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모 | 경기 부천시 원미구 상2동

 

경향신문이 ‘10대가 아프다’ 기획에 이어 초등학생들의 스마트폰 이용실태를 다룬 기획을 연재 중이다. 두 기획 모두 우리가 몰랐던 학생들의 생활모습을 알게 해줘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보수 신문과 달리 경향신문은 약자인 청소년과 아이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왔다. 그런데 이번 기획은 접근 방식에 다소 아쉬운 점이 있었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아이들을 통제해야 한다는 식의 맥락을 가진 것 같아 불편하다.

창의력의 시대, 혁신의 시대라며 아이디어와 독창성을 강조한 것도 한참 전 일이다. 그러면서도 교육은 늘 낡고 진부했다. 교과서나 매스미디어에선 톡톡 튀는 천재, 과감한 혁신가를 칭찬하지만 그건 거기서의 이야기일 뿐이다. 지금도 우리 사회는 아이들을 정석대로, 판에 박은 듯이 가르친다. 거기서 벗어나는 듯한 행동을 하면 금방 말세니, 요즘 애들 문제니 한다.

 

초등학생들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살펴보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물론 카톡을 통해 친구를 따돌리고 고통을 주는 건 잘못된 행동이다. 그런데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요즘 아이들만 친구를 왕따시키는지, 카톡과 스마트폰이 없었을 땐 왕따 현상이 없었는지, 스마트폰만 없으면 수업 분위기가 좋아지고 부모와 대화도 많이 하게 될지 말이다.

문제의 본질은 스마트폰이 아니다. 나도 대학 시절 강의 중에 스마트폰을 많이 만졌지만 단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지금은 스포츠 중계를 보면서 친구들과 카톡을 하는데 마치 친구들과 한자리에서 보는 느낌이라 더 재밌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스마트폰을 많이 만지는 것과 어른들이 우려하는 사태는 연관성이 없다는 점이다. 경향의 기획기사에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많이 만질 수밖에 없는 사회적 맥락은 없을까 하는 점을 함께 짚었더라면 좋았겠다. 스마트폰의 폐해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가정, 학교, 사회가 제공하는 원인보다 크겠는가.

정치인이나 기업인은 비난을 받으면 화려한 수사로 위기를 모면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럴 만한 재주가 없다. 경향신문이 이런 아이들을 위한 대변자가 됐으면 좋겠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4개 지역과 신규 원전 후보 지역 2군데를 순회하며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원전 홍보 뮤지컬 공연을 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 등의 협조를 얻어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을 유치해 <명탐정 손오공과 함께 떠나는 원자력 이야기>라는 제목의 뮤지컬을 무료로 관람케 하고 공연 장소에서 원전을 홍보하는 책자나 만화를 배포하고 있다니 기가 막힌다. 배움의 시작 단계에 있는 어린이에게 이렇게 일방적으로 원전을 홍보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부적절할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동심을 이용한 원자력문화재단의 원전 홍보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도깨비 나라의 원자력 방망이>라는 뮤지컬을 공연해 4만3000명이 넘는 어린이에게 관람케 했다. 초·중·고교생이 참가하는 원자력공모전을 21회째 개최하고 있으며, 초등학생 대상 원자력탐구올림피아드와 NIE원자력교육 등도 매년 실시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모 일간지 NIE 섹션에 ‘6.5 강진에도 거뜬…UAE에 원자력발전소 수출, 원전 강국 코리아’라는 제목으로 낯뜨거운 원전 홍보 기사를 실어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배포했다. 교과서에 표현된 원자력 관련 내용의 수정을 요구하는 활동도 꾸준히 해왔다. 원자력문화재단의 각종 어린이 공모전 수상작과 교과서의 관련 내용은 보기 민망할 정도로 원전 찬양 일색이다.

 

후쿠시마 어린이들이 19일 도쿄 메이지공원에서 열린 탈원전 집회에 참가한 뒤 ‘원전은 필요없다’는 글귀가 쓰인 펼침막을 들고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도쿄 _ 서의동 특파원

굳이 후쿠시마 사태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원자력은 명과 암이 극명하고 논란이 많은 에너지원이다. 그런데 어느 한쪽 면만, 그것도 비판적 사고 능력이 없는 어린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세뇌하듯 주입하는 것은 그들의 미래를 왜곡하는 짓이다. 원자력에 대해 왜곡된 선입견을 갖게 함으로써 새롭게 떠오르는 신재생에너지를 포함한 폭넓고 균형 잡힌 에너지 교육을 가로막는 행위이기도 하다.

어린이 뮤지컬 공연을 포함한 원자력문화재단의 활동 재원은 국민이 내는 전기요금의 일부로 조성된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나온 것이다. 오로지 원자력을 위해서만 매년 100억원에 이르는 국민 호주머니 돈을 쏟아붓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비판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이런 차에 부산교육청의 승인 없이 어린이 뮤지컬 공동 주최 포스터를 제작하는 등 무리수까지 동원해 가면서 동심을 이용한 원전 홍보를 계속하는 것은 후안무치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린이에게 원자력은 결코 ‘행복에너지’가 아니다. 미래의 에너지는 미래세대가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이민희 | 백석예술대학 외래교수

 

0~2세 무상보육에 대해 뇌과학적 관점에서 살펴보자. 생후 0~18개월은 감정 조절의 열쇠를 쥐고 있는 우뇌의 골조공사가 이루어진다. 인생의 첫 단추를 꿰는 일과도 같다. 이 시기를 불안하게 보내면 이후에 알 수 없는 불안, 불신, 우울, 두려움 등의 다양한 심리적 문제가 발생한다.

다른 동물은 태어나자마자 걸어 다닌다. 그러나 인간은 무능력한 상태로 태어나 생존과 성장을 양육자에게 맡긴다. 인간은 직립보행을 하기 때문에 산도는 작은 반면, 상대적으로 머리가 크다. 인간이 다른 동물처럼 태어나려면 적어도 24개월은 엄마 뱃속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아기의 머리가 너무 커져서 산도를 통과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의 진화는 미숙한 채로 아기를 출산하고 나머지 기간은 외부 자궁(양육자의 품)에서 키우는 것을 선택했다.

0~24개월은 엄마 뱃속에 있어야 하는데 산도가 좁아 미리 나왔으니 인간은 모두 미숙한 채로 태어나는 것이다. 임신기간 9개월을 빼면 생후 15개월까지 아기는 자궁처럼 환경을 만들어주고 돌볼 필요가 있다.

자궁은 춥지도 덥지도 않다. 먹을 것, 마실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시끄럽지도 조용하지도 않다. 엄마의 숨소리와 심장 소리가 들리고 엄마의 두런거리는 목소리도 들리고 가끔은 아빠 목소리도 들린다. 엄마의 기분에 따라 아기도 같은 기분을 느낀다. 엄마가 힘들면 아기도 탯줄을 타고 들어오는 스트레스 호르몬의 영향을 받아 아기도 힘들어진다. 엄마와 아기는 자궁 속에서 몸이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음도 연결되어 있다.

 

서울 서초구가 10일부터 영·유아 무상보육 중단 위기에 처하는 등 보육 대란이 우려되는 3일 서울시청 어린이집에서 영·유아들이 교사들과 놀고 있다. l 출처:경향DB

출생이란 몸이 엄마와 분리되었을 뿐이지 마음은 아직 심리적 자궁 속에 있다. 그러므로 최소한 생후 15개월까지는 엄마 배 속에 있는 것처럼 아기를 돌봐주어야 한다. 그 전에 아기를 엄마에게 떼어놓으면 심리적 조산이나 사산이 발생한다.

엄마가 집에서 온갖 정성으로 아기를 돌보아도 자궁만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기는 깊은 상처를 입는다. 또한 이 시기 경험은 아기 일생의 정신건강을 좌우한다. 그러므로 아기가 받는 상처와 부정적인 경험을 줄이기 위해 우리 사회는 아기 가정을 지원해야 한다. 그중 한 가지 방법으로 아기 엄마를 지원하고 아기 아빠가 가정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을 늘려주어야 한다.

