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이전에도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가리왕산이 순간의 기쁨을 위한 화장을 걷어내고 벌거벗은 맨몸으로 장마와 폭우를 기다리고 있다. 며칠간의 짧은 흥분의 마취제를 처방받은 것처럼 잠시 잊고 있었던 올림픽의 경제효과 허상이 사라져갈 즈음, 지역주민의 불안과 사회적 갈등이 마취에서 깨듯 서서히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지방정부는 지킬 생각조차 없었으면서 마치 하늘이 두 쪽 나도 지킬 것처럼 복원약속을 하고, 축제가 끝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왕 만든 것이니 계속 사용하자’는 철지난 개발경제논리의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여기에 더해 마치 그 약속이 철저히 지켜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허가를 내준 중앙정부는 지난 10년간 뒷짐을 지고 있다가 새빨간 거짓말이 수면으로 올라오는 지금에 와서야 이 논란을 남 탓으로 돌리며 응급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그들이 진정 가리왕산의 복원을 생각했다면 이미 10년 전부터 수많은 것들을 준비했어야 했다. 훼손하기 이전, 주변을 포함한 자연환경의 정밀조사를 통해 복원에 필요한 수목을 기르기 시작해야 했으며, 토양을 준비해야 했고, 변화된 환경에서 어린 식물의 적응 가능성을 검토했어야만 했다.

알파인 경기장 주변, 지난달 상대적으로 적은 비에도 불구하고 재난관리기금으로 응급복구를 진행해야 할 만큼 큰 피해를 입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60조원이 넘는 경제효과와 32조원의 관광수익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이 많은 수익을 내고도 수익의 1%도 되지 않는 가리왕산의 복원비용은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어디로 갔을지 모를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지금부터 벌어질 손해는 또 고스란히 우리의 세금으로 메꿔야만 한다. 그렇게 자본은 권력과 결탁해 이익을 사유화하고 자신들이 메워야 할 손해를 공유화한다.

교육의 힘은 위대하다. 바르건 바르지 않건 이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은 실시간으로 미디어에 의해 전달되며 훌륭한 학습효과로 각인된다. 멀게는 일제강점기의 친일매국자들, 독립운동가들과 그 후손이 만들어낸 엇갈린 삶의 역사, 29만원밖에 없는 사람이 살아온 역사, 가까이에는 갑질 재벌가가 만들어내는 일그러진 풍경들이 우리에게 건네는 살아 있는 학습의 효과는 정말 대단하다. 학자적 양심으로 4대강을 반대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지금까지도 힘든 시간을 보내는 반면, 그 부역자들은 정부의 막대한 연구지원을 기반으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현실에서 어느 누가 공익과 정의를 위한 목소리를 낼 것인가? 교과서보다 더 중요한 이 살아 있는 교육에서 우리가, 특히 앞으로 사회를 이끌 청소년들이 배우는 교훈은 무엇일까? 공무원이 되기 위해, 법관이 되기 위해, 시험에서는 교과서에서 외운 정의로운 죽은 답을 찾겠지만, 공무원이건 판사건, 검사건 현실에서 마주한 이 살아 있는 학습결과를 따르는 지금의 사회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논란이 되고 있는 4대강 복원을 포함하여 하천이나 계곡의 복원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다. 강물의 거대한 힘이 스스로 복원의 기반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반면 산림, 그것도 고산식생 복원은 수십 년의 노력으로도 효과를 보기 어려운 까다로운 작업이다. 이미 가장 중요한 10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해 제대로 된 복원을 위해서는 더욱 험난한 과정을 겪어야 하지만 그래도 지금이 가장 빠른 시작이기에 하루빨리 체계적 계획을 수립해야만 한다. 아울러 재해 방지를 위한 조치는 확실히 하되 반드시 임시적이어야만 한다. 재해방지를 위한 시설물이 고착화되는 순간 복원은 영영 사라지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났다. 촛불혁명의 사후약속은 정의로운 삶이 훨씬 고귀하다는 것을 새 역사로 만들어가야 할 시대적 책무일 것이다.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미는’ 후진적 지방자치는 사라져야 할 때이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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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이다. 기다랗게 벽보가 붙었다. 비에 젖지 않도록, 손상이나 훼손 방지를 목적으로, 비닐에 감싸여 있다. 어느새 거리마다 현수막이 즐비하다. 차량 통행이 많은 사거리엔 현수막이 빼곡하다. 건물 한 면에 통째로 붙인 것도 있다. 당 상징 색깔에 후보자들 번호와 이름이 쓰여 있는 점퍼와 모자를 입고 쓴 선거운동원들이 홍보에 열심이다. 번호와 이름이 적힌 어깨띠도 보인다. 인적이 많은 거리에선 후보들 경력이 빼곡히 적힌 명함을 나눠주느라 분주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선 집으로 공보물을 보낸다. 화려한 색상의 고급용지로, 웬만한 노트보다 두껍다. 작은 트럭을 개조한 유세차량이 길거리 여기저기에 세워진 채, 또는 거리를 오가며, 후보 알리기에 여념이 없다. 자동차나 휴대용 확성기에선 소음 수준의 로고송이나 유세연설이 흘러나온다. 일상적인 선거철의 익숙한 풍경이다.

