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정책들이 ‘공정하지 않다’는 일부(라고 믿고 싶다) 여론의 기세에 밀려 좌초 중이다.

시위현장에서, 공청회장에서 ‘기회와 과정의 평등 YES! 결과의 평등 NO!’라는 팻말을 든 이들의 표정은 비장하고 목소리는 단호하다. 열의를 보면 작금의 정책이 모든 노동자의 급여를 동일하게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결과의 평등은 대졸자, 고졸자에게 똑같은 보상을 한다는 게 아니라, 인간다운 삶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을 평등한 권리를 뜻한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존엄성이 서로 사랑만 하면 보장되나? 돈 없으면 이웃이 아무리 인자한들, 삶은 비루해진다. 가장이 주 40시간 노동하여 받는 급여로 가족을 시대에 걸맞게 부양할 수 있었다면 비정규직 문제는 애초에 발생하지 않았다. 성실하고 우직하게 산들 노동지위가 계약직이면 고작 1년 앞도 예측할 수 없다. 게다가 의료, 주거, 교육, 정보의 공공성이 아직은 요원한 나라다. 받는 돈이 200만원도 되지 않는다면(월급쟁이 43%에 해당), 월세와 휴대폰 할부금 내기 바빠서 저축은 언감생심이다. 가족이 수술이라도 하면 살림은 거덜 난다. 200만원이면 가족이 존엄할까? 치킨 한 마리 먹을 때마다 심사숙고하고 몇 년에 한 번쯤 제주도 여행 가는 걸 두려워한다면 그게 어디 ‘2017년’의 삶이라 할 수 있는가? 밥만 안 굶어도 행복할 수 있는 시대는 오래전에 지났다. 무심코 틀어놓은 홈쇼핑 채널을 보다가 오래된 텔레비전을 36개월 할부로 바꾸는 과감한 결심을 21세기에도 ‘사치’라고 한다면 이 빌어먹을 자본주의는 완전 사기다. 크루즈 세계여행을 가겠다는 것도, 한우갈비를 먹겠다는 것도 아니다. 단지 평범하겠다는 사람을 앞에 두고 ‘더’ 고생한 사람 있으니 사람 가려 보편적 권리 따지자는 게 과연 ‘공정’한 것일까?

‘누구나’ 평범하게 살 수 있는 정책을 논하자는데, 자꾸만 ‘그들의’ 실체를 알려주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인류가 취해왔던 가장 나쁘면서도 효과 좋은 대화법이다. 들어보니,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자들은 ‘무임승차’하겠다는 염치없는 작자들이다. 남들 공부할 때 ‘놀았고’, 누군가가 미래를 준비할 때 ‘편하게’ 아무 일이나 기웃거린 나태한 사람들이다. 놀다가 그리 되었다는 논리는 무지하고 ‘당해도 싸다’는 식의 인식은 비열하다.

악의적인 편견을 가진 자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도 우습다. ‘억울한 마음 모를 바 아니지만 이해 바란다’면서 이들을 달래면 안된다. 그러면 ‘어떤 가치 있는 행위를 했는지도 모르겠는 사람들이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동정 받는 게 정상이냐’(S대학 인터넷 커뮤니티)는 말이 여기저기서 등장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성인군자가 베풀어주는 은혜가 아니다. 당연한 권리가 누군가의 배려로 이루어진다면 ‘혜택 받은 자’들은 늘 눈치 보며 살아야 한다. 그러다가 작은 실수라도 하면 ‘머리가 저리 나쁜데 운 좋아서 정규직이 되었다’는 조롱을 듣게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정책은 누굴 동정해서가 아니라, 권리가 필요한 사람들을 ‘이제야’ 직시한 다른 모두의 책무가 실천되는 것일 뿐이다.

‘차별의 설움’과 ‘노력의 허무’는 다른 층위에서 논해야 하지만,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한 줄 아느냐!”는 사람들의 절규가 거세다. 왜 이들은 고작 정규직 일자리 하나 얻고자 많은 걸 포기해야만 했을까? 그 일 아니면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목도했기 때문일 게다. 아니었다면 진로를 바꾸지 않았을 수도, 연애를 포기하지 않았을 수도, 아니면 여유롭게 책도 읽으면서 결과의 평등을 오해하지 않고 살았을지 모른다.

이 울분을 ‘재발방지’하려고 사회가 노력해야 함은 마땅하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이 객관적으로 좋아지는 것은 누군가가 꿈을 포기하는 것을 예방하고 청년들이 제한된 일자리를 얻고자 살인적인 경쟁을 하는 파국을 조금이나마 진정시킨다. 눈물을 외면한 게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고생에 걸맞게’ 권리의 우선순위를 따지는 사람들의 심보 덕택에 앞으로 취업스펙은 더 화려해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때는 요람에서부터 ‘요즘 세상 장난 아니야’를 들으며 지금보다 더 많이 포기하고 노력해야지만 정규직이 될 것이다.

관문을 통과한 이들이 지금의 정규직을 보고 생각할 거다. ‘솔직히 우리보다 고생한 것도 아닌데, 챙길 건 다 챙겨먹네.’ 누군가의 ‘심정’을 고려한다고, 차별받는 노동자의 ‘물정’을 바꾸자는 정책을 공정하지 않다고 하는 사회의 미래가 어디까지 괴기스러워질지 나도 궁금하다.

<오찬호 | 작가·<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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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으로 수능이 연기되면서 수험생들이 혼란을 겪었다. 혼란은 시험 내부에도 있었다. 국어와 수학이 어렵게 출제되면서 평소보다 성적이 떨어진 학생들도 늘어났다. 여기에 일부 수험생들을 당황하게 한 악재는 영어와 한국사였다. 절대평가로 전환되면서 쉽게 등급을 맞출 것으로 봤음에도 3등급 이하의 성적이 나온 학생들이 많았다. 이러한 변수는 한국사에서 두드러져 자격고사 정도의 시험에서 4등급 이하를 받아 수시전형 시험 기회를 상실하거나 정시에서 불이익까지 겪을 학생들도 늘었다. 천재지변으로 입시일까지 변경된 수험생들은 시험 자체에서도 여러 가지 지각변동을 체험한 셈이다. 시험 하나에 내재한 많은 내적 변수는 적절히 통제해 단순화시켜야 한다.

우선 영어의 등급 비율이다. 영어가 절대평가로 전환되면서 교육현장에서는 상위 등급 비율이 관심사가 되었다. 올해 6월 모의고사에서 8% 정도 1등급을 받으면서 절대평가로 인한 등급 문제는 줄어드는 듯했다. 그런데 9월 모의고사로 가면 1등급 비율이 5%대로 폭락한다. 그 결과 원서접수 기간부터 학생들은 자신의 예상 수능 성적을 계획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본 시험을 코앞에 두고 영어까지 추가로 공부할지 고민했다. 절대평가로 전환해 학습 부담을 줄인다는 정부의 의도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낮은 난이도를 유지해야 했음에도 수능 2개월 전 치른 시험이 어려웠던 것이다. 가뜩이나 국어와 수학 난이도가 지속적으로 올라가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느낀 부담은 매우 컸다.

영어 난이도를 균등하게 확보할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한국사 역시 문제이다. 수능 시험에서 상당수 학생들이 한국사 난이도가 올라 낮은 등급을 받았다. 일단 수능 시험에서 한국사를 의무적으로 치르는 것부터 문제이다. 이는 수능 시험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역행하는 퇴행적인 제도이다. 또한 지난 정권에서 시도한 국사교과서 국정화, 즉 정권이 강요한 공동체의 과거에 대한 단일 담론이라는 획일적 결과가 수능 내 한국사 시험이다. 개인적으로 조속한 시일 내에 폐지해야 하는 비합리적 제도라고 보는데, 난이도에 대한 합리적 조정이 우선이다. 모의고사와 본 시험 간 난이도 차이가 크면 학생들은 높은 난이도에 맞게 대응하게 되고, 이는 추가적인 부담이 된다.

장기적으로 수능은 언어와 추리라는 두 영역으로 재편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런 단순화가 어렵다 해도 가능한 영역에서 수험생들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 그런데 절대평가나 자격고사를 기치로 내건 영어와 한국사에서 많은 학생들이 준비의 어려움을 겪었다.

올해 3학년 학생들은 공부시간 대부분을 국어와 수학에 투자했다. 풍선효과는 실제로도 이어졌으며, 이를 근거로 내년에도 학생 대부분은 국어와 수학을 공부할 것이다. 전술한 두 과목을 집중 학습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긍정적인지 여부를 떠나 이러한 현실은 영어나 한국사 등이 안정적인 예측치를 가질 때 정당화된다.

쉽고 간편한 시험으로 영어를 인식하도록 난이도 안정화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폐지가 요구되는 한국사 시험은 최소한의 준비로 끝낼 수 있도록 쉬운 출제를 일관성 있게 고수할 필요가 있다.

<정주현 | 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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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사람을 채용할 때는 제대로 대우하면서 하여야 한다는 ‘노동존중사회’의 정신을 구현”한다는 표현을 정부 문서에서 발견할 줄은 몰랐다. 불과 몇달 전까지, 정부가 노동자를 사람 취급하는지도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7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담은 정책 취지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직후, 대표적인 비정규직 남용 사업장인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하여 선언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는 이렇게 첫발을 내디뎠다.

