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원자력주의자들에게 탈원전, 에너지전환은 재앙이다. 그들 자신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도 재앙이다. 탈원전은 한국 경제를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재앙, 태양광은 중금속 범벅의 처치 곤란 폐기물 더미만 남기는 재앙, 풍력발전은 산과 들과 어장을 망치는 재앙일 뿐이다. 이들에게 재앙이 미치는 범위는 대단히 좁다. 남한이라는 공간, 현재라는 시간, 돈이라는 물적 가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지구와 미래라는 시공간, 행복한 삶이라는 가치는 일고의 고려 대상도 되지 못한다. 전 지구와 인류의 미래가 걸린 기후변화는 저 멀리 남의 이야기일 뿐이고, 핵폐기물을 떠안을 후손들의 행복은 더더욱 관심 밖이다. 자기 이익을 지킬 수만 있다면 필요한 자료와 수치를 부풀려 에너지전환을 공격하는 것만이 이들의 주요 관심사이다.

기득권 수호에만 매달리는 한국의 원자력주의자들과 달리 인류의 미래와 다음 세대의 행복을 위해 원자력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지금 인류에게 닥치고 있는 가장 큰 재앙은 기후변화이다. 이들이 보기에 기후변화는 지금 지구와 인류사회를 종종 비상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고, 미래세대가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것을 대단히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들은 탈원전, 에너지전환에 대해 한국의 원자력주의자들과는 정반대로 지구라는 공간, 미래라는 시간, 행복한 삶의 추구라는 시각에서 비판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람은 제임스 핸슨이다. 그는 1988년 미국 의회에서 기후변화의 위험에 대해 최초로 경고했고, 수많은 기후변화 관련 연구논문을 발표한 과학자이다. 팔순을 바라보는 그는 미국 나사에서 보낸 50년 가까운 과학자 생애의 대부분을 기후변화와 맞서는 데 바쳐왔다. 몇해 전에는 백악관 앞에서 오일샌드 파이프라인 건설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그는 재생가능에너지의 효용을 부정하지 않는다. 악의적으로 부작용을 과장하거나 왜곡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으로는 기후변화를 막기에 역부족이라고 본다.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탄소세를 점진적으로 올리고 안전이 확보된 원자력발전소를 크게 늘리자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손녀딸과 함께 미국 연방정부를 상대로 기후변화로 침해되는 손녀의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위한 권리를 보장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항공우주국 고다드우주연구소 제임스 핸슨 소장이 기후 변화에 관한 이론을 나타내는 주사위를 들어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기후변화 해결을 위한 원자력 확대라는 핸슨의 주장에 대해 급진적이고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은 제기되지만, 그의 진정성이 의심받는 일은 없다. 원자력계의 로비와 그의 원자력 옹호 활동이 연관돼 있다고 보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과 행동은 주목받고 진지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

한국의 원자력주의자들 중에서는 기후변화의 위험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최근 독일의 에너지전환 정책을 비판하는 책을 출간해 원자력주의자들에게서 크게 환영받은 국회의원도 독일의 에너지전환이 기후변화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점에 대해선 거의 주목하지 않는다. 책에는 오직 에너지전환과 재생에너지 정책이 독일에서 막대한 비용을 초래했고, ‘대한민국 블랙아웃’이라는 재앙을 예비하는 것이라는 우려의 소리만 있다.

지금 폴란드 카토비체에서는 세계 기후변화회의가 열리고 있다. 수십년 전부터 해마다 열리지만 결과는 초라하기에 크게 주목받지 못하지만, 그렇다 해도 한국 언론과 정치권의 무관심은 놀랄 만하다. 원자력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에너지전환 진영에서도 한마디 들을 수 없다. 이미 평균기온 1.5도 상승으로 기후변화의 영향이 확연하게 느껴지는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원자력이 살길인지 에너지전환이 올바른 길인지 조금이라도 언급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특히 원자력주의자들이 오직 남한이라는 좁은 공간에서의 부자 되는 삶이라는 구시대적 시야에 갇혀 있다면 그들의 주장은 지지를 넓히지 못하고 원자력 수호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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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들어설 즈음, 많은 사람들은 세상이 획기적으로 바뀔 것이라 기대했다. 개인적으로도 기대가 컸다. 기회가 돼 우리나라의 심각한 자연환경 훼손 문제 개선을 위해 그간 쌓인 적폐 중 꼭 청산해야 할 한 가지를 주문한 바 있다. 개발자가 작성하는 환경영향평가서를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가 작성토록 바꾸자는 것이었다. 언뜻 당연해 보이는데 아직까지 우리 법에는 개발할 사람이 예정지의 자연환경을 조사하고 평가토록 하고 있다. 

생각해보자. 내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골프장이나 관광단지를 조성하려 산과 들을 매입했는데, 그곳이 보전을 통한 공익적 가치가 개발가치를 훨씬 능가하는, 국민 모두를 위해 보전되어야만 하는 곳이라면 개발당사자는 어떠한 행동을 취할까? 국익을 위해, 나보다는 국민을 위해 희생한다? 그런 일은 동화책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이며 초등학생에게나 감동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외부정보에 눈을 뜨고 사회적 기준에 의한 가치판단이 시작될 나이가 되면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정의’보다는 부정한 행위가 훨씬 거대한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접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회적 약자의 최후의 보루인 법원과 법을 집행할 판사들조차도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으니 말 다한 셈이다. 극히 일부에 의해 벌어지는 일탈로 전체를 깎아내리면 안된다며, 자극적인 언론의 문제를 탓하기에는 국민이 느끼는 불신의 골은 이미 너무 깊다. 국민은 이런 적폐를 청산하자고 하는데 청산의 시동도 제대로 걸지 않은 지금, 기득권층은 드러나지도 않은 사회문제 해결에 딴지를 걸며 피로사회를 부추기기에 여념이 없다.

새 정부에 대한 많은 기대 속에 내심 환경영향평가법의 빠른 개정을 바라왔다. 늘 후순위인 환경문제는 역시나 이번 정부에서도 후순위였으며, 그나마 일부 개정된 환경영향평가법은 알맹이를 쏙 뺀개정안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자연환경관리의 획기적 개선을 위해, 자연보전 가치의 인식증진을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이 문제를 정부는 왜 해결하지 않는가.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정부도 개발업체와 마찬가지로 보전보다는 개발에 앞장서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정부 주도의 개발사업이 환경영향평가에 의해 무산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리라. 4대강의 졸속 환경영향평가, 사드기지, 최근 문제가 불거진 흑산도 공항이 그렇다. 수많은 정부 주도 개발사업은 토건세력과 정부의 암묵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에 개인과 마찬가지로 사업의 빠른 진행에만 관심을 가지며 공익적 가치에 대한 올바른 평가에는 관심이 없는 게 아닐까. 이번 개정된 환경영향평가법 시행령에 ‘거짓·부실 검토 전문위원회’를 두어 공정성을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공무원이 다수가 될 위원회에서 정부의 개발사업을 거짓으로 평가할 리는 만무하다. 정부위원이 과반수인 각종 위원회가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정부의 입맛대로 진행되는 과정을 이미 보아오지 않았던가?

일례로 지난 오색케이블카의 환경영향평가 조사자료는, 조사자가 산을 순간 이동하지 않는 이상 시간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조사결과가 자료로 제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부를 포함한 정부관계자들은 절대 영향평가서가 ‘거짓’은 아니라는 옹색한 변명으로 일관했다. 조사원본 제출요구를 사업자가 받아들이지 않자, 이를 감시해야 할 환경부 고위관계자는 설마 조사결과를 ‘거짓’으로 작성했겠느냐면서 사업자인 지자체와 조사업체를 두둔하기에 바빴다. 지자체의 일도 이러한데 중앙정부 주도의 개발사업은 어떨지 뻔하다.

제3자가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한다면 가장 많은 제동이 걸릴 사업들은 눈앞의 표를 위한 공약에서 시작되는 정부의 대규모 토건사업들이 아닐까?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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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의 비상근 이사장으로서, 뒤셀도르프를 거쳐 베를린에 머물며 독일의 주요 에너지·기후변화 관련 싱크탱크를 만나고 에너지전환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매번 방문할 때마다 독일의 에너지전환 움직임이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도대체 이들은 어떻게 이렇게 앞서 나갈 수 있는 걸까? 독일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사고 직후 ‘안전한 에너지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출범시켜 광범위한 사회적 대화를 진행한 후 당시 17기 원자로 가운데 노후원자로 9기를 즉각 정지시키고 남은 8기를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줄여가기로 했다. 작년에 이미 1기가 문을 닫아 이제 7기만 남았다. 그 사이 재생가능에너지 이용은 점차 늘어나 지난해 전력 생산의 33.3%가 되었다. 원자력은 11.7%에 불과했다. 원자력발전에서 최고 25만명을 고용했는데 이미 재생가능에너지 일자리가 36만개로 원자력을 넘어섰다.

에너지전환이란 목표가 분명하니 흔들림이 없다. 더 이상 에너지전환이 옳으니 그르니, 목표가 현실적이니 그렇지 않으니, 그런 이야기가 설 자리가 없다. 문제는 ‘어떻게’일 뿐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 보다 다양하고 현명한 정책수단을 만들고 이행하며 혁신에 혁신을 더하고 있다. 건물 지붕과 벽면에, 도로와 유휴부지에 태양광 패널이 들어서고 경작지 한가운데 풍력발전기가 세워져 있는 모습을 보며 우리 사회에 떠돌고 있는 가짜뉴스들이 생각나 쓴웃음이 났다. 실리콘 기반 태양광 패널에는 있지도 않은 크롬과 카드뮴 타령에, 전혀 문제가 안되는 빛 반사나 온도 상승, 전자파 등을 거론하는 이들은 이런 모습에 무어라 말할까? 에너지전환이란 화두조차 이념의 대상이 되고 정치화되어버린 우리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질 따름이다.

