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팀 모두 실수가 없다면 그 경기는 무승부일 것이다’ 히딩크 감독의 명언이다. 이 말은 주석이 필요하다. ‘실수하면 용서치 않겠다, 낙오자는 버리고 간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히딩크는, 감독도 선수도 심판도 실수할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이다, 그것을 줄여가기 위해 노력하고 격려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타박하지 않고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내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반면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실수하면 낙오자로 만들고 패잔병으로 만들어버린다. 대통령은 임기 내내 노기 띤 얼굴로 국민을 타박한다. 그리하여 이 도시의 일상이 움직이는 시한폭탄으로 가득차 있다. 실수하면 분노하는 세상이다.

그런 상황에서 벌어진 이세돌 대 알파고의 대결. 이를 ‘기계 대 인간’의 대립보다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이세돌은 스포츠의 위엄 있는 가치를 온몸으로, 바들바들 떨면서 증명했다. 모든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3번의 초읽기 기회를 모두 사용하고 겨우 남은 1초 안에 돌을 놓았다. 우리가 본 이세돌은 ‘기계에 맞선 의연한 인간’이자 동시에 좌절하고 괴로워하는 나약한 인간의 간절한 몸부림이었다.

‘resign’, 즉 ‘물러나다’ ‘포기하다’란 뜻이다. 예상 승률 10% 이하로 떨어질 때 나타나는 단어다. 알파고는 180수 만에 이 단어를 ‘던지며’ 불계패를 인정했다. 단순하지만 의미 있는 장면이다. 그 표현 방식을 보자. 구글은 유머 감각이 풍부한 회사다.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는 디지털 최강자의 이미지로 항상 미래를 여는 ‘창’을 보여준다. 스티브 잡스의 유훈이 서려 있는 애플은 극단적 미니멀리즘으로 격렬한 팬심을 이끈다. 반면 다국적 글로벌 인재들의 혼합체인 구글은, 비록 모니터 뒤에는 엄청난 데이터베이스와 경악할 만한 기술을 숨겨놓고 있지만 그 일부가 사용자의 모니터에 나타날 때는 독특한 유머를 사용한다. ‘구글 플레이’, 즉 감각적인 즐거움을 가리키는 다양한 이모티콘과 농담 섞인 설명, 심지어 약간 비틀린 블랙유머까지 볼 수 있다.

그런데 불계패를 인정하는 팝업창은 단순하다. 구글이 이 대결을 엄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과학철학자 문송천 교수는 철저하게 통제된 회사 내부가 아니라 그 밖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소프트웨어 성능 시험을 하는 것은 “인간 존엄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는데, 그 점을 구글 딥마인드도 어느 정도 숙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도에 따르면, 3연패로 숨막히는 긴장에 빠져 있던 지난 12일은 이세돌 선수의 결혼 10주년 기념일이었다고 한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파티를 할 수도 없는 노릇. 그때 호텔 직원이 꽃과 샴페인과 축하 카드를 전달했다고 한다. 이세돌 부부의 결혼 10주년을 축하하는 데미스 허사비스 알파고 CEO의 선물이었다. 알파고의 대리인으로 이세돌과 마주앉은 구글의 아자황 연구원은 5시간 가까이 겸손한 자세를 견지한다. 아마도 허사비스는 ‘빅 브러더’는 아닌 듯하다.

알파고는 측량할 수 없는 연산 능력으로 이세돌을 학습했듯이 이세돌 또한 학습했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해부했듯이 이세돌 또한 알파고를 해부했다. 알파고가 이세돌의 모든 기보를 습득해 해부한 반면 이세돌에게 제공된 정보는 판후이 2단과 치른 몇 장의 기보뿐이었다. 그래서 두면 둘수록 알파고가 강해지는 게 아니라 이세돌이 현묘해졌다. 그리고 우리 모두 이 시대의 문명을 공부했다. ‘기계 대 인간’의 싸움에서 아직 인간의 멸종을 논할 단계는 아니라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얘기 말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세돌의 모습에서 스포츠에 내재된 가치, 나아가 인류의 기억에 배어 있는 견실한 의미가 뜨겁게 확인됐다는 점이다. 이세돌은 긴장했고 주저했고 번민했다. 이런 면모는 기계인 알파고에게 없는 것이라고, 그러니 인간이 더 ‘인간적’이라고 단정하지 말라. 나는 지금 알파고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상실된 그 무엇을 말하려는 중이다.

오늘의 사회는 번민하는 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과연 ‘인간적’인가. 이세돌은 실수했고 좌절했고 괴로워했다. 기계에겐 그런 감정이 없다고, 그래서 인간은 아직 우월하다는 식의 서푼어치 감상을 주장하지 말라. 오늘의 사회는 감정을 포기하도록, 단일한 감정만을 갖도록, 인간을 의미 있는 ‘개인’으로 만드는 다양한 감정을 박스에 싸서 수신자를 알 수 없는 곳으로 택배로 부쳐버린다. 그곳에서 우리의 사생활은 완벽하게 해부당한다.

나는 지금 우리가 상실하고 있는 감정들을 말하는 중이다. 불안하고 초조한 감정, 외롭고 슬픈 감정, 나약하고 박약한 감정, 쓸쓸하여 비틀거리는 감정 말이다. 여느 종목과 달리 바둑 기사는 홀로 네댓 시간을 반상 앞에 앉아서 견딘다. 축구라면 하프타임이 있고 야구라면 더그아웃에서 수시로 대화할 수 있다. 거의 모든 종목에서 동료가 있어 패스를 주고받을 수 있다. 부담을 나눠 지고 실수의 책임을 나눠 안을 수 있다. 그러나 바둑은 그렇지 않다. 오로지 단독자로 앉아서 견딘다. 더욱이 알파고라니! 앞에 보이지도 않는 상대, 분명히 존재하지만 실체를 느낄 수 없는 거벽 뒤의 장대한 기계들에 맞서 이세돌은 고독을 견디고 외로움을 이기며 실수를 줄이고자 피 말리는 초읽기를 거듭했다.

그것을 보면서 우리는 성원했다. 얼핏 보기에 ‘기계에 맞선 인간’을 성원하는 것이지만 그 집합 열정 안에는 오늘의 극단적 상황에 몰린 우리들을 향한 성원이다. 이세돌의 외로움은 우리 모두의 것이었고 그의 분투 또한 우리 모두의 박수였다. 이 사회가 버리라고 강요한 마지막 한 줌의 인간성!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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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하늘의 푸른 솔과 대지에 일어선 높은 산을! (중략) 우리 조선사회에 개개의 운동단체가 없음은 아니나 이를 후원하며 장려하여 조선인민의 생명을 원숙창달하는 사회적 통일적 기관이 없음은 실로 유감이고 또한 민족의 수치로다. 우리는 이에 뜻한 바 있어 조선체육회를 발기하노니 조선사회의 동지들은 모두 와서 찬양할진저.’

1920년 7월13일 오후 8시 서울 인사동 중앙예배당에서 발족한 조선체육회의 창립취지서다. 1919년 2월 조선총독부 산하 어용단체로 조선체육협회가 출범한 데 반발해 1년여 뒤 친일인사를 배제한 사회 각계 지도층 인사 96명이 모여 만든 자주적 체육단체가 현 대한체육회의 전신인 조선체육회다. 창립 이념은 그래서 ‘건민’과 ‘저항’이다.

스포츠를 통해 민족 자긍심을 키우고, 항일투쟁을 펼치던 조선체육회는 1938년 7월4일 조선체육협회에 강제 통합돼 해산되고 만다. 조선체육회는 1945년 광복 후 민족지도자 여운형 회장을 중심으로 부활한 뒤 1948년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부 수립 혼란기에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있자 조선체육회는 정치적 불편부당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성명으로 결기를 토하기도 했다.


대한체육회 기획실장 정성환 _경향DB


대한체육회는 이달 말 두 번째 ‘통합’을 앞두고 있다. 1991년 대한체육회에서 떨어져나가 정치적 비호 속에 성장한 국민생활체육회와 25년 만에 다시 합치게 된 것이다. 통합을 못 박은 법정시한에 따라 지난 7일 통합체육회 발기인대회가 열렸고, 27일이면 새 출범을 한다. 두 단체가 통합하니 ‘한국체육회’ ‘대한민국체육회’ 등 새 이름을 짓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명칭은 격론 끝에 ‘대한체육회’를 유지하기로 했다. 조선체육회로부터 비롯된 100년의 역사와 전통, 얼이 온전히 담긴 이름을 지키자는 체육인들의 뜻이 반영된 것이다.

명칭은 겨우 지켰지만 새 대한체육회가 자율성과 독립성도 지켜나갈 수 있을까. 그게 벌써부터 쉽지 않아 보인다. 대한체육회가 정부가 주도한 체육단체 통합안에 그토록 저항했던 가장 큰 이유도 그것이었다.


김경호 선임기자 jero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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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이세돌 대 알파고 대국을 보고

충격, 이세돌 불계패! 이렇게 느낌표를 붙여야 할 만한 사건이다. 드디어 기계가 인간을 압도하는 세상이 오는 것인가? 그러나 이를 ‘기계 대 인간’ ‘인류 문명의 위기’ 등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피상적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이러한 묵시록적 상황이나 이야기를 반복하여 만들어내면서 그 위기를 헤쳐왔다.

13세기 이탈리아의 단테가 쓴 <신곡>은 존재하지 않는 지옥을 상상하고 그 아래로 순례하는 인간을 통해 중세의 상황을 보여주었다. 17세기 영국의 밀턴, 그의 <실낙원>은 또 어떠한가? 신의 형벌, 추락한 천사, 지옥에서 복수의 성채를 쌓는 사탄. 실물로 존재하지 않으나 상상 속에서 가능한 이 묵시록을 통하여 밀턴은 당대의 황폐한 상황을 그렸다.

<터미네이터2>나 <매트릭스> 같은 영화 또한 표면적으로는 기계가 장악한 근미래의 암울한 상황을 그리고 있지만 그 속에는 오늘날의 인류가 겪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와 상황들을 투영한 것이다.

인공지능의 도래는 우리 삶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다. 그런데 이를 ‘기계의 지배’라는 식으로 묵시록적 기술주의로 봐서는 곤란하다. 대부분의 경우 그 기술들은 우리에게 편리와 즐거움을 제공할 것이다. 구글은 알파고뿐만 아니라 다양한 미래 기술에 투자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인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 개는 실제의 개와 다를 바 없이 달린다. 이 로봇 개를 마주한 실제 강아지가 컹컹 짖자 로봇 개는 무슨 까닭인지 호응하며 몸을 떠는 동영상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기술은 가까운 장래에 일상생활의 편리와 정보 처리 및 관계 강화에 기여할 것이다. 이 글을 읽을 독자 중에 상당수는 머지않아 로봇 개와 산책을 하고 대화도 할 것이다. 그 개는 아무 데나 용변을 보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고 택배를 대신 받을 것이다.