놀라움과 기대로 시작한 정책이지만, 실제 현장에서 추진되는 과정에 곳곳에서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정권교체 이후에도, 공공부문 곳곳에서 비정규직을 남용하고 차별하던 관행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정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도 왜곡되거나 무시되기 일쑤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12일 ‘찾아가는 대통령’ 첫 방문지로 찾은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한 노동자가 이야기 도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문 대통령은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대책을 밝혔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런 사정 때문에, 대통령이 다녀간 사업장이고, 그나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단결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천공항에서 정규직 전환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 국민의 관심이 많다. 그러나 인천공항에서조차 정규직 전환은 큰 벽에 부딪혀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무임승차”라고 비난하는 일부 정규직 직원들의 집단 반발도 문제이지만, 이를 핑계로 십수년간 전체의 90% 가까이를 비정규직으로 채워온 인천공항공사 측의 본능이 다시 깨어났기 때문이다. 회사는 비정규직을 인천공항공사로 직접고용할 경우 공개경쟁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입장이다. 십수년간 공항을 안전하게 운영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졸지에 무자격자 취급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탈락자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공개경쟁시험은 ‘고용안정’을 제공하겠다는 정책 취지와도 어긋난다.

또 직접고용을 하게 된다면 정부가 ‘고령자친화직종’으로 65세까지 근무를 인정한 청소·경비 노동자의 정년연장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정책의 목적과는 정반대로 많은 비정규직들이 당장 해고될 위험에 처한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은 상시지속업무는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특히 ‘생명·안전’과 관련된 업무는 반드시 직접고용하라는 것이다. 자회사는 오히려 예외적인 방안이다. 하지만 회사는 직접고용 전환 “0명”, “10분의 1만 적용”이라는 방안을 내놓고 노·사·전문가협의에 제시했다.

정부가 이런 억지를 인정하는 정책을 제시했던 것은 아니다. 필자도 노동계 대표로 정책협의 과정에 참여한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의 원래 취지는 그렇지 않다. 최소 기준을 제시한 후 정책 취지에 따라 노사가 협의해 구체적인 방안을 정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자율적인 협의라는 좋은 말에는 함정이 있다. 정규직 전환을 책임져야 할 사용자가 끝까지 억지를 부리면 합의가 불가능하다. 정부가 제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가이드라인은 이런 과정을 거쳐 인천공항에서는 “직접고용 정규직화 제로”로 탈바꿈하는 중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런 뒤집힌 공공기관 운영이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그나마 여론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뭉친 인천공항마저 이럴 정도면 다른 곳은 더 심한 것이 당연하다. 여러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 현황을 누락하거나, 오히려 전환 전에 해고하려는 행태가 발생하고 있다. 노사 간의 힘이 근본적으로 사용자에게 쏠려 있는 사회다.  정부가 인천공항은 물론 여러 공공기관을 꼼꼼히 살피고, 가이드라인이 취지에 맞게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 챙기지 않는다면, 좋은 취지로 시작한 정책이 비정규직 당사자들에게 큰 상처를 남길 우려가 크다.

가이드라인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민간부문을 선도할 모범적 사용자로써 공공부문은 더욱 솔선수범하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에서부터 비정규직들의 정규직 전환을 시작한 취지일 것이다. 민간까지 “사람을 채용할 때는 제대로 대우”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공기관 사용자들의 일탈을 정부가 더 방치해서는 안된다.

<박준형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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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시험발사로 내년 2~3월 평창 동계올림픽·패럴림픽의 평화적 개최가 위태로워졌다. 만에 하나 29일의 미사일 발사가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과 북한의 추가 도발의 방아쇠가 된다면 세계인의 축제이자 평화제전이라는 올림픽의 취지가 빛을 잃게 된다. 이대로 가다간 ‘평화올림픽 이전에 전쟁올림픽이 먼저 펼쳐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해야 할 판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유엔이 지난 14일 평창 올림픽 휴전결의안을 채택한 데 이어 정부는 올림픽 기간에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한다는 구상을 검토하고 있다. 이런 한국과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북한이 화답할지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다만 북한이 미사일 발사 이후 낸 성명에서 스스로를 ‘평화애호국가’로 칭하며 “세계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한 점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공연한 수사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국면전환을 시사한 것일 수도 있다. 그간 북한이 핵무력 완성 후에 미국과 담판짓는다는 이야기를 해왔던 점을 상기해본다면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점도 음미해봐야 할 대목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최대의 압박과 관여’를 하겠다며 대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성과는 신통치 않다. 미국과 국제사회가 대북 압박 수위를 최고로 끌어올려 ‘풀을 뜯어 먹는’ 처지가 된다 한들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군사 해결 방식은 한국으로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결국 북한과 미국, 남북 간의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점은 자명하고, 이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평창 올림픽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그간 문재인 정부는 북핵 문제에 소극적인 태도로 임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강경태도, 국내 보수여론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았다는 점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변명이 될 수 없다. 한국은 각국에서 오는 손님을 맞이해 잔치를 치러야 할 올림픽 주최국이다. 문재인 정부가 평화올림픽의 개최를 위해 능동적으로 나서는 것은 선택이 아닌 의무사항이다. 분단국가 한국에서 치러지는 올림픽이 명실상부한 평화의 제전이 되도록 문재인 정부가 북핵 해결에 용기와 상상력을 발휘할 것을 기대한다. 우리에겐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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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겨울의 연례행사처럼 전북 고창과 전남 순천만에서 고병원성 AI(조류인플루엔자)가 검출됐다. 비상상태에 들어간 방역당국은 순천만 전면 폐쇄와 심각 수준의 방역 실시라는 선제적 조치를 취했다. 가장 극단적인 선제적 조치는 물론 AI의 숙주 자체를 제거하는 ‘살처분’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둔 강원도는 소규모 농가의 닭과 오리를 수매해 도태시키기로 했다. 소규모지만, 살처분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살처분의 끔찍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난겨울 AI로 3000만마리의 닭과 오리가, 2010년엔 구제역으로 300만마리의 소와 돼지가 살처분당했다. 상당수는 생매장되었다. 그런데도 AI나 구제역의 창궐과 대규모 살처분의 근원으로 꼽히는 공장식 축산은 요지부동이다.

지난 11월, 제주시의 한 공장에서 현장실습 중이던 고교생이 프레스에 눌리는 사고를 당해 사망했다, 18번째 생일을 나흘 남긴 채. 지난 1월 전주의 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서 현장실습 나온 여고생이 목숨을 끊었다, ‘콜수’를 못 채웠다는 문자를 남긴 채. 지난해 서울 구의역에선 스크린도어 수리를 하던 현장실습생이 전동차에 치여 사망했다, 뜯지 못한 컵라면과 숟가락을 가방에 남긴 채. 매년 6만여명의 고교생들이 ‘산업체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현장에 배치된다. “꿈을 키울 수 있는 현장실습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학생들의 호소와 요구의 정당성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학생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노동현장의 환경은 변할 줄 모른다.

무엇이든 돈으로 환산해 가격을 매기고 매매가 이뤄지는 곳이 시장이라면,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이 시장으로 변한 지 이미 오래다. 생명도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신격화된 시장의 이익 앞에서”(프란치스코 교종 <복음의 기쁨>) 약자의 절규와 호소는 들리지 않는다. 공장식 축산이 더 많은 이윤을 보장하는 한, 엄청난 규모의 살처분을 하더라도 변화는 없다.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현장이 더 많은 이윤을 보장하는 한, 인명피해가 반복되어도 변화는 없다.

돈과 시장의 압도적 우위는 우리 사회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에서 시민참여단은 원전 2기의 증가를 뜻하는 ‘공사 재개’와 ‘원전 축소’를 선택했다. 일부 언론은 절묘한 선택이라며 치켜세웠지만, 분명히 모순된 선택이다. 여기엔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매몰비용’이라는 시장 논리가 안전, 환경, 지역주민의 피해 같은 의제들을 압도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24일, 문화재청은 문화재위원회가 두 번이나 부결시킨 설악산 오색케이블카사업을 조건부 승인했다. 연간 365만명, 하루 평균 1만명의 탐방객으로 몸살을 앓는 설악산이지만, 아직도 활용이 부족하다고 한다. 자연공원 내 케이블카 금지를 위한 법률 개정이 진행 중인데 정부는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놓겠다고 한다. 시장 논리 외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시장이 사회를 지배하면서, 돈이 ‘신’으로 등극했다.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맘몬(물신)을 섬기는 시대다. 맘몬의 시대에는 언제나 수많은 약자들이 희생 제물로 내몰린다. 그러나 약자를 배제하고 강자만을 위하는 것은 실패한 사회다. “소수는 다수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웬델 베리 <생활의 조건>) 약자의 권리가 인정되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어야 한다.

