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부터 주 52시간 노동제가 시행됐다. 지난 2월 말 개정한 근로기준법에 따라 300인 이상 기업과 공공기관의 주당 최대 노동시간은 52시간으로 제한된다. 노동시간 단축은 2004년 도입한 주 5일제 못지않게 노동자들의 삶과 직장 문화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대기업들은 선택적 근로시간제 등을 도입하며 주 52시간 노동제에 그나마 적응해가고 있는 상황이다. 고용노동부가 300인 이상 3627개 사업장을 전수조사한 결과 59%가 주 52시간 노동제를 이미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견기업들은 아직까지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세부 기준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현장에서 주 52시간 노동제가 안착되지 못한 것은 법 시행 직전에야 부랴부랴 ‘땜질식 대책’을 쏟아낸 정부의 준비 부족과 안이한 대처 탓이 크다. 주무부처인 노동부는 주 52시간 가이드라인을 시행 2주 전에 내놓은 데다 노동시간을 위반하는 사업주에 최장 6개월간 처벌을 피할 수 있는 시정기간을 주기로 했다. 게다가 특별연장근로 업종별 확대 방안과 유연근로제 매뉴얼을 지난달 26일에야 공개했다.

특히 최대쟁점으로 부각된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 기간(현재는 2주 또는 3개월)을 늘리는 문제를 놓고도 당정 간 이견이 노출돼 혼선을 빚고 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28일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로 늘리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김영주 노동부 장관은 “탄력근로제 활용 기업은 3.4%에 불과한 데다 단위기간을 6개월로 연장하면 노동시간 단축 의미가 없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노동부는 또 게임·IT 업계의 무제한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포괄임금제를 전면 금지하는 대신 오·남용을 규제하겠다고 밝혀 “노동시간 단축 취지에 어긋나는 조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노동자들도 주 52시간 노동제 시행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저녁이 있는 삶과 자기계발이 가능해졌다고 반기고 있지만 노동강도가 높아지거나 실질소득이 줄어들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도 큰 게 사실이다. 하지만 장시간 노동 관행을 깨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정부와 기업은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보완책 마련에 주력해야 한다. 노동자들도 주 52시간 노동제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하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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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인 근로기준법 시행이 3주 앞으로 다가왔다. 다음달 1일부터 노동자 300인 이상을 고용하는 기업이 근로기준법을 어기면 사업주가 형사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기업과 노동자들은 근로시간 단축에 관한 정부의 세부 시행지침이 없어 극심한 혼선을 빚고 있다. 기업들은 업종의 특수성과 인력 사정을 고려할 때 특정 업무 종사자들은 초과 근무가 불가피하다고 아우성이다. 일부 기업들은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인력 추가 고용에 따른 인건비 부담이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달 한국경제연구원이 372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 52시간 노동제를 시행할 준비가 완료됐다는 기업은 16.1%에 그쳤다.

노동자들도 혼란스러워하기는 마찬가지다. 업무 중 휴식시간이나 출장, 부서 회식, 거래처와의 술자리 등이 업무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지, 어디까지 노동시간으로 인정받아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기업과 노동자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데도 주무부처로서 뒷짐만 지고 있던 고용노동부는 다음주 ‘근로시간 단축 문답자료집(세부 시행지침)’ 1만5000여부를 사업체에 배포한다고 지난 6일 밝혔다.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게 지난 2월 말이다. 지금쯤이면 전국 단위 설명회를 마치고, 보완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도 4개월 가까이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가 근로기준법 시행을 2주일 앞두고 세부 시행지침을 만들어 배포하겠다는 것은 노동시간 단축 의지마저 의심케 하는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노동시간 단축이 제대로 시행돼야 노동자들의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하고, ‘세계 최장 노동시간 국가’라는 오명도 뗄 수 있다. 노동부는 지금이라도 주 52시간 노동제를 안착시킬 수 있는 치밀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시간 혁명’은 물 건너가고, 극심한 사회적 갈등만을 초래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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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담당 기자로 일하던 1995년 섬뜩한 제목을 단 책이 나왔다. 기획출판모임 현실문화연구가 펴낸 <회사가면 죽는다>였다. 당시엔 ‘제목 장사’를 하려는 출판사들이 적지 않아 의심부터 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제목을 그리 정한 연유가 짐작됐다. 치열한 경쟁사회의 전사(戰士)들인 직장인들의 체험담을 담아낸 책은 다른 제목을 달 여지가 없어 보이기도 했다. 당시 세계화의 열풍 속에 개인에게 강제된 ‘경쟁력 강화’와 적자생존의 논리인 ‘자기 개발’이란 그물망에 걸려 있던 직장인들의 절박한 목소리가 활자로 빼곡하게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들의 직종은 다양했다. 하지만 회사라는 ‘공룡’에 깔려 죽지 않으려는 ‘개미’들이 겪는 애환은 다르지 않았다. 장시간 노동과 고용불안, 성차별 등에 시달렸던 필자들은 참을 수 없는 ‘을의 분노’를 가감없이 토해냈다. 개인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줄 잘 서기’ ‘상사 잘 모시기’ 등과 같은 업무 외적인 요소로 승진이나 발전 가능성을 가늠하는 회사의 어두운 이면도 들춰냈다. 당시 대부분의 기업들이 경영혁신이란 명목으로 앞다퉈 도입했던 ‘리엔지니어링’ ‘조직 슬림화’ 등이 직장인들을 옥죄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곤 한목소리를 냈다. “회사가면 죽는다.”

노동절인 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한국 사회 노동을 새로 쓰자’라는 주제로 민주노총이 주최한 ‘2018 세계노동절대회’에 참가한 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책이 나온 지 20년이 넘었다. 하지만 직장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한민국을 ‘분노사회’ ‘감정노동 사회’ ‘피로사회’ ‘부품사회’로 만든 진원지는 다름 아닌 직장이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고착화된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라는 허황된 논리는 직장 노동자를 기업주의 노예로, 갑질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노동자를 소모품으로 간주하는 기업들의 행태는 20여년 전과 데칼코마니처럼 겹쳐 있다. 그뿐 아니다. 나무에 가까스로 매달려 있는 마른 잎새와도 같은 노동자들을 떨궈내려는 ‘경제적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다.

출범 6개월을 맞은 노동시민단체 ‘직장갑질 119’가 최근 공개한 <갑질 사례집>에는 ‘노동 지옥’이나 다름없는 직장에서 일하는 ‘을들의 절규’가 담겨 있다. 21세기판 <회사가면 죽는다>라고 할 만하다. 사장과 식사할 때 턱받이를 해줘야 하고, 회장 별장에 있는 닭과 개 사료를 주라는 지시를 받아야 하고, 사장 아들 결혼식에 불려나가 안내와 서빙을 해야 하는 곳은 직장이라고 할 수 없다. 갑의 횡포가 만연한 인권침해 현장이다. 사고를 낸 버스기사들의 목에 사고 내용과 피해액을 적은 종이를 걸게 하고, 생리휴가를 신청한 사원에게 ‘생리대를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곳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경영진의 갑질 사례도 시즌제 드라마처럼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온다. 운전기사에게 폭언을 일삼은 제약회사 사장, 출입문을 닫았다고 경비원을 폭행한 피자업체 회장, 운전기사에게 ‘백미러를 접고 운전하라’는 지시를 내린 건설업체 부회장 등의 행태는 별난 개인의 예외적인 일탈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를 무릎 꿇려야 자신의 권위가 선다는 비뚤어진 특권의식에서 비롯된 인격살인 행위다. 그런 대기업 경영진이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노동력을 제공할 뿐이지 인격까지 파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턱이 없다.

‘직장갑질 119’는 “부패하고 불의한 정권을 퇴진시킨 민주주의의 촛불은 회사 앞에선 꺼져 있다”고 했다. 한 치도 틀리지 않는 적확한 진단이다. 그런 측면에서 대한항공 직원들이 조양호 한진그룹 일가의 퇴진을 요구하며 촛불을 든 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직장 내 민주화를 이루기 위한 ‘을들의 반란’이기도 하다. 대한항공 직원들이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주말마다 촛불집회를 여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갑질을 일삼고, 밀수·탈세 등 불법 행위를 저지른 총수 일가의 퇴진만을 위한 것은 아닐 터이다. ‘땅콩회항’ 사건의 피해자 박창진 사무장이 말한 대로 ‘사람이 먼저인 회사’에서 일하기 위해 분노를 용기로 바꿨고, 용기를 실존하는 힘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촛불집회 때면 외친다. “우리는 머슴이나 노예가 아니다” “썩은 곳이 있으면 도려내야 하고, 쓰레기통이 차면 버려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노동절 메시지에서 “노동이 제도 또는 힘 있는 사람들에 의해 홀대받고 모욕받지 않는 세상을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세상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나는 저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는 말처럼 갑의 횡포에 맞선 을의 연대와 저항이 있어야 가능하다. 노동존중 사회에선 ‘회사가면 죽는다’는 노동자들의 절규가 들리지 않는 법이다. 한국의 노동인권 시계는 아직도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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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비평 전문지 ‘미디어오늘’은 1일 인터넷판에 “아침신문, 128주년 노동절 기사 꽁꽁 숨었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노동절인 이날, 아침에 발행되는 전국 단위 종합일간지 중 1면에 노동절 관련 기사를 실은 곳은 경향신문뿐이라는 내용이다. 경향신문은 한국지엠 창원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절을 다룬 “똑같은 일 해도, 그들은 또 해고 1순위”라는 기사를 1면 머리에 올렸다. 이를 언급하는 것은 경향신문의 ‘노동 감수성’을 과시하려 함이 아니다. 1일자 조간신문들의 1면이 한국 노동의 슬픈 현실을 상징하는 듯해서다.

