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잔치인 동계올림픽이 마지막 열기를 불태우고 있다.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큰 잔치를 치르는 집으로서의 자부심과 희열이 정점에 달해 있지만, 이제부터는 잔치 이후 감당해야 할 빚과 뒷수습을 냉정하게 생각해야만 할 시간이다. 60조원이 넘는 경제효과, 이 중 관광수익만 약 32조원. 관광수익만도 평창군민 1인당 7억원이 넘는다. 그러나 이는 지역경제에 효과가 엄청날 것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내려는 숫자 놀음에 불과한 것이다. 동계올림픽이 경제적 효과가 없다는 것은 이미 이전 개최지의 사후 결과에 의해 검증되었고 최근 개최지일수록 더욱 심각한 결과를 보였다. 우리만은 막대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기대는 내가 산 로또복권의 1등 당첨을 확신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많은 전문가가 만들어낸 예상이니 혹여 이 수치가 현실이 된다 치자. 그러면 과연 올림픽 전후로 발생한, 발생할 이 많은 수익은 어디로 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재정자립도 20%를 겨우 넘는 강원도의 주민이라면 막대한 인프라 예산의 투입 이전에 반드시 물어야 했을 질문이다. 명백한 사실은 평창군민, 강원도민에게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1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쓰길 기대하는가? 강원도 방문 관광객은 많은 비용을 지출하겠지만, 비용의 대부분은 값비싼 교통비가 차지하게 된다. 이미 이 현상은 가장 많은 이익을 창출해야 할 올림픽 기간에도 나타나고 있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해는 공유화하는 것이 자본과 권력 결탁의 속성이다. 정의라는 말에 절대적으로 어긋나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다. 사전에 인프라가 없는 지역에서, 올림픽이라는 짧은 이벤트는 이 결탁을 통해 절대다수 소시민의 잠재이익을 빼앗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일부 관료들이 산업자본, 금융자본과 결탁해 특권과 이익을 누리는 시대를 우리는 언제까지 용인할 것인가? 우리가 희열에 도취된 이 짧은 순간, 이미 그들은 사후 전략까지 계획하고 있을 것이다. 빠르면 이번 지방선거부터, 늦어도 내년부터 강원도의 정치 관료들은 올림픽 이후 활성화되지 않는 각종 시설의 활성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또 다른 대규모 개발사업을 위한 지원과 환경파괴를 위한 각종 규제완화를 요청할 것이다. 사전에 제시했던 뻥튀기된 수치와 이미 들어간 공적비용의 과오는 당연히 자신들과는 무관한 모르는 일이 될 것이다.

올림픽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던 가리왕산의 복원 약속은 여지없이 무너질 것이다. 곳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자연지역의 복원은 훼손 비용의 약 10배가 들어가며, 이렇게 막대한 비용을 쓴다 하더라도 기존 가치의 회복은 불가능하다. 보전의 잠재가치 측정이 불가능한 가리왕산 천연림 훼손에 2000억원이 넘는 돈을 썼으니, 제대로 된 복원을 위해서는 2조원 넘게 들여야 한다는 말이 된다. 강원도나 중앙정부는 애초부터 약속을 지킬 맘이 없었기에 올림픽 신청단계부터 시작했어야만 하는 복원과정을 진행하지 않았음은 물론 현재까지 계획조차 수립하지 않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는 이러한 복원을 진행해 본 사례조차 없다. 침체된 경제회복 명분으로 더 큰 파괴행위가 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한반도 현대사에서 가장 소외된 지역은 분명 강원도일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간의 소외가 이 시대 가장 큰 경쟁력인 깨끗한 환경과 아름다운 경관을 유지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과 함께 급격히 짧아진 시간적 거리로 그간 소외된 지역주민의 잠재자산까지도 자본에 넘겨주게 되었다. 정보가 부족한 대다수 국민은 정부를 신뢰하지만 역사 속 정부는, 특히 지방정부는 권력만을 행사하려 하며 약속을 지키지 않는 신뢰 없는 정부가 되어가고 있다. 이익은 권력을 가진 극소수가 챙기고 손해는 국민, 특히 강원도민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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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바르 로렌첸은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금메달을 땄다. 두 조 앞에서 올림픽 타이기록을 세운 차민규를 0.01초 차이로 제쳤다.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로렌첸은 기자회견에서 “앞에서 홈팀 선수가 올림픽 기록을 세워서 경기장이 무척 시끄러웠다. 그런데 내가 다시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다. 전광판에 내 기록이 나오자 경기장이 조용해졌다”면서 웃었다. “기분이 정말 쿨 했다”고 덧붙였다. 동계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평창과 강릉에는 ‘쿨한 선수’들이 넘쳐난다. 메달의 압박감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지만, 이를 이겨내는 방식이 찰나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 엄숙함과 진지함만은 아니다.

클로이 김은 여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에서 엄청난 기술을 연달아 성공시켰다. 반원통의 경기장에서 가볍게 날아올라 빙글빙글 온몸을 뒤집고 비틀어 돈 뒤 사뿐하게 내려앉았다. 순간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기술이지만, 클로이 김은 여유가 넘쳤다. 예선 경기가 열린 12일에는 경기 도중 트위터에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적었다. 결선이 열린 13일에는 3차시기를 앞두고 “아침에 샌드위치 다 안 먹은 게 후회된다. 괜히 고집부렸다. 이제야 배가 고파서 화가 난다(hangry)”고 적었다. 1차시기 93.75점으로 사실상 금메달을 결정지은 클로이 김은 ‘행그리’라고 적은 뒤 3차시기에서 완벽한 연기로 98.25점을 따냈다.

한국 여자 컬링 대표팀의 스킵 김은정(왼쪽)이 21일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예선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OAR) 팀과의 경기에서 스톤을 던진 뒤 김영미에게 스위핑을 지시하고 있다. 강릉 _ 연합뉴스

에스터 레데츠카는 평창 올림픽이 낳은 새로운 슈퍼스타가 됐다. 스노보드가 주 종목인 레데츠카는 알파인스키 여자 대회전에서 깜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설상 종목 사상 처음으로 알파인스키와 스노보드에서 메달을 노릴 수 있다. 레데츠카는 대회전 레이스를 마친 뒤 멍하니 전광판을 쳐다보고 있었다. “기록이 잘못 됐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관중들의 함성이 멈추지 않자 그제서야 팔짝팔짝 뛰며 좋아했다. 기자회견장에서는 고글을 벗지 않은 채 질문을 받았다. 이유에 대해 쿨하게 답했다. “메달을 딸 거라고 생각 안 했다. 이런 자리에 올 거라 생각하지 않아서, 화장을 못했다.”

마르셀 히르셔는 ‘스키 황제’라고 불렸다. 6년 동안 알파인스키 랭킹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올림픽 금메달이 없었다. 밴쿠버 대회 때 4위와 5위, 소치 대회 때 은메달과 4위를 했다. ‘무관의 제왕’이라 불렸다. 평창 올림픽에서 벌써 금메달 2개를 땄다. 알파인 복합과 대회전에서 소원을 풀었다.

오래 걸린 만큼 감격에 겨울 법도 했지만 히르셔는 쿨했다. “그동안 내가 4등을 너무 많이 했다”며 웃었다.

긴장을 즐기자는 말은, 사실 말만 쉽다. 긴장은 ‘배짱 약한 선수의 약점’이 아니라 누구나 겪어야 할 통과의례다. 긴장은 경험으로 무뎌질 수 있어도 집중과 훈련으로 이겨내는 대상은 아니다. 그래서 조금 더 쿨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전히 대표팀 선수들은 이겨도, 져도 운다. 쇼트트랙 여자 대표팀의 최민정은 500m 결승 실격 판정을 받은 뒤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방송 인터뷰에서 끝내 참았던 눈물이 믹스드존 인터뷰에서는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았다. 이상화도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레이스를 마친 뒤 눈물을 참지 못했다. “다 끝났다는 생각 때문에”라고 눈물의 이유를 밝혔다.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은 3000m 계주 금메달을 따고도 또 울었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을 두고 “스포츠는 장벽을 뛰어넘어 사람을 하나로 모으는 힘을 가졌다”고 평가한다. 스포츠는 딱 거기까지. 성적, 메달, 체면, 업적, 파벌 여기에 정치까지 얹어놓으면 그 무게만으로도 누구나 휘청거린다. 선전 중인 컬링 여자대표팀도 경기가 끝날 때마다 눈물을 보인다. 짐 덜고 더 많이 웃을 수 있었으면. 영미도, 영미를 부르는 은정도.

<이용균 ㅣ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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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성향 방송인인 폭스뉴스의 로라 잉그램은 NBA 선수 르브론 제임스가 못마땅했나 보다. 덩치 큰 흑인 농구 선수가 도널드 트럼프의 가치관과 정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비판하는 모습을 참아주기 힘들었던 것 같다. 잉그램은 방송에서 제임스의 말이 문법에 맞지 않고 지적이지도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입 닥치고 드리블이나 해.” 제임스는 스타답게 반응했다. “전 입 닥치고 드리블만 하진 않을 겁니다. 전 이 사회와 청소년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존재거든요. 그녀 덕분에 좀 더 각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 이름이 뭔지 모르겠지만 고맙네요.”

르브론 제임스는 스테펀 커리와 함께 현재 NBA를 대표하는 선수다. NBA 정규리그 MVP를 네 차례 차지했고, 올림픽에도 출전해 두 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제임스가 고향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떠나 마이애미 히트로 옮긴다고 발표한 텔레비전 쇼가 75분간 생중계될 정도였다. 하지만 슈퍼스타이자 갑부인 제임스조차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인종문제에서 자유롭진 않았다. 지난해 제임스의 로스앤젤레스 저택 정문에는 ‘깜둥이’라는 스프레이 낙서가 휘갈겨져 있었다. 제임스는 낙서를 본 뒤 “아직 할 일이 많다고 느꼈다”고 돌이켰다. 제임스의 동료인 케빈 듀런트도 거들었다. “전 농구에서 모든 걸 배웠습니다. 사람들의 힘과 용기를 북돋워야 한다고. 그래야 위대한 팀을 만들 수 있다고. 하지만 지금 우리 나라라는 팀에는 위대한 코치가 없습니다.”

