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지금은 한 학생을 키우려면 온 학교와 사회가 필요하다. 학교는 학생의 발달 단계에 맞는 자아발견과 전인적 성장을 도모하는 적절한 교육적 경험을 제공하는 배움터다. 즉, 우리 학생들에게 맞는 학교교육과정을 제공하는 것이다. 학교교육과정의 핵심은 학교비전과 교육목표를 구성원들이 함께 만들고 구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지난 수년간 혁신학교를 중심으로 교사 개인의 교실 단위 실천을 넘어서 학교비전과 교육목표를 함께 만들고 학생들에게 맞는 교육적 경험을 제공하는 학교 단위 실천이 이뤄졌다. 초·중등교육과정 총론에 따르면 학교는 국가교육과정을 바탕으로 학교실정에 알맞은 학교교육과정을 편성·운영한다. 학교교육과정은 우리 학교에 맞는 교수·학습, 교과교육과정, 창의적 체험활동 등 전체 교육과정을 말한다.

학교교육과정 만들기는 질문 나누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첫번째 질문은 공교육기관인 학교가 학생들의 사회경제적 격차의 영향을 줄이고 있는가이다. 가정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문화적·정서적 결핍 등 격차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적절한 교육경험을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는 중요한 질문이다. 두번째 질문은 학교가 우리 학생들의 삶과 연결된 교육을 하고 있는가이다. 수업교재나 자료들은 학생들의 삶과 연결돼 좀 더 의미 있는 배움으로 이끌어야 한다. 세번째 질문은 학교가 학생들의 발달과 배움에 맞는 교육적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가이다. 교육적 환경은 쾌적한 교실이나 학습환경과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학교공동체문화와 교육과정체계를 모두 포함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소도시 소재 중학교에 이 질문들을 대입해보자. 학생들은 저소득층 가정이 40% 이상이고 낮은 학습의욕과 자존감을 보인다. 기초기본학습 역량과 문화적 경험이 부족한 학생들이 많고, 학부모들의 학교참여도는 낮으나 돌봄에 대한 학교의존도는 높다. 학생들의 격차를 최소화하기 위해 중점을 둬야 할 교육목표를 정하면,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교육과정에 긍정적 자기이해와 타인존중을 위한 활동을 우선해서 넣고, 협력적 활동, 활동중심수업, 문화적 경험 제공, 학습습관 형성활동 등을 포함할 수 있다. 이 방안들을 교과수업, 학급활동, 생활지도방안에 어디에 세심하게 넣을지 고민해야 한다.

아래에서부터 함께 세워야 한다. 선생님, 학부모, 학생들이 이 질문들을 나누고 답하는 과정이 학교교육과정 만들기의 시작이다. 그리고 학교교육과정위원회를 중심으로 학생의 발달을 위한 교육에 대해 대화하는 학교조직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여백이 필요하다. 국가교육과정에서 반드시 해야 할 것이라고 학교에 요구하는 것을 줄여야 한다. 학생들에게 알맞은 교육과정을 짜놓아도 늘어나는 범교과 필수이수시간을 맞추기 위해 교과수업 및 창의적 체험활동이 어그러지기 일쑤다. 선생님들도 여백이 필요하다. 학생들에게 맞는 텍스트를 고르고, 수업을 연구하고, 동료들과 수업을 나누고, 학생들의 배움에 대해 대화하고, 성찰할 여유가 필요하다.

여백을 교육적 상상력으로 채우자. 학생들이 잘 배우려면 무엇을 같이할까, 어려움을 겪는 아이에 대해 무엇을 도와줘야 할까에 대해 선생님들이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교무실에서 학생들의 배움이 있는 수업이 싹튼다.

손민아 | 경기 전곡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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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전국 중·고교를 대상으로 실시해온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를 일부 학생을 골라서 하는 표본 방식으로 바꾸기로 했다.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이 오는 20일 치르는 올해 시험부터 적용된다. 일제고사 형식의 성취도평가 개선을 환영한다. 그동안 이 시험은 서울 강남의 부자 동네부터 산간 벽지까지 전국의 학교를 성적순에 따라 한 줄로 세워 과도한 경쟁을 유발하고, 일선 교육에 각종 파행을 불러왔다. 학생들의 시험 스트레스도 가중시켰다.

학업성취도평가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가르친 내용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국가가 설정한 교육 목표에 얼마나 도달했는지 등을 알아보기 위한 시험이다. 정부가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기 위한 기초자료를 확보하자는 취지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전국에서 1~3%의 학생을 뽑아 시험을 치르게 했다. 그러던 것이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부터 모든 학생이 한날한시에 같은 시험을 보는 일제고사 방식으로 바뀌었다. 학생·학교·지역 간 경쟁을 통해 교육의 질을 끌어올리겠다는 사고가 바탕에 깔려 있다.

지난 9년간 시행을 통해 일제고사 형식의 학업성취도평가는 반교육적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기본적으로 시험 성적으로 전국의 학교를 서열화하는 것은 교육의 본령과 거리가 멀다. 교육청이 시험 결과를 학교평가에 반영하면서 일선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부정행위를 조장하고 성적을 조작하는 일까지 공공연하게 벌어졌다. 물론 공교육 체제하에서 국가는 기초 학력이 미달하는 학생을 찾아내 책임지고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 일제고사식 학업성취도평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학기마다 치르는 중간·기말고사로도 충분하다. 학력이 떨어지는 학생은 교사들이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학업성취도평가 개선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건의한 것을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받아들여 교육부에 제안하면서 이뤄졌다. 앞으로도 초·중등교육 분야는 시·도교육감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 교육개혁에 미온적인 교육부 관료들을 견인해야 한다. 특히 교육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교육의 공공성을 해치고 있는 자립형사립고나 외국어고 등은 관계 법령에 따라 교육감이 재지정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모두 일반고로 전환해 교육을 정상화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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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대통령 비선실세 최서원씨의 딸 정유라씨의 부정입학은 입시의 공정성 문제를 드러낸 상징적인 사건으로 수시전형의 신뢰 회복이라는 과제를 남겼다. 이번 정부는 수시전형의 근간을 유지하면서 수능절대평가를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에 반대한다. 수시전형 불신 심화의 방증이다.

수능으로 학생을 뽑는 방식은 사용기간이 만료되었다. 객관식 문제는 기본적인 학력을 측정하는 도구일 뿐 창의성이나 도덕성 등 다양한 특성을 평가하기에 부족하다. 객관식 평가로 학생을 선발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독서와 실험, 수행평가와 토론, 글쓰기와 과제 제출 등 다양한 지적 활동으로 학생을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학생과 학부모, 대중이 이에 반대한다. 그들의 외침은 대체로 같다. 수능으로 돌아가라.

수능은 수시보다 공정하지 않다. 응시 기회의 공정성과 점수 취득을 위한 과정의 형평성은 다르다. 1990년대 후반, 이미 ㄷ외고 한 곳에서 일부 광역자치단체 전체보다 서울대를 많이 보내기 시작했고, 수시전형에 대한 고민도 싹텄다. 교육 기회의 현격한 격차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수능 당일 문제를 풀기까지의 과정이 공정하다는 말은 비현실적이다. 수능 전형을 확대하면 그나마 현재 유지하는 명문대 지방 학생 비율조차 지키기 어렵다. 그럼에도 다수가 정시 복원을 외친다. 수시전형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데다 불신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가지 방향으로 교육부가 국민을 설득해 여론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시사 2판4판]삼중창 (출처: 경향신문DB)

