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0일 고용노동법안소위원회를 열어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처리하기로 공감대를 이뤘다. 개정안의 세부사항을 놓고 원내 교섭단체 4당의 입장이 조금씩 달라 국회 논의 과정이 순조롭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대전제에는 이견이 없는 만큼 고질적인 장시간 노동 관행을 깨는 계기가 될 수 있어 평가할 만하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주당 법정노동시간 40시간에 연장근로를 12시간으로 제한하면서도 연장근로와 휴일근로 개념에 대한 규정이 없다. 다만 고용노동부가 행정해석을 통해 “휴일근로는 연장근로에 포함하지 않는다”고 정의함에 따라 토·일요일 8시간씩 16시간의 추가근로가 가능했다. 사실상 주당 최대 노동시간이 68시간이었던 셈이다. 국회 환노위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명시했다. 이를 어기는 사업주는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했다. 다만 법 적용 유예기간과 연장·휴일근로 수당에 대한 할증률을 놓고 환노위 위원들 간 이견이 있어 23일 다시 논의키로 했다.

한국 노동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113시간(2015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평균 1766시간) 중 두 번째로 길다. 2113시간을 하루 법정 노동시간인 8시간으로 나누면 OECD 평균보다 두 달을 더 일하는 셈이다. 장시간을 일하면서도 시간당 노동생산성(31.6달러)은 OECD 최하위권이다. 주당 52시간 넘게 일하면 우울증이나 불안장애가 두 배 이상 늘어나고, 직장인 3명 중 1명은 과로사 위험에 처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주당 노동시간이 52시간으로 단축되면 기업들은 신규 인력이 필요하게 되고, 이는 일자리 창출과 일자리 나누기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매출 감소와 납기 지연, 인건비 부담이 늘어날 것을 우려해 노동시간 단축에 부정적이었다. 이를 해결하려면 현행 급여체계를 개선할 수 있도록 노사 간 대화와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 노동시간 단축 방안은 2013년부터 추진돼 왔지만 시행시기와 방법을 둘러싼 노사정 이견으로 번번이 입법이 무산됐다. 하지만 이번만은 주당 노동시간 52시간 법제화를 통해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된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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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기업 아르바이트 임금체불 문제가 사회적 문제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는 대기업 통신사 콜센터 실습생의 죽음까지 접해야 했다. 산학협력과 학생 신분이라는 이유로 자본의 이윤 사유화 앞에 노동의 권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정규 직원도 감당하지 못할 업무를 실습학생에게 거의 동일하게 맡긴 탓이다. “콜 수를 모두 채우지 못했다”며, 자괴감이 든 상태로 부모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우리 노동시장에서는 인턴이나 실습생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소위 ‘열정페이’라는 말이 나온 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뚜렷한 해결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불명확한 고용관계를 맺고 있는 곳들은 민간과 공공부문을 가리지 않고 만연된 상태다. 인턴이나 수습 혹은 실습은 이제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산업에서 활용되고 있다. 심지어 지자체 민간위탁 시설은 예산부족과 일 경험이라는 미명하에 다수의 인턴이 정규직 업무를 대신하고 있다.

2016년 고용노동부는 ‘인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불안정한 청년고용과 실업 문제를 일부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실습생, 수습생, 인턴 등 교육훈련을 목적으로 하는 ‘일 경험’과 임금을 목적으로 하는 ‘근로자’를 구별하는 데 있다. 정부 발표로 인턴은 1일 8시간, 주 40시간 근무를 지켜야 하며, 연장·휴일·야간 근무는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인턴 기간도 6개월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업무 난도가 낮은 경우 2개월을 넘겨서도 안된다. 또한 기업 내 상시 종사자 비율 10% 이상의 인턴을 모집할 수도 없도록 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우리에게 인턴은 ‘이력서의 첫 줄’ ‘경험을 쌓는 아주 바람직한 방법’ 등 인턴십을 표현하는 흥미로운 표현들로 넘쳐난다. 요즘 학교에서도 교육과정 중 하나로 다양한 실습제도를 운영한다. 문제는 ‘직업 세계로의 입문’이라는 좋은 글귀와 학점이라는 명목으로 무보수이거나 최저임금도 안되는 수준의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이 좋아 인턴이지 노동력 착취인 셈이다. 다시 말해 법의 사각지대에 내동댕이쳐진 ‘법적 소외’ 상태 신분이다. 인턴은 노동시장에서 열정을 빌미로 저임금 노동을 정당화한다. 그래서 인턴은 조직 내 학생도, 노동자도 아닌 그림자 같은 존재다.

우리는 ‘인턴’이라는 단어가 지닌 모호성에 착목해야 한다. 수습이나 실습 혹은 훈련생 등은 인턴과 달리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노동자다. 이 때문에 모두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다. 반면 인턴은 인턴십이라는 제도에 참여한 사람이니 법률적 용어는 아니다. 열정페이 문제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인턴십은 실질적 경험이라는 보상이 따르긴 하지만 보수가 없으므로 ‘베푸는 행위’이고, 노동력과 경험이 맞바뀌므로 ‘물물교환 행위’이며, 미래를 위해 현재의 희생을 감수하므로 ‘신용적립’이라는 비자본주의적 거래에서나 가능한 유형이다. 즉 물질세계 중심인 현 사회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인턴십이라는 제도가 노동과 교육의 본질을 변화시키고 있음을 꿰뚫어야 한다.

반면에 투자가치가 높은 인턴십 프로그램일수록 자리 경쟁은 치열하다. 출세의 보증수표가 되는 ‘명문’ 인턴십 프로그램은 돈과 명예를 보유한 극소수 특권층 자녀들의 차지가 된 지 오래다. 우리 사회도 폼 나는 기관의 인턴은 학연과 지연이 없으면 할 수 없을 정도다. 잘나가는 국제기구에도 어깨에 힘깨나 주는 부모를 둔 자녀들이 인턴십에 더 많이 참여하고 있다. 청년실업을 고려한다면 최소한 ‘공정한 취업 기회’를 위한 모범적 인턴십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그간 정부도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해 왔으나,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언론에 기사화된 열정페이 사례들을 보면 노동력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는 점, 채용을 미끼로 부당한 근무조건을 강요하고 있다는 점, 정규직 전환과 같은 묵시적 고용관계를 약속했음에도 이행하지 않는다는 점 등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대기업부터 지자체까지 등 인턴 다수 고용사업장에서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들이 확인되고 있다. 게다가 일부 지자체 민간위탁 인턴 다수는 법률적 위반을 고려하여 단시간 일만 시키는 곳도 있다. 대표적으로 지자체 청소년상담복지센터의 상담심리사들이다. 현행법상 주당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는 주휴수당과 사회보험 의무적용이 아님을 악용한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시간제 일자리와 관련하여 1994년 ‘동등대우 원칙’을 채택한 바 있고 사회보장제도를 권고(제182호)했지만,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 아래에서 인턴이라는 이름의 노동자들은 이들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인턴과 같은 과도기 노동의 증가는 ‘제도적 사각지대’와 ‘실질적 사각지대’의 확대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노동시장 내 사회적 배제와 차별 같은 다차원적인 노동인권침해 문제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미국이나 프랑스, 독일같이 현장에서 실효성 있는 인턴규정이 가능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수습이나 인턴 직원에게 채용 및 고용을 조건으로 일정한 성과를 요구하는 기업의 잘못된 관행과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 이제 기업들도 인턴 채용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정부는 대기업 고용형태 공시현황(워크넷)에 인턴 규모를 포함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인턴 다수 사업장을 중심으로 수시근로감독을 통해 위법적 고용관행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일을 시켰으면 인턴에게도 최저임금 등 공정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따라서 이제라도 정부 차원에서 과도기 노동 문제의 심각성을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공유할 필요가 있다. 또 현장에서 보편적 노동인권이 향유될 수 있도록 단기적·중장기적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 사실 인턴만이 아니라 모든 노동이 ‘상품’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신체의 안정과 인권이 보장받을 때 가능하다. “세상은 권리 없는 인간을 물건처럼 취급한다”는 한 법학자의 말처럼, 이제 우리의 일터에서 노동의 권리가 무엇인지 질문해야 할 시점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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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년간 학력 간 임금격차는 빠르게 감소하는 추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2007년 고졸자의 평균 급여를 100으로 했을 때 대졸자 급여는 177을 기록하며 정점을 찍었으나 8년이 지난 2015년에는 137로 감소했다. 수치만 놓고 보면 학벌사회의 쇠퇴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추세는 대학진학률과 저임금 대졸 청년층의 증가세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학진학률은 2001년 70%대를 돌파했고 2008년에는 83.8%에 도달한 반면, 고졸자 평균보다 낮은 급여를 받는 대졸 청년층 비중은 2000년 15%대를 넘어서 2010년에는 23%를 기록했다.

따라서 이런 설명이 가능해 보인다. 많은 학생들이 고임금을 기대하고 대학에 입학했으나, 그들이 사회에 진출할 무렵에는 대학 졸업자가 너무 많이 배출되어 오히려 학력 간 임금격차가 급감했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게 다일까? 이 시기 대학생의 부모들이 베이비붐 세대였다는 사실에 주목해 보자. 단순화하자면, 베이비붐 세대 상당수는 1970년대 초반 이후 고도성장의 흐름을 타고 도시로 이동했다. 그들 중 일부는 대학을 졸업한 후 수도권 신도시나 광역시 신시가지에서 화이트칼라 중산층으로 편입하는 데 성공했고, 고등교육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나머지는 또래 대졸자들의 인생 항로를 지켜보며 못 배운 한을 자식에겐 넘겨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그들이 대학 진학을 앞둔 자녀들과 함께 당도한 21세기는 사교육 열풍과 등록금 인상과 학자금 대출의 시대였다. 그들의 자녀 교육 전략은 경제력과 정보력에 따라 계층별로 뚜렷이 분화되었다. 화이트칼라 중산층들은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아이의 체력”이라는 명문대 입학 조건을 충족시키며 불철주야 사교육 현장을 누볐을 것이고, 중산층 내 하위 집단은 가계의 출혈을 감수하면서 화이트칼라 중산층의 전략을 모방하기에 급급했을 것이며, 중산층 내 상위 집단 일부는 ‘기러기 가족’이라는 새로운 가족 형태를 완성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흐름이 최고조에 달하던 2010년대 초반, 동남권 공업벨트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회사 측에 신규 채용 시 정년퇴직자와 장기근속자의 자녀를 우선 채용할 것을 요구했던 것도 주목해볼 만하다. 이들 노동자 상당수는 1970년대에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공고에 진학하거나 직업훈련원에 입소한 후, 빈곤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숙련 노동자로 거듭났던 베이비붐 세대였다. 그들은 노동자로서 거의 유일하게 중산층 진입에 성공한 집단이었다.

