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가르치기, 키우기'에 해당되는 글 332건

  1. 2015.03.15 [기고]초등학교 한자교육 ‘반대’에 답함
  2. 2015.03.11 [사설]제주 국제학교를 ‘학교 기업’으로 만들 셈인가
  3. 2015.03.08 [시론]인문·예술 죽이는 중앙대의 대학기업화
  4. 2015.03.08 [사설]코앞으로 다가온 어린이집 보육대란
  5. 2015.02.26 [이이화 특별기고]한국사 국정화, 삐뚤어진 교과서 만들 텐가
  6. 2015.02.26 [기고]어린이놀이터를 안전학습장으로 만들자
  7. 2015.02.23 [기고]대학생 신용불량 위기… 반값 등록금 즉각 시행을
  8. 2015.02.15 [기고]국립대 총장 임용 거부사태를 생각한다
  9. 2015.02.08 [기고]훈육이라는 이름의 학대
  10. 2015.02.06 [기고]EBS·수능 연계정책 더 강화해야
  11. 2015.02.05 [사설]“인문학보다 취업이 우선”이라는 교육부 장관
  12. 2015.02.04 [사설]어린이집 보육료 문제, 편법으로 해결 못한다
  13. 2015.01.27 [시론]하청 노동된 ‘돌봄의 사회화’
  14. 2015.01.26 [경향의 눈]생각 의자
  15. 2015.01.26 [시론]‘어린이집 대책’의 불편한 진실
  16. 2015.01.25 [기고]보육교사, 스트레스적 신체의 표상
  17. 2015.01.22 [기고]2415개 놀이터 폐쇄와 철거, 아이들 어디 가서 놀란 말인가
  18. 2015.01.21 [기고]초등 교사들의 6학년 담임 기피 현상
  19. 2015.01.21 [정동에서]당신의 아이는 당신의 아이가 아니다
  20. 2015.01.20 [시론]영어 절대평가, 수능 전체로 확대해야

지난해 9월 교육부는 2018년부터 초등학교 3학년 이상 교과서에 한자 400~500자 정도를 병기해 교육할 것이라는 새 교육과정을 발표했다. 그동안 한글전용 정책의 결과로 인한 불완전한 의사소통으로 말미암아 국민 전체에 상당한 불편을 초래하고 있으므로 이 부조리한 어문생활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대다수 국민의 공감대에서 온 결정으로 보인다. 그러자 한글전용을 주장하는 일부 인사와 단체들이 한자 병기 방침의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그들의 기존 주장을 반복하고 나섰다.

우리는 그들의 종래 주장이 얼마나 편협하고 비문화적, 비역사적인가를 누누이 지적하며 그 국수주의적 옹고집을 타일러 왔기에 그들 주장의 불합리성을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잘못하는 자식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할 수 없는 부모의 마음으로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잘못되고 거짓된 것인가를 짚어보기로 한다.

첫째, 국어의 정체성이 약해진다는 문제. 국어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국어가 국어다운 모습을 유지하고 운용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수십년 한글전용을 시행한 결과, 한자어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전문적인 문장이나 대화는 물론 일상의 언어문자 생활에서도 무지와 오해로 말미암아 엄청난 소통장애를 가져오는 것이 바람직한 어문생활이요, 국어가 국어다운 모습으로 운용되는 것인가? 기초한자를 습득함으로써 그러한 폐단을 씻어내자는 것은 국어를 국어다운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초등학교 한자교육의 부활은 국어의 정체성을 굳건하게 하는 것이지 결코 국어의 정체성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둘째, 국어교육이 뒷걸음질 친다는 문제. 국어교육이 무엇인가? 우리말을 바르게 말하고 듣고 읽고 쓰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한글전용으로 일관한 그동안의 국어교육이 과연 바람직한 어문생활, 곧 바르게 말하고 듣고 읽고 쓰는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는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그 파행을 고쳐보고자 초등학교 한자교육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지난날의 잘못을 고쳐보자는 것이지 결코 뒷걸음질 치는 것이 아니다.

셋째, 학생들의 학습 부담만 늘어난다는 문제. 이 주장은 마치 한자 학습만이 학습 부담을 늘어나게 한다는 말처럼 보인다. 먼 옛날은 말할 것도 없고 1950~1960년대에 초등학교 한자 학습의 부담을 이유로 이를 폐지하자는 논의를 한 적이 있는가? 그때의 한글전용 주장은 학습 부담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적 자주성 같은 국수주의적 이론이었지 교육과정상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난날 초등학교 영어 학습이 시작될 때, 그것이 학습 부담을 늘린다고 반대되었는가? 오히려 세계화를 지향하는 한국의 미래를 위해 적절한 조치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지금 한자교육의 부활도 세계화의 흐름과 민족문화의 고유성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일이다. 또한 몇 백자의 학습은 국어교육의 필수항목은 될지언정 학습 부담 운운은 전혀 고려할 대상이 아니다.

한국한시협회가 서울 종로구 운현궁에서 연 ‘제21회 전국한시백일장’에서 응시생들이 ‘한자교육장려’라는 주제로 한시를 쓰고 있다. (출처 : 경향DB)


한 나라의 문화적, 사회적 풍토에서 언제나 시행착오는 있을 수 있다. 1980년대에 급격한 한글전용 현상이 생긴 것은 출판계, 언론계의 상업주의 논리와 교육계의 편의주의 논의가 맞물리면서 일어난 현상이지 그들이 주장하는 국민 주도의 문자혁명으로 보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오늘날 한자혼용의 타당성에 귀기울이며 초등학교 한자교육을 재개하자는 것은 과거의 시행착오를 벗어나려는 진정한 의미의 거국적 문자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한글전용이 통용되는 분야에까지 굳이 한자혼용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한자를 알아야 한글전용의 문자생활도 가능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며 필요한 만큼의 한자혼용을 하루빨리 실현시키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후손들에게 한자교육의 포기로 말미암아 세계화하는 한국이 일류국가로 발돋움하는 데 죄를 짓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심재기 | 전 국립국어원장·서울대 국문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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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제주 국제학교에 대해 이익금을 외부 투자자에게 배당(과실송금)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국토교통부는 그제 이런 내용의 ‘제주특별법’ 일부 개정안을 마련해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제주 국제학교 학교회계의 법인회계 전출을 허용해 잉여금 배당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그렇다면 학교가 기업과 다를 게 뭐가 있는가. 교육의 본질을 위협하는 반교육적 법개정안은 당장 폐기해야 한다. 정부는 국제학교를 관할하는 제주시교육청이 강력 반발하고 나선 것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국토부는 국제학교 이익금 배당 정책이 국제학교 내실화와 유치 활성화를 위한 조치라고 밝히고 있다. 실제 현재 운영 중인 제주 국제학교는 중도 이탈자가 늘고 외국 학생들의 전입실적이 낮아 존폐까지 거론되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는 외국 본교가 직접 투자하지 않고 학사 프로그램만 제공하는 ‘무늬만 국제학교’인 탓이 크다. 일종의 정책 실패인 셈이다. 제주도에 국제학교를 유치한 것도 문제가 많은 터에 학교를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것은 교육의 근간을 허무는 처사다.

현행 교육법이 학교 운영에서 남은 돈은 교육에 재투자하도록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것은 교육의 공공성을 위한 것이다. 정부가 학교와 기업의 경계선을 철폐하자고 나섰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제주도 국제학교의 과실송금 허용은 인천 송도 등 전국 경제자유구역의 외국교육기관으로 급속하게 확대될 수밖에 없다. 이들 학교가 운영난을 들어 과실송금 허용을 요구한다면 정부가 무슨 명분으로 이를 막을 수 있겠는가. 국내 학교들도 학생수 급감으로 곤경에 처한 대학들을 중심으로 형평성을 내세워 한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런 식으로 진행되면 학교가 본질인 교육보다 이윤추구에 더 신경을 쓰는 ‘학교 기업’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잖아도 기반이 취약한 공교육은 붕괴 위험에 직면할 것이다.

제주 국제학교 (출처 : 경향DB)


정부의 이번 방침은 지난 2013년 제4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마련한 투자활성화 대책의 후속 조치다. 정부는 1년4개월 가까이 부처간 의견수렴을 거쳤다고 강조했지만 교육부의 반대 목소리를 묵살한 채 추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부처 내에서조차 의견이 엇갈리는 정책인 것이다.

이번 법개정안은 아직 입법 예고 중이다. 그런 만큼 학교를 주식회사로 만들 작정이 아니라면 추진 절차를 중단하는 게 합리적이다. 아울러 제주 국제학교에 대해서는 중앙정부가 아니라 제주교육청이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위와 취지에 맞게 별도의 활성화 방안을 도출하도록 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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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85학번이다. 중앙대 동문으로서 최근 모교에서 벌어진 학과 구조조정 사태를 지켜보면서 작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이른바 ‘학사 구조 선진화 계획’이란 이름으로 발표된 안은 결국 취업 잘되는 학과만을 남기겠다는 낡고 낮은 수준의 기업주의 발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이다.

대학 측은 이번 구조조정안이 “사회가 요구하는 융·복합형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학과의 벽을 허물고 단과대학 단위로 전공을 운영하는 학사 제도”라고 했지만, 궁극의 목표는 경쟁력 없는 학과를 폐지하는 데 있다. 전공선택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대학 정원을 줄이기 위한 알리바이에 불과하다. 그것은 학문 간 불균형을 초래하고, 학점 경쟁을 부추겨 균형 있는 신체를 포기한 채 한쪽만 비대해지는 지식괴물이란 리바이어던을 낳을 것이다. 학문 간 균형과 교육의 상호작용을 전제하지 않는 전공선택제는 학과의 긍정적인 장점도 살리지 못하고, 선택받지 못한 학생들의 소외감과 전공 역량의 부실함만 낳지 않을까? 국문학과는 없어져도 국문학 전공은 남을 수 있다는 것은 궤변에 불과하다. 융합의 참된 가치는 융합 대상이 각기 든든할 때 현실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융·복합형 인재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기초 학문 위에서 길러질 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애플사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는 리드대학 철학과를 중퇴했고, 경영혁신의 대가 피터 드러커도 학부 전공이 법학이다. 멀티미디어 개념의 창시자인 MIT 미디어랩의 니컬러스 네그로폰테도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한국이 낳은 천재 첼리스트 장한나는 대학원을 철학과로 지원했다.

