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 |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요즘 사람들을 보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흰머리들이 늘어나, 어떤 사람은 아직 나이가 삼십도 안되었는데 머리가 마치 세상을 다 산 사람처럼 하얀 경우도 있다. 흰머리가 많으면 나이가 한 10여년은 더 들어 보이기 때문에 염색을 하기도 하고 모자를 쓰기도 하지만, 그것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신경이 쓰이는 흰머리를 두고 재미있는 글이 한 편 있다.


어떤 두 늙은 관리가 이웃에 살면서 상종하는데, 한 사람은 흰털을 뽑아 칠(漆)과 같이 검었고, 한 사람은 뽑지 않아 희기가 눈 같았다. 털 뽑은 사람이 “흰털을 뽑으면 다섯 가지 이익이 있으니, 첫째 늙은 추태를 가릴 수 있고, 둘째 얼굴이 아름답고, 셋째 소년을 따를 수 있고, 넷째 처첩을 기쁘게 할 수 있고, 다섯째 벼슬을 그만두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머리가 흰 사람이 “수염은 형체가 없으니 혹 숨길 수 있으나 형체 없는 나이는 결국 피할 수 없지 않나”라고 했다. 홍만종의 <명엽지해>에 실린 글이다.


하지만 뽑고 또 뽑아도 생기는 흰머리도 사람을 난감하게 하지만 대머리 역시 그에 못지않다. 두 문사가 나란히 살고 있었다. 한 사람은 털보이고, 한 사람은 대머리여서 매번 서로 조롱했다. 대머리가 털보를 “우스워라, 털보야! 온몸이 털투성이, 양 볼은 어데 있는데 코 하나만 높이 솟았는고. 푸른 입술 움직임을 보지도 못하고 때때로 흔들리는 흰 이만 보는구나”라고 놀렸다. 그러자 털보가 대머리를 “대머리 늙은이를 무엇인가 하였더니, 얼굴은 그 모양으로 밉게도 생겼구나. 처음 볼 적에는 추부(醜婦)인가 의심하였더니, 자세히 보니 흡사 요승(妖僧)을 닮았구나. 내시와 똑 같고 포주와 접합한 벗일레라. 감로(甘露)의 변(變)을 듣기라도 하게 되면 너 따위가 제일 먼저 통렬하게 징계받을 것이네”라고 비웃었다. 이 역시 <명엽지해>에 실린 글이다.


(경향신문DB)


옛사람들의 글을 보면 예전에도 머리가 희게 세거나 머리가 빠지는 것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말도 많고 걱정도 많았던 것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걱정들을 유머와 재치로 풀어낸다.


머리가 일찍 빠져 대머리가 되는 사람도 있는데, 이발소 주인의 말에 의하면 그런 사람들은 머리카락 하나라도 빠질까봐 노심초사한단다. 요즘은 머리를 심기도 하고 염색도 하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당사자들은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여간 아닐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저마다 걱정거리 한두 가지씩은 다 있는 법, 사람도 자연의 일부인데, 어쩌겠는가. 


변화하는 것이 진리이거니, 이것이나 저것이나 모든 것이 다 자연의 한 현상이거니 하며 살아간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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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택수 |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얼마 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희망직업을 조사해 발표했다. 희망직업 1위부터 3위는 각각 교사, 의사, 공무원이 차지했다. 반면 과학자는 중 1년생 사이에서 9위였다가 고 2년생 사이에서는 55위로 밀려난 것으로 조사됐다. 결과를 보면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안정성이 높은 직업으로 획일화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다양성이나 도전정신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와 같은 사회구조하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선택일 수도 있겠으나, 학생들이 살아가야 할 미래 사회를 기준으로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미래 사회는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무한경쟁 시대다. 사무직보다는 전문기술직이 우대받고, 창의적 사고를 바탕으로 남과는 다른 뭔가를 갖춰야 경쟁이 가능한 세상이다.


(경향신문DB)


그런 의미에서 중·고생 희망직업 조사결과는 안타깝다. 그렇다고 학생들을 탓할 일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런 선택을 직간접적으로 강요하는 사회구조와 기성세대의 책임이 더 크다. 그런 점에서 영화감독 김기덕과 가수 싸이의 성공 사례는 눈여겨볼 만하다. 김기덕 감독은 초등학력이 전부지만, 영화 <피에타> 등 수준 높은 영화로 국제영화제에서 한국인으로서는 가장 많은 상을 수상했다. 가수 싸이는 독특한 음악스타일을 추구하면서 최근 ‘강남스타일’이란 노래로 전 세계를 열광케 하고 있다. 이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자신만의 개성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주류에 편승하기보다는 ‘아웃사이더’적인 스타일도 비슷하다. 


두 사람의 성공 사례는 중·고생들과 기성세대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고생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매진하는 것이 최상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 또한 그런 삶이 행복할 수 있다는 점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리고 기성세대는 다양성 속에서 사회나 국가의 경쟁력이 나온다는 사실과 시대흐름에 맞게 사회구조를 변화시켜야 할 책임이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기댈 곳은 인적자원밖에 없다. 미래 꿈나무들의 개성을 인정하고 그들만의 꿈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경제대국의 힘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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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오 | 농부


 

최 목수는 연장 창고 앞에 서서 늘 있던 자리에 걸려 있는 망치를 보았다. 망치가 두려웠다. 어젯밤 악몽 속에서 망치는 못질을 하는 대신에 최 목수의 손을 찧고 있었다. 퍽 퍽 퍽 망치질이 이어질 때마다 최 목수의 손에서 피가 튀었다.


망치는 삼십 년 이상 최 목수의 손때가 묻은 것이었다. 그것은 세련되고 날렵한 망치가 아니라 투박하고 묵직한 망치였다. 오랜 세월 그를 부린 사람의 성품이 그대로 배인 것 같았다. 그 망치는 이십 대 초반에 동네 목수 아저씨를 따라다니며 집 짓는 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그가 손에 들고 다니던 것이었다. 마침내 어엿한 목수 대접을 받게 된 이후에도 그 망치는 늘 그의 손에 잡혀 있거나 그의 허리춤에 걸려 있었다.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어느 누구도 그의 망치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최 목수의 망치질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견고했고 피아노 건반을 때리듯 경쾌했다. 최 목수에게 공사를 의뢰한 집주인들은 그 망치질 소리와 리듬을 한번 접하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실력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의 망치질은 사람이 망치를 부리기보다는 마치 망치가 사람을 부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망치는 최 목수보다 한 발 앞서가는 그의 또 다른 손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망치로 못질하는 중에 아주 가끔 그의 손을 쳤다. 그때는 손이 얼얼하기보다는 오히려 가슴이 얼얼한 기분이 들었다. 씁쓸한 배신감 혹은 뼈아픈 당혹감 같은 것이었다. 날이 갈수록 그런 횟수는 잦았다. 


“세월이 사람을 빗겨가는 법은 없구먼…”


오십 줄 후반에 들어선 최 목수의 혼잣말에 묻어나는 엷은 절망을 알아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최 목수 본인조차 재빨리 희망의 옷을 입혀 그 절망을 가리곤 했으니 말이다.


“손에서 망치를 놓을 때는 아직 멀었어. 육십도 되지 않았는데…”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멀리 어렴풋이 보이던 절망의 파도가 어느덧 바로 눈앞의 쓰나미가 되어 허약한 희망을 집어삼키는 것은 한순간이다. 최 목수에게도 그랬다.


“최 목수, 창틀이 뒤틀렸는지 창문이 안 열려.”


얼마 전 완공한 한옥 형태의 흙벽돌집 주인의 전화였다.


“방에 낸 창문도 그렇고 거실에 낸 통창도 마찬가지야.”


이어지는 집주인의 말에 최 목수는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지붕에 기와를 올리는 집이라 최 목수는 지붕의 하중을 어느 때보다도 더 정확하게 계산하려 했었다. 그 계산에 따라 기둥과 보, 도리와 서까래에 쓰일 목재를 어느 때보다도 더 엄밀하게 선택하려 했었다. 그런데 어디서 어긋났을까? 최 목수는 도저히 짐작을 할 수 없었다. 수십 년 동안 현장에서 단련되어온 동물적 육감 같은 그의 감각이 그런 어긋남을 용납할 리 없었다. 하지만 사태는 그의 감각이 이미 무뎌졌음을 드러냈다. 아마도 아주 가끔 헛방을 때렸던 망치질이 바로 그 암울한 징조였는지 모른다. 



