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9년 영국의 광산회에서 시작된 종업원지주제도가 국내에 등장한 것은 1960년대였다. 정부는 1968년 ‘자본시장 육성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상장법인의 신규 발행 주식 10%를 의무적으로 종업원에게 배정하도록 했다. 관 주도의 종업원지주제가 유상취득을 전제로 한 것이라면, 1971년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타계한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박사는 신주를 발행할 때마다 직원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준 경우였다. 직원들이 이익을 함께 나누며 회사운영에도 책임과 보람을 느끼면서 일을 하게 하자는 의도였다. 9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프랭클린 자서전을 읽으면서 자본주의 정신을 배운 그는 ‘기업은 국가와 국민의 것’이라는 생각을 평생의 신념으로 간직했다.

기업은 자본가 소유물이 아니며 노동자는 경영에 참가해 이윤을 나눌 권리가 있다는 주장은 1948년 제헌국회에도 존재했다. 대한노총 출신으로 이승만 정권에서 초대 사회부 장관을 지낸 전진한 의원은 “노동자는 ‘노력’을 출자했다는 의미에서 자본가와 다름없다”고 했다. 전진한의 주장은 ‘노동자의 경영 참가는 기업의 이익을 떨어뜨려 취업의 기회를 줄이고 임금을 저하시킬 것’이라는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논쟁 끝에 헌법에서 경영참가권 조항은 빠졌다. 그럼에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체에서 근로자는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는 조항은 제헌헌법(18조2항)에 명시됐다. 전 세계 헌법 어디에도 유례가 없던 이익균점권은 1962년 박정희 정권에 의해 삭제됐고 종업원지주제가 우리사주조합으로 이름을 바꾼 지금 제헌국회 논쟁은 사라진 역사가 됐다.

정부는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노동자들이 우리사주조합을 통해 기업 인수를 쉽게 할 수 있도록 근로자복지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기업의 계속적 운영이 어려운 경우 우리사주조합이 인수해 고용을 유지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법안이다. 노동자의 경영 참가를 넘어 기업 인수를 용이하게 하는 법률안까지 만든 정부가 왜 서울시의 노동이사제 도입에는 반대하는지 알 수 없다. 노동자의 경영 참가와 이익균점을 둘러싼 의원들 간 토론을 역사책이 아닌 20대 국회에서 다시 볼 수는 없을까.

강진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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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국 지자체의 청사 건물 앞마당에는 쌀값 폭락에 항의하는 농민들의 분노가 가득하다. 나락을 산더미처럼 쌓아놓는가 하면 길바닥에 쏟아붓고 심지어 태우기까지 한다. 해마다 겪는 일이기는 하지만 올해는 특히 심하다. 쌀값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졌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수매가 인상투쟁을 했던 작년 나락값이 40㎏ 한 부대에 5만원 했는데 올해는 3만5000원이란다.

한 농민이 소비자가격으로 계산해보더니 밥 한 그릇 값이 자판기 커피 한 잔 값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 3년 연속 풍년인 데다 국민들이 쌀을 먹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지경인데도 자유무역협정 규정에 따라 의무적으로 일정량의 밥쌀을 수입해야 한다.

그렇다면 쌀농사를 짓지 말고 다른 농사, 예를 들어 밭농사나 특용작물로 돌리면 문제가 해결될까? 해결은커녕 더 감당이 안된다. 논농사는 거의 공식화되어 있어 큰 이변이 없는 한 일정한 수확량이 보장되지만 밭농사는 일기의 영향을 너무 심하게 받고 수요 예측을 전혀 할 수가 없다. 게다가 논농사와 비교해 농사 강도가 말할 수 없이 세다. 시골에서 흔히 마주치는 구부러진 할머니 등은 대부분 밭농사 때문에 생긴 것이다. 허구한 날 호미 들고 풀 잡느라 그리 된 것이다. 우리 동네 김씨는 논농사를 짓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꽤 큰 규모의 밭농사를 겸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옆에서 지켜본 바에 의하면 죄송한 말이지만 이건 농사라기보다 허깨비춤같이 보였다. 농업기술센터에 가서 고소득작물 교육을 받고 올 때마다 작물이 바뀌었다. 10년 새 3번이나 작물을 갈아엎었다. 심을 때는 고소득작물이었지만 생산량이 안정되어 돈 좀 만지겠다 싶으면 어김없이 똥값이 된다. 이런 일을 온전히 자기 돈으로 하면 미친 사람 소릴 들을 것이다. 정부에서 보조금이 나오니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한다. 그사이 들어간 인건비는 아예 생각도 않는다. 김씨는 지금 또 새로운 작물로 갈아탈 준비를 하고 있다.

농사지어 먹고살겠다고 산속으로 들어온 나도 마찬가지다. 자연농업을 창시한 일본의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자연농업 작부체계’를 내 나름대로 만들어보겠다며 의지를 불태웠으나 워낙 박토인 산비탈인지라 내 한 몸 먹고살기도 힘든 나날이 계속되었다. 한때 동료들과 의기투합해 약용작물을 재배해서 직접 인터넷 쇼핑몰에 내다 팔기도 했지만 인건비도 안 나왔다. 결국 농사는 지으면 지을수록 손해를 보고 몸만 망가지며 농사를 지어 돈을 벌려면 양심에 반하는 행위(몰래 농약을 친다든지,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비닐이나 기계를 사용한다든지, 외부에서 비료나 축분을 들여와 살포한다든지)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결론을 내리고 상업농을 포기했다.

왜 농민들은 도시의 노동자나 사무원보다 더 열심히 힘들게 노동을 하지만 언제나 손에 쥐는 돈은 더 적을까? 착취다. 누군가 나의 노동을 착취하기 때문에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착취하고 있는지 명확히 알 수가 없다.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것을 알고 있기에 여러 가지 보조금과 지원정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해마다 농민들은 못살겠다고 아우성이다. 국가 차원에서도 어쩌지 못하는 요인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이 문제의 해법을 대규모 기업농에서 찾고 있는데 엄밀히 말해 그것은 ‘엔지니어링’이나 ‘매니지먼트’이지 농업은 아니다. 그냥 취급하는 품목이 농업생산물일 뿐이다.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거의 모든 나라의 정부들은 기업농 육성을 위해 전통적 의미의 농업을 축소·도태시키고 농산물을 국제자유무역 거래품목에 끼워넣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농업적 터치’를 통해 농산물을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 얘기는 농업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읊조릴 수 있는 내용이다. 문제는 대안이다. 가장 극단적인 대응은 정부의 기업농 정책을 받아들여 월급쟁이 농업 노동자가 되거나 아니면 농사 거부를 통해 정부를 굴복시키는 건데 모두 바람직하지도 않을뿐더러 실현 가능성도 없다. 정부도 우리 편이 아니고 국제정세도 우리 편이 아니라면 결론은 하나이다. 우리 스스로 먹고살 수 있는 지역순환농업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자기보다 약해 보이는 모든 것을 갈아먹어버리는 신자유주의 격랑 속에서 독립된 경제구조를 갖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 길만이 농민과 지역주민, 자연생태계가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다.

외부시장과 결합되는 순간 착취가 발생하므로 농산물의 지역 내 유통구조를 만들고, 이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기까지는 자급자족한다는 생각으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 자급자족 역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한편으로 자급농사를 짓고 다른 한편으로는 비농업 분야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 농사 말고 달리 돈 버는 기술을 갖고 있지 않는 농민들을 위해 공동체 복지시스템을 개발하고 다양한 호혜시장과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주민의 힘만으로는 이 모든 일을 할 수 없다. 아마도 지자체의 결재와 허가가 필요한 사항이 태반일 것이다.

따라서 지역주민과 지자체가 머리를 맞대고 상생의 협치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지방자치의 통상적 업무이기도 하므로 제정신을 가진 지방정부라면 중앙정부가 뭐라고 하든 소신을 가지고 밀어붙여야 한다.

황대권 | 생명평화마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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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미래’가 떠들썩하게 돌아왔다. 별로 반갑지는 않다. 노동의 미래를 말하는 사람치고 밝고 희망찬 미래를 전망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덜컥 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나마 희망적인 미래를 말했던 이가 ‘세기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인데, 그의 예측에 따르자면 나는 지금 하루에 딱 3시간,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해야 한다.

그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이미 자정이다. 게다가 세계 경제는 여전히 답답하고 실업이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세계의 지도자들은 모일 때마다 제 길 찾겠다고 싸움질이니 그 모양새가 궁상맞은 겨울비 같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물론, 이번에도 정색을 하고 나타났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기왕의 자동화와 디지털화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체계가 갖추어지고, “뇌를 쓰는 일은 인간의 몫”이라는 통념을 뒤엎는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대규모 일자리 ‘숙청’이 예상된다면서 연일 적색경고다.

어느 경제학자들은 이런 ‘기술적 실업’의 대상이 누구일지 부지런히 따져 보았는데, 그들의 계산에 따르면 향후 20년 내에 47%가량의 일자리가 사라질 위험에 있다. 그동안 늘 폭풍권 바깥에 있었던 회계, 법률, 저술 등과 같은 고급 화이트칼라 직업군도 포함되었다. 펜을 든 사람도 피할 수 없는 태풍이라고 하니, 펜은 더 요란하고 시끄러워졌다.

한국도 예외 없다. 기업과 정치권은 일제히 새로운 시대를 맞아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주문하는데, 내용은 아주 한국적이다. 자 여러분, 이제 과거를 잊고 미래를 준비하자. 입은 미래를 말하지만, 손은 ‘곤란해진 지금’을 향해 있다.

그렇다고 허투루 들을 일은 아니다. 맥도널드에서도 주문기계를 도입해 직원 숫자를 줄이는 마당에 모르쇠로 일관할 수는 없다. 일자리 양극화도 여전히 진행형이고, 개선 기미는 보이질 않는다.

하지만 미래의 예측이 믿을 만해야 대책도 세울 수 있다. 신뢰성 없는 예측에 맞춰 야단법석 피워 정책을 도입하면 인력 낭비고 자원 낭비다. 내일 무엇을 배우게 될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책을 펴두고 예습할 수는 없지 않나.