이상화가 18일 강릉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일본 고다이라와 태극기를 들고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올림픽은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4년간 연마한 실력을 한 자리에서 선보인다. 스케이터들의 역주에 내 허벅지 근육이 꿈틀거린다. 스노보드 선수의 점프를 보면 가슴이 뻥 뚫린다. 맨몸의 선수가 시속 130㎞의 썰매 위에서 질주하는 모습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 아찔하다. 종목명, 규칙, 선수 이름을 몰라도 상관없다. 인간이 만든 경기규칙, 최고의 기술력을 활용한 장비, 혹독하게 다져진 육체를 활용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래서일까. IOC는 선수들의 ‘정치적 표현’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축구 선수 박종우가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쓰인 종이를 펼쳤다가 동메달을 박탈당할 뻔하거나, 평창 동계올림픽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골리 맷 달튼이 이순신 장군이 그려진 마스크를 쓸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 ‘정치적 진공’은 없다. 올림픽 역시 온갖 이데올로기가 충돌하고, 정치 전략이 맞붙고, 사회적 욕망이 들끓는 공간이다. 평창 동계올림픽도 그렇다. 대회 초반 미국, 북한 사이에 벌어진 치열한 외교전 역시 한 사례다. 한국 대표팀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이전에 ‘한국인’이라고 보기 힘들었던 이들이 한국 대표 선수로 나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이애슬론의 티모페이 랍신, 루지의 에일린 프리쉐는 어느 모로 봐도 ‘외국인’이지만, 태극 마크를 달고 한국을 대표해 뛴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에서 뛰며 역사적인 올림픽 첫 골을 넣은 랜디 그리핀 희수는 한국인 어머니,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났다. 한국선수단 146명 중 이들 같은 ‘뉴 코리안’은 21명으로 전체의 14%에 달한다. 캐나다 교포인 남자 아이스하키팀 감독 백지선은 “내 눈엔 그들 모두 한국을 대표하는 한국인이다. 피부색이나 눈 색깔이 다를지는 몰라도 그들은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어를 말할 줄 알고, 동료들의 존경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번 평창 올림픽은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 등에 영향을 미치리라 짐작한다”고 말했다. 피를 나눴지만 얼굴도 가물가물한 친척보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친구가 나를 더 잘 이해하는 법이다. 우리를 대신해 노력하고, 우리의 자부심을 높이는 사람이라면, 그의 인종이 무엇이든 ‘한국인’이다. 한국의 이상화,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의 우정은 최고 수준의 ‘지음(知音)’에게는 국적이 거추장스러운 딱지일 뿐임을 보여준다. 국가, 민족, 인종의 경계는 평창에서 흐릿해지고 있다.

이번 올림픽은 성소수자 인권운동 측면에서도 큰 전기가 될 만하다. 평창 올림픽 참가 선수 중 커밍아웃한 성소수자는 미국 남자 피겨 선수 애덤 리펀, 네덜란드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이레인 뷔스트 등 13명에 달한다. 이는 역대 최다 수치다. 미국의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 거스 켄워시는 방송 카메라 앞에서 남자 친구와 입을 맞추는 ‘역사적 장면’을 연출했다. 2014 소치 올림픽에서 러시아의 반동성애 정책이 이슈가 되었음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역사는 느리지만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평창은 보여준다.

르브론 제임스는 말했다. “나는 운동선수 이상의 존재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해도 좋겠다. “올림픽은 체육경기 이상의 행사다.”

<백승찬 토요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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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6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미국 노동계에 막대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소송 건을 다룰 예정이다.

일명 ‘Janus vs. AFSCME(야누스 대 미국 주·군·시 공무원연맹)’라는 소송으로, 이는 친기업 세력이 구상해낸 공공노조를 파괴하는 무기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이 소송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등에 업은 친기업 세력이 노동계를 공격하기 위해 써온 다양한 전략 중에서도 노조에 가장 타격이 클 것으로 분석된다.

소송의 시작은 일리노이주의 공무원이 노조 가입을 거부한 것이었다. 공무원들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 이미 오래전에 결성되어 있던 공공노조 단체협약의 보호 덕분에 개인이 노조에 꼭 가입하지 않아도 이미 체결된 단체협약의 혜택과 보호는 받게 되어 있기 때문에, 정치적 목적으로 쓰이는 비용을 제외한 조합비를 내도록 되어 있는 미국 현행법에 도전을 한 것이다.

‘노조원 개개인이 동의하지 않는 한 노조가 조합비를 받을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이 소송의 요지이다.

현재 미국 연방대법원에 재직 중인 9명의 대법관 중 5명이 친기업적이며 보수 성향이다. 미국의 노조 가입률은 공공부문의 경우 35%로 민간부문의 6.5%보다 약 5배 높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오면서 노조 가입률은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어 일각에서는 벌써 노동운동의 종말론이 거론될 정도이다. 그런 상황에서, 대법원이 조합비 납부 여부를 노조원 개개인이 선택하도록 하는 판결을 내릴 경우 공공노조의 조합원 가입률이 크게 줄어들게 될 것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공노조의 조합원 가입률이 낮아지면 노동운동 전체가 침체되고 정치력도 약해진다. 이미 신파시즘으로 접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고 있는 미국에서 이미 취약해질 대로 취약해진 노동운동은 또 한 번의 큰 위기를 맞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등에 업은 자본의 공격은 거침없고 맹렬하다. 사법부만이 아니라 입법부와 행정부에서의 노동탄압이 이례없이 높은 강도로 추진되고 있다. 미 상하원에는 이미 노동 개악법이 제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행정기관인 ‘노동관계위원회(National Labor Relations Board)’에서도 다양한 시행법을 개악하여 노조의 교섭권을 침해하고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을 불가능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이런 반노조 움직임은 트럼프 정권이 자본에 주는 신호탄이다.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의 단체교섭은 훨씬 더 대립적이 되어가고 있고, 미조직 사업장에서는 사측의 감원, 비용 절감 등 이윤 추구를 위한 노동비 삭감이 거침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자본의 노동자 착취 강도가 점점 세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절망뿐인 것만은 아니다. 최근에는 미국 5대 일간지 기자들이 압도적인 표차(찬성 248, 반대 44)로 노조에 가입했다. 136년간 미조직 사업장이었던 반노조 언론사에서 이례적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필자의 노조, 미국간호사노조(National Nurses United)에서도 지난 1년간 11개 사업장에서 3000명이 새로 노조에 가입했는데, 이례적으로 높은 찬성 투표율을 보였다. 신파시즘의 신호탄으로 쏘아올리는 노동탄압의 움직임들이 오랏줄이 되어 자신들의 목을 죄어 올 것이라는 것을 간파한 노동자들이 노조를 대안으로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다시 형성되고 있는 듯하다.

<로이 홍 | 미국간호사노조 조직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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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세일즈’ 방문 일정과 ‘국가적 총력 결집’ 입장이 발표됐다. 관가에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설까지 나오고 있다. 위헌 논란까지 일으킨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의 이면합의조차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탈원전 탓에 사우디 원전 계약을 놓쳤다’는 원자력계의 공세에 떠밀린 모습이다.

UAE 원전 수출을 한번 되돌아보자. 2009년 이명박 정부의 UAE 원전 계약은 경쟁국 대비 절반 수준 덤핑가격, 국내 금융기관의 자기자본까지 바닥낸 28년간 100억달러 저리 차관, 군부대 파견과 각종 이면합의로 한국을 중동의 ‘호구’로 만들었다. 이런 터무니없는 지원은 향후 정상적 조건에 후속 원전을 수출할 경우 정당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UAE는 지난해 발표한 2050년까지 장기에너지 계획에서 추가 원전 건설이 없음을 확인했다. 결국 원전 계약을 내세워 진짜 목표였던 한국의 군사원조를 끌어낸 UAE의 전략에 정부가 철저히 놀아난 셈이다.

사우디는 벌써부터 한국 측에 UAE 원전 수준의 ‘선물’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UAE와 마찬가지로 원전 수주를 에너지 확보가 아닌 다른 목적의 활용 수단으로 삼겠다는 의도도 선명하다.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는 적대관계의 시아파 맹주 이란의 우라늄 농축에 대항해 우라늄 농축으로 맞불을 놓겠다고 밝혀왔다. 원전 수주전은 우라늄 농축의 협상수단일 뿐 원전 자체가 관심사항이 아니다. 핵확산 우려를 낳는 우라늄 농축은 원자력협정을 추진하는 국가의 동의가 절대적인데, 이런 결정을 할 수 있는 국가는 미국, 러시아, 중국 정도다. 실제로 사우디는 이들과 물밑협상을 진행해왔다. 이 때문에 한전조차 이미 지난해 초 사우디를 포기했다.또 다른 문제는 시리아 내전 등 격화되는 수니파와 시아파 간 분쟁이다. 우라늄 농축을 추진하는 사우디의 원전 수주전에 뛰어들 경우 성사 여부와 무관하게 이란의 반발이 우려된다.

이란은 최근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이란 선수단에 대한 스마트폰 지급 금지 조치만으로도 국가적 차원에서 반발했다. 이란은 가스 매장량 세계 1위, 석유 매장량 세계 4위의 나라로 이미 한국가스공사 및 국내 정유사들과 다수의 에너지 수출 계약을 체결했거나 협상 중이다. 사우디 원전 수주전은 UAE 사례처럼 빈 쭉정이 계약에 호구가 되는 문제를 넘어 중동분쟁에 휘말려 국가 에너지 수급까지 타격을 입힐 수 있다.

호구 계약이든, 중동분쟁이든 ‘원전만 팔면 된다’는 원자력계의 선동은 정부와 국민을 오도하고 국가경제에 큰 손실을 입힌다. ‘사우디 원전 수출에 국가 총력을 결집한다’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 설정은 그 성사 여부를 떠나 이명박 정부의 과오를 확대 재생산하게 만든다. 정부는 떼쓰는 원자력계를 어설프게 달랠 것이 아니라, 가짜뉴스에 대한 교차검증과 정부를 오도하는 세력에 대한 준엄한 조치로 국정을 바로 세워야 한다.

<석광훈 | 녹색연합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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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빛나는 사람은 많다. 그중에는 4위 선수도 있고, 2위 선수도 있으며, 예술감독도 있고, 자원봉사자도 있고 다른 민족, 다른 국가들의 선수도 많다.

