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끝나간다. 이번 방학에도 초등 저학년 자녀를 둔 맞벌이 부모들은 아이들의 ‘밥’ 때문에 속을 끓였다. 학교에서 방과후교실을 운영하지만 방학 중엔 급식이 제공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아이를 점심밥 챙겨주는 학원에 보내거나, 아파트 상가 식당에 월식을 끊는 등 아이들의 끼니를 해결할 방법을 각자 찾아야 했다.

저소득층 아이들도 학교급식이 끊긴 방학에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 쉽지 않다. 한 끼당 4000~5000원가량 지원되는 급식비로 선택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편의점 도시락 정도다. 식당에 가더라도 급식카드 사용이 가능한지부터 물어야 하는 상황은 아이들을 주눅들게 만든다.

아이들의 ‘밥’은 이 사회의 부실한 돌봄 시스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다. 식사란 끼니를 때우는 것,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서는 행위다. 아이들이 ‘눈칫밥’을 먹는 사회는 기본적인 생존을 안심할 수 없는 사회, 서로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사회를 뜻한다.

2013년부터 일본에는 ‘어린이식당’이 생겨났다. 처음 어린이식당이 생긴 곳은 도쿄의 한 채소가게였다. 동네에 제때 밥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주인이 가게 한쪽을 활용해 저녁식사를 제공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가정 해체 등으로 밥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아동이 늘고 빈곤아동대책법이 제정되면서 어린이식당은 일본 전역에 자발적으로 퍼져나갔다. 빵집, 카페, 마을주민센터, 생협, 개인주택 등 현재 2200여곳에서 열고 있는 어린이식당의 연간 이용자 수는 10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기존의 유휴공간을 활용해 사회에 필요한 가치를 재생산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확산성이 높다. 엄마들과 지역 상인 등 주민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며 민과 관의 협력으로 사회적 돌봄을 회복하고 있다는 점은 더욱 눈여겨볼 만하다.

‘한 끼 식사’를 목표로 시작했지만 일본의 어린이식당은 단순한 식사 제공을 넘어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하교 후 안심하고 찾아갈 곳이 생겼다.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와 숙제도 봐주고 함께 놀아주면서 건강한 식사와 함께 안전한 돌봄도 가능해졌다. 홀로 사는 노인들, 늦게 퇴근한 직장인, 육아에 지쳐 저녁식사를 준비하기 힘든 엄마들이 찾아오기도 하는 등 이곳을 이용하는 층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2년 전, 잡지 ‘민들레’에 일본의 어린이식당 기사를 싣고 나서 제주시 독자들이 아파트 단지에 있는 육아 공간을 활용해 어린이식당을 시작했다. 최근엔 서울 중구 신당동에서도 어린이식당을 열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한 달에 한 번 마을특화사업으로 추진하는 이 어린이식당은 구의 예산과 지역사회 시민들의 자원봉사와 후원으로 꾸려지고 있다. 올해 3월 문을 열었는데 매번 50~60명의 어린이와 청소년, 주민들이 이용하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금세 겨울방학이 돌아오고, 부모들은 다시 아이들의 돌봄을 고민할 것이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돌봄 공백을 막기 위해 초등학교 저학년의 수업시간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지만, 당사자인 아이들 입장에서 정말 필요한 돌봄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일본처럼 우리나라에도 곳곳에 어린이식당이 생기면 어떨까. 서로의 끼니를 걱정해주고, 바쁜 부모를 대신해 동네 아이들을 함께 돌보면 어른들의 삶도 조금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싶다.

<장희숙 |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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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년 만에 찾아온 폭염은 세계 기후변화에 한반도가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온실가스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라는 것도 분명해졌다. 이에 따라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을 독일, 미국, 중국 등 주요 경제국들이 주도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 10년간 세계 에너지원 비율이 가파르게 변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의하면 석탄, 원자력, 석유가 20% 이상 감소했고 재생에너지와 천연가스는 30% 이상 증가했다. 우리는 작년에 뒤늦게 에너지전환에 합류했다. ‘탈원전, 탈석탄, 친재생’으로 요약되는 우리의 에너지전환은 세계적 추세의 일부분만 반영한 상태이다. 대표 정책인 ‘재생에너지 3020’도 세계 변화 속도보다는 늦다.

국가별로 처한 상황이 다른데 우리는 왜 세계 에너지전환을 따라야 하는가. 이제 이산화탄소(CO2) 배출과 미세먼지 같은 국제 환경규제를 피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의하면, 작년에 세계 재생에너지 시장은 310조원대로 커졌다. 태양광 발전 시장만 180조원이다. 작년에 설치된 발전원은 재생에너지가 157기가와트(GW)인 반면 화석에너지는 70GW에 불과했다. 태양광 발전은 98GW로 가장 많이 설치됐다. 문제는 우리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4%도 안 된다는 것이다. 당장은 경제성이 좋다는 이유로 원전과 석탄발전만 육성해왔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탈석탄, 탈원전, 탈석유’ 배경은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등 환경요인도 있지만 경제성과 시장성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원전은 안전규제 강화와 시장축소로 가격이 매년 10%대로 오르고 있다. 반면, 태양광 발전의 경우 기술혁신과 시장확대로 5년마다 가격이 절반으로 급락하고 있다. 셰일가스 개발로 천연가스 가격도 내려가고 있다. 반면, 지금도 가스 발전소에 비해 고가인 석탄·석유 발전소는 환경규제 강화로 채산성이 악화되고 있다. 이런 추세는 향후 30년 이후까지 지속되어, 2050년에는 재생에너지가 전체 발전의 60~85%가 될 전망이다. 유럽연합, 일본, 중국, 미국 등이 장기 로드맵을 마련해 연구개발과 시장확대에 나서는 이유다.

이러한 에너지전환에 대해 국내 일부에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특히 원자력 학계가 반발하고 있다. 원전은 안전하고 청정하며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그동안만 보면 그런 측면이 있다. 하지만 활성 지진대에 위치한 과밀 원전과 핵폐기물 처리, 미래 원전의 안전성과 경제성 문제는 해결이 어렵다. 미국이 지금 원전 3기를 조기 폐쇄하는 이유는 경제성이 없어서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당장 대학의 원자력 분야 학생 지원이 급감하고 있다. 장래가 불확실해서인데, 방치해둘 문제가 아니다. 에너지전환에 따른 장기적인 원자력 인력 전환 로드맵이 필요하다. 참고로, 국내 원전 종사자 중 원자력 전공자는 8%에 불과하며 이는 인문사회 전공자 11%보다도 적다. 대책을 잘 마련하면 대학 원자력학과 문제는 해결 가능한 것이다.

미국의 탈원전 성공사례는 시사점이 많다. 1979년 스리마일섬 원전사고 이후 40여 년간 신규원전 건설을 중단했지만 원전부품과 설계·운영기술은 계속 수출하고 있다. 대학과 연구기관은 원자력 발전분야를 대폭 줄이는 대신 방사선 분야를 늘리는 구조조정을 했다. 방사선 분야는 방사선 의료, 비파괴검사, 농식품 저장, 보안검색 등으로 작년 세계시장이 약 330조원에 달했다. 원전보다 훨씬 큰 시장이며, 매년 12% 이상 성장한다.

현재 국내 원자력 시장 비율은 원전 82% 대 방사선 18%로서 미국의 25% 대 75%, 일본의 54% 대 46%와 크게 대비된다. 대학의 원자력학과 자체 조정이 필요한 이유다. 원전에 치중했던 커리큘럼도 방사선 분야는 물론 미래 에너지 전망에 맞게 다양하게 개편해야 한다.

정부는 에너지전환에 따른 창의·융합형 연구개발의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440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에너지전환 관련 원자력 분야 기술개발(원전 설계·운영·해체 등)에도 매년 약 700억원을 지원한다. 원자력계가 에너지전환에 앞장선다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좋은 기회다.

<임춘택 | 한국에너지기술평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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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기온을 비롯해 더위의 기록을 새롭게 쓴 올여름 폭염은 결국 ‘재난’으로 분류되었다. 인류의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구온난화에 관한 보도도 부쩍 늘었다. 그래도 아직 사람들은 ‘이번’ 여름을 어떻게 넘길지, ‘이번’ 더위는 언제 수그러들지에 훨씬 관심이 크다. 지금 당장을 견디기도 힘든데 아직 보이지도 않는 미래에 눈을 돌리기는 쉽지 않다. 그래선지, 올여름 일본 정부의 폭염 대책은 에어컨을 최대한 사용하라는 것이다. 우리 정부도 비슷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폭염은 상시적인 자연재난이고 냉방기기 사용은 국민의 기본적 복지라며,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 방안 마련을 지시했다.

에어컨은 더위 자체를 없애거나 완화하지는 못한다. 에어컨은 이쪽에서 흡수한 열을 저쪽으로 배출할 뿐이다. 그래서 안쪽은 시원해지고 바깥쪽은 더워진다. 작년에 이어 올여름도 서울의 어느 수녀원에서 지내고 있다. 수녀원 건물은 뉴타운이 들어서면서 아파트로 포위되었다. 아파트 베란다는 모두 수녀원을 향해 있고, 거기에 놓인 수백대의 에어컨 실외기는 마치 ‘폭염방사기’처럼 수녀원 건물을 겨누고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에어컨으로 서로에게 열을 뿜으며 여름을 나고 있다. ‘부분’은 시원해지지만 ‘전체’는 더워진다. 게다가 에어컨 가동은 전기에너지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로 이어지니, 결국 지구온난화를 부추긴다. 그렇게 ‘전체’는 더 더워진다. 당장 견디기 힘들어 쓰기는 하지만, 에어컨은 쓰면 쓸수록 폭염을 강화하는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냉방의 혜택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이 없는 밖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 폭최고기온을 비롯해 더위의 기록을 새롭게 쓴 올여름 폭염은 결국 ‘재난’으로 분류되었다. 인류의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구온난화에 관한 보도도 부쩍 늘었다. 그래도 아직 사람들은 ‘이번’ 여름을 어떻게 넘길지, ‘이번’ 더위는 언제 수그러들지에 훨씬 관심이 크다. 지금 당장을 견디기도 힘든데 아직 보이지도 않는 미래에 눈을 돌리기는 쉽지 않다. 그래선지, 올여름 일본 정부의 폭염 대책은 에어컨을 최대한 사용하라는 것이다. 우리 정부도 비슷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폭염은 상시적인 자연재난이고 냉방기기 사용은 국민의 기본적 복지라며,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 방안 마련을 지시했다.

