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뉴욕타임스에 ‘한국 정부의 개혁 노력’이란 제목의 반론문을 게재했다. 한국 정부를 비판한 이 신문의 사설에 대한 반론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20일 한국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노동개혁, 소셜미디어 통제 방안을 비판한 바 있다. 정부의 퇴행적 정책으로 해외 언론의 비판 대상이 된 것만도 망신 살 일인데, 정부가 국민 뜻을 배제한 채 일방적 주장을 게재하다니 한숨이 나온다.

김기환 뉴욕총영사 명의로 쓴 정부의 반론문은 형식과 내용 모두 문제가 있다. 먼저 정부가 해외 언론에 반론문을 싣는 행위 자체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국내 비판 여론은 철저히 묵살하던 정부가 해외 비판 여론에는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중성도 놀랍다. 다수 국민의 비판 목소리는 대꾸할 가치가 없다는 것인가. 반론문 게재는 미국인들 앞에서 자국민을 비하한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이다. 도대체 어느 나라 정부인지 묻고 싶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오른쪽) 김기환 주뉴욕 총영사(왼쪽)의 안내를 받으며 강연장에 입장하고 있다_연합뉴스


외교관을 앞세운 것도 눈에 거슬린다. 물론 외국 언론 보도가 틀렸다면 이를 바로잡는 것이 외교관의 당연한 책무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반론문은 전혀 성격이 다르다. 외교관에게 국정 실패를 변명하는 역할을 맡긴 셈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기본권을 억압하던 유신시대에 정권 해명에 외교관을 동원하던 행태가 연상된다. 뉴욕총영사관은 정부 비판 기사를 실은 미국 잡지 ‘더 네이션’의 기자와 편집책임자에게도 해명하겠다며 만나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하기도 했다. 정부가 이런 노력의 절반이라도 국내에서 기울였다면 정책을 둘러싼 갈등은 지금보다 훨씬 완화됐을 것이다.

반론문 내용은 왜곡과 날조로 점철된 정부 광고를 방불케 한다. 특히 “한국 정부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법의 지배에 전적으로 충실하다”란 대목에서는 입을 다물기 어렵다. 정부가 다원성을 핵심 원리로 하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다양성과 다수 국민의 반대를 묵살한 채 정부 입맛에만 맞는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국정화 추진이 대표적이다. “현행 노동개혁이 노동계, 재계, 정부의 대타협에 기초한 것”이라는 해명도 말이 안된다. 노사정 타협안에는 노동개혁의 핵심인 ‘쉬운 해고,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추진’이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통하지 않는 대국민 호도 수법이 해외라고 해서 먹혀들 리 만무하다. 오히려 이번 반론문 소동은 미국인들에게 한국 정부가 반대 목소리를 겸허한 자세로 경청하고, 국정운영에 반영하는 민주적인 정부와 거리가 멀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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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출마를 앞둔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퇴임이 임박하면서 재임 17개월간의 평가가 한창이다. 실세로 기세 좋게 내달린 그의 경제정책은 부총리로서는 흔치 않게 ‘초이노믹스’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최 부총리의 경제정책을 한마디로 하면 부양 일변도 성장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예산을 적자로 운영했고 기금과 공기업 자금까지 끌어썼다. 갖가지 규제완화에 한국은행을 압박해 금리 인하를 이끌어내면서 민간 빚까지 동원해 경기를 띄웠다. 정책 초기에는 나름대로 평가를 받았지만 밑천이 쉬 드러났다. 올해 성장률은 2%대다. 소비의 불씨는 미약하고, 투자는 무소식이다. 부동산시장은 과열을 걱정하는 단계에까지 왔지만 경제를 데우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는 사이 나라와 가계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런 부채 주도 성장정책은 이미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뒤늦게 부동산 규제 강화를 얘기하지만 미국 금리 인상으로 시장이 식을까 끙끙 앓는 상황이다. 결국 카드를 돌려막으면서 형편이 나아지면 빚을 갚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빗나갔고, 지금은 훗날을 기약하기 어렵게 됐다. 서민들의 삶도 척박해졌다. 소득을 올려 경제를 살리겠다는 계획은 말 잔치로 끝났다. 부동산 활성화는 집값만 올리고 전세난만 심화시켰다. 정부는 노동 5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일자리가 늘고 경제가 활력을 찾을 것으로 얘기하지만 해고가 쉬워지고, 비정규직 파견업종이 늘어나면 노동자만 더 힘겨운 처지에 몰리게 된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4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_연합뉴스


엊그제 경제협력개발기구는 한국에서 대기업의 낙수효과는 한계에 달했으며 오히려 양극화만 심화시킨다고 충고했다. 이런 분석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상식이다. 최 부총리의 실패는 국내외 경제여건과 상황의 구조적 변화에 둔감한 채 경기침체를 그저 순환기적 추세로 보고 성장 지상주의와 낙수효과로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던 안일한 접근법에서 기인한다. 이제 경제를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성장률이 높아도 삶의 질이 떨어지면 소용이 없다. 방법은 나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초심으로 돌아가면 된다. 박 대통령은 당시 경제민주화를 통해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에서 벗어나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일자리 확보와 가계부채 완화 등을 통해 서민경제를 안정시키겠다고 했다. 해고요건 강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말할 것도 없다. 박 대통령에게 남은 시간은 2년 남짓이다. 지금 박근혜노믹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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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화 국회의장이 그제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조원진 수석부대표 등 여당 원내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 선거구 획정에 임하는 여당의 태도를 비판했다. 원 원내대표가 지지부진한 선거구 획정을 거론하며 야당 탓을 하자 정 의장은 “의장으로서 할 도리를 다하려고 하는데, 선거구 획정 문제에 있어선 새누리당이 좀 과하다”며 “형님이라고 볼 수 있는 여당이 너무 당리에 치우쳐 있는 게 아니냐”라고 말했다. 총선을 4개월 앞둔 시점까지 법정시한을 어기며 공전하고 있는 선거구 획정 논의에 여당 출신의 무소속 국회의장이 여당을 질타한 것이다.

선거구 획정 지연의 책임을 여당에만 물을 수는 없다. 하지만 최근 협상 과정을 들여다보면 여당의 억지가 확연히 눈에 띈다. 비례대표를 줄이자는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주장을 고수하더니 이젠 자당에 유리한 안을 관철하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새누리당 소속 이병석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장이 내놓은 ‘균형의석제’ 중재안을 수용하는 듯하다 갑자기 거부한 것이다. 정당득표율에 비례한 의석 수의 과반을 보장하는 ‘균형의석제’는 사표 방지와 투표의 비례성을 강화한다는 측면에서 여야가 그나마 접점을 찾을 수 있는 안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를 위해 자당의 안인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거두고, 그동안 고수해온 비례대표 축소까지 수용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를 부결시켜 합의가 무산됐다. 시뮬레이션 결과 여당의 과반의석 붕괴가 우려된 탓이다. 더구나 조 수석부대표는 여야가 합의해오라는 정 의장을 향해 “의장이 정개특위 기간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하면 (문제가 해결) 된다”고 압박까지 했다. 야당을 궁지에 몰아넣은 뒤 항복을 받아내겠다는 것이다.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의화 국회의장이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를 만나 오후에 예정된 본회의에서 쟁점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당부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_권호욱 선임기자


선거구 획정 지연의 피해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선거구가 정해지지 않은 바람에 출마 지역을 정하지 못해 정치 신인들이 아우성이다. 오는 15일 전까지 합의하지 못하면 신인들이 예비후보로 등록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신인들의 발은 묶어놓고 현역 의원들만 선거운동을 하는 불공정 게임을 여당이 주도하는 것은 무책임을 넘어 과욕의 극치다. 여당 출신 국회의장의 역정에 공감이 간다. 19대 국회는 숱한 정쟁으로 정치 혐오를 부추겼다. 이제 선거구 획정의 기득권까지 지키려고 하니 최악의 여당이라는 오명은 떼어놓은 당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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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각종 설화에 휩쓸리고 있다. 물론 이산화탄소를 이산화가스라고 잘못 말했을 경우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상식이 의심된다는 댓글이 달린 정도에서 그쳤다. 세월호 참사 때 수중파괴부대인 UDT를 DDT로 잘못 부른 것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UDT는 살충부대네’라는 조롱성 글이 있었지만 다들 웃고 넘어갔다. 그렇지만 2012년 대선 후보 등록 기자회견에서 “국회의원직을 사퇴한다”가 아니라 “대통령직을 사퇴한다”고 말했을 때는 반응이 관대하거나 호의적이지 않았다. ‘대통령직을 사퇴해야 대선 후보가 되는구나’ ‘마음속에서는 이미 대통령?’이란 댓글들이 이를 말해준다. 박 대통령의 언어는 ‘우리’와 ‘국민’이 주류라고 청와대는 주장한다. 취임 후 연설과 모두발언 등을 통해 이 두 단어를 가장 많이 언급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불철주야 나라와 국민만 생각한다는 얘기다. 한 사람의 언어와 생각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겠지만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대통령의 언어가 독기를 품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초부터다. 규제를 ‘암 덩어리’ ‘원수’라고 하거나 “단두대에 올려 처리하겠다”고 말했을 때 국민은 깜짝 놀랐다. 대통령이 섬뜩하고 살벌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낯설고 불편했던 것이다. 지난달 ‘민중총궐기대회’ 집회 참가자를 IS 전사에 비유한 것을 두고는 비난이 쏟아졌다. 국민에 대한 관심과 호의를 포기한 듯한 대통령에게 국민도 적대감을 표출한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53회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과 함께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_청와대사진기자단