혹시 이들의 자녀 우선 채용 요구는 대학생 자녀가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한 결과였던 것은 아닐까?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당한 동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곁에서 지켜본 이들에게 추락의 공포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었다. ‘귀족노조’라는 보수언론의 비판은 이 공포에 비하면 차라리 견딜 만한 것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기에 저소득층의 자녀 교육 전략은 위의 집단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회복지학자 신명호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저소득층 부모일수록 자녀가 “서열이 낮은 이름 없는 대학”에 진학해도 크게 개의치 않고 “적성을 살려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확신”하곤 했다. 그들에게는 “어떤 대학인가보다 대학을 들어갔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결과적으로 계층별 전략은 진화를 거듭하며 대학 서열 체계를 더욱 강화했고, 그 강화의 증가분은 재학생 부모의 경제력에서 파생된 것이었다. 저소득층의 자녀들은 이 경쟁 과정에서 소외되었다. 사실 도시 곳곳에서 그들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국가장학금 제도에 아슬아슬하게 기대선 채로 학업을 지속하면서도 최저시급의 서비스 노동자로 매주 20시간 이상 일하고 있으니까. 즉 그들은 대학생이면서 노동자라는 이중의 정체성으로 2017년의 “헬조선”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계층세습과 관련된 대학교육의 해법 마련을 위해서라면 목소리 큰 중산층보다는 이들의 현실을 먼저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박해천 동양대 교수 디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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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화고(옛 공업고) 재학 중 현장실습을 나간 김모군은 공장에서 ‘고삐리’로 불렸다. 하루 12시간 일했지만 월급은 수당을 합쳐 100만원이 약간 넘는 수준이었다. 김군은 학교에 찾아가 담임 교사에게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지만 담임은 “다른 회사도 다 똑같아, 참고 다녀”라고 말했다. 지난 9일자 경향신문에 소개된 김군의 사연은 특성화고 학생들이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현장실습 과정에서 교육을 빙자한 노동 착취를 하지만 교사의 가르침은 무기력하기 그지없다.

지난해 6월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 중 사망한 19세 청년 노동자도 김군과 똑같은 교육을 학교에서 받았을 것이다. 쥐꼬리만 한 월급에 따뜻한 밥 한 끼 제때 먹지 못하고 가방에 컵라면을 넣고 다닐 정도로 업무가 과중했지만 그는 묵묵히 참고 일하다 결국 숨졌다. 지난 1월 전주에서는 통신사 콜센터 현장실습을 하던 고교 3학년 여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학생이 일한 부서는 고객들의 상품 해지를 막는 곳으로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각해 3년 전에도 자살자가 발생했다.

특성화고 취업률이 지난 6년 새 두 배 이상 늘었다. ‘대학 안 가도 성공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며 정부가 고졸 취업을 늘리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결과다. 그러나 특성화고 학생들의 반인권적 노동 조건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학교 교육이 문제다. 대통령 임기가 5년이고 국회의원 임기가 4년이라는 것은 달달 외우게 하면서도 헌법에 함께 명시된 노동인권은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엊그제 고용노동부와 교육부가 합동으로 마련한 ‘일반계고 비진학자 취업지원 서비스 강화방안’만 봐도 그렇다. 일반계고 졸업자 직업교육 대상자를 지난해 6000명에서 올해 1만4000명으로 2배 이상 늘리는 내용이 핵심인데 이들을 위한 노동인권 교육 프로그램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든, 대학에 진학하든 90% 이상은 노동자로 살아간다. 헌법은 근로조건의 기준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하고, 연소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국가는 최저임금제를 시행해야 하고, 노동자는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사용자와 교섭을 벌이고 파업을 할 수도 있다. 학교는 이런 것부터 가르쳐 학생들이 스스로 노동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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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노동조합(알바노조)이 2일 롯데시네마가 ‘임금꺾기’ ‘쪼개기 근로계약’ 등을 통해 청년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임금을 가로챘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아르바이트 노동자 임금 84억원을 체불해 물의를 일으킨 이랜드 외식사업부와 똑같은 방식으로 임금 가로채기를 일삼았다는 것이다. 알바노조가 아르바이트 노동자 7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롯데시네마의 행태는 고약하기 짝이 없다.

롯데시네마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근로시간을 15분 또는 30분 단위로 산정하는 ‘임금꺾기’ 수법을 썼다. 임금꺾기란 근로시간을 15분 단위로 산정할 경우 15분을 채워야 임금으로 인정하고, 14분을 일하면 임금을 주지 않는 방식이다. 또 관람객이 적으면 강제로 퇴근시키고 조퇴처리를 했다. 유니폼을 갈아입는 등 업무 준비시간은 근로시간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 1년이 아닌 10개월 단위로 쪼개기 계약을 하기도 했다.

알바노조 조합원들이 2일 서울 송파구 롯데시네마 본사 앞에서 롯데시네마의 아르바이트생 상대 임금꺾기와 근무시간 임의 단축 실태를 밝히는 기자회견후 공문을 본사에 접수하려다 경찰에 제지당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임금꺾기는 명백한 불법이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들이 일한 시간에 맞게 임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롯데시네마는 시장점유율 2위 업체로 전국에 100여개의 영화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대기업이 부당한 근로계약과 임금체불로 청년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을 울리는 것은 비양심적인 위법행위다. 알바노조는 “롯데시네마뿐만 아니라 메가박스, CGV 등에서 일하는 청년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근로여건도 열악하다”고 밝혔다.

그동안 일부 대기업의 ‘열정 페이’ 강요 행위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면서 ‘임금 갑질’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긴 했다. 하지만 롯데시네마와 이랜드 외식사업부의 사례처럼 임금꺾기 수법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더군다나 대기업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임금을 가로채 이익을 챙기고 있다니 할 말을 잃게 한다.

지난해 말 청년실업률은 9.8%로 1999년 이후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기침체 여파로 고용사정이 나빠지면서 수많은 청년들이 단시간 일자리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대기업이 불법과 꼼수로 청년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임금을 가로채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노동부는 즉각 롯데시네마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해야 한다. 체불임금과 부당 근로계약은 즉시 시정하고, 책임자는 엄중 처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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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 기본소득을 둘러싼 상반된 두 생각이 다투었다. 솔직히 애초 기본소득에 마음이 가진 않았다. 인공지능이 모든 걸 생산하는 세상이라면 기본소득을 말할 것이다. 시민의 권리로서 먹고살 만한 금액의 기본소득은 무척 매력적이다.           

그런데 지금이 그때인가? 혹시 오늘의 산적한 문제를 푸는 데 기본소득은 안이하지 않은가? 복잡한 복지 숙제들을 한 방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호기가 불편했다.

대놓고 비판하지는 못했다. 기본소득에 담긴 시대적 열정을 존중했다. 힘든 삶을 살아가는 시민들의 절망, 분노, 요구가 기본소득에 깃들여 있다. 사회를 접하자마자 아르바이트 혹은 장기 취업준비생으로 몰려야 하는 청년들을 생각하면 그들이 상상하는 기본소득을 가볍게 여길 수 없었다. 장애인연금을 두고 고심하는 장애계를 만나선 아예 장애인 기본소득으로 이름을 바꿔 요구하자고 제안도 했다. 그래야 더 힘이 실릴 듯해서 말이다. 사회운동의 시야로 보면, 헬조선을 넘어설 대안 상이 변변치 않은 진보 아노미 상황에서 그래도 기본소득은 새 희망을 키우려는 사람들의 분투이기도 했다.

사실 보편복지와 기본소득은 모두 보편주의를 지향하지만 족보가 다른 제도이다. 보편복지는 ‘필요에 따른’ 보편주의로서 노동시장 밖에 있어 별도 소득이 필요한 아동, 장애인, 노인 등을 대상으로 삼는다. 여기에는 보육, 주거, 의료, 요양 등 사회서비스도 있고 아동수당, 기초연금처럼 현금을 지급하는 사회수당도 있다.        

근래 떠오르는 청년수당도 수급 대상이 노동시장 밖에 있다면 신규 사회수당과 다름없다. 실제 성남시가 기본소득의 취지로 청년배당을 설계했다지만 대다수가 노동시장 밖에 있는 24세 이하를 대상으로 하기에 청년의 특별한 ‘필요에 따른’ 사회수당에 훨씬 가깝다. 반면 기본소득은 노동시장에서 소득이 있든 없든 ‘무조건’ 지급된다. 여기에선 아동, 청년, 노인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까지 동일 금액을 지급받는다. 이처럼 두 제도는 설계 원리에서 노동시장 참여자를 포함하느냐 여부에 따라 확연히 구분된다.

그래서 두 생각이 계속 갈등했다. 기본소득이 정책적 선택으로 어설프다 판단하면서도 시대적 에너지를 주목해야 했다. 소득이 없는 사람에게 현금 복지를 지급하기 위해 이미 소득을 가진 사람에게도 예산을 사용하는 게 적절한 걸까, 보편복지의 틈새가 있다면 이를 보완하는 게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다시 이세돌이 알파고에 무너지고 무인 자동차가 거리를 주행한다는 소식에 흔들리는 마음.

다행히 요즘 두 생각이 의외로 조정되는 느낌이다. 내가 무엇을 더 탐구했다기보다는 기본소득이 현실 지형으로 내려온 덕택이다. 좌우파를 넘나들며 기본소득 유형이 너무 다양해 종잡을 수 없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번 대선을 계기로 우리나라 기본소득 논의가 사회수당으로 수렴하는 경향이 확인된다.

작년 가을부터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아동·청년·노인 기본소득을 제안했고, 박원순 시장은 여기에 실업부조·장애수당·상병수당을 더해 ‘한국형 기본소득제’를 주창했다. 이재명 시장도 아동·청소년·청년·노인을 대상으로 생애주기별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내놓았고, 김부겸 의원은 청년기본소득법안까지 발의했다. 모두 이름표는 ‘기본소득’이지만 사회수당과 다름없다. 나아가 심상정 후보가 기본소득을 농민, 문화예술인에게 확대하고 이재명 시장이 농어민을 이야기하지만 이 역시 업종의 특수성을 반영한 현금지원제도로서 사회적 정책수당에 속한다.

