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가 세계 7위라고? 미스터리이자 웃음거리다.”(가디언) “이건 조크다. 무시해야 한다.”(USA투데이) 국제축구연맹(FIFA)이 이번 달 국가별 세계랭킹을 발표하자 온갖 비아냥이 쏟아졌다. 오죽했으면 루마니아의 앙헬 이오르다네스쿠 감독마저 “우리 팀은 세계 7위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솔직하게 인정했을까. 사실 최근 11년 동안 루마니아의 축구 수준은 형편없었다.

랭킹 산정기준은 이렇다. 최근 4년간의 자료를 바탕으로 ‘승무패×경기중요도×상대팀전력×대륙 간 전력’에다 최근 경기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승(3점) 무(1점) 패(0점)’, ‘월드컵(4점) 대륙컵(3점) 월드컵 예선 등(2.5점) 친선(1점)’ 등이 부여되는 식이다. 상대팀 전력에 따른 점수도 차이가 있다. 200점(최대점수)을 기준으로 하되 가령 어떤 팀이 세계 5위를 이겼다면 200-5, 즉 195점을 획득한다. 이렇게 계산이 복잡하다보니 루마니아가 어째서 세계 7위에 올랐는지 쉽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대륙 간 차별이다. 유럽과 남미연맹에 1.00을 부여하는 반면, 북중미 0.88과 아시아·아프리카 0.86, 오세아니아 0.85로 낮은 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어느 대륙에 속해 있냐에 따라 ‘랭킹의 세습’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아시아의 3강인 한국(57위)·일본(58위)·호주(60위)가 만만한 상대인 오스트리아(13위), 알바니아(25위), 러시아(32위), 헝가리(37위), 그리스(44위)보다 랭킹이 낮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게 공평하지 않다고 무시할 수도 없다. 랭킹이 낮으면 월드컵이나 아시안컵 본·예선에서 시드를 받지 못한다. 자칫하면 조별리그부터 강팀을 만날 수밖에 없다.


FIFA 랭킹포인트 계산법_경향DB


영국 프리미어리그는 FIFA 랭킹 50위권 밖의 국가 선수들에게 취업비자를 발급하지 않는다. 이것이 블랙번 입단을 노렸던 김보경이 깊은 설움을 맛보며 좌절했던 이유다. 손흥민은 이적료가 1000만유로가 넘으면 이적을 허용한다는 예외조항에 따라 토트넘에 입단했다. 손흥민의 이적료는 3000만유로로 추정된다. 꿈과 희망을 줘야 할 축구는 이렇게 카스트 제도를 방불케 하는 뿌리 깊은 차별의 멍에를 지우고 있다.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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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동아대학교가 있다. 여러 학과에 걸쳐 두루 실력을 인정받아 온 대학이지만 특히 체육과 관련해 전국적 차원의 실력과 지명도를 가진 대학이다. 그런데 바로 그 대학의 운동장이 주차장으로 급변했다. 학교 측은 서구 구덕캠퍼스에 있던 예술대가 승학캠퍼스로 옮기면서 주차난이 심각해져 운동장을 주차장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고 다른 곳에 같은 규모의 인조잔디 운동장을 새로 조성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라고 답했다. 별일 아닌 듯 말하고 있지만, 실로 중요한, 단지 대학 체육의 위기만이 아니라 대학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묻게 만드는 중차대한 문제다.

이런 일이 여러 대학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연세대 신촌캠퍼스의 실외 농구장은 신축되는 아트홀 때문에 철거됐다. 농구장에서 발생하는 소음 때문에 악기 조율이나 연습에 방해가 된다는 게 이유다. 고려대는 공학관 신축을 위해 테니스장을 현장사무실로 전용했고 서강대는 실외 농구장 자리에 새 건물을 짓고 있다. 중앙대나 서울대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 드넓은 캠퍼스는 오간 데 없고 오밀조밀한 유리 건물들만 들어서고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문제들을 파생하게 된다.

우선 체육이라는 신체 활동에 대한 편견의 확산이다. 체육 활동은 기껏해야 공부하다가 스트레스를 푸는 사소한 행위로 축소된다. 체육은, 그러나 그 자체로 오랜 역사와 미학이 내재된 학문이자 활동이다. 공부나 연구보다 하위에 있는 게 아니라 동렬에 있다. 스트레스를 푸는 게 운동의 전부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운동은 그 자체 내에 심미적 세계가 따로 존재한다. 그것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어김없이 그 장소로 가게 되어 있다. 땀 흘리며 지쳐서 누운 채 하늘을 바라볼 때 ‘나는 살아 있다’는 충일감을 느끼기 위해서 말이다. 따라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농구하는 데 방해되니 공부는 저 외딴 곳에 가서 하라고 말이다.

다음으로 공공성의 훼손이다. 대학과 그 공간은 국공립이나 사립을 막론하고 사회적 공공성의 장소다. 특정 분야나 인물의 소유가 아니라 대학 구성원, 나아가 인근 주민들까지 함께 활용해야 하며 그렇게 하라고 일정하게 지원도 나오는 장소다. 학생이나 주민들에게 선심 쓰는 곳이 아니라 원래 학생과 주민들의 공유 공간으로 기능하는 곳이 대학이다. 학생들이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며 주민들이 산책하고 학자들이 사색할 때, 캠퍼스는 진실로 아름답다.

그런데 건물 신축이나 그에 따른 주차난을 이유로 그나마 한 줌 여유가 되었던 공공의 장소를 특정한 이익에 부합하도록 축소시키면 대학의 장소적 공공성은 사라진다. 그 자리를 수익성이 치고 들어온다. 옛날에는 자판기 커피 한 잔 들고 잔디나 벤치에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눴다. 저 멀리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학생들을 보면서 말이다. 그런데 모두들 프랜차이즈 커피숍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대학은 공공의 장소가 아니라 주머니가 얇은 학생들은 주눅이 드는 신분 차별과 문화 차별의 냉혹한 정글이 되고 있다. 운동장은 돈 안되는 학생들 대신 적지 않은 주차비를 지불하는 차들로 채워진다. 수익성이 캠퍼스를 장악한다.


마지막으로 인간적 접촉의 상실이다. 야외 체육 공간을 없앤 대학들은 대체 공간을 마련해준다고 한다. 대개는 실현되지 않는데 더러 그 약속이 지켜졌다 해도 큰 건물의 지하나 캠퍼스의 후미진 곳이다. 운동을 하려면 후미진 곳으로 가야만 하는데 그 순간 그것은 고독한 트레이닝이 되고 만다.

굳이 5억달러 가치의 체육시설을 갖춘 조지아대학교를 언급하지 않겠다. 재학생 중 95%가 수영, 농구, 배구, 복싱을 하는 버지니아주립대학교의 엄청난 시설도 언급하지 않겠다. 앤아버 인구 11만명이 동시에 입장할 수 있는 미시간대학교의 스타디움도 언급하지 않겠다.

그저 한 줌이라도 좋다. 손바닥만 해도 좋다. 그러나 반드시 캠퍼스의 중심에,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 야외 운동 공간이 있어야 한다. 캠퍼스 중심에서 공을 찬다는 것은 그 일대의 모든 사람이 함께 공을 찬다는 뜻이다. 연구실이나 도서관에서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사람에게도 생의 자극이 된다.

학생들이 왜 운동을 하는가? 누군가 지켜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선이 교차하고 몸이 섞이면서 인간적 접촉이 증가하면 사랑도 싹트고 심지어 학문의 융합도 이뤄진다. 같이 뛰어도 돼요? 물으면 금세 숫자 맞춰서 뒤섞여 뛰는 게 캠퍼스의 운동이다.

철저히 관리되는 첨단 건물의 폐쇄된 연구실에서는 학문의 융합이 이뤄지지 않는다. 후미진 곳의 고립된 운동도 비인간적이다. 동경의 시선도 없고 사랑의 눈길도 없이 냉혹하게 승부만 겨룰 뿐이다. 엄격하게 시간 제한을 두고 일정하게 사용료를 지불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는 대학의 연구를 방해하고 학생들의 사랑을 파괴한다. 이런 비극이 따로 없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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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인 볼트(자메이카·29)는 이름 그대로 ‘번개’라 할 수 있다.

번쩍하는 사이에 100m(9초58)와 200m(19초19)를 한달음에 달려버린다. 196㎝, 95㎏의 탄탄한 몸으로 무장, 다른 선수들이 44걸음에 내달리는 100m를 41걸음으로 끝내 버린다. 최대 보폭은 243㎝나 되며 평균시속은 37.6㎞에 이른다. 60m부터 시작되는 가속구간의 순간최고속도는 시속 45㎞에 달한다. 영국 브루넬대의 크레이그 샤프 교수는 “볼트가 아킬레스건을 활용해 짧은 접지시간에 더 강하게 지면을 차버림으로써 가속을 얻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분석했다. 그제 베이징 세계육상선수권대회 100m 결승에서는 ‘바람보다 빠르다’는 저스틴 게이틀린(미국·33)을 제치고 9초79로 우승을 차지했다. 어찌 바람이 번개를 이길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런 볼트 역시 ‘인간계의 최고’일 뿐이다. ‘동물계’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아무리 빠르다 한들 치타의 속도(시속 104㎞)를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지뿔영양(시속 89㎞)과 검은꼬리누(시속 80㎞)는 물론, 타조(시속 64㎞)에도 미치지 못한다. 볼트가 9초58에 뛴 100m를 치타는 5초80 만에 가볍게 달린다. 물론 치타의 경우 그렇게 달려 잡은 동물 고기를 먹으려면 약 30분은 호흡을 가다듬어야 하는 게 단점이긴 하지만…. 코요테(시속 40~48㎞)는 인간이 추격할 수 있는 동물이라지만 그 역시 따라잡을 수는 없다. 추격을 당해 목숨이 위태로우면 코요테의 순간속도가 시속 69㎞로 올라간다. 그나마 우사인 볼트의 경쟁자로 꼽을 수 있는 동물이 있다. 단봉낙타이다. 단봉낙타는 우사인 볼트의 평균시속(37.6㎞)보다 느린 시속 35.3㎞로 달리니까 승패를 겨뤄볼 만하다. 하지만 경주에 훈련된 낙타와의 ‘벼랑 끝 승부’라면 과연 승리를 장담할 수 있을까.

