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하늘로 오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철거민들이 건물 옥상에 망루를 짓고 올라가서 농성을 하는 건 지상에서는 용역들의 폭력에 쫓기고 대화조차 한 번도 못한 채 자신이 살던 집터와 일터에서 쫓겨날 수 없기 때문이다. 2009년 용산참사는 마지막으로 망루를 짓고 올라가서 자신들의 처지를 호소하던 철거민들을 공권력을 동원해 불에 태워 죽인 사건이었다. 그들은 국가로부터 국민으로 대우받지 못한, 비국민(非國民)이었다. 그들은 진압의 대상이었을 뿐, 권리를 가진 국민이 아니었다. 2009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국가는 또 그렇게 대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노동권은 헌법에 국가가 보호할 기본권으로 명문화되어 있음에도 휴지조각일 뿐이었다. 정권과 기업은 한 몸이 되어 노동조합은 깨버려야 할 적으로 삼았다. 노동조합은 인정할 수 없다는 철저한 인식은 경찰도, 검찰도, 사법부마저 그렇게 움직이게 했다. 최근에 드러난 것처럼 재판 결과를 거래하면서까지 노동자들의 권리를 철저하게 빼앗았다. 그런 때에 어디 호소할 곳 없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죽었다. 또는 기약할 수 없는 단식에 돌입하기도 했고, 삼보일배, 오체투지로 땅바닥을 기었다. 그런 것도 아무런 호소력을 갖지 못하자 노동자들은 굴뚝이나 전광판과 같은 아슬아슬하기 그지없는 둥지를 찾아 올라갔다.

12일 서울 한강대교 북단 한강변에 위치한 높이 40m 철탑에서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 김충태 수석부지부장과 고진복 서산지회 조직차장이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는 고공농성을 하고있다. 이준헌 기자

2014년 구미의 스타케미칼 노동자 차광호는 공장 굴뚝에 올라가 408일 동안 버텼다. 한국합섬 회사가 넘어갈 때 노동자의 고용 승계를 약속받기까지 5년을 텅 빈 공장에서 버티며 싸웠다. 그 고용 승계 약속은 다시 배신당했고, 그 약속의 이행을 요구하며 차광호는 굴뚝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공중에 집을 짓고 농성에 들어간 노동자의 말을 듣는 사회가 아니었다. 희망버스가 내려가기를 여러 차례 하는 등 사회적 압력이 생겨나자 그때서야 회사는 고용 승계, 노동조합 승계, 단체협상 승계를 약속했다. 굴뚝에 올라갔던 차광호는 그런 회사의 약속을 믿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그 약속은 사기였다. 충남 아산의 파인텍 공장에 내려갔을 때 노동자들은 철저하게 속임을 당했음을 알았다. 스타플렉스는 파인텍 공장을 제대로 가동할 생각이 없었고, 단체협약 승계 약속도 물거품이 되었다. 스타플렉스의 김세권 회장은 차광호의 굴뚝농성으로 사회여론이 악화되자 이를 무마하려고 지키지도 않을 약속을 해버렸던 것이다.

이에 다시 두 명의 노동자가 스타플렉스 본사가 보이는 목동의 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올라갔다. 굴뚝에 올라간 지 12월24일로 408일이 된다.

408일, 4년 전 차광호가 기록했던 고공농성 최장기 기록이다. 이날만은 넘기지 말고 두 노동자가 땅을 밟게 하자고 지난 12월6일부터 10일까지 청와대에서 목동 굴뚝까지 혹한의 아스팔트를 차광호와 동료들이 오체투지로 기었다. 그리고 차광호는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10여년의 세월 동안 힘겨운 싸움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은 대부분 떠나고 이제 5명의 노동자만 남았다. 사회적 합의는 언제나 지켜지지 않았고, 노동자들에게 철저한 배신으로 돌아오고는 했다. 책임질 사람 대신 바지 사장이 나와서 지키지도 않을 단협을 기피하는 동안 정부와 정치권은 뒷짐 지고 있었다.

이번에 올라간 굴뚝은 지상에서 75m이다. 거기에 폭 1m 정도 되는 공간이 있고, 거기서 두 노동자는 겨울을 보냈고, 봄, 여름, 가을을 보냈고, 다시 겨울을 맞았다. 건강도 좋을 리 없다. 총체적인 무권리 상태에 놓인 그들의 인권을 찾아주는 일은 “인권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겠다”는 대통령의 세계인권선언 기념일 약속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시금석이 되지 않을까.

이 글을 쓰는 동안 통신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한강대교 통신탑에 올랐고, 태안에서는 만 24세의 비정규직 발전노동자 김용균이 컨베이어벨트에 말려들어가 죽었다.

언제까지 이런 죽음과 이런 고공농성을 보아야 하는가.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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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원자력주의자들에게 탈원전, 에너지전환은 재앙이다. 그들 자신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도 재앙이다. 탈원전은 한국 경제를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재앙, 태양광은 중금속 범벅의 처치 곤란 폐기물 더미만 남기는 재앙, 풍력발전은 산과 들과 어장을 망치는 재앙일 뿐이다. 이들에게 재앙이 미치는 범위는 대단히 좁다. 남한이라는 공간, 현재라는 시간, 돈이라는 물적 가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지구와 미래라는 시공간, 행복한 삶이라는 가치는 일고의 고려 대상도 되지 못한다. 전 지구와 인류의 미래가 걸린 기후변화는 저 멀리 남의 이야기일 뿐이고, 핵폐기물을 떠안을 후손들의 행복은 더더욱 관심 밖이다. 자기 이익을 지킬 수만 있다면 필요한 자료와 수치를 부풀려 에너지전환을 공격하는 것만이 이들의 주요 관심사이다.

기득권 수호에만 매달리는 한국의 원자력주의자들과 달리 인류의 미래와 다음 세대의 행복을 위해 원자력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지금 인류에게 닥치고 있는 가장 큰 재앙은 기후변화이다. 이들이 보기에 기후변화는 지금 지구와 인류사회를 종종 비상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고, 미래세대가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것을 대단히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들은 탈원전, 에너지전환에 대해 한국의 원자력주의자들과는 정반대로 지구라는 공간, 미래라는 시간, 행복한 삶의 추구라는 시각에서 비판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람은 제임스 핸슨이다. 그는 1988년 미국 의회에서 기후변화의 위험에 대해 최초로 경고했고, 수많은 기후변화 관련 연구논문을 발표한 과학자이다. 팔순을 바라보는 그는 미국 나사에서 보낸 50년 가까운 과학자 생애의 대부분을 기후변화와 맞서는 데 바쳐왔다. 몇해 전에는 백악관 앞에서 오일샌드 파이프라인 건설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그는 재생가능에너지의 효용을 부정하지 않는다. 악의적으로 부작용을 과장하거나 왜곡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으로는 기후변화를 막기에 역부족이라고 본다.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탄소세를 점진적으로 올리고 안전이 확보된 원자력발전소를 크게 늘리자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손녀딸과 함께 미국 연방정부를 상대로 기후변화로 침해되는 손녀의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위한 권리를 보장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항공우주국 고다드우주연구소 제임스 핸슨 소장이 기후 변화에 관한 이론을 나타내는 주사위를 들어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기후변화 해결을 위한 원자력 확대라는 핸슨의 주장에 대해 급진적이고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은 제기되지만, 그의 진정성이 의심받는 일은 없다. 원자력계의 로비와 그의 원자력 옹호 활동이 연관돼 있다고 보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과 행동은 주목받고 진지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

한국의 원자력주의자들 중에서는 기후변화의 위험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최근 독일의 에너지전환 정책을 비판하는 책을 출간해 원자력주의자들에게서 크게 환영받은 국회의원도 독일의 에너지전환이 기후변화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점에 대해선 거의 주목하지 않는다. 책에는 오직 에너지전환과 재생에너지 정책이 독일에서 막대한 비용을 초래했고, ‘대한민국 블랙아웃’이라는 재앙을 예비하는 것이라는 우려의 소리만 있다.

지금 폴란드 카토비체에서는 세계 기후변화회의가 열리고 있다. 수십년 전부터 해마다 열리지만 결과는 초라하기에 크게 주목받지 못하지만, 그렇다 해도 한국 언론과 정치권의 무관심은 놀랄 만하다. 원자력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에너지전환 진영에서도 한마디 들을 수 없다. 이미 평균기온 1.5도 상승으로 기후변화의 영향이 확연하게 느껴지는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원자력이 살길인지 에너지전환이 올바른 길인지 조금이라도 언급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특히 원자력주의자들이 오직 남한이라는 좁은 공간에서의 부자 되는 삶이라는 구시대적 시야에 갇혀 있다면 그들의 주장은 지지를 넓히지 못하고 원자력 수호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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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신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2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을 보고하면서 “최저임금 인상이나 주 52시간 근로 등에 관해 시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속도조절이 필요하면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전날에는 기자들에게 “내년 3월까지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고용노동부 업무보고에서 최저임금이 고용 악화에 미친 영향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을 앞두고 대통령과 경제정책 수장이 한목소리로 속도조절론을 꺼내든 게 심상치 않다. 정부는 지난 7월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사실상 접었다. 이번에는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를 늦추려 한다. 재계와 소상공인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3일 충남 아산에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 서진캠을 방문해 회사 관계자로부터 부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재계는 고용 악화의 책임을 최저임금에 돌리며 노동자들의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전문가들은 경기 침체나 고용 악화는 최저임금 인상보다 조선·철강 산업 등 산업기반 약화와 신흥국의 추격 등 복합적인 요인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경제정책은 재계의 손을 들어주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가 대표적 사례다. 정부와 국회는 지난달 현행 3개월인 탄력근로 단위시간을 6개월로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유연한 근로시간 활용으로 근무 집중도를 높여야 한다는 재계의 요구를 수용한 셈이다. 노동자 건강권이 우선이라는 노동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6개월 확대’는 굳어져 가는 분위기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사회’를 앞세우고 출범했다. 그러나 집권 1년 반을 지나면서 노동정책은 후퇴하는 양상이다. 이행되지 못한 공약이나 약속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일정부분 성과를 보이고 있지만, 하청 및 외주업체의 비정규직 문제는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대선공약인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은 재계의 반발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노동정책이 우회전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노동의 양보 없이 경제활성화는 어려운 일일까. 고용 악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고육지책으로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을 제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양보를 요구하기에 앞서 이것이 경제활성화를 위한 최선의 방법인지 묻고 싶다. 노동계의 고충에 귀기울이는 자세가 ‘노동 존중’ 아닌가 싶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노동현안을 대화로 풀어가자는 취지는 좋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빠진 경사노위에서 첨예한 현안이 풀릴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오산이다. 민주노총이 참여하도록 재삼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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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명의 청년 비정규직 하청노동자가 홀로 작업 중 목숨을 잃었다. 지난 11일 새벽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현장운전원 김용균씨(24)가 석탄운송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됐다. 김씨는 발전소 운영을 담당하는 하청 민간회사인 한국발전기술 소속 계약직으로, 입사한 지 3개월밖에 안됐다. 10일 오후 6시30분 근무에 투입돼 11일 오전 7시30분까지 혼자서 4~5㎞를 순찰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날 청와대 앞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대표 100인과 만납시다’ 기자회견에서는 김씨가 비정규직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찍은 인증샷이 공개돼 안타까움을 더해주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 12월 13일 (출처:경향신문DB)