역사적 경험도 그리 좋지 않다. 1990년대 중반에는 정보기술의 획기적인 확산으로 대량 실업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 나왔다. 공전의 대히트였다. 제목도 다소 살벌하게 <노동의 종언>이었는데, 실제로 노동이 종언되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군비 지출 같은 비생산적인 지출을 줄이고 사회서비스를 대대적으로 확충해서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주장에는 귀가 솔깃했지만, 그 주장의 전제인 미래에 대한 예측이 틀렸으니 더 보탤 말은 없다.

조금 더 거슬러 가보자. 1950년대에 자동화가 일자리를 없앤다는 주장이 강하게 대두되었다. 1957년 국제노동기구 연례총회에서 이 주제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당시 로버트 위너(Robert Wiener)라는 사이버네틱스 전문가는 자동화로 인한 실업은 실로 막대해서 1930년대 대공황기의 실업을 “즐거운 조크”로 만들 것이라 단언했다. 20여년의 시간이 지나 이 문제는 다시 국제기구에서 논의되는데, 결론은 ‘사실무근’이었다.

기술변화가 일자리를 초토화시킨다는 주장은 일단 경계 대상이다. 대체적으로 파괴되는 일자리만 보고,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는 잘 보지 못한다. 자신의 주장을 드라마틱하게 하고자 하는 인간의 심리이기도 하겠지만, 파괴의 장면은 당장 눈에 띄지만 창조의 장면은 쉽게 상상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래를 예측하는 이들이 가장 결정적인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 역설. 그래서 경영학의 거두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길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했나 보다.

‘노동의 미래’의 귀환이 반갑지 않은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미래 예측은 대부분 이미 보고자 하는 곳을 정해둔다는 점에서 폐쇄적이다. 그 바깥에 있는 것들은 과거, 그리고 ‘과거의 노동자’가 된다. 멸종을 앞두고 절치부심해야 하는 사람들. 이들은 계도와 훈계의 대상이 되고, 곧 잊혀진다. 그러다 보면, 정작 바뀌어야 할 현실은 마치 미래에서 자동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내팽개친다. 어려운 오늘은 내버려 두고, 상상의 미래만 키우는 꼴이다.

‘노동의 미래’에서 배제된 미래는 가령 이렇다. 1950년대부터 진행된 기술변화와 고용 간의 관계에 대한 지루한 논쟁이 마무리되어 가던 1990년대쯤 국제노동기구는 ‘자동화된 세상’에 아동 노동과 강제 노동이 만연해 있음을 뒤늦게 발견했다. 19세기의 ‘해묵은’ 주제는 자동화 문제보다도 더 절실한 현재였고, 1950년대에 예상하지 못했던, 또는 보고자 하지 않았던 미래였다. 20세기 말과 21세기 초, 국제노동기구의 최대 현안은 아동 노동 철폐였다.

한때 ‘지식노동자’가 중심이 되는 ‘지식경제’를 국가의 근간으로 삼고자 했던 한국에서도 청소는 필요하다. 그래서 김포공항의 중년 청소노동자들은 정보화의 물결이 거세었던 지난 30년 동안 묵묵히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청소했다. 정보기술은 날로 세련되는데 용역기업은 ‘어제’와 같아서 그들은 험한 욕설, “성추행과 술대접 강요를 비일비재하게 당했다”. “성추행을 당하면서도 잘릴까봐 말하지 못했다.” 인터넷 세상에는 관련 법규가 잘 정리되어 있었지만, “그게 인권침해인 줄 몰랐다”. 그래서 힘을 모아서 항의했으나, “갠지스 강의 모래 수만큼 많은” 온라인 언론은 조용했다. 결국 삭발을 했다. 바리깡에서 잘려나가는 머리카락에 눈물이 맺히고서야 사람들은 ‘어제의 노동자’들을 찾아왔다.

컴퓨터와 정보화 덕분에 둔탁한 제조업 시대는 저물고 있다. 1980년대 말, 15살 문송면이 수은 중독으로 죽어가던 온도계 공장은 이제 없어졌다. 하지만 정보화 시대를 육체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반도체 공장이 죽음의 행렬을 이어간다. 23살의 황유미는 입사 일년 반 만에 죽었다. 차이점이라고 하면, 그때는 잘못과 결과가 분명했지만, 지금은 버티기와 불인정이다. 유족들은 여전히 길바닥에서 버티고 있다. 정보화가 알지 못했던, 여전히 알려고 하지 않는 ‘미래’다.

디지털 시대에도 건설 공사는 계속된다.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어이없이 떨어지고 부딪힌다. 며칠 전에는 철교에서 작업대 발판 지지대 철거 작업을 하던 이가 떨어져 죽었다. 나이는 겨우 29살, 추락한 높이는 불과 5m다. 디지털 세상의 재생복구 기능은 여기서만 예외다. 그들을 다시 이승으로 데려올 방법은 없다. ‘어제의 노동자’들이 없는 ‘노동의 미래’는 불모적인 사이버 공간일 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노동의 미래’에는 ‘어제의 노동자’가 가득하다. 추석을 앞두고 체불임금 소식이며 산업재해 소식은 여전하다. 날짜를 지운다면, 언제 적인지 알쏭달쏭할 지경이다. 다만, 그때는 기름 냄새 확 나는 신문에서 읽었고, 지금은 소파에 누워 부스스한 눈으로 스마트폰에서 읽을 뿐이다.

경제학 박사·‘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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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공공부문 노조 공동대책위(공대위)는 5일 기자회견을 열고 “전 국민에게 피해를 주는 성과연봉제·강제퇴출제를 정부가 멈추지 않으면 9월 말 총파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대위에 따르면 이번 총파업에는 총 18만명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3일 금융공기업·시중은행 조합원 10만명을 시작으로 27일부터는 철도·지하철·국민연금·건강보험, 가스공사, 서울대병원 등 조합원 6만2000명이 파업에 돌입한다. 성과연봉제를 둘러싼 갈등이 급기야 철도·지하철·병원·은행 등 전 산업과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는 공공부문 파업 사태로까지 비화된 것이다.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조 공동대책위원회 대표자 등이 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공공·금융부문 총파업 돌입을 예고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강윤중 기자

정부가 어떤 식의 대응을 보일지 모르지만 과거처럼 공공부문 총파업을 무조건 ‘불법파업’으로 몰고 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파업 목적이 민영화나 구조조정 반대 등이 아닌 임금과 해고 등 현행 노동법과 판례가 허용하는 범위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법적 정당성에서 보면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 한마디에 저성과자 해고·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요건 완화 등 양대 지침을 근거로 성과연봉제 도입과 저성과자 퇴출을 밀어붙이고 있는 정부가 더 할 말이 없게 됐다. 국가인권위원회마저 지난달 말 “노동부의 양대 지침이 법적구속력이 없음에도 일반적인 법적판단 기준인 양 제시되면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근로기준법 취지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성과연봉제는 노동자에게 반드시 불이익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노조 동의 없이 도입해도 불법은 아니다’라는 노동부의 억지주장이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사실상 파산선고를 받은 셈이다.

성과연봉제가 ‘철밥통’ 문화를 개선하는 데 일정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의사와 간호사까지 돈벌이 의료행위에 동원되고 과다한 실적경쟁으로 금융권 부실위험이 높아지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찬찬히 따져봐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자 동의권을 배제한 일방적인 성과연봉제는 저성과자 해고 압박과 일방적 임금삭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노동계가 원하는 건 파업이 아니라 대화다. 아무리 성과연봉제가 공공부문 효율을 높인다 해도 부작용을 막을 안전장치 마련과 노동자 동의가 선행돼야 한다. 공은 정부에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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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28일 서울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에 분노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는 감정에 시달렸다. 동일한 사고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2013년 1월19일 성수역, 2015년 9월29일 강남역에서도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도중 사망사고가 발생했고, 마찬가지로 이 노동자들도 하청노동자였다.

서울메트로는 지난 강남역 사고에서처럼 이 책임을 하청노동자에게 돌리려고 했지만 시민들이 나서서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하기 시작했고, 상황이 달라졌다. 서울시와 서울메트로, 시민대책위원회가 진상조사단을 꾸렸고, 8월25일 결과보고서를 발표했다. 19살 하청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구조적 원인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지하철 비정규직 사망재해 해결과 안전사회를 위한 시민대책위 진상조사단 회원들이 8월 26일 서울 광진구 구의역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 사고로 숨진 김모 군을 추모하는 위령표 제막식을 마치고 국화를 붙이고 있다. 위령표는 9-4 승강장 스크린도어에 부착하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이곳이 5월 스크린도어 사고가 발생했던 곳임을 알리고 '너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글귀를 적어 김군을 추모한다. 연합뉴스

시민대책위원회 진상조사단 활동을 하면서 외주화가 어떻게 위험을 초래하는지에 주목했다. 서울메트로 하청업체 소속인 이 노동자는 열차 운행시간에 안전관리자 없이 홀로 일했다. 2인1조 작업을 명시한 매뉴얼은 하청노동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서울메트로는 비용절감을 목표로 외주화를 했기 때문에 하청업체의 인력을 최소한으로 산정했다. 스크린도어 부실시공으로 장애발생 건수는 1년에 1만건이 넘는데, 최소 인력인 250여명으로는 홀로 뛰어다녀도 일손이 부족했다. 그래놓고도 서울메트로는 과업지시서에 ‘장애신고 접수 후 1시간 이내 출동, 24시간 이내 수리’를 명시하고, 이를 어기면 업체에 지연배상금을 물렸으니 노동자들은 홀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

스크린도어 장애수리 업무가 외주화되면서 보고체계는 복잡해지고 안전의 책임은 불분명해졌다. 하청노동자들은 관제에 직접 연락을 할 수 없고 반드시 전자운영실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열차 운행시간에 선로 측 작업 승인을 얻으려면 몇 단계를 거쳐야 했다. 구의역 수리를 마치고 1시간 내에 다른 역으로 이동해야 했던 노동자는 이 승인 단계를 생략할 수밖에 없었다. 스크린도어를 안전하게 수리하려면 역무실과 관제, 전자사업소와 긴밀히 협조해야 한다. 그런데 외주화된 후 서울메트로에 남은 스크린도어 담당자는 자재관리와 안전점검 담당자 몇 사람뿐이었고, 현장작업자의 안전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주체는 불분명했다. 외주화는 작업 과정의 협조관계를 파괴하며 하청노동자를 위험에 내몰았다.