융·복합형 인재를 길러내려면 학점으로 줄 세워 취업 잘되는 학과나 전공에 정원을 몰아주는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오히려 주어진 다양한 전공 안에서 창의적인 사유와 통합적인 지식 습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지금 모교에서 추진하려는 구조조정안은 융합형 인재를 길러내기는커녕 대학을 단순 취업의 전쟁터로, 학생들을 학점의 노예로 만들 위험이 농후하다. 다양한 지식과 학문 간의 상호 이해와 통섭적 상상력이 융합형 인재를 길러낼 수 있고, 그 출발은 탄탄한 기초학문의 구축에 있다.

중앙대 문예창작과 학생들이 지난 해 학교 측이 전임교원을 충원하지 않아 수업권을 침해받고 있다면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모교의 이번 선진화 계획이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 안이 어쩌면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중앙대학교의 정체성을 뿌리째 흔들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2018년에 100주년을 맞는 중앙대학교는 그 어떤 분야보다도 인문과 예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국문학, 영문학, 일문학, 심리학, 민속학, 문헌정보학 분야는 탁월한 교수진과 동문 후학을 길러내면서 국내 인문학 분야에 오랫동안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1972년 서라벌예술대학교를 합병한 이래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은 연극학과, 영화학과, 문예창작과 등에서 배출된 동문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한국 예술계에 큰 족적을 남기고 있다.

그런데 대학 본부는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인문대가 취업이 안 되고, 가장 경쟁력 높은 예술대는 경쟁 대학보다 지나치게 비대하다는 이유로 구조조정의 칼을 들이대려고 한다. 중앙대학교에서 인문·예술을 빼고 과연 학교의 역사와 정체성을 논할 수 있을까?

이번 선진화 계획은 대학 정원을 수년 내에 대폭 줄여야 하는 구조조정안과 맞물려 있다. 중앙대학교가 교육부로부터 교육개혁 분야의 우수 대학으로 선정되려면 모르긴 몰라도 수백명의 입학 정원을 줄여야 한다. 본부는 아마도 학과제 폐지안을 입학 정원을 줄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안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것도 취업 안 되는 인문·예술계 학과가 정원 축소의 목표물이 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대학평가, 취업률에 전적으로 맞추어진 학과제 폐지안이 융합인재 양성의 가장 기본적인 두 축인 ‘지성의 인문학’과 ‘감성의 예술학’의 토대를 뒤흔든다면, 대학은 결국 기업인의 전당, 장사꾼의 요새가 될 것이다. 그것도 인문과 예술을 생명으로 살아온 중앙대학교에서 앞장서서 인문과 예술을 죽이는 대학기업화 전쟁의 전위에 선다면, 학교는 정당성도 명분도 정체성도 모두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이제 동문 지식인들과 연예인들이 나서야 할 때이다.


이동연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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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누리과정 보육료를 둘러싼 ‘보육대란’이 재연될 것 같다. 지난해 보육대란 당시 급조한 ‘2015년 3개월치 예산 편성’ 미봉책의 시한이 이달 말이기 때문이다. 당시 내부 재정 문제로 2개월치만 편성했던 광주시교육청 보육예산은 벌써 바닥났고, 나머지 시·도교육청도 4월 이후 차례로 예산 고갈 사태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각 시·도교육청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만 지난해 긴급 편성한 누리과정 예비비 5000여억원을 지원하지 않고 있다. 영·유아 보육을 볼모로 교육청 길들이기를 하자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아이만 낳아주면 국가가 책임지고 키워주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을 정부가 앞장서 깨고 있으니 할 말이 없다.

올 초 어린이집 보육대란이 재발하는 것은 사실 시간 문제였다. 지난해 보육료 부담 주체를 놓고 중앙 정부와 시·도교육청, 여야 정치권이 대립한 끝에 2015년 3개월치 예산을 시·도교육청이 우선 편성키로 하고 봉합했기 때문이다. 대신 누리예산 부족액 1조7000억원 가운데 1조2000억원은 지방교육채 발행으로, 나머지는 정부가 예비비를 편성해 각각 충당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지자체가 지방채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지방재정교육법 개정안이 지난 정기국회에서 통과되지 않고, 정부는 이를 빌미로 5000여억원의 예비비 집행을 보류함에 따라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이다.

울의 한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들이 영·유아들을 돌보고 있다. (출처 : 경향DB)


정부는 개정법안이 통과되고 지자체의 지방채 발행이 현실화돼야 예비비 지원이 의미가 있다는 입장이다. 목적예비비 5000여억원을 지원한다 해도 전체 부족 보육료의 3개월치에 불과해 근본 처방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목적예비비는 국회 입법을 전제 조건으로 편성한 것이 아니다. 국회가 의결한 예비비 집행을 정부가 타당한 이유 없이 보류하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행위다.

거듭 지적하지만 어린이집 보육료는 국책 사업인 만큼 중앙정부가 책임져야 할 사안이다. 이는 어린이집 소관 부처가 보건복지부란 점만 봐도 논란의 여지가 없는 문제다. 정부는 당장 예비비를 풀어 교육청을 지원해야 한다. 그런 다음 정치권과 협의해 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에 진력해야 한다. 어린이집들은 이미 지난달부터 시위를 시작했다.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정부는 그들의 ‘창끝’이 자신들을 향하고 있음을 무겁게 받아들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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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민족사적으로 환희와 비극이 교차한 광복과 분단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들머리부터 이완구 국무총리 인준을 두고 한바탕 소동을 일으켰는데 또 일본 총리 아베는 봄을 맞이해 군국주의 부활을 외칠 모양이다. 그런데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지난 연말, 올 3월에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한국사의 국정화를 결정짓겠다고 공언하였다. 이 작업이 지금 내밀하게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다.


그 의도와 목적은 무엇일까? 아마도 남북이 분단되어 있으면서 이질적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시대 상황에서 정부의 통제 아래 두고 정체성이란 이름으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이는 한마디로 말해 군국 국가나 전제체제적 발상이다. 현재 일본에서도 군국주의적 발상으로 근현대사 중심의 교과서 서술을 왜곡하고 있으나 국정으로 가자는 논의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현재 교과서 발행제도의 세계적 추세는 검정과 인정, 자유채택제로 가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국정교과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사회주의 국가를 겪었거나 사회주의 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나라인 북한을 비롯해 베트남, 러시아다. 불행하게도 1970년대 반민주적·반역사적·반동적 유신체제를 겪었던 한국도 한때 한국사 국정교과서 국가에 포함되어 있었다.

과거를 더 돌아보자. 조선왕조 시대에도 사학이든 관학이든 아동교육 교과서로 <천자문> <동몽선습>을 가르쳤으나 국정교과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채택하였다. 대한제국 시대에 신교육의 보급에 따라 교과서가 발행되었으나 검정 또는 인정 제도를 시행하여 채택의 자율성이 상당히 보장되어 있었다. 일제 식민지 시기, 조선총독부 당국은 한국어와 한국사 교육을 현장에서 몰아내고 일본어와 일본역사를 필수로 가르치면서도 교과서를 국정으로 지정하지는 않았다. 미군정 시기와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1946년 새 학기에 국어와 국사를 편찬하면서부터 교과서에 검·인정 제도를 계속 시행했다. 독재정권의 의도는 접어두고라도 형식논리로만 따져보면 국정을 채택한 적이 없었다.

그 당시의 한국사 교과서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적에 다양했다고 볼 수는 없을지라도 형식에서만은 검·인정을 존중했던 것이다. 최소한도 절차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의도가 있었다. 그 곧이은 유신시기, 한국적 민주주의와 한국적 민족주의를 외치면서 국사를 국정으로 지정하여 반역사의 길로 치달았다. 왜? 국정의 이 국사 교과서는 반민주적 유신을 합리화하고 공산주의와 주체사상을 극복하는 도구로만 바라본 것이다. 북한의 교과서 국정은, 근현대사를 김일성 중심의 주체사상으로 왜곡하려는 의도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비추어 볼 때 유신시절 국정화의 의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국사 교과서를 비롯해 교과서의 자유로운 표현을 존중하려는 분위기가 일었고 한국사 근현대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동안 관학 교수들의 “역사는 한 세대가 지나가서 평가해야 한다”는 논리를 마치 역사 이론의 정설처럼 받아들이는 척박한 풍토에서 근현대사 교육문제의 제기는 하나의 진전이었다. 그리하여 이승만-박정희의 독재 역사가 현장에서 교육하는 계기가 되었다. 북쪽의 김일성 교조도 단편적으로 포함되었다.

그런데 말이다. 이명박 정권이 갑자기 좌편향 교과서 내용을 바로잡고 또 근대화와 산업화 논리를 펴자면서 국사 교과서 개편작업에 나섰다. 결국 백년대계라는 교육의 지침이 되는 국사 교과서를 이리 뜯어고치고 저리 덜어내면서 누더기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역사에 대한 무지한 무리들이 자신의 무지를 모른 채 주제넘은 짓을 한 셈이다. 다행하게도 국정으로 가자는 논의나 제안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른바 교학사 교과서라는 사생아가 태어났다. 그 집필자들은 기득권 세력과 권력을 쥔 부류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잔머리를 굴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근대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을 적절하게 대비, 마치 가치중립을 포장하여 국사 교과서를 만들어냈다. 곳곳에 널려 있는 사실의 오류는 제쳐두고라도 그 천박한 논리는 억지로 꿰맞춘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리해 역사학계와 지식인은 물론, 학부모의 세찬 반대에 부딪혀 좌절하고 말았다. 이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성찰과 반성의 자료가 될 수 있었다.

