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포츠전문 매체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가 월드컵을 앞두고 우리 대표팀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은 들러리”.

아, 화가 난다. 어쩌다 이런 촌평까지 듣게 되었나, 자괴감이 들고 괴롭다. 정작 당신네 팀들은 지역예선 5위로 탈락했잖아, 라고 소리치고 싶다. 아무튼, SI는 러시아 월드컵 32개국 전력을 6개 등급으로 분류했다. 우리 대표팀은 최하위다. 호주, 이란, 파나마,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튀니지와 함께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만약 우리가 저 6등급 팀들과 한 조가 되어 맞붙는다고 해도 16강이 가능할까, 조심스럽다. 개최국 러시아, 아시아의 강호들, 더욱 굳세고 빨라진 호주를 이길 수 있을까.

오스트리아 레오강 캠프에서 들려오는 소식 또한 상큼하지 않다. 사실상 1.5군인 볼리비아를 돌파하지 못했다. 신태용 감독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투톱 김신욱과 황희찬을 ‘트릭’이라고 했다. 트릭?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주인공이 내뱉는 마지막 대사만큼이나 난해하다. 어느 팀을 상대로 한 연막작전인가.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2002 한·일 월드컵 때 마지막 평가전은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프랑스였다. 잉글랜드의 미드필더 솔 캠벨과 경합했던 우리 선수는 ‘콘크리트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솔 캠벨은 전성기 때 신장 189㎝에 무려 100㎏의 거구로 100m를 10초대에 주파했다. 스웨덴이나 독일과 맞싸운다면 그런 정도의 평가전 상대여야 했다.

마지막 평가전은 세네갈인데, 장외 정보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비공개는 어쩔 수 없다 해도, H조에서 일본과 맞붙는 세네갈에 조금 이로울 뿐, 이 평가전을 ‘가상의 멕시코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우리와 일본이 많이 다르듯, 세네갈과 멕시코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곧 대회가 열리는데 무슨 불평의 소리냐고,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응원을 해도 시원찮은 마당에, 라고 생각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당연히 그렇다. 그 점에서는 정말 ‘모두가 한마음’이다. 9회 연속 월드컵 진출은, 전 세계 6개 나라뿐이다. 게다가, 지난번 칼럼에 썼듯이, 공은 둥글다. 신태용 감독도 스웨덴의 평가전을 본 후 그랬다. “공은 둥글다.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고 말이다. 기본적인 태도는 이렇게 모두가 같다.

그럼에도 신태용 감독이, 그리고 이영표 해설위원이 한 말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신 감독은 5월19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이 평상시에도 축구를 좋아하고 프로리그 관중들 꽉 차고 그런 상태에서 대표팀 감독을 욕하고, 훈계하면 난 너무 좋겠다”면서 “그러나 축구장에 오지 않는 사람들이 월드컵 때면 3000만명이 다 감독이 돼서 죽여라 살려라 하는 게 아이러니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덧붙이기를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게 너무 힘들다”고 했다. 이영표 해설위원도 “솔직히 한국 사람들은 축구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한국 사람들은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기는 것을 좋아할 뿐”이라고 말했다.

과연 그러한가. 객관의 지표는 그렇다고 말한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이후 관중은 지속적으로 급감했다. 오르고 내리는 게 아니라, 계속 감소다. 그때까지는 연평균 1만명 안팎이었으나 그 이후 8년 가까이 7000여명 수준이었고 올해 상반기는 5000명 정도다. FC서울이나 수원삼성 같은 ‘리딩 클럽’의 관중 수도 줄었다.

이유는 무엇인가? 정말로 우리 국민이, 축구팬들이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해서 이렇게 되었는가. 쾌활하고 독창적이며 선진적인 마케팅은? 부재했다. 승부조작이나 심판 판정 같은 문제도 있었다. 각 팀들이 창조적인 플레이를 했는가? 아니다. 오히려 ‘이기는 것만 좋아’한 것은 구단과 감독들 아니었을까, 이렇게 자문해보길 바란다. 이른바 ‘졌잘싸’, 즉 졌지만 잘 싸웠다는 자조적인 표현의 이면에는, 이기면 더 좋지만 납득이 가는 패배, 다음 경기를 기대하는 패배, 그런 경기를 해달라는 뜻이다. 과연 각 프로팀들과 신태용의 대표팀이 그리 해왔는가, 의문이다.

그렇지 않다 해도, 그것이 축구의 한 부분이다. 월드컵 때라도 3000만이 감독이 되는 게 자연스럽다. 축구의 특성상, 전문가 수준의 정보와 판단력이 있어야 응원단 자격증을 취득하는 게 아니다. ‘남녀노소’ 모두 응원하고 열광하고 때로는 비판도 하는 게 축구다. 평범 속에 깃든 비범, 단순성에 녹아 있는 복잡성, 열광 안에 숨어 있는 비판, 비판에 담긴 절실한 열망. 그것이 축구다. 그것을 읽어야 한다.

예전에는 월드컵 때문에 지방선거 투표율이 낮아진다고, 축구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반대했다. 정치 무관심은 월드컵 때문이 아니라 정치 그 자체 때문이라고. 이제는 반대 현상이다. 지방선거와 북·미 정상회담 때문에 월드컵 관심이 줄지 모른다고 한다. 틀렸다. 각각은 각각의 내러티브로 움직인다. 월드컵 열기가 저조하다면 그것은 축구하는 사람들이 자초한 결과다. 게다가 난 그런 판단조차 반대한다. 월드컵이 열리면 다들 밤을 샐 것이고 16강을 염원한다. 제발, 어느 한 팀이라도 이기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문제의 원인을 뒤죽박죽 섞어서, 마치 다른 조건들 때문에 곤란하다는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탄생 200주년이 되는 어느 사상가가 말했다. 문제의 원인은 내부에 있으며, 문제는 그 해결의 열쇠까지 안고 태어난다고. 한국 축구 내부의 상황에 의한 문제를 ‘3000만이 감독이 되어 무조건 이기기만 바라는 이상한 현상’이라고 단정하지 않기를 바란다. 잘못 하면 정말 무플의 고립무원으로 추락해 축구 산업 자체가 붕괴할 수도 있는데, 이 무슨 안이한 진단인가. 21세기 인터넷 시대의 최고 명언,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는 말을, 거듭 생각하자. 쓰디쓴 비판에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남은 것은 침묵일 뿐<햄릿>의 마지막 대사).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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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포츠에는 ‘탱킹(tanking)’이라는 표현이 있다. 기름이 없으면 달리지 못하는 자동차처럼, ‘탱킹’은 경기를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 일부러 지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전력보강에 힘을 쏟지 않는다. 성적은 당연히 바닥권이다.

미국프로농구(NBA)에서 시작됐다. 메이저리그(MLB)에서도 유행이다. 몇몇 팀들은 아예 시즌 전 ‘탱킹’ 가능성을 암시한다. “올 시즌, 우리는 성적보다 미래를 고민합니다”라는 말은 ‘탱킹’을 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이유는 간단하다. 순위를 떨어뜨린 뒤 신인드래프트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겠다는 계산이다.

신인드래프트는, 특히 북미프로스포츠에서 전력을 강화하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고교 혹은 대학 졸업(또는 재학) 선수들을 지명한다. 직전 시즌 성적의 역순으로 선수들을 골라나간다. 프로스포츠 산업의 중요한 가치인 ‘전력 균형’을 위한 장치다. 지난해 못한 팀이 더 좋은 선수를 뽑을 수 있다. 탱킹으로 몇 년 참으면 팀의 주축이 될 만한 선수들을 채울 수 있다.

이상적 이론에 그치지 않는다. 2016년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는 몇 년 동안 탱킹 과정을 거쳤고, 108년 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2017년 휴스턴 역시 중계 시청률 0%라는 오랜 ‘고난의 기간’을 거친 끝에 젊은 선수들의 활약을 묶어 창단 후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따냈다.

메이저리그는 지난 5일부터 2019시즌 신인드래프트 행사를 열었다. 수많은 회의를 거쳐 고심 끝에 필요한 선수를 차례로 고른다.

오리건 주립대 4학년 루크 하임리히는 미국 대학 최고의 좌완 투수 중 한 명이다. 지난해 하임리히는 11승1패로 완벽한 투구를 했다. 평균자책점이 겨우 0.76밖에 되지 않았다. 150㎞를 넘는 강속구를 쉽게 던졌다. 올해에도 15승1패, 평균자책점 2.42를 기록했다.

누구나 탐을 낼 만한 성적이지만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은 하임리히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10대 시절, 6살짜리 조카를 성추행한 혐의로 유죄를 받은 사실이 지난해 여름 알려졌다. 지난해 드래프트에서도 지명받지 못했고, 올해 역시 구단들은 하임리히를 외면했다. 하임리히 측은 “당시 재판까지 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유죄를 인정했을 뿐 사실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고 항변했지만 구단들은 “어쨌든 유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애리조나는 2013년 신인드래프트 34라운드 지명 때 코리 한을 지명했다. 한의 지명이 특별했던 것은, 휠체어를 타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은 미국 청소년 대표로 뽑힐 정도로 유망주였지만 애리조나 주립대 1학년 때 개막전에서 2루 슬라이딩을 하다 크게 다쳐 허리 아래를 쓸 수 없게 됐다. 애리조나는 지명 뒤 그를 선수 대신 스카우트 직원으로 채용했다.

5일 열린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때 애틀랜타는 1라운드 지명 발표 자리에 코너스빌 고교 포수 루크 테리를 초대했다. 2살 때 병에 걸려 오른팔을 잃은 테리는 왼손만으로 경기하지만 수준급 포수로 평가받는다. 테리는 환하게 웃으면서 애틀랜타의 1라운드 지명선수로 카터 스튜어트를 호명했다.

승리보다 중요한 것은 가치다. 탱킹을 통한 드래프트에서도 ‘무조건 승리’ 대신 ‘리그의 가치’에 더 큰 비중을 둔다.

2018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 유세가 진행 중이다. 야당의 움직임을 보면 일부러 전력 약화를 노리는 ‘탱킹’이 의심될 정도다. 다만 지금의 ‘탱킹’이 미래의 승리를 위한 것인지는 미지수다. 추구하는 가치의 방향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좀처럼 보여주지 않은 채 “이러다 곧 다 죽는다”는 으름장만 놓는다.

프로스포츠에서 희망 없는 탱킹의 미래는 정해져 있다. 오랜 팬들조차 다 떠난 텅 빈 그라운드다.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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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기 전 영국에서 스포츠는 ‘여가놀이’를 뜻하는 말이었다. 저명한 문명사가 노베르트 엘리아스는 역작 <스포츠와 문명화>에서 현대 스포츠의 기원을 18~19세기 초 영국의 여우사냥에서 찾는다.

사냥꾼은 총이나 칼은 물론 몽둥이조차 쓰지 못하고 오로지 사냥개만으로 여우를 추격한다. 사냥개와 여우, 사냥개들 사이의 경쟁을 지켜보면서 사냥꾼은 짜릿한 긴장감과 흥분을 즐겼다. 이는 상대방의 팔을 뽑아버리거나 심한 경우 목을 졸라 죽이기까지 했던 고대 격투기와 질적으로 달랐다. 현대 스포츠는 폭력이 통제된 ‘놀이’라는 것이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코치로부터 발과 주먹으로 수십 차례의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그 뉴스를 보면서 한국에서 스포츠의 의미는 무엇일까 되물어본다.

운동선수에 대한 폭력은 한국 스포츠계의 고질적 병폐다. 일상화·관행화되어 있다. 통계도 이를 입증한다. 2016년 서울대 스포츠과학연구소 연구결과에 따르면 전국 운동선수의 38% 정도가 각종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손발이나 몽둥이로 맞기도 하고 욕설과 협박, 괴롭힘을 당했으며 원산폭격·손깍지 등의 가혹행위를 경험했다.

워낙 해묵은 문제다 보니 피해자가 유명선수거나, 엽기적 수준의 폭력이 아니고서는 보도되기도 어렵다.

