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향수’를 쓴 정지용 시인은 충청북도 옥천군 출생으로 고향의 아름다움을 그리면서 이 시를 썼다고 한다. 지금은 시인의 고향에 ‘향수 100리길’이 조성되어 있고, 자전거로도 돌아볼 수 있다.

그런 금강은 아쉽게도 지난 6년간 마음껏 휘돌아 나가지 못했다. 보(洑) 3개가 문턱이었다. 그동안 보의 물을 가뭄에 요긴하게 쓰기도 했으나 녹조, 생태계 훼손 등에 대한 문제제기도 지속되어 왔다. 이에, 정부는 작년부터 4대강 16개 보의 자연성 회복 방안을 찾고 있다. 물 이용에 문제없는 범위 내에서 실제로 보를 열어 보고, 그 영향을 다각도로 관찰하고 있다. 설익은 대책을 덜컥 내놓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다. 보를 개방하고 그 영향을 과학적으로 평가한 뒤, 각계의 의견을 모으는 합의 과정을 거쳐야만 사회적 수용성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보를 일시적으로 열어볼 때에도 준비를 세심하게 해야 한다. 개방을 하더라도 생활용수를 취수하는 수위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농사짓는 시기와 양수장 가동 시기도 감안해야 한다. 어선·어구 손실도 방지해야 하고, 돛배나 계류장 등 친수시설 이용도 고려해야 한다. 수위를 내릴 때 물고기나 조개류가 고립되면 신속하게 구제해야 한다. 또 지하수도 고려해야 한다. 준설로 인해 지하수위가 올라갔고, 늘어난 지하수는 수막재배 등 인근의 농업에 쓰이고 있다.

이러한 준비를 거쳐 금강은 지금 문턱 없이 마음껏 흐르고 있다. 지난 9월11일 지역농민과 관계기관이 백제보 완전 개방을 위한 ‘업무협력 협약서’를 체결했다. 지하수 부족이 일부 제기되었지만, 지역주민과 관계기관이 합동으로 지하수 펌프 교체, 관정 설치 등의 해결책을 모색했다. 금강이 자연의 강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지역사회의 공감대가 만들어진 덕분이다.

이미 완전 개방된 세종보와 공주보 사례에서 금강이 자연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체류시간은 줄고 유속은 빨라졌다. 클로로필a가 개방 전 예년 같은 기간에 비해 약 40% 줄었다. 멸종위기Ⅱ급인 독수리가 세종보 상류를 찾기도 했다. 세종보는 모래톱이 4배 이상 늘어나기도 했다. 모래톱은 뭇 생명이 살아갈 터전이고, 수질 정화에도 한몫한다.

금강이 막힘없이 흐르는 약 보름간은 천금 같은 시간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금강 수계 전체의 보 개방 영향을 종합적으로 모니터링하고 평가할 수 있다. 수질, 수생태, 육상생태, 퇴적물, 경관, 수리·수문, 지하수, 물 이용, 하천의 각종 구조물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세밀하게 모니터링하여, 종합적으로 평가할 것이다. 보 개방이 전 수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증 데이터를 확보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를 통해 연말에 금강 보 처리방안을 마련하고자 한다.

시골 출신의 60대 이상 연령이라면 어린 시절 여름에 강에서 미역을 감고, 겨울엔 얼음 지치며 놀았던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 강은 우리 일상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지금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방식으로 강을 누릴 수는 없을까? 미래세대에게 지속가능한 공존의 강을 물려주기 위한 진지한 모색과 꾸준한 실천이 절실한 때이다.

<박천규 환경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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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과 면세점의 판매직 노동자들이 근무 중 화장실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면서 5명 중 1명이 방광염에 시달린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김승섭 고려대 교수 연구팀이 백화점·면세점의 화장품·명품점에서 일하는 노동자 280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다. 조사 결과 ‘근무 중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노동자는 59.8%로, 절반을 넘었다. 그 이유로 ‘매장에 인력이 없어서’(62.4%)가 가장 많았다. 심지어 ‘지난 6개월 동안 생리대 교체를 못한 경험이 있다’는 노동자도 39.9%나 됐다. 이렇게 화장실 이용이 어렵다 보니 방광염 진단이나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노동자는 20.6%에 달했다. 일반 노동자들 방광염 유병률(6.5%)의 3배를 넘는다. 화려한 매장에서 값비싼 명품을 다루고 있지만 판매직 노동자들은 이렇게 고통을 겪고 있다.

출처: 경향신문DB

판매 노동자들은 장시간 서서 일하다 보니 하지정맥류 진단이나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는 응답자도 15.3%에 달했다. 일반 노동자의 25배를 넘는다. 이들은 휴게 시간에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조사 대상 중 절반이 넘는 58.1%는 ‘지난 한 달 동안 휴게실 사용을 못했다’고 답했다. 그 이유(복수응답)로 ‘휴게실 의자가 부족해서’(65.7%), ‘휴게실이 좁아서’(47.5%), ‘휴게실이 멀어서’(26.3%) 등이 지적돼 대형매장의 노동자 휴게실이 얼마나 열악한지 보여주고 있다.

무지외반증에 걸린 백화점 화장품 판매 노동자의 발.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제공

정부는 2009년 대형매장에 판매 노동자를 위한 의자와 휴게시설을 마련토록 했고, 2011년에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해당 조항을 넣었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는 매장은 거의 없다. 이번 조사에서도 의자가 없거나 있더라도 원할 때 앉을 수 없다는 답변이 64.9%에 달했다. 그러다보니 정부는 최근 의자와 휴게시설 설치와 운영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정부가 의자 등이 있는지 여부만 확인할 뿐 노동자들이 이를 제대로 이용하는지는 조사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급기야 지난달부터는 일부 대형매장에서 노동자들이 ‘앉을 권리’를 스스로 찾겠다며 일정 시간에 일제히 의자에 앉는 ‘의자 앉기 공동행동’까지 시작했다. 정부는 판매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실질적으로 개선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고객들도 판매 노동자들이 인권을 보장받으며 일할 권리에 대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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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대 설립을 위한 법률안이 국회에 상정되면서 의사협회와 일부 의학계가 반대에 나서고 있다. 공공의대의 경우 없던 의대 정원을 만들어 설립한 것이 아니라 대학 비리와 질 낮은 교육 문제로 폐교된 서남의대의 정원만을 이어받아서 만드는 것이라 의료계의 반대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느 계층, 어느 지역에 살더라도 생명과 건강에 관한 필수보건의료를 평등하게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응급, 외상, 심뇌혈관질환 등으로 인한 예방 가능한 사망에 있어서 지역 간 편차가 너무 크다. 저출산 시대에 아이를 낳는 것이 축복이어야 하는데 많은 지역은 분만할 병원이 없고, 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어린이 재활병원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메르스와 같은 신종 감염병 발생 등 국가 위기 상황을 최일선에서 진두지휘할 훈련된 역학조사관이나 공중보건 전문가는 매우 부족하다. 수도권은 병원도 의사도 넘쳐나는데,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많은 지역은 그렇지 못하다.

대다수 의대 졸업생이 수도권과 대도시에 집중되는 상황에서 지역의 필수보건의료를 책임지고 헌신할 공공보건의료 전문가 양성을 위해 공공의대는 꼭 추진되어야 한다. 학생 선발부터 지역에서 헌신할 인재를 뽑아야 한다. 기존 의과대학에서 제대로 다루지 않는 공공보건의료 교과과정을 공공의대에서 교육해야 한다. 졸업 후 의무복무를 거쳐 지역에서 필수의료를 책임지는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야 한다.

일부 학계에서는 공중보건의사 제도나 공중보건 장학의 제도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실상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기존의 의과대학 교육이 공공보건의료 전문가의 양성에 관한 교육목표와 교육과정이 부실할 뿐 아니라 실제 기존의 의과대학 졸업자를 대상으로 한 정책의 실효성이 매우 미미하다는 증거가 이미 드러난 상태다. 그런데 또다시 그러한 정책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은 반대를 위한 논리에 불과하다. 지역의 필수보건의료를 책임질 수 있는 공공보건의료 전문가를 직접 교육하고 육성하는 정책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문제를 풀어나갈 동력이 생길 수 있다.

의료의 질이 떨어질 거라는 우려와 의대 설치에 막대한 국고가 들어갈 거라는 우려도 있지만, 기우에 불과하다. 국립중앙의료원을 필두로 충분히 교육실습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공공병원이 있다. 특히 국립중앙의료원은 공공의대가 설립되는 시점에 많은 국가 재정을 투입하여 현대화된 병원으로 이전할 계획인데, 이보다 더 좋은 교육실습 공간은 없을 것이다. 공공의대의 비용 대부분도 임상교수 확보에 들어가기 때문에 국립중앙의료원이 교육병원이 될 경우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의료계가 배제되었다는 주장 역시 일방적이다. 이미 공공의대 설립 필요성은 전 정부에서 추진되어왔던 사안이고 수차례 학술 연구와 공개 토론회 등을 통해 여러 의견이 반영되어왔으며, 현 야당 역시 유사 법률안을 국회에 발의한 바 있다. 가장 핵심적인 이해당사자인 전북 지역의 여론도 공공의대 설립에 찬성하고 있다.

공공의대가 지역의 필수보건의료에 헌신할 전문가를 양성하는 명실상부한 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의료계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임준 |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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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에게 학종은 비판의 대상을 넘어 분노의 대상이다. 금수저 전형, 깜깜이 전형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최악의 입시부담을 주는 전형이라 그런 것도 아닌 듯하다. 사람들의 학종에 대한 분노는 다분히 윤리적인 감정이다. 그들은 학종이 초래한 교육윤리의 타락에 분노하는 것이다.