독일의 에너지전환이 지금처럼 성장하고 더욱 탄력을 받으며 추진되는 건 무엇보다 든든한 시민의 지지와 참여가 있기 때문이다. 독일 시민들은 에너지전환을 위해 전기요금 인상을 기꺼이 수용했다. 저렴한 전력 대신 재생가능에너지 지원을 위해 더 높은 요금을 부담하는 녹색요금제를 선택하기도 한다. 소득 수준이 높지만 추운 날에도 난방온도를 높이지 않고 실내에서 두꺼운 스웨터 껴입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여름 40도가 넘는 폭염에도 대부분의 시민은 에어컨 없이 한여름을 보냈다. 호텔이나 어디에도 하루 온종일 변좌를 데워두는 비데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이 먼 미래보다는 현재를 더 선호하는 시간선호가 있다고 하는데 독일인들과 대화해보면 이들은 곧잘 말한다, 미래세대를 배려해야 한다고. 경제학의 시간선호를 거스르는 이런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당장의 금전적 이익보다는 먼 미래까지 내다보며 안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독일을 돌아보며 우리와 독일이 다른 점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지형이나 지리적 조건이 다르고 경제규모와 인구밀도가 다르며 역사와 문화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이 걸어온 에너지전환의 길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과 같을 수 없다. 하지만 독일과 우리는 제조업 비중이 비슷하고 에너지 해외의존도가 높은 유사성이 있기에 중요한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 있다. 차이를 극복하며 에너지전환을 이루기 위해 우리에겐 무엇이 필요할까? 시민이자 소비자인 일반대중의 인식과 선택,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에너지전환에는 진보와 보수가, 여와 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시민 스스로 에너지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생산자로 나서자. 그런 참여에 이익을 주면서 에너지전환을 지향하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정치인에게 우리의 표를 행사하자. 에너지전환의 길에 함께하는 기업의 상품을 선택하도록 하자. 우리의 정치투표와 경제투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독일시민이 우리에게 그런 변화가 가능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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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남부 보덴호 근방에 솔라콤플렉스라는 기업이 있다. 다가오는 세번째 천년기를 앞두고 그 지역 30·40대 청년들이 이 시대에 요구되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을 찾던 중 설립한 사업체이다. 일주일에 걸친 세미나 끝에 그들은 에너지전환이 새 천년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결론을 내리고, 2030년까지 인구 26만명이 사는 이 지역의 에너지전환을 완수하겠다는 결의로 기업을 시작했다. 20명이 5억원으로 시작한 솔라콤플렉스는 그동안 크게 성장하여 18년째가 된 지금 출자자 1200명, 자산 1300억원 이상의 중견기업이 되었다. 학교 옥상에 작은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하던 초기 사업은 이제 마을 전체의 에너지를 재생가능에너지로 공급하는 큰 규모로 발전했다. 현재 솔라콤플렉스에서 1년 동안 생산하는 에너지는 전기와 열을 합해서 약 6000만㎾h에 달한다. 전기로 환산하면 약 2만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솔라콤플렉스는 태양광발전소를 지붕이나 벽에만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땅 위에도 짓는다. 설치 용량을 따지면 땅 위에 있는 것이 지붕 위에 있는 것보다 훨씬 많다. 그런데 이 땅은 밭이나 숲이 아니다. 집을 짓거나 식물을 키울 용도로는 사용하기 어려운 쓰레기 매립지, 철거된 공장부지 등이다. 지금도 계속 비어 있는 땅을 찾고 있는데, 작물을 재배하는 밭에는 가능한 한 설치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이들은 바이오에너지도 상당히 큰 규모로 활용하는데, 이것도 가축분뇨와 목재 찌꺼기가 대부분이다. 에너지작물을 재배하는 등의 사업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지속가능한 사회의 실현이라는 에너지전환의 목표와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2030년까지 에너지전환을 수치상으로만 100% 완수하려면 모든 수단을 활용해야 할 것 같지만 이를 거부하는 것이다.

얼마 전 정부에서 새만금 간척지를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 단지로 활용한다는 ‘새만금 3020 비전’을 발표했다. 수십조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인데,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가능에너지 비중 20%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이런 사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이 계획에 대해 지역과 야당에서는 크게 반발하지만, ‘새만금 비전’의 졸속적 변경이라는 반발 이유가 설득력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일각에서 제기되는 햇빛과 바람이라는 공공재를 대자본에 넘겨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더 귀담아들을 만하다. 물론 정부에서는 이런 비판을 의식하여 펀드 조성을 통해 지역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지만, 이는 전체 사업의 극히 일부에 그칠 것이고, 새만금의 호수와 간척지에 들어설 수십조원의 태양광발전소 건설은 대부분 대자본의 참여로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햇빛과 바람이라는 공공재는 대자본이 독점하게 되는 것이다.

솔라콤플렉스는 독일에서 가장 큰 보덴호 물 위에 대규모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하는 사업은 꿈도 꾸지 않는다. 지붕과 활용하기 어려운 땅에 지역주민들이 힘을 합쳐서 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이 에너지전환을 통한 지속가능 사회의 실현에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정부기관이나 거대자본은 광활한 호수나 간척지에 원자력발전소 서너개와 맞먹는 태양광발전소를 한번에 건설하는 것이 수만개의 작은 발전소 건설보다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3020을 달성해야 하는 정부에서도 단번에 수치가 크게 올라가는 이런 사업을 선호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목표에 도달한다고 해서 에너지전환이 앞당겨지는 것은 아니다. 공공재 독점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은 더욱 커질 것이고, 에너지전환 반대세력은 이에 편승해서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해 악의적인 ‘왜곡정보’를 더 활발하게 퍼뜨릴 것이며, 이는 에너지전환에 커다란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전환은 장기 프로젝트이다. 단기간에 성과를 올리려는 조급증은 오히려 일을 망친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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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교체설이 나도는 청와대 정책실장은 자신이 주도해온 ‘소득주도성장’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고, 여기에 신랄한 비판이 쏟아졌다. 나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을 접할 때마다 그 이름이 궁금했었다. ‘혁신성장’도 그랬다. 알고 보니 각기 분배와 성장을 중시하는 정책이란다. 알고 나니 더 궁금해졌다. ‘분배’라는 말은 왜 빠졌을까? ‘성장’ 대신 왜 굳이 ‘혁신’성장이란 말을 만들었을까? 소득주도성장에서 성장은 여전히 목표로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누구의 소득주도인지 특정되지 않음으로써 소득불균형 문제와 분배의 중요성은 부각되지 않는다. 혁신성장은 규제혁신을 통한 성장이고 규제혁신은 규제철폐나 완화를 뜻하니, 혁신성장은 기존의 성장을 에두르는 말일 뿐이다. 분배를 선명히 내세웠을 때 오는 부담과 과거의 성장 위주 경제정책을 답습한다는 인상을 피하고 싶었을까? 분배를 강조했지만 여전히 성장 패러다임의 철옹성에 갇혀 있는 현 정권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이름은 그것이 가리키는 것의 실체를 드러낼 수도, 감출 수도 있다. 정명(正名), 제대로 된 이름을 붙이는 일이 중요한 까닭이다. 지난여름 폭염의 주범으로 기후변화가 주목을 받았지만, 이 이름 자체는 문제의 실상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변화 자체는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를 “지구적 규모의 폭력”으로 보게 되면 논의할 “우선순위와 가치”가 분명해진다(리베카 솔닛,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누가 얼마만큼 가해자이고 누가 일차적인 피해자인지 따지고 가해자에게 합당한 책임을 묻게 된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노력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 특히 약자에 대한 폭력을 막는 정의와 평화와 연대의 활동이 된다.

최근 임시저장소의 포화문제로 ‘사용후핵연료’가 다시 현안으로 떠올랐지만, 이 이름도 문제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사용하고 난 연탄은 ‘사용후연탄’이 아니라 연탄재라고 한다. 연탄 ‘재’는 쓰고 난 폐기물이고 치워야 할 쓰레기다. 그러나 사용후‘핵연료’는 어쩐지 연료라는 인상을 풍긴다. 재처리와 연결되면 더욱 그렇다. 이런 면에선 ‘고준위핵폐기물’이 더 적절한 표현이지만, 거기에 내재된 치명적 위험을 알려주기엔 여전히 부족한 이름이다. 차라리 ‘죽음의 재’, ‘끌 수 없는 불’이 실체의 정곡을 찌르는 이름이다.

사용후핵연료는 핵반응을 일으키며 엄청난 열을 내뿜는다. 그래서 적어도 10년을 저장수조에서 식힌 후 방사성물질이 누출되지 않도록 10만년 이상을 세상에서 분리, 차폐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안전한 곳에 견고한 영구처분장을 짓는다 해도 완벽한 분리와 차폐는 모든 게 연결되어 있는 세상에선 애당초 불가능한 요구다. 더구나 10만년은 현생인류의 전 역사를 훌쩍 뛰어넘는, 길어야 100년을 사는 우리 인간이 가늠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기간이다.

고준위핵폐기물 처분을 제대로 논의하려면 진정한 반성이 앞서야 한다. 대책이 없음을 알면서도 죽음의 핵폐기물을 만들어온 우리의 행위가 전기 생산이란 명분으로 윤리적 정당성을 얻을 수 있는가? 진정한 반성과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며칠 전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가 내놓은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기초로 원전기술력과 원전산업의 국제경쟁력을 유지·발전시키기 위한 정책을 적극 추진한다”는 합의에서는 반성과 변화의 기미라곤 찾아볼 수 없다. 핵발전이 여전히 현 정부의 에너지정책이라고 착각할 정도다. 탈핵을 선언하고도 수구정당과 핵산업계의 공세에 밀려 머뭇거리는 모습은 분배를 강조하면서도 기존의 성장 정책을 기웃거리는 모습을 빼닮았다. 그러나 기후변화와 핵발전의 실체를 제대로 본다면, 우리가 좇아야 할 “우선순위와 가치”는 경제성이 아니라 안전과 지속가능성이 분명하다. 첫 마음이 맞다. 주권자들은 그 첫 마음을 보고 권력을 위임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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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을 포함해서 가습기살균제, 미세먼지, 폭염, 미세플라스틱 등 열거하기도 버거운 각종 환경문제들에 대한 수습이나 개선에 관한 긍정적 소식은 감감하고 오히려 시간이 가면서 더 많은 문제들이 불거지는 형국이다. 이 만연한 문제들의 해결을 모색해야만 하는 국정감사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기 환경부 장관의 전격 교체가 공표되었고 국정감사는 흐지부지 넘어갔다. 환경부 장관 교체발표 바로 얼마 전 문재인 정부의 2기 내각구성을 위한 대규모 장차관 교체가 있었다. 이 당시 포함되지 않았던 환경부 장관이 묘한 시기에 교체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지난봄 발생한 ‘재활용쓰레기 수거대란’의 대응문제가 이유였지만 그렇게 인정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어 보인다. 다음 세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알량하게 남겨진 얼마 안되는 자연공원에까지 케이블카와 공항 등 개발사업이 정부의 힘에 기대어 추진되어왔지만 진전은 없었고, 급기야 흑산도공항 건설사업이 공원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자 바로 장관 교체가 공표된 것이다. 개발본능이라 할 만큼 각종 토건행위에 대한 신봉은 촛불을 통해 일어선 정부라도 별반 다르지 않은가 보다. 자연공원에서만큼은 대규모 개발사업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국가의, 환경부의 지극히 기본적인 업무수행 의지가 내심 못마땅했나 보다.

