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을 심의·의결하는 최저임금위원회는 1987년에 발족했으니, 올해로 30년차다. 그런데 최저임금이 30번 결정될 동안 만족스러웠던 적이 있는가. 노동계는 최저임금 수준이 너무 낮다고 평가하고 사용계는 너무 높다고 평가한다.

지난 30년 동안 노사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최저임금 수준은 불만족스럽게 여겨졌다. 이 때문에 발족 30년차를 맞은 최저임금위원회를 개편하여 ‘국민이 만족할 만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당사자가 참여하는 구조를 유지한 채 최저임금위원회를 개선하기 위한 방법은 크게 두 축이 있다. 먼저 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하고 위원들의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위원회를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 그리고 최저임금 박람회를 개최하는 등 위원회를 상시적 기구로 활용해야 한다.

박준성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이 7월 16일 새벽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최저임금위원회 14차 전원회의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2017년 최저임금은 올해(6천30원.월급 126만270원)보다 7.3% 인상된 시급 6천470원 월급135만 2천230원으로 결정됐다. 연합뉴스

그러나 핵심은 직접 교섭에 참여하는 노사 및 공익위원의 구성과 관련된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사용자위원 9인, 노동자위원 9인, 공익위원 9인 등으로 구성된다.

공익위원은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노사위원은 최저임금 당사자를 대표하기 때문에 쉽게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노사 대립으로 매년 법정 시한을 넘기기 일쑤고 최저임금 결정 과정은 파행으로 이어진다. 결국 공익위원이 캐스팅보트를 쥔 셈이다. 지난 10년 동안 공익위원의 최종 제시안이 모두 의결안이 된 것만 봐도 공익위원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공익위원의 편향성 시비는 끊이질 않는다. 사실상 공익위원은 없고 노와 사가 9 대 18 아니냐는 평가가 있을 정도다.

공익위원의 결정적 역할을 감안하면 현재 최저임금위원회의 실패는 공익위원제도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공익위원 임명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사용자 측에 편파적인 인사들로 채워지는 구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대안으로 시민배심원을 공익위원으로 선정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국민참여재판의 경우 만 20세 이상 국민 가운데 무작위로 배심원을 선정해 재판에 참여하도록 한다. 물론 배심원의 평결은 권고적 효력을 갖지만, 배심원의 평결과 다른 선고를 할 경우 판사는 그 이유를 판결문에 분명히 밝혀야 하는 등 일정한 제약이 있다. 국민참여재판이 시민배심원제를 채택한 이유는 국민의 일반적이고 건강한 상식과 눈높이를 반영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도 마찬가지다. 국민 임금 하한선으로서의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는 시민이 직접 심판자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위원회를 노사·시민배심원으로 구성해 편파성 시비를 없애자는 것이다. 이 경우 노사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극단적 방식으로 표현하는 교섭안을 제시해 소모적 힘겨루기를 하기보다 배심원을 설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결정된 최저임금은 노사와 시민이 소통한 결과라는 점에서 숙의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이 될 수 있으며, 노사관계가 보다 성숙한 수준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 위원 정수는 더욱 내밀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축소할 필요가 있다. 현행 27명 구조는 실질적 협상을 어렵게 만든다. 위원 정수를 축소하되, 노총 위원장이나 경총 회장처럼 조합원과 회원사를 대표하는 책임성을 가진 교섭권자가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최저임금 당사자인 비정규직, 청년, 여성 등을 대변할 주체가 참여해 대표성이 축소되지 않도록 보완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위원 임기 상한제를 도입해야 한다. 현재 위원 임기는 3년이고 연임이 가능하다. 다선 위원은 최저임금 결정의 맥락에 대한 이해도는 높다. 그러나 필자는 최저임금위원회에 배석하면서 장점을 상쇄하는 단점을 수차례 목격했다. 최저임금 결정 근거나 설득 논리가 매년 똑같을 정도로 관성적이다. 위원회 논의가 관성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고 새로운 문제의식을 가진 인원이 지속적으로 보강될 수 있도록 위원 임기를 2차례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법의 목적은 노동자를 위함으로써 국민경제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위원회 구조를 잘 정비해야 한다. 조금만 손보면 훨씬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위원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

최혜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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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의 파업이 두 달 가까이 진행되고 있다. 사상 유래 없이 철도노조의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시민들은 불편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늘 그렇듯이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는 이유는 정부가 앞장서서 노조의 파업을 불법으로 호도하고, 사측은 노조의 교섭요구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업의 진행상황은 이렇다. 금년 봄, 코레일은 정부의 방침에 따라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면서 노조의 의견을 묻지 않은 채 이사회 결의만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하였다. 이에 노조는 노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근로조건인 임금체계 변경을 노조의 동의 없이 진행하는 것은 근로기준법상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성과연봉제의 철회를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코레일 노사 간의 분쟁이 제대로 교섭이 진행되지 않고 파업으로까지 발전하게 된 데는 고용노동부의 왜곡된 법해석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공원에서 열린 공공운수노조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성과연봉제 저지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즉, 고용노동부는 노조의 교섭요구에 대해 파업 이전부터 ‘이미 개정된 취업규칙의 효력을 부인하는 것은 권리분쟁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이나 파업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지침을 내린 바 있다. 코레일은 이를 토대로 노조의 교섭요구에 응하지 않으면서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노동부의 이러한 지침은 궤변일 뿐이다.

노동부 지침대로 노조법은 권리분쟁을 파업의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권리분쟁은 이익분쟁과 달리 법원에 의한 권리구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권리분쟁은 법·단체협약·취업규칙 등 유효하게 성립하고 있는 권리규범에 의해서 ‘확정된’ 권리의무에 관한 분쟁을 의미한다.

권리는 이익이 권리규범에 의해서 확정된 것이며, 확정된 권리가 아니면 법원은 권리구제를 해줄 수 없다. 아직 확정되지 아니한 이익에 관한 분쟁이 단체교섭과 파업의 대상이 되는 이유이다.

현재 코레일 사측은 성과연봉제 도입에 관한 취업규칙 개정이 유효하다고 주장하고 있고, 노조는 근로기준법상 거치게 되어 있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시 노조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아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권리규범의 효력에 관한 분쟁으로 아직 권리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권리를 확정시키기 위한 분쟁이다.

법원의 판결에 의해 권리규범의 효력이 인정되기 전까지는 취업규칙 개정에 따른 권리의무는 확정된 것이 아니므로 그에 관한 분쟁은 전형적인 이익분쟁이고, 그것에 대해서는 당연히 쟁의행위가 가능하다. 노동부가 얘기하는 권리분쟁 상황은 유효한 성과연봉제 규정이 있는 것을 전제로 그 규정의 해석·적용·이행에 관하여 노사 간에 다툼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

코레일은 개정된 성과연봉제 규정이 근로기준법에 위반되어 무효라면 노조가 ‘효력정지 가처분’이나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니 그와 같은 방식으로 해결해야지 파업을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해결방식이 별도의 권리분쟁인 것과는 별개로 현재의 분쟁은 성과연봉제 도입 규정이 유효한지, 그에 따라 근로자에게 이익이 될지 불이익이 될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이익분쟁인 것이다. 그런 소송과는 별개로 여전히 이익분쟁은 존재하므로 노조의 파업은 정당한 것이다.

필자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까지 권리분쟁이니 이익분쟁이니, 그래서 쟁의행위가 가능하니 그렇지 않느니 따져야 하는 작금의 현실이 참담하다. 성과연봉제의 도입과 같은 문제가 근로조건의 불이익 변경의 문제라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해서는 노조의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은 노동법의 ‘노’자만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면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그런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다거나 나아가 권리분쟁이라는 논리로 궤변을 일삼는 자가 대한민국의 노동부다.

그런 퇴행적 노동행정은 2016년 11월 현재의 퇴행적 시국과도 관련이 있는 것인가! 노동자들의 권리실현에 조력하여야 할 노동행정이 오히려 노동법의 규범력을 앞장서서 무력화시키는 처사는 무엇이란 말인가?

노동부는 진정, 노동법의 규범력을 약화시킴으로써 권리분쟁을 노사 간의 힘의 대결로 해결했던 구시대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인가?

김성진 |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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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라, 풍파를 견딜 나이가 아니다.” 최순실씨 변호를 맡고 있는 이경재 변호사의 한마디가 젊은 세대를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억울하게 죽어간, 정유라씨보다 한 살 어린 김군은 풍파를 견딜 나이인가?

풍파를 견딜 나이라서 삼성의 하청업체들은 20대 노동자들에게 메탄올인지 알려주지도 않고 일을 시켜서 실명에 이르게 했단 말인가? 한 달이 멀다 하고 대우조선과 현대중공업에서 들려오는 하청노동자 상당수가 1980년대 말이나 1990년대에 태어난 이들인데, 이들에게 불어오는 풍파는 정당한 것인가?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정반대의 측면에서 접근해보자. 삼성과 현대차 등 재벌 그룹의 2세, 3세들은 20대 초반에 본사 또는 핵심 계열사에 입사해 경영기획실 요직은 물론 이사와 임원으로 등극하는데, 이들은 충분히 세상의 풍파를 견딜 나이라서 그런 것이란 말인가.

정확히 말하자면 이놈의 세상은 청년들에게 너무 많은 풍파를 견딜 것을 요구한다. 일자리는 부족하거나 질 낮은 일자리뿐이어서 ‘미생(未生)’을 강요당한다. 임금과 고용만 불안한 게 아니라 다치거나 죽기 쉬운 위험한 일자리로 내몰린다. 하지만 흙수저와 달리 금수저에겐 이런 풍파를 이겨낼 수단이 차고 넘친다. 억울하면 돈 없는 부모를 탓하라? 그래, 우선 금수저에겐 부모의 돈과 권력이 있다. 그런데 재벌과 관료들, 비선 실세들이 가진 권력이란 것도 국민들에 의해 선출되거나 위임된 것이 아니다.

선출도, 위임도 안되었는데 어떻게 그들은 권력을 갖게 되었는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그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 적당한 인물을 골라 선거에서 선출되도록 돕는다. 아니, 심지어 자신들 입맛에 맞지 않는 인물이 선출되더라도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구워삶으면 된다.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 실세, 그리고 관료들이 합심해 만든 미르와 K스포츠 재단에 재벌들이 774억원을 상납한다. 최근 속속 폭로된 내용들에 따르면 재벌들의 출연은 노동개악·성과퇴출제·민주노조 말살을 정부가 추진하도록 하기 위한 뇌물이거나 수고비 성격임이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또다시 구체적인 대가성이 약하니 어쩌니 하며 면죄부를 주려 하겠지만, 재벌들의 상납금은 최소한 ‘보험금’으로 볼 수 있다.