서울메트로는 성수역과 강남역 사고에 대해 ‘정비원 부주의’가 사고 원인이라고 명시했다. 사고의 책임을 하청노동자와 하청업체에 떠넘기니, ‘작업자 근무수칙 강화’나 ‘관리감독 강화’가 대책이 된다. 그러나 이 대책은 지켜질 수 없었다. 근무수칙을 지킬 인력이 없고, 외주화를 이유로 관리 인력이 줄어든 상태라 관리감독이나 교육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서울메트로는 강남역 사고 이후 하청업체에 대한 페널티만 강조하고, 하청노동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하청노동자의 노동권을 제약한 용역계약서 때문에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외주화는 필연적으로 위험을 양산한다. 이번 구의역 사고 이후 서울시와 서울메트로도 외주화의 문제를 인식하고, 7개의 안전업무를 직접고용으로 전환했다. 의미 있는 결정이다. 하지만 정규직화 대신 ‘안전업무직’을 신설해 차별적 처우를 유지하고, 인력도 늘리지 않았다. 심지어 하청업체 일부 노동자들을 신규채용에서 탈락시켰다. 안전업무직이라는 차별적 직군으로는 정규직과 온전한 협조관계를 만들기 어렵다. 인력이 더 충원되지 않으면 2인1조 작업도 어렵다. 구의역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동료 중 일부를 합리적 이유 없이 신규채용에서 탈락시키는 것도 문제다. 안전업무직이 아닌 정규직화가 안전을 위한 최선의 정책이며, 지금까지 죽음의 위협 속에서 일해왔던 이들에 대한 사죄이다.

김혜진 |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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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동의 세종호텔에서 자행되고 있는 노동탄압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온 ‘노동개혁’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노동탄압·비정규직 없는 세종호텔만들기 공동투쟁본부’가 어제 기자회견에서 고발한 내용을 보면 노동법을 무시한 양대지침과 일방적 성과연봉제 도입이 정부 기대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왔음을 알 수 있다.

세종호텔은 노동자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2013년부터 친사용자 노조와 단체협약과 취업규칙 변경을 통해 성과연봉제 적용대상을 계장급 이상으로 확대했다. 그 결과 대다수 직원들의 임금이 3년째 동결된 가운데 민주노총 소속 노조 조합원들 임금은 매년 10~30%씩 삭감되고 있다. 한 조합원은 연봉이 2012년 4900만원에서 2016년 2600만원으로 반 토막 났다. 반발하는 노동자는 강제전보 조치하거나 저성과자로 낙인을 찍어 퇴사를 압박하고 있다. 호텔 프런트에서 일하던 임신부를 식당서비스 업무로, 퇴행성 관절염이 있는 사무직 조합원을 객실 청소하는 곳으로 보내면서 업무효율을 높이기 위한 인사로 미화했다. 능력과 성과 위주의 노사문화 정착을 명분으로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저성과자 해고 지침과 성과연봉제 도입이 노동자들의 임금을 쥐어짜고 노조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저성과자 해고와 성과연봉제가 청년들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늘릴 것이라는 기대도 빗나갔다. 세종호텔이 임금체계를 호봉제에서 연봉제로 변경하는 동안 300명 가깝던 정규직은 140명으로 줄었다. 회사의 일방적인 연봉제 도입 등에 반대하다 해고되는 노동자가 속출하고 있는 데다 남은 노동자들도 희망퇴직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 밉보여 저성과자로 찍히면 한 해 최고 30% 연봉 삭감과 함께 퇴직금까지 막대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대규모 인력조정을 가능하게 했다.

문제는 정규직이 담당하던 빈 일자리들이 사내하도급·불법파견·단시간 알바 등 불안정한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데 있다. 실제 한 알바 노동자는 2013년부터 세종호텔 주방에서 3년간 368일가량을 주휴수당도 못 받고 일하다 예고도 없이 해고당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세종호텔 사례는 박근혜 정부 노동개악의 민낯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이래도 ‘노동개악’을 미래세대 운운하며 밀어붙일 염치가 남아 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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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푹 찌는 폭염 속에서 한 줄기 청량수를 기대했던 국민들로서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이야기다. 

이번 경축사는 과거와 달리 남북관계, 통일 문제, 대일본 메시지보다는 국내 정치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임기 말 박근혜 정부의 핵심 열쇠말은 국민과 경제, 국가였다. 6800여자 분량의 경축사 중 국민이란 단어가 20회, 경제가 18회 그리고 국가와 대한민국이 각각 14회, 13회씩 언급됐다. 

경축사를 관통한 것은 위대한 대한민국의 계승과 발전이었다. 자랑스러운 조국을 비하하지 말고,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자긍심을 갖고 국가 발전에 함께 나서자는 호소였다.

대통령의 경축사에서 유신시절과 새마을운동을 떠올린 것은 왜일까. 근검, 성실 그리고 멸사봉공의 정신은 한국 경제를 발전시킨 원동력이었다. 대통령의 말마따나 한국 경제의 성장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모범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이야기를 끝내서는 안된다. 화려한 성장 뒤에 감추어진 빈부격차, 노동인권의 말살 그리고 배금주의는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그림자이다. 성장과 효율의 논리가 공생과 연대의 원리를 억압할 때 국민들의 저항은 예외 없이 터져 나왔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과 7~9월 노동자대투쟁이 그 역사적 징표이다. 대통령의 전근대적 경제 인식은 노동 문제에 그대로 투영된다. 인사만 회전문이 아니라 정책도 돌려막기다. 노사정 합의가 한국노총의 거부로 파탄 났고, 그 결과 노사정위원회는 개점휴업 상태이다. 정부·여당이 추진한 노동4법은 4·13 총선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아 용도 폐기되었다. 하지만 정부는 이에 개의치 않고 노동개혁을 다시 추진한다고 한다. 이름은 노동개혁이지만 실상은 노동개악이다. 개혁의 골갱이는 없어지고 쭉정이만 남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노사 갈등으로 직장폐쇄된 충남 아산의 자동차 공조장치 제조업체인 갑을오토텍 노동자가족들이 1일 경찰벽에 가로막혀 공장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노동개혁의 무산 책임을 노동조합 탓으로 돌리며 점잖게 훈계한다. 

“노동개혁은 미래세대를 위해, 경제 고용절벽을 막기 위해 한시도 미룰 수 없는 국가 생존의 과제이다. 기업주는 어려운 근로자의 형편을 헤아려 일자리를 지키는 데 힘을 쏟고, 대기업 노조를 비롯해 형편이 나은 근로자들은 청년과 비정규직 근로자를 위해 한 걸음 양보하는 공동체 정신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말은 구구절절이 옳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경제 불황과 고용 위기의 상황에서 양보할 집단은 재벌대기업인가, 노동자들인가. 한국 노사관계는 힘의 균형이 깨져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대기업 오너들의 보수 총액을 보면 경제와 기업 위기 상황이 무색해 진다.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은 상반기 보수로만 23억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총 41억원을 받았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18억원, 신영자 이사장은 13억원을 보수로 챙겼다. 이들은 모두 구조조정 기업이거나 검찰수사 대상자들이었다.

현 정부가 추진한 대표적인 노동개혁 정책 중 하나는 임금피크제 도입이었다. 정부와 재계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경우 31만명의 정규직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그런데 올 6월 말 기준 10대 그룹 상장사 직원 수는 지난해 말보다 거꾸로 4753명(0.7%) 줄어들었다. 이것이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노동개혁의 결과이다. 정부의 노동개혁 정책은 처음에는 파견노동 허용 및 비정규직 사용기간 4년 연장에서 이제는 대기업노조의 기득권 타파로 바뀌었다.

노동개혁의 종착점은 성과연봉제 등 임금체계 개편과 상시적 퇴출제 도입이다. 국회에서 법률 통과가 쉽지 않자 법도 무시한 채 가이드라인을 통해 정책을 추진한다. 진정 노사관계를 개혁하고자 한다면 후진적 경제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일자리 창출과 유지를 더 이상 기업에 맡겨 놓지 말고 정부가 앞장서 감독하고 규제해야 한다. 

재벌체제와 수탈적 원·하청관계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한국 경제 공멸의 길이다. 정부 주도의 어설픈 노동개혁보다 더 시급한 것은 경제민주화이다.


노광표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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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제 계약 노동자들이 부당해고될 경우 권리구제를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을 새누리당 장석춘 의원이 발의했다. 이 법안은 계약 기간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부당해고될 경우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해도 별다른 실익이 없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부당한 차별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동안 대법원은 기간제 노동자의 부당해고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원직 복직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부당해고 여부는 아예 판단도 하지 않고 각하 판정을 내리는 불합리한 판례를 고집해왔다. 

통상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면 초심 판정까지 2개월, 재심신청을 거쳐 중앙노동위 판정이 나오기까지 5개월 정도 걸린다. 중앙노동위에서 어렵게 부당해고로 인정받더라도 사용자가 행정소송을 제기하면 최종 확정 판결까지 2년이 넘게 걸린다. 이 때문에 계약직 노동자들은 억울한 해고를 당해도 노동위원회 권리구제를 신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물론 계약이 연장될 것이라는 노동자의 기대가 하나의 권리로 인정되면 권리구제가 가능하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결국 기간제 노동자에게 남는 것은 민사소송밖에 없지만 수개월치 임금을 받기 위해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무모한 일에 가깝다. 반면 정규직 노동자는 노동위원회에 원직 복직 대신 해고 기간 중 임금액에 상당하는 금전보상을 신청할 수 있다. 그동안 비정규 노동자는 재직 중에는 물론 해고 이후에도 불이익을 당하는 이중의 차별에 시달려왔던 것이다.


