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캐나다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월드컵에서 잉글랜드 대표팀이 3위를 차지했다. 역대 최고 성적이었다. 잉글랜드축구협회(FA)가 트위터에 대표팀의 귀국을 환영하며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의 라이오니스(잉글랜드 여자대표팀의 애칭 ‘암사자’)들이 오늘 엄마, 배우자, 딸들로 돌아간다.” 성차별적 표현이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FA는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선수들이 가족과 재회하는 아름다운 순간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고 해명했다.

2004년 FIFA 회장이던 제프 블라터는 “여자축구 선수들에게 몸에 착 달라붙는 유니폼을 입혀야 한다”고 했다가 호된 비판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렌나르트 요한손 당시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이 “기업들은 빗속에서 땀 흘리며 뛰는, 사랑스러운 여자선수들의 모습을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런 게 팔린다”고 말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블라터도, 요한손도 더 이상은 ‘회장님’이 아니다. 여자축구의 위상도 달라졌다.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주는 발롱도르가 여자 부문을 신설했을 정도이다. 섹시즘도 사라졌을까?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노르웨이 출신 아다 헤게르베르그(23·리옹)가 첫 여성 수상자의 영예를 안았다. 연평균 35골을 넣는 세계 최고 골잡이는 프랑스 DJ 마르탱 솔베이그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트워크(twerk·몸을 낮추고 엉덩이를 흔들며 추는 춤) 출 수 있으세요?” 헤게르베르그는 단호하게 “아니요(No)”한 뒤 몸을 돌렸다. 이내 자리로 돌아와 가벼운 춤을 추긴 했지만, 역사적 순간은 훼손되었다.

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에서 영국에 사는 인도계 소녀 제스는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축구선수를 꿈꾼다. 그의 방에는 데이비드 베컴의 브로마이드가 붙어 있다. 제스는 베컴이 차듯 절묘한 각도의 슛을 만들어내기를 갈망한다. 지금 이 순간, 지구촌의 많은 소녀들이 헤게르베르그 사진을 보며 꿈을 키우고 있을 터다. 그들에게 몸에 달라붙는 유니폼이나 섹시한 엉덩이춤을 강요하지 말라. 그들은 헤게르베르그처럼 멋진 슈팅을 하고 싶을 뿐이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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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헤딩’을 하는 게 늘 두려웠다. 성인남자 평균 신장에 조금 못 미치고 일찍 안경까지 쓰는 바람에, 마음 같아서는 98 프랑스 월드컵 때 ‘헤딩’으로만 브라질 골문을 두 번이나 흔들어버린 지단처럼 해보고 싶었지만, 동네축구에서는 조금 한가로운 좌우 외곽에서 ‘센터링’을 올리는 데 집중했다.

그럼에도, 나의 ‘센터링’이 멋진 포물선을 그리며 골문으로 집중되고 동료 선수가 온몸을 뒤틀어 ‘헤딩 슛’을 터트리는 광경! 아름다웠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 용어들은 ‘헤더’와 ‘크로스’로 변했다. 머리로 패스를 하거나 슛을 하는 것은 이제 헤딩(heading)이 아니라 헤더(header)다. 오랫동안 사용되던 센터링이나 핸들링도 ‘잘못된 일본식 영어’(재플리시)로 간주되어 크로스나 핸드볼 파울로 변했다. 문법적으로 좀 더 예민한 사람은 헤딩 패스 대신 헤디드(headed) 패스가 맞다고 강조한다. 솔직히 ‘느낌적 느낌’으로는 헤더가 헤딩 같지는 않다. ‘자장면’은 ‘짜장면’이어야 하는 것처럼, 헤딩은 거칠고 메마른 운동장에서 온몸을 던지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한다. 반면 헤더는 세련된 기술처럼 들린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럼에도 가능하다면 용어의 ‘새로 고침’은 앞으로도 꾸준히 진행되어야 한다. ‘오렌지’를 ‘어륀지’라고 부르자는 ‘발음 사대주의’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하고 무시해도 좋지만, 스포츠는 일정한 제도와 규칙의 ‘세계적 약속’이다. 세대 간의 언어 감각도 다를 수 있다. 컴퓨터로 축구 게임을 하며 유럽 축구에 몰두한 세대가 벌써 30~40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에게 ‘헤더’나 ‘크로스’는 낯선 용어가 아니다.

각 종목의 전술 변화에 의해 새 용어가 등장하기도 한다. 요즘 축구 중계에서 흔히 듣는 용어가 ‘빌드업’이다.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차범근 해설위원은 ‘공격 작업’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한동안 이 용어가 정착되는 듯하다가 요즘은 ‘빌드업’으로 통일되고 있다. 이는 ‘공격 작업’의 원어가 ‘빌드업’에 가까운 면도 있지만, 몇 해 사이에 펩 과르디올라와 위르겐 클롭으로 대표되는 ‘점유율과 빌드업’의 전술 관계에 의하여 ‘빌드업’이 의미 있는 용어로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골키퍼를 포함한 최후방에서 골을 넣을 수 있는 최전방까지 의미 있게 연결되는 복잡한 공격 과정을 가리킬 때, ‘빌드업’을 쓰는 게 맞다.

11월26일, 한국체육기자연맹이 주관한 ‘바람직한 스포츠 용어 정착을 위한 스포츠미디어 포럼’에서도 이와 관련한 주장이 의미 있게 제기되었다. ‘파이팅’ 같은 말이 일제 군국주의의 잔재라는 점을 들어 ‘아자’ ‘힘내자’ 같은 말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시합’ ‘계주’ ‘기라성’ 같은 일본식 조어도 ‘경기’ ‘이어달리기’ ‘쟁쟁한’ 등으로 바꾸자는 의견이다.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고쳐 쓸 수 있다면 고쳐야 한다.

그러나 ‘파이팅’이 비록 일제 시대 용어이기는 해도, 해방 이후 수십 년 동안 그 말에 다른 의미를 충분히 덧붙여 집합적 감수성을 녹아낸 것이라면 그 나름의 무게가 있다. 문법으로도 틀리다고 하면, 영어 쓰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이런 의미로 ‘파이팅’을 외친다고 하면 될 일이다. 선수들이나 일반 회사에서나 ‘파이팅’을 ‘적군 섬멸’의 뜻으로 쓰는 사람은 없다. 이를 ‘아자’ 혹은 ‘으랏차차’라고 부르면 좋겠으나 언어 행위는 시간의 적층 위에서 생성/공유되는 것이다.

‘기라성’처럼 단지 밤하늘의 수많은 별을 뜻하는 ‘일본식 조어’라는 의미에서 바꿔야 한다면, 근대 이후 우리 학문과 일상에 녹아 있는 거의 모든 생활 언어를 조선시대로 돌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면 ‘고유한 우리말’ 중의 어떤 것은 생활 조건의 측면에서 ‘농업 봉건’의 산물일 가능성이 더 크다. 일제강점기가 아니더라도 사멸했거나 변화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 제기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끝없이 이의를 제기하고, 토론과 활용을 통해, 자연스럽게 좀 더 알맞은 용어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날의 심포지엄과 직접적 관련은 없지만, 일제 잔재의 청산은 ‘일본식 조어’를 개선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랜 식민 피지배와 그 이후의 독재 과정에서 내면화된 사회의 작동 방식 자체를 문제 삼는 일이다. 약육강식과 기회주의가 거의 유일한 생존 방식 아니었던가. 이 점에 있어 스포츠는 전혀 자유롭지 않다. 폭력과 위계질서가 내면화된 일상 말이다.

내친김에 덧붙이자면, 천편일률적인 묘사나 동시대의 감수성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기사가 일본식 조어보다 더 문제적이다.

‘자로 잰 듯한 패스’나 ‘전광석화 같은 중거리슛’은 복잡하고 미묘한 경기를 딱 그 정도로만 보았음을 말해주며 ‘국위선양’이나 ‘태극전사’ 혹은 ‘맏형 리더십’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여전히 스포츠 미디어가 ‘독재의 잔재’인 국가주의와 가족주의에 머물러 있음을 말해준다. ‘비치발리볼’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라. ‘섹시 화끈한 비치발리볼 경기’ ‘뜨겁게 달군 노출 패션 비치 발리볼’ ‘눈요기 여름스포츠 비치발리볼’ 같은 제목의 기사들이 줄줄이 나온다. 전반적으로 보면, 급변하는 인터넷 언론 환경 때문인지, 스포츠계의 폐부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탐사 기사나 심층 진단 시리즈가 줄고 개인 블로그를 쓰는 듯한 ‘팬심 기사’가 넘쳐나는 것도 큰 문제다.

어쩌면 문제의 핵심은, 오래전에 우리를 강점했던 일본이나 그 잔재 용어들이 아닐 수도 있다. 21세기의 중엽을 향해가는 지금에도, 일제와 독재가 강제한 생존 조건을 벗어나지 못한 스포츠 현실에서 국가주의적, 남성적, 신체적 우월성의 신화에 갇혀 틀에 박힌 시선과 진부한 표현을 반복하고 있는 우리 스포츠언론의 현 상태가 더 문제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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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상종목에서 국가대표를 지낸 한 선수는 지난여름을 해외에서 보냈다. 폭염을 피해 출국한 게 아니다. 앞서 그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의 개혁을 촉구하는 움직임에 참여했다.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전 연맹 부회장)로 대표되는 기득권세력의 시선이 싸늘해졌다. 결국 홀로 외국으로 떠났다. 개인훈련을 하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서야 귀국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여자컬링 전 국가대표 ‘팀킴’이 김경두 전 대한컬링경기연맹 부회장과 그의 딸·사위인 김민정·장반석 감독으로부터 폭언과 사생활 통제, 비인격적 대우에 시달렸다고 폭로했다. ‘겨울동화’에 열광하던 대중은 충격에 빠졌다. 컬링계 내부를 아는 이들의 반응은 달랐다. 터질 게 터졌을 뿐이라고 했다.

컬링 전 여자 국가대표팀인 김경애 김영미 김선영 김은정 김초희(사진 왼쪽부터) 가 1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최근 불거진 논란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갖고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이상훈 기자

팀킴은 “가족이라 칭하는 틀 안에서 억압, 부당함, 부조리에 불안해했고 무력감과 좌절감 속에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격려금과 포상금을 제대로 배분받지 못했으며, 팬들로부터 받은 선물과 편지도 뜯겨진 채로 받았다고 했다. 김·장 감독 부부 아들의 어린이집 행사에 동원되고, 스킵(주장) 김은정 선수의 결혼을 이유로 포지션 변경을 강요당했다고도 했다. 실체적 진실은 19일 시작된 문화체육관광부·경상북도·대한체육회 합동감사에서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캐나다 출신 피터 갤런트 전 코치도 팀킴을 100% 지지한다고 밝힌 걸 보면 팀킴 주장이 사실일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김 전 부회장 측은 “감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는 입장이다.

<스포츠, 인권을 만나다>의 공동저자인 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상당수가 인지하고 있던 일인데도, 결국 피해 당사자들이 입을 열어야 했다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번 사건이 한국 스포츠인권의 미래를 가름할 것으로 봤다.

“지도자에게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세 가지 선택 중 하나를 하게 됩니다. 운동을 그만두는 유형이 있고, 남아서 버티며 똑같은 괴물이 되어가는 유형도 있습니다. 나머지가 팀킴처럼 내부고발하는 유형인데, 드물고 귀한 경우지요. 만약 이번 폭로가 그대로 묻힌다면 ‘팀킴을 봐라’ 이렇게 될 수 있어요. 팀킴 같은 국제적 스타플레이어가 나서도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면, 선수들의 무기력증은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소수가 오랜 기간 해당 종목을 일궜다는 ‘개척자 프레임’으로 독재적 전횡을 하는 사례가 다른 종목에도 많습니다. 이번 사태는 한국 스포츠의 낡은 악습이 사라지느냐, ‘학습된 무기력증’의 심화로 이어지느냐 갈림길이 될 겁니다. 기성 스포츠계가 결단을 내려 제대로 처리하고, 시민들도 계속 주목했으면 합니다.”

서지현 검사. 정지윤 기자

검찰의 내부고발자 서지현 검사가 최근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안태근 전 검사장의 성추행을 폭로함으로써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의 본격 시발점이 된 서 검사는 검찰이 변한 게 없다고 했다. “검찰에서 제게 주는 메시지는 명확해요. 우리는 너를 괴롭힌 사람을 잘 대해주고 있다. 서지현을 다시 검사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우리 조직은 아무 문제가 없다….”