올 상반기를 기준으로 국내 30대 그룹의 사내유보금은 무려 759조원에 달한다. 774억원으로 759조원을 지킬 수만 있다면 0.01%의 보험료이니 얼마나 수지맞는 장사인가.

이런 방식으로 재벌과 관료, 비선 실세들로 구성된 ‘금수저 커넥션’이 구성되고 대를 이어 돈과 권력이 상속된다. 선거에 나서지도 않고 대중에게 검증되지도 않은 이들이 입법·사법·행정부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국정농단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11월12일 100만 촛불로 구체화된 대중의 분노의 출발점이 바로 여기이다. 너희들이 뭔데 우리 운명을 좌지우지한단 말이냐!

재벌독재와 관료독재, 비선 실세의 독재를 뿌리뽑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헌법’ 얘기가 많이 거론되는 요즘 트렌드를 따르자면, 한국의 헌법이 이런 독재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준비해둔 조항이 2개 있다. 하나는 헌법 제21조가 규정하고 있는 집회결사의 자유이고, 다른 하나는 헌법 제33조에 따라 노동조합을 만들어 집단행동에 나설 수 있도록 한 권리이다.

노동자와 시민은 100만 촛불의 형태로 집회결사의 자유를 발동하고, 저항의 물결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제 다음 국면으로 노동조합 결성과 단체행동이라는 권리를 발동시킬 차례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 민중총궐기의 중심축에 민주노총이 서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민주노총은 오늘 11·12 민중총궐기에 이어 ‘박근혜 퇴진’을 위한 총파업을 결의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확정한다. 재벌독재, 관료독재를 끝장내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핵심 수단 중 하나가 노동조합이라는 사실을 2000만 노동자와 5000만 국민에게 보여줄 것이다.

이것은 출발점일 뿐이다.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고작 10%다. 노동자 10명 중 1명만 노조에 가입되어 있다. 이렇게 낮은 조직률을 보이는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다.

노조에 가입하면 해고, 징계, 고소고발 등 각종 부당노동행위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불법이 아니냐고? 검찰과 관료들은 재벌과 사장들을 처벌하지 않는다. 재벌과 사장, 검찰과 관료가 함께 ‘금수저 커넥션’을 구성하고 민주노조 말살과 노조 탄압을 눈감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100만 촛불의 여세를 이어갈 노동조합 결성의 물결을 만들어갈 때이다. 돈과 권력을 가진 금수저들은 풍파를 이겨낼 많은 수단이 있지만, 헬조선에서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우리에겐 촛불과 함께 노동조합이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 청년들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풍파!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노동조합을 결성하면 그 풍파를 이겨낼 힘이 생긴다. 저임금도, 비정규직의 고통도, 위험의 외주화도, 노동조합의 힘을 통해 바꿀 수 있다.

오늘 대학 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지만 시험지에도, 수험과목에도, 노동조합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이제 학교에서도 노동조합을 가르치게 해야 한다. 교사들도 나서고 학생들도 함께 요구하자. 100만 촛불과 노동자들의 총파업이라는 살아 있는 역사의 실천을 통해 민주주의와 노동조합 힘의 크기가 비례한다는 점을 보여줄 때이다.

박근혜 퇴진! 노동조합과 함께!

오민규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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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이 취업자의 절반에 가깝다. 1년 미만 노동자 비율이 51.9%나 되니 평생직장은 고사하고 새로운 직장을 찾는 이들이 더 많은 셈이다. 정부 통계로도 공공부문 비정규직이 33만2000명이나 된다. 물론 지방자치단체 상수도 검침, 콜센터, 사회복지시설, 청소년수련관, 아이존(아동·청소년 정신건강 증진시설), 정신건강증진센터 등 각종 ‘민간위탁’은 제외한 통계치다. 그래서 지자체 민간위탁의 법 위반이나 인권침해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전국 208곳의 광역과 기초 시·군·구 보건소에 자리 잡고 있는 정신건강증진센터 문제이다.

정신건강증진센터는 1990년대 중반부터 국민의 정신건강과 자살예방 등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국가와 지자체가 일정한 예산을 투여해 운영하고 있다. 정신건강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신건강사회복지사 및 간호사 등 사회서비스 전문가들이다. 일선 현장에서 근무하고도 최소 1년의 수련과정을 거쳐야만 전문자격증 취득이 가능한데 전국에 1만6000여명 정도 된다. 서울지역에도 서울시와 25개 자치구 센터에 약 35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지역사회의 정신건강을 위해 묵묵히 지난 15년간 헌신해 왔다. 문제는 각 센터에서 법 위반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특별한 대책이 세워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2016년 서울지역 실태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센터 재계약이나 위탁업체 변경과정에서 근로조건 불이익 등 근로기준법 위반이 확인되고 있다. 퇴사 강요 7.3%, 직급·직책 하향 이동 8.2%, 부당 업무 변경 15%, 임금삭감 66.9% 등이었다. 이뿐만 아니다. 임신 여성의 야간근무가 20.8%나 되었고, 임산부의 계약해지나 타부서 이동이 15.4%나 되었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 민간위탁으로 운영되면서 인권의 사각지대에 노출되어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지자체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는데도 단체장들은 무엇을 했던가. 각 자치구 의원들은 이러한 현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결국 지난 2월 정신건강증진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서울시와 각 자치구에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요구했다. 서울시의회 주최로 토론회와 간담회도 진행했다. 그러나 각 단체장들은 민간위탁을 핑계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시와 구의 매칭 예산구조 때문에 어렵다거나 실질적인 고용계약 주체 당사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시와 구청, 그리고 민간위탁업체 모두 고용문제를 서로에게 떠넘기고 있는 현실이다. 노동조합은 어렵사리 서울시와 고용안정협약(안)을 도출하고, 각 자치구에 합의문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10월21일 구청장협의회에서 고용안정 문제가 논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청들이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찬바람을 맞으며 시작한 파업이 오늘로 벌써 43일차다. 파업이 길어지고 있지만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현재 서울지역 8곳(종로, 서초, 성북, 성동, 강북, 용산, 동작, 노원)을 제외하고 아무런 답이 없다. 각 지역의 정신장애인, 자살 및 알코올회복 상담자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당사자들이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공공부문은 이윤이 아닌 생명을 우선해야 하고, 효율성이 아닌 공공성을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 인간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사적 시장과 달리 공공부문이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되묻고자 한다. 서울지역 각 구청장들의 답변을 듣고 싶다.

김종진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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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했다. 건물 언저리에 내팽개친 컴퓨터 안에 숨겨둔 세상의 비밀을 눈 밝은 기자들이 파헤치고 있을 때, 나는 여기에 실을 글 삼아서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청년 고용에 대해 말만 내세우고 이룬 것은 없다고 따지려고 했다. 청년실업률이 매달 최고치를 경신하는데 ‘당신은 어디에’라고 물으려 했다. 하지만 그 조그마한 컴퓨터에 제대로 된 폴더 하나 없이 쑤셔 넣어둔 파일들의 내용이 드러나자, 나는 쓰던 글을 엎었다. 이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화가 났다. 영국의 켄 로치 감독을 문뜩 떠올렸다. 평생 화만 내고 살았던 사내다. 맨날 얼굴에 화가 잔뜩 난 사람만 나오고, 보는 사람도 화나게 만드는, 살벌하고 정나미 떨어지는 영화만 만드는 감독인데, 늘 이런저런 상을 받는다. 이번에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뿔만 내면서도 온갖 찬사를 받는 재주는 타고 난 셈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기자가 물었다. 왜 그렇게 화를 내느냐고. 로치 감독은 그 질문이 되레 황당하다고 생각했는지, 멈칫하다가 이렇게 말했단다. “영화 만들려고 조사하러 다닌 적이 있는데, 그때 사흘 정도 제대로 먹지 못한 청년을 만났어요. 냉장고가 텅 비어 있더군요. 어느 여인은 나라에서 주는 공짜 음식을 받으러 가는 걸 죽도록 싫어했고, 어떤 사내는 하루 일거리를 찾아 새벽 5시부터 줄 섰다가 딱 한시간 후에 일감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어요. 살기 위해 끊임없이 모욕을 당해야 하는 거지요. 이런 것에 화가 나지 않는다면, 당신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요?”

그녀도 화를 자주 내었다(나는 이제 ‘그녀’를 ‘그녀’라고 부르기로 한다). 로치는 성난 얼굴로 권력에 도전했지만, 그녀는 화를 내며 권력을 지켰다. 책상도 치고, 언성도 높였다. 그러면서 말로 천냥 빚을 갚겠다는 의지도 더러 보였다. 가령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1년에 “청년들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고 짧게 건넸다가, 청년들로부터 “우리는 당신 때문에 잠이 안 온다”는 쓴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청년에 대한 같은 걱정이라도 그녀의 말에는 구체성이 더해졌다. 딱히 이유는 분명치 않았지만, 그녀의 것 같지 않던 구체성.

그녀는 틈이 날 때마다 부모의 마음에 비유했다. 작년에는 그랬다. “직장을 못 구해 노심초사하고 있는 청년과 부모님들을 생각하면 정말 잠이 오지 않을 정도”라고. 그러다가 올해에는 근심이 더 깊어졌는지 “저도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심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박복한’ 처지를 국민들이 다 아는 터라, 이런 구체성의 연원은 수수께끼로 남았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잠이 안 오고 노심초사하며 시커멓게 태워가던 가슴은 그녀의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그녀’의 것이었다. ‘또 다른 그녀’는 아마도 ‘또 다른 자식’ 때문에 마음을 끓여 왔고, 그런 개인적 심사가 국민에게 전하는 ‘그녀의 말씀’에 담긴 것이다. 그녀의 말인지, ‘또 다른 그녀’의 말인지 알 수 없다. 거짓을 반복하면 그것이 진실이라고 착각하듯, ‘또 다른 그녀’의 말을 반복할수록 그녀의 말이 되는 듯했다. 감정이 실리고 아마 그래서 화도 냈을 테다. 마치 자신의 일인 양하며. ‘또 다른 그녀’가 알뜰히 챙겨준 옷을 입으며 그녀는 아마도 몰아의 경지에 도달했으리라.

