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을 틈틈이 재미나게 보고 있다. 경기의 승패에 몰입하여 일희일비하며 환호와 탄식을 오간다. 누구나 알다시피 올림픽은 선수들에겐 가장 큰 성공과 실패를 맛보게 해주는 장이다. 메달을 따면 금의환향하지만 따지 못하면 그 박탈감이 어마어마하게 크다. 그야말로 사활을 건 한판 싸움이니 지켜보는 이들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 돌 하나를 어떻게 던지느냐에 따라 앞서 계산했던 온갖 수와 자리싸움의 운명이 결정 나는 컬링 경기를 비롯해 대부분 건곤일척의 승부다.

아나운서와 해설위원의 설명을 듣다보면 선수들마다 사연이 많다. 소속 국가가 제재를 받아 개인 자격으로 참가하고 ‘러시아 출신’이라 불리는 선수들을 비롯해 마음고생이 심했던 여자 하키 선수들이 한 골 넣고 서로에게 달려드는 모습은 그 무게감이 남다르다. 일본의 한 피겨 선수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집과 연습장이 사라져 전국을 떠돌며 연습했다고 하고, 눈 한 자락 내리지 않는 지역의 선수들이 꼴찌를 하고도 엉덩이를 흔들며 세리머니를 하는 모습에 웃음을 짓기도 한다.

4년 전 러시아 소치 올림픽에서도 세 번의 실격을 기록했던 영국 엘리스 크리스티(뒤)가 13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500m 결승에서 치열한 자리 다툼 도중 미끄러지고 있다. 역주한 한국 에이스 최민정도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실격 처리되면서 메달이 무산됐다. 강릉 _ 연합뉴스

유독 이번 올림픽에선 선수들의 희로애락에 눈길이 갔다. 특히 경기가 끝난 직후 경쟁하던 선수끼리 서로 안아주며 격려하는 장면이 많았다. 스켈레톤 경기는 1차전부터 4차전까지의 기록을 합산해 총점으로 승부를 가린다. 마지막 3차전까지 총점을 매겨 가장 순위가 낮은 20위부터 4차전을 시작하는데 경기를 마친 선수들은 포토라인에 서서 다음 선수의 경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만약 다음 선수가 기록을 깨면 자동으로 퇴장하고 깨지 못하면 계속 남아 있는 구조다. 기록이 낮은 순으로 타기 때문에 주인공이 계속 바뀐다. 포토라인에 선 이들은 경쟁자가 나보다 못 타주길 바랄 것이다. 그런데 마음은 그렇더라도 행동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기록을 깬 선수 앞으로 다가가 힘껏 포옹하며 축하해주고 퇴장한다. 나는 늘 보던 이 모습이 이번에는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경쟁과 축하의 너무나도 급격한 전환이면서도, 지극히 자연스러워 신선하게 다가오는.

스노보드 경기에서는 상대방이 타다가 넘어지든, 신기록을 세우든 상관없이 얼싸안고 우는 모습이 경쟁자라기보다는 생사를 함께한 동료를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눈을 배경으로 해서인지 알피니스트들의 진한 우정이 떠오르기도 했다. 상대가 나보다 못하기를 애타게 바라는 마음에서는, 그 상대가 자신의 기록을 넘어섰을 때 실망하거나 화가 나야 정상이다. 실제로 우는 선수도 있었지만, 그렇더라도 눈물 콧물을 닦으면서 진심으로 다가가 꽉 안아주는 모습에서는 어떤 경이감까지 느껴졌다.

최민정 선수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보다 열심히 훈련한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메달을 걸어주겠다.” 그만큼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의미다. 올림픽 무대에 서기 위해 저 선수들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경기를 끝마치기 무섭게 눈물부터 터지는 것에서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지켜보는 관중도 이럴진대 같이 뛰는 선수끼리는 어떻겠는가. 자신이 겪은 그 고통을 이겨낸 선수가 선물을 받는 것임을 알기에 그렇게 일거에 찾아온 실망과 좌절 속에서도 나보다 잘 뛰고, 잘 달린, 운도 좋은 선수에게 다가가 진심으로 안아줄 수 있는 것일 테다.

아마 많은 이가 이런 장면에서 감동을 받을 것이다. 아시아인 최초로 썰매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윤성빈 선수가 관중을 향해 큰절을 올리는 모습도 같은 국가, 같은 민족으로서 명절이라고 저렇게 절을 하는구나 하는 마음에 무한한 위로와 공감을 자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 찰나의 화면에 정치인의 웃는 얼굴이 한번 스쳐 지나갔다가 또 한번 나오고 그러다가 또 비쳤을 때 고양됐던 감정은 급속히 싸늘해질 수밖에 없다.

일반인의 접근이 허락되지 않는 특별한 공간에 특별한 대우를 받고 특별한 순간의 기쁨을 나눠 갖기 위해 저렇게 나왔다는 사실이 현 정부와 여당의 지지자인 나로서는 좀 많이 안타까웠다. 왜 그 욕심을 억누르지 못했을까. 왜 저렇게 어리석은가. 정치의 생리와 정치인의 존재론적 특징을 짐작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을 떨칠 수 없다.

이번 올림픽에서 무수한 포옹과 눈물을 지켜보았다. 서로의 처지를 나누는 사람끼리 이심전심 포옹하는 이 모습이 우리 사회에 전해주는 메시지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포옹은 진심을 담아 타인 지향적으로 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말이다. 자신의 성적 욕심을 채우기 위한 자기 지향적 포옹이 미투 운동의 불을 붙이고 있는 현 상황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역설적 교훈이 아닐까.

<강성민 |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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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15일 지면기사-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남북한 선수들이 단일팀을 이뤄 출전한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예선이 14일 일본전을 끝으로 예선리그를 마무리지었다. 앞으로 5~8위 결정전 2경기가 더 남아 있지만 지금까지의 경기만으로도 잘해냈다고 손뼉 쳐줄 만하다. 국가 간 실력차가 큰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세계 3~4부 리그에 머물고 있는 남북한 선수들은 스위스와 스웨덴 등 세계 톱클래스팀과도 용기있게 싸웠고, 일본전에서는 역사적인 골까지 넣었다.

이번 단일팀은 얼어붙어 있던 남북관계를 반영하듯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최종 결정(1월20일)과 북한 선수 12명의 합류(25일) 등 일사천리로 단일팀이 구성되자 20~30대를 중심으로 한 국내 여론은 싸늘해졌다. 북한 선수들을 다 차려낸 밥상에 숟가락 하나 들고 찾아온 불청객쯤으로 여기는 이들도 많았다. 이 같은 부정적인 기류를 알고 있던 북측 선수들도 세라 머리 단일팀 감독과 남측 선수단의 눈치를 몹시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머리 감독이 ‘원팀’을 강조하면서 차별 없이 합동훈련을 하고, 따로따로 설치했던 라커룸도 함께 쓰도록 했다. 양측의 임원들은 밖으로 내보냈다. 서로 격의 없이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였다. 남북 선수들 역시 서로 생일잔치를 해주며 스스럼없이 대했다. 선수들끼리 경포대 해변을 거닐고, 카페거리에서 커피를 마시며 흉금을 털어놓았다. 남북한 코치들은 3쪽짜리 아이스하키 용어집을 만들어 소통했다. 혹여 선수단 화합분위기를 저해하는 요소가 돌출되면 앞다퉈 한목소리로 지켜주었다. 머리 감독의 말마따나 선수들을 끈적끈적하게 결합하는 ‘팀본딩’을 이룬 것이다. 남북한 응원단도 힘을 보탰다. 우려 속에 출발한 단일팀이 단 20여일 만에 이룩해낸 작은 통일이다. 외신들도 스위스·스웨덴 등 강호와 맞선 단일팀에 ‘경기는 졌지만 평화가 이겼다’는 평가를 내렸다. 안젤라 루기에로 IOC 위원(미국)은 “단일팀 선수들은 노벨 평화상을 받아야 한다”고까지 했다. 한국 갤럽 조사에서 단일팀 구성에 40% 대 50%로 부정적이던 여론도 경향신문의 설특집 여론조사 결과 긍정적(56.8% 대 38.7%)으로 바뀌었다. 타의로 만들어진 단일팀이지만 서로의 마음을 한데 모은 ‘선수들의 단일팀’이 된 덕분이다.

하지만 이번 단일팀은 1991년 지바 탁구선수권대회 때의 단일팀이 46일간이나 한솥밥을 먹고도 일회성으로 끝나버린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 당시 현정화 선수는 ‘이 기분 뭐지. 왜 우리가 헤어져야 하지’ 하는 허탈한 감정이 들었다고 술회했다. 남북 간 상황은 그때보다 열악하다. 더 이상 단일팀 구성이 어려울 수도 있다.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남북 교류가 지속되어야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경평축구 재개’를 이야기했다니 무척 고무적이다. 아이스하키의 경우도 남북한 정기합동훈련이나 교류전 등으로 모처럼 조성된 단일팀 분위기를 살릴 필요가 있다. 한 자매처럼 지냈다가 기약 없이 헤어져야 하는 감정적 단절을 더 이상 선수들에게 안겨줘서는 안된다. 스포츠가 정치와 무관할 수 없는 현실에서 돌발변수의 영향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핑퐁외교가 중국과 미국 관계를 풀어줬듯이 남북 스포츠 교류 역시 한반도 긴장을 녹일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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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하키에서 가장 불쌍한 포지션이라면 역시 ‘골리(골키퍼)’를 꼽을 수 있다.

두께 2.54cm, 지름 7.62cm의 원형압축고무를 얼려 만든 무게 150~170g의 퍽이 시속 160~180㎞의 총알속도로 날아오는데, 이것을 온몸으로 막아야 한다. 1950년대 말까지만 해도 아이스하키 골리는 맨 얼굴로 경기에 나섰다. 1927년 여자선수인 엘리자베스 타일러(퀸즈대)가 치아보호를 위해, 1930년 클린트 베네딕트가 부러진 코를 보호하려고 각각 마스크를 썼다. 그러나 부상에서 회복된 후에는 곧바로 마스크를 벗어던졌다. 시야를 가리는 그 무엇을 얼굴에 단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상대와 당당히 맞서야 할 선수가 얼굴을 가리고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이거야말로 불성실한 겁쟁이 아닌가.