슬슬 의문이 든다. 도대체 선거기간 동안 전국에 붙인 벽보는 얼마나 될까? 현수막은 몇 개나 될까? 벽보나 현수막은 선거가 끝나면 어떻게 처리될까? 얼마나 많은 명함이 만들어지고 선거 공보물은 또 얼마나 될까? 후보들 번호와 이름, 구호가 적힌 점퍼나 모자, 어깨띠는 어떻게 할까? 트럭인 유세차량에서 사용하는 경유는 얼마나 될까? 이렇게 한 번 선거를 치르기 위해 베어지는 나무는 몇 그루나 되고 발생하는 미세먼지는 얼마나 되며 기후변화를 야기하는 이산화탄소는 또 얼마나 배출될까? 자원순환사회연대에 따르면 선거 뒤 현수막 처리에만 30억원이 든다고 한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환경문제가 심각하다.

후보자들이나 정당 입장에선 어떻게든 후보자 얼굴과 공약을 알려 한 표라도 더 얻고 싶겠지만 플라스틱 쓰레기 대란을 겪은 적이 있고 미세먼지에 시달리며 기후변화 위험이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런 식의 선거문화를 그대로 유지해도 되는 걸까? 후보들은 저마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면서 친환경 공약도 내세우지만 이런 환경에 부담 주는 선거문화가 도리어 국민 삶을 해칠 수 있다. 이번 지방선거 공식 선거기간은 5월31일부터 6월12일까지 13일로, 선거가 끝나면 용도 폐기되어 버려질, 단 13일 쓰고 버릴, 선거용품과 옷들이 넘쳐난다. 대다수 국민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2018년의 선거문화, 20세기와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친환경 선거운동을 하는 후보들 이야기도 간간이 들린다. ‘터치포굿’이란 단체가 제공하는 ‘친환경선거 체크리스트’를 실천하는 후보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 더 많은 후보들이 참여하면 좋겠다. 하지만 몇몇 후보의 자발성에 기대기보다 제도 변화로 선거문화 자체를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일단 선거공보물, 너무 아깝다.

선관위 홈페이지에 이미 ‘우리동네 후보자 찾기’ 기능이 있다. 살고 있는 동네만 넣으면 후보와 공약 모두 알 수 있다. 이렇게 간단하고 손쉬운 사실을 아는 시민이 얼마나 될까? 우선 이 사실을 널리 알리자. 이 기능만 잘 사용한다면 공보물을 일일이 집으로 보낼 필요가 없다. 물론 아직도 인쇄물이 필요한 시민들도 있다. 그러니 인쇄물이 필요 없는 사람들이 선관위에 신청하도록 하자, 우리 집엔 보내지 말라고. 현수막은 가능한 한 수를 더 제한하자. 사용 후엔 지금처럼 뜻있는 후보들만 새사용업체(업사이클링업체)로 보내고 대부분 매립하거나 소각하게 두지 말고 모두 새사용업체로 보내게 하자. 신발주머니로 만들어서 학교로 보내는 건 어떨까? 신발주머니 사용에 선거와 친환경 선거의 의미, 새사용의 필요를 익히는 덤도 누릴 수 있다. 유세차량 운행을 줄이고 소음도 규제기준을 정하자. 차제에 이런 방식도 다시 생각해보자.