지난 정부에서 일어났던 불행한 일들이 새 정부에서도 계속되고, 지난 정권이 시작한 불의한 일을 새 정권이 이어받는 걸 보는 건 허탈한 일이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아직 세상은 바뀌지 않았음을 받아들이는 건 힘든 일이다. 세상을 변화시킬 만큼 사람들이 변하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건 아픈 일이다. 강자만이 아니라 약자들도 존중받는 사회로 가는 길은 아직도 멀고 험하다. 여전히 촛불을 들고 거리에 서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아직, 추운 겨울이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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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막판 고비를 넘지 못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야 3당 간사가 휴일근로 수당을 지금처럼 통상임금의 150%만 지급하는 방안에 합의하자 노동계뿐 아니라 여당 내부에서도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국회 환노위는 28일 소위를 열어 ‘휴일근로 중복할증’ 방안을 논의했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해 올 정기국회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안 처리가 불투명해졌다. 중복할증이란 노동자가 휴일에 근무하면 휴일수당과 연장수당 둘 다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중복할증이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법원이 휴일근로는 연장근로에 포함되는 만큼 하루 통상임금의 150%가 아닌 200%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비롯됐다. 지금까지 고용노동부는 행정해석을 통해 ‘휴일근로는 연장근로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해왔다. 이런 행정해석은 주당 노동시간을 최대 68시간(주 5일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토·일 근로 16시간)으로 늘리는 결과를 낳았다.

한국 노동자 연간 노동시간 2113시간, OECD 회원국 연간 평균 노동시간 1766시간. 출처: 경향신문DB

여야는 올해 초부터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논의해왔다. 국회 환노위 여야 3당 간사는 지난 23일 휴일근로도 연장근로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고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못 박는 내용에 합의했다. 그러나 휴일근로에 대해서는 하루 8시간까지는 현행처럼 50%만 가산해 통상임금의 150%만 지급하도록 했다. 150% 지급에 찬성한 의원들은 휴일근로 중복할증에 따른 기업의 부담이 가중되고, 중복할증이 되레 노동자들의 휴일근로를 유인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휴일근로 중복할증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노동부의 잘못된 행정해석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자 장시간 노동을 막기 위한 근로기준법을 개악하는 일이기도 하다.

노동자들은 정당한 임금을 받고 주 40시간을 일하며 휴일에 쉬는 것을 원한다. 초과근무 수당을 받기 위해 휴일에 일하는 노동자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애초 초과근무에 할증을 붙인 것도 휴일이나 연장근로에 ‘비싼 값’을 매겨 장시간 노동을 억제하자는 취지가 담겨 있다. 그렇잖아도 한국 노동자들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세계 최장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 2069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평균(1764시간)보다 305시간이나 길다. 장시간 노동에 내몰리는 것도 억울한데 법정수당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여야는 주당 노동시간 52시간 법제화와 휴일근로 중복할증 적용을 통해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된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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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적 방법에 의한, 평화를 위한, 평창 올림픽, 그 험난한 도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 13일 오전 10시(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휴전을 결의하는 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이로써, 숱한 무리수와 거의 파괴적인 개발 홍역에도 불구하고, 내년 2월의 동계올림픽이 평창에서 열려야만 하는 상황적 명분을 일단 사후적으로라도 확보했다.

다행이다. 이마저도 없었더라면 평창 올림픽의 역사적 명분이나 문화적 가치는 훨씬 가벼워졌을 것이다. 김연아 홍보대사가 특별연설에서 밝힌 대로 평창 올림픽은 “남북의 얼어붙은 경계를 넘어서 평화적 분위기 조성”을 모색할 수 있는 일차적인 출발점이다.

그러나, 누구나 아다시피, 결의안 채택이나 특별연설로 평화적 분위기가 금세 조성되지는 않는다. 그럴 수만 있다면 인류는 이미 기원전부터 평화적인 황금시대를 살아왔을 것이다.

근래의 올림픽 역사에는 피의 흔적이 배어 있다. 1972년 뮌헨 올림픽 때는 선수촌에 테러집단이 침입해 이스라엘 선수들을 살해했고 1984년 동계올림픽을 치른 사라예보는 1990년대 이후 끔찍한 내전에 시달렸다. 올림픽 기간 중에라도 휴전을 하자는 결의를 1993년부터 채택해 왔지만 러시아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당일에 조지아를 침공했다.

결의안이 한낱 종이 쪼가리에 지나지 않을 수 있음을, 올림픽의 흑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로서는 193개 회원국 중 157개국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휴전결의안을 더욱 무겁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크게 세 가지로 천명된 사안 중 핵심은 올림픽 기간 전후(개최 7일 전부터 종료 7일 후까지) 적대행위 중단이다. 이 기간만이라도 북은 핵·미사일 도발을 중단하고 남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는 것이다. ‘일시적인 쌍중단’인데, 이를 미국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으므로, 우리로서는 유엔의 휴전결의안을 효과적인 우회로로 삼아 일시적이나마 실질적인 상호 적대행위 중단을 추진할 수 있다.

아직 청와대와 군 당국은 ‘한·미동맹’이라는 강력한 제어장치를 고려하여 훈련 연기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중단이 취소가 아니라 연기를 뜻하는 것이라면 충분히 추진할 만한 사항이다. 현재 북한은 도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밝힌 상태는 아니지만, 가을 이후 겨울에 이르는 동안 일단 충격적인 도발 요법은 쓰지 않고 있다.

미국의 ‘테러지원국 재지정’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의문이지만, 최소한 북한 병사의 판문점을 통한 탈북 사건 등의 국지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국면에서, 우리 정부가 평화를 위한 평창 올림픽의 의지를 다각도로 밝히면서 북한 선수단의 참가, 안전 보장 및 스포츠 교류를 위한 특사 교환 등을 적극 추진해 나간다면, 적어도 내년 2월의 한반도가 조금은 더 따스해질 것이다.

결의안 중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스포츠를 통한 평화, 개발, 인권 증진’이다. 이 결의안이 북한이라는 구체적인 대상을 상정하고 채택된 것이지만 ‘스포츠를 통한 평화, 개발, 인권 증진’이라는 목표는 특정 국가의 개별적인 사안이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나 공동으로 추진해야 할 인류사적 목표다. 비단 올림픽 기간만이 아니라, 남북 상호간에나 우리 사회 내부에서나, 반드시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숙제다. 평화는, 단순한 캠페인 몇 번으로는 도저히 획득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며 단순히 말로 도달할 수 있는 지평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와 조직위원회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상호 군사행동 중단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는 ‘스포츠를 통한 평화, 개발, 인권 증진’이라는 유엔결의안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좋은 말 대잔치’로 그쳐서는 안될 중요한 사안이다.

‘스포츠를 통한’이라는 표현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그 하나는 도구적 측면이다. 이른바 ‘핑퐁 외교’처럼,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를 상호 적대하는 나라끼리 친선의 가교로 만들거나 한 사회 내에 첨예한 갈등을 해결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스포츠는 충분히 그럴 만한 도구적 기능이 있고 국내외적으로 그러한 기능이 긍정적으로 기여한 바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도구적으로 스포츠가 작동하는 것은 일시적일 뿐이다. 더욱이 이렇게 도구적으로 잠깐 쓰이고 말 경우 그나마 그 기계적이고 도구적인 기능조차 ‘이벤트’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스포츠를 통한’이라는 표현의 진정한 해석은 ‘스포츠에 내재된 가치와 미학으로’라는 방향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따라서 스포츠나 올림픽에 대한 패러다임 자체를 전면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강한 신체적 능력의 비적대적 경쟁이라는 기본 골격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현재의 스포츠나 올림픽을 둘러싼 담론은 20세기 중엽 이후 강대국이 형성한 언어들로 채워져 있다. 국가주의와 남성주의가 압도적인 가운데 약간의 휴머니즘과 헐거운 이벤트성 멘트들뿐이다.

이를 평창을 계기로, 두터운 휴머니즘과 다양한 가치들로 대체해 나가야 한다. 내전, 빈부격차, 인종 갈등, 교육, 성, 환경 파괴 등 21세기 들어 제기된 숱한 문제들이 스포츠와 연관되어 있다. 그것들은 심지어 스포츠를 통해 더욱 심해지거나 스포츠를 통해 파괴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를 제어하고 해결하는 것, 그것을 다름 아닌 ‘스포츠를 통해’ 해결해 나가자는 것이 유엔결의안의 가치적 해석이다. 앞으로 두 달 남짓, 짧은 기간이지만, 정부와 조직위원회는 이 가치적 해석이 평창에서부터 가능할 수 있으며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천명할 필요가 있다. 스포츠를 통한 다양한 가치의 새로운 실천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때에, 올림픽 기간 중 상호 군사행동 중단도, 북한을 명분으로 고립시키려는 이벤트가 아니라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숭고한 결단임을 재천명하는 것이다.

<정윤수 | 스포츠 평론가·성공회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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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부(학교생활기록부)는 교과 더하기 비(非)교과다. 내신 더하기 비(非)내신이라 하는 게 더 정확할 수 있겠다. 교과 우수상, 교과 세부능력특기사항 등이 교과로 분류되지 않고 비교과, 즉 비(非)내신으로 분류되니 말이다. 학생부 비교과는 교사가 쓴 기록물이다. 아닌 것도 있지만 대체로 그렇다. 다른 입시전형과 구별되는 학생부종합전형의 특징은 무엇일까? 비교과가 입시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학생부 비교과를 쓰는 데서 비롯되는 어려움은 그 성격이 다른 것과 현저히 다르다. 학생부를 쓸 때 교사는 아주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운동경기에 비유해서 말하자면, 심판과 선수라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역할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다.

