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비평'에 해당되는 글 3508건

  1. 2015.10.01 [정동칼럼]희생하는 정치인, 군림하는 정치인
  2. 2015.10.01 [시대의 창]김무성 대표의 선택
  3. 2015.09.30 [사설]왜 청와대가 새누리당 공천규칙 문제에 개입하나
  4. 2015.09.30 [기자메모]새마을운동의 세계화는 시대착오다
  5. 2015.09.29 [서민의 어쩌면] 우리가 몰랐던 대통령의 장점
  6. 2015.09.29 [사설] 비례대표 문제 놔둔 채 ‘국민공천’ 합의한 여야 대표
  7. 2015.09.24 [시대의 창]“지금 한국엔 여당만 두 개 있는 것 같아요”
  8. 2015.09.23 [사설]새정치연합, 쇄신하되 단결하라
  9. 2015.09.23 [사설]비정규직 주머니까지 터는 청년희망 펀드
  10. 2015.09.22 [사설] 기득권 지키려 비례대표 축소에만 매달리는 여당
  11. 2015.09.21 [사설] 재신임받은 문재인 대표, 총선 승리 전망 제시해야
  12. 2015.09.21 [정동칼럼] 병원 혁신과 정당 혁신
  13. 2015.09.21 [사설] ‘하사(下賜)’는 민주공화국의 언어가 아니다
  14. 2015.09.18 [기자칼럼]기재부의 ‘유체이탈 화법’
  15. 2015.09.18 [사설]여권, 대통령 지지율 올랐다고 벌써 권력투쟁인가
  16. 2015.09.17 [정동칼럼]광복 70년, 보수지도자의 진보적 외교
  17. 2015.09.16 [사설]문재인 대표, 혁신안 넘어 당 정상화 복안 제시해야
  18. 2015.09.15 [사설]‘총선 필승’ 정종섭 장관에 ‘주의’ 주고 끝낸 선관위
  19. 2015.09.15 [문화비평]‘헬조선’의 정치적 무의식
  20. 2015.09.14 [사설]전업주부 보육 차별 합당치 않다

 스웨덴 쇠데르텐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인 최연혁 박사는 저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를 통해 25년간 스웨덴 생활의 경험들을 나눠주며, 대한민국의 미래 모델을 모색하고 있다. 복지국가의 상징과도 같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은 원래 스웨덴을 두고 나온 것이다.

사실 행복이나 복지처럼 정치와 잘 어울리는 말도 없다. 인간사회는 제한된 자원을 놓고 서로 경쟁하고 갈등하는데, 바로 그 갈등을 공평하게 조정하는 것이 정치다. 정치가 없다면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도록 국가가 공적으로 돕는 것이 바로 복지정책이므로 정치의 본질과 닿아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행복하지 못한 것은 곧 정치부재 때문이다. 스웨덴의 정치인은 세상에서 가장 고된 직업이라고 한다. 의원 임기가 4년인데, 임기가 끝나면 다시 선거에 도전하지 않고 그만두거나 직업을 바꾸는 비율이 30%나 된다.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이유는 업무 강도가 너무 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년 중 회기가 10개월에 이르는 데다 매일 출근해 업무를 보는 것도 모자라 밤을 새며 공부하고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 게다가 월급까지 박하고, 비정규직이라 연금 혜택도 상대적으로 적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러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조그만 실수나 잘못이라도 하게 되면 국민들로부터 가혹하게 버림받는다.

한국이나 스웨덴이나 정치인은 인기가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자세히 보면 번지수가 전혀 다른 얘기다. 한국의 정치인은 특권 남용과 부패 등으로 인해 국민들에게 인기가 없다는 뜻이지만, 스웨덴의 정치인은 직업으로서 인기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일이 너무 고되고 돈도 벌지 못하지만, 국민의 행복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여기서 우리는 정치가가 특권을 내려놓으면 국민이 행복하게 되고, 내려놓지 않으면 정치가만 행복하고 국민은 불행해진다는 상식을 다시 확인한다.



스웨덴의 이주민 인구_경향DB



스웨덴이라고 해서 옛날부터 행복한 나라였던 것은 아니다. 반대로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극심한 빈곤에 시달려 인구의 3분의 1이 먹고살기 위해 이민을 떠났다. 그런데 지금은 매년 10만명이나 몰려드는, 모두가 꿈꾸는 나라로 다시 태어났다.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한 중심에는 정치가의 희생을 통한 정치의 힘이 있었다. 우리나라가 행복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정치인들이 많이 나와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우리의 처지는 전혀 다르다. 현재도 정치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기는커녕 불행하게 만들고 있지만, 미래 전망은 더 어둡다. 정치가들은 자기 이익만을 보고 돌진할 뿐 국민의 행복은 안중에도 없다. 야만적이고 천박한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우리 사회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불평등 구조를 만들어내면, 이를 줄이고 보완해야 할 정치권력은 오히려 확대 재생산한다. 권력의 사유화와 소수 또는 1인 집중이 도를 넘고 있다. 정당정치도 기능을 못하고, 공공성과 국민의 행복을 위한 정치는 자취를 감췄다. 국민의 뜻에 의해 정당화된 권력이 아닌, 날것 그대로의 힘만 작동하는 정치판이다. 당연히 그 힘은 비민주적이고, 자의적이며, 폭력적이다. 공익도 헌신짝처럼 버리고, 삼권분립을 유린해도 아무런 부끄럼이 없다.

정치학자 베르나르 마냉은 오늘날의 민주주의 후퇴 현상으로 ‘청중 민주주의(audience democracy)’를 지적한다. 주권을 가진 시민보다는 정치가가 만들어내고 조종하는 이미지에 반응하는 구경꾼으로 전락한 민주주의를 말한다. 그런데 구경만 하고 살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이런 민주주의의 실패가 초래할 불행이 문제다. 게다가 가해자보다 청중에게 더 큰 비극을 안길 것이다. 스페인의 사바테르라는 교수는 정치 무관심에 대해, 만취한 조종사(정치가)가 모는 비행기 안에서 테러리스트가 폭탄을 가지고 인질극을 벌이고 엔진 하나가 고장난 상황에서 다른 승객들과 협동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대신, 휘파람을 불고 창밖을 내다보면서 스튜어디스에게 점심을 가져다 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현명하다고 여기는 것과 같다고 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을 ‘idiotes’라고 했는데, 이 말이 오늘날 영어의 ‘idiot(바보)’이라는 단어의 어원이다. 정치하는 위험한 바보와 이를 방관하는 어리석은 청중이 향하고 있는 우리의 미래는 암울하다. 이렇게 가만히 앉아 당할 때가 아니다.


김준형 | 한동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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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지인들에게 대한민국에서 가장 급진적인 학문은 헌법학이라는 농담을 하곤 한다. 그러나 순전히 농담만은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와 원리를 담고 있고 국민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것이 헌법일진대, 그 헌법을 연구하는 학문이 왜 가장 급진적이란 말인가. 지난 7월 새누리당 원내대표직을 사퇴하며 유승민 의원이 했던 말을 되새기면 이해가 쉽다. 그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우리 정치에서 헌법은 헌법일 뿐 현실은 권력을 따라가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그러니 헌법의 원칙을 따지는 일은 자칫하면 살아있는 권력을 거스르는 일이 되기 십상이다. 이념이나 가치의 내용과 상관없이 권력과 다른 생각을 갖는 일 자체에 진보나 좌파라는 딱지를 붙이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 한국 사회이기에, 헌법학이 가장 급진적 학문이라는 농담은 순전히 농담일 수가 없다.