8일 인천 선학국제빙상장에서 열린 남자아이스하키 국가대표 평가전 한국과 슬로베니아의 경기. 1피리어드 한국 대표팀 골리 맷 달튼(왼쪽 사진)의 마스크에 이순신 장군 그림이 지워져 있다. 오른쪽 사진은 3일 열린 카자흐스탄과의 평가전에서 이순신 장군 그림이 그려진 마스크를 착용한 맷 달튼 모습. _사진출처 : 연합뉴스

 

그러던 1959년 11월1일 사건이 일어난다. NHL(북미하키리그) 몬트리올 캐나디언의 골리인 자크 플랑트(1929~1986)가 뉴욕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상대방이 날린 퍽을 얼굴에 맞았다. 겨우 상처를 꿰맨 플랑트는 “시야를 가린다”고 반대하는 코치에게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경기에 나서지 않겠다”고 고집했다.

당시 NHL팀에는 백업 골리가 없었으므로 플랑트가 출전을 거부하면 팀은 몰수패 할 수밖에 없었다. 코치는 할 수 없이 플랑트의 마스크 착용을 허용했다. 이후 골리 마스크를 쓴 플랑트의 팀은 연전연승했다. 당시 플랑트가 마스크를 벗고 출전한 경기가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경기에서 패했다. 이후 플랑트의 얼굴은 늘 골리마스크로 가려져 있었다. 골리마스크는 NHL의 시대조류가 되었다. 물론 앤디 브라운 같은 골리는 ‘맨얼굴이야말로 용감함의 상징’이라며 1977년 은퇴할 때까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은 무시무시한 형태의 마스크(헬멧)로 전의를 불태웠다. 보호장구를 착용하자 골리들은 얼굴에 퍽을 맞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났다. 낮은 자세로 수비할 수 있으니 더 부담없이 몸을 던질 수 있었다. 비겁이 아니라 오히려 용감의 상징이 된 것이다. 상대방과의 기싸움에서 이기고, 혹은 패션피플로서의 개성을 표출하려는 매개의 역할도 했다.

한국대표팀의 귀화골리인 맷 달튼(32·캐나다 출신)은 특별히 이순신 장군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이순신 장군처럼 대한민국의 수호신이 되겠다면서 마스크에 장군의 동상 그림을 새겨달라고 특별히 요청했다. 귀화선수지만 ‘대한민국 대표로 뛴다’는 각오를 표하고, 각종 대회마다 애국가를 따라 부르는 달튼이 아니었던가.

그런 달튼이 최근 낙담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마스크에 새긴 이순신 장군 그림을 ‘정치적’이라며 불허했기 때문이다. IOC는 오스트리아의 로빈후드, 체코의 개국공신, 이스라엘의 삼손, 그리고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그림도 불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공식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마스크(헬멧)를 봐야 ‘IOC의 저울’이 정말 공평했는지를 알 수 있다. 2012년 욱일승천기의 이미지를 새긴 유니폼을 입고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일본 체조팀을 징계하지 않은 사례도 있다. 물론 어떤 경우든 공연히 책잡힐 필요는 없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축구에서 동메달을 따고 독도세리머니를 했다가 곤욕을 치른 박종우가 좋은 예다. 이순신 장군의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명언을 가슴에 담고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란다.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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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이탈리아 폼페이에서 발굴, 복원된 검투사 경기장을 봤다. 영화 &lt;쿼바디스&gt;나 &lt;글래디에이터&gt;에서 본 거대한 원형 경기장과는 달리, 지름 10m 정도밖에 안 되는 반원형 광장 주위에 관중석을 둘러 세운 형태였다. 광장과 바로 맞닿은 곳에는 귀족들을 위해 특별히 길게 만든 돌 침상(寢牀)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당대 귀족들은 이 자리에 모로 누워 음식을 먹으면서 경기를 관람했다. 먹다가 배가 부르면 새의 깃털을 목구멍에 쑤셔 넣어 토해내고 다시 먹으면서, 사람끼리 서로 칼로 베고, 창으로 찌르며, 도끼로 찍고, 철퇴로 치다가 피 흘리며 죽어가는 장면을 ‘관람’했을 또 다른 사람들을 상상하니, 절로 몸에 한기가 들었다.

그런데 인간 행위에 관한 현대의 분류법을 적용하면 저런 행위는 어디에 속할까? 살인과 살인방조? 아니면 스포츠와 스포츠 관람?

 

1903년 정월 대보름 무렵, 서울 만리재에서 예년과 다름없이 돌싸움이 벌어졌다. 남대문 동대문 서대문 밖 사람들이 한패가 되고, 애오개 마포 용산 사람들이 또 한패가 되어 맞붙었는데, 석전꾼(石戰軍)만 9000여 명, 구경꾼은 2만여 명에 달했다. 구경꾼 중에는 구미인들도 섞여 있었다. 피와 살이 튀는 격렬한 경기를 보다가 저도 모르게 흥분했던지, 운산금광의 미국인 직원 클레어 헤스(Clare W. Hess)는 가까이에 떨어진 돌을 집어 경기장 안으로 힘껏 던졌다. 석전꾼 한 명이 그 돌에 맞아 즉사했다. 옆에 있던 구미인들은 한국인들에게 보복당할까 봐 새파랗게 질렸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매년 서울에서만 돌싸움으로 수십 명에서 수백 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했기에, 왕조 정부도 여러 차례 금령(禁令)을 발했다. 그러나 이 세시풍속에는 비상시를 대비한 군사훈련의 성격이 강했고 참가자도 너무 많았기 때문에, 단속 효과는 없었다.

서울에서 돌싸움이 사라진 것은 일본 헌병이 치안권을 장악한 1908년 이후였지만, 1920년대 중반까지도 뛰어난 선수와 흥행사 등 경기 관계자들의 이름이 인구에 회자되었다. 이 돌싸움은 또 어떤 인간 행위로 분류해야 할까?

구기와 체조 등 일부 종목을 제외하면, 스포츠는 본래 모의전투다. 근대 스포츠가 고대와 중세의 스포츠와 다른 점은 살상력을 제거하거나 극소화했다는 점뿐이다. 인류는 동종(同種)끼리 서로 살육하는 습성을 가진 유일한 동물이다. 모의전투인 스포츠는 인간으로 하여금 개체의 전투력을 향상시키면서도 살육 욕구를 다른 방향으로 분출할 수 있도록 했다. 사람들에게 전쟁 중의 광기(狂氣)와 유사한 느낌을 갖게 하면서도, 아무것도 파괴하거나 살상하지 않는 것이 스포츠의 힘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올림픽을 창설하여 1000여 년간 지속했던 것도, 유럽의 명사들이 프랑스인 쿠베르탱의 제창에 호응하여 올림픽 부활을 선언하고 1896년부터 근대 올림픽을 개최한 것도, 스포츠의 이런 힘을 알았기 때문이다.

올림픽은 개인 단위, 또는 분대(팀) 단위로 벌어지던 모의전투를 국가 간의 모의 전쟁으로 확대한 것이다. 스포츠가 선수들에게 요구한 덕목은 중세 유럽의 기사도와 유사한 스포츠맨십이었다. 규칙을 지키며 공정하게 경쟁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것. 전력을 다해 싸우되 상대를 해치지 않는 것 등. 그런데 전투는 군사(軍事)지만 전쟁은 정치다. 올림픽은 스포츠맨십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그보다 훨씬 더 확장된 미덕을 요구했다. 올림픽 창설자들은 각국이 서로 경쟁하나 전쟁하지 않는 세계, 전쟁과 살육의 욕구를 건강하게 해소하는 세계를 꿈꿨다. 올림픽은 살육과 파괴가 없는 모의 세계대전이며, 그래서 올림픽 정신의 요체는 첫째도 평화, 둘째도 평화, 셋째도 평화다.

한국인들이 올림픽에 관한 정보를 언제 처음 입수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1909년 개성시내 각 학교 연합운동회장에 만국기가 걸렸는데, 스포츠를 세계와 연관 지은 것으로 보아 이때쯤에는 올림픽에 대해 알았을 것이다. 1913년에는 일본, 필리핀, 대만, 태국, 말레이시아, 홍콩을 회원국으로 하여 제1회 극동올림픽이 개최되었다. 한국인이 극동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것은 1921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제5회 대회로서, 일본 선수단이 아니라 재(在) 상하이 조선인 체육협회 소속으로 출전했다. 한국인 선수가 올림픽 무대를 처음 밟은 것은 1932년 LA 올림픽이며,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손기정이 마라톤 금메달을 획득했다. 정부 수립 전에 열린 1948년 런던 올림픽에는 KOREA라는 국호로 참가했다.

올림픽은 세계 평화에 대한 지향과는 별도로 민족주의를 고취하고 국민통합을 강화하는 힘으로도 작용했다. 올림픽은 스포츠를 ‘국민 만들기’라는 정치행위의 핵심 요소로 만들었고, ‘체력은 국력’이라는 구호 아래 국가가 국민을 훈육할 수 있도록 했다. 초등학교 운동회장에까지 걸린 만국기는 스포츠와 국가와 세계 사이의 관계를 직관적으로 가르쳤다. 올림픽 기간 중에는 세계 각국 사람들이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었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공동 입장과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결성을 두고 ‘정치적 의도에 따라 올림픽 정신을 훼손한 처사’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스포츠맨십과 올림픽 정신을 혼동한 탓이다. 남북 간의 적대감을 줄이는 것, 전쟁 위험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것, 무엇보다도 세계를 향해 ‘우리는 본래 떨어질 수 없는 하나’라고 선언하는 것이야말로, 올림픽 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일이다. IOC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이번 평창 올림픽을 한민족 화합의 무대이자 전쟁 위험을 줄이는 계기로 삼기 위해 애쓰는 중에도, 정작 한국에서는 평양 올림픽이니 뭐니 하며 남북 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적대감을 고취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는다.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짓이며, 부끄럽고 한심한 짓이다.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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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9일 개회식과 함께 17일간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대회에는 사상 최대 규모인 92개국 3000명의 선수가 참가한다. 이번 대회는 특히 올림픽의 지고지순한 가치인 ‘평화와 화해’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 정세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로 전쟁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고, 미국 등 일부 국가의 올림픽 참가마저 불투명하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그러나 북한의 참가가 결정되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져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구성되는 등 단박에 ‘올림픽 평화무드’가 조성됐다. 전쟁으로 인한 공멸을 피하려고 고심 끝에 4년 간격의 올림픽 제전을 마련한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정신을 구현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두 개의 대표단이 한반도기 아래 함께 행진하고 단일팀으로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스포츠가 가르쳐주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올림픽 한번 연다고 금방 평화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기간만이라도 갈등과 반목을 잠시 멈추고 화합의 실마리를 모색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가치있는 일이다. 당초 우려와 달리 “남북 선수들의 케미스트리가 좋고 소통도 잘되어 마치 한가족 같다”고 만족감을 드러낸 아이스하키 단일팀 세라 머리 감독의 평가가 가슴에 와닿는다. 먼저 소통하고 신뢰가 쌓이면 전쟁도 막을 수 있다. 이제 어렵사리 마련된 평화와 화합의 토대에서 그동안 흘려온 땀의 결과를 즐길 때가 됐다.

