐, 시민이 ‘듣고 싶은’ 이야기는 외면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4월13일 이후 달라지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임을 공개적으로 선포했다. 그는 남은 집권 기간 1년10개월도 아집과 오만, 독선과 불통을 고수할 모양이다. 하지만 이제 여당도 등을 돌리고, 콘크리트 지지층도 와해되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이 끝내 총선 민의를 부정하고 변화를 거부한다면 레임덕(권력누수)만 앞당기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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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시장에 온갖 소문이 떠돌고 있다. 야권에서 협력하겠다고 밝힌 지 일주일도 안됐지만 중구난방식 인수·합병 시나리오가 쏟아진다. 예컨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각각 워크아웃과 법정관리를 추진하고, 궁극적으로 합병하는 방안이 유력하다는 것이다. 조선업은 부실 규모가 가장 큰 대우조선해양을 쪼개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에 매각한다는 설이 등장했다. 조선 빅3의 방산분야를 떼내 별도의 방산 전문 조선업체를 만든다는 시나리오도 나돈다. 구조조정 대상 기업은 물론 시민도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지난 24일 경제현안회의, 이른바 청와대 ‘서별관회의’를 마친 뒤 소문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경제수석,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산업은행장 등이 모여 구조조정 추진 방안을 논의했다. 비공개회의여서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소문이 증폭되고 있다. 정부가 살리거나 퇴출시킬 대상을 이미 정해놓고, 그 구상을 슬쩍 흘려 여론의 눈치를 살피려 한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기업구조조정 수순에 대한 야당과 정부·여당의 시각차_경향DB


구조조정은 신속하게 해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지만, 정부의 일방적인 추진은 곤란하다. 이번 구조조정은 그 범위가 넓어 개별 부실기업뿐 아니라 산업 재편 성격을 띠고 있다. 대규모 실직이나 시민 세금인 공적 자금 투입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사회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큰 만큼 소수 관료가 정보를 독점한 채 독단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관치의 대표적인 폐해는 결정하되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관치가 되지 않으려면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시장과 국회가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정부는 서별관회의에 이어 26일 관계 부처 차관들로 협의체를 구성해 구조조정 방침을 설명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야권은 구조조정 논의에서 배제됐다. 야권이 구조조정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던 실업대책과 사회안전망 확충 논의가 어느 정도나 진척됐는지도 알 수 없다. 지금처럼 진행했다가는 야권과 이해 관계집단의 반발만 부를 뿐이다. 노사정과 여야가 두루 참여해 합의를 이뤄야만 구조조정의 방향을 정립하고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다. 정부는 이제라도 모든 것을 열어놓고 다양한 의견을 들어야 한다. 최소한 야권과 구조조정 당사자에게는 구조조정 관련 정보와 추진 상황을 공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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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보다 더 나쁜 것은 독선이다. 정치에서는 그렇다. 독재는 정치의 한 유형이지만 독선은 정치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 의견은 옳고 자기와 다른 것은 그르다고 하는 순간 정치는 존재할 수 없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독재보다 더 나쁜’ 그 무엇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이번 총선 참패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나의 길을 가겠다는 듯하다.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는 그저 참조사항일 뿐, 국정운영 기조나 리더십 스타일을 바꿀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어떤 대통령이 국민과 대화는 하지 않으면서 역사와 대화하겠다 하고, 선거의 평가는 외면하면서 역사의 평가를 받겠다고 한다면 그는 독선의 지경에 이른 것으로 봐도 좋다. 이런 상태의 대통령은 대개 자신이 ‘외롭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한 심리학자는 이와 같은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에 대해 ‘대통령 하기 싫은 사람이 대통령이 된 경우’이며, ‘맡은 일을 하기 싫어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설명한다. ‘권력의지 결핍’이라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동의하기 어렵다. 정반대로, 박 대통령은 ‘권력의지 과잉’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역사의식만이 올바르며, 자신의 애국심만이 정당하며, 자신의 행동만이 공평무사하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손으로 그것을 이루겠다는 각오도 대단하다.

어쨌든, 이렇게 되면 애간장이 타는 것은 새누리당이다. 새누리당은 ‘애국심’에 가득 차서 ‘역사와 대화’하고 있는 박 대통령에 대한 설득전략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며칠 전 만난 한 새누리당 인사는 문제의 중심에 있는 박 대통령이 변화할 가능성이 없으며 새누리당은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없을까?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운데)와 원유철 원내대표가 4월 14일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해단식에서 무거운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_연합뉴스

새누리당 중앙여성위원회는 ‘총선에서 책임 있는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석고대죄부터 하자’는 주장을 한다. 그런데 이런 식상한 이벤트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되풀이하는 구태정치로 보이기 때문이다. 비상대책위원장을 외부에서 초빙하여 새누리당의 운명을 맡기자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이런 외주정치는 야당에서 이미 실험을 한 바 있으나 성공한 모델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외부인사에게 당의 쇄신을 위탁하는 것은 대증요법으로서 반짝 효과는 있겠지만 체질을 바꾸지는 못한다.

과거 일부 야당이 했던 것처럼 저명한 대학교수를 모시고 와서 새누리당을 이끌어달라고 하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그리 좋은 방도는 아니다. 그렇게 해서 그럴듯한 결과가 나온 사례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실험은 모두 ‘교수에게 자문은 맡기되 결정은 맡기지 말라’는 격언을 확인했을 뿐이다.

