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로 학생과 교사들이 희생된 단원고에 대해 당국이 이해할 수 없는 조치를 내놓고 있다. 경기도는 일반고인 단원고를 외국어고로 전환하는 방안을 정부에 건의하고 국비지원을 신청했다. 또 경기도교육청은 김진명 교장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물어 직위해제했다. 단원고에 대한 지원과 배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겠지만 갑자기 학교 이름과 성격을 바꾸고 교장을 문책한다고 하니 생뚱맞다는 생각이 든다.

경기도와 안산시는 단원고를 외고로 전환해야 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고 이미지 때문에 학생 지원이 줄고, 강제 배정된 학생들도 다른 학교로 전학갈 것으로 예상되며, 학생들의 자긍심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어느 것도 일리 있는 말이라 할 수 없다. 단원고는 불의의 사고를 만나 억울한 피해를 입었을 뿐 대외적으로 이미지가 나빠질 하등의 이유가 없다. 단원고 학생들로 말하자면 배가 바닷속으로 기울어가는 위기의 순간에도 안내방송을 믿고 침착하게 행동하며 선생님과 친구들의 안위를 걱정한 착하디착한 아이들이다. 학생들의 자긍심이 왜 떨어지며, 무엇 때문에 기피 학교가 된단 말인가. 단원고 교정에 한동안 남아있을 무거운 분위기를 학부모들이 부담스러워할 수는 있겠으나, 그렇다고 학교의 설립목적을 바꿔버리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발상이다. 현실적으로 외고는 시·도 단위로 신입생을 모집하면서 영어성적 우수학생에게만 입학기회를 주기 때문에 안산의 서민층 학생들에겐 가까운 학교 하나를 빼앗기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단원고 앞에 쌓이는 아쉬운 마음


단원고 교장에 대한 직위해제도 납득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학교 울타리 안에서 사고가 일어났다면 원인이 무엇이든 교장에게 관리 책임이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배에서 일어났다. 배에선 교사도 한 명의 승객으로 선원의 지시에 따르게 돼 있다. 학교가 책임져야 할 사고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같이 배를 타고 가던 교감은 단지 살아있다는 죄책감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교장은 세월호에 동승하지 않았지만 슬픔과 자책감은 누구보다 클 것이다. 이제 와서 굳이 자리에서 내쫓아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교장에게는 책임을 묻는다면서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라는 잘못된 문자메시지를 보낸 경기도교육청은 왜 아무 책임을 안 지는지도 납득할 수 없다. 사고의 교훈을 잊지 않으면서 단원고의 아픔을 치유하는 쪽으로 가야 할 세월호 대책이 공무원들의 안일한 탁상행정으로 흐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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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17개 시·도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성향의 후보가 13곳에서 당선되는 압승을 거둔 것을 놓고 여권과 일부 언론, 단체 등 보수진영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부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진보 교육감의 대거 당선이 보수 후보의 난립과 단일화 실패 때문이라며 그 의미를 깎아내리는가 하면 진보 교육감이 이념 성향이 다른 광역단체장이나 중앙정부의 교육정책과 충돌하면서 교육현장이 대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흉흉한 예단까지 펴고 있다. 진보 교육감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출신이거나 친(親)전교조 성향이라는 점을 들어 교육현장이 이념화할 것이라는 ‘색깔론’도 확산시키고 있다. 심지어 교육감 직선제 무용론·폐지론까지 들고나오는 실정이다.

선거 민심을 폄훼·왜곡하는 이런 주장과 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보수 후보의 난립이 진보 후보에게 반사이익을 안겨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결정적인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그것만으로는 2010년 선거에서 6명에 불과했던 진보 교육감 당선자가 이번에 그 두 배가 넘는 13명으로 불어난 것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면서 아이들의 안전이나 행복을 외면한 현행 경쟁 위주 교육의 근본적 변화 필요성을 절감한 이른바 ‘앵그리맘’의 표심이 결집된 결과로 봐야 한다. 그간의 교육 실패를 반성하고 교육의 새로운 가치와 방향을 모색하라는 게 보수 교육 진영의 참패로 나타난 이번 선거의 민심이라는 얘기다.

김석준 부산시교육감 당선자가 5일 부산대 제1사범관 306호 강의실에서 사범대학 일반사회교육과 1학년생을 대상으로 사회학을 강의하면서 지구온난화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부산 _ 백승목 기자


교육의 기본 가치는 보수·진보라고 해서 다를 게 없다. 경쟁이 아니라 협력, 탐욕이 아니라 생명·평화·인권 등 본질적 가치가 교육의 바탕이 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점에서 공교육 정상화와 입시 고통 해소, 학생 안전과 건강권 보장, 교육비리 척결, 교육환경 개선 등 진보 교육감들의 공통 공약은 정부와 보수 교육감들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번 선거 결과는 정부의 교육정책 실패와도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율형사립고 재지정, 한국사 국정화, 교사 시간선택제, 세월호 참사 시국선언 교사 징계, 전교조 법외노조화 등 진보 교육감과 갈등이 예상되는 교육정책에 대해서도 새롭게 접근하라는 요구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진보 교육감들도 완급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좋은 제도나 정책도 시행 과정에서 갈등을 빚거나 급작스러운 변화로 현장에 혼란을 준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보수냐 진보냐에 따라 교육 기조나 정책이 널뛰듯 왔다갔다 하는 것도 곤란하다. 중앙정부와 소통·협력하는 노력과 더불어 보수 교육감 시절의 정책이라도 좋은 것은 계승·발전시키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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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대도시 한 중학교에 재학했던 시절 한 선생님의 이상한 언행을 두고 학생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었다. 나이 지긋한 이 남자 선생님은 수업 도중 떠든 아이들을 혼낼 때마다 반드시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대답에 따라 어떤 아이는 벌을 섰고, 어떤 아이는 조용히 자기 책상으로 돌아갔다. 학기 초 학생들은 선생님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느 순간 학생 집이 좀 사는 동네면 떠들어도 봐주고, 그렇지 않으면 벌을 준다는 말이 나돌았다.


당시만 해도 그런 해석이 우습기만 했다. 대도시라고 해도 서울의 소위 8학군처럼 부자 동네와 학군이 연관되는 사회적 분위기(또는 실제 거주공간에 따른 계층적 분리)가 약했고, 아이들도 집안 형편에 따라 친구를 골라 사귈 정도로 영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둘째 아이의 유치원 추첨을 다녀오면서 20년도 더 된 이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아이는 운 좋게도 10 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당첨됐지만 문제는 유치원 내 희한한 갈등이었다. 추첨 직전 마이크를 잡은 원장은 “우리 원이 ㄱ동 아이들만 뽑는 거 절대 아닙니다”라고 거듭 공손하게 해명을 하는 게 의아했다. 알고보니 인근 ㄴ동, ㄷ동에 거주하는 아이들이 이 유치원에 오는 것을 이 동네 엄마들이 싫어하고, 반면 다른 동네 엄마들 입장에선 “똑같은 원비 내고 다니는데 무슨 차별이냐”며 원에 항의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관련 육아카페에는 이 문제에 대한 글들이 수없이 올라와 있었다.


한 유치원에서 학부모들이 내년도 입학생 추첨을 위해 줄지어 서 있다.(출처 :연합뉴스)


중산층으로 대변되는 분양아파트와 저소득층 거주지인 임대아파트의 반목은 이미 고전이지만 길 하나 사이에 두고 이 동네는 되고 저 동네는 안된다니, 우리 사회의 갈등이 이 정도까지 심화됐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최근 목동·잠실 등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행복주택은 현실적으론 결코 성사될 수 없고, 부자 동네 입장에선 성사돼서도 안되는 일이다. 유치원 추첨 다음날 정부는 결국 행복주택 지구 지정을 보류했다.


서울시가 은평뉴타운 등 새로 짓는 아파트에 대해선 임대와 분양 주택을 같은 동에 섞어서 배치하는 ‘소셜 믹스’를 시행하고 있지만 당초 의도한 ‘통합의 효과’보다는 오히려 소셜 믹스 단지를 기피해 집값이 떨어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어릴 적부터 사는 동네, 아파트 평수에 따라 다니는 유치원과 학교가 달라지고 있는데, 정부는 무작정 한 공간에서 같이 살게 하면 사회적 갈등은 저절로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소셜 믹스도, 행복주택도 좋지만 그보다는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연대의식의 가치와 협동의 소중함에 대해 어릴 적부터 가르치고 느끼게 해주는 교육에 근본적인 해답이 있을 듯하다.


문주영 전국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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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기, 쓰기, 고치기. 누구나 알고 있는 글쓰기의 세 단계다. 생각하지 않으면 쓸 수 없고, 쓰고 나서 고치지 않으면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글쓰기 강의 첫 시간이면 이와 관련된 퀴즈를 낸다. 위 세 단계 중 가장 어려운 것은? 열에 예닐곱은 쓰기가 가장 어렵다고 답한다. 또 같은 비율로 생각하기가 가장 쉽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글쓰기에서 가장 쉬운 것이 쓰기이고, 가장 어려운 것이 고치기다. 