환경부 장관을 경질시킬 만큼 흑산도공항이 중요할까? 찬성과 반대는 한 치의 양보도 없어 보이는데, 이제는 다른 시각에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한다. 최근 몇 년간 우리는 귀에 딱지가 박히도록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을 들어왔다. 마치 이 경쟁에서 뒤처지면 국가가 곧 망할 것처럼 했지만, 말만 요란했지 현실은 이미 뒤처져 있는 것 같다. 4차 산업혁명의 상징적 기업 중 하나는 ‘우버(Uber)’인데, 이미 전 세계 공유경제서비스에 관해 독보적 입지를 구축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존재감이 없다. 흑산도공항과 4차 산업혁명, 결이 다른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개인적으로 우리나라가 처한 현주소와 묘하게 일치되는 안타까운 조합으로 보인다. 우버는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보아오던 소위 ‘하늘을 나는 택시’를 2년 후인 2020년에 시범운영하고 5년 후인 2023년에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이용금액도 1.6㎞당 500원 수준으로 떨어뜨린단다. 대략 계산하면 흑산도에서 육지까지 약 3만원에 각종 제약 없이 이동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2023년은 먼 미래가 아니다. 흑산도공항 건설이 원활하게 추진될 경우 개항이 가능한 해와 같다. 물론 우버의 ‘에어택시’는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첨예한 대립이 진행 중인 흑산도공항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국가의 핵심·첨단사업은 대부분 서울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국토의 불균형 발전으로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늘 소외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고, 특히 도서지역 주민들은 참담한 기분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상황을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 온 것이다. 주민의 염원을 핑계로 추진하는 흑산도공항이 건설된다 해도 현실적으로 운행 가능한 노선은 서울~흑산밖에는 없을 것이다. 또 다른 서울 블랙홀을 만들 뿐이다. 현시점에서 ‘미래는 소외된 국민을 우선으로’ 새로운 혁신교통을 개발하여 낙후된 국립공원 도서지역에 우선 배치하겠다는 정책 추진은 어떨까? 이를 준비하기 위한 ‘에너지자립도서’는 어떨까?

4차 산업혁명을 말하는 정부가 국립공원에까지 구시대적 토건을 추진하고, 이를 막고자 하는 환경부 장관은 경질되었다. ‘촛불민심’ ‘적폐청산’ ‘정의사회’를 외치며 고위공직자 인사배제 원칙을 표명하며 출발한 정권에서 새로 내세운 장관 후보자는 이 ‘원칙’과는 전혀 부합하지 않아 보인다. 촛불 이전 인사참사와 변한 것 없는 반복의 레퍼토리이다. 촛불혁명의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는 것 같은 안타까움은 나뿐일까? 초심을 생각해볼 때이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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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환경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실천하는 언니가 있다. 에너지를 허투루 쓰는 일이 없다. 겨울엔 난방을 거의 하지 않고 여름엔 에어컨을 함부로 켜지 않는다. 얼마 전엔 베란다에 미니 태양광도 달았다. 아끼는 걸 넘어 에너지를 생산하고 싶다며. 쓰레기 문제에도 민감해서 손수건과 텀블러 사용은 기본이다. 언젠가 바빠서 음식을 배달시켰더니 일회용품이 한가득이더라며 이젠 배달을 삼가고 어쩔 수 없을 땐 집에서 그릇을 가져가 담아올 정도다.

어느 날 카톡으로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는 왜 그렇게 애쓰며 사는지. 언니 말이 동식물이 살기 힘들고 자연생태계가 망가지면 사람이 살기 어렵다고, 잠시 스쳐가는 삶인데 편의만 앞세워서 환경을 망쳐 놓으면 후대 사람들은 어떡하냐고 한다.

그런데 이런 언니네 차가 경유 SUV다. 언니는 운전면허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집 차가 그렇다. 왜일까? 정부의 ‘클린디젤’정책 탓이 컸다. 형부의 출퇴근 거리가 멀어 세금이 낮은 경유차가 더 경제적인 데다 ‘디젤이 클린’하다니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클린디젤정책의 잘못이 조금 알려진 요즘엔 경유차 모는 걸 마음에 걸려 한다. 얼마 전 언니가 물었다. 경유차가 미세먼지 주범이라는데 사람들이 1년 내내 운전하는데도 미세먼지가 겨울과 봄철에 더 심한 걸 보면 그렇지 않은 게 아니냐고. 아무래도 중국이 문제 아니냐고 한다. 중국이 미세먼지에 영향을 미치는 건 맞다. 하지만 중국 스스로 대기오염을 견디지 못해 에너지정책을 바꾸면서 중국 비중이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 게다가 국가 경계를 넘나드는 환경문제 해결엔 시간이 걸리기에 국내 조치부터 먼저 취하는 게 현명한 접근이다. 경유차를 늘 몰아도 계절에 따라 미세먼지 농도 차이가 발생하는 건 기상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미세먼지가 쌓이다가 바람이 쓸어가기도 하고 비가 씻어 가기도 한다. 겨울과 봄엔 이런 기상조건이 없으니 더 심하다.

시민과 기업의 선택과 행동에는 정부의 정책 신호가 참으로 중요하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우리나라 자동차 총 누적등록대수는 2016년보다 3.3% 늘어서 2252만대가 넘었다. 연료별로 보면 휘발유차가 약 1037만대로 2011년 49.7%에서 46.0%로 다소 준 데 비해, 경유차는 958만대로 같은 기간 36.4%에서 42.5%로 늘었다. 경유 승용차와 경유 승합차가 각각 546만대와 73만대로 약 620만대에 달했다. 2018년 들어 9월 말까지 휘발유자동차는 19만6960대가, 경유자동차는 27만7850대가 더 늘어 전년 말 대비 각각 1.8%, 2.9%씩 늘었다. 미세먼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경유차 판매 증가는 휘발유차를 넘어 꺾일 줄 모른다. 환경에 더 큰 부담을 주는데도 경유가격이 더 싸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경유차 세율 조정이 필요한 이유다. 그런데 정부는 오히려 11월6일부터 6개월간 유류세를 일괄 15% 인하하기로 했다. 대도시 미세먼지의 주요 배출원인 경유차 증가를 그대로 두고 어떻게 미세먼지 문제를 풀지 의아할 따름이다.

지금 세계는 전기차시대를 향해 가고 있다. 기한은 2025년부터 2040년까지 다소 다르지만 노르웨이,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인도 등이 내연기관차 판매금지를 선언했고 미국과 중국은 전기차 의무판매제 도입을 선언하였다. 물론 전기를 뭘로 만들 것인가도 중요한데 이 국가들에선 재생가능에너지 전력이 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내연기관차 판매가 꾸준히 늘고 있고 전기차 생산은 요원해 보인다. 이대로 있다간 경제가 휘청거릴지도 모른다. 지난 10월8일 인천 송도에서는 1.5도 기후변화 특별보고서가 채택되었다. 산업혁명 이전 대비 1.5도 이하로 온도 상승을 막는 건 과학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에서의 실현은 정책과 실천에 달려 있다. 이젠 정말 달라져야 한다. 정부는 지금 어떤 정책 신호를 주고 있는 걸까?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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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복지 후진국이지만 지원금에서는 단연 앞선 나라다. 많은 이름의 지원금이 다양한 분야로 흘러들어간다. 그런데 이 지원금이 개인에게 직접 지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개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도 대부분 업체나 단체 같은 곳을 통해서 준다. 지원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종종 매우 높다. 최근 전국에서 유행하는 미니 태양광도 지원금 비중이 대단히 높고 업체를 통해서만 지급된다. 서울시에서는 100만원이 넘는 500W 미니 태양광 비용을 70% 이상 지원해주는데, 지정 업체를 통해서만 설치해야 하고 지원금은 이 업체에 바로 지급된다. 500만원짜리 3㎾ 주택용 태양광 시설도 마찬가지다. 국가와 지자체에서 업체에 주는 지원금이 설치비용의 절반이 넘는다.

중앙정부나 지자체에서 지원금을 개인에게 직접 주지 않고 기업체에 주는 이유 중 하나는 개인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원금을 그 사업에 쓰지 않고 유용하거나 싸구려 제품을 설치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이다. 물론 업체도 크게 신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업체를 선호하는 이유는 개인보다는 다루기가 훨씬 쉽고 짧은 기간에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주어진 시간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관료들이 다루기 어려운 개인의 주체적 결정을 기다리기보다 그들이 주무르기 쉬운 기업체의 영업능력에 의존하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성과만을 중시하여 업체에 의존할 때 발생하는 문제는 국민 개개인이 수동적 존재로 남게 돼 지원금이 사라지면 사업이 더는 진행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지원이 없더라도 사업이 지속되려면 에너지 전환을 우리 사회의 과제로 받아들이는 시민이 늘어나고 이들 시민이 주체적 존재로서 태양광을 선택해야 한다. 이러한 시민이 지속적으로 늘어남과 함께 이에 호응하는 업체들이 값싸게 좋은 제품을 공급하는 선순환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업체들이 더 많은 수동적 개인을 움직이기 위해 더 많은 지원금을 요구하고, 정부 관료들은 더 큰 성과를 내기 위해 지원금을 지속적으로 늘리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과 2030년 재생에너지 20% 목표 달성을 위해 건설되고 있는 태양광 발전소들이 곳곳에서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히고 있는 이유도 정부 관료들이 시민들을 신뢰하지 않고 수동적인 존재로 다루어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반발이 그다지 크지 않으니 20%까지는 달성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주체가 되어야 할 시민이 계속 수동적인 존재로만 취급되면 20%를 넘어서 30~40% 달성은 불가능할 것이다.

요즈음 큰 싸움으로 번진 사립유치원 비리 논쟁도 시민을 믿지 못하는 정부 관료들의 지원금 집행 관행, 더 크게는 복지철학에 기인한 바가 크다. 사립유치원 원아에게는 매달 30만원 가까운 지원금이 지급된다. 그런데 이 지원금은 아이들 가정에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유치원에 직접 지급된다. 사정이 있어서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못하는 가정은 10만원 정도의 양육수당만 받는다.

아이가 있는 가정에 지급되는 지원금은 종류가 다양해서 어떤 것을 어떻게 신청해야 하는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놓치기 십상이다. 이렇게 복잡하게 되어 있으니 지원금 집행을 위한 행정비용이 상당히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유치원 학비, 양육수당, 아동수당, 기저귀 지원금 등을 하나로 통합하고, 이 돈을 아이가 있는 모든 가정에 정액으로 직접 지급하면 행정비용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복지철학이 아직 빈곤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국정감사에서는 아동수당 지급에서 제외되는 소득상위 10%를 선별하는 데 해마다 최대 1626억원의 비용이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모든 가정에 지급할 경우 추가로 필요하다는 1229억원을 크게 넘어서는 돈이다. 그러니 철학을 떠나 비용의 효용성만 고려해도 단순한 지원제도가 더 낫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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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자리 만드는 건 결국 기업.” 지난 4일 SK하이닉스 청주공장에서 열린 제8차 일자리위원회를 주재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다. 업무지시 1호가 대통령 직속의 ‘일자리위원회’ 설치와 운영이었을 만큼 문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왔다. 하지만 이날은 정부가 “일자리 양을 늘리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며, 기업의 투자 촉진과 활력을 당부하고 정부는 기업 발전의 도우미가 되겠다고 했다. 이날 일자리위원회가 꼽은 5대 신산업의 내용을 보면, 결국 재벌 대기업에 일자리를 요청하고 최대한 지원을 약속한 셈이다. 고용 부진에 대한 대통령의 답답함과 초조함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지는 따져보아야 한다. 2004년 노동부가, 2010년 대법원이 사내하청의 불법파견을 확인했지만 지금껏 파견 노동자의 직접 고용을 거부해온 현대·기아차에 과연 ‘좋은’ 일자리 창출을 기대해도 좋은가?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전 충북 청주시 흥덕구 SK하이닉스에 준공한 'M15' 반도체 공장을 대형 유리문을 통해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하기야 공공부문도 아닌 일반 기업에 좋은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른다. 기업은 일자리가 아니라 이윤 창출을 위해 투자하고, 거기에 필요한 만큼 사람을 고용한다. 그러니 기업은 수익 극대화에 유리한 형태의 일자리를 선호한다. 설사 신산업으로 일자리를 많이 만든다고 해도, 경기가 침체되면 고용은 다시 악화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경기는 언제나 부침을 거듭해왔다.

