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노동, 비정규직'에 해당되는 글 296건

  1. 2015.04.08 [사설]‘쉬운 해고’로는 노동개혁 못한다
  2. 2015.04.07 [정동칼럼]청년에게 청춘을
  3. 2015.04.02 [사설]감정노동자 보호 시급성 일깨운 KTX 승무원 산재 인정
  4. 2015.04.01 [시론]김대환 노사정위원장께
  5. 2015.03.30 [기고]청년은 이 땅에서 연애하며 일하고 싶다
  6. 2015.03.30 [박경은의 로그인]‘채찍질’의 공감과 공포
  7. 2015.03.26 [로그인]장그래도, 덕수도 아프다
  8. 2015.03.25 [사설]‘한국형 블랙기업 지표’가 말하는 청년노동의 현실
  9. 2015.03.18 [사설]15년7개월 만에 최악이라는 청년실업률
  10. 2015.03.17 [굴뚝에서 보내온 편지]7년, 그들은 왜 일어서지 못했나
  11. 2015.03.11 [기고]일자리와 창업, 농식품 6차산업이 블루오션
  12. 2015.03.10 [굴뚝에서 보내온 편지]‘분홍도서관’ 함께 짓자
  13. 2015.03.08 [사설]여성의 날에 돌아본 한국 여성 노동의 현실
  14. 2015.03.06 [사설]저임금 계층의 임금 인상이 최우선 과제
  15. 2015.03.05 [기고]“쌍용차를 봐주세요” 기도한 가증스러움
  16. 2015.03.03 [굴뚝에서 보내온 편지]김득중 지부장의 하얀 종이 두 장
  17. 2015.03.03 [사설]7년 소송 끝에 빚만 떠안은 KTX 승무원들의 눈물
  18. 2015.02.26 [사설]현대차, 법원 판결대로 ‘불법 파견’ 해결 즉각 나서라
  19. 2015.02.12 [기고]조합장 출마자들, 설을 악용하지 말라
  20. 2015.02.11 [사설]비정규직 내모는 데 합의한 한국지엠 노사

정부와 사용자 대표인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계 대표인 한국노총이 모색해온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협상이 결렬됐다. 한국노총은 어제 긴급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정부와 재계의 노동시장 구조 제안에 대한 수용불가 입장을 재확인하고, 노사정 대화중단을 결정했다. 앞서 정부와 재계는 한국노총이 제시한 ‘5대 수용불가 사항’을 거부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모처럼 마련된 노사정 협상이 아무런 성과 없이 파국을 맞은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노사정 3자가 지난달 31일의 시한을 넘겨가면서까지 논의를 계속했지만 이견만 확인한 채 결렬된 데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정부는 한국노총이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지 않은 만큼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노력을 계속하기 바란다.

노사정 협상 결렬은 일찌감치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협상의 핵심 의제인 노동시장의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과 해결 방식이 확연히 다른 상황에서 3자 모두 공감하는 해결책 마련 자체가 불가능한 목표였다. 정부는 비정규직 차별을 노동시장의 최우선적 해결 과제로 꼽고 있다. 이른바 ‘정규직 과보호’ 문제의 개선과 고용유연화를 통해 노동양극화를 해소하고 비정규직 차별 및 청년 일자리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반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는 정부의 대기업 위주 노동정책과 대기업들의 비정상적 고용 관행에서 비롯된 것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만 해도 독점적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간 차별이 핵심이다. 이는 경제성장 과실이 소수 대기업에 집중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거래를 엄단하는 것이 해결책이다. 일자리의 86%를 담당하는 중소기업의 경영여건을 개선해 양질의 일자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외면하고 ‘쉬운 해고’와 임금 인하를 통해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고 정규직 및 청년 일자리를 확보하겠다는 것은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정부가 재계를 의식해 근본 원인을 직시하지 않는다면 노동계는 물론 국민적 반발에 직면할 것이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9일 오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노사정 대타협 결렬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노동시장 구조개선 추진방향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브리핑하다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출처 : 경향DB)


비정규직 문제를 정규직과의 차별 문제로 몰고 가는 것도 또 다른 왜곡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급속 확산된 비정규직 문제는 기업들이 비용을 낮추고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도입한 저임금 및 불안정 고용의 산물이다. 정규직 전환을 위한 비정규직 채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고소득 전문직과 고령자에 대한 파견 허용으로 노동시장 유동성을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대책은 근본 해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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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이 넘는 수강생들 중에서 늘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던 그 여학생이 내 연구실 문을 두드린 것은 어느 화창한 봄날 오후였다. 내가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제대로 기억해준 교수라는 말에 차마 내 먼 친척과 동명이인이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흔한 이야기들, 시험과 취업에 연거푸 실패하고 어느덧 졸업을 더 이상 유예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는데, 부모님과 주변의 기대는 부담스럽기만 하고 어디서 길을 잃었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그 나이에는 누구나 힘들다는 말, 조금만 참으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릴 때부터 모범생이었을 것이고 늘 앞만 보고 달려왔을 그 여학생이 지금껏 열심히 살았으니 정당하고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말을 선생으로서, 기성세대로서 해주고 싶었다. 아니면, ‘실패는 청춘의 특권’이라는 식상한 말로라도 위로를 해주고 잃어버린 길을 곧 찾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임을 나는 안다. 우리의 청년들은 청춘을 잃었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의 근현대사는 젊은이들이 흘린 피와 땀으로 쓰인 역사이기도 하다. 해방 직후 근대국가 건설에 앞장섰던 것도, 한국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공동체를 일으킨 것도 젊은이들이었다. 4·19에서 87년에 이르는 민주화의 여정에서 피 흘린 것도 꽃다운 청춘들이었고,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과정에서 흘린 땀도, 외환위기의 고통도 청춘들의 몫이었다. 요컨대, 이제는 기성세대가 된 왕년의 청춘들은 각자의 신화를 간직하고 살고 있으며, 우리의 자랑스러운 현재에 나름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기성세대들은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청춘을 구가하며 동시에 독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청춘’이라는 말이 더 이상 젊은이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중노년층을 서술하는 말이 된 지는 오래다.

그 여학생은 큰 꿈과 큰 뜻을 가지라는 말이 제일 듣기 싫고 자기의 꿈은 그저 평탄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했다. 그럴 것이다. 기성세대들을 호명하고 이들의 어깨에 지워졌던 크나큰 역사적 과제와 책무들이 이제는 남아 있지도 유효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또한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한 기성세대들의 경제적·정치적 지분 또한 오롯이 그들만의 몫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여학생이 취업에 성공한다고 해도 서울에 집 하나 장만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며, 이제서야 40년 뒤늦게 중동을 다녀온다 해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학자 김홍중처럼 이들을 ‘생존세대’라 불러야 할지 모른다.

결정적으로 비관적인 사실은 청년층의 경제적 곤란과 정치적 소외가 상호작용하는 악순환의 과정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은, 예를 들어, 이제 청년층의 정치적 향배에 예전처럼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1980년대에 전체 유권자의 35%에 육박하던 20대가 이제는 그 절반도 채 되지 않으며, 이들의 정치적 참여는 매우 저조하기 때문이다. 정부 여당이 노골적으로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일관된 경제정책을 펼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며, 그 결과로서 청년층의 경제적 상황은 물론 더 악화될 것이다. 미래의 전망이 막혀 있는 이러한 공동체에서 청년들이 투표나 청원 등의 ‘관습적 참여’가 아니라 시위나 온라인 활동 등의 대안을 찾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것은 이들의 정치적 입지를 더욱 약화시킬 따름이다.

새누리당 김무성대표가 청년층과 만나는 청년무대를 이어가기 위해 25일 서울 한양대학교를 방문하자 한국청년연대, 알바노조, 신림동고시촌1인거주청년들 회원들이 여당의 청년 정책을 비난하며 김대표에게 항의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그 여학생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 하기가 이토록 어려웠던 것처럼 청년문제는 손쉬운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몇 가지 고민해야 할 원칙들을 생각해보고 해결의 실마리를 차근차근 풀어가야 할 것이다. 첫째, 현재의 청년문제가 잠시 홍역처럼 앓고 지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정말 심각한 문제임을 직시할 것. 이는 유례없는 100만명의 청년 실업자들이 겪는 고통이 사회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임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둘째, 정부나 정치권은 청년의 고용, 주택, 결혼, 양육, 복지 등의 문제를 선거의 관점에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 문제로 인정하고 머리를 맞대고 토론할 것. 싫건 좋건 청년들은 내일의 기성세대가 되어 오늘의 기성세대를 부양하게 될 것이고 이들의 행복과 안녕이 우리 공동체의 존속을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청년들은 공동체의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정치적 소외와 경제적 절망의 악순환을 끊을 것. 넷째, 기업과 사회는 청년들이 보다 나은 교육을 받고 자기 성찰과 준비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조금만 기다려줄 것. 잃어버린 청춘과 봄을 누릴 수 있도록 조금만 기다려줄 것.


