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노동, 비정규직'에 해당되는 글 280건

  1. 2015.03.03 [사설]7년 소송 끝에 빚만 떠안은 KTX 승무원들의 눈물
  2. 2015.02.26 [사설]현대차, 법원 판결대로 ‘불법 파견’ 해결 즉각 나서라
  3. 2015.02.12 [기고]조합장 출마자들, 설을 악용하지 말라
  4. 2015.02.11 [사설]비정규직 내모는 데 합의한 한국지엠 노사
  5. 2015.02.10 [굴뚝에서 보내온 편지]무엇이 우리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6. 2015.02.03 [굴뚝에서 보내온 편지]쌍용차가 사는 길
  7. 2015.02.02 [기고]노동시장을 제대로 작동하게 하라
  8. 2015.01.27 [굴뚝에서 보내온 편지]여기서 할 수 있는 건
  9. 2015.01.22 [강진구의 로그인]오체투지와 국제시장
  10. 2015.01.20 [굴뚝에서 보내온 편지]살아남기 위해
  11. 2015.01.14 [정동에서]사장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12. 2015.01.13 [굴뚝에서 보내온 편지]26켤레의 신발을 보았는가
  13. 2015.01.12 [사설]비정규직 대책, 근본적 정책 전환 필요하다
  14. 2015.01.09 [사설]못된 ‘인턴 착취’ 기업 위메프뿐인가
  15. 2015.01.06 [굴뚝에서 보내온 편지]내일을 위해 오늘을 녹입니다
  16. 2015.01.06 [시론]비정규직 대책, 정부의 속내
  17. 2015.01.02 [사설]법의 심판대에 오른 유성기업 ‘노조파괴’
  18. 2014.12.29 [시론]박노해의 인터스텔라, 노동의 새벽
  19. 2014.12.29 [사설]비정규직만 늘릴 우려 큰 정부 종합대책안
  20. 2014.12.24 [굴뚝에서 온 편지]조금만 더 당신들의 이불을 밀어주세요

코레일(한국철 도공사)을 상대로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냈던 전 KTX 여승무원 34명이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26일 대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의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냄으로써 승무원들의 근로자 지위 획득은 물거품이 됐다. 그러나 승무원들의 삶을 벼랑으로 내모는 또 하나의 고통이 있다. 파기환송심이 확정될 경우 해당 승무원들이 4년간 받은 임금 등을 되갚아야 한다. 4년은 2008년 법원이 임금 지급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고, 사측이 2012년 12월 소송을 거쳐 지급을 중단했을 때까지의 기간이다.

하지만 해고(2006년)와 소송제기(2008년) 이후 회사 밖으로 내몰렸던 이들이 1억원 가까운 돈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다. 오죽했으면 승무원들 사이에서 “차라리 처음 소송에서 지는 편이 나을 뻔했다”는 자조가 터져 나왔겠는가. 9년 가까운 해고 기간에 소송만 7년 걸렸고, 3심 판결만 4년이나 기다렸는데 거액의 빚만 돌아온 셈이니 그 같은 절망감이 배어 나오는 것이다. 코레일과 국토교통부 등 관계당국은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수 있는 KTX 해고 승무원 문제를 이렇게 가혹한 법 논리로 처리하는 게 과연 온당한 일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노동사건 재판의 예는 KTX 소송뿐이 아니다. 지난달 26일 대법원은 현대차 아산공장 노동자 4명에게 근로자 지위를 인정한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현대차 사측은 잽싸게 ‘이번 판결을 계기로 무책임한 투쟁선동을 금하라’는 제목의 사보를 각 공장에 배포했다. 사보는 ‘이번 판결은 소수 사안임에도 최종 판결까지 10년 소요’, ‘최병승씨 최종 판결까지 7년 소요’라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사측이 7~10년씩 걸리는 재판을 거론하면서 노동자들을 겁박한 것이다. 여기에 ‘정규직임을 인정하라’는 대법원 판결의 취지까지 무시하는 오만한 행태까지 보이고 있다.

10년간의 긴 싸움 끝에 지난달 대법원에서 패소해 KTX 복귀가 좌절된 여승무원들과 철도노조가 4일 서울역 광장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코레일과의 직접 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비정규직 문제를 노사 간, 혹은 노사정 간 교섭으로 풀기보다는 ‘모 아니면 도’의 사법부 판결에 목을 매는 노동계의 현실도 딱하다. 비정규직의 사용 이유를 제한하고 상시·지속적 일자리는 직접고용의 원칙을 확립하도록 노동관계법을 정비해야 할 것이다. 독일처럼 노동전문 법관들이 재판을 전담하는 노동법원의 도입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시간 낭비도 줄이고, 전문성도 제고되는 이중의 효과를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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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어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근로자 지위를 확인해달라”며 현대차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며, 2년 넘게 일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현대차 노동자라고 판정한 것이다. 법원은 특히 현대차의 직접 생산공정이 아닌 간접 생산공정 노동자까지 모두 불법파견을 폭넓게 인정해 간접 생산공정 노동자의 불법파견 해석에 반발해온 현대차를 무색하게 했다. 자동차업계의 사내하청에 대한 대법원의 불법 판정은 현대차 울산공장의 최병승씨 소송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다. 현대차의 다른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현대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도 법원은 잇따라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모든 사내하청 노동은 불법파견”이라는 노동계 주장에 공감이 간다.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존중한다”고 반응했다. 말만 하지 말고 하청노동자 정규직 전환 등의 실천적 행동으로 보여주기 바란다.

재판부는 이날 재판에서 “현대차가 근로자의 업무수행에 관해 구속력 있는 지시를 했는지, 근로자들이 현대차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돼 있었는지, 현대차 정규직과 하청 근로자들이 공동작업을 했는지 등을 바탕으로 근로관계의 실질을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노동자 파견의 합·불법을 가리는 구체적 기준을 새롭게 제시한 셈이다.

26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원들이 근로자 지위확인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승소한 뒤 대법정 앞에서 축하 박수를 치고 있다. (출처 : 경향DB)


현대차는 두번이나 불법 판정을 받은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현대차는 앞서 최병승씨에 대한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결과 중앙노동위원회의 원직복직 및 임금 지불 결정을 외면하고 추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맞서왔다. 또 사내하청 노동자의 전원 정규직 전환 요구를 일축하고 일부만, 그것도 새로 입사하는 형식으로 정규직을 선별해 거센 반발을 샀다. 노동자들에게 고통만 안기는 무의미한 법적 다툼을 중단하고 순리에 따르는 것이 맞다.

기업들은 이번 대법원 판결을 비용절감을 내세워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를 양산해온 고용관행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국내 10대 재벌 계열사 노동자 중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가 36만명이며, 300인 이하 사업장까지 포함하면 200만명에 달한다. 비정규직, 노동시장 불평등 문제와 함께 최대 노동현안의 하나인 불법파견 문제가 해결의 전기를 맞이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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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정(情)을 중요시했다. 명절마다 지인들 사이에 선물이 오고가며, 정 또한 돈독해졌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세배를 하고 세배를 받은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덕담을 하고 세뱃돈을 주는 풍습도 있다.

반면 설날 등 명절에 선물이나 돈을 쉽게 주고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바로 정치인, 공직자 등 선거법의 적용을 받는 사람들이다. 특히 올해는 제1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있어 조합장 선거 후보 예정자와 조합원 및 그 가족 등도 이에 해당한다.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조합장 선거일인 3월11일까지 기부행위가 제한되며, 후보 예정자뿐만 아니라 후보자의 배우자, 후보자가 속한 기관·단체·시설도 제한된다. 또한 누구든 조합장 선거와 관련해 후보자를 위한 기부행위를 하거나 하게 할 수도 없다. 대표적인 제한 사례 몇 가지를 살펴보자.

후보자가 조합원이나 그 가족이 다수 소속된 경로당과 노인정 등에 명절 인사 명목으로 과일상자를 제공하는 행위나 후보자가 자신의 친족이 아닌 선거인이나 그 가족에게 명절 인사 명목으로 선물을 제공하는 행위, 후보자가 영농회·부녀회 등이 개최하거나 조합원이나 그 가족이 다수 참여하는 행사에 금품·음식물 등을 제공하는 행위 등은 모두 금지된다. 최근 ○○농협 조합장 입후보 예정자 ㄱ씨가 선거운동 목적으로 명절 선물을 빙자해 조합원에게 굴비 등 총 1650만원 상당의 물품을 제공해 구속기소된 사례가 있다.

이렇게 선거법에 명시된 기부행위 제한사항을 위반하면 기부행위를 한 당사자를 처벌하는 것은 물론 금전·음식물·물품 등을 제공받은 사람에게도 그 가액의 10배 이상 50배 이하(최고 3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이외에 조합장 후보자가 명절 인사를 명목으로 평소 대면이나 친교가 없는 조합원 등에게 문자나 연하장 등을 발송하는 행위나 문자메시지·e메일 등을 이용해 후보자 및 그의 가족에 관한 허위사실 공표·비방 등 위탁선거법에서 제한·금지하는 내용을 게시·전송하거나 퍼뜨리는 행위도 금지된다.

서울 와룡동 서울시선관위 직원들이 오는 3월 11일 농협·수협·산림조합장 선거를 치르는 '제1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앞두고 날짜 알림판과 피켓 등 선거 홍보물을 준비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설날에는 한 해의 안녕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전통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지 못해, 혹은 전달받지 못해 섭섭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문화를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 위탁선거법이 제정된 취지를 잘 이해해야 하겠다. 사상 최초로 치러지는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깨끗한 선거로 기록되기를 바란다.


옥은상 | 부산 강서구 선거관위 홍보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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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동시장은 비정상이다. 무엇보다 양극화가 문제다.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불평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 불평등이 성장을 방해하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감소시킨다며 한국에 시급한 개선을 촉구한 바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불평등의 원인제공자는 기업이다. 비용절감을 핑계로 비정규직 고용을 늘리고 고용의 질도 계속 악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몇몇 대기업 노조도 불평등을 고착화하거나 심화시키는 대열에 가세해 비난을 자초했다. 정규직의 임금과 복지는 늘리면서 사측이 비정규직을 쥐어짜 그 비용을 마련하는 것을 사실상 묵인하는 식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최후 보루인 노조가 비정규직의 일자리 자체를 박탈해 정규직의 일자리 보존 수단으로 삼은 경우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군산지회가 군산공장 운영방식을 현행 주간 연속 2교대제에서 1교대제로 전환하기로 회사와 합의했다고 한다. 교대조 1개가 사라지면서 발생하는 일자리 감소 문제를 정규직 노동자 작업장 전환 배치를 통해 해결하기로 한 것이다. 외부 기업에 사내 하청을 줬던 일감을 원청 기업으로 다시 가져오는 ‘인소싱’도 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사내 하청노동자들은 정규직에 일자리를 내주게 됐다. 한국지엠 노사는 지난해에도 1교대 전환을 하지 않되 사내 하청을 내보내는 합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이없는 일이다.