에어컨은 더위 자체를 없애거나 완화하지는 못한다. 에어컨은 이쪽에서 흡수한 열을 저쪽으로 배출할 뿐이다. 그래서 안쪽은 시원해지고 바깥쪽은 더워진다. 작년에 이어 올여름도 서울의 어느 수녀원에서 지내고 있다. 수녀원 건물은 뉴타운이 들어서면서 아파트로 포위되었다. 아파트 베란다는 모두 수녀원을 향해 있고, 거기에 놓인 수백대의 에어컨 실외기는 마치 ‘폭염방사기’처럼 수녀원 건물을 겨누고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에어컨으로 서로에게 열을 뿜으며 여름을 나고 있다. ‘부분’은 시원해지지만 ‘전체’는 더워진다. 게다가 에어컨 가동은 전기에너지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로 이어지니, 결국 지구온난화를 부추긴다. 그렇게 ‘전체’는 더 더워진다. 당장 견디기 힘들어 쓰기는 하지만, 에어컨은 쓰면 쓸수록 폭염을 강화하는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냉방의 혜택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이 없는 밖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 폭염 노동은 그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살기 힘든 사람의 몫이 된다. 원한다고 모두 에어컨을 마련할 수 있는 것도, 원하는 만큼 냉방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폭염에 일조하는 에너지를 훨씬 적게 소비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폭염 피해는 훨씬 더 많이 받는다. 다른 자연환경 피해와 마찬가지로 폭염 피해도 평등하지 않다.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이 되면 현재의 불평등은 극단적으로 변할 수 있다. ‘설국열차’가 현실이 되는 상상을 해본다. 살려면, 철저한 차별과 억압이 지배하는 ‘열국열차’라도 올라타야 한다. 열차 바깥은 열기 가득한, 사람이 살 수 없는 세상이다.

재난으로 분류된 폭염은 ‘시대의 징표’이기도 하다. 올여름 폭염은 지금까지 우리가 누리고 좇아온 삶이 지속 가능하지도, 안전하지도, 평등하지도 않음을 보여준다. 살려면 뿌리부터 변하라고 요청한다. 최근 지구온난화에 대처하기엔 이미 늦었을지 모른다는 비관적 연구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폭염의 교훈과 요청에 응답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많아진다면, 희망을 놓기엔 이르다. 아직 전력을 다해보진 않았으니. 사람들이 이번 폭염으로 지구온난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조금이라도 실감했다면, 변화의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인가, 더위의 기세가 살짝 수그러드는 조짐이 반가우면서도, 행여나 폭염의 고통을 잊어버릴까, 걱정도 된다.

수녀원이 북한산 아래에 있어, 오후에 틈날 때면 산에 들었다. 산속도 덥지만 산 아래와는 다르다. 산을 오르면 땀이 비오듯 흘러도, 잠시만 걸음을 멈추면 어느새 더위가 수그러든다. 견딜 만하다. 가끔 스쳐 지나가는 한줄기 바람이 주는 청량감이란. 나무는 뿌리에서 끌어올린 수분을 잎을 통해 기화하며 주위의 열을 흡수한단다. 숲은 자기 바깥쪽을 시원하게 해주는 실외기 없는 완벽한 에어컨이다. 자연이 거저 주는 보물 같은 선물이다. 폭염 대비라는 측면에서도 스키장이나 골프장을 만든다고, 도로를 확장한다고, 숲을 훼손하는 일은 자연의 선물을 걷어차는 어리석은 짓이다. ‘스스로 그러한’ 자연(自然)이 옳은 법이다. 인간은 자연의 흐름을 따를 때 행복해지고, 거스를 때 불행해진다. 폭염이 재난이 된 요즘은 더욱 그렇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염 노동은 그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살기 힘든 사람의 몫이 된다. 원한다고 모두 에어컨을 마련할 수 있는 것도, 원하는 만큼 냉방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폭염에 일조하는 에너지를 훨씬 적게 소비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폭염 피해는 훨씬 더 많이 받는다. 다른 자연환경 피해와 마찬가지로 폭염 피해도 평등하지 않다.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이 되면 현재의 불평등은 극단적으로 변할 수 있다. ‘설국열차’가 현실이 되는 상상을 해본다. 살려면, 철저한 차별과 억압이 지배하는 ‘열국열차’라도 올라타야 한다. 열차 바깥은 열기 가득한, 사람이 살 수 없는 세상이다.

재난으로 분류된 폭염은 ‘시대의 징표’이기도 하다. 올여름 폭염은 지금까지 우리가 누리고 좇아온 삶이 지속 가능하지도, 안전하지도, 평등하지도 않음을 보여준다. 살려면 뿌리부터 변하라고 요청한다. 최근 지구온난화에 대처하기엔 이미 늦었을지 모른다는 비관적 연구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폭염의 교훈과 요청에 응답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많아진다면, 희망을 놓기엔 이르다. 아직 전력을 다해보진 않았으니. 사람들이 이번 폭염으로 지구온난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조금이라도 실감했다면, 변화의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인가, 더위의 기세가 살짝 수그러드는 조짐이 반가우면서도, 행여나 폭염의 고통을 잊어버릴까, 걱정도 된다.

수녀원이 북한산 아래에 있어, 오후에 틈날 때면 산에 들었다. 산속도 덥지만 산 아래와는 다르다. 산을 오르면 땀이 비오듯 흘러도, 잠시만 걸음을 멈추면 어느새 더위가 수그러든다. 견딜 만하다. 가끔 스쳐 지나가는 한줄기 바람이 주는 청량감이란. 나무는 뿌리에서 끌어올린 수분을 잎을 통해 기화하며 주위의 열을 흡수한단다. 숲은 자기 바깥쪽을 시원하게 해주는 실외기 없는 완벽한 에어컨이다. 자연이 거저 주는 보물 같은 선물이다. 폭염 대비라는 측면에서도 스키장이나 골프장을 만든다고, 도로를 확장한다고, 숲을 훼손하는 일은 자연의 선물을 걷어차는 어리석은 짓이다. ‘스스로 그러한’ 자연(自然)이 옳은 법이다. 인간은 자연의 흐름을 따를 때 행복해지고, 거스를 때 불행해진다. 폭염이 재난이 된 요즘은 더욱 그렇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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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사태의 30번째 희생자인 해고노동자 김주중씨의 49재가 지난 14일 서울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에서 열렸다. 김씨의 삶과 죽음은 한국 사회의 ‘아픈 손가락’인 쌍용차 해고자들의 고통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2009년 6월8일 정리해고된 김씨는 그해 8월5일 파업 중이던 쌍용차 평택공장 옥상에서 경찰특공대에 집단폭행을 당하고 구속됐다. 이후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김씨의 오랜 해고 생활은 빚더미만 남았다. 낮에는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친구 명의로 할부로 산 화물차를 몰며 발버둥쳤지만 결국 지난 6월27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그날도 밤새 화물차를 몬 뒤 “못난 남편 만나 고생만 시키고 빚만 남기고 가는구나”라는 마지막 문자메시지를 아내에게 남겼다.

2009년부터 이어지던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들의 죽음의 행진은 2015년 12월30일 노사가 해고자 복직에 합의한 후 멈추는 듯했다. 그러나 2017년 상반기까지 해고자 전원 복직을 위해 노력한다는 노사 합의가 지켜지지 않자 지난해 5월 한 해고자의 아내가 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 죽음은 김씨에게로 이어졌다. 그동안 복직이 이뤄진 해고자는 45명에 불과하고 김씨를 포함한 120명은 여전히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복직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씨의 죽음으로 복직 대기 해고자가 119명으로 줄었을 뿐이다. 회사는 경영여건이 개선되지 않아 당장 복직은 어렵다고 하지만 동료들은 사측이 복직 시한이라도 알려줬다면 김씨가 “그렇게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씨를 비롯한 쌍용차 해고자들은 경찰이 제기한 약 17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도 시달리고 있다.

최근 공개된 2009년 3~6월 사측이 작성한 100여건의 문건들에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강력한 구조조정 요구를 받은 사측이 경찰·검찰·노동부 등과 함께 파업유도와 노조와해 계획을 세운 정황이 적나라하게 들어 있다. 이는 쌍용차 사태에 국가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쌍용차 사태를 조사하고 있는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도 해당 문건들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진상조사위는 강제수사권이 없어 경찰이나 검찰이 직접 나서야만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쌍용차 해고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고 복직과 손배소송 문제의 전향적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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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상경한 금요일, 늦은 오후였다. 을지로 빌딩가의 한 카페에서 우유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논문을 수정하고 있는데 누군가 옆자리에 앉았다. 단정한 정장 차림에, 얼핏 보아도 사회초년생 티가 묻어나는 얼굴이었다. ‘어려 보인다’ 혹은 ‘실제 어리다’와는 결이 조금 다른, 풋것의 느낌. 창밖을 보며 나란히 앉도록 설계된 자리인데 굳이 옆사람을 의식했던 이유는 그녀가 커피를 받아오자마자 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쩌다 공공장소에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릴 만큼 마음을 다친 것일까 했다. 아무리 생면부지라지만 울고 있는 사람 곁에서 아이스크림이나 핥자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시선을 내려뜨린 채 교정지 페이지만 타닥타닥 넘겼다. 휴대폰을 들었다 놓았다 하던 그녀는 이윽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저… 부장님 혹시… 죄송하지만요. 죄송한데 바꿔주시면… 그러면 팀장님은 퇴근… 예? 아니,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엿들으려던 것은 아니었으나 듣게 되었다. 애써 귀를 닫으려 해도 안되었다. 얕은 호기심인 줄 알지만 궁금함이 일었다. 무슨 일일까. &lt;미생&gt;과 같은 비정규직의 아픔일까, 아니면 직장상사에게 모진 말을 들은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사무실에서 집단따돌림을 당하거나 모종의 부당한 처우를 받았을까. 아이스크림이 녹아 흐르는 것도 모른 채 이런저런 추정을 해보았다. 어느덧 옆자리에서는 어깨의 들먹거림이 잦아들었다. 그녀는 가방에서 작은 파우치를 꺼내더니 메이크업 도구들을 집었다.

먼저 눈가에 섀도를 덧바른 후 연필처럼 생긴 것으로 세심하게 선을 그려 넣었다. 퍼프로 두 뺨을 팡팡 두드리고 입술에 다시 색을 입혔다. 방금 울었던 사람이 맞나 싶도록 집중해서 말이다. 그 모습을 곁눈질하던 나는 우연히 보았다. 수정작업을 하다 말고 그녀가 손거울을 들여다보며 아주 잠깐, 표정을 연습하듯 생긋 웃어보는 것을. 이번에는 내 쪽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아까 흐느끼던 얼굴을 볼 때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종래의 호기심이 연민으로, 연민은 이내 동질감으로 옮겨갔다. 눈화장이라고는 해본 일이 없고 손거울도 갖고 다니지 않으면서 왜였을까. 그녀에게 불가해한 동병상련을 느꼈던 것이다. 