지난 17일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폭로 이후) 대외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누군가 말했다. ‘이제 가만히 있어라. 그만하면 됐지 않으냐.’ 나는 집 밖에 거의 나가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더 가만히 있는가? 가해자에 대한 1심 판결조차 나지 않았다. 상정된 미투 관련 법안은 하나도 통과가 안됐다 한다. 뭐가 그만하면 됐단 말인가?”

곳곳에 ‘가만히 있으라’투성이다. 검찰에선 서지현을 보라, 고 한다. 서지현을 배제하고, 대신 서지현을 공격한 이들을 껴안으면서. 팀킴은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김경두 전 부회장, 김민정 감독과 올림픽 전부터 대화하려고 했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너희가 얼마나 많은 혜택을 받았는지 아느냐’는 말뿐이었다. 얘기를 하려는 선수를 배제하려고 했다.”

KBS 드라마 <죽어도 좋아>의 한 장면이다. 백진상 팀장(강지환)은 전 직원이 모인 자리에서 강인한 사장(인교진)에게 저항한다. 직원들은 침묵한다. 강인한은 “영웅 행세하면 박수라도 쳐줄 줄 알았느냐”며 비웃는다. 백진상은 “뭐라도 소리를 내. 벨소리든 발소리든. 내 말에 동의는 하지만 겁은 나고, 그렇지만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의사표시를 하라”고 외친다. 하나둘씩 휴대전화 알람 소리가 들리더니 박수가 터진다.

팀킴과 서지현의 입을 막는다 해도 또 다른 이들의 알람이 울려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고립되기 전에, 영웅 행세한다는 비웃음을 듣기 전에 법과 제도와 시스템이 먼저 알람을 울려주기 바란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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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도모할 때, 그 일의 가치와 명분이 우선 중요하지만, 과연 그 일을 실현해 낼 수 있는 현실적 역량이 충분한가, 이 점 또한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지난 10여년 동안 아쉬웠던 것은, 한국 스포츠문화의 전반적인 개혁, 특히 학교 체육의 건강한 발전을 위한 여러 모임이나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정작 책임 있는 당국의 핵심에서는 이에 관하여 무지하거나 무관심했다는 점이다. 그나마 어떤 사건에 의하여 그들로서도 불가피하게 참석하게 될 때조차 대단히 방어적이었다. 나름의 노력과 시간들은 또 하나의 ‘잃어버린 10년’이 되고 말았다. 이른바 ‘국위선양’의 깃발만이 펄럭이는 분위기 속에서 스포츠문화의 폐습들은 더 많이 생산되고 확산되어 어느덧 어디서부터 누가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적폐’가 되고 말았다.

그랬는데, 이제는 조금 기대를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다. 범위를 학교 체육 정상화로 좁혀 보면, 적폐에 따른 비극적 사건들과 파탄의 양상들을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잠시 검색해보니 최근까지도 현장 지도자들의 폭행 및 성폭력은 지속되고 있다. 체육교과 자체가 유명무실해진 상태고 그런 대로 유지되는 교과의 실제 내용, 그러니까 체육이 무엇이며 몸이 무엇이며 건강한 신체 활동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여전히 20세기의 개발주의식 신체관이 지배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런 상황에서 최근 ‘학교체육진흥회’가 출범했다. 지난 10월26일 창립 총회를 가졌으며 연말까지 조직 구성을 완료해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고 한다. 그 면면이 중요하다. 창립 총회에는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안민석 국회 문체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이들의 관심과 영향력 아래에 교육부 추천 2명, 시·도교육청 추천 3명, 문체부(대한체육회 포함) 추천 3명, 외부 2명 등의 실무적 이사진이 구성된다.

위 언급한 인사들은 그간 한국의 스포츠, 좁게는 학교의 체육문화에 대해 지속적 ‘관심’을 보여왔다. 엘리트 체육 위주의 성적 지상주의가 아니라 보다 많은 학생들의, 보다 다양한 관점의, 보다 일상화된 건강한 체육 문화에 대해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

유은혜 장관은 “학생·학부모·학교 관계자들의 다양한 요구 충족을 통해 참여 학생들의 교육적 경험을 확대하는 등 양질의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정권에서 ‘참 나쁜 사람’으로 찍혀 고초를 겪었던 노태강 차관은 체육국장 시절부터 학교 체육의 ‘정상화’에 관심이 많았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국위선양’ 일변도의 체육정책에 이의를 제기했던 안민석 의원은 말할 것도 없고, 교육계를 대표하는 조희연 교육감 역시 억압과 통제에 따른 훈육적 신체관 대신 자율적이고 다양한 신체의 자유와 문화를 강조해온 학자였다. 조 교육감의 저서 <동원된 근대화>는 사회통제로서의 반공 규율과 개발주의 담론으로서 국가주의적 동원체제가 어떻게 한국 사회의 집합적 심성을 구성했는지를 밝힌 책이다. 조 교육감은 ‘학교체육진흥회’를 최고 수준에서 책임질 이사장으로 추대된다고 한다.

간략히 살폈듯이, 당장은 학교 교육 문제지만 장차는 한국 사회의 가까운 미래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의제가 되는 ‘학교 체육 정상화’에 있어 이른바 ‘책임 있는 당국자’들의 면면은 지난 ‘잃어버린 10년’과는 확연히 다르다. 단순히 ‘스포츠를 사랑하는’ 개인적 관심이 아니라 장관, 국회의원, 교육감 등의 무게로 참여하기 때문에 그 ‘영향력’ 또한 정책적으로 막중하며 역사적으로 중대하다.

여기에 결정적인 인사는 대한체육회다. 진흥회의 구조라는 면에서는 문체부 옆에 의자 하나를 더 놓는 정도지만, 대한체육회는 다른 모든 기구의 책임과 역할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무겁다. 우리 스포츠의 일상 문화가 전근대적이고 학교 체육 또한 붕괴되기 일보 직전인 작금의 사태에 있어 대한체육회의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거꾸로 얘기하면 대한체육회가 어떤 가치와 방향으로 움직이느냐에 의해 오랜 ‘적폐’가 하나둘씩 해결될 수도 있다.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은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날 무렵 어느 인터뷰에서 “소수 정예를 키워서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방식으로 국제대회에 참가했다. 이제 우선 학교 체육이 정상화돼야 한다. 그래야 저변이 확충되고 아이들도 스포츠를 통해 민주시민으로 양성된다”고 말했다. 이제 그 말의 긍정적인 책임을 질 때가 되었다.

비영리법인이라는 조직의 성격상, ‘학교체육진흥회’가 수많은 이해관계가 뒤엉켜 있어 그야말로 ‘고르디아스의 매듭’이 되고 만 지금의 (학교) 스포츠 현실을 일시에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관심’과 ‘영향력’을 언급했다. 위의 인사들 모두 학교 체육 정상화에 오랫동안 ‘관심’을 표명해왔고 이제는 그것을 실천할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조직의 입장에 따라 약간의 이견과 불가피한 조절이 있을 수는 있지만 내 생각에 그것은 한국 사회의 다른 뜨거운 의제들과 같이 마주 달리는 기차처럼 충돌할 정도는 아니다.

설령 그렇다 해도 현재의 인적 구성에서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정말 참담한 현실이 아니고 무엇인가. 최고의 영향력을 지닌 문재인 대통령도 “학교 체육이 제대로 서야 우리 학생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고 강조하면서 “운동부 중심의 학교 체육을 전면 개편하고 일반 학생들의 학교 체육 활동을 강화하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대통령에서 실무 장관과 국회의원, 체육회장, 각 시·도 교육감까지 의견 일치가 되기도 드문 일이다. 학교 체육을 정상화해 우리의 미래를 실질적으로 건강하게 경쾌하게 만들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게다가 ‘국론 분열’도 없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 역사적 과제 아닌가.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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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 무려 전체 9권 3800쪽 분량의 <제5공화국 전사>를 확보했다고 해서, 나는 당장이라도 편집국에 찾아가고 싶었다. 혹시 신문사 안에 부탁할 만한 사람이라도 없나 하고 생각도 해봤다. 법정 공방까지 벌여가며 1년5개월 만에 확보한 ‘전사’를, 염치불구하고 복사를 하든지 아니면 밤새워 필사라도 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전사(全史)’가 아니라 ‘전사(前史)’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5공화국의 전체사가 아니라 5공화국이 수립되기 전까지의 기록 말이다. 이런 ㅠ.ㅠ

물론 이 자체로 엄청난 기록이다. 10·26 시해 사건과 12·12 사태 그리고 무엇보다 5·18 광주항쟁에 관한 핵심 인물에 대한 역사적 책임과 형사적 죄책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로 ‘전체사’였다고 하면, 요즘의 내 집중적인 관심사, 즉 88서울올림픽에 대한 5공 수뇌부들의 이데올로기를 실체 그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궁금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88올림픽에 대한 핵심 행위자들의 기획과 집행이 중요한 까닭은, 이 엄청난 스포츠 스펙터클에 대한 기존의 이해는 이른바 ‘3s 정책’ 정도이기 때문이다. 각종 프로스포츠와 특히 88올림픽이라는 메가 이벤트는 특정 국면의 타개 전술 정도가 아니다. 국가는 그렇게 수세적이고 방어적이지 않다. 특히 매우 공격적인 독재정권이 권력을 부당하게 찬탈하여 국가의 운전대를 잡게 되면, 그 순간 이후 국가는 폭주한다.

5·16이 그랬고 12·12가 그랬다. 권력을 움켜쥔 군부는 의회나 언론 같은 브레이크 장치를 제거해 버리고 순식간에 진격한다. 거의 1년 안팎에 정치와 행정의 중심을 거머쥘 뿐만 아니라 전 국민을 일거에 동원할 수 있을 만한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전개하고 거대한 문화 통치 전략을 구사한다.

스펙터클 문화 통치라는 측면에서, 5공화국이라는 진격의 국가는 88올림픽을 기획하고 그것을 ‘범국민적’으로 집행하여 결국 그 책임자가 ‘6공화국’의 대통령이 되는 대단원으로 강력하게 자기 조정을 해나갔다. 정치학계에서는 1987년 민주화 운동과 그해의 대통령 선거 결과를, 그람시가 말한 ‘수동혁명’이란 관점에서 분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문제 설정이 크게 보아 타당하다면, 나는 88올림픽이야말로 국가권력의 강력한 수동혁명의 엔진이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반드시 덧붙여야 할 판단 근거들은, 극단의 정치와 스포츠 스펙터클 신드롬 사이에 넓게 퍼지기 시작한 1980년대의 중산층 문화다. 긴박한 정치 정세와 다소 무관하게, 1980년대는 3저 호황과 내수 소비 활황 속에서 컬러 TV와 마이카와 외식으로 대표되는 중산층 문화의 확산 과정이었다. 그 정점은 물론 아파트다. 이 경제문화의 조건에서, 진격의 국가가 휘날리는 88올림픽이라는 깃발을 따라 ‘범국민적’인 중산층 욕망의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이렇게 두루 살필 때, 88올림픽을 ‘3s 정책’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의 극히 작은 부분을 가리킬 뿐이다.

어느덧 88올림픽 30주년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최근에 나는 이러한 관심사에 자극을 주는 작업들을 보게 되었다. 스포츠 전문기자 위원석은 1978년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전후로 한 박정희 대통령 및 그 무렵의 스포츠 권력자들의 기록을 통하여 88올림픽이 비틀거리는 3공화국의 짙은 한숨 속에서 이미 기획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김운용이나 박세직의 자서전은 물론 전두환과 노태우의 회고록도 참조하고 있는데, 이 기록들의 사료적 가치에 대한 검증은 더 필요하지만, 어쨌거나 1980년대 전후의 혼란 속에서 권력 수뇌부들이 올림픽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권력의 중심이 지향하는 바와 그 언어들을 검토하건대 결코 올림픽은 ‘3s’ 같은 단순한 정책이 아니다.

위원석이 참조하였듯이, 허진석이나 박재구가 쓴 학위 논문들도 올림픽을 특정한 정치세력이 아니라 국가권력 그 자체의 작동 원리 속에서 접근하고 있어 흥미롭다. 88올림픽을 사회학적 측면에서 연구해온 박해남도 국가권력이 스포츠팬들보다 훨씬 더 스포츠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을 밝혀왔다. 그가 오랜 연구를 총집하여, 88올림픽의 정치사회적 성격을 학위 논문으로 결산하였다고 하니, 읽고 싶다.

