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 폐기물 대란이 있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분리배출을 하고 있고 어딜 가나 종류별로 재활용 쓰레기통이 갖춰져 있어 분리수거가 잘되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사실 우리나라 환경정책 중에서 가장 내세울 만한 정책이 폐기물정책이었다. 한국의 폐기물정책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칭찬하는 모범사례로 꼽혀 왔다. 전국이 일시에 종량제 시행에 들어갔고 제도 시행 후 재활용률이 높아졌으며 분리배출이 문화로 자리잡은 듯했다. 2013년 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폐기물 재활용률은 59%로 독일(65%)에 이어 세계 2위였다. 이런 나라에서 재활용 폐기물 대란이라니!

폐기물 관련 숫자들을 보면 놀랍기도 하지만 곪았던 상처가 터진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컵이 무려 연간 260억개, 하루 7000만개란다. 비닐봉지 연간 사용량은 2015년 기준 1인당 420개다. 국민 한 사람이 매일 일회용 컵과 비닐봉지를 하나 이상 쓰고 있는 셈이다.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은 98.2㎏으로 세계 1위, 포장용 플라스틱 사용량은 64.1㎏(2017년 기준)으로 세계 2위다.

압축된 PET 뭉치. 김영민 기자

이대로는 안된다. 폐기물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감량’이다. 재이용, 재활용, 자원 회수 이전에 나날이 늘어나는 발생량 자체를 줄이는 것이 가장 먼저다. 거리 곳곳에 생겨난 커피전문점에서는 종이컵 사용이 기본이다. 매장 안에서도 플라스틱 뚜껑을 닫은 종이컵을, 그것도 마분지 홀더까지 끼워서 쓴다. 매장 밖으로 가져가니 종이컵에 담아달라고 부탁하는 게 아니라 매장 안에서 마실 거니 머그잔에 담아달라고 따로 요청해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찬 음료를 담은 플라스틱 용기에도 홀더를 끼워 쓴다. 냉장고에 진열된 병 주스를 사도 따로 플라스틱 용기에 얼음을 담아준다. 텀블러를 사용하면 할인혜택을 주는 매장도 있지만 모두 그런 것도 아니다. 비가 올 때면 곳곳에선 일회용 비닐봉지가 으레 사용된다. 보고 버릴 영수증도,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가 오지만, 매번 출력된다. 이제 이런 게 일상이고 문화가 되어버렸다.

일회용 컵의 경우 회수율을 높이고 재활용을 촉진하기 위해 보증금 제도가 2002년에 도입되었다.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규제 완화의 일환으로 이 제도를 폐지해 버렸다. 2010년에는 중소기업 부담을 이유로 플라스틱 폐기물 부담금 면제와 경감 범위를 크게 완화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서는 테이크아웃 일회용품에 대한 규제가 사라졌다. 그 사이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경계도 느슨해졌다.

제도적 장치가 사라진 자리에 커피전문점과 1인 가구, 소규모 포장 증가와 택배업체 과다 포장 등의 요소가 맞물리면서 폐기물 배출량은 빠르게 늘었다. 소비자의 세심하지 못한 분리배출도 문제를 키웠다. 중국의 재활용 폐기물 전면 수입 중단으로 그동안 숨겨져 있던 폐기물 처리의 불편한 진실이 민낯을 드러낸 것이다. 중국의 수입 중단 예고가 지난해 7월에 있었고 올 1월부터 실제 금지에 들어갔지만 환경부가 제대로 된 대처방안을 미리 마련하지 않아 상황이 악화되었다.