방금 말한 교육윤리의 타락은 시험문제 유출 사건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니다. 시험지를 훔치는 일은 명백한 범죄지만 그것은 극소수의 예외적 현상이다. 사람들이 학종에 분노하는 것은 그보다 더 폭넓게 존재하는 비윤리적 행위들 때문이다. 학원이나 부모가 학생부에 기록될 스펙을 만들어주다시피 하는 일, 학원에서 작성한 것을 그대로 학생부에 기록해 주는 일, 학원에서 써준 자기소개서를 학생이 쓴 것처럼 위장하는 일, 학교가 성적우수자에게 스펙을 몰아주는 일…. 이런 것들 때문이다. 이것들은 결코 일부의 예외적 현상이 아니다. 그리고 보통의 사람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는 일이다. 얼마 전 만난 내 친구는 학종 컨설팅학원(그 친구의 말로는 스펙 학원)을 운영하는 후배로부터 들은 내용을 말해주며 이렇게 탄식했었다. “와, 그거 완전 사기더라.”

2015년 서울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종로학원 주최로 열린 입시설명회를 찾은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강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서성일 기자

그런데 학종으로 인한 교육윤리의 타락이 앞서 말한 것에 국한된다면 학종에 분노하는 사람이 지금처럼 많지는 않을 것이다. 어찌됐든 그것 또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행하는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대다수 사람들이 행하는 더 광범위한 비교육적 행위가 존재하는 걸까. 어느 학부모가 공개적으로 털어놓았던 이런 수준의 일이라면 그렇게 봐야 한다.

“원서 마감은 보름 앞이었다. 방법이 없었다. 우리 부자는 매일 다큐멘터리 한 편씩을 봐야 했다. 그것도 사회성 짙은 문제작 위주였다. 아들이 어려서부터 다큐멘터리를 즐겨 봤고 그를 통해 세상을 보는 안목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는 것처럼 자기소개서를 꾸미기 위해서였다. 15일 동안 본 다큐멘터리를 15년에 걸쳐 본 것처럼 위장해…”

이런 정도의 것이라면 우리 주위의 평범한 학부모, 교사, 사교육 종사자, 그리고 학생들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물론 이것들은 자그마한 일탈행위에 불과하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윤리적 죄책감과 불쾌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일이다. 이로 인해 사람들이 학종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사람들이 분노한다는 것은 우리사회의 윤리의식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지극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자신의 부끄러운 경험을 용감하게 밝힌 학부모는 누구일까?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다. 앞서 인용한 글은 김의겸 대변인이 한겨레신문 기자일 때 학부모로서의 경험을 담아 쓴 칼럼 “난 이렇게 아들의 ‘스펙 조작’에 가담했다”의 일부다.

스펙을 쌓으려고 억지로 한 일을 고결한 동기에서 한 것처럼 꾸미고, 형식적으로 하고선 충실하게 한 것처럼 위장하고, 남의 힘을 빌려 놓고는 혼자 힘으로 한 것처럼 속이는 행위들은 이제 더 이상 이상한 행위가 아니다. 교육(공교육·사교육·가정교육)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낯익은 행위들이다. 학종의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에는 성인군자, 대학자, 슈퍼맨이라 할 만한 훌륭한 학생들로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학생부와 자소서의 세계에서만 그러할 뿐이다.

학종은 위선의 입시다.

<이기정 | 서울 미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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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를 넘어 전 지구가 풀어야 할 핵발전소에 관한 무겁고 영원한 숙제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쓰레기, 고준위핵폐기물 처리방안이다. 핵발전소 가동으로 생긴 방사능 쓰레기 ‘사용후핵연료’는 적어도 10만년 이상, 길면 100만년까지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 한국은 지금의 계획대로라면 24개 핵발전소에서 약 750t의 사용후핵연료 우라늄 다발이 매년 발생할 것이다. 2020년 이후부터 월성 핵발전소를 시작으로 고리, 한빛, 한울 등에 보관된 사용후핵연료는 포화상태에 이르게 된다. 고준위핵폐기장 논의를 더 미룰 수 없는 시점이다.

정부는 1991년 충남 안면도, 1994년 인천 굴업도, 2003년 전북 부안 위도의 핵폐기장 유치를 시도했지만 극심한 반대에 부딪힌다. 특히 부안 핵폐기장 건설이 주민투표 끝에 무산되면서 3000억원의 특별지원금을 걸고 부지를 찾아 나섰다. 고준위핵폐기장은 나중으로 미루고 중저준위폐기장을 따로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2005년 경주로 결정되었지만, 안전성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었다. 경주 중저준위핵폐기장은 곡괭이에도 부서지는 5등급 암반에 하루 5000t의 지하수가 흘러나왔다. 지진의 위험도 있다. 주민 수용성으로만 결정된, 위험하기 짝이 없는 핵폐기장인 것이다. 중저준위핵폐기장도 이러한데, 최소 10만년의 반영구적인 고준위핵폐기장을 구할 수 있을까.

국정감사에서도 핵폐기물은 논란거리다. 비싼 비용, 부실한 관리, 그리고 입지 문제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은 건설비, 운영비, 연구개발비, 지하연구시설 등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비용’이 64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전 국토를 파헤친 4대강사업을 두 번 하는 것과 맞먹는 엄청난 비용이다. 최고 전문가들의 안전불감증은 도를 넘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서울연구로’ 해체 과정에서 나온 납 44t, 구리 6t, 철제·알루미늄·스테인리스 30t을 무단 반출, 매각했다. 대전원자력연구소는 방사능에 오염된 구리전선 5t을 고물상에 팔아넘겼다. 특히 고준위핵폐기장 입지에 관해서는 어떠한 해법도 없다.

지역의 핵발전소마다 설치된 고준위핵폐기물 저장시설은 거의 포화상태다. 정부는 급한 불은 꺼야 하니, 고준위핵폐기물 임시저장소를 늘리고 향후 공론화를 거쳐 고준위핵폐기장 영구 부지를 찾겠다고 한다.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우리는 뛰어난 기술과 안전한 부지가 있다는 거대한 착각에 빠진 것 아닌가. 화장실도 없이 마구 먹기만 한 핵발전 문명은 과연 도덕적인가. 우리의 후손들은 ‘이런 무책임한 사람들’이라고 비난하지 않을까. 방사능은 국경이 없고 세대를 뛰어넘는다. 고준위핵폐기물은 최소 10만년의 시간 동안 영원하다. 만에 하나 재난이 발생한다면 재앙은 전 지구적이다.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공론화를 통한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 재검토’가 곧 시작될 것이다. 고준위핵폐기물 임시저장시설을 어디에 어떻게 만들지가 핵심이 아니다. 좀 더 급진적인 탈핵 공론화를 통해 탈핵의 시점을 최대한 당겨보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65년 뒤인 2082년 탈핵은 머나먼 이야기며 탈핵이라는 이름을 쓰기조차 민망하다. 핵폐기물 대책이 없다면 핵발전소를 중단하는 것이 답이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가 포화된 핵발전소는 폐쇄하자. 핵폐기물의 수도꼭지를 잠그고 총량을 줄이자. 핵발전소는 탄생과 죽음까지 생애 전체가 논란거리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 명실상부한 탈핵 에너지전환을 선택하자.

<윤상훈 |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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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주노동자의 역사는 3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차별의 역사도 깁니다.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처음부터 약자였습니다. 목소리를 내고 권리를 주장하면 탄압을 받았습니다.

이주노동자는 기본적인 권리들도 보장받지 못하고 사업주의 이익 수단으로만 활용되고 있습니다. 2018년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사업주들의 폭행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사업장에서 여성 이주노동자가 성폭행과 성희롱을 당해도 도움을 받기 어렵습니다. 피해 신고를 받는 경찰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거나,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 같은 기본적인 조치도 취하지 않습니다. 또 피해 여성들이 피신할 수 있는 정부 운영의 안전한 쉼터도 별로 없습니다.

한국의 고용허가제도 안에서 이주노동자는 사업주에게 묶여 있어 노예와 같습니다. 노예와 노동자의 차이는 ‘자유’입니다. 이주노동자는 강제적 노동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고용허가제 안에서는 사업주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워 사업주가 이주노동자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습니다. 아파서 아프다고 해도 거짓말쟁이가 되고, 쓸모없는 사람으로 취급받기 일쑤입니다. 종종 본국으로 돌려보내겠다는 사업주의 협박도 받습니다. 이 얼토당토않은 협박은 아주 잘 먹혀서 이주노동자는 겁을 먹고, 결국 사업주가 시키는 대로 하게 됩니다.

자유롭게 사업장을 이동하지도 못합니다. 사업장에 문제가 있어 이직하고 싶어도 사업주가 허락하지 않는 탓에 강제노동을 지속하다가 결국 자살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또 버티다 못해 차라리 미등록 체류자로 전락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사업장을 이탈하는 순간 체류비자를 잃지만 자유를 잃고 노예로 사느니 차라리 숨어 살기를 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주노동자의 속사정도 모른 채 정부는 미등록 체류자라는 이유로 단속하고 추방합니다.

그 단속의 과정은 너무나 폭력적입니다. 최근에도 무차별적인 폭력 단속으로 사람이 다치거나 죽는 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단속과정에서 출입국 단속반은 안전조치를 취하고 집행을 해야 함에도 주먹부터 나가고 무력으로 제압합니다. 8월22일 미얀마 노동자 딴저테이는 단속을 피하려다 추락하여 뇌사상태에 빠졌고 한국인들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얼마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7월에도 경남 함안에서 단속에 나선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이 건설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유학생을 집단폭행한 후 출입국사무소에 닷새 동안 감금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폭행 장면이 폐쇄회로(CC)TV에 찍혀서 만천하에 공개되었음에도 출입국사무소는 폭력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폭행과 비극적 죽음을 겪어야 할까요.