누가 로고송 듣고 율동 보고 그 후보, 그 정당에 표를 줄까? 유권자는 정책공약을 바란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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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가 수소전기차 ‘과잉광고’를 연일 신문지면에 쏟아내고 있다. 미세먼지를 99.9% 걸러내는 공기청정기이자 발전기로서 “우리 아이들의 맑은 미래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것이 광고의 핵심 내용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서는 이런 광고에 설득당했는지 한 대에 7000만원 가까운 구입비용 중 4000만원가량을 지원한다고 한다. 3000만원에 새 차 한 대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인데, 구입 신청자가 넘쳐나서 이미 지원금이 소진되었다는 말이 들린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가 만든 물건을 광고하는 것은 조금 ‘과장’이 들어가 있다고 해도 크게 탓할 것이 못된다. 하지만 미세먼지를 ‘완벽’에 가깝게 제거하는지, 정말 “우리 아이들의 맑은 미래를 위해서” 필요한지 검증해보지도 않고 수천만원을 국민 세금으로 내주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자동차는 물만 배출한다고 해도 도로를 달리는 것만으로도 상당량의 미세먼지를 만들어낸다. 달리는 동안 도로면에 가라앉아 있던 먼지를 휘저어 날려서 미세먼지의 농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타이어와 도로의 마찰을 통해서도 많은 양의 미세먼지를 내놓는다. 작년 독일 남서부에서 수행된 미세먼지 측정값 분석에 따르면 공기 1㎥에 들어 있는 미세먼지 중 1.9㎍이 자동차 매연에서 나온 것이었고, 그것의 여섯 배에 달하는 11.9㎍은 자동차의 주행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었다. 모든 자동차를 미세먼지 99.9% 제거능력이 있는 수소전기차나 매연이 없는 전기차로 바꾸어도 도로에서 달리는 자동차의 숫자가 크게 감소하지 않는 한 미세먼지 농도가 줄어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수소전기차의 ‘과잉광고’에서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 연료가 어디에서 오는 것이냐이다. 수소전기차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되는 것이 수소충전소가 적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는 엉뚱하게, 그러니 중앙정부와 지자체에서 수소충전소를 많이 보급해야 한다는 쪽으로 흘러간다. 충전소 한 개 건설하는 데 수십억원이 들어가는데, 거기에도 세금을 쏟아부으라는 말이다. 연료로 사용되는 수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는 거의 논의되지 않는다. 수소는 정유공장의 부산물로 얻어지기도 하지만 원리적으로는 천연가스나 물을 분해해서 얻는다. 이때 모두 에너지가 투입되고, 천연가스의 경우 이산화탄소가 생성된다. 가격은 천연가스보다 높고, 전기분해를 이용할 경우 전기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이 전기가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생산되는 것이면 미세먼지도 많이 발생한다.

수소전기차는 전 세계 자동차회사에서 20여년 전인 1990년대부터 개발하던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이미 13년 전에 수소전기차를 선보였고, 대통령은 그걸 타고 청와대를 한 바퀴 돌았다. 차에서 내린 후 그는 “명실공히 수소전지 시대로 갑니다. 제 임기 동안 적극적으로 밀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고, 엄청난 연구개발비가 수소 연구에 투입되었다. 그런데 수소전기차는 그 후 십수년간  잠잠하다가 이제야 시판이 시작되었다. 그사이 기존 자동차회사에서 거들떠보지 않던 전기차는 승승장구하여 수백만대가 보급되었다.

수소전기차가 “우리 아이들의 맑은 미래”를 위해 전망이 밝다면 내가 낸 세금이 지원금으로 들어가도 괜찮다. 그러나 순수 전기차와 비교할 때 수소전기차는 전망이 좋지 않다. 경제성, 연료조달, 미세먼지 어떤 면을 따져봐도 전망이 밝아 보이지 않는다. 지난 30년간 수소전기차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은 벤츠에서 수소전기차는 ‘계륵’ 정도로 취급되고 있다. 그렇다고 투입한 돈이 있으니 없애지도 못한다. 수소전기차에 매달리다보니 그동안 획기적인 전기차도 개발하지 못했다. 현대자동차는 벤츠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수소전기차에 매달린다. 결정은 자유지만, 거기에 내가 낸 세금이 쓰이는 것은 반대한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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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님께.

저는 북한의 에너지 담당자입니다. 지난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님과 김정은 위원장 두 정상의 판문점선언을 접하고 가슴이 벅차올라 이 편지를 씁니다. 두 분은 선언에서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겠다고 하셨습니다. 에너지를 담당하는 저는 이 발표를 듣고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인정했듯이 북한은 도로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에너지 사정도 좋지 않습니다.

1994년 제네바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어 미국이 약속한 1000㎿급 경수로 2기만 완공되었어도 에너지 상황은 꽤 좋았을 것입니다. 지금 북한의 인민은 1990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전력을 공급받으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원자력발전소가 24개나 돌아가고 있고 한 사람이 소비하는 전기가 우리의 20배나 되는 남한에서는 경수로 2기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경수로는 지금 북한 전역에서 사용되는 전기를 모두 공급할 수 있는 아주 큰 의미를 지닌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경수로 건설뿐만 아니라 중유 공급마저 끊어버렸습니다.