초심자는 대충 생각하고 쓰고(안 써지면 말고), 쓰고 나서는 절대 고치지 않는다. 고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좋은 글에 대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습작기는 자기 글이 보이기 시작할 때 끝난다. 글쓰기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더 있다.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다. 남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큰코다친다는 피해의식, 방어기제가 의외로 완강하다. 또 다른 진입장벽은 글쓰기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않는 것이다. 여태까지 쓰지 않고서도(읽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잘 살아왔는데, 웬 글쓰기람. 작가나 기자가 될 것도 아닌데.


그렇다면 글쓰기는 왜 필요한가. 심리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쓰기는, 내가 나를 만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쓰지 않고서도 나를 만날 수 있다. 병상에 눕거나,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혼자 여행을 떠나거나. 하지만 이 세 가지는 일상을 벗어나야만 가능한 특별한 사건이다. 디지털 문명과 한몸이 된 소비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인위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자기 자신과 대면할 수 없다. 우리는 ‘나’를 빼앗겼다. ‘나’는 모두 밖에 나가 있다.


글쓰기 (경향DB)


성공, 행복, 긍정이 어느새 사회적 압력이 되고 말았다. 꿈과 희망도 스트레스다. 그런데도 국가와 사회는 ‘미래는 오직 너 자신에 달렸다’며 팔짱을 끼고 있다. 성공신화가 배타적 경제논리에 의한 세계적 캠페인이라면, 그리고 이 캠페인에 무작정 동참한다면 우리는 100% 소비자다. 문제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기억, 공감, 성찰, 상상, 창조와 같은 능력이 소비자와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다. 소비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하나, (무한한) 소비 능력이다.


소비적 주체는 인간의 존엄으로부터 가장 멀리에 있는 인간형이다. 소비자는 가장 왜소한 개인이다. 우울증, 섭식장애, 이혼, 과로사, 자살과 같은 사회 문제는 모든 것을 돈의 논리로 환산하는 소비사회와 깊은 연관이 있다. 통장에 잔액이 없으면 문밖출입이 어려운 삶, 그럴듯한 명함을 내밀 수 없으면 주눅이 드는 사회. 소비사회는 타인의 시선이 총알처럼 느껴지는 사회다. 글쓰기의 궁극 목표는 소비의 지옥, 시선의 감옥에서 소비자를 건져내 ‘새로운 나’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다.


‘나를 위한 글쓰기’ 프로그램은 단순하다. 누구나 할 수 있다. 열 명 내외의 동아리면 더 좋다. 생애 최고의 순간, 잊을 수 없는 장소, 가장 힘들었던 순간, 다시 마주 하고 싶은 밥상 등을 하나하나 불러내는 것이다. 지난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변화가 일어난다.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하는 이야기를 경청하기만 해도 달라진다. 문장, 문단의 완성도는 이차적 문제다. 자존감, 자신감을 강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자신감이 붙으면 관계를 재발견하고, 삶과 사회를 재정의한다. 나를 위한 글쓰기는 결국 남을 위한 글쓰기로 승화한다.


나를 위한 글쓰기가 ‘사회적 글쓰기’의 토대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올가을, 서울시가 일부 대학과 함께 설립하는 시민대학에 글쓰기 강좌가 포함된다는 소식이다. 서울 시민과 함께하는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치유 프로그램에도 글쓰기가 접목된다. ‘책읽는사회만들기 국민운동’이 출범한 지 10년 지난 시점, 누구나 글을 쓰고 발표할 수 있는 1인 미디어 시대에 사회적 글쓰기가 첫발을 내디딘다. 읽기와 쓰기는 혈연이다. 글 쓰는 사회는 책 읽는 사회가 그런 것처럼 생각하는 사회다. 글 쓰는 사람, 생각하는 삶,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부디 올해가 ‘글쓰는사회만들기 시민행동’이 시작되는 첫해가 되었으면 한다.


이문재 |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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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부모들이 자식을 서당에 보낼 때 만들었던 ‘서당매’는 사랑과 관심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조상들도 아이들이 예절 바르고 공부에 집중하도록 ‘공포의 몽둥이’가 아닌 ‘사랑의 회초리’로 체벌했다. 마틴 루터도 ‘매는 좋은 아이를 만든다’고 했다. 얼마 전 대형마트에서 파는 ‘훈육용 회초리’가 품귀현상을 빚은 것도 ‘자식 사랑’ 때문이었다. 


현역 프로농구 선수 이현호씨(33·전자랜드)가 담배 피우던 여학생을 훈계하며 머리를 쥐어박았다고 해서 불구속 입건됐다. 담배 피우며 욕설을 퍼붓던 학생은 ‘피해자’이고, “담배를 끄라”고 손으로 그들의 머리를 쳤던 이씨는 ‘가해자’가 돼 버렸다. 


이현호가 수비를 하고있다 (경향DB)



지난 12일 오후 8시 이현호씨는 부인과 5살배기 딸아이를 데리고 서울 양천구 목동 집앞 놀이터를 지나다가 10여명의 남녀 중·고생 중 일부가 담배 피우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씨는 학생들에게 담배를 끄라 했고, 아이들이 바르게 자랐으면 하는 생각에 ‘정신 차리라’며 머리를 한 대씩 툭 쳤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학생들에게 손찌검을 가한 이씨의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사회적으로 처벌받을 만큼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해도 폭력은 옳은 해결책이 아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한 그의 훈계는 후련함을 준다. 최근 흡연 학생을 훈계하던 성인들이 폭행당하거나 사망한 경우를 떠올릴 때, 이씨의 용기는 격려받을 만하다. 누리꾼들은 “세상이 무서워서 잘못된 것을 보고도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이씨를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칭찬한다. 피해자 5명의 학부모 중 3명도 “아이들이 혼날 짓을 했다. 요즘 세상에 이씨 같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오히려 고마운 일”이라며 처벌을 원치 않았다고 한다. 


이현호씨가 아버지의 입장에서 흡연 청소년들을 나무랐든, ‘욱하는 성격’ 때문에 손이 올라갔든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아이들의 비뚤어진 행동을 꾸짖은 것 자체는 용기있는 행동이다. 산업화와 핵가족화가 가속될수록 늘어나는 비행 청소년들을 방관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그들을 나무라거나 설득할 수 있는 성인들이 얼마나 될까. 우리 사회는 자신의 옆에서 잘못된 일이 벌어져도 봉변이 두려워 침묵하는 지대로 변하고 있다. 혼낼 일을 보고도 눈감아버리는 ‘비겁한 세상’의 어른들이 부끄럽다.



유인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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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대표적 관광도시 하면 하이델베르크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중앙역 옆에 자리한 12층 높이 인쇄미디어 아카데미 건물과 로봇 형태의 철제 조형물을 보고 이곳이 인쇄도시임을 알아채게 된다. 


독일 인쇄기 산업은 전 세계 시장의 약 70%를 점유한다. 도시 이름과 같은 하이델베르크 인쇄기는 세계시장의 40%를 차지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1850년 교회의 종을 만들기 위한 주물공장으로 출발한 이 회사는 1905년 인쇄기를 만들기 시작해 2011년 현재 30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경향DB)


현재 독일 국내총생산(GDP)의 2.3%를 차지하고 있는 인쇄업은 오늘날 정보통신기술(ICT)과 스마트폰의 발전에 밀려 사양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경제위기 이후 경기침체와 종이 인쇄의 위축으로 어느 정도 이런 인식이 정당시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쇄기 제조업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관계다.


독일에는 약 1만3000개의 인쇄 관련업체가 있는데 그 중 95% 이상이 종업원 수 50명 미만의 소기업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인쇄산업의 전체 규모는 줄어들고 있지만 그들 간에 유지되는 협력관계는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들은 인쇄할 때 가장 중요한 종이를 흔들리지 않게 하는 다양한 기계적 장치 개발에 집중한다. 오래전부터 생산되지 않는 기계일지라도 수리를 할 수 있는 것은 협력 중소기업들이 수십년 전 부품일지라도 공급해주기에 가능하다. 아울러 디지털과 인쇄물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영역에서도 협력 중소업체가 개발한 여러 첨단기술을 대기업이 융합하고 있다.


정밀 인쇄기는 자동차처럼 수만개의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아무리 세계적인 기업일지라도 모든 부품을 직접 생산할 수 없으므로 당연히 중소기업과의 협력이 중요하다. 그들은 오랫동안 하도급 관계로 상생하고 있지만 특정 대기업에만 납품을 강요하는 전속거래를 강요하지 않는다. 바로 이 점이 독일의 인쇄기 대기업이 서로 경쟁하고 세계 1, 2, 3위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그 바탕에는 몇 십년씩 거래한 수천개의 하도급 중소기업의 기술 경쟁력이 자리한다.