GM사의 로고 (출처 : 경향DB)


노조의 1차적 의무는 조합원의 일자리 보존일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한국지엠 노조의 이기적이고 반노동적인 행태가 정당화될 수 없다. 사회안전망이 허술하기 짝이 없는 한국 현실에서 비정규직이 일자리를 잃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지엠 노조는 비정규직 희생을 막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는지 성찰하기 바란다.

이번 지엠 노사의 합의는 지난해 12월 지엠의 비정규직 노동자 5명에 대해 “정규직 근로자의 지위를 인정한다”는 법원 판결에정면으로 반한다. 비정규직 살리기 운동을 준비하고 있는 노동계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기업들이 경기 침체를 핑계로 감축 경영을 철회하지 않는 한 일자리 축소 압박은 계속될 전망이다. 오늘은 비정규직의 희생으로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내일은 정규직 일자리가 희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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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이 지났다. 그러나 굴뚝은 여전히 아침저녁으로 부러질 듯 휜다. 눈이 섞이고 빗물이 고여 기둥이 삭고 페인트가 벗겨진다. 곰새끼처럼 밤새 웅크렸더니 206개 뼈가 하나로 뭉쳐 있다. 비닐을 몇 번 갈고 밧줄을 또 몇 번을 다시 묶었다. 저녁 7시부터 진행하는 <해고일기> 출간 기념 라운드 토크를 준비하기 위해 야외 스튜디오를 나름 만든 것이다. 서울과 영상통화로 4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행사여서 꼼꼼하게 점검을 마쳤다. 해고자의 삶과 그들의 오늘과 내일이란 주제였다. 영상통화로 가능할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화질이나 음질은 좋았다. 그러나 오디오로 몰려드는 바람 소리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출연진은 다양했다. MBC에서 만평을 그렸다가 해고된 20대 예능 PD와 치유 활동가로 활동하다 마인드 프리즘에서 해고당한 이, 사회를 본 88만원세대 저자 옆에 맥도널드 알바 노동자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애틋함이 거리와 정확히 비례한다는 걸 느꼈다. 한마디 한마디 놓치지 않고 듣고 눈으로 따라갔다. 해고에 대한 서로의 경험을 나눴고 사정을 들어줬다. 7년차 해고 생활 속에 젖어 있는 나는 어느새 해고계 늙다리 중늙은이 처지였다. 이들은 ‘해고계’ 밖에서 해고계를 봤을 것이고 나는 해고계 안에서 이들을 봐왔다. 어쩌면 우리는 이제 하나로 뭉뚱그려 보이던 사슬들이 직접적으로 자기 이해와 맞닿는 경험을 할 것이다. 예전보다 갈등은 더 첨예해질 것이고 뒷짐 지던 손은 어느새 문서를 찾고 팻말을 들고 현수막을 묶고 있을 것이다. 당장 내일 아침 걱정과 커가는 아이들 생각에 머리는 묵직하고 해고된 사실을 부모님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나 생각하는 밤이 또 길게 찾아 올 것이다.

굴뚝에 올라와서 <해고 일기>라는 책을 출간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4년 동안 언론사 칼럼을 묶은 칼럼집인데, 지난해 8월경에 출간 예정이었다. 복직이 되면 회고하듯 출간해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2월에 고등법원에서 이겼지만 회사는 버텼고 결국 11월 대법원에서 쌍용차 정리해고 사건은 파기환송 되어 다시 고등법원으로 던져졌다. 7년간 언론 담당 역할은 내겐 무거운 형벌이었다. 쌍용차를 설명하는 단어가 100여개면 충분한 사건에서 그 단어를 늘리고 이어 붙여서 매번 다른 기자회견문을 써야만 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밀가루 하나로 수십 가지 음식을 만드셨던 어머니를 아프게 이해한 시간이기도 했다. 투쟁은 기록이고 기록이 투쟁이라 말하지만 난 생각이 달랐다. 어떻게 3000장이 넘는 기자 회견문을 쓰고 수백 번의 칼럼을 써대고 해고일기로 묶인 것보다 더 많은 홍보물을 만들고 뿌려댔는데도 왜 이 사건은 끝나지 않는가였다. 더 복잡한 말들이 가치를 뽐내고 어려운 담론이 어깨를 눌러댔을 뿐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럴 바에야 세상 모든 단어를 모조리 소진해 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세상에 말이 사라지고 단어가 의미를 잃어버려 진정한 소통의 장애가 발생할 때 그때 우리 얘기는 전달되고 듣겠거니 생각했다. 그래서 쓰고 또 썼다. 무리한 비유가 있어도 ‘듣보잡’ 비약을 시도해도 부끄럽지 않았고 창피한 줄 몰랐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소통의 채널이 엉켰고 주파수가 광선으로 깔렸다. 어떤 이야기도 반복만 될 뿐 상대에게 가 닿지 않았다. 거리 위에 수년간 앉아 있는 노동자의 어깨를 보고도 매일 같은 길을 답답하리만치 걷고 있는 이들의 발을 보고도 그 의미를 읽지 못하고 해석하지 못하는 이곳이야말로 난독 집단이 아닌가. 그렇다면 결국 집단이 난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 잘난 계몽도 치료도 아니다. 문자를 없애고 맨몸뚱이로 말하고 맨손으로 마음을 전하는 것뿐이다. 해고일기를 미친 듯이 써 내려갔던 이유이기도 하다.

서적 '해고일기' (출처 : 경향DB)


해고일기 책 인세 전액은 ‘분홍 도서관’을 짓는 데 쓰려고 한다. 분홍엔 큰 의미가 없다. 그저 부르기 쉽고 친근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붙여 봤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제 힘으로 26명의 쌍용차 희생자를 기억하고 노인이 되어 가는 우리들과 아이들, 그리고 수많은 착한 이들을 모시고 싶은 공간으로 분홍 도서관을 짓고 싶다. 도서관 중앙 가장 큰 공간엔 책이 한 권도 없다. 지금까지 살면서 책보단 사람에게서 더 많이 배웠고 그것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누구든 완벽한 하나의 도서관이란 사실을 알았다. 굴뚝에서 61일째를 맞는다. 쌍용차 교섭은 막혀 있고 법원은 굴뚝에서 나가라며 매일 100만원씩 강제 부과금을 책정했다. 내가 굴뚝에 하루에도 수천마디를 하고 수백 개의 SNS를 날려야 하는 이유가 여전히 명료한 현실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더 많은 말을 할 것이고 더 많은 글을 쓸 것이다. 굴뚝에서 안전하게 내려갈 수만 있고 사태 해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스스로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도 더 노골적으로 드러낼 것이다. 이길 수만 있다면 한 올 남기지 않고 발가벗고 말 것이다.


이창근 |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정책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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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 아래로 매일 자동차 부품을 실은 차량들이 지나간다. 옆으로 문을 여닫는 모양이 새 날개를 닮아서 윙카라고도 부르는데 하나같이 모양이 길쭉하다. 천상 오락 게임 테트리스의 막대기를 닮았다. 테트리스에서 긴 막대는 성과를 나눠 갖기보다 필요할 때 부름만 받고 길쭉하게 서 있거나 누워 있다. 쌍용차 회사는 지난주 목요일 교섭 앞뒤로 부품사를 언급했고 그 규모를 10만이라 썼다. 쌍용차 직원이 5000명 정도니까 20배가 많은 어마어마한 숫자다. 그런데 회사는 테트리스 긴 막대기처럼 필요할 때만 불러내고 평소엔 아는 척조차 하지 않는다. 쌍용차가 사는 길은 어떠해야 할까.

지난주 목요일 첫 실무교섭이 열렸다. 3시간 가까이 교섭이 이뤄졌고 생각보다 진척은 많지 않았다. 노사 교섭은 주 1회 목요일에 이뤄진다. 내일이 두 번째 교섭이 있는 날이다. 일상적 교섭과는 달리 공장 밖으로 밀려난 쌍용차지부는 파업권을 사실상 거세당했다. 그러나 연대의 힘과 사회적으로 쟁의발생 신고를 7년 전부터 이미 마친 상태이기 때문에 불리할 것은 없다. 언제든 사회적 파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불리를 따지는 게 별 의미 없다는 얘기다.

26명 희생자에 대한 재발방지 대책과 지원, 해고자 복직, 손배 가압류 철회, 회사 정상화 방안을 4대 의제로 삼아 구체적으로 교섭은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쌍용차가 처한 위치는 녹록지 않아 보인다. 쌍용차는 전통적으로 SUV/RV 그리고 고급 세단 중심이다. 종합 자동차 회사지만 풀라인업을 구성하고 있지는 않다. 그것이 생존 전략이다. 소품종 고품질의 회사 지향은 적정 규모만을 생산했고 작지만 강한 회사라는 슬로건으로 압축된 바 있다.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인권단체연석회 주최로 4일 열린 경찰의 '불법채증 규탄 기자회견'이 끝난 후 참석자들이 불법채증 사진을 살펴보고 있다. 이 단체는 지난달 '쌍용차 해고자 전원복직 정리해고 철폐를 위한 오체투지 행진단'의 모습을 채증하던 경찰로부터 입수한 사진을 기자회견장에 함께 전시했다. (출처 : 경향DB)


갈수록 자동차 시장은 과열된다. 숙련 노동자의 손기술은 옛말이 돼 버렸고 기계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사람 단가를 달리 매겨 떨어지는 이윤에 좋아하지만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은 쌍용차 고유 기술력의 차별성과 경쟁력도 없애버린다. 최근 카피캣은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그나마 독보적이던 SUV/RV 전문 종합 자동차 회사는 옛 영광을 간직한 채 벽에 걸린 드라이 플라워 신세다. 디자인은 차별이 되지 못하고 부품 또한 대동소이하다. 아니 풀라인업을 구성하고 있는 회사의 품질이 더 뛰어난 경우가 많다. 이것은 규모의 경제 때문이다. 쌍용차가 그동안 줄기차게 파 들어갔던 틈새시장(Niche Market) 또한 과열 양상이다. 편의 사양의 차별화로 누릴 수 있는 특수는 3개월을 버티지 못한다. 깔끔한 디자인도 변화되는 욕구를 채워내기엔 1개월이 버거울 지경이다. 쌍용차는 대수술이 필요하다. 해고자 복직이나 희생자에 대한 지원과 대책은 기본 가운데 기본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무엇을 혁신할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혁신할 수 있고 그것의 경쟁력은 있는가가 초점이어야 한다. 우리의 강점이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억지 주장만 할 게 아니라 우리의 강점이 경쟁력이 있는가를 차갑게 따져보고 의문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7년간 공장 밖에서 지켜본 바로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아둔한 경영의 연속이었다. 어렵다고 매번 말하면서도 정말 어려운가 의심스러운 행보였다. 긴장도 없고 경쟁심도 사라졌다. 뼈 빠지게 일하면서 내일은 나아지겠거니 순진하게 일만 하는 공장 동료들에게 떳떳할 수 있는 시간이었는가.