일터뿐만 아니라 주거 환경에서도 이주노동자는 열악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 박스, 가건물에서 삽니다. 방안으로 물이 새고, 화장실 없는 곳도 많습니다. 심지어는 문고리도 사업주가 떼어가서 언제든지 들이닥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비용을 받습니다. 월급에서 기숙사비용을 사전에 공제합니다. 노동부는 지침으로 기숙사비를 공제하도록 사업주들에게 대대적으로 권고하였고, 이 제도는 나날이 사업주의 권리만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가능한 이유는 모두 사업주만을 위한 고용허가제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이주노동자의 피해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주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주는 것 마저 아깝다며 최저임금을 차등적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가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해서,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는 이유만으로 인권과 노동권을 빼앗기는 이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 이주노동자는 오랫동안 항의하고 싸워왔습니다. 이주노동자를 짓누르는 고용허가제가 아니라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긴 싸움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우리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크게 외치려고 합니다. 10월14일, 전국의 이주노동자들이 서울로 모입니다. 자유를 외치기 위해서, 차별과 착취를 끝내기 위해서 말입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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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자리 만드는 건 결국 기업.” 지난 4일 SK하이닉스 청주공장에서 열린 제8차 일자리위원회를 주재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다. 업무지시 1호가 대통령 직속의 ‘일자리위원회’ 설치와 운영이었을 만큼 문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왔다. 하지만 이날은 정부가 “일자리 양을 늘리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며, 기업의 투자 촉진과 활력을 당부하고 정부는 기업 발전의 도우미가 되겠다고 했다. 이날 일자리위원회가 꼽은 5대 신산업의 내용을 보면, 결국 재벌 대기업에 일자리를 요청하고 최대한 지원을 약속한 셈이다. 고용 부진에 대한 대통령의 답답함과 초조함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지는 따져보아야 한다. 2004년 노동부가, 2010년 대법원이 사내하청의 불법파견을 확인했지만 지금껏 파견 노동자의 직접 고용을 거부해온 현대·기아차에 과연 ‘좋은’ 일자리 창출을 기대해도 좋은가?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전 충북 청주시 흥덕구 SK하이닉스에 준공한 'M15' 반도체 공장을 대형 유리문을 통해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하기야 공공부문도 아닌 일반 기업에 좋은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른다. 기업은 일자리가 아니라 이윤 창출을 위해 투자하고, 거기에 필요한 만큼 사람을 고용한다. 그러니 기업은 수익 극대화에 유리한 형태의 일자리를 선호한다. 설사 신산업으로 일자리를 많이 만든다고 해도, 경기가 침체되면 고용은 다시 악화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경기는 언제나 부침을 거듭해왔다.

이제는 일자리라면 기업만 생각하는 낡은 틀에서 벗어나, 농촌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이유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농업이 국가의 근간이라면서도, 우리는 늙고 공동화되는 농촌을 철저하게 방치하고 외면해왔다. 40세 미만 농가가 전체의 1% 미만이고 농가의 평균농업소득은 월 100만원이 안된다. 식량자급률과 곡물자급률은 50%와 24% 수준이고, 100% 자급인 쌀을 제외하면 자급률은 훨씬 더 떨어진다.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 그래서 농사는 좋은 일일 뿐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런 일자리가 넘쳐나지만 사람들은 농촌을 기피한다. 도시에는 사람이 넘쳐나지만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농사에 사람이 몰리도록 하는 것이 마땅히 일자리 창출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90년대 중반, 충북 괴산에서 유기농을 하는 ‘솔뫼 공동체’의 농부들과 반년 남짓 산 적이 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농사가 얼마나 고되고 어려운 일인지, 동시에 농사가 얼마나 큰 만족과 자긍심을 주는 일인지, 한마디로 얼마나 ‘좋은’ 일인지 깊이 깨달았다. 그럴수록, 농사가 사람들이 기피하는 천덕꾸러기로 변해버린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귀농 인구가 조금이지만 꾸준히 늘고 있다. 귀농을 원하지만 농촌에서의 생계가 막막해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은 훨씬 더 많다. 그러니 어느 정도 생계만 보장된다면 농촌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부쩍 늘어날 것이다. 전남 해남군이 발표한 ‘농민수당’은 정부가 농촌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정부는 농사짓고 살겠다는 사람들의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 줄 ‘농민(농가)기본소득’을 하루빨리 시행해야 한다. 농민기본소득이 비현실적인 제안인가? ‘현실’적으로만 접근해서는 강고한 현실을 뚫고 나갈 수 없다. 그렇다고 결코 터무니없는 제안도 아니다.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의 계산대로 전국 110만 농가에 월 50만원씩 지급한다면 연간 총 6조60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결코 적지 않은 돈이지만, 매년 미국 무기 구매에 쓰는 돈이 10조원 언저리라는 걸 생각하면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농민이 더 늘어나면 예산도 더 늘어나겠지만, 소농이 수행하는 공익적 가치를 고려하면 그럴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게다가 좋은 일자리로 소문난 농사로 사람이 몰리면, 기업도 진짜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상상만 해도 유쾌하다. 상상을 현실로 옮기는 일, 농민기본소득으로 시작하자.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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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에서 1도의 차이는 하찮은 수준이다. 하지만 지구 평균온도 1도의 오르내림은 차원이 다른 얘기다. 2만년 전에 닥친 마지막 최대 빙하기 때 지구 평균온도는 오늘날보다 불과 5도 낮았을 뿐이다. 지난 500만년 동안 지구 평균온도는 산업혁명 직전보다 2도 이상 따뜻한 적이 없다. 인류는 2도 이상 온난화된 상태에서 생존해 본 경험이 없다. 산업혁명 이래 150년 동안 화석연료를 흥청망청 써댄 결과 지구 온도는 약 1도가 올랐다. 수십만~수백만 년에 걸쳐 일어난 기온변화가 불과 150년 사이에 발생한 셈이다. 그 후폭은 세계 도처에서 확인되고 있다. 지난여름 북반구를 휩쓴 극심한 폭염을 필두로 집중호우, 가뭄, 혹한과 폭설, 해수면 상승, 태풍 활성화 등의 변화를 불러왔다.

지구 평균기온이 현재보다 1도 상승, 즉 산업혁명 이전보다 2도 이상 상승하면 ‘지옥의 묵시록’이 펼쳐진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 따르면 평균기온이 2도 이상 상승하면 여름철 폭염으로 유럽에서만 수만명이 사망하고, 10억~20억명이 물부족에 시달리고, 세계 생물의 3분의 1이 멸종위기에 내몰린다.

지구 온도가 2도 이상 상승하면, 인류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 들게 된다. 인류 문명과 자연 생태계의 지속성을 가르는 ‘문턱값’이 2도 이상 상승이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서 ‘금세기말까지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혁명 이전보다 2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하고, 1.5도 선을 넘지 않도록 노력한다’고 합의한 바 있다.

IPCC는 지난주 인천에서 열린 제48차 총회에서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보고서는 1.5도와 2도 상승할 때의 차이를 비교하며 ‘1.5도 목표’ 설정을 제시했다. 0.5도의 차이는 확고하다. 해수면 상승은 10㎝ 낮아져 1000만명이 위험에서 벗어난다. 육지의 동식물이 서식지를 잃을 확률은 2배 줄어든다. 빈곤에 취약한 인구가 수억명 줄어들고, 심각한 물부족에 노출되는 총인구비율이 2도 대비 최대 50% 감소한다.

‘1.5도 목표’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1.5도’를 달성하려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소 45% 줄여야 한다. ‘뜨거운 지구’의 재앙을 막기 위한 마지막 처방이다. 남은 건, 지금 즉시 행동하는 것이다.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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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 무려 전체 9권 3800쪽 분량의 <제5공화국 전사>를 확보했다고 해서, 나는 당장이라도 편집국에 찾아가고 싶었다. 혹시 신문사 안에 부탁할 만한 사람이라도 없나 하고 생각도 해봤다. 법정 공방까지 벌여가며 1년5개월 만에 확보한 ‘전사’를, 염치불구하고 복사를 하든지 아니면 밤새워 필사라도 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전사(全史)’가 아니라 ‘전사(前史)’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5공화국의 전체사가 아니라 5공화국이 수립되기 전까지의 기록 말이다. 이런 ㅠ.ㅠ

물론 이 자체로 엄청난 기록이다. 10·26 시해 사건과 12·12 사태 그리고 무엇보다 5·18 광주항쟁에 관한 핵심 인물에 대한 역사적 책임과 형사적 죄책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로 ‘전체사’였다고 하면, 요즘의 내 집중적인 관심사, 즉 88서울올림픽에 대한 5공 수뇌부들의 이데올로기를 실체 그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궁금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88올림픽에 대한 핵심 행위자들의 기획과 집행이 중요한 까닭은, 이 엄청난 스포츠 스펙터클에 대한 기존의 이해는 이른바 ‘3s 정책’ 정도이기 때문이다. 각종 프로스포츠와 특히 88올림픽이라는 메가 이벤트는 특정 국면의 타개 전술 정도가 아니다. 국가는 그렇게 수세적이고 방어적이지 않다. 특히 매우 공격적인 독재정권이 권력을 부당하게 찬탈하여 국가의 운전대를 잡게 되면, 그 순간 이후 국가는 폭주한다.