2010년 이후 태안화력발전소에서만 12명의 하청노동자가 사고로 숨졌다고 한다. 2012~2016년 346건의 사고로 전국의 발전소 노동자들이 다치거나 죽었는데, 이 중 97%(337건)가 하청노동자 업무에서 발생했다. 하청노동자들의 희생이 많은 것은 발전 공기업들이 최저가로 낙찰된 민간 하청업체에 일을 맡기기 때문이다. 김씨가 속한 회사도 원래는 발전소와 같은 공기업이었지만 2014년 민영화됐다. 김씨가 과거 정규직들이 했던 것처럼 2인1조로 근무했다면 동료가 기계를 멈춰 끔찍한 사고를 당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발전 공기업들은 하청노동자들의 일이 ‘필수유지업무’가 아니라며 공공부문 정규직화 방침을 거부하고 있다. 그사이 하청노동자들의 죽음은 계속되고 있고, 노동자들은 “정규직 안 해도 좋다. 더 이상 죽지만 않게 해달라”고 호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고용노동부는 발전소가 안전관리 규정을 지켰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의 생명·안전과 직결되는 발전소 운전·정비 업무의 정규직 전환에 적극 나서야 한다.

11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대표 100인과 만납시다’ 기자회견에서 발전노동자가 이날 새벽 사고로 숨진 하청노동자에 대해 이야기한 뒤 울먹이고 있다. 이상훈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취임 후 첫 업무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지만 비정규직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8월 현재 비정규직이 전체 임금노동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3.0%로 지난해(32.9%)보다 높아졌다. 정규직 임금은 1년 전보다 5.5% 늘어난 반면 비정규직은 4.8% 증가에 그쳐 임금 격차는 더욱 커졌다.

정부는 비정규직 문제를 총체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정규직 전환도 시급하지만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아래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를 없애는 일도 중요하다. 아울러 해고되고 실직한 노동자들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사회안전망 구축도 절실하다. 노사와 정부·정치권이 머리를 맞대 ‘죽음의 외주화’ ‘죽음의 비정규직화’를 막을 방도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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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교육 제도는 매우 치열하다. 초등학교부터 이어지는 시험과 시험 성적에 따른 분반, 초등학교 졸업시험 결과에 따른 중학교 배정. 그때부터 대충 가늠되는 진로와 미래. 중학교 졸업시험, 고등학교 졸업시험…. 싱가포르 학생들은 이런 과정들을 거쳐 대학에 진학하거나 전문학교에서 취업을 위한 전문기술을 배운다.

싱가포르의 치열한 경쟁 교육 제도 때문인지, 최근 싱가포르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는 매우 높다. 최근 몇년간 과학, 수학, 수리력 모든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 교육 시스템에 싱가포르 학생들도 한국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나는 싱가포르 교육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추천하지는 않는다. 이상적인 교육 제도라고 보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싱가포르 교육에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 변화다.

싱가포르는 교육 시스템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논의되거나, 뭔가 변화를 주어야 한다고 판단될 때 과감하게 변화를 이행한다. 그 한 예로, 너무 치열한 경쟁이 학생들에게 심각한 부담감을 준다고 평가위원회가 결론을 내리자 초등학교 1~2학년 시험을 폐지하기로 과감히 결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초등학교 시험을 모두 폐지하고, 좀 더 세부적으로 교육 시스템의 변화를 추진한다는 결정으로 발전했다. 내년부터는 일종의 성적표인 ‘HDP’(The Holistic Development Profile)에 석차, 집단 평균, 개인 평균 점수, 총점, 통과 또는 낙제 여부 등을 표시하는 지표도 삭제하기로 했다. 이러한 과감한 변화는 내가 싱가포르에서 9년 동안 싱가포르 교육 제도를 분석하면서 가장 부러워한 점 가운데 하나다.

또 한 가지 한국에서 고려해야 할 부분은 실업계 학교의 증가다. 싱가포르에서는 조기에 실업계 학교에 입학하는 게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학생은 초등학교 졸업 이후부터 실업계 전문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 혹은 중학교를 졸업한 후, 소위 폴리테크닉(Polytechnic)이라는 실업계 전문학교에 갈 수 있다. 이렇게 실업계 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비율은 매우 높다. 그곳에서 학생들은 2년 동안 전공을 선택해 실질적인 기술을 배우게 된다. 이후 심도 있는 학문을 배우기를 희망하는 학생들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2015년의 경우만 해도 실업계 학교를 거쳐 대학에 진학한 학생이 3명 중 1명꼴이었다.

또 한 가지 우리와 다른 점은 대학 진학률이다. 싱가포르의 대학 진학률은 2017년 기준 약 30%다. 이는 최근 대학 수가 증가함에 따라 종전 16~20%에서 많이 올라간 것이지만, 한국의 대학 진학률이 70%인 것에 비하면 매우 낮다.

한국의 일반고 진학률과 대학 진학률은 다소 높다. 나는 한국에서 실업계 학교가 더욱 장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기술 습득에 대한 강조가 더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중·고등학교 때 실질적인 기술을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실업계 학교를 적극 지원해야 하고, 실업계 학교에 대한 경시적인 태도가 있다면 이를 없애는 노력을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싱가포르도 실업계 학교에 대한 경시적인 태도가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실업계 학교에 진학해 실질적인 기술 및 전문성을 습득할 기회를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추후 더 심도 깊은 학문을 배우고 싶다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놓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의견을 사교육 부문에서 거부할 수도 있고, 많은 대학에서 싫어할 수도 있지만 대학 진학이 절대적인 진로인 것처럼 사회가 주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술에 대한 존중이 절실하다. 기술공의 지위가 높은 스웨덴 사회가 한 예이다. 기술을 습득하는 젊은이들이 지속적으로 있고, 농업고를 선택하는 청년들이 있으며, 젊은 청년 수선공이 대접받는, 그러한 다양한 사회가 건강하다. 특히 이러한 부분은 미래에 다가올 수도 있는 북한과의 적극적인 상호 교류가 이루어질 때 더욱더 필요하리라고 본다.

아무리 4차 산업과 미래 기술이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모든 기술은 기초 습득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는 기초과학을 강조했던 일본에서 다수의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꾸준히 들려오는 일본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질투어린 눈으로 보기보다는, 근본적인 이유 및 교육 제도를 비교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러 국가의 교육 제도를 분석해 좋은 점을 어떻게 한국 사회에 적용할 수 있을지 고심하다 보면, 무쇠와 같이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한국 교육 제도가 조금씩 변하게 되지 않겠는가.

<김혜진 | 싱가포르 국립대학 교수·정치국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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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한 국가에서 소 농장에 부과하는 ‘방귀세’와 국내 광역 쓰레기 매립장이 유엔으로부터 획득한 ‘탄소배출권’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메탄가스’로부터 지구를 지키려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지구온난화라고 하면 이산화탄소를 주범으로 알지만,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21배 온실효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경기·인천 2600만 시민이 버리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수도권매립지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광역 매립장으로 여의도 면적의 6배에 달한다. 환경부 산하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SL공사)는 메탄가스가 주성분인 매립가스를 활용해 온실가스를 줄이는 일을 2007년부터 추진하고 있다. 일명 매립가스 자원화 청정개발체제(CDM) 사업이다. 약 790만㎡에 달하는 수도권매립지 제1, 제2 매립장에서 나오는 매립가스를 공기 중으로 흘려보내는 대신 이를 포집해 자체 건설한 50㎿ 매립가스 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해 메탄을 줄여나갔다. 당시 국내에서는 온실가스 저감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았고, 교토의정서상 우리나라가 의무감축국에도 속하지 않아 모든 것이 낯설던 때였다. 결과적으로 지난 10년간 CDM 사업을 통해 유엔기후변화협약으로부터 모두 882만CO2톤의 탄소배출권을 발급받았다. 이는 30년 산 소나무 약 13억그루를 심는 것과 같은 막대한 효과다. 탄소시장에서 배출권의 절반을 판매해 현재까지 463억원을 벌었고, 해당 수익은 지구를 구할 신사업 발굴에 전액 재투자되고 있다. 현재 남은 배출권은 약 400만CO2톤으로 금액으로 환산하면 800억원가량 된다.

처리가 까다로운 음식물폐수와 하수슬러지에서 생산한 고품질 바이오가스를 발전소·차량의 연료, 식물을 키우는 온실의 열원으로 활용하는 일도 하고 있다. 이 같은 LNG 대체를 통해 연간 이산화탄소 약 5만3000CO2톤을 줄이고 있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수도권매립지는 OECD 보고서에서 폐기물 처리의 세계적인 모범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지구온난화는 더 이상 개별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어젠다로 부상한 지 오래다. 더욱이 국제환경질서 논의에 발언권을 갖는 것은 국가 브랜드 수준을 결정짓는 바로미터로도 작동한다. 이와 관련해 숙제도 안고 있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정에 따라 선진국은 2020년부터 개도국의 기후변화 관련 사업에 일정 금액을 지원해야 한다. 우리 정부 또한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 대비 37%를 감축하는 목표를 세우겠다고 국제사회에 제시한 터라 전 국민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SL공사는 10년 전 국내 최초 세계 최대 규모의 폐기물 분야 CDM 사업에 나섰던 경험을 살려 해외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대한민국 수도권이라는 한정된 영역을 벗어나 녹색기후기금(GCF)·세계은행(WB)·아시아개발은행(ADB) 등 다자개발은행과 해외 사업을 위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주로 개도국의 폐기물관리 시스템 선진화, 매립가스를 활용한 온실가스 감축 사업 등이 주축을 이룬다. 이미 모잠비크·스리랑카에서 성공한 경험도 갖고 있다. 내년에는 진척이 있는 GCF 몽골, WB 캄보디아 사업을 포함해 네팔·바레인·인도네시아·러시아 등지로의 진출을 꾀하고 있다.