그럼에도 대통령의 발언은 수위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테러방지법이 없어 테러당하기 만만한 나라가 되었다”는 국무회의 발언이 표적이 되었다. 테러방지법의 국회 통과를 바라는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터무니없는 논리로 국민을 협박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온라인 등지에서 패러디도 양산되고 있다. 가장 널리 공유되는 것은 “한국에 독재방지법이 없어 독재하기 만만한 나라가 된 것”이라는 글이다. “법이 없어서 살인·강간이 일어나나” “IS가 왜 우리 법을 지켜야 되죠?” 등의 풍자도 떠돈다. “새누리당은 성폭력방지법이 있는데 왜 그러죠?”란 글도 주목받는다. 이제는 청와대가 뭐라고 설명할지 궁금하다.


조호연 논설위원 c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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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7년간 복직투쟁을 해온 KTX 승무원들에 대한 고등법원 판결이 있었다.

KTX가 처음 출범하던 2004년, 공채를 통해 선발된 280명의 직원들은 당장은 계약직이지만 2년 뒤 정규직이 된다는 철도공사 측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계약만료에 의한 해고였다. 승무원들은 여기서 물러나는 대신 소송을 제기했다. “철도공사가 자신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해고 기간 동안 지급받지 못한 임금도 달라”는 게 그들의 요구였다.

1심과 2심은 철도공사가 그간 밀린 임금을 지급하라고 판결이 났지만, 대법원의 판결은 달랐다. 대법원은 이들이 철도공사의 직원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고, 뒤이어 열린 파기환송심도 결국 원고패소로 결말이 났다. 이제 승무원들은 정규직 채용은 고사하고 이전에 지급받은 임금 8600여만원을 다시 토해내야 한다.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 판결은 별반 화제가 되지 못했다.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지난 7년간 이들의 투쟁이 주목을 받은 적도 없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많은 이들이 KTX 승무원들의 욕심을 탓했다.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란 책에는 20대 대학생들이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적나라하게 나와 있다.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되잖아요.” 한 학생이 이렇게 말했을 때 저자는 이 학생을 걱정했다고 했다. 이 발언으로 인해 그 학생이 혹시 왕따가 되지나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그건 기우였고, 다른 학생들 모두 이 학생의 말에 동감을 표시했다. 많은 젊은이들의 꿈인 공사 정규직을 계약직으로 들어온 이들이 쉽게 차지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 것도 전혀 이해 안되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생각을 좀 달리해보자. KTX 승무원들로 인해 ‘비정규직으로 2년간 근무하면 정규직이 된다’는 약속이 지켜지는 사회가 된다면, 지금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수많은 젊은이들도 정규직의 꿈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난 KTX에 대한 사회의, 특히 젊은층의 무관심이 아쉽다. 판결이란 게 법을 토대로 이뤄지는 것이긴 해도, 세간의 여론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이번 승무원들의 소송에서도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 민사1부의 판단은, 같은 사안을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달랐으니 말이다.

이보다 먼저 있었던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해고무효 확인소송을 보자.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본 1심과 달리 2심에서는 사측이 해고회피 노력을 하지 않았다며 해고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에도 문제는 대법원이었다. 2014년 말, 대법원은 해고가 적법하다며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런 판결이 내려진 데는 우리 사회의 여론도 한몫을 했다는 게 내 생각이다. 25명의 해고자와 가족들이 자살 등으로 목숨을 끊었지만, 사람들은 기이하리만큼 무관심으로 일관했으니까. 오히려 젊은층은 “해고도 마음대로 못하면 회사 망하라는 거냐?” “잘리면 다른 일 하지, 왜 파업하고 앉았느냐?”며 해고자들의 복직투쟁을 조롱했다. 그들의 단견이 아쉬운 이유는 이 판결로 인해 앞으로 우리나라 기업은 정리해고 요건을 갖추지 않고 직원을 해고해도 상관없게 됐고, 이 부담은 고스란히 젊은층에게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청년실업 문제가 우리 사회를 짓누른 건 벌써 십년도 더 된 일이다. 이들을 가리켜 삼포세대니 오포세대니 하는 말이 만들어지곤 하는데, 안타까운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이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당하게 해고된 근로자들의 편에 서지 않는 것도 그렇지만, 자기들끼리 뭉쳐서 뭔가를 이루려는 움직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건 더 큰 문제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라고 정부를 압박하거나, 정규직을 많이 안 뽑는 기업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인다든지 하는 일을 지금의 20대가 벌였다는 기사를 본 적이 없다. 미약한 개인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지만, 연대하면 힘이 커진다. 현재 7년째 동결된 대학등록금은 대학생들이 하나가 되어 이룬 빛나는 성과가 아닌가?

2006년, 프랑스 대학생들은 정부의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에 반발해 거리로 나왔다. 4년이 지난 2010년에는 노동자들의 정년을 2년 연장하는 것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면서 고교생들까지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와는 달리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지금도 토익점수를 몇 점 더 올리기 위해 영어책을 뒤적이고, 짬이 날 때마다 댓글을 단다. “정규직 날로 먹으려 하면 안되잖아요.”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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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안철수 전 공동대표의 ‘혁신 전당대회’ 제안을 재차 거부했다. 문 대표는 어제 중견언론인모임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총선을 앞둔 지금 서로 대결하고 분열하는 전당대회를 선택하는 것은 어렵다”며 이같이 밝혔다. 안 전 대표의 탈당 가능성에 대해선 “공동창업주로서 탈당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새정치연합 내 비주류에선 주승용 최고위원이 당직 사퇴를 선언하고 최재천 정책위의장도 사퇴를 검토하는 등 반발이 본격화되고 있다. 새정치연합 내분이 정면충돌을 넘어 파국을 향해 치닫는 형국이다.

문 대표는 안 전 대표를 향해 “전당대회에서 경쟁으로 끝을 내자는 제안이라면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다. 대결하자고 하면, 대표 권한으로 어떤 상처를 받더라도 끝까지 뚝심 있게 걸어나가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연대’ 제안을 두고는 “(제 입장에선) 자존심이 상했지만, (기득권을) 크게 내려놓겠다는 것이었다”며 “(안 전 대표가) 마땅치 않다면 또 다른 방법으로라도 협력 방안을 제시해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정의당이나 천정배(신당) 세력과 통합하는 전대가 될 수 있다면 대표직을 내려놓을 수 있다”며 야권 전체가 뭉치는 ‘빅 텐트’론에 대해선 긍정적 입장을 표명했다.

문·안 갈등의 시발은 2012년 대선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야권 후보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양측은 충돌을 거듭했다. 결국 안 전 대표가 일방적으로 후보 사퇴를 선언했으나 ‘감동 없는 단일화’의 효과는 미미했다. 두 사람 모두 승자가 되는 상생의 게임에 이르지 못한 까닭이다. 결론은 모두가 알다시피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대선 이후에도 해소되기는커녕 켜켜이 쌓여온 문·안간 감정대립은 3년 만에 비등점에 이르고 말았다. 이제는 두 사람이 ‘루비콘 강’을 건너고 있는 것 같다.