쌍용차 교섭은 이런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회사는 시장 점유율(Market Share)이 아니라 생각 점유율(Mind Share)을 높이는 전략을 짜야 한다. 고객은 시장이 아니라 생각이란 것이다. 브랜드 이름에 골몰하지 말고 브랜드 이념(Brand Ideology)에 집중해야 한다. 부품사 협력사를 언급하려거든 신차 출시 성과급을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나눌 구체적 방안을 내놓고 말해야 한다. 이 부분은 우리도 고민할 것이다.

쌍용차는 늘 불안을 안고 사는 회사다. 경쟁력도 그리 높지 않고 제품의 독특한 차별성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티볼리가 그나마 가난한 집안 효자 노릇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게 현실이다. 쌍용차가 이번 교섭을 통해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주고 또 어떤 어필을 할 수 있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해고자 복직 문제로 시작된 이번 쌍용차 대수술이 회사 입장에선 하늘이 준 기회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건 경영적 마인드에서도 이해되는 기본 가운데 기본이다. 쌍용차 교섭은 기회의 공간이다. 주먹구구식으로 해고자 숫자를 줄이고 희생자 대책으로 몇 푼 생각하는 그 아둔함을 버리고 진짜 쌍용차가 살 길은 뭔지 눈뜨길 바란다. 기회는 오랜 시간 제공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작은 문제를 가지고 시간 끌고 싶은가.


이창근 |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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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가 저성장구조로 전환되면서 학업을 마치고 사회로 쏟아져나온 젊은이들에게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발전과 가계를 책임지던 65세 이상의 고령자는 2013년에 이미 600만명을 넘어섰고 3~4년 후에는 1000만명을 돌파하는 초고령사회가 예견된다. 이러한 가운데 직장에서 은퇴는 54세 전후에 이루어지고 있어 중산층 붕괴의 위기가 초래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과 같은 국제 평가기관에서는 우리나라 잠재 성장률 하락의 핵심 원인으로 노동시장 왜곡으로 발생된 노동생산성 저하를 꾸준히 지적하여 왔다.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소속된 34개국 중 최하위다.

임금은 미국의 시간당 67달러의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32달러를 기록하고 있으며, 근로시간은 네덜란드의 연평균 1380시간보다 800시간이나 많지만 수입은 거의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노동생산성 향상은 인적자원이 능력과 적성에 맞게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배치되어야 가능하다.

지난 10년간 중소기업 근로자의 근로조건이 대기업 근로자의 70~80%에서 현재 57%까지 하락했다. 대기업에 인재가 쏠리면서 노동시장의 일자리를 축소시킨 원인을 제공하였다.

노동시장 정상화의 또 다른 핵심 과제는 예측 가능한 정부의 노동정책이다.

지금과 같이 노동시장에서 인력의 수요와 공급의 기준이 되는 임금과 근로시간 같은 기본적인 근로조건에 대한 법적 기준조차 행정부와 법원이 갈팡질팡하는 상황에서는 노동시장에서 인력의 수요와 공급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기는 힘들다.

노동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평균 근로기간이 5~6년에 머물러 일의 숙련도가 하락하고, 근로시간 중 3~4시간을 잡담이나 개인 활동에 낭비하는 기업문화가 발생한 것이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을 300만 명에서 800만 명으로 양산하면서 근로 조건을 정규직의 50% 수준에 머물게 한 것도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라는 기본적인 노동시장의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다.

노사정위원회가 지난 12월 정부서울청사에서 본위원회의를 열어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원칙과 방향에 대해 기본합의안을 채택한 뒤 인사를 나누고 있다. (출처 : 경향DB)


현재 노동시장의 특징은 인력 수요처인 기업과 공급하는 근로자가 객관적 평가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손쉽게 불공정한 경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국가 인력이 적재적소에 배치될 수 있도록 기업의 공정한 경쟁질서가 작동되도록 해야 하고, 근로자가 열심히 일하는 환경을 조성해 노동시장의 효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노동정책은 예측이 가능하도록 하여야 기업과 근로자가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고, 노동의 공급과 수요를 담당하는 기업과 교육기관은 인적자원의 선발과 평가 기준을 객관화하여야 한다. 그래야 노동시장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것이다.

현재와 같은 경제구조에서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개선하는 해법은 노동시장이 정상적 기능을 회복해 노동생산성을 최소한 OECD 국가의 평균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러한 정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송봉근 | 강남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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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자욱하다. 벽의 위치를 가늠할 수가 없다. 벽 없는 굴뚝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하자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물에 젖은 물건을 들어 옮기며 허리를 폈다 숙였다를 반복하니 자연스럽게 운동이 된다. 머리를 감고 발을 씻고 속옷을 갈아입는 것으로 오전 나절이 후딱 간다.

그저께 세월호 유가족들이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팽목항까지 걷기 시작했다. 이십일 동안 걷는단다. 굴뚝에 올라 SNS에 올리던 점심밥 사진을 차마 올릴 수 없었다. 아스팔트가 뚝뚝 부러지는 차가운 날씨에 바람든 무처럼 뼛속이 숭숭 뚫린 이들이 길에 주저앉지나 않을까 생중계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손목이 부은 탓에 세월호 팔찌가 꽉 껴서 며칠 동안 빼놓고 있었다. 얼른 손목에 다시 찼다. 할 수 있는 게 우선 그거였다. 세월호 참사를 기록한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펼쳤다. 두 번째 한 일이다. 책 한 권을 하루면 읽어내는 급한 성격이지만 20일간 나눠 읽겠다고 다짐했다. 세 번째 한 일이다. 나 좋자고 한 일이었고 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게 다독인 거였다. 걷고 있는 그분들께 따뜻한 차 한잔보다 못한 일을 나는 세 개나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걷고 있는 화면을 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쌍용차 심리치유센터 와락 대표였다.

지난 1월21일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교섭의 문이 열렸다. 네 가지 의제를 다루기로 했는데 그 가운데 희생자 유가족에 대한 지원 대책이 있었다. 매우 중요한 문제지만 내용을 알고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와락 대표가 첫 번째 전화를 건 사람은 나랑 가장 친했던 형의 형수였다. 매번 전화를 받지 않고 “우리는 이제 쌍용차에서 빼 달라”고 했던 형수다.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고 회사도 희생자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니, 이야기를 해 보….”

전화기가 뚝 끊겼다. 얼굴에 굵은 소금 한 바가지 엎어 쓴 기분이라고도 했다. 와락 대표는 전화를 더 이상 걸기가 어려워 내게 전화를 했다.

이번에는 다를 줄 알았다. 언론에도 많이 나갔으니 전화도 받고 먼저 연락을 해 올 거라는 생각도 가졌었다. 착각이었고 유가족의 마음을 손톱만큼도 이해하지 못하고 7년을 살아 온 것이다. 와락 대표는 다시 전화통을 붙들었을 터다. 차분하게 설명하고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을 것이다. 26명 가족들에게 일일이 다 전화하고 문자 넣고 주변을 또 한번 알아봤을 것이다. 전화 이후 결과를 말해달라고 했으나 아직 전화가 없다.

예전처럼 연락이 닿고 통화를 한 가족이 열 가족이 조금 넘었을 것이고 연락이 닿지 않는 곳은 여전했을 것이고 이름 석 자만 달랑 있는 하얀 자료를 아직도 뚫어지게 보고 있을 것이다. 비고란에 쓴 말이라곤 연락두절 딱 네 글자인데 어떻게 굴뚝에 전화를 했겠는가. 너무 늦은 건 아닌가. 너무 긴 시간이 지난 건 아닌가 싶다. 용서 받을 마음도 관심도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닌가 마음이 급해진다.

희생자 유가족에 대한 지원과 대책이 살아 있는 우리들 마음의 위안으로 끝나는 건 아닌지 두렵다. 싸늘하게 식은 시신을 만졌던 감각을 떠올리는 끔찍함이 지원과 대책보다 더 공포이지 않을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노조와 회사가 4대 의제를 부여잡고 아등바등 밀고 당기는 교섭이 유가족 입장에선 우습지 않겠는가. 아둔해 보이지 않겠는가.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왼쪽)이 7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을 찾아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오른쪽)이 전하는 ‘굴뚝신문’을 보고 있다. 굴뚝신문은 쌍용차 평택공장의 굴뚝 농성 소식을 담아 민주노총이 신문 형태로 제작한 것이다. (출처 : 경향DB)


3일째 걷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을 오늘도 굴뚝에서 보고 있다. 네 번째 일 하나를 찾았다. 뉴욕타임스에 매일 한 번씩 소식을 영문으로 올리고 있다. 여기를 봐달라고 신호를 보낸다. 땅 위에서 대화가 막혀 길이 보이지 않았을 때 허공에 흐르는 통신줄에 힌디어를 붙이고 영어를 붙여 아난드 회장과 끝내 말을 했던 기억 때문이다.

세월호는 외국에서 몰라서 해결되지 않는 게 아니란 걸 잘 안다. 그러나 함께 걸을 수 없는 공중에 뜬 발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도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일이다.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뿐이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것이 우선이지 싶다. 그 노력이 조금씩 모여 하나의 계단을 만들고 버팀목에 못 하나 박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늦은 건 아닌가란 생각이 자욱한 안개만큼 짙다.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이들이지 않나. 손으로 더듬으면 더듬을수록 아득해지는 이들이지 않나. 사과는 무엇이며 대책은 무엇인가. 쌍용차 해고자들이 사과를 받는다고 전달할 수 없지 않나. 유가족은 실종자로 때론 생존자로 나뉘었고 쌍용차엔 등을 돌렸다. 가치를 말하는 것도 번지르르한 말장난일 뿐이다. 생목숨 잃은 이들에게 쌍용차 회사는 어떤 사과의 말을 찾아야 할까. 우리는 찾을 수 없으니 당신들이 직접 찾아서 들고 오라. 내일 있을 교섭 자리에서 그 말보따리부터 풀어보라.