뇌과학은 사회적 비용을 절약하고 싶다면 그리고 인간의 심리적 문제를 예방하고 싶다면 0~2세의 아기 부모를 지원하라고 권한다. 무상보육으로 어린이집이 아기에게 자궁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을까? 0~2세 무상보육은 아기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사산을 유도하는 일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박상준 | 전주교대 교수 ·사회교육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5월 적정규모 학교육성과 학교선택권을 보장하겠다며 학급당 학생수를 20명 이상, 초등과 중학교는 6학급 이상, 고등학교는 9학급 이상 되도록 정하는 초중등교육법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그러자 농어촌을 포함한 도교육청, 교육 관련 단체들은 교과부의 개정안이 농어촌의 소규모 학교를 통폐합시키는 정책이고, 농어촌교육의 황폐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적정규모 학급 기준이 심한 반발에 부딪히자 교과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개정안은 통폐합이 아니라 소규모 학교의 교육여건을 개선해 적정규모 학교를 육성하려는 정책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소규모 학교의 통폐합을 추진하는 시·도교육청에 대해서는 지원금을 확대해 초등학교에 30억원, 중·고등학교에 1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교과부가 예산지원이란 당근을 사용해 농어촌의 소규모 학교를 통폐합시키려는 숨은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여기서 적정규모 학급의 의미와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교육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적정규모 학급’이란 교사가 다양한 교수방법을 활용해 학생과 소통하며 잘 가르칠 수 있는 적정한 학생수의 학급을 말하고, 그런 적정규모의 학급당 학생수는 보통 20명 이하로 제시된다. 2001년 교과부가 실시한 ‘초중고등학교 적정규모 학급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도 적정 학급 규모는 초등학교 20명 이하, 중학교 20~25명, 고등학교(인문계) 25~30명으로 제시됐다.

 

지난 6월 12일 오전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정문 앞 에서 전교조 회원들이 "농·산·어촌 학교 통폐합을 강제하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폐기하고 학교교육과정을 파행으로 몰아가는 일제고사를 폐지해야 한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학생의 학습권 보장과 교육조건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선진국들은 20명 이하의 적정규모 학급을 만들기 위해 많은 재정을 투자하고 교사의 수를 확대했다. 2011년 OECD 교육지표에 의하면, 초등학교 교사 1인당 학생수는 미국 14.8명, 이탈리아와 노르웨이 10.7명이고,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낮은 헝가리 10.7명, 폴란드 10.2명으로 매우 낮다(OECD 평균은 16.0명임). 반면에 우리나라 초등학교는 평균 22.5명으로 여전히 높고, 도시의 경우에 35명 이상의 과밀학급도 많다.

따라서 진정으로 적정규모 학교를 살리려고 한다면, 또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도시-농촌 간 교육조건을 평등하게 만들려 한다면, 교과부는 학급당 학생수를 20명 이상이 아니라 20명 이하로 줄이고, 통폐합이 아니라 농어촌과 도시 낙후지역의 작은 학교를 살리는 데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이것이 작은 학교도 살리고 도시의 과밀학급도 해소하는 일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홍재원 산업부 기자 jwhong@kyunghyang.com

 

지난주 만난 석훈이(가명·14)는 참 착한 아이였다. 몇 달 전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자 “저 이제 학원 안 다녀도 돼요”라고 했던 속깊은 아이다. 한창 식욕이 왕성할 나이에 교내 매점도 못가게 됐지만 그는 불평하지 않는다.

그런 석훈이가 일주일에 나흘씩 교실에서 대학생으로부터 과외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과목은 영어와 수학, 한 번에 두 시간씩 듣는다. 다른 친구들이 학원으로 사라져버린 지난 금요일 오후, 석훈이는 여대생 선생님의 수학 수업을 받고 있었다.

석훈이는 나중에 교사가 돼 어려운 학생들을 돕고 싶어 한다. 그래서인지 선생님의 칠판 필기와 설명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열심히 수업을 듣는다. 이 학교엔 이날 석훈이와 처지가 비슷한 20여명이 모여 더위도 잊고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저마다 꿈을 지닌 아이들이다. 서울지역 각 명문대에서 선발된 정예 대학생 교사들도 이 아이들이 대견해 모처럼 팔을 걷어붙였다.

석훈이가 과외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된 건 삼성 덕분이다. 삼성은 형편이 어려운 중학생 1만5000명이 방과후 과외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연간 300억원을 지원한다. 석훈이는 여기에 선발됐다.

삼성은 ‘드림클래스’란 이 프로그램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어려운 학생들에게 돈 몇푼, 물고기 몇마리를 던져주는 대신 ‘낚시하는 법’을 전해주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기획에만 1년 이상이 걸렸다고 한다.

 

서울 은평구 은빛초등학교 학생들이 점심을 먹으며 웃고 있다. l 출처:경향DB

이번 여름방학 땐 교사들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지방의 학생들을 뽑아 서울대에서 합숙을 시키며 재학생들로부터 과외를 받도록 해준다. 대학생 교사들은 이 아이들의 멘토 역할까지 맡아주기로 했다.

삼성이 돈을 쓰면 의심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룹에 불리한 여론을 돌리기 위한 것이란 지적을 받곤 한다. 삼성전자만 해도 석 달 만에 5조원의 이익을 남기는데 고작 그 정도 내놓고 생색을 내느냐고 말하는 이도 있다. 삼성이 누구 덕에 컸느냐는 지식인들의 토론도 벌어진다. 삼성만큼 국가의 덕을 본 기업이 또 어디 있느냐며, 이를 갚기 위해서라도 사회공헌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치사한 돈으로 잘난 척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말들은 석훈이를 돕지 못한다. 곤궁한 그에게 돈은 똑같은 돈이어서, 어떤 다른 돈이 더 훌륭한 돈일 수 없다. 누구도 말 대신 돈을 내주지 않는데, 현장에서 만난 석훈이에겐 그 돈이 꼭 필요해 보였다.

기업들이 그놈의 ‘치사한 돈’ 좀 많이 썼으면 한다. 더 많은 ‘석훈이’를 찾아내 온갖 방법으로 그 아이들의 꿈을 지켜주어라. 석훈이가 교사가 되는 날, 그 돈은 더할 수 없이 고귀해진다는 걸 우리는 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신정일 |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서울 동대문에서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까지 관동대로를 걸어갈 때의 일이다. 양수리에서 양평에 이르는 6번 국도를 따라 함께 걷고 있던 한 도반이 내게 말을 건넸다. “선생님, 저 걸어가기가 너무 힘들어요?” “왜요?” “매연과 소음 때문에요.” 차량들이 다니는 대부분의 길은 온통 매연과 소음의 종합백화점이다. 


집도 마찬가지다. 현대인들이 살고 있는 대부분의 아파트들은 특별한 방음장치를 하지 않는 이상 소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여러 소리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른 아침부터 어둠이 내리는 저녁까지 “싱싱한 딸기가 왔어요” “달고 맛있는 꿀 사과 왔어요” 하고 소리치는 행상들 소리에 계절이 오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면 “무슨 일로 이렇게 조용하지?” 오히려 의구심이 생긴다. 소음이 사라진 순간에도 이렇게 마음이 편하지 않고 궁금해지는 것을 보면 우리는 어느 때부터인가 자신도 모르게 소음을 사랑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경향신문DB)



어린 시절을 회상해보면 청소년기를 보낸 두 곳의 집 역시 길갓집이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사람들의 발소리와 두런대는 소리들이 방문을 통해 내게 곧바로 들렸다. 


“도시인은 침묵이 지배하는 공간에서는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그는 침묵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얼른 큰소리로 말을 하거나 자동차의 라디오나 CD음악을 켜서 안도감을 주는 소리를 추가한다. 소음에 길이 든 사람들에게 고요한 침묵의 세계는 결국 표적이 사라진 불안의 세계가 되고 만다. 갑자기 떠들썩한 소리가 딱 그쳐버리면 기분이 으스스해지기 쉽다. 그것은 곧 엄청난 재난이 발생하기 직전의 정지 순간처럼 느껴져서 길갓집에 사는 사람들은 공연히 겁을 내며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는 것이다.”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에 실린 글이다. 



 작금의 시대에 길을 걷기 위해서는 참고 견디는 방법밖에 도리가 없다. 나는 그 도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차피 나그네는 길에서 하루 종일을 보내야 하므로 매연도 보약이라고 여기지 않으면 걸어갈 수가 없습니다. 매연도 몸에 좋은 보약이라고 여기며 달게 받아들이세요.” 그러면서 니체의 운명애를 들려주었다. “인간의 위대성을 나타내는 나의 공식은 운명애이다. 필연적인 것은 감내하고 사랑해야 한다.”



길을 걷는 사람은 소음도 아름다운 음악이나 풀벌레의 노래 소리처럼 들으며 가는 그런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길을 걷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고통이자 화두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신형철 문학평론가 poetica7@hanmail.net


 

엄청나게 크거나 믿을 수 없이 작은 것들에 관해 말해보기로 하자. 


