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자리 만드는 건 결국 기업.” 지난 4일 SK하이닉스 청주공장에서 열린 제8차 일자리위원회를 주재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다. 업무지시 1호가 대통령 직속의 ‘일자리위원회’ 설치와 운영이었을 만큼 문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왔다. 하지만 이날은 정부가 “일자리 양을 늘리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며, 기업의 투자 촉진과 활력을 당부하고 정부는 기업 발전의 도우미가 되겠다고 했다. 이날 일자리위원회가 꼽은 5대 신산업의 내용을 보면, 결국 재벌 대기업에 일자리를 요청하고 최대한 지원을 약속한 셈이다. 고용 부진에 대한 대통령의 답답함과 초조함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지는 따져보아야 한다. 2004년 노동부가, 2010년 대법원이 사내하청의 불법파견을 확인했지만 지금껏 파견 노동자의 직접 고용을 거부해온 현대·기아차에 과연 ‘좋은’ 일자리 창출을 기대해도 좋은가?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전 충북 청주시 흥덕구 SK하이닉스에 준공한 'M15' 반도체 공장을 대형 유리문을 통해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하기야 공공부문도 아닌 일반 기업에 좋은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른다. 기업은 일자리가 아니라 이윤 창출을 위해 투자하고, 거기에 필요한 만큼 사람을 고용한다. 그러니 기업은 수익 극대화에 유리한 형태의 일자리를 선호한다. 설사 신산업으로 일자리를 많이 만든다고 해도, 경기가 침체되면 고용은 다시 악화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경기는 언제나 부침을 거듭해왔다.

이제는 일자리라면 기업만 생각하는 낡은 틀에서 벗어나, 농촌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이유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농업이 국가의 근간이라면서도, 우리는 늙고 공동화되는 농촌을 철저하게 방치하고 외면해왔다. 40세 미만 농가가 전체의 1% 미만이고 농가의 평균농업소득은 월 100만원이 안된다. 식량자급률과 곡물자급률은 50%와 24% 수준이고, 100% 자급인 쌀을 제외하면 자급률은 훨씬 더 떨어진다.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 그래서 농사는 좋은 일일 뿐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런 일자리가 넘쳐나지만 사람들은 농촌을 기피한다. 도시에는 사람이 넘쳐나지만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농사에 사람이 몰리도록 하는 것이 마땅히 일자리 창출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90년대 중반, 충북 괴산에서 유기농을 하는 ‘솔뫼 공동체’의 농부들과 반년 남짓 산 적이 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농사가 얼마나 고되고 어려운 일인지, 동시에 농사가 얼마나 큰 만족과 자긍심을 주는 일인지, 한마디로 얼마나 ‘좋은’ 일인지 깊이 깨달았다. 그럴수록, 농사가 사람들이 기피하는 천덕꾸러기로 변해버린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귀농 인구가 조금이지만 꾸준히 늘고 있다. 귀농을 원하지만 농촌에서의 생계가 막막해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은 훨씬 더 많다. 그러니 어느 정도 생계만 보장된다면 농촌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부쩍 늘어날 것이다. 전남 해남군이 발표한 ‘농민수당’은 정부가 농촌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정부는 농사짓고 살겠다는 사람들의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 줄 ‘농민(농가)기본소득’을 하루빨리 시행해야 한다. 농민기본소득이 비현실적인 제안인가? ‘현실’적으로만 접근해서는 강고한 현실을 뚫고 나갈 수 없다. 그렇다고 결코 터무니없는 제안도 아니다.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의 계산대로 전국 110만 농가에 월 50만원씩 지급한다면 연간 총 6조60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결코 적지 않은 돈이지만, 매년 미국 무기 구매에 쓰는 돈이 10조원 언저리라는 걸 생각하면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농민이 더 늘어나면 예산도 더 늘어나겠지만, 소농이 수행하는 공익적 가치를 고려하면 그럴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게다가 좋은 일자리로 소문난 농사로 사람이 몰리면, 기업도 진짜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상상만 해도 유쾌하다. 상상을 현실로 옮기는 일, 농민기본소득으로 시작하자.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 일자리 농사  (0) 2018.10.12
BMW 화재사고의 본질  (0) 2018.10.05
태양광 입지 반대 유감  (0) 2018.09.28
해남의 혁신 ‘농민수당’  (0) 2018.09.14
흑산도공항  (0) 2018.09.07
‘기승전 탈원전’ 보도  (0) 2018.08.31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지난여름 무더위 속에서 내내 이어진 BMW 화재사고는 폭염을 어렵게 견딘 시민들의 마음속까지 까맣게 태웠다. 아직까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는 기업을, 정부를 바라보는 마음은 더욱 편치 않다. 그러나 이번 BMW 문제는 차량결함이라는 단순 사실에서 나아가 왜 이런 사고가 발생했는가의 본질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BMW의 화재사고와 2015년 폭스바겐 디젤게이트는 특정 회사의 문제가 아닌 모든 디젤차량의 대기오염 유발문제라는 본질에서 바라봐야만 하기 때문이다.

디젤차량의 질소산화물 배출은 휘발유의 10배에 달한다. 과도한 질소산화물 배출로 인한 도심의 오존농도 증가가 국민 호흡기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이 매우 심각하기에 디젤차량을 줄이는 것은 그 어떤 대기환경정책보다 중요하다. 그럼에도 미세먼지만큼 주목받지는 못하고 있다. 폭스바겐과 BMW의 사태는 모두 이 질소산화물 배출과 연관된다. 디젤의 질소산화물 배출을 줄이기 위한 유럽연합의 규제는 해가 갈수록 강화되었고 2015년에는 이전 유로5보다 배출기준을 5배나 강화시킨 유로6를 적용하였다. 미국은 그 이전부터 유로6보다 훨씬 강력한 배출가스 규제를 적용하고 있었는데, 거의 모든 승용차와 소형트럭까지 휘발유를 사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조치였다. 폭스바겐은 미국의 강력한 배기가스 규제 기준을 디젤로 맞추기 위해 거짓조작을 한 것이며, 이번 BMW는 획기적으로 강화된 유로6 기준을 맞추기 위한 기술이 문제가 된 것이다.

7월 29일 강원 원주시 중앙고속도로 춘천방향 치악휴게소 인근에서 주행 중이던 BMW 520d 승용차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대원들이 불을 끄고 있다. 연합뉴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 두 회사 차량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다른 제조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는 것이다. 2016년 유럽에서 실제 운행하는 차량의 배기가스 배출량을 조사하여 발표한 결과는 충격적인데 유로5 기준을 통과한 디젤차량의 질소산화물 실배출량은 회사별로 허용기준의 최소 3.2배에서 최대 7.9배를 초과했으며 유로6 기준 차량은 최대 15.1배를 초과했다. 실주행 시 유로기준을 충족하는 디젤차량을 만드는 회사는 단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문제가 된 두 회사는 유로6 기준을 맞추지는 못했지만 질소산화물 초과 배출량이 허용기준의 3배 이내로 가장 적은 회사들이었다. 결국 실현가능성 없는 과도한 기준치의 적용과 이 요구를 안일한 조작으로 맞추기 위한 기업의 무리수가 화를 불러온 셈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부각되지 않은 회사 차량은 안전할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현대차 디젤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유로5 기준을 통과한 차량의 경우 실제 허용기준치의 7.2배를, 유로6 차량 또한 허용기준치의 무려 7.7배를 더 배출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러한 수치는 클린디젤이 아닌 더티디젤임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수치이며 지금까지 생산된 모든 디젤차량이 호흡기에 치명적인 질소산화물을 대량으로 방출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BMW와 같이 개별 차량의 문제는 아닐지라도 도시 대기오염을 가중시켜 우리 모두의 건강을 위협하는 문제는 훨씬 크다는 것이다. 대기오염 정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고, 호흡기질환이 급격히 증가하는 현실에서도 디젤차량을 위해 지속적으로 디젤 가격을 저가로 유지하는 국가정책을 과연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정부의 곳간은 한없이 늘어만 가고 국민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자동차가 사치품인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났고, 필수품을 보다 저렴하게 사용하고자 하는 욕구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시대가 바뀌면 세금정책 또한 바뀌는 것이 당연하다. 화석연료 자동차의 축소는 향후 급격히 진행되겠지만 그사이 정부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전기차나 수소차에 지원되는 통 큰 세금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안다. 지금이야말로 어려운 국민을 위해 휘발유에 부과되는 세금을 경유와 같게 낮출 적기이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 일자리 농사  (0) 2018.10.12
BMW 화재사고의 본질  (0) 2018.10.05
태양광 입지 반대 유감  (0) 2018.09.28
해남의 혁신 ‘농민수당’  (0) 2018.09.14
흑산도공항  (0) 2018.09.07
‘기승전 탈원전’ 보도  (0) 2018.08.31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우리 사회 에너지전환은 다른 나라에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현상까지 더해지면서 더디기만 하다. 거대 발전시설 입지가 야기했던 사회갈등이 최근엔 태양광시설 설치 예정지역들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환경보건영향을 이유로 지역 주민이 태양광 패널 설치를 반대하는 해외사례를 듣지 못했기에 당혹스럽다. 일부 산림 훼손이 심한 경우는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최근엔 잘못된 정보로 혐오시설인 양 반대하는 일도 없지 않다.

대표적 사례가 서울대공원 주차장에 들어설 태양광 시설에 대한 반대다. 서울에너지공사는 서울대공원 정문 주차장 부지에 약 10㎿ 규모의 태양광을 ‘제2호 태양광 시민펀드’ 방식으로 설치할 계획이다. 그런데 얼마 전 사업설명회가 파행으로 치달았다. 일부 과천시민들의 반대 때문이다. 해당시설이 도시미관을 해치고 카드뮴과 납 같은 유해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데다 서울시 소유 태양광 시설을 과천시민 돈으로 과천에 설치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런가?

주차장에 설치하는 태양광 패널이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주장은 처음 듣는다. 주민 거주 지역으로부터 300m 이상 떨어져 있고 이미 콘크리트로 포장된 곳인데 말이다. 전 세계적으로 주차장 태양광 설치 사례는 부지기수다. 생각해보라. 넓은 공간에 햇빛을 가리는 방해물이 없으니 다른 데보다 전기 생산에 유리하다. 여름엔 주차 차량 내부가 뙤약볕으로 데워지는 걸 막을 수 있고 패널이 차양막이 되어 보행자들에겐 그늘이 된다. 비가 올 땐 승하차 시 비를 피할 수 있고 겨울엔 폭설이나 바람막이 구실도 한다. 그래서 주차장 태양광 발전소가 쑥쑥 들어서고 있다. 다른 나라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대형마트나 고속도로 휴게소, 야구장, 구청, 공장 등의 주차장에 태양광 발전 시설이 여럿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설치 예정 장소에 직접 가보았다. 그곳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면 앞서 말한 편익에 더해, 규모가 커서 방문객인 아이와 시민들에게 생생한 에너지전환 교육 현장이 될 법했다.

주차장 옆에는 카드뮴과 납이 들어 있는 죽음의 시설이라며 해골을 그려 놓은 현수막이 있었다. 우리나라에 보급된 태양광 패널엔 정부 규제로 카드뮴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다. 셀과 전선 연결을 위해 납이 소량 사용되긴 하지만 회수해서 재사용하는 데다 납은 우리 모두가 사용하는 컴퓨터에도 들어 있다. 문제가 될 수 없다.

