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스포츠와 세상'에 해당되는 글 166건

  1. 2017.12.01 [사설]한국, 평화올림픽 위해 적극적 역할로 전환하라
  2. 2017.11.28 [정윤수의 오프사이드]평화에 의한, 평화를 위한, 평창 올림픽
  3. 2017.11.14 [기고]문재인 대통령께
  4. 2017.10.31 [정윤수의 오프사이드]태릉선수촌의 ‘기억 상징성’
  5. 2017.10.30 [기고]평창 동계올림픽, 평화와 화합의 새 지평을 향해
  6. 2017.10.11 [정윤수의 오프사이드]3분47초의 고백
  7. 2017.09.05 [정윤수의 오프사이드]한국 축구, 문제는 코칭스태프다
  8. 2017.08.08 [정윤수의 오프사이드]볼트, 자메이카, 달리기
  9. 2017.07.14 [정윤수의 오프사이드]남북합작 스포츠영화 ‘평창’ 개봉할 수 있을까
  10. 2017.06.29 [여적]0.49초의 차이
  11. 2017.06.26 [기고]파리, 2024 올림픽의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
  12. 2017.06.14 [정윤수의 오프사이드]다시, 김남훈의 글을 읽으며
  13. 2017.05.16 [정윤수의 오프사이드]테임즈와 바로스의 차이
  14. 2017.05.08 [기고]‘보는 야구’보다 인프라 부족한 ‘하는 야구’
  15. 2017.04.19 [기고]운동선수 학습권은 ‘선수의 보호 제도’
  16. 2017.04.18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스포츠도 ‘적폐청산’ 안 되겠니
  17. 2017.03.29 [경향마당]금메달만 위한 외국 선수 귀화 재고를
  18. 2017.03.21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스포츠 선수도 ‘인간적 삶’ 보장해줘야
  19. 2017.02.28 [정윤수의 오프사이드]대권주자의 스포츠 정책이 궁금하다
  20. 2017.02.27 [기고]동계올림픽, 서울은 무엇을 할 것인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시험발사로 내년 2~3월 평창 동계올림픽·패럴림픽의 평화적 개최가 위태로워졌다. 만에 하나 29일의 미사일 발사가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과 북한의 추가 도발의 방아쇠가 된다면 세계인의 축제이자 평화제전이라는 올림픽의 취지가 빛을 잃게 된다. 이대로 가다간 ‘평화올림픽 이전에 전쟁올림픽이 먼저 펼쳐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해야 할 판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유엔이 지난 14일 평창 올림픽 휴전결의안을 채택한 데 이어 정부는 올림픽 기간에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한다는 구상을 검토하고 있다. 이런 한국과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북한이 화답할지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다만 북한이 미사일 발사 이후 낸 성명에서 스스로를 ‘평화애호국가’로 칭하며 “세계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한 점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공연한 수사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국면전환을 시사한 것일 수도 있다. 그간 북한이 핵무력 완성 후에 미국과 담판짓는다는 이야기를 해왔던 점을 상기해본다면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점도 음미해봐야 할 대목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최대의 압박과 관여’를 하겠다며 대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성과는 신통치 않다. 미국과 국제사회가 대북 압박 수위를 최고로 끌어올려 ‘풀을 뜯어 먹는’ 처지가 된다 한들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군사 해결 방식은 한국으로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결국 북한과 미국, 남북 간의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점은 자명하고, 이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평창 올림픽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그간 문재인 정부는 북핵 문제에 소극적인 태도로 임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강경태도, 국내 보수여론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았다는 점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변명이 될 수 없다. 한국은 각국에서 오는 손님을 맞이해 잔치를 치러야 할 올림픽 주최국이다. 문재인 정부가 평화올림픽의 개최를 위해 능동적으로 나서는 것은 선택이 아닌 의무사항이다. 분단국가 한국에서 치러지는 올림픽이 명실상부한 평화의 제전이 되도록 문재인 정부가 북핵 해결에 용기와 상상력을 발휘할 것을 기대한다. 우리에겐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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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적 방법에 의한, 평화를 위한, 평창 올림픽, 그 험난한 도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 13일 오전 10시(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휴전을 결의하는 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이로써, 숱한 무리수와 거의 파괴적인 개발 홍역에도 불구하고, 내년 2월의 동계올림픽이 평창에서 열려야만 하는 상황적 명분을 일단 사후적으로라도 확보했다.

다행이다. 이마저도 없었더라면 평창 올림픽의 역사적 명분이나 문화적 가치는 훨씬 가벼워졌을 것이다. 김연아 홍보대사가 특별연설에서 밝힌 대로 평창 올림픽은 “남북의 얼어붙은 경계를 넘어서 평화적 분위기 조성”을 모색할 수 있는 일차적인 출발점이다.

그러나, 누구나 아다시피, 결의안 채택이나 특별연설로 평화적 분위기가 금세 조성되지는 않는다. 그럴 수만 있다면 인류는 이미 기원전부터 평화적인 황금시대를 살아왔을 것이다.

근래의 올림픽 역사에는 피의 흔적이 배어 있다. 1972년 뮌헨 올림픽 때는 선수촌에 테러집단이 침입해 이스라엘 선수들을 살해했고 1984년 동계올림픽을 치른 사라예보는 1990년대 이후 끔찍한 내전에 시달렸다. 올림픽 기간 중에라도 휴전을 하자는 결의를 1993년부터 채택해 왔지만 러시아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당일에 조지아를 침공했다.

결의안이 한낱 종이 쪼가리에 지나지 않을 수 있음을, 올림픽의 흑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로서는 193개 회원국 중 157개국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휴전결의안을 더욱 무겁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크게 세 가지로 천명된 사안 중 핵심은 올림픽 기간 전후(개최 7일 전부터 종료 7일 후까지) 적대행위 중단이다. 이 기간만이라도 북은 핵·미사일 도발을 중단하고 남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는 것이다. ‘일시적인 쌍중단’인데, 이를 미국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으므로, 우리로서는 유엔의 휴전결의안을 효과적인 우회로로 삼아 일시적이나마 실질적인 상호 적대행위 중단을 추진할 수 있다.

아직 청와대와 군 당국은 ‘한·미동맹’이라는 강력한 제어장치를 고려하여 훈련 연기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중단이 취소가 아니라 연기를 뜻하는 것이라면 충분히 추진할 만한 사항이다. 현재 북한은 도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밝힌 상태는 아니지만, 가을 이후 겨울에 이르는 동안 일단 충격적인 도발 요법은 쓰지 않고 있다.

미국의 ‘테러지원국 재지정’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의문이지만, 최소한 북한 병사의 판문점을 통한 탈북 사건 등의 국지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국면에서, 우리 정부가 평화를 위한 평창 올림픽의 의지를 다각도로 밝히면서 북한 선수단의 참가, 안전 보장 및 스포츠 교류를 위한 특사 교환 등을 적극 추진해 나간다면, 적어도 내년 2월의 한반도가 조금은 더 따스해질 것이다.

결의안 중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스포츠를 통한 평화, 개발, 인권 증진’이다. 이 결의안이 북한이라는 구체적인 대상을 상정하고 채택된 것이지만 ‘스포츠를 통한 평화, 개발, 인권 증진’이라는 목표는 특정 국가의 개별적인 사안이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나 공동으로 추진해야 할 인류사적 목표다. 비단 올림픽 기간만이 아니라, 남북 상호간에나 우리 사회 내부에서나, 반드시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숙제다. 평화는, 단순한 캠페인 몇 번으로는 도저히 획득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며 단순히 말로 도달할 수 있는 지평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와 조직위원회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상호 군사행동 중단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는 ‘스포츠를 통한 평화, 개발, 인권 증진’이라는 유엔결의안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좋은 말 대잔치’로 그쳐서는 안될 중요한 사안이다.

‘스포츠를 통한’이라는 표현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그 하나는 도구적 측면이다. 이른바 ‘핑퐁 외교’처럼,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를 상호 적대하는 나라끼리 친선의 가교로 만들거나 한 사회 내에 첨예한 갈등을 해결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스포츠는 충분히 그럴 만한 도구적 기능이 있고 국내외적으로 그러한 기능이 긍정적으로 기여한 바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도구적으로 스포츠가 작동하는 것은 일시적일 뿐이다. 더욱이 이렇게 도구적으로 잠깐 쓰이고 말 경우 그나마 그 기계적이고 도구적인 기능조차 ‘이벤트’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스포츠를 통한’이라는 표현의 진정한 해석은 ‘스포츠에 내재된 가치와 미학으로’라는 방향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따라서 스포츠나 올림픽에 대한 패러다임 자체를 전면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강한 신체적 능력의 비적대적 경쟁이라는 기본 골격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현재의 스포츠나 올림픽을 둘러싼 담론은 20세기 중엽 이후 강대국이 형성한 언어들로 채워져 있다. 국가주의와 남성주의가 압도적인 가운데 약간의 휴머니즘과 헐거운 이벤트성 멘트들뿐이다.

이를 평창을 계기로, 두터운 휴머니즘과 다양한 가치들로 대체해 나가야 한다. 내전, 빈부격차, 인종 갈등, 교육, 성, 환경 파괴 등 21세기 들어 제기된 숱한 문제들이 스포츠와 연관되어 있다. 그것들은 심지어 스포츠를 통해 더욱 심해지거나 스포츠를 통해 파괴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를 제어하고 해결하는 것, 그것을 다름 아닌 ‘스포츠를 통해’ 해결해 나가자는 것이 유엔결의안의 가치적 해석이다. 앞으로 두 달 남짓, 짧은 기간이지만, 정부와 조직위원회는 이 가치적 해석이 평창에서부터 가능할 수 있으며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천명할 필요가 있다. 스포츠를 통한 다양한 가치의 새로운 실천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때에, 올림픽 기간 중 상호 군사행동 중단도, 북한을 명분으로 고립시키려는 이벤트가 아니라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숭고한 결단임을 재천명하는 것이다.

<정윤수 | 스포츠 평론가·성공회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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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저는 대학에서 ‘장애인복지론’과 ‘문화복지론’을 가르치고 있는 여성장애인 방귀희입니다. 지난 30여년간 KBS에서 방송작가로 일을 하면서 휠체어에 의지해 무난히 사회생활을 해왔으나, 두 번 다시는 이 같은 삶을 감당해낼 자신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450만 장애인 가운데 2%에 해당하는 장애예술인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힘겹게 예술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으며, 또 저를 포함한 1000여 장애예술인들이 합심해 한국장애예술인협회를 창립하여 함께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사무국 회의실에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오른쪽)을 만나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과 반다비 인형을 선물하고 있다._ 연합뉴스

장애인 선수들은 장애인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획득하면 일반 선수들과 같은 액수의 연금을 받습니다. 그리고 전국대회, 세계대회, 종목별 대회 등 출전 기회도 많습니다. 이에 비해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통계에 따르면 장애예술인들은 82.18%가 자신의 창작물을 발표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있어 경제적 어려움이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일자리위원회가 출범하자마자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장애예술인들을 위해 장애인예술공공쿼터제도와 장애예술인후원고용제도 등 장애예술인 일자리 방안을 청원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한꺼번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사회 변화에는 계기가 필요한데 마침 우리 단체에서 내년 3월9일 개막하는 2018 평창 동계장애인올림픽 G-100일(11월30일) 기념으로 ‘한·중·일 장애인예술축제’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장애인예술의 수월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목표가 있습니다.

30년 전에 개최된 1988 서울 장애인올림픽으로 물리적 장벽이 제거되었듯이, 2018 평창 동계장애인올림픽을 통해 인식의 장벽, 즉 문화의 장벽이 없어져서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거나 배제당하지 않는 ‘장애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 장애인들은 국회는 물론 각종 위원회에서 ‘장애인 패싱’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많이 서운해하고 있습니다.

2018 평창 동계장애인올림픽이 소외당하고 있고, 그 어느 곳에서도 평창 동계장애인올림픽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대통령께서 평창올림픽 홍보대사를 하시는 등 올림픽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계신 모습을 언론을 통해 보고 있습니다. 올림픽을 통해 국가 브랜드를 높일 수 있다면, 장애인올림픽을 통해서는 그 성과 여부에 따라 복지국가라는 더 큰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일본은 이미 두 차례나 동계장애인올림픽을 개최하였고, 중국은 한국 다음에서야 동계장애인올림픽을 개최하기에 이번 평창대회가 한·일 양국을 비교 평가하는 잣대가 될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한·중·일 3국의 장애예술인들이 한국에 모여서 예술을 통해 장애인의 능력과 꿈을 보여주는 축제를 마련하였던 것입니다. 이 축제는 사회지도층이 관객이 되어야 합니다. 장애인예술은 아쉽게도 아직까지 보편화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통령께서 늘 말씀하신 ‘사람이 먼저다’에서 장애인을 비롯한 약자가 더 먼저라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그래야 힘없는 사람들이 희망을 갖고 기다릴 수 있을 테니까요.

