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인 4월22일은 ‘지구의날’이다. 지구의날은 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버라에서 발생한 해상기름 유출사고를 계기로 1970년에 미국 위스콘신주 상원의원 게이로드 넬슨이 주창했다고 한다. 첫해에는 하버드대생 데니스 헤이즈가 앞장서 주도했던 지구의날 기념 행사에 미국인 2000만명이 참석해서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 첫해의 기념행사는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유엔 인간환경회의’ 개최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환경이슈가 커지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 때문에 그 후 20년 가까이 개최되지 못했다.

1990년에 이르러 제2차 기념행사가 열리면서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그해에 우리나라에서도 가톨릭 단체와 민간환경단체들이 기념행사를 개최했는데, 최근에 와서는 지방자치단체들도 기념행사에 나서고 있다. 요즘에야 ‘지구의날’ 행사를 개최한다고 해서 누가 반대하는 일도 없고, 별로 관심받는 화제가 되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기념일이 퇴색될 정도로 환경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구의 지질학적 변화를 초래할 정도로 생태위기가 심각해졌다는 지적과 이와 관련된 정보가 쏟아져나오고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노벨 화학상을 받은 네덜란드의 화학자 크뤼천(Paul Crutzen)이 2000년에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를 지질학적으로 신생대 제4기 홀로세(마지막 빙하기 후)를 대체해서 ‘인류세(Anthropocene)’라 부르자는 제안을 했다 한다. 인류가 지구의 전 범위에 걸쳐 끼친 영향은 지구의 변형을 초래한 지질학적 변화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최근에 인류세는 지질학의 공식용어로 채택할 것인지가 검토될 정도로 상당히 일반화된 개념어로 통용되고 있다.

홀로세는 신석기시대가 시작되고 인간이 지구환경을 바꾸는 농경생활이 시작된 시기이다. 자연스럽게 간다면 5만년은 더 존속할 수 있다고도 한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결정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부터를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인 인류세가 시작된 시기로 보고, 이 시기는 닭이 대규모로 사육되기 시작한 때여서 인류세의 표준화석은 닭뼈가 될 것이라는 예측을 한다. 방사성물질, 플라스틱, 알루미늄, 콘크리트 등 ‘기술화석(technofossils)’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물질이 퇴적층에 쌓이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며 대규모 쓰레기매립장이 전 지구적으로 나타난 시기이기도 하다. 기후변화로 해수면의 높이도 크게 상승했으며, 탄소, 질소, 인 순환에 변동이 일어났다. 그 속도가 사상 유례없이 빠른 것도 특징이다. 기후변화도 지구 평균온도가 섭씨 2도 이상 상승하지 않는 선에서 막아보자는 국제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인데, 그 선을 넘어가면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지구의날이 처음 제정된 1970년 무렵은 1962년에 살충제 DDT의 유해성을 경고하는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이 출간된 이후여서 이 문명이 초래할 생태파괴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지기 시작한 때였다. 특히 첫해의 지구의날 기념행사가 사상 최대 규모로 번진 배경에는 청년들을 중심으로 베트남전쟁에 대한 반전운동과 68혁명, 히피 등의 반문명운동이 전반적으로 거대한 흐름을 이룬 시대였던 데에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현재의 과학계 논의대로라면, 인류세가 본격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렇게 돌이켜 보면, 지난 5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인류세로 지칭되는 지구의 지질학적 변화는 심화되고 있다. 2015년에 이르러 유엔이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채택한 것과 기후변화 억제를 위한 국제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지난 시기에 꾸준히 이어져온 생태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난 시기에 대규모 반문명적 저항이 있었던 분위기에 비해보면, 인류세가 거론될 정도로 심각해진 상황에 대한 인식과 대처방안으로서는 매우 미약하고 미흡하다는 실감이 든다.

산업문명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석유를 발견해서 석유화학제품을 사용하게 된 것이 번영을 가져온 결정적인 원인이었고, 석유는 지구상의 생명이 죽어 땅속에 축적된 것이니, 결국 지구 안에서 지구 덕분에 우리가 잘 사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공동의 집 지구에 초래한 위기에 둔감해진 원인은 지구와 뭇 생명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더라면 더 주의하고 절제할 수 있는 균형감각이 마비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지구중력에 적응진화한 인간의 몸을 무중력상태에 유지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의 옷을 입혀 우주로 띄워보내며 우주여행과 화성이주를 거론하는 시대이다. 인간의 위대하고 놀라운 도전능력이 무엇이든 다 해결해온 만큼 지구에 대해 특별히 겸손할 필요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러한 태도 안에는 세계를 움직여가는 인간의 생각이 있는데, 지구와 우주를 물질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태위기에 대한 처방도 물질에 대한 관리와 조절통제의 범주를 벗어나기 어렵다. 지구에 대한 감사와 겸손이란 것은 이러한 세계관 안에서는 들어설 자리가 없기에 생태위기에 대한 해법을 논의한다는 것은 항상 주변적이며 다양한 위기 중의 한가지로 인식될 뿐, 생각의 근본 안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함정이라는 각성이 어려워진다.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하기 전에 삶을 가능하게 하고 풍부한 자원을 제공하여준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먼저 생각해야 할 때다. 지구가 단순한 물질로 지워져버린 산업문명시대의 왜곡된 세계관을 대체하고 이를 바탕으로 성찰과 각성이 수반된 균형 잡힌 체계론이 필요하다고 여겨지지만 아마도 대전환의 어떤 계기가 주어져야 가능할 것 같다. 스스로를 지구학자로 자처했던 토머스 베리(1914~2009)는 “공포와 매혹”이라는 표현을 썼다. 우리를 다른 문명으로 추동하는 힘은 공포스러운 상황을 면하려는 것이든지, 아니면 지금보다 더 선택의 매력을 느끼게 하는 생활패턴이 주어질 때에 작용할 것이라는 말이다. 사실 산업문명도 “공포와 매혹”의 두 측면을 지니고 있다. 현재로서는 환경 문제나 빈곤 문제와 차별 등 어두운 측면들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이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자 하는 매혹이 훨씬 더 강렬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 두 가지의 심리와 그것이 반영된 현실의 간극 사이에서 반전이 일어나는 날이 머지않아 다가올 수도 있다.

<강금실 | 법무법인 원 변호사·포럼 지구와사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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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 절감을 위한 ‘제로에너지빌딩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제로에너지빌딩이란 건물의 단열 성능을 최대한 강화하고 건물 운영에 필요한 에너지의 20% 이상을 태양광, 지열 등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건물을 말한다. 냉난방, 급탕, 조명, 환기 등에 고효율 설비를 적용하여 일반 건물 대비 70% 이상 에너지 손실을 줄이고,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해 건물의 에너지 자립 수준을 높인 획기적인 에너지절약형 친환경 건축물이다.

해외 여러 국가에서는 일찍부터 건물 부문의 에너지절감 중요성을 인지하고 제로에너지빌딩 보급에 앞장서 왔다. 유럽은 2020년까지 신축건물에 대한 제로에너지 의무화를 선언했다. 건물이 전체 에너지소비의 약 73%를 차지하는 미국의 경우 2010년 대비 2030년까지 단위면적당 에너지소비량 50% 절감을 목표로 매년 600조원을 투자 중이다. 우리나라 역시 2020년까지 공공건물을, 2025년에는 민간건물 제로에너지빌딩을 의무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해 녹색건축물조성지원법을 개정하여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제’를 도입했다.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제는 건축물 에너지 효율등급, 신재생에너지를 통한 에너지자립도, 건물에너지관리시스템(BEMS) 설치 여부 등을 검토하여 건물에 등급을 부여하고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이다. 시장의 반응은 뜨겁다.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홍보와 추진 의지로 제로에너지빌딩 인증제 시행 1년 만에 13개의 건물이 인증을 획득하였다. 올해 말까지 40여개의 건물이 인증을 획득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인 제로에너지빌딩 인증 사례로 신축 중인 한국에너지공단 울산사옥이 있다. 건물일체형 태양광 발전시스템 등을 적용하여 업무시설로는 최초로 설계단계에서부터 제로에너지 기술을 적용해 예비인증을 획득했다. 또한 태양광, 지열 등 신재생에너지로 에너지자립률 61%를 확보한 노원 제로에너지 주택단지도 주택으로는 최적화된 실증단지라는 평을 받고 있다.

제로에너지빌딩 보급에 속도를 더하기 위해서는 선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높은 에너지 성능을 확보하려면 그만큼 비용 부담을 동반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에너지비용이 저렴한 우리나라에서 제로에너지빌딩이 보편화되기에는 경제적 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다. 건축주의 경제적 부담 완화를 위해 창, 차양, 단열재 등 건축자재를 패키지화하고, 냉난방, 조명, 환기 등 설비를 시스템화하여 제로에너지건축물에 적합하도록 표준화해야 한다. 특히 해당건물 내에서 자체 생산한 신재생에너지 생산량만으로 에너지 자립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다른 건물 또는 장소로부터 부족한 신재생에너지 생산량을 조달할 수 있는 외부조달제도의 도입도 적극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단독주택부터 고층 빌딩, 도시 전체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자급자족의 ‘제로에너지시대’가 머지않았다. 다만 새롭게 제로에너지빌딩을 짓는 일과 함께 건물 에너지 소비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건물 운영단계에서 에너지를 적재적소에 맞게 사용하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강남훈 | 한국에너지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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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문제나 미세먼지 등 복잡한 환경문제에 대처하는 정부의 움직임은 다른 분야에 비해 유난히 굼뜨다. 엮인 실타래가 복잡하기에 최선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지체가 생길 수도 있으나, 늦은 대안 제시가 결코 최적을 위함이 아니기에 종종 문제 해결은커녕 더 큰 문제들로 연결되곤 한다. 작년 말 정부는 7%에 불과한 신재생에너지발전 비율을 2030년까지 20%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는데, 뒤처진 발표임에도 이후 나타날 수 있는 문제들을 고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책 시행이 되레 국토의 환경 훼손을 가속화하는 달갑지 않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에 흩어져 있는 친환경에너지를 모으기 위해서는 기존 화석연료 기반 발전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넓은 토지가 필요한데, 사전에 가용 토지의 확보 방안을 고려하지 않아 환경적으로 훌륭한 가치를 지닌 토지까지 파괴될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이미 오래전 공론화된 것이라는 점이다. 예로 환경부는 풍력단지 조성에 따른 사회적 갈등 해결을 위해 2016년까지 조성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로 했지만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 그 사이 산주와 결탁한 개발자본은 온전히 보전되던 산지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어, 친환경정책이 산림의 난개발을 부추긴 꼴이 되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정부부처 간 케케묵은 불통이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달 환경부 장관은 자연환경이 우수한 지역 내 친환경발전단지 조성을 원칙적으로 허가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개발로 얻는 사익보다 보전으로 얻는 공익이 훨씬 크게 평가되는 지역들인데, 이를 판단하는 기준 중 하나가 생태자연도이다. 지금까지 허가된 풍력발전단지 중 절반 가까운 단지가 생태자연도 1등급의 우수한 산림에 위치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언뜻 보전가치가 높은 산림의 파괴를 막는 방안으로 보이지만 착시에 불과하다. 기준에 따르면 ‘교란 이후 자연식생에 가까울 정도로 거의 회복된 산림식생’ 이상을 1등급의 우수한 식생으로 보고 있는데, 겨우 국토면적의 7% 수준이다. 생태자연도는 여러 개의 등급이 아니라 산림을 단순히 두 개의 등급으로만 구분하기 때문에 이 기준대로라면 우리나라의 90%에 가까운 산림이 아직까지 제 기능을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상황이 이러한데 다른 한쪽에서는 산림보전 성과가 대단한 것처럼 자랑하고 있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산림 관리는 자연공원을 제외하면 대부분 산림청이 관할하고 있으며, 산림청은 목재 생산뿐만 아니라 환경적 기능 강화를 명분으로 전국 산림에 지속적으로 간벌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개인 소유 산림이든 자연성이 우수한 산림이든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숲의 공익적 기능 향상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사업이 진행되면 인위적 교란이 발생하여 생태자연도가 떨어진다. 즉, 환경부 기준으로 우수한 산림은 산림청에서는 막대한 세금을 들여서라도 손을 대야만 하는 숲이며, 이렇게 산림청의 개선사업이 진행되면 반대로 환경부가 개발을 용인할 만큼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다. 공익기능 강화를 명분으로 한 세금 투입이 오히려 산림의 영구훼손 빌미를 제공하여 공익을 훼손하고 있다.