대선 공약 중에서 기본소득 DNA를 가진 정책은 국민 모두에게 월 2만5000원씩 제공하는 이재명 시장의 토지배당이 유일하다. 생애주기별 사회수당 패키지에 포함시켜 소액이라도 기본소득 실험을 해보려는 취지이나 월 2만5000원의 현금복지를 위해 연 15조원의 예산을 사용하자는 제안에 시민들이 귀기울일지 의문이다. 금액이 낮으면 실효성이 미미하고 금액이 높으면 예산 장벽을 넘기 어려워 지금 정책 선택지는 아니라 판단한다.

결국 우리가 대면하는 건 보편복지의 사회수당과 사회수당형 기본소득이다. 사회수당이 왜 기본소득이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지만 이름이 무엇이면 어떤가, 오늘 걷는 길이 같으면 함께 가면 된다. 대신 어떻게 길을 개척할지를 두고 머리를 맞대자. 도깨비방망이처럼 재정이 조달되는 게 아니라면 어디서, 얼마를, 어떤 힘으로 마련할지 실행프로그램을 세우자. 단기에 모든 재정을 조달하기는 어렵기에 어떤 수당부터 실시할지, 사회서비스는 무엇부터 챙길지 로드맵도 만들자. 이렇게 함께 가다보면 족보를 뛰어넘어 형제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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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어제 발표한 ‘1월 고용동향’을 보면 1월 실업자 수는 100만9000명으로 100만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6월 이후 7개월 만에 다시 100만명을 초과했다. 1월 기준으로는 2010년 이후 최대다. 경기가 부진한 데다 조선·해운 분야 구조조정까지 겹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앞이 보이지 않는 청년실업이다. 청년실업률은 8.6%로 0.9%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치상으로는 실업률이 낮아져 긍정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착시효과’일 뿐이다. 취업 문턱이 높아 청년들이 구직활동을 아예 포기하면서 실업률이 떨어진 것이라고 하니 참담하다.

(출처: 경향신문DB)

 

청년들이 구직활동을 벌이면서 느끼는 좌절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 사실상 실업자도 상당히 많다. 청년들의 체감실업률은 공식 실업률 통계보다 2배 이상 높다. 지난 1월 체감실업률은 22.5%로 지난해 4월 이후 최고다. 지난해 6월 현대경제연구원은 청년 체감실업률이 34.2%에 달한다는 조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취업이 안돼 졸업을 미루는 ‘대학 5년생’, 각종 스펙을 쌓고도 정규직으로 채용되지 않아 인턴을 전전하는 ‘호모인턴스’가 부지기수다. 조선소에서 일하던 20대 청년은 실직 후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막걸리를 훔치는 사태에 이르렀다. 청년실업은 주요국 가운데서도 두드러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 소속 35개국 중 최근 3년간 청년실업률이 매년 상승한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6곳에 불과하다. 일본의 5.2%에 비해서도 훨씬 높다. 한국 청년들의 일자리 얻기가 유독 힘들다는 얘기다.

(출처: 경향신문DB)

미래 취업여건은 더욱 암담하다. 앞으로 3~4년간은 최악의 취업난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역대 최다였던 2010~2014년 사이의 대학 신입생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시장에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기업들은 채용규모를 줄이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300인 이상 기업의 신규 채용 인원은 전년 대비 8.8% 줄었다. 채용 감소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젊은이들이 대학졸업장을 받자마자 곧바로 실업자로 전락하는 파국은 막아야 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행정’이나 ‘언 발에 오줌 누기’식의 단기 처방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순 없다. 노동시장이 청년 고용을 흡수할 수 있도록 전방위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자리가 사라지면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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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오전 11시경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의 랜드마크라는 메타폴리스에서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시민들은 초고층 건물을 휘감은 시커먼 연기를 보면서 가슴을 졸여야 했다. 결국 3층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것으로 드러난 화재로 인해 4명이 죽고 47명이 부상을 입는 비극적 참사가 일어났다. 신도시의 화려한 랜드마크 건물은 지진과 화재 등으로부터 철저하게 보호되고 있는 안전한 건물이 아니라, 작은 사고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안전에 취약한 후진국형 건물이었음이 드러났다.

지금까지 경찰 조사를 보면 철구조물 산소절단 작업 중 발생한 화재가 주요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화재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프링클러 및 액화소화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더 큰 화마를 불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고의 본질은 화재에 의한 재해라기보다는 유독성 검은 연기, 즉 ‘일산화탄소’에 의한 질식이라는 2차 재해이다. 화재가 아니라 연기에 의한 질식사였다면 스프링클러가 정상 작동됐다 하더라도 피해를 얼마나 막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각종 건축재들이 유독성 연기를 내뿜는 가연성 물질로 돼 있으므로 불과 몇 초만 들이마셔도 숨을 쉴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리모델링 공사장 천장 등 칸막이 재료가 우레탄 및 샌드위치 패널로 돼 있다면 그 공간 자체가 화재 시 거대한 ‘생화학 실험실’ 같은 환경으로 바뀌게 된다. 불꽃은 보이지 않고 건물 내에 시커먼 유독성 연기만 내뿜기에 아무리 물을 뿌려대도 진압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사고의 경우 시설관리업체 간부가 화재 시 유독성 연기를 밖으로 배출하고 맑은 공기를 내부로 주입하는 기능을 하는 환기시스템을 오작동을 우려해 꺼놓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2010년 해운대 초고층 화재, 2014년 서울 송파구 초고층 화재 역시 화재 그 자체보다는 화재로 인한 유독가스로 인해 피해자 규모가 커졌다. 40명이 사망한 2008년 1월 코리아2000 냉동창고 화재 참사, 28명의 사상자를 낸 2012년 8월 종로 국립현대미술관 공사 화재 참사, 31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2014년 5월 고양시 버스터미널 화재는 모두 피해자들이 유독성 연기에 질식돼 사망하거나 다쳤다. 건설업체들이 이처럼 화재가 발생할 경우 위험한 살인도구가 되는 위험한 건축재를 선호하는 이유는 값싸고 시공이 쉽고 단열효과는 좋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모호한 법규정이 이러한 참사를 부추기고 있다. 고용노동부 등은 대형 참사가 발생한 이후 사후약방문식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사고는 이어지고 있다. 이에 더해 최저가 다단계 하도급 공사 관행과 건설사들의 안전의식 부재로 인해 작업 시 화재감시자 배치, 불꽃방지망 설치, 소화기 배치 등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50억원 미만 공사를 포함한 소규모 현장에서 안전관리를 책임지는 전담자를 배치하도록 시급히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고층 건물은 불이 위층으로 쉽게 번지는 속성상 ‘내화충전재’를 설치하지 않으면 더 큰 참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최근 도심 곳곳에 초고층 건축물(전국 2500개동)을 앞다퉈 짓고 있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123층짜리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에서도 안전성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20층 이상 화재진압용 사다리도 거의 없으므로 초고층 건축물들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진다.

이번 사고에서 보듯이 대형 건물의 화재사고는 현장작업자뿐 아니라 시민들의 안전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이에 대한 근본적 대책들이 요구된다.

이번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신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이승현 전국건설노조 노동안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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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구로에는 ‘벌집촌’이 널려 있었다. 벌집은 간이주택이다. 방 한 칸과 부엌 한 칸으로 된 3~4평짜리. 누군가는 ‘라면상자’만 하다고 했다. 방문에는 1·2·3·4호 등 호수가 적혀 있었으며 볕이 들지 않아 항상 눅눅했다. 화장실이 없어 아침마다 공중화장실은 북새통을 이뤘다. 구로공단의 어린 여공들이 이곳에 살았다.

1970년대 정부의 수출주도정책으로 서울 구로구 일대에 산업단지가 세워졌다. 봉제, 가발, 완구 등 노동집약적 업체들이 들어섰다. 하루 14시간에서 16시간, 한 달에 28일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먼지만 날릴 정도의 월급만 손에 쥐었다. 1985년 조합원들은 노동권보장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파업은 처참한 탄압으로 끝났다. 어린 산업역군들은 경제성장의 소모품이 됐다.

주말을 앞둔 지난 3일 밤 서울 구로동의 넷마블 사옥. 창문 블라인드 틈 사이로 불빛이 새나오고 있다. 김영민 기자

1990년대 산업구조가 변하면서 경공업 중심의 기업들이 구로공단을 떠났다. 정부는 이곳을 정보기술 산업단지로 육성하기 시작했다. 공장이 있던 자리에는 대규모의 아파트형공장과 빌딩이 들어섰다. 애초 강남 테헤란 밸리에 자리를 잡았던 벤처 업체들이 치솟는 임대료를 피해 하나둘 이사왔고, 이곳은 어느새 정보기술업체의 새 요람이 됐다.

구로디지털단지에 ‘구로의 등대’라는 별명을 가진 게임회사 넷마블이 있다. 다들 야근하느라 밤늦게까지 빌딩의 불이 안 꺼져 ‘등대’로 불린다. 보통 주 6일 근무에 평일엔 꼬박 야근을 한다. 주 7일 근무도 드문 일이 아니라고 한다. 살인적인 근무 여건으로 직원이 숨지는 등 사달이 났다. 회사 측은 8일 “야근, 주말근무제를 금지하고 탄력근무제를 도입하는 등 노동환경을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디지털단지에서는 졸음을 쫓기 위해 ‘붕붕 드링크’를 마시면서 야근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나 복지는 변변치 않다. 넷마블의 발표로 게임업체들의 노동환경이 개선될지에는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기색이다. “한참 바쁘게 돌 때면 새벽 4시 퇴근이 예사였다. 저녁 8시 퇴근은 꿈도 못 꾸었다. 휴일도 한 달에 첫째 셋째 일요일뿐이었다… 일당은 하루 130원에서 140원이었다.” 구로공단에서 일했던 한 노동자는 이렇게 회고했다. 30년이 더 지났다. 노동환경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것 같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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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엠 부평공장 노동조합의 추악한 채용 비리 행태가 드러났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본사 정규직으로 발탁하는 과정에 개입해 거액의 뒷돈을 챙긴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전·현직 노조위원장 3명 등 노조 간부 17명이 총 8억7300만원을 받았다고 하니 일부 노조원의 우발적인 일탈이라고 할 수도 없다. 정규 생산직에 결원이 생기면 하청업체 비정규직 중에서 매년 40~110명가량을 발탁하는 기회를 악용한 전직 노조 간부들이 취업 브로커 역할을 한 것이다. 정규직 일자리 1개당 7000만원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돈을 받은 전직 노조 간부들이 노조 집행부나 사측 노무담당 임원에게 청탁하면 인사팀 실무자들이 지원자의 성적과 면접 점수를 조작해 합격시키는 수법을 썼다. 이렇게 해서 이 회사에서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123명의 정규직이 채용됐다.