지난해 환경부가 실시한 일회용 컵 보증금제 재도입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9.9%가 찬성했다. 보증금제 도입에 대한 국민 수용성이 높은 상태다. 기대한 감량과 재활용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감량이 중요하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진 못한다. 상품 생산자에게 비용을 부담시키는 생산자재활용책임제를 확대·강화하여 생산과 유통단계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재활용이 손쉽게 이루어지도록 용기와 포장재질을 개선하는 방안도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정부와 기업, 시민, 모두의 책임 있는 실천이 절실한 시점이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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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현재 24개의 원전이 가동 중이다. 발전용량은 2만2529㎿이고 전체 전력의 30%가량 생산한다. 석탄발전소에서는 그것보다 더 많은 40%를 생산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둘을 모두 줄여나가고, 이를 통해서 언젠가는 에너지전환을 이룩하려 한다. 문제는 원자력과 석탄화력으로 생산하는 그 많은 전력을 무엇으로 만들 것인가인데, 정부에서는 태양광과 풍력이 역할을 해주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방송통신대 학생들과 함께 에너지전환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에 그게 가능한지 계산해보았다. 전원믹스를 고려하여 태양광으로 전체 전력의 30%인 원전을 대체하고, 풍력으로 석탄화력의 40%를 생산한다고 가정하고 계산을 하였다. 결과는 태양광이나 풍력 모두 원전과 석탄을 대신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태양광으로 원전이 생산하는 30%를 충족하려 할 때 필요한 용량은 원전의 다섯배가 조금 넘는 13만5000㎿였고, 설치에 필요한 면적은 약 1215㎢였다. 서울시의 2배 정도, 남한의 1.2%에 달하지만, 남한 전역에 퍼져 있는 건축물 지붕과 농토의 일부만 이용해도 얻을 수 있는 면적이다.

석탄을 풍력으로 대치하는 경우에는 계산이 조금 복잡해진다. 육지는 바람이 약해서 일부 산간지방과 해안을 제외하면 풍력발전기를 세울 만한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바람이 강한 바다로 나가야 하는데, 이 경우 풍력으로 석탄을 대치하려면 8만㎿ 용량의 발전기를 세워야 한다. 면적은 6만㎢ 정도가 필요하다. 남한 국토면적의 60%에 달하지만, 북쪽을 빼고 3면이 모두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나라에서 확보가능한 면적이다. 현재 1만6000㎿의 해상풍력발전소가 가동 중이고, 2020년에는 2만5000㎿의 발전소가 바람을 이용해서 전력을 생산하게 될 영국과 비교할 때 수십년 계획을 세우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문제는 건설비용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이다. 태양광 건설비가 ㎿당 약 1억4000만원, 해상풍력이 ㎿당 약 40억원이므로, 현재를 기준으로 단순하게 계산할 때 투입되어야 할 비용은 태양광이 약 200조원, 해상풍력은 약 300조원이 된다. 정부의 1년 예산과 맞먹는 대단히 많은 돈인데, 대부분의 관료나 정치인은 대기업이 나서주지 않으면 조달이 안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거대자본들이 큰돈을 투입해서 바다에 풍력단지를 세운다는 발상은 촛불혁명 전에나 수용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촛불혁명을 통해 국가의 주인이 시(국)민이라는 것을 뚜렷하게 인식하게 된 촛불시민들은 이런 발상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바다와 바람은 공유자원(커먼스)이다. 당연히 국가와 시민들이 공공을 위해 관리하고 개발하고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거대자본에 넘겨주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영국에서 해상풍력은 모두 거대자본이 가져가고 있다. 이에 대해 대다수 시민들은 별 관심이 없고, 민주사회에서 에너지전환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고민해왔던 소수의 시민들만 간간이 우려를 표할 뿐이다. 이들은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독일의 에너지전환 과정을 부러워하지만, 독일도 재생가능 에너지의 전력생산 비중이 30%를 넘어선 후에는 거대자본이 해상풍력이라는 큰 프로젝트에 뛰어들고 있다. 정부도 이들을 적극 지원한다. 물론 비판하는 세력도 있지만, 이 추세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들은 바다와 바람이라는 커먼스가 거대자본에 선점당하면 되돌릴 수 없다고 우려하며 안타까워한다.

에너지전환은 기술의 변화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촛불혁명의 정신과 상통하는 에너지전환 정신이 제거된 기술만의 변화는 진정한 에너지전환이 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조급증에 걸려서 커먼스를 거대자본에 내주면 이런 비극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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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서 ‘40일’은 중대한 일을 앞두고 준비하는 기간을 상징합니다. 교회도 부활절 전 40일을 ‘사순(四旬) 시기’로 지냅니다. 지금이 그때입니다. 사순 시기는 회개의 때입니다. 회개는 특정한 잘못의 뉘우침보다는 자신을 어떤 면에서 근원적으로 변화시킬 마음의 변화를 뜻합니다. 회개는 현재 삶의 태도를 깊이 성찰하고 그 결과에 따라 삶의 방향을 돌리는 것, 곧 돌아섬입니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또 무엇을 향해 돌아서려고 하는가?” 매년 이때 되새기는 물음입니다.