사실 저는 경수로 2기 건설이 포함된 제네바합의가 그다지 반갑지 않았습니다. 완공 시점으로 못 박은 10년 안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앞섰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김정은 위원장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것이지만, 경수로 건설은 처음부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스위스에서 학교를 마칠 2000년경 독일을 거쳐 덴마크의 코펜하겐으로 수학여행을 간 일이 있다고 합니다. 이때 독일에서는 지붕에 태양광발전기를 올리고 벌판에 풍력발전기를 세우는 일이 한창이었고, 코펜하겐 앞바다에는 풍력발전기 20개가 세워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말씀 중에 완공되지 못한 경수로 2기 건설에 대해서도 언급하셨는데, 실패한 이유는 핵을 태양광이나 풍력같이 평화공존에 근본적으로 기여하는 대안을 가지고 해결하려 하지 않고 핵무기와 마찬가지로 평화를 위협하는 핵발전으로 대신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더라도 저는 경수로 2기 건설에 투입된 2조원 이상의 비용이 아까우니 경수로 2기의 건설을 재개하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지만 그걸 고집하지는 않겠습니다. 대신에 북한에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을 널리 퍼뜨리는 일을 남한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그 첫 번째 사업으로 저는 서해 북방한계선을 따라 풍력발전기를 세우자는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북방한계선은 길이가 200㎞가 넘습니다. 한계선을 따라서 250m 간격으로 풍력발전기를 세우면 800개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남한에서 제주도 한경면 앞바다에 건설한 3㎿급 해상 풍력발전기를 그곳에 세운다면, 경수로 2기에 필적하는 2400㎿의 풍력단지가 남북 협력과 평화의 상징으로 건설되는 것입니다.

물론 10조원 정도의 큰 비용이 들어갑니다. 그렇지만 수조원을 쏟아붓고 중단한 경수로 사업과 비교하면 그렇게 큰 비용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비용의 조달과 발전단지 운영은 김정은 위원장이 보고 감명을 받은 코펜하겐 해상풍력단지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돌아가는 풍력발전기 20개 중 절반은 코펜하겐 전력공사 소유이고, 나머지 절반은 코펜하겐 시민 8000명 이상이 참여한 협동조합 소유입니다. 우리도 이런 식으로 남북한 정부에서는 공동으로 북방한계선 풍력발전공사를 설립하고, 남한의 시민과 북한의 인민은 공동으로 출자한 협동조합을 설립하여 북방한계선 구간에 풍력발전기를 세우면, 지금까지 남과 북의 많은 젊은이가 목숨을 잃은 분쟁지역이 평화의 구역으로 바뀔 것입니다.

판문점선언으로 이런 생각과 제안을 할 수 있게 해주신 대통령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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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폐기물 대란이 있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분리배출을 하고 있고 어딜 가나 종류별로 재활용 쓰레기통이 갖춰져 있어 분리수거가 잘되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사실 우리나라 환경정책 중에서 가장 내세울 만한 정책이 폐기물정책이었다. 한국의 폐기물정책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칭찬하는 모범사례로 꼽혀 왔다. 전국이 일시에 종량제 시행에 들어갔고 제도 시행 후 재활용률이 높아졌으며 분리배출이 문화로 자리잡은 듯했다. 2013년 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폐기물 재활용률은 59%로 독일(65%)에 이어 세계 2위였다. 이런 나라에서 재활용 폐기물 대란이라니!

폐기물 관련 숫자들을 보면 놀랍기도 하지만 곪았던 상처가 터진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컵이 무려 연간 260억개, 하루 7000만개란다. 비닐봉지 연간 사용량은 2015년 기준 1인당 420개다. 국민 한 사람이 매일 일회용 컵과 비닐봉지를 하나 이상 쓰고 있는 셈이다.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은 98.2㎏으로 세계 1위, 포장용 플라스틱 사용량은 64.1㎏(2017년 기준)으로 세계 2위다.

압축된 PET 뭉치. 김영민 기자

이대로는 안된다. 폐기물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감량’이다. 재이용, 재활용, 자원 회수 이전에 나날이 늘어나는 발생량 자체를 줄이는 것이 가장 먼저다. 거리 곳곳에 생겨난 커피전문점에서는 종이컵 사용이 기본이다. 매장 안에서도 플라스틱 뚜껑을 닫은 종이컵을, 그것도 마분지 홀더까지 끼워서 쓴다. 매장 밖으로 가져가니 종이컵에 담아달라고 부탁하는 게 아니라 매장 안에서 마실 거니 머그잔에 담아달라고 따로 요청해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찬 음료를 담은 플라스틱 용기에도 홀더를 끼워 쓴다. 냉장고에 진열된 병 주스를 사도 따로 플라스틱 용기에 얼음을 담아준다. 텀블러를 사용하면 할인혜택을 주는 매장도 있지만 모두 그런 것도 아니다. 비가 올 때면 곳곳에선 일회용 비닐봉지가 으레 사용된다. 보고 버릴 영수증도,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가 오지만, 매번 출력된다. 이제 이런 게 일상이고 문화가 되어버렸다.