엽기성이 큰 사건이 반복되다보면 충격은 덜하고 면역력은 커지는 법이다. 폭력에 대한 공분은 무관심과 무기력으로 변해 쉽게 잊혀지고 만다. 거론조차 ‘무얼 새삼스럽게’라는 느낌이 든다. 심 선수에 대한 누리꾼의 분노도 롤러코스터 같았던 북·미 회담과 남북정상회담의 역전 드라마에 묻힌 듯 지나가고 있다.

한국에서 국가 스포츠는 메달을 향한 무한질주다. 운동선수는 올림픽 메달을 따서 국위를 선양해야 살아남고 각종 대회의 메달을 거머쥐어야 대학 진학이 가능하다. 승리지상주의는 과열경쟁을 낳고 때려서라도 좋은 성적을 거두면 운동선수에게 공부를 안 시켜도, 폭력과 같은 인권유린이 자행돼도 쉽게 용서된다. 성적은 운동선수에게만 중요한 게 아니다. 지도자들의 일자리는 불안하고 대부분 성과급제의 비정규직이어서 경기 성적에 목숨을 걸게 된다.

시스템과 제도가 지도자의 폭력을 용인하고 부추기는 근원적 원인이 되고 있다. 심 선수의 경우도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기대만큼 기량을 보이지 못하자 코치가 폭력을 휘둘렀다고 한다.

폭력이 선수의 기량과 성적에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희박하다. 그럼에도 지도자는 조급한 마음을 폭력으로 해소하며, 경기결과가 나쁘면 훈련장에는 폭언과 폭력이 난무한다. 아예 나중에는 훈육을 핑계로 폭력이 일상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모든 적폐의 밑바닥에는 스포츠가 국위선양과 애국심 고취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도록 하는 국가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스포츠는 정권이 활용하기 좋은 먹잇감이다. 국가는 올림픽과 같은 화려한 메가 스포츠 이벤트에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하고 체육계는 메달과 성적으로 정권에 보답한다.

이 과정에서 인권유린에 대한 묵인뿐 아니라 승부조작과 입시부정 같은 비리도 끼어든다. 빙상연맹과 같은 각종 체육단체의 사유화와 권력을 거머쥔 특정 지도자들의 횡포 또한 공공연하게 자행된다. 그럼에도 결과만 좋으면 부정한 과정은 은폐되거나 슬쩍 넘어간다.

이 같은 적폐의 메커니즘에 대한 분석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체육계는 물론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들도 웬만큼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대대적인 개혁을 표방해온 이 정부가 들어선 지 1년이 넘도록 체육계 적폐청산은 감감무소식이다.

지난 3월 문체부가 발표한 ‘2030 스포츠비전’은 개혁 의지는커녕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 정부도 기존 체육정책의 기조를 유지하며 체육계의 충성을 살짝 즐기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체육계 적폐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켜켜이 쌓여 있다. 그렇다고 대한체육회 등 체육계가 스스로 자정하기란 기대난망이다. 그동안 폭력·성폭력 사건뿐 아니라 각종 제도적 개혁의 시대적 요구에 시늉만 내온 대한체육회의 모습은 한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었다.

운동선수에 대한 폭력은 한두 명의 코치를 엄벌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스포츠 적폐청산이라는 과제를 더 이상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운동선수를 때려서 훈련시키고 성적을 올리고 메달 따게 하는 것을 방치해 놓기에는 너무 미개하고 후진적이며 부끄러운 모습이지 않은가.

<문경란 |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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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의 파트너만 찾아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다른 선수들의 의욕이 떨어질 수 있다.”

1시간 가까이 진행된, 국가대표팀 명단 발표 및 기자회견 과정에서, 신태용 감독이 한 말이다. 다른 질문들에서는, 신태용 감독이 특유의 ‘어~’ 하는 간투사를 습관적으로 쓰면서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답변을 했는데, 이 질문에서는 고개를 들어 특히 강조하였다.

해당 기자의 질문 의도는, 기성용을 중심으로 한 미드필드 라인의 전술과 조율에 관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기성용 파트너’라는 단어가 활용되었고, 이에 관하여 대표팀 감독으로서 분명한 뜻을 밝힐 필요가 있었다. 마저 인용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기성용의 파트너를 찾기 위해 대표팀을 운영하는 건 아니다. 다른 선수들에게 예의가 아니다. 23인 엔트리를 똑같이 대우해줬으면 한다.”

중요한 발언이다. 대표팀을 구성하고 훈련하여 일단 조별리그 3경기 270분 동안 격전을 벌여야 하는 감독으로서는, 설령 그러한 질문이 없다 하더라도, 모처럼 생중계되는 과정을 통해 선수들에 대한 자신의 책임과 신뢰를 이렇게 선언적으로 밝혔어야 한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기자회견에서 신 감독 스스로 누누이 밝혔듯이 이번 대표팀 명단은 그가 생각한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다.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인하여 유력했던 선수들 몇몇이 빠졌다. 수비의 핵심인 김진수 선수처럼, 일단 발탁은 했지만 걱정되는 자리가 한둘이 아니다.

그 자리를 다른 선수들이 채웠다. 꽤 오랫동안 소속팀의 벤치에 머물고 있는 이청용 선수에 대한 질문이 거듭되었고 이에 대하여 신 감독은 몇 차례 비슷한 말을 되풀이해야 했다. ‘플랜 A’만 고집할 수는 없고 여러 경우의 수에 대응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함께 가지 못하게 된 선수들에 대한 신 감독의 마음도 불편했을 것이다. 특별히 김민재, 염기훈, 이창민에 더하여 전술적인 고려에 의해 선발하지 못한 최철순에 대한 아쉬움도 표현했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막판까지 고심하여 최종 명단을 발표하였으므로 이제부터는 다른 판단과 다른 발언이 필요하다. “선수층이 두꺼운 것은 아니다. 변화무쌍하게 가져갈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다”라는 말은, 오늘 이후로는 감독의 입에서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아야 한다. 그게 막판에 가서야 승선하게 된 “선수들에게 예의이며 대우”이다.

이를테면 이승우와 문선민 선수. 회견 중에 신 감독은 “선수들 수준이 두터우면 이 선수 저 선수를 교란작전으로 끌고 갈 수 있지만 사실 그런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듣기에 따라서는 어쩔 수 없이 ‘최선이 아니라 차선’을 택했다는 뜻이 된다. 이런 말은 오늘 이후로는 생각하지도 말아야 한다.

어느 감독이든 최악의 상황에서 차선의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그게 축구고 그게 인생이다.

아니, 신 감독 스스로 이승우와 문선민에 대한 상당한 판단과 기대를 말하지 않았던가. 이 두 선수는 기성용, 구자철, 권창훈 등으로 구성되는 미드필드 라인에 예기치 못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나이와 경험 부족을 염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이동국, 이천수, 박주영이 처음 대표팀에 발탁될 때도 그 같은 비판이 있었으나 이들 모두 한국 축구를 한 단계 발전시켰다. 축구의 세계화 현상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이승우는 바르셀로나에서 제대로 배워서 이탈리아의 1부리그에서 뛰고 있다. 문선민은, 스스로 길을 찾아서, 스웨덴의 3부리그를 시작으로 하여 1부리그까지 뛴 후, 현재 인천의 중심에 섰다. 신 감독 스스로 말했듯이 “스웨덴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해 보니 요긴하게 쓸 수 있는” 회심의 카드다.

속도!

금세기 축구의 최대 화두가 바로 속도다. 축구에서 말하는 속도는, 단순한 주파 능력이 아니라 능란한 기어 변속을 뜻한다. 과거처럼, 지칠 줄 모르고 뛰다 보면 결국 지친다. 이영표 해설위원이 예언적으로 말한 ‘스웨덴전 후반 막판 15분’ 같은, 그런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공간을 향하여 파괴적으로 돌진해야 한다. 그 시공간은 겨우 10초 내외 10m 정도다. 우리 팀에는 반드시 그 순간에 그 공간을 침범해버리는 선수가 필요하다.

이미 이근호, 손흥민, 황희찬, 권창훈은 공격 진영 전체를 자신의 영토로 맘껏 누비는 능력을 유감없이 증명해왔다. 여기에 이승우 카드까지 더하면, 언제든지 급가속과 급선회가 가능한, 창의적인 속도의 축구가 펼쳐질 수 있다.

신 감독은 ‘반란’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러시아에서 통쾌한 반란을 일으킨 뒤 귀국해 국민들과 팬들에게 따뜻한 환영을 받고 싶다”고 했다. 역사의 우연인 듯, 러시아는 반란과 혁명의 나라다. 더욱이 스웨덴과 1차전을 갖는 니즈니노브고로드는 반란의 작가 막심 고리키의 고향이며 독일과 맞붙는 3차전의 장소는, 혁명아 레닌이 대학을 다닌 카잔이다. 반란의 작가 고리키는 “인간은 노동의 동물이다. 노동을 통하여 끝없는 힘이 솟아난다. 하려고 한다면 무슨 일이든지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레닌은 더 말해 무엇하랴. 그는 절망이란 “악에 맞서 싸울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라고 했다.

신 감독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인용한 대로, 인터넷에서는 더러 고약한 사람들이 ‘3전 3패가 뻔하다’며 마치 축구공이 세모나 네모처럼 생긴 듯 말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번 대회의 공인구 역시 둥글다. 카잔의 혁명가 레닌은 “조직을 달라. 그러면 러시아를 뒤집어엎겠다”고 했다. 신 감독에게도 조직이 주어졌다. 비록 상황은 차선이었으나 그 자신은 최선의 선택을 한 조직이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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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스포츠 문화는 대체로 ‘나라 잃은 설움으로 청년들이 어울려’ 같이 낭만적으로 서술된다. 그런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일제강점기라 해도 시민/노동자에 의한 새로운 도시 문화의 형성과 그에 따른 집합적 정서의 강렬한 표출이 여러 도시에서 전개되었다.

북방의 대표적인 항만, 무역, 공업 도시 원산. 이곳에서는 1897년에 6홀 규모의 골프가 시작되었고 그 하늘 위로 축구공이 날아다녔다. 1926년 11월18일자 신문을 보면 폭우로 경기가 취소된 줄 모르고 관중들이 ‘우중에 장시간을’ 기다렸으나 주최 측은 ‘하등의 일언반구도 끗(끝)까지 막연’하여 결국 관중들은 원산체육회를 항의 방문까지 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개항 이후 항만, 정미, 목재, 연초, 제분, 철강 등 근대적인 산업 도시로 탈바꿈한 인천에서 1920년대에 인배회, 율목리팀 같은 자생적 ‘클럽’이 생겨나고 이들이 제물포고교 자리였던 웃터골에서 매해 ‘전인천 축구대회’를 가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압권은 역시 경평전이다. 경성과 평양은 근세기 이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영역에 걸쳐 경쟁 관계를 형성하며 발전해왔다. 청나라를 통해 일찌감치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대륙 기질의 평양과 한반도의 중심 거점 도시로 풍부한 인적, 물적 자원을 가진 경성은 축구에 있어서도 자연스럽게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였다.

경성에는 조선축구단과 경성축구단이 있었다. 1918년 창단되었다가 재정난으로 해산한 불교청년회 팀을 1925년에 재규합한 조선축구단은 경성의 휘문의숙에서 수학하던 통도사와 해인사의 학승들을 중심으로 하여 상당한 공격축구를 전개했다. 이 축구단은 전조선축구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일본이나 중국 원정까지 다녔다. 1933년에 창단한 경성축구단은 연희전문 출신들을 주축으로 하여 조선축구단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평양에는 1918년 무오년에 창단했다 하여 ‘무오축구단’이란 이름으로 출발하였다가 1933년에 재편된 ‘평양축구단’이 있었다. 대성학교, 숭실중학, 숭실전문 출신들의 역사다. 전국 주요 도시마다 축구 문화가 활성화되던 때다. 부산을 거점으로 하는 전동래축구단은 김해, 밀양, 마산 등을 돌며 순회 경기도 가졌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면서 본격적으로 대륙을 향한 전쟁을 도모하던 일제는 그 병참기지 역할을 하는 조선의 주요 도시에 사람들이 운집하는 것을 철저히 막고자 했다. 1931년 11월 함경남도 안변에서 개최 예정이던 축구대회도 시국 불안 요소가 있다는 이유로 금지시켰다.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던 1931년 경평전 또한 일제는 대회 자체를 ‘불온’하다고 규정하고 홍보 작업을 한 평양의 구두 공장 노동자 전영택을 경찰서로 끌고 가서 ‘엄중한 취조를’ 하고 구류를 살게 했다.