공익을 목적으로 사유지에 세금을 투입했다면 엄격하게 관리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이다. 그러나 숲의 건강과 공익 증진을 내세워 매년 수천억원의 세금을 들이면서도 이 지역이 어디인지조차 파악하지 않음은 물론, 오히려 공익의 핵심이 되는 생태적 가치가 낮아져 개발을 용인하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 또한 오랫동안 제기되었음에도 고쳐지지 않는 부처 간 불통으로 현 에너지전환정책에 의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국토는 모든 국민의 것이지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부서의 재산이 아님을 명심하고 하루빨리 공익에 부합되게 관리정책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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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가 1회용품·비닐 사용 등 이명박 정부 이후 업계부담 완화를 내세워 풀어준 폐기물 발생 억제 정책을 되돌리기로 했다. 환경부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에게 제출한 ‘폐기물 정책 변경내용 및 계획’ 자료를 보면 정부는 1회용 컵 보증금을 재도입하고, 비닐봉지 사용과 과대포장의 규제를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폐기물 대책을 마련 중이다. 업계부담을 이유로 대거 후퇴시킨 폐기물 정책의 기조를 발생량을 줄이는 정책으로 회귀한다는 측면에서 당연한 조치라 할 수 있다.

출처:경향신문DB

폐기물 정책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 후퇴를 거듭했다. 2002년부터 도입된 1회용컵 보증금 제도는 2008년 3월에 폐지했다. 음식점 등의 1회용 종이컵과 도시락용기, 백화점 등의 종이봉투와 쇼핑백 관련 규제도 풀었다. 2009년엔 칫솔·치약·샴푸 등 숙박업소 1회용품 무상제공도 허용했다. 2010년엔 플라스틱 폐기물 부담금 면제와 경감 범위가 완화됐고, 2013년에는 테이크아웃 1회용품 규제마저 사라졌다. 2010년 이후 3차례에 걸쳐 화장품·음료류 등의 포장기준을 완화했고 이는 과대포장을 부추겼다. 이렇게 경제논리로 규제의 끈을 풀어준 대가는 컸다. 1회용 컵의 소비량은 2009년 4억3226만개에서 2015년엔 6억7240만개로 급증했다. 비닐 사용량은 2015년 기준으로 1인당 420개에 달했다. 핀란드(2개)와 아일랜드(20개)는 차치하고 그리스(2010년 기준 250개)와도 견줄 수 없다.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98.2㎏)과 포장용 플라스틱 사용량(64.1㎏)은 세계 1·2위(2017년)이다. 법적·제도적 규제가 사라지자 시민의 불감증도 커졌다. 오히려 정부가 앞장서서 1회용품 사용 억제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과 경각심을 느슨하게 풀어준 꼴이다.

이번 재활용 쓰레기 대란을 계기로 재활용 방안을 모색 중이지만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재활용 대책 마련에 중심을 두기보다는 원천적으로 발생량을 줄이는 쪽에 집중해야 한다. 예컨대 비닐봉지는 “방수가 되고 가볍지만 자신의 무게보다 수천배가 더 무거운 것도 담는 놀라운 물건”(수전 프라인켄의 <플라스틱 사회>)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 ‘놀라운 물건’의 평균 사용시간은 단 25분인데, 분해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0~500년이다. 그런데도 이 환경파괴의 주범인 1회용 컵과 비닐봉지, 플라스틱을 무시로 들고 다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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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스포츠 문화는 대체로 ‘나라 잃은 설움으로 청년들이 어울려’ 같이 낭만적으로 서술된다. 그런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일제강점기라 해도 시민/노동자에 의한 새로운 도시 문화의 형성과 그에 따른 집합적 정서의 강렬한 표출이 여러 도시에서 전개되었다.

북방의 대표적인 항만, 무역, 공업 도시 원산. 이곳에서는 1897년에 6홀 규모의 골프가 시작되었고 그 하늘 위로 축구공이 날아다녔다. 1926년 11월18일자 신문을 보면 폭우로 경기가 취소된 줄 모르고 관중들이 ‘우중에 장시간을’ 기다렸으나 주최 측은 ‘하등의 일언반구도 끗(끝)까지 막연’하여 결국 관중들은 원산체육회를 항의 방문까지 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개항 이후 항만, 정미, 목재, 연초, 제분, 철강 등 근대적인 산업 도시로 탈바꿈한 인천에서 1920년대에 인배회, 율목리팀 같은 자생적 ‘클럽’이 생겨나고 이들이 제물포고교 자리였던 웃터골에서 매해 ‘전인천 축구대회’를 가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압권은 역시 경평전이다. 경성과 평양은 근세기 이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영역에 걸쳐 경쟁 관계를 형성하며 발전해왔다. 청나라를 통해 일찌감치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대륙 기질의 평양과 한반도의 중심 거점 도시로 풍부한 인적, 물적 자원을 가진 경성은 축구에 있어서도 자연스럽게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였다.

경성에는 조선축구단과 경성축구단이 있었다. 1918년 창단되었다가 재정난으로 해산한 불교청년회 팀을 1925년에 재규합한 조선축구단은 경성의 휘문의숙에서 수학하던 통도사와 해인사의 학승들을 중심으로 하여 상당한 공격축구를 전개했다. 이 축구단은 전조선축구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일본이나 중국 원정까지 다녔다. 1933년에 창단한 경성축구단은 연희전문 출신들을 주축으로 하여 조선축구단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평양에는 1918년 무오년에 창단했다 하여 ‘무오축구단’이란 이름으로 출발하였다가 1933년에 재편된 ‘평양축구단’이 있었다. 대성학교, 숭실중학, 숭실전문 출신들의 역사다. 전국 주요 도시마다 축구 문화가 활성화되던 때다. 부산을 거점으로 하는 전동래축구단은 김해, 밀양, 마산 등을 돌며 순회 경기도 가졌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면서 본격적으로 대륙을 향한 전쟁을 도모하던 일제는 그 병참기지 역할을 하는 조선의 주요 도시에 사람들이 운집하는 것을 철저히 막고자 했다. 1931년 11월 함경남도 안변에서 개최 예정이던 축구대회도 시국 불안 요소가 있다는 이유로 금지시켰다.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던 1931년 경평전 또한 일제는 대회 자체를 ‘불온’하다고 규정하고 홍보 작업을 한 평양의 구두 공장 노동자 전영택을 경찰서로 끌고 가서 ‘엄중한 취조를’ 하고 구류를 살게 했다.

그럼에도 이 시절에, 요즘의 프로 축구와 같은 특징이 이미 장착되었다. 지역 연고가 뚜렷했으며 스카우트 경쟁도 벌어졌다. 경성의 프랜차이즈 스타 김용식은 1940년대에 평양으로 이적하기도 했다. 요즘 같으면 서울 팀에서 뛰다가 평양의 어느 팀으로 소속이 바뀐 셈인데 한국전쟁을 전후로 하여 70년 가까이 지속된 ‘분단 체제’는, 오래전 경성 선수가 평양 선수로 이적하여 뛰었다는 사실조차 쉽게 ‘상상’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1929년을 전후로 하여 수년 동안 전개된 경평전은 ‘홈 앤드 어웨이’ 및 ‘정기전’이라는 요소, 즉 단지 ‘식민지 청년들의 울분’만이 아니라 본격적인 ‘현대 도시의 프로 스포츠 문화’라는 특징을 충분히 실현해 가고 있었다.

1933년 4월, 평양 기림리 공설운동장에서 3회 대회가 열렸다. 무려 2만여 명이 몰렸다. 이때부터 경평전은 ‘홈 앤드 어웨이’를 전제로 한 라이벌전 성격을 갖게 된다. 당시 신문은 ‘제바닥’(홈) 경성이 이길 것인가 아니면 ‘원래’(遠來·어웨이)의 평양이 이길 것인가라고 썼다. 해방 직후의 시대적인 혼란과 열기는, 1946년 서울에서 열린 경평전을 격렬한 혼란과 열기로 휩싸이게 하였다. 관중 난동이 발생하고 경찰은 공포탄까지 쐈다.

그리고 수십 년이 그냥 흘러버렸다. 1990년 가을에 평양과 서울을 오가는 ‘남북통일축구대회’가 열렸고 2002년 가을에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2002 남북통일축구경기’가 열렸으나 단발성 이벤트로 끝났다. 이런 이벤트는, 현대 도시의 집합적 열기가 서려 있는 격렬한 축구 정기전이라는 ‘경평전’의 역사성을 잇기에 부족했다.

그래서 상상해본다. ‘상상’이라서 우울하지만 ‘상상’의 가능성마저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전쟁과 분단으로 인하여 남한은 지리적으로 고립되고 북한은 체제적으로 고립되었다. 자동차로 서너 시간이면 오가는 거리면서도 ‘상상력의 완전한 고립’ 상태가 수십 년 동안 지속되었다. 때마침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의 분위기다. 숱한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어쨌거나 평화 체제의 구축을 향한 발걸음이다. 여러 측면의 남북 교류가 예상되며 그중 첫번째는 역시 스포츠 교류다.

이럴 때에 ‘경평전’의 부활은 의미가 있다. 단순한 축구 경기가 아니라 한반도를 살짝 흔들어대는 문화 행위가 될 수 있다. 한반도의 중심 도시로 정치와 경제와 문화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두 도시가 다시 ‘경평전’으로 서로 왕래해야 한다.