라인강의 지류인 네카강 위에 평온하게 자리잡은 하이델베르크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중세도시 관광지의 면모만큼이나 ‘느리지만 꼼꼼함’을 바탕으로 한 독일적 동반성장의 정신을 찾을 수 있다.



김영우 | 동반성장위원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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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권 | ‘야생초 편지’ 저자


 

계곡 건너편 숲속에 오가피밭이 하나 있다. 일손이 달려 오랫동안 관리를 하지 않았더니 꼴이 말이 아니었다. 칡과 가시덩굴에 휩싸여 겨우 숨만 쌔근쌔근 쉬고 있었다. 올해는 기필코 너를 놈들로부터 해방시켜 주리라 결심을 하고 시간 나는 대로 올라가서 낫질을 해댔다. 


그런데 오가피밭을 찾아가는 길이 몹시 험난했다. 편한 길을 택하면 계곡 저쪽으로 한참을 돌아서 들어가야 한다.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고자 계곡을 가로지르는 지름길을 하나 냈다. 가장 거리가 짧고 발 디디기 편한 코스를 택해 길을 내다보니 아주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다래나무 고목과 마주치게 되었다. 다래나무가 저 정도 굵기라면 수십년, 아니 어쩌면 100년도 더 묵었을지 모른다. 어찌어찌해서 굵은 본줄기가 얽혀 있는 곳은 피했는데 어른 팔뚝만 한 줄기 하나가 사람 가슴 높이에 걸쳐져 있었다. 거처를 소란스럽게 만든 것만도 송구한데 당연히 허리를 숙이고 지나다녔다. 그러다가 도시에서 갓 이주해 온 친구 하나가 일을 도와주겠다고 따라나섰다. 한 나절 열심히 일을 하고 돌아가는데, 이게 웬일? 길 가운데를 가로질러 뻗어있던 다래 덩굴이 싹둑 잘려나간 것이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누가 다래나무를 잘랐냐고 물으니 그 친구가 자신이 했다며 당당하게 말한다.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한 짓이니 야단칠 수도 없었다. 정색을 하고 왜 길을 막고 있는 다래 덩굴을 그대로 두었는지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다래가 길을 막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래의 거처를 침입해 훼손한 것이다. 만약 그것이 흔하디 흔한 청미래나 칡덩굴이었다면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도시에서 갓 온 그로서는 그저 길을 막고 있는 장애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백두대간이 난개발로 파괴되는 가운데 송두리째 잘려나간 자병산 정상 (경향DB)


개발 만능의 시대에 인간들은 자연을 단지 지배와 이용의 대상으로만 보았다. 그들에게도 생존 본능과 자기가 태어난 자리에서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지금 인간이 누리고 있는 안락과 행복이 뭇 동식물의 고통과 희생을 밟고 성립된 것임을 알고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어쩌다 그런 상상을 해 볼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알게 되면 내가 누리고 있는 행복이 불편해진다. 상대는 내가 아무리 밟고 짓뭉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저쪽에서 제멋대로 나고 자라는 짐승과 풀과 나무 따위 아닌가? 나의 행복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 아예 그런 쪽으로의 생각을 차단하거나 자기합리화를 한다. 모든 하등생물은 고등생물에게 봉사하기 위해 태어났으며, 후자가 전자를 지배하고 이용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라고. 다윈의 적자생존 법칙이 이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해주니 더욱 안심이다. 그런데 여기에 다윈의 결정적인 실수가 숨어 있다. 분명 다윈은 ‘가장 적합한 자(fittest)’가 살아남는다고 했지만 이것을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고 해석했고 후세의 사람들은 아무 의심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 그 결과 살아남기 위해 남이야 어떻게 되든 강자가 되려고 몸부림치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약자일지라도 서로 협동을 통해 살아남을 수도 있고, 환경을 잘 이용(타협)해 살아남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경쟁보다 협동을 통해 살아남는 경우가 훨씬 많다. 강자라서 살아남은 게 아니라 살아남았기 때문에 강자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결코 강자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오래 살아남았고, 개체수도 가장 많은 박테리아야말로 진정한 강자다. 그런데도 인간은 마치 자신이 최고의 강자인 양 세상을 마구 짓밟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다음날 일을 나가는데 보니까 누군가 잘려나간 다래나무 끝에 페트병을 달아놓았다. 잘려진 면에서 수액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아까웠던 모양이다. 지금 며칠째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인 묘한 심정으로 다래의 눈물을 마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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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건호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



박근혜표 복지에 대한 의구심이 생겨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손바닥 뒤집듯 복지공약을 수정하고 축소한 결과다. 4대 중증질환을 앓는 가족들이 절망하고, 기초연금 20만원을 기대하던 어르신들이 탄식한다. 저임금 노동자가 내야 하는 사회보험료를 정부가 전액 지원하겠다던 약속도 사라져 버렸다. 정말 재정 여건이 어렵다면 국민에게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하건만 애초 약속한 적이 없다니, ‘국민행복’ 시대라면서 국민을 너무 우습게 본다.


(경향DB)


그래도 나는 박근혜 정부에서 복지가 늘어나리라 기대한다. 지난 100일 국정운영에 실망하고, ‘한국형 복지국가’ 공약이 변질되는 것을 보면서도 그렇다. 박 대통령이 거듭 선언하는 신뢰와 원칙을 믿어서가 아니다. 내가 의지하는 것은 지난 몇 년 우리 사회에서 살아 숨쉬기 시작한 복지민심이다. 시장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받는 ‘부끄러운 시혜’로만 여겨졌던 복지가 모두가 함께 누리는 ‘뿌듯한 권리’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이는 정권이 바뀌었다고 쉽게 사라지지 않을, 대한민국이 반세기 만에 갖게 된 복지에 대한 소중한 재인식이다.


놀라운 일이다. 가장 복지에 소극적이었던 이명박 정부에서 복지가 대폭 확대됐다. 무상급식, 무상보육이 거의 시행되고, 반값등록금도 한 단계 진전됐다. 아직 꽃피우진 못했지만 병원비 국가책임, 기초연금 인상도 시대적 요구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예산 준비도 없이 0~2세 무상보육을 전격 실시해 지자체와 엄마들을 당황하게 한 게 이명박 정부였다. 


무상복지는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일이라며 통탄해야 할 이명박 정부조차 무상행진에 동참하게 한 이 힘은 무엇일까? 정권의 성격이 아니다. 민생과 복지를 강조했던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서 실제 복지정책 점수는 그리 좋지 못했다. 보편복지가 선보인 것은 오히려 가장 보수적인 이명박 정부에서이다. 이전 정부와 비교해 이명박 정부에서 달라진 건 무엇일까? 바로 아래로부터의 복지민심이다. 서구 복지국가에서도 복지를 주도한 정권이 사민당인 나라도 있고 보수당인 나라도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복지를 확대하라는 사회적 압력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복지민심을 강조할 때마다 되돌아오는 질문이 있다. 그 복지민심의 실체가 무엇인가? 지난 촛불처럼 에너지는 강렬하되 모양을 그리기 어려운 것 아닌가? 서구에선 복지민심이 노동조합을 통해 조직화됐는데 우리나라에선 가능하겠는가? 


여기서 말문이 다소 막힌다. 우리에겐 역동적인 시민사회가 있고, 복지 의제별 네트워크 활동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조직화된 대중 세력인 노동조합이 이 행진에 가세해야 하건만 지난 복지 확대과정에서는 그 역할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앞으로도 복지국가로 가는 길에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복지재정 확충을 위해선 첨예한 이해관계를 돌파해야 하고,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선 복지서비스 공급체계를 공공화하고 노동시장을 안정화하는 제도개혁이 필수적이다. 보편복지를 직접 누리고, 세금도 일부 내며, 상위계층에게 그에 맞는 책임을 압박해 가는 노동자들의 대중적 힘이 절실한 이유이다.