5·16이 그랬고 12·12가 그랬다. 권력을 움켜쥔 군부는 의회나 언론 같은 브레이크 장치를 제거해 버리고 순식간에 진격한다. 거의 1년 안팎에 정치와 행정의 중심을 거머쥘 뿐만 아니라 전 국민을 일거에 동원할 수 있을 만한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전개하고 거대한 문화 통치 전략을 구사한다.

스펙터클 문화 통치라는 측면에서, 5공화국이라는 진격의 국가는 88올림픽을 기획하고 그것을 ‘범국민적’으로 집행하여 결국 그 책임자가 ‘6공화국’의 대통령이 되는 대단원으로 강력하게 자기 조정을 해나갔다. 정치학계에서는 1987년 민주화 운동과 그해의 대통령 선거 결과를, 그람시가 말한 ‘수동혁명’이란 관점에서 분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문제 설정이 크게 보아 타당하다면, 나는 88올림픽이야말로 국가권력의 강력한 수동혁명의 엔진이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반드시 덧붙여야 할 판단 근거들은, 극단의 정치와 스포츠 스펙터클 신드롬 사이에 넓게 퍼지기 시작한 1980년대의 중산층 문화다. 긴박한 정치 정세와 다소 무관하게, 1980년대는 3저 호황과 내수 소비 활황 속에서 컬러 TV와 마이카와 외식으로 대표되는 중산층 문화의 확산 과정이었다. 그 정점은 물론 아파트다. 이 경제문화의 조건에서, 진격의 국가가 휘날리는 88올림픽이라는 깃발을 따라 ‘범국민적’인 중산층 욕망의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이렇게 두루 살필 때, 88올림픽을 ‘3s 정책’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의 극히 작은 부분을 가리킬 뿐이다.

어느덧 88올림픽 30주년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최근에 나는 이러한 관심사에 자극을 주는 작업들을 보게 되었다. 스포츠 전문기자 위원석은 1978년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전후로 한 박정희 대통령 및 그 무렵의 스포츠 권력자들의 기록을 통하여 88올림픽이 비틀거리는 3공화국의 짙은 한숨 속에서 이미 기획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김운용이나 박세직의 자서전은 물론 전두환과 노태우의 회고록도 참조하고 있는데, 이 기록들의 사료적 가치에 대한 검증은 더 필요하지만, 어쨌거나 1980년대 전후의 혼란 속에서 권력 수뇌부들이 올림픽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권력의 중심이 지향하는 바와 그 언어들을 검토하건대 결코 올림픽은 ‘3s’ 같은 단순한 정책이 아니다.

위원석이 참조하였듯이, 허진석이나 박재구가 쓴 학위 논문들도 올림픽을 특정한 정치세력이 아니라 국가권력 그 자체의 작동 원리 속에서 접근하고 있어 흥미롭다. 88올림픽을 사회학적 측면에서 연구해온 박해남도 국가권력이 스포츠팬들보다 훨씬 더 스포츠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을 밝혀왔다. 그가 오랜 연구를 총집하여, 88올림픽의 정치사회적 성격을 학위 논문으로 결산하였다고 하니, 읽고 싶다.

그런데, 만약 이와 같은 관심을 어려운 자료나 논문에 기대지 않고, 그저 편하게 57분 정도로 화면을 통해 확인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인터넷을 검색하면 된다. KBS 스포츠국의 이태웅 피디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88/18> 말이다. 지난 9월16일에 방영되었는데, 88올림픽도 1988년 9월17일에 개막되었으니, 정확히 30주년이다.

무려 15테라바이트(TB) 분량의 KBS 영상자료를 바탕으로 일단 40시간 분량을 추려내고 이를 다시 약 57분으로 적극적인 편집과 연출을 한 작품이다. <천하장사 만만세> <공간과 압박> <숫자의 게임> 등 독특한 ‘작가주의적’ 관점의 쾌작을 만들었던 이태웅 피디는 “1980년대 한국 사회에서 사회, 경제, 정치, 문화 모든 면에서 올림픽이 관련되지 않은 부분이 없다”는 판단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 TV 다큐의 공식과도 같은 쉼 없는 내레이션이나 과장된 효과음 하나 없이, 오로지 당시의 방송 화면들과 88올림픽에 직접 관여한 사람들의 인터뷰만으로 이어지는데, 그 형식 자체가 흥미롭다.

이 다큐는 허화평으로 시작해서 그의 논평으로 끝난다. 다큐의 끝에서 그는 말한다. “88올림픽이, 전두환 정권으로 하여금, 싫어도, 절대 그런 생각이 없었어도, 평화적 정권교체를 하도록 만들었다.” 글쎄, 여러 각도의 자료와 해석이 더 필요하지만, 최소한 더 이상 ‘3s 정책’ 같은 말로 스포츠 스펙터클을 판단하는 것은 부족하고 게으른 것임을 확증하는 ‘5공 실세’의 증언이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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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후배의 군에 간 아들이 탈영을 했다고 해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그 소동은 하루 뒤 부대에서 좀 떨어진 PC방에서 인터넷에 골몰하고 있는 친구 아들을 발견함으로써 다행히 그리 심각한 일은 아닌 걸로 끝이 났다. 참 그 녀석 특이하군 하는데 후배의 말이 요즈음 군대에선 그렇게 부대를 이탈한 병사가 PC방 같은 데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골몰하다가 붙잡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참 시대가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세대가 군부대 안에서 생활하며 주로 느낀 것은 그것이 육체적인 원인에서 오든 정신적인 원인에서 오든 몸으로 느끼는 배고픔이었다. 그래서 외박이나 휴가 나갈 땐 늘 빵과 과자, 짜장면, 불고기 등을 배가 터지도록 먹어봐야지 단단히 벼르며 부대 정문을 나서곤 했다. 지금 젊은 세대에겐 문화적 결핍이 우리 세대의 배고픔과 같은 모양이다. 하기는 먹고사는 문제가 기초적으로는 해결이 되고 지적 네트워크가 삶의 핵심적 필수요소가 된 인지자본주의 시대가 아닌가?

젊은 세대에게 문화적 결핍이 우리 세대의 굶주림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면 학교교육은 우리 세대보다 젊은 세대에게 더 근본적 의미를 가질 것이다. 우리 세대에게 일정 수준의 학교교육과 그를 통해 습득한 기초학습능력이란 못 갖춰도 살아가는 데 결정적 지장은 없는 것이었지만, 젊은 세대에겐 굶주림이 우리 세대에게 그러했듯이 정상적 삶을 불가능하게 하는 결정적 장애가 된다. 그런데 우리의 학교교육은 과연 이러한 인지자본주의 시대에 걸맞게 변화해 있는 것일까? 그래서 인지자본주의 시대에 맞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양적으로만 본다면 대학 진학률이 70%를 넘고 대다수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있고, 매년 엄청난 숫자의 박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우리의 학교교육은 인지자본주의 시대에 맞는 외양을 갖추고 있는 듯싶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무분별하게 양적 팽창에만 몰두하던 산업화 시대의 교육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 있지 않다.

우선 가장 놀라운 것은 우리의 학교교육이 문맹에 가까운 학생도 등록금을 내고 출석만 잘 하면 무난히 대학을 졸업할 수 있는 참 신기한 시스템이라는 점이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학생들의 기초학습능력에 대해 국가 수준에서 한 번도 평가하는 일이 없고, 9년간의 의무교육을 시행하고 있는 국가가 학생들의 기초학습능력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최소한 10년간의 국민 공통교육과정이 끝나는 고1 말에 국민 공통교육과정에 대한 국가 수준의 졸업자격 고사라도 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통과를 못하는 아이들에게 고2, 3에서 별도의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졸업자격 고사 응시 기회를 1~2회 더 주어 최대한 기초학습능력을 갖추도록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국가가 자기 할 일을 확실히 하면 대입제도를 둘러싼 혼란과 갈등도 자연히 해결될 것이다. 고1 말의 졸업자격 고사를 대학입학자격 고사를 겸하도록 하여 ‘수능 1’로 하고, 고3 말에 고2, 3의 진로선택 교육과정에 대해 ‘수능 2’를 보도록 하고, ‘수능 2’는 미래 역량을 물을 수 있는 서술형, 논술형 문항을 도입하되 학생이 응시할 수도 있고 응시하지 않을 수도 있는 선택형으로 하면, 대학 학생 선발을 대학 본고사를 금지하는 선에서 대학 자율에 맡겨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5~6년 전 혼자서 심리학을 공부하다가 신문에 심리상담사 자격증 시험 광고가 나왔기에 흥미가 생겨 시험을 보았다. 시험 교재를 사서 한 달간 공부해 보았는데 2급 심리상담사와 아동심리상담사 자격시험에 합격했다는 통보가 왔다. 나는 이건 1차 시험이고 이제 교육도 받고 장기간 실습도 한 후 테스트를 해서 자격증을 주겠거니 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어느 날 우편으로 자격증 두 장이 배달되어 왔다. 허망하게도 그것이 끝이었다. 사기당한 것 같은 느낌과 함께 국가가 이렇게 자격증에 대한 질 관리를 안 하면 심리상담을 받는 사람들이 당연히 상담자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학벌을 따질 수밖에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 심리상담사 자격증보다는 유수한 대학의 졸업장에 대한 신뢰도가 훨씬 높을 테니까. 국가의 각종 자격증에 대한 질 관리의 허술함이 우리 사회가 실력 위주의 사회로 나가지 못하고 학벌사회에 머물게 되는 한 이유가 아닌가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이것은 직업계고와 관련된 자격증도 마찬가지다. 정말 고졸자 취업을 늘리고 싶다면 그 자격증들이 현장에서의 실력 발휘를 담보할 수 있도록 질을 관리하고 직업계고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

그렇다고 이른바 일류 대학이라고 교육의 질 관리가 잘 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른바 우리나라 일류 대학의 국학 전공 대학원에서 교수가 되려면 미국 유학을 해서 박사학위를 받아와야 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떠돌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박사학위에 대한 신뢰도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대학교육의 질 관리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웅변한다.