첫째, 수시전형의 교육적 우월성이다. 도덕성과 창의성, 문제해결 능력 등 다양한 능력을 지닌 인재는 성실하고 정교한 학교생활을 바탕으로 형성된다. 고3 교실에서 교육방송 문제집을 푸는 행위가 국가적 손실이라는 점을 이해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는 학교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힘써 학생의 수학적 사고력과 창의력을 높여야 한다. 암기와 수용에서 이해와 표현, 참여로 인재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도록 지속적인 학교교육의 질 향상에 매진한다면, 사람들의 교육관도 바뀔 것이다. 수시전형 확대의 긍정적인 측면을 지속적으로 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둘째, 수시전형의 공정성이다. 이는 교사 평가의 공정성과 대학 선발의 공정성 두 측면에서 보면 된다. 교사 평가의 공정성을 위해 교사 1인당 학생 수를 줄여 학생 평가의 질적 정확성을 높이는 것이 시급하다. 또한 교사 평가에 대한 학부모나 학생의 이의 제기를 논의할 구조의 형성도 필요하다. 대학의 선발기준도 명료하게 만든다. 수시전형에서 선발 주체는 대학인데, 여기서 의혹은 증폭된다. 정시전형에서 대학은 성적을 승인한 뒤 합·불 여부만 판단한다. 그런데 수시전형의 경우 대학이 선발주체가 되면서 신뢰도는 하락한다. 정유라씨 부정입학 문제와 최근 교육방송 다큐멘터리에서 제기한 특목고 우대 의혹 역시 이런 배경을 지닌다. 대학의 선발권을 존중하면서도 선발과정 감시를 통한 수시전형의 공정성을 회복할 방법을 찾아나가야 한다. 각 대학의 서류심사 과정과 면접전형의 평가 방식을 지속 감시하고 개선책을 적극 제시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미래를 짊어질 인간을 위한 도덕적 고민을 시작하자.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성과 감성, 덕성으로 인간을 바라볼 공정한 시각을 찾아야 한다. 다수가 수시전형에 합의하는 수준만 되어도 이번 정권은 대한민국 교육사에 큰 업적을 남길 것이다. 서두르지 말자.

정주현 | 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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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가 낯설지 않다. 4차 산업혁명은 학문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모든 국가에서 생산, 경영 및 지배구조를 완전히 바꾸는 급진적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로 이어지는 초연결 사회에서 인공지능을 지닌 로봇이 인간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람과 기계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 기술과 가상과 증강현실을 응용한 사이버 기술이 보편화될 것이다.

이러한 소용돌이가 예고되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민과 관이 누가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해야 하느냐로 갑론을박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혁명이 일어나야 할 부문이 침묵하고 있다. 교육이다. 사유와 이성적 판단을 통한 가치부여와 뜨거운 가슴을 지닌 호모 사피엔스만이 다가올 시대의 주인공으로 거듭날 수 있다. 교육은 지식습득을 용이하게 하고, 배움을 통해 새로운 기술을 접하며, 가치를 공유하게 하는 과정이다. 교육은 백년을 내다보고 세워야 한다는 의미의 ‘교육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는 장기적 계획의 중요성뿐 아니라, 교육 그 자체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일년의 계획으로는 곡식을 심고, 십년의 계획으로는 나무를 심는 것이 제일이나, 평생의 계획은 사람을 심는 일이란 뜻이니, 하나를 심어 하나를 수확하는 것이 곡식이요, 하나를 심어 열을 수확하는 것이 나무이니, 인재양성이야말로 하나를 심어 백을 수확할 수 있는 국가와 사회발전의 디딤돌이란 의미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교실에 진정한 교육이 있는가? 공교육이 죽고 사교육이 판을 치는 형국에, 이마저도 입시를 위한 수험전략 과정이지 교육이라 보기 힘들다. 연도별 발생사건을 순차적으로 나열한 것을 찾고, 외운 공식대로 수학문제를 푼다. 사유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적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칭찬했던 건 한국의 교육열이지 교육방식이 아니었다.

미국의 한 공립 고등학교 세계사 수업에서는 ‘파리지옥이라는 곤충을 잡아먹는 식물이 어떻게 프랑스 혁명을 유발시켰을까?’라는 주제로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이 식물이 발견되기 이전의 생물은 신에 의해 크게 동물, 식물, 그리고 광물로 확연히 나뉜 상태였다. 그러나 이 식물의 등장은 잎, 꽃, 뿌리 등의 식물이 지닌 특성과 먹이를 잡아채 먹는 동물의 특성을 함께 지님으로써 식물과 동물의 경계를 무너뜨린 역사적인 사건이 된다. 프랑스 혁명 이전의 인간 사회 역시 신에 의해 상류, 중류, 그리고 노동계층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사회였다. 파리지옥의 등장은 이것이 인간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혁명의 도화선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된 것이다. 또 다른 수업의 예는 ‘현재의 세계지도가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의 토론 수업이었다. 북극을 중심으로 한 지도를 통해 보면 지금까지 봐왔던 세계관이 바뀔 수 있다. 제국주의 시대의 지도는 그들이 확장한 식민지에 관심을 쏟는다. 지도 제작에는 제작자의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다. 이상은 단편적인 예일 뿐이다. 교실은 생각하는 질문을 하고, 많은 학습과 토론을 통해 일률적인 답이 아닌 각양각색의 결론을 도출하는 교육의 장이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될수록 단순 반복되는 일은 로봇이 도맡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의 존립과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 근거를 찾는 일은 교육혁명에서 비롯되어야 할 것이다.

엄치용 | 기초과학지원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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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6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고등학교의 고교학점제를 실시하겠습니다. 교사가 수업을 개설하고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수강하는, 완전히 다른 교실이 열릴 것입니다.”(문재인 대통령 2017년 3월22일)

학점제가 시행되면 완전히 다른 교실이 열릴 수 있을까? 그렇다. 단 제대로 된 학점제여야 한다. 무늬만 학점제라면 어렵다. 그런데 제대로 된 학점제냐, 무늬만 학점제냐는 무엇으로 구별할 수 있나? 교사별(수업별) 평가제와 절대평가제의 시행 여부다.

교사별 평가제는 동일 과목이라도 교사마다 평가가 달라지는 제도다. 이게 시행돼야 수업의 다양성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진다. 지금처럼 교사가 달라도 시험이 동일해야 하면 교사들이 수업의 내용과 수준을 서로 일치시켜야 한다. 결국 수업이 획일화된다. 이래선 학생 선택권이 실질적 의미를 갖기 어렵다.

절대평가제는 일정 기준을 넘는 학생 모두가 A학점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학점제가 절대평가제와 결합하지 못하고 상대평가제와 결합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학생의 과목선택에 심한 제약이 생긴다. 과목선택에 따른 성적 경쟁의 현저한 유불리 차이 때문이다. 상대평가 학점제에선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버리고 경쟁에 유리한 과목을 선택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 학교의 학점제 운영에도 상당한 제약이 생긴다. 적극적 학점제 운영이 오히려 학교의 입시성과를 나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상대평가제에서 학교의 수학 포기 학생들이 대대적으로 수학을 신청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수학 신청 학생의 성적이 그만큼 나빠진다. 결국 학교는 교육적 당위와 입시 현실 사이에서 계속 갈등을 겪게 된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학점제와 상대평가제는 최악의 조합이다. 이 조합은 자칫 교실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 내신경쟁은 동료학생들 간의 경쟁이기에 특히 잔혹하다. 상대평가 학점제는 내신경쟁의 이런 잔혹성을 한층 더 강화한다. 학교에 작가를 꿈꾸는 20명의 학생이 존재한다고 하자. 학교가 문학창작수업을 개설해 주었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런데 지금처럼 1~9등급을 가리는 냉혹한 상대평가 경쟁을 이들 20명끼리 벌여야 한다면? 끔찍하지 않은가?

학교수업의 획기적 변화를 꾀하려면 교사별 평가제와 절대평가제는 더더욱 중요하다. 이 두 제도가 없으면 학점제가 수업의 변화로 이어지기 어렵다. 시험 때문이다. 어느 교사가 ‘윤동주와 이육사 시(詩)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논하시오’라는 완전 논술식 문제를 출제하려 한다하자. 가능할까? 어렵다. 함께 출제하는 교사가 그런 문제를 꺼리면 달리 방법이 없다. 해마다 다른 교사에게 매번 어떻게 동의를 얻겠는가? 동의를 해줘도 문제다. 상대평가제에서 이런 시험은 반드시 수많은 시비를 부른다. 제 아무리 훌륭한 교사라도 이런 시험을 보겠다고 마음먹기가 어렵다. 시험이 저차원적일 수밖에 없다면? 수업 또한 저차원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교육 선진국들은 어떤가? 교사별 평가제와 절대평가제가 상식이다.

제대로 된 학점제라야 완전히 다른 교실이 열린다. 그런데 이게 우리나라에선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무엇보다 입시 때문이다. 학점제는 입시제도로서의 효용성이 크게 뒤떨어지는 제도다. 필연적으로 학교시험의 입시변별력을 약화시킨다. 대학입시의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기정 | 서울 미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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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19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장년들이 공유하고 있는 추억 중 하나가 ‘사랑의 매’에 대한 것이다. 군 출신 교련교사들에게 야전침대 각목으로 일상적으로 구타당한 경험이나, 고교 3학년이 되어서야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절치부심 삭발 공부로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 ‘늦게 철들어서 성공한’ 추억을 기억하기도 한다. 또 어려운 환경 속에서 교과서와 문제집을 단기간에 독파해서 대학에 합격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술자리의 흔한 안줏거리다.