사회학자 수전 웬델이 “인간은 어느 한 시기에는 장애적인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하였듯이 장애는 그렇게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장애는 미리 알아두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하나의 경험적 상식이기에 ‘장애인 먼저’ 사회를 만드는 것은 모든 국민을 위한 일입니다.

하여 대통령께 2018 평창 동계장애인올림픽을 고령자나 장애인을 위해 문턱을 없애자는 뜻의 문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가 실현되는 문화올림픽으로 만들어주십사 하는 청을 드립니다.

<방귀희 | (사)한국장애예술인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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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의 경향신문 ‘커버스토리’를 흥미롭게 읽었다. 반세기 역사를 뒤로하고 문을 닫게 된 태릉선수촌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했다. 선수촌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의 기억까지 부분적이나마 복원했기 때문에 읽을 만했다.

문화재청은 2009년 조선 왕릉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면서 능역 안에 있는 부적합 시설을 모두 철거하겠다고 밝혔고 그 대상으로 서삼릉의 젖소개량사업소와 의릉의 옛 국가정보원 건물 그리고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가 묻힌 태릉과 문정왕후의 아들인 명종과 인순왕후가 잠든 강릉 사이에 있는 태릉선수촌이 지목되었다. 문화계에서는 상징적으로 한두 건물을 남길 수는 있지만 조선 왕릉의 원형 복원이 가장 우선적인 일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체육계는 올림픽 금메달 116개로 상징되는 선수촌의 초창기 공간들, 즉 승리관이나 월계관 등 8개 건물은 보존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관점에서 2015년 7월 문화재 등록을 추진했으나 아직까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두 개의 문화유산이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명분에서나 현실에서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조선 왕릉의 역사적 권위가 더 압도적인 듯 보인다. 등재 여부를 떠나서라도, 근세 이래 쇠락한 왕조의 왕릉은 마구잡이 개발의 대상이었던 바, 그 복원은 중요하다. 일제강점기에 효창원의 효창원골프장(1921년), 의릉의 청량리골프장(1924년), 유릉 터의 군자리골프장(1929년) 등이 들어섰고 5·16 쿠데타 이후에는 서삼릉의 한양골프장(1964년)과 뉴코리아골프장(1966년), 태강릉의 태릉골프장(1966년)이 들어섰다. 특히 서삼릉 지역은 당초 123만평에서 7만5000평으로 급격히 줄어들면서 그 자리를 농협, 한양골프장, 뉴코리아골프장,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 등이 차지한 바 있다. 이렇게 서삼릉 부지가 함부로 매각되던 1961년부터 1969년 사이의 문화재관리국장 4명 모두 육사 출신이었고 군사정권 초기에 문화유산이 정권 마음대로 매각되거나 함부로 용도 변경되어 쓰였다. 1966년에 설립된 태릉선수촌도 이런 맥락의 강점이었다.

그러나 근대 문화유산으로서 태릉선수촌의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고전적인 문화유산에 비해 아직은 근대 문화유산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게 사실이지만 국내외의 여러 도시들에서 그들이 살아낸 20세기의 기억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은 상당히 중요한 문화적 업무로 대두되고 있다. 비단 정치사회적인 유산만이 아니라 일상 문화 전반의 건물, 조형, 공간 등은 물리적 보존을 넘어 한 시대의 집합적 감수성의 온전한 보전과 그 의미의 풍부한 해석을 위해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사실 나는 작년 5월 이 지면에서 태릉선수촌에 대해 쓴 바 있다. 그때의 관점은, 물리적 보존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이 선수촌에 응결된 각종 기억의 1차적인 수집과 전면적인 해석이었다. ‘국위선양’ 일변도의 기억만으로는 근대 문화유산이라는 지평에 이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폭넓은 공감대를 얻기도 어렵다는 취지였다. 게다가 이번 가을에 새로 문을 연 충북 진천의 선수촌은 거의 모든 종목에 걸쳐 최고의 시설로 완비되었기 때문에 태릉선수촌의 실질적 기능은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고 봐야 한다.

지난 주말 경향신문의 커버스토리가 매우 시의적절했지만 한편 아쉬운 점이 많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1966년에 왜 국가는 엘리트 선수들을 집중적으로 훈련시키기 위한 공간을 만들었는지, 그 공간의 구성 요소는 어떠한지, 전반적으로 군 병영의 축소판이며 생활수칙 또한 사관학교 이상의 엄격함을 요구했던 그 정신적 지향의 의미는 무엇인지 좀 더 탐사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해당 기사에서 어느 선수는 “태릉에 있는 동안은 1년 열두 달을 거기서 보냈어요. 고등학교·대학교 졸업식도 못 갔어요. 명절 때도 집에 못 갈 때가 허다했죠”라고 회상했다. 물론 고된 훈련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이룬 곳이며 돌아보면 그때만큼 절실하면서도 즐거웠던 적은 없다는 회고다. 많은 엘리트 선수들이 태릉선수촌을 그렇게 기억한다.

그럼에도 그의 말처럼 “한창 나이에 갇혀서 운동만” 했던 선수촌의 기억이 국위선양의 좋았던 추억으로만 확정해도 좋은지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태릉선수촌의 과거 기억을 총체적으로 돌아볼 뿐만 아니라 진천선수촌의 미래에 대해서도 더 많은 논의를 할 수 있으며, 이는 단지 엘리트 선수들의 생활수칙 문제를 넘어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스포츠가 어떤 의미를 갖느냐 하는 의미 있는 질문으로까지 이어진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나는 1년 전의 생각을 조금은 수정하게 되었다. 선수촌의 주요 시설을 완전 보존하는 것은 여러 모로 무리지만, 봉건 왕조의 유산을 위해 20세기의 현대사가 녹아있는 문화유산을 완전히 없애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반대한다.

반드시 원형 전체일 필요는 없다. 물리적 공간(Space)의 기억이란, 불가피한 경우, 원형 전체나 부지 전부를 보존하지 않고서도 그 장소성(Placeness)을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를테면 조명탑이나 전광판으로 최고 수준의 기억 상징물을 만들 수 있는 예술적 기법을 구사할 수도 있다. 특히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압도적인 가치와 충돌할 경우에는 완전 철거라는 극단의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예술적 상징성의 극대화를 통한 기억의 보존’을 차선책으로 구사해야 한다.

체육계는, 이를 위하여 근대 문화유산 보존에 관한 문화사적 원칙을 다시금 분명히 하되 그 실사구시를 위해 이 분야에 경험이 많은 건축가, 예술가, 문화기획자 등을 만나야 한다. 태릉선수촌의 문화사적 가치를 보다 세밀하게 확정하고 이를 ‘기억 상징물’로 보존해낼 수 있는 예술적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체육인의 땀이 배인’이라는 감성적인 접근은 더 이상 방법이 아니다.

<정윤수 | 스포츠 평론가·성공회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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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이 이제 100여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스에서 채화된 평화와 화합의 상징, 올림픽 성화가 11월1일 우리 땅에 도착한다. 성화 봉송의 슬로건인 ‘모두를 빛나게 하는 불꽃(Let Everyone Shine)’처럼 101일 동안 전국 2018㎞를 순회하며 우리 모두를 빛나게 할 올림픽의 불꽃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 동서 대립과 갈등을 허무는 ‘벽을 넘어서’의 비전을 실현했다면 30년 만에 다시 한국에서 개최되는 평창 동계올림픽은 동북아 지역 올림픽 릴레이의 시발점이 된다. 평창에서 시작된 올림픽의 아시아 시대가 2020년 도쿄와 2022년 베이징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박지성이 24일 고대 올림픽 발상지인 그리스 올림피아 헤라 신전에서 채화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를 첫 번째 주자인 그리스 크로스컨트리 대표 아포스톨로스 앙겔리스로부터 전달받은 뒤 밝은 표정으로 봉송하고 있다. 올림피아 _ AFP연합뉴스

3번의 도전 끝에 대회 유치에 성공한 만큼 평창 올림픽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가 크다. 일부 국가에서 안전 문제 등을 이유로 평창 동계올림픽에 불참하겠다고 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으나 이는 왜곡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미 다수 국가에서 정상 참석을 알려오는 등 평창 올림픽에 대한 국제사회의 열기는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성공적인 대회 준비와 운영을 위한 우리의 어깨가 무겁다.

올림픽의 핵심 가치는 평화와 화합이다. 이를 위해 2년마다 올림픽 개최 전년도에 유엔에서는 휴전 결의안이 채택되는데, 올림픽 기간 전후 일체의 적대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금년에도 우리나라의 제안으로 11월13일 유엔 총회 본회의에서 올림픽 휴전 결의안이 채택될 예정이다. 올림픽 기간만큼은 한반도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서로를 향한 총구를 내려놓고 인류애의 가치를 생각해 봤으면 한다. 나아가 그간 어려운 정치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남북 스포츠 교류가 성사된 만큼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도 남북이 함께하는 가슴 벅찬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스포츠는 국력, 특히 소프트파워의 상징이자 중요한 외교자산이 된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연아 선수나 박지성 선수가 우리나라의 브랜드 가치를 얼마나 높이고 있는지는 우리 모두 공감하는 일이다. ‘지성 팍’ ‘유나 킴’을 외치는 해외 팬들의 한국 사랑은 스포츠에서 시작되어 우리의 언어와 문화, 나아가 한국 방문으로 이어진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우리는 동·하계 올림픽을 모두 개최한 국가(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러시아, 미국  등 7개국) 명단에 오르게 된다. 월드컵과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이미 개최한 우리로서는 스포츠 분야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세계인의 축제로서 성공적인 평창 올림픽 개최를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현재 40명의 홍보대사가 활동하고 있지만 가장 큰 힘이 되는 홍보대사는 바로 우리 국민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된 열정(Passion Connected)’이라는 대회 슬로건처럼 국민 모두 한마음으로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를 응원하자. 내년 2월, 한국의 알프스라 불리는 평창에서 어쩌면 일생에 한 번뿐인 올림픽 관람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모 TV 방송 예능 프로 평창편에 소개된 봅슬레이와 아이스하키는 물론, 우리에게 인기있는 피겨스케이팅과 쇼트트랙,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루지와 바이애슬론 등 15개 종목을 즐길 수 있다. 나아가 평창 동계올림픽에 이어 3월9일부터 18일까지 개최되는 패럴림픽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과 지지를 당부한다. 우리와 전 세계인이 함께하는 진정한 축제의 장은 장애와 비장애, 차별과 편견을 초월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2018년 2월9일 평창에서 펼쳐질 환희와 감동, 열정의 무대를 시작으로 금번 올림픽의 비전인 새 지평(new horizon)이 열리기를 고대한다.

<조현 | 외교부 2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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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무려 3분47초!

사랑을 고백하기에는 너무나 짧지만 유엔 연설이라고 하면 달라진다. 지난 9월21일, 뉴욕의 유엔총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정확히 22분이 걸린 연설 중 무려 3분47초를 평창 동계올림픽에 할애했다. 그것도 북한 핵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한 후 이 대회를 통하여 동북아의 평화 공존이 새로 시작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그중 한 대목이다.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고작 100㎞를 달리면 한반도 분단과 대결의 상징인 휴전선과 만나는 도시 평창에 평화와 스포츠를 사랑하는 세계인들이 모입니다. 세계 각국의 정상들은 우의와 화합의 인사를 나눌 것입니다. 그 속에서 개회식장에 입장하는 북한 선수단, 뜨겁게 환영하는 남북 공동응원단, 세계인들의 환한 얼굴들을 상상하면 나는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결코 불가능한 상상이 아닙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평창올림픽 유치에 회의적인 입장이었고 유치 결정 이후 진행된 엄청난 재정 투입과 환경 파괴를 수반하는 무리한 공사 그리고 이로써 상당한 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공허한 계산들에 반대해왔다. 파괴를 수반한 건설, 게다가 종국에 가서는 다시 철거하도록 되어 있는 그 현장에 직접 가보기도 했다.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최근 완공된 횡계리의 개·폐회식장은 1200여 억원의 사업비가 들어간 올림픽 사상 최초의 행사 전용 시설이다. 대회 이후 3만5000 가변석과 가설 건축물이 모두 철거된다. 차후에 올림픽 기념관을 조성하고 고원훈련장을 복원하게 되는데, 이 철거와 조성과 복원에 재원과 시간이 더 필요하다.