시민펀드 방식을, 과천시민 돈으로 전기를 만들어 과천시민에게 팔겠다는 발상으로 오해하고 수익률이 낮아 현실성이 없다고 비판한다. 사실은 이렇다. 사업방식으로 제안된 시민펀드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전 국민 대상이다. 과천시민으로 제한할 수 없다. 태양광 생산전력은 20년간 정부가 장기고정가격으로 구매해주기에 수익률이 시중금리보다 높아 과천시민을 배려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 이미 2015년 서울시는 지하철 기지 4개소에 총 4.24㎿ 규모 태양광 설비를 전 국민 대상의 제1호 태양광 시민펀드사업으로 추진해서 4.18%의 수익을 가입시민에게 돌려준 경험이 있다.

과천시는 과천시민이 소비하는 전력량의 0.1%도 생산하지 않고 있다. 전기 소비량 거의 전부를 다른 지역에서 가져오고 있다. 과천시의 매월 가구당 평균 전력소비량은 234.9kWh로 전국 평균(221kWh)은 물론 서울시 평균(228kWh)보다 높다. 석탄이나 원자력 발전은 미세먼지나 사고위험이 수반되어 해당 지역주민은 어려움을 겪는다.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은 전기를 쓰는 과천시민들이 이런 문제에 무감각해서는 곤란하다. 과천시민들도 이제 내 앞마당에서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해야 할 때다. 서울대공원 주차장에 태양광 발전소가 세워지면 과천시 전력 자급률은 3.3%로 높아진다. 서울대공원 주차장이 그 출발이 되면 어떨까?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 일자리 농사  (0) 2018.10.12
BMW 화재사고의 본질  (0) 2018.10.05
태양광 입지 반대 유감  (0) 2018.09.28
해남의 혁신 ‘농민수당’  (0) 2018.09.14
흑산도공항  (0) 2018.09.07
‘기승전 탈원전’ 보도  (0) 2018.08.31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이렇게 계속 갈 수 있을까?”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로 지난여름의 폭염이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우울한 예측을 보며 들었던 물음이다. 우울하게 만드는 건 기후만이 아니다. 소득불균형, 실업과 취업난, 집값 폭등, 고령화와 빈곤노인층, 저출산과 인구절벽 등 각종 통계로 드러나는 현실은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힌다. 역설적이게도, 오늘의 현실은 우리가 열심히 살아온 결과다. 그러니 지금의 방식으로 더욱 열심히 일하는 것은 상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해법은 지금과 전혀 다른 길에서 찾아야 한다. 암울한 전망 속에서도 우리가 기존의 길을 고집하는 것은 새롭게 길을 그릴 상상력이 없어서 그럴지 모른다. 현재의 방식이 선택의 전부라고 철저히 학습되었는지도 모른다.

혁신이 절실하다. 혁신은 ‘피(皮)’를 ‘혁(革)’으로 바꾸는, 근원적이고 전면적인 변화다. 하지만 우리의 혁신은 외관의 치장에 동원되기 일쑤다. 그래서 혁신이 차고 넘쳐도 우리의 현실은 요지부동이다.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은 규제혁신과 투자증진을 통한 성장확대가 골자다. 기업의 투자증진을 위한 규제혁신은 결국 규제완화를 뜻하니, 혁신성장이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을 통한 성장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지 모르겠다. 정부는 의료기기, 은산분리, 개인정보의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더불어민주당은 박근혜 정부의 ‘규제프리존특별법’과 비슷한 ‘지역특구법’ 제정을 서두른다. 모두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부지런히 걸어간다. 급한 건 이해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새로운 길로 갈 수 없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다. 먼저 문제의 뿌리로 되돌아가 거기서 다시 길을 찾아야 한다. ‘거기’는 어딜까? 지난 11일 청와대 앞에서 농민들이 “밥 한 공기 300원”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밥 10공기 분량에 해당하는 쌀 1㎏당 최소 3000원의 가격 보장과 수확기 쌀 대책 수립을 촉구한 것이다. 그 전날에는 ‘국민의 먹거리 위기, 농정 적폐 청산과 대개혁을 염원하는 시민농성단’이 청와대 인근에서 무기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우리 농촌이 신음하고 비명을 질러온 지 오래다. 정부가, 우리가 무시했을 뿐이다. 박근혜 정부의 쌀값 약속을 지키라고 상경한 농민들을 기다린 건 물대포였고, 백남기 농민이 희생되었다. 이제 농민들이 다시 비명을 질렀고, 시민들이 거리에 나섰다.

사람의 문제는 결국 ‘먹고사는’ 문제다. 그리고 먹을거리는 도시의 사무실이나 공장이 아니라 농촌의 논과 밭에서 나온다. 농촌이 사람 사는 모든 곳의 뿌리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당연한 이 사실을 외면해왔다. 그런 농촌이 무너지니, 도시가 무사할 리 없다. 지금 도시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농촌에는 사람이 너무 없어서 문제다. 도시에선 할 일과 살 곳을 구하지 못해서 아우성이고, 농촌엔 일할 사람이 모자라고 빈집이 늘어간다. 도시의 삶이 갈수록 황폐해지면서 농촌에 살려는 사람도 꽤 많이 있지만, 실제로 가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지금의 농촌 현실에서는 살아남을 전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도시로만 몰렸던 젊은이들이 왁자지껄 농촌으로 돌아가는 광경, 젊은이와 아이들로 북적되는 농촌 마을을 상상해보자. 우리나라 전체의 혁신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될 것이다. 이 상상을 현실로 바꾸는 데 필요한 여건을 만드는 것은 혁신을 하겠다는 정부의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다.

혁신의 소식은 전라남도 해남에서 들려왔다. 지난 8월 말, 해남군은 전체 농가에 연 60만원의 농민수당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전국 최초다. 적은 액수지만, 농민수당은 무너지는 농촌 현실과 공익적 가치를 비롯한 농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농촌을 살리겠다는 정책적 결단이다. 중앙정부가 할 일, 갈 길을 해남군이 먼저 보여주었다. 이제는 이 혁신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도록 정부가 성심껏 전력을 다해 응답할 차례다. 농촌의 성장이야말로 ‘혁신’성장이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BMW 화재사고의 본질  (0) 2018.10.05
태양광 입지 반대 유감  (0) 2018.09.28
해남의 혁신 ‘농민수당’  (0) 2018.09.14
흑산도공항  (0) 2018.09.07
‘기승전 탈원전’ 보도  (0) 2018.08.31
실패한 누진제, 이제 버려라  (0) 2018.08.24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언제 있었냐는 듯 동계올림픽 경제 효과의 허상은 사라지고 지금은 개발망령의 뒷감당조차 벅차 보인다. 경기장은 애물단지로 전락했고 호우로 인한 산사태와 침수피해는 고스란히 지역주민이 떠안아야 하며 영세한 시공업체는 공사대금조차 받지 못해 부도위기에 몰린 것이 현실이다. 올림픽만 개최하면 잘살 것이라는 희망으로 유치를 노력한 지역주민과 지자체는 또 다른 투자를 요구한다. 도대체 60조원의 경제효과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우리나라에서 국민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민간투자자금은 지금도 여전히 눈먼 돈이다. 거의 모든 대규모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는 오로지 사업의 진행만을 위해 거짓으로 일관한다. 사업자와 정치가가 서로의 이익만을 위해 주민의 고혈은 안중에 없기 때문이다. 공항 또한 대표적인데 무안공항의 현재 이용률은 수요예측의 3.8%, 양양공항은 5.3%에 불과하다. 광역시인 광주공항의 이용률 또한 10%를 넘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현재 대부분 공항은 이익창출은커녕 세금이 없으면 유지관리도 못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해 있다. 대규모 토건사업으로 지역이 발전한다는 거짓 선동가를 빼면 사실 발빠르게 부동산 투기에 열을 올린 몇몇을 제외하고 지역 토착주민 대부분은 엄청난 피해만 보고 있다. 그럼에도 늘 이런 사업을 성사시키기 위해 앞에 서는 것은 소외된 토착주민이다.

과도한 토건사업으로 가뜩이나 좁은 국토 전체가 유린되어 더 이상 대규모 토건사업을 할 곳도, 할 구실도 찾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최근 토건족들이 찾아낸 것이 거짓 경제효과를 동원하여 강을 파헤치는 4대강 사업이었으며, 이제 국민과 미래 대한민국을 위한 마지막 보루인 보호지역에까지 망령이 뻗치고 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흑산도공항은 겉으로 지역주민의 복지와 관광활성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체는 개발 이후 폐허가 될 토건사업의 추가에 불과하다. 현재도 볼거리, 즐길거리가 없어 관광객이 머무르지 않는데, 공항이 만들어진다고 관광객 수십만이 증가한다는 예측을 믿을 수 있을까? 즐길거리를 만든다? 이것들을 만들기 위한 부지, 접근도로, 막대한 숙박시설과 서비스 공간을 어디에 확보할 것인가? 결국 현재 흑산도의 최대 자산인 아름다운 해안과 자연을 훼손할 수밖에 없는데 관광객 만족도는 더욱 추락할 뿐이다. 늘 희생만 당해왔던 주민은 언제까지 이런 개발망령의 혹세무민에 당해야만 할까?

과대포장된 수요예측은 차치하고서라도, 위험천만의 무모한 개발 부작용은 눈에 선하다. 흑산도공항 활주로의 계획 길이는 현재 1160m이다. 그런데 온전한 산을 하나 부수어 천혜의 해안선과 바다를 메울 계획인 이 공항에 도입할 소형항공기의 착륙길이는 습도가 높을 때 무려 1222m에 달한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지나쳐 62m를 더 가야 멈출 수 있다는 말인데, 앞에는 추락해서 가라앉을 바다밖에 없다. 유사시 운행을 멈추겠다고 하지만 얼마나 억지스러운가? 섬이라는 특성상 시시각각 여건이 변하기 때문에 완벽한 실시간 대응은 가능하지 않다. 특히 해수면과 접한 특성상 노면의 환경변화는 매우 크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 내륙에서 비행기가 이륙한 후에 기상여건이 급격히 변화될 가능성도 크다. 결국 승객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다. 실제 이착륙 시 활주로를 이탈하는 오버런은 공항에서는 빈번한 사고로 반드시 활주로 여유공간을 확보해야만 하는데 여유공간은커녕 최소거리도 확보하지 못했다. 공사착공 이후 몇 배의 세금을 더 투입하는 추가 대형 토목공사를 요청하거나, 운행 한번 못하고 폐허로 방치될 것이 뻔하다. 이런 말도 안되는 계획이 논란거리가 되는 것조차 놀랍다. 섬이 매혹적인 이유는 찾는 사람이 적어서다. 있는 자원조차 파괴시키는 구시대적 토건사업이 아닌 적은 인원이 찾으면서도 수익을 극대화하는, 주민을 위한 고품격 관광대안을 고민할 때다. 그것이 국립공원의 존재 이유이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양광 입지 반대 유감  (0) 2018.09.28
해남의 혁신 ‘농민수당’  (0) 2018.09.14
흑산도공항  (0) 2018.09.07
‘기승전 탈원전’ 보도  (0) 2018.08.31
실패한 누진제, 이제 버려라  (0) 2018.08.24
올여름, 폭염 단상  (0) 2018.08.20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어떤 보도가 있다. 그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면 둘 중 하나다. 하나는 잘 모르면서 아는 듯이 썼거나 또는 잘못 알고서도 잘못 아는 줄 모르고 틀리게 쓰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사실관계를 알면서도 자기주장을 위해 사실을 외면하거나 억지 논리로 사실을 감추고 거짓 주장을 내세우는 경우다. 요즘 여러 언론보도를 보면 도가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언론이 사회 공익을 위해 정확한 정보를 발신하고 공유하는 역할을 포기하고 도그마에 빠진 느낌이 든다.