노동절인 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한국 사회 노동을 새로 쓰자’라는 주제로 민주노총이 주최한 ‘2018 세계노동절대회’에 참가한 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기남 기자

노동절인 1일, 실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들여다본다. 삼성의 노조 와해 혐의를 수사 중인 검찰은 삼성전자서비스 임원과 협력사 대표 등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들은 노조 와해 공작인 ‘그린화 작업’을 추진하고, 위장폐업 시나리오를 실행하는 등 노조 활동을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갑질’ 논란을 빚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는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에 출석했다.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음료를 뿌리고 유리컵을 던진 것으로 알려진 그는 폭행 및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처벌될 가능성이 크다.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는 지난해 11월 출범 후 제보받은 직장 내 갑질 가운데 최악의 사례 10가지를 추려 발표했다. 생리휴가를 내면 ‘생리대를 보여달라’ 하고, 전 직원 앞에서 자기 잘못을 말하게 하는 ‘자아비판 인민재판’을 열고, 청소노동자에게 자기 집 청소를 시킨 기막힌 사례들이 줄줄이 공개됐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세계 노동절대회’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노동이 차별받는 사회, 노동기본권이 짓밟히고 노동자가 쓰다 버리는 물건으로 취급받는 세상을 바로잡자”고 외쳤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절 메시지에서 “모든 성장은 노동자를 위한 성장이어야 한다”며 “노동의 가치와 존엄은 바로 우리 자신의 가치와 존엄”이라고 말했다. 노동자들의 절규, 대통령의 다짐이 이제 법과 제도로 구현돼야 한다. 몇 달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렵던 혁명적 변화가 한반도에서 시작되었듯이, 노동자의 슬픈 현실도 혁명적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동일가치노동에 대한 동일임금 지급, 장시간 노동 해소, 이주노동자 차별 철폐, 직장 내 성평등 실현 등 과제가 산적해 있다. 노사정 등 사회경제 주체들이 소명의식을 갖고 문제를 풀어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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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이 정규직의 70%에 육박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고용노동부가 25일 발표한 ‘2017년 6월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총액은 1만3053원으로, 정규직(1만8835원)의 69.3%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를 처음 시작한 2008년의 55.5%에 비하면 격차가 상당히 줄어든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에는 여전히 못 미친다. 임금 격차가 줄어든 것도 최저임금 인상 덕분이라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 모순이 응축된 비정규직 문제를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번 조사에서 파견·용역 등 가장 열악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은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용역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총액은 정규직 대비 55.7%에 불과했다. 사업체 규모별로도 큰 차이가 나 300인 이상 사업장 정규직 임금을 100%로 보았을 때 300인 미만 비정규직은 40.3%에 그쳤다. 이처럼 정규직은 물론 비정규직 간에도 균열적 임금 형태가 나타나는 것은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다. 비정규직 문제가 더욱 분화되고 복잡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불안정 고용과 열악한 근무환경에 시달리지만 문제의 핵심은 역시 정규직에 비해 낮은 임금이 초래하는 소득불평등 및 빈곤 심화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불평등은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불안을 조성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최근에는 부모세대가 비정규직이면 자녀도 비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비정규직 대물림 현상까지 발생하면서 사회양극화의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의 가장 큰 이유는 같은 노동환경이더라도 단지 고용형태에 따라 임금에 큰 차이가 나는 현실에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경력 등 노동조건이 같은 상황에서도 정규직에 비해 임금이 90%를 크게 밑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노동 정의에도 반하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의 차별 해소를 약속했다. 차별 해소의 최우선적 대상은 임금 격차를 줄이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 출범 1년이 다가오는 지금 과연 그 목표가 얼마나 달성됐는지, 좁혀질 전망이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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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동자 싸움의 현장에 갈 적마다 마치 온몸이 불붙는 화살처럼 소리소리 달려가곤 한다. 그러다가도 남몰래 흥얼대는 노래가 하나 있다. 얼마 앞서는 쌍용차 노동자 김득중이 “선생님, 이참엔 굶어죽는 싸움으로 결판을 내고야 말겠습니다”라며 돌아간 뒤에도 나는 남몰래 노래를 불렀다. 무슨 노래일까. ‘섬집아기’라는 애들 노래지만 거기에 얽힌 이야기는 이렇다.

내 나이 열여덟, 전쟁이 한창일 적 전선에서 돌아가신 형님의 유해라도 찾겠다며 부산에서 영등포로 가는 기차에 몰래 타긴 했는데 밀양인가부터 기차가 멎고는 가질 않는 거라. 몇 날을 굶어서 배는 고프지 눈보라는 치지 꽁꽁 얼붙던 그때 그 숨죽은 그 역 앞마당.

하지만 그 침묵을 깨는 게 있었다. 달걀장수 아줌마가 어린 애를 포대기에 싸서 눈더미 위에 올려놓고 가 그 어린 것이 우는 소리라. 하도 안타까워 뛰어내려 달래주고 있는데 그 달걀장수 아줌마가 고맙다며 달걀 하나를 주는 게 아닌가. 너무나 감격해 막 입에 넣으려고 하는데 그 어린 꼬마가 아 앙~, 나도 모르게 달걀을 뜯어주니 낼름, 또 주어도 또 낼름, 마침내 다 빼앗기고 나자 내 정신이 돌아오는데 아이구야 고리눈으로 돌아오는 게 아닌가. 그래서 고것이 예쁘기도 밉기도 한데 마침 꽥~ 그 어린 것이 우는데도 나는 기차를 타고 떠나왔지만 그때부터다. 내 마음엔 탈(병)이 하나 들고 말았다. ‘네 이놈 겉으로는 착한 척하면서 거짓부리지 마라 이놈’ 그런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던 어느 날이다. 아내가 부엌에서 흥얼거리는 노래가 들려왔다. “여보, 그 노래 괜찮은데 다시 한 번 불러 봐.” 그래서 익힌 노래가 바로 ‘섬집아기’. 이때부터다. 내 인품이 모자라다 싶을 적엔 늘 그 노래를 부르곤 하는데 문화활동가 신유아의 전화다. 콜트콜텍 노동자 싸움에 함께하시자고.

콜트콜텍 노조원 이인근, 김경봉, 임재춘씨(왼쪽부터)가 2017년 12월 26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옆 천막농성장 앞에 서 있다./정지윤기자 콜트·콜텍 해고노동자 이인근, 김경봉, 임재춘씨(왼쪽부터)가 서울 광화문 천막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부당해고에 맞서 이들의 싸움은 내년 1월12일이면 4000일이 된다. 국내 최장기 투쟁이다. 정지윤 기자

잘 아시겠지만 콜트콜텍의 자본가가 투자한 자본금은 오매 200만원. 하지만 노동자들이 피땀으로 일궈 몇 해 만에 재계 120위의 부자가 되었다. 아무튼 같이 살자고 노조가 이마를 맞대고 있는데 갑자기 회사를 통째로 인도와 중국으로 빼돌렸으니 그건 무엇일까.

첫째, 역사범죄다. 무슨 말이냐. 우리 인류는 지난 3000년 동안 경제의 참 알기(주체)는 자본이 아니라 노동이라는 걸 깨우쳤다. 그게 있기에 우리 인류는 영광에 빛나는 건데 콜트콜텍 사장은 그 깨우침을 주관적으로 깨트렸으니 그건 어절씨구 역사 알기(주체)의 말살범죄라, 요만큼도 용서해서는 안 된다.

둘째, 공장이란 물건만 만드는 데가 아니다. 노동자의 살티(목숨)의 텃밭이다. 그것을 강제 폐쇄했다는 것은 무엇일까. 노동자의 목숨을 공개적으로 죽인 만행일 뿐만 아니라 사람과 그 사회를 짓이긴 침략이라, 어찌해야 할까. 암, 민주정신으로 응징해야 한다.

셋째, 인류문명이란 무엇인가. 예술의 발전이다. 그것은 또 어디서 오는가. 아무렴 노동에서 온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 바로 콜트콜텍인데 그 공장을 죽이다니, 그것은 곧 인류문명인 예술을 죽이는 반문명이라, 누가 나서야 할까. 바로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나서 싸운 지가 어느덧 오늘로 4090일, 그것은 피눈물의 싸움이었지만 거대한 먹괭이(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듯 아직도 실마리가 보이질 않는다.