어느 소설 초반부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눈물진 눈가를 정리하러 간 여자친구가 거울 앞에서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약간 벌린 채 마스카라를 칠하”는 장면을 주인공이 문틈으로 보게 된다. 숙련된 장인처럼 그 일에 몰두하는 표정이 마치 “조금 전까지의 눈물과 애교, 토라짐이 하나의 연기였음을 조용히 웅변하는” 듯했다고 화자는 진술한다. 언제 울었냐는 듯 단장에 열중하는 모습에 조용히 소름이 돋았다는 주인공의 심리묘사는 쓴웃음을 짓게 했다. 웃음의 뒤끝은 씁쓸하기보다 슬펐다. 작중 인물을 대신해서 항변하고 싶었다. “화장 고치는 데에 몰입했다고 그전의 감정들이 연기였다 할 수 있나요?”라고. 마음이 깨진 상태로도 불특정 다수에게 예쁘게 보이고픈 강박이 그녀 역시 싫었을 거라고. 부서진 마음을 하고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글을 쓰고, 어떤 일이든 부탁받으면 기꺼이 응하는 스스로의 강박이 그악스럽게 여겨졌던, 그래서 한밤에 깨어나 토했던 나처럼 말이다. 나는 그 작가와 같은 시선으로 사람에 대해 냉소할 수 없었다.

화장을 안 하더라도 사회생활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직업을 가진 내가 말쑥한 차림새의 직장인들이 바삐 움직이는 일터를 가진 이에게 함부로 공감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면 안될 것 같다. 그저 나는 꾸역꾸역 단장하던 그녀에게서 꾸역꾸역 성실하고 상냥했던 스스로가 겹쳐보였을 뿐이니까. 손거울을 보며 웃어놓고 아마도 다음 장면에서 다시 울 사람에게, 그래서 일순간 동류의식을 느꼈을 따름이니까. 말하자면 그것은 고인 눈물이 마르고 나면 이내 휘발될 피상적인 감상이었다.

그럼에도 종종 그날이 떠오른다. 당시 그녀를 괴롭혔던 대상이 직장업무였든 부장님이었든 사회구조 자체였든, 지금은 그녀가 덜 힘들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고통스럽던 순간들, 스스로의 강박 어린 생존본능을 미워한 그 시간들마저 타인의 아픔에 밀알만 한 크기의 쓰임새를 갖는 셈이다. 이 또한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무엇이면 좋겠다.

<이소영 | 제주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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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를 지나며 이 불볕더위를 ‘잠시 시련이다, 가혹한 대가다’라고 생각해 보았다. 끓는 물에 적셨다 꺼낸 종이처럼 옷들이 고통스럽다.” 29세의 나이에 요절한 천재 시인 기형도가 1988년 8월 &lt;짧은 여행의 기록&gt;이라는 산문에서 묘사한 한여름의 더위이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올해의 끔찍한 더위는 잠시의 시련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구를 착취해온 것에 대한 가혹한 대가임은 분명하다.

지금 화두는 기후 변화에 따른 냉난방의 복지이다. 기후정의는 기후변화가 냉난방 시설을 이용할 수 없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문제에 대한 대응이고, 기후형평성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에 관한 문제이다. 기후정의를 위해서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냉난방 복지 혜택을 제공하고, 동시에 국민들이 고통스러운 혹서기를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한시적인 주택용 누진제 완화가 발표되었고 관련 제도의 변화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냉난방 복지뿐만 아니라 폭염으로 인한 농축산물 피해와 그에 따른 파급효과도 커지고 있다. 이제는 기후변화가 초래할 문제들을 미리 예측하고 단기적이고 직접적인 대응 정책과 함께 장기적, 철학적, 기술적 방향과 정책들을 고민해야 한다. 기후형평성의 차원에서 산업화의 혜택을 누려온 선진국과 기업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한 살인적 폭염은 기후형평성에 대해 설왕설래하는 것조차도 사치로 만들어 버렸다.

환경인식 제고를 위한 캠페인의 영향으로 환경파괴와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은 높아졌으나, 친환경 행동은 아직 미미하다. 그 이유는 환경 희생을 기반으로 하는 생산과 소비 그리고 생활 방식이 가지는 구조적 문제 때문이며 친환경 행동을 위해서는 시간, 비용 노력이 들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경제·사회적 문제뿐만 아니라 심리적 장벽이 친환경 행동을 더욱 방해하기도 한다. 개인의 행동은 너무 미미해서 환경과 기후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무력감이 대표적인 심리적 장벽이다. 기후변화는 개별지역 차원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글로벌 차원의 문제이다. 심리적으로 그룹의 규모가 클수록 그리고 개인의 기여가 익명일수록 개인의 노력으로 인한 변화가 적게 느껴진다. 그러니 기후변화 경감을 위한 개인의 역할이 너무나 미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무력감은 기후변화 자체를 부정하는 현상으로 전이된다.

환경심리의 권위자인 로버트 기포드 교수는 개인이 기후변화 경감을 위한 자신의 노력을 타인과 비교할 때, 불공평을 지각하게 되고, 이는 기후변화 경감을 위한 행동을 방해한다고 밝혔다. 지각된 불공평은 코먼스 딜레마(Commons Dilemma)라는 사회적 딜레마로 대변된다. 코먼스 딜레마는 개인의 단기적 이기심이 공동체의 장기적인 공익과 상충할 때, 많은 사람들이 사익을 추구하게 되면 공동체 전체는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지만, 타인이 공익을 위해 함께 협조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노력은 무의미한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으므로 선택에 딜레마를 갖는다는 것이다. 코먼스 딜레마는 기후변화 경감을 위한 우리의 선택적 딜레마를 대변한다. 개인의 노력이 기후변화를 경감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무력감과 코먼스 딜레마가 결합되어 다른 사람들의 협조가 없으면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기후변화를 경감시키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개인적 노력은 헛일이라는 무력감을 강화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무력감과 코먼스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작은 실천을 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행동들이 습관화되고 친환경이 사회적 규범이 되어야 한다. 환경부를 비롯해서 관계기관과 지자체는 구체적인 실천 강령을 제시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특정한 행동들을 함께하는지 지속적인 설문조사 등을 통해 수치화해서 제시하고, 특정한 행동이 만들어 내는 긍정적인 결과를 구체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는 소수의 완벽한 친환경활동가들보다 작은 실천을 하는 다수가 절실하다. 두려운 것은 곧 불어올 찬 바람으로 폭염이 뿜어내던 착취당한 지구의 신음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올해의 무더위를 겪으며 모두가 외면하고 싶지만 가슴속 깊이 느끼고 있는 불안과 불편한 진실은 기후변화의 가속화이다. 올해의 폭염이 재앙의 페달이 될 것인가, 아니면 더 늦기 전에 우리 행동의 변화를 이끈 축복이 될 것인가?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황금주 | 중앙대 교수 경영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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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에 의하면, 연일 계속되는 이번 폭염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북아메리카, 북유럽, 아프리카 등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기상이변인데, 지구온난화가 그 원인으로 지적된다고 한다. 고도 10㎞의 상층 대류권에 기압 차이로 서에서 동으로 부는 강한 바람띠(편서풍, jet stream)가 형성돼 있어 대기 순환에 기여하는데, 이 바람이 약화되어 고기압의 흐름이 정체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열대 서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높아져서 상승기류가 활발해진 것도 고기압 발달에 기여했다고 한다. 호주의 한 대학 연구팀은 20개국 412개 지역에서 2031~2080년 열파(Heat Wave)로 인한 사망자를 예측할 수 있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모델을 만들어 분석했는데 2031~2080년의  열파로 인한 사망자수는 1971~2010년 대비 4배 이상 20배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산화탄소(CO2)의 배출로 온실효과(Greenhouse Effect)가 발생하여 지구표면의 온도가 상승하는 현상을 지구온난화라고 불러왔는데, 최근에는 미국 과학학술지 논문에서 핫하우스 지구(Hothouse Earth)라는 개념이 소개됐다. 지구온난화가 돔(dome)이 씌워진 것 같은 현상의 임계점을 이미 넘어서서, 더 이상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더라도 지구가 온실이 되는 것을 막기 어려울 수 있다고 예상한 것이다. 대체로 기후변화를 인정하면서도 이산화탄소 배출만 줄이면 마치 산술적으로 온실효과도 진행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이미 일어난 현상이 지구의 안정된 질서를 깨는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있어 예측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해수면 상승이 그 실례이고, 기후변화 관측을 담당하고 있는 과학자들은 가장 위협적인 요소로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을 경우를 든다. 빙하가 녹으면 지구 평균 해수면을 7m 이상 높이게 되고 방글라데시는 국토의 반이 잠기고, 상하이도 사라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태국, 메콩강 하구도 지대가 낮은 편이라 해수면 상승 시 위험하다. 폭염과 혹한, 홍수 등 극한현상은 진작부터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관측돼왔다. 식량과 물부족, 기후난민, 빈곤심화 등의 사태도 기후변화의 결과로 초래될 것으로 보고 있다.

2015년에 파리기후협약을 통해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195개 국가들이 산업화 이전 시기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2도보다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지켜야 하는 공동의 의무를 부담하기로 했다. 그 후 기후변화에 대한 대중적 인식도 상당히 제고됐지만, 이것이 단순히 에너지 공급원인 화석연료를 줄이는 것만으로 쉽사리 해결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게 이미 나타난 사태로부터 얻어야 할 교훈이다. 지구 평균기온은 2016년 현재 1.1도 올랐고 바다도 계속 더워지고 있는데 한번 더워지면 열이 잘 식지 않기 때문에 수온은 계속 상승할 것으로 본다.

그런 가운데 미국이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기후변화는 화석연료를 사용한 산업문명이 초래한 것이어서 미국은 역사적 책임이 가장 큰 국가이지만, 실제로 기후변화의 피해는 미미한 편이다. 기후변화에서는 원인제공을 한 선진국 국가군과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개발도상국 간의 불균형도 문제해결에 장애를 일으키는 요인이다. 우리나라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4위에 속하는 책임이 큰 나라다. 지구가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으로 급변하리라는 예측을 하면서도 신속하게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데에는 구체적인 피해를 겪기 전에는 좀처럼 문제를 실감하기 어렵고 관행대로 흘러가는 게 인간의 속성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의 고통스러운 장기간의 폭염을 겪으면서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보다 절실한 각성의 계기가 주어진다면 그나마 다행일 수 있겠다.