올림픽에서의 아름다운 사연은 1등들의 사연으로 가득 채워지지 않는다. 열대국가에서 온 한 명으로 이루어진 선수단부터 시작해서 우승을 0.01초차로 놓친 아쉬움에 가득 찬 선수, 이곳에 와서 갑자기 충수돌기염을 앓고 수술한 뒤 경기에 참여한 선수, 또다시 챔피언을 이어간 팀들의 우정, 민족의 화해 등은 모두 감동적인 소식이다. 저마다 지닌 온갖 사연을 갖고 평창을 찾아와 자신의 찬란한 인생 한순간을 쏟아붓고 간다. 그리고 그 모든 사연은 같은 무게로 아름답다.

차민규가 19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레이스를 마친 뒤 기록을 확인하며 만족해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오로지 금메달을 딴 사람들만 영광을 누리는 올림픽의 시대는 끝나고 있다. 1등만 살아남는다는 한국에서의 통설은 이제 부끄러운 과거 자화상의 잔재로 사라져야 한다. 1등은 여러 등수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그가 1등, 세계 최고라는 사실은 단지 잠시일 뿐이다. 선수들의 말처럼 기록은 언제나 깨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1등의 영광은 1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 추억, 팀워크, 우정, 그리고 만남 등에서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진실을 알지 못하는 피해의식을 가진 엄마는 ‘1등 아니면 죽는다! 우리 모두!’라고 협박하지만 그것은 상처의 흔적, 트라우마로 인해 왜곡된 어른의 인격, 파탄을 예고하는 흉터일 뿐이다. 4등, 4위도 1등보다 아름다울 수 있고 진정 그가 챔피언일 수도 있다.

실제로 우승경험이 많은 선수를 인터뷰해온 스포츠 심리학자 매슈 사이드는 선수들이 맛보는 특별한 행복감은 단지 ‘자신이 최선을 다해서 무엇인가를 끝까지 해내는 기쁨’에서 온다고 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잠시 기억해주는 것보다 더 오래가는 기억은 ‘내 자신의 몸과 영혼에 각인된, 나 자신이 스스로의 한계를 이겨냈다는 승리감’이라고 했다.

조정을 소재로 한 <안톤의 여름>이라는 청소년 소설에 대한 서평을 쓴 이에리사씨는 “챔피언이 된다는 것은 꼭 누군가를 경쟁에서 물리쳐,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모두가 챔피언이다”라고 했다. 누군가와의 경쟁이 아니라 자신을 이겨내고, 자신이 되고픈 새로운 자신을 창조하는 작업을 해냈다는 성취감, 이것이 인생의 큰 자산이다. 이런 심리적 상태에 도달하면 사실 타인과의 승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아쉽게 지난번 올림픽에서 2위를 한 김연아와 이번 올림픽에서의 이상화 선수가 하염없는 눈물을 흘린 것이 1등을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한다. 자신의 인생 중 한 시대를 풍미했던 수많은 시간들에 대한 눈물이었다고 한다.

정신분석가 마이클 아이건은 “성취는 때때로 성취자를 죽인다”고 했다. 단지 1등을 해야만 한다는 타인의 동기에 억눌려 1등을 성취하는 사람들을 향해 말한 것이다. 그간 우리는 이런 안타까운 희생을 청소년, 청년들에게서 보아왔다.

여전히 한국에는 이유 없는 1등에 목을 매고, 또 1등을 한 뒤에는 허무와 공허감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다. 자학과 거짓 자기로 만들어진 성공 안에 들어있는 것은 불행뿐이다. 행복은 그렇게 오지 않는다.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뉴로부터 시작해서 많은 사람들이 행복은 단지 성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도정에서 온다고 한 바 있다.

베일런트의 하버드 졸업생 종단연구를 포함해서 행복에 대해 연구하는 모든 학자들이 ‘나 홀로 1등’ ‘나 홀로 부자’가 행복하기보다는 ‘다 함께 친구’ ‘모두와 함께’가 더 행복하다고 하는 소리를 우리는 주의 깊게 잘 들어야 한다. 잘났지만, 외롭고 불행한 병적 자기애의 사회에서 평범하고 겸손한 사람들의 사소한 사회가 더 행복하다. 그런 점에서 박원순 시장의 사회적 우정 패러다임은 행복 전환의 중요한 제기이다.

우정이 넘치는 평등한 사회가 싸가지 없는 불평등한 사회보다 행복하다. 재벌회사 사장님 김씨도 동네에서는 아저씨이고, 그 회사원 이씨도 동네에서는 그냥 아저씨이다.

<김현수 |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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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은 ‘역사적’인 의미를 획득할 것인가. 폐회식까지는 며칠 더 남아있기 때문에 이 ‘역사적’이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한정적인 수사에 지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일말의 기대를 걸고 싶다. 특정 국가 올림픽을 통하여 그 이전과 이후를 완전히 가르는 새 지평을 연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그래도 1964년의 도쿄 올림픽이나 2012년의 런던 올림픽은 세계가 일본과 영국을 어떤 식으로든 달리 보게 만든 사건으로 기록된다.

우리의 기억도 선명하다. 88서울 올림픽과 2002 월드컵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규모 이벤트를 치르기 전과 후로 한국 사회를 일정하게 판별해 볼 수 있었다. 거대한 중산층 문화의 형성과 새로운 세대의 활기찬 등장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평창 올림픽도 그러한 분기점으로 기억될 것인가. 숱한 논란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난 9일 이후 수많은 선수들이 흘린 땀방울과 그 이상의 사람들이 열렬히 터트린 함성의 무게를 직관적으로 판단하건대 88이나 2002만큼은 아니어도 2018이라는 숫자 역시 우리 사회의 새로운 분기점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세계적인 잔치를 어렵사리 잘 마무리했다는 판단을 서둘러 내리기보다는 좀 더 냉정하게 이번 올림픽 과정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집합적인 문제를 깊이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요컨대 이번 올림픽이 정치적으로 악용된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 말이다. 사실 나는 이 질문을, 올림픽 개막 전, 어느 외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받은 적 있다. 그 기자는, 남북 단일팀 및 북측 응원단의 참가 등에 대한 국내 일부 여론을 거론하면서, 순수한 올림픽을 정치에 이용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단호히 반대했다. 도구적 차원의 기술 수단으로서 정치라면 그런 면이 있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더 절박하다고 말했다. 소설가 한강은 지난해 추석 연휴 때 ‘뉴욕타임스’에 우리의 상황을 기고한 바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실험하고 미국이 북한을 선제 타격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와도 우리가 평온한 듯 고요하게 일상을 유지하지만 그러나 “이러한 고요는 전쟁의 공포를 극복해서가 아니라 수십년 동안 축적된 긴장과 공포가 우리 안에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썼다. 그렇게 고요한 긴장, 그러나 속으로 멍들어가는 팽팽한 불안 속에서 올림픽이 개막되었으니 한번쯤은 그 긴장을 풀고 ‘평화’를 외치는 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그 유명한 나치 올림픽이나, 전범 국가가 패전 희생자 코스프레하는 도쿄 올림픽이나 강력한 군사력과 극단적 이념 대결을 펼친 모스크바와 LA 올림픽, 대국굴기 중화주의의 베이징 올림픽과 차르 푸틴의 대유라시아 퍼포먼스인 소치 올림픽과 비교할 때, 일단 잠시라도 군사적 긴장을 늦추고 대화를 해보자는 이번 올림픽을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

일단 북·미 간 군사 행동을 쌍중단하고, 여러 채널을 가동하여 올림픽 이후에도 긴장보다는 대화의 물꼬를 트자는 것은 단순한 외교가 아니라 거의 절박한 몸부림이다. 한 사회의 복합적인 갈등을 헤아리지 않고, ‘순수한 스포츠’라는 기계로 납작하게 눌러서, 스포츠를 정치에 이용 또는 악용한다는 의견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북한을 이롭게 한다고? 그런 의견도 있다. 지난 10여년 동안 북한이 핵개발을 추진하면서 일관되게 보여준 일방통행식 행동을 보면 그러한 의견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단일팀을 비롯한 거의 모든 대화와 협상이 불발에 그쳤을 경우를 생각해보자. 연일 극우 언론이나 일부 고약한 인터넷 여론은 긴장과 파국을 노래하고 북한도 때마침 그들의 건군절에 미사일 열병식을 위협적으로 치르고 미국 또한 이른바 ‘코피 터트리기’ 전술을 당장이라도 벌이겠다는 식으로 사태가 전개되었을 경우를 상상해보자.

아니 이것은 상상이 아니라 우리가 몇 해 동안 늘 겪은 일상이다. 그 일상화된 긴장, 내면화된 대립, 언제든지 군사적 충돌이 벌어져도 응당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니었냐며 체념할 수밖에 없던 상태에서 올림픽 개회식을 치렀다고 상상해보자. 우리는 최민정의 시원한 질주나 이상화의 눈물을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마침 설날 아침에 윤성빈 선수가 금메달을 땄는데, 만약 동북아를 둘러싼 모든 군사적 언어가 날카롭게 대립하는 중이었다면 설날의 금메달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 어딘가에는 실질적인 공포와 불안의 냉기가 일렁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올림픽 이후, 동북아 상황은 예전처럼 돌아갈 거라고 한다.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지만 설령 그 가능성이 높다 해서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가? 단일팀 같은 이벤트 한두 번으로 평화가 오겠냐고 한다. 당연히, 한두 번의 스포츠 이벤트로 무슨 평화가 오겠는가. 그러나 그것을 위하여 동북아의 정치, 군사, 외교의 모든 채널이 다른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돌아간다.

수면 아래의 수많은 채널이 가동된 결과 지난 18일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북핵 해결을 외교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함께 일해야 할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당신(북한)이 나에게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기를 귀 기울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포츠에 내재된 힘이 어떤 변화된 감수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스포츠에 내재된 미와 힘이 수없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일들이 신중하게, 그러나 중단 없이 시도되어 훗날 북한 선수단이 내려오는 게 단신 뉴스가 될 만큼 자연스러워지기를 나는 상상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때의 우리 일상은 긴장 속의 안정이 아니라 진실로 평화로운 안정을 유지하게 되었다는 증거가 된다. 그리하여 다시 강조하건대, 이번 올림픽은 ‘평양올림픽’이 아니며 ‘종북올림픽’이 아니다. ‘종남올림픽’이며 ‘평화올림픽’이다. 진실로 그렇게 될 경우 2018평창 올림픽은 88서울 올림픽이나 2002 월드컵 이상의 역사적인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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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니면 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왔던 유행어다. 한 선배교사는 이 유행어를 학생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생활에 쓰는 것이 걱정스럽다고 했다. 이 말에 ‘혼자 잘살면 된다’ ‘나만 피해보지 않으면 된다’는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투운동에 동참하는 글 중에 저명한 남성이 여성에게 부적절한 행위를 시도하려 했으나 당시 동석한 사람 중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고, 나중에도 모르쇠했다는 사례가 있었다. 검찰, 문단, 극단, 기업 등 우리 사회 여러 조직에서 일어난 권력관계에 기반한 폭력과 집단의 대응에서 비슷한 양상이 보인다. 피해자는 철저히 혼자다. 주변 사람들은 방관자나 동조자가 된다. 왜 이런 일이 계속될까. 여러 원인 중 하나는 선한 사람들이 침묵하는 방관자적 문화다.