하지만 요만큼도 머뭇대선 안 된다. 이 싸움에서 밀리면 역사, 그 나아감의 심정적 패배라, 나 같은 사람은 그저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라는 노래로 나설 터지만 우리 시민들은 길이 없으면 길을 찾아가고 그래도 길이 없으면 길을 내자는 ‘아리아리’로 나서자. 이제는 세상을 바닥에서부터 발칵 뒤집는 노래 아리아리로 저 끔찍한 반생명과 맞붙는 싸움에서부터 이겨야 하나니, 벗이여 눈물겨운 벗이여.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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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오전 7시였다. 32일간 단식 끝에 쌍용차 해고자 김득중이 병원으로 실려갔다. 그는 2015년 8월에도 45일의 단식 끝에 병원으로 이송됐다. 쌍용차 정리해고 싸움 10년 동안 단식만 이번이 네 번째다. 그는 2016년 겨울엔 광화문 캠핑촌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봄이 올 무렵까지 텐트 생활을 했다. 우린 ‘촌민’으로 매일 만나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곤 했다.

쌍용차 싸움 10년 동안 스물아홉 명의 해고자와 그 가족들이 죽어갔다. 어떤 이는 목을 맸고, 어떤 이는 탄불을 피웠다. 어떤 아내는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아파트 난간으로 향했다. 그 피눈물들을 어떻게 눈뜨고 말할 수 있을까. 고공농성도 몇 차례였다. 2012년 가을 끝자락 한상균, 문기주, 복기성이 15만V의 전기가 흐르는 송전철탑에 올라 이듬해 여름 초입까지 171일 동안 허공에 떠 있었다. 베니어합판 몇 개 놓은 위험천만한 고공농성. 2014년 12월13일에는 김정욱과 이창근이 공장 안 70m 굴뚝에 올라가 입김도 얼어붙던 겨울을 나고 101일 만인 이듬해 봄에 내려왔다. 2012년부터 1년 반 동안은 서울 대한문 앞에 스물두 명의 얼굴 없는 영정을 모시고 분향소를 지켜야 했다. 기름을 껴안고서라도 분향소를 지키겠다던 김정우가 끝내 구속된 해다. 그는 박근혜가 선거용 사진을 찍기 위해 전태일 흉상 앞에 서는 것을 온몸을 던져 막았다. 괘씸죄였다.

쌍용차 해고자들만이 걸어온 통한의 길이 아니다. 2009년 지금은 구속된 이명박이 테이저건으로 무장한 테러진압부대를 보냈던 77일간의 점거파업 현장부터 수많은 시민들이 그들과 함께 희망고문의 길을 걸어왔다. 쌍용차만의 투쟁이 아니었다. ‘정리해고’라는 사회적 광우병에 대한 2200만 노동자 가족들과 소수 자본가들 간의 대리전이었다. 정리해고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공방의 격전장이었고, 노사정 모두 물러설 수 없는 고지전이었다. ‘해고는 살인이다’를 둘러싼 사회적 진실규명 투쟁이기도 했다.

2012년, 박근혜도 당선되면 맨 먼저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정조사에 나서겠다고 했다. 2015년, 의원 시절 문재인 대통령은 현재 구속되어 있는 한상균 등이 있던 철탑까지 올라와 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2015년 총선 당시 김득중이 노동자 후보로 평택시 국회의원에 입후보했을 때 후원회장은 조국 민정수석이었다. 현재 구속된 한상균과 77일간의 파업 당시 함께 구속되어 2년을 살다 나온 김혁의 삶과 우정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lt;내 안의 보루&gt; 출간 도우미를 조국씨와 함께 했던 따뜻한 기억도 난다. 2014년 고법에서 승소한 ‘회계 조작에 따른 부당해고’가 그해 11월13일 대법원에서 통상적으로 인정되기만 했어도 모든 문제가 끝날 일이었다. 2015년 ‘더 쉬운 해고, 더 많은 비정규직, 더 적은 임금’ 등을 목표로 총체적인 노동법 개악을 준비하던 박근혜 정부의 정치공작과 외압은 없었을까. 2014년 8월 만들어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이 비선으로 관리했다는 ‘노동시장개혁상황실’은 아무런 역할이 없었을까. 고법 판결 후 마힌드라사 자문으로 나선 김앤장의 힘이었을까. 진실은 언제 밝혀지고, 불의는 언제 바로잡히는 것일까.

감옥에 갇힌 한상균이 김득중을 대신해 옥중 단식을 하고 있다. 2011년 부산 한진중공업에서는 쌍용차와 같은 죽음이 일어나면 안된다고 희망버스 차장이 되셨다가 얼마 전 끝내 벌금을 선고받은 문정현 신부님이 쌍용차 김득중의 단식에 연대하기 위해 스스로 구치소 노역장으로 들어가시기도 했다.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가 모두 김득중이고, 한상균이고, 윤충렬이고, 김정욱이라고 나서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쌍용차이고, 스물아홉 명의 얼굴 없는 죽음이고, 그 분노라고 나서야 하지 않을까. 박근혜도 이명박도 없는데 이렇게 조용하고 싸늘한 사회가 조금은 이상하지 않느냐고 다시 광장으로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4월7일 오후 3시, 평택역 앞에서 피눈물의 쌍용차 자동차들을 ‘워낭소리’처럼 끌고 평택 쌍용차 공장 앞까지 김득중의 빈자리를 메우러 함께 간다. 다음엔 무엇을 들고, 어디로 가야 하나. 싸늘한 마음에 조금씩 불길이 일고 있다.

<송경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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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란이 아직도 뜨겁다. 최저임금 인상이 저임금 노동자들의 소득증가로 이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반발이 크다. 고용을 감축하거나 상여금을 최저임금에 포함하는 등의 방식으로 부담을 회피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은 단순히 임금을 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지속가능한 한국 사회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혼란을 조기에 수습하고 연착륙시켜야 한다.

현대적 의미의 최저임금제도는 1894년 뉴질랜드에서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생활 보장을 위한 입법으로 시작됐다. 영연방 중심 국가였던 영국도 1909년 최저임금법을 채택하였다. 처칠 총리는 의회에서 이렇게 연설했다. “특정 계급의 국민들이 최저생계 유지에 필요한 비용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다면 이것은 국가적 악재”라고.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우리나라는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에 최저임금제의 실시 근거를 두었으나 당시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실제 운용되지는 않았다. 최저임금제가 최저임금법으로 보장되기 시작한 1988년 당시 462.5원이었던 최저임금은 지난 30년간 연평균 9.65%의 인상률을 보이며 오늘에 이르렀다. 2018년 최저임금은 7530원으로 전년 대비 16.4% 올랐다. 17년 만의 최고 인상률이다. 문재인 정부의 의지대로 2020년까지 1만원이 되려면 매년 15.7% 이상 올려야 한다. ‘급격’한 인상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대한 주요 반대논리는 영세한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경영상의 부담으로 직결될 수 있으며 또한 저임금 계층의 일자리를 감소시켜 그들의 생존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상속도를 조절하거나 업종·지역별 차등화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노동계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최저임금이 곧 노동자가 받을 수 있는 ‘최대임금’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또한 최저임금이 사실상 ‘기준임금’으로 활용되는 상황에서 업종·지역별로 달리 정하면 노동자 간 불공정성 문제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중소기업과 노동계 모두 타당하고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중소기업·소상공인·노동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지속가능한 한국 사회 구축을 위해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속도 조절을 통해서라도 성공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헌법에 보장된 인간으로서 존엄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경제조건을 확보해 준다. 인간다운 최소한의 삶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공동체에 애정을 가질 구성원은 없을 것이다. 사회안전망이 아직 취약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계속되는 저임금은 근로자들에게 가혹한 일이다. 2012년부터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도입하기 시작한 ‘생활임금’은 최저임금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한다는 취지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최저임금 인상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요구의 반영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연착륙되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경제구조 관점에서 몇 가지 긍정적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소득양극화 완화다. 2016년 기준 소비자물가지수를 반영한 우리나라의 실질최저임금은 5.8달러로 독일(10.3달러), 미국(7.2달러), 일본(7.4달러)보다 훨씬 낮다. 최저임금 인상은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려 소득의 양극화를 완화하는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 미국·유럽에서 시행한 빈곤 퇴치 및 사회통합 정책 가운데 가장 효과적인 것이 최저임금 인상이었다. 그리고 최저임금 인상은 소비성향이 높은 계층의 임금소득 증가를 통해 내수를 자극하여 중소기업은 물론 경제 전체의 성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연구결과도 많다.

인권보장과 구조적 관점에서 최저임금 인상의 연착륙 방안은 무엇인가? 먼저 최저임금 1만원 달성 목표연도를 2020년에서 예를 들면 2022년으로 조정할 것을 제안한다. 목표연도를 없애고 최저임금을 평균임금의 일정 비율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가 겪는 저성장 속에서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하기에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어려움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또한 목표달성 위주의 경제정책은 성공하기도 힘들고 부작용이 너무 클 수도 있다.