이제는 일자리라면 기업만 생각하는 낡은 틀에서 벗어나, 농촌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이유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농업이 국가의 근간이라면서도, 우리는 늙고 공동화되는 농촌을 철저하게 방치하고 외면해왔다. 40세 미만 농가가 전체의 1% 미만이고 농가의 평균농업소득은 월 100만원이 안된다. 식량자급률과 곡물자급률은 50%와 24% 수준이고, 100% 자급인 쌀을 제외하면 자급률은 훨씬 더 떨어진다.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 그래서 농사는 좋은 일일 뿐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런 일자리가 넘쳐나지만 사람들은 농촌을 기피한다. 도시에는 사람이 넘쳐나지만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농사에 사람이 몰리도록 하는 것이 마땅히 일자리 창출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90년대 중반, 충북 괴산에서 유기농을 하는 ‘솔뫼 공동체’의 농부들과 반년 남짓 산 적이 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농사가 얼마나 고되고 어려운 일인지, 동시에 농사가 얼마나 큰 만족과 자긍심을 주는 일인지, 한마디로 얼마나 ‘좋은’ 일인지 깊이 깨달았다. 그럴수록, 농사가 사람들이 기피하는 천덕꾸러기로 변해버린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귀농 인구가 조금이지만 꾸준히 늘고 있다. 귀농을 원하지만 농촌에서의 생계가 막막해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은 훨씬 더 많다. 그러니 어느 정도 생계만 보장된다면 농촌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부쩍 늘어날 것이다. 전남 해남군이 발표한 ‘농민수당’은 정부가 농촌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정부는 농사짓고 살겠다는 사람들의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 줄 ‘농민(농가)기본소득’을 하루빨리 시행해야 한다. 농민기본소득이 비현실적인 제안인가? ‘현실’적으로만 접근해서는 강고한 현실을 뚫고 나갈 수 없다. 그렇다고 결코 터무니없는 제안도 아니다.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의 계산대로 전국 110만 농가에 월 50만원씩 지급한다면 연간 총 6조60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결코 적지 않은 돈이지만, 매년 미국 무기 구매에 쓰는 돈이 10조원 언저리라는 걸 생각하면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농민이 더 늘어나면 예산도 더 늘어나겠지만, 소농이 수행하는 공익적 가치를 고려하면 그럴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게다가 좋은 일자리로 소문난 농사로 사람이 몰리면, 기업도 진짜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상상만 해도 유쾌하다. 상상을 현실로 옮기는 일, 농민기본소득으로 시작하자.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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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무더위 속에서 내내 이어진 BMW 화재사고는 폭염을 어렵게 견딘 시민들의 마음속까지 까맣게 태웠다. 아직까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는 기업을, 정부를 바라보는 마음은 더욱 편치 않다. 그러나 이번 BMW 문제는 차량결함이라는 단순 사실에서 나아가 왜 이런 사고가 발생했는가의 본질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BMW의 화재사고와 2015년 폭스바겐 디젤게이트는 특정 회사의 문제가 아닌 모든 디젤차량의 대기오염 유발문제라는 본질에서 바라봐야만 하기 때문이다.

디젤차량의 질소산화물 배출은 휘발유의 10배에 달한다. 과도한 질소산화물 배출로 인한 도심의 오존농도 증가가 국민 호흡기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이 매우 심각하기에 디젤차량을 줄이는 것은 그 어떤 대기환경정책보다 중요하다. 그럼에도 미세먼지만큼 주목받지는 못하고 있다. 폭스바겐과 BMW의 사태는 모두 이 질소산화물 배출과 연관된다. 디젤의 질소산화물 배출을 줄이기 위한 유럽연합의 규제는 해가 갈수록 강화되었고 2015년에는 이전 유로5보다 배출기준을 5배나 강화시킨 유로6를 적용하였다. 미국은 그 이전부터 유로6보다 훨씬 강력한 배출가스 규제를 적용하고 있었는데, 거의 모든 승용차와 소형트럭까지 휘발유를 사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조치였다. 폭스바겐은 미국의 강력한 배기가스 규제 기준을 디젤로 맞추기 위해 거짓조작을 한 것이며, 이번 BMW는 획기적으로 강화된 유로6 기준을 맞추기 위한 기술이 문제가 된 것이다.

7월 29일 강원 원주시 중앙고속도로 춘천방향 치악휴게소 인근에서 주행 중이던 BMW 520d 승용차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대원들이 불을 끄고 있다. 연합뉴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 두 회사 차량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다른 제조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는 것이다. 2016년 유럽에서 실제 운행하는 차량의 배기가스 배출량을 조사하여 발표한 결과는 충격적인데 유로5 기준을 통과한 디젤차량의 질소산화물 실배출량은 회사별로 허용기준의 최소 3.2배에서 최대 7.9배를 초과했으며 유로6 기준 차량은 최대 15.1배를 초과했다. 실주행 시 유로기준을 충족하는 디젤차량을 만드는 회사는 단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문제가 된 두 회사는 유로6 기준을 맞추지는 못했지만 질소산화물 초과 배출량이 허용기준의 3배 이내로 가장 적은 회사들이었다. 결국 실현가능성 없는 과도한 기준치의 적용과 이 요구를 안일한 조작으로 맞추기 위한 기업의 무리수가 화를 불러온 셈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부각되지 않은 회사 차량은 안전할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현대차 디젤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유로5 기준을 통과한 차량의 경우 실제 허용기준치의 7.2배를, 유로6 차량 또한 허용기준치의 무려 7.7배를 더 배출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러한 수치는 클린디젤이 아닌 더티디젤임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수치이며 지금까지 생산된 모든 디젤차량이 호흡기에 치명적인 질소산화물을 대량으로 방출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BMW와 같이 개별 차량의 문제는 아닐지라도 도시 대기오염을 가중시켜 우리 모두의 건강을 위협하는 문제는 훨씬 크다는 것이다. 대기오염 정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고, 호흡기질환이 급격히 증가하는 현실에서도 디젤차량을 위해 지속적으로 디젤 가격을 저가로 유지하는 국가정책을 과연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정부의 곳간은 한없이 늘어만 가고 국민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자동차가 사치품인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났고, 필수품을 보다 저렴하게 사용하고자 하는 욕구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시대가 바뀌면 세금정책 또한 바뀌는 것이 당연하다. 화석연료 자동차의 축소는 향후 급격히 진행되겠지만 그사이 정부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전기차나 수소차에 지원되는 통 큰 세금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안다. 지금이야말로 어려운 국민을 위해 휘발유에 부과되는 세금을 경유와 같게 낮출 적기이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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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에너지전환은 다른 나라에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현상까지 더해지면서 더디기만 하다. 거대 발전시설 입지가 야기했던 사회갈등이 최근엔 태양광시설 설치 예정지역들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환경보건영향을 이유로 지역 주민이 태양광 패널 설치를 반대하는 해외사례를 듣지 못했기에 당혹스럽다. 일부 산림 훼손이 심한 경우는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최근엔 잘못된 정보로 혐오시설인 양 반대하는 일도 없지 않다.

대표적 사례가 서울대공원 주차장에 들어설 태양광 시설에 대한 반대다. 서울에너지공사는 서울대공원 정문 주차장 부지에 약 10㎿ 규모의 태양광을 ‘제2호 태양광 시민펀드’ 방식으로 설치할 계획이다. 그런데 얼마 전 사업설명회가 파행으로 치달았다. 일부 과천시민들의 반대 때문이다. 해당시설이 도시미관을 해치고 카드뮴과 납 같은 유해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데다 서울시 소유 태양광 시설을 과천시민 돈으로 과천에 설치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런가?

주차장에 설치하는 태양광 패널이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주장은 처음 듣는다. 주민 거주 지역으로부터 300m 이상 떨어져 있고 이미 콘크리트로 포장된 곳인데 말이다. 전 세계적으로 주차장 태양광 설치 사례는 부지기수다. 생각해보라. 넓은 공간에 햇빛을 가리는 방해물이 없으니 다른 데보다 전기 생산에 유리하다. 여름엔 주차 차량 내부가 뙤약볕으로 데워지는 걸 막을 수 있고 패널이 차양막이 되어 보행자들에겐 그늘이 된다. 비가 올 땐 승하차 시 비를 피할 수 있고 겨울엔 폭설이나 바람막이 구실도 한다. 그래서 주차장 태양광 발전소가 쑥쑥 들어서고 있다. 다른 나라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대형마트나 고속도로 휴게소, 야구장, 구청, 공장 등의 주차장에 태양광 발전 시설이 여럿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설치 예정 장소에 직접 가보았다. 그곳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면 앞서 말한 편익에 더해, 규모가 커서 방문객인 아이와 시민들에게 생생한 에너지전환 교육 현장이 될 법했다.

주차장 옆에는 카드뮴과 납이 들어 있는 죽음의 시설이라며 해골을 그려 놓은 현수막이 있었다. 우리나라에 보급된 태양광 패널엔 정부 규제로 카드뮴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다. 셀과 전선 연결을 위해 납이 소량 사용되긴 하지만 회수해서 재사용하는 데다 납은 우리 모두가 사용하는 컴퓨터에도 들어 있다. 문제가 될 수 없다.

시민펀드 방식을, 과천시민 돈으로 전기를 만들어 과천시민에게 팔겠다는 발상으로 오해하고 수익률이 낮아 현실성이 없다고 비판한다. 사실은 이렇다. 사업방식으로 제안된 시민펀드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전 국민 대상이다. 과천시민으로 제한할 수 없다. 태양광 생산전력은 20년간 정부가 장기고정가격으로 구매해주기에 수익률이 시중금리보다 높아 과천시민을 배려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 이미 2015년 서울시는 지하철 기지 4개소에 총 4.24㎿ 규모 태양광 설비를 전 국민 대상의 제1호 태양광 시민펀드사업으로 추진해서 4.18%의 수익을 가입시민에게 돌려준 경험이 있다.