대표적인 사례가 에너지 전환 관련 보도다. 세계적으로 탈원전 운동과 정책이 등장한 배경을 모조리 망각한 것처럼 보인다. 일부 언론이 주장하듯 원전이 안전하고 다른 어떤 에너지원보다 저렴하다면 왜 탈원전 에너지전환이란 거대한 움직임이 등장했을까?

왜 원전에 대한 투자는 정체되어 있는데 신규 재생가능에너지 설비 투자액이 원전과 화석연료 투자액의 2배가 넘을 정도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걸까? ‘반(反)에너지전환’을 편드는 언론은 답해야 한다. 이런 세계적인 흐름을 인식하지 못하는지, 알고도 외면하는 건지.

최근엔 이런 보도도 있었다. 베란다 태양광이 번쩍거려서 이웃 간의 ‘광(光)’을 둘러싼 분쟁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 전혀 사실이 아니다. 베란다 태양광 패널이 주로 설치된 서울에선 2018년 8월 현재 관련 민원이 올해 설치 완료된 3만여 건 중 2건에 불과하다.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에 따르면 태양광 패널은 저철분 유리를 사용하기에 표면 반사율이 5.1%다. 8~10%인 유리나 플라스틱보다 낮다. 언론이라면 발표된 태양광 패널의 빛 반사율이 맞는지, 실제로 어느 정도 되는지, 해외에서는 그런 사례가 있는지 등을 보도해야 하는 것 아닐까? 여러 언론은 태풍 솔릭이 태양광 시설에 큰 피해를 줄 것처럼 불안해했지만, 전국 38만6000여개 시설 중 제주도에서 단 한 건의 사고가 있었을 뿐이다. 지난 8월22일 경북 청도군 매전면 산비탈에 설치됐던 태양광 발전시설이 훼손된 건 기초 토목공사 문제였음에도 태양광 발전 자체 문제로 몰아가기도 한다. 안전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과장과 왜곡은 곤란한데 말이다.

‘기승전 탈원전’ 보도는 언론의 신뢰를 떨어뜨릴 뿐이다. 원전 이용률 저하나 전력수급과 전력 요금 문제도, 한전 적자도, 영국 원전시장 우선협상자 지위 해제도, 모두 탈원전 탓으로 몰고 간다. 그간 원전 이용률이 왜 떨어졌나? 비정상을 정상화한 조치 때문이었다. 격납건물 철판 부식, 콘크리트 공극(콘크리트가 채워지지 않은 부분) 등 과거 원전 건설 부실로 생겨난 문제를 보정하기 위해 원전 정비 일수가 증가했다. 지진으로 인해 정지했던 원전을 재가동하려면 지난 정부에서 강화한 안전 기준을 충족해야 해서 점검기간이 길어지고 재가동에 시일이 소요된 거였다. 원전 납품비리로 투입된 위조 부품을 안전등급 제품으로 교체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한전 적자는 국제연료가격의 가파른 상승과 봄철 노후 석탄발전소 가동 정지 등과 연결되어 있었다. 잘 진행되던 원전수출이 에너지전환정책을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 문제가 된 게 아니었다. 영국원전 우선협상자 지위를 획득한 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 12월이었고, 그 이후 영국 상황이 바뀐 데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언론은 있지도 않았던 전력대란을 마치 당장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과장하고 탈원전 정책 탓에 전기요금이 인상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새로운 시대적·경제적 조건하에서 기존 산업이 재편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때 산업화 동력을 제공했던 원자력은 이제 역사적 소임을 다했다. 재생가능에너지시대로의 전환은 더이상 미룰 수 없고 외면해서도 안되는 시대적 대세다. 언론은 이런 시대에 무엇을 어떻게 보도해야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지혜롭게 대응하기 바란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남의 혁신 ‘농민수당’  (0) 2018.09.14
흑산도공항  (0) 2018.09.07
‘기승전 탈원전’ 보도  (0) 2018.08.31
실패한 누진제, 이제 버려라  (0) 2018.08.24
올여름, 폭염 단상  (0) 2018.08.20
폭염과 숲, 그리고 세금  (0) 2018.08.10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연례행사가 된 누진제 논란이 꽤 후진적이다. 누진제의 본래 취지는 팽개치고 돈 이야기만 하기 때문이다. 누진제를 시행하는 이유는 전기소비를 억제하고, 전력예비율을 조절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논란은 소비억제가 아니라 요금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 ‘요금폭탄’을 방지하기 위해 누진제를 완화해주자거나, 누진제를 없애면 1400만가구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거나, 누진제 완화로 한국전력의 수익만 수천억원 감소했다는 주장만 들릴 뿐, 누진제가 정말 제 구실을 하는지 따져보자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누진제는 원래 취지에 비추어볼 때 실패했다. 전기소비가 인구나 소득 증가보다 훨씬 가파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가정용 전기소비는 20% 이상 증가했다. 일반용의 28%, 산업용의 46%보다 적지만, 선진국들 중 최고 수준의 증가율이다. 혹자는 누진제가 적용되었기에 산업용 증가율보다 낮은 20%로 묶어둘 수 있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산업용 소비가 터무니없이 높게 늘어난 것일 뿐이지 누진제가 효력을 발휘한 결과라고 말할 수 없다.

정부의 폭염에 따른 전기요금 지원 대책이 발표된 7일 한 우체국 직원이 세종시 조치원읍 한 다세대주택 우편함에 한국전력공사가 발송한 7월분 전기요금 청구서를 넣고 있다. 연합뉴스

유럽 등지 선진국과 비교할 때 한국의 가정용 전기소비는 낮은 수준이 아니다. 가구당 전기소비는 연간 3500kwh(킬로와트시)로 유럽연합 평균과 비슷하다. 일인당 소비로 비교하면 낮다는 주장이 있지만, 유럽에서는 전기를 난방온수용으로 사용하는 가구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산업용으로 넘어가면 증가율이나 소비량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기네스북에 올라갈 정도이다. 사실 산업체나 서비스업체들의 전기 오남용은 심각하다. 

전기소비 억제라는 누진제의 본래 취지를 살리려 한다면 산업용과 일반용 전기소비 구조를 대대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가장 손쉬운 방안이 이들 부문의 전기요금을 크게 올리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중소업체 등이 중심이 되어 거세게 반발하고, 그 결과 요금이 찔끔 올라가는 선에서 정리되고 만다. 그렇다고 누진제를 적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규모 차이가 크지 않은 주택과 달리 업체들의 규모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기소비를 줄여가기 위해서는 단순한 요금 인상만이 아닌 창의적인 제도가 반드시 도입되어야 한다. 고려할 만한 것이 ‘인센티브제’이다. 해마다 연간 사용량을 비교해서 감소나 증가에 비례해 요금을 인하해주거나 인상하는 것이다.

역진과 누진을 동시에 도입하자는 것인데, 연간 전기사용량의 변동이 크지 않은 일반용에 적용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사무실에서 지난 5년간 평균 1만kwh를 사용했는데, 다음해에 사용량이 2만kwh로 두 배 증가했다면 요금을 크게 올려받고, 그 절반인 5000kwh로 줄어들면 요금을 깎아주는 것이다. 이 제도는 정교하게 고안하기만 하면 산업체에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연간 전기사용량과 생산량의 증감을 비교해 요금을 올리거나 낮추면 되기 때문이다. 어느 기업체에서 생산량은 2배 증가했는데 전기소비는 10% 늘어났다면 전기요금을 크게 깎아주고, 반면에 전기소비가 3배 증가했으면 요금을 2~3배 높이는 것이다. 물론 전기 오남용 관행에 젖어 있는 기업체에서는 반발이 심하겠지만, 이렇게 인센티브를 주는데도 전기소비를 줄이지 못하는 기업은 퇴출되는 것이 마땅하다. 

누진제를 없애라는 요구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400만가구가 누진제 덕을 보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한전의 가정용 고객 수가 1500만 정도이니 93%가 평균보다 낮은 요금을 내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거의 모든 국민이 누진제 혜택을 받고 있다는 건데, 이런 누진제가 존속될 필요가 있을까? 장관 발표에 따르면 누진제 1단계 적용을 받는 가구 수가 800만이라고 한다. 이들 중 전기요금 지원을 받아야 할 저소득층은 얼마나 될까? 아마 그들 중 상당수가 1인 가구일 터인데, 이런 점을 알고 발언했을까? 이제는 그런 낡아빠진 이야기는 그만!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제안을 듣고 싶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흑산도공항  (0) 2018.09.07
‘기승전 탈원전’ 보도  (0) 2018.08.31
실패한 누진제, 이제 버려라  (0) 2018.08.24
올여름, 폭염 단상  (0) 2018.08.20
폭염과 숲, 그리고 세금  (0) 2018.08.10
제헌헌법에 길을 묻다  (0) 2018.07.20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최고기온을 비롯해 더위의 기록을 새롭게 쓴 올여름 폭염은 결국 ‘재난’으로 분류되었다. 인류의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구온난화에 관한 보도도 부쩍 늘었다. 그래도 아직 사람들은 ‘이번’ 여름을 어떻게 넘길지, ‘이번’ 더위는 언제 수그러들지에 훨씬 관심이 크다. 지금 당장을 견디기도 힘든데 아직 보이지도 않는 미래에 눈을 돌리기는 쉽지 않다. 그래선지, 올여름 일본 정부의 폭염 대책은 에어컨을 최대한 사용하라는 것이다. 우리 정부도 비슷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폭염은 상시적인 자연재난이고 냉방기기 사용은 국민의 기본적 복지라며,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 방안 마련을 지시했다.

에어컨은 더위 자체를 없애거나 완화하지는 못한다. 에어컨은 이쪽에서 흡수한 열을 저쪽으로 배출할 뿐이다. 그래서 안쪽은 시원해지고 바깥쪽은 더워진다. 작년에 이어 올여름도 서울의 어느 수녀원에서 지내고 있다. 수녀원 건물은 뉴타운이 들어서면서 아파트로 포위되었다. 아파트 베란다는 모두 수녀원을 향해 있고, 거기에 놓인 수백대의 에어컨 실외기는 마치 ‘폭염방사기’처럼 수녀원 건물을 겨누고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에어컨으로 서로에게 열을 뿜으며 여름을 나고 있다. ‘부분’은 시원해지지만 ‘전체’는 더워진다. 게다가 에어컨 가동은 전기에너지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로 이어지니, 결국 지구온난화를 부추긴다. 그렇게 ‘전체’는 더 더워진다. 당장 견디기 힘들어 쓰기는 하지만, 에어컨은 쓰면 쓸수록 폭염을 강화하는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냉방의 혜택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이 없는 밖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 폭최고기온을 비롯해 더위의 기록을 새롭게 쓴 올여름 폭염은 결국 ‘재난’으로 분류되었다. 인류의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구온난화에 관한 보도도 부쩍 늘었다. 그래도 아직 사람들은 ‘이번’ 여름을 어떻게 넘길지, ‘이번’ 더위는 언제 수그러들지에 훨씬 관심이 크다. 지금 당장을 견디기도 힘든데 아직 보이지도 않는 미래에 눈을 돌리기는 쉽지 않다. 그래선지, 올여름 일본 정부의 폭염 대책은 에어컨을 최대한 사용하라는 것이다. 우리 정부도 비슷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폭염은 상시적인 자연재난이고 냉방기기 사용은 국민의 기본적 복지라며,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 방안 마련을 지시했다.