쓰레기 매립장에서 추진한 온실가스 저감 사업은 ‘버림’에서 ‘쓰임’이라는 패러다임의 변화로부터 얻은 결실이다. 하나밖에 없는 지구를 구하는 일은 기존의 습관과 생각을 바꾸는 데서 시작된다. 나와 우리, 기업과 정부 모두 지구 온도를 낮추는 일에 관심을 갖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빙하조각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북극곰의 생존을 위해, 우리의 삶을 위해.

<박용신 |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사업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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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캐나다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월드컵에서 잉글랜드 대표팀이 3위를 차지했다. 역대 최고 성적이었다. 잉글랜드축구협회(FA)가 트위터에 대표팀의 귀국을 환영하며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의 라이오니스(잉글랜드 여자대표팀의 애칭 ‘암사자’)들이 오늘 엄마, 배우자, 딸들로 돌아간다.” 성차별적 표현이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FA는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선수들이 가족과 재회하는 아름다운 순간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고 해명했다.

2004년 FIFA 회장이던 제프 블라터는 “여자축구 선수들에게 몸에 착 달라붙는 유니폼을 입혀야 한다”고 했다가 호된 비판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렌나르트 요한손 당시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이 “기업들은 빗속에서 땀 흘리며 뛰는, 사랑스러운 여자선수들의 모습을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런 게 팔린다”고 말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블라터도, 요한손도 더 이상은 ‘회장님’이 아니다. 여자축구의 위상도 달라졌다.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주는 발롱도르가 여자 부문을 신설했을 정도이다. 섹시즘도 사라졌을까?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노르웨이 출신 아다 헤게르베르그(23·리옹)가 첫 여성 수상자의 영예를 안았다. 연평균 35골을 넣는 세계 최고 골잡이는 프랑스 DJ 마르탱 솔베이그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트워크(twerk·몸을 낮추고 엉덩이를 흔들며 추는 춤) 출 수 있으세요?” 헤게르베르그는 단호하게 “아니요(No)”한 뒤 몸을 돌렸다. 이내 자리로 돌아와 가벼운 춤을 추긴 했지만, 역사적 순간은 훼손되었다.

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에서 영국에 사는 인도계 소녀 제스는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축구선수를 꿈꾼다. 그의 방에는 데이비드 베컴의 브로마이드가 붙어 있다. 제스는 베컴이 차듯 절묘한 각도의 슛을 만들어내기를 갈망한다. 지금 이 순간, 지구촌의 많은 소녀들이 헤게르베르그 사진을 보며 꿈을 키우고 있을 터다. 그들에게 몸에 달라붙는 유니폼이나 섹시한 엉덩이춤을 강요하지 말라. 그들은 헤게르베르그처럼 멋진 슈팅을 하고 싶을 뿐이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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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간한 OECD 교육통계(Education at a Glance 2018)를 살펴보다 깜짝 놀랄 만한 수치를 접하였다. 우리나라 대학생의 1인당 공교육비가 초등학생 1인당 공교육비에도 크게 뒤처졌기 때문이다. 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학교교육에 투입되는 모든 재원을 재학생의 총수로 나누어 산출한다. 우리의 경우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는 정부 교부금이, 대학교는 학생 등록금이 재원의 주요한 원천이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등학생의 1인당 공교육비는 약 1만1000달러인 데 반해 대학생은 단 8000달러(R&D 재원 제외)에 그쳤다. 중·고등학생은 이보다 훨씬 큰 1만2000달러였다. 대학생 1명에게 투입되는 연간 재원이 초등학생에 비해 3000달러(약 330만원), 중·고등학생에 비해 무려 4000달러(약 440만원)나 부족한 것이다.

이에 매우 당혹하여 곧장 OECD 주요국들의 수치를 비교해 보았다. 역시 우리와는 완전히 달랐다. OECD 평균치로는, 초등학생의 1인당 공교육비는 약 9000달러, 중·고등학생은 1만달러, 대학생은 1만1000달러(R&amp;D 재원 제외)로 집계되었다. 교육단계별로 대략 1000달러씩 순증하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내 상식에도 부합한다.  

대학교육의 1인당 교육투자가 초·중등교육에도 크게 뒤처지는 이런 ‘황당’한 상황을 이해해 보고자 지난 15년간의 통계 추이를 살펴보았다. 2003년을 기준으로 각각 4098달러(초등학교), 6410달러(중·고등학교), 6213달러(대학교, R&D 재원 제외)로 집계되었다. 과거에는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가 분명 초등학생 1인당 공교육비보다 월등히 높았던 것이다. 중·고등학교의 학생 1인당 공교육비에도 크게 뒤지지 않았다. 

이후의 추이를 따라가 보니, 이상한 조짐은 2009년부터 시작되었다. 당시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등록금 동결 및 인하 정책이 도입된 때이다. 2003년 약 6200달러부터 2009년 8000달러까지 꾸준히 상승하던 대학생 1인당 교육비는 그 이후 근 10년간 동일한 수준에 멈추어버렸다. 한편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의 학생 1인당 교육비는 거침없이 상승하여 2013년에 대학생의 교육비를 추월했고, 이후로는 그 격차를 더욱 벌려왔다. 2015년에 이미 초등학생과 대학생 간, 중·고등학생과 대학생 간 각각 1.4배와 1.5배의 공교육비 격차가 형성되었다.

우리나라의 대학생 1인당 교육비는 여타 OECD 국가들과도 그 격차를 벌려왔다. 2009년을 전후로 1000달러가량 뒤지던 것이 이제는 무려 3000달러나 뒤처지고 있다. 경제성장 및 물가상승에 따라 여타 국가들의 1인당 교육비 투자가 꾸준히 증가한 데 반해 우리의 대학생 교육비 투자는 10년째 동결상태이기 때문이다.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요즘 대학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졸업학점의 축소부터 개설강의 일부 폐지, 동일과목 분반 통합 등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일각에서는 교육의 본질을 등한시하는 대학본부들의 부도덕함을 지적한다. 하지만 사실 이런 형태의 재정부담 경감 대책은 이미 수년째 대학가에서는 일상화된 풍경이었다. 연봉 3000만~4000만원에 그치는 비정년트랙 교원이 박사급 신규임용의 과반을 차지한 지 오래다. 무분별한 외국인 유학생 유치로 6만~7만명에 불과하던 유학생 규모는 10년 새 약 2배로 늘어났다. 행정 직원들은 대개 단기 계약직들로 채워지고 있으며, 수업용 기자재나 도서관 장서 등의 구매도 눈에 띄게 줄었다. 현대적 교육공간의 확충은 고사하고 시설 개·보수조차 어려운 대학이 수두룩하다. 가히 초등학교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태로 대학교육을 ‘방치’하는 게 옳으냐는 것이다. 대학교육의 학생 1인당 교육비가 OECD 평균의 단 73%에 그치는 것과 달리 초·중등교육의 1인당 교육비는 OECD 평균의 무려 1.25배에 달한다. 국가적 교육재원의 배분이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는 것이다. 과연 이와 같은 인적자본 전략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까? 대학교육은 창의적, 창조적, 전문적 인재를 배출하는 종말 단계의 교육이다. 아무리 혁신적인 교육과정을 초·중등교육에서 구현하더라도 대학교육이 정체되거나 후퇴한다면, 사회에 배출될 인재들의 우수성은 결코 담보되지 못한다. 국가가 4차 산업혁명의 가장 치열한 전장에서 그 방향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2009년 (사립대 평균) 741만원이던 등록금은 올해 약 742만원으로 집계된다. 이러한 동결은 사실 정치권의 ‘반값 등록금’ 공약과 맞닿아 있다. ‘반값 등록금’을 빠르게 성취하자면 우선 등록금부터 묶어둘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정치권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국가장학금은 무려 4조원대로 불어났다. 기타장학금을 합하여 대학생 1인당 장학금도 약 360만원에 달한다. ‘사실상’의 반값이 실현된 것이다. 결국 대학재정을 희생양 삼아 국민과의 약속을 지킨 셈이다.

대학교육의 재정적 위기는 현실이다. 우리의 초·중등교육처럼 OECD 수준의 교육비 투자(1인당 1만1000달러)를 회복해야 치열한 국제경쟁의 각축장에서 경쟁력 있는 인재들을 배출할 수 있다. 그러자면 1인당 약 3000달러의 교육비 재원이 추가로 확보되어야 한다. 원화로는 약 330만원에 달하는 큰 액수이다. 여기에 연간 대학생 수 약 280만명을 곱하면, 대략 9조2000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재정확보가 요청된다. 10년째 묶인 대학 등록금의 대가라 하겠다.

문제는 이러한 재정적 요구에 어떻게 답하냐는 것이다.