모처럼 여야대표가 합의한 이른바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 소동도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나는 안심번호 공천제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지도 않을뿐더러, 청와대가 지적한 다섯 가지 문제점도 일리가 전혀 없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대부분의 국민들은 안심번호 공천제가 무엇인지 이해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관심도 없을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핵심은 안심번호 공천제가 아니다. 한 새누리당 의원은 지금의 사태를 놓고 “안심인지 등심인지…”하면서 한탄을 했다는데, 등심번호 공천제였다 하더라도 논란이 일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무엇이 핵심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다. 내년 총선의 공천권을 누가 쥐느냐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퇴임 후 안전판이요, 김무성 대표에게는 대권가도의 결정적 한 방이 될 터이니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이다.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문제일지 모르겠으나 국민들로서는 안심이든 등심이든 전혀 중요하지 않다. 국민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이러한 권력투쟁의 과정에서 헌법이나 정치적 약속 같은 것은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청와대의 다섯 가지 지적은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러나 여당의 의원총회를 세 시간 앞둔 시점에서 굳이 그런 입장을 내놓는다는 것은 삼권분립의 금도를 넘어선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일리가 없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다. 상하이 개헌론 파문 때도 그랬고, 유승민 전 원내대표 사태 때도 그랬다. 현 정부만 그런 것도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여의도정치를 혐오했고, 그 이전의 대통령들도 일단 대통령이 되고 나면 정치와 거리를 뒀다. 현행 제도하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자신의 임기 중에 여의도에 어떤 종류의 리더십이라도 생겨나는 것을 원하지 않게끔 되어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의 대통령들이 가지지 못했던 소위 콘크리트 지지층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권력의 칼을 더 자주 더 강하게 휘두를 수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것은 설사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달라질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이 가진 정치적 자산의 크기와 성격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김 대표가 읽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는 청와대와의 안심번호 공천제 갈등에 대한 같은 당 김성태 의원의 조언이었다(오른쪽)._연합뉴스


대부분의 대통령들이 여의도에 생겨나는 리더십을 혐오하도록 만드는 현재의 제도는 이 나라의 미래에 커다란 재앙이다. 여의도에 어떤 종류의 리더십도 생겨나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정책을 두고 서로 경쟁하는 크고 작은 다양한 정치지도자들을 경험해보고 차기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어야 할 텐데, 현재로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 차기를 노리는 여당의 유력 정치인들은 결정적으로 대통령의 눈 밖에 나지 않는 선에서 지도자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일관된 정책이 아니라 다양한 소동을 벌일 뿐이다. 안심번호 공천제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박근혜 대통령을 당선시키고 지난 총선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반바지까지 입고 뛰었던 김무성 대표와 갑자기 이렇게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도 많을 것이다.

정책과 철학의 대결이 아니라 현재 권력과 잠재적 미래권력이라는 개인들 간의 대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지난 경험들을 돌이켜 보면, 이 대결에서 현재 권력이 승리하면 여당은 시녀가 되고 야당은 반대 말고는 할 일이 없는 투쟁집단이 된다. 미래 권력이 승리하면 대통령은 탈당하고 여당은 지난 5년의 공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무책임정치의 전철을 밟게 된다. 헌법과 정치적 신의와 의회정치의 역할, 그리고 정치현실을 모두 살리는 선택은 쉽지 않을 것이다. 차기 지지율 1~2위를 다투는 김무성 대표의 선택은 이 중에서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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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정면 비판했다. 어제 기자간담회를 자청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민심왜곡, 조직선거, 세금공천 등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합의를 공개적으로 ‘비토’한 것이다. 앞서 김 대표는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는) 단순한 기법상 문제여서 청와대와 상의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공천규칙은 김 대표 말대로 각 정당 차원에서 결정할 문제다. 청와대 권한 밖의 일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청와대가 개입하고 나선 것은 가벼이 넘길 사안이 아니다. 내년 4월 총선을 대통령 뜻대로 치르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또다시 정당정치와 의회주의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비박근혜계 김성태 의원의 발언이 쉽게 압축해준다. “공천방식이 대통령 뜻에 의해 결정돼야 하는 것이냐. 차라리 ‘이렇게 하면 전략공천을 못하지 않느냐’고 솔직하게 얘기하라.” 임기 반환점을 돈 박근혜 대통령은 레임덕을 방지하고 퇴임 후 ‘안전판’까지 확보하고자 한다는 게 정설이다. 지난 7월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를 찍어내고, 대구 방문 시 수행단에서 현역 의원들을 배제하고, 유엔 정상외교 기간 ‘반기문 띄우기’에 나선 것 모두 이러한 구상의 일환이라고 한다. 문제는 내년 4월 총선에서 친박근혜계를 국회에 더 많이 진출시키지 못할 경우 만사휴의(萬事休矣)라는 점이다. 국민공천제를 전면 도입할 경우 인지도와 조직력을 갖춘 현역 의원이 유리하다. 박 대통령이 공천을 주고 싶어 하는 측근들은 정치신인인 만큼 경선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가 어떠한 미사여구로 포장한다 해도, 본질은 결국 권력투쟁이다.


이날 비공개로 진행된 의총에서는 선거구 획정, 공천 룰 등을 논의했다. 앞서 청와대는 김 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합의한 '안심번호를 활용한 국민공천제'를 비판했다._강윤중 기자


국민공천제의 원형인 ‘오픈프라이머리’는 장점도 있지만 약점도 적지 않다. 정당의 가장 중요한 기능을 일반 유권자에게 넘김으로써 정당의 책임성이 약화되고 당원들이 소속감과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문제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청와대의 행태는 오픈프라이머리가 옳으냐 그르냐와는 별개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오픈프라이머리를 하든 클로즈드 프라이머리(경선 참여 일반인에게 정당·후보 지지를 서약하도록 하는 방식)를 하든, 새누리당 내부에서 논의해 결정할 일이다. 지금은 대통령이 집권여당 총재를 겸임하며 공천권을 쥐고 휘두르던 십수년 전이 아니다. 한 사람의 평당원인 대통령이 공천규칙을 좌지우지하려 해선 안된다. 자칫하다가는 선거중립 의무를 위배했다는 논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은 김 대표가 국민공천제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찌할 것인가. 이번에도 김 대표를 찍어낼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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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시작된 새마을운동이 한국의 빠른 경제성장을 뒷받침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특히 전근대적 수준의 농촌을 단기간에 변모시킨 것은 획기적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새마을운동의 부정적 효과와 한계 역시 뚜렷하다.

박정희 정권의 성장 전략은 농촌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도시 위주 공업화였다. 이로 인한 도농 불균형과 농촌의 불만을 정부가 의식한 것이 새마을운동의 시작이었다. 1969년 3선 개헌, 1971년 박빙의 대선, 1972년 유신체제 선포 등이 새마을운동 출범과 시기적으로 겹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철저한 관(官) 주도의 새마을운동은 농촌에 대한 정부 장악력 강화로 이어져 유신체제 버팀목이 됐다.

새마을운동은 농공 불균형, 농가부채 등 근본적 문제점을 외면했다는 점에서 성과주의 전시행정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실행 과정도 강압적이었다. 강력한 충격으로 농촌을 급변시키긴 했지만 지속가능한 농업정책은 아니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난 이농(離農)과 농촌 황폐화가 이를 잘 말해준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엔 총회 참석차 출국길에 오르며 인사하고 있다._경향DB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6일 유엔개발정상회의에서 새마을운동을 빈곤 퇴치와 지속가능한 세계 발전의 패러다임으로 제시했다. 그는 “선친께서 새마을운동을 추진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떠한 성공 요인들이 국민과 나라를 바꿔놓는지를 경험할 수 있었다”며 ‘지도자의 리더십’을 강조했다.

이 같은 언급은 박 대통령이 개발독재의 효과와 정당성을 신봉하는 시대착오적 사고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 정상들이 모여 경제·정치·사회·환경이 균형적으로 통합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개발의제를 채택하는 자리에서 40여년 전 개발독재시대의 강압적 국민동원형 의식개조 운동을 패러다임으로 삼자고 주장할 수 있는 현실 인식이 놀랍다.

새마을운동의 효율적 방식을 일부 빈곤국에 적용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21세기 세계개발원조의 지향점이 될 수는 없다. 또한 새마을운동이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를 대표하는 모든 것이 되어서도 안된다.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기리고자 하는 인식을 탓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통령 자리에 올라 전 대통령의 과거를 미화하는 일에 몰두한다면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진정 국가를 위한다면 지나간 시대를 덧칠하려는 시도 대신 자신의 대선 공약을 다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국민이 선거에서 박 대통령을 지지한 이유는 아버지 때문이 아니라 그의 대선 공약이 훌륭했기 때문이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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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은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이다. 새해를 시작하는 설도 큰 명절이긴 하지만, 풍성한 수확과 함께하는 추석이야말로 몸과 마음이 좀 더 풍요로운 때다. 그래서일까. 좀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살아보고자 연휴 동안 대통령님의 장점을 찾아 헤맸다. 주변 좌파들은 “설마 장점이 있겠어?”라며 냉소했지만, 막상 찾아보니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첫째, 시간을 잘 활용하게 해준다.

나이가 들면 시간이 참 빨리 간다는 걸 느낀다. 10대는 시간이 시속 10㎞로 가고, 50대는 시속 50㎞로 간다는 말이 있듯이, 새해가 밝은 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연말이곤 했다. 서유석이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라며 탄식했듯이 시간이 간다는 건 안타까운 측면이 더 많은데, 현 대통령이 집권한 뒤 놀랍게도 세월이 가는 속도가 늦춰졌다. 이제 2년 남았나 싶으면 3년도 더 남았고, 그로부터 한참을 더 지난 것 같은데 아직도 2년 반이나 남았다.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군대 있을 때보다 시간이 더 느리게 가는 것 같은데, 이 느낌을 잘 이용한다면 의외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6개월은 걸릴 일을 석 달에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둘째, 늘 긴장할 수 있게 해준다.