뒷돈을 댄 비정규직들의 사연을 들으면 그들을 나무랄 수도 없다. 2006년부터 정규직 채용시험에 지원해 10번이나 떨어진 한 비정규직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길이 없다고 생각해 부모의 아파트로 대출을 받았다. 6번 떨어진 또 다른 비정규직은 자신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미화원 친척을 찾아가 사정 끝에 돈을 빌려 뇌물을 마련했다. 대기업 노조가 가난하고 불쌍한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의 고혈을 빨아먹은 셈이니 갑질도 이런 갑질이 없다. 전 노조위원장 정모씨는 납품 비리 혐의도 받고 있다. 회사 행사나 명절에 직원들 선물을 대는 납품 업체로부터 5억6000만원을 받아 자신의 집 화장실·천장 등에 현금 뭉치를 숨겨뒀다가 적발됐다. 사측은 노조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노조의 부당한 요구를 들어줬다고 한다.

한국지엠 노조의 채용 비리는 한국 사회 고질인 비정규직 차별에도 원인이 있다. 정규직이 되면 연봉이 2배 이상 오르니 뒷돈을 내고라도 정규직이 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는 것이다. 특히 일자리가 줄고 실업률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대기업 정규직 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이 때문에 일자리를 자녀에게 물려주기 위해 노사협약에 ‘고용세습’ 조항을 요구하는 노조도 많다. 그러나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이런 식이면 이들을 기반으로 한 노동운동은 희망이 없다. 도덕성을 상실한 노조, 비정규직과 청년 등 사회적 약자를 보듬지 않고 사익만 추구하는 노조는 재벌·대기업 못지않은 개혁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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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이나 아마존을 비롯해 글로벌 기업들은 주4일제를 시행하고 있다. 최근 유럽과 일본 같은 곳에서도 다양한 노동시간 단축이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도 지난 1월23일 지자체 최초로 서울형 노동시간 단축 모델을 발표했다.

서울시 노동시간 단축은 ‘주40시간 상한제’와 ‘초과근로 제한’ 그리고 ‘최소 휴식시간과 휴가 보장’이다. 올해 3개 기관 시범운영을 통해 전 기관으로 확산된다고 한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한 1800시간대가 목표다. 현재 2485시간인 노동시간을 단계적으로 단축할 경우 서울의료원 간호사들에게 1년에 무려 75일의 삶의 여유가 주어진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인력(60명)과 예산을 지원한다.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 비해 월등히 많은 시간을 노동에 할애하고 있다. 2005년 주5일제가 도입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주6일 이상 일하는 직장인이 663만명(34.2%)이나 된다. OECD 회원국 평균보다 1년에  347시간이나 노동시간이 긴 편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한 해에 40일을 더 일하고 있는 것이다. 1주일에 52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 비율도 18%(345만명)에 가깝다.

사실 직장인들에게 ‘저녁은 야근하는 시간’일 뿐이다. 대부분의 직장에서 점심시간을 모두 보장받기를 기대하는 것은 사치라고도 한다. 1주일 휴가조차 맘 편히 사용하기 힘든 조직문화가 일상화된 지도 오래다. 우리나라 직장인 10명 중 4명은 유급휴가를 가지 못한다. 비정규직 10명 중 7명 이상은 유급휴가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이처럼 일이 삶을 압도해버린 오늘날, 불평등한 시간배분이나 숨겨진 노동시간은 우리 모두의 삶조차 앗아가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 국민들은 이런 시간을 견뎌야만 할까.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이후 지난 60년 동안 국가는 근본적으로 사회 구성원 전체를 ‘시간부족’ 상황으로 내몰았다. 이제는 우리 삶의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

1년에 한 달의 휴가를 보장하는 독일, 하루 휴게시간이 2시간가량 되는 프랑스, 1주일 근무시간이 35시간에 불과한 덴마크와 핀란드. 이들 나라 모두 국민들에게 자신의 삶을 결정짓는 시간을 참고,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다. 독일이나 이탈리아에서는 지자체가 선도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진행했다. 최근 스웨덴 예테보리에서는 지난 2년 동안 1일 6시간 근무제 실험이 진행된 바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첫 번째 협약이 ‘근로시간 단축에 관한 협약’이었고, ‘괜찮은 노동시간’을 제시한 지도 벌써 10년이 흘렀다. 눈치 안 보고 퇴근하고, 여름이나 겨울에 최소 1주일 이상은 휴가 갈 수 있는 기본적인 삶은 누려야 할 것 아닌가. ILO는 노동자에게 최소 2주의 연속 휴가 사용을 권고하고 있고, 유럽연합(EU)은 4주 이상의 연차휴가를 부여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의 유급연차는 20일 이상이다.

그래서 서울시의 노동시간 단축 모델은 지자체에서는 보기 드문 사례로 의미가 적지 않다. 향후 민간위탁 등 소규모 사업장에 주4일제나 1일 7시간 근로 등 다양한 근무형태를 논의한다고 한다. 이제 서울시가 우리 사회의 노동시간 단축 그 첫발을 내디뎠다. 다른 지자체에서도 시민과 노동자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시간의 정치’를 펼쳤으면 한다.

김종진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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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기업이 부담되더라도 근로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찬성 79.1%, 반대 20.9%) “우리가 다소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찬성 82.8%, 반대 17.2%)

어떤 여론조사 결과일까? 놀라지 마시라.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겨레가 실시한 국민 이념조사 결과이다. 다른 여론조사와 달리 ‘다소 부담되더라도’ ‘다소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이주노동자 인권 보호를 지지하는지를 물어본 것인데, 우리 국민들 5명 중 4명이 긍정적인 답변을 한 것이다.

10년이 지나 2017년 대선을 앞둔 지금 다시 한번 조사해 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생업을 잠시 접고 국정농단 세력 단죄에 나서고, 도심 교통체증을 인내하며 광장에 나오는 촛불 민심을 들여다보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하지만 그렇지 않은 대목도 존재한다. 최근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개선과 정규직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추진되어온 ‘교육공무직법’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고작 11개 조항과 부칙으로 만들어진 이 법안에 대해 선동적인 반대 의견이 쇄도해 결국 이 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측이 사회적 토론을 통한 재추진을 전제로 발의를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법안 내용의 핵심은 아니었지만 교사 자격증을 소지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교사로 채용토록 노력한다는 조항에 대한 취업준비생들의 반대 의견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 취업전선에 선 수많은 청년들의 절망은 폭발 직전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드러난 일부 교사, 공무원들의 반대 의견은 이해하기 어렵다. “시험도 보지 않고 정규직이 되겠다는 거냐?” “예산도 충분치 않은데 가능한 일이냐?”

이런 의견은 그나마 신사적인 수준이다. 업무 자체가 정규직과 다른데 어떻게 동일 처우를 바라느냐, 아는 사람 추천으로 들어온 이도 있는데 모조리 정규직 전환을 해야 하느냐 등 노동과 비정규직을 비하하는 의견들까지 개진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우선 간단한 오해부터 풀고 시작하자. 교육공무직법은 37만여명에 달하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를 (공무원이 아니라)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처우를 개선하자는 취지이다. 따라서 시험 얘기가 끼어들 이유가 없다. 예산이 충분치 않다? 이 얘기는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교사, 공무원들의 처우 악화로 이어지는 논리가 되고 말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학교 비정규직 업무의 노동강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휴가 한 번 쓰기도 어렵고 근골격계 질환도 심각하다. 업무가 정규직 노동과 다르다? 맞다. 훨씬 힘들고 어렵고 기피하고픈 업무들이다. 하루만 일해봐도 처우가 이래선 정말 곤란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더 주자고는 못할망정 처우의 획기적 개선 필요성을 어찌 부정할 수 있겠는가.

교육공무직법이 담고 있는 핵심 내용은 11개밖에 되지 않는 법조항 숫자만큼이나 단순명쾌하다. 우선 상시적인 업무에는 비정규직을 사용하지 말고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라는 것이다. 정부 역시 올해 4월7일 ‘기간제 고용안정 가이드라인’에 이러한 취지를 담은 바 있다. 하지만 이는 법이 아니라 지침에 불과해서 사업장에 적용을 강제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선 교육현장에서만이라도 이 원칙을 법으로 강제하자는 것이다.

다음으로 ‘근속을 인정한 임금체계’를 도입하라는 것이다. 1년을 일해도, 10년을 일해도, 어제 입사한 노동자와 똑같은 임금을 받는 게 과연 합리적인가? 호봉제나 근속수당 도입 등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교육공무직법은 구체적 방법은 명시하지 않되 임금과 처우에 대해서는 “근속 기간을 고려하여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길게 보면 교육공무직법 제정은 교사와 공무원의 권리를 높이는 계기가 된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과정에 교사·공무원들이 함께한다면, 정규직으로 전환된 노동자들은 교사·공무원의 권리 확대를 위한 사업에 연대할 것이다. 교사·공무원과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가 성사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교육 현장의 모든 노동자들이 K스포츠재단이나 미르재단 설립 등에 투입되는 예산, 재벌들만 배불리는 정책에 투여되는 예산을 찾아내는 집단적 작업을 시작할 것이다.

쓸데없는 곳에 투입돼 낭비되는 예산을 교육현장에 투입하자는 주장이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대중운동이 구성된다. 정규직 혼자서, 또는 비정규직 혼자서 운동을 하는 것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공동의 목표를 향해 같이 나선다면 여기에서 뿜어지는 거대한 에너지는 교육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과 권리 보장을 만들어낼 것이다.