새누리당이 박 대통령의 협량하고 경직된 보수노선을 넘어서 보수혁신을 추구하고, 친박 비박 권력투쟁이 만들어놓은 아수라장을 정리하고, 여소야대 권력구조에서 국정을 운영하고 싶으면 눈을 내부로 돌려볼 것을 권한다. 지방정치에서 꽃피고 있는 협치의 리더십을 주목해보라는 얘기다. 서울시장 박원순, 경기지사 남경필, 제주지사 원희룡, 충남지사 안희정, 대구시장 권영진. 재작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이 다섯 명의 지방정치 리더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일종의 협치 경쟁을 하고 있다. 이들은 지방정치, 관료, 기업, 대학, 노동, 시민사회 등의 마음을 모아 지역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정치적 반대자와 비판세력,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까지 손잡고, 협력을 통한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주체들이 정책 또는 계획 결정과정에 참여하는 공동체를 만든다. 이들이 보이고 있는 협치의 리더십은 우리 정치가 대결과 진영의 정치로부터 상생과 신뢰의 정치로 변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확인해주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들에게 배워야 한다. ‘새로운 정치의 희망은 중앙이 아니라 지방에서 피어나고 있다’고 말하는 소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방정치에 새로운 정치의 단서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지난 주말 한 새누리당 인사에게 했더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대권주자로 키우라는 얘깁니까? 비대위원 시키라는 얘깁니까? 그런 거까지는 모르겠다. 일과가 끝난 조용한 시간에 원희룡, 남경필, 권영진을 올라오라고 해서 협치라는 게 뭔지, 그걸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자세히 물어보도록 박 대통령께 권해보라는 얘기다. ‘독재보다 더 나쁜’ 그 무엇에 빠져있는 박 대통령을 설득할 전략이 없다고 하니 드리는 말이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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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어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2016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지방교육청에 내려보내는 재정교부금에서 교육세분을 따로 떼어내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예산을 의무적으로 편성하는 ‘지방교육정책지원 특별회계’ 신설 계획을 밝혔다. 현재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41조원 규모로 이 중 교육세분은 5조원 정도다. 관련 법안은 새누리당에서 발의돼 현재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이와 별도로 박 대통령은 회의에서 야당이 반대하는 노동 관련 4법의 입법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총선으로 여소야대가 됐음에도 박 대통령이 여야 간 이견이 있는 사안을 강행하겠다는 것은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계속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이럴 거면 총선 뒤 “민의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는 새롭게 출범하는 국회와 긴밀하게 협력해 나갈 것”이라는 발언은 왜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주지하다시피 누리과정 정책은 박 대통령의 공약사항이다. 예산을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한 이도 박 대통령이다. 외견상 새 법은 중앙정부가 누리 예산을 편성해 교육청에 지원하는 것처럼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누리과정 사업에 따른 교부금 증액 없이 예산편성만 강요한 채 지방정부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가 지도·감독권을 행사하면서 지방교육청에 재원을 부담하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야당이 반대하는 노동 관련법의 국회 통과 의지를 재천명한 것도 납득하기 힘들다. 지금은 해운·조선업 등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초미의 관심사다. 이런 상황에서 쉬운 해고를 가능케 하는 노동법 개정은 노동자를 사지로 내모는 것과 다름없다. 속내는 재정확장 쪽에 있으면서 총수입 증가율 범위 내에서 총지출 증가율을 관리하겠다는 다짐도 공허하다. 박근혜 정부 내내 총지출 증가율이 총수입 증가율을 웃돌았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재정확대 유혹이 커질 것을 감안하면 지키지 못할 약속이 뻔하다.

2016년 국가재정전략회의 10대 분야 재정개혁과제 주요 내용_경향DB

이런 식의 접근법으로는 산적한 현안을 풀 수 없다. 남은 임기 중 갈등만 반복하다 산으로 가겠다는 심산이 아니라면 여권 바깥의 제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밀어붙이기 정책의 피해자는 시민이다. 총선 민의는 박 대통령의 독선적·일방통행식 국정운영으로는 경제는 물론 시민들의 살림살이도 나아지지 않는 만큼 여·야·정이 머리를 맞대라는 뜻이다. 민의를 수렴해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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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총선 결과는 놀라웠다. 늘 지는 야당 더불어민주당이 제1당이 되었고 신생 국민의당이 약진했다. 게다가 더민주는 부산, 대구, 경남에서 9석을 얻어 지역주의의 벽마저 깨뜨렸다.

이 예상 밖의 쾌거 앞에서도 더민주는 표정을 관리하고 있다. 선거혁명의 주역 문재인 전 대표 또한 승자의 표정이 아니다. 전통적 지지기반이었던 호남 참패가 너무 아픈 탓이리라. 선거 막바지에 광주를 찾아 호남이 자신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면 대선도 포기하고 정치도 그만두겠다고 배수진을 친 문 전 대표로서는 광주·호남의 패배가 누구보다 아플 것이다. 그의 아픔이 어떻든 간에 야속한 여론의 일각은 대선 포기 발언을 ‘문재인의 딜레마’라 하고 ‘광주의 약속’이라고 들먹이기도 한다. 과연 지금의 현실이 문재인의 딜레마고 광주의 약속을 그에게 압박할 형국인가?

우선, 호남은 문 전 대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적이 없다. 28개 호남지역구의원 후보의 득표수를 보면 국민의당에 5명이 투표했을 때 더민주에 4명이 표를 주었다. 광주를 제외한 전남과 전북의 경우 유권자 11명이 국민의당 후보를 선택했을 때 10명은 더민주 후보를 선택했다. 한 표라도 많으면 당선되는 소선거구제에서 의석수가 현실의 지지를 그대로 반영할 수는 없다. ‘호남이 지지를 철회한다면’이라는 전제로 시작된 약속이라면 비록 국민의당에는 못 미치지만 호남은 여전히 더민주를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문 전 대표는 광주의 약속을 의석수 확보로만 판단해 호남에서 명백하게 유지되고 있는 지지자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둘째, ‘딜레마’란 경중이 비슷한 사안 간에 발생하는 선택의 혼란을 말한다. 문 전 대표에게 광주발언은 마음의 빚일 수 있지만 그것을 염두에 두기에는 그와 더민주가 얻어낸 선거혁명의 성과가 ‘정치사적’이라 할 만큼 크다. 문 전 대표는 그간 누구보다도 책임 있는 정치지도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세월호 현장을 비롯해 시민이 아픈 자리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정부와 여당, 심지어 야당 내에도 넘치는 ‘욕망의 정치’ 앞에 늘 ‘가치의 정치’로 대응했다. 이기는 정당을 만드는 데 그는 혼신의 힘을 다했다.

수도권 압승과 마침내 ‘동진’에 성공한 더민주의 새로운 역사는 문 전 대표 없이 불가능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도 못한 일을 그가 해낸 것이다. 선거혁명이라 할 만한 이 놀라운 성과에 비하면 광주의 발언은 ‘선거 상황’에서의 에피소드일 뿐이다.

