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이전에도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가리왕산이 순간의 기쁨을 위한 화장을 걷어내고 벌거벗은 맨몸으로 장마와 폭우를 기다리고 있다. 며칠간의 짧은 흥분의 마취제를 처방받은 것처럼 잠시 잊고 있었던 올림픽의 경제효과 허상이 사라져갈 즈음, 지역주민의 불안과 사회적 갈등이 마취에서 깨듯 서서히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지방정부는 지킬 생각조차 없었으면서 마치 하늘이 두 쪽 나도 지킬 것처럼 복원약속을 하고, 축제가 끝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왕 만든 것이니 계속 사용하자’는 철지난 개발경제논리의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여기에 더해 마치 그 약속이 철저히 지켜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허가를 내준 중앙정부는 지난 10년간 뒷짐을 지고 있다가 새빨간 거짓말이 수면으로 올라오는 지금에 와서야 이 논란을 남 탓으로 돌리며 응급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그들이 진정 가리왕산의 복원을 생각했다면 이미 10년 전부터 수많은 것들을 준비했어야 했다. 훼손하기 이전, 주변을 포함한 자연환경의 정밀조사를 통해 복원에 필요한 수목을 기르기 시작해야 했으며, 토양을 준비해야 했고, 변화된 환경에서 어린 식물의 적응 가능성을 검토했어야만 했다.

알파인 경기장 주변, 지난달 상대적으로 적은 비에도 불구하고 재난관리기금으로 응급복구를 진행해야 할 만큼 큰 피해를 입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60조원이 넘는 경제효과와 32조원의 관광수익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이 많은 수익을 내고도 수익의 1%도 되지 않는 가리왕산의 복원비용은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어디로 갔을지 모를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지금부터 벌어질 손해는 또 고스란히 우리의 세금으로 메꿔야만 한다. 그렇게 자본은 권력과 결탁해 이익을 사유화하고 자신들이 메워야 할 손해를 공유화한다.

교육의 힘은 위대하다. 바르건 바르지 않건 이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은 실시간으로 미디어에 의해 전달되며 훌륭한 학습효과로 각인된다. 멀게는 일제강점기의 친일매국자들, 독립운동가들과 그 후손이 만들어낸 엇갈린 삶의 역사, 29만원밖에 없는 사람이 살아온 역사, 가까이에는 갑질 재벌가가 만들어내는 일그러진 풍경들이 우리에게 건네는 살아 있는 학습의 효과는 정말 대단하다. 학자적 양심으로 4대강을 반대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지금까지도 힘든 시간을 보내는 반면, 그 부역자들은 정부의 막대한 연구지원을 기반으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현실에서 어느 누가 공익과 정의를 위한 목소리를 낼 것인가? 교과서보다 더 중요한 이 살아 있는 교육에서 우리가, 특히 앞으로 사회를 이끌 청소년들이 배우는 교훈은 무엇일까? 공무원이 되기 위해, 법관이 되기 위해, 시험에서는 교과서에서 외운 정의로운 죽은 답을 찾겠지만, 공무원이건 판사건, 검사건 현실에서 마주한 이 살아 있는 학습결과를 따르는 지금의 사회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논란이 되고 있는 4대강 복원을 포함하여 하천이나 계곡의 복원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다. 강물의 거대한 힘이 스스로 복원의 기반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반면 산림, 그것도 고산식생 복원은 수십 년의 노력으로도 효과를 보기 어려운 까다로운 작업이다. 이미 가장 중요한 10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해 제대로 된 복원을 위해서는 더욱 험난한 과정을 겪어야 하지만 그래도 지금이 가장 빠른 시작이기에 하루빨리 체계적 계획을 수립해야만 한다. 아울러 재해 방지를 위한 조치는 확실히 하되 반드시 임시적이어야만 한다. 재해방지를 위한 시설물이 고착화되는 순간 복원은 영영 사라지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났다. 촛불혁명의 사후약속은 정의로운 삶이 훨씬 고귀하다는 것을 새 역사로 만들어가야 할 시대적 책무일 것이다.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미는’ 후진적 지방자치는 사라져야 할 때이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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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6월 발전업계와 산업계, 환경정책 결정자들 사이의 핫이슈는 단연 ‘2030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이다.

2021~2030년 한국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과 감축 부담 주체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논의의 핵심은 ‘해외배출권’이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 일부를 해외탄소시장에서 산 배출권으로 충당하는 데 드는 비용이 연간 1조~2조원. 이 부담을 정부(국민의 세금)와 산업부문, 화력발전 업계 가운데 누가 감당할 것인가에 관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문제를 푸는 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2009년 코펜하겐 기후협상에서 한국이 2020년까지 현재 추세 배출전망치(BAU) 30%를 줄이겠다고 세계에 공언할 때만 해도 없었던 ‘해외배출권’이라는 개념이 굳이 도입된 원인이 무엇인가를 보면 된다.

이야기는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탄소 녹색성장을 기치로 내걸었던 이명박 정부는 한국이 온실가스 감축 비의무 국가였는데도 2020년까지의 배출량을 5억4300만t으로 설정, 국제적 찬사를 받았다. 사건은 이명박 전 대통령 퇴임일이자 박근혜 정부 첫날인 2013년 2월25일 벌어졌다. 이날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는 건설비 규모가 약 20조원에 달하는 신규 석탄화력 7GW, 가스복합 3.2GW가 포함된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6차 전기본)을 발표했다. 이 계획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미칠 영향은 막대했다. 톰슨로이터는 6차 전기본으로 인해 한국 온실가스 배출량이 약 1억t, 다시 말해 20%가량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후 2015년 파리협정 협상이 시작됐다. 신기후체제하에서는 선진국, 개도국 할 것 없이 모든 당사국이 온실가스 감축 의무국이므로 한국도 2030년 감축 목표를 제출해야 했다. 6차 전기본대로라면 기존 목표를 준수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했다. 2015년 6월11일, 한국은 결국 원래 약속에서 약 1억t 늘어난 6억5000만t 내외의 4개 시나리오 중 하나를 채택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바로 다음날,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청와대에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한국이 최대한 야심찬 목표를 제시해달라’는 취지의 주문이었다.

이는 유명한 청와대 서별관회의로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 탄생한 게 바로 ‘해외배출권’으로 1억t을 줄이자는 안이었다. 쉽게 말해 (6차 전기본 때문에) 기존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우니, 외국에서 감축 활동한 분량을 한국의 실적으로 인정받겠다는 생각이었다. 책임자는 떠났고, 여기에 드는 비용만 남았다. 국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30년까지 해외배출권 조달에 9조원 내지 18조원이 필요하다. 한국환경공단의 계산은 그 이상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 돈을 낼 것인가. 산업계와 발전업계는 국민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비용이 발생한 경위를 보면 화력발전사업자, 특히 6차 전기본의 혜택을 입은 주체들이 부담해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이들 사업이 전기본에 반영될 당시에도 한국 온실가스 목표는 분명했다. 사업자들은 향후 사업 제약을 예상할 수 있었지만 쉽게 눈감아 버렸다.

온실가스 의무감축분을 고려하지 않고 신규 석탄발전소를 대거 늘리기로 결정한 산업부에도 책임은 있다. 지금이라도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 산업부는 화력발전, 특히 신설 화력발전이 해외배출권 책임을 부담하도록 체계를 바로잡아야 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정부가 해외배출권 비용을 세금을 통해 손쉽게 국민에게 전가하는 상황이다. 이는 포스코에너지, 삼성물산, SK가스 등 석탄발전소를 운영하는 몇 개의 대기업에 수십조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제공하는 것과 같다. ‘공정한 경제체제’를 지향하는 문재인 정부가 어리석은 판단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김주진 | 변호사·(사)기후솔루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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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스포츠전문 매체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가 월드컵을 앞두고 우리 대표팀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은 들러리”.

아, 화가 난다. 어쩌다 이런 촌평까지 듣게 되었나, 자괴감이 들고 괴롭다. 정작 당신네 팀들은 지역예선 5위로 탈락했잖아, 라고 소리치고 싶다. 아무튼, SI는 러시아 월드컵 32개국 전력을 6개 등급으로 분류했다. 우리 대표팀은 최하위다. 호주, 이란, 파나마,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튀니지와 함께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만약 우리가 저 6등급 팀들과 한 조가 되어 맞붙는다고 해도 16강이 가능할까, 조심스럽다. 개최국 러시아, 아시아의 강호들, 더욱 굳세고 빨라진 호주를 이길 수 있을까.

오스트리아 레오강 캠프에서 들려오는 소식 또한 상큼하지 않다. 사실상 1.5군인 볼리비아를 돌파하지 못했다. 신태용 감독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투톱 김신욱과 황희찬을 ‘트릭’이라고 했다. 트릭?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주인공이 내뱉는 마지막 대사만큼이나 난해하다. 어느 팀을 상대로 한 연막작전인가.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2002 한·일 월드컵 때 마지막 평가전은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프랑스였다. 잉글랜드의 미드필더 솔 캠벨과 경합했던 우리 선수는 ‘콘크리트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솔 캠벨은 전성기 때 신장 189㎝에 무려 100㎏의 거구로 100m를 10초대에 주파했다. 스웨덴이나 독일과 맞싸운다면 그런 정도의 평가전 상대여야 했다.

마지막 평가전은 세네갈인데, 장외 정보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비공개는 어쩔 수 없다 해도, H조에서 일본과 맞붙는 세네갈에 조금 이로울 뿐, 이 평가전을 ‘가상의 멕시코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우리와 일본이 많이 다르듯, 세네갈과 멕시코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곧 대회가 열리는데 무슨 불평의 소리냐고,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응원을 해도 시원찮은 마당에, 라고 생각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당연히 그렇다. 그 점에서는 정말 ‘모두가 한마음’이다. 9회 연속 월드컵 진출은, 전 세계 6개 나라뿐이다. 게다가, 지난번 칼럼에 썼듯이, 공은 둥글다. 신태용 감독도 스웨덴의 평가전을 본 후 그랬다. “공은 둥글다.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고 말이다. 기본적인 태도는 이렇게 모두가 같다.