과천시는 과천시민이 소비하는 전력량의 0.1%도 생산하지 않고 있다. 전기 소비량 거의 전부를 다른 지역에서 가져오고 있다. 과천시의 매월 가구당 평균 전력소비량은 234.9kWh로 전국 평균(221kWh)은 물론 서울시 평균(228kWh)보다 높다. 석탄이나 원자력 발전은 미세먼지나 사고위험이 수반되어 해당 지역주민은 어려움을 겪는다.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은 전기를 쓰는 과천시민들이 이런 문제에 무감각해서는 곤란하다. 과천시민들도 이제 내 앞마당에서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해야 할 때다. 서울대공원 주차장에 태양광 발전소가 세워지면 과천시 전력 자급률은 3.3%로 높아진다. 서울대공원 주차장이 그 출발이 되면 어떨까?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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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계속 갈 수 있을까?”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로 지난여름의 폭염이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우울한 예측을 보며 들었던 물음이다. 우울하게 만드는 건 기후만이 아니다. 소득불균형, 실업과 취업난, 집값 폭등, 고령화와 빈곤노인층, 저출산과 인구절벽 등 각종 통계로 드러나는 현실은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힌다. 역설적이게도, 오늘의 현실은 우리가 열심히 살아온 결과다. 그러니 지금의 방식으로 더욱 열심히 일하는 것은 상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해법은 지금과 전혀 다른 길에서 찾아야 한다. 암울한 전망 속에서도 우리가 기존의 길을 고집하는 것은 새롭게 길을 그릴 상상력이 없어서 그럴지 모른다. 현재의 방식이 선택의 전부라고 철저히 학습되었는지도 모른다.

혁신이 절실하다. 혁신은 ‘피(皮)’를 ‘혁(革)’으로 바꾸는, 근원적이고 전면적인 변화다. 하지만 우리의 혁신은 외관의 치장에 동원되기 일쑤다. 그래서 혁신이 차고 넘쳐도 우리의 현실은 요지부동이다.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은 규제혁신과 투자증진을 통한 성장확대가 골자다. 기업의 투자증진을 위한 규제혁신은 결국 규제완화를 뜻하니, 혁신성장이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을 통한 성장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지 모르겠다. 정부는 의료기기, 은산분리, 개인정보의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더불어민주당은 박근혜 정부의 ‘규제프리존특별법’과 비슷한 ‘지역특구법’ 제정을 서두른다. 모두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부지런히 걸어간다. 급한 건 이해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새로운 길로 갈 수 없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다. 먼저 문제의 뿌리로 되돌아가 거기서 다시 길을 찾아야 한다. ‘거기’는 어딜까? 지난 11일 청와대 앞에서 농민들이 “밥 한 공기 300원”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밥 10공기 분량에 해당하는 쌀 1㎏당 최소 3000원의 가격 보장과 수확기 쌀 대책 수립을 촉구한 것이다. 그 전날에는 ‘국민의 먹거리 위기, 농정 적폐 청산과 대개혁을 염원하는 시민농성단’이 청와대 인근에서 무기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우리 농촌이 신음하고 비명을 질러온 지 오래다. 정부가, 우리가 무시했을 뿐이다. 박근혜 정부의 쌀값 약속을 지키라고 상경한 농민들을 기다린 건 물대포였고, 백남기 농민이 희생되었다. 이제 농민들이 다시 비명을 질렀고, 시민들이 거리에 나섰다.

사람의 문제는 결국 ‘먹고사는’ 문제다. 그리고 먹을거리는 도시의 사무실이나 공장이 아니라 농촌의 논과 밭에서 나온다. 농촌이 사람 사는 모든 곳의 뿌리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당연한 이 사실을 외면해왔다. 그런 농촌이 무너지니, 도시가 무사할 리 없다. 지금 도시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농촌에는 사람이 너무 없어서 문제다. 도시에선 할 일과 살 곳을 구하지 못해서 아우성이고, 농촌엔 일할 사람이 모자라고 빈집이 늘어간다. 도시의 삶이 갈수록 황폐해지면서 농촌에 살려는 사람도 꽤 많이 있지만, 실제로 가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지금의 농촌 현실에서는 살아남을 전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도시로만 몰렸던 젊은이들이 왁자지껄 농촌으로 돌아가는 광경, 젊은이와 아이들로 북적되는 농촌 마을을 상상해보자. 우리나라 전체의 혁신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될 것이다. 이 상상을 현실로 바꾸는 데 필요한 여건을 만드는 것은 혁신을 하겠다는 정부의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다.

혁신의 소식은 전라남도 해남에서 들려왔다. 지난 8월 말, 해남군은 전체 농가에 연 60만원의 농민수당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전국 최초다. 적은 액수지만, 농민수당은 무너지는 농촌 현실과 공익적 가치를 비롯한 농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농촌을 살리겠다는 정책적 결단이다. 중앙정부가 할 일, 갈 길을 해남군이 먼저 보여주었다. 이제는 이 혁신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도록 정부가 성심껏 전력을 다해 응답할 차례다. 농촌의 성장이야말로 ‘혁신’성장이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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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있었냐는 듯 동계올림픽 경제 효과의 허상은 사라지고 지금은 개발망령의 뒷감당조차 벅차 보인다. 경기장은 애물단지로 전락했고 호우로 인한 산사태와 침수피해는 고스란히 지역주민이 떠안아야 하며 영세한 시공업체는 공사대금조차 받지 못해 부도위기에 몰린 것이 현실이다. 올림픽만 개최하면 잘살 것이라는 희망으로 유치를 노력한 지역주민과 지자체는 또 다른 투자를 요구한다. 도대체 60조원의 경제효과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우리나라에서 국민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민간투자자금은 지금도 여전히 눈먼 돈이다. 거의 모든 대규모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는 오로지 사업의 진행만을 위해 거짓으로 일관한다. 사업자와 정치가가 서로의 이익만을 위해 주민의 고혈은 안중에 없기 때문이다. 공항 또한 대표적인데 무안공항의 현재 이용률은 수요예측의 3.8%, 양양공항은 5.3%에 불과하다. 광역시인 광주공항의 이용률 또한 10%를 넘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현재 대부분 공항은 이익창출은커녕 세금이 없으면 유지관리도 못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해 있다. 대규모 토건사업으로 지역이 발전한다는 거짓 선동가를 빼면 사실 발빠르게 부동산 투기에 열을 올린 몇몇을 제외하고 지역 토착주민 대부분은 엄청난 피해만 보고 있다. 그럼에도 늘 이런 사업을 성사시키기 위해 앞에 서는 것은 소외된 토착주민이다.

과도한 토건사업으로 가뜩이나 좁은 국토 전체가 유린되어 더 이상 대규모 토건사업을 할 곳도, 할 구실도 찾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최근 토건족들이 찾아낸 것이 거짓 경제효과를 동원하여 강을 파헤치는 4대강 사업이었으며, 이제 국민과 미래 대한민국을 위한 마지막 보루인 보호지역에까지 망령이 뻗치고 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흑산도공항은 겉으로 지역주민의 복지와 관광활성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체는 개발 이후 폐허가 될 토건사업의 추가에 불과하다. 현재도 볼거리, 즐길거리가 없어 관광객이 머무르지 않는데, 공항이 만들어진다고 관광객 수십만이 증가한다는 예측을 믿을 수 있을까? 즐길거리를 만든다? 이것들을 만들기 위한 부지, 접근도로, 막대한 숙박시설과 서비스 공간을 어디에 확보할 것인가? 결국 현재 흑산도의 최대 자산인 아름다운 해안과 자연을 훼손할 수밖에 없는데 관광객 만족도는 더욱 추락할 뿐이다. 늘 희생만 당해왔던 주민은 언제까지 이런 개발망령의 혹세무민에 당해야만 할까?

과대포장된 수요예측은 차치하고서라도, 위험천만의 무모한 개발 부작용은 눈에 선하다. 흑산도공항 활주로의 계획 길이는 현재 1160m이다. 그런데 온전한 산을 하나 부수어 천혜의 해안선과 바다를 메울 계획인 이 공항에 도입할 소형항공기의 착륙길이는 습도가 높을 때 무려 1222m에 달한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지나쳐 62m를 더 가야 멈출 수 있다는 말인데, 앞에는 추락해서 가라앉을 바다밖에 없다. 유사시 운행을 멈추겠다고 하지만 얼마나 억지스러운가? 섬이라는 특성상 시시각각 여건이 변하기 때문에 완벽한 실시간 대응은 가능하지 않다. 특히 해수면과 접한 특성상 노면의 환경변화는 매우 크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 내륙에서 비행기가 이륙한 후에 기상여건이 급격히 변화될 가능성도 크다. 결국 승객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다. 실제 이착륙 시 활주로를 이탈하는 오버런은 공항에서는 빈번한 사고로 반드시 활주로 여유공간을 확보해야만 하는데 여유공간은커녕 최소거리도 확보하지 못했다. 공사착공 이후 몇 배의 세금을 더 투입하는 추가 대형 토목공사를 요청하거나, 운행 한번 못하고 폐허로 방치될 것이 뻔하다. 이런 말도 안되는 계획이 논란거리가 되는 것조차 놀랍다. 섬이 매혹적인 이유는 찾는 사람이 적어서다. 있는 자원조차 파괴시키는 구시대적 토건사업이 아닌 적은 인원이 찾으면서도 수익을 극대화하는, 주민을 위한 고품격 관광대안을 고민할 때다. 그것이 국립공원의 존재 이유이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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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보도가 있다. 그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면 둘 중 하나다. 하나는 잘 모르면서 아는 듯이 썼거나 또는 잘못 알고서도 잘못 아는 줄 모르고 틀리게 쓰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사실관계를 알면서도 자기주장을 위해 사실을 외면하거나 억지 논리로 사실을 감추고 거짓 주장을 내세우는 경우다. 요즘 여러 언론보도를 보면 도가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언론이 사회 공익을 위해 정확한 정보를 발신하고 공유하는 역할을 포기하고 도그마에 빠진 느낌이 든다.

대표적인 사례가 에너지 전환 관련 보도다. 세계적으로 탈원전 운동과 정책이 등장한 배경을 모조리 망각한 것처럼 보인다. 일부 언론이 주장하듯 원전이 안전하고 다른 어떤 에너지원보다 저렴하다면 왜 탈원전 에너지전환이란 거대한 움직임이 등장했을까?

왜 원전에 대한 투자는 정체되어 있는데 신규 재생가능에너지 설비 투자액이 원전과 화석연료 투자액의 2배가 넘을 정도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걸까? ‘반(反)에너지전환’을 편드는 언론은 답해야 한다. 이런 세계적인 흐름을 인식하지 못하는지, 알고도 외면하는 건지.

