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스포츠와 세상'에 해당되는 글 202건

  1. 2014.09.15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차라리 ‘씨름대회’가 낫다
  2. 2014.08.18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잊지 않겠노라고 말해주는 것
  3. 2014.07.28 [정윤수의 오프사이드]한국 축구계 새 출발과 ‘한국축구선수노동조합’
  4. 2014.07.07 [정윤수의 오프사이드]바꿔야할 건 축구협회
  5. 2014.07.02 [기고]월드컵 탈락 이후 얻은 것들
  6. 2014.06.27 [사설]‘월드컵 무승’ 한국 축구의 과제
  7. 2014.06.16 [경향마당]국제스포츠대회, 흑자는 불가능한가
  8. 2014.06.13 [여적]한국 축구 그땐 그랬지
  9. 2014.06.09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차분한 응원은 불가능한가
  10. 2014.05.19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월드컵, 세월호와 공감과 연대의 광장이어야
  11. 2014.04.14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시청률 격전장
  12. 2014.03.03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스포츠 국가주의와 가족주의
  13. 2014.01.20 [정윤수의 오프사이드]박지성 복귀 여부, 결론은 빠를수록 좋다
  14. 2013.12.30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축구장에도 보편적 가치 존중되어야
  15. 2013.12.09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즐기고 나누고 공부하는’ 축구를 위하여
  16. 2013.11.18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서투른 스포츠계
  17. 2013.10.28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이천수, ‘탕자 강박증’을 버려라
  18. 2013.10.07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우상의 눈물’ 흘릴까 두렵다
  19. 2013.09.16 [정윤수의 오프사이드]모자를 벗으시오, 천재가 오고 있소
  20. 2013.08.27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지단과 펠레의 장외 투쟁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정가에서는 ‘무대’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그를 따르는 자들이 ‘무성 대장’이라고 무슨 조폭들처럼 불러왔는데 이를 줄여 부르다보니 ‘무대’라는 별칭이 생겼다고 한다. 한번 결심하면 밀어붙인다고 해서 ‘무대뽀’의 무대라는 얘기도 있다. <수호지>에 나오는, 어리숙하고 실속 없는 무대라는 인물을 빗댄 말이라고도 하는데 그동안의 정치 이력으로 볼 때 김 대표가 제 잇속도 챙기지 못하는 어리숙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방송 카메라가 즐비한 가운데 일국의 국방부 장관에게 책상을 두드려가며 모욕을 준 인물 아니던가. 특히 지난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 발언을 보면, 별칭대로 김 대표가 ‘무대뽀’이거나 아니면 늘 세상을 아래로 굽어보는 ‘대장 놀이’에 익숙한 정치인임을 알 수 있다.

전후 사정은 이렇다. 이날 오후 국회 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씨름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방안 1차 포럼’이 열렸다. 여기에 김 대표가 축사를 하러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박승한 대한씨름협회장이 “입씨름 많이 하시는 것보다는 씨름대회를 해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면 어떤가. 대한씨름협회에서 심판을 보겠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이에 김 대표가 발끈해 “씨름인 여러분한테 조롱거리가 되는 것에 대해 참 기가 막힌다”고 했다.

이 보도를 접하고 나는 착잡한 심정에 사로잡혔다. 씨름협회장의 발언은 ‘조롱’은커녕 그저 인사치레에 불과했다. 농구협회장이라면 “어려운 문제, 3점슛으로 해결합시다”라고 할 수도 있고, 바둑협회장이었다면 “서로들 바쁜데, 알까기라도 해서 결론냅시다”라고 할 수도 있다. 파벌 싸움과 금품 비리로 얼룩졌던 그동안의 씨름협회 사정을 돌이켜보건대 씨름인들이 성난 민심을 전달해야 되겠다고 결심할 만한 근거도 희박하다. 내가 만약 김 대표라면 “내 몸집도 여기 계신 왕년의 천하장사 분들 못지않은데, 이 세미나실에는 모래가 안 깔려 있으니 다음에 한번 합시다” 하고 웃어넘겼을 것이다.

그런데 왜 김 대표는 발끈했던 것일까. 게다가 “중국한테 (씨름의) 유네스코 등재를 뺏기는 상황에 오는 동안 여러분들은 뭐 하셨느냐”라고 질타까지 했다. 과연 씨름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또 유네스코 등재 실패의 위기에 대한 안타까움을 진실로 표현한 것일까.

나는 ‘감히 씨름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에 대해 강력한 권위주의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짐작이 아니라 그의 말에 들어 있다. 현장 기자의 꼼꼼한 메모에 따르면, 김 대표는 “우리 국회의원들이 우리 국회 회의장에서 씨름인 여러분들한테 조롱거리가 되는 것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여기서 ‘우리’라는 단어는 40대 이상의 한국 남성들이 흔히 쓰는 동류의식의 강한 표현이다. 직장인들이 점심 때, 메뉴를 고르다보면, 40대 이상의 과장·부장들 입에서 ‘우린 그런 거 잘 안 먹지’ 하는 표현이 어김없이 나온다. ‘나’가 아니라 ‘우리’라는 말은, 남성들, 특히 남성 정치인들이 선호한다. 1997년 대통령 후보 토론 때 이회창 후보는 김대중 후보에 대해서까지 ‘에, 존경하는, 우리 김대중 후보는…’이라는 식의 표현까지 쓴 적 있다. 남성 정치인들의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이 단적으로 드러난 예다. 더욱이 김 대표는 ‘국회의원들이 국회 회의장에서’ 조롱거리가 된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아마 국회 바깥이었다면 뒤틀린 심사를 이런 식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우리 국회의원들이 우리 국회 회의장에서 조롱을 받았다’는 점을 분명하게 표현했다. 이 순간 국회라는 공간은 민심이 수렴되는 곳이 아니라 전업 정치인들의 개인 사무실로 전락한다.


▲ 씨름협회장의 인사치레에
‘감히 씨름하는 사람들이’라며
발끈한 새누리 김무성 대표
권위적인 ‘무대뽀’가 아닐까


정치인들은 그동안 씨름인을 포함해 수많은 스포츠 종목 종사자들을 손안의 공깃돌처럼 여겨왔다. 축구나 야구 같은 유력한 인기 종목은 물론이고 이른바 비인기 종목까지 정치인들의 위세가 실핏줄처럼 퍼져 있지 않은 곳이 없다.