먼바다에서 잡히는 청어는 운송 도중 거의 죽어버려 수산시장에서는 냉동청어밖에 접할 수 없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청어를 살린 채 운반하는 게 가능해졌다. 비결은 수조에 청어의 천적인 메기를 함께 넣는 것으로, 청어가 메기한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긴장하다보니 배가 부두에 도착할 때까지 살아있을 수 있었다.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의 ‘메기효과’ 이론이다. 사람도 살아가는 데 적당한 긴장이 필요해서, 너무 나태해지면 일도 안되고 건강도 해칠 수 있다. 세월호에 이어 메르스까지, 현 정부 들어 해마다 큰 사건이 터지고 있다. 할 수 없이 사람들은 ‘내 안전은 스스로 지킨다’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는데, 이는 우리의 생존력을 더 높여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셋째, 투자 대비 효과가 뛰어나다.

지난 8월14일,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서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라는, 어느 정부도 하지 못한 선물을 국민들에게 안긴다. 뜻밖의 조치에 놀란 국민들이 우르르 차를 갖고 고속도로로 나간 덕분에 메르스로 인해 침체됐던 우리나라 경제는 극적으로 회생한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대통령은 추석을 맞아 장교를 제외한 56만명의 사병 전원에게 1박2일의 특별휴가증을 주고, 멸치와 김가루, 약과 등으로 구성된 특별간식을 하사했다. 덕분에 지뢰사건 등으로 침체됐던 군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는데, 간식을 사는 데 든 돈이 청와대 예산이 아니라 ‘군 소음피해 보상금’을 가져다가 쓴 것이라니, 이쯤 되면 박 대통령의 ‘한턱 정치’가 신의 경지에 이른 게 아닌가 싶다. 미국이 국산 전투기 개발에 필요한 기술이전을 하지 않으려는 것도 군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박 대통령의 능력을 무서워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넷째, 지역인재를 육성시킨다.

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대탕평 인사”를 약속했다. ‘골고루 인재를 등용해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취지였는데, 며칠 전 경향신문이 파워 엘리트 218명을 분석한 결과 영남 출신이 38.1%로 가장 많았다. 일전에 대통령은 영남 편중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인재 위주로 하다 보니까 어떤 때는 이쪽이 많기도 하고 저쪽이 많기도 하다”고 답했다. 하기야,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 영남 출신이 무려 7명에 달하니, 영남 사람들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긴 하다. 고무적인 건 다른 지역 분들이 “우리 마을에서도 대통령이 나와야 해!”라며 자기 지역의 인재를 키우려 한다는 것. 이렇게 경쟁적으로 인재를 키우다 보면 결국엔 ‘대탕평 인사’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으니, 단기적인 영남 편중을 시비할 일은 아니다.

다섯째, 국정원을 세계적 정보기관으로 키우고 있다.

<파리의 생활 좌파들>이란 책에는 한 프랑스 고위공무원의 인터뷰가 나온다. “이명박이 권력을 잡으면서 국정원 활동이 활발해졌고 우리를 압박해 오기 시작했다. …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뒤로는 더 심해졌다. 일단 파리에 주재하는 국정원 직원의 숫자가 더 늘어났다.”(183쪽)

우리는 국정원이 모사드나 CIA에 비해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후자의 기관들은 세계와 싸우는데 국정원은 댓글을 단다든지 간첩을 조작하는 등 찌질한 일만 했던 게 그 이유. 하지만 박 대통령 집권 이후 우리 국정원도 전 세계를 상대로 싸움을 시작한 듯하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우리도 모사드 같은 훌륭한 정보기관을 가질 수 있을 텐데, 대통령이 단임인 게 아쉬워진다.

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50%대라는 것에 놀라는 좌파들이 많다. 하지만 대통령의 장점을 생각하면 이 지지율은 오히려 낮은 것이다. 대통령의 장점이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져서 청와대 하늘에 늘 슈퍼문이 빛나기를 빌어본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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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안심번호를 활용한 국민공천제’를 내년 총선에 도입하는 데 사실상 합의했다. 김·문 대표는 추석 연휴 단독회동을 통해 이같이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란, 이용자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는 가상 전화번호를 이용해 여론조사를 실시한 뒤 공천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양당 대표는 그러나 선거구 획정이나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등 다른 쟁점에서는 진전을 보지 못했다. 정작 시급하고 중요한 현안은 뒤로 미룬 것이다. 일의 선후가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다.

오픈프라이머리는 당원과 비당원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유권자가 정당 후보자를 뽑는 경선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정당의 책임성을 약화시키고, 신인의 정치권 진입장벽을 높인다는 반론이 뒤따른다. 이 같은 논란을 차치하고라도 김·문 대표의 회동 결과는 실망스럽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이 지역구·비례대표 의석수를 둘러싸고 대립하면서 선거구 획정 논의는 기약 없이 지연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깜깜이 선거’를 치르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이런 판국에 원내 1·2당 대표가 만났다면 핵심적 쟁점인 선거제도 논의에서 성과를 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두 대표는 부차적 쟁점인 공천제도에서만 의견 일치를 이뤘을 뿐이다.


김무성 대표와 문재인 대표가 단독회동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_경향DB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두 대표의 개인적 이해가 일치했기 때문으로 본다. 김 대표는 명운을 걸고 추진해온 오픈프라이머리를 좌초 위기에서 구해내고, 문 대표는 당 혁신위원회의 ‘안심번호제’를 관철함으로써 리더십을 공고히 하려 했을 가능성이 크다. 정치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협상하는 일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오픈프라이머리는 정당 내부의 경선 방식에 불과하다. 한국 정치 발전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다. 반면 양당이 대치하고 있는 비례대표 문제는 한국 정치의 미래와 직결된다. 비례대표 확대는 승자독식과 지역주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회동 후 브리핑에서도 ‘지역구 확대, 비례대표 축소’ 주장을 되풀이했다. 문 대표는 “그 문제(지역구·비례 의석수)도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연계해 (계속) 논의할 문제”라고 했다. 본질적 이슈에서 평행선을 달리는 양당이 비본질적 이슈에서 합의를 이룬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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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작은 규모의 노동조합 위원장과 사석에서 대화를 나눌 일이 있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노사정 합의가 발표되고 난 후였기 때문에 노동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주로 나누었다. 대화 내내 그는 정치와 정당이 노동문제나 서민들의 삶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고 당내 갈등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까지는 요즘 어디 가서나 들을 수 있는 이야기고, 정치일반에 대한 질타려니 생각했다. 이 때문에 필자는 그래도 우리가 정치에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설득하려 했었다. 그러나 그가 “지금 한국 정치는 마치 여당만 두 개가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느낌이었다. “두 개의 여당”이라니. 현재 야당이 처해 있는 현실을 이토록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혹여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야당이 보이지 않고 여당만 두 개가 있는 것 같다는 말이 작금의 야당에 매서운 언어와 강한 행동주의로서의 야성(野性)이 부족하다는 질타가 아니다. 일부 열정적인 야권 지지자들이 원하는 매서운 언어와 강한 행동주의는 사실 야당의 본질이 아니다. 그보다는 야당이 시민들에게 대안의 선택지가 될 만한 신뢰집단으로 인식되지 못한다는 문제를 말하고자 함이다. 적극적 행동과 날카로운 비판은 오직 대안을 위해 실천될 때만 빛을 발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오히려 막말정치, 반대만을 위한 정치라는 비난을 벗어나기 힘들다. 기실은 “야당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도 적극적 반대자로서의 야당이 아닌 대안으로서의 야당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일 것이다.





보통 집권에 성공한 여당은 정부의 각종 통치수단을 통해서 권력을 분배한다. 통치의 유력한 방법이고 이를 통해 애초에 목표했던 다양한 정책들을 추진한다. 반대로 야당은 집권여당의 각 분야의 정책과 통치결과에 대한 스스로의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해 감으로써 다시 다음 선거에서의 집권을 노린다. 이런 의미에서 야당은 ‘대안권력’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 야당은 ‘대안권력’으로서의 모습은 결코 아니다. 새롭게 만들어진다는 야당들을 비롯해서 현재의 야당들의 대부분은 ‘대안’보다는 ‘권력’에 더 집중하는 모양새다.

시민들은 야당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야당들이 한 사회의 갈등을 해결하는 대안으로서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은 뒷전이고, 공직과 권력자원의 분배를 놓고 쟁투하는 집권여당과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그러니 여당이 두 개인 것 같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야당의 유력인사들이 은근히 총선보다 대선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유력 대선후보들의 행보와 말을 중심으로 내부다툼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최근 제1야당의 대표가 제안한 야당 총단결론도 마찬가지다.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단일대오로 모이자는 제안이 절박하게 들리기보다는 다소 허무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어떤 ‘대안’을 만들자는 이야기보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정치공학적 단결만 제안했기 때문은 아닐까.