혹자는 등록금을 묶었으니 당장 330만원 인상하면 된다고 답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 대안이 못된다. 대학교육의 보편화로 대학등록금이 어느새 준조세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등록금 330만원 인상에 따른 ‘조세저항’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다음으로 2010년 법제화된 ‘등록금 인상 상한제’로 인해 물가상승률의 1.5배 이상의 상승은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지난 3년간의 연평균 물가상승률 1.2%를 감안하면, 연간 20만원 이상의 등록금 인상은 금지된 것이다. 결국 국가의 적극적 재정투자 외에는 뚜렷한 대안이 없다. 이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진정 초등학교보다 못한 대학교육으로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

<김영철 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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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항을 거듭하던 ‘광주형 일자리’ 협상이 사실상 타결됐다. 광주시는 4일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하는 자동차 완성 공장을 광주에 설립하기로 현대자동차와 사실상 합의를 마쳤다”고 밝혔다. 광주시와 현대차는 5일 협상 전권을 포괄적으로 위임한 투자유치추진단의 추인 절차가 마무리될 경우 협상 조인식을 할 예정이다. 이번 타결은 ‘광주형 일자리’ 모델이 제시된 지 4년6개월 만이고, 현대차가 투자의향서를 제출한 지 6개월 만이다. 조인식이라는 마지막 절차를 남겨두고 있지만, 협상 타결은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광주형 일자리 프로젝트는 기업이 낮은 임금으로 노동자를 고용하는 대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주거·문화·복지·보육시설 등의 지원을 통해 저임금을 보전해 준다는 게 골자다. 이러한 취지에 공감한 현대차는 광주시와 공동투자로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자동차(SUV)를 연간 10만대 생산하는 민관합작 공장을 설립하기로 하고 협상을 벌여왔다. 이 사업은 직간접 일자리가 최대 1만2000개나 생겨난다는 효과가 있어 정부와 여당의 지지를 받으며 지역경제 활성화 모델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협상은 쉽지 않았다. 쟁점은 임금과 공장의 지속 가능성이었다. 당초 이 공장의 평균 연봉은 국내 완성차 공장 노동자의 절반 수준이 제시됐다. 그러나 연봉 기준을 초임으로 할 것인지, 평균임금으로 할 것인지를 놓고 견해가 갈리고 주간 근로시간을 놓고도 40시간과 44시간으로 충돌하면서 난항을 겪었다. 또 현대차는 1000㏄ 미만 SUV를 위탁 생산한다는 계획을 제시했으나 광주시는 공장이 지속성 담보를 위해 연간 7만대 이상의 생산·판매 보장과 차종 변경 허용 등을 요구하며 갈등을 빚었다. 막판 협상과정에서 현대차가 요구했던 초임 연봉 3500만원, 노동시간 주 44시간으로 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기존 현대차 임금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지만, 양극화된 노동시장을 해소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광주시와 현대차가 국회 예산안 처리 시한(7일) 전에 협상을 타결지음으로써 정부의 예산 지원도 순조로울 것으로 보인다. 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고용 창출을 통한 경제 활성화라는 새로운 일자리 모델이 될 것이다. 그러나 풀어야 할 과제가 없지 않다. 타결 소식이 전해지면서 현대차 노조는 파업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간 민주노총과 현대차 노조는 기존 일자리 감소, 이미 포화상태인 자동차시장 악화 등을 이유로 반대해왔다. ‘광주형 일자리’가 노사상생형 일자리를 지향하고 있는 만큼 현대차는 노조와 협상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노동계도 파업 대신에 자동차산업을 살리는 일자리 실험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전향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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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이 지금 싸우는 상대는 이른바 친노동 정부다.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으로 대통령 직무를 시작한, 바로 그 ‘노동존중’ 정부다. 그래서인지 시민들은 문재인 정부를, 민주노총이 협력할 대상으로 인식할 뿐 투쟁할 상대로 보지 않는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로 사회경제 문제를 함께 풀기를 시민들은 바란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 사정이 나쁜데 정부를 몰아세우기만 하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겠느냐는 여론도 있다. 민주노총을 향한 세상의 시선은 대체로 차갑다.

민주노총이 자칫 정부와 맞서다 견제도 제대로 못한 채 시민으로부터 고립되는 역효과가 날 수 있는 상황이다. 고임금을 받는 기득권 귀족노조가 파업은 빈번하게 한다는 게 민주노총에 관한 고정된 이미지다. 헐뜯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민주노총은 사회 양극화에 일정한 책임이 있다. 대기업 노조의 강력한 교섭력으로 임금을 계속 올리면서 주변부 노동자와의 격차를 벌려왔다. 그로 인해 노조가 강할수록 노동시장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역설이 생겼다. 그렇다면 노·정 갈등은 전적으로 민주노총 책임인가? 마침 변호사, 고등학교 교장과 함께 저녁 하는 자리가 있어 물어봤다. 변호사는 정부 잘못이라고 했다. “민주노총이 얻을 게 없는데 왜 대화하나?” 교장은 민주노총 잘못이라고 반박했다. “대화 가능한 정부가 등장했는데도 싸우기만 하면 어쩌자는 거지?” 후배 기자 세 명과 술 먹는 자리에서도 물었다. 한 명은 민주노총 잘못, 다른 한 명은 정부 잘못, 나머지 한 명은 모르겠다고 했다. 노동 문제를 전공하는 두 명의 교수에게 전화를 했다. 한 교수는 굳이 따지자면 민주노총 잘못이라고 했다. 다른 교수는 따질 것도 없이 정부 책임이라고 했다.

이렇게 양분된 건 우연이겠지만, 의견은 나뉜다. 사실 정부와 민주노총 모두 자기 행동을 정당화할 이유도 있고, 갈등을 일으킨 책임을 함께 져야 할 이유도 있다. 그럼에도 여야, 청와대·정부는 한목소리로 민주노총을 비난한다. 사사건건 충돌하던 여야가 ‘민주노총만 마음을 고쳐먹으면 만사 해결’이라는 데 합의라도 한 것 같다. 한국은 대화와 협상에 익숙한 사회가 아니다. 여야 모두에 대화는 어렵고, 대결은 쉽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야당과 대화해야 한다는 지적을 수없이 듣지만 대화를 어려워한다.

정치권의 대결 성향은 사회에 그대로 반영된다. 민주노총이 대화할 줄 모른다고 하는 건 사돈 남 말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특히 정부가 일을 그르쳤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탄력근로제 확대와 같은 민감 사안을 일방 결정하고는 이에 반발하는 민주노총을 공격했다. 사회적 대화를 하려는 태도로 보기 어려웠다. 파업에 직면하고 나서야 문 대통령은 탄력근로제 확대를 논의할 시간을 갖자고 수정했다. 민주노총에 돌을 던질 수 있지만 그 돌, 혼자 맞을 일은 아니다. 민주노총이 대기업 노조만을 위해 활동했던 것도 아니다. 조합원 25%가 비정규직이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을 전국적으로 조직한 유일한 세력이자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앞장선 비정규직 대표조직이다. 탄력근로 문제도 대기업과는 무관한 미조직 노동자의 일이다.

최근 비난받는 민주노총 활동의 대부분도 자기 이익이 아닌, 노조 밖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그런 활동을 두고 민주노총의 기득권 때문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자세다. 요즘 민주노총이 한국 사회를 흔들며 힘을 과시하는 것처럼 회자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힘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노사정 협상은 보통 노(勞)가 임금 억제, 노동 유연성을 받아들이고, 사(使)와 정(政)은 사회안전망을 제공하고, 사회개혁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1998년 첫 사회협약을 제외한 4차례 대화는 모두 실패했다. 첫 협약도 민주노총 입장에서는 받은 게 없는 실패작이었다. 힘의 불균형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강자들의 링 위에 올라갈 자신이 없다.

이 역학관계의 본질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타협한다 치자. 그래도 이행 여부는 다른 문제다. 대결정치 때문에 국회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 청와대와 여야가 거래의 공정성, 이행을 담보하지 않는 한 민주노총이 돌아오기도 어렵고, 돌아와도 성과를 낼 수 없다. 민주노총 조직률은 4%다. 96%를 책임진 세력의 책임은 묻지 않는, 4% 때리기는 균형을 잃은 것이다. 진짜 힘 있는 세력은 조용히 일을 처리한다. 소리 없이 지배한다. 바로 자본이다. 자본은 정부를 움직여 노동을 통제한다. 진정한 질문은 이것이다. 자본과 노동 가운데 누가 기득권인가? 변화해야 할 쪽은 자본인가, 노동인가?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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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헤딩’을 하는 게 늘 두려웠다. 성인남자 평균 신장에 조금 못 미치고 일찍 안경까지 쓰는 바람에, 마음 같아서는 98 프랑스 월드컵 때 ‘헤딩’으로만 브라질 골문을 두 번이나 흔들어버린 지단처럼 해보고 싶었지만, 동네축구에서는 조금 한가로운 좌우 외곽에서 ‘센터링’을 올리는 데 집중했다.

그럼에도, 나의 ‘센터링’이 멋진 포물선을 그리며 골문으로 집중되고 동료 선수가 온몸을 뒤틀어 ‘헤딩 슛’을 터트리는 광경! 아름다웠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 용어들은 ‘헤더’와 ‘크로스’로 변했다. 머리로 패스를 하거나 슛을 하는 것은 이제 헤딩(heading)이 아니라 헤더(header)다. 오랫동안 사용되던 센터링이나 핸들링도 ‘잘못된 일본식 영어’(재플리시)로 간주되어 크로스나 핸드볼 파울로 변했다. 문법적으로 좀 더 예민한 사람은 헤딩 패스 대신 헤디드(headed) 패스가 맞다고 강조한다. 솔직히 ‘느낌적 느낌’으로는 헤더가 헤딩 같지는 않다. ‘자장면’은 ‘짜장면’이어야 하는 것처럼, 헤딩은 거칠고 메마른 운동장에서 온몸을 던지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한다. 반면 헤더는 세련된 기술처럼 들린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럼에도 가능하다면 용어의 ‘새로 고침’은 앞으로도 꾸준히 진행되어야 한다. ‘오렌지’를 ‘어륀지’라고 부르자는 ‘발음 사대주의’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하고 무시해도 좋지만, 스포츠는 일정한 제도와 규칙의 ‘세계적 약속’이다. 세대 간의 언어 감각도 다를 수 있다. 컴퓨터로 축구 게임을 하며 유럽 축구에 몰두한 세대가 벌써 30~40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에게 ‘헤더’나 ‘크로스’는 낯선 용어가 아니다.

