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가르치기, 키우기'에 해당되는 글 393건

  1. 2018.06.12 [학교의 안과 밖]학교 너머의 삶
  2. 2018.06.05 [학교의 안과 밖]‘문제 학생’ 어떻게 지도할까
  3. 2018.05.23 [학교의 안과 밖]대입제도개편, 숙의자료가 중요하다
  4. 2018.05.15 [학교의 안과 밖]단순 통계와 왜곡된 해석
  5. 2018.05.14 [김진경의 교육으로 세상읽기]교육정책 지형 변화와 시민의 참여
  6. 2018.05.04 [편집국에서]아버지
  7. 2018.04.16 [김진경의 교육으로 세상읽기]미래교육 생태계지도
  8. 2018.04.05 [시론]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의 대학교육
  9. 2018.03.20 [학교의 안과 밖]사교육 부추기는 자유학기제
  10. 2018.03.19 [김진경의 교육으로 세상읽기]미투 운동 시선과 닮은 대입제도 개혁
  11. 2018.03.16 [정동칼럼]교육 현안, 공론화 방식을 확 바꿔야
  12. 2018.03.16 [사설]역대 최고 기록한 사교육비, 이대로 방치할 건가
  13. 2018.03.16 [기고]학교폭력, 처벌이 아닌 관계 회복으로 접근해야
  14. 2018.03.13 [속담말ㅆ·미]자식 자랑 말고 자식 자랑 돼라
  15. 2018.03.13 [학교의 안과 밖]‘수능·EBS 연계’ 헌재 결정 유감
  16. 2018.03.13 [전우용의 우리시대]현모양처의 시대
  17. 2018.03.07 [기고]일본 논술형 입시 개혁의 실상
  18. 2018.03.06 [학교의 안과 밖]조심해서 써야 할 교육통계
  19. 2018.03.02 [사설]‘독서에 대한 공부’에서 ‘독서’로 바뀌는 초·중등 교육
  20. 2018.02.27 [학교의 안과 밖]교장, 자격증보다 자격

마감 중에 메일을 한 통 받았다. 작년에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열여섯 살 청소년이 보낸 메일이었다. 덧붙여 보낸, A4 다섯 장에 달하는 기고문에는 자신이 학교를 그만둔 이유와 그 과정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성적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학교의 일상이 답답했고, 모르는 것 투성이인 세상이 궁금해 다른 경험들을 해보고 싶었을 뿐인데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 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엄청난 문제아가 되어 있었다고.

예전에 비해서는 좀 덜해진 듯도 하지만, 여전히 이 사회에서 학교가 갖는 권위는 견고하다. 그 권위는 학교가 제 기능을 잘 수행해서라기보다는, 그 외엔 선택지가 별로 없는 독점성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학교의 높고 단단한 지위는 청소년들을 대하는 일반적인 태도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처음 만난 십대에게 “어느 학교 다니니?” “몇 학년이니?”부터 묻는 것은 흔한 일이다. 종종 걸려오는 상담 전화에서 걱정으로 가득 찬 부모들의 첫마디 또한 “아이가 학교를 안 가려고 해요”이다. 본디 아이들이란 ‘학교에 있어 마땅한 존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교를 그만두는 건 이 사회에서 도태 혹은 낙오되는 일이라는 부정적 시각이나, 당장 학교를 나오더라도 그 다음의 선택지가 별로 없는 빈약한 현실도 두려움 생성에 일조한다.

다양한 이유로 학교를 그만둔 청소년들은 실제로 ‘학생’이라는 자격을 상실함과 동시에 발생하는 모든 리스크를 오롯이 홀로 감당해야 하는 현실에 맞닥뜨린다. 한 홈스쿨러는 배우가 되고 싶어 찾아간 극단에서 3년 넘게 착취와 폭행을 당하다 겨우 그곳을 빠져나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십대 때 찾아갔다가 이미 청년이 된 그 홈스쿨러는 “다 널 위한 거야”라는 연출가의 교묘한 모럴 해러스먼트에 빠져들어 그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힘들어하고 있다. 아이의 자유로운 배움을 존중해주고 싶어서 선택한 길인데 일이 이렇게 되도록 몰랐다고, 부모의 자책도 이루 말할 수 없다.

학교 바깥에서의 리스크가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더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센터 개설 등 제도적 지원은 늘고 있는 추세지만, 학교 밖을 선택한 이들에게 절실한 것은 복지 차원의 교육 프로그램 제공이 아니라 그 낯설고 불안한 길을 함께 의논하고 의지하며 걸어갈 ‘사람들’이다. 앞서 메일을 보낸 청소년은 학교를 그만두기까지 여러 단계의 상담을 거쳐야 했는데, 상담 과정에서 “그러다 인생 망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학교 밖 공간에서 자신의 선택을 격려해주는 사람들을 만나 원하던 배움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그 친구는 악담인지 조언인지 모를 어른들의 말을 보란 듯이 되받아쳤다. “학교를 나왔지만, 내 인생은 망하지 않았어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이라는 말이 유행이지만, 책임지고 있는 그 자신이 포기하기 전에는 쉽사리 망하지 않는 게 인생이다. 학교의 권위가 작용하지 않는 변방에서도 제 인생을 열심히 책임져보려는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도움닫기는 무엇일지 고민해볼 일이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는, 남들과 같지 않더라도 그 선택을 존중받고 지지받는 반복적인 경험이 필요하다. 실패한 인생이란 없다는 사실을 배울 기회가, 비단 그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닐 테다.

<장희숙 |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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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명이 같이 공부하는 교실의 수업시간이다. 수업이 시작되었지만 철수는 수업교재와 필기구가 없다. 좀 지나 철수는 큰소리로 떠든다. 교사는 철수에게 경청하라며 주의를 준다. 수업이 잠시 끊긴다. 철수는 교실을 돌아다닌다. 교사가 지적하니 펜을 빌린다고 한다. 수업이 다시 끊긴다. 진수는 짝에게 말을 걸고 짝의 필통을 건드린다. 다시 교사가 집중하라고 말한다. 대다수 교과시간에서 비슷하다.

이 교실에서 교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두 학생의 행동을 못 본 척하고 다른 학생들만 가르쳐야 할까. 그럼 방해 행동으로 수업이 되지 않는다. 28명의 학습권과 2명의 학습권과 교사의 교육권 중 무엇을 존중해야 할까. 교사의 제지에도 학생이 수업 방해 행동을 계속해도 교실 밖으로 격리하기는 힘들다. 학생의 수업권 침해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매일 일어나는 교실은 많다. 두 학생의 행동습성은 여러 해에 걸쳐 지속되고 심해진 것이다. 해당 학급의 수업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교사는 다른 학생들에게 미안하다. 두 학생에 대해서도 답답하고 안타깝다. 다수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경청하고 참여하자고 함께 정한 학급 약속을 지키고 공적인 시공간에 대해 존중하기를 원하지만 해당 학생은 미안해하지 않는다. 교과 교사는 이유를 물어보고, 타이르기도 하고 꾸짖기도 한다. 담임교사는 학부모와 상담한다.

수업 방해가 지속적이고 심한 학급에 대해 학년에서 같이 고민하고, 학생선도위원회를 열어 선도절차를 밟는다. 그래도 그때뿐인 경우가 많다.

교사들이 지치는 것은 문제행동을 반복하는 5~10%의 학생들에게 에너지가 소진될 때다. 전체를 보면 소수다. 이 소수의 학생들에게 에너지를 쏟는 것이 공평한 것일까. 학교는 교육목표에 따라 학생에게 적절한 교육적 방법을 적용하는 곳이다. 공평하다는 판단은 교육적으로 효과가 있는 것인가로 해야 한다. 소수 학생이지만 문제행동은 공동체 문화에 시나브로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또한 문제행동을 하는 학생도 자존감 있고 타인을 배려하는 시민으로 성장할 기회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교사들이 보통 이 학생들에게 지도와 상담을 하며 몇 배의 품을 들이지만 학생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문제행동의 원인이 여러 가지이고 10여년간 몸에 밴 습관이 고착되었기 때문이다. 성장과정에서 여러 요인으로 인해 심리적·인지적·도덕적으로 적정한 발달이 이뤄지지 않았거나 존중받는 관계를 맺는 사회적 기술이 없거나 무기력하거나 부정적 습관이 생활화된 경우 등등.

한 명의 보통 교사가 해도 교육이 가능한 학생이 있다. 반면 한 명의 보통 교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학생도 있다. 후자의 경우, 지금 교실에서는 교사 혼자 오롯이 버텨내고 있다. 학생의 어려움의 원인에 따라 다양한 교육적 지원을 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원인에 따라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거나 학습, 심리, 문화, 복지 지원 등 다양한 해결책이 필요하다. 교과수업 지도에 훈육과 돌봄까지 개별 교사에게 오롯이 맡겨져 있다. 모든 학교에 일반교사 외에 상담전문, 복지전문, 진로전문인 교사가 배치되어 있지는 않다.

전문성이 있는 다양한 교직원을 확보한 학교라면 학년부와 관련부서가 학생 성장을 위해 협업하는 시스템으로 움직여야 한다. 무엇보다 학생의 성장과 수업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서 말이다.

<손민아 | 경기 전곡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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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중3 학생부터 적용되는 2022학년도 대입제도는 사실상 국가교육회의가 결정한다. 정확히는 국가교육회의 산하의 대입제도개편특별위원회 산하의 공론화위원회 산하의 시민참여단이 결정한다. 하청에 재하청을 주는 방식에 대한 시시비비는 뒤로 미루자. 주사위는 던져졌다. 지금은 시민참여단이 최선의 결정을 할 수 있도록(또는 최악의 결정만은 피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을 때다.

지금으로선 시민참여단에 제공하는 ‘숙의자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제로 공론화위원회는 지난 16일 “시민참여단이 대입제도에 대해 잘 모를 수 있어 숙의자료를 충분히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공론화위원회는 정말 중요한 숙의자료를 확보했을까.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어떤 자료를 말하는 건가?

첫째, 한국사와 영어에 대한 광범위하고 객관적인 조사자료다. 그동안 이들 과목에서는 학교의 수업·시험과 학생의 공부내용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한국사·영어에서는 이미 수능 절대평가제가 시행됐다. 한국사는 수능필수로 지정될 때부터 절대평가제였다. 영어는 작년부터 시행됐지만 학교의 수업·시험을 기준으로 보면 3년 예고제로 인해 이미 2015년부터 절대평가제가 시행됐다. 한국사·영어 수능 9등급 절대평가제는 수업·시험·공부내용에 어느 정도의 변화를 일으켰는가?