박원호 |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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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승무원 시절 지속적인 성희롱과 욕설, 폭행에 시달리다 우울증을 앓게 된 여성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 판정을 받았다. 승객에 의한 반복적 스트레스가 우울증을 유발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울증에 걸린 감정노동자가 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한 적은 있지만, 산재 판정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업무상 이유로 정신 건강을 잃은 수많은 감정노동자들이 보상과 요양을 제공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향후 유사한 산재 신청이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감정노동자들이 정신 질환을 앓지 않도록 제도적 보호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더 긴요한 일이다. 개별 사업장에서도 감정노동자의 스트레스를 예방하는 조치를 의무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부당한 언어폭력과 인격적 모멸 등 인권침해에 상시 노출된 감정노동자들의 정신 건강은 이미 적신호 상태다. 정부 조사 결과 감정노동자의 우울증 경험 비율은 25%나 된다. 그럼에도 감정노동자의 정신 건강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는 사실상 없다. KTX 승무원 출신 여성도 잦은 욕설과 성희롱에 시달리다 입사 6년 만에 우울증 및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지만 회사는 어떤 보호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승객을 대하는 업무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호소했지만 회사 측은 사무직 전환을 거부했고 결국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개인의 특별한 사례가 아니라는 데 있다. 실제로 원진녹색병원이 지난해 KTX 여승무원 168명을 조사한 결과 3명 중 1명이 “죽고 싶다”고 느낄 만큼 우울증 수준이 심각했다.

1일 오후 서울역 플랫폼에서 KTX 여승무원이 열차 출발시간을 앞두고 승객을 기다리고 있다. (출처 : 경향DB)


감정노동자 보호 제도화 시도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새정치민주연합 한명숙 의원과 정의당 심상정 의원 등이 총 4건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고객의 폭언이나 무리한 요구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도록 사업주가 필요한 예방조치를 하도록 명시하거나, 업무 중 발생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을 산재에 포함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들 개정안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의 절반 가까이가 감정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여성의 경우 68%가 감정노동 종사자다. 이들이 인간적 자존감을 되찾도록 하는 것은 사회의 품격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소비자의 권리를 강조하면서 감정노동자의 인권에 무관심한 사회의 인식 전환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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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불가의 잠언에 기댄다면 위원장님과 저의 만남은 억겁의 세월이 낳은 게 틀림없습니다. 위원장님이 대학생 시절, ‘상대평론’에 쓴 글을 읽으면서 “이미 10년 전에 이런 경지에 도달한 분이 있었구나”라고 감탄을 거듭했으니 이러저러한 학회에서 만날 때마다 존경심이 저절로 우러났죠. 영광스럽게도 노무현 대통령인수위 때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참여정부의 밑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요즘 위원장님은 골머리를 앓고 있을 테죠. 지난해 9월 노사정위원회 주도로 발족시킨 ‘노동시장 구조개선 특별위원회’의 마감 시한이 이미 지났으니까요.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실로 커다란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의 비정규직은 전체 노동자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데(정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만), 고용의 안정성은 말할 것도 없고, 임금도 절반밖에 못 받고 있으니까요.

난제임엔 틀림없지만 해결 방향은 분명해 보입니다. 경제학 교과서로 보나, 상식에 비춰 보나 가장 중요한 원칙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 그것이죠. 12년 전 인수위원회에서도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이 원칙을 확인한 걸 기억하실 겁니다.

그런데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11월에 “정규직의 일반 해고요건 완화를 검토한다”고 운을 떼고(2015년 경제정책방향) 최경환 경제부총리 또한 ‘정규직 과보호 해소’를 강조하더니 12월 27일에 정부는 기간제 근로기간을 연장한다고 발표했습니다(비정규직 종합대책). 내친김인지 대통령은 올해 1월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4대 국정과제 중 하나라고 선언했습니다. 한마디로 ‘노동시장 유연화’를 관철시키라는 명령을 내린 겁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지키려면 정규직을 비정규직 수준으로 하향평준화시켜야 하겠죠.

240년 전에 애덤 스미스는 ‘국부’의 본질이 생산성 향상이라고 갈파했습니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과연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까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과연 지금이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단위당 노동비용을 낮출 때인가라는 데 있습니다. 예컨대 ‘정규직 과보호 해소’를 통해 우리나라 모든 기업이 임금을 30% 낮췄다고 합시다. 그렇게 생산된 물건을 도대체 어디에 팔까요? 유효수요의 부족, 바로 케인스의 문제의식입니다.

위원장님도 잘 아시다시피 1990년대 중반 이래 우리나라의 실질임금 증가율이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밑돌았고 둘 간의 괴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20년간 우리는 국내에서 못 판 물건을 수출하고, 나아가 노동자들이 빚으로 소비하도록 해서 부족분을 메꿔 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원화표시 수출은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앞으로도 이런 상황은 상당기간 지속될 겁니다. 더구나 1000조원을 훌쩍 넘은 가계부채 때문에 빚내서 소비하는 것도 이젠 불가능합니다. ‘소규모 개방경제’라서 가능했던 한국의 신중상주의적 발전 전략은 이제 끝난 거죠.

돌이켜보면 세계적으로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사회적 타협기구’가 생긴 건 1960년대 중반 이후였습니다. 당시엔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노동자의 명목임금을 억제할 필요가 있었죠. 대부분의 선진국이 시도했던 ‘소득정책’이 바로 그것이었고, 스웨덴처럼 성공한 나라들은 복지국가가 되었고, 영국같이 실패한 나라에선 결국 신자유주의가 들어섰습니다.

참 이상하지 않나요? 그때와는 정반대로 디플레이션을 우려해야 하는 지금 임금을 낮춰야 한다니요? 오바마나 아베와 같은 세계의 지도자는 물론 최경환 부총리도 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임금 삭감으로 이어질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얘기하는 건 완전히 모순입니다. 백보 후퇴해서 고용유연화를 얘기하려면 임금을 대폭 올린다고 해야 말이 되는 거죠.

31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있는 서울 세종로 종합정부청사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중단하라는 항의서한을 들고 청사로 향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실로 모든 나라가 노동시장유연화와 같은 구조개혁을 통해 ‘바닥으로의 경쟁’에 나선 결과가 현재의 ‘대침체(Great Recession)’입니다. 지금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불평등의 심화, ‘이중 노동시장’은 바로 그런 정책이 만들어낸 경제구조가 아닌가요?

지금 정부와 노사정위원회는 방향을 완전히 거꾸로 잡았습니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공허한 구조개혁을 외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제 위원장님이 이런 엉터리 기조를 바꾸셔야 합니다. 양심적인 경제학자라면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노심초사, 마음을 졸이실 때가 아니라 학자로서, 정책실행자로서 현재의 교착상태를 반전시킬 때입니다. 그러시리라 믿으며 글을 맺습니다.


정태인 |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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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농담’에 청년들의 근심이 더하고 있다. 중동 진출과 관련해 “대한민국에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해보라”는 말 때문이다. 대통령의 ‘농담’에는 농담 같지 않은 몇 가지 ‘어둡고도 위험한 진실’이 담겨 있다.

우선 대한민국 청년들이 유사 이래 최고로 어려운 상황인데 정부는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에 무능력하다는 것이다. 2013년 12월 정부가 청년 맞춤형 일자리 대책을 발표할 당시 청년실업률은 7%대였지만, 최근 11.1%로 늘어났다. 청년 일자리 대책을 내놓았지만 1년 반도 안돼 실업률이 3% 이상 늘어 외환위기 이후 최악을 기록한 것이다. 일자리를 잡아도 비정규직에 저임금이다. 돈이 없으니,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심지어 연애조차도 못하고 있다. 며칠 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20대 청년이 고시촌 방에서 번개탄을 피우고 자살한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그의 통장 잔고는 5000원이었다.

두 번째는 청년들이 국내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잡고 사는 데 정부가 별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 수준을 높이면 청년실업률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 내용이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정반대다. 기간제와 파견노동자의 고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자고 한다. 정규직이 아닌 파견이 허용되는 업종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한다. 반값 등록금을 하겠다고 했지만, 대학생들의 1인당 평균 학자금 대출은 1477만원에 달하고, 10명 중 7명 이상이 등록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청년들은 경제문제에 짓눌려 정치는 먼 나라 얘기가 되었다.