기후변화는 산업문명의 총체적 난국이라 할 수 있다. 지구적 규모로 거대화한 물질적 성장과 혜택을 공유하기에 한 국가나 개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실천할 방법들이 마땅치 않고 효과도 미미하다는 점에서 개인으로선 속수무책에 가까운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물론 개개인도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공감을 나누면서 적합한 생활방식을 찾아 사소한 실천이라도 해나가야 한다. 이제는 행동이 필요하다는 절박한 생각이 든다.

기후변화는 산업문명의 시작 때부터 드리워져 있던 어두운 이면이다. 이제 포화상태의 표면을 뚫고 드러나는 놀라운 진실은 우리 스스로 공동의 집 지구를 폭행하고 망가뜨려 집이 무너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류가 지구를 파괴할 정도로 가공할 만한 힘을 부려본 경험이 이전에 없었기에 무분별한 과오로 인해 초래됐을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그 저변에는 왜곡된 문명의 관점으로 ‘이기심’이 깔려 있다. 탐욕이 인간의 속성이라 하더라도 지구와의 관계에서 배려와 신중함이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이다. 인간중심주의는 대체로 두 형태로 나타난다. 과오를 알게 된 상황에서도 거짓말과 조작을 동원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부인하는 경우이다. 일찍이 레이철 카슨이 <침묵의 봄>으로 화학제품의 문제를 폭로했을 때부터 산업의 이익을 누리는 측에서는 항상 그런 반응을 반복해왔고, 지금 미국이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하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중심주의의 근저에는 과학을 발전시켜서 자연을 지배하고 그리해서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인간의 성찰능력에 대한 위대한 자부심이 놓여있다. 그러한 의식이 인권과 민주주의의 동력이기도 했다. 이제 인본주의의 가치를 나누는 사람들이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는 지점에서 다시 연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구와의 관계 재정립이 이 문명의 가장 커다란 숙제이며, 이 문제와의 상호연관성 안에서 인간과 사회의 문제들을 풀어가야 한다는 데에 의견을 모아야 하는 것이다. 바다가 육지를 삼키고 하늘이 두꺼운 온실공간의 뚜껑으로 갇혀버려 산천초목이 죽어간다면, 밀폐된 지구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생존할 수 있으랴.

<강금실 | 사단법인 선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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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부터 교육정책 모니터링단을 하고 있다. 교육부에서 학교마다 학부모 한 명씩 뽑으라 해서 하게 된 것. 사람을 뽑는 과정도 의아한 것이었지만, 첫 번째 설문을 받았을 때부터 내가 이 모니터링을 하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는 초등학생인데, 학교생활기록부에 관한 설문의 대부분은 중·고등학교 생활을 알아야만 적을 수 있었다. 설문에 참여할 것인지를 한참 재어 보다가, 믿고 물어볼 만한 친구가 있어 전화를 걸었다. “그게, 설문 돌리고 다수결 하듯이 해서 결정할 게 아니야.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분명한 교육 철학이 있으면, 결정하고, 사람들을 설득해서 실행해야지.”

대입제도 개선안이라는 것이 발표되었다. 이렇게 바뀌는 제도는 지금 중학교 3학년부터 해당된다고 한다. 초등 4학년 학부모인 나는 이번 개편안이 우리 아이와는 상관이 없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또 바뀌겠지. 그래도 다시 친구에게 이야기를 듣고, 한참 인터넷을 들락거렸다. 이번 안을 마련하는 데에도 시민참여단이라는 이름으로 조사해서 정책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삼았다지. 대입제도를 바꾸는 것이야말로 우리나라 교육을 가장 들었다 놓았다 하는 것인데, 이것도 설문 돌리듯 하는 과정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입제도 개편 권고안과 관련해 열린 교육부 긴급 간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학 입학 전까지, 얼마나 더 상위권 대학에 갈 수 있을까만 따지는 게 학교 현장이다. 그런 상황에서 대입제도를 두고 다수결 싸움이나 다름없는 설문조사를 하겠다고 들이대면, 사람들은 자기 처지에서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방법을 선택하게 마련이다. 게다가 아이의 삶을 마치 자신의 삶인 양 여기는 학부모 입장에서는 대입에 닥쳐서 좀 더 간명하고 단순한 시스템, 그러니까 아이들을 줄 세우는 것이 잘 보이는 것이 편리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마치 학교생활종합기록부가 몇몇 돈 많은 사람들이 농간을 부리기 좋은 제도인 것처럼 소문이 나기도 했지만, 반대쪽에는 수능 점수야말로 부모의 재산과 비례한다는 통계가 있다. 수능 첫해에 대학 입시를 치렀던 나는 수능 시험에 대해 좋게 기억한다. 학력고사보다 점수가 잘 나왔으니까. 하지만 통계가 말하는 것은 부모가 충분히 돈이 많아서 수능시험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면 할수록 아이의 성적은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재수·삼수를 하고, 재수·삼수생이 점수가 더 높고. 유명 학원가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수능 점수는 낮아진다.

소위 일류대학을 간다고 해서, 삶이 풍요롭고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건 분명하다. 열일곱 살, 스무 살 아이들이 불행하도록 강요하는 교육은 바뀌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교육 정책 결정자들은 그저 전단 나누어 주듯, 골고루 설문을 돌리는 일로써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지금껏 그렇게 일을 하고 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뒤로, 나와 아내는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래서 무엇을 하겠다는 교육인 거지? 하는 질문에 맞닥뜨렸다. 학부모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을 최대한 골고루 반영하겠다는 학교의 자세는 맨 꼭대기 교육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의 자세를 닮았다. 어디에서도 교육이 이것을 하겠다 하는 ‘뜻’을 찾기 어렵다.

며칠 전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연수에 다녀왔다. 초·중등 선생님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1983년 시작된 이 모임은 이오덕, 권정생, 윤구병 선생과 같은 분들의 뜻을 새기며, 35년이 지난 지금까지 교육에 대한 뜻을 나누고, 학교에서 또 자기가 선 자리에서 어떻게 이 뜻을 펼칠 수 있을지 직접 실천한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다. 저마다 학교에서 하는 방법은 조금씩 다르되, 그것이 ‘삶을 가꾸는 교육’이라고 하는 뜻을 지켜나가는 데에 어떠한가를 두고 늘 치열하다. 교육 정책이 이렇게 우왕좌왕하는 것을 두고, 바로잡을 힘이 없는 것은 교육에 대해 품은 뜻이 없어서일 것이다. 어떻게 줄 세우는 것이 모두에게 공평한가 하는 식의 질문으로는 어떤 답을 꺼내도 누군가에 대한 유불리만 가릴 수 있을 뿐이다.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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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올림픽이 열린 1988년은 기후변화에도 의미 있는 해였다. 온실효과,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같은 용어가 그해 본격적으로 대중의 뇌리에 각인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해 6월23일, 기후변화의 새 역사가 쓰였다. 40대 후반의 한 과학자가 그날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역사적인 증언을 했다. “지구온난화가 이산화탄소와 다른 온실가스에 의해 강화된다고 99% 확신할 수 있다.” 그의 증언은 이튿날 ‘지구온난화는 시작됐다’는 제목으로 뉴욕타임스 1면 머리기사를 장식했다. 기후변화가 언론에 처음 대서특필된 순간이었다. 향후 가열되는 기후변화 논쟁의 예고탄이기도 했지만. 그날의 주인공은 훗날 ‘기후변화 선지자’로 불린 미 항공우주국(NASA) 소속 과학자 제임스 핸슨 박사였다.

당시 핸슨 박사가 말한 핵심은 세 가지였다. 첫째, 1988년은 역대 어느 해보다 더운 해라는 점이다. 둘째, 온실효과가 지구온난화의 원인이라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기후에 대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온실효과가 폭염 같은 극단적인 사태의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는 2017년까지 지구의 5년 단위 평균기온이 1950~1980년보다 약 1.03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또 워싱턴을 비롯한 4개 도시의 극단적인 날씨 일수를 예측했다. 핸슨의 예측 결과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했다. 2017년까지 실제 기온 상승폭은 0.82도였다. 4개 도시의 극단적인 날씨 일수는 오히려 핸슨의 예측을 웃돌았다.

지난해 9월 중국 네이멍구 바우터우 쿠부치 사막의 조림지 대한항공 녹색생태원에서 임직원들이 황사 방지 희망 나무를 심기 위해 사막 능선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 바우터우(중국) _ 이준헌 기자

그로부터 30년. 핸슨은 자신의 바람과 달리 예측대로 가고 있는 현실에 절망했다. 더욱이 올해 들어 한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가 최고기온을 갈아치울 정도로 지구는 더워지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대기권 이산화탄소 농도가 410PPM을 넘어섰다. 지구온난화의 심리적 저지선이라고 불리는 400PPM을 넘어선 지 3년 만이다. 최근에는 지구온난화가 인간의 손을 떠났다는 섬뜩한 전망까지 나왔다. 8개국 13개 연구기관의 학자들은 지난 6일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충격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현재 지구 곳곳에서 진행 중인 기후변화가 특정한 임계점을 넘어서면 지구가 자정작용을 멈춰 온실가스 감축 등 향후 인류가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기후변화를 막을 수 없다는 우울한 내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핸슨 박사도 회한을 드러냈다. 지난 6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로 “기후변화 이야기를 대중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만큼 분명하게 하지 않은 점”을 꼽았다.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평가도 냉정했다. <여섯 번째 대멸종>을 쓴 뉴요커 기자 엘리자베스 콜버트는 30년 전 핸슨의 증언을 “침울한 이정표”라고 했다. 한 과학사 연구가는 핸슨을 “비극적인 영웅”으로 묘사했다. 핸슨이 기후변화의 위험을 알린 선지자였지만 대중을 움직이는 데 실패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핸슨은 대중과의 소통에 결코 소홀하지 않았다. 그는 기후변화 반대시위 현장에서 5번이나 체포될 정도로 과학자를 넘어 시민행동가로서의 소임도 다했다.

2012년 봄에는 ‘내가 기후변화에 대해 반드시 외쳐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TED 강연을 했다. NASA에서 은퇴하기 1년 전에 한 이 강연 동영상은 130여만명이 봤다.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빨리 예측하고 알리고자 했던 핸슨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기업의 이해관계에 부응해온 기후변화 부정자들이나 정치인들이 문제다. 그가 회한의 소회를 밝힌 이유는 우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TED 강연 동영상에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할아버지는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이해시키지 못했다.” 그가 손주들로부터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결국 그를 ‘기후변화 전도사’로 나서게 한 건 미래세대에게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지구를 물려줄 수 없다는 절박감이었다.