최근엔 이런 보도도 있었다. 베란다 태양광이 번쩍거려서 이웃 간의 ‘광(光)’을 둘러싼 분쟁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 전혀 사실이 아니다. 베란다 태양광 패널이 주로 설치된 서울에선 2018년 8월 현재 관련 민원이 올해 설치 완료된 3만여 건 중 2건에 불과하다.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에 따르면 태양광 패널은 저철분 유리를 사용하기에 표면 반사율이 5.1%다. 8~10%인 유리나 플라스틱보다 낮다. 언론이라면 발표된 태양광 패널의 빛 반사율이 맞는지, 실제로 어느 정도 되는지, 해외에서는 그런 사례가 있는지 등을 보도해야 하는 것 아닐까? 여러 언론은 태풍 솔릭이 태양광 시설에 큰 피해를 줄 것처럼 불안해했지만, 전국 38만6000여개 시설 중 제주도에서 단 한 건의 사고가 있었을 뿐이다. 지난 8월22일 경북 청도군 매전면 산비탈에 설치됐던 태양광 발전시설이 훼손된 건 기초 토목공사 문제였음에도 태양광 발전 자체 문제로 몰아가기도 한다. 안전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과장과 왜곡은 곤란한데 말이다.

‘기승전 탈원전’ 보도는 언론의 신뢰를 떨어뜨릴 뿐이다. 원전 이용률 저하나 전력수급과 전력 요금 문제도, 한전 적자도, 영국 원전시장 우선협상자 지위 해제도, 모두 탈원전 탓으로 몰고 간다. 그간 원전 이용률이 왜 떨어졌나? 비정상을 정상화한 조치 때문이었다. 격납건물 철판 부식, 콘크리트 공극(콘크리트가 채워지지 않은 부분) 등 과거 원전 건설 부실로 생겨난 문제를 보정하기 위해 원전 정비 일수가 증가했다. 지진으로 인해 정지했던 원전을 재가동하려면 지난 정부에서 강화한 안전 기준을 충족해야 해서 점검기간이 길어지고 재가동에 시일이 소요된 거였다. 원전 납품비리로 투입된 위조 부품을 안전등급 제품으로 교체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한전 적자는 국제연료가격의 가파른 상승과 봄철 노후 석탄발전소 가동 정지 등과 연결되어 있었다. 잘 진행되던 원전수출이 에너지전환정책을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 문제가 된 게 아니었다. 영국원전 우선협상자 지위를 획득한 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 12월이었고, 그 이후 영국 상황이 바뀐 데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언론은 있지도 않았던 전력대란을 마치 당장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과장하고 탈원전 정책 탓에 전기요금이 인상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새로운 시대적·경제적 조건하에서 기존 산업이 재편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때 산업화 동력을 제공했던 원자력은 이제 역사적 소임을 다했다. 재생가능에너지시대로의 전환은 더이상 미룰 수 없고 외면해서도 안되는 시대적 대세다. 언론은 이런 시대에 무엇을 어떻게 보도해야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지혜롭게 대응하기 바란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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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례행사가 된 누진제 논란이 꽤 후진적이다. 누진제의 본래 취지는 팽개치고 돈 이야기만 하기 때문이다. 누진제를 시행하는 이유는 전기소비를 억제하고, 전력예비율을 조절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논란은 소비억제가 아니라 요금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 ‘요금폭탄’을 방지하기 위해 누진제를 완화해주자거나, 누진제를 없애면 1400만가구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거나, 누진제 완화로 한국전력의 수익만 수천억원 감소했다는 주장만 들릴 뿐, 누진제가 정말 제 구실을 하는지 따져보자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누진제는 원래 취지에 비추어볼 때 실패했다. 전기소비가 인구나 소득 증가보다 훨씬 가파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가정용 전기소비는 20% 이상 증가했다. 일반용의 28%, 산업용의 46%보다 적지만, 선진국들 중 최고 수준의 증가율이다. 혹자는 누진제가 적용되었기에 산업용 증가율보다 낮은 20%로 묶어둘 수 있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산업용 소비가 터무니없이 높게 늘어난 것일 뿐이지 누진제가 효력을 발휘한 결과라고 말할 수 없다.

정부의 폭염에 따른 전기요금 지원 대책이 발표된 7일 한 우체국 직원이 세종시 조치원읍 한 다세대주택 우편함에 한국전력공사가 발송한 7월분 전기요금 청구서를 넣고 있다. 연합뉴스

유럽 등지 선진국과 비교할 때 한국의 가정용 전기소비는 낮은 수준이 아니다. 가구당 전기소비는 연간 3500kwh(킬로와트시)로 유럽연합 평균과 비슷하다. 일인당 소비로 비교하면 낮다는 주장이 있지만, 유럽에서는 전기를 난방온수용으로 사용하는 가구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산업용으로 넘어가면 증가율이나 소비량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기네스북에 올라갈 정도이다. 사실 산업체나 서비스업체들의 전기 오남용은 심각하다. 

전기소비 억제라는 누진제의 본래 취지를 살리려 한다면 산업용과 일반용 전기소비 구조를 대대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가장 손쉬운 방안이 이들 부문의 전기요금을 크게 올리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중소업체 등이 중심이 되어 거세게 반발하고, 그 결과 요금이 찔끔 올라가는 선에서 정리되고 만다. 그렇다고 누진제를 적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규모 차이가 크지 않은 주택과 달리 업체들의 규모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기소비를 줄여가기 위해서는 단순한 요금 인상만이 아닌 창의적인 제도가 반드시 도입되어야 한다. 고려할 만한 것이 ‘인센티브제’이다. 해마다 연간 사용량을 비교해서 감소나 증가에 비례해 요금을 인하해주거나 인상하는 것이다.

역진과 누진을 동시에 도입하자는 것인데, 연간 전기사용량의 변동이 크지 않은 일반용에 적용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사무실에서 지난 5년간 평균 1만kwh를 사용했는데, 다음해에 사용량이 2만kwh로 두 배 증가했다면 요금을 크게 올려받고, 그 절반인 5000kwh로 줄어들면 요금을 깎아주는 것이다. 이 제도는 정교하게 고안하기만 하면 산업체에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연간 전기사용량과 생산량의 증감을 비교해 요금을 올리거나 낮추면 되기 때문이다. 어느 기업체에서 생산량은 2배 증가했는데 전기소비는 10% 늘어났다면 전기요금을 크게 깎아주고, 반면에 전기소비가 3배 증가했으면 요금을 2~3배 높이는 것이다. 물론 전기 오남용 관행에 젖어 있는 기업체에서는 반발이 심하겠지만, 이렇게 인센티브를 주는데도 전기소비를 줄이지 못하는 기업은 퇴출되는 것이 마땅하다. 

누진제를 없애라는 요구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400만가구가 누진제 덕을 보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한전의 가정용 고객 수가 1500만 정도이니 93%가 평균보다 낮은 요금을 내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거의 모든 국민이 누진제 혜택을 받고 있다는 건데, 이런 누진제가 존속될 필요가 있을까? 장관 발표에 따르면 누진제 1단계 적용을 받는 가구 수가 800만이라고 한다. 이들 중 전기요금 지원을 받아야 할 저소득층은 얼마나 될까? 아마 그들 중 상당수가 1인 가구일 터인데, 이런 점을 알고 발언했을까? 이제는 그런 낡아빠진 이야기는 그만!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제안을 듣고 싶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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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기온을 비롯해 더위의 기록을 새롭게 쓴 올여름 폭염은 결국 ‘재난’으로 분류되었다. 인류의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구온난화에 관한 보도도 부쩍 늘었다. 그래도 아직 사람들은 ‘이번’ 여름을 어떻게 넘길지, ‘이번’ 더위는 언제 수그러들지에 훨씬 관심이 크다. 지금 당장을 견디기도 힘든데 아직 보이지도 않는 미래에 눈을 돌리기는 쉽지 않다. 그래선지, 올여름 일본 정부의 폭염 대책은 에어컨을 최대한 사용하라는 것이다. 우리 정부도 비슷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폭염은 상시적인 자연재난이고 냉방기기 사용은 국민의 기본적 복지라며,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 방안 마련을 지시했다.

에어컨은 더위 자체를 없애거나 완화하지는 못한다. 에어컨은 이쪽에서 흡수한 열을 저쪽으로 배출할 뿐이다. 그래서 안쪽은 시원해지고 바깥쪽은 더워진다. 작년에 이어 올여름도 서울의 어느 수녀원에서 지내고 있다. 수녀원 건물은 뉴타운이 들어서면서 아파트로 포위되었다. 아파트 베란다는 모두 수녀원을 향해 있고, 거기에 놓인 수백대의 에어컨 실외기는 마치 ‘폭염방사기’처럼 수녀원 건물을 겨누고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에어컨으로 서로에게 열을 뿜으며 여름을 나고 있다. ‘부분’은 시원해지지만 ‘전체’는 더워진다. 게다가 에어컨 가동은 전기에너지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로 이어지니, 결국 지구온난화를 부추긴다. 그렇게 ‘전체’는 더 더워진다. 당장 견디기 힘들어 쓰기는 하지만, 에어컨은 쓰면 쓸수록 폭염을 강화하는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냉방의 혜택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이 없는 밖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 폭최고기온을 비롯해 더위의 기록을 새롭게 쓴 올여름 폭염은 결국 ‘재난’으로 분류되었다. 인류의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구온난화에 관한 보도도 부쩍 늘었다. 그래도 아직 사람들은 ‘이번’ 여름을 어떻게 넘길지, ‘이번’ 더위는 언제 수그러들지에 훨씬 관심이 크다. 지금 당장을 견디기도 힘든데 아직 보이지도 않는 미래에 눈을 돌리기는 쉽지 않다. 그래선지, 올여름 일본 정부의 폭염 대책은 에어컨을 최대한 사용하라는 것이다. 우리 정부도 비슷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폭염은 상시적인 자연재난이고 냉방기기 사용은 국민의 기본적 복지라며,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 방안 마련을 지시했다.

에어컨은 더위 자체를 없애거나 완화하지는 못한다. 에어컨은 이쪽에서 흡수한 열을 저쪽으로 배출할 뿐이다. 그래서 안쪽은 시원해지고 바깥쪽은 더워진다. 작년에 이어 올여름도 서울의 어느 수녀원에서 지내고 있다. 수녀원 건물은 뉴타운이 들어서면서 아파트로 포위되었다. 아파트 베란다는 모두 수녀원을 향해 있고, 거기에 놓인 수백대의 에어컨 실외기는 마치 ‘폭염방사기’처럼 수녀원 건물을 겨누고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에어컨으로 서로에게 열을 뿜으며 여름을 나고 있다. ‘부분’은 시원해지지만 ‘전체’는 더워진다. 게다가 에어컨 가동은 전기에너지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로 이어지니, 결국 지구온난화를 부추긴다. 그렇게 ‘전체’는 더 더워진다. 당장 견디기 힘들어 쓰기는 하지만, 에어컨은 쓰면 쓸수록 폭염을 강화하는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냉방의 혜택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이 없는 밖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 폭염 노동은 그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살기 힘든 사람의 몫이 된다. 원한다고 모두 에어컨을 마련할 수 있는 것도, 원하는 만큼 냉방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폭염에 일조하는 에너지를 훨씬 적게 소비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폭염 피해는 훨씬 더 많이 받는다. 다른 자연환경 피해와 마찬가지로 폭염 피해도 평등하지 않다.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이 되면 현재의 불평등은 극단적으로 변할 수 있다. ‘설국열차’가 현실이 되는 상상을 해본다. 살려면, 철저한 차별과 억압이 지배하는 ‘열국열차’라도 올라타야 한다. 열차 바깥은 열기 가득한, 사람이 살 수 없는 세상이다.