크리스토퍼 포터의 아름다운 책 <당신과 지구와 우주>에서 읽었다. 엄청나게 큰 것들은 얼마나 클까. 크기의 등급을 26단계로 나눌 수 있다. 1m에서 10m까지의 크기를 1등급이라고 하면, 10억광년에서 100억광년까지의 크기가 26등급이다. 이것은 10을 25~26번 제곱한 m다. 지금까지 우주에서 발견된 가장 큰 구조물인 ‘슬로언 장성’(Sloan Great Wall)의 크기가 이 등급에 속하는데, 은하단들이 이룬 띠인 이것은 만리장성보다 250,000,000,000,000,000배 길다.


은하단의 중심부에서 흔히 발견되는 거대타원은하의 모습 (경향신문DB)



 믿을 수 없이 작은 것들은 얼마나 작을까.


이번엔 위와는 반대 방향으로 10단계의 등급을 매기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 1m에서 10㎝까지를 1등급이라고 한다면, 1nm(나노미터)에서 0.1nm까지의 크기가 10등급이다. 10을 마이너스 9~10번 제곱한 미터다. 원자들이 이 등급에 속한다. 


이보다 더 작은 것들도 있기는 있다. 쿼크(quark)라는 이름의 신비로운 입자가 그것. 물리학자 머리 겔만이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피네건의 경야(經夜)>의 한 구절, “Three quarks for Muster Mark”에서 그 이름을 가져왔다고 한다.


엄청나게 큰 것이건 믿을 수 없이 작은 것이건, 이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재다’라는 행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두 가지 상반되는 감정이 동시에 밀려오는 것이다. 제 아무리 크거나 작은 것들도 결국 인간은 다 재는 데 성공했구나 하는 경이로움이 그 하나이고, 그럼에도 잴 수 없는 것들은 끝내 잴 수 없는 채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반발심이 다른 하나이다. “심장 활동의 전기적 패턴은 추적할 수 있지만, 변덕스럽게 솟구치는 애증은 추적할 수 없다.”(<당신과 지구와 우주> 73쪽) 과연 그렇다. 또 그래야만 한다.


문학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싶어서다. 시인들은 오랫동안 그 ‘잴 수 없는 것들의 잴 수 없음’에 대해 말해 왔다. 김수영의 시 중에서, 자주 언급되는 작품은 아니지만 내가 가끔 외워보곤 하는, 이런 시가 있다. 




가벼운 무게가 하늘을

 생각하게 하는

 자[針尺]의 우아(優雅)는 무엇인가 


무엇이든지

 재어볼 수 있는 마음은

 아무것도 재지 못할 마음

 삶에 지친 자(者)여

 자를 보라

 너의 무게를 알 것이다


(‘자’ 전문) 




 무엇이든 잴 수 있는 마음은 정작 아무것도 잴 수 없다는 말.


안도현의 새 시집 <북항(北港)>에는 이런 시가 수록돼 있다. 



   

바다의 폭이 얼마나 되나 재보려고 수평선은 귓등에 등대 같은 연필을 꽂고 수십억년 전부터 팽팽하다


사랑이여

너하고 나 사이 허공의 폭을

자로 재기만 할 것인가

(‘폭’ 전문)

 


어쩌면 이런 말일까. 수평선은 바다의 폭을 재기 위해 저토록 오랜 세월 팽팽한데, 나와 너는 우리 사이의 거리를 재기 위해 무엇을 했나. 수평선의 그것과 같은 그런 수십억년의 노력이 있든가 아니면 자와 같은 세상의 흔한 도구와는 다른 뭔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잴 수 없는 것들은 끝내 잴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대상이 인간일 경우라면, 그의 무언가를 재려는 시도 자체가 이미 위협이거나 모욕일 수 있다. 어떤 이가 공동체의 안위를 파괴하는 행위를 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법의 자에 판단을 맡기면 될 것이다. (그 법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것인지도 늘 함께 따져야 하리라.) 그러나 누군가의 머릿속에, 그것도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자를 들이대서, 그의 ‘사상’이 왼쪽으로 혹은 오른쪽으로 얼마나 기울어 있는가를 재는 일은 결국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김영찬 | 한국외대 교수·문화연구 yckim@hufs.ac.kr


경주 양동마을에 갔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는 그 유명한 한옥마을이다. 그곳에 가자 어린 시절에 경험한 한옥과 서당에 대한 기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피어오른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경기도 마석에 있는 한 서당에 간 적이 있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알게 되었는데 그 서당은 서예가이자 금석학자이신 청명 임창순 선생이 세운 태동고전연구소란 곳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곳은 젊은이들이 3년 정도를 기약하고 들어와 한학을 수학하는, 그러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보기 드문 한학 교육기관이었다. 나는 어린아이치곤 고전이나 한문, 서예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중학교에 올라가 서예를 배우면서 안진경체와 구양순체를 구별할 줄 알게 되자 동글동글한 안진경체보다 날카롭고 직선적인 구양순체에 푹 빠져 열심히 먹을 갈며 붓글씨를 연습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대체 이 사람들은 이런 곳에 와서 뭘 하는 걸까 의아해했다. 무더운 여름날이었는데 한학 공부에 지친 젊은이들이 어슬렁거리다 시원한 한옥 마룻바닥에 앉아 매미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부채를 천천히 부치며 바둑을 두던 그 나른한 오후의 분위기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양동 이씨와 경주 손씨의 집성촌인 경북 경주 안강의 양동마을 (경향신문DB)


 대학 시절 안동 하회마을에 갔던 기억도 난다. 그때는 그곳을 순우리말 반, 한자 반 명칭인 ‘물도리동’이란 이름으로 불렀는데(지금도 그렇게 부르는지 모르겠다) 마을 앞을 굽이굽이 조용히 흐르는 강물과 그 앞에 깎아지른 듯 병풍처럼 턱 버티고 서 있는 절벽이 아주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집들 사이로 난 조그만 길들을 따라 나지막한 담장을 끼고 요리조리 마을을 돌아다니던 기억도 잊을 수 없는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다.


이런 기억을 반추하며 잔뜩 기대에 부풀어 간 양동마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라는데 관광객인 우리를 맞이한 것은 초여름을 방불케 하는 땡볕더위와 마을 곳곳에서 요란한 기계음을 내며 풀 베는 소리, 확성기를 타고 나오는 동네 주민의 목소리, 주차장을 가득 메운 차량들, 그리고 정말로 많은 수의 관광객들이었다. 외국인들이 많은 것이 이채로웠다. 양동마을은 문자 그대로 ‘문화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을 뿐 아니라, 하회마을과는 달리 한옥들이 대부분 언덕에 자리 잡은 독특함도 있는데, 그럼에도 그윽하고 고아한 한옥의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가 없었다. 대표 한옥마을로서 양동마을의 보존 가치를 높이려면 무엇보다 지금처럼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다니지 않도록 하루 방문객 수를 대폭 줄여 쾌적하게 마을을 둘러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기대와는 딴판이었던 양동마을의 번잡함을 접하고, 지난해에 갔던 강원도 고성 왕곡마을에서의 하룻밤이 떠올랐다. 함씨 집성촌인 그곳의 한옥은 이북식이라 소 키우는 축사가 추위를 피해 집 안으로 들어와 부엌 옆에 붙어있는 독특한 구조다. 무엇보다 마을 전체가 정겹고 고즈넉했다. 한옥 뒷마당에 담장을 끼고 장독대가 있었고 코스모스가 핀 길을 따라 동네 한 바퀴 산책하기도 그만이었다. 그 중 몇 채에는 재미있는 이름이 붙어있고 민박도 할 수 있었는데, 그날 같이 간 일행 모두 방 하나씩 차지하고 뜨뜻한 방구들에 깨끗한 홑청의 이불을 덮고 푹 잘 수 있었다. 창호지 바른 문으로 솔솔 들어오는 가을바람을 코끝에 느끼며. 왕곡마을은 내게 전주 한옥체험관 못지않게 한옥을 잘 체험할 수 있게 해준, 한옥에 사는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해 준 곳이다. 