이창근 |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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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에 따르면 독서는 저자와 독자의 욕망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독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텍스트의 의미를 재생산하며 저자는 독자를 유혹하기 위해 기호체계에 다양한 변주를 시도한다. 저자와 독자의 이러한 긴장관계를 통해 독자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저자와 더불어 텍스트를 완성하는 공저자가 되는 것이다.

바르트의 난해한 ‘욕망의 독서론’은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 후 가방 한쪽에 노란 리본을 묶으며 출근길에 나서는 시민들은 매일같이 익명의 독자를 향해 글쓰기를 하는 것이다. 그 노란색 텍스트를 보는 독자들은 각자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저자와 공저자가 되는 것이다. 물론 노란 리본을 사회안정을 저해하는 불순한 음모로 이해하며 불쾌함을 느끼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바르트가 글쓰기를 선택과 참여, 그리고 역사적 연대행위로 정의한 이유이기도 하다.

해방 후 70년 격동의 세월을 조명한 영화 <국제시장>과 영하의 수은주 속에 서울 광화문과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벌어지는 ‘오체투지’ 역시 바르트에 따르면 자기의 방식으로 독자들을 유혹하기 위한 ‘글쓰기’다. 2개의 글쓰기에는 공통적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노동자가 등장한다. 하지만 노동자라는 기호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는 판이하다. <국제시장>은 윤제균 감독이 얘기하듯 격동의 세월을 가족애 하나로 버텨온 아버지에 대한 헌사로 가득 차 있다. 1970년대 ‘조국근대화’와 ‘한강의 기적’을 미화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권력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도 않았다.

반면 차디찬 바닥에 배를 밀어대며 벌레처럼 기어가는 ‘오체투지’는 권력의 감춰진 잔인함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오체투지 행렬의 맨 앞쪽에서 집단적 글쓰기에 참여한 쌍용차, 콜트·콜텍, 유성, 스타케미컬,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일체의 저항 수단이 거세된 무기력하고 비참한 해고노동자들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하여 오체투지는 노동자들을 강고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공권력과 기업에 저항하는 비합리적 집단으로 몰아세워 온 기존 기호체계의 붕괴를 시도한다.

하지만 여전히 박근혜 정부는 낡은 기호체계에 사로잡혀 정규직 노동자를 노동시장 양극화의 주범으로 내몰며 해고요건 완화,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등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하고 있다.

현 정부는 노동시장을 정규직에서 비정규직 중심으로 개편하는 노동정책을 밀어붙이면서 <국제시장>에 등장하는 주인공 ‘덕수’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성실한 노동자를 꿈꾸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덕수가 앞만 보고 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생존 그 자체를 위해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덕수가 애국가를 부른 것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본능에 다름 아니다. 1944년 근로정신대로 끌려가 비행기 군수품공장에서 일했던 올해 여든여섯의 이석우 할머니도 당시 자신이 꿈꿀 수 있었던 희망은 일본이 전쟁에서 이기는 것뿐이었다고 회고했다.

정리해고 비정규직법 전면폐기를 위한 오체투지 행진단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쌍용차 해고자 복직과 정리해고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이날 오체투지 행진은 지난달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의 행진에 이은 2차 행진으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스타케미칼, 콜트-콜텍 등 정리해고 노동자 등이 참여했다. (출처 : 경향DB)


사회보험이 취약한 현실에서 ‘고용유연성’ 확대는 노동자들에게는 ‘불안정한 일자리’와 살기 위해 사용자에게 자신의 삶을 온전히 내맡기는 것뿐이다. 경향신문이 지난 17일 ‘광복 70년 우리는 과연 해방됐는가’에서 ‘노동으로 충성’을 강요한 일제 황국근로관과 현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편이 서로 닮아 있음을 지적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창조경제를 표방하는 현 정부 노동정책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노동을 동원의 대상으로 바라볼 뿐 노동의 기쁨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덕수’나 ‘오체투지’는 현 정부 노동정책이 초래할 극단적 결말의 두 얼굴일 뿐이다.


강진구 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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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투지하는 모습을 굴뚝에서 봤다. 아니 봐버렸다. 정지된 사진 속에서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고 얼고 있는 몸 덩어리는 격렬하게 떨고 있었다. 어떤 순간을 지날 때는 강렬한 에너지가 생겨난다. 그 에너지가 세상을 움직이고 생명을 이고 있다. 심지어 죽은 이들의 뇌에도 20와트의 에너지가 남아 자신의 죽음을 끊임없이 묻는데 말이다. 이들은 그저 가엽고 불쌍한 연민의 대상인가. 이들에게 부여되는 약한 이들이란 수식은 온당한 배열구조인가. 에너지를 생산하고 발산하는 이들이 어떻게 약하고 가여운 존재일 수 있는가. 그들은 자신의 발로 삶의 풍차를 밟고 손으로 생의 물레를 돌리고 있다.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이 인도로 출국한 이후 교섭의 장이 열렸다. 문은 열렸지만 아직 테이블은 놓이지 않았다. 굴뚝 외벽 은박지 위에 “Let’s talk” 내걸고 밥 보따리 허공에 매달아 둔 지 8일째 아침을 맞는다. 굴뚝에 오른 지 40일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바람은 탄력을 잃은 피부 가죽 틈을 더욱 밀고 들어오고 차가운 눈 덕분에 몸은 퉁퉁 불었지만 무게는 오히려 줄어 있다. 비상식량으로 버틴다. 호언장담한 지 3시간이 지나자 물색없는 손이 바짝 마른 아몬드 한 움큼을 쥐었다. 육포를 산짐승처럼 뜯는 이빨 사이로 잘 견딘다는 말이 새어나온다. 결심이 약한 건가. 다짐이 부족한 건가. 라이터 불로 신문지 태우고 별보며 하얀 밤을 불사른다. 순간순간이 타협이고 하루하루가 뒷걸음이다. 스러진 승리를 세우겠다는 그 말 한마디만 끌어안은 채 다른 말은 온몸으로 태워 추위를 견딘다. 생존자들이 빼다 버렸을 간과 쓸개의 무덤을 오늘도 두 발로 꾹꾹 밟는다.

교섭의 장으로 들어서는 노동자를 생각해본다. 말끔한 넥타이에 손 벨 것 같은 양복 깃을 한 이들이 맞은편에 앉는다. 검은 잉크가 가득 찬 만년필과 삼색의 필기구가 가지런하다. 깨알 같은 자료에 악마를 숨겨둔 채 통계는 입맛따라 화면에 띄워진다. 대형 로펌은 식은 죽 먹듯 법을 설파하고 경제지는 나라 망한다 경적 소리 윤전기에 넣고 요란하게 돌려댄다. 쌍용차 회계조작 보검은 대법원이 나서서 부러뜨렸고 방패는 정치가 내다버렸다.

어딜 봐도 첩첩산중이고 망망대해다. 사람의 열기로 자본의 광기를 잡기엔 아직 우리의 광기는 평범한 평신도 수준이다. 정의는 정신승리 안에만 머무르고 저들과의 전장으로 출전하지 않고 있다. 포기할 말과 벼려야 할 말을 구분짓고 목록을 매겨 비닐로 꽁꽁 싸매 쟁여둔다. 자기 사건, 자기 인생에서 살아남는다는 건 비루한 일상과의 협상이고 어떤 버림이며 이별이다.

피해자의 언어는 따로 없다. 전복의 말 또한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는다. 매 순간 치열하게 살아내는 삶이 언어고 발 딛는 한 발 한 발이 자음과 모음이다. 관전평은 이 질긴 싸움이 끝난 뒤에 질기게 하도록 남겨두자. 협상의 언어, 협상의 말을 찾고 있다. 저들이 말해야 할 사과의 단어와 속죄의 문구 또한 찾아 줘야 한다. 교환된 말들과 단어들이 저들 손에 쥔 만년필 잉크를 줄일지 우리가 들고 있는 볼펜을 닳게 할지가 남아 있는 문제다.

그러나 바둑판 위 하얀 돌과 검은 돌의 차이는 딱 한 집 승부일 수 있다. 승부는 그렇게 날 것이다. 수많은 돌 하나하나를 따지고 겁박하는 건 그래서 아둔한 일이다. 모두 의미 있는 돌이고 목적 가진 사석이다. 이제 우리는 7년 만에 비로소 마주 앉을 것이다. 초시계가 움직였다. 차분하게 한 수 한 수 그렇게 놓고 다지자. 아낌없는 응원과 격려를 원한다. 잘한다 잘한다 칭찬 듣기 원한다. 그렇게 가보자.

대법원 망치로 머리가 깨지고도 아직 나에게 힘이 남아 있다는 것과 아직도 해 볼 일이 남아 있다는 것에 스스로 놀랐다.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의 소리엔 무엇인가 내게, 우리에게 남은 할 일이 있다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우린 굽힘 없이 싸웠지만 우리를 위해 준비된 의자는 없었다. 그 의자에 가지런히 두 손을 무릎에 얹고 앉아, 살아가기 위해 떨리는 무릎을 가눌 그 풍경에 우린 아직 서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 틈새가 보였고 비집고 들어가 앉았고 거기가 우리의 삶의 터전을 지키는 마지막 ‘공간’이 될 것이라 다짐했다. 모든 장소는 시간의 이름이라 했다. 어떤 시간 위에 지금 우리는 앉아 있고 매달려 있나. 24시간 꼬박 오감을 열어둔 채 40일을 견딘다. 그 어느 때보다 살아 있음을 느낀다. 피곤하지 않고 졸리지 않다. 흐르는 시간을 막아서고 싶고 지난 시간을 잡고 매달려 보고도 싶다.

정리해고 비정규직법 전면폐기를 위한 오체투지 행진단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쌍용차 해고자 복직과 정리해고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나는 오늘도 분노와 공포를 허접하기 이를 데 없는 시 속에 숨겨 흘려보낸다. 살아남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과 놓지 말아야 할 것들을 떠올려 보고 다짐한다. 거짓말처럼 버리면 버릴수록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차오르고 강해진다.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모든 착한 이들의 지혜와 영혼의 움직임이 절실하다.


이창근 |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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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그럴 리가. 아마도 풍자 퍼포먼스이겠지.”

주말 연예 프로그램이나 봉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자한 미소를 짓던 ‘디자이너 선생님’이 착취 사업가라니…. 하지만 사실이었다. 패션업계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은 최근 ‘2014 청년착취대상’ 수상자로 유명 디자이너 이상봉을 선정했다. 이들은 올해가 이상봉 브랜드를 론칭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라면서 30년에 가까운 착취로 오늘날의 부와 명예를 쌓아 올렸다고 했다.