재난으로 분류된 폭염은 ‘시대의 징표’이기도 하다. 올여름 폭염은 지금까지 우리가 누리고 좇아온 삶이 지속 가능하지도, 안전하지도, 평등하지도 않음을 보여준다. 살려면 뿌리부터 변하라고 요청한다. 최근 지구온난화에 대처하기엔 이미 늦었을지 모른다는 비관적 연구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폭염의 교훈과 요청에 응답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많아진다면, 희망을 놓기엔 이르다. 아직 전력을 다해보진 않았으니. 사람들이 이번 폭염으로 지구온난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조금이라도 실감했다면, 변화의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인가, 더위의 기세가 살짝 수그러드는 조짐이 반가우면서도, 행여나 폭염의 고통을 잊어버릴까, 걱정도 된다.

수녀원이 북한산 아래에 있어, 오후에 틈날 때면 산에 들었다. 산속도 덥지만 산 아래와는 다르다. 산을 오르면 땀이 비오듯 흘러도, 잠시만 걸음을 멈추면 어느새 더위가 수그러든다. 견딜 만하다. 가끔 스쳐 지나가는 한줄기 바람이 주는 청량감이란. 나무는 뿌리에서 끌어올린 수분을 잎을 통해 기화하며 주위의 열을 흡수한단다. 숲은 자기 바깥쪽을 시원하게 해주는 실외기 없는 완벽한 에어컨이다. 자연이 거저 주는 보물 같은 선물이다. 폭염 대비라는 측면에서도 스키장이나 골프장을 만든다고, 도로를 확장한다고, 숲을 훼손하는 일은 자연의 선물을 걷어차는 어리석은 짓이다. ‘스스로 그러한’ 자연(自然)이 옳은 법이다. 인간은 자연의 흐름을 따를 때 행복해지고, 거스를 때 불행해진다. 폭염이 재난이 된 요즘은 더욱 그렇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염 노동은 그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살기 힘든 사람의 몫이 된다. 원한다고 모두 에어컨을 마련할 수 있는 것도, 원하는 만큼 냉방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폭염에 일조하는 에너지를 훨씬 적게 소비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폭염 피해는 훨씬 더 많이 받는다. 다른 자연환경 피해와 마찬가지로 폭염 피해도 평등하지 않다.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이 되면 현재의 불평등은 극단적으로 변할 수 있다. ‘설국열차’가 현실이 되는 상상을 해본다. 살려면, 철저한 차별과 억압이 지배하는 ‘열국열차’라도 올라타야 한다. 열차 바깥은 열기 가득한, 사람이 살 수 없는 세상이다.

재난으로 분류된 폭염은 ‘시대의 징표’이기도 하다. 올여름 폭염은 지금까지 우리가 누리고 좇아온 삶이 지속 가능하지도, 안전하지도, 평등하지도 않음을 보여준다. 살려면 뿌리부터 변하라고 요청한다. 최근 지구온난화에 대처하기엔 이미 늦었을지 모른다는 비관적 연구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폭염의 교훈과 요청에 응답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많아진다면, 희망을 놓기엔 이르다. 아직 전력을 다해보진 않았으니. 사람들이 이번 폭염으로 지구온난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조금이라도 실감했다면, 변화의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인가, 더위의 기세가 살짝 수그러드는 조짐이 반가우면서도, 행여나 폭염의 고통을 잊어버릴까, 걱정도 된다.

수녀원이 북한산 아래에 있어, 오후에 틈날 때면 산에 들었다. 산속도 덥지만 산 아래와는 다르다. 산을 오르면 땀이 비오듯 흘러도, 잠시만 걸음을 멈추면 어느새 더위가 수그러든다. 견딜 만하다. 가끔 스쳐 지나가는 한줄기 바람이 주는 청량감이란. 나무는 뿌리에서 끌어올린 수분을 잎을 통해 기화하며 주위의 열을 흡수한단다. 숲은 자기 바깥쪽을 시원하게 해주는 실외기 없는 완벽한 에어컨이다. 자연이 거저 주는 보물 같은 선물이다. 폭염 대비라는 측면에서도 스키장이나 골프장을 만든다고, 도로를 확장한다고, 숲을 훼손하는 일은 자연의 선물을 걷어차는 어리석은 짓이다. ‘스스로 그러한’ 자연(自然)이 옳은 법이다. 인간은 자연의 흐름을 따를 때 행복해지고, 거스를 때 불행해진다. 폭염이 재난이 된 요즘은 더욱 그렇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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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한반도에 불어닥친 유례없는 폭염은 많은 서민의 생활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사상 최악의 폭염’이 올해만 유독 불거진 이변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최근 5년 동안 매년 한반도 사상 최고기온이 경신되고 있고 최악의 더위는 여름철 늘 있는 대책 없는 단골뉴스가 되는 등 고착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 이러한 기온 상승은 기후학자들이 우려하는 예측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제 폭염은 여름철 며칠만 피하면 괜찮은 것이 아닌 다수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여름 내내 지속되는 자연재해가 된 것이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8일 경북 영주시 문수면 승문1리 한 수박밭에 강한 햇볕으로 껍질이 하얗게 변하고 속이 상한 수박들이 줄지어 버려져 있다. 이 수박밭에서는 수확하려던 6000여개 중 80~90%가 버려졌다. 이준헌 기자

재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쏟아내는 대응은 임기응변의 세금 투입 일색으로, 주변 전체를 생각한다면 폭염을 더욱 심화시키는 대책들이 대부분이다. 말 그대로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며, 근본적 대책을 위한 논의는 사실상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정부는 이 더위가 지나면 내년 여름까지 잊히기를 기다리는 모양새다. 기실 전 지구적 기온 상승으로 인한 폭염에 정부가 내놓는 대안이 당장 살기 힘든 국민들을 만족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이 재난의 원인을 지구적 산업화에 따른 온난화라 치부해 버리면 우리가 할 일은 거의 없으며 순순히 더 길어지고 더 세지는 여름철 재앙을 앞으로도 이렇게 무방비로 견디는 것만 남게 된다. 한반도 기온 상승이 지구 평균에 비추어 두 배 이상 빠른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도 문제를 대외적 요인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이다. 당장 원전을 더 가동시켜 전기를 싸게 쓰자는 대책을 일부 기득권에서 주장하고 있지만, 원전이 광범위한 해수면의 온도 상승 유발원임을 고려한다면 문제를 더욱 가중시키는 것으로 대안이 될 수 없다. 더위에 지친 서민에게 전기료 절감과 같은 달콤한 대책으로 비치지는 못하겠지만, 한반도 기온 상승의 속도 완화를 위한 중장기적인 대책을 절실히 논의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 논의는 우리나라가 왜 다른 나라에 비해 급격히 기온이 상승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어야만 한다. 지구적 기온 상승의 원인은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의 과도한 배출이다. 이 근본 원인에 대한 대책은 첫째,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며, 둘째는 배출된 온실가스를 더 흡수하는 것이다. 물론 간단해 보이는 이 대책을 실천하는 것은 전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재난상황에서 무조건 더위를 참으며 에너지를 절약하라는 말이나, 일반화된 소비 행태의 급진적 전환 요구는 대책이 될 수 없다. 자연스럽게 대책의 시작은 기온 상승을 유발하는 화석에너지원 및 원전의 빠른 전환과 함께 온실가스 흡수량을 높이기 위한 방안 마련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온실가스 흡수를 위한 대안은 숲의 면적과 기능을 확대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수목은 탄소를 흡수할 뿐만 아니라 아스팔트에 물을 뿌리는 효과와 동일하게 수분을 증발시켜 대기 온도를 직접적으로 낮추는 이중 효과가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녹지정책은 ‘탄소흡수원 확충’을 위한다는 최우선 명분과는 달리 탄소 흡수 기능을 훼손하는 데 지속적으로 세금을 투입해 왔다. 숲가꾸기 사업이 그것인데, 최근 10년간 약 2조2000억원의 세금을 투입한 사업의 대부분은 간벌과 가지치기로 숲의 탄소저장 총량과 연간 탄소흡수량을 줄이는 데 사용되었다. 아울러 지금의 기온 상승 추세가 지속되면 한반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소나무가 살아갈 수 없음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겨울철 온도 상승이 주된 원인인 소나무재선충병 방재를 명목으로 온도를 낮출 수 있는 참나무와 낙엽활엽수 숲으로의 안정적 전환을 방해하는 데 쏟은 세금이 1조1000억원에 달한다.

폭염의 대책은 세금을 투입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각 분야에서 폭염을 가중시키는 데 들이는 세금을 줄이는 것이 훨씬 쉽고 높은 효과를 보이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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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은 잠시지만, 먹고사는 일은 평생이다. 남북 정상과 북·미 정상의 역사적 만남이 몰고 온 짜릿한 감동이 가라앉자, 우리 사회의 해묵은 난제들이 떠오른다. 높은 지지로 정권교체에 성공한 문재인 정부는 지금까지 정치 개혁과 남북 관계 등 어떤 부분에서는 눈에 띄는 성과를 일궜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개혁과 변화가 지지부진하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내년도 최저임금, 정부의 종합부동산세 개편안을 놓고 논쟁이 뜨겁다. 최저임금에 기대어 살아야 하는 저임금 노동자, 수입이 최저임금도 못된다고 하소연하는 소상공인, 모두 일상의 무게가 버거운 사람들이다. 각자의 위치에 따라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소득주도성장의 속도조절론이 나오더니, 이젠 방향 전환에 대한 의구심도 피어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걸쳐 길게는 10년씩 투쟁하던 해고노동자들은 여전히 거리에, 굴뚝에 있다. 노동자 해고와 관련한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징후가 농후하지만, 변화는 없다. 이번이 30번째, 또 한 명의 쌍용차 해고노동자가 세상을 등졌다. 31번째 희생자를 막고, 이제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대한문에 다시 분향소를 차렸지만, 변화는 없다.