그 사건 이후, 최 목수가 지은 집에 큰 하자가 생겼다는 소문이 빠르게 마을을 돌았다. 마을을 넘친 소문은 이웃마을로 번졌다. 사람들의 입을 돌고 돌아 최 목수의 귀에 들어온 소문은, 그가 지은 집이 주저앉았다는 식으로 부풀려 있었다. 이제 최 목수에게 집 짓는 일을 맡기는 사람은 마을 안에서뿐만 아니라 인근에서도 아무도 없었다. 집수리 같은 작은 일마저도 최 목수에게는 차례가 오지 않았다. 결국 최 목수는 망치를 손에서 놓았다. 그리고 스스로를 집안에 가두었다. 그는 집 밖을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고 휴대폰 전원을 껐고 아무와도 만나지 않았다. 그가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은 그의 아내와 두 딸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가족과도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생활에 필요한, 아니 생존에 필요한 지극히 단순한 몇 마디 말이 전부였다. 그는 하루 종일 좁은 방안에 웅크리고 앉아 초점 잃은 눈빛으로 자신의 빈손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나마 읍내 어린이집에서 퇴근하고 돌아오는 큰딸과 몇 마디 말을 섞는 게 납덩이 같은 그의 침묵이 깨지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아빠, 힘들지 않으세요?”


“…… ”


“벌써 반년이 넘었어요. 아빠가 이러고 계신 게.”


“아직 멀었어.”


“아녜요, 아빤 충분히 힘드셨어요.”


“난 자책하는 게 아냐. 손이 허전할 뿐이야.”


최 목수는 굳은살이 굵게 박인 자신의 손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빤 다시 일을 시작하실 수 있어요. 아직도 젊으시잖아요.”


“손이 떨려 망치를 쥘 수조차 없는데… ”


딸은 최 목수의 손을 잡았다. 최 목수의 힘없는 손은 차갑고 축축했다.


“아빠 손은 예전 그대로예요.”


“망치가 떠난 손이야. 내 손이 아니야.”


밤이 오면 최 목수는 망치 잃은 빈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잠꼬대를 했다. 


“아직은 아니야. 안 돼. 망치를 내 손에 줘. 난 망치 없인 살 수 없어.”


그때마다 아내가 그의 어깨를 흔들었지만, 그는 악몽에서 쉬 깨어나지 못했다. 온몸이 식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최 목수는 넋두리 같은 혼잣말을 계속 읊조렸다. 


“난 목수가 아니야. 목수가 아니란 말이야. 망치가 무서워 …… ”


망치와 자신이 뒤섞이는 악몽은 매일 밤 계속되었고, 다음날 아침이면 최 목수는 창가에 서서 연장 창고를 한없이 쳐다보며 잠꼬대 같은 혼잣말을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 ”


어느 날 오후 늦은 시각, 최 목수는 집 밖을 나왔다.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얼굴은 누랬고 핼쑥했다. 이마와 눈가의 주름은 더욱 깊이 패었고 묵직한 망치를 때리던 굵은 손목은 뼈마디만 앙상했다. 최 목수는 연장 창고 앞에 서서 늘 있던 자리에 걸려 있는 망치를 보았다. 망치를 쥐려는 최 목수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젯밤 악몽에서처럼 최 목수는 온힘을 다해 망치를 손에 꽉 쥐었다. 꿈속의 망치는 못질을 하는 대신에 최 목수의 손을 찧고 있었다. 퍽 퍽 퍽 망치질이 이어질 때마다 최 목수의 손에서 피가 튀었다. 최 목수의 아내는 급히 119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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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지난 토요일, 4년여 만에 경향신문 전 임직원이 북한산에서 가을산행 겸 단합대회를 열었다. 산행을 끝낸 뒤 족구 경기도 했다. 글쓴이가 속한 편집국은 3위에 머물렀다. 편집국 모 차장이 웃으면서 우승후보였던 편집국이 3위에 그친 건 글쓴이 때문이라고 한다. 글쓴이의 ‘소란스런’ 응원 때문에 우리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경향신문DB)


이기고자 하는 욕구란 뜻으로 ‘승부욕’을 자주 쓴다. 그런데 승부욕은 어색한 표현이다. 승부욕에서 ‘-욕’은 명예욕, 출세욕과 같이 욕구 또는 욕망의 뜻을 더하는 말이다. 그런데 승부(勝負)는 이김과 짐을 뜻하므로 ‘-욕’이 결합한 승부욕은 의미를 고려할 때 조어될 수 없다. 선수가 경기에서 이기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는 데 욕심부리는 선수는 없다. 승부욕 대신 승리욕이라고 해야 의미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면 승부욕은 쓰면 안되는 걸까? 국립국어원은 “승리욕이 의미적으로 맞지만 언중 대다수가 승리욕 대신 승부욕을 쓰고 있다. 따라서 승부욕을 틀린 표현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조어상으로는 문제가 있지만 굳어진 표현이기에 승부욕을 써도 괜찮다는 말이다.


그리고 앞에 나온 ‘소란스런’은 ‘소란스러운’이 맞는 말이다. ‘-스럽다’로 끝나는 말은 ‘-스런’이 아니라 ‘-스러운’으로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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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권 | ‘야생초 편지’ 저자


 

서울 도심에 흐르는 작은 개천에서 잉어를 보기란 쉽지 않다. 강심이 제법 깊은 청계천 하류에 가면 잉어가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그 밖의 다른 하천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다. 얼마 전 서울 사는 동생과 약속이 있어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천변 주차장에서 서성대고 있는데 저 아래 작은 실개천 표면 위로 마치 물고기 등처럼 보이는 물체가 여러 개 왔다갔다 하는 게 보였다. 설마, 하고 내려가 보니 커다란 잉어 여섯 마리가 제 몸 두께보다 얕은 냇물에서 힘겹게 헤엄치고 있었다. 공원 측인지 주민 측인지 모르겠으나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려고 일부러 풀어놓은 것 같은데 보는 순간 화부터 났다.


언제부터인가 ‘내추럴 디자인(Natural Design)’이 화제가 되면서 너도나도 살아있는 생물을 이용한 장식과 치장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행사장 입구에 거대한 조형물을 만들어 전면을 생화로 뒤덮는다든지, 산의 한쪽 면을 통째로 깎아내 회양목으로 글자나 그림을 새겨 넣는다든지 하는 따위다. 그래도 이런 것은 조작과 재생이 용이한 식물이기에 어느 정도는 봐줄 수 있다. 그러나 조금만 소홀히 하면 죽어버리는 동물의 경우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공원을 찾는 시민들에게 살아있는 자연을 보여주고 싶은 공원 측의 갸륵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보여주는 생명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는 갖추었으면 한다. 더욱 가관인 것은 전국의 축제현장에서 행해지는 각종 생물 포획놀이다. 도대체 인간은 무슨 권리로 똑같은 생명들을 물건처럼 멋대로 전시하고 조작하고 내팽개치는가! 


(경향신문DB)


 노예무역이 성행하던 18세기에 영국인들은 아프리카에서 잡아온 흑인노예를 장터 거리에 전시해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구경시켜 주었다. 당시 영국인들은 흑인노예를 자신들과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나중에 인권운동이 확산되면서 그러한 행위가 사라졌지만 서구인들의 뇌리에는 여전히 뿌리 깊은 인종차별 의식이 남아있다. 한국 교과서에 노예해방의 영웅으로 묘사된 링컨 미국 대통령이 실은 노예찬성론자였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는 전쟁 중인 남부를 궤멸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노예해방을 주장했지, 사실은 노예의 인권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링컨이 ‘노예해방선언’(1863년)을 한 지 무려 85년이 지나서야 ‘유엔세계인권선언’(1948년)을 갖게 된 것도 저간의 사정을 짐작케 한다. 그 사이 인류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포함해 무수한 인종학살과 전쟁을 저질렀음은 말할 것도 없다. 더 이상 같은 인간을 두고 그런 끔찍한 일은 하지 말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일까?


세계인권선언이 구속력 없는 ‘선언’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끼친 영향력은 실로 대단했다. 반인권적인 독재에 시달리는 전 세계의 수많은 약자들이 의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비빌 언덕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최악의 인권국가라고 비난받으면서도 미국에 “너네 인권이나 잘 챙기라”고 콧방귀를 뀌는 것도 세계인권선언 덕분이다. 여전히 세계의 인권상황은 실망스러운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우리는 이 시점에 ‘세계생명권선언’을 심각히 고려해 봐야 한다. 제발, “인권도 못 챙기는 처지에!”라는 말은 말아주길 바란다.


먼저 인권을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생명권’에 있기 때문이다. 생명의 본질은 ‘살아있음’이고 그것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천부의 권리다. 그 권리를 인간에게만 부여한 결과 오늘날 목격하고 있는 생태계의 위기가 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다시 말해 생명권의 확보는 인류 생존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는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이것을 “모든 생명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고 고쳐 쓴다고 해서 인권의식이 약해지거나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 훼손될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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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 동화작가


 

경향신문에 첫 칼럼을 쓴 건 지난해 여름이었다. 2차 희망버스에 다녀와서 후기 비슷한 칼럼을 쓰게 됐는데,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린이책을 만드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갔는데 그 날, 비가 참 많이도 내렸다. 영도까지 걸어가다 말고 커피를 사느라 늑장을 부려 대열을 놓쳐 버렸다. 뒤늦게 도착해서는 화장실을 간다, 휴대전화를 충전한다, 툭하면 들락날락하다가 물대포 쏜다는 소리만 들려도 슬슬 뒤로 물러나곤 했다. 그러다 새벽 네 시 무렵, 이 나이에 풍찬노숙이 웬말이냐며 우리끼리 근처 찜질방에 가서 잤다. 