그리고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비용 상승을 전가하는 불공정 거래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원청 대기업이 하청 중소기업에 비용 상승분을 전가하면 하청업체는 대기업의 납품단가 인하 압박을 저임금으로 벌충했다.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관행이 없어지지 않는 한, 최저임금을 인상할 때 중소기업은 납품단가를 맞추기 위해 고용을 줄이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 감소를 최소화하면서 임금의 정상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대·중소기업 간 공정거래의 정착으로 중소기업이 창출한 성과는 중소기업에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을 설비투자로 유도하여 대기업 일자리뿐만 아니라 하청 중소기업의 일자리가 창출되어야 한다. 2017년 상장사 사내유보금은 860조원, 이 중 10대그룹 사내유보금은 515조원으로 해마다 증가해왔다. 대기업이 설비투자 확대 없이 사내유보금만 계속 증가하면 대기업에 쌓여 있는 자금이 전체 근로자의 88% 이상이 일하고 있는 중소기업 부문으로 흘러들어가지 못하면서 최저임금 인상은 결국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희생만 가져온다. 끝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 증가가 소비 증가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복지확대도 수반되어야 한다. 미래 삶을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사회시스템에서 임금상승분은 가계저축으로 축적될 뿐 소비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간의 정부 대처는 아쉬움이 컸다. 급격한 인상으로 인한 부작용을 충분히 인지했을 법한데도 세심한 대책이 부족했다. 정부가 내놓은 일자리 안정자금은 당장 피해를 보는 영세사업주의 형편을 고려하지 못해 외면받고 있다. 강력한 재정·세제 지원뿐만 아니라 대·중소기업 간 공정 거래, 터무니없이 오르는 임대료 대책, 노동시장 개선, 산업구조 조정 등의 대책도 함께 나왔어야 한다. 정책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구조적 측면을 함께 고려했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종합적인 최저임금 인상의 연착륙 정책을 기대해본다.

<정운찬 |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한국야구위원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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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7일 주당 법정 최대 노동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노동시간 단축 논의에 착수한 지 5년 만에 여야 합의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개정안은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휴일근로에 대한 중복할증을 인정하지 않고 현행대로 통상임금의 150%를 지급하도록 했다. 아울러 광복절·삼일절 등 법정 공휴일을 유급 휴일로 지정해 민간부문 노동자들도 급여를 받고 쉴 수 있도록 하고, 무제한 노동이 가능하도록 허용하는 ‘특례업종’을 26개에서 5개로 축소하기로 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주당 법정 노동시간 40시간에 연장근로를 12시간으로 제한하면서도 휴일근로에 대한 규정은 없다. 다만 고용노동부가 행정해석을 통해 휴일을 ‘근로일’에서 제외해 토·일요일 8시간씩 16시간의 추가근로가 가능했다. 사실상 주당 법정 노동시간이 68시간이었던 셈이다. 환노위가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주당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법제화한 것은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된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저성장시대의 일자리 확충을 위해서라도 노동시간 단축은 절실하다. 주당 법정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면 60만~70만개의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하지만 환노위가 최대 쟁점이었던 휴일근로에 대한 중복할증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논란을 부를 가능성이 크다. 당장 노동계는 “휴일근로 중복할증을 인정하지 않으면 근로기준법을 개악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휴일근로는 통상임금의 200%(중복할증)를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과도 배치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노동계는 중복할증을 인정하지 않으면 노사정 대화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국회와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이란 큰 산을 넘었다고 안도해서는 안된다. 노동시간 단축이 기업이나 노동자 어느 한쪽에만 부담을 지우는 결과를 낳지 않도록 보완책 마련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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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6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미국 노동계에 막대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소송 건을 다룰 예정이다.

일명 ‘Janus vs. AFSCME(야누스 대 미국 주·군·시 공무원연맹)’라는 소송으로, 이는 친기업 세력이 구상해낸 공공노조를 파괴하는 무기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이 소송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등에 업은 친기업 세력이 노동계를 공격하기 위해 써온 다양한 전략 중에서도 노조에 가장 타격이 클 것으로 분석된다.

소송의 시작은 일리노이주의 공무원이 노조 가입을 거부한 것이었다. 공무원들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 이미 오래전에 결성되어 있던 공공노조 단체협약의 보호 덕분에 개인이 노조에 꼭 가입하지 않아도 이미 체결된 단체협약의 혜택과 보호는 받게 되어 있기 때문에, 정치적 목적으로 쓰이는 비용을 제외한 조합비를 내도록 되어 있는 미국 현행법에 도전을 한 것이다.

‘노조원 개개인이 동의하지 않는 한 노조가 조합비를 받을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이 소송의 요지이다.

현재 미국 연방대법원에 재직 중인 9명의 대법관 중 5명이 친기업적이며 보수 성향이다. 미국의 노조 가입률은 공공부문의 경우 35%로 민간부문의 6.5%보다 약 5배 높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오면서 노조 가입률은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어 일각에서는 벌써 노동운동의 종말론이 거론될 정도이다. 그런 상황에서, 대법원이 조합비 납부 여부를 노조원 개개인이 선택하도록 하는 판결을 내릴 경우 공공노조의 조합원 가입률이 크게 줄어들게 될 것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공노조의 조합원 가입률이 낮아지면 노동운동 전체가 침체되고 정치력도 약해진다. 이미 신파시즘으로 접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고 있는 미국에서 이미 취약해질 대로 취약해진 노동운동은 또 한 번의 큰 위기를 맞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등에 업은 자본의 공격은 거침없고 맹렬하다. 사법부만이 아니라 입법부와 행정부에서의 노동탄압이 이례없이 높은 강도로 추진되고 있다. 미 상하원에는 이미 노동 개악법이 제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행정기관인 ‘노동관계위원회(National Labor Relations Board)’에서도 다양한 시행법을 개악하여 노조의 교섭권을 침해하고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을 불가능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이런 반노조 움직임은 트럼프 정권이 자본에 주는 신호탄이다.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의 단체교섭은 훨씬 더 대립적이 되어가고 있고, 미조직 사업장에서는 사측의 감원, 비용 절감 등 이윤 추구를 위한 노동비 삭감이 거침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자본의 노동자 착취 강도가 점점 세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절망뿐인 것만은 아니다. 최근에는 미국 5대 일간지 기자들이 압도적인 표차(찬성 248, 반대 44)로 노조에 가입했다. 136년간 미조직 사업장이었던 반노조 언론사에서 이례적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필자의 노조, 미국간호사노조(National Nurses United)에서도 지난 1년간 11개 사업장에서 3000명이 새로 노조에 가입했는데, 이례적으로 높은 찬성 투표율을 보였다. 신파시즘의 신호탄으로 쏘아올리는 노동탄압의 움직임들이 오랏줄이 되어 자신들의 목을 죄어 올 것이라는 것을 간파한 노동자들이 노조를 대안으로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다시 형성되고 있는 듯하다.

<로이 홍 | 미국간호사노조 조직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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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하기 힘들다고 우는 소리를 낼 때면 요즘 애들은 엄살이 심하다는 비아냥을 듣곤 했다. 그렇다 해도 ‘투정부리지 말라’ ‘잘하면 어련히 알아서 뽑을 텐데 무얼 불평하느냐’ ‘좀 더 노력해보고 그런 소리 하라’는 등 듣기는 싫어도 십분 이해할 수 있는 얘기들이었다. 공정한 절차와 시스템이 존재하는 한 개인의 노력만큼 결과가 따라줄 테고 그로 인한 결과의 책임은 온전히 개인의 몫인 것 또한 분명했다. 청년실업률 9.9%, 평균 취업 준비기간 1년, 첫 직장 재직기간 15개월이라는 지표가 우리네 삶의 고단함을 증명할 때에도 사회를 탓할 수는 없었다. 그러한 사회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무능한 청년이란 딱지만큼은 떼고 싶었다. 적어도 그 과정이 공정할 것이라는 믿음이 깨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공공기관 1190곳 중 946곳이 채용 과정에서 부당한 권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감사원을 통해 드러났다. 80%에 달하는 수치다. 강원랜드의 합격자 전원이 부정 청탁을 통해 입사했고, 한식진흥원에서는 서류조차 제출하지 않은 이를 특별 채용하기도 했다. 4500여명이 지원한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는 2299등인 지원자가 36등으로 합격했다. 심지어 가스안전공사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합격 통보를 하기도 했다. 금융권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하나은행에서는 소위 말하는 SKY대학 출신을 뽑기 위해 면접 점수를 조작하고 합격권에 있던 7명의 응시자들을 떨어뜨렸다. 국민은행은 추천인과 요청 사항을 정리한 VIP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고 있었다.