그럼에도 이 시절에, 요즘의 프로 축구와 같은 특징이 이미 장착되었다. 지역 연고가 뚜렷했으며 스카우트 경쟁도 벌어졌다. 경성의 프랜차이즈 스타 김용식은 1940년대에 평양으로 이적하기도 했다. 요즘 같으면 서울 팀에서 뛰다가 평양의 어느 팀으로 소속이 바뀐 셈인데 한국전쟁을 전후로 하여 70년 가까이 지속된 ‘분단 체제’는, 오래전 경성 선수가 평양 선수로 이적하여 뛰었다는 사실조차 쉽게 ‘상상’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1929년을 전후로 하여 수년 동안 전개된 경평전은 ‘홈 앤드 어웨이’ 및 ‘정기전’이라는 요소, 즉 단지 ‘식민지 청년들의 울분’만이 아니라 본격적인 ‘현대 도시의 프로 스포츠 문화’라는 특징을 충분히 실현해 가고 있었다.

1933년 4월, 평양 기림리 공설운동장에서 3회 대회가 열렸다. 무려 2만여 명이 몰렸다. 이때부터 경평전은 ‘홈 앤드 어웨이’를 전제로 한 라이벌전 성격을 갖게 된다. 당시 신문은 ‘제바닥’(홈) 경성이 이길 것인가 아니면 ‘원래’(遠來·어웨이)의 평양이 이길 것인가라고 썼다. 해방 직후의 시대적인 혼란과 열기는, 1946년 서울에서 열린 경평전을 격렬한 혼란과 열기로 휩싸이게 하였다. 관중 난동이 발생하고 경찰은 공포탄까지 쐈다.

그리고 수십 년이 그냥 흘러버렸다. 1990년 가을에 평양과 서울을 오가는 ‘남북통일축구대회’가 열렸고 2002년 가을에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2002 남북통일축구경기’가 열렸으나 단발성 이벤트로 끝났다. 이런 이벤트는, 현대 도시의 집합적 열기가 서려 있는 격렬한 축구 정기전이라는 ‘경평전’의 역사성을 잇기에 부족했다.

그래서 상상해본다. ‘상상’이라서 우울하지만 ‘상상’의 가능성마저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전쟁과 분단으로 인하여 남한은 지리적으로 고립되고 북한은 체제적으로 고립되었다. 자동차로 서너 시간이면 오가는 거리면서도 ‘상상력의 완전한 고립’ 상태가 수십 년 동안 지속되었다. 때마침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의 분위기다. 숱한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어쨌거나 평화 체제의 구축을 향한 발걸음이다. 여러 측면의 남북 교류가 예상되며 그중 첫번째는 역시 스포츠 교류다.

이럴 때에 ‘경평전’의 부활은 의미가 있다. 단순한 축구 경기가 아니라 한반도를 살짝 흔들어대는 문화 행위가 될 수 있다. 한반도의 중심 도시로 정치와 경제와 문화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두 도시가 다시 ‘경평전’으로 서로 왕래해야 한다.

아무래도 일회적인 이벤트로 시작하겠지만 그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일회적인 이벤트는 대체로 싱겁다. 공 하나로 짐짓 으르렁대면서도 다 함께 함성을 지르는 풍경이 벌어져야 된다. 그저 우애와 친선의 한마당이 아니라 일단 휘슬이 불리면 이기고 봐야 하는 ‘홈 앤드 어웨이’의 각축전이 펼쳐져야 한다.

경기는 격렬할수록 아름답다. 강슛으로 골이 터지면 미안해할 거 없다. 끝난 후 서로 안으면 된다. 심한 몸싸움으로 넘어지면 가서 일으켜주면 된다. 축구는 축구답게! 그럴수록 다음 경기, 홈 앤드 어웨이가 기다려진다.

이렇게, 중앙정부 차원이든 서울시 차원이든, 살아 펄펄 뛰는 ‘경평전’의 부활을 기필코 이뤄내기 바란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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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가 꺼지고, 열창의 공연이 평창의 밤하늘을 가득 채우는가 싶더니 이윽고 축포가 터지면서 패럴림픽이 끝났다. 관객들은, 그러나 간결하게 편곡된 ‘아리랑’을 들으면서 사진을 찍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좀 더 머물렀다. 조직위원회가 마련한 ‘방한 6종 세트’는 봄비 탓에 쌀쌀해진 평창의 밤을 충분히 견딜 수 있게 해줬다. 지난 2월9일 개막한 동계올림픽까지 다 합하여 한 달 넘게 진행된 평창의 겨울 동화는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동계올림픽 때도 그랬지만 이번의 패럴림픽! 와보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아이스하키 동메달 결정의 순간, 텔레비전 중계로 보면서 나는 감격적인, 아니 가슴이 미어질 듯한 ‘애국가’를 모처럼 격정적으로 들었다. 감독과 선수들과 관중들의 ‘애국가’는 화면 밖으로 넘쳐흘렀다. 여러 가지 정치사회적인 일로 인하여 ‘애국가’를 부르는 것이 때로는 불편하기까지 한 근래의 상황을 일거에 씻어버리는 장면이었다. 그야말로 목 놓아 부르는 ‘애국가’였으므로 내 마음은 금세라도 터져버릴 것처럼 뒤흔들렸다. 그래서 폐막식을 보러 갔고, 와서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신의현 선수가 크로스컨트리 스키에서 금메달(7.5㎞ 좌식)과 동메달(15㎞ 좌식)을 땄고 남자 아이스하키팀은 동메달을 땄다. 순위를 정하고 메달을 수여하는 경기대회이니만큼 이렇게 명백한 기준으로 뚜렷한 성취를 남긴 사람들은 특별히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패럴림픽의 취지는 물론이고, 스포츠에 내재된 일반적 의미에서 볼 때, 메달과 상관없이 이번 대회에 출전한 모든 선수들이 각자의 삶의 메달리스트들이다. 그들은 저마다의 힘겨운 삶의 조건에서 벗어나 평창으로, 강릉으로, 정선으로 위엄 있게 이동하여 각자의 경기장에 들어섰다.

얼마 전 타계한 스티븐 호킹 박사는 2000년 8월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이룩한 최고의 업적은,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18년을 더 살았다. 그것만으로도 호킹 박사는 뜨거운 메시지를 전한 셈이니, 겨울과 봄 사이, 찬바람도 불고 간간이 비도 내리는 패럴림픽의 현장으로 들어선 모든 선수들은 그 자체로 이미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잔치는, 그러나 숙제도 남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자료는 패럴림픽이 일시적인 축제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문체부와 대한장애인체육회가 전국의 등록 재가 장애인 5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7년 장애인 생활체육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생활체육 참여율이 20.1%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에 이 조사를 처음 실시했는데 그때 조사에서는, 1주일에 2~3회 이상, 1회 30분 이상 꾸준히 운동하는 장애인 생활체육 인구는 4.4%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12년 만에 4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특히 ‘건강증진 및 관리’를 위한 체육 활동이 ‘재활 운동’을 상회하는 등의 생활 저변화가 이뤄진 점도 특기할 만하다. 이렇게 점진적으로 향상되었지만, 압축하여 말하건대 여전히 5명 중 4명은 생활 체육 자체를 전혀 접하지 못하고 있다. 체육시설과 편의시설도 부족하다. 그마저도 대도시에 몰려 있다. 장애인의 신체와 생활 조건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생활체육 지도자는 여전히 부족하다. 문체부에 따르면 현재 장애인 생활 체육인이 30만명 정도인데 이들과 함께할 지도자는 최대한으로 잡아도 1000명 정도다. 문체부는 일단 현재 450명 정도에서 올해 안에 577명 선으로 확대 배치할 계획이다.

더 중요한 것은, 생활 체육 이전의 상태, 즉 최소한의 이동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2001년 1월, 오이도역 수직형 리프트 추락 사고를 계기로 장애인의 이동권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었다. 이 사건 이후 지하철 선로를 가로막거나 온몸에 쇠사슬을 묶고 버스를 점거하는 등의 격렬한 저항이 이어졌다. 2003년, 국립국어원은 ‘이동권’이라는 이 절박한 용어를 하나의 의미 있는 사회적 신어로 수록하였고 2005년에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만들어졌다.

그 이후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저상버스 도입, 보행환경 개선 등이 일정하게 마련되었으나 이 법의 3조가 규정한 대로 모든 교통수단을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가 이뤄진 것은 아니다. 지난 3월14일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는, 휠체어 장애인의 시외 이동권 보장을 위한 고속·시외버스 승강설비 설치 등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한다고 밝혔지만, 업계는 “과도한 비용이 소요된다”며 ‘불수용’ 입장을 밝힌 상태다.

영국에서는 22석 이상의 대중교통 수단은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저상버스로 운행해야 하며 미국은 장애를 가진 승객에 대한 수송을 거절하거나 이행하지 못할 경우 차별로 간주하여 처벌한다. 독일은 장애인의 보행과 교통수단 이용을 위한 편의시설 확보 등을 사법적으로 지원하는 부서가 별도로 있다.

당장 이 모든 문제를 일시에 해결하자는 것은 아니다. 나라마다 교통업계의 사정이 다르고 재정 형편이 다르다. 그러나 마음마저 달라서는 안 될 일이다. 오이도역 사고 이후 무려 17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제 몸을 쇠사슬로 묶고 눈물의 저항을 해야 한다면, 그것도 명절에 귀성 버스 타겠다고 울부짖는 상황이라면 이젠 달라져야 할 때가 아닌가.

패럴림픽 선수들을 위해 보낸 감격의 환호와 박수를 이제는 사회 전반의 상황으로 돌려야 한다. 방금 꺼진 성화는, 영영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들의 보편적 이동권과 보다 많은 생활 체육 활동으로 되살아나야 한다. 그것을 갈망하며 신의현 선수는 이를 악물고 설원을 달렸고 아이스하키 선수들은 울부짖듯이 ‘애국가’를 불렀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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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패럴림픽이 18일 폐회식을 끝으로 10일간의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우리가 세상을 움직이게 한다’를 주제로 진행된 폐회식에선 다양한 공연과 퍼포먼스가 펼쳐져 평창의 밤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전 세계인에게 뜨거운 감동을 선사했던 평창 패럴림픽은 역대 최대 규모인 49개국 567명의 선수가 참가해 각본 없는 열정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장애를 딛고 일어선 선수들의 도전정신은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전했다.

18일 강원 평창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패럴림픽 폐회식에서 신임 선수위원들이 자원봉사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평창 패럴림픽은 역대 어느 대회보다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특히 북한이 평창 올림픽에 이어 20명의 선수단을 꾸려 동계패럴림픽 사상 처음으로 참가해 ‘평화올림픽’을 구현한 것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대회 운영도 나무랄 데 없었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저상 셔틀버스와 휠체어리프트 설치 차량을 운행해 장애인 선수와 관중들의 경기장 접근성을 높였다. 청각 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지원과 시각 장애인 맞춤형 서비스도 호평을 받았다. 흥행도 큰 성과를 거뒀다. 대회 개막 전에 제기됐던 우려와는 달리 입장권은 34만여장이 판매돼 목표치의 150%를 웃돌았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도 지적했듯이 국내 지상파 방송사의 중계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미국 NBC, 일본 NHK, 영국 채널4가 62~100시간 편성한 데 비해 국내 지상파 3사는 18~32시간을 편성했다가 비판이 쏟아지자 마지못해 중계시간을 늘렸다.

패럴림픽의 주역인 선수들은 빙판과 설원에서 불굴의 의지와 투혼을 발휘했다. 한국 선수단은 금메달 1개, 동메달 2개로 공동 16위를 기록했다. 목표에는 못미쳤지만 최선을 다한 값진 성과다. 동계패럴림픽 사상 첫 금메달과 동메달을 딴 ‘한국 노르딕 스키의 간판’ 신의현 선수는 7개 종목에 출전하며 64㎞를 질주했다. 3~4위 결정전에서 이탈리아를 꺾고 동메달을 딴 아이스하키팀과 ‘오벤져스’로 불린 휠체어컬링팀의 선전은 벅찬 감동을 안겨줬다.