기지개를 켜는 복지민심에 이제 노동조합이 화답할 차례다. ‘노동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문구로 복지를 문전박대하는 건 곤란하다. 복지 의제가 노동과 상충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복지가 있어야 노동권도 날개를 달 수 있다. 서구 복지국가에서처럼 시장임금(좋은 일자리)과 사회임금(복지)을 두 바퀴로 삼은 노동조합의 전략과 사업을 보고 싶다. 예를 들어, 저임금 노동자 사회보험료 지원 문제가 당장 눈앞에 다가와 있다. 사회보험료를 전액 부담하겠다던 박근혜 정부의 공약이 현행 제도와 엇비슷하게 절반만 지급하는 것으로 후퇴해 있지 않은가! 노동조합이 전략적으로 주목해야 할 영세사업장, 저임금 노동자의 절박한 복지 현안이다. 이제 ‘복지 있는 노동이 강하다’를 주창하며 노동조합이 복지 운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는 사회적 목소리를 잃어가는 노동계의 자기 혁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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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 |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옛 선인들 중 이름이 있는 사람들은 대개 호(號)를 지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거처한 지역의 이름이나 자연의 이름으로 호를 지었다. 한명회는 그가 지은 압구정이라는 정자에서 호를 따왔고, 퇴계 이황은 그가 살던 토계에서 퇴계(退溪)를 따왔다. 율곡 이이는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밤골 마을에서 그 호를 따서 율곡(栗谷)이라 지었으며, 서경덕은 서재가 있던 화담(花潭)에서 호를 따왔다. 허균은 그가 태어난 강릉시 사천면의 교산(蛟山)에서 따서 용이 못된 이무기라는 호를 지었다. 연암(燕巖) 박지원은 가난하게 살았던 황해도 금천현에 있는 연암협에서 따서 호를 지었으며 다산 정약용은 유배생활을 보낸 다산(茶山)을 호로 택했다.


(경향신문DB)


그러한 예를 오늘에도 찾을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이 태어난 고향 마을 이름인 후광리(後廣里)에서 ‘후광’을 따왔다. ‘후광(後廣)’의 뜻 때문이었는지 그는 후에야 널리 알려져 대통령에 오른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 삶의 지표로 삼기 위해 호를 지은 이도 더러 있었다. 온몸을 독립운동에 바쳤던 김구 선생의 호 백범(白凡)은 일제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하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왜놈이 지어준 뭉우리돌대로 가리라 하고, 굳게 결심하고 그 표로 내 이름 김구(金龜)를 고쳐 김구(金九)라 하고, 당호 ‘연하(蓮下)’를 버리고 ‘백범(白凡)’이라고 하여 옥중 동지들께 알렸다. 이름자를 고친 것은 왜놈의 국적에서 이탈하는 뜻이요, ‘백범’이라 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천하다는 백정(白丁)과 무식한 범부(凡夫)까지 전부가 적어도 나만한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자 하는 내 원을 표하는 것이니….”


선생은 자신을 한없이 낮추어 ‘백범(白凡)’이라 하였으며, 그 낮은 곳으로부터 조선 독립운동의 대오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큰 뜻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였던 김개남 역시 ‘남조선’을 열어젖히리라는 큰 뜻을 가지고 영주라는 이름을 ‘개남(開南)’으로 바꾼 뒤 동학농민혁명을 이끌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가 산 이력보다 호가 너무 커서 남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전 대통령 중 한 분은 ‘일해(日海)’라고 했다. 그 호에 걸맞게 큰일을 많이 벌이긴 했으나 그가 사는 방식을 보면 한없이 초라하게만 보인다.


아직 호를 지을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내게도 어떤 스님이 호를 지어 주겠다고 한 적이 있다. “처사님의 삶이 운수납자(雲水衲子)처럼 떠돌고 있으니, ‘백운(白雲)’이라 하면 어떻겠소.” 나는 정중하게 사양했다. “백운거사 이규보가 먼저 선점했는데, 내가 무슨 호를 짓겠습니까?” 이름 하나 건사하고 살기도 힘드는데, 무슨 사치로 호를 지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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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 실학21연구소 대표




장복선(張福先)은 평양감영의 창고지기였다. 평안감사 채제공이 창고를 조사해보니, 은 2000냥이 부족했다. 장복선은 가난하여 결손을 메울 도리가 없었다. 사형감이었다. 이튿날 참형(斬刑)에 처하려고 옥에 가두었다.


소식을 듣고 평양사람들이 다투어 술과 음식을 보내왔다. 옥에 갇힌 장복선은 태연자약했다. 그는 종이와 붓을 달라 했다. “내 죽는 거야 애석할 것이 없으나, 남들이 나를 ‘관의 물건으로 사리사욕을 채웠다’고 의심할까 두렵다. 부끄럽지 않겠는가?” 가난한 사람들의 초상과 혼인 등에 쓴 것과, 환곡을 못낸 사람과 아전을 도와준 것들을 낱낱이 기록했다. 모두 합하니 2000냥이 넘었는데, 자신을 위해 쓴 것은 없었다.


이튿날 사형 집행일,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이때 기생 100여명이 뜰에 나란히 꿇어앉아 합창을 했다. “용서해주세요, 용서해주세요, 장복선을 용서해주세요….” 또 한 무관이 나섰다. “장복선을 살리기 위해 속전(贖錢)을 냅시다!” 가락지 등 패물이 쌓였다. 은이 모두 1000여냥이었다. 감사는 장복선을 석방했다. 이튿날 결손 부분이 다 채워졌다.


이옥(李鈺·1760~1812)은 말했다. “장복선 같은 이가 진짜 협객(俠客)이다.” 협객이 고귀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가? “재물을 가볍게 여겨 베푸는 것을 중시하고, 의기를 숭상해서 곤궁하고 다급한 사람을 구휼하며, 그러고도 보답을 바라지 않는 것이다.” 협(俠)의 글자 생김새는 대인(大人)이 약한 사람(人)들을 끼고 도는 모습이다.


사마천은 <사기> ‘유협열전’에서 유협(遊俠)에 관해서 말했다. “그 행동이 정의에 벗어나는 경우가 있지만, 말에 신의가 있고 행동에 해냄이 있다. 한번 승낙한 일은 성의를 다하여 몸을 아끼지 않고, 사람의 곤경에는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지 않고, 공덕을 내세우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유협이 때로 법망에 벗어나는 문제가 있지만, 사람들에게 법은 멀고, ‘의리 있고 청렴하고 겸양한’ 협객은 의지할 만하다. 또 유협은 조폭 부류를 싫어한다. 즉 “패거리 지어 강자를 받들고 편당을 도모하면서 재물을 모으고 가난한 사람을 부리거나, 폭력을 휘둘러 외롭고 약한 사람을 못살게 굴면서 멋대로 자기 좋은 일을 하는 것”을 싫어한다.


(경향신문DB)


크고 작은 폭력은 늘 있었다. 하나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폭력이 오늘 학교에서 왜 이토록 기승을 부리는 걸까? 시험 공부 하느라, 먹고사느라 주위의 외롭고 약한 이를 돌아볼 겨를이 없어서인가. 폭력으로부터 약자를 보호할 의협(義俠)의 기운이 왜 이다지도 쇠약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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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 |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소크라테스가 길을 걸어가는데 “어디서 왔느냐”고 어떤 사람이 물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왔다”고 말하지 않고, “세상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워즈위스를 찾아온 방문객이 하녀에게 주인의 서재를 보여 달라고 하자 하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여기가 주인님의 책을 보관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주인님의 서재는 야외입니다.”


나 역시 그와 비슷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사무실이 어디인지요” 하고 물으면 “온 나라가 다 사무실이고 도서관이고 일터지요”라고 답한다. 그렇다. 내겐 길이 사무실이고 응접실이고 서재다. 나는 어디를 가건 쉴 때마다 마치 안방에 앉는 것처럼 길에 퍼질러 앉는다. 나와 오랜 시간 우리땅을 함께 걸어온 도반 중에 어떤 이는 쉬어도 서서 쉬기를 원한다. 앉았다가 일어날 때 몸이 더 후들거리므로 그냥 서서 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앉아 쉬면서 생각을 정리한다.


걸어오면서 귀담아듣지 못한 것, 보았으나 길가 어느 곳에선가 흘려보낸 것, 나는 책장을 넘기듯 그런 생각들을 펼쳐보면서 수첩에 옮긴다. 리고 주변을 바라본다.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면 주변의 온갖 세세한 것까지 다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서 아주 작은 꽃들을 바라보고, 멀리서 전체적인 윤곽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산천의 모든 풍경들이 깨알 같은 활자가 되고, 활짝 핀 꽃이었다가 한 폭의 그림이 되기도 한다. 저와 같이 생기발랄한 책이며 꽃이며 그림들을 도대체 어디에서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단 말인가? 바라보는 순간순간이 벅차오른다.


“산천을 유람하는 것은 좋은 책을 읽는 것과 같다”는 옛 선인들의 말처럼, 나에게는 이 땅 어디를 돌아다니건 그곳이 다 도서관이며 박물관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며 사물들이 잘 펼쳐진 한 권의 책으로 변모되는 것이다. 그것도 세상의 그 어떤 것하고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책으로 말이다.


(경향신문DB)


“보행은 가없는 도서관이다. 매번 길 위에 놓인 평범한 사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도서관, 우리가 스쳐 지나가는 장소들의 기억을 매개하는 도서관인 동시에 표지판, 폐허, 기념물 등이 베풀어주는 집단적 기억을 간직하는 도서관이다. 이렇게 볼 때 걷는 것은 여러 가지 풍경과 말들 속을 통과하는 것이다.” 다비드 르 브르통의 글이다.