세 번째는 청년들의 해외 유출이 국가발전의 기본 원칙에 반하는 발상이라는 점이다. 공자는 정치의 요체를 ‘근자열 원자래(近者說 遠者來)’, 즉 가까이 있는 사람은 기쁘게 하고, 먼 곳에 있는 사람은 찾아오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국가발전의 기본 원리는 나라 안에 사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고, 외국의 능력 있는 사람들이 살고 싶어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다. 청년들은 생산의 주체이자, 기성세대의 노후 복지를 감당할 유일한 자산이다. 청년들이 행복하지 못하고, 쪼들리다가 재생산마저 포기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능력)을 자랑하는 청년들이 이 땅에서 자리잡지 못하고, 해외로 빠져나가면, 우리 경제의 생산성과 효율성은 정체될 수밖에 없다. 인도와 멕시코의 핵심인재들이 대거 미국으로 빠져나간 결과 이들 나라의 질적 성장이 지체되고 있음을 보라. 득중득국(得衆得國), 국민을 얻고 모아야 나라가 산다. 능력 있는 청년들이 한국에서 자리잡고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5일 오후 성동구 한양대 백남음악관에서 강연을 위해 들어서고 있다. 뒷쪽은 김대표를 비난하는 한국청년연대, 알바노조 등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_ 연합뉴스


마지막으로 돈이 아닌 인간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편하게 생각하는 환경 속에서 즐겁게 일하고 싶어한다. 청년들도 태어난 이 땅에서 우리말로 의사소통하며 퇴근해서 연애도 하고, 저녁식사 뒤 산책도 하고 싶어한다. 말이 좋아 해외 진출이지, 그 나라에서는 ‘외국인 노동자’가 되는 것이다. 돈을 위해 행복을 바꾸는 것이 외국인 노동자로서의 삶이다. 연인과 부부가 돈 때문에 생이별해서 사는 것을 정부가 조장해서는 안된다. 70년대 중동 건설 붐 때도 가정 파탄이 큰 사회문제였다. 처녀 총각이 부모님과 가까운 곳에서 즐겁게 일하고 퇴근한 다음 연애도 하고 함께 살도록 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박 대통령에게 ‘농담’이 시대착오임을 알려 주기 위해서라도 청년들이 정치적 선택과 행동에 나서야 할 때다. 멀리 열사의 땅에서 외로이 노동을 팔아 돈을 벌며 살 것인가, 아니면 연애부터 결혼, 출산, 2세 교육에 이르기까지 인생을 행복하고 충만하도록 일하며 살 것인가?


김성진 | 변호사·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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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수상작 <위플래쉬>를 보러 극장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평범한 음악영화인 줄 알았다. 젊은 드러머의 연주 모습, ‘천재를 갈망하는 광기’라는 문구가 실린 포스터에서 예술혼을 불태우는 드러머 지망생의 감동적인 성취 스토리를 추측했다. 최고의 드러머가 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음대 신입생 앤드루, 최고의 연주자를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자신만의 교육방식을 강요하는 스승 플레처. 같은 목표를 지향하는 둘의 관계는 극단적이고 비정상적이다. 모멸적인 폭언과 폭행을 서슴지 않는 플레처는 앤드루를 극한으로 내몬다. 최고를 만들기 위한 자기 방식이다.

이에 맞서는 앤드루는 손에서 살점과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드럼에 집착한다. 미쳤다고 봐도 무방하다. 두 주인공 사이에 팽팽하게 벌어지는 긴장감은 심리 스릴러를 방불케 하며 보는 이들을 옥죄듯 몰아붙인다. 얼마나 영화에 몰입했던지 100분 남짓한 상영시간 동안 마치 채찍질(영화제목 위플래쉬의 뜻이 채찍질이다)이라도 당한 기분이었다.

영화 <위플래쉬>의 한 장면 (출처 : 경향DB)


독특하고 색다른 영화였지만 불편한 뒷맛이 남았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저렇게 사람을 몰아쳐도 되나, 뭔가에 미치는 건 좋지만 그 열정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건 어떡하나, 1등만 하면 모든 과정이 정당화되나, 비인간적인 인격의 토양에서 피어나는 멋진 예술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생각이 많아졌다.

한편으론 반갑기도 했다. 국내에서 별 기반이 없는 재즈가 소재인 데다 영화를 풀어가는 방식에서 일반적인 흥행영화 공식을 따르지 않는 작품이 개봉 2주 만에 100만 관객을 모았다니 말이다.

이 영화에 대한 불편함이 다시 치밀어 오른 건 며칠 전 택시에서였다. 머리가 희끗한 기사는 불쑥 “<위플래쉬>라는 영화 봤느냐”고 물었다. “젊게 사신다”고 했더니 그는 이내 목소리를 높였다. “미쳐야 뭐가 되더라도 되는 거예요. 초일류가 되려면 그 정도는 거뜬히 이겨내야 하는데 요즘 애들이 너무 나약하잖아요. 오늘 탔던 나이 지긋한 손님 두 분도 그런 스승이 나와야 한대요. 세상이 위아래가 없으니 원….”

얼마 후 한 취재원을 만난 자리에서 이 불편함은 불쾌함으로 발전했다. 30대 후반의 대기업 차장은 “임원들이 <위플래쉬>를 단체 관람이라도 했는지 회의 때마다 플레처, 플레처 한다”면서 “자기계발서 유의 영화냐”고 물어왔다.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자신을 자극했다는 둥, 그런 선생만 있었으면 우리 막내 아들놈이 대학 제대로 갔을 거라는 둥 야단이더라니까요. 지난주 설교시간에 듣고 왔는지 우리 엄마도 영화표 끊어 달래요.”

영화에 대한 호불호나 평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이다. 뭘 느끼든, 어떻게 생각하든 자유다. 그런데 분위기가 묘하게 흐른다. 열정, 예술혼, 에너지, 인간미 등이 거론되고 다양한 평가와 논란이 쏟아지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분위기와 주변에서 만나는, 기성세대로 분류되는 관객들의 반응은 그 결이 사뭇 다르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자신들의 인생과 살아온 시대가 예술적으로 긍정됐다며 위안을 얻었던 그들이 이제는 <위플래쉬>, 좀 더 정확히는 ‘플레처의 방식과 철학’에 정서적 유대감을 느끼며 환호하는 것 같다.

취업난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에게 “취직자리 없으면 해외 나가서 열심히 찾아보라”는 대통령을 위시한 정치권의 현실인식 수준, “더 열심히 노력하고 더 아파야 한다”고 큰소리 치는 자칭 멘토들의 활약이 여전한 걸 보면 이런 생각이 유난스러운 확대해석은 아니라고 본다.

솔직히 겁난다. 지도층 혹은 멘토라는 분들이 이 영화를 보고는 어떤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놓을지. 더 끔찍한 건 ‘내가 플레처가 되겠다’고 나서는 분들이 있을까 싶은 거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박경은 대중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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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親)기업 정부를 강조하며 ‘기업국가’를 만들고자 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한 이후 노동절 날 대통령 기념연설은 조용히 자취를 감추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취임 이후 지금까지 무역의날에 수출기업들을 치하하는 연설은 잊지 않았지만 노동절에 노동자들을 격려하는 발언은 아직까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런 박 대통령이 오랜만에 노동을 화두로 장시간 발언을 했다. 지난 25일 청와대로 고용창출 우수기업 대표와 노동자들을 불러 오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나온 연설이었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통일대박’ ‘규제는 암덩어리’를 통해 스스로의 가치지향을 보여준 박 대통령은 이날 “노동개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메시지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드러내 보였다. “우리 경제가 도약하느냐, 정체하느냐 갈림길에 있다”는 말과 함께 이달 말까지 노사정 대타협도 강조했다. 구체적인 방향은 주문하지 않았지만 “기업의 투자를 늘리고 고용을 늘려 달라”는 말 속에 사실상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노동자들이 다시 한번 기업과 경기회복을 위해 희생해달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꿈꾸는 이상적인 노동자상은 영화 <국제시장>에서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주인공 ‘덕수’에 정확하게 투영돼 있다. 지난 19일 중앙일간지 1면의 정부 광고에도 ‘노동개혁을 해야 청년일자리가 해결된다’는 문구와 함께 덕수 역을 맡은 배우 황정민이 등장했다.

드라마 <미생>의 비정규 노동자 장그래(임시완 분)와 어깨동무를 한 덕수의 모습에서 박 대통령의 꿈은 완성된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 ‘판타지’일 뿐이다. 청년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책임,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 노동자의 양보를 강조하기에 앞서 박 대통령이 잊은 것은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책임이다.

2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이완구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노사대표와 오찬간담회에서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이 이완구 총리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출처 : 경향DB)


노사정 대타협을 이뤄가는 과정에서 기업이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에게만 양보를 주문하는 것은 노동현실을 외면하고 있거나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지난 2년간 통신업, 금융업, 대형 제조업에서 3만여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현대중공업, KT처럼 고액연봉자에 강력한 노조가 버티고 있는 사업장들도 예외가 아니다. 외환위기 직후만 해도 정리해고는 도산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기업의 비상수단이었지만 지금은 모든 기업에 희망퇴직, 명예퇴직, 정리해고의 칼바람이 상시화돼 있다. 약간만 경기침체 징후가 보여도 경영자가 가장 손쉽게 동원하는 방법이 구조조정이 돼 버렸다. 아들 ‘장그래’ 못지않게 아버지 ‘덕수’도 고용불안정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가 된 것이다.

25일 대만 타이베이에서는 이달 말로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경기 이천의 하이디스 노동자들이 ‘먹튀자본’을 규탄하며 삭발식을 가졌다. 국내 기술자들이 개발한 기술로 매년 1000억원이 넘는 기술료 수입을 챙기면서도 투자는 없이 고작 인건비 200억원이 부담돼 공장문을 닫는 외국자본의 몰염치에 377명이 길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있지만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원정시위대에 따르면 대만 노동청은 적극적으로 중재노력을 하고 있는 반면 한국 영사관에서는 ‘관광비자로 입국해 시위하면 안된다’는 경고만 하고 갔다고 한다.