평창 패럴림픽이 앤드루 파슨스 국제패럴림픽위원장의 말처럼 “역대 최대 이벤트”가 될 수 있었던 데는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평창 패럴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계기로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없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고양되길 기대한다. 그게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더불어 살기를 모색하는 패럴림픽정신을 실천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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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3월 한국 강릉

10일 오후 1시15분. 셔틀버스에서 내렸다. 30명은 돼보이는 사람들이 강릉올림픽파크로 향하는 건널목에 서 있었다. 고요했다. 둘러보았다. 고요하지 않았다. 수어(手語)가 오가고 있었다. 평창 동계패럴림픽을 보러 온 청각장애인들이었다. 사람이 모이면 소리가 나야 한다는 고정관념. 부끄러워서 길을 재촉했다.

오후 3시30분. 강릉하키센터 관중석이 가득 찼다. 입장객 6058명. 파라아이스하키(para ice hockey·장애인 아이스하키의 공식 명칭) 예선 한·일전에 나설 양국 대표선수들이 입장했다. 차례로 호명될 때마다 큰 박수가 터졌다. ‘빙판 위의 메시’로 불리는 세계적 골잡이 정승환(32)이 소개되자 함성은 더 커졌다.

휘슬이 울렸다. 1피리어드는 잘 풀리지 않았다. “대~한민국” 구호가 나왔지만 ‘의무방어’처럼 들렸다. 2피리어드. 장동신(42)의 첫 골이 터졌다.

강릉하키센터에서 10일 열린 2018평창동계패럴림픽 아이스하키 한국과 일본의 예선경기에서 한일 양국의 관중들이 관중석을 가득 메운 채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강릉 _ 강윤중 기자

관중석 온도가 급상승했다. 사내 입장권 추첨에서 당첨돼 왔다는 옆자리의 두 여성도 신나서 태극기를 흔들었다. “오기 전에 걱정했다. (너무 힘들게 경기하면) 눈물나는 거 아닐까 하고…. 걱정 괜히 했다. 스피디하고 긴박감 넘친다.”(김슬기씨·32) “몰입도 최고다. 앞으로 방송에서도 중계를 해줬으면 좋겠다.”(서모씨·32)

 3피리어드. 정승환이 단독으로 치고 들어가 두 번째 골을 넣었다. 관중석에선 파도타기가 시작됐다. 대표팀이 파도타기 응원을 보는 건 처음일 터다. 조영재(33)·이해만(46)의 추가 골이 이어졌다. 일본이 한 골 만회했지만 게임 오버. 4-1 승리 후 인사하는 서광석 감독(41)의 얼굴이 환했다.

비장애인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출신인 서 감독의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된 후 10여년간 투병하다 작고했다. 모교인 경복고 아이스하키팀을 지도하던 서 감독이 파라아이스하키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다. 패럴림픽 개막 전(6일)과 예선전 2연승 후(11일) 두 차례 서 감독과 전화 통화를 했다.

- 선수들에게 아이스하키의 의미가 각별할 것 같다.

“비장애인팀도 지도해봤지만 파라아이스하키 선수들은 간절함이 더하다. 대표팀에는 사고로 장애인이 된 중도장애인이 많은데, 이들은 선뜻 밖에 나서지 못했다. 밖에서 생활할 때는 생각대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경기장에선 다르다.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 퍽을 오른쪽으로 보내길 원하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보내길 원하면 왼쪽으로 보낼 수 있다.”

- 선수들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국가대표 17명 중 강원도청 소속 13명을 제외하고 4명은 직업이 따로 있다. 이 선수들은 주말에 하루이틀 클럽팀에서 훈련하는 게 전부다. 비장애인 아이스하키는 실업팀이 꽤 있는데, 파라아이스하키는 강원도청 한 팀뿐이다. 대표로 소집되면 훈련수당이 나오기는 한다. 패럴림픽은 1년씩 훈련하니 괜찮지만, 다른 대회는 훈련 일수가 적어 수당이 적다. 정말 좋아해도 선뜻 나서기 쉽지 않다. ‘국가대표가 됐으니 휴직계 내겠다’고 직장에 말하기도 어렵다. 실업팀이 늘었으면 한다.”

- 4강 진출을 확정했다. 연장에서 극적으로 승리한 체코전이 특히 화제다.

“체코전에서 조금 긴장하긴 했는데, 선수들에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대표팀에 운동을 오래 하고 나이 많은 선수들이 여럿이다. 주장 한민수 선수(48)는 패럴림픽 출전이 세 번째다.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라는 간절함이 크다.”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는 썰매를 탄다>의 한 장면. 태흥영화사 제공

■ 2012년 4월 노르웨이 하마르

 한국 아이스슬레지하키(파라아이스하키의 옛 명칭)대표팀이 20시간의 비행 끝에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리는 노르웨이 하마르에 도착한다. 관중석에는 ‘대한민국 선수단의 선전을 기원합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만 덩그러니 펼쳐져 있다. 응원단은 없다. 격렬한 경기 중간 휴식시간에 물 따라주는 사람도 없다. 은메달을 따고 개선해도 공항엔 가족뿐이다. 지난 7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는 썰매를 탄다>가 보여주는 파라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의 6년 전 모습이다.

영화는 하마르 대회에서 준우승하기까지의 여정을 담담하게 좇아간다. 미화도, 과장도 없다. 비장애인 여자친구 부모의 반대에 부딪힌 유만균 선수(44)는 “솔직히 나도 나중에 딸이 장애인 (신랑감) 데려오면 안 좋아할 것 같다”고 한다. 29세 때 패러글라이딩을 하다 추락사고로 장애인이 된 이종경 선수(45)는 “저 위(하늘나라) 올라가면 말할 수 있어요. 정말 행복했다고. 당신들은 한 가지 인생만 살았지만 저는 두 가지 인생(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살아봤다고.”

3년간 선수들과 동고동락하며 촬영한 김경만 감독을 인터뷰했다.

- 선수들의 밝은 에너지가 인상적이다.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는지, 과거형으로 물었다. 사고 전, 다리 있을 때… 이런 답이 나올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이 제일 좋다고 했다. 비장애인들은 행복을 위에서부터 시작하니까, 자꾸 밑으로 떨어진다. 이 선수들은 불행의 밑바닥까지 가봤다. 그래선지 위로 올라가는 일밖에 안 남은 것 같다. 만약에 ‘행복감수성’이라는 단어가 있다면, 이들은 행복감수성이 강한 사람들임에 분명하다.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행복하다고 한다.”

- 여자들은 ‘남자들은 왜 우리를 동료로 대하는 게 어려울까’ 생각한다. 장애인도 비장애인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맞다. 너무 친절하지도 말고 똑같이 대하라는 말을 들었는데, 함께 지내보고야 알게 됐다. 장애인들의 장애는 모두 다르다. 계단을 못 올라가거나, 높은 데 있는 물건을 잡기 어렵거나, 앞이 안 보이거나…. 그런데 장애인이면 모든 걸 도와주려고 한다. 무릎이 아픈 사람은 무릎과 관련된 것만 도와주면 된다. 저는 선수들과 가까워진 뒤에는 촬영 장비도 들어달라고 했다. 제 팔힘이 더 약하니까….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면 경험이 쌓인다. 옆에 장애인이 있으면 바로 이해된다. 우리나라에선 어렵다. 교육이 분리되고, 직장에서도 장애인을 만나기 힘들고, 집 근처에 장애인시설이 들어오는 것도 반대한다. 이번 패럴림픽도 방송 중계가 너무 적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경기인데 재활운동으로 여기는 것 같다.”

- 영화에 나온 선수 대부분이 이번 올림픽에도 출전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는 어마어마한 응원을 들어보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 마음껏 즐기라고 말하고 싶다.”

■ 다시, 2018년 3월 한국

“다리가 없는 건 최악이다. 학교 가는 30분의 길은 지옥 같았고, 매일 피투성이가 된 내 다리는 후시딘 연고가 마를 날이 없었다. 남들은 내 걸음걸이를 보고 비웃기도 하고 흉내내며 놀리기도 했다. 그런 이들과 싸우는 수가 늘어갔고, 그런 시간이 많아질수록 나는 어디론가 숨어야만 했다. 대학에 입학해 아이스슬레지하키를 시작하기까지 도전이라는 것을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불행했던 아이! 그 한 번의 용기있는 시작이 지금의 내가 되었다.”

10일 일본전과 11일 체코전에서 모두 3골을 넣은 정승환이 패럴림픽 개막을 앞두고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그는 다섯 살 때 집 근처 공사장에서 놀다 오른쪽 다리가 쇠파이프에 깔리는 사고를 당했다. 결국 다리 일부를 잃고 의족을 차게 됐다. 고통스러운 유소년 시절을 보내다 대학에 들어간 뒤 아이스하키를 시작했다. 167㎝, 53㎏의 작은 체구를 강점으로 만들었다. 몸을 키우는 대신 속도를 높여 상대 수비를 가볍게 제친다. ‘로켓맨’ ‘세계에서 가장 빠른 아이스하키선수’로 불리는 이유다.

“국제대회에서 외국인들이 정 선수를 보면 난리가 난다. 인간이 아니라며 감탄한다. 방금 이쪽에 있었는데, 어느새 저쪽에 가 있으니까.”(김경만 감독)

정승환은 경향신문에 보낸 페이스북 메시지에서 “언젠가 은퇴하게 되면 장애인 유소년팀을 가르치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이 그러했듯이 아이스하키를 통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우리는 썰매를 탄다>가 개봉한 7일 낮. 서울 용산의 한 멀티플렉스 극장에 갔다. 156석 규모 상영관이 텅 비어 있었다. 영화를 보러온 관객은 나뿐이었다.

축제는 짧다. 열광과 함성으로 가득 찼던 강릉하키센터는 다시 고요해질 것이다. 그래도 파라아이스하키 국가대표 17인의 삶은 계속 시끌벅적하기를 바란다. 박진감 넘치는 그들의 경기를 TV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1박2일>이나 <런닝맨>에 출연하고, 평창올림픽 여자 컬링 대표 ‘팀 킴’처럼 광고도 찍었으면 좋겠다. 정승환은 패럴림픽 홍보 영상에서 “가장 힘든 건 무관심”이라고 했다.


파라 아이스하키

아이스 슬레지하키(Ice Sledge hockey)로 불리다 2016년 11월 명칭이 바뀌었다. 하지장애가 있는 선수들이 스케이트 대신 썰매를 타고 경기를 펼친다. 선수들이 쓰는 두 개의 스틱 양 끝에는 썰매 추진력을 얻기 위한 스파이크와 퍽을 치는 데 쓰는 블레이드(날)가 달려 있다. 한 경기는 15분씩 3피리어드로 구성되며 필요시 연장전과 슛아웃(승부샷)이 치러진다. 정규 피리어드 사이에는 15분간 휴식한다. 동계패럴림픽에서 가장 인기 있는 종목으로 꼽힌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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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스케이팅 500m 결승에서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 선수가 이상화 선수를 안아주는 장면이 최근 성공적으로 끝난 평창 동계올림픽의 최고의 포옹장면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고다이라 선수의 작은 배려가 우리 국민을 비롯해 친구인 이상화 선수에겐 큰 감동으로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동계패럴림픽 사상 첫 금메달에 도전하는 신의현이 8일 평창 바이애슬론센터에서 훈련하고 있다. 평창 _ 연합뉴스

고다이라 선수는 사실 직업 스포츠인이 아니라고 한다. 병원에서 스포츠 장애 예방센터의 직원으로 근무했으며, 이상화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하여 소치 올림픽까지는 늘 벤치를 지키던 무명의 아마추어 선수였다고 한다. 그가 금메달의 기쁨을 뒤로 미루고, 한국인들 앞에서 한국 선수를 진심으로 격려하고 안아주는 모습과 인터뷰 내내 언니를 대하듯 깍듯이 고맙다고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스포츠맨십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곧 동계패럴림픽이 개막한다. 그런데, 우리 방송계에서는 정치 및 미투운동 등만을 중점적으로 보도할 뿐 개최국임에도 불구하고 패럴림픽은 소홀히 다루고 있다. 최근 유럽, 미국, 일본 등은 물론이고 중국의 패럴림픽 방송 중계시간과 비교해서도 우리의 방송 시간이 45.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기사를 접했다. 필자는 이번 동계패럴림픽에서도 이상화와 고다이라 선수가 보여준 ‘하나 된 우정’과 같은 패럴림픽 선수들의 또 다른 스포츠맨십, 올림픽 정신이 돋보이는 경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장애인은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라는 편견이 깨지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분 없이 서로에게 용기와 꿈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성공적인 패럴림픽에서 느끼길 기대한다.