이 대목에서 말을 다시 돌려보자. 이인호라는 서양사를 전공한 원로 역사학자가, 박근혜 대통령 취임 초기, 청와대에 초청을 받아 대통령 옆에 앉아서, 국민통합을 위해서 “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가야 한다”고 건의를 했겠다. 대통령의 의중을 잘 이해한 발언일 것이다. 그는 이어 친일파 청산의 지령이 모스크바에서 내려져 국내에서 친일파 청산운동이 일어났다고도 했다.

그런 뒤 국사 교과서 국정 논의는 물살을 탔다. 김무성과 같은 뉴라이트 교과서를 지원하는 정치인을 비롯해 이승만을 ‘민족의 태양’이라고 추어올리는 유영익 국편위원장과 교학사 교과서 집필자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주장을 펴기도 하고 동조를 하기도 하였다. 여기에 힘입어서인지, 아니면 ‘유신의 딸’인 대통령의 눈치를 살살 살펴서인지 담당 부서인 교육부 장관이 “역사는 한 가지로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면서 국정화 작업의 진행을 서두르고 있다.

 

서울 서초구 서울교대앞에서 전교조 조합원들이'한국사 국정화 반대 교사선언'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출처 : 경향DB)

 

마지막으로 국정교과서로 지정해서 학생들이 하나의 교과서로 국사를 배우고 시험을 볼 때 오는 폐단을 지적해 보자. 무엇보다 역사에 대한 해석과 상상력이 획일화되고 다양한 가치관이 하나로만 치달아 창의성이 마비된다. 또 수험생들은 하나의 교과서만 달달 외우려는 풍조도 일어날 것이다. 아니면 독재와 유신이 근대화라는 이름에 묻히고 민족과 민주를 찾으려는 운동과 희생이 역사의 무덤으로 파묻힐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 공산-독재국가에서 지향하는 국정교과서가 민주국가에서도 시행된다는 선례를 남기게 될 수도 있다. 지금 베트남에서 벌어지는 한국의 검·인정 교과서 제도를 본받으려는 움직임이 그 보기가 될 것이다.

어찌 두렵지 않은가? 백년대계를 설계한다는 교육부가 이 작업을 계속 진행한다면 다시 “완구백화점” 사건보다 훨씬 세찬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뿐만 아니라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나아가 사회분열을 조장할 것이며 미래사회에서 전제적 발상이라는 역사의 꾸지람도 따를 것이다. 그나마 박근혜 정부의 안정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도, 껍데기만 남은 형식적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도 즉각 진행을 중단하기 바란다. 평지풍파를 일으켜 역사전쟁을 다시 유발하지 말라.

 

이이화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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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무릇 인간이 생명으로 태어나 비로소 사람이 되는 나이가 세 살이고 그때 잘못된 버릇은 바꾸기 힘들다는 얘기다. 바꾸어 말하면 세 살 때 익힌 좋은 버릇은 평생을 간다.

최근 어린이 놀이터 문제가 화두가 되고 있다. 전국에서 2400여개의 놀이터가 폐쇄되거나 철거된다고 한다. 그 이유를 들여다보니 안전문제가 대두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된 내용을 보면서 씁쓸해 짐은 무엇일까?

필자는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흙더미 속 동네가 온통 놀이터였기에 다소 새삼스럽게 느껴지지만 콘크리트 벽에 갇혀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 어느 놀이터운동가의 말처럼 “어디 가서 놀란 말인가?” 라고 묻는 것이 당연하고 심히 걱정되는 문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이 뿐일까? 왜 그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대안은 없는 건지,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목소리는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안전처 통계에 의하면 2014년 전국에서 발생한 화재는 총 4만2135건으로, 이중 25.8%인 1만861건이 주택에서 발생하였고 51%(2만1489건)가 안전부주의로 인한 사고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특히 36.2%가 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집에서 노는 시간(오후 1시~7시·맞벌이 증가 등으로 아이들만 집에 있는 시간대)에 발생된 사고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안전사고는 사전에 대처요령을 조금만 알고 있었더라도 위험을 회피하거나 대처할 수 있는 사고이기에 더욱 안타깝기 그지없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단지 놀이터에 27일 사용중지 안내문과 출입을 막는 끈이 설치돼 있다. 안전검사를 받지 않았거나 검사를 통과하지 못한 전국 놀이터 1600여곳이 일시 폐쇄됐다. (출처 : 경향DB)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들어 어린이 안전문제에 대해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놀이터의 안전문제가 제기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껏 우리는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과 그 구조물로 인해 다치지 않도록 하는 것에 더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공간을 통해 부모와 손잡고 뛰어놀면서 자연스럽게 위험을 회피하는 방법과 대처하는 방법을 터득하도록 하면 어떨까?

이번기회를 통해 문제의 본질을 발전적 방향으로 다시 들여다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안전하지 않은 놀이터를 방치하는 것은 분명 문제이다. 하지만 무작정 없애버리고 보자는 것 또한 문제이다. 이참에 어린이 놀이터를 안전체험학습장으로 만들어보자.

대부분의 안전사고는 초기에 어떻게 할 줄 모르고 당황해서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이 닥쳐왔을 때 무의식적으로 몸이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어려서부터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설은 실물이 아니어도 좋다. 예컨대 소화기가 어떤 모양이고 어떻게 사용하는 정도만 인지하고 반복적으로 학습할 수 있으면 된다.

미끄럼틀, 그네, 시소, 흔들 기구 등의 놀이구조물과 바닥면에 안전용품 관련 그림을 넣거나 소화기 모형, 심폐소생술 모형, 교통신호등의 모형설치, 연기탈출, 비상탈출, 매듭 묶기 놀이 등 안전체험 용품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법제화 하면 될 것이다.

돈을 많이 들여 안전체험관을 크고 반듯하게 짓는 것도 좋다. 하지만 접근성이라든가 유지관리비용등을 감안하면 비효율적일 수도 있다.

놀이터 안전학습장 시설은 언제든 부모와 손잡고 찾을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고 기존 구조물에 그림으로 표시하거나 모형물로 만들기 때문에 추가비용이 거의 들어가지 않으며 시설물의 유지관리도 지역 내 여성 민방위대를 활용하여 엄마의 정성으로 점검하면 된다.

좋은 버릇은 자연스럽게 익히는 최고의 학습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어른들에게 오롯이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충수 | 국민안전처 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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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월 연두 기자회견을 통해 올해를 반값 등록금 완성의 해로 삼겠다고 선언했지만, 당장 신학기 개강을 앞둔 대학생과 학부모들은 등록금 마련을 위해 여전히 노심초사하고 있다. 2011년 포털 알바몬이 대학생 335명을 대상으로 한 ‘대학생 등록금 마련 실태’에 관한 조사를 보면 등록하지 않는 이유 중 1위는 ‘학비 부담’(43.9%), 2위는 ‘취업 준비를 위한 휴학’(25.6%)이었다. 등록금 마련 방법의 경우 부모님 지원이 가장 많았지만 상당수 대학생들이 등록금 때문에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 대학생의 32.8%는 학자금 대출을, 5.9%는 일반 대출을 통해 등록금을 마련했다.

그런데 사채 이자와 다를 바 없는 연 30% 정도의 높은 금리로 27개 저축은행에서 돈을 빌려 쓴 대학생이 지난해 6월 말 기준으로 7만여명에 이른다. 이들은 원리금 상환을 연체하거나 제대로 상환하지 못할 경우 대학생 때부터 신용불량자로 내몰릴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금융감독원은 저축은행들로 하여금 대학생들의 대출금리를 자발적으로 내리도록 행정 지도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럴 경우 저축은행들이 대학생 신용대출을 기피, 대학생들이 사채업자인 대부업체로 몰릴 수도 있어 무작정 규제 또한 쉽지 않은 상황이다.

2013년 교육부가 국회에 제출한 ‘중도 탈락 대학생의 경제·사회적 비용’ 자료에 따르면, 중도 탈락 대학생은 4년제 대학생과 전문대생을 합쳐 14만여명으로 나타났다. 4년제 대학생은 평균 3.3학기를, 전문대학생은 평균 1.7학기를 다니다 학교를 중도에 포기했다. 이에 대한 경제적·사회적 비용은 연간 3조2052억원이나 된다.

학자금 대출은 대학생의 청춘을 담보로 한다. 사진은 학자금 대출 통장들. (출처 : 경향DB)


이런 가운데 정부에서는 등록금 마련이 어려운 대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해 ‘든든학자금(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 제도’를 2010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2015년부터는 기존 소득 7분위에서 8분위까지 대상을 확대하고 금리는 2013년부터 적용한 2.9%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영국(0%), 뉴질랜드(0%), 호주(1.8%), 스웨덴(2.1%), 네덜란드(2.39%) 등 선진국들에 비해 여전히 높은 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따라서 든든학자금이 등록금 마련이 어려워 학업을 계속할 수 없는 학생들을 지원하는 제도라면 대출금리를 선진국 수준으로 더 낮추거나 아예 없애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옳다. 또한 C학점 이상으로 되어 있는 신청 자격 역시 완화해 보다 많은 학생들이 혜택을 누리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대출 제한 대학 신입생들에게는 30%만 빌릴 수 있게 한다는 제한 역시 재고돼야 한다. 대학 경영 부실이나 선배들의 취업 통계를 가지고 새로 입학하게 될 신입생들에게 그 책임을 함께 지도록 전가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진정으로 부실 대학을 퇴출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다면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대학 설립자 등에게 소유 재산 이전을 일부라도 인정해 주는 ‘한시적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 대학생들이 등록금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고 꿈을 접는다면 대한민국의 미래 또한 없다.


이윤배 | 조선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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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부 국립대학의 현안 중 하나는 총장 임용 후보자에 대한 제청과 관련된 문제일 것이다. 몇몇 대학들이 이미 총장을 선출하였으나, 교육부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제청하지 않음으로써 당사자인 임용 후보자와 사법적 판단을 겨루고 있다. 이에 대하여 사법부는 대체로 원고인 후보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상황이다. 즉 교육부는 제청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청을 강제할 구속력은 전제되지 않는다.