양동마을 역시 방문객들에게 체험의 공간을 충분히 제공하는 한옥마을 모델을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기에 여러 가지 제한은 있겠지만, 앞으로의 지향점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면, 우르르 몰려다니는 관광객들로 인해 장바닥처럼 번잡한 곳이 되어 버리거나 아니면 북촌 한옥마을처럼 사람 사는 모습을 제대로 접할 수 없는 한옥마을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유인화 논설위원


전국의 보육원 어린이들은 한 끼에 1400원짜리 밥을 먹고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보육원 아동에게 지원하는 주·부식비는 시설 규모에 따라 월평균 12만7000원선이고, 이를 단순하게 한 끼당 계산하면 약 1420원이다. 지역아동센터에서 낮시간 동안 돌보는 아동의 한 끼 급식비가 평균 4000원인 것에 비하면 턱없이 빈약하다.

복지부가 작성한 ‘아동분야 사업 안내’ 중 아동급식 사업 내용을 보면 ‘어린이 급식단가로 1인 1식당 3000원 이상’을 권고하는 만큼 ‘1400원’의 아픔은 그저 지나칠 일이 아니다. 정부에서 제안한 어린이의 한 끼 식비가 현행의 두 배 이상인 사실만으로도 어린이의 성장을 위한 영양공급이 국가의 미래와 연관되는 중요 과제임을 알 수 있다.

 

친환경 무상급식 풀뿌리국민연대 회원들이 서울광장에서 친환경 무상급식 지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대부분 부모가 없는 보육원 어린이의 밥값이 부모가 있는 지역아동센터 어린이 밥값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자 현장에선 ‘먹거리로 부모 없는 아이들을 차별한다’는 볼멘소리마저 나온다. 게다가 보육원의 하루 식비 5200원은 서울 지역아동복지센터의 하나인 강남구 지역아동복지센터의 한 끼 식비 5500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우리나라 아동복지 체계의 허점을 드러내는 지표가 아닐 수 없다.

현재 전국 280개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1만7100여명의 식비는 기초생활수급자중 시설수급자로 분류돼 매년 최저생계비 인상률에 연동해 책정된다. 그러나 지역아동센터는 지자체의 복지 차원에서 시설 이용 어린이들을 지원하고 있어 식비가 4000원을 넘었다.

복지부는 올해 36조7000억원의 예산을 집행하면서 보육원, 지역아동센터 등 복지시설을 이용하는 어린이들의 생계비로 총 2조5000억원을 책정했다. 이 중 보육원 어린이들의 식비는 약 325억원이다. 이 어린이들에게 가정이 있는 어린이들처럼 한 끼 4000원의 밥값을 지원하는 데는 1년에 420억원만 더 들이면 된다. 복지부 담당자도 “1400원의 식비를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식비 현실화를 지적한다. 무관심과 안이한 행정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사회취약계층 어린이들이 끼니를 부실하게 해결하면 영양불균형으로 저항력이 부족해지고 질병에 노출되기도 쉽다. 무상급식이나 무상교육 등 보편적 복지가 이슈가 되고 있지만 국가는 보육원 어린이들의 밥상 수준부터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건강한 어린이가 건강한 나라를 만든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김인혁 경남매니페스토실천본부 공동대표


 

19대 국회 구성을 앞두고 지난 4·11 총선에서 짚어봐야 할 문제가 있다. 투표를 통해 당선된 국회의원들의 자질, 정체성에 관한 문제다. 경남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총선을 앞두고 17개 경남지역구 18대 국회의원에 대한 의정활동을 검증·평가했다. 그 결과 평균공약이행률은 50%에도 미치지 못했고, 각 의원의 대표발의 법안의 제정·개정률도 매우 낮게 나타났다.


18대 국회 의원발의 법률안 가결건수는 대안반영 폐기를 포함하여 40.0%에 불과하다. 반면 18대가 끝남과 동시에 폐기될 운명으로 계류 중인 법률안은 48.5%에 이르고 있다. 사정이 이런 데에는 정책적 전문성을 검증해 능력 있는 대표를 뽑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탓이다. 더 이상 ‘무능국회’를 양산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책선거가 그 답이다.



(경향신문DB)



 이번 19대 총선에서 경남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16개 경남지역구 입후보자 56명으로부터 ①3개 희망 상임위별 입법활동계획 ②16개 쟁점현안에 대한 찬반 표명 ③3대 국정공약 ④10대 핵심지역공약의 의정활동계획을 제출받아 분석·평가했다. 4가지 영역을 모두 제출한 후보는 17명에 불과했다. 23명의 후보는 1가지 이상을 누락시켰으며, 나머지 16명은 아예 그 어떤 의정활동계획도 준비하지 못했다. 이러한 결과는 출마자들이 국정과제와 지역현안에 대한 정책 아젠다마저 갖추지 못한 채 유권자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선거과정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같은 19대 국회의원 선거행태는 전국적으로 비슷한 현상이라고 판단된다. 결국 선거공보상의 공약은 선전문구에 불과했고, 정치적 구호로 변질됐다. 의원 당선자 중 상당수가 여전히 과대선전과 미화된 공약 구호로 유권자를 현혹한 죄가 크다.


정치개혁의 첫걸음은 대표선출의 게임규칙부터 바로잡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이를 위해 선거과정 시스템을 개혁할 것을 제안한다. 첫째, 당 공천 일정의 법정화(法定化)다. 후보등록 개시일 이전 일정 기간을 역산(逆算)한 법정기간 직전 마감일까지 반드시 정당공천이 확정돼야 후보등록이 가능하도록 관련법 규정을 고칠 것을 제안한다. 후보등록일 전날까지도 공천싸움 하는 판에 현안분석과 정책개발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는가. 둘째, 공약작성의 내용요건을 더 세밀하게 법정화하여 후보등록요건의 법적 구속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 같은 조건이 선행되면 선거는 자연히 정책 중심의 후보자 간 경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신정일 |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길을 가다가 길을 잃어버려 지나는 사람에게 길을 묻는다. 알아야 면장을 하는데, 그 일대의 길을 자세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길을 묻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경상도식으로 “저쪽으로 잊어버리고 가이소”라고 말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무뚝뚝하게 “저 쪽으로 가면 됩니다” 하고 고개를 돌리는 경우도 많이 있다. 아니면 매우 친절해서 자세히 얘기하는 바람에 시간을 너무 허비하는 경우도 많다. 그 사람의 말을 자를 수도 없고, 길을 내가 먼저 물었기 때문에 그냥 돌아서 갈 수도 없다. 일행들은 저만치 갔는데, 그 일행들을 따라서 나도 가야 하는데, 헐레벌떡 따라갈 생각에 시간이 여삼추 같은 때가 그런 경우다. 



(경향신문DB)



어느 순간 내 앞에 길이 펼쳐져 길 위에 나섰고, 끝인가 싶으면 다시 새로운 길이 내 앞에 기적처럼 펼쳐졌다. 길에서 길을 물으며 보낸 나날, 그런데도 여전히 길은 오리무중일 때가 많다. 길을 묻고 대답하는 그 일상적인 상황이 <장자>의 ‘지북유(知北遊)’ 편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도(길)에 대한 물음에 대답하는 사람은 도를 모르는 사람이요, 도를 묻는 사람 또한 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도는 물을 수도 없고, 물어도 대답할 수 없다. 물을 수 없는 것을 물으면 헛된 질문이 되며, 대답할 수 없는 것을 대답하면 내용 없는 답이 되는 것이다.”


노자 역시 “말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며,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늘 길에서 길을 잃어버려, 지나는 사람들에게 길을 묻고 도착하자마자 또 길을 나서 길을 묻고 있다. 이 길이 맞는 길인가? 아니면 이 길이 아닌가, 하고 되돌아 나오는 그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그 길을….


알고 보면 인생의 길이란 스스로를 찾아가는 지난한 과정일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자기 자신도, 세상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막을 내리는 하나의 연극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절망하지도 않고, 스스로에게 주어진 길을 걸으며, 최선을 다해 스스로에 대해 묻고 또 묻는 그 반복만이 미덕 아닐까. 그래서 괴테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는지도 모른다. “자기 스스로를 알려고 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쯤에 서 있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나의 물음은 끝이 없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길은 아직도 알 수 없는 저 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언제쯤 길에 도통하여 길을 묻지 않고도 길을 걸어가, 그리운 그 나라에 도착할 수 있을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이중근 기획에디터


그제 최전방인 강원도 인제군 원통리에서 필자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주말에 원통초등학교에서 봄 운동회가 열리는데, 그 자리에서 경향신문의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www.7promise.com)’ 캠페인에 동참해 서명운동을 하려고 하니 기사가 실린 신문을 보내달라는 요청이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그곳에서 지역아동복지센터 ‘설악산 배움터’를 꾸려나가고 있는 이주상씨(30)였다.