학생부를 쓸 때 교사는 심판이어야 한다. 학생부 기록이 학생부종합전형의 중요한 입시자료로 사용되므로 당연히 공정하게 기록하는 것이 맞다. 거짓말하거나 과장하거나 윤색하면 안된다. 교사는 냉혹한 심판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교사는 학생과 함께 뛰는 선수여야 한다. 다른 학교의 ‘학생+교사’팀과 경쟁하는 우리 학교 ‘학생+교사’팀의 선수여야 한다. 학생부를 쓸 때 교사는 자기 학교 학생의 장점과 재능을 돋보이게 해야 한다. 교사가 선수 역할을 하지 않고 심판 역할에 치중하는 것은 자기 팀 선수인 학생을 배반하는 것과 같다.

어떻게 해야 하나? 참으로 벗어나기 어려운 딜레마다. 물론 대부분의 교사들은 어느 한쪽 역할에 더 충실하기로 마음을 먹긴 한다. 교사마다 그 정도가 제각각 다르겠지만 대부분 심판 역할이 아닌 선수 역할에 더 충실하기로 마음먹는다. 완전한 거짓말까지는 못하더라도 과장이나 윤색 정도는 눈 딱 감고 해주는 쪽으로 입장을 정한다. 나 또한 그런 교사들 중 하나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먹었다고 해서 마음의 고뇌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심판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어려운 일이다. 심판 역할에 충실하란 것은 교사가 제자에게 갖는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감정을 외면하란 얘기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게 실제의 현실 속에선 애초 불가능에 가깝다. “실험도구를 잘 다루고…”라고 쓸 때 실험도구를 잘 다루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어떻게 명확히 구별하겠는가? “감정을 살려 시를 잘 낭송하고…”라고 쓸 때 도대체 한 반의 몇 명까지를 잘한 것으로 인정해야 하나? “학교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키우고…”라고 쓸 때 경각심을 키운 것과 그러지 않은 것을 가리는 기준이 있을 수 있는가? 무엇보다 아무리 교사라 해도 학생의 내면세계와 심리상태를 어떻게 자세히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교사들은 학생부를 쓰는 내내 괴로울 수밖에 없다. 한편으론 학생부를 너무 좋게 좋게만 써주는 것 같아 괴롭다. 다른 한편으론 모자라고 부족하게 써준 것만 같아 괴롭다. 혹자는 학종으로 인해 교사의 힘이 세졌다고 말한다. 학생부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 앞에서 고양이 앞의 쥐처럼 굴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 측면도 있기야 하겠지만 교사야말로 학생부 때문에 한없이 초라하기만 하다. 고양이 앞의 쥐처럼 초라하다. 교육자로서의 양심을 너무 자주 속이는 것 같아 초라하고, 그렇게 쓴 학생부가 학생·학부모의 높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것 같아 초라하고…, 이래저래 초라하기만 하다.

<이기정 | 서울 미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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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오후 2시29분에 규모 5.4의 강한 지진이 경북 포항시 흥해읍 지역에서 발생했다. 이번 지진은 지표로부터 깊이 5㎞ 부근에 위치한, 북서쪽으로 약 30도 기운 가로 6㎞·세로 3㎞가량의 단층면이 비스듬히 어긋나며 발생했다. 지난해 9월 발생한 규모 5.8의 경주 지진 때와 마찬가지로 지표에서는 확인된 바 없는 지하에 숨겨진 단층에서 발생한 이번 지진은 주향이동단층 운동 성분과 역단층 운동 성분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생한 여진들을 분석해 보면 본진보다 깊은 곳에서 발생한 지진은 역단층 지진이고, 본진보다 얕은 곳에서 발생하는 여진은 주향이동단층 지진이다.

이번 포항 지진은 한반도에서 언제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깨우치는 국민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되고 있다. 과거의 한반도는 지진 발생빈도가 낮고, 발생하는 지진 규모 역시 작은 지역에 속했다.

포항 지진 발생 사흘째인 17일 교육부 민관합동점검단원들이 포항시 북구 흥해초등학교의 내부 균열 등 지진 피해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이석우 기자

이러한 한반도에 심상치 않은 조짐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나타나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은 한반도 동해안 연안 지역을 일본 열도 방향으로 5㎝가량 이동시키고, 한반도 서쪽 해안 지역은 2㎝가량 이동시켰다. 결과적으로 3㎝가량 동서 방향으로 확장된 한반도 지각은 동일본 대지진 이전보다 약한 강도를 보이게 된다. 실제 한반도 지각 내 지진파의 속도가 동일본 대지진 직후 약 3% 감소한 것으로 측정되기도 했다. 약화된 한반도 지각은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서서히 회복 중이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약화된 지각에서는 지진 발생빈도와 지진 규모가 크게 증가했다. 한반도에서 지진 관측이 시작된 1978년 이후 동일본 대지진 이전까지 33년 동안 총 5회에 불과하던 규모 5.0 이상의 지진이, 동일본 대지진 후 6년5개월 동안 5차례나 발생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9월12일에 발생한 규모 5.8의 경주 지진이 포항 지역에 많은 힘을 가해 이번 포항 지진을 유발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하 11㎞에서 발생한 경주 지진은 단층에 누적하고 있던 많은 에너지를 포항 지역을 포함한 북동 지역과 남서 지역에 추가했다. 이렇게 지진에너지가 추가된 지역에서는 많은 여진들이 이어졌다.

결국 경주 지진이 난 지 14개월 만에 포항 지진이 발생했다. 이번 포항 지진이 발생한 흥해읍 일대는 경주 지진 이전까지는 규모 2.0 이상의 눈에 띄는 지진 발생이 없었던 곳이다.

이번 포항 지진은 경주 지진과 몇 가지 다른 점을 보이고 있다. 경주 지진은 포항 지진에 비해 1~10㎐ 사이 고주파수 대역의 지진파 에너지가 높은 데 반해, 포항 지진은 0.6㎐ 이하의 주파수 대역에서 경주 지진보다 높은 에너지를 보였다. 포항 지진에 의해 건축물이 많은 피해를 본 이유는 낮은 진원 깊이, 분지형 퇴적층으로 이뤄진 표층에서의 지진파 증폭, 건물에 영향을 주는 저주파수 대역에서의 많은 에너지로 파악되고 있다. 또한 포항 일대의 표층을 구성하는 퇴적층 내에 포함되어 있던 많은 물들이 강한 지진동 때문에 지표로 배출되는 액상화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규모 6 이상의 강한 지진에서 주로 관측되는 이런 액상화 현상이 이번 포항 지진 이후 관측된 점은 분지형 지질구조에서 보이는 지진파 증폭 현상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이제껏 겪어보지 못했던 위협적인 자연재해를 경험하고 있다. 특히 일각에서는 포항 지진 촉발 원인으로 지열발전소를 새롭게 지목하고 있다. 지열발전소는 포항 지진 진앙과 1㎞ 남짓 가깝게 위치해 있고, 물 주입 시기에 미소 지진이 발생해 이번 포항 지진의 원인으로 의심을 받고 있다. 2016년 1월부터 주입된 물의 총 누적량은 약 1만2000㎥에 이르고, 다시 배출된 물의 양을 고려하면, 순수하게 지중에 남아 있는 물의 양은 약 5000㎥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주입된 물의 양과 주입 기간, 지열발전소 가동 방식이 규모 5.4라는 큰 지진을 유발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특히 중대형 지진이 발생하기 전에 흔히 보이는 수천회에 달하는 미소 지진과 수많은 중소형 지진들이 거의 관측되지 않았던 점도 지적되고 있다. 신속하게 정부 차원의 조사가 이뤄지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루빨리 조사가 완료되어 국민 불안이 해소되길 기대한다.

지진 원인 규명과 함께 포항 지진 영향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이번 포항 지진 발생으로 주변 지역에는 포항 지진으로부터 전이된 지진에너지가 새롭게 축적되었다. 포항 지진 진앙지로부터 북동쪽과 남서쪽 방향으로 응력이 증가되어, 한반도 남동부 지역에는 매우 복잡한 응력 환경이 형성되었다. 특히 경주와 포항 사이 지역과 포항과 영덕 사이 앞바다 지역의 지진에너지 증가가 눈에 띈다.

이번 포항 지진의 여진은 빈발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나 6개월 이상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추가된 지진에너지가 해소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세심한 지진 대비가 필요하다. 한반도가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란 점은 이제 재론의 여지가 없다. 지진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많은 기초 정보 구축이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지하에 숨겨진 활성단층에 대한 조사가 절실하다. 2007년 규모 4.8 오대산 지진, 지난해 경주 지진, 올해 포항 지진 등 내륙에서 발생한 주요 지진들이 모두 지하의 숨은 단층에서 발생했다. 한반도에서 지진을 유발하는 단층은 지표에서 관측되지 않는 단층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해역 지역 단층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원자력발전소 등 사회 기간 시설들이 위치해 있는 해안 지역은 강한 지진파와 지진해일을 동반하는 해역지진에 취약할 수 있다. 하나씩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면 안전한 대한민국이 보다 가까워질 것으로 확신한다.