둘째,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에 대한 광범위하고 객관적인 조사자료다. 이들 과목에서는 학교의 수업·시험, 학생의 공부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 현 고1 학생들에게는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고 있다. 이전과 크게 다른 점은 통합사회와 통합과학 두 신설과목을 모든 학생이 배운다는 것이다. 그런데 수능 개편안이 1년 연기되면서 생긴 우연한 결과로 인해 고1 학생들은 입시제도 개편안이 어떻게 결정되든 수능에서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치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사상 처음으로 수능의 영향이 완전히 배제되고 내신의 영향만을 받게 된 주요과목의 수업·시험과 학생의 공부내용에 나타난 변화를 알아볼 수 있게 됐다. 시행기간이 짧은 한계가 있지만 하늘이 준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이 정도의 숙의자료가 제공돼야 시민참여단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다. 수능제도 개혁을 우선해야 하는지, 내신제도 개혁을 우선해야 하는지, 아니면 둘 다를 동시에 해야 하는 것인지, 그 어떤 판단이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목소리 큰 소수가 아니라 침묵하는 다수를 토대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시간이 부족한데 이런 조사가 가능할까?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미 교육청-학교에는 잘 구축된 조사 시스템이 존재한다. 수천·수만 교사의 의견을 1주일이면 알아볼 수 있다. 학교폭력실태조사 시스템 등을 활용하면 수십만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도 한 달 이내에 알아볼 수 있다.

이러한 조사자료는 단순히 시민참여단을 위해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진 대입제도를 둘러싼 사회갈등을 완화하는 데에도 꼭 필요하다. 예컨대 수능에 전 과목 절대평가제를 도입하면 그에 반대한 사람들이, 지금처럼 상대평가제를 유지하면 그에 반대한 사람들이 반발할 것이다. 내신제도에 절대평가제를 도입하거나 도입하지 않거나 해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면 반대 입장의 사람들을 승복시킬 수 있을까. 최선의 조사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이기정 | 서울 미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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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교통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우리나라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23만2035건이다. 그런데 교통안전이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다고 평가받는 일본에서는 우리의 두 배가 넘는 53만6899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상대적 수치를 비교하면 내용은 정반대가 된다. 자동차 1만대당 사망자는 일본이 0.5명이지만 우리나라는 1.9명, 인구 10만명당 사망자는 일본이 3.8명인데 우리나라는 9.1명으로 거꾸로 격차가 확 벌어지게 된다. 이런 착시 현상 때문에 교통사고 관련 통계는 반드시 상대적 수치를 활용하기 마련이다.

이런 착시는 교육 분야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독일 연방통계청에서도 근무했던 통계학자 게르트 보스바흐 박사가 한 토론회에서 겪은 사례다. 독일에서 사회적 위기로 논의되고 있는 인구문제 및 교육정책에 대한 토론회였는데 당시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 가족부 장관은 주정부에서 신규 교사 1000명을 채용했다고 자랑스레 발표했다. 그러자 보스바흐 박사는 베스트팔렌주에는 학교가 몇 개나 되느냐는 질문했고 당황한 장관이 우물쭈물하자 다른 교수가 공립학교만 7000개쯤 된다고 말해주는 순간 장내 분위기는 싸늘하게 바뀌었다고 한다. ‘무려 1000명이나 되는 교사를 채용’한 것이 아니라 ‘7곳의 학교 중 1곳만 신규 교사를 채용했다’는 의미였으니 장관은 통계 숫자로 공공연히 사람들을 속이려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우리나라의 한 교육전문가는 “서울대 정시는 100% 수능으로 선발해요. 근데 정시에서는 일반고 출신 합격자가 59.3%예요. 반면에 특목고와 자사고 출신 합격자는 39.2%입니다. 도대체 어떤 근거로 수능이 일반고에 더 불리하다는 주장을 하는 걸까요?”라고 인터뷰했다. 실제 2018학년도 서울대 정시 입시에서 일반고 출신은 510명이 합격했고 특목고와 자사고에서는 불과 337명이 합격했으니 이 숫자만 보면 일반고가 수능전형에서도 월등한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 맞다. 그런데 이 주장을 알게 된 몇몇 고등학생들이 자료를 찾아보더니 이런 반박 논리를 이야기해 주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일반고 학생은 119만3562명이고 특목고는 6만7960명, 자율고는 13만3896명이다. 일반고 학생 수가 특목고와 자율고 학생 수의 여섯 배에 가깝다는 것을 고려하면 일반고의 수능 경쟁력이 특목고와 자사고에 비해서 크게 떨어진다고 보아야 하고,  최근 보도에 따르면 서울대 정시전형 합격자들 중에서 강남·서초·송파 3구 출신이 무려 169명이나 된다고 하니 그나마 교육특구 지역을 제외한 일반고 출신 학생들이 수능으로 최상위 대학에 진학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평범한 고등학생들도 쉽게 찾아내는 수능시험의 문제점에 대한 여러 통계자료들이 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왜곡된 통계자료와 감성적 논리를 통해서 구성된 주장들이 정부나 국회에서 입시정책을 세우고 법안을 심의하는데 영향을 줄 때 생기게 될 문제를 생각해보면 정말 심각하다. 물론 정부와 교육청, 정치권이 일반고 교육동아리 학생들보다 나은 판단을 해 줄 것을 기대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고 했다. 그래서 걱정이다.

※참고 자료 독일사례: 게르트 보스바흐 <통계 속 숫자의 거짓말>, 교육전문가 인터뷰: 이기정 <입시의 몰락>, 통계청 e-나라지표

<한왕근 | 교육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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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공지능 자동화니 4차 산업혁명이니 하는 말을 들으면 으레 인공지능 자동로봇이 움직이고 있는 산업현장의 변화를 떠올린다. 최대한 생각의 폭을 넓힌다고 해도 대개의 경우 그로 인한 일자리의 소멸과 실업의 증가 정도에 멈추기 마련이다. 그러니 인공지능 자동화의 진전이 교육정책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었고 최근의 교육정책을 둘러싼 갈등의 원인도 일정 정도는 거기 있다고 하면 모두 “웬 아닌 밤중에 홍두깨야?” 할 것이다.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의 인공지능 자동화 속도가 대단히 빠르다는 것부터 이야기해야겠다. 로봇 밀도라는 통계가 있다. 로봇 밀도란 제조업 분야 노동자 1만명 대비 산업로봇 설치 대수를 말한다. 이 로봇 밀도에서 한국은 2016년 현재 631대로 압도적 세계 1위이다. 싱가포르가 2위로 488대, 독일이 3위로 309대, 일본이 4위로 303대, 미국이 7위로 189대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공지능 자동화의 급격한 진전이 교육정책 지형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1960년대 이래 김영삼 정부 때까지의 산업사회에서 대중교육의 개혁에 대한 요구는 주로 경제 산업계에서 왔다. 산업구조가 중공업 단계로 바뀌었으니 실업계 고등학교를 늘려 숙련 노동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둥, 고도 산업단계로 접어들었으니 대학을 늘려 고급 인력을 많이 공급해줘야 한다는 둥 하는 식이다. 산업사회에서는 이렇게 산업단계에 맞는 인력 양성에 대한 요구가 국가 교육개혁정책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왔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개혁정책에 범정부 차원의 힘이 실리는 좋은 측면도 있었지만 국민의 뜻을 수렴하는 아래로부터의 개혁의 여지는 별로 없었다. 국민과의 소통이라야 내리먹이기식으로 교육개혁정책을 계몽하는 수준 이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인공지능 자동화 기술이 진전되기 시작하면서 경제 산업계의 대중교육에 대한 관심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대중교육을 통해 양성된 인력이 해야 할 일들을 인공지능 자동 로봇이 점점 대체해가니 산업계에서는 대중교육에 대해 아쉬울 게 없어졌다.

그나마 경제 산업계에서 관심을 갖는 것이 글로벌 차원에서 노는 영재교육인데 그건 이미 카이스트는 과기정통부, 한국예술종합대학은 문체부, 폴리텍대학은 노동부, 국제학교는 기재부 하는 식으로 대부분 교육부 소관이 아니게 되었고, 앞으로 더 그렇게 되어갈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산업구조가 이렇게 바뀌었으니 거기에 맞는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 대중교육을 이렇게 개혁해야 한다는 요구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다. 이것은 대중교육의 입장에서는 기회이기도 하고 위기이기도 하다.

대중교육을 경제적 가치로만 바라보는 경제 산업계의 요구가 약화되면 대중교육이 경제적 종속을 벗어나 본래의 사회적 가치 실현으로 방향을 틀 수 있으니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가 벌였던 교육개혁운동인 ‘새 교육 공동체’ 운동은 이러한 지향을 잘 보여준다. ‘새 교육 공동체’는 그 명칭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대중교육의 사회적 가치에 중심을 두고 지역 단위의 교육생태계, 생활생태계 구축을 지향하고 있었다. 디지털 지식정보화 사회, 인공지능 자동화 사회의 기술적, 경제적 발전 역시 그에 걸맞은 사회적 토대의 구축, 사회적 가치의 실현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이러한 교육적 지향은 정당한 것이었고, 다소 이른 감이 있어 당시엔 실효를 거두진 못했지만, 노무현 정부 말기에 혁신학교 운동으로 부활하게 된다.

인공지능 자동화 시대에 경제적 편향을 가지고 대중교육을 보면 대중교육은 그 존재이유가 불분명한데 재원만 많이 들고 늘 소소한 이해관계 충돌로 시끄러워 부담스럽기만 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한다. 이렇게 되면 대중교육은 계륵이 되어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대중교육이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 건 이명박 정부에서이다.

이명박 정부는 대중교육을 경제적 효율성의 관점에서만 보아 첨단 산업 시대에 유용한 영재를 선별하기 위한 장치 이상으로 보지 않았다. 그래서 국제학교 특목고 자사고 등으로 학교를 서열화하고 본토 발음 영어 바람을 일으킴으로써 유치원까지 이 선별 경쟁에 휩쓸리게 하였다. 대중교육의 사회적 가치는 철저히 짓밟히고 대중교육의 주인이어야 할 70, 80%의 아이들은 버려졌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대중교육 자체를 송두리째 부정했다는 점에서 거의 적폐에 가깝다. 지금 수능 정시 확대를 호소하며 다니는 학부모들은 사실 이 적폐적 정책의 피해자들이다. 자녀가 특목고 등의 선발에서 탈락하고 일반고에 왔는데 상위권 대학은 압도적 비중의 학종을 통해 주로 특목고생만 뽑아 다시 한번 경쟁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극히 좁은 문이지만 학종을 시도해 보려 하는데 일반고에서도 상위권이 아니라고 학생부를 제대로 기록조차 해주지 않는다. 이제 역전의 기회는 수능 정시뿐인데 비율이 낮아 역시 너무 좁은 문이 되어있다.