고향도 아닌 곳에서 2년째 지역사회를 위해 배움터 활동을 하고 있는 이씨의 말은 이랬다. “(군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자 면소재지인) 원통의 교육열이 꽤 높아 거의 모든 아이들이 학원에 다닌다”며 “(방과후 활동을 주로 하는) 우리 배움터도 예체능 위주 특별활동 프로그램을 많이 하다 보니 공부를 많이 시키지 않는다는 오해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는 또 “배움터에 나오고 싶은데 아빠가 학원에 가라고 해서 못 온다는 학생이 있다”며 “이번 기회에 학부모들을 상대로 이번 캠페인에 동참하라고 권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안보에 전후방이 따로 없듯, 사교육에도 지역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서울 교동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즐겁게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경향신문이 ‘고래가그랬어 교육연구소’와 함께 이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필자는 여러 번 놀라고 있다. 우선 예상 밖으로 뜨거운 호응이다. 지금까지 캠페인에 동참한 인원이 3500명이다. 그제 하루에는 500명 가까이 서명했다. 같은 날 회원수가 12만명인 귀농인 인터넷 카페 ‘귀농사모’도 카페 차원에서 동참을 선언했다. 날마다 집에서 아이들과 부딪치고 있는 주부에서부터 손주를 두고 있는 어르신들, 심지어 미혼자들까지 동참하고 있다. 그리고 이씨처럼 최전방에서부터 제주도, 멀리는 미국과 영국 등 해외에서도 동참의 뜻을 밝혀왔다. 그야말로 계층과 지역을 떠난 참여 열기다.

하지만 필자가 놀란 진짜 이유는 캠페인에 참여하겠다는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다. 7가지 약속에 동참한 사람들의 절절한 마음이다. 그들의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다. “중2, 초2 두 딸을 둔 엄마입니다. 서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당연히 지켜줘야 할 것 같은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보겠습니다. 그게 아이들이 살길이며 내가 살길인 것 같습니다. 함께하게 되어 기쁩니다.” “한번에 모두 바꿀 순 없지만 가늘고 길게 포기하지 않고 노력할 것을 서명합니다.” “동의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현실 속에서 실현 불가능한 약속이라고 하는 마음 또한 갖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서명으로 인해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실현해보고자 하는 노력이 하나씩 나타나주길 간절히 바랍니다.” 고통받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부모의 절절함이 배어있지 않은 문장이 없었다. 이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함과 결연함이 약속을 지키겠다는 짧디짧은 글에서도 묻어났다. 정년퇴직한 교사, 교장들의 “우리는 못했지만 이제라도 바꿔야 한다”는 회한 섞인 다짐 역시 가슴 뭉클했다.

사실 이번 캠페인은 처음부터 조용히 진행한다는 게 기본 방침이었다. 2003년부터 이 문제를 고민해온 ‘고래가그랬어 교육연구소’의 뜻이었다. 경쟁을 부추기는 정부의 교육 정책을 비판하고, 교육 개혁과 제도 개선을 강조하는 여느 캠페인과 달리하자는 것이었다. 지금과 같은 교육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한 교육당국이나 전문가들과도 거리를 뒀다.

그리고 이런 방침은 학부모들의 마음과 맞아떨어졌다. 거창한 개혁 방안이 아니라 일상에서 고민해온 바를 담담하게 펼쳐놓는 게 오히려 더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참여자들은 이 조용한 캠페인에서 더 큰 현실감과 울림을 느꼈다고 밝혔다. 또 하나의 특징은 참여자들의 고민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스스로 확인했다는 것이다.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하루하루 사교육 때문에 갈등하는 맘(엄마)입니다. 같은 뜻을 가진 분들이 생각보다 많이 계신 것 같아서 소심하게나마 용기 내어 동참해 보렵니다”라거나 “자포자기하던 심정이면서도 뭔가 방법이 없을까 하던 차에 신문에서 우연히 보고 이렇게 서명합니다. 우리 아이들, 이제 함께 키웁시다”라는 다짐이다.

이번 캠페인에 비판적인 견해도 있다.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사회구조적인 모순을 지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왜 이런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해법도 수백, 수천 가지 제시돼 있다. 문제는 실천이다. 그것도 거창한 실천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작은 실천이다.

이번 캠페인으로 교육 현실이 하루아침에 바뀔 리 만무하다. 하지만 이 캠페인을 통해 절망적일 정도로 살인적인 우리 교육의 견고한 장벽에 조그만 균열을 하나 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운동에 어깨를 겯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 벽은 더 일찍 무너질 것이다. 그 조짐을 이번 캠페인에 참여한 학부모, 미래의 학부모에게서 확인했다. 1t의 이론보다 1g의 실천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허인영 |‘함께걷는아이들’ 사무국장


은평 아이드림오케스트라에서 트럼펫을 부는 영주는 게임을 하자는 친구의 유혹을 물리치고 연습장소로 향한다. 일주일 뒤로 다가온 연주회를 위해 연습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트럼펫을 배우기 전, 영주는 트럼펫이 어떻게 생긴 악기인지 몰랐다. 음표를 몰라도 악기를 배울 수 있다는 단원 모집공고와 선생님의 권유로 2년 전 시작한 트럼펫 레슨은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이제는 재미가 붙었다.

친구들의 폭력과 따돌림, 성적비관으로 작년 한 해 자살한 청소년은 150여명에 이른다. 입시지상주의 교육이 아이들을 경쟁으로 내몰고, 우정과 협력의 장인 학교가 양육강식의 장이 되었다. 아이들은 친구의 폭력에 무관심하며 약자를 배려하지 못한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다. 폭력이 일상화되고, 연령 또한 낮아지고 있지만 아이들의 인성과 정서를 위한 교육은 입시교육에 밀린 지 오래다.

 

경기 성남시 도촌초등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어울리오 오케스트라’ 단원들 ㅣ 출처:경향DB

영주는 꾸준히 레슨과 연습에 집중하고 있다. 실력이 늘지 않으면 다른 단원들의 연주도 망치게 된다. 한 곡을 위하여 다른 단원들의 소리를 들으며 기다려야 한다. 오케스트라라는 틀 안에서 같이 성장하지 않으면 공동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서로 도와야 한다. 단원들 간 정서적 공감대와 유대감 없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 협력하지 않으면 하모니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 음악교육은 전공을 전제로 하는 소수의 엘리트 양성, 개인레슨에 집중하고 있다. 이마저 부모의 사회경제적 이유로 기회를 갖지 못하는 아동·청소년도 많다. 최근 민관 차원에서 다양한 오케스트라 사업이 실시되고 있다. 사회복지법인 ‘함께걷는아이들’도 그중 하나로 정부의 지원 없이 2009년부터 은평 아이드림오케스트라, 안양·군포 위풍당당오케스트라, 김포 아인스오케스트라를 창단·운영하고 있다. 200여명의 단원들에게 악기를 무상지원하고 레슨과 음악캠프, 다양한 공연기회를 제공하며, 우수한 아이들로 모인 ‘With us 윈드오케스트라’도 운영하고 있다. 이들 중 몇 명은 예고와 대학에 진학하기도 하였다. 대학에 진학한 단원이 후배들을 가르치는 선순환 구조도 생겼으며, 오빠·언니가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동생들은 단원 모집을 기다리기도 한다.

청소년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나와 우리가 함께하는 오케스트라가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인병선 | 짚풀생활사박물관 관장


전국의 사립박물관이 교육기관으로 바뀌고 있다. 올해 정부가 사립박물관 59곳에 교육사 한 명씩을 배치했다. 즉 에듀케이터라고 하는 새로운 인력을 투입한 것이다.

현재 한국의 사립박물관 수는 총 250여개다. 문화관광체육부가 이들 사립박물관을 본격적으로 교육기관으로 바꾸려 하는 데는 그만한 동기가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창의적 체험활동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교육정책을 전환한 데다 올해부터 주5일 수업이 실시되면서 사교육기관 아닌 다른 대안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사립박물관은 특수전문박물관으로 종합박물관과 달리 어느 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수집·연구해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이들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교육 콘텐츠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엄청나다. 그 중에는 한 분야에서 세계 최고 또는 유일이라는 평가를 받는 곳도 적지 않다.

 

박물관 문화체험 활성화에 앞장서는 ‘별별박물관’ 운영자들 ㅣ 출처:경향DB

이들 사립박물관이 지금까지 본격적으로 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은 정책에도 이유가 있었지만, 박물관 자체의 인식과 역량 부족에도 원인이 있었다. 사립박물관 관장들은 아직은 거의 설립자가 맡고 있다. 이들은 열심히 수집하고 공간을 확보해 박물관 간판은 걸었지만 소장품을 교육 콘텐츠화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부분을 이번에 문화부가 혁신적인 발상으로 보완해 준 것이다.