국내팬들은 단일팀이 1승 이상의 성적과, 한국 선수단의 금 8개 획득과 종합 4위 달성 등을 응원할 것이다. ‘보다 빨리, 보다 높이, 보다 강하게’가 올림픽 표어인 만큼 최고를 갈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더 높은 가치는 열정과 노력 그 자체이다. 이번 대회에는 난민 출신인 섀넌 아베다(에리트레아)와 벤스니크 소콜리(코소보·이상 알파인스키), 아프리카판 ‘쿨러링’인 나이지리아 봅슬레이팀, 역시 겨울이 없는 싱가포르(쇼트트랙)와 말레이시아(알파인스키·피겨) 선수들이 나온다. 이 밖에 45세의 빙상선수(클라우디아 페히슈타인·독일)도, 청각장애 봅슬레이 선수(김동현) 등도 출전한다. 팬들은 이들의 당찬 도전에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것이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약물 복용 전력이 드러난 러시아 선수들이 대거 출전정지 처분을 받았다. 평창은 덕분에 약물에 의존하지 않는 선수들의 첫 번째 대회로 올림픽 역사에 남을 수 있다. ‘가장 깨끗한 선수들의 가장 깨끗한 경쟁’이 펼쳐지기를 성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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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만 쓰이는 영어, 즉 콩글리시의 대표선수가 파이팅(fighting)이다. 핸드폰(cell phone)과 더불어 이제는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까지 이 말을 따라 쓴다. 영어의 동사 ‘fight(싸우다)’의 명사형인 이 말에는 응원이나 격려한다는 의미가 없다. 한국인들이 쓰는 대로 ‘최선을 다하자’는 뜻에 해당하는 영어 표현은 ‘고(Go·가자!)’다. ‘한국, 파이팅’은 ‘Korea, Fighting’이 아니라 ‘Go, Korea’라고 해야 맞다.

표준국어대사전도 ‘파이팅’을 등재하면서 ‘운동 경기에서 선수들끼리 잘 싸우자는 뜻으로 외치는 소리. 또는 응원하는 사람이 선수에게 잘 싸우라는 뜻으로 외치는 소리’라고 소개한 뒤 ‘힘내자로 순화한다’고 부연하고 있다. 싸운다는 뜻만 들어 있는 만큼 외국인, 특히 영어를 쓰는 상대팀에 적대감을 심어준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게다가 결혼식장은 물론 찬송가를 부를 때도 파이팅을 외친다.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전의를 불태우는 한국은 ‘전사의 나라’인가? 국립국어원이 ‘아자’라고 했다 다시 ‘힘내자’로 순화했지만 한국인들은 여전히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가 이번 대회의 구호를 ‘아리아리’로 정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5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등에게 “새롭게 미래를 만든다는 뜻을 담고 있는 순우리말”이라고 소개한 뒤 아리아리를 제창했다. 아리아리는 평생 우리 민중의 정서를 담은 말을 찾아내 복원하고 있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수십년 동안 써온 말이다. 백 소장은 ‘길이 없으면 찾아가고, 그래도 길이 없을 것이면 길을 내자’는 말로 아리아리의 뜻을 푼다. 백 소장은 모임 끝자락에 “쳐라쳐라 이어차~” “질라라비 훨~훨~”과 함께 아리아리를 불림(구호)으로 외치는데, 그때마다 좌중의 흥이 파도처럼 일어난다. 아리랑의 고장 강원도 정선의 작은영화관 이름에도 ‘아리아리’가 붙어 있다. 이만하면 ‘파이팅’인지 ‘화이팅’인지도 헷갈리는 외래어를 대체할 만하지 않은가. 

30년 만에 한반도에서 다시 한번 인류의 제전이 펼쳐진다. 남북이 한반도 깃발 아래에서 함께 아리랑을 부르고 아리아리를 목청껏 외치는 모습이 벌써부터 그려진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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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사피엔스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탈출한 이후에도 싸움이 그친 적은 한 번도 없다. 인류의 먼 조상으로 동물에 가까웠던 구 인류뿐 아니라 현생 인류도 폭력성을 버리지 못했다. 그들도 관용을 몰랐다.

인간은 왜 싸우는가. 토머스 홉스는 인간의 자연상태를 ‘만인 대 만인의 투쟁’으로 보았다. 따라서 강제적인 수단으로 국가가 내부 평화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홉스는 호모사피엔스의 본성이 동물과 다르지 않다고 본 것이다. 반면 장 자크 루소는 인간 자연상태가 평화롭고 조화로웠으나 점차 인구가 성장하고 사유재산, 계급분화가 나타나면서 전쟁과 각종 병폐가 출현했다고 했다. 따라서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그러면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이 둘은 시계추처럼 시대에 따라 한쪽이 설득력을 얻었다가 다시 잃기를 반복하고 있다.

최근 현존하는 수렵채집인이나 과거 서구인이 관찰한 수렵채집인들에 대한 연구, 선사시대 수렵채집인들의 생활에 대한 발견, 그리고 진화론을 바탕으로 고찰한 한 연구는 인간의 자연상태를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결론내렸다. 인간의 자연상태가 루소가 말했던 평화로운 상태가 아니라 치열한 생존경쟁의 싸움터였다는 것이다. 아자 가트는 &lt;문명과 전쟁&gt;에서 “인간의 자연상태는 동물사회와 다를 것이 없는 투쟁이 지배했으며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인간의 노력에 따라 달렸다”고 결론지었다. 인류에게 평화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폭력적인 본성을 억제한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리스에서 도시국가 간 전쟁에 지친 이들은 평화를 찾을 방안을 모색했다. 올림픽은 안전을 희구하는 그리스인들이 만들어낸 발명품이다.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반도 북서쪽에 위치한 도시국가 엘리스의 왕 이피토스는 전쟁과 전염병까지 액운이 휩쓸자 신에게서 신탁을 받았다. ‘전쟁을 일으키지 말고 해마다 제전을 열어 우정을 두텁게 하라’는 신탁을 받아든 그는 그동안 중단되었던 경기를 다시 열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주변국과 조약을 맺었다. 올림피아는 성지이며 여기에 무력으로 발을 들여놓는 자는 신성을 모독하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올림피아 휴전기간 중에 엘리스의 영토에서는 어느 누구도 몸에 무기를 지니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경기가 열리기 몇 달 전부터 그리스 본토와 해외지역의 모든 도시국가에 전령이 파견되었다. 신성한 휴전기간이 선포되었고 모든 그리스 시민들은 올림피아에 초대되었다. 이 기간 동안 자유로운 여행이 보장됐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올림피아 제전뿐만 아니라 유사한 제전들이 그리스 전역에서 열렸다. 델피의 파티아 제전, 아르골리스의 네미아 제전, 코린트의 이스트미아 제전 등이 4년 또는 2년 주기로 열렸다. 물론 제전이 열리는 시기는 휴전기간이었다.

올림피아 제전은 도시국가 간 맺은 동맹과 조약을 다른 도시국가에 공표하는 기회로 이용되기도 했다. 아테네와 아르고스 등은 올림피아 축제를 이용해 동맹조약을 기념하는 청동기둥을 세우기도 했다. 또한 휴전기간에 다른 도시국가를 공격했을 경우에는 올림피아 법에 따른 처벌이 뒤따랐다. 벌금은 물론 올림피아 제전에 참여도 불허했다. 그러나 평화를 위한 노력의 산물인 올림피아 제전의 전통은 오랫동안 끊어졌다.

수천 년간 사람들은 타자를 잠재적인 적으로 여기고 자신을 공격해 올 것에 대비하는 방어기제를 발달시켜왔다. 상대방이 적의가 있든 없든 두려움, 의심, 불안을 지우지 못했다. 때론 그 의심은 선제공격으로 이어졌다. 안보딜레마라는 악순환의 늪으로 빠져든 것이다. 전쟁은 자기충족적인 예언이 되고 전쟁의 공포가 전쟁을 낳는 파국의 연속이었다. 19세기 말 올림픽 부활의 논의가 있었고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 다시 살아났다. 올림픽은 세계인들이 함께하는 축제이며 평화의 제전이다. 하지만 그동안 두 번의 세계대전이 있었고 분쟁은 끊이지 않는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9일 개막한다. 남한과 북한, 미국 일본과 중국 러시아, 진보와 보수 간 셈법이 다르다. 북한의 참가를 두고 평화를 위한 한 걸음이라는 평가와 ‘위장 평화’와 ‘시간 벌기’라는 시선이 교차한다.

그리스인들이 올림피아 제전으로 평화를 찾았다고 하는 것은 신화이자 미신이다. 올림피아 제전이 전쟁을 막지 못했다. 그들은 평화조약을 맺고 파기하고 또 맺었다. 그들은 전쟁의 와중에 올림피아 제전을 열면서 평화를 모색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그들의 평화를 향한 노력이다. 싸움 유전자를 가진 호모사피엔스에게 평화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평창 올림픽이 평화올림픽이 되길 기원한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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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시종일관 스피디하고 격렬한 몸싸움이 전개되는 ‘긴박한 재미’에 빨려들었다. 올림픽 사상 최초의 남북 단일팀.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펼치는 첫 경기, 그 현장이 그랬다.