비인기 종목 단체들은 대기업 회장이나 유력 정치인을 회장으로 ‘모시는’ 것에 사활을 걸기도 했다. 협회 운영을 위한 재원 마련이나 제도 개선 같은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그러나 협회 임원들의 노골적인 권력지향성이 더 컸다. 유력 정치인들에게 줄을 대서 협회 안팎에서 자신의 권력 행사를 용이하게 하려는 작태도 많았다. 정치인들 역시 경기단체 회장을 맡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일삼아왔다. 상시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알릴 수 있을뿐더러 이를 파이프라인으로 해서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유력 정치인들은 선거 때마다 스포츠 스타들을 병풍처럼 세웠고 이에 체육인들은 그런 행태가 비굴한 것인지도 모르고 여기저기 우루루 몰려다니며 권력의 한 터럭에라도 연줄을 대려고 해왔다.

물론 김 대표와 현 씨름협회 집행부의 관계가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수십년 동안 한국 스포츠가 존립해오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을’의 위치에 있는 체육단체와 유력 정치인들의 ‘악어와 악어새’ 관계를 생각하건대, 김 대표로서는 ‘감히 우리 국회에서 씨름인한테 조롱을 받다니’ 하고 발끈한 것이다. 정치와 체육의 심각한 불평등 관계에 더하여 김 대표 본인의 강한 권위의식이 합쳐져 이 같은 발언이 터져나온 것이다.

김 대표는 문제의 발언을 행한 지 이틀 뒤 마포구 상암동 한강공원에서 열린 ‘희망나눔 철인 3종 경기 대회’에 참석했다. 사전에 약속된 일정이겠지만, 자신의 발언에 대한 체육계 안팎의 여론을 무마하는 데는 썩 절묘한 정치행보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무대’라는 별칭이 <수호지>의 어리숙한 인물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얘기다. 권위의식으로 똘똘 뭉친 ‘무대뽀’의 ‘무대’라면 모를까.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지난 주말, 일제히 개막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가슴이 뭉클한 장면이 있었다. 뉴캐슬 대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가 열린 뉴캐슬의 홈구장 세인트 제임스파크 경기장. 수많은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무거운 침묵의 시간이 먼저 흘렀다. 뉴캐슬의 열혈 팬 두 명을 추모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지난 7월18일, 우크라이나 영공을 지나던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가 미사일을 맞고 격추당한 사건이 있었다. 죽음이 일상화된 이 살벌한 세계적 상황에서도 이 사건은 내전 와중에 벌어진 정교한 조준 타격이었다는 점에서 전율을 불러일으켰다. 그 비행기에 뉴캐슬의 팬 두 명이 타고 있었다. 뉴캐슬의 1군 경기는 물론 유스팀 경기까지 찾아다니며 응원해 온 존 알더(63)와 리암 스위니(28)는 뉴캐슬 선수들의 프리시즌 투어를 보기 위해 탑승했다가 사망하고 말았다.

경기장의 팬들은 두 차례에 걸쳐 그들을 추모했다. 우선 경기 전에 슬픔에 잠긴 유족들을 그라운드 중앙으로 초빙하여 추모의 화환을 고이 눕힌 채 침묵의 1분을 가졌다. 그리고 전반전 17분경, 모두가 1분여 동안 추모의 박수를 쳤다. 17분은 항공기가 격추된 7월의 그 비통한 시각이었다.

이 추모에 앞서, 뉴캐슬의 숙적인 선덜랜드 팬들도 두 명을 위한 모금에 적극 나섰다. 우리의 태백산맥처럼, 잉글랜드의 척추로 불리는 페나인산맥의 북쪽에 타인강이 흐르고 남쪽에 위어강이 흐른다. 타인강이 흐르는 곳에 뉴캐슬이 있고 위어강이 흐르는 곳에 선덜랜드가 있다. 영국 산업혁명기를 대표하는 탄광 도시들이다. 이 두 팀이 맞붙는 ‘타인위어 더비’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수많은 더비 매치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충돌로 유명하다.

그랬는데, 뉴캐슬 구단이 홈페이지 등을 통해 두 명의 팬을 추모하기 시작하자 곧장 선덜랜드 팬들이 모금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선덜랜드와 뉴캐슬은 아주 깊은 라이벌이지만 세상에는 축구 경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게 선덜랜드 팬들의 호소였다.

고국 독일에서 히틀러 파시즘을 잔혹하게 겪었고 망명지 미국에서 할리우드 상업 문화를 목격한 사상가 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 <프리즘> 등의 저작에서 현대를 ‘총체적 기만’이라고 정의하면서 스포츠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비판했다. 독일의 파시즘이나 미국의 거대한 문화산업이나 대중의 욕망을 통제하여 특정한 감정과 행동을 유발시킨다는 점에서 동일한 원리를 갖는다고 그는 보았다. “스포츠는 파시즘 대중 집회의 모델이다. 잔혹함과 공격성을 권위주의적으로 훈련된 경기 규칙과 결합시켰다”고 아도르노는 비판했다.

아도르노가 날카롭게 비판한 상황은 가난과 독재의 시련을 겪은 제3세계의 현대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1978년의 아르헨티나 월드컵은 독재자가 축구를 어떻게 효과적인 통치 수단으로 삼을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 대회였다. 사실 남의 일이 아니다. 전쟁 이후, 가난을 견디고 독재를 이겨내야 했던 우리로서는 축구를 포함한 많은 스포츠 행사에서 ‘욕망의 통제와 특정한 감정 생산’, 즉 국가주의의 섬뜩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뚜렷한 가르침을
잉글랜드 축구장서 팬들은 실천했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스포츠는, 특히 축구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몰입하는 경기에서는 반드시 ‘감정의 파시즘적 통제’만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1950년대 이후 영국의 버밍엄 학파가 스포츠를 적극적으로 연구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리처드 호가트, 레이먼드 윌리엄스, 스튜어트 홀 등은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 혹은 프랭크 리비스로 대표되는 전통주의자에 맞서 스포츠를 비롯한 대중문화를 통해 분출되는 하위 계층의 격렬한 감정 표출을 옹호했다. 이를테면 축구장에서 나타나는 남성 팬들의 ‘형제애’는, 훌리건으로 매도될 만한 혐의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근현대사를 지탱해온 억압에 대한 저항과 끈끈한 공동체 정신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분석이다.