<이종률 농협 구미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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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주간지 ‘타임’은 북유럽의 작은 나라 노르웨이가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미국을 누르고 종합 1위의 성과를 거둔 비결을 소개했다. 이번 평창 올림픽에 노르웨이는 242명의 선수단을 파견한 미국의 절반 수준인 109명의 선수를 파견하고도 미국이 따낸 23개 메달보다 많은 총 39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타임은 노르웨이가 거둔 성과의 비결은 천혜의 자원으로 눈이 많고, 무료로 보편적인 의료보험 혜택을 누릴 수 있어, 재능을 지닌 어린 선수들이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13세 미만의 유소년 스포츠팀 선수들에게는 어떠한 점수기록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한 비결이라고 했다.

노르웨이의 마리트 비에르겐은 2018년 동계 올림픽 알펜시아 크로스 컨트리 여자 30km크로스 컨트리 매스 스타트의 우승을 축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노르웨이 유소년 선수들은 스포츠와 경기를 통해 보다 많은 것을 익히고, 자기개발과 함께 사람과 어울리는 방법을 배운다. 점수기록이 없으므로 오랜 기간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그래서 노르웨이에서는 12세 이하 유소년에게 챔피언이란 수식어는 따라붙지 않는다. 경쟁이 없으니 스포츠는 당연히 협동심을 배우고, 승부를 떠나 서로를 격려하는 행위가 된다.

이러한 노르웨이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노선영이 속한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경기에서 우리가 실망했던 것도 결국은 경기 결과가 아닌 팀 분위기였다.

한국 사회는 삶의 가치로 경쟁과 성공을 꼽는다. 무한경쟁의 치열함 속으로 아이들을 집어넣고, 자신들도 그 치열함 속으로 뛰어드는 우리의 모습은 불나방 같은 느낌이다. 이제는 경쟁의 피로도를 낮춘, 서로 격려하고 협동하는 문화메달을 목에 걸어보자.

<엄치용 한국기초과학지원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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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이 25일 열린 폐회식으로 17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미래의 물결(Next Wave)’을 주제로 한 폐회식에선 남북 선수단이 태극기와 인공기, 한반도기를 흔들며 입장했다. 2022년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중국 베이징의 차기 개최도시 공연도 펼쳐졌다. 한국이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다시 치른 평창 올림픽은 스포츠를 통해 대립과 반목, 갈등을 녹여냈다. ‘평화올림픽’의 새 지평을 연 성공적인 대회로 평가할 만하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가운데)이 25일 평창올림픽 폐회식에서 중국 류자위(스노보드), 미국 린지 본(스키), 북한 렴대옥(피겨), 윤성빈(스켈레톤), 나이지리아 세운 아디군(봅슬레이), 일본 고다이라 나오(스피드스케이팅·왼쪽부터)와 손가락 하트를 그려보이고 있다. 평창 _ 연합뉴스

평창 올림픽에 이르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계속됐던 터라 올림픽이 제대로 치러질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일부 국가는 대회 참가를 망설였고,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을 놓고도 진통을 겪었다. 하지만 사상 최대 규모인 92개국 2900여명의 선수들이 참가한 평창 올림픽은 인류의 화합과 평화를 다진 스포츠제전이 됐다. 개회식 때 남북한이 한반도기를 들고 함께 입장하는 장면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방남은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텄다. 대회 운영도 나무랄 데 없었다. 외신들도 “흠잡을 것 없는 게 흠”이라고 호평했다. 입장권 판매율은 목표치를 웃돌았고, 경기장을 찾은 관람객은 133만여명에 달했다. 자원봉사자 1만6000여명의 헌신적인 희생과 노력은 매끄러운 대회 진행의 밑거름이 됐다.

평창 올림픽의 주역은 도전과 열정, 눈물이란 각본 없는 드라마를 쓴 선수들이다. 각국 대표선수들은 4년간 담금질한 기량을 펼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한국 선수단은 금메달 5개, 은메달 8개, 동메달 4개로 동계올림픽 사상 최다 메달을 수확하며 종합 7위에 올랐다. 최선을 다한 값진 성과다. 빙속 여자 500m 경기 뒤 이상화와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가 보여준 배려와 존중, 스켈레톤 1인자로 올라선 윤성빈의 불굴의 집념, 4개 종목에 출전하며 3만7400m를 질주한 ‘철인 레이서’ 이승훈의 투혼은 벅찬 감동을 안겨줬다. ‘영미 중독’ ‘갈릭 걸스’ 등의 신조어를 만들어낸 여자 컬링팀과 아시아 첫 은메달을 딴 봅슬레이 4인승팀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기적을 일궈냈다.

평창 올림픽은 막을 내렸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무엇보다 화려한 축제 뒤에 막대한 빚을 떠안는 ‘올림픽의 저주’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역대 동계올림픽 가운데 ‘남는 장사’를 한 것은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가 유일하다. 평창 올림픽에 투입된 예산은 13조7000억원에 달하고, 시설 유지비만 연간 1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와 강원도는 올림픽 경기장과 시설이 애물단지가 되지 않도록 지혜와 역량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남북 스포츠 교류도 활성화해야 한다. 평창 올림픽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작은 통일’의 감격을 누릴 수 있게 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2021년 동계아시안게임 남북 개최 검토를 발표하고, 장웅 북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호응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국가대표로 발탁된 19명의 귀화선수를 지원해 국내 동계스포츠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다.

올림픽의 성화는 꺼졌고, 축제는 끝났다. 평창이 지핀 인류 평화와 화해의 불씨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길 기대한다. 평창 올림픽이 열린 17일간 우리 시민들은 참으로 즐겁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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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바르 로렌첸은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금메달을 땄다. 두 조 앞에서 올림픽 타이기록을 세운 차민규를 0.01초 차이로 제쳤다.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로렌첸은 기자회견에서 “앞에서 홈팀 선수가 올림픽 기록을 세워서 경기장이 무척 시끄러웠다. 그런데 내가 다시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다. 전광판에 내 기록이 나오자 경기장이 조용해졌다”면서 웃었다. “기분이 정말 쿨 했다”고 덧붙였다. 동계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평창과 강릉에는 ‘쿨한 선수’들이 넘쳐난다. 메달의 압박감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지만, 이를 이겨내는 방식이 찰나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 엄숙함과 진지함만은 아니다.

클로이 김은 여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에서 엄청난 기술을 연달아 성공시켰다. 반원통의 경기장에서 가볍게 날아올라 빙글빙글 온몸을 뒤집고 비틀어 돈 뒤 사뿐하게 내려앉았다. 순간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기술이지만, 클로이 김은 여유가 넘쳤다. 예선 경기가 열린 12일에는 경기 도중 트위터에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적었다. 결선이 열린 13일에는 3차시기를 앞두고 “아침에 샌드위치 다 안 먹은 게 후회된다. 괜히 고집부렸다. 이제야 배가 고파서 화가 난다(hangry)”고 적었다. 1차시기 93.75점으로 사실상 금메달을 결정지은 클로이 김은 ‘행그리’라고 적은 뒤 3차시기에서 완벽한 연기로 98.25점을 따냈다.

한국 여자 컬링 대표팀의 스킵 김은정(왼쪽)이 21일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예선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OAR) 팀과의 경기에서 스톤을 던진 뒤 김영미에게 스위핑을 지시하고 있다. 강릉 _ 연합뉴스

에스터 레데츠카는 평창 올림픽이 낳은 새로운 슈퍼스타가 됐다. 스노보드가 주 종목인 레데츠카는 알파인스키 여자 대회전에서 깜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설상 종목 사상 처음으로 알파인스키와 스노보드에서 메달을 노릴 수 있다. 레데츠카는 대회전 레이스를 마친 뒤 멍하니 전광판을 쳐다보고 있었다. “기록이 잘못 됐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관중들의 함성이 멈추지 않자 그제서야 팔짝팔짝 뛰며 좋아했다. 기자회견장에서는 고글을 벗지 않은 채 질문을 받았다. 이유에 대해 쿨하게 답했다. “메달을 딸 거라고 생각 안 했다. 이런 자리에 올 거라 생각하지 않아서, 화장을 못했다.”

마르셀 히르셔는 ‘스키 황제’라고 불렸다. 6년 동안 알파인스키 랭킹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올림픽 금메달이 없었다. 밴쿠버 대회 때 4위와 5위, 소치 대회 때 은메달과 4위를 했다. ‘무관의 제왕’이라 불렸다. 평창 올림픽에서 벌써 금메달 2개를 땄다. 알파인 복합과 대회전에서 소원을 풀었다.

오래 걸린 만큼 감격에 겨울 법도 했지만 히르셔는 쿨했다. “그동안 내가 4등을 너무 많이 했다”며 웃었다.

긴장을 즐기자는 말은, 사실 말만 쉽다. 긴장은 ‘배짱 약한 선수의 약점’이 아니라 누구나 겪어야 할 통과의례다. 긴장은 경험으로 무뎌질 수 있어도 집중과 훈련으로 이겨내는 대상은 아니다. 그래서 조금 더 쿨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전히 대표팀 선수들은 이겨도, 져도 운다. 쇼트트랙 여자 대표팀의 최민정은 500m 결승 실격 판정을 받은 뒤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방송 인터뷰에서 끝내 참았던 눈물이 믹스드존 인터뷰에서는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았다. 이상화도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레이스를 마친 뒤 눈물을 참지 못했다. “다 끝났다는 생각 때문에”라고 눈물의 이유를 밝혔다.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은 3000m 계주 금메달을 따고도 또 울었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을 두고 “스포츠는 장벽을 뛰어넘어 사람을 하나로 모으는 힘을 가졌다”고 평가한다. 스포츠는 딱 거기까지. 성적, 메달, 체면, 업적, 파벌 여기에 정치까지 얹어놓으면 그 무게만으로도 누구나 휘청거린다. 선전 중인 컬링 여자대표팀도 경기가 끝날 때마다 눈물을 보인다. 짐 덜고 더 많이 웃을 수 있었으면. 영미도, 영미를 부르는 은정도.

<이용균 ㅣ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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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성향 방송인인 폭스뉴스의 로라 잉그램은 NBA 선수 르브론 제임스가 못마땅했나 보다. 덩치 큰 흑인 농구 선수가 도널드 트럼프의 가치관과 정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비판하는 모습을 참아주기 힘들었던 것 같다. 잉그램은 방송에서 제임스의 말이 문법에 맞지 않고 지적이지도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입 닥치고 드리블이나 해.” 제임스는 스타답게 반응했다. “전 입 닥치고 드리블만 하진 않을 겁니다. 전 이 사회와 청소년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존재거든요. 그녀 덕분에 좀 더 각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 이름이 뭔지 모르겠지만 고맙네요.”

르브론 제임스는 스테펀 커리와 함께 현재 NBA를 대표하는 선수다. NBA 정규리그 MVP를 네 차례 차지했고, 올림픽에도 출전해 두 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제임스가 고향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떠나 마이애미 히트로 옮긴다고 발표한 텔레비전 쇼가 75분간 생중계될 정도였다. 하지만 슈퍼스타이자 갑부인 제임스조차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인종문제에서 자유롭진 않았다. 지난해 제임스의 로스앤젤레스 저택 정문에는 ‘깜둥이’라는 스프레이 낙서가 휘갈겨져 있었다. 제임스는 낙서를 본 뒤 “아직 할 일이 많다고 느꼈다”고 돌이켰다. 제임스의 동료인 케빈 듀런트도 거들었다. “전 농구에서 모든 걸 배웠습니다. 사람들의 힘과 용기를 북돋워야 한다고. 그래야 위대한 팀을 만들 수 있다고. 하지만 지금 우리 나라라는 팀에는 위대한 코치가 없습니다.”

