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규모로 치러질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코앞에 다가왔다. 역대 대회 중 참가 국가와 메달의 수가 가장 많고, 200만명 이상이 한국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두 번째 올림픽 준비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만큼 국격이 높아진 것을 실감하고 있다.

동계올림픽의 경기종목은 얼음 위의 빙상(氷上) 경기와 눈 위에서 치르는 설상(雪上) 경기, 그리고 트랙 위에서 미끄러지는 슬라이딩 경기로 나눠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53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는데, 그 전부가 빙상경기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모굴스키의 최재우 선수와 스노보드의 이상호, 스켈레톤의 윤성빈 선수와 같은 유망주가 있어 전망이 밝다. 포스트 김연아로 불리는 최다빈 선수의 활약도 기대된다.

선수들이 제 실력을 발휘하려면 최상의 설질(雪質)과 빙질(氷質)을 유지하는 게 필수다. 이상적인 설상경기장은 자연설과 인공설을 3 대 7의 비율로 섞어야 하는데, 그 작업에는 엄청난 장비와 노력이 들어간다. 정선 알파인스키 경기장의 경우 120대의 제설기와 16대의 중장비가 밤낮없이 동원됐다. 아마 사용될 전력량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빙상경기는 종목마다 요구되는 빙질이 다르다. 한국의 메달 텃밭인 ‘쇼트트랙’ 경기장은 빙판 두께 3㎝, 영하 7도 이하가 최적의 환경이다. 김연아 선수가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피겨스케이팅’의 경우 최적의 얼음 두께는 5㎝다. 경기장에 물을 한 번 뿌려 얼리면 0.2㎜라고 하니까, 어림잡아 이 작업을 250번은 반복한다는 말이다.

가장 예민한 종목은 ‘컬링’인데, 경기장 실내온도를 12도, 얼음온도를 영하 4도로 유지해야 한다. 전기가 없다면, 이렇게 까다로운 조건을 일일이 다 맞추고 제대로 관리할 수 없다.

찰나를 기록하고 승부를 판독하는 데에도 최첨단장비가 필요하다. 수많은 조명과 카메라가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고, 전 세계 스포츠팬들은 모바일과 TV로 그 광경을 생생하게 시청한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바로 ‘전기’다. 이뿐 아니라, 선수들의 숙식과 안전을 보장하고, 관람객들에게 세심한 편의를 제공하는 모든 과정에도 전기가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필자가 몸담은 한국전력은 지난 3년간 누구보다 바쁜 시간을 보냈다. 전력설비 인프라 구축사업을 잘 마무리했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이중전원 상시 공급체계도 구축했다. 한전이 이렇게 신경을 쓰는 건,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의 많은 부분이 바로 전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한전은 국제 대회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 역할을 묵묵하게 해왔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세계인들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최고의 동계올림픽으로 손꼽을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힘을 모을 때다.

<김시호 | 한국전력공사 사장 직무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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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의 최대 겨울 축제인 평창 동계올림픽의 개막이 눈앞에 다가왔다. 12개 경기장의 준비가 끝났고 개·폐회식 연습도 한창이다. 선수들도 입국하기 시작했고 2만여명의 자원봉사자들도 현장에 배치됐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눈과 얼음과 함께하는 겨울 축제다. 눈 내린 대관령의 산악 풍경과 강릉의 겨울 바다를 함께 즐기며 겨울의 추위를 즐길 수 있는 세계인의 축제다. 이번 올림픽은 경기뿐 아니라 문화 행사, 강원도의 볼거리·먹거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올림픽은 무엇보다도 세계적 스포츠 스타들의 경연장이다. 스키의 린지 본, 남자 피겨의 하뉴, 여자 피겨의 메드베데바 같은 스타들의 경기를 볼 수 있다. 흑인 최초로 미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대표로 선발된 잭슨, 영화로 더 유명한 자메이카 봅슬레이팀, 전이경이 코치를 맡은 싱가포르 쇼트트랙 선수도 볼거리다. 세계 최강 아이스하키 팀의 경기, 새로 채택된 빅에어의 화려함, 150m 이상을 나는 스키점프대의 스릴도 함께 느껴볼 수 있다.

우리 선수를 응원하고 북한 팀을 지켜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금메달 8개로 종합 4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쇼트트랙의 심석희·최민정, 스피드스케이팅의 이상화·이승훈, 봅슬레이의 윤성빈 등이 금메달을 노리는 선수들이다.

또 북한의 참가로 다양한 볼거리가 생겼다.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과연 몇 승을 거둘지, 북한 선수들이 어느 정도 실력을 발휘할지 관심거리다. 이 밖에 북한 예술단과 태권도 시범단, 응원단의 공연과 응원을 지켜보는 것도 올림픽을 즐기는 새로운 맛이 아닐까 싶다.

평창에서는 문화올림픽의 향연도 펼쳐진다. 개회식에서는 ‘함께 만들어 가는 평화(Peace in motion)’, 폐회식에서는 ‘새로운 물결(New wave)’이라는 주제로 조화와 융합의 축제를 펼친다. 평창 문화올림픽은 ‘날마다 문화가 있고 축제가 되는 문화올림픽’이라는 주제로 마련됐다. 평창 올림픽플라자와 강릉 올림픽파크에서는 메달 수여식은 물론 K팝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벌어진다.

문화ICT관은 백남준 미디어 아트 작품 전시, 이우환 등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작품전, 동계종목 5G 체험 등이 가능하다. 또 강릉아트센터 등에서는 <안나 카레니나> <난타>, 대관령음악제, 강원비엔날레 등 각종 문화행사도 열린다. 코카콜라, 삼성, 알리바바, 현대자동차 등 글로벌 기업들의 대형 홍보관도 다양한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올림픽을 즐긴다는 것은 볼거리, 먹을거리와 밀접히 연결돼 있다. 강원도는 설악산, 대관령 등 천혜의 자원을 가지고 있다. 월정사와 낙산사 같은 고찰, 경포대나 정동진의 해맞이, 바다부채길 트레킹, 강릉째즈프레소의 커피축제의 맛을 느껴볼 수 있다. 평창에는 세계음식문화관이 생겨 강원도의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을 뿐 아니라 16개 대사관이 추천한 음식을 맛볼 수도 있다. 대관령 한우와 황태국, 오삼불고기, 동해바닷가 회를 맛보는 것도 스포츠를 통한 여행의 재미를 더한다.

서울 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은 세계인의 축제로 평창, 강릉, 정선에서 열리기 때문에 누구나 손쉽게 참여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기회다. 눈과 얼음 속에 펼쳐지는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들의 열정과 함성 속에 강원도의 겨울 맛과 멋을 즐겨보길 기대한다.

<김주호 |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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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KBO 총재로 일한 지 한 달이 넘었다. 나는 취임사에서 프로야구가 모든 국민의 ‘힐링(healing)’이 되도록 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프로야구의 산업화와 비즈니스 모드 정착, 클린베이스볼 구현, 아마야구 적극지원 등을 약속하고 임기 3년의 기본 로드맵도 명확히 했다. 물론 구단, 선수, KBO가 탄탄한 협력 체제를 구축하고 선수들의 기량이 높아져 팬들의 사랑을 얻어야 성공할 수 있는 일이다.

나의 유별난 야구사랑 때문에 언론에서는 “베이스볼 키드가 프로야구 수장이 되었다”고 평한다. 사실 총재 제안을 수락한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야구에서 동반성장을 실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익공유제가 자리 잡고 있다. 프로스포츠 분야에는 이익공유를 통해 동반성장에 성공한 좋은 모델이 있고 그 적용범위도 확대 추세다.

이익공유와 관련한 논란은 아직 진행형이다. “자본주의 경제원리에 어긋난다”는 비난부터 “국가단위에서 실현한 나라가 없다” “공유할 이익의 측정이 어렵고, 기준도 애매하다”까지 논쟁 지점도 다양하다. (기업 내부의 이익공유와 관련하여)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기업이익은 주주 몫인데 왜 그것을 다른 생산주체와 나눠야 하는가?”일 게다.

이 질문이 타당하려면 생산에 참여한 주체들의 기여도가 투명하여 정확하게 측정되고, 그에 따라 정당한 보상이 지급되어야 한다. 각 생산주체의 기여도가 정확하게 측정되지 않았음에도 주주가 자기중심적으로 분배를 요구한다면 기업이익을 독식하려는 욕심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대·중소기업 간의 이익공유는 대기업이 높은 이익을 올리면 그것의 일부를 협력중소기업에 돌려 중소기업이 기술개발, 해외 진출, 그리고 고용 안정을 꾀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현재 대기업들의 수익률은 9%인 데 비해 중소기업은 3%가 안된다. 갈수록 대·중소기업 간 격차가 심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세계는 지금 기업생태계 간의 경쟁시대다. 도요타와 현대자동차가 경쟁하는 게 아니라 도요타+협력업체, 현대자동차+협력업체가 경쟁한다. 대기업과 협력업체가 별개로 존재하지 않고 한배에 동승한 운명공동체다. 이대로 생태계의 한 축이 무너지면 모두가 공멸할 수밖에 없다.

이익공유는 반시장적 사회주의 발상이 결코 아니다. 이익공유는 1920년대 미국 할리우드 영화산업 태동기 때 처음 도입되어 할리우드 영화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는 밑바탕이 되었다. 그 후 부분적으로나마 롤스로이스, 크라이슬러, 캐리어 등에서도 실현되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이나 버니 샌더스 모두 이익공유가 미국산업 전체에 적용되도록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공약했었다. 그렇다고 미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려 한다고 비난하는 말을 들은 기억은 없다. 우리보다 앞선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이익공유를 실천해왔다.