이제는 더 이상 ‘사랑의 매’가 존재하지 않는다. 인권의식이 강해진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모들의 관심이 커져 학교에서 선생님이 몇 마디 말만 실수해도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실에 난입하는 학부모가 있을 정도다. 그리고 요즘 수능시험은 단기간에 성적을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초등학교 때부터 엄청난 학습량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

요즘 들어 새 정부의 입시정책에 대한 반대 목소리에 수십년 전의 교실을 떠올리게 하는 주장들이 등장하고 있다. 대부분의 일반고 학생들에게는 넘기 어려운 벽이지만 주로 특목고 등 상위권 학교에서 낮은 내신을 받은 학생들의 재기전이 되고 있는 수능이나 논술전형의 폐지가 ‘뒤늦게 철들어 공부하려는 학생들의 기회를 빼앗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특목고나 자사고 학생들이 ‘뒤늦게 철들은 학생’이라는 희한한 주장이 신기하게도 장년층에게는 상당히 잘 먹힌다.

최근 EBS <다큐프라임, 대학입시의 진실>에 대한 장년층의 폭발적인 반응도 이의 연장선에 있는 것 같다. 장년층이 경험하지 못했던 학생부전형이라는 제도에 대한 의문과 두려움을 새로운 교육정책을 비판하는 근거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방송에 등장하는 학생부전형 비판이 ‘선생님에 대한 불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방송에 나온 ‘성적이 좋은 학생들의 학생부 기재 내용이 더 충실하다’는 연구결과는 선생님들이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의 학생부를 적극적으로 관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실상은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학교생활도 꼼꼼하게 더 잘하기 때문인데도 선생님들이 뭔가 부정행위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 이런 내용들은 장년층들이 과거 학교생활에서 경험한 선생님들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을 들춰내 현실을 판단하게 유도한다.

학생부전형, 특히 학생부종합전형은 선생님들에게 아주 큰 역할을 요구한다. 각각의 학생에 대해 3년간 다수의 선생님들이 수업의 성취와 과정, 태도를 학생부에 기재하고, 창의적 체험활동 같은 다양한 학교생활을 평가해 기록한다. 대학은 이 기록들을 신뢰해 자신들이 원하는 인재를 선발한다. 물론 이를 위해 학교와 선생님들이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는가는 큰 고민거리다. 그러나 그것을 빌미로 선생님들에 대한 신뢰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학부모들이 선생님들을 신뢰하는 것은 학생들을 미래로 이끌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지금 선생님들은 대부분 최상위권의 우수한 인재들이다. 어설프게 교사가 된 분들이 꽤 많았던 1970~1980년대와는 분명히 다르다. 교육을 학교 안으로 가져와야 ‘공정한’ 교육이 가능하다. 부모의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가 청소년의 미래를 재단하게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능력 있는 선생님들을 믿어야 한다. 중년의 학부모이면서 지금도 학교의 안과 밖에서 선생님들을 지켜보고 있는 내 결론이다.

한왕근 | 교육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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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종영된 모 방송사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를 맡았던 가수이자 프로듀서 박진영씨의 마지막 멘트가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되었다. 박씨에 따르면 오디션 프로그램 최종 우승자 중에서 한국의 중·고등학교 교육을 제대로 이수한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고 한다. 대부분 외국에서 공부했거나 홈스쿨링을 한 사람들이 우승했다고 한다. 그리고 박씨는 새로운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을 부탁한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공감했다.

옛말에 ‘변방에서 장수 난다’라는 말이 있다. 주류사회는 장수를 키우기 위해 늘 노력하지만 실제로 주류문화에서 자란 사람들은 이미 주류문화의 한계에 갇혀 있기에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갈 능력을 가질 수 없다는 뜻이다. 대선 기간에 많은 대통령 후보들이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기 위한 교육혁명을 이야기했지만 교실에 또다시 새로운 컴퓨터 기기를 도입하겠다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었다.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주류사회가 가지고 있는 교육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는 데에서 그치고 다양한 변방이 존재할 수 있는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가 없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교육회의’를 설치하여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이 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가교육회의가 기존의 주류 교육문제만 다룰 것이 아니라 다양한 교육실험을 하는 ‘교육실험 소위원회’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성적 경쟁 중심의 학교문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학교의 내부개혁도 필요하지만 다양한 학교가 출현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대입을 위해 파행적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거부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대학을 생각하지 않는 고등학교, 교사 공동체와 협약을 맺어 운영을 위임하는 차터 스쿨, 초등 유휴 교실을 활용하여 부모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운영하는 공동육아 공립 유치원 등 우리 교육의 다양하고 새로운 교육형태를 실험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도 일부 대안학교나 대안형 특성화 고등학교들이 비슷한 일을 하고 있지만 이러한 수요를 충분히 받아들이고 있지 못하다. 제도권이든 제도권 밖이든 우리 교육을 위해 필요한 실험을 하고 가능성을 만들어야 한다. 주류사회의 경쟁교육을 피해 독립운동하듯이 어렵게 운영되는 대안학교들이 많다. 이러한 대안학교들은 사회적 협동조합과 같이 투명하고 공정하며 부가 개인에게 축적될 수 없는 방식의 조직 형태를 갖춰야 한다. 국가가 대안학교에 학생 수에 비례해서 1인당 공교육비(초등 600만원)의 5분의 1 수준의 돈을 지원함으로써 다양한 대안학교들이 설립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일도 필요하다.

교육과 부동산 문제는 엄청난 이익이 걸려있기에 어떠한 단순한 해법으로도 풀리지 않는다. 마치 뜨거운 바다에서 수증기를 공급받아 만들어진 태풍처럼 욕망의 에너지원을 끊임없이 공급받아 우리 사회를 삼키고 있다. 태풍은 바다 위에 있는 한 사라지지 않고 결국 육지에 상륙해야 소멸된다. 경쟁교육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세력이 모일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 이 세력이 커질수록 육지가 되어 태풍을 약화시키거나 소멸시킬 수 있다. 교육실험 소위원회를 통해 다양한 교육 시스템이 조사·발굴·지원되기를 소망한다.

홍인기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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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여학생 ㄱ은 같은 학교의 ㄴ이 페이스북에 자신을 태그하고 자신에 대한 비방글을 적은 것을 보게 되었다. 다른 친구들 몇몇이 댓글로 동조하는 글을 쓰는 것을 보았다. 그 글을 본 친한 친구 ㄷ은 ㄱ에게 위로하는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비방글과 댓글을 적는 아이들을 말리지 않았다. ㄷ은 자신도 같은 일을 당할까봐 겁이 났다. ㄱ은 억울하고 속상했고 무서웠다. 그러나 부모님이나 선생님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그냥 참고 자신의 계정을 삭제했다. ㄴ은 이후 다른 친구에게도 비슷한 행동을 했다. ㄱ은 왜 주변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을까?

2016년 NIA한국정보화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사이버 학교폭력 피해학생 36.8%는 복수를 생각했고, 25.2%는 자살·자해 등 극단적인 생각을 했다. 많은 피해학생은 그냥 참고 지내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알려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폭력을 목격한 사람 중 70%가 피해를 당한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은 들었지만 적극 말리지는 않았다.

가해한 학생들은 단순 재미 또는 장난으로 한 것이기에 자신들의 행위가 폭력이고 잘못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거나 후회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2015년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초·중·고 학생 17.2%가 사이버폭력 피해 경험이 있었으며, 17.5%가 사이버폭력 가해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사이버폭력은 잘 보이지 않는, 가장 무서운 학교폭력이다. 가장 무서운 이유는 10대들의 가장 큰 고민인 또래 관계 맺기에 대한 불안이 현실화되는 것이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많은 교류를 하는 그들이 교류채널에서 위축되기에 이후 또래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고 트라우마로 남기 때문이다.