이날 대국의 하이라이트는 백102(붉은 원). 알파고는 이세돌 9단이 좌중앙에 큰 집을 만들며 형세를 유리하게 이끌자 우변 흑진에 침입, 우상귀의 흑 3점과 바꿔치기에 성공하면서 단숨에 형세를 뒤집었다._한국기원 제공


문제는 이 로봇 개를 전쟁이나 시위 진압이나 인간의 작업장에 배치하게 될 때이다. 카이스트의 정재승 교수는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그 기계를 지배한 인간이 나머지 인간을 보다 강력하게 지배하게 되는 상황을 우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그 점이다. 인간은 실수투성이에다 미묘한 감정의 동물이다. 왜 누군가를 사랑하고 미워하는지 인간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한다. 이게 인간의 한계지만 동시에 이 점이 인간의 장점이다.

연민과 애환, 슬픔과 사랑. 여기서 두 가지 뚜렷한 힘이 발생하여 인류를 여기까지 오게 하였다. 고결한 감정 상태, 즉 휴머니즘과 이를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방식, 즉 민주주의다. 이 휴머니즘과 민주주의가 미래에도 작동하게 하는 것, 그것이 묵시적 상황을 이겨내는 힘이다.

이세돌이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다. 원컨대 나머지 판을 다 이기기를 바란다. 그러나 졌다고 해서 기계의 승리와 지배가 예고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그렇듯이 가까운 미래에도 이러한 기계를 실제로 통제하는 힘이 무엇인가, 그것이 중요하다. 휴머니즘과 민주주의가 사라지고 강력한 권력과 자본이 이를 통제할 때, 그때가 비극의 시작이다.

우리는 알파고의 승리에 전율을 느끼면서 동시에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강력한 요청에도 굴하지 않는 애플사의 최고경영자 팀 쿡에게 성원을 보내고 있다. 여기가 핵심이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지배한 국가와 자본의 지배다.

미래의 묵시적 상황은 알파고나 로봇 개가 아니라 이를 실제로 지배하는 권력이다. 이를 경계하여 오늘의 상황에서 휴머니즘과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것이 미래의 비극을 막거나 최소한 지연시킨다.

만약 우리가 기계 통제에 의한 권력 지배를 이겨내거나 지연시킬 수 있다면 미래의 후손들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때 가서, 알파고 버전 7.0에 연패하여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우리가 단테와 밀턴을 기억하듯이, 후손들은 휴머니즘과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한 우리를 기억할 것이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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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골퍼 타이거 우즈는 지난해 투어 상금이 44만8598달러(약 5억4000만원)였다. 상금 랭킹은 한국의 최경주보다 한 계단 아래인 162위지만 우즈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지난해 선수 브랜드가치 1위에 올랐다. ‘황제’ 명성이 많이 퇴색하기는 했어도 그의 가치는 상금의 70배 가까운 3000만달러였다. 우즈는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대가로 나이키골프·롤렉스 등과 거액의 스폰서 계약을 맺고 있다. 퍼블리시티권(right of publicity)은 운동선수나 배우, 가수 등 유명인의 이름이나 초상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권리이다. 우즈가 나이키골프로부터 받는 수천만달러는 자신을 모델로 광고할 권리를 판 대가이다. 우리말로 풀면 ‘초상사용권’ 또는 ‘초상재산권’이라고 할 수 있으나, 적확한 표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초상권은 자신의 모습이 촬영되거나 공표되지 않을 권리인 인격권이다. 하지만 퍼블리시티권은 타인에게 양도·상속할 수 있는 재산권으로 분류된다.

미국은 1950년대부터 퍼블리시티권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는 물권과 유사한 독점배타적 재산권인 퍼블리시티권을 명시한 법이 없어 분쟁 때마다 혼란이 빚어진다. 민법 제185조는 “물권은 법률 또는 관습법에 의하는 외에는 임의로 창설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미국 배우 제임스 딘의 퍼블리시티권을 상속받았다는 그의 친척은 ‘제임스 딘’ 상표를 쓴 개그맨 주병진씨와 속옷 회사 ‘좋은사람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그러나 재판부는 “퍼블리시티권은 우리나라의 성문법상 권리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타이거우즈와 로리 매킬로이_AP연합뉴스

국내에서도 유명 연예인 관련 퍼블리시티권 분쟁이 늘면서 관련 입법 움직임도 구체화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자본이 이익만을 위해 과도하게 퍼블리시티권을 주장한다는 부정적인 여론도 만만치 않다. 연예인의 인기는 대중이 시간을 투자하고 여론을 형성한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이익의 원천을 따져본다면 대중의 기여도가 적지 않은데, 연예인 개인이 이익을 독식하려는 것은 지나치다. 퍼블리시티의 원래 뜻은 유료 광고와 달리 대중매체에 무료로 배포하는 판촉 활동이다.


안호기 논설위원 haho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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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수원.’ 프로축구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한때 이렇게 불렸다. 모그룹인 삼성의 지원을 받아 최고의 선수들을 사들였고, 언제나 우승후보로 꼽혔다. 국내 프로축구는 물론 클럽대항전인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도 강호로 군림했다. 이런 수원을, 팬들은 스페인 프로축구 레알 마드리드에서 레알이라는 단어를 따와 ‘레알 수원’이라고 불렀다.

세계적인 명문팀인 레알 마드리드는 ‘갈락티코’(은하수) 정책으로 유명하다. 최고의 스타 선수들을 끌어모아 팀을 은하수로 만들었다. 2000년대 초반 지네딘 지단·루이스 피구·데이비드 베컴·호베르투 카를루스 등이, 지금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레스 베일 등이 레알 마드리드에 모였다. 이런 레알 마드리드의 정책엔 비판도 많다. “돈으로 성적을 내려 한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이런 비판에도 레알 마드리드는 뛰어난 결과를 내며 세계 최고의 팀으로 군림하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는 2014년 5억5000만유로(약 7260억원)의 매출을 올려 유럽 축구단 중 가장 많은 수익을 냈다.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에 따르면 레알 마드리드는 2013년부터 3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축구클럽 1위에 올랐다. 포브스는 레알 마드리드가 32억6000만달러(약 3조9350억원)의 시장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전 세계 프로축구팀 중 최고다. 선수들의 유니폼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중계권료는 스페인 내 다른 팀의 평균 계약 금액보다 10배 이상 높다.

한때의 ‘레알 수원’은 지금 레알 마드리드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스타 영입보다는 ‘거품 빼기’에 주력하고 있다. 수원은 얼마 전 국가대표 골키퍼 정성룡을 일본 J리그로 떠나보냈다. 몸값 부담 때문에 잡지 않았다. 지금 수원에 있는 누구나 알 만한 스타 선수는 염기훈과 권창훈 정도다. 그나마 권창훈은 올여름 이적시장에서 해외로 떠날 가능성이 높다. 축구대표팀과 올림픽팀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는 데다 올해 불과 22살로 미래 가치가 높다. 구단에선 내년 봄 계약기간이 끝나는 권창훈을 높은 연봉을 주고 남겨두기보다는 비싼 이적료에 해외 구단으로 보내기를 원하고 있다. 수원은 스타 선수를 사오는 팀에서, 어린 선수를 잘 키워 파는 팀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결과는? 나중은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좋지 않다.

프로축구 수원 김건희가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 1차 감바 오사카전에서 공을 쫓고 있다._연합뉴스

수원은 지난 2일 중국에서 상하이 상강과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G조 2차전을 벌였다. 1-2 패배. 일본 감바 오사카와의 첫 경기 0-0 무승부를 더해 1무1패를 기록한 수원은 최하위로 처졌다. 최근 중국 프로축구는 갑자기 강해졌다. 세계적인 축구선수와 감독을 끌어모은 ‘황사 머니’ 덕이다. 중국 슈퍼리그(프로축구 1부리그) 소속 16개팀이 지난 1월 한 달 동안 선수 이적료로 지출한 돈만 3500억원을 넘는다. 약 3300억원의 이적료가 오고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보다 많다. 수백억원대에서 1000억원을 조금 넘는 이탈리아 세리에A, 독일 분데스리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등 유럽 4대 리그의 나머지 세 리그는 중국의 자금력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중국에 다녀온 수원 관계자도 ‘황사 머니’의 위력을 실감한 듯했다. 상하이는 올 시즌을 앞두고 수백억원을 들여 엘케손, 다리오 콘카 등 검증된 외국인 선수들을 영입했다. 이날 수원에 첫번째 실점을 안긴 선수도 엘케손이었다. 수원 관계자는 “엘케손과 콘카가 함께 휘젓고 다니니 나이 어린 우리 선수들이 어쩔 줄 몰라했다”고 전했다. 스타 선수들의 해외 이적과 이어지는 팀의 패배에 대한 수원 팬들의 반응은? 열성적이기로 소문난 수원 팬들이 이런 상황을 달가워할 리 없다. 수원 팬들은 “우리는 우승을 원한다”며 재정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구단을 압박하고 있다고 한다.

프로축구 수원의 행보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단지 축구를 좋아해서가 아니다. 모기업인 삼성의 모습이 함께 떠오르기 때문이다. 삼성은 요즘 대표상품인 스마트폰이 시장 정체기에 빠져들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갤럭시 S7을 새로 내놨지만 예전만큼 반응이 뜨겁지 않다고 한다. 반면 화웨이와 샤오미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은 저가 제품으로 시작해 최근에는 고가 제품까지 내놓으며 시장을 넓혀나가고 있다. 삼성은 요즘 인력을 줄이고 사무실을 옮기며 군살 빼기로 이런 상황에 대처하고 있다.

비용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는 일은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다. 수원의 패배가 쌓이면 팬들은 떠날 것이다. 삼성이 최고의 제품을 만들지 못하면 소비자도 떠날 것이다. 혹시라도 군살 빼기에 집중하느라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게 기우이길 바란다.


김석 |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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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터미네이터2>의 첫 장면. 202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폐허가 된 놀이터가 보인다. 아이들이 타고 놀던 미끄럼틀이나 세발자전거는 잔혹하게 일그러져 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화면 밖에서 씨익 웃으며, 폐허의 놀이터에서 공허하게 흔들리는 철제 시소의 마찰음을 들려준다. 곧이어 기계 병사가 인간의 해골을 짓밟으며 최후의 전투가 벌어진다. 2029년이 영화의 배경이다. 고작 13년밖에 남지 않았다.

화성 탐사용 기계인간의 복수가 펼쳐지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2019년이 시간적 배경이다, 3년 남았다. 우주선을 통제하는 슈퍼 컴퓨터가 반란을 일으키는 스탠리 큐브릭의 걸작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2001년, 벌써 과거가 되었다.

모든 뛰어난 작품이 그렇듯이, 예술은 <칼의 노래>(김훈)처럼 과거를 다루든 <로드>(코맥 매카시)처럼 근미래를 다루든, 지금 이 순간, 오늘의 우리 삶에 대한 전언이다. 앞서 언급한 SF 영화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로버트 하인라인의 신체 강탈이나 필립 K 딕의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은 20세기 초강대국의 문명적 억압에 대한 저항의 상상력이다.