현 사회의 모습은 학교의 다양한 학교폭력 고리와 유사하다. 공동체 형성의 가장 중요한 때인 새 학기를 앞두고 걱정과 설렘 속에 학교 안을 본다. 어떤 학급에서 학생 간 따돌림 같은 괴롭힘이 일어나거나 학생들이 혐오표현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다면 학급 공동체가 깨져 있거나 학교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공적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 주된 원인이다. 영화 <우리들>에서처럼 학급에서 소위 잘나가는 학생이 여러 이유를 붙여서 상대적으로 약한 학생을 괴롭힐 때 다른 학생들의 반응이 어떠한가를 보면 괴롭힘의 고리가 보인다. 가해자의 잘못을 지적하고 피해자를 방어해주는가.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다. 다음은 자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수가 동조자나 방관자가 된다. 나만 아니면 되는 분위기로 흐른다. 피해자는 가해자만큼 동조자나 방관자 때문에 외롭고 힘들다.

영화 <우리들> 스틸 이미지

학급 공동체가 서로를 존중하고 누구나 자신을 표현하는 데 안전함을 느끼는 곳이라면 어떨까. 한 학생이 부당하게 다른 학생에게 상처를 주려 해도 다수가 그만하라고 한다면 괴롭힘을 계속할 수 있을까. 아니다. 피해자가 멈추라는 표현을 하고 다른 학생 한 명이 멈추라고 한다면 가해자는 움찔한다. 그리고 다른 한 명, 또 한 명이 나서면 힘을 발휘한다.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은 쉽지 않으면서 쉽다. 우리의 문제로 함께해야 하므로 많은 공을 들여야 하고, 함께하기에 힘을 발휘한다. 교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3월부터 평화롭고 안전한 학급 공동체를 학생들과 만들어가야 한다. 강함과 약함의 관계권력이 학급에 자리 잡지 못하도록, 다름과 자신다움이 비난이나 조롱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부당한 일을 당할 때 믿고 말할 수 있도록. 뻔한 말이지만 강력한 힘을 가진 말이 학급의 유행어가 된다면 가능하다. 가령, 우리 모두는 있는 그대로 존귀하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용기를 내자. 그 친구의 일은 우리 모두의 일이다. 나만 아니면 되는 일은 세상에 없다. 학생들이 자꾸 말하게 하고 보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 학생들과 학급 공동체 생활규칙을 만들고 일관성 있게 지키는 경험을 모두 가져야 한다. 교사가 공동체 생활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구성원을 존중하고 교육적 권위를 인정하는 학교문화와 학부모의 지지도 밑바탕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악한 행동이 계속되는 데 필요한 것은 선한 사람들의 침묵이다. 내가 아니라서 침묵하면 앞으로 더 이상 나를 위해 말해줄 이가 아무도 남지 않는다. 다행히 학교에는 아직 희망이 있다. 학교가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하지만 학생들은 못된 어른들처럼 염치가 없지는 않기에.

<손민아 | 경기 전곡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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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이들의 마음을 이처럼 따스하게 해준 한·일전이 또 있었을까. 18일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이상화가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小平奈緖)와 다정하게 포옹하며 격려하는 모습은 올림픽 정신을 일깨우는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36초94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한 고다이라는 2위로 경기를 끝낸 뒤 눈물을 쏟아내던 이상화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잘했다. 여전히 너를 존경한다”고 위로했다. 둘은 어깨동무를 한 채 각자의 국기를 흔들며 트랙을 돌았고, 관중들은 박수와 환호로 격려했다. ‘승패를 떠나’라는 관용구가 절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이상화가 18일 강릉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일본 고다이라와 태극기를 들고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2018.02.18 / 강릉 _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이상화와 고다이라는 주니어 선수 때부터 함께 겨루면서 우정을 쌓아왔다. 늘 긴장을 놓지 않고 도전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준 라이벌이자 친구였다. 둘이 만나면 한국어,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일본 TV프로그램에 출연한 고다이라는 경기 후 이상화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를 묻자 또렷한 한국어 발음으로 “‘잘했어’라고 말해줬다”고 했다. 경기 직후 기자회견에서 고다이라는 “2014년 서울에서 열린 월드컵 대회에서 우승한 직후 네덜란드에 가야 했는데 이상화가 공항 가는 택시비를 대신 내줬다”고 했다. “내가 1위를 차지해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는데 끝까지 친절하게 대해줬다”고 회상했다. 이상화는 “잘했건, 못했건 서로를 늘 격려해줬다. 나오는 내게 남다른 스케이터”라고 했다.

스포츠 역사를 돌이켜 보면 ‘한·일전’은 민족적 자존심이 이입된 감정대결로 치달았던 적이 많았다. 스포츠 경기가 인터넷 공간의 악플 대결로 비화하는 일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화-고다이라의 깔끔하고 우정 어린 대결에는 양국 누리꾼들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있다.

한·일 간에는 영토문제와 과거사를 둘러싼 공방이 지속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채택했던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이 올해로 20주년이 되지만 양국관계에는 일본군 위안부, 독도 영유권 등을 둘러싼 냉기류가 풀릴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두 나라가 이상화-고다이라처럼 넉넉하게 우정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기를 고대해 본다.

<서의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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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매서운 한파가 한반도를 덮쳤다. 한강이 연일 꽁꽁 얼어붙었다. 2010년 12월 말부터 2011년 1월 말까지 한반도에 밀려든 북극의 강력 한파로 약 40일간 남한의 평균기온이 영하에 머물렀던 때와 무척 흡사하다. 지난 우면산의 악몽이 떠오른다. 올여름 집중호우라도 발생하면 예년과 달리 토사 관련 재해가 예사롭지 않을 것이라 직감된다. 2011년 여름에 발생한 우면산 산사태는 당시 기록적인 긴 장마와 집중호우, 화강암류인 북한산 등과 달리 풍화에 약한 편마암류로서 토심이 깊은 지질구조, 산꼭대기 부근 시설물 설치에 따른 인위적인 요소가 가미되면서 비롯된 것으로만 알려져 있다. 그토록 끔찍한 사고의 전조였으며 사전에 위험성을 경고한 또 다른 주요 원인에 대해선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경기도 화성 전곡항에서 주민들이 한파로 어죽은 숭어를 얼음을 깨고 건져내고 있다. 우철훈 기자

한강과 임진강의 하구에서 오랜 기간 조사를 벌인 필자는 하천 관리에서 전혀 주목하지 않았던 이상 기후변화에 따른 놀라운 현상을 발견했다. 우면산 산사태가 발생한 바로 그 즈음에 한강 하구 주변의 자유로 제방과 교각 하부에 있던 흙더미가 무너져내려 큰 위험에 노출된 것이다.그때 한강 하구에서는 우면산에서와 같은 심각한 집중호우나 수위 상승도 없었다. 그럼에도 우면산 산사태와 같은 시기에 한강 하구의 흙더미가 유실된 데 대한 원인을 조사한 결과, 2011년 초의 강력 한파와 연관성이 깊다는 것을 처음 확인했다. 겨울철이 되면 보통 땅이 언다. 문제는 삼한사온이 사라지고 올해와 같이 강력 한파가 한동안 지속되면 우면산과 같이 토심이 깊은 곳이나 자유로와 같이 강 주변을 흙으로 쌓아 올린 강둑은 깊숙한 땅속까지 얼어 부풀어 오른다. 추위가 극심할수록, 한파가 지속될수록 동결토심(凍結土深)이 깊어졌다가 해빙기에는 전부 녹아 흩트러진다. 이런 상태에서 여름철 집중호우를 만나면 깊은 땅속 부분까지 쉽게 씻겨 내리는, 토사재해에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궁극적으로 겨울철 강력 한파의 영향은 토사재해의 잠재적 위험성을 잉태한 채 여름철까지 지속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한강 하구와 같은 경우는 평상시 수위가 자유로운 이른바 자유수면(自由水面)이던 강물이 강력 한파 때는 수면 전체가 결빙해 마치 밀물 때 큰 압력을 받는 수도관과 같은 형태로 바뀐다. 이로 말미암아 밀물이 시작되면 결빙층 아래에서는 얼음이 부서질 때까지 일시적으로 압력이 평상시보다 크게 높아져 제방과 교각의 밑둥치 흙을 세게 깎아내린다. 조석간만의 차가 커 물살이 빠른 이곳은 부서진 큰 유빙이 교각부와 제방에 충돌해 2차 피해를 더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여름철 큰 홍수가 발생하면 보통과 다른 피해를 겪을 수도 있다.

여름철 토사재해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는 강력 한파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강력 한파의 영향이 미칠 산지나 하천에서 올 여름철 토사관련 재앙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비무환 자세로 관계기관에서는 안전진단과 대책 수립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이삼희 |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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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무가 도끼에 심하게 찍혀 있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아이고 저 나무 무지 아프겠다,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떠올린다. 우리들에겐 참 너무 평범하고 진부한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생각들이 현생인류의 조상인 크로마뇽인에게서 일어난 두뇌혁명의 산물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두뇌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크로마뇽인 이전의 인류인 네안데르탈인 두뇌는 서로 연결이 안된 채 놓여 있는 수많은 컴퓨터들처럼 두뇌의 방들이 서로 연결이 안된 채 병렬되어 있는 구조였다고 한다. 그런데 크로마뇽인으로 오면서 이 두뇌의 방들이 뉴런이라는 신경세포에 의해 자유롭게 연결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두뇌구조의 변화가 네안데르탈인에게는 불가능했던 새로운 사고를 가능하게 했다. 나를 다루는 두뇌의 방과 나무를 다루는 두뇌의 방이 자유롭게 연결되기 때문에 크로마뇽인의 후손인 우리는 나무를 나처럼 상상하고 나무의 상처와 아픔에 공감할 수 있다. 이 공감은 연대와 관계를 만들어낸다. 상대방을 나처럼 상상하고 공감하여 연대하고 관계 맺는 능력, 그것이 크로마뇽인의 두뇌혁명이 가져온 새로운 사고이자 새로운 힘이었다. 네안데르탈인은 두뇌구조상 이러한 공감과 연대의 능력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본능이 허용하는 범위 이상의 집단을 형성할 수 없었고, 그러한 한계 때문에 인류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에 반해 크로마뇽인은 두뇌혁명이 가져온 공감과 연대의 능력으로 수천 수만 수백만의 집단을 형성할 수 있었고, 마침내 오늘날에는 60억이 넘는 사람을 자신과 같은 존재로 상상하여 인류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고, 인류문명을 이룩해냈다.