미국 서던 메소디스트대 연구팀은 100m 달리기 인간의 한계속도가 ‘이론상’ 시속 64.37㎞(40마일)에 이를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인간의 팔다리 움직임과 근섬유의 움직임이 이상적으로, 그것도 빨리 움직여야 가능한 속도다. 100m 기록으로 환산하면 5초대 중반으로 치타와 견줄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도달할 수 있는 목표인가. 그저 이론상의 기록이겠지.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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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을 맞아 여러 분야의 70년 역사를 정리하는 일들이 많았다. 나는 지난주 KBS에 가서 광복 70주년 특집의 하나로 한국 스포츠 70년사를 기억하는 데 동참했는데, 방송이라는 특성 때문에 다 못한 얘기가 있어 여기에 몇 자 적는다.

우선, 누가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하는 점이다. 역사는 복잡다단한 수많은 요소와 사건들이 당대의 상황이나 구조적인 힘과 맞물리면서 격렬하게 흘러간다. 그중 어느 것을 특별히 선정하고 기억한다는 것은 중립적일 수가 없다. 물론 사건의 측면에서, 손기정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이나 88 서울올림픽 등을 빼놓을 수는 없다. 이렇게 선택하다 보면 생략되거나 삭제되는 사건도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사건과 인물들에 대한 해석이다. 모든 사건과 인물을 다 기억할 수 없다면, 특정한 사건과 인물에 대한 해석을 통해 그 당대를 회복하는 것이다. 해석이 결핍된 사건 나열은 주관적인 스토리텔링을 낳는다. 그것은 대체로 왜곡의 위험성을 내포한다. 개인과 당대 사회가 서로 밀고 당기는 힘의 관계를 검토하지 않고 한 인간이 자의적이며 선구적으로 결연히 마음먹자마자 곧장 실행했다는 식의 의지의 기억으로 역사를 심각하게 왜곡하는 스토리텔링 말이다.

과거 공안검사들이 개인사의 조각들을 억지로 짜맞춘 후 아예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자에 대해 적개심’을 품고 살아온 것처럼 단죄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금 당장 국회의원들의 홈페이지를 가보라.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들은 성장기나 청년기의 파편들을 나열하면서 “그리하여 국민에게 봉사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노라는 식의 스토리텔링을 자랑하고 있다.

스포츠 70년사도 마찬가지다. 흔히 일제강점기 이후 지금에 이르는, 굵직한 사건들과 그 주인공들은 오직 ‘조국 광복’이나 ‘경제 도약’이나 ‘세계 속의 한국인’이 되기 위해 운동을 시작한 것처럼 묘사된다. 대한축구협회가 2005년 발간한 ‘한국 축구 7인의 영웅들’이 꼭 그랬다.

물론 이 거창한 말들에 전혀 진실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당대의 집합적 감수성은 개인의 내면에 강렬한 화인을 찍게 마련이고 따라서 그는 자신의 선택과 행위에 대해 시대적인 당위성을 부여받고자 한다. 한·일전에 임하는 선수들, 해외 무대에 진출한 선수들, 올림픽에 나선 선수들. 그들의 내면에 흔히 ‘애국심’으로 요약되는 당대의 집합적 감수성이 묻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 감정이 뛰어난 성취를 추동케 한 힘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힘의 사회적 의미, 그 의미가 개인에게 끼친 육체적·심리적 작용들은 더욱더 많은 해석을 요구한다.

가령 1960~1970년대에 많은 사람들이 김일의 프로레슬링에 열광했던 기억을 단지 ‘반칙 많이 하는 일본 선수를 응징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만 요약할 수는 없다. 김일은 물론이고 권투의 김기수·홍수환 등에 대한 열광이란 정든 시골을 등지고 도시로 몰려든 뿌리 뽑힌 사람들의 처절한 생존 감정과 결착된 것이다.

역사의 전면에서 단 한 번도 주역으로 호명된 적이 없는 무명소졸들이었기에 자신들의 마음속에서 터져나오는 강렬한 감정을 달리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 다만 ‘애국심’이라는 용광로에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 강렬한 감정이란, 냉혹한 대도시에서 육체적 시련과 정신적 수모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처절한 생존 게임을 벌여야만 했던, 다름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열광이었다.

따라서, 역사 일반이 그렇듯이, 한국의 스포츠 역사를 일별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대의 집합적 감수성이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축구에 대해 대한체육회나 대한축구협회의 기록들은 대체로 “나라 잃은 설움을 운동장에서 거침없이 표출했다”는 애국주의의 수사들뿐이다. 반면 1920~1930년대의 신문 기사들은, 잉글랜드의 리버풀이나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가 그렇듯이, 이미 인천이나 원산 같은 항만 공단 지역에서 축구가 산업도시의 노동자 문화로 자리 잡았음을 잘 보여준다. 그 일상 문화로서의 스포츠에 대한 확인과 그 감정들의 해석이 필요한 것이다. 2002년의 월드컵 4강도 ‘애국심의 표출’만이 아니라 정치 민주화, 경제 성장, 문화 다양성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감각이 동원된 광장의 열병식이 아니라 문화적 광장의 축제로 드러났음을 읽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역사의 사건들, 그 함성들, 그 상흔들마저 해명될 수 있다. 영문학자 테리 이글튼이 “역사는 기승전결의 드라마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 의미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역사를 돌아보는 이유가 그렇듯이, 당대의 어떤 문제가 해결되었고 또 어떤 문제는 왜 미완인 채로 다음 시대의 충격적인 과제로 던져졌는가 하는 질문이다. 질문을 동반하지 않는 역사 돌아보기는 관계자들끼리 모여 추억의 후일담을 나누는 일밖에 되지 못한다.

예컨대 1970년대 스포츠 정책을 살펴보자. 강압적인 국민 동원 체제 아래에서 스포츠는, 선수에게나 일반인에게나, 국가가 신체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구조의 결정판이었다. 태릉선수촌이나 새마을운동은, 그 일정한 의미와 성과에도 불구하고, 권력이 일상을 비정상적인 동원 체제로 구축한 사례다. 88올림픽의 ‘공적인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민·관·군이 ‘혼연일체’된 국가의 스펙터클 문화 통치였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 이후, 한국 사회는 그 상태를 극복했는가. 이에 대해 우리는 마땅한 답을 찾기 어렵다. 스포츠의 즐거움, 그 미학, 그 공동체적 열망 대신 강력한 ‘애국주의’가 여전히 압도한다.

그리하여 어떤 상황인가. 몇몇 대표 선수나 프로 선수들을 제외하고 보면, 우리의 스포츠는 여전히 상명하복의 강압적 질서와 여타의 산업에 비교할 수도 없는 위태로운 비정규직 저임금 상태에 놓여 있다. 운동을 하다 중도 포기하면 도저히 제2의 인생을 계획할 수 없는 형편이다. 강력한 위계질서에 의한 신체 통제도 여전히 작동한다. 선수들에 대한 오해와 편견도 극심하다. 운동 경력이 리더십이나 인격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오히려 운동을 했다는 것이 뭔가 거칠고 결핍된 과정을 거쳐온 것처럼 오해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스포츠 역사 70년은 찬란하게 묘사되는 몇몇 사건과 인물의 위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격다짐의 전근대성과 유무형의 폭력성을 벗어나지 못한 게 아닌가. 운동을 열심히 하면, 비록 대표나 프로가 못되더라도, 이 사회에서 정상적인 직업으로 평가받고 적절하게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오늘날의 스포츠 권력과 그 단체 지도자들은 이 최소한의 조건도 마련하지 못한 채 ‘70년 영광의 드라마’를 내내 우려먹는다. 이 현실 인식 위에서, 한국 스포츠 70년사를 문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문제 안에 숨어 있다’는 경구를 깊이 새기면서 말이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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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니 누군가 ‘빨갱이가 (지리)산에 숨어들었다고 빨치산이라 하는 건가요’라고 묻고 있다. 실소를 자아내지만 우스갯소리로만 들리지 않는다. 1946년 대구 폭동 이후 10년 이상 지리산에 숨어들어 유격전을 펼친 공산 빨치산들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원·동지·당파 등을 뜻하는 프랑스 발음 ‘빠르티장’(partisan)에서 유래됐으니 공산게릴라만 콕 집어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후방에서 무장인민투쟁으로 침략자들을 무력화시키려고 조직된 부대와 구성원이다. 엄밀히 말해 미국독립전쟁 당시의 민병대와 러시아 내전 때의 적군 및 민중봉기 세력도 빨치산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2차대전 후 유고연방을 세운 요시프 브로즈 티토는 전설적인 빨치산이었다. 티토는 80만명의 빨치산을 이끌고 유고의 험준한 산악지형을 신출귀몰하며 나치 독일의 기계화 사단을 무력화시켰다. 티토가 빨치산 운동을 기념해 창단한 축구팀(FK 파르티잔 베오그라드)은 동유럽의 명문클럽이다. 유고연방은 깨졌지만 티토 빨치산의 흔적은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빨치산 전법의 핵심은 ‘기동력’이다. 압도적인 전력을 가진 상대의 뒤통수를 쉼없이 잽싸게 치고 빠져야 한다. 1921년 고작 50여명의 당원으로 출발한 중국공산당이 28년 만에 중국대륙을 석권한 것도 기동력을 핵심으로 한 ‘치고 빠지기’ 전법 덕분이었다. 막강한 전력의 일제 침략군과 국민당 정권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정면으로 맞설 수 있었겠는가.

북한 김남희(오른쪽)와 한국 박희영이 2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여자부 대결 도중 쓰러진 지소연의 다리를 함께 붙잡고 경련을 풀어주고 있다. 북한이 허은별의 2골을 앞세워 2-1로 역전승했다.-경향DB


동아시안컵 축구대회에 출전한 북한의 남녀 축구대표팀도 ‘빨치산 전법’으로 무장했단다. 북한 감독은 동산서격(東散西擊·동쪽에서 흩어놓고 서쪽을 친다)이니 일행천리(一行千里·한 번에 천리를 간다)니 하는 제법 어려운 말로 설명했지만 실은 간단하다. ‘빠른 측면전환 후 크로스’(동산서격)와 ‘긴 패스 한 번으로 최전방에 건네주기(일행천리)’가 아닌가. 1983년 청소년 월드컵에서 4강에 오른 한국대표팀에 외신들은 ‘벌떼작전(swarm tactics)을 폈다’고 했다. 빨치산축구나 벌떼축구나 기본은 ‘한 발자국 더’라 할 수 있다. 가뜩이나 부족한 실력에 그나마 뛰지도 않는다면 어찌되겠는가. ‘똥볼축구’ 소리나 들을 것이다.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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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글몽글, 함께하실 거죠?”