문재인 전 대표가 자택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고 있다_연합뉴스

셋째, 문재인의 딜레마를 만든 ‘호남의 딜레마’에 오히려 주목해야 한다. 광주의 정신, 호남의 민주주의는 이번 선거에서 퇴행적 지역주의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국민의당을 선택하는 호남의 변명은 더민주로는 정권교체가 안 되고 문재인으로는 전망이 없다는 것이었다. 선거 결과 호남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더민주는 선전했고 수도권에서 압승했으며 제1당이 되었다. 지역정치가 세대정치로 바뀌고 ‘탈지역화’로 한국정치의 미래가 열렸다. 호남이 문재인과 더민주로는 안된다고 할 때 세상은 더민주와 문재인을 선택한 셈이다. 세상이 87년의 정치를 뛰어넘고자 하고 지역주의의 덫에서 벗어났는데 호남만이 다시 지역주의의 늪에 빠진 것이다.

호남의 선택은 호남 기득권 정치가 드러낸 마지막 지역주의의 몸부림일지 모른다. 문 전 대표는 구태에 갇힌 호남의 선택보다 새로운 세대의 호남정치와 변화를 요구하는 수도권의 민의, 그리고 영남의 변화를 훨씬 더 무겁게 생각해야 한다.

정치인의 말에 신뢰와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정치인의 신뢰와 책임은 언제나 더 높은 공공성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작은 신뢰가 더 큰 공공적 미래를 위협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야권 분열과 호남의 딜레마, 이 모든 것의 출발은 야당 내부 특히 호남 기득권 정치인들이 만든 친노패권주의의 허상과 반문재인 정서에서 시작되었다.

문재인 때문에 안 된다던 바로 그 당을 국민이 선택했고 그래서 선거혁명을 이루었다. 이 선명한 대의 앞에서 언제까지 친노의 허상을 잡고 언제까지 문재인을 물어뜯는 하이에나 정치를 되풀이할 것인가?

문재인을 포함한 여야의 유능한 정치인들은 예외 없이 우리 시대의 소중한 정치적 자산이다. 오로지 개인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근거 없는 증오로 상대를 물어뜯는 것은 공동체의 정치적 자해일 뿐이다. 사익과 욕망으로 통합을 가로막는 자해의 정치를 이제 멈추어야 한다. 정치혁신을 이끌 유능한 정치인이라면 그가 누구든 마음껏 정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문 전 대표에게 유독 가혹한 이상하고도 불공정한 정치 잣대를 이쯤에서 걷어야 한다.


조대엽 | 고려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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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소야대. 생소하다. 하지만 민심이다. 정치권은 여소야대의 민심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민심이 외면한 여권은 자중지란에 빠져 민심의 의미를 제대로 성찰하지 못하고 있으며, 민심이 지지한 야권은 서로를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민심이 현 정부의 실정을 심판했다고 인식하며, 국민의당은 민심이 새로운 정치를 선택했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야권의 인식과 판단은 표면적으로는 민심에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민심의 본질은 더 깊은 곳에 있다. 수도권은 물론 전국의 민심은 야권을 선택했다. 야권이 협력하며 여권을 견제하라는 것이 민심이다. 즉,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소통하면서 새누리당과 세력균형을 이루고 견제하라는 것이 민심의 본질인 것이다. 정치권은 겸허하게 이러한 민심의 본질적 핵심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정치권이 이성적이다.

헤겔은 1821년 <법철학강요>의 서문에서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며,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계몽된 시민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현실을 성찰해 이성적인 것을 찾아낼 수 있다는 말이다. 헤겔의 반성적 이성은 현실에서 자유가 실현되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는다. 그래서 시민의 이성은 자신이 놓인 현실적 삶의 공간인 가족, 시민사회, 국가에서 자유의 구체적 실현을 위한 선택을 한다. 나아가 이성적 선택이 현실화되기를 기대한다. 현실은 이성적 성찰의 기초이며, 이성은 현실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다. 헤겔이 말하는 현실과 이성의 일치가 바로 이번 20대 총선에서 민심을 통해 정확히 드러났다. 우리는 계몽된 시민의 이성을 철저히 사용하며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정치권에 제시한 것이다.

20대 국회 주요 쟁점법안 정당별 입장 _연합뉴스

민심이 현실 안에서 이성적인 것을 찾아내 정치권에 제시한 ‘견제와 균형’의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청와대와 여권이 일방적이고 오만하다. 정치적 타자를 인정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야권과 더불어 공적 문제를 해결하는 정상적인 정치의 모습을 보여 달라. 야권도 잘한 것은 없지만 여권이 너무 못해서 상처받았으니 향후 잘해보라는 의미로 기회를 준다. 제3당을 만들어줄 테니 야권은 서로 협력하라. 여권도 오만함을 버리고 겸손하게 야권과 소통하라. 현실정치가 진흙탕 싸움이어서 정치인으로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서로 신중하게 소통하고 인정하는 멋있는 모습을 보여 달라. 우리도 멋진 민주주의를 갖고 싶다. 나아가 민심을 왜곡하지 말아 달라. 민심은 3당체제를 원했는데 인위적인 정계개편은 민심에 위배된다. 민심의 현실과 일치하는 이성적인 정치를 보고 싶다.”

정치권은 이러한 이성적인 민심을 현실로 읽고 이성적으로 화답해야 한다. 민심과 정치권의 소통이 이성적으로 진행돼야 비로소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정치권은 민심과 이성적인 소통을 할 윤리적 책임이 있다. 민심이 이성적인데 정치권도 이성적이어야 하지 않은가?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더욱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교차투표로 인해 기존 새누리당 지지층도 흡수한 국민의당은 새누리당과도 협조해야 하지만, 호남 민심이 지역구 의석을 국민의당에 몰아주었지만 더민주에 여전히 30.3%의 정당투표를 했다는 점을 인식하며 더민주와 협력해야 한다. 호남 민심이 국민의당을 선택한 것은 더민주에 “제대로 하라”는 애증의 심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더민주도 국민의당과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새누리당은 정치지형의 새로운 현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위기를 극복할 이성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세 당은 민심이 만들어준 현실에서 견제하고 균형을 찾아가는 이성적인 정치를 보여주길 바란다.