핸슨의 역사적인 증언으로부터 한 세대가 지났다. 기후변화는 거대담론이다. 찬반 논쟁이 끊이질 않는다. 핸슨 같은 선지자의 경고보다 에어컨 전기료 폭탄 문제에 우선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핸슨은 존재 그 자체가 희망이다. 그래서 당신이 있었기에 최악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아직도 대처하기에 늦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어 행복하다. 핸슨은 의회 청문회장에 나오기 전날 밤,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의 경기를 보면서 다음날 날릴 멋진 문구를 떠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청문회에서는 그 말을 깜빡 잊어버렸다. 청문회 뒤 기자회견에서 그가 한 말은 이렇다. “미적거릴 시간이 없다. 온실효과가 우리에게 다가왔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고 말해야 한다.”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유효한 말이다.

<조찬제 국제·기획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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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한반도에 불어닥친 유례없는 폭염은 많은 서민의 생활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사상 최악의 폭염’이 올해만 유독 불거진 이변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최근 5년 동안 매년 한반도 사상 최고기온이 경신되고 있고 최악의 더위는 여름철 늘 있는 대책 없는 단골뉴스가 되는 등 고착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 이러한 기온 상승은 기후학자들이 우려하는 예측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제 폭염은 여름철 며칠만 피하면 괜찮은 것이 아닌 다수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여름 내내 지속되는 자연재해가 된 것이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8일 경북 영주시 문수면 승문1리 한 수박밭에 강한 햇볕으로 껍질이 하얗게 변하고 속이 상한 수박들이 줄지어 버려져 있다. 이 수박밭에서는 수확하려던 6000여개 중 80~90%가 버려졌다. 이준헌 기자

재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쏟아내는 대응은 임기응변의 세금 투입 일색으로, 주변 전체를 생각한다면 폭염을 더욱 심화시키는 대책들이 대부분이다. 말 그대로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며, 근본적 대책을 위한 논의는 사실상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정부는 이 더위가 지나면 내년 여름까지 잊히기를 기다리는 모양새다. 기실 전 지구적 기온 상승으로 인한 폭염에 정부가 내놓는 대안이 당장 살기 힘든 국민들을 만족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이 재난의 원인을 지구적 산업화에 따른 온난화라 치부해 버리면 우리가 할 일은 거의 없으며 순순히 더 길어지고 더 세지는 여름철 재앙을 앞으로도 이렇게 무방비로 견디는 것만 남게 된다. 한반도 기온 상승이 지구 평균에 비추어 두 배 이상 빠른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도 문제를 대외적 요인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이다. 당장 원전을 더 가동시켜 전기를 싸게 쓰자는 대책을 일부 기득권에서 주장하고 있지만, 원전이 광범위한 해수면의 온도 상승 유발원임을 고려한다면 문제를 더욱 가중시키는 것으로 대안이 될 수 없다. 더위에 지친 서민에게 전기료 절감과 같은 달콤한 대책으로 비치지는 못하겠지만, 한반도 기온 상승의 속도 완화를 위한 중장기적인 대책을 절실히 논의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 논의는 우리나라가 왜 다른 나라에 비해 급격히 기온이 상승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어야만 한다. 지구적 기온 상승의 원인은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의 과도한 배출이다. 이 근본 원인에 대한 대책은 첫째,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며, 둘째는 배출된 온실가스를 더 흡수하는 것이다. 물론 간단해 보이는 이 대책을 실천하는 것은 전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재난상황에서 무조건 더위를 참으며 에너지를 절약하라는 말이나, 일반화된 소비 행태의 급진적 전환 요구는 대책이 될 수 없다. 자연스럽게 대책의 시작은 기온 상승을 유발하는 화석에너지원 및 원전의 빠른 전환과 함께 온실가스 흡수량을 높이기 위한 방안 마련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온실가스 흡수를 위한 대안은 숲의 면적과 기능을 확대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수목은 탄소를 흡수할 뿐만 아니라 아스팔트에 물을 뿌리는 효과와 동일하게 수분을 증발시켜 대기 온도를 직접적으로 낮추는 이중 효과가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녹지정책은 ‘탄소흡수원 확충’을 위한다는 최우선 명분과는 달리 탄소 흡수 기능을 훼손하는 데 지속적으로 세금을 투입해 왔다. 숲가꾸기 사업이 그것인데, 최근 10년간 약 2조2000억원의 세금을 투입한 사업의 대부분은 간벌과 가지치기로 숲의 탄소저장 총량과 연간 탄소흡수량을 줄이는 데 사용되었다. 아울러 지금의 기온 상승 추세가 지속되면 한반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소나무가 살아갈 수 없음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겨울철 온도 상승이 주된 원인인 소나무재선충병 방재를 명목으로 온도를 낮출 수 있는 참나무와 낙엽활엽수 숲으로의 안정적 전환을 방해하는 데 쏟은 세금이 1조1000억원에 달한다.

폭염의 대책은 세금을 투입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각 분야에서 폭염을 가중시키는 데 들이는 세금을 줄이는 것이 훨씬 쉽고 높은 효과를 보이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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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교육회의가 7일 2022학년도 대학입시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의 전형 비율을 현재보다 늘리고 수능 절대평가 과목에 제2외국어·한문을 포함시키라고 교육부에 권고했다. 다만 수능 비율은 명시하지 않고 대학 자율에 맡기도록 했다. 또 국어·수학·탐구는 상대평가를 유지토록 했다. 1년 동안 공들인 대입 개편이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얘기가 나온다.

국가교육회의의 대입 개편 권고안은 개편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다. 대입에서 수능 반영 비율을 높이고 상대평가를 유지토록 하는 것은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다. 이를 개편으로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적 안배도 엿보이지 않는다. 확고한 교육 철학과 비전에 따라 대입제도를 개편한 게 아니라 그저 여론을 반영한 탓이다.

그러다 보니 대입 개편 권고안이 정부의 교육공약과 배치되는 결과를 낳았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철학은 계층 간 불평등 해소, 학교교육 정상화, 입시경쟁 완화 등으로 모아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수능 절대평가 과목 확대, 자사고·외고 폐지 등 고교체제 개편, 내신 성취평가제(절대평가제), 고교학점제 등을 내걸었다. 어느 것 하나 수능 전형 확대와 어울리지 않는다. 고교체제 개편만 해도 수능 확대에 유리한 자사고를 폐지하기 쉽지 않을 터이다. 수능 절대평가 과목 확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대입 개편 권고안에 대해 진보와 보수진영 모두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보수교육단체는 수능 정시 반영 비율이 공론화위원회에서 제시한 요구에 미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반면 진보교육단체는 입시경쟁교육을 강화하고 혁신교육을 무력화하는 안이라고 주장한다. 워낙 반발이 거세 대입 권고안이 이대로 확정된다고 해도 제대로 교육현장에 정착할 수 있을지 우려스러울 정도다.

공은 다시 교육부로 넘어갔다. 교육부는 교육회의 권고안을 토대로 이달 말 최종 개편안을 내놓아야 한다. 최종안을 확정짓기까지에는 수능 과목 구조, 고교체제 개편, 성취평가제 등 몇 가지 고려 사항이 남아 있다. 그러나 대학이 자율적으로 수능 전형을 확대하라는 큰 틀에서는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로서는 책임 회피, 철학 부재 논란으로부터 벗어날 마지막 기회다. 결자해지의 자세로 학교교육을 정상화하고 혁신교육을 확대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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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미국프로농구(NBA)에 데뷔하여 15년, 신인 때부터 지금까지 받을 만한 상은 다 받았고 2012 런던 올림픽 금메달에도 기여한 르브론 제임스. 203㎝의 거구로 강력한 파워와 현묘한 기술로 코트를 지배했지만, 그가 가장 잘 다스린 것은 그 자신이었다. 데뷔 14년차 되던 2017년 11월, 무려 1082경기 만에 처음으로 퇴장을 당했을 정도로 그는 자신의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까지 최고 수준으로 관리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코트 바깥의 경기에서는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다. 고향 오하이오주 애크런에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학교 ‘아이 프로미스(I Promise)’를 개교한 뒤 가진 CNN과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주의적 행태를 비판한 것이다. 올 초에도 “인종주의가 우리를 정복하고 우리를 분열시키도록 둬선 안된다”고 트럼프를 비판한 제임스는 “트럼프가 스포츠를 이용해 우리를 분열시키려 한다”고 말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트럼프도 제임스를 비아냥거리며 마이클 조던을 존경한다고 언급했다. 아차, SNS는 하등 필요 없는 것이라고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그랬던가. 트럼프는 실수했다. 마이클 조던만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20세기 스포츠의 최고 영웅인 마이클 조던은 “난 르브론 제임스를 지지한다”고 즉각 대응했다. 조던은, 자신이 백인 주류 사회로부터 ‘성공한 흑인’으로 선택받는 것을 불편해하고 그런 ‘호의’를 거절해온 사람이다. 조던처럼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곳이 미국이라는,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조던은 거부해왔다. 그랬는데, 트럼프가 제임스를 비난하기 위해 자기 이름을 들먹거린 것을 조던은 불쾌해한 것이다. 조던은 덧붙였다. “제임스는 지역사회를 위해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

이 부분이 더 중요하다. 르브론 제임스가 설립한 학교 말이다. 그는 오랫동안 새로운 개념의 학교를 준비해왔다. 단지 억만장자 스포츠 스타가 기부하여 설립하는 자선 학교가 아니라 수업의 체계와 방식,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의 관계가 ‘전혀 다른’ 학교를 제임스는 상상해왔다. 그의 어머니는 16살 때 제임스를 낳아 남편 없이 혼자 키웠다. 극심한 가난과 인종차별을 견뎌야 했다. 그래서 제임스는 생각했다. 단순한 학교가 아니라 ‘다른 학교’가 필요하다고. 개교를 하면서, 제임스는 울었다. 브라질의 축구 스타 호나우지뉴도 그랬다. ‘파벨라’, 즉 판자촌에서 성장한 호나우지뉴는 2006년 12월, 고향 포르투 알레그리에 3만6000여평 규모의 국제 규격 축구장과 다목적 연습장, 2개의 수영장과 4000석 규모의 실내경기장이 있는 학교, 아니 학교라기보다는 하나의 공동체 마을을 설립했다. 학교 안에 병원까지 있고 그 밖의 공동체 시설이 들어섰다. 이 ‘학교’를 개교하면서 호나우지뉴는 기념 슛을 했는데, 자기 평생 가장 의미 있는 킥이라고 말하면서, 울었다.

두 경우를 보면서, 생각해본다. 우리의 스포츠 문화와 교육 말이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스포츠 교육은 제자리걸음이다. 일반 학생들은 스포츠를 즐기기가 쉽지 않고 장차 프로 선수를 꿈꾸는 학생들은 일반 교육을 받기가 쉽지 않다. 진학, 병역, 취업 등과 관련하여 모든 학생들, 지도자들, 학부모들의 입장이 뒤엉켜 있어서 실타래를 풀기가 어렵다. 엉킨 실타래를 칼로 내리쳐서 끊어야 할 텐데,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나 각 종목의 협회에서 몇 차례 그런 시도를 했으나 무딘 칼날이었고, 그 후의 대안도 마땅치 않아서 실타래는 더 엉키고 말았다.