에어컨은 더위 자체를 없애거나 완화하지는 못한다. 에어컨은 이쪽에서 흡수한 열을 저쪽으로 배출할 뿐이다. 그래서 안쪽은 시원해지고 바깥쪽은 더워진다. 작년에 이어 올여름도 서울의 어느 수녀원에서 지내고 있다. 수녀원 건물은 뉴타운이 들어서면서 아파트로 포위되었다. 아파트 베란다는 모두 수녀원을 향해 있고, 거기에 놓인 수백대의 에어컨 실외기는 마치 ‘폭염방사기’처럼 수녀원 건물을 겨누고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에어컨으로 서로에게 열을 뿜으며 여름을 나고 있다. ‘부분’은 시원해지지만 ‘전체’는 더워진다. 게다가 에어컨 가동은 전기에너지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로 이어지니, 결국 지구온난화를 부추긴다. 그렇게 ‘전체’는 더 더워진다. 당장 견디기 힘들어 쓰기는 하지만, 에어컨은 쓰면 쓸수록 폭염을 강화하는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냉방의 혜택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이 없는 밖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 폭염 노동은 그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살기 힘든 사람의 몫이 된다. 원한다고 모두 에어컨을 마련할 수 있는 것도, 원하는 만큼 냉방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폭염에 일조하는 에너지를 훨씬 적게 소비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폭염 피해는 훨씬 더 많이 받는다. 다른 자연환경 피해와 마찬가지로 폭염 피해도 평등하지 않다.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이 되면 현재의 불평등은 극단적으로 변할 수 있다. ‘설국열차’가 현실이 되는 상상을 해본다. 살려면, 철저한 차별과 억압이 지배하는 ‘열국열차’라도 올라타야 한다. 열차 바깥은 열기 가득한, 사람이 살 수 없는 세상이다.

재난으로 분류된 폭염은 ‘시대의 징표’이기도 하다. 올여름 폭염은 지금까지 우리가 누리고 좇아온 삶이 지속 가능하지도, 안전하지도, 평등하지도 않음을 보여준다. 살려면 뿌리부터 변하라고 요청한다. 최근 지구온난화에 대처하기엔 이미 늦었을지 모른다는 비관적 연구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폭염의 교훈과 요청에 응답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많아진다면, 희망을 놓기엔 이르다. 아직 전력을 다해보진 않았으니. 사람들이 이번 폭염으로 지구온난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조금이라도 실감했다면, 변화의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인가, 더위의 기세가 살짝 수그러드는 조짐이 반가우면서도, 행여나 폭염의 고통을 잊어버릴까, 걱정도 된다.

수녀원이 북한산 아래에 있어, 오후에 틈날 때면 산에 들었다. 산속도 덥지만 산 아래와는 다르다. 산을 오르면 땀이 비오듯 흘러도, 잠시만 걸음을 멈추면 어느새 더위가 수그러든다. 견딜 만하다. 가끔 스쳐 지나가는 한줄기 바람이 주는 청량감이란. 나무는 뿌리에서 끌어올린 수분을 잎을 통해 기화하며 주위의 열을 흡수한단다. 숲은 자기 바깥쪽을 시원하게 해주는 실외기 없는 완벽한 에어컨이다. 자연이 거저 주는 보물 같은 선물이다. 폭염 대비라는 측면에서도 스키장이나 골프장을 만든다고, 도로를 확장한다고, 숲을 훼손하는 일은 자연의 선물을 걷어차는 어리석은 짓이다. ‘스스로 그러한’ 자연(自然)이 옳은 법이다. 인간은 자연의 흐름을 따를 때 행복해지고, 거스를 때 불행해진다. 폭염이 재난이 된 요즘은 더욱 그렇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염 노동은 그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살기 힘든 사람의 몫이 된다. 원한다고 모두 에어컨을 마련할 수 있는 것도, 원하는 만큼 냉방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폭염에 일조하는 에너지를 훨씬 적게 소비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폭염 피해는 훨씬 더 많이 받는다. 다른 자연환경 피해와 마찬가지로 폭염 피해도 평등하지 않다.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이 되면 현재의 불평등은 극단적으로 변할 수 있다. ‘설국열차’가 현실이 되는 상상을 해본다. 살려면, 철저한 차별과 억압이 지배하는 ‘열국열차’라도 올라타야 한다. 열차 바깥은 열기 가득한, 사람이 살 수 없는 세상이다.

재난으로 분류된 폭염은 ‘시대의 징표’이기도 하다. 올여름 폭염은 지금까지 우리가 누리고 좇아온 삶이 지속 가능하지도, 안전하지도, 평등하지도 않음을 보여준다. 살려면 뿌리부터 변하라고 요청한다. 최근 지구온난화에 대처하기엔 이미 늦었을지 모른다는 비관적 연구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폭염의 교훈과 요청에 응답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많아진다면, 희망을 놓기엔 이르다. 아직 전력을 다해보진 않았으니. 사람들이 이번 폭염으로 지구온난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조금이라도 실감했다면, 변화의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인가, 더위의 기세가 살짝 수그러드는 조짐이 반가우면서도, 행여나 폭염의 고통을 잊어버릴까, 걱정도 된다.

수녀원이 북한산 아래에 있어, 오후에 틈날 때면 산에 들었다. 산속도 덥지만 산 아래와는 다르다. 산을 오르면 땀이 비오듯 흘러도, 잠시만 걸음을 멈추면 어느새 더위가 수그러든다. 견딜 만하다. 가끔 스쳐 지나가는 한줄기 바람이 주는 청량감이란. 나무는 뿌리에서 끌어올린 수분을 잎을 통해 기화하며 주위의 열을 흡수한단다. 숲은 자기 바깥쪽을 시원하게 해주는 실외기 없는 완벽한 에어컨이다. 자연이 거저 주는 보물 같은 선물이다. 폭염 대비라는 측면에서도 스키장이나 골프장을 만든다고, 도로를 확장한다고, 숲을 훼손하는 일은 자연의 선물을 걷어차는 어리석은 짓이다. ‘스스로 그러한’ 자연(自然)이 옳은 법이다. 인간은 자연의 흐름을 따를 때 행복해지고, 거스를 때 불행해진다. 폭염이 재난이 된 요즘은 더욱 그렇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승전 탈원전’ 보도  (0) 2018.08.31
실패한 누진제, 이제 버려라  (0) 2018.08.24
올여름, 폭염 단상  (0) 2018.08.20
폭염과 숲, 그리고 세금  (0) 2018.08.10
제헌헌법에 길을 묻다  (0) 2018.07.20
미세먼지 아냐, 오존이었어  (0) 2018.07.13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올여름 한반도에 불어닥친 유례없는 폭염은 많은 서민의 생활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사상 최악의 폭염’이 올해만 유독 불거진 이변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최근 5년 동안 매년 한반도 사상 최고기온이 경신되고 있고 최악의 더위는 여름철 늘 있는 대책 없는 단골뉴스가 되는 등 고착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 이러한 기온 상승은 기후학자들이 우려하는 예측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제 폭염은 여름철 며칠만 피하면 괜찮은 것이 아닌 다수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여름 내내 지속되는 자연재해가 된 것이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8일 경북 영주시 문수면 승문1리 한 수박밭에 강한 햇볕으로 껍질이 하얗게 변하고 속이 상한 수박들이 줄지어 버려져 있다. 이 수박밭에서는 수확하려던 6000여개 중 80~90%가 버려졌다. 이준헌 기자

재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쏟아내는 대응은 임기응변의 세금 투입 일색으로, 주변 전체를 생각한다면 폭염을 더욱 심화시키는 대책들이 대부분이다. 말 그대로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며, 근본적 대책을 위한 논의는 사실상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정부는 이 더위가 지나면 내년 여름까지 잊히기를 기다리는 모양새다. 기실 전 지구적 기온 상승으로 인한 폭염에 정부가 내놓는 대안이 당장 살기 힘든 국민들을 만족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이 재난의 원인을 지구적 산업화에 따른 온난화라 치부해 버리면 우리가 할 일은 거의 없으며 순순히 더 길어지고 더 세지는 여름철 재앙을 앞으로도 이렇게 무방비로 견디는 것만 남게 된다. 한반도 기온 상승이 지구 평균에 비추어 두 배 이상 빠른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도 문제를 대외적 요인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이다. 당장 원전을 더 가동시켜 전기를 싸게 쓰자는 대책을 일부 기득권에서 주장하고 있지만, 원전이 광범위한 해수면의 온도 상승 유발원임을 고려한다면 문제를 더욱 가중시키는 것으로 대안이 될 수 없다. 더위에 지친 서민에게 전기료 절감과 같은 달콤한 대책으로 비치지는 못하겠지만, 한반도 기온 상승의 속도 완화를 위한 중장기적인 대책을 절실히 논의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 논의는 우리나라가 왜 다른 나라에 비해 급격히 기온이 상승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어야만 한다. 지구적 기온 상승의 원인은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의 과도한 배출이다. 이 근본 원인에 대한 대책은 첫째,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며, 둘째는 배출된 온실가스를 더 흡수하는 것이다. 물론 간단해 보이는 이 대책을 실천하는 것은 전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재난상황에서 무조건 더위를 참으며 에너지를 절약하라는 말이나, 일반화된 소비 행태의 급진적 전환 요구는 대책이 될 수 없다. 자연스럽게 대책의 시작은 기온 상승을 유발하는 화석에너지원 및 원전의 빠른 전환과 함께 온실가스 흡수량을 높이기 위한 방안 마련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온실가스 흡수를 위한 대안은 숲의 면적과 기능을 확대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수목은 탄소를 흡수할 뿐만 아니라 아스팔트에 물을 뿌리는 효과와 동일하게 수분을 증발시켜 대기 온도를 직접적으로 낮추는 이중 효과가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녹지정책은 ‘탄소흡수원 확충’을 위한다는 최우선 명분과는 달리 탄소 흡수 기능을 훼손하는 데 지속적으로 세금을 투입해 왔다. 숲가꾸기 사업이 그것인데, 최근 10년간 약 2조2000억원의 세금을 투입한 사업의 대부분은 간벌과 가지치기로 숲의 탄소저장 총량과 연간 탄소흡수량을 줄이는 데 사용되었다. 아울러 지금의 기온 상승 추세가 지속되면 한반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소나무가 살아갈 수 없음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겨울철 온도 상승이 주된 원인인 소나무재선충병 방재를 명목으로 온도를 낮출 수 있는 참나무와 낙엽활엽수 숲으로의 안정적 전환을 방해하는 데 쏟은 세금이 1조1000억원에 달한다.

폭염의 대책은 세금을 투입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각 분야에서 폭염을 가중시키는 데 들이는 세금을 줄이는 것이 훨씬 쉽고 높은 효과를 보이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실패한 누진제, 이제 버려라  (0) 2018.08.24
올여름, 폭염 단상  (0) 2018.08.20
폭염과 숲, 그리고 세금  (0) 2018.08.10
제헌헌법에 길을 묻다  (0) 2018.07.20
미세먼지 아냐, 오존이었어  (0) 2018.07.13
잊지 말자, 4대강 찬동 인사  (0) 2018.07.06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감동은 잠시지만, 먹고사는 일은 평생이다. 남북 정상과 북·미 정상의 역사적 만남이 몰고 온 짜릿한 감동이 가라앉자, 우리 사회의 해묵은 난제들이 떠오른다. 높은 지지로 정권교체에 성공한 문재인 정부는 지금까지 정치 개혁과 남북 관계 등 어떤 부분에서는 눈에 띄는 성과를 일궜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개혁과 변화가 지지부진하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내년도 최저임금, 정부의 종합부동산세 개편안을 놓고 논쟁이 뜨겁다. 최저임금에 기대어 살아야 하는 저임금 노동자, 수입이 최저임금도 못된다고 하소연하는 소상공인, 모두 일상의 무게가 버거운 사람들이다. 각자의 위치에 따라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소득주도성장의 속도조절론이 나오더니, 이젠 방향 전환에 대한 의구심도 피어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걸쳐 길게는 10년씩 투쟁하던 해고노동자들은 여전히 거리에, 굴뚝에 있다. 노동자 해고와 관련한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징후가 농후하지만, 변화는 없다. 이번이 30번째, 또 한 명의 쌍용차 해고노동자가 세상을 등졌다. 31번째 희생자를 막고, 이제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대한문에 다시 분향소를 차렸지만, 변화는 없다.