19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서울 지하철 안전업무 비정규노동자 해고 철회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가 발언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서울시가 지난 16일 비정규직 노동자를 안전업무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비정규 노동자 13명을 해고(고용승계 탈락)한 것에 대해 규탄했다.(출처: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이 종전 판례를 변경하지 않고 있는 것은 유감스럽지만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법안이 뒤늦게나마 제출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미 정부도 2014년 12월 비정규직 종합대책에서 동일한 내용의 개정 필요성을 인정한 바 있다. 비정규직 입장에서는 부당해고로 인정되면 계약 기간이 만료돼 원직 복직이 불가능하더라도 해고 기간 중 임금이나 퇴직금을 받아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파견 확대 등 논란이 많은 노동법안과 달리 장 의원 제출 법안에 야당이 반대할 리 만무하다. 만약 정부가 종전 입장을 뒤집거나 다른 법안과의 연계 처리를 이유로 여당 의원 제출 법안까지 ‘딴지’를 건다면 ‘노동개혁’의 진정성 자체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향후 정부·여당의 태도를 주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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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도 최저임금으로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을 찾아봤다. 올해보다 440원(7.3%) 인상됐으니 편의점에서 초코파이 1개(400원)를 더 살 수 있는 수준이다. 시급으로는 6470원이다. 햄버거 체인점에서 세트메뉴 1개를 주문하면 끝이다. 요란한 광고와 함께 판매되는 세트메뉴 신제품은 7000원 이상이어서 엄두도 낼 수 없다. 치킨세트도 반마리가 8000원 이상이기 때문에 구매할 수 없다. 최저임금은 이처럼 생활의 질을 좌우하는 토대가 된다.

최저임금은 숙박음식점업·서비스직·단순노무직·영세사업체 등에서 일하는 여성·학생·청년·고령자 등의 급여를 법적으로 강제하는 제도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추정한 최저임금 적용 대상 노동자만도 336만명이 넘는다. 최저임금은 국민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지만 결정 과정을 살펴보면 올여름 열대야 이상의 답답함만 쌓이게 된다. 특히 노동계 등 진보진영과 야당의 현안 해결 능력이 얼마나 부실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알바노조 조합원들이 7월 12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에 올라가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하는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준헌 기자

2017년도 최저임금은 2016년 7월16일 토요일 새벽에 기습적으로 결정됐다. 당시 사건 2건이 벌어졌다. 첫번째는 근로자위원 9명 전원이 ‘수정안 제시’를 요구하는 공익위원들의 ‘압박’에 항의하며 회의장에서 퇴장하면서 시작됐다.

동결 입장을 굽히지 않던 사용자위원들은 수정안(시급 6470원)을 제시했고, 기다렸다는 듯이 공익위원들은 이를 최종안으로 가결했다. 두번째는 가결 직전 사용자위원 중 2명의 소상공인 대표가 “최저임금 인상률이 너무 높다”며 퇴장한 사건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간부들이 주축인 근로자위원들은 마지막 수단으로 집단 퇴장까지 하면서 최저임금 1만원 관철을 위해 ‘분투’했으나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 사퇴는 관행화돼 유력한 압력수단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근로자위원이 회의장에서 퇴장·불참한 것은 1988년 이후 9번째다. 근로자위원들은 이후 항의의 뜻으로 사퇴서를 제출했지만 언론에서 주목조차 받지 못했다.

4·13 총선 당시 “최저임금 1만원”을 호기롭게 내걸었던 야당 정치인들은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 아예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전년도 인상률(8.1%)보다 낮은 수준으로 최저임금이 결정되면서 비난 여론이 고조되자 뒤늦게 ‘최저임금 결정을 아예 국회에서 하자’ ‘대통령과 노동부가 독점하는 공익위원 추천을 국회가 하자’는 등의 법률 개정안을 내놓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개정안들은 최저임금 대상 노동자들과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의 뜻을 수렴하는 과정이 생략된 채 발표되는 모양새다. 과연 유일한 대안인지, 개정이 가능한지, 개정될 경우 최저임금 1만원을 실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빠져 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대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단순히 액수의 문제가 아니다. 첫째, 재벌 위주의 경제구조에서 희생되고 있는 노동자들은 물론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의 눈물을 해결하는 ‘희망’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계와 야권은 골목상권 보호, 적정 하도급 단가 보장, 조세·급여정책 연계 등에서부터 522조원(2014년 기준)으로 비대해진 재벌의 사내유보금을 최저임금으로 일부 환원하는 구체적 방안 등을 제시해야 한다. 설득력 있는 대안을 통해 소상공인 대표가 최저임금 인상률이 높다며 퇴장하는 대신 “너무 낮다”는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최저임금은 ‘이기는 싸움’이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경기활성화에 끼치는 선순환 효과는 이미 미국·독일 등 전 세계적으로 검증됐다. 정부 산하인 최저임금위원회조차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크지 않다”고 인정할 정도로 인상론은 대세다. 내년도 대통령 선거에서도 “1만원” 구호만 외치고 말 것인가. 구호를 넘어 이겨보자. 1만원 실현을 위한 설득력 있는 대안을 만들고 새로운 국면을 조성해보자.

한대광 전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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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취업자 수가 4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통계청의 7월 고용동향을 보면 제조업 취업자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6만5000명 줄었다.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조선업에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늘어난 영향이 컸다. 실제 조선업체가 많은 경남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이후 실업률이 가장 높았다. 수출 부진이 사상 최장인 19개월 연속 이어지면서 철강, 전자 업종도 재고가 쌓이는 등 경기가 좋지 않다. 한국 경제의 뿌리산업인 제조업이 흔들리는 것이다.

7월 28일 오전 울산시 동구 서부동 미포회관에서 열린 조선업 희망센터 개소식에서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용의 질은 계속 나빠지고 있다. 7월 전체 취업자는 1년 전에 비해 29만8000명 늘었다. 제조업에서 감소한 대신 사업·개인·공공서비스 취업자는 33만7000명, 도소매·숙박음식은 8만7000명 각각 증가했다.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는 사람은 줄었지만,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데다 고용 안정성마저 떨어지는 일자리가 늘었다는 뜻이다. 또 주당 45시간 이상 취업자는 34만명 줄고, 45시간 미만은 638만명 늘었다. 취업시간이 감소한 것은 공장 가동이나 식당 영업시간이 줄었기 때문이다. 주당 평균 취업시간은 지난해 4월 이후 계속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취업자의 소득도 감소 또는 정체에 직면했다.

한국 제조업의 고용창출 효과는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 전체 취업자 중 제조업 비중은 1989년 27.8%에서 2008년 16%대로 떨어진 뒤 지금까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처럼 하면 제조업이 발전해도 고용은 늘지 않는다. 정부는 대기업에 각종 혜택을 주면서 신규 고용을 늘릴 것을 요청하지만, 방향이 잘못됐다. 기존 인력마저 줄이고 있는 제조업이 인력을 확충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제조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 기업은 신기술 개발에 힘쓰고, 정부는 지원해야 한다. 세계 1위였던 한국 조선업이 쇠퇴한 것은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정보통신기술(ICT) 중심의 4차 산업혁명은 ICT를 접목한 제조업의 혁신을 의미한다. 장기적으로는 고용유발 효과가 큰 서비스산업 육성 등 산업구조 재편이 필요하다.

당장 하반기에도 구조조정과 내수침체 지속,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등의 영향으로 제조업은 침체를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불황이 지속될수록 어려움이 커지는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조선업에서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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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에게 생활임금보다 적게 지급하면 대가를 치러야 할 것(Underpay your staff, and you will pay the price).”



영국 보수당 정부 수장인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말이다. 시간당 6.5파운드이던 최저임금을 7.2파운드(1만2000원)로 10.6% 인상했으며, 이 금액은 2020년까지 9파운드(1만5000원)로 올릴 계획이다. 캐머런 총리가 공언한 것처럼 최저임금(생활임금)을 위반할 경우 처벌 수위도 높아진다. 위반 시 물리는 벌금을 최대 2만파운드(3350만원)로 2배 늘리고, 위반 사업주는 최대 15년 동안 사업주 대표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밝혔다.

그뿐이 아니다. 영국은 최근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기존 최저임금 제도를 ‘생활임금’으로 이름을 바꾸고, 3인 가구가 최저임금으로도 생활이 가능하고 주택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3인 가구는 기본적으로 1명은 전일제 노동자, 1명은 시간제 노동자, 1명은 부양해야 할 아이로 설계되며, 최저임금이 시간당 9파운드로 높아지는 시점에 낮은 가격으로 주택을 공급해 3인 가구가 구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본래 ‘생활임금’이라는 구상은 영국에서 전통적으로 노동당이 주장해온 것으로, 보수당은 “최저임금이 오르면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해왔다. 그러나 보수당이 정권을 잡아 행정을 펼쳐보니, 최저임금과 일자리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다는 점을 직접 경험하게 된 것. 그래서 애초 노동당의 제안이었던 생활임금 제도를 오히려 보수당 정부가 앞장서서 실현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한국에 최저임금 제도가 도입된 것은 1988년, 햇수로 벌써 30년이 되어간다. 강산이 세 번은 변했을 이 기간 동안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최저임금심의위가 매년 ‘비혼단신 노동자 생계비’를 참조해 최저임금 심의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3~4인 가구가 보통인 현실에서 혼자 사는 노동자의 생계비를 주로 들여다보는 관행은, 영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이제 3~4인 가구의 생계를 기준으로 심의하도록 바뀌어야 한다.