그러니 청년은 더 이상 노력할 수 없다. 기회는 불평등했고 과정은 불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지 않았다. 청년에게 부족한 것은 노력이 아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초월 스펙이 부족했기에 취업할 수 없었을 뿐이다. 초월 스펙은 SKY대학 출신이었고, 생물학적 남성이었고, 금수저였다. 이렇게 학벌주의와 성차별, 지연과 혈연이라는 연고주의의 민낯이 가장 솔직하고도 추악하게 드러났을 때에도 청년은 스스로를 탓하고 검열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일자리 하나 물어다줄 인맥 하나 없는 부모님을 만난 내가 잘못이며 잠도 덜 자고 밥도 덜 먹어가며 공부해서 SKY대학에 진학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내 노력의 부족 때문이었다. 취업 실패의 원인은 갈수록 개인화되고 내밀해진다. 이것이 채용비리 사건이 더 무섭게 다가오는 이유다. 본인의 능력 부족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물증이 없다면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들은 자신의 무능을 반복적으로 탓하고 학습하기에 이른다.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엄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기본이나, 불합리하게 떨어진 서류 지원자와 점수 조작으로 인해 합격권에서 굴러 떨어진 응시자를 구제할 수 없다면 이 피해를 완전히 복구할 수 없다.

일자리위원회가 백날 들여다보는 청년실업률에 청년고용의 해답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들이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은 이미 사회에 만연해 있는 학벌주의와 성차별, 연고주의에 따른 불법 채용이고 열악한 업무환경을 방치하는 조직의 무능이다. 채용비리를 근절하지 않고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은 허상에 불과하다. 정부는 다시 응답하라.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 그리고 결과의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고. 오로지 ‘노력’ 하나로 적자생존하는 청년들의 공정을 향한 갈증을 해소하겠다고 말이다.

<민선영 | 청년참여연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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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청년, 취업

최저임금제가 도입된 사연은 눈물겹다. 산업혁명 이후 편물기계 보급이 확산되면서 19세기 말부터 섬유산업이 급성장했다. 양털로 만든 스웨터가 대중화된 것도 그즈음이다. 당시 스웨터 제조업체들은 주문이 밀려들자 일감을 여성과 어린이들이 일했던 하청업체에 넘겼다. 노동자들은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임금을 받으며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일한 곳은 ‘스웨트 숍(sweat shop)’으로 불렸다. 노동자의 ‘땀’을 짜낼 정도로 착취가 심한 곳이란 뜻이다. 추위를 막기 위해 입는 스웨터에는 ‘일하는 기계’와 다를 바 없던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었던 것이다. ‘스웨트 숍’에서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여론이 들끓으면서 호주 멜버른에선 1895년 ‘전국안티스웨팅연맹(NASL)’이 출범했다. 영국에서도 1906년 같은 이름의 시민단체가 생겼다. 두 단체의 결성을 주도한 것은 노동자가 아닌 지식인과 중산층이었다. 이들은 스웨트 숍의 노동착취 실태를 고발했고, 최저임금 법제화라는 목표를 달성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1928년 조약으로 채택한 최저임금제는 전 세계 90%의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제만큼 격렬한 논쟁을 부른 정책도 드물다. 신자유주의에 매몰된 경제학자들은 일자리를 줄이고 노동시장을 교란하는 ‘주범’으로 최저임금제를 지목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뷰캐넌은 최저임금 옹호론자들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극언을 퍼붓기도 했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고용을 감소시킨다는 실증적 근거는 미약하다. 앨런 크루거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와 데이비드 카드 UC버클리대 교수는 1994년 최저임금을 20%가량 올린 뉴저지주와 동결한 펜실베이니아주의 패스트푸드 업체를 분석했다. 두 교수는 뉴저지주의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주의 초과 이윤을 줄이는 대신 고용을 늘리고 소득분배를 강화했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저임금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은 인권이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임금이기 때문이다. 그런 최저임금이 한국 사회에선 함부로 걷어차이고 있다. 지난해보다 16.4% 오른 지 한 달 만에 만신창이가 됐다. 편의점·프랜차이즈 가맹점 등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가게 문을 닫게 될 판이라고 아우성이다. 숨만 쉬어도 돈을 번다는 건물주가 꼬박꼬박 올리는 임대료, 매출액의 30%가 넘는 로열티, 카드 수수료 등으로 목이 졸리면서도 최저임금 인상으로 죽을 맛이라고 한다. 적립금만 수천억원에 달하는 연세·홍익·동국대 등은 청소노동자를 단시간 계약직으로 교체하고 있다. 일부 아파트 주민들은 정부가 지급하는 일자리안정자금(1인당 13만원)을 받기 위해 경비원 월급을 189만원에 맞췄다. 대기업의 납품·협력업체는 상여금을 기본급에 다달이 쪼개 넣는 방식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하고 있다. 꼼수와 편법을 동원한 ‘최저임금 도둑질’이다.

보수언론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의 극단을 보여주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의 역설’ ‘을과 을의 전쟁’이란 프레임을 짜며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내놨던 보수야당들은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꿨다. “최저임금 인상은 반(反)서민, 반(反)청년 정책”(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최저임금 부작용이 하늘을 찌른다”(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며 최저임금에 대한 저주와 악담을 서슴지 않는다. 후안무치의 극치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의 3대 실정(失政)으로 ‘최강비(최저임금·강남 집값·비트코인)’를 꼽으면서 최저임금을 맨 앞에 세웠다. 보수세력의 주장대로라면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인상되면 나라가 망할 것만 같다.

최저임금이 여느 해보다 큰 폭으로 올랐지만 저임금 노동자들의 빈곤을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최저임금 대상 노동자 462만여명이 시급 7530원을 적용받아 한 달에 209시간을 일하면 157만원을 받는다. 1인 가구 표준생계비(216만원)의 73% 수준이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이 소득주도 성장과 내수 활성화로 이어지길 기대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 또한 착각일 수 있다. 그런 효과가 나타나려면 최저임금이 표준생계비 수준으로 올라야 한다. 최저임금은 노동빈곤층의 구제수단일 뿐이지 성장전략은 될 수 없다.

최저임금은 가장 그늘지고 추운 곳에서 일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온기를 전해주는 연탄과도 같다. 그러니 함부로 차서는 안된다.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한 번이라도 따뜻했던 적이 없었던 한국 사회에 최저임금이 묻고 있다. “120여년 전 ‘스웨트 숍’에서 죽도록 일했던 저임금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을 알기나 하는가.”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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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열린다. 우여곡절 끝에 민주노총이 참여하면서 성사된 자리이다. 내 주변의, 다소 진보적인 사람들에게 민주노총은 참 독특한 존재이다. 어쩌다 이야기 소재로 떠오르면 비판과 한탄으로 동네북이 된다. 그러다가 마무리에선 ‘제발 민주노총이 잘해야 한다’며 또 기대를 건다. 그냥 단념해버리면 될 걸, 왜 이 사람들은 이리 미련을 갖는 걸까?

1980, 90년대를 거친 사람들에게 민주노총은 ‘노동조합’ 그 이상으로 기억된다. 영화 <1987>은 6월로 끝을 맺지만 그해 여름부터 노동자들이 나섰다. 노동조합 자체가 불온시되던 상황에서 민주노조를 만들고, 권력을 연장한 권위주의 정부와 싸웠다. 그 기세로 1995년 민주노총을 건설하고 이후 IMF 구조조정에 저항했다. ‘전투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당시 민주노총이 외치는 평등 세상은 격차와 차별을 넘어서고픈 일반 시민들의 바람이기도 했다. 비슷한 시대정신을 공유하는 하나의 통로였던 셈이다. 그러기에 오늘은 ‘노동자의 5%만이 조합원이고, 그 다수가 정규직’인 조직이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민주노총의 역사성을 존중하고, 새로운 민주노총을 갈망한다.

혹 부질없는 과거 회고일까? 솔직히 반복되는 실망에 익숙해져 있다. 그럼에도 새삼 민주노총 주제를 꺼내는 건 최근 민주노총과 산하 산별조직의 전향적인 움직임 때문이다. 우선 신임 민주노총 위원장의 조직 진단이 대담하다. 그는 지난달 선거에서 핵심 슬로건으로 “고립, 분열, 무능을 뛰어넘어”를 제시했다. 사람들이 민주노총을 향해 내던지는 단어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조합원들의 표를 얻어야 하는 후보로서 쉽지 않은 자기 고백이다. 특히 사회연대전략을 공약했다. 약 10년 전에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서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의 국민연금 보험료를 정부·기업·중심권 노동자가 함께 지원하자는 사업 제안이 거센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정규직 양보론’이라는 역공을 받아 좌절되었던 이 사업의 이름이 사회연대전략이다. 우연히도, 이 사업에 총력을 기울였던 민주노동당 대표는 지금 노사정위원장이다. 그는 모든 공중파가 생중계한 당대표 연두기자회견의 전체 시간을 ‘사회연대전략’으로 할애했었다.

내가 이해하기에, 사회연대전략의 핵심은 ‘양보’가 아니라 불안정노동자를 위한 ‘연대’이고, 노동자의 균열을 극복하려는 주체 형성운동이었다. 결국 이 사업은 무산되었고 지금은 ‘두루누리 사회보험료 지원’이라는 다른 설계도로 정부에 의해 시행되고 있다. 만약 민주노총이 추진했다면 사회적 논의를 주도하며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의 연대 고리도 생겼을 거라는 아쉬움이 컸는데, 이번에 민주노총 집행부가 ‘사회연대전략’을 공언하고 나선 것이다.