사실 아이스하키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출전 선수가 몇 명인지도 몰랐다. 외국 영화에서 본 게 전부였다. 정몽원 대한아이스하키협회 회장이 “아주 재미있다”며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 때 아이스하키 경기를 보라고 권했다. 정 회장은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이 그동안의 방침을 바꿔 한국 남녀 대표팀에 올림픽 개최국 자동 출전권을 주는 결단을 내리도록 만든 일등공신이다. 정 회장은 아이스하키가 동계올림픽의 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단일팀 구성 논란이 우리 사회 핫이슈로 떠올랐다. 이래저래 경기를 직접 보고 싶었다.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과 여자 단일팀의 평가전이 펼쳐진 인천 선학국제빙상장을 이틀 연속 찾은 이유이다.

단일팀의 평가전 상대는 세계랭킹 5위의 스웨덴이었다. 파워·스피드·테크닉 모든 면에서 한 수 위였다. 그러나 단일팀도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쳤다. 관중들은 단일팀이 초반 2골을 연속 내주자 “괜찮아, 괜찮아”를 연호하며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주장 박종아가 멋지게 첫 골을 성공시키자 3000여명의 관중이 일제히 일어나 기립 박수로 감격의 순간을 함께했다.

비록 경기는 1-3으로 패했지만, 2~3피리어드를 무실점으로 버티며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시간이 갈수록 더 좋아질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경기 후 전문가와 언론의 반응도 남북 선수가 첫 합동훈련으로 손발을 맞춘 지 일주일밖에 안된 점을 감안하면, 경기력과 팀워크가 생각보다 괜찮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세라 머리 감독도 “북한 선수들이 우리 시스템에 빠르게 녹아들고 있다”면서 “지난해 스웨덴과의 평가전에서는 압도적으로 밀린 경기를 했지만, 오늘은 괜찮았다”며 만족해했다고 한다.

가장 신선하게 느꼈던 장면은 아이스하키는 출전 엔트리 전원이 2~3분 간격으로 무제한으로 선수를 교체한다는 점이었다. 체력 소모가 극심하기 때문이다. 대개 주전 선수가 경기를 풀로 뛰는 축구·농구·배구 등 다른 종목과 크게 다른 점이었다. 단일팀 구성으로 한국 선수의 출전 시간이 다소 줄겠지만, 평창 올림픽 본선에서 최소 5경기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선수가 올림픽 무대를 밟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언론 보도가 맞다고 생각되었다. 남과 북의 젊은 선수들이 첫 만남부터 보여준 훈훈함과 ‘원팀(One team)’이 되기 위한 노력들도 경기장에 그대로 묻어났다.

공정성 논란으로 상처를 입은 선수들을 생각해서라도 단일팀이 꼭 성공적인 결말을 맺었으면 한다. 다행히 단일팀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고조되면서 국내 첫 여자 아이스하키 실업팀이 창단된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왔다. 이는 선수들의 오랜 꿈이자 ‘절실함’ 그 자체다. 단일팀이 성공해야 올림픽 이후 창단 작업에도 탄력이 붙을 수 있다.

단일팀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의 불참, 러시아 선수들의 개별적 참가로 흥행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에서 효녀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취재 열기도 엄청나다. 지난 4일 단일팀 평가전은 만원 관중을 넘어 통로까지 서 있는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하루 전날 열린 남자 아이스하키 경기보다 훨씬 큰 열기를 뿜어냈다.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와 단일팀 구성은 한반도의 불안감을 완화시키고, 올림픽 기간만큼은 안심해도 된다는 신호를 전 세계에 보내는 등대와도 같다. 또한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상쇄하고 한국 경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손실을 보는 것을 막아주는 경제적 이득으로도 연결된다. 단기적으로는 평창 올림픽의 흥행과 성공에 기여하고, 궁극적으로는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북핵 문제 해결과 북방 경제의 활로를 뚫는 모멘텀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보수와 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고 우리는 주요 국제대회 때마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와 단일팀 구성을 공들여 추진해왔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는 군 출신이 주도한 보수정권이었지만, ‘남북 분산 개최’라는 파격적인 안까지 북한에 제시하기도 했다. 남북 단일팀은 30년 전의 그 이유와 지금의 이유가 큰 틀에서 다르지 않다. 평창 올림픽 아이스하키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단일팀의 선전을 기대한다.

<임종인 | 변호사·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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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대 규모로 치러질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코앞에 다가왔다. 역대 대회 중 참가 국가와 메달의 수가 가장 많고, 200만명 이상이 한국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두 번째 올림픽 준비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만큼 국격이 높아진 것을 실감하고 있다.

동계올림픽의 경기종목은 얼음 위의 빙상(氷上) 경기와 눈 위에서 치르는 설상(雪上) 경기, 그리고 트랙 위에서 미끄러지는 슬라이딩 경기로 나눠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53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는데, 그 전부가 빙상경기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모굴스키의 최재우 선수와 스노보드의 이상호, 스켈레톤의 윤성빈 선수와 같은 유망주가 있어 전망이 밝다. 포스트 김연아로 불리는 최다빈 선수의 활약도 기대된다.

선수들이 제 실력을 발휘하려면 최상의 설질(雪質)과 빙질(氷質)을 유지하는 게 필수다. 이상적인 설상경기장은 자연설과 인공설을 3 대 7의 비율로 섞어야 하는데, 그 작업에는 엄청난 장비와 노력이 들어간다. 정선 알파인스키 경기장의 경우 120대의 제설기와 16대의 중장비가 밤낮없이 동원됐다. 아마 사용될 전력량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빙상경기는 종목마다 요구되는 빙질이 다르다. 한국의 메달 텃밭인 ‘쇼트트랙’ 경기장은 빙판 두께 3㎝, 영하 7도 이하가 최적의 환경이다. 김연아 선수가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피겨스케이팅’의 경우 최적의 얼음 두께는 5㎝다. 경기장에 물을 한 번 뿌려 얼리면 0.2㎜라고 하니까, 어림잡아 이 작업을 250번은 반복한다는 말이다.

가장 예민한 종목은 ‘컬링’인데, 경기장 실내온도를 12도, 얼음온도를 영하 4도로 유지해야 한다. 전기가 없다면, 이렇게 까다로운 조건을 일일이 다 맞추고 제대로 관리할 수 없다.

찰나를 기록하고 승부를 판독하는 데에도 최첨단장비가 필요하다. 수많은 조명과 카메라가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고, 전 세계 스포츠팬들은 모바일과 TV로 그 광경을 생생하게 시청한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바로 ‘전기’다. 이뿐 아니라, 선수들의 숙식과 안전을 보장하고, 관람객들에게 세심한 편의를 제공하는 모든 과정에도 전기가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필자가 몸담은 한국전력은 지난 3년간 누구보다 바쁜 시간을 보냈다. 전력설비 인프라 구축사업을 잘 마무리했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이중전원 상시 공급체계도 구축했다. 한전이 이렇게 신경을 쓰는 건,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의 많은 부분이 바로 전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한전은 국제 대회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 역할을 묵묵하게 해왔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세계인들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최고의 동계올림픽으로 손꼽을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힘을 모을 때다.

<김시호 | 한국전력공사 사장 직무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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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의 최대 겨울 축제인 평창 동계올림픽의 개막이 눈앞에 다가왔다. 12개 경기장의 준비가 끝났고 개·폐회식 연습도 한창이다. 선수들도 입국하기 시작했고 2만여명의 자원봉사자들도 현장에 배치됐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눈과 얼음과 함께하는 겨울 축제다. 눈 내린 대관령의 산악 풍경과 강릉의 겨울 바다를 함께 즐기며 겨울의 추위를 즐길 수 있는 세계인의 축제다. 이번 올림픽은 경기뿐 아니라 문화 행사, 강원도의 볼거리·먹거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올림픽은 무엇보다도 세계적 스포츠 스타들의 경연장이다. 스키의 린지 본, 남자 피겨의 하뉴, 여자 피겨의 메드베데바 같은 스타들의 경기를 볼 수 있다. 흑인 최초로 미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대표로 선발된 잭슨, 영화로 더 유명한 자메이카 봅슬레이팀, 전이경이 코치를 맡은 싱가포르 쇼트트랙 선수도 볼거리다. 세계 최강 아이스하키 팀의 경기, 새로 채택된 빅에어의 화려함, 150m 이상을 나는 스키점프대의 스릴도 함께 느껴볼 수 있다.

우리 선수를 응원하고 북한 팀을 지켜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금메달 8개로 종합 4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쇼트트랙의 심석희·최민정, 스피드스케이팅의 이상화·이승훈, 봅슬레이의 윤성빈 등이 금메달을 노리는 선수들이다.

또 북한의 참가로 다양한 볼거리가 생겼다.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과연 몇 승을 거둘지, 북한 선수들이 어느 정도 실력을 발휘할지 관심거리다. 이 밖에 북한 예술단과 태권도 시범단, 응원단의 공연과 응원을 지켜보는 것도 올림픽을 즐기는 새로운 맛이 아닐까 싶다.

평창에서는 문화올림픽의 향연도 펼쳐진다. 개회식에서는 ‘함께 만들어 가는 평화(Peace in motion)’, 폐회식에서는 ‘새로운 물결(New wave)’이라는 주제로 조화와 융합의 축제를 펼친다. 평창 문화올림픽은 ‘날마다 문화가 있고 축제가 되는 문화올림픽’이라는 주제로 마련됐다. 평창 올림픽플라자와 강릉 올림픽파크에서는 메달 수여식은 물론 K팝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벌어진다.

문화ICT관은 백남준 미디어 아트 작품 전시, 이우환 등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작품전, 동계종목 5G 체험 등이 가능하다. 또 강릉아트센터 등에서는 <안나 카레니나> <난타>, 대관령음악제, 강원비엔날레 등 각종 문화행사도 열린다. 코카콜라, 삼성, 알리바바, 현대자동차 등 글로벌 기업들의 대형 홍보관도 다양한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올림픽을 즐긴다는 것은 볼거리, 먹을거리와 밀접히 연결돼 있다. 강원도는 설악산, 대관령 등 천혜의 자원을 가지고 있다. 월정사와 낙산사 같은 고찰, 경포대나 정동진의 해맞이, 바다부채길 트레킹, 강릉째즈프레소의 커피축제의 맛을 느껴볼 수 있다. 평창에는 세계음식문화관이 생겨 강원도의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을 뿐 아니라 16개 대사관이 추천한 음식을 맛볼 수도 있다. 대관령 한우와 황태국, 오삼불고기, 동해바닷가 회를 맛보는 것도 스포츠를 통한 여행의 재미를 더한다.