현재의 사태에 대해 대학에서는 업무적 차질이 야기될 수도 있고, 총장 부재로 인한 대내외적 행정공백이 심화될 수도 있는 현실이다. 즉 학사행정과 교육 그리고 연구를 관할하고, 대외적으로는 학교를 대표하는 책임자의 부재는 그 직책이 주는 의미 이상의 역할 상실과 대외 이미지 훼손의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학내 전체 구성원들이 느끼는 감정의 일단은 곧 무기력, 그 자체이기도 하다.

현 사태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우선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교육부 장관의 제청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공립대 총장 선거가 단순히 일반선출직 선거와 같이 당선되면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당선증을 교부받고 선출되는 절차적 과정이 아니라, 중간과정에 있는 제청권자의 제청을 받아 임명권자가 임명한다고 할 때, 제청권자의 역할을 때때로 간과하는 측면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당선이 곧 임명이라는 공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제청 시에 조건부 제청을 해서는 안된다는 규정이 없는 한, 제청권자는 조건부 제청의 차원에서 제청하지 않을 수 있으며, 이는 제청권자의 고유한 권한인 동시에 재량적 처분이라 보인다.

따라서 교육부의 이번 결정은 독자적 의사결정과정에서는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교육부의 후속조치 과정이 미비하다는 것이 주목된다. 조건을 충족하면 제청하겠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당사자의 소송과 관계없이 일정 기간 내 재선거해 재청하라든지, 도무지 대안 제시가 명확하지 않은 것은 큰 아쉬움이다.

한편 후보자의 경우, 일단 총장 선거에서 선출되었으면 임명된다는 기존의 관행적 공식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제청권자의 무조건적 권한행사에 대한 기대와 확신으로 스스로 문제를 그르치고 있다. 이는 전술한 일반 선출직과 달리 제청과정을 가지며, 현재 교육부에 대해 승소하는 것은 제청권자의 재량적 제청에 대한 이해 없이 무조건적 제청을 전제로 승소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는 조건부 제청에 대한, 그리고 제청의 강제성 관점에서는 별 이득이 없는 소송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만일 제청 거부 조건에 대해 교육부에 잘 소명하고 이것이 전향적으로 받아들여져 제청이 이루어진다면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12일 덕성여대 신임 총장에 선출된 '먼나라 이웃나라'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 (출처 : 경향DB)


현재 이번 제청 건과 관련해 대학의 자율성이 학내에서 언급되고 있는데 이는 이번 사태와 거리가 있는 듯하다. 대학의 학문적 자율성은 침해되지 않았고, 선거와 같은 행정적, 절차적 자율성은 교육부를 탓할 것이 안된다. 혹시 국립대의 자율성이 정치적 자율성의 관점에서 해석된다면, 이는 이론의 여지는 있기는 하다. 그러나 교육부의 금번 결정을 대학 자율성의 훼손과 연관지어 언급하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이제 제청권자의 제청에 대한 강제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사법부는 일단 교육부가 제청은 해야 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물론 제청 여부는 아직도 교육부가 판단할 일이다. 여기에서 대학이 소송에 휘말려 장기전에 돌입하게 된다면, 그 여파는 구성원을 비롯한 대학 전체가 떠안게 될 것이다.

교육부는 대안 제시 없이 결정한 무책임한 제청 거부 사태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비정상적 대학운영에 일말의 유감을 표해야 할 것이다. 하루빨리 대학이 어떠한 형태로든 정상화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김진환 | 한국방송통신대 강원지역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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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총장

최근 어린이집의 아동학대 모습이 담긴 CCTV가 곳곳에서 공개되자 많은 국민들이 충격에 빠졌다. 정부는 보육시설 내 CCTV 의무 설치와 보육교사 처우 개선을 주장하고 나섰고,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제대로 보살필 수 없었던 현실에 자괴감과 분노를 동시에 터뜨렸다. 필자 역시 어려서 저항할 수 없다는 이유로 어린이에게 신체적·정신적 학대를 가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아동학대가 발생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 칠곡과 울산에서 발생한 어린이 학대 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되는 등 제도 개선 노력은 끊임없이 있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분노를 자아내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근시안적인 후속조치가 쏟아진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저출산 추세에 대한 대책으로 출산장려만 고민할 것이 아니라, 이미 태어난 어린이가 건강한 시민으로 자라서 제 몫을 하게 기르는 것도 신경을 써야 한다. 자기 앞가림은 물론 미래에 고령화된 부모와 조부모 세대를 부양할 다음 세대의 몸과 마음을 지키는 일인데도 이렇게 소홀하게 다루어진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제도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동학대가 끊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아동권리’에 대한 개념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어린이를 대하는 인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진다 해도 제자리걸음의 반복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것이 학대 현장에 대한 처벌 위주의 대책에 앞서 문제의 근본적인 틀을 바꾸고자 하는 사회적인 공감대 형성이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현재 우리나라는 부모나 교사 등 아동보호자들이 훈육이라는 명목으로 아동에게 행하는 모든 물리적·정신적 폭력이 곧 ‘아동학대’라는 사회적 인식이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이번 사안에서 짚어볼 점은 인천 어린이집 교사를 비롯해 상당수의 아동학대 교사들이 아이를 학대해 놓고 “훈육 차원이었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2008년 영하의 날씨에 5세 아동을 발가벗겨 외부에 세워둔 보육교사는 “아이를 바르게 키우려고 그랬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사안들을 접할 때마다 ‘훈육과 학대의 경계가 과연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의문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아동학대가 ‘교육’이나 ‘사랑’으로 포장되지 않기 위해서는 ‘아동권리’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훈육은 분명 필요하지만 아동권리에 대한 인식이 바탕이 된 훈육과 그렇지 않은 경우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아동학대 사건이 확인된 인천의 한 어린이집 (출처 : 경향DB)


유엔은 1989년 ‘어린이는 비로소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의 인간’이라는 정신을 바탕으로 ‘아동권리협약’을 선포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르면 아동을 권리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 인식하고 있다. 즉, 어린이를 연약하고 보호해줘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권리를 지닌 능동적인 존재로 보는 것이다.

훈육 차원이더라도 지속적으로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거나 상처가 된다면 그것은 아동학대다. 부적절한 훈육도 아동학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린이를 엄연한 권리의 주체로 인식하고 ‘어린이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면 학대 가해자들이 아동의 문제행동에 대한 과도한 처벌과 폭행을 훈육의 일종이라고 합리화할 수 없을 것이다.


오종남 |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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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 정상화를 목표로 지난해 9월부터 ‘선행학습 금지법’으로 불리는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되고 있다. 이 특별법 1조에 따르면, 이 법은 ‘교육기본법’에서 정한 교육 목적을 달성하고 학생의 건강한 심신 발달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고, ‘교육기본법’ 8조는 학교 교육은 학생의 창의력 계발과 인성 함양을 포함한 전인적 교육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그런데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이 법이 학교만을 적용 대상으로 하고, 실제 선행학습의 주범인 학원을 포함한 사교육 업체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어 실제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현행 선행학습 금지법에 따르면, 사교육 업체가 선행학습을 내세운 광고를 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을 뿐, 사실상 제한 없이 선행학습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처럼 선행학습 금지법이 학교에서는 선행학습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반면, 학원을 포함한 사교육 업체들은 선행학습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 줌으로써 사교육을 부추기고 공교육 정상화를 방해할 뿐만 아니라, 서민들의 사교육비 부담도 가중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이 법이 시행된 이후 자녀들의 선행학습을 원하는 학부모들이 학원이나 교습소 등 사교육 업체에 자녀들을 보내는 비율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방학 동안 다음 학년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다른 학생보다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법의 시행으로 학부모와 학생들의 발걸음이 사교육 시장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선행학습 금지법이 실질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학교뿐만 아니라 사교육 업체들도 선행학습을 할 수 없도록 금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EBS 특집 '행복한 교육'의 한 장면 (출처 : 경향DB)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서민들의 사교육비 지출을 줄여주기 위해서는 현행 선행학습 금지법을 개정해 사교육 업체들이 선행학습을 할 수 없도록 금지해야 하고, 그동안 사교육비 절감과 수도권과 지방 학생들 간의 교육격차 해소에 기여한 것으로 나타난 교육방송(EBS)의 수능 연계정책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교육과정평가연구’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수능-EBS 연계정책은 다양한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왔다. 이 논문에 따르면, 수능-EBS 연계정책은 학생들의 수능에 대한 불안감과 사교육 의존도를 감소시켰을 뿐만 아니라 학습 부담 역시 완화했다. 특히 EBS-수능 연계정책으로 수능을 대비한 학습 내용과 범위가 명확해져 서울에 비해 사교육 환경이 열악한 지방 학생들이 자기주도적으로 수능 대비 학습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됨으로써 지방 학생들의 수능 준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일부에서는 EBS-수능 연계정책이 학교 수업을 기계적인 문제풀이 방식으로 변질시키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학교 교사들이 수업 방식을 정상적으로 바꾸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어 EBS-수능 연계정책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효과를 상쇄할 정도로 심각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동안 교육현장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어 왔던 공교육 파괴와 미친 사교육비, 그리고 지역 간 교육격차 심화 등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역 간 교육격차 해소와 학생들의 학습 자신감 고취, 그리고 자기주도 학습능력 향상 등 긍정적 효과를 낳고 있는 EBS-수능 연계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일부 사교육 업체들과 사교육 시장에 진출한 언론사들의 비판 때문에 EBS-수능 연계정책을 포기하게 되면 우리나라 교육환경은 또다시 공교육이 파괴되고, 서민들의 사교육비 지출이 증가하게 되어 사교육 업체의 배만 불리는 부작용을 낳게 될 것이다.