얼마 전 감사원 발표로 홍수와 가뭄 예방, 수질 개선을 명분으로 밀어붙였던 ‘4대강사업’이 철저한 사기극이었음이 확인되었다. 대통령이 진두지휘를 맡았고, 국토부, 환경부, 기획재정부 장관은 알면서도 적극 협조했다. 강은 망가졌고, 강에 의지하며 살았던 농민과 어민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엄청난 범죄이지만, 감사원은 이런저런 이유로 처벌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4대강 재자연화는 더디게 흘러간다. 미군기지 환경오염, 설악산오색케이블카를 비롯한 산지개발, 가리왕산 스키장 복원. 문제는 풀리는 게 아니라 쌓여간다.

처한 현실이 어려울수록 근본을 돌아보라고 했다. 엊그제가 제헌절, 헌법은 다른 법의 근본이니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인 제헌헌법이 오늘 우리의 현실에 할 말이 있지 않을까 궁금해졌다. 제헌헌법 ‘제6장 경제’가 눈에 들어온다. 첫 번째인 제84조,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가 개인의 “경제상 자유”에 앞선다고 천명한다. 제헌헌법은 분배를 통한 사회정의 실현을 경제의 목표와 방향으로 삼았다. 현행 헌법의 해당 조문을 보니,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가 앞서고 “사회정의”는 사라졌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거듭했을 현행 헌법은 이제 자신의 모태인 제헌헌법과 대립할 지경이다. 제85조는 “중요한 지하자원, 수산자원, 수력과 경제상 이용할 수 있는 자연력”에 대해 “공공필요”에 따른 개발을 원칙으로 내세운다. 제헌헌법의 “공공필요”의 원칙은 자연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주는 개발의 제어원리로 작동할 것이다. 현행 헌법은 ‘개발’을 ‘보호’에 앞세우고 개발의 성격과 방향은 언급하지 않는다. 역시 제헌헌법과 큰 차이가 난다.

경제(economy)는 어원상 가정(oikos, eco) 관리, ‘살림살이’를 뜻한다. 살림살이는 식구 모두가 잘 지내도록 집안을 돌보는 것이니, 분배와 지속가능성이 경제의 핵심이다. 제헌헌법 “제6부 경제”가 지향하는 것이다. “사회정의”는 기계적 공정이 아니라 약자 중심의 사회를 요구한다. 그럴 때만, 모든 사람이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 “공공필요”의 원칙에 따라 자연을 이용할 때, 자연생태계 보전도 가능해진다.

우리의 경제 현실에서 제헌헌법의 경제 철학이 가리키는 길로 들어서는 건 쉽지 않다. 가야 할 길 앞에서 머뭇거리기 쉽다. 그러나 개혁을 위한 ‘카이로스’는 마냥 기다려주지 않는다. 현 정부는 주권자의 압도적 지지로 출범했다. 아직도 지지율이 높다. 행여, 높은 지지율을 까먹을까 하여 해야 할 일 앞에서 머뭇거리지 않길. 해야 할 일을 하는데 높은 지지율을 아낌없이 써버리길. 진중하되, 담대하길.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올여름, 폭염 단상  (0) 2018.08.20
폭염과 숲, 그리고 세금  (0) 2018.08.10
제헌헌법에 길을 묻다  (0) 2018.07.20
미세먼지 아냐, 오존이었어  (0) 2018.07.13
잊지 말자, 4대강 찬동 인사  (0) 2018.07.06
가리왕산, 리셋!  (0) 2018.06.22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미세먼지 공포로 대기질에 대한 언론과 국민의 관심도는 매우 높아졌는데, 언론의 호들갑과는 달리 오히려 미세먼지 농도는 1990년 이후 최근까지 점진적 개선을 보였다. 그럼에도 이 문제가 연일 계속되는 것은 2013년 이후 개선이 답보상태를 보인 시기와 맞물려 호흡기 질환 사망자 증가율이 급격히 늘어난 것이 원인이 아닐까 한다.

사람들이 환경문제를 인식하게 되는 시점은 이미 손쉬운 해결에서는 한참 벗어난, 자신 또는 주변에 문제가 일어났을 때가 대부분이다. 대기오염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호흡기계통 질환 사망률은 미세먼지가 크게 좋아지던 시절인 1990년 이후에도 지속적 증가를 보였으며 2010년 이후 급격히 증가했다. 폐렴에 의한 사망자는 1990년 전체 사망자의 6%에서 2010년에는 15%로 증가하였는데 이후 2015년에는 29%로 껑충 뛰었고 전체 호흡기 질환 사망자는 50%를 넘어섰다. 사망자 두 명 중 한 명이 호흡기 질환으로 사망하니 미세먼지가 좋아졌다는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당연히 수치와는 달리 미세먼지에 대한 공포는 더욱 커졌는데, 이유는 모든 대기오염 문제를 대표하는 단어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미세먼지”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출처:경향신문DB)

미세먼지의 감소를 고려하면 최근 급격한 호흡기 질환 증가의 주된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고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위에서 언급한 기간 동안 감소된 미세먼지와는 달리 대표적 호흡기 질환 물질인 오존농도는 서울시 기준으로 두 배가 증가했다. 도심 오존은 질소산화물이 자외선과 결합하여 생성되기 때문에 다량의 질소산화물을 발생시키는 화석에너지 사용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미세먼지와는 달리 오존이나 질소산화물은 가스상 물질로 마스크로는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이 대처할 수도 없다.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화석에너지 저감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하는 이유이며 이 중 시급히 개정해야 하는 것이 자동차 관련 과세문제이다. 오존농도 상승과 디젤차량의 증가, 호흡기 질환 사망자의 증가 추이가 매우 높은 관계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소상공인을 위해 트럭의 연료인 경유에 낮은 세금을 부과한다. 이것이 유가상승과 클린디젤이라는 세계적 흐름과 맞물려 2010년 전체 차량의 36%이던 디젤차량이 2017년에는 42%를 훌쩍 넘어섰다. 심지어 다른 나라와 달리 디젤게이트 발생 이후에도 증가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디젤차량의 급격한 증가는 고급 승용차와 레저를 위한 SUV차량이 주도해 유류세 정책의 본래 목적과는 달리 부자나 일반인의 세금혜택 수단으로 전락되었다. 정유사와 자동차회사들은 디젤의 미세먼지 배출량이 휘발유와 별 차이가 없다고 홍보한다. 이는 모든 대기오염을 ‘미세먼지’라는 말로 인식하는 데에서 발생한 호도인데, 미세먼지 배출량 차이가 많지 않다고 하여 대기오염에 미치는 영향이 같다는 것은 분명 아니다. 디젤차량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휘발유의 무려 10배에 달하기 때문이다. 도심의 급격한 오존농도 증가와 관련된다. 같은 디젤차량으로 대체될 노후경유차 조기폐차보조금이나 허울뿐인 저감장치에 보조금을 줄 상황이 아님은 물론 환경개선부담금을 폐지할 상황도 아니다.

대책은 휘발유와 동등하게 유류세를 부과하는 데에서 시작되어야만 한다. 최악의 대기오염국가에서 오염을 감내하면서 이들 차량에 세금혜택을 줄 이유는 없다. 디젤에 부과하는 세금을 당장 올리지 못한다면 최소한 차종을 구분하여 승용차에 할인해주는 세금은 환급받아야만 할 것이다. 평균 주행거리를 감안하면 차량 1대당 연간 30만~50만원 정도가 된다. 만성적 대기오염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녹록지 않다. 국민들도 개인의 작은 이익을 위한 선택이 모두의 불행으로 돌아옴을 인식하고 에너지 절약을 보다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할 것이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폭염과 숲, 그리고 세금  (0) 2018.08.10
제헌헌법에 길을 묻다  (0) 2018.07.20
미세먼지 아냐, 오존이었어  (0) 2018.07.13
잊지 말자, 4대강 찬동 인사  (0) 2018.07.06
가리왕산, 리셋!  (0) 2018.06.22
가리왕산·4대강 ‘오리발’  (0) 2018.06.15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꼭 10년이 되었다. 70% 넘는 국민 반대와 극심한 사회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이 땅의 젖줄인 4대강에 손을 댄 지. 이틀 전인 7월4일, 감사원은 4대강 감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번 감사의 골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4대강 사업의 최종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2011년 1월 발표한 이명박 정부 시기 1차 감사에서는 4대강 사업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 인수위 시절인 2013년 1월 발표한 2차 감사에서는 4대강 사업이 총체적으로 부실하다고 하였다. 2013년 7월 발표한 3차 감사에서는 4대강 사업이 대운하 조성을 염두에 둔 것이며, 이명박 정부가 참여업체 간 담합을 방조했다고 밝혔다. 감사원 감사가 매번 결이 다른 결론을 내자 이명박 전 대통령 측에서는 ‘정치 감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이뤄진 1차 감사를 제외한 다른 모든 감사는 4대강 사업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으며, 이번 4차 감사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 사업의 최종 책임자라 결론지었다.

환경시민단체들의 모임인 4대강재자연화시민위원회와 한국환경회의 회원들이 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기 문란 범죄로 드러난 4대강사업 관계자들의 책임을 규명하고, 당장 재자연화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그간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도대체 4대강 사업을 왜 하냐고. 왜 6m 깊이로 강을 파냐고. 이번 감사에 따르면 4대강 사업을 앞장서 추진하고 비호했던 국토부나 환경부조차 애초엔 반대했던 이 사업을 이명박 전 대통령이 “통치 차원”이란 명분으로 강행하였다. 그의 지시에 따라 법적 절차는 무시되었고, ‘보’라 불리는 16개 ‘댐’이 건설되고 6m 깊이로 준설이 이루어졌다. 감사원은 23조원이 넘는 예산을 들인 4대강 사업의 이수 치수 효과는 거의 없으며, 서울대 경제학부 연구팀의 연구결과를 빌려 비용 대비 편익 비율이 0.21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필자에게는 이번 감사 결과가 놀랍지도 새삼스럽지도 않다.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된 반대 주장의 정당성을 10년이 지난 이제야 확인받았다는 사실이 씁쓸할 따름이다. 4대강 사업을 막을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나, 4대강 사업의 부당성을 제기했던 전문가나 환경단체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절차상 잘못이나 위법성을 따질 수 있는 사법체계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2009년과 2010년 ‘4대강 사업 위헌·위법 심판을 위한 국민 소송단’이 4대강 사업이 하천법과 환경영향평가법, 국가재정법, 문화재보호법 등을 위반했다며 사업 취소와 행정처분 효력정지소송을 서울, 부산, 전주, 대전 지방법원에 제기했지만 모두 패소했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국민소송단 증인으로 4대강 사업의 비용 대비 편익 비율이 0.16-0.24라고 재판부에 제출하였다. 이러한 사전 경제성 평가 결과는 이번 감사원이 제시한 사후 평가결과인 0.21과 유사하다. 사업 타당성이 없다는 게 일관된 분석결과다. 하지만 “낙동강사업이 국가재정법을 위반했다”는 부산고등법원 판결이 있었을 뿐, 2015년 대법원은 4대강 사업에 위법성이 없다고 최종 판결하였다. 민주사회에서 대통령의 “통치 차원” 지시가 모든 법적 제도적 장치를 초월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래서 묻는다. 당시 4대강 사업을 찬성했던 전문가들과 책임 있는 자리에 있었던 자들은 이번 감사원 결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금도 자신의 주장과 판단이 옳았다고 보는지. 그렇다면 정정당당히 나서 증거를 제시하라. 그렇지 못하다면 법이 당신들을 처벌하지 못한다 해도 우리 사회는, 무너진 자연은, 당신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4대강 사업에 찬동했던 인사들이 누구였는지, 그들이 어떤 발언을 했는지는 역사적 진실을 기록하기 위한 ‘4대강 찬동 인명사전’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들 대다수는 지금도 부끄러움 없이 활동 중이다. 역사는, 우리는,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 4대강 사업은 진실과 거짓의 문제였고, 전문가에겐 진실을 지켜내야 할 사회적 책임이 있기에.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헌헌법에 길을 묻다  (0) 2018.07.20
미세먼지 아냐, 오존이었어  (0) 2018.07.13
잊지 말자, 4대강 찬동 인사  (0) 2018.07.06
가리왕산, 리셋!  (0) 2018.06.22
가리왕산·4대강 ‘오리발’  (0) 2018.06.15
친환경 선거 만들자  (0) 2018.06.08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잔치가 끝났다고 모두가 이렇지는 않겠지.” 얼마 전 ‘녹색연합’ 회원들과 함께 평창 동계올림픽을 치르고 난 가리왕산 알파인경기장에 갔을 때 들었던 생각입니다. 가리왕산, 가보곤 싶었지만 경기장을 생각하면 자꾸 연상되는 흉한 몰골이 꺼림칙해 가보길 미루었던 곳입니다. 이번에 직접 가서 본 모습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지난 5월 중순, 시간당 최고 30㎜, 이틀간 80㎜가 내린 봄비에 경기장 슬로프는 온통 크고 작은 자갈로 뒤덮였고, 포장도로는 돌무더기로 변해버렸습니다. 빗물이 돌과 흙을 끌고 내려와 수로를 비롯한 각종 인공구조물을 막고 무너뜨리고 찌그러뜨렸습니다. 복원은 차치하고, 당장 이번 여름에 산사태를 걱정해야 할 판입니다.