야당의 한 축을 형성해야 하는 진보정치 역시 조금은 다르지만 깊은 고민에 둘러싸여 있다. 내년 총선에서의 생존을 위해 분열된 진보정치세력들의 ‘헤쳐 모여’가 필요하다는 현실적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시민들이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치도 필요하다고 인정하고 오랫동안 응원해주었던 이유는 진보정치가 기존의 양 정당들이 대변해주지 못하는 갈등과 문제들을 대변해주고 대안을 보여주기 원했던 것이다. 진보정치 역시 현재 가장 고민해야 할 문제는 어떻게 뭉칠 것인가보다 어떤 대안을 보여줄 것인가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지금 필요한 스스로의 변화는 무엇인가이다. 오늘의 고된 삶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진보정치가 변화의 가능성을 희망케 하는 별도의 대안을 제시해주지 못한다면 시민들에게 진보정치가 독자적으로 필요한 이유는 결코 설명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정당에 대안이란 존재의 이유 그 자체이기도 하다. 진보정치 역시 재결집과 통합의 과정에서 시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던 기존의 진보정치와는 다른 어떤 대안으로 시민들에게 새롭게 다가갈 것인가를 더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질문한다. 우리는 왜 여당이 아니고 야당인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여당보다 의석수가 적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불리한 게임을 하고 있어서? 각종 신당과 진보정당으로 분열되어 단결하지 못해서? 아니다. 그 수많은 이야기들은 오직 결과일 뿐이다. 우리가 야당인 이유는 우리가 ‘대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성주 |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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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당내 중진과 지도급 인사들에게 ‘선당후사(先黨後私)’의 결단을 촉구했다.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에겐 내년 4월 총선에서 부산에 동반 출마할 것을 제안했다. 정세균·이해찬·문희상·김한길 전 대표에게는 열세지역 출마와 용퇴를 포함해 당의 전략적 결정에 따라달라고 요구했다. 혁신위는 또 부패 연루자의 경우 1심에서라도 유죄가 나면 공천에서 배제하고, 기소만 돼도 정밀심사 대상에 포함토록 했다. 혁신위는 어제 발표를 마지막으로 활동을 사실상 종료했다. 혁신위 활동은 새정치연합의 체질 개선을 위한 기본 틀을 만든 것으로 봐야 한다. 보다 중요한 과제는 혁신의 구체적 내용을 채우고 차근차근 실천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혁신위의 인적쇄신안에 대해선 다양한 반응이 나올 것이다. 부산 출마 요구에 문 대표는 “심사숙고하겠다”고 한 반면, 안 전 대표는 “지역주민과의 약속이 중요하다”며 사실상 거부했다. 비주류 측에선 ‘문재인 체제’ 강화를 위한 인위적 물갈이 시도라며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출마하든 용퇴하든, 기존 지역구를 고수하든 ‘험지’에 도전하든 개별 정치인들이 선택할 일이다. 다만 혁신위 제안에 담긴 ‘기득권 포기’의 메시지는 존중해야 마땅하다. 새누리당에서 총선 불출마 선언이 잇따르는 동안 새정치연합에선 어떠한 조짐도 없었다. 모두가 ‘4년짜리 비정규직’을 더 하겠다는 욕심만 적나라하게 노출했을 뿐이다. 자기희생은 없이 남 탓만 하고 있으니 감동이 생겨날 리 없다. 지지층마저 돌아서는 게 당연하다.



봉합됐던 내분 사태가 인적쇄신 문제를 둘러싸고 재연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는 모양이다. 만약 또다시 볼썽사나운 내홍을 빚게 된다면 새정치연합은 ‘구제불능 정당’이라는 낙인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주류는 공천 잣대의 공정성을 보장하고,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특히 문 대표가 통 큰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비주류 또한 ‘친노 패권주의’ 운운하며 무조건 반발할 일이 아니다. 지금 이대로의 새정치연합으로는 총선에서 어떠한 전망도 세울 수 없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먼저, 더 많이 희생하는 사람이 결국에는 정치적 성공으로 보답받는다. 새정치연합은 지금 혁신하되 통합하고, 쇄신하되 단결해야 한다. 그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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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이 직원들에게 박근혜 대통령 제안으로 만든 ‘청년희망펀드’의 가입을 지시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KEB하나은행은 엊그제 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내 청년희망펀드 가입을 지시했다. 은행 측이 각 영업점에 1인 1계좌 가입을 원칙으로 하는 공문을 내려보냈으며, 본부별로 실적 경쟁이 붙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다른 은행도 상황은 비슷하다고 한다. KEB하나 등 5개 은행은 이번주부터 ‘청년희망펀드 공익신탁’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기부금 형태로 은행에 돈을 맡기면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공익을 위해 쓰겠다는 것이다. 목표액이나 용처는 정해지지 않았다.

청년 일자리에 대한 대통령의 걱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부금으로 일자리를 만들 수는 없다. 황교안 총리 말대로 사회지도층이 동참하자는 순수한 생각으로 추진하는 사안이라면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정부가 각계 지도층을 압박하고, 그 지도층은 다시 직원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것 자체가 이미 청년 일자리 문제를 국민에게 떠넘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KEB하나은행도 직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당부한 것이라고 하지만 위에서 내려온 공문을 현장에서 가볍게 여길 수 없을 것이므로 설득력이 없다. 은행 청원경찰과 파트타임 직원들도 마지못해 펀드에 가입했다는 대목에는 말문이 막힌다. 제대로 된 고용이 필요한 약자마저 펀드에 가입해야 한다면 누가 누굴 돕겠다는 뜻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미 ‘희망펀드’가 아니라 ‘고문펀드’가 되고 있는 형국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의원 초청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_경향DB


박 대통령의 장병 휴가 제공과 관련해 청와대가 기업에 장병을 위한 할인 프로그램 제공을 요청했다는 보도 역시 희망펀드의 재판이다.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롯데·CJ 등은 최근 청와대의 뜻을 받든 전경련으로부터 휴가 장병에 대해 놀이공원이나 영화관 입장료를 할인해 주라는 요청을 받았다. 한 대기업은 휴가 장병에게 영화 할인, 팝콘 무료 제공 등의 계획을 전달했다. 청와대의 이런 움직임은 기업 이익을 훼손하는 행위이자, 기업 경영주에게 배임을 부추기는 배임사주 행위가 될 수 있다. 이는 현 정부가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는 자율과도 배치된다. 협력 요청을 앞세운 자율은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에 갑질을 할 때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다. ‘대통령 사업’은 알아서 기거나, 손목이 비틀리거나 둘 중의 하나라는 기업들의 자조를 청와대는 듣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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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독립기구인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가 내년 총선에 적용할 국회의원 지역구를 244~249개 범위에서 정하겠다고 밝힌 후 새누리당이 연일 이를 비판하고 있다. 김무성 대표가 그제 획정위 안을 “비현실적인 안”이라고 하더니 어제는 김정훈 정책위의장이 “농촌 의석을 최대한 지켜주는 방향으로 선거구를 획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례대표 축소를 거부하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향해 “농촌을 버리겠다는 것이냐”고 했다. 선거구획정위의 독립성을 무시하는 처사이자 농촌 지역구민을 핑계 삼아 선거제도 개혁을 좌절시키려는 부적절한 행위이다.

선거구 획정이 지금처럼 꼬이게 된 단초는 새누리당이 제공했다. 새누리당은 처음부터 “비례대표를 늘리고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다면 정원을 늘리자”는 야당의 제안을 거부했다. 이후 의석수 300석을 넘기지 말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앞세워 새정치민주연합을 압박한 끝에 의원 정수를 현행대로 동결했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농어촌 지역구를 살리기 위해서는 지역구를 늘리고 비례대표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고 하니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겉으로는 농촌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지역구 간 인구 편차를 2 대 1 이내로 재조정하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그대로 적용하면 새누리당이 불리하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하고 있음을 누구나 안다. 야당세가 강한 수도권에서는 지역구가 느는 반면 새누리당이 유리한 경북을 비롯한 농촌 지역의 의석수가 주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기득권 고수 목적으로 획정위를 압박하지 말아야 한다. 획정위를 사상 처음으로 독립기구로 만든 취지는 특정 정당의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선거구를 정하자는 것이다. 비례대표 축소는 시대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농촌의 대표성을 소중히 여겨 비례대표를 줄이는 방향으로 하는 게 헌재 결정에 부합하는 태도”라고 했지만 그런 논리는 어디에서도 타당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새누리당은 표의 등가성, 다양성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원칙과 논리를 가지고 선거구 획정에 임해야 한다. 대안을 찾기 어렵다면 그만큼 농촌 대표를 비례대표로 뽑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 획정위는 여당의 주장에 동요하지 말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공정하게 선거구를 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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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이 어제 당무위원회·의원총회 연석회의를 열고 문재인 당 대표를 재신임하기로 결의했다. 새정치연합 이종걸 원내대표와 중진 대표인 박병석 의원은 회의 후 브리핑을 통해 이런 내용을 발표한 뒤 연석회의는 더 이상 대표의 거취를 둘러싼 분열적 논란을 배제한다고 밝혔다. 비주류 인사들이 대부분 빠지긴 했지만 당 공식 회의에서 결의문 채택을 통해 의견을 모은 만큼 문 대표 재신임에 대한 논란은 일단락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분란의 여지는 있다. 비주류 안철수 의원은 이날 회의 전 당내 부패 척결 방안을 내놓으며 강도 높은 당 혁신을 촉구했다. 또 탈당해 신당 창당을 추진 중인 천정배 의원도 내년 1월 창당 계획을 밝히며 독자노선을 선언했다.