소비주의는 오늘 우리 사회를 규정하는 핵심어입니다. 소비주의는 필요 이상으로 많이 소비하는 경향이나 그렇게 부추기는 경향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것도 심각한 문제이긴 하지만, 소비주의의 근본 문제는 우리를 ‘소비자’라는 특정한 유형의 인간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소비주의는 사람들이 “무엇이든 찾아내거나 만들거나 기르기보다는 사는 게 낫다고 여기게” 만듭니다(웬델 베리, <온삶을 먹다>). 소비주의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우리는 직접 문제의 답을 찾아내고 필요한 것을 만들고 길러내는 능력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사고 쓰고 버리는 과정이 확대 재생산됩니다. 그러는 동안, 써서 없애는 데 길들여진 우리는 수동적이고 무기력하게 변합니다. 이것이 바로 소비자의 모습입니다. 소비자가 만들어내는 건 쓰고 버리는 쓰레기입니다.

소비주의 사회에서는 소비 능력이 큰 사람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소비를 많이 하려면 많이 소유해야 하고, 그만큼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경쟁은 치열해지고,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옆을 바라보는 건 금물, 앞만 보고 질주해야 합니다. 뒤처지는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말고 자기에게만 몰두해야 합니다. 자연생태계의 훼손도 인간의 풍요와 편리를 위해서라면 그다지 대수로운 일이 아닙니다. 소비주의는 이렇게 경쟁과 자기몰입과 무관심을 확대 재생산합니다. 단절과 고립의 벽이 도처에 생겨납니다.

무언가 문제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 때도 있지만, 매력적인 모습으로 치장한 소비주의는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고, 소비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회유하고 위협합니다. 무한한 풍요와 편리라는 환상에 빠져 있는 한, 우리는 자신과 사회와 자연생태계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 가는지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설사 소비주의의 근본 문제를 본다고 해도 저항하기 힘듭니다.

얼마 전,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한 수녀님을 찾아가 수녀원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흙과 나무로 지은 아늑한 집에서, 소박하지만 정갈한 밥상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수녀님이 상에 놓인 음식을 가리키며 먹을거리는 가능한 한 직접 길러서 마련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자랑으로 비칠까, 수줍은 표정 속에서 직접 ‘찾아내고 만들고 길러내는’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건강한 자부심이 배어나옵니다. 사람에게 좋기 때문이 아니라 땅을 살리기 위해서 유기농을 한다고 말하는 수녀님에게서 땅을 믿고 땅에 기대어 사는 사람의 겸손이 묻어나옵니다. 불편하지만 오줌과 똥을 모아 거름을 만들어, 땅에 힘을 북돋아줍니다. 땅은 우리의 모태이니, 땅이 건강해지면 사람도 건강해집니다. 그렇게 우리는 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능한 한 기계 없이 몸으로 하려다보니, 농사를 크게 짓지 않습니다. 대신, 조금 덜 쓰면서 지냅니다. 덕분에 쓰레기가 덜 생겨나고, 마음의 여유를 더 누립니다. 어느 날 슬며시 찾아와 한 식구가 된 도도한 러시안 블루 ‘도도’도 수녀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습니다. 따뜻한 관심과 환대의 물줄기가 단절과 고립의 벽을 허물고 흐릅니다.

하루의 어설픈 노동으로 밥값을 대신하고 소비가 일상인 곳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묻고 싶은 말이 떠올랐습니다. “수녀님, 그래도 이런저런 것들이 없어 불편하지요?” 수녀원 부엌 입구에 걸려 있는 나무판 속의 글귀가 대신 답해줍니다. “없는 대로, 불편한 대로.”