프로스포츠는 자본주의의 꽃이라고들 한다.

시장경제의 전범(典範) 국가인 미국에서 프로스포츠가 이익공유를 적극 활용하여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볼품없었던 미식축구리그(NFL)는 이익공유를 실천하면서 전 세계 프로스포츠의 왕 중 왕 자리에 올랐다. 각 구단의 TV중계권료, 상품화 및 특허사용계약료 그리고 광고료 전액, 구단별 경기장 티켓수입 40%를 거둬들여 다시 32개 구단에 균등하게 배분하는 이익공유를 실시하면서 세계 최고의 리그로 발전했다. 포브스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 프로스포츠 구단 가치 ‘톱11’에 NFL팀이 6개나 속하고, 32개의 NFL 구단 모두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50개 스포츠 구단에 올라 있다. 한마디로 NFL은 세계에서 최고로 부자일 뿐 아니라, 모든 구단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다는 뜻이다. 미국 정부도 NFL의 동반성장 성공모델을 벤치마킹해 연구 중이다.

이러한 NFL의 이익공유 모델은 미국의 다른 스포츠 리그로도 퍼지고 있다. 빅 마켓 구단과 스몰 마켓 구단 간 격차가 큰 메이저리그(MLB)도 ‘분배’를 늘리는 추세다. 2003년부터 구단 간 재정 격차를 줄이기 위한 ‘통합세일’제도를 도입하여, 각 구단수익 일부를 거둬 균등하게 배분하기 시작했다. MLB 산하 30개 구단의 입장료 및 지역방송권료의 34%에 해당하는 금액을 갹출해 모든 구단이 균등하게 나눠 갖는다. 대신 리그사무국이 정한 선수 연봉한도(2018년 1억9700만달러)를 초과한 팀들은 ‘사치세(luxury tax)’를 내야 하며 수익을 분배할 때 할당이 줄어든다. 사치세와 관련해 연봉한도를 2021년까지 조금씩 늘리되, 한도를 넘기면 드래프트에서 많은 불이익이 주어진다. 이런 장치들은 수익이 좋지 않은 비인기 구단의 경쟁력을 상향평준화하기 위해서다. 자금 부족이 성적 하락으로 연결돼 만년 하위 팀이 고정되면 흥행부진으로 이어져 리그 전체의 지속성장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모든 변화에는 양보와 혁신의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누구도 양보하지 않았거나 스스로 혁신하려는 의지가 없었다면 NFL이나 MLB가 지금의 성공을 거두기 어려웠을 것이다. 리그, 구단, 선수가 동반자 관계를 맺어 성장을 위해 서로 힘쓴 결과 세계적인 부자구단이 되었고, 리그 전체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스포츠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 성공의 비밀은 이익공유를 통한 동반성장의 가치를 실천한 데 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미친 짓이란 과거와 똑같은 방식을 반복하면서도 미래에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라 했다. 자본주의의 작동원리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시대나 기술의 진보에 따라 변화한다.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장점이 아닌가?

이익공유가 자본주의 경제에 맞는지 여부에 언성을 높이기보다 정부나 기업이 대승적 자세로 이런 아이디어를 실천하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실천방식이나 적용범위는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면 우리 현실에 맞는 답을 찾을 수 있다.

<정운찬 |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한국야구위원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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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빛과 그늘을 알아야, 인간은 더욱 인간다워진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라고 했다. 군중의 환호와 폭죽의 화려함에 빠져서는 정의로운 세상을 볼 수 없다. 평창 올림픽 개막이 목전이다. 전 세계가 스포츠를 통한 인류 평화, 공존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과거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다.

2014년 가을, 상상할 수 없는 ‘고목 학살사건’이 벌어진다. 강원도 정선과 평창의 경계에 위치한 가리왕산. 평창 올림픽 스키 활강경기가 예고된 곳. 수령 150년을 훌쩍 넘긴 신갈나무, 음나무, 전나무가 차례차례 잘렸고 그 수가 무려 10만그루를 넘었다. 500년 ‘왕실의 숲’은 슬로프의 모양대로 가리왕산 정상에서 수직으로 밀렸다. ‘스포츠에 의한 인간의 완성과 경기를 통한 국제평화의 증진’이라는 올림픽 정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가리왕산 벌목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국제스키연맹(FIS)의 묵인 아래, 강원도와 한국 정부가 내린 결정이었다.

2011년, 평창이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호명되었다. 올림픽 유치 삼수 만에 이룬 쾌거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런데 그 시각, 평창의 경쟁도시 독일 뮌헨 주민들도 올림픽 유치 실패를 축하하며 축배를 들었다. 이른바 ‘반올림픽연합(Nolympia)’의 승리다. 뮌헨처럼 스위스 생모리츠-다보스, 폴란드 크라쿠프, 오스트리아 빈이 IOC 주도의 동계, 하계올림픽을 주민 투표로 거부했다. 스웨덴 스톡홀름은 의회가 나서 올림픽 유치를 반대했다. 이유는 이러하다. 산더미처럼 쌓일 부채, IOC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약, 지역발전 허상, 부동산 가격 폭등, 자연환경 파괴에 반대한다는 것.

‘새로운 세상(A New World)’이 열릴 것이라 했던 2016 브라질 리우 올림픽은 어떨까. 개회식이 열렸던 마라카나 스타디움은 현재 폐쇄되었다. 유리는 깨지고 전기는 끊겼다. 벽과 천장의 전기선은 사라졌다. 경기장 좌석의 10%는 도둑맞았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올림픽’ ‘최후의 패자는 자연환경’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은 경기장 활용을 못해 ‘1조7600억엔의 빚과 훼손된 자연’만 남겼다. 한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2002 한·일 월드컵 경기를 치렀던 지방 경기장은 적자에 허덕인다. 전남 영암의 2013 포뮬러1 코리아 그랑프리 경기장,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이 열린 ‘무대책’ 아시아드주경기장도 사후 활용 방안이 궁색하다.

‘포스트 평창’의 모습은 어떨까. 브라질 리우의 폐허가 너무도 가까이 있다. 흉물스러운 불 꺼진 경기장을 마주한다. 강원도는 경제 부흥이 아니라 빚더미에 앉는다. 가리왕산은 동계올림픽 특구 논란 속에 개발 광풍이 분다. 올림픽플라자를 포함해 7개 신설 경기장의 사후 활용 방안은 없다. 난개발, 반환경, 실패한 올림픽으로 치닫고 있다.

환경적 측면에서, 평창 올림픽이 남긴 숙제가 있다면 바로 ‘가리왕산 복원’이다. 작년 12월, 강원도 복원추진단도 ‘전면 복원’을 결정했다. 단 며칠 활강경기를 위해 국가 보호구역을 해제하고 나무를 베고 경기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10만그루 나무를 다시 복원하라니, 아이러니다. 우리는 메멘토 모리, 정의와 평화의 관점으로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가리왕산을 위한 사죄의 진혼을 올려야 한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라도, 가리왕산 복원은 뼈아픈 숙제다.

<윤상훈 |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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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이 임박한 최근 미국의 대북태도가 심상치 않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지난 23일 “올림픽 대화만으론 대단히 중요한 문제들을 다 다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외면해선 안된다”고 했고,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도 26일 “북한의 술책에 속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24일 북한 원유공업성 등을 새롭게 제재 리스트에 올렸다. 삼지연관현악단 단장 현송월이 1박2일간 방남하면서 뉴스의 중심이 되자 백악관의 고위 관료가 “김정은이 평창 올림픽의 메시지를 납치(hijack)하는 것을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말했다는 외신 보도도 있었다.

남북이 2년여 만에 대화의 문을 열어 평창 올림픽의 평화적 개최에 힘을 모으려는 상황에서 미국이 보이고 있는 태도는 당혹스럽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평창 올림픽 개막 하루 전인 2월8일 예정된 건군절 70주년 열병식을 미국의 대북 불신의 근거로 든다. 물론 올림픽 전날 북한이 대대적인 군사 퍼레이드를 벌이며 핵무력을 과시하려 한다면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열병식과 핵실험·미사일 발사는 성격이 다르다. 국제사회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북한의 도발로 간주해왔다. 지난해 11월29일 ‘화성-15형’ 발사 이후 북한은 일체의 도발을 중단한 상태다. 이 점에 주목하지 않은 채 열병식 자체만을 놓고 도발로 간주하는 것은 과한 일이다. 미국이 올림픽 개회 전후로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함 등 주요 전략자산을 한반도 지역에 순환배치하는 것에 북한이 반발하고 있는 점도 함께 놓고 생각해봐야 한다.

올림픽 대화만으론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매티스의 발언은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누구보다도 문재인 정부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한·미 훈련 재개 전까지 북·미대화를 유도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미국의 대북 불신이 크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지금은 인내를 보여줄 시기다. 올림픽을 고리로 북핵 문제 해결을 모색해 보려고 한국 정부가 노심초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차피 북한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식으로 위협발언을 쏟아내는 것은 동맹국을 존중하지 않는 처사다.

북한도 올림픽 기간 중 한·미 연합훈련을 연기하기로 한 결정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 대대적인 열병식이 가져올 파장을 깊이 고려해야 한다. 북핵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내가 임계치에 육박해 있음을 인식하고 현명하게 처신할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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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올림픽의 목표는 전쟁 중지였다. 기원전 776년에 열린 첫번째 올림픽도 늘 전쟁 상태였던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휴전이 목적이었다. 이들은 올림피아 지역을 중립 및 불가침 지역으로 규정했고, 올림픽 기간 동안 적대행위 중지를 선포했다. 스포츠라는 ‘유사 전쟁’을 통해 진짜 전쟁을 피한 셈이다. 열흘 뒤 개막하는 평창 동계올림픽도 유사한 과정을 밟았다. 한국과 미국이 연합군사훈련을 중지했고, 북한은 핵·미사일 도발을 두 달 가까이 멈췄다. 유엔도 올림픽휴전을 결의해 힘을 보탰다.