흔히 미래사회에 대비한 융합적이고 창조적인 교육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이 어떤 새롭고 기발한 정책이나 제도에 의해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이 생겨날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개혁이란 것은 그렇게 단절적인 게 아니라 바이올리니스트가 오랜 반복적 훈련을 통한 숙련의 바탕 위에서 비로소 자기만의 창조적 연주를 해내듯이 우선은 기왕의 것에서 질적으로 최선의 것을 만들어내는 매우 지루하고 고된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개혁을 원한다면 가장 먼저 현재 있는 자격증들의 자격부터 물어야 한다.

<김진경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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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화 교육을 근간으로 한 근대학교의 시효 만료를 알리는 신호가 뜬 지는 한참 되었다. 서구에서는 50년 전, 한국 사회에서는 30여년 전부터 빨간불이 깜박이기 시작했다. 문제가 일찍 대두된 서구에서는 개혁의 청신호도 일찍 나타나고 있지만, 그 신호체계를 한국 사회에 이식하는 일은 간단치 않다. 교육 문제는 정치, 경제, 사회 문제와 맞물려 있어 사회 구조가 함께 바뀌지 않는 한 해결할 수 없다. 

학교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개인과 공동체가 다르다. 개인은 문제가 생겼을 때 학교를 떠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지만, 공동체로서는 학교를 버리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릴 수 없는 것과 같다. 타고 가면서 차를 수리하는 수밖에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칼 포퍼의 피스밀(piecemeal) 전략이 현실적인 접근이다. 한걸음 한걸음 개선해가는 방식이다. 

하지만 달리는 차를 수리하는 제도개혁은 고도의 노하우를 필요로 한다. 개혁이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는 개혁 대상이 맞대응을 하기 때문이다. 사교육업체들, 부모들, 대학들, 교장들, 교사들…. 저마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근거하여 맞대응을 한다. 부동산 정책이 실패하는 것도 업자들과 투기 수요자들이 요리조리 법망을 피해가면서 맞대응을 하기 때문이다. 피스밀 전략이 실패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처음에는 반짝 효과가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곧 도루묵이 되고 만다.

맞대응으로 빠져나갈 수 없게 외통수로 몰아야 한다.

부동산의 경우 공급 물량을 늘려 통제력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는 정부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아파트만이 아니라 중산층을 위한 임대아파트도 공급해야 한다. 통제력을 확보한 다음 보유세나 분양가 공개 같은 정책을 보조수단으로 쓰면 아파트 값은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다. 손자병법식의 묘수보다 오자병법식의 압도적인 힘의 우위로 밀어붙여야 한다. 통제력 확보가 우선이다.

교육 분야도 비슷하다. 강남 3구의 아파트 값이 뛰는 것과 강남 8학군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교육 문제와 부동산 문제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단기 대책으로는 강북에 강남을 대체할 수 있는 학군을 만들고, 동시에 그곳에 아파트를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 수시입학제를 확대하면서 사교육 수요가 생겨나지 않는 대입 평가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대학과 사교육업자들, 학부모들이 담합하여 그들만의 리그를 펼치지 않도록 정부가 통제력을 발휘해야 한다. 

장기 대책은 교육의 패러다임,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학력으로 임금을 차별하는 사회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목수가 되고 싶은 아이는 그에 맞는 교육과정을 밟을 수 있게 해야 한다. 하지만 일자리가 점점 줄고 평균수명은 늘어나는 만큼 20대 초반에는 누구나 대학에서 교양을 습득할 수 있게 국가가 학비를 지원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이를 청년에게 주는 기본소득 개념으로 볼 수도 있다). 학력 차별을 없애거나 아예 학력의 차이를 없애는 것이다. 전문 연구를 할 사람만 석박사 과정을 밟게 하면 된다.

초·중·고와 대학은 교양교육에 주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양교육의 핵심은 맥락을 파악하는 힘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부분을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볼 줄 아는 것,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줄 아는 것이 교양이다. 교양 있는 사람은 가짜뉴스에 속지 않는다. 가짜뉴스가 판치는 이유는 우리 사회 전반의 교양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교양을 기르는 교육을 해야 한다. 시민교육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곧 공교육의 역할이다.

생각하는 힘, 살아가는 힘을 기르는 것을 교육목표로 삼고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생각하는 힘, 살아가는 힘의 본질 또한 맥락을 읽고 소통할 줄 아는 데 있다. 일본과 한국의 교육이 그 방향으로 제대로 바뀐다면 내부의 갈등도, 한·일 간의 갈등도 줄어들 것이다. 공교육은 공동체의 시민을 기르는 교육이어야 한다. 자신이 속한 작은 집단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전체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의사결정을 할 줄 아는 사람을 기르는 것이 공교육의 방향이어야 한다.

<현병호 교육잡지 격월간‘민들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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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무더위 속에서 내내 이어진 BMW 화재사고는 폭염을 어렵게 견딘 시민들의 마음속까지 까맣게 태웠다. 아직까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는 기업을, 정부를 바라보는 마음은 더욱 편치 않다. 그러나 이번 BMW 문제는 차량결함이라는 단순 사실에서 나아가 왜 이런 사고가 발생했는가의 본질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BMW의 화재사고와 2015년 폭스바겐 디젤게이트는 특정 회사의 문제가 아닌 모든 디젤차량의 대기오염 유발문제라는 본질에서 바라봐야만 하기 때문이다.

디젤차량의 질소산화물 배출은 휘발유의 10배에 달한다. 과도한 질소산화물 배출로 인한 도심의 오존농도 증가가 국민 호흡기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이 매우 심각하기에 디젤차량을 줄이는 것은 그 어떤 대기환경정책보다 중요하다. 그럼에도 미세먼지만큼 주목받지는 못하고 있다. 폭스바겐과 BMW의 사태는 모두 이 질소산화물 배출과 연관된다. 디젤의 질소산화물 배출을 줄이기 위한 유럽연합의 규제는 해가 갈수록 강화되었고 2015년에는 이전 유로5보다 배출기준을 5배나 강화시킨 유로6를 적용하였다. 미국은 그 이전부터 유로6보다 훨씬 강력한 배출가스 규제를 적용하고 있었는데, 거의 모든 승용차와 소형트럭까지 휘발유를 사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조치였다. 폭스바겐은 미국의 강력한 배기가스 규제 기준을 디젤로 맞추기 위해 거짓조작을 한 것이며, 이번 BMW는 획기적으로 강화된 유로6 기준을 맞추기 위한 기술이 문제가 된 것이다.

7월 29일 강원 원주시 중앙고속도로 춘천방향 치악휴게소 인근에서 주행 중이던 BMW 520d 승용차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대원들이 불을 끄고 있다. 연합뉴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 두 회사 차량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다른 제조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는 것이다. 2016년 유럽에서 실제 운행하는 차량의 배기가스 배출량을 조사하여 발표한 결과는 충격적인데 유로5 기준을 통과한 디젤차량의 질소산화물 실배출량은 회사별로 허용기준의 최소 3.2배에서 최대 7.9배를 초과했으며 유로6 기준 차량은 최대 15.1배를 초과했다. 실주행 시 유로기준을 충족하는 디젤차량을 만드는 회사는 단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문제가 된 두 회사는 유로6 기준을 맞추지는 못했지만 질소산화물 초과 배출량이 허용기준의 3배 이내로 가장 적은 회사들이었다. 결국 실현가능성 없는 과도한 기준치의 적용과 이 요구를 안일한 조작으로 맞추기 위한 기업의 무리수가 화를 불러온 셈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부각되지 않은 회사 차량은 안전할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현대차 디젤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유로5 기준을 통과한 차량의 경우 실제 허용기준치의 7.2배를, 유로6 차량 또한 허용기준치의 무려 7.7배를 더 배출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러한 수치는 클린디젤이 아닌 더티디젤임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수치이며 지금까지 생산된 모든 디젤차량이 호흡기에 치명적인 질소산화물을 대량으로 방출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BMW와 같이 개별 차량의 문제는 아닐지라도 도시 대기오염을 가중시켜 우리 모두의 건강을 위협하는 문제는 훨씬 크다는 것이다. 대기오염 정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고, 호흡기질환이 급격히 증가하는 현실에서도 디젤차량을 위해 지속적으로 디젤 가격을 저가로 유지하는 국가정책을 과연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정부의 곳간은 한없이 늘어만 가고 국민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자동차가 사치품인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났고, 필수품을 보다 저렴하게 사용하고자 하는 욕구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시대가 바뀌면 세금정책 또한 바뀌는 것이 당연하다. 화석연료 자동차의 축소는 향후 급격히 진행되겠지만 그사이 정부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전기차나 수소차에 지원되는 통 큰 세금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안다. 지금이야말로 어려운 국민을 위해 휘발유에 부과되는 세금을 경유와 같게 낮출 적기이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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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과 공무원연금공단이 4일 “석탄발전소 건설을 위한 금융 투자 및 지원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탈석탄’을 선언했다. 대신 재생에너지 분야에 투자를 확대하는 등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지속 가능한 투자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2일 충남도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유엔기후변화협약 ‘탈석탄동맹’에 가입했다.