최진봉 |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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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지계(百年 之計)란 말이 있다.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100년 앞을 내다보고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불멸의 금언이다. 그런데 황우여 교육부 장관의 최근 언급은 과연 ‘100년 계획을 세우는’ 부처 수장으로서 할 이야기인지 귀를 의심케 한다. 황 장관은 그제 대학생들을 만난 자리에서 “취업 문제를 먼저 해결한 다음에, 취업에 필요한 소양으로서의 인문학과, 자기계발을 위한 인문학을 생각해야 한다”며 ‘인문학보다 취업이 우선’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청년고용률이 24%에 불과한 것에 장관으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황 장관은 지난달 27일 “이제 취업 중심의 교육제도로 재조정해야 한다”고 대학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물론 황 장관의 발언은 취업난에 고통받는 학생들을 향한 걱정과 고민이 담긴 얘기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인문학 타령’ 하지 말고 취업에만 신경 쓰라는 식의 발언은 대학을 직업양성소로 취급한다는 얘기로 들릴 수밖에 없다.

주지하다시피 인문학은 ‘생각을 통해’ 인간의 가치를 탐구하는 기초학문이다. 한동안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실용적 가치와 신자유주의의 효율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시됐지만 최근 인문학의 가치가 재발견되고 있다. 시민들이 다시 인문학을 찾고 기업도 인문학에 눈을 돌리고 있다. 애플 신화를 이룬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이 기술과 결합할 때,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결과가 창조된다”고 했다. 애플은 물론 구글이나 IBM 등 IT산업을 선도하는 기업들도 인문학 전공자들을 우대하고 주요 부서에 배치하고 있다. 국내 기업에서도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교육 현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황 장관은 '수능과 EBS의 연계율을 낮출수 있느냐'는 질문에 "지금 70%를 너무 고정적으로 하지 않고 수능체제 개편과 맞물려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_ 연합뉴스


물론 이런 인문학 붐이 이 사회 전체가 인문학의 깊이와 향기를 향유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여전히 기술과 기업의 포장용으로 동원되는 한계가 있다. 아직 인문학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결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이 더욱 풍성하게 열매를 맺도록 장려해야 할 책무가 교육 정책을 총괄하는 황 장관에게 있는 것이다. 대학에서 인문학의 가치를 마음껏 호흡한 건강한 시민이 사회로 진출, 기업의 발전에도 기여하도록 교육 정책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건 대학의 본령일 뿐 아니라, 기업을 포함한 이 사회의 발전이라는 실용적 목적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황 장관의 말대로 사회적인 수요와 졸업생 수 사이의 괴리 등 구조적인 문제점을 살피는 일도 필요하다. 그러나 일국의 교육 수장이라면 취업 사관학교로 변질되는 대학 교육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지 고민하는 게 우선이다. 그것이 오늘날 한국 교육의 고질적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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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보육료를 둘러싼 정치·사회적 논란이 3개월 만에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시·도 교육청이 교부금을 쪼개 어린이집 보육료를 부담하도록 교육부가 법 개정을 추진 중인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시·도 교육감들은 일제히 반발했다. 교육재정을 늘려도 모자랄 판에 보육료의 추가 부담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다시 ‘보육대란’을 자초하려 하는지 정부에 따져 묻고 싶다. 이런 무리수를 쓰면서 시·도 교육청에 어린이집 보육료 부담을 지워야 할 만한 정책적 이익이 있는지 의문이다.

박홍근 의원(새정치연합)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교육부는 어린이집 보육료 등을 교부금에서 사용하도록 교부금법의 목적 조항을 개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법률을 개정해 어린이집 보육료 부담 주체를 시·도 교육청으로 명문화해 논란을 원천봉쇄하자는 의도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의 교부금 제도 개선 필요성 주문이 나온 뒤 첫 후속조치인 셈이다. 그러나 이는 무엇보다 기존 법률과 충돌하는 문제가 있다. 현행 영·유아법은 어린이집 보육료를 교육청이 아니라 중앙정부가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법적 충돌 문제를 해결하려면 영·유아법도 바꿔야 한다.

참여연대와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사회단체 회원들이 4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보육의 국가완전책임제' 시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법률적 문제는 또 있다. 어린이집은 일부 교육 기능을 하고 있지만 보건복지부 소관이다. 시·도 교육청이 관장하는 시설이 아니므로 자연히 보육료 부담 의무도 없다. 교육부의 이번 방침은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도 위배된다.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 “무상보육은 국가 책임”이라고 약속했고 당선된 뒤엔 “중앙정부 부담”이라고 확언한 바 있다. 교육부는 법 개정 필요성에 대해 “제도적 보완”이라고 설명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시·도 교육청은 그러잖아도 올 교부금 예산이 지난해보다 1조4000억원 줄어 아우성치고 있는 상황이다. 교원 명예퇴직 수당마저 주지 못해 수천명의 신규 교사를 뽑아놓고도 발령을 내지 못하고 있다.

시·도 교육감들은 최근 황우여 교육부총리가 간담회에서 “대통령의 말씀은 교육재정 운용을 선진화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며 배신감까지 토로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정책 전환을 하기 바란다. 어린이집 보육료 문제는 교육복지의 현안일 뿐 아니라 멀리 보면 증세 논란과도 맥이 닿아 있다. 그렇다면 정부·여당은 시·도 교육감들과 소모적 기싸움을 반복할 게 아니라 이참에 보육료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논의의 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여야 원내대표도 복지 문제에 대한 국민적 논의기구 구성을 제의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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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노동을 사회화한다는, 꿈같은, 때로는, 사회주의적인 기획으로 여겨지는 일. 페미니스트들의 염원 같기도 한, 가사노동의 사회화 중 핵심을 차지하기도 하는 보육노동의 사회화.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구나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보육노동은 사회화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하청노동으로 전가된다. 아니 용역 서비스 상품이 된다.

전통적으로 부모나 가족 성원이 사적 영역에서 맡았던 아동보육이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의 일부로 포섭되면서, 그것은 ‘노동’의 문제라는 덫에 빠진다. 아니 그냥 노동일 뿐이다. 보육에 노동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기묘한 형태의 노동, 즉 ‘돌봄노동’ 말이다. 게다가 학교라는 곳이 그 ‘돌봄’과 ‘양육’(보육)의 기능 일부를 맡는다면. 돌봄은 과연 복지문제인지, 교육문제인지, 노동문제인지 불분명해지는 영역에 놓이고 만다.

이렇듯 가사노동이 떠맡던 ‘보육’이 자본주의 국가의 사회복지와 맞물려 변질되었다. 꿈꾸던 보육의 ‘사회화’가 아니라 노동으로, 그것도 위탁노동으로. 심지어 교육기관의 하청사업으로 전가되고 확장되었다. 근데 여기에는 어떤 사회적 합의가 있다기보다 도구적인 이해가 서로 맞아떨어지고 있는 듯하다. 부모는 핵가족에서 자녀교육을 홀로 떠맡는 부담을 국가와 사회가 조금은 덜어가길 바란다. 그리고 국가는 사회복지의 확장 속에서 이를 교육체제의 연장이라는 미봉책으로 해결하려 한다. 정치권은 부모=유권자들의 요구에 직면해 숙려 없이 제도들을 이것저것 도입한다.

사실 인간 재생산, 아니 노동력의 재생산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항상 뜨거운 감자다. 어떻게 인간을 보육하고 교육하여 노동력으로 재생산하는가의 문제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여전히 논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게 문제다. 돌봄은 성별화된 노동, 즉 여성의 노동이었기에 여성의 일방적인 노동력 제공에 의지했고 ‘모성’담론으로 포장되었다.

하지만 이제 노동자가 보육을 떠맡는다고 해서 이전에 가사노동이었고, 사회적 부불노동이었고, 인정받지 못했던 보육의 기능이 사회적 가치를 월등하게 얻게 되지는 않는다. 보육노동은 여전히 여성의 노동이고,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몫이 되었다. 그리고 지불노동이 된 보육노동은 불안정노동이고, 저임금노동이고, 하층노동이다. 말하자면 성별 분업체계의 유제와 불안정노동의 이중질곡에 놓여 있는 것이 바로 돌봄 혹은 보육노동이다.

21일 대전 서구의 한 어린이집이 전국에서 확인되고 있는 보육 교사들의 잇단 유아 폭행사건으로 부모들의 불안감이 확산되자 실내에 CCTV를 설치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최근 임신 8개월된 보육교사의 돌봄아동 학대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나는 이 공분에 더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의문이 든다. 자신의 아이를 가정이 아니라 보육원에, 유치원에, 학교에 맡기는 부모는 얼마나 알까. 자신의 아이가 어떤 ‘돌봄’노동자의 손에 맡겨져 있는지? 그들 돌봄노동자, 혹은 교사가 어떤 대우를 받고 어떤 노동조건하에서 자신의 아이를 ‘돌봄’노동하고 있는지? 정말 돌봄노동이 불가피하다면, 즉 부모의 돌봄노동 일부를 노동자들에게 위탁하고, 나아가 이를 학교라는 장소에서 교육의 기능과 합치는 현 시스템이 불가피하다면 이제야말로 차분히 그들은 노동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자신들의 돌봄을 대행해주는 보육·교육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부모가 노동문제를 자신의 아이들을 위한 복지라는 차원에서 관심 가져야 할 이유다. 계약제 바지선장의 무책임과 부주의가 세월호 참사의 한 원인이었듯이, 아이들 돌보는 보육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역시 마찬가지다. 부모 되기, 그것은 자신의 경계를 넘어서는, 사회를 바라보는 인식을 포함한다.


권영숙 | 민주화를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노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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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파장이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워낙 충격적이었다. 네 살배기가 주먹에 맞아 공중으로 붕 떴다가 방바닥에 나자빠지는 장면을 보면서 다들 가슴을 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TV는 같은 장면을 계속 방영해 사회적 분노를 키웠다. 이로써 이 사건은 아동학대 사건의 악질적 사례로 자리 잡았다. 학대 교사는 곤충처럼 채집돼 두고두고 소개될 ‘나쁜 표본’이 되었다.