영국의 대표적인 사회파 감독 켄 로치의 2009년 작 <에릭을 찾아서>는 이들의 분석과 옹호가 틀리지 않았음을 영상으로 입증한다. 고용 불안과 가족 관계의 파탄에 처한 주인공 에릭이 자신이 열렬히 흠모하는 또 다른 에릭, 즉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빅스타 에릭 칸토나와 정신적으로 만나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이때 같은 직장의 동료들이 끈끈한 우애와 연대를 보여준다.

잉글랜드 명문 클럽 아스널의 골수팬이자 소설가로 유명한 닉 혼비는 <피버 피치>에서 이렇게 쓴다. “팬이 된다는 것은 대리만족이 아니다. 축구를 보는 것은 결코 수동적인 활동이 아니며 실제로 뛰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느끼는 기쁨은 남의 행운을 축하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운을 자축하는 것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 흠모하는 선수가 실수했을 때나 성원하는 팀이 패배했을 때, 그 외로움과 허탈함을 함께 나누는 것도 팬의 일이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 당신은 혼자 있지 않다고 다정하게 말해주는 것, 잊지 않겠노라고 말해주는 것.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뚜렷한 가르침을 저 멀리 잉글랜드의 뉴캐슬과 맨시티와 선덜랜드의 팬들도 축구장에서 실천했다.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고 했던가. 브라질월드컵의 쓰라린 패배 이후, 한국 축구계가 마침내 낡고 닳은 외양간을 고치기 시작했다.

우선, 엘리트 축구와 생활 축구로 극단적으로 양분된 한국 축구의 생태계를 단일한 우산 아래에 재구성하는 작업이 시도되었다. 대한축구협회와 한국생활체육전국축구연합회로 양분된 현 체제를 ‘1종목 1단체’로 통합하되 그 방법과 시기를 전담할 태스크포스(TF)를 문화체육관광부(문화부), 대한체육회, 축구협회, 프로축구연맹, 생활체육전국연합회 등의 인사들로 구성한 것이다.

문화부 체육국장을 비롯하여 각 기관의 부회장, 사무총장, 기술위원장 등 축구 행정에 관한 한 막강한 권한을 지닌 인사들이 참여했다. 정치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는 장관은 물론 각 기관의 상징적 인물인 회장을 제외하고 보면 이들이 업무의 지속성과 실질적 권한이라는 측면에서 최고 파워맨들이다. 나는 십수년 동안 문화와 스포츠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숱한 TF를 겪었지만 이만큼 막강한 인사들로 구성된 팀을 본 적이 없다. 만약 일이 어긋날 경우, 당연히 이 최고 책임자들은 견책을 받아야 한다. 그 정도로 비상한 책임감으로 축구 생태계를 풍요롭게 만들기를 바란다.

다음,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으로 이용수 교수가 취임했다. 내친김에 축구협회의 정관을 미래지향적으로 고치는 일도 필요하지만, 급한 대로 적재를 적소에 선임했다는 점에서 반갑다. 기술위원회의 목적과 기능에 대한 축구협회의 정관은 모순적이다. 적극적 관점에서 보면 각급 대표팀의 기술 발전과 감독 및 선수 발굴에 있어 막강한 권한이 있지만 소극적인 관점에서 보면 정보 제공이나 자료 협조 수준으로 전락하기 쉽다. 기존의 기술위는 당대 최고의 전문가들이 수시로 머리를 맞대고 급변하는 축구의 미래를 탐사하는, 그런 인적 수준도 되지 못했고 공적 헌신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아예 그러한 욕망 자체가 없어 보였다.

이용수 위원장은 축구계 안팎에서 두루 신망을 얻고 있는 인물이다. 누구와도 격의 없이 호형호제하는 유형과는 거리가 멀다. 원만하고 소탈하지만 어떤 계략을 품고 인간관계를 복잡하게 형성하는 경우는 아니다. 만약 누군가가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면 그것은 축구계 안팎의 복잡한 인간관계에 대한 하소연 때문이 아니라 한국 축구가 정녕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대승적 발전 방향을 찾아내기 위해서이다. 그런 점에서 이용수 위원장의 날카로운 진단과 합리적인 해법을 기대한다. 무엇보다 현대 축구의 패러다임 변화를 분명하게 밝혀내되 축구의 역사성, 사회성, 문화성까지 두루 살펴 한국 축구가 ‘월드컵’이라는 섬에 고립되지 않도록 해주길 바란다.


▲ 일부 스타들을 제외하면 열악한 고용환경 내몰려
비정규직 지도자 노조 이어 선수 노동자도 노조 필요


이상의 변화와 더불어 반드시 평가할 만한 일은 ‘한국축구인노동조합’이 출범한 일이다. 초·중·고교의 축구 지도자 76명을 중심으로 축구인노조의 법적 당위성과 현실적 필요성을 열렬히 검토하여 지난 17일 고용노동부로부터 노조 신고필증을 교부받았다. 축구협회 기술위원장과 부회장까지 역임한 이회택씨가 초대 노조위원장을 맡기로 했다는 소식도 흥분되는 일이다. 축구계를 통틀어 산전수전 다 겪은 진짜 축구인으로 이회택씨와 견줄 만한 인물이 한둘 정도 있을까 말까 하다. 그 정도로 최상급 인물이다. 메시처럼, 그 역시 결심만 하면 충분히 판을 뒤흔들 수 있는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축구 지도자는 홍명보나 황선홍만 있는 게 아니다. 왕년의 스타였거나 프로 출신이지만 초·중·고교의 지도자로 묵묵히 터전을 닦고 있는 사람들이 숱하다. 그들의 ‘노동 조건’은 매우 열악하고 비인간적이다. 100만원 남짓한 월급으로 어렵게 생활하는 지도자가 한둘이 아니다. 정규직 교사와 달리 이들의 신분은 학교장의 권한에 손쉽게 휘둘리는 비정규직이다. 유망주 육성을 위한 장비, 기술, 연습 등에 필요한 거의 모든 비용을 학부모들이 감당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폭력, 승부조작, 금품 수수 같은 일도 발생한다. 착하고 성실한 지도자 개인이 이겨낼 만한 현실이 아니다. 그래서 축구인노조가 탄생했다. 취임 일성으로 “축구 인생의 마지막 봉사”라고 밝힌 이회택 위원장의 곧은길을 걷는 강직함을 노조원들과 함께 축구 지도자들의 파괴된 일상을 회복해내기 바란다.