‘탈석탄운동’은 기후변화에 대처하고 미세먼지를 막기 위한 가장 현실성 있는 조치이다. 이런 가운데 미세먼지 생산의 ‘주범’으로 꼽혀온 충남도가 국제 탈석탄동맹에 가입한 것은 주목할 일이었다. 충남에는 국내 석탄화력발전소의 절반이 몰려있다. 충남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국의 25%를 차지한다. 충남도는 탈석탄동맹 가입과 함께 2026년까지 도내 화력발전소 30기 가운데 14기를 친환경발전소로 전환하고, 2050년까지는 석탄발전량을 제로로 하겠다고 밝혔다. 오염 주범 자치단체라는 오명을 벗고 친환경에너지 전환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지자체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결실을 맺기 어렵다. 중앙정부의 협력과 금융기관의 투자 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기관투자가인 사학연금과 공무원연금이 탈석탄운동에 동참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세계는 지금 탈석탄, 재생에너지 전환이라는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적극적인 재생에너지 사용으로 이에 호응하고 있다. 금융기관들도 탈석탄·재생에너지 투자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화석연료 제로운동’을 벌이는 국제기후변화 대응기관인 ‘350.org’에 따르면 현재 985개 세계 금융·투자기관이 화석연료 배제에 동참했다고 한다. 이들의 자산운용 규모는 6조2000억달러에 달한다. 반면 한국은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는 행태를 보여왔다. 수출입은행·무역보험공사·산업은행 등의 금융기관은 지난 10년간 9조원 이상을 해외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 투자해 기후환경단체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탈석탄운동은 국제사회의 대세가 되고 있다. 사학연금·공무원연금의 탈석탄운동으로 한국도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세계적 흐름에 합류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이제 국내 금융계와 투자기관들이 동참할 차례다. 언제까지 국제사회로부터 세계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이라는 오명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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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같은 사고가 발생하면 최대 2492조원의 손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경향신문이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 이훈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한국전력의 ‘균등화 발전원가 해외사례 조사 및 시사점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중대 사고 발생 시 고리 원전의 총 손해비용이 2492조4000억원으로 추산됐다. 월성과 영광, 울진의 원전도 각각 1420조원, 907조원, 865조원의 손해비용이 발생한다고 나왔다. 국내 원전부지별로 사고 시 발생할 손해비용을 추산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런 비용을 적용하니 원전의 발전원가는 지금보다 2배로 높아졌다.

생활적용형 태양광 신기술과 신제품 160여종을 선보이는 ‘2018 서울 태양광 엑스포’가 열리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관람객들이 국민대의 태양광 전기차‘태극’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이상훈 기자

이번 연구는 지난해 후쿠시마 원전의 사고비용치를 내놓은 일본의 싱크탱크 일본경제연구소(JCER)의 분석 방식을 따랐다. 그 결과 국내 원전 사고 발생 시 예상 피해액은 일본보다 훨씬 컸다. 부산 고리 원전 반경 30㎞에 거주하는 인구는 344만명으로 후쿠시마(14만명)보다 24배 많은 것이 주요인이었다. 이런 환경오염·사고비 등 외부비용을 반영(균등화 발전비용)했더니 원가가 79.80~89.51원(kWh당, 2017년 기준)으로 추산됐다. 방폐처리 비용(kWh당 23.1원)까지 감안하면 발전단가는 현재 66원대에서 122.5원으로 2배 가까이 올라갔다. 원전 단가가 싸다는 근거가 이번 연구로 크게 약화됐다. 보고서가 2020년 중반부터 원자력과 태양광의 발전비용이 역전될 수 있다고 전망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대규모 태양광은 2020년대 중·후반, 중소 규모는 2030년대에 비용이 역전된다는 것이다. 이러니 보고서가 설계수명이 60년에 이르는 새 원전을 짓는 데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권고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계산이 맞다면 2022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 이후 새 원전은 지을 이유가 없다.

원전 지지자들은 반대론자들이 원전 사고 가능성을 과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본도 후쿠시마 사고 전까지는 어떤 사고에도 안전하다고 자신했다. 한국이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은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원전은 그 비용도 문제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원전 사고에 대한 완벽한 대비는 불가능하다. 한계에 다다른 방사능폐기물 처리도 해결이 난망인 상태다. 그런 차에 원가가 싸다는 주장까지 무너지게 된 것이다. 원전 지지자들은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연구 결과에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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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는 지난 6월28일 미세먼지 관리 종합대책의 후속조치로 ‘미세먼지 다량 배출사업장 배출 허용기준 최대 2배 강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석탄화력발전소, 제철업, 석유정제업, 시멘트제조업에 대해 초미세먼지(PM2.5)를 발생시키는 먼지, 질소산화물, 황산화물의 배출 허용기준을 최대 2배 강화하여 2019년 1월부터 적용한다는 내용이다.

특히 전국의 모든 석탄화력발전소의 배출기준을 최대 2배 강화한다는 점은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강화하더라도 예외적으로 엄격한 배출기준을 적용받는 영흥화력에 비해서는 대략 2~4배 느슨해 아쉽다. 현재 영흥화력은 수도권 대기환경개선특별법을 근거로 다른 발전소에 비해 배출기준이 최대 거의 5배까지 엄격하다(배출량이 많은 질소산화물의 경우 배출기준이 70ppm인데 영흥화력은 15ppm). 이는 다른 발전소들도 영흥화력 수준으로 배출기준을 강화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수도권에 소재한다고 하여 영흥화력만 배출기준이 유독 엄격한 것은 대기오염물질의 확산 속성을 무시한 것이며 민주주의의 성숙에 걸맞지 않는 차별적 불합리한 정책이다. 따라서 전국의 모든 석탄화력발전소 배출기준을 영흥화력 수준으로 강화해야 한다.

또한 환경부는 ‘미세먼지 관리 종합대책’에서 현재 수도권에서만 실시되고 있는 사업장 대기오염물질 배출총량제를 내년 상반기까지 충청, 동남, 광양만권까지 확대 실시하겠다고 했는데, 배출량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도록 입법하여 실효성 있게 시행해야 한다. 미세먼지 다량 배출 사업장들은 경제성만 고려할 게 아니라 환경적, 건강적 측면에서도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고 윤리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배출량 감축에 힘써야 할 것이다.

한편 충남도는 환경정책기본법 12조를 근거로 작년 6월30일 선제적으로 배출기준을 강화하는 ‘충청남도 대기오염물질 배출 허용기준에 관한 조례’를 공포했다. 그러나 조례의 배출기준은 이번 환경부 배출기준과 비슷하지만 적용 시기는 2021년으로 오히려 2년 늦어 환경부 정책에도 뒤처지는 의미 없는 조례가 되었다.

출처: 경향신문DB

환경부가 올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충남은 지난해 기준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이 전국에서 압도적으로 1위였다. 사업장별 배출량에서 전국 2위인 현대제철, 3위 태안화력, 5위 보령화력, 7위인 당진화력 등이 밀집해 있다. 따라서 조례 제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허용기준을 3~4년 내에 영흥화력 수준으로 강화하고, 제철업과 석유정제업도 강화하도록 조례를 조속히 개정하기를 촉구한다. 환경부 발표에 따르면 보령화력과 서천화력의 미세먼지 최대영향지점은 충남도청이 있는 내포신도시 부근이다. 조례가 제정되지 않은 대부분의 시·도에서도 지역의 배출 특성을 감안하여 주민의 환경권을 지키는 조례 제정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신현기 | 당진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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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학교를 그만둔 초등 저학년 연령대 어린이들을 취재하며 알게 된 그들의 상황에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학교를 그만두면 왜 모든 배움과 돌봄은 오롯이 부모의 몫으로 돌아가는가. 아이는 왜 고립되어 친구를 그리워하고, 세상 사람들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가. 학교를 그만두는 일이 낙오와 도태로 인식되는 사회에서 기죽지 않고 당당하기란 부모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학교 말고도 어린이들이 갈 수 있는 장소나 프로그램을 연결하려고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쉽지 않았다. 그들을 위해 장소를 제공하고 싶다는 곳은 몇 군데 있었지만 그보다 필요한 일은 일단, 각자 흩어져 힘들어하고 있는 학교 밖 어린이 가정을 한데 모으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구나 싶어 급작스레 만남을 제안했다. 숲속공원에서 한적한 평일에 만나자고. 서울, 경기, 강원에서까지, 온라인에 공지한 지 일주일 만에 아홉 가정이 모였다.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사이 부모들은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이 학교 밖의 길을 택한 이유는 무척 다양했다. 몸이 아파서 학교에 가지 못한 경우도 있었고, 공교육에 문제의식이 있어 입학을 하지 않은 가정도 있었다. 교사와의 관계, 혹은 또래와의 관계 때문에 학교를 잠시 쉬고 있는 가정, 학교에 다니고 있는 상태로 모임에 참석한 가정도 있었다. 대안이 없어 당장 그만두지는 못하지만 아이의 개성과 자유로움을 보장해주고 싶어 차츰 학교 밖의 길을 준비해보고자 했다.

세상은 이들을 주류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것’으로 치부하지만, 사실 이들은 ‘적응하지 않은 것’이다. 문제가 있지만 ‘남들도 다 그러니까’ 눈감고 그냥 사는 게 아니라 익숙하고 당연한 것에 질문을 던지고, 그 물음에 답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이들이 아니라, 사회화라는 이름으로 질문을 거세하고 한 인간의 고유함을 획일화하는 학교 시스템일 것이다.