그런 현실 때문인지, 스포츠를 교육한다는 것 그리고 스포츠를 통해 다른 분야를 공부한다는 것, 그 내용 자체가 여전히 20세기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스포츠의 교과목은 대체로 기능적이고 도구적이다. 신체적 능력에 집중되어 있어서 스포츠에 내재된 역사와 미학과 정서의 가치를 제대로 배우기가 어렵다. 스포츠를 사회 전체와 떼어놓음으로써, 이 의미 있는 행위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수많은 가치가 발현되지 못하고 있다.

당장 최근의 일만 복기해보자. 21세기의 다문화와 이민, 난민의 상황들. 이를 프랑스 축구대표팀을 통해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프랑스 대표팀이 ‘성공’했다는 게 아니다. 그 ‘성공 신화’와 실제 유럽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있어 생생한 교육 자료라는 얘기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비롯하여 베켄바워, 루메니게, 비어호프, 히츠펠트 같은 독일 축구계의 리더들 그리고 보아텡이나 뮐러 같은 현역 스타들이 저마다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 외질 선수의 독일 대표팀 은퇴 사례 역시 의미 있는 공부가 된다. 국가 부르기가 강요된다면 차라리 부르지 않겠다고 했던 지네딘 지단의 사례처럼, 외질의 대표팀 은퇴는 국가와 스포츠, 개인의 신념과 공동체의 관계, 이민과 다문화 등 우리가 이미 겪고 있거나 곧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될 상황을 숙의하게 해준다.

말하자면 ‘스포츠 하기’도 중요하지만 ‘스포츠 읽기’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스포츠를 통해서 복잡한 역사도 배우고 다양한 가치와 상충되는 윤리적 난제도 배울 수 있다. 그런데 누가? 이 중요한 사안들을 스포츠 연구자나 전공자가 아니라 무엇보다 선수들이 배우고 익혀야 한다. 이미 몸속에 이러한 난제들이 뒤엉켜 있는 그들에게 이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스스로 겪는 수많은 문제들을 스스로 설명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그럴 때에, 우리의 선수들이, 스포츠로 큰돈을 벌었다거나 방송까지 진출해서 유명해지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제에 참여하고 함께 해결해나가는 ‘진짜 스타’가 되는 것이다. 가난과 차별에 맞서 지단이 싸웠고 호나우지뉴가 눈물을 흘렸으며 제임스가 연대를 하고 있다. 그런 행렬에 우리 선수들, 우리의 스타들도 함께하는 풍경을 상상한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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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낮기온이 40도를 육박하면서 111년 만에 기상관측 역사를 새로 썼다. 

폭염은 흔히 침묵의 살인자로 불린다. 2016년에는 최근 들어 가장 많은 2125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해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작년에도 1574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해 이 가운데 11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하니 한여름 무더위가 가히 살인적이라 할 만하다. 특히나 요즘 같은 폭염에는 고령의 노인들에게는 더 치명적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체온조절 기능이 약해져서 열사병과 같은 온열질환에 걸릴 확률이 더 높아진다고 한다. 더욱이 혼자 사는 독거노인들은 태풍이나 추위보다 무서운 것이 폭염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 그래서 사회복지사들은 요즘같이 폭염이 이어지는 날이 계속되면 평소보다 더 긴장하고 바빠질 수밖에 없다.

[장도리]2018년 8월 6일 (출처:경향신문DB)

하루에도 두어 번씩 폭염경보 문자메시지가 연일 울려대고 있다. 사회복지사들은 폭염경보 문자가 오면 ‘폭염 떴다!(폭염경보가 발령됐다)’라고 해서 일제히 비상이 걸린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전화로 독거노인의 안전을 확인하고 폭염주의사항을 전달한다. 그나마 전화로 안전이 확인되면 다행이다. 수소문을 해도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에는 직접 가정방문을 해서 눈으로 확인을 해야 한다. 뙤약볕 아래에서 하루 종일 독거노인가정을 일일이 방문을 하다보면 온몸이 금방 땀으로 흠뻑 젖고 만다. 나이가 젊은 20대의 사회복지사들도 폭염에는 장사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불평불만을 하는 사회복지사는 거의 없다. 오히려 연락이 닿지 않는 독거노인의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 밀려오는 불안감이 무더위보다 더 크다고 하니 한여름 사회복지사들의 일상이 측은하기까지 하다.

독거노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은 사회복지사들의 당연한 직업적 사명이다. 하지만 사회복지사들도 폭염에 취약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나 업무시간의 대부분을 바깥에서 활동하는 요양보호사나 독거노인생활관리사들은 40~50대 여성종사자가 많다. 서비스를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라는 신분의 차이가 있을 뿐 폭염 앞에서는 모두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다. 약자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지만 정작 일선에서 서비스를 전달하는 자를 위한 안전장치는 우리 사회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여름만 되면 뉴스에서 용광로에서 일하는 제철소 근로자들이나 화마와 싸우는 소방관들처럼 뜨거운 열기 속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런 뉴스를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무더위를 이겨내는 데 위안을 삼을 수도 있겠고, 어쩌면 모르고 지나칠 뻔한 사람들의 노고를 되새길 수도 있겠다. 소방관들의 고생이야 말할 나위 없지만, 폭염에 고생하는 또 다른 직종의 사람들에게도 시선을 줘야 한다. 건설현장 노동자, 집배원이나 택배기사, 에어컨 수리기사들이 그들이다. 그리고 사회복지사들도 있다. 그들에게 한여름 폭염의 열기는 용광로와 다를 바가 없다. 현재 정부와 지자체가 ‘무더위 휴식시간제’라는 제도를 통해 실외 노동자들의 휴식을 권고하고는 있지만, 의무가 아닐뿐더러 폭염경보가 뜨면 오히려 더 바빠지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휴식하라는 제도가 무슨 소용일까 싶다.

엊그제 뉴스에서 한 아파트 주민들이 무더위에 고생하는 택배기사들을 위해 아이스박스에 얼음물과 음료수를 넣어 비치해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민들의 작은 관심 덕분에 자칫 모르고 지나칠 뻔한 택배기사들의 노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는 택배기사나 또 사회복지사들처럼 무더위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들이 바로 존재하지만 근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투명인간들이다. 올여름 폭염만큼은 정부에서도 자연재난에 포함시켜 적극 대응에 나선다고 한다. 사태수습과 정책수립도 물론 중요하고 이들을 위한 처우개선도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 투명인간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아닐까 싶다. 택배기사를 위해 아이스박스를 내놓은 아파트 주민들의 작은 배려처럼 사회적 관심의 시작은 얼음물 한 사발이면 충분하다.

<송장희 | 제주스마트복지관 총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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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탈원전 비판 기사와 칼럼, 사설이 부쩍 많이 쏟아졌다. 기록적 폭염이 연일 지속되면서 냉방전력 수요가 늘자 전력 수급 불안을 우려하며 이런 상황을 탈원전정책 탓으로 돌렸다. 탈원전하겠다면서 결국 전력공급이 긴박하게 필요한 순간에 원전에 기대는 건 자가당착으로, 탈원전을 재고하란다.

기사 제목을 보자: <전력수요 예상 초월하자…탈원전 정부, 원전에 SOS> <‘탈원전’ 정부, 폭염 덮치자 “원전 더 돌려라”> <전력수급 문제없다더니…허둥지둥 원전 5기 더 돌린다> <막무가내 탈원전하더니 전력 모자라자 “원전 추가 가동”> <엉터리 예측에 원전 추가 가동…그래도 ‘탈원전’인가> <폭염에 또 원전 가동률 높여야 하는 탈원전 허구성> <탈원전해도 전력대란 없다는 말 믿기 어렵다> <폭염에 원전 재가동한 정부, 민망해진 탈원전정책> <폭염 한방에 전력예비율 위태…원전 없인 감당이 안된다> <‘탈원전 부메랑’…전력수급 비상> <‘탈원전’ 열중하다 폭염에 덴 정부…결국 원전에 기댔다> 등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결국 전력수요가 늘어나니 여유 있게 전력을 공급하려면 탈원전을 포기해야 한다는 거다. 이런 보도, 참으로 무책임하다. 탈원전이 왜 국정과제가 되었는지, 탈원전을 가져온 문제상황이 제대로 해소되었는지,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런 비판과 달리 국민 여론은 탈원전에 호의적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6월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84.6%가 탈원전·탈석탄 에너지전환정책을 지지하였다. 국민 한 사람당 월 1만5013원의 전환비용 지불 의사가 있다고도 했다.

과거에는 경제성, 그것도 사회환경비용을 도외시한 불충분한 경제성을 근거로 안정적인 전력 공급에 관심을 두었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목격하고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위험에 노출된 지금 상황에서는 환경과 생명, 안전이 중심 가치가 되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해명자료와 소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4월 산업부는 하계(7월9일~9월14일) 전력수급대책 수립과정에서 원전 가동 일정을 일부 조정했다. 이 계획에 따른 조치들임에도 다수 언론은 탈원전 정책으로 멈춰 있던 원전들을 폭염 때문에 황급히 재가동했다고 비난하였다. 모든 발전소는 최대전력수요 기간에 최대한 가동할 수 있도록 정비 일정을 조정하는 게 원칙인데도 말이다.

탈원전을 선언했다고 우리가 벌써 탈원전 상황에 들어섰는가? 그렇지 않다. 문재인 정부에서 원전 시설용량은 지속적으로 확대된다. 문 대통령 재임기간인 2022년까지 신규 원전 4기가 추가되고 2023년에도 신고리 6호기가 추가되어 불과 5년 안에 총 5기(7000㎿)가 가동에 들어간다. 발전량의 30%를 차지하는 원전을 하루아침에 줄일 수는 없다. 에너지 효율개선과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탈원전은 60년 이상에 걸친 장기 계획이다.

언론은 책임 있는 사회적 공기로서 정확하게 사실을 전달하고 여론을 선도해야 한다. 전력 수요 예측을 좀 더 여유 있게 하고 원전만이 그런 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보다 현재의 전력 수요나 수요 증가가 온당한 것인지, 어디에서 얼마나 낭비되고 있는지,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를 다뤄야 한다.

에너지전환은 도도한 시대적 흐름이다. 지난해 세계 신규 발전설비 투자를 보면, 재생가능에너지엔 315조원, 원전엔 4조원이 투자되었다. 더군다나 사용후핵연료 문제에 대한 아무런 답도 갖지 않은 상태에서, 지진이 빈번해져 원전 안전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당장의 편리와 단기적 경제성을 이유로 원전을 더 짓고 에너지 소비를 더 늘리겠다는 건 경제를 망치고 미래세대에게 죄를 짓는 일이다.