민주노총이 여러 의제를 고심하고 있겠지만 과감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모든 실업자에게 실업급여’ 제안은 어떨까. 고용보험 안에서는 중심권 노사가 고용보험료를 더 내 실업급여를 튼튼히 하고, 고용보험 밖 취업자는 정부가 재정을 책임지는 실업자 대응책이다. 스웨덴 연대임금제를 참고해 임금격차를 개선하는 한국형 연대임금도 기획될 수만 있다면 위력적일 듯하다. 보육, 교육, 고용, 주거, 노후, 의료, 빈곤 등 7대 민생을 해결하는 복지국가 건설에 나서겠다는데, 세금도 누진적으로 더 내는 운동까지 벌이면 어떨까. 우리 노동자도 내겠다고 천명하면서.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또 구호에 그칠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난 몇 년 민주노총의 변화를 주목하고 싶다.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민주노총의 비정규 노동자 권리 활동은 꾸준히 강화돼 왔다. 근래 늘어나는 조합원 상당수가 서비스, 학교, 건설 업종에서 일하는 비정규직·불안정 노동자들이다. 작년에 최저임금 인상을 이끌었던 민주노총 총파업의 주역도 이들이다.

또한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최근 주요 산별노조에 사회연대를 주창하는 집행부가 들어섰다. 공공운수노조는 사회연대위원회를 설치해 “시민들에게 한 걸음 다가가는” 노동조합이 되겠단다. 금속노조 위원장은 ‘임금 인상’이 아니라 “노동자들 사이의 임금 차이를 줄이는 것이 산별노조의 원리”라고 주창해 온 노동자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오래전부터 암부터 무상의료, 보호자 없는 병원 등 ‘돈보다 생명을!’ 운동에 앞장서온 조직이다.

사회연대운동에선 노동자 참여가 관건이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고 내부 논쟁도 생기겠지만 진솔하게 나선다면, 조합원들은 자부심을 느끼고 시민들은 응원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적 자산인 ‘민주노총’, 이제는 내부 격차를 넘어서고 평등사회를 만드는 ‘사회연대노총’으로 거듭나기 바란다.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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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의 불평등을 용인한다면 경제성장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것은 일부 진보적인 학자들의 주장이 아니다. 국제노동기구(ILO)뿐 아니라 비교적 보수적인 정책 기조를 견지해 오던 세계은행(WB)이나 국제통화기금(IMF)조차도 최근에는 이런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포용적 성장전략으로의 선회는 개별 국가의 경제정책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독일은 없던 최저임금제도를 새로 도입하였으며, 미국이나 일본, 중국도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였다. 이러한 정책변화가 이들 국가의 경제에 문제를 일으켰다는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다. 극심한 불평등을 완화하고, 가구소득 증대로 소비도 진작시켜 장기적으로는 고용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선순환 경제의 출발점에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있다.

최저임금 인상의 또 다른 의의는 이것이 성별 임금격차 문제를 해소하는 정책이라는 데 있다. 우리나라에서 여성노동자는 남성 평균 임금의 64%를 받는다. OECD 국가들 중에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극심하다. 2017년 기준으로, 남성노동자는 대략 10명 중 1명, 여성노동자는 5명 중 1명이 법정 최저임금액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있었다. 전체 최저임금 미만 노동자 중에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63%에 이른다. 사정이 이러하니 최저임금이 인상되고 이것이 잘 지켜진다면 저임금 시장에서 허덕이던 여성노동자들의 숨통이 조금은 트일 것으로 기대된다. 여성인력개발센터를 찾아오는 여성 구직자가 늘어나고, 일을 하고 있는 여성은 그만두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현장 활동가로부터 전해 들었다.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뜻이다.

여러 가지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며 최저임금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한 바퀴를 돌아서 의도한바 결실을 맺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정부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일자리 안정자금’을 준비해 놓고 있다. 이밖에도 정부가 경제와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어려움에 대응하여 크고 작은 정책적 대응을 해나가야 한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으리라는 것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먼저, 노동시간을 줄이고 노동강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사례들이 있다. 해당 노동자들로서는 억울한 감이 있겠으나, 감수하자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애초에 최저임금을 올리는 정책의 취지엔 장시간 노동을 줄이자는 의미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계약서상의 근로시간은 줄이고 실제로는 더 긴 시간 일을 하게 한다든가 하는 꼼수는 허용할 수 없다. 초과근로에 대한 임금은 1.5배. 법을 우습게 알지 않는다면 대응할 방법은 있다.

한술 더 떠서 고용규모 감축으로 대응하는 사업주도 있다. 워낙 형편이 어려운 기업이 최저임금 인상 탓에 종사자를 줄이는 거라면 함께 안타까워하겠지만, 일자리안정자금 신청도 안 하면서 덜컥 인력감축에 나서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최저임금 인상은 ‘함께 살자’는 정책이다. 정말 어려운 사업주는 정부가 돕는다.

마지막으로 임금이 인상되면서 저소득계층 지원제도의 수혜 범위를 벗어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여성은 월급이 22만원 오르게 되어 한부모가족지원금 13만원과 여기에 따라오는 몇 가지 혜택을 못 받게 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기사는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실제로 돕지 못한다는 취지로 쓰여졌지만, 이 사례가 우리에게 진정 시사하는 바는 그게 아니다. 이 사례는 한부모가족지원금이 최저임금을 살짝 넘긴 수준의 임금을 받는 여성은 지원하지 않을 정도로 낮은 소득기준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정말 많은 한부모 여성이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여성가족부가 이 제도의 수급 기준을 중위소득 52%에서 60%로 완화하기로 한 것은 타당한 대응이다.

정부는 지혜를 모아주기 바란다. 우리 국민은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하여 마음을 모아 주시길.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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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라면서 거의 듣지 못했던 사실 하나를 알리고자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노동이나 재능이 아닌, 부(富)에 보상한다는 것이다. 꿈을 가지고 성장하고 있는 어린 소녀와 소년들에게 이러한 암울한 현실을 말하는 것은 너무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구축한 세계다. 지난 1년간(2016년 6월~2017년 6월) 창출된 부의 82%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1%의 몫이 되는 그런 세상.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하위 50%에 해당하는 37억명의 사람들은 그 어떤 부의 증가도 보지 못했다. 말 그대로 제로였다.

세상은 부자들의 차지이고, 일터에서 이러한 부당함은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전 세계적으로 기업은 주주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임금과 노동 조건을 악화시키고 있다. 많은 국가의 정부는 이러한 일이 그저 일어나도록 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 촉진시키고 있다. GDP 성장에만 몰두해 기업 세금을 삭감하고 노동자의 권리와 보호를 과감히 희생시킨다. 그 결과 방글라데시 의류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빈곤을 벗어나기 어려운 수준의 임금을 받고 우리에게 값싼 옷을 제공하기 위해 일한다. 태국의 호화로운 호텔 방을 청소하는 여성 노동자는 실직이 두려워 성희롱을 신고하는 것을 망설인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인 미국의 가금산업 노동자들은 화장실을 가지 못해 기저귀를 착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 괴로움과 모욕에서 아주 멀리 벗어나 있는 기업 이사회실의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좋다. 주주들과 기업 사장들은 기록적인 이익을 누리고 있다. 전 세계 정치인과 경제계 인사들이 이번주 스위스 다보스에 모여 4일간 회의를 연다. 그 기간 동안 세계 억만장자들의 재산은 약 80억달러 정도 증가할 것이다. 또한 10명의 억만장자 중 9명이 남성인 데 반해 극빈 수준의 최저임금과 가장 열악한 환경 속에서 노동하고 있는 것은 대부분 여성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번영’된 모습이다. 우리는 어린 소녀와 소년들에게 세상은 그들이 태어날 때부터 불공평한 세상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열정과 신념, 투지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바로 이러한 미래는 우리의 경제시스템을 부가 아닌 노동에 보상하도록 재설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지난달 파리경제대학원 세계불평등연구소(WIL)가 발표한 ‘세계불평등보고서’는 정부정책이 불평등을 현저하게 줄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전 세계 진보적인 정치인들은 이미 가능한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다. 불과 몇 주 전, 아이슬란드는 2020년까지 남녀 간 임금 격차를 근절하려는 정부 계획의 일환으로 남성보다 여성의 임금을 적게 책정하는 기업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관련 법률 시행에 나섰다. 에콰도르는 2010년 기본적인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는 ‘존엄이 보장되는 최저임금(dignity wage)’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수천만명의 노동자에게 혜택을 주고 있고, 적절한 임금과 일자리가 양립할 수 없다는 믿음을 깨뜨렸다. 에콰도르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낮은 실업률을 보이는 국가 중 하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의료 및 교육과 같은 공공서비스 확대를 위한 기금 마련용으로 혁신적인 세제 정책을 도입했다. 영국법원에서 우버 운전자를 자영업자가 아니라 휴일 급여, 유급휴가 및 최저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정규직원이라고 판결했을 때 정부가 노동자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줬다.