그런데 정작 한국 내부에서는 격렬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보수 언론 등 보수 세력이 북한 참가와 관련해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있다. 이들은 평창 올림픽 개회식 남북 공동입장과 한반도기 사용, 여자 하키 남북단일팀 구성을 문제 삼는다. 남한이 어렵게 유치한 평창 올림픽이 북한 체제 선전장이 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평창 올림픽을 나치의 히틀러가 정치 선전을 위해 개최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비유한 한국당 의원도 있다.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를 전면 재검토하라는 요구도 나왔다. 건전한 비판은커녕 악담과 저주에 가깝다. 보수 야권의 공세는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것이지만 평창 역시 상처받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정부를 공격할 수만 있다면 평창 올림픽이 망해도 괜찮다는 불순한 심리가 깔려 있다.

국제체육대회의 남북 공동입장과 한반도기 사용, 단일팀은 모두 보수 정권이 시작했다. 첫번째 단일팀인 남북탁구팀이 구성된 것도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91년 일본 지바 세계수권대회에서다. 당시 단일팀이 ‘만리장성’ 중국을 꺾고 우승하자 보수 언론은 “남북단일팀이 전 세계에 큰 감동을 안겼다”고 대서특필했다. 사실 평창 올림픽 여자 하키 단일팀을 가능케 한 평창올림픽특별법도 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 주도했다. 이 밖에 박근혜 정권 시절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한반도기를 흔들며 북한 여자축구를 응원한 것이나 북한이 인천 아시안게임에 응원단을 보내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자 전세기를 북한에 보내자고 한 것도 새누리당이었다. 그랬던 보수 세력이 지금 와서 평창 올림픽의 북한 참가에 대해 마치 한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단일팀이 북한의 지령을 받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영화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를 떠올리게 한다. 집단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것 같다.

하지만 보수 세력의 이런 증세는 기억상실증과 거리가 있다. 기억상실증은 어떤 이유로 인간의 뇌가 기억을 인출해 내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보수 세력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기보다 의도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기억을 인출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정치 도의를 인출하지 않는 셈이다. 이는 단순한 자기기만을 넘어 평창 올림픽을 망치고 한반도 평화마저 흔드는 위험한 행태다. 이런 정치, 이런 정치가는 국가의 발목을 잡고 퇴행시킬 수밖에 없다.

소집단의 논리에 매몰돼 평창 올림픽 북한 참가의 본질을 놓쳐서는 안된다. 청와대는 어제 평창 올림픽 엔트리 마감 결과 92개국에서 2900여명이 참가할 것이라며 이는 동계올림픽 사상 최대 규모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만일 북한이 불참하고 핵·미사일 위협을 계속했다면 이런 성황을 이루기는커녕 세계가 참가를 꺼리는 올림픽으로 전락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핵 위기로 참가를 주저하던 유럽 국가들이 북한 참가가 확정되자 참가 쪽으로 돌아선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대사조차 한때 안전을 문제 삼아 참가 유보방침을 거론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평창 올림픽의 평화올림픽 개최 목표는 이미 절반 이상 성공한 셈이다.

북핵 사태가 전쟁위기로 치닫고 있는 지금 대북 대응이 과거와 달라져야 한다는 보수 세력의 주장은 일리 있다. 하지만 그것이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에 어깃장을 놓는 것이라면 동의할 수 없다. 보수 세력은 한반도 전쟁 위기란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정작 언행은 그런 인식과 거리가 있다. 현송월 국빈대접 논란만 해도 그렇다. 세상에 버스와 열차에 태워 이동시키는 국빈도 있는가. 본질을 외면하고 지엽말단에 목숨을 걸면 문제제기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김정은의 선의를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통하지 않고는 북핵 해결 논의를 한 발자국도 진전시킬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김정은을 증오하고 거부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 국가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의심했다. 그런 그들을 협상장으로 끌어낸 것은 전쟁으로 인해 공멸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절박감이었다. 역사의 교훈은 아직도 유효하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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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10일 이일영 교수가 경향신문에 칼럼 ‘양국체제인가, 한반도 체제인가’를 올렸다. 양국체제도 한반도 체제이니 이 제목은 이상하다. 이 교수는 양국체제론과 분단체제론, 두 개의 ‘이론’을 말하고 그 둘의 병립을 제안하는 듯하다. 그러나 필자는 양국체제와 분단체제, 두 개의 ‘현실’을 말해왔다. 이 둘은 병립할 수 없다. 선택해야 한다.

분단체제에서는 한반도 두 국가의 존재, 두 국가의 평화 공존이 허락되지 않는다. 분단체제에서 남북은 서로를 부정한다. 모두 자기중심으로 통일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남은 ‘북진통일(흡수통일)’을, 북은 ‘조국통일(적화통일)’을 부르짖어 왔다. 상대가 자신을 부정하는 이상, 그러한 상대와는 생사를 걸고 싸울 수밖에 없다. 그것이 한국전쟁(Korean War)이었다.

그러나 1991년 이래 유엔은 한반도 남쪽에 ‘대한민국(ROK)’, 그리고 북쪽에 ‘조선(DPRK)’이라는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함을 인정하고 있다. 유엔헌장은 가입국 모두가 상호 영토와 주권을 인정함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세계 157개국이 남과 북 두 나라와 동시 수교하고 있다(‘2016 외교백서’). 유엔에서도 세계 대다수 나라에서도 태극기와 인공기가 동시에 걸려 있다. 분단체제 신봉자들은 이 엄연한 현실을 외면하고 부정한다.

평창 올림픽이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다. 평화제전인 평창 올림픽에서 북측(DPRK) 선수단과 응원단이 자신의 국기인 인공기를 들고나오는 것에 극도의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쪽이 어디인가? 연초 벽두부터 어린이가 그린 ‘통일 나무’ 그림에 인공기가 (태극기와 함께) 등장했다고, 그래서 대한민국이 부정되었다고, 황당한 히스테리를 부린 이들은 또 과연 누구였던가?

이미 노태우 전 대통령 시기인 1991년 탁구와 청소년 축구에서 남북 단일팀이 성사되었다. 이후 남북이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한 대회는 9차례에 이른다. 이 11차례의 국제대회에서 남북은 각자의 국기인 태극기와 인공기를 들고 각자의 팀을 열심히 응원했다. 남에서는 북이 다른 국가와 경기하면 북을 응원했고, 북에서는 남이 다른 국가와 경기하면 남을 응원했다. 이것이 한반도기를 함께 든 취지였다. ‘한반도 두 국가 간의 특수한 관계’, 이것이 한반도 양국체제의 국제법적 성격을 집약한다. 남북 양국의 국기를 각자 들면서 또한 서로 동의하는 경우에는 한반도기를 함께 드는 것이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에서도 꼭 마찬가지였다. 태극기와 인공기가 대한민국 하늘 아래 자연스럽게 같이 걸렸다. 대한민국의 부정? 거꾸로 그때 남북 간의 긴장과 위기는 한국전쟁 이래 가장 약해졌고, 세계 여론에서 대한민국의 국격은 가장 높아졌다. 양국체제란 이렇듯 남북 두 나라의 평화적 공존상태를 안정적인 체제로 만들자는 것이다.

분단체제 신봉자들은 이 모든 사실들을 없었던 일로 부정하고 싶어 한다. 이들은 1991년 남북 유엔 동시 가입 이전, 더 나아가 1987년 민주화 이전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역사의 퇴행 세력이다. 영화 <1987>에 등장했던 남영동의 그 가공할 실존 인물, 박처원과 꼭 같은 사고를 여전히 품고 있는 자들이다.

세계 여론은 3차 세계대전의 발화점이 될지도 모를 한반도 전쟁의 가능성을 진정으로 우려했다. 누가 김정은-트럼프 간의 막가는 치킨게임을 일시적이나마 중단시켜 대화의 물꼬를 텄는가?  결국은 성숙한 대한민국 촛불시민들의 힘이다. 외신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 나타난 대화 기조는 평화를 바라는 대한민국 민의의 승리라고.

대한민국의 촛불민의는 평창 올림픽에서의 한반도기 그리고 태극기와 인공기의 동시 등장을 따듯하게 환영한다. 이로써 남북 간 대화와 화해의 물꼬가 트이고, 더 나아가 북이 바라는 북·미수교, 북·일수교에 대한민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계기가 마련되기 바란다. 우리가 이미 중국, 러시아와 수교하고 있는 것처럼, 미국과 일본이 북을 인정하고 수교하게 되면, 한반도 양국체제는 안정 궤도에 접어든다. 그럴 때 북의 비핵화도 현실화될 수 있다. 이것이 한반도 평화만이 아니라 세계평화를 위한 대한민국의 역할이다.