얼마 전 감사원 발표로 홍수와 가뭄 예방, 수질 개선을 명분으로 밀어붙였던 ‘4대강사업’이 철저한 사기극이었음이 확인되었다. 대통령이 진두지휘를 맡았고, 국토부, 환경부, 기획재정부 장관은 알면서도 적극 협조했다. 강은 망가졌고, 강에 의지하며 살았던 농민과 어민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엄청난 범죄이지만, 감사원은 이런저런 이유로 처벌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4대강 재자연화는 더디게 흘러간다. 미군기지 환경오염, 설악산오색케이블카를 비롯한 산지개발, 가리왕산 스키장 복원. 문제는 풀리는 게 아니라 쌓여간다.

처한 현실이 어려울수록 근본을 돌아보라고 했다. 엊그제가 제헌절, 헌법은 다른 법의 근본이니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인 제헌헌법이 오늘 우리의 현실에 할 말이 있지 않을까 궁금해졌다. 제헌헌법 ‘제6장 경제’가 눈에 들어온다. 첫 번째인 제84조,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가 개인의 “경제상 자유”에 앞선다고 천명한다. 제헌헌법은 분배를 통한 사회정의 실현을 경제의 목표와 방향으로 삼았다. 현행 헌법의 해당 조문을 보니,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가 앞서고 “사회정의”는 사라졌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거듭했을 현행 헌법은 이제 자신의 모태인 제헌헌법과 대립할 지경이다. 제85조는 “중요한 지하자원, 수산자원, 수력과 경제상 이용할 수 있는 자연력”에 대해 “공공필요”에 따른 개발을 원칙으로 내세운다. 제헌헌법의 “공공필요”의 원칙은 자연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주는 개발의 제어원리로 작동할 것이다. 현행 헌법은 ‘개발’을 ‘보호’에 앞세우고 개발의 성격과 방향은 언급하지 않는다. 역시 제헌헌법과 큰 차이가 난다.

경제(economy)는 어원상 가정(oikos, eco) 관리, ‘살림살이’를 뜻한다. 살림살이는 식구 모두가 잘 지내도록 집안을 돌보는 것이니, 분배와 지속가능성이 경제의 핵심이다. 제헌헌법 “제6부 경제”가 지향하는 것이다. “사회정의”는 기계적 공정이 아니라 약자 중심의 사회를 요구한다. 그럴 때만, 모든 사람이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 “공공필요”의 원칙에 따라 자연을 이용할 때, 자연생태계 보전도 가능해진다.

우리의 경제 현실에서 제헌헌법의 경제 철학이 가리키는 길로 들어서는 건 쉽지 않다. 가야 할 길 앞에서 머뭇거리기 쉽다. 그러나 개혁을 위한 ‘카이로스’는 마냥 기다려주지 않는다. 현 정부는 주권자의 압도적 지지로 출범했다. 아직도 지지율이 높다. 행여, 높은 지지율을 까먹을까 하여 해야 할 일 앞에서 머뭇거리지 않길. 해야 할 일을 하는데 높은 지지율을 아낌없이 써버리길. 진중하되, 담대하길.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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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공포로 대기질에 대한 언론과 국민의 관심도는 매우 높아졌는데, 언론의 호들갑과는 달리 오히려 미세먼지 농도는 1990년 이후 최근까지 점진적 개선을 보였다. 그럼에도 이 문제가 연일 계속되는 것은 2013년 이후 개선이 답보상태를 보인 시기와 맞물려 호흡기 질환 사망자 증가율이 급격히 늘어난 것이 원인이 아닐까 한다.

사람들이 환경문제를 인식하게 되는 시점은 이미 손쉬운 해결에서는 한참 벗어난, 자신 또는 주변에 문제가 일어났을 때가 대부분이다. 대기오염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호흡기계통 질환 사망률은 미세먼지가 크게 좋아지던 시절인 1990년 이후에도 지속적 증가를 보였으며 2010년 이후 급격히 증가했다. 폐렴에 의한 사망자는 1990년 전체 사망자의 6%에서 2010년에는 15%로 증가하였는데 이후 2015년에는 29%로 껑충 뛰었고 전체 호흡기 질환 사망자는 50%를 넘어섰다. 사망자 두 명 중 한 명이 호흡기 질환으로 사망하니 미세먼지가 좋아졌다는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당연히 수치와는 달리 미세먼지에 대한 공포는 더욱 커졌는데, 이유는 모든 대기오염 문제를 대표하는 단어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미세먼지”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출처:경향신문DB)

미세먼지의 감소를 고려하면 최근 급격한 호흡기 질환 증가의 주된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고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위에서 언급한 기간 동안 감소된 미세먼지와는 달리 대표적 호흡기 질환 물질인 오존농도는 서울시 기준으로 두 배가 증가했다. 도심 오존은 질소산화물이 자외선과 결합하여 생성되기 때문에 다량의 질소산화물을 발생시키는 화석에너지 사용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미세먼지와는 달리 오존이나 질소산화물은 가스상 물질로 마스크로는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이 대처할 수도 없다.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화석에너지 저감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하는 이유이며 이 중 시급히 개정해야 하는 것이 자동차 관련 과세문제이다. 오존농도 상승과 디젤차량의 증가, 호흡기 질환 사망자의 증가 추이가 매우 높은 관계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소상공인을 위해 트럭의 연료인 경유에 낮은 세금을 부과한다. 이것이 유가상승과 클린디젤이라는 세계적 흐름과 맞물려 2010년 전체 차량의 36%이던 디젤차량이 2017년에는 42%를 훌쩍 넘어섰다. 심지어 다른 나라와 달리 디젤게이트 발생 이후에도 증가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디젤차량의 급격한 증가는 고급 승용차와 레저를 위한 SUV차량이 주도해 유류세 정책의 본래 목적과는 달리 부자나 일반인의 세금혜택 수단으로 전락되었다. 정유사와 자동차회사들은 디젤의 미세먼지 배출량이 휘발유와 별 차이가 없다고 홍보한다. 이는 모든 대기오염을 ‘미세먼지’라는 말로 인식하는 데에서 발생한 호도인데, 미세먼지 배출량 차이가 많지 않다고 하여 대기오염에 미치는 영향이 같다는 것은 분명 아니다. 디젤차량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휘발유의 무려 10배에 달하기 때문이다. 도심의 급격한 오존농도 증가와 관련된다. 같은 디젤차량으로 대체될 노후경유차 조기폐차보조금이나 허울뿐인 저감장치에 보조금을 줄 상황이 아님은 물론 환경개선부담금을 폐지할 상황도 아니다.

대책은 휘발유와 동등하게 유류세를 부과하는 데에서 시작되어야만 한다. 최악의 대기오염국가에서 오염을 감내하면서 이들 차량에 세금혜택을 줄 이유는 없다. 디젤에 부과하는 세금을 당장 올리지 못한다면 최소한 차종을 구분하여 승용차에 할인해주는 세금은 환급받아야만 할 것이다. 평균 주행거리를 감안하면 차량 1대당 연간 30만~50만원 정도가 된다. 만성적 대기오염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녹록지 않다. 국민들도 개인의 작은 이익을 위한 선택이 모두의 불행으로 돌아옴을 인식하고 에너지 절약을 보다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할 것이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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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10년이 되었다. 70% 넘는 국민 반대와 극심한 사회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이 땅의 젖줄인 4대강에 손을 댄 지. 이틀 전인 7월4일, 감사원은 4대강 감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번 감사의 골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4대강 사업의 최종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2011년 1월 발표한 이명박 정부 시기 1차 감사에서는 4대강 사업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 인수위 시절인 2013년 1월 발표한 2차 감사에서는 4대강 사업이 총체적으로 부실하다고 하였다. 2013년 7월 발표한 3차 감사에서는 4대강 사업이 대운하 조성을 염두에 둔 것이며, 이명박 정부가 참여업체 간 담합을 방조했다고 밝혔다. 감사원 감사가 매번 결이 다른 결론을 내자 이명박 전 대통령 측에서는 ‘정치 감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이뤄진 1차 감사를 제외한 다른 모든 감사는 4대강 사업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으며, 이번 4차 감사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 사업의 최종 책임자라 결론지었다.

환경시민단체들의 모임인 4대강재자연화시민위원회와 한국환경회의 회원들이 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기 문란 범죄로 드러난 4대강사업 관계자들의 책임을 규명하고, 당장 재자연화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그간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도대체 4대강 사업을 왜 하냐고. 왜 6m 깊이로 강을 파냐고. 이번 감사에 따르면 4대강 사업을 앞장서 추진하고 비호했던 국토부나 환경부조차 애초엔 반대했던 이 사업을 이명박 전 대통령이 “통치 차원”이란 명분으로 강행하였다. 그의 지시에 따라 법적 절차는 무시되었고, ‘보’라 불리는 16개 ‘댐’이 건설되고 6m 깊이로 준설이 이루어졌다. 감사원은 23조원이 넘는 예산을 들인 4대강 사업의 이수 치수 효과는 거의 없으며, 서울대 경제학부 연구팀의 연구결과를 빌려 비용 대비 편익 비율이 0.21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필자에게는 이번 감사 결과가 놀랍지도 새삼스럽지도 않다.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된 반대 주장의 정당성을 10년이 지난 이제야 확인받았다는 사실이 씁쓸할 따름이다. 4대강 사업을 막을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나, 4대강 사업의 부당성을 제기했던 전문가나 환경단체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절차상 잘못이나 위법성을 따질 수 있는 사법체계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2009년과 2010년 ‘4대강 사업 위헌·위법 심판을 위한 국민 소송단’이 4대강 사업이 하천법과 환경영향평가법, 국가재정법, 문화재보호법 등을 위반했다며 사업 취소와 행정처분 효력정지소송을 서울, 부산, 전주, 대전 지방법원에 제기했지만 모두 패소했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국민소송단 증인으로 4대강 사업의 비용 대비 편익 비율이 0.16-0.24라고 재판부에 제출하였다. 이러한 사전 경제성 평가 결과는 이번 감사원이 제시한 사후 평가결과인 0.21과 유사하다. 사업 타당성이 없다는 게 일관된 분석결과다. 하지만 “낙동강사업이 국가재정법을 위반했다”는 부산고등법원 판결이 있었을 뿐, 2015년 대법원은 4대강 사업에 위법성이 없다고 최종 판결하였다. 민주사회에서 대통령의 “통치 차원” 지시가 모든 법적 제도적 장치를 초월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래서 묻는다. 당시 4대강 사업을 찬성했던 전문가들과 책임 있는 자리에 있었던 자들은 이번 감사원 결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금도 자신의 주장과 판단이 옳았다고 보는지. 그렇다면 정정당당히 나서 증거를 제시하라. 그렇지 못하다면 법이 당신들을 처벌하지 못한다 해도 우리 사회는, 무너진 자연은, 당신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4대강 사업에 찬동했던 인사들이 누구였는지, 그들이 어떤 발언을 했는지는 역사적 진실을 기록하기 위한 ‘4대강 찬동 인명사전’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들 대다수는 지금도 부끄러움 없이 활동 중이다. 역사는, 우리는,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 4대강 사업은 진실과 거짓의 문제였고, 전문가에겐 진실을 지켜내야 할 사회적 책임이 있기에.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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