<홍태경 |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지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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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체에 현장실습을 나갔던 18세 특성화고 학생이 사고로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생수 제조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제주지역 특성화고 3학년 이민호군이 지난 9일 제품 압착기에 눌리는 사고를 당한 지 열흘 만에 사망한 것이다. 당시 사고 현장에는 안전관리를 책임지는 업체 직원이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이군 사망을 계기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추모 촛불집회를 열고 있는 특성화고 학생들은 ‘왜 실습하다 죽어야 합니까’ ‘이군의 죽음은 우리의 현실’이란 손팻말을 들고 현장실습 안전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이 생애 첫 노동현장에서 숨진 것은 올 들어서만 두번째다. 지난 1월에는 전주에 있는 통신사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홍모양이 “아빠, 나 콜 수 못 채웠어”라는 문자메시지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기능인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꿈을 갖고 특성화고에 진학한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나가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특성화고 학생들의 현장실습장은 곳곳이 세월호이고, 구의역이다. 현장실습생들은 일하다 손가락이 잘리거나 건물에서 추락해 갈비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기 일쑤다. 주당 70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쓰러지는 일이 다반사다. 전공과 상관없는 부서에 배치돼 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특성화고 학생들의 현장실습은 ‘노동착취 실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당국은 현장실습 전 학생들의 안전과 노동조건을 명시한 표준협약서를 작성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지키는 특성화고와 산업체는 극소수다. 그런데도 교육당국은 현장실습의 노동인권 침해에는 눈을 감고 특성화고 취업률 높이기에만 골몰하고 있다. 교육부는 그제 직업계 고교의 올해 취업률이 17년 만에 50%를 넘어섰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특성화고는 학생들을 취업에 유리한 현장실습으로 내몰고, 산업체들은 현장실습생을 노동착취 대상으로 삼는 행태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장의 법 준수 여부와 노동인권 침해 실태를 철저하게 점검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현장실습제도를 아예 폐지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군 추모 촛불집회에 나온 특성화고 학생들의 외침대로 현장실습생이 ‘일하는 기계, 노예, 부속품’이 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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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경주 지진에 이어 포항 지진까지 발생하면서 국내 일반 건축물은 물론 원전 안전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과거에는 지진의 단순 규모만 논란이 됐으나 이번에는 건축물 진동 효과를 보여주는 지표인 최대지반가속도 문제가 제기되면서 논란의 수준도 진전했다.

최대지반가속도 기준으로 월성원전은 0.18g, 기타 가동 중인 원전은 0.2g, 신고리 3호기부터는 0.3g까지 버티도록 설계됐으나, 포항 지진 당시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관측소에서 0.58g까지 측정된 만큼 특단의 안전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물론 원자력계는 포항의 지반 조건으로 지반가속도의 증폭효과가 컸지만, 암반에 입지한 원전의 경우 증폭효과가 낮으니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반박한다. 원자력계의 주장 중 지반 조건에 따라 증폭효과가 달라진다는 것 자체는 지질학계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포항 지진 발생 이후 포항시 북구 장량동 한 빌라에서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직원들이 지진 충격으로 철근이 드러난 필로티건물 기둥을 살펴보고 있다. 이석우 기자

그러나 문제는 국내 지진 관련 학계나 연구기관들도 국내 원전 부지의 심지층, 부지 주변, 해양단층까지 세부조건이 어떤 상황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는 그간 국내 원자력산업과 지진 연구조사에 대한 투자가 비대칭적으로 이뤄진 결과로, 더 많은 조사·연구가 필요한 영역이다. 원자력업계는 원자로 노심과 증기배관의 안전을 전공한 것이지, 지진을 전공한 것이 아니다.

중세의 세계관과 과학의 결정적 차이는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을 구분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하는 데에 있다. 행성들의 운동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던 중세시대 종교학자들이 성경의 권위를 빌려 천동설을 믿도록 강요했지만, 천문학자들이 체계적 관측과 합리적 추론을 통해 거짓이라는 것을 밝혔다. 혹시 국내 원자력계도 박정희 시대 형성된 ‘원자력 신화’의 권위를 빌려 모르는 것을 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닌지 자성이 필요하다.

자신이 모르는 사항이라면 전공학계에 문의해야 하고, 전공자들도 조사를 못해 모른다면 그들이 답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원칙일 것이다. 만약 이미 공기업의 투자가 진행돼 기다릴 수 없다면 최소한 사전예방의 원칙이라도 지켜야 할 것이다.

우리와 가장 유사한 해외 사례로 미국의 노스 안나(North Anna) 원전을 보자. 지진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여겨져온 미국 중동부 지역의 암반 부지에 입지한 버지니아주 노스 안나 1·2호기의 경우 최대 규모 6.2, 최대지반가속도 0.12g의 내진설계를 구축해 운영해왔다. 그러나 2011년 원전으로부터 18㎞ 떨어진 진앙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 미국 지질조사국 지역측정소에서 최대지반가속도 0.26g(원전 건물 측정치 0.12g)가 측정된 바 있다. 이 지진 이후 미국 지질조사국과 전력연구소는 해당 지역의 예상 최대 지진규모를 평균 기준 7.2로 상향조정했다. 이에 따라 전기사업자인 도미니언사도 노스 안나 3호기 신규 원전 건설계획의 허가심사를 받기 위해 내진설계를 기존 원전의 4배가 넘는 0.54g로 상향조정해 신청한 바 있다. 신규 원전이 건설될지 여부는 별개의 이야기다.

미국 지질조사국처럼 체계적 지진 연구기반이 부실한 국내에서 노스 안나 사례를 그대로 따라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국민적 관심을 받으며 공론화까지 진행한 마당에 신규 원전 건설이 불가피하다면, 조사가 부족한 만큼 원자력계와 규제기관은 신규 원전과 밀집해 가동 중인 원전들에 대해 대폭 강화된 내진설계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

<석광훈 | 녹색연합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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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인플루엔자(AI)가 또다시 기승을 부릴 조짐이다. 전북 고창의 오리농가에서 고병원성 AI 바이러스 H5N6형이 검출된 데 이어 20일에는 전남 순천만의 철새 분변에서 검출된 AI 바이러스가 H5N6형으로 확진됐다. 전남도는 올겨울 들어 처음으로 철새 분변에서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검출된 순천만을 21일부터 전면 폐쇄하고 습지 관광도 금지하기로 했다. 고병원성 AI 확진으로 지난달 13일 어렵게 회복했던 ‘AI 청정국 지위’를 잃게 돼 가금류 수출에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더 큰 걱정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80여일 앞두고 고병원성 AI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AI가 발생하면 가금류 농가에 이동중지명령이 내려지고, 전국 주요 고속도로에는 통제초소가 설치된다. 올림픽 기간에는 80여개국의 선수와 취재진을 포함해 40여만명이 한국을 찾을 예정이다. AI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 농가 피해는 물론이고 올림픽에 심각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고병원성 AI는 2014년부터 연례행사처럼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AI가 전국 50개 시·군으로 번져 사상 최대의 피해가 발생했다. 농가 900여곳에서 닭·오리 등 가금류 3787만마리가 살처분됐다. 피해농가에 지급한 살처분 보상금만 3084억원에 달했고, 계란값 폭등과 관련 산업 위축 등 간접 피해도 컸다. 우려스러운 것은 올해도 지난해 겨울과 유사한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에는 11월11일 야생조류 분변에서 AI 확진 판정이 났고, 닷새 뒤인 16일 전남과 충북의 가금류 농가에서 AI가 발생하면서 전국으로 확산됐다. 올해도 야생조류 분변에서 AI 항원이 잇달아 검출된 데 이어 지난해와 비슷한 시점에 가금류 농장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AI 바이러스 유형도 전염성이 강하고 폐사율이 높은 H5N6형으로 똑같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방역당국의 대응이 지난해보다 신속해졌다는 점이다. 올해는 전북 고창의 농가에서 키우던 오리 1만2300마리를 살처분하면서 AI 위기경보를 ‘주의’에서 최고단계인 ‘심각’으로 올렸다. 지난해에는 1783만여마리를 살처분한 뒤에야 ‘심각’으로 격상했다. 지난해 AI 재앙이 초래된 것은 방역당국이 초동대처에 실패하고 뒷북 대응으로 일관한 탓이 크다. 그런 측면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초동방역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과감하고 신속해야 한다”고 지시하고, ‘범정부 AI 수습본부’를 설치한 것은 적절하고도 바람직한 조치다. 정부와 지자체는 지난해의 시행착오를 반면교사 삼아 AI 조기 차단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허술한 방역체계와 어설픈 대응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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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지진으로 흔들리는 나라가 되었다. 건물 외벽이 쏟아져내렸고 아파트는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망자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포항의 많은 사람들이 기울어진 아파트의 각도만큼이나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건졌다. 조금만 더 흔들렸다면, 아,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이제 집도 학교도 다시 지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다르게 지어야 한다. 한 번 일어난 것은 두 번 일어나고, 작게 일어난 것은 크게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건물도 건물이지만 금이 간 마음을 치유하는 데 많은 시간이 들 것이다. 이제 마음도 집을 잃어버렸다. 마음을 다시 지을 수 있을까. 건물은 지진을 반영해서 달리 설계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마음의 골조를 달리 세울 수 있을까.