이상화가 18일 강릉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일본 고다이라와 태극기를 들고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올림픽은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4년간 연마한 실력을 한 자리에서 선보인다. 스케이터들의 역주에 내 허벅지 근육이 꿈틀거린다. 스노보드 선수의 점프를 보면 가슴이 뻥 뚫린다. 맨몸의 선수가 시속 130㎞의 썰매 위에서 질주하는 모습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 아찔하다. 종목명, 규칙, 선수 이름을 몰라도 상관없다. 인간이 만든 경기규칙, 최고의 기술력을 활용한 장비, 혹독하게 다져진 육체를 활용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래서일까. IOC는 선수들의 ‘정치적 표현’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축구 선수 박종우가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쓰인 종이를 펼쳤다가 동메달을 박탈당할 뻔하거나, 평창 동계올림픽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골리 맷 달튼이 이순신 장군이 그려진 마스크를 쓸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 ‘정치적 진공’은 없다. 올림픽 역시 온갖 이데올로기가 충돌하고, 정치 전략이 맞붙고, 사회적 욕망이 들끓는 공간이다. 평창 동계올림픽도 그렇다. 대회 초반 미국, 북한 사이에 벌어진 치열한 외교전 역시 한 사례다. 한국 대표팀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이전에 ‘한국인’이라고 보기 힘들었던 이들이 한국 대표 선수로 나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이애슬론의 티모페이 랍신, 루지의 에일린 프리쉐는 어느 모로 봐도 ‘외국인’이지만, 태극 마크를 달고 한국을 대표해 뛴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에서 뛰며 역사적인 올림픽 첫 골을 넣은 랜디 그리핀 희수는 한국인 어머니,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났다. 한국선수단 146명 중 이들 같은 ‘뉴 코리안’은 21명으로 전체의 14%에 달한다. 캐나다 교포인 남자 아이스하키팀 감독 백지선은 “내 눈엔 그들 모두 한국을 대표하는 한국인이다. 피부색이나 눈 색깔이 다를지는 몰라도 그들은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어를 말할 줄 알고, 동료들의 존경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번 평창 올림픽은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 등에 영향을 미치리라 짐작한다”고 말했다. 피를 나눴지만 얼굴도 가물가물한 친척보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친구가 나를 더 잘 이해하는 법이다. 우리를 대신해 노력하고, 우리의 자부심을 높이는 사람이라면, 그의 인종이 무엇이든 ‘한국인’이다. 한국의 이상화,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의 우정은 최고 수준의 ‘지음(知音)’에게는 국적이 거추장스러운 딱지일 뿐임을 보여준다. 국가, 민족, 인종의 경계는 평창에서 흐릿해지고 있다.

이번 올림픽은 성소수자 인권운동 측면에서도 큰 전기가 될 만하다. 평창 올림픽 참가 선수 중 커밍아웃한 성소수자는 미국 남자 피겨 선수 애덤 리펀, 네덜란드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이레인 뷔스트 등 13명에 달한다. 이는 역대 최다 수치다. 미국의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 거스 켄워시는 방송 카메라 앞에서 남자 친구와 입을 맞추는 ‘역사적 장면’을 연출했다. 2014 소치 올림픽에서 러시아의 반동성애 정책이 이슈가 되었음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역사는 느리지만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평창은 보여준다.

르브론 제임스는 말했다. “나는 운동선수 이상의 존재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해도 좋겠다. “올림픽은 체육경기 이상의 행사다.”

<백승찬 토요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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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빛나는 사람은 많다. 그중에는 4위 선수도 있고, 2위 선수도 있으며, 예술감독도 있고, 자원봉사자도 있고 다른 민족, 다른 국가들의 선수도 많다.

올림픽에서의 아름다운 사연은 1등들의 사연으로 가득 채워지지 않는다. 열대국가에서 온 한 명으로 이루어진 선수단부터 시작해서 우승을 0.01초차로 놓친 아쉬움에 가득 찬 선수, 이곳에 와서 갑자기 충수돌기염을 앓고 수술한 뒤 경기에 참여한 선수, 또다시 챔피언을 이어간 팀들의 우정, 민족의 화해 등은 모두 감동적인 소식이다. 저마다 지닌 온갖 사연을 갖고 평창을 찾아와 자신의 찬란한 인생 한순간을 쏟아붓고 간다. 그리고 그 모든 사연은 같은 무게로 아름답다.

차민규가 19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레이스를 마친 뒤 기록을 확인하며 만족해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오로지 금메달을 딴 사람들만 영광을 누리는 올림픽의 시대는 끝나고 있다. 1등만 살아남는다는 한국에서의 통설은 이제 부끄러운 과거 자화상의 잔재로 사라져야 한다. 1등은 여러 등수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그가 1등, 세계 최고라는 사실은 단지 잠시일 뿐이다. 선수들의 말처럼 기록은 언제나 깨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1등의 영광은 1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 추억, 팀워크, 우정, 그리고 만남 등에서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진실을 알지 못하는 피해의식을 가진 엄마는 ‘1등 아니면 죽는다! 우리 모두!’라고 협박하지만 그것은 상처의 흔적, 트라우마로 인해 왜곡된 어른의 인격, 파탄을 예고하는 흉터일 뿐이다. 4등, 4위도 1등보다 아름다울 수 있고 진정 그가 챔피언일 수도 있다.

실제로 우승경험이 많은 선수를 인터뷰해온 스포츠 심리학자 매슈 사이드는 선수들이 맛보는 특별한 행복감은 단지 ‘자신이 최선을 다해서 무엇인가를 끝까지 해내는 기쁨’에서 온다고 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잠시 기억해주는 것보다 더 오래가는 기억은 ‘내 자신의 몸과 영혼에 각인된, 나 자신이 스스로의 한계를 이겨냈다는 승리감’이라고 했다.

조정을 소재로 한 <안톤의 여름>이라는 청소년 소설에 대한 서평을 쓴 이에리사씨는 “챔피언이 된다는 것은 꼭 누군가를 경쟁에서 물리쳐,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모두가 챔피언이다”라고 했다. 누군가와의 경쟁이 아니라 자신을 이겨내고, 자신이 되고픈 새로운 자신을 창조하는 작업을 해냈다는 성취감, 이것이 인생의 큰 자산이다. 이런 심리적 상태에 도달하면 사실 타인과의 승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아쉽게 지난번 올림픽에서 2위를 한 김연아와 이번 올림픽에서의 이상화 선수가 하염없는 눈물을 흘린 것이 1등을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한다. 자신의 인생 중 한 시대를 풍미했던 수많은 시간들에 대한 눈물이었다고 한다.

정신분석가 마이클 아이건은 “성취는 때때로 성취자를 죽인다”고 했다. 단지 1등을 해야만 한다는 타인의 동기에 억눌려 1등을 성취하는 사람들을 향해 말한 것이다. 그간 우리는 이런 안타까운 희생을 청소년, 청년들에게서 보아왔다.

여전히 한국에는 이유 없는 1등에 목을 매고, 또 1등을 한 뒤에는 허무와 공허감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다. 자학과 거짓 자기로 만들어진 성공 안에 들어있는 것은 불행뿐이다. 행복은 그렇게 오지 않는다.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뉴로부터 시작해서 많은 사람들이 행복은 단지 성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도정에서 온다고 한 바 있다.

베일런트의 하버드 졸업생 종단연구를 포함해서 행복에 대해 연구하는 모든 학자들이 ‘나 홀로 1등’ ‘나 홀로 부자’가 행복하기보다는 ‘다 함께 친구’ ‘모두와 함께’가 더 행복하다고 하는 소리를 우리는 주의 깊게 잘 들어야 한다. 잘났지만, 외롭고 불행한 병적 자기애의 사회에서 평범하고 겸손한 사람들의 사소한 사회가 더 행복하다. 그런 점에서 박원순 시장의 사회적 우정 패러다임은 행복 전환의 중요한 제기이다.

우정이 넘치는 평등한 사회가 싸가지 없는 불평등한 사회보다 행복하다. 재벌회사 사장님 김씨도 동네에서는 아저씨이고, 그 회사원 이씨도 동네에서는 그냥 아저씨이다.

<김현수 |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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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은 ‘역사적’인 의미를 획득할 것인가. 폐회식까지는 며칠 더 남아있기 때문에 이 ‘역사적’이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한정적인 수사에 지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일말의 기대를 걸고 싶다. 특정 국가 올림픽을 통하여 그 이전과 이후를 완전히 가르는 새 지평을 연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그래도 1964년의 도쿄 올림픽이나 2012년의 런던 올림픽은 세계가 일본과 영국을 어떤 식으로든 달리 보게 만든 사건으로 기록된다.

우리의 기억도 선명하다. 88서울 올림픽과 2002 월드컵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규모 이벤트를 치르기 전과 후로 한국 사회를 일정하게 판별해 볼 수 있었다. 거대한 중산층 문화의 형성과 새로운 세대의 활기찬 등장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평창 올림픽도 그러한 분기점으로 기억될 것인가. 숱한 논란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난 9일 이후 수많은 선수들이 흘린 땀방울과 그 이상의 사람들이 열렬히 터트린 함성의 무게를 직관적으로 판단하건대 88이나 2002만큼은 아니어도 2018이라는 숫자 역시 우리 사회의 새로운 분기점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세계적인 잔치를 어렵사리 잘 마무리했다는 판단을 서둘러 내리기보다는 좀 더 냉정하게 이번 올림픽 과정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집합적인 문제를 깊이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요컨대 이번 올림픽이 정치적으로 악용된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 말이다. 사실 나는 이 질문을, 올림픽 개막 전, 어느 외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받은 적 있다. 그 기자는, 남북 단일팀 및 북측 응원단의 참가 등에 대한 국내 일부 여론을 거론하면서, 순수한 올림픽을 정치에 이용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단호히 반대했다. 도구적 차원의 기술 수단으로서 정치라면 그런 면이 있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더 절박하다고 말했다. 소설가 한강은 지난해 추석 연휴 때 ‘뉴욕타임스’에 우리의 상황을 기고한 바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실험하고 미국이 북한을 선제 타격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와도 우리가 평온한 듯 고요하게 일상을 유지하지만 그러나 “이러한 고요는 전쟁의 공포를 극복해서가 아니라 수십년 동안 축적된 긴장과 공포가 우리 안에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썼다. 그렇게 고요한 긴장, 그러나 속으로 멍들어가는 팽팽한 불안 속에서 올림픽이 개막되었으니 한번쯤은 그 긴장을 풀고 ‘평화’를 외치는 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그 유명한 나치 올림픽이나, 전범 국가가 패전 희생자 코스프레하는 도쿄 올림픽이나 강력한 군사력과 극단적 이념 대결을 펼친 모스크바와 LA 올림픽, 대국굴기 중화주의의 베이징 올림픽과 차르 푸틴의 대유라시아 퍼포먼스인 소치 올림픽과 비교할 때, 일단 잠시라도 군사적 긴장을 늦추고 대화를 해보자는 이번 올림픽을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

일단 북·미 간 군사 행동을 쌍중단하고, 여러 채널을 가동하여 올림픽 이후에도 긴장보다는 대화의 물꼬를 트자는 것은 단순한 외교가 아니라 거의 절박한 몸부림이다. 한 사회의 복합적인 갈등을 헤아리지 않고, ‘순수한 스포츠’라는 기계로 납작하게 눌러서, 스포츠를 정치에 이용 또는 악용한다는 의견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북한을 이롭게 한다고? 그런 의견도 있다. 지난 10여년 동안 북한이 핵개발을 추진하면서 일관되게 보여준 일방통행식 행동을 보면 그러한 의견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단일팀을 비롯한 거의 모든 대화와 협상이 불발에 그쳤을 경우를 생각해보자. 연일 극우 언론이나 일부 고약한 인터넷 여론은 긴장과 파국을 노래하고 북한도 때마침 그들의 건군절에 미사일 열병식을 위협적으로 치르고 미국 또한 이른바 ‘코피 터트리기’ 전술을 당장이라도 벌이겠다는 식으로 사태가 전개되었을 경우를 상상해보자.