이상의 일들이 지난주에 급속히 전개되었다. 그야말로 한국 축구의 환골탈태, 즉 시스템의 대변혁이 예고된 것이다. 나는 여기에 하나를 추가하고 싶다. ‘축구선수노동조합’이다. 오래전부터 이에 대하여 강조하여 왔으나 반향은 적었다. 구단과 개별적으로 한시적 계약을 맺는 ‘선수’라는 신분 및 협회, 연맹, 구단에 비하여 열등한 위치에서 분열되어 있는 ‘을’이라는 조건이 노조 결성을 어렵게 해왔다. ‘노조’에 대한 근거 없는 편견과 두려움도 작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더 늦출 수 없다. 스타들을 제외하면 대체로 열악한 현실과 불안한 고용 환경에 내몰려 있다. 아니, 열마디 말이 필요 없다. 문화부에도 노조가 있고 대한체육회에도 노조가 있다. 축구협회에도 노조가 있으며 이제 지도자들도 노조를 결성했다. 그런데 정작 ‘몸’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의 결사체가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선수들의 우람한 결사체, 곧 ‘한국축구선수노조’가 출범할 때 비로소 한국 축구의 외양간이 완벽하게 고쳐질 것이다.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홍명보 감독이 유임됐다. 현 상황에서 달리 대안이 없다. 월드컵에 비해 내년 1월 호주에서 개최되는 아시안컵 대회가 관심이 덜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비중으로 보자면 월드컵 다음으로 중요한 대회이며 어떤 점에서는, 특히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대표팀의 환골탈태를 도모할 수 있는 중요한 대회다. 이영표 해설위원의 말대로 아시안컵은 ‘경험’을 쌓는 대회가 아니다. 홍 감독을 경질하면 한 달 가까이 후임자를 물색해야 하고 어렵사리 초빙된 후임자가 선수들을 파악해 자기 철학에 맞는 팀을 구축해야 하는데, 아무리 빨리 잡아도 늦가을에나 가능하다. 현재로서는 유임이 타당하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절차는 타당했는가, 향후 대표팀 발전 계획을 조직적으로 구상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는 결국 협회 기술위원회의 위상 문제로 집약된다.

2014 브라질월드컵을 위해 대한축구협회는 23명의 지원팀을 구성했다. 허정무 부회장을 단장으로 언론, 기술, 재활, 장비, 조리 등에 걸쳐 역대 최대 인원이다. 지원팀이 꼼꼼히 챙긴 짐만 2.5t 트럭 2대 분량이다. 유니폼, 훈련 셔츠, 공인구, 치료기, 영양제, 링거액, 된장, 고추장 등 무려 4t이 넘는 짐이다.

이를 실무적으로 총괄한 사람이 황보관 지원팀장이다. 지원 품목 구성에서 각 파트 실무자의 역할 배분과 조정, 일과표에 따른 세부 사항 진행 등에 대한 실무 책임을 맡았다. 이 역할을 맡지 않으면서 지원팀장이라는 호칭을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가 지원팀장으로 브라질에 간 이상 세부 사항을 일일이 챙기는 일을 했으리라는 것은 합리적인 추론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놀라운 것은 그가 대한축구협회 기술분과위원장이라는 사실이다. 기술위원장이자 지원팀장이라, 이상하지 않은가. 기이한 불균형이 느껴진다. 역대 월드컵 사상 이 정도로 기술위원장의 위상이 추락한 적은 없다. 1998 프랑스월드컵 때는 조중연 전 회장이 단장 겸 전무 겸 기술위원장이었다. 이회택 전 부회장도 크고 작은 대회에 기술위원장이자 단장 자격으로 참여했다.

나는 지금 지원팀장 역할이 사소한 실무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대단히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기술위원장이 겸직해서는 곤란하다. 물론 기술위원장으로서 할 일이 더 엄중하다. 무려 23명의 지원팀 업무를 일일이 챙기면서 동시에 기술위원장의 일을 해낼 수 있을까.


▲ 정보 파악과 기술분석해야 할 기술위원장이 지원팀장 맡다니
홍 감독 유임은 대안부재라지만 축구협회 조직·인사 개혁해야


월드컵 기간에 한시적으로 맡은 직책이 아니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 협회는 작년 5월 조직개편을 하면서 황보관 기술위원장을 기술교육실 산하 대표팀 지원팀장으로 발령냈다. 그때 이미 기술위원회의 위상은 추락해 버렸다. 협회는 소신 있게 발언하고 늠름하게 행동하는 위원장이 아니라 일반 직원으로 성실하게 근무하는 팀장을 요구한 것이다. 이는 황보관 개인의 인격이나 성실성 여부를 따져묻는 게 아니다. 그가 빈틈 없이 팀장 업무를 수행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리에 의하여 역할이 규정되면 조직원으로서 그에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급변하는 현대 축구 분석이나 각국 축구 문화의 역사성, 사회성, 문화성 연구와 상대 팀의 축구 문화, 전술에 대한 파악 등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협회가 기술위원회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 한국 축구의 발전 전망에 있어 기술위원회의 위상과 역할은 무엇인가, 그 총괄 책임자인 위원장에게 협회는 어떠한 자격을 요구하고 어떤 권한을 위임하는가.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기술위원회와 관련한 협회 정관 제51조를 보자. 1항 ‘목적’을 보면 “선수와 지도자 양성, 각급 지도자와 선수의 선발, 축구 기술 발전과 교육” 등이 위원회의 일이다. 이것만 보면 한국 축구의 모든 것이 기술위원회로 집중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2항 ‘기능’을 보면 명실이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거의 모든 일이 “제안, 건의, 추천, 자문, 협조”다. 예컨대 “각급 지도자, 선수 선발에 대한 추천 및 자문” “각급 대표팀 관련 자료 제공 협조”라는 식이다. 명실이 상부하지 않는 기이한 조항이다. 자문을 해도 듣지 않으면 그만이고 협조를 해도 참고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렇게 희뿌연 조직이 되면 결국 해당 인사의 나이, 경험, 인간관계가 압도하게 된다. 중량감 있는 인사가 오면 51조 1항에 따라 비중 있는 역할을 한다. 상대적으로 젊고 실무적인 사람이 오면 51조 2항에 따라 협조하는 정도로 추락한다.