어제 연석회의 결과로 문 대표가 할 일은 자명해졌다. 문 대표가 연석회의 결의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더 이상 재신임 투표를 고집하지 말고 재신임으로 받아들이는 게 옳다. 대신 연석회의가 “당 대표는 당의 단합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다른 의견을 가진 분들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할 것을 권유한다”고 결의한 대로 당을 추스르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당장 안철수 의원의 혁신안을 적극 수용할 필요가 있다. 새정치연합이 유권자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는 데는 부패 관련자에 대한 미온적 대응도 한몫했다. 지난달 대법원 판결에 의해 유죄가 확정된 한명숙 전 의원을 당이 비호하는 태도를 취한 것은 혁신을 앞세우는 정당의 명분을 스스로 깎아 먹는 행위였다. 부패 문제에 대한 당의 인식과 수권정당으로서의 면모를 의심케 했다. 문 대표는 안 의원과 만나 당 혁신 전반에 관해 합의점을 도출해야 한다. 다른 비주류 인사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당을 통합함으로써 당의 구심력을 단단히 구축해야 한다. 비주류 역시 문 대표와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하고 당 혁신과 총선 승리 비전을 공유해야 한다. 대안 없이 대표를 흔드는 일을 중단하고 진지하게 당 화합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내년 총선에 대비한 당 체제 구축도 절실하다. 당이 내홍을 겪으면서 공천제도 개선안과 권역별 비례대표제 제안 등 혁신안은 실종됐다. 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는 지역구 의원 정수를 현행과 비슷한 244~249명 수준으로 정해놓았다. 이대로라면 비례대표를 늘리지도 못하고 정당 발전을 촉진하는 선거제도 개선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다. 당내 통합을 바탕으로 선거제도 개선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공정한 공천제도 도입과 당 조직 정비로 선거 채비를 갖추는 것도 시급하다.

문 대표에 대한 호남지역의 반발 정서도 뛰어넘어야 한다. 천정배 의원과 박준영 전 전남지사가 주도하는 신당들은 모두 호남의 반문재인 정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들이 갖고 있는 의구심을 해소하지 못하면 새정치연합의 원심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새정치연합이 거듭나지 않는 한 호남에서 신당바람은 잦아들지 않을 것이고, 결국 내년 총선에서 새정치연합에 타격을 줄 것이다. 문 대표는 호남 지지자들에게 총선 승리의 비전을 보여주어야 한다.

정당에서 이견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것이 당을 해체하는 수준의 분열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청와대와 여당이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들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사실을 시민들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야당이 더 실망스럽다는 시민들이 많다. 새정치연합의 지리멸렬상을 보는 유권자들의 인내가 한계점에 와 있다. 지금 유권자들의 실망을 해소하지 못하면 내년 야당의 목표인 총선 승리는 물론 정권 교체도 불가능하다. 재신임 결의를 계기로 당 내분 수습에 전력을 다하는 것이 문 대표와 비주류 모두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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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병원 혁신에 대한 책들이 연이어 출간되었다. 그러나 혁신이 병원계의 화두로 등장한 때는 이미 십수년 전이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우리나라 병원은 이전과는 매우 다른 환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공급 과잉 상태가 되면서, 병원 간의 경쟁이 격화되었다. 의료비 지출이 급증하면서, 병원에 대한 공적 개입도 강화되었다. 환자의 기대수준도 한층 높아졌다. 병원이 변화를 모색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병원 컨설팅 업체가 생겨나고, 유수 병원들이 위원회를 꾸려 혁신 방안을 수립하기 시작한 때도 이즈음이었다.

어떤 조직이든 혁신은 어렵다. 그러나 병원의 혁신은 여느 조직에 비해 몇 곱절 어렵다. 첫째, 병원은 사익과 공익을 함께 추구해야 하는 딜레마를 가지고 있다. 조직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서는 병원도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환자의 건강이라는 공익도 충족시켜야 한다. 이론적으로 사익과 공익의 균형을 말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의료 현실에서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둘째, 병원의 구성원은 다들 나름의 전문 영역을 가지고 있고, 그 분야에서 잘나가는 전문가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병원 지도부의 관리행정이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셋째, 병원에는 매우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결부되어 있다. 병원의 일차 고객은 환자이다. 그러나 외래환자, 응급환자, 수술환자 등의 요구는 천차만별이다. 그 외에 환자 가족, 지역 주민, 정부 등도 직간접적인 이해당사자들이다. 넷째, 진료과별 할거주의가 극심하다. 병원의 권력구조는 마치 봉건영주제와 흡사하다. 병원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각 진료과는 하나의 작은 왕국을 이루고 있다. 그 자신조차 특정 진료과의 일원인 임기제 원장이 각 진료과의 이해관계 균형을 깨뜨리는 변화를 추진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특성들보다 더 근본적인 혁신의 걸림돌은 환자 중심적인 사고의 결핍이다. 병원은 서비스를 공급하는 의료전문직에게 최적화된 구조와 문화를 갖추고 있다. 환자의 눈으로 병원을 바라보는 것이 혁신의 출발이지만, 공고한 권위주의와 공급자 중심적인 사고의 암초에 걸려 출발부터 좌초되곤 한다. 이런 탓에 유수 병원들의 캐비닛에는 대동소이한 혁신 방안들이 먼지를 수북하게 뒤집어쓴 채 잠자고 있다. 계획만 세우고 제대로 된 실천을 해본 적이 없으니, 혁신이 성공할 리 만무하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안 실천을 촉구하는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_경향DB


요근래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야당의 혁신 논란을 지켜보면서, 정당 혁신이 병원 혁신의 판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과 마찬가지로 정당도 사익과 공익의 균형이 중요하다. 그러나 공동의 이익은 아랑곳하지 않고, 국회의원 배지를 향한 개인의 열망만 넘쳐난다. 국회의원 0한 명 한 명은 입법기관으로서 독립적인 위상을 가진다. 그런데 적지 않은 수의 국회의원은 이런 위상을 무거운 책임감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지는 않다. 천하에 자신밖에 없다는 듯 거침없이 말하고 행동한다. 최소한의 질서와 기강도 찾아볼 수 없다. 야당에서 이런 안하무인은 더욱 두드러진다. 매우 다양하고, 때로는 상충하는 이해관계들이 뒤엉켜 있는 점도 병원과 비슷하다. 그런 만큼 합의와 타협이 중요하지만, 정당에서 그런 모습을 본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봉건영주제와 같이 계파와 지역으로 무리 짓는 것도 빠뜨릴 수 없다. 무리를 지어 건전하게 경쟁하는 것은 발전의 원천이 된다. 그러나 현재의 정당, 특히 야당에서는 퇴행의 원천이 된 지 오래다.

정당 혁신의 가장 큰 걸림돌은 국민 중심적인 사고의 결핍이다. 국민의 눈으로 정치를 바라보고 국민의 소리에 귀를 여는 것이 혁신의 출발이지만, 정치인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듯하다. 내년 총선에서 100석도 못 얻을 것이라서 혁신을 해야 한다는 논리는 국민 입장에서는 우스운 소리다. 야당이 100석을 얻든 못 얻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 대다수 국민의 인식이다. 오히려 100석도 못 얻더라도 좋은 정치를 하겠다는 기득권 포기 선언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갈기갈기 찢어져 끝 모를 혁신 논쟁만 벌이는 것도 국민 입장에서는 신물이 난다. 그런 것에 귀 기울여줄 만큼 삶이 한가롭지 않다. 말로만 혁신하는 정당, 야당의 무능에 대한 국민의 냉소는 이런 데서 비롯된다. 산고 끝에 야당의 혁신안이 만들어졌다. 100점짜리 혁신안이 무엇인지를 놓고 논쟁만 벌이는 것보다는 50점짜리 혁신안이라도 실천하는 편이 훨씬 낫다. 50점짜리 혁신안이라도 성심껏 실천하면, 나머지 50점은 국민이 채워줄 것이다. 혁신은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이루어진다.