도대체 우리는 얼마나 화를 내야 하는가. 우리는 완벽한 ‘개인적 서사’가 담긴 ‘말씀’을 그동안 열성적으로 읽고 분석했다. 그녀의 말은 곧 정책이고 칼날이고 ‘단두대’며 삶이고 죽음이니, 전문가와 언론은 연일 그 깊은 뜻을 헤아리고자 요리조리 뜯어보고 했다. 비판과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나도 담화문을 수십번은 읽고 글을 썼다. 앞뒤 논리가 맞지 않고 사실관계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꽤 목청을 높였었다. 작년 여름이었다. 그녀는 ‘경제 재도약을 위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이른바 4대 개혁의 기치를 높이 올리면서 “노동개혁 없이는 청년의 절망도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통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라고 강조한 뒤 “정부와 공공기관도 노동개혁과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솔선수범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철딱서니 없이 그녀의 단어 하나 하나를 따지고 들었다. 그녀의 언어가 아닌데 너도나도 없이 그렇게 따지고 하다 보니, 어느새 그녀의 것이 아닌 언어를 그녀의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또 다른 그녀’가 그려놓은 시나리오 속에서 우리는 그 일부가 되어 제 역할을 했다. 웬만한 스릴러 영화보다 더 엽기적이다. 어설프게 보관된 컴퓨터 하나가 열리면서, 우리 주위에 오랫동안 세워져 있던 영화세트장이 무너졌다. 여긴 도대체 어디인가.

그녀의 영화는 ‘또 다른 그녀’ 덕분에 완벽할 뻔했다. 우린 꼼짝없이 속을 뻔했다. 그래서 화가 난다. 그녀들의 놀잇감이 된 듯하여 자존심도 찌그러졌다. 무너진 영화세트장을 다시 살펴보자니, 속이 아예 허연 잿가루가 되어 간다. 하지만 그러고 말 것인가.

그녀와 ‘또 다른 그녀’가 시나리오를 짜고 연출을 고민할 때, 국가는 깜빡 깜빡 부재했다. 마치 ‘컷’이 선언된 세트장 같았다. 그러나 현실의 필름은 끊임없이 돌아갔다. 세월호는 그렇게 침몰했고 학생들은 소리치며 살려달라고 했지만, 그녀들은 끝내 ‘액션’을 외치지 않았다. 백남기 농민은 물대포에 맞고 쓰러졌지만, 한번 정해진 시나리오는 끝내 수정되지 않았다. 한번의 출연도 소중한 엑스트라처럼 경찰도 검찰도 그리고 병원마저도 메가폰 소리에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이렇게 잊혀지고 어두운 지하의 세계 위로 ‘또 다른 그녀’의 ‘또 다른 여식’은 말 한 마리 얻어 타면서 여유로웠다. 세상의 끔찍함이 어찌 이보다 완벽할까.

이건 나라도 아니라고 쉽게 말하지 말라. 내 속 한번 시원해지겠다고, ‘나라도 아닌’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를 더 슬프게 하지 말라. 죽음의 일상을 만들어낸 참혹한 세상에서는 슬퍼할 자유가 없다. 화만 내서도 안 될 일이다. 당당히 말하라. 이 나라에 ‘그녀’와 ‘또 다른 그녀’, 그리고 그녀들의 하수인을 위한 자리는 없다고 선언해라. 모두 몰아내라.

그녀에게 내려가 달라고 사정하지도 말라. 그녀가 시골로 내려가는 것을 허하지도 말라. “속았지” 하며 혀 쏙 내밀다가 사람들의 성난 얼굴을 보고 “미안” 하고 사라지면 그만인가. 그녀의 자리와 시간은 이제 우리의 연출에 의해서만 결정돼야 한다. 우리가 제대로 따진 후에 우리가 결정할 일이다. 켄 로치의 영화처럼, 지금부터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우리 방식으로 말할 것이다. 여기는 우리의 나라다. 끔찍한 그녀들, 이제 당신들은 가만있어라.

이상헌 경제학 박사·‘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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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씨가 급하게 사무실을 정리하느라 버리고 간 PC, 그 안에서 발견된 파일들 속에서 박근혜 정부의 새빨간 거짓말이 들통나고 말았다. 비선실세, 국정농단, 국기문란… 그동안에도 이런 폭로가 끊이지 않았지만 그때마다 정부는 오히려 “문건 유출이 범죄”라며 엉뚱한 쪽으로 논란을 몰고 가 곤경을 벗어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엔 문건 유출자가 바로 대통령 자신이라는 점에서 외통수에 걸린 셈이다.

파일이 공개된 지 단 하루 만에 대통령 하야와 탄핵, 내각 총사퇴가 거론되는 상황으로 발전될 만큼 최순실 게이트의 파워가 메가톤급이란 얘기일까? 버려진 PC에서 발견된 파일 몇 개가 그토록 견고해 보이던 박근혜 체제를 위협에 빠뜨린 걸까? 최근 몇 달을 돌아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우선 박근혜 정부는 317일 동안 사경을 헤매다 끝내 운명하신 백남기 농민의 사체를 강제로 부검하겠다며 공권력을 남용해 왔다. 경찰의 직사 물대포에 맞은 것이 사인임이 분명한 데도, 갑자기 ‘빨간 우의’를 등장시키며 여론을 호도하려 했다. 폐기했다던 경찰 속보가 속속 공개되면서 정부의 거짓말이 드러났고, ‘외상성 경막하출혈’이라는 어려운 의료용어가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오를 정도로 국민들은 관심을 표명했으며, 부검이라는 행위가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짓을 입증하기 위함임이 분명해졌다.

안산 단원고 학생을 비롯해 304명을 수장시킨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설치된 세월호 특조위에, 박근혜 정부는 예산은 물론이고 권한도 주지 않으며 진상규명 활동을 무력화시켰고, 끝내 지난 9월30일에 특조위 활동 강제 종료를 통보했다. 청해진해운을 비롯한 자본의 탐욕,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력, 참사를 낳은 원인들 어느 것 하나 책임을 묻지 못한 상태에서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박근혜 정부는 청년을 위한 노동개혁이라며 지난해 공공기관에 임금피크제를 강제로 도입한 데 이어 올해에는 성과연봉제를 밀어붙이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로 청년 고용이 늘기는커녕 청년 실업은 신기록을 갱신하며 정부의 거짓말을 증명해주고 있다.

수백만에 달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최저임금 인상은 고작 440원, 그나마도 노동자위원 퇴장 속에 사용자위원·공익위원의 일방통행으로 결정되고 말았다. “최저임금을 빠른 속도로 올려야 한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9000원 효과를 내겠다”던 약속도 거짓임이 드러난 것이다. 며칠 전 박근혜 대통령은 최저임금 심의 파행 책임을 져야 할 박준성 최저임금위원장을 중앙노동위원장에 내정하며 노사관계 파행을 예고한 상황이다.

한때 세계 1위를 구가하며 한국 제조업의 자랑으로 여겨지던 조선업에서 2014년 이후에만 무려 6만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사태를 이 지경에 이르도록 만든 책임은 재벌을 비롯한 자본가들에게 있음에도 노동자들만 고통을 전담한 셈이다. 정부는 뒤늦게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선정했지만, 죄다 노동자가 아니라 원·하청업체 사장들을 지원하는 것일 뿐이었다. 보름이 멀다 하고 터지는 사망사고, 그리고 대량해고를 당하고 있는 하청노동자를 위한 대책이라고 정부가 내놓은 것들도 지난 국정감사에서 죄다 실효성 없는 것으로 판명이 났다.

이렇듯 박근혜 정부가 노동자와 국민을 적으로 돌리며 벌인 수많은 전투가 진행되며 민심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고 그 정점에서 터진 사건이 바로 최순실 게이트였다. 반대로 말하면 박근혜 정부의 공격에 맞서 노동자와 국민들은 곳곳에서 전선을 설치하며 저항했고, 견고해 보이던 정부의 보호막 중 가장 약한 고리가 제일 먼저 끊어진 것이다.

즉, 지금 형성되고 있는 탄핵이나 하야 여론은 단순히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때문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거짓말과 실정 전반에서 비롯된 것이다. 99도까지 끓어오른 물에 최순실 게이트는 1도를 더한 것일 뿐이다.

박근혜 정부의 실정에 맞서 민주주의와 생존권, 안전할 권리와 노동기본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끊어진 고리의 틈을 비집고 백남기 농민·세월호·노동개악·최저임금·비정규직·구조조정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다시 말해 끊어진 고리의 키워드인 ‘국정농단’ ‘비선실세’ 문제에만 집착해서는 그 어떤 것도 회복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정부는 끊어진 약한 고리 사이로 노동자 서민의 요구가 분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 고리를 땜질하는 방식의 처방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거짓말이 탄로 나면서 이제 박근혜 정부가 내놓는 그 어떤 말도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누구의 말을 신뢰해야 할까? 내년 대선만 바라보며 권력 쟁탈전에 여념이 없는 야당의 말이 미더울까? 어찌 보면 최순실이라는 약한 고리가 끊어지면서 어떤 세력이 가장 신뢰를 얻느냐에 따라 향후 정국 주도권의 향방이 결정될 것이다.

그럼 곳곳에서 저항을 조직해온 노동자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구조조정 앞에 놓인 조선업 노동자들은 지금이야말로 원·하청 노동자들의 굳센 단결로 하청노동자들을 노동조합으로 조직하고, 분사·하청화에 맞서 전면적인 투쟁의 결단을 내린다면? 철도 파업에 무책임하게 대체인력을 투입하는 철도공사와 정권에 맞서 노동자·시민의 안전할 권리를 위해선 이 정부에 운전대를 맡겨선 안된다는 선언과 실천이 뒤따른다면?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 확장을 위해 조직된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1만원과 비정규직 철폐 운동의 주역이 되겠노라고 진출한다면? 6월 민주화 항쟁이 7~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진 1987년 역사가 그 결과를 미리 보여준 바 있지 않던가.