‘알파고’ 또한 그러하다. 오는 3월9일부터 15일까지, 인간계 최고수 이세돌 9단에게 맞서는 구글의 인공지능(AI) 말이다. 유럽 바둑 챔피언 판후이 2단을 꺾은 알파고는 이 9단에게 한두 번 지더라도 그 과정의 복합성과 경우의 수를 모조리 계산해 더욱 강성해진 모습으로 도전하는 딥러닝 기술을 갖고 있다. 기계가 인간의 이성과 상상력을 배우면서 동시에 뛰어넘는다는 얘기다.

이러한 일차적인 감각 반응은 묵시록적 예언이다. 언젠가는 인간의 피조물이 스스로 타락천사가 되어 바벨탑을 거슬러 오른다는 것. 파국은 얼마 남지 않았고, 필멸은 인간의 운명이 되고 마는가?

사실 이런 상상력이란 아주 건강한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집합적으로는 강건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유약한 인간은 인류의 시원에서부터 이 같은 상상력의 드라마를 써왔다. 소포클레스는 제 눈을 훼손하며 성 밖으로 걸어나가는 오이디푸스를 통해 무한한 권능과 명예에 자만하지 말라고 권고하였다.

다수의 공학자들은 산업혁명의 기계들이나 20세기 모더니즘의 자동차가 그렇듯이 알파고 같은 기계도 결국 새로운 산업이자 인간의 확장된 능력이며, 심지어는 예술적 상상의 원천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지금 우리 손에 탑재된 스마트폰처럼 말이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전이 시사하는 바 역시 그러하다. 인간의 능력이 무한해 결국 기계를 잘 활용할 것이라는 상식 수준의 낙관론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이 9단이 알파고를 물리쳤다 해서 과도하게 환호할 일도 아니며, 설령 졌다 해도 그게 무슨 문명의 불안과 위기도 아니라는 것이다. 둘은 이분법의 적대자가 아니다.

따지고 보면 19세기 이후 근대 스포츠는 이 모더니즘의 화두, 곧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풀어왔다. 1878년 처음 도입된 심판의 호각 소리를 시작으로 각종 스포츠용품과 스포츠과학이 인간 능력을 극대화했고, 오늘날에는 첨단 소재 유니폼이나 골라인 판독기술 ‘호크아이’가 인간이 벌이는 초월적 욕망의 중요한 보조재로 쓰이고 있다.

녹내장 수술 후 국제축구연맹(FIFA)의 허가를 얻어 고글을 쓰고 뛴 에드가 다비즈, 무려 12년 가까이 첼시에서 뛰는 바람에 아스널로 이적한 후에도 습관처럼 첼시 라커룸에 들어갈 뻔했던 체흐 골키퍼의 헤드기어는 그 선수들의 상징으로 통한다. 아마 지금도 어떤 선수는 콘택트 렌즈를 끼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무릎에 철심을 박아넣기도 했을 것이다.

의지의 화신에서 살인범으로 추락한 오스카 피스토리우스를 기억해보자. 피스토리우스는 2008년 1월, 스포츠중재재판소(CAS)의 판단에 따라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은 물론 런던 올림픽 때 남아공 1600m 계주팀 명단에 올랐다. 대구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도 출전해 400m에서 준결승까지 올랐다.

한편 지난 4일, 독일의 장애인 멀리뛰기 선수 마르쿠스 렘이 8월의 리우 올림픽에 출전하겠다고 선언했다. 15살 때 오른쪽 무릎 아래를 절단하고 탄소섬유 의족을 착용한 렘의 기록은 최고 8.40m. 20년째 깨지지 않고 있는 마이클 파웰의 1991년 기록 8.95m에는 못 미치지만 그렉 러더퍼드의 런던 올림픽 금메달 기록(8.31m)보다 뛰어나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렘 선수의 의족 탄성이 기록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

이 논란은 2019년이나 2029년의 스포츠, 나아가 인류의 물질적 삶에 대한 의미 있는 질문을 내포하고 있다. 인간의 신체적 능력 및 그 상상력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근미래에 부상으로 은퇴했던 선수가 터미네이터처럼 티타늄 합금 수술을 받고 복귀할 때, 그의 콘택트 렌즈는 허용하면서 그 다리는 불허할 것인가, 어디까지가 인간인가.

이 질문에 대한 진공의 답은 없다. 당대 삶의 조건과 문명적 성찰 속에서 인간이 끝없이 질문을 던지고 제출된 수많은 답변 중에서 당대의 인류가 승인할 수 있는 것을 채택하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근미래의 파국을 다룬 소설 <로드>에서 매카시는 이렇게 썼다. ‘그들은 계속 걸었다. 바퀴를 돌리는 쥐처럼 죽은 세계를 밟고 나아갔다.’ 알파고는 지금 우리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정윤수의 오프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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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은 처참하면서도 웅혼한 기록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렇게 적고 있다. “출신 좋은 사람이 갑자기 외부적인 상황에 의해 특권을 상실하고 민중들과 더불어 생활을 하는 변화가 주어졌을 때에만 ‘완벽히’ 지각할 수 있다.”

무엇을 깨닫는단 말인가? 삶에 대하여, 고통에 대하여, 구원에 대하여 말이다. 지식인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은인의 모습’으로 우호적으로 지낼 수는 있어도 근본적으로는 합치될 수 없는데, 다만 ‘더불어’ 생활하는 길이 유일하다는 것이다. “나는 책이나 사변을 통해서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이것을 확신했다”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쓴다.

다름 아닌 시베리아 유형지라는 ‘현실’ 말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날카로운 통찰과 비범한 유머로 ‘죽음의 집’의 일상을 통해 삶의 본질을 들여다본다. 작은 새나 염소에 대한 죄수들의 감정들 또는 돌멩이라도 몇 개 모아 억지로 유희를 벌이는 장면에서 나는 삶의 엄숙함을 읽는다. 그 유형지에 축구공이 있었더라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아마 당장 공을 찼을 것이다.

넬슨 만델라는 실제로 ‘죽음의 섬’에서 공을 찼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남단 케이프타운에서 12㎞쯤 떨어진 수용소 로벤섬. 이곳에서 만델라를 비롯한 죄수들은 축구를 했다. 간수들 몰래 옷가지를 뭉쳐 공으로 삼아 찼다. 폐쇄된 곳에서 희망 없는 낯빛으로 때로는 정치 노선에 따라 싸움박질하던 수감자들은 공 하나로 운동장에 모여들었다.

그 유명한 마카나 리그다. 1966년 마카나축구협회가 ‘창설’됐는데, 수감자가 무려 1400명이나 되었으므로 3개 리그까지 구성해 매주 정규 리그를 운영할 수 있었다. 1991년 감옥이 폐쇄될 때까지 FIFA의 리그 운영 규정을 지켜가며 20년 넘게 계속됐다. 만델라를 비롯한 정치범들과 죄수들은 말한다. “모든 것이 무뎌져도 우리에겐 축구가 있다.”

여기 또 하나의 기록이 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그리고 <담론>. 신영복 선생님의 ‘죽음의 집의 기록’이다.

<담론>에서 말씀하시기를, 그곳의 처음 생활은 ‘수많은 실패와 방황’이었다. 책 읽은 자의 몸에 배인 습성이 좀처럼 벗겨지지 못했다. “협소한 공간에서 몸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는 반목과 불신, 언쟁과 주먹다짐에 이르기까지 하루가 팔만대장경”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였던가. 그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서책 몇 권을 끼고 앉는 대신 선생님은 욕설과 악취가 뒤섞인 곳으로 스며들어갔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한 ‘책이나 사변을 통해서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겪어내는 삶 말이다.



선생님은 축구를 했다. ‘공부는 잘 못해도 운동이나 싸움은 잘하는’ 거칠게 살아온 사람들 사이에 끼어 공을 찼고, 어느덧 잘 차게 되어서 미드필더가 되어 공수의 완급을 조절하고 정확하게 패스를 하는 선수가 되었다. 선생님은 교도소 리그의 ‘플레이메이커’로 경기 조율뿐만 아니라 점수 관리도 해야만 했다. 연거푸 패하게 되면 금세 운동장이 험악한 싸움터로 변하기 때문에 “세 번에 한 번 정도는 져 주기도 해야” 하는 리그였다.

어떤 형태의 내기도 금지된 곳이라서 공을 차다가 매를 맞거나 벌방에 갇히는 일도 많았다.

하루는 규정을 어겼다가 ‘빳다’를 맞게 되었다. 어린 죄수의 선의로 선생님은 가혹한 매질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는데 순간 그렇게 빠져나가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매를 자청하게 된다.

어린 죄수가 괜히 맞지 말고 들어가시라, 했으나 선생님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중에 물어봐라. 내가 매 얼마나 멋지게 잘 맞는지. 이래봬도 내가 남산을 거쳐서 온 몸이야.”

이윽고 매질이 시작되었는데, 첫 번째로 나선 이가 따로 있었다. 자청하여 나선 죄수는 ‘영웅적으로 투쟁’했다. 구구절절 변명도 늘어놓고 한 대 맞으면 바닥으로 데굴데굴 구르면서 어떻게든 간수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는 ‘빳다 10대’를 석 대로 줄이고는 장렬하게 쓰러졌다. 남은 사람들은 줄줄이 석 대씩 맞고 벌방으로 들어갔다.

이후, 선생님을 대하는 죄수들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한다. 이를 선생님은 <담론>에서 “노력이라기보다는 각성”이라고 썼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한 “완벽한 지각”이다. 어떤 이는 이런 책에서 자신은 배운 게 없다고 했는데, 아마도 문자의 행렬만 읽었을 뿐, ‘더불어 생활’하는 것 자체를 기피하거나 경멸해왔기 때문이리라. 말의 의미에 천착하고 그 뉘앙스에 민감했다고 나름 자부하는 문필가인데, 스스로 요설의 감옥을 만들어 자신을 가두었으니, 그 안에서라도 책 대신 공을 차면 한결 나을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성공회대에서 매주 수요일 강의를 했다. 강의는 그 자체로 별개의 엄숙하고도 긴장된 시간이지만, 왜 하필 수요일이냐 하면, 3시부터 어김없이 공을 차기 때문이다. 덕분에 선생님과도 서너 해 공을 찼다. 정확한 지점으로 달려가서 가슴으로 공을 받아 발바닥으로 살며시 진정시키고 나서 정확한 지점으로 떠나보내던 모습이 생각난다.

듣기에 연말연시의 삭풍 탓인지 지난 두어 주 동안 운동장은 텅 비었다고 한다. 혹서기나 혹한기에도 공을 찼는데 드문 일이다. 한편, 선생님은 스스로 곡기를 끊는 용단으로 기품있게 이 세상과 작별하셨다.

한동안 그 작은 운동장은 텅 비어 너무도 황량하게 넓어 보일 것이다. 아니,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 노래패 ‘우리나라’의 강상구씨도 한때는 공을 찼다. 벌써 10년도 넘은 기억인데, 어느 날 공을 차다가 지쳐서 나오는데, ‘힘들지요?’ 하며 선생님이 말씀하시더란다.