각 종목의 전술 변화에 의해 새 용어가 등장하기도 한다. 요즘 축구 중계에서 흔히 듣는 용어가 ‘빌드업’이다.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차범근 해설위원은 ‘공격 작업’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한동안 이 용어가 정착되는 듯하다가 요즘은 ‘빌드업’으로 통일되고 있다. 이는 ‘공격 작업’의 원어가 ‘빌드업’에 가까운 면도 있지만, 몇 해 사이에 펩 과르디올라와 위르겐 클롭으로 대표되는 ‘점유율과 빌드업’의 전술 관계에 의하여 ‘빌드업’이 의미 있는 용어로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골키퍼를 포함한 최후방에서 골을 넣을 수 있는 최전방까지 의미 있게 연결되는 복잡한 공격 과정을 가리킬 때, ‘빌드업’을 쓰는 게 맞다.

11월26일, 한국체육기자연맹이 주관한 ‘바람직한 스포츠 용어 정착을 위한 스포츠미디어 포럼’에서도 이와 관련한 주장이 의미 있게 제기되었다. ‘파이팅’ 같은 말이 일제 군국주의의 잔재라는 점을 들어 ‘아자’ ‘힘내자’ 같은 말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시합’ ‘계주’ ‘기라성’ 같은 일본식 조어도 ‘경기’ ‘이어달리기’ ‘쟁쟁한’ 등으로 바꾸자는 의견이다.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고쳐 쓸 수 있다면 고쳐야 한다.

그러나 ‘파이팅’이 비록 일제 시대 용어이기는 해도, 해방 이후 수십 년 동안 그 말에 다른 의미를 충분히 덧붙여 집합적 감수성을 녹아낸 것이라면 그 나름의 무게가 있다. 문법으로도 틀리다고 하면, 영어 쓰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이런 의미로 ‘파이팅’을 외친다고 하면 될 일이다. 선수들이나 일반 회사에서나 ‘파이팅’을 ‘적군 섬멸’의 뜻으로 쓰는 사람은 없다. 이를 ‘아자’ 혹은 ‘으랏차차’라고 부르면 좋겠으나 언어 행위는 시간의 적층 위에서 생성/공유되는 것이다.

‘기라성’처럼 단지 밤하늘의 수많은 별을 뜻하는 ‘일본식 조어’라는 의미에서 바꿔야 한다면, 근대 이후 우리 학문과 일상에 녹아 있는 거의 모든 생활 언어를 조선시대로 돌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면 ‘고유한 우리말’ 중의 어떤 것은 생활 조건의 측면에서 ‘농업 봉건’의 산물일 가능성이 더 크다. 일제강점기가 아니더라도 사멸했거나 변화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 제기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끝없이 이의를 제기하고, 토론과 활용을 통해, 자연스럽게 좀 더 알맞은 용어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날의 심포지엄과 직접적 관련은 없지만, 일제 잔재의 청산은 ‘일본식 조어’를 개선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랜 식민 피지배와 그 이후의 독재 과정에서 내면화된 사회의 작동 방식 자체를 문제 삼는 일이다. 약육강식과 기회주의가 거의 유일한 생존 방식 아니었던가. 이 점에 있어 스포츠는 전혀 자유롭지 않다. 폭력과 위계질서가 내면화된 일상 말이다.

내친김에 덧붙이자면, 천편일률적인 묘사나 동시대의 감수성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기사가 일본식 조어보다 더 문제적이다.

‘자로 잰 듯한 패스’나 ‘전광석화 같은 중거리슛’은 복잡하고 미묘한 경기를 딱 그 정도로만 보았음을 말해주며 ‘국위선양’이나 ‘태극전사’ 혹은 ‘맏형 리더십’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여전히 스포츠 미디어가 ‘독재의 잔재’인 국가주의와 가족주의에 머물러 있음을 말해준다. ‘비치발리볼’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라. ‘섹시 화끈한 비치발리볼 경기’ ‘뜨겁게 달군 노출 패션 비치 발리볼’ ‘눈요기 여름스포츠 비치발리볼’ 같은 제목의 기사들이 줄줄이 나온다. 전반적으로 보면, 급변하는 인터넷 언론 환경 때문인지, 스포츠계의 폐부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탐사 기사나 심층 진단 시리즈가 줄고 개인 블로그를 쓰는 듯한 ‘팬심 기사’가 넘쳐나는 것도 큰 문제다.

어쩌면 문제의 핵심은, 오래전에 우리를 강점했던 일본이나 그 잔재 용어들이 아닐 수도 있다. 21세기의 중엽을 향해가는 지금에도, 일제와 독재가 강제한 생존 조건을 벗어나지 못한 스포츠 현실에서 국가주의적, 남성적, 신체적 우월성의 신화에 갇혀 틀에 박힌 시선과 진부한 표현을 반복하고 있는 우리 스포츠언론의 현 상태가 더 문제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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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기후변화협정의 세부 이행규칙을 마련하기 위한 제24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2일(현지시간)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개막했다. 총회에 참가한 197개국은 오는 14일까지 협정이행에 필요한 세부 이행규칙을 마련하고, 나라별 감축행동과 검증방식을 정하게 된다. 교토의정서가 만료되는 2020년 이후의 새 기후변화 체제를 규정한 파리협정은 협정 이행을 위한 세부 이행규칙을 올해 안까지 마련하도록 돼 있어 이번 회의가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파리협정은 그간 선진국들에만 부여됐던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중국, 인도를 비롯한 개발도상국으로 확대하고, 5년마다 온실가스 감축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동시에 상향된 목표를 제출하도록 했다. 이런 방식으로 2100년까지 지구의 기온 상승폭을 2도 이내로 유지하고, 결과적으로 1.5도까지 제한하도록 노력하는 목표를 달성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기한 안에 합의가 도출될지는 불투명하다. 지난해 6월 협정 탈퇴를 선언한 미국은 이번 회의에 불참했다. 미국은 주요 20개국(G20) 정상이 지난 2일 발표한 공동성명에 “파리협정을 탈퇴하고 모든 에너지원을 활용하겠다”는 자국의 입장을 끼워 넣었다. 공동성명의 기조는 “파리협정의 불가역성을 재확인하고 완전한 이행을 약속한다”는 것이지만, 딴지라도 거는 듯한 미국의 입장이 담기면서 김이 샜다.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가 지구촌의 공통과제를 달성하려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극우파인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당선인도 유세과정에서 협정 탈퇴를 예고한 바 있고, 호주 등 일부 국가도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참가국 내에서도 모든 국가에 단일 이행규칙을 도출해야 한다는 선진국과 개도국에는 유연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개도국 간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이날 개막회의도 일부 회원국이 협정이행 서류를 내지 않아 3시간 지연되는 등 출발부터 어수선했다. 파리협정의 위태로운 운명을 암시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지구촌 곳곳에서 가뭄과 산불, 이상기후 등 지구온난화의 부작용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소규모 섬나라 등 기후변화 취약국들은 해수면 상승으로 위기에 처한 지 오래다. 파리협정체제가 붕괴한다면 지구온난화를 멈출 해법은 사실상 사라지고 만다. 인류가 경각심을 갖고 조금씩 양보해 타결안을 도출해내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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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고 유·초·중등교육 부문은 늘 시끄럽다. 지난해부터 올해 중반까지는 대입제도 개편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더니 요즈음은 사립유치원 문제로 분주하다. 그 외에도 늘 자잘한 문제들이 벌어져서 교육현실이 참 절망스럽다는 비판의 말도 많이 듣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유·초·중등교육 부문은 비명이라도 지를 수 있으니 회복 가능성이 큰 환자라고 할 수도 있다. 울퉁불퉁 불만을 제기하는 주체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치유력이 있는 거라고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환자이다. 내가 보기엔 고등교육이야말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환자이다.

얼마 전 한편으론 흥미롭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끔찍하기도 한 통계를 보았다. 교육개발원에서 2016년 기준으로 대학원, 전문대, 4년제 대학의 학과명이 몇 개나 되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는 대학원 9664개, 전문대학 6884개, 4년제 대학 1만2359개였다. 우리나라 4년제 대학은 200개 정도 된다. 4년제 대학 200개 중 서로 이름이 다른 학과가 1만2359개나 된다니 참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4년제 대학이 과연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학과를 개설할 만큼 발전한 것일까? 물론 아니다. 교육개발원 조사에 의하면 1만2359개 학과를 가르치는 내용으로 분류해보면 약 121개로 압축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같은 내용을 가르치는 한 학과에 100개 이상의 다른 이름을 붙여놓은 셈이다. 예컨대 어느 대학에선 국문과가 다른 대학들에선 문화콘텐츠학과, 디지털콘텐츠학과, 스토리텔링학과 등으로 불리는 식이다. 대학들은 왜 똑같은 내용의 학과에 이렇게 서로 다른 이름을 붙이는 것일까?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속에는 고등교육 문제의 아픔과 비밀이 숨어 있다.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학령인구의 감소로 학생 모집이 어려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상위권 대학이야 학과 이름을 어떻게 붙이든 학생들이 오니까 국문과라고 붙여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학생 모집에 곤란을 겪는 대학은 국문과보다는 문화콘텐츠학과, 스토리텔링학과 같은 이름이 트렌드에도 맞고, 뭔가 새로운 것이 있는 것도 같아 학생을 끌어들이기가 쉽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그런 작명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만으로는 1만2359개의 학과명은 다 설명이 되지 않는다. 다른 중요한 이유는 재정지원을 받기 위해서다. 예컨대 문화콘텐츠를 강조하는 예산지원이 있으면 그 평가기준에 맞추기 위해 국문과의 이름을 곧장 문화콘텐츠학과로 바꾸고 학과의 목적을 프로젝트에 맞게 만들어 서류를 낸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단기적이다. 예산 지원 담당자가 바뀌어 이번엔 디지털 시대를 강조하는 프로젝트 예산지원을 내면 또 문화콘텐츠학과를 디지털콘텐츠학과로 바꾸어 서류를 낸다. 이러한 대학의 모습은 상아탑, 학문의 전당, 자율과 자치의 원리 등과는 거리가 너무 멀어 참으로 비참해 보인다. 도대체 왜 대학은 이런 수모를 감수하면서 예산지원에 목을 매는 것일까?