독일의 거리철학자 발터 베냐민은 과거를 향해 머리를 돌리고 폭풍 앞에 안절부절못하는 파울 클레의 그림 ‘새로운 천사’를 보고 “폭풍은 천사를 미래로 부단히 몰고 가는 반면 천사의 눈앞에서 파편더미는 하늘에 닿을 듯 쌓여간다”고 했다.

‘장그래’와 ‘덕수’는 노동의 과거와 미래가 아니라 눈앞의 아픈 현실들이다. 노동계가 하늘에 닿을 듯 수많은 주검과 실직을 쌓아가는 사이 대기업들은 500조원이 넘는 유보금을 쌓아놓고 있다. 박 대통령이 ‘새로운 천사’라면 선택은 자명하다.


강진구 정책사회부 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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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유니온이 ‘한국형 블랙기업’에 대한 자체적인 지표를 개발했다고 한다. ‘블랙기업’은 일본 청년노동운동 단체에서 만든 신개념으로 청년의 절박한 처지와 불안정한 지위를 악용해 일상적인 착취와 비합리적인 노동을 강요하는 악덕기업을 일컫는다. 청년유니온은 지난해 11월 청년의 노동을 일회용품처럼 취급하고 청년의 삶을 무참히 파괴하는 기업에 맞서는 ‘한국판 블랙기업 운동’을 선언하고 블랙기업 제보 사이트를 개설한 데 이어 그동안 개발한 한국형 블랙기업 지표를 어제 발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번 연구를 위해 청년유니온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노동상담과 블랙기업 제보, 청년노동자 설문조사와 심층면접 결과는 블랙기업에 시달리는 청년노동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불완전고용, 장시간 노동, 교육 없는 열정페이, 임금체불, 연장수당 미지급, 근로계약서 미작성, 정규직 희망고문, 해고 등은 청년노동자가 블랙기업에서 일상사처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성희롱, 폭언, 폭행, 따돌림도 다반사였다.

청년유니온, 민주노총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청년의 삶을 파괴하는 블랙기업에 맞서겠다는 취지의 블랙기업 운동 선포식을 열고 면접보는 청년들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한국 청년노동의 실상은 청년유니온이 제시한 블랙기업 지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블랙기업 지표는 4개 분야 10개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고용불안정 분야는 정규직 전환이라는 거짓 약속, 인턴·실습·수습 채용의 무제한 남용, 근로계약의 무질서함 등 3개 세부 항목으로 구성된다. 그 다음이 장시간 노동 분야로서 야근·주말근무 등 초과근무 강요, 시간외수당 미지급·과소지급, 휴식·휴가제도 사용 제한 등의 항목을 담고 있다. 또 직장 내 괴롭힘 분야에는 비인격적 대우·폭언, 실적 관리를 위한 압박과 비난, 퇴사를 유도하려는 의도적 배제·무시 등의 항목이 포함돼 있다. 마지막으로 폐쇄적 소통구조 분야는 의견 개진이나 문제제기 자체의 차단이라는 한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블랙기업 지표는 최근 발표된 청년실업 및 청년 일자리 관련 지표로서도 확인된 청년노동 문제의 심각성을 체계화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지난 2월 청년실업률이 외환위기 이후 최고를 기록하고 지난 10년간 청년 일자리가 청년 인구보다 더 빠르게 줄어든 것이 블랙기업 등장의 배경 가운데 하나이긴 하겠지만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청년유니온이 제시한 블랙기업 지표가 블랙기업 문제를 사회의제로 확산시키고 나아가서 청년세대를 블랙기업으로 내모는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는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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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2월 고용동향’에 나타난 각종 고용지표를 보면 곳곳에 경고등이 켜진 모습이다. 지난달 실업률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0.1%포인트 상승한 4.6%를 기록했다. 2010년 2월(4.9%) 이후 5년 만의 최고치다. 공식 실업률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 불완전 취업자와 잠재적 경제활동인구 등을 포함한 체감실업률(고용보조지표3) 또한 전달보다 0.6%포인트나 껑충 뛴 12.5%로 나타났다. 이 역시 지표 추계를 시작한 지난해 5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최근 들어 고용 상황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여러 고용지표 가운데에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청년실업률이다. 15~29세 청년층 실업률이 전달보다 1.9%포인트 급등한 11.1%를 기록한 것은 매우 우려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통상 2월이면 졸업 등과 맞물려 구직자가 늘어나는 계절적 특성이 있긴 하다. 하지만 외환위기 사태 이후 실업률 통계기준을 변경한 1999년 7월(11.5%) 이후 15년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이 개선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30대 그룹이 올해 신규 채용을 전년보다 6.3% 줄인다고 하는 마당이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출처 : 경향DB)


청년실업은 오래된 사회문제이자 지금도 우리 사회의 발등에 떨어져 타고 있는 불이라고 할 수 있다. ‘88만원세대’ ‘이태백’ ‘삼포세대’에서 ‘오포세대’ ‘청년실신’(청년실업자+신용불량자) ‘인구론’(인문대 졸업생 90%는 논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신조어가 그 심각성을 웅변하고 있다. 역대 정부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16년간 32개에 이르는 청년 관련 정책을 쏟아냈다고 할 정도다. 그런데 청년실업률이 외환위기 직후 수준으로 악화됐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동안의 청년실업 정책이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걸 확인해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청년실업률 상승 배경을 최근 고용시장 악화보다 구직인구 증가와 구조적 요인에 따른 것으로 파악하는 모양이다. 70%에 이르는 대학진학률이라든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노동시장 이중구조 심화가 주된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런 원인 진단과 다르게 정부의 고용정책이 청년층을 비켜간 측면이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고용률 70% 달성이라는 목표에 매달려 일자리의 질이라든가 세대 간 고용률 격차 등의 문제에 소홀하지 않았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청년 일자리 문제를 풀지 않고 어떻게 국가 미래 비전을 말할 수 있겠는가.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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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았다. 말이 먹히지 않았고 손에 쥔 쇠파이프는 더 이상 그들에게 무기로 보이지 않았다. 어떤 큰 흐름이 몰려드는 기분이었다. 펜스는 이곳저곳에서 쓰러져 넘어갔고 정리해고를 막겠다고 차려진 공장 안 천막들은 그들의 머리 위로 잠시 떴다 그들 속으로 사라졌다. 크게 다쳐 구급차에 실려 나가도 그들은 믿지 못했고 결국 차에서 환자를 꺼내 확인했고 둘러싸 이곳저곳 몸을 건드렸고 이리저리 밀쳤다. 도장 공장 위에서 그 장면을 봤지만 때리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저 둘러싸고 뭔가 계속 따지고 화내고 협박을 했다. 쌍용차 파업 한 달이 조금 지난 2009년 6월27일의 사건이었다.

쌍용차는 2009년 1월9일 오전 11시 법정관리가 공시됐다. 그 뒤 많은 일들이 있은 후 쌍용차 노동조합은 공장 점거 파업에 들어갔다. 5월22일이었다. 초반 여론은 우호적이었다. 해고 규모가 너무나 컸던 탓도 있겠지만 2008년 촛불에 데어 이명박 전 대통령의 7·4·7 공약이 일그러지기 시작한 것도 한몫했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정국은 일순간 검은 휘장과 천막이 둘러지고 공포가 안개처럼 깔렸다. 샛노랑은 점점 검은색에 잠식당했고 그 노랑을 들고 선 곳조차 점점 검은 그림자로 덮여갔다. 뭔가 모를 오싹함을 한여름에도 느끼는 때였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공장 점거 파업 중이어서 이 검은 공포를 느낄 수 없었고 검은 공포는 아직 공장 담을 넘지 못한 상태였다. 파업 중인 공장 안은 축제였다. 내일이면 곧 파업이 끝날 것 같았고 원칙을 말하는 회사의 발표는 그저 그런 수식으로 보였다. 실제 파업이 그랬기 때문이다. 상황이 조금씩 달라진 건 죽어간 동지를 위한 기자회견을 하며 검은색이 공장 안으로 점차 그것도 많이 들어오면서부터다.

공장 안은 빨강을 들었다. 저항의 상징이었고 노동자 역사의 방향이었다. 그러나 점차 공장 밖과의 경계면이 옅어져갔다. 빨강은 검정에 빠르게 자리를 내줬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파업을 지키느라 매일같이 한여름 공장 지붕을 걷다 아찔한 현기증 이후 찾아드는 그 짧은 어둠에서 공포는 만들어지고 있었다.

공장 밖 동료들은 어땠을까. 파업 초기에는 공장 안 동료들에게 전화로 안부를 자주 물었다. 아내들도 예전처럼 만나고 술도 함께 먹었다. 건강하게 조금만 더 버티면 함께 일한다는 격려도 먼저 건넸다. 그 마음이 고마워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러나 쌍용차 법정관리인 이유일은 여전히 원칙을 내뱉었고 타협하지 않겠다고 자주 선언했다. 해고자 명단에 없는 생산직, 사무직 가리지 않고 공장 밖 동료들을 쪼아대고 끌고 다니며 서울과 평택을 오갔고 공권력 투입까지 대놓고 호소했다. 공장 밖 펜스 주변과 앞에서 공장을 지켜야 한다며 궐기대회만 열고 정작 공장 안으로 진입하진 않았다. 궐기대회 연단에 하나둘 불러 세워 발언을 시켰고 그들에게 발언을 듣게 했다. 그들은 우리와의 연락을 점점 줄였고 버럭버럭 화도 자주 냈다.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법정관리인 이유일은 한 달 가까이 이 짓만 해댔다. 몰려다니게 했고 대장을 세워 완장을 채웠고 파업하는 동료들을 비난하게 했다. 교섭 요구는 묵살했고 신차 출시 돈이 없던 회사에서 정작 정부에는 돈은 필요 없고 공권력만 달라고 했다. 공장 밖 동료들은 검게 물들어가는 정국에 겁났을 테고 공장이 정말 망한다고 믿게 됐다.