장준호 | 경인교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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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또, 다들 대통령을 쳐다본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박근혜 대통령의 향후 행보를 주목하는 직접적 이유는 4·13 총선 성적표 때문이다. 새누리당 122석, 더불어민주당 123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

대통령 머릿속도 복잡할 것이다. 여당에 개헌선인 200석,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할 180석은 ‘희망사항’이었다고 해도 과반에 턱없이 모자라는 122석을 얻었으니 말이다. 명색이 ‘선거의 여왕’인데, 선거 닷새 전 빨간 옷 입고 충청도 다녀오고 통일부를 통해 해외 북한식당 종업원 집단탈출을 공개했는데…. ‘이게 웬열?’

총선 다음날 아침 청와대는 대변인을 통해 “20대 국회가 민생을 챙기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새로운 국회가 되길 바란다”는 짤막한 입장을 냈다. 황망한 분위기야 알겠지만 “민심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겠다”는 의례적인 반응도 없었다. 이를 의식했는지, 대통령이 선거 닷새 만에 내놓은 대국민 메시지가 딱 그거였다. “앞으로 국민의 민의를 겸허히 받들어서….” 한마디 덧붙인 말이 “국민의 민의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이다. 그래서 무엇을 생각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생각할지는 생략됐다. 여당 내에서도 ‘누구 때문에 이 꼴이 됐는데’라는 볼멘소리가 나왔지만, 대통령은 늘 그랬듯 불리한 상황에선 말하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 지금껏 대통령이 하라는 대로 충실하게 했는데, 갈 길을 얘기해주지 않으니 ‘대략 난감’이다. 비박들은 청와대를 향한 쓴소리를 토해내고 ‘진실한 사람들’은 뒤로 빠져 있다. 상황을 수습할 구심점도, 쇄신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야당은 기세가 올랐다. 4월 임시국회부터 달라진 위상을 보여줄 태세다. 박 대통령을 향한 ‘묻지마 지지’를 보여줬던 보수단체조차 청와대에 공격을 가하는 지경이다. 21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대통령 지지율은 31.5%로, 취임 후 최저점이다. 이제 뒤를 돌아봐도 남아있는 사람이 별로 없는 듯하다. 임기는 아직 1년10개월 남았는데, 레임덕이 현실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대통령이 강조하는 경제와 안보의 동시·복합 위기를 넘어, 지금 정권의 위기다.

박근혜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대사 신임장 및 임용장 수여식에 참석하고 있다._청와대사진기자단

국정운영의 토대가 흔들리는 것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다. ‘박적박(박근혜의 적은 박근혜)’이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한·일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등 손대는 일에는 국민들의 한숨소리가 늘었다. 먹고사는 문제도 벅찬 국민의 상식과 달랐고, 민주국가 시민의 자존심을 긁었다.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약해졌다.

어려울 때일수록 정치의 기본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총선 이후 야당과 국민이 대통령에게 달라지기를 기대하는 것이 있다. 대통령도 여소야대 정치 현실에서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먼저 여당과의 대화다. 지시하면 군말 않고 따라오라는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국정의 동업자로서 얘기해야 한다. 야당과도 대화다. 그러지 않고선 20대 국회에서 통과시킬 수 있는 법안은 없다. 대통령이 야당 지도부를 따로 만난 것은 취임 47일 만인 2013년 4월12일이다. 초기 인사 실패에 따른 불통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는데 마지막 회동이었다. 야당 대표와 단독 회담을 한 적은 없다. 경제에 관심없는 듯했던 야당도 “경제위기 상황이 심각해 당장 경제위기 극복 대책기구를 설치해야 한다”(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며 ‘정책 1순위’로 경제 문제를 올리고 있다. 국민과도 대화다. 배우 송중기씨와 함께 한식 체험한다고 소통 행보로 여기질 않는다.

박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렸던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은 “대통령이 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야 사과냐”고 했다. 물론 그렇지 않다. 진정성 있는 소통 행보를 보이면 오만·독선으로 점철된 지난 3년 국정에 대한 각성으로 국민들은 바라볼 것이다. 지금 대통령에게 대화가 선(善)이다.

안홍욱 | 정치부 차장 a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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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이 정치권의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총선 이후 정부가 부실기업 정리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히자 과거 소극적이던 야권도 협력하겠다고 동의했다. 여소야대로 정치지형이 바뀌면서 여야 간 협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구조조정에서 더 나아가 산업개혁을 이뤄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성장을 견인했던 조선·철강·화학 등 ‘중후장대’ 산업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미래 성장동력을 육성해 산업을 개편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는 자율적인 구조조정 역량이 미흡하다. 이런 상황에서 야권과 정부가 힘을 합쳐 경제를 살리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은 바람직하다. 경제문제로 대립해왔던 정치권이 모처럼 박자를 맞추고 있다.

구조조정 원칙에 합의했더라도 각론으로 들어가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우선 풀어야 할 것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량 정리해고이다. 수많은 노동자를 무작정 길거리로 내쫓을 수는 없다. 실업대책이 전제돼야 구조조정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의 발언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구조조정·노동개혁 함께” 새누리당 김정훈 정책위의장이 21일 국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기업 구조조정 방안 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_ 연합뉴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해고를 최소화하는 노력이다. 노동시간을 줄이거나 임금을 삭감한다면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을 정상화한 뒤 우선 채용을 보장하고, 재교육과 재취업을 알선하는 등의 다각적인 지원책도 필요하다.

실업대책에 앞서 사회안전망도 대폭 확충해야 한다. 정부는 고용유지 지원금, 구직급여, 취업 재교육 등이 있다고 말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 노동자가 실직 후 받는 실업급여 등 소득은 직장에 다닐 때의 43%에 그친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26%포인트나 낮은 최하위권이다. 실직자에게 기본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 과거 한진중공업과 쌍용자동차에서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이 얼마나 많은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 기억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는 기업이 도산하면 다른 일자리를 찾아 전전하거나 실업자 신세로 전락한다. 노동자에게 잘못이 있다면 무능한 경영자에게 고용된 것뿐이다. 어느 한쪽에 고통을 전가하는 것은 구조조정의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여러 주체가 분담하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

구조조정을 통한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다. 구조조정은 미룰수록 폐해만 키운다. 총선 등을 이유로 지연시킨 정부 책임이 크다. 부작용을 우려해 미적댔다가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할 지경에 처할 것이다.