아침이 되어 다시 대열에 합류하고 텐트 아래 짐을 풀었다. 한진, 유성, 쌍용 등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자녀에게 선물하려고 어린이책 동네에서 기증받은 1000여권의 어린이책이었다. 책 받을 어린이들의 명단도 미리 입수해 두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1000여권의 책에 일일이 이름을 쓰고 사인을 하고 우편 포장까지 하는 건 예삿일이 아니었다. 그냥 책만 주자, 이미 이름을 받았으니 그냥 하자. 손으로는 아이들의 이름을 부지런히 적으면서도 내내 입씨름을 했다.


(경향신문DB)


 그러고도 3차 희망버스 때는 부채를 잔뜩 싸들고 가서 그림을 그려 참가자들에게 나눠주었다. 쌍용차 일일 상주 때는 또 배지에 그림을 그렸다. 2010년에는 <박순미 미용실>이라는 공동 단편집을 출간했고, 그 인세는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에 기부되고 있다. 그때마다 입으로는 내내 투덜거린다. 뭐하러 일을 또 벌였냐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또 일을 꾸미고 꾸역꾸역 모여서 서로들 퉁박을 주다가, 아이고 허리야 다리야 해가며 집으로 돌아간다. 한마디로 말해서 참,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다. 비정규직과 연대한다는 대의명분도, 소외된 이들을 위해 헌신한다는 성스러운 말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요즘 문화권력이라는 말이 일상어인 듯 언론에 등장하는데, 권력이라는 말은 더더욱 어울리지 않는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 모임. 줄여서 ‘더작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이번에 또 일을 저질렀다. <비정규씨, 출근하세요?>라는 책을 냈다. 비정규직의 현실을 솔직히 털어놓기도 하고, 그들의 노동이 햇살처럼 소중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도 하는, 어린이를 위한 비정규직 안내서라고나 할까. 열아홉 명의 작가들이 쓰고 그렸고, 인세는 전액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에 기부된다.


근 일 년 반 동안 준비한 책이다. 나는 곁에서 구경만 했는데, 다채로운 내용을 보니 그간 얼마나 고심했을지 짐작이 간다. 비정규직 활동가에게 강연을 듣기도 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나 취재도 했다. 쉽고도 흥미로운 책을 만드느라 수십 번 의논하고 고쳐 썼을 것이다. 


그래놓고도 ‘더작가’는 좀 미안한 얼굴이다. 책이 잘 팔리지 않으니 기부랍시고 얼마 되지도 않고, 이름난 작가들도 아니니 언론에서도 별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어린이책 자체가 그다지 관심 받는 장르가 아니다 보니 우리가 힘이 되어준다거나 그런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다만, 같이하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다. 헌신이라는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다.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으로서, 손이라도 한번 잡아주고 싶다. 누군가 또 이렇게 내 손을 잡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힘든 내 손을 잡아줄 누군가가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도 손을 내밀어 보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세상은 그런 거라고 말하고 싶어서다. 그런 글로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서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사기를 칠 수는 없으니, 희망을 향한 작은 손짓이나마 하지 않을 수 없다. 체력도 달리고 정신력도 약하고 책도 안 팔리고 이름값도 하찮지만, 일손 보탤 데 없나 하고 앞으로도 여기저기 기웃거리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작가’의 못난이들이 좋고, 많이 자랑스럽다. <비정규씨, 출근하세요?>라는, 도무지 베스트셀러의 가망이 없어 보이는 이 한 권의 책이 더없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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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수 | 지속가능한사회연구소장


 

복지 확대와 경제민주화를 위한 정책 대안들이 연말 대선의 주요 의제로 제기되고 있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가운데 일자리 확충만큼 관심이 높은 분야는 없다. 노자는 무위의 정치를 강조했지만 ‘큰 정치는 작은 생선 요리하듯 해야 한다’면서 디테일의 힘을 역설했다. 그런데 어떤 주장들은 상투적이거나 본말을 전도하거나, 실정에 맞지 않는 탁상공론이다. 정치학자가 현실의 정치 불신을 해소할 묘안을 도출하는 데 실패해 왔듯이 일부 경제학자의 생각은 실물경제의 복잡한 현실을 도외시한 경우가 있다. 그래서 말뿐인 경제민주화나 구호뿐인 일자리 확충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 


먼저 정부는 일자리 확충의 목표부터 분명하게 수립해야 한다. 일자리 확충의 목표는 괜찮은 일자리를 늘리는 데 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일자리 문제의 하나는 1차 노동시장과 2차 노동시장 간 장벽이 높고 완고해서 한번 잘못 들어가면 헤어날 수 없는 노동시장의 양극화로 인한 불평등에 있기 때문이다. 독점 대기업과 중소기업, 학력별, 성별 고용형태에 따른 노동 빈곤부터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어야 한다.


일자리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는 문재인 (경향신문DB)


 둘째, 정부는 산업정책의 새로운 입안과 집행을 통해 국민경제에서 취업인구를 증가시킬 수 있는 여지를 되도록 많이 확보해야 하며, 산업정책과 교육기술정책이 연계된 고용정책이 필요하다. 


셋째, 정부는 실업구제를 위해 모든 행정력을 집중해야 한다. 당국의 소극적 행정은 집단해고를 묵인·조장하는 역기능과 부작용을 낳아왔다. 장기 노사 대치 중인 분규 현장의 현안을 해결하는 데 모든 행정역량이 투입돼야 한다.


넷째, 정부는 노동현장의 불합리한 차별의 남용을 시정하고, 불리한 노동자의 경제적 지위를 보호함으로써 비정규직의 확대를 저지하고,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지원해야 한다.


다섯째, 중소기업의 사업 기회 보장과 고용 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한 정책부터 시급하게 집행해야 한다. 중소기업을 하기 참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종합정책 패키지가 마련돼야 한다. 중소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한 정부의 의지와 노력에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장래가 걸려 있다.


철학이 없는 정치가는 나라를 망친다는 말이 있다. 경제민주화나 복지를 위한 구체적 정책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대, 정의, 평등의 정치철학으로부터 발원하는 법이다. 일자리 확충정책의 추진과 성공은 복지정의 평화사회로 나아가는 징검다리를 놓아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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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숙 | 연극배우·아름다운가게 이사


 

얼마 전, 고 박완서 선생님의 이야기로 무대에 오르며, 모진 세상살이 속에서 우리 삶을 지탱시켜 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특히 삶의 중요한 한 부분에 대한 ‘상실’과 그 빈 공간을 채워 다시 그것을 비옥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사람마다 허해진 마음을 채우는 방법은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조금 비워 더 크게 채우는 ‘나눔’이 답이었다.


이맘때가 되면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다. 나와 같은 답으로 당신의 마음뿐만 아니라 세상을 다 채우고 떠난 사람. 벌써 4년 전 가을, 목포의 작은 아름다운가게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돌아가신 이정숙 할머니다.


 나는 다행히 아직 배우로 무대에 오르고 있지만, 우리 나이 때의 많은 사람들이 평생을 일하던 직장에서 은퇴를 하고 무기력증과 우울증에 시달린다. 목포에 사시던 이정숙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왕성하게 일을 할 때는 생산적인 사회 구성원의 하나였는데, 은퇴를 하는 순간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그저 노인이 되어 버렸다고 했다. 할머니는 당신의 삶을 다시 채울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을 찾아보기로 하셨고, 그것이 2004년 할머니와 아름다운가게의 첫 만남이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로 시작했지만 할머니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자원봉사를 하며 삶의 새로운 즐거움을 찾으셨다. 봉사활동이야 어디서건 할 수 있지만, 할머니는 좀 더 당신이 평생을 살아온 고장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하셨다. 유독 아이들을 좋아하셨던 할머니는 “이 녀석들이 모두 웃으며 살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이면 좋겠어” 하시며 하루에도 몇 번씩 가게 앞에서 놀고 있는 동네 꼬마들을 두 팔 가득 안으시곤 했다.


할머니는 그로부터 4년 후 봉사활동을 하던 중 급작스러운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셨다. 낡은 앞치마에 손을 닦던 모습이 고우시던 할머니를 떠나보내던 마음이야 말해 무엇하겠냐만 그래도 위안이 된 것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밝게 웃으며 봉사활동을 하고 계시던 그 모습이 마음 깊이 새겨졌기 때문이다.


이정숙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자녀분들께서는 “그때 그 시간이 어머니가 생에서 가장 행복해하며 보내신 시간이었어요”라 전하며, 목포에 할머니가 봉사활동을 하시던 아름다운가게가 하나 더 생기면 좋겠다고 기금을 보내왔다. 감사한 마음을 보태 목포 원도심점이 문을 열었다. 그 후로도 매년 할머니의 기일을 즈음해 목포지역 소외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적지 않은 기부금을 보내 주신다. 최근에는 원도심점 가까이 위치한 50평 정도의 땅을 아름다운가게에서 무상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하셨단다.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이별을 이렇게 잔잔하게 하는 가족들도 있나보다. 할머니가 가장 사랑하던 ‘어린 이웃’들을 위한 나눔을 그분의 자녀들이 계속 이어 나간다. 이를 통해 지난 3년간 332명의 조손가정, 저소득층 어린이들과 소외아동들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 받았다. 그저 고인의 유지를 이은 명목상의 기부가 아니라, 정말 할머니가 꿈꾸시던 모든 어린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지역 사회를 만들기 위해 매년 작은 발걸음을 더하고 있는 것이다.