그날, ‘친구와 뛰어노는’ 평범한 일에 목이 말랐던 아이들은 거침이 없었다. 처음 만나 친해지려면 놀이 프로그램이라도 마련해야 하나, 남자아이들이 훨씬 많은데 여자아이들이 못 어울리면 어쩌나, 지레 했던 걱정들이 무색했다. 숲속을 뛰어다니고, 모래밭을 뒹굴며 서로의 몸을 파묻는 일에는 이름도, 나이도, 성별도 필요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친구들과 얘기 좀 나눠보았냐는 엄마의 말에 한 아이가 이렇게 답했다 한다. “우린 노는 게 대화야.”

매달 만남을 이어가기로 결정하고 나자, 모임의 방향에 대해 부모들은 보태고 싶은 말이 많았다. 혼자 하던 고민을 함께 헤쳐 나갈 것에 대해 기대도 크고, 아이들에게 필요하다 생각하는 배움의 종류와 형태에 대해서도 의견이 달랐다. 그러나 선뜻 이 모임에 어른들의 말을 얹지는 않기로 했다. 오직 아이들 중심으로 만남을 이어가자고 뜻을 모은 가운데, 아이들은 벌써 언제 다시 만나느냐고 엉덩이를 들썩이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부모들이 일일이 함께 다니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아이들의 성장에는 어른들은 개입할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가 있게 마련이며, 학교를 그만둔 모든 어린이들의 부모가 아이와 함께 다닐 수 있는 형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풀어가야 할 숙제는 많지만, 일단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들을 만난 것에 기뻐하며 호기롭게 학교 밖 어린이들의 네트워크는 첫걸음을 뗐다.

<장희숙 |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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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새로운 것이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통해 일어난다 할지라도, 혹은 과거가 멸종하고 파괴된 자리에서 새로움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기실 그 새로움은 익숙한 것을 대신하지 않는다. 가령, 가솔린 엔진은 증기기관을 대신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1890년 즈음 벤츠와 다임러가 가솔린 엔진을 개발했을 때도 증기기관은 압도적으로 훌륭했다. 누구도 이에 대해 반론하지 않았다. 시장과 소비자도 그렇게 여겼고, 증기기관을 선택했다. 심지어는 벤츠와 다임러조차 증기기관차를 탔다.

이것은 당연하다. 증기기관과 증기자동차는 열효율이 좋고, 최고 속도가 빨랐으며, 소음과 진동도 적었다. 시장 점유율이 압도적이었고 산업 규모가 커 일자리도 많았다. 반면 당시 가솔린 엔진은 연속운전해서 12시간을 못 버텼고, 언덕을 오를 때면 뒤에서 밀어야만 했다. 최고 속도는 시속 16㎞를 넘지 못해 마차보다 느렸다. 또 연료로서 가솔린은 자주 불이 나거나 폭발했다. 소비자는 외면했다.

그러나 당시의 비밀을 털어놓자면, 내연기관 엔진은 비행기를 날리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다. 훗날의 여객선과 잠수함을 위해서, 우주여행을 위해서 태어났다. 철로 없이도 이동하려고, 그래서 철로를 벗어난 곳을 찾아가는 여행산업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도심의 비싼 땅값을 피해 외곽에 집을 짓고 시내로 출퇴근하기 위해서, 공장을 교외로 보내고 그 자리에 광장과 극장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컨베이어 벨트로 돌아가는 대량생산 시스템을 위해서, 대부분의 근로자를 중산층으로 만들기 위해서, 창업과 창직을 위해서였다. 가솔린 엔진이 태어난 이유 중 단 한 개도 증기기관이 밉거나, 대신하거나 없애려던 것이 아니었다.

태양광도 그렇다. 태양광이 화력발전과 원자력발전을 미워하거나 대신하기 위한 것이라고 여긴다면, 아니다. 태양광은 전선 없이도 문명을 비추기 위해 만들어졌다. 외진 곳의 가로등을 위해서, 태풍과 지진의 강력한 파괴를 극복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심지어는 인공위성과 우주여행 비용을 값싸게 만들기 위해서 태어났다. 발전기와 전선 없이도 원하는 모든 것, 모든 이와 연결할 수 있기 위해서다. 미세먼지 없는 하늘을 위해서, 풍요로운 에너지 삶을 위해서다. 온실가스와의 전쟁을 끝내고, 에너지 민주주의를 제대로 이루고 동북아에 평화공동체가 구현된다면 이도 태양광이 부양한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왜 이 땅의 태양광은 아직도 혼란 속에 있을까? 그것은 정부의 재생에너지 정책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농지와 임야는 막혀 있으며, 물과 건물도 녹록지 않다. 그런데 공공건물과 정부기관마저도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있으니 정부에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재생에너지 확대 의지가 진심인지를. 진정이라면 이제라도 기업과 시장에 그린 라이트를 켜줘야 한다. 유휴부지 활용 도시형 태양광은 그린 라이트로 제격이다.

특히 공공기관 태양광이 중요한 축이다. 국민생활과 밀접한 공공기관에 태양광 보급을 확산하면 국민 수용성을 향상시키고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이라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기업과 시장에 보여줄 수 있다. 우선 소방서, 경찰서, 우체국, 고속도로 등 공공건물 유휴부지부터 태양광 설치를 적극적으로 시작해야 하며, 나아가 지자체와 마트·백화점·주유소 등의 민간시설로도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물론 이 정도로 에너지 전환의 앞길을 환하게 밝힐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제시한 청사진을 실제로 이룰 수 있다는 신호등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인구가 집중된 도심 시설에 설치하면 태양광의 상징성을 각인시키고 수용성을 향상시키는 효과도 높을 것이다. 공공기관 태양광 사업은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이라는 재생에너지 3020 정책 추진의 강력한 의지를 확인시키는 것이다.

<홍준희 가천대학교 에너지IT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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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에너지전환은 다른 나라에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현상까지 더해지면서 더디기만 하다. 거대 발전시설 입지가 야기했던 사회갈등이 최근엔 태양광시설 설치 예정지역들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환경보건영향을 이유로 지역 주민이 태양광 패널 설치를 반대하는 해외사례를 듣지 못했기에 당혹스럽다. 일부 산림 훼손이 심한 경우는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최근엔 잘못된 정보로 혐오시설인 양 반대하는 일도 없지 않다.

대표적 사례가 서울대공원 주차장에 들어설 태양광 시설에 대한 반대다. 서울에너지공사는 서울대공원 정문 주차장 부지에 약 10㎿ 규모의 태양광을 ‘제2호 태양광 시민펀드’ 방식으로 설치할 계획이다. 그런데 얼마 전 사업설명회가 파행으로 치달았다. 일부 과천시민들의 반대 때문이다. 해당시설이 도시미관을 해치고 카드뮴과 납 같은 유해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데다 서울시 소유 태양광 시설을 과천시민 돈으로 과천에 설치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런가?

주차장에 설치하는 태양광 패널이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주장은 처음 듣는다. 주민 거주 지역으로부터 300m 이상 떨어져 있고 이미 콘크리트로 포장된 곳인데 말이다. 전 세계적으로 주차장 태양광 설치 사례는 부지기수다. 생각해보라. 넓은 공간에 햇빛을 가리는 방해물이 없으니 다른 데보다 전기 생산에 유리하다. 여름엔 주차 차량 내부가 뙤약볕으로 데워지는 걸 막을 수 있고 패널이 차양막이 되어 보행자들에겐 그늘이 된다. 비가 올 땐 승하차 시 비를 피할 수 있고 겨울엔 폭설이나 바람막이 구실도 한다. 그래서 주차장 태양광 발전소가 쑥쑥 들어서고 있다. 다른 나라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대형마트나 고속도로 휴게소, 야구장, 구청, 공장 등의 주차장에 태양광 발전 시설이 여럿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설치 예정 장소에 직접 가보았다. 그곳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면 앞서 말한 편익에 더해, 규모가 커서 방문객인 아이와 시민들에게 생생한 에너지전환 교육 현장이 될 법했다.

주차장 옆에는 카드뮴과 납이 들어 있는 죽음의 시설이라며 해골을 그려 놓은 현수막이 있었다. 우리나라에 보급된 태양광 패널엔 정부 규제로 카드뮴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다. 셀과 전선 연결을 위해 납이 소량 사용되긴 하지만 회수해서 재사용하는 데다 납은 우리 모두가 사용하는 컴퓨터에도 들어 있다. 문제가 될 수 없다.

시민펀드 방식을, 과천시민 돈으로 전기를 만들어 과천시민에게 팔겠다는 발상으로 오해하고 수익률이 낮아 현실성이 없다고 비판한다. 사실은 이렇다. 사업방식으로 제안된 시민펀드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전 국민 대상이다. 과천시민으로 제한할 수 없다. 태양광 생산전력은 20년간 정부가 장기고정가격으로 구매해주기에 수익률이 시중금리보다 높아 과천시민을 배려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 이미 2015년 서울시는 지하철 기지 4개소에 총 4.24㎿ 규모 태양광 설비를 전 국민 대상의 제1호 태양광 시민펀드사업으로 추진해서 4.18%의 수익을 가입시민에게 돌려준 경험이 있다.