문 대표는 내년 총선과 관련해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은 반드시 막아야겠다는 게 1차 목표”라고 밝혔다. 지지자들의 바람이기도 할 것이다. 실현 가능한 목표인지 묻고 싶다. 새정치연합의 유력 대선주자 3인 중 한 명은 다른 길을 가고, 또 다른 한 명은 지방자치단체장으로 운신의 폭이 좁은 상황이다. 최고위원 2석이 공석이 되고 주요 당직자들이 잇따라 사퇴를 시사하면서 지도부가 와해 위기에 처했다. 이런 환경에서 문 대표 홀로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을 저지할 수 있겠는가. 수개월 동안 자기편끼리 싸우는 정당에 기꺼이 표를 줄 주권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문 대표가 총선 승리를 원한다면, 아니 최소한 패배를 바라지 않는다면 새정치연합의 모든 역량을 끌어모아야 한다.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각이 전혀 다른 재벌 2세 정몽준 의원과도 손을 잡았다. 지지층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정치다.

문 대표는 안 전 대표를 포함해 야권의 모든 자원을 포용하지 않고는 총선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안 전 대표가 요구해온 ‘혁신 전당대회’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이에 버금가는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안 전 대표가 다시 함께할 수 있는 출구를 열어줘야 한다. 필요하다면 대표직도 내놓을 수 있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야당이 사분오열한 채로 내년 총선을 치른다면 결과는 명약관화하다. 일각에선 새정치연합이 ‘바닥을 치면 올라올 일만 남는다’고 말한다. 내년 총선에서 지면 2017년 대선에서 정신을 차릴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호사가들의 입방아일 뿐이다. 새정치연합이 총선에서 참패하고 개헌선(200석 이상)을 새누리당에 헌납하고 나면, 다음 대선은 아예 치러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미 새누리당 내 친박근혜계에서는 공개적으로 개헌론, 그것도 이원집정부제를 들먹이고 있다. 문 대표는 자신의 실패가 ‘개인 문재인’의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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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청 시민의식선진화팀 공무원들이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박원순 서울시장과 서울시 등을 비방하는 댓글을 작성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이 평일 업무시간에 댓글을 단 것으로 미뤄 구청 차원의 댓글팀 운영으로 의심되고 있다. 국가정보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의 댓글부대 운영에 이어 구청 공무원들마저 일반 누리꾼을 가장해 댓글로 여론 조작을 시도했다니 놀라울 뿐이다.

경향신문이 보도한 이들의 댓글은 건전한 비판이라기보다 막말에 가깝다. 박 시장을 ‘비열한 정치꾼’ ‘깡패 같은 행정’으로 맹비난하고 서울시의회를 ‘야바위집단’으로 표현했다. 반면 신연희 강남구청장과 강남구청에 대해서는 칭찬 일색이었다. 신 구청장은 공무원들이 단 댓글을 시민이 강남구청을 지지하는 근거로 삼기도 했다. 서울시와 강남구청은 각종 정책을 둘러싸고 갈등해왔다. 양측 공무원들이 상대 기관에 대해 호감을 갖기 어려운 사정은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해도 공무원들이 여론 조작을 통해 다른 공공기관을 공격하거나 자기 치적을 부풀리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공직사회조차 범죄적 댓글의 일상화가 만연한 현실이 답답하고 안타깝다.



강남구청 공무원들의 댓글 작성 행위는 지방공무원법에 저촉된다. 형법상 모욕죄나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처벌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강남구청은 이들이 개인적으로 댓글을 달았을 뿐 구청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댓글팀을 운영한 것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시민의식선진화팀은 불법 퇴폐업소와 성매매 행위를 단속하는 부서이다. 공무원들이 자기 업무와 상관없는 분야에 대해 업무시간에 집단적으로 댓글을 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비정상이다. 공직사회 특성상 ‘윗선’의 지시나 묵인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개인적 일탈’이라며 얼렁뚱땅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감사원 등 제3의 기관이 나서서 진상을 규명하고 법적, 행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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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선거구 획정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여야 지도부의 휴일 협상도 20여분 만에 결렬됐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요구해온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새누리당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면서다. 20대 총선 예비후보 등록일(15일)까지 불과 1주일 남은 상황에서 졸속 획정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선거구 획정이 지연돼온 것은 여야의 공동책임이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는 여당에 더 큰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새누리당은 지난 3일 ‘균형의석제’를 담은 이병석 정치개혁특위 위원장 중재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전제로 새정치연합도 비례대표 축소에 합의했다. 균형의석제란, 정당득표율에 비례한 의석 수의 과반을 보장하는 제도이다. 예컨대 ㄱ당의 정당득표율이 10%(300석 기준)일 경우, 30석의 과반인 16석을 보장해준다. 이 당이 지역구에서 11석을 당선시켰다면 나머지 5석을 비례대표로 채워주는 식이다. 사표(死票) 방지와 투표의 비례성 강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정의화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원내대표가 선거구획정 논의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_경향DB


돌파구가 열리는 듯하던 협상이 다시 길을 잃은 것은 새누리당이 말을 바꾸면서다. 새누리당은 대통령제 국가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곳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 사유는 따로 있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어제 방송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행정부 수반인데, 의회권력은 야당으로 넘어갈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과반의석 붕괴, 여소야대 정국을 우려하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실제 ‘뉴스1’이 19대 총선 결과에 ‘이병석 중재안’을 적용해 시뮬레이션해본 결과,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의석은 줄어들고 제3당인 정의당 의석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는 민주적 원칙에 어긋나는 것일까. 19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의 득표율은 지역구 43.3%, 비례대표 42.8%로 과반에 미치지 못했으나 의석 점유율은 50.7%(152석)로 과반을 차지했다. 새누리당은 선거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취한 부당이득을 움켜쥐고 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야말로 민주적 원칙에 어긋난다.

정치적 협상에 ‘전부 아니면 전무’란 없다. 새누리당은 불합리한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당초의 ‘비례성 강화’ 약속을 지켜야 한다. 지금 정치신인들은 자신이 오를 ‘링’이 어딘지조차 몰라 우왕좌왕하는 터다. 선거구 획정이 늦어질수록 새누리당에 대한 비판론은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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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게 사람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변하게 마련이지만, 본디 바탕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다 안다. 때론 그 변화를 알아채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연말에 이 말을 떠올린 것은 문득 3년 전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 얽힌 일화가 상기되어서다.

2012년 대선 때 정치부장으로 일하면서 신문사를 방문한 박근혜 후보를 맞이한 적이 있다. 2004년 천막당사 시절 당 대표였던 박 후보를 취재한 이후 수년이 흘러 서먹한 데다, 경직된 분위기를 푼답시고 “지난 2007년 대선 때(이명박 후보와 경선)는 박 후보와 우리 신문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됐죠?”라고 농담조로 던졌다. 박 후보의 말이 바로 나왔다. “그러게 말이에요. 저는 그대로인데 그럼 경향이 변한 거네요.” 웃음이 터졌다. 아니, 정말 분위기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하지만 대선이 다 끝나고 박 후보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 언론인 초청 간담회에 갔을 때 비로소 느꼈다. 회사를 방문했을 때 박 후보가 반사적으로 던졌던 “경향이 변했잖아요”라는 말이 사실은 그 무서운 ‘레이저’였다는 것을. 그리고 간담회를 마친 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박 대통령의 측근들이 멀리서 나에게 알 듯 모를 듯한 시선을 쏘아대는 것을 보고서야 나의 판단이 나이브했고, ‘박 대통령도 변했음’을 실감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설마 하는 마음이 있었다.

솔직히 박근혜 대통령을 처음 취재할 때 지금처럼 변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이 후보자로 신문사를 방문했을 때 편집국을 돌며 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난 뒤 한 후배는 “박 후보가 너무 여린 것 아니냐”고 했다. 박 대통령을 잘못 읽은 것이 비단 우리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요즘 박 대통령 주변을 보면서다. 초창기에 박 대통령을 모셨던 측근들의 상당수가 떠났다. 서청원 의원 등을 빼면 원조친박은 거의 없다. 친박인사로 불렸던 한 정치인도 지난달 홍문종 의원이 이원집정부식 개헌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도 놀랐다. 박 대통령이 그렇게 (퇴임 후까지 영향력을 미치려고) 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문고리 3인방’이 박 대통령 곁을 지키고 있다는 것만 변함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 시기 국회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_김영민 기자


대통령은 국민의 위임을 받아 나라를 통치하는 자리다. 권력을 위임받은 범위 내에서, 권력을 맡긴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책임을 지며 통치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지금 박 대통령은 국민이 위임해준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 정치학자 최장집 교수에 따르면, 정치권력의 책임에는 3권분립에 따른 수평적 책임과 사회의 여러 세력들이 통치권력에 대해 압박을 가해 권력을 견제하는 수직적 책임이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이 두 가지가 모두 사라지고 있다.