“그래도 벤치로 나오지 마시고 운동장에서 걸으세요. 한번 나오면 다시 들어가긴 더 힘들어요.”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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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한라산에 가고 싶다, 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아내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결혼 20년차에 들어서 아내의 얼굴을 감히 정면으로 마주 본다는 것은, 자주 있는 일도 아니고 쉬운 일도 아니다. 복잡하게 얽힌 기억상실 장치로 날카로운 복수가 펼쳐지는 드라마를 보면서 아내가 시큰둥하게 내뱉은 말이었지만, 처절한 복수극 <애인 있어요>의 대사와 ‘아, 한라산에 가고 싶다’는 말이 기묘하게 겹쳐지면서, 나는 한번은 가긴 가야 되겠구나, 다짐했다.



 
깊은 산 암자에서 수행하는 고승을 몇 번이고 찾아가 한 말씀이라도 얻어들으려는 어리석은 중생처럼, 그 아득한 산정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그 말 한마디, 나는 정녕 듣고 싶다. 몇 번 듣기는 하였으되, 그것은 썩 진솔하지 않아 보였다. 연거푸 고산 등정을 한 사람들은 ‘인내’ ‘동료애’를 흔히 말한다. 틀린 얘기들은 아니지만, 높은 산에 오른 사람의 경지에는 맞지 않는다.
 
스위스 알프스 엥가딘의 질스-마리아. 철학자 니체는 해발 1800m의 이 고지대 마을에서 8년을 살았다. <즐거운 학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계보> 등을 이곳에서 썼다. 병약한 니체였지만 해발 3451m의 코바치봉을 비롯해 여러 산들을 오르면서 니체는 자신의 사유를 얼음처럼 단단하게 만들었다. 니체는 “보다 높은 곳의 보다 희박한 공기에, 그리고 겨울여행과 얼음과 산”에 의하여 차디차게 응결된 자신의 사상을 설파한다.
 

비록 그런 경지는 아니더라도 ‘나 자신의 한계에 도전한다’거나 ‘한국인의 기상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는 얘기 말고 다른 말들, 그 자신의 내면에 웅크린 소리, 그 높은 산이 들려준 비의, 그 아득한 산정에서 느낀 바람의 결, 극한의 세계에서 치밀어 오르는 무한한 고독과 비장하게 쿵쾅대는 심장 소리, 그런 말들을 나는 꼭 듣고 싶었다.
 
‘일기일회(一期一會)’. 한 번 갔던 산은, 차마 등정하지 못했어도, 두 번 다시 가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살아온 일본의 여성 산악인 다니구치 게이. 여성 최초로 황금피켈상을 받았지만 후원업체 없이 최소한의 조건으로 등반을 해왔다. 후원사의 협찬이 오히려 등반의 짐이 된다는 이유였다. “산의 작은 것 하나라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 아래 적은 인원으로 짐꾼이나 가이드의 도움 없이, 등정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으면서 최대한 빠르게 걸었다.
 
지난 22일, 다니구치는 홋카이도 다이세쓰산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산을 경외하되, 그 높은 산에 오르는 사람들을 더욱 존경했던 나로서는 다니구치 같은 사람의 부고를 접하고서야 그들이 몸으로 말했던 것을 뒤늦게야 듣는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몸으로 말을 해왔고 어리석은 나는 제대로 듣지 못한 것이리라. 그러니, 한 해를 보내는 마당이라 2015년은 포기하되 새해의 첫머리에 기필코 한라산에는 가보아야 하겠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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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하겠다고 발표를 했지만 막막하더라고요. 구단에 유니폼을 반납하고 나오는데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어느 무명 선수의 절박함인가. 그렇지 않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2010년 9월 은퇴한 양준혁 선수의 말이다. 작년 8월, 어느 방송에서 양준혁은 이렇게 덧붙였다. “맨날 야구장에 가고 그랬는데, 이젠 뭘 해야 되는지 막막하고 계속 쉬어야 되는데 어떻게 쉬냐 이 말이죠.”

양준혁 선수의 이 말은 실제로 먹고살기 막막하다기보다는 더 이상 현역으로 활동할 수 없게 된 노장 선수의 회한에 가깝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넉넉한 연봉을 받았고 본인의 의지에 따라 야구와 관련된 여러 직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은 된다. 그럼에도 말 못할 답답함과 회한에 사무치는데 여느 선수들이라면, 무명 선수라면 이 감정이 매우 싸늘한 현실과 직면할 것이다.

어느 분야든 정년이 있고 은퇴가 있다. 때가 되면 후진들에게 길을 터주고 물러나야 한다. 그런데 이 사회가 은퇴자까지 받아줄 만큼 넉넉지는 않다. 선수들은 더 절박하다. 사회 일반의 정년이나 은퇴 상황을 적용할 수가 없다. 30대 중반이면 대개들 은퇴한다. 체조나 수영은 20대 초반을 최전성기로 잡고 그 이후 은퇴를 준비해야 한다. 프로 스포츠의 스타라면 이 나이에 적지 않은 돈을 모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적 삶이란 돈만으로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운동장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에 운동장 바깥의 규칙과 태도와 관계들에 대해 서툰 경우가 많다. 경험 있는 은퇴자들이 씁쓸하게 말한다. 제일 먼저 다가와 친절하게 웃으며 뭐라도 해보자는 사람을 경계하라고 말이다.

무명 선수들은 사기를 당할 기회가 없다는 점에 안도해야 할까. 대한체육회에 등록된 선수들 가운데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선수는 0.04%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사회에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저임금의 지도자 자리조차 귀하다. 그 자리를 얻기 위해 따로 돈을 마련해야 하고 겨우 마련한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폭력적인 위계질서의 행동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래도 몇 가지 제도가 구비되었고 인식도 개선되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은퇴 선수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인천 전자랜드 농구단에서 코치를 지냈던 이환우씨는 은퇴 선수들을 위해 비영리 사단법인을 만들어 활동 중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인식의 변화다. 누구라도 은퇴할 수 있으며 언젠가는 은퇴해야 한다는 것, 어쩌면 그 시기가 빨리 올 수 있으며 부상이나 슬럼프로 인해 갑자기 닥쳐올 수 있다는 점을 운동에 관여하는 사람 모두가 철저히 인식해야만 한다. 아프면 쉬게 해야 하고 부상을 입었으면 치료를 하고 재활을 시켜야 한다. 악으로 깡으로 할 일이 아니다.



운동을 시작하는 중·고교 시절부터 은퇴에 대한 준비를 더불어 해야 한다. 이제 막 운동 시작했는데 벌써 은퇴 걱정이냐고 핀잔하는 사람도 있겠는데, 바로 그게 문제다. 선수들에게 은퇴는 내일이라도 당장 닥칠 문제다. 그렇지 않다 해도 젊은 나이에, 결혼도 하기 전에, 사회로 방출되는 현실 아닌가.

스페인의 FC 바르셀로나가 운영하는 유스 프로그램이 좋은 예다. 우리의 이승우나 장결희 같은 유망주가 뛰고 있는데, 그들이 그곳에서 겪은 가장 큰 문화적 충격은 훈련 시간은 너무 적고 공부를 많이 한다는 점이다. 초·중·고 과정에서 유급하면 프로 진출이 더뎌지거나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열심히 연습, 아니 공부한다. 복잡한 일정 때문에 수업을 듣지 못하면 교사들이 반드시 보충수업을 한다. 다른 나라의 다른 팀으로 잠시 임대를 간 선수들도 인터넷 수업을 통해서라도 필수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중등교육은 물론이고 대학에 진학하는 선수들까지 뒷받침해준다. 유스 출신으로 1군에까지 진출한 세르지 로베르토 선수는 바르셀로나 지역의 명문 라몬룰대학교의 경영대학에 다닌다.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선수들은 언제든지 은퇴할 수 있다. 부상 때문에 일찍 하는 수도 있고 서른 넘어 은퇴할 수도 있다. 그 이후 기나긴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를 유소년기에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인류의 지식을 공부함으로써 선수의 지적, 감성적, 심리적 능력이 풍부해지고 이로써 경기력도 향상된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공부를 병행함으로써 은퇴한 뒤에도 축구 행정, 산업, 지도 등의 여러 방면에서 활동할 수가 있다.

물론 은퇴 후 1년 동안 지속적으로 정보 제공과 상담을 통해 사회화 과정을 지원하는 호주의 ‘에이스 프로그램’이나 일본 J리그의 경력 지원 센터 같은 게 당장은 필요하다. 그러나 중·고교 시절부터, 인생 전체를 함께 구상하고 준비하는 것, 그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공부를 시키자는 것이다. 공부를 시키자는 것은, 부상당하면 다른 직업을 알아볼 수 있게 하자는 방어적 개념이 아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아이들의 심리적 능력이 담대해지고 경기력도 향상된다. 더불어 인생의 다양한 기회를 상상할 수 있다. 그래서 더 즐겁게 운동을 할 수가 있다. 이것이 실질적인 은퇴 프로그램이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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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계에서 ‘서말구’란 이름과 ‘10초34’란 기록처럼 익숙한 단어도 드물 것이다. 한데 썩 긍정적인 느낌은 아니다. ‘10초34’라는 숫자는 심하게 말하면 육상 발전의 발목을 부여잡는 ‘저주의 숫자’이자 반드시 깨야 할 ‘비원(悲願)의 기록’쯤으로 여겨졌다.

서 선수가 1979년 멕시코 유니버시아드에서 세운 육상 100m 기록인 10초34가 무려 31년간이나 깨지지 않았으니 그런 대접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한국기록 보유자는 따로 있었다. 1966년 정기선 선수가 세운 10초3이었다. 서 선수도 타이기록(10초3)만 갖고 있을 뿐 정기선의 기록을 끝내 깨지는 못했다. 궁금증이 생긴다. 왜 서말구 선수의 유니버시아드 기록(10초34)이 0.04초 모자란데도 한국기록으로 공인됐을까.

31년간 100미터 한국 기록을 보유했던 서말구 전 육상국가대표 감독_경향DB


당시 세계육상계가 도입한 전자계측의 기록이라 정식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육상계는 수동기록을 전자계시로 환산할 때 통상 0.20~0.24초 더한다. 서 선수의 유니버시아드 전자기록을 수동으로 바꾸면 10초10쯤 될 것이다. 서 선수에게는 무한한 영예였을 10초34 기록은 갈수록 한국 육상의 정체를 상징해주는 숫자가 됐다. 예를 들어 1939년 김유택이 조선-관서 학생대항전에서 10초5를 찍었다. 정기선의 1966년 수동기록으로 비교하면 0.2초 앞당기는 데 27년이나 걸린 셈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세계 육상의 발걸음도 가볍지 않았다. 제시 오웬스(미국)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기록은 10초2였다. 아르민 하리(독일)가 1960년 10초F를 끊었으니 0.2초 단축에 24년이 걸린 것이다.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10초 이내로 들어오자 기록단축은 더 힘들어졌다. 짐 하인스(미국)는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9초95를 마크했다. 우사인 볼트(자메이카)의 2009년 기록이 9초58이었으니 41년 만에 0.37초 단축했을 뿐이다.