서강대에서 스포츠심리학을 가르치는 정용철 교수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숨쉬는 것만큼이나 영어를 자연스럽게 한다는 그가 모국어의 낱말을 잘못 쓴 줄 알았다. ‘몽글몽글’이라는 부사가 있다. 작은 덩어리로 된 사물의 말랑말랑하고 매끄러운 느낌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몸글몽글’이라니, 의아해 다시 물었더니, 또 몸글몽글이란다. 덧붙여 말하기를 언론인이자 시인인, 아니 그보다는, 1970년 문교부 주최의 스포츠꿈나무선발대회에서 무려 3600여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최종 12명의 합격자에 포함되면서 한때 촉망받던 농구 선수의 기억을 갖고 있는 한림대 고광헌 교수가 ‘몸글몽글’이라고 작명했다고 한다.

다시, 그 낱말을 입안에 넣고는 혀끝으로 살살 쓰다듬어 보니, 과연 농구 선수 출신의 시인다운 작명이라는 느낌이었다. 몸글, 즉 몸으로 쓴 글이 몽글, 즉 말랑말랑하게 살이 올라 눈을 씻고 다시 읽어볼 만하다는 뜻이다. 요컨대 스포츠를 전공으로 하는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글쓰기 교육을 해보자는 취지이니, 평소 그런 관점을 여러 번 피력한 자로서 당연히 참여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당부였다. 그래서 두 달 동안 스무명 가까운 젊은 학생들과 ‘스포츠와 나’를 주제로 여덟 차례의 변주를 했다.

스포츠 선수나 그 전공 학생들에게 왜 글쓰기가 필요한가.

사실 이 질문은, 스포츠 분야뿐만 아니라 사회 전 영역에 걸쳐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이면서도 즐겁게 함께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글을 쓰려면, 자기 생각부터 더듬어봐야 하고, 그렇게 생각을 여물게 하다 보면 자기와 주변 사람들을 두루 살피게 된다.

이런 과정을 어려서부터 익혀서, 마치 밥을 먹거나 걷는 일처럼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되면 함부로 자기 말을 앞세우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고언을 기꺼이 듣게 되고 제멋대로 자기 얘기를 강요하기보다는 다른 이의 필설에 담긴 날카로운 비판을 자기의 것으로 새기게 된다.


가령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글쓰기 수업을 몇 주 정도 제대로 받는다면, 그동안 주술 관계도 없고 앞뒤 문맥도 없는 이른바 ‘유체이탈 화법’에 스스로 놀라며 자신을 주어로 한 책임 있는 말들을 제대로 할 것이다. 정치란 ‘정언(正言)’이요 이는 곧 “이치를 정확하게 하는 것”이라고 한 공자의 경지 말이다.



돌이켜보면, 이 나라 교육에서, 가장 크게 결핍된 것이 학생들 스스로 말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는 것이었다. 해방 이후 지금껏 받아쓰고 외우는 일방통행이었다. 성장 과정에서, 감성적이든 논리적이든, 스스로 말을 하거나 생각의 무릎을 오무려 글을 쓰게 하는 교육이 결핍되어 왔다.

스포츠 분야는 말할 것도 없다. 유소년 때부터 지도자의 강박과 명령을 몸으로 수행해야만 했고 대학이나 프로 입단 후에도 철저한 위계 서열의 부품으로 주어진 명령어를 반복하는 것에 길들여져 있을 따름이다. 미디어에 수시로 노출되는 프로야구 같은 인기 종목 선수들은 그나마 방송 인터뷰에서 개인적인 기질이 드러나는 대답을 하는 편이지만, 대다수 선수들은 말을 하거나 글을 써본 경험 자체가 전무하기 때문에 단문에 단답이거나 그마저도 거칠게 자기 감정을 내뱉는 정도다. 그래서 고광헌, 정용철 두 분이 ‘몸글몽글’을 통해, 글을 쓰거나 읽는 것 자체가 어려서부터 통제되고 금지된 스포츠 선수와 그 분야 전공 학생들을 돕고자 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짧은 인터뷰 시간에 재치 있는 대답을 해보자는 식의 기술을 익히는 게 아니다. 어떤 선수들은 과묵하고도 신중하게 답변함으로써 스포츠가 지닌 엄숙함을 드러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행위에 대해 깊이 있는 생각과 주체적인 의견을 자기 내면에 견실하게 쌓아나가는 것이다. 왜 나는 운동을 하는가, 이 행위의 의미는 무엇인가, 내 몸은 어떻게 반응을 하고 그 순간 내 감정은 왜 증폭되는가, 나의 행위가 지닌 사회적 의미는 무엇인가, 그야말로 온몸을 헌신하는 이 스포츠가 이 사회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등에 대한 생각 말이다.

박찬호 선수가 미국에 진출했을 때, 미국인 코치들이 끊임없이 “왜 그렇게 던졌느냐”고 묻길래 처음에는 그게 책임을 추궁하는 줄 알고 덮어놓고 “잘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다 차츰 현지의 격조 있는 인간관계를 파악한 후에, 그는 투구 하나하나에 대해 스스로 말하고 코치들과 높은 수준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영표, 기성용, 손흥민 등이 해외에 진출해 처음 겪은 ‘문화 충격’도 이런 일이다. 자신의 행위에 대해 스스로 말을 한다는 것, 그로부터 스포츠라는 고결한 행위의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된다.

‘몸글몽글’은 바로 그런 이유로 시작된 프로젝트다. 함께해보니, 다만 기회가 없었을 뿐, 학생들이 쓴 글은 다채롭고 기발했으며 무엇보다 진솔했다. 스포츠를 전공하는 학생들답게 이 거친 세상을 몸으로 부딪친 흔적이 뚜렷했다. “혼란스러웠고 힘들었던 시간과 함께 튀어오른 손등의 혈관, 까맣게 그을린 손등, 딱딱하게 자리 잡은 손바닥의 굳은살”(서강대 이승은)에 대한 기록, “나를 무겁게 짓누르고 가두었던 눈빛과 강요들”(경희대 윤영조)에 대한 회상, “나를 갈기갈기 찢고 싶을 때 내 옆에서 나를 위로했던”(인천대 이병현) 인연에 대한 애달픔,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막연하게 잡히지 않는 그 무언가를 쫓았던”(서울대 박지영) 옛 시절에 대한 감정 등을 읽으면서, 나는 이 학생들이 어려서부터 쓰거나 읽는 과정을 겪었더라면, 한국 스포츠가 더욱 따스한 풍경이 되었으리라고 생각했다.

지금 수많은 선수와 학생들이 잔인한 위계질서와 폭력적인 승리주의 아래에 놓여 있다. 그들의 여린 마음속에는 날카롭게 베인 상흔들이 남아 있다. 글을 쓰면서 스스로를 생각하고, 또 글을 읽으면서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몸글몽글’ 정도가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스포츠 현장 곳곳에서 진행되어야만 한다. 운동기계가 아니라 존엄한 인간적 행위의 실천자로 거듭나기 위해서 말이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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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의 둘째 계비인 문정왕후는 아들(명종) 대신 8년이나 수렴청정하며 권세를 휘둘렀다. ‘여주(女主·여왕) 때문에 나라가 망할 지경’이라는 대자보까지 시중에 나붙었다. 왕후의 소원은 남편(중종) 곁에 묻히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첫째 계비(장경왕후)와 합장한 남편(서삼릉 소재)을 정릉(강남구 삼성동)으로 옮기는 무리수를 뒀다. 하지만 1565년 승하한 왕후는 끝내 남편 곁에 가지 못한 채 태릉(노원구 공릉동)에 안장됐다. 중종 능의 지대가 너무 낮아 물이 스몄기 때문이다. 문정왕후로서는 아들(명종)과 며느리(인순왕후)가 태릉과 이웃한 강릉에 나란히 묻힌 것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았을까.

그 후 400년이 지난 1965년 어느 날 화장실에서 민관식 대한체육회장의 뇌리를 스치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태·강릉’ 지역이었다. 체육관을 이리저리 전전해야 했던 대표선수들에게 불암산 아래 공기 좋은 그곳은 훈련장으로 안성맞춤이었다. 결국 “나무 한 그루도 상하지 않게 건설하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조건부 허락 아래 태릉선수촌이 건설됐다. 태릉선수촌은 한국엘리트 스포츠의 요람이 됐다. 개촌 이후 대표선수들이 따낸 하계올림픽 메달만도 234개다. 메달뿐이랴. 어려웠던 때, 별로 내세울 게 없었던 시대에 축 처진 국민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한 이들이 바로 선수촌에서 피와 땀, 혼을 쏟아낸 그 시대 젊은이들이었다. 지옥훈련의 대명사인 로프클라이밍 훈련과 단내 풀풀 풍기며 불암산 눈물고개를 오르내린 10㎞ 산악훈련 등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됐다. 선수촌의 건물 하나, 나무 한 그루, 흙 한 줌도 태릉의 새 역사가 됐다.

아시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태릉선수촌에서 훈련 중인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 _경향DB


태릉선수촌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의 복원 계획에 따라 완전 철거될 운명이었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가 문화재청에 태릉선수촌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신청했다. 조선왕릉처럼 태릉선수촌도 문화재이니 철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일리있는 말이다. 기억과 기록은 있는데 정작 해당 시설이 사라져버린다면 어찌 되는가. 반쪽의 역사만 남을 뿐이다. 최근 유네스코 역시 문화유산의 무조건적인 철거와 복원보다는 현대도시가 겪는 변화를 인정하는 추세다. 다름 아닌 공존의 방법을 찾으라는 뜻이다.