서울 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은 세계인의 축제로 평창, 강릉, 정선에서 열리기 때문에 누구나 손쉽게 참여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기회다. 눈과 얼음 속에 펼쳐지는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들의 열정과 함성 속에 강원도의 겨울 맛과 멋을 즐겨보길 기대한다.

<김주호 |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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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KBO 총재로 일한 지 한 달이 넘었다. 나는 취임사에서 프로야구가 모든 국민의 ‘힐링(healing)’이 되도록 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프로야구의 산업화와 비즈니스 모드 정착, 클린베이스볼 구현, 아마야구 적극지원 등을 약속하고 임기 3년의 기본 로드맵도 명확히 했다. 물론 구단, 선수, KBO가 탄탄한 협력 체제를 구축하고 선수들의 기량이 높아져 팬들의 사랑을 얻어야 성공할 수 있는 일이다.

나의 유별난 야구사랑 때문에 언론에서는 “베이스볼 키드가 프로야구 수장이 되었다”고 평한다. 사실 총재 제안을 수락한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야구에서 동반성장을 실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익공유제가 자리 잡고 있다. 프로스포츠 분야에는 이익공유를 통해 동반성장에 성공한 좋은 모델이 있고 그 적용범위도 확대 추세다.

이익공유와 관련한 논란은 아직 진행형이다. “자본주의 경제원리에 어긋난다”는 비난부터 “국가단위에서 실현한 나라가 없다” “공유할 이익의 측정이 어렵고, 기준도 애매하다”까지 논쟁 지점도 다양하다. (기업 내부의 이익공유와 관련하여)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기업이익은 주주 몫인데 왜 그것을 다른 생산주체와 나눠야 하는가?”일 게다.

이 질문이 타당하려면 생산에 참여한 주체들의 기여도가 투명하여 정확하게 측정되고, 그에 따라 정당한 보상이 지급되어야 한다. 각 생산주체의 기여도가 정확하게 측정되지 않았음에도 주주가 자기중심적으로 분배를 요구한다면 기업이익을 독식하려는 욕심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대·중소기업 간의 이익공유는 대기업이 높은 이익을 올리면 그것의 일부를 협력중소기업에 돌려 중소기업이 기술개발, 해외 진출, 그리고 고용 안정을 꾀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현재 대기업들의 수익률은 9%인 데 비해 중소기업은 3%가 안된다. 갈수록 대·중소기업 간 격차가 심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세계는 지금 기업생태계 간의 경쟁시대다. 도요타와 현대자동차가 경쟁하는 게 아니라 도요타+협력업체, 현대자동차+협력업체가 경쟁한다. 대기업과 협력업체가 별개로 존재하지 않고 한배에 동승한 운명공동체다. 이대로 생태계의 한 축이 무너지면 모두가 공멸할 수밖에 없다.

이익공유는 반시장적 사회주의 발상이 결코 아니다. 이익공유는 1920년대 미국 할리우드 영화산업 태동기 때 처음 도입되어 할리우드 영화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는 밑바탕이 되었다. 그 후 부분적으로나마 롤스로이스, 크라이슬러, 캐리어 등에서도 실현되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이나 버니 샌더스 모두 이익공유가 미국산업 전체에 적용되도록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공약했었다. 그렇다고 미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려 한다고 비난하는 말을 들은 기억은 없다. 우리보다 앞선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이익공유를 실천해왔다.

프로스포츠는 자본주의의 꽃이라고들 한다.

시장경제의 전범(典範) 국가인 미국에서 프로스포츠가 이익공유를 적극 활용하여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볼품없었던 미식축구리그(NFL)는 이익공유를 실천하면서 전 세계 프로스포츠의 왕 중 왕 자리에 올랐다. 각 구단의 TV중계권료, 상품화 및 특허사용계약료 그리고 광고료 전액, 구단별 경기장 티켓수입 40%를 거둬들여 다시 32개 구단에 균등하게 배분하는 이익공유를 실시하면서 세계 최고의 리그로 발전했다. 포브스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 프로스포츠 구단 가치 ‘톱11’에 NFL팀이 6개나 속하고, 32개의 NFL 구단 모두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50개 스포츠 구단에 올라 있다. 한마디로 NFL은 세계에서 최고로 부자일 뿐 아니라, 모든 구단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다는 뜻이다. 미국 정부도 NFL의 동반성장 성공모델을 벤치마킹해 연구 중이다.

이러한 NFL의 이익공유 모델은 미국의 다른 스포츠 리그로도 퍼지고 있다. 빅 마켓 구단과 스몰 마켓 구단 간 격차가 큰 메이저리그(MLB)도 ‘분배’를 늘리는 추세다. 2003년부터 구단 간 재정 격차를 줄이기 위한 ‘통합세일’제도를 도입하여, 각 구단수익 일부를 거둬 균등하게 배분하기 시작했다. MLB 산하 30개 구단의 입장료 및 지역방송권료의 34%에 해당하는 금액을 갹출해 모든 구단이 균등하게 나눠 갖는다. 대신 리그사무국이 정한 선수 연봉한도(2018년 1억9700만달러)를 초과한 팀들은 ‘사치세(luxury tax)’를 내야 하며 수익을 분배할 때 할당이 줄어든다. 사치세와 관련해 연봉한도를 2021년까지 조금씩 늘리되, 한도를 넘기면 드래프트에서 많은 불이익이 주어진다. 이런 장치들은 수익이 좋지 않은 비인기 구단의 경쟁력을 상향평준화하기 위해서다. 자금 부족이 성적 하락으로 연결돼 만년 하위 팀이 고정되면 흥행부진으로 이어져 리그 전체의 지속성장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모든 변화에는 양보와 혁신의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누구도 양보하지 않았거나 스스로 혁신하려는 의지가 없었다면 NFL이나 MLB가 지금의 성공을 거두기 어려웠을 것이다. 리그, 구단, 선수가 동반자 관계를 맺어 성장을 위해 서로 힘쓴 결과 세계적인 부자구단이 되었고, 리그 전체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스포츠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 성공의 비밀은 이익공유를 통한 동반성장의 가치를 실천한 데 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미친 짓이란 과거와 똑같은 방식을 반복하면서도 미래에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라 했다. 자본주의의 작동원리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시대나 기술의 진보에 따라 변화한다.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장점이 아닌가?

이익공유가 자본주의 경제에 맞는지 여부에 언성을 높이기보다 정부나 기업이 대승적 자세로 이런 아이디어를 실천하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실천방식이나 적용범위는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면 우리 현실에 맞는 답을 찾을 수 있다.

<정운찬 |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한국야구위원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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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빛과 그늘을 알아야, 인간은 더욱 인간다워진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라고 했다. 군중의 환호와 폭죽의 화려함에 빠져서는 정의로운 세상을 볼 수 없다. 평창 올림픽 개막이 목전이다. 전 세계가 스포츠를 통한 인류 평화, 공존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과거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다.

2014년 가을, 상상할 수 없는 ‘고목 학살사건’이 벌어진다. 강원도 정선과 평창의 경계에 위치한 가리왕산. 평창 올림픽 스키 활강경기가 예고된 곳. 수령 150년을 훌쩍 넘긴 신갈나무, 음나무, 전나무가 차례차례 잘렸고 그 수가 무려 10만그루를 넘었다. 500년 ‘왕실의 숲’은 슬로프의 모양대로 가리왕산 정상에서 수직으로 밀렸다. ‘스포츠에 의한 인간의 완성과 경기를 통한 국제평화의 증진’이라는 올림픽 정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가리왕산 벌목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국제스키연맹(FIS)의 묵인 아래, 강원도와 한국 정부가 내린 결정이었다.

2011년, 평창이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호명되었다. 올림픽 유치 삼수 만에 이룬 쾌거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런데 그 시각, 평창의 경쟁도시 독일 뮌헨 주민들도 올림픽 유치 실패를 축하하며 축배를 들었다. 이른바 ‘반올림픽연합(Nolympia)’의 승리다. 뮌헨처럼 스위스 생모리츠-다보스, 폴란드 크라쿠프, 오스트리아 빈이 IOC 주도의 동계, 하계올림픽을 주민 투표로 거부했다. 스웨덴 스톡홀름은 의회가 나서 올림픽 유치를 반대했다. 이유는 이러하다. 산더미처럼 쌓일 부채, IOC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약, 지역발전 허상, 부동산 가격 폭등, 자연환경 파괴에 반대한다는 것.

‘새로운 세상(A New World)’이 열릴 것이라 했던 2016 브라질 리우 올림픽은 어떨까. 개회식이 열렸던 마라카나 스타디움은 현재 폐쇄되었다. 유리는 깨지고 전기는 끊겼다. 벽과 천장의 전기선은 사라졌다. 경기장 좌석의 10%는 도둑맞았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올림픽’ ‘최후의 패자는 자연환경’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은 경기장 활용을 못해 ‘1조7600억엔의 빚과 훼손된 자연’만 남겼다. 한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2002 한·일 월드컵 경기를 치렀던 지방 경기장은 적자에 허덕인다. 전남 영암의 2013 포뮬러1 코리아 그랑프리 경기장,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이 열린 ‘무대책’ 아시아드주경기장도 사후 활용 방안이 궁색하다.

‘포스트 평창’의 모습은 어떨까. 브라질 리우의 폐허가 너무도 가까이 있다. 흉물스러운 불 꺼진 경기장을 마주한다. 강원도는 경제 부흥이 아니라 빚더미에 앉는다. 가리왕산은 동계올림픽 특구 논란 속에 개발 광풍이 분다. 올림픽플라자를 포함해 7개 신설 경기장의 사후 활용 방안은 없다. 난개발, 반환경, 실패한 올림픽으로 치닫고 있다.