일회용 컵의 경우 회수율을 높이고 재활용을 촉진하기 위해 보증금 제도가 2002년에 도입되었다.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규제 완화의 일환으로 이 제도를 폐지해 버렸다. 2010년에는 중소기업 부담을 이유로 플라스틱 폐기물 부담금 면제와 경감 범위를 크게 완화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서는 테이크아웃 일회용품에 대한 규제가 사라졌다. 그 사이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경계도 느슨해졌다.

제도적 장치가 사라진 자리에 커피전문점과 1인 가구, 소규모 포장 증가와 택배업체 과다 포장 등의 요소가 맞물리면서 폐기물 배출량은 빠르게 늘었다. 소비자의 세심하지 못한 분리배출도 문제를 키웠다. 중국의 재활용 폐기물 전면 수입 중단으로 그동안 숨겨져 있던 폐기물 처리의 불편한 진실이 민낯을 드러낸 것이다. 중국의 수입 중단 예고가 지난해 7월에 있었고 올 1월부터 실제 금지에 들어갔지만 환경부가 제대로 된 대처방안을 미리 마련하지 않아 상황이 악화되었다.

지난해 환경부가 실시한 일회용 컵 보증금제 재도입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9.9%가 찬성했다. 보증금제 도입에 대한 국민 수용성이 높은 상태다. 기대한 감량과 재활용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감량이 중요하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진 못한다. 상품 생산자에게 비용을 부담시키는 생산자재활용책임제를 확대·강화하여 생산과 유통단계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재활용이 손쉽게 이루어지도록 용기와 포장재질을 개선하는 방안도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정부와 기업, 시민, 모두의 책임 있는 실천이 절실한 시점이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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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현재 24개의 원전이 가동 중이다. 발전용량은 2만2529㎿이고 전체 전력의 30%가량 생산한다. 석탄발전소에서는 그것보다 더 많은 40%를 생산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둘을 모두 줄여나가고, 이를 통해서 언젠가는 에너지전환을 이룩하려 한다. 문제는 원자력과 석탄화력으로 생산하는 그 많은 전력을 무엇으로 만들 것인가인데, 정부에서는 태양광과 풍력이 역할을 해주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방송통신대 학생들과 함께 에너지전환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에 그게 가능한지 계산해보았다. 전원믹스를 고려하여 태양광으로 전체 전력의 30%인 원전을 대체하고, 풍력으로 석탄화력의 40%를 생산한다고 가정하고 계산을 하였다. 결과는 태양광이나 풍력 모두 원전과 석탄을 대신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태양광으로 원전이 생산하는 30%를 충족하려 할 때 필요한 용량은 원전의 다섯배가 조금 넘는 13만5000㎿였고, 설치에 필요한 면적은 약 1215㎢였다. 서울시의 2배 정도, 남한의 1.2%에 달하지만, 남한 전역에 퍼져 있는 건축물 지붕과 농토의 일부만 이용해도 얻을 수 있는 면적이다.

석탄을 풍력으로 대치하는 경우에는 계산이 조금 복잡해진다. 육지는 바람이 약해서 일부 산간지방과 해안을 제외하면 풍력발전기를 세울 만한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바람이 강한 바다로 나가야 하는데, 이 경우 풍력으로 석탄을 대치하려면 8만㎿ 용량의 발전기를 세워야 한다. 면적은 6만㎢ 정도가 필요하다. 남한 국토면적의 60%에 달하지만, 북쪽을 빼고 3면이 모두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나라에서 확보가능한 면적이다. 현재 1만6000㎿의 해상풍력발전소가 가동 중이고, 2020년에는 2만5000㎿의 발전소가 바람을 이용해서 전력을 생산하게 될 영국과 비교할 때 수십년 계획을 세우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문제는 건설비용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이다. 태양광 건설비가 ㎿당 약 1억4000만원, 해상풍력이 ㎿당 약 40억원이므로, 현재를 기준으로 단순하게 계산할 때 투입되어야 할 비용은 태양광이 약 200조원, 해상풍력은 약 300조원이 된다. 정부의 1년 예산과 맞먹는 대단히 많은 돈인데, 대부분의 관료나 정치인은 대기업이 나서주지 않으면 조달이 안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거대자본들이 큰돈을 투입해서 바다에 풍력단지를 세운다는 발상은 촛불혁명 전에나 수용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촛불혁명을 통해 국가의 주인이 시(국)민이라는 것을 뚜렷하게 인식하게 된 촛불시민들은 이런 발상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바다와 바람은 공유자원(커먼스)이다. 당연히 국가와 시민들이 공공을 위해 관리하고 개발하고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거대자본에 넘겨주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영국에서 해상풍력은 모두 거대자본이 가져가고 있다. 이에 대해 대다수 시민들은 별 관심이 없고, 민주사회에서 에너지전환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고민해왔던 소수의 시민들만 간간이 우려를 표할 뿐이다. 이들은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독일의 에너지전환 과정을 부러워하지만, 독일도 재생가능 에너지의 전력생산 비중이 30%를 넘어선 후에는 거대자본이 해상풍력이라는 큰 프로젝트에 뛰어들고 있다. 정부도 이들을 적극 지원한다. 물론 비판하는 세력도 있지만, 이 추세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들은 바다와 바람이라는 커먼스가 거대자본에 선점당하면 되돌릴 수 없다고 우려하며 안타까워한다.