여당은 대통령의 거수기 노릇 하기도 버겁다.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에게 찍혀나가는 순간 여당은 이미 견제 능력을 상실했다. 수평적 책임의 상황은 더욱 처참하다. 박 대통령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면서 다수의 국민을 투명인간 취급했다. 이건 리더십이 아니다. 권위주의 리더십도 지난 딕테이터십(dictatorship)이다. 지금 상황을 ‘신종 쿠데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시기를 중심으로 놓고 보면 책임을 지는 것에도 두 가지가 있다. 선거 시기에 즈음한 책임, 선거가 없을 때의 책임이다. 선거에 즈음한 책임은 지키기 쉽다. 아무리 강력한 통치자라도 당선 후 곧바로 돌변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본색을 드러낸다. 하지만 우리처럼 대통령이 5년 단임제일 경우, 본색을 드러내는 순간 레임덕을 만나기 십상이다. 그것에서도 박 대통령은 예외다. 탁월한 선거 능력 덕분이다.

위임 범위를 어기는 통치자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책임을 묻는 방법은 선거다. 통치자가 거부하면 투표를 통해 국민이 강제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선거의 여왕’은 이미 모든 정치 스케줄을 내년 총선에 맞추기 시작했다. 입바른 소리 하는 ‘원박’ 유승민을 내쫓은 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마음대로 부리는 것도, 국정은 어찌 됐든지 간에 측근들을 총선에 내보내는 것도 다 이를 위한 것이다. 어제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를 불러놓고 내년 총선 때 얼굴을 못 들 만큼 한 것이 없다고 했지만, 국민의 생각은 다르다. 국민이 원하지 않은 일을, 하지 말라고 하는 일을 박 대통령은 이미 너무 많이 했다.

사람이 그렇듯 국가도 변하는 것 같지만 변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복귀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박근혜는 대통령이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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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도부가 청와대에서 만났지만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는 국내외 비판적 목소리에 대한 고려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원유철 원내대표는 노동5법과 테러방지법, 경제활성화법의 조속처리를 앵무새처럼 되뇌었을 뿐 야당 및 시민들과 소통하려는 의사는 보여주지 않았다. 1·2차 민중총궐기 후 혹시나 하고 청와대와 여당의 태도변화를 기대했던 시민들 입장에선 허탈하기 짝이 없는 회동이었다.

박 대통령은 “19대 정기국회가 이틀밖에 남지 않았고 이제 꼭 해야 할 것은 반드시 하고 넘어가야 되겠다”며 “그렇지 않으면 두고두고 가슴을 칠 일이고 내년에 선거를 치러야 하는데 정말 얼굴을 들 수 있겠느냐”고까지 했다. 야당과 대화를 통해 합리적 대안을 모색하기보다 여당 지도부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민감한 쟁점법안을 연내 처리하라고 지시한 것이나 다름없는 태도였다. 양대 노총 위원장 중 한 명은 경찰에 둘러싸여 조계사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고 한 명은 국회 앞에서 1인시위를 하는 상황에서도 노동계의 합의 역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듯이 보였다.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의 노동법안에 대해 “우리 딸한테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부모세대한테는 안정된 정년을 보장하기 위한 법”이라고 주장했다. 김무성 대표는 “기간제법, 파견법은 이름을 잘못 지어서 오해가 생긴 것”이라고 했다. 기간제법은 ‘비정규직 고용안정법’으로, 파견법은 ‘중년일자리 창출법안’으로 불러달라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7일 오후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원유철 원내대표와 전격 회동하고 있다._연합뉴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정규직 전환의 희망고문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자동차·조선산업 등 경쟁력과 직결되는 뿌리업종에까지 땜질식 파견을 허용하는 법안을 미래를 위한 법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박 대통령은 경제활성화법에 대해서도 “청년들을 위해 수십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고 했지만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비정규직 남용의 물꼬를 터준 상황에서일자리가 늘어나 봐야 청년실업 고통을 완화해주기보다 고용의 질만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은 테러방지법에 대해서도 왜 다수가 국정원 권한 강화를 우려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이 “우리가 기본적인 법이 없으니까 외국하고 국제공조도 못하는 기막힌 사정”이라고 한탄만 했다. 박 대통령은 댓글부대, 개인정보 감청 등 국정원에 쏠린 의혹은 하나도 해소하지 못한 채 지금처럼 공안통치와 일방적 국정운영만 강조하는 한 원하는 법안의 통과는 물론 더 큰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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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18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안철수 의원과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다음 총선까지 당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임시지도부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박 시장은 이에 응했다. 그러나 안 의원은 29일 이를 거부했고, 대신 문 대표에게 혁신 전당대회를 개최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12월3일 문 대표 역시 이를 정면으로 거부했고, 이 거부에 대해 안 의원 또한 전당대회 개최 재촉구의 입장을 밝혔다. 이상은 지난 3주 동안 문 대표와 안 의원 사이에 오갔던 제안과 역제안 그리고 끝내 양자 간 타협이 무산되어 갔던 과정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 문재인과 박원순, 안철수에 의한 임시지도부 구성은 실패로 돌아갔고, 문 대표와 안 의원 간의 관계는 더 이상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벌어지게 되었다.

새정치연합 내의 이러한 갈등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선거 패배가 거듭됨에도 그들은 끊임없이 싸웠고, 오히려 선거 패배는 당내 비주류에게 당권 장악의 기회로 자주 이용되었다. 그러다 보니 선거 패배 때마다 지도부가 바뀌고 당내 갈등은 일상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다시 선거 패배의 원인을 제공했다. 선거 패배와 당내 갈등의 악순환은 새정치연합의 고질적 병폐가 되어버린 것이다.

지난 대선 후보였던 문 대표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올 2월 전당대회 이후, 특히 4월 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문 대표의 퇴진을 둘러싼 당내 갈등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 갈등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더욱 격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그 이유는 문 대표로서는 총선 승리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것이지만, 기실 그것은 당내 공천권을 둘러싼 갈등이기도 하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7일 국회 대표회의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전병헌 최고위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전날 안철수 전 대표는 문 대표에게 "혁신 전당대회를 거부한 결정을 재고해 달라"고 재차 요청했다._강윤중 기자


당 내부의 이 같은 갈등은 그것이 어떤 명분을 내세울지라도 새정치연합에 대한 국민과 지지자의 신뢰와 지지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집안싸움에만 골몰하고 있는 그들에게 마음을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새정치연합은 외부 요인이 아니라 당내 갈등에 의해 그들 스스로의 운명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사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과 지지자들, 특히 지지자들이 새정치연합에 거는 기대는 매우 컸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기간 동안 지속되었던 민주주의의 후퇴와 민생 파탄은 이제 더 이상 인내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고, 이에 지지자들은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이 총선과 대선의 승리 그리고 이를 통한 정권교체를 이룸으로써 이러한 난국을 돌파해줄 것을 바랐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내부 갈등에도 지지자들이 새정치연합에 한 줄기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러한 기대 때문이었다. 평소의 내부 갈등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총선을 앞두고는 그래도 단합할 것이라 믿어 마지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내년 총선을 코앞에 두고 오히려 더 격화되고 있는 새정치연합의 내부 갈등을 보면서 이제 지지자들도 그 마지막 희망을 버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스스로 자멸의 길을 선택하고 있는 새정치연합이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실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하지만 내년 총선을 겨우 4개월 남짓 남겨놓은 지금의 시점에서 새정치연합의 내부 갈등은 이제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상태로는 총선 승리는 고사하고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자멸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결과가 일부 의원들의 탈당이 되든 어쨌든, 이제 새정치연합 내부의 갈등은 종식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갈등의 당사자들은 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그동안의 갈등을 접고 총선 승리를 위해 당내에서 협력할 것인지, 아니면 탈당을 하여 자신의 길을 갈 것인지의 선택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야만 남은 기간 새정치연합이 내부 갈등에 시달리지 않고 총선을 대비한 마지막 노력이라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정해구 |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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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어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표를 향해 전당대회 개최안을 수용하라고 거듭 촉구했다. 안 전 대표는 “지금은 기득권에 연연할 때가 아니다”라면서 “저와 함께 우리 당을 바꿔나갈 생각이 없다면 분명히 말씀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더 이상 어떤 제안도 요구도 하지 않고, 묻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표는 “오늘은 답변하지 않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문 대표가 전대 개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전 대표로서는 탈당도 하나의 대안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제1야당의 분열이 가시화하는 형국이다.