이들이 폭로한 이상봉 소유 패션업체의 근로조건은 놀랍다. 견습 10만원, 인턴 30만원, 정사원 110만~130만원이다. 주말 근무나 야근에 따른 수당은 전혀 없다. 식대로 6000원을 준다고 하나 한 달 10만원의 월급은 밥 먹듯하는 야근 교통비도 되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디자이너를 꿈꾸는 젊은이들은 유명 디자이너의 재능을 보고 배우며, 경력증명이라도 갖기 위해 디자이너 사무실을 찾는다. 그러나 도제 두세 명이 장인과 함께 지내며 기술을 전수하던 중세 유럽의 공방을 상상하면 곤란하다. 이들은 한 땀 한 땀 명품을 디자인할 재능을 배우지 못한다. 패턴을 베낀다든가 해외의 유명 패션잡지를 보는 정도가 고작이다. 100명이 넘게 일하는 산업화된 패션기업에서 장인의 기술을 배우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다. 결국 변변한 기술을 배우기는커녕 오히려 적자만 보고 중도에 다른 길을 찾는다.

이상봉회사에서 일했다고 하는 청년의 말이다. “2011년 유학 마치고 들어와 첫 직장이었다. 토요일 출근은 기본, 퇴근시간은 보내주는 사람 마음, 월급이 얼마인지도 모른다. 개인 돈으로 차비까지 쓰다 못해,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피팅 모델에, 동대문 원단시장 심부름까지 하다 이게 노예지 싶어 나왔다.”

디자이너가 된다는 희망과 열정에 사비까지 써가며 일하지만 기대와 다른 현실의 벽과 마주치게 된다.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희생을 강요당한다.

지난해 말 한 취업포털은 채용시장을 반영한 신조어로 ‘인구론’(인문계 졸업생 90%는 논다), ‘돌취생’(입사 후 다시 취업준비생으로 돌아온 사람), 이퇴백(20대에 스스로 퇴직한 백수)과 함께 ‘열정페이’를 소개했다.

열정과 페이(pay)의 조합어다. 듣기에 생기발랄한 이 단어에는 섬뜩한 착취구조가 숨어있다. 열정페이란 무급 또는 아주 적은 월급을 주면서 취업준비생을 착취하는 기업을 비꼬는 말이다. ‘열정이 있으면 돈을 조금만 줘도 된다’는 인식에서 출발했으며 패션업계에서는 관행이다.

열정페이의 계산법을 보자. “너는 어차피 공연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났으니까 공짜로 공연을 해라.” “너는 경력도 없으니까 경력도 쌓을 겸 내 밑에서 공짜로 엔지니어를 해라.” “너는 원래 그림을 잘 그리니까 공짜로 초상화를 그려 줘라.” 열정만 있고 페이는 없다. 그래서 스스로를 ‘무급 노비’라 부르기도 한다.

못된 것은 빨리 배운다. 최근 한 편의점 점주도 가세했다. 점주의 채용 공고를 보자. “전화로는 시급을 말씀드리지 않는다. 돈 벌기 위해 편의점 근무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열심히 한 만큼 챙겨드리겠다.” 편의점은 스펙을 쌓으러 가는 곳이 아니다. 돈이 필요해 편의점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에게 최저임금도 보장하지 않고 열정을 요구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그뿐인가. 외교부 산하 한 총영사관은 인턴직원을 채용하면서 3개월간 무급 조건을 당당히 내걸었다가 “차라리 봉사자를 찾는다고 하라”는 등 누리꾼들의 뭇매를 맞았다. 열정페이는 이상봉 디자이너와 같은 패션업계, 이미용업계뿐 아니라 대기업과 공공기관 등에서 횡행하고 있다. 취업준비생들은 국가기관 인턴 경험이라는 스펙 한 줄을 넣기 위해 무급인턴에 열정을 팔고 있다.

취업이 어렵기 때문이다. 14일 정부 발표에 따르면 청년 실업률은 1999년 통계기준이 바뀐 이후 가장 높은 9%에 달한다.

청년유니온과 패션노조 회원들이 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패션업계에 종사하는 청년들의 열악한 근로환경을 설명한 뒤, '2014 청년착취대상'을 시상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패션노조는 공개댓글 투표를 통해 이상봉 디자이너를 수상자로 선정했다. (출처 : 경향DB)


노동에는 합당한 보상이 뒤따라야 함은 불문가지다. 교육생도 마찬가지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무림의 고수가 되기 위해 절에 들어가 물 긷고, 장작 패고, 빗자루를 잡으며 감내하던 시대가 아니지 않은가.

차라리 패션학원을 차려 돈을 받고 수강생들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허드렛일은 정당하게 직원을 채용해 시키는 것이 떳떳하다. 교육과 관계없는 갖가지 잡무로 부려먹고 되지도 않을 꿈을 부풀게 만들어 ‘희망고문’을 하는 것보다. 강요된 열정은 열정이 아니다. 사장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박종성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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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 경보라도 내린 듯 문자가 푹푹 쌓인다. 수백 개로 늘어난 트위터 쪽지 창은 다닥다닥 줄지어 늘어선 쪽방촌이 됐다. 뉴욕에서 독일에서 인도에서 수천의 손길이 파란 담쟁이넝쿨처럼 이곳 굴뚝으로 뻗어 오르고 있다. 문자 해독에 지친 휴대폰은 서너 번을 기절했고 배터리는 시간 단위로 갈아 채웠다. 태양은 정수리 위에 조명으로 걸려 있고 바람은 소리를 참았다. 마힌드라 아난드 회장이 이틀 전 입국했다.

회사는 그의 일정과 동선을 함구했다. 세계적 경제지 포천이 선정한 50대 기업인 아난드 회장은 그렇게 소리 소문도 없이 서울 모처에서 여장을 풀었다.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쌍용자동차에 007작전으로 들어오게 된 그의 마음을 생각하며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봤다.

아난드 회장이 인도발 한국행 비행기에 발을 올려놓은 그 시간. 쌍용차 굴뚝에선 힌디어를 다듬고 영어를 찾아 알맞은 문장을 만들고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한국에 대한 그리고 쌍용차 해고자에 대한 안내문을 손에 쥐여 주고 싶었다.

서툰 힌디어를 트위터에 올리고 영문을 올렸다. 사진을 고르는 손끝이 떨렸다. 이 기회를 놓치면 들이닥치게 될 한파 때문이었다. 아난드 회장과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우리 사정을 봐 달라는 손짓을 하고 싶었다. 쌍용차를 인수한 2010년 이후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영국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간디의 나라 인도. 영성과 명상으로 휴양림 같은 삶의 속도 조절기인 인도 회장의 생각이 궁금했다.

쌍용차 조합원들이 아침부터 분주하다. 현수막을 챙기고 신발을 담는다. 서글픈 분주함이며 서러움의 재빠른 손길들이다. 쌍용차 해고자들은 왜 26켤레의 신발을 준비했을까. 먼지가 쌓이고 뒤틀려 모양조차 우습게 생긴 신발을 기자회견장에 왜 들고 갔을까. 5박6일간 오체투지를 해 동태가 된 몸으로 그들은 다시 현수막을 들고 신차 출시 장소 앞에 가지런하게 섰다. 현수막 앞으론 26켤레의 신발이 범죄 수사 현장처럼 모두가 번호를 달고 누워 있다. 1, 2, 3, 4…25, 26… 이 숫자는 이것으로 끝인가.

마침표 없는 이 숫자의 항렬이 낡은 신발 안으로 들어갔다. 목발이 있었다. 여성용 하이힐이 있었고 용접 불꽃을 맞아 구멍이 숭숭한 안전화가 있었다. 고무신이 여름을 떠올리게 했고 슬리퍼가 욕실을 증거했다. 인도 속담엔 “그 사람의 신발을 신어 보기 전에는 그 사람의 발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말라” 했다. 아난드 회장은 이 신발을 보았을까.

지난 1월11일 굴뚝데이가 열렸다. 역 앞에서 굴뚝을 응원하는 역전의 용자들이 등장했다. 사방팔방 동서남북에서 해외에서 피켓을 만들어 웃으며 즐겁게 서 있는 모습을 봤다. 그 착한 온기가 달과 별에 방향을 알려 주고 바람은 지쳐 있는 등을 밀어 앞으로 가게 했다. 피켓을 만들고 글씨를 적어 내려갔을, 그 착한 손들을 떠올려본다. 사라진 것 같았던 지난 7년이 소중하게 잘 보관되었다는 믿음이 생겼다. 찬 기운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서울 한복판 도로 위에서 머리를 찧고 팔다리 끌고 배 밀어 갔던 수많은 노동자들에게도 큰 위로와 포옹이었다.

쌍용차 문제는 많이도 묵은 문제다. 오죽했으면 백약이 무효했고 아편도 듣지 않았다 푸념을 늘어놨겠는가. 그만큼 될 듯 될 듯 사람 애간장 녹였던 지난 시간이었다. 그래서일까. 절망을 비워낸 그 공간만큼이 우리에겐 희망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힘겹게 밀어 올린 돌덩이가 다시 산 아래로 굴러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확신 하나는 생겼다. 다시 굴러 내려오는 돌덩이라 하더라도 다시 밀어 올릴 착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과 적어도 굴러떨어지는 돌에 깔려 죽지는 않겠다는 확신과 믿음이다. 이것은 기정사실로 굳어졌다. 또한 쌍용차 해고자 복직과 26명 희생자에 대한 사과와 대책은 아주 작은 문제란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가치 앞에 서 있다. 목표가 같지 않을 때 오히려 우린 더 강해진다는 것을 안다.

13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쌍용차 SUV 티볼리 신차발표 행사에서 쌍용차의 모회사인 인도 마힌드라&마힌드라 그룹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아난드 회장이 기자회견장 앞에 놓인 신발을 봤다면 대화는 시작된 것이다. 문제 해결이 급물살을 탈 수도 있고 주저앉을 수도 있다. 관심 가져 달라. 그러나 여러분의 관심에도 주목해 달라. 굴뚝도 쌍용차 문제도 나아가 노동 문제와 삶의 문제에도 애정하고 있다는 여러분 자신을 주목해 달라.

우리를 돕고 지원하고 애정해 주시는 것 고맙다. 이젠 이 싸움 끝내고 싶다. 그래서 부탁드린다. 여러분께 나눠드릴 갑옷은 없다. 각자가 준비해 달라. 이 싸움을 통해 무엇을 다시 살려내고 싶은지 여러분 각자의 영혼에 귀 기울여 달라.