그럼에도 신태용 감독이, 그리고 이영표 해설위원이 한 말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신 감독은 5월19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이 평상시에도 축구를 좋아하고 프로리그 관중들 꽉 차고 그런 상태에서 대표팀 감독을 욕하고, 훈계하면 난 너무 좋겠다”면서 “그러나 축구장에 오지 않는 사람들이 월드컵 때면 3000만명이 다 감독이 돼서 죽여라 살려라 하는 게 아이러니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덧붙이기를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게 너무 힘들다”고 했다. 이영표 해설위원도 “솔직히 한국 사람들은 축구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한국 사람들은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기는 것을 좋아할 뿐”이라고 말했다.

과연 그러한가. 객관의 지표는 그렇다고 말한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이후 관중은 지속적으로 급감했다. 오르고 내리는 게 아니라, 계속 감소다. 그때까지는 연평균 1만명 안팎이었으나 그 이후 8년 가까이 7000여명 수준이었고 올해 상반기는 5000명 정도다. FC서울이나 수원삼성 같은 ‘리딩 클럽’의 관중 수도 줄었다.

이유는 무엇인가? 정말로 우리 국민이, 축구팬들이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해서 이렇게 되었는가. 쾌활하고 독창적이며 선진적인 마케팅은? 부재했다. 승부조작이나 심판 판정 같은 문제도 있었다. 각 팀들이 창조적인 플레이를 했는가? 아니다. 오히려 ‘이기는 것만 좋아’한 것은 구단과 감독들 아니었을까, 이렇게 자문해보길 바란다. 이른바 ‘졌잘싸’, 즉 졌지만 잘 싸웠다는 자조적인 표현의 이면에는, 이기면 더 좋지만 납득이 가는 패배, 다음 경기를 기대하는 패배, 그런 경기를 해달라는 뜻이다. 과연 각 프로팀들과 신태용의 대표팀이 그리 해왔는가, 의문이다.

그렇지 않다 해도, 그것이 축구의 한 부분이다. 월드컵 때라도 3000만이 감독이 되는 게 자연스럽다. 축구의 특성상, 전문가 수준의 정보와 판단력이 있어야 응원단 자격증을 취득하는 게 아니다. ‘남녀노소’ 모두 응원하고 열광하고 때로는 비판도 하는 게 축구다. 평범 속에 깃든 비범, 단순성에 녹아 있는 복잡성, 열광 안에 숨어 있는 비판, 비판에 담긴 절실한 열망. 그것이 축구다. 그것을 읽어야 한다.

예전에는 월드컵 때문에 지방선거 투표율이 낮아진다고, 축구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반대했다. 정치 무관심은 월드컵 때문이 아니라 정치 그 자체 때문이라고. 이제는 반대 현상이다. 지방선거와 북·미 정상회담 때문에 월드컵 관심이 줄지 모른다고 한다. 틀렸다. 각각은 각각의 내러티브로 움직인다. 월드컵 열기가 저조하다면 그것은 축구하는 사람들이 자초한 결과다. 게다가 난 그런 판단조차 반대한다. 월드컵이 열리면 다들 밤을 샐 것이고 16강을 염원한다. 제발, 어느 한 팀이라도 이기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문제의 원인을 뒤죽박죽 섞어서, 마치 다른 조건들 때문에 곤란하다는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탄생 200주년이 되는 어느 사상가가 말했다. 문제의 원인은 내부에 있으며, 문제는 그 해결의 열쇠까지 안고 태어난다고. 한국 축구 내부의 상황에 의한 문제를 ‘3000만이 감독이 되어 무조건 이기기만 바라는 이상한 현상’이라고 단정하지 않기를 바란다. 잘못 하면 정말 무플의 고립무원으로 추락해 축구 산업 자체가 붕괴할 수도 있는데, 이 무슨 안이한 진단인가. 21세기 인터넷 시대의 최고 명언,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는 말을, 거듭 생각하자. 쓰디쓴 비판에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남은 것은 침묵일 뿐<햄릿>의 마지막 대사).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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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중에 메일을 한 통 받았다. 작년에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열여섯 살 청소년이 보낸 메일이었다. 덧붙여 보낸, A4 다섯 장에 달하는 기고문에는 자신이 학교를 그만둔 이유와 그 과정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성적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학교의 일상이 답답했고, 모르는 것 투성이인 세상이 궁금해 다른 경험들을 해보고 싶었을 뿐인데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 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엄청난 문제아가 되어 있었다고.

예전에 비해서는 좀 덜해진 듯도 하지만, 여전히 이 사회에서 학교가 갖는 권위는 견고하다. 그 권위는 학교가 제 기능을 잘 수행해서라기보다는, 그 외엔 선택지가 별로 없는 독점성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학교의 높고 단단한 지위는 청소년들을 대하는 일반적인 태도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처음 만난 십대에게 “어느 학교 다니니?” “몇 학년이니?”부터 묻는 것은 흔한 일이다. 종종 걸려오는 상담 전화에서 걱정으로 가득 찬 부모들의 첫마디 또한 “아이가 학교를 안 가려고 해요”이다. 본디 아이들이란 ‘학교에 있어 마땅한 존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교를 그만두는 건 이 사회에서 도태 혹은 낙오되는 일이라는 부정적 시각이나, 당장 학교를 나오더라도 그 다음의 선택지가 별로 없는 빈약한 현실도 두려움 생성에 일조한다.

다양한 이유로 학교를 그만둔 청소년들은 실제로 ‘학생’이라는 자격을 상실함과 동시에 발생하는 모든 리스크를 오롯이 홀로 감당해야 하는 현실에 맞닥뜨린다. 한 홈스쿨러는 배우가 되고 싶어 찾아간 극단에서 3년 넘게 착취와 폭행을 당하다 겨우 그곳을 빠져나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십대 때 찾아갔다가 이미 청년이 된 그 홈스쿨러는 “다 널 위한 거야”라는 연출가의 교묘한 모럴 해러스먼트에 빠져들어 그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힘들어하고 있다. 아이의 자유로운 배움을 존중해주고 싶어서 선택한 길인데 일이 이렇게 되도록 몰랐다고, 부모의 자책도 이루 말할 수 없다.

학교 바깥에서의 리스크가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더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센터 개설 등 제도적 지원은 늘고 있는 추세지만, 학교 밖을 선택한 이들에게 절실한 것은 복지 차원의 교육 프로그램 제공이 아니라 그 낯설고 불안한 길을 함께 의논하고 의지하며 걸어갈 ‘사람들’이다. 앞서 메일을 보낸 청소년은 학교를 그만두기까지 여러 단계의 상담을 거쳐야 했는데, 상담 과정에서 “그러다 인생 망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학교 밖 공간에서 자신의 선택을 격려해주는 사람들을 만나 원하던 배움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그 친구는 악담인지 조언인지 모를 어른들의 말을 보란 듯이 되받아쳤다. “학교를 나왔지만, 내 인생은 망하지 않았어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이라는 말이 유행이지만, 책임지고 있는 그 자신이 포기하기 전에는 쉽사리 망하지 않는 게 인생이다. 학교의 권위가 작용하지 않는 변방에서도 제 인생을 열심히 책임져보려는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도움닫기는 무엇일지 고민해볼 일이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는, 남들과 같지 않더라도 그 선택을 존중받고 지지받는 반복적인 경험이 필요하다. 실패한 인생이란 없다는 사실을 배울 기회가, 비단 그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닐 테다.

<장희숙 |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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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이다. 기다랗게 벽보가 붙었다. 비에 젖지 않도록, 손상이나 훼손 방지를 목적으로, 비닐에 감싸여 있다. 어느새 거리마다 현수막이 즐비하다. 차량 통행이 많은 사거리엔 현수막이 빼곡하다. 건물 한 면에 통째로 붙인 것도 있다. 당 상징 색깔에 후보자들 번호와 이름이 쓰여 있는 점퍼와 모자를 입고 쓴 선거운동원들이 홍보에 열심이다. 번호와 이름이 적힌 어깨띠도 보인다. 인적이 많은 거리에선 후보들 경력이 빼곡히 적힌 명함을 나눠주느라 분주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선 집으로 공보물을 보낸다. 화려한 색상의 고급용지로, 웬만한 노트보다 두껍다. 작은 트럭을 개조한 유세차량이 길거리 여기저기에 세워진 채, 또는 거리를 오가며, 후보 알리기에 여념이 없다. 자동차나 휴대용 확성기에선 소음 수준의 로고송이나 유세연설이 흘러나온다. 일상적인 선거철의 익숙한 풍경이다.

슬슬 의문이 든다. 도대체 선거기간 동안 전국에 붙인 벽보는 얼마나 될까? 현수막은 몇 개나 될까? 벽보나 현수막은 선거가 끝나면 어떻게 처리될까? 얼마나 많은 명함이 만들어지고 선거 공보물은 또 얼마나 될까? 후보들 번호와 이름, 구호가 적힌 점퍼나 모자, 어깨띠는 어떻게 할까? 트럭인 유세차량에서 사용하는 경유는 얼마나 될까? 이렇게 한 번 선거를 치르기 위해 베어지는 나무는 몇 그루나 되고 발생하는 미세먼지는 얼마나 되며 기후변화를 야기하는 이산화탄소는 또 얼마나 배출될까? 자원순환사회연대에 따르면 선거 뒤 현수막 처리에만 30억원이 든다고 한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환경문제가 심각하다.