야당 분열 상황을 심화시킨 데는 문 대표의 책임이 가장 크다. 당내 비주류 의견을 수렴하며 당을 안정적으로 이끌어나가지 못한 그의 지도력의 한계가 초래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총선을 자신의 책임하에 치르겠다고 했지만 비전 제시가 미흡했다. 지난달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문·안·박 (집단) 지도부 구성’을 제안했지만, 안 전 대표가 수용할 수 있도록 사전·사후에 대화하고 설득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지난주에는 안 전 대표의 10대 혁신안을 당헌·당규에 반영하겠다고 했지만 이 역시 실기했다.


“나와 당 바꿀 생각 없다면 분명히 하라”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대표가 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표에게 혁신 전당대회 개최를 거듭 요구하고 있다._권호욱 선임기자

당 내분에 관한 한 안 전 대표의 책임 역시 가볍지 않다. 특히 최근 당의 분열상은 그가 야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 전 대표는 최근 원칙론을 제기하는 선을 넘어 당 지도부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으면서 전당대회를 열자고만 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문 대표가 자신의 혁신안을 받겠다고 하자마자 다시 전당대회로 압박하는 모습도 지나치게 정치공학적인 접근이다. 안 전 대표가 당 지도부의 해체까지 주장하려면 향후 당의 조직이나 방향, 총선 대책 등에 대한 대안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안 전 대표는 그동안 당의 진로나 허다한 국정 현안에 대해 침묵하다 이제 와서 전대만 하면 문제가 다 잘 풀릴 것처럼 말하고 있다. 지금 야당 사정을 고려하면 전대 하나로 그렇게 막연히 기대감을 품을 형편이 못된다. 호남의 반문재인 정서에 기대어 당 대표를 압박하는 것도 전직 당 대표로서 바른 처신이라고 할 수 없다.

어제 최후통첩식 회견이 탈당의 명분 쌓기가 아니기를 바란다. 탈당은 안 전 대표뿐 아니라 제1야당에도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건 박근혜 정권 앞에 제1야당을 헌납하는 꼴이나 다름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안 전 대표는 분열상만 보이는 야당과 그 중심에 선 자신을 시민들이 어떻게 보고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나쁜 상황이라도 최악의 선택은 피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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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제2차 민중총궐기 집회는 공권력을 앞세워 집회·시위의 자유를 원천봉쇄하려던 집권세력의 시도가 얼마나 무망한 것인지 여실히 보여줬다. 서울광장에서 출발한 시위대가 청계천과 종로를 거쳐 대학로의 서울대병원 앞에 도착할 때까지 광장에 있던 시민 상당수는 출발도 하지 못한 상태였다. 시위대는 3.5㎞ 평화대행진 구간 전체에 걸쳐 2차선 혹은 4차선 도로를 가득 메운 채 거대한 인간띠를 형성했다. 시위대 규모가 당초 주최 측 예상 7000여명을 훨씬 초과한 것은 박근혜 정부의 독선적 국정운영에 대한 민심의 분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1차 집회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중태에 빠진 농민 백남기씨의 쾌유를 기원하기 위해 카네이션을 들거나 ‘복면금지법’ 제정 시도를 조롱하기 위해 가면을 한 채 거리에 나온 시민들은 ‘민주주의 희망’ 그 자체였다. 시위 참가자가 갈수록 늘어나면서 행진구간을 2차선에서 4차선으로 확대해줄 것을 요구하는 주최 측과 경찰 간에 다소 실랑이가 있었지만 시민들은 끝까지 평화시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주말 오후 참가자들이 서울 도심을 가득 메운 집회와 행진은 8시간 이상 진행되는 동안 단 한 건의 물리적 충돌 없이 평화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차벽과 물대포가 사라진 상황에서 ‘폴리스라인’을 알리기 위해 도열한 경찰관들도 준법집회 보장이라는 공권력의 본래 존재 이유를 되찾았다.


5일 서울 대학로에서 2차 민중총궐기 평화행진을 마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마무리집회를 갖고 있다._서성일 기자


이로써 1차 집회 과정에서 일어난 일부 과열·폭력시위를 이유로 2차 집회 자체를 원천금지하고 집회를 신고제가 아닌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하려는 ‘공안탄압’은 더 이상 명분을 갖기 어렵게 됐다. 한마디로 이번 2차 집회는 진정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줬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해야 할 일은 공안적 시각에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 국정운영에 대한 민심의 분노를 경청하는 것이다. 1·2차 집회에서 시민들은 노동개악과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의 목소리를 분명히 했다. 정부와 여당이 전 국민의 고용불안을 심화시키는 ‘노동5법’을 청년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법안이라고 주장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바른 교과서 만들기’라고 우기는 한 제3, 4의 집회는 막을 수 없다. 정부는 민주주의 후퇴를 막기 위한 전 국민의 분노가 이미 공안탄압으로 제압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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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명료해졌다. 제1야당의 총선은 ‘망’했고, 야권은 재앙을 피할 길이 없다. 한때 ‘옛사랑’이던 ‘그 당’이 내년 총선까지 온전한 모습으로 있기도 어렵다. 지난 열흘 야권을 흔든 ‘문·안(문재인·안철수) 드라마’가 증거해준 미래다.

서로를 향해 엇갈린 주문만 내놓던 그들은 미움과 분노를 우회하는 지혜 대신 ‘맞짱’을 택했다. 야권은 피할 길 없는 재앙을 눈앞에 두고 ‘지혜가 아닌 어리석음의 시대를, 최고가 아닌 최악의 시절’(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을 견뎌야 하게 됐다.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지, 죽을 수밖에 없다. 과거 일본 대학생들이 제일 선호하는 게 일본항공이었다. 우리는 삼성이고. 그런데 방만한 경영으로 상장폐지가 됐었다. 5년간 구조조정을 세게 해 다시 살아났다. 어떻게 해서 살았냐, 망하니까 살았다.”

문·안의 긴급 회견을 지켜본 한 중진 의원의 이야기다. 탄식인지, 전망인지 모를 그 말 속에 문·안에 대한 실낱 같던 미련을 툭 끊어버린 후의 편안한 모습이 엿보였다.

‘100%’ 공감한다. 온전히 망해야 한다. 그래야 또 온전히 새로운 리더십을 구축할 수 있다. 결국 야권 리더십 재구성의 출발점이 ‘문·안의 극복’이란 게 분명해진 때문이다. 지난 3년간 “지긋지긋”(문 대표)한 문·안의 물과 기름 리더십을 놓아버리는 게 시작인 셈이다. 새로운 리더십의 자원은 있다.

사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좀 더 일찍 맞짱이, 파국이 시작됐어야 한다. 안 전 대표가 3년 전 겨울, 후보 단일화 틀을 던져버렸을 때 이 같은 야권의 운명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돌고 돌아 안 전 대표와 문 대표가 다시 한 지붕 아래서 만났을 때도 둘 사이는 서늘했고, 불안불안했다. 안 전 대표가 지난해 재·보선 패배로 밀려난 자리를 문 대표가 채우겠다고 전당대회에 나설 때도 불길한 예감들은 도처에서 흘러나왔다. ‘대중의 지지’라는 가장 중요한 자산을 가진 그들이었기에 알고도 미련을 끊지 못했다. 그 당과 지지자들은 모두 속절없이 그 자산 때문에 볼모로 잡혀 여기까지 왔다.

“그사이 실무진 선에선 두 사람이 같이하도록 해보려고 노력도 많이 했다. 실무진이 다 세팅해 놓고 되겠다 싶어 만나게 하면, 곧바로 판이 깨졌다. 둘만 만나면 꼬였다. 만나서 서로 오해가 있어도 물어보지도 않고 돌아와선 화만 냈다. 딱 ‘초딩’ 같다.”


새정치민주연합 2·8 전당대회 당 대표 후보인 문재인 의원(오른쪽)과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안 전 대표 주최로 열린 신년 특집 좌담회에서 만나 반갑게 악수하고 있다._연합뉴스


한쪽 진영 참모의 전언이다. 문·안 사이 ‘미움’은 ‘대의’보다 강했다.