그동안 최저임금 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가 작년에 시간당 8.5유로(1만300원)의 최저임금을 도입한 독일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일자리가 줄어든다고요? 일면 맞는 말입니다. 실제로 나쁜 일자리가 줄어들거든요. 대신 최저임금을 도입하니 좋은 일자리가 훨씬 늘어났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을 칭송하는 관변 학자들은 독일의 ‘하르츠 개혁’을 마치 모범인 것처럼 떠들지만, 실제 독일에서는 ‘미니잡(Mini Job)’이라는 이름으로 저임금 나쁜 일자리만 양산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시간당 1만300원의 최저임금 제도가 도입되자, 지난 1년 동안 미니잡을 비롯한 질 나쁜 일자리가 20만800개 줄어든 반면, 사회보험 적용이 되는 괜찮은 일자리가 71만3000개 늘어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독일 정부는 8.5유로의 최저임금을 위반한 사업주에게 최대 6억원의 벌금을 물리도록 하고 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소상공인과 중소영세상인들이 몰락하고 수십만개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도 설 땅이 없다. 실제 영세상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최저임금이 아니라 임대료 인상, 재벌 프랜차이즈의 수수료 인상, 대형 유통업체들의 진출 때문에 힘들다고 하는데 말이다. 저임금 노동자, 영세상인들 모두 재벌들로부터 피해를 입고 있는 공동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사용자단체들은 올해도 변함없이 “최저임금을 업종별 차등 적용해야 한다”며 노골적으로 최저임금 삭감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업종은 물론이고 직무별로 임금을 책정하는 직무급제가 정착되어 있는 독일에서도 최저임금을 도입할 때 지역이나 업종별 구분 없이 전국적·일률적으로 적용되도록 설계한 바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영국, 독일 등 보수적인 정부들의 움직임이 이러한데, 한국의 박근혜 정부는 어떠한가. 지난해에는 경제부총리가 “최저임금을 빠른 속도로 올려야 한다”고 해놓고 고작 시간당 450원 인상으로 실망시켰는데, 올해엔 아예 아무런 언급조차 없다. 새누리당은 총선 공약으로 최저임금 9000원이라는 공약을 냈으나, 내용을 뜯어보면 세제 혜택을 통해 9000원의 효과를 내겠다는 것이다. 그것조차 당장이 아니고 20대 국회가 끝나는 2020년에나 말이다.

경총을 비롯한 사용자단체들은 어떠한가. 작년에 회원사의 임금협상과 관련해 1.6% 인상이라는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던 경총은, 올해엔 아예 임금 동결을 내놓았다. 1.6%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지난해엔 최저임금 동결안을 최초 요구안으로 내놓았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올해엔 최저임금 삭감안을 들고나올지도 모르겠다. 수백조원의 사내유보금을 쌓아놓은 재벌 대기업, 수십억~수백억원의 연봉을 받는 CEO들의 사회적 책임에는 입을 닫아놓고 말이다.

“노동자에게 생활임금 이하로 지급하면서 살아남고자 하는 기업은 이 나라에서 지속할 권리를 가질 수 없다.” 노동계의 주장이 아니다. 대공황 시기 미국에 최저임금 제도를 도입했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말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현재 시간당 7.25달러인 연방 최저임금을 10.10달러(1만1770원)로 올리는 텐-텐 법안을 내놓았다. 인상률로만 보면 40%에 달한다. 말끝마다 한·미동맹을 외치는 한국의 보수 세력들은, 왜 이런 미국의 움직임에는 눈을 감으려 할까.

최저임금 인상이 노동자들의 우울증 치료에도 특효약임이 입증되고 있다. 최근 영국 옥스퍼드대학을 비롯한 4개 대학 연구진이 최저임금제 도입으로 임금이 오른 사람들의 정신건강이 항우울제를 복용한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크게 좋아졌다는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가 없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최저임금 1만원이 실현된다고 생각해보자.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지지 않는가.




오민규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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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은 ‘일하는 기계’와 다를 바 없었다.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임금은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을 견뎌낸 대가였다. 영국 의회가 1833년 공장법(Factory Act)을 제정해 미성년 노동자의 근로시간을 하루 16시간에서 9시간으로 제한한 것은 참혹했던 노동여건의 실상을 방증한다.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각성이 일어난 곳은 산업혁명의 발원지인 영국이 아닌 호주에서였다. 멜버른의 한 시민단체는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며 최저임금 법제화에 나섰다. 뉴질랜드는 1894년 ‘산업조정 중재법’을 통해 최저임금제를 처음 도입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1928년 조약으로 채택한 이후 최저임금제는 전 세계 120여개국에서 다양한 형태로 시행되고 있다.

최저임금제가 도입된 지 100년이 넘었지만 논쟁의 중심에서 비켜난 적은 거의 없었다. 시비를 거는 쪽은 고용주와 시장만능주의에 매몰된 경제학자들이었다. 그들의 논리는 단순했다. 저임금 노동자를 돕기 위한 최저임금이 되레 실업을 유발하는 칼날로 되돌아올 것이란 얘기다. ‘공공선택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경제학자 제임스 뷰캐넌은 최저임금 옹호자를 ‘매춘부’에 비유하며 힐난했다. ‘시카고학파의 대부’로 불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게리 베커도 “정치인이 마법사가 아닌 다음에야 최저임금제를 도입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최저임금은 노동시장을 교란시키지 않았다. 임금이 오른 만큼 노동자들의 생산이 증가하니 기업 입장에선 손해 볼 것도, 일자리를 줄일 이유도 없었다. 저임금과 낮은 생산성이란 악순환의 고리를 최저임금제가 끊은 셈이다.


스위스 제네바의 플랭팔래 광장에서 기본소득 도입 찬성론자들이 초대형 포스터를 설치하고 있는 모습_AP연합뉴스


지난주 스위스에서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내용을 헌법에 담을지를 묻는 국민투표가 치러졌다. 아직까지 국민투표로 기본소득 도입 여부를 결정한 사례가 없었기에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76.9%의 반대로 부결되긴 했지만 스위스의 기본소득은 최저임금에 견줄 수 있을 정도로 상당한 파장과 논쟁을 불렀다. ‘일하는’ 노동자들의 착취를 막기 위한 최저임금과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매달 일정액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은 대척점에 서 있는 제도로 간주될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의 생계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라는 근본 취지는 같다. 스위스의 국민투표는 헌법에 기본소득 개념을 명시할 것인가를 묻는 것이었다. 기본소득 금액과 재원조달 방안은 법률로 정하기로 돼 있었다. “성인에겐 매달 2500스위스프랑(약 300만원), 18세 이하 미성년자에겐 650스위스프랑(약 78만원)을 지급한다”는 것은 헌법 개정안 발의를 추진한 ‘기본소득스위스(BIS)’가 제시한 하나의 안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쟁은 부자 나라의 ‘퍼주기식 복지 포퓰리즘’에 방점이 찍혔다. 기본소득 도입 취지보다는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매달 300만원 지급’만 부각된 탓이다. 스위스에서 300만원은 최저생계비(2219스위스프랑·약 268만원)를 약간 웃도는 수준인데도 ‘기본소득=나라 재정을 파탄 낼 제도’라는 선입견을 갖게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뱀에게 먹잇감으로 던져주기 위해 개구리를 더 살찌우는 꼴”(파이낸셜타임스), “기본소득은 중앙은행이 시중에 뿌리는 ‘헬리콥터 머니’”(월스트리트저널)라는 비판과 조롱이 이어졌다. 국민투표가 부결된 뒤 ‘기본소득스위스’는 ‘23% 찬성’이란 현수막을 내걸고 “이제 첫걸음을 뗐다”며 기본소득 도입 필요성을 공론화한 것에 큰 의미를 뒀다. 기본소득은 소득불평등 심화와 성장잠재력 약화, 로봇과 인공지능(AI) 등 기술발전에 따른 일자리 감소로 출구를 잃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이라는 공감대를 확산시켰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인식의 깊이는 얕은 편이다. 지난 총선 기간 녹색당은 모든 시민에게 2020년부터 월 4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공약을 내놨다. 노동당도 18세 이상에게는 월 30만원, 6세 이상 18세 미만에게는 월 2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공약을 제시했다. 하지만 두 소수정당의 기본소득 공약은 표를 얻기 위한 ‘틈새 공약’으로 치부됐다. 자연스레 기본소득은 유권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총선 뒤엔 ‘잊혀진 공약’이 됐다.

최저임금과 기본소득이 ‘병든’ 자본주의를 치유하는 ‘묘약’은 아니다. 사람보다 시장논리를 앞세워온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한 ‘최소한의 도덕적 안전장치’일 따름이다. 국가의 정책과 제도는 시장논리가 아닌 사람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 그래야 ‘악마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인간의 얼굴’로 되돌려 놓을 수 있다.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명제는 아직도 유효하다.



박구재 기획·문화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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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한 건축업자가 우즈베키스탄 출신 이주노동자 4명에게 밀린 급여 440만원을 동전 2만2802개로 지급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업자는 은행 6곳을 돌면서 동전을 준비했고 100원짜리 1만7505개, 500원짜리 5297개를 자루에 담아 컨테이너 사무실 바닥에 쏟아부었다. 이주노동자들은 동전을 합숙소인 원룸으로 들고 가 분류작업을 한 뒤 은행에서 환전하려 했다. 그러나 ‘동전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다. 결국 한국은행 경남본부에 가서야 5만원권 등 지폐로 간신히 바꿀 수 있었다고 하니 이들이 타국 땅에서 느꼈을 모멸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업자는 자신도 공사대금을 제때 받지 못했고 이주노동자들이 급여가 밀렸다는 이유로 출근을 안해 홧김에 동전으로 지급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명백한 ‘갑질’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주노동자들은 “우리나라에선 이런 일 없다. 이런 업주는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인종차별 철폐의 날> 행사에 참석한 한 이주노동자가 '인종차별 금지'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_경향DB


임금을 동전으로 지급하는 것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수만개 동전으로 지불했다면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다. 법 준수 이전에 인간존중과 인권에 관한 문제다.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인권과 노동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은 국제적 공통규범이다. 어쩌면 이번 사건은 특정 개인의 일탈 행위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주노동자에 대한 멸시와 차별이 드러난 것일지 모른다. 2004년 외국인고용허가제가 시행된 후 이주노동자들이 밀려들면서 외국인 노동자는 60만명을 넘고 있다. 상당수가 한국인이 기피하는 열악한 환경과 근로조건 속에서 일하고 있으며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을 메워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선 노동 현장에서는 아직도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욕설과 폭행, 임금체불이 비일비재하다.