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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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계에서 틈만 나면 참새들의 입방아거리로 오르는 주제가 하나 있다. 다른 종목에서는 두각을 나타내는 흑인들이 왜 유독 수영에서만은 약할까 하는 궁금증이다.

다른 인종에 비해 물갈퀴가 짧다느니, 땀구멍이 너무 커서 물을 많이 품기 때문이라느니 하는 별의별 근거없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그 가운데서도 메이저리그 LA다저스 단장을 지낸 알 캄파니스의 해석이 즐겨 인용된다. 그는 1987년 “흑인들은 부력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등의 인종차별적인 발언으로 단장직에서 쫓겨난 바 있다. 흑인들은 근육이 많은 대신 체지방이 적어 물에 잠기는 부분이 많다는 말이다. 물론 모두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한 이야기이다. 이는 1988년 9월21일 서울올림픽 수영 접영 100m에서 입증됐다. 수리남의 앤서니 네스티가 7관왕을 노리던 매트 비욘디(미국)와 미하엘 그로스(독일)를 제치고 금메달을 딴 것이다. 이후 앤서니 어빈과 컬렌 존스(이상 미국) 등 흑인계가 올림픽에서 금메달 행진을 이어갔다. 흑인이 수영과는 맞지 않는 인종이라는 편견이 깨진 것이다. 그렇다면 흑인스타가 수영에 유독 적은 이유는 뭘까. 환경의 차이일 가능성이 높다. 수영은 축구나 야구, 육상 등 다른 스포츠와 달리 첨단 시설과 장비, 그리고 체계적인 개인교습이 필요한 종목이다. 흑인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네스티도 미국에서 엘리트 수영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아프리카 저개발국가나 서구의 저소득층에 속한 흑인들이 출세를 겨냥해서 승부를 걸 수 있는 종목이 아니다.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 감비아 선수로 유일하게 출전한 수영 대표 팝 종가(오른쪽)와 아르팡 조브 코치가 8일 광주 유대회 선수촌에서 감비아 국기를 펼치고 활짝 웃고 있다. -경향DB


그런 면에서 2015 광주 유니버시아드에 출전한 감비아의 수영청년 파프 종가(17)의 도전은 박수받을 만하다. 50m 규격 풀은 구경도 못한 채 위험한 감비아 강에서 훈련을 받아온 청년이다. 접영 세계기록(26.67초)보다 13초 이상 늦은 기록(40초04)으로 조예선 꼴찌에 머물렀다. 그러면 어떠랴. 유니버시아드 시상식에서 국가 대신 부르는 공식노래가 있다. ‘그러므로 즐깁시다!(Gaudeamus igitur)’이다. 그 다음의 가사가 더 멋지다. ‘아직 젊을 때에(juvenes dum sumus)…’이다. 17살 종가 청년이 부를 만한 안성맞춤의 ‘청춘송가’이다.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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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한화의 최진행 선수가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실시한 도핑테스트에서 금지약물(스타노졸롤) 양성반응을 보여 30경기 출장정지 처분을 받았다. 스타노졸롤은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지정한 제1종 상시 금지약물이다.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하고 간이 손상되는 등 심각한 부작용이 일어난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 출전한 육상스타 벤 존슨(캐나다)이 이 성분 때문에 금메달이 박탈된 바 있다. 이번에 최 선수는 “체력이 떨어져 지인이 권유한 영양보충제였다”며 “금지약물인지 몰랐다”고 해명했다. “고의성이 없었다”는 말을 100% 믿더라도 구단 트레이너에게조차 한마디 묻지도 않고 이 같은 위험한 성분을 복용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는 최 선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두산 투수 이용찬 선수에 이어 올해 수영스타 박태환, 프로축구 제주 강수일, 프로배구 흥국생명 곽유화 선수 등이 줄줄이 도핑테스트에서 약물성분이 검출돼 출전정지 처분을 받았다. 프로야구·축구·배구 등 프로 스포츠에까지 약물 복용이 폭넓게 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도 올림픽·아시안게임과 같은 종합스포츠 대회에 참가하는 아마추어 스포츠의 경우엔 검사도, 처벌기준도 엄격하다. 박태환 선수의 경우 세계반도핑기구의 불시 도핑테스트에서 적발돼 징계를 받았다. 배드민턴 이용대 선수도 불시 도핑테스트를 위한 일정관리 시스템을 잘못 이해했다는 이유만으로 징계 처리됐다가 겨우 취소되기도 했다. 반면 프로 스포츠계의 경우 세계반도핑기구의 규정이 아닌 자체 도핑 규정에 따라 처벌한다. 따라서 처벌의 수위가 낮을 수밖에 없다. 이는 약물에 대한 무지와 불감증을 더 부추기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최근 적발된 선수들이 ‘콧수염용 연고를 발랐을 뿐’이라든가, ‘다이어트 약을 먹었을 뿐’이라고 해명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약물에 특히 민감해야 할 선수들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수영선수 박태환이 27일 서울 송파 잠실관광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금지약물 양성반응에 관해 설명하고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있다._경향DB



각 구단, 감독, KBO와 같은 스포츠 기구도 선수의 부주의 탓으로 책임을 돌려서는 안된다. 하루하루 승패에만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선수들이 복용하는 모든 약물을 수시로 체크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수 개개인의 마음가짐이다. 떨어지는 체력을 일거에 끌어올리는 약은 금지약물밖에 없다. 그리고 그 약물은 선수 개인은 물론 스포츠를 파멸로 몰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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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이 자동차를 탔다. 제프 블라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과 사무총장 그리고 대변인. 누가 운전할 것인가. 정답은 ‘경찰’이란다. 이 농담을 확대해 보자. 택시가 아니라 대형 버스라고 해보자. 국제 축구계를 쥐락펴락해온 사람들이 대거 탑승하면 과연 누가 운전대를 잡을까. 이번에도 정답은 ‘경찰’이 되지 않을까.

지난 7일(한국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일간지 ‘선데이타임스’는 타보 음베키 전 대통령이 블라터로부터 100억원대의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미국 검찰은 남아공 정부쪽에서 나온 거액이 잭 워너 전 FIFA 부회장과 2010 월드컵 개최지 투표권을 행사하는 집행위원 2명에게 건네졌다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현재 미 검찰은 워너를 포함한 14명의 관계자들을 부패 혐의로 체포한 상태다. 남아공 월드컵과 관련해 벌써 버스 한 대가 꽉 찼다.

1974년부터 1998년까지 전 세계의 축구장을 ‘검게’ 물들였던 주앙 아벨란제 밑에서 사무총장을 하며 축구를 돈으로 바꾸는 계략을 보고 배운 블라터는 개최지 결정권, 중계권, 공공 전시권이라는 3종 세트를 활용해 축구장을 자기들만의 환전소로 바꿔왔다. 남아공 대회의 경우, 본선 대회 전까지 4년간 지역예선 중계권, 광고 수익 등으로 무려 4조2763억원을 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당시 12억원의 중계권료를 지불했으나 2010년에는 700억원이 넘었다. ‘FIFA 파트너, 월드컵 스폰서, 내셔널 서포터’ 등으로 구분된 수십개의 글로벌 기업들이 FIFA를 위해 월드컵 기간 돈의 축포를 쏘아댔다.

그리고 공공 전시권! 블라터와 그 수하들이 스필버그나 잡스 같은 사람은 흉내도 못 낼 정도로 21세기 인류 최고의 상상가임을 입증한 수입원이다. 2002 한·일월드컵 때 온 나라의 거리와 광장을 가득 메운 열정을 보고 이들은 곧장 공공 전시권을 고안해낸다.

2인 이상이, FIFA의 허락 없이, 공공장소에서 월드컵을 시청하면 과태료를 물리겠다는 것이다. 극장, 역, 광장, 병원, 터미널 같은 장소에서 어떻게 과태료를 물리나, 농담이겠지, 난 안 봤소 걸어가던 중이오 하는 사람을 어떻게 적발하나. 이렇게 방심하는 사이 그들은 ‘팬페스트 광장’을 고안해냈다. 수백년 동안 개별 독립국가의 사람들이 모이고 떠들고 저항하고 웃고 즐기고 사랑을 나누던 광장을 그들은 순식간에 장악해 자신들에게 막대한 후원금을 낸 기업과 방송사만이 그 광장을 독점적으로 사용케 했다.

권력 장악의 타당성과 장기적인 안정을 노리는 부패한 정치인들, 축구의 열정에 배어 있는 땀방울을 마케팅이라는 용광로에 우겨넣는 기업들, 이들이 떠받치는 권좌에 앉아 개별 주권 국가의 고유한 법칙과 재정 원리를 일거에 무시해온 FIFA의 권력자들이 축구장을 검게 물들여 왔다.


이에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 겸 FIFA 명예부회장이 나섰다. 회장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천명한 상태는 아니지만 서서히 군불을 지피는 초기 양상은 두루 확인된다. 그는 지난 5일(한국시간), CNN의 유명한 앵커 크리스티안 아만포와의 인터뷰에서 “블라터 회장은 당장 물러나고 일반 업무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한 후 “축구 관계자들과 만나 의견을 들어본 뒤 신중하게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의견은 회의적이다. 세력 관계상 아시아계 후보가 당선되기 어렵다는 중론이다. 최근 3년간 FIFA 인사들과 교류가 적었다는 의견도 있다. 국내 선거에서 연거푸 좌절되면서 과거의 영향력을 많이 잃었다는 분석도 있다.

나는 이런 분석에 대체로 동의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있다. 블라터에 반대한다고 해서 곧장 개혁적인 후보인가 하는 점이다. 블라터 회장은 “나도 완벽하지 않고, 모두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 ‘모두’에 정 명예회장이 자유로운가도 검토해봐야 한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때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던 정몽준 후보는 “FIFA 책임자가 한국이 준결승에 오른 것은 MJ라는 놈이 축구 심판을 매수한 게 아니냐고 했다. 그 정도 되면 제가 능력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유세 과정의 실언이겠지만, 이런 인식이라면 반블라터 인사일 뿐, FIFA를 개혁할 만한 인사인가, 회의적이다.