육군2작전사령부 예하 50사단 장병들이 17일 오후 포항 청하면 지진 피해지역에서 굴삭기ㆍ덤프 등을 투입해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거대한 재앙은 사람들의 생각을 크게 바꾸어놓는다. 대표적인 예가 리스본 대지진이다. 1755년 11월에 큰 지진이 리스본을 강타했다. 대규모 화재가 일어났고 엄청난 규모의 쓰나미가 덮쳤다. 수만명의 시민들이 죽었고 85% 이상의 건물이 파괴되었다.

당대 사상가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계몽주의자 볼테르는 세상일을 신의 뜻으로 설명했던 신정론을 강하게 비난했다. “모든 게 ‘신이 만든’ 최선이라 외쳤던 철학자여, 와서 이 폐허를 보라.” “신이 벌을 내렸다고 말하는 자여, 어미의 가슴에 안겨 피흘리고 있는 저 어린것에게 무슨 죄가 있는지 말해보라.” 그는 신의 섭리에 자신을 내던지느니 약한 인간들과 더불어 깊은 어둠 속에서 빛을 찾겠다고 했다.

근대 계몽주의는 이렇게 태어났다. 자연은 선한 자와 악한 자를 구분하지 않는다. 자연은 맹목이며 믿을 것은 인간의 이성뿐이다. 재난을 신의 의지에서 떼어내어 인간 이성의 관리 아래 두는 것. 불확실한 자연을 인간의 과학기술로 지배해 나가는 것. 수잔 니먼의 표현을 빌리면 리스본에서의 깨달음은 “근대의 진정한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였다.

하지만 인간을 믿어도 좋은가. 과연 자연은 맹목이고 인간의 눈은 밝은가. 다시 포항 지진을 보자. 지진이 일어나자 많은 이들이 진앙지 근처의 핵발전소들을 보았다. 더 큰 재난을 의식한 것이다. 근대 이후 인간을 두렵게 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가장 끔찍한 재난이 인간 한테서 올 것임을 알고 있다. 리스본 지진은 근대를 낳은 재앙이지만 지금 우리는 근대가 낳은 재앙과 대면하고 있다.

리스본 지진에서 볼테르는 인간의 죄 때문에 자연재해가 일어난다는 생각을 비난했다. 하지만 10년 전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쓰촨성 대지진은 천재와 인재의 구분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댐에 담긴 물이 지반을 뚫고 들어가 단층을 끊어 지진이 일어났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자연재해를 신의 심판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자연재해에 인간의 죄가 없는지도 확실치 않다. 볼테르 이후 계몽의 역사는 재난을 막을 수호자가 재난의 유발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핵무기와 핵발전소는 이런 역설의 정점에 있다. 최고의 안보수단이 최악의 자기절멸수단이며, 최고의 발전설비가 최악의 황폐화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수 야당과 주류 언론은 포항 지진이 탈핵 논쟁으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 데 필사적이다. 한 신문은 사설을 통해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해서 비합리적 주장을 펴는 것이 광우병 사태와 같다”고 했다. 핵발전소에 대한 사람들의 우려가 비합리적 선동과 괴담에 놀아난 결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과학과 괴담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우려는 더 깊은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탈핵론자들이 아니라 “이번 지진으로 원전의 안전성이 입증되었다”고 외치는 사람들이다. 거기서 나는 안전성이 아니라 불감증을 본다. 핵무기가 최고의 방어수단이라고 하지만 핵무기를 끼고 사는 삶이 불안을 유발하듯, 핵발전소가 최고의 안전장치를 통해 관리되고 있다고 해도 핵발전소를 늘려감으로써만 영위할 수 있는 삶은 불안하다.

원자로를 다섯 겹으로 둘러쌌으니 안전하다는 말은 다섯 겹을 둘러싸야만 안전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당장에는 그 다섯 겹이 충분한 것인지, 다섯 겹을 제대로 둘러싸기는 한 것인지 때문에 불안하다(경험상 한국사회에서 이런 불안은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다). 하지만 더 깊은 차원에서 우리는 최소 다섯 겹은 둘러싸야 하는 것을 이렇게 많이 만들어놓고, 더 늘리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 그런 맹목성 때문에 불안하다.

2009년에도, 2017년에도 우리를 불안케 한 것은 괴담이 아니라 불감증이다. 이 불안은 괴담으로 생겨난 게 아니므로 과학기술로 해소되지 않는다. 핵발전소에 대한 불안의 해법을 더 안전한 핵발전소의 건설에서 찾는 한 우리의 운명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핵발전소를 양산해온 우리 사회의 길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다.

그러나 이번 일로 우리 정신의 골조가 다시 짜일 것 같지는 않다. 어떤 지진에도 견디도록 내진설계된 정신들, 다섯 겹의 콘크리트로 밀봉된 정신들, 지진이 나면 오히려 핵발전소로 뛰어들어 가라는 저 낡은 볼테르들이 어떤 새로운 계몽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고려대 민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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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7일자 지면기사-

경주지진에 이어 1년여 만에 포항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전국에서 지진동을 느꼈다. 집이 무너지고 길이 갈라지고 자동차가 파손되고 사람들이 다쳤다. 잘 수습되고 더 큰 피해가 없기를 바라는데, 이 일대 활성단층들이 활동기에 들어갔으니 학교 등 다중 이용시설과 주요 산업시설의 안전 점검이 시급하다.

한반도 동남부 양산단층대에는 국내 원전 18기가 운영 중이고 5기의 원전이 건설 중이다. 인근의 부산, 울산, 대구, 경주 등 주요 대도시에는 수백만명의 인구가 밀집해 지진과 함께 원전사고까지 이어진다면 나라의 운명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양산단층대에는 육지에서만 230㎞에 이르는 양산단층을 중심으로 월성·신월성 원전 주변에 있는 울산단층, 고리·신고리 원전 주변의 일광단층, 동래단층, 밀양단층 등 발견된 것만 60여개가 넘는 활성단층들이 분포하고 있다. 지난 수천만년 동안 최소 4번의 활동 시기가 있었고 활동 시기에 들어서면 수백년 이상 지각활동이 이어졌다. 작년 경주지진에 이은 640회의 여진 그리고 15일 포항지진과 이후 하루 동안 30회가 넘는 여진은 양산단층대가 다시 활동 시기에 돌입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미 지질학자들은 양산단층대의 재활성을 경고해왔다. 양산단층대 일대에 지진 규모 7.0이 넘는 대규모 지진이 수백년의 주기를 두고 발생했던 기록이 역사서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마지막 대규모 지진 발생 후 500여년이 지난 지금이 대규모 지진이 다시 발생할 수 있는 시기라는 경고가 있었지만 정부 당국은 안일했다.

포항지진은 경주지진보다 규모가 작지만 피해는 더 컸다. 진원지 깊이가 더 낮고 도시 인근이라 피해가 더 컸다. 지진 위험을 단순히 지진 규모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포항지진은 포항분지의 퇴적층과 화강암의 북쪽 경계단층에서 발생했다. 연약지반인 퇴적층은 포항지진을 더 증폭시켰다. 규모 5.4인 포항지진 진앙에서 2.6㎞ 떨어진 가스공사 흥해관리소의 지진계는 0.58g(중력가속도)의 최대지반가속도를 기록했다. 중력가속도 g의 0.58배의 힘으로 좌우로 흔들린 것이다.

이 일대에 운영 중인 원전 17기의 내진설계는 0.2g에 불과하다. 신고리 3호기와 건설 중인 원전 5기의 내진설계 역시 0.3g밖에 되지 않는다. 포항지진으로 0.58g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는데 원전 내진설계는 여기에 한참 낮은 수준이다. 지금은 진앙이 원전에서 떨어져 있어서 안전하지만 다음 지진이 원전 인근에서 일어난다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포항분지의 남쪽 경계단층은 월성원전 인근이다.

지진으로 인해 땅이 흔들릴 때 돔 형태의 콘크리트 건물이 지진에 견딘다고 원전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원전은 배관 연결 길이만 170㎞에 달하고, 케이블 연결 길이는 1700㎞이다. 지진이 일어나면 배관이 파손될 수 있고 용접부위가 갈라질 수 있고 밸브가 틀어질 수 있으며 화재가 발생해 케이블이 녹아내릴 수 있다. 17개 원전의 케이블은 내연 케이블이 아니라서 화재가 나면 원전 전체가 먹통이 될 수 있다. 파손된 배관으로 인해 원전 냉각이 실패하면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같은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지진으로 도로가 끊겨서 외부 지원도 불가능해지고 산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 방사성물질이라도 방출되는 날에는 수백만명의 인구가 도대체 어디로 피난을 간다는 말인가.