반값 등록금 정책은 교육 불평등을 완화하고 대학교육의 공공적 성격을 높이려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문제는 반값 등록금으로 발생한 재정결손을 메워주는 지난 정부의 예산지원 방식에 있었다.  이 방식은 대학이 종합적인 자기계획을 수립하여 통으로 심사를 받고 적절한 수준에서 통으로 지원하는 방식이 합당할 것이다. 그래야만 대학의 자율과 자치가 산다. 그런데 지난 정부는 그러지 않고 수많은 목적사업으로 잘게 쪼개어 예산지원을 하고 사업 하나하나마다 심사기준을 엄격하게 제시해 대학을 평가하는 방식을 취했다. 대학은 이 예산지원을 받지 않으면 유지가 어렵기 때문에 그 평가기준에 맞추기 위해 학과 명칭을 바꾸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예산지원을 위한 평가기준의 기본적 원칙은 아마도 기획재정부가 세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평가기준을 구체화하는 건 교육부에서 했을 것이다. 기재부가 세우는 기본 원칙은 아무래도 경제적 효율성에 치우칠 수밖에 없고 대학사회의 특성에 잘 안 맞을 가능성이 크다. 대학사회의 특성을 충분히 변론·옹호하지 못한 교육 관료의 책임 또한 없지 않을 것이다. 취업률을 기본원칙으로 강조하면 예체능계나 인문사회계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고, 그런 식으로 대학사회는 조금씩 무너져 왔다. 이제는 전 정부의 예산지원 방식, 그와 연동된 대학평가 관행이 새 정부에서도 지속되고 있는데 그런 관행에 너무 익숙해져 이제는 비명을 지를 줄도 모른다.           

앞에서 나는 유·초·중등교육이 늘 시끄럽지만 그래도 내부 동력이 살아있어 회복 가능성이 높은 환자와도 같다고 했다. 아마도 유·초·중등교육이 갖는 이러한 힘은 부족하나마 그간에 진전된 교육자치 분권에 힘입은 것이다. 진정 창조적인 동력은 자율과 자치 속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열어갈 창조적 동력을 얻고 싶다면 반값 등록금으로 인한 재정결손을 보전하기 위한 정부 예산지원과 평가 방식을 대학의 자율과 자치가 가능한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

<김진경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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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들어설 즈음, 많은 사람들은 세상이 획기적으로 바뀔 것이라 기대했다. 개인적으로도 기대가 컸다. 기회가 돼 우리나라의 심각한 자연환경 훼손 문제 개선을 위해 그간 쌓인 적폐 중 꼭 청산해야 할 한 가지를 주문한 바 있다. 개발자가 작성하는 환경영향평가서를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가 작성토록 바꾸자는 것이었다. 언뜻 당연해 보이는데 아직까지 우리 법에는 개발할 사람이 예정지의 자연환경을 조사하고 평가토록 하고 있다. 

생각해보자. 내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골프장이나 관광단지를 조성하려 산과 들을 매입했는데, 그곳이 보전을 통한 공익적 가치가 개발가치를 훨씬 능가하는, 국민 모두를 위해 보전되어야만 하는 곳이라면 개발당사자는 어떠한 행동을 취할까? 국익을 위해, 나보다는 국민을 위해 희생한다? 그런 일은 동화책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이며 초등학생에게나 감동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외부정보에 눈을 뜨고 사회적 기준에 의한 가치판단이 시작될 나이가 되면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정의’보다는 부정한 행위가 훨씬 거대한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접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회적 약자의 최후의 보루인 법원과 법을 집행할 판사들조차도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으니 말 다한 셈이다. 극히 일부에 의해 벌어지는 일탈로 전체를 깎아내리면 안된다며, 자극적인 언론의 문제를 탓하기에는 국민이 느끼는 불신의 골은 이미 너무 깊다. 국민은 이런 적폐를 청산하자고 하는데 청산의 시동도 제대로 걸지 않은 지금, 기득권층은 드러나지도 않은 사회문제 해결에 딴지를 걸며 피로사회를 부추기기에 여념이 없다.

새 정부에 대한 많은 기대 속에 내심 환경영향평가법의 빠른 개정을 바라왔다. 늘 후순위인 환경문제는 역시나 이번 정부에서도 후순위였으며, 그나마 일부 개정된 환경영향평가법은 알맹이를 쏙 뺀개정안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자연환경관리의 획기적 개선을 위해, 자연보전 가치의 인식증진을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이 문제를 정부는 왜 해결하지 않는가.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정부도 개발업체와 마찬가지로 보전보다는 개발에 앞장서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정부 주도의 개발사업이 환경영향평가에 의해 무산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리라. 4대강의 졸속 환경영향평가, 사드기지, 최근 문제가 불거진 흑산도 공항이 그렇다. 수많은 정부 주도 개발사업은 토건세력과 정부의 암묵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에 개인과 마찬가지로 사업의 빠른 진행에만 관심을 가지며 공익적 가치에 대한 올바른 평가에는 관심이 없는 게 아닐까. 이번 개정된 환경영향평가법 시행령에 ‘거짓·부실 검토 전문위원회’를 두어 공정성을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공무원이 다수가 될 위원회에서 정부의 개발사업을 거짓으로 평가할 리는 만무하다. 정부위원이 과반수인 각종 위원회가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정부의 입맛대로 진행되는 과정을 이미 보아오지 않았던가?

일례로 지난 오색케이블카의 환경영향평가 조사자료는, 조사자가 산을 순간 이동하지 않는 이상 시간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조사결과가 자료로 제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부를 포함한 정부관계자들은 절대 영향평가서가 ‘거짓’은 아니라는 옹색한 변명으로 일관했다. 조사원본 제출요구를 사업자가 받아들이지 않자, 이를 감시해야 할 환경부 고위관계자는 설마 조사결과를 ‘거짓’으로 작성했겠느냐면서 사업자인 지자체와 조사업체를 두둔하기에 바빴다. 지자체의 일도 이러한데 중앙정부 주도의 개발사업은 어떨지 뻔하다.

제3자가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한다면 가장 많은 제동이 걸릴 사업들은 눈앞의 표를 위한 공약에서 시작되는 정부의 대규모 토건사업들이 아닐까?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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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앞두고, 학생들에게 “국어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예상대로 어려웠다. 수능이 끝난 후 학생 하나가 물었다. “선생님, 왜 그런 문제를 낸 겁니까?” 내 답은 무거웠다. “솔직히 문과 학생들을 위한 문제는 아니야. 의대 정시를 위한 거지. 서울대, 연세대, 성균관대 등등 의대 사이에 줄 세우기를 위한 문제가 필요했던 거야. 문과에서도 서울대 선발에 필요한 문제는 있어야 했을 테고.”

영어가 절대평가로 전환된 후 국어는 풍선효과를 맞았다. 우리말을 잘 이해하는 능력이 존중받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이슈가 된 ‘31’번 문제는 국어교육의 이상과는 거리가 있다. 독해와 화법 등 언어 능력과 한국어 문법의 이해, 문학 작품 감상 능력 등이 국어과에서 기대하는 영역이다. 이번 수능에서 다른 문제들은 쉽게 출제되었다. 40대 이상 기성세대들이 접했던 문제들과 비교하면 지금 국어문제는 여러 면에서 실용적이고 과학적이다. 우선 읽기·말하기·듣기·쓰기 전 영역을 고르게 평가하고 드라마 등 생활에서 쉽게 접하는 제시문들의 비중도 높고, 작문 역시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 16페이지나 되긴 하지만 주어진 시간 내 읽으며 풀어나가는 데 큰 부담은 없다. 채무 이행에 관한 문제가 나온 16번에서 20번 역시 쉬운 문제는 아니었겠지만 상대평가에서 필수적인 문제였다. 다만 수능 전체 변별력, 특히 정시 지원에서 표준점수 차이를 내야 하는 의무를 껴안은 국어에는 난도 최상의 문제가 있어야 했다. 난이도 부담이 덜했다면 ‘31’번 문제는 출제되지 않았을 것이다.

15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성기선 교육과정평가원장(왼쪽)과 이강래 출제위원장이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경향을 발표하는 도중 기자들의 국어영역 오기 질문이 이어지자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영어만 절대평가가 되고 수학이 사교육비 부담 우려로 난도를 높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변별력 부담은 국어에 쏠리고, 그 부작용은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다. 최근 교육부가 요구한 정시 확대는 직접적으로 난도를 높이는 외압으로 작용해 국어 재앙은 당분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로 인해 최근 대치동 학원가에서 제일 두드러진 현상이 ‘국어 일타 쏠림’이었다. 절대평가 실시로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은 거의 없고, 부작용만 다른 과목으로 옮겨간 셈이다. 만약 정시 확대가 현실화된다면 국어로 인한 난이도 차별 압박은 심화되어 ‘31’번 같은 문제가 2~3개 추가될 가능성도 우려된다.

이런 점에서 현 수능에서 시급히 논의할 문제가 영어 절대평가이다. 정시가 확대되면 국어의 표준점수는 더욱 세분화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국어의 난도 상승으로 이어진다. 국어 난이도 딜레마는 현행 수능 제도의 모순을 그대로 안고 있다. 영어 절대평가나 난도 낮은 수능 출제라는 상위 원칙은 수시 확대, 교과 중심 선발 확대라는 학생 선발 제도와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정시 확대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수능 구조 역시 위기를 맞은 것이다. 지난 상반기 교육부는 나름 진통 끝에 대입 제도에 관한 결론을 냈다. 그런데 그 결론이란 게 불분명한 데다, 추론의 책임자마저 바뀐 상태에서 대입 제도의 방향은 혼란스럽고, 출제진 역시 당장 올해 정시 지원에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는 미봉적인 압력에 이런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만큼 지난 수능 국어 ‘31’번은 혼란스러운 대입 제도의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

문제는 학생들의 정신적 피해다. 수능 당일 국어 ‘31’번으로 인해 받은 쇼크를 악착같이 견딘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국어로 인해 ‘멘붕’이 와 다른 과목까지 지장을 받은 학생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년에는 결코 겪고 싶지 않은 장면이다.

<정주현 | 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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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종’이라고 불리는 학생부종합전형을 폐지하라는 목소리가 크다. 내신 조작, 시험문제지 유출 등 부정행위가 연이어 벌어지는 상황인지라 당연히 나올 법한 주장이다.