여야와 정부가 원칙에 동의함으로써 구조조정은 지금 한국 사회의 공동 현안으로 떠올랐다. 야당이 먼저 구조조정에 따른 대책을 요구했지만 큰 방향에서 보면 정부·여당과 같은 길이다. 이제 그 길을 어떻게 갈 것인지의 문제를 남겨두고 있다. 정치권과 정부가 밀어붙이기만 해서는 구조조정에 성공할 수 없다. 노조, 사용자, 채권단 등 이해관계자의 참여와 지지를 이끌어내야 한다. 노조도 외면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화에 임해 요구할 것과 양보할 것을 가려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구조조정이라는 파고를 지혜롭게 넘길 수 있다.

과거처럼 대립과 대결로 치닫는다면 해결은 요원하고 상황은 더욱 나빠질 것이다. 구조조정은 갈등 의제가 아니라 합의 의제가 되어야 한다. 여야는 물론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한 시점이다. 갈등을 중재하고 조정하는 역할은 정치의 몫이다. 협치하는 정치권의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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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 미소는 상대에게 ‘적의 없음’을 전달하는 가장 효율적인 표현 수단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모든 웃음이 호의를 뜻하진 않는다. 웃음은 기묘한 이중구조다. 웃음을 철학적으로 해명한 앙리 베르그송은 ‘악의 없는 잘못이나 사소한 실수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따뜻한 징벌’로 웃음의 구조를 풀어냈다. 웃음은 “당신 실수한 거야. 그런데 괜찮아. 일부러 그런 게 아니잖아. 힘내”라는 속뜻이 있다는 거다. 이보다 좋은 사회통합의 수단이 있을까? 잘못에 대한 지적은 사회 규범을 강화하고, 장본인에 대한 포용은 사회적 유대를 강화해준다.

웃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직업적으로 남을 웃기는 것은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웃음은 웃음의 대상이 돼줄 ‘바보’가 필요하고, 사람들은 이 악역을 피하려 한다. 어떻게 이 악역을 채울 것인가? 희극의 윤리는 이 질문에서 시작된다. 가장 윤리적인 태도는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을 허구적 바보를 창조해 ‘따뜻한 징벌’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 대척점은 이미 부당하게 조롱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를 ‘바보’의 자리에 앉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겨난 웃음은 포용의 따뜻함이 사라지고 차가운 징벌만 남는다. 이건 웃음이 아니다. 비웃음이다. 상대의 ‘실수나 잘못’에 대한 지적을 자기우월의 근거로 나르시시즘에 빠질 때 발생하는 배제의 표정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어떤 웃음을 짓고 있는가? 비만한 신체, 균형이 맞지 않는 여성의 얼굴, 키 작은 남성, 사투리 쓰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비웃고 있진 않은가? 최근 한 유명 개그맨은 한 부모 자녀까지 비웃음의 대상으로 끌어들였다. 사회적 실수나 잘못이 아닌 고유한 정체성이 어떻게 웃음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사회적 약자를 향한 폭소는 감정표현이 아니라 감각적 탐닉이다. 약자를 공격할 때 느끼는 동물적 쾌락에 끌려 웃음이라는 가면 뒤에서 행사하는 비열한 폭력일 뿐이다. 약자에 대한 비웃음은 동물화된 사회의 전형적 증상이다. 동물은 자극에 반응할 뿐 상대에 호응할 줄 모르지 않는가.

여성혐오 표현에 대한 성별·직업별 공감 비율_경향DB

혐오는 비웃음과 정치적 한 패거리다. 무구한 약자를 부정해서 자신의 위신을 세우려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혐오는 분노와 비슷해 보여도 상대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분노는 일차적으로 부당한 상황에 대한 감정이다. 화를 내는 것은 상대에게 나의 상태를 적극 알려서 부당한 상황을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비록 적대적 태도를 취하지만 상대를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인격체로 인정한다는 얘기다.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화를 선택하는 것은 다툼에서 기선 제압을 위한 일종의 ‘몸집 불리기’이지만 목적은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한 것이다.

강자의 분노는 즉각 해소된다. 사회에 상존하는 분노는 대개 약자의 것이다. 어떤 사회에 분노가 만연하다는 것은 해결책을 찾지 못한 약자의 억울함이 가득하다는 얘기다. 이 분노가 억울함을 초래한 원인제공자를 직접 겨냥할 때 분노는 정치적 사건을 촉발하는 힘이 된다. 이런 점에서 사회적 분노는 약자가 용기 내어 발휘하는 주체적 감정일 수 있다.

혐오는 상대를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고 추한 사물로 대하는 감정적 태도이다. 애초에 해결해야 할 상황의 부당함이 없기 때문에 상대의 반응은 안중에 없고 오로지 상대를 멀리 내치는 데 집중한다. 여기서 격한 감정은 대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어떤 해명을 하든지 나는 거기에 관심이 없다’는 자기다짐을 위한 것이다. 혐오의 뿌리는 정치적 배제다. 확정된 정치적 차별 위에서 차별의 흔적을 지우려는 정서적 코스프레일 뿐이다. 그래서 혐오는 외관상 상황을 완전히 지배하는 강자가 약자를 향해 뿜어내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킨다.

하지만 강자가 약자에 대해 그토록 강한 적의를 느낄 이유가 있을까? 아니다. 강자는 약자에게 무관심하다. 사회적 약자를 추한 사물로 멀리함으로써 강박적으로 우월감을 추구하는 것은 가해자 강자를 닮고 싶은 피해자 약자의 태도이다. 혐오는 부당함을 초래한 분노의 원인 제공자를 모르거나 적대할 용기가 없는 피해자의 적의가 사회적 약자로 전이될 때 발생한다. 거기서 비롯되는 심적 불편함을 격한 우월감으로 가리지만 결국 사회적 약자의 정치적 항변을 원천봉쇄하는 데 본의 아니게 동원되는 청부폭력으로 끝날 뿐이다. 역사 속의 인종주의를 추동하던 혐오의 주체들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던가. 여당대표가 표를 얻기 위해 동성애 혐오를 부추기고 한 부모 가정이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사회는 일상의 혐오와 비웃음을 중단하는 것이 투표만큼이나 절실한 정치참여이다. 4년에 한두 차례 사지선다형 문제를 푸는 것만으로는 뭔가 허전하지 않던가.