이러한 다양한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해결책은 부족하지 않다. 부족한 것은 이를 행동으로 옮기고자 하는 정치리더들의 의지이다.

우리에게는 좋은 임금을 받는 노동력과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시스템의 이점을 볼 수 있는 경제계 리더가 필요하다. 헨리 포드는 노동자들에게 자신들이 만든 포드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급여를 지불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경영의 핵심이었음을 인정했다.

다보스에서 필자는 정치 지도자들에게 주주 및 고위 임원에 대한 보상 제한, 법정 생활임금 도입, 공정한 세금 체계 수립, 의료 및 교육에 대한 투자, 모두를 위한 기술혁신 추진 등을 촉구할 것이다. 경제계 리더들에게는 모든 노동자가 생활임금을 보장받고 공급업체가 공정한 가격을 지불 받을 때까지 거액의 주주 배당금과 최고 경영진에게 거액의 급여 지급을 중단할 것을 촉구할 예정이다. 다보스에서 만나는 모든 정치인과 경제계 리더들이 불평등 위기에 대한 필자의 우려에 깊이 공감하고 응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그들이 행동하기를 기다리는 필자를 포함한 전 세계 수억명의 참을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위니 비아니마 | 옥스팜 인터내셔널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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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에서 객실 청소업무를 하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나선 이후 원청의 무분별한 ‘대체인력 투입’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대한항공은 한진그룹 계열사 직원은 물론 본사 사무직 직원까지 동원해 청소업무에 나섰고, 하청업체인 ‘이케이맨파워’는 불법 대체인력 투입으로 고발당하자 현재 투입 중인 인력을 원청 소속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검토하는 등 웃지 못할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헌법은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단체행동권은 그야말로 노동3권 중에 가장 중심인 권리이다. 단체행동을 전제하지 않은 단체 결성이나 단체교섭은 무력한 것이어서, 이들만으로는 노사관계의 실질적 평등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43조에서 쟁의권을 보장하고, 일부 필수공익사업장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쟁의행위 기간 중 사용자의 대체인력 투입을 금지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 권리가 가장 필요한데도 오히려 가장 열악한 상태에 처해 있는 것이 간접고용 노동자들이다. 간접고용 노동자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3권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게 침해되는 권리가 바로 단체행동권이다. 원청이 손쉽게 원청 노동자를 투입하거나 다른 협력업체로 돌려막기를 하거나 신규채용을 하는 등으로 파업을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서비스,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C&amp;M 등 대기업은 물론 공공기관인 정부세종청사, 코레일 역시 간접고용 노동자 파업에 대체인력을 투입하여 물의를 빚은 바 있다.

하청업체 파업에 이처럼 원청이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의 잘못된 행정해석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과거 간접고용 시 대체인력 투입을 제한하는 기존의 해석(1988. 노사32281-19968)을 뒤집고 원청은 사용자가 아니므로 대체인력 투입금지 조항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행정해석(1998. 협력68140-226)을 유지해오고 있다.

그러나 노조법상 ‘사용자’의 개념은 반드시 근로계약관계의 당사자로 한정되지 않는다. 대법원도 “원청회사가 하청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인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면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2007두8881)”고 판결한 바 있다.

대부분의 용역업체에서 투입인원의 결정, 업무내용과 근무시간, 인건비 등이 원청에 의해 결정되는 데다가 독자적인 노력에 의한 이윤창출과 위험부담도 없는 점을 고려해보면, 원청 역시 노조법을 준수해야 할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원청이 하청업체 파업으로 인해 업무가 실질적으로 중단되고 대체인력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이미 자신의 사용자성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비단 실질적인 지배력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어떤 ‘노동’으로부터 이익을 향유하는 자가 그 ‘노동’의 온전한 실현을 위한 헌법상 의무를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

단지 고용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헌법상 권리가 박탈되는 현실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법률로 원청의 대체인력 투입 금지를 제도화해야 한다. 다행히도 꾸준한 문제제기로 인해 20대 국회에는 ‘원청의 대체인력 투입 금지 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면서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원상회복하는 것, 사용자가 실질적 이익은 누리면서 의무는 부담하지 않으려는 유인을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여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우지연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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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4개를 비준하겠다는 입장을 유엔에 표명키로 했다. 법무부는 7일 ‘제3차 유엔 국가별 정례인권검토(UPR)’ 실무그룹 보고서 초안을 통해, 결사의 자유·단결권·단체교섭권 관련 협약 87·98호, 강제노동 폐지 관련 협약 29·105호를 비준하라는 UPR 권고를 ‘검토 후 수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87호와 98호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합법화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비준 방침을 환영하며, 후속 조치가 신속하게 이뤄지길 기대한다.

한국은 1991년 ILO에 가입했지만 8개 핵심협약 중 4개는 비준하지 않았다. 187개 회원국 가운데 4개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과 중국, 마셜제도, 팔라우, 통가, 투발루 등 6개국뿐이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노동인권 후진국의 오명을 면치 못했고, 국내에서도 불필요한 갈등과 분열이 야기됐다. 가장 심대한 피해를 입은 것은 전교조와 전공노다. 2013년 박근혜 정부는 14년간 합법노조의 지위를 유지해오던 전교조에 대해 ‘노조 아님’ 통보를 했다. 해직교사 9명을 조합원으로 인정한 전교조 규약이 교원노조법을 위반했다는 게 이유였다. 전공노 역시 해직자의 조합원 자격 문제를 이유로 설립신고를 번번이 거부당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ILO 핵심협약 비준을 후보 시절 공약으로 제시했고 집권 후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켰다. 협약 비준을 서두르는 것은 당연하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선 전교조의 재합법화는 비준 이전에도 가능하다. 박근혜 정부의 법외노조화가 행정처분에 불과한 만큼 이를 철회하면 일단 법외노조 이전 상황으로 복귀할 수 있다. 또한 정부는 협약 비준을 위한 구체적 로드맵을 노동계와 협의하고, 국회는 협약 내용과 상치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교원노조법, 공무원노조법 등의 개정 작업에 즉각 착수해야 한다. 특수고용·간접고용 노동자 등 노동3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방안도 강구돼야 함은 물론이다.

노동자들은 누구나 노동조합을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헌법과 노동관계법이 보장하는 ‘노동조합 자유설립주의’다. 노조라면 무조건 백안시하던 낡은 인식은 이제 버릴 때가 됐다. 보수진영도 구태의연한 색깔론 따위로 노동기본권 확대를 막아설 생각은 접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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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정책들이 ‘공정하지 않다’는 일부(라고 믿고 싶다) 여론의 기세에 밀려 좌초 중이다.

시위현장에서, 공청회장에서 ‘기회와 과정의 평등 YES! 결과의 평등 NO!’라는 팻말을 든 이들의 표정은 비장하고 목소리는 단호하다. 열의를 보면 작금의 정책이 모든 노동자의 급여를 동일하게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결과의 평등은 대졸자, 고졸자에게 똑같은 보상을 한다는 게 아니라, 인간다운 삶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을 평등한 권리를 뜻한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존엄성이 서로 사랑만 하면 보장되나? 돈 없으면 이웃이 아무리 인자한들, 삶은 비루해진다. 가장이 주 40시간 노동하여 받는 급여로 가족을 시대에 걸맞게 부양할 수 있었다면 비정규직 문제는 애초에 발생하지 않았다. 성실하고 우직하게 산들 노동지위가 계약직이면 고작 1년 앞도 예측할 수 없다. 게다가 의료, 주거, 교육, 정보의 공공성이 아직은 요원한 나라다. 받는 돈이 200만원도 되지 않는다면(월급쟁이 43%에 해당), 월세와 휴대폰 할부금 내기 바빠서 저축은 언감생심이다. 가족이 수술이라도 하면 살림은 거덜 난다. 200만원이면 가족이 존엄할까? 치킨 한 마리 먹을 때마다 심사숙고하고 몇 년에 한 번쯤 제주도 여행 가는 걸 두려워한다면 그게 어디 ‘2017년’의 삶이라 할 수 있는가? 밥만 안 굶어도 행복할 수 있는 시대는 오래전에 지났다. 무심코 틀어놓은 홈쇼핑 채널을 보다가 오래된 텔레비전을 36개월 할부로 바꾸는 과감한 결심을 21세기에도 ‘사치’라고 한다면 이 빌어먹을 자본주의는 완전 사기다. 크루즈 세계여행을 가겠다는 것도, 한우갈비를 먹겠다는 것도 아니다. 단지 평범하겠다는 사람을 앞에 두고 ‘더’ 고생한 사람 있으니 사람 가려 보편적 권리 따지자는 게 과연 ‘공정’한 것일까?