그 보다 한국 육상의 발전속도가 워낙 더뎠기에 서말구 선수와, 그의 기록이 대접받지 못한 것이다. 이제 서 선수의 어깨를 짓눌렀던 무거운 짐은 없다. 2010년 이후 후배인 김국영이 3번이나 한국 기록을 갈아치웠기 때문이다. 5년 만에 서 선수의 기록을 0.18초 앞당겼으니 괄목상대라 할 수 있다. 지난 30일 별세한 서말구 선수의 명복을 빈다.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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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만 내놓고 청테이프로 다 감았어요. ” 지난 9월 말, 대구의 한 고등학교 운동부에서 벌어진 폭행의 일단이다. 1학년생 6명은 선배들로부터 6개월이 넘도록 폭행을 당했다. 마치 벌레를 데리고 유희를 즐기는 듯한 일도 있었다. ‘가위 바위 보’를 시켜 진 사람에게 에어스프레이파스나 소독용 알코올을 항문 등에 뿌리기도 했다. 이토록 섬뜩한 치욕은 평생 따라다니는 트라우마가 된다.

대구시교육청이 이 사건을 계기로 관내 모든 학교 운동부의 폭력 실태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섰다. 상담 인력 확충, 기숙사 폐쇄회로(CC)TV 교체, 비상벨 설치 등의 조치도 발표했다. 그러나 누적된 폐습이요 고질적인 병폐가 이런 정도로 폭력이 근절되기는 어렵다.

지난 8월 말의 사건을 보자. 전남의 한 중학교 운동부 코치가 여중생을 수차례 폭행했다. 이 자체도 충격이지만, 더 놀라운 것은 여중생의 부모가 보고 있는 중에도 폭행을 반복했다. 코치는 “교육적 차원에서 부모 동의 아래 체벌”을 했다고 항변했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중·고교 운동부의 폭력은 이 사회의 무한 경쟁을 압축해 놓은 것이다. 살벌한 경쟁 이외에는 그 무엇도 용납되지 않는 사회적 상황, 그 축소판인 중·고교 운동부의 폭력 구조는 지도자와 학교장은 물론 부모들까지 묵인하고 눈물로 방조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많아야 두 명이고 때로는 한 명의 자녀밖에 갖지 않는 소가족 형태가 이 폭행을 방조하는 이유도 된다. 형제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게 아니라, 오직 단독자로 성장해 사회에 진출하는데, 이럴수록 부모는 아이의 미래에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지도자에게 의존하게 된다. 부모가 보고 있는데도 폭행이 가해지고 심지어는 부모들이 ‘강한’ 지도자를 선호한다. 그래서 관중이 거의 없는 중·고교 대회장에 가보면 지도자와 학부모가 동시다발적으로 온갖 욕설을 섞어가며 어린 학생들을 무섭게 몰아치는 걸 볼 수 있다.


우애와 공존의 성장 경험을 거의 갖지 못한 아이들은, 그릇된 지도자의 악의에 찬 폭력 구조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훗날 직업 선수가 되거나 사회로 진출했을 때도 ‘다른 삶’의 방향과 방식을 겪어보지 못한 탓에 비참하게도 다시 폭력의 위계 속으로 걸어가게 된다.

이 지도자들 역시 강력한 ‘갑’, 즉 학교 당국의 서열 구조의 맨 아래에 위치하게 되는데,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관계를 비정상적으로라도 유지하기 위하여 오직 큰 대회에서 성적을 내는 것을 방책으로 삼기 마련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 폭력을 행사하거나 운동부를 일상 폭력이 가능한 위계서열의 구조로 고착시켜버리게 된다. 학교 당국 역시 담장 밖으로 큰 소문만 나지 않으면 쉬쉬 하며 이 구조를 묵인해버리고 오직 큰 대회 입상으로 모든 것을 용서하거나 성취하는 식으로 운영해 왔다.

이런 판국이니, 당장 상담 인력 확충이나 시설 개선이라도 해야겠지만, 역시 문제 해결의 열쇠는 그 문제 안에 있는 법이다. 2008년부터 시작된 전국학교스포츠클럽대회가 좋은 예다. 엘리트 선수 육성 대신 일반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한 방과후 스포츠 클럽 활동, 토요 스포츠데이, 창의적 체험활동 등이 그것이다. 학교장이 반드시 학생들의 신체 활동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을 명시한 2012년의 학교체육진흥법도 효력을 낳고 있다. 학교장들이 조금만 인식을 바꾸면 얼마든지 새로운 방향이 가능하도록 제도와 예산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일선 학교 운동부를 평가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마침 서울시교육청은 의미 있는 발표를 했다. 지난 10월에 전국체육대회가 열렸는데, 이 순위에 대해 서울시교육청은 기존 방식과는 다른 관점의 연구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은 비록 경기도에 이어 서울시가 종합 2위를 차지(고등부 기준)했지만 이 성적을 시·도별 학생 수, 학교 수, 1인당 총생산, 재정자립도 등에 적용하면 전혀 다른 평가가 나올 수 있다고 발표했다. 학생 수로 비교하면 세종시와 강원, 충북이 상위권이고 서울은 16위다. 학교 수와 금메달의 관계로 보면 대전, 제주, 울산이 상위권이고 서울은 9위다. 재정자립도와 순위의 관계에서도 서울은 9위에 머무른다. 1인당 총생산과 연관하였을 때에 비로소 서울은 3위가 된다.

이런 분석은, 덮어놓고 1위요 금메달이면 무조건 과찬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성적과 다양한 삶의 지표들이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가를, 서울시교육청 스스로 연구하고 발표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다양한 평가기준을 바탕으로 더 많은 선수들과 팀들이 좀 더 공정하고 따뜻한 시각으로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메달 획득과 상위 성적이 대단히 현실적인 위력을 지니고 있다. 그것으로 학교장의 평가가 달라지고 지도자의 고용이 갱신되고 운동부 학생들의 진학이 결정된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폭력 구조가 형성되고 눈물의 묵인이 발생한다. 극소수의 아이들이 이 폭력 구조의 명분이 되어 상급 학교로 진학하지만 대다수는 눈물과 공포의 밤을 보내야만 한다. 이를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평가하고 보상하는 방식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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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이란 말이 있다. 도시의 폐허들, 낙후해 외면당한 공간들을 문화적 관점에서 보존하고 재생하려는 노력이다. 인구, 교통, 교육, 복지 등의 현황을 최대한 분석하되 그 이상의 무엇, 즉 왜 사람들은 그곳을 회피하거나 사랑하는가를 문화적으로 분석한다. 기존의 도시개발 관점에서는 쉽게 보이지 않는, 그러나 틀림없이 존재하는 그 장소의 역사성과 문화성 그리고 미묘한 삶의 질서가 문화적 안목으로 해명되고 그 해법도 모색된다.

건축가 승효상과 미술가 임옥상이 주도하는 서울 창신동의 소통공작소가 대표적이다. 뉴타운 지구 해제 이후 이 일대를 어떻게 삶의 장소로 재생할 것인가, 그 관점과 실천이 집약된 곳이다. 그 밖에 성북문화재단과 스페이스 오뉴월이 공동 추진한 ‘미아리고개 재생 프로젝트’, 예술가들이 허름한 철공소 일대에 스며들어가 신생을 도모한 문래동, 강원 철원군의 ‘철원-전환’, 안산 선감도의 ‘황금산 프로젝트’ 등이 있거니와 이제는 국가적 차원에서, 즉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도시재생 특별법’을 바탕으로 뒷받침할 정도다.

기존의 시선으로 보면 쇠락한 도시의 낙후한 시설이라 해도 예술가의 눈에는 틀림없이 신생의 씨앗이 있고 애틋한 삶의 의미가 있다. 충남 장항의 ‘선셋 장항페스티벌’이 그랬다. 1936년 이래 그곳의 제련소와 굴뚝은 장항과 군산의 역사적, 지리적 상징이었다. 제련소가 폐쇄되고 굴뚝마저 철거될 위기였으나 예술가들이 이 도시를, 이 공장을, 이 시설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기 시작하면서 획기적인 문화예술의 공장이 됐다. 도시의 공장과 시설이 한편 무대가 되고 한편 오브제가 되는 실험적인 예술의 장이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며칠간의 이벤트가 아니라, 교육기관까지 들어서 그야말로 교육·기획·생산·전시·공연이 선순환하는 문화도시를 만들어내는, 이를테면 독일 에센의 졸페라인 같은 구상도 왜 불가능하겠는가. 이런 얘기를 왜 하는가. 고척동의 스카이돔 때문이다. 알다시피 차선의 산물이다. 한국 현대사를 상징하는 유서 깊은 동대문운동장이 반문화적인 강제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후 그 대체 구장으로 현재의 장소가 결정됐고 오랜 논란과 공사 끝에 돔 형태로 완공됐다.



기본적으로 야구를 위한 신생의 공간이기 때문에 시설 수준은 한국 최고다. KBO·구단·프로야구선수협회 등이 세부적인 사항을 자문하거나 주문했고 이를 서울시와 현대산업개발이 최대한 반영했다. 문제는 운영과 활용이다. 서울시는 고척돔의 원만한 운영의 결과로 상대적으로 낙후한 고척동 일대에 새로운 활력소가 펼쳐지길 기대한다. 히어로즈 구단 또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팀의 명맥을 잇는 차원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렇다면 밤낮으로 도시재생의 활로를 찾아다니는 문화전문가들을 만날 일이다. 지하철 1호선 구일역에서 고척돔까지, 걷기에는 조금 멀고 교통편은 부족하다. 이를 문화전문가에게 의뢰해 보라. 하나뿐인 출구로 나와 600m 남짓 걸어야만 하는 그 길을 전문가들은 놀라운 파격의 놀이와 문화의 길로 만들 것이다. 아니, 벌써 늦었다. 흔히 문화적 접목이라고 하면 문화행사 유치로 생각한다. 개장식 때 어떤 공연을 할 것인가 정도 말이다. 그도 아니면, 여기에 어떤 업체를 입점시킬 것인가 생각한다. 쇼핑몰, 예식장, 극장, 식당가 등 말이다. 이렇게 행사용이나 사후 입점 방식으로 문화를 생각한 결과, 숱한 흉물이 만들어졌다. 전국 각지의 월드컵경기장과 인천의 아시아드 주경기장, 어쩌면 엄청난 재앙이 될 수도 있는 평창 일대의 올림픽 시설들 말이다. 문화적 상상력의 빈곤으로 인해 사람들이 접근하기를 꺼리니 어떤 업체가 입점하겠는가.

사전에, 아니 적어도 공사 과정에라도 문화전문가들이 참여해야 한다. 해당 지역의 역사성 해석과 해당 장소의 문화적 의미 재해석, 해당 시설의 고유기능과 결합기능의 창조적인 가능성, 시설 이용자들의 문화적 욕망과 공간의 구획 및 배치 그리고 무엇보다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일상 현황과 그 시설의 융합이 빚어낼 미래적 삶의 가치 등을 문화 기획자들과 함께, 또는 문화 기획자들이 주도해 만들었어야 한다. 이 점에서 고척돔도 늦었다. 움직일 수 없는 시설물을 고착시켜 놓고 여기에 어떤 행사를 치르고 무엇을 입점시킬까 하는 것은, 사후적이며 기능적이다. 사전에 그 공간의 역사적 가치와 문화적 의미를 해석하고 실천하는 작업이 있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추상적인 팬이나 시민이 아니라, 고척동 주민들을 위한 문화복지 시설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고, 인근 대학의 스포츠 관련학과 학생들을 위해 개방해야 하며 심지어는 스포츠 전문대학 유치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1000인의 예술가’ 같은 프로젝트도 구상해 예술가들이 다양한 작업을 해서, 경기가 없는 날에도 사람들이 몰려들어야 한다. 대규모 영업시설 입점식의 빈곤한 상상력으로는 몇 해 버티지 못한다. 장사는 3년이고 문화는 30년, 곧 한 세대를 창출한다.