현생인류에게서 일어난 두뇌혁명, 그것이 가져온 공감과 연대의 능력이 오늘날의 사회와 문명을 이루어낸 기본 동력이었다는 말은 뒤집으면, 한 사회의 가장 심각한 위기는 그 구성원들이 공감과 연대의 정신을 버리고 본능적 욕망의 집단으로 한없이 분열되어 나갈 때, 그렇게 현생인류의 본질을 망각하고 네안데르탈인을 향해 무한히 퇴화해 가는 증후군이 만연했을 때 온다는 걸 뜻하기도 할 것이다. 지난 세월호 사태 때 우리는 세월호 가족들을 시체팔이로, 국민을 개돼지로 매도 비하하는 지도층 인사들을 보며 한국사회에 ‘네안데르탈인 증후군’이 얼마나 심각하게 만연되어 있는가를 뼈저리게 느꼈었다. 그리고 “적어도 네안데르탈인 증후군 중증인 자들을 우리 사회의 지도자로 두어서는 안되겠다”는 국민적 자각이 촛불집회로 분출되어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하지만 정권교체가 곧 ‘네안데르탈인 증후군’의 말끔한 치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치유의 시작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왜 이렇게 한국사회에 ‘네안데르탈인 증후군’이 만연하게 되었는가를 곰곰이 따져보는 일일 것이다.

우리 세대가 대학에 다니던 1970년대에는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의 상당수가 농촌 출신이었다. 산업화가 급속히 진전되는 과정에서 농촌 대가족의 아버지는 장남이나 아들 중 공부 잘하는 아이 하나를 선발하여 도시의 대학으로 유학을 보냈다. 그리고 딸들은 공장으로, 다른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지어 대학에 간 아들을 뒷받침하도록 하였다. 그렇게 해서 대학에 온 아들은 누이와 형제들에 대해 부채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 아들에게 구로공단 여공들의 파업이나 농민들의 자살이 남의 일로 보일 수가 없다. 대학생과 노동자들의 연대, 대학생과 농민의 연대로 확산되어 간 1970,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정서적 기반은 바로 이 대가족의 유대감에 있었다.

그런데 대학을 나온 아들은 그와 비슷한 여성과 결혼하고, 공장에 다니던 딸 또한 비슷한 배우자와 만나 살다 보면 서로 생활문화가 달라져 소통이 뜸하게 되고, 대가족의 유대감은 사라져 계급 계층적 구별짓기가 그 자리를 대신하기 마련이다. 그 시작이 바로 1990년대 초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1970, 80년대에 사회적 구심력으로 작용했던 대가족의 유대감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강남’으로 상징되는 계급 계층적 구별짓기가 사회의 전면에 등장하여 맹위를 떨치기 시작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아이들의 왕따와 학교폭력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시기이며, 사회구성원들이 학교교육을 계급 계층적 구별짓기의 수단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다는 점일 것이다.

왕따와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할 때 나는 학부모 대상 강연을 가면 “우리 어머님들 왜 비싼 돈 들여서 명품 가방 사세요? 구별짓기 하려는 거 아닌가요? 왜 악착같이 돈 모아서 강남 아파트로 가려고 하시나요? 구별짓기 하려는 거 아닌가요? 아이들의 왕따도 일종의 구별짓기입니다. 어디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어머님들의 그림자예요. 그런데 왜 자기 그림자를 보고 그렇게 깜짝깜짝 놀라며 경찰 동원하라고 소리소리 지르세요?”라고 어머니들을 질타하곤 했었다. 이제 나는 수능 문제든 특목고 자사고 문제든 학교교육을 구별짓기의 수단으로 보고 집착하는 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인공지능자동화가 전면화되면 인간에게 남는 역할은 공감을 바탕으로 한 관계 형성, 협업과 통합 같은 겁니다. 그래서 OECD도 이미 학력 개념에 그러한 정의적 능력을 중요하게 포함시켰고, 각 나라도 그런 방향으로 학력 개념을 바꾸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당신은 과거의 잣대를 가지고 당신의 아이를 구별짓기를 위한 무한경쟁으로 내몰아 네안데르탈인 증후군에 빠트리려 하세요? 그렇게 하면 인공지능자동화가 전면화된 사회에서 아이가 잘살 수 있을까요?”

<김진경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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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올림픽을 틈틈이 재미나게 보고 있다. 경기의 승패에 몰입하여 일희일비하며 환호와 탄식을 오간다. 누구나 알다시피 올림픽은 선수들에겐 가장 큰 성공과 실패를 맛보게 해주는 장이다. 메달을 따면 금의환향하지만 따지 못하면 그 박탈감이 어마어마하게 크다. 그야말로 사활을 건 한판 싸움이니 지켜보는 이들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 돌 하나를 어떻게 던지느냐에 따라 앞서 계산했던 온갖 수와 자리싸움의 운명이 결정 나는 컬링 경기를 비롯해 대부분 건곤일척의 승부다.

아나운서와 해설위원의 설명을 듣다보면 선수들마다 사연이 많다. 소속 국가가 제재를 받아 개인 자격으로 참가하고 ‘러시아 출신’이라 불리는 선수들을 비롯해 마음고생이 심했던 여자 하키 선수들이 한 골 넣고 서로에게 달려드는 모습은 그 무게감이 남다르다. 일본의 한 피겨 선수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집과 연습장이 사라져 전국을 떠돌며 연습했다고 하고, 눈 한 자락 내리지 않는 지역의 선수들이 꼴찌를 하고도 엉덩이를 흔들며 세리머니를 하는 모습에 웃음을 짓기도 한다.

4년 전 러시아 소치 올림픽에서도 세 번의 실격을 기록했던 영국 엘리스 크리스티(뒤)가 13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500m 결승에서 치열한 자리 다툼 도중 미끄러지고 있다. 역주한 한국 에이스 최민정도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실격 처리되면서 메달이 무산됐다. 강릉 _ 연합뉴스

유독 이번 올림픽에선 선수들의 희로애락에 눈길이 갔다. 특히 경기가 끝난 직후 경쟁하던 선수끼리 서로 안아주며 격려하는 장면이 많았다. 스켈레톤 경기는 1차전부터 4차전까지의 기록을 합산해 총점으로 승부를 가린다. 마지막 3차전까지 총점을 매겨 가장 순위가 낮은 20위부터 4차전을 시작하는데 경기를 마친 선수들은 포토라인에 서서 다음 선수의 경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만약 다음 선수가 기록을 깨면 자동으로 퇴장하고 깨지 못하면 계속 남아 있는 구조다. 기록이 낮은 순으로 타기 때문에 주인공이 계속 바뀐다. 포토라인에 선 이들은 경쟁자가 나보다 못 타주길 바랄 것이다. 그런데 마음은 그렇더라도 행동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기록을 깬 선수 앞으로 다가가 힘껏 포옹하며 축하해주고 퇴장한다. 나는 늘 보던 이 모습이 이번에는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경쟁과 축하의 너무나도 급격한 전환이면서도, 지극히 자연스러워 신선하게 다가오는.

스노보드 경기에서는 상대방이 타다가 넘어지든, 신기록을 세우든 상관없이 얼싸안고 우는 모습이 경쟁자라기보다는 생사를 함께한 동료를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눈을 배경으로 해서인지 알피니스트들의 진한 우정이 떠오르기도 했다. 상대가 나보다 못하기를 애타게 바라는 마음에서는, 그 상대가 자신의 기록을 넘어섰을 때 실망하거나 화가 나야 정상이다. 실제로 우는 선수도 있었지만, 그렇더라도 눈물 콧물을 닦으면서 진심으로 다가가 꽉 안아주는 모습에서는 어떤 경이감까지 느껴졌다.

최민정 선수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보다 열심히 훈련한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메달을 걸어주겠다.” 그만큼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의미다. 올림픽 무대에 서기 위해 저 선수들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경기를 끝마치기 무섭게 눈물부터 터지는 것에서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지켜보는 관중도 이럴진대 같이 뛰는 선수끼리는 어떻겠는가. 자신이 겪은 그 고통을 이겨낸 선수가 선물을 받는 것임을 알기에 그렇게 일거에 찾아온 실망과 좌절 속에서도 나보다 잘 뛰고, 잘 달린, 운도 좋은 선수에게 다가가 진심으로 안아줄 수 있는 것일 테다.

아마 많은 이가 이런 장면에서 감동을 받을 것이다. 아시아인 최초로 썰매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윤성빈 선수가 관중을 향해 큰절을 올리는 모습도 같은 국가, 같은 민족으로서 명절이라고 저렇게 절을 하는구나 하는 마음에 무한한 위로와 공감을 자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 찰나의 화면에 정치인의 웃는 얼굴이 한번 스쳐 지나갔다가 또 한번 나오고 그러다가 또 비쳤을 때 고양됐던 감정은 급속히 싸늘해질 수밖에 없다.

일반인의 접근이 허락되지 않는 특별한 공간에 특별한 대우를 받고 특별한 순간의 기쁨을 나눠 갖기 위해 저렇게 나왔다는 사실이 현 정부와 여당의 지지자인 나로서는 좀 많이 안타까웠다. 왜 그 욕심을 억누르지 못했을까. 왜 저렇게 어리석은가. 정치의 생리와 정치인의 존재론적 특징을 짐작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을 떨칠 수 없다.

이번 올림픽에서 무수한 포옹과 눈물을 지켜보았다. 서로의 처지를 나누는 사람끼리 이심전심 포옹하는 이 모습이 우리 사회에 전해주는 메시지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포옹은 진심을 담아 타인 지향적으로 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말이다. 자신의 성적 욕심을 채우기 위한 자기 지향적 포옹이 미투 운동의 불을 붙이고 있는 현 상황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역설적 교훈이 아닐까.