탈원전의 길, 갈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갈 것이냐가 문제다. 책임 있는 언론의 모습을 보고 싶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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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아침 서울 최저기온이 30.3도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기상관측이 시작된 1907년 이후 111년 만에 가장 높았다. 전날 낮 폭염의 여파가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진 것이다. 밤사이 최저기온이 25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열대야는 서울에서 12일째 이어졌고, 이날은 최저기온이 30도를 넘은 ‘초열대야’ 현상까지 나타났다. 열대야는 부산이 16일째, 여수가 15일째, 광주와 대전은 13일째 계속되고 있다. 전국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불가마나 다름없는 폭염에 신음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폭염이 올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폭염의 근본 원인이 온난화 때문이라고 하는 만큼 이상 고온현상이 상시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더위에는 누구나 고통스럽지만 옥탑방이나 지하·반지하와 같이 열악한 환경에서 버텨야 하는 취약계층이 가장 힘겹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선풍기나 에어컨 등 냉방기구를 사용해야 하지만 전기료가 무서워 제대로 켜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장애인 가정의 경우 냉방시설뿐 아니라 의료장비도 가동해야 하는데 전기료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통상 에너지에 쓰이는 비용이 소득의 10%를 넘으면 에너지 빈곤층으로 보는데, 전체의 8%에 달하는 130만가구가 이에 해당된다. 이들에 대한 정부의 여름철 전기료 지원이 2016년 검토됐으나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동안 정부의 에너지 빈곤층 지원은 겨울철에 집중돼 왔다. 냉방보다 난방 연료비 부담이 더 크다고 분석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너지경제원 자료를 보면 소득 하위 10%의 여름철 에너지 비용은 14~15%에 달해 결코 적지 않다. 올 무더위 속에 온열질환 사망자는 29명에 이른다. 폭염이 재난 상황에 이르면서 전기료 부담을 덜 수 있도록 누진제를 없애야 한다는 요구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겨울철에 지급해온 에너지 바우처를 내년에는 여름에도 주는 방안이라고 한다. 사상 최악의 폭염에 에너지 취약계층 대책이 전기료 지원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은 문제다. 그나마 여름철 바우처 제공도 당장이 아니라 내년에 시행한다니 기가 막힌다. 취약계층은 더울 때 더 덥고 추울 때 더 춥게 생활한다. 전기료 지원을 넘어 주거환경 개선을 포함한 다양한 에너지 복지 프로그램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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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일자 지면기사-

‘뽁뽁이’라고 많이 알려진 포장재가 있다. 기포가 완충작용을 하기 때문에 장거리 우편물이나 소포의 포장용으로 사용된다. 부서지거나 상처가 나기 쉬운 제품을 둘둘 말면 웬만한 충격에 끄떡없다. 그래서 이삿짐을 쌀 때 필수 아이템이다. 또 단열에도 큰 효과가 있다. 겨울 창문에 붙이면 냉기를 줄일 수 있다. 다양한 쓰임새에 이를 활용한 테이프, 노끈, 단열 필름, 정전기방지 필름, 포장봉투 등을 전문적으로 파는 매장도 생겼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용 뒤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재활용되기도 한다. 비닐 기포를 하나하나 터뜨리는 묘미에 빠질 수 있다. 생각지 않게 은근 중독성이 있다. 이런 재미를 모티브로 한 게임기도 나왔다. 용도가 어디까지 확장될지 알 수 없다.

당초 뽁뽁이는 포장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1957년 미국 발명가 앨프리드 필딩과 마크 차바네스는 기포가 있는 3차원 벽지를 만들었다. 그들은 제품명을 버블랩(당초에는 에어캡)이라고 지었다. 원래 목적인 벽지로서 성공을 거두지 못하자, 물건 포장용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버블랩의 첫 번째 고객은 IBM이었다. 1960년 컴퓨터 ‘IBM 1401’ 제품을 구매자들에게 배송하는 데 버블랩이 처음으로 사용됐다. 그때까지 기포가 있는 포장지를 본 소비자들은 없었다. 이후 버블랩은 기포가 있는 포장지를 모두 아우르는 말이 됐다. 1993년 필딩과 차바네스는 미 뉴저지주 ‘발명가 명예의전당’에 올랐다.

환경부는 생산자책임재활용(EPR) 품목에 세탁소 비닐, 우산용 비닐, 1회용 비닐장갑, 식품포장용랩과 뽁뽁이를 포함시키는 내용의 법령 개정안을 2일자로 입법예고 했다. 생산자책임재활용이란 일정량 이상을 재활용하도록 생산자에게 의무를 부여하고, 이를 지키지 못하면 폐기물 회수·재활용비용의 최고 1.3배를 물리는 제도다. 비닐 사용을 줄이고 재활용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세탁소에서 쓰는 얇은 비닐 커버가 연간 4억장, 1회용 우산 비닐 커버도 연간 1억장이나 된다고 한다. 택배물량 증가와 물품 과대포장으로 뽁뽁이 사용도 급증하고 있다. 택배가 도착하자마나 뽁뽁이는 쓰레기통으로 간다. 한국은 1인당 플라스틱 사용이 가장 많은 나라다. 비닐 중독에서 벗어날 길을 찾을 때가 된 것 같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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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잘 지낸다고 했다. 목소리도 얼굴도 보이지 않는 페이스북 메시지로 전하는 근황은 담담했다. 신경정신과에 입원해 한 달간 치료를 받았고 휴직 중이라 했다.

그는 쌍용자동차의 해고 노동자였다가 복직했다. 오랜만에 그에게 안부를 물었던 것은 그의 동료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기 때문이다. 2009년 쌍용자동차의 파업 이후 서른 번째 희생자다.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가 대한문 앞에 빈소를 마련한 7월3일 이래 그는 거의 매일 그곳에 있다. 2012년 4월5일부터 그 이듬해까지 꼬박 1년, 그는 대한문 앞에 처음 마련됐던 분향소 천막에서 사계절을 났다. 사망자 24명의 영정을 분향소에 모셨던 때다. “예전에도 분향소를 찾아왔던 분들이 다시 많이 찾아오세요. 빈소를 찾는 분들이 ‘미안하다’는 말들을 많이 하시는데, 저토록 미안함을 계속 느껴야 하는 분들의 마음은 온전할까 싶습니다.”

조문객들이 뜸할 시간이면 방명록을 들춰보며 그들이 남긴 말을 하나씩 읽어본다는 그는 서른 명이 희생되는 과정을 속절없이 지켜보아야 했던 우리 사회의 목격자들, 그 고통에 예민했던 사람들의 마음의 안녕을 오히려 내게 물었다.

1970년대 집단 트라우마(collective trauma)라는 말을 처음으로 개념화한 사회학자 에릭슨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사회적 삶의 생체조직을 훼손하는 일격’이라고 이를 정의했다. 인재로 인한 대형사고, 종교갈등으로 인한 인종청소, 내전 등을 거치며 집단 트라우마를 겪은 공동체에서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불신, 자살 혹은 생명을 거는 위험한 행동, 여성에 대한 폭력, 수치심과 굴욕감, 전통적 가치의 훼손, 세대 간 갈등이 빈번히 일어난다는 게 이 현상을 연구해온 학자들의 공통된 발견이다. 

정리 해고가 ‘사회적 살인’이라면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지난 20년간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으로 인한 ‘사회적 살인’을 끊임없이 목격해왔다. 재난을 멈출 수도, 도울 수도 없는 상황에서 목격자가 된 사람들은 단지 공감의 눈물만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무력감과 수치심, 죄책감을 더불어 안게 된다. 

극한의 조난신호가 여기저기서 떠오르는 동안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들만 많아진 것은 아니다. 대한문에 쌍용차 빈소가 마련되던 날 보수단체 회원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빈소 설치를 강력히 저지했다. 정치적 견해가 다른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망자의 영정을 앞에 두고 “시체팔이 그만하라”며 막말을 퍼붓는, 상식을 넘어서는 일들이 벌어졌다. 집단 트라우마가 발생하는 상황이 빚어내는 또 하나의 부정적 결과인 가치의 붕괴다. 

집단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첫 번째 단계는 트라우마를 만들어내는 상황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안전감의 확보다. 해고 노동자에 대한 복직이 시작된 2016년에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다가 “2017년 상반기까지 해고자 전원 복직 위해 노력”이라는 노사 간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2017년부터 다시 29번째, 30번째 죽음이 발생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선별성 없는 복직이 이뤄져야 그 당사자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부서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던 사람들에게도 안전감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치유의 가장 마지막 단계는 붕괴된 세계관을 회복하고 희망을 갖는 것이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은 언젠가 복직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희망 고문’이라 불러왔다. 희망이란 말이 뼈에 새겨지는 고통이 되는 현실을 10년째 살아온 것이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물구나무선 희망이 제자리를 찾을 때, 재난의 목격자들로서 집단 트라우마를 겪던 시민들도 죄책감으로부터 일어나 자신과 타자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붙잡고 울 수 있는 것도 행복이란 것을 아는 이, 남의 깊은 속까지 다 믿고 있는 이가 희망의 신호다. 당당히 걸어서 사람의 마음속까지 들어갈 수 있는 것이 바로 희망이다”(마종기 시 ‘희망에 대하여’ 중)라는 믿음을 두려움 없이 다시 품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정은령 |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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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지난 6월28일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81조 5항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적어도 올해에는 외고·자사고·국제고에 지원했다 떨어진 학생들이 예전처럼 희망하는 일반고에 지원할 수 있게 됐다. 자사고에 국한된 결정이지만 실제로는 외고·국제고에도 적용될 예정이다. 제81조 5항은 지난해 12월 개정된 것으로 외고·자사고·국제고 지원자의 일반고 지원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헌재의 결정은 당연하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은 대선공약(외고·자사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부와 교육부가 짊어져야 할 부담을 전부 학생들에게 전가하는 방식이다. 학생들을 난처하게 만들어 목적을 이루려는 방식이다. 정부의 시행령 개정은 외고·자사고·국제고에 지원하려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 것이나 다름없다. “너희들 외고·자사고·국제고에는 갈 생각을 하지 마. 지원했다 떨어지면 너희가 원하는 다른 학교에는 절대 못 가게 될 거야. 떨어지면 정원 미달인 학교에 보낼 거야.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학교에 가게 될 수도 있어. 그러니 외고·자사고·국제고에는 갈 생각을 하지 마.” 