물론 선거는 현실이다. 블라터의 말처럼 ‘모두’가 어느 정도 흠집이 있는 상황에서 평지돌출의 인물이 선거에 나서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정몽준 명예회장은 유력한 후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개혁 프로그램과 의지’다. FIFA 특유의 철저한 비밀주의를 깰 수 있는가, 최고 수준의 의사결정과 그에 따른 회계 및 운영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하고 집행하는 의지가 있는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수십년의 ‘침묵의 카르텔’을 깰 수 있는가, ‘1국1표’의 비밀주의에 기반한 24인 집행위원 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인가, 축구공을 빼닮은 열정적인 팬들의 순수한 눈망울을 모조리 돈의 단위로 치환해 버리는 상상력 자체를 근절해낼 수 있는가 등이 관건이다.

이에 대한 확실한 프로그램과 강력한 의지가 있다면 정몽준 명예회장이 출마하기 바란다. 그러나 반블라터 깃발만 앞세운 채 어떻게 우군을 확보하고 적군을 공략할까 하는 공작적 자세라면 출마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해서는 당선되기도 어렵지만, 바로 그런 전략으로 당선되었기에 블라터는 몰락했다. 개인에게는 불운이요 축구계로서는 재앙이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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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디부아르가 2006년 독일 월드컵 지역예선을 통과한 2005년 10월, 동료들과 함께 본선 진출을 자축하던 디디에 드로그바는 중계방송 카메라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단 일주일 만이라도 내전을 멈춰달라”고 외쳤다. 이 호소로 정부군과 반군 간의 내전은 1주일간 휴전했다. 정부군과 반군은 마침내 2007년 평화협정을 맺었다. 드로그바의 호소는 유엔 회원국(193개국)보다 많은 가입협회(209개)를 자랑하는 축구의 역할과 가치를 보여준 사례이다. 인류가 야만적인 전쟁 대신 축구를 통해 갈등의 마음을 풀고 경기장 밖에서는 서로 손잡고 평화와 화합의 장으로 나서야 한다는 게 축구의 메시지인 것이다.

하지만 이렇듯 전 세계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축구의 ‘심장부’(국제축구연맹·FIFA)가 실상은 온갖 비리의 온상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지난해 2018 러시아 및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개최지 선정 과정의 비리의혹을 조사한 이른바 ‘가르시아 보고서’가 나왔지만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은 ‘문제없다’고 일축했다. 급기야 FIFA 총회를 이틀 앞둔 지난달 27일 월드컵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 천문학적 액수의 뇌물을 챙긴 혐의로 FIFA 주요 인사들이 체포됐다. 그럼에도 FIFA 부패의 몸통으로 지목된 블라터는 5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수사망이 좁혀오자 끝내 버티지 못하고 어제 자진사퇴했다. 관련자들의 혐의는 공갈, 온라인 금융사기, 돈세탁 공모, 탈세, 국외계좌 운영 등 47개에 이른다. FIFA는 마피아와 마약 카르텔을 방불케 하는 부패의 온상이었던 것이다. FIFA는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에서 6조3000억원의 수익(현금 1조6000억원 포함)을 올렸지만 세금을 내지 않았다. 비영리단체로 등록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블라터 회장의 연봉과 활동비가 얼마인지도 모른다. 블라터는 수익금의 일부를 ‘축구발전금’ 형태로 각국 협회에 나눠주는 방식으로 지지세력을 넓혔다. 게다가 지금까지 개최지를 결정하는 집행위원이 불과 24명이었다. 13표만 얻으면 되니 거액의 뇌물이 난무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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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터 FIFA 회장 사퇴 (출처 : 경향DB)


러시아 등 일부에선 미 연방수사국(FBI) 등 미국의 수사당국이 이번 수사를 벌이는 것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모양이다. 그렇더라도 이를 계기로 부패의 온상으로 전락한 축구와 FIFA가 신뢰를 회복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뜻깊은 일이다. 블라터 자진사퇴가 FIFA 개혁의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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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블라터

2013년 당시 동부 감독이던 강동희씨 사건은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스타 출신의 현역 감독이 브로커들로부터 4700만원을 받고 후보 선수들을 투입하는 수법으로 승부를 조작한 혐의가 인정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창진 KGC 감독이 수사선상에 올랐다. KT 감독 시절이던 지난 2~3월 경기에서 후보 선수들을 기용해 승부를 조작하고 불법스포츠 토토에 돈을 건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전 감독이 지인들을 동원해서 빌린 사채(3억원)로 자신의 팀 경기에 베팅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만약 경찰이 제기한 혐의가 모두 사실이라면 충격적이다. 현역 감독이 직접 승부조작을 기획하고 실행에 옮긴 셈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2014~2015시즌에 펼쳐진 5경기를 주목하고 승부조작 여부를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물론 수사가 초기 단계여서 섣부른 예단은 하기 어렵다. 전 감독도 법무법인을 통해 “승부조작이나 불법베팅의 사실이 없다”고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경찰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상을 밝혀내기를 바란다.

이재민 한국프로농구연맹(KBL) 사무총장이 26일 서울 논현동 KBL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2년 만에 불거진 승부조작 파문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_ 연합뉴스


경찰의 수사 소식만으로도 국내 농구계는 공멸의 위기감에 빠졌다. 사실로 밝혀질 경우 가뜩이나 떨어진 농구의 인기가 스타 현역 감독들의 잇단 탈선으로 끝없이 추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구는 좁은 코트에서 불과 5명이 뛰는 종목이다. 선수 교체의 제한도 없다. 이 때문에 감독의 작전에 따라 경기 흐름이 바뀔 수 있고, 승패나 점수차 관리 등의 방법으로 조작할 여지가 있다고 한다.

차제에 다른 종목도 ‘강 건너 불구경’식으로 대응하면 안된다. 지금까지 농구 외에도 야구와 축구, 배구 등이 모두 연루되어 홍역을 치르지 않았던가. 도박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게 고질적인 문제이다. 불법도박 세력들은 선수나 감독, 심판 등 경기 결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검은 손길을 내민다. 예컨대 프로배구에서는 승부조작 관련자들이 출소한 후에도 선수들에게 접근하려는 움직임이 파악되기도 했다. 사실 어떤 제도나 법으로도 도박의 유혹을 근원적으로 막기란 쉽지 않다. 개인의 마음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스포츠 도박은 다르다. 한 사람의 탈선이 종목 전체를 존폐의 위기로 빠뜨릴 수 있다. 무엇보다 그들을 우상으로 삼았던 팬들의 상처는 어떻게 보듬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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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여섯점 차이 났다고
끝난 경기로 봐야 하나
가장 중요한 불문율은
응원하는 팬 존중하는 것


우리는 왜 스포츠에 열광하는가. 인생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길고도 복잡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이 세상에서 어떤 정황에 처해 있는지 좀처럼 알 수 없다. 어떤 일은 분명히 내 실수였다, 내 탓이다,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분명치 않다. 왜 내 보고서가 묵살되었는지, 왜 내가 야박한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왜 나에게 주어진 나의 시간은 언제나 길고도 불투명한 고립과 고통인지 알기 어렵다.

세월호 참사 당시 아이들을 구하다가 죽음에 이른 선생님들. 그 중에 몇 분은, 인사혁신처의 순직심사위원회에 따르면, ‘기간제 교사’라서 순직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왜? 도대체 왜? 이제는 다급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분을 감안해 행동해야 하는가. 온갖 비리로 얼룩진 육·해·공의 군 수뇌부들은 이 사회가 완전히 뒤집힌, 모든 가치가 뒤집힌, 사회임을 말해준다. 반면 스포츠는 명확하다. 규칙이 엄정하고 결과가 분명하다. 승패가 분명하고 그 이유도 눈에 보인다. 선수의 실수도 보이고 감독의 결정적 오판도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 휘슬이 불릴 때까지, 마지막 타자가 아웃될 때까지 선수들을 응시한다. 다시, 우리는 왜 스포츠에 열광하는가. 내게 주어진 모든 조건들의 타이밍은 언제나 너무 늦거나 빠르기 때문이다. 진학, 취업, 승진 등 사회적 절차에서 우리는 번번이 타이밍을 잃거나 빼앗긴다. 세상의 패스는 늘 너무 늦거나 너무 빠르다.

타이밍! 스포츠는, 그 어떤 종목이든지, 1초 이내의 긴박한 순간에 벌어지는 절묘한 타이밍의 세계다. 정확한 패스와 터닝슛, 찰나와 같은 도루와 간발의 세이프, 공의 궤적과 속도를 감각적으로 판단하고는 전속력으로 달려 온몸을 던져 마침내 지면에 닿기 직전의 공을 잡아내는 외야수! 우리는 경탄한다. 아, 저와 같은 타이밍이야말로 내가 이 거친 세상에서 단 한번이라도 겪어보고 싶은 순간이 아니던가. 그래서 경기장에 간다. 선수들 이름을 외쳐 부른다. 지고 있어도 응원한다. 지고 있는 저 선수들의 지친 표정이 꼭 우리네 일상과 닮지 않았는가. 9회말 세 번째의 아웃이 선언되기 전까지, 열렬히 응원한다. 그게 우리의 삶이다. 마지막 남은 한 번의 기회라도 움켜쥐고 싶은 것이다.

‘불문율’이라는 얘기가 있다. 지난 23일, KT 대 한화의 경기가 도화선이 되었다. 6-1로 앞서가던 한화가 9회초에 도루를 하고 9회말에는 투수들을 연이어 교체했다는 것이다. KT 주장 신명철이 분노를 표시했다. 이용철 해설위원은 “상대를 자극하는 행동이다. 사실상 승부가 결정난 경기에서, 9회말에 이런 식으로 투수 교체를 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글쎄, 우선 불문율에 대해 생각해보자. 나중에 김성근 감독이 밝혔지만, 9회초 진루한 강경학은 사인을 잘못 파악하고 도루했다. 이에 한화는, 발이 느린 포수 허도환으로 교체했다. 이때, KT 벤치는, 적어도 이용철 해설위원은 이 교체의 의미를 파악했어야 한다. 발이 매우 느린 선수를 들여보낸다? 이를 파악했더라면 불상사는 없었을 것이다. 윤규진의 등판 또한 양팀 모두, 그리고 해설위원 역시 사전에 알고 있는 사항이었다. 큰 점수 차로 패하기 전에 악착같이 달라붙어서, 상대 팀이 테스트 삼아 투수를 교체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했다.