이 학부모에게 정말 문제 되는 것이 수능 비율일까? 아니다. 정말 문제 되는 것은 반복된 좌절이고, 반복된 좌절을 겪게 한 조기 선별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적 적폐이다. 지금은 좌절의 반복으로 생긴 한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수능 비율을 향해 있는 것일 뿐이다.

대중교육의 위기 속에서 너무도 많은 학생 학부모들이 조기 선별에서 탈락하여 없는 존재 취급을 받으며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이 상처를 치유하고 대중교육을 바로잡는 길은 과연 무엇일까? 우선은 경제 편향에서 벗어나 대중교육의 사회적 가치에 방점을 찍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관점에 맞게 정책의 입안 단계부터 시민사회가 참여할 수 있는 교육 거버넌스의 일대전환이 필요하다. 사회적 가치에 입각한 교육정책은 그렇게 만들어져야 하고, 위에서 내리먹이는 정책의 골격이 없으니 앞으로의 교육정책은 그렇게 만들어져야 한다.

<김진경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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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한 달여 전 암수술을 했다. 3년 전에 이어 두 번째다. 다행히 수술은 잘됐다. 아버지는 지난해 갑자기 눈이 안 보인다며 안과를 찾아갔다. 시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경고를 받았다. 눈에 여러 번 주사를 맞았는데, 앞으로도 더 맞아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는 1934년생이다. 한국 나이로 여든다섯. 젊을 때 앓아누운 적이 없다 했으나 세월엔 장사 없는 법이다. 차에 탈 때 아버지는 느릿느릿 몸을 말아 넣는다. 

아버지가 몇 해 전부터 주민자치센터에서 운영하는 컴퓨터 교실에 다닌다. 요즘은 엑셀 프로그램을 배운다. “느그 아버지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아침부터 컴퓨터 배우러 간단다.” 어머니가 말했다. “저도 엑셀 잘 모르는데, 아버지가….” 팔순 노인이 엑셀을 배워 어디에 쓸까. 가계부를 정리할 것도, 사업계획서를 쓸 것도 아닐 터이다. 그저 세월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그런 생각이 아닐까?

지금 세상은 청장년 시절 아버지가 부대껴온 세상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알파고로 대표되는 AI는 물론이고, 사물인터넷, 드론과 가상현실 체험까지 등장했다. 전상진 교수는 &lt;세대 게임&gt;에서 ‘시간의 실향민’이란 표현을 썼다. 변화의 속도에 맞출 수 없는 사람들이 과거 시대에 머물며 실패자로 낙인찍히는데, 이에 맞서 저항하는 노인 등이 ‘시간의 실향민’이라고 했다. 개발독재시대 때만 생각하며 박정희·박근혜를 연호하는 태극기 시위대를 두고 한 말이다. 한데, 이념 성향을 떠나 생각해보면 나도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는 데 가랑이가 찢어지는 ‘시간의 지각생’이다. 1991년 입사했을 때는 원고지에 기사를 썼다. 수화기에 대고 기사를 부르거나 팩시밀리로 보냈다. 지금 기자들은 사건 발생 즉시 온라인으로 기사를 송고하고, 페이스북·트위터 같은 SNS를 통해 뉴스를 뿌린다. 앞으로는 동영상 시대란다. 뉴스 제작환경은 천지개벽했다. 나도 눈이 핑핑 도는데 하물며 아버지는?

노인들이 체감하는 세상의 변화속도는 젊은이보다 더 빠르다. 과학적으로 그렇다. 나이가 들면 신진대사가 느려진다. 시간은 같은 속도로 흐르는데 몸이 못 따라가니 시간의 흐름이 상대적으로 빠른 것같이 느낀다.

아버지는 역사를 핏물로 기록하던 시대를 살아왔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났다. 한국전쟁으로 큰형(내게는 큰아버지)을 잃었다. 장자를 잃은 상심으로 드러누운 아버지(할아버지)도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박정희와 전두환 등 두 번의 군사쿠데타를 지켜봤다. 네 번의 민주주의 혁명을 체험했다. 4·19와 1980년 광주항쟁, 1987년 민주화운동 그리고 촛불혁명까지. 소년·청년·장년·중년·노년까지 그의 몸을 관통한 것이 다 역사였다. 때로는 총으로 쓰이고, 때로는 핏물로 기록되고, 나중에는 촛불로 밝힌 바로 그 역사의 목격자이자 주인공이다. 어느 순간이 가장 강렬했을까. 자신의 목숨줄만 아니라 가족의 생명까지 위태로웠던 그런 순간들일 것이다. 내가 조금 힘들 때, 희한하게도 어려운 시절 아버지의 초조한 표정이 불쑥 떠오른다. 

아버지는 사업도, 장사도 했다. 한 10년 장사가 잘되다가도 갑자기 어려워지곤 했다. 정치·경제·사회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림살이만 변하지 않고 편안할 리 없다. 농경제, 경공업, 중화학공업, IT, AI까지 산업구조도 혁명적으로 변해왔는데 이런 구조적 변화를 끝까지 버텨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박수를 받을 만하다. 예전엔 사업에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친지들이 쌈짓돈을 추렴해 재기 자금을 보탰으니까. 지금은? 말 꺼내기도 어렵다고 한다.

아버지는 가끔 묻는다. “대통령은 어떠냐, 지방선거는?” 그러고는 내 의견에 자신의 생각을 포갰다.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을 테니 네 뜻대로….” 내 형제들이 “대학 졸업해도 취직하기는 저희 어릴 때보다 더 나빠졌다”고 하면 아버지는 “내 손주들은 잘될 터이니 걱정 마라” 했다.

어릴 때는 누구나 아버지의 등에 업혀 세월의 징검다리를 건넌다. 문득 내 아이들이 나를 앞질러 가고 있을 때 비로소 아버지를 돌아본다. 팔순 넘어서도 컴퓨터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아버지. 

‘모든 역사는 현대사’란 말이 있다. 역사는 현재 건재한 사람들에 의해 다시 해석되고 의미를 부여받는다는 것이다. 비틀어 생각하면 자신의 몸으로 역사를 썼던 주인공들인 노인들은 이제 기록자가 아니라 역사 속의 인물, 객체가 됐다. 그래도 노인들은 현재의 끈이라도 잡으려 한다. 영어도, 컴퓨터도 배운다. 한데 청장년들은 그들이 걸어왔던 시절을 얼마나 이해하려고 노력할까. 눈부시게 찬란한 5월. 연초록 새싹도 늙은 가지에서 비어져 나오는구나!

<최병준 문화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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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질 수도 있으니 좀 가볍게 수수께끼 형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그간 우리 사회에 수많은 파업이 있었지만 이 파업처럼 장기간 진행되고 있는 파업은 일찍이 없었다. 또 이 파업처럼 정부와 사회가 무대책으로 일관한 적도 일찍이 없었다. 이 파업은 단기간에는 그 심각한 결과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파괴적 결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해법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고, 일단 그 파괴적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해법을 찾더라도 복구하는 데 장구한 시간이 걸린다. 이 파업의 이름은 무엇일까?

답은 출산파업이다. 페미니즘의 입장에 서 있는 분들은 출산파업이란 말 자체를 불쾌하게 여기겠지만, 풍자적 의미로 쓰는 말이니 잠시만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그간 한국사회나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다루는 관점은 한국이라는 거대한 공장에서 일어난 만성적 출산파업에 대한 대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만성적으로 지지부진 진행되는 파업이니 그 대응이 급할 것도 없었다. 이미 2010년 삼성경제연구소는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50년까지 1159만명의 이민자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참 선견지명으로 가득한 미래적 보고서를 낸 바 있고, 정부의 실세인 경제관료들은 지금도 이 해법을 금과옥조로 신봉하고 있는 중이다. 말은 중립적(?)이고 과학적인 언어로 점잖게 하지만 결국 한국이라는 공장에 출산파업이 일어났으니 대체노동력을 투입해서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관점이 이러니 당근으로 주어지는 출산장려책이란 것도 무슨 수당을 찔끔찔끔 주느니 마느니 하는 유의 것이어서 애초에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 참담한 결과는 현재 50만이 넘는 대학신입생 수가 20년 뒤엔 20만 남짓으로 떨어진다는 사실, 매년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세계 최저의 출산율 등이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저출산의 근본 원인은 위와 같이 한국을 거대한 공장으로 보는 관점 자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노동력으로 보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관리하는 근대 산업국가 패러다임 자체에 있다.

피그미족과 함께 수년간 생활을 하며 연구한 인류학자의 보고에 의하면 피그미족의 주당 노동시간은 15시간이다. 피그미족은 그 이상으로 많은 노동을 하는 것을 금기시한다. 무척 게을러 보이기도 하고 이상해 보이기도 하는 이 피그미족의 노동시간은 그러나 자연생태계와의 관계에서 보면 매우 합리적인 것이다. 15시간 이상의 노동을 하면 피그미족이 생활하는 범위 내의 자연생태계가 점차 고갈되어 종족의 지속적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

인류학자들의 연구보고에 의하면 피그미족만이 아니라 역사시대 이전이건 이후건 수렵채취생활을 하는 종족들의 노동시간은 15시간 남짓이었다. 맹목적인 축적이 노동을 규정한 것이 아니라 자연생태계와 생활생태계의 조화가 노동을 규정하였다. 이러한 점은 전통 농경사회까지 대체로 마찬가지였다. 우리 고대소설 &lt;흥부전&gt;에서 흥부는 제비 다리도 고쳐주고, 부모와 자식, 형제 이웃과의 관계를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자연생태계, 생활생태계와의 조화를 추구하는 전통사회의 인물형이다. 이에 반해 놀부는 부의 축적을 위해 생활생태계와 자연생태계를 서슴없이 파괴하는 근대적 인물형이다. &lt;흥부전&gt;은 흥부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근대 산업사회는 인류 역사에서 보면 매우 짧은 기간 존속해온 예외적인 사회이다. 축적 자체를 위해 노동을 하고 맹목적 축적을 위해 자연생태계와 생활생태계의 파괴를 서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 결과가 온난화, 미세먼지 같은 심각한 환경 문제이고, 가족과 지역사회의 해체라는 생활생태계의 붕괴이다. 자연생태계가 파괴되고 생활생태계가 붕괴되면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유적 존재로서의 생존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느낀다. 이것이 산업화가 덜 진전된 못사는 나라가 산업화가 고도로 진전된 사회보다 행복도가 높고 유독 산업화가 고도로 진전된 사회에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나는 이유일 것이다.