나는 길을 걸으며 수천년 이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난다. 산과 강을 지키며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살림살이와 사랑법을 들으며, 이 땅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처연한 국토의 숨결을 느낀다. 때로는 과거를 걷고 때로는 미래를 걸으며,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고귀한 삶의 정서를 나는 이 땅에서 찾아내는 것이다. 그야말로 내가 걷는 산천이 바로 장대한 도서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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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 실학21연구소 대표



2013년 3월3일. 삼겹 3이 눈길을 끈다. 3은 ‘최소 다수’가 주는 충분함과 간명함에서 비롯된 몇 가지 마력이 있다. 우선 최소 3은 돼야 다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더 많으면 번거로워 과유불급이다. 세 가지면 충분히 다 말하면서도 집중도를 높일 수 있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3에 주목한다. 만세의 스승 공자도 교육에 ‘세 가지’를 잘 활용했다. <논어>의 첫 부분은 세 가지로 시작했다.


한 유방이 진의 관중을 장악했을 때, 진의 가혹하고 번잡한 법령들을 폐지하고 단 3조항으로 된 약법삼장(約法三章)을 제시해 민심을 얻었다. 그가 천하를 얻는 데는 3인이 결정적 구실을 했다. 후세에 ‘삼걸(三傑)’로 불리는 ‘장량, 소하, 한신’은 각자의 장점을 발휘하고 결합시켰다.


세 사람이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낸다. 사람 많은 시장 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한두 사람이 말하면 믿지 못하던 사람도 세 사람이 말하면 믿게 된다. <한비자>에 나온 이야기다. 실제로 한 방송국이 실험을 했다. 먼저 거리에서 한 명이 한 방향을 쳐다보게 했다. 행인들은 무관심했다. 두 명이 쳐다보아도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세 사람이 한 방향을 쳐다보고 있자 행인들도 따라서 쳐다보았다. 3은 일종의 티핑포인트였다.


진정한 세 사람은 다중에 맞먹는다. 안영이 노나라를 방문했을 때, 소공이 물었다. “속담에 ‘세 사람이 함께하면 헤매지 않는다’고 했는데, 지금 나는 온 나라 사람들과 함께 나라를 걱정하는데도 나라가 어지러움을 벗어나지 못하니, 왜 그런가?” 


안영이 답변했다. “한 사람은 틀려도 두 사람이 맞으면 세 사람은 충분히 다중이 됩니다. 그래서 ‘세 사람이 함께하면 헤매지 않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지금 노나라의 신하들은 천, 백을 헤아리지만 모두 한 사람의 이익에 말을 맞추고 있습니다. 사람 수는 많으나 말하는 것은 한 사람과 같으니, 어찌 세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한비자> ‘내저설 상’과 <안자춘추> ‘내편 문하’에 나온 이야기이다.

가운데가 관우, 왼쪽은 유비, 오른쪽은 장비이다. (경향신문DB)


삼국지 이야기는 ‘유비, 관우, 장비’의 3인이 도원결의를 함으로써 시작된다. 이들은 제갈량을 세 번 찾아가서야 그의 마음을 얻었다. 제갈량의 ‘천하 삼분지계’는 양자 대립의 구도에서 약자가 세력을 도모하는 방략이었다. 중간의 틈바구니에 서는 것이 아니라, 서쪽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근거를 마련하고, 두 강자의 대립을 최대한 활용했다. 


3자 정립은 상호 견제와 균형으로 역동적 안정성을 갖는다. ‘세 가지’의 실용성, 최초 또는 핵심 ‘3인’의 힘, 그리고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제3’에 주목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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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 |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어린 시절을 섬진강 발원지 부근 시냇가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내게는 유년 시절부터 강에 대한 그리움이 싹텄다. 그 그리움이 자라서 후에 ‘한국의 10대 강 도보답사’라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처음엔 금강을, 그리고 섬진강, 한강, 낙동강, 영산강을 발원지에서 시작해 하구까지 하염없이 걸었다. 강의 발원지인 샘에 도착해서 머릿속으로 강을 그려보면 강이 한 그루 우뚝 선 나무와 같음을 알 수 있었다.


바다에 깊게 뿌리내린 나무가 여러 갈래의 줄기와 가지를 늘어뜨린다. 그 중, 가장 긴 가지의 끝이 강의 발원지다. 물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이고 모여 샘을 이룬다. 그 물이 흘러넘쳐 내려가면서 수없이 많은 지류들을 받아들인다. 아무리 오염된 지류라도, 아무리 작은 지류라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 뒤 끌어안고 가며 스스로 정화해 가는 것이 강이다.

(경향신문DB)


“강을 보라,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그 근원인 바다로 들어가지 않는가.” 독일의 철학자인 니체의 말과 같이 강물은 낮은 곳으로만 내려가 화엄의 바다로 들어간다. 강물의 최고 미덕은 겸손함이다.


사람의 일생과 강의 일생이 너무도 비슷하다. 살아가는 동안 무수한 사람들을 만나듯, 강물 역시 흘러가는 동안 무수한 지류를 만난다. 하지만 살아가는 방식은 강물과 너무도 다르다. 사람은 겸손하게 낮은 곳으로 내려가길 싫어하며, 오로지 높은 곳을 열망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니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을 리 없다.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는 사람은 내치기 일쑤다. 그러다보니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통하는 사람은 적어지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서먹서먹해져 외롭게 인생의 종말을 향해 간다.


일찍이 강과 사람의 다른 점을 간파한 노자는 <도덕경>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강과 바다가 백 개의 계곡 물을 다스릴 수 있는 까닭은 강과 바다가 계곡 물보다 낮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이 강과 바다가 백 개의 계곡 물을 지배하여 왕이 될 수 있는 이유이다. 이것은 백성들 위에 군림하고 싶은 성인이 항상 말을 겸손하게 하여 자신을 낮추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마천의 <사기>에도 비슷한 글이 실려 있다. “태산은 작은 흙덩이도 사양하지 않기에 그 큼을 이룰 수 있었고, 하해는 가는 물줄기도 가리지 않기에 그 깊음을 이룰 수 있었다.” 사소한 것도 귀히 여기고 포용할 줄 알아야 큰 인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 오랜 강을 보라, 그는 쉬지 않고 흘러가나니.”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이다. 유장하게 흘러가는 강물은 서로 다투지 않으면서 바다로 들어간다. 강물과 같이 서로서로 마음을 합하고 소통하며 이 세상을 살아간다면 더불어 큰 바다에 닿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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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범 | 작가 thistiger@naver.com



1979년 어느 날, 영국 런던의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학생들과 함께 40대 초반의 여성이 탁자에 수북이 쌓아 올린 종이를 갈가리 찢어대는 특이한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지나가던 경찰관은 그들에게 해산하라고 경고하면서 100개의 단어로 구성된 수도경찰법을 읽어 내려갔다. 1839년에 만들어진 이 법은 난해한 법률 용어와 지나치게 복잡한 문장으로 악명이 높았다. 모여든 기자들에게 이 중년 여성은 그 문장들을 쉬운 영어로 번역해주다가 조롱하듯 경찰에게 물었다. “그 복잡하고 어려운 표현은 우리가 여기서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는 뜻인가요?” 경찰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들이 찢고 있던 종이는 몹시 어렵게 쓰인 공문서들이었다. 이 시위를 주도한 40대 초반의 여성 크리시 메이어는 정부의 서식과 공문 등에 쉬운 영어를 사용하라고 촉구하려 거리에 나선 터였다. 정부에 제출해야 하는 온갖 서식에는 서민들이 그 뜻을 알기 어려운 라틴어나 전문 용어가 수두룩했다. 


메이어는 가난하게 살던 어느 나이든 모녀가 어려운 용어 때문에 정부로부터 난방수당을 더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추위에 떨다 얼어죽은 사건을 직접 겪으면서 쉬운 말 운동에 나섰다. 공식적으로 이 해부터 영국에서는 ‘쉬운 영어 운동’(Plain English Campaign)이 펼쳐진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쉬운 말’의 가치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문화 측면에서 ‘고운 말’을, 규범 측면에서 ‘바른 말’만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고운 말이나 바른 말의 기준을 정하는 일은 대개 문화와 사회를 주도하는 사람들의 몫이었고, 특히 국가의 영향력이 강했다.


민주화와 다원화가 진행되면서 이에 대한 반발 또한 강력하게 나타났다. 세계화와 함께 영어와 미국 문화가 고급 문화 자리를 차지했고, 정보화 와중에 언어 파괴와 표준어 무시가 성행한다. 현재 우리의 언어생활은 이처럼 기존의 전통을 지키려는 힘과 이에 반발하며 기득권을 조롱하려는 두 흐름의 범벅이다.