언론은 작은 쌍용차 회사 파업을 두고서 나라경제 망한다며 부추겼다. 그들이 듣는 유일한 라디오는 법정관리인의 입이었다. 결국 2009년 6월27일 그들을 앞세워 공장 펜스를 무너뜨리고 법정관리인은 본관을 접수했다. 그러나 딱 하루 뒤 또다시 그들을 앞세워 법정관리인은 공장을 나가버렸다. 그때까지도 멋모르고 함께 쓸려 들어온 동료들까지 그 순간부터는 이유일의 입만 보게 된 것이다.

7년 동안 쌍용차는 2009년 6월27일 그 사건 하나로 끌려왔고 흘러왔다. 이유일은 쌍용차의 일그러진 영웅 엄석대였다. 공장 안에선 의견도 판단도 없었다. 우리는 그들을 생각 없다며 비난만 해댔다. 어쩌면 그럴 수 있느냐며 그들 탓만 했고 그들이 왜 일어서지 못하는지는 몰랐다.

이유일 쌍용차 사장 (출처 : 경향DB)


이유일 법정관리인에게 좀비처럼 끌려다녔던 그 한 달의 공포스럽고 치욕스러운 기억에서 포박당한 채 7년을 아파했을 공장 안 사무직, 생산직 옛 동료들에게 너무나 죄송하고 미안하다. 그 이유를 굴뚝에 오른 지 96일째 되는 날에야 안 것이 너무나 후회스럽다. 26명 동료를 지키지 못했고 해고자들 또한 여전히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 당시 법정관리인이었던 이유일 현 사장은 3월24일 7년의 장기간 임기가 끝난다. 3월24일은 공장 안 동료들의 공포의 시간이 끝나고 희망의 시간이 시작되는 날이자 축제의 날이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일어설 수 있다.


이창근 | 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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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이유일

도시에서의 창업 환경과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로 도시창업은 점차 성공이 힘들어지고 있다. 창업 5년 후 생존율이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통계가 이를 방증하고 있다. 반면 귀농귀촌으로 농식품 6차산업을 통한 새로운 창업시장은 날로 확대되며 예비창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고도성장을 주도했던 산업화시대에는 대도시에서의 창업이 재미를 봤지만 최근 들어 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창업에 대한 마인드도 새롭게 변하고 있다. 이러한 농촌 창업 추세는 정부에서 도시 생활자들을 대상으로 귀농귀촌을 장려하고 있으며, 특히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식품 6차산업 육성정책과 지원도 한몫을 차지하고 있다.

백화점을 비롯한 소매업의 주력업종이 과거에는 패션의류와 잡화였다면 최근에는 농식품이 가장 인기 있고 소매업의 경쟁력과 활성화에 사활을 거는 상품군이 되고 있다. 이는 과거와는 달리 농축수산물도 명품화되어 의류와 잡화 명품에 결코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왜 농촌창업인 농식품 6차산업화 창업시장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을까? 영화 <워낭소리> 할아버지의 둘째 아들은 호텔 주방장을 하면서 서양요리 식재료의 한계와 애로를 느껴, 도시에서 레스토랑을 창업하지 않고 고향 경북 봉화로 내려가 부가가치가 높은 희귀농산물 농장을 경영하고 있다. 차별화된 기능성 농산물 식재료로 비싼 가격에도 고급 야채류 틈새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오랫동안 동네 제과점을 운영하다 프랜차이즈 브랜드에 밀려 폐업 후 막막하던 중 경북 성주로 귀촌해 와송을 재배, 제과업 경험을 살려 ‘와송카스테라’를 개발해 인기를 얻고 있는 분도 있다.

우리나라 농촌 지역 중 농산물 브랜드 경쟁력이 높은 고창 복분자, 해남 땅끝 친환경 농산물, 문경 오미자, 상주 곶감 등이 대표적 농식품이다.

이들 지자체는 대부분 농가 소득이 억대를 넘는다. 이러한 지자체의 특징은 다른 농촌에 비해 귀농귀촌 인구가 많다는 점이다. 전국의 누적 귀농귀촌 인구도 12만여가구로 전체 농가의 10%를 넘어서고 있다.

6차산업은 1차산업인 농업 생산을 기반으로 하여 2차 농식품 가공, 3차 유통·외식·관광서비스 등이 융복합화되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기존 농촌 출신보다 도시에서의 직장 및 비즈니스 경험과 젊은이들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결합된다면 효율성 측면에서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한 농가 주민들이 스마트폰으로 재배한 토마토를 자랑하고 해맑게 웃고 있다. (출처 : 경향DB)


냉엄하기만 한 도시창업과는 달리 농촌창업은 사람을 쉽게 배신하지 않는다. 누구네 장남의 고시 합격 축하 현수막보다 앞으로는 ‘누구네 아들 내외 귀촌 환영’ 현수막을 더 자주 볼 수 있는 농촌의 모습이 되길 희망한다.

미국을 비롯해 프랑스, 네덜란드, 이스라엘 등 세계의 경제대국, 강소국들은 모두 농업이 강하다.

우리나라 농업도 부가가치가 높은 농식품 6차산업화로 경쟁력을 높여 농업경영시대로 전환, 미래를 농어촌에서 펼칠 수 있는 농촌창업시장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할 때이다.


김성수 | 농식품6차산업협회 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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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빛났다. 햇살이 바큇살에 닿았다. 부산 영도 바닷바람을 돛대 삼아 자전거가 앞으로 나갔다. 몇 미터 지나기 무섭게 기우뚱. 평소 자전거 타지 않은 탓이다. 3월 초. 따뜻했다. 상가 앞 묶여 있는 짐들이 검은 고무 밧줄로 악착같이 묶여 있다. 짐수레 끄는 노인의 허리가 자전거 타는 우리보다 더 휘어 있다. 봄이 악착같이 굽은 겨울을 펴댄다. 부산을 출발해 평택 쌍용차 굴뚝까지 700㎞를 자전거로 달리는 ‘희망질주’. 거리 가늠하니 아득했다. 겨울 장작처럼 바짝 마른 두 다리 내려다보니 더욱 까마득했다. 아침 8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그 시각 평택 노조사무실이 분주했다. 굴뚝에 아침밥 올리는 해고자는 죽을 젓고 샌드위치를 타지 않게 뒤집었다. 기름을 얇게 두르고 연신 불 조절을 한다.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희망질주 3일째 아침. 사타구니가 아팠다. 꼬리뼈가 욱신거렸고 골프공 여러 개가 들어 있는 것처럼 종아리가 뭉쳤다. 담배 한 대 피워 물고 바큇살을 돌려본다. 공기압은 손으로 눌러보고 안장까지 꼼꼼하게 확인한 후 만족한 듯 씨익 웃는다. 페달에 발을 올리자 ‘끙’ 하는 소리가 툭 튀어나온다. 역풍이 불어오자 바퀴가 움켜쥐듯 바닥을 잡아 끌었다. 어색한 헬멧을 보며 사진도 찍고 멋도 부려본다. 그 앞이 자동차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자전거는 이내 줄 지어 도로 위를 달린다.

오후 3시. 같은 시각 해고자는 평택 자기 집 방안에 있었다. 그 흔한 스마트폰도 없이 세상물정 보지 않으려고 까막눈 안대를 하고 7년째 살아내고 있다. 텔레비전은 예전에 박살내버렸고 라디오 지직거리는 소리도 듣기 싫다. 쌍용차의 ‘쌍’자만 나와도 피했다. 공장 생활에서 예비군 대대 조교로 있었던 시절만 아련하다. 파업 과정에서 허리뼈 부러져 1년 반을 병원에 있었고 퇴원 후 산재처리 문제로 이곳저곳 불려 다니느라 물리치료도 때를 놓쳤다. 결국 그 잘난 돈 몇 푼 개나 줘버리란 마음으로 집 안에서 옥쇄파업 중이다. 전화도 문자도 확인조차 하지 않는다. 자신을 ‘쌍’으로부터 지켜내야 했다.