오민규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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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존경하던 사회운동가와 복지국가 문제를 토론하던 중 그가 ‘남북 문제 해결 없는 복지국가는 허구다’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정치에서 ‘무엇이 없는 무엇은 허구다’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은 생각보다 복잡하게 연결돼 있고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은 칼로 두부를 썰 듯 명쾌하지 않다. 때론 어쩔 수 없이 중요한 문제를 후순위로 하고 당장 손에 잡히는 문제부터 다룰 수밖에 없는 때도 있다. 같은 의미로 복지국가로 가는 정책대안은 사회갈등의 다른 분야보다 우선될 수도 있다. 진보나 보수와 같은 이념적 지향 또는 어떤 대단한 정책대안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훨씬 복잡하고 거대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필자 역시 지난 총선부터 지금까지 논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담론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한 관점과 상반된 태도를 가지게 된다. 어느 순간 입에서 ‘노동 없는 경제민주화가 무슨 의미인가?’와 같은 불만이 불쑥 튀어나온다. ‘경제민주화’라고 얘기되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개혁방향이 현재를 살아가는 다수 시민들의 삶과 유리된 채 추상적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주요한 정치지도자들의 입을 통해 회자되는 경제민주화의 내용 대부분은 정부와 재벌대기업의 관계를 말한다. 헌법 조항에 근거해 정부가 재벌대기업에 대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규제하고 시장을 조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진보와 보수, 여·야당은 각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강도의 차이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인다. 그러나 경제를 민주화한다는 것이 과연 정부와 재벌 사이의 권력관계 변화를 말하거나 나아가 갑과 을의 관계가 더 민주적이 될 것이라는 수준에서만 논의되는 것이 적절한가.

직장폐쇄를 단행한 충남 아산시 탕정면 자동차 공조시스템 부품제조업체인 갑을오토텍 공장 앞에서 8월 1일 사측이 고용한 용역경비 인력과 이들이 공장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게 철문을 닫고 막아선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 조합원들이 대치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민주주의란 ‘1인 1표’라는 정치적 평등에 기초한 시민들이 직접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불평등을 조정·통치해가는 제도다. 이 때문에 ‘1원 1표’의 성격을 가지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늘 긴장관계에 놓인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경제’를 ‘민주화’한다는 경제민주화에서 정치적 민주주의의 ‘1인 1표’의 담지자인 주권자, 시민과 같은 민주주의의 주체는 누구인지 진지하게 되물어야 한다. 거창한 경제민주화 담론에서 누구도 말하지 않는 경제민주주의의 주권자는 누구인가. 결국 그들은 일하는 시민인 ‘노동자’일 수밖에 없다.

1987년 이후 한국 정치가 민주화됐다고 말했을 때 우리는 직선제 개헌을 통해 대통령을 직접 투표로 선출하고 사회 각 분야에서 결사와 표현의 자유가 시작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경제가 민주화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정치가 민주화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대표를 경영에 참여시키고 동등한 생산의 주체로 인정받는 것, 노동조합의 활동이 더 이상 불온한 무엇이 아니라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근간임을 인정하는 것, 그들의 주장과 요구가 이기적이거나 무리한 것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결사와 표현의 자유만큼이나 주권자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로 인정받는 것이다. 시민에게 스스로를 대표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을 때 정치의 민주화라 할 수 없듯 노동자들이 경제의 주권자로 인정되지 못할 때 우리는 이를 경제민주화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작년에 남편 회사에는 입에 담기도 끔찍했던 악몽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남편과 동료들이 속해 있는 노동조합을 없애고 회사와 마음 잘 맞는 다른 제2의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전직 경찰과 특전사 출신 등의 용역 깡패들을 고용해 공장에서 일하는 아빠들을 집단폭행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저희 가족과 남편의 바람은 오로지 자신의 일터를 행복하고 일한 만큼 정당하게 대우받는 일터로 만들겠다는 것뿐입니다. 이제 갓 입사한 젊은이에게 자신이 겪은 비인간적인 대우와 불공정한 처사를 돌려주고 싶지 않은 것뿐입니다. 너무나 단순하고 당연한 이 소망이 무엇이 잘못입니까?”

100일이 넘도록 노사 간 첨예한 갈등이 해결되고 있지 않은 충남 아산의 ‘갑을오토텍’ 노동조합 조합원의 가족이 쓴 글이다. 경제민주화가 이 노동자들과 노동조합, 그리고 가족들이 처한 삶의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이 절박한 목소리의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대한민국 경제의 ‘주권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본질이어야 한다. 히치콕은 서스펜스 영화의 초반에 매우 중요한 것처럼 등장했다가 엔딩에서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드러나는 속임수와 같은 영화적 기법을 ‘맥거핀’이라 불렀다. 어쩌면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를 비롯해 최근에 유력 정치인들이 내놓는 새롭다는 경제담론들도 우리 정치의 거대한 ‘맥거핀’은 아닐까?

조성주 정치발전소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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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외국인투자기업 A회사의 하청업체에 고용돼 일하는 사람들이 순댓국밥집에 모였다. 한 명이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정식 직원도 아니고 하청업체에 있는데 노동조합을 할 수 있습니까?” “하청업체를 통으로 계약해지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나는 노동조합을 해본 경험으로 당당하게 답변했다. “노동조합은 헌법으로 보장돼 있는 합법적인 단체입니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모두가 노동조합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를 한꺼번에 해고할 수는 없을 겁니다.”

시도 때도 없이 권고사직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언제 잘릴지 모르니 노동조합을 만들자고 동료들을 설득했다. 노동조합 활동은 헌법 33조에 보장돼 있다. 간접고용 노동자도 2명 이상이면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고, 단체교섭을 할 권리가 있다. 헌법의 글귀로는 그렇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6월 8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정문앞에서 작업복을 입은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13만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고용보장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갖고 있다. 서성일 기자

2015년 5월29일 구미 아사히글라스의 하청업체에서 9년간 최저임금을 받던 사람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한 달 뒤 노조 가입에 관계없이 그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모든 사람들이 계약해지됐다. 17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쫓겨났다. 대한민국의 간접고용 노동자 수가 얼마인지 알 수 없다. 넘쳐나는 수만큼 위험업무는 간접고용 노동자에게 전가되고 있다. 언론에서 접하는 노동재해 피해자는 모두 간접고용 노동자다. 2013년 여수 화학공장, 2014년 당진 현대제철 공장 사망, 2015년 이천 반도체공장 사망, 울산 화학공장 폭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남양주 지하철 공사장 사망사고의 피해자는 모두 아사히글라스의 하청노동자와 같이 간접고용된 노동자다.

노동조합 할 수 있는 권리조차 없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일해야 한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보다 안전하게 일하고 일한 만큼 대접을 받으려면 노동조합 활동이 온전히 보장돼야 한다. 이를 위해 선행돼야 할 것이 바로 원청 사용자에 대한 교섭권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어딘가의 하청노동자들이 노동조합 이야기를 나눌지 모른다.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 3권으로 원청에 맞서 힘든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하루빨리 제도 개선을 통해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 할 권리를 보장하자.

차헌호 |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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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사회는 다시 ‘우파의 망령’과 마주치고 있다. 아니 ‘망령’이 난 우파와 맞부딪치고 있다고 거칠게 표현할 만도 하다. 박정희 체제의 부활, 유신 공안정치의 작동, 극우세력의 동원 등. 하지만 아무리 정치적 희화화를 한들 문제는, 그들이 이 사회의 실존하는 정치세력이라는 점이다. 나아가 단단한 사회적 기초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의 사회적 기초는 ‘야당’인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이 땅 민초의 생활고와 노동빈곤층의 문제, 부의 양극화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그리고 좌파세력은 그들을 넘는 대안으로 부상하지 못하면서 더욱 단단해져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가족 명칭의 우익 단체들과 사이버 세상의 ‘일베’들을 ‘일베충’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면서 조롱하고 그들을 매우 비이성적인 집단, 사회병리적인 현상으로 치부하는 태도는 정치적 한풀이는 될지언정 충분하지 않다. 설사 그런 측면이 있다고 해도, 그들을 ‘비정상’ ‘병리’로 취급해서 과연 어떤 유의미한 분석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해서 질문은 민주화 이후의 사회체제를 향해야 한다. 어쩌면 신자유주의를 민주화로 이해했던 반대편의 극단이 우파적 사고를 부채질한 게 아닐까. 이 땅의 민주주의세력을 대표한다고 했던 자유주의 집권세력이 시도한 신자유주의적 자유화가 만들어낸 것이 바로 ‘하향평준화’가 아니고 무엇이었던가. 극우의 표상으로 간주되는 이른바 ‘일베’들이 민주화를 획일화 혹은 하향평준화로 정의한다고 했을 때, 단지 그들을 비판할 수만은 없다고 여겨진다. 이 땅의 좁은 자유주의가 ‘닥치고’와 ‘묻지마’와 ‘쫄지마’를 외치며 끌어갔던, 민주화 이후 몇 차례의 선거 캠페인이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1987년 이후 선거 민주주의자들은 민주 대 반민주의 이분법적 도식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한 앙상한 이념, 옹졸한 자유주의만을 계속 들이댔다. 심지어 정치적 민주주의조차 제도화하는 데 실패한 민주주의였다. 그것이 획일화 혹은 하향평준화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정치적 이념의 폭력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가운데 노동은 철저히 배제됐고, 노동의 시민권은 ‘민주정부’라는 김대중 정부에서도 여전히 짓밟혔으며 나아가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은 경제자유화라는 이름으로 미화됐다.

그 결과, 한국은 지금 아시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됐다. 지난 3월 발표된 국제통화기금의 ‘아시아 불평등 분석 보고서’의 결론이 그렇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소득 최상위 10%가 평균 가정에 비해 4.5배나 많은 소득을 올려 아시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이다. 이에 따르면 한국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아시아에서 상대적으로 평등한 나라였다. 그런데 1995년 대반전이 시작된다. 1995년부터 2013년까지 일관되게 개인소득의 불평등, 즉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됐다. 이 기간은 김대중·노무현 자유주의 정부 10년과 이명박·박근혜 우파정부 집권기에 걸쳐 있다. 보수우파 정부에서 더 심화됐느니 어떠니 해도, 그 전체적인 방향을 잡은 것은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이고, 노무현 정부는 그것을 계승했으며, 이명박근혜 정부는 그것을 극단적인 형태로 완성하는 중이다.

민주화에 대한 극우 일베의 정의는 결국 지난 29년간의 ‘민주화’가 만들어낸 결과다. 그 과정 속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환멸은 깊어지고,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와 조롱은 함께 커나갔다. 그러므로 이제 그 민주화가 아닌 다른 민주화, 그 민주주의가 아닌 다른 그리고 새로운 민주주의를 꿈꿀 때가 되지 않았는가 싶다.