<강성민 |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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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15일 지면기사-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남북한 선수들이 단일팀을 이뤄 출전한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예선이 14일 일본전을 끝으로 예선리그를 마무리지었다. 앞으로 5~8위 결정전 2경기가 더 남아 있지만 지금까지의 경기만으로도 잘해냈다고 손뼉 쳐줄 만하다. 국가 간 실력차가 큰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세계 3~4부 리그에 머물고 있는 남북한 선수들은 스위스와 스웨덴 등 세계 톱클래스팀과도 용기있게 싸웠고, 일본전에서는 역사적인 골까지 넣었다.

이번 단일팀은 얼어붙어 있던 남북관계를 반영하듯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최종 결정(1월20일)과 북한 선수 12명의 합류(25일) 등 일사천리로 단일팀이 구성되자 20~30대를 중심으로 한 국내 여론은 싸늘해졌다. 북한 선수들을 다 차려낸 밥상에 숟가락 하나 들고 찾아온 불청객쯤으로 여기는 이들도 많았다. 이 같은 부정적인 기류를 알고 있던 북측 선수들도 세라 머리 단일팀 감독과 남측 선수단의 눈치를 몹시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머리 감독이 ‘원팀’을 강조하면서 차별 없이 합동훈련을 하고, 따로따로 설치했던 라커룸도 함께 쓰도록 했다. 양측의 임원들은 밖으로 내보냈다. 서로 격의 없이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였다. 남북 선수들 역시 서로 생일잔치를 해주며 스스럼없이 대했다. 선수들끼리 경포대 해변을 거닐고, 카페거리에서 커피를 마시며 흉금을 털어놓았다. 남북한 코치들은 3쪽짜리 아이스하키 용어집을 만들어 소통했다. 혹여 선수단 화합분위기를 저해하는 요소가 돌출되면 앞다퉈 한목소리로 지켜주었다. 머리 감독의 말마따나 선수들을 끈적끈적하게 결합하는 ‘팀본딩’을 이룬 것이다. 남북한 응원단도 힘을 보탰다. 우려 속에 출발한 단일팀이 단 20여일 만에 이룩해낸 작은 통일이다. 외신들도 스위스·스웨덴 등 강호와 맞선 단일팀에 ‘경기는 졌지만 평화가 이겼다’는 평가를 내렸다. 안젤라 루기에로 IOC 위원(미국)은 “단일팀 선수들은 노벨 평화상을 받아야 한다”고까지 했다. 한국 갤럽 조사에서 단일팀 구성에 40% 대 50%로 부정적이던 여론도 경향신문의 설특집 여론조사 결과 긍정적(56.8% 대 38.7%)으로 바뀌었다. 타의로 만들어진 단일팀이지만 서로의 마음을 한데 모은 ‘선수들의 단일팀’이 된 덕분이다.

하지만 이번 단일팀은 1991년 지바 탁구선수권대회 때의 단일팀이 46일간이나 한솥밥을 먹고도 일회성으로 끝나버린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 당시 현정화 선수는 ‘이 기분 뭐지. 왜 우리가 헤어져야 하지’ 하는 허탈한 감정이 들었다고 술회했다. 남북 간 상황은 그때보다 열악하다. 더 이상 단일팀 구성이 어려울 수도 있다.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남북 교류가 지속되어야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경평축구 재개’를 이야기했다니 무척 고무적이다. 아이스하키의 경우도 남북한 정기합동훈련이나 교류전 등으로 모처럼 조성된 단일팀 분위기를 살릴 필요가 있다. 한 자매처럼 지냈다가 기약 없이 헤어져야 하는 감정적 단절을 더 이상 선수들에게 안겨줘서는 안된다. 스포츠가 정치와 무관할 수 없는 현실에서 돌발변수의 영향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핑퐁외교가 중국과 미국 관계를 풀어줬듯이 남북 스포츠 교류 역시 한반도 긴장을 녹일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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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 1호기 수명연장 처분을 취소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난 지 1년이 되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1심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한수원도 2심 소송에 피고참가인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월성 1호기 폐로를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정부가 지난해 12월 국회에 보고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전체 발전용량 중 월성 1호기를 제외하고, 올해 상반기 중 경제성 등 계속 가동에 대한 타당성을 평가하여 폐쇄 시기를 결정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경제성 평가는 이미 나와 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014년 월성 1호기 수명연장의 경제성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상당한 적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산정됐다. 문 대통령이 월성 1호기 폐로를 공약했던 것도 경제성이 없는 것은 물론 안전성이 크게 문제 되었기 때문이다.

출처: 경향신문DB

월성 1호기 1심 판결은 ①수명연장에 관한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적법한 심의 및 의결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원자로 등 수명연장을 위한 설비교체에 대한 허가가 과장 전결로 이루어졌으며, ②당시 원자력안전위원장 등 결격사유가 있어 당연퇴직하여야 하는 위원이 월성 1호기 심의, 의결에 관여하였고, ③핵발전소 수명연장을 위한 안전성 평가를 할 때 평가기준일 당시의 국내외 최신 기술기준이 모두 적용되어야 하나 월성 2·3·4호기에 적용된 R-7 등 기술기준이 월성 1호기 수명연장 안전성 평가에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 등이 위법하다고 판시하였다. 따라서 정부로서는 경제성 평가가 아니라 법원이 판시한 월성 1호기 수명연장의 안전성 평가 등의 위법사항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재판 과정에서 원고들이 월성 1호기 최종안전성분석보고서 열람을 신청하여 지난 1월 말 허용되었으나, 그동안 적극적 정보공개를 공언했던 한수원은 열람기간도 겨우 3일에 목차만 메모할 수 있게 하고 복사·촬영을 불허하였다. 열람에 참여하였던 전문가들은 월성 1호기 수명연장에 적용한 안전설계기준이 30년 전 내용을 개정 없이 그대로 적용하였고, 기계부품규격도 1971년 규정을 적용하는 등 안전성 평가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안전보조계통의 상당수가 내지진검증이 되어 있지 않아 지진이 발생하면 안전설비가 작동되지 않을 수 있어서 중대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도 밝혀졌다. 중수로인 월성 1호기 원자로는 20㎏짜리 핵연료 12개가 내장된 6m 길이의 두께 수㎜ 압력관 양단에 2.5m의 종단이음관이 연결된 11m 길이의 수평 배관 380개로 구성되어 있어 지진 충격에 상당히 취약한 구조이다.  더군다나 사고 시 중앙제어실이 방사선 오염을 막을 수가 없어서 운전원들이 거주할 수 없기 때문에 사고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놀라운 사실을 확인하였다.

법원의 판결로 이미 확인된 문제점을 정부가 조사해야 하는 이유는,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한수원이 1심 판결에 불복하여 다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월성 1호기 폐로의 정당성을 확인하고, 월성 1호기 수명연장 과정의 문제점과 위법사항은 국내 다른 핵발전소에도 마찬가지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월성 1호기 수명연장 과정에서 드러난 규제의 문제점은 빙산의 일각으로 나머지 국내 핵발전소 인허가 과정과 안전규제의 위법사항에 대해 전면적으로 되돌아보게 만들 중요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고 적폐를 청산한다는 것을 넘어, 재발방지와 사고방지라는 국가 안보적 측면에서도 너무도 중요한 일인 것이다.

<김영희 | 변호사·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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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하키에서 가장 불쌍한 포지션이라면 역시 ‘골리(골키퍼)’를 꼽을 수 있다.

두께 2.54cm, 지름 7.62cm의 원형압축고무를 얼려 만든 무게 150~170g의 퍽이 시속 160~180㎞의 총알속도로 날아오는데, 이것을 온몸으로 막아야 한다. 1950년대 말까지만 해도 아이스하키 골리는 맨 얼굴로 경기에 나섰다. 1927년 여자선수인 엘리자베스 타일러(퀸즈대)가 치아보호를 위해, 1930년 클린트 베네딕트가 부러진 코를 보호하려고 각각 마스크를 썼다. 그러나 부상에서 회복된 후에는 곧바로 마스크를 벗어던졌다. 시야를 가리는 그 무엇을 얼굴에 단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상대와 당당히 맞서야 할 선수가 얼굴을 가리고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이거야말로 불성실한 겁쟁이 아닌가.

8일 인천 선학국제빙상장에서 열린 남자아이스하키 국가대표 평가전 한국과 슬로베니아의 경기. 1피리어드 한국 대표팀 골리 맷 달튼(왼쪽 사진)의 마스크에 이순신 장군 그림이 지워져 있다. 오른쪽 사진은 3일 열린 카자흐스탄과의 평가전에서 이순신 장군 그림이 그려진 마스크를 착용한 맷 달튼 모습. _사진출처 : 연합뉴스

 

그러던 1959년 11월1일 사건이 일어난다. NHL(북미하키리그) 몬트리올 캐나디언의 골리인 자크 플랑트(1929~1986)가 뉴욕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상대방이 날린 퍽을 얼굴에 맞았다. 겨우 상처를 꿰맨 플랑트는 “시야를 가린다”고 반대하는 코치에게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경기에 나서지 않겠다”고 고집했다.

당시 NHL팀에는 백업 골리가 없었으므로 플랑트가 출전을 거부하면 팀은 몰수패 할 수밖에 없었다. 코치는 할 수 없이 플랑트의 마스크 착용을 허용했다. 이후 골리 마스크를 쓴 플랑트의 팀은 연전연승했다. 당시 플랑트가 마스크를 벗고 출전한 경기가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경기에서 패했다. 이후 플랑트의 얼굴은 늘 골리마스크로 가려져 있었다. 골리마스크는 NHL의 시대조류가 되었다. 물론 앤디 브라운 같은 골리는 ‘맨얼굴이야말로 용감함의 상징’이라며 1977년 은퇴할 때까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은 무시무시한 형태의 마스크(헬멧)로 전의를 불태웠다. 보호장구를 착용하자 골리들은 얼굴에 퍽을 맞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났다. 낮은 자세로 수비할 수 있으니 더 부담없이 몸을 던질 수 있었다. 비겁이 아니라 오히려 용감의 상징이 된 것이다. 상대방과의 기싸움에서 이기고, 혹은 패션피플로서의 개성을 표출하려는 매개의 역할도 했다.