근대 산업사회는 물질적 풍요라는 측면에서는 성공한 사회지만 삶의 질이나 행복도에서는 실패한 사회이다. 생산성 중심의 산업사회 패러다임에서 삶의 질 중심의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환은 인공지능자동화가 전면화하는 미래사회와도 맞는 방향이다. 그 패러다임의 전환이란 한국을 더 이상 거대한 공장으로 보지 않고 사람들이 깃들어 살아가야 할 생활생태계로 보는 것, 한국인을 더 이상 거대한 공장의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 일꾼으로 보지 않고 생태계를 조화롭게 꾸려나가야 할 주체로 보는 것일 게다.

얼마 전 교육 관련 국책연구원들을 순방할 기회가 있었다. 모두들 열심히 잘하고 있었는데 묘하게 남은 것은 답답함과 두려움이었다. 연구원이니 좀 여유를 갖고 앞에서 말한 미래 패러다임에 대한 고민 같은 것도 하고 있겠지 기대했는데, 보이는 것은 교육부처와 마찬가지로 생산성 중심 산업사회 시스템의 레일 위를 달려가는 기관차의 맹렬한 속도였다. 저렇게 맹렬한 속도로 달려가는 기관차가 이미 시야에 들어와 있는 인구절벽 아래로 떨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두려웠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인구 절벽에 대비하여 지역의 생활생태계가 지속 가능하도록 교육시스템을 어떻게 조정하고 어떤 시스템을 어디에 어떻게 남겨야 하는지 ‘미래교육생태계지도’를 그려야 한다. 그리고 그 지도에 따라 기관차의 속도와 방향을 조절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미래생활생태계지도를 그리면 좋겠지만 너무 많은 변수가 있어 어려우니 고정된 시스템을 다루는 미래교육생태계지도부터 그리자는 것이다. 교육기관은 지역 생활생태계의 구심점 역할을 하니 미래교육생태계지도는 현재 상태에서 가능한 미래생활생태계지도이기도 할 것이다.

<김진경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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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2000년 연 451만1000원이었던 4년제 사립대 평균등록금이 지난해 739만9000원까지 올랐다고 한다. 만약 2000년 이후 대학들이 매년 물가상승률만큼만 등록금을 올렸다면 지난해 등록금은 연 700만원 수준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비록 지난 수년간 대학들이 등록금을 동결 및 인하해 왔으나 여전히 대학 등록금은 ‘비싸다’는 주장이다. 더불어 향후 3~4년 동안 등록금 인상 억제 기조를 유지하면 2000년 이후의 대학 등록금 인상률이 같은 기간의 물가상승률과 비슷해질 것이라며 당분간 등록금 인상 저지 방침을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필자는 교육문제에 관심이 많은 경제학자로서 교육부의 이러한 주장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교육부가 등록금 동결을 고수해서가 아니라, 교육부 관료들의 무지함에 놀라서이다. 교육부가 제시한 계산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0년 소비자물가지수(기준연도 2015년)는 66.6으로서 지난해 소비자물가지수 102.9와 비교하면 그간 1.55배의 물가상승이 있었다. 만약 대학 등록금이 같은 비율로만 상승하였다면, 지난해 대학 등록금은 2000년 연 451만1000원의 1.55배인 약 700만원이 적합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가 놓친 것이 있다. 바로 우리 경제의 성장이다. 우리는 지구상의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지금은 1인당 GDP 3만달러를 내다보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다. 우리 사회의 모든 시스템과 재화 및 서비스의 공급이 이러한 경제성장과 궤를 같이한다. 교육 서비스 역시 이에 합당한 양적·질적 발전을 꾀하는 것이 바로 ‘성장’이다. 지난 2000년의 우리나라 1인당 GDP는 1만1950달러로, 원화로 환산하면 약 1351만원이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2만9740달러로, 원화로 환산하면 약 3364만원이다. 1인당 GDP로 따진다면, 2000년과 지난해의 차이는 무려 2.5배에 달한다. 말하자면, 2000년의 대한민국과 오늘의 대한민국은 완전히 다른 사회라는 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10년이 근 두 번이나 반복되었다.

그렇다면 경제의 성장과 사회 전반의 발전까지 고려한 적절한 수준의 등록금은 얼마인가. 당연히 2000년 당시 연 451만1000원의 약 2.5배인 1127만8000원이다. 만약 교육부가 2000년 당시의 대한민국에 걸맞은 대학교육을 원한다면 여전히 등록금은 ‘비싸다’. 만약 교육부가 2018년의 대한민국에 걸맞은 대학교육을 원한다면 지금의 등록금 약 740만원은 싸도 너무나 싸다. 소득 3만달러 시대의 대한민국에 소득 1만달러 수준의 대학교육을 강요하는 교육부라면 역사를 거꾸로 살기로 작정한 조직이다.

교육부의 등록금 동결 정책 자체에 대해 비난할 생각은 없다. 선진적인 복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시대적 요구를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등록금은 여전히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천문학적인 등록금을 요구하는 미국의 사립대학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은 대학 재정의 대부분을 국가가 보전하고 있다. 물론 등록금도 없다. 미국과 비교한다면 우리나라 사립대의 등록금이 아주 싼 편이지만, 등록금이 거의 전무한 다른 OECD 국가들과 비교하면 매우 비싸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정부의 장기적 전략과 정책적 판단이다. 대학 운영에 대해 미국식 자유화를 추구해갈 것인지, 무상교육에 기반한 유럽식 복지체계를 따라갈 것인지에 따라 대학의 재정조달 방식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우리나라는 교육 복지에 대한 국민적 요구의 증대에 따라 지난 10여년간 등록금 인하 정책을 고수해 왔다. 이는 장기적으로 유럽식 복지체계를 일부 수용하겠다는 정부 차원의 선언인 셈이다. 그러하다면 대학의 재정조달 역시 일정부분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러한 철학적 고민 없이 물가상승률 타령을 하면서 대학 등록금이 아직 비싸다고만 외쳐대는 것은 너무 안이한 태도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맞이하고 있다. 새 시대에 적합한 인재 양성을 위해 모든 국가들이 전략적으로 고등교육의 발전을 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지난해 사립대 평균등록금(약 740만원)은 딱 2009년의 등록금과 일치한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한다면, 2009년 이후 대학의 재정 상태는 ‘성장’은 고사하고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그나마 확대된 대학재정지원사업들은 되레 정치적으로 악용되며 대학을 더욱 혼돈 속에 빠져들게 했다. 진정으로 대학교육의 발전을 위해 존재하는 교육부라면 ‘등록금 동결’ 이상의 무언가를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김영철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교육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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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비 문제가 다시 화제이다. 학령인구가 감소했음에도 사교육비 총액이 늘어난다는 보도는 교육정책의 현실성 문제를 환기시킨다. 특히 정권 교체가 시작된 2016년부터 사교육비 지출이 늘어난 데에는 권력의 이념적 성향과도 관계가 있다. 과거 진보정권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유가 늘어날수록 불안이 증폭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조짐이 나타난다는 의미다. 통계를 보니 중학생 부모가 사교육비를 가장 많이 지출한다. 각종 예체능 활동이 아직 활발하고 교내 자율학습이 없으며, 외고 등 특목고나 과학고와 영재고 등 영재교육 학교 진학을 위해 투자하는 시기다. 여기에 자유학기제의 확산이라는 시사적 원인을 빼놓을 수 없다.

지식 위주 교과형 수업에서 벗어나 자신의 진로를 설계하고 과정 중심의 수행평가적 학업 능력을 향상하는 것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자유학기제는 긍정적인 반응을 얻으며 자유학년제로 확대되고 있다. 학생 주도형 수업 설계에서 시작해 실험이나 토론, 과제 수행이 중심이 된 교육은 유사한 형식으로 고등학교에도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다양한 체험을 뒷받침할 사회적 환경이 미흡하면 사교육 의존이 불가피한 데 있다. 앞으로 외고나 자사고는 폐지 수순을 밟더라도 영재 교육 특별법 대상인 과학고나 영재고는 존치된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학기제 확대는 최상위권 학생들에게 별도의 지식 습득이나 선행학습을 부채질하고 있다. 의대 입시가 자연계를 넘어 입시 전체를 컨트롤하는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어 수학이나 과학의 지식 위주 전문 교육에 대한 강력한 욕구는 자유로운 학교에서 채워지지 못한 채 학원에서 해소가 된다. 영재 교육 대상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러한 경향도 심화될 것이다. 그 정도 상위권 학생이 아니더라도 대학 입학은 현실의 문제인 만큼 학교에서 농사를 지어도 수업이 끝나면 국어와 수학을 주입해야 불안에서 벗어난다. 입시라는 상위 구조가 변화하지 않는 한 학교에서 체험을 늘릴수록 학원에서 객관식 문제를 푸는 역설은 심화될 것이다.

자유학기 내 과제 수행 능력을 위한 사교육 역시 명확히 감지되고 있다. 이는 우선 수업 내용의 질적 문제와 관련이 있다. 자유학기제에 대한 만족감은 운영주체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즉 실질적인 운영주체인 학교 선생님에 대한 지원 체계가 약한 지역에서는 수업 내용이 부실해 만족도가 떨어진다. 또한 토론이나 실험 역시 기술적인 능력과 물질적 비용이 많이 요구되는 만큼 부실 운영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지점에서 사교육이 자리를 잡는다. 자유학기제에서 우월성을 확보하려는 의도 역시 사교육 확대로 이어지는데, 여기에는 교육정책 홍보를 위해 우수 과제를 채집하는 교육부(청)의 욕심도 있다. 과정 중심 교육 선전을 위한 그럴싸한 결과물인 셈이다. 

이런 부분은 자유학기제가 고등학교에서 본격 시행되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고등학교에서 자유학기제의 과제 수행 능력은 생활기록부에 표기되어 대학 진학의 참고자료가 되므로, 수행평가를 위한 사교육 확대는 뻔히 예상된다. 만약 이러한 부작용을 우려해 대학 입학에 반영하지 않는다면 고등학교 자유학기제는 학교에서 놀다 학원에서 몰입형 수업을 받는 쭉정이 학기로 변질될 우려가 크다.