남재일 |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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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선거혁명은 완장을 두른 ‘갑질’의 횡포와 독선, 오만과 불통에 대한 유권자의 통쾌한 응징이었다. 절대강자의 ‘갑질’에 대한 약자들의 위대한 설욕이었다. 그동안 수면 아래에서 꿈틀대던 유권자들의 불만과 분노가 투표참여를 통해 폭발한 전면적 국민주권운동의 개가였다. 어느 정치평론가보다도 합리적, 전략적 판단을 하고, 어떤 여론전문가들도 분석, 접근하지 못하였던 유권자의 상식과 지혜, 집단지성의 승리였다. 유권자들을 향해 큰절을 올리고 싶다.

정치꾼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동원되지 않은 주권자에 의한 명쾌한 권력 심판이었다. 더 이상 대한민국의 유권자들은 단순한 투표기계가 아님을 선언하였다. 지역주의정치의 포로가 아니었다. 개발주의자 후보들이 남발한 지역개발 공약에 소요될 비용을 계산해 보니 174조원이나 되었다. 모두 부도수표가 될 공약이었다. 일자리 공약을 모두 합치면 앞으로 5년간 1098만개나 되었다. 한 해 200만개가 넘는 규모이다. 아무런 재원 대책도 없이 공수표를 남발한 것이다. 따라서 이런 개발주의와 시장주의 후보들은 사기꾼이나 마찬가지였다. 국가는 뚝딱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장판의 경제기업이 아니다. 설령 국가예산이 있다 하더라도 대체로 불가능한 수치였다. 나라살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국회의원 후보들이 태반이었던 셈이다. 지방의회의 기초자치단체 의원이나 내놓을 만한 개발 공약을 내밀고 지지자를 모으려는 꼼수도 없지 않았다. 유권자들을 장기판의 병졸로 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턱도 없는 공수표 공약이 즐비했다. 참으로 안타깝고 한심한 후보 공약들이었다.

더민주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4월 15일 국회에서 열린 20대 국회의원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박수를 받으며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_경향DB

4·16 피해 가족과 시민단체가 나서서 주요 정당 총선 후보자들에게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안전대책, 피해자 지원 및 추모, 기억에 관한 4대 정책과 12개 실천과제의 준수 여부를 물어봤다. 새누리당은 아예 응답도 하지 않았지만, 이 야비하고 몰염치한 보수정치결사체의 과거 당론을 고려해 침몰 선박 인양에 대해서만 약속한 것으로 간주해 주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은 4대 정책과 12개 과제 전부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국민의당은 4대 정책과 11개 과제 추진에는 동의하나, 1개 과제(특별조사위원회 조사기간)에 대해선 답변을 유보했다. 앞으로 3개월 안에 이 약속 실천 여부가 결판날 것이다.

어디 이것뿐인가. 이번 20대 국회에서 해결되어야 할 당면과제만 열거해 보아도 부지기수이다. 이른바 테러 방지를 빙자한 대국민 감시 ‘테러방지법’과 노동개악 법안 폐지, 허위사실이나 불확실한 주장을 유포하는 종합편성채널의 강력 제재, 대통령의 상위법 위반 시행령 시행 금지 및 폐지, 지방자치제의 억압 금지, 개성공단 운영 재개 및 원상회복, 이명박 정권의 4대강 및 자원외교, 제주해군기지 건설 과정을 비롯한 군사 관련 대형비리에 대한 특별검사 또는 국정감사, 한·일 간 ‘일본군 위안부’의 일방적 합의 발표 무효화, 기회균등법 제정 등이다.

이런 현안 해결을 위해 이제 모든 정당들은 구습이나 낡은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보수정권에 반대하는 정당들은 이제 전국정당과 책임정당, 정책정당으로 도약할 좋은 기회이며 계제이다. 시민정치운동은 이런 정치권의 변화를 요구, 촉진하기 위한 국민운동을 벌일 것이다.

이러한 4·13 선거혁명의 후과는 2017년 12월 대선 승리에 독배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참으로 일리가 있는 통찰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비생산적이고 불필요한 대결정치를 끝내고, 보수정권 반대 정치세력은 대화와 상호협의, 타협의 정치를 통해 의회권력의 정상적 운영과 행사를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헌법대로 국회가 정상화되어 행정부권력의 일방주의를 견제하고, 국가권력의 균형을 되찾아야 한다. 새로운 국가 형성을 위한 수권능력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시민정치운동세력은 이를 지켜보며 평가할 필요가 있다.


허상수 | 다시민주주의포럼 연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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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만의 여소야대, 20년 만의 3당 체제라는 결과를 낸 20대 총선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의미를 던졌다. 그런데 이번 총선을 돌이키면서 결코 빠트려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북풍’이다.

총선을 닷새 앞둔 지난 8일 오후 5시로 가보자. 통일부는 느닷없이 해외 북한식당 종업원 13명이 집단탈출해 국내에 들어왔다고 공개했다. 이들이 입국한 다음날이었다. 사진도 공개했다. 선거 사흘 전엔 통일부와 외교부가 브리핑을 자청해 “대북 제재에 영향을 받은 탈북”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선거 이틀 전엔 지난해 발생한 ‘고위급 탈북자’ 관련 언론 보도가 나오자 즉각 시인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3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20대 총선 수도권 후보 출정식에서 후보자들과 악수하며 필승을 다짐하고 있다._경향DB

탈북자 정보 공개에 관한 정부의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들이 연달아 벌어진 것이다. 박근혜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이었던 류길재 전 장관마저 언론 인터뷰에서 “탈북자는 신변안전 문제가 있어 비공개가 역대 정부의 일관된 원칙이었다”면서 “탈북자 공개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정부가 총선 이후 보이는 모습을 보면 기존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린 이유는 명백해진다. 총선이 끝남과 동시에 침묵 모드로 돌아간 것이다. 정부 당국의 ‘급변침’을 기획한 장본인이 누구인지는 차차 드러나겠지만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청와대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월16일 국회 연설에서 “우리 사회 일부에서 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이라는 원인보다는 ‘북풍 의혹’ 같은 각종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픈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은 선거를 위해 내팽개친 탈북자들의 인권과 그들 가족들의 신변안전, 그리고 헌신짝이 돼버린 정부의 원칙을 가슴 아파하고 있다.