그 마음을 받은 사람들은 또 어떤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4년째, 매년 할머니의 기일이 되면 아름다운가게 광주·전남 매장에서는 ‘이정숙 나눔의 날’ 추모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행사를 통해 발생한 수익금은 또다시 지역 소외 아동들을 위해 사용된다. 누구도 그리하라 시킨 적 없고 누구도 어찌하나 지켜보지 않는데도, 할머니가 계시던 곳에 만들어진 나눔의 선순환이다.


할머니가 봉사활동을 하셨던 4년의 시간은 값지다. 할머니와 가족들이 내어 주신 5300여점의 기증품과 숱한 기부금도 값지다. 하지만 가장 의미 있는 것은 할머니가 당신이 살던 지역사회에 기부자와 봉사자와 수혜자가 이어지는 나눔의 고리를 만들고 떠나셨다는 것이다. 큰 소리로 여기 좀 보세요 하지 않아도, 그렇게 할머니가 행한 사랑의 나눔은 소리 없이 지역사회 전체에 아름답게 이어져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할머니는 온통 이웃을 위한 나눔에 여념이 없는 와중에도 늘 고맙다는 말을 달고 사셨다. 봉사활동은 인생에 아무 걱정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남의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늘그막에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고맙고 감사하다고 했다.


할머니는 “나는 이제 다 비워도 될 나이지.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다 비워서 이 세상을 부족함 없이 다 채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라는 말씀을 입버릇처럼 하셨다. 아무리 가난한 어린이들도 마음껏 교육을 받아 그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세상이 꿈이라 하셨다. 그리고 정말로 그 꿈을 위해 한 칸을 채우고 가셨다.


요즘은 세상이 참 소란스럽고 무섭다. 그냥 멀쩡히 길 가던 사람도 매일 맞닥뜨리는 옆집 이웃도 조심하고 경계해야만 하는, 참으로 각박하고 모진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 남들이 어떻게 살건 우리 지역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건 거기에 쓸 마음이 어디 있나 싶어지기도 한다.


그래도 아직까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고 이정숙 할머니와 같이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리라. 하루같이 바람이 차지는 계절, 한 사람에게서 출발해 지역사회 전체로 이어지는 나눔과 사랑의 따뜻한 온기가 이곳까지 전해진다. 올 겨울은 그리 춥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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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문로에 있는 경찰박물관 건물 벽면에 경찰관이 ‘빵셔틀 운행중지!’라고 크게 쓴 광고판을 들고 있는 설치물이 있다. 그 안에 ‘학교폭력 상담/신고 117’이라는 안내문이 작은 글씨로 적혀 있다. 학교폭력 문제 개선에 경찰까지 나섰음을 보여주는 이 대형 광고물은 정부가 국무총리와 10개 관련 부처·기관의 장을 포함한 학교폭력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내놓는 등 이 문제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던 지난 3월 등장한 것이다.


지난 18일 충남 공주에서 고등학생이 또 자살했다는 충격적 소식이다. ‘카카오톡’ 그룹채팅방에 친구 20명을 초대해 작별 메시지를 보낸 뒤 아파트 23층에서 투신했다고 한다. 휴대전화에는 자신을 괴롭힌 친구들과 나눈 대화 내용과 집단폭행을 당해 생긴 상처를 찍은 사진 등을 남겼다. 중학교 때 집단따돌림(왕따)을 당했던 과거가 친구들에게 알려지면서 다시 왕따와 폭력에 시달린 정황도 발견됐다. 학교 차원을 넘어 국가적 차원에서 초고강도 대책을 시행하는 와중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참으로 개탄할 노릇이다.


학교폭력으로 목숨을 끊은 대구의 중학생 이모군 책상 위에 국화가 놓여 있다. (출처 :경향DB)


그동안 정부는 학교폭력 문제를 다루면서 공권력이나 행정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테면 현재 14세 이상인 형사처벌 가능 연령대를 12세로 낮춘다든가, 학교폭력 사실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도록 한다든가, 폭력 학생을 강제전학시킨다든가 하는 등이다. 그러나 이런 처벌 중심의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이번 사건이 보여주었다.


숨진 박모군의 자살 징후는 여러 경로에서 탐지할 수 있었다. 중학교 시절에도 자살 시도가 있었는데 학교 측은 이를 전혀 알지 못했고, ‘정서행동검사’에서도 2차 검사 대상자인 고위험군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담임교사는 지난 1학기에 박군이 친구들로부터 폭행을 당한 사실을 듣고도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박군이 직접 자신의 상처를 찍어 카카오톡을 통해 친구들에게 알리기도 했다. 학교 안의 현실이 이런데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나 ‘117 신고 전화’가 얼마만큼 실효가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와 교육 당국은 불도저식·여론몰이식·단기적·전시적 정책에만 연연할 게 아니라 학교 현장의 실상과 문제의 본질부터 인식했으면 한다. 누차 지적했듯이 단기적으로는 심리·상담 전문가의 학교 배치를 늘리고 중장기적으로 입시 중심 교육과 경쟁·불통의 학교 문화를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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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 | 칼럼니스트


 

얼마 전 시골의 작은 집으로 이사하며 대형 카우치 가죽 소파를 버렸다. 정확히 버린 것은 아니고 새로 이사 들어오는 가족이 사용하겠다고 해서 예전에 살던 집에 그냥 남겨두고 왔다.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 같으면 소파를 놓을 거실의 한 벽에 그림을 걸고 커다란 나무 테이블을 놓았다. 책상의 각도는 정확히 거실창을 통해 테라스와 이웃의 더덕밭과 산과 하늘을 감상할 수 있는 위치다. 아침이면 그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 다음 뉴스를 보며 아침식사까지 하고 작은 방에서 사무용 나무 의자와 노트북을 가져다 방금 식사를 마친 자리에 놓으면 그 순간부터 재택 근무가 시작된다. 그러다 저녁이 되면 간단한 한 접시 요리와 와인이나 막걸리를 내놓고 음악과 촛불을 켠다. 그러면 하루 종일 식탁이며 책상으로 쓰였던 테이블이 다시 한번 분위기를 전환하여 근사한 카페 기능까지 하게 된다. 심지어 별과 은하수가 춤추는 밤이면 집안의 모든 불을 끄고 테이블과 거실 창 사이에 러그를 깔고 눕는다. 그러면 우리가 한낱 소파 위가 아니라 이 지구의 대지 위에서, 찬란한 우주 속에서 살고 있구나 하는 감격에 찬 소속감마저 느끼게 된다.


 예전에는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소파가 필요하고, 그걸 놓고도 여유가 있을 만큼 널찍한 거실도 필수다. 거실과 주방은 반드시 분리돼 있어야 하고 그 중간쯤 식탁을 놓을 수 있는 다이닝룸 성격의 공간도 필요하다. 책이 많고 집에서도 일을 해야 하므로 서재도 필수다. 그런데 작은 집에 이사해 나름대로 고육책으로 그걸 하나로 통합하니 오히려 훨씬 더 기능적이기도 하거니와 미학적으로도 더 낫다는 걸 알게 됐다. 보통 자기 집에서 제일 좋은 자리를 몸집 큰 소파가 차지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거기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지 모르겠지만 내 경우는 하루 1시간도 안됐다. 그러니까 소파가 사람 대신 하루 종일 거실 창을 통해 해가 뜨고 구름이 지나가고 바람이 불고 밤이 되어 달이 뜨는 풍광을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대신 사람은 답답한 사무실과 서재, 비좁은 주방, 갑갑한 침실 사이를 왔다갔다 종종걸음치며 살고. 


작고하신 건축가 정기용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낯선 가구들 틈새에서 가구들이 군림하도록 우리는 작아져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셨는데 소파를 버리고 이제야 그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게 됐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사람은 나날이 왜소해지고 건축은 나날이 비대해지는 가운데 정기용 같은 건축가가 있었다는 건 우리에겐 여전히 감사한 일이다. ‘흙집 연구’와 ‘기적의 도서관’으로 유명한 건축가였지만 그 유명세에 비해 가장 가난한 축에 드는 건축가였다. 자타가 공인하는 ‘건축계의 공익요원’이니 오죽했을까? 