한국대표팀의 귀화골리인 맷 달튼(32·캐나다 출신)은 특별히 이순신 장군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이순신 장군처럼 대한민국의 수호신이 되겠다면서 마스크에 장군의 동상 그림을 새겨달라고 특별히 요청했다. 귀화선수지만 ‘대한민국 대표로 뛴다’는 각오를 표하고, 각종 대회마다 애국가를 따라 부르는 달튼이 아니었던가.

그런 달튼이 최근 낙담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마스크에 새긴 이순신 장군 그림을 ‘정치적’이라며 불허했기 때문이다. IOC는 오스트리아의 로빈후드, 체코의 개국공신, 이스라엘의 삼손, 그리고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그림도 불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공식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마스크(헬멧)를 봐야 ‘IOC의 저울’이 정말 공평했는지를 알 수 있다. 2012년 욱일승천기의 이미지를 새긴 유니폼을 입고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일본 체조팀을 징계하지 않은 사례도 있다. 물론 어떤 경우든 공연히 책잡힐 필요는 없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축구에서 동메달을 따고 독도세리머니를 했다가 곤욕을 치른 박종우가 좋은 예다. 이순신 장군의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명언을 가슴에 담고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란다.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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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6일이 설날입니다. 그리고 한 해의 마지막 달이 섣달이고 달의 마지막 날이 그믐이니 15일은 섣달그믐입니다. 지금이야 양력으로 살아서 의미 없지만, 음력으로 살던 사람들은 섣달그믐밤이 되면 참 싱숭생숭했을 겁니다. 한 해가 또 가거든요.

만혼이 흔한 요즘에야 실감이 안 나겠지만, 몇 십 년 전만 해도 여자 나이 서른 되기 전에 결혼해야 한다고 20대 후반이면 몰아쳐 결혼하느라 그 나이 대끼리는 그 무렵 무척 분주했습니다.

더 옛날에도 그랬습니다. ‘혼기가 꽉 찼다’거나 ‘과년한…’이란 말들을 흔히 썼으니까요. 시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옛 여성의 혼인 적령기는 아마 스무 살 안팎이었을 겁니다. 혼기 지난 여성이 혼처가 나오지 않거나 집안이 혼사를 치를 여력이 없다면 애써 참아도 무진 애가 탔겠지요. 남들 다 할 때 하는 걸 못해서 어쩐지 뒤처지고 못난 것 같은 초조함과 자괴감으로 말입니다.

섣달그믐 저녁, 개밥 주러 나온 나이 찬 처녀는 개밥그릇에 잔반 퍼주며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나이나 먹는 심란함에 울컥하겠지요. “그래 나 한 살 더 먹는다. 너도 밥 처먹어라!” 이렇게 대충 마구 콱콱 퍼주던 모습에서 만들어진 속담이 ‘섣달그믐날 개밥 퍼주듯’입니다. 늘 그렇듯 격렬한 행동은 격심한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아주 오래된 노래들이 있습니다.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히스테리가 이만저만~’ ‘개구리 노총각이 살았는데, 아하! 사십이 다 되도록 장가를 못 가~’ 요새 노총각, 노처녀라는 말은 잘 쓰지 않습니다. 무례한 표현이기도 하고 예전 기준으로 치면 지금 미혼자들 상당수가 거기에 해당되니까요.

오랜만의 인사치레마냥 무심히 던지던 ‘왜’ ‘아직’이란 말. 이번 설, 아랫사람들이 정말 듣고 싶던 말은 시쳇말 같은 빈 관심이 아니라 어쩌면, 윗사람다운 말없이 든든한 나잇값, 그 모습 아닐까요?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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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4등급을 받은 학생이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예외적인 경우겠으나 절대평가인 영어에서 4등급을 받은 학생이 서울대에 들어간다는 사실은 국민들이 수용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한국 사회 구성원 대부분은 노력에 상응한 결과라는 가치관으로 치열한 한국 입시를 수용한다. 이런 점에서 세계화 시대 필수 조건인 영어구사력이 입시 기여도에서 배제되는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교육부 장관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를 두고 ‘오히려 영어를 못해도 서울대를 갈 수 있으니 건설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럼에도 ‘영어 4등급도 서울대 가능’이라는 독특한 사례는 몇 가지 이유로 현행 입시 제도를 더욱 불신하는 분위기를 확산시킬 것이다.

첫째, 절대평가 대상으로 영어의 적절성 문제이다. 지난 세기말 불어닥친 세계화는 이미 일상용어가 되었다. 특히 과거 수동적 교류에서 ‘한류’의 활성화로 세계화를 주도하는 국가로 나아가는 지금 영어 절대평가는 시행 효과에서 회의적 반응을 얻을 수밖에 없다. 충분한 영어실력 없이 대학에 입학한다면 원서강독이나 영어강의 수강, 영어토론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한국 고교생의 입시 위주 학습을 전제하면 양질의 수업으로 절대평가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는 어렵다. 이미 고교생 다수가 내신 성적 외에는 영어를 신경 쓰지 않는다.

가뜩이나 제2외국어 역시 소외와 파행을 통해 ‘아랍어’로 통일되는 기현상을 빚는 현실에서 영어마저 탐구 과목 하나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다면 인재육성의 사회적 취지와는 동떨어진 결과를 낳을 것이다.

둘째, 계층 간 영어 실력 격차라는 불공정성의 문제이다. 대학 입시에서 영어가 소외되면 영어구사력 차이는 개인의 환경이라는 외적 변수로 결정된다. 어린 시절 영어 사용국가에 거주했거나, 양질의 영어 사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상위 계층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충분한 영어 사용능력을 갖춰 공교육 과정을 실용적으로 이수한 평범한 다수와 현격한 차이를 낼 것이다. 평등이 약자에게 불리한 역설이 현실인 셈이다.

셋째, 영어 절대평가로 인한 부정적 파급효과이다. 2018년도 입시에서 수험생들은 국어와 탐구 과목 난도 상승으로 인해 낭패를 겪었다. 영어 절대평가의 보상이 다른 과목 난도 상승으로 철저히 상쇄된 셈이다. 그 결과 이번 겨울방학 대치동에는 ‘국어 1타 강사 수업 2번 듣기’가 유행이며 문과 학생들은 사회 탐구에, 이과 학생들은 과학 탐구에 공을 들인다. 당연히 수학을 위해 영어가 빠진 시간 일부를 몰아넣어 공부한다. 안타깝지만 영어 변별력 약화와 고교 수업 정상화, 혹은 학생의 학습량 감소, 대학 서열화 완화는 아무 관련이 없다. 짓누른 풍선처럼 다른 과목으로 부풀어 오를 뿐이다.

영어 절대평가라는 제도 하나만 봐도 시행 취지의 정당성은 약하고 기대효과는 낮다. 실망은 대한민국 교육 제도가 마주한 벽이다. 한국의 교육 제도는 이전 제도가 지닌 부작용만 본 뒤 이를 해결하는 데 급급했으며, 국민들은 소멸한 제도가 남긴 불만이 여전한 상황에서 새로운 불만까지 맞이해 불만족의 총량은 증가했다. 이런 악순환을 막기 위해 제도 변화의 취지를 면밀히 검토하고 예상 가능한 부정적인 결과를 철저히 감안한 뒤 단계적으로 시도하는 교육부의 주도면밀함이 절실하다.

<정주현 | 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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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이탈리아 폼페이에서 발굴, 복원된 검투사 경기장을 봤다. 영화 &lt;쿼바디스&gt;나 &lt;글래디에이터&gt;에서 본 거대한 원형 경기장과는 달리, 지름 10m 정도밖에 안 되는 반원형 광장 주위에 관중석을 둘러 세운 형태였다. 광장과 바로 맞닿은 곳에는 귀족들을 위해 특별히 길게 만든 돌 침상(寢牀)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당대 귀족들은 이 자리에 모로 누워 음식을 먹으면서 경기를 관람했다. 먹다가 배가 부르면 새의 깃털을 목구멍에 쑤셔 넣어 토해내고 다시 먹으면서, 사람끼리 서로 칼로 베고, 창으로 찌르며, 도끼로 찍고, 철퇴로 치다가 피 흘리며 죽어가는 장면을 ‘관람’했을 또 다른 사람들을 상상하니, 절로 몸에 한기가 들었다.

그런데 인간 행위에 관한 현대의 분류법을 적용하면 저런 행위는 어디에 속할까? 살인과 살인방조? 아니면 스포츠와 스포츠 관람?

 

1903년 정월 대보름 무렵, 서울 만리재에서 예년과 다름없이 돌싸움이 벌어졌다. 남대문 동대문 서대문 밖 사람들이 한패가 되고, 애오개 마포 용산 사람들이 또 한패가 되어 맞붙었는데, 석전꾼(石戰軍)만 9000여 명, 구경꾼은 2만여 명에 달했다. 구경꾼 중에는 구미인들도 섞여 있었다. 피와 살이 튀는 격렬한 경기를 보다가 저도 모르게 흥분했던지, 운산금광의 미국인 직원 클레어 헤스(Clare W. Hess)는 가까이에 떨어진 돌을 집어 경기장 안으로 힘껏 던졌다. 석전꾼 한 명이 그 돌에 맞아 즉사했다. 옆에 있던 구미인들은 한국인들에게 보복당할까 봐 새파랗게 질렸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매년 서울에서만 돌싸움으로 수십 명에서 수백 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했기에, 왕조 정부도 여러 차례 금령(禁令)을 발했다. 그러나 이 세시풍속에는 비상시를 대비한 군사훈련의 성격이 강했고 참가자도 너무 많았기 때문에, 단속 효과는 없었다.

서울에서 돌싸움이 사라진 것은 일본 헌병이 치안권을 장악한 1908년 이후였지만, 1920년대 중반까지도 뛰어난 선수와 흥행사 등 경기 관계자들의 이름이 인구에 회자되었다. 이 돌싸움은 또 어떤 인간 행위로 분류해야 할까?

구기와 체조 등 일부 종목을 제외하면, 스포츠는 본래 모의전투다. 근대 스포츠가 고대와 중세의 스포츠와 다른 점은 살상력을 제거하거나 극소화했다는 점뿐이다. 인류는 동종(同種)끼리 서로 살육하는 습성을 가진 유일한 동물이다. 모의전투인 스포츠는 인간으로 하여금 개체의 전투력을 향상시키면서도 살육 욕구를 다른 방향으로 분출할 수 있도록 했다. 사람들에게 전쟁 중의 광기(狂氣)와 유사한 느낌을 갖게 하면서도, 아무것도 파괴하거나 살상하지 않는 것이 스포츠의 힘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올림픽을 창설하여 1000여 년간 지속했던 것도, 유럽의 명사들이 프랑스인 쿠베르탱의 제창에 호응하여 올림픽 부활을 선언하고 1896년부터 근대 올림픽을 개최한 것도, 스포츠의 이런 힘을 알았기 때문이다.