<정주현 | 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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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변화방향의 시금석이 될 만한 최근의 사건을 들라면 나는 서슴없이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응과 미투 운동을 들 것이다.

그 급작스러운 구성으로 인해 남측 선수가 팀에서 배제되는 피해를 입기도 했던 남북 단일팀에 대해 젊은 세대는 갑질이라는 신선한(?) 반응을 보였다. 가부장적 국가주의 혹은 민족주의에 젖어있는 우리 기성세대에겐 무척 당혹스러울 수도 있는 반응이다.

젊은 세대의 북에 대한 반응은 북을 자신과 똑같은 존재로 보아 다툼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기성세대보다 더 진전된 것일 수도 있다. 혼란의 원인은 젊은 세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는 남북관계를 더 이상 가부장적 국가주의, 민족주의로 잴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몸은 여전히 가부장적 국가주의, 민족주의에 머물러 있는 기성세대의 이중성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신선하다고 느끼면서도 당혹스러워한다.

이러한 이중성은 미투 운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미투 운동은 국가기구에서 비중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거나 과거 민주화운동의 명망가 등을 주 타깃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미투 운동을 보며 우리는 머리로는 가부장적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와 시스템이 한계에 와서 그 시스템의 가장 큰 희생자였던 여성들에 의해 무너지고 있고, 무너질 만한 때가 되었다고 이해한다. 그러면서도 몸은 여전히 가부장적 국가주의에 많이 머물러있기 때문에 한편으로 불편하다. 그리고 이제까지 우리 사회의 구심력 역할을 했던 가부장적 국가주의 혹은 민족주의를 대신할 대안, 합리성에 기초한 자유로운 개인의 연대가 어떤 모습일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다. 이러한 이중성이 가부장적 권력에 의해 미투 운동이 폄하되기도 하고 악용되기도 하는 최근의 왜곡을 가져오고 있다.

앞에서 나는 미투 운동이 우리 사회 변화의 시금석이 되는 사건이라고 했다. 이 말은 미투 운동의 방향성과 그것이 겪는 혼란이 그 본질에서 개혁 정책들의 방향성과 그것이 겪는 혼란과 다르지 않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오늘날 개혁의 큰 방향은 산업화 시대의 중앙집권적 국가주의 권력을 하부를 향해 분산시키는 분권화이다. 논의를 교육으로 국한시켜 살펴보자.

공교육의 근거는 “국민이 자녀교육의 권한을 국가에 위임했다”는 데 있다. 이렇게 자녀교육을 위임한 국민은 주권자로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공교육을 통제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 방식은 두 가지이다.

그 첫째는 한국교육이 전형적으로 그러했듯이 국민이 국가를 통해 간접적으로 공교육을 통제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지역 주민이 공교육을 직접 통제하는 방식이다. 미국 등의 나라처럼 지역주민이 교장을 초빙하고 교장이 교사를 초빙하여 학교를 구성하고 교장이 지역주민과 지자체 의회에 대해 책임을 지는 제도이다. 분권형 교육개혁이란 대략적으로 첫째의 국가기구를 통한 간접적 통제방식에서 두 번째의 주민 직접 통제방식으로의 이행을 뜻할 것이다.

교원들은 자신의 신분과 관련해서는 국가 통제방식을 고수한다. 교총은 지역주민이 자유롭게 교장을 초빙하는 내부형 교장공모제를 조직의 명운을 걸고 반대했고, 교원의 지방공무원화는 교원들의 반대 때문에 말도 꺼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러면서 교수 학습활동이나 학생에 대한 평가에선 주민 직접통제 방식의 학교에나 허용되는 국가로부터의 자율을 주장한다. 몸은 국가통제 시스템에 있는데 머리는 주민 직접통제의 학교시스템에 있는 것이다.

교원들의 대입제도 개혁에 대한 주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수능 같은 국가고사는 국가통제 시스템에서의 대학학생선발 방식이고 학생생활종합기록부 중심의 선발은 주민 직접통제 시스템에서의 대학학생선발 방식이다. 교원들은 수능의 대폭 약화, 학종 중심의 대학학생선발을 주장한다. 장기적으로는 맞는 방향이지만 분권형 교육개혁의 진전 정도가 미미한 현실에 비해 너무 과도한 주장이기 때문에 여론의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현행의 수능을 확대 강화하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잘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엘리트 교육의 원리이다. 한국은 대학교육까지 진학률이 70%에 이르러 대중교육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든 것을 잘하라는 엘리트 교육의 원리가 적용되고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엎드려 자고 소수만이 치열하게 경쟁하다가 번아웃되어버리는 고등학교 교실의 풍경은 그 참담한 결과이다. 일부 계층이 독점하는 사교육 시장은 이 엘리트주의 교육을 타고 번성해 왔다. 특히 고교 교육과정과 괴리된 현행의 수능은 일부 계층이 독점한 사교육 시장이 공교육 내부로 깊숙이 침투해 들어오는 통로가 되어 왔다. 현행 수능의 확대 강화는 교육의 공공성을 크게 훼손하고 학교교육을 산업화 시대에 계속 묶어두는 결과를 빚기 쉽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대안은 수능을 철저하게 고교 교육과정과 일치시키는 개혁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2015 교육과정은 문과·이과 통합 교육과정이다. 이 교육과정의 취지를 살리자면 수능 과목은 모든 학생이 이수하는 국어, 영어, 수학, 국사, 통합과학, 통합사회로 국한되어야 한다. 그리고 수학 2, 물리, 화학, 경제, 사회, 제2외국어 등의 심화 선택과목은 학종 중 교과 내신을 통해, 정의적 영역은 학종과 면접을 통해 평가하면 된다. 그러면 초기엔 수능과 내신, 학종의 비율이 예컨대 ‘5 대 3 대 2’인 수시·정시 통합의 대입이 성립된다. 이후 분권형 교육개혁, 고교학점제의 진전 정도에 따라 점진적으로 내신 비중 확대, 수능 비중 축소 및 자격고사화로 나가면 엘리트주의를 넘어선 미래형 대입개혁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김진경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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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정부를 자처하는 문재인 정부가 이끌어낸 한반도 평화의 새 기운은 더없이 반가운 일이다. 한 여성 검사의 용기 있는 폭로에서 시작된 거센 물결은 우리 사회의 근본적 갱신으로 가는 거대한 문화적 혁명의 신호탄이다. 촛불시민의 뜻과 힘이 하나하나 법과 제도로 정착되고 상식과 관행으로 녹아들어 일상의 삶 깊숙이 뿌리내려야 한다. 우리 사회 각 분야의 본격적인 적폐청산과 개혁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

하지만 해묵은 과제인 교육개혁은 아직 큰 틀의 청사진도 명확히 잡히지 않았다. 초·중등학교든, 대학이든 현장에서는 높은 기대가 점차 실망의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구체적인 개혁정책이 민심에 어긋나기 때문이 아니다. 도대체 개혁정책이 있기는 있느냐는 날선 질문이 나오기 때문이다.

작년 8월 교육부는 어설픈 수능 절대평가 확대안을 여론의 강한 반발로 1년 유예했고, 지난 12월 현장 실태에 어두운 탓에 영어 사교육과 관련해 말썽이 빚어지는 등 촛불정부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일반고와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입시를 동시에 실시하여 일반고 확대 정책을 풀어가려는 조치는 현행법의 제약에 따른 고민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헌법소원이 제기됨으로써 경우에 따라서는 개혁이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그동안 대학을 마구 망가뜨린 대학평가는 대학역량진단사업으로 바꿔 개선했다지만, 근본적 전환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지난해 11월 포항 지진 때 수능을 발 빠르게 1주일 연기하여 원만하게 처리한 공이 크지만, 김 장관의 교육부는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들을 과거와 다를 바 없이 대하거나 그저 미루고만 있다는 인상이다.

입장을 바꿔 김 장관과 교육부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우리의 교육 현실은 심하게 뒤엉킨 실타래인지라 어떤 해법이라도 완벽하지 않다. 불법과 비리가 만연한 사학 위주의 대학교육, 전문대학 정책의 부재, 강고한 대학서열구조 등 고질적 문제가 산적한 고등교육의 개혁이 착실하게 동반되지 않으면, 입시 위주의 파행적인 중등교육의 실질적 혁신은 무망하다. 돈만 있다고 개혁이 되지는 않지만, 고등교육은 획기적 예산 증액과 함께 5년, 10년의 일관된 정책이 시행되어야 개혁 성과가 뿌리내릴 수 있다.

그러나 교육부가 예산 타령이나 하며 주저앉거나 이해당사자들의 복잡하게 엇갈리는 주장 뒤에 자신의 직무태만을 숨겨서는 곤란하다. 진행 중인 촛불혁명에 어울리게 교육개혁 현안의 공론화 방식부터 일신해야 한다.

일반고 중심의 고교 체제 개편, 대입제도 개선, 공영형 사학과 국공립대 연합체제, 고등직업교육 정비, 등록금과 국가장학금 문제, 대학구조조정 등 굵직한 현안에 대해 교육부의 정책 수립 절차는 구태의연하다. 전문가와 이해당사자로 위원회를 구성하여 논의와 연구를 통해 결론을 내리는 통상적인 방식인데, 물론 과거보다 더 폭넓게 다양한 입장을 수렴 중이다. 그러나 난마처럼 뒤엉킨 교육 현안들을 그런 방법으로는 결코 풀 수 없다. 낡은 방법은 낡은 관료들의 주도권만 강화하고, 양심적이고 능력있는 관료를 소외시킬 뿐이다.

수능 개편 문제만 해도 시민사회와의 폭넓은 소통 없이 특정 그룹의 주장에 기울거나 전문가끼리 연구해서 덜컥 정책을 내놓으면 문재인 정부 개혁 전반의 발목을 잡는 반발과 부작용마저 낳을 수 있다. 그러니 작년의 원전 공론화 경험을 참조하되 더 적극적이고 투명한 공론화 방식이 필요하다. 시민들이 각자의 경험과 주견에 따라 원전 문제보다 훨씬 활발하게 토론할 사안이니 한층 공개적이어야 한다. 적어도 중학교 3학년부터 20대 청년까지 당사자가 가장 큰 비중으로 참여할 방안도 제시하고, EBS 등과 협력하여 주요 토론을 생중계하며 국회가 홈페이지에서 시행 중인 회의 공개 수준과 맞먹게 온라인의 다시 보기 기능과 녹취록도 제공해야 한다. 6월 지방선거에 몰입하는 정치권의 일정을 고려할 필요도 없고, 개헌 논의와 겹치면 오히려 더 바람직할 것이다.