하지만 그는 “나의 집은 백만평”이라며 호기를 부리는 분이기도 했다. 실제로 오랜 세월 명륜동의 한 허름한 다가구주택에서 거주하셨지만 그에게 안팎의 경계는 무의미했다. 집 밖에서도 거주하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마다 창밖으로 바라보는 명륜동 일대의 풍경은 그의 집 일부가 되고,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성균관 앞마당은 자신의 정원이라 여기며 새벽이든 낮이든 조금만 여유가 있어도 그곳의 500년 된 은행나무 밑에 앉아 있곤 하던 분이다. 지금도 눈에 선하게 생각난다. 소파도 TV도 없는 텅 빈 거실에 작은 좌식 탁자와 두서없이 쌓아올린 책 무더기만 있던 풍경이…. “10년을 경영하여 무옥을 지었는데 반은 청풍이요 반은 명월이로다. 강산을 들일 것이 없으니 둘러치고 보리라”는 시구를 떠올리게 하는 그런 분이었다.


일본 가나가와 마나즈루의 토이하우스 '투명 요새'의 3층 침실 (경향신문DB)


최근 들어 일본에서는 1952년에 지어진 마쓰자와 주택을 리메이크한 9평 하우스가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여러 건축가들에 의해 새롭게 재현된 마쓰자와의 9평 하우스는 정확히 1층 9평, 2층 6평인 작은 집에서 현대의 4인가족이 어떻게 충분히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예로 <9평 하우스>라는 책으로도 만들어졌다. ‘집이 넓어야 지내기 편하다’는 우리의 통념을 깨는 책이랄까? 심지어 편안함에 대한 생각을 조금 포기할 경우, 작은 집이 고층건물 옥상의 아주 넓고 값비싼 집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100년 전 버트런드 러셀이 취향에 대해 했던 이런 말을 상기하게 만드는 예라고 할까? “고상한 취향을 가로막는 최대 방해꾼 하나. 썰렁함에 대한 두려움과 여기에서 유래하는 충동, 방 안 구석구석을 가득 채우고 여기저기에 양탄자를 깔고 한 치도 남기지 않고 모든 공간을 활용하려는 충동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의 혐오감을 일깨우는 집은 집주인의 미적 감각의 결여를 값비싼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 가구와 잡다한 전자제품을 통해 상쇄할 수 있다고 믿는 집이다.” 작은 집이 더 아름답고 우아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는 말이다.


덕분에 내 손으로 그 작은 집을 좀 더 살기 편하고 개성적으로 개조하고 싶다는 모험심까지 갖게 만들고. 뭐 못할 것도 없다. 우리 집 같은 경우 거실과 주방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게 최대 불만인데 그것부터 해치우자. 슬라이딩 레일 도어 스타일의 움직이는 가벽을 만드는 거다. 그럼 혹시 다음 테마는 ‘셀프 인테리어 도전기’에 대한 것이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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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광 | 운문사 스님


 

작열하던 폭염도 어느새 스러져 가고, 산사에는 벌써 가을색이 역력하다. 소나무 숲속에서는 가을벌레들이 추추히 울고, 파아란 하늘을 뒷배경으로 흰 구름이 산마루에 걸려 있다. 


운문사 개학날, 여름방학을 마치고 다시 운문사에 돌아온 학인스님들과 함께 새벽예불을 올렸다. ‘지심귀명례….’ 법당에서 울려퍼지는 200여 학인스님들의 청아하면서도 장엄한 염불소리에 마음이 맑아진다.


 볼라벤과 덴빈 두 태풍이 연달아 휘몰아쳐 전국 곳곳에 많은 피해를 입힌 바로 그때 나는 제주도에 있었다. 치료하러 갔다가 태풍을 만나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였다. 섬에서 태풍의 위력을 제대로 실감했다. 밖을 내다보니 가로수가 뿌리째 뽑히고, 유리 창문이 깨지고, 네거리 신호등이 쓰러지고, 길 건너편 상점의 간판은 대롱대롱 위험하게 매달려 있었다. 지붕이 날아가기도 하고, 배들이 부딪쳐 파손되기도 했다고 한다. 가뜩이나 힘든 시기에 피해를 당한 이웃들의 시름이 깊다. 부디 마음만은 상처가 깊지 않기를 기도한다. 


폭풍이 자연에만 부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도 수시로 몰아친다. 몸과 마음에 폭풍이 몰아치고 그 속에 우리 삶이 매몰되기도 하고 파괴되기도 한다. 자연에 부는 폭풍만큼 상처가 깊다. 눈에 보이는 자연의 폭풍은 몇 번 겪다보면 예보도 가능하고 대비책을 세워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마음의 폭풍은 몇 번을 겪어도 대비하기가 쉽지 않다. 대비는커녕 폭풍이 남겨 놓은 파괴의 흔적을 무기력하게 방치하여 상처를 더 악화시키기도 한다. 그 결과 개인적으로는 우울증이나 주의력 결핍, 정서 불안 등 수많은 마음의 고통을 안고 산다. 


뿐만 아니라 이 마음의 폭풍은 개인에게만 그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요즘 언론에 주요 기사로 등장하는 성폭력 사건이나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묻지마 폭력, 절망 살인 등의 문제가 생겨나는 것이다. 모두 이 마음의 폭풍이 원인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힐링(마음 치유)’이란 말이 트렌드가 된 것 같다.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불선한 마음인 탐욕, 분노, 어리석음, 좌절, 공포, 절망의 폭풍을 어떻게 그치게 할 수 있을까. 그치게 할 수나 있는 걸까. 


흙탕물을 한 번 들여다보자. 이 흙탕물 속의 흙먼지를 다 걷어내면 맑은 물이 될 수 있을까. 과연 어느 세월에 그 많은 흙먼지를 제거할 수 있을까. 


만약 흙탕물을 휘젓지 않고 가만히 지켜볼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기신론(起信論)>에서는 우리 마음을 진심(眞心)과 망심(妄心)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진심은 진여의 마음으로 깨끗하고 투명한 청정한 물에 비유할 수 있고, 망심은 생멸하는 마음으로 흐린 흙탕물에 비유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청정한 물은 진실하고 선한 마음이요. 흙탕물은 진실하지 못한 불선한 마음이다. 선한 마음은 바람조차 없는 고요한 마음이요. 불선한 마음은 폭풍우에 날뛰는 마음이다. 그러니 우리는 살면서 늘 불선한 마음의 폭풍우와 대면할 수밖에 없다. 회피하고 도망치려고 애써봐야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그 불선한 마음도 우리 본래 마음의 한 측면이므로. 


그 불선한 마음의 폭풍들을 낱낱이 다 제거할 수 없다면, 그 폭풍에 덜 휩쓸리도록 대비를 단단히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건 없다고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마주보며 그 성질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마음의 폭풍이 어떤 내용인지, 왜 일어났는지, 그 속도·세기·성질을 잘 살펴 진단할 수 있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부처님은 ‘마음을 치료하는 의왕(醫王)’이라고 했다. 그 분 말씀에 의하면, 이 청정한 물과 흙탕물은 다른 물이 아니다. 맑은 물에 폭풍이 치면 흙탕물이 되어 들끓다가, 폭풍이 그치면 다시 흙은 가라앉고 맑은 청정한 물이 된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폭풍도 마찬가지다. 불선한 마음의 폭풍이 그치면 본래의 맑고 선한 마음이 된다. 물 자체는 늘 여여한 그 모습이다. 흙탕물이든 깨끗한 물이든 물이라는 본래 성품은 그대로이다. 


‘운거운래천본정(雲去雲來天本靜)이요. 화개화락수상한(花開花落樹常閑)이라.’


구름이 일어났다 사라져도 하늘은 본래 고요하고, 꽃이 피고 지지만 나무는 항상 한가하다는 말이다. 아무리 폭풍이 치고 흙탕물이 되어도 우리의 진실된 마음은 늘 그대로이다.


인생을 살면서 어찌 폭풍우 치는 날이 없으랴. 산전, 수전, 공중전 다 겪는다 해도 ‘심전’에서 이기는 것이 가장 위대한 승리자요, 지혜로운 자다. 수행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불선한 마음의 폭풍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일어났다면 제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또 선한 마음이 계속해서 일어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이미 선한 마음을 일으켰다면 더 넓히고 키우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본래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하여 밖의 백만 적군을 이기는 것보다도, 내 마음의 폭풍에 흔들리지 않고 잘 다스려 승리한 자가 진정한 승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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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대학 수시 1차 모집 마감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학교폭력 가해 사실의 학생부 기재’를 둘러싼 교육계의 갈등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학생부 기재 방침을 고수하는 교육과학기술부와 이에 반대하는 일부 진보성향의 교육감이 팽팽히 맞서 첨예한 논란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교육시민단체와 정치권도 찬반 입장으로 갈려 가세하고 있다. 수험생과 학부모는 물론 대학도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학교폭력을 줄여 보려는 교과부의 취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번 사안은 교과부가 한 발 양보해 서둘러 타협점을 도출해야 한다. 눈앞에 닥친 대입 전형에서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일 뿐 아니라 학생의 인권 보호나 교육적 차원에서도 그렇다.