지난 9일 녹색연합과 전문가 조사단이 강원 정선군 가리왕산의 알파인스키장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지난달 호우 때 흙이 쓸려내려가면서 굴러내린 돌 더미들이 경사면을 덮고 있다. 가리왕산 스키장은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에도 복구나 재해예방대책이 마련되지 않아 장마철을 앞두고 심각한 재난 우려가 나온다. 정지윤 기자

가리왕산은 조선 세종 이후 벌목을 금지해온 봉산이며,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생태자연도 1·2등급지역, 녹지자연도 8·9등급지역, 다양한 세대의 주목 군락지라는 사실도, 이 경기장은 올림픽을 마친 뒤 바로 철거해야 하는 1회용이라는 사실도 경제를 비롯한 각종 올림픽 효과 앞에선 모두 무력했습니다. 하기야 설악산이 국립공원,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보존연맹 엄정자연보전지역, 백두대간보호지역,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문화재라는 사실도 케이블카사업 앞에선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일단 가리왕산에 알파인경기장을 짓기로 결정하자, 500년간 보전해온 축구장 70개 넓이의 숲, 10만여 그루의 나무가 한순간에 없애버려야 할 것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의 봄비에 자갈밭으로 변해버린 경기장은 정작 없애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가리왕산 경기장은 원래의 숲으로 복원한다는 조건을 전제로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해 만들어졌습니다. 강원도, 산림청, 환경부, 환경단체, 전문가로 구성된 ‘가리왕산생태복원추진단’은 오랜 논쟁 끝에 가리왕산을 원래 상태인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을 목표로 복원하며, 경기장 전 지역의 곤돌라를 비롯한 모든 인공구조물을 철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벌써, 이왕 만들어놓은 경기장이니 효율적으로 활용하자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경기장 시설물 절대 반출 금지.” 경기장 주변엔 정선군번영연합회에서 내건 빛바랜 현수막들이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경기장 시설물 유지의 최종 목표는 아마도 지역의 ‘번영’일 겁니다. 그러나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바람이 과연 현실적인지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먼저,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주술처럼 반복했던 ‘수십조원’의 경제 효과가 실제로 발생했는지 물어야 합니다. 만일 발생했다면 그 수익이 누구에게 어떻게 돌아갔는지, 지역주민들은 그 효과를 얼마나 누리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정말 그렇게 엄청난 수익이 발생했다면, 이젠 복원이 순리입니다. 만일 발생하지 않았다면, 시설물을 유지한다고 해서 잔치할 때도 생기지 않았던 황금알이 잔치가 끝난 후에 생겨날 리 없습니다. 이제라도 복원이 순리입니다.

수백 년간의 자연보호림을 원래대로 복원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원래’를 목표로 해서 최선을 다해야 할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너무나 당연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그만큼 가리왕산은 원래에 가깝게 복원될 것입니다. 둘째, 복원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지키는 노력 자체가 중요합니다. 힘든 복원 과정은 우리가 가리왕산에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앞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새기는 사회적 학습 과정이 될 것입니다. 장기간의 복원 과정은 단기간의 이익만을 노리는 개발주의와 성과주의를 반성하는 정화의 과정이 될 것입니다. 어떤 것이 복잡하게 얽히면, 우리는 그걸 ‘리셋’합니다. 빗나간 것을 원래대로 돌리는 겁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겁니다. 가리왕산을 둘러보며 함께 만들었던 구호를 다시 외칩니다. “가리왕산, 리셋!”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세먼지 아냐, 오존이었어  (0) 2018.07.13
잊지 말자, 4대강 찬동 인사  (0) 2018.07.06
가리왕산, 리셋!  (0) 2018.06.22
가리왕산·4대강 ‘오리발’  (0) 2018.06.15
친환경 선거 만들자  (0) 2018.06.08
수소전기차와 ‘맑은 미래’  (0) 2018.06.01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올림픽 이전에도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가리왕산이 순간의 기쁨을 위한 화장을 걷어내고 벌거벗은 맨몸으로 장마와 폭우를 기다리고 있다. 며칠간의 짧은 흥분의 마취제를 처방받은 것처럼 잠시 잊고 있었던 올림픽의 경제효과 허상이 사라져갈 즈음, 지역주민의 불안과 사회적 갈등이 마취에서 깨듯 서서히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지방정부는 지킬 생각조차 없었으면서 마치 하늘이 두 쪽 나도 지킬 것처럼 복원약속을 하고, 축제가 끝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왕 만든 것이니 계속 사용하자’는 철지난 개발경제논리의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여기에 더해 마치 그 약속이 철저히 지켜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허가를 내준 중앙정부는 지난 10년간 뒷짐을 지고 있다가 새빨간 거짓말이 수면으로 올라오는 지금에 와서야 이 논란을 남 탓으로 돌리며 응급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그들이 진정 가리왕산의 복원을 생각했다면 이미 10년 전부터 수많은 것들을 준비했어야 했다. 훼손하기 이전, 주변을 포함한 자연환경의 정밀조사를 통해 복원에 필요한 수목을 기르기 시작해야 했으며, 토양을 준비해야 했고, 변화된 환경에서 어린 식물의 적응 가능성을 검토했어야만 했다.

알파인 경기장 주변, 지난달 상대적으로 적은 비에도 불구하고 재난관리기금으로 응급복구를 진행해야 할 만큼 큰 피해를 입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60조원이 넘는 경제효과와 32조원의 관광수익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이 많은 수익을 내고도 수익의 1%도 되지 않는 가리왕산의 복원비용은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어디로 갔을지 모를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지금부터 벌어질 손해는 또 고스란히 우리의 세금으로 메꿔야만 한다. 그렇게 자본은 권력과 결탁해 이익을 사유화하고 자신들이 메워야 할 손해를 공유화한다.

교육의 힘은 위대하다. 바르건 바르지 않건 이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은 실시간으로 미디어에 의해 전달되며 훌륭한 학습효과로 각인된다. 멀게는 일제강점기의 친일매국자들, 독립운동가들과 그 후손이 만들어낸 엇갈린 삶의 역사, 29만원밖에 없는 사람이 살아온 역사, 가까이에는 갑질 재벌가가 만들어내는 일그러진 풍경들이 우리에게 건네는 살아 있는 학습의 효과는 정말 대단하다. 학자적 양심으로 4대강을 반대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지금까지도 힘든 시간을 보내는 반면, 그 부역자들은 정부의 막대한 연구지원을 기반으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현실에서 어느 누가 공익과 정의를 위한 목소리를 낼 것인가? 교과서보다 더 중요한 이 살아 있는 교육에서 우리가, 특히 앞으로 사회를 이끌 청소년들이 배우는 교훈은 무엇일까? 공무원이 되기 위해, 법관이 되기 위해, 시험에서는 교과서에서 외운 정의로운 죽은 답을 찾겠지만, 공무원이건 판사건, 검사건 현실에서 마주한 이 살아 있는 학습결과를 따르는 지금의 사회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논란이 되고 있는 4대강 복원을 포함하여 하천이나 계곡의 복원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다. 강물의 거대한 힘이 스스로 복원의 기반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반면 산림, 그것도 고산식생 복원은 수십 년의 노력으로도 효과를 보기 어려운 까다로운 작업이다. 이미 가장 중요한 10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해 제대로 된 복원을 위해서는 더욱 험난한 과정을 겪어야 하지만 그래도 지금이 가장 빠른 시작이기에 하루빨리 체계적 계획을 수립해야만 한다. 아울러 재해 방지를 위한 조치는 확실히 하되 반드시 임시적이어야만 한다. 재해방지를 위한 시설물이 고착화되는 순간 복원은 영영 사라지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났다. 촛불혁명의 사후약속은 정의로운 삶이 훨씬 고귀하다는 것을 새 역사로 만들어가야 할 시대적 책무일 것이다.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미는’ 후진적 지방자치는 사라져야 할 때이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잊지 말자, 4대강 찬동 인사  (0) 2018.07.06
가리왕산, 리셋!  (0) 2018.06.22
가리왕산·4대강 ‘오리발’  (0) 2018.06.15
친환경 선거 만들자  (0) 2018.06.08
수소전기차와 ‘맑은 미래’  (0) 2018.06.01
서해 NLL에 평화의 풍력발전기를  (0) 2018.05.04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선거철이다. 기다랗게 벽보가 붙었다. 비에 젖지 않도록, 손상이나 훼손 방지를 목적으로, 비닐에 감싸여 있다. 어느새 거리마다 현수막이 즐비하다. 차량 통행이 많은 사거리엔 현수막이 빼곡하다. 건물 한 면에 통째로 붙인 것도 있다. 당 상징 색깔에 후보자들 번호와 이름이 쓰여 있는 점퍼와 모자를 입고 쓴 선거운동원들이 홍보에 열심이다. 번호와 이름이 적힌 어깨띠도 보인다. 인적이 많은 거리에선 후보들 경력이 빼곡히 적힌 명함을 나눠주느라 분주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선 집으로 공보물을 보낸다. 화려한 색상의 고급용지로, 웬만한 노트보다 두껍다. 작은 트럭을 개조한 유세차량이 길거리 여기저기에 세워진 채, 또는 거리를 오가며, 후보 알리기에 여념이 없다. 자동차나 휴대용 확성기에선 소음 수준의 로고송이나 유세연설이 흘러나온다. 일상적인 선거철의 익숙한 풍경이다.