그러나 이 혼란은 정작 언어의 기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권리’의 측면을 놓치게 한다. 영어 남용은 민족주의냐 세계시민주의냐 하는 대립구도 속에 갇혀 있고, 언어 파괴와 표준말 무시는 권위주의네 자유주의네 하는 비난으로 흐른다. 이런 대립 속에서 우리는 말을 하고 말을 듣는 바로 그 ‘사람’의 문제, 인권이라는 문제를 빼먹고 있다.


사람은 자신의 고통과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뜻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와 권리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보루이다. 그런데 이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법과 제도, 행정, 사회 관계가 자신을 어떻게 옭아매는지, 또는 해결의 실마리를 주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정보에 접근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보 접근권은 단지 정보에 다가갈 경로가 열려 있어야 한다는 조건뿐만 아니라 그 정보가 누구든 알아먹을 수 있는 쉬운 말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언어는 ‘알 권리’로부터 출발해야 하며, 특히 오늘날처럼 국가를 비롯한 공공 영역이 개인의 삶을 매우 강하게 규정하는 시대에는 공공언어 영역에서 시민의 알 권리를 지키려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포괄수가제 반대하는 의사협회 (경향신문DB)


우리의 복지 정책에도 언어의 장벽이 높다. 포괄 수가제, 바우처, 시니어 클럽, 텔레케어 등 알아먹기 어려운 용어 앞에서 국민은 주눅 들고 인간답게 살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메이어의 말마따나 어려운 말 때문에 죽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어서는 안된다. 쉬운 말은 고운 말이나 바른 말 이전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언어의 가치다. 화려하고 매끈한 계단보다는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고른 비탈길을 먼저 설계해야 하듯이. 언어도 인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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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삼 |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3월이면 왠지 설렌다. 올해같이 유독 추운 겨울을 지나 새봄을 맞는 감회는 더욱 새롭다. ‘춘삼월 호시절’이라는 옛말처럼 봄과 3월은 궁합이 맞다. 3월은 새 학기이자 새 학년을 맞는 때이기도 하다. 학교는 뺨이 발갛게 상기된 신입생들을 맞이하느라 함께 들뜬다. 한 계절의 시작이자, 인생의 새로운 출발이 3월에 얽혀 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인생은 녹록지 않다. 백수를 누리는 시대라지만, 그 백년 세월은 고통의 바다이기 일쑤다. ‘죽자살자 취직해서 죽도록 일하다가 죽으면 뭐하나’라는 시쳇말은 부쩍 늘어난 과로사를 지목해서 하는 말이다. 그러나 막상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는 마당이고 보면, 배부른 투정으로도 들린다.


대학이 직업학교로 변질된 지는 꽤 오래다. 요즘 대학들 하는 짓을 보면 학생들의 생존을 위함인지, 자기 생존을 위함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대학들이 제 살기에 바쁜 것이다. 졸업생 취업률이라는 것도 6개월이 지나면 절반쯤 뚝 떨어진다니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심각한 것은 기업의 생존율이다. 몇 년 전 LG경제연구원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60년 이후 100대 기업의 평균 생존 나이는 10.4년이었다. 대우그룹, 쌍용그룹, 한일은행, 조흥은행 같은 이름들은 아직도 귀에 익다. 지난해 말에는 세계적인 전자회사 소니의 주식이 깡통이 되었다는 소식도 있었다. 기업이나 은행들의 생존 연령이 10년 정도에 불과하다는 조사결과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건 죽자살자 취업 공부해서 30살쯤 대기업에 들어가더라도 40세 이후엔 다른 삶을 개척해야 한다는 말이다. 즉 취업이 문제이긴 하지만, 나머지 60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더 큰 문제라는 뜻이다. 더욱이 40세 가장의 등짝에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어린 자녀가 달려 있을 공산이 크다. 그 이후 인생은 자녀부양에 골몰하며 보낼 수밖에 없다. ‘제 논에 들어가는 물과 제 자식 입에 들어가는 밥이 세상에서 가장 보기 좋다’는 속담을 뒤집으면, 자식의 배고픈 울음 앞에 남의 집 담을 넘어다보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말이 된다. 인생의 전반은 제 한 입 책임지려고 아등거리다가, 후반은 자식 먹이를 버느라 버둥거리다 끝날 듯한 것이 젊은이들의 ‘어두운’ 미래다. 제 삶을 즐기기는커녕 육신 덩어리 하나 영위하기에 급급하다가 끝날 형편이다.


요컨대 오늘날 젊은이들은 부모건, 학교건, 기업이든, 나라든 기댈 데가 없다. 인생을 제 스스로 설계하고 꾸리지 않으면 안될 처지다. 이 지점에 “왜 인문학인가!”라는 질문이 자리한다.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가난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눈의 문제와 인문학은 밀접히 관련된다. 인문학은 낯익은 것을 낯설게, 심드렁한 것을 새롭게, 상식을 비상(非常)한 것으로 바꿔 보는 안목을 기르는 공부다. 가난은 살갗에 뼈저리게 닿는 감촉이기에 도리어 인문학과 친화적이다. 인문학은 관념적인 게 아니라 구체적 삶 속에서 우러나오는 공부다.


집 주변의 개천을 보고 공자가 내뱉었다는 “아, 흘러가는 것이 이렇구나. 밤낮을 가리지 않는구나!”라는 찬탄은 인문학의 의의를 한마디로 보여준다. 내내 풍경으로 여기고 심드렁하게 보아 넘겼던 주변의 개천물이 문득 자연(自然)을 체현한 주인공으로 돌출하고, 반면 세상의 주인으로 여겼던 자신은 손님으로 쪼그라드는 체험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또 죽고 난 후에도 흘러내리는 저 ‘보잘것없는’ 개천이야말로, 고작 백년도 채 못 살고 떠날 나의 생로병사를 지켜보는 주인공이 아니던가!


익숙한 것과의 결별, 낯설고 새로운 것에 용기를 가지고 진입하는 힘이 인문학에서 나온다. 사람도 동물인지라 남의 살을 먹어야 산다. 하지만 생존에 머물지 않고, 생존의 의미를 따지고 새로운 눈으로 길을 찾는 것이 인문학이다. 그러니 가난도 하나가 아니다. 적빈이 있는가 하면 청빈도 있고, 경우에 따라 자발적 가난도 있다. 성경에선 ‘천국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다’라고 했다. 가난함과 부유함, 곧 삶과 살림의 의미 그리고 사람됨을 뒤집어보고 깊이 바라보는 안목이 인문학의 주제다. 인문(人文)이라, ‘사람다움의 무늬’를 발견하는 공부가 인문학인 것이다.

사상가 노자 (경향신문DB)


모든 인문학에는 고전이 있다. 고전은 오래된 책이란 뜻이다. 오랜 세월을 버티고 살아남은 까닭은 잘사는 삶을 더 잘살게 만드는 것이기보다, 죽음보다 아픈 고통을 사람답게 이겨나가는 지혜를 담고 있기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 어차피 항구적인 직장은 없고, 들어가도 고작 10년에 불과하다. 더욱이 인생은 단 한번밖에 없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후반 인생을 젊은 시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문득 ‘노자(老子)’라는 책이름이 범상치 않게 와 닿는다. 젊은이에게 늙어서야 알 지혜를 가르쳐주는 책이 고전이라는 의미로 읽혀서다. ‘어두운’ 3월의 첫날, 대학 신입생들에게 인문고전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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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 | 작가·거리의 인문학자



 

좋았다. 평소에는 죽어라 졸라도 눈 하나 꿈쩍 않던 엄마가 그날은 웬일로 앞장서서 분식집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시키기도 많이 시켰다. 떡볶이, 순대, 어묵, 튀김…, 좌우지간 입이 즐거운 날이었다. 폭설로 얼었다가 녹아 진창이 된 학교 운동장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떨었던 보람이려니 싶었다. 정신없이 어묵과 순대를 입 안으로 구겨넣는 사이, 엄마의 슬픈 표정과 누나의 어눌한 표정이 이따금 눈에 들어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먹기만 하던 나는, 바로 그 말, 살짝 떨리는 음성으로 천천해 이어가는 엄마의 말에 일순 입과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수심에 가득 차 있던 엄마는 끝내 흐느끼기 시작했다. 손으로는 연신 당신이 곱게 빚어 두 갈래로 땋아준 누나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너도 어여 먹어라. 동생이 다 먹어버리기 전에. 너는 이제 다 컸으니까, 엄마를 도와야지….” 