교장이 학생부를 승인하는 최종 시한인 지난 7일까지 학생부 기재를 거부한 학교는 전북 16곳과 경기 6곳 등 22곳으로 나타났다. 전국 2303개 고교의 약 1%로 많지는 않다. 교과부가 학생부 기재 방침을 거부한 교장과 교감, 교원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고 징계를 하겠다고 강하게 압박한 결과다. 문제는 일부 학교라도 학생부 기재를 거부하면 눈앞에 닥친 대입 전형, 특히 입학사정관제 전형에서 큰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이런 혼란도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밝힌 대로 학생부 기재를 거부한 학교 명단을 각 대학에 통보해 폭력 사실 여부를 직접 확인토록 하면 없앨 수는 있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학교폭력 해결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출처: 경향DB)


대입 전형 과정에서 나타날 혼란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학생부 기재 자체에 있다. 교과부는 학생부 기재로 학교폭력이 대학 진학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도록 하면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2월 발표한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에서 핵심 대책의 하나로 포함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의 지적대로 한 순간의 실수까지 학생부에 5년간이나 ‘주홍글씨’처럼 기재하는 것은 인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지나치게 가혹하고 비교육적인 처사다. 더욱이 학생부 기재는 법적 근거가 미비하고, 입소 경력을 학생부에 기재하지 않는 소년원법 등 소년보호 사건과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는 터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8월 교과부의 학생부 기재 방침은 인권 침해 가능성이 있으므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졸업 전 삭제 심의제도’나 ‘중간 삭제 제도’의 도입을 권고한 것이다. 그러나 교과부는 인권위의 권고안 수용을 거부하고 기존 방침을 몰아붙이고 있다. 학교폭력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최대 현안의 하나다. 그러나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학생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큰 비교육적인 제도까지 도입하는 일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교과부는 지금이라도 학생부 기재에 관한 기존 방침에서 물러나 바람직한 대안을 찾길 바란다. 자존심이나 감정에 치우쳐 고집을 부릴 사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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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대 | 전문상담교사·중앙대 교육대학원 교수


‘왕따’ ‘자살’ ‘비행’ 등 아동·청소년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여기에 우울, 강박, 불안 등 스트레스로 말미암은 정신건강의 문제도 크게 증대하고 있다. 이런 다양한 문제가 모두 나타나는 대표적인 곳이 학교 현장이다.


정부가 이들 문제의 해결책으로 2005년 지역교육청에 전문상담순회교사를, 2007년부터는 학교에 전문상담교사를 배치하기 시작해 현재 883명이 학교와 교육청에서 학교상담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하고 있다. 


 지난해 대구, 광주, 대전 등에서 학교폭력 피해학생의 연이은 자살사건을 계기로 학교폭력의 심각성이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부각되어 올 2학기에는 500명의 전문상담교사가 학교에 추가 배치되고 내년에는 1000명이 충원될 예정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상담교사. 학생들과 대화 시간을 갖고 있다. (출처; 경향DB)


이는 학교에 전문상담 인력의 배치가 아동·청소년 문제의 근본 해결책임을 인식하고 학교교육의 본질을 회복하고자 노력하였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된다. 


그러나 전문상담교사를 단기간에 대폭 충원함으로써 학교상담의 질적 저하와 정부의 상담인력 수급정책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키고 있다.


학교에는 교과교사 이외에 보건, 사서, 영양, 진로진학 교사 등 다양한 인력이 활동하고 있고, 이들의 직무수행을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이 제정돼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학교상담 인력에 대한 법적 규정은 학교폭력법과 그 시행령에 짤막한 문구로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현재 학교상담의 운용에는 상담 인력의 역할과 직무가 명시된 법적 규정이 없고, 인사나 복무 등의 규정도 지역에 따라 들쭉날쭉해 관리자의 자의적 판단이나 해석에 의해 운용되고 있다 


학교상담법안은 지난 국회에서 발의돼 논의되다가 이해집단의 갈등으로 계류 중 폐기됐다. 제정될 학교상담법에는 학교상담의 목적, 인력, 역할, 조직, 지원조건 등이 명시되고 장기적인 상담 인력의 양성, 배치, 임용, 연수 등의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 학교상담은 비정상화된 학교 교육을 ‘인간중심’ ‘행복중심’인 학교 교육의 본질을 회복할 수 있는 기능을 수행한다. 학교상담이 교육 본연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학교상담법 제정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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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 | 부산대 교수·한문학


나는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다. 1993년도 부임한 이래 돌아가면서 맡는 학과장을 제외하고는 어떤 보직도 맡아본 적이 없다. 내가 아니라도 능력 있는 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또 대학 내 최대의 정치행사인 총장 선거에서는 어떤 진영에도 속한 적이 없다. 그저 선거 날 내가 좋다고 판단한 후보에게 한 표를 던졌을 뿐이다. 이렇게 해서 20년 동안 아침 일찍 연구실에 나와 저녁 때까지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부산대 총장실에서 9일째 잠을 자고 있다. 부산대 총장이 원래 직선제를 고수하기로 한 자신의 공약을 뒤엎고 교수들의 중의를 무시하며, 총장 직선제를 폐기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항의하고 있는 것이다. 


 총장 직선제는 1953년부터 시행되다가 61년에 폐지됐고 91년부터 다시 시행됐다. 다시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현재 시행착오의 과정을 겪고 있는 중이다. 그러기에 대학 총장 선거 과정에서 일부 총장직에 눈이 먼 후보자가 돈을 쓰고 패거리를 만드는 등 적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내가 직접 한 일도 아니고 관계되지도 않았지만, 다른 곳보다 더욱 깨끗해야 할 대학 선거가 혼탁했던 것에 대해, 나는 대학 구성원으로서 우리 사회에 사과해 마지않는다. 하지만 직선제에 문제가 있다 해서 대학의 민주주의를 없앨 수는 없지 않은가. 만약 총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부정과 비리가 있다면 해당자를 법에 따라 처벌하고, 대학 구성원이 스스로 자정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또 들어보니, 대학 총장 직선제를 폐기하게 된 이유도 참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총장을 찾아가 공약을 뒤집고 교수들의 중의를 무시하며 직선제를 폐기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교육부가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지 않으면 부산대학이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위협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총장과 보직 교수들은 교과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재정적으로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재정을 미끼로 목적을 달성하려는 교과부의 행태는 참으로 야비하지 않은가. 교과부가 아무리 아니라고 변명해도, 이것은 부산대학교 교수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강명관 부산대 교수 (출처: 경향DB)


지난 20년 동안 나는 총장 직선제 하에서도 아무런 문제없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연구할 수 있었다. 그리 게으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99%의 교수들 역시 직선제 하에서도 자신이 할 일을 하고 지냈다. 대학에 있는 나로서는 직선제가 대학 발전을 저해한다는 근거를 찾을 수가 없다. 


석 달이 지나면 대통령 선거가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에게 감히 묻고 싶다. 유독 박근혜 후보인 것은, 지금 유일하게 공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 박 후보는 직선제에 의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예정이다. 대통령 직선제란 것이 과거 얼마나 문제가 많았는가. 금전과 관권, 지역감정 등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는 문제가 즐비하였다. 지금도 일부 문제는 남아 있지만, 그래도 과거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한 선거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가. 


초등학교 반장,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 국회의원, 대통령 모두 직접 유권자들이 표를 던져 뽑는데, 어떻게 대학교수만은 총장을 직선으로 뽑을 수 없단 말인가? 홀대 받는 지방 사람으로, 지방대학 교수로서 물어보고 싶다. 인재와 일자리를 수탈당하고 있는 지방에는 명문대학이 있으면 안 된단 말인가. 지방국립대학을 명문대학으로 성장시키는 데 대해 어떤 정책을 갖고 있는지 묻고 싶다. 아울러 제발 교육부가 돈을 수단으로 대학의 자율성을 박탈하고자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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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 사회부 차장


<괴짜경제학(Freakonomics)>이란 책이 있다. 2005년 상당히 인기 있었던 책이다.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과 스티븐 레빗 교수와 저널리스트인 스티븐 더브너가 함께 썼다. 이 책은 일상생활 속에 숨겨진 어두운 이면을 다루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학교의 시험이다.


미국 시카고의 공립학교들은 1996년 ‘고부담’ 시험 제도를 도입했다. 시험점수가 낮은 학교는 교육당국의 엄한 관리를 받게 되고, 교사들은 스스로 물러나야 하거나 해고되기 때문에 ‘고부담’ 시험이다. 학생들이 다음 학년으로 진급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교사들은 더 열심히 가르치도록 하고, 학생들은 더 열심히 공부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책 안에 정확한 수치는 없지만 시카고 공립학교들의 성적은 올랐던 것 같다. 그런데 성적이 오른 이면에는 제도를 도입한 취지와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어떤 교사는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에게 정답의 힌트를 줬다. 시간을 더 주는 교사도 있었다. 심지어는 학생들의 시험지를 고친 교사들도 있었다. 부정행위를 한 것이다.