2007 이념 지도에 나타난 국민들 의식, 즉 ‘다소 부담되더라도’ ‘다소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정규직 전환이 필요하고 이주노동자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생각의 바탕에도 그런 것이 깔려 있다. 즉, 이러한 시각은 “손해를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식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 당장은 손해와 불이익처럼 보이지만 길게 보면 나를 포함해 전체 사회 구성원에게 이익으로 작동하게 될 것이라는 영리한 생각이다. 이제 며칠 뒤면 2016년이 끝난다. 2017년의 이념 지도는 어떻게 그려 나가야 할까.

오민규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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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한 비정규직 여직원이 약속된 정규직 전환 대신 해고통보를 받고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공개된 유서에 따르면 그녀는 정규직 전환을 위해 중년 남성들의 성희롱을 참아왔다고 한다. 같은 해 단독주택 지하 1층에 살던 세 모녀가 생활고로 고생하다 자살을 선택한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있었다. 이들은 자살하기 몇 년 전부터 복지급여를 지원받으려 했으나 대상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2015년에는 롯데호텔에서 일하던 청년의 쪼개기 계약 실상이 드러났는데, 이 청년은 3개월 19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을 갱신하다가 어느 날 해고당했다. 지난 6월에는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를 하던 19세 청년이 근무 중 사고로 사망했다. 미숙련의 비정규직 계약직인 이 청년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뛰어다니며 위험천만한 일을 소화해야 했다. 또 올여름에는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한 시인이 생계가 어려워져 저소득층 지원대상이 되었다. 최근에는 대학가의 동아리 회장 선거가 속속 무산됐다. 후보자로 나서는 학생들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스펙 쌓기, 그리고 아르바이트로 바쁜 학생들에게 이제 동아리 활동은 꿈같은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성추행 같은 모멸의 강요, 자신의 빈곤에 대한 증명의 강요, 매일 다음날의 계약서를 쓰며 느꼈을 굴욕의 강요, 위험한 일의 강요, 예술가의 작품에 대한 ‘쓸모’의 강요, 그리고 꿈꾸던 대학생활을 시작해도 곧바로 시장에서의 ‘가격매김’을 준비하도록 하는 강요가 판치는 지금의 한국 사회가 우리가 원하는 사회일까. 안전하게 일할 권리,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 예술을 생산하고 취미활동을 즐길 권리, 어느 정도 먹고살 권리, 그리고 무엇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는 권리를 누가 모조리 납치해갔는가? ‘생산적인 일’ ‘쓸모’ ‘높은 가격매김’ 등 반복되는 강요에 길들여져, 우리는 소중한 것들이 모래가루마냥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만 있을 뿐 반문도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일, 노동, 인정, 쓸모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다 적극적으로 구상해야 한다. 삶의 영위를 위한 다양한 인간의 활동이 그 자체로 평가될 때 노동, 일, 활동은 근본적인 인간의 욕구이자, 필수적인 사회 유대, 미덕 및 타인에 대한 존중의 근원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다중활동을 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전제조건은 먼저 어느 정도 수준의 무조건적 소득 보장이다. 여기서 ‘무조건성’은 소득, 근로 이력과 무관하게 권리로서 급여를 지급받는 것이다. 사실 현재 법과 제도로 규정될 수 있는 ‘근로’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비전형적 일들이 늘어가고 있는 상황이어서 ‘조건’을 정의하고 부여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한국 노동시장에 어떤 고용형태들이 존재하고 있는지 실태파악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새로운 고용관계가 청년들을 중심으로 등장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기본소득제가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청년 노동시장의 변화들을 고려했을 때 ‘청년기본소득’은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도가 제한된 시간 내에 전면적으로 도입될 경우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기본소득제의 단계적 도입을 위해 먼저 청년과 같이 기존 소득보장제의 사각지대에 있는 대상부터 시작해볼 수 있다.

일, 노동, 인정, 쓸모의 의미가 변화하면 개인들의 삶의 방식이 변화하고 사회의 모습도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 일, 노동, 인정, 쓸모의 의미가 바뀌기 위해서는 강요가 지배하는 작금의 시스템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모든 개인들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조금씩 더 주어진다면,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노동과 일이 실험, 탐험, 자원봉사, 다양한 문화적·예술적 활동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된다면, 시장에서의 일은 일생의 다양한 활동 중 하나로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런 사회에서는 궁극적으로 어떤 일이 시장에 기여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생산성과 쓸모에 대한 강요는 사라질 수 있다.

이승윤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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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죽었다. 위장이 뒤틀리는 심사를 다독거리며 기록을 남겨 잊지 않기로 한다. 뭐든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세상에는 ‘기억’이 곧 저항이고 변화의 시작이다.

삼십대 중반의 한 사내는 기중기로 향하는 계단에서 떨어져 죽었다. 높이는 32m. 이른 아침 세찬 겨울바람이 들이치는 그곳의 ‘안전난간’에 기대어 일터로 향하다가 수직 추락했다. 얼마 전 같은 공장, 삼십대 후반의 사내 하나가 이미 죽었다.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다가 상반신이 끼었다. 살려 달라고, 살려 달라고 했으나, 구조대는 50분이 지나서 나타났다. 딱 일주일 만에 똑같은 공장에서 두 명의 삼십대 사내가 죽었다.

각박한 시대라 자조적인 말도 있을 터이다. 어차피 매일 6명 이상이, 매년 2000명 이상이 일터에서 비명횡사한다. 우발적 사고를 피하긴 힘들고, 박복한 팔자를 어이할 것이냐고 말이다. 그러니 공부 열심히 해서 펜대 잡는 일을 해라. 어릴 적 수없이 들었던 얘기고, 지금도 어디선가 은밀하게, 때로는 공공연하게 하는 말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그러나 혹 거기가 어디냐고 궁금해할 당신, 기억하시는가. 현대제철 당진공장. 지난 5년 동안 산업재해 사망사고로 언론에 무수히 오르내렸던 공장이다. 2013년에는 하청업체 노동자 다섯 명이 가스 질식사고로 숨졌다. 그해, 모두 10명이 일터에서 죽어 나갔다. 그제서야 부랴부랴 살펴보니, 이 공장은 산업재해 발생 보고도 하지 않았다. 2011~2013년 사이에 최소한 20번 이상 위반했다. ‘현대’라는 기업 이름에 지레 휘둘리던 정부도 뜨끔하여 특별근로감독을 했다. 노동단체는 현대제철을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했다.

특별근로감독이 실제로 현장에서 얼마나 ‘특별’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특별하지 않았고 결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기괴했다. 특별근로감독의 결과로 현대제철에 과태료가 부과되었다. 액수가 ‘무려’ 1억9000만원에 ‘육박’했는데, 그나마 기업의 ‘어려운’ 사정을 고려하여 7000만원을 깎아주었다. 정부와 현대제철이 ‘할인 혜택’의 규모를 두고 고민했던 그해에도 두 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불귀의 객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2016년. 변한 것은 없다.

산업안전 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백도명 서울대 교수가 지적한 바 있다. 다른 나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치명적으로’ 높은 산업재해 사망률도 그렇지만, “심각한 점은 산재의 대부분이 사고가 났던 곳에서 또다시 반복해서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완벽한 인재라는 뜻이다. 살릴 수 있는, 살려야 할 사람들이 일하다가 쓰러져 가는 일터. 세월호는 일터에서 매일 침몰하고 있다.

풍경은 을씨년스럽고도 친숙하다. 지난주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고를 당한 곳은 “통로가 좁아 기계에 몸이 끼이는 등의 안전사고 위험이 커 노조가 수차례 현장 개선을 요구한 곳”이라 한다. 그리고 경찰과 고용노동부가 엄격한 조사와 수사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공장 관계자는 업무과실치사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삼엄한 분위기에서도 다른 노동자가 일주일 후에 기중기에서 추락했다. “여기 살려 달라”고 창문 두드리고 소리쳐도 보아주질 않는다. 조금이라도 더 목소리를 높이면, 기업을 망치려는 것이냐는 비아냥이 돌아온다. 훈계는 정부가 앞서서 하고, 기업은 뒤에 숨는다.

부패의 그림자도 스멀거린다. 2년 전 공사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이 넘어져 노동자 한 명이 숨졌다. 이때 산업안전감독관은 기업에 ‘노동자 과실’로 부각시켜 주는 대가로 2400만원을 받았다. 공사 전체 수주액이 3000만원 정도 되었다고 하는데, 처음에 1400만원을 받고 그 이후로도 휴가비 및 떡값을 챙겼다. 그 대가로 현장점검을 면제해 주었다. 이미 죽은 노동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부검의의 심정으로 사건을 살펴야 할 자가 노동자의 죽음을 ‘삥 뜯기’의 기회로 삼았다. 근로감독의 근본을 흔드는 사건이고 관련 부처가 크게 책임지고 분골쇄신해야 할 일이건만, 진도 앞바다처럼 고요하기만 하다.

진전도 있긴 하다. 산업재해 빈도가 줄었다. 작년부터는 산업재해 통계를 보면 산재사망 숫자가 2000명 이하로 뚝 떨어졌다. 작년에는 1800명 남짓이다. 200명 이상이 갑작스레 줄어들었다. 하지만 반응은 신통찮다. 통계적 ‘착시’ 현상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산재 통계 방식을 바꾸었다. 예전에는 근로복지공단의 방식에 따라서 사업장 외 교통사고, 체육행사, 폭력행위 등 업무와 관련 있는 모든 사고를 포함했지만, 새 방식은 이를 모두 제외한다. 덕분에 2014년 기준으로 산재사망자가 2134명이던 것이 1850명으로 줄었다. 죽어 나가는 노동자의 숫자는 변함없지만, ‘산재사망’이라고 인정해 주며 스티커 발부하는 방식만 변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지침과는 딱히 맞아떨어지지 않는 방식이다. 정부의 설명은 이랬다. “실제 예방할 수 있는 산재의 규모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맞는 말이다. 정부는 정책 수립과 집행을 통해 막을 수 있는 것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되돌려 묻는다. 이제껏 ‘예방할 수 있는’ 죽음을 막았는가. 현대제철 당진공장의 줄초상은 ‘예방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었던가. 근로감독이 ‘침몰’하고 있는지부터 살피는 것이 도리다. 생명이 걸린 일인 만큼 흔들림없이 엄중해야 한다.

최근 오해 살 일도 생겼다. 정부는 참여연대에 처음으로 근로감독을 한다고 한다. 23년 만이다. 시민단체도 의당 근로감독을 받아야 하지만, 시점이 논란거리다. 촛불집회 주도 단체인지 몰랐고,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되어 있다고 했다. 근로감독의 ‘정치화’를 걱정하는 소리마저 나오는데, 그저 오비이락이길 바랄 뿐이다.