그런데, 만약 이와 같은 관심을 어려운 자료나 논문에 기대지 않고, 그저 편하게 57분 정도로 화면을 통해 확인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인터넷을 검색하면 된다. KBS 스포츠국의 이태웅 피디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88/18> 말이다. 지난 9월16일에 방영되었는데, 88올림픽도 1988년 9월17일에 개막되었으니, 정확히 30주년이다.

무려 15테라바이트(TB) 분량의 KBS 영상자료를 바탕으로 일단 40시간 분량을 추려내고 이를 다시 약 57분으로 적극적인 편집과 연출을 한 작품이다. <천하장사 만만세> <공간과 압박> <숫자의 게임> 등 독특한 ‘작가주의적’ 관점의 쾌작을 만들었던 이태웅 피디는 “1980년대 한국 사회에서 사회, 경제, 정치, 문화 모든 면에서 올림픽이 관련되지 않은 부분이 없다”는 판단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 TV 다큐의 공식과도 같은 쉼 없는 내레이션이나 과장된 효과음 하나 없이, 오로지 당시의 방송 화면들과 88올림픽에 직접 관여한 사람들의 인터뷰만으로 이어지는데, 그 형식 자체가 흥미롭다.

이 다큐는 허화평으로 시작해서 그의 논평으로 끝난다. 다큐의 끝에서 그는 말한다. “88올림픽이, 전두환 정권으로 하여금, 싫어도, 절대 그런 생각이 없었어도, 평화적 정권교체를 하도록 만들었다.” 글쎄, 여러 각도의 자료와 해석이 더 필요하지만, 최소한 더 이상 ‘3s 정책’ 같은 말로 스포츠 스펙터클을 판단하는 것은 부족하고 게으른 것임을 확증하는 ‘5공 실세’의 증언이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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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꼭 30년 전 많은 기대와 우려 속에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이 개최됐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 반쪽 대회로 치러진 뒤 개최된 서울 올림픽은 동서화해 무드가 조성된 역사적인 올림픽이었다. 서울 올림픽의 모토는 ‘화합과 전진(Harmony and Progress)’, 슬로건은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The World to Seoul, Seoul to the World)’였는데, 당시 160개국에서 8465명이 참가한 올림픽 사상 최대 규모의 대회였다.

88서울 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전체 4위라는 올림픽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 개최국의 이점을 감안하더라도 결코 쉽지 않은 성적이었고, 그 이면에는 올림픽 유치 이후 추진된 꿈나무선수 발굴과 스포츠과학의 지원에 힘입은 바 컸다. 현재 국민체육진흥공단 산하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의 전신인 스포츠과학연구소의 공헌이 절대적이었다.

IOC를 비롯해 많은 올림픽 개최국들은 스포츠과학의 발전을 공유하는 학술대회를 개최해오고 있다. 최초의 올림픽 학술대회는 1897년 프랑스 르 아브르(Le Havre)에서 ‘교육과 위생’을 주제로 개최되었고, 이후 스포츠과학 학술대회의 면모가 갖춰진 것은 1964년 도쿄 올림픽부터이다. 이때부터 올림픽 스포츠과학학술대회는 IOC에 의해 올림픽대회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개최되었고 1988년 서울 올림픽기념 국제스포츠과학학술대회도 이 차원에서 개최되었다. 당시 학술대회에는 58개국에서 1670명의 학자들이 참가하여 7일 동안 역대 최대 규모의 스포츠과학자 대회로 진행되었다.

대회 개최 장소인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는 당시 총장 장충식 박사의 헌신적 노력으로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국제스포츠과학학술대회에 이어 1988년 서울 올림픽기념 국제스포츠과학학술대회를 개최함으로써 우리나라 스포츠과학 발전에 기념비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런데 올림픽기념 국제스포츠과학학술대회를 개최한 이후 30년 넘게 지속적으로 기념학술대회를 개최하는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올림픽 유산을 잘 간직하고 있는 대표적인 예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에서 스포츠과학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개최가 결정된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 덕분에 한국 스포츠과학자들은 우리나라는 물론 국제적인 학자나 학술단체와의 교류가 가능해졌다. 이러한 학술 교류를 통해 수집된 전문적이고 다양한 정보는 스포츠현장에 활용되어 대한민국의 스포츠 경쟁력을 높이고, 국민 건강에 기여하는 선순환을 이끌어내고 있다.

한편 스포츠에서는 영원한 승자가 없다는 말처럼 스포츠과학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 없이는 국제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이번에 폐막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24년 만에 일본에 이어 3위를 차지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일본은 2020년 도쿄 올림픽에 대비하여 오래전부터 선수 저변 육성으로부터 경기력 향상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이고 과학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88서울 올림픽 개최 이후 30년간 쌓아온 스포츠시스템의 성과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점에서 기초종목 육성과 스포츠 저변을 견고히 하는 향후 30년에 대한 새로운 전략과 스포츠과학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강신욱 | 단국대 교수·한국체육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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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결승전의 숨은 MVP는 김민재”라면서 “일본의 역습을 잘 막아냈다”고 극찬했다. 과연 그랬다. 김민재는, 특히 일본전에서, 폭우를 쓸어버리는 자동차 와이퍼처럼 깔끔하고도 신속하게 일본 공격을 차단했다. 최용수 SBS 해설위원은 황의조를 극찬했다. 우즈베키스탄전에서 황의조가 골을 터트렸을 때 “클래스가 다르다. 옛날의 저를 보는 것 같다”고 했는데 베트남전에서 황의조가 골을 넣자 “옛날의 저를 보는 것 같다고 했는데 부끄럽다. 사과하고 싶다”고 축하했다. 한편 안정환 MBC 해설위원은 수비수 김진야를 “정말 대단하다. 뛰어난 기술과 지치지 않는 체력”이라고 격려했다. 김진야는 이제 ‘철강왕’으로 불린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사실 손흥민을 잠시 괄호 안에 넣고 젊은 후배들부터 극찬하는 마음일 것이다. 6월의 러시아와 달리 8월의 인도네시아에서, 그라운드 안의 독전관은 손흥민이었다. 그는 골키퍼 자리를 빼놓고는 거의 모든 역할을 수행했다. 자신이 공을 찰 수 있음에도 황희찬이 의욕을 보이자 뒤로 물러섰고 금메달 결승골을 터트릴 수 있음에도 이승우가 ‘나와, 나와’ 하자 순간적으로 공과 멀어졌다. 조제 무리뉴 감독은 페널티킥을 실패하는 선수가 아니라 그 자리를 두려워하는 선수를 싫어한다고 했는데, 손흥민은 어디에나 해당하지 않는다.

그런데,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손흥민이나 득점왕 황의조를 괄호 안에 넣고, 누가 이번 대회 MVP냐고 묻는다면, 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황인범이라고 외치고 싶다.

거의 모든 골에 관여한 황인범은, 현대 축구에서 요구되는 세 가지 요소, 즉 탁월한 개인 기술과 높은 수준의 전술 이해 그리고 막판까지 이 두 요소를 견고하게 유지할 수 있는 체력 안배 기술을 갖고 있다. 단순히 물리적인 ‘체력’이 아니라 그것을 완벽하게 조율하여 90분 내내(때로는 120분) 최고의 기술 상태를 유지하는 ‘밸런스’ 말이다. 황인범의 땀은 그라운드 모든 곳을 골고루 적셨다.

황인범은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공을 정확히 간수한다. 이로써 일차적으로 책임져야 할 자신의 공간을 명확하게 지배한다. 공을 안정적으로 간수해야 공간을 지배하게 되는데, 경기 초반에 이 능력이 의심받을 경우 상대 수비수들은 여지없이 달려든다. 이럴 때, 공간 지배는 고사하고 황급히 패스부터 하게 되는데 의미 있는 공격 작업은 무망해진다. 반면 황인범의 첫 터치는 환상적이다. 일본전의 결승골, 이승우가 파리채를 휘두르듯이 터트린 슛은, 바로 직전 상황에서 아주 높이 떠오른 공을 황인범이 제 몸의 일부처럼 완벽하게 장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수차례 이런 장면을 보여줬기에 최용수 해설위원은 “공을 저렇게 간수하는 선수는 근래 보기 드물다”고 극찬했다.

이렇게 공을 다스린 후 황인범은 어떻게 했던가. 그는, 흡사 대여섯 개의 눈이라도 달린 듯 지체 없이 킬 패스를 찔러 넣거나 좌우로 흔들면서 공간을 찾아 나섰다. 공은 언제나 그의 발에서 1m 이내에 머물렀다. 그의 패스는 간결했고 빨랐으며 정확했다. 가까이로 손흥민을 보았고 멀리로 황의조를 의식했다.

감독이 요구하는 전술 이해도의 측면에서도 황인범은 원숙했다. 김학범 감독은 베트남전에서 황인범 대신 이승우를 선발 투입했다. 기술적인 우위가 확연하게 증빙되었기 때문에 초반부터 골을 집어삼키기 위한 공격 전술이었다. 반면 일본전에서는 황인범이 먼저 그라운드를 종횡으로 누볐다.

김학범 감독은, 특유의 세밀한 기술 축구를 가진 일본전의 승부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 조커를 활용하느냐’에 달렸다고 했다. 실제로 그런 병법을 선수들에게, 무엇보다 황인범에게 정확하게 지시했다. 절대 무리하지 말고 안정감 있게 경기 템포를 유지하되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거세게 밀어붙인다는 전략! 이를 위하여 황인범은 평소 포지션에서 조금은 더 밑으로 내려와서 견고하게 팀 밸런스를 유지했다. 마침내 결정적인 순간이 왔고, 이승우가 투입되었으며, 황인범 또한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했다. 팀 전체의 무게중심이 황인범에 의하여 공세적으로 전환되면서, 골이 연거푸 터졌다.

걸출한 스타에 비유를 하자면, 한순간에 수비 라인을 허물어 버리는 전성기의 이니에스타 혹은 크로아티아의 모드리치와 같은 기술을, 그 우아한 스타일을, 그 완벽한 밸런스를, 무엇보다 감독이 요구하는 전술 명령서를, 황인범은 그라운드에서 정확하게 구현해냈다.

미래의 잠재력이 아니라 입증된 실력이란 점에서, 소속팀이나 대표팀에서 황인범은 귀한 선물이다.

프로축구 K리그2의 대전시티즌은 최근 5경기 무패로 상승세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골이 귀하다. 이 상황에서, 유성중과 충남기공을 거친 프랜차이즈 스타 황인범이 조기 전역하여 가담하면 상위권 도약이 가능하다.

파울루 벤투 감독도 일찌감치 황인범을 선발했다. 이제 막 서른을 넘긴 기성용은,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대표팀 은퇴 의사를 밝혔다. 만약 그가 그렇게 결정한다면 아쉽기는 해도 막을 수는 없다. 머지않아 그날이 오기 마련이다. 그 대안을 ‘신중하게 서두르는’ 게 정답이다.