지금은 전기 공급이 충분해서 봄가을에는 원전 40개, 여름·겨울에는 원전 20개 이상의 발전설비가 남는 상황이다. 앞으로도 전기 소비는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는 예측인데 신규 발전소는 늘어나고 있다. 위험을 무릅쓰고 원전 가동과 건설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 설계상 내진설계 강화가 될 수 없는 중수로 원전인 월성원전 1~4호기부터 폐쇄해야 한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상향된 원전안전기준으로 안전성을 재검증하기 위해 50개의 가동 중인 원전을 모두 중단했다. 내진설계를 강화하고 지진 안전성을 투명하게 확인하기 전까지 원전 가동과 건설을 전면 중단해야 한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국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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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7일자 지면기사-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4의 지진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주일 연기되면서 대입전형일정이 일제히 조정됐다. 교육부는 16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의 협의를 거쳐 수시·정시 모집 등 대입전형일정을 1주일씩 연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진 피해를 입은 포항지역 수험생들은 인근 지역에서 수능을 치를 수 있도록 했다. 교육당국의 수능 연기와 대입전형일정 조정은 불가피하고도 당연한 조치다. 수능이 자연재해로 연기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지만 대입전형일정의 혼선이 수험생의 안전보다 앞설 수는 없다. 강진 여파로 포항지역의 시험장 14곳 중 11곳에서 교실 벽에 균열이 생기고, 운동장 곳곳에 금이 가는 등 피해가 발생했다. 도저히 수능을 치를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강진 이후 40여차례의 여진에 이어 16일 오전 9시2분쯤 포항시 북구 인근 지역에서 규모 3.6의 지진이 발생했다. 수능이 연기되지 않았다면 수험생들이 1교시에 대피해야 하는 아찔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수능의 생명은 형평성이다. 지진 피해가 큰 포항지역 수험생들은 다른 지역 수험생들보다 심리적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공평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능을 치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수능과 대입전형일정이 늦춰져 59만3000명의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크게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수험생들은 대학 진학의 관문인 수능을 앞두고 마음이 무거웠을 터인데 지진 발생과 시험 연기로 심적 부담이 더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차분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런 와중에 ‘지구가 준 선물, 마지막 일주일을 불사르는 직전 특강’ 등과 같은 자극적 표현을 써가며 ‘특강 마케팅’에 나서는 일부 학원의 행태에는 눈살이 찌뿌려진다.

교육당국은 수능 연기와 대입전형일정 조정으로 수험생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특단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85개 시험지구로 옮겨진 수능 시험지 보안이 중요하다. 관련 당국은 시험지 유출이나 도난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교육당국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재난 발생 시 수능 시행 여부와 대입전형일정 조정을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비상계획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단 한 차례의 수능이 대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대입체제 개편도 서둘러야 한다. 모든 시민이 교육당국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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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7일자 지면기사-

지난해 9월 경주지진에 이어 1년2개월 만에 포항지진이 일어남으로써 한반도가 더는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님이 재확인됐다. 두 번의 강진은 한반도 동남부를 가로지르는 활성단층대를 진앙으로 두고 있다. 이 일대에는 월성 6기, 한울 6기, 고리 6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고, 5기가 건설 중이다. 원전지뢰밭이라 할 수 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이번 지진에도 불구하고 가동 중인 전국의 원전 24기가 모두 정상운영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지진 안전지대라던 동남부 지역에서 강진이 단기간에 두 번이나 이어졌다는 것은 이 일대 단층이 본격 활성화 단계에 돌입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지진의 진원지(9㎞)가 지난해 경주지진(11~15㎞)에 비해 얕아져서 체감위험도가 훨씬 커졌다는 사실도 심상치 않다. 그럼에도 지하의 지질구조를 분석한 ‘단층지도’는 아직 없다. 이 때문에 한반도에 엄습한 수상한 지질현상을 파악할 수 없다. 지진이 잦았던 17세기 이후 400년 동안 지하 어디엔가 축적된 응력이 경주·포항지진으로 나타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축적 응력이 지하 몇 ㎞ 깊이에서, 혹은 어느 원전 밀집지역에서 지진으로 표출될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지진이 일상의 공포로 다가온 것이다. 문제는 가동 원전 24기 중 23기의 내진설계가 규모 6.5에 해당되는 최대지반가속도 0.2g에 맞춰졌다는 것이다. 한수원은 이미 규모 7.0에도 견딜 수 있도록 21기의 내진보강을 마쳤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본설계는 그대로 둔 채 주변 구조물 등을 보강해봐야 한계가 있다. 특히 얇은 압력관이 380개나 설치된 중수로 원전(월성 1~4호기)의 경우 내진보강이 사실상 어렵다. 지진으로 압력관이 터지면 백혈병과 암을 유발하는 삼중수소가 대량으로 유출될 수 있다.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려면 당연히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해야 한다. 공포감을 고취하려는 게 아니다. 다가올지 모를 비극에 대한 올바른 대처법이다. ‘원전사고는 1억년에 한번 나올 법하다’고 큰소리치던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원전가동을 중단해서라도 원전구조의 안전성을 점검하고 기존 원전들의 내진설계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2022년으로 예정된 월성 1호기 폐로를 비롯하여 내진보강이 어려운 노후원전들을 차례로 정리해야 한다.

지진으로 인한 원전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길은 딱 하나, 탈원전이다. 한반도를 강타한 지진이 그 사실을 일러주고 있다. 16일 ‘월성 1호기 폐로’를 논의한 한수원 이사회가 탈원전의 본격적인 첫걸음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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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7일자 지면기사-

나라 밖 지진 소식이 들릴 때면 우리나라에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하곤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가 달라지고 있다. 아니, 사실은 오랜 역사 동안 지진이 발생했지만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이 기억하는 한 지진 때문에 큰 피해가 발생한 경우가 없었기에 우리나라를 지진 안전지대인 양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적어도 작년 9월12일의 경주지진이나 이틀 전인 11월15일 포항지진이 발생하기 이전까진 말이다. 한반도에서 얼마나 많은 지진이 발생했는지, 그 지진이 얼마나 강력했는지에 대해선 이미 역사적인 기록들이 있는데도 말이다. <조선왕조실록>에만 441건이 기록되어 있고 ‘세종실록’에도 심지어 <삼국사기>에도 기록되어 있다. 2012년 기상청에서 발간한 <한반도 역사지진 기록>을 보면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지진이 총 2161회고, 그중 진도 8~9(규모로는 6.7로 추정)의 강진이 15회(0.7%) 정도였다고 한다.

지난해부터 지진이 발생하고 있는 경주와 포항, 울산 인근에는 원전이 입지해 있다. 무려 18기가 가동 중이고 5기가 건설 중이다. 다행히 아직까지 전국 24기 원전엔 이상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 다시 더 강력한 지진에 노출될지 알 수 없기에 참으로 불안하기 짝이 없다.

작년 규모 5.8의 경주지진 발생 후 진원지가 월성원전에서 28㎞ 떨어진 지점이라 원전 안전성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수 시민들은 그 사실을 잊어버렸다. 너무나 쉽게 말이다. 이번처럼 또 지진이 발생하면 그제야 다시 원전 안전을 염려하지만 또다시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이래서는 안되지 않을까? 안전은 안전할 때 지켜야 한다. 원전사고는 너무나 치명적이어서 단 한 번의 사고라도 일어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만 잠시 경각심이 살아나선 곤란하다.

신고리 5·6호기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건설을 재개하기로 했다. 원전 위험을 우려하는 필자로선 참 아쉬운 대목이지만 이미 내려진 결정이기에 안전에 만전을 기하길 기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원자력계도 인정하듯이 신고리 5·6호기가 기존 원전보다 안전성이 한층 강화된 거라면, 기존 원전은 안전 수준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현재 가동 중인 원전 24기는 신고리 3호기를 제외하면 모두 규모 6.5까지만 견디도록 설계되어 있다.

지질학계에 따르면, 단층구조상 우리나라에선 최대 규모 6.5~7.0의 초대형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기존 원전의 내진 성능을 7.0까지 강화한다고 하지만 이미 지어진 구조물의 내진 성능이 정말 안전하게 보강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설계와 실제 성능은 다를 수 있어서 더욱 그렇다. 망치와 환형 구멍이 발견된 한빛 4호기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시공과 관리 부실은 또 다른 암초다. 충분한 안전 여력을 확보할 수 없다면 설계수명 이전 폐쇄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사고가 난 후는 이미 늦다.