아무래도 일회적인 이벤트로 시작하겠지만 그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일회적인 이벤트는 대체로 싱겁다. 공 하나로 짐짓 으르렁대면서도 다 함께 함성을 지르는 풍경이 벌어져야 된다. 그저 우애와 친선의 한마당이 아니라 일단 휘슬이 불리면 이기고 봐야 하는 ‘홈 앤드 어웨이’의 각축전이 펼쳐져야 한다.

경기는 격렬할수록 아름답다. 강슛으로 골이 터지면 미안해할 거 없다. 끝난 후 서로 안으면 된다. 심한 몸싸움으로 넘어지면 가서 일으켜주면 된다. 축구는 축구답게! 그럴수록 다음 경기, 홈 앤드 어웨이가 기다려진다.

이렇게, 중앙정부 차원이든 서울시 차원이든, 살아 펄펄 뛰는 ‘경평전’의 부활을 기필코 이뤄내기 바란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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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질 수도 있으니 좀 가볍게 수수께끼 형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그간 우리 사회에 수많은 파업이 있었지만 이 파업처럼 장기간 진행되고 있는 파업은 일찍이 없었다. 또 이 파업처럼 정부와 사회가 무대책으로 일관한 적도 일찍이 없었다. 이 파업은 단기간에는 그 심각한 결과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파괴적 결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해법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고, 일단 그 파괴적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해법을 찾더라도 복구하는 데 장구한 시간이 걸린다. 이 파업의 이름은 무엇일까?

답은 출산파업이다. 페미니즘의 입장에 서 있는 분들은 출산파업이란 말 자체를 불쾌하게 여기겠지만, 풍자적 의미로 쓰는 말이니 잠시만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그간 한국사회나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다루는 관점은 한국이라는 거대한 공장에서 일어난 만성적 출산파업에 대한 대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만성적으로 지지부진 진행되는 파업이니 그 대응이 급할 것도 없었다. 이미 2010년 삼성경제연구소는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50년까지 1159만명의 이민자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참 선견지명으로 가득한 미래적 보고서를 낸 바 있고, 정부의 실세인 경제관료들은 지금도 이 해법을 금과옥조로 신봉하고 있는 중이다. 말은 중립적(?)이고 과학적인 언어로 점잖게 하지만 결국 한국이라는 공장에 출산파업이 일어났으니 대체노동력을 투입해서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관점이 이러니 당근으로 주어지는 출산장려책이란 것도 무슨 수당을 찔끔찔끔 주느니 마느니 하는 유의 것이어서 애초에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 참담한 결과는 현재 50만이 넘는 대학신입생 수가 20년 뒤엔 20만 남짓으로 떨어진다는 사실, 매년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세계 최저의 출산율 등이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저출산의 근본 원인은 위와 같이 한국을 거대한 공장으로 보는 관점 자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노동력으로 보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관리하는 근대 산업국가 패러다임 자체에 있다.

피그미족과 함께 수년간 생활을 하며 연구한 인류학자의 보고에 의하면 피그미족의 주당 노동시간은 15시간이다. 피그미족은 그 이상으로 많은 노동을 하는 것을 금기시한다. 무척 게을러 보이기도 하고 이상해 보이기도 하는 이 피그미족의 노동시간은 그러나 자연생태계와의 관계에서 보면 매우 합리적인 것이다. 15시간 이상의 노동을 하면 피그미족이 생활하는 범위 내의 자연생태계가 점차 고갈되어 종족의 지속적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

인류학자들의 연구보고에 의하면 피그미족만이 아니라 역사시대 이전이건 이후건 수렵채취생활을 하는 종족들의 노동시간은 15시간 남짓이었다. 맹목적인 축적이 노동을 규정한 것이 아니라 자연생태계와 생활생태계의 조화가 노동을 규정하였다. 이러한 점은 전통 농경사회까지 대체로 마찬가지였다. 우리 고대소설 &lt;흥부전&gt;에서 흥부는 제비 다리도 고쳐주고, 부모와 자식, 형제 이웃과의 관계를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자연생태계, 생활생태계와의 조화를 추구하는 전통사회의 인물형이다. 이에 반해 놀부는 부의 축적을 위해 생활생태계와 자연생태계를 서슴없이 파괴하는 근대적 인물형이다. &lt;흥부전&gt;은 흥부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근대 산업사회는 인류 역사에서 보면 매우 짧은 기간 존속해온 예외적인 사회이다. 축적 자체를 위해 노동을 하고 맹목적 축적을 위해 자연생태계와 생활생태계의 파괴를 서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 결과가 온난화, 미세먼지 같은 심각한 환경 문제이고, 가족과 지역사회의 해체라는 생활생태계의 붕괴이다. 자연생태계가 파괴되고 생활생태계가 붕괴되면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유적 존재로서의 생존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느낀다. 이것이 산업화가 덜 진전된 못사는 나라가 산업화가 고도로 진전된 사회보다 행복도가 높고 유독 산업화가 고도로 진전된 사회에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나는 이유일 것이다.

근대 산업사회는 물질적 풍요라는 측면에서는 성공한 사회지만 삶의 질이나 행복도에서는 실패한 사회이다. 생산성 중심의 산업사회 패러다임에서 삶의 질 중심의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환은 인공지능자동화가 전면화하는 미래사회와도 맞는 방향이다. 그 패러다임의 전환이란 한국을 더 이상 거대한 공장으로 보지 않고 사람들이 깃들어 살아가야 할 생활생태계로 보는 것, 한국인을 더 이상 거대한 공장의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 일꾼으로 보지 않고 생태계를 조화롭게 꾸려나가야 할 주체로 보는 것일 게다.

얼마 전 교육 관련 국책연구원들을 순방할 기회가 있었다. 모두들 열심히 잘하고 있었는데 묘하게 남은 것은 답답함과 두려움이었다. 연구원이니 좀 여유를 갖고 앞에서 말한 미래 패러다임에 대한 고민 같은 것도 하고 있겠지 기대했는데, 보이는 것은 교육부처와 마찬가지로 생산성 중심 산업사회 시스템의 레일 위를 달려가는 기관차의 맹렬한 속도였다. 저렇게 맹렬한 속도로 달려가는 기관차가 이미 시야에 들어와 있는 인구절벽 아래로 떨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두려웠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인구 절벽에 대비하여 지역의 생활생태계가 지속 가능하도록 교육시스템을 어떻게 조정하고 어떤 시스템을 어디에 어떻게 남겨야 하는지 ‘미래교육생태계지도’를 그려야 한다. 그리고 그 지도에 따라 기관차의 속도와 방향을 조절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미래생활생태계지도를 그리면 좋겠지만 너무 많은 변수가 있어 어려우니 고정된 시스템을 다루는 미래교육생태계지도부터 그리자는 것이다. 교육기관은 지역 생활생태계의 구심점 역할을 하니 미래교육생태계지도는 현재 상태에서 가능한 미래생활생태계지도이기도 할 것이다.

<김진경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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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동자 싸움의 현장에 갈 적마다 마치 온몸이 불붙는 화살처럼 소리소리 달려가곤 한다. 그러다가도 남몰래 흥얼대는 노래가 하나 있다. 얼마 앞서는 쌍용차 노동자 김득중이 “선생님, 이참엔 굶어죽는 싸움으로 결판을 내고야 말겠습니다”라며 돌아간 뒤에도 나는 남몰래 노래를 불렀다. 무슨 노래일까. ‘섬집아기’라는 애들 노래지만 거기에 얽힌 이야기는 이렇다.

내 나이 열여덟, 전쟁이 한창일 적 전선에서 돌아가신 형님의 유해라도 찾겠다며 부산에서 영등포로 가는 기차에 몰래 타긴 했는데 밀양인가부터 기차가 멎고는 가질 않는 거라. 몇 날을 굶어서 배는 고프지 눈보라는 치지 꽁꽁 얼붙던 그때 그 숨죽은 그 역 앞마당.

하지만 그 침묵을 깨는 게 있었다. 달걀장수 아줌마가 어린 애를 포대기에 싸서 눈더미 위에 올려놓고 가 그 어린 것이 우는 소리라. 하도 안타까워 뛰어내려 달래주고 있는데 그 달걀장수 아줌마가 고맙다며 달걀 하나를 주는 게 아닌가. 너무나 감격해 막 입에 넣으려고 하는데 그 어린 꼬마가 아 앙~, 나도 모르게 달걀을 뜯어주니 낼름, 또 주어도 또 낼름, 마침내 다 빼앗기고 나자 내 정신이 돌아오는데 아이구야 고리눈으로 돌아오는 게 아닌가. 그래서 고것이 예쁘기도 밉기도 한데 마침 꽥~ 그 어린 것이 우는데도 나는 기차를 타고 떠나왔지만 그때부터다. 내 마음엔 탈(병)이 하나 들고 말았다. ‘네 이놈 겉으로는 착한 척하면서 거짓부리지 마라 이놈’ 그런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던 어느 날이다. 아내가 부엌에서 흥얼거리는 노래가 들려왔다. “여보, 그 노래 괜찮은데 다시 한 번 불러 봐.” 그래서 익힌 노래가 바로 ‘섬집아기’. 이때부터다. 내 인품이 모자라다 싶을 적엔 늘 그 노래를 부르곤 하는데 문화활동가 신유아의 전화다. 콜트콜텍 노동자 싸움에 함께하시자고.

콜트콜텍 노조원 이인근, 김경봉, 임재춘씨(왼쪽부터)가 2017년 12월 26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옆 천막농성장 앞에 서 있다./정지윤기자 콜트·콜텍 해고노동자 이인근, 김경봉, 임재춘씨(왼쪽부터)가 서울 광화문 천막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부당해고에 맞서 이들의 싸움은 내년 1월12일이면 4000일이 된다. 국내 최장기 투쟁이다. 정지윤 기자

잘 아시겠지만 콜트콜텍의 자본가가 투자한 자본금은 오매 200만원. 하지만 노동자들이 피땀으로 일궈 몇 해 만에 재계 120위의 부자가 되었다. 아무튼 같이 살자고 노조가 이마를 맞대고 있는데 갑자기 회사를 통째로 인도와 중국으로 빼돌렸으니 그건 무엇일까.

첫째, 역사범죄다. 무슨 말이냐. 우리 인류는 지난 3000년 동안 경제의 참 알기(주체)는 자본이 아니라 노동이라는 걸 깨우쳤다. 그게 있기에 우리 인류는 영광에 빛나는 건데 콜트콜텍 사장은 그 깨우침을 주관적으로 깨트렸으니 그건 어절씨구 역사 알기(주체)의 말살범죄라, 요만큼도 용서해서는 안 된다.

둘째, 공장이란 물건만 만드는 데가 아니다. 노동자의 살티(목숨)의 텃밭이다. 그것을 강제 폐쇄했다는 것은 무엇일까. 노동자의 목숨을 공개적으로 죽인 만행일 뿐만 아니라 사람과 그 사회를 짓이긴 침략이라, 어찌해야 할까. 암, 민주정신으로 응징해야 한다.