<조현철 신부 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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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 ‘녹색세상’에 실린 글을 모두 찾아보니 60% 남짓이 탈원전 관련 글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임이 분명하나, 개인적으로는 ‘다양성’에 대한 아쉬움은 컸다. 가습기 살균제, 미세먼지, 기후변화, 조류인플루엔자, 4대강과 케이블카로 대표되는 국토난개발 외에도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은, 심각한 환경문제들이 여전히 드러나지 않고 숨어있다는 데에서 더욱 그러하다. 지금부터라도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녹색’과 관련된 간과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시작은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소나무와 하늘소, 꿀벌에 관한 것으로 해보려 한다. 지구의 모든 생물이 하나같이 중요하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생물종을 들라면 인간을 제외하면 당연히 꿀벌이다. 벌이 멸종하면 4년 뒤 인간이 멸종할 것이란다. 그런데 벌이 집단으로 사라지고 있음에도 우리는 남의 일인 듯 무감각하다. 벌의 집단붕괴 원인은 그동안 다양하게 제시되었으나, 연구가 축적되면서 바이엘사가 개발한 네오니코티노이드계열 살충제의 과도한 사용이 핵심으로 지목되고 있다. 초기 연구에서는 똑똑한 벌 스스로가 해당 살충제를 피하기 때문에 문제가 크지 않다는 발표도 있었으나, 2015년 한 연구결과는 벌이 시간이 지날수록 살충제가 있는 곳을 더 자주 찾아간다는 내용이었다. 충격적이게도 담배와 같은 중독효과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미 꿀벌 유해성 문제로 초기 네오니코티노이드계열 살충제는 많은 국가에서 생산 및 사용을 금지하고 있으며 비교적 독성이 약하다는 3세대 살충제 또한 유럽 및 북미를 중심으로 사용금지 약제로 속속 등록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살충제가 경작지뿐만 아니라 인가 주변 산림과 도시에 광범위하게 뿌려지고 있다. 소나무가 죽어간다는 이유에서이다. 산림청이 소나무재선충 매개를 이유로 산림 내 솔수염하늘소를 죽이기 위해 사용한 네오니코티노이드계열 살충제와 호흡기 독성물질이 유출되는 살충훈증제의 구입비가 2015년 한해에만 무려 80억 원이 넘는다. 재선충은 고지대 산림에서는 거의 발병하지 않기 때문에 이 약제의 대부분은 우리가 수시로 오르내리는 나지막한 동네 뒷산에 집중적으로 뿌려진다. 또한 많은 지자체가 이 살충제를 가로수 병해충 방제에 사용하고 있으니 농경지는 물론 산림, 도시까지 구석구석 뿌려진다고 봐도 무방하다. 꿀벌이 이 농약을 피할 수 없음은 당연하고 우리 또한 적은 양이지만 지속적으로 노출된다고 봐야 한다. 환경이야 늘 후순위로 밀리는 우리나라는 이 약제에 대해서도 역시 다르지 않은 대응을 보여준다. 2016년 벌꿀의 생산지수는 46으로 떨어졌고, 양봉농가들의 지속적 문제제기에도 정부는 문제없다고만 하고 있다. 우리 숲이 그나마 온전하게 자연의 섭리를 따르기 시작한 시기는 지역별로 조금 차이는 있지만 1980~90년대 들어 시골에까지 석유나 연탄보일러가 보급된 이후이다. 숲이 사람의 간섭을 벗어난 지 고작 30년 정도가 되어 이제야 조금씩 안정화 단계로 접어들며 숲의 진짜 나무(眞木), 참나무가 성장하면서, 반대급부로 초기에 번성했던 소나무는 여러 이유로 줄어드는 현상을 동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안정화를 외면하면서 숲의 미래를 책임질 진짜 나무를 잡목이라는 이름으로 베어내고, 하늘소를 포함한 숲속의 수많은 생명들을 죽이는 살충제를 가장 깨끗해야 할 산림에 뿌리고 있는 것이다.