실제로 시행되면 외고·자사고·국제고의 인기가 꽤 낮아지긴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공약을 이행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 내 머릿속엔 그보다 바람직한 2개, 아니 3개의 방법이 떠오른다. 하나는 외고·자사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방법이다. 외고·자사고·국제고의 존립 근거를 제시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하면 되는 일이다. 시행령 제90조 1항, 제91조의3 등이다. 시행령 개정이니까 전적으로 정부(대통령)의 권한에 속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외고·자사고·국제고의 존재는 인정하되 일반고처럼 오로지 추첨으로만 학생을 선발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외고·자사고·국제고를 없애지 않은 채 이들 학교로 인한 초·중학생들의 입시경쟁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82조 1항을 개정하면 된다. 역시 전적으로 정부(대통령)의 권한이다.

다른 정치세력들이 반대를 하지 않을까? 첫 번째 방법은 대선 당시 바른정당(유승민 후보)과 정의당(심상정 후보)이 내걸었던 공약과 동일하다. 두 번째 방법은 국민의당(안철수 후보)이 내걸었던 공약과 일치한다. 이들 정치세력은 찬성할 것이다.

앞의 두 방법이 전부 부담스럽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공약을 포기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또는 뒤로 미루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구성될 국가교육위원회의 과제로 돌린다면 명분이 그리 옹색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현 정부의 대선공약에 의하면 국가교육회의는 국가교육위원회를 위한 과도기적 존재다. 공약 취지대로라면 큼직한 교육정책은 국가교육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게 맞다.

외고·자사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은 타당한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정부와 교육부가 꾀한 방식은 그것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정부·교육부의 공약 이행 방식은 학생들을 수단으로 삼아 이용하는 방식이다. 이 점에서 정부와 교육부는 정치적 술수라는 의미의 마키아벨리즘을 실행했다 할 만하다. 그런데 그것은 그냥 마키아벨리즘이라고만 하는 것보단 소인배 마키아벨리즘이라 하는 것이 더 적절한 듯하다.

<이기정 | 서울 미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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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관련된 사회, 문화적인 활동이 이전에 비해 크게 늘어나고 있다. 과학자들이나 공학자들이 학회나 학술지를 통해서 자신들의 연구 성과를 내놓는, 전문 집단 안에서의 활동이 선진국 수준으로 늘어났다. 곧 없어질 분류일지는 모르겠지만 고등학교에서 문과와 이과의 비율이 이과가 훨씬 많은 쪽으로 역전된 지도 오래다. 고등학교에서부터 과학, 수학을 제법 깊게 배우는 숫자가 젊은 세대의 절반을 넘고 대학에서 전공으로 이어져 과학, 수학을 밥벌이로 삼는 숫자도 제법 된다는 의미다. 개개인의 결정의 총합으로 사회의 문제들을 풀어가는 시대에 과학, 기술과 관련된 내용을 스스로 알아야 하는 필요성은 점점 커져간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과학과 기술의 내용들을 일반인들에게 알리는 활동들도 많아지고 있다. 학생들을 주요 대상으로 놓았던 잡지만 있었는데 ‘스켑틱’이나 ‘과학잡지 에피’처럼 성인들을 위한 과학 잡지들이 창간되었고 성인을 대상으로 한 과학 강연도 열띤 호응을 받으면서 열리고 있다. 카오스재단은 단순한 대중 강연을 넘어서 전문가 수준의 과학 강좌를 ‘마스터 클래스’라는 이름으로 열고 있는데 관객을 모을 수 있을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화학과 물리학을 공부하러 온다. 유전자 조작, 핵발전, 미세먼지, 기후변화 등 현재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많은 현상들을 이해하는 데 과학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과학 연구를 업으로 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과학지식은 가지고 있어야 삶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일들을 이해할 수 있고, 그것과 관련된 결정에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외국어를 익히면 그 언어를 쓰는 나라를 이해할 수 있는 기초를 갖게 되는 것처럼, 일정한 수준의 과학과 수학을 익혀야 삶과 운명을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믿고 있었는데, 수능에서 과학과 수학의 시험 범위를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22년부터 수능에서 수학에서는 기하와 벡터가 빠지고, 과학2 과목이 모두 시험 범위에서 제외된다. 물론 교육과정에서 이런 내용들을 모두 들어내겠다고 보도된 것은 아니라서 시험만 안 본다는 이야기이지 싶다. 하지만, 수능에 포함되지 않는 과목들은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학생들은 잠만 자는 상황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일반고 학생들은 제외된 부분들을 익히지 못하고 고등학교 과정을 끝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 대해 축소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조치가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주고, 배우지 않은 것들은 대학 가서 배우면 된다고 한다. 반면에 많은 과학자들은 과학교육의 수준 하락을 걱정하고 있다. 양쪽 모두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있다.

과학과 수학의 시험 범위를 줄이면 학생들의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보는 쪽은 학생들이 시험을 보지 않는 것들은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지? 교육과정 안에 있는 내용들을 충실히 전달하고 가능하면 많은 학생들의 성취도를 끌어올리는 것을 걱정해야 할 교육당국이 시험 범위만 놓고 교육 정책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교육적이라고 할 수 없다. 공부의 부담을 줄이는 방식에 대해선 과학과 수학이 중요한 시대에 세상을 이해하는 기초는 제공하도록 오랜 시간을 두고 교육과정을 재편해야지 수능 시험 범위 축소 같은 것은 정책이 될 수 없다. 물론 수능 범위 축소를 반대하는 쪽에도 같은 질문을 한다. 전공할 소수의 학생들만 걱정할 것이 아니라, 과학과 수학에 대한 어떤 수준의 이해가 세상 사는 데 필요한지 고민하고 토론해서 오랜 시간에 걸쳐 정성껏 교육과정을 제공할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중교육을 통해 양성된 인력이 해야 할 일은 인공지능과 자동 로봇이 점점 대체할 것이고 산업적 요구가 영재 교육에만 집중될 것이므로 영재 교육의 대상이 아닌 학생들에게 시민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금의 교육정책 결정과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분의 글을 읽었다. 실제로 교육청에 시민교육을 담당하는 민주시민교육과가 생겼다. 나는 이런 생각이 과학과 수학 교육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아니길 바란다. 인공지능과 자동 로봇이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늘어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과학과 수학을 모르고 그것들이 제공하는 편의를 누리면 된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과학과 수학을 더 능숙히 다룰 수 있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두 다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눈앞에 닥칠 결정을 함께할 민주 시민들이 과학이나 수학을 일찌감치 포기하지 않도록 교육과정을 개편하고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배울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배워야 한다.

<주일우 | 이음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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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도 최저임금안이 지난 7월14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의결되었다. 올 상반기 내내 이견과 갈등의 중심에 있던 최저임금 이슈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정부는 다양한 후속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노동계와 자영업 소상공인들은 모두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저임금 노동은 OECD 최고 수준이며, 학계의 연구들에 따르면 임금 불평등이 가계소득 불평등의 주된 원인으로 분석되었다. 노동시장을 개선하고 불평등을 완화하여 내수 확대를 통한 성장을 추구하는 데 최저임금은 핵심적인 전략이다.

다만, 최저임금은 매우 강력한 정책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꽃인 가격을 조정하여 전국적 표준을 설정하는 정책이다. 2000만 임금노동자의 거의 25%인 500만명이 직접 적용 대상이 되고 700만 자영업자들도 영향권 안에 들어온다.

가격정책은 물가, 수요, 생산성, 복지지출, 구조조정 등에 매우 광범위한 효과를 가져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서울 광화문에 있는 한 호프집에서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왼쪽 세번째)과 함께 청년 구직자, 경력단절 여성, 편의점 점주 등 퇴근길 시민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생산성이 떨어지는 기업의 퇴출과 저숙련 인력의 일자리 기회 축소라는 구조조정 효과가 먼저 나타날 수도 있다. 구조조정의 과정은 기쁨과 환호, 분노와 좌절, 갈등과 대립의 과정이다. 90%의 승자보다 10%의 패자가 정치를 지배한다. 고통의 한계비효용이 쾌락의 한계효용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조정의 과정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가격정책의 부담이 크다면 소득정책의 결합과 보완이 필요하다. 최저임금 인상이 저숙련 계층의 일자리 상실과 실업을 과도하게 유발한다면,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를 늦추고 소득보장정책으로 보완하는 것이 좋다.

2017년 사업주를 지원하는 일자리안정자금을 3조원 지원한 것이나 근로자를 지원하는 근로장려세(EITC·Earned Income Tax Credit)를 4조원 규모로 확대하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근로장려세는 최저임금의 대체재 성격의 정책이다. 최저임금 인상의 수혜자가 근로장려세 수혜자일 수 있다.

일종의 구조조정펀드인 일자리안정자금을 한시적으로 제도화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좀비기업 과잉과 존속을 유발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자영업 감소 속도를 보면 크게 우려할 일은 아니다.

또한, 근로장려세가 차상위 계층 대상 정책이기 때문에 저임금 일자리 기회조차 어려운 가계소득 최하위 10%의 빈곤층에 대해서는 또 다른 소득보장정책이 필요하다. 기초연금 조기 도입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최저임금의 계층별 효과를 고려하여 소득보장정책의 정교한 설계가 요구된다.

그러나 소득 보장 수단으로 저임금·저생산성 일자리가 지속되도록 하는 것이 과연 우리 사회가 장기적으로 지향해야 할 비전인지에 대한 고민도 제쳐둘 수는 없다.

저숙련 인력들은 저임금 일자리만 가질 수밖에 없는 사회가 지속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다. 최저임금 정책 이외에 저임금 일자리 개선과 구조조정의 장기적 비전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모두 급한 것은 맞다. 저임금 노동자나 자영업자, 소상공인 모두 어려운 것도 맞다. 그러나 2017년 최저임금 20.6% 인상을 추진한 캐나다 온타리오주 민주당이 2018년 6월 선거에서 패배했다. 단임제 대통령제하에서 여야 합의의 정치가 부재하고 노사 간 신뢰가 약한 사회에서 장기 시야와 정책 방향을 가지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최저임금 인상의 장기적 전망을 가지기 위한 사회적 신뢰와 대화, 타협은 필요하다.

최저임금은 우리 경제, 산업, 노동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키를 쥔 정책 수단이다. 취약계층 고용 감소와 같은 부정적 효과는 단기적으로 나타나지만, 내수 확대, 일자리의 질과 생산성 제고, 산업구조 고도화, 복지지출 절약 등과 같은 긍정적 효과는 장기적으로 나타난다.

최저임금 인상의 장기적인 로드맵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좀 더 넓은 시야에서 다양한 정책 조합을 고려하고, 이해당사자들의 타협을 유도하면서 단기적으로 과잉정치화된 최저임금 인상 논의를 좀 더 장기적인 시야에서 사회적 합의와 타협으로 이끌어내는 로드맵이 필요하다.

<전병유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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