후보자들이나 정당 입장에선 어떻게든 후보자 얼굴과 공약을 알려 한 표라도 더 얻고 싶겠지만 플라스틱 쓰레기 대란을 겪은 적이 있고 미세먼지에 시달리며 기후변화 위험이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런 식의 선거문화를 그대로 유지해도 되는 걸까? 후보들은 저마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면서 친환경 공약도 내세우지만 이런 환경에 부담 주는 선거문화가 도리어 국민 삶을 해칠 수 있다. 이번 지방선거 공식 선거기간은 5월31일부터 6월12일까지 13일로, 선거가 끝나면 용도 폐기되어 버려질, 단 13일 쓰고 버릴, 선거용품과 옷들이 넘쳐난다. 대다수 국민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2018년의 선거문화, 20세기와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친환경 선거운동을 하는 후보들 이야기도 간간이 들린다. ‘터치포굿’이란 단체가 제공하는 ‘친환경선거 체크리스트’를 실천하는 후보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 더 많은 후보들이 참여하면 좋겠다. 하지만 몇몇 후보의 자발성에 기대기보다 제도 변화로 선거문화 자체를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일단 선거공보물, 너무 아깝다.

선관위 홈페이지에 이미 ‘우리동네 후보자 찾기’ 기능이 있다. 살고 있는 동네만 넣으면 후보와 공약 모두 알 수 있다. 이렇게 간단하고 손쉬운 사실을 아는 시민이 얼마나 될까? 우선 이 사실을 널리 알리자. 이 기능만 잘 사용한다면 공보물을 일일이 집으로 보낼 필요가 없다. 물론 아직도 인쇄물이 필요한 시민들도 있다. 그러니 인쇄물이 필요 없는 사람들이 선관위에 신청하도록 하자, 우리 집엔 보내지 말라고. 현수막은 가능한 한 수를 더 제한하자. 사용 후엔 지금처럼 뜻있는 후보들만 새사용업체(업사이클링업체)로 보내고 대부분 매립하거나 소각하게 두지 말고 모두 새사용업체로 보내게 하자. 신발주머니로 만들어서 학교로 보내는 건 어떨까? 신발주머니 사용에 선거와 친환경 선거의 의미, 새사용의 필요를 익히는 덤도 누릴 수 있다. 유세차량 운행을 줄이고 소음도 규제기준을 정하자. 차제에 이런 방식도 다시 생각해보자.

누가 로고송 듣고 율동 보고 그 후보, 그 정당에 표를 줄까? 유권자는 정책공약을 바란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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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인 근로기준법 시행이 3주 앞으로 다가왔다. 다음달 1일부터 노동자 300인 이상을 고용하는 기업이 근로기준법을 어기면 사업주가 형사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기업과 노동자들은 근로시간 단축에 관한 정부의 세부 시행지침이 없어 극심한 혼선을 빚고 있다. 기업들은 업종의 특수성과 인력 사정을 고려할 때 특정 업무 종사자들은 초과 근무가 불가피하다고 아우성이다. 일부 기업들은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인력 추가 고용에 따른 인건비 부담이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달 한국경제연구원이 372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 52시간 노동제를 시행할 준비가 완료됐다는 기업은 16.1%에 그쳤다.

노동자들도 혼란스러워하기는 마찬가지다. 업무 중 휴식시간이나 출장, 부서 회식, 거래처와의 술자리 등이 업무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지, 어디까지 노동시간으로 인정받아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기업과 노동자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데도 주무부처로서 뒷짐만 지고 있던 고용노동부는 다음주 ‘근로시간 단축 문답자료집(세부 시행지침)’ 1만5000여부를 사업체에 배포한다고 지난 6일 밝혔다.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게 지난 2월 말이다. 지금쯤이면 전국 단위 설명회를 마치고, 보완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도 4개월 가까이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가 근로기준법 시행을 2주일 앞두고 세부 시행지침을 만들어 배포하겠다는 것은 노동시간 단축 의지마저 의심케 하는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노동시간 단축이 제대로 시행돼야 노동자들의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하고, ‘세계 최장 노동시간 국가’라는 오명도 뗄 수 있다. 노동부는 지금이라도 주 52시간 노동제를 안착시킬 수 있는 치밀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시간 혁명’은 물 건너가고, 극심한 사회적 갈등만을 초래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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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포츠에는 ‘탱킹(tanking)’이라는 표현이 있다. 기름이 없으면 달리지 못하는 자동차처럼, ‘탱킹’은 경기를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 일부러 지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전력보강에 힘을 쏟지 않는다. 성적은 당연히 바닥권이다.

미국프로농구(NBA)에서 시작됐다. 메이저리그(MLB)에서도 유행이다. 몇몇 팀들은 아예 시즌 전 ‘탱킹’ 가능성을 암시한다. “올 시즌, 우리는 성적보다 미래를 고민합니다”라는 말은 ‘탱킹’을 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이유는 간단하다. 순위를 떨어뜨린 뒤 신인드래프트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겠다는 계산이다.

신인드래프트는, 특히 북미프로스포츠에서 전력을 강화하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고교 혹은 대학 졸업(또는 재학) 선수들을 지명한다. 직전 시즌 성적의 역순으로 선수들을 골라나간다. 프로스포츠 산업의 중요한 가치인 ‘전력 균형’을 위한 장치다. 지난해 못한 팀이 더 좋은 선수를 뽑을 수 있다. 탱킹으로 몇 년 참으면 팀의 주축이 될 만한 선수들을 채울 수 있다.

이상적 이론에 그치지 않는다. 2016년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는 몇 년 동안 탱킹 과정을 거쳤고, 108년 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2017년 휴스턴 역시 중계 시청률 0%라는 오랜 ‘고난의 기간’을 거친 끝에 젊은 선수들의 활약을 묶어 창단 후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따냈다.

메이저리그는 지난 5일부터 2019시즌 신인드래프트 행사를 열었다. 수많은 회의를 거쳐 고심 끝에 필요한 선수를 차례로 고른다.

오리건 주립대 4학년 루크 하임리히는 미국 대학 최고의 좌완 투수 중 한 명이다. 지난해 하임리히는 11승1패로 완벽한 투구를 했다. 평균자책점이 겨우 0.76밖에 되지 않았다. 150㎞를 넘는 강속구를 쉽게 던졌다. 올해에도 15승1패, 평균자책점 2.42를 기록했다.

누구나 탐을 낼 만한 성적이지만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은 하임리히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10대 시절, 6살짜리 조카를 성추행한 혐의로 유죄를 받은 사실이 지난해 여름 알려졌다. 지난해 드래프트에서도 지명받지 못했고, 올해 역시 구단들은 하임리히를 외면했다. 하임리히 측은 “당시 재판까지 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유죄를 인정했을 뿐 사실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고 항변했지만 구단들은 “어쨌든 유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애리조나는 2013년 신인드래프트 34라운드 지명 때 코리 한을 지명했다. 한의 지명이 특별했던 것은, 휠체어를 타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은 미국 청소년 대표로 뽑힐 정도로 유망주였지만 애리조나 주립대 1학년 때 개막전에서 2루 슬라이딩을 하다 크게 다쳐 허리 아래를 쓸 수 없게 됐다. 애리조나는 지명 뒤 그를 선수 대신 스카우트 직원으로 채용했다.

5일 열린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때 애틀랜타는 1라운드 지명 발표 자리에 코너스빌 고교 포수 루크 테리를 초대했다. 2살 때 병에 걸려 오른팔을 잃은 테리는 왼손만으로 경기하지만 수준급 포수로 평가받는다. 테리는 환하게 웃으면서 애틀랜타의 1라운드 지명선수로 카터 스튜어트를 호명했다.

승리보다 중요한 것은 가치다. 탱킹을 통한 드래프트에서도 ‘무조건 승리’ 대신 ‘리그의 가치’에 더 큰 비중을 둔다.

2018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 유세가 진행 중이다. 야당의 움직임을 보면 일부러 전력 약화를 노리는 ‘탱킹’이 의심될 정도다. 다만 지금의 ‘탱킹’이 미래의 승리를 위한 것인지는 미지수다. 추구하는 가치의 방향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좀처럼 보여주지 않은 채 “이러다 곧 다 죽는다”는 으름장만 놓는다.

프로스포츠에서 희망 없는 탱킹의 미래는 정해져 있다. 오랜 팬들조차 다 떠난 텅 빈 그라운드다.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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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태국 해변에서 위중한 상태로 구조된 돌고래의 배 안에 비닐봉지 80여장이 들어있었다. 비닐의 무게만 8㎏에 달했다. 배 속을 꽉 채운 비닐봉지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 못한 돌고래는 결국 폐사하고 말았다. 돌고래는 이미 구조 단계에서 비닐봉지 5장을 토해내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뿐이 아니다. 봉지를 뒤집어쓴 황새, 면봉을 꼬리로 감은 해마, 콧구멍에 빨대가 꽂혀 고통받는 바다거북이도 있다. 플라스틱이 전 세계의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이 환경의날인 5일을 ‘플라스틱 없는 하루’로 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미 북태평양 하와이와 캘리포니아주 사이에는 한반도 면적의 7배에 달하는 거대한 쓰레기섬이 생겼다. 당초 예상치의 16배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이다. 통제할 사이도 없이 기하급수로 커졌다는 의미다. 약 1조8000억개의 쓰레기 조각이 섬을 형성했고, 그중 99%가 플라스틱 부유물이다. 플라스틱은 전 세계적으로 1초에 2만개가 생산되고, 1년에 4800억병이 판매되며 이 중 500만~1300만t이 바다에 버려진다. 바다생물만 플라스틱의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영국에서 잡힌 생선 3분의 1에서 플라스틱이 발견됐다. 해산물을 먹는 사람들은 해마다 1만1000여개의 플라스틱 조각을 섭취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는 생선을 먹은 사람의 몸에 플라스틱이 축적되고 있다는 뜻이다. 인류는 지금 아주 잘게 다져진 ‘플라스틱 수프’를 먹고 있는 셈이다.