셋째, 인류문명이란 무엇인가. 예술의 발전이다. 그것은 또 어디서 오는가. 아무렴 노동에서 온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 바로 콜트콜텍인데 그 공장을 죽이다니, 그것은 곧 인류문명인 예술을 죽이는 반문명이라, 누가 나서야 할까. 바로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나서 싸운 지가 어느덧 오늘로 4090일, 그것은 피눈물의 싸움이었지만 거대한 먹괭이(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듯 아직도 실마리가 보이질 않는다.

하지만 요만큼도 머뭇대선 안 된다. 이 싸움에서 밀리면 역사, 그 나아감의 심정적 패배라, 나 같은 사람은 그저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라는 노래로 나설 터지만 우리 시민들은 길이 없으면 길을 찾아가고 그래도 길이 없으면 길을 내자는 ‘아리아리’로 나서자. 이제는 세상을 바닥에서부터 발칵 뒤집는 노래 아리아리로 저 끔찍한 반생명과 맞붙는 싸움에서부터 이겨야 하나니, 벗이여 눈물겨운 벗이여.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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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폐기물 대란이 있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분리배출을 하고 있고 어딜 가나 종류별로 재활용 쓰레기통이 갖춰져 있어 분리수거가 잘되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사실 우리나라 환경정책 중에서 가장 내세울 만한 정책이 폐기물정책이었다. 한국의 폐기물정책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칭찬하는 모범사례로 꼽혀 왔다. 전국이 일시에 종량제 시행에 들어갔고 제도 시행 후 재활용률이 높아졌으며 분리배출이 문화로 자리잡은 듯했다. 2013년 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폐기물 재활용률은 59%로 독일(65%)에 이어 세계 2위였다. 이런 나라에서 재활용 폐기물 대란이라니!

폐기물 관련 숫자들을 보면 놀랍기도 하지만 곪았던 상처가 터진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컵이 무려 연간 260억개, 하루 7000만개란다. 비닐봉지 연간 사용량은 2015년 기준 1인당 420개다. 국민 한 사람이 매일 일회용 컵과 비닐봉지를 하나 이상 쓰고 있는 셈이다.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은 98.2㎏으로 세계 1위, 포장용 플라스틱 사용량은 64.1㎏(2017년 기준)으로 세계 2위다.

압축된 PET 뭉치. 김영민 기자

이대로는 안된다. 폐기물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감량’이다. 재이용, 재활용, 자원 회수 이전에 나날이 늘어나는 발생량 자체를 줄이는 것이 가장 먼저다. 거리 곳곳에 생겨난 커피전문점에서는 종이컵 사용이 기본이다. 매장 안에서도 플라스틱 뚜껑을 닫은 종이컵을, 그것도 마분지 홀더까지 끼워서 쓴다. 매장 밖으로 가져가니 종이컵에 담아달라고 부탁하는 게 아니라 매장 안에서 마실 거니 머그잔에 담아달라고 따로 요청해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찬 음료를 담은 플라스틱 용기에도 홀더를 끼워 쓴다. 냉장고에 진열된 병 주스를 사도 따로 플라스틱 용기에 얼음을 담아준다. 텀블러를 사용하면 할인혜택을 주는 매장도 있지만 모두 그런 것도 아니다. 비가 올 때면 곳곳에선 일회용 비닐봉지가 으레 사용된다. 보고 버릴 영수증도,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가 오지만, 매번 출력된다. 이제 이런 게 일상이고 문화가 되어버렸다.

일회용 컵의 경우 회수율을 높이고 재활용을 촉진하기 위해 보증금 제도가 2002년에 도입되었다.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규제 완화의 일환으로 이 제도를 폐지해 버렸다. 2010년에는 중소기업 부담을 이유로 플라스틱 폐기물 부담금 면제와 경감 범위를 크게 완화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서는 테이크아웃 일회용품에 대한 규제가 사라졌다. 그 사이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경계도 느슨해졌다.

제도적 장치가 사라진 자리에 커피전문점과 1인 가구, 소규모 포장 증가와 택배업체 과다 포장 등의 요소가 맞물리면서 폐기물 배출량은 빠르게 늘었다. 소비자의 세심하지 못한 분리배출도 문제를 키웠다. 중국의 재활용 폐기물 전면 수입 중단으로 그동안 숨겨져 있던 폐기물 처리의 불편한 진실이 민낯을 드러낸 것이다. 중국의 수입 중단 예고가 지난해 7월에 있었고 올 1월부터 실제 금지에 들어갔지만 환경부가 제대로 된 대처방안을 미리 마련하지 않아 상황이 악화되었다.

지난해 환경부가 실시한 일회용 컵 보증금제 재도입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9.9%가 찬성했다. 보증금제 도입에 대한 국민 수용성이 높은 상태다. 기대한 감량과 재활용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감량이 중요하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진 못한다. 상품 생산자에게 비용을 부담시키는 생산자재활용책임제를 확대·강화하여 생산과 유통단계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재활용이 손쉽게 이루어지도록 용기와 포장재질을 개선하는 방안도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정부와 기업, 시민, 모두의 책임 있는 실천이 절실한 시점이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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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현재 24개의 원전이 가동 중이다. 발전용량은 2만2529㎿이고 전체 전력의 30%가량 생산한다. 석탄발전소에서는 그것보다 더 많은 40%를 생산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둘을 모두 줄여나가고, 이를 통해서 언젠가는 에너지전환을 이룩하려 한다. 문제는 원자력과 석탄화력으로 생산하는 그 많은 전력을 무엇으로 만들 것인가인데, 정부에서는 태양광과 풍력이 역할을 해주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방송통신대 학생들과 함께 에너지전환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에 그게 가능한지 계산해보았다. 전원믹스를 고려하여 태양광으로 전체 전력의 30%인 원전을 대체하고, 풍력으로 석탄화력의 40%를 생산한다고 가정하고 계산을 하였다. 결과는 태양광이나 풍력 모두 원전과 석탄을 대신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태양광으로 원전이 생산하는 30%를 충족하려 할 때 필요한 용량은 원전의 다섯배가 조금 넘는 13만5000㎿였고, 설치에 필요한 면적은 약 1215㎢였다. 서울시의 2배 정도, 남한의 1.2%에 달하지만, 남한 전역에 퍼져 있는 건축물 지붕과 농토의 일부만 이용해도 얻을 수 있는 면적이다.

석탄을 풍력으로 대치하는 경우에는 계산이 조금 복잡해진다. 육지는 바람이 약해서 일부 산간지방과 해안을 제외하면 풍력발전기를 세울 만한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바람이 강한 바다로 나가야 하는데, 이 경우 풍력으로 석탄을 대치하려면 8만㎿ 용량의 발전기를 세워야 한다. 면적은 6만㎢ 정도가 필요하다. 남한 국토면적의 60%에 달하지만, 북쪽을 빼고 3면이 모두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나라에서 확보가능한 면적이다. 현재 1만6000㎿의 해상풍력발전소가 가동 중이고, 2020년에는 2만5000㎿의 발전소가 바람을 이용해서 전력을 생산하게 될 영국과 비교할 때 수십년 계획을 세우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문제는 건설비용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이다. 태양광 건설비가 ㎿당 약 1억4000만원, 해상풍력이 ㎿당 약 40억원이므로, 현재를 기준으로 단순하게 계산할 때 투입되어야 할 비용은 태양광이 약 200조원, 해상풍력은 약 300조원이 된다. 정부의 1년 예산과 맞먹는 대단히 많은 돈인데, 대부분의 관료나 정치인은 대기업이 나서주지 않으면 조달이 안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거대자본들이 큰돈을 투입해서 바다에 풍력단지를 세운다는 발상은 촛불혁명 전에나 수용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촛불혁명을 통해 국가의 주인이 시(국)민이라는 것을 뚜렷하게 인식하게 된 촛불시민들은 이런 발상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바다와 바람은 공유자원(커먼스)이다. 당연히 국가와 시민들이 공공을 위해 관리하고 개발하고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거대자본에 넘겨주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영국에서 해상풍력은 모두 거대자본이 가져가고 있다. 이에 대해 대다수 시민들은 별 관심이 없고, 민주사회에서 에너지전환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고민해왔던 소수의 시민들만 간간이 우려를 표할 뿐이다. 이들은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독일의 에너지전환 과정을 부러워하지만, 독일도 재생가능 에너지의 전력생산 비중이 30%를 넘어선 후에는 거대자본이 해상풍력이라는 큰 프로젝트에 뛰어들고 있다. 정부도 이들을 적극 지원한다. 물론 비판하는 세력도 있지만, 이 추세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들은 바다와 바람이라는 커먼스가 거대자본에 선점당하면 되돌릴 수 없다고 우려하며 안타까워한다.

에너지전환은 기술의 변화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촛불혁명의 정신과 상통하는 에너지전환 정신이 제거된 기술만의 변화는 진정한 에너지전환이 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조급증에 걸려서 커먼스를 거대자본에 내주면 이런 비극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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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오전 7시였다. 32일간 단식 끝에 쌍용차 해고자 김득중이 병원으로 실려갔다. 그는 2015년 8월에도 45일의 단식 끝에 병원으로 이송됐다. 쌍용차 정리해고 싸움 10년 동안 단식만 이번이 네 번째다. 그는 2016년 겨울엔 광화문 캠핑촌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봄이 올 무렵까지 텐트 생활을 했다. 우린 ‘촌민’으로 매일 만나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곤 했다.

쌍용차 싸움 10년 동안 스물아홉 명의 해고자와 그 가족들이 죽어갔다. 어떤 이는 목을 맸고, 어떤 이는 탄불을 피웠다. 어떤 아내는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아파트 난간으로 향했다. 그 피눈물들을 어떻게 눈뜨고 말할 수 있을까. 고공농성도 몇 차례였다. 2012년 가을 끝자락 한상균, 문기주, 복기성이 15만V의 전기가 흐르는 송전철탑에 올라 이듬해 여름 초입까지 171일 동안 허공에 떠 있었다. 베니어합판 몇 개 놓은 위험천만한 고공농성. 2014년 12월13일에는 김정욱과 이창근이 공장 안 70m 굴뚝에 올라가 입김도 얼어붙던 겨울을 나고 101일 만인 이듬해 봄에 내려왔다. 2012년부터 1년 반 동안은 서울 대한문 앞에 스물두 명의 얼굴 없는 영정을 모시고 분향소를 지켜야 했다. 기름을 껴안고서라도 분향소를 지키겠다던 김정우가 끝내 구속된 해다. 그는 박근혜가 선거용 사진을 찍기 위해 전태일 흉상 앞에 서는 것을 온몸을 던져 막았다. 괘씸죄였다.

쌍용차 해고자들만이 걸어온 통한의 길이 아니다. 2009년 지금은 구속된 이명박이 테이저건으로 무장한 테러진압부대를 보냈던 77일간의 점거파업 현장부터 수많은 시민들이 그들과 함께 희망고문의 길을 걸어왔다. 쌍용차만의 투쟁이 아니었다. ‘정리해고’라는 사회적 광우병에 대한 2200만 노동자 가족들과 소수 자본가들 간의 대리전이었다. 정리해고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공방의 격전장이었고, 노사정 모두 물러설 수 없는 고지전이었다. ‘해고는 살인이다’를 둘러싼 사회적 진실규명 투쟁이기도 했다.