당장 준비하여 4월부터 7월까지 4개월 동안 논의해도 내년도 예산 편성을 고려하면 시간이 부족하니 주요 현안에 집중하더라도 종합적 개혁 청사진으로 이어지도록 판을 잘 짜야 한다. 힘도 들고 비용도 들겠지만, 공론화 결과를 반영한 최종안은 다수 국민이 지지해줄 것이다. 나아가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과감한 교육투자 확대 결정을 끌어낼 수 있고, 증세라는 민감한 주제 앞에 몸조심하는 취약한 새 정부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 그것이 곧 촛불혁명의 진전이요, 진화이다. 국회의 수구세력 입장에서는 교육개혁에 필수적인 관련 법률 제정과 개정을 덮어놓고 가로막기가, 아뿔싸, 난처해진다.

<김명환 서울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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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 학생 1인당 사교육비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15일 발표한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월평균 27만1000원으로 전년보다 5.9% 늘었다. 5년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며 2007년 조사를 시작한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실제 사교육에 참여한 학생의 1인당 사교육비는 월평균 38만4000원으로 전년보다 1.8% 늘어나며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가계 소득은 별반 나아진 게 없지만 사교육비 지출은 갈수록 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은 18조6223억원으로 전년보다 3.1% 증가했다. 저출산 여파로 지난해 초·중·고 학생 수는 전년보다 2.7%(16만명) 줄었는데도 사교육비 총액이 늘어난 것은 1인당 지출 금액이 커졌기 때문이다. 사교육 참여율은 70.5%로 2011년 이후 6년 만에 70%대로 올라섰다. 초·중·고 학생 10명 중 7명이 사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다. 심상치 않은 사교육 열풍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소득 양극화에 따른 사교육비 격차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월평균 700만원 이상 고소득 가구의 사교육비는 45만5000원인 반면 월평균 200만원 이하 저소득 가구는 9만3000원에 그쳤다. 고소득 가구가 저소득 가구보다 5배가량 많은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있는 셈이다. 사교육비 부담이 늘어나면 저소득 가구 학생들은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된다. 교육기회 불평등이 가난의 대물림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게 된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교육비 절감은 한국사회의 절실한 과제다. 가계 소비를 옥죄는 과도한 사교육비는 경제 회복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젊은 세대의 저출산과 중장년 세대의 노후 불안도 사교육비에 뿌리가 있다. 그런데도 교육당국은 여전히 구태의연한 정책만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정부는 2014년 초·중·고교 학생의 선행학습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의 특별법을 제정해 시행해오고 있으나 사교육 수요를 줄이는 데는 실패했다.

교육당국은 사교육비 절감을 교육개혁의 출발점으로 삼아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공교육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교사의 질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의지다. 사교육비 절감이 교육불평등 해소를 위한 최선의 방안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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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캐나다 엘마이라 마을에서 고등학생 2명이 난동을 부린 혐의로 체포됐다. 당시 판사는 피해자들과 가해학생들이 대면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보호관찰관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가해학생들은 피해자들을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합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결과 놀랍게도 피해자인 주민들에게는 심리적 안정을 가져다주었고 가해학생들은 마을의 구성원이 되어 어울려 살아갈 수 있었다.

법은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수단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사법적 정의는 가해자에게 피해자가 받은 만큼의 피해를 입힘으로써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응보적 정의다. 그러한 연유에 오랜 세월 학교 현장에서도 생활지도라는 명분으로 응보적 가치를 적용해왔다.

하지만 응보적 생활지도에서 가해자 처벌에 무게를 두면서 피해자는 소외되고 회복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오히려 상호 관계 악화로 불필요한 갈등과 분쟁을 야기하는 문제를 떠안았다.

이에 대한 대안적 가치로 새롭게 등장한 것이 회복적 정의다. 누가 피해를 입었고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에 중심을 두고 있다. 지금까지의 학생 생활지도가 징계나 벌로써 죗값을 치르게 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면, 회복적 생활교육은 갈등을 오히려 배움과 성장의 기회로 삼아 당사자와 공동체의 피해와 관계를 회복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실제 영국의 헐시티는 2008년 한 초등학교에서의 회복적 생활교육을 시작으로 시청, 경찰, 사법기관까지 확산되어 도시 전체가 회복적 도시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2011년 겨울, 대구에서는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중학생이 스스로 생의 끈을 놓아버린 실로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사건이 있었다. 대구시교육청은 어린 생명들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강력한 학교폭력종합대책을 만들어 시행했다. 피해학생에 대한 보호는 물론 가해학생에 대한 엄격한 선도 조치 실시와 조치 사항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를 정부에 건의하여 관철시켰다. 이후 학교폭력이 각종 지표에서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성과를 얻었다.

그 후 6년의 시간이 지났고, 학교 현장도 많이 변했다. 학교 현장에서는 피해학생에 대한 진정한 회복보다 가해학생에게 부과되는 조치의 무게를 재심이나 소송과 같은 사법적 저울로 가늠해보려는 갈등과 분쟁이 비등하고 있다. 게다가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학교생활기록부 기재라는 행정적 조치가 오히려 기재를 막아보려는 각종 민원 제기와 항의의 요인이 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제는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대구시교육청은 회복적 가치에 충실하고 갈등 당사자 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피해에 대한 완전하고도 궁극적인 복구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학교폭력 피해로 인한 상처는 가해학생에 대한 응보적 조치로써 아무는 것이 아니다. 피해의 원천인 갈등을 해소하고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관계가 회복될 때에야 비로소 치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벌보다 관계 회복에 초점을 맞춰 학교폭력에 대응해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의 동의를 전제로 학교폭력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에게 관계 회복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진정한 피해가 회복되도록 추구해야 한다.

학교는 학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법도 배우는 곳이다. 학교폭력은 관계 갈등에 대처하는 방식이 서툴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가해학생에 대한 처벌이 능사는 아니다. 죄는 또 다른 죄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회복적 생활교육을 통해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이 관계 갈등을 현명하게 해결하며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을 개정해야 할 것이다.

<우동기 대구시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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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느 서당에 혀 짧은 훈장님이 계셨습니다. “따다해바다, 바담 풍.” “바담 풍!” “내가 언데 바담 풍이대떠! 똑바도 따다해, 바담 풍.” “바담 풍!” “(땅땅) 아니, 이놈드디! 바담 풍이 아니고 바담 풍!” “바담…풍.” 훈장님이 발음을 똑바로 하지 않는 한 학동들은 억울한 호통만 계속 들어야겠지요. 윗사람이 똑바로 하지 않으면 아랫사람이 제대로 본받기 어렵다는 속담이 ‘나는 바담 풍 할 테니 너는 바람 풍 해라’입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고 형 보니 아우인 것처럼, 본이 엉터리면 본뜬 것 역시 엉망이란 것이지요.

또한 늘 그렇지만 부모에게 있어 자식 자랑만 한 즐거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식은 ‘난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며 부모를 부끄러운 반면교사로 삼고 있을지 모릅니다. 부모가 받는 최고의 영예는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부모님이라는 말이라 합니다. 존경하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을 본받아 같은 직업을 갖거나 교사가 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윗사람이 형편없이 살면 그 지도나 가르침이 귀 아픈 길거리 전도쯤으로 여겨지겠지요.

본받으라 위인전을 사주지만 정작 그 위인과 같은 길을 가겠다 하면 극구 말립니다. 많은 부모와 교사가 미는 방향은 자신들이 살아왔던 무난하고 뻔한 길을 거의 벗어나지 않는데 말입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위인전의 시작은 늘 그 부모나 스승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위인 뒤에는 항상 ‘걱정 말고 나아가라, 너는 꼭 해낼 수 있다’ 든든하게 응원해준 이가 있었지요. 그러니 위인을 키우기 위한 위인전은 과연 누가 먼저 읽어야 할까요?

자신들은 텔레비전 보면서 가서 공부해, 책 좀 읽어라 등 떠미는 바람[望] 역시 ‘바담 풍’으로 들릴 것입니다. 바람은 따를 만한 것을 보고 스스로 품는 것입니다. 부모도 자식의 거울입니다. ‘자식 자랑 말고 자식 자랑 돼라’는 요즘 속담이 괜하지 않다 하겠습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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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22일 헌법재판소는 ‘수능시험의 EBS 교재 연계 출제에 관한 사건’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각하를 선고했다. 문항 수의 70%를 EBS 교재 및 강의와 연계한다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의 출제원칙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선고다.

헌재의 기각 결정 자체는 얼마든지 존중할 수 있다. 타당한 결정이라고 인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헌재의 선고문까지 존중하기는 어렵다. 헌재가 제시한 기각 결정의 가장 중요한 논거는 수능시험과 EBS 교재 연계가 ‘학교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경감’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특히 학교교육을 정상화한다는 것은 완전한 거짓이다. 수능·EBS 연계는 학교교육을 정상화하기는커녕 오히려 비정상화했다. 이전의 학교교육이 정상이라는 게 아니라 비정상이었던 것을 한층 더 비정상으로 만들었다는 얘기다. 사교육 경감 효과가 대단했다면 눈감아 줄 수도 있겠지만 수능·EBS 연계로 인한 사교육 감소 효과는 거의 없거나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헌재의 논거는 사실을 왜곡하거나 과장했다.

헌재의 기각 결정에 EBS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헌재의 결정을 반기며 좋아했을까? 만약 그랬다면 방송인으로서의 자세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돈)의 측면에서 볼 때 EBS는 수능·EBS 연계의 가장 큰 수혜자다. 하지만 공영방송사로서의 자격이란 면에서 볼 때 EBS는 가장 큰 피해자다. 수능·EBS 연계로 인해 EBS방송사는 시청자의 신뢰를 적지 않게 잃게 됐다. 학생부종합전형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헤친 EBS 다큐 &lt;대학입시의 진실&gt;에 사람들이 보였던 반응을 생각해보자. 호응하는 반응이 더 컸지만 분노의 반응도 상당했다. 왜 분노했을까. 수능교재를 팔아 얻는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학생부종합전형을 악의적으로 비난했다고 의심했기 때문이다. 수능·EBS 연계가 존재하는 한 이러한 의심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수능시험을 출제하는 평가원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특히 수능 출제진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평가원이 출제하는 수능시험 문제는 오랫동안 EBS와 출판사들이 만드는 수많은 수능문제집들이 모방하고 추종하던 문제였다. 자부심을 가질 만했다. 그러나 수능·EBS 연계 이후엔 사정이 달라졌다. 이제 평가원의 출제진이 EBS 수능문제집을 모방하고 추종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시중의 문제집 따위를 모방하고 추종하는 사람들의 영혼에 최고 수준의 문제를 출제하겠다는 열정과 의지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을까? 나는 회의적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수능·EBS 연계 이후 수능시험의 질이 떨어졌다고 느끼고 있다.