‘최순실 게이트’의 시커먼 음모의 냄새가 부분적으로 평창올림픽에 스며들었던 사실도 여전히 불쾌하다.

그러나 어쩌랴. 올림픽은 겨우 넉 달 남았다. 반납할 수도 없고 대충 치를 수도 없다. 어떻게든 재정 낭비를 줄여야 하며 악착같이 사후 활용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무엇보다 넉 달 후의 대회 자체를 의미 있게 치러내야 한다. 단순히 ‘세계인의 축제’니 ‘지구촌 한마당’이니 같은 진부한 구호로는 어렵다.

그러던 차에 문 대통령의 유엔 연설이 들려왔다. 이 연설은 물론 거시적인 차원에서 북핵 위기를 극복하고 동북아의 평화 안정을 국제 사회에 호소한 것이지만, 살짝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러니까 환경 파괴와 재정 낭비에 의하여 전반적인 무관심과 냉소가 엄연한 상황의 절박성으로 보면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 비록 애초부터 계획된 일은 아닐지라도, 평창올림픽에 투여된 그 많은 시간과 비용은 나름의 가치를 획득할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후보 때부터 평창올림픽에 대하여 비교적 일관성 있는 태도를 취해왔다. 1월25일, 강원도청을 방문했을 때 “북한 참여로 평화올림픽으로 부각된다면 대회 성공과 막혀있는 남북관계를 풀어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4월20일에는 “금강산 육로를 통한 북한 선수단 대회 참가, 북한 동계스포츠 인프라 활용 방안 협의, 북한 응원단의 속초항 입항, 금강산 온정각 일대에서 올림픽 전야제 개최” 등 실질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7월24일에는 대통령 신분으로 평창을 찾아 “북한이 평창올림픽 참가를 결단”할 것을 촉구했다.

그뿐만 아니라 주요 인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실무 작업에 돌입한 것도 유의미하다. 베를린에서 열린 ‘코리아 글로벌 포럼’에 참석한 천해성 통일부 차관은 “북한이 참가할 수 있도록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 국제사회와 함께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이 포럼의 기조연설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은 핵 및 미사일 활동을 중지하고, 한·미는 군사훈련의 축소 또는 (일시적) 중단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쌍중단’이다. 일부 유럽 국가가 선수단 안전을 이유로 올림픽 참가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는 현지 상황에 적극 대처하는 내용이다.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김동일 도의회 의장, 민병희 도교육감도 ‘올림픽 평화를 촉구합니다’라는 공동 호소문을 발표하였다.

북한의 빙상 선수들이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한 것에 청와대가 즉각 우호적인 평가를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부 종목에 한하여 국제올림픽위원회는 북한에 와일드카드를 주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장웅 북한 IOC 위원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큰 문제가 생길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며 일각의 ‘보이콧’ 논란을 일축했다. 이런 정황들 속에서 문 대통령은 세계를 향한 첫 유엔총회 연설 중 3분47초를 ‘평화를 위한 평창올림픽’에 할애한 것이다. 아주 정교하지는 않아도 즉흥적인 발상은 아니다.

평화와 인권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필수 교재인 요한 갈퉁의 저서가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다. ‘평평’이라고 줄여 부른다. 이를 활용하건대 적어도 내년 2월에 한하여 ‘평평평’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평화를 염원하는 평창올림픽’ 말이다. 유엔 연설에서 문 대통령도 “평화의 위기 앞에서 평창이 평화의 빛을 밝히는 촛불이 될 것”이라고, 일부러 라임을 맞춰 표현했다.

선언만으로 될 일은 아니다. 무엇이 ‘평화적 수단’인지도 검토해야 한다. 북한이 마지못해 엉거주춤 나오는 것은 ‘평화적’이지 않다. 무엇보다 평화의 진정한 개념과 스포츠의 관계에 대해 의외로 무지하거나 무관심했던 대한체육회와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매우 정치편향적인 기구인 IOC가 공식적으로는 ‘정치와 스포츠의 분리’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추석을 앞두고 ‘평평평’을 상상하는 것은 뜻깊은 일이다. 추석 직후, 모든 관계자가, 특히 평창올림픽 실무 기관들이 ‘과정의 평화’를 찾아내야 한다.

<정윤수 | 스포츠 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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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열광의 경기장이 싸늘한 냉소로 바뀐 지 5일째, 칼럼을 쓰기가 여의치 않은 시점이다. 지난 목요일 밤에 하고 싶었던 얘기들을 며칠 동안 수많은 언론과 축구팬들이 다해버렸다. 대부분의 비판은 적절했다. ‘악으로 깡으로’ 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축구는 머리로, 그러니까 명석한 판단과 기술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밤, 중앙아시아 최대 공업도시 타슈켄트의 경기장을 우리는 또한 열망한다. 경우의 수? 까짓 거 이기면 되는 거 아닌가? 국가대표라는 자부심으로 모든 것을 쏟아부어라. 이런 기대들을 누구나 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가대표 축구는 이처럼 얼핏 보기에 양립하기 어려운 양극단 사이에 있다. 팬들의 함성이나 잔디 상태에도 불구하고 저마다의 영역을 확실히 지켜내되 전술적으로 유의미한 공간을 순간적으로 파악하여 신묘하게 접근해 나가는 기술? 그것을 아쉽게도 우리 대표팀은 보여주지 못했다. 이렇게 되면 지치게 된다. 심리적 부담은 더욱 커지고 몸은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여 오히려 둔하게 움직이게 된다.

지난 이란전, 경기 시작하자마자 텔레비전 중계에서는 ‘대표팀이라는 각오와 정신력으로’라는 말이 들려왔는데 스포츠 경기는 무게를 달 수 없는 그 무슨 정신력을 겨루는 행위가 아니다. 이란과의 졸전 후에 김남일 코치가 ‘빠따’(몽둥이)를 쳤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설마 ‘빠따’를 치지도 않겠지만 ‘빠따’를 친다 해서 달라질 게 없는 게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이 발언은, 그러나 지금의 대표팀을 살펴보기 위한 열쇠말이다. 지난 7월12일, 코치로 선임되면서 김남일은 “마음 같으면 지금 들어가서 바로 ‘빠따’라도 좀 치고 싶다”고 했다. 물론 김남일 코치는 덧붙였다. “세월도 많이 흐르고 시대가 시대인 만큼 그렇게 해서는 안될 것 같고요. 어떤 마음을 갖고 경기장에 나가야 되는지를 후배들한테 좀 전해주고 싶습니다.” 이렇게 하여 ‘빠따라도 치고 싶다’는 말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러나 나는 해프닝으로 넘기고 싶지 않다. ‘터프’한 성격의 신임 코치가 젊은 선수들에게 뼈있는 덕담을 한 것이라고 넘겨서는 안된다. ‘빠따’는 곧장 ‘애정 어린 질책’으로 해석되면서 여러 언론과 인터넷에서 긍정적으로 확산되었다.

당시 어느 스포츠 뉴스는 “김 코치는 후배들에게 쓴소리부터 했습니다. 이런 걸 ‘사이다 발언’이라고 하나요”라고 보도했다. 어느 스포츠지는 “요즘 젊은 선수들이 간절함이 부족하다”고 하면서 ‘승부 근성’과 ‘국위선양’ 정신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렇게 ‘빠따’라는 말이 긍정적인 의미의 ‘승부 근성’으로 이어지고 ‘태극마크를 향한 간절함’으로 연결되어 ‘대한건아 국위선양’으로까지 격상되었다. 그리고 이란과의 졸전으로 인하여 이러한 ‘의식의 흐름’은 대표팀의 ‘태도와 자격’을 문제 삼는 식으로 헝클어졌다.

문제는 기술이지 정신력이 아니다. 그 무슨 ‘정신력이 뒷받침된 기술’ 같은 형용모순도 아니며 신태용 감독 개인에게 덮어씌울 문제도 아니다. 지금 대표팀은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되고 있는 세계 축구에 간신히 턱걸이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결정적인 것은, 현재의 코칭스태프가 장기적인 계획과 안정된 구도 속에 안착된 상태가 아니라는 점이다.

신태용 감독은 부임한 지 겨우 두 달이 지났다. 그사이, 유럽의 여러 리그들은 휴식기였고 8월 말에 일제히 개막한 경기들에서 이른바 유럽파들은 부상이나 팀내 경쟁 등으로 밀린 상태다.

선임되자마자 K리그에 방점을 찍었지만 각 포지션에서 한두 명의 획기적인 선택이 있었을 뿐 비교적 많이 선발했다 해서 시너지가 자연스럽게 생기지는 않았다. 기성용의 부상으로 경기 전체의 흐름을 좌우하는 그라운드 안의 조율사가 없었다.

특히 7월 초순의 코칭스태프 구성은 이미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둘이 합쳐 A매치 174경기에 달하는 김남일과 차두리는, 그러나 코치 경험이 짧고 그나마도 지속적이지 못했다. 2016년 4월 선수에서 은퇴한 김남일은 축구협회 미래전략기획단 위원으로 있다가 2017년 2월 중국 장쑤 쑤닝의 코치로 부임하여 4개월 활동했다. 그게 전부다. 차두리는 2016년 10월 전력분석관이라는 ‘위장 보직’으로 사실상 코치 역할을 하다가 A급 자격증 문제 등으로 올해 4월에 자진 사퇴했다가 7월에 복귀했다.

그나마 전경준 수석코치가 이들보다는 경력이 많지만 그래 봐야 2012년부터이며 그것도 프로구단 제주의 짧은 경력을 제외하고 보면 대체로 20세 이하의 성장기 선수들과 생활했다. 전임 코치가 ‘나이, 선후배’ 등을 감안하여 사퇴함으로써 신 감독보다 ‘후배’로 현재 골키퍼 코치를 맡고 있는 김해운 정도가 일정 경력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경기 전체를 주도할 만한 포지션은 아니다.

이렇게 구성된 대표팀에 물어보자. 이 중에서 누가 대표팀의 상시적인 전력 향상과 실제 경기 중의 효과적인 전술 구사 및 임기응변을 하는가. 물론 감독이다. 그러나 감독 외에는 누구란 말인가. 언필칭 코칭스태프 아닌가. 급변하는 세계 축구의 흐름은 누가 파악하고 보고하여 토론하는가. 3개 대륙 전역에 나가 있는 해외 선수들의 역량과 컨디션은 누가 분석하는가. 국내 선수들의 심리 상태와 기술 수준은 누가 판단하는가. 어떻게든 이런 과정을 거쳐 집중된 정보들을 어떻게들 토론하고 분석하고 판단하는가.

‘기술’이 관건이라고 할 때, 바로 이런 실질적이고 실무적인 사안의 강렬한 실천이 중요하다. 타슈켄트 이후 한국 대표팀은 막연한 기술 보강이나 추상적인 정신력이 아니라, 현재의 코칭스태프에 대한 날카로운 점검부터 해내야 한다. 그 속에 기술이 있고 그 속에 정신력이 있다. 그게 ‘빠따’다.

<정윤수 | 스포츠 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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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평론가 강헌씨가 재즈를 설명하면서 ‘흑인 특유의 폐활량과 두툼한 입술’이라고 표현한 적 있다. 이에 음악평론가 서정민갑씨는 ‘인종주의적 표현이 아닌가’ 하고 우려한 적 있다. 물론 강헌씨는 재즈를 신체적 특징으로만 설명하지 않았다. 19세기 노예 무역과 남북전쟁, 철도와 시카고, 2차 세계대전과 뉴욕, 1960년대 정체성의 미학과 민권운동 등을 두루 언급하였다. 서정민갑씨의 우려도 조잡한 비난은 아니다. 신체적 특징에 대한 과도한 표현이 복합적인 음악 세계를 일거에 덮어버릴 수 있음을 걱정한 것이다.

이처럼 특정 예술 분야를 그 인종적이고 신체적인 특징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조심스럽다. 그러나 거부하기 어려운 심미적 풍경도 있다.