이미 황인범은 리스본의 양대 라이벌인 명문 벤피카와 스포르팅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벤투 감독은 바로 그 도시 출신이다. 감독은 자기 스타일을 몸으로 구현할 선수를 찾기 마련이다. 공세적인 패스 축구를 지향하는 벤투 감독의 전술 플랜에 황인범이라는 엔진이 탑재된다. 같은 포지션에 주세종과 이재성이 있어 당장 주전이 될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기성용 혼자 전담하던 공격 루트 찾기에, 급가속이 가능하고 코너링이 뛰어난 황인범이 가담하게 되면, 그 어떤 공성전에서도 일단 슈팅 찬스만큼은 낚아챌 것이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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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미국프로농구(NBA)에 데뷔하여 15년, 신인 때부터 지금까지 받을 만한 상은 다 받았고 2012 런던 올림픽 금메달에도 기여한 르브론 제임스. 203㎝의 거구로 강력한 파워와 현묘한 기술로 코트를 지배했지만, 그가 가장 잘 다스린 것은 그 자신이었다. 데뷔 14년차 되던 2017년 11월, 무려 1082경기 만에 처음으로 퇴장을 당했을 정도로 그는 자신의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까지 최고 수준으로 관리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코트 바깥의 경기에서는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다. 고향 오하이오주 애크런에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학교 ‘아이 프로미스(I Promise)’를 개교한 뒤 가진 CNN과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주의적 행태를 비판한 것이다. 올 초에도 “인종주의가 우리를 정복하고 우리를 분열시키도록 둬선 안된다”고 트럼프를 비판한 제임스는 “트럼프가 스포츠를 이용해 우리를 분열시키려 한다”고 말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트럼프도 제임스를 비아냥거리며 마이클 조던을 존경한다고 언급했다. 아차, SNS는 하등 필요 없는 것이라고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그랬던가. 트럼프는 실수했다. 마이클 조던만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20세기 스포츠의 최고 영웅인 마이클 조던은 “난 르브론 제임스를 지지한다”고 즉각 대응했다. 조던은, 자신이 백인 주류 사회로부터 ‘성공한 흑인’으로 선택받는 것을 불편해하고 그런 ‘호의’를 거절해온 사람이다. 조던처럼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곳이 미국이라는,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조던은 거부해왔다. 그랬는데, 트럼프가 제임스를 비난하기 위해 자기 이름을 들먹거린 것을 조던은 불쾌해한 것이다. 조던은 덧붙였다. “제임스는 지역사회를 위해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

이 부분이 더 중요하다. 르브론 제임스가 설립한 학교 말이다. 그는 오랫동안 새로운 개념의 학교를 준비해왔다. 단지 억만장자 스포츠 스타가 기부하여 설립하는 자선 학교가 아니라 수업의 체계와 방식,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의 관계가 ‘전혀 다른’ 학교를 제임스는 상상해왔다. 그의 어머니는 16살 때 제임스를 낳아 남편 없이 혼자 키웠다. 극심한 가난과 인종차별을 견뎌야 했다. 그래서 제임스는 생각했다. 단순한 학교가 아니라 ‘다른 학교’가 필요하다고. 개교를 하면서, 제임스는 울었다. 브라질의 축구 스타 호나우지뉴도 그랬다. ‘파벨라’, 즉 판자촌에서 성장한 호나우지뉴는 2006년 12월, 고향 포르투 알레그리에 3만6000여평 규모의 국제 규격 축구장과 다목적 연습장, 2개의 수영장과 4000석 규모의 실내경기장이 있는 학교, 아니 학교라기보다는 하나의 공동체 마을을 설립했다. 학교 안에 병원까지 있고 그 밖의 공동체 시설이 들어섰다. 이 ‘학교’를 개교하면서 호나우지뉴는 기념 슛을 했는데, 자기 평생 가장 의미 있는 킥이라고 말하면서, 울었다.

두 경우를 보면서, 생각해본다. 우리의 스포츠 문화와 교육 말이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스포츠 교육은 제자리걸음이다. 일반 학생들은 스포츠를 즐기기가 쉽지 않고 장차 프로 선수를 꿈꾸는 학생들은 일반 교육을 받기가 쉽지 않다. 진학, 병역, 취업 등과 관련하여 모든 학생들, 지도자들, 학부모들의 입장이 뒤엉켜 있어서 실타래를 풀기가 어렵다. 엉킨 실타래를 칼로 내리쳐서 끊어야 할 텐데,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나 각 종목의 협회에서 몇 차례 그런 시도를 했으나 무딘 칼날이었고, 그 후의 대안도 마땅치 않아서 실타래는 더 엉키고 말았다.

그런 현실 때문인지, 스포츠를 교육한다는 것 그리고 스포츠를 통해 다른 분야를 공부한다는 것, 그 내용 자체가 여전히 20세기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스포츠의 교과목은 대체로 기능적이고 도구적이다. 신체적 능력에 집중되어 있어서 스포츠에 내재된 역사와 미학과 정서의 가치를 제대로 배우기가 어렵다. 스포츠를 사회 전체와 떼어놓음으로써, 이 의미 있는 행위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수많은 가치가 발현되지 못하고 있다.

당장 최근의 일만 복기해보자. 21세기의 다문화와 이민, 난민의 상황들. 이를 프랑스 축구대표팀을 통해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프랑스 대표팀이 ‘성공’했다는 게 아니다. 그 ‘성공 신화’와 실제 유럽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있어 생생한 교육 자료라는 얘기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비롯하여 베켄바워, 루메니게, 비어호프, 히츠펠트 같은 독일 축구계의 리더들 그리고 보아텡이나 뮐러 같은 현역 스타들이 저마다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 외질 선수의 독일 대표팀 은퇴 사례 역시 의미 있는 공부가 된다. 국가 부르기가 강요된다면 차라리 부르지 않겠다고 했던 지네딘 지단의 사례처럼, 외질의 대표팀 은퇴는 국가와 스포츠, 개인의 신념과 공동체의 관계, 이민과 다문화 등 우리가 이미 겪고 있거나 곧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될 상황을 숙의하게 해준다.

말하자면 ‘스포츠 하기’도 중요하지만 ‘스포츠 읽기’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스포츠를 통해서 복잡한 역사도 배우고 다양한 가치와 상충되는 윤리적 난제도 배울 수 있다. 그런데 누가? 이 중요한 사안들을 스포츠 연구자나 전공자가 아니라 무엇보다 선수들이 배우고 익혀야 한다. 이미 몸속에 이러한 난제들이 뒤엉켜 있는 그들에게 이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스스로 겪는 수많은 문제들을 스스로 설명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그럴 때에, 우리의 선수들이, 스포츠로 큰돈을 벌었다거나 방송까지 진출해서 유명해지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제에 참여하고 함께 해결해나가는 ‘진짜 스타’가 되는 것이다. 가난과 차별에 맞서 지단이 싸웠고 호나우지뉴가 눈물을 흘렸으며 제임스가 연대를 하고 있다. 그런 행렬에 우리 선수들, 우리의 스타들도 함께하는 풍경을 상상한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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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월드컵에서 우승한 프랑스 대표팀이 파리로 입성하자 샹젤리제는 환영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대표팀 선수들은 ‘국민적 영웅’이 되었고 다민족이 하나의 국가로 새롭게 탄생하는 분위기였다. 많은 이민자를 받아온 프랑스는 반이민정서가 팽배하고 히잡 착용 등의 문화적 충돌을 겪고 있다. 그런데 이번 우승으로 사회통합 분위기가 연출됐다. 프랑스 대표선수 23명 가운데 21명이 이민자 출신이다. 그중 15명은 아프리카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팀은 ‘레블뢰(파란색·대표팀의 유니폼도 파란색)’로 불리지만 유색인종 선수들의 활약이 뛰어나면서 ‘블랙·블랑·뵈르(흑인·백인·북아프리아계)’로 불리기도 한다. 이번 월드컵 우승이 인종과 종교의 화합이라는 기대를 품게 한 것이다.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가 15일(현지시간) 프랑스 축구대표팀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든 시민들로 발디딜 틈 없이 가득 차 있다. 프랑스 대표팀은 이날 오전 모스크바의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크로아티아를 4-2로 꺾고 1998 프랑스 월드컵 이후 20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파리 _ EPA연합뉴스

그러나 프랑스와 땅을 맞댄 독일은 정반대의 상황이다. 러시아 월드컵에서 예선탈락한 후 인종차별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축구 국가대표 메수트 외질 선수에 대한 비난이 대표적이다. 그는 터키 이민자의 후손으로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며 올해의 선수상을 5차례나 수상한 스타플레이어다. 그런데 지난 5월 터키 대통령과 사진을 찍은 뒤 ‘독재자와 사진을 찍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독일이 예선탈락한 뒤 축구팀 단장은 “국가대표로 뽑은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며 탈락의 책임을 그에게 전가했다. 승리엔 트로피가, 패배엔 희생양이 필요했던가. 외질의 아버지는 “9년 동안 독일을 위해 뛰었으나 그들은 외질을 희생양으로 만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난 23일 국가대표팀 은퇴를 발표했다. 그는 SNS에서 “저는 두 개의 심장을 가졌다. 하나는 독일을 향한 마음이고 하나는 터키를 향한 마음”이라면서 그러나 “팀이 이기면 독일인이었지만 지면 이민자였다”고 토로했다. 최근 일어난 일들을 돌아보면서 인종차별과 무례함을 느꼈다고도 했다. 이를 두고 “올여름 독일 대표팀의 진정한 패배”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더 큰 패배는 차이와 다양성이 무시되고, ‘화합을 통한 공존’이라는 진보의 믿음이 깨진 데 있다. 더구나 아리안 인종론으로 전대미문의 학살을 자행한 역사적인 짐이 있는 독일로서는 참담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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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 대회 우승팀 독일 축구대표팀의 ‘캡틴’ 필립 람과 러시아의 슈퍼 모델 나탈리아 보디아노바가 피파 트로피를 들고 입장했을 때, 모스크바의 루즈니키 스타디움에는 ‘황금의 엑시터시’가 울려 퍼졌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작품으로, 세 명의 총잡이가 욕망의 극한에 이르러 최종 승부를 겨루는 영화 <석양의 무법자>의 마지막 장면에 흐르는 음악이다.

순간, 나는 탁월한 선곡이라고 생각했다. 월드컵 결승전이라, 전 세계 10억명이 몰입하는 최고 수준의 황홀경 아닌가. 과연 마지막 최종전은 10억명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예측불허의 상황을 거듭하며 끝까지 극단의 황홀경을 선사했다. 누구도 연출할 수 없는 폭우까지 내려 450g도 안되는 축구공이 빚어낸 한 달의 여정을 시원하게 적셨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들이었다. 마지막 휘슬이 울릴 때까지 누구도 최종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극장 골’의 연속, 736명의 모든 출전 선수가 주연이었다. 각국 대표팀은 저마다 개인적 사연과 그 나라의 집합적 열망을 러시아 전역에 투사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가장 인상 깊은 팀은 이란과 벨기에. 흡사 지옥의 게임에 출전한 듯한 이란은, 비록 ‘뷰티풀 게임’을 보여주지는 못했어도, 어차피 인생이란 진흙탕에서 기어 나오는 것이라는 듯, 그들만의 방식대로 마지막 한 방울 땀까지 잔디에 적셨다. 벨기에는 3위로 등극하는 마지막 경기까지 독창적인 드리블과 패스로, 축구란 1초 전에는 무의미했던 공간을 신묘한 상상력으로 유의미하게 창조하는 우아한 행위임을 입증했다.

반면 잉글랜드는 마지막 경기를 무기력하게 끝냈다. 이미 그들의 응원가인 ‘축구가 집(잉글랜드)으로 돌아오고 있네’라는 노래는 준결승전 후 맥이 풀린 다음이었다. 인상적인 것은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복장. 그는 모든 경기마다 세련된 조끼를 입고 나왔다. 축구 종가 잉글랜드의 전통주의를 상징함은 물론 최근 영국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다.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이후 점점 세계 경제의 핵심에서 고립되고 이에 따라 테레사 메이 내각의 주요 장관들이 줄줄이 사퇴하는 홍역 속에서 유일한 즐거움은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이끄는 축구팀의 선전이었다. 안타깝게도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지만 잉글랜드 선수들은 잔디 위에서 할 일을 다했다. ‘신영국병’을 치유하는 것은 선수들의 의무가 아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이탈리아가 프랑스를 물리치고 우승했을 때, 독일 언론은 “트로피는 이탈리아, 진정한 챔피언은 독일”이라는 헤드라인을 뽑은 적이 있다. 그 대회에서 독일은 3위를 했는데, 2차 대전과 분단 이후 독일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거리와 광장에서 국기를 흔들고 국호를 외치는 일이 사실상 중지되었으나 월드컵으로 인하여 어두운 역사가 드리웠던 오랜 심리적 부채를 조금은 씻어낼 수 있었다는 의미다.

그렇게 보자면, 이번 대회 우승은 프랑스가 했지만 진정한 챔피언은 크로아티아다. 아, 물론 시상대에서, 폭우가 내리자마자 잠시나마 혼자서 우산을 썼던 푸틴이 진짜 우승자이긴 하지만 말이다.

축구장 바깥의 크로아티아 상황은 여의치 않다. 2008년에 9%였던 실업률이 2014년에는 무려 22.7%였다. 2018년 초, 11.5%로 다소 안정화되었지만 고등교육을 받거나 일정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국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아드리아해 주변의 아름다운 관광 도시가 크로아티아를 연명시키고 있다.

2017년 6월 선거를 통해 수도 자그레브 시장으로 6번째 당선된 반디치 시장은 2014년 부패 혐의로 긴급 체포된 적도 있다. 그럼에도 6차례나 당선되었는데,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시민들은 반디치 시장의 부패를 알고 있으나, 이를 신경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치인에 대한 일반적인 불신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매우 공격적으로 연합 전술과 대중 정책을 구사해온 우파 세력은, 자신들의 정치 기반이 되는 가톨릭 세력과 함께 점점 더 민족주의적 발언과 인종 혐오를 앞세운다. 아드리아해의 보석 두브로브니크 같은 곳에서는 크로아티아의 이런 혼란이 잘 보이지 않는다.