알제리와의 조별리그 2차전 때, 한국은 러시아전에서 뛴 11명을 그대로 내보냈다.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는 선발이었다. 반면 알제리는 어떠했는가. 골키퍼와 수비진을 제외하고는 공격라인 전체가 통째로 바뀐, 전혀 다른 팀이었다. 가공할 만한 전방 압박과 좌고우면하지 않고 무서운 속도로 전진하는 전혀 새로운 팀에 의해 홍명보호는 무너졌다. 치밀한 정보 파악과 기술 분석에서 밀린 결과였다. 아무리 홍 감독 체제 안에 별도의 기술 분석 파트가 있다 해도 허정무 단장과 황보관 기술위원장은 바로 그 막중한 권한과 책임의 자리에서 씻을 수 없는 자책감을 느꼈어야 했다. 흔히 ‘환골탈태’라는 말을 쓰는데, 뼈대를 바꾸고 낡은 태를 벗어버린다는 뜻이다. 조직 구도와 인사, 양 측면에서 확실히 바꾸라는 얘기다. 유임 결정을 내렸으면 이 정도의 개혁 의지도 실천되어야 한다.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잘츠부르크의 소금광산 깊은 곳에 잎이 떨어진 나뭇가지를 던져 넣어두고 몇 달 뒤에 꺼내보면 나뭇가지는 간데없고 온통 반짝이는 소금결정으로 덮여 수정처럼 아름답게 빛난다.”

스탕달의 <연애론>에 등장하는 그 유명한 ‘결정 작용’이다.

연애에 빠지면 곰보자국도 다이아몬드처럼 보이고, 처가의 말뚝만 보고도 절하게 된다는데, 축구? 그렇다. 우리 선수의 태클은 절묘한 기술이지만, 상대편 반칙은 퇴장감으로만 보이며 말이 ‘응원’이지 민족주의의 이기적 유전자들의 ‘결정 작용’을 넘어섰다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지 모른다.

며칠 동안 조심스러웠지만 월드컵에 빠지고 싶었다. 정치, 경제, 사회 어느 것 하나 시원한 소식이 없었기에 브라주카 한 방에서 위안을 얻으려고 정반대 시차임에도 새벽 출근길 거리로 나섰고 TV 앞에 모여 응원했다. 그러나 한 가닥 기대는 무너졌고, 프랑스월드컵 이후 1승도 거두지 못한 용사들의 쓸쓸한 귀환 길에는 급기야 꽃 대신 엿이 등장하기까지 했다.

'제발'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제 다른 나라 경기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참 편하다. 응원단의 환호성이 들리고, 선수들의 기량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곤한다. 빠르게 달리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멈춰 서니 보이는 것처럼, 승리지상주의나 무조건 열심히 뛰는 모습이 아닌 즐기는 것,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동안 ‘일상으로의 회복’이 절실했다는 방증이다. 대형사고와 시행착오의 아픔 속에서도 한민족 특유의 ‘끈기’와 ‘역동성’의 자산은 남아 있고, 한국축구 역시 ‘투지’와 ‘승부 근성’의 민낯은 살아 있다. 그렇기에 창의성의 바탕 위에 정책이 활성화되고, 민의의 장이 정상화되며, 거대한 물동량의 발진 속에 코리아 브랜드가 세계로 확산되는 나라, 또 다른 절반의 한 해 출발선에서 신발 끈을 다시 매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황용필 | 국민체육진흥공단 지점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반전은 없었다. 마지막까지 기대했던 브라질의 기적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2014 브라질월드컵 한국 대표팀은 어제 열린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0-1로 졌다. 벨기에에 수적 우위를 점하고도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 한국은 열심히 벨기에를 몰아붙였으나 골 결정력이 부족했다. 새벽잠을 설치며 응원한 국민들은 실망했고, 마지막 투혼을 불사른 선수들은 운동장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이로써 한국은 1무2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H조 최하위에 그치며 쓸쓸한 귀국길에 오르게 됐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무승’의 치욕을 당한 건 1998년 프랑스 대회 이후 16년 만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진출과 2010년 남아공월드컵 16강 진출 등을 통해 쌓아올린 축구 강국의 위상은 브라질월드컵을 통해 여지없이 실추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게 축구다. 축구공은 둥글고, 경기는 질 수도 있다. 세계 1위 스페인도 탈락한 마당이다. 좀 더 냉정하게 말하면 브라질월드컵에서 거둔 성적이 한국 축구의 현주소다. 한국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57위로 월드컵 본선 진출 32개국 중에서 두 번째로 낮다. 세계적인 수준의 기량과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는 얘기다. 이제는 모두가 장밋빛 기대치와 싸늘한 현실의 차이를 분명히 직시하고 한국 축구의 미래를 다시 설계할 때다.

손흥민(가운데)이 27일 브라질 상파울루 코린치앙스 경기장에서 열린 브라질월드컵 H조 벨기에와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 득점 기회를 놓친 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며 아쉬워하고 있다.(출처 :경향DB)


이번 월드컵은 뼈아픈 교훈과 숙제를 한국 축구계에 남겼다. 대표팀은 주어진 여건에서 나름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전술과 조직력, 기술과 빠르기는 물론 한국 축구 특유의 투지와 패기마저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미 이런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다고 한다. 대한축구협회는 월드컵 지역예선 때부터 제대로 된 절차도 거치지 않고 조광래 감독, 최강희 감독, 홍명보 감독으로 사령탑을 교체하며 금쪽같은 시간을 까먹었다. 선수 선발 잡음과 대표팀의 리더십 부재, 경험 부족도 이번 월드컵 실패의 원인이라는 평가다.