며칠 전 유튜브로 현존 최고의 재즈 아티스트 허비 행콕을 위한 헌정 공연을 보았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까지 참석한 기념비적인 공연이다. 평생의 ‘지음’인 웨인 쇼터를 비롯하여 칙 코리아, 잭 디조넷, 마커스 밀러 등이 무대를 채웠으며 힙합의 절대지존 스눕 독까지 등장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나는 한쪽 눈으로는 온갖 악기들을 윷놀이 하듯 다루는 최고 명인들의 공연을 보면서도 다른 눈으로는 관객들의 반응을 보았다. 흑인이나 히스패닉 관중들의 몸짓은, 그루브를 타고 비트를 즐기는 것이었고 그에 비하여 백인 관중들의 몸짓은 간소했다. 이때, 약간의 인종적 특성과 문화적 감수성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차이’다. 특정 예술이 특정 피부색과 반드시 직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쇼미더머니 6>의 ‘N분의 1’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조우찬은 13살, 초등학생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까닭은 우사인 볼트 때문이다. 그가 마지막 레이스를 펼쳤다. 100m 마지막 기록은 9초95로 3위. 하지만 그의 위업은 찬란하다. 그가 이룩한 기록과 성적을 일일이 적는다면 이 지면으로도 모자랄 것이다. 그러니 개틀린처럼, 볼트라는 이름 앞에 경의를 표할 뿐, 나는 다른 얘기를 하고 싶다.

볼트를 말하면서 대개 자메이카를 동시에 언급한다. 면적은 한반도의 20분의 1에 불과하고 인구는 대구광역시 정도로 260만여명이며 국내총생산(GDP)은 143억달러로 세계 118위의 가난한 나라다. 볼트를 비롯하여 아사다 파웰, 일레인 톰슨 같은 선수들이 성장기만이 아니라 전성기 시절에도 잔디가 듬성듬성 나 있는 트랙에서 훈련할 정도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 작고 가난한 나라가 육상의 강자가 되었을까. 1988년 서울 올림픽의 벤 존슨(캐나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린퍼드 크리스티(영국),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의 도노반 베일리(캐나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의 멀린 오티(슬로베니아) 등이 자메이카 출신이다.

자메이카의 육상을 설명하면서 쉽게 떠올리는 것이 그 유전자와 토종 음식이다. 글래스고대학과 서인도대학이 200명 이상 자메이카 육상 선수들을 조사했더니 ‘액티넨 A’라는 특이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다. 근육 수축와 이완을 빨리 일으키는 유전자라고 한다. 자메이카 사람들이 즐겨 먹는 참마가 선수들의 스피드를 배가시키는 데 효험이 있다는 얘기도 한다. 이러한 설명은 재즈와 흑인의 폐활량처럼, 물리적인 요인으로는 충분히 거론할 만하다.

그러나 이런 유전자적 특징과 풍토적인 속성이 절대적인 이유처럼 표현되어서는 곤란하다.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국내 방송사는 줄곧 아프리카 선수들을 ‘흑인 특유의 파워’라는 말로 묘사했다. 이러한 표현은 그들이 전략이나 전술 없이 힘으로 밀어붙인다는 인상을 준다. 그 밖의 더 중요한 요인들은 이러한 오해와 편견 아래 묻혀 버린다. 나아가 제3세계의 당대적 삶 자체가 소멸된다.

다시 자메이카 얘기를 해보자. ‘타고난 기질’ 말고 그들이 이뤄낸 20세기적 성취 말이다. 자메이카 출신의 하버드대 사회학과 교수 올란도 패터슨은 특정 종목과 인종의 관련성을 의심한다. 오래전 자메이카인들은 서아프리카에서 건너왔다. 오늘날 서아프리카는 케냐 같은 동아프리카에 비해 육상을 잘하지는 않는다. 산악지대가 많은 자연 환경에서 ‘거침없이’ 달리다 보니 잘 달리게 되었다는 원시적인 해석도 거부한다.

대신 패터슨 교수는 공중보건과 사회체육을 거론한다. 20세기 초엽, 제3세계 여러 나라들은 미국의 록펠러 재단 같은 곳의 원조를 받으면서 자국의 질병 퇴치와 보건위생 개선을 시도했다. 이 사업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선진국 의료봉사단의 능력과 헌신만이 아니라 해당 국가의 재원이 필요하다. 재정이 열악한 자메이카는 주거환경의 개선과 사회 체육의 확산을 통해 가난과 질병에서 벗어나려 했다. 상대적으로 재원이 덜 드는 달리기는 최고의 사회 재생과 활력의 수단이었다.

특히 1960년대에 들어 자메이카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극대화되는 ‘라스파타리아니즘’의 분위기 속에서, 자메이카는 달리기를 통한 개인 건강 도모와 사회적 활력 신장에 집중하게 된다. 동네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달렸고 정기적으로 대회가 열렸으며 그 탄탄한 저변 속에서 곳곳에서 우사인 볼트 같은 선수가 속출했다. 이런 자메이카 육상의 핵심이 자메이카 공과대학이다. 이 학교는 ‘육상학교’를 모태로 출발하여 1960년대에 선진적인 스포츠과학을 접목하였으며 오늘날 세계 육상의 모범으로 꼽히고 있다. 이처럼 자메이카 육상은 타고난 인종적 특징이나 신토불이 음식의 성과가 아니라, 가난과 비위생의 생존 조건을 벗어나려는 자메이카의 ‘현대적 삶’의 성취다.

솔직히 여기에 밥 말리의 저항적인 레게 문화 운동까지 덧붙이고 싶으나 그 또한 과잉 해석인 듯하여 자제한다. 다만 2012년 남아공 월드컵 폐막식에서 울려 퍼졌던 밥 말리의 노래들 그리고 2006년에 맨체스터에서 직접 보았던 수많은 자메이카 축구팬들의 레게 응원이 단순히 그들의 신체적 특징이 넘실댔던 장면이 아니라, 식민과 가난의 일그러진 현대성을 저항하고 극복하려는 몸짓이었음을 기억하고 싶다. 우사인 볼트의 달리기 그리고 그의 유쾌하고도 의미 있는 세리머니 또한 그러하다. 그는 단순히 세상에서 가장 빨리 달리고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 사람이 아니다.

정윤수 | 스포츠 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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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헌익과 정병호가 함께 쓴 <극장국가 북한>은, 두 사람의 전공이 ‘인류학’이라는 점에서, 그 학문적 방법론의 신선함이 돋보이는 저작이다. 북한은 참여 관찰이라는 인류학의 고전적인 방법론이 통하지 않는 영역이다. 북한의 내부로 들어가서 ‘참여 관찰’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조건에서 두 사람은, 클리퍼드 기어츠의 ‘극장국가’라는 개념을 적극 활용하여 북한 정권이 대외적으로 공개하고 과시하는 ‘연출’된 장면들과 서사들을 분석한다.

특히 두 사람은 김정일 시대에 그들이 혁명가극 <피바다>나 <꽃 파는 처녀> 그리고 ‘아리랑 대축전’을 국가사업으로 전개하고 평양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 혁명열사릉이나 주체탑 등을 축조하여 북한 전역을 거대한 극장으로 구성해 나가는 맥락을 살펴, 북한이 이 과시적인 스펙터클을 통해 대내외적으로 어떤 정치적 의제를 설정하고 그것의 강력한 돌파 의지를 보여왔는가를 분석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북한의 역대 정권이 대내적으로 강력한 통제장치를 구사하고 대외적으로 핵 위기를 주도하여 권력을 유지해왔다는 통념은, 두 학자에 의하면, 부분적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안팎으로 강력한 통제나 군사적 위협으로 ‘겨우’ 유지되어온 정권이 아니라, 과시적인 스펙터클 문화 정치의 정교하면서도 지속적인 전략에 의해 북한은 문화적으로 건재해온 것이다. 특히 1995년 이후 북한 정권이 강력하게 천명했던 ‘백두혈통의 선군정치’는 김정은 정권으로까지 이어지는 스펙터클 정치의 요체였다. 북한 사회 전체가 극장이 되고 최고 권력자가 주연 배우가 된다. 북한 주민들이 일상적으로는 열렬한 관객이 되며 때로는 조연이나 엑스트라가 되어 스펙터클에 참가한다.

이 책에서는 깊이 다루지 않았지만, 북한은 사실 또 하나의 스펙터클, 즉 스포츠를 통한 문화 전략도 다양하게 구사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1년 5월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의 단일팀(코리아) 구성이다. 이때 단일팀은 남북한이 사이좋게 동수로 하는 식의 비스포츠적인 발상 대신 엄격하게 1, 2차 선발전을 치러 구성했다. 그 덕분에 본선 8강까지 진출했다. 남북한 스포츠 교류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이 단일팀 구성은 그해 12월13일 서울에서 타결된 ‘남북 기본합의서’의 전조였다. 남북한의 화해, 불가침, 교류협력 등을 담은 이 합의문은 2000년의 ‘6·15 남북 공동선언’과 함께 한반도 평화의 기본적인 정신으로 통하고 있다. 그러니까 당시 북한은 ‘남북 기본합의서’라는 전면적이고 획기적인 영화를 개봉하기 전에 ‘단일팀’이라는 예고편부터 띄운 것이었다.

김일성 사망과 그 이후 권력 조정 과정에서도 북한은 스포츠 교류라는 예고편을 중단하지는 않았다. 북한 전역을 강타한 기근과 핵 문제에 따른 외교 고립 상태 등에도 불구하고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와 2005년 동아시아선수권대회에 참가했다.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에는 2014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김정은을 제외하고 나면 사실상 북한이라는 극장의 최고 배우인 김양건·황병서·최룡해가 과감하게 ‘출연’하기도 했다.

남북한 스포츠 교류가 아직까지는 ‘이벤트’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고, 따라서 남북한 선수가 ‘동시 입장’을 하는 최소 단위에서 아예 단일팀까지 구성하는 최대 단위까지의 교류가 여전히 스포츠 외적인 이벤트 혹은 일회적인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늘 북한이 연출하는 스포츠라는 ‘영화’는 그 줄거리가 무엇이며 누가 주연 배우로 출연하는지, 그리고 연출 의도는 무엇인지 정밀하게 분석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강공 일변도였던 박근혜 정부의 ‘통일 대박’과 트럼프 정부의 등장이라는 국면에서 그들은 아예 스포츠 이벤트 자체를 개봉하지 않는 방식으로, 조심스러운 연출을 지속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한 스포츠 교류를 천명했다. 지난 6월24일 전북 무주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막식을 찾은 문 대통령은 내빈석의 본인 좌석을 지나쳐 북한의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게 다가가 환영 인사를 했다. 공식 환영사를 통해서도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단 및 응원단이 참가하기를 희망했다. 이에 장웅 위원은 박수를 치는 정도로 제한적인 연기를 했다. 분명한 말로 이에 화답하거나 어떤 조건부의 답례도 하지 않았다. 아직 북한은 스포츠 영화의 본격적인 ‘남북한 공동 제작’에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을 접견한 자리에서도 문 대통령은 평창 동계올림픽이 한반도 평화와 남북 화해와 협력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바흐 위원장은 “평창조직위가 성공적인 동계올림픽을 개최할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조연들도 아직은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어떻게 전개될지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중요한 것은 남북한이 합작하여 공동 제작하게 될 이 영화가 탄탄한 내용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개봉 시기는 정해졌다. 내년 2월, 평창이다. 제작자도 정해져 있고 시나리오의 얼개도 짜여 있다. 그러나 영화의 핵심은 내용이다. 스포츠 그 자체가 존중되어야 하며 선수들이 표면적으로라도 주인공이어야 한다. ‘한반도기’를 함께 흔드는 것만으로도 ‘감동적’이었던 것은 남북 기본합의서 이후의 1990년대 일이다. 스포츠 자체의 내실 있는 교류, 선수와 지도자들의 왕래, 수준 있는 경기의 감각적인 충만 등이 절대적이다. 일회적인 퍼포먼스로는 ‘동북아 평화’가 요원하다. 스포츠에 내재된 비적대적인 경쟁의 신선한 감각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교류될 때, 그 안에서 느껴지는 미묘하면서도 경이로운 정서들이 자주 확인되고 두루 확산될 때, 남북한 공동 제작의 스포츠 극장은 만원사례의 풍경이 될 것이다.

정윤수 | 스포츠 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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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경기의 꽃’ 100m 경주는 숫자의 스포츠다. 기록달성의 관건으로 꼽히는 출발 반응속도를 보자. 이론적으로 가능한 인간의 최소 출발 반응속도는 0.1초다. 그래서 경기에서 이보다 빨리 움직이면 부정 출발로 간주한다. 이 짧은 시간 안에 출발 총성의 청각 신호가 뇌로 전달되고, 뇌가 근육을 움직이도록 지시하는 여러 신체 활동이 이뤄진다.