‘골든볼’을 수상하며 이번 대회 최고의 선수로 떠오른 모드리치는, 어쩌면 월드컵 이후 심각한 상황에 처해질 수도 있다. 크로아티아 검찰이 크로아티아 최고 구단인 디나모 자그레브의 마미치 전 회장을 횡령과 탈세로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 팀 소속이었던 모드리치의 ‘거짓 증언’을 재판에까지 회부했기 때문이다. 마미치는 크로아티아의 모든 축구팬이 혐오하는 부패의 상징이다. 이 자에게 모드리치가 연봉의 일부를 상납하고 거짓 증언까지 했다는 것이 유죄로 확정되면 최대 5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어쩌면 크로아티아 팬들이, 그리고 시상대에서 모드리치를 눈물로 포옹해준 콜린다 대통령이 모드리치를 용서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 어느 나라든지 이 축구장의 ‘엑시터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점이다. 축구장의 열기에는 정치적 열광이 늘 어느 정도 투사되기 마련인데, 직업적으로 그것을 부풀리거나, 없으면 만들어내기도 하는 정치인들이 월드컵의 엑시터시를 한여름 밤의 꿈으로 흘려보낼 리 만무하다.

모드리치를 포함한 크로아티아 선수들은 1990년대 초반 내전 시대에 태어나 끊이지 않는 포성 밑에서 축구를 배웠다. 그랬는데 이제 그들의 월드컵 쾌거가 자국민의 자유를 일정하게 제한하거나 다른 인종이나 종교에 불관용의 도구로 쓰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축구장의 엑시터시가 발칸반도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는 파시즘의 전조가 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한여름 밤의 꿈’이 낫지 않은가. 선수들의 땀과 팬들의 눈물이 장외의 정치적 열광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 적어도 지금의 발칸반도에서는.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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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탬파베이 데블레이스는 1998년 창단했다. 함께 생긴 팀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다. 애리조나는 ‘사막 방울뱀’이 팀 이름이다. 탬파베이는 ‘악마 가오리’다. 둘 다 신생팀답게 패기 넘치는 ‘쎈’ 이름을 썼다. 애리조나는 김병현 때문에 국내팬들에게도 친숙하다. 창단 3년째이자, 김병현이 뛰던 2001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다.

탬파베이는 따라가지 못했다. 기를 썼지만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는 보스턴과 뉴욕 양키스 등 쟁쟁한 팀이 워낙 많았다. 우승은커녕 꼴찌를 도맡아 했다. 1998~2007년 10시즌 동안 9번 꼴찌였다. 100패를 넘긴 게 3번, 99패도 2번이었다.

팀 성적이 나쁘니, 돈을 벌기 힘들었다. 돈이 없으니 투자를 못하고, 성적은 계속 바닥이었다. 빈센트 나이몰리 구단주는 닦달했다. 온갖 일에 참견을 하면서 비용을 쥐어짰다.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눈을 부릅뜬 채 ‘구장 내 음식물 반입 금지 규정’을 감시했다. 한번은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가 들고 온 견과류 한 봉지를 트집 잡았다. 경기장에서 내쫓았다. 당뇨병 ‘비상식’이었다는 해명도 소용없었다. 단체관람을 온 노부부는 결국 경기장에서 쫓겨나 버스에서 3시간 동안 동료들을 기다려야 했다. 심지어 외부 음식물을 발견하면 해당 관중에게 다가가 ‘어느 문으로 들어왔냐’고 물었다. 나이몰리는 해당 문을 지키는 직원을 해고했다.

팀이 바뀐 것은 구단주가 바뀌고 나서였다. 2005시즌이 끝나고 월스트리트 출신들이 탬파베이를 인수했다. ‘악마 가오리’에서 ‘악마’를 뺐다. 새 이름 레이스(rays)는 가오리라는 뜻과 함께 ‘햇살’을 뜻했다. 2년 동안 내실을 다진 뒤 2008년 대변신에 성공했다. 챔피언십시리즈에서 양키스를 꺾고 월드시리즈에 올랐다. 10년 동안 꼴찌만 하던 팀의 극적인 대변신이었다. 탬파베이 성공 이유 중 하나는 ‘시프트’였다. 내야수들의 위치를 상대 타자 타구 성향에 따라 폭넓게 이동시켰다. 새 경영진은 월스트리트 출신답게 숫자를 분석해 방향을 제시했다. ‘혁신의 대명사’인 탬파베이 조 매든 감독과 어우러지며 시너지 효과가 일어났다. 만년 꼴찌는 수비에서 1등이 됐다. 점수를 덜 주고, 경기를 이겼고 월드시리즈에 올랐다.

시프트는 전통적인 수비 위치와 다르게 선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반대한다. “야구가 120년 동안 수비 포지션을 유지한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고 있다. 증거는 없지만 오랫동안 해왔으니 그게 맞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탬파베이의 성공 이후 시프트는 대세가 됐다. 2011년 메이저리그 경기 전체에서 수비 시프트는 2350번 이뤄졌다. 2016년에는 2만8130회로 늘었다. 5년 사이 10배 넘게 증가했다. 시프트에도 중요한 요소가 있다. 야구공은 예측 불가능하다. 확률은 존재하지만, 확률이 100%를 뜻하지는 않는다. 수비 위치를 볼펜으로 콕 짚어줄 수는 없다. 수비수는 자신의 수비 범위와 송구 능력을 감안해 시프트 위치를 정한다.

KBO리그에서 가장 내야 수비가 강한 팀은 두산 베어스다. 유격수 김재호와 2루수 오재원은 엉뚱해 보일 정도로 과감하게 수비 위치를 옮긴다. 벤치의 지시가 아니다. 두산 김태형 감독은 “감독 입장에서 감이 올 때가 있다. 그러면 직접 수비 위치를 조정해주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면서도 “만약 감독이 수비 위치를 조정했고, 그게 맞아떨어졌을 때 더 큰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제대로 했는데, 무슨 문제? 김 감독은 “감독의 수정 지시가 적중하면 그다음부터 선수가 감독 눈치를 보느라 제 마음껏 움직이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하고 싶어도 한마디도 안 하고 참는다. 그게 두산 내야 수비가 강한 이유이자 비결이다.

좋은 사장님이 되려면? 다시 말해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야구 시프트의 교훈. 만기친람하지 말 것. 옛날부터 해오던 게 무조건 좋은 거라고 우기지 말 것. 참견하고 싶어도 맡겨둘 것.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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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에게 제안한 한국과 북한, 중국, 일본과의 2030년 월드컵 공동개최 구상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 동북아 평화 콘텐츠는 한반도 통일 이전과 이후  영원한 자산이고 스포츠로 보면 이를 기반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이 많기 때문이다.

인판티노는 유능한 인물이다. 유럽축구연맹(UEFA) 사무총장 때 유럽챔피언스리그라는 상품을 성공적으로 운영했고 국가대항인 유럽축구선수권대회 본선 참가국을 16개국에서 24개국으로 확대하는 것을 주도했다. FIFA가 각 나라에서 4~5개의 경기장을 활용해 적어도 2개 국가, 많게는 3~4개의 국가가 대회를 공동 유치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은 그가 관철시킨 월드컵 출전국을 2026년부터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확대한 것과 연관 있다. 한 국가에서 80개 경기를 다 치르는 것은 운영상 어려움이 있고 흥행 반감 위험도 있다.

FIFA는 월드컵 축구라는 상품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민간 비영리 국제스포츠단체다. 이들은 축구의 저변 확대를 통해 파이를 키우는 데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파이를 키우는 핵심에는 브릭스 국가(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및 카자흐스탄,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멕시코 등 신흥경제 국가와 중계권을 구입하는 미디어사, 스폰서를 구입하는 글로벌기업이 있다. 출전국이 증가하면 그만큼 저하될 수 있는 흥행의 위험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이 때문에 2~4개 국가의 공동개최는 흥행도 유지되고 비즈니스도 늘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미 2026년 월드컵은 미국, 멕시코, 캐나다의 공동개최로 확정됐다.

경제강국인 한·중·일이 자국팀 경기만 개최해도 FIFA의 주 수입원인 입장권, 중계권, 스폰서십 규모는 훨씬 커진다. 아디다스 등 글로벌기업의 마케팅 경쟁도 달아오른다. 북한도 비즈니스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평양에서 월드컵을 보고 원산에서 서핑을 즐길 수도 있다. 월드컵 로컬스폰서는 개최국 권한이라 북한 내 주력상품이나 기업을 공식스폰서로 하여 세계에 알리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중국은 세계적 스포츠마케팅 기업인 스위스 인프론트사를 완다그룹이 인수하면서 스포츠계의 영향력을 키우며 거대한 시장을 앞세워 단독개최를 희망하고 있지만 2026년부터 출전국의 확대로 명분이 약해졌다.

동북아 공동개최는 이 지역의 관광과 다양한 산업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남북한·중·일 동북아시아는 지리적으로 보면 하나의 콘텐츠로 다양한 체험이 가능한 원소스멀티유즈형 지역이다. 서울에서 응원하고 교토를 관광하거나 베이징에서 축구를 보고 원산에서 서핑을 할 수 있는 2시간 거리는 최대의 장점이다. 정치적인 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이미 스포츠는 평창 올림픽을 통해 스포츠 안의 정치를 경험하며 규모를 키웠다. 지정학적으로 첨예한 한반도에 축구를 통해 동북아 평화와 경제공동체의 역량을 쌓을 수 있다.

인판티노 회장은 그동안의 FIFA의 검은 뇌물 의혹을 걷어내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투명하고 윤리적인 조직 개혁의 책무를 갖고 있다. 1년 전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동북아 월드컵 구상에 대해 비전을 언급만 하는 것으로도 강력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며 믿음을 갖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1년 후 러시아 월드컵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다시 만난 인판티노 회장은 그때만 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그사이에 많은 일이 일어났다면서 대통령의 열성과 추구하는 가치가 힘을 발휘했다며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FIFA 월드컵 동북아 공동개최를 위해서는 중국과 일본의 호응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비즈니스의 핵심인 상대방의 가치를 만족시켜주는 고도의 지적인 전략이 요구된다. 한국은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축구장 인프라를 갖고 있다. 그동안 정기적으로 열리는 올림픽, 월드컵 등 국제스포츠대회의 주기성 때문에 축구협회를 비롯한 스포츠단체의 명분이 살아나고 조직 풍토가 변하지 않는 원인을 제공한 역설도 있으나 세계에 선보여도 존경받는 스포츠체계를 만들고 연마하여 역사적인 장을 만들어 내기를 기대한다.

<신재휴 서울시립대학교 스포츠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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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러시아 월드컵 한국·독일전을 앞두고 한국의 2-0 승보다 오히려 독일의 7-0 승 가능성이 더 크다는 해외베팅업체의 평가가 있었다. 그만큼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개최국 브라질을 7-1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8-0으로 패배시킨 독일 축구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반면 스웨덴·멕시코전에서 부진했던 한국 수비진은 극심한 비난여론 속에 ‘멘털 붕괴’ 상태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우려는 기우로 판명됐다.

한국 선수들은 세계최강 독일의 슛을 육탄으로 막아냈다. 부진에 대한 자책감과 팬들의 비난이 선수를 ‘죽기 살기’로 뛰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자신감이 떨어져 출전을 포기할 생각까지 품었던 장현수 선수는 “너 때문에 진 게 아니다”라는 동료들의 다독거림에 마음을 다잡았다. 김영권 선수 역시 “월드컵 준비 4년 동안 너무 힘들었지만 이 순간을 위해 견뎠다”며 그라운드를 누볐다. 기적적인 승리를 거둔 선수들은 그간의 마음고생을 눈물로 쏟아냈다. 국가대표의 무거운 짐을 진 선수들에게 던졌던 돌팔매가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세계최강 독일을 탈락시킨 것은 세계축구의 흐름을 바꿔놓은 역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축구의 근본 문제가 선수들의 막판 불꽃투혼 뒤에 숨어 은근슬쩍 넘어갈까 우려된다. 2002년 4강과 2010년 16강에 진출한 한국축구는 2014년 브라질에 이어 이번 러시아 월드컵까지 2회 연속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한국축구의 실패’라 규정할 수 있다. 스웨덴·멕시코전 패배에서 봤듯이 실패한 체력관리, 섣부른 전술실험 등 지도자의 경험 부족이 도드라졌다. 이제는 세계축구의 흐름에 맞는 외국인 명장급 지도자를 영입해야 한다.