2012년, 박근혜도 당선되면 맨 먼저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정조사에 나서겠다고 했다. 2015년, 의원 시절 문재인 대통령은 현재 구속되어 있는 한상균 등이 있던 철탑까지 올라와 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2015년 총선 당시 김득중이 노동자 후보로 평택시 국회의원에 입후보했을 때 후원회장은 조국 민정수석이었다. 현재 구속된 한상균과 77일간의 파업 당시 함께 구속되어 2년을 살다 나온 김혁의 삶과 우정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lt;내 안의 보루&gt; 출간 도우미를 조국씨와 함께 했던 따뜻한 기억도 난다. 2014년 고법에서 승소한 ‘회계 조작에 따른 부당해고’가 그해 11월13일 대법원에서 통상적으로 인정되기만 했어도 모든 문제가 끝날 일이었다. 2015년 ‘더 쉬운 해고, 더 많은 비정규직, 더 적은 임금’ 등을 목표로 총체적인 노동법 개악을 준비하던 박근혜 정부의 정치공작과 외압은 없었을까. 2014년 8월 만들어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이 비선으로 관리했다는 ‘노동시장개혁상황실’은 아무런 역할이 없었을까. 고법 판결 후 마힌드라사 자문으로 나선 김앤장의 힘이었을까. 진실은 언제 밝혀지고, 불의는 언제 바로잡히는 것일까.

감옥에 갇힌 한상균이 김득중을 대신해 옥중 단식을 하고 있다. 2011년 부산 한진중공업에서는 쌍용차와 같은 죽음이 일어나면 안된다고 희망버스 차장이 되셨다가 얼마 전 끝내 벌금을 선고받은 문정현 신부님이 쌍용차 김득중의 단식에 연대하기 위해 스스로 구치소 노역장으로 들어가시기도 했다.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가 모두 김득중이고, 한상균이고, 윤충렬이고, 김정욱이라고 나서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쌍용차이고, 스물아홉 명의 얼굴 없는 죽음이고, 그 분노라고 나서야 하지 않을까. 박근혜도 이명박도 없는데 이렇게 조용하고 싸늘한 사회가 조금은 이상하지 않느냐고 다시 광장으로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4월7일 오후 3시, 평택역 앞에서 피눈물의 쌍용차 자동차들을 ‘워낭소리’처럼 끌고 평택 쌍용차 공장 앞까지 김득중의 빈자리를 메우러 함께 간다. 다음엔 무엇을 들고, 어디로 가야 하나. 싸늘한 마음에 조금씩 불길이 일고 있다.

<송경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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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은 무작정 국도 갓길을 걷기 시작했다.

새벽 1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가로등 하나 없는 국도는, 그러나 보름이 가까워진 달과 그 달빛을 한 몸에 받은 벚꽃 때문에 그렇게 어둡진 않았다. 이따금 바람이 한차례 불어올 때마다 어린 나비의 날개 같은 벚꽃이 살아 움직이듯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다녔다.

 

 

“더러워서, 진짜….”

정용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혼잣말을 했다. 벚나무와 야산에 가려 물류창고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되돌아간다면….’ 걸어서 채 20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정용의 마음이 약해진 건 그 거리 때문이었다. 잠깐 수치스럽고, 잠깐 고개를 숙이면, 일당도 제대로 받을 수 있을 것이고, 또 몇십 킬로미터를 걷지 않아도 될 것이다. 몇십 킬로미터라니, 그게 무슨 편의점에 새로 나온 과자 이름인가? 정용은 까닭 없이 자신이 버려진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달부터 정용은 일주일에 세 번, 광역시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물류창고에서 택배 상하차 알바를 시작했다. 주간과 야간 타임을 고를 수 있었는데, 정용은 오후 6시부터 시작해서 오전 6시에 끝나는 야간 근무를 선택했다. 시청 근처에 있는 정류장에 오후 5시쯤 서 있으면 용역 회사에서 마련한 전세버스가 도착했는데, 그 버스를 타고 출근했고, 다시 그 버스를 타고 퇴근했다. 그만큼 물류창고는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일반 버스 노선이 닿지 않는, 외진 야산 근처에 있었다. 알바생들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고 그랬나 보지, 뭐. 정용과 달리 주간 타임에서 일하는 진만은 툭, 그렇게 말했다. 과연, 그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일은 고됐다. 하룻밤에 택배 상자 3000개를 트럭에 쌓는 일이었다. 일당은 8만원. 2주 연속 일을 나갔더니 그나마 허리 통증은 덜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침 퇴근 버스를 타면 현기증이 일고 종아리가 쑤셔왔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정용은 다시 몸을 돌려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쨌든 길은 다 이어져 있는 거니까, 걷다 보면 언젠간 도착하겠지. 정용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정용은 물러설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제 아침, 정용은 일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물류창고 담당 팀장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분명 계약한 시간은 오전 6시까지인데, 왜 7시까지 일을 시키느냐, 그렇게 일을 더 시킬 거라면 추가 수당을 줘야 하지 않느냐, 정용은 때가 잔뜩 묻은 목장갑을 사무실에 반납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40대 초반쯤 보이는 담당 팀장은 컴퓨터 엑셀파일을 정리하다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야, 뭐 우리가 대단한 일 시켰냐? 뭐 어려운 일 시켰어? 버스 오기 전에 잠깐 박스 좀 한쪽으로 정리해달라고 한 건데, 그게 뭐 그렇게 시간 따질 만큼 굉장한 일이라고…. 아, 진짜 요즘 애들은….”

정용은 담당 팀장의 말에 기분이 상했는데, 그건 말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말의 태도 때문이었다. 저 인간은 날 언제 봤다고 저렇게 반말을 해댈까? 정용은 지지 않고 더 따지고 싶었으나 버스 시간 때문에 그러질 못했다. 그리고 바로 오늘 자정 무렵 주어진 10분 휴식 시간에 정용은 다시 담당 팀장에게 따져 물었다. “시간을 따질 만큼 굉장한 일이라서가 아니고요, 정확히 하자는 거죠.”

“야, 마음에 안 들면 그만둬! 그만두면 되잖아. 너 아니어도 매일 일하겠다고 오는 애들 천지야. 아, 진짜 우리 땐 안 그랬는데, 요즘 애들 왜 이러지?”

정용은 그 말에 바로 끼고 있던 목장갑을 벗어 바닥에 던지고 물류창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정용은 후회하진 않았으나, 다리는 아팠다. 이대로 걸어가다 보면 모르긴 몰라도 아침 퇴근 버스보다 더 늦게 도착할 게 뻔해 보였다. 정용은 아름드리 벚나무 아래 서서 잠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벚꽃에 가려 밤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이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벚꽃이 뭐 대단한 일을 한다고 4월마다 사람들은 난리를 칠까….’ 정용은 괜스레 나무 밑동을 발로 툭 걷어찼다. 꽃잎이 우수수, 아래로 떨어졌다. “좋겠다, 넌, 정리하지 않아도 돼서. 요즘 애도 아니라서….” 나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정용이 한 시간 넘게 국도 갓길을 걸었을 때였다. 갑자기 등 뒤에서 헤드라이트 불빛이 다가왔다. 정용은 거의 반사적으로 차선 정중앙까지 뛰어나가 양팔을 흔들었다. 물류창고를 빠져나온 이후 처음으로 보는 차량 불빛이었다.     

저 차만 얻어 탈 수 있다면, 광역시 근처까지 갈 수만 있다면, 정용은 이 밤의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치 추운 겨울날, 자신을 태우러 다가오는 택시를 만난 것처럼, 정용은 최선을 다해 크게 팔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의 앞까지 다가온 차는 속도를 멈추지 않고 그대로 지나쳤다. 그를 피해 반대편 차선으로 넘어가면서까지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정용은 두 손을 든 채 멀거니 멀어져가는 차의 트렁크를 바라보았다. 차가 지나간 자리에 벚꽃이 먼지처럼 일어났다가 다시 서서히 내려앉는 모습이 보였다.

그냥 그대로 지나칠 것 같았던 차는, 정용과 이삼십 미터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그러곤 시동도 끄지 않은 상태로 한 남자가 운전석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어두워서, 정용은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순 없었지만, 그가 고함처럼 내지르는 말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야, 이 새끼야, 미쳤어! 네가 멧돼지야! 깜짝 놀랐잖아! 하여간 요즘 새끼들은….”

남자는 그렇게 말하곤 다시 재빠르게 차 안으로 들어갔다. 차는 더 빠른 속도로 정용과 멀어졌다. 정용은 그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서 있었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사라진 국도는, 좀 전보다 훨씬 더 컴컴해진 것 같았다. 벚꽃이 만개해 있어도, 벚꽃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다. 그 어둠이 정용은 좀 무서웠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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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2000년 연 451만1000원이었던 4년제 사립대 평균등록금이 지난해 739만9000원까지 올랐다고 한다. 만약 2000년 이후 대학들이 매년 물가상승률만큼만 등록금을 올렸다면 지난해 등록금은 연 700만원 수준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비록 지난 수년간 대학들이 등록금을 동결 및 인하해 왔으나 여전히 대학 등록금은 ‘비싸다’는 주장이다. 더불어 향후 3~4년 동안 등록금 인상 억제 기조를 유지하면 2000년 이후의 대학 등록금 인상률이 같은 기간의 물가상승률과 비슷해질 것이라며 당분간 등록금 인상 저지 방침을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필자는 교육문제에 관심이 많은 경제학자로서 교육부의 이러한 주장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교육부가 등록금 동결을 고수해서가 아니라, 교육부 관료들의 무지함에 놀라서이다. 교육부가 제시한 계산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0년 소비자물가지수(기준연도 2015년)는 66.6으로서 지난해 소비자물가지수 102.9와 비교하면 그간 1.55배의 물가상승이 있었다. 만약 대학 등록금이 같은 비율로만 상승하였다면, 지난해 대학 등록금은 2000년 연 451만1000원의 1.55배인 약 700만원이 적합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가 놓친 것이 있다. 바로 우리 경제의 성장이다. 우리는 지구상의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지금은 1인당 GDP 3만달러를 내다보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다. 우리 사회의 모든 시스템과 재화 및 서비스의 공급이 이러한 경제성장과 궤를 같이한다. 교육 서비스 역시 이에 합당한 양적·질적 발전을 꾀하는 것이 바로 ‘성장’이다. 지난 2000년의 우리나라 1인당 GDP는 1만1950달러로, 원화로 환산하면 약 1351만원이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2만9740달러로, 원화로 환산하면 약 3364만원이다. 1인당 GDP로 따진다면, 2000년과 지난해의 차이는 무려 2.5배에 달한다. 말하자면, 2000년의 대한민국과 오늘의 대한민국은 완전히 다른 사회라는 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10년이 근 두 번이나 반복되었다.