세계적인 선수들의 출발 반응속도는 0.1~0.2초. 최고기록은 0.110초로, 영국의 린퍼드 크리스티가 갖고 있다. 사상 최고의 스프린터 우사인 볼트의 출발반응속도가 0.178초로 신통치 않다는 게 흥미롭다. 혹자는 그가 키가 커서 소리를 뇌로 보내고, 뇌의 명령을 다리까지 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다른 선수들보다 더 길기 때문이라고 농담 삼아 말한다. 그러나 그는 출발 이후 폭발적인 스피드를 무기로 9초58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세웠다. 다른 선수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커보이는 그가 엄청난 보폭을 자랑하며 치타처럼 질주하는 모습은 경탄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김국영(26·광주광역시청)이 27일 강원 정선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7 코리아오픈국제육상경기대회 남자 100m 결승전에서 10초07에 결승선을 통과하고 나서 포효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국영 선수가 엊그제 국제육상경기에서 100m를 10초07에 주파했다. 공인 한국신기록이다. 국내 1인자인 김 선수는 2010년 10초31의 기록으로 31년 만에 한국기록을 깬 주인공이다. 이후 네차례 더 기록 경신 행진을 하다 이번에 국내 최초로 10초0대에 진입했다. 이로써 오는 8월 열리는 런던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됐다.

김 선수는 볼트의 기록과는 0.49초 차이가 난다. 중국 쑤빙톈 선수의 아시아기록 9초99와 비교해도 떨어진다. 김 선수의 기록을 거리로 환산하면 볼트와는 4.8m, 쑤빙톈과는 1m가량 차이가 난다. 하지만 7년간 기록을 0.24초나 단축한 것을 고려하면 앞으로 추가적인 기록 단축을 기대해도 좋을 법하다. 그는 한국 기록 수립 후 “9초대 진입을 새 목표로 삼았다”고 말했다.

100m 경주는 동양인보다 정강이 길이가 긴 흑인과 서양인에게 유리하다고 한다. 하지만 달리기 잘한다고 인생이 행복한 것은 아니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 스포츠의 본령도 여기에 있다. 김국영 선수의 도전을 응원한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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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024년 올림픽·패럴림픽 개최지를 오는 9월 발표한다. 세계 최대의 이벤트를 개최할 파트너를 선택하는 것은 IOC에 대단히 어려운 임무다. 파리 2024 유치위원회는 과거 몇 차례 유치 캠페인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의지와 다짐으로 이번 도전에 임하고 있다.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의 제창으로 하계올림픽이 프랑스에서 처음 개최된 지 1세기가 지났다.

개인적으로 어린 시절에 카누 선수로서 올림픽을 경험하는 행운을 누렸다. 이 경험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인생의 이정표가 되었고, 경기장을 넘어 인격 형성에도 도움이 되었다. 올림픽에 처음 참가했을 때 목격한 올림픽의 보편성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개회식 행사에서 모든 국가의 참가자들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유대감을 경험했다. 이 시기에 경험한 노력, 존중 그리고 우수함을 추구하려는 의욕 등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주었다.

IOC 위원이자 파리 2024 유치위원회 공동회장으로서 이러한 열정을 전 세계 젊은이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낀다. 2024 올림픽을 통해 친근하고 신나는 축제를 전 세계에 선보이고 싶다. 2024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 도전하고 있는 프랑스가 선정되면 전 세계는 올림픽 경기장으로 탈바꿈한 파리에서 화려한 축제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앵발리드에서부터 에펠탑, 그랑팔레에서 샹젤리제 거리까지 방문객, 선수, 자원봉사자, 관람객, 언론인, 그리고 올림픽을 체험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기억에 남는 올림픽이 될 것이다. 올림픽이 내 인생에 깊은 영향을 준 것처럼 말이다.

2024 파리 올림픽은 IOC가 필요로 하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라고 자부한다. 2024 파리 올림픽은 스포츠를 통한 교육, 건강 및 더불어 살기에 좋은 본보기가 되는 책임감 있는 올림픽이 될 것이다. 프랑스는 대규모 행사 개최에 필요한 시설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시민사회의 모든 주역들이 국가급 프로젝트를 위해 결속했다. 그간 4차례의 후보지 경험이 있는 파리와 프랑스는 더 단단해졌고, 그 어느 때보다 강한 결의로 임하고 있다. 프랑스는 역사에 남는 대회를 공유할 준비가 되어 있다.

파리는 IOC와 함께 화려하고 지속가능한 대회의 실현에 도전하면서 새로운 기준도 만들어낼 것이다. 예산 차원에서 충분히 검토된 접근을 하고 있으며 사회 및 환경 분야에서도 지속가능한 계획을 세울 것이다. 이를 통해 2024 파리 올림픽은 국제적으로 벤치마킹이 가능한 올림픽이 될 것이다. 2024 파리 올림픽은 대회의 테두리를 넘어 더 큰 연대를 하는 올림픽 정신의 새로운 장을 열 것이다. “스포츠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IOC의 근본 원칙을 재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2024 파리 올림픽은 올림픽·패럴림픽이 개최 도시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과 올림픽 정신이 전 세계에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할 것이다.

IOC 역사에 남을 결정을 앞두고 파리 2024 유치위원회는 ‘이후’와 ‘타자’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다. ‘이후’가 중요한 이유는 올림픽이 프랑스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운동에 관심을 갖게 하는 자극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타자’ 또는 ‘타자들’이 중요한 이유는 올림픽이 전 세계와 더욱 연대하고 공유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토니 에스탕게 | 파리 2024 유치위원회 공동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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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2015년 8월, 어느 방송국의 스포츠 ‘전문’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 있다. 스포츠 ‘전문’이라고 했지만, 정보와 분석을 대중적으로 재미있게 전달하는 교양 프로그램이었고 부분적으로는 ‘예능’적인 요소도 없지 않았다.

그 방송사 소속의 전문 아나운서와 여성 연예인이 진행을 맡았는데, 녹화 시작하면서 ‘마스코트’라는 말이 나왔다. 나를 포함하여 몇몇 출연자를 소개한 후 고정으로 출연하는 그 여성 연예인을 가리켜 ‘이 프로그램의 마스코트’라고 말한 것이다.

일단 녹화가 진행되다가 다른 이유로 잠깐 중단이 되길래 나는 웃으면서 “아까, 그 마스코트라는 말 요즘 안 쓰는데, 자칫 오해 받아요”라고 말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다행히 남성 아나운서는 낡고 닳은 답답한 사람은 아니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이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30대 이상 남성들은, 나를 포함하여, 누군가가, 더욱이 잘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말을 자르거나 이의를 제기하면 일단 불쾌하게 여기고 어떤 식으로든 불만을 표시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길들여져 왔고 그렇게 살아왔다. 게다가 그는 아나운서, 즉 가장 정제되고 바른말을 구사하는 직업의 소유자 아닌가. 그럼에도 불쾌해 하기는커녕 ‘왜 그러냐’고 진지하게 되물었다.

함께 출연했던 다른 사람이 서로를 어색하지 않게 설명을 잘해줬다. 여성이, 그 자신의 능력이나 위치로 소개되기보다는 외모나 성적 이미지로 소개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하여 그 사람은 짧지만 명확하게, 게다가 유머까지 섞어가면서, 정확하게 말했다. 그 이후로도 몇 차례 더 그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그 아나운서는 그 여성 연예인을, ‘미모의 젊은 여성 연예인’이 아니라 스포츠 전문 프로그램을 능숙하고도 활기차게 진행하는 동료 전문가로 존중하며 진행을 했다.

그 사람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자칫 어색하고 불편할 수도 있었던 상황에 적절히 개입하되, 어쨌든 방송 녹화는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짤막하지만 정확하게, 게다가 어느 누구도 불쾌해 하지 않을 유머를 정확하게 구사했던 그 사람. 김남훈, 레슬러 김남훈.

그는 2000년에 프로 레슬링 세계에 입문했고 수많은 경기를 치렀으며 2005년에는 연습 도중에 큰 부상을 입어 지금도 다소 불편한 자세로 걷는다. 2008년부터는 이종격투기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도 한국과 일본의 링 위에 자주 올라간다. 김남훈의 경기는 링 위에서만 벌어지지는 않는다. 링 밖에서 그는 더 많이 싸웠다. 제주도 강정, 평택 쌍용자동차, 부산 한진중공업, 진도 팽목항 등으로 그는 달려갔다.

그러나 내가, 김남훈의 사회 참여 이력을 나열하고, 그러니까 스포츠 선수들도 이렇게 사회 참여를 해야 한다고 단선적인 구호를 외치려는 게 아니다. 그것은 저마다의 선택, 저마다의 결단일 때 의미 있다. 나는 지금 김남훈의 말하는 방식, 그것이 아름답게 결빙된, 그의 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실은, 지금 나는 고등학교 체육 교과서를 분석하다가, 잠시 쉬는 중에, 소셜미디어를 하다가 김남훈의 글을 읽게 되었고, 순식간에 빠져들었다가 그가 그동안 쓴 여러 글들을 찾아 읽고 있는 참이다. 그중에 어떤 것은 몇 해 전에 읽기도 했는데, 다시 보니, 그는 말도 잘하지만 글을 더 잘 쓴다. 번지르르한 말에 그럴듯한 묘사를 잘한다는 게 아니다.

그의 말에는 땀이 배어 있고 그의 글에는 피도 묻어 있다. 살아온 과정들, 살아낸 아픔들, 살면서 겪은 비틀린 심정과 일그러진 마음이 그의 말과 글에서 배어나온다. 마치 급하게 틀어막은 수건으로 스며드는 핏자국처럼, 그의 말과 글은, 그래서 아프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멍이 들고 핏자국도 비치는, 자신의 경험들을 상당히 객관화하여 쓴다는 점이다. 게다가 독특한 블랙 유머까지 구사하기 때문에 어떤 대목에서는 <키즈 리턴>이나 <소나티네>의 기타노 다케시 감독이 연상된다. ‘마스코트’에 대한 그의 절제되었으면서도 유머 있는 설명은 이런 쓰라린 체험의 결과다.

다시, 고등학교 체육 교과서를 읽는다. ‘교과서’답게, 스포츠의 의미나 가치에 대한 전형적인 묘사들이 나온다. 인내, 희생, 협동심, 성취감 같은 말로 가득 차 있다. 프로 레슬러 김남훈의 기록이 체육 ‘교과서’에 수록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프로 레슬링이나 이종격투기에 대한 주류 스포츠 학계의 저평가도 있거니와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김남훈의 땀에 전 말과 피묻은 글은 일반적인 스포츠 교과서의 ‘인내, 협동, 인성’ 같은 교훈과 달리 처절한 밑바닥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다시, 김남훈의 글을 읽는다. 그가 치른 링 위의 혈전들이 보인다. 그와 맞싸웠던 링 위의 거친 삶들이 헉헉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쩌면 스포츠는 그런 세계일지도 모른다. 도교대 명예교수 강상중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기 자신이 세계의 일부가 아니라는 절망감, 증오, 거절당한 느낌, 허무의 심연”이 김남훈의 링이었다. 강상중은 그런 세계에서 ‘악’이 싹튼다고 했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말러의 6번 교향곡에 대하여 아도르노가 말했듯이, 그런 처절한 절망의 세계는 오히려 모든 허위의 약속을 거절하는 힘을 낳기도 한다.

나는, 격투기가 되었든 야구가 되었든 등반이 되었든,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경지에 올라간 우리의 스포츠 스타들이 ‘하면 된다’거나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식의 언론이 원하고 팬이 원하는 판에 박힌 말 대신, 저마다의 가슴에 맺혀 있는 진심으로 고통스럽고, 바로 그렇게 때문에, 진실로 위엄 있는 말들을 들려주기 원한다.

그것을 어떻게? 그렇다면 김남훈의 글을 찾아 읽기 바란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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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팀을 떠난 선수의 옛 유니폼이 다시 팔린다. 이례적인 일이다. 그것도 제 나라로 훌쩍 떠난 선수다. 미국 메이저리그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뛰고 있는, 그러니까 NC 다이노스에서 뛰는 동안 홈런 47개, 도루 40개로 KBO 사상 최초의 ‘40-40’ 대기록을 세운 에릭 테임즈 이야기다.