더욱이 지역 연고성이 취약해 입에 익을 만하면 팀 이름이 바뀌는 히어로즈 구단 아닌가. 이럴수록 문화전문가를 구해 강렬하고도 싱싱한 한국 최초 돔구장 문화를 창조해야 한다. 폐허에서도 꽃을 피웠는데, 고척돔에서는 뭘 못하랴.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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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축구영웅 요한 크루이프(68)는 스포츠의 상식을 초월한 인물이다. 하루 80개비의 담배를 피우는 체인스모커였다. 경기 중 전반전이 끝날 때를 기다려 연신 담배를 피워댔다. 훈련도 빼먹기 일쑤였다. 시건방도 무진장 떨었다. 줄담배를 피워대고 훈련에 관심도 없으면서 “축구는 몸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게으른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월드컵 축구를 시청하느냐는 질문에 “없다. 날 TV 앞에 앉혀놓을 유능한 선수가 없으니까…”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슈퍼스타의 상징인 9번이나 10번 대신 14번을 단 이유를 두고도 “9번은 디 스테파노, 10번은 펠레가 이미 달았으니 헷갈릴까봐”라며 으쓱댔다.

그의 자부심대로 그의 이름은 디 스테파노-펠레-크루이프-마라도나로 이어지는 레전드 계보에 빠짐없이 올라간다. 네덜란드에서는 <지저스 크루이프 슈퍼스타>라는 뮤지컬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할 만큼 숭배의 대상이다. 아약스 및 네덜란드 대표 선수와 바르셀로나 감독으로서 이룬 성공스토리 때문만은 아니다. 크루이프는 1970년대 초 리누스 미헬스 감독이 구상한 ‘토털풋볼’을 그라운드에서 완성한 축구혁명가였다. 그가 언급한 ‘몸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축구’는 시건방이 아니라 토털풋볼을 일컫는 개념이었다.

전 네더란드 축구선수 요한 크루이프_경향DB


“머리를 써야 토털풋볼을 구사할 수 있다. 공수전환 때 조직적으로 움직여 공간을 메워주려면 체력보다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두뇌플레이가 중요하다.”

이전까지는 ‘공격 따로, 수비 따로’인 개인기와 드리블 위주의 축구였다. 하지만 토털풋볼은 공격수와 수비수가 유기적으로 역할을 분담해서 공간을 메워주고 최전방부터 철저한 압박으로 상대공격을 원천봉쇄하는 전술이다. 20~30m의 좁은 지역에서 ‘없는 공간’을 장악하려니 선수들 간의 두뇌플레이가 필요했다. 토털풋볼 덕분에 ‘압박’ ‘오버래핑’ ‘오프사이드 트립’ 같은 현대축구의 전술이 40년이 지난 지금도 통용되고 있다.

그렇게 펠레·마라도나와는 또 다른 차원의 축구영웅이 된 크루이프가 폐암 투병 중이다. 아무래도 젊을 적 피웠던 담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의 축구철학처럼 병마와 싸워 ‘아름답게 이겨주기’ 바란다.


이기환 논설위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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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미국 월드컵 자료를 찾다가 ‘경우의 수’를 따진 기사를 검색했다. 스페인(2무)·볼리비아(1무1패)와 비겼던 한국(2무)이 독일(1승1무)과의 예선 최종전을 앞둔 시점이었다. 기사는 독일과의 전력차는 아랑곳없이 갖가지 경우의 수를 제시하다 ‘일장춘몽’으로 끝을 맺는다. “독일이 혹 16강전에서 쉬운 상대를 고르려고 일부러 한국과 비겨서 조 2위를 차지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즉 독일이 조 2위가 되면 비교적 쉬운 나라들로 구성된 A조 2위(루마니아·미국·스위스 등)와 16강에서 만날 수 있기에 상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독일은 헛된 기대와 달리 한국을 3-2로 제치고 조 1위를 차지했다. 기자의 이름을 보니 ‘이기환 기자’였다.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단언컨대’ 21년 전에는 그렇게 부끄럽지 않은 ‘당대의 기사였다’고 변명해본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때는 어떤가. 김정남 감독의 인터뷰가 구닥다리다. “최강 팀에 지더라도 골차를 줄이고, 또 한 팀은 물고 늘어져 비기고, 다른 한 팀은 죽자 살자 덤벼 이기는 방안을 구상한다”는 것이다. 언론들은 ‘아르헨티나와 정면대결, 마라도나는 찰거머리에 걸리면 신경질을 부린다’는 등 잔뜩 희망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1-3으로 완패하자 ‘너무 긴장해서 제실력을 못 냈다’고 꼬리를 내렸다. 다음 상대인 ‘불가리아는 수비 허점이 많아 해볼 만하다’고 하더니 결국 1-1. 이탈리아와의 최종전을 앞두고 잔뜩 ‘경우의 수’를 늘어놓으며 ‘한 가닥 희망이 있다’고 했지만 결과는 2-3패.


칠레 라 세레나의 라 포르타다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국제축구연맹 U-17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 기니와 한국과의 경기에서 이승우가 돌파하고 있다_연합뉴스



이런 기사가 등장한다. “덴마크는 500만 인구에 등록 선수 18만명인데 한국은 2000명뿐…. 축구전용구장 하나 없는 현실이….” 이 기사를 쓴 기자도 지금 보면 필시 낯 뜨거워질 것이다.

이후에도 ‘죽음의 조를 만났다’ ‘패했지만 희망은 있다’ ‘역시 세계의 벽은 높았다’ ‘축구 저변이 문제다’라는 등의 희망고문이 반복됐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으로 대부분 사라졌는데 끝까지 남아있던 것이 ‘경우의 수’였다. 17세 이하 축구대표팀이 칠레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경우의 수’를 따질 필요 없이 16강에 올랐다. 가뜩이나 골치 아픈 세상인데 복잡한 계산을 ‘실력’으로 해결해준 어린 친구들이 참 대견하다.


이기환 논설위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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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연 김성근이었다. 올해 프로야구의 흥행과 집요한 관심의 주인공은 김성근 감독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프로야구, 특히 ‘마리한화’의 경기를 흡사 집안일처럼 지켜보았는데, 그 결정적인 증인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오랫동안 축구 순혈주의자를 자처하며 축구 선수들의 추락과 상승에 감정을 이입하며 살아왔는데, 올해는 그 마음의 상당 부분을 덜어서 프로야구에, 특히 한화이글스에, 무엇보다 김성근 감독에게 몰입하고야 말았다. 올해 나의 밤은 한화의 야구와 함께 뜨거웠다.

작년까지만 해도 한화는, 경기 중반에 그 흐름과 승패가 일찌감치 결정나버리곤 했다. 대여섯 점 차이로 끌려갈 경우 선수들이 지레 포기하고는 서둘러 더그아웃을 떠나려 했다. 하룻저녁의 승패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목청껏 응원하는 팬들이 오히려 더 열성적이었다. 적어도 작년까지 한화의 야구는 7회까지밖에 없었다. 그랬는데, 올해는 9회까지 질주했고 그런 후에도 운명의 주사위를 한사코 더 굴려서 연장으로까지 치달았다.

스포츠에 투사된 강렬한 감정을 사회 분석의 소재로 삼는 것은 기계적이고 위험하지만, 그래도 담장 밖으로까지 흘러넘친 ‘마리한화’ 열정은 일정하게 사회적이다.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는 것, 아니 충분한 자격을 갖췄음에도 좀처럼 타석에 설 수조차 없다는 것, 그런 절박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화의 ‘일구이무’는 9회말까지 응시할 만한 스펙터클이었다. 물론 지나치게 쥐어짜는 작전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고 선수들 혹사 논란도 있었다. 나는 이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고자 한다. 문제는 프레임이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예컨대 ‘친노’, ‘친박’ 같은 용어를 보자. 이 말들에는 정치적 가치 지향성이 한 줌도 묻어 있지 않다. 오직 세력 프레임일 뿐이다. ‘비노’, ‘반박’ 같은 말들도, 바로 그런 프레임에 속해 있는 정치인들을 한낱 세력 다툼의 골목대장으로 여기게 한다. 일단 그렇게 고정된 프레임은 눈덩이처럼 구르고 굴러서 세력 다툼 이상의 그 무엇도 우리에게 제시하지 못한다.

김성근 감독에게도 오래되고 고정된 프레임이 있다. ‘일구이무의 리더십’이 그것이다.

이 프레임은 김성근 감독과 미디어가 함께 십수 년 동안 만들어낸 것이다. 그가 쌍방울을 지도했던 1999년의 TV 다큐멘터리 <9회말 투아웃>을 보자. 패배에 익숙한 꼴찌들을 ‘일구이무의 리더십’으로 혹독하게 조련하여 승리에 목마른 팀으로 바꿔놓는다는 프레임 안에서 쌍방울 선수들과 김성근 감독이 재현된다. 아주 감상적인 배경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프로의 세계에서 2등은 없다. 오직 승자만 있을 뿐이다”라는 익숙한 대사가 흘러넘친다. 바로 이 프레임 안에 김성근 감독은 늘 있었다.



SK 와이번스를 맡아서 3년 연속 우승을 일구며 ‘야신’이라는 칭호를 얻었을 때, 그 무렵의 대다수 미디어는 김성근 감독의 ‘일구이무 리더십’을 찬양했다. 또한 방송 등 각종 매체에 출연한 김성근 감독 역시 특유의 ‘일구이무 리더십’을 피력했고, 미디어는 바로 그 프레임을 올해까지도 복제했다.

이러한 프레임은 복잡하고도 미묘한 야구를 일정한 틀에 끼워 맞추게 된다. 그 당사자 또한 자신의 현란한 작전과 예측불허의 승부수를 단 하나의 프레임에 의한 행위로 설명하게 된다. 스포츠의 다양성, 야구의 변화무쌍함, 인간 내면의 복잡성을 ‘일구이무의 리더십’ 안에 욱여넣게 된다.

이 프레임은, 김성근 감독이 자주 강조해온 대로 ‘인간 개조’라는 프레임과 직결된다. 리더란 하나의 목표를 위해 조직과 인간을 개조해야만 하며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신념 말이다. 여러 기업과 대학들 그리고 청와대까지 가서 특강을 했던 김성근 감독은 늘 ‘인간 개조’를 향한 리더의 자격과 책무를 강조했다.

이는 스포츠 내적인 맥락에서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명제이지만 사회적으로는 대단히 위험한 양상으로 번지기 쉽다. 20세기 발전국가형 리더십의 전형이랄 수 있는 이 같은 ‘인간 개조’ 리더십은, 복잡하고도 다양한 사회적 양상을 일도양단하여 ‘요즘 아이들’이라는 식으로 재단하는 프레임이 된다.