추풍령까지 왔다. 휴가철에 자동차로 밖을 보며 넘었던 기억은 있지만 자전거는 처음이다. 엄청난 바람에 결국 자전거를 끌고 고개를 넘어야 했다. 굴뚝 위 두 사람이 생각나자 바람이 서러웠다. 이 산을 넘어 강원도로 넘어가면 쌍용차 하계휴양소가 있다. 밤새 술잔 나눴던 상무님과 부장님 생각이 났다. 갑자기 옆자리에 앉아 술 한잔 달라던 사장님 생각도 났다. 눈이 뻘건 디자인팀 대리는 새로운 디자인이 나올 때면 빨간 매화꽃마냥 그 눈이 그렇게 예뻤다. 엔진개발과 시작팀과 주행테스트 동료들은 일의 자부심이 강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시험차를 몰아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모습을 봤을 땐 회사가 뿌듯하기만 했다. 그들은 회사를 제 집으로 생각했다. 우리가 파업 기간 있었던 77일보다 평소 더 많은 날들을 공장에서 먹고 자는 이들이었다. 그러나 회사 이마엔 ‘해고는 살인이다’ 구호가 낙인처럼 박혔고 이들의 사기는 7년 동안 어지럽게 짓밟혔다.

점점 근육이 뭉치고 팔다리가 저렸다. 칼바람 맞은 얼굴은 감각이 사라졌고 딱딱한 바람이 모래처럼 따가울 때만 이따금씩 감각이 돌아왔다. 얼굴과 몸이 벌겋게 달았다 하얗게 식어가며 담금질을 한다. 장애인들의 휠체어 미는 손이 얼마나 아픈지 알겠다 말하는 반백의 노동자.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 죽겠다면서도 허리뼈 부러져 자전거를 함께 타지 못하는 동료를 생각하는 이제 갓 마흔 넘긴 해고자에게 파란 잎사귀 하나 더 돋는다.

살아 있는 것과 살아내는 것이 고맙고 죽음의 숫자가 26에서 멈춰선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가. 그 기적을 일궈낸 그들이지만 삶은 복원되지도 않았고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한다. 공권력의 진압과 삶의 아킬레스건까지 잘라버린 경기경찰청장의 일그러진 승진욕이 버무려진 참사 때문이다.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통신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8일 서울 명동 중앙우체국 앞에서 “해고자 복직”을 주장하며 경기도 평택 쌍용차 공장으로 자전거 행진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쌍용차 희생자 26명의 명예회복은 역설적이게도 회사에 가장 이로운 요구안이다. 분홍도서관을 노사가 함께 짓고 그곳을 방문하는 숱한 사람들에게 이곳이 26명 쌍용차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해 노와 사가 함께 만든 공간이라 소개하는 것이 왜 해고자에게만 좋은 일인가. 분홍도서관 입구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분홍도서관 쌍용차영업점을 만들면 얼마나 좋겠는가. 출판시장이 얼어 붙어 있으나 <이창근의 해고일기>가 한 달 사이 벌써 8쇄를 찍고 매일 수천권의 책이 팔려 나가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쌍용차는 내수와 수출의 불균형성을 극복하지 못하면 주기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고질적인 판매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내수를 안정화시켜야 한다. 시장 점유율이 아닌 생각 점유율을 높이는 길이 진정으로 어려운 일인가. 분홍도서관을 시작으로 노사 모두가 7년간의 갈등과 대립의 시간을 섞고 녹여 ‘생각하는 기업 쌍용자동차’로 다시 태어나자.


이창근 |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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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성평등을 주제로 한 각종 집회와 문화 행사가 열렸다. 1908년 3월8일 미국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참정권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것을 기념해 제정된 세계 여성의 날이 107돌을 맞지만 한국 여성의 인권과 지위는 여전히 빨간불이 켜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성 노동자의 임금과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가히 세계 최하위권이라는 노동계의 주장을 경청하지 않을 수 없는 여러 지표와 현실 때문이다.

2014년 기준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전체의 절반 수준인 51.3%에 불과하다고 한다. 임금 수준은 더욱 문제다. 남성의 63.7%로서 성별 임금격차가 무려 36.3%에 이른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13년째 이런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지키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하는 성평등 수준도 142개국 가운데 117위로 매년 그 순위가 떨어지고 있으며,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도 100점 만점에 25.6점으로 OECD 28개국 가운데 최하위를 3년째 고수하고 있다.

107주년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8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성 평등은 모두를 위한 진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한국여성대회를 열고 있다. 봄바람을 따라 참가자들의 희망 메시지가 적힌 바람개비가 돌고 있다. (출처 : 경향DB)


더욱 우울한 것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현실이다. 전체 여성 노동자의 57.3%가 비정규직이고, 이들의 임금 수준은 남성 정규직의 35.8%에 불과하다. 더욱이 비정규직 가운데 28%는 최저임금에도 미달하는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5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개최한 최저임금 여성 노동자 증언대회에서 보듯이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대형마트, 단순 제조업, 청소, 학교 급식 등에 종사하면서 몇 년을 일해도 최저임금을 받는 것이 한국 여성노동의 현주소다. “여성 노동자는 서푼 반찬값이나 벌러 나온 게 아니다. 엄연한 생계 부양자다”라는 게 이들의 외침이다. 이들은 사회보험이라든가 노동조합 가입률도 낮아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저임금 노동은 여성의 지위나 양성평등 이전에 기본적인 인권 차원에서 다뤄져야 할 문제다. 여성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 자체가 차별이며, 여성의 빈곤은 지위 하락은 물론 또 다른 차별과 폭력을 부르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그런 점에서 최근 일고 있는 최저임금 큰 폭 인상 여론이 여성 노동에도 긍정적인 신호가 되기를 기대한다. 정부는 일자리 나누기와 같은 고용정책에서 여성 노동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없는지 제대로 살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여성의 지위와 양성평등은 최저임금이 여성 노동의 또 다른 이름이 되는 현실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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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치권에서 내수 진작을 위한 임금 인상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정부 산하 연구기관에서도 일자리 확대를 위해 임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정책 제언을 내놓았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최근 발행한 ‘일자리 확대를 위한 노동조합의 역할’이라는 보고서에서 “임금은 내수를 확대해 경기를 회복시키고 고용을 창출하는 원천”이라며 “정부는 각종 정책 수단을 동원해 임금 인상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특히 “저임금 계층은 고임금 계층에 비해 한계소비성향이 크기 때문에 증가한 임금이 대부분 지출되어 내수 확대에 크게 기여한다”며 임금 인상이 저임금 계층에 집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최우선 과제라는 얘기다.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서는 최근 정치권도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4일 국가경영전략연구원 강연에서 “올해도 최저임금을 빠른 속도로 올릴 수밖에 없다”며 불씨를 댕기자 ‘소득주도 성장론’을 내세워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주장해온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한 야당이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그동안 영세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의 부담 등을 이유로 최저임금 인상에 소극적이던 새누리당도 최 부총리 발언에 공감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선회했다. 어제 열린 당·정·청 회의에서도 최저임금 인상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함께하고 한목소리를 내기로 했다고 한다.

알바노조 회원들이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최저임금 1만원 운동 과정에서 부과된 1500만원의 벌금에 대해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출처 : 경향DB)


정부와 정치권의 분위기를 보면 최저임금 수준의 개선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현재 시급 5580원인 최저임금이 기초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낮은 수준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바다. 적어도 최저임금을 전체 임금노동자 평균임금의 절반 수준(7000~8000원)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도 확산되고 있다.

관건은 정부의 의지다. 직업능력개발원 보고서도 지적하듯이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는 정부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다. 경기 회복과 고용 창출을 위해 저임금 계층의 임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명분을 갖게 된 만큼 최저임금 정책의 획기적인 전환이 기대된다. 가깝게는 오는 6월 결정하는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폭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멀게는 생활임금 수준으로 가기 위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 실행에 옮겼으면 한다. 임금 인상이라면 질겁하는 재계의 발상 전환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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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책 한권을 받았다. 평택 쌍용자동차(쌍차) 공장 굴뚝에서 오늘로 84일째 고공농성 중인 쌍차 해고노동자 이창근의 해고일기다.

책 첫머리엔 85호 크레인에서 309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인 김진숙 지도위원의 추천사가 실려 있었다. 추천사를 읽다가 눈과 마음에 오랫동안 머문 글 내용이 있었다.

“어쩌면 저들이 더 절박할 텐데 그러나 난 그걸 애써 외면했다. 한진에 와야 할 관심이 혹여 쌍차로 가면 어쩌나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그들보단 우리가 더 절박하다고, 우리를 더 먼저 봐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면서 입으로는 쌍차를 봐주세요 했던 가증스러움. 인간은 다급하면 본성이 드러나는 법이란 말, 그래서 찔린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가증스러움과 본성이라는 두 단어의 절묘한 조화였다. 그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 충분히 짐작이 된다. 몇 번이고 되뇐 가증스러움이다. 그 절박함에 내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일까?

따지고 보면 그 절박함 때문에 누군가를 희생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이렇게 힘드니 도와달라고 아니 내 문제가 더 크니 일단 이것부터 함께해 달라는 것이 정말 가증스러운 것일까? 아니 그게 본성이라면 이해될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 아닐까?

연신 가증스러움이라는 단어를 입으로 낯설게 옹알거리며 되새기고 있다 보니 2년 전 대한문에서 쌍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과 이 땅의 모든 해고노동자들을 위한 “사람아, 희망이 되어라” 미사를 225일 동안 봉헌하며 들었던 이야기가 불현듯 떠올랐다. 잊을 만하면 이따금씩 그리고 지금도 듣는 질문이 있었다. 왜 이리 노동문제에 집착하냐고 말이다. 다른 여타의 사회 현안도 많은데 너무 쌍차에 집중하는 게 아니냐고 말이다.