또 다른 ㄱ학생을 예방하기 위해 원인을 살피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먼저 청소년이 있는 학교나 공동체가 서로 존중하고 안전한 문화에 바탕을 둬야 한다. 학생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수업에서부터 전반적 생활문화가 협력하고 존중하는 분위기 속에 차이를 인정하고, 자신의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된 공격성을 절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단순 장난과 시기나 미움에 의한 행위와 폭력행위를 분별할 줄 아는 정보윤리교육과 규범을 지키고 타인을 배려하는 시민성 교육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피해자가 경험하는 고통은 당사자만이 안다. 피해학생이 복수를 가장 많이 생각한 것처럼 이후 폭력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피해학생이 버티는 힘을 기르게 돕기 위해서 그 고통을 공감하고 돌보는 교육이 뒤따라야 한다. 방관하는 자들도 가해를 부추기는 것이다. 피해자인데 오히려 위축되어 혼자 속앓이를 할 피해학생을 조기에 발견하고 돌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스콧 펙은 진심으로 들어주고 다른 사람에게 온전하게 집중하는 것은 언제나 사랑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우리 친구, 우리 아이, 우리 학생의 이야기를 눈을 맞추어 시간을 들여 들어주는 것, 일상적인 경청이 언제나 믿을 사람이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이 한 명 있었다면 우리 주변의 ㄱ은 그냥 참지 않고 당당하게 폭력에 대해 중단을 요구할 용기를 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사이버폭력 피해를 입고 있거나, 그런 것을 목격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주변에 알리고, 그리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자.

손민아 | 경기 전곡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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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9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대선후보들의 공약은 대입제도 개선이나 사교육 비용 감소 등 가시적 정책에 집중되어 있다. 대학입시가 일생을 결정하는 상황에서 사교육비 경감이나 합리적인 대입제도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취업 문제를 내버려 둔 채 입시 정책만으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대입 문제는 좋은 일자리가 적은 데서 촉발됐기 때문이다.

역대 정권들이 교육 문제에서 낮은 성적표를 받은 이유는 실업이나 양질의 일자리 부족 등 취업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수정하지 못한 채 입시제도 개편에 매달린 탓이 크다. 여기에는 청소년기의 치열한 경쟁은 문제가 되지만 어른이 겪는 취업 경쟁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가치관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성인의 경쟁은 당연하다는 생각으로는 교육 문제를 완화시키기 어렵다. ‘사교육 없이 명문대를 갈 수 있다’가 아닌,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비명문대나 비인기 전공 출신자라도 좋은 직장 취업에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 필요한 때이다.

좋은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지방대 나와도 대기업 갈 수 있다’는 식의 공약은 소수의 성공으로 보편적 문제를 호도할 뿐이다. 청소년이 겪는 입시 경쟁 못지않게 심각한 사회적 비효율은 스펙 쌓기, 공무원 시험 광풍 등으로 표현하는 청년층의 취업 경쟁이다. 이로 인해 온갖 종류의 취업 관련 학원들이 성시를 이룬다. 극심한 취업 경쟁이라는 예상되는 결과는 과열 입시라는 원인을 심화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청소년기에 교육 기회를 공평하게 줬으니 성인인 20대의 경쟁은 당연하다는 논리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된다. 많은 수험생들이 의대 진학을 희망하는 이유는 의사 면허만 있으면 먹고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치에 있다. 과열된 입시를 식히려면 양질의 일자리를 확대해 취업시장의 안정성이라는 결과를 확보함으로써 원인을 통제해야 한다.

평범한 학생이 큰 문제 없이 학교를 다닌 후 고등학교만 졸업하거나, 비명문대를 졸업해도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확률이 높아질수록 명문대 입학 중심의 경쟁적인 입시 분위기는 완화된다. 투자 대비 기대 이익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교육이 기회의 평등이자 동등한 출발의 보장이라고 한다면 출발 이후 1차 베이스캠프는 취업 성공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둡다. 취업 희망자 다수의 고용을 책임져야 할 중소기업은 대부분 급여와 복지 수준이 낮고 근무시간이나 환경 역시 열악하다. 서비스업이나 문화 관련 산업은 양적으로 급팽창함에도 고용의 질은 엉망인데, 최저시급 문제나 초과근무 등 근무환경 문제가 이쪽 분야에서 특히 심각하다. 최근 대기업 산하 방송사 촬영 현장의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을 비판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한 PD는 대기업이나 금융기관, 공기업, 외국계 등 명문대 출신들의 카르텔에서 제외된 노동현장이 얼마나 열악한지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졸업 이후 자신이 꿈을 펼칠 곳이 지옥이라면, 차라리 입시가 지옥인 게 낫다. 자식을 위해 학원 설명회를 뛰어다니는 부모 다수는 자식이 명문대 나와 성공하는 것까지 바라지 않는다. 대기업 등 안정적인 일자리 안으로 들어가 편하게 살 수 있기를 갈구할 뿐이다.

교육과 취업의 연결은 사회구조의 본질적 측면인 만큼 해결에 큰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단기간에 효과가 나타나기도 어렵다. 그러나 방향은 뚜렷해야 한다. 대충 공부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 나라, 그 길로 가야 과열 입시 경쟁이라는 문제는 해결된다.

정주현 | 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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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공부를 아예 포기해버린 학생이 얼마나 될까? 우려할 정도로 많다. 정도가 제일 심한 과목이 수학이다. 고등학생은 수학 포기자가 60%나 된다. 수학 포기 학생을 뜻하는 ‘수포자’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수포자에게 수학 수업은 어떤 시간일까? 자거나 떠들거나 멍하니 있는 시간이다. 그러다가 교사에게 야단맞는 시간이다. 무의미한 시간이다. 수학을 잘하는 학생들에게 그 시간은 가치 있는 시간일까? 그렇지도 못하다. 그들에게 그 시간은 어수선하거나 느슨해서 지적 만족감을 느끼기 어려운 시간이다.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는 수학을 포기한 학생과 수학을 잘하는 학생의 수업시수가 동일하다. 시수만 동일한 게 아니다. 교과서가 동일하다. 수업의 내용과 수준이 동일하다. 시험(평가) 또한 똑같다. 수포자는 수포자대로 괴롭고, 수학을 잘하는 학생은 잘하는 학생대로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들을 함께 가르쳐야 하는 교사는 또 교사대로 힘든 상황이다. 왜 수포자여야만 할까? 포기하지 않고 버릴 수는 없는 것일까? 포기한 상태에서 억지로 수업을 받느니 그 대신 다른 과목을 선택하면 안되는 것일까? 그것이 가능하다면 수포자들의 학교생활은 한결 행복해질 것이다. 지적 역량도 더 향상될 것이다. 수학을 잘하는 학생들이 더 높은 단계의 수업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일까? 그것이 가능하다면 수학을 잘하는 학생들의 지적 만족도는 현저히 높아질 것이다. 수학을 잘하지는 않지만 계속 공부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자신의 학습 단계에 맞는 수업을 받게 하면 될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 학생들은 수학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실력을 향상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수학을 예로 들었지만 이것은 영어, 국어, 사회, 과학, 제2외국어 등 다른 과목에도 해당하는 얘기다. 그런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 지금의 우리 학교에서는 어렵다. 하지만 그 자체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선진국 학교에서는 웬만큼 다 하고 있는 일이다. 우리도 선진국처럼 할 수 있을까? 대선후보들이 공약을 내놓았다.

‘고등학교의 고교학점제’(문재인), ‘학점이수제도’(안철수), ‘수강신청제와 무학년제’(유승민), ‘선택과목 중심의 무학년제’(심상정).

위의 공약은 모두 동일한 것이다. 공교육을 망치는 적폐 중의 적폐인 현 학교내신제도와 그것에 바탕을 둔 획일적 교육과정을 완전히 개혁하는 공약이다. 이 공약은 수포자가 수학을, 영포자가 영어를 버릴 수 있게 하는 공약이다. 아니 수포자와 영포자를 아예 없애 버리는 공약이다. 이 공약이 제대로 실행되면 학생들은 더 이상 포기자가 아니다. 이제부터는 무엇을 포기하는 자가 아니라 더 좋은 선택을 위해 그것을 버리는 자이다. 얼마나 좋은, 아니 얼마나 위대한 공약인가? 이 위대한 공약을 무려 4명의 대선후보가 동시에 내놓았다.