‘누구나’ 평범하게 살 수 있는 정책을 논하자는데, 자꾸만 ‘그들의’ 실체를 알려주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인류가 취해왔던 가장 나쁘면서도 효과 좋은 대화법이다. 들어보니,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자들은 ‘무임승차’하겠다는 염치없는 작자들이다. 남들 공부할 때 ‘놀았고’, 누군가가 미래를 준비할 때 ‘편하게’ 아무 일이나 기웃거린 나태한 사람들이다. 놀다가 그리 되었다는 논리는 무지하고 ‘당해도 싸다’는 식의 인식은 비열하다.

악의적인 편견을 가진 자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도 우습다. ‘억울한 마음 모를 바 아니지만 이해 바란다’면서 이들을 달래면 안된다. 그러면 ‘어떤 가치 있는 행위를 했는지도 모르겠는 사람들이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동정 받는 게 정상이냐’(S대학 인터넷 커뮤니티)는 말이 여기저기서 등장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성인군자가 베풀어주는 은혜가 아니다. 당연한 권리가 누군가의 배려로 이루어진다면 ‘혜택 받은 자’들은 늘 눈치 보며 살아야 한다. 그러다가 작은 실수라도 하면 ‘머리가 저리 나쁜데 운 좋아서 정규직이 되었다’는 조롱을 듣게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정책은 누굴 동정해서가 아니라, 권리가 필요한 사람들을 ‘이제야’ 직시한 다른 모두의 책무가 실천되는 것일 뿐이다.

‘차별의 설움’과 ‘노력의 허무’는 다른 층위에서 논해야 하지만,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한 줄 아느냐!”는 사람들의 절규가 거세다. 왜 이들은 고작 정규직 일자리 하나 얻고자 많은 걸 포기해야만 했을까? 그 일 아니면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목도했기 때문일 게다. 아니었다면 진로를 바꾸지 않았을 수도, 연애를 포기하지 않았을 수도, 아니면 여유롭게 책도 읽으면서 결과의 평등을 오해하지 않고 살았을지 모른다.

이 울분을 ‘재발방지’하려고 사회가 노력해야 함은 마땅하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이 객관적으로 좋아지는 것은 누군가가 꿈을 포기하는 것을 예방하고 청년들이 제한된 일자리를 얻고자 살인적인 경쟁을 하는 파국을 조금이나마 진정시킨다. 눈물을 외면한 게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고생에 걸맞게’ 권리의 우선순위를 따지는 사람들의 심보 덕택에 앞으로 취업스펙은 더 화려해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때는 요람에서부터 ‘요즘 세상 장난 아니야’를 들으며 지금보다 더 많이 포기하고 노력해야지만 정규직이 될 것이다.

관문을 통과한 이들이 지금의 정규직을 보고 생각할 거다. ‘솔직히 우리보다 고생한 것도 아닌데, 챙길 건 다 챙겨먹네.’ 누군가의 ‘심정’을 고려한다고, 차별받는 노동자의 ‘물정’을 바꾸자는 정책을 공정하지 않다고 하는 사회의 미래가 어디까지 괴기스러워질지 나도 궁금하다.

<오찬호 | 작가·<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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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솔직히 “사람을 채용할 때는 제대로 대우하면서 하여야 한다는 ‘노동존중사회’의 정신을 구현”한다는 표현을 정부 문서에서 발견할 줄은 몰랐다. 불과 몇달 전까지, 정부가 노동자를 사람 취급하는지도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7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담은 정책 취지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직후, 대표적인 비정규직 남용 사업장인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하여 선언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는 이렇게 첫발을 내디뎠다.

놀라움과 기대로 시작한 정책이지만, 실제 현장에서 추진되는 과정에 곳곳에서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정권교체 이후에도, 공공부문 곳곳에서 비정규직을 남용하고 차별하던 관행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정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도 왜곡되거나 무시되기 일쑤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12일 ‘찾아가는 대통령’ 첫 방문지로 찾은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한 노동자가 이야기 도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문 대통령은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대책을 밝혔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런 사정 때문에, 대통령이 다녀간 사업장이고, 그나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단결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천공항에서 정규직 전환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 국민의 관심이 많다. 그러나 인천공항에서조차 정규직 전환은 큰 벽에 부딪혀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무임승차”라고 비난하는 일부 정규직 직원들의 집단 반발도 문제이지만, 이를 핑계로 십수년간 전체의 90% 가까이를 비정규직으로 채워온 인천공항공사 측의 본능이 다시 깨어났기 때문이다. 회사는 비정규직을 인천공항공사로 직접고용할 경우 공개경쟁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입장이다. 십수년간 공항을 안전하게 운영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졸지에 무자격자 취급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탈락자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공개경쟁시험은 ‘고용안정’을 제공하겠다는 정책 취지와도 어긋난다.

또 직접고용을 하게 된다면 정부가 ‘고령자친화직종’으로 65세까지 근무를 인정한 청소·경비 노동자의 정년연장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정책의 목적과는 정반대로 많은 비정규직들이 당장 해고될 위험에 처한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은 상시지속업무는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특히 ‘생명·안전’과 관련된 업무는 반드시 직접고용하라는 것이다. 자회사는 오히려 예외적인 방안이다. 하지만 회사는 직접고용 전환 “0명”, “10분의 1만 적용”이라는 방안을 내놓고 노·사·전문가협의에 제시했다.

정부가 이런 억지를 인정하는 정책을 제시했던 것은 아니다. 필자도 노동계 대표로 정책협의 과정에 참여한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의 원래 취지는 그렇지 않다. 최소 기준을 제시한 후 정책 취지에 따라 노사가 협의해 구체적인 방안을 정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자율적인 협의라는 좋은 말에는 함정이 있다. 정규직 전환을 책임져야 할 사용자가 끝까지 억지를 부리면 합의가 불가능하다. 정부가 제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가이드라인은 이런 과정을 거쳐 인천공항에서는 “직접고용 정규직화 제로”로 탈바꿈하는 중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런 뒤집힌 공공기관 운영이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그나마 여론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뭉친 인천공항마저 이럴 정도면 다른 곳은 더 심한 것이 당연하다. 여러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 현황을 누락하거나, 오히려 전환 전에 해고하려는 행태가 발생하고 있다. 노사 간의 힘이 근본적으로 사용자에게 쏠려 있는 사회다.  정부가 인천공항은 물론 여러 공공기관을 꼼꼼히 살피고, 가이드라인이 취지에 맞게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 챙기지 않는다면, 좋은 취지로 시작한 정책이 비정규직 당사자들에게 큰 상처를 남길 우려가 크다.

가이드라인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민간부문을 선도할 모범적 사용자로써 공공부문은 더욱 솔선수범하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에서부터 비정규직들의 정규직 전환을 시작한 취지일 것이다. 민간까지 “사람을 채용할 때는 제대로 대우”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공기관 사용자들의 일탈을 정부가 더 방치해서는 안된다.

<박준형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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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막판 고비를 넘지 못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야 3당 간사가 휴일근로 수당을 지금처럼 통상임금의 150%만 지급하는 방안에 합의하자 노동계뿐 아니라 여당 내부에서도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국회 환노위는 28일 소위를 열어 ‘휴일근로 중복할증’ 방안을 논의했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해 올 정기국회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안 처리가 불투명해졌다. 중복할증이란 노동자가 휴일에 근무하면 휴일수당과 연장수당 둘 다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중복할증이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법원이 휴일근로는 연장근로에 포함되는 만큼 하루 통상임금의 150%가 아닌 200%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비롯됐다. 지금까지 고용노동부는 행정해석을 통해 ‘휴일근로는 연장근로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해왔다. 이런 행정해석은 주당 노동시간을 최대 68시간(주 5일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토·일 근로 16시간)으로 늘리는 결과를 낳았다.

한국 노동자 연간 노동시간 2113시간, OECD 회원국 연간 평균 노동시간 1766시간. 출처: 경향신문DB

여야는 올해 초부터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논의해왔다. 국회 환노위 여야 3당 간사는 지난 23일 휴일근로도 연장근로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고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못 박는 내용에 합의했다. 그러나 휴일근로에 대해서는 하루 8시간까지는 현행처럼 50%만 가산해 통상임금의 150%만 지급하도록 했다. 150% 지급에 찬성한 의원들은 휴일근로 중복할증에 따른 기업의 부담이 가중되고, 중복할증이 되레 노동자들의 휴일근로를 유인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휴일근로 중복할증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노동부의 잘못된 행정해석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자 장시간 노동을 막기 위한 근로기준법을 개악하는 일이기도 하다.

노동자들은 정당한 임금을 받고 주 40시간을 일하며 휴일에 쉬는 것을 원한다. 초과근무 수당을 받기 위해 휴일에 일하는 노동자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애초 초과근무에 할증을 붙인 것도 휴일이나 연장근로에 ‘비싼 값’을 매겨 장시간 노동을 억제하자는 취지가 담겨 있다. 그렇잖아도 한국 노동자들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세계 최장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 2069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평균(1764시간)보다 305시간이나 길다. 장시간 노동에 내몰리는 것도 억울한데 법정수당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여야는 주당 노동시간 52시간 법제화와 휴일근로 중복할증 적용을 통해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된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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