문제는 ‘문·안’ 그들이 너무 ‘진실한 사람’들이었던 탓일 게다. 진실한 사람들이다 보니 잠시 눈 질끈 감고 사랑하는 척 연기를 할 수는 없었을 터다. 뱃속에 칼을 숨길지언정 끈기있게 물고 늘어지며 설득하고 협력하는 척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신 서로 상대를 ‘외통’으로 모는 것으로, 빨리 승부를 내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진실했기에 ‘여우의 지혜도, 사자의 힘’(마키아벨리)도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자신이 정치 지도자가 아니란 걸 스스로 증명했다. “사람 좋다. 순수하다”지만 정치 기술도, 의지도, 끈기도 없는 문 대표나 새정치에 대한 의욕에도 소통·배려는 서툰 안 전 대표나 ‘자격’이 없긴 마찬가지다.

문 대표야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잘라버리듯 난마 같던 관계를 “지긋지긋하다”는 말과 함께 단칼에 끊어버렸으니 일단은 시원했을 것이다. 정치인으로선 파괴적 해법이지만, 이도 저도 아닌 모호한 불안은 해소했기 때문이다. 실제 회견장에 들어설 때부터 문 대표 얼굴엔 빙그레 미소가 돌았고, 갈수록 환한 웃음으로 변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 당’ 구성원과 지지자들이다. 문 대표 회견 직후 전화를 걸어온 새정치민주연합 관계자의 첫마디는 “(이제) 나 어떻게 해”였다. 주류 아니면 비주류, 회색지대는 없는 ‘그 당’에서 그 또한 어느 한쪽 사람일 테지만 본능은 ‘선택’의 고민이었다. 부모의 이혼을 목도하는 자식들 같은 심정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니하는 따위의 이야기도 위안이 안된다.

애석하게도 야당 지지층은 입맛이 까다롭다. 단일하지도 않다. 지긋지긋한 문·안의 ‘미움’ 드라마를 이제 그들도 끝내고 싶을 터다. 결국 야권의 희망과 부활의 재구성은 두 ‘초딩 정치인’의 퇴장을 의미하는 게 될 공산이 크다. ‘가치’를 ‘미움과 권력’으로 바꿔치기한 그들 마음속 불한당들을 더 이상은 지지층이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주류 질서와는 다른 열망들을 담아내며 한국정치사에서 ‘혁신의 수원(水源)’이던 그 당을 다시 볼 수 있는 희망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피 흘린 옛사랑’은 그렇게 더욱 피를 흘리고서야 돌아올 것인가.


김광호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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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거다.”

한번쯤 이런 결심을 하지 않은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어느새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곤 씁쓸했던 경험도 한번쯤 있었을 터.

그런 결심을 하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아버지의 억압적인 태도에 대한 분노 때문일 수도, 아버지의 신산한 삶에 대한 반발 때문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많은 아들딸들에게 아버지는 애증(愛憎)이 엇갈리는 존재이자, 극복하고 싶은 대상이라는 점이다.

이런 상념에 빠진 건 지난달 22일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영정 앞에 선 ‘대통령의 자녀들’ 때문이다. 특히 눈길을 잡아끈 것은 영결식에 나타난 YS의 장남 김은철씨였다. 중절모에 검은색 선글라스 차림. 병색이 언뜻언뜻 비쳤고 부축을 받기도 했다.

사실 은철씨는 YS의 화려한 정치경력에 가려진 인물이었다. 혹자는 은철씨가 YS가 정치적으로 탄압받던 시절 고통스러운 경험을 많이 당해 피해의식이 크다고 했다. YS 집권 후에는 술에 취해 대통령 경호실에 이끌려 귀가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과연 은철씨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였을까. 민주화 투사에서 보수여당의 대표, 그리고 대통령까지 굴곡이 컸던 아버지의 삶은 아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대통령의 자녀들’이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을지, 아버지의 길을 따라 권력의지를 키웠을지. 적어도 영광과 오욕이 교차했던 아버지의 삶이 자녀들에게 벗기 힘든 굴레였을 것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런 상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이 영결식 다음날 YS 묘역을 찾았다는 소식으로 더욱 커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23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_경향DB


또 다른 ‘대통령의 자녀’인 박근혜 대통령도 YS 빈소를 찾았다. 영결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건강 상태 등을 이유로 들었지만, 아버지 대부터 이어져온 구원(舊怨) 때문이라는 뒷말을 낳았다. 게다가 YS 서거를 계기로 민주화 투쟁과 역사 바로 세우기 등이 재평가되는 상황이 불편했을 것이다.

YS는 2001년 당시 박 대통령을 평가하면서 “아버지와 딸은 다르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박 대통령은 아버지를 빼고 설명하기가 어렵다. 박근혜 정부가 1970년대 유신시절로 돌아가고 있다는 지적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이 “아버지에 대한 효도”라는 비판까지 제기된다.

대선 후보 시절 박 대통령을 ‘스트롱맨(Strongman)의 딸’이라고 불렀던 해외 언론은 이제 대놓고 ‘독재자(Dictator)’의 딸’이라고 부른다. 미국의 주간지 네이션은 “박 대통령이 독재자였던 부친의 발자국을 따라가면서 권위적인 정책에 반대하는 노동자와 시민들을 탄압하고 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 아버지의 공(功)은 계승하되, 과(過)는 넘어서겠다는 의지를 보이곤 했다. 1999년 YS의 박 전 대통령 비판에 기자회견을 자처해 “자신이 한 일은 옳고 남이 한 일은 모두 잘못됐다는 식의 자세는 반사회적이다.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은 정치인이나 정치지도자가 돼선 안된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소설가이자 심리 에세이스트인 김형경씨는 아버지를 극복하기 위해선 내면에 있는 아버지를 떠나 보내야 한다고 했다. ‘좋은 아버지 환상’을 투사하는 행위도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는 ‘사회적 질서’나 ‘권력’의 상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래서 아버지의 극복은 억압적 체제에 대한 저항을 의미하기도 한다.

유신시절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 대통령에게 ‘아버지=억압적 권력’ 공식은 애초 성립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 ‘권력’ 그 자체가 된 박 대통령에게 ‘아버지의 극복’은 이미 과거형이 된 것일까.



김진우 |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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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오늘이라도 백남기 선생이 누워 있는 병실을 찾을 생각은 없는지요. 눈물이 납니다. 오늘도 안 가본다고 하면 그건 사람이기를 저버리는 겁니다.

지난 민중총궐기 때 백남기 선생이 물대포를 맞던 영상은 보았는지요. 그건 누가 보더라도 조준 사살에 이은 확인사살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대국민사과 한마디는 있어야 할 터인데도 아니 하는 건 스스로 대통령이기를 저버린 겁니다. 또 민중총궐기 대회를 마치 ‘IS’에 빗댄 것은 정말 잘못한 겁니다. 이 땅의 민주주의는 언제나 거리에서 일구어진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4·19 혁명 때 최루탄이 눈에 박힌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바다에서 건져지자 이승만 정권은 “빨갱이 짓”이라고 하다가 쫓겨났습니다.

그런데도 지난 민중총궐기 대회 때 입을 가리고 거리에 나선 사람들을 마치 흉악범처럼 때려 몰고 있는 것은 전통적 해학성과 풍자성의 탈놀음을 뿌리째 뽑으려는 문화적 반역이지 딴 게 아닙니다. 어리석은 탐욕의 예술문화 파괴입니다. 오는 5일 2차 민중총궐기 대회를 불법폭력 집회라고 때려잡겠다고 하는데 안 됩니다. 그게 바로 불법이요, 폭력 만행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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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시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입니다. 따라서 집회시위의 자유를 말살하려고 하는 것은 유신독재와 똑같은 헌법 파괴임을 알아야 합니다. 유신헌법을 폐기하고 오늘날 헌법이 있기까지의 과정은 어떤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지요. 그것은 피눈물의 과정이었습니다. 선거제도가 회복되지 않았다고 하면 오늘의 박근혜 정권은 나타나질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권력을 쥐었다고 함부로 역사를 거꾸로 돌리고자 해선 안 됩니다. 새빨간 거짓말을 폭력화하고 갖은 부정부패를 영구화하려는 그 어떤 음모, 독선, 독재도 이 땅의 민주주의의 역량은 용납 못하는 겁니다.