올봄에 에듀케이터 인력이 확정되면서 사립박물관운영위원회 측에서는 걱정이 적지 않았다. 교육사 모집에 몇 명이나 지원할 것인가 하는 의구심에서였다. 그러나 실제 부딪쳐 보니 인력은 넉넉했다. 대학에는 거의 모든 학교에 교육과가 있다. 이들 교육과 출신에게는 졸업과 동시에 교사 자격증이 주어진다. 그러나 바로 교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임용고시라는 높은 문턱이 있어서 수많은 전문 인력들이 임시교사, 강사 등 비정규직에 매달려 있는 형편이다. 이들을 흡수할 수 있는 영역이 하나 생긴 것이다.

박물관을 운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제 불과 두 달밖에 안됐지만 에듀케이터의 존재는 큐레이터 못지않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지금까지 풀리지 않고 있던 커다란 한 분야가 생명을 얻어 활기를 띠는 것을 체감한다. 박물관 소장품의 교육 프로그램화, 콘텐츠 확장, 학생들의 체험영역 확대, 전문 인력의 고용창출 등 이보다 더 크고 뜻깊은 일이 또 있을까.

그러나 이 사업은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전국 사립박물관이 모두 참여할 수 있게 되어 한국 교육의 변화와 발전에 큰 동력이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유인화 논설위원


개그맨의 원조인 전유성은 20여년 전 스승의 날 기념 라디오 방송에서 “예부터 ‘스승은 임금·어버이와 같으므로 감히 스승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스승을 너무 존경하던 나는 선생님의 그림자는 물론 선생님이 계시는 학교 근처도 갈 수 없었다”며 청취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그러나 요즘 전유성의 ‘주옥같은 멘트’처럼 스승을 존경과 사랑으로 따르는 제자가 얼마나 될까. 교사들의 손에서 회초리가 사라진 후 스승을 폭행하는 제자들까지 있다. 수업시간에 자는 학생을 깨우면 교사가 욕을 먹는다. 아이를 벌하고 싶지만 뒤통수라도 한대 쳤다간 학생인권을 무시한 체벌교사로 몰린다. 학생들이 체벌현장을 인터넷 동영상에 올리면 해당 교사는 그날로 표적이 된다. 별 탈 없이 교사직을 유지하려면 ‘봐도 못 본 체’ 정신으로 견뎌야 한다는 결론이다. 반대로 학생이 교사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가혹한 체벌과 성희롱을 견뎌야 하는 학생에겐 스승의 날이 가당치도 않을 터이다.

 

한성대에서 학생들이 스승의날을 앞두고 교수들의 가슴에 꽃을 달아주고 있다. l 출처:경향DB

엊그제 발표된 스승의 날 선물 설문결과를 보면 가장 선물하고 싶은 스승으로 응답자의 40%가 학원강사를 꼽았다. 그 다음은 학교 담임교사가 23%, 인생선배 16%, 어린이집 교사 12%, ‘선물하고 싶은 대상자가 없다’는 응답도 6%였다. ‘교직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답은 2009년 55.3%에서 올해 79.3%로 늘었다. 사교육에 비중을 두는 현실, 촌지 근절을 위해 스승의 날에 휴교하는 학교 풍경 등 우리나라 교육의 현주소가 고스란히 드러난 결과다.

스승의 날은 교권 존중과 스승 공경을 위해 지정됐다. 우리나라는 1963년 5월24일 ‘은사의 날’을 시작으로 1965년 세종대왕의 탄신일이 ‘스승의 날’로 정해졌다. 대만은 공자 탄신일인 9월28일, 인도는 라다크리슈난 대통령 생일인 9월5일, 아르헨티나는 정치가 도밍고 파우스티노 사르미엔토의 기일인 9월11일을 스승의 날로 정했다. 각 나라마다 본받을 만한 위인을 스승으로 기리며 국가 정신을 바로잡는 길잡이로 삼고 있다.

오늘 스승의 날 이 땅에선 존경받는 스승들이 얼마나 되는지 자문해본다. ‘가르쳐 이끌어주는’ 스승과 ‘가르침을 받는’ 제자의 인격이 동시에 존중될 때 균형의 사회가 이뤄진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 제자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한동섭 |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사회문제의 주된 원인을 찾는 방법을 단순화시켜 말하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사람에서 찾는 것이다. 문제가 지엽적이거나 소수의 사람들에게 국한되어 있을 경우 많이 적용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교화하거나 교체하면 해결될 것이라는 자유주의적 방법론에 맞닿아 있다. 다른 하나는 문제의 근원을 사회구조에서 찾는 방식인데 주로 사회전반에 걸쳐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에 적용된다. 어떤 문제가 사람들 사이에서 일반적이며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면 그것은 사회구조가 배태한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아이들을 살리는 7가지 약속’에 시민들의 동참이 이어지고 있다 한다. 우리의 교육환경은 누가 보아도 비정상적임이 틀림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캠페인이 서명을 넘어 범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고민해야 할 문제가 있다. 교육문제의 근원을 찾아 해결하려는 노력이다.

캠페인은 부모들을 설득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람들을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우리 사회의 교육문제는 부모들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일만으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대다수의 부모들은 교육환경이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도 않는다. 실천이 어려운 것은 이 문제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보편적이며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사회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울산 남창중학교 학생들이 학교 담장에 벽화를 그리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학부모들만큼 현재의 교육문제를 생생히 체험하고 있는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일상에서 아이들의 고통과 좌절을 목도 한다. 그럼에도 그 같은 현실을 다수의 부모들이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캠페인은 “서로 이 정도는 지키자는 취지”라고 한다. 기본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기본도 지키지 못하는 부모들이 왜 그렇게 많은 것인가?

부모들이 자기 자식들을 사교육시장으로 내모는 이유는 그들의 경험이,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가 그길 이외에 다른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청소년들,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도 “직업을 선택할 때 거의 패닉(공황상태) 수준으로 안정성에 집착”한다고 한다. 이것을 부모들이나 아이들의 ‘창의성 부족’이나 ‘욕심’ 때문이라 할 수 있을까? 다수의 경우는 떵떵거리며 호의호식하는 직업을 찾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위해, 바꾸어 말해 경제적인 생존을 안정적으로 보장받기 위해 성적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는 안정적 직업이 부족하다.

어느 대학을 나와도, 혹은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차별받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다면, 어느 순간 실패하더라도 다시 노력하면 언제든 재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어떤 직업을 갖더라도 일정한 수준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선다면, 어떤 직장에서도 불안정한 고용상태로 인해 불안에 떨 필요가 없다고 생각된다면,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도 경제사회적 안정성이 확보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어느 부모가 어린 자식들을 입시지옥으로 내몰겠는가?

우리 사회의 학벌구조는 그 자체로 권력구조이다. 봉건적 학연주의가 자본주의 발전과정으로 융합되면서 학연체계를 내포한 독특한 사회경제적 권력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이것은 제도로, 문화로, 심지어 규범으로 우리 사회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대졸자로 입사를 제한하고, 그것도 서울소재대학과 지방대, 명문대 비명문대로 가르고, 학벌이 평생 자신의 간판과 연줄이 되는 사회에서 대학입시를 단판승부로 여기고 몰입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손놓고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7가지 약속’과 더불어 구조로부터 배태된 제도와 문화를 가능한 것부터 하나둘 바꾸어 가는 실천을 병행하자. 예를 들어 모든 입사시험에서 학적, 출신지역, 연령 등을 고려하지 않는 블라인드 리뷰를 제도화시키는 것은 매우 좋은 방법이다. 이것은 불합리한 차별을 없애고 패자들의 부활을 가능하게 한다. 이렇게만 되어도 입시위주의 공부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역차별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저 공정하게 실력과 인격으로 평가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며 실패했더라도 새로운 기회가 지속적으로 주어지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사람들 간 출신학교, 고향, 나이 등을 캐묻고 그에 따라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 자체가 사회발전을 저해한다는 캠페인도 동시에 진행하면 좋을 것이다. 직업안정성을 도모하는 일은 당연히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 같은 일이 우리 모두의 아이들을 살리고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실천을 유도해야 한다.