불안정한 산림생태계가 안정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소나무가 쇠퇴하는 것을, 마치 소나무가 줄어들면 산림이 황폐화될 것 같이 호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대로 생각해보자. 가을의 아름다운 단풍산행지가 늘어나는 것이 농약을 뿌려야 할 만큼 심각한 문제인가? 하늘소를 죽이는 살충제가 뿌려진 산림이 과연 건강한 산행지일까? 농경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우리가 늘 호흡하는 도시와 산림에는 사용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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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와 포항의 연이은 지진은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가를 보여주었다. 반대로 자연에게 거대 재앙은 인간일 것이다. 주민들이 지진에 삶의 터전을 잃는 것과 같이 반달가슴곰이, 산양이, 하늘다람쥐가 탐욕스러운 자본에 의해 삶의 터전을 잃는다. 마치 자연과 인간이 서로 대립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는 자연 속에 우리가 있고, 파괴된 환경은 더 큰 재앙으로 돌아옴을 인식할 때이다. 개인의 권리, 자본의 가치를 그 어느 나라보다 우선하는 국가로 당연히 미국을 꼽을 것이다. 이런 정부가 자신들이 만든 가장 훌륭한 아이디어를, 대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호하기 위한 ‘국립공원’ 제도라 말한다. 그 어떠한 과학적 발견이나 기념비적 건설행위가 아닌, 보전을 위해 자본의 욕심을 강력히 제한하는 제도를 우러르는 것은 그만큼 이 제도가 국가적으로 높은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달 말 미국 정부의 자연보전 의지를 확인할 발표가 있었다. 미국 국립공원청이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 ‘옐로스톤’을 포함하여 전국 17개 공원의 성수기(연간 5개월) 입장료를 약 8만원(한화)으로 인상한다는 발표이다. 방문객 증가 억제를 위한 정말 전격적이고 파격적인 발표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비해 현재도 심각한 고밀이용지역인 설악산(설악산 이용밀도는 옐로스톤의 20배가 넘는다)은 ‘문화향유’를 이유로 오색케이블카를 건설해야 한다고 한다. ‘향유권’을 추가로 심의한 문화재전문위원들의 정당한 재부결 결정을 편향적 법률해석을 통해 허깨비로 만든 문화재청을 포함한 우리 정부는 미국 공원청의 발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최근 10여 년간 정부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나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등의 권위에 기대며 보호지역 홍보에 열을 올렸다.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자신들의 우수한 전문성과 노력의 성과로 많은 국립공원의 IUCN 보전등급이 5등급에서 2등급으로 승격되었다고 홍보하고, 산림청의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이나 문화재청의 천연보호구역은 IUCN 보전등급 1등급 또는 UNESCO 생물권보전지역의 ‘핵심지역’으로 환경부보다 훨씬 엄격하게 관리한다는 논리를 편다. 실제 산림청은 우수한 자연지역의 공원 편입을 이 논리로 반대하기도 하였다. 미국 공원청의 입장료 인상 결정은 탐방객 증가에 따른 훼손을 막고자 하는 기관의 핵심 임무에 충실했다는 공감대를 얻고 있다. 반대로 오색케이블카 추진 과정에서 빚어진 논란들은 해당 기관들 본연의 임무를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법적 근거도 없는 ‘조건부’를 내세워 보호지역 핵심공간에 건설되는 반영구 훼손시설의 설치를 승인한 환경부나, 더 강력한 보전기관임을 자처한 산림청과 문화재청의 결정은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자진하여 설악산을 엄격한 통제가 요구되는 보호유형으로 전환시킨 후 홍보에 열을 올리는 이중적 행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오색케이블카 예정지역은 문화재청에 의해 학술적 목적의 출입까지도 엄격히 제한되는 유형Ⅰ의 보호지역으로, 유형Ⅱ의 미국 옐로스톤보다 강력한 보전이 요구된다).

또한 환경부는 2012년 공원의 보전가치가 이용가치보다 약 9배 높음을 연구결과로 제시한 바 있고, 케이블카를 포함한 공원 내 논란이 되고 있는 많은 시설들을 원천 금지시키는 법률 개정작업을 현재 진행 중이다. 이미 케이블카 같은 시설이 보호지역의 ‘향유’에 맞지 않으며, 보호지역은 충실히 보전될 때 훨씬 높은 가치를 국민에게 돌려줌을 다른 누구보다 잘 아는 정부가 문제의 시설들을 올해 기필코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로 밀어붙이는 모순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오색케이블카 승강장 옆 승마연습장과 대청봉 위 호텔이 선명한 설악산 개발계획도가 탄핵 이후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으로 보인다. 보이지 않는 힘은 현 정부에서도 여전한 건가?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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