(출처:경향신문 DB)

뒤늦게나마 세계 각국이 플라스틱 남용을 금지하는 조치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2016년 일회용 플라스틱 금지법을 제정했고, 영국과 스위스 일부, 미국 뉴욕 등 일부, 캐나다 밴쿠버 등이 플라스틱 빨대 등의 사용금지법안을 의결했거나 추진 중이다. 한국 환경부도 지난달 플라스틱 폐기물을 2030년까지 절반으로 줄이는 재활용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안된다. 시민들의 참여가 절실하다. 플라스틱의 편리함에 도취된 한국인은 인간과 생태계를 해치는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는 시간은 단 20초에 불과하지만, 그 빨대가 분해되려면 무려 500년이 걸린다는 사실을 우리는 번번이 잊는다. 지금 이 순간 책상 위를 둘러보라. 일회용 커피잔과 빨대·스틱 등 플라스틱 용품이 쌓여있을 것이다. 장을 볼 때도 장바구니 대신 습관처럼 비닐봉지를 사용한다. ‘플라스틱 없는 하루’는 나 혼자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건강한 생명을 위한 첫날 첫걸음이다. 플라스틱 중독 때문에 다소 불편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걸 실천하는 일이 그리 힘든 과제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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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명이 같이 공부하는 교실의 수업시간이다. 수업이 시작되었지만 철수는 수업교재와 필기구가 없다. 좀 지나 철수는 큰소리로 떠든다. 교사는 철수에게 경청하라며 주의를 준다. 수업이 잠시 끊긴다. 철수는 교실을 돌아다닌다. 교사가 지적하니 펜을 빌린다고 한다. 수업이 다시 끊긴다. 진수는 짝에게 말을 걸고 짝의 필통을 건드린다. 다시 교사가 집중하라고 말한다. 대다수 교과시간에서 비슷하다.

이 교실에서 교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두 학생의 행동을 못 본 척하고 다른 학생들만 가르쳐야 할까. 그럼 방해 행동으로 수업이 되지 않는다. 28명의 학습권과 2명의 학습권과 교사의 교육권 중 무엇을 존중해야 할까. 교사의 제지에도 학생이 수업 방해 행동을 계속해도 교실 밖으로 격리하기는 힘들다. 학생의 수업권 침해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매일 일어나는 교실은 많다. 두 학생의 행동습성은 여러 해에 걸쳐 지속되고 심해진 것이다. 해당 학급의 수업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교사는 다른 학생들에게 미안하다. 두 학생에 대해서도 답답하고 안타깝다. 다수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경청하고 참여하자고 함께 정한 학급 약속을 지키고 공적인 시공간에 대해 존중하기를 원하지만 해당 학생은 미안해하지 않는다. 교과 교사는 이유를 물어보고, 타이르기도 하고 꾸짖기도 한다. 담임교사는 학부모와 상담한다.

수업 방해가 지속적이고 심한 학급에 대해 학년에서 같이 고민하고, 학생선도위원회를 열어 선도절차를 밟는다. 그래도 그때뿐인 경우가 많다.

교사들이 지치는 것은 문제행동을 반복하는 5~10%의 학생들에게 에너지가 소진될 때다. 전체를 보면 소수다. 이 소수의 학생들에게 에너지를 쏟는 것이 공평한 것일까. 학교는 교육목표에 따라 학생에게 적절한 교육적 방법을 적용하는 곳이다. 공평하다는 판단은 교육적으로 효과가 있는 것인가로 해야 한다. 소수 학생이지만 문제행동은 공동체 문화에 시나브로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또한 문제행동을 하는 학생도 자존감 있고 타인을 배려하는 시민으로 성장할 기회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교사들이 보통 이 학생들에게 지도와 상담을 하며 몇 배의 품을 들이지만 학생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문제행동의 원인이 여러 가지이고 10여년간 몸에 밴 습관이 고착되었기 때문이다. 성장과정에서 여러 요인으로 인해 심리적·인지적·도덕적으로 적정한 발달이 이뤄지지 않았거나 존중받는 관계를 맺는 사회적 기술이 없거나 무기력하거나 부정적 습관이 생활화된 경우 등등.

한 명의 보통 교사가 해도 교육이 가능한 학생이 있다. 반면 한 명의 보통 교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학생도 있다. 후자의 경우, 지금 교실에서는 교사 혼자 오롯이 버텨내고 있다. 학생의 어려움의 원인에 따라 다양한 교육적 지원을 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원인에 따라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거나 학습, 심리, 문화, 복지 지원 등 다양한 해결책이 필요하다. 교과수업 지도에 훈육과 돌봄까지 개별 교사에게 오롯이 맡겨져 있다. 모든 학교에 일반교사 외에 상담전문, 복지전문, 진로전문인 교사가 배치되어 있지는 않다.

전문성이 있는 다양한 교직원을 확보한 학교라면 학년부와 관련부서가 학생 성장을 위해 협업하는 시스템으로 움직여야 한다. 무엇보다 학생의 성장과 수업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서 말이다.

<손민아 | 경기 전곡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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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라돈침대 사태가 불거진 후 정부가 서둘러 종합대책을 세우겠다고 발표하며 마무리되는 듯했지만 최근 다른 침구류 제품들에서도 안전기준치를 넘어선 방사능이 측정돼 시민들의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웰빙마케팅’에 편승한 업체들의 무분별한 방사성물질 남용, 방사성물질 가공업체들에 면죄부를 준 생활방사선 규제제도, 정부기관 규제인력의 절대 부족을 꼽을 수 있다.

일본에서 시작된 ‘음이온 마케팅’이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수백배 높은 방사능 농도의 침구제품으로까지 극단화되며 지난 2007년 라돈매트 사태와 이번 라돈침대 사태로 이어졌다. 이들 매트리스에서 안전기준을 초과하는 방사능이 나오는 주원인은 재료인 모나자이트의 토륨성분이다. 물론 우라늄도 섞여있지만 그 10배가 넘는 토륨성분이 결정적인 원인이다. 토륨은 내열 특성으로 지난 1980년대까지 북미·유럽에서 항공기엔진 합금, 가스랜턴 심지 등 각종 공산품에 사용되었으나, 방사능오염 우려가 확산되면서 1990년대에 대부분 비방사성 원료로 대체되었다. 미국에선 토륨폐기물 관리처분 규제도 강화되면서 광산업자들은 지난 1994년까지 토륨을 함유한 모든 모나자이트광산을 폐쇄했다. 그러나 인도 등 안전규제가 취약한 개도국에서는 고가의 희토류 추출을 목적으로 여전히 토륨 함유 모나자이트를 채굴하고 있다. 수입업자들을 통해 국내에 유통된 모나자이트는 이들 개도국에서 희토류를 추출한 뒤 남은 모나자이트 부산물(분말)이나, 애초 희토류가 적고 토륨성분만 많은 모나자이트(모래)인 것으로 보인다.

생활주변 방사선 안전관리법(이하 생활방사선법) 역시 큰 문제다. 지난 2012년 이 법안을 수립한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상당 부분 미국 방사성물질 관련 면허규정을 참고한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 규정들과 달리 가공업자에 대한 규정을 제외시키면서 문제의 침대제조업체들에 면죄부를 줬다. 물론 생활방사선법을 보완하는 일은 당장 가능하겠지만, 향후 정부대책은 걱정할 만하다.

정작 방사성물질의 가공, 유통과정을 감시할 수 있는 규제인력은 한숨 나올 만큼 빈약하기 때문이다. 원안위의 경우 생활방사선과 방사성원료 및 가공제품 담당 1명, 산하 원자력안전기술원의 생활방사선 측정 담당 2명, 환경부는 산하 국립환경과학원 라돈담당 1명이 사실상 전부이다. 국무조정실이 관계부처 고위공무원들을 대거 동원해 연 기자회견이 민심 수습에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향후 정부대책을 이행할 인력, 장비, 예산을 갖추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과거 경험처럼 여론이 잠잠해지면 중단될 공산도 크다.

이 때문에 허술한 국내 규제체계가 보완될 때까지 당분간이라도 방사성물질의 수입통관 과정에서 규제를 대폭 강화해 원천부터 차단할 필요가 있다. 특히 방사성물질 안전규제가 취약한 국가들에서 수입되는 모나자이트 등 특정 천연광물들에 대해서는 수입금지를 포함한 규제강화가 시급해 보인다. 토륨처럼 세계시장에서 이미 다른 원료로 대체된 방사성물질들은 연구용이나 특수 산업용을 제외하고 제조업과 민생에 백해무익하다.

<석광훈 | 녹색연합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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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답신

오해하지는 말고 끝까지 들어주셨으면 해요.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쪽이 보내온 카톡을 보고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그래도 마냥 모른 척할 수만 없어서 이렇게 용기를 내 답문을 보내는 거예요. 솔직하게 이야기할게요.

사실 저는 오늘 소개팅을 나갈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어요. 제 처지에 지금 소개팅이라는 것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 거죠. 미향이가 지난주부터 계속 자기 얼굴을 봐서 한 번만 나가달라고 부탁 문자를 보내왔는데, 그때마다 거절했어요. 미향이 얘가 날 앞으로 얼마나 보겠다고 이러는 걸까? 그런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아까 낮에 제가 교육행정직 공무원 시험 준비하고 있다고 했잖아요? 사실 그건 작년 여름까지만 맞는 말이었어요. 미향이도 거기까지만 알고 있었던 거죠. 저는 작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시험 문제집 한 번 펼쳐보지 않은 상태예요. 뭐, 포기 상태인 거죠. 그쪽도 공무원 준비한다니까 잘 아실 테죠. 시험 한두 번 보고 나면 스스로 답이 나오잖아요? 이건 마음잡고 몇 년만 노력하면 되겠다, 운만 좋으면 다음 시험에 붙을 수도 있겠다, 괜한 자신감이나 아쉬움 같은 것이 생기고…. 한데, 전 시험을 볼 때마다 더 주눅이 들더라고요. 내가 안되는 길을 억지로, 억지로, 가고 있구나, 불가능한 일들을 애써 모른 척하고 있구나…. 그런 마음을 꾹꾹 숨긴 채 삼 년을 더 붙잡고 있었는데…. 작년 여름엔 그냥 스르르, 언제 손에서 빠진지 알 수 없는 반지처럼, 어느 순간 놓고 말았어요. 그래 봤자, 저는 학원에서 공부한 것도 아니고, 혼자 자취방에서 인강으로만 준비한 거라서, 삶이 그리 달라지는 것도 없더라고요. 낮에는 변함없이 커피전문점에서 알바를 했고, 밤에도 계속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어요. 인강만 안 들었을 뿐, 계속 컴퓨터로 시시한 연예인 소식이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앉아 있었죠. 그 생활을 일 년 가까이 한 거예요. 잠드는 시간도 예전 인강을 듣고 컴퓨터를 끄는 그 시간과 똑같이….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변했는지조차 알지 못한 상태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지 않으면 자꾸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렇게 지낸 거죠. 그러니, 제가 무슨 소개팅에 나갈 마음 같은 게 있었겠어요? 그건 그저 연예인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건네는 시답지 않은 농담 같은 말이었을 뿐이죠.