구조적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는다. 수십년 이상 걸릴 수도 있는 문제이다. 단기간의 캠페인으로는 성과를 얻기 쉽지 않을 것이다. 긴 안목으로 지침 없이 실천하고 노력해야 할 일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김영수 중국전문가


 


<열자-설부>편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산서성에 위치한 진(晉)나라에 한때 도둑이 들끓었다. 백성들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때 도둑을 잡는 절묘한 기술을 지닌 극옹이란 자가 나타났다. 이 자는 얼굴의 미간만 보고도 도적을 식별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진나라의 통치자인 경공이 그로 하여금 도둑을 잡게 했는데,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도둑을 족집게처럼 잡아냈다. 국군은 너무 기쁜 나머지 조문자에게 “극옹 하나만 있으면 나라 전체 도적이란 도적은 다 잡을 수 있으니 많은 사람이 필요 없겠소 그려!”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조문자는 “말과 얼굴색만 가지고 도적을 다 잡으려 했다가는 도적을 다 잡기는커녕 극옹도 곧 죽을 겁니다”라고 했다.



오색 주전골에서 발견된 엽전 (경향신문DB)



얼마 뒤 도적들이 한데 모여 “우리가 이렇게 궁지에 몰린 것은 다 극옹이란 놈 때문이다”라고 극옹을 성토한 뒤 힘을 합쳐 극옹을 살해했다. 이 소식을 들은 경공은 급히 조문자를 불러들여 도적을 금하는 대책을 물었다. 이에 조문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 왕실에 이런 속담이 전해옵니다. ‘연못 속의 물고기를 볼 수 있는 자는 불길하며, 감춘 것을 헤아릴 수 있는 자는 재앙을 만난다.’ 도적을 근절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유능한 인재를 추천하고 기용하여 교화를 베풀어 백성들이 염치가 무엇인지 알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도적은 없어질 것입니다.”


경공은 사회라는 현자를 임용했고, 진나라는 크게 다스려졌다. 심리학에 보면 잠재의식에서 비롯되는 ‘표정언어’나 ‘신체언어’라는 것이 있다. 이런 표정언어는 본인 의식의 통제를 받지 않고 그 사람의 마음 깊은 곳의 비밀을 왜곡해서 반영한다. 극옹은 바로 도적의 표정언어로 드러나는 모종의 규칙 같은 것을 파악하여 미묘한 특징을 관찰함으로써 도적을 가려냈던 것이다. 하지만 극옹의 이런 신출귀몰한 도둑 잡는 능력에 대해 조문자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극옹이 도적을 다 잡지도 못할뿐더러 되레 목숨을 잃을 것으로 보았다.


사회적 도덕규범을 위반한 행위를 누군가 알아채면 비밀을 들킨 자들은 비밀을 알아챈 사람과 대립되는 자리에 자신들을 위치시킨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압박이 가해지면 바로 그 사람을 목표로 삼아 공격을 퍼붓는다. 위정자가 국정과 관련한 일을 감추고 이를 알아챈 백성을 억누르는 경우가 바로 그런 것인데, 그 결과는 늘 백성과 위정자 둘 다 다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나 지금이나 정책의 시행은 소통과 교화가 가장 효과적이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배수찬 울산대 교수·국어교육


 

최근 케이블 텔레비전 방송인 슈퍼액션에서 인기그룹 유키스의 멤버를 주연으로 한 <홀리랜드>라는 드라마를 방영했다. 연약한 소년이 싸움 기술을 익혀 이른바 ‘짱’으로 거듭난다는 내용으로 된 짧은 4부작 드라마였다. 원작은 일본 만화책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고개를 돌릴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내용 또한 주먹을 쓰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많아, 싸움을 조장하는 터무니없는 드라마로 치부하고 말 수도 있겠다. 나 주인공의 한마디 대사는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기필코 강해지고 싶다.” 


이른바 ‘학교폭력’이 심각하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긴 하나, 대학에서 아이들을 길러 교사로 키워 나가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요즘 보도되는 상황은 정말 접하기 괴롭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얻어맞고, 대낮에 운동장에서 싸움판이 벌어졌다고 한다. 교사가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차라리 양념이다. 동급생에게 맞고 자살하는 아이가 줄줄이 나오는 상황에서, 교권은 어쩌면 사치스러운 개념일지 모른다. 집에 돌아와 하루의 피로를 잊고자 무심결에 텔레비전을 켜면, <홀리랜드> 같은 드라마들이 아이들더러 ‘강해져야 한다’며 윽박지른다. 


 너무 부조화스럽지 않은가. 세상은 학교가 폭력으로 물들었다며 호들갑을 떠는데, 텔레비전에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타가 주인공인 싸움 드라마를 방송하고 있다. 더욱 답답한 것은 어른들의 태도다. 학생들은 폭력을 몰라야 하는 것처럼 야단이다. 정말 그럴까? 



18일 서울의 한 고등학교 잔디밭에서 고3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씨름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DB)



플라톤이 <국가>에서 제시한 ‘훌륭한 교육’에 따르면, 20세 이전의 아이들은 반드시 체력훈련과 군사훈련을 받아야 한다. 플라톤은 용인되고 통제된 상태에서 폭력이 교육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시했던 것이다. 군사훈련은 시대가 달라졌으니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의 체력훈련은 분명 학교의 책임이다. 학교는 과연 아이들의 체력훈련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싸움과 폭력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없는 굴레이다. 누구나 학창시절을 떠올리면 싸움은 있었고, 때리는 아이와 맞는 아이가 있었다. 인간 세상이 이런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을 공부시킨답시고 백년 전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교실에 몰아넣어 하루종일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그러나 기대수준이 높아진 학부모와, 쾌적한 생활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학교를 향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교권의 추락은 현행 시스템을 유지하는 한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일부에서 주장하듯 학생인권조례 탓만 할 일은 아닌 것이다.


어쨌거나 학교가 없어지지 않는 이상, 그리고 학교가 아이를 떠맡은 이상, 학교는 제대로 아이들을 키워낼 책임이 있다. 지식교육도 인성교육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된 체육교육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현 상태에서 체육은 폭력에 대응하고 그것을 절제하는 힘을 실제로 길러줄 수 있는 유일한 교과이다. 잘만 하면 몸을 쓰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며, 절도와 인내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준다. 우리는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아이들에게 머릿공부만 시켰다. 하지만 맞으면서 학교를 다니는 치욕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홀리랜드>에서 말하듯, ‘기필코 강해지고 싶은’ 아이들은 많을 것이다. 그 아이들이 <홀리랜드>나 보면서 위안을 얻도록 해서야 되겠는가. 교육이 무너지고 있다는데, 우리가 <홀리랜드>보다는 아이들을 더 잘 가르쳐야 학교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국가>에 나오는 플라톤의 말을 그대로 옮겨 우리가 할 일의 방향으로 삼자. “시가와 체육으로 혼의 격정적인 면과 지혜를 사랑하는 면이 적절하게 조화되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이다. 그리고 식생활은 단순해야 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김종회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독일의 화가이며 조각가인 알브레히트 뒤러는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초반에 걸쳐 활동했다. 그는 소묘 900점, 목판화 350점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대표작은 뉘른베르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기도하는 손’이다. 이 그림에는 눈물겨운 우정과 신뢰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숨어 있다.


그림 공부에 뜻을 두고 있었으나 너무 가난해서 공부를 할 수 없었던 뒤러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한 친구와 약속을 했다. 한쪽이 그림을 배우는 동안 다른 한쪽은 노동을 해서 학비를 부담하기로 한 것이다. 뒤러가 먼저 공부를 시작했고, 어느 정도 명성을 얻게 되자 이제는 친구를 공부시키기 위해 그의 집을 찾아갔다. 친구는 하루 일을 마치고 기도 중이었다.


 그의 기도는 이러했다. “하나님, 저는 심한 노동으로 손이 굳어 그림을 그릴 수 없습니다. 하오니 하나님, 내 친구 뒤러만은 화가로 성공하게 해 주십시오.” 뒤러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연필을 꺼내 친구의 기도하는 손을 스케치했다. 이것이 불후의 명작 ‘기도하는 손’이다. 


우리의 삶이 아름다운 건 이처럼 인간적 유대로 묶여 있을 때다. 이러한 삶의 감동을 경험한 사람은, 어떤 경우라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집단따돌림을 당한 어린 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사건이 속출하는 세상이다. 만약 그중 한 아이에게 뒤러와 같은 우정의 체험이 있다면, 극단적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터이다. 그러므로 폭력에 대한 예방교육보다 더 적극적인 방법은, 우리 아이들에게 감동적인 인간관계의 체험을 열어주는 일이다.