인간은 삶이다. 일단 살아야 한다. 그래서 국가의 가장 큰 의무는 국민의 생명권을 보장하는 것이고, 노동정책의 출발점은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다. 노동을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로 헌법에 못 박아 두고서는, 일하다 죽든 말든 신경쓰지 않는 나라는 이미 나라가 아니다. 그랬던 내 나라의 모습, 잊지 않고 기록해 두겠다. 그리고 부탁이다. 많이 바라지는 않는다. 더 이상 죽이지는 마라.

이상헌 경제학 박사·‘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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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 문제 잘 해결하겠다.”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3년 5월8일,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대니얼 애커슨 GM 회장에게 약속한 내용이다. 통상임금 소송 하급심에서 노동자들이 계속 승소하고 있었다. 거짓말처럼 박 대통령의 한마디가 나온 뒤 갑자기 대법원은 전원합의체를 소집하더니, 민법상 ‘신의칙’이라는 이상한 논리까지 동원하며 하급심 판결을 사실상 뒤집었다.

한국지엠은 통상임금 소송에서 패소할 것을 염두에 두고 6260억원의 비용을 2012년 회계장부에 미리 반영해둔 상태였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이 뒤집히자 다시 2013년 회계장부에 7890억원을 환입했다. 다시 말해 이 판결로 한국지엠은 무려 7000억~8000억원의 직접적인 혜택을 받은 것이다. 한국에서 재벌로 분류되지도 않는 한국지엠에 대한 정부와 사법부의 태도가 이 정도였으니, 재벌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많은 혜택을 주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앞에서 인용한 박 대통령의 약속은 당시 애커슨 GM 회장이 “엔저 현상과 통상임금 등 노동시장 문제만 없다면 한국시장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발언에 대한 답변으로 나온 것이었다. 민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한국시장 포기 운운은 사실상 협박으로 느껴지는 대목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청와대 집무실도 아니고 삼청동 안가에서 박 대통령이 재벌 회장들을 은밀하게 독대했는데, 과연 그 자리에서 단순히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출연 얘기만 있었을까? 재벌 회장들 역시 민원인지 협박인지 모를 얘기를 쏟아냈을 것이다.

국회 국정조사특위 윤소하 의원이 지난 5일 공개한 내용을 보면 재벌 회장들은 박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에서 다양한 현안 문제 해결 등의 요구를 했음이 확인되었다. 이를테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환율 안정과 불법 노동행위에 대한 엄격한 법 집행을 요구했다고 한다. 애커슨 회장이 3년 전에 했던 얘기와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가!

재벌과 대기업은 박근혜 권력을 등에 업고 통상임금 문제 해결, 민주노조 탄압, 노동개악과 성과퇴출제 강행 등 수많은 ‘갑질’을 벌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비정규직 양산과 초과 착취였다. 비정규직 노동자 수천명이 불법파견 판결을 받았는데도, 정규직 전환을 거부한 정몽구 회장은 형사처벌은커녕 벌금 한 푼 물지 않았다. 자신의 불법은 시정하지 않으면서 불법 노동행위의 엄격한 법 집행을 요구하는 뻔뻔함 뒤에는 박 대통령이 있었던 것이다.

지난 11월30일 한국지엠 창원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360여명이 해고예고 통보서를 받았다. 창원공장 8개 사내협력업체 중 4개 업체에 대해 연말에 계약을 종료한다는 것이다. 사내협력업체 절반을 일거에 계약 종료하는 일은 이례적인 사건이다. 이 공장에는 비정규직노조가 결성되어 있는데, 조합원 대부분이 이들 4개 업체에 속해 있다. 이번 기회에 눈엣가시 같은 비정규직노조를 없애려는 목적 말고 다른 이유가 또 있을까?

권력의 뒷배를 둔 재벌과 대기업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런 행태를 자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재벌·대기업의 뒤를 봐주던 박근혜 권력은 이제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저임금과 고용불안, 생활고에 시달려온 시민들은 박 대통령을 퇴진시켜야만 더 나은 세상이 열린다는 확신으로 추운 겨울 거리로, 거리로 내닫고 있다.

박 대통령과 재벌은 공범이다! 어떤 범죄에 대한 공범자들인가? 국민들에게 선출되지도, 검증되지도 않은 비선 실세·관료·재벌들이 이 나라 정치와 경제 권력을 독점한 범죄이다. 모든 사회적 부를 그들이 독차지하고 노동자·서민들은 하루하루 불안한 삶과 최저임금에 시달리도록 만든 범죄이다.

박근혜 퇴진 요구는 단순히 대통령 얼굴을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자는 뜻만 담긴 게 아니다. 비선 실세·관료·재벌들의 권력과 부에 대한 독점을 해체하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한국지엠 창원공장 비정규직처럼 해고 위기 앞에 처한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공범자들을 단죄하고 박근혜 권력을 제대로 퇴진시키는 길이 아닐까.

박근혜 퇴진 요구를 걸고 거리의 시민들이 연대하는 것처럼, 답은 더 넓은 연대에 있다. 만일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정규직이 연대하고, 아직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들과 연대하여 노조로 단결하고, 지역의 노동자·시민들과의 연대를 더욱 확대하고, 심지어 지역 촛불의 민심까지 모아내며 해고를 막아낸다면, 수많은 시민과 미조직 노동자들은 “우리는 할 수 있다. 이제 때가 왔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것이다. 박근혜 즉각 퇴진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것이다.

2000년대 초반 민주노총 서울본부 사무처장을 지냈던 고 박상윤 노동운동가를 기리기 위해 ‘맑고 아름다운 상’이 제정된 바 있다. 2005년 이 상의 첫 수상자로 지엠대우 창원공장 정규직노조 지부장이 선정되었다. 누구보다 비정규직 사업에 열심이었던 고인의 넋을 기리는 첫 수상자로 정규직 노동자가 선정된 것인데, 당시 지엠대우 창원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에 앞장섰던 모범을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저력이 있는 곳인 만큼 이번에도 정규직·비정규직의 ‘맑고 아름다운 연대’가 실현되기를 기대해본다. 그러한 연대가 다시 촛불항쟁에 나선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노동자·시민의 연대로 승화시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소중한 승리로 이어지고, 그러한 감동이 더 많은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의 진출로 이어지기를.

오민규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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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을 심의·의결하는 최저임금위원회는 1987년에 발족했으니, 올해로 30년차다. 그런데 최저임금이 30번 결정될 동안 만족스러웠던 적이 있는가. 노동계는 최저임금 수준이 너무 낮다고 평가하고 사용계는 너무 높다고 평가한다.

지난 30년 동안 노사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최저임금 수준은 불만족스럽게 여겨졌다. 이 때문에 발족 30년차를 맞은 최저임금위원회를 개편하여 ‘국민이 만족할 만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당사자가 참여하는 구조를 유지한 채 최저임금위원회를 개선하기 위한 방법은 크게 두 축이 있다. 먼저 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하고 위원들의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위원회를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 그리고 최저임금 박람회를 개최하는 등 위원회를 상시적 기구로 활용해야 한다.

박준성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이 7월 16일 새벽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최저임금위원회 14차 전원회의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2017년 최저임금은 올해(6천30원.월급 126만270원)보다 7.3% 인상된 시급 6천470원 월급135만 2천230원으로 결정됐다. 연합뉴스

그러나 핵심은 직접 교섭에 참여하는 노사 및 공익위원의 구성과 관련된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사용자위원 9인, 노동자위원 9인, 공익위원 9인 등으로 구성된다.

공익위원은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노사위원은 최저임금 당사자를 대표하기 때문에 쉽게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노사 대립으로 매년 법정 시한을 넘기기 일쑤고 최저임금 결정 과정은 파행으로 이어진다. 결국 공익위원이 캐스팅보트를 쥔 셈이다. 지난 10년 동안 공익위원의 최종 제시안이 모두 의결안이 된 것만 봐도 공익위원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공익위원의 편향성 시비는 끊이질 않는다. 사실상 공익위원은 없고 노와 사가 9 대 18 아니냐는 평가가 있을 정도다.

공익위원의 결정적 역할을 감안하면 현재 최저임금위원회의 실패는 공익위원제도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공익위원 임명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사용자 측에 편파적인 인사들로 채워지는 구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대안으로 시민배심원을 공익위원으로 선정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국민참여재판의 경우 만 20세 이상 국민 가운데 무작위로 배심원을 선정해 재판에 참여하도록 한다. 물론 배심원의 평결은 권고적 효력을 갖지만, 배심원의 평결과 다른 선고를 할 경우 판사는 그 이유를 판결문에 분명히 밝혀야 하는 등 일정한 제약이 있다. 국민참여재판이 시민배심원제를 채택한 이유는 국민의 일반적이고 건강한 상식과 눈높이를 반영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도 마찬가지다. 국민 임금 하한선으로서의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는 시민이 직접 심판자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위원회를 노사·시민배심원으로 구성해 편파성 시비를 없애자는 것이다. 이 경우 노사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극단적 방식으로 표현하는 교섭안을 제시해 소모적 힘겨루기를 하기보다 배심원을 설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결정된 최저임금은 노사와 시민이 소통한 결과라는 점에서 숙의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이 될 수 있으며, 노사관계가 보다 성숙한 수준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 위원 정수는 더욱 내밀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축소할 필요가 있다. 현행 27명 구조는 실질적 협상을 어렵게 만든다. 위원 정수를 축소하되, 노총 위원장이나 경총 회장처럼 조합원과 회원사를 대표하는 책임성을 가진 교섭권자가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최저임금 당사자인 비정규직, 청년, 여성 등을 대변할 주체가 참여해 대표성이 축소되지 않도록 보완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위원 임기 상한제를 도입해야 한다. 현재 위원 임기는 3년이고 연임이 가능하다. 다선 위원은 최저임금 결정의 맥락에 대한 이해도는 높다. 그러나 필자는 최저임금위원회에 배석하면서 장점을 상쇄하는 단점을 수차례 목격했다. 최저임금 결정 근거나 설득 논리가 매년 똑같을 정도로 관성적이다. 위원회 논의가 관성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고 새로운 문제의식을 가진 인원이 지속적으로 보강될 수 있도록 위원 임기를 2차례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법의 목적은 노동자를 위함으로써 국민경제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위원회 구조를 잘 정비해야 한다. 조금만 손보면 훨씬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위원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

최혜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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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의 파업이 두 달 가까이 진행되고 있다. 사상 유래 없이 철도노조의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시민들은 불편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늘 그렇듯이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는 이유는 정부가 앞장서서 노조의 파업을 불법으로 호도하고, 사측은 노조의 교섭요구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업의 진행상황은 이렇다. 금년 봄, 코레일은 정부의 방침에 따라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면서 노조의 의견을 묻지 않은 채 이사회 결의만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하였다. 이에 노조는 노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근로조건인 임금체계 변경을 노조의 동의 없이 진행하는 것은 근로기준법상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성과연봉제의 철회를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코레일 노사 간의 분쟁이 제대로 교섭이 진행되지 않고 파업으로까지 발전하게 된 데는 고용노동부의 왜곡된 법해석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공원에서 열린 공공운수노조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성과연봉제 저지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즉, 고용노동부는 노조의 교섭요구에 대해 파업 이전부터 ‘이미 개정된 취업규칙의 효력을 부인하는 것은 권리분쟁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이나 파업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지침을 내린 바 있다. 코레일은 이를 토대로 노조의 교섭요구에 응하지 않으면서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노동부의 이러한 지침은 궤변일 뿐이다.