이제 민주주의에 대한 의제적인 전제 속에서 현실에 대한 원망과 기대를 버무리는 헛된 담론은 집어치우고 현존하는 민주주의에 대해 직시할 때이다. 그것이 바로 일베식 우파의 민주화 정의를 실천적으로 벗어나는 길이다.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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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파업이 3주째를 넘어선 어제 서울 지하철 1호선에서 열차 고장으로 1시간30분 동안 인천 방면 열차 운행이 전면 중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열차의 기관사와 차장은 모두 대체인력이었다. 이들은 승객들이 임의로 고장난 열차 출입문을 열고 하차하는 데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해 혼란을 가중시켰다. 코레일이 노조와의 대화를 거부한 채 미숙련 대체인력으로 무리하게 열차 운행을 강행하면서 시민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철도노조가 지난달 27일 파업에 돌입한 이후 지금까지 총 6차례의 열차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지난 12일에는 대체인력으로 투입된 차장이 출입문 조작을 미숙하게 한 결과, 승객 2명이 팔목과 어깨가 끼어 부상을 입기도 했다. 지난 3일에는 스크린도어가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전동차 문이 닫히면서 승객들이 중간에 끼인 채 전동차가 1~2칸 정도 움직이는 아찔한 상황도 벌어졌다.

17일 서울 종로구 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에서 열차 출입문 고장으로 운행이 중단돼 승객들이 승강장에서 열차가 운행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메트로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께 코레일 소속의 인천행 열차가 종로3가역에서 출입문 표시등 점등불능 등 고장을 일으켜 멈춰섰다. 정지윤기자

다행히 지금까지 큰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이대로라면 대형사고 발생도 시간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미 일부 차량은 정비 매뉴얼을 어기고 2만㎞ 이상 무정비 상태로 운행하면서 바퀴가 손상됐다는 보고도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코레일은 노조와 대화를 통해 열차 운행을 정상화하기는커녕 거꾸로 대체인력 투입 증가를 통해 평상시 수준의 운행률 맞추기에만 급급해하고 있다. 코레일은 이번주에 이미 선발한 대체인력 중 540명을 운행에 투입할 계획이다. 코레일이 확보한 대체인력 중에는 단기 교육을 마친 대학생들도 있다. 2013년 철도파업 당시 80대 노인이 사고로 숨진 후 코레일은 ‘대학생은 대체인력으로 쓰지 않겠다’고 해놓고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1000만 승객 안전을 고작 32~100시간 남짓 운행교육을 받은 대학생에게 맡겨도 괜찮다는 발상에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코레일이 무모하게 대체인력 투입을 강행하는 이유는 청와대와 정부가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관철을 위해 노조와의 대화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성과연봉제가 중요하더라도 정부의 기본 책무는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는 일이다. 더구나 정부 스스로 불법으로 보기 어렵다고 해놓고 불법적인 대체인력 투입을 고수하는 것은 정당성을 찾기 어렵다. 정부는 안전을 위협하는 대체인력 투입을 중단하고 당장 노조와 대화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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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노사가 자율교섭을 통해 내년 말까지 성과연봉제를 도입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15일 업무 정상화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모든 공공기관에 일률적으로 2017년 1월부터 성과연봉제 시행을 압박하는 가운데 성과연봉제 도입을 차기 정부로 미룬 서울대병원의 결정은 쉽지 않은 결단이다. 조합원 입장에서도 노조의 동의가 없으면 성과연봉제를 도입할 수 없도록 확실한 약속을 받아내지 못한 점에 불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앙정부 산하기관 중 처음으로 정부의 성과연봉제 도입 지침을 어기고 한발씩 물러서 합의를 이뤄낸 것은 의미가 적지 않다. 파업 3주차로 접어드는 다른 공공부문 사업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 노사 양측은 지난 14일 대한의원 제1회의실에서 단체교섭에 합의하고 가조인식을 가졌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서울대병원 사례는 노동법과 노사합의를 무시한 채 ‘전부 아니면 전무’ 식으로 성과연봉제를 밀어붙이고 있는 정부의 대응이 한계에 봉착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국내외 많은 연구와 사례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방식에 대한 합의 없이 성과연봉제가 시행될 경우 초래될 위험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공공부문에서 개별 실적에 매몰되는 성과연봉제는 공공성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서울대병원이 어렵게 노사 합의를 이룬 배경에도 의료의 공공성 악화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번 노사 합의안에는 어린이병원 진료비 부담 완화, 환자 급식 질 개선, 응급실 과밀화 해소 등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안이 담겨 있다.

문제는 정부가 과연 서울대병원 노사합의에 어떤 식의 반응을 보일지에 있다. 앞서 서울시 산하 5개 지방공기업이 노사 합의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겠다고 하자 행정자치부는 곧바로 내년도 임금인상률 삭감 등 보복 조치로 대응했다. 정부가 서울대병원에도 동일한 방식의 대응으로 나설 경우 성과연봉제 도입은 더 이상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미 재계를 대변하는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장조차도 “정부가 성과연봉제를 너무 경직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어 우려스럽다”는 반응을 보인 바 있다. 노동부와 법무부도 공공부문 파업을 불법파업으로 전제하고 몰아붙이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자인한 바 있다. 이제 박 대통령의 결단만이 남아 있다. 박 대통령은 임기 내 성과연봉제 도입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노사간 자율교섭의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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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금융노조 파업과 함께 시작된 공공노조 파업이 3주차에 접어들었다. 파업을 대하는 국가권력과 보수언론은 언제나 그랬듯이 “불법”으로 시작해서 “이기주의자”라는 낙인으로 끝을 맺는다. 개혁, 효율화, 정상화, 선진화 등 좋은 단어는 모두 권력자들의 언어였고, 귀족노조, 철밥통, 경제위기 주범 등 혐오로 가득 찬 단어는 투쟁하는 노동자에게 덧씌워진 천형이다.

그런데 “불편해도 괜찮아, 힘내라 공공노조” 시민들의 자발적인 연대는 파업 노동자들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용기가 되고 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압도적 다수의 국민들은 정부가 강행하는 성과연봉제를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은 연일 “국민 동의 없는 명분 없는 파업”으로 매도했지만 국민들은 시대 변화를 공감하지 못하는 국정 최고책임자를 걱정할 뿐이었다.

정부의 '화물운송시장 발전방안' 폐기를 주장하며 총파업에 돌입한 화물연대 노조원들이 10일 경기도 의왕 내륙컨테이너기지(ICD)앞에서 파업출정식을 갖고 있다. 서성일 기자

파업은 불편할 수 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전제하에 민영화는 위험하다는 시민들의 깊은 혜안을 표현한 것이리라. 불편은 잠시 참을 수 있지만 국가와 사회를 구조적 위험에 빠뜨리는 공공부문 시장화에 대한 분명한 경고이다. 서구에서 발전한 진보정당과 복지국가를 노동운동이 잉태한 ‘한 어머니의 두 아이’라고 했다면, 그리고 계급타협의 산물인 복지국가에 대한 시장의 공격이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배경이라고 한다면 변변한 복지제도조차 없는 우리에게 몰아닥친 저주는 전통적인 신자유주의와도 한참 거리가 먼 것이다.

보편적 복지의 담지자로서 공공부문 형성의 역사가 일천한 한국사회에서 민영화는 한때 군부독재에 반대되는 것으로 포장되기도 했다. 공공서비스 이용자이고 실제 소유주인 시민의 경영참여가 원천적으로 배제된 공기업은 낙하산 천국이 되고 말았다. 전체주의국가에서 공공서비스가 시민의 권리로 인식되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국가권력은 정치혐오를 부추겨 정권연장을 꾀하듯이 국가의 실패를 공기업 사유화, 시장화 명분으로 삼았다. 

‘때늦은 개화와 때이른 조락’이라는 탄식이 사회구조변화에 조응하지 못했던 필자를 비롯한 노동운동 지도부들에 대한 비판이었듯이 주류 신자유주의 국가가 가계소득주도 성장으로 경제위기 탈출을 시도하는 지금 우리는 ‘때늦은 신자유주의 개화’ 속에 정치적 자유주의조차 위협받고 있다. 변종 신자유주의국가에서 고통받는 청년들에게는 ‘헬조선’이 아니면 달리 어떤 표현이 있을까. 따라서 지금 우리의 투쟁은 노동운동의 사회화를 이루어내지 못한 기성세대 노동자로서의 반성이다.

한편 시민사회의 도도한 변화와는 달리 오늘 우리가 파업현장에서 목도하고 있는 국가의 실체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보루가 아니라 헌법적 가치인 파업권 무력화가 국정의 최고 목표가 되어버린 ‘독점적 폭력기구’에 불과하다. 연일 안보위기를 강조하면서도 전선을 이탈해 파업 파괴를 위해 투입된 특전사 군인들을 보라. 철도공사 인턴으로 일했다가 채용에 탈락한 청년들에게 폐기했어야 할 개인정보를 이용해 ‘대체근무를 하면 가산점’을 주겠다는 회유는 인권보다 파업파괴가 우선하는 가치임을 보여준다. 파업 시 투입되는 대체근무자에 대한 일반화된 국제적 용어는 파업파괴자(strikebreaker)이다. 일제강점기 전시 총동원령하에서 제정된 ‘업무방해죄’로 노조지도부를 처벌하겠다는 국가에 파업노동자들은 보호해야 할 국민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내부의 적’이다.

생때같은 아이들을 한 명도 구하지 못한 대통령은 느닷없이 ‘국가 개조’를 들고나왔다. 평소 정권에 대한 반대를 국가전복세력이라고 국가와 정권을 동일시하던 정부가 스스로를 개조하겠다던 국가는 개조됐는가. 물대포 직사로 사망한 농민을 ‘병사’라고 우기는 국가는 임금체계를 둘러싼 노동자의 투쟁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안전의 외주화가 낳은 ‘김군의 억울한 죽음’ 앞에 ‘너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위로했던 시민들은 ‘불의한 권력에 굴복하지 말 것’을 명령하고 있다.

“미래를 잃어버린 청년들은 예비노동자였고, 자영업자로 내몰린 가장들은 구조조정된 어제의 노동자였다. 우리 모두는 서로를 배려하는 평범한 이웃들이다”라는 조직 노동자들의 마지막 호소에 시민들은 연대로 화답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2016년 가을 공공노조의 파업은 1987년 7~9월 노동자 대투쟁 이후 서로 다른 길을 걸었던 또 다른 우리, 시민과 노동자가 새롭게 만나는 ‘사회개조’의 출발점은 아닐까. 노동자의 저항에 손을 잡아준 시민의 외침은 무능한 국가와 시장의 탐욕이 지켜주지 못한 아이들과 고 백남기 어르신께 드리는 우리 모두의 추모사이다.