객관식 문제풀이 위주의 수능 공부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악으로 볼 건 아니다. 문제풀이 공부를 통해서도 학생들은 지식을 쌓고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심지어는 창의력과 사고력을 발전시킬 수도 있다. 다만 그 정도가 우리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칠 뿐이다. 대학 학점에 비유해 말하자면 A나 B에는 못 미치지만 C는 될 수 있는 공부다. 그런데 수능·EBS 연계는 C는 될 수 있는 공부를 D에 불과한 공부로 전락시켰다. 수능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수능 전 과목에 절대평가를 도입하느냐 마느냐가 사회적 화두가 된 상황에서 수능·EBS 연계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기정 | 서울 미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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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역사 인물은 누구일까? 제 아무리 세종대왕을 존경하는 사람이라도 5만원권 지폐를 두고 1만원짜리를 집지는 않는다. 정답은 신사임당이다. 지폐에 사람 얼굴을 그려 넣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인류는 오랜 세월 타인의 표정을 보고 그 마음을 읽는 훈련을 거듭해 왔기 때문에, 인물화에 특히 놀라운 식별력을 얻었다. 사람들은 지폐 속 인물의 얼굴이 익히 보던 것과 조금만 달라도 금세 알아챈다. 둘째 이유는 ‘국민교육’을 위해서다. 화폐의 도상(圖像)이 되는 사람은 국민 대다수가 존경하는 역사 인물 중에서 선정되며, 각각의 인물은 국민이 공유해 마땅한 가치들을 표상한다. 세종대왕의 애민의식, 율곡과 퇴계의 선비정신, 충무공의 위국충정 등. 신사임당은 어떤 가치를 표상하는 인물인가?

10여년 전 5만원권 지폐를 발행할 때, 어떤 인물을 넣을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한국의 화폐 속 인물이 전부 남성이니 반드시 여성을 넣어야 한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누가 적임자인가에 대해서는 당연히 여러 의견이 나왔다. 후보로 진지하게 검토된 인물은 신사임당 외에 유관순과 김만덕이었다.

제주도의 기생 출신 거상(巨商)으로서 기근 때에 사재를 털어 수많은 생명을 구했던 김만덕은 지명도가 낮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유관순은 10만원권 화폐에 김구가 들어갈 예정이니 표상하는 가치가 중복되며, 여성적 가치를 표상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신사임당에 대해서는 “율곡이 이미 있는데 그 어머니까지 화폐 인물로 선정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반대가 있었으나, 한국 여성 또는 여성적 가치를 대표할 만한 인물로 그만한 사람이 없다는 주장을 누르지 못했다. 5만원권에 신사임당 초상을 넣기로 결정한 후, 한국은행은 그 이유를 “신사임당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여류 예술가로서, 어진 아내의 소임을 다하고 영재교육에 남다른 성과를 보여준 인물”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어진 아내이자 현명한 어머니, 현모양처(賢母良妻).

이에 대해 어떤 여성단체는 “신사임당은 유교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이상적 여성의 전형으로 자기 자신이기보다는 이율곡의 어머니요, 이원수의 아내로서 인정받고 있다. 어머니, 아내만이 보편적 여성상으로 자리 잡는 것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으나, 많은 사람들은 현모양처를 모범으로 삼는 것이 왜 문제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신사임당은 ‘유교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이상적 여성의 전형’조차 아니다. 신사임당은 결혼 후 20년 동안 주로 친정에서 살며 시집 일은 거의 돌보지 않았다. 4남 3녀를 낳았지만 율곡 말고 특별히 잘된 자식도 없었고 남편을 크게 출세시키지도 못했다. 그는 오히려 그림 그리는 일에 열중했다. 신사임당이 현대에 환생해서 당시 살았던 방식대로 산다면, 결코 현모양처라는 말은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유교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요구한 기본 덕목은 ‘삼종지도(三從之道)’였다. 어려서는 아버지에게, 시집가서는 남편에게, 늙어서는 자식에게 순종하는 것이 여성이 평생 지켜야 할 도리라는 뜻이다. 순종은 자아(自我)를 용납하지 않으며 독립적 사유(思惟)를 배격한다. 시키는 대로 순종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자질은 ‘말 잘 듣는 것’뿐이다.

현모양처론은 유교 가부장제의 덕목이 아니라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창안되어 20세기 초 한국에 유입된 ‘천황제’ 국민국가의 여성관이다. 일본 천황제 국민국가가 여성에게 부여한 역할은 남성이 천황에게만 충성할 수 있도록 가정을 맡아 꾸리며 자식을 충성스러운 신민(臣民)으로 기르는 일이었다. 현모양처라는 용어는 성인 남성을 가정에서 완전히 이탈시켜 천황에 직속된 신민의 일원(一員) 자격만을 부여하고, 그에 따라 가정에 생긴 ‘권위(權威)의 공백’을 제국 신민의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책임을 자각한 여성의 자발적 헌신으로 메꾸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을사늑약 직후인 1906년에 양규의숙(養閨義塾)이 ‘현모양처 양성’을 설립 취지로 내세우면서부터 이 단어 사용이 일반화했다. 이후 오랫동안 여성의 자아실현은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라는 담론이 대다수 한국인의 의식을 지배했다.

동전에는 양면이 있는 법이어서, 현모양처 이데올로기는 밖에서 일하면서 ‘가정사’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 남편이자 아버지, 가정 안에 자기 자리를 만들지 않는 남편이자 아버지가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라는 생각을 낳았다. 집 밖에서 일자리를 잃고 집 안에도 발붙일 곳 없어 하루 종일 공원을 배회하는 한국의 노년 남성들 역시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의 피해자인 셈이다.

일본 군국주의가 심어 놓은 현모양처 이데올로기를 ‘민족 고유의 전통’인 양 착각하며 산 지도 한 세기가 넘었다. 의식이 세상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것은 늘 있는 일이다. 여성과 남성의 공간을 집 안과 집 밖으로 나눌 수 없게 된 지 오래임에도, 집 밖에서 활동하는 여성을 ‘제자리를 잃은 여성’이나 ‘남성의 영역을 침범한 여성’으로 취급하는 문화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작금의 미투운동은 남성 중심으로 편제된 집 밖 사회에서 여성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어떤 피해를 입어 왔는지 여실히 폭로하고 있다. 이제는 성인군자니 영웅호걸이니 요조숙녀니 현모양처니 하는 성차별적 가치관을 담은 말들을 박물관 수장고로 보낼 때다. 미투운동은 현재의 성 역할에 관한 가치관을 전면 재구축하는 대각성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 남성과 여성이 각각 ‘애국자’와 ‘현모양처’로 나뉘는 세상보다는 남녀 구별 없이 착한 사람, 성실한 사람, 정직한 사람, 배려하는 사람, 존중하는 사람으로 통합되는 세상이 더 좋고 아름다운 세상일 것이다.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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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해 미래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교육 개혁의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미래 사회의 인재가 갖추어야 할 자기 관리, 지식정보 처리역량, 창의적 사고역량, 심미적 감성역량, 의사소통 역량, 공동체 역량 등 핵심 역량을 적용한 2015 개정 교육과정 도입과 함께 이러한 역량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입시제도 개선 요구 역시 이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가 2022학년도 수능 개편안을 올해 8월 말까지 발표해야 하는데, 이에 관한 의견이 분분하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는 일본의 입시제도 개선을 예로 들며 객관식 시험 폐지, 대입 시험에서 논술형 시험 도입 등 급격한 변화를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필자가 살펴본 일본 입시 개혁의 실상은 이와 다르며 일본 교육당국 역시 입시 개혁 과정에서 많은 혼란과 고민을 안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고교 교육, 대학 교육, 이 두 가지를 연결하는 대학 입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고대접속개혁’을 중앙교육위원회 답신(2014년 12월22일)에서 제언했다. 이 답신에서 2020학년도부터 대학입학센터시험(우리나라의 수능시험에 해당)을 폐지하고 새로운 시험을 도입한다고 했다.

이 발표 후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객관식 시험인 센터시험은 완전히 폐지되고 전면적으로 논술형 시험을 도입하는 것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새로운 시험인 ‘대학입학 공통테스트’는 실제로 객관식 문항이 폐지되는 것도 아니고 출제 과목이 완전히 바뀌는 것도 아니며 논술형 시험이 전면 도입되는 것도 아니다. 지식·기능 위주의 문항에서 사고력·판단력·표현력을 중심으로 평가 내용이 바뀌고, 객관식 문항은 현행대로 유지하면서 국어와 수학에서만 논술형이 아닌 조건부 서술형 문항이 각각 3개씩 출제될 예정이다.

작년 11월 입시센터가 주관한 예비 시행에서 국어는 25자, 50자, 120자로 기술하는 조건부 서술형 문항이 출제되었다. 사고력·판단력·표현력을 평가한다는 시행의 목적을 고려할 때 논술형 평가가 적합하나, 국가 단위의 대규모 평가에서 단기간에 50만~60만명의 답안을 공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면서 채점하기는 쉽지 않아 조건부 서술형 문항을 출제한 것으로 보인다. 작년 11월 예비 시행에서는 국어 7만명, 수학 6만명의 서술형 답안 채점에 민간의 전문 채점 업체를 활용했다. 약 1000명의 채점위원이 동원되어 2주일에 걸쳐 채점했다고 한다. 본 시험에서 50만명을 채점하려면 단순히 계산해도 7000명 이상의 채점위원이 필요하다. 자유롭게 기술하는 서술형 문항으로 하지 않고 조건부 서술형 문항으로 하는 것은 채점위원이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 채점을 하게 되면 그룹별로 채점의 차이가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학입학 공통테스트의 두 번째 큰 변화는 영어에서 말하기, 쓰기가 포함된 언어 4기능 시험이 도입된다는 것이다. 2020학년도 시험부터 4년간은 대학입학 공통테스트의 영어 과목을, 언어 4기능을 측정하는 민간 시험과 함께 대입에 반영하며, 그 이후에는 민간 시험으로 전면 전환할 예정이다. 일본의 대학에서 언어 4기능을 포함한 민간 시험을 이용하는 경우 일본영어검정협회에서 실시하는 영검과 TEAP의 시험을 90% 이상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진정한 영어 교육을 위해서는 말하기와 쓰기를 포함한 언어 4기능을 측정하는 시험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입 시험을 개혁하려 하는 일본에서도 서술형 문항의 도입에 있어 전면적인 논술형이 아닌 조건부 서술형을 도입하려 하며, 이와 관련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몇 차례의 예비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일본의 입시 개혁을 기존 입시제도의 전면적 변화, 논술형 시험의 전면적 실시 등으로 잘못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입시정책을 바꾸어가고자 한다면 큰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미래 사회의 인재에게 요구되는 창의력과 사고력을 측정하기 위해 논술형 시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지만, 공정성과 신뢰성이 담보된 대단위 채점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일본처럼 조건부 서술형 문항부터 단계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수능에서 서술형, 논술형 시험 도입 역시 2015 개정 교육과정의 평가 맥락 및 학교 현장 여건을 고려해, 채점의 공정성 및 신뢰성 확보 방안을 모색하는 등 국내 교육 현실에 맞춘 연구를 거쳐 순차적으로 도입 여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용백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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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경제학 우스개 이야기 중에서 이런 것이 있다. 수학자, 회계사, 경제학자를 불러 놓고 채용시험을 보게 되었다. 