이번 어린이집 사건도 강자에 의한 ‘갑질’의 형태다. 교사는 권위와 힘으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네 살배기를 학대했다. 우월한 권력을 부당하게 행사한 것이다. 그는 분노 조절 장애를 가진 듯하다. 그런데 대중도 분노 조절에 실패했다. 교사 신상이 털리고 사진과 카카오톡, 일부 가족 이름까지 공개됐다. 사회적 분노가 근본적 해결책 마련이 아니라 분풀이 동력으로 소진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분노가 개인에게 집중되면 사건의 구조와 본질은 부각되지 못한다. ‘땅콩 회항 사건’이나 ‘백화점 모녀 사건’에서도 대중의 공분이 개인에 대한 비난으로 치환되면서 정작 근본적 문제점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러니 유사 사건이 발생하고 분노가 폭발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학대 교사는 인터넷에 공개된 블로그에 “순수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나도 순수한 마음을 갖고 싶다”고 썼다. 블로그 닉네임은 ‘사랑스러운 그녀’였다. 이를 두고 “양의 탈을 쓴 늑대” 등 온갖 악담이 쏟아졌다. 무지막지한 네 살배기 학대와, 순수해지고 싶다는 글이 똑같이 31살 교사 한 사람에 의해 생산된 것임을 놓쳐서는 안된다. 개인의 문제를 따질 양이면 이런 양면성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평가해야 공평하다. 이제 분노의 대열에서 빠져나와 차분히 생각할 때가 되었다.

민간 어린이집 교사의 현실은 열악하다는 말로는 모자란다. 그들은 하루 평균 10시간 일하고 월 120만원을 받는다. 올 최저임금 월 116만원 수준이다. 꼬박 10시간 동안 자신을 챙기지 못하는 아이 20여명을 혼자서 가르치고 밥 먹이고 씻기고 낮잠 재우고 용변 관리를 해야 하는 중노동 대가로는 너무 적다. 이것만이 아니다. 교사 5명 중 4명은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연월차 수당, 초과근무수당, 상여금이 아예 없다. 저임금·장시간·고강도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교사들에게 어떻게 양질의 보육서비스를 주문할 수 있겠는가.

어린이집은 부조화의 공간이다. 사고라도 날까봐 가슴 졸이며 아이를 잘 돌봐주기 바라는 학부모의 높은 기대치와, 진정성을 갖고 아이를 대하기 힘든 교사들의 현실이 부딪치는 곳이다. 유아 교육 측면에서도 현실과 이상이 충돌한다. 미국 심리학자 게젤은 유아의 두뇌는 6세 전에 거의 성숙단계에 이르고 정신지능과 성격도 이때 급속도로 형성되기 때문에 유아 교육은 일생의 어느 시기보다 중요하다고 설파했다. 또 유아 교육에서는 발달단계와 행동특성이 각자 달라 상황별 대처가 중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민간 어린이집에서 이런 세심한 관리는 엄두도 낼 수 없는 형편이다. 아동 학대를 예방하고 제대로 된 유아 교육을 하기 위한 우선적이고 근본적인 조치는 교사들의 처우 개선이다. 아이를 사랑으로 대하는 것도 학대하는 것도 다 교사가 하는 일이다.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면 학부모의 마음으로 아이를 돌볼 것이다.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아동 학대사건이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 것은 바로 교사들의 급여가 높고 노동 환경이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이 아동 학대 근절을 위한 또 다른 대책으로 꼽힌다. 교사 자질 검증이나 처벌 강화는 그 다음 문제다.

2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임원들이 아동학대예방대책 관련 기자회견 시작에 앞서 고개숙여 사과를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그럼에도 정부는 갈팡질팡하고 있다. 재탕, 삼탕 대책을 남발하더니 지난 24일엔 전일제 어린이집은 맞벌이 부부에게만 개방하고 전업주부는 가정 양육을 유도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가 강한 반발을 샀다. 여성이 가사·육아 노동을 해야 한다는 성차별적인 발상에서 나온 정책인 데다 비자발적 전업주부들의 입장을 감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동 학대 예방 효과가 낮다는 점이 문제다. 이것도 데자뷰다.

‘타임아웃’이란 유아교육 방식이 있다. 문제 행동을 한 아동을 시간적·공간적으로 격리시켜 스스로 성찰하고 대안을 모색하도록 하는 훈육방법이다. 어린이집의 ‘생각 의자’가 대표적이다. “아직도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대통령, 정치인, 장차관들을 생각 의자에 앉히고 싶다.” 한 민간 어린이집 교사의 발언이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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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은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어린이집 수가 급격히 증가한 지난 10여년 사이 2~3년 주기로 반복되는 현상이다. 그래서 대책 또한 판박이처럼 반복되는 모양새이다. 그렇다면 어떤 대책들이 지금까지 나왔는가? 대책의 큰 흐름은 두 가지이다. 첫째 학대 발생 원인을 개별 어린이집에서 찾는 흐름이다. 둘째 비정상적 보육환경을 만드는 사회구조에서 찾는 흐름이다. 전자는 감시와 처벌 위주의 형사정책적 경향을, 후자는 구조 변화와 보상 중심의 사회정책적 경향을 보인다.

보육교사와 원장 등의 개인적 일탈로서 학대를 보는 형사정책적 경향은 처벌과 인성 교육 강화, 그리고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한 감시 확대를 대책의 주 내용으로 제시한다. 어린이집 아동학대 문제가 본격적 사회이슈가 된 2010년 이명박 정권의 보건복지부 대책이 이 관점을 잘 보여준다. CCTV 설치 유도, 학대자 영구 퇴출, 관련 종사자 자격증 취득 조건 강화와 인식 개선 교육 등이 주 내용이다.

보육교사 처우와 근무 환경 개선은 중요한 대책이 아니었다. 임기 내내 복지축소 논쟁의 불씨를 제공했던 이명박 정권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반면 집권 초반기 박근혜 정권의 보건복지부는 비정상적 보육환경 개선을 추구하는 사회정책적 경향을 대책에 반영하였다. 2013년 5월 또다시 불거진 어린이집 아동학대 문제 해결을 위한 보건복지부 대책은 보육교사 자질 강화 및 처우 개선을 큰 제목으로 하고 있다.

보육교사 처우·근로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근무환경 개선비 단계적 인상, 대체교사 확대를 통한 업무 분담, 보육교사 스트레스·분노 관리 및 상담 프로그램 운영 등이 주 내용이다. CCTV 설치는 언급하지 않는다. 2010년 이명박 정권기 대책과 비교할 때 감시와 처벌의 형사정책 관점보다 보육환경 개선에 초점을 맞추는 사회정책적 성격을 더 강하게 보이고 있다.

2010년 대책의 형사정책적 성격이 2013년에는 왜 완화되는 현상을 보였을까?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핵심 공약으로 출범한 박근혜 정권의 초기 분위기가 중요한 요인이다.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큰 흐름에는 첫째 감시와 처벌 위주의 형사정책, 둘째 구조적 문제 해결과 보상 위주의 사회정책이 있다. 감시와 처벌은 당장 대중의 정서에 맞는 장점 때문에 정치적 부담이 덜하고 단기적 문제 해결 효과도 있다. 반면 구조적 문제 해결과 보상을 시도하는 사회정책은 장기적이지만 근본 대책을 제시하는 장점이 있다. 사회구성원 간 대립과 갈등을 유발하는 감시와 처벌에 비해 사회정책 차원의 근본적 문제 해결 시도는 사회적 평화로 가는 멀지만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2010년 대책에도 불구하고 재발한 2013년 어린이집 아동학대 대책은 감시와 처벌을 주 흐름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보육교사에 대한 보상 강화라는 복지로써 어린이집 아동학대라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보육현장과 학부모 간 사회적 평화를 만들어간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런데 기초연금 논쟁을 계기로 복지부 장관이 그만두고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을 ‘선거 때나 할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어 놓은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것이 2015년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대책을 CCTV로 대표되는 감시와 처벌 위주의 형사정책처럼 둔갑시킨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박근혜 정부가 보여준 2013년과 올해의 어린이집 아동학대 대책은 그 모습을 서로 달리 하였다. (출처 : 경향DB)


아동학대 문제를 발생시키는 근본적 원인은 영리사업자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보육서비스에서 찾을 수 있다. 비영리 국공립·법인 어린이집 비율이 획기적으로 높아지지 않는 한 어린이집 아동학대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감시와 처벌에서 벗어났던 2013년 대책은 국공립·법인 어린이집 확대 관련 청사진은 제시하지 못하였다. 보육교사 자격 기준 강화를 전제로 하되 적절한 보상과 근무 여건 개선이 뒤따르지 않으면 CCTV의 사각지대에서 아동학대는 계속될 것이다.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대통령의 임기가 아직 3년 남았다. 보육현장을 엄습하는 감시와 처벌의 형사정책으로써 선거 때의 복지 약속을 저버릴 것인가? 아니면 국공립 비중 확대라는 구조 변화와 보육교사 처우·근무환경 개선이라는 사회정책으로써 다시 초심으로 돌아갈 것인가? 선택을 위한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정재훈 | 서울여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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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와 다르게 ‘교사’의 노동에는 감정노동, 양육노동, 그 외에 생활노동 등이 집적되어 있다. 이러한 교사의 노동은 학생들의 나이가 어릴수록 더욱 고되다. 이유는 간단하다.

주지하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교육기관은 양육자로서의 가정이 담당하던 역할을 상당부분 넘겨받게 되었고 나이가 어린 학생을 교육하는 유치원, 어린이집과 같은 보육기관일수록 학생들의 생애주기 특성상 교육에서 양육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육교사들은 다른 교육기관의 교사들에 비해서도 장시간·고강도·저임금의 노동을 하고 있다. 학생들의 생활관리, 대소변 처리부터 식사준비와 설거지, 기관의 청소까지. 보육교사의 대다수가 ‘여성’임을 감안했을 때 이들의 노동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집의 안에서든 밖에서든 ‘집안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과 스트레스의 관계를 경험적으로 접근한 여러 연구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대체로 노동의 강도와 스트레스의 정도는 비례한다. 이러한 관계의 속성은 ‘사회적’이다.