<김상준 | 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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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선수들과 단일팀을 이뤄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할 북한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단이 어제 남한에 들어왔다. 이들은 곧바로 선수촌이 있는 충북 진천으로 이동해 남한 선수단과 합류했다. 이들은 오늘부터 공동 훈련에 들어간다.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출범하기까지 큰 홍역을 치렀다. 단일팀 구성에 따른 남한 선수들의 출전시간 축소 등 불이익 문제가 불거졌고, 이에 대한 일부 선수의 반발과 야권의 정치적 공세가 거셌다. 평창 올림픽 조직위원인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단일팀을 반대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남북이 급작스럽게 단일팀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남한 선수단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올 들어 갑자기 남북대화가 재개되는 바람에 올림픽 개최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촉박하게 단일팀 논의가 시작된 저간의 사정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소통을 중시하는 정부가 당사자인 선수들과의 대화를 소홀히 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무엇보다 지난 4년 동안 땀 흘려온 선수들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라는 대의는 구성 과정의 잡음과는 구분해서 바라봐야 할 문제다. 남한 내 대회에서 첫 올림픽 단일팀 출전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험악한 한반도 정세를 완화해주는 의미도 크기 때문이다. 예컨대 북한이 평창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고 핵·미사일 위협을 계속했을 경우 지금처럼 안전하고 평화적인 올림픽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를 생각하면 이를 금방 알 수 있다.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와 단일팀 구성을 환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한반도의 밝은 미래를 열어줄 획기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단일팀이 국내외의 주목을 받은 만큼 평창 올림픽의 성공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남북 선수들은 기량과 사고방식이 다를 것이고, 호흡을 맞출 시간도 태부족하다. 단일팀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남북이 힘을 합쳐 평화올림픽을 치른다는 의의를 세계에 과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고의 팀이 될 수 있다. 정치권과 사회도 더 이상의 정쟁과 소모적 시비를 중단하고 단일팀이 힘을 내도록 도와야 한다. 단일팀이 남북 간, 남한 내부의 갈등을 해소하는, 화합의 마당을 펼치는 장면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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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이 한국 테니스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한국 테니스의 간판 정현은 24일 열린 호주오픈 남자단식 8강전에서 미국의 테니스 샌드그렌을 3-0으로 완파하고 4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한국 테니스 선수가 메이저대회 4강에 오른 것은 남녀를 통틀어 처음이다. 이덕희가 1981년 US오픈 여자단식 16강에 오르고, 이형택이 2000년과 2007년 US오픈 남자단식에서 16강에 진출한 게 지금까지 거둔 최고 성적이었다. 1905년 출범한 호주오픈에서 남자단식 4강에 오른 아시아 선수는 1932년 일본의 사토 지로가 유일했다. 특히 프로 선수들의 ATP 투어 출전이 공식 허용된 1968년 이후 아시아 선수가 메이저대회 4강에 진출한 것은 일본의 니시코리 게이밖에 없었다.

정현이 24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준준결승에서 테니스 샌드그렌을 제압하며 4강행을 확정하자 두 팔을 벌려 기뻐하고 있다. 멜버른 _ EPA연합뉴스

정현은 지난 22일 열린 호주오픈 16강전에서 메이저대회를 12차례나 석권한 전 세계랭킹 1위 노바크 조코비치를 3-0으로 완파했다. 조코비치는 로저 페더러, 라파엘 나달 등과 함께 세계 3대 테니스 스타로 꼽히는 선수다. 어릴 적 자신의 우상이기도 했던 조코비치를 상대로 정현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경기를 지배했다. 정현은 8강전 상대인 샌드그렌을 맞아 2세트 중반 수세에 몰리기도 했지만 특유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3-0 완승을 거뒀다. 정현의 호주오픈 4강 진출은 박세리의 LPGA 첫 우승, 김연아의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 등에 버금가는 값진 성과다. 테니스는 서구인의 체력 조건에 최적화한 스포츠다. 그럼에도 정현은 고된 훈련과 인내로 자신의 단점과 한계를 극복하며 세계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했다.

호주오픈 대회 기간 중 정현이 감동을 준 것은 20대의 패기를 앞세운 빼어난 경기력뿐만이 아니다. 유창한 영어와 재치있는 언변, 상대선수를 존중하는 매너는 관중을 열광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주눅들지 않고 당당한 한국 청년세대의 표본을 보여줬다고 할 만하다. 현지 언론과 팬들의 “테니스 실력도, 인터뷰 실력도 월드클래스”라는 평가가 결코 과장된 게 아니다. 정현이 4강에 진출하자 AFP통신은 “젊은 나이에도 냉정함을 잃지 않은 ‘거물 사냥꾼’이 준결승에서도 꿈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아직 정현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페더러와의 4강전 승패를 떠나 한국 테니스 선수로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에 들어선 정현의 선전을 기대한다. 메이저대회 4강 진출로 한국 테니스의 꿈을 현실로 바꿔놓은 정현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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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21분간의 혈투 후 조코비치가 정현의 가슴과 어깨를 두드렸다. 경기 전후 선수 간 인사는 테니스의 오랜 관습. 하지만 패자가 미소를 띤 채 승자에게 축하와 격려를 보내는 모습은 조금 특별했다. 바로 직전 혈투를 벌인 선수들이라기보다 마치 스승과 제자 같은 모습이었다. 정현은 “조코비치가 다음 경기도 잘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정현이 22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16강전에서 노바크 조코비치를 3-0으로 제압하고 경기를 끝낸 뒤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멜버른 _ 로이터연합뉴스

정현과 조코비치의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4회전은 테니스가 왜 아름다운 스포츠인지를 보여주었다. 일진일퇴의 경기 내용도 흥미로웠지만, 진정성과 아량이 담긴 언사가 더 눈길을 끌었다. 정현은 승리 후 인터뷰에서 “조코비치는 나의 어릴 때 우상이었다”며 “그가 투어에 복귀해 기쁘고, 그를 상대할 수 있어 영광이다”라고 치켜세웠다. 조코비치는 취재진이 오른팔꿈치 통증에 대한 질문을 쏟아내자 “정현의 승리를 깎아내리는 행위를 그만해달라”며 “그가 더 뛰어났다”고 말했다. 팔꿈치 부상이 승부에 영향을 미친 것이 분명한데도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고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에서 강자의 품위가 느껴진다.

잘 알려진 대로 두 사람은 멘토와 멘티 관계이다. 조코비치는 정현이 주니어 선수일 때부터 눈여겨보고 여러 차례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정현은 조코비치의 샷을 보고 연마해왔다. “조코비치는 왕성한 그의 젊은 버전과 경기했다”(CNN), “조코비치가 지난 5년간 모두에게 했던 것을 지금 정현이 조코비치에게 하는 중”(테니스 선수 제이미 머레이)의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정현은 2년 전 호주오픈 1회전에서 조코비치와 만나 완패했다. 하지만 이제 우상과의 첫 대결이 너무 떨려 아침밥도 못 먹었던 소년은 그 어디에도 없다. 한국인 최초 메이저 테니스대회 8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룬 정현이 더 큰 선수로 성장하기 바란다. 조코비치는 이번 대회 패배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랭킹 1위에 메이저대회 12회 우승 기록을 보유한 최강자 중 한 명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정현이 이번에 청출어람의 기세를 떨쳤지만 부상을 떨쳐낸 그와 다시 만난다면 승부의 추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두 사람이 아름다운 인연을 이어가기를 기대할 뿐이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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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과정이 되었다.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실의와 눈물은 충분히 공감할 만한 일이다. 종목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결정이었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3피리어드 전체 1시간’의 경기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조직력이 관건이다. 무엇보다 상대적 약체팀에 절대적인 것이 조직력인데 그것이 흔들렸다. 이에 관하여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는 크게 실책했다.

우선 설득과 동의의 과정이다. 문제가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다. 비록 특정 분야의 미시적인 것일지라도 그 설득 과정을 통하여 사회 전반의 정서적 연대의 수준이 높아진다. 이를 소홀히 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북한에 대한 모든 사안은, 절망적이든 희망적이든, 언제나 ‘내일 당장’ 벌어질 수 있다는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올림픽과 관련하여 책임 있는 당국자들은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촉구하는 한편 단일팀에 대한 의지 또한 수 차례 천명했다. 그러면 문체부와 대한체육회는, 언제나 갑작스러울 수밖에 없는 북한의 결정에 다각도로 대비했어야 한다. 이 또한 소홀했다.

다음으로, 결정 이후 쏟아지는 비판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아이스하키 선수단을 진심으로 위로하지 못했다. 모두를 만족시키지는 못하는 어떤 결정을 신속하게 내려야만 할 때, 그로 인하여 파생하게 될 또 다른 문제들, 특히 마음의 문제, 정서적인 문제에 대해 정부는 깊은 공감의 자세로 나름의 논리와 사후의 대안들을 제시했어야 한다. 그럼에도 문체부 장관의 답변은, 시인답지 않게 관료적이었고, 대한체육회는 무마하기 바빴다. 그러니 ‘이때다’ 하고 여지없이 ‘종북’으로 몰고 가는 고약한 말들에 대해서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남북한 동시 입장’과 ‘한반도기’를 생각해보자. 어느 정치인은 ‘한반도기’도 안되고 ‘인공기’도 안된다고 했지만, 일단 북한이 올림픽에 참가한다고 했으니 뭐라도 들기는 들어야 하지 않는가. 둘 중 하나밖에 없다. 먼저 인공기를 생각해보자. 이 경우 선수단 입장도 따로 해야 한다. 이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경우, 내부적으로는 인공기 게양을 못마땅해하는 세력의 비판이 거세질 것이고 밖으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나라임을 공고히 하게 된다. 나는 지금 민족적 낭만주의를 강조하려는 게 아니다. 당면한 동북아의 현실 속에서, 무엇보다 북핵 위기 속에서, 그리고 이른바 ‘급변 사태’라고 하는 느닷없는 상황 속에서 ‘동시 입장’과 ‘단일기’를 생각하자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 한반도는 ‘북핵’이라는 조건 속에서, 4대 강국의 복잡한 이해까지 충돌하여 언제든 일상의 평화가 긴장과 불안으로 급전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를 타개해 나가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가 문화적 교류와 상징이다. 때마침 개최하게 된 올림픽은 ‘한민족 동질성’ 같은 추상적이며 낭만적인 수사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한반도의 위기 상태를 조절하고 일상의 평화를 지속하는 데 현실적인 의의를 지닌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 즉 이른바 북한의 ‘급변’을 생각해보자. 2009년 1월 미국 외교위원회가 작성한 ‘북한 급변 사태의 대비’는, 중국의 경우 북한 지역에 미군기지가 설립되는 것을 방지하고 대량살상무기와 난민의 유입으로 인한 정치적·경제적 혼란을 우려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경우 다른 국가들이 한반도 내에서 권력을 확장하는 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견제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또한 일본의 경우 한국의 통일에 대한 공포심을 갖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일본은 미·일동맹의 틀에서 북한 사태에 제한적인 역할밖에 할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이에 아베 정권은 ‘집단적 자위권’의 공세적 해석에 따른 한반도 군사 개입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일본과 밀접한 관계’ ‘한국 내 일본 국민의 생명 위험’ 등이 그 근거다. 2015년 10월, 일본 방위성은 “한국의 유효한 지배가 미치는 지역은 휴전선 이남”이라고 강변한 바 있다. 당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북한은 대한민국의 영토”라고 말하였으나 일본의 나카타니 방위상은 “이는 한·미·일 3국이 협의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우회했다.