김영훈 전국철도노동조합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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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알코올이라고 했어요.” 모두가 공통으로 하는 말이었다. 실명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사용하는 그 액체가 그냥 알코올이라 여겼다. 질문은 필요 없었다. 누구든 그냥 일을 했고, 파견 회사도 일한 회사도 아무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 어지러우면 창가에 가 심호흡을 했지만 그저 그뿐이었다. 자신의 시신경과 뇌를 파괴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렇게 무방비로 노출됐을까 몇 번이고 궁금했다.

그 ‘알코올’의 정체는 메탄올이었다. 무색의 액체 말이다. 피해자들은 그 액체를 보통 하루 12시간 일하는 내내 기계에 부었고, 또 자신들의 몸으로 흡수했다. 적게는 8일, 많게는 4개월의 노동으로 그들은 익숙한 세상을 못 보게 됐다. ‘삼성전자 하청업체 노동자 메탄올 실명’이라는 기사로 올 초 잠깐 언론에 언급됐다. 갤럭시 같은 휴대폰의 버튼이나 뒤판을 만들던 그이들이다.

처음 그들은 앞이 안 보이고 호흡곤란이 와 응급실에 실려가서도 대책이 없었다. 그 메탄올이 몸에 들어와 시신경과 뇌를 표적으로 공격을 해버릴지는 역시 몰랐다. 우연히 담당 의사가 메탄올 급성 중독을 의심했다. 그제서야 노동자들은 실명의 이유를 찾았다.

누구를 원망해야 할까? 실명이 그 알코올 때문이었는지 모른 채 암흑을 시간을 보내야 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파견노동자였고, 제조업 파견은 현행법상 금지돼 있었으며, 그들의 노동은 4대 보험에도 어디에도 흔적이 없다.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노동조합법 그 어떤 노동법도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최저임금의 값싼 노동은 삼성 휴대폰을 만들어 냈지만 대기업은 그저 하청업체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했다.

올해 초, 이 문제가 시끄러워지자 노동부가 나섰었다. 여러 시민단체와 노동조합들은 추가 피해자를 찾아내야 한다고 했으나, 노동부는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 또 원청 삼성은 그 일은 2차 하청업체가 관리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같은 일을 하던 사람들은 정말 모두 괜찮은 걸까? 올 초 실명 피해를 입었던 노동자들 가족은 추가 피해자 소식을 듣고 기막혀 했다. 이번 피해자들은 이들보다 먼저 혹은 같은 시기에 사고를 당했다. 오늘 쓰러져 내일 회사에 안 나와도 그만인 파견노동이 불러온 참사, 그들을 찾을 수는 있을까?

당부한다. 노동부는 당장, 영문도 모른 채 어둠에 놓여있을 피해자들을 찾는 일에 집중해 주길 바란다. 최소한 실명의 이유는 알고 산재보상이라도 받아 적게나마 생계를 해결해야 할 것 아닌가. 이  노동자들의 신호를 세심하게 반성하고 파견노동을 당장 중단시켜야 한다. 그리고 삼성. 책임 여부는 나중 문제다. 광고를 해서라도 갤럭시를 만들다가 실명된 노동자들을 찾는 데 앞장서길 바란다. 그것이 당신들이 기업으로서 이 사회와 공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행동이다.

박혜영 | 노동건강연대 활동가·공인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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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파업에 이어 화물연대까지 어제 총파업을 선언하면서 물류대란이 우려되고 있다. 한진해운 사태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육상화물수송까지 차질이 빚어지면서 수출은 물론 경제 전반에 주름살이 예상되고 있다. 정부는 파업참가자들에 대한 엄단 조치와 함께 컨테이너 열차 운행 횟수를 대폭 늘리는 방법으로 파업에 대처한다는 방침이지만 과연 이런 식의 강경대응이 올바른 해법인지 의문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가 전면 파업에 들어간 10일 경기 의왕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 화물차 등이 정차해 있다. 연합뉴스

이미 정부는 철도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파업참가자 160여명을 직위해제했지만 파업이 2주째로 접어드는 현재도 파업 참가 인원은 7000여명선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특히 기관사의 경우 필수 업무 유지 인력을 제외하고 거의 전원이 파업에 참가하고 있다. 정부의 일방적인 성과연봉제 도입으로 파업이 초래됐고 성과연봉제가 쉬운 해고와 함께 민간부문까지 확대될 경우 예상되는 악영향 때문에 시민여론도 정부에 곱지만은 않다.

공공부문 파업이 박근혜표 노동개악에서 비롯된 것과 마찬가지로 화물연대파업도 정부의 화물시장 구조개악이 초래했다. 화물노동자들은 대형차량을 하루 10~15시간 운전해봐야 유가보조금을 포함해 월 330만~350만원 정도 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보험료·지입료·번호판 값 등을 제외하고 나면 생활비도 벌기 어렵다는 것이다. 화물노동자들이 지입제 폐지와 표준운임제 법제화를 요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8월 화물노동자들의 반대에도 ‘화물운송시장 발전방안’을 통해 화물차 크기에 따라 등록대수를 조절하는 수급조절제를 완화했다. 택배서비스 개선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화물노동자들을 사실상 최저 입찰을 통한 무한경쟁으로 내몬 것이다. 과적 시 화주도 처벌하는 도로법 개정안 역시 물류비 부담 증가를 이유로 무기한 연기됐다. 한마디로 대형 물류회사 입장만을 대변하느라 화물노동자들을 과적, 과속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철도노조와 마찬가지로 대화를 거부한 채 파업 참가자에 대한 6개월간 유가보조금 지급 중단 등 강경대응 방침만 발표하고 있다. 박 대통령과 정부는 연일 노조의 집단이기주의를 강조하지만 그런다고 노동개악과 화물시장 구조개악에 대한 정부의 책임이 가려지지 않는다. 정부는 더 이상 사태가 악화되기 전에 노조와 대화를 통해 파업사태의 원만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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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철도파업을 불법이라고 선언했지만 내부적으로는 합법 파업으로 판단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불법 파업을 전제로 파업참가자에 대한 직위해제와 대체인력 투입 등 철도파업을 무력화하기 위한 조치들이 더 이상 정당성을 주장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정재호 의원이 공개한 ‘철도파업 관련 대책회의 결과 보고’ 문건을 보면 법무부와 노동부는 지난달 27일 관계기관회의에서 철도파업을 불법으로 단정짓는 데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법무부는 당시 회의에서 파업목적이 근로조건과 관련되어 있다고 볼 여지가 있어 목적의 불법성 여부는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노동부 역시 ‘보충교섭, 중앙노동위 조정결과 등 법리상 문제가 있어 고용부가 전면에서 강력 대응하기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원에서 파업의 정당성이 받아들여질 경우에 대비, 미리 한 발짝 물러선 것이다.

철도파업이 장기화 되면서 부산진역에 화물열차가 줄지서 멈춰 서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회의를 주재한 국무조정실은 “불법파업에 대한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며 국토부가 대신 나서달라고 주문했다.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청와대와 협의 후 결정하겠다”는 말까지 했다. 결국 주무부처의 법률적 판단보다 청와대의 성과연봉제 도입 의지를 강조하며 국토부가 총대를 메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강호인 국토부 장관이 철도파업 돌입 첫날 노동부와 법무부 장관을 대신해 ‘불법파업에 강력 대처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청와대 눈치를 보며 노조와 일절 대화 가능성을 차단하면서 시민들의 불편과 물류대란이 점점 현실화하고 있다는 데 있다. 당장 철도파업이 6일로 10일째를 맞이하면서 화물열차 운행률이 평상시 40%대로 떨어진 가운데 10일부터 화물연대의 전면 총파업이 예고돼 있다.

정부는 파업 장기화에 따른 노조에 대한 비난여론을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여론이 반드시 정부가 예상한 대로 흘러가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번 파업이 정부가 노동법에 정해진 노동자 동의 절차를 무시하고 불법적으로 성과연봉제를 밀어붙이면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정부 스스로 불법성을 확신하지 못한 상황에서 노조의 대화 요구를 마냥 거부하는 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서울시 지방공기업 노사합의가 보여주듯 힘이 아닌 노사 간 자율교섭만이 일방적인 성과연봉제 도입으로 초래된 현 파업 사태를 푸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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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해 불법 낙인을 찍었다. 그 핵심 근거 중 하나로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 이기권 장관은 “임금체계 개편은 법으로 의무화된 책무”라는 주장을 펼친다. 철도노조가 성과연봉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공권력을 발동하겠다는 얘기이다. 도대체 무슨 법에 어떻게 명시되어 있기에 그런 걸까?

“사업주와 노동조합은 그 사업 또는 사업장의 여건에 따라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2013년에 개정된 고령자고용촉진법의 이 조항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당시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의 필요성을 규정한 내용인데, 법 조항 어디에도 ‘성과연봉제’를 논의하라는 말은 찾아볼 수 없다. 정부는 ‘임금체계 개편’이라는 모호하기 짝이 없는 조항 하나로 공공기관 전체에 성과연봉제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그렇다면 정반대의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근로자·노동조합 및 사용자는 이 법 시행과 관련하여 단체협약 유효기간의 만료여부를 불문하고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이내에 단체협약, 취업규칙 등에 임금보전방안 및 이 법 개정사항이 반영되도록 하여야 한다.”

위 조항은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03년에 주 40시간 노동제 실시를 위해 근로기준법을 개정했을 때 부칙에 명시한 내용이다. 왜 이런 부칙을 명시했을까? 당시 법정노동시간을 40시간으로 줄이면서 토요일 근무가 사라지는 사업장이 많아졌다. 기존 주 44시간 시스템에서는 토요일 오전 근무만 하면 대부분 하루치(8시간) 임금을 보장받았는데, 토요일 근무가 사라지면 당연히 사용자들은 임금을 안 주려 할 게 분명했다. 노동시간은 4시간 줄어드는데 임금은 8시간치가 삭감될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 때문에 당시 부칙에는 노사 간 협상을 통해 ‘임금보전방안’이 반영되도록 하라는 내용을 명시한 것이다. ‘임금체계 개편’이라는 모호한 말보다 훨씬 분명한 표현을 부칙에 담았는데, 여기서 ‘임금보전’이란 말은 당연히 법 개정에 따라 토요일이 무급이 될지도 모르니 이 부분을 보전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당시 노동부는 무슨 일을 했던가? 토요일 임금보전을 위한 노사 협상을 독려하고 사용자가 교섭에 응하지 않거나 임금보전을 거부하면 부당노동행위로 처벌에 나섰던가? 정반대였다. 오히려 당시 주 40시간 노동시간 단축을 내걸고 파업을 벌이던 현대차노조에 긴급조정권을 발동하겠다며 노동자들을 상대로 온갖 협박을 일삼았다. 그래, 13년 만에 현대차 노동자들에게 노동부가 다시 꺼내든 그 긴급조정권 말이다.