한국축구는 이미 뿌리째 흔들렸다. 축구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K리그는 차이나머니로 무장한 중국리그와 선진시스템을 구축한 일본리그에 밀리고 있다. 유능한 선수들이 줄줄이 빠져나가 리그의 인기는 바닥을 기고 있다. 2011년 1000억원을 넘은 대한축구협회 예산은 700억~900억원대로 추락했다. 재임 중 2000억~3000억원대로 예산을 늘린다던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약속은 공수표가 되었다. 전국의 월드컵 열기에서 확인하듯 축구는 협회장의 것도, 축구인의 것도 아니다. 축구를 응원하는 시민들의 것이다. 새판을 짜서 출발하지 않으면 한국축구는 4년 후 카타르 월드컵 본선 진출도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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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스포츠전문 매체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가 월드컵을 앞두고 우리 대표팀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은 들러리”.

아, 화가 난다. 어쩌다 이런 촌평까지 듣게 되었나, 자괴감이 들고 괴롭다. 정작 당신네 팀들은 지역예선 5위로 탈락했잖아, 라고 소리치고 싶다. 아무튼, SI는 러시아 월드컵 32개국 전력을 6개 등급으로 분류했다. 우리 대표팀은 최하위다. 호주, 이란, 파나마,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튀니지와 함께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만약 우리가 저 6등급 팀들과 한 조가 되어 맞붙는다고 해도 16강이 가능할까, 조심스럽다. 개최국 러시아, 아시아의 강호들, 더욱 굳세고 빨라진 호주를 이길 수 있을까.

오스트리아 레오강 캠프에서 들려오는 소식 또한 상큼하지 않다. 사실상 1.5군인 볼리비아를 돌파하지 못했다. 신태용 감독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투톱 김신욱과 황희찬을 ‘트릭’이라고 했다. 트릭?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주인공이 내뱉는 마지막 대사만큼이나 난해하다. 어느 팀을 상대로 한 연막작전인가.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2002 한·일 월드컵 때 마지막 평가전은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프랑스였다. 잉글랜드의 미드필더 솔 캠벨과 경합했던 우리 선수는 ‘콘크리트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솔 캠벨은 전성기 때 신장 189㎝에 무려 100㎏의 거구로 100m를 10초대에 주파했다. 스웨덴이나 독일과 맞싸운다면 그런 정도의 평가전 상대여야 했다.

마지막 평가전은 세네갈인데, 장외 정보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비공개는 어쩔 수 없다 해도, H조에서 일본과 맞붙는 세네갈에 조금 이로울 뿐, 이 평가전을 ‘가상의 멕시코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우리와 일본이 많이 다르듯, 세네갈과 멕시코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곧 대회가 열리는데 무슨 불평의 소리냐고,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응원을 해도 시원찮은 마당에, 라고 생각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당연히 그렇다. 그 점에서는 정말 ‘모두가 한마음’이다. 9회 연속 월드컵 진출은, 전 세계 6개 나라뿐이다. 게다가, 지난번 칼럼에 썼듯이, 공은 둥글다. 신태용 감독도 스웨덴의 평가전을 본 후 그랬다. “공은 둥글다.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고 말이다. 기본적인 태도는 이렇게 모두가 같다.

그럼에도 신태용 감독이, 그리고 이영표 해설위원이 한 말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신 감독은 5월19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이 평상시에도 축구를 좋아하고 프로리그 관중들 꽉 차고 그런 상태에서 대표팀 감독을 욕하고, 훈계하면 난 너무 좋겠다”면서 “그러나 축구장에 오지 않는 사람들이 월드컵 때면 3000만명이 다 감독이 돼서 죽여라 살려라 하는 게 아이러니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덧붙이기를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게 너무 힘들다”고 했다. 이영표 해설위원도 “솔직히 한국 사람들은 축구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한국 사람들은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기는 것을 좋아할 뿐”이라고 말했다.

과연 그러한가. 객관의 지표는 그렇다고 말한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이후 관중은 지속적으로 급감했다. 오르고 내리는 게 아니라, 계속 감소다. 그때까지는 연평균 1만명 안팎이었으나 그 이후 8년 가까이 7000여명 수준이었고 올해 상반기는 5000명 정도다. FC서울이나 수원삼성 같은 ‘리딩 클럽’의 관중 수도 줄었다.

이유는 무엇인가? 정말로 우리 국민이, 축구팬들이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해서 이렇게 되었는가. 쾌활하고 독창적이며 선진적인 마케팅은? 부재했다. 승부조작이나 심판 판정 같은 문제도 있었다. 각 팀들이 창조적인 플레이를 했는가? 아니다. 오히려 ‘이기는 것만 좋아’한 것은 구단과 감독들 아니었을까, 이렇게 자문해보길 바란다. 이른바 ‘졌잘싸’, 즉 졌지만 잘 싸웠다는 자조적인 표현의 이면에는, 이기면 더 좋지만 납득이 가는 패배, 다음 경기를 기대하는 패배, 그런 경기를 해달라는 뜻이다. 과연 각 프로팀들과 신태용의 대표팀이 그리 해왔는가, 의문이다.

그렇지 않다 해도, 그것이 축구의 한 부분이다. 월드컵 때라도 3000만이 감독이 되는 게 자연스럽다. 축구의 특성상, 전문가 수준의 정보와 판단력이 있어야 응원단 자격증을 취득하는 게 아니다. ‘남녀노소’ 모두 응원하고 열광하고 때로는 비판도 하는 게 축구다. 평범 속에 깃든 비범, 단순성에 녹아 있는 복잡성, 열광 안에 숨어 있는 비판, 비판에 담긴 절실한 열망. 그것이 축구다. 그것을 읽어야 한다.

예전에는 월드컵 때문에 지방선거 투표율이 낮아진다고, 축구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반대했다. 정치 무관심은 월드컵 때문이 아니라 정치 그 자체 때문이라고. 이제는 반대 현상이다. 지방선거와 북·미 정상회담 때문에 월드컵 관심이 줄지 모른다고 한다. 틀렸다. 각각은 각각의 내러티브로 움직인다. 월드컵 열기가 저조하다면 그것은 축구하는 사람들이 자초한 결과다. 게다가 난 그런 판단조차 반대한다. 월드컵이 열리면 다들 밤을 샐 것이고 16강을 염원한다. 제발, 어느 한 팀이라도 이기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문제의 원인을 뒤죽박죽 섞어서, 마치 다른 조건들 때문에 곤란하다는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탄생 200주년이 되는 어느 사상가가 말했다. 문제의 원인은 내부에 있으며, 문제는 그 해결의 열쇠까지 안고 태어난다고. 한국 축구 내부의 상황에 의한 문제를 ‘3000만이 감독이 되어 무조건 이기기만 바라는 이상한 현상’이라고 단정하지 않기를 바란다. 잘못 하면 정말 무플의 고립무원으로 추락해 축구 산업 자체가 붕괴할 수도 있는데, 이 무슨 안이한 진단인가. 21세기 인터넷 시대의 최고 명언,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는 말을, 거듭 생각하자. 쓰디쓴 비판에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남은 것은 침묵일 뿐<햄릿>의 마지막 대사).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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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포츠에는 ‘탱킹(tanking)’이라는 표현이 있다. 기름이 없으면 달리지 못하는 자동차처럼, ‘탱킹’은 경기를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 일부러 지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전력보강에 힘을 쏟지 않는다. 성적은 당연히 바닥권이다.

미국프로농구(NBA)에서 시작됐다. 메이저리그(MLB)에서도 유행이다. 몇몇 팀들은 아예 시즌 전 ‘탱킹’ 가능성을 암시한다. “올 시즌, 우리는 성적보다 미래를 고민합니다”라는 말은 ‘탱킹’을 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이유는 간단하다. 순위를 떨어뜨린 뒤 신인드래프트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겠다는 계산이다.

신인드래프트는, 특히 북미프로스포츠에서 전력을 강화하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고교 혹은 대학 졸업(또는 재학) 선수들을 지명한다. 직전 시즌 성적의 역순으로 선수들을 골라나간다. 프로스포츠 산업의 중요한 가치인 ‘전력 균형’을 위한 장치다. 지난해 못한 팀이 더 좋은 선수를 뽑을 수 있다. 탱킹으로 몇 년 참으면 팀의 주축이 될 만한 선수들을 채울 수 있다.

이상적 이론에 그치지 않는다. 2016년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는 몇 년 동안 탱킹 과정을 거쳤고, 108년 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2017년 휴스턴 역시 중계 시청률 0%라는 오랜 ‘고난의 기간’을 거친 끝에 젊은 선수들의 활약을 묶어 창단 후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따냈다.

메이저리그는 지난 5일부터 2019시즌 신인드래프트 행사를 열었다. 수많은 회의를 거쳐 고심 끝에 필요한 선수를 차례로 고른다.

오리건 주립대 4학년 루크 하임리히는 미국 대학 최고의 좌완 투수 중 한 명이다. 지난해 하임리히는 11승1패로 완벽한 투구를 했다. 평균자책점이 겨우 0.76밖에 되지 않았다. 150㎞를 넘는 강속구를 쉽게 던졌다. 올해에도 15승1패, 평균자책점 2.42를 기록했다.

누구나 탐을 낼 만한 성적이지만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은 하임리히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10대 시절, 6살짜리 조카를 성추행한 혐의로 유죄를 받은 사실이 지난해 여름 알려졌다. 지난해 드래프트에서도 지명받지 못했고, 올해 역시 구단들은 하임리히를 외면했다. 하임리히 측은 “당시 재판까지 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유죄를 인정했을 뿐 사실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고 항변했지만 구단들은 “어쨌든 유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애리조나는 2013년 신인드래프트 34라운드 지명 때 코리 한을 지명했다. 한의 지명이 특별했던 것은, 휠체어를 타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은 미국 청소년 대표로 뽑힐 정도로 유망주였지만 애리조나 주립대 1학년 때 개막전에서 2루 슬라이딩을 하다 크게 다쳐 허리 아래를 쓸 수 없게 됐다. 애리조나는 지명 뒤 그를 선수 대신 스카우트 직원으로 채용했다.

5일 열린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때 애틀랜타는 1라운드 지명 발표 자리에 코너스빌 고교 포수 루크 테리를 초대했다. 2살 때 병에 걸려 오른팔을 잃은 테리는 왼손만으로 경기하지만 수준급 포수로 평가받는다. 테리는 환하게 웃으면서 애틀랜타의 1라운드 지명선수로 카터 스튜어트를 호명했다.

승리보다 중요한 것은 가치다. 탱킹을 통한 드래프트에서도 ‘무조건 승리’ 대신 ‘리그의 가치’에 더 큰 비중을 둔다.

2018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 유세가 진행 중이다. 야당의 움직임을 보면 일부러 전력 약화를 노리는 ‘탱킹’이 의심될 정도다. 다만 지금의 ‘탱킹’이 미래의 승리를 위한 것인지는 미지수다. 추구하는 가치의 방향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좀처럼 보여주지 않은 채 “이러다 곧 다 죽는다”는 으름장만 놓는다.

프로스포츠에서 희망 없는 탱킹의 미래는 정해져 있다. 오랜 팬들조차 다 떠난 텅 빈 그라운드다.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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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기 전 영국에서 스포츠는 ‘여가놀이’를 뜻하는 말이었다. 저명한 문명사가 노베르트 엘리아스는 역작 <스포츠와 문명화>에서 현대 스포츠의 기원을 18~19세기 초 영국의 여우사냥에서 찾는다.

사냥꾼은 총이나 칼은 물론 몽둥이조차 쓰지 못하고 오로지 사냥개만으로 여우를 추격한다. 사냥개와 여우, 사냥개들 사이의 경쟁을 지켜보면서 사냥꾼은 짜릿한 긴장감과 흥분을 즐겼다. 이는 상대방의 팔을 뽑아버리거나 심한 경우 목을 졸라 죽이기까지 했던 고대 격투기와 질적으로 달랐다. 현대 스포츠는 폭력이 통제된 ‘놀이’라는 것이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코치로부터 발과 주먹으로 수십 차례의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그 뉴스를 보면서 한국에서 스포츠의 의미는 무엇일까 되물어본다.

운동선수에 대한 폭력은 한국 스포츠계의 고질적 병폐다. 일상화·관행화되어 있다. 통계도 이를 입증한다. 2016년 서울대 스포츠과학연구소 연구결과에 따르면 전국 운동선수의 38% 정도가 각종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손발이나 몽둥이로 맞기도 하고 욕설과 협박, 괴롭힘을 당했으며 원산폭격·손깍지 등의 가혹행위를 경험했다.