히딩크로부터 시작하여 아드보카트와 홍명보를 거쳐 김성근으로 이어지는 ‘스포츠 리더십 따라 하기’는 제한된 영역에서, 즉 스포츠라는 고유한 영역 안에서 검토되어야만 한다. “야구를 하면서 나름대로 터득한 것이지만 기업이나 조직에는 그대로 적용하지 마시고 다만 참고는 해보라”는 정도가 적절한 지점이다.

김성근 감독의 야구, 특유의 치밀하고 섬세한 예측불허의 세계 또한 그 자신의 심오한 복기를 통해 새롭게 해석될 필요가 있다.

그는 한국 야구와 스포츠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뛰어난 작전과 바늘 끝만큼의 기회도 놓치지 않으려는 집념을 보여줬다. 많은 사람들이 그 치밀한 세계에 경탄했던 것이지 결코 ‘일구이무의 인간 개조’에 승복한 것은 아니다. 김성근의 야구가 다양한 해석의 지평으로 펼쳐질 때 그는 더욱 깊어질 것이며 이로써 한국 스포츠 또한 더욱 넓어질 것이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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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이후 다시 야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김성근 감독 때문이지만, 연고도 관련도 없는 한화 이글스의 팬이 된 것은 불꽃 남자 권혁 때문이다.

리더십 관련 서적을 찾아 읽다 김성근 감독이 쓴 세 권의 책을 읽고, 그의 리더로서의 실력을 직접 확인하기 위하여 한화 이글스 경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마주한 권혁의 뒷모습.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하여 마지막 책임을 져야 하는 아버지들의 모습을 떠올린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이었을 것이다.

어느새 권혁의, 이글스의 팬이 된다. 일터에서 힘들 때 그의 마지막 투구를 생각한다. 어느 날은 승리의 공이었고 어느 날은 패배의 공이었던 그의 마지막 투구와 그 공을 던진 그의 어깨와 부황 자국이 남아 있는 그의 등을 생각한다. 야구는 야구일 뿐이겠지만, 올 한 해 이글스 팀의 직업 야구를 보면서 나의 일을, 나의 위치를, 나의 맡은 바를 돌아보게 되었다. 일과 삶에 대해서 생각했고, 그리고 많이 배웠다.

한 타석의 승리가 한 게임의 승리로 이어지지 않고, 한 게임의 승리가 한 시즌의 승리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당연하듯 모든 노력이 당장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한화 김성근 감독이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_경향DB


일구이무(一球二無), 두 번째 공은 없다는 그 말에서 오히려 두 번째 공, 내일에 대한 강한 긍정과 열망을 생각한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을 열심히 사는 것이 더 나은 내일로 성장하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지나친 생각일까. 이른 듯하지만, 김성근 감독과 권혁, 한화 이글스 야구 선수들과 트레이닝 담당 등 모든 스태프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이글스 팀 경기를 보며 한계와 극복, 헌신과 기여를 보았고,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벅찬 감동을 느꼈다. 혹자는 혹사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함께 멋진 승부를 만들어 준 KBO 구단 모두에도 돌아온 야구팬으로서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글스에 딱 한 경기씩만 더 져 주었으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덧붙이면, 직업인으로서 닮을까봐 두려운 사람과 배우고 싶은 사람이 같이 비교된 칼럼을 경향신문 지면에서 보게 된 것은 무척이나 당혹스럽다.

김성근 감독의 방법론에는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많고, 다른 방법으로 탁월한 결과를 내고 있는 감독들도 많지만, 그와 이글스의 야구는 이제 3분의 1도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일에 대한 열정과 끊임없는 노력, 무엇보다 팀의 리더로서의 헌신은 많은 훌륭한 선수들과 코치들을 키워냈다. 끊임없이 배우고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하여 타협하지 않고 하루하루 실천하는, 앎과 삶을 일치시켜 가는 그의 모습은 흔들리는 중년 남자에게 삶이라는 직업에 대하여 준엄하게 가르친다.

우직하게 순간순간 전력투구하듯 열심히 사는 그를, 결과를 조작하는 쉬운 방법으로 전 세계를 속인 사람과 같이 비교하는 것은 어떠한 맥락이든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종석 | 서울 강남구 역삼동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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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가 세계 7위라고? 미스터리이자 웃음거리다.”(가디언) “이건 조크다. 무시해야 한다.”(USA투데이) 국제축구연맹(FIFA)이 이번 달 국가별 세계랭킹을 발표하자 온갖 비아냥이 쏟아졌다. 오죽했으면 루마니아의 앙헬 이오르다네스쿠 감독마저 “우리 팀은 세계 7위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솔직하게 인정했을까. 사실 최근 11년 동안 루마니아의 축구 수준은 형편없었다.

랭킹 산정기준은 이렇다. 최근 4년간의 자료를 바탕으로 ‘승무패×경기중요도×상대팀전력×대륙 간 전력’에다 최근 경기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승(3점) 무(1점) 패(0점)’, ‘월드컵(4점) 대륙컵(3점) 월드컵 예선 등(2.5점) 친선(1점)’ 등이 부여되는 식이다. 상대팀 전력에 따른 점수도 차이가 있다. 200점(최대점수)을 기준으로 하되 가령 어떤 팀이 세계 5위를 이겼다면 200-5, 즉 195점을 획득한다. 이렇게 계산이 복잡하다보니 루마니아가 어째서 세계 7위에 올랐는지 쉽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대륙 간 차별이다. 유럽과 남미연맹에 1.00을 부여하는 반면, 북중미 0.88과 아시아·아프리카 0.86, 오세아니아 0.85로 낮은 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어느 대륙에 속해 있냐에 따라 ‘랭킹의 세습’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아시아의 3강인 한국(57위)·일본(58위)·호주(60위)가 만만한 상대인 오스트리아(13위), 알바니아(25위), 러시아(32위), 헝가리(37위), 그리스(44위)보다 랭킹이 낮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게 공평하지 않다고 무시할 수도 없다. 랭킹이 낮으면 월드컵이나 아시안컵 본·예선에서 시드를 받지 못한다. 자칫하면 조별리그부터 강팀을 만날 수밖에 없다.


FIFA 랭킹포인트 계산법_경향DB


영국 프리미어리그는 FIFA 랭킹 50위권 밖의 국가 선수들에게 취업비자를 발급하지 않는다. 이것이 블랙번 입단을 노렸던 김보경이 깊은 설움을 맛보며 좌절했던 이유다. 손흥민은 이적료가 1000만유로가 넘으면 이적을 허용한다는 예외조항에 따라 토트넘에 입단했다. 손흥민의 이적료는 3000만유로로 추정된다. 꿈과 희망을 줘야 할 축구는 이렇게 카스트 제도를 방불케 하는 뿌리 깊은 차별의 멍에를 지우고 있다.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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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부산에 동아대학교가 있다. 여러 학과에 걸쳐 두루 실력을 인정받아 온 대학이지만 특히 체육과 관련해 전국적 차원의 실력과 지명도를 가진 대학이다. 그런데 바로 그 대학의 운동장이 주차장으로 급변했다. 학교 측은 서구 구덕캠퍼스에 있던 예술대가 승학캠퍼스로 옮기면서 주차난이 심각해져 운동장을 주차장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고 다른 곳에 같은 규모의 인조잔디 운동장을 새로 조성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라고 답했다. 별일 아닌 듯 말하고 있지만, 실로 중요한, 단지 대학 체육의 위기만이 아니라 대학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묻게 만드는 중차대한 문제다.

이런 일이 여러 대학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연세대 신촌캠퍼스의 실외 농구장은 신축되는 아트홀 때문에 철거됐다. 농구장에서 발생하는 소음 때문에 악기 조율이나 연습에 방해가 된다는 게 이유다. 고려대는 공학관 신축을 위해 테니스장을 현장사무실로 전용했고 서강대는 실외 농구장 자리에 새 건물을 짓고 있다. 중앙대나 서울대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 드넓은 캠퍼스는 오간 데 없고 오밀조밀한 유리 건물들만 들어서고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문제들을 파생하게 된다.

우선 체육이라는 신체 활동에 대한 편견의 확산이다. 체육 활동은 기껏해야 공부하다가 스트레스를 푸는 사소한 행위로 축소된다. 체육은, 그러나 그 자체로 오랜 역사와 미학이 내재된 학문이자 활동이다. 공부나 연구보다 하위에 있는 게 아니라 동렬에 있다. 스트레스를 푸는 게 운동의 전부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운동은 그 자체 내에 심미적 세계가 따로 존재한다. 그것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어김없이 그 장소로 가게 되어 있다. 땀 흘리며 지쳐서 누운 채 하늘을 바라볼 때 ‘나는 살아 있다’는 충일감을 느끼기 위해서 말이다. 따라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농구하는 데 방해되니 공부는 저 외딴 곳에 가서 하라고 말이다.

다음으로 공공성의 훼손이다. 대학과 그 공간은 국공립이나 사립을 막론하고 사회적 공공성의 장소다. 특정 분야나 인물의 소유가 아니라 대학 구성원, 나아가 인근 주민들까지 함께 활용해야 하며 그렇게 하라고 일정하게 지원도 나오는 장소다. 학생이나 주민들에게 선심 쓰는 곳이 아니라 원래 학생과 주민들의 공유 공간으로 기능하는 곳이 대학이다. 학생들이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며 주민들이 산책하고 학자들이 사색할 때, 캠퍼스는 진실로 아름답다.

그런데 건물 신축이나 그에 따른 주차난을 이유로 그나마 한 줌 여유가 되었던 공공의 장소를 특정한 이익에 부합하도록 축소시키면 대학의 장소적 공공성은 사라진다. 그 자리를 수익성이 치고 들어온다. 옛날에는 자판기 커피 한 잔 들고 잔디나 벤치에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눴다. 저 멀리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학생들을 보면서 말이다. 그런데 모두들 프랜차이즈 커피숍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대학은 공공의 장소가 아니라 주머니가 얇은 학생들은 주눅이 드는 신분 차별과 문화 차별의 냉혹한 정글이 되고 있다. 운동장은 돈 안되는 학생들 대신 적지 않은 주차비를 지불하는 차들로 채워진다. 수익성이 캠퍼스를 장악한다.


마지막으로 인간적 접촉의 상실이다. 야외 체육 공간을 없앤 대학들은 대체 공간을 마련해준다고 한다. 대개는 실현되지 않는데 더러 그 약속이 지켜졌다 해도 큰 건물의 지하나 캠퍼스의 후미진 곳이다. 운동을 하려면 후미진 곳으로 가야만 하는데 그 순간 그것은 고독한 트레이닝이 되고 만다.

굳이 5억달러 가치의 체육시설을 갖춘 조지아대학교를 언급하지 않겠다. 재학생 중 95%가 수영, 농구, 배구, 복싱을 하는 버지니아주립대학교의 엄청난 시설도 언급하지 않겠다. 앤아버 인구 11만명이 동시에 입장할 수 있는 미시간대학교의 스타디움도 언급하지 않겠다.