에너지전환은 기술의 변화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촛불혁명의 정신과 상통하는 에너지전환 정신이 제거된 기술만의 변화는 진정한 에너지전환이 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조급증에 걸려서 커먼스를 거대자본에 내주면 이런 비극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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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서 ‘40일’은 중대한 일을 앞두고 준비하는 기간을 상징합니다. 교회도 부활절 전 40일을 ‘사순(四旬) 시기’로 지냅니다. 지금이 그때입니다. 사순 시기는 회개의 때입니다. 회개는 특정한 잘못의 뉘우침보다는 자신을 어떤 면에서 근원적으로 변화시킬 마음의 변화를 뜻합니다. 회개는 현재 삶의 태도를 깊이 성찰하고 그 결과에 따라 삶의 방향을 돌리는 것, 곧 돌아섬입니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또 무엇을 향해 돌아서려고 하는가?” 매년 이때 되새기는 물음입니다.

소비주의는 오늘 우리 사회를 규정하는 핵심어입니다. 소비주의는 필요 이상으로 많이 소비하는 경향이나 그렇게 부추기는 경향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것도 심각한 문제이긴 하지만, 소비주의의 근본 문제는 우리를 ‘소비자’라는 특정한 유형의 인간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소비주의는 사람들이 “무엇이든 찾아내거나 만들거나 기르기보다는 사는 게 낫다고 여기게” 만듭니다(웬델 베리, <온삶을 먹다>). 소비주의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우리는 직접 문제의 답을 찾아내고 필요한 것을 만들고 길러내는 능력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사고 쓰고 버리는 과정이 확대 재생산됩니다. 그러는 동안, 써서 없애는 데 길들여진 우리는 수동적이고 무기력하게 변합니다. 이것이 바로 소비자의 모습입니다. 소비자가 만들어내는 건 쓰고 버리는 쓰레기입니다.

소비주의 사회에서는 소비 능력이 큰 사람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소비를 많이 하려면 많이 소유해야 하고, 그만큼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경쟁은 치열해지고,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옆을 바라보는 건 금물, 앞만 보고 질주해야 합니다. 뒤처지는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말고 자기에게만 몰두해야 합니다. 자연생태계의 훼손도 인간의 풍요와 편리를 위해서라면 그다지 대수로운 일이 아닙니다. 소비주의는 이렇게 경쟁과 자기몰입과 무관심을 확대 재생산합니다. 단절과 고립의 벽이 도처에 생겨납니다.

무언가 문제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 때도 있지만, 매력적인 모습으로 치장한 소비주의는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고, 소비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회유하고 위협합니다. 무한한 풍요와 편리라는 환상에 빠져 있는 한, 우리는 자신과 사회와 자연생태계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 가는지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설사 소비주의의 근본 문제를 본다고 해도 저항하기 힘듭니다.

얼마 전,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한 수녀님을 찾아가 수녀원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흙과 나무로 지은 아늑한 집에서, 소박하지만 정갈한 밥상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수녀님이 상에 놓인 음식을 가리키며 먹을거리는 가능한 한 직접 길러서 마련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자랑으로 비칠까, 수줍은 표정 속에서 직접 ‘찾아내고 만들고 길러내는’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건강한 자부심이 배어나옵니다. 사람에게 좋기 때문이 아니라 땅을 살리기 위해서 유기농을 한다고 말하는 수녀님에게서 땅을 믿고 땅에 기대어 사는 사람의 겸손이 묻어나옵니다. 불편하지만 오줌과 똥을 모아 거름을 만들어, 땅에 힘을 북돋아줍니다. 땅은 우리의 모태이니, 땅이 건강해지면 사람도 건강해집니다. 그렇게 우리는 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능한 한 기계 없이 몸으로 하려다보니, 농사를 크게 짓지 않습니다. 대신, 조금 덜 쓰면서 지냅니다. 덕분에 쓰레기가 덜 생겨나고, 마음의 여유를 더 누립니다. 어느 날 슬며시 찾아와 한 식구가 된 도도한 러시안 블루 ‘도도’도 수녀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습니다. 따뜻한 관심과 환대의 물줄기가 단절과 고립의 벽을 허물고 흐릅니다.