한국을 기회의 땅으로 여기고 찾아온 이주노동자들을 사회적 약자라 해서 단순한 경제적 도구로만 여겨선 안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체불된 임금의 동전지급을 법으로 금지하고 지폐로 지급하거나 본인 명의의 계좌로 입금하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외국인 노동자에 합당한 대우를 하지 않는 악덕 기업주도 문제지만 제도적 장치 마련에 소홀한 당국도 문제다. 경제발전을 위한 동반자로 이주노동자를 인식해야 하며 그들의 ‘코리안 드림’을 짓밟는 악의적 인권 유린이 재발하도록 방치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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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청년노동자가 안전교육 없이 방사선 비파괴검사 현장에 투입돼 방사선에 피폭되는 피해를 입었는데도 업체에서 열흘이나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피해 노동자는 입사한 지 한 달도 안된 20대인데다 2인1조 안전작업 규정도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하철 2호선 스크린도어 산재사망 사고를 연상시킨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조사 결과 피해 노동자는 지난해 12월 경기 평택시 공사현장에 투입되면서 필수 장비인 방사선측정기도 지급받지 못했다. 방사성동위원소를 사용해 설비의 균열을 점검하는 위험작업을 하면서 안전관리 규정이 제대로 지켜진 게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피해 노동자가 방사선 피폭으로 붉은 반점이 나타났는데도 회사 측은 열흘씩이나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감독기관에 신고도 안 했다는 점이다. 발주처나 원청이 하청업체에 위험작업을 저가에 떠넘기고 하도급업체는 한 푼이라도 이익을 남기기 위해 안전교육이나 안전설비 없이 노동자들을 위험작업에 투입하면서 요행수만 바라고 있는 셈이다. 지난 1일 4명이 사망한 남양주시 지하철 공사 폭발사고도 마찬가지다. 일용직 노동자들이 지하에서 고압의 LP가스통을 이용해 용접작업을 했는데도 원청인 포스코는 물론 하도급업체도 아무런 안전교육을 하지 않았고 환풍기·가스경보기 등 기본적인 안전설비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청년 노동자중 최저임금 이하 열정페이 비중, 최저임금 상승률. 경제 성장률 _경향DB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도 속수무책이다. 노동청은 올 들어 5명의 노동자가 숨진 현대중공업에 30여명을 투입해 특별근로감독을 했지만 그로부터 채 열흘도 안돼 계열사 사내하청 노동자 2명이 추락사고로 숨졌다. 삼성중공업에서도 최근 한 달 새 2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절단 숫돌에 허벅지가 잘리거나 고소작업대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원청업체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감독관의 눈을 속일 수 있고 몇천만원 벌금만 내면 그만인 상황에서 근로감독관을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 결국 영국의 ‘기업살인법’처럼 산재를 중대범죄로 처벌하고 원청업체에 막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는 법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국회에는 기업살인법 수준은 아니지만 산재사망 시 원·하청업주에게 동일하게 최고 징역 7년의 형사책임을 묻는 법안이 제출돼 있다. 정부·여당은 ‘파견법 통과 없이 다른 노동법도 안된다’고 고집부리지 말고 우선 이 법안이라도 통과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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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계 빅3 중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제출한 구조조정안이 1일 주거래은행에서 잠정승인됨에 따라 그동안 물밑에서만 논의되던 대규모 집단해고가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구조조정안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 본사에서만 3000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도 조만간 제출할 자구계획안에 강도 높은 인력조정안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인 경기불황과 수주물량 하락, 과잉설비 해소 차원에서 조선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문제는 기업의 구조조정 하면 거의 공식처럼 대규모 인력조정을 당연시하게 받아들이는 데 있다.

현대중공업의 경우를 보자. 과연 전체 직원의 10%에 해당하는 인원을 감축시킬 만큼 심각한 경영위기에 처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현대중공업은 2014년과 2015년 총 4조7896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으나 2004년부터 10년간 그 5배 규모인 23조4329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부채비율도 134%로 비교적 양호한 편이고 사내유보금만 11조원에 달한다. 반면 2만7000여명 직원들의 연간 급여액은 2조1000억원으로 인력 10%를 감원한다 해도 인건비 절감액은 2000억원 남짓에 불과하다. 이 정도 인건비 절감으로 재무구조 개선과 경쟁력 확보에 도움을 줄지 의문이다. 당장 눈앞의 비용절감에 급급해 장기적인 인력수요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대규모 감원을 할 경우 오히려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 본사 정문 앞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직원들이 회사로 들어가고 있다 _경향DB



특히 조선업종은 숙련된 기술인력 확보가 핵심 경쟁력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인력조정은 최대한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일본은 좋은 반면교사라 할 수 있다. 1970년대까지 세계 조선산업 1위였던 일본은 1980년대 정부 주도로 대규모 인력조정을 해 정작 2000년대 조선업 활황 국면에서 마땅한 숙련인력을 구하지 못해 한국과 중국에 1·2위 자리를 넘겨준 바 있다. 조선업을 사양산업이라고 성급하게 단정짓고 무차별 집단해고를 단행할 경우 자칫 일본의 전철을 밟을 위험이 있는 것이다.

노동계에서는 조선 빅3의 대규모 인력조정이 현 정부의 파견확대 정책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의도가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제기하고 있다. 빅3가 고령의 숙련인력을 구조조정을 통해 밀어낸 뒤 파견직으로 돌려막으려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조선업은 원청(4만명)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하청업체의 비정규직(16만명)에 생산을 의존해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조선업의 지속적인 경쟁력 확보를 위해 묻지마 구조조정은 재고돼야 한다. 인력조정은 구조조정의 목표가 아니라 최후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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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상 정식명칭보다 직장인들에게 ‘사규’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노동규범이 있다. 취업규칙이 바로 그것이다. 학교에 가면 교칙이 있고 교도소에 가면 재소자가 준수해야 할 수칙이 있듯이 직장인들이 지켜야 할 규칙이 취업규칙인 셈이다.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에 업무시작과 종료시간, 상벌, 징계조항 등 직장 내 규율과 임금,퇴직금 등 근로조건과 관련한 핵심적 사항을 의무적으로 기재되게 돼 있다. 노조가 있는 회사엔 단체협약이 있지만 조합가입률이 10%에 불과한 우리나라에서 취업규칙이 근로계약과 함께 노동조건 결정에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이렇게 직장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취업규칙이 근로기준법상 사용자의 판단에 따라 일방적으로 제정되고 변경될 수 있도록 돼 있는데 있다. 근로계약이 노동자와 사용자 양 당사자의 의사의 합치에 의해 결정되고 단체협약이 노사합의에 이뤄지는 반면 왜 취업규칙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해도 노동규범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일까.

더구나 박근혜정부가 노동자에 대한 해고를 자유롭게 하고 노동자가 반대하는 성과연봉제를 이사회결의만으로 도입이 가능하다는 상황에서 과연 취업규칙의 제정·변경권을 현행처럼 사용자에만 인정하는 것은 문제가 없는 것일까.

서울대 법학연구소와 서울대 노동법연구회는 지난21일 근대법학교육 100주년 기념관에서 춘계공동학술대회를 열고 취업규칙을 대체하는 새로운 노동규범을 모색했다.

서울대 법학연구소와 서울대 노동법연구회는 지난21일 근대법학교육 100주년 기념관에서 춘계공동학술대회를 열고 취업규칙을 대체하는 새로운 노동규범을 모색했다.

지난21일 서울대 근대법학교육 100주년 기념관에서는 바로 이 같은 문제의식에 기초해 취업규칙의 존폐를 논의하기 위한 학술대회가 열렸다. 서울대법학연구소와 서울대노동법연구회 공동주최로 열린 학술대회에는 서울대 이철수 교수를 비롯해 각 대학의 노동법을 전공하는 교수들과 변호사, 노무사 노동법 전문가들과 로스쿨 학생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사회를 본 동아대 송강직 교수는 “취업규칙의 장례식을 지켜보기 위해 와주신 많은 문상객들에게 감사드린다”며 뼈있는 농담으로 행사를 시작했다.

행사 명칭 <노동법의 신화1:취업규칙>이 말해주듯이 이날 참석자들은 단순히 취업규칙의 합리적인 적용과 개선을 뛰어넘는 문제의식을 꺼내 놨다. 사용자가 단독으로 직장 내 복무규율과 근로조건을 정할 수 있도록 된 취업규칙을 근로기준법4조 ‘노사대등결정주의’에 따라 노동자의 참여가 보장되는 합리적 규범으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이후 취업규칙을 당연한 규범으로 받아들여 온 통념에 균열을 낼 필요가 있었다.

실제로 노조나 노동자의 동의 없이 사용자가 정하고 변경할 수 있는 취업규칙이 노동규범으로 인정되고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독일에서 19세기말 비스마르크 수상 집권시절과 나치시대에 취업규칙이 존재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근로자대표위원회 참여가 보장되는 사업장협정으로 대체가 이뤄졌다.

이화여대 박귀천 교수는 “독일에서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취업규칙을 작성할 수 있다는 관념은 자본주의와 산업화발전 초기단계인 19세기 비스마르크 제국시절과 법치주의·민주주의 자체가 사라졌던 나치정권시대에만 공식적으로 채택되었을 뿐”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1933년 나치정권이 노조활동을 금지하면서 제정한 <노동규칙법>이 현행 우리나라 취업규칙과 유사한 점이 많이 발견돼 오싹했다”는 말도 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나치시대 <노동규칙법>은 사업주는 사업의 지도자로서 일하고 노동자들은 신의공동체로서 일해야 한다는 믿음을 기초로 하고 있다. 1940년대 태평양전쟁 당시 노동자는 근로를 통해 충성을 해야 한다는 일제의 ‘황국근로관’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가 일본을 통해 독일법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취업규칙관련 규정은 멀리는 19세기 독일의 영업법, 가까이는 나치시대 노동법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시립대 신권철 교수도 “취업규칙은 사용자가 사업장의 가장으로서 근로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전 근대적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취업규칙은 노동자는 종업원으로서 사용자를 어버이처럼 믿고 복종하고 사용자는 노동자를 자식처럼 보호해야 한다는 전 근대적 계약을 기초로 만들어진 만큼 시대 변화상에 맞게 새로운 규범으로 대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실제 이날 토론회에서 가장 많이 논의된 대목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취업규칙이 과연 근로기준법 4조 ‘노동조건 대등결정’원칙과 양립할 수 있으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범으로 존재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신 교수는 “취업규칙은 복무규율과 근로조건을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것이어서 본질적으로 근로자 보호제도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규범을 만드는 권한은 어느 공동체에서나 필요하지만 취업규칙이 그 적용을 받는 노동자에게 효력이 있는 규범이 되고자 한다면 노동자 동의나 대표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법원이 의견청취나 신고 등 절차를 지키지 않은 취업규칙도 효력을 인정함으로써 이사회결의나 회사 내부결제문서나 지침도 사용자가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사업장내 법규범으로 작용하고 있고 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지적이다.