이때 ‘남북한 동시 입장’과 ‘단일기’는 문화적 상징 효과가 크다. 다양한 측면의 남북한 동질성에 대해 ‘한·미·일 3국이 협의’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비극적이든 희망적이든, 이 한반도에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었을 때 필사적으로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무엇보다 현상적인 평화라도 유지해야 한다. 그 실질적인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동시 입장’과 ‘단일기’ 같은 문화적 상징이나 교류 왕래는 더 자주 해야만 한다. 그럴 때에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주도적인 발언과 행동이 가능하다. 어떤 나라는 올림픽을 통해 경제 발전을 도모했다. 어떤 나라는 자국의 위상을 세계지도 위에 각인시켰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번 올림픽을 통하여, ‘동시 입장’과 ‘단일기’를 통하여, 동북아의 긴장 완화와 일상적 평화를 천명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중국처럼 중화주의를 자랑하거나 러시아처럼 군사력의 확장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동시 입장’이나 ‘단일기’에 대해 긍정적인 사람들도 과거처럼 그렇게 ‘감동적’이지는 않다고 말한다. 당연한 소회다. 스포츠를 통한 일시적인 이벤트 효과는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 속에서 금세 물거품처럼 사라지곤 했다. 이번에는 굳이 감동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냉정하게 ‘동시 입장’과 ‘단일기’를 바라봐야 한다. 굳이 말하면 이는 ‘종북’이 아니라 ‘종남’이다. 북한을 이롭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일상적 평화를 위한 발언이자 향후 수많은 상황 속에서 적극적으로 우리, 즉 ‘남한’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행동이다. 이 관점에서 청와대는 대국민 담화 등의 형식으로 설명할 것은 설명하고 호소할 것은 호소해야 한다. 장관의 기자회견이나 ‘청와대 관계자’ 정도로는 안된다. 진지하게 서둘러야 한다시간이 없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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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올림픽에 20명 이상의 북한 선수들이 참여한다고 한다. 논란이 되었던 여자 아이스하키 팀에는 무려 12명이 합류한다. 남북 단일팀을 성사시키기 위해 정부와 조직위가 애를 많이 썼고, IOC도 적극적으로 협조한 결과이다. 한반도의 군사적 위기감 때문에 참가를 꺼리는 선수나 국가가 적지 않았고 올림픽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도 저조했던 터라 북한의 참가는 여러모로 긍정적 효과를 낳을 것이다.

그러나 상처도 많다. 단일팀만 구성되면 국민의 환호를 받을 것이라 기대했던 정부는 반대여론이 거세자 크게 당황한 눈치였다. ‘단일팀’이라는 단어의 함의가 달랐기 때문이다. 정부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당시의 국민적 환영만을 기억한 듯하다.

총리는 기자 시절 경험했던 남북한 탁구 단일팀을 언급하기도 했다. 19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한 단일팀 우승을 이뤄낸 ‘사건’은 큰 감동이었고, 나중에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시간이 꽤 흘렀고 상황도 많이 변했다. 지금의 20~30대는 1991년은커녕 2002년도 잘 기억하지 못하거니와, 기억하더라도 총리의 정서를 공유하지 못한다. 군사적 도발과 강경대응이 반복된 지난 10년의 경험이 미친 영향도 크다. 국민들의 감정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 시절과 사뭇 달라졌다는 점을 정부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단일팀 논란에서, ‘민족’이나 ‘평화’는 ‘공정성’을 압도하지 못했다.

또 다른 오해가 있다. 사람들은 오늘날의 올림픽이 순수한 평화의 제전이 아님을 잘 아는데 정부는 애써 이 사실을 외면한다. 정치와 자본의 힘을 익히 인지하는 이들에게 올림픽정신 운운하는 것은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 사이 나쁜 친척과 설에 만나 윷놀이 한번 한다고 해서 금세 다시 절절한 피붙이가 되는 것은 아님을 잘 알기 때문이다. 물론 오해의 정도는 야당이 더 컸다. 단일팀 구성에 국민들이 시큰둥하니, 조직위 위원이기도 한 야당 국회의원은 IOC에 단일팀 구성을 불허해달라는 서한을 보내 사람들을 당황시켰다. “올림픽헌장에 명시된 정치적 중립성 원칙을 위반”한다는 언술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감동도 주지 않는다.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 “승리보다는 참가에 의의” “스포츠로 세계 평화를” 같은 슬로건을 진정으로 믿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쿠베르탱 남작이 말한 평화는 백인 남성만의 평화였다. 그는 유색인종과 여성이 올림픽에 참여하는 것을 마뜩잖아 했다. 1936년, 히틀러는 베를린 올림픽을 철저한 정치 선전의 마당으로 이용했고, 이후 올림픽과 이데올로기는 분리되지 않았다. 서방세계가 보이콧했던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이나 공산권 국가들이 거부한 1984년 LA 올림픽 때는 ‘참가의 의의’도 사치스러운 단어였다.

1990년대부터 프로 선수들이 본격적으로 참여를 시작한 이후 올림픽은 ‘아마추어 스포츠 제전’이라 불리기 어려워졌다. 올림픽은 테러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전쟁도 잠시 쉬었다던 고대 그리스 올림픽은 말 그대로 고조선 시대 이야기다. 솔직하자면, 오늘날 진정으로 존재하는 올림픽정신은 없다.

올림픽은 하나의 국제적 메가 이벤트일 뿐이다. 관중들은 선수들의 땀과 성취에 감동하지만, 그 뒤에서는 IOC와 방송사, 거대기업들이 이권을 챙긴다. 그러니 올림픽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 정부와 조직위는 국민들에게 재미와 감동이 있는 행사를 싸게 제공하면 된다. 그런데 싼 볼거리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경기장이나 도로 건설에 투여된 막대한 경비가 모두 세금이고, 앞으로의 유지비 또한 결국은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2014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던 인천시가 기존의 문학경기장을 증축해서 주경기장으로 사용하는 안을 심각하게 검토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신축 주경기장 예정지였던 인천 서구 국회의원은 삭발을 하며 반발했고, 지금 5000억원짜리 아시아드주경기장은 연 수십억원의 유지비를 까먹으며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며칠 전에야 인천시는 이 경기장을 워터파크와 유스호스텔, 영화 스튜디오 등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어제 영국의 가디언지는 한 스키 리조트에 관한 화보 기사를 실었다. 평창 올림픽 개최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며 보여준 사진들은 깨진 창문, 수풀에 버려진 스키 한쪽, 녹슬고 폐허가 된 실내 수영장, 간판 글자가 떨어져나간 노래방 등이었다. 12년 전 문을 닫은 알프스 스키장이다.

기사는 한국의 스키 인구가 680만명에서 5년 만에 480만명으로 급감했음과 중앙정부-지방정부의 갈등을 지적하면서, 사진으로 평창 올림픽 시설의 미래를 암시한다. 이 기사는 저주가 아닌 경고다. ‘민족’과 ‘평화’의 포장 아래 단일팀 홍보만 하다가 정작 사람들이 무엇을 주목하는지, 어디에 관심을 갖는지는 무시하는 일이 또 생겨서는 안된다는 경고이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평창 올림픽을 즐길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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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주재로 열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한 ‘남북한 참가회의’에서 북한선수단 46명의 올림픽 참가가 확정됐다. IOC는 관심의 초점인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코리아’의 엔트리를 한국선수 23명에 북한선수 12명을 더해 35명으로 늘렸다. 그러나 북한 선수의 출전은 경기마다 3명 이하로 제한했다. “북한선수 중 전력에 도움이 되는 선수는 2~3명 정도”라던 새러 머리 아이스하키팀 감독의 주장이 관철된 셈이다.