대학입시가 존재하는 한 불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수능 위주 대입전형을 보라. 모든 대학이 수학, 영어, 국어 성적을 전부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대학은 오히려 소수다. 대선후보들의 위대한 공약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물은 대학입시가 아니다. 우리의 의지 부족일 뿐이다. 선진국이라고 대학입시가 없는 게 아니다. 그들 나름의 대학입시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꿈꾸는 것을 이미 시행하고 있다.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기정 | 서울 미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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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주자들이 교육정책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권력을 추구하는 존재가 그 사용법을 사전에 알리는 것이 공약이라면, 교육 분야 역시 밑그림 제시는 당연하다. 그런데 교육정책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부족해 부작용이 우려된다.

첫째, 입시제도의 퇴행적 변화이다. 학생부 종합전형 등 수시전형의 전면 개선과 비중 축소, 정시전형 확대정책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는 현장의 불만을 반영한 것으로 보이나 한계는 명확하다. 많은 국민들이 객관식 평가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수시전형이 복잡한 데다 평가의 공정성 시비가 있다는 데 기인한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고 획일적인 서열화를 조장하는 객관식 평가로 퇴행할 수는 없다. 최근 조사에서도 밝혀진 것처럼 서울 지역 주요 사립대학 수시전형 합격생들은 평균 학점이 높고 학업 중단 비율도 낮았으며 지역 차이도 작았다. 수시는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하고 인성과 개성 등 학생의 잠재력을 평가할 수 있는 전형이자 대학과 고교가 동시에 만족하는 합리적인 입시제도이다. 객관식 평가가 공정하다는 환상은 깨진 지 오래다. 정시전형을 확대하면 서울대 등 명문대 합격생의 특정 고교나 지역 쏠림 현상은 훨씬 심해질 것이다. 평가의 공정성 역시 수시가 낮다고 보기 어렵다. 수시에서 중요한 학교생활의 성실성이나 가치관, 개성, 표현력, 사회적 리더십은 인간의 포괄적 가치와 잠재력을 진단하는 지표인 데 반해, 객관식 문항은 채점만 객관적일 뿐 이해력과 사고력 중심의 부분적인 평가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다. 객관식 문제를 푸는 과정은 공정해 보이나, 문제 하나를 푸는 데 들어가는 비용의 격차로 인해 엄청난 결과적 불평등이 현실화될 것이다. 수시전형의 복잡성 문제는 개선 중이며 다양성에 기초한 인재 선발을 위해 불가피한 면이 있는 만큼 전형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로 극복할 수 있다.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가 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교육관련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둘째, 특목고와 자사고 폐지 등 자극적인 정책의 남용이다. 외고 등 특목고가 목표를 상실한 채 입시학원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은 의미가 있으나 이들은 상당 기간 공동체 내에서 학생 교육을 담당한 교육주체이다. 해당 학교의 기여도나 재학생들의 높은 만족도를 고려하지 않은 채 형평성에 위반된다는 이유만으로 강제 폐지를 시도한다면 엄청난 반발에 직면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만 지출할 것이다. 자사고의 경우 인기가 하락해 현행법상으로도 상당수가 일반고로 전환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인위적인 자극보다 시장 원리에 맡기는 편이 낫다. 외고의 경우 설립 목적에 맞는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방향의 개선이 필요하겠으나, 결과적으로 해당 학교 졸업생이 명문대에 몰린다고 대안 없이 폐지를 시도한다면 우수 인재를 교육할 방법은 더욱 줄어든다. 특목고 폐지보다 인문계고나 마이스터고 교육의 질 향상이 훨씬 중요한 과제이다. 높은 비용을 치르면서 특목고를 선택하는 이유는 지불 비용에 상응한 교육 수준에 대한 기대이며 이를 동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도 충족할 수 있다면 합리적인 대체가 일어날 것이다. 실업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쥔 마이스터고에 대한 투자를 향상시켜 취업과 창업의 기지로 만들어 대학 입학에 대한 맹목적인 선호도를 줄이는 것 또한 근본적인 접근법이 될 것이다. 보편교육의 질 향상을 고민하고 이를 위한 재원 마련을 정밀하게 계획하지 않은 상태에서 ‘폐지’라는 자극적인 용어를 남발한다면, 이후 불어닥칠 갈등과 분열은 모두 정부의 부담으로 남게 된다.

정주현 | 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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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씨와 그의 딸 정유라씨의 교육농단 사태는 대학 체육특기자 제도가 부정입학의 창구로 악용돼 왔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최씨 조카 장시호씨도 연세대에 승마특기생으로 입학한 이후 학사경고를 3번 받고도 제적당하지 않고 졸업해 체육특기생 학사관리가 얼마나 부실한지 드러난 바 있다. 한마디로 대학은 체육특기생 학사관리를 방치하고, 모든 학생들에게 공정하게 적용돼야 할 학칙을 한낱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던 셈이다.

교육부가 29일 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한국체대 등 전국 17개 대학의 체육특기생 학사관리 실태를 조사해 내놓은 결과를 보면 말문이 막힐 정도로 엉망이다. 체육특기생에 대한 제대로 된 학사관리는 전무하다시피 했고, 학사부정 행위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출처: 경향신문DB)

교육부 조사결과에 따르면 학사경고를 3회 이상 받고도 ‘총장 결재’ ‘학생 이익 우선적용’ 등을 이유로 제적을 당하지 않은 체육특기생이 4개 대학 394명에 달했다. 5개 대학은 군 입대와 대회 출전 등으로 시험을 치르지 않은 체육특기생에게 대리 시험과 대리 과제 제출을 통해 학점을 인정해줬다. 9개 대학은 체육특기생이 프로구단에 입단해 수업과 시험에 참여하지 못했는데도 출석과 학점 취득을 인정했다. 일부 체육특기생들은 병원 진료 기간과 입원일수를 고쳐 수업에 빠지고도 학점을 따냈다. 6개 대학에서는 체육특기생이 장기간 입원을 했거나 재활치료로 수업에 참여하지 못했는데도 학점을 줬다.

교육부는 학사관리를 제대로 못한 대학에는 행정조치하고, 대리 시험을 치르거나 병원 진료기록을 위조한 혐의가 있는 학생에 대해서는 징계·학점취소는 물론 형사고발을 검토키로 했다. 하지만 이런 조치로는 무너진 대학 교육의 공정성과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일이 터지고 나서야 허둥대는 ‘뒷북 행정’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체육특기자 제도를 근본적으로 손봐야 한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학력수준과 출석률이 일정 기준에 미달하면 졸업할 수 없도록 하고, 체육특기자의 학사관리를 전담하는 기구를 둬야 할 것이다. 또 체육특기자 입시 제도의 전면적인 개편과 더불어 대회 성적이 지상 목표인 엘리트 체육 교육 시스템의 폐해도 바로잡아야 한다. 대학은 ‘학업은 뒷전이고 운동만 잘하는 체육특기생’이 아닌 ‘공부하는 체육특기생’을 육성하는 교육기관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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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부종합전형(학종)은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까? 지금 모습으로선 오래 못 갈 것만 같다. 약점이 너무 많다. 그래도 사라진다면 미련이 클 것 같다. 왜?

예전에 수업준비를 하다가 답답한 마음에 페이스북에 이런 하소연을 올린 적이 있다. “EBS 수능특강, 문제풀이 책이라 재미가 없을 수밖에 없긴 하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수업 준비하는 동안 육두문자를 수십 번 내뱉을 뻔했다. 내가 이렇게 죽도록 재미가 없는데, 도대체 애들은 어쩌란 말이냐!”

EBS 교재가 아니더라도 문제풀이 수업이 재미있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교과서를 분석하고 해설하는 수업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변화를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하지만 학종으로 인한 변화는 좀 다르다.

지난해 나는 고3 수업을 했다. 여전히 문제풀이에서 벗어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것만 할 수는 없었다. 문제풀이 수업만으로는 학생부의 교과세부능력 특기사항을 풍부하게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학종을 위한 새로운 수업을 해야만 했다. 대단한 수업을 했던 것은 아니다. 나 자신이 교과서 해설과 문제풀이 위주의 수업에 찌든 사람이라 대단히 창의적인 수업을 할 능력이 없었다. 학생들에게 책을 읽게 한 후 감상을 발표하게 하는 단순한 수업에 불과했다. 모든 게 어설펐다.