11월 14일, 서울에서 열린 민중대회에 참석했던 농민 백남기씨가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있다._경향DB


유신독재 때입니다. 터무니없이 끌려갔는데 덮어놓고 때리며 대라는 겁니다. “뭘 대라는 거냐.” “너, 함석헌, 장준하, 계훈제 등과 배구시합을 한답시고 사람들을 모아놓고 청와대로 쳐들어가려고 했지, 밝히라”는 겁니다. “야, 배구공으로 어떻게 청와대를 점령하느냐”고 죽어라고 맞서 싸우다 집에 온 뒤 몇 날 있다가 뭔 일로 또 잡혀갔는데 낯익은 치가 “또 잡혀왔어. 너, 지겹지 않아” 그러는 겁니다. 이때 내 대답이 “내가 또 왔냐. 너네들이 또 잡아왔지. 그리고 내가 참말로 지겨운 건 뻑하면 여기 잡혀오는 것이 아니다. 박정희의 부정부패, 일인 독재가 진짜로 지겹다”고 했다가 그대로 내동댕이쳐져 이참도 허리가 들쑤십니다.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는 폭압과 모멸을 이겨내느라 80㎏ 나가던 내 몸이 38㎏으로 떨어지면서도 한사코 일구어낸 것이 오늘의 헌법이라니까요. 그런데 그 피눈물의 헌법을 앞장서 파괴하며 민중총궐기 대회를 말살하려는 작태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박근혜 정권이 대답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답이 나올 리가 없어 내가 말하겠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갈데없는 독재입니다. 만약 아니라는 근거를 대고자 할진댄 이참 우리네 집회를 불법으로 몰아치는 그 불법 만행을 철회해야 합니다. 한상균 위원장을 잡아가겠다고? 안됩니다. 박근혜 독재가 있는 한 이 땅은 온통 감옥입니다. 부패가 교만, 폭력의 칼날일 때 양심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언젠가 전태일 동상에 갔다가 쫓겨난 적이 있었지요. 전태일은 누구일까요. 박정희 독재, 그 부패를 제 한몸으로 불사른 한 노동자입니다. 그런데도 그를 찾았다는 것은 선거 때문이었지요. 아니라고 하면 오늘의 노동자, 민중 집회를 불법적으로 가로막는 만행을 당장 때려치워야 합니다. 우리 노동자 민중이 참혹하게 짓밟히고는 있지만 노동자 민중은 마땅쇠(결코) 죽질 않습니다. 비록 가진 것이라곤 알통밖에 없지만 짓밟힐수록 자근자근 불꽃이 이는 생명의 불씨, 꺼질 줄 모르는 ‘서돌’임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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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전년 대비 2.9% 늘어난 386조4000억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을 처리했다. 정부가 제출한 원안에서 3조8000억원이 깎이고 국회 심의과정에서 3조5000억원이 증액됐다. 이번 예산 처리 과정에서 단연 눈에 띄는 부분은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증액이다. 대구·경북지역 실세 의원들은 이미 정부안 확정 과정에서 지역 SOC예산을 5600억원이나 증액한 상황에서 추가로 새 예산을 끼워 넣었다. 선심성 예산을 따져야 할 야당은 호남 예산을 일부 늘리는 대가로 이를 묵인했다. 이쯤 되면 나라 살림 예산인지, 지역 선심 예산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어제 정치권의 화두는 예산전쟁 노획물에 대한 과시였다. 여야가 따로 없었다. 서병수 부산시장의 “역대 최대 규모의 국비를 확보했다”는 자화자찬을 시작으로 “국가재정이 좋지 않은 가운데 예산 목표를 달성했다”(서상기 의원), “목포 관련 내년 예산 786.5억원 증액시켜 총액 3098억원 확보”(박지원 의원) 등이 이어졌다. 정미경 의원은 예비타당성조사조차 끝나지 않았음에도 수원발 KTX사업용으로 100억원을 배정받았다는 소식을 지역구에 알렸다. 박근혜 대통령의 고향인 구미와 실세 최경환 부총리의 지역구인 경북 경산·청도 예산은 국회 심의과정에서 486억원이 증액됐다. 이정현 의원은 53억원을 늘렸고, 원유철 원내대표도 10억원을 추가했다. 새정치연합에서도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가 각각 150억원, 10억원을 추가로 늘렸다. 해당 의원들은 지역에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국가채무에는 눈을 감고, 지역 예산은 아낌없이 나눠 갖는 모습에 국민은 당혹스럽다. 하물며 관광진흥법 등 쟁점법안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는커녕 재정건전성 강화를 위한 법인세율 인상 같은 세법 개정은 손도 대지 못했다.


2016년 예산안 총지출 감액 조정_경향DB


특히 야당은 예산과 쟁점법안을 연계해 밀어붙인 여당에 맥없이 끌려갔다. ‘세법에 대한 입법권은 국회가 아니라 기획재정부가 갖고 있다’는 야당 관계자의 무기력한 발언에는 절망감마저 느끼게 된다. 내년 경제가 어려울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수출·내수 저하에 미국 금리 인상, 중국 경제 둔화 등 첩첩산중이다. 여기에 정부가 경기활성화에 올인하는 상황이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이 처음으로 40%를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총선만을 염두에 둔 예산 확보를 자랑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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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안철수 전 공동대표의 ‘혁신 전당대회’ 제안을 거부했다. 문 대표는 어제 기자회견을 열어 “총선을 코앞에 두고 당권 경쟁으로 날을 새울 수는 없다. (안 전 대표가 요구한 전당대회는) 사생결단, 분열의 전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간 공멸”이라고 밝혔다. 또 “빠른 시일 내 총선기획단, 총선정책공약준비단, 인재영입위 등을 구성해 총선체제에 돌입할 것”이라며 내년 4월 총선을 본인 주도로 치르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안 전 대표는 “당 앞날이 걱정이다. 당을 어디로 끌고 가려는지 우려된다”며 반발했다. 새정치연합이 ‘시계(視界) 제로’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문 대표와 안 전 대표의 갈등은 ‘신뢰의 위기’에서 비롯했다고 본다. 문 대표는 회견에서 “당을 흔들고 해치는 일을 그냥 넘기지 않겠다”고 말했다. 안 전 대표 등 비주류의 공세를 ‘흔들기’로 바라보는 인식이 감지된다. 앞서 안 전 대표는 트위터를 통해 “문 대표 주위에서 대표의 눈과 귀를 막고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비판했다. 역시 심각한 불신의 증좌다. 2012년 대선 때부터 쌓여온 양측의 갈등이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고 봐야 한다. 두 사람 모두 혁신을 강조하지만 이제 그들이 말하는 혁신의 정체조차 모호해진 터다. 실제 각자의 혁신 구상이 크게 달라 손을 잡지 못하는 게 아니다. 어떠한 말을 해도 서로 믿기 어렵게 된 것이다. 양측이 이대로 제 갈 길을 간다면, 단일대오로 총선을 치르지 못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계속 한 배를 탄다 해도, 갈등이 계속되는 한 패배할 공산이 크다. 총선에서 새정치연합이 지고 나면 두 사람의 정치적 미래도 담보하기 어렵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3일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철수 의원의 '혁신 전당대회' 개최 제안에 대해 거부의 뜻을 밝힌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_강윤중


새정치연합의 지리멸렬상은 주권자를 분노하게 하고, 지지층을 절망으로 몰아넣고 있다. 가장 큰 책임이 문 대표와 안 전 대표에게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두 사람이 주권자를 두려워하는 지도자라면, 핑퐁게임만 할 게 아니라 직접 만나 신뢰를 회복하고 인식 차를 좁혀가야 한다. 한두 차례 만난다고 앙금이 가시지는 않을 것이다. 만나고, 또 만나고, 다시 만나면서 상대방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구체적 행동을 취해가야 한다. 지금은 제1야당이 계파 갈등에 매몰돼 있을 때가 아니다. 시민의 자유와 인권이 위협받는 비상시국이다. 문·안 두 사람이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으려면 대타협을 해야 한다. 각자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서라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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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의원의 행보가 불안하다. 안타깝고 걱정이 앞선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가 한국 정치혁신의 아이콘으로 비친 적이 있었다. 정치권에 들기 전에 그는 이미 대한민국 청년들의 우상이었다.

대학생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토크 콘서트’는 안철수가 만든 문화현상이었다. 나는 언젠가 연구자 입장에서 안철수의 토크 콘서트를 시민사회의 새로운 정치양식으로 설명하려 한 적도 있었다.안철수 현상이 정치현상으로 바뀌면서 새 정치를 주도했던 그가 이제 야당의 비중 있는 정치인이 되었다. 근자에 그는 문재인 대표가 제안한 이른바 문·안·박 연대를 거부하고 모든 계파가 참여하는 혁신 전당대회 개최를 제안했다. “나는 조직도 세력도 없다” “꼴찌를 해도 좋다”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다”며 혁신 전대를 제안한 것이다. 야당의 명운을 지켜보는 세상의 관심은 안 의원이 역제안을 했다고 하고 이제 다시 공이 문재인 대표에게 넘어갔다고 한다. 마치 게임을 보는 듯하다. 자세히 보니 어느덧 안 의원 자신도 게임을 즐기는 ‘선수’가 된 듯하다.