노동부 지침대로 노조법은 권리분쟁을 파업의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권리분쟁은 이익분쟁과 달리 법원에 의한 권리구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권리분쟁은 법·단체협약·취업규칙 등 유효하게 성립하고 있는 권리규범에 의해서 ‘확정된’ 권리의무에 관한 분쟁을 의미한다.

권리는 이익이 권리규범에 의해서 확정된 것이며, 확정된 권리가 아니면 법원은 권리구제를 해줄 수 없다. 아직 확정되지 아니한 이익에 관한 분쟁이 단체교섭과 파업의 대상이 되는 이유이다.

현재 코레일 사측은 성과연봉제 도입에 관한 취업규칙 개정이 유효하다고 주장하고 있고, 노조는 근로기준법상 거치게 되어 있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시 노조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아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권리규범의 효력에 관한 분쟁으로 아직 권리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권리를 확정시키기 위한 분쟁이다.

법원의 판결에 의해 권리규범의 효력이 인정되기 전까지는 취업규칙 개정에 따른 권리의무는 확정된 것이 아니므로 그에 관한 분쟁은 전형적인 이익분쟁이고, 그것에 대해서는 당연히 쟁의행위가 가능하다. 노동부가 얘기하는 권리분쟁 상황은 유효한 성과연봉제 규정이 있는 것을 전제로 그 규정의 해석·적용·이행에 관하여 노사 간에 다툼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

코레일은 개정된 성과연봉제 규정이 근로기준법에 위반되어 무효라면 노조가 ‘효력정지 가처분’이나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니 그와 같은 방식으로 해결해야지 파업을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해결방식이 별도의 권리분쟁인 것과는 별개로 현재의 분쟁은 성과연봉제 도입 규정이 유효한지, 그에 따라 근로자에게 이익이 될지 불이익이 될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이익분쟁인 것이다. 그런 소송과는 별개로 여전히 이익분쟁은 존재하므로 노조의 파업은 정당한 것이다.

필자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까지 권리분쟁이니 이익분쟁이니, 그래서 쟁의행위가 가능하니 그렇지 않느니 따져야 하는 작금의 현실이 참담하다. 성과연봉제의 도입과 같은 문제가 근로조건의 불이익 변경의 문제라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해서는 노조의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은 노동법의 ‘노’자만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면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그런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다거나 나아가 권리분쟁이라는 논리로 궤변을 일삼는 자가 대한민국의 노동부다.

그런 퇴행적 노동행정은 2016년 11월 현재의 퇴행적 시국과도 관련이 있는 것인가! 노동자들의 권리실현에 조력하여야 할 노동행정이 오히려 노동법의 규범력을 앞장서서 무력화시키는 처사는 무엇이란 말인가?

노동부는 진정, 노동법의 규범력을 약화시킴으로써 권리분쟁을 노사 간의 힘의 대결로 해결했던 구시대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인가?

김성진 |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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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라, 풍파를 견딜 나이가 아니다.” 최순실씨 변호를 맡고 있는 이경재 변호사의 한마디가 젊은 세대를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억울하게 죽어간, 정유라씨보다 한 살 어린 김군은 풍파를 견딜 나이인가?

풍파를 견딜 나이라서 삼성의 하청업체들은 20대 노동자들에게 메탄올인지 알려주지도 않고 일을 시켜서 실명에 이르게 했단 말인가? 한 달이 멀다 하고 대우조선과 현대중공업에서 들려오는 하청노동자 상당수가 1980년대 말이나 1990년대에 태어난 이들인데, 이들에게 불어오는 풍파는 정당한 것인가?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정반대의 측면에서 접근해보자. 삼성과 현대차 등 재벌 그룹의 2세, 3세들은 20대 초반에 본사 또는 핵심 계열사에 입사해 경영기획실 요직은 물론 이사와 임원으로 등극하는데, 이들은 충분히 세상의 풍파를 견딜 나이라서 그런 것이란 말인가.

정확히 말하자면 이놈의 세상은 청년들에게 너무 많은 풍파를 견딜 것을 요구한다. 일자리는 부족하거나 질 낮은 일자리뿐이어서 ‘미생(未生)’을 강요당한다. 임금과 고용만 불안한 게 아니라 다치거나 죽기 쉬운 위험한 일자리로 내몰린다. 하지만 흙수저와 달리 금수저에겐 이런 풍파를 이겨낼 수단이 차고 넘친다. 억울하면 돈 없는 부모를 탓하라? 그래, 우선 금수저에겐 부모의 돈과 권력이 있다. 그런데 재벌과 관료들, 비선 실세들이 가진 권력이란 것도 국민들에 의해 선출되거나 위임된 것이 아니다.

선출도, 위임도 안되었는데 어떻게 그들은 권력을 갖게 되었는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그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 적당한 인물을 골라 선거에서 선출되도록 돕는다. 아니, 심지어 자신들 입맛에 맞지 않는 인물이 선출되더라도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구워삶으면 된다.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 실세, 그리고 관료들이 합심해 만든 미르와 K스포츠 재단에 재벌들이 774억원을 상납한다. 최근 속속 폭로된 내용들에 따르면 재벌들의 출연은 노동개악·성과퇴출제·민주노조 말살을 정부가 추진하도록 하기 위한 뇌물이거나 수고비 성격임이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또다시 구체적인 대가성이 약하니 어쩌니 하며 면죄부를 주려 하겠지만, 재벌들의 상납금은 최소한 ‘보험금’으로 볼 수 있다.

올 상반기를 기준으로 국내 30대 그룹의 사내유보금은 무려 759조원에 달한다. 774억원으로 759조원을 지킬 수만 있다면 0.01%의 보험료이니 얼마나 수지맞는 장사인가.

이런 방식으로 재벌과 관료, 비선 실세들로 구성된 ‘금수저 커넥션’이 구성되고 대를 이어 돈과 권력이 상속된다. 선거에 나서지도 않고 대중에게 검증되지도 않은 이들이 입법·사법·행정부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국정농단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11월12일 100만 촛불로 구체화된 대중의 분노의 출발점이 바로 여기이다. 너희들이 뭔데 우리 운명을 좌지우지한단 말이냐!

재벌독재와 관료독재, 비선 실세의 독재를 뿌리뽑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헌법’ 얘기가 많이 거론되는 요즘 트렌드를 따르자면, 한국의 헌법이 이런 독재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준비해둔 조항이 2개 있다. 하나는 헌법 제21조가 규정하고 있는 집회결사의 자유이고, 다른 하나는 헌법 제33조에 따라 노동조합을 만들어 집단행동에 나설 수 있도록 한 권리이다.

노동자와 시민은 100만 촛불의 형태로 집회결사의 자유를 발동하고, 저항의 물결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제 다음 국면으로 노동조합 결성과 단체행동이라는 권리를 발동시킬 차례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 민중총궐기의 중심축에 민주노총이 서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민주노총은 오늘 11·12 민중총궐기에 이어 ‘박근혜 퇴진’을 위한 총파업을 결의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확정한다. 재벌독재, 관료독재를 끝장내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핵심 수단 중 하나가 노동조합이라는 사실을 2000만 노동자와 5000만 국민에게 보여줄 것이다.

이것은 출발점일 뿐이다.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고작 10%다. 노동자 10명 중 1명만 노조에 가입되어 있다. 이렇게 낮은 조직률을 보이는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다.

노조에 가입하면 해고, 징계, 고소고발 등 각종 부당노동행위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불법이 아니냐고? 검찰과 관료들은 재벌과 사장들을 처벌하지 않는다. 재벌과 사장, 검찰과 관료가 함께 ‘금수저 커넥션’을 구성하고 민주노조 말살과 노조 탄압을 눈감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100만 촛불의 여세를 이어갈 노동조합 결성의 물결을 만들어갈 때이다. 돈과 권력을 가진 금수저들은 풍파를 이겨낼 많은 수단이 있지만, 헬조선에서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우리에겐 촛불과 함께 노동조합이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 청년들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풍파!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노동조합을 결성하면 그 풍파를 이겨낼 힘이 생긴다. 저임금도, 비정규직의 고통도, 위험의 외주화도, 노동조합의 힘을 통해 바꿀 수 있다.

오늘 대학 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지만 시험지에도, 수험과목에도, 노동조합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이제 학교에서도 노동조합을 가르치게 해야 한다. 교사들도 나서고 학생들도 함께 요구하자. 100만 촛불과 노동자들의 총파업이라는 살아 있는 역사의 실천을 통해 민주주의와 노동조합 힘의 크기가 비례한다는 점을 보여줄 때이다.

박근혜 퇴진! 노동조합과 함께!

오민규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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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이 취업자의 절반에 가깝다. 1년 미만 노동자 비율이 51.9%나 되니 평생직장은 고사하고 새로운 직장을 찾는 이들이 더 많은 셈이다. 정부 통계로도 공공부문 비정규직이 33만2000명이나 된다. 물론 지방자치단체 상수도 검침, 콜센터, 사회복지시설, 청소년수련관, 아이존(아동·청소년 정신건강 증진시설), 정신건강증진센터 등 각종 ‘민간위탁’은 제외한 통계치다. 그래서 지자체 민간위탁의 법 위반이나 인권침해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전국 208곳의 광역과 기초 시·군·구 보건소에 자리 잡고 있는 정신건강증진센터 문제이다.