한데, 사흘 전에 문득 생각이 변했어요. 이건 좀 부끄러운 이야기이기도 한데…. 이왕 이렇게 된 거 다 말할게요. 그날 밤도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무슨 음식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는데… 계속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한두 시간 전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한데도 제가 의자에서 일어나질 못하더라고요. 제가 사는 곳은 원룸이어서 화장실까지는 불과 몇 걸음 되지도 않는데… 머리로는 분명 화장실을 가고, 손을 씻고, 다시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사실 계속 가지 않은 채 요의를 참고 있었던 거죠. 그러다가 결국 속옷에 찔끔 지리기까지 했어요…. 그때야 문득 두려운 마음 같은 것이 들더라고요. 내가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러다가 충동적으로 미향이한테 문자를 보내 소개팅에 나가겠다고 한 거예요. 무언가라도 당장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저도 소개팅은 처음이고, 물론 그쪽도 처음이라고 하셨지만…. 그래도 만나자마자 짜장면을 먹으러 간 건 너무 하셨어요. 저는 그래도 가볍게 차를 한잔 마시고, 점심시간이었으니까 그런 다음에 파스타 같은 걸 먹으러 가겠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게 제가 들었던 소개팅의 기본 코스였거든요. 한데, 그쪽에서 근처에 기가 막힌 짜장면집이 있다고, 그쪽으로 가자고 했을 때부터, 조금 기분이 상했던 게 사실이에요. 거기다가 우리 그 집 앞에서 대기를 삼십 분이나 했잖아요? 소개팅을 나왔는데, 짜장면집 앞에서, 오늘 처음 만난 남자와 나란히 서서 삼십 분이나 기다린다는 게, 그게 저한테는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때부터 그쪽이 더 싫어진 것도 맞고요. 그러다 보니까 짜장면집에 들어가서도 그쪽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겠더라고요. 입맛도 없고, 그쪽이 후루룩 후루룩 소리 내서 먹는 모습도 싫고…. 어쩐지 그 모든 게 제 운명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우울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짜장면을 먹다가 말고 일부러 화장실도 다녀온 건데… 돌아오다 보니까 그쪽이… 그쪽이 제 짜장면을 조금 덜어서 먹고 있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안 본 척했지만 제가 그걸 봤어요…. 그걸 보니까… 그냥 모든 게 다 서러워지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커피라도 한잔하자는 그쪽의 말을 거절한 거예요.

솔직하게 말하는 제 마음을 이해해주세요. 그쪽도 모솔이고, 처음이라서 그랬겠죠. 그쪽도 오랫동안 시험을 준비하다 보니까 누군가를 만나고 대하는 게 어색해서 그랬겠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우린 다 그 정도로 살고 있고, 버티고 있는 거겠죠. 미안해요. 내 마음은 지금 딱 그 정도인 거 같아요. 그쪽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겨우 그 정도가 지금의 내가 누굴 이해할 수 있는 최대치인 거 같아요. 이 정도라도 된 것이, 그래서 이렇게 답문을 보내는 것이, 저로선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잘 지내시고, 공부도 열심히 하시길 바랄게요.

 

2. 재답신

죄송합니다. 제가 소개팅이 처음이라서…. 저도 친구 대신 나간 자리였거든요. 공무원 시험은 원래 소개팅 나가기로 한 친구가 준비하는 거고, 저는 그냥 알바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 오토바이 사고가 나서… 지금은 일을 쉬고 있는데… 그래서 나갔는데… 죄송합니다. 짜장면은… 그쪽이 안 드셔서 불까 봐 그만… 죄송합니다. 저도 그쪽이 힘내시길 바랄게요.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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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몇 년간 미세먼지로 인한 고통을 경험하면서 환경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우리의 일상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실감했다. 나는 미세먼지의 해결이 곧 기후변화 문제의 해결이며 기후변화를 막으려는 노력이 미세먼지 문제 해결이라는 선물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우리에게 수많은 불편함과 건강 피해, 경제적 손실을 야기하는 미세먼지는 중국 등 해외로부터 유입되는 것도 있지만, 국내 발전소 및 운송수단 등에 쓰이는 화석연료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 또한 주요 원인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아직도 석탄발전의 과감한 축소와 같은 정책을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 중에는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부담도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전기요금 인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달 평균 7일 미세먼지 경보가 발령된다. 사람들이 미세먼지 경보가 발령된 날에 개당 2000~3000원짜리 일회용 미세먼지 마스크를 1개 구입한다고 했을 때, 월평균 1만4000~2만1000원을 지출하게 된다. 4인 가구를 기준으로 온 가족이 미세먼지 마스크를 구입한다고 하면 가구당 5만~8만원대를 쓰는 것이다. 여기에 실내 공기청정기 구입 비용까지 더한다면 공기청정기 사용 연한을 10년으로 가정했을 때 가구당 매달 적게는 1만원 이상을 추가적으로 지출하고 있는 것이 된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가구당 월평균 전기요금은 6만5000원이다. 미세먼지 마스크 구입 비용과 공기청정기 값을 합하면 가구당 전기요금에 버금가는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차라리 석탄발전을 줄이고 천연가스와 재생가능에너지 사용을 대폭 늘려 전기요금이 10~20% 오르더라도 마스크와 공기청정기를 구입하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으로도 유리하다. 우리는 미세먼지와 기후변화 대책으로 예상되는 전기요금 인상액보다 훨씬 큰 비용을 이미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또한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전기자동차와 같은 친환경자동차 기술의 개발과 보급 확산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에서 수송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을 기준으로 발전부문(37%) 다음으로 많은 13%다.

따라서 자가용 차량 운행을 억제하고 대중교통 이용을 활성화하고 전기자동차와 같은 친환경자동차 보급을 확대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미세먼지로 인한 피해 또한 줄일 수 있다.

세계에너지기구는 지구 온도 상승을 2도 이내로 억제하는 전 세계적인 노력이 가시화되는 경우, 2040년 기준으로 전 세계 자동차 20억대 중 9억대가 전기자동차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선도해 가지 못하면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과 그에 연관된 산업은 쇠락할 수밖에 없다. 즉 화석연료 퇴출을 통해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정책이 곧 우리나라 경제를 지속적인 성장궤도에 있게 하는 대안인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과 미세먼지 저감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과 같은 문제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각 이슈에 대한 관심도와 정치적 쟁점화의 정도는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기후변화 억제를 위한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는 그리 높지 못하다. 이는 미세먼지가 현실의 문제로 내가 경험하는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반면, 기후변화의 문제는 미래의 문제로 나에게는 그리 큰 불편함을 초래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미세먼지 문제와 기후변화 문제를 분리하여 생각해 온 우리는 그동안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의사표현과 행동을 해왔던 것이다.

지난 5월20일 광화문에서 그린피스, 세계자연기금, 지구의벗 등 전 세계적으로 적극 환경운동을 하고 있는 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시민과 함께 2018 기후행진 행사를 했다. 지구와 우리를 지키기 위하여 지구의 온도 상승폭을 1.5도 이내로 억제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우리나라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촉구했다. 우리 시민은 이제 적극적인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감축 정책이 진정으로 나, 우리 가족 그리고 우리나라를 위한 것임을 마음속에 새기면서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

<유승직 숙명여대 기후환경융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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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가 수소전기차 ‘과잉광고’를 연일 신문지면에 쏟아내고 있다. 미세먼지를 99.9% 걸러내는 공기청정기이자 발전기로서 “우리 아이들의 맑은 미래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것이 광고의 핵심 내용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서는 이런 광고에 설득당했는지 한 대에 7000만원 가까운 구입비용 중 4000만원가량을 지원한다고 한다. 3000만원에 새 차 한 대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인데, 구입 신청자가 넘쳐나서 이미 지원금이 소진되었다는 말이 들린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가 만든 물건을 광고하는 것은 조금 ‘과장’이 들어가 있다고 해도 크게 탓할 것이 못된다. 하지만 미세먼지를 ‘완벽’에 가깝게 제거하는지, 정말 “우리 아이들의 맑은 미래를 위해서” 필요한지 검증해보지도 않고 수천만원을 국민 세금으로 내주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자동차는 물만 배출한다고 해도 도로를 달리는 것만으로도 상당량의 미세먼지를 만들어낸다. 달리는 동안 도로면에 가라앉아 있던 먼지를 휘저어 날려서 미세먼지의 농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타이어와 도로의 마찰을 통해서도 많은 양의 미세먼지를 내놓는다. 작년 독일 남서부에서 수행된 미세먼지 측정값 분석에 따르면 공기 1㎥에 들어 있는 미세먼지 중 1.9㎍이 자동차 매연에서 나온 것이었고, 그것의 여섯 배에 달하는 11.9㎍은 자동차의 주행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었다. 모든 자동차를 미세먼지 99.9% 제거능력이 있는 수소전기차나 매연이 없는 전기차로 바꾸어도 도로에서 달리는 자동차의 숫자가 크게 감소하지 않는 한 미세먼지 농도가 줄어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수소전기차의 ‘과잉광고’에서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 연료가 어디에서 오는 것이냐이다. 수소전기차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되는 것이 수소충전소가 적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는 엉뚱하게, 그러니 중앙정부와 지자체에서 수소충전소를 많이 보급해야 한다는 쪽으로 흘러간다. 충전소 한 개 건설하는 데 수십억원이 들어가는데, 거기에도 세금을 쏟아부으라는 말이다. 연료로 사용되는 수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는 거의 논의되지 않는다. 수소는 정유공장의 부산물로 얻어지기도 하지만 원리적으로는 천연가스나 물을 분해해서 얻는다. 이때 모두 에너지가 투입되고, 천연가스의 경우 이산화탄소가 생성된다. 가격은 천연가스보다 높고, 전기분해를 이용할 경우 전기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이 전기가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생산되는 것이면 미세먼지도 많이 발생한다.