우리의 브라질월드컵은 끝났다. 이제 축구계 전체가 지혜를 모아 러시아월드컵을 준비할 때다. 실패에서 배우는 교훈은 더 값져야 한다. 이번 대표팀은 어느 때보다 젊은 피로 구성되었기에 가능성은 아직 많다. 월드컵 경험을 토대로 벽돌 쌓듯 차근차근 내공을 키워 나간다면 4년 뒤에는 축구 강국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승부는 이제부터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국제스포츠대회를 장밋빛으로만 보던 시대는 지났다. 경기장과 인프라에 수십조원을 투자하고도 기대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결국 빚더미에 앉는 개최도시의 사례도 늘고 있다. 1976년 몬트리올,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경우 대회를 잘 치르고도 과도한 시설 투자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재정적자의 늪에 빠져들었다.

세계대학스포츠 축제인 유니버시아드를 준비하면서 이들 실패한 도시들의 전철을 밟지 않는 것이 최대의 과제였다. 2008년 대회 유치부터 ‘저비용 고효율의 흑자대회 실현’, ‘시민에게 빚을 남기지 않는 대회 개최’라는 목표를 내세운 이유이기도 하다.

유니버시아드는 규모가 날로 커져 2015년 광주대회에는 170개국 2만여명의 참가가 예상된다. 그만큼 준비도 복잡해졌고 모든 준비과정에 국제기구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 국제대회 특성상 조직위원회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여지도 줄었다. 이 때문에 대회준비 첫 단계에서부터 3가지를 염두에 두었다. 첫째, 경기장 신설을 최소화하고 기존 시설을 최대한 활용한다. 둘째, 국제연맹과의 적극적 협상을 통해 불필요한 예산은 줄인다. 마지막으로 마케팅권리를 최대한 확보한다는 것 등이다.

2015 광주유니버시아드 성공 기원하는 손연재 (출처: 연합뉴스)


올림픽과 더불어 세계종합대회인 광주유니버시아드는 68개 경기장에서 21개 종목의 경기가 치러진다. 가장 큰돈이 들어가는 경기장의 경우 수영장, 다목적 경기장, 양궁장 등 3개의 시설만을 신축하고 나머지는 기존시설을 활용했다. 신축 경기장마저도 대학 내에 둬 대학이 토지를 기부하는 방식으로 수백억원을 아끼고 사후활용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국제기구와의 끈질긴 협상 끝에 마케팅 권리도 100% 조직위에 가져왔다.

그 결과 지금까지 정부로부터 승인받은 총사업비보다 무려 1220억원을 줄일 수 있었다. 국내 개최 국제스포츠대회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 5월 정부의 재정전략회의에서 광주유니버시아드가 국제스포츠대회의 우수 재정모델이자 표준모델로 발표된 배경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에 지나친 기대를 걸거나 사후 활용이 떨어지는 시설에 비정상적인 투자를 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개최도시의 입장에서 스포츠대회는 사회간접자본과 스포츠·관광 인프라를 해결하는 방안이 되기도 한다.

광주의 경우 정부가 KTX 고속철도 호남선에 8조8000억원을 투입하여 유니버시아드 개최 이전인 연말 완공을 앞두고 있다. 착공 5년 만이다. 호남선 복선화가 38년이 걸렸던 전례로 보자면 놀랄 만한 속도다. 도심의 낡은 아파트를 선수촌으로 재건축하는 방법으로 지역의 해묵은 숙원을 해결할 수도 있었다. 화장실에 한 번 다녀오면 4회 말이 지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낙후했던 야구장을 새롭게 단장하는 계기도 되었다. 지방재정여건으로는 요원했을 일들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역의 경쟁력과 더불어 나라의 품격을 높이는 국제스포츠대회 운영을 고민한다면 흑자대회는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다.


김윤석 | 광주유니버시아드 조직위 사무총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일본을 이기지 못하면 현해탄에 빠져 죽겠습니다.”

1954년 한국 축구계 대표들이 대통령 앞에서 약속 아닌 약속을 했다. 전설처럼 전해오는 이야기지만 이런 비장한 맹세가 없었으면 한국의 사상 첫 월드컵 진출은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다. 일본과 홈 앤드 어웨이로 예선을 치러야 하는데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 선수들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아 한국 기권으로 처리될 뻔했기 때문이다. 이때 축구계는 두 경기 모두 어웨이로 치르겠다는 결심을 했고, 대통령 앞에서 필승의 각오를 다지면서 현해탄을 건넌 것이다.

결국 일본을 꺾고 본선 티켓을 따냈지만 그라운드를 밟기까지는 멀고도 험한 여정을 거쳐야 했다. 양복을 외상으로 맞춰입고 장도에 오른 한국팀은 미군 군용기를 타고 일본 하네다 공항으로 갔다고 한다. 거기 가면 유럽 가는 비행기가 많은 줄 알았지만 예약하지 않은 비행기표는 그때도 없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태국 방콕으로 갔고, 거기서 인도 캘커타와 이탈리아 로마를 거쳐 스위스로 들어갔다. 취리히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서울을 떠난 지 엿새 뒤, 경기가 이틀밖에 안 남은 때였다.

사상 최초의 한.일전이자 54년 월드컵 극동지역예선을 알리는 포스터 (출처: 경향DB)


한국이 상대해야 할 나라는 당시 세계 최강 헝가리였다. 국제대회에서만 32연속 무패행진을 하던 천하무적 헝가리와 싸운 결과는 0 대 9. 이 점수차는 월드컵 역사에서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는 기록이다. 한국 선수들은 아무도 이 결과에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경기장에 쓰러지면서도 최선을 다해 싸운 아름다운 패배였기 때문이다. 헝가리 구스타프 감독이 “한국팀은 사자처럼 용감했다”고 한 말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1954년은 한국전쟁이 끝난 다음해로 1인당 국민소득이 70달러 정도였다. 헐벗고 굶주리던 세계 최빈국이 불굴의 투지 하나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것이다. 그로부터 6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400배쯤 잘살게 되었고, 월드컵 본선에 여덟번 연속 진출할 만큼 축구에서도 강국이 됐다. 이제 우리 팀이 ‘목숨 걸고 싸우기’를 바라는 국민은 없다. 선수는 최선을 다하고, 국민은 보고 즐기면 족하다. 브라질월드컵에서 한국의 멋진 승부를 기대해본다.