정신건강증진센터는 1990년대 중반부터 국민의 정신건강과 자살예방 등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국가와 지자체가 일정한 예산을 투여해 운영하고 있다. 정신건강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신건강사회복지사 및 간호사 등 사회서비스 전문가들이다. 일선 현장에서 근무하고도 최소 1년의 수련과정을 거쳐야만 전문자격증 취득이 가능한데 전국에 1만6000여명 정도 된다. 서울지역에도 서울시와 25개 자치구 센터에 약 35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지역사회의 정신건강을 위해 묵묵히 지난 15년간 헌신해 왔다. 문제는 각 센터에서 법 위반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특별한 대책이 세워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2016년 서울지역 실태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센터 재계약이나 위탁업체 변경과정에서 근로조건 불이익 등 근로기준법 위반이 확인되고 있다. 퇴사 강요 7.3%, 직급·직책 하향 이동 8.2%, 부당 업무 변경 15%, 임금삭감 66.9% 등이었다. 이뿐만 아니다. 임신 여성의 야간근무가 20.8%나 되었고, 임산부의 계약해지나 타부서 이동이 15.4%나 되었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 민간위탁으로 운영되면서 인권의 사각지대에 노출되어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지자체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는데도 단체장들은 무엇을 했던가. 각 자치구 의원들은 이러한 현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결국 지난 2월 정신건강증진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서울시와 각 자치구에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요구했다. 서울시의회 주최로 토론회와 간담회도 진행했다. 그러나 각 단체장들은 민간위탁을 핑계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시와 구의 매칭 예산구조 때문에 어렵다거나 실질적인 고용계약 주체 당사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시와 구청, 그리고 민간위탁업체 모두 고용문제를 서로에게 떠넘기고 있는 현실이다. 노동조합은 어렵사리 서울시와 고용안정협약(안)을 도출하고, 각 자치구에 합의문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10월21일 구청장협의회에서 고용안정 문제가 논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청들이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찬바람을 맞으며 시작한 파업이 오늘로 벌써 43일차다. 파업이 길어지고 있지만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현재 서울지역 8곳(종로, 서초, 성북, 성동, 강북, 용산, 동작, 노원)을 제외하고 아무런 답이 없다. 각 지역의 정신장애인, 자살 및 알코올회복 상담자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당사자들이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공공부문은 이윤이 아닌 생명을 우선해야 하고, 효율성이 아닌 공공성을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 인간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사적 시장과 달리 공공부문이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되묻고자 한다. 서울지역 각 구청장들의 답변을 듣고 싶다.

김종진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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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했다. 건물 언저리에 내팽개친 컴퓨터 안에 숨겨둔 세상의 비밀을 눈 밝은 기자들이 파헤치고 있을 때, 나는 여기에 실을 글 삼아서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청년 고용에 대해 말만 내세우고 이룬 것은 없다고 따지려고 했다. 청년실업률이 매달 최고치를 경신하는데 ‘당신은 어디에’라고 물으려 했다. 하지만 그 조그마한 컴퓨터에 제대로 된 폴더 하나 없이 쑤셔 넣어둔 파일들의 내용이 드러나자, 나는 쓰던 글을 엎었다. 이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화가 났다. 영국의 켄 로치 감독을 문뜩 떠올렸다. 평생 화만 내고 살았던 사내다. 맨날 얼굴에 화가 잔뜩 난 사람만 나오고, 보는 사람도 화나게 만드는, 살벌하고 정나미 떨어지는 영화만 만드는 감독인데, 늘 이런저런 상을 받는다. 이번에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뿔만 내면서도 온갖 찬사를 받는 재주는 타고 난 셈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기자가 물었다. 왜 그렇게 화를 내느냐고. 로치 감독은 그 질문이 되레 황당하다고 생각했는지, 멈칫하다가 이렇게 말했단다. “영화 만들려고 조사하러 다닌 적이 있는데, 그때 사흘 정도 제대로 먹지 못한 청년을 만났어요. 냉장고가 텅 비어 있더군요. 어느 여인은 나라에서 주는 공짜 음식을 받으러 가는 걸 죽도록 싫어했고, 어떤 사내는 하루 일거리를 찾아 새벽 5시부터 줄 섰다가 딱 한시간 후에 일감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어요. 살기 위해 끊임없이 모욕을 당해야 하는 거지요. 이런 것에 화가 나지 않는다면, 당신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요?”

그녀도 화를 자주 내었다(나는 이제 ‘그녀’를 ‘그녀’라고 부르기로 한다). 로치는 성난 얼굴로 권력에 도전했지만, 그녀는 화를 내며 권력을 지켰다. 책상도 치고, 언성도 높였다. 그러면서 말로 천냥 빚을 갚겠다는 의지도 더러 보였다. 가령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1년에 “청년들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고 짧게 건넸다가, 청년들로부터 “우리는 당신 때문에 잠이 안 온다”는 쓴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청년에 대한 같은 걱정이라도 그녀의 말에는 구체성이 더해졌다. 딱히 이유는 분명치 않았지만, 그녀의 것 같지 않던 구체성.

그녀는 틈이 날 때마다 부모의 마음에 비유했다. 작년에는 그랬다. “직장을 못 구해 노심초사하고 있는 청년과 부모님들을 생각하면 정말 잠이 오지 않을 정도”라고. 그러다가 올해에는 근심이 더 깊어졌는지 “저도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심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박복한’ 처지를 국민들이 다 아는 터라, 이런 구체성의 연원은 수수께끼로 남았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잠이 안 오고 노심초사하며 시커멓게 태워가던 가슴은 그녀의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그녀’의 것이었다. ‘또 다른 그녀’는 아마도 ‘또 다른 자식’ 때문에 마음을 끓여 왔고, 그런 개인적 심사가 국민에게 전하는 ‘그녀의 말씀’에 담긴 것이다. 그녀의 말인지, ‘또 다른 그녀’의 말인지 알 수 없다. 거짓을 반복하면 그것이 진실이라고 착각하듯, ‘또 다른 그녀’의 말을 반복할수록 그녀의 말이 되는 듯했다. 감정이 실리고 아마 그래서 화도 냈을 테다. 마치 자신의 일인 양하며. ‘또 다른 그녀’가 알뜰히 챙겨준 옷을 입으며 그녀는 아마도 몰아의 경지에 도달했으리라.

도대체 우리는 얼마나 화를 내야 하는가. 우리는 완벽한 ‘개인적 서사’가 담긴 ‘말씀’을 그동안 열성적으로 읽고 분석했다. 그녀의 말은 곧 정책이고 칼날이고 ‘단두대’며 삶이고 죽음이니, 전문가와 언론은 연일 그 깊은 뜻을 헤아리고자 요리조리 뜯어보고 했다. 비판과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나도 담화문을 수십번은 읽고 글을 썼다. 앞뒤 논리가 맞지 않고 사실관계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꽤 목청을 높였었다. 작년 여름이었다. 그녀는 ‘경제 재도약을 위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이른바 4대 개혁의 기치를 높이 올리면서 “노동개혁 없이는 청년의 절망도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통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라고 강조한 뒤 “정부와 공공기관도 노동개혁과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솔선수범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철딱서니 없이 그녀의 단어 하나 하나를 따지고 들었다. 그녀의 언어가 아닌데 너도나도 없이 그렇게 따지고 하다 보니, 어느새 그녀의 것이 아닌 언어를 그녀의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또 다른 그녀’가 그려놓은 시나리오 속에서 우리는 그 일부가 되어 제 역할을 했다. 웬만한 스릴러 영화보다 더 엽기적이다. 어설프게 보관된 컴퓨터 하나가 열리면서, 우리 주위에 오랫동안 세워져 있던 영화세트장이 무너졌다. 여긴 도대체 어디인가.

그녀의 영화는 ‘또 다른 그녀’ 덕분에 완벽할 뻔했다. 우린 꼼짝없이 속을 뻔했다. 그래서 화가 난다. 그녀들의 놀잇감이 된 듯하여 자존심도 찌그러졌다. 무너진 영화세트장을 다시 살펴보자니, 속이 아예 허연 잿가루가 되어 간다. 하지만 그러고 말 것인가.

그녀와 ‘또 다른 그녀’가 시나리오를 짜고 연출을 고민할 때, 국가는 깜빡 깜빡 부재했다. 마치 ‘컷’이 선언된 세트장 같았다. 그러나 현실의 필름은 끊임없이 돌아갔다. 세월호는 그렇게 침몰했고 학생들은 소리치며 살려달라고 했지만, 그녀들은 끝내 ‘액션’을 외치지 않았다. 백남기 농민은 물대포에 맞고 쓰러졌지만, 한번 정해진 시나리오는 끝내 수정되지 않았다. 한번의 출연도 소중한 엑스트라처럼 경찰도 검찰도 그리고 병원마저도 메가폰 소리에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이렇게 잊혀지고 어두운 지하의 세계 위로 ‘또 다른 그녀’의 ‘또 다른 여식’은 말 한 마리 얻어 타면서 여유로웠다. 세상의 끔찍함이 어찌 이보다 완벽할까.

이건 나라도 아니라고 쉽게 말하지 말라. 내 속 한번 시원해지겠다고, ‘나라도 아닌’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를 더 슬프게 하지 말라. 죽음의 일상을 만들어낸 참혹한 세상에서는 슬퍼할 자유가 없다. 화만 내서도 안 될 일이다. 당당히 말하라. 이 나라에 ‘그녀’와 ‘또 다른 그녀’, 그리고 그녀들의 하수인을 위한 자리는 없다고 선언해라. 모두 몰아내라.

그녀에게 내려가 달라고 사정하지도 말라. 그녀가 시골로 내려가는 것을 허하지도 말라. “속았지” 하며 혀 쏙 내밀다가 사람들의 성난 얼굴을 보고 “미안” 하고 사라지면 그만인가. 그녀의 자리와 시간은 이제 우리의 연출에 의해서만 결정돼야 한다. 우리가 제대로 따진 후에 우리가 결정할 일이다. 켄 로치의 영화처럼, 지금부터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우리 방식으로 말할 것이다. 여기는 우리의 나라다. 끔찍한 그녀들, 이제 당신들은 가만있어라.

이상헌 경제학 박사·‘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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