워낙 해묵은 문제다 보니 피해자가 유명선수거나, 엽기적 수준의 폭력이 아니고서는 보도되기도 어렵다.

엽기성이 큰 사건이 반복되다보면 충격은 덜하고 면역력은 커지는 법이다. 폭력에 대한 공분은 무관심과 무기력으로 변해 쉽게 잊혀지고 만다. 거론조차 ‘무얼 새삼스럽게’라는 느낌이 든다. 심 선수에 대한 누리꾼의 분노도 롤러코스터 같았던 북·미 회담과 남북정상회담의 역전 드라마에 묻힌 듯 지나가고 있다.

한국에서 국가 스포츠는 메달을 향한 무한질주다. 운동선수는 올림픽 메달을 따서 국위를 선양해야 살아남고 각종 대회의 메달을 거머쥐어야 대학 진학이 가능하다. 승리지상주의는 과열경쟁을 낳고 때려서라도 좋은 성적을 거두면 운동선수에게 공부를 안 시켜도, 폭력과 같은 인권유린이 자행돼도 쉽게 용서된다. 성적은 운동선수에게만 중요한 게 아니다. 지도자들의 일자리는 불안하고 대부분 성과급제의 비정규직이어서 경기 성적에 목숨을 걸게 된다.

시스템과 제도가 지도자의 폭력을 용인하고 부추기는 근원적 원인이 되고 있다. 심 선수의 경우도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기대만큼 기량을 보이지 못하자 코치가 폭력을 휘둘렀다고 한다.

폭력이 선수의 기량과 성적에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희박하다. 그럼에도 지도자는 조급한 마음을 폭력으로 해소하며, 경기결과가 나쁘면 훈련장에는 폭언과 폭력이 난무한다. 아예 나중에는 훈육을 핑계로 폭력이 일상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모든 적폐의 밑바닥에는 스포츠가 국위선양과 애국심 고취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도록 하는 국가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스포츠는 정권이 활용하기 좋은 먹잇감이다. 국가는 올림픽과 같은 화려한 메가 스포츠 이벤트에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하고 체육계는 메달과 성적으로 정권에 보답한다.

이 과정에서 인권유린에 대한 묵인뿐 아니라 승부조작과 입시부정 같은 비리도 끼어든다. 빙상연맹과 같은 각종 체육단체의 사유화와 권력을 거머쥔 특정 지도자들의 횡포 또한 공공연하게 자행된다. 그럼에도 결과만 좋으면 부정한 과정은 은폐되거나 슬쩍 넘어간다.

이 같은 적폐의 메커니즘에 대한 분석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체육계는 물론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들도 웬만큼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대대적인 개혁을 표방해온 이 정부가 들어선 지 1년이 넘도록 체육계 적폐청산은 감감무소식이다.

지난 3월 문체부가 발표한 ‘2030 스포츠비전’은 개혁 의지는커녕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 정부도 기존 체육정책의 기조를 유지하며 체육계의 충성을 살짝 즐기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체육계 적폐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켜켜이 쌓여 있다. 그렇다고 대한체육회 등 체육계가 스스로 자정하기란 기대난망이다. 그동안 폭력·성폭력 사건뿐 아니라 각종 제도적 개혁의 시대적 요구에 시늉만 내온 대한체육회의 모습은 한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었다.

운동선수에 대한 폭력은 한두 명의 코치를 엄벌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스포츠 적폐청산이라는 과제를 더 이상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운동선수를 때려서 훈련시키고 성적을 올리고 메달 따게 하는 것을 방치해 놓기에는 너무 미개하고 후진적이며 부끄러운 모습이지 않은가.

<문경란 |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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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의 파트너만 찾아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다른 선수들의 의욕이 떨어질 수 있다.”

1시간 가까이 진행된, 국가대표팀 명단 발표 및 기자회견 과정에서, 신태용 감독이 한 말이다. 다른 질문들에서는, 신태용 감독이 특유의 ‘어~’ 하는 간투사를 습관적으로 쓰면서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답변을 했는데, 이 질문에서는 고개를 들어 특히 강조하였다.

해당 기자의 질문 의도는, 기성용을 중심으로 한 미드필드 라인의 전술과 조율에 관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기성용 파트너’라는 단어가 활용되었고, 이에 관하여 대표팀 감독으로서 분명한 뜻을 밝힐 필요가 있었다. 마저 인용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기성용의 파트너를 찾기 위해 대표팀을 운영하는 건 아니다. 다른 선수들에게 예의가 아니다. 23인 엔트리를 똑같이 대우해줬으면 한다.”

중요한 발언이다. 대표팀을 구성하고 훈련하여 일단 조별리그 3경기 270분 동안 격전을 벌여야 하는 감독으로서는, 설령 그러한 질문이 없다 하더라도, 모처럼 생중계되는 과정을 통해 선수들에 대한 자신의 책임과 신뢰를 이렇게 선언적으로 밝혔어야 한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기자회견에서 신 감독 스스로 누누이 밝혔듯이 이번 대표팀 명단은 그가 생각한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다.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인하여 유력했던 선수들 몇몇이 빠졌다. 수비의 핵심인 김진수 선수처럼, 일단 발탁은 했지만 걱정되는 자리가 한둘이 아니다.

그 자리를 다른 선수들이 채웠다. 꽤 오랫동안 소속팀의 벤치에 머물고 있는 이청용 선수에 대한 질문이 거듭되었고 이에 대하여 신 감독은 몇 차례 비슷한 말을 되풀이해야 했다. ‘플랜 A’만 고집할 수는 없고 여러 경우의 수에 대응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함께 가지 못하게 된 선수들에 대한 신 감독의 마음도 불편했을 것이다. 특별히 김민재, 염기훈, 이창민에 더하여 전술적인 고려에 의해 선발하지 못한 최철순에 대한 아쉬움도 표현했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막판까지 고심하여 최종 명단을 발표하였으므로 이제부터는 다른 판단과 다른 발언이 필요하다. “선수층이 두꺼운 것은 아니다. 변화무쌍하게 가져갈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다”라는 말은, 오늘 이후로는 감독의 입에서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아야 한다. 그게 막판에 가서야 승선하게 된 “선수들에게 예의이며 대우”이다.

이를테면 이승우와 문선민 선수. 회견 중에 신 감독은 “선수들 수준이 두터우면 이 선수 저 선수를 교란작전으로 끌고 갈 수 있지만 사실 그런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듣기에 따라서는 어쩔 수 없이 ‘최선이 아니라 차선’을 택했다는 뜻이 된다. 이런 말은 오늘 이후로는 생각하지도 말아야 한다.

어느 감독이든 최악의 상황에서 차선의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그게 축구고 그게 인생이다.

아니, 신 감독 스스로 이승우와 문선민에 대한 상당한 판단과 기대를 말하지 않았던가. 이 두 선수는 기성용, 구자철, 권창훈 등으로 구성되는 미드필드 라인에 예기치 못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나이와 경험 부족을 염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이동국, 이천수, 박주영이 처음 대표팀에 발탁될 때도 그 같은 비판이 있었으나 이들 모두 한국 축구를 한 단계 발전시켰다. 축구의 세계화 현상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이승우는 바르셀로나에서 제대로 배워서 이탈리아의 1부리그에서 뛰고 있다. 문선민은, 스스로 길을 찾아서, 스웨덴의 3부리그를 시작으로 하여 1부리그까지 뛴 후, 현재 인천의 중심에 섰다. 신 감독 스스로 말했듯이 “스웨덴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해 보니 요긴하게 쓸 수 있는” 회심의 카드다.

속도!

금세기 축구의 최대 화두가 바로 속도다. 축구에서 말하는 속도는, 단순한 주파 능력이 아니라 능란한 기어 변속을 뜻한다. 과거처럼, 지칠 줄 모르고 뛰다 보면 결국 지친다. 이영표 해설위원이 예언적으로 말한 ‘스웨덴전 후반 막판 15분’ 같은, 그런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공간을 향하여 파괴적으로 돌진해야 한다. 그 시공간은 겨우 10초 내외 10m 정도다. 우리 팀에는 반드시 그 순간에 그 공간을 침범해버리는 선수가 필요하다.

이미 이근호, 손흥민, 황희찬, 권창훈은 공격 진영 전체를 자신의 영토로 맘껏 누비는 능력을 유감없이 증명해왔다. 여기에 이승우 카드까지 더하면, 언제든지 급가속과 급선회가 가능한, 창의적인 속도의 축구가 펼쳐질 수 있다.

신 감독은 ‘반란’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러시아에서 통쾌한 반란을 일으킨 뒤 귀국해 국민들과 팬들에게 따뜻한 환영을 받고 싶다”고 했다. 역사의 우연인 듯, 러시아는 반란과 혁명의 나라다. 더욱이 스웨덴과 1차전을 갖는 니즈니노브고로드는 반란의 작가 막심 고리키의 고향이며 독일과 맞붙는 3차전의 장소는, 혁명아 레닌이 대학을 다닌 카잔이다. 반란의 작가 고리키는 “인간은 노동의 동물이다. 노동을 통하여 끝없는 힘이 솟아난다. 하려고 한다면 무슨 일이든지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레닌은 더 말해 무엇하랴. 그는 절망이란 “악에 맞서 싸울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라고 했다.

신 감독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인용한 대로, 인터넷에서는 더러 고약한 사람들이 ‘3전 3패가 뻔하다’며 마치 축구공이 세모나 네모처럼 생긴 듯 말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번 대회의 공인구 역시 둥글다. 카잔의 혁명가 레닌은 “조직을 달라. 그러면 러시아를 뒤집어엎겠다”고 했다. 신 감독에게도 조직이 주어졌다. 비록 상황은 차선이었으나 그 자신은 최선의 선택을 한 조직이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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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스포츠 문화는 대체로 ‘나라 잃은 설움으로 청년들이 어울려’ 같이 낭만적으로 서술된다. 그런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일제강점기라 해도 시민/노동자에 의한 새로운 도시 문화의 형성과 그에 따른 집합적 정서의 강렬한 표출이 여러 도시에서 전개되었다.

북방의 대표적인 항만, 무역, 공업 도시 원산. 이곳에서는 1897년에 6홀 규모의 골프가 시작되었고 그 하늘 위로 축구공이 날아다녔다. 1926년 11월18일자 신문을 보면 폭우로 경기가 취소된 줄 모르고 관중들이 ‘우중에 장시간을’ 기다렸으나 주최 측은 ‘하등의 일언반구도 끗(끝)까지 막연’하여 결국 관중들은 원산체육회를 항의 방문까지 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개항 이후 항만, 정미, 목재, 연초, 제분, 철강 등 근대적인 산업 도시로 탈바꿈한 인천에서 1920년대에 인배회, 율목리팀 같은 자생적 ‘클럽’이 생겨나고 이들이 제물포고교 자리였던 웃터골에서 매해 ‘전인천 축구대회’를 가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압권은 역시 경평전이다. 경성과 평양은 근세기 이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영역에 걸쳐 경쟁 관계를 형성하며 발전해왔다. 청나라를 통해 일찌감치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대륙 기질의 평양과 한반도의 중심 거점 도시로 풍부한 인적, 물적 자원을 가진 경성은 축구에 있어서도 자연스럽게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였다.

경성에는 조선축구단과 경성축구단이 있었다. 1918년 창단되었다가 재정난으로 해산한 불교청년회 팀을 1925년에 재규합한 조선축구단은 경성의 휘문의숙에서 수학하던 통도사와 해인사의 학승들을 중심으로 하여 상당한 공격축구를 전개했다. 이 축구단은 전조선축구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일본이나 중국 원정까지 다녔다. 1933년에 창단한 경성축구단은 연희전문 출신들을 주축으로 하여 조선축구단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평양에는 1918년 무오년에 창단했다 하여 ‘무오축구단’이란 이름으로 출발하였다가 1933년에 재편된 ‘평양축구단’이 있었다. 대성학교, 숭실중학, 숭실전문 출신들의 역사다. 전국 주요 도시마다 축구 문화가 활성화되던 때다. 부산을 거점으로 하는 전동래축구단은 김해, 밀양, 마산 등을 돌며 순회 경기도 가졌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면서 본격적으로 대륙을 향한 전쟁을 도모하던 일제는 그 병참기지 역할을 하는 조선의 주요 도시에 사람들이 운집하는 것을 철저히 막고자 했다. 1931년 11월 함경남도 안변에서 개최 예정이던 축구대회도 시국 불안 요소가 있다는 이유로 금지시켰다.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던 1931년 경평전 또한 일제는 대회 자체를 ‘불온’하다고 규정하고 홍보 작업을 한 평양의 구두 공장 노동자 전영택을 경찰서로 끌고 가서 ‘엄중한 취조를’ 하고 구류를 살게 했다.