이진석 | 서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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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추석을 맞이하여 부사관 이하의 모든 국군장병들에게 격려카드와 특별간식을 ‘하사’할 예정입니다.” 청와대가 홈페이지에 이 같은 보도자료를 올렸다. 장병들에게 특별휴가증을 수여한다는 내용과 함께였다. ‘하사(下賜)’는 왕조시대 용어로, 공화국에서는 사극에나 나올 법한 말이다. 그런데 청와대가 공개적으로 사용했다. 박근혜 정권이 국민을 대하는 방식이 이 한마디에서 드러난다.


박근혜 대통령_경향DB


하사는 ‘임금이 신하에게, 또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물건을 줌’이라는 뜻이다. 청와대는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윗사람이고 장병은 아랫사람이니 문제될 게 없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두 번째 정의로 사용했다 해도 문제는 마찬가지다. 국군장병은 대통령의 아랫사람이기 이전에 주권자인 국민이다. 대통령은 국민의 투표로 뽑히고,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 받는 공복(公僕)일 뿐이다. 어제 아침 발행된 중앙종합일간지 9곳 중 8곳이 ‘하사’ 대신 ‘제공’ ‘전달’ ‘돌릴 예정’이란 표현을 쓴 것만 봐도 이 단어의 부적절성을 짐작할 수 있다.

정치학자 임혁백 고려대 교수는 2012년 당시 대선후보이던 박 대통령을 두고 “왕정이 사라진 대한민국에서 ‘우리의 공주’를 갖고 싶어하는 한국 보수의 아이콘”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사인(私人)이 박 대통령을 공주 혹은 여왕처럼 여기는 심리까지 나무랄 수는 없을 터다. 그러나 정부와 공직자는 달라야 한다. 청와대 인식대로라면 격려카드와 특별간식을 ‘하사’받은 장병들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라도 외쳐야 하는 건가. 대한민국은 군주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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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청사 청소용역직 근무자 급여 수준은 전국 청사 용역직 근무자에 비해 가장 높다. 시중 노임에 비해서도 세종청사는 124% 높은 수준이다. 저희와 같이 근무하시는 분들 급여를 올리게 되면 다른 청사 분들도 30% 이상 다 올려줘야 한다.”

지난 1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장. 새정치민주연합 신계륜 의원이 “지금 밖에서 며칠째 농성을 벌이고 있는 세종청사 노동자의 얘기부터 좀 들어보라”고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건의했다.

최 부총리는 “차관이 대신 설명하겠다”며 뒤로 빠졌고, 부총리를 대신한 방문규 기재부 제2차관은 이렇게 답변했다. 방 차관의 말대로라면 세종청사 청소용역직 노동자들은 좀 뻔뻔해 보인다. 이들은 상여금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다른 곳보다 많이 받는데 상여금까지 요구하다니 참 나쁜 ‘귀족노조’다.

그런데 방 차관의 말이 사실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다음날 기재부 옆 농성장을 찾았다. 노조 관계자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월급명세서를 꺼냈다. 그가 내민 월급명세서에 찍힌 수령액은 153만원. 세금을 공제한 실수령액은 138만원이었다. 방 차관이 강조한 ‘전국 청사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임금은 이랬다.

방 차관은 ‘기준점 효과’를 악용했다. 경제를 잘 아는 사람들이 종종 쓰는 꼼수다. 방 차관은 청소노동자 임금 기준점을 ‘타 청사’로 잡았다. 정부는 애초에 청사 청소용역직 노동자의 임금을 과도하게 깎았다. 전국에는 4개 청사가 있다. 공제 전 기준으로 정부서울청사는 월 132만원, 정부과천청사는 월 130만원(연차 및 시간 외 미포함)을 준다. 가장 많이 주는 곳은 정부대전청사로, 월 156만원이다.

하지만 기준점을 바꾸면 판단이 달라진다. 세종청사 옆에 있는 세종시청은 청소용역직 노동자에게 184만원을 준다. 세종국책연구단지도 181만원이다. 이 지역의 표준 임금이 이 정도라는 얘기다. 같은 지역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청소용역직 노동자의 임금이 20%나 차이가 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시중노임의 124%라는 것도 ‘기준점 꼼수’다. 방 차관은 시중노임의 기준을 최저임금(시급 5580원)으로 잡았다. 통상 청소용역직의 시중노임은 중소기업중앙회가 정한 일용직 최저임금 단가를 쓴다. 세종청사 청소용역 업체는 입찰에 참여하면서 이 단가의 85%를 제시해 낙찰받았다. 세종청사 청소용역직 노동자들은 중소기업중앙회 일용직 단가의 85%를 받고 있다고 반박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16년도 예산안을 설명하고 있다._연합뉴스



최경환 부총리는 지난해 취임과 함께 ‘소득주도 경제’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무원 임금은 올해 3.8%, 내년 3.0%를 선뜻 올려줬다. “공무원이 올라야 민간이 오른다”는 이유를 댔다. 그런 기재부가 청사의 청소용역직 노동자만 저임금을 강요하고 있다. 공무원노조는 한술 더 떴다. 중앙행정기관공무원노조는 “청소용역직 노동자의 파업은 우리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라며 청사관리소에 대체인력을 투입해 청결을 유지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공무원연금 개혁 때 연금 훼손을 막아달라며 거리로 나오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정부는 민간기업 직원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1인당 임금상승분의 70%까지 지원하고, 간접노무비 20만원도 지원하겠다고 지난 17일 밝혔다. 청소용역직 노동자들은 정규직까지도 바라지 않는다. 비정규직이라도 할 테니 동네 수준에 맞게 임금만 맞춰 달라는 것이다. ‘청사 기준’으로 저임금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지자체 기준’으로 합리화해달라는 얘기다.

정부는 자기집 청소를 해주는 도우미의 임금도 제대로 맞춰주지 못하면서 남의 집에는 왜 임금을 올려주지 않느냐며 닦달하고 있다. 제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 것일까, 혹은 대통령부터 내려온 ‘유체이탈 화법’이 전염이 된 것일까. 그저 ‘어이’가 없다.


박병률 | 경제부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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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세력 내부의 권력투쟁 조짐이 뚜렷하다. 소재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추진해온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다. 친박근혜(친박)계 핵심이자 대통령 정무특보인 윤상현 의원이 ‘오픈프라이머리 불가론’을 거론한 게 발단이 됐다. 이후 친박계 좌장 격인 서청원 최고위원도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하라”고 김 대표를 압박했다. 어제는 당내 ‘투톱’인 원유철 원내대표마저 “새로운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가세했다. 비박근혜계는 ‘김무성 흔들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오픈프라이머리 논쟁의 본질은 총선 공천권 문제다. 지난해 7월 전당대회에서 당권 장악에 실패한 친박계가 남북 고위급접촉 합의 이후 대통령 지지율 상승을 틈타 당을 접수하고 공천을 주도하려는 것이다. 김무성 대표는 “공천권 싸움이 여당에서도 시작된 것처럼 비치는 건 옳지 못하다”고 했지만, 부인해본들 소용없다. 친박계는 내년 4월 총선을 넘어 2017년 대선까지 이어지는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당 지지율이 40%대인데 김 대표 지지율은 20%대라서 아쉽다. 내년 총선으로 4선이 될 친박 의원 중 차기 대선에 도전할 사람이 있다”며 ‘친박 독자후보론’을 제기한 윤상현 의원 발언이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새삼 놀랄 일은 아니다. 새누리당은 대통령의 ‘오더’로 유승민 원내대표를 찍어낸 뒤 ‘박근혜의, 박근혜에 의한, 박근혜를 위한’ 당으로 전락했다. 다음 표적은 김 대표가 될 것이란 설이 퍼진 지도 오래다. 김 대표 주장대로 오픈프라이머리가 도입되면 공천 과정에서 청와대 영향력이 축소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임기 말 국정장악력 유지는 물론 퇴임 후에도 정치적 영향력 행사를 원하는 박 대통령에게 오픈프라이머리는 ‘수용불가’일 것이다. 최고위원회가 아직 당론으로 채택하지 않았으니 오픈프라이머리 무산이 절차적으로도 문제없다고 봤음직하다.

여당 내부에서 공천규칙을 놓고 다투는 일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규칙은 물론 규칙을 정하는 과정도 공정하고 민주적이어야 한다. 오픈프라이머리를 도입하든 안 하든 자유롭고 합리적인 토론이 선행돼야 한다. 차기 대선후보를 세우는 일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호오(好惡)가 기준이 돼선 곤란하다. 청와대는 대통령 지지율이 올랐다고 무리수를 두는 일이 없기 바란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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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광복 70주년이라지만 우리는 광복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차분하게 되새기는 시간을 갖기보다는 70이라는 숫자에 더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 69주년과 70주년의 차이는 크지 않지만 광복의 의미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국제정치를 전공하는 나에게 광복은 주권독립국가로서 ‘독립(獨立)’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로 다가온다.