성균관대 김홍영 교수도 “근로관계의 내용을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하고 노동자들은 이에 따라야만 한다면 노동자는 사용자가 시키는 대로 근로를 제공하는 노예와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근대이후 인간관계는 ‘신분에서 계약’으로 설명하듯이 대등한 당사자의 자유의사에 따른 계약에 의해 규율되도록 변해왔다”며“취업규칙을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하고 변경한다는 점은 대등결정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들은 최근 정부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요건 완화 방침을 밝힌데 이어 공공기관들이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들어 노사합의 없이 이사회결의만으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밀어붙이고 있는데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신 교수는 “1977년 대법판례와 1989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시 과반수노조 또는 근로자 과반수 동의를 받도록 돼 있지만 유불리 판단기준이 대단히 애매 모호하다”며“법원이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끌고 와 문제 해결을 시도하고 있지만 ‘불이익’보다 사회통념상 합리성 기준이 더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원이 모호한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들어 노동자 동의 없이도 취업규칙 변경이 가능하다는 시그널을 사용자에게 보낼 경우 취업규칙 제정·변경에 있어 독점적 권한을 사용자에게 되돌려주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동부가 제시한 ‘이현령비현령’식의 사회통념상 합리성 요건을 법원이 허용하게 될 경우 취업규칙은 1977년 대법판례와 1989년 근로기준법 개정이전의 ‘사용자에 의한 사용자를 위한 규범’으로 퇴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성균관대 김 교수도 “판례가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인정한 사례는 극히 드물긴 하지만 고용노동부가 지침을 통해 임금피크제등 그 인정기준을 넓게 인정하겠다고 선언했다”며“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인정하는 판례 법리는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에 대해 노사 대등결정의 원칙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북대 김성진 교수는“근로기준법 4조의 노동조건 대등결정의 원칙에 대해 상당수 학자들이 훈시규정만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효력규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즉 노동조건의 불이익한 변경뿐 아니라 불리하지 않은 취업규칙의 제·개정에 있어서도 사용자가 노동자 의견청취를 하지 않은 경우는 무효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용자에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전근대적 취업규칙을 근로기준법 4조 노사 대등결정 원칙에 충실한 규범으로 대체하기 위해 어떤 방안들이 있을까. 그동안 국내에서는 취업규칙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사업장의 단체협약을 전체종업원에게 확장하는 방안(노동연구원 박제성 박사), 취업규칙을 노사합의에 기반한 협정으로 전환하는 방안(한양대 강성태 교수),종업원위원회가 사용자와 사업장협정을 체결하도록 하는 방안(서울대 이철수 교수)등이 제기돼 왔다. 성균관대 김홍영 교수는 이상과 같은 논의를 바탕으로 노사협의회와 별도의 근로자위원회를 만들어 근로자위원들이 사용자와 사업장협정을 체결하는 권한을 부여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마은혁 광주지법 부장판사는 “정부가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는 건 문제지만 그렇다고 취업규칙이 근로자 보호규범으로 가치가 없다는 지적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취업규칙이 일단 작성되어 주지되면 근로자뿐 아니라 사용자도 구속하게 되어 근로자를 사용자로부터 부터 보호하고 근로자들 사이의 차별처우를 감소시키는 기능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취업규칙을 무조건 폐지하기보다 노동자보호규범이라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 문제점을 보완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판사 역시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취업규칙은 법규범으로서 내재적 정당성이 없기 때문에 취업규칙을 넘어서는 새로운 사업장규범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공감을 표시했다.

특히 이날 토론회에서 나온 대안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취업규칙을 결정하던 방식에서 근로자대표가 사용자와 함께 사업 내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사업장 협정을 체결하는 방향으로 전환한 독일의 경험이 참고가 됐다.

이화여대 박 교수는 “독일에서는 단체협약과 함께 근로자대표위원회를 통한 사업장협정이라는 이원적 시스템에 의한 근로결정체계가 확립·발전돼 왔다”며“소정의 절차를 통해 선출된 근로자위원들의 권한과 활동은 사업장내 민주주의 실현에서도 중요한 의무를 갖는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이 주는 시사점은 국가와 사용자가 노동자를 단지 보호와 관리통제 대상이 아니라 공평한 권리와 책임의 주체로 인정하는 것”이라며“이제 우리는 19세기 노동법의 시절로 돌아갈 것인가 소통과 협력을 토대로 민주적인 21세기 노동법으로 발전시킬 것인가 분기점에 와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강진구 기자·공인노무사 kangj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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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보긴 하겠지만 아마 힘들 겁니다.” “중요한 문제이긴 한데요. 어쩌죠? 어렵게 취재하시는데 도움이 못 되어 죄송합니다.” “노동조합 있는 사업장에선 그런 사례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노조가 없는 경우엔 사례를 증언해줄 노동자 찾기가 어렵고요.”

최근 민주노총이 최저임금 위반 관련 중요한 사례 2가지를 조사해 폭로한 바 있다. 하나는 전국 7개 주요 공단 노동자 1291명이 참여한 설문조사 결과인데, 법정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비율이 무려 24.5%로 공단 노동자 4명 중 1명이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나머지 하나는 공공부문 최저임금 위반 사례인데, 전국의 지방자치단체 예산(세출사업명세서)에 나타난 비정규직 인건비 편성내역을 조사한 바 있다. 세종과 제주를 제외한 전국 241개의 광역·기초단체 예산을 분석한 결과, 무려 112개 자치단체에서 최저임금을 위반한 예산 설계가 이뤄지고 있었다. 거의 절반(46.4%)의 자치단체가 예산을 편성할 때 올해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은 것이다.

2가지 사례 모두 충격적인 조사 결과로, 많은 언론사들의 뜨거운 관심과 취재가 이어졌다.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 인터뷰가 가능할까요?” 기자들 입장에선 당연히 이런 관심을 갖게 마련이지만, 취재 협조를 해야 할 내 입장에선 난감하기 그지없다. 내가 소개시켜줄 수 있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이고, 최소한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서는 최저임금 위반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노동조합으로 조직하는 사업을 하다보면 최저임금 위반 사례를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런 문제로 우리를 찾아오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노동조합 결성에 나서게 되고, 노조가 설립되면 최저임금 위반은 모두 시정된다.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 대부분은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에 몰려 있기 마련이다. 설령 그런 노동자를 알고 있다손 치더라도 기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된다.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지 못하다보니 최저임금 위반을 얘기하는 순간 사업주로부터 해고를 비롯한 갖은 탄압의 대상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기자들에게 취재 협조를 제공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최근 구조조정 논란이 뜨거운 조선업 문제이다. 아무래도 비정규직 관련 일을 하고 있다보니, 상당수의 문의는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를 직접 만나고 싶다는 요청이다. 하지만 수십만명에 달하는 규모에 비해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조선소 사내하청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다행히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2003년 노조를 결성해 폐업과 집단해고 등 숱한 탄압을 받으면서도 10년 이상 활동을 지속해온 터라 그쪽을 소개해주곤 하지만, 많은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해고 사례 역시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들은 투쟁을 통해 막아내는 경우가 많아 기자들이 원하는 사례를 찾기 어렵기도 하다.

“최저임금 위반이 이렇게도 많은데 대체 이를 막기 위한 대책은 뭘까요?” “1년에 수천명씩 잘려나가는 조선소 사내하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 뭐라고 보시나요?”

당연히 정부가 의지를 갖고 근로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그동안 경영을 잘못 한 재벌 총수 일가들로 하여금 사내하청 고용 유지를 위한 비용을 부담하도록 해야 하며, 정부 차원에서 특단의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렇게 답을 해주곤 하지만, 기자들도 알고 답변하는 나도 잘 알고 있다. 정부와 재벌 총수들이 자발적으로 그런 일을 해주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 발상을 좀 바꾸어 봤으면 한다. 최저임금 위반을 바로잡는 일,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고용을 유지하는 길, 어쩌면 답은 간단한 곳에 있다. 노동조합이 결성되면 최저임금 위반은 쉽게 시정된다.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동료들과 함께 투쟁하는 방법을 선택하며 고용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구조조정에 맞서는 가장 확실한 대안은 바로 노동조합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최저임금 위반에 분개하고 사내하청 대량 해고에 함께 마음 아파하는 기자 여러분에게 제안하고 싶다. 저임금에 신음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 해고되어 가족의 생계가 막막해진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대로 이런 얘기들을 소개하고 다뤄주면 어떨지 말이다. 법정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던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해 불법을 바로잡은 사례들, 협력업체 폐업이 벌어져도 노동조합으로 단결해 고용을 유지한 사례들, 그런 사례라면 정말 무궁무진하게 취재에 협조할 수 있으니 말이다.

언론이 그런 얘기를 해줄 때 민주노조운동 역시 이들의 조직화를 위한 사업에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다. 민주노총이 정부에 최저임금 위반 근절 대책, 조선소 사내하청 고용 안정 대책을 촉구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직접 나서 얘기할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노동조합으로 조직하는 것이야말로 정부와 재벌을 압박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대안이 되어줄 것이다.

최저임금 위반이나 사내하청 고용불안 문제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노동자들의 최소한 권리 역시 노동조합이 있어야만 지켜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근로계약서는 서면으로 작성해 노동자와 사업주가 각각 1통씩 보관하고 있는가? 취업규칙은 사업장 내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게시되어 있는가?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해 사업주가 취해야 할 여러 조치들은 제대로 행해지고 있는가?