과천시는 과천시민이 소비하는 전력량의 0.1%도 생산하지 않고 있다. 전기 소비량 거의 전부를 다른 지역에서 가져오고 있다. 과천시의 매월 가구당 평균 전력소비량은 234.9kWh로 전국 평균(221kWh)은 물론 서울시 평균(228kWh)보다 높다. 석탄이나 원자력 발전은 미세먼지나 사고위험이 수반되어 해당 지역주민은 어려움을 겪는다.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은 전기를 쓰는 과천시민들이 이런 문제에 무감각해서는 곤란하다. 과천시민들도 이제 내 앞마당에서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해야 할 때다. 서울대공원 주차장에 태양광 발전소가 세워지면 과천시 전력 자급률은 3.3%로 높아진다. 서울대공원 주차장이 그 출발이 되면 어떨까?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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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등 삼성의 전·현 임직원들이 자회사 삼성전자서비스의 노동조합 와해 공작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다. 서울중앙지검은 27일 이 의장과 박상범 전 삼성전자서비스 대표 등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앞서 구속 기소된 전 삼성전자 임원 등을 합치면 노조 와해 의혹과 관련해 법정에 서게 된 인사는 30여명에 이른다. 검찰은 그룹 미래전략실을 컨트롤타워로 해 일사불란하게 실행된 노조 와해 공작을 ‘전사적 역량이 동원된 조직범죄’로 규정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기업이 노조를 탄압하겠다고 ‘전사적 역량’을 끌어모았다니 참담하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9월28일 (출처:경향신문DB)

검찰 수사 결과를 보면 삼성은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에 노조가 설립되자 일명 ‘그린화작업’으로 불리는 와해 전략을 세워 시행했다고 한다. 공작에 동원한 수법은 전방위적이었다. 노조활동이 활발한 협력업체는 ‘위장폐업’을 유도하고 조합원들의 재취업을 방해했다. ‘심성 관리’를 빙자한 조합원 개별 면담을 통해 탈퇴를 종용하고, 채무관계와 임신 여부 등 민감한 개인정보를 토대로 회유 작업을 벌였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조합원 염호석씨의 장례가 노동조합장으로 치러지는 일을 막기 위해 염씨 아버지에게 6억8000만원을 건네기도 했다. 삼성은 협력업체뿐 아니라 한국경영자총협회와 경찰 등 외부세력까지 동원했다.

삼성은 지난 4월 90여개 협력업체 직원들을 직접고용하고 노조활동도 보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80년간 고수해온 ‘무노조 경영’의 사실상 폐기 선언이었다. 그러나 거대기업의 체질이 ‘선언’만으로 바뀔 리 없다.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기소됐는데도 공식 입장 표명조차 없는 걸 보면 삼성이 과연 구태와 결별할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노동기본권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 할 곳은 삼성만이 아니다. 포스코에서도 최근 출범한 새 노조(민주노총 금속노조 포스코지회)를 무력화하려 한 내부 문건이 발견돼 파장이 커지고 있다. 헌법은 노동자가 노동조건 향상을 위해 자주적으로 노조를 만들어 단체교섭·단체행동을 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모든 사용자가 노조를 파괴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대착오적 인식에서 벗어나야 할 이유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와 검경 등 수사기관의 철저한 감독·감시가 절실함은 더 말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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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알바하다 보면요, 진짜 이상한 사장들, 황당한 점장들 많이 만나잖아요.”

“그야, 그렇죠…. 한데 어디 그게 사장들만 그런가요? 같이 일하는 알바 중에도 이상한 애들이 진짜 많아서….”

“진만씨는 아직… 괜찮죠?”

“네? 뭐가요?”

“아니, 우리 사장한테 이상한 말 안 들었냐고요?” “이상한 말이요? 아니오, 저는 아직….”

“그런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지금 이렇게 말씀드리는 거예요.”

“저기 나중에 하면 안될까요?”

“잠깐이면 돼요. 이게 진짜 중요한 이야기거든요.”

“제가 버스를 놓치면 걸어가야 하는데….”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우리 사장이 겉만 보면 진짜 멀쩡하잖아요. 숯불갈비집 사장 같지 않고 카운터에 와이셔츠 입고 앉아서 책이나 보고…. 나는요, 맨 처음에 우리 사장이 부모 잘 만나서 가게 물려받은 사람이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한데, 알고 보니까 우리 사장이 원래 절에 들어가서 고시 공부하던 사람이래요. 몇 년 그렇게 하다가 포기하고 내려와서 주식으로 큰돈을 벌었다나 뭐라나. 암튼 그 돈으로 카페 운영하다가 거기서도 또 돈을 더 벌어서 차린 게 지금 이 숯불갈비집이래요.”

“아니, 진짜 제가 막차를 놓치면….”

“진만씨도 우리 사장이 홀서빙 도와주는 거 한 번도 못 봤죠? 우리 사장은요, 아무리 바빠도 카운터에서 일어나질 않아요. 바쁠 땐 알바들이 불판도 닦다가 다시 그 손으로 반찬도 내가고, 테이블도 정리하고, 그래야 해요. 진만씨도 이제 보름 가까이 되었으니까 알 거 아니에요? 우리 사장은 알바가 해야 할 일, 사장이 해야 할 일, 딱딱 구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손님이 기분 나빠하든 말든 아닌 건 때려죽여도 아닌 사람인 거죠.”

“저기 그러면 버스정류장까지 걸으면서 얘기할까요? 제가 진짜 택시비가 없어서요.”

“사실, 전 여기 딱 한 달만 일하고 그만둘 생각이었거든요. 진만씨도 해봐서 알겠지만 이 알바가 이게 장난이 아니잖아요. 숯불도 만들고 기름때도 벗겨내고 서빙도 하고…. 말이 알바지 무슨 조선시대 노비 같잖아요. 그러고 시급 천 원 더 얹어 받는 건데, 여름 되니까 진짜 못 해먹겠더라고요. 그래서 한 달 월급만 받으면 그다음 날 바로 때려치우려고 했는데 한 이십 일쯤 됐을 때던가, 사장이 저만 따로 부르더라고요.”

“저기, 걸음 좀 빨리해주셨으면….”

“손님들 뜸해졌을 때 저를 룸으로 부르더니, 대뜸 가족 중에 제 명까지 못 살고 일찍 돌아가신 분이 없냐고 묻는 거예요.”

“사장님이요? 상수씨한테요?”

“네. 그러니까 좀 이상하잖아요. 그전까지는 뭐해라, 뭐해라, 지시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우리 가족 얘기를 묻고, 그것도 일찍 죽은 사람이 있냐 없냐, 물으니까….”

“거, 왜 그랬을까요?”

“기분이 좀 더럽더라고요. 자기가 사장이면 사장이지, 알바한테 별소리를 다 한다고 생각했죠. 우리 집은 아버지가 좀 편찮으셔서 그렇지 부모님 두 분 다 멀쩡하게 살아 계시거든요. 할아버지 할머니도 여든 넘어서까지 사셨고…. 그래서 그냥 대답도 안 하고 멍하니 바라만 봤더니 사장이 더 이상한 말을 하는 거예요.”

“어떤…?”

“믿을지 안 믿을지 모르겠지만, 자기가 옛날부터 귀신을 좀 본다는 거예요. 사람들 어깨에 올라타 있는 귀신을. 사실 자기가 절에 들어간 것도 고시 공부하러 간 게 아니라, 그거 좀 안 보이게 해달라고 부처님한테 빌러 갔다는 거예요. 한데 절에 있으면서도 계속 신도들 어깨에 붙어 있는 귀신들이 보이니까 그냥 그대로 살기로 마음먹었다는 거예요. 자기가 카운터에만 앉아 있는 이유도 손님들한테 있는 귀신이 자기한테 넘어올까 봐 그러는 건데…. 사장이 그 귀신이 내 어깨에도 한 명 있다는 거예요. 중년 남자 귀신이….”

“네? 아니, 그게 무슨….”

“저도 처음엔 그냥 사장이 놀리려고 하는 소리인 줄 알았어요. 괜히 심심하니까 저러나, 하고 말았죠. 한데, 그 말이 자꾸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 거예요. 일할 때도 괜히 어깨가 무거워지는 거 같고. 그래서 막 들고 가던 숯도 쏟을 뻔하고. 그리고 더 결정적인 건 우리 외삼촌 중 한 분이 아파트 공사장 비계에서 떨어져 돌아가셨다는, 한 십 년 전 어머니가 했던 말을 기억해낸 거예요. 그러니까 더 죽겠는 거예요. 자꾸 뒤돌아보게 되고, 거울도 못 보겠고.”

“어어, 그럼 진짜… 우리 사장이….”

“제가 그렇게 일주일간 계속 잠도 못 자고 고생하다가 우리 사장한테 사정했다는 거 아니에요. 정말 제 어깨에 누가 있는 게 맞냐고? 그럼 이걸 어찌해야 하냐고?”

“그랬더니 사장이, 아니, 사장님이 뭐래요?”

“사장이… 그게 쉽게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시간이 좀 걸린다는 거예요. 자기가 저를 보면서 계속 기도를 드릴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눈앞에 있으라고. 어깨 위 귀신 때문에 네 인생이 지금까지 제대로 풀리지 않은 거라고.”

“좀 무시무시하네요. 그런 얘기는 진짜 어디 영화에나 나오는 건지 알았는데….”

“그래서 제가 여기서 일한 지 벌써 반년이 넘었잖아요.”

“그래, 좀… 괜찮아졌어요? 사장이 진짜 기도도 해주고?”

“기도하는지 안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근데 진만씨, 진짜 더 무서운 게 뭔지 아세요?”

“더, 더 있어요?”

“우리 갈비집 주방에서 일하는 아주머니 두 분도 다 어깨에 귀신이 있다는 거예요. 사장이 그 아주머니들한테도 그렇게 말해서 아주머니들도 벌써 이 년 넘게 여기서만 일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만두지도 못하고.”

“네?”

“이게 뭘 뜻하는지 아시겠죠? 세상에 진짜 이상한 사장이 많다니까요. 그러니까 진만씨도 조심하라고요.”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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