독립이라는 말은 한자 그대로 혼자서 선다는 말이다. 거기에 주권이라는 말이 또 붙었는데, 주권의 국제정치적 뜻도 대외적인 독립을 의미하기 때문에 역시 혼자 서는 독립의 의미가 더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70년 전 광복은 우리가 진정으로 혼자 설 수 있는 기회와 새 장을 열어 준 사건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새 도화지에 우리가 꿈꾸는 나라와 미래를 우리 스스로 선택해서 그리는 일이었다. 남의 속국이나 식민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서는 주권국가를 만드는 일이었다.

물론 역량이 안 되고, 환경이 녹록지 않아 처음에는 뒤뚱거리는 걸음마로 시작했지만 근대화와 민주화를 통하여 독자적 역량의 기초를 쌓아 나갔다.

최소한 국가 내부는 민주주의 선거를 통해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독립의 공간으로 급속도로 바뀌어 갔다.

우리의 외치의 공간, 즉 국제정치적 공간도 우리의 역량이 커지고, 냉전이 종식되는 환경변화가 생기면서 독자적 선택의 여지가 역시 넓어졌다. 냉전에서 승리했다는 것은 이제 소위 공산권과의 적대적 관계가 청산되는 것이어서, 과거 공산권 국가들과도 우리의 국익에 맞추어 자유로이 교류, 협력, 경쟁하는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 간의 관계가 우리의 국익에 맞추어 우리가 협력과 교류의 파트너를 선택하고, 또 필요하면 우리가 선택하여 그들과 경쟁하는 관계로 들어서는 환경이 된 것이다.

거기다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고, 또 세계의 리더 집단인 G20이라는 협의체의 일원이기도 하다. 외치의 역량도 내치의 역량에 못지않게 충분히 쌓아 놓았다. 남은 일은 실천이다. 그 실천은 과거 공산권 국가를 포함하여 자유로이 협력과 경쟁의 파트너를 독자적으로 선택하는 것이고, 이는 지난 냉전시대의 외교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민주화와 같이 밑에서 혁명적으로 생겨나기도 하지만 주도세력이 스스로 바꾸는 경우도 있다. 냉전시대의 습관인 어느 편이냐를 따지는 관성이 남아 있는 외교의 경우에는 세칭 보수세력의 리더가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 유리하다. 그렇지 않으면, 전통 우방국과 보수세력의 의심을 사게 되어, 오히려 더 큰 반발을 불러오게 되는데, 노무현 정부시절 중도하차한 동북아균형자론이 바로 그 예이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는 패러다임 변화의 시도는 보수세력과 전통 우방의 의구심을 사 끝까지 펼쳐보지 못하고 중간에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쓸데없는 냉전의 여진이 아직도 발생하는 지금, 진보세력보다는 보수 지도자가 국제정치를 정확히 읽고, 냉전을 탈피하는 새로운 외교를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과 톈안먼 성루에 서 있다_연합뉴스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9월3일 중국 전승절 참석은 바로 그러한 의미를 담고 있다. 과거 공산권 국가의 지도자들과 함께 서서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안을 논의할 수 있는 독자적 선택의 가능성을 보여 준 것이다. 우리가 남의 눈치 덜 보고 독자적으로 이슈와 협력 대상국을 선택하는 주권독립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보수세력의 지도자가 한 선택이기에 국내외적으로 통합된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매우 용감하고, 시대를 읽는 현명한 외교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앞으로 박근혜 정부 이후 어떤 성향의 정권이 들어와도 상대적으로 독자적인 외교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 주었다는 점에서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 성향을 뛰어넘어 진정한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순간이다. 이제 10월16일에는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한·미 정상회담의 주요 관심사가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에 대해 오해를 불식시키고 한·미 관계의 굳건함을 과시하는 것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우리의 국익이 어디에 있고 그 국익을 달성하기 위한 한·미 간의 진정한 파트너십을 확인하는 것에 있기를 바란다. 다시 한번 광복의 순간을 경험하고 싶다. 감히 말하지만 지금은 스스로의 선택권을 가지고 외교를 할 수 있는 진정한 주권국가의 시대이다.


이근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싱크탱크 미래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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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이 어제 중앙위원회를 열어 공천 혁신안을 의결했다. 최고위원제 폐지에 따른 지도체제 개편안도 가결했다. 혁신안 통과에 대표직을 걸었던 문재인 대표는 재신임을 위한 1차 고비를 넘었다. 그러나 갈 길은 멀고 험하다. 비주류는 혁신안 처리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기류다. 당장 2차 고비인 재신임투표가 또 다른 뇌관이 될 수 있다. 문 대표의 선택과 결단에 주목하는 까닭이다.

어제 열린 중앙위원회는 새정치연합의 맨얼굴을 그대로 드러냈다. 중앙위원들 사이엔 고성이 오갔고, 비주류 측 인사들은 무기명 투표 실시를 요구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집단 퇴장했다. 우여곡절 끝에 혁신안이 박수로 통과됐지만 이를 문 대표나 주류의 승리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중앙위원 다수의 위기감이 작용한 결과로 봐야 할 것이다.

문 대표는 이들의 우려에 답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려면 큰 줄기에 집중하고 소소한 부분은 포기할 필요가 있다. 문 대표는 중앙위가 끝난 뒤 “혁신안 통과가 재신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제가 말씀드린 재신임은 남아 있다”며 “추석 전까지 (재신임투표를) 마무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치지도자가 국민 앞에 한 약속은 지키는 게 원칙적으로 옳다고 본다. 이미 꺼낸 칼을 다시 칼자루에 집어넣기도 쉽지 않을 터이다. 다만 목표와 수단은 구분해야 한다. 당면목표는 당의 통합이며, 재신임투표는 수단이다. 유연하게 대응하는 게 바람직하다. 문 대표 본인도 “우리는 단결할 때 승리했고 분열할 때 패배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선결 과제가 당의 통합이요 단결이라면, 다음 과제는 당의 정상화일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국회의원을 129명이나 거느린 제1야당이지만, 정상적인 당이라 부르기에 민망할 만큼 무능하고 취약하다. 당장 노동시장 구조개편으로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경각에 달렸는데도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터다. 문 대표는 이 같은 위기상황을 타개할 책임을 지고 있다. 새정치연합을 어떻게 정상적인 당으로 변화시킬지 구체적인 복안을 제시해야 한다. 수권정당을 향한 본질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앞장서야 한다. 그동안 문 대표는 혁신안 통과에 집중해왔지만, 혁신안은 변화를 담아낼 ‘그릇’에 불과하다. 이 그릇을 튼실한 내용으로 채우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집권을 위한 비전, 노선, 정책 등 모든 측면에서 과거의 타성을 버려야 한다. 새로운 인물을 각계각층에서 과감히 영입해 당의 면모를 일신해야 한다. 제1야당이 누려온 해묵은 기득권에 안주해선 곤란하다. 당내에서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면 주류, 특히 문 대표 측근들이 먼저 희생하겠다는 자세가 절실하다.


일단 ‘안도’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16일 국회에서 열린 중앙위원회에서 공천 혁신안이 가결된 후 회의장을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_강윤중 기자


비주류 측에도 권고한다. 더 이상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지 말기 바란다. 새정치연합이란 정당이 무너지고 난 뒤에 당권을 획득하거나 공천을 받는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혁신안이 미흡한 것은 사실이지만, 중앙위에서 이미 의결한 터에 이 행위 자체를 부인한다고 본질적으로 달라질 것은 없다. 권력투쟁을 하더라도 표결 결과를 존중하는 테두리 내에서 하는 게 옳다. 시민들은 지금 주류가 잘못했는지, 비주류가 잘못했는지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끝 모르고 이어지는 야당의 내홍에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을 뿐이다.

거듭 밝힌 바와 같이, 우리가 새정치연합의 내분 사태에 주목하는 것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강력한 야당, 유능한 야당, 실력있는 야당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견제와 균형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다. 제1야당이 분열과 갈등으로 지리멸렬하는 사이, 박근혜 정권은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은 채 일방독주를 계속하고 있다. 민생은 어려워지고 민주주의는 퇴행하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제대로 된 대안세력으로 거듭나야 한다. 지친 시민들은 오래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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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개입 논란을 빚은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에게 사실상의 ‘면죄부’를 줬다. 중앙선관위는 새정치민주연합이 고발한 정 장관과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새누리당 연찬회 발언이 공직선거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정 장관에 대해서만 “강력한 주의”를 촉구키로 했으나 국민 여론을 의식한 면피성 조치일 뿐이다.