이종탁 논설위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너무 많은 사람들, 너무 많은 사람들, 싫다. 나는 여기 있겠다.”

2006년의 일이다. 독일의 고도 바이마르. 만난 지 10분 만에 축구와 월드컵으로 친구가 된, 어느 식당 주인 얘기다. 그는 테아테르 광장 한쪽에서 작은 식당을 하고 있었다.

그날, 독일 대표팀의 경기가 있었기 때문에 식당은 한산했다. 며칠째 고속도로 휴게소의 소시지 음식에 질렸던 나는 모처럼 한가로운 식당에 앉아 따스하고 부드러운 음식을 먹고 싶었다. 조치훈이 반상을 내려다보듯 신중하게 선택을 했는데, 이번에도 소시지 볶음이었다. 그래도 휴게소보다는 맛있었다.

우리는 독일 월드컵 얘기를 주고받았다. 나는 월드컵 때문에 관광객이 많이 모여들어 좋겠다고 물었다. 그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관광객이 적다는 건지 많이 모여드는 게 싫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월드컵 열기로 사람들이 광장에 많이 모이니 좋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광장에 적게 모였다는 건지 많은 사람들이 광장을 채우는 게 싫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의 생각을 또렷하게 알고자 다시 물었다. 월드컵 때문에 사람들이 광장에 많이 모이니까 좋지 않으냐고. 그러자 빌헬름 발터 에른스트가 대답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 너무 많은 사람들, 싫다. 나는 여기 있겠다.”


그가 손사래를 치면서 ‘매니 매니 피플’을 두세 번씩 반복했기 때문에 그제야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싫어했다. 식당 주인이라서 손님이 다들 광장으로 갈까봐 그러는 걸까, 그것은 아니었다. 조용한 성격이라 시끄러운 것을 질색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었다. 그는 말했다. 바이마르에서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면 끔찍한 일이 터졌다고. 저 히틀러 시대와 그 이후 동독 시절에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완전군장을 한 채로 바이마르 광장을 밟고 지나가면 주민들이 광기와 공포에 휩쓸렸다고 했다.

그가 축구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테이블 앞에 자그마한 구식 텔레비전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와 함께 독일과 에콰도르 경기를 잠시 봤다. 공이 구르기 시작하자 역시 그는 독일인답게 텔레비전에 몰두했다. 헤어질 무렵 그가 말했다. 부켄발트에 가보라고, 차로 10여분 만에 갈 수 있다고, 거기 가면, 거기 가면, “매니 피플, 매니 매니 피플….”

부켄발트. 폴란드 아우슈비츠와 더불어 히틀러의 악명 높은 유대인 집단수용소가 있던 곳이다. 홀로코스트 영화에 자주 나오는 장면, 즉 앙상하게 피골이 상접한 유대인들이 멍한 표정으로 철조망에 기대고 있는, 바로 그곳이었다. 나는 그제야 왜 에른스트가 광장을 싫어하는지, 왜 이곳 부켄발트에 가보라고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곧 월드컵이다. 이맘때마다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대~한민국’이다. ‘하나 되는 대~한민국’ ‘힘을 내자 한국’ ‘나가자 대한건아’ 이런 말들이 홍수처럼 넘쳐나는 계절이다. 이때마다 나는 문득 바이마르의 식당 주인을 떠올린다. 물론 그 도시가 겪은, 괴테와 실러 동상 앞에서 히틀러가 거행한 군사 열병식이나 그 친구가 직접 체험했을 구 동독 시절의 강력한 광장 사열식의 풍경이 우리와 같을 수는 없다. 우리에게 2002 월드컵 광장 체험은 ‘국가주의적 광기’나 ‘집단주의적 열병’이라기보다는 활기차고 다양한 삶에 대한 열망의 측면이 더 컸다.

그러나 이제는 월드컵 때마다 들려오는 ‘하나 되는 대~한민국’이 답답한 관성으로 굳어지는 듯하다. 모든 언어는 맥락 속에서 발화되고 수신된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하나 되는 대~한민국’과 청와대의 ‘국가개조론’의 거리를 재보고 싶은 것이다. 대표팀을 ‘순수’한 마음으로 응원하는 것과 국가개조론이 무슨 상관이냐는 반문도 있겠지만, 나는 도리어 차분한 응원은 불가능한가라고 묻고 싶다. 이제 월드컵 응원은 시청률 경쟁에 뛰어든 방송사의 화려한 공연 무대에 마케팅 전쟁을 벌이는 대기업들의 요란한 광고와 더불어 벌이는 판이 되었다. 국가주의와 상업주의의 절묘한 패스플레이에 축구의 자유로움과 응원의 열렬함이 맥을 못 추는 상황이 된 듯하다.

그래서 묻고 싶다. 왜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 하며 그 ‘하나’는 어떤 하나인가. 이런 질문을 한다고 해서 축구를 덜 사랑하는 것도 아니요, 대표팀의 승리를 마다하는 것도 아니다. 뉘라서 그런 마음이겠는가. 다만 묻고 싶은 것이다. 방송에서 광고에서 거리에서, 쉴 새 없이 들려오는 ‘하나 되는 대~한민국’, 도대체 그 ‘하나’는 뭐란 말인가. 그것도 세월호 참사 이후에, 더욱이 국가개조론이 횡행하는 이때에 말이다.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중계를 보면 더러 경기 전에 누군가를 추모하며 묵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넬슨 만델라 같은 위인을 추모하기도 하고 경기장 관리를 해온 직원을 추모하기도 한다. 리버풀을 비롯한 수많은 클럽들이 해마다 4월 중순이면 1989년의 ‘힐스보로 참사’로 인해 사망한 96명의 축구팬들을 위한 추모식을 갖는다. 참사 이후 영국 정부에서 비참하게 죽은 축구팬들을 모욕한 일도 있어서 그 어떤 추모보다 엄숙하게 거행된다.

놀라운 예외가 있었다. 2013년 4월,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사망했을 때다. 무조건 출세만 하면 위인 취급을 하는 한국에서는 일찌감치 대처가 어린이 위인전집에 포함될 정도였지만 영국 현지 반응은 극단적이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숱한 개혁을 통해 부강한 나라를 만들었다고 평가했지만 ‘가디언’은 영국의 공동체 정신을 소멸시켜 분열과 갈등의 시기를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인디펜던트’는 서유럽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를 가장 불평등한 나라로 만든 장본인이라고 혹평했다.