집착과 집중이라는 말이 이렇게 서글프게 들린 적도 없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더 이상 죽을 수만은 없어 세상 한복판에서 살겠다는 외침도 하루가 멀다고 얼마나 무자비하게 공권력의 탄압을 받으며 피폐해진 쌍차 해고노동자들의 삶을 생각하면서 다른 이들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하는 내가 너무나 쌍차 해고노동자들에게만 매달리는 가증스러운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에 심경이 착잡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심 서운했다. 쌍차 해고노동자들의 문제가 사회적 의제가 될 만하면 굵직한 정치적 이슈에 떠밀려 그때마다 쌍차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어떻게든 안간힘을 써가며 그들이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뭐라도 하고 싶은 심정인데 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아침 해고자들이 공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출처 : 경향DB)


나름 항변해 보았다. 사실 내겐 쌍차 해고노동자들의 문제가 너무나 다급했다. 어쩌면 그래서 그 본성이 드러나 다른 문제들을 헤아리지 못하는, 아니 쌍차 문제가 더 절박하니 집중해달라고 부탁하며 기도했던 것이 가증스러움이라면 가증스러움일지도 모르겠다.

가끔 우리가 착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고통의 상대화이다. 자신의 고통은 누구에게나 절대적이다. 고통을 상대화하거나 비교한다면 그건 또 다른 폭력이다.

그렇게 비교되는 고통은 이해와 공감보다는 무시된다. 각자 처해진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결코 서로 다를 수 없는 우리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 분리될 수 없는 우리의 아픔이다. 그런 아픔을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에 집중과 집착이라는 말은 정말 당치 않은 것 같다.

만일 그렇게 바라본다면 나는 오늘도 가증스러움과 다급한 본성이 드러난 쌍차 해고노동자들의 문제에만 집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매우 이기적인 그런 연대를.

그래도 간절히 부탁하고 싶다. 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이름을 불러 그리우면 사랑이고, 그리운 사람 이름을 부르면 사랑고백이라고.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김정욱 이창근 이 두 사람이 하늘 벼랑 끝 굴뚝의 삶이 마무리될 수 있도록 새봄이 오는 3월14일 토요일 평택 쌍차 공장 굴뚝 앞에서 고통 앞에 중립 없는 뜨거운 연대를 해달라고.


서영섭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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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쌍용차

그가 죽었다. 한 명 두 명 그가 죽어 나갔다. 자동차가 만들고 싶어졌다. 공장 안에서 파업이 길어질수록 그 자동차 한 대를 꼭 만들고 싶었다. 회사 망한다는 소리가 억울했고 옥쇄파업이 생산시설을 부수는 파업으로 보도될 땐 숨이 턱턱 막혔다. 2009년 8월 결국 그 자동차 한 대를 만들지 못하고 공장에서 끌려 나왔다. 그는 또 죽어갔다. 그를 잊고 싶었고 알고 싶지 않았다. 현실이 아니었으면 어떨까 상상했다. 만약에 파업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다시 그 시기 그때로 돌아간다면 이 모든 상황은 사라지는 것일까. 상상 속에서 밤길을 헤맸고 천막을 뚫고 들이닥친 빗물을 맞아야 아침 길이 열렸다. 입안이 텁텁했고 물병 찾아 몸을 돌리면 그가 있었다. 까만 밤 하얀 촛불을 벗 삼아 휘고 꺾이고 눌어붙도록 그는 어떤 말을 뱉어냈지만 동글동글 촛농처럼 굳었고 바닥에 굴러다녔다. 천연덕스럽게 천막을 걷고 냉기를 털었다. 국밥 한 그릇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밀어넣으며 허기를 달랬다. 바닥에 걸터앉아 달리는 자동차를 보다 잊고 있던 그 차 한 대가 생각났다. 다시 만들고 싶어졌고 그에게 자랑하고 싶어지자 마음까지 설레었다.

해고자들이 만드는 자동차. 근사할 것 같았다. 무거운 이미지도 벗겨내고 일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고, 일석이조였다. 바닥에서 번데기처럼 한뎃잠을 자면서도 실 뽑는 누에라 생각했고 눈 맞으며 오돌오돌 떨면서도 봄볕 아래 날아다니는 나비라 최면도 걸었다. 가뭇하게 돌 위에서 잠들면서도 웃음기로 입이 돌아갔다. 마음이 바빠졌다. 해고자들이 손에 연장을 쥐고 예술가들과 착한 시민들의 도움으로 그 차 한 대를 뚝딱뚝딱 만들었다. 공장에서 그 꿈을 꾼 지 꼬박 5년. 2013년 6월이었다. ‘H-20000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해고자들이 자동차를 만든 것이다. 더 정확히는 자동차 부품 2만개로 해고자들과 예술가들이 중고 자동차 한 대를 분해하고 조립한 것이다. 멋지고 뿌듯했다. 고향으로 몰고 가 엄마와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고 아들과 아내를 태워주고 싶었다. 기획안을 만들고 신나게 자동차를 만들 즈음 난 전정신경염으로 쓰러졌다. 그 자동차가 서 있는 그곳이 나를 더 뽐내고 빛낼 텐데 그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이 화가 났다. 먼저 간 그들을 위해 싸운다고 수천번을 말하고도 그 작은 조명이 탐났고 조명 밖에 서 있을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때 그 조명 욕심이 눈 안에 들어와 그를 시야에서 밀어냈다.

망원경은 굴뚝의 눈이자 안경이다. 말개진 망원경 렌즈로 굴뚝 아래 동료를 보다가 지부장이 들고 있는 하얀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언제부터였을까. 지부장은 하얀 종이 두 장을 매일 보고 있었다. 아마 굴뚝에 올라오고 난 이후였던 것 같은데 내용을 묻지 않았다. 저 하얀 종이 두 장은 도대체 무엇일까.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와 자신의 곁에 없는 아내 그리고 아이 둘을 키우는 해고자가 점심 밥을 올려줬다. 가슴이 뻐근해왔다. 굴뚝에 함께 있는 김정욱 사무국장은 연신 고맙다는 말을 했다. 쌍용차에서 희망퇴직한 동생이, 7년째 정신병원에 있는 형도 어제 돌아왔다. 가장 아픈 이들이 돌아오고 있다. 가장 먼 데서 숨죽여 살아내던 이들이 하나둘 김득중 지부장 곁에 서고 있다.

지난 달 17일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굴뚝에서 67일째 농성 중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이 지상 동료들에게 양팔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인사를 하고 있다. _ 연합뉴스


쌍용자동차(주)는 26명 희생자에 대해 “일련의 사망 사건에 대해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안타까움과 깊은 애도를 표한다. 다시는 재발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지난 2월5일 2차 실무교섭 자리에서 내놓은 회사 측 입장이다. 한 달이 지났지만 유가족이 누군지 회사는 알고 있을까. 어디에 거주했고 지금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파악은 했을까. 어디에서 죽었고 사망 원인은 뭔지 그 유가족의 아이들이 입학은 했는지 졸업할 나이에 이른 아이들은 없는지 알아는 봤을까. 회사가 내뱉은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말이 어떻게 이리도 모진 말이 되는가. ‘깊은 애도’란 말 또한 사람 속 뒤집어 천불 나게 만들고 사태 해결은커녕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넣는 아득한 말로 일그러진단 말인가. 꼬깃꼬깃 접힌 채 지부장이 조끼 안주머니에 품고 있던 그 하얀 종이 두 장은 쌍용차 26명의 희생자 명단과 가족의 연락처와 사망 원인이 담긴 자료다. 그 명단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지부장을 보면서 이곳 굴뚝으로 향하는 관심과 조명이 우리 둘을 관통해 26명 위패를 비추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아차렸다. 부끄러웠고 죄스러웠다. 7년 동안 정신병원에 감금당한 아들의 울부짖음을 팔순 노모는 언제까지 더 들어야 하는가. 교섭의 시작은 26명 죽음과 반죽음의 상태로 목숨 붙은 이들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실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회사는 한 달이 지나도록 교섭 자리에 거죽으로 앉아 ‘애도’를 입으로만 말하고 있다. 그가 만들고 싶던 그 자동차를 운 좋게 살아 남은 우리와 당신들이 함께 만들어 죽은 그를 살린 순 없는가. 3월5일 교섭을 지켜보고 그리고 판단한다.


이창근 |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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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한국철 도공사)을 상대로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냈던 전 KTX 여승무원 34명이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26일 대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의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냄으로써 승무원들의 근로자 지위 획득은 물거품이 됐다. 그러나 승무원들의 삶을 벼랑으로 내모는 또 하나의 고통이 있다. 파기환송심이 확정될 경우 해당 승무원들이 4년간 받은 임금 등을 되갚아야 한다. 4년은 2008년 법원이 임금 지급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고, 사측이 2012년 12월 소송을 거쳐 지급을 중단했을 때까지의 기간이다.