슬슬 의문이 든다. 도대체 선거기간 동안 전국에 붙인 벽보는 얼마나 될까? 현수막은 몇 개나 될까? 벽보나 현수막은 선거가 끝나면 어떻게 처리될까? 얼마나 많은 명함이 만들어지고 선거 공보물은 또 얼마나 될까? 후보들 번호와 이름, 구호가 적힌 점퍼나 모자, 어깨띠는 어떻게 할까? 트럭인 유세차량에서 사용하는 경유는 얼마나 될까? 이렇게 한 번 선거를 치르기 위해 베어지는 나무는 몇 그루나 되고 발생하는 미세먼지는 얼마나 되며 기후변화를 야기하는 이산화탄소는 또 얼마나 배출될까? 자원순환사회연대에 따르면 선거 뒤 현수막 처리에만 30억원이 든다고 한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환경문제가 심각하다.

후보자들이나 정당 입장에선 어떻게든 후보자 얼굴과 공약을 알려 한 표라도 더 얻고 싶겠지만 플라스틱 쓰레기 대란을 겪은 적이 있고 미세먼지에 시달리며 기후변화 위험이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런 식의 선거문화를 그대로 유지해도 되는 걸까? 후보들은 저마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면서 친환경 공약도 내세우지만 이런 환경에 부담 주는 선거문화가 도리어 국민 삶을 해칠 수 있다. 이번 지방선거 공식 선거기간은 5월31일부터 6월12일까지 13일로, 선거가 끝나면 용도 폐기되어 버려질, 단 13일 쓰고 버릴, 선거용품과 옷들이 넘쳐난다. 대다수 국민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2018년의 선거문화, 20세기와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친환경 선거운동을 하는 후보들 이야기도 간간이 들린다. ‘터치포굿’이란 단체가 제공하는 ‘친환경선거 체크리스트’를 실천하는 후보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 더 많은 후보들이 참여하면 좋겠다. 하지만 몇몇 후보의 자발성에 기대기보다 제도 변화로 선거문화 자체를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일단 선거공보물, 너무 아깝다.

선관위 홈페이지에 이미 ‘우리동네 후보자 찾기’ 기능이 있다. 살고 있는 동네만 넣으면 후보와 공약 모두 알 수 있다. 이렇게 간단하고 손쉬운 사실을 아는 시민이 얼마나 될까? 우선 이 사실을 널리 알리자. 이 기능만 잘 사용한다면 공보물을 일일이 집으로 보낼 필요가 없다. 물론 아직도 인쇄물이 필요한 시민들도 있다. 그러니 인쇄물이 필요 없는 사람들이 선관위에 신청하도록 하자, 우리 집엔 보내지 말라고. 현수막은 가능한 한 수를 더 제한하자. 사용 후엔 지금처럼 뜻있는 후보들만 새사용업체(업사이클링업체)로 보내고 대부분 매립하거나 소각하게 두지 말고 모두 새사용업체로 보내게 하자. 신발주머니로 만들어서 학교로 보내는 건 어떨까? 신발주머니 사용에 선거와 친환경 선거의 의미, 새사용의 필요를 익히는 덤도 누릴 수 있다. 유세차량 운행을 줄이고 소음도 규제기준을 정하자. 차제에 이런 방식도 다시 생각해보자.

누가 로고송 듣고 율동 보고 그 후보, 그 정당에 표를 줄까? 유권자는 정책공약을 바란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리왕산, 리셋!  (0) 2018.06.22
가리왕산·4대강 ‘오리발’  (0) 2018.06.15
친환경 선거 만들자  (0) 2018.06.08
수소전기차와 ‘맑은 미래’  (0) 2018.06.01
서해 NLL에 평화의 풍력발전기를  (0) 2018.05.04
일회용품 사용, 이대론 안된다  (0) 2018.04.13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현대자동차가 수소전기차 ‘과잉광고’를 연일 신문지면에 쏟아내고 있다. 미세먼지를 99.9% 걸러내는 공기청정기이자 발전기로서 “우리 아이들의 맑은 미래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것이 광고의 핵심 내용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서는 이런 광고에 설득당했는지 한 대에 7000만원 가까운 구입비용 중 4000만원가량을 지원한다고 한다. 3000만원에 새 차 한 대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인데, 구입 신청자가 넘쳐나서 이미 지원금이 소진되었다는 말이 들린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가 만든 물건을 광고하는 것은 조금 ‘과장’이 들어가 있다고 해도 크게 탓할 것이 못된다. 하지만 미세먼지를 ‘완벽’에 가깝게 제거하는지, 정말 “우리 아이들의 맑은 미래를 위해서” 필요한지 검증해보지도 않고 수천만원을 국민 세금으로 내주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자동차는 물만 배출한다고 해도 도로를 달리는 것만으로도 상당량의 미세먼지를 만들어낸다. 달리는 동안 도로면에 가라앉아 있던 먼지를 휘저어 날려서 미세먼지의 농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타이어와 도로의 마찰을 통해서도 많은 양의 미세먼지를 내놓는다. 작년 독일 남서부에서 수행된 미세먼지 측정값 분석에 따르면 공기 1㎥에 들어 있는 미세먼지 중 1.9㎍이 자동차 매연에서 나온 것이었고, 그것의 여섯 배에 달하는 11.9㎍은 자동차의 주행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었다. 모든 자동차를 미세먼지 99.9% 제거능력이 있는 수소전기차나 매연이 없는 전기차로 바꾸어도 도로에서 달리는 자동차의 숫자가 크게 감소하지 않는 한 미세먼지 농도가 줄어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수소전기차의 ‘과잉광고’에서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 연료가 어디에서 오는 것이냐이다. 수소전기차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되는 것이 수소충전소가 적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는 엉뚱하게, 그러니 중앙정부와 지자체에서 수소충전소를 많이 보급해야 한다는 쪽으로 흘러간다. 충전소 한 개 건설하는 데 수십억원이 들어가는데, 거기에도 세금을 쏟아부으라는 말이다. 연료로 사용되는 수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는 거의 논의되지 않는다. 수소는 정유공장의 부산물로 얻어지기도 하지만 원리적으로는 천연가스나 물을 분해해서 얻는다. 이때 모두 에너지가 투입되고, 천연가스의 경우 이산화탄소가 생성된다. 가격은 천연가스보다 높고, 전기분해를 이용할 경우 전기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이 전기가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생산되는 것이면 미세먼지도 많이 발생한다.

수소전기차는 전 세계 자동차회사에서 20여년 전인 1990년대부터 개발하던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이미 13년 전에 수소전기차를 선보였고, 대통령은 그걸 타고 청와대를 한 바퀴 돌았다. 차에서 내린 후 그는 “명실공히 수소전지 시대로 갑니다. 제 임기 동안 적극적으로 밀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고, 엄청난 연구개발비가 수소 연구에 투입되었다. 그런데 수소전기차는 그 후 십수년간  잠잠하다가 이제야 시판이 시작되었다. 그사이 기존 자동차회사에서 거들떠보지 않던 전기차는 승승장구하여 수백만대가 보급되었다.

수소전기차가 “우리 아이들의 맑은 미래”를 위해 전망이 밝다면 내가 낸 세금이 지원금으로 들어가도 괜찮다. 그러나 순수 전기차와 비교할 때 수소전기차는 전망이 좋지 않다. 경제성, 연료조달, 미세먼지 어떤 면을 따져봐도 전망이 밝아 보이지 않는다. 지난 30년간 수소전기차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은 벤츠에서 수소전기차는 ‘계륵’ 정도로 취급되고 있다. 그렇다고 투입한 돈이 있으니 없애지도 못한다. 수소전기차에 매달리다보니 그동안 획기적인 전기차도 개발하지 못했다. 현대자동차는 벤츠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수소전기차에 매달린다. 결정은 자유지만, 거기에 내가 낸 세금이 쓰이는 것은 반대한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문재인 대통령님께.

저는 북한의 에너지 담당자입니다. 지난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님과 김정은 위원장 두 정상의 판문점선언을 접하고 가슴이 벅차올라 이 편지를 씁니다. 두 분은 선언에서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겠다고 하셨습니다. 에너지를 담당하는 저는 이 발표를 듣고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인정했듯이 북한은 도로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에너지 사정도 좋지 않습니다.

1994년 제네바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어 미국이 약속한 1000㎿급 경수로 2기만 완공되었어도 에너지 상황은 꽤 좋았을 것입니다. 지금 북한의 인민은 1990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전력을 공급받으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원자력발전소가 24개나 돌아가고 있고 한 사람이 소비하는 전기가 우리의 20배나 되는 남한에서는 경수로 2기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경수로는 지금 북한 전역에서 사용되는 전기를 모두 공급할 수 있는 아주 큰 의미를 지닌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경수로 건설뿐만 아니라 중유 공급마저 끊어버렸습니다.

사실 저는 경수로 2기 건설이 포함된 제네바합의가 그다지 반갑지 않았습니다. 완공 시점으로 못 박은 10년 안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앞섰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김정은 위원장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것이지만, 경수로 건설은 처음부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스위스에서 학교를 마칠 2000년경 독일을 거쳐 덴마크의 코펜하겐으로 수학여행을 간 일이 있다고 합니다. 이때 독일에서는 지붕에 태양광발전기를 올리고 벌판에 풍력발전기를 세우는 일이 한창이었고, 코펜하겐 앞바다에는 풍력발전기 20개가 세워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말씀 중에 완공되지 못한 경수로 2기 건설에 대해서도 언급하셨는데, 실패한 이유는 핵을 태양광이나 풍력같이 평화공존에 근본적으로 기여하는 대안을 가지고 해결하려 하지 않고 핵무기와 마찬가지로 평화를 위협하는 핵발전으로 대신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더라도 저는 경수로 2기 건설에 투입된 2조원 이상의 비용이 아까우니 경수로 2기의 건설을 재개하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지만 그걸 고집하지는 않겠습니다. 대신에 북한에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을 널리 퍼뜨리는 일을 남한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그 첫 번째 사업으로 저는 서해 북방한계선을 따라 풍력발전기를 세우자는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북방한계선은 길이가 200㎞가 넘습니다. 한계선을 따라서 250m 간격으로 풍력발전기를 세우면 800개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남한에서 제주도 한경면 앞바다에 건설한 3㎿급 해상 풍력발전기를 그곳에 세운다면, 경수로 2기에 필적하는 2400㎿의 풍력단지가 남북 협력과 평화의 상징으로 건설되는 것입니다.

물론 10조원 정도의 큰 비용이 들어갑니다. 그렇지만 수조원을 쏟아붓고 중단한 경수로 사업과 비교하면 그렇게 큰 비용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비용의 조달과 발전단지 운영은 김정은 위원장이 보고 감명을 받은 코펜하겐 해상풍력단지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돌아가는 풍력발전기 20개 중 절반은 코펜하겐 전력공사 소유이고, 나머지 절반은 코펜하겐 시민 8000명 이상이 참여한 협동조합 소유입니다. 우리도 이런 식으로 남북한 정부에서는 공동으로 북방한계선 풍력발전공사를 설립하고, 남한의 시민과 북한의 인민은 공동으로 출자한 협동조합을 설립하여 북방한계선 구간에 풍력발전기를 세우면, 지금까지 남과 북의 많은 젊은이가 목숨을 잃은 분쟁지역이 평화의 구역으로 바뀔 것입니다.

판문점선언으로 이런 생각과 제안을 할 수 있게 해주신 대통령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재활용 폐기물 대란이 있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분리배출을 하고 있고 어딜 가나 종류별로 재활용 쓰레기통이 갖춰져 있어 분리수거가 잘되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사실 우리나라 환경정책 중에서 가장 내세울 만한 정책이 폐기물정책이었다. 한국의 폐기물정책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칭찬하는 모범사례로 꼽혀 왔다. 전국이 일시에 종량제 시행에 들어갔고 제도 시행 후 재활용률이 높아졌으며 분리배출이 문화로 자리잡은 듯했다. 2013년 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폐기물 재활용률은 59%로 독일(65%)에 이어 세계 2위였다. 이런 나라에서 재활용 폐기물 대란이라니!