그렇게 엄마의 말이 끊어졌고, 누나는 그날 이후 학교와의 인연을 끊어야 했다. 이후 봉제공장의 시다, 버스 안내양 생활을 하며 실체 없는 구름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옆에 있는가 싶으면 사라졌고, 사라졌나 싶으면 어느새 나타나 바리바리 싸온 선물꾸러미를 풀곤 했다. 매양 풀어놓는 건 누나의 ‘영원한 어린 동생’인 나를 위한 선물들이었다. 단숨에 지퍼가 채워지는 곤색 ‘추리닝’과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제과점 빵, 새하얀 운동화 등등.


누나가 살림을 차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건 내가 막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다. 큰누나와 함께 시외버스를 타고 세 시간여를 달려 멀미와 함께 하차한 곳에 누나의 살림집이 있었다.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매형은 어부였다. 남한강 자락에 어부들이 모여 사는 시골 마을 한중간에 누나의 살림집이 있었고, 이웃에 누나의 시댁과 시댁 친척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매형은 보쌈하듯 살림을 차린 게 못내 미안하고 겸연쩍었나 보다. 어린 처남을 극진하게 대접해 주었다. “사람꼴 하고 사는 걸 봤으면 됐다”며 큰누나는 곧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마침 겨울방학이어서 누나 집에서 며칠을 더 묵게 되었다. 매형과는 바로 친해져 엽총을 메고 함께 새 사냥을 다니기도 했고, 배를 타고 강에 나가 고기잡이 흉내도 내볼 수 있었다. 엄마만 괜찮다면 아예 누나 집에서 눌러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난 때문에 많이 배우지 못했고,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채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는 누나였는데, 어느 날 뜬금없이 “졸업식에 와서 축하해 달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나이 오십줄에 들어선 누나가 검정고시를 통과해 중학교 과정을 마치게 되었다는 거였다. 사실 누나가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다는 건 아내에게도 숨겨왔던 일이었다. 그런 누나가 30여년 만에 중학교를 졸업한다니…. 놀랍고, 대견(?)하고, 감격스러웠다. 

(경향신문DB)


나 역시 고교과정을 야학에서 마쳤고, 대학 시절엔 야학 교사로, 그리고 지금은 노숙인과 장애인, 미혼모 등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으니 누나의 뒤늦은 향학열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누구보다 더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예전, 아주 오래전 그랬던 것처럼 누나의 졸업식에 어머니와 함께 참석했다. 지난 날 누나의 초등학교 졸업식 때의 시장통이 떠올라 은연 입 속에 침이 고이기도 했다. 졸업식장은 축제의 장이었다. 누나는 그나마 젊은 축이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초로의 어머니들이 많았고, 더러는 젊은 여성들도 눈에 들어왔다. 그 중간에 누나가 사각모를 쓰고 함박웃음으로 앉아 있었다. 


그때까지도 아무런 표정이 없던 어머니가 끝내 울음을 터뜨린 곳은 예의 시장께에 있는 식당에서였다. 언제 그리 많은 눈물을 담아두셨던지, 어머니의 눈물바람은 식당을 나설 때까지 계속되었다.


뒤늦게 사각모를 쓴 누나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득 두 해 전 일이 떠오른다. 김진숙을 살려야 한다며 달려갔던 부산 영도의 한진중공업.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 공장의 살벌하면서도 을씨년스러운 풍경, 그러나 그 살벌한 풍경을 한순간에 잠재운 크레인 위의 김진숙, 1평도 안되는 크레인 위에서 사계절을 보내면서도 예의 당당함과 기백을 잃지 않은 위용은 빛났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신산스러운 삶을 꿋꿋이 버텨온 우리 시대의 모든 누님들이 떠올랐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여공의 이름으로, 노동운동가의 이름으로, 나이 오십에야 중학교 과정을 마친 열혈청년의 이름으로, 마침내 이 땅의 수많은 누나들을 대신해 그가 크레인 위에 올라 있는 것만 같았다.


몇 해 전, 누님댁에 갔을 때였다. 누나가 내 앞에서 계속 “아이 엠 어 걸(I am a girl), 아이 엠 어 걸”을 외우고 있었다. 나는 농반 진반으로 지적했다. “누나는 이미 나이가 들었으니 ‘아이 엠 어 걸(I am a girl)’이 아니라 ‘아이 엠 어 레이디(I am a lady)나 아이 엠 어 아줌마(I am a ajumma)’라고 해야 맞는 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누나는 위용있게 ‘아이 엠 어 걸(I am a girl)’을 외웠다. 오십이 다 된 나이에 ‘아이 엠 어 걸(I am a girl)’을 외우고 있는 누나는 말 그대로, 당당하고 열정으로 빛나는 ‘걸(소녀)’이었다. 내 지적은 참 부질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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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화 논설위원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 박종우 축구선수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승리 세리머니를 했다는 이유로 동메달 시상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당시 ‘독립투사’라는 별명을 얻은 박종우는 “너무 감사하다”면서 “독립투사 중 3·1운동을 했던 유관순 누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박종우 선수뿐이겠는가. 우리는 3·1절을 맞을 때마다 한국의 잔다르크 유관순을 생각하며 동요 ‘유관순’을 떠올린다. “3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 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옥속에 갇혀서도 만세부르다/ 파란 하늘 그리며 숨이 졌대요”. 노래처럼 이화학당 학생이던 유관순은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되어 18세에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했다. 


93년 동안 ‘유관순 누나’로 불리며 독립운동의 아이콘으로 존경받는 유관순 열사가 ‘신장 미스터리’의 화두를 던졌다. 그동안 유관순의 키는 5척6촌(169.68㎝)으로 알려졌지만 지난해 11월 5척0촌(151.5㎝)설이 제기됐고 엊그제 다시 ‘6촌’과 ‘0촌’ 논란이 불붙었다. 지난해 조용진 전 서울대 교수는 충청지역 독립운동가 학술대회에서 ‘유관순 열사 얼굴 원형 3D 디지털 복원 및 활용방안’ 주제발표를 통해 유관순 열사의 수감 당시 사진을 3D로 작업하며 키를 151.5㎝로 설정했다. 유 열사의 키가 수형기록표상 기록된 5척6촌이 아니고 5척0촌의 평균키였지만 일본인 간수가 ‘0’을 ‘6’처럼 썼기 때문에 슈퍼모델급 장신으로 알려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26일 임명순 천안 향토사연구가는 독립기념관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소 발표회에서 ‘유관순 열사 신장에 대한 재검토’발제문을 통해 유관순의 키는 5척6촌이 맞다고 주장했다. 일본인 간수의 ‘0’과 ‘6’ 표기는 확연히 달랐다는 것이다. 또한 가족사진에 나온 유 열사의 남자형제들은 주변 인물보다 월등하게 키가 컸기 때문에 유 열사도 장신이었다고 추정한다. 

유관순의 수형기록표 (경향신문DB)


그러나 ‘키’는 문제가 아니다. 고문으로 부어오른 유관순 열사의 얼굴 사진에 마음이 저릿하다. 지난해 3차원 레이저작업 결과 오른손잡이가 손바닥과 주먹으로 유관순의 양쪽 뺨을 20여차례 구타해 입의 오른쪽을 비롯해 얼굴 전체가 부었다는 분석이다. 빛바랜 사진 속에서 온갖 고초를 겪은 유관순 학생의 눈빛이 처연하다. 모레가 3·1절이다. 삶에 지쳐 무뎌진 역사인식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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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 실학21연구소 대표

 


나라 다스리는 일은 사람 쓰기에 달렸다. 그런데 막상 사람을 쓰자면 인재가 없다는 한탄이 따른다. 과연 그럴까?


“열 집 사는 고을에도 반드시 성실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 있는데, 넓은 천하에 어찌 인재가 없다고 말하는가? 문제는 어진이가 스스로 나서길 꺼려 하고, 임금과 재상이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없다는 데 있다.”


서애 유성룡(1542~1607)이 <송사>를 읽다 한 말이다(<독사려측>). 그는 ‘인재설’에서도 “천리마는 항상 있지만, 천리마를 알아볼 사람은 항상 있지 않다”는 당나라 한유(768~824)의 말을 상기시켰다.


인재는 얻고 쓰는 사람에 달렸다. 한신은 항우가 몰라봤지만 한나라 소하가 알아보고 붙잡았다. 이순신은 서애가 알아보고 천거했다.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이 알아보고 기용했다. 인재는 발탁하고, 없으면 배양해야 한다. 그나마 경쟁이 치열할 때는 적극적으로 인재를 구하다가도, 그런 상황이 사라지면 그저 서로 편한 사람들끼리 자리를 차지하는 경향이 있다. 아예 인재를 구하지 않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통색의’에서 말했다.