돌이켜보면 단일팀 구성을 둘러싸고 부정적인 기류가 거셌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젊은 세대의 달라진 북한관을 읽지 못한 채 일방통행식으로 단일팀을 밀어붙인 정부의 책임도 있다. ‘한민족’ 혹은 ‘통일’의 기치라면 그 무엇도 참아내야 한다는 희생의식이 옅어졌다는 것을 기성세대 역시 간파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한반도가 전 세계에서 남아있는 몇 안되는 화약고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주요 외신이 ‘휴전, 즉 공식적으로는 전쟁 중인 남북 간의 역사적인 합의’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통일’을 바라든, 바라지 않든 언제까지나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불안한 삶을 살 수는 없는 일이다. 긴장완화에 도움이 된다면 단일팀 구성이 아니라 그 이상도 할 수 있어야 한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단일팀 구성 등은) 평창이 세계에 주는 평화의 메시지”라고 언급했다. 올림픽의 첫번째 이상이 ‘인류평화의 유지’(올림픽헌장 1장)임을 강조한 것이다.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를 평소 으르렁대던 형제를 잔치에 초대해서 따뜻한 밥 한 끼를 함께하고, 그간의 감정을 풀고 화해하는 자리로 여기면 어떨까. 이 기회에 전 세계인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을 수도 있다. 물론 선수선발과 경기출전 기회는 전적으로 감독에게 맡겨야 한다. 그러나 출전이나 성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북한 선수들이 한솥밥을 먹을 2~3주간의 호흡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새로운 상황을 맞이할 남북한 선수들이 얼마나 어색하고 생경하겠는가. 화학적 결합을 하고 조직력을 맞추기에는 짧은 기간이다. 그러나 말이 통하는 만큼 서로 마음까지 나눈다면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에서 단일팀이 이룬 ‘작은 통일’을 재현할 수도 있다. 이제 남북 단일팀은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 됐다. 논란을 확대 재생산하기보다 기왕에 구성된 단일팀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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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키아의 공주 에우로페가 놀고 있을 때 그녀에게 반한 제우스가 황소로 변장하여 나타났다. 이 황소에 관심이 끌려 에우로페가 그의 등에 오르자 제우스는 바다 건너 크레타섬으로 날아가 황소를 좋아한 그녀를 위해 하늘에 황소상을 남겨두었는데 이것이 황소별자리다. 이 공주의 이름 에우로페(Europe)는 영어의 유럽(Europe), 프랑스어의 외로프(Europe), 독일어의 오이로파(Europa), 러시아어 예브로파(Европа) 등 구라파의 다양한 명칭이 되었다. 이렇게 흩어진 자신의 이름을 빌린 국가들을 에우로페는 하나로 모으고 싶었을까. 오늘날 대부분의 에우로페 국가들은 정체성은 달라도 유럽공동체로 통합되어 거대한 국가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단군의 단일자손이면서도 70년을 넘게 적대시하며 갈라져 있는 한반도는 날이 갈수록 초라해 보인다. 통일의 열기도 갈수록 식어져 독일이 지불한 막대한 통일비용에 대한 우려에서 남북의 통일에 부정적인 층도 있다고 한다. 이는 통일비용만 생각했지 분단비용은 염두에 두지 않은 근시안적인 사고로 분단에는 돈뿐 아니라 심리적인 피해까지 따르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통일에 제일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층으로 정치인들을 꼽을 수 있다. 일부 지도자들과 이들을 추종하는 정치꾼들은 남북의 분단이라는 민족의 수치도 모자라 영호남 등 남한까지 갈라 이중분단을 저질러 왔다.

오직 권력만이 관심거리인 이들은 힘든 현실에 대처하기보다 자신의 지역만을 챙기고 상대 지역에 반감을 일으켜 쉽게 당선되면서 한결같이 애향, 애교, 애국 등을 내세운다. 이들이 전략적인 애교를 부르짖을 때 동창회조차 없는 독일 대학은 세계적 수준으로 상승하여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다. 무려 4000종류의 맥주에 전 세계 맥주공장의 3분의 1을 지닌 독일의 애향은 자기 지역의 맥주를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아름다운 지역감정이 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의 지역감정은 대결의 구도를 넘어 적대감으로 악화되어 미국의 인종 문제나 중동의 종교분쟁같이 국가의 재난이 되어가고 있다. 이렇게 이념이 같은 남한을 분단시키면서 이념이 다른 민족과 남북통일하자는 외침은 훈장을 주렁주렁 차고 있는 이완용을 연상케 한다.

서양이 근대 300여년에 걸쳐 판단과 감정을 분리하는 훈련을 받을 때 당파싸움에 익숙해진 탓인지 우리는 진보나 보수, 좌우익, 영호남 등으로 갈라지고, 독재정권에 저항만 해도 좌익이나 빨갱이로 낙인찍는 반공이 득세하였다. 하지만 과거 강력한 반공국가로 우리의 최대 우방이었던 대만과 단절하고 한국전쟁의 주적이었던 공산중국과 수교할 때 극단반공주의자들은 왜 그리도 침묵했는지. 국익을 위해 공산권 중국은 받아들이면서 같은 민족인 북한에 약간의 편향만 보여도 좌익이나 빨갱이로 규탄하는 그들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하지만 남한과 북한은 같은 민족으로 동질성이 많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신의 지역만을 챙겨 민족의 정서를 오염시킨 정치에는 공통점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정치를 벗어나 학계, 문학, 예술, 체육 등의 공동체가 양국의 변천에 내포된 공통점을 찾아 통일을 추구해야 하겠다. 유럽통합의 동기도 원래 정치가 아니었다. 1916년 당대 최고의 문학가 로맹 롤랑은 머지않아 민족의 갈등이 끝나고 유럽의 공동체가 형성된다고 예언했는데 후에 유럽은 정말로 통합되었다.

불구대천의 원수로서 철옹성과 같은 반목의 벽을 쌓던 미국과 북한을 가장 가깝게 했던 사건도 정치가 아니고 2008년 2월27일 평양에서 연주된 로린 마젤이 지휘한 뉴욕필하모니였다. 이때 북한의 청중들은 성조기를 앞세운 그들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중국과 미국이 국교를 맺게 된 동기도 나고야세계탁구경기(1971)였고, 우리도 시드니 올림픽(2000) 등에서 남북단일팀으로 통일의 정서에 접근하기도 했다. 북한의 스포츠팀과 여러 단체가 참가하는 평창 동계올림픽에 큰 기대를 걸어본다.

<안진태 | 강릉원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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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관련 업계 및 정부부처의 관심과 인력이 집중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관광과 교통 혜택이 결합된 한정판 카드 및 패스를 선보이고,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막식장을 축소 구현한 ‘상상 스타디움’을 공개하는 등 새로운 한국 방문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업계는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외국인 관광 시장이 한층 더 성장할 것이라 기대하는 모습이다. 지난해 기준 방한 외국인 수는 사상 처음으로 1700만명을 돌파했다. 이를 통해 19조4000억원의 관광수입과 34조5000억원의 생산유발효과를 얻고, 취업유발인원이 37만4000명에 달하는 등 내수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에 긍정적인 효과를 보았다. 이처럼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는 외국인 관광 시장의 확대는 국력 신장으로 직결되는 만큼, 이번 동계올림픽 준비에 더욱 큰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간 숫자에만 치중했던 관광정책이 이번에 제대로 방향성을 잡을 수 있을지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한 해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얼마나 방문했고, 각 국가별 관광객은 몇 명이고,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소비하고 갔는지 등 숫자에 주로 치중해 왔기 때문이다.

31일 강원도 강릉 경포대에서 시민들이 2017년 마지막 일출을 보고 있다. 해가 나면서 해변에 설치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오륜기 조형물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강윤중 기자

필자는 평창 동계올림픽이 단순히 스포츠 올림픽에 그치지 않고 ‘관광 올림픽’으로 승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필히 관광 콘텐츠의 경쟁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본다. 성공적인 관광 올림픽이란 일회성 방문으로 숫자 늘리기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관광 콘텐츠 개발을 바탕으로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자극, 이번 방문이 재방문으로 연결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미 정부는 올림픽 개최지인 강원도의 주요 관광자원, 인문자연 자산을 활용하여 ‘대관령 눈꽃축제’ ‘평창 겨울 음악제’ ‘한옥 숙박 체험’ ‘강원 템플스테이’ 등 각양각색의 관광 아이템들을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렇듯 외국인 관광객들이 체험할 수 있는 관광 코스와 더불어 비즈니스, 의료, 레저, 엔터테인먼트 등 문화와 관광을 아우르는 복합적인 콘텐츠들을 구축한다면 특별하고, 경쟁력 있는 관광산업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관광객들이 더욱 가까이에서 한류를 느낄 수 있는 한류 체험 상품, 장인의 기술이 돋보이는 무형문화재, 성수동 수제화 거리 등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콘텐츠들은 물론, 11대째 내려오는 한옥 가옥, 3대가 함께 사는 가족의 가풍 및 예절 체험, 한국에서는 흔하디 흔한 된장·고추장 등 한국만의 음식문화까지 스토리텔링을 통해 다채롭게 엮어 낸다면 한국을 ‘다시 가고 싶은 나라’로 기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앞으로 국내 관광산업은 외형적인 관광 인프라 못지않게, 콘텐츠가 지닌 스토리 자체가 하나의 경쟁력이 되어 많은 것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성공적인 관광 가치를 지닌 행사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질적 성장을 위한 관광 콘텐츠들의 개발과 관광업계의 노력이 필요하다.

<정명진 | 코스모진여행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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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0월 멕시코 올림픽 남자육상 200m 경기 시상식. 미국의 토미 스미스(1위)와 존 카를로스(3위)가 검은색 스카프를 두른 채 시상대에 올랐다. 미국 국가가 흘러나오자 두 선수는 성조기를 외면한 채 검은 장갑을 낀 손을 들어올렸다.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의 표시였다. ‘검은 장갑 시위’ 말고도 스포츠가 정치적 의사표현의 도구가 된 사건은 많다. 1908년 런던 올림픽에서 에드워드 7세에 대한 미국 팀의 경례 거부, 1948년 런던 올림픽 경기에서 독일·일본팀 축출, 미국의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참가거부와 소련의 1984년 LA 올림픽 보복 보이콧….