하루의 어설픈 노동으로 밥값을 대신하고 소비가 일상인 곳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묻고 싶은 말이 떠올랐습니다. “수녀님, 그래도 이런저런 것들이 없어 불편하지요?” 수녀원 부엌 입구에 걸려 있는 나무판 속의 글귀가 대신 답해줍니다. “없는 대로, 불편한 대로.”

<조현철 신부 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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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 ‘녹색세상’에 실린 글을 모두 찾아보니 60% 남짓이 탈원전 관련 글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임이 분명하나, 개인적으로는 ‘다양성’에 대한 아쉬움은 컸다. 가습기 살균제, 미세먼지, 기후변화, 조류인플루엔자, 4대강과 케이블카로 대표되는 국토난개발 외에도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은, 심각한 환경문제들이 여전히 드러나지 않고 숨어있다는 데에서 더욱 그러하다. 지금부터라도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녹색’과 관련된 간과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시작은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소나무와 하늘소, 꿀벌에 관한 것으로 해보려 한다. 지구의 모든 생물이 하나같이 중요하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생물종을 들라면 인간을 제외하면 당연히 꿀벌이다. 벌이 멸종하면 4년 뒤 인간이 멸종할 것이란다. 그런데 벌이 집단으로 사라지고 있음에도 우리는 남의 일인 듯 무감각하다. 벌의 집단붕괴 원인은 그동안 다양하게 제시되었으나, 연구가 축적되면서 바이엘사가 개발한 네오니코티노이드계열 살충제의 과도한 사용이 핵심으로 지목되고 있다. 초기 연구에서는 똑똑한 벌 스스로가 해당 살충제를 피하기 때문에 문제가 크지 않다는 발표도 있었으나, 2015년 한 연구결과는 벌이 시간이 지날수록 살충제가 있는 곳을 더 자주 찾아간다는 내용이었다. 충격적이게도 담배와 같은 중독효과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미 꿀벌 유해성 문제로 초기 네오니코티노이드계열 살충제는 많은 국가에서 생산 및 사용을 금지하고 있으며 비교적 독성이 약하다는 3세대 살충제 또한 유럽 및 북미를 중심으로 사용금지 약제로 속속 등록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살충제가 경작지뿐만 아니라 인가 주변 산림과 도시에 광범위하게 뿌려지고 있다. 소나무가 죽어간다는 이유에서이다. 산림청이 소나무재선충 매개를 이유로 산림 내 솔수염하늘소를 죽이기 위해 사용한 네오니코티노이드계열 살충제와 호흡기 독성물질이 유출되는 살충훈증제의 구입비가 2015년 한해에만 무려 80억 원이 넘는다. 재선충은 고지대 산림에서는 거의 발병하지 않기 때문에 이 약제의 대부분은 우리가 수시로 오르내리는 나지막한 동네 뒷산에 집중적으로 뿌려진다. 또한 많은 지자체가 이 살충제를 가로수 병해충 방제에 사용하고 있으니 농경지는 물론 산림, 도시까지 구석구석 뿌려진다고 봐도 무방하다. 꿀벌이 이 농약을 피할 수 없음은 당연하고 우리 또한 적은 양이지만 지속적으로 노출된다고 봐야 한다. 환경이야 늘 후순위로 밀리는 우리나라는 이 약제에 대해서도 역시 다르지 않은 대응을 보여준다. 2016년 벌꿀의 생산지수는 46으로 떨어졌고, 양봉농가들의 지속적 문제제기에도 정부는 문제없다고만 하고 있다. 우리 숲이 그나마 온전하게 자연의 섭리를 따르기 시작한 시기는 지역별로 조금 차이는 있지만 1980~90년대 들어 시골에까지 석유나 연탄보일러가 보급된 이후이다. 숲이 사람의 간섭을 벗어난 지 고작 30년 정도가 되어 이제야 조금씩 안정화 단계로 접어들며 숲의 진짜 나무(眞木), 참나무가 성장하면서, 반대급부로 초기에 번성했던 소나무는 여러 이유로 줄어드는 현상을 동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안정화를 외면하면서 숲의 미래를 책임질 진짜 나무를 잡목이라는 이름으로 베어내고, 하늘소를 포함한 숲속의 수많은 생명들을 죽이는 살충제를 가장 깨끗해야 할 산림에 뿌리고 있는 것이다.