분명 지켜야 할 금도가 있고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다. 인간의 모든 행위를 법률로 규제할 수 없는 것처럼, 숱한 상황이 발생하는 경기장의 모든 행위를 규정집에 적을 수는 없다. 규정이 많아질수록 인간은 부자유에 구속된다. 그래서 불문율이 존재한다. 그러나 말뜻 그대로 ‘문자로 적시’되지 않은 것이므로 이를 해석하고 적용하기 위해서는 문자 규정보다 훨씬 정교해야 한다. 막연히 ‘스포츠맨십’이나 ‘동업자 정신’을 적용해서는 안된다.

특히 경기 그 자체의 밀도, 그 뜨거운 몰입의 정념을 무시하는 ‘동업자 정신’은 오히려 반스포츠적이다. 이날 경기는 6회 때 이미 5-1이었고 8회에는 한화가 한 점을 더 추가했다. 그러면 경기가 끝난 것인가. 팬들은 아직 아웃카운트가 세 개나 남아 있다고 열렬히 응원하고 있는데, 선수들은 기운이 빠져 있고, 해설위원마저 6점 날 때부터 이 경기는 이미 끝이 난 거라고 해도 되는가. 언제부터 대여섯 점 차이가 나면 그 경기는 끝난 것이라는 ‘불문율’이 생겼단 말인가.

타고투저 현상에 날씨마저 더워지면서 한 경기, 한 회마다 대량 득점이 발생한다. 20일, 삼성은 두산을 25-6으로 꺾었다. 23일, 롯데는 LG를 19-11로 이겼다. 9회나 연장까지 가서 웃는 자와 우는 자가 바뀌는 일도 늘고 있다. 10일, 두산은 한화전에서 9회말에 뒤집었다. 17일, 이번에는 한화가 넥센을 연장까지 물고 늘어져서 이겼다. 아니, 당장 다음날 경기에서 KT가 입증하지 않았던가. 비정해 보이는 한화 야구를 무섭게 몰아쳐 13-4로 이기지 않았던가.

물론 불문율이 있다. 보복 투구는 절대 금지다. 투구 방해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릎을 보고 들어가는 슬라이딩은 퇴장이다. 거친 욕설 또한 그렇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불문율은 야구를 존중하는 것이다. 야구는 9회말부터라고, 그것을 귀하게 여기던 ‘스포츠 정신’은 어디로 갔는가. 이 거친 세상에서 연거푸 패퇴한 팬들은 한 베이스라도 더 가려고 치고 달리는 선수들을 보기 위해 경기장에 간다. 마지막 아웃카운트 선언 때까지 함성을 지른다. 그것을 존중하는 것, 가장 중요한 불문율이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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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경찰이 발표한 스포츠 비리 수사 내용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선수들에게 지급돼야 할 거액의 훈련비와 지원금을 허위로 타내는가 하면 기업 후원금의 일부를 개인 성과금 명목으로 빼돌린 스포츠인들이 적발됐다.

예컨대 어떤 종목 코치는 선수들의 식사·숙박비 등 훈련비와 대회출전비 등 총 1억5000만원을 횡령했다. 또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출신의 지도자는 이 같은 비리를 묵인해주는 대가로 공무원들에게 거액의 뇌물까지 뿌렸다. 해당 공무원은 그 대가로 지원금 요청 공문을 허위로 작성했다. 심지어 조직폭력배 행동대장이던 어떤 종목의 전무이사는 우수선수 관리지원금을 1억5000만원이나 빼돌렸다.


문제는 적발된 종목이 쇼트트랙·레슬링·스키·씨름 등 4개 종목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적발 내용에 기상천외하거나 경천동지할 수법이 담겨 있는 것도 아니다. 다양한 종목에서 잡다한 수법이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정정당당한 승부의 세계여야 할 체육계에서 비리의 고질화와 일상화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 만큼 체육계는 지금까지 광범위하게 통용돼온 부조리의 사슬을 스스로 풀지 않으면 비리집단의 이미지를 씻기 어렵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물론 간과해서는 안될 대목도 있다. 이번 수사는 지난해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경찰이 상시 합동으로 벌여온 이른바 ‘스포츠 4대악(惡) 수사’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입시비리·편파판정·승부조작·(성)폭력 등 이른바 4대악을 없앤다는 취지는 좋다. 그러나 전담 수사기구 상설화를 통해 스포츠계 전체를 ‘악의 축’이라 단정하고 척결 대상으로 삼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주무부처인 문화부는 체육계 전반을 비리의 온상으로 매도하기보다 구조적인 문제점을 찾는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이번 수사에서 드러났듯 예산을 관리감독해야 할 공무원도 제대로 된 감사를 받지 않거나 협회가 외부의 통제 없이 예산을 총괄했다. 또 지원금을 요청하고 관리감독하는 이들이 장기간 같은 자리에 있었다. 이들은 검증이 허술한 보상금 항목을 노렸다. 비리 적발도 좋지만 엄격한 관리감독 체계를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뜻이다. 체육계가 비리집단이라고 손가락질을 받는다면 그 손가락질은 곧 문화부로 향한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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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이 1000일 앞으로 다가왔다. 삼수 끝에 유치한 동계올림픽이 이제 3년도 채 남지 않았는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논란은 기존의 대형 국책사업 추진 과정에서 벌어졌던 것들과 매우 유사하다. 올림픽 주최 측은 사업의 경제성과 국격, 매몰비용을 들며 사업을 강행하고, 분산 개최 등 사업방향의 선회를 요구하는 쪽은 환경파괴와 경제효과 추정의 허구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동일한 논쟁이 벌어졌던 사업들은 현재 어떤 모습일까.

새만금사업의 경우 소실된 갯벌의 가치를 차치하고, 경제성 평가만을 봐도 ‘밑 빠진 독’이라고 할 만하다. 공동조사단이 총 사업비 약 3조원의 비용을 기준으로 비용편익분석을 한 결과, 시나리오에 따라 편익이 비용의 최대 3.81배에서 최소 1.25배로 산출됐다. 이마저도 법원 감정촉탁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성 평가에서 왜곡 평가의 예로 교과서에 실려도 좋을 만큼” 의도적으로 편익은 부풀리고 비용은 제외시켜 나온 결과이다. 심지어 수질개선 항목은 비용이 아닌 편익으로 포함됐다. 경제성 평가 이후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끊임없이 변경되고 있는 새만금 기본계획에서 총 비용은 22조2000억원까지 늘어났다. 그중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던 수질개선 비용으로만 초기의 총 사업비에 근접하는 2조9000억원이 책정됐다. 이 역시 향후 얼마든지 더 늘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편익은 어떠한가. 투자율이 매우 낮아 2018~2022년을 민간투자 확산단계로 설정한 것을 보면, 미래의 편익을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4대강 사업의 경우도 22조원을 투자했지만, 물부족 지역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아 이를 근거로 전국에서 댐건설 계획을 다시 추진 중이다. 사업 구간에 남은 것은 극심한 녹조와 정체된 강뿐이다. 더 큰 문제는 사업을 추진할 때와 평가하고 책임져야 할 때의 태도 차이다. “강이 동맥경화에 걸려서 준설을 해야만 한다”던 4대강 사업의 홍보 문구는 협박하듯 연일 TV에 등장해 많이 알지만, “대규모 준설은 환경적인 측면에서 타당성이 낮”으며 “남조류 대량 발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보 건설에 따른 체류시간 증가”라는 국무총리실 산하 조사평가단의 사업평가 결과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업을 추진해 직접적으로 경제적인 이익을 얻는 소수는 뒷감당에 관심이 없다. 이익은 그들 소수가 가져가지만, 손해는 우리 모두가 보는 것이다.

평창 동계올림픽과 관련된 이슈들도 예의 사업들과 다르지 않다. 초기 8조8000억원이던 사업 예산은 전체 공정률이 미미했던 2014년 말 이미 13조원까지 뛰었다. ‘경제적 효과 평가’에서 추정한 직접적인 효과 21조원에는 정부 지출 3조원 등 비용까지 넣어 비난을 받기도 했다. 나가노의 사례를 보면 향후 유지 관리의 경제적인 문제는 훨씬 심각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보다 나은 대안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환경적인 면에서 최고의 쟁점이 되고 있는 가리왕산 활강경기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벌목률이 높다고 해도, 나무를 키우는 토양과 물의 체계는 아직 온전하다. 그러나 공사가 더 진척되어 슬로프와 리프트를 설치하기 위한 절성토 토목공사, 인공눈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한 댐·관로 설치를 하고 화학물질을 살포하기 시작하면 토양과 지하수, 주변 생태계는 완전히 교란될 것이다. 이러한 공사가 시작되지 않은 지금이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1002일 남은 14일 오후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스키인의 날’ 행사가 열리고 있다.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는 대회 1000일을 앞둔 16일에 공식 슬로건을 발표할 예정이다. _ 연합뉴스


이러한 두 가지 문제를 모두 개선할 수 있는 방안으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분산 개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아젠다 2020’을 통해 분산 개최의 효용성을 인정한 바 있다. 다만 조직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로써 모든 책임은 온전히 조직위원회의 몫이 됐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강원도의 재정파탄과 환경파괴로 이어져 국제적인 수치로 남지 않게 하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조직위원회의 결단이다.


이현정 | 국토환경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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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겁게 끝난 ‘세기의 대결’
링은 냉혹한 현실의 축소판
다 이룬 뒤 늦게 만난 두 사람
‘패자’ 없는 이상한 경기로


오하이오주립대학을 다니면서 조정, 육상 그리고 무엇보다 권투에 매료되었던 조지 벨로스는 훗날 화가가 되었을 때 이 스포츠를 통하여, 특히 사각의 링, 바로 사투를 벌이는 권투 장면을 강렬하게 묘사하여 20세기 초엽의 미국 사회를 증언하였다. 그가 그린 권투 장면들은 냉혹하고 음산하고 선혈이 낭자하였는데, 사람들은 곧장 그가 권투를 통하여 미국 사회를 묘사한 것임을 알아챘다. 그도 그럴 것이 벨로스는 산업사회의 살벌한 경쟁 시스템 안에서 하나의 볼트와 너트로 소모되고 분쇄되는 노동자계급의 처지에 서서 시카고와 뉴욕이라는 비열하고 살벌한 도시를 응시하였던바, 그는 사각의 링을 통해 미국 자본주의의 ‘쌩얼’을 묘파하고자 했다.