그렇다면 경제의 성장과 사회 전반의 발전까지 고려한 적절한 수준의 등록금은 얼마인가. 당연히 2000년 당시 연 451만1000원의 약 2.5배인 1127만8000원이다. 만약 교육부가 2000년 당시의 대한민국에 걸맞은 대학교육을 원한다면 여전히 등록금은 ‘비싸다’. 만약 교육부가 2018년의 대한민국에 걸맞은 대학교육을 원한다면 지금의 등록금 약 740만원은 싸도 너무나 싸다. 소득 3만달러 시대의 대한민국에 소득 1만달러 수준의 대학교육을 강요하는 교육부라면 역사를 거꾸로 살기로 작정한 조직이다.

교육부의 등록금 동결 정책 자체에 대해 비난할 생각은 없다. 선진적인 복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시대적 요구를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등록금은 여전히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천문학적인 등록금을 요구하는 미국의 사립대학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은 대학 재정의 대부분을 국가가 보전하고 있다. 물론 등록금도 없다. 미국과 비교한다면 우리나라 사립대의 등록금이 아주 싼 편이지만, 등록금이 거의 전무한 다른 OECD 국가들과 비교하면 매우 비싸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정부의 장기적 전략과 정책적 판단이다. 대학 운영에 대해 미국식 자유화를 추구해갈 것인지, 무상교육에 기반한 유럽식 복지체계를 따라갈 것인지에 따라 대학의 재정조달 방식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우리나라는 교육 복지에 대한 국민적 요구의 증대에 따라 지난 10여년간 등록금 인하 정책을 고수해 왔다. 이는 장기적으로 유럽식 복지체계를 일부 수용하겠다는 정부 차원의 선언인 셈이다. 그러하다면 대학의 재정조달 역시 일정부분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러한 철학적 고민 없이 물가상승률 타령을 하면서 대학 등록금이 아직 비싸다고만 외쳐대는 것은 너무 안이한 태도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맞이하고 있다. 새 시대에 적합한 인재 양성을 위해 모든 국가들이 전략적으로 고등교육의 발전을 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지난해 사립대 평균등록금(약 740만원)은 딱 2009년의 등록금과 일치한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한다면, 2009년 이후 대학의 재정 상태는 ‘성장’은 고사하고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그나마 확대된 대학재정지원사업들은 되레 정치적으로 악용되며 대학을 더욱 혼돈 속에 빠져들게 했다. 진정으로 대학교육의 발전을 위해 존재하는 교육부라면 ‘등록금 동결’ 이상의 무언가를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김영철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교육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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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동료들이 점심식사를 마친 뒤 플라스틱이나 종이로 된 일회용 컵에 담긴 커피와 음료를 든 채 사무실 주변을 산책하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한국 도심의 일상적인 풍경이 돼 버렸다. 이렇게 쓰이는 일회용 컵이 연간 260억개, 하루 7000만개에 달한다. 일회용 컵 사용량을 억제하기 위해 2003년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가 탄생했다. 커피전문점에서 일회용 음료컵을 제공하면서 보증금을 받았다가 컵을 가져오면 돌려준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2008년 사라졌다. 음식점이나 학교, 병원, 기숙사 등 식품 접객업이나 집단급식소에서 일회용 종이컵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한 규제도 같은 해 사라졌다. 게다가 ‘테이크 아웃’ 커피 열풍이 불면서 일회용 컵 사용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은 일부 커피전문점 프랜차이즈 업체들을 대상으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도록 유도하는 ‘자율협약’ 수준에 머물고 있다.

재활용 쓰레기 수거 혼란이 정상화에 들어간 3일 오전 강원 춘천시 혈동리 환경사업소 뒷마당에 압축 재활용품 더미가 쌓여 있다. 연합뉴스

중국의 수입금지 조처로 촉발된 ‘재활용 쓰레기 대란’은 한국 사회가 그간 재활용 쓰레기를 얼마나 과도하게 배출했는지 잘 보여준다. 과다포장 관행, 일회용품 과다사용 문화에 길들여진 채 분리배출만 하면 자원으로 재생될 것이라는 안이한 인식과 규제완화가 겹치면서 한국의 비닐·플라스틱 사용량은 세계 최고수준에 달했다. 정부는 일회용 비닐봉지 무상제공을 금지하지만 한국의 비닐봉지 연간 사용량은 1인당 420개로 독일(70개)의 6배, 핀란드(연 4개)의 100배에 달했다. 통계청의 2016년 조사를 보면 국내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은 98.2㎏으로 미국(97.7㎏)을 제치고 세계 1위였다. 2011년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은 하루에 3949t이던 것이 2016년 5445t으로 1.5배 가까이 늘었다.

주요 선진국들은 비닐·플라스틱 처리를 위한 획기적인 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2042년까지 25년간 불필요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모두 없앤다는 야심찬 계획을 지난 1월 발표했다. 프랑스는 2020년부터 플라스틱 컵이나 접시, 비닐봉지 등 썩지 않는 일회용 제품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환경부가 재활용 업체들을 설득해 수도권 지역의 비닐·플라스틱 등을 정상적으로 수거하기로 하면서 급한 불은 껐지만 여기서 멈춰서는 안된다. 재활용 쓰레기 발생 자체를 줄여야 한다. 과거 정부 때 완화됐던 플라스틱 폐기물 부담금 등의 규제수준을 대폭 높이는 등 감량화에 정책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각 직장과 가정에서도 우선 종이컵과 비닐봉지 등 일회용품 사용량을 줄이는 작은 실천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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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다행이다. 쓰레기 대란 뉴스를 접한 첫 느낌이 이랬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은 인생만이 아니다. 날마다 물건을 사고 쓰고 버리지만 이 비닐의 정체는 무엇이며 이 페트병이 어디로 가서 어떻게 처리되는지 상관할 바 아니었다. 그런데 그만 컨베이어 벨트가 멈추자 난리가 났다. 일명 쓰레기 대란인데, 우리는 날마다 대란 속에 살아왔다. 비단 재활용 쓰레기만이 아니라,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건사고가 나서야 비로소 몸부림을 치며 우왕좌왕한다. 그리고 서로 탓한다. 중국이 수입을 안 해서 그렇다는 둥, 환경부가 알면서도 대책에 게을렀다는 둥 언론에서도 누구 잡을 데 없나 몽둥이를 들이댄다. 이 두더지 잡기는 대한민국의 신풍속인가?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보잘것없는 살림인데 터무니없이 늘어나는 재활용 쓰레기가 부끄러워, 어디 가서 엄마가 환경운동 한다는 말 하지 말라고, 아들한테 농담하곤 했다. 환경운동가도 농담으로 때우고 걱정만으로 지나쳤는데 누굴 탓하겠나! 이제 대란으로라도 우리나라가 쓰레기 분리수거 선진국이 아니며 여태 돈으로 쓰레기 문제를 해결해 왔다는 진실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라 할밖에.

1997년 여름, LA에서 하와이까지 요트로 횡단하는 경기에 참가 중이던 찰스무어는 파도도 없는 바다 위에서 이상한 느낌에 휩싸인다. 이크, 이게 뭔가, 자잘한 플라스틱 조각으로 뒤덮인 망망대해라니! 태평양 위에 존재하는 거대 쓰레기 섬 ‘GPGP(Great Pacific Garbage Patch)’가 처음 발견된 순간이었다. 요트대회 후 그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위험을 연구하는 해양환경오염 전문가가 되었고, 이 괴상한 쓰레기 더미 이야기를 ‘LA 타임스’에 기고하여 퓰리처상을 받는다.

멋진 한 사내의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한반도의 15배나 되는 거대한 쓰레기 더미는 환경운동가들이 나라로 명명했고,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1호 시민으로 등록한 바 있다. 세계화는 자원과 상품, 금융의 이동뿐 아니라 쓰레기도 세계를 떠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플라스틱은 죽지 않고 이동할 뿐이라는 무서운 진실도 알려주었다. 유독 물질을 흡수한 미세 플라스틱이 물고기의 몸을 거쳐 우리 밥상에 오른다는 걸, 이런 난리통이 아니면 들은 척도 안 한다는 게 제일 무서운 일이고.

쓰레기 대란은 마침내 올 게 온 것이다. 쓰레기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니 이제 대책도 같이 세워야 한다. 얼마전 인터뷰 기사에서 ‘고름 묵힌다고 살 되는 것 아니다’라는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정말 쓰레기 문제에서 고름 좀 발라내고 싶다. 중국이 재활용 쓰레기 수입을 거절하니 TF를 꾸려서 베트남 등 다른 팔 곳을 알아보겠다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긴 하다. 재활용업체에 세금으로 보조금을 더 줘서 앞으로는 이런 저항을 근절하는 것도 방법이다. 쓰레기 매립지를 더 넓히고, 지자체와 협상을 잘해서 자유롭게 갖다 버리는 것도 대책일 수 있다. 그런데 반복 가능성 농후한 대증요법이다.

진짜 해결은 일단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프랑스는 2020년부터 플라스틱 컵이나 접시, 비닐봉지 등 썩지 않는 일회용 제품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올 1월 영국 메이 총리는 2042년까지 불필요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모두 없앤다는 환경보호 전략을 발표했다.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에 세금이나 추가 비용을 물리고, 마트에서 제공하는 비닐봉지에도 5펜스(약 75원)의 가격을 매기겠다는 것이다. 만일 이런 정책을 우리나라에서 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다가오는 지자체 선거에서 우리도 이런 용감한 지도자가 선출될 수 있을까? 지도자를 잘 뽑는 일은 쓰레기 대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해마다 월드워치 연구소가 발행하는 지구환경보고서의 2010년 제목은 ‘소비의 대전환’이다. 현재와 같은 소비습관으로는 지구가 2개, 3개가 되어도 부족한데 과연 어떻게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지 재미난 대안을 제시했다. 일하는 시간을 줄이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포장이 잔뜩 된 인스턴트를 구입하거나, 상품을 요모조모 따져볼 수 없을 때는 어김없이 바쁠 때다. 도시인들은 모두 바쁘다. 그래서 시간을 소비재로 때우기 일쑤다. 그래서 이번 정부에서 시행한 근무시간 단축 근로기준법 개정이 사람들에게 잠시라도 여유를 주기를 기대한다. 생산과 상관없는 빈둥거림이 있어야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도 눈에 들어오고, 미세 알갱이가 생선을 통해 내 아이 입속에 들어간다는 사실에 전율하며,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성찰을 비로소 할 수 있고, 그것이 시민운동의 시작이라고 굳게 믿는다. 

사족. 정부는 일자리 창출에 엄청난 예산을 들이붓고 있다.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스티로폼 포장재나 썩지 않는 플라스틱의 대체재 개발 등 젊은 인재들이 도전할 만한 과제를 주고 지원하는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 한술 더 뜨자면, 생산자들이 포장재 이런 거품경쟁을 계속하는 건 돈 쓰고 욕 먹는 일이니 다같이 줄이자고 먼저 담합해주는 꿈같은 상상을 해본다. 이런 담합도 죄인가요?