어설픈 것치곤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참여도가 생각보다 높았다. 살짝 섭섭한 마음마저 들었다. ‘아 이놈들이 나의 설명보다 친구들의 발표를 훨씬 더 재미있게 듣는구나!’ 학생부에 기록하기 위해 나도 경청했다. 무엇보다 학생 한명 한명의 생각과 개성을 잘 알게 되어 좋았다. 나 혼자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수업에서는 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세상에 고3 교실에서 이런 수업을 할 수 있다니! 묘한 흥분을 느꼈다. 그동안 선각자적으로 수업의 변화를 꾀한 교사들이 왜 학종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는지 절실하게 이해됐다.

내친김에 여름방학 보충수업에서도 새로운 수업을 시도했다. 고3 보충수업임에도 불구하고 문제풀이에서 완전히 벗어난 수업을 시도했다. 그 사실을 미리 학생들에게 분명히 알렸다. 그런데도 학생들이 제법 신청을 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우리 학교의 특수성도 작용했겠지만 아무래도 학종이 만들어낸 분위기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한다. 그 수업은 내가 해본 시(詩) 수업 중 제일 재미난 수업이었다. 무엇보다 내 평생 수업준비에 그렇게 많은 시간과 정성을 기울인 적이 없었다. 억지로 그런 게 아니라 하다 보니까 재미있어서 그렇게 됐다. 지금도 생각만 하면 흐뭇한 수업 중의 일화가 있다. 한 학생이 이대흠 시인의 ‘아름다운 위반’을 낭송하고 감상을 말하다가 그만 울컥해서 눈물을 흘린 일이다. 예전 수업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물론 이러한 경험을 근거로 학종으로 인한 변화의 가능성을 과장해서는 곤란하다. 학종의 한계는 뚜렷하다. 무엇보다 학종을 떠받치는 중요한 토대인 현재의 학교내신제도는 수업의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수업에 미치는 학종의 긍정적 힘을 무시하는 것은 소중한 것을 놓치는 일이다. 입시로서의 학종은 약점이 많다. 그러나 학종이 사라지더라도 학종이 만들어낸 긍정적 변화의 가능성만은 어떻게든 살려 나갔으면 좋겠다. 그런데 학종이 아니고서 그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이기정 | 서울 미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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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기업을 오가며 이론과 현장 실무를 배우는 산학일체형 도제학교 학생들에 대한 노동인권 침해 실태가 심각한 수준이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지도 않은 고교생을 상대로 노동인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이 26일 공개한 ‘산학일체형 도제학교의 노동인권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그동안 도제학교 학생들의 직업훈련 사업장이 관리·감독 없는 노동인권 사각지대로 방치돼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착취에 가까운 열악한 노동환경과 인권유린, ‘열정페이’ 강요 등으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특성화고교의 실습현장과 다를 바 없다. 도제학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4년 스위스 베른 상공업직업학교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독일·스위스의 도제교육 시스템을 한국 현실에 맞게 바꾼 것으로, 서울 26개 고교를 포함한 전국 198개 고교가 운영 중이다. 특성화고 학생은 3학년 2학기에 기업체 현장실습을 하지만 도제학교 학생은 2학년 1학기부터 직업훈련을 받는다.

‘LG유플러스 현장실습생 사망 대책회의’ 회원들이 13일 서울 구로동 LB휴넷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홍양에게 추모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강윤중 기자

서울시교육청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도제학교 학생들은 직업훈련 사업장에서 최저임금 수준의 교육훈련비(시급 6030~6500원 미만)를 받고 있다. ‘직업훈련’이란 명분 아래 저임금을 받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직업훈련 사업장의 재해 비율은 전체 노동자 산재 비율보다 20배 높지만 적절한 안전장비조차 지급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직업훈련 사업장 직원들이 학생들에게 욕설을 하거나 무시하는 언행을 하고, 청소나 풀 뽑기 등 가욋일 위주로 업무 지시를 내린 사례도 허다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생들은 직원들의 통제·감시를 받고, TV나 인터넷 공유기가 없어 휴식과 사적 활동이 보장되지 않았다. 법·제도의 미비로 도제학교 2학년 학생들의 주당 노동시간은 특성화고교 3학년 현장실습생보다 최대 6시간이나 길다. 특성화고교 실습생들의 노동시간은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을 적용받아 주당 35시간·최대 40시간이지만 도제학교 학생들은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아 주당 40시간·최대 46시간이다.

도제학교 주무부처인 교육부와 고용노동부는 직업훈련 사업장의 법 준수 여부와 인권 침해 실태를 철저하게 점검한 뒤 근본적인 개선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직업훈련 사업장의 노동인권 침해 행위를 근절하지 못한다면 도제학교와 특성화고교의 현장실습제도를 아예 폐지하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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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EBS 수능 연계 정책이 시행된 2004년부터 현재까지 거의 매년 성과 분석과 개선 방안 연구를 수행해왔다. 2016년 9월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고교생과 학부모 1만39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대부분의 고교생들이 EBS 수능 강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다. 특히 수능을 앞둔 고3의 96.5%가, 최상위권 학생 90.3%가 이용하고 있었다. 둘째, 사교육비가 크게 억제됐다. EBS 수능 강의를 시청하는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주당 사교육 시간이 적었고, 월평균 사교육비도 낮았다. 셋째, 교육격차 해소에 큰 도움이 됐다. EBS 수능 강의를 이용하는 학생들은 수능 연계 정책보다는 경제적 부담이 없어서 수강한다는 응답이 많았다. 특히 읍·면지역 학생들이 타 지역 학생보다 회원 1인당 이용률과 수강률이 높게 나타났다. 넷째, 학생들의 학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EBS 수능 강의를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이전과 이후를 비교한 결과,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와 자기주도 학습능력 등이 유의미하게 향상된 것으로 분석됐다.

그런데도 통계청 조사를 보면 사교육비가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EBS 강의를 열심히 수강하고 있는 학생들은 애초부터 사교육을 하지 않았던 읍·면지역 또는 저소득층 자녀가 대부분이다. 이들의 사교육비는 처음부터 없거나 많지 않았기 때문에 EBS 강의를 수강한다고 해서 사교육비가 줄어들기는 어렵다.

이제부터라도 EBS 수능 연계 정책은 교육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학급당 학생수가 30명이 넘는 일반고 현황을 고려할 때, 교사 혼자서 학생들의 수준과 적성을 고려하여 개별화된 수업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많은 학생들이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현재의 교육환경에서 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읍·면지역의 학생이나 저소득층 자녀들이 수능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은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이나 다름없다. 앞서 언급한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분석한 EBS 수능 강의의 교육 형평성 제고 효과는 연간 5800억원이 넘었다.

최근 ‘일부 학교에서 고3 학생들에게 교과서 대신 EBS 수능 강의 교재를 중심으로 수업을 하고 있어 공교육 정상화에 걸림돌이 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는 원인과 결과를 잘못 해석한 것이다. 애초에 EBS 수능 연계 정책은 사교육 과열을 막기 위한 ‘해열제’로 투여됐다. 그러나 그동안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근본적인 치료는 하지 않고, 이제 와서 해열제로 투입된 EBS 수능 강의가 잘못되었다고 트집을 잡고 있다. EBS 수능 연계 정책이 시행되기 이전에도 고3 교실에서는 교과서보다는 민간 출판사 문제집을 활용했다. 다만 지금은 값비싼 민간 출판사 문제집이 저렴한 EBS 수능 교재로 대체된 것뿐이다. 연계 정책이 처음 시행되었던 시기나 지금이나 사교육 과열은 그대로인데 해열제를 갑자기 끊어버리면, 소외계층 학생들만 피해를 보게 된다.

지금부터라도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고,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위해 보조 교사를 배치하는 등 공교육 정상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이런 제도 개선 없이 EBS 수능 연계 정책을 폐지한다면 소외계층 학생들에게서 우수한 수능 강의 수강 기회를 뺏는 것이다. 이는 교육 불평등을 초래하는 비교육적인 행위다.

정영식 | 전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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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크게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자전거 브랜드가 ‘슈윈(Schwinn)’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 브랜드는 코카콜라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았다. 그런데 1970년대 후반이 되면서 갑작스럽게 산악자전거 수요가 폭발했다. 이때 슈윈은 변화를 거부했다. 그러나 당시 산악자전거의 유행은 일시적인 소비자 선호의 변화가 아닌 사회·경제적 변화였다. ‘좋은 자전거’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했던 슈윈은 몰락했고 결국 1993년에 파산했다.