이창근 |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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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노동시장 구조 개혁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 생존전략’이라면서 노·사·정이 오는 3월까지 반드시 종합대책을 도출해달라고 당부했다. 비정규직 차별화로 대표되는 고질적인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질 좋은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성화는 어렵다고도 했다. 이는 노동계 반발을 산 정부의 노·사·정 타협안 및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그대로 되풀이한 것이어서 실망스럽다. 특히 노동 문제를 노동 문제 자체로 보지 않고 경제 성과 달성의 수단으로 삼겠다는 발상은 기업편향적이라는 점에서 우려를 자아낸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노사정위에 합의 시한을 강조했다. 대타협은커녕 노·정 간 대립과 갈등이 심화될 것이 뻔한 현실을 모른다는 말인가.

대통령이 어제 회견에서 제시한 불합리한 임금차별 해소와 지속적인 사회안전망 보호는 비정규직들의 절실한 요구라는 점에서 타당하다. 그러나 근본 해법은 될 수 없다. 비정규직 문제는 궁극적으로 정규직 전환으로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비정규직 보호를 강조했지만 정부 대책처럼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려서는 비정규직만 양산할 뿐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정규직의 임금을 깎거나 해고를 쉽게 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책임 소재 차원에서도 맞지 않는다. 비정규직은 외환위기 때 기업들의 요구로 대폭 늘어났다. 정규직과의 임금격차도 기업들이 비정규직 급여를 낮게 책정해 비롯된 일이다.

정리해고 비정규직법 전면폐기를 위한 오체투지 행진단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쌍용차 해고자 복직과 정리해고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대통령이 사회적 대타협의 성공사례로 네덜란드와 덴마크를 거론했으나 이 역시 적절하지 않다. 두 나라의 노동 현실이 한국과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노·사·정이 임금을 동결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대타협을 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이후 10여년간 120만개의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성화를 달성했다. 그런데 이는 네덜란드의 사회안전망 수준이 대단히 높았기에 가능했다. 예컨대 해고자에게는 실직 전 임금의 최대 90%를 3년간 지급하고 있다. 한국은 실업수당이 월 100만원도 안되고 최대 8개월까지만 받아 제대로 안전망 구실을 못한다.

노동 개혁에 성공하려면 원칙적으로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과 고용 안정 달성을 우선적 목표로 해야 한다. 고용이 삶이자 복지이고 인권인 노동자들의 실정을 반영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노동 개혁이라고 할 수 없다. 경제활성화는 정부의 경제정책과 기업 경영 차원에서 모색하는 게 맞다. 대통령의 인식 전환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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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커머스 기업 위메프가 인턴들에 대한 ‘채용 갑질’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금액을 주고 단물만 빨아먹고 헌신짝처럼 내버린 것이다. 취업준비생은 이 사회의 노예이며, 인턴은 갑·을·병·정 다음 계층, 인턴제는 최고의 노동력 착취 프로그램이라는 자조의 말이 회자된 지 벌써 수년째다.

위메프의 사례는 한국 사회에서 취업에 목매는 젊은이들이 어떻게 착취당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위메프는 지난달 영업수습직 11명을 채용해 2주간 수습 과정을 진행했다. 수습들은 정직원과 마찬가지로 음식점과 미용실을 돌아다니며 계약을 따냈고, 몇몇 계약은 실제 거래로 이어졌다. 하지만 회사 측은 이들의 수습기간이 끝나자 정규직 채용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며 전원 해고했다. 그리고 이들에게 일당 5만원씩 1인당 55만원을 지급했다. 비난이 커지자 위메프 측은 이들의 정규직 취업을 약속했지만 여론이 악화되면서 위메프 불매 운동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소셜커머스 위메프의 한 광고 장면 (출처 : 경향DB)


취업을 위해서라면 섶을 지고 불속으로라도 뛰어드는 젊은이들의 절박함을 역이용하는 기업들의 인턴 착취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기업은 물론 정부, 공공기관도 이런 지적에 자유롭지 못하다. 엊그제는 이상봉 디자이너가 견습과 인턴에게 각각 월급 10만원, 30만원씩을 주고 노동력을 착취한 것으로 확인돼 패션노조로부터 ‘청년 착취 대상’ 수상자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기업들의 인턴 착취 수법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통상 3~6개월인 인턴 채용기간을 1~2년으로 늘리기도 하고, 특정 프로젝트에 참여시켰다가 목표가 달성되면 해고하는 1회용 인턴 피해사례도 있다.

정부는 인턴 착취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규직 전환 지원금 확대 등 제도를 보완하는 것으로 대처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인턴은 더 이상 선택사항이 아니다. 그럼에도 현실은 불합리투성이다. 근로계약서 미작성에 부당 임금, 인격 모독, 부당 해고 등 이루 말할 수조차 없다. 당장 인턴은 쉽게 고용하고 해고할 수 있으며 임금을 많이 주지 않아도 되는 편리한 노동력으로 여기는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착취는 근절할 수 없다. 이들에 대한 갑질 행태는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젊은이들의 희망을 착취하는 것은 사회를 절망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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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붓는다. 바람 탓인지 추위 때문인지, 손가락이 굴뚝만큼 굵어진다. 엄동설한에 손 트는 것처럼 장갑 두 켤레가 툭툭 터져 나자빠졌다. 바늘귀에 머플러 실을 한 올 끼워 한땀한땀 진땀을 빼며 꿰맸다. 손가락이 움직이자 굴뚝 따라 흔들리던 마음이 비로소 중심을 잡는다. 체하면 손가락 따려고 들고 온 바늘에 서러움이 찔릴 줄은 몰랐다. 하지만 찔리고 나니 7년간 체한 빨간 서러움이 차분하게 쓸려 내려간다. 놀린 손의 시간과 거부당한 손의 시간이 서로를 시침질한다. 쪼그려 앉은 다리가 저려오니 이것도 서럽다. 구름이 발끝까지 햇살을 막아서고 바람은 굴뚝 연기를 폐까지 배달한다. 이마저도 서럽긴 매한가지다. 물색없는 고드름은 덩치만 키우고 쌍용차 굴뚝엔 때 아닌 고드름 덕장이 한창이다.

스무날 하고 나흘째 굴뚝에 올라 있다.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 반드시 끝을 보겠다는 결심이 흔들리는 굴뚝과 함께 출렁인다. 이긴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한다. 쌍용차 해고자들이 ‘이겼다’는 말을 내뱉는 그 순간을 수천번 상상한다. 그러나 기쁘지 않다. 승부는 승자와 패자로 나뉘지만 우리는 운명의 거울 앞에서 외치고 있다. 패자도 우리요, 승자도 우리다. 진 쪽도 회사가 아니라 우리다. 이긴 쪽도 우리가 아닌 우리다. 해고자가 복직되고 희생자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낸다 한들 우리가 이겼다고 할 수 있을까. 뭘 가지고 우리는 이겼다고 주장할 것인가. 쌍용차 파업이 시작되는 그 순간 우리의 완전한 승리는 세월의 강 위를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돌릴 수 없는 물길이다. 26명이나 되는 동료들이 지난 7년간 그 강물에 빠져 죽었다. 그들은 더 이상 우리 앞에 없다. 남은 우리는 승자가 아니라 생존자일 뿐이다.

굴뚝 위에서 보니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았던 것이 정반대일 때가 많다. 그러나 온몸을 감는 하얀 연기는 죽어간 26명의 동료가 되어 눈앞과 손과 피부에 매일 와 닿는다. 산 사람이 무형이고 죽은 자들이 유형인 것이다. 우리가 가치라 말하는 것들의 덧없음을 매일 느낀다. 살아 있다는 소중함도 어떤 경계를 지나쳐버린 그저 그런 부질없는 먼지일 뿐이다. 그렇게 생존해 있는 쌍용차 해고자가 굴뚝 위에도 굴뚝 아래에도 있다. 공장으로 돌아가 자동차 만들게 될 그 손은 누구 손이며 어떤 손인가. 7년의 시간이 뜯겨 찢어져 버렸다. 영혼이 따뜻했던 시절이 깨끗하게 지워지고 덩그러니 벌판 위에 홀로 선 그들이 손에 쥐게 될 승리란 무엇인가. 서러움이 건더기째 떠다니고 가라앉지 못한 내 청춘의 비극은 공장 복직만으로 희극으로 변할까.

노동자들의 삶이 갈수록 팍팍하다. 가슴팍 때리는 일 잦고 까치밥도 되지 못하는 몫을 두고 배분이란 이름의 배급소 앞 행렬이 길다. 멀쩡한 팔다리 뭉텅뭉텅 잘라내고도 양보는 발톱 밑 때보다 적다. 양보는 쓰러졌고 배분은 질식사했다. 해고는 칼춤을 추고 비정규직은 넓게 넓게 어깨 벌려 모두를 주저앉힌다. 바닥은 갈라지고 하늘은 깨진 얼음조각으로 정수리를 향해 햇살보다 더 빠른 속도로 등을 뚫고 심장에 박혔다. 어떻게 살아가는가. 아니 어떻게 생존해 있는가. 매일 아침 살아 있는지 몸 흔들어보며 확인하는 서늘함 속, 하루살이 인생이 수두룩하다. 안녕하냐는 말의 온기를 가 닿지 않은 내일까지 우리는 들을 수 있을까. 안부 묻고 돌아서는 뒷목 서늘한 얼음 냉기는 언제쯤 이 몸에서 빠져나갈까.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왼쪽)이 7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을 찾아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오른쪽)이 전하는 ‘굴뚝신문’을 보고 있다. 굴뚝신문은 쌍용차 평택공장의 굴뚝 농성 소식을 담아 민주노총이 신문 형태로 제작한 것이다. (출처 : 경향DB)


햇살 아래 고드름 세워 놓고 내일을 위한 시간을 녹여가고 있다. 이별을 위한 짐을 싸고 만남을 위한 면도를 한다. 이야기의 목차를 정하고 말의 순서를 매긴다. 밥 보따리 끌어올리며 내일을 깃고 낡은 줄에 매달려 출렁거리는 우리를 본다. 운명의 장난은 위험천만했고 달리는 차에 팔이 낀 채 끌려다닌 지난 시간이 두툼하다. 눈 찌르는 머리카락 싹둑 잘라내고 싶은 욕심이 욕망의 전부라는 초라함이 고드름처럼 바닥을 향해 길게 내려온다.