아니 이것은 상상이 아니라 우리가 몇 해 동안 늘 겪은 일상이다. 그 일상화된 긴장, 내면화된 대립, 언제든지 군사적 충돌이 벌어져도 응당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니었냐며 체념할 수밖에 없던 상태에서 올림픽 개회식을 치렀다고 상상해보자. 우리는 최민정의 시원한 질주나 이상화의 눈물을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마침 설날 아침에 윤성빈 선수가 금메달을 땄는데, 만약 동북아를 둘러싼 모든 군사적 언어가 날카롭게 대립하는 중이었다면 설날의 금메달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 어딘가에는 실질적인 공포와 불안의 냉기가 일렁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올림픽 이후, 동북아 상황은 예전처럼 돌아갈 거라고 한다.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지만 설령 그 가능성이 높다 해서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가? 단일팀 같은 이벤트 한두 번으로 평화가 오겠냐고 한다. 당연히, 한두 번의 스포츠 이벤트로 무슨 평화가 오겠는가. 그러나 그것을 위하여 동북아의 정치, 군사, 외교의 모든 채널이 다른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돌아간다.

수면 아래의 수많은 채널이 가동된 결과 지난 18일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북핵 해결을 외교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함께 일해야 할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당신(북한)이 나에게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기를 귀 기울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포츠에 내재된 힘이 어떤 변화된 감수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스포츠에 내재된 미와 힘이 수없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일들이 신중하게, 그러나 중단 없이 시도되어 훗날 북한 선수단이 내려오는 게 단신 뉴스가 될 만큼 자연스러워지기를 나는 상상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때의 우리 일상은 긴장 속의 안정이 아니라 진실로 평화로운 안정을 유지하게 되었다는 증거가 된다. 그리하여 다시 강조하건대, 이번 올림픽은 ‘평양올림픽’이 아니며 ‘종북올림픽’이 아니다. ‘종남올림픽’이며 ‘평화올림픽’이다. 진실로 그렇게 될 경우 2018평창 올림픽은 88서울 올림픽이나 2002 월드컵 이상의 역사적인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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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이들의 마음을 이처럼 따스하게 해준 한·일전이 또 있었을까. 18일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이상화가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小平奈緖)와 다정하게 포옹하며 격려하는 모습은 올림픽 정신을 일깨우는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36초94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한 고다이라는 2위로 경기를 끝낸 뒤 눈물을 쏟아내던 이상화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잘했다. 여전히 너를 존경한다”고 위로했다. 둘은 어깨동무를 한 채 각자의 국기를 흔들며 트랙을 돌았고, 관중들은 박수와 환호로 격려했다. ‘승패를 떠나’라는 관용구가 절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이상화가 18일 강릉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일본 고다이라와 태극기를 들고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2018.02.18 / 강릉 _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이상화와 고다이라는 주니어 선수 때부터 함께 겨루면서 우정을 쌓아왔다. 늘 긴장을 놓지 않고 도전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준 라이벌이자 친구였다. 둘이 만나면 한국어,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일본 TV프로그램에 출연한 고다이라는 경기 후 이상화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를 묻자 또렷한 한국어 발음으로 “‘잘했어’라고 말해줬다”고 했다. 경기 직후 기자회견에서 고다이라는 “2014년 서울에서 열린 월드컵 대회에서 우승한 직후 네덜란드에 가야 했는데 이상화가 공항 가는 택시비를 대신 내줬다”고 했다. “내가 1위를 차지해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는데 끝까지 친절하게 대해줬다”고 회상했다. 이상화는 “잘했건, 못했건 서로를 늘 격려해줬다. 나오는 내게 남다른 스케이터”라고 했다.

스포츠 역사를 돌이켜 보면 ‘한·일전’은 민족적 자존심이 이입된 감정대결로 치달았던 적이 많았다. 스포츠 경기가 인터넷 공간의 악플 대결로 비화하는 일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화-고다이라의 깔끔하고 우정 어린 대결에는 양국 누리꾼들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있다.

한·일 간에는 영토문제와 과거사를 둘러싼 공방이 지속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채택했던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이 올해로 20주년이 되지만 양국관계에는 일본군 위안부, 독도 영유권 등을 둘러싼 냉기류가 풀릴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두 나라가 이상화-고다이라처럼 넉넉하게 우정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기를 고대해 본다.

<서의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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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올림픽을 틈틈이 재미나게 보고 있다. 경기의 승패에 몰입하여 일희일비하며 환호와 탄식을 오간다. 누구나 알다시피 올림픽은 선수들에겐 가장 큰 성공과 실패를 맛보게 해주는 장이다. 메달을 따면 금의환향하지만 따지 못하면 그 박탈감이 어마어마하게 크다. 그야말로 사활을 건 한판 싸움이니 지켜보는 이들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 돌 하나를 어떻게 던지느냐에 따라 앞서 계산했던 온갖 수와 자리싸움의 운명이 결정 나는 컬링 경기를 비롯해 대부분 건곤일척의 승부다.

아나운서와 해설위원의 설명을 듣다보면 선수들마다 사연이 많다. 소속 국가가 제재를 받아 개인 자격으로 참가하고 ‘러시아 출신’이라 불리는 선수들을 비롯해 마음고생이 심했던 여자 하키 선수들이 한 골 넣고 서로에게 달려드는 모습은 그 무게감이 남다르다. 일본의 한 피겨 선수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집과 연습장이 사라져 전국을 떠돌며 연습했다고 하고, 눈 한 자락 내리지 않는 지역의 선수들이 꼴찌를 하고도 엉덩이를 흔들며 세리머니를 하는 모습에 웃음을 짓기도 한다.

4년 전 러시아 소치 올림픽에서도 세 번의 실격을 기록했던 영국 엘리스 크리스티(뒤)가 13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500m 결승에서 치열한 자리 다툼 도중 미끄러지고 있다. 역주한 한국 에이스 최민정도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실격 처리되면서 메달이 무산됐다. 강릉 _ 연합뉴스

유독 이번 올림픽에선 선수들의 희로애락에 눈길이 갔다. 특히 경기가 끝난 직후 경쟁하던 선수끼리 서로 안아주며 격려하는 장면이 많았다. 스켈레톤 경기는 1차전부터 4차전까지의 기록을 합산해 총점으로 승부를 가린다. 마지막 3차전까지 총점을 매겨 가장 순위가 낮은 20위부터 4차전을 시작하는데 경기를 마친 선수들은 포토라인에 서서 다음 선수의 경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만약 다음 선수가 기록을 깨면 자동으로 퇴장하고 깨지 못하면 계속 남아 있는 구조다. 기록이 낮은 순으로 타기 때문에 주인공이 계속 바뀐다. 포토라인에 선 이들은 경쟁자가 나보다 못 타주길 바랄 것이다. 그런데 마음은 그렇더라도 행동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기록을 깬 선수 앞으로 다가가 힘껏 포옹하며 축하해주고 퇴장한다. 나는 늘 보던 이 모습이 이번에는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경쟁과 축하의 너무나도 급격한 전환이면서도, 지극히 자연스러워 신선하게 다가오는.

스노보드 경기에서는 상대방이 타다가 넘어지든, 신기록을 세우든 상관없이 얼싸안고 우는 모습이 경쟁자라기보다는 생사를 함께한 동료를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눈을 배경으로 해서인지 알피니스트들의 진한 우정이 떠오르기도 했다. 상대가 나보다 못하기를 애타게 바라는 마음에서는, 그 상대가 자신의 기록을 넘어섰을 때 실망하거나 화가 나야 정상이다. 실제로 우는 선수도 있었지만, 그렇더라도 눈물 콧물을 닦으면서 진심으로 다가가 꽉 안아주는 모습에서는 어떤 경이감까지 느껴졌다.

최민정 선수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보다 열심히 훈련한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메달을 걸어주겠다.” 그만큼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의미다. 올림픽 무대에 서기 위해 저 선수들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경기를 끝마치기 무섭게 눈물부터 터지는 것에서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지켜보는 관중도 이럴진대 같이 뛰는 선수끼리는 어떻겠는가. 자신이 겪은 그 고통을 이겨낸 선수가 선물을 받는 것임을 알기에 그렇게 일거에 찾아온 실망과 좌절 속에서도 나보다 잘 뛰고, 잘 달린, 운도 좋은 선수에게 다가가 진심으로 안아줄 수 있는 것일 테다.

아마 많은 이가 이런 장면에서 감동을 받을 것이다. 아시아인 최초로 썰매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윤성빈 선수가 관중을 향해 큰절을 올리는 모습도 같은 국가, 같은 민족으로서 명절이라고 저렇게 절을 하는구나 하는 마음에 무한한 위로와 공감을 자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 찰나의 화면에 정치인의 웃는 얼굴이 한번 스쳐 지나갔다가 또 한번 나오고 그러다가 또 비쳤을 때 고양됐던 감정은 급속히 싸늘해질 수밖에 없다.

일반인의 접근이 허락되지 않는 특별한 공간에 특별한 대우를 받고 특별한 순간의 기쁨을 나눠 갖기 위해 저렇게 나왔다는 사실이 현 정부와 여당의 지지자인 나로서는 좀 많이 안타까웠다. 왜 그 욕심을 억누르지 못했을까. 왜 저렇게 어리석은가. 정치의 생리와 정치인의 존재론적 특징을 짐작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을 떨칠 수 없다.

이번 올림픽에서 무수한 포옹과 눈물을 지켜보았다. 서로의 처지를 나누는 사람끼리 이심전심 포옹하는 이 모습이 우리 사회에 전해주는 메시지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포옹은 진심을 담아 타인 지향적으로 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말이다. 자신의 성적 욕심을 채우기 위한 자기 지향적 포옹이 미투 운동의 불을 붙이고 있는 현 상황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역설적 교훈이 아닐까.

<강성민 |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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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15일 지면기사-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남북한 선수들이 단일팀을 이뤄 출전한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예선이 14일 일본전을 끝으로 예선리그를 마무리지었다. 앞으로 5~8위 결정전 2경기가 더 남아 있지만 지금까지의 경기만으로도 잘해냈다고 손뼉 쳐줄 만하다. 국가 간 실력차가 큰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세계 3~4부 리그에 머물고 있는 남북한 선수들은 스위스와 스웨덴 등 세계 톱클래스팀과도 용기있게 싸웠고, 일본전에서는 역사적인 골까지 넣었다.

이번 단일팀은 얼어붙어 있던 남북관계를 반영하듯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최종 결정(1월20일)과 북한 선수 12명의 합류(25일) 등 일사천리로 단일팀이 구성되자 20~30대를 중심으로 한 국내 여론은 싸늘해졌다. 북한 선수들을 다 차려낸 밥상에 숟가락 하나 들고 찾아온 불청객쯤으로 여기는 이들도 많았다. 이 같은 부정적인 기류를 알고 있던 북측 선수들도 세라 머리 단일팀 감독과 남측 선수단의 눈치를 몹시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머리 감독이 ‘원팀’을 강조하면서 차별 없이 합동훈련을 하고, 따로따로 설치했던 라커룸도 함께 쓰도록 했다. 양측의 임원들은 밖으로 내보냈다. 서로 격의 없이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였다. 남북 선수들 역시 서로 생일잔치를 해주며 스스럼없이 대했다. 선수들끼리 경포대 해변을 거닐고, 카페거리에서 커피를 마시며 흉금을 털어놓았다. 남북한 코치들은 3쪽짜리 아이스하키 용어집을 만들어 소통했다. 혹여 선수단 화합분위기를 저해하는 요소가 돌출되면 앞다퉈 한목소리로 지켜주었다. 머리 감독의 말마따나 선수들을 끈적끈적하게 결합하는 ‘팀본딩’을 이룬 것이다. 남북한 응원단도 힘을 보탰다. 우려 속에 출발한 단일팀이 단 20여일 만에 이룩해낸 작은 통일이다. 외신들도 스위스·스웨덴 등 강호와 맞선 단일팀에 ‘경기는 졌지만 평화가 이겼다’는 평가를 내렸다. 안젤라 루기에로 IOC 위원(미국)은 “단일팀 선수들은 노벨 평화상을 받아야 한다”고까지 했다. 한국 갤럽 조사에서 단일팀 구성에 40% 대 50%로 부정적이던 여론도 경향신문의 설특집 여론조사 결과 긍정적(56.8% 대 38.7%)으로 바뀌었다. 타의로 만들어진 단일팀이지만 서로의 마음을 한데 모은 ‘선수들의 단일팀’이 된 덕분이다.