하지만 해고(2006년)와 소송제기(2008년) 이후 회사 밖으로 내몰렸던 이들이 1억원 가까운 돈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다. 오죽했으면 승무원들 사이에서 “차라리 처음 소송에서 지는 편이 나을 뻔했다”는 자조가 터져 나왔겠는가. 9년 가까운 해고 기간에 소송만 7년 걸렸고, 3심 판결만 4년이나 기다렸는데 거액의 빚만 돌아온 셈이니 그 같은 절망감이 배어 나오는 것이다. 코레일과 국토교통부 등 관계당국은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수 있는 KTX 해고 승무원 문제를 이렇게 가혹한 법 논리로 처리하는 게 과연 온당한 일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노동사건 재판의 예는 KTX 소송뿐이 아니다. 지난달 26일 대법원은 현대차 아산공장 노동자 4명에게 근로자 지위를 인정한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현대차 사측은 잽싸게 ‘이번 판결을 계기로 무책임한 투쟁선동을 금하라’는 제목의 사보를 각 공장에 배포했다. 사보는 ‘이번 판결은 소수 사안임에도 최종 판결까지 10년 소요’, ‘최병승씨 최종 판결까지 7년 소요’라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사측이 7~10년씩 걸리는 재판을 거론하면서 노동자들을 겁박한 것이다. 여기에 ‘정규직임을 인정하라’는 대법원 판결의 취지까지 무시하는 오만한 행태까지 보이고 있다.

10년간의 긴 싸움 끝에 지난달 대법원에서 패소해 KTX 복귀가 좌절된 여승무원들과 철도노조가 4일 서울역 광장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코레일과의 직접 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비정규직 문제를 노사 간, 혹은 노사정 간 교섭으로 풀기보다는 ‘모 아니면 도’의 사법부 판결에 목을 매는 노동계의 현실도 딱하다. 비정규직의 사용 이유를 제한하고 상시·지속적 일자리는 직접고용의 원칙을 확립하도록 노동관계법을 정비해야 할 것이다. 독일처럼 노동전문 법관들이 재판을 전담하는 노동법원의 도입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시간 낭비도 줄이고, 전문성도 제고되는 이중의 효과를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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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KTX

대법원은 어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근로자 지위를 확인해달라”며 현대차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며, 2년 넘게 일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현대차 노동자라고 판정한 것이다. 법원은 특히 현대차의 직접 생산공정이 아닌 간접 생산공정 노동자까지 모두 불법파견을 폭넓게 인정해 간접 생산공정 노동자의 불법파견 해석에 반발해온 현대차를 무색하게 했다. 자동차업계의 사내하청에 대한 대법원의 불법 판정은 현대차 울산공장의 최병승씨 소송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다. 현대차의 다른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현대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도 법원은 잇따라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모든 사내하청 노동은 불법파견”이라는 노동계 주장에 공감이 간다.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존중한다”고 반응했다. 말만 하지 말고 하청노동자 정규직 전환 등의 실천적 행동으로 보여주기 바란다.

재판부는 이날 재판에서 “현대차가 근로자의 업무수행에 관해 구속력 있는 지시를 했는지, 근로자들이 현대차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돼 있었는지, 현대차 정규직과 하청 근로자들이 공동작업을 했는지 등을 바탕으로 근로관계의 실질을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노동자 파견의 합·불법을 가리는 구체적 기준을 새롭게 제시한 셈이다.

26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원들이 근로자 지위확인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승소한 뒤 대법정 앞에서 축하 박수를 치고 있다. (출처 : 경향DB)


현대차는 두번이나 불법 판정을 받은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현대차는 앞서 최병승씨에 대한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결과 중앙노동위원회의 원직복직 및 임금 지불 결정을 외면하고 추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맞서왔다. 또 사내하청 노동자의 전원 정규직 전환 요구를 일축하고 일부만, 그것도 새로 입사하는 형식으로 정규직을 선별해 거센 반발을 샀다. 노동자들에게 고통만 안기는 무의미한 법적 다툼을 중단하고 순리에 따르는 것이 맞다.

기업들은 이번 대법원 판결을 비용절감을 내세워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를 양산해온 고용관행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국내 10대 재벌 계열사 노동자 중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가 36만명이며, 300인 이하 사업장까지 포함하면 200만명에 달한다. 비정규직, 노동시장 불평등 문제와 함께 최대 노동현안의 하나인 불법파견 문제가 해결의 전기를 맞이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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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정(情)을 중요시했다. 명절마다 지인들 사이에 선물이 오고가며, 정 또한 돈독해졌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세배를 하고 세배를 받은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덕담을 하고 세뱃돈을 주는 풍습도 있다.

반면 설날 등 명절에 선물이나 돈을 쉽게 주고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바로 정치인, 공직자 등 선거법의 적용을 받는 사람들이다. 특히 올해는 제1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있어 조합장 선거 후보 예정자와 조합원 및 그 가족 등도 이에 해당한다.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조합장 선거일인 3월11일까지 기부행위가 제한되며, 후보 예정자뿐만 아니라 후보자의 배우자, 후보자가 속한 기관·단체·시설도 제한된다. 또한 누구든 조합장 선거와 관련해 후보자를 위한 기부행위를 하거나 하게 할 수도 없다. 대표적인 제한 사례 몇 가지를 살펴보자.

후보자가 조합원이나 그 가족이 다수 소속된 경로당과 노인정 등에 명절 인사 명목으로 과일상자를 제공하는 행위나 후보자가 자신의 친족이 아닌 선거인이나 그 가족에게 명절 인사 명목으로 선물을 제공하는 행위, 후보자가 영농회·부녀회 등이 개최하거나 조합원이나 그 가족이 다수 참여하는 행사에 금품·음식물 등을 제공하는 행위 등은 모두 금지된다. 최근 ○○농협 조합장 입후보 예정자 ㄱ씨가 선거운동 목적으로 명절 선물을 빙자해 조합원에게 굴비 등 총 1650만원 상당의 물품을 제공해 구속기소된 사례가 있다.

이렇게 선거법에 명시된 기부행위 제한사항을 위반하면 기부행위를 한 당사자를 처벌하는 것은 물론 금전·음식물·물품 등을 제공받은 사람에게도 그 가액의 10배 이상 50배 이하(최고 3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이외에 조합장 후보자가 명절 인사를 명목으로 평소 대면이나 친교가 없는 조합원 등에게 문자나 연하장 등을 발송하는 행위나 문자메시지·e메일 등을 이용해 후보자 및 그의 가족에 관한 허위사실 공표·비방 등 위탁선거법에서 제한·금지하는 내용을 게시·전송하거나 퍼뜨리는 행위도 금지된다.

서울 와룡동 서울시선관위 직원들이 오는 3월 11일 농협·수협·산림조합장 선거를 치르는 '제1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앞두고 날짜 알림판과 피켓 등 선거 홍보물을 준비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설날에는 한 해의 안녕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전통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지 못해, 혹은 전달받지 못해 섭섭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문화를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 위탁선거법이 제정된 취지를 잘 이해해야 하겠다. 사상 최초로 치러지는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깨끗한 선거로 기록되기를 바란다.


옥은상 | 부산 강서구 선거관위 홍보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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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동시장은 비정상이다. 무엇보다 양극화가 문제다.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불평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 불평등이 성장을 방해하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감소시킨다며 한국에 시급한 개선을 촉구한 바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불평등의 원인제공자는 기업이다. 비용절감을 핑계로 비정규직 고용을 늘리고 고용의 질도 계속 악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몇몇 대기업 노조도 불평등을 고착화하거나 심화시키는 대열에 가세해 비난을 자초했다. 정규직의 임금과 복지는 늘리면서 사측이 비정규직을 쥐어짜 그 비용을 마련하는 것을 사실상 묵인하는 식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최후 보루인 노조가 비정규직의 일자리 자체를 박탈해 정규직의 일자리 보존 수단으로 삼은 경우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군산지회가 군산공장 운영방식을 현행 주간 연속 2교대제에서 1교대제로 전환하기로 회사와 합의했다고 한다. 교대조 1개가 사라지면서 발생하는 일자리 감소 문제를 정규직 노동자 작업장 전환 배치를 통해 해결하기로 한 것이다. 외부 기업에 사내 하청을 줬던 일감을 원청 기업으로 다시 가져오는 ‘인소싱’도 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사내 하청노동자들은 정규직에 일자리를 내주게 됐다. 한국지엠 노사는 지난해에도 1교대 전환을 하지 않되 사내 하청을 내보내는 합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이없는 일이다.

GM사의 로고 (출처 : 경향DB)


노조의 1차적 의무는 조합원의 일자리 보존일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한국지엠 노조의 이기적이고 반노동적인 행태가 정당화될 수 없다. 사회안전망이 허술하기 짝이 없는 한국 현실에서 비정규직이 일자리를 잃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지엠 노조는 비정규직 희생을 막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는지 성찰하기 바란다.

이번 지엠 노사의 합의는 지난해 12월 지엠의 비정규직 노동자 5명에 대해 “정규직 근로자의 지위를 인정한다”는 법원 판결에정면으로 반한다. 비정규직 살리기 운동을 준비하고 있는 노동계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기업들이 경기 침체를 핑계로 감축 경영을 철회하지 않는 한 일자리 축소 압박은 계속될 전망이다. 오늘은 비정규직의 희생으로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내일은 정규직 일자리가 희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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