한국에서의 놀라운 기록으로 야구의 본향 미국에 ‘역진출’하여 큰 성과를 이루고 있는 테임즈. 그가 밀러파크의 타석에 등장할 때 울려퍼진 응원가는 1900년대 초 영국 군가를 NC 응원단이 개사한 곡이다. 그러니까 우리말로 ‘에릭~ 테임즈 날려라~’라는 응원가가 현지에서 울려 퍼졌고 테임즈와 동료들은 이를 같이 불렀다. 5년 만에 메이저리그에 복귀한 테임즈는 내셔널리그 홈런 공동 1위로 활약하고 있다. 타율은 0.405로 3위이며 출루와 장타 등 타자의 능력을 종합적으로 말해주는 OPS 기록은 전체 1위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여기까지는 훈훈한 이야기다. 조금 과장하여 말한다면 ‘코리안 드림’을 성취한 뛰어난 선수가 지체없이 야구의 최고 격전장에 가서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하고 있으니, 그가 국내에서 활약하던 시기의 다양한 제스처와 익살까지도 두 번 세 번 상기하게 된다.

그러나 지난 4월17일, 테임즈가 미국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와 가진 인터뷰가 ‘메이저리그 월드’ 유튜브 채널로 소개되면서, 국내에서는 한순간 싸늘한 반응이 나온 적 있다. 연예흥행 산업이 발달한 미국의 스포츠 채널 인터뷰답게, 테임즈는 웃음과 농담을 섞어가며 한국에서의 경기 외적인 경험들을 말했다. 진행자들이 한국에 여행 갈 때 어떤 말을 해야 하냐고 묻자 “나, 변태”라는 단어를 말하기도 했다. 사뭇 진지하게 이를 받아적자 테임즈는 곧장 “이런 말은 절대 하면 안된다”고 웃었다. 진행자들도 웃었다.

이것이 국내의 일부 언론과 팬들은 못마땅했는지, 한국 야구를 비하했다는 식으로 확대됐다. 심야에 애인과 있는데 팬이 사인을 해달라고 하는 등 사생활이 방해됐다는 얘기도 했다. 이 역시, 2016년 10월, 음주 운전으로 정규시즌 잔여경기와 포스트시즌 1경기 출장 정지 등의 징계를 받았던 사실과 맞물리면서 테임즈의 ‘자질 시비’로 확대됐다.

이런 얘기는, 반큰술 정도의 의미밖에 없다. 농담이 지나쳤다는 정도? 일부 팬들이 선수들의 일상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정도? 그 정도로 마무리될 얘기다. 그가 언급한 ‘집단 흡연 문화’도 약간의 소동 정도다. 메이저리그는 7회 종료 후 간단하게 몸을 푸는 시간이 있다. 길지 않다. 우리는 5회가 끝나면 클리닝 타임이 있다. 테임즈에 의하면 이때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모두 사라진다. 담배를 피우는 공간이 있는데, 선수들은 담배를 피우거나 이야기를 나눈다. 심판도 뛰어 들어가고 코치도 들어간다”. 선수들이, 경기 중에, 유니폼을 입은 채 단체로 모여서 흡연을 하는 것은, 흡연자의 입장에서 봐도, 볼썽사납다.

다만 그뿐이다. 이것이 한국 야구를 ‘비하’했다고 확대할 필요는 없다. 흡사 조국 전쟁에 나서는 듯한 표정으로 과묵하게 인터뷰를 하는 우리와 달리 떠들썩하게 웃어가며 ‘토크쇼’에 가깝게 인터뷰하는 미국의 미디어 문화의 차이 정도다.

바란다면, 우리 선수들도 인터뷰를 좀 더 다채롭고 활기차게 했으면 하는 것이고 팬들도 프로 선수들의 사생활을 존중해야 하며 담배도 가급적 줄였으면 하는 것이다. 테임즈는, 밀워키 유니폼을 입고 있으면서도 팔꿈치에는 자기 이름을 한글로 새긴 보호대를 차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한국 야구와 팬들에게 대한 애정을 알 수 있다.

여기 또 한 명의 선수가 있다. 프로축구 K리그 광주FC의 히카르도 바로스. 시즌 개막을 코앞에 두고 입단한 바로스는 안타깝게도 단 한 경기만 뛰고 큰 부상을 입어 4주간 재활 치료를 받았다. 그러는 중에 포르투갈 언론과 인터뷰를 했고 이것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파문이 확산됐다.

인터뷰의 핵심은, 한국 축구 문화의 고질적인 문제들과 연관되어 있다. 예컨대 바로스는 ‘합숙 문화’를 언급하면서 “프로들이지만 어린아이들처럼 다 같이 살고 있다. 심지어 코치들도 그렇다”고 말했다. 신기하다거나 함께하고 싶다거나 하는 뜻은 아니다. 이해할 수 없으며 함께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또한 바로스는 “9시에 훈련장에 들어가서 7시에 훈련을 마친다. 심지어 훈련 시작 전 이른 아침 시간에도 몇몇 선수들은 운동을 한다”며 강도 높은 장시간의 훈련 효과를 의심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일하기 위해 살고, 토요일엔 술을 마신다. 돈이 많지만, 쓸 줄 모르는 것 같다”고도 말했는데, 불과 한두 달 지내면서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러느냐 하고 핀잔을 주고 싶지만, 어떤 점에서 그는 날카로운 직관으로 한국의 스포츠 문화와 한국 사회의 일상을 정확히 짚었다고 할 수 있다.

경기 속으로 들어가면 바로스의 시선은 더욱 날카로워진다. 그의 인터뷰에 따르면, 적어도 광주FC에서 토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감독이 “틀린 말을 해도, 반박의 기회”는 없다. 감독이 지시하면 “네, 감독님”이라는 말만 해야 한다. 실수라도 하면 혼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게 되고 심지어 “부모님에게 연락하겠다”는 말도 들어야 하며 그런 순간에 어린 선수는 “마치 아이처럼” 벌벌 떨었다고 말한다. 최연장자가 숟가락을 들기 전에는 절대 먼저 밥을 먹어선 안된다는 정도는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바로스는 “그저 뛰고, 뛰고, 뛰느라 죽을 뻔”했으며 결국 첫 경기 중에 부상을 입고 말았다.

그 후 어떻게 되었는가. 구단 입장에서는, 거액을 들여 영입한 선수가 제 기량을 못 펼치고 겨우 한 경기 뛰고 부상을 입은 것이 맘에 차지 않을 수도 있다. 바로스는 겨우 50분 남짓 뛰고 끝이었다. 그런 후에는, 포르투갈 언론에 구단과 감독에 대한 ‘불만’을 여과 없이 내보였다. 이 점이 아마도 구단이 결정을 내린 원인이었을 것이다. 광주FC는 유례없이 신속하게 계약을 해지했고, 그는 포르투갈로 돌아갔다. 다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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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스포츠 경제학자인 영국의 스테판 지만스키와 미국의 앤드루 짐벌리스트는 <왜? 세계는 축구에 열광하고 미국은 야구에 열광하나>라는 책에서 축구와 야구의 역사와 발전 배경, 축구가 유럽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게 된 이유, 그리고 유독 야구가 미국에서 그토록 열성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실제로 야구는 미국의 인기 있는 스포츠 중 가장 독자적이고 미국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스포츠다.

일찍이 명실상부한 야구의 본고장 미국에 박찬호 선수가 진출해 매우 인상적인 활약상을 보여준 바 있으며 현재 추신수·류현진·박병호를 비롯한 여러 명의 한국인 선수들이 활동하면서 메이저리그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오승환·김현수 선수도 메이저리그에서는 신인에 속하지만 좋은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한국 선수만 8명이라니 가히 놀라운 결과다. 나는 이런 선수들이 선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야구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게 됐다. 역시 한국의 야구에 대한 열기는 뜨거웠고, 특히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프로야구 시범경기에 3만여명의 많은 관중이 몰렸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다만, 한국 야구에 대해 알아갈수록 ‘보는 야구’에 대한 열기에 비해 인프라 부족으로 ‘하는 야구’에 대한 열정은 채워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박찬호를 비롯, 많은 야구 선수 혹은 전문가들이 한국 야구 인프라를 발전시킬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점도 알게 됐다. 실제로 들여다봐도 녹록지 않은 한국 야구 인프라를 알고 난 후 메이저리그 선수로 뛰고 있는 8명의 선수들이 새삼 더 경이롭게 다가왔다.

한국 야구 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야구를 할 수 있는 장소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야구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정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으로 보인다. 아마추어를 포함해 한국에 야구팀이 1만개가 넘는데 경기장은 140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학교 운동장, 공원 등은 야구를 하기에는 턱없이 좁거나 위험하며, 대부분의 야외 야구장은 도심이 아닌 외곽에 있어 접근성이 떨어진다. 한국과 이웃인 일본만 해도 마을 전용 구장이 존재하는 등 야구에 대한 인프라가 제법 갖춰져 있다.

미국과 일본에 비해 부족한 인프라지만 한정된 공간에 야구를 위한 장소를 마련하는 미션을 풀기 위해 노력하던 중, 한국에 불고 있는 ‘스크린 야구’ 열풍에 관심을 갖게 됐다. 실제 야구장처럼 크지 않은 공간에서도 가상현실(VR)이라는 최신 기술을 접목해 공간의 구애 없이 야구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스크린 야구 업계에서는 첨단 기술인 인공지능(AI)을 접목하고 미국, 일본 등 다양한 리그의 팀과 경기를 해 볼 수 있는 게임 모드를 지원하는 등 다양하고 새로운 야구 경험을 제공하고자 하는 시도가 펼쳐지고 있다. 당장 야구장을 증축하는 것이 힘들다면, 스크린 야구와 같이 한정된 공간에서도 야구를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인프라 개발이 단기적으로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야구를 하고 싶은 아이들이 마음놓고 야구를 할 수 있도록 유소년 야구팀을 확대하고, 원정팀을 위한 라커룸이 없는 프로야구 경기장 시설을 개선하는 등 야구와 관련된 전반적인 인프라 개선은 반드시 필요하다.

조지 브렛 | 전 캔자스시티 로열스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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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와 타이거 우즈. 두 인물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최초의 흑인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는 학창시절 농구선수로 뛰며 학업과 공부에서 최고의 명성을 누렸다. 우즈는 ‘골프 황제’라고 불리며 천부적 재능을 발휘한 선수이지만 대학시절 학업을 따라갈 수가 없어 중도 포기했다.

최근 초·중·고교 최저학력제, 대학의 C0 이하 학점 출전금지가 학원 스포츠계의 최대 이슈로 등장했다. 이미 2012년 발효된 학교체육진흥법이 최저학력제를 명시하면서 학생선수의 학습권 유지를 강력하게 시행토록 했다. 2015년 1월에는 대학선수 가운데 학점이 C0 이하인 선수의 출전을 제한한다는 규정을 널리 공지했다.

하지만 각급 학교, 지도자, 학부모들은 경기성적에만 매달리는 관행에 얽매여 학습권 박탈 이후에 올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선 관심 밖이었다. 이들은 체육특기자로 대학 진학을 하면 일반 학생과 전혀 어울리지 못하고 시험 답안지에 ‘죄송합니다. 운동부입니다’라고 써야 하는 심적 고충, 그리고 졸업 이후 몇몇 우수선수 이외에는 인생 진로가 암울하다는 문제에 대해선 무관심하고 무책임하기 짝이 없었다. ‘운동선수들은 머리가 나쁘다’라는 오명은 분명 학습권을 박탈당한 데에서 비롯된 것인데 운동에 최선을 다한 선수들은 사회적 냉대에 억울함을 호소할 수도 없었다.

최저학력제와 C0룰. 학생선수들에게 학습권을 되찾아주자는 이 제도는 오바마와 같은 미래의 스포츠 및 국가 리더를 양성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타이거 우즈 같은 최고의 스포츠 스타를 만들어 가자는 목표에 첫발을 내딛는 최소한의 선수 보호 제도이다.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는 이 제도 시행 이전에 몇 년간 92개 회원 대학 총장들이 참여하는 논쟁과 논의를 거쳤고, 이사회와 총회를 거쳐 규정을 제정하고도 2년여 동안 사전 예고와 홍보, 교육을 줄기차게 해왔다. 시행 이후에도 리그 대회 이외의 방학 중 단일성 대회에는 한시적으로 참가를 허용하고 있다. 핵심 취지는 학습권 보장과 경기력 향상을 통해 모든 학생선수들이 스포츠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에 국가에 기여하는 사회 각 분야 지도자로 활동하게 하자는 데 있다. 공부 못하는 학생선수들을 희생양으로 삼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당장은 그동안 관행에 얽매여 새로운 변화가 불편할 수도 있다. 우리 아이만 억울하게 희생당한다고 하소연하는 학부모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당장보다는 긴 안목으로 제자, 자녀들이 학습권과 운동권을 통해 미래 진로를 스스로 잘 찾아가도록 따뜻한 애정으로 보살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앞으로의 과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학습권 보장이 어려운 종목, 수업 결손에 대한 대체방법, 학내 훈련시설 부족, 밀도 있는 훈련을 위한 과학화, 주말리그의 편익성 제고, 지도자의 처우 개선을 통한 열의도 배가, 유소년 선수 육성을 위한 보급체계 개선 등 파생되는 문제점들은 정부부처, 체육회, 종목단체, 학교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다.