하지만 이번 단일팀은 1991년 지바 탁구선수권대회 때의 단일팀이 46일간이나 한솥밥을 먹고도 일회성으로 끝나버린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 당시 현정화 선수는 ‘이 기분 뭐지. 왜 우리가 헤어져야 하지’ 하는 허탈한 감정이 들었다고 술회했다. 남북 간 상황은 그때보다 열악하다. 더 이상 단일팀 구성이 어려울 수도 있다.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남북 교류가 지속되어야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경평축구 재개’를 이야기했다니 무척 고무적이다. 아이스하키의 경우도 남북한 정기합동훈련이나 교류전 등으로 모처럼 조성된 단일팀 분위기를 살릴 필요가 있다. 한 자매처럼 지냈다가 기약 없이 헤어져야 하는 감정적 단절을 더 이상 선수들에게 안겨줘서는 안된다. 스포츠가 정치와 무관할 수 없는 현실에서 돌발변수의 영향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핑퐁외교가 중국과 미국 관계를 풀어줬듯이 남북 스포츠 교류 역시 한반도 긴장을 녹일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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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하키에서 가장 불쌍한 포지션이라면 역시 ‘골리(골키퍼)’를 꼽을 수 있다.

두께 2.54cm, 지름 7.62cm의 원형압축고무를 얼려 만든 무게 150~170g의 퍽이 시속 160~180㎞의 총알속도로 날아오는데, 이것을 온몸으로 막아야 한다. 1950년대 말까지만 해도 아이스하키 골리는 맨 얼굴로 경기에 나섰다. 1927년 여자선수인 엘리자베스 타일러(퀸즈대)가 치아보호를 위해, 1930년 클린트 베네딕트가 부러진 코를 보호하려고 각각 마스크를 썼다. 그러나 부상에서 회복된 후에는 곧바로 마스크를 벗어던졌다. 시야를 가리는 그 무엇을 얼굴에 단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상대와 당당히 맞서야 할 선수가 얼굴을 가리고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이거야말로 불성실한 겁쟁이 아닌가.

8일 인천 선학국제빙상장에서 열린 남자아이스하키 국가대표 평가전 한국과 슬로베니아의 경기. 1피리어드 한국 대표팀 골리 맷 달튼(왼쪽 사진)의 마스크에 이순신 장군 그림이 지워져 있다. 오른쪽 사진은 3일 열린 카자흐스탄과의 평가전에서 이순신 장군 그림이 그려진 마스크를 착용한 맷 달튼 모습. _사진출처 : 연합뉴스

 

그러던 1959년 11월1일 사건이 일어난다. NHL(북미하키리그) 몬트리올 캐나디언의 골리인 자크 플랑트(1929~1986)가 뉴욕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상대방이 날린 퍽을 얼굴에 맞았다. 겨우 상처를 꿰맨 플랑트는 “시야를 가린다”고 반대하는 코치에게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경기에 나서지 않겠다”고 고집했다.

당시 NHL팀에는 백업 골리가 없었으므로 플랑트가 출전을 거부하면 팀은 몰수패 할 수밖에 없었다. 코치는 할 수 없이 플랑트의 마스크 착용을 허용했다. 이후 골리 마스크를 쓴 플랑트의 팀은 연전연승했다. 당시 플랑트가 마스크를 벗고 출전한 경기가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경기에서 패했다. 이후 플랑트의 얼굴은 늘 골리마스크로 가려져 있었다. 골리마스크는 NHL의 시대조류가 되었다. 물론 앤디 브라운 같은 골리는 ‘맨얼굴이야말로 용감함의 상징’이라며 1977년 은퇴할 때까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은 무시무시한 형태의 마스크(헬멧)로 전의를 불태웠다. 보호장구를 착용하자 골리들은 얼굴에 퍽을 맞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났다. 낮은 자세로 수비할 수 있으니 더 부담없이 몸을 던질 수 있었다. 비겁이 아니라 오히려 용감의 상징이 된 것이다. 상대방과의 기싸움에서 이기고, 혹은 패션피플로서의 개성을 표출하려는 매개의 역할도 했다.

한국대표팀의 귀화골리인 맷 달튼(32·캐나다 출신)은 특별히 이순신 장군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이순신 장군처럼 대한민국의 수호신이 되겠다면서 마스크에 장군의 동상 그림을 새겨달라고 특별히 요청했다. 귀화선수지만 ‘대한민국 대표로 뛴다’는 각오를 표하고, 각종 대회마다 애국가를 따라 부르는 달튼이 아니었던가.

그런 달튼이 최근 낙담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마스크에 새긴 이순신 장군 그림을 ‘정치적’이라며 불허했기 때문이다. IOC는 오스트리아의 로빈후드, 체코의 개국공신, 이스라엘의 삼손, 그리고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그림도 불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공식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마스크(헬멧)를 봐야 ‘IOC의 저울’이 정말 공평했는지를 알 수 있다. 2012년 욱일승천기의 이미지를 새긴 유니폼을 입고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일본 체조팀을 징계하지 않은 사례도 있다. 물론 어떤 경우든 공연히 책잡힐 필요는 없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축구에서 동메달을 따고 독도세리머니를 했다가 곤욕을 치른 박종우가 좋은 예다. 이순신 장군의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명언을 가슴에 담고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란다.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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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이탈리아 폼페이에서 발굴, 복원된 검투사 경기장을 봤다. 영화 &lt;쿼바디스&gt;나 &lt;글래디에이터&gt;에서 본 거대한 원형 경기장과는 달리, 지름 10m 정도밖에 안 되는 반원형 광장 주위에 관중석을 둘러 세운 형태였다. 광장과 바로 맞닿은 곳에는 귀족들을 위해 특별히 길게 만든 돌 침상(寢牀)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당대 귀족들은 이 자리에 모로 누워 음식을 먹으면서 경기를 관람했다. 먹다가 배가 부르면 새의 깃털을 목구멍에 쑤셔 넣어 토해내고 다시 먹으면서, 사람끼리 서로 칼로 베고, 창으로 찌르며, 도끼로 찍고, 철퇴로 치다가 피 흘리며 죽어가는 장면을 ‘관람’했을 또 다른 사람들을 상상하니, 절로 몸에 한기가 들었다.

그런데 인간 행위에 관한 현대의 분류법을 적용하면 저런 행위는 어디에 속할까? 살인과 살인방조? 아니면 스포츠와 스포츠 관람?

 

1903년 정월 대보름 무렵, 서울 만리재에서 예년과 다름없이 돌싸움이 벌어졌다. 남대문 동대문 서대문 밖 사람들이 한패가 되고, 애오개 마포 용산 사람들이 또 한패가 되어 맞붙었는데, 석전꾼(石戰軍)만 9000여 명, 구경꾼은 2만여 명에 달했다. 구경꾼 중에는 구미인들도 섞여 있었다. 피와 살이 튀는 격렬한 경기를 보다가 저도 모르게 흥분했던지, 운산금광의 미국인 직원 클레어 헤스(Clare W. Hess)는 가까이에 떨어진 돌을 집어 경기장 안으로 힘껏 던졌다. 석전꾼 한 명이 그 돌에 맞아 즉사했다. 옆에 있던 구미인들은 한국인들에게 보복당할까 봐 새파랗게 질렸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매년 서울에서만 돌싸움으로 수십 명에서 수백 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했기에, 왕조 정부도 여러 차례 금령(禁令)을 발했다. 그러나 이 세시풍속에는 비상시를 대비한 군사훈련의 성격이 강했고 참가자도 너무 많았기 때문에, 단속 효과는 없었다.

서울에서 돌싸움이 사라진 것은 일본 헌병이 치안권을 장악한 1908년 이후였지만, 1920년대 중반까지도 뛰어난 선수와 흥행사 등 경기 관계자들의 이름이 인구에 회자되었다. 이 돌싸움은 또 어떤 인간 행위로 분류해야 할까?

구기와 체조 등 일부 종목을 제외하면, 스포츠는 본래 모의전투다. 근대 스포츠가 고대와 중세의 스포츠와 다른 점은 살상력을 제거하거나 극소화했다는 점뿐이다. 인류는 동종(同種)끼리 서로 살육하는 습성을 가진 유일한 동물이다. 모의전투인 스포츠는 인간으로 하여금 개체의 전투력을 향상시키면서도 살육 욕구를 다른 방향으로 분출할 수 있도록 했다. 사람들에게 전쟁 중의 광기(狂氣)와 유사한 느낌을 갖게 하면서도, 아무것도 파괴하거나 살상하지 않는 것이 스포츠의 힘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올림픽을 창설하여 1000여 년간 지속했던 것도, 유럽의 명사들이 프랑스인 쿠베르탱의 제창에 호응하여 올림픽 부활을 선언하고 1896년부터 근대 올림픽을 개최한 것도, 스포츠의 이런 힘을 알았기 때문이다.

올림픽은 개인 단위, 또는 분대(팀) 단위로 벌어지던 모의전투를 국가 간의 모의 전쟁으로 확대한 것이다. 스포츠가 선수들에게 요구한 덕목은 중세 유럽의 기사도와 유사한 스포츠맨십이었다. 규칙을 지키며 공정하게 경쟁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것. 전력을 다해 싸우되 상대를 해치지 않는 것 등. 그런데 전투는 군사(軍事)지만 전쟁은 정치다. 올림픽은 스포츠맨십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그보다 훨씬 더 확장된 미덕을 요구했다. 올림픽 창설자들은 각국이 서로 경쟁하나 전쟁하지 않는 세계, 전쟁과 살육의 욕구를 건강하게 해소하는 세계를 꿈꿨다. 올림픽은 살육과 파괴가 없는 모의 세계대전이며, 그래서 올림픽 정신의 요체는 첫째도 평화, 둘째도 평화, 셋째도 평화다.

한국인들이 올림픽에 관한 정보를 언제 처음 입수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1909년 개성시내 각 학교 연합운동회장에 만국기가 걸렸는데, 스포츠를 세계와 연관 지은 것으로 보아 이때쯤에는 올림픽에 대해 알았을 것이다. 1913년에는 일본, 필리핀, 대만, 태국, 말레이시아, 홍콩을 회원국으로 하여 제1회 극동올림픽이 개최되었다. 한국인이 극동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것은 1921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제5회 대회로서, 일본 선수단이 아니라 재(在) 상하이 조선인 체육협회 소속으로 출전했다. 한국인 선수가 올림픽 무대를 처음 밟은 것은 1932년 LA 올림픽이며,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손기정이 마라톤 금메달을 획득했다. 정부 수립 전에 열린 1948년 런던 올림픽에는 KOREA라는 국호로 참가했다.

올림픽은 세계 평화에 대한 지향과는 별도로 민족주의를 고취하고 국민통합을 강화하는 힘으로도 작용했다. 올림픽은 스포츠를 ‘국민 만들기’라는 정치행위의 핵심 요소로 만들었고, ‘체력은 국력’이라는 구호 아래 국가가 국민을 훈육할 수 있도록 했다. 초등학교 운동회장에까지 걸린 만국기는 스포츠와 국가와 세계 사이의 관계를 직관적으로 가르쳤다. 올림픽 기간 중에는 세계 각국 사람들이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었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공동 입장과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결성을 두고 ‘정치적 의도에 따라 올림픽 정신을 훼손한 처사’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스포츠맨십과 올림픽 정신을 혼동한 탓이다. 남북 간의 적대감을 줄이는 것, 전쟁 위험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것, 무엇보다도 세계를 향해 ‘우리는 본래 떨어질 수 없는 하나’라고 선언하는 것이야말로, 올림픽 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일이다. IOC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이번 평창 올림픽을 한민족 화합의 무대이자 전쟁 위험을 줄이는 계기로 삼기 위해 애쓰는 중에도, 정작 한국에서는 평양 올림픽이니 뭐니 하며 남북 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적대감을 고취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는다.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짓이며, 부끄럽고 한심한 짓이다.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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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