예전에 인도를 다녀온 적이 있다. 뭄바이였다. 8년 뒤 쌍용차는 인도 마힌드라그룹이 인수했다. 우리들의 해고와는 가느다란 상관관계만 있을 뿐 굵은 인과관계는 없다. 1월13일 출시되는 신차 ‘티볼리’를 위해 쌍용차는 전사적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해고자 문제와 같은 아주 작은 문제, 먼지처럼 가벼운 문제도 해결하지 않는다면 상관관계는 한겨울 고드름처럼 금세 굵어질 수밖에 없다. 공은 이제 마힌드라그룹 아난드 회장 발밑에 떨어졌다. 인도에서 맛본 짜이 맛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작게 소망한다. 인도인들이 매일 마시는 따뜻하고 하얀 짜이를 아난드 회장과 함께 나누고 싶은 소망이다. 따뜻한 짜이를 맛볼지 식어빠진 짜이를 들이켤지 매일 동치미 국물 마시며 생각한다. 오늘도 쌍용차 해고자들은 내일을 위한 시간 위에 앉아 있다.


이창근 |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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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이 예정 시한을 몇 번 연기한 끝에 드디어 발표됐다. 정부는 이 대책을 노사정위원회에 제출하면서 3월까지 노동시장 구조개선 특위의 합의를 이끌어 내겠다는 계획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비정규직 처우개선과 노동시장 활력 제고 방안”이라는 부제이다. 부제가 암시하듯 정부 대책의 방점은 ‘비정규직’이 아니라 ‘노동시장 활성화’에 있다. 앞뒤가 바뀐 정부 대책에 대해 세부 사안을 논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작년 하반기 내내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이 주창한 노동개혁의 골격이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담겨 있다고 말하면 지나친 기우일까? 어쨌든 2015년 봄은 새로운 고용노동 생태계의 규칙 마련을 위한 노·사·정 간 일대 격전의 시기가 될 것이다.

정부의 대책은 ‘비정규직 종합대책’이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노동계의 거센 반대에 직면해 있다. 그 밑바탕은 비정규직에 대한 인식이다. 정부는 비정규직 확산이 정규직 과보호에 따른 결과로 정규직의 임금 및 고용 양보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한다.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으니까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그러니까 기업들이 겁이 나서 정규직을 못 뽑는다”라는 경제부총리의 발언이 이를 웅변한다. 정규직·대기업·유노조 사업장에 속한 7.4%의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확산의 주범이라는 인식이다. 결국 정부 대책의 칼날은 이들 과보호된 노동자들의 보호 시스템 해소에 집중된다. 왜곡된 현실 진단은 잘못된 처방전을 낳고, 상황은 더 악화된다.

이제 세부 내용을 보자. 비정규직의 차별을 해소하고 보호하기 위한 방안이 분명 존재한다. 차별시정제도의 실효성 강화를 위한 노조의 차별시정 신청대리권 보장, 철도·항공·선박 등 생명·안전 핵심 업무에 비정규직 사용 제한,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규모 제한 및 상시·지속적 업무의 정규직 전환 추진 등이 그 예이다. 반면 ‘장그래 죽이기 법’으로 회자되는 사용기간을(35세 이상) 4년으로 연장하는 내용과 고령자(55세 이상)의 파견업종 전면 확대를 포함하고 있다. 기간제노동자의 사용기간을 당사자가 원할 경우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면 비정규직의 고용은 연장되고, 기업의 정규직 전환 가능성은 더 커진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사용기간 연장은 현행 기간제법의 취지를 무력화하여 정규직 고용의 축소와 비정규직 노동의 확대로 귀결될 것이다. 장그래가 원한 것은 비정규직 기간의 연장이 아닌 정규직 전환이 아니었던가? 55세 이상 고령노동자에 대한 파견 확대 역시 퇴직 이후 노동자의 일자리를 불안정한 비정규직으로 바꿔 놓을 것이 분명하다.

필자의 정부 대책 평가가 몇 가지 사안을 너무 부정적으로 확대 해석한 것 아닌가라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정부 대책은 노동계와 경영계의 요구 사안을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게 제시한 것처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영계에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기계적 균형은 현실 개선이 아닌 현상유지로 귀결된다. 한국 사회의 비정규직 문제는 노사 간의 생각을 절충해서 해소할 수 없을 정도로 ‘곪아 터진 종기’와 같다. 발상의 전환과 실패한 과거 정책과의 단절 없이는 한발도 나아갈 수 없다.

정리해고 비정규직법 전면폐기를 위한 오체투지 행진단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쌍용차 해고자 복직과 정리해고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정부 대책은 전진이 아닌 후퇴이다. 노동시장 활력 제고 방안에는 경영계가 수년 동안 집요하게 요구했던 숙원 과제를 몽땅 포함시켰다. 주당 52시간 노동시간의 60시간으로 연장, 직무·능력·성과 중심 임금체계 도입, 임금피크제 확산, 일반해고 요건의 완화, 취업규칙 변경 관련 기준·절차 개선 등이다.

‘노동시장 유연화’의 망령이 다시 일터와 노동자의 삶에 엄습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노사뿐 아니라 전체 국민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문제이다. 정부 대책들은 경제활성화는커녕 계층 간 격차와 사회적 갈등만 더욱 확대할 것이다. 비정규직, 저임금노동의 해소 없는 온갖 구호와 정책은 모두 거짓이다. 을미년 새해 ‘을’의 인간선언과 ‘반란’을 꿈꿔 본다.


노광표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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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만인에게 지극히 불평등하다’는 ‘한국적 법언(法諺)’이 적용되는 영역 중의 하나가 바로 노사관계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들은 사소한 불법행위를 저질러도 혹독한 처벌을 받는 반면에 기업주는 용역깡패를 동원한 노조원 폭행, 노조파괴 등 온갖 범죄에도 경미한 제재를 받거나 아예 법망에서 벗어나는 일이 당연한 것처럼 치부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5월 발생한 유성기업 사태도 이러한 모순이 집약적으로 드러난 대표적 사례라고 하겠다.

자동차 엔진 부품 생산업체인 유성기업의 노조는 당시 밤샘근무를 없애기 위한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을 놓고 사측과 협상을 벌이다가 결렬되자 파업에 들어갔다. 이에 사측은 용역깡패를 동원한 노조원 테러, 해고, 직장폐쇄, 손해배상 가압류, 노조파괴 등으로 대응했다. 노조원들은 ‘밤에 잠 좀 자자’는 소박하고 절실한 요구를 내걸었다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17명이 구속되고 40여명이 해고됐으며, 12억원의 손배가압류를 당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사측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특히 국회 청문회 등을 통해 범죄행위가 밝혀진 ‘노조파괴 전문업체’ 창조컨설팅의 관계자들이 처벌을 받았는데도 검찰은 사측에 면죄부를 주었다. 범죄를 자문해준 자들은 처벌을 받았는데 정작 범죄를 의뢰하고 실행에 옮긴 사업주에게는 혐의 없음이란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전국금속노조 조합원들과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이 국회 정론관에서 유성기업, 만도 등 창조컨설팅 노조파괴 사건 재수사 및 기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출처 :경향DB)


법원이 금속노조 등이 낸 유성기업 노조파괴 행위에 대한 재정신청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대전고법 제3형사부가 엊그제 “사측의 노조 지배·개입 행위의 혐의가 인정된다”며 공소제기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재정신청은 고소인이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불복해 사건을 재판에 회부하도록 법원에 직접 요청하는 절차로서 법원이 받아들이면 검사는 기소를 해야 한다. 요컨대 법원이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사실상의 재수사를 명령한 셈이다.

우리는 법원의 이번 결정을 환영하면서 검찰이 지난번의 과오를 씻어내기 위해서라도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낱낱이 밝혀낸 뒤 사측의 범죄행위를 법정에 세우기를 촉구한다. 만에 하나 검찰이 이번에도 구부러진 잣대를 꺼내 사측을 교묘하게 비호하는 등의 행태를 되풀이한다면 그 과오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법원의 공소제기 결정이 전국의 사업장에 만연한 갖가지 부당노동행위를 근절하고 노사간의 산업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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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설레는 첫 사랑처럼 존재에 쿵 하고 다가오는 신간을 못 읽은 지도 참 오래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신속하게 많은 번역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최첨단 마케팅 기법이 우리를 유혹하는데도 말이다. 신간 주문을 위해 킨들을 클릭할 때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심장의 기억이 다시 간절히 그립다.

나도 이제 아버지처럼 입만 열면 옛날 영화만 한 게 없다는 이야기로 투덜대는 나이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난 80년대의 그 묘한 기분이 요즘은 더 그립기만 하다. 정보경찰의 하이에나 같은 눈이 없는지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럽게 들어선 사회과학 서점에서 <노동의 새벽>을 집어들 때의 그 긴장과 떨림 말이다. 당시 이 시집의 출간은 잔혹한 압축성장의 시대에 잊혀진 ‘미생(未生)’들의 존재를 선언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어제 집에 배달된 30주년 기념판의 파란 표면에 반짝반짝 빛나는 검은 글씨가 참 오랜만에 다시 온몸의 깨어남을 경험하게 했다.

왜 이 시집은 그토록 강렬하고 오랫동안 우리에게 다가오는 걸까? 나는 그 이유를 이 작은 시집이 그 어떤 거창한 사회과학도 당시 예리하게 드러내지 못했던 시대의 본질에 대한 시적 진리를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0세기의 위대한 사상가 하이데거는 시는 사물들의 진정한 본질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과 새로운 빛으로 드러낸다고 통찰한 바 있다(박찬국,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 당시 노동현장 속에 뿌리내린 박노해는 천민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생명의 찬란한 에너지가 어떻게 기름투성이 노동 기계로 전락하는지의 진리를 우리 앞에 충격적으로 드러내었다.

사실 이 책은 단지 근대 산업주의에 대한 노동의 반격만이 아니다. 다시 이 시집을 찬찬히 뜯어 읽으면 의미심장하게 등장하는 ‘사랑’과 ‘생명’이란 단어의 마법에 주목하게 된다. 이 시집은 우리들의 “끝없는 생명력”과 “큰 사랑”이 어떻게 잔혹한 자본의 굴레 속에서 훼손되는지의 정치경제학을 펼쳐낸다. 하지만 그 절망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촐한 밥상’과 ‘평온한 저녁’에의 눈물 어린 희망을 결코 버리지 않아 더 가슴 아프다.