환경적 측면에서, 평창 올림픽이 남긴 숙제가 있다면 바로 ‘가리왕산 복원’이다. 작년 12월, 강원도 복원추진단도 ‘전면 복원’을 결정했다. 단 며칠 활강경기를 위해 국가 보호구역을 해제하고 나무를 베고 경기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10만그루 나무를 다시 복원하라니, 아이러니다. 우리는 메멘토 모리, 정의와 평화의 관점으로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가리왕산을 위한 사죄의 진혼을 올려야 한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라도, 가리왕산 복원은 뼈아픈 숙제다.

<윤상훈 |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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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이 임박한 최근 미국의 대북태도가 심상치 않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지난 23일 “올림픽 대화만으론 대단히 중요한 문제들을 다 다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외면해선 안된다”고 했고,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도 26일 “북한의 술책에 속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24일 북한 원유공업성 등을 새롭게 제재 리스트에 올렸다. 삼지연관현악단 단장 현송월이 1박2일간 방남하면서 뉴스의 중심이 되자 백악관의 고위 관료가 “김정은이 평창 올림픽의 메시지를 납치(hijack)하는 것을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말했다는 외신 보도도 있었다.

남북이 2년여 만에 대화의 문을 열어 평창 올림픽의 평화적 개최에 힘을 모으려는 상황에서 미국이 보이고 있는 태도는 당혹스럽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평창 올림픽 개막 하루 전인 2월8일 예정된 건군절 70주년 열병식을 미국의 대북 불신의 근거로 든다. 물론 올림픽 전날 북한이 대대적인 군사 퍼레이드를 벌이며 핵무력을 과시하려 한다면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열병식과 핵실험·미사일 발사는 성격이 다르다. 국제사회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북한의 도발로 간주해왔다. 지난해 11월29일 ‘화성-15형’ 발사 이후 북한은 일체의 도발을 중단한 상태다. 이 점에 주목하지 않은 채 열병식 자체만을 놓고 도발로 간주하는 것은 과한 일이다. 미국이 올림픽 개회 전후로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함 등 주요 전략자산을 한반도 지역에 순환배치하는 것에 북한이 반발하고 있는 점도 함께 놓고 생각해봐야 한다.

올림픽 대화만으론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매티스의 발언은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누구보다도 문재인 정부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한·미 훈련 재개 전까지 북·미대화를 유도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미국의 대북 불신이 크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지금은 인내를 보여줄 시기다. 올림픽을 고리로 북핵 문제 해결을 모색해 보려고 한국 정부가 노심초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차피 북한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식으로 위협발언을 쏟아내는 것은 동맹국을 존중하지 않는 처사다.

북한도 올림픽 기간 중 한·미 연합훈련을 연기하기로 한 결정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 대대적인 열병식이 가져올 파장을 깊이 고려해야 한다. 북핵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내가 임계치에 육박해 있음을 인식하고 현명하게 처신할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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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올림픽의 목표는 전쟁 중지였다. 기원전 776년에 열린 첫번째 올림픽도 늘 전쟁 상태였던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휴전이 목적이었다. 이들은 올림피아 지역을 중립 및 불가침 지역으로 규정했고, 올림픽 기간 동안 적대행위 중지를 선포했다. 스포츠라는 ‘유사 전쟁’을 통해 진짜 전쟁을 피한 셈이다. 열흘 뒤 개막하는 평창 동계올림픽도 유사한 과정을 밟았다. 한국과 미국이 연합군사훈련을 중지했고, 북한은 핵·미사일 도발을 두 달 가까이 멈췄다. 유엔도 올림픽휴전을 결의해 힘을 보탰다.

그런데 정작 한국 내부에서는 격렬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보수 언론 등 보수 세력이 북한 참가와 관련해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있다. 이들은 평창 올림픽 개회식 남북 공동입장과 한반도기 사용, 여자 하키 남북단일팀 구성을 문제 삼는다. 남한이 어렵게 유치한 평창 올림픽이 북한 체제 선전장이 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평창 올림픽을 나치의 히틀러가 정치 선전을 위해 개최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비유한 한국당 의원도 있다.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를 전면 재검토하라는 요구도 나왔다. 건전한 비판은커녕 악담과 저주에 가깝다. 보수 야권의 공세는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것이지만 평창 역시 상처받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정부를 공격할 수만 있다면 평창 올림픽이 망해도 괜찮다는 불순한 심리가 깔려 있다.

국제체육대회의 남북 공동입장과 한반도기 사용, 단일팀은 모두 보수 정권이 시작했다. 첫번째 단일팀인 남북탁구팀이 구성된 것도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91년 일본 지바 세계수권대회에서다. 당시 단일팀이 ‘만리장성’ 중국을 꺾고 우승하자 보수 언론은 “남북단일팀이 전 세계에 큰 감동을 안겼다”고 대서특필했다. 사실 평창 올림픽 여자 하키 단일팀을 가능케 한 평창올림픽특별법도 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 주도했다. 이 밖에 박근혜 정권 시절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한반도기를 흔들며 북한 여자축구를 응원한 것이나 북한이 인천 아시안게임에 응원단을 보내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자 전세기를 북한에 보내자고 한 것도 새누리당이었다. 그랬던 보수 세력이 지금 와서 평창 올림픽의 북한 참가에 대해 마치 한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단일팀이 북한의 지령을 받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영화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를 떠올리게 한다. 집단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것 같다.

하지만 보수 세력의 이런 증세는 기억상실증과 거리가 있다. 기억상실증은 어떤 이유로 인간의 뇌가 기억을 인출해 내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보수 세력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기보다 의도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기억을 인출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정치 도의를 인출하지 않는 셈이다. 이는 단순한 자기기만을 넘어 평창 올림픽을 망치고 한반도 평화마저 흔드는 위험한 행태다. 이런 정치, 이런 정치가는 국가의 발목을 잡고 퇴행시킬 수밖에 없다.

소집단의 논리에 매몰돼 평창 올림픽 북한 참가의 본질을 놓쳐서는 안된다. 청와대는 어제 평창 올림픽 엔트리 마감 결과 92개국에서 2900여명이 참가할 것이라며 이는 동계올림픽 사상 최대 규모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만일 북한이 불참하고 핵·미사일 위협을 계속했다면 이런 성황을 이루기는커녕 세계가 참가를 꺼리는 올림픽으로 전락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핵 위기로 참가를 주저하던 유럽 국가들이 북한 참가가 확정되자 참가 쪽으로 돌아선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대사조차 한때 안전을 문제 삼아 참가 유보방침을 거론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평창 올림픽의 평화올림픽 개최 목표는 이미 절반 이상 성공한 셈이다.

북핵 사태가 전쟁위기로 치닫고 있는 지금 대북 대응이 과거와 달라져야 한다는 보수 세력의 주장은 일리 있다. 하지만 그것이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에 어깃장을 놓는 것이라면 동의할 수 없다. 보수 세력은 한반도 전쟁 위기란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정작 언행은 그런 인식과 거리가 있다. 현송월 국빈대접 논란만 해도 그렇다. 세상에 버스와 열차에 태워 이동시키는 국빈도 있는가. 본질을 외면하고 지엽말단에 목숨을 걸면 문제제기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김정은의 선의를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통하지 않고는 북핵 해결 논의를 한 발자국도 진전시킬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김정은을 증오하고 거부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 국가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의심했다. 그런 그들을 협상장으로 끌어낸 것은 전쟁으로 인해 공멸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절박감이었다. 역사의 교훈은 아직도 유효하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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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10일 이일영 교수가 경향신문에 칼럼 ‘양국체제인가, 한반도 체제인가’를 올렸다. 양국체제도 한반도 체제이니 이 제목은 이상하다. 이 교수는 양국체제론과 분단체제론, 두 개의 ‘이론’을 말하고 그 둘의 병립을 제안하는 듯하다. 그러나 필자는 양국체제와 분단체제, 두 개의 ‘현실’을 말해왔다. 이 둘은 병립할 수 없다. 선택해야 한다.

분단체제에서는 한반도 두 국가의 존재, 두 국가의 평화 공존이 허락되지 않는다. 분단체제에서 남북은 서로를 부정한다. 모두 자기중심으로 통일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남은 ‘북진통일(흡수통일)’을, 북은 ‘조국통일(적화통일)’을 부르짖어 왔다. 상대가 자신을 부정하는 이상, 그러한 상대와는 생사를 걸고 싸울 수밖에 없다. 그것이 한국전쟁(Korean War)이었다.

그러나 1991년 이래 유엔은 한반도 남쪽에 ‘대한민국(ROK)’, 그리고 북쪽에 ‘조선(DPRK)’이라는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함을 인정하고 있다. 유엔헌장은 가입국 모두가 상호 영토와 주권을 인정함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세계 157개국이 남과 북 두 나라와 동시 수교하고 있다(‘2016 외교백서’). 유엔에서도 세계 대다수 나라에서도 태극기와 인공기가 동시에 걸려 있다. 분단체제 신봉자들은 이 엄연한 현실을 외면하고 부정한다.

평창 올림픽이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다. 평화제전인 평창 올림픽에서 북측(DPRK) 선수단과 응원단이 자신의 국기인 인공기를 들고나오는 것에 극도의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쪽이 어디인가? 연초 벽두부터 어린이가 그린 ‘통일 나무’ 그림에 인공기가 (태극기와 함께) 등장했다고, 그래서 대한민국이 부정되었다고, 황당한 히스테리를 부린 이들은 또 과연 누구였던가?

이미 노태우 전 대통령 시기인 1991년 탁구와 청소년 축구에서 남북 단일팀이 성사되었다. 이후 남북이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한 대회는 9차례에 이른다. 이 11차례의 국제대회에서 남북은 각자의 국기인 태극기와 인공기를 들고 각자의 팀을 열심히 응원했다. 남에서는 북이 다른 국가와 경기하면 북을 응원했고, 북에서는 남이 다른 국가와 경기하면 남을 응원했다. 이것이 한반도기를 함께 든 취지였다. ‘한반도 두 국가 간의 특수한 관계’, 이것이 한반도 양국체제의 국제법적 성격을 집약한다. 남북 양국의 국기를 각자 들면서 또한 서로 동의하는 경우에는 한반도기를 함께 드는 것이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에서도 꼭 마찬가지였다. 태극기와 인공기가 대한민국 하늘 아래 자연스럽게 같이 걸렸다. 대한민국의 부정? 거꾸로 그때 남북 간의 긴장과 위기는 한국전쟁 이래 가장 약해졌고, 세계 여론에서 대한민국의 국격은 가장 높아졌다. 양국체제란 이렇듯 남북 두 나라의 평화적 공존상태를 안정적인 체제로 만들자는 것이다.