다행히 당시 노조로 조직된 노동자들 대부분은 단체교섭과 파업을 통해 토요일 임금보전을 합의했다. 하지만 노조를 갖지 못한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사용자들이 토요일 임금을 없앤다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을 강행했고, 결국 저항조차 못 해보고 임금을 강탈당하고 말았다. 사용자들은 토요일 무급을 강요했고, 노동부는 그저 지켜보기만 하지 않았던가!

2003년에 임금보전이라는 표현의 법 규정을 만들었을 때는 노사 교섭 촉진은커녕 법을 지키라며 파업을 벌이는 노동자들에게 긴급조정권으로 협박하고, 2013년에 임금체계 개편이라는 모호한 법 규정 하나로 성과연봉제에 반대하는 철도노조 파업을 불법으로 몰아붙인다.

노동부는 오로지 사용자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집단이란 말인가. 이런 인식이 오해라고 주장하려면 미조직노동자들이 2003년 토요일 임금을 강탈당할 때 노동부는 도대체 뭐하고 있었는지부터 공개함이 마땅하다. 아니, 지금도 늦지 않았다. 당시 임금삭감을 당한 노동자들에게 토요일 임금을 되돌려주도록 ‘임금체계 개편’에 나서야 한다.

임금 얘기가 나왔으니 좀 더 들어가 보도록 하자. 잘 알려진 것처럼 철도노조와 현대차지부는 현재 임금을 핵심 쟁점으로 한 파업을 벌이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현행 노동조합법상 임금을 이유로 한 파업이 아니면 정부가 모조리 불법으로 몰아붙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철도노조가 2006년에 KTX 승무원들의 정규직화를 파업의 주요 요구로 내걸었다는 이유로 불법파업으로 규정해 수많은 해고자와 구속자를 만들지 않았던가. 심지어 ‘성과연봉제 반대’라는 명백한 임금성 요구를 내건 이번 파업조차 불법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노동조합들은 더 절실한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임금을 핵심 요구로 내걸 수밖에 없다. 전 국민의 열망을 담아 철도 민영화나 의료 영리화 반대를 내걸어도 불법,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개선과 정규직 전환을 요구해도 불법,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들의 복직을 요구해도 불법,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법제도를 바꾸라고 요구해도 불법 딱지를 붙인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절실한 요구인 최저임금 1만원을 내걸어도 똑같은 태도를 보일 텐가.

임금 아니면 파업을 못하게 만들어놓고, 임금 내걸고 파업한다고 비난한다? “노동조합법이 아니라 파업금지법”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내친김에 전 사회적 토론을 시작하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누구나 쉽게 노동조합을 만들고 가입할 수 있도록, 그리고 노동조합이 최저임금 1만원 등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며 전 사회적 요구를 내걸고 싸울 수 있도록 법·제도를 개선하는 일에 대해서 말이다.

오민규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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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9년 영국의 광산회에서 시작된 종업원지주제도가 국내에 등장한 것은 1960년대였다. 정부는 1968년 ‘자본시장 육성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상장법인의 신규 발행 주식 10%를 의무적으로 종업원에게 배정하도록 했다. 관 주도의 종업원지주제가 유상취득을 전제로 한 것이라면, 1971년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타계한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박사는 신주를 발행할 때마다 직원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준 경우였다. 직원들이 이익을 함께 나누며 회사운영에도 책임과 보람을 느끼면서 일을 하게 하자는 의도였다. 9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프랭클린 자서전을 읽으면서 자본주의 정신을 배운 그는 ‘기업은 국가와 국민의 것’이라는 생각을 평생의 신념으로 간직했다.

기업은 자본가 소유물이 아니며 노동자는 경영에 참가해 이윤을 나눌 권리가 있다는 주장은 1948년 제헌국회에도 존재했다. 대한노총 출신으로 이승만 정권에서 초대 사회부 장관을 지낸 전진한 의원은 “노동자는 ‘노력’을 출자했다는 의미에서 자본가와 다름없다”고 했다. 전진한의 주장은 ‘노동자의 경영 참가는 기업의 이익을 떨어뜨려 취업의 기회를 줄이고 임금을 저하시킬 것’이라는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논쟁 끝에 헌법에서 경영참가권 조항은 빠졌다. 그럼에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체에서 근로자는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는 조항은 제헌헌법(18조2항)에 명시됐다. 전 세계 헌법 어디에도 유례가 없던 이익균점권은 1962년 박정희 정권에 의해 삭제됐고 종업원지주제가 우리사주조합으로 이름을 바꾼 지금 제헌국회 논쟁은 사라진 역사가 됐다.

정부는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노동자들이 우리사주조합을 통해 기업 인수를 쉽게 할 수 있도록 근로자복지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기업의 계속적 운영이 어려운 경우 우리사주조합이 인수해 고용을 유지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법안이다. 노동자의 경영 참가를 넘어 기업 인수를 용이하게 하는 법률안까지 만든 정부가 왜 서울시의 노동이사제 도입에는 반대하는지 알 수 없다. 노동자의 경영 참가와 이익균점을 둘러싼 의원들 간 토론을 역사책이 아닌 20대 국회에서 다시 볼 수는 없을까.

강진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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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국 지자체의 청사 건물 앞마당에는 쌀값 폭락에 항의하는 농민들의 분노가 가득하다. 나락을 산더미처럼 쌓아놓는가 하면 길바닥에 쏟아붓고 심지어 태우기까지 한다. 해마다 겪는 일이기는 하지만 올해는 특히 심하다. 쌀값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졌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수매가 인상투쟁을 했던 작년 나락값이 40㎏ 한 부대에 5만원 했는데 올해는 3만5000원이란다.

한 농민이 소비자가격으로 계산해보더니 밥 한 그릇 값이 자판기 커피 한 잔 값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 3년 연속 풍년인 데다 국민들이 쌀을 먹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지경인데도 자유무역협정 규정에 따라 의무적으로 일정량의 밥쌀을 수입해야 한다.

그렇다면 쌀농사를 짓지 말고 다른 농사, 예를 들어 밭농사나 특용작물로 돌리면 문제가 해결될까? 해결은커녕 더 감당이 안된다. 논농사는 거의 공식화되어 있어 큰 이변이 없는 한 일정한 수확량이 보장되지만 밭농사는 일기의 영향을 너무 심하게 받고 수요 예측을 전혀 할 수가 없다. 게다가 논농사와 비교해 농사 강도가 말할 수 없이 세다. 시골에서 흔히 마주치는 구부러진 할머니 등은 대부분 밭농사 때문에 생긴 것이다. 허구한 날 호미 들고 풀 잡느라 그리 된 것이다. 우리 동네 김씨는 논농사를 짓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꽤 큰 규모의 밭농사를 겸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옆에서 지켜본 바에 의하면 죄송한 말이지만 이건 농사라기보다 허깨비춤같이 보였다. 농업기술센터에 가서 고소득작물 교육을 받고 올 때마다 작물이 바뀌었다. 10년 새 3번이나 작물을 갈아엎었다. 심을 때는 고소득작물이었지만 생산량이 안정되어 돈 좀 만지겠다 싶으면 어김없이 똥값이 된다. 이런 일을 온전히 자기 돈으로 하면 미친 사람 소릴 들을 것이다. 정부에서 보조금이 나오니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한다. 그사이 들어간 인건비는 아예 생각도 않는다. 김씨는 지금 또 새로운 작물로 갈아탈 준비를 하고 있다.

농사지어 먹고살겠다고 산속으로 들어온 나도 마찬가지다. 자연농업을 창시한 일본의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자연농업 작부체계’를 내 나름대로 만들어보겠다며 의지를 불태웠으나 워낙 박토인 산비탈인지라 내 한 몸 먹고살기도 힘든 나날이 계속되었다. 한때 동료들과 의기투합해 약용작물을 재배해서 직접 인터넷 쇼핑몰에 내다 팔기도 했지만 인건비도 안 나왔다. 결국 농사는 지으면 지을수록 손해를 보고 몸만 망가지며 농사를 지어 돈을 벌려면 양심에 반하는 행위(몰래 농약을 친다든지,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비닐이나 기계를 사용한다든지, 외부에서 비료나 축분을 들여와 살포한다든지)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결론을 내리고 상업농을 포기했다.

왜 농민들은 도시의 노동자나 사무원보다 더 열심히 힘들게 노동을 하지만 언제나 손에 쥐는 돈은 더 적을까? 착취다. 누군가 나의 노동을 착취하기 때문에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착취하고 있는지 명확히 알 수가 없다.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것을 알고 있기에 여러 가지 보조금과 지원정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해마다 농민들은 못살겠다고 아우성이다. 국가 차원에서도 어쩌지 못하는 요인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이 문제의 해법을 대규모 기업농에서 찾고 있는데 엄밀히 말해 그것은 ‘엔지니어링’이나 ‘매니지먼트’이지 농업은 아니다. 그냥 취급하는 품목이 농업생산물일 뿐이다.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거의 모든 나라의 정부들은 기업농 육성을 위해 전통적 의미의 농업을 축소·도태시키고 농산물을 국제자유무역 거래품목에 끼워넣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농업적 터치’를 통해 농산물을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 얘기는 농업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읊조릴 수 있는 내용이다. 문제는 대안이다. 가장 극단적인 대응은 정부의 기업농 정책을 받아들여 월급쟁이 농업 노동자가 되거나 아니면 농사 거부를 통해 정부를 굴복시키는 건데 모두 바람직하지도 않을뿐더러 실현 가능성도 없다. 정부도 우리 편이 아니고 국제정세도 우리 편이 아니라면 결론은 하나이다. 우리 스스로 먹고살 수 있는 지역순환농업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자기보다 약해 보이는 모든 것을 갈아먹어버리는 신자유주의 격랑 속에서 독립된 경제구조를 갖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 길만이 농민과 지역주민, 자연생태계가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다.