노동조합 결성과 가입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다. ‘내 삶을 지키는 최선의 선택, 노동조합 가입’, 이런 헤드라인을 보게 될 날을 기대해본다. 구조조정과 저임금, 1000만 비정규직 시대에 신음하는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한 길이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니.


오민규 ㅣ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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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감각 중 시각은 다른 감각들에 비해 비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정보를 뇌에 제공하고 우리 몸을 적절히 반응하게 해준다. 그 때문인지 빛은 생명과 진리를, 어둠은 공포와 불안을 상징한다. 19세기 초 독일의 시인 안톤 슈낙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햇빛이 떨어지는 장면을 통해 슬픔을 형상화하고 있다. 시인에게 낮이 어둠으로 바뀌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슈낙의 시에 나오는 어둠에 대한 불안과 공포로부터 현대인이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전기의 힘이다. 전기는 인위적으로 밤을 줄이고 낮시간을 늘렸다. 이제 전기는 인간에게 호흡과 맥박처럼 잠시도 멈춰선 안될 존재가 되었다. 매년 4월22일 지구의날이 되면 192개국이 오후 8시부터 일제히 소등행사를 하고 있지만 그 시간은 고작 10분이다.

이처럼 전기 흐름은 잠시도 멈춰서는 안된다는 믿음 때문에 매일 죽음을 각오하고 전봇대에 올라야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경향신문(5월20일자 1면 보도)에 따르면 전기노동자들은 2001년부터 ‘활선(活線)공법’으로 불리는 신공법에 따라 작업을 하고 있다. 과거에는 전기가 전봇대에 흐르지 않게 차단한 후 노후전선을 교체했지만 지금은 전원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작업을 한다. 정전의 피해를 줄이고 작업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전기 노동자들이 전봇대에서 전선을 고무담요 등으로 감싼 채 노후전선 교체작업을 하고 있다_경향DB

한전은 작업효율을 높이기 위해 절연 고무장갑을 끼고 핫 스틱으로 전선을 만지는 간접 활선이 아니라 직접 활선공법을 채택하고 있다.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정도보다 500배나 강한 2만2900V의 전류가 흐르는 고압선으로부터 전기 노동자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유일한 장치는 절연 고무장갑뿐인 셈이다. 자연히 전기 노동자들에게 감전사고는 이미 일상이 되어버렸다. 2014년 한전의 국회 제출 자료에 따르면 2009~2013년 활선공법 때문에 13명이 감전사고로 사망했고 140명이 화상, 손목·팔 전단 등 사고를 당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3년 세계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날 성명에서 “어느 누구도 집에 월급을 가져가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어선 안된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언제쯤 돈보다 생명이 존중되는 나라가 될까.


강진구 논설위원 kangj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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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이마트·롯데마트 등 3대 대형마트사가 납품업체에 각종 갑질 횡포를 일삼다 총 238억원의 과징금을 물게 됐다. 2012년 대규모 유통업법이 제정된 이후 단일사건으로 부과된 과징금으로는 가장 규모가 크다. 이 중 홈플러스는 시정조치를 무시하고 반복적으로 불공정행위를 일삼다 검찰에 고발조치까지 됐다. 종이호랑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공정거래위원회가 모처럼 유통재벌들의 부당행위에 단호하게 대처한 점은 평가받을 만하다.

하지만 이 조치로 대형마트사들의 갑질 횡포가 근절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뿐 아니라 납품업체 직원들을 부당하게 동원한 사실도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건 과태료로 끝날 일이 아니다. 특히 홈플러스는 판촉사원을 직접 고용하면서 발생한 인건비 부담을 납품대금 깎기나 상품 공짜로 납품받기로 납품업체에 떠넘겼다. 홈플러스가 직접 고용의 모양새를 취하면서도 임금은 납품업체가 지급한 변칙적인 불법파견이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홈플러스(270명) 외에도 이마트(270명), 롯데마트(855명)까지 납품업체 직원들을 수시로 상품진열 업무에 동원해온 사실도 드러났다. 적법한 계약 없이 납품업체 직원들을 마치 자사의 직원인 것처럼 부당사용했다면 당연히 파견법에 따라 처벌받아야 한다. 노동부는 공정위가 적발한 유통재벌들의 부당행위를 먼 산의 불 보듯 구경만 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노동부는 박근혜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3년 3월 이마트에 대한 특별 근로감독을 통해 1978명의 불법파견을 적발한 바 있다. 이로 인해 이마트를 비롯해 대형유통사들이 불법사용하던 매장인력을 대거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뒤 노동부는 파견확대에 집중하면서 불법파견 단속에 사실상 손을 놓았다. 그사이 다시 대형마트사의 노동질서가 붕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노동부는 납품업체 직원들이 대형마트사의 불법적인 노동착취로부터 더 큰 피해를 보지 않도록 당장 공정위에서 자료를 넘겨받아 특별 근로감독을 실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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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끝난 후 노동계에 격랑이 몰아치고 있다.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과 성과연봉제라는 두 개의 쓰나미가 동시에 덮친 것이다. 조선·해운산업은 이미 사양 산업이 된 지 오래기 때문에 정부의 구조조정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오히려 더 과감하고 근본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간 세계경제의 오랜 불황으로 해운과 선박수요가 크게 줄었고 그로 인한 위기는 상수가 되었는데도 정부와 기업의 방만이 부실을 키운 데 있다. 이 거대한 부실의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의 것이 되고 말았다. 다급하고 대책 없이 감행하는 구조조정이 이제 수만 명의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있다.

조선·해운산업의 구조조정은 대량해고로 인한 노동의 위기를 예고한다. 이와 달리 금융부문과 공공부문의 성과연봉제는 그나마 힘겹게 유지되고 있는 노동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또 다른 노동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성과주의는 금융이나 공공부문만이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신자유주의를 실패로 이끈 요인으로 판명된 바 있다.

성과주의는 동기부여나 실적 향상, 전문 인재육성 같은 목적을 이루기보다 실제로는 대부분 부작용을 초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대학에서도 성과주의가 만든 쓸모없는 논문 양산에 대한 성찰과 함께 인센티브제도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영국 은행들은 성과연봉 도입 후 불완전 판매로 벌금 67조원을 물어 신뢰도 추락을 경험한 바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익스피디아, 어도비 등 세계적인 기업들도 성과연봉제를 폐지했다. 일본에서도 미쓰이물산, 후지쓰, 맥도널드 등에서 성과주의는 실패했다.

무엇보다 월스트리트에서 출발한 2008년의 세계경제 위기는 리스크가 누적된 파생금융상품에서 비롯되었고 바로 이 같은 파생상품의 개발은 성과주의의 효과였다. 다른 무엇보다도 성과연봉제의 확대는 금융소비자에게는 리스크를 가중시키고 노동공동체를 지탱하는 노동조합을 해체시키는 살벌한 무기가 될 수 있어 뒤끝이 더욱 걱정스럽다.

구조조정이든 성과연봉제든 노동의 위기는 자본의 위기와 맞물려 있다. 우리 사회처럼 비윤리적인 자본주의에서 자본 축적의 위기, 즉 성장에 브레이크가 걸리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가 떠안게 된다. 그 최후의 사회적 고리에 노동자가 위치하고 나아가 비정규직 노동자, 파견노동자가 위치한다. 성장이 멈추면 먼저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배제된다. 성과연봉제 같은 경쟁 장치로 더 많은 수익을 노리는 만큼 누군가는 경쟁에서 탈락해 일터를 떠나야 한다. 자본의 위기 앞에 언제나 노동은 가장 먼저, 가장 힘없이 무너진다. 사회적 안전망과 노동복지의 수준이 턱없이 낮은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사회질서의 근본과 원칙으로 돌아가 보자. 노동은 인간 삶의 근본적 요소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스스로를 실현해낸다는 점에서 노동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활동이다. 노동절을 맞아 낸 경향신문의 특집기사에 따르면 ‘노동’이라는 말을 듣고 초등학생들이 떠올린 단어는 ‘힘든 일’이었고 심지어 ‘노예나 천민’을 떠올렸다고도 한다. 또 앉아서 일하는 마트의 계산원을 보고 “건방지다” “예의 없다”고 답했다. 자신을 실현해내는 가장 숭고한 인간 활동으로서의 ‘노동’이 아이들의 의식 속에 노예와 천민을 떠올리고 오직 근면과 복종만이 요구되는 일로 비친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아이들에게 내면화된 기형적 사회관이 아닐 수 없다. 분단체제 대한민국에서 노동은 한 번도 숭고한 가치인 적이 없었고 인간 삶의 가장 보편적 가치인 적도 없었다. 노동은 하지 말아야 하고, 노동자는 되지 말아야 하는 것이었다.

구조조정과 성과연봉제라는 쓰나미의 저 깊은 해저 진앙에는 한 번도 세상의 중심이 되어보지 못한 늘 위태롭고 배척된 노동이 있다. 불안하고 위태로운 시대의 중심에 흔들리는 노동이 있는 것이다. 그래도 노동이 자본을 만들고 자본은 노동의 결실이라는 사실만은 변함없는 진리다. 그래서 인간노동이 삶의 근본이고, 노동하는 시민의 삶이 모든 질서의 중심이 되는 게 순리다.

이제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을 좀 바꾸자. 어떤 구조조정에도 노동자의 삶이 파괴되지 않는 질서, 성과주의의 이름으로 노동자의 존재양식을 파괴하지 않는 질서, 모든 이의 ‘삶’, 모든 노동자의 ‘삶’이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패러다임이 아이들의 교육에서 국가비전에 이르기까지 작동하도록 이제 근본적으로 좀 고민해 보자. 지난해 스웨덴의 전문직 노동조합(TCO)을 방문했을 때 “우리는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지킨다”고 하던 직원의 말이 천둥처럼 울렸던 기억을 떠올린다. 이 엄혹한 노동위기의 시대를 노동의 가치가 가장 인간적 가치이자 가장 미래적 가치로 재구성되는 기회로 만들 수는 없을까?


조대엽 ㅣ 고려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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