김재중 | 정치부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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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이 끝나고 1주일이 흘렀다. 일반적으로 선거 후 이 시점쯤 되면 패배한 정당은 “뼈를 깎는” 각오로 환골탈태를 다짐하게 마련이다. 새누리당은 다른 것 같다. 지난 1주일 동안 벌인 일이라곤 ‘원유철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를 둘러싼 논란과 갈등뿐이다. 과연 집권당이 맞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어제 “대표 권한대행으로서 당의 중심을 잘 잡고 책임감 있게 차기 지도부가 들어설 때까지 잘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차기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아야 한다”고도 했다. 자신이 비대위원장을 맡는 데 대한 반발이 거세지자 결국 물러선 것이다. 당초 최고위원회가 ‘신박(새로운 친박)’으로 불리는 원 원내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추천한 것부터 잘못이었다. 총선 참패에 책임져야 할 인사에게 당 혁신을 맡긴다는 게 말이 되는가. 당권을 놓지 않으려는 친박계의 욕심이 혼란만 야기한 것이다.


친박계의 안이한 현실인식은 박근혜 대통령의 인식과 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은 지난 18일 “이번 선거 결과는 국민의 민의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과나 반성은 없었다. 만약 대통령이 국정 실패를 겸허히 인정하고 진솔하게 사과했다면 친박의 행태도 지금 같지는 않았을 터다. 대통령은 그러나 ‘주어’도 분명치 않은 선거 평가로 어물쩍 넘어감으로써, 자신을 정점으로 한 권력 핵심부에 ‘면죄부’를 주고자 했다. 이러니 친박도 책임감이나 위기의식을 갖는 대신 당내 패권에 미련을 두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가 새누리당에 치열한 성찰을 요구하는 까닭은 그들이 패자여서만은 아니다. 원내 2당으로 추락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국정 운영의 핵심축인 집권당이기 때문이다. 총선 민의는 집권세력의 총체적 변화를 요구했다. 새누리당이 이러한 민의를 정확히 읽어내지 못한 채 과거에 머무른다면, 국정은 또다시 표류하고 민생은 더욱 악화될 게 분명하다. 민의 존중의 출발은 새누리당이 청와대의 거수기 노릇에서 벗어나는 것이어야 한다. 뒤늦게나마 친박 일부에서도 수직적 당·청 관계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새누리당은 총선에선 졌지만 대선에선 보수 결집·야당 분열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혁신 없이 요행만 기대하다가는 더욱 가혹한 민의의 심판에 직면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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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슈라이어 현대·기아차 디자인 총괄사장은 세계 자동차시장에 기아차의 존재감을 확산시킨 인물이다. 그가 디자인한 K시리즈가 세계 무대에서 큰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K7은 아우디, K9은 BMW 일부 디자인과 비슷해 베끼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슈라이어 총괄사장은 이에 대해 “수입차 같다는 평가는 기분 좋은 일이다. 그만큼 디자인팀에서 멋진 결과물을 만들었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라고 일축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좋은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베끼는 게 필요한 모양이다. 독창적인 화풍으로 유명한 파블로 피카소조차 “훌륭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도용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애플 창업자 고 스티브 잡스는 끊임없이 창조와 혁신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가 새로 발명한 것은 없었고, 모방과 도용을 적절히 섞었다. 잡스와 애플이 잇따라 성공한 개인용 컴퓨터와 아이콘 또는 윈도를 이용한 GUI, 아이팟, 아이폰 등은 기존 제품이나 시스템을 이용해 만들어낸 새로운 조합이었다. 요즘 화두인 융합을 일찌감치 실행했다.

정부 정책은 대부분 창조성이 떨어진다. 과거 것을 베껴 재탕, 삼탕 하는 수준에 그치는 자기표절이 허다하다. 몇 년 전 정책을 서랍 속에서 꺼내 최근 상황에 맞춰 적당히 손질해 포장한 뒤 새 정책인 양 내놓곤 한다. 조만간 발표할 청년·여성 일자리 대책과 재정개혁안 등도 혁신적인 내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책을 답습하는 것은 일자리 확충, 소득 증대, 성장률 제고 등과 같은 거시적인 정책 목표가 예나 지금이나 같기 때문이다. 여전히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3월 25일 녹색당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_녹색당

4·13 총선이 끝났다. 출사표를 낸 24개 정당 가운데 국회에 진출한 정당은 4개뿐이다. 나머지 20개 정당이 내걸었던 공약은 휴지조각이 될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재활용한다면 정부 정책 수립에 훌륭한 참고서가 될 수 있다. 국회의원 당선자를 낸 기존 정당의 거대 담론 공약과 달리 소수당에는 현실에 접목할 수 있는 생활 밀착형 공약이 많다. 정부가 정책으로 만들 만한 공약이 수두룩하다. 정치의 본질은 권력 획득이라지만 이번 총선에 나섰던 일부 소수당은 시민생활 개선을 위하여 국회에 입성하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었다.

각각 200쪽이 넘는 녹색당과 노동당의 공약은 정책 아이디어 뱅크라고 할 수 있다. 구태의연하지 않고 신선하다. 녹색당은 2015년 4월 공약개발단을 꾸리고 총선 1년 전부터 공약 개발에 열중했다. 평범한 시민들이 함께 살기에 행복한, 건강한 사회를 그렸다고 했다. 기존 정당에서 외면하고 있던 탈핵과 대안에너지, 동물권, 먹거리, 기본소득 등 새로운 의제를 제시했다. 노동당은 모두를 위한 좋은 삶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경제·생태적 전환의 경로와 정책 수단을 공약에 담았다.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1만원, 기본소득 등이 대표 공약이다.