선관위는 정 장관의 ‘총선 필승’ 건배사에 대해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 보기 어렵다”면서도 “선거지원 사무를 관장하는 주무장관으로서 총선을 앞두고 선거중립을 의심받을 수 있는 행위를 했다”고 밝혔다. ‘의심은 가지만 위법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독립적 헌법기관’의 위상에 걸맞지 않은 줄타기다.

공직자의 정치적 중립은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중요한 기둥이다. 고위공직자, 특히 ‘선거지원 사무를 관장하는 주무장관’이 공개 석상에서 특정 정당의 선거 승리를 기원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다. 명망 있는 헌법학자인 정 장관이 공무원을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규정한 헌법 7조나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를 명시한 선거법 9조를 모르지 않을 터다. 그럼에도 그는 국회 안전행정위의 국정감사에서 “행자부는 선거 주무부서가 아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주무부서”라는 식의 궤변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 사안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국민 정서와 괴리가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행정자치부 국정감사도중 정종섭 장관이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의 의사진행 발언을 듣고 있다._경향DB



선관위가 정 장관에 대해 주의를 촉구키로 한 것은, 여론을 감안한 고육책으로 본다. 정권에 흠집을 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거센 비판을 외면하기도 어려웠던 셈이다. 하지만 선거법 위반이면 위반이고 아니면 아닌 것이지, ‘의심받을 수 있는 행위’는 무엇이며 주의 촉구는 또 뭔가. 선관위는 선거의 공정성을 해치는 행위를 감시·단속하는 기관이지, 윤리학 강의실이 아니다.

어제 선관위는 추석 명절을 전후해 선거법 위반 행위에 대한 특별단속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온 나라가 다 아는 위법행위에 눈감으면서 새삼스럽게 특별단속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시민의 법상식에 어긋나는 이번 결정으로 선관위는 신뢰를 잃었다. 선관위의 ‘봐주기’는 향후 선거에서 다른 고위공직자들에게도 나쁜 신호를 줄 우려가 있다. 선관위의 맹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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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현상에 대한 최근 경향신문의 커버스토리 기사는 이 단어의 발생과 용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경향신문과 데이터 컨설팅 기업 ‘아르스 프락시아’가 함께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헬조선’ 현상은 취업난에 고통을 받는 청년들의 넋두리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더 이상 사회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특히 청년세대를 직접 취재해 ‘헬조선’이 희망 없는 교육, 국가의 무능과 미개한 통치성, 기업의 노동착취와 연고주의의 극단을 대변하는 일종의 ‘절망의 수사학’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경향신문의 커버스토리는 ‘트위터’나 ‘일베’처럼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입장이 다른 SNS 공간에서도 헬조선은 미개하고 지옥 같은 곳으로 생각하고 있고, 하루빨리 헬조선을 ‘탈출’하고 싶다는 견해도 동일하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헬조선의 용법이 유행하게 된 배경에는 청년실업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점도 주시하고 있다.

경향신문의 커버스토리는 헬조선이 특정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편향을 드러내는 집단들이 유포한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것은 단지 일베의 혐오 수사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헬조선은 한 사회가 작동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유지하는 정의와 윤리의 감정이 붕괴되고 있음을 청년세대의 입을 통해 경고한 근본적인 사회 체제 위기의 담론이다.

헬조선으로 대변되는 청년들의 총체적 분노와 “죽창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는 헬조선닷컴의 메인 페이지의 살벌한 슬로건만 보면, 조만간 대한민국에 동학혁명과 같은 민중봉기가 일어날 듯한 전조를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헬조선의 담론장은 의외로 평화롭다. 지금 여기, 지옥 같은 헬조선의 세상을 갈아엎겠다는 봉기의 분위기보다는 오히려 그 재난의 사태를 관망하고 즐기는 분위기가 더하다. 헬조선의 절망과 분노의 글들은 매우 직설적이고 노골적으로 세상을 비난하지만, 그 비난은 비난에 불과할 뿐, 세상을 바꾸려는 직접 행동과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헬조선의 분노는 정치적으로 이완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봉합되어 이들 주체의 입장조차 무엇이 정치적 비판이고, 무엇이 탈정치적 냉소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헬조선’이란 작금의 세상을 뒤엎으려는 직접행동을 지연시키거나 해소시키기 위한 조작된 공론장 같아 보인다. 범용화된 현상으로서, 혹은 유포된 담론으로서 헬조선은 헬조선이라는 실재를 기각하고, 오히려 그 체제를 재생산하는 구성적 요소로 작동한다.


헬조선_경향DB



헬조선에 대한 경향신문의 커버스토리가 아쉬웠던 것은 온라인에 기반한 객관적인 데이터 분석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아, 단어들의 표층적 연결고리의 분석을 넘어서 단어 사이의 심층의 무의식을 해석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1970년대 영국에서도 썩어 문드러진 영국 사회에 대한 청년계급들의 분노와 조롱의 문화가 있었다. 이름하여 ‘펑크문화’이다. 펑크족들은 자신들에게 실업과 절망만을 안겨준 국가를 향해 무정부주의를 외쳤다. 펑크족은 부모세대들을 저주하고자 부모들이 가장 싫어하는 나치의 십자상을 패용하고 다녔다. 이들의 인종차별적 행동은 정치적 신념이 아니라 오로지 부모세대들이 자신들을 미워해주길 바라서였다. 펑크의 저항 스타일은 동시대 사회에서 버림받은 청년들로부터 큰 지지를 얻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지배 이데올로기로 흡수되고, 상품 형식으로 변질되었다. 국가는 이들의 분노를 오히려 굳건한 국가 지배체제를 세우기 위한 교훈으로 삼았고, 패션 기업들은 펑크의 저항 형식들을 고가의 상품으로 전환시켜 버렸다.

흥미로운 것은 지금 헬조선의 현상도 그런 모습으로 이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헬조선닷컴의 사이트를 들어가 보면 삼성생명, 한화건설, 유학닷컴, 잡코리아 광고가 기사와 함께 연동되어 있다. 헬조선이 비난하는 대기업, 유학지상주의, V
담론과 현상으로서 ‘헬조선’이 아닌, 정말로 지옥 같은 ‘헬조선’에 대한 정치적 무의식은 ‘헬조선’의 텍스트 밖으로 나와 폭발해야 하지 않을까?


이동연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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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보건복지부가 내년부터 전업주부의 0~2세 자녀 어린이집 무상보육 이용시간을 대폭 제한하기로 했다. 하루 12시간 운영하는 종일반에서 7시간가량만 맡기는 ‘맞춤반’으로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무상보육 제도를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만큼 제공하는 방식으로 합리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범정부 차원에서 추진 중인 복지 사업 구조조정의 일환이기도 하다. 정부가 정책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합리성을 높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배경에 전업주부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자리하고 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정부의 이번 방침에는 전업주부에 대한 차별적 발상이 녹아 있다. 부지불식간에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여성을 직장에 다니는 여성보다 낮게 평가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린이집 종일반 공공서비스를 일하는 여성 위주로 재편하겠다고 할 리가 없다.

정부의 이 같은 발상은 부당하고, 비생산적인 것이다. 무엇보다 일하는 여성과 전업주부를 편 가르고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 백번 양보해 정책의 타당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주요 시행 대상인 전업주부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방식이라면 성공 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이다. 교육부가 내년 예산안에 종일제와 맞춤제 규모를 80% 대 20%로 아예 못 박아놓은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미리 틀을 만들어놓고 학부모들이 선택하지 않으면 선택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지만 현실에 맞지 않는다. 정부가 맞춤제 어린이집 시범사업을 실시했을 때 90% 이상 학부모가 종일제를 선택한 바 있다. 이런 결과를 무시하고 정부가 20% 맞춤형을 강제할 경우 큰 반발과 혼란이 벌어질 게 뻔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무상보육 공약_경향DB


지금도 상당수 어린이집은 경쟁률이 높아 장기간 대기가 일상화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 제도가 시행되면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해질 게 뻔하다. 종일반에 아이를 맡길 수 있는 학부모의 자격이나 기준이 뚜렷하게 정해진 것도 아니다. 전업주부의 개념도 모호하다. 수많은 전업주부들이 아이를 키우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아이를 돌봐줄 다른 가족이 있는지 여부와 경제력 차이 등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상보육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더구나 상당 기간 전업주부의 자녀들까지도 적용해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예산 낭비니 정책의 합리화니 하면서 이용 제한을 한다면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정부는 이번 정책을 ‘(학부모)맞춤형 보육’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정책 소비자인 국민의 필요가 아니라 공급자인 정부 생각만 반영된 정책을 그렇게 정의할 수 있는지 곱씹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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