그럼에도 이 시절에, 요즘의 프로 축구와 같은 특징이 이미 장착되었다. 지역 연고가 뚜렷했으며 스카우트 경쟁도 벌어졌다. 경성의 프랜차이즈 스타 김용식은 1940년대에 평양으로 이적하기도 했다. 요즘 같으면 서울 팀에서 뛰다가 평양의 어느 팀으로 소속이 바뀐 셈인데 한국전쟁을 전후로 하여 70년 가까이 지속된 ‘분단 체제’는, 오래전 경성 선수가 평양 선수로 이적하여 뛰었다는 사실조차 쉽게 ‘상상’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1929년을 전후로 하여 수년 동안 전개된 경평전은 ‘홈 앤드 어웨이’ 및 ‘정기전’이라는 요소, 즉 단지 ‘식민지 청년들의 울분’만이 아니라 본격적인 ‘현대 도시의 프로 스포츠 문화’라는 특징을 충분히 실현해 가고 있었다.

1933년 4월, 평양 기림리 공설운동장에서 3회 대회가 열렸다. 무려 2만여 명이 몰렸다. 이때부터 경평전은 ‘홈 앤드 어웨이’를 전제로 한 라이벌전 성격을 갖게 된다. 당시 신문은 ‘제바닥’(홈) 경성이 이길 것인가 아니면 ‘원래’(遠來·어웨이)의 평양이 이길 것인가라고 썼다. 해방 직후의 시대적인 혼란과 열기는, 1946년 서울에서 열린 경평전을 격렬한 혼란과 열기로 휩싸이게 하였다. 관중 난동이 발생하고 경찰은 공포탄까지 쐈다.

그리고 수십 년이 그냥 흘러버렸다. 1990년 가을에 평양과 서울을 오가는 ‘남북통일축구대회’가 열렸고 2002년 가을에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2002 남북통일축구경기’가 열렸으나 단발성 이벤트로 끝났다. 이런 이벤트는, 현대 도시의 집합적 열기가 서려 있는 격렬한 축구 정기전이라는 ‘경평전’의 역사성을 잇기에 부족했다.

그래서 상상해본다. ‘상상’이라서 우울하지만 ‘상상’의 가능성마저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전쟁과 분단으로 인하여 남한은 지리적으로 고립되고 북한은 체제적으로 고립되었다. 자동차로 서너 시간이면 오가는 거리면서도 ‘상상력의 완전한 고립’ 상태가 수십 년 동안 지속되었다. 때마침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의 분위기다. 숱한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어쨌거나 평화 체제의 구축을 향한 발걸음이다. 여러 측면의 남북 교류가 예상되며 그중 첫번째는 역시 스포츠 교류다.

이럴 때에 ‘경평전’의 부활은 의미가 있다. 단순한 축구 경기가 아니라 한반도를 살짝 흔들어대는 문화 행위가 될 수 있다. 한반도의 중심 도시로 정치와 경제와 문화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두 도시가 다시 ‘경평전’으로 서로 왕래해야 한다.

아무래도 일회적인 이벤트로 시작하겠지만 그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일회적인 이벤트는 대체로 싱겁다. 공 하나로 짐짓 으르렁대면서도 다 함께 함성을 지르는 풍경이 벌어져야 된다. 그저 우애와 친선의 한마당이 아니라 일단 휘슬이 불리면 이기고 봐야 하는 ‘홈 앤드 어웨이’의 각축전이 펼쳐져야 한다.

경기는 격렬할수록 아름답다. 강슛으로 골이 터지면 미안해할 거 없다. 끝난 후 서로 안으면 된다. 심한 몸싸움으로 넘어지면 가서 일으켜주면 된다. 축구는 축구답게! 그럴수록 다음 경기, 홈 앤드 어웨이가 기다려진다.

이렇게, 중앙정부 차원이든 서울시 차원이든, 살아 펄펄 뛰는 ‘경평전’의 부활을 기필코 이뤄내기 바란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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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가 꺼지고, 열창의 공연이 평창의 밤하늘을 가득 채우는가 싶더니 이윽고 축포가 터지면서 패럴림픽이 끝났다. 관객들은, 그러나 간결하게 편곡된 ‘아리랑’을 들으면서 사진을 찍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좀 더 머물렀다. 조직위원회가 마련한 ‘방한 6종 세트’는 봄비 탓에 쌀쌀해진 평창의 밤을 충분히 견딜 수 있게 해줬다. 지난 2월9일 개막한 동계올림픽까지 다 합하여 한 달 넘게 진행된 평창의 겨울 동화는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동계올림픽 때도 그랬지만 이번의 패럴림픽! 와보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아이스하키 동메달 결정의 순간, 텔레비전 중계로 보면서 나는 감격적인, 아니 가슴이 미어질 듯한 ‘애국가’를 모처럼 격정적으로 들었다. 감독과 선수들과 관중들의 ‘애국가’는 화면 밖으로 넘쳐흘렀다. 여러 가지 정치사회적인 일로 인하여 ‘애국가’를 부르는 것이 때로는 불편하기까지 한 근래의 상황을 일거에 씻어버리는 장면이었다. 그야말로 목 놓아 부르는 ‘애국가’였으므로 내 마음은 금세라도 터져버릴 것처럼 뒤흔들렸다. 그래서 폐막식을 보러 갔고, 와서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신의현 선수가 크로스컨트리 스키에서 금메달(7.5㎞ 좌식)과 동메달(15㎞ 좌식)을 땄고 남자 아이스하키팀은 동메달을 땄다. 순위를 정하고 메달을 수여하는 경기대회이니만큼 이렇게 명백한 기준으로 뚜렷한 성취를 남긴 사람들은 특별히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패럴림픽의 취지는 물론이고, 스포츠에 내재된 일반적 의미에서 볼 때, 메달과 상관없이 이번 대회에 출전한 모든 선수들이 각자의 삶의 메달리스트들이다. 그들은 저마다의 힘겨운 삶의 조건에서 벗어나 평창으로, 강릉으로, 정선으로 위엄 있게 이동하여 각자의 경기장에 들어섰다.

얼마 전 타계한 스티븐 호킹 박사는 2000년 8월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이룩한 최고의 업적은,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18년을 더 살았다. 그것만으로도 호킹 박사는 뜨거운 메시지를 전한 셈이니, 겨울과 봄 사이, 찬바람도 불고 간간이 비도 내리는 패럴림픽의 현장으로 들어선 모든 선수들은 그 자체로 이미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잔치는, 그러나 숙제도 남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자료는 패럴림픽이 일시적인 축제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문체부와 대한장애인체육회가 전국의 등록 재가 장애인 5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7년 장애인 생활체육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생활체육 참여율이 20.1%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에 이 조사를 처음 실시했는데 그때 조사에서는, 1주일에 2~3회 이상, 1회 30분 이상 꾸준히 운동하는 장애인 생활체육 인구는 4.4%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12년 만에 4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특히 ‘건강증진 및 관리’를 위한 체육 활동이 ‘재활 운동’을 상회하는 등의 생활 저변화가 이뤄진 점도 특기할 만하다. 이렇게 점진적으로 향상되었지만, 압축하여 말하건대 여전히 5명 중 4명은 생활 체육 자체를 전혀 접하지 못하고 있다. 체육시설과 편의시설도 부족하다. 그마저도 대도시에 몰려 있다. 장애인의 신체와 생활 조건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생활체육 지도자는 여전히 부족하다. 문체부에 따르면 현재 장애인 생활 체육인이 30만명 정도인데 이들과 함께할 지도자는 최대한으로 잡아도 1000명 정도다. 문체부는 일단 현재 450명 정도에서 올해 안에 577명 선으로 확대 배치할 계획이다.

더 중요한 것은, 생활 체육 이전의 상태, 즉 최소한의 이동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2001년 1월, 오이도역 수직형 리프트 추락 사고를 계기로 장애인의 이동권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었다. 이 사건 이후 지하철 선로를 가로막거나 온몸에 쇠사슬을 묶고 버스를 점거하는 등의 격렬한 저항이 이어졌다. 2003년, 국립국어원은 ‘이동권’이라는 이 절박한 용어를 하나의 의미 있는 사회적 신어로 수록하였고 2005년에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만들어졌다.

그 이후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저상버스 도입, 보행환경 개선 등이 일정하게 마련되었으나 이 법의 3조가 규정한 대로 모든 교통수단을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가 이뤄진 것은 아니다. 지난 3월14일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는, 휠체어 장애인의 시외 이동권 보장을 위한 고속·시외버스 승강설비 설치 등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한다고 밝혔지만, 업계는 “과도한 비용이 소요된다”며 ‘불수용’ 입장을 밝힌 상태다.

영국에서는 22석 이상의 대중교통 수단은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저상버스로 운행해야 하며 미국은 장애를 가진 승객에 대한 수송을 거절하거나 이행하지 못할 경우 차별로 간주하여 처벌한다. 독일은 장애인의 보행과 교통수단 이용을 위한 편의시설 확보 등을 사법적으로 지원하는 부서가 별도로 있다.

당장 이 모든 문제를 일시에 해결하자는 것은 아니다. 나라마다 교통업계의 사정이 다르고 재정 형편이 다르다. 그러나 마음마저 달라서는 안 될 일이다. 오이도역 사고 이후 무려 17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제 몸을 쇠사슬로 묶고 눈물의 저항을 해야 한다면, 그것도 명절에 귀성 버스 타겠다고 울부짖는 상황이라면 이젠 달라져야 할 때가 아닌가.

패럴림픽 선수들을 위해 보낸 감격의 환호와 박수를 이제는 사회 전반의 상황으로 돌려야 한다. 방금 꺼진 성화는, 영영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들의 보편적 이동권과 보다 많은 생활 체육 활동으로 되살아나야 한다. 그것을 갈망하며 신의현 선수는 이를 악물고 설원을 달렸고 아이스하키 선수들은 울부짖듯이 ‘애국가’를 불렀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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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패럴림픽이 18일 폐회식을 끝으로 10일간의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우리가 세상을 움직이게 한다’를 주제로 진행된 폐회식에선 다양한 공연과 퍼포먼스가 펼쳐져 평창의 밤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전 세계인에게 뜨거운 감동을 선사했던 평창 패럴림픽은 역대 최대 규모인 49개국 567명의 선수가 참가해 각본 없는 열정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장애를 딛고 일어선 선수들의 도전정신은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전했다.

18일 강원 평창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패럴림픽 폐회식에서 신임 선수위원들이 자원봉사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평창 패럴림픽은 역대 어느 대회보다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특히 북한이 평창 올림픽에 이어 20명의 선수단을 꾸려 동계패럴림픽 사상 처음으로 참가해 ‘평화올림픽’을 구현한 것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대회 운영도 나무랄 데 없었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저상 셔틀버스와 휠체어리프트 설치 차량을 운행해 장애인 선수와 관중들의 경기장 접근성을 높였다. 청각 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지원과 시각 장애인 맞춤형 서비스도 호평을 받았다. 흥행도 큰 성과를 거뒀다. 대회 개막 전에 제기됐던 우려와는 달리 입장권은 34만여장이 판매돼 목표치의 150%를 웃돌았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도 지적했듯이 국내 지상파 방송사의 중계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미국 NBC, 일본 NHK, 영국 채널4가 62~100시간 편성한 데 비해 국내 지상파 3사는 18~32시간을 편성했다가 비판이 쏟아지자 마지못해 중계시간을 늘렸다.

패럴림픽의 주역인 선수들은 빙판과 설원에서 불굴의 의지와 투혼을 발휘했다. 한국 선수단은 금메달 1개, 동메달 2개로 공동 16위를 기록했다. 목표에는 못미쳤지만 최선을 다한 값진 성과다. 동계패럴림픽 사상 첫 금메달과 동메달을 딴 ‘한국 노르딕 스키의 간판’ 신의현 선수는 7개 종목에 출전하며 64㎞를 질주했다. 3~4위 결정전에서 이탈리아를 꺾고 동메달을 딴 아이스하키팀과 ‘오벤져스’로 불린 휠체어컬링팀의 선전은 벅찬 감동을 안겨줬다.

평창 패럴림픽이 앤드루 파슨스 국제패럴림픽위원장의 말처럼 “역대 최대 이벤트”가 될 수 있었던 데는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평창 패럴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계기로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없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고양되길 기대한다. 그게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더불어 살기를 모색하는 패럴림픽정신을 실천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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