이제라도 어른들은 우리의 스포츠 교육이 절름발이였다는 것을 깊이 반성하고 학습권 보장과 경기력 향상을 위한 각종 개선안을 강제가 아닌 보호라는 의식을 가지고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미래 우리의 학생선수들이 운동선수였다는 자부심으로 국가의 주춧돌이 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한종우 | 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 학사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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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2017 대한민국 체육인대회’가 열렸다. 각종 자료와 인터넷 영상으로 제공된 대회장의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고 간절하였다. 과거에 스포츠 선수들이 많이들 모여서 대회를 한다는 것은, 4열종대로 서서 누군가의 선창에 따라 오른팔을 크게 흔들면서 결의하고 맹세하는 풍경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21세기이고 게다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의 국면이다. 스포츠 단체와 선수들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 자립하여 자생할 수 있는 기회, 스포츠 용어로 쓴다면 ‘위기 뒤의 찬스’이며 가히 전방 압박을 통해 거침없이 자신들의 요구와 주장을 외칠 수 있는 상황이다.

몇몇 그러한 요구가 있었고 그런 요구들의 현실적 근거가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에 대회 현장의 분위기 또한 팽팽했다. 이를테면 이 대회를 통해 제기한 주요 사안 중 ‘체육지도자의 열악한 처우와 체육시설 개선’은 참석자들 대부분이 공감하는 현실의 문제였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사실 이 부분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라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체육계의 숙제였다. 이 대회에 참석한 심상정 후보가 “체육인들의 열악한 생활 여건과 훈련 환경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과 다를 바 없다”고 한 점, 그리고 유승민 후보가 “스포츠 강사들을 위해 정규직 채용을 의무화하는 법 개정을 통해 반드시 정규직으로 만들겠다”고 한 점, 또한 문재인 후보가 “생애주기별 맞춤형 스포츠를 확대하고 생활체육 지도자를 확대 배치하겠다”고 한 점 등은, 이제 이 문제가 체육인들이 내부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중요한 사회문제로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게 했다.

특수한 조건의 이해나 그 상황의 해결은 반드시 그 행위의 일반적 원칙에 의거하여 접근해야 한다. 그동안 체육인들의 현실 여건은 바로 그 ‘체육’이라는 함정에 갇혀 있었고 ‘선수’라는 덫에 걸려 있었다. 그들의 행위가 일반적 의미의 노동이라는 점, 따라서 노동자에게 필수적인 안전한 노동 환경과 안정적인 생활 조건 그리고 이러한 점이 미비되거나 침해되었을 때 스스로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여럿이 결사를 맺어 주장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체육이라는 육체적 함정이 강요하는 독특한 위계질서와 선수라는 정신적 덫에 의한 국위선양 등의 강요된 ‘정신 승리’가 체육인들의 자립과 자결을 막아왔다.

이 점에 근거하여 복기할 때, 이번 체육인대회의 발언과 결의 사항은, 예전처럼 4열종대로 모여 힘차게 구령을 하는 식에서는 멀찌감치 벗어났기에 다행이지만, 체육인들이 자신들의 현실적 조건을 보편적 사회 행위의 기반 위에서 객관화하고 이를 구체적인 상황에 맞게 관철시키려는 지적 탐색이 아쉬웠다.

체육인대회가 무슨 학술대회나 워크숍은 아니지만 체육 유관단체 관계자, 일선 지도자, 초등학교 스포츠강사 등 2000여명이 모인 현장이라고 한다면 왜 체육이 국민의 ‘기본권’인지를 ‘선언적’으로가 아니라 보다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천명했어야 하며 이를 위해 ‘적폐청산과 스포츠생태계 복원’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밝혔어야 한다. 결의문 낭독 이후 학자 세 명이 ‘공정한 스포츠 생태계’ ‘스포츠의 경제·사회적 가치’ ‘차기 정부 체육정책’에 대해 발표를 하였고 이로써 이 대회가 과거의 체육계 집합 문화로부터 벗어나고 있음을 증명했지만 그래도 ‘2% 부족한’ 대회였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하여 체육계가 일종의 ‘피해자 코스프레’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체육계를 들쑤신 박근혜 정부의 권력은 막강하였고 최순실의 계략은 주도면밀하였으며 김종 전 차관은 액션 그룹의 행동대장처럼 체육계 전반을 뒤흔들어 놓았다. ‘국정농단’은 곧 ‘체육농단’이었고, 체육인들의 땀방울이 표적이었고, 국민의 혈세가 먹잇감이었다.

그러나 이로써 충분한가. 이렇게 지적하고 나면 모든 것이 ‘클리어’해지는가. 그렇지 않다. 체육계의 ‘적폐’는 권력과 이인삼각 달리기를 해온 기존의 구태 인사들과 낡은 구조 안에 잠복되어 있는 상황이다. 어제는 이쪽으로 또 내일은 저쪽으로, 하면서 노회한 기술과 전략으로 늘 힘센 쪽으로 기울어지면서, 그것이 체육계의 현안 해결 방식인 양하면서, 실은 먹이사슬의 상층부에서 기득권을 누려온 세력들, 그에 대한 단호한 반성과 개혁적 단절이 없고서는 각종 구호와 결의는 선언으로 그칠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장밋빛 청사진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냉철한 평가다. 그동안 체육계를 지배해온 구조와 인사와 예산과 정책들, 그리고 체육인들의 노동 조건, 고용 관계, 훈련 시설 그리고 무엇보다 억압적인 위계 문화 등을 전면적으로 살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체육계가 스스로를 무슨 독특한 문화가 존재하는 별개의 영역인 양 생각하는 기존의 인식이다. 이 사회의 평균적인 상식이나 규범에서 벗어나 있긴 하지만 그것은 독립적이거나 주체적인 문화라기보다는 상식 이하의 폭력적 위계가 엄연하고 일반 규범의 수준에 미달하는 폐쇄적인 관행이 작동한다. 이 ‘특수한 상황’을 하나의 독립적인 문화라고 강조하는 것, 다시 말해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것, 그것이 문제다. 여기에 권력이 작동하면 온갖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체육계가 사회 일반의 상식과 규범을 빨리 내면화하고 구조화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짧게 보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가 체육계 자정을 위한 절호의 기회다. 길게 보면 ‘국위선양 금메달’이 아니라 체육이 ‘국민 기본권’으로 요구되는 현황이 또한 중요하다. 유력 후보들 모두 낡은 인사와 구조를 대대적으로 개혁하겠다는 체육계를 응원한다. ‘금메달 따서 국위선양하겠다’는 얘기에 호응하는 후보는 현재로서는 거의 없다. 두 번 다시 이런 기회가 없다. 자정 없이 자결 없고 자결 없이 자립 없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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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말 막을 내린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우리 선수단이 빙상 등 다양한 종목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종합 2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 특히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태극 마크를 단 귀화 선수들이 대거 출전해 눈길을 끌었다. 평창 올림픽을 위해서 이중 국적을 포함해 지금까지 결정된 귀화 선수와 추가로 귀화 절차를 밟고 있는 선수를 포함하면 무려 20여명이 된다고 한다. 평창 올림픽에 출전하는 우리 선수단이 130명 정도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귀화 선수가 우리 선수단의 15% 이상을 채우게 되는 셈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의 세계 홍보를 위해 열린 ‘평창아트드림캠프 통합발표회’.

이처럼 귀화 선수들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 보니, 단지 메달을 위한 외국인 귀화가 절실하게 필요한가에 대한 강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귀화 선수는 5년 이상의 국내 거주 요건을 필요로 하는 ‘일반 귀화’가 아닌 ‘특별 귀화’라는 손쉬운 귀화를 통해 쉽게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다문화·다민족·다인종 시대를 살면서 국가 대표팀에서 뛰는 선수가 100% 한국인이어야 한다고 강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귀화 선수를 통해 국내 선수들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고, 나아가 한국 스포츠의 강세로 이어질 수 있다는 등의 긍정적인 측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우리 역시 외국으로 귀화해 그 나라의 대표팀이 되고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도 있고, 외국의 경우도 귀화 선수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단지 올림픽 메달만을 위해 아무런 관계없는 외국 선수를 급조하여 ‘국내산’으로 둔갑시키고, 이들이 우승을 하면 우리의 메달 개수는 올라가겠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값진 메달일까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글로벌한 시대에 배타적 순혈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망각한 채 마냥 ‘금메달 지상주의’ ‘성적 지상주의’ ‘서열주의’로 치우쳐서는 안될 것이다.

김은경 | 주부·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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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을 앞두고 프로야구 각 구단은 미국의 애리조나와 일본의 오키나와로 전지훈련을 다녀왔다. 예년에 비해 보름쯤 늦게, 2월 초에 일제히 다녀왔다. 그동안 한국프로야구선수협의회가 지속적으로 요구한 ‘비시즌 보장’ 덕분이다.

프로야구는 초봄에 시작해 늦가을까지 지속된다. 혹서기에 잠시 쉬기도 하고 안타깝게도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한 팀은 일찍 시즌을 마무리하게 되지만, 어쨌든 세 계절을 호텔을 전전하며 경기를 치르는 ‘고난의 행군’이다. 가족과도 자주 떨어져 지내고 개인적인 활동이나 생각의 시간도 많이 갖기 어렵다. 시즌이 끝나면 연봉 협상이나 팀 이동 등으로 연말을 보낸 후에 며칠 쉬었다가 곧장 전지훈련을 가게 되고, 돌아와서는 시범경기 치르고 나면 또다시 기나긴 리그를 뛰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시작된 비시즌 보장은 선수들에게, 모두가 성인이고 몇몇 선수는 중년인 이들에게 그리고 또 무엇보다 그 가족들에게 적절한 수준의 휴식과 마음의 여유를 제공하기 위한 요구였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이렇게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면, 초반에 찰과상들이 있기 마련이다. 고액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야 가족과 해외여행도 하고 개인 트레이너를 초빙하여 일정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지만 무명선수들은 이 비시즌 동안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막막하고 혼자 훈련을 하려 해도 돈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 문제대로 구체적인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 방법이 생소하고 그 아이디어가 부족하다 해서 비시즌 보장이라는 원칙이 흔들려서는 안된다. 일부 지도자들은 ‘애들은 흐트러지고 몸이 망가진다’고 걱정을 한다. 이 또한 옛날 방식이다. 모두가 성인이고 모두가 프로다. 감독의 눈앞에서 다 큰 프로선수들이 아침 일찍 ‘집합’하고 ‘기계’처럼 훈련해야 한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 무엇보다 가족과 함께 여행하고 대화하고 생활하는 일상성이 소중하다. 바라건대 시즌 중에도 이런 일상성은 선수들이 자주 접해야 한다.

전지훈련도 오히려 효율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게 중평이다. 예년과 달리 짧은 시간이었으므로 ‘몸 만들기’보다는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훈련이 많았다. kt의 김진욱 감독은 “이번 캠프는 팀 훈련 이외에 자발적인 개인 훈련 및 코칭스태프와 소통하는 시간을 많이 부여하며, 선수들 스스로 야구를 새롭게 바라보고, 생각하는 야구를 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고 했다. 부족한 기량이나 실전 감각은 시범경기에서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작지만 소중한,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하는 것이다.

시야를 넓혀 보자. 전지훈련은 곧 합숙 훈련인데, 이 ‘합숙’ 과정에서 꽤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폭력이나 성폭력 같은 끔찍한 범죄만이 아니라 ‘일상의 서열화’라고 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권력놀이가 작동한다. 선배들의 운동장비를 정돈하고 빨래하고 방 청소를 하는 게 훈련 아닌 훈련이다.