사람들의 판단을 가르는 기준은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옳고 그름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하나이고 이익과 손실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다른 하나다. 게임은 득과 실을 따지는 놀이다. 정치가 게임의 논리에 치우치면 정치공학이 되고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정치인의 생존놀이로 변질되고 만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그 기로에 있다. 적어도 현시점에서 새정치연합의 ‘혁신’은 대의고 옳은 것이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 ‘통합’은 기득권 세력이 당에 공존하고 안주하는 길이 되고 말았다. 두 개의 선택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안타깝게도 안 의원이 주장하는 혁신 전당대회는 아무리 살펴도 ‘옳은 것’을 지향하는 ‘혁신의 길’이 아니라 정치적 생존과 이익을 겨냥하는 ‘통합의 길’로 보인다. 게다가 안 의원이 제안하는 전당대회는 문재인 대표체제의 출범과 더불어 그간에 진행된 일체의 절차와 제도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다. 또 당 차원에서 어렵게 마련한 혁신위의 혁신안을 휴지로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하면 총선 결과와 관계없이 당의 모든 세력이 살아남아 안존하는 혁신 없는 ‘통합’을 구현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대표가 30일 오후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야당의 혁신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_연합뉴스


새정치민주연합은 2008년 야당이 된 이후 7번의 혁신위를 만들었다. 그러나 당은 그 모습 그대로였다. 위기 때마다 비대위가 구성되고 혁신위가 생겼지만 새로 들어선 대표체제에서 언제나 ‘혁신’은 온데간데없고 기득권을 나누는 옛 질서로 돌아갔다. 새정치연합의 ‘도돌이표 정치’다. 이 공허한 도돌이표 정치에 수많은 혁신위원들이 동원되었다. 특히 교수를 비롯한 당 밖의 혁신위원들은 현직에 있으면서도 시간을 쪼개어 야당의 변화를 위해 헌신했다. 언제나 원점으로 돌아가는 도돌이표 정치 앞에 이 같은 헌신은 이제 국민적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당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이제 그 도돌이표 정치의 선봉에 안 의원이 나서려 한다. 안 의원이 제안하는 전당대회는 임박한 총선을 겨냥한 기존의 세력과 계파에게 물불 가리지 않는 공천전쟁의 길을 열어주게 될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공천권 나눠먹기로 엄청난 혼란을 거친 후 다시 혁신 없는 공존의 도돌이표 정당이 될 것이다. 어째서 이런 전당대회가 ‘혁신’ 전당대회가 될 수 있는가? 안 의원은 ‘새 정치’를 외치던 초심으로 돌아가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혁신’을 채워나가는 데 협력해야 한다. 그것이 안철수식 미래정치에 어울리고 그래야 자신의 정치적 활로도 열린다. 더불어 문재인 대표는 애써 만든 당의 혁신안을 실현하는 하나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만성질환이 되어버린 도돌이표 정치와 단절하고 문 대표 자신이 말한 대로 ‘가보지 못한 길’로 과감하고 흔들림 없는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문 대표 역시 초심으로 돌아가 왜 당대표의 길을 선택했는지 떠올려야 한다. 다시 대통령 후보로 갈 수 있는 안전한 길이 있는데도 스스로 진흙탕에 뛰어든 것은 한국 정당정치 혁신에 대한 의지가 아니었던가? 국민들은 강한 야당 큰 정치에 목말라 있다. 설령 거침없는 혁신의 정치가 당의 통합을 위축시키고 더 나아가 총선에서 100석 이하 의석의 참패를 가져온다 해도 당 혁신만은 좌고우면하지 않는 강단이 문 대표에게 주어진 소명이다.

지금은 안 의원과 공을 주고받을 게임의 시기가 아니다. 거대한 위기 앞에서 옳은 것을 선택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큰 정치를 해야 할 시기다.



조대엽 | 고려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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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달 22일에 영면했다. 이로써 유신독재에 당당히 맞섰던 양김이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유신체제가 선포되자 다음날로 반대 성명을 내며 해외에서 민주화투쟁을 벌였다. 1973년에는 중앙정보부에 납치되어 목숨을 잃을 뻔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엄혹한 유신체제에 숨죽이던 사람들이 본격적인 반유신투쟁에 나섰다. 이듬해 김대중은 가택연금 상태에서 유신정권의 불허로 부친의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이를 ‘천추의 한’이라 썼다. 1979년 두 번째로 신민당 총재에 오른 김영삼은 10월4일 여당인 공화당의 단독 표결로 국회의원직을 제명당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신체제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면서 부마항쟁이 일어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졌다.

국가장 중이던 지난달 24일 박근혜 대통령은 같은 달 14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을 이슬람 테러분자와 연관 짓는 발언을 하여 국민은 물론 세계를 놀라게 했다. 게다가 립서비스, 위선, 직무유기 등의 단어를 써가며 국회를 맹렬히 비판했다. 조문 정국에 누구도 예상치 못한 강경 발언이었다.

한 편 국가장이 끝날 때까지 김영삼의 업적을 평가하는 발언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건강상의 이유로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파동 때처럼 이번에도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행보에 유신의 부활이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최근 대통령과 정부의 공안 행보를 보고 있노라면 유신 자체가 아니라 유신의 ‘전조’에 더 눈길이 간다.

내 년 4월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을 예정이고 친박은 개헌카드를 내놓았다. 그렇기에 권력의 영구적 독점을 목표로 했던 유신체제가 ‘어떻게’ 성립되었는지에 관심을 갖게 된다. 유신의 전조, 즉 유신으로 가는 건널목에는 1967년 국회의원 선거와 1969년 삼선개헌이 자리하고 있었다.



1967 년에는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대통령 선거에서는 박정희가 윤보선을 누르고 재선했다. 국민은 사분오열을 거듭하며 혁신하지 않는 야당의 대통령 후보를 선택하지 않았다. 한 달 뒤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는 1960년 3·15부정선거에 버금가는 타락상을 보였다. 대통령과 공무원이 직접 선거운동에 나섰다. 박정희 대통령은 지방을 순회하며 선심공약들을 내놓았다. 삼선개헌에 필요한 개헌선을 확보하기 위한 무리수였다. 결국 공화당이 개헌선을 훌쩍 넘는 129석을 차지하며 압승했다.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대학가의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신민당은 다섯 달이 넘게 국회 등원을 거부했다.

이 듬해인 1968년에는 공화당의 대권 후계자로 거론되던 김종필이 박정희의 압박에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1969년 벽두부터 박정희가 삼선개헌을 밀어붙일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전국에서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결국 9월14일 새벽 2시38분경 국회 본회의장에서 농성하는 야당의원들을 따돌리고 여당의원들만이 국회 제3별관에 모여 삼선개헌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유신의 전조, 즉 부정선거와 날치기 개헌에 기반을 둬 영구집권의 길을 다진 것이다. 삼선개헌안은 국민투표 결과 65.1%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서울만은 반대표가 50.4%로 과반을 넘었다. 신민당은 부정으로 얼룩진 최악의 관권선거라며 무효투쟁을 벌였다.

유 신으로 가는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야당의 체질 개선과 세대교체를 내용으로 하는 40대 기수론을 내세우며 야당 지도자로 급부상했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 나설 신민당 후보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자유 경선에 의해 선출되었다. 김대중이 김영삼을 누르고 역전승을 거두었다. 김대중은 이번 선거에서 정권 교체를 이루지 못하면 영구집권의 총통제가 실시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김대중을 94만여 표 차이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 박정희는 위수령과 비상계엄령을 거쳐 영구집권이 가능한 유신체제를 탄생시켰다.

유신체제하에서 야당은 독재에 맞서는 선명 야당으로 거듭났다. 1974년 45세의 나이에 신민당 총재에 오른 김영삼은 유신정권을 향해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며 ‘결사 항쟁’ 의지를 밝혔다.

유신체제의 탄생과 붕괴 과정에서 야당 지도자로서 국민과 함께했던 문민 대통령을 보내며 해묵은 상식 하나를 꺼내어 오늘에 비춰 본다. 국민이 깨어있고 야당이 ‘선명’해야 새벽은 온다.


김정인 | 춘천교대 교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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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