불안정한 산림생태계가 안정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소나무가 쇠퇴하는 것을, 마치 소나무가 줄어들면 산림이 황폐화될 것 같이 호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대로 생각해보자. 가을의 아름다운 단풍산행지가 늘어나는 것이 농약을 뿌려야 할 만큼 심각한 문제인가? 하늘소를 죽이는 살충제가 뿌려진 산림이 과연 건강한 산행지일까? 농경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우리가 늘 호흡하는 도시와 산림에는 사용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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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와 포항의 연이은 지진은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가를 보여주었다. 반대로 자연에게 거대 재앙은 인간일 것이다. 주민들이 지진에 삶의 터전을 잃는 것과 같이 반달가슴곰이, 산양이, 하늘다람쥐가 탐욕스러운 자본에 의해 삶의 터전을 잃는다. 마치 자연과 인간이 서로 대립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는 자연 속에 우리가 있고, 파괴된 환경은 더 큰 재앙으로 돌아옴을 인식할 때이다. 개인의 권리, 자본의 가치를 그 어느 나라보다 우선하는 국가로 당연히 미국을 꼽을 것이다. 이런 정부가 자신들이 만든 가장 훌륭한 아이디어를, 대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호하기 위한 ‘국립공원’ 제도라 말한다. 그 어떠한 과학적 발견이나 기념비적 건설행위가 아닌, 보전을 위해 자본의 욕심을 강력히 제한하는 제도를 우러르는 것은 그만큼 이 제도가 국가적으로 높은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달 말 미국 정부의 자연보전 의지를 확인할 발표가 있었다. 미국 국립공원청이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 ‘옐로스톤’을 포함하여 전국 17개 공원의 성수기(연간 5개월) 입장료를 약 8만원(한화)으로 인상한다는 발표이다. 방문객 증가 억제를 위한 정말 전격적이고 파격적인 발표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비해 현재도 심각한 고밀이용지역인 설악산(설악산 이용밀도는 옐로스톤의 20배가 넘는다)은 ‘문화향유’를 이유로 오색케이블카를 건설해야 한다고 한다. ‘향유권’을 추가로 심의한 문화재전문위원들의 정당한 재부결 결정을 편향적 법률해석을 통해 허깨비로 만든 문화재청을 포함한 우리 정부는 미국 공원청의 발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최근 10여 년간 정부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나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등의 권위에 기대며 보호지역 홍보에 열을 올렸다.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자신들의 우수한 전문성과 노력의 성과로 많은 국립공원의 IUCN 보전등급이 5등급에서 2등급으로 승격되었다고 홍보하고, 산림청의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이나 문화재청의 천연보호구역은 IUCN 보전등급 1등급 또는 UNESCO 생물권보전지역의 ‘핵심지역’으로 환경부보다 훨씬 엄격하게 관리한다는 논리를 편다. 실제 산림청은 우수한 자연지역의 공원 편입을 이 논리로 반대하기도 하였다. 미국 공원청의 입장료 인상 결정은 탐방객 증가에 따른 훼손을 막고자 하는 기관의 핵심 임무에 충실했다는 공감대를 얻고 있다. 반대로 오색케이블카 추진 과정에서 빚어진 논란들은 해당 기관들 본연의 임무를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법적 근거도 없는 ‘조건부’를 내세워 보호지역 핵심공간에 건설되는 반영구 훼손시설의 설치를 승인한 환경부나, 더 강력한 보전기관임을 자처한 산림청과 문화재청의 결정은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자진하여 설악산을 엄격한 통제가 요구되는 보호유형으로 전환시킨 후 홍보에 열을 올리는 이중적 행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오색케이블카 예정지역은 문화재청에 의해 학술적 목적의 출입까지도 엄격히 제한되는 유형Ⅰ의 보호지역으로, 유형Ⅱ의 미국 옐로스톤보다 강력한 보전이 요구된다).

또한 환경부는 2012년 공원의 보전가치가 이용가치보다 약 9배 높음을 연구결과로 제시한 바 있고, 케이블카를 포함한 공원 내 논란이 되고 있는 많은 시설들을 원천 금지시키는 법률 개정작업을 현재 진행 중이다. 이미 케이블카 같은 시설이 보호지역의 ‘향유’에 맞지 않으며, 보호지역은 충실히 보전될 때 훨씬 높은 가치를 국민에게 돌려줌을 다른 누구보다 잘 아는 정부가 문제의 시설들을 올해 기필코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로 밀어붙이는 모순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오색케이블카 승강장 옆 승마연습장과 대청봉 위 호텔이 선명한 설악산 개발계획도가 탄핵 이후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으로 보인다. 보이지 않는 힘은 현 정부에서도 여전한 건가?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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