학종을 비판하는 근거로 제시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부자 부모를 둔 아이에게 유리하고 가난한 부모를 둔 아이에게 불리하다는 점이다.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하는 입시제도가 바로 학종이라는 것이다. 학종을 ‘사교육종합전형’이라고 규정한 칼럼도 보인다. 그러니 수능 중심으로 대학에 가는 정시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가 지나치게 서울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판단의 기준이 이른바 SKY 대학으로 한정된 느낌도 없지 않다. SKY 대학 몇 명 보냈는가를 가지고 명문고 운운하는 것은 문명의 탈을 쓴 야만이라고 생각한다.

지방 학생들, 특히 농어촌 지역에 사는 학생들 처지에서는 학종의 긍정적인 측면을 더 보게 된다. 시골 학생들은 사교육을 받을 기회가 별로 없다. 대개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지만, 학교 주변에 변변한 학원도 없다. 그러다 보니 학교와 교사를 믿고 의지하게 된다. 교사들은 ‘어쩔 수 없이’ 책임감이 더 강해진다. 그래서 교사이자 학원 선생님이자 입시컨설턴트의 역할을 모두 수행한다. 밤낮이 없다.

시골 고등학교 교사들은 영양가 있는 생활기록부를 고민하며, 지역 실정에 맞는 다양한 교육 체험의 기회를 마련하고, 응시 대학 선정을 위해 아이와 머리를 맞대고 씨름한다. 성적 좋은 아이하고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밤을 새워가며 아이들의 자기소개서를 검토하고 또 추천서를 쓴다. 사실, 교사가 편하고자 하면 수능만으로 뽑는 정시가 제일이다. 학종이 가장 힘들다. 그런데도 여기에 매달리는 것은 내 아이들이 정시보다 좋은 결과를 얻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시골 아이들은 대개 늦공부다. 도시 아이들처럼 어릴 때부터 사교육을 받지 않는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영어나 수학 등에서 다소 부족한 편이다. 대신, 학교생활을 알차게 한다. 공부밖에 모르는 아이들이 아니다. 이 아이들의 진솔한 열정이 학종을 통해 대학의 문을 열어젖힌다. 영어, 수학이 다가 아니다.

성적만으로는 하위권 대학에 갈 학생이 학종으로 중위권 대학에 가고, 중위권 대학에 갈 학생이 상위권 대학에 갈 기회를 잡게 되는 것이 바로 학종이다. 사교육 없이 그게 가능하다. 가난한 집 아이들도 이렇게 원하는 대학에 간다.

소위 고교등급제를 따르는 대학 입학사정관도 있겠지만, 대개의 사정관은 그렇지 않으리라 여긴다. 맑고 밝은 눈으로 아이들의 잠재력을 확인하고 제대로 된 인재를 뽑으려 애쓰고 있으리라 믿는다.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학종이 공교육을 살아 숨 쉬게 하는 순기능도 갖고 있음을 말하고 싶다.

사교육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입시 제도가 어떻게 바뀐들 사교육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교육을 절대악으로 간주할 필요는 없다. 공교육은 사교육에 모든 걸 떠맡기지 말고 사교육과 경쟁한다는 의지를 다져야 한다. 교육을 먹는 것에 비유한다면, 학교 교육은 밥과 김치이고 학원 교육은 비타민이다. 밥 먹는 게 부실한 것 같아 비타민으로 몸을 보강할 수 있지만, 밥과 김치를 무시하고 비타민만 먹어대면 몸이 망가진다.

<이경수 | ‘나는 오늘도 선생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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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잡지 ‘에피’ 겨울호의 한 부분을 수능 수학과 수능 과학의 리뷰를 싣기로 정한 것은 여러 달 전이었다. 벡터와 기하를 수능 범위에서 제외하는 문제를 두고 수학과 과학계가 반발하면서 수능에서 어떤 범위를 다루는 것이 좋은지를 두고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설전을 정리하고 싶었다. 당시에 수능 수학의 범위를 축소하는 것과 관련해서 인공지능이 수학의 어떤 범위를 대체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전공자도 아닌데, 어려운 문제를 두고 씨름을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었다. 나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셈을 할 줄 알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과 셈을 못하면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 사이에는 깨닫고 얻을 수 있는 것의 차이가 확연하다. 셈을 모르면 응용은 꿈도 꿀 수 없다. 계산기, 혹은 인공지능의 아바타로 살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다가올 미래에 수학이나 과학에 인간이 시간을 덜 쏟아도 된다는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 수능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를 통해서 이런 논란을 돌아보고 싶었다.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수능 문제에 대한 리뷰를 청탁하는 것은 순조로웠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진중한 과학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물리학자부터 해외 대학에서 오래도록 연구와 교육을 하고 있는 생물학자까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전공자들에게 부탁을 했다. 언어영역에 나온 과학 지문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 급하게 이것에 대한 리뷰도 싣기로 했다. 모두 바쁜 와중에 재미있는 기획이라며 기꺼이 청탁에 응해 주었다. 직접 수능 문제를 풀어보고 그 문제들을 전공자의 입장에서 수준을 가늠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앞으로 전공할 학생들, 혹은 앞으로 전공하지 않을 학생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평가를 해 주기를 원했다. 그런데 정작 이 기획을 시작하게 만들었던 수학 분야에서는 아무도 청탁을 받아주지 않았다. 20여 분의 수학 전공자들에게 퇴짜를 맞았다. 서울, 대전, 광주, 부산, 창원, 포항 등 전국 각지에 수소문했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낭패였다. 수능 수학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시작했지만 주변의 몇몇 에피소드 덕분에 호기심은 더 커진 터였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저명한 물리학자가 수능 수학문제를 다 풀지 못하고 100점 만점으로 치면 75점쯤을 받았다고 했다. 그분의 실력을 익히 알기에 깜짝 놀랐다. 또 다른 자리에서 내 또래의 유명한 물리학자가 수능 수학의 마지막 문제를 몇 시간 동안 끙끙대다 결국 풀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분들은 고등학교에서 모두 수학 영재, 혹은 천재 소리를 들었던 분들일 것이고 아직도 수학을 많이 사용하는 물리학을 밥벌이로 하고 있는데 도대체 어떤 문제들이 이분들을 좌절하게 만들었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수학 전공자의 육성으로 수능 수학문제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듣고 싶었다. 헉생들이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 하는 이유는? 교육적 효과는? 사회적인 의미는?

그런데 모두에게 거절당했다. 물론, 고작 20명에게 부탁을 해 본 것이니 단지 운이 나빴던 것일 수도 있다. 수학도 분야가 넓고 전공은 세분화되어 있어서, 전공자들이라도 수능 문제를 풀어보는 것이 부담이 되었을 수도 있다. 전공자들조차 푸는 것에 거북함을 느끼는 문제들을 학생들은 왜 풀어야 할까? 또 다른 가능성은 정치적인 공방에 휩쓸리기 싫어하는 수학자들의 생리가 작동했을 수도 있다. 올해처럼 불 수능, 마그마 수능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기대와 다른 점수를 맞은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재수생을 양산할 가능성이 높으면 수능 문제를 두고 구설이 심할 터이니 거기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으리라. 상황이 이러면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커진다. 그래도 이런 문제가 수학 분야만의 문제가 아닐 텐데 용기 있는 필자를 만나지 못해서 아쉽다. 개별적인 사정들이 없지 않았겠으나 모두가 입을 다문 상황은 수능 수학문제를 둘러싸고 해야 할 말이 많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수능 수학이 아이들을 점수로 줄세우는 것이 목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사교육을 방지하겠다고 학교 범위 안에서 어렵게 내는 모양인데 수학적 직관이나 자질보다는 반복훈련으로 비비 꼰 함정을 피하는 것만 연습하는 데 학원만 한 곳이 없다. 청탁에 실패해서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우나 수능 문제가 학생들의 실력을 향상시키거나 수학 교육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다. 고등학교 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한 것만으로는 풀기 어렵고 사교육의 단련을 열심히 받아야 함정을 피할 수 있는 수능 수학문제의 정체를 누군가 나서 속시원히 밝혀주시길 간절히 바란다.

<주일우 | 이음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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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로 이민을 와서 큰아이는 한국에서와 같은 4학년으로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청각장애아 특수반이 있는 학교였다. 그 반에는 토론토 여러 지역에서 모인 아이들이 6~7명 있었고, 교사로는 담임과 부담임 두 분이 계셨다. 선생님들은 청각장애 아이들의 특성에 맞춰 수업을 진행했다. 특정 과목에서 학습 능력이 향상되었다 싶으면 아이들을 비장애아 교실로 보냈다. 우리 아이는 수학을 시작으로 메인 스트림에서 공부하는 과목을 차츰 늘려나갔다. 고교에 가서는 모든 과목을 비장애인 아이들과 함께 공부했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공부도 공부지만, 이 시스템은 더 큰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장애아와 비장애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함께 생활하고 또 서로에게 익숙해지도록 하는 데 더없이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특수학교를 따로 만들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학생 사이에 담을 쌓는 것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다름’을 있는 그대로 접하게 하다 보니 비장애인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장애와 같은 ‘다름’을 유별나게 여기지 않는다. 새로 이민을 온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장애인과 이민자는 때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몸이나 언어가 불편한 사람일 따름이다. 어릴 적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런 교육을 줄기차게 받다 보니, 장애인이나 이민자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 따위의 감정이 스며들 여지가 거의 없다.

인천 한 아파트 옥상에서 추락해 숨진 10대 중학생을 추락 직전 집단으로 폭행한 혐의를 받는 중학생 A군 등 4명이 16일 오후 인천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고자 인천시 남동구 남동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아이가 학교에 간 지 3개월쯤 지났을 무렵 담임 선생님이 아이 편에 편지를 보내왔다. 급히 상의할 일이 있으니 우리더러 학교에 나오라는 내용이었다. 무슨 큰일이라도 생겼나 싶어 다음날 바로 학교에 갔다. 선생님은 아이의 나쁜 버릇에 대해 이야기했다. 귓속말하기와 소리 지르기.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옆사람에게 귓속말을 하는 것은 대단히 무례한 행동이며,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버릇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이에게 여러 번 주의를 주어도 고쳐지지 않으니 급기야 부모를 부른 것 같았다.