수소전기차는 전 세계 자동차회사에서 20여년 전인 1990년대부터 개발하던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이미 13년 전에 수소전기차를 선보였고, 대통령은 그걸 타고 청와대를 한 바퀴 돌았다. 차에서 내린 후 그는 “명실공히 수소전지 시대로 갑니다. 제 임기 동안 적극적으로 밀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고, 엄청난 연구개발비가 수소 연구에 투입되었다. 그런데 수소전기차는 그 후 십수년간  잠잠하다가 이제야 시판이 시작되었다. 그사이 기존 자동차회사에서 거들떠보지 않던 전기차는 승승장구하여 수백만대가 보급되었다.

수소전기차가 “우리 아이들의 맑은 미래”를 위해 전망이 밝다면 내가 낸 세금이 지원금으로 들어가도 괜찮다. 그러나 순수 전기차와 비교할 때 수소전기차는 전망이 좋지 않다. 경제성, 연료조달, 미세먼지 어떤 면을 따져봐도 전망이 밝아 보이지 않는다. 지난 30년간 수소전기차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은 벤츠에서 수소전기차는 ‘계륵’ 정도로 취급되고 있다. 그렇다고 투입한 돈이 있으니 없애지도 못한다. 수소전기차에 매달리다보니 그동안 획기적인 전기차도 개발하지 못했다. 현대자동차는 벤츠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수소전기차에 매달린다. 결정은 자유지만, 거기에 내가 낸 세금이 쓰이는 것은 반대한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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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기 전 영국에서 스포츠는 ‘여가놀이’를 뜻하는 말이었다. 저명한 문명사가 노베르트 엘리아스는 역작 <스포츠와 문명화>에서 현대 스포츠의 기원을 18~19세기 초 영국의 여우사냥에서 찾는다.

사냥꾼은 총이나 칼은 물론 몽둥이조차 쓰지 못하고 오로지 사냥개만으로 여우를 추격한다. 사냥개와 여우, 사냥개들 사이의 경쟁을 지켜보면서 사냥꾼은 짜릿한 긴장감과 흥분을 즐겼다. 이는 상대방의 팔을 뽑아버리거나 심한 경우 목을 졸라 죽이기까지 했던 고대 격투기와 질적으로 달랐다. 현대 스포츠는 폭력이 통제된 ‘놀이’라는 것이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코치로부터 발과 주먹으로 수십 차례의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그 뉴스를 보면서 한국에서 스포츠의 의미는 무엇일까 되물어본다.

운동선수에 대한 폭력은 한국 스포츠계의 고질적 병폐다. 일상화·관행화되어 있다. 통계도 이를 입증한다. 2016년 서울대 스포츠과학연구소 연구결과에 따르면 전국 운동선수의 38% 정도가 각종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손발이나 몽둥이로 맞기도 하고 욕설과 협박, 괴롭힘을 당했으며 원산폭격·손깍지 등의 가혹행위를 경험했다.

워낙 해묵은 문제다 보니 피해자가 유명선수거나, 엽기적 수준의 폭력이 아니고서는 보도되기도 어렵다.

엽기성이 큰 사건이 반복되다보면 충격은 덜하고 면역력은 커지는 법이다. 폭력에 대한 공분은 무관심과 무기력으로 변해 쉽게 잊혀지고 만다. 거론조차 ‘무얼 새삼스럽게’라는 느낌이 든다. 심 선수에 대한 누리꾼의 분노도 롤러코스터 같았던 북·미 회담과 남북정상회담의 역전 드라마에 묻힌 듯 지나가고 있다.

한국에서 국가 스포츠는 메달을 향한 무한질주다. 운동선수는 올림픽 메달을 따서 국위를 선양해야 살아남고 각종 대회의 메달을 거머쥐어야 대학 진학이 가능하다. 승리지상주의는 과열경쟁을 낳고 때려서라도 좋은 성적을 거두면 운동선수에게 공부를 안 시켜도, 폭력과 같은 인권유린이 자행돼도 쉽게 용서된다. 성적은 운동선수에게만 중요한 게 아니다. 지도자들의 일자리는 불안하고 대부분 성과급제의 비정규직이어서 경기 성적에 목숨을 걸게 된다.

시스템과 제도가 지도자의 폭력을 용인하고 부추기는 근원적 원인이 되고 있다. 심 선수의 경우도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기대만큼 기량을 보이지 못하자 코치가 폭력을 휘둘렀다고 한다.

폭력이 선수의 기량과 성적에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희박하다. 그럼에도 지도자는 조급한 마음을 폭력으로 해소하며, 경기결과가 나쁘면 훈련장에는 폭언과 폭력이 난무한다. 아예 나중에는 훈육을 핑계로 폭력이 일상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모든 적폐의 밑바닥에는 스포츠가 국위선양과 애국심 고취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도록 하는 국가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스포츠는 정권이 활용하기 좋은 먹잇감이다. 국가는 올림픽과 같은 화려한 메가 스포츠 이벤트에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하고 체육계는 메달과 성적으로 정권에 보답한다.

이 과정에서 인권유린에 대한 묵인뿐 아니라 승부조작과 입시부정 같은 비리도 끼어든다. 빙상연맹과 같은 각종 체육단체의 사유화와 권력을 거머쥔 특정 지도자들의 횡포 또한 공공연하게 자행된다. 그럼에도 결과만 좋으면 부정한 과정은 은폐되거나 슬쩍 넘어간다.

이 같은 적폐의 메커니즘에 대한 분석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체육계는 물론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들도 웬만큼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대대적인 개혁을 표방해온 이 정부가 들어선 지 1년이 넘도록 체육계 적폐청산은 감감무소식이다.

지난 3월 문체부가 발표한 ‘2030 스포츠비전’은 개혁 의지는커녕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 정부도 기존 체육정책의 기조를 유지하며 체육계의 충성을 살짝 즐기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체육계 적폐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켜켜이 쌓여 있다. 그렇다고 대한체육회 등 체육계가 스스로 자정하기란 기대난망이다. 그동안 폭력·성폭력 사건뿐 아니라 각종 제도적 개혁의 시대적 요구에 시늉만 내온 대한체육회의 모습은 한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었다.

운동선수에 대한 폭력은 한두 명의 코치를 엄벌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스포츠 적폐청산이라는 과제를 더 이상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운동선수를 때려서 훈련시키고 성적을 올리고 메달 따게 하는 것을 방치해 놓기에는 너무 미개하고 후진적이며 부끄러운 모습이지 않은가.

<문경란 |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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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채택된 파리기후변화협정이 2016년 11월에 발효됐다. 뒤이어 2021년부터 파리협정에 따른 ‘신기후체제’가 시작될 예정이다. 우리나라도 기후변화의 영향을 과학적으로 예측하고자, 국가기후변화적응대책을 수립해 이행하고 있다.

나라마다 글로벌 온실가스 감축계획에 따라 전력 산업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도 현재 석탄, LNG, 원자력 등 화력발전소를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 전환을 빠르게 도모 중이다.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화석연료의 고갈에 대처하려면 태양광,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 또는 친환경연료 활용, 대규모 산림 조성 등 다양한 방안이 필요하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2016년 국내 신재생에너지 합계는 1417만TOE(Ton of Oil Equivalent·석유환산톤)로 폐기물에 의한 에너지 생산량이 61.7%를 차지하며, 태양광은 전체의 7.7% 정도다.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은 총 40.6TW(테라와트·1TW는 1조와트)로 우리나라 총발전량의 7.2%를 차지하며, 이 중 폐기물은 22.8TW로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의 56%, 태양광은 5.1TW로 13%를 차지하고 있다. 독일, 중국, 미국, 일본은 이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 중이다. 대표적인 예가 태양광을 직접 전기로 변환시키는 태양광발전시설 설치다. 물론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기술개발과 시설설치에 막대한 재원을 투자하는 것 또한 포함된다. 그러나 태양광발전소를 활용해 전기를 생산하려면 넓은 부지(㎾당 12.7㎡)가 필요하다.

산림청이 공개한 자료를 보자. 토지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허가기준도 비교적 완화된 산지 태양광발전소 허가면적을 살펴보면 2010년 30㏊에서 2017년 9월 681㏊로, 7년 만에 22배로 급증했다고 한다. 과연 이에 따른 부작용은 없을까.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하려면 건설부지에서 자라고 있는 수십년 된 나무를 벌채해야 한다. 당연히 자연경관 훼손, 산지파괴로 인한 산사태와 토사유출, 하류지역 침수 등과 같은 2차적인 피해도 우려된다. 따라서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할 부지를 선정하려면 야생동식물의 서식지 파괴나 이동통로 차단, 반사광 등 환경피해를 줄일 수 있는 저감 방안 또는 대안을 먼저 검토해야만 한다. 또한 태양광발전소 설치로 지역의 무분별한 환경훼손을 예방하기 위해 우량농지나 우수 산림지역, 야생생태지역, 환경적으로 민감한 지역, 문화재 보존지역 등은 가능한 한 피하도록 하고, 저수지나 호수에 설치할 경우 환경영향을 다각도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쓸모없는 땅, 매립지, 주택 지붕, 건물 벽면, 옥상, 주차장, 도로변, 활주로 주변 등은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할 수 있으므로 유지관리, 설치 적정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태양광발전은 초기 투자비용이 높고, 기술효율성이 낮다. 더군다나 전기 생산단가도 높은 편이라 태양광발전사업을 중도에 포기하거나 부도가 나면 시설에 대한 안전조치 및 사후관리가 필요하다. 또한 발전소 설치 과정에서 상품가치가 높은 나무만 굴취하거나 고사한 나무를 방치해 산림을 훼손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태양광발전사업을 추진하기 전에 일사량과 일조시간, 입지 타당성, 편익비용 등을 충분히 검토한 뒤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화석연료 고갈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태양광, 풍력을 이용한 신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의 설치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환경 문제를 최소화하는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아울러 설치·운영 중인 태양광발전시설에서 태양전지 파손, 변색 등으로 발생한 태양광폐패널을 파손되지 않게 회수하고, 알루미늄, 유리, 웨이퍼 등 재활용 가능 물질을 적정하게 재활용하거나 재사용해야만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다.