녹색당은 노인·장애인·농어민·청년 등에게 1인당 월 40만원을 지급한 뒤 이를 전 연령대로 확대하는 공약을 냈다. 노동당에도 조건없이 모든 국민에게 월 30만원을 지급하는 공약이 있었다. 유럽 일부 국가에서 시행을 앞두고 있는 기본소득 정책이다. 기본소득은 소비기반을 강화해 소비를 활성화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기본소득 검토 필요성을 제기했으니, 이제 정부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해 노동당과 녹색당은 나란히 주 35시간 근무제를 주장했다. 더 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일자리를 나누는 것 역시 정부가 검토해야 할 사안이다.

길고양이 급식소 확대, 공장식 축산업 동물복지 기준으로 전환, 동물실험 50% 감축, 동물원 동물보호시설로 전환 등 녹색당의 ‘동물권’ 보장 공약은 생활밀착형이다. 교육과 관련해서는 노작, 예술, 체육 등 ‘몸 쓰는’ 교육과정으로 혁신, 강제적 학습노동 금지, 국가 수준 일제고사 및 초등 교육평가 폐지 등을 내세웠다. 선거권이 없어 기존 정당은 내놓지 않는 동물과 학생을 위한 정책이다.

이제 4년 뒤에나 국회의원을 뽑게 됐다. 만약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 없이 전원을 비례대표로 뽑았다면 다양한 정책을 내놓은 여러 소수당도 국회에 진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선거 전 소수당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정책을 제안하고 있기 때문에 원내 진입은 시민이 국회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지만 실패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기존 정당들은 총선이 끝나자 승자는 승자대로 패자는 패자대로 서로 물고 뜯느라 정신이 없다. 무능한 정부·여당을 심판해 참패를 안긴 유권자의 힘은 놀랍다. 하지만 진정한 시민 대표를 국회에 얼마나 보냈는지는 의문이다.


안호기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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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총선이 끝나자 제19대 국회의 마지막 임시국회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예측과는 달리 여야는 비교적 무난하게 회의 개최에 합의했다. ‘최악의 국회’라고 비판을 받는 제19대 국회의 마지막 회의라는 부담감이 작용했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이번 국회에서 다룰 것으로 예상되는 법안 중에는 중요한 것들이 적지 않다. 노동4법, 세월호특별법, 테러방지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여야나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의견차가 컸던 쟁점 법안들이 논의 대상에 포함돼 있다. 이 중 상당수는 대다수 국민의 일상생활이나 복지와도 직접 관련이 있다.

23일 국회 본 회의장에서 야당 의원들이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여당 의원들이 제340회 임시국회 7차 본 회의가 열리길 기다리고 있다._경향DB

이 런 법안들의 처리 문제를 보도하는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것이 여야의 입장이 바뀌었다는 기사이다. 총선 이전에는 여당인 새누리당이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하자고 주장했는데, 선거 후에는 오히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개정을 주장한다는 기사가 대표적이다. 기사를 읽다 보면 정당들이 일관된 원칙 없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이나 유불리에 따라 주장을 이리저리 바꾸는 것이 우리 정치의 현실이라는 생각이 든다.선거가 끝나고 ‘통치’가 아니라 ‘협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것이 선거에 나타난 민의를 반영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나 정부가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반대나 비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치를 해야 한다는 요구이다. 그렇지만 ‘협치’가 무조건 타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쟁점이 되는 문제를 둘러싸고 의견차는 존재할 수 있다. 정부나 정당들 간에도 관점이나 철학의 차이가 있다. 이를 무조건 타협하라고 요구하는 것보다는, 어느 편의 주장이 바람직한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지 평가하고 힘을 보태는 편이 낫다.

선 거는 민주사회에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효율적인 수단이다. 이번 선거도 이를 입증했다. 대의정치는 그런 민주주의 효율성에서 나왔다. 그렇지만 효율적인 수단이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참여민주주의가 강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거 때만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국민이 지속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여론의 형성과 이를 통한 정치적 압력은 하나의 유력한 방법이다. 그런 사례로 이번 임시국회 개최가 선거를 전후해서 나온 사회적 쟁점들과 법안들을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평 가와 판단의 기준은 비판적 사고와 합리적 판단이다. 1년으로 되어 있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임기를 법 시행일부터로 봐야 하는지, 실제 활동이 시작된 사무처 구성부터로 봐야 하는지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조사위원회의 활동을 세월호 인양 이후까지로 하는 것과 그 이전에 끝내는 것 중 어느 편이 특별법의 취지에 맞는 것인지 비판적 사고가 필요하다.

이 를 위해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은 정치적 대립의 강조가 아니라 판단의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이런 비판적 사고와 합리적 판단 능력은 사고의 경험과 훈련에서 나온다. 장래 사회구성원을 기르는 학교 교육이 사고교육이 돼야 하는 이유다.

더 민주와 국민의당은 20대 국회가 열리면 ‘역사교과서 국정화 폐기 결의 추진’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더민주는 이미 작년에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는 역사교과서가 좌편향되었다고 몰아붙이면서 국정화의 당위성을 주장했지만, 국민들의 여론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인 것이 이번 선거에서 패한 이유 중 하나라는 평가도 나올 정도이다. 여기에는 국정교과서가 정권의 홍보, 독재와 친일을 미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한몫을 했다.

그 렇지만 정권의 홍보나 독재와 친일 미화와 상관없이 궁극적으로 국정교과서가 가지는 문제는 사고의 기회를 제한한다는 점이다. 역사를 비롯한 인문사회과목의 공부를 하는 기본적 목적은 비판적 사고와 합리적 판단 능력을 기르는 데 있다. 인문사회교육은 이를 위해 학생들에게 사고경험을 제공한다. 국정교과서가 가지는 근본적인 문제점은 사고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한하고, 사고 결과를 주입시키는 데 있다. 이는 우리 사회와 학교 교육이 가지는 근본적인 문제점이기도 하다. 비판적 사고와 합리적 판단의 근거가 되는 정보에 쉽게 접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그래야 선거의 결과가 정치권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와 합리적 판단의 결과를 지속적으로 반영하게 된다. 그리고 사회적 쟁점에 대한 논의들이 한국 사회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는 단서가 될 것이다.


김한종 | 한국교원대 역사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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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