선생님이 그 이야기를 얼마나 엄하게 하는지, 우리는 크게 야단을 맞는 학생처럼 눈물이 쑥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후 우리는 아이에게 입이 닳도록 이야기를 했다. 아이는 “알았어요, 알았어요. 이제는 안 그래요”를 되뇌었다. 그런 ‘가정교육’을 1년쯤 지속했을 것이다. 아이는 버릇을 고쳤다.

두 아이를 토론토의 학교에 보내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학교는 공동체(사회) 생활이 요구하는 매너와 예의 교육을 어릴 적부터 정교하고 철저하게 시킨다. 마치 ‘서방예의지국’을 만들기라도 하려는 듯,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데 필요한 예의 교육을 공부보다 더 중요시한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해마다 이방인 20만~30만명이 쏟아져 들어오는 이민자의 나라이다 보니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매너는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필수 요소이다. 귓속말하기 같은 작은 버릇 하나를 두고도 부모를 호출할 정도이니,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 같은 것은 당연히 범죄 수준으로 다스린다.

얼마 전 한국에서 이른바 ‘다문화 가정’의 중학생 아이가 집단 괴롭힘과 폭행을 당한 끝에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는 참담한 뉴스를 보았다. 인구절벽에 맞닥뜨린 한국은 싫든 좋든 이민자의 나라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이 올해로 200만명을 넘어섰다니 하는 말이다. 중학생 아이를 죽음으로 내몬 어린 당사자들만 탓할 문제가 아니다. 학교고 언론이고 부모고 어른들 모두가 이 문제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해서 벌어진 일이다. 생김새가 다른 사람도 ‘우리’라는 사실을 진지하게 고민한 바 없으니, 이런 문제는 필연적으로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이제, 한국 사회는 ‘다름’을 존중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해야 한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생각만 조금 바꾸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야 사람 사는 세상이다.

<성우제 | 재캐나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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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약 450만년 전 직립보행을 하게 되면서 자유롭게 된 두 손을 사용해 도구를 만들고 문명을 일궈냈다. 우리는 어떤 도구를 사용했는지를 기준으로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등으로 인류문명사를 구분하고 있다. 그렇다면 후세의 사람들은 지금의 시대를 ‘플라스틱 시대’로 명명하지 않을까. 넘쳐나는 플라스틱과 쓰레기로 남은 그 잔해를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드는 우울한 생각이다. 

지난 19일 오후 인도네시아 와카토비 국립공원 안의 카포타섬 해변 인근에서 몸길이가 9.5m에 달하는 향유고래가 죽은 채 발견되었다. 놀랍게도 고래 뱃속에서 나온 것은 플라스틱컵 115개를 비롯해 하드 플라스틱 19개(140g), 플라스틱병 4개(150g), 샌들 2개(270g), 플라스틱백 25개(260g), 나일론 가방 1개, 기타 플라스틱 1000여 개로 무려 6㎏에 달했다. 쓰레기 하치장이 된 고래의 위장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우리 바다라고 예외가 아니다. 전북환경운동연합의 자료에 의하면 부안 앞바다에서 잡힌 아귀의 뱃속에서는 500㎖짜리 빈 플라스틱 생수병이 나왔다. 어민들은 평소에도 물고기 뱃속에서 플라스틱 소주 컵과 비닐봉지 등 각종 환경 쓰레기를 발견하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고 말했다.

서울시 새마을부녀회원들이 2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일회용 플라스틱 줄이기 시민실천운동 발대식에서 비닐봉지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장바구니를 들고 패션쇼를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잠에서 깨면 바로 찾는 스마트폰부터 칫솔, 일회용컵과 다양한 포장용기 그리고 신용카드와 신분증 등 플라스틱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특히 1인 가구의 증가와 배달앱을 통한 음식 주문량이 늘면서 플라스틱 패키지의 사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자원순환연대의 현장조사 자료에 의하면 분식 3인분에 평균 20개의 플라스틱 포장용기 등이 사용되어 가히 일회용품에 중독된 ‘배달왕국’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배달앱을 통한 주문이 하루 100만건이라니 최대 2000만개 플라스틱 폐기물이 나올 텐데 정부는 실태 파악도 못한 상태이다. 미약하나마 커피전문점 컵만 규제하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는 어림없다.

독성물질을 품은 트로이 목마, 이런 플라스틱을 누가 원하는가? 플라스틱은 석유에서 추출한 탄화수소로 만드는데 석유는 독성 물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유독성을 갖는다. 게다가 점성으로 주위의 유독물질을 빨아들여 함께 움직인다. 통째로 삼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파도에 의해 잘게 쪼개진 미세플라스틱을 물고기가 삼키고, 결국 먹이사슬을 통해 우리 체내에 유입되면서 건강을 해치게 된다. 그럼에도 소비자는 일회용을 위생과 동의어로 믿었고 생산업계는 잘 팔리니 많이 만들었고 감독해야 할 정부는 미처 실태 파악을 못한 와중에 고래와 아귀들이 몸 바쳐서 플라스틱의 해악을 증거해준 셈이다.

자, 이 플라스틱들을 어찌해야 하나. 지니를 램프 속에 도로 넣을 방법이 없을까? 재활용은 가식적 행동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열심히 분리수거하지만 플라스틱 종류가 5만종에 이르러 단일물질로 뭉쳐질 수 없기 때문에 재활용은 비현실적이다. 재활용 선진국 네덜란드나 독일에서도 30년 이상 투자했지만 재활용 비율은 10%도 안된다. 독일에서는 재활용할 수 없는 쓰레기를 처리할 때 최후의 수단으로 소각이나 다른 방식의 열처리를 한다. 그런데 소각할 경우 대기오염에 더 나쁜 이산화탄소, 다이옥신, 푸란 등이 나온다. 그래서 석유정제와 비슷한 화학적 재활용을 하기도 한다. 

결론은 플라스틱을 쓰지 않는 것이 유일한 길인데 우리 현재 삶의 방식은 불가역적이라 안 쓸 수가 없다. 많은 환경운동이 쓰레기 버리지 마라, 재활용하라는 식으로 소비자에게 부담을 지우고 있다. 과연 이것이 유일한 방법일까. 이상적으로는 생산자의 책임을 확장해서 기업이 경제적으로 회수할 수 없는 물건을 만들지 못하게 하거나 완전히 분해되는 플라스틱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산업계는 환경규제를 마치 태극기를 불태우는 일처럼 호들갑스럽게 경계하지만 플라스틱의 해악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세계적인 장난감 회사인 레고는 지난 반세기 동안 유지했던 로열 더치 셸과의 제휴 관계를 종료하고 석유로 만들어지는 플라스틱에서 탈피하기 위해 친환경 소재를 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다행히 많은 나라에서 바이오 플라스틱을 개발하려고 노력 중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소수의 장인과 청년 스타트업들이 기술을 개발해 놓거나, 대체재를 찾고 있다. 문제는 시장인데 상대적으로 높은 단가 때문에 상용화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일단 전기차나 태양광처럼 초기에 정부가 지원하고 법률로써 규제해서 3대가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플라스틱의 해악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늘은 고래지만 내일은 사람이니까.

<이미경 |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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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KT 아현지사 지하 통신구 화재로 서울 중구·용산구·서대문구·마포구·은평구 일대와 경기 고양시 일부 지역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안전이 위협받는 재난 수준의 사태가 발생했다. 지난 24일 발생한 이번 화재로 전화선 16만8000회선과 광케이블 220세트가 파괴되면서 해당 지역의 KT 이동통신, 유선전화, 초고속인터넷, IPTV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했다. 카드결제 단말기 등이 먹통이 돼 식당, 상점 등은 영업 손실을 보았다. 특히 병원 전산망이 멈춰서 진료에 차질이 빚어졌고, 경찰관서의 112시스템과 범죄신고 전화까지 불통이 됐다. 사고가 주말이 아닌 주중에 났다면 피해는 더욱 커졌을 것이다. 화재 진압 후 복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완전 정상화까지는 일주일가량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번 사고는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단 한 번의 화재로 국가 기능 마비 수준의 사태가 발생하는 취약한 시스템의 민낯을 보여준다.

경찰과 소방관계자들이 25일 전날 발생한 서울 충정로 KT아현지사 지하 통신구 화재조사를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사고 원인으로 통신망에 대한 허술한 방재 시스템이 지적되고 있다. 서울 5개 자치구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형 설비가 설치된 통신구에 화재 방지 장치라고는 있으나마나 한 소화기뿐, 스프링클러도 없었다. 현행 소방법은 통신구의 길이가 500m 이상인 경우에만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 설치를 규정하고 있는데, 아현지사 통신구가 이에 못 미친다는 이유에서다. 화재 발생 시 대형 재난이 예상되는 핵심 시설에 소방시설 설치를 의무화하지 않은 법체계도 문제지만 자체적으로 소방시설을 갖추지 않은 KT의 잘못도 크다. 사고 시 가동할 ‘백업(비상가동)’ 통신망을 마련해 놓지 않은 것도 피해를 키웠다.

문제는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과 철저한 재발 방지 대책이다. KT는 일단 보상과 관련해서는 피해를 본 유·무선 고객들에게 1개월치 요금(직전 3개월 평균 사용 요금 기준)을 감면하기로 했다. 이는 약관에 정해진 금액보다는 많은 보상이다. 하지만 막대한 영업 피해를 본 소상공인들이 문제다. 이들 상당수가 주말이 대목인 영세상인들이다. 배달앱 라이더나 대리운전 기사들도 손해를 봤다. 과거에도 통신 사고로 상인 등이 피해를 본 적이 있지만 보상이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 KT는 피해자들이 실질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아울러 재발 방지를 위해 통신망이 밀집된 통신구에 화재방지 시설을 확충하고 주기적인 안전점검 체계를 갖춰야 한다. 필요하다면 소방법 등 관련 법률을 개정할 필요도 있다. 사고 발생에 대비한 백업망 설치와 통신사들 간 우회로 확보 방안 등도 마련해야 한다.

통신이 국가 기능과 시민들의 일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더 커지면서 이제 통신망은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국가기반시설이 됐다. 만에 하나 테러세력 등이 이번 화재와 같은 상황을 동시다발적으로 일으킨다면 국가적 혼란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클 것이다. 이제라도 정부와 통신업계는 철저한 안전·비상대책을 세워 통신망을 관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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