<김우일 | 국립환경과학원 환경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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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 ‘4·27 판문점선언’의 마지막 조항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복음입니다. 하지만 완전한 ‘핵 없는 한반도’는 북한의 핵무기 폐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완전한 비핵화’는 남한의 핵발전소도 포함해야 합니다. 핵분열로 에너지를 얻는다는 점에서 핵발전과 핵무기는 동일한 기술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재’라 부르는 방사성물질이 생성되는 것도 같습니다. 핵무기처럼 핵발전소도 폭발합니다. 핵무기는 인간의 의도에 따라, 핵발전소는 인간의 의도와 상관없이 폭발합니다. 핵발전소 사고도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재앙임을 체르노빌과 후쿠시마가 보여주었습니다. 비핵은 탈핵을 포함해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탈핵을 선언했지만, 현실은 탈핵 선언에 역행하는 행태들로 가득합니다. 신고리 5·6호기는 공약 후퇴라는 비판 속에서도 건설 재개로 결정되었습니다. 적어도 현재로는, 탈핵은 60여년 이후의 미래가 되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폐쇄적이고 파행적으로 운영되었던 사업재검토위원회의 권고를 따라 고준위핵폐기물 재처리와 고속로 연구·개발 사업을 2020년까지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이미 지난 20년간 6700억원이 투입되었고, 올해 지원액만 406억원입니다. 뚜렷한 성과도 전망도 내놓지 못했고, 외국에서도 성공한 사례가 없습니다. 안전성과 경제성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고준위핵폐기물의 처분 방안을 결정한다면서, 그전에 특정한 처분 기술 연구부터 밀어붙이는 속셈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월성1호기는 2017년 2월 서울행정법원에서 수명연장허가 취소 판결을 받았지만,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항소했습니다. 새 정부가 탈핵을 선언했어도,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월성1호기 폐쇄가 반영되었어도, 항소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핵시설에 필수적인 안전한 운영과 엄격한 감독을 실감할 수 없는 것도 여전합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는 방사선에 오염된 2.4㎏의 금이 사라졌고, 연구용 원자로 해체로 나온 핵폐기물이 고철로 팔려나갔습니다. 며칠 전, 고리 3·4호기 격납건물 안쪽의 철판 두께가 불량한 곳이 4235군데로 밝혀졌습니다. 한빛 1·2·4호기, 한울 1·2·3호기에서도 철판 불량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아랍에미리트연합의 바라카 핵발전소 준공식을 계기로 정부는 원전 수출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사업성을 따지기 전에, 핵발전소를 내 나라에서는 없애고 다른 나라에는 보급하겠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모순입니다. 우리나라에 해로운 것은 다른 나라에도 해롭습니다.

정부는 에너지 전환을 위해 재생에너지 비율을 2030년까지 20%로 확대하려고 합니다. 기술과 경제의 측면에서 보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에너지 전환은 기술과 경제만이 아니라 윤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자본의 논리로 접근하면 재생에너지도 죽음의 에너지로 변합니다. 태양광 사업에는 이미 투기 조짐이 보이고, 무분별한 태양광 발전소 추진으로 산림 생태계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의 개발 이익만 노리는 자본의 논리는 제지되어야 합니다. 윤리적인 에너지 전환은 우리의 삶에 대한 깊은 반성을 요구합니다. 어느새 우리도 소비주의의 삶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광란의 소비 세계는 모든 형태의 생명을 착취하는 세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프란치스코 교종, &lt;찬미받으소서&gt;). 에너지 전환은 ‘나’만 생각하는 삶을 ‘너’도 생각하는 삶으로 전환하는 노력과 함께 진행해야 합니다. 재생에너지는 ‘나’를 절제함으로써 ‘너’를 배려하는 돌봄의 문화와 함께 확대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에너지 전환도 자본의 논리에 지배되고 맙니다. “적은 것이 많은 것이라는 확신”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나와 너, 우리와 자연이 공존하는 에너지 전환이 이루어질 것입니다(&lt;찬미받으소서&gt;).

<조현철 신부 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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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담당 기자로 일하던 1995년 섬뜩한 제목을 단 책이 나왔다. 기획출판모임 현실문화연구가 펴낸 <회사가면 죽는다>였다. 당시엔 ‘제목 장사’를 하려는 출판사들이 적지 않아 의심부터 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제목을 그리 정한 연유가 짐작됐다. 치열한 경쟁사회의 전사(戰士)들인 직장인들의 체험담을 담아낸 책은 다른 제목을 달 여지가 없어 보이기도 했다. 당시 세계화의 열풍 속에 개인에게 강제된 ‘경쟁력 강화’와 적자생존의 논리인 ‘자기 개발’이란 그물망에 걸려 있던 직장인들의 절박한 목소리가 활자로 빼곡하게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들의 직종은 다양했다. 하지만 회사라는 ‘공룡’에 깔려 죽지 않으려는 ‘개미’들이 겪는 애환은 다르지 않았다. 장시간 노동과 고용불안, 성차별 등에 시달렸던 필자들은 참을 수 없는 ‘을의 분노’를 가감없이 토해냈다. 개인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줄 잘 서기’ ‘상사 잘 모시기’ 등과 같은 업무 외적인 요소로 승진이나 발전 가능성을 가늠하는 회사의 어두운 이면도 들춰냈다. 당시 대부분의 기업들이 경영혁신이란 명목으로 앞다퉈 도입했던 ‘리엔지니어링’ ‘조직 슬림화’ 등이 직장인들을 옥죄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곤 한목소리를 냈다. “회사가면 죽는다.”

노동절인 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한국 사회 노동을 새로 쓰자’라는 주제로 민주노총이 주최한 ‘2018 세계노동절대회’에 참가한 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책이 나온 지 20년이 넘었다. 하지만 직장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한민국을 ‘분노사회’ ‘감정노동 사회’ ‘피로사회’ ‘부품사회’로 만든 진원지는 다름 아닌 직장이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고착화된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라는 허황된 논리는 직장 노동자를 기업주의 노예로, 갑질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노동자를 소모품으로 간주하는 기업들의 행태는 20여년 전과 데칼코마니처럼 겹쳐 있다. 그뿐 아니다. 나무에 가까스로 매달려 있는 마른 잎새와도 같은 노동자들을 떨궈내려는 ‘경제적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다.

출범 6개월을 맞은 노동시민단체 ‘직장갑질 119’가 최근 공개한 <갑질 사례집>에는 ‘노동 지옥’이나 다름없는 직장에서 일하는 ‘을들의 절규’가 담겨 있다. 21세기판 <회사가면 죽는다>라고 할 만하다. 사장과 식사할 때 턱받이를 해줘야 하고, 회장 별장에 있는 닭과 개 사료를 주라는 지시를 받아야 하고, 사장 아들 결혼식에 불려나가 안내와 서빙을 해야 하는 곳은 직장이라고 할 수 없다. 갑의 횡포가 만연한 인권침해 현장이다. 사고를 낸 버스기사들의 목에 사고 내용과 피해액을 적은 종이를 걸게 하고, 생리휴가를 신청한 사원에게 ‘생리대를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곳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경영진의 갑질 사례도 시즌제 드라마처럼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온다. 운전기사에게 폭언을 일삼은 제약회사 사장, 출입문을 닫았다고 경비원을 폭행한 피자업체 회장, 운전기사에게 ‘백미러를 접고 운전하라’는 지시를 내린 건설업체 부회장 등의 행태는 별난 개인의 예외적인 일탈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를 무릎 꿇려야 자신의 권위가 선다는 비뚤어진 특권의식에서 비롯된 인격살인 행위다. 그런 대기업 경영진이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노동력을 제공할 뿐이지 인격까지 파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턱이 없다.

‘직장갑질 119’는 “부패하고 불의한 정권을 퇴진시킨 민주주의의 촛불은 회사 앞에선 꺼져 있다”고 했다. 한 치도 틀리지 않는 적확한 진단이다. 그런 측면에서 대한항공 직원들이 조양호 한진그룹 일가의 퇴진을 요구하며 촛불을 든 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직장 내 민주화를 이루기 위한 ‘을들의 반란’이기도 하다. 대한항공 직원들이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주말마다 촛불집회를 여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갑질을 일삼고, 밀수·탈세 등 불법 행위를 저지른 총수 일가의 퇴진만을 위한 것은 아닐 터이다. ‘땅콩회항’ 사건의 피해자 박창진 사무장이 말한 대로 ‘사람이 먼저인 회사’에서 일하기 위해 분노를 용기로 바꿨고, 용기를 실존하는 힘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촛불집회 때면 외친다. “우리는 머슴이나 노예가 아니다” “썩은 곳이 있으면 도려내야 하고, 쓰레기통이 차면 버려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노동절 메시지에서 “노동이 제도 또는 힘 있는 사람들에 의해 홀대받고 모욕받지 않는 세상을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세상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나는 저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는 말처럼 갑의 횡포에 맞선 을의 연대와 저항이 있어야 가능하다. 노동존중 사회에선 ‘회사가면 죽는다’는 노동자들의 절규가 들리지 않는 법이다. 한국의 노동인권 시계는 아직도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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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을 유발하는 라돈의 원인 제공 물질인 모나자이트를 대진침대보다 많이 구입한 업체가 3곳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권칠승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원자력위원회(원안위)에서 입수한 자료를 보면 모나자이트 수입업체 1곳이 2013~2018년 4월까지 66개 업체에 모나자이트 4만657.5㎏을 판매했다. 이 중 1만2000㎏을 구입한 1곳은 대진침대(2960㎏)보다 4배가량 많았다. 4180㎏과 3720㎏을 사들인 2곳도 대진침대의 구입량을 웃돌았다. 연도에 따라 수백~1000㎏씩을 사들인 업체도 18곳에 달했다.