자살한 경북 안동의 여중생이 다니던 학교에서 학생이 묵념하고 있다. (경향신문DB)



그렇게 고급한 정신적 영역의 일부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타락이나 파멸의 길로 들어설 수 없다. 매일같이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철면피한 인물들의 가슴속에는, 작지만 단단하고 소박하지만 값있는 가치관이 숨어 있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데 본령이 있는 선거에서 나쁜 방식으로 사람들을 속인 당선자, 어려운 사람들의 정성어린 저축을 맡아 잘 관리하기는커녕 이를 횡령하고 도주하려 한 은행가에게는, 볼품 있는 감동의 체험이 그의 인생 역정에 있기 어렵다.


현대사회의 가장 무서운 질병은 암이 아니라 우울증이라는 얘기를 어느 의사에게 들었다. 암은 치유의 과정이 비교적 객관화되어 있으나, 우울증은 그것이 환자에 따라 천태만상이므로 종잡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한 시대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대중문화 스타들이 자기 생명을 버린 비극의 장막 뒤에는, 미상불 애써 추구하고 지켜야 할 목표와 가치의 상실이 주된 원인으로 잠복해 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세계은행 총재가 된 김용은, 단순히 상류사회에 진입한 신분으로 국제기구의 중책을 맡은 것이 아니다. 그에게는 인류사회의 질병을 퇴치하고 경제적 불균형을 개선하려는 이상이 있었고 그 뒤에는 그것을 키워준 어머니의 훈도가 있었다. “어머니는 늘 위대한 것에 도전하라고 하셨지요. 그래서 나의 꿈은 마틴 루터 킹처럼 세상의 불평등을 없애는 데 기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어머니의 가르침은 곧 가장 큰 사랑과 감동의 다른 이름이었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도 그것이 진심일 때에만 가치가 있다. 진심이 없는 곳에서는 감동의 싹이 자라지 않는다. 고귀하고 운명적인 사랑은 평탄한 곳에 피어나는 꽃이기보다는 역경의 가시밭길을 넘어선 곳에 선물처럼 주어지는 열매이기 마련이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희생과 감사와 신뢰를 한마디로 축약하면 아마 ‘사랑’일 것이다. 빅토르 위고는 시 ‘가을의 나뭇잎’에서 “사랑하는 것은 전부를 믿는 것이다”라고 했다.


감동이 있는 삶은 우리 모두가 꿈꾸어야 할 일생의 과제이다. 바야흐로 녹음방초가 꽃을 이기는 좋은 계절이다. 이때에 정녕 우리에게 감동적인 세상살이의 체험이 있는지, 또 어떻게 그것을 가꾸어 나가야 할지를 깊은 사색으로 탐구해 보았으면 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유인화 논설위원


지난 4일 저녁 서울 안국동 갤러리 아트링크에 배우 박정자(70)의 연극 50년 기념 ‘박정자 전’을 축하하려고 130여명의 문화예술인들이 모였습니다. 한옥을 개조해 만든 갤러리의 아담한 마당에서 최백호의 노래 ‘보고 싶은 얼굴’로 시작된 봄밤의 잔치는 아름답고 따뜻했지요. 1962년 <페드라>의 시녀 역으로 시작한 ‘박정자의 연극 50년’은 한국예술사를 말해주는 시간여행입니다.

늘 푸근한 웃음을 짓던 여배우가 그날처럼 긴장한 표정을 보여준 건 드문 일입니다. 기자가 박정자 선생을 처음 취재한 1988년 이후 그토록 굳은 채 감격하는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미친 도깨비 같다”는 말로 ‘50년 잔치’의 뜻깊은 첫날을 말합니다. “연극배우로 사는 동안 행복했다. 좋은 작품, 감격적인 무대, 훌륭한 선후배, 그리고 큰 박수로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당신, 그 시간들에 대한 감사를 전시라는 이름으로 내어놓았다”고 했습니다. 갤러리 벽에는 진명여고 시절 파란 꿈을 담은 박정자 학생의 똘똘한 눈동자부터 어머니의 손을 잡고 명동을 거닐던 이화여대생의 다부진 입술까지, 1970년대 추송웅과 출연한 <부부연습>에서 에너지 넘치는 손짓부터 <19 그리고 80>에서 귀여운(?) 80세 할머니로 분장한 순간의 윙크까지 140여편의 연극 출연을 기념하는 생생한 사진들과 동영상, 대본과 의상 등 온통 배우 박정자가 걸어온 ‘길’로 가득했습니다. 오는 13일까지 매일 저녁마다 가수 은희, 배우 강부자, 노래꾼 장사익 등 그의 친구들이 다양한 레퍼토리로 무대를 만들고 한태숙 연출의 ‘맥베스’ 낭독회가 이어집니다.

‘박정자 전’의 전시품 중에는 박정자의 다정한 ‘라이벌’ 손숙 전 환경부 장관(68)의 편지도 눈에 띕니다. “사랑하는 형님! 눈물겹고 힘들고 외로운 이 길을 가면서 늘 제 앞에 형님이 등불이 되어주셔서 길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제 연극은 우리에게 운명이고 종교가 되어버렸네요….” 끝없는 구도의 길을 공감한 글입니다.

 

연극배우 박정자씨 ㅣ 출처:경향DB

올해 88세인 백성희 선생은 현역배우로 가장 오래 무대를 지켜온 배우입니다. 1943년부터 69년 동안 400여편의 연극에 출연한 그는 자전극 <길>에서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이 길을 죽을 때까지 가는 거야”라며 가도가도 부족한 예술의 여정을 탐했습니다.

이들은 한 해도 무대를 거른 적이 없습니다. 고단한 수행길을 묵묵히 이어온 이들의 온몸에는 수십년 동안 흘린 땀과 눈물이 배어있지요. 비단 배우만은 아닐 겁니다. 예술은 갑자기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문제집을 풀고 몇 시간의 학원 수업 후 운전면허증을 발급받는 것처럼 몇 시간, 몇 달 만에 완성되는 게 아닙니다.

이제 학교현장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지난해부터 초·중·고교에서 행하는 수업집중이수제로 인해 예술과 체육이 단시간 내에 마스터할 수 있는 과목이 돼 버렸습니다. 이 제도는 학교 재량으로 국·영·수 등 입시와 직결되는 과목의 수업시간을 늘리고, 주당 한두 시간의 수업에 그치는 음악·미술·체육·도덕·사회·과학·가정·기술 등은 3년 동안 배울 내용을 학년별 또는 학기별로 몰아서 교육하는 방식입니다. 특정 학기에 집중적으로 수업하다 보니 국사나 한문 등 자세한 내용을 습득하거나 외워야 하는 과목은 주마간산식의 진도 맞추기에 급급한 게 사실입니다. 학생들의 감성과 인성 발달을 위한 예체능 교육도 체험 위주보다 암기 위주입니다.

얼마 전에는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전국 중학교 전학년에 주당 4시간씩 체육을 가르치라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졸속 지시가 떨어지자 일부 중학교는 토론·문화·예술·봉사 등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할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줄였습니다. 수업의 효율성을 위한 집중이수제가 전인교육 부재를 낳는 괴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중1·고1 학생들의 경우 기초가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중2와 중3 과정, 고2와 고3 과정을 미리 배우다 보니 부작용이 속출합니다. 특히 연간 40여만명에 달하는 전학생의 사정이 딱합니다. 학교마다 학기마다 배우는 과목이 달라 특정 교과목을 배우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해도 속수무책입니다. 또한 입시와 연관되지 않은 교과를 축소하다 보니 수업시간이 줄어든 교사는 다른 학교로 파견수업을 가거나 부전공 과목 연수를 받아 전근하는 사례가 늘었습니다. 늘어나는 영어와 수학 시간을 위한 기간제 교사나 단기연수 교사의 양산도 우려됩니다.

오죽하면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교원단체들이 이 제도를 비판하겠습니까. 정부는 교육현장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합니다. 학생들의 지식 발달단계를 정밀하게 고려하지 않고 졸속으로 도입한 수업집중이수제의 문제점 보완과 개선 없이는 교육의 미래도 없습니다. 특히 예체능 교육은 시간의 축적에 따라 숙성되는 자연의 순리와 같습니다. 열 달을 채워 사람이 태어나듯 생각 속의 창고도 한번에 채워질 수 없습니다. 3년 동안 배워야 하는 예술과목을 한두 학기에 끝내면서 어떻게 제2, 제3의 ‘박정자’가 탄생하기를 기대하겠습니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