이제 우리나라는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 다행히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결정에도 불구하고 시민참여단의 과반수(53.2%)는 원전축소정책을 지지했다. 정부의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 정책은 재론의 여지 없이 유지되어야 한다.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문제를 고려할 때 탈석탄정책도 흔들림 없이 추진되어야 한다. 이런 정책이 제대로 가려면 전력 소비에 낭비가 있어서는 곤란하다. 위험하고 깨끗하지 않은 발전소를 자꾸 지어서 싸고 풍족하게 전기를 쓸 생각을 이젠 과감히 버려야 한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 시민 한 사람 한 사람, 기업 하나하나가 더 이상 소비자로만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이제 누구나 전력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 이미 기술은 우리 곁에 있다. (미니) 태양광발전부터 시작해보자. 이게 지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자 경고에 대한 답이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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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학에서 ‘장애인복지론’과 ‘문화복지론’을 가르치고 있는 여성장애인 방귀희입니다. 지난 30여년간 KBS에서 방송작가로 일을 하면서 휠체어에 의지해 무난히 사회생활을 해왔으나, 두 번 다시는 이 같은 삶을 감당해낼 자신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450만 장애인 가운데 2%에 해당하는 장애예술인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힘겹게 예술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으며, 또 저를 포함한 1000여 장애예술인들이 합심해 한국장애예술인협회를 창립하여 함께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사무국 회의실에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오른쪽)을 만나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과 반다비 인형을 선물하고 있다._ 연합뉴스

장애인 선수들은 장애인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획득하면 일반 선수들과 같은 액수의 연금을 받습니다. 그리고 전국대회, 세계대회, 종목별 대회 등 출전 기회도 많습니다. 이에 비해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통계에 따르면 장애예술인들은 82.18%가 자신의 창작물을 발표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있어 경제적 어려움이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일자리위원회가 출범하자마자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장애예술인들을 위해 장애인예술공공쿼터제도와 장애예술인후원고용제도 등 장애예술인 일자리 방안을 청원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한꺼번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사회 변화에는 계기가 필요한데 마침 우리 단체에서 내년 3월9일 개막하는 2018 평창 동계장애인올림픽 G-100일(11월30일) 기념으로 ‘한·중·일 장애인예술축제’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장애인예술의 수월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목표가 있습니다.

30년 전에 개최된 1988 서울 장애인올림픽으로 물리적 장벽이 제거되었듯이, 2018 평창 동계장애인올림픽을 통해 인식의 장벽, 즉 문화의 장벽이 없어져서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거나 배제당하지 않는 ‘장애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 장애인들은 국회는 물론 각종 위원회에서 ‘장애인 패싱’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많이 서운해하고 있습니다.

2018 평창 동계장애인올림픽이 소외당하고 있고, 그 어느 곳에서도 평창 동계장애인올림픽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대통령께서 평창올림픽 홍보대사를 하시는 등 올림픽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계신 모습을 언론을 통해 보고 있습니다. 올림픽을 통해 국가 브랜드를 높일 수 있다면, 장애인올림픽을 통해서는 그 성과 여부에 따라 복지국가라는 더 큰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일본은 이미 두 차례나 동계장애인올림픽을 개최하였고, 중국은 한국 다음에서야 동계장애인올림픽을 개최하기에 이번 평창대회가 한·일 양국을 비교 평가하는 잣대가 될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한·중·일 3국의 장애예술인들이 한국에 모여서 예술을 통해 장애인의 능력과 꿈을 보여주는 축제를 마련하였던 것입니다. 이 축제는 사회지도층이 관객이 되어야 합니다. 장애인예술은 아쉽게도 아직까지 보편화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통령께서 늘 말씀하신 ‘사람이 먼저다’에서 장애인을 비롯한 약자가 더 먼저라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그래야 힘없는 사람들이 희망을 갖고 기다릴 수 있을 테니까요.

사회학자 수전 웬델이 “인간은 어느 한 시기에는 장애적인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하였듯이 장애는 그렇게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장애는 미리 알아두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하나의 경험적 상식이기에 ‘장애인 먼저’ 사회를 만드는 것은 모든 국민을 위한 일입니다.

하여 대통령께 2018 평창 동계장애인올림픽을 고령자나 장애인을 위해 문턱을 없애자는 뜻의 문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가 실현되는 문화올림픽으로 만들어주십사 하는 청을 드립니다.

<방귀희 | (사)한국장애예술인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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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1월이면 교사들을 난처하게 만드는 연례행사가 돌아온다. 학교폭력 예방 승진 가산점 대상자 심사다. 말은 좋다. 학교폭력을 예방하자는데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리고 학교폭력 예방에 헌신한 교사가 보상을 받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문제는 보상의 종류가 승진가산점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주어지는 방식이 경쟁이라는 것이다.

승진가산점이란 교사가 교감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경력 평정에 부여하는 것으로 10년을 부지런히 모으면 만점이다. 그런데 교감은 수업을 하지 않는 교원으로 교육행정직에 가깝다. 그러니 이 승진이라는 말 속에는 교사들에게 교육을 직접 담당하는 자리에서 한발 비켜난 행정직으로 옮겨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라는 반교육적인 메시지가 숨어 있다.

게다가 학교폭력 예방 승진가산점은 전체 교사의 40% 이내에게 부여하도록 되어 있다. 교사들더러 이 40% 안에 들어가기 위해 학교폭력 예방 경쟁을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경쟁의 보상이 승진가산점이기 때문에, 이는 마치 10년간 부지런히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경쟁하면, 그 보상으로 애들 안 가르쳐도 되는 자리로 보내주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교육에 대한 사명감이 높고 헌신적인 교사들에게는 상당히 모욕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말이다. 교육당국이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고 지도하는 교육행위를 마치 경쟁에서 탈락했거나 나태하기 때문에 받는 벌처럼 바라보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당연히 교육 열의가 높은 교사일수록 이 승진가산점이라는 유인에 별로 반응하지 않는다.

학교폭력 예방은 승진가산점을 놓고 경쟁하는 몇몇 교사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학교폭력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올베우스나 살미발리 같은 학자들도 학교폭력에 대해 가해학생을 제재하고 피해학생을 치유하는 정도로 해결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학교폭력은 학생들의 경쟁 밀도, 스트레스, 빈부격차, 가정, 학교, 사회의 폭력에 대한 둔감성 같은 것들이 모두 어우러져 발생하는 복합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학교폭력은 승진가산점을 놓고 경쟁하는 몇몇 교사들의 노력 봉사가 아니라 학교 전체가, 교육 체제 전체가, 나아가 사회 전체가 협력해야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학교폭력 적기로 유명한 북유럽 학교들의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들을 살펴보아도 가해학생, 피해학생뿐 아니라 모든 학생과 교원들이 함께 참여하도록 되어 있다. 일부 가해자나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라 학교 전체, 학생들의 상호작용 전체를 개선함으로써 학교폭력을 예방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학교폭력 예방에는 학교 공동체 전체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40%에게만 가산점 등의 보상을 줄 테니 선생들더러 경쟁하라는 발상은 사실상 학교폭력 예방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는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교육당국이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만들어 놓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에 불과하다. 교사들에게 교육에서 멀어지는 것이 보상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주고, 교사들을 무의미한 경쟁으로 몰아넣으며, 학교폭력 예방에 필수적인 전체 학교 공동체의 협력을 훼손하는 학교폭력 유공교원 가산점은 백해무익하며 그 존재 자체가 폭력이다. 즉시 폐지해야 한다. 다행히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가산점 신청자가 전체 40%에 미달되어 난감한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난 3년간 학교폭력이 꾸준히 줄어들었다.

<권재원 |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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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30년 전 폴 버호벤 감독의 영화 <로보캅> 주인공 머피는 일종의 ‘킬러로봇’이다. 치안활동을 벌이다 최악의 경우 방아쇠를 당길 수 있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그런데 개인적인 감정을 말소하지 않은 프로그램이 실수로 삽입돼 정체성의 혼돈에 빠진다. 방아쇠를 당길 때 인간처럼 머뭇거리는 행동을 보인 것이다. 이것은 머피가 인간과 기계의 하이브리드라는 ‘출생의 비밀’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2013년 4월 23일 영국 런던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열린 ‘킬러 로봇을 멈춰라’ 캠페인에 등장한 로봇. 출처: Gettyimages이매진

감성(윤리의식)이 거세된 킬러로봇은 이와 다르다. 무고한 인간을 ‘아무런 감정 없이’ 적으로 인식해 공격할 수 있다. 로봇이 인간을 곤경에 빠뜨리는 묵시론적인 장면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섬뜩하게 그려진 적이 있다. 이를 예견했던 SF작가 아이작 아시모프는 <라이어>에서 로봇의 3대 원칙을 만들었다. 요약하면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되고, 인간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하며, 이들 두 가지에 위배되지 않는 경우 로봇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도 모자랐는지 <로봇제국>에서 ‘로봇은 인류에 해가 가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추가했다.

킬러로봇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월 미국 국방부는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고위 군 사령관인 카리 야신을 드론 공습으로 살해했다고 밝혔다. 전투용 드론은 원격지에서 조종사들이 조종하는 로봇이다. 또한 미 해병에서는 기관총과 센서를 부착한 무인전투로봇을 실전배치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최근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인공지능(AI)의 잠재적인 리스크에 대비하지 않으면 그것은 강력한 자동화 무기나 소수가 다수를 억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13일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특정재래식무기금지협약 회의에서 킬러로봇을 주제로 해 논의한다고 한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구글 딥마인드의 무스타파 술레이만 등 기업인 100여명은 지난 8월 킬러로봇 금지요청 서한을 유엔에 보낸 바 있다. 킬러로봇이 독재자·테러리스트의 손에 들어가거나 해킹을 당하면 대형참사를 빚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AI가 탑재돼 스스로 움직이는 킬러로봇이 출현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섬뜩할 뿐이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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