결국 2002년 12명의 교사들이 해고됐고, 이보다 훨씬 많은 교사들이 경고 조치를 받았다. 부정행위를 통해 오른 점수를 빼면 실제 이 제도의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6월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 때다. 충북의 한 여중에서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 문제지에 답을 커다랗게 써서 다른 학생들이 받아쓰도록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시험 감독을 맡은 교사는 모른 척했다고 한다.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을 짝짓는 식으로 자리를 배치했다고 한다. 의도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시험 감독을 맡은 담임교사가 힌트를 줘 시험을 쉽게 봤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런 일이 벌어진 배경은 시카고와 다를 게 없다. 현 정부 출범 뒤 교육과학기술부는 학력이 부진한 학생에게는 보충지도를 실시하고, 우수 학생에게는 성취동기를 부여하겠다며 일제고사를 부활시켰다. 일제고사가 교과부의 기대처럼 학생들의 학습 효과를 높였다는 객관적인 근거는 아직 없다. 단지 부정행위 사례들만 확인되고 있을 뿐이다.


정부는 일이 생기면 새로운 정책들을 내놓는다. 어떤 정책은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급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 만들어진다. 어떤 정책은 나라의 수준을 보다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정부가 내놓는 정책 중에서 의도가 나쁜 것은 사실 없다. 어느 누가 나라 잘못 되게 하려는 마음에서 정책을 내놓겠는가. 하지만 의도가 좋다고 해서 항상 결과도 좋은 것은 아니다. 정책을 결정할 때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물론 이런 과정을 거쳐 내놓은 정책도 부작용이 나타나 고쳐야 할 때가 많다.


학생들과 이야기 나누는 이주호 장관 (출처: 경향DB)



요즘 학교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으로 징계를 받은 학생의 조치 사항을 기재토록 한 교과부의 지침 때문에 교육계가 시끄럽다. 형사처벌 기록도 학생부에 남기지 않는 것과 비교해 형평성에 어긋나고, 사소한 잘못에도 가혹한 낙인을 찍어 학생들의 재활 기회를 막는다며 상당수의 시·도 교육청이 이 지침을 거부하고 있어서다.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하다는 데 이견이 있는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폭력을 막아야 한다는 데 반대하는 국민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학생부에 그 사실을 기록하는 방법이 유일한 대책인가. 그것 말고도 모두가 찬성하는 방법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나왔다. 왜 이주호 장관은 효과도 검증되지 않았고, 반대도 많은 이 제도를 밀어붙이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대선이 불과 3개월 남았다. 많은 논의가 필요한 정책은 다음 정권이 들어선 뒤 시행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막판에 서두르다가 일만 복잡하게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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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 서평가·필명 ‘로쟈’


초등학교 때의 일로 기억한다. 학교에서 속독법 특강이 있었다. 속독의 필요성과 요령에 대한 내용이었다. 비슷한 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TV프로그램에서도 속독술을 ‘묘기’로 보여주기도 했다. 몇십 초 만에 책 한 권을 다 읽고 질문을 알아맞혔다. 속독술은 진기한 기술이면서 부러운 능력이었다. 


한창 책을 많이 읽고 독서에 대한 욕심도 컸기에 <기적의 속독법> 같은 책을 구해서 연습을 해보기도 했다. 안구운동법과 함께 지금도 생각나는 요령은 독서의 단위를 단어에서 문장, 문단으로 점차 확장해나가는 것, 대각선으로 읽어 내려가는 것 등이다. 크게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연습량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었겠지만 시집을 읽게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두툼한 소설책이라면 속독이 요긴하겠지만 음미하면서 읽어야 할 얇은 시집을 속독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속독이 만능은 아니란 생각에 속독에 대한 열의도 좀 시들해졌다. 빨리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잘 읽는 것일 테니까. 


 

(출처 : 경향DB)



무엇이 잘 읽는 것인가. 최근에 읽은 한 사례가 인상적이다. 일본인 저자가 쓴 <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이란 책은 하시모토 다케시라는 한 국어교사 이야기다. 원제는 <기적의 교실>이다. 올해 7월에 100살이 된 하시모토는 인생의 절반 동안 고베 시의 사립 나다중·고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쳤다. 이 학교는 굴지의 입시명문고로 유명한데, 1968년엔 도쿄대학 최다 합격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어떤 비결이 있었던 것일까.


놀랍게도 하시모토의 교수법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파격적이다. 나카 간스케란 일본 작가의 자전적 소설 <은수저>를 3년 동안 읽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교과서가 따로 없었다. 학생들은 교사가 직접 만든 학습교재를 통해서 작품과 관련한 여러 가지 정보를 습득하고 조별로 토론하고 자기 생각을 글로 썼다. 국어가 모든 공부의 기본이고 국어 실력이 살아가는 힘이라는 자신의 지론을 실천하는 방식이 하시모토에게는 ‘슬로 리딩’이었다. “모르는 것 전혀 없이 완전히 이해하는 경지에 이르도록 책 한 권을 철저하게 음미하는” 지독(遲讀)과 미독(味讀)이 바로 슬로 리딩이다. 


빨리 읽는 속독이 아니라 느리게 음미하면서 읽는 미독이 아이들의 미래를 바꾸는 가장 효과적인 독서법이었다는 사실은 음미해볼 만하다. <독서법>의 저자이기도 한 사이토 다카시는 이 슬로 리딩에 대해서 ‘걸어서 가는 소풍 같은 것’이라고 평한다. 버스를 타고 휙 지나가버리는 게 아니라 길가에 꽃들에도 눈길을 주어가며 한 발짝 두 발짝 걸음을 옮기는 산책 같은 소풍이 오히려 기억에 오래 남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라는 것이다. “빨리 달리는 사람은 넘어진다”는 셰익스피어의 경구는 독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읽어야 할 책은 너무 많고, 그 책들을 모두 슬로 리딩으로 읽을 수는 없다. 하지만 슬로 리딩을 통한 배움의 경험이 없다면, 독서는 후딱 지나가버린 인생만큼이나 빈곤할 듯싶다. 독서의 목적이 ‘읽어치우는 것’은 아니잖은가.


대학원 시절에 내가 들은 놀라운 수업 중의 하나는 만델슈탐이라는 러시아 시인의 4행짜리 시 읽기였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열매의/ 조심스럽고 둔탁한 소리/ 숲 속 깊은 정적의/ 연이어 들려오는 선율 사이로…”가 시의 전문이다. 하지만 이 시에 반영된 시인의 시학을 포함하여 시의 이모저모를 철저하게 읽어나가는 데 세 시간이 넘게 걸렸다. 옆길로 새는 것도 권장한 하시모토식 수업과는 달리 오직 이 한 편의 시에만 집중한 슬로 리딩 강의였다.


진정한 배움은 그런 수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 우리의 교육현장에서 슬로 리딩, ‘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을 더 많이 가르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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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관 | 서울 배재중학교 교사


 

최근 헌법재판소는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위헌 판결을 내렸다. 2007년 인터넷 실명제가 도입된 이유는 인터넷을 통한 악성 루머, 인신공격, 사생활 침해 등의 부작용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인터넷에 의견을 게시할 때, 이용자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해 인터넷의 역기능을 해소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공익의 효과가 명백하지 않고, 그 실효성도 부족하다고 보았다. 


헌법재판관들이 ‘인터넷 실명제’ 위헌 결정 등을 내리기 위해 앉아 있다. (경향신문DB)


 헌법재판소의 인터넷 실명제 위헌 판결은 인터넷 이용자를 자율의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이제 그 어떤 제도적 조치보다 선행돼야 할 것은 인터넷 이용자들의 자발적인 자정 노력이다. 네티즌 스스로가 건전한 윤리 의식을 가질 때, 비로소 성숙한 인터넷 문화를 정착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문화의 정착을 위해서는 초등 및 중학교 때부터 인터넷 예절에 대한 교육이 더욱 더 절실해 보인다.


현재 각급 학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미래엔(구 대한교과서)의 중학교 도덕교과서를 보면, 인터넷 윤리와 예절을 주요 단원으로 설정해 인터넷 예절에 대한 교육과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인터넷 공간의 특성을 이해시키고, 사생활 존중과 보호 방법을 찾아보게 하며, 인터넷 공간에서 지켜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는 익명성에 대한 이해이다. 익명성은 인터넷 속에서 자유롭고 활발한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악플로 인한 자살’ ‘신상 정보 밝히기’ 등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인터넷 공간에서는 누구든 자신을 숨긴 채 다른 사람에게 해악을 끼칠 수 있다. 그러므로 인터넷 공간에서 도덕적 책임을 강조해야 한다. 또한 인터넷 공간을 이용하고 관계를 맺는 대상은 나와 같이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쓸 때, 인터넷 게임을 할 때 다른 사람과의 교류라는 것을 인지하고 현실 공간과 마찬가지로 기본적 예절을 갖춰야 한다. 우리는 인터넷 공간의 특성을 긍정적으로 활용해 도덕적 실천의 장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예를 들어,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네티즌 운동, 선한 댓글 달기 운동, 사이버 기부 등을 통해 소외된 이웃을 돕고 나눔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네티즌은 단순히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람직한 인터넷 문화를 만들고, 인터넷 공동체를 꾸려 나갈 때, 진정한 의미의 네티즌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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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영남 유학의 산실을 두고 ‘좌 안동’ ‘우 함양’이라고 부른다. 