마침 1923년에 거의 불법적인 내기 싸움에 가까웠던 권투가 뉴욕을 시작으로 합법화되고 금세 이 격렬한 스포츠는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동서를 횡단하며 처절한 인기를 얻고 있었다.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의 주인공 윌리 로먼 같은 사람들, 그러니까 시골에서 대도시로 상경하여 무한 경쟁에 뛰어들었던 사람들, 오로지 믿을 것은 제 몸 하나밖에 없던 사람들이 이 스포츠를 통해 시뻘겋게 달아오른 자신의 초상화를 본 것도 이 무렵이다.

사이먼 앤드 가펑클이 부른 노래 ‘더 복서’도 바로 생애를 다룬 장려한 서사시다.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집과 가족을 떠난 어린 소년’은 대도시의 ‘헛된 말로 가득 찬 약속, 그 거짓과 농담’에 패퇴하고 만다. ‘막노동이라도 하려고 돌아다녔지만 싸구려 술집의 아가씨들만 유혹의 손짓을 할 뿐’인 도시에 밀려난 소년은 결국 귀향을 마음먹게 된다. ‘살을 에는 듯한 뉴욕의 차디찬 바람’이 불지 않는 곳으로 떠나려 하는데, 저기 권투 선수가 고독하게 서 있다. 다들 분노와 수치심에 사로잡혀 이 도시를 떠나려고 하지만 온몸에 상처투성이인 그는 여전히 서 있다. 또 다른 링을 기다리며 그는 서 있다. 이 거룩한 노랫말이 끝나면 마치 고독한 선수를 위로하고 그 소년을 격려라도 하는 듯 이 위대한 곡의 후렴은 장려한 교향시로 펼쳐진다.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위엄 있는 허밍과 함께.

미국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들의 스포츠를 이전받은 세계 곳곳의 사람들에게 권투는 그런 것이었다. 링은 현실의 냉혹한 축소판이었다. 모두가 저마다의 피 말리는 생존 경쟁을 치르고 있으므로 링 위의 선수는 그 자신의 대리인이었다. 저 권투 황금시대의 챔피언들, 그러니까 김기수, 유제두, 홍수환, 박찬희, 장정구, 문성길 등은 거친 세상과 단독자로 맞서야 했던 70, 80년대 사람들의 초상화였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걸작 <성난 황소>가 있다. 실존했던 권투 선수 제이크 라 모타의 거친 삶을 로버트 드 니로가 열연한 작품으로 단순히 권투 영화라고 할 수는 없는, 세상의 공전과 자기 삶의 자전이 엇갈리고 뒤틀린 자의 고통과 회한을 다룬 작품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몸집이 불어난 왕년의 챔피언 로버트 드 니로가 독백한다. “아직도 귓가에 그 환호성이 들리는군. 몇 년 동안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맴돌았지. 내 삶은 순탄치 못했어. 내 비록 많은 관중들의 갈채를 받긴 했지만, 셰익스피어에 흠뻑 취해서는 내 왕국이 영원할 줄 알았지.”

그런 독백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화면은 젊은 날의 드 니로가 상대방의 강펀치를 맞고 얼굴이 연거푸 돌아가는 장면으로 이어지면서, 곧 이 선수의 거친 삶, 아니 우리 모두가 치르고 있는 이 냉혹한 대도시의 삶이 펼쳐진다. 단 한번만이라도 나의 링에 올라서, 딱 한번만이라도 내 안의 모든 것을 불살라버리고자 했던, 그러나 그런 ‘정면 승부’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 대도시에서 쓸쓸히 살아가는 삶 말이다. 영화의 끝에서, 왕년의 챔피언이 다시 독백을 한다. “난 권투 선수였지. 이렇게 동네 깡패가 아니라 정말 뭔가가 될 수도 있었다구. 정면승부하자. 그랬어야 했어. 난 챔피언이라구. 난 보스라구. 보스. 보스.” 그러고는 허름한 클럽의 무대에 선다.

권투에는 이런 복합적인 감정이 뒤엉켜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를 제대로 확인할 겨를도 없이 ‘세기의 대결’로 기대를 모았던 메이웨더와 파퀴아오의 경기는 싱겁게 끝났다. 권투 하면, 거침없이 몰아붙이는 인파이터와 이를 요령껏 피하면서 예리한 카운터펀치를 작렬시키는 아웃파이터를 연상하기 쉬운데, 일단 메이웨더와 파퀴아오라는 조합은 이런 극적인 순간을 기대케 하였다. 피를 흘리며 큰돈을 벌었으되, 그것을 화려하게 쓰는 ‘악마’와 사회에 기부하며 선행하는 ‘천사’의 대결이라는, 조금은 과장된 캐릭터도 그런대로 잘 형성되었다. 그런데, 현지 언론의 촌평대로 스테이크를 기다렸는데 샐러드만 먹다가 끝난 경기였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두 선수 모두 권투라는 스포츠가 허락하는 규칙을 엄정히 다 지키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능력과 전략에 따라 경기를 풀어갔으며 특히 메이웨더는 노련하게 지지 않는 경기 운영을 했다고 한다. 일리 있는 지적이지만, 역사적이거나 세기적인 대결에 등재될 만한 경기는 결코 아니었다. 그들은 너무 늦게 만났고, 모든 것을 다 이룬 다음에 만났으며 지지만 않는다면 잃을 게 전혀 없는 링 위에서 만났다. 이긴 자는 있지만 패자는 없는, 이상한 경기가 되었다.

그 바람에, 아직 자기 삶의 처절한 링 위에 있거나 아니면 여태 자신의 링조차 제대로 가져보지 못한 사람들이 고대했던 삶의 비극적 순간은 작렬하지 않았다. 단 한번만이라도 자기의 링에 올라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완전히 연소하고 싶은 이 세계 모든 도시인들의 활활 타오르는 욕망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경기였다. 모든 것을 이루고, 모든 것을 획득한 자들이 안전하게 운영한 경기는 이 야만적인 시대의 거친 삶과 무관해 보였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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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환경단체 로 구성된 ‘평창동계올림픽 분산 개최를 촉구하는 시민의 모임’이 어제 최문순 강원도지사 등 5명을 서울중앙지검에 형사고발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업무상 배임과 직무유기를 한 혐의라고 한다. 고위 공직자의 잘못된 결정에 대해 책임을 엄중히 묻고 무분별한 국제행사 유치와 낭비적 시설 건립을 경계하는 차원에서 제기한 공익소송으로 그 의미를 평가할 만하다.

현직인 최 지사와 김진선 전 지사에 대한 고발 이유는 강원도의 행정 책임자로서 알펜시아 리조트, 가리왕산 중봉 활강스키경기장, 횡계리 올림픽 개·폐회식장 등의 건설을 무리하게 추진함으로써 국가와 지방 재정에 막대한 손실을 입히고 돌이킬 수 없는 환경파괴를 발생시킨 것이라고 한다. 국회 ‘평창동계올림픽 및 국제경기대회 지원 특별위원회’ 위원장인 박주선 의원과 위원인 염동열 의원은 평창올림픽 지원 법령을 개악해 재정손실을 입혔다는 게 고발 이유다. 또 문대성 의원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서 1국가 1도시 개최 원칙을 폐기한 ‘아젠다 2020’ 논의 과정을 정부와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에 통보하고 분산 개최 논의를 앞장서서 이끌어야 할 직무상 책임을 저버렸다고 해서 고발당했다.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삼성 공식 후원 협약식’에서 조양호 평창동계올림픽대회 조직위원장(왼쪽)과 박상진 삼성 대외협력담당 사장이 협약 체결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_ 연합뉴스


평창동계올림픽이 대규모 환경파괴와 막대한 재정손실을 초래한다는 것은 그동안 시민·환경단체 등이 줄기차게 지적했던 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강원도, 평창조직위 등은 이들의 목소리에는 한사코 귀를 막고 예산낭비와 환경파괴를 자초하는 방식을 밀어붙이고 있다. 고작 며칠의 경기를 위해 수천억원을 쏟아붓고 500년 원시림을 베어내는 일까지 버젓이 감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패와 후유증이 뻔히 예상되는 정책이나 사업을 밀어붙인 공직자는 그 결과에 합당한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이번 소송이 법령 개악을 주도하고 분산 개최 논의나 노력을 회피한 공직자의 법적 책임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대규모 스포츠행사 유치와 그에 따른 무리한 시설 건립이 정치적 치적이 아니라 정치적 책임, 나아가서 법적 책임까지 져야 하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지금도 늦지 않다. 의지가 있고 엄중한 상황임을 안다면 말이다. 정치적 무리나 정책 판단 잘못으로 평창동계올림픽을 망치는 일이 없도록 분산 개최 등 합리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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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인재육성재단은 스포츠 강국이라는 위상에도 불구하고 스포츠 선진국들에 비해 기반이 취약한 국내 스포츠의 질적 성장을 이끌기 위해 ‘인재 육성’이라는 큰 사명감을 갖고 2007년 출범했다. 그동안 한국 스포츠계는 기초종목의 열세, 일부 선수에 의존한 메달 획득, 소수에 의존한 외교 활동 등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일환으로 체육 인재 양성을 위한 전문교육을 추진할 전담기관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2006년 7월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이 수립한 ‘차세대 체육 인재 육성 기본계획’을 통해 체육인재육성재단 설립이 추진됐다.

체육인재육성재단은 설립 이후 체육 영재, 은퇴선수, 심판, 지도자 전문역량 교육을 통해 매년 국내외 2000여명, 누적인원 약 9000여명에 대한 교육을 실시했다. 체육인재육성재단의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을 통해 엘리트 스포츠 선수들의 국제스포츠기구 임원 진출이 잇달았다.

사격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진종오는 2014년 국제사격연맹 선수위원에 당선됐으며, 핸드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홍정호는 2014년 아시아핸드볼연맹 기술위원에 임명됐다. 스키 국가대표 김흥수는 평창 동계올림픽 스키점프 경기위원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또 아시안게임 스키 금메달리스트 변종문 선수는 평창 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스포츠매니저가 되어 스포츠행정가로 진출하는 성공사례를 보여주었다.