<이미경 |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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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환경보호부는 작년 7월 환경오염 등을 이유로 “올 연말부터 폐플라스틱, 분류하지 않은 폐지, 폐금속 등 고체 폐기물 24종의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중국이 수입을 중단하자 폐지·폐비닐·플라스틱 가격이 폭락하면서 처리에 대혼란이 생기고 있다.

이 여파로 지난해 말 ㎏당 130원이던 폐지 가격이 몇 개월 사이 100원가량 폭락하면서 폐지 줍는 노인들은 현재 ㎏당 30원 정도를 고물상에서 받고 있다. 가격 폭락 전에도 하루종일 100㎏을 주워도 고작 1만3000원 벌이였다. 하지만 동일한 양의 폐지를 주워도 지금은 3000원밖에 안된다. 고물상 역시 어렵다. 중간 도매상 재활용업체에 넘기는 마진도 ㎏당 10~20원 사이로, 폐지가 나오는 업체에서 무상으로 수거를 의뢰해도 수거비용이 나오지 않아 수거할 수 없는 실정이다.

폐지 줍는 노인들이 함께 취급하던 폐플라스틱 용기 값도 곤두박질치면서 ㎏당 90원에서 20원으로 떨어졌고, 지금은 공짜로 고물상에 넘겨도 잘 받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폐지 줍는 노인들의 생활고는 깊어지고 있다. 영세고물상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수도권 아파트와 계약을 맺은 재활용품 업체들이 비닐과 스티로폼 등을 거두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하면서 큰 혼란이 일었다. 다행히 환경부가 업체 지원대책을 설명하고 아파트와 수거업체 간 재계약을 독려하면서 정상 수거가 결정됐지만, 향후 정부와 지자체가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쓰레기 대란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

한국환경공단 ‘관세청 재활용가능자원 가격조사의 수입통관실적기준’ 2018년 1월 자료에 따르면, OCC(기계 펄프로 만들어진 종이나 판지: 신문, 잡지와 유사한 인쇄물)는 26만194t에서 28만859t으로 전월대비 10.2%로 증가했다. 그리고 ONP(표백하지 않은 크라프트지: 판지나 물결 모양의 종이, 판지로 만든 것)는 63만325t에서 80만33t으로 전월대비 26.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입폐지의 가격 또한 전월대비 OCC의 경우 t당 가격은 229달러에서 234달러로 2.2% 상승하였고, ONP는 t당 170달러에서 178달러로 4.7% 상승하였다. 국내 폐지가격 폭락 및 폐지처리 포화상태와 반대로 기업은 해외수입 비중을 늘린 것이다.

중국발 폐자재 수입금지 조치로 국내 폐지가격의 폭락으로 인해 폐지 줍는 노인의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다. 이 와중에도 폐지는 전월보다 높은 가격으로 더욱 많은 양이 수입되었다. 물론 자유경쟁 체제에서 수입량을 늘리는 것은 기업의 선택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국내 170만 폐지 줍는 노인의 허리는 더욱 휘어지고 있다. 바라건대 국내의 폐자원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시장경제의 자유경쟁도 좋지만 자원 하나 없는 나라에서 국내의 폐자원을 100% 우선 재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을 위해 시장 개입이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정재안 | 소상공자영업연합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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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트레킹을 위해 들렀던 아직 저개발국가인 부탄이 환경 보호를 위해 범국민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트레킹 루트 곳곳에, “자연은 모든 행복의 원천” “자연이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에 속해 있다” “지구는 우리 모두를 위해 만들어졌지 우리 일부를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같은 팻말들이 있었다. 심지어 산골의 초등학교도 옆 개천을 입양하여 관리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체험을 통해 환경의 중요성을 배울 것이다.

무엇보다 부러웠던 것은 히말라야의 맑은 공기였다. 서울에서 겪는 미세먼지 자욱한 하늘을 떠올리면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사실 우리나라는 중위도 편서풍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서쪽에 있는 히말라야의 맑은 공기가 우리나라 쪽으로 제트기류 같은 대기흐름을 타고 오게 된다. 그럼에도 서울의 공기가 나쁜 이유는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미세먼지의 원인이 되는 물질을 지나치게 많이 배출하기 때문이다. 미세먼지는 대체로 바람에 의해 희석되거나 쓸려가기 때문에 큰 문제 없이 넘어가지만, 때로 바람이 약해져서 대기가 그대로 머무르는 경우, 특히 대기 상층에서부터 고기압이 자리 잡아 공기가 상하로 섞이는 현상을 막아버리는 경우에 문제가 심각해진다.

중국에서 날아오는 부분은 중국이 나서서 노력해줘야 한다. 중국과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과학적 근거를 축적해가면서 협의해 나가야 하겠지만 단기간 내에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당장은 우리가 국내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을 최대한 줄여나가는 수밖에 없다. 국내적으로는 흔히 화력발전 같은 요인을 탓하지만, 미세먼지 분포 지도에서 인구와 활동이 집중되어 있는 서울 중심부가 거의 항상 나쁘게 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가 생활주변에서 만들어내는 요인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함을 알 수 있다. 이 요인이 우리는 아직 데이터가 없지만 유럽에서는 30퍼센트를 넘는다고 한다.

생활주변의 미세먼지는 생활 패턴을 ‘미세먼지 저감형’으로 바꿈으로써 줄이는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자가용 운행을 줄이고 대중교통이나 자전거를 이용한다든지, 경유차를 친환경차로 바꾼다든지, 에너지 사용이나 쓰레기 배출량을 줄인다든지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전거나 대중교통 인프라, 친환경차 교체 지원, 에너지세금의 조정 등과 같은 정부 정책도 필요하겠지만, 사회 구성원들이 더 맑은 공기를 위해 어느 정도의 불편은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또 자발적으로 참여해주지 않으면 제대로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

그러나 말은 쉽지만 실제 행동으로는 잘 연결되지 않는다. 개인 입장에서 보면 자발적 노력을 하는 데 따르는 생활의 불편함은 상당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 함께 동참하지 않는 한, 그 효과는 거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람들이 노력해주면 내가 노력하지 않더라도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으므로 먼저 나서지 않으려는 측면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이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누구도 저감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회 전체적으로는 맑은 공기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또 다들 이를 위해 조금씩은 노력할 의도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미세먼지가 많은 나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게임이론에서 얘기하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은 각 구성원의 인센티브 구조를 바꾸어 주지 않는 한 지속된다.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저감노력을 사회의 각 구성원들과 각 부문이 다 함께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포인트다. 아무래도 정부가 이러한 사회적 동력을 만들어 내기 쉬운 위치에 있으므로 앞장서야 할 것 같다. 우선 가정, 직장, 공장, 자영업체, 농업, 선박(벙커C유) 등 각 구성원 각 부문이 처한 위치에서 어떤 노력을 해나가야 할지 구체적인 행동 항목을 전문가들의 토의와 사회적 논의과정을 거쳐서 정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시민의 참여(예를 들어 대중교통 활용, 노후 경유차나 유해 공장 등에 대한 시민 감시, 작은 차 타기 등)가 중요한 부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 추진과정에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어느 정도의 불편은 감수하면서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점, 그래서 다들 동참하면 우리 모두가 좀 더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점을 꾸준히 설득하고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 환경, 기후 관련 여러 단체나 NGO, 특히 각급 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이 기꺼이 참여해준다면 범사회적 노력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가 보다 더 맑은 공기를 누릴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정홍상 | APEC기후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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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란이 아직도 뜨겁다. 최저임금 인상이 저임금 노동자들의 소득증가로 이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반발이 크다. 고용을 감축하거나 상여금을 최저임금에 포함하는 등의 방식으로 부담을 회피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은 단순히 임금을 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지속가능한 한국 사회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혼란을 조기에 수습하고 연착륙시켜야 한다.

현대적 의미의 최저임금제도는 1894년 뉴질랜드에서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생활 보장을 위한 입법으로 시작됐다. 영연방 중심 국가였던 영국도 1909년 최저임금법을 채택하였다. 처칠 총리는 의회에서 이렇게 연설했다. “특정 계급의 국민들이 최저생계 유지에 필요한 비용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다면 이것은 국가적 악재”라고.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우리나라는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에 최저임금제의 실시 근거를 두었으나 당시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실제 운용되지는 않았다. 최저임금제가 최저임금법으로 보장되기 시작한 1988년 당시 462.5원이었던 최저임금은 지난 30년간 연평균 9.65%의 인상률을 보이며 오늘에 이르렀다. 2018년 최저임금은 7530원으로 전년 대비 16.4% 올랐다. 17년 만의 최고 인상률이다. 문재인 정부의 의지대로 2020년까지 1만원이 되려면 매년 15.7% 이상 올려야 한다. ‘급격’한 인상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대한 주요 반대논리는 영세한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경영상의 부담으로 직결될 수 있으며 또한 저임금 계층의 일자리를 감소시켜 그들의 생존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상속도를 조절하거나 업종·지역별 차등화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노동계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최저임금이 곧 노동자가 받을 수 있는 ‘최대임금’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또한 최저임금이 사실상 ‘기준임금’으로 활용되는 상황에서 업종·지역별로 달리 정하면 노동자 간 불공정성 문제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중소기업과 노동계 모두 타당하고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중소기업·소상공인·노동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지속가능한 한국 사회 구축을 위해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속도 조절을 통해서라도 성공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헌법에 보장된 인간으로서 존엄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경제조건을 확보해 준다. 인간다운 최소한의 삶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공동체에 애정을 가질 구성원은 없을 것이다. 사회안전망이 아직 취약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계속되는 저임금은 근로자들에게 가혹한 일이다. 2012년부터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도입하기 시작한 ‘생활임금’은 최저임금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한다는 취지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최저임금 인상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요구의 반영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연착륙되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경제구조 관점에서 몇 가지 긍정적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소득양극화 완화다. 2016년 기준 소비자물가지수를 반영한 우리나라의 실질최저임금은 5.8달러로 독일(10.3달러), 미국(7.2달러), 일본(7.4달러)보다 훨씬 낮다. 최저임금 인상은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려 소득의 양극화를 완화하는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 미국·유럽에서 시행한 빈곤 퇴치 및 사회통합 정책 가운데 가장 효과적인 것이 최저임금 인상이었다. 그리고 최저임금 인상은 소비성향이 높은 계층의 임금소득 증가를 통해 내수를 자극하여 중소기업은 물론 경제 전체의 성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연구결과도 많다.

인권보장과 구조적 관점에서 최저임금 인상의 연착륙 방안은 무엇인가? 먼저 최저임금 1만원 달성 목표연도를 2020년에서 예를 들면 2022년으로 조정할 것을 제안한다. 목표연도를 없애고 최저임금을 평균임금의 일정 비율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가 겪는 저성장 속에서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하기에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어려움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또한 목표달성 위주의 경제정책은 성공하기도 힘들고 부작용이 너무 클 수도 있다.