(경향신문DB)


“신이 엎드려 생각하건대, 인재를 얻기 어려운 지 오래되었습니다. 온 나라의 빼어난 인재를 모두 발탁해도 부족한데, 더군다나 8, 9할을 버리다니요? 온 나라의 백성을 모두 배양해도 인재가 자라지 않을까 걱정인데, 더군다나 8, 9할을 버리다니요? 서민이 버려진 사람들이고, 중인과 서얼이 버려진 사람들입니다. 평안도, 함경도 사람들이 버려진 사람들이고, 황해도, 개성, 강화도 사람들이 버려진 사람들이고, 강원도와 호남 사람들은 절반이 버려진 사람들입니다. 북인과 남인은 버린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버려진 것과 같습니다. 버리지 않은 사람은 오직 문벌 좋은 수십 가문뿐입니다.”


노론이 지지한 영조가 즉위했다. 즉위한 지 얼마 안되어 과격파 소론이 주동한 반란이 일어났다. 간신히 진압했는데, 온건파 소론의 활약이 결정적이었다. 영조가 조정에 노론만 남기고 소론을 모조리 몰아냈었다면 반란을 진압할 수 있었을까. 영조는 노론만의 왕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왕이 되고자 했고, 이는 탕평책의 배경이 되었다.


영조를 이은 정조는 탕평과 대동을 실천했다. 능력 있는 서얼을 발탁해 기용하고, 비주류인 소론과 남인의 인재를 보호하고, 영남과 서북 등 소외된 지역의 인재를 격려했다. 그러나 정조가 죽은 후, 몇몇 문벌이 조정을 독차지하고 이른바 세도정치가 전개되었다. 이후 나라가 어찌되었는지는 모두 아는 사실이다. 인재가 없다고?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 인재풀이 적다고? 인재를 찾기는커녕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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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명 | 한농출판사 대표


 

예나 지금이나 교육은 인생사에 있어 큰일이다. 21세기 오늘날 아내와 자녀를 미국으로 조기유학 보낸 기러기 아빠가 소망하는 말을 들어보거나 세계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인 아버지가 학교 공부를 팽개치고 거리를 방황하는 아들에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꾸짖었던 사실이 점토판에 새겨져 있을 정도로 인류는 자녀교육을 위해 힘써 왔다.


오바마 대통령이 칭찬했던 대한민국의 교육이라지만 현실은 교권추락으로 인해 선생들은 스승이라는 자긍심이 무너지고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말한다. 거기에다 학생들은 학생들 나름대로 학교폭력과 스트레스로 초등학생이 학원 다니기 지쳐 자살했던 사건이라든지 어느 시교육청에서만 무려 9개월 사이에 중고등학생 10명이 세상을 등졌던 것이 작년 2012년의 교육계 자화상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성적 만능주의, 최고의 기계적 스펙을 요하는 경쟁이 나은 결과이며 수메르 문명 이후 지금껏 인류는 답습해 왔다. 그러면 새학기부터는 이런 답답한 현실을 타파하고 우리 자녀들을 멋지게 교육시킬 방법은 무엇일까? 진정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국가와 나아가 지구촌 사회에 기여할 멋진 인재상은 어떻게 하면 쉽게 만들 것인가?

(경향신문DB)


우리는 항상 근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먼저 최고의 베스트셀러 성경은 바로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형상(성품)을 회복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 하였고, 천재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도 “교육의 목적은 기계적인 사람을 만드는 데 있지 않고 인격 형성에 있다”고 하였다. 또한 <새 세상의 주인들>의 저자인 석산(石仙) 선생님도 “이 세상에서 자녀 교육처럼 귀중한 교육 사업은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어린이들의 평생을 가늠하는 최초의 교사는 부모요, 그 부모들의 교육에 따라 모든 자녀들의 운명이 달렸기 때문입니다. 모든 자녀들의 운명이란 곧 모든 인류의 운명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의 운명은 이 자녀 교육에 달려 있으므로 부모들의 어린 자녀들에 대한 교육이란 얼마나 귀중한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때에 빨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살아가는 하나님의 품성을 우리 생애에서 완성시켜야 합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세상 한편에서는 우습게도 학력 재력 가문 외모로 값어치를 정한다. 그러나 오히려 이 글을 읽는 똑똑한 부모들은 자기의 자녀들에게 흠없고 거룩한 품성의 가치가 어떠함을, 품성의 열매인 사랑을 형성하는 일에 특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왜 그럴까? 역사상 수많은 사람들이 흘러가는 모래같이 없어졌지만 아름답고 흠없는 품성을 소유한 자들은 영원 대대로 남았고 다음 세상인 천국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분명하고 확실한 준비이기 때문이다. 또한 생각을 다스릴 줄 알고, 이기심 욕심 없는 무아(無我)로 만드는 것이 인성 교육의 완성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강의에서도 “생각은 인생의 진로를 결정지어 주고, 그 진로는 생과 사를 결정한다. 생각은 그 사람의 인격과 품성을 형성시켜 주고, 그 품격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지어 준다.”고 하였다.


이것은 종교적이거나 철학적 이야기 같지만 엄연히 현실적인 문제이다. 몇년전 대학생생태환경체험교실을 운영하면서 많은 대학생들에게 좋은 직장에 취직하려면 <스펙 쌓기>가 필요하다는 고민의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오히려 기업이 달라져서 스펙 괴물보다는 성실성과 책임감이 있는 아름다운 품성을 가진 청년을 먼저 채용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극히 짧은 인생 시간의 수레바퀴에서 과연 나와 우리의 자녀에게 진짜 중요한 초점은 무엇이고 무엇에 투자할 것인가? “얘야, 네가 알아서 해~”라고 무책임한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부 명예 욕망의 신기루를 쫓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가치인 품성의 계발을 위해 부모와 선생님들이 지혜를 발휘할 때가 왔다. 그러면 자녀와 제자들의 빛나는 얼굴에서 숭고한 품성과 고귀한 진리가 우러나와 큰바위 얼굴이라 칭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기억하자! 우리는 생애의 감화를 파는 장사꾼이다. 타인에게 선한 감화를 파는 장사꾼이 될 것인가, 아니면 악한 감화를 파는 장사꾼이 될 것인가? “품성은 능력이다. 품성은 성공을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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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 |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요즘 TV를 보면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의 집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많다. 고대광실이라고도 하고, 초호화주택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그 집들을 보면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다. 하지만 걱정스레 보일 때도 많다. 많이 살아야 두세 명 사는 집을 저렇게 넓고 크게, 호화롭게 꾸며 놓으면 당장은 살기에 좋을지 몰라도, 그 집이 어느 순간 짐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음이다. 떠나고 싶어도 그 집이 너무 아까워 집에 매여 사는 것은 아닐까?


연산군 시절, 세상에 이상한 소문이 떠돌았다. 서울 남산에 9만9999칸이란 상상을 초월하는 호화주택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방 사람들이 서울에 오면 그 집을 구경하고자 남산을 헤매고 다녔다. 그러다 그 집을 발견하고선 실망이 컸다. 왜냐하면 그 집이 판서를 지낸 홍귀달의 집인데, 허백당(虛白堂)이란 당호가 붙은 단칸 초막이었기 때문이다. 홍귀달은 그 단칸방에서 9만9999칸에서 할 수 있는 생각을 다 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의 생각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었는데, 그에 대한 일화가 <연려실기술> ‘연산조 고사 본말’에 실려 있다.


홍귀달의 집은 남산 밑에 있었다. 그 언덕에 초가로 정자를 만드니 세로와 가로가 겨우 두어 발(丈)이었다. 그는 허백당이라 이름을 써 붙이고 매양 퇴근하면 복건을 쓰고 여장을 짚고 그 안에서 읊조리며 마치 세상을 잊은 것 같았다. 그러나 때로 그의 풍채를 흠모해 모여드는 이가 많아 즐거이 술상을 벌여놓고 회포를 풀며 시를 읊었다.


(경향신문DB)


보는 사람들은 그가 정승을 지낸 귀인인 줄 몰랐다. 평생에 남과 눈 한번 흘긴 일이 없으나, 국사에 대해 말할 것이 있으면 침묵하지 않았다. 자제들이 때로, “왜 좀 참으셔서 집안 식구들을 생각하지 않으십니까”라고 하였다. 그는 “내가 역대 조정에서 두터운 은혜를 입었고, 또 이미 늙었으니 지금 죽은들 무엇이 아까우냐”고 말하며 끝내 고치지 않았다.


영국 사람들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말한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 역시 홍귀달과 생각이 비슷하다. <햄릿> 제2막 2장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아, 나는 호두 껍데기 속에 갇혀 있어도 내 자신을 끝없는 천지의 왕이라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야.”


홍귀달은 단칸방에서 수많은 생각을 하였고, 셰익스피어는 호두 껍데기만 한 집에서도 천지에 얽힌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집의 크기와 상관없이 생각의 크기로 세상을 살아간 그들을 통해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다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인생이란 잠시 세상에 왔다가 바람처럼 가는 것이다. 어떤 집에서 살다 가느냐보다 어떤 일을 하다 가느냐가 더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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