여기서 사회적이라는 의미는 에밀 뒤르켐이 개인 또는 심리적인 현상으로 치부되어 오던 ‘자살’을 ‘자살률’로 접근하여 사회학사에 ‘사회적인 것의 계기’를 기입한 것처럼 ‘개인적인 것은 언제나 사회구조적인 원인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는 보육교사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신자유주의의 전면화에 따른 노동시간의 증가, 부모의 양육시간 감소, 보육기관 간의 경쟁, 교육의 상품·소비화, 보육기관의 노동유연화 및 기관 중심의 고용형태-상근이 아닌 반상근 시스템 등의 문제는 궤를 같이하며 보육교사의 고된 노동에 대한 사회적 원인의 얼개를 만들어낸다.

이는 노동자들의 출산에 의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노동의 방해요소인 양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아교육기관을 늘리고 보육교사 자격증의 기준을 완화하여 그를 통해 유아라는 생명을 관리하고자 하는 국가의 생명정치적 전략과도 관련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성장 이면에 내맡겨진 아이들을 감당하며 생기는 교사들의 상례적 스트레스와 예외적이지만 스트레스가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 역시 교사 개인의 성품과 자질의 문제로 환원되어서는 안된다.

정부세종청사에 있는 한 어린이집 원아들과 보육교사들이 지난 22일 어린이집 실내 놀이공간인 유희실에서 장애물 뛰어넘기 놀이를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이번 ‘어린이집 폭력’ 사건 이후 여당은 보육기관 내 폐쇄회로(CC) TV 설치, 야당은 처우개선을 주장하고 있고 해당 교사와 기관에 대한 처벌 및 단속 역시 재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에 앞서 이번 ‘사건’이 표상하는 것은 보육교사들의 상처받은 ‘스트레스적 신체’다. 이 신체는 교사의 선악, 폭력성의 유무와 관계없이 모든 교사들에게 선험적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CC TV보다 부모, 학생, 교사, 기관의 ‘신뢰서클’을 만드는 것이, 교사의 처우개선과 함께 슈퍼비전(학생사례 교육)과 역량강화를 위한 재교육, 교사의 마음을 살피고 돌볼 수 있는 주기적인 상담을 제공하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다.


박경주 | 성공회대 사회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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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책이 있다. 1977년에 나왔으니 40년 가까이 된 책이다. 동화작가 이오덕이 젊은 시절 쓴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이다. 최근 국내 어린이 놀이터가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이오덕의 책 제목이 ‘이 아이들은 어디 가서 놀란 말인가’로 바뀌어 다가온다.

올해는 짐작하건대 한국에서 ‘놀이터 난개발’이 시작되는 첫 해가 될 것이다. 너도나도 여기저기에 놀이터를 짓겠다고 그야말로 난리다. 여기에 포털 기업과 지자체까지 가세해 점입가경이다. 이런 흐름은 아이들의 놀 공간에 대한 배려가 턱없이 부족했던 그간의 사정으로 본다면 반가운 일이어야 하는데, 마음 한쪽이 뭐에 꾹 눌린 것처럼 불편하다.

한편에서는 놀이터를 크고 보기 좋게 지으려고 아우성이고, 한편에서는 어린이 놀이터 안전관리 설치검사에서 불합격을 받거나 검사를 신청하지 않은 놀이터를 국민안전처가 오는 27일 폐쇄 또는 철거하기 때문이다.

이 절체절명의 처지에 놓인 전국 놀이터의 숫자는 2015년 1월 현재 2842개이고 서울이 무려 724곳이다. 이렇게 폐쇄될 위기에 처한 놀이터 형편은 어떨까. 오는 27일을 전후로 이 놀이터들은 아이들이 들어갈 수 없게 펜스가 쳐지고 경고장이 붙고 철거된다.

만약 아이들이 놀 곳이 없어 들어가 놀면 놀이터 관리 주체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이 무슨 일인가? 놀이터 안전에 문제가 있으면 새로 짓지는 못해도 보수를 해서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해야지 폐쇄와 철거라니. 위험하니까 없앤다는 상상력이 끔찍하다. 아이들은 지금 당장 놀 곳이 필요하다. 더욱 기막힌 것은 이렇게 불합격되거나 처음부터 검사를 신청하지 못해 검사에 떨어진 놀이터가 대부분 오래된 주택가나 낡은 아파트 주변의 놀이터라는 점이다. 불합격과 미검사 놀이터 2842개 가운데 2415개가 이들 지역에 위치해 있다. 한마디로 가난한 동네의 놀이터가 대부분 폐쇄 지경에 놓여 있다는 말이다. 특히 이곳에 사는 아이들은 다른 지역에 사는 아이들보다 놀 공간이 매우 열악한데도 이번에 적용되는 ‘어린이 놀이시설 안전관리법’이 그 놀이터조차 없애려 하니 악법이 아닐 수 없다.

이름 있는 아파트나 부자 동네 아파트는 자체 관리비용을 놀이터 개·보수에 쓸 수 있지만, 영세한 아파트 및 주택단지에 있는 놀이터는 사실상 자체 개·보수가 어렵다. 검사를 받자니 비용이 부담이고, 안 받자니 불합격되어 이용이 중지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다. 형편이 나은 곳에 사는 아이들은 굳이 놀이터가 아니더라도 이런저런 스포츠와 레저, 체험 활동이 가능하지만 2008년 이전에 지어져 지금 당장 놀이터가 문을 닫아야 하는 곳 가까이에 사는 아이들에게 놀이터란 전혀 다른 의미다. 단언하건대 철거되는 놀이터에 가까이 사는 아이들에게 놀이터란 이 도시에서 그들에게 허락된 마지막 대지다. 양보될 수 없는, 더 물러날 곳이 없는 장소란 말이다.

이 법의 시행은 놀이터의 심각한 불균형과 갈등을 만들어낼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이유로 오는 27일의 법 집행을 반대한다. 유예기간을 늘리고 담당 지자체가 예산을 확보해 놀이터를 개·보수하기를 요구한다. 놀이터 안전검사에 떨어지거나 신청조차 못한 놀이터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에 대한 대책이 없는 법 집행은 막아야 한다. 놀이터는 너희가 알아서 하라고 할 대상이 아니다. 놀이터는 1급의 공공 영역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무리한 법 집행이 주민과 아이들의 동의 없이 이루어지는 걸까.

첫 번째는 놀이터의 철거와 폐쇄가 이곳을 다른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한 정지작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곳이 어린이 놀이터인가. 놀이터를 철거해 그곳에 예컨대 주차장이나 주민 편의시설 등을 넣으려 한다. 전형적인 아이들 코 묻은 돈 빼앗는 치졸한 행정집행이다.

두 번째는 누가 이런 일로 이익을 보는가이다. 나는 누가 이익을 볼 것인지 알고 싶지 않다. 그러나 최대의 피해자는 분명하다. 그것은 아이들이고 나아가 그들을 돌보는 부모이다. 아이들하고 갈 곳이 없는데 어떻게 아이를 키울 수 있겠는가. 함께 반대해야 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세 번째는 비판보다 바람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나는 놀이터와 관련된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아이들의 놀 공간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가 무엇인지 되새긴다. 그것이 다름 아닌 아이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고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서울 관악구 ‘난곡 어린이공원’ 디자인. 이 놀이터는 ‘우리동네에 거대한 거미집이 생겼어요’란 테마로 조성된다. (출처 : 경향DB)


당신은 놀이터를 어떻게 보는가. 그것은 당신이 아이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말해준다. 먼저 동네 작은 놀이터부터 텃밭 가꾸듯 가꿔 모두 되살려야 한다. 대규모 랜드마크로 지어지는 놀이터 예산을 폐쇄와 철거 위기에 처한 2415개 동네 놀이터로 나눠야 한다. 이곳은 도시에서 아이들과 부모가 무상으로 가서 숨을 돌릴 수 있는 마지막 ‘곳’이기 때문이다.


편해문 | 놀이터 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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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쯤 되면 학교에서는 새 학년을 위한 담임 배정 작업이 이루어진다. 학교장은 원활한 학교운영을 위해 교사들을 성별, 연령, 전년도 담임 학년, 개인적 상황 등을 고려해 배정하고자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초등학교 교장들이 이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6학년 담임을 희망하는 교사가 없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6학년 담임 배정을 꺼리는 이유는 사춘기에 접어든 학생들 생활지도의 어려움 때문이다. 일부 학생들은 여교사보다 키가 크고 힘도 세다.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는 담임교사에게 반항하거나 욕설을 하기도 하며, 심지어 교사를 폭행하는 사건도 종종 발생한다. 여기에 타 학년 담임들은 하지 않는 상급학교로의 진학 상담, 졸업 준비 등 6학년 고유 업무가 있다. 한마디로 말해 6학년 담임을 맡으면 1년이 피곤해진다. 이 때문에 3월1일자로 새로 전입해 온 교사에게 6학년 담임을 일방적으로 맡겨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전입 교사는 그 학교의 특성도 파악하지 못한 채 오자마자 6학년 담임을 떠맡게 된다. 효과적인 학생지도가 이루어질 리가 없다.

그런데 6학년 담임 배정 기피현상은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첫째, 억지로 6학년 담임을 맡게 된 교사가 1년간의 담임 업무를 사명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서든 1년을 사고 없이 대충 보내고자 할 것이다. 둘째, 6학년 담임을 기피하게 되면서 교사들 간 반목과 질시가 생길 수 있다. 타의에 의해 수차례 6학년 담임을 맡은 젊은 교사들은 ‘힘들고 어려운 일은 전부 우리가 맡게 된다’는 피해의식을 갖게 될 것이다.

셋째, 젊은 교사들에게만 6학년 담임을 맡길 경우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여러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 오랜 교직생활을 통해 체득한 노하우가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초등학교에서 매년 되풀이되는 것은 힘든 일, 귀찮은 일을 하지 않으려는 이기주의 교직문화 때문이다.