외부시장과 결합되는 순간 착취가 발생하므로 농산물의 지역 내 유통구조를 만들고, 이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기까지는 자급자족한다는 생각으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 자급자족 역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한편으로 자급농사를 짓고 다른 한편으로는 비농업 분야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 농사 말고 달리 돈 버는 기술을 갖고 있지 않는 농민들을 위해 공동체 복지시스템을 개발하고 다양한 호혜시장과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주민의 힘만으로는 이 모든 일을 할 수 없다. 아마도 지자체의 결재와 허가가 필요한 사항이 태반일 것이다.

따라서 지역주민과 지자체가 머리를 맞대고 상생의 협치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지방자치의 통상적 업무이기도 하므로 제정신을 가진 지방정부라면 중앙정부가 뭐라고 하든 소신을 가지고 밀어붙여야 한다.

황대권 | 생명평화마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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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미래’가 떠들썩하게 돌아왔다. 별로 반갑지는 않다. 노동의 미래를 말하는 사람치고 밝고 희망찬 미래를 전망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덜컥 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나마 희망적인 미래를 말했던 이가 ‘세기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인데, 그의 예측에 따르자면 나는 지금 하루에 딱 3시간,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해야 한다.

그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이미 자정이다. 게다가 세계 경제는 여전히 답답하고 실업이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세계의 지도자들은 모일 때마다 제 길 찾겠다고 싸움질이니 그 모양새가 궁상맞은 겨울비 같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물론, 이번에도 정색을 하고 나타났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기왕의 자동화와 디지털화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체계가 갖추어지고, “뇌를 쓰는 일은 인간의 몫”이라는 통념을 뒤엎는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대규모 일자리 ‘숙청’이 예상된다면서 연일 적색경고다.

어느 경제학자들은 이런 ‘기술적 실업’의 대상이 누구일지 부지런히 따져 보았는데, 그들의 계산에 따르면 향후 20년 내에 47%가량의 일자리가 사라질 위험에 있다. 그동안 늘 폭풍권 바깥에 있었던 회계, 법률, 저술 등과 같은 고급 화이트칼라 직업군도 포함되었다. 펜을 든 사람도 피할 수 없는 태풍이라고 하니, 펜은 더 요란하고 시끄러워졌다.

한국도 예외 없다. 기업과 정치권은 일제히 새로운 시대를 맞아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주문하는데, 내용은 아주 한국적이다. 자 여러분, 이제 과거를 잊고 미래를 준비하자. 입은 미래를 말하지만, 손은 ‘곤란해진 지금’을 향해 있다.

그렇다고 허투루 들을 일은 아니다. 맥도널드에서도 주문기계를 도입해 직원 숫자를 줄이는 마당에 모르쇠로 일관할 수는 없다. 일자리 양극화도 여전히 진행형이고, 개선 기미는 보이질 않는다.

하지만 미래의 예측이 믿을 만해야 대책도 세울 수 있다. 신뢰성 없는 예측에 맞춰 야단법석 피워 정책을 도입하면 인력 낭비고 자원 낭비다. 내일 무엇을 배우게 될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책을 펴두고 예습할 수는 없지 않나.

역사적 경험도 그리 좋지 않다. 1990년대 중반에는 정보기술의 획기적인 확산으로 대량 실업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 나왔다. 공전의 대히트였다. 제목도 다소 살벌하게 <노동의 종언>이었는데, 실제로 노동이 종언되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군비 지출 같은 비생산적인 지출을 줄이고 사회서비스를 대대적으로 확충해서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주장에는 귀가 솔깃했지만, 그 주장의 전제인 미래에 대한 예측이 틀렸으니 더 보탤 말은 없다.

조금 더 거슬러 가보자. 1950년대에 자동화가 일자리를 없앤다는 주장이 강하게 대두되었다. 1957년 국제노동기구 연례총회에서 이 주제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당시 로버트 위너(Robert Wiener)라는 사이버네틱스 전문가는 자동화로 인한 실업은 실로 막대해서 1930년대 대공황기의 실업을 “즐거운 조크”로 만들 것이라 단언했다. 20여년의 시간이 지나 이 문제는 다시 국제기구에서 논의되는데, 결론은 ‘사실무근’이었다.

기술변화가 일자리를 초토화시킨다는 주장은 일단 경계 대상이다. 대체적으로 파괴되는 일자리만 보고,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는 잘 보지 못한다. 자신의 주장을 드라마틱하게 하고자 하는 인간의 심리이기도 하겠지만, 파괴의 장면은 당장 눈에 띄지만 창조의 장면은 쉽게 상상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래를 예측하는 이들이 가장 결정적인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 역설. 그래서 경영학의 거두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길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했나 보다.

‘노동의 미래’의 귀환이 반갑지 않은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미래 예측은 대부분 이미 보고자 하는 곳을 정해둔다는 점에서 폐쇄적이다. 그 바깥에 있는 것들은 과거, 그리고 ‘과거의 노동자’가 된다. 멸종을 앞두고 절치부심해야 하는 사람들. 이들은 계도와 훈계의 대상이 되고, 곧 잊혀진다. 그러다 보면, 정작 바뀌어야 할 현실은 마치 미래에서 자동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내팽개친다. 어려운 오늘은 내버려 두고, 상상의 미래만 키우는 꼴이다.

‘노동의 미래’에서 배제된 미래는 가령 이렇다. 1950년대부터 진행된 기술변화와 고용 간의 관계에 대한 지루한 논쟁이 마무리되어 가던 1990년대쯤 국제노동기구는 ‘자동화된 세상’에 아동 노동과 강제 노동이 만연해 있음을 뒤늦게 발견했다. 19세기의 ‘해묵은’ 주제는 자동화 문제보다도 더 절실한 현재였고, 1950년대에 예상하지 못했던, 또는 보고자 하지 않았던 미래였다. 20세기 말과 21세기 초, 국제노동기구의 최대 현안은 아동 노동 철폐였다.

한때 ‘지식노동자’가 중심이 되는 ‘지식경제’를 국가의 근간으로 삼고자 했던 한국에서도 청소는 필요하다. 그래서 김포공항의 중년 청소노동자들은 정보화의 물결이 거세었던 지난 30년 동안 묵묵히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청소했다. 정보기술은 날로 세련되는데 용역기업은 ‘어제’와 같아서 그들은 험한 욕설, “성추행과 술대접 강요를 비일비재하게 당했다”. “성추행을 당하면서도 잘릴까봐 말하지 못했다.” 인터넷 세상에는 관련 법규가 잘 정리되어 있었지만, “그게 인권침해인 줄 몰랐다”. 그래서 힘을 모아서 항의했으나, “갠지스 강의 모래 수만큼 많은” 온라인 언론은 조용했다. 결국 삭발을 했다. 바리깡에서 잘려나가는 머리카락에 눈물이 맺히고서야 사람들은 ‘어제의 노동자’들을 찾아왔다.

컴퓨터와 정보화 덕분에 둔탁한 제조업 시대는 저물고 있다. 1980년대 말, 15살 문송면이 수은 중독으로 죽어가던 온도계 공장은 이제 없어졌다. 하지만 정보화 시대를 육체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반도체 공장이 죽음의 행렬을 이어간다. 23살의 황유미는 입사 일년 반 만에 죽었다. 차이점이라고 하면, 그때는 잘못과 결과가 분명했지만, 지금은 버티기와 불인정이다. 유족들은 여전히 길바닥에서 버티고 있다. 정보화가 알지 못했던, 여전히 알려고 하지 않는 ‘미래’다.

디지털 시대에도 건설 공사는 계속된다.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어이없이 떨어지고 부딪힌다. 며칠 전에는 철교에서 작업대 발판 지지대 철거 작업을 하던 이가 떨어져 죽었다. 나이는 겨우 29살, 추락한 높이는 불과 5m다. 디지털 세상의 재생복구 기능은 여기서만 예외다. 그들을 다시 이승으로 데려올 방법은 없다. ‘어제의 노동자’들이 없는 ‘노동의 미래’는 불모적인 사이버 공간일 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노동의 미래’에는 ‘어제의 노동자’가 가득하다. 추석을 앞두고 체불임금 소식이며 산업재해 소식은 여전하다. 날짜를 지운다면, 언제 적인지 알쏭달쏭할 지경이다. 다만, 그때는 기름 냄새 확 나는 신문에서 읽었고, 지금은 소파에 누워 부스스한 눈으로 스마트폰에서 읽을 뿐이다.

경제학 박사·‘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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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공공부문 노조 공동대책위(공대위)는 5일 기자회견을 열고 “전 국민에게 피해를 주는 성과연봉제·강제퇴출제를 정부가 멈추지 않으면 9월 말 총파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대위에 따르면 이번 총파업에는 총 18만명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3일 금융공기업·시중은행 조합원 10만명을 시작으로 27일부터는 철도·지하철·국민연금·건강보험, 가스공사, 서울대병원 등 조합원 6만2000명이 파업에 돌입한다. 성과연봉제를 둘러싼 갈등이 급기야 철도·지하철·병원·은행 등 전 산업과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는 공공부문 파업 사태로까지 비화된 것이다.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조 공동대책위원회 대표자 등이 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공공·금융부문 총파업 돌입을 예고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강윤중 기자

정부가 어떤 식의 대응을 보일지 모르지만 과거처럼 공공부문 총파업을 무조건 ‘불법파업’으로 몰고 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파업 목적이 민영화나 구조조정 반대 등이 아닌 임금과 해고 등 현행 노동법과 판례가 허용하는 범위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법적 정당성에서 보면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 한마디에 저성과자 해고·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요건 완화 등 양대 지침을 근거로 성과연봉제 도입과 저성과자 퇴출을 밀어붙이고 있는 정부가 더 할 말이 없게 됐다. 국가인권위원회마저 지난달 말 “노동부의 양대 지침이 법적구속력이 없음에도 일반적인 법적판단 기준인 양 제시되면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근로기준법 취지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성과연봉제는 노동자에게 반드시 불이익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노조 동의 없이 도입해도 불법은 아니다’라는 노동부의 억지주장이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사실상 파산선고를 받은 셈이다.

성과연봉제가 ‘철밥통’ 문화를 개선하는 데 일정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의사와 간호사까지 돈벌이 의료행위에 동원되고 과다한 실적경쟁으로 금융권 부실위험이 높아지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찬찬히 따져봐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자 동의권을 배제한 일방적인 성과연봉제는 저성과자 해고 압박과 일방적 임금삭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노동계가 원하는 건 파업이 아니라 대화다. 아무리 성과연봉제가 공공부문 효율을 높인다 해도 부작용을 막을 안전장치 마련과 노동자 동의가 선행돼야 한다. 공은 정부에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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