분단체제 신봉자들은 이 모든 사실들을 없었던 일로 부정하고 싶어 한다. 이들은 1991년 남북 유엔 동시 가입 이전, 더 나아가 1987년 민주화 이전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역사의 퇴행 세력이다. 영화 <1987>에 등장했던 남영동의 그 가공할 실존 인물, 박처원과 꼭 같은 사고를 여전히 품고 있는 자들이다.

세계 여론은 3차 세계대전의 발화점이 될지도 모를 한반도 전쟁의 가능성을 진정으로 우려했다. 누가 김정은-트럼프 간의 막가는 치킨게임을 일시적이나마 중단시켜 대화의 물꼬를 텄는가?  결국은 성숙한 대한민국 촛불시민들의 힘이다. 외신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 나타난 대화 기조는 평화를 바라는 대한민국 민의의 승리라고.

대한민국의 촛불민의는 평창 올림픽에서의 한반도기 그리고 태극기와 인공기의 동시 등장을 따듯하게 환영한다. 이로써 남북 간 대화와 화해의 물꼬가 트이고, 더 나아가 북이 바라는 북·미수교, 북·일수교에 대한민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계기가 마련되기 바란다. 우리가 이미 중국, 러시아와 수교하고 있는 것처럼, 미국과 일본이 북을 인정하고 수교하게 되면, 한반도 양국체제는 안정 궤도에 접어든다. 그럴 때 북의 비핵화도 현실화될 수 있다. 이것이 한반도 평화만이 아니라 세계평화를 위한 대한민국의 역할이다.

<김상준 | 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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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선수들과 단일팀을 이뤄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할 북한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단이 어제 남한에 들어왔다. 이들은 곧바로 선수촌이 있는 충북 진천으로 이동해 남한 선수단과 합류했다. 이들은 오늘부터 공동 훈련에 들어간다.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출범하기까지 큰 홍역을 치렀다. 단일팀 구성에 따른 남한 선수들의 출전시간 축소 등 불이익 문제가 불거졌고, 이에 대한 일부 선수의 반발과 야권의 정치적 공세가 거셌다. 평창 올림픽 조직위원인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단일팀을 반대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남북이 급작스럽게 단일팀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남한 선수단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올 들어 갑자기 남북대화가 재개되는 바람에 올림픽 개최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촉박하게 단일팀 논의가 시작된 저간의 사정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소통을 중시하는 정부가 당사자인 선수들과의 대화를 소홀히 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무엇보다 지난 4년 동안 땀 흘려온 선수들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라는 대의는 구성 과정의 잡음과는 구분해서 바라봐야 할 문제다. 남한 내 대회에서 첫 올림픽 단일팀 출전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험악한 한반도 정세를 완화해주는 의미도 크기 때문이다. 예컨대 북한이 평창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고 핵·미사일 위협을 계속했을 경우 지금처럼 안전하고 평화적인 올림픽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를 생각하면 이를 금방 알 수 있다.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와 단일팀 구성을 환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한반도의 밝은 미래를 열어줄 획기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단일팀이 국내외의 주목을 받은 만큼 평창 올림픽의 성공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남북 선수들은 기량과 사고방식이 다를 것이고, 호흡을 맞출 시간도 태부족하다. 단일팀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남북이 힘을 합쳐 평화올림픽을 치른다는 의의를 세계에 과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고의 팀이 될 수 있다. 정치권과 사회도 더 이상의 정쟁과 소모적 시비를 중단하고 단일팀이 힘을 내도록 도와야 한다. 단일팀이 남북 간, 남한 내부의 갈등을 해소하는, 화합의 마당을 펼치는 장면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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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이 한국 테니스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한국 테니스의 간판 정현은 24일 열린 호주오픈 남자단식 8강전에서 미국의 테니스 샌드그렌을 3-0으로 완파하고 4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한국 테니스 선수가 메이저대회 4강에 오른 것은 남녀를 통틀어 처음이다. 이덕희가 1981년 US오픈 여자단식 16강에 오르고, 이형택이 2000년과 2007년 US오픈 남자단식에서 16강에 진출한 게 지금까지 거둔 최고 성적이었다. 1905년 출범한 호주오픈에서 남자단식 4강에 오른 아시아 선수는 1932년 일본의 사토 지로가 유일했다. 특히 프로 선수들의 ATP 투어 출전이 공식 허용된 1968년 이후 아시아 선수가 메이저대회 4강에 진출한 것은 일본의 니시코리 게이밖에 없었다.

정현이 24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준준결승에서 테니스 샌드그렌을 제압하며 4강행을 확정하자 두 팔을 벌려 기뻐하고 있다. 멜버른 _ EPA연합뉴스

정현은 지난 22일 열린 호주오픈 16강전에서 메이저대회를 12차례나 석권한 전 세계랭킹 1위 노바크 조코비치를 3-0으로 완파했다. 조코비치는 로저 페더러, 라파엘 나달 등과 함께 세계 3대 테니스 스타로 꼽히는 선수다. 어릴 적 자신의 우상이기도 했던 조코비치를 상대로 정현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경기를 지배했다. 정현은 8강전 상대인 샌드그렌을 맞아 2세트 중반 수세에 몰리기도 했지만 특유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3-0 완승을 거뒀다. 정현의 호주오픈 4강 진출은 박세리의 LPGA 첫 우승, 김연아의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 등에 버금가는 값진 성과다. 테니스는 서구인의 체력 조건에 최적화한 스포츠다. 그럼에도 정현은 고된 훈련과 인내로 자신의 단점과 한계를 극복하며 세계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했다.

호주오픈 대회 기간 중 정현이 감동을 준 것은 20대의 패기를 앞세운 빼어난 경기력뿐만이 아니다. 유창한 영어와 재치있는 언변, 상대선수를 존중하는 매너는 관중을 열광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주눅들지 않고 당당한 한국 청년세대의 표본을 보여줬다고 할 만하다. 현지 언론과 팬들의 “테니스 실력도, 인터뷰 실력도 월드클래스”라는 평가가 결코 과장된 게 아니다. 정현이 4강에 진출하자 AFP통신은 “젊은 나이에도 냉정함을 잃지 않은 ‘거물 사냥꾼’이 준결승에서도 꿈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아직 정현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페더러와의 4강전 승패를 떠나 한국 테니스 선수로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에 들어선 정현의 선전을 기대한다. 메이저대회 4강 진출로 한국 테니스의 꿈을 현실로 바꿔놓은 정현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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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21분간의 혈투 후 조코비치가 정현의 가슴과 어깨를 두드렸다. 경기 전후 선수 간 인사는 테니스의 오랜 관습. 하지만 패자가 미소를 띤 채 승자에게 축하와 격려를 보내는 모습은 조금 특별했다. 바로 직전 혈투를 벌인 선수들이라기보다 마치 스승과 제자 같은 모습이었다. 정현은 “조코비치가 다음 경기도 잘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정현이 22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16강전에서 노바크 조코비치를 3-0으로 제압하고 경기를 끝낸 뒤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멜버른 _ 로이터연합뉴스

정현과 조코비치의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4회전은 테니스가 왜 아름다운 스포츠인지를 보여주었다. 일진일퇴의 경기 내용도 흥미로웠지만, 진정성과 아량이 담긴 언사가 더 눈길을 끌었다. 정현은 승리 후 인터뷰에서 “조코비치는 나의 어릴 때 우상이었다”며 “그가 투어에 복귀해 기쁘고, 그를 상대할 수 있어 영광이다”라고 치켜세웠다. 조코비치는 취재진이 오른팔꿈치 통증에 대한 질문을 쏟아내자 “정현의 승리를 깎아내리는 행위를 그만해달라”며 “그가 더 뛰어났다”고 말했다. 팔꿈치 부상이 승부에 영향을 미친 것이 분명한데도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고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에서 강자의 품위가 느껴진다.

잘 알려진 대로 두 사람은 멘토와 멘티 관계이다. 조코비치는 정현이 주니어 선수일 때부터 눈여겨보고 여러 차례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정현은 조코비치의 샷을 보고 연마해왔다. “조코비치는 왕성한 그의 젊은 버전과 경기했다”(CNN), “조코비치가 지난 5년간 모두에게 했던 것을 지금 정현이 조코비치에게 하는 중”(테니스 선수 제이미 머레이)의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정현은 2년 전 호주오픈 1회전에서 조코비치와 만나 완패했다. 하지만 이제 우상과의 첫 대결이 너무 떨려 아침밥도 못 먹었던 소년은 그 어디에도 없다. 한국인 최초 메이저 테니스대회 8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룬 정현이 더 큰 선수로 성장하기 바란다. 조코비치는 이번 대회 패배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랭킹 1위에 메이저대회 12회 우승 기록을 보유한 최강자 중 한 명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정현이 이번에 청출어람의 기세를 떨쳤지만 부상을 떨쳐낸 그와 다시 만난다면 승부의 추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두 사람이 아름다운 인연을 이어가기를 기대할 뿐이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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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과정이 되었다.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실의와 눈물은 충분히 공감할 만한 일이다. 종목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결정이었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3피리어드 전체 1시간’의 경기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조직력이 관건이다. 무엇보다 상대적 약체팀에 절대적인 것이 조직력인데 그것이 흔들렸다. 이에 관하여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는 크게 실책했다.

우선 설득과 동의의 과정이다. 문제가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다. 비록 특정 분야의 미시적인 것일지라도 그 설득 과정을 통하여 사회 전반의 정서적 연대의 수준이 높아진다. 이를 소홀히 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북한에 대한 모든 사안은, 절망적이든 희망적이든, 언제나 ‘내일 당장’ 벌어질 수 있다는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올림픽과 관련하여 책임 있는 당국자들은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촉구하는 한편 단일팀에 대한 의지 또한 수 차례 천명했다. 그러면 문체부와 대한체육회는, 언제나 갑작스러울 수밖에 없는 북한의 결정에 다각도로 대비했어야 한다. 이 또한 소홀했다.