이렇듯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른 기업들의 변신은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능력이다. 우리나라 사교육계도 입시교육이라는 콘텐츠 상품으로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하고 있으니 변신의 귀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지난 수십 년 동안 사교육계는 일상적인 변화는 물론이고 IT 기술의 발 빠른 도입 등으로 엄청난 혁신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과거 같으면 사교육계는 발 빠르게 공교육의 변화에 앞서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곤 했는데 요즘은 변화를 앞서 가기는커녕 학교의 변화에 발맞춰 가는 것도 허덕이는 모양새다. 대학입시가 수시 확대와 학생부전형으로 방향을 잡고 영어와 한국사 과목이 절대평가로 바뀌면서 학원가는 폐업이나 과목 변경, 컨설팅 학원으로 변신하는 등 우왕좌왕하고 있다. 심지어 ‘과외 재벌’이라던 명문대 학생들의 과외 자리조차 크게 줄어들어 편의점 알바를 전전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동안 대입 사교육업체들이 갖고 있던 경쟁력의 기반은 수능시험이었지만 이제는 학생부전형이 대세가 되면서 대응 방법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 학생부전형의 가장 중요한 자료가 학교 선생님들이 관리하는 학교생활기록부이기 때문에 학교 밖의 사교육 선생님들이 입시에서 할 수 있는 영역이 크게 축소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일부 컨설팅에서 만든 내용들이 제시되기도 하지만 그것을 기재하는지 여부는 어차피 학교 선생님들의 권한이 아닌가? 대학입시 과정의 상당 부분이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손으로 넘어갔다는 것이 지금 사교육이 겪고 있는 전대미문 위기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학원이나 대형 사교육기관들에서 수시로 개최하는 입시설명회나 학부모 설명회에서는 아직도 ‘수능이 가장 공정하다’ ‘깜깜이 전형인 학생부종합전형은 불공정하다’ ‘수능으로 대박’이라는 설명이 넘쳐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프랜차이즈화된 대형 사교육기업들은 수능과 같은 대규모 평가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수시 전형이 확대되면서 학교단위의 내신 성적이 더욱 중요해진 요즘은 지역단위의 소규모 학원들이 입시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에 더 적당해 보인다. 특히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소규모 학원들과의 경쟁 정도라면 일선 학교에서도 충분히 감당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요즘 들어 서울이나 경기도 등 지역에서는 고등학교의 보충수업이나 야간자율학습이 ‘강력한 자율’로 바뀌면서 상당수 학교에서 밤공부가 사라지고 있다. 이제는 이런 ‘자율적 규제’는 좀 풀어주면 좋겠다. 교육의 변화는 학교가 주도하는 것이 맞다. 아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학교나 선생님들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이 학교의 건강한 변신을 믿고 지원해 주는 것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싶다.

한왕근 | 교육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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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기회사들은 1948년 거의 모든 일간지에 ‘전기 이용이 가능한 농가가 전체 농가의 4분의 3을 넘어섰다’는 내용의 광고를 게재했다. 농가에서도 전기를 충분하게 쓸 수 있게 됐다는 것을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전기회사들의 신문 광고에는 ‘통계의 술수’가 깔려 있었다. 그 술수는 ‘이용 가능한’이란 단어에 숨겨져 있다. 전기회사들은 농가에서 10㎞가량 떨어진 곳에서도 전선이 지나가기만 하면 전기를 끌어 쓸 수 있어 농가의 전기보급률이 75%까지  높아졌다고 홍보하려 했던 것이다. 엄밀하게 따지면 ‘통계 조작’이었던 셈이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2013년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며 3개월간 파업을 벌였다. 회사 측은 “노조의 파업으로 8만3000여대의 차량생산에 차질이 빚어져 1조7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회사 측은 어떤 기준으로 파업손실 통계를 작성했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통계의 기본조차 갖추지 않은 주장이었지만 선전전에는 상당히 유효했다.

출처: 경향신문DB

통계는 진실을 밝히기도 하지만 ‘거짓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미국 통계학자 대럴 허프는 “여성들이 약간의 화장으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는 것처럼 통계는 사실을 거짓으로 꾸미는 ‘마법’을 지녔다”고 했다. 

교육부가 그제 발표한 ‘2016년 초·중·고교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교육부는 지난해 학생 1인당 평균 사교육비는 25만6000원으로 10년 새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육부는 사교육비 지출액을 낮추기 위해 사교육을 받지 않는 학생까지 포함시켜 통계를 작성했다. 실제 사교육을 받는 학생만을 대상으로 하면 1인당 사교육비는 37만8000원으로 올라간다. 교육부는 또 EBS 교재 구입비와 방과후학교 비용, 어학연수비 등을 제외해 실제 가정에서 부담하는 사교육비 실태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영국 총리를 지낸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거짓말에는 세 종류가 있다. 그럴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고 했다. 특히 통계는 숫자에 약한 사람을 잘 속인다. 그러나 숫자에 약하다고 주눅들 필요 없다. 숫자가 모두 진실은 아니기 때문이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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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은 입학과 개학의 계절이다. 신규 교사는 물론 경력이 꽤 되는 중견교사조차 새 학년, 새 학급을 만나기 전에 꽤 많은 설렘을 느낀다. 경력이 아무리 오래되었어도 첫 만남은 언제나 신선하고 아름답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이런 첫 만남을 퇴색시키는 괴이한 격언이 있다. “애들은 3월 한달 동안 잘 잡아야 1년이 편하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이 말은 내가 젊은 시절 선배교사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기도 하다. 심지어 “3월 한 달 동안 가능하면 웃지도 말라”고 충고하는 분도 있었다.

의미는 뻔하다. 학생들이 아직 교사의 본색을 파악하기 전에 이른바 ‘군기’를 잡아 놓아야지, 일단 한번 기어오르고 나면 다시 잡기 어렵다는 말이다. 어디 학교뿐일까? 이 ‘3월에 꽉 잡자’주의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버전으로 변형되어 널리 퍼져있다. 대학생들은 갓 입학한 신입생들을 따뜻하게 환대해 주는 대신 온갖 짓궂은 신고식으로 후배들을 괴롭힌다. 직장에서도 ‘사수’ ‘부사수’라고 하면서 신입 사원들을 거의 얼차려에 가까울 정도로 ‘갈군’다.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환경에 들어서면 긴장한다. 수업 첫날을 맞이하는 학생들, 출근 첫날을 맞이하는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잔뜩 긴장한 채 새로 만나는 선생님, 직장 선배, 상사를 마주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엄격하고 무리한 요구를 받아도 옳고 그름을 따져볼 여유없이 일단 복종한다. 이게 소위 말하는 군기가 잡히는 것이다.  이런 상태로는 학습도 업무도 할 수 없다.

서로 누군지도 모르고 마음도 열지 않은 상태에서 다짜고짜 엄하게 내리는 지시, 꾸지람, 벌은 교육이 아니라 폭력이다. 폭력적인 분위기에서 성장기를 보낸 사람은 그 자신도 폭력적이 되기 쉽다는 것이 교육학의 정설이다. 그런 학창시절을 보낸 학생들이 어른이 되어서 사회 곳곳에서 신입들을 상대로 초반에 군기를 잡겠다며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3월에 꽉 잡는 교실에서 헬조선의 씨앗이 잉태되고 있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후배 그리고 동료 교사들에게 “1년 내내 눈 부라리고 꽉 잡고 있을 생각이 아니라면 3월에 꽉 잡지 말라”고 제안하고 싶다. 3월은 군기를 잡는 기간이 아니라 처음 만나는 교사와 학생이 서로의 불안을 달래어주는 시기다. 그중 더 불안한 쪽은 학생이다. 그 불안을 이용하여 공포에 빠뜨리는 대신 안심시켜주고, 교사를 믿고 사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기간이 3월이 되어야 한다.

물론 교사가 늘 다정할 이유는 없다. 그래서도 안된다. 때로 엄히 꾸짖기도 해야 하고, 잘못한 일에 대해 따끔하게 벌도 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선 학생들을 다정하게 맞이하고, 불안을 풀어주고, 사랑과 공감을 조성하는 것이 먼저다. 사랑과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관계가 이루어져야 꾸지람을 하고 벌을 주더라도 학생들이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행동을 고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진정한 교육이다. 이렇게 사랑과 엄격함이 함께하는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어른이 되어 상사나 선배가 되었을 때 신입이나 후배들에게도 역시 그렇게 할 것이다. 이렇게 신입들에게 다정하면서도 엄격한 선배나 상사가 하나둘 늘어날 때 불친절하고 차갑고 가혹한 갑질의 사회가 따뜻하게 바뀔 것이다. 의외로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이 사회를 바꾸는 열쇠일 수도 있다. 그 실천을 한마디로 정리해 본다. “3월에 꽉 잡지 말자.”