폐기물 관련 숫자들을 보면 놀랍기도 하지만 곪았던 상처가 터진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컵이 무려 연간 260억개, 하루 7000만개란다. 비닐봉지 연간 사용량은 2015년 기준 1인당 420개다. 국민 한 사람이 매일 일회용 컵과 비닐봉지를 하나 이상 쓰고 있는 셈이다.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은 98.2㎏으로 세계 1위, 포장용 플라스틱 사용량은 64.1㎏(2017년 기준)으로 세계 2위다.

압축된 PET 뭉치. 김영민 기자

이대로는 안된다. 폐기물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감량’이다. 재이용, 재활용, 자원 회수 이전에 나날이 늘어나는 발생량 자체를 줄이는 것이 가장 먼저다. 거리 곳곳에 생겨난 커피전문점에서는 종이컵 사용이 기본이다. 매장 안에서도 플라스틱 뚜껑을 닫은 종이컵을, 그것도 마분지 홀더까지 끼워서 쓴다. 매장 밖으로 가져가니 종이컵에 담아달라고 부탁하는 게 아니라 매장 안에서 마실 거니 머그잔에 담아달라고 따로 요청해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찬 음료를 담은 플라스틱 용기에도 홀더를 끼워 쓴다. 냉장고에 진열된 병 주스를 사도 따로 플라스틱 용기에 얼음을 담아준다. 텀블러를 사용하면 할인혜택을 주는 매장도 있지만 모두 그런 것도 아니다. 비가 올 때면 곳곳에선 일회용 비닐봉지가 으레 사용된다. 보고 버릴 영수증도,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가 오지만, 매번 출력된다. 이제 이런 게 일상이고 문화가 되어버렸다.

일회용 컵의 경우 회수율을 높이고 재활용을 촉진하기 위해 보증금 제도가 2002년에 도입되었다.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규제 완화의 일환으로 이 제도를 폐지해 버렸다. 2010년에는 중소기업 부담을 이유로 플라스틱 폐기물 부담금 면제와 경감 범위를 크게 완화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서는 테이크아웃 일회용품에 대한 규제가 사라졌다. 그 사이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경계도 느슨해졌다.

제도적 장치가 사라진 자리에 커피전문점과 1인 가구, 소규모 포장 증가와 택배업체 과다 포장 등의 요소가 맞물리면서 폐기물 배출량은 빠르게 늘었다. 소비자의 세심하지 못한 분리배출도 문제를 키웠다. 중국의 재활용 폐기물 전면 수입 중단으로 그동안 숨겨져 있던 폐기물 처리의 불편한 진실이 민낯을 드러낸 것이다. 중국의 수입 중단 예고가 지난해 7월에 있었고 올 1월부터 실제 금지에 들어갔지만 환경부가 제대로 된 대처방안을 미리 마련하지 않아 상황이 악화되었다.

지난해 환경부가 실시한 일회용 컵 보증금제 재도입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9.9%가 찬성했다. 보증금제 도입에 대한 국민 수용성이 높은 상태다. 기대한 감량과 재활용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감량이 중요하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진 못한다. 상품 생산자에게 비용을 부담시키는 생산자재활용책임제를 확대·강화하여 생산과 유통단계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재활용이 손쉽게 이루어지도록 용기와 포장재질을 개선하는 방안도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정부와 기업, 시민, 모두의 책임 있는 실천이 절실한 시점이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우리나라에는 현재 24개의 원전이 가동 중이다. 발전용량은 2만2529㎿이고 전체 전력의 30%가량 생산한다. 석탄발전소에서는 그것보다 더 많은 40%를 생산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둘을 모두 줄여나가고, 이를 통해서 언젠가는 에너지전환을 이룩하려 한다. 문제는 원자력과 석탄화력으로 생산하는 그 많은 전력을 무엇으로 만들 것인가인데, 정부에서는 태양광과 풍력이 역할을 해주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방송통신대 학생들과 함께 에너지전환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에 그게 가능한지 계산해보았다. 전원믹스를 고려하여 태양광으로 전체 전력의 30%인 원전을 대체하고, 풍력으로 석탄화력의 40%를 생산한다고 가정하고 계산을 하였다. 결과는 태양광이나 풍력 모두 원전과 석탄을 대신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태양광으로 원전이 생산하는 30%를 충족하려 할 때 필요한 용량은 원전의 다섯배가 조금 넘는 13만5000㎿였고, 설치에 필요한 면적은 약 1215㎢였다. 서울시의 2배 정도, 남한의 1.2%에 달하지만, 남한 전역에 퍼져 있는 건축물 지붕과 농토의 일부만 이용해도 얻을 수 있는 면적이다.

석탄을 풍력으로 대치하는 경우에는 계산이 조금 복잡해진다. 육지는 바람이 약해서 일부 산간지방과 해안을 제외하면 풍력발전기를 세울 만한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바람이 강한 바다로 나가야 하는데, 이 경우 풍력으로 석탄을 대치하려면 8만㎿ 용량의 발전기를 세워야 한다. 면적은 6만㎢ 정도가 필요하다. 남한 국토면적의 60%에 달하지만, 북쪽을 빼고 3면이 모두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나라에서 확보가능한 면적이다. 현재 1만6000㎿의 해상풍력발전소가 가동 중이고, 2020년에는 2만5000㎿의 발전소가 바람을 이용해서 전력을 생산하게 될 영국과 비교할 때 수십년 계획을 세우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문제는 건설비용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이다. 태양광 건설비가 ㎿당 약 1억4000만원, 해상풍력이 ㎿당 약 40억원이므로, 현재를 기준으로 단순하게 계산할 때 투입되어야 할 비용은 태양광이 약 200조원, 해상풍력은 약 300조원이 된다. 정부의 1년 예산과 맞먹는 대단히 많은 돈인데, 대부분의 관료나 정치인은 대기업이 나서주지 않으면 조달이 안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거대자본들이 큰돈을 투입해서 바다에 풍력단지를 세운다는 발상은 촛불혁명 전에나 수용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촛불혁명을 통해 국가의 주인이 시(국)민이라는 것을 뚜렷하게 인식하게 된 촛불시민들은 이런 발상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바다와 바람은 공유자원(커먼스)이다. 당연히 국가와 시민들이 공공을 위해 관리하고 개발하고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거대자본에 넘겨주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영국에서 해상풍력은 모두 거대자본이 가져가고 있다. 이에 대해 대다수 시민들은 별 관심이 없고, 민주사회에서 에너지전환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고민해왔던 소수의 시민들만 간간이 우려를 표할 뿐이다. 이들은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독일의 에너지전환 과정을 부러워하지만, 독일도 재생가능 에너지의 전력생산 비중이 30%를 넘어선 후에는 거대자본이 해상풍력이라는 큰 프로젝트에 뛰어들고 있다. 정부도 이들을 적극 지원한다. 물론 비판하는 세력도 있지만, 이 추세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들은 바다와 바람이라는 커먼스가 거대자본에 선점당하면 되돌릴 수 없다고 우려하며 안타까워한다.

에너지전환은 기술의 변화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촛불혁명의 정신과 상통하는 에너지전환 정신이 제거된 기술만의 변화는 진정한 에너지전환이 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조급증에 걸려서 커먼스를 거대자본에 내주면 이런 비극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성서에서 ‘40일’은 중대한 일을 앞두고 준비하는 기간을 상징합니다. 교회도 부활절 전 40일을 ‘사순(四旬) 시기’로 지냅니다. 지금이 그때입니다. 사순 시기는 회개의 때입니다. 회개는 특정한 잘못의 뉘우침보다는 자신을 어떤 면에서 근원적으로 변화시킬 마음의 변화를 뜻합니다. 회개는 현재 삶의 태도를 깊이 성찰하고 그 결과에 따라 삶의 방향을 돌리는 것, 곧 돌아섬입니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또 무엇을 향해 돌아서려고 하는가?” 매년 이때 되새기는 물음입니다.

소비주의는 오늘 우리 사회를 규정하는 핵심어입니다. 소비주의는 필요 이상으로 많이 소비하는 경향이나 그렇게 부추기는 경향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것도 심각한 문제이긴 하지만, 소비주의의 근본 문제는 우리를 ‘소비자’라는 특정한 유형의 인간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소비주의는 사람들이 “무엇이든 찾아내거나 만들거나 기르기보다는 사는 게 낫다고 여기게” 만듭니다(웬델 베리, <온삶을 먹다>). 소비주의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우리는 직접 문제의 답을 찾아내고 필요한 것을 만들고 길러내는 능력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사고 쓰고 버리는 과정이 확대 재생산됩니다. 그러는 동안, 써서 없애는 데 길들여진 우리는 수동적이고 무기력하게 변합니다. 이것이 바로 소비자의 모습입니다. 소비자가 만들어내는 건 쓰고 버리는 쓰레기입니다.

소비주의 사회에서는 소비 능력이 큰 사람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소비를 많이 하려면 많이 소유해야 하고, 그만큼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경쟁은 치열해지고,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옆을 바라보는 건 금물, 앞만 보고 질주해야 합니다. 뒤처지는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말고 자기에게만 몰두해야 합니다. 자연생태계의 훼손도 인간의 풍요와 편리를 위해서라면 그다지 대수로운 일이 아닙니다. 소비주의는 이렇게 경쟁과 자기몰입과 무관심을 확대 재생산합니다. 단절과 고립의 벽이 도처에 생겨납니다.

무언가 문제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 때도 있지만, 매력적인 모습으로 치장한 소비주의는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고, 소비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회유하고 위협합니다. 무한한 풍요와 편리라는 환상에 빠져 있는 한, 우리는 자신과 사회와 자연생태계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 가는지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설사 소비주의의 근본 문제를 본다고 해도 저항하기 힘듭니다.

얼마 전,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한 수녀님을 찾아가 수녀원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흙과 나무로 지은 아늑한 집에서, 소박하지만 정갈한 밥상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수녀님이 상에 놓인 음식을 가리키며 먹을거리는 가능한 한 직접 길러서 마련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자랑으로 비칠까, 수줍은 표정 속에서 직접 ‘찾아내고 만들고 길러내는’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건강한 자부심이 배어나옵니다. 사람에게 좋기 때문이 아니라 땅을 살리기 위해서 유기농을 한다고 말하는 수녀님에게서 땅을 믿고 땅에 기대어 사는 사람의 겸손이 묻어나옵니다. 불편하지만 오줌과 똥을 모아 거름을 만들어, 땅에 힘을 북돋아줍니다. 땅은 우리의 모태이니, 땅이 건강해지면 사람도 건강해집니다. 그렇게 우리는 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능한 한 기계 없이 몸으로 하려다보니, 농사를 크게 짓지 않습니다. 대신, 조금 덜 쓰면서 지냅니다. 덕분에 쓰레기가 덜 생겨나고, 마음의 여유를 더 누립니다. 어느 날 슬며시 찾아와 한 식구가 된 도도한 러시안 블루 ‘도도’도 수녀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습니다. 따뜻한 관심과 환대의 물줄기가 단절과 고립의 벽을 허물고 흐릅니다.

하루의 어설픈 노동으로 밥값을 대신하고 소비가 일상인 곳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묻고 싶은 말이 떠올랐습니다. “수녀님, 그래도 이런저런 것들이 없어 불편하지요?” 수녀원 부엌 입구에 걸려 있는 나무판 속의 글귀가 대신 답해줍니다. “없는 대로, 불편한 대로.”

<조현철 신부 녹색연합 상임대표>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