다음으로, 결정 이후 쏟아지는 비판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아이스하키 선수단을 진심으로 위로하지 못했다. 모두를 만족시키지는 못하는 어떤 결정을 신속하게 내려야만 할 때, 그로 인하여 파생하게 될 또 다른 문제들, 특히 마음의 문제, 정서적인 문제에 대해 정부는 깊은 공감의 자세로 나름의 논리와 사후의 대안들을 제시했어야 한다. 그럼에도 문체부 장관의 답변은, 시인답지 않게 관료적이었고, 대한체육회는 무마하기 바빴다. 그러니 ‘이때다’ 하고 여지없이 ‘종북’으로 몰고 가는 고약한 말들에 대해서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남북한 동시 입장’과 ‘한반도기’를 생각해보자. 어느 정치인은 ‘한반도기’도 안되고 ‘인공기’도 안된다고 했지만, 일단 북한이 올림픽에 참가한다고 했으니 뭐라도 들기는 들어야 하지 않는가. 둘 중 하나밖에 없다. 먼저 인공기를 생각해보자. 이 경우 선수단 입장도 따로 해야 한다. 이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경우, 내부적으로는 인공기 게양을 못마땅해하는 세력의 비판이 거세질 것이고 밖으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나라임을 공고히 하게 된다. 나는 지금 민족적 낭만주의를 강조하려는 게 아니다. 당면한 동북아의 현실 속에서, 무엇보다 북핵 위기 속에서, 그리고 이른바 ‘급변 사태’라고 하는 느닷없는 상황 속에서 ‘동시 입장’과 ‘단일기’를 생각하자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 한반도는 ‘북핵’이라는 조건 속에서, 4대 강국의 복잡한 이해까지 충돌하여 언제든 일상의 평화가 긴장과 불안으로 급전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를 타개해 나가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가 문화적 교류와 상징이다. 때마침 개최하게 된 올림픽은 ‘한민족 동질성’ 같은 추상적이며 낭만적인 수사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한반도의 위기 상태를 조절하고 일상의 평화를 지속하는 데 현실적인 의의를 지닌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 즉 이른바 북한의 ‘급변’을 생각해보자. 2009년 1월 미국 외교위원회가 작성한 ‘북한 급변 사태의 대비’는, 중국의 경우 북한 지역에 미군기지가 설립되는 것을 방지하고 대량살상무기와 난민의 유입으로 인한 정치적·경제적 혼란을 우려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경우 다른 국가들이 한반도 내에서 권력을 확장하는 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견제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또한 일본의 경우 한국의 통일에 대한 공포심을 갖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일본은 미·일동맹의 틀에서 북한 사태에 제한적인 역할밖에 할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이에 아베 정권은 ‘집단적 자위권’의 공세적 해석에 따른 한반도 군사 개입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일본과 밀접한 관계’ ‘한국 내 일본 국민의 생명 위험’ 등이 그 근거다. 2015년 10월, 일본 방위성은 “한국의 유효한 지배가 미치는 지역은 휴전선 이남”이라고 강변한 바 있다. 당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북한은 대한민국의 영토”라고 말하였으나 일본의 나카타니 방위상은 “이는 한·미·일 3국이 협의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우회했다.

이때 ‘남북한 동시 입장’과 ‘단일기’는 문화적 상징 효과가 크다. 다양한 측면의 남북한 동질성에 대해 ‘한·미·일 3국이 협의’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비극적이든 희망적이든, 이 한반도에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었을 때 필사적으로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무엇보다 현상적인 평화라도 유지해야 한다. 그 실질적인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동시 입장’과 ‘단일기’ 같은 문화적 상징이나 교류 왕래는 더 자주 해야만 한다. 그럴 때에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주도적인 발언과 행동이 가능하다. 어떤 나라는 올림픽을 통해 경제 발전을 도모했다. 어떤 나라는 자국의 위상을 세계지도 위에 각인시켰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번 올림픽을 통하여, ‘동시 입장’과 ‘단일기’를 통하여, 동북아의 긴장 완화와 일상적 평화를 천명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중국처럼 중화주의를 자랑하거나 러시아처럼 군사력의 확장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동시 입장’이나 ‘단일기’에 대해 긍정적인 사람들도 과거처럼 그렇게 ‘감동적’이지는 않다고 말한다. 당연한 소회다. 스포츠를 통한 일시적인 이벤트 효과는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 속에서 금세 물거품처럼 사라지곤 했다. 이번에는 굳이 감동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냉정하게 ‘동시 입장’과 ‘단일기’를 바라봐야 한다. 굳이 말하면 이는 ‘종북’이 아니라 ‘종남’이다. 북한을 이롭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일상적 평화를 위한 발언이자 향후 수많은 상황 속에서 적극적으로 우리, 즉 ‘남한’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행동이다. 이 관점에서 청와대는 대국민 담화 등의 형식으로 설명할 것은 설명하고 호소할 것은 호소해야 한다. 장관의 기자회견이나 ‘청와대 관계자’ 정도로는 안된다. 진지하게 서둘러야 한다시간이 없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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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평창 올림픽에 20명 이상의 북한 선수들이 참여한다고 한다. 논란이 되었던 여자 아이스하키 팀에는 무려 12명이 합류한다. 남북 단일팀을 성사시키기 위해 정부와 조직위가 애를 많이 썼고, IOC도 적극적으로 협조한 결과이다. 한반도의 군사적 위기감 때문에 참가를 꺼리는 선수나 국가가 적지 않았고 올림픽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도 저조했던 터라 북한의 참가는 여러모로 긍정적 효과를 낳을 것이다.

그러나 상처도 많다. 단일팀만 구성되면 국민의 환호를 받을 것이라 기대했던 정부는 반대여론이 거세자 크게 당황한 눈치였다. ‘단일팀’이라는 단어의 함의가 달랐기 때문이다. 정부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당시의 국민적 환영만을 기억한 듯하다.

총리는 기자 시절 경험했던 남북한 탁구 단일팀을 언급하기도 했다. 19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한 단일팀 우승을 이뤄낸 ‘사건’은 큰 감동이었고, 나중에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시간이 꽤 흘렀고 상황도 많이 변했다. 지금의 20~30대는 1991년은커녕 2002년도 잘 기억하지 못하거니와, 기억하더라도 총리의 정서를 공유하지 못한다. 군사적 도발과 강경대응이 반복된 지난 10년의 경험이 미친 영향도 크다. 국민들의 감정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 시절과 사뭇 달라졌다는 점을 정부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단일팀 논란에서, ‘민족’이나 ‘평화’는 ‘공정성’을 압도하지 못했다.

또 다른 오해가 있다. 사람들은 오늘날의 올림픽이 순수한 평화의 제전이 아님을 잘 아는데 정부는 애써 이 사실을 외면한다. 정치와 자본의 힘을 익히 인지하는 이들에게 올림픽정신 운운하는 것은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 사이 나쁜 친척과 설에 만나 윷놀이 한번 한다고 해서 금세 다시 절절한 피붙이가 되는 것은 아님을 잘 알기 때문이다. 물론 오해의 정도는 야당이 더 컸다. 단일팀 구성에 국민들이 시큰둥하니, 조직위 위원이기도 한 야당 국회의원은 IOC에 단일팀 구성을 불허해달라는 서한을 보내 사람들을 당황시켰다. “올림픽헌장에 명시된 정치적 중립성 원칙을 위반”한다는 언술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감동도 주지 않는다.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 “승리보다는 참가에 의의” “스포츠로 세계 평화를” 같은 슬로건을 진정으로 믿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쿠베르탱 남작이 말한 평화는 백인 남성만의 평화였다. 그는 유색인종과 여성이 올림픽에 참여하는 것을 마뜩잖아 했다. 1936년, 히틀러는 베를린 올림픽을 철저한 정치 선전의 마당으로 이용했고, 이후 올림픽과 이데올로기는 분리되지 않았다. 서방세계가 보이콧했던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이나 공산권 국가들이 거부한 1984년 LA 올림픽 때는 ‘참가의 의의’도 사치스러운 단어였다.

1990년대부터 프로 선수들이 본격적으로 참여를 시작한 이후 올림픽은 ‘아마추어 스포츠 제전’이라 불리기 어려워졌다. 올림픽은 테러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전쟁도 잠시 쉬었다던 고대 그리스 올림픽은 말 그대로 고조선 시대 이야기다. 솔직하자면, 오늘날 진정으로 존재하는 올림픽정신은 없다.

올림픽은 하나의 국제적 메가 이벤트일 뿐이다. 관중들은 선수들의 땀과 성취에 감동하지만, 그 뒤에서는 IOC와 방송사, 거대기업들이 이권을 챙긴다. 그러니 올림픽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 정부와 조직위는 국민들에게 재미와 감동이 있는 행사를 싸게 제공하면 된다. 그런데 싼 볼거리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경기장이나 도로 건설에 투여된 막대한 경비가 모두 세금이고, 앞으로의 유지비 또한 결국은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2014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던 인천시가 기존의 문학경기장을 증축해서 주경기장으로 사용하는 안을 심각하게 검토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신축 주경기장 예정지였던 인천 서구 국회의원은 삭발을 하며 반발했고, 지금 5000억원짜리 아시아드주경기장은 연 수십억원의 유지비를 까먹으며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며칠 전에야 인천시는 이 경기장을 워터파크와 유스호스텔, 영화 스튜디오 등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어제 영국의 가디언지는 한 스키 리조트에 관한 화보 기사를 실었다. 평창 올림픽 개최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며 보여준 사진들은 깨진 창문, 수풀에 버려진 스키 한쪽, 녹슬고 폐허가 된 실내 수영장, 간판 글자가 떨어져나간 노래방 등이었다. 12년 전 문을 닫은 알프스 스키장이다.

기사는 한국의 스키 인구가 680만명에서 5년 만에 480만명으로 급감했음과 중앙정부-지방정부의 갈등을 지적하면서, 사진으로 평창 올림픽 시설의 미래를 암시한다. 이 기사는 저주가 아닌 경고다. ‘민족’과 ‘평화’의 포장 아래 단일팀 홍보만 하다가 정작 사람들이 무엇을 주목하는지, 어디에 관심을 갖는지는 무시하는 일이 또 생겨서는 안된다는 경고이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평창 올림픽을 즐길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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