그리고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비용 상승을 전가하는 불공정 거래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원청 대기업이 하청 중소기업에 비용 상승분을 전가하면 하청업체는 대기업의 납품단가 인하 압박을 저임금으로 벌충했다.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관행이 없어지지 않는 한, 최저임금을 인상할 때 중소기업은 납품단가를 맞추기 위해 고용을 줄이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 감소를 최소화하면서 임금의 정상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대·중소기업 간 공정거래의 정착으로 중소기업이 창출한 성과는 중소기업에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을 설비투자로 유도하여 대기업 일자리뿐만 아니라 하청 중소기업의 일자리가 창출되어야 한다. 2017년 상장사 사내유보금은 860조원, 이 중 10대그룹 사내유보금은 515조원으로 해마다 증가해왔다. 대기업이 설비투자 확대 없이 사내유보금만 계속 증가하면 대기업에 쌓여 있는 자금이 전체 근로자의 88% 이상이 일하고 있는 중소기업 부문으로 흘러들어가지 못하면서 최저임금 인상은 결국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희생만 가져온다. 끝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 증가가 소비 증가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복지확대도 수반되어야 한다. 미래 삶을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사회시스템에서 임금상승분은 가계저축으로 축적될 뿐 소비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간의 정부 대처는 아쉬움이 컸다. 급격한 인상으로 인한 부작용을 충분히 인지했을 법한데도 세심한 대책이 부족했다. 정부가 내놓은 일자리 안정자금은 당장 피해를 보는 영세사업주의 형편을 고려하지 못해 외면받고 있다. 강력한 재정·세제 지원뿐만 아니라 대·중소기업 간 공정 거래, 터무니없이 오르는 임대료 대책, 노동시장 개선, 산업구조 조정 등의 대책도 함께 나왔어야 한다. 정책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구조적 측면을 함께 고려했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종합적인 최저임금 인상의 연착륙 정책을 기대해본다.

<정운찬 |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한국야구위원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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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아파트단지와 계약한 재활용업체들이 폐비닐·스티로폼은 물론 플라스틱도 재활용품으로 분리수거하지 않겠다고 하자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일부 단지에서는 비닐·플라스틱 등을 분리수거함에 배출하는 대신 종량제 봉투에 담도록 요구함으로써 혼선을 부추겼다. 재활용 가능 자원을 종량제 봉투에 담아 배출하면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환경부는 부랴부랴 48개 재활용업체와의 협의를 거쳐 폐비닐·스티로폼·플라스틱 등의 정상수거 계획을 확인했다.

환경부가 폐비닐과 스티로폼, 플라스틱 등을 정상 수거하기로 수도권 지역의 재활용품 수거업체들과 협의했다고 밝힌 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아파트에 폐비닐과 스티로폼, 플라스틱 등이 담긴 쓰레기 봉투가 쌓여있다. 권도현 기자

이번 ‘재활용 쓰레기 대란’은 지난해 7월 중국이 고체 폐기물 24종의 수입을 중단한 것이 으뜸 요인이다. 폐기물들의 가격이 폭락하자 국내 재활용업체들도 수거를 꺼리게 됐다. 최대 폐자재 수입국인 중국의 수입중단조치는 전 세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 하지만 ‘환경보전과 위생보호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중국의 태도에 토를 달 수는 없다. 오히려 호황일 때의 시장구조에 안주했다가 중국이라는 돌출요인에 취약점을 드러낸 정부와 지방정부, 아파트단지, 업체 등이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부터 청주와 대구 등에서 재활용품 수거 문제가 불거졌지만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또 현행법상 쓰레기를 처리해야 하는 기초자치단체는 수십년간 개별 아파트단지에 맡긴 채 손놓고 있었다. 개별 아파트단지가 자체 수익을 위해 민간 재활용업체와 계약해온 수십년의 관행 때문이기도 하다. 정부는 수거업체 지원, 폐비닐·일회용컵 등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 등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지자체 역시 쓰레기와 관련한 법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개별 아파트단지에 넘겨준 쓰레기 처리권을 회수하든지, 아니면 각 단지의 재활용품 배출현황을 파악할 시스템을 갖추든지 양자택일해야 한다. 아파트단지들도 자체 수익에만 연연하지 말고 처리비용을 탄력적으로 분담하는 상생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주민들에게도 업체가 수거한 분리배출용품의 30~40%는 이물질 때문에 쓸 수 없고, 따라서 소각비용만 추가로 든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

2016년 전 세계에서 판매된 플라스틱병(페트병)은 4억종에 이른다. 그러나 재활용률은 단 7%였다. 그런 플라스틱병이 분해되는 데는 450년이 걸린다. 영원히 분해되지 않는 스티로폼, 유리병(100만년), 일회용 기저귀(500년) 등과 함께 ‘신(新)십장생’의 대표주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번 쓰레기 대란을 재활용 분리수거의 기본부터 다시 배우고, 아울러 플라스틱 남용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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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농도 미세먼지가 연일 자욱하게 깔렸다. 특히 서울과 경기 지역은 지난 25일 24시간 평균 PM-2.5 농도가 99㎍/㎥(서울), 102㎍/㎥(경기)로 2015년 관측 이래 역대 최악의 농도를 기록했다. 따뜻한 남서풍을 타고 유입된 중국발 오염물질을 남해상의 고기압이 가두면서 일어난 대기 정체 현상 때문이다. 짙은 안개로 가시거리가 100m도 채 안되는 미세먼지에 노출된 시민들은 불안에 휩싸였다. ‘방독면을 써야 하는 독가스 수준의 대재앙’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는 27일부터 미국·일본 수준으로, 예전보다 훨씬 강화된 초미세먼지 기준을 적용할 방침이다. 하지만 환경기준을 강화해서 시민들에게 경각심만 불어넣는 것은 근본대책이 될 수 없다.

이번 고농도 현상의 주원인은 ‘중국발 미세먼지’이다. 한·중 정상 간 미세먼지 선언과 화베이(華北)·산둥(山東) 지역의 대기질 연구 등 실효성 있는 공동대책이 필요하지만 현재로선 진척이 없다. 정부는 절박감을 갖고 총력외교를 펼쳐야 한다. 그러나 ‘중국 탓’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국내 요인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세먼지의 주범이라는 중국조차도 300조원에 가까운 돈을 저감정책에 쏟아부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2040년까지 아예 휘발유나 디젤 등 내연기관 차량을 퇴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미세먼지가 시민의 생명과 직결된다는 것을 안 이상 그 원흉을 그냥 둔다는 것은 그 정부의 무책임이다. 한국의 경우 노후 경유차(2.5t 이상)의 도심 진입을 막는 법을 만들었지만 부처와 시·도 간 이견, 업계의 이해 등이 얽혀 시행조차 못하고 있다. 환경부 따로, 산업부 따로, 국토교통부 따로 식의 중구난방 대책으로는 절대 미세먼지 문제를 풀 수 없다. 각 부처를 망라하는 컨트롤타워가 반드시 필요하다. 컨트롤타워는 미세먼지를 국가재난으로 규정한 이상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어야 한다. 또 미세먼지 저감에 큰 영향을 끼칠 민간 차량 강제 2부제 등 관련 법안들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미세먼지는 정쟁이나 흥정의 대상일 수 없다. 27일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의 제정논의를 기대해본다.

미세먼지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미 2060년 한국의 대기오염 조기사망자가 5만명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치를 내놨다. 시민들도 이제 자동차 친환경 등급제나 차량 강제 2부제는 물론 경유차 퇴출 같은 혁명적인 조치를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미세먼지 대책은 ‘남의 탓’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탓’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시민 호흡권을 위해서 시민 스스로도 마땅히 할 일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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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는 지난 20일 지름 25㎛ 이하인 미세먼지(PM2.5) 환경기준을 1일 평균 35㎍/㎥, 연평균 15㎍/㎥로 강화하는 ‘환경정책기본법 시행령’을 27일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미국·일본과 동일한 일평균 기준을 적용하게 되었다.

바뀐 미세먼지 환경기준에 맞춰 27일부터는 미세먼지 예보기준도 함께 강화된다. 이에 따라 2017년 측정치를 기준으로 할 경우 ‘나쁨’ 일수는 4배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주의보와 경보 기준 강화도 추진한다.

미세먼지 환경기준, 예보 기준 강화는 무엇을 의미할까? 흔히들 세계보건기구(WHO) 기준만 맞추면 된다고 오해하는데, 미세먼지, 특히 얼마 전까지 초미세먼지라고 부르던 PM2.5는 공기 중에 약간만 있어도 건강에 해롭다. 왜냐하면 너무 작아서 코와 기관지에서 걸러지지 않고 몸에 축적되며, 배출시킬 방법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WHO의 연평균 10㎍/㎥, 일평균 25㎍/㎥도 고정된 기준이 아니다. 국가들은 그 나라의 상황에 따라 ‘목표치’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면 다시 기준을 강화한다. 결국 미세먼지 환경기준, 예보 기준 강화의 가장 큰 방점은 국가가 대기 정책을 강화하고 개선해야 할 심각성을 인정하고, 달성해 나갈 ‘목표치’를 조정하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환경부 보도자료의 내용은 우려스럽다. 미세먼지 ‘주의보’나 ‘경보’가 발령될 때 국민들은 외출을 자제하고 보건용 마스크를 착용하는 등 대응조치를 취해야 한다. 홈페이지, 앱, 기상캐스터를 통해 강화된 기준을 전방위적으로 알리면, 국민들은 “알아서” “더 자주” 대응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 국민의 건강관리를 1차적으로 우려해서였겠지만, 보건복지부라면 모를까 환경부가 말할 내용으로는 걸맞지 않다. 환경부는 홈페이지에도 명시하고 있듯이 모든 국가정책에 환경의 목소리를 내고, 대안을 제시하는 부서이다.

이번 미세먼지 기준 강화는 환경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로서 우리나라의 위상 및 국민들의 건강 위해성을 고려하여 선진국 수준의 달성 ‘목표치’를 선포한 것이다. 따라서 산업통상자원부를 비롯한 관련 부처는 목표치 달성을 위해 협력하고 정책을 조정해야 한다. 환경부는 이번 기준 강화가 실질적 감축에도 기여할 것으로 ‘전망’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 감축을 달성하도록 강력하게 목소리를 내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정부가 범부처 프로젝트 ‘미세먼지 관리 종합대책’을 내놓은 지 6개월이 지났다. 한 해 중 가장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4월, 5월이 다가오고 있는데, 2022년까지 국내 배출량 30% 감축 로드맵은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에 미세먼지센터는 대통령, 국무총리, 국회의원, 각 지자체장 모두에게 ‘옐로카드’를 보내려고 한다. 그리고 공문을 보내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 정책 점검을 하려고 한다. 한눈에 보기 좋게 만들어 시민 모두에게 공개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 모두 각 지역, 부처, 위원회별로 로드맵이 있기는 한지, 잘 달성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환경기준이 선진국이라고 해서 바로 공기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환경부는 강화된 ‘목표치’ 달성을 위해 국민과 소통해 실질 감축을 촉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환경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국민참여형 정책’이다.

<지현영 | 환경재단 미세먼지센터 사무국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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