먼저 수학자에게 물었다. “2 더하기 2는 얼마입니까?” “4입니다.” “정말 4가 맞습니까?” “당연히 4입니다.” 수학자는 조금의 미동도 없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다음으로 회계사를 불러서 물었더니 역시 4라고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경제학자를 불러서 같은 질문을 했더니 그 경제학자가 갑자기 일어나서 면접실의 문을 닫아걸고, 창문을 블라인드로 가리고 면접관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귓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몇이기를 바라십니까?”

물론 이 우스개는 경제학자들이 미리 만들어진 결론을 통계 수치를 이용해서 합리화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보통 통계는 어떤 일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도구로 사용되지만 또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서 사람을 속이는 데도 아주 효과적일 수 있다.

얼마 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학부모의 80%가 학생부종합전형을 반대하는데 교사들은 80%가 찬성한다”고 발언해서 논란이 되었다. 

이 발언의 근거가 된 것으로 보이는 자료는 국민의당 송기석 전 의원이 지난해 6월19일부터 21일까지 16세부터 69세 이하의 성인 남녀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였다. 이 통계자료를 근거로 송 전 의원은 대입제도 개선방향에 교육전문가, 교원, 대학 측의 요구만 반영할 것이 아니라 학부모와 일반 국민의 인식과 요구를 더욱 중요하게 반영하여 수능 정시전형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이 조사는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조사 대상이 16세에서 69세까지의 광범위한 연령대의 성인 남녀들이었기 때문에 학종 제도에 대한 제대로 된 경험이나 이해 없이 단순한 인상비평 차원의 답을 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결국 수능 확대라는 결론을 위해서 교육전문가들이자 책임자들인 교사들의 80% 찬성 의견을 무시하고 교육정책을 여론에 의존하자는 포퓰리즘 주장을 한 것이었다. 

중병에 걸린 환자를 의사의 판단이 아닌 가족들의 의견에 따라 치료하자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는 다른 통계도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최근 발표한 ‘교육여론조사’ 결과에서는 대입전형에서 가장 많이 반영돼야 할 항목으로 응답자의 26.7%가 ‘특기·적성’을 꼽았다. 다음으로 인성·봉사활동(25.9%), 수능 성적(24.4%), 고교 내신 성적(13.0%), 글쓰기·논술(4.3%), 면접(2.5%), 동아리활동 등 교내활동(2.5%), 경시대회 등 수상실적(0.5%), 기타(0.5%) 순이었다. 

이 결과에 따르면 국민들이 선호한 입시 평가요소 1·2위인 적성과 인성 부분은 학종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평가요소이기 때문에 앞서 조 교육감이 언급했던 국민의 80%가 반대했다는 것은 결국 학종이라는 제도를 잘 모르고 응답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조 교육감이 교사나 교육전문가들의 논의가 아닌 일반 여론조사에 기반을 둬서 입시개혁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통계를 언급한 것은 아니었기를 바라지만, 조만간 있을 선거를 앞두고 포퓰리즘에 기대어 선거 전략을 짜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교육대통령이라고도 하는 서울시교육감은 ‘교육’을 다루는 자리다. 교육을 저잣거리에 내놓고 흥정해 팔지는 않기를 바란다.

<한왕근 | 교육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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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1일 초·중·고 교과서가 학생참여를 강조한 새 교과서로 바뀐다고 밝혔다. 이달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학생들부터는 국어책 속 지문 등을 외우는 대신 학기마다 책 한 권을 골라 읽고 토론하는 수업을 하게 된다. 또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실생활과 맞닿아 있는 예시 등을 통해 개념과 원리를 배울 수 있게 된다. 새 교과서는 지난해에 초등학교 1~2학년에 적용됐다. 올해는 초3~4, 중1, 고1을 거쳐 2020년까지는 초·중·고 전 학년에 적용된다. 새 교과서는 쪽수가 이전보다 20%가량 줄어 학습부담이 감소하고, 지식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이번 발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국어교육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다. 기존에는 ‘읽기’가 아닌 ‘읽기에 대해’, ‘쓰기’가 아닌 ‘쓰기에 대해’ 공부했지만 이번에는 읽기와 쓰기라는 본연의 목적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타당한 생각이다. 그동안 잘못된 국어교육의 결과는 독서습관의 부재로 드러난다. ‘2017년 국민독서실태조사’를 보면 이 기간 중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성인이 40%에 달했다. 책을 읽지 않는 사회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이번 개정안을 보면 ‘한 학기 책 한 권 읽기’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10년간 국어혁신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된다. 매학기 책 한 권을 읽고 토의하고 발표하면서 독서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독서를 통해 통찰력과 창의성, 자기학습력을 기르는 교육이 되기를 기대한다.

사회나 영어 등 다른 과목의 교육방식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책만 달달 외워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은 의미가 없다. 10년 이상 영어를 배우고도 외국인에게 말 한마디 못한다면 잘된 어학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 새 교과서는 내가 사는 마을과 도시 문제는 물론 국제뉴스에 관심을 기울이고, ‘21세기 후반 기후예측’과 같은 실생활과 연계된 교육을 하겠다고 한다. 영어도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도록 가르치겠다고 한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주지하듯이 현재 초·중등 교육은 대학입시에 매몰돼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여건 아래서 전인교육이나 독립적인 자아가 형성된 주체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교육으로 급변하는 시대에 대응할 능력을 갖춘 사람을 길러낼 수는 없다. 새로운 교육이 교육의 정상화로 가는 변화의 바람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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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총은 이른바 보수성향 교원단체다. 그동안 전교조의 정치성, 과격함에 대해 순수하지 못하다며 비판해왔다. 그런 교총이 달라졌다. 그토록 미워하던 좌파단체처럼 돌변했다. 머리띠를 두르고 대규모 집회·시위까지 했다. 까딱하면 삭발과 단식도 하고, 나아가 해직불사 결사투쟁이라도 할 기세다. 김상곤 교육부 장관이 공언한 내부형 공모교장 확대 정책 때문이다. 이는 승진점수 경쟁에 따라 주어지는 기존의 교장 자격증 소지 여부와 관계 없이 경력 15년 이상인 교사가 공모를 통해 교장으로 임용되는 제도다. 이 제도는 그동안 이명박 정부가 씌운 ‘자율학교의 15% 이내에서 실시’라는 독소조항 탓에 사실상 사문화되다시피 했다. 그러니 이번 교육부의 시행령 개정은 멀쩡한 법을 고쳐 내부형 공모교장제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꼼수를 제거하여 내부형 공모교장제를 정상화하는 것이다.

물론 교장 자격증 하나 따자고 20년을 고생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리가 줄어드는 것이니 속이 쓰라릴 수 있다. 문제는 그들이 내거는 ‘무자격 교장 철폐’라는 구호다. 누가 들으면 교육부가 턱없이 함량 미달인 사람을 학교에 끌어들이려는 줄 알겠다. 내부형 공모교장의 목표는 ‘교장 자격증’이 없는 교사 중에서 충분히 교장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임용하겠다는 것이지, ‘교장 자격’이 없는 사람을 임용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교장 자격증’과 ‘교장 자격’은 다르다. ‘교장 자격증’은 소정의 절차와 정량지표를 충족시키면 발급되는 증서이고, ‘교장 자격’은 교육에 대한 비전이 있고, 교원들이 역량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할 리더십과 덕망이 있다는 뜻이다.

관건은 ‘교장 자격증’의 이런 저런 지표가 ‘교장 자격’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인지, 다만 경쟁과 줄세우기를 위해 만들어진 숫자에 불과한지다. 답은 뻔하다. ‘교장 자격증’의 지표와 ‘교장 자격’이 잘 맞아떨어졌다면 내부형 공모교장 같은 게 애초에 논의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 자격증과 ‘원장’ 자격증이 따로 없듯, ‘교사’ 자격증과 ‘교장’ 자격증이 따로 없는 게 맞다. 그런데 교총은 15년 이상 한눈팔지 않고 교육에만 매진해온 동료 교사들을 엉뚱하게 ‘교장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모욕하는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들에게 되물어본다. ‘교장 자격증’ 소지를 근거로 ‘유자격 교장’을 자처하는 이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 20년간 어떤 일들을 해 왔는지. ‘교장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교육부나 교육청의 지시라면 심지어 ‘반교육적’ 행위라도 감수해야 함을 교육계에 몸담은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교사들의 존경을 받는 교장이 드문 까닭이다.

사실 ‘자격증’ 하나 내걸고 자기들만이 교장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는 교총의 저 투쟁이야말로 알량한 자격증과 진짜 교장의 자격이 무관하고, ‘교장 자격증’ 외에 스스로 교장의 ‘자격’을 입증할 자신감 없음을 자백하는 행위다. 만약 ‘교장 자격증’이 ‘교장 자격’을 정확히 반영하는 지표라면, 자격증 소지자는 자격증이 없는 평교사, 그리고 그들 주장대로 전교조 소속 교사를 공모과정에서 너끈히 물리치고 선발될 자신감을 가져야 마땅하다. 교육부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교장 자격증을 따기 위한 노력과 교사로서의 헌신 중 어느 것이 교장 자격에 더 마땅한 것인지에 입각하여 내부형 공모교장 시행령을 원안대로 속히 시행하기 바란다.

<권재원 |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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