스태프가 부족해서 서로 힘을 모아 하는 풍경도 있겠지만 이를 ‘팀워크’라고 강요하는 문화가 오히려 지배적이다. 폭력이나 성폭력은 누구나 그것이 범죄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문제는 위계서열의 권력이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합숙소 문화다. 2군 소속 선수들에게는 외박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 팀도 있는데, 이 정도라면 외박뿐만 아니라, 그 나날의 생활이 얼마나 강압적일지 불을 보듯 뻔하다. 대다수 지도자와 일부 선수들은 이를 일종의 훈련 또는 팀워크라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생활 문화라고, 일반인은 이해하기 어려운 특수한 리듬이라고, 그러니 일반 사회인들의 생활 규범을 프로선수의 합숙소라는 특수한 조건에 대입하지 말라고 항변한다. 이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최근 들어 여자농구 쪽에서 단계적으로 합숙소를 폐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삼성생명이나 국민은행은 적어도 주부 선수들에 한하여 자유로운 출퇴근을 보장하려고 한다. ‘주부’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해야 되지만 그렇지 않은 미혼의 여자선수들에게도 시행되어야 한다. ‘주부’니까 집에 가서 육아를 하는 것은 실로 막중한 일이지만, 동시에 성인 여자들이 이 사회의 평균적인 삶과 문화를 누리면서 각자의 지극히 내밀한 시간과 사적인 공간의 삶을 누려야 하는 것 또한 소중한 일이다. 이 사회의 누구나 일과 후에는 그렇게 살고 있다. 약간의 찰과상이 있더라도, 확대해야 할 일이지 축소할 일은 결코 아니다.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가 올해부터 실시하기로 한 ‘C+룰’도 마찬가지다. 직전 2개 학기 평점 평균 C+ 이상 취득한 학생 선수만 협의회와 관련된 대회에 출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공부하는 학생 선수를 지향하고 학생 선수의 학습권을 보장하려는 시도다. 당장 지난해 1·2학기 성적 평균이 C+ 미만이면 올해 대회에 뛸 수 없다. 협의회의 조사에 따르면 102명이 학점 미달로 1학기 대학리그에 출전할 수 없다. 해당 학교 운동부와 학부모 및 해당 선수들이 답답한 심정에 항의를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유관 기관이 적절한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결코 퇴행적인 방법은 안된다. 잔여 학기에 수업에 참여하여 지난 학기의 성적을 스스로 보완하는 등 전향적인 방법이어야 한다.

비시즌 보장, 합숙소 폐지, 학점 이수 등은 개별적인 사안이 아니라 운동 기계처럼 길러지고 그 권력서열의 틈에서 ‘살아남아야만’ 하는 선수들의 인간적 삶을 위한 전향적인 시도다. 실제 적용이나 운영에서 일부 조정이 있을 수는 있어도 결코 퇴행해서는 안된다. 특히 지도자들이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뤘으면 어디 가서도 당당해야 할 텐데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주눅 들었던 경험은 없는가. 타인의 신체를 학대하고 자신의 영혼을 파괴하며 살아온 세월, 이제는 끝내야 하지 않는가.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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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일각의 극악한 악행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탄핵심판이 합리적인 논거에 따라 진행된다고 할 때, 곧 미증유의 조기 대선이 황사보다 일찍 들이닥칠 것이다. 평소의 수순이라면 여러 후보자들의 정견이 수개월에 걸쳐 검증되고 두 달여의 인수위 과정을 거쳐 새 정부가 출범하겠지만 올해의 봄은 그 모든 과정이 압축되어 전개된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이 있지만 오히려 인수위 과정조차 없는 지금의 상황은 어떤 점에서는 그 말이 뒤집힐 공산도 크다.

차기 정권이 10년 가까운 보수 정권의 적폐, 특히 박근혜 정권 이후 그야말로 국정 파탄의 지경에 처한 각 분야의 참담한 상황을 허겁지겁 진단하고 단기적인 처방을 내리다가 그만 집권 초기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다면 ‘예기치 못한 기회가 곧 장기적인 위기’로 고착될 수도 있다.

스포츠 분야는 그 상황의 급박함과 정책 방향의 난삽함이 이중나선으로 얽혀 뒤틀릴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심각하다. 다음의 세 가지 점에서 그러하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먼저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은 무엇보다 스포츠 분야에서 파괴적으로 자행되었다. ‘박근혜-최순실-김종’으로 이어지는 커넥션은 중요 스포츠 정책을 뒤엉키게 하였고 그 행정의 맥락을 교란시켰다. 물론 독자적인 운영 방식을 통하여 일정한 자생성과 독립성을 유지한 각 종목의 프로 리그까지는 홍역을 치르지 않았지만 거시적인 정책 차원에서 보면 스포츠계 전반이 국정농단의 여파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관료주의와 체육회의 위계서열화가 인천 아시안게임과 평창 올림픽이라는 계기적 상황과 맞물리고 여기에 음험한 시도를 한 패당들의 교묘한 술책이 끼어들면서, 스포츠계는 파행의 난국에 빠져버렸다. 오랫동안 스포츠계 전반에 드리워진 일그러진 관료주의의 바탕 위에 전개된 농단의 파장은 쉽게 개선되기 어렵다. 문체부의 다른 주요 영역, 즉 문화 정책의 ‘블랙리스트’ 파문에 대해서는 문화예술계 전반이 강력한 비판과 생산적 토론을 전개하고 있지만 위계서열에 익숙한 탓인지 스포츠계는 당연히 주장할 만한 비판이나 의미 있는 개혁 방향 제시도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과감한 진단과 처방이 시급한데, 여야의 각 주자는 아직 이렇다 할 처방전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음으로 평창 동계올림픽이 이제는 1년도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올림픽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라는 점이 금세기 들어 세계 곳곳에서 확인되었다. 작년에 올림픽을 치른 브라질의 대도시 리우는 무리한 개발과 신축으로 인하여 재정위기를 겪고 있다.

평창 올림픽은 더욱이 애초의 무리한 스케일에 더하여 국정농단의 표적까지 됨으로써 단순히 강원도라는 지자체 차원을 넘어서 국가적 차원의 재정 압박이라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한 여야 각 주자의 의견 또한 아직은 올림픽을 통한 지역 경제 발전이라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이제까지의 몇 차례 대선에서 확인되었듯이, 국정의 중요 과제에서 스포츠의 순위가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이다. 스포츠는 육성해야 할 ‘하나의 분야’이거나 심지어 ‘정권 홍보의 수단’으로 그쳤을 뿐 국가적 차원의 정책 우선순위가 되지는 못했다. 전두환 정권 때의 ‘88올림픽’도 독재 정권의 안정적인 권력 이양이라는 목표가 노골적으로 전개된 프로젝트였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점에서 여태 유력 주자들의 의견 표명이 눈에 띄지 않는 점도 스포츠가 비중 있는 ‘국가 어젠다’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강조하건대 바로 이러한 생각의 의미 있는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돌이켜 보면 한국 스포츠의 ‘근대 프로젝트’는 ‘국민 만들기’와 ‘동원된 신체’라는 성격이 짙었다. 스포츠를 통하여 개인의 욕망을 발현하고 이를 통하여 개별 도시나 계층의 자연스러운 연대가 진행된 서구의 스포츠문화와는 결이 달랐다. 구한말 대한제국의 교육 지침이나 일제의 ‘황국신민’ 정책, 그리고 이러한 ‘국민동원’ 방식을 전면화한 박정희 정권의 ‘체육 정책’에서, 사람의 신체는 통제와 동원의 대상이었다.

88올림픽은 물론이고 다양한 사회적 열망의 집합적 표현이 두드러졌던 2002 월드컵의 ‘광장문화’ 역시 ‘하나 되는 대~한민국’으로 귀결되었다. 많은 변화와 시도들이 있었지만 여전히 이 구습이 우리의 스포츠를 통제하고 있는 지배적 정념이다.

이를 극복하는 것은 단순히 스포츠계 내부의 과제가 아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신체적 활동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것이며 이는 국가와 시민의 관계를 어떻게 재설정하느냐 하는 중요한 사회적 판단이다. 과도한 경쟁, 비단 타인과의 경쟁만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의 신체를 혹사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자기 학대의 시대’를 벗어나는 것, 그것의 출발점이 스포츠다.

성과 업적 중심의 경쟁에서 벗어나 시민들이 저마다의 경제적, 신체적 조건 속에서 풍요로운 활동을 펼쳐나가는 것, 그것을 통하여 시민들이 감시와 동원의 신체에서 벗어나 몸의 활력과 사회적 해방을 쾌활하게 체험하게 하는 것,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20세기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단순히 쾌적하게 경기를 관람하거나 생활 주변에서 스포츠를 쉽게 할 수 있다는 정도를 넘어서서, 국가가 시민들의 신체를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것은 충분히 국정 지표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이 점을 날카롭게 인식하고 비중 있는 국정 과제로 인식하는 주자를 보고 싶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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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광장의 촛불이 한국 민주주의를 다시 살리고 있다. 매일 드러나는 어처구니없는 국정농단은 분노를 넘어선 지 오래며, 그동안 궁금했던 국가사업의 파행 이유도 설명해 주고 있다. 동계올림픽 준비과정에 대한 궁금증도 이제야 대략 풀려가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권유한 도시 간 국내 시설을 활용한 분산 개최, 일본과 북한의 동계시설 연계와 공동 개최를 통한 세계적 주목의 기회 등 그동안 진행되던 논의가 더 진전되지 못했다.

여러 가지 아쉬움이 남지만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작업과 함께 동계올림픽을 위한 준비도 해야 한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지역의 재생, 재개발뿐만 아니라 도시가 세계적으로 재평가받는 계기가 됐다. 올림픽 이후 방문하는 관광객은 두 배로 증가했다(나고야학원대학 종합연구소, 2012). 평창을 비롯한 강원도 역시 이번을 계기로 세계에 강원도 관광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부도 지방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한 사업에 개최지 세 곳인 평창·강릉·정선을 포함시켜 지원하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대사인 피겨여왕 김연아(왼쪽에서 세번째)가 9일 강원도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G-1년 기념행사에서 성화봉을 성화주자 유니폼을 입은 상대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날 처음 공개된 성화봉은 전통 백자에서 모티브를 얻은 유려한 라인에 눈과 얼음을 상징하는 흰색을 사용했다. 손잡이에는 사람들이 손을 맞잡은 디자인 패턴을 활용해 전 세계인들이 성화봉송의 여정을 함께한다는 의미도 함축했다. 강릉 _ 사진공동취재단

올림픽을 계기로 강원 관광이 활성화되려면 오히려 서울의 역할이 중요하다. 2000년 시드니가 올림픽을 개최할 때 수도인 캔버라는 ACT 2000 위원회를 구성해 올림픽을 지원하고 관광효과를 높이기 위한 연계 마케팅을 추진했다. 제2영동고속도로와 고속열차 신설은 강원도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줄 것이다. 특히 서울 청량리∼평창 진부역은 58분 정도로 단축되면서, 서울은 동계올림픽의 배후도시가 될 것이다. 배후도시는 국제화된 관광 매력과 편의시설을 갖추고 올림픽 개최도시를 공간적·기능적·개방적 차원에서 지지·지원함으로써 올림픽 선수단, 관계자 및 관광객의 관광 욕구를 보완해줄 수 있는 도시를 의미한다. 배후도시로서 서울은 두 가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먼저, 플랫폼 역할로서 관광객과 시민에게 올림픽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직접 방문하도록 붐업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올림픽 관광 협력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공동 마케팅을 실시할 필요가 있으며, 미리 보는 올림픽 미니-베뉴(mini-venue) 조성과 동계스포츠 체험 이벤트 및 서울축제를 연계하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서울로 7017(서울역고가 보행로) 등을 활용한 관광상품도 개발해야 한다. 올림픽 관광지도와 정보 제공, 서울패스에 대한 올림픽 관람자 할인혜택 등 실질적인 정책도 시행해야 한다.

두 번째는 관광의 개방성을 높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장벽 없는 관광의 선진화를 위해 인증제도, 숙박, 정보 제공, 저상버스 등을 확대하고, 장애인을 포함한 ‘모두를 위한 관광’을 위해 인프라와 문화를 혁신시켜야 한다. 해외 청소년과 소외계층의 올림픽 경기 관람을 지원하면서 서울 관광을 연계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해외 장애인과 청소년에게 장애인증과 청소년증을 발급해 주차와 입장 혜택을 주기 위한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1년여 남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어떻게 치러내고, 목표로 했던 성과를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가 과제이다. 강원도의 이벤트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이벤트로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지역 간 관계와 연계가 중요하다. 특히 서울은 메가 배후도시로서 올림픽을 지원해야 한다. 협력과 연계 관광정책을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의 관광성과를 적극 견인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전략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이훈 |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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