‘좌 안동’의 기틀을 세운 퇴계 이황은 조선의 대유학자다. 그에 대한 일화들이 <퇴계집>에 많이 실려 있다. 한편 한편의 글이 다 사람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면서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 한번은 퇴계 선생을 모시고 산당(山堂)에 앉아 있는데, 앞들에 말을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산당을 지키는 중이 “그 사람 참 괴이하다. 진사(進士) 앞을 지나가면서 말에서 내리지 않다니” 하자, 퇴계 선생이 하는 말이 “말 탄 사람이 그림 속의 사람같이 하나의 좋은 경치를 더해주는데 허물할 것이 무엇인가”라고 했다. 


(경향신문DB)


퇴계의 제자인 학봉 김성일이 증언하기를, 퇴계 이황은 손님에게 밥상을 차릴 때에 반드시 집에 있고 없는 것에 맞추어 차리도록 했고, 귀한 손님이라 해서 성찬을 차리지 않도록 했으며, 또 비천한 사람이나 어린이라고 해서 소홀히 하지 않게 했다고 한다. 


또한 퇴계의 제자인 이덕홍이 구술하기를, 퇴계는 산수가 아름답거나 폭포수가 쏟아지는 곳이 있으면, 간혹 몸을 빼내어 홀로 가서 즐기며 시를 읊조리다가 돌아오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덕홍은 퇴계의 임종을 두고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8일에는 아침에 화분의 매화에 물을 주라고 했다. 이날은 개었는데 유시(酉時)에 이르자 갑자기 흰구름이 지붕 위에 모이고, 눈이 내려 한 치쯤 쌓였다. 조금 있다가 선생이 몸을 바르게 앉혀달라고 명하므로 붙들어 일으키자, 앉은 채로 돌아가셨다. 그러자 구름은 흩어지고 눈은 개었다.”


한 번 살다 가는 인생을 이렇게 살다 가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오고 가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인생을 두고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결국 돌아갈 때는 누구의 인생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인생을 너무 거창한 것으로 여기며 살고 있는 게 아닌지.


그리스의 작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영혼의 자서전>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주 고상한 노래를 하나 부르자. 똥 싸고, 먹고, 방귀뀌고, 마시는 게 인생이라네.”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피타고라스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냐.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하는 지혜를 가르쳐 주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대문호 괴테는 “어지러운 인생도 그림에서는 아름다워 보이느니”라고 평했다. 


아주 하찮은 것이 인생일 수도 있고, 아주 지고지순할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다. 당신은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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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지난 8월14일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한 여고생은 카카오톡을 통해 친구로부터 언어폭력 등 집단따돌림을 당한 것으로 드러나 적잖은 충격을 줬다. 


사이버공간을 이용한 따돌림이나 괴롭힘은 시간·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고 일어나며 그것이 미치는 영향력이나 파급효과가 크다는 면에서 전통적인 괴롭힘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또한 사이버따돌림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목격되고 사이버공간에 보다 오래 남기 때문에 그 부정적 효과가 매우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최근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사이버따돌림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주의와 환기가 필요하다. 특히 스마트폰의 확산과 더불어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등 SNS를 이용하는 청소년들이 급증함에 따라 사이버따돌림은 향후 중요한 청소년문제로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괴롭힘과는 여러 면에서 구별되는 사이버따돌림의 심각성을 학생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며, 아울러 사이버따돌림을 당했을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교육을 시급히 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사이버불링 리서치 센터(www.cyberbullying.us)에 의하면, 2012년 6월 현재 미국 50개주 중 49개주가 따돌림과 관련된 법안을 가지고 있고 전체 50개주 가운데 14개주(캘리포니아, 하와이, 오리건주 등)는 사이버따돌림에 관한 내용을 따돌림법안에 포함시키고 있다. 가령, 하와이주는 자녀가 불링이나 사이버따돌림을 저지르게 되면, 그 자녀와 부모는 100달러에 해당하는 벌금을 물게 돼 있다. 이처럼 미국은 사이버따돌림에도 무관용원칙을 적용해 엄하게 처벌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2년 3월 학교폭력예방및대책에관한법률이 개정되면서 사이버따돌림이 처음으로 학교폭력의 한 유형에 포함됐다. 하지만 사이버따돌림의 실태 파악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등 후속 대책이 미흡한 실정이다. 또한 일선 학교에서는 사이버따돌림의 심각성에 대한 교육을 소홀히 하고, 처벌규정이나 예방안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사이버따돌림을 당했을 경우 증거자료를 어떻게 모아야 하는지, 피해사실을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 등 기본적인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이버따돌림을 당했을 경우 기초적인 대응방안을 학생들에게 주지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하루빨리 사이버따돌림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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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범 | 작가·출판인


대한민국 대단하다. 13개의 금메달에 런던올림픽 금메달 순위 5위라니, 출전했던 모든 선수에게 박수를 보낸다. 양궁의 기보배, 체조의 양학선, 유도의 송대남, 수영의 박태환 등 어느 선수 하나 모자람이 없었지만, 우리 국민의 잠을 가장 오래 빼앗은 축구선수들에게 보내는 박수가 제일 뜨겁게 느껴진다. 


세계인이 한국 선수들의 선전에 놀라고 있을 그때, 올림픽 경기장 바깥에서 세계를 열광시킨 또 하나의 한국 금메달이 탄생하고 있었다. 말춤으로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드는 가수 싸이의 ‘강남 스타일’ 뮤직비디오가 유튜브 누적 조회수 2846만회를 넘기며 세계 1위에 등극한 것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이 비디오를 흉내 낸 기발한 동영상이 끝없이 올라오고, 미국에서 열린 게임광들의 축제에서는 이 ‘강남 스타일’ 동영상을 무한반복으로 틀어놓은 채 2박3일을 지새웠다고 한다.


올림픽 폐막 직후 텔레비전에 출연한 싸이는 거의 달관한 어조로 자신의 지난 세월을 털어놓았다. 부인과 만나 보낸 10년 가운데 절반이 군복무기간이었다는 대목에서 난 그가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병역비리를 저질렀던 사실이 기억났다. 그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나이 서른에 현역으로 입대하여 두 번째 군생활을 했다. 두 번 다녀오니 대부분의 예비역이 경험하는 재입대 꿈을 꾸지 않는다며 너스레를 떨기에, ‘저 친구 군대 체질이네’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시상식에서 메달을 목에 걸고 있다. (출처: 경향DB)

가수 싸이의 군대 이야기를 듣다 보니 올림픽 한·일 대결에서 동메달을 거머쥔 한국 축구 홍명보 감독의 인터뷰 장면이 겹쳐졌다. 병역 연기로 논란이 됐던 박주영의 기자회견 자리에서 홍명보 감독은 박주영이 군대를 안 간다면 자기가 대신 가겠다는 말까지 하며 각오를 다졌고, 한·일전 승리 뒤에는 자기도 군대 안 가게 되어 기쁘다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영국 언론들의 조롱이 무리는 아니다. 약간 거슬렸지만 홍 감독 이야기를 들을 때만 해도 워낙 비장하다든가 대견하다는 느낌이 강해서 그냥 넘겼다. 하지만 가수 싸이의 사연을 듣고 보니 이게 그럴 문제가 아닌 듯하다.


확실히 군대는 대한민국 청년의 고민 1호다.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아무 생각 없이 다녀오는 젊은이도 있지만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운동선수나 연예인, 연구자에게는 치명적인 단절의 시기다. 내 젊을 적 인기가수였던 김민우씨는 ‘입영열차 안에서’라는 노래를 발표한 뒤 입대했는데, 2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사람들은 그가 군생활을 하는 줄 알고 있다. 그는 재기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병역의 공정성을 매우 중시한다.


국민에게 즐거움과 자긍심을 주었다는 측면에서, 올림픽 출전 선수 가운데 공을 세운 이에게 상급(賞給)과 명예가 주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승리를 위해 다쳤다든가 하여 무언가를 잃게 되는 처지가 아닌 한 그들에게 모두가 받아들이는 의무를 면제해준다면, 이는 전교 1등 했다고 화장실 청소를 면제해주는 처사와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성과를 내기 위해 내거는 조치라면 그런 성과를 바라야 할 곳은 유튜브를 비롯해 너무나 많다. 스포츠 스타에게 어마어마한 돈이 따르는 시대이니만큼 이런 조치는 특히 더 불공정하다.


사회체육과 학교체육의 부실함 때문에 일자리도 얻기 어려운 수많은 무명선수가 군대를 다녀오고 있다. 평화체제를 구축해 병역체계를 개선하는 게 해답이겠지만, 당분간 징집제도를 바꿀 수 없는 상황이라면 군대 때문에 차별과 상실감을 느끼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젠 병역면제를 상으로 내걸지 말자. 부끄럽다. 사회체육과 학교체육을 비옥하게 만드는 데에 힘을 쏟아, 재능을 갖춘 청소년들이 스스로의 끌림에 기대어 세계무대에 서는 날을 기획할 정도의 국력은 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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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