‘핑퐁외교’는 스포츠가 국가 간 관계개선을 위해 나서서 성공한 대표적 사례다. 대장정 등 고난의 세월을 보낸 홍군은 탁구로 지친 심신을 단련했다.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등 혁명 주체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오는 펜홀더 그립을 쓰다가 셰이크핸드 그립으로 바꿀 정도로 탁구 솜씨가 능숙했다. 저우는 탁구에 빠져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미국이 중국과 관계개선을 위한 수단으로 탁구를 선택한 것은 적중했다. 그 결과 중국은 ‘죽의 장막’을 걷고 국제사회로 나왔다.

흔히 스포츠는 정치를 배제하고 중립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스포츠는 늘 정치의 연장이었다. 국가 지도자들은 흔히 스포츠라는 비정치적 방식을 통해 정치적 해결을 추구하려 한다. 국가 간 스포츠가 국가의 정치적 의지가 작용한 결과물인 경우가 많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동·서독과 남북한도 체육교류를 통해 민족의 화합과 갈등 완화를 모색해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NBC 인터뷰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동안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면서 “북한도 도발을 멈춘다면 올림픽 안전 개최뿐 아니라 북·미와 남북 사이 대화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핵 해결에 평창 올림픽을 적극 활용할 뜻을 밝힌 것이다. 스포츠의 탈정치를 주장하는 이들은 거부감이 들지 모르겠다. 문 대통령의 의도가 성공할지도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조성을 위해 무슨 대책이든 시도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평화와 올림픽은 궁합도 맞는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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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시험발사로 내년 2~3월 평창 동계올림픽·패럴림픽의 평화적 개최가 위태로워졌다. 만에 하나 29일의 미사일 발사가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과 북한의 추가 도발의 방아쇠가 된다면 세계인의 축제이자 평화제전이라는 올림픽의 취지가 빛을 잃게 된다. 이대로 가다간 ‘평화올림픽 이전에 전쟁올림픽이 먼저 펼쳐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해야 할 판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유엔이 지난 14일 평창 올림픽 휴전결의안을 채택한 데 이어 정부는 올림픽 기간에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한다는 구상을 검토하고 있다. 이런 한국과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북한이 화답할지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다만 북한이 미사일 발사 이후 낸 성명에서 스스로를 ‘평화애호국가’로 칭하며 “세계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한 점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공연한 수사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국면전환을 시사한 것일 수도 있다. 그간 북한이 핵무력 완성 후에 미국과 담판짓는다는 이야기를 해왔던 점을 상기해본다면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점도 음미해봐야 할 대목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최대의 압박과 관여’를 하겠다며 대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성과는 신통치 않다. 미국과 국제사회가 대북 압박 수위를 최고로 끌어올려 ‘풀을 뜯어 먹는’ 처지가 된다 한들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군사 해결 방식은 한국으로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결국 북한과 미국, 남북 간의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점은 자명하고, 이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평창 올림픽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그간 문재인 정부는 북핵 문제에 소극적인 태도로 임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강경태도, 국내 보수여론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았다는 점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변명이 될 수 없다. 한국은 각국에서 오는 손님을 맞이해 잔치를 치러야 할 올림픽 주최국이다. 문재인 정부가 평화올림픽의 개최를 위해 능동적으로 나서는 것은 선택이 아닌 의무사항이다. 분단국가 한국에서 치러지는 올림픽이 명실상부한 평화의 제전이 되도록 문재인 정부가 북핵 해결에 용기와 상상력을 발휘할 것을 기대한다. 우리에겐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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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적 방법에 의한, 평화를 위한, 평창 올림픽, 그 험난한 도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 13일 오전 10시(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휴전을 결의하는 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이로써, 숱한 무리수와 거의 파괴적인 개발 홍역에도 불구하고, 내년 2월의 동계올림픽이 평창에서 열려야만 하는 상황적 명분을 일단 사후적으로라도 확보했다.

다행이다. 이마저도 없었더라면 평창 올림픽의 역사적 명분이나 문화적 가치는 훨씬 가벼워졌을 것이다. 김연아 홍보대사가 특별연설에서 밝힌 대로 평창 올림픽은 “남북의 얼어붙은 경계를 넘어서 평화적 분위기 조성”을 모색할 수 있는 일차적인 출발점이다.

그러나, 누구나 아다시피, 결의안 채택이나 특별연설로 평화적 분위기가 금세 조성되지는 않는다. 그럴 수만 있다면 인류는 이미 기원전부터 평화적인 황금시대를 살아왔을 것이다.

근래의 올림픽 역사에는 피의 흔적이 배어 있다. 1972년 뮌헨 올림픽 때는 선수촌에 테러집단이 침입해 이스라엘 선수들을 살해했고 1984년 동계올림픽을 치른 사라예보는 1990년대 이후 끔찍한 내전에 시달렸다. 올림픽 기간 중에라도 휴전을 하자는 결의를 1993년부터 채택해 왔지만 러시아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당일에 조지아를 침공했다.

결의안이 한낱 종이 쪼가리에 지나지 않을 수 있음을, 올림픽의 흑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로서는 193개 회원국 중 157개국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휴전결의안을 더욱 무겁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크게 세 가지로 천명된 사안 중 핵심은 올림픽 기간 전후(개최 7일 전부터 종료 7일 후까지) 적대행위 중단이다. 이 기간만이라도 북은 핵·미사일 도발을 중단하고 남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는 것이다. ‘일시적인 쌍중단’인데, 이를 미국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으므로, 우리로서는 유엔의 휴전결의안을 효과적인 우회로로 삼아 일시적이나마 실질적인 상호 적대행위 중단을 추진할 수 있다.

아직 청와대와 군 당국은 ‘한·미동맹’이라는 강력한 제어장치를 고려하여 훈련 연기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중단이 취소가 아니라 연기를 뜻하는 것이라면 충분히 추진할 만한 사항이다. 현재 북한은 도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밝힌 상태는 아니지만, 가을 이후 겨울에 이르는 동안 일단 충격적인 도발 요법은 쓰지 않고 있다.

미국의 ‘테러지원국 재지정’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의문이지만, 최소한 북한 병사의 판문점을 통한 탈북 사건 등의 국지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국면에서, 우리 정부가 평화를 위한 평창 올림픽의 의지를 다각도로 밝히면서 북한 선수단의 참가, 안전 보장 및 스포츠 교류를 위한 특사 교환 등을 적극 추진해 나간다면, 적어도 내년 2월의 한반도가 조금은 더 따스해질 것이다.

결의안 중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스포츠를 통한 평화, 개발, 인권 증진’이다. 이 결의안이 북한이라는 구체적인 대상을 상정하고 채택된 것이지만 ‘스포츠를 통한 평화, 개발, 인권 증진’이라는 목표는 특정 국가의 개별적인 사안이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나 공동으로 추진해야 할 인류사적 목표다. 비단 올림픽 기간만이 아니라, 남북 상호간에나 우리 사회 내부에서나, 반드시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숙제다. 평화는, 단순한 캠페인 몇 번으로는 도저히 획득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며 단순히 말로 도달할 수 있는 지평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와 조직위원회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상호 군사행동 중단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는 ‘스포츠를 통한 평화, 개발, 인권 증진’이라는 유엔결의안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좋은 말 대잔치’로 그쳐서는 안될 중요한 사안이다.

‘스포츠를 통한’이라는 표현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그 하나는 도구적 측면이다. 이른바 ‘핑퐁 외교’처럼,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를 상호 적대하는 나라끼리 친선의 가교로 만들거나 한 사회 내에 첨예한 갈등을 해결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스포츠는 충분히 그럴 만한 도구적 기능이 있고 국내외적으로 그러한 기능이 긍정적으로 기여한 바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도구적으로 스포츠가 작동하는 것은 일시적일 뿐이다. 더욱이 이렇게 도구적으로 잠깐 쓰이고 말 경우 그나마 그 기계적이고 도구적인 기능조차 ‘이벤트’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스포츠를 통한’이라는 표현의 진정한 해석은 ‘스포츠에 내재된 가치와 미학으로’라는 방향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따라서 스포츠나 올림픽에 대한 패러다임 자체를 전면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강한 신체적 능력의 비적대적 경쟁이라는 기본 골격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현재의 스포츠나 올림픽을 둘러싼 담론은 20세기 중엽 이후 강대국이 형성한 언어들로 채워져 있다. 국가주의와 남성주의가 압도적인 가운데 약간의 휴머니즘과 헐거운 이벤트성 멘트들뿐이다.

이를 평창을 계기로, 두터운 휴머니즘과 다양한 가치들로 대체해 나가야 한다. 내전, 빈부격차, 인종 갈등, 교육, 성, 환경 파괴 등 21세기 들어 제기된 숱한 문제들이 스포츠와 연관되어 있다. 그것들은 심지어 스포츠를 통해 더욱 심해지거나 스포츠를 통해 파괴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를 제어하고 해결하는 것, 그것을 다름 아닌 ‘스포츠를 통해’ 해결해 나가자는 것이 유엔결의안의 가치적 해석이다. 앞으로 두 달 남짓, 짧은 기간이지만, 정부와 조직위원회는 이 가치적 해석이 평창에서부터 가능할 수 있으며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천명할 필요가 있다. 스포츠를 통한 다양한 가치의 새로운 실천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때에, 올림픽 기간 중 상호 군사행동 중단도, 북한을 명분으로 고립시키려는 이벤트가 아니라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숭고한 결단임을 재천명하는 것이다.