개학한 서울 광진구 신자초등학교 2학년 교실에서 담임교사가 방학 동안 자란 학생들의 키를 비교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6학년 담임에게는 고경력 교사의 경험과 노련함이 반드시 필요하다. 여기에 열정이 더해진다면 훨씬 더 안전하고 바람직하게 6학년이 운영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고경력 교사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적극적으로 학교 업무에 임해야 한다. 6학년 담임에 대한 적절한 제도적 보상도 고려해볼 만하다.

교사가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 교육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 학생·학부모·사회는 교육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정부에서는 교육개혁을 위한 각종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교육 최전방에서 정책을 수행하는 교사들의 마음가짐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런 정책들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바야흐로 교사들의 마음가짐·교직문화의 변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손형국 | 성균관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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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출신의 시인 칼릴 지브란이 쓴 <예언자>는 속독이 필요치 않다. 느릿느릿 행간의 의미를 곱씹으면서 읽는 게 낫다. 난해하거나 사전지식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짧고, 평이한 글로 삶의 지혜를 일러주기 때문이다. ‘메마른 영혼을 적셔주고 삶의 나침반이 돼주는 잠언록’이란 다소 상투적이고 과한 상찬(賞讚)도 있지만 눈으로 읽기보다, 가슴으로 느끼기에 제격이다.

지브란은 <예언자>에서 부모들이 새겨들을 만한 얘기를 들려준다. 그는 부모는 활, 자식은 화살에 비유했다. 지브란은 “활이 흔들리지 않아야 화살도 제대로 날아간다”고 했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흔들리지 않아야 자식도 제대로 성장한다. 화살은 활이 많이 휘어야 멀리 날아간다. 한데 활의 휘어짐은 고통이다. 활의 고통이 클수록 화살은 멀리 날아간다. 부모도 그렇다. 등이 휘는 고통이 있어야 자식은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자식이 ‘등골 브레이커’가 아니어도 부모의 등은 휘게 마련이다. 자식이 ‘오포 세대(연애·결혼·출산·인간관계·내집마련을 포기한 세대)’라 해도, ‘장그래’만도 못한 비정규직이라 해도, ‘찰러리맨(취업 후에도 부모에게 기대어 사는 샐러리맨)’이라 해도 감싸안고 자신들의 등이 덜 휘어 그리 된 것은 아닌지 자책하는 게 부모다. 자식이 ‘완생’이 될 수 있다면 등이 더 굽고, 더 휘는 고통을 얼마든지 감내하는 게 부모다.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 나오는 강계열 할머니는 초겨울 어느날 남편 조병만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읍내 시장에 간다. 내의를 파는 상점에 들른 강 할머니가 아동용 내복에 눈길을 주자 상점 여주인은 “나이가 어찌 되나요?”라고 묻는다. 강 할머니는 “셋은 다섯 살이고, 셋은 여섯 살인가?”라며 희미해진 기억을 더듬는다. 강 할머니는 12남매를 낳았다. 하지만 6남매는 대여섯살 때 숨졌다. 6남매를 앞세운 지 반백년이 지났지만 강 할머니는 아이들 내복도 제대로 입히지 못한 게 한으로 남았다. 강 할머니는 남편에게 “먼저 간 사람이 아이들에게 내복을 전해줍시다”라고 말한다. <님아…>에는 76년간 연인처럼 살아온 노부부의 살가운 사랑만 있지 않다. 등이 휠 정도로 뒷바라지하다 품 밖으로 내놓은 6남매뿐 아니라 가슴에 묻은 6남매를 잊지 못하는 애절한 모성애도 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덕수는 흥남부두에서 헤어진 아버지 사진을 보며 “저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 근데 진짜 힘들었거든예”라고 혼잣말을 한다. 덕수가 그만하면 잘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잘 살았다’는 개념의 모호성 때문이다. 덕수가 죽을힘을 다해 살았던 때는 한국전쟁과 4·19 혁명, 5·16 쿠데타, 유신독재가 이어진 격동의 시기였다. <국제시장>이 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가볍게 다루거나 배제해 과거사를 미화했다는 논란이 불거진 이유다. <국제시장>이 기성세대의 퇴행적 정서를 부각하고, 세대 간 불화와 오해를 촉발시키긴 했지만 덕수 또한 자식을 위해 등이 휘어버린 한 가정의 아버지였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출처 : 경향DB)


시인 김사인은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에 실린 시를 통해 등 휘는 가장의 심경을 ‘중과부적’으로 표현했다. “조카 학비 몇푼 거드니 아이들 등록금이 빠듯하다/ 마을금고 이자는 이쪽 카드로 빌려 내고/ 이쪽은 저쪽 카드로 돌려막는다. … (중략)시골 노인들 팔순 오고 며칠 지나/ 관절염으로 장모 입원하신다… 중과부적!” 짐작하건대 삶의 무게에 짓눌리고, 중과부적의 상황에 맞닥뜨리더라도 시인은 기꺼이 자식들의 활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부러진 활’과 같은 부모들도 적지 않다. 서울 서초동 아파트에서 수면제를 먹이고 아내와 두 딸을 살해한 40대 가장, 경기 안산에서 아내의 전남편 집에 침입해 전남편과 의붓딸을 살해하고 인질극을 벌인 40대 계부….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일그러진 부모들은 흔하디 흔하다. 남의 아이보다 한 뼘이라도 앞서게 하기 위해 배려보다 경쟁을 가르치는 부모, 자식의 스펙을 조작해 대학에 부정입학시키는 부모, 자신은 ‘삐딱선’을 타면서 자식에겐 바른 길을 가라고 다그치는 부모…. 그런 부모들에게 지브란은 ‘당신의 아이는 당신의 아이가 아니다’라고 조언한다. “그들은 당신과 함께 있지만 당신의 소유물은 아니다/ 당신은 그들에게 사랑만 주고, 생각을 주어서는 안된다. 당신은 그들의 육신은 가두어도 영혼은 가둘 수 없다.” 지브란의 조언에 첨언하면, 활은 화살을 날려보내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게 활의 숙명이고, 존재 이유다.


박구재 기획·문화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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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25일, 교육부는 수능영어를 절대평가 방식으로 개선한다고 발표했다. EBS 수능연계 교재의 영어단어 수를 현재의 절반으로 줄인다는 발표도 했다. 현재의 상대평가제도는 정확한 영어능력을 평가하는 데 한계가 있고, 절대평가 도입을 통해 과도한 경쟁과 사교육비 부담을 절감하자는 취지이다.

물론 여러가지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고등학교 교육이 대학입시에만 매몰된 상황에서 절대평가제 도입으로 변별력이 사라진 영어를 대신해 언어영역이나 수리영역의 학습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입시에서 변별력이 없는 수능영어 점수보다 영어논술 등 대학들이 자체적인 영어평가제도를 운영할 경우 또 다른 사교육 시장이 활성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학생들의 실질적인 역량 제고라는 교육의 본질을 고려한다면 수학능력시험은 근본적으로 절대평가 방식이 되어야 마땅하다. 수학능력시험의 본래 취지는 대학교육과정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므로 변별력은 어디까지나 기술적인 측면의 문제이지 수학능력시험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상대평가 방식이 지닌 근본적인 문제점은 1등급을 받은 학생도 영어 의사소통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평가 결과가 절대적인 역량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제는 우리도 교육과 평가의 본질을 고려할 때가 되었다. 언어, 외국어, 수리 등의 영역에서 상대적 점수와 등급만을 제공하는 데 그쳤던 지금까지의 수학능력시험은 학생들의 역량을 발굴하고 개발하는 데 매우 소극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고등학교 교육이 대학입시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 수학능력시험도 ‘문제되지 않는’ 선발기준을 제공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교육의 본질이 학생들의 다양한 역량과 능력을 개발하고 발굴하는 데 있듯이, 수학능력시험의 본질은 이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하는 데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절대평가 방식을 영어에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전체 수능평가 영역으로 확대·도입할 필요가 있다.

물론 수능영어 절대평가 방식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조건이 전제돼야 한다. 첫째, 말하기·듣기·읽기·쓰기 등 영어능력 중심의 타당성과 신뢰성 있는 등급과 평가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절대평가가 영어교육을 소홀하게 만들고 타 영역의 사교육을 확대시킨다는 우려는 절대평가로 전환되면 쉬운 문제만 출제될 것이라는 잘못된 등식에 근거한다. 적절한 등급 기준이 마련되고 등급별로 일정 수준 이상의 학습과 노력이 수반되도록 유도한다면 고등학교 교육에서 영어교육이 약화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또한 대학 입장에서도 타당성과 신뢰성 있는 다양한 평가기준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다차원적인 학생선발이 가능할 것이다.

둘째, 영어능력별로 등급 및 평가기준에 부합하는 교육과정 개선책이 마련돼야 한다. 현행 교육과정은 그대로 유지하고 평가체계만 절대평가로 전환한다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한 말하기·듣기·읽기·쓰기 중심의 영어교육과정 개편은 영어 공교육을 전반적으로 강화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절대평가제도 도입 및 영어교육과정 개편을 뒷받침할 수 있는 공교육 지원방안이 수립되어야 한다. 일부 학교에서는 원어민 교사 부족으로 인해 실용적인 어학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교육과정 운영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한다. 따라서 원어민 교사 채용, 영어 실습장비 및 교재 확보 등을 지원하여 영어절대평가 제도가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5일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학교에서 2015학년도 편입학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이 시험장을 나서고 있다. 모집인원 124명에 3959명이 몰려 평균 경쟁률 31.69 대 1을 기록했다. 영어영문학과는 108대 1로 최고경쟁률을 기록했다. (출처 : 경향DB)


수십년간 지속되어온 입시제도와 문화를 한순간에 뒤바꾸긴 어렵다. 하지만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를 생각해 보자. 대학입시 자체보다는 학생들의 실질적인 역량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절대평가 제도의 도입은 수능뿐만 아니라 우리 교육이 근본적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준다.


이창원 |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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