그저 한 줌이라도 좋다. 손바닥만 해도 좋다. 그러나 반드시 캠퍼스의 중심에,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 야외 운동 공간이 있어야 한다. 캠퍼스 중심에서 공을 찬다는 것은 그 일대의 모든 사람이 함께 공을 찬다는 뜻이다. 연구실이나 도서관에서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사람에게도 생의 자극이 된다.

학생들이 왜 운동을 하는가? 누군가 지켜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선이 교차하고 몸이 섞이면서 인간적 접촉이 증가하면 사랑도 싹트고 심지어 학문의 융합도 이뤄진다. 같이 뛰어도 돼요? 물으면 금세 숫자 맞춰서 뒤섞여 뛰는 게 캠퍼스의 운동이다.

철저히 관리되는 첨단 건물의 폐쇄된 연구실에서는 학문의 융합이 이뤄지지 않는다. 후미진 곳의 고립된 운동도 비인간적이다. 동경의 시선도 없고 사랑의 눈길도 없이 냉혹하게 승부만 겨룰 뿐이다. 엄격하게 시간 제한을 두고 일정하게 사용료를 지불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는 대학의 연구를 방해하고 학생들의 사랑을 파괴한다. 이런 비극이 따로 없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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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인 볼트(자메이카·29)는 이름 그대로 ‘번개’라 할 수 있다.

번쩍하는 사이에 100m(9초58)와 200m(19초19)를 한달음에 달려버린다. 196㎝, 95㎏의 탄탄한 몸으로 무장, 다른 선수들이 44걸음에 내달리는 100m를 41걸음으로 끝내 버린다. 최대 보폭은 243㎝나 되며 평균시속은 37.6㎞에 이른다. 60m부터 시작되는 가속구간의 순간최고속도는 시속 45㎞에 달한다. 영국 브루넬대의 크레이그 샤프 교수는 “볼트가 아킬레스건을 활용해 짧은 접지시간에 더 강하게 지면을 차버림으로써 가속을 얻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분석했다. 그제 베이징 세계육상선수권대회 100m 결승에서는 ‘바람보다 빠르다’는 저스틴 게이틀린(미국·33)을 제치고 9초79로 우승을 차지했다. 어찌 바람이 번개를 이길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런 볼트 역시 ‘인간계의 최고’일 뿐이다. ‘동물계’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아무리 빠르다 한들 치타의 속도(시속 104㎞)를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지뿔영양(시속 89㎞)과 검은꼬리누(시속 80㎞)는 물론, 타조(시속 64㎞)에도 미치지 못한다. 볼트가 9초58에 뛴 100m를 치타는 5초80 만에 가볍게 달린다. 물론 치타의 경우 그렇게 달려 잡은 동물 고기를 먹으려면 약 30분은 호흡을 가다듬어야 하는 게 단점이긴 하지만…. 코요테(시속 40~48㎞)는 인간이 추격할 수 있는 동물이라지만 그 역시 따라잡을 수는 없다. 추격을 당해 목숨이 위태로우면 코요테의 순간속도가 시속 69㎞로 올라간다. 그나마 우사인 볼트의 경쟁자로 꼽을 수 있는 동물이 있다. 단봉낙타이다. 단봉낙타는 우사인 볼트의 평균시속(37.6㎞)보다 느린 시속 35.3㎞로 달리니까 승패를 겨뤄볼 만하다. 하지만 경주에 훈련된 낙타와의 ‘벼랑 끝 승부’라면 과연 승리를 장담할 수 있을까.

미국 서던 메소디스트대 연구팀은 100m 달리기 인간의 한계속도가 ‘이론상’ 시속 64.37㎞(40마일)에 이를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인간의 팔다리 움직임과 근섬유의 움직임이 이상적으로, 그것도 빨리 움직여야 가능한 속도다. 100m 기록으로 환산하면 5초대 중반으로 치타와 견줄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도달할 수 있는 목표인가. 그저 이론상의 기록이겠지.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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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을 맞아 여러 분야의 70년 역사를 정리하는 일들이 많았다. 나는 지난주 KBS에 가서 광복 70주년 특집의 하나로 한국 스포츠 70년사를 기억하는 데 동참했는데, 방송이라는 특성 때문에 다 못한 얘기가 있어 여기에 몇 자 적는다.

우선, 누가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하는 점이다. 역사는 복잡다단한 수많은 요소와 사건들이 당대의 상황이나 구조적인 힘과 맞물리면서 격렬하게 흘러간다. 그중 어느 것을 특별히 선정하고 기억한다는 것은 중립적일 수가 없다. 물론 사건의 측면에서, 손기정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이나 88 서울올림픽 등을 빼놓을 수는 없다. 이렇게 선택하다 보면 생략되거나 삭제되는 사건도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사건과 인물들에 대한 해석이다. 모든 사건과 인물을 다 기억할 수 없다면, 특정한 사건과 인물에 대한 해석을 통해 그 당대를 회복하는 것이다. 해석이 결핍된 사건 나열은 주관적인 스토리텔링을 낳는다. 그것은 대체로 왜곡의 위험성을 내포한다. 개인과 당대 사회가 서로 밀고 당기는 힘의 관계를 검토하지 않고 한 인간이 자의적이며 선구적으로 결연히 마음먹자마자 곧장 실행했다는 식의 의지의 기억으로 역사를 심각하게 왜곡하는 스토리텔링 말이다.

과거 공안검사들이 개인사의 조각들을 억지로 짜맞춘 후 아예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자에 대해 적개심’을 품고 살아온 것처럼 단죄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금 당장 국회의원들의 홈페이지를 가보라.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들은 성장기나 청년기의 파편들을 나열하면서 “그리하여 국민에게 봉사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노라는 식의 스토리텔링을 자랑하고 있다.

스포츠 70년사도 마찬가지다. 흔히 일제강점기 이후 지금에 이르는, 굵직한 사건들과 그 주인공들은 오직 ‘조국 광복’이나 ‘경제 도약’이나 ‘세계 속의 한국인’이 되기 위해 운동을 시작한 것처럼 묘사된다. 대한축구협회가 2005년 발간한 ‘한국 축구 7인의 영웅들’이 꼭 그랬다.

물론 이 거창한 말들에 전혀 진실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당대의 집합적 감수성은 개인의 내면에 강렬한 화인을 찍게 마련이고 따라서 그는 자신의 선택과 행위에 대해 시대적인 당위성을 부여받고자 한다. 한·일전에 임하는 선수들, 해외 무대에 진출한 선수들, 올림픽에 나선 선수들. 그들의 내면에 흔히 ‘애국심’으로 요약되는 당대의 집합적 감수성이 묻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 감정이 뛰어난 성취를 추동케 한 힘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힘의 사회적 의미, 그 의미가 개인에게 끼친 육체적·심리적 작용들은 더욱더 많은 해석을 요구한다.

가령 1960~1970년대에 많은 사람들이 김일의 프로레슬링에 열광했던 기억을 단지 ‘반칙 많이 하는 일본 선수를 응징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만 요약할 수는 없다. 김일은 물론이고 권투의 김기수·홍수환 등에 대한 열광이란 정든 시골을 등지고 도시로 몰려든 뿌리 뽑힌 사람들의 처절한 생존 감정과 결착된 것이다.

역사의 전면에서 단 한 번도 주역으로 호명된 적이 없는 무명소졸들이었기에 자신들의 마음속에서 터져나오는 강렬한 감정을 달리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 다만 ‘애국심’이라는 용광로에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 강렬한 감정이란, 냉혹한 대도시에서 육체적 시련과 정신적 수모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처절한 생존 게임을 벌여야만 했던, 다름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열광이었다.

따라서, 역사 일반이 그렇듯이, 한국의 스포츠 역사를 일별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대의 집합적 감수성이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축구에 대해 대한체육회나 대한축구협회의 기록들은 대체로 “나라 잃은 설움을 운동장에서 거침없이 표출했다”는 애국주의의 수사들뿐이다. 반면 1920~1930년대의 신문 기사들은, 잉글랜드의 리버풀이나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가 그렇듯이, 이미 인천이나 원산 같은 항만 공단 지역에서 축구가 산업도시의 노동자 문화로 자리 잡았음을 잘 보여준다. 그 일상 문화로서의 스포츠에 대한 확인과 그 감정들의 해석이 필요한 것이다. 2002년의 월드컵 4강도 ‘애국심의 표출’만이 아니라 정치 민주화, 경제 성장, 문화 다양성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감각이 동원된 광장의 열병식이 아니라 문화적 광장의 축제로 드러났음을 읽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역사의 사건들, 그 함성들, 그 상흔들마저 해명될 수 있다. 영문학자 테리 이글튼이 “역사는 기승전결의 드라마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 의미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역사를 돌아보는 이유가 그렇듯이, 당대의 어떤 문제가 해결되었고 또 어떤 문제는 왜 미완인 채로 다음 시대의 충격적인 과제로 던져졌는가 하는 질문이다. 질문을 동반하지 않는 역사 돌아보기는 관계자들끼리 모여 추억의 후일담을 나누는 일밖에 되지 못한다.

예컨대 1970년대 스포츠 정책을 살펴보자. 강압적인 국민 동원 체제 아래에서 스포츠는, 선수에게나 일반인에게나, 국가가 신체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구조의 결정판이었다. 태릉선수촌이나 새마을운동은, 그 일정한 의미와 성과에도 불구하고, 권력이 일상을 비정상적인 동원 체제로 구축한 사례다. 88올림픽의 ‘공적인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민·관·군이 ‘혼연일체’된 국가의 스펙터클 문화 통치였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 이후, 한국 사회는 그 상태를 극복했는가. 이에 대해 우리는 마땅한 답을 찾기 어렵다. 스포츠의 즐거움, 그 미학, 그 공동체적 열망 대신 강력한 ‘애국주의’가 여전히 압도한다.

그리하여 어떤 상황인가. 몇몇 대표 선수나 프로 선수들을 제외하고 보면, 우리의 스포츠는 여전히 상명하복의 강압적 질서와 여타의 산업에 비교할 수도 없는 위태로운 비정규직 저임금 상태에 놓여 있다. 운동을 하다 중도 포기하면 도저히 제2의 인생을 계획할 수 없는 형편이다. 강력한 위계질서에 의한 신체 통제도 여전히 작동한다. 선수들에 대한 오해와 편견도 극심하다. 운동 경력이 리더십이나 인격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오히려 운동을 했다는 것이 뭔가 거칠고 결핍된 과정을 거쳐온 것처럼 오해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스포츠 역사 70년은 찬란하게 묘사되는 몇몇 사건과 인물의 위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격다짐의 전근대성과 유무형의 폭력성을 벗어나지 못한 게 아닌가. 운동을 열심히 하면, 비록 대표나 프로가 못되더라도, 이 사회에서 정상적인 직업으로 평가받고 적절하게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오늘날의 스포츠 권력과 그 단체 지도자들은 이 최소한의 조건도 마련하지 못한 채 ‘70년 영광의 드라마’를 내내 우려먹는다. 이 현실 인식 위에서, 한국 스포츠 70년사를 문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문제 안에 숨어 있다’는 경구를 깊이 새기면서 말이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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