박노해 시인이 1984년 가리봉시장 얘기를 쓴 시집 <노동의 새벽> (출처 : 경향DB)


박노해의 그 지극히 소박한 꿈의 실현 가능성은 아직은 너무 멀리 있다. 이제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의 대형 마트에 가면 전 세계의 진귀한 브랜드가 가득하다. 그리고 스마트폰 클릭 한 번이면 전 세계의 정보 보물이 실시간으로 손안에 들어온다. 하지만 이 풍요의 시대에 20대의 약동하는 생명 에너지는 제발 안정적으로 착취라도 해달라고 기원하지만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 심지어 ‘일베’ 현상은 이 강한 생명의 잉여 에너지가 어떻게 순식간에 병리적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잔인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린 정말 멀리 온 줄 알았는데 돌아보면 여전히 불의하고 불안하다.

1984년 당시 고졸 스물일곱살 ‘생산직 장그래’인 박 시인은 ‘보장되지 않는 미래’에 분노하면서 가족 및 동료들과의 조촐한 밥상을 꿈꾸었다. 그는 그 꿈을 위해 한때는 무기징역형을 감수했고 오늘은 백두대간과 남미 안데스 산맥을 누비며 새로운 길을 치열하게 찾아나가고 있다.

그가 그 당시 말하고자 했던 진리, 그리고 오늘날 자연에 대한 더 큰 각성과 영원한 첫 마음으로 무장한 채 나아가는 발걸음이 2015년 모든 미생들의 시대의 결로 확장되어 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마치 인터스텔라 영화에서 서재의 책이 흔들리며 우주의 중력 법칙의 표현인 사랑 에너지가 아버지로부터 새로운 세대에 전해지듯이 말이다. 테아르 샤르뎅이 오래전에 갈파한 것처럼 결국 우리는 모두 사랑의 끌어당김의 자장 속 빛나는 존재들이다.

이제 압축성장 시대가 세월호 비극으로 조종을 울린 지금, 조만간 그가 단행본으로 내놓기로 한 새로운 진리 선언을 나는 다시 가슴 설레며 기다린다. 인터스텔라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사랑하는 이를 찾아 새로운 길을 떠나는 주인공처럼 우리는 모두 이제 새로운 노동의 새벽, 인간의 새벽, 생명의 새벽을 향해 길을 떠나야 할 때이다.


안병진 | 경희사이버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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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어제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내놓았다. 근로개선책도 포함돼 있으나 대체로 비정규직을 보다 더 자유롭게 사용하려는 재계 요구를 그대로 수용했다. 주요 내용은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확대하고 파견 허용 업종을 늘린다는 것이다. 정규직의 쉬운 해고와 임금 깎는 방안도 포함됐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차별 철폐라는 사회적 요구와는 정반대다. 우리는 이번 대책이 오히려 비정규직을 늘리고 정규직 고용불안을 야기할 것으로 우려한다. 정규직을 흔들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발상은 비현실적인 데다, 사회적 갈등을 조장한다는 점에서 위험하기조차 하다.

정부는 이번 대책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를 줄이고 비정규직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바꿔 말하면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빌미 삼아 정규직을 문제 삼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 대책에는 성과가 낮은 노동자를 해고하는 가이드라인을 신설하고 성과위주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등의 방안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이는 노사불신이 심하고, ‘쪼개기 계약’ 등 왜곡된 비정규직 노동시장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정규직 임금을 깎아 비정규직 임금을 올려줄 기업이 어디 있겠는가.

29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권영순 고용노동부 노동정책실장이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발표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비정규직 남용 방지책도 원래 취지와는 다르게 흘러갈 공산이 더 크다. 비정규직 당사자가 원하면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고용안정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노동계 전체 차원에서는 사탕발림일 뿐이다. 비정규직 고착화와 신규 직원채용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저임금 숙련노동자의 돌려쓰기가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에서 신규 채용을 하려는 기업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파견 대상을 55세 이상과 고소득 전문가로 확대하는 방안도 역효과가 우려된다. 정부가 비정규직 처우개선책으로 제시한 정규직 미전환 이직수당 신설이나, 퇴직금 수령자격 시한을 1년에서 3개월로 줄인 것도 기업의 법 위반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형태로 변질될 공산이 크다.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 해결책은 정규직으로의 전환과 차별 해소다. 사용기간 연장과 허용 직종 확대, 몇몇 처우개선책으로는 해결하기 힘들다. 이번 대책은 노사정 논의를 위한 정부 측 제시안이다. 그러나 정부는 노사정의 이름을 빌려 정책 추진을 밀어붙일 것이란 의심을 받아왔다. 내년 3월까지 이어질 논의 과정에서 정부의 정책 전환을 강력히 요구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노사뿐 아니라 전체 국민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문제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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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해고자를 떠올리면 겨울나무가 연상된다던 어느 배우의 말이 떠올랐다. 쩍쩍 갈라지는 겨울나무를 닮았다 했다. 물기 없는 겨울나무를 떠올리게 한다고도 했다. 왜냐고 묻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하니 그런 줄 알았다. 굴뚝에 올라오니 그 말의 뜻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겨우내 이파리가 썩으면서 영양분과 물기를 채우는 겨울나무의 슬픈 순환을.

꼬일 대로 꼬인 쌍용차 문제를 풀겠다고 쌍용차 평택공장 70m 굴뚝에 올라 앉은 지 열흘에서 사흘이 더 지났다. 바람과 친구가 됐고 눈과 한 차례 인사를 나눴지만 비만큼은 가까워지기 싫은 이곳이다.

오로지 공장으로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젖은 땅 위에서 걷고 뛰고 바닥에 배를 밀고 머리도 찧어봤지만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공장 동료들이 있는 이곳 굴뚝은 쌍용차 해고자들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마른 땅이다.

이효리씨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그에 앞서 굴뚝에 오른 첫날 트위터에 “날도 추운데 다치지 않길 바랍니다”라는 글을 봤다. 그리고 닷새 뒤 “해고되었던 분들도 다시 복직되면 정말 좋겠고 그렇게 된다면 티볼리 앞에서 비키니 입고 춤이라도 추고 싶다”는 이효리씨의 글을 접했다. 눈을 의심할 정도로 놀랍고 고마웠다. 사회적으로 노동 문제, 특히 해고 문제만큼은 그동안 입을 떼기가 어려운 사안으로 간주되었다. 그것은 노동의 문제가 먹고사는 문제로 이해되기보다 이 사회 자본과 권력의 대칭점에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쌍용차 문제가 유독 많은 이들의 연대와 지지를 낳은 이유는 파업 당시 진압 장면이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또한 저항의 발가락을 한시도 땅에서 떼지 않은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굴뚝에 오르자 세계적인 석학 슬라보예 지젝부터 노엄 촘스키 그리고 인도가 낳은 세계의 석학인 스피박까지 지지와 연대를 보내오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 의례적인 인사가 아니다. 고통에 대한 응답이며 구조 요청에 대한 회신이다. 그러나 이 신호와 연대가 굴뚝에 오른 쌍용차 해고자 둘만을 위한 것인가. 그것뿐인가, 그렇지 않다. 국내외에서 날아든 햇살은 공장 안 동료들의 어깨와 공구 든 팔에도 따스하게 내리쬐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다. 친구이자 벗인 슬라보예 지젝이 이곳 굴뚝을 가리켜 ‘세계를 비추는 등대’라 한 것도 공장 안 동료에 대한 믿음이 바탕에 있었다. 바다 없는 등대가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너른 바다를 향한 손짓이다. 지금 쌍용차 굴뚝을 향한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굴뚝을 넘어 담장 안을 가리키고 있고, 공장 안 동료들의 지친 어깨를 어루만지려 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굴뚝은 사방이 뚫린 도넛 모양이다. 전방과 후방이 구분되지 않는 곳이다. 굴뚝으로 비추는 모든 햇살과 연대는 전후방 연관효과가 있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만드는 자동차에 전후방 효과가 있는 것처럼. 쌍용차의 정상화는 여기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쌍용차 해고자 가운데 정년을 3년 앞둔 늙은 노동자와 새하얗게 머리를 민 김득중 지부장이 함께 고구마를 굽는 모습을 굴뚝에서 지켜봤다. 출퇴근하는 동료들에게 따스함을 전달하려는 마음을 아프게 바라봤다. 따스한 고구마를 품속에 넣고 고맙다며 종종걸음으로 주차장으로 향하는 동료들의 뒷모습을 내려다봤다. 이게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 아닐까. 자본이 갈라놓고 돈이 떼어놓은 참혹한 경계의 6년을 우리가 따뜻한 온기로 녹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곳 굴뚝에서 매일 확인한다.

12월의 삭풍이 몰아치는 아들의 농성장에 어머니가 찾아왔다. 지상 70m 굴뚝 위 좁은 공간에서 농성에 들어간 귀한 자식이 걱정돼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누나들과 함께 아들의 얼굴이라도 볼 요량을 찾아온 것이다. 누나가 쌍안경으로 동생을 확인하는 동안 어머니는 아들을 향해 연신 손을 흔들어 보인다. (출처 : 경향DB)


사람들은 굴뚝 위의 우리에게 외롭지 않냐고, 춥지 않냐고 묻는다. 괜찮냐고 다그치듯 다시 묻곤 한다. 대답한다. 외롭지 않고 춥지 않고 고독하지 않다고. 아직도 바깥세상으로 걸어나오지 못하는 쌍용차 해고자에 비하면 이곳은 가장 따뜻한 곳이라고.

비에 젖고 눈에 굴러 몰골이 흉측한 지금의 모습으로 손을 잡아달라고 말하고 싶지 않지만, 오늘도 손을 내민다. 우리 뒤의 200명 가까운 해고자들을 보살펴줬으면 좋겠다. 지난 6년, 공장 안 동료들에게도 불편한 시간이었다. 쌍용차 작업복 입고 평택 시내를 마음 편히 활보하지 못했던 6년이라고 본다. 사람의 온기가 나던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 냄새, 그 온기만큼은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시기가 지금이 아닌가 싶다. 회사가 어떤 말을 하고 재계가 어떤 주장을 하더라도, 결국 삶을 책임지고 가꿔나갈 사람들은 우리가 아닌가. 법 위에 밥이 있고, 제도 위에 사람이 있다.

열사나흘 밤낮으로 굴뚝을 본다. 바람에 쓸려 자취를 감춰버리는 흰 연기 닮은 어떤 이들을 생각한다. 쓰러지고 태워지고 갈기갈기 찢겨 사라진 26명의 동료를 생각한다. 그 이름들, 이젠 찾아주고 싶다. 6년간 다투고 6년간 별거한 사이가 하루아침에 한 이불을 덮을 수는 없다고 본다. 그래서 부탁이다. 발등까지만 혹은 무릎까지만, 조금 더 손까지만 당신들의 이불을 밀어주었으면 좋겠다.

이창근 | 쌍용차 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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