<정윤수 | 스포츠 평론가·성공회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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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학에서 ‘장애인복지론’과 ‘문화복지론’을 가르치고 있는 여성장애인 방귀희입니다. 지난 30여년간 KBS에서 방송작가로 일을 하면서 휠체어에 의지해 무난히 사회생활을 해왔으나, 두 번 다시는 이 같은 삶을 감당해낼 자신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450만 장애인 가운데 2%에 해당하는 장애예술인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힘겹게 예술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으며, 또 저를 포함한 1000여 장애예술인들이 합심해 한국장애예술인협회를 창립하여 함께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사무국 회의실에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오른쪽)을 만나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과 반다비 인형을 선물하고 있다._ 연합뉴스

장애인 선수들은 장애인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획득하면 일반 선수들과 같은 액수의 연금을 받습니다. 그리고 전국대회, 세계대회, 종목별 대회 등 출전 기회도 많습니다. 이에 비해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통계에 따르면 장애예술인들은 82.18%가 자신의 창작물을 발표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있어 경제적 어려움이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일자리위원회가 출범하자마자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장애예술인들을 위해 장애인예술공공쿼터제도와 장애예술인후원고용제도 등 장애예술인 일자리 방안을 청원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한꺼번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사회 변화에는 계기가 필요한데 마침 우리 단체에서 내년 3월9일 개막하는 2018 평창 동계장애인올림픽 G-100일(11월30일) 기념으로 ‘한·중·일 장애인예술축제’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장애인예술의 수월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목표가 있습니다.

30년 전에 개최된 1988 서울 장애인올림픽으로 물리적 장벽이 제거되었듯이, 2018 평창 동계장애인올림픽을 통해 인식의 장벽, 즉 문화의 장벽이 없어져서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거나 배제당하지 않는 ‘장애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 장애인들은 국회는 물론 각종 위원회에서 ‘장애인 패싱’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많이 서운해하고 있습니다.

2018 평창 동계장애인올림픽이 소외당하고 있고, 그 어느 곳에서도 평창 동계장애인올림픽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대통령께서 평창올림픽 홍보대사를 하시는 등 올림픽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계신 모습을 언론을 통해 보고 있습니다. 올림픽을 통해 국가 브랜드를 높일 수 있다면, 장애인올림픽을 통해서는 그 성과 여부에 따라 복지국가라는 더 큰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일본은 이미 두 차례나 동계장애인올림픽을 개최하였고, 중국은 한국 다음에서야 동계장애인올림픽을 개최하기에 이번 평창대회가 한·일 양국을 비교 평가하는 잣대가 될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한·중·일 3국의 장애예술인들이 한국에 모여서 예술을 통해 장애인의 능력과 꿈을 보여주는 축제를 마련하였던 것입니다. 이 축제는 사회지도층이 관객이 되어야 합니다. 장애인예술은 아쉽게도 아직까지 보편화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통령께서 늘 말씀하신 ‘사람이 먼저다’에서 장애인을 비롯한 약자가 더 먼저라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그래야 힘없는 사람들이 희망을 갖고 기다릴 수 있을 테니까요.

사회학자 수전 웬델이 “인간은 어느 한 시기에는 장애적인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하였듯이 장애는 그렇게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장애는 미리 알아두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하나의 경험적 상식이기에 ‘장애인 먼저’ 사회를 만드는 것은 모든 국민을 위한 일입니다.

하여 대통령께 2018 평창 동계장애인올림픽을 고령자나 장애인을 위해 문턱을 없애자는 뜻의 문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가 실현되는 문화올림픽으로 만들어주십사 하는 청을 드립니다.

<방귀희 | (사)한국장애예술인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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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지난 주말의 경향신문 ‘커버스토리’를 흥미롭게 읽었다. 반세기 역사를 뒤로하고 문을 닫게 된 태릉선수촌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했다. 선수촌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의 기억까지 부분적이나마 복원했기 때문에 읽을 만했다.

문화재청은 2009년 조선 왕릉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면서 능역 안에 있는 부적합 시설을 모두 철거하겠다고 밝혔고 그 대상으로 서삼릉의 젖소개량사업소와 의릉의 옛 국가정보원 건물 그리고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가 묻힌 태릉과 문정왕후의 아들인 명종과 인순왕후가 잠든 강릉 사이에 있는 태릉선수촌이 지목되었다. 문화계에서는 상징적으로 한두 건물을 남길 수는 있지만 조선 왕릉의 원형 복원이 가장 우선적인 일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체육계는 올림픽 금메달 116개로 상징되는 선수촌의 초창기 공간들, 즉 승리관이나 월계관 등 8개 건물은 보존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관점에서 2015년 7월 문화재 등록을 추진했으나 아직까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두 개의 문화유산이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명분에서나 현실에서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조선 왕릉의 역사적 권위가 더 압도적인 듯 보인다. 등재 여부를 떠나서라도, 근세 이래 쇠락한 왕조의 왕릉은 마구잡이 개발의 대상이었던 바, 그 복원은 중요하다. 일제강점기에 효창원의 효창원골프장(1921년), 의릉의 청량리골프장(1924년), 유릉 터의 군자리골프장(1929년) 등이 들어섰고 5·16 쿠데타 이후에는 서삼릉의 한양골프장(1964년)과 뉴코리아골프장(1966년), 태강릉의 태릉골프장(1966년)이 들어섰다. 특히 서삼릉 지역은 당초 123만평에서 7만5000평으로 급격히 줄어들면서 그 자리를 농협, 한양골프장, 뉴코리아골프장,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 등이 차지한 바 있다. 이렇게 서삼릉 부지가 함부로 매각되던 1961년부터 1969년 사이의 문화재관리국장 4명 모두 육사 출신이었고 군사정권 초기에 문화유산이 정권 마음대로 매각되거나 함부로 용도 변경되어 쓰였다. 1966년에 설립된 태릉선수촌도 이런 맥락의 강점이었다.

그러나 근대 문화유산으로서 태릉선수촌의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고전적인 문화유산에 비해 아직은 근대 문화유산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게 사실이지만 국내외의 여러 도시들에서 그들이 살아낸 20세기의 기억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은 상당히 중요한 문화적 업무로 대두되고 있다. 비단 정치사회적인 유산만이 아니라 일상 문화 전반의 건물, 조형, 공간 등은 물리적 보존을 넘어 한 시대의 집합적 감수성의 온전한 보전과 그 의미의 풍부한 해석을 위해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사실 나는 작년 5월 이 지면에서 태릉선수촌에 대해 쓴 바 있다. 그때의 관점은, 물리적 보존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이 선수촌에 응결된 각종 기억의 1차적인 수집과 전면적인 해석이었다. ‘국위선양’ 일변도의 기억만으로는 근대 문화유산이라는 지평에 이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폭넓은 공감대를 얻기도 어렵다는 취지였다. 게다가 이번 가을에 새로 문을 연 충북 진천의 선수촌은 거의 모든 종목에 걸쳐 최고의 시설로 완비되었기 때문에 태릉선수촌의 실질적 기능은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고 봐야 한다.

지난 주말 경향신문의 커버스토리가 매우 시의적절했지만 한편 아쉬운 점이 많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1966년에 왜 국가는 엘리트 선수들을 집중적으로 훈련시키기 위한 공간을 만들었는지, 그 공간의 구성 요소는 어떠한지, 전반적으로 군 병영의 축소판이며 생활수칙 또한 사관학교 이상의 엄격함을 요구했던 그 정신적 지향의 의미는 무엇인지 좀 더 탐사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해당 기사에서 어느 선수는 “태릉에 있는 동안은 1년 열두 달을 거기서 보냈어요. 고등학교·대학교 졸업식도 못 갔어요. 명절 때도 집에 못 갈 때가 허다했죠”라고 회상했다. 물론 고된 훈련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이룬 곳이며 돌아보면 그때만큼 절실하면서도 즐거웠던 적은 없다는 회고다. 많은 엘리트 선수들이 태릉선수촌을 그렇게 기억한다.

그럼에도 그의 말처럼 “한창 나이에 갇혀서 운동만” 했던 선수촌의 기억이 국위선양의 좋았던 추억으로만 확정해도 좋은지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태릉선수촌의 과거 기억을 총체적으로 돌아볼 뿐만 아니라 진천선수촌의 미래에 대해서도 더 많은 논의를 할 수 있으며, 이는 단지 엘리트 선수들의 생활수칙 문제를 넘어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스포츠가 어떤 의미를 갖느냐 하는 의미 있는 질문으로까지 이어진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나는 1년 전의 생각을 조금은 수정하게 되었다. 선수촌의 주요 시설을 완전 보존하는 것은 여러 모로 무리지만, 봉건 왕조의 유산을 위해 20세기의 현대사가 녹아있는 문화유산을 완전히 없애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반대한다.

반드시 원형 전체일 필요는 없다. 물리적 공간(Space)의 기억이란, 불가피한 경우, 원형 전체나 부지 전부를 보존하지 않고서도 그 장소성(Placeness)을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를테면 조명탑이나 전광판으로 최고 수준의 기억 상징물을 만들 수 있는 예술적 기법을 구사할 수도 있다. 특히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압도적인 가치와 충돌할 경우에는 완전 철거라는 극단의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예술적 상징성의 극대화를 통한 기억의 보존’을 차선책으로 구사해야 한다.

체육계는, 이를 위하여 근대 문화유산 보존에 관한 문화사적 원칙을 다시금 분명히 하되 그 실사구시를 위해 이 분야에 경험이 많은 건축가, 예술가, 문화기획자 등을 만나야 한다. 태릉선수촌의 문화사적 가치를 보다 세밀하게 확정하고 이를 ‘기억 상징물’로 보존해낼 수 있는 예술적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체육인의 땀이 배인’이라는 감성적인 접근은 더 이상 방법이 아니다.

<정윤수 | 스포츠 평론가·성공회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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