올림픽은 개인 단위, 또는 분대(팀) 단위로 벌어지던 모의전투를 국가 간의 모의 전쟁으로 확대한 것이다. 스포츠가 선수들에게 요구한 덕목은 중세 유럽의 기사도와 유사한 스포츠맨십이었다. 규칙을 지키며 공정하게 경쟁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것. 전력을 다해 싸우되 상대를 해치지 않는 것 등. 그런데 전투는 군사(軍事)지만 전쟁은 정치다. 올림픽은 스포츠맨십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그보다 훨씬 더 확장된 미덕을 요구했다. 올림픽 창설자들은 각국이 서로 경쟁하나 전쟁하지 않는 세계, 전쟁과 살육의 욕구를 건강하게 해소하는 세계를 꿈꿨다. 올림픽은 살육과 파괴가 없는 모의 세계대전이며, 그래서 올림픽 정신의 요체는 첫째도 평화, 둘째도 평화, 셋째도 평화다.

한국인들이 올림픽에 관한 정보를 언제 처음 입수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1909년 개성시내 각 학교 연합운동회장에 만국기가 걸렸는데, 스포츠를 세계와 연관 지은 것으로 보아 이때쯤에는 올림픽에 대해 알았을 것이다. 1913년에는 일본, 필리핀, 대만, 태국, 말레이시아, 홍콩을 회원국으로 하여 제1회 극동올림픽이 개최되었다. 한국인이 극동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것은 1921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제5회 대회로서, 일본 선수단이 아니라 재(在) 상하이 조선인 체육협회 소속으로 출전했다. 한국인 선수가 올림픽 무대를 처음 밟은 것은 1932년 LA 올림픽이며,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손기정이 마라톤 금메달을 획득했다. 정부 수립 전에 열린 1948년 런던 올림픽에는 KOREA라는 국호로 참가했다.

올림픽은 세계 평화에 대한 지향과는 별도로 민족주의를 고취하고 국민통합을 강화하는 힘으로도 작용했다. 올림픽은 스포츠를 ‘국민 만들기’라는 정치행위의 핵심 요소로 만들었고, ‘체력은 국력’이라는 구호 아래 국가가 국민을 훈육할 수 있도록 했다. 초등학교 운동회장에까지 걸린 만국기는 스포츠와 국가와 세계 사이의 관계를 직관적으로 가르쳤다. 올림픽 기간 중에는 세계 각국 사람들이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었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공동 입장과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결성을 두고 ‘정치적 의도에 따라 올림픽 정신을 훼손한 처사’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스포츠맨십과 올림픽 정신을 혼동한 탓이다. 남북 간의 적대감을 줄이는 것, 전쟁 위험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것, 무엇보다도 세계를 향해 ‘우리는 본래 떨어질 수 없는 하나’라고 선언하는 것이야말로, 올림픽 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일이다. IOC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이번 평창 올림픽을 한민족 화합의 무대이자 전쟁 위험을 줄이는 계기로 삼기 위해 애쓰는 중에도, 정작 한국에서는 평양 올림픽이니 뭐니 하며 남북 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적대감을 고취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는다.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짓이며, 부끄럽고 한심한 짓이다.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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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경북 김천 수도산에 반달가슴곰 한 마리가 나타나 큰 화제를 모았다. 지리산에서 진행되고 있던 멸종위기 야생생물 복원사업으로 탄생한 반달가슴곰이 서식지를 벗어나 직선거리로만 무려 80㎞가 떨어진 경북 김천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이 곰은 2015년 2월에 출생하고, 그해 가을 지리산에 방사된 세 살짜리 수컷으로, 원거리 이동에도 불구하고 포획 당시 체중 56㎏의 건강한 상태였다.

이 곰은 수도산에서 발견된 지 한 달 후인 지난해 7월, 또다시 김천 수도산으로 이동했다가 포획돼 지리산에 재방사됐다. 이러한 현상은 환경부가 2004년부터 시작한 반달가슴곰 복원사업 등 각종 멸종위기 야생생물 복원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복원된 반달가슴곰이 먹이활동은 물론 자연 번식, 이동권 확보까지 생물종의 생존에 필요한 적응력을 갖춘 것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애기뿔소똥구리 _ 사진출처 : 경향신문 DB아카이브

 

2014년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지구의 생물종 멸종이 인류가 지구에 나타나기 이전보다 1000배가량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각종 개발과 경제 성장 과정에서 개체수가 현저하게 감소한 야생 동식물이 크게 늘어났다. 국내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된 종수는 1989년 92종에서 2012년 246종, 2017년 12월 267종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우리에게 친근하게 알려진 호랑이, 두루미, 장수하늘소, 미호종개, 광릉요강꽃 등 멸종위기 야생생물들이 안타깝게도 서서히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환경부는 그동안 우리나라 생물다양성을 높이고 생태계 건전성을 되살리기 위한 방안으로 이들 멸종위기 야생생물에 대한 증식·복원사업에 주력해 왔다. 지리산 반달가슴곰, 소백산 여우, 월악산 산양, 창원 따오기 복원사업이 대표적인 예이다. 지리산 반달가슴곰은 현재 47마리가 살고 있어 지속적으로 생존 가능한 최소 개체수인 50마리를 조만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또 월악산 산양도 77마리가 살고 있어 100마리 목표를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생물을 복원하는 작업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원래의 종을 확보하여야 하고, 이를 증식시켜야 하며, 이후에는 원래의 서식지를 되살리는 일련의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때마침 경북 영양군에 ‘국립멸종위기종복원센터’가 올 하반기 개관되어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된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복원센터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멸종위기 야생생물 증식·복원 연구를 통해 사라져 가는 한반도의 고유생물들을 체계적으로 보전하고 되살려내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다. 아울러 핵심종 확보, 학계나 민간 연구소 등 기존 멸종위기 야생생물 복원기관과의 협업에 이르기까지 종 복원과 관련된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도 하게 된다.

국립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우리에게 친숙하였지만 지금은 사라져 가는 소똥구리, 사향노루, 스라소니, 두루미 등 총 43종의 멸종위기 야생생물을 대상으로 원래의 종 확보 및 종 복원 사업을 우선 추진하게 된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사라져 가던 우리나라 고유의 야생생물이 우리 곁으로 되돌아와 우리 국토의 생물다양성을 증진시키고, 우리 후손이 살아가는 환경이 더욱 풍성하고 자연과 잘 어우러지길 기대해 본다.

<김은경 | 환경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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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하기 힘들다고 우는 소리를 낼 때면 요즘 애들은 엄살이 심하다는 비아냥을 듣곤 했다. 그렇다 해도 ‘투정부리지 말라’ ‘잘하면 어련히 알아서 뽑을 텐데 무얼 불평하느냐’ ‘좀 더 노력해보고 그런 소리 하라’는 등 듣기는 싫어도 십분 이해할 수 있는 얘기들이었다. 공정한 절차와 시스템이 존재하는 한 개인의 노력만큼 결과가 따라줄 테고 그로 인한 결과의 책임은 온전히 개인의 몫인 것 또한 분명했다. 청년실업률 9.9%, 평균 취업 준비기간 1년, 첫 직장 재직기간 15개월이라는 지표가 우리네 삶의 고단함을 증명할 때에도 사회를 탓할 수는 없었다. 그러한 사회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무능한 청년이란 딱지만큼은 떼고 싶었다. 적어도 그 과정이 공정할 것이라는 믿음이 깨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공공기관 1190곳 중 946곳이 채용 과정에서 부당한 권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감사원을 통해 드러났다. 80%에 달하는 수치다. 강원랜드의 합격자 전원이 부정 청탁을 통해 입사했고, 한식진흥원에서는 서류조차 제출하지 않은 이를 특별 채용하기도 했다. 4500여명이 지원한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는 2299등인 지원자가 36등으로 합격했다. 심지어 가스안전공사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합격 통보를 하기도 했다. 금융권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하나은행에서는 소위 말하는 SKY대학 출신을 뽑기 위해 면접 점수를 조작하고 합격권에 있던 7명의 응시자들을 떨어뜨렸다. 국민은행은 추천인과 요청 사항을 정리한 VIP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고 있었다.

그러니 청년은 더 이상 노력할 수 없다. 기회는 불평등했고 과정은 불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지 않았다. 청년에게 부족한 것은 노력이 아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초월 스펙이 부족했기에 취업할 수 없었을 뿐이다. 초월 스펙은 SKY대학 출신이었고, 생물학적 남성이었고, 금수저였다. 이렇게 학벌주의와 성차별, 지연과 혈연이라는 연고주의의 민낯이 가장 솔직하고도 추악하게 드러났을 때에도 청년은 스스로를 탓하고 검열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일자리 하나 물어다줄 인맥 하나 없는 부모님을 만난 내가 잘못이며 잠도 덜 자고 밥도 덜 먹어가며 공부해서 SKY대학에 진학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내 노력의 부족 때문이었다. 취업 실패의 원인은 갈수록 개인화되고 내밀해진다. 이것이 채용비리 사건이 더 무섭게 다가오는 이유다. 본인의 능력 부족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물증이 없다면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들은 자신의 무능을 반복적으로 탓하고 학습하기에 이른다.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엄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기본이나, 불합리하게 떨어진 서류 지원자와 점수 조작으로 인해 합격권에서 굴러 떨어진 응시자를 구제할 수 없다면 이 피해를 완전히 복구할 수 없다.

일자리위원회가 백날 들여다보는 청년실업률에 청년고용의 해답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들이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은 이미 사회에 만연해 있는 학벌주의와 성차별, 연고주의에 따른 불법 채용이고 열악한 업무환경을 방치하는 조직의 무능이다. 채용비리를 근절하지 않고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은 허상에 불과하다. 정부는 다시 응답하라.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 그리고 결과의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고. 오로지 ‘노력’ 하나로 적자생존하는 청년들의 공정을 향한 갈증을 해소하겠다고 말이다.

<민선영 | 청년참여연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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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청년, 취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