광주여대 유니버시아드 체육관 (출처 : 경향DB)


최근 몇 년간의 대외 기관 평가에서 체육단체들 중 최고의 평가를 받으며 모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체육인재육성재단이 존폐의 기로에 놓여 술렁이고 있다. 지난 3월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에 따라 내년 3월까지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가 통합하기로 결정됐는데, 여기에 체육인재육성재단을 포함해서 통합해야 한다는 기획재정부의 방침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지난 4월15일 조세재정연구원이 개최한 ‘공공기관 기능 조정 방향에 대한 정책토론회’에서 현재 운영되고 있는 문화·예술 분야 공공기관 39개 중 46%인 50인 미만의 소규모 기관들은 통폐합해야 한다는 논리가 나왔다. 이들에 대한 종합적 지원체계가 미흡하다는 게 이유인데, 이처럼 일괄적으로 기능 조정 대상을 정하고 무조건 통폐합한다는 것은 획일적이고 비효율적인 처사라고 판단한다.

체육단체 통합에는 본부 및 종목별 가맹단체의 통합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이러한 시기에 통합 논의는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그동안 스포츠분야에서 유일하게 교육기능을 가진 체육인재육성재단마저 통합한다는 논리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오히려 체육단체 간 분산돼 있는 각각의 교육기능을 체육인재육성재단에 통합해 운영하는 것이 효율적인 방법이다.

스포츠 선진국인 독일도 체육회와는 별도로 각종 스포츠 지도자에 대한 교육기능을 전담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국가백년대계를 위해 진정으로 한국의 체육 발전을 위한 정책을 수립해주기를 바란다.


손환 | 중앙대 체육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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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아시안게임을 위해 새로 지은 경기장이 결국 가뜩이나 열악한 인천시 살림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고 한다. 어제 경향신문이 보도한 인천 경기장 르포 기사는 1조7000억원을 들여 지은 세계 최고 시설의 경기장이 아무 쓸모없이 방치되고 있는 한심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인천시가 당초 남구 문학경기장을 리모델링해 활용하라는 정부의 권고를 무시한 채 경기장 건설을 강행할 때부터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우선 4700억원짜리 주경기장은 아시안게임이 폐막된 지 6개월이 되도록 국제행사를 치른 적이 한 번도 없다. 앞으로 계획도 없다. 경기장에 값비싼 양잔디를 깔아놓고도 축구경기 한 번 열지 못하고 무용지물이 됐다니 참으로 기가 막힌다. 인천시는 먼지만 수북한 주경기장의 운영비로 연간 33억원을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주경기장을 포함해 신설 경기장 16곳의 연간 운영비는 134억원인 반면, 수익은 26억원에 불과한데도 대책이 없다. 적자를 메우기 위해 매년 혈세 108억원이 들어간다는 얘기다.

13일 인천 아시안게임 개·폐회식이 열렸던 인천 서구 주경기장이 편의·상업 시설 유치에 실패하면서 방치돼 있다. (출처 : 경향DB)


재정난을 가중시키는 골칫덩이인 주경기장에 영화관·예식장을 유치하려 했지만 교통불편 때문에 무산됐다. 중국 투자자에게 통째로 팔려던 계획도 불가능해졌다. 시민들의 땅을 강제수용해 관련법상 10년 동안은 매각할 수 없다. 결국 아시안게임을 테마로 한 관광단지 조성을 결정했지만 실제 수익을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이 정도로는 경기장 운영 적자를 메울 수도 없다.

인천시가 겪는 낭패는 제대로 된 사후 활용방안 없이 대형 경기장 건설을 밀어붙인 탓이 가장 크다. 전남도가 유치했던 국제자동차경주대회 포뮬러원(F1)이 지역에 엄청난 빚만 남긴 것도 마찬가지다. 외국의 나가노·소치 동계올림픽, 브라질 월드컵의 경우도 똑같은 후유증을 겪고 있다. 이제 평창 동계올림픽이 걱정이다. 강원도 역시 국제올림픽위원회가 개최 후유증을 우려해 분산 개최를 제안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강원도는 인천 아시안게임을 반면교사로 삼아 지금이라도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활용방안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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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 “은퇴식 때 아버지 품에 안겨
펑펑 울던 차두리 선수를 보며
힘겹고 암담하게 사는 청년들도
누군가에 안겨 울고 싶었을 게다”


한번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차가운 아스팔트로 추락하여 금세 이지러지고 말 운명이건만, 그래도 봄날에는 꽃이 핀다. 어느 시인이 장중하고도 난해한 어느 시에 썼다는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관용적 표현이, 지난해 4월 이후로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잔인한 실체적 진실로 굳어져버렸다.

국가는 쓰라린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모욕을 당하도록 방치해왔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저열한 공작으로 비인간적인 수모를 입히는 전략을 1년 내내 구사해왔으니 이런 잔인한 세월이 달리 또 어디 있으랴.

이런 모진 시간에도 우리는 일상을 살아간다. 차가운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되어 그라운드와 필드에 프로스포츠가 개막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버거운 도시생활의 활력을 찾고 순간 작렬하는 절묘한 타이밍의 세계를 찾아 경기장으로 몰려든다. 이러한 일상 또한 한 큰술 이상의 무게와 의미는 있는 것이다.

의미 있는 장면들도 꽤 많이 있었다. 당장 기억나는 장면은 2562일 만에 프로축구 K리그 복귀골을 터트린 박주영이다. 12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FC 서울의 박주영은 전반 9분 만에 동료들이 획득한 페널티킥을 성공시켰다. 공 한번 제대로 차기 위해 세상 곳곳을 떠돌다가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온 박주영을 위해 동료들은 페널티킥을 차라고 등을 밀었다. 이후 전개된 경기에서 FC 서울과 박주영은 화학적으로 완전히 결합된 경기력을 보이진 못했지만 그 한 장면만큼은 마음속을 울컥하게 한다.

박주영에게 큰 기대를 건 많은 사람들이 그가 유럽의 여러 클럽을 전전하는 과정을 보며 실망했고 또 브라질월드컵을 전후로 분노를 표시하기도 했다. 그렇기는 해도 어느 선수가 벤치에 앉아만 있고 싶었을 것이며 또 어느 선수가 일부러 경기를 망치고자 했을 것인가. 우리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박주영도 경기장 안팎에서 자주 타이밍을 잃고 말았는데, 천신만고 끝에 고향에 돌아왔으니 우선 박수를 치며 격려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박수는 지금 수고하고 지친 모든 사람에게 보내는 박수 소리와 같다.

3월31일 대표팀 은퇴식을 가진 차두리 선수도 기억할 만하다. 선수로서 그는 기복이 심했다.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전환하며 부침을 겪었고 그래서 2006 독일월드컵 때는 독일 분데스리가 경력의 선수임에도 축구화 대신 마이크를 들었다. 그 후, 일취월장하여 2010 남아공월드컵과 2011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괄목상대의 출중한 경기력을 보였으나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는 또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는 중에도 차두리 선수는 특유의 성실함과 낙천성을 잃지 않았다. 강력한 신체 조건에 더하여 섬세하게 경기 전체를 읽고 조율하는 능력까지 발전했다. 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차미네이터’ 같은 별명을 붙여가며 그를 사랑했고 또 부러워했다. 차두리에 대한 부러움과 사랑은 청년 세대의 일그러진 자화상과 겹쳐진 문화 현상이다.


대표팀 은퇴식 때 그의 아버지, 곧 차범근 감독이 그라운드에 등장하여 아들을 끌어안았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은퇴식을 치르던 차두리는 끝내 아버지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이 나라의 수많은 청년들도 눈시울이 뜨거워졌을 것이다.

누군가의 품에 안겨 저렇게 따스한 위로와 격려를 받아본 적이 언제였던가. 청년들은 기성세대가 일러준 대로 열심히 살아왔는데 바로 그 기성세대가 망쳐놓은 사회 구조 때문에 힘겨운 현실과 암담한 미래 앞에 불안하게 놓여 있다. 진심으로 따스한 위로 대신 사실상 공허한 채찍질에 불과한 이른바 ‘멘토’들의 격려사밖에 들은 게 없다. 그런 청년세대는 지금 이 순간 누군가로부터 진심어린 위로를 받고 싶어 한다. 누군가의 품에 안겨 한번 울어보고 싶다. 차두리에 대한 강렬한 감정은 바로 이러한 집합적 감수성이 응축된 것이다.

그리고 추신수 선수가 있다. 12일,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경기에서 추신수는 왼쪽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경기장에 나섰다. 텍사스 선수들이 왜 리본을 달았느냐고 물어보고 이에 추신수 선수가 설명하는 듯한 장면도 보였다. 아내 하원미씨가 제안하여 노란 리본을 달았다고 한다.

물론 모든 기호는 맥락에서 작동한다. 어떤 얘기인가 하면 해외에서 활동하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회 안에서, 대중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스타들이 스스럼없이 이러한 행동을 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게 지금 우리의 자화상이요 비극이다.

끔찍한 재난을 당한 자들을 위로하고 국가의 무책임하고 비인간적 처사에 대해 분노하는 것 자체가 특정한 정치적 행위로 해석되고 더러는 비난까지 받는 현실이다. 마음속에 깊은 슬픔을 가진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이 자연스럽게 그 슬픔을 표현하고 팬들과 함께 위로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조차 꺼려지도록 방치해 놓은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추신수 선수의 가슴에 달린 노란 리본은, 비록 그가 이 현실로부터 조금은 벗어나 자유롭게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점은 있지만,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의미 있는 장면이었던 것이다.

KBO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오는 16일 벌어지는 여러 경기장에서 시구 행사, 치어리더 응원, 앰프 사용을 하지 않기로 했다. 선수단 전원은 희생자에 대한 애도 묵념을 갖기로 했다. 지난주부터 여러 종목의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삼삼오오 추모와 위로의 뜻을 밝혔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그날의 슬픔과 억울함을 기리는 것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

이 잔인한 달을 모두가 함께 나누어 견디지 않으면 안된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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