권재원 |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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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생활기록부를 마감하는 2월이면 학생들은 빈곤한 독서 기록을 채울 문제를 고민한다. 방학 기간 몇 권이라도 읽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교과 학습에 여러 활동, 학원 일정 등을 소화하다 보면 책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상당수 학생들은 인터넷을 뒤지거나 몇 페이지 훑은 뒤 감상을 급조한다. 문제는 성실하게 읽는 학생들에게도 나타난다. 책을 읽어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 얼마 전 학생들에게 ‘고등학교에 들어온 이후 현실 문제를 이해하는 길을 일러준 책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대다수 학생들이 ‘없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다섯 학기 동안 독서 기록을 한 학생들이 세계관이 바뀐 책 하나를 읽지 못한 셈이다. “눈으로 훑은 거죠.” 한 학생의 푸념이었다.

학문 수양에서 독서는 현실 문제를 진단하는 데 필요한 과학적 사고를 함양하는 과정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산업화에 소외된 약자의 고통을 이해하면 한국사회의 양극화 문제의 심각성을 간접적으로 체화하게 된다. <이기적 유전자>를 읽으면 자기보존과 생식에만 골몰하는 이기적인 생명체가 더 큰 이익을 위해 이타성을 발휘하는 황홀한 지적 쾌감에 이른다. 이를 통해 독자는 자율적 공동체라는 인류의 이상에 다가갈 단서를 얻는다. 즉, 좋은 책을 읽어 가치를 내면화한다면 학생들은 진리탐구에 필요한 기본적인 능력을 향상할 뿐 아니라 가치관을 정립해 도덕적 수행능력도 강화할 수 있다. 책 읽기는 양보다 질이다. 정밀하게 읽고, 쟁점을 정리한 후 토론이나 의견 교환을 통해 판단한 다음 글을 쓰는 작업으로 마무리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책을 읽는 방법도, 이를 바탕으로 의견을 교환하는 방식도 체계화되어 있지 않다. 추천도서 목록이나 서평샘플 등이 학생들이 가진 자료의 전부이다. 책 하나를 모여서 읽고 장시간 토론하거나, 교사의 지도하에 서평을 작성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학생들은 객체로 전락한 책만 손에 쥔 채 끙끙 앓게 된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대다수 학생들이 읽다 만 책이 되어버렸다. 저자가 제시한 쟁점들을 혼자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책 읽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지적 관심에 기초한 도서 선정에서 독해 방법, 텍스트에 근거한 토론, 현실인식과 대안을 포괄한 글쓰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수행함으로써 스스로 문제를 설정하고 이를 해결하는 힘을 기르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책 몇 권 추천한 뒤 알아서 읽으라는 무책임한 자세에서 벗어나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맹목적인 자기계발서 등 악서의 남독을 막는 것도 책을 눈으로만 읽는다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가능하다.

그 다음주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는 작품 일부를 낭독하고 서평 작성방법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에 맞서 전장으로 뛰어든 러시아 여성의 공포와 슬픔, 전우애, 자긍심, 그리고 고독을 짚어나갔다. 책이 인간과 환경을 둘러싼 현실을 인식시킨다는 점을 이해시키고 싶었다. 수업이 끝난 뒤 상기된 표정으로 전문을 읽겠다며 저자와 제목을 재확인한 학생도 있었다. 책은 눈으로만 읽어서는 안된다. 내 모든 감각을 동원해 이해하고 타인의 육성을 통해 울림을 얻은 뒤, 자기 견해와 만난 지점에서 치열하게 싸워나간 흔적을 기록해야 종이 위에 찍힌 잉크가 영혼으로 흘러든다. 이렇게 읽은 책은 마음의 양식이 되어 평생 그 사람을 지탱해줄 것이다.

정주현 | 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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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종착역에 이르렀다. 이를 가능하게 한 힘의 원천은 국민 수백만명이 만들어낸 거대한 촛불이다. 촛불혁명은 4월혁명 이후 군사쿠데타 주모자들이 진행한 이승만 정권에 대한 처리와 6월항쟁 이후 야당이 주도한 5공청산을 잇는 대사건임에 틀림없다.

특히 과거의 죽은 권력에 대한 심판과 달리 지금은 국정농단을 저지른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국민 심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국정농단을 보면서 국가란 무엇이며 정부는 중립적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군사정권이 조작한 간첩단 사건들, 납북어민을 간첩으로 몰아간 정부, 아직도 묻혀 있는 군 의문사 사건들, 수십년간 계속되는 사학비리, 최근의 세월호 대참사에 이르기까지 국가가 국민의 편이 아니고 정부가 선한 의지를 가진 중립적인 기구가 아니라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이 모든 사례를 모으면 정부는 난지도의 거대한 쓰레기장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준식 교육부 장관(왼쪽)이 21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대학은 진리의 배움터이고 우리나라 대학의 85%는 사학이다. 여기서 비리가 발생하면 구제받을 길이 없는데 우리나라는 사학의 천국이자 또한 사학비리의 천국이다. 사학비리가 만연하고 전염병처럼 창궐하는 것도 문제지만 정부가 앞장서서 사학비리를 비호하고 저지른 죄까지 사해주니 이만한 지상천국이 따로 없다. 이 엄청난 일을 담당하는 정부 기구가 교육부이고 사학분쟁조정위원회라면 과연 믿을 수 있을까?

2007년 사립학교법 개악으로 발족한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지난 9년간 60개 학교를 정상화했다. 여기서 정상화란 쫓겨난 비리재단에 학교를 다시 돌려준다는 매우 나쁜 말이다. 더구나 그 정상화의 대부분이 불법이었음이 상지대 대법원 판결로 드러났다.

교육부와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비리재단에 학교를 돌려주어 분규를 재연하고 사학을 망치는 것도 부족해서 공공연하게 불법을 저질렀다는 것이니 도둑놈에게 곳간을 맡긴 꼴이다.

그런데도 불법 행위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커녕 덮기에 급급하다. 상지대가 교육부와 6년간 소송한 끝에 김문기 비리재단을 몰아냈는데 파견된 임시이사는 교육부의 대리인에 불과하고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또 상지대를 정상화하겠다고 달려든다. 이들이 금과옥조로 삼는 비리재단 복귀 공식에 따르면 상지대를 또 김문기에게 돌려주겠다는 것인데, 정부가 이렇게 막나가도 되나? 도둑놈 잡아달라고 경찰을 불렀더니 경찰이 도둑놈과 한통속인 격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아래서 교육부와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사학 정상화라는 미명하에 사학비리를 부추겨 사학을 회복불능의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이들의 눈에 사학은 교육기관이 아니라 건물과 토지와 등록금을 납부하는 학생들로 구성된 알짜배기 수익사업체이자 이사장의 신성한 사유재산일 뿐이다. 여기서 어떤 교육이 가능하고 어떤 창조가 가능하겠는가? 창조경제는 돈 빼먹기, 창조교육은 사학 죽이기에 다름 아니었다.

국정농단을 계기로 나라를 바로 세우려면 먼저 교육부에 대한 대수술이 불가피하다. 사학비리, 이화여대 사태, 대학평가 세 가지만 봐도 교육부가 수명을 다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육부의 수명을 연장하는 미봉책이 아니라 국민 합의제 기구인 국가교육위원회로 전환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다. 정부개편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나 방송통신위원회와 같은 합의기구가 발족한 이유를 참고하면 된다.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당연 폐지 대상이다.

따라서 지금 해야 할 일은 교육부와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불법을 은폐하기 위한 기만적인 상지대 정상화가 아니라 교육을 좀먹고 나라를 망치는 교육부와 사학분쟁조정위원회를 시급하게 정상화하는 것이다. 교육부는 정부 기구로서 시효 만료되었고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기구이므로 교육부 해체와 사학분쟁조정위원회 폐지가 답이다. 상지대 정상화는 그 다음에 추진해도 늦지 않다.

정대화 | 상지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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