출처:경향신문DB

모나자이트는 혈액순환과 신진대사 촉진에 좋다는 음이온을 뿜어낸다 해서 건강보조제품의 재료로 쓰인 천연광석이다. 공기청정기와 팔찌, 목걸이, 매트, 침대, 베개, 보디크림, 마사지팩, 안대, 생리대, 속옷 등 특허제품만 18만개에 이른다. 하지만 음이온과 건강의 상관관계는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공기 1㎠당 공기분자는 3000경개나 있는데 모나자이트 제품이 배출한다는 음이온은 겨우 수천~수만개로 비율상 미미한 양이다. 그러나 음이온을 선호한 대가는 혹독하다. 모나자이트에 함유된 우라늄과 토륨이 라돈 등 1군 발암물질인 방사성 기체를 내뿜는다. 방출되는 음이온의 수가 많을수록 방사능 농도도 높다는 한국원자력안전재단의 보고서도 충격적이다. 예컨대 단위 면적당 음이온이 3779개로 가장 많이 나왔다는 남성팬티의 토륨농도는 25개 제품 중 3번째로 높았다. 또 토륨농도가 가장 높은 여성용 속옷의 음이온 수가 3번째로 많았다.

음이온 제품이 곧 방사능 제품이었다는 뜻이다. 물론 ‘라돈 침대’ 등 음이온 제품을 사용한 소비자들이 당장 폐암에 걸릴 것처럼 불안감에 휩싸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아무런 통제 없이 입거나, 붙이거나, 마시거나, 바르는 다양한 제품이 음이온으로 포장되어 사람의 입과 코, 피부에 직접 들어가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 대해 원안위는 책임을 느껴야 한다. 모나자이트가 유통되고 제품으로 만들어지고 소비자가 사용하는 동안 원안위는 소극적인 SNS 홍보와 같은 안이한 대처로 일관했다. 지금부터라도 범정부 차원에서 객관적인 조사를 하고, 그에 합당한 장단기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참에 생활 속 방사능에 대한 경각심도 일깨워 법적, 제도적인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 ‘제2의 가습기살균제 참사’라는 이야기가 나와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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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중3 학생부터 적용되는 2022학년도 대입제도는 사실상 국가교육회의가 결정한다. 정확히는 국가교육회의 산하의 대입제도개편특별위원회 산하의 공론화위원회 산하의 시민참여단이 결정한다. 하청에 재하청을 주는 방식에 대한 시시비비는 뒤로 미루자. 주사위는 던져졌다. 지금은 시민참여단이 최선의 결정을 할 수 있도록(또는 최악의 결정만은 피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을 때다.

지금으로선 시민참여단에 제공하는 ‘숙의자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제로 공론화위원회는 지난 16일 “시민참여단이 대입제도에 대해 잘 모를 수 있어 숙의자료를 충분히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공론화위원회는 정말 중요한 숙의자료를 확보했을까.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어떤 자료를 말하는 건가?

첫째, 한국사와 영어에 대한 광범위하고 객관적인 조사자료다. 그동안 이들 과목에서는 학교의 수업·시험과 학생의 공부내용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한국사·영어에서는 이미 수능 절대평가제가 시행됐다. 한국사는 수능필수로 지정될 때부터 절대평가제였다. 영어는 작년부터 시행됐지만 학교의 수업·시험을 기준으로 보면 3년 예고제로 인해 이미 2015년부터 절대평가제가 시행됐다. 한국사·영어 수능 9등급 절대평가제는 수업·시험·공부내용에 어느 정도의 변화를 일으켰는가?

둘째,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에 대한 광범위하고 객관적인 조사자료다. 이들 과목에서는 학교의 수업·시험, 학생의 공부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 현 고1 학생들에게는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고 있다. 이전과 크게 다른 점은 통합사회와 통합과학 두 신설과목을 모든 학생이 배운다는 것이다. 그런데 수능 개편안이 1년 연기되면서 생긴 우연한 결과로 인해 고1 학생들은 입시제도 개편안이 어떻게 결정되든 수능에서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치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사상 처음으로 수능의 영향이 완전히 배제되고 내신의 영향만을 받게 된 주요과목의 수업·시험과 학생의 공부내용에 나타난 변화를 알아볼 수 있게 됐다. 시행기간이 짧은 한계가 있지만 하늘이 준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이 정도의 숙의자료가 제공돼야 시민참여단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다. 수능제도 개혁을 우선해야 하는지, 내신제도 개혁을 우선해야 하는지, 아니면 둘 다를 동시에 해야 하는 것인지, 그 어떤 판단이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목소리 큰 소수가 아니라 침묵하는 다수를 토대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시간이 부족한데 이런 조사가 가능할까?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미 교육청-학교에는 잘 구축된 조사 시스템이 존재한다. 수천·수만 교사의 의견을 1주일이면 알아볼 수 있다. 학교폭력실태조사 시스템 등을 활용하면 수십만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도 한 달 이내에 알아볼 수 있다.

이러한 조사자료는 단순히 시민참여단을 위해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진 대입제도를 둘러싼 사회갈등을 완화하는 데에도 꼭 필요하다. 예컨대 수능에 전 과목 절대평가제를 도입하면 그에 반대한 사람들이, 지금처럼 상대평가제를 유지하면 그에 반대한 사람들이 반발할 것이다. 내신제도에 절대평가제를 도입하거나 도입하지 않거나 해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면 반대 입장의 사람들을 승복시킬 수 있을까. 최선의 조사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이기정 | 서울 미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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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매년 반복되는 미세먼지 공포는 어김없이 온 국민을 분노케 만들었다. 이제부터는 어느 강에선가 발생할 물고기의 떼죽음이나 녹조라떼가 한동안 미디어를 달굴 것이다. 장마를 시작으로 이상기후와 폭염으로 아우성이 들릴 것이고 맘 놓고 에어컨도 못 켠다는 논리로 원전이 홍보될 것이다. 매년 겨울이면 조류인플루엔자(AI) 감염의 가능성만으로 건강하게 살아 있는 닭과 오리가 땅속에 매장되며,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공익증진과 병충해방제를 이유로 숲속의 무수한 나무들이 잘려 방치된다. 쓰레기와 플라스틱 문제도 주기적으로 우리 사회를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다. 이 모든 주기적 상황들에 나는 피해자일 뿐이다. 언론은, 국민은 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누군가에 독설을 날리며, 다른 나라 혹은 다른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겨 보려 하지만 해결방법은 마땅치 않다. 이 문제들은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어 반복되지만 문제 해결의 근본적 방법인 환경인식에 대한 변화노력은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일로 치부된다.

1급발암물질을 내뿜는 디젤엔진, 비록 환경적 문제가 많지만 생계를 위해 트럭을 운전해야만 하는 많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정부는 경유에 세금을 덜 부과한다. 그러나 고급 수입승용차와 레저용 자동차를 보유한 사람들이 과연 대기오염을 감내하면서까지 세금혜택을 주어야만 하는 사회적 약자일까? 디젤게이트, 전 세계를 속인 회사의 재고차량 할인판매를 고대하던 사람들은 과연 사회적 약자일까? OECD국가 중 1인당 전기사용량 증가 정도가 단연 1위인 국가에서 석탄화력발전소가 만들어내는 고위험 미세먼지 문제는 과연 누가 만든 문제일까? 세계 최고의 명품브랜드 소비국민이면서도 내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는 농산물에 관해서는 무조건 저렴해야만 한다는 인식이 만들어낸 결과는 참담하다. 세계에서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제초제와 살충제를 사용하는 농산물과 GMO사료, 항생제로 길러지는 육류가 기반인 우리의 먹거리, 쌀보다 100배나 잔류허용기준치가 높은 글리포세이트 밀을 수입하면서도 안전하다는 비상식적 논리는 과연 남이 만든 문제일까? 하루에도 몇 차례 커피숍에서 1회용 플라스틱컵에 담긴 커피와 플라스틱캡슐커피를 소비하고, 플라스틱 병의 생수를 마시고, 심지어는 수돗물까지 1회용 플라스틱 병에 담아 마시면서도 쓰레기 대란은 남이 만들어낸 일로 간주한다. 1인당 포장용 플라스틱 사용량 세계 2위의 국민들은 과연 쓰레기 대란의 피해자인가?

1980년 오늘, 사회적 약자들의 강렬한 투쟁과 희생으로 민주주의 안착의 거대한 디딤돌을 놓았다. 그리고 지난 1년, 이 짧은 순간 우리나라는 정치와 사회분야에서 가히 기적이라 할 만큼 믿기지 않을 변화를 겪었다. 바닥까지 추락했던 남북의 만남은 현시점에서 지구상 가장 큰 희망의 뉴스거리를 만들어내며 극적인 반전을 시작하였고, 전혀 바뀌지 않을 것 같았던 갑질사회 또한 을의 반란이 여느 때와 다르게 힘을 얻고 있다. 새로운 변화의 시대인 지금 우리는 우리가 당연하게 누릴 수 있을 것 같은 공공재인 환경에 대해서도 변화를 시도할 때이다. 개인의 소소한 편리와 이익을 위한 오염유발 행위는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옴을 인식해야만 한다. 고농도 미세먼지로, 열대야로, 플라스틱과 GMO, 잔류농약이 함유된 음식물로, 악취 풍기는 하천으로 말이다.

이제 환경에 대한 갑질을 멈출 시간이 되었다.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누리고 살아야만 하는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 쾌적한 주변 환경은 전적으로 나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쓰레기 대란을 겪은 후에라야 어렵사리 다시 시작된 쓰레기 감축정책이 예전처럼 흐지부지 사라지지 않고 더 큰 공익정책의 씨앗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광주민주화혁명과 같이 우리나라의 환경에 대한 인식과 정책이 ‘자고 일어나니 달라졌다’라고 경험하는 일도 먼 미래가 아니길 기대한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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