과연 축구장에서 추모식을 거행할 것인가. 영국 프로축구연맹은 고심 끝에 추모식을 갖지 않기로 했다. 여기에는 역사적인 맥락이 있다.

19세기 중엽, 근대적인 시민 양성을 위한 학교 체육의 일환으로 시작된 영국의 축구가 20세기를 넘어서면서 철강, 항만, 탄광, 제철 등의 공장 도시를 중심으로 노동자들의 장외 문화로 발전한 것이 영국 축구의 유전자다. 이 유전자만으로 영국 축구의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요소가 군살 없는 뼈대임은 확실하다. 독일의 도르트문트, 스페인의 빌바오, 아르헨티나의 보카 주니어스 등의 축구 문화 또한 이 같은 유전 형질의 변주들이다.

이들의 축구 문화를 보면 특정한 도시의 중하위 계급을 기반으로 하여 자긍심 넘치는 다양한 이벤트와 열광적인 서포터스 문화가 전개된다. 이를테면 독일 탄광지대를 배경으로 하는 명문 살케04의 선수들은 그들의 팬들이 일하는 곳, 즉 탄광의 막장으로 자주 내려간다. 프로선수가 실제로 채탄 작업을 하지야 않겠지만, 자기 팬들에 대한 공감과 연대를 표시하는 것이다.

그랬는데, 1980년대 초반 영국 사회가 탄광노조 파업으로 몸살을 앓을 때, 대처는 강압적으로 탄광지역의 노조원(곧 축구팬)을 탄압했다. 비극의 ‘힐스보로 참사’가 터졌을 때도 ‘광팬은 문명 사회의 수치’라는 식으로 몰아붙였다. 영국 프로축구연맹은 이를 기억하면서 대처를 위한 추모식을 갖지 않기로 한 것이다.

최근 안타까운 탄광 사고로 인해 300명이 넘게 사망한 터키에서도 경건한 추모식이 있었다. 명문 갈라타사라이 선수들이 광부들이 일할 때 쓰는 안전구와 헤드랜턴을 착용하고 비통한 표정으로 경기장에 들어섰다. 입장하는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하는 천막 터널에는 ‘소마’, 즉 탄광 사고가 난 도시 이름을 새겼다. 비통한 표정을 한 갈라타사라이 선수들이 ‘소마’ 터널에서 빠져나오는 모습은 진정한 공감과 연대의 추모였다.


▲ 월드컵을 선거에 이용은 수치요 ‘즐겨라’는 더더욱 아니다
국가주의 매몰된 응원이 아니라 ‘추모의 응원’도 가능할 것이다


이런 일들이 우리 축구장에서는 불가능한 것일까. 세월호 참사 이후 나라 전체가 깊은 상심으로 기나긴 장례식을 치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 월드컵은 다가오고 있다. 월드컵은 거대한 이벤트이자 황금알을 낳는 쇼비즈니스 장터이며 강렬한 국가주의의 경연장이다. 이 열기로 인해 자칫 세월호 참사의 모든 것이 잊혀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일각에서는 ‘수세’에 몰린 정부·여당이나 축구 열기에 편승하려는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하루빨리 월드컵 열기가 끓어오르기를 바란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런 논란은, 축구공의 무게를 알고 축구장의 명예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수치스러운 얘기다. ‘우매한’ 대중의 심리를 이용해 월드컵 열기를 선거에 이용한다? 아직도 그런 ‘우매한’ 정치인이 있을까. 있다면 그는 필패할 것이다.

물론 불안한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월드컵을 한두 번 치러본 것도 아니고 더러 소중한 것을 잊어버린 적도 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는 전혀 다른 문제이며 전혀 다른 무게를 지니고 있다. 추모의 마음과 응원의 마음이 상반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차범근 해설위원은 서울시청 앞 분향소에서 추모를 한 후 “컨트롤타워가 아니란다. 나는 이 말이 정말 후벼파듯이 아팠다. 그럼 이 분들은 누구한테 울어야 하는지. 국민들의 세금으로 장례를 치르는데 어떻게 비싼 것들을 쓰겠냐며 가장 싼 것들로 고르셨다는 분들. 그 분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하지 않은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라고 토로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차범근 해설위원이 월드컵에서 ‘닥치고 대~한민국’을 외칠 것이라고 상상하기 어렵다. 이미 ‘힐스보로 참사’를 겪은 리버풀 구단을 비롯해 맨체스터 시티, 마인츠05 등 유럽 구단들도 세월호 참사에 깊이 애도하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틀림없이 어떤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국가주의에 매몰되는 응원이 아니라 유가족을 위로하고 서로가 공감과 연대를 다지는 그런 응원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쉽지 않다. 그러나 쉽지 않다는 것은, 그와 같은 방식으로 위로가 될까 하는 조심스러움의 표현이다. 앞으로 한 달, 홍명보 감독이 선수들과 함께 그라운드 안에서 16강을 위해 노력한다면 그 바깥에서 우리는 희미하지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닌, 공감과 연대의 광장을 만들어내야 한다.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벌써 8년 전, 이맘때 일이다. 2006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각 방송사에서는 야심찬 기획물을 내보이는 한편 독일 현지 중계를 위한 인적 구성을 하고 있었다. 어느 방송사에서 그와 관련된 논의를 마치고 몇몇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던 중에 내가 이런 말을 했다.

“축구공 무게가 450g 정도 되는데, 축구에 관한 프로그램은 공보다 너무 가볍다.”

일행 중에 누군가가 어느 정도는 동의하면서도 이렇게 반문했다.

“축구는, 아니 월드컵은 이미 엔터테인먼트가 된 거 아닌가?”

그 말은, 그 무렵 어느 대통령의 말처럼, 축구가 이미 오래전에 시장의 머니 게임 종목이 되었음을 확인시켜준 것이었다. 축구가, 그리고 월드컵이 단순한 스포츠 종목을 넘어서 거대한 시장이 되었음은 새삼 반복할 필요도 없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개최지 유치권, 경기 중계권, 기업 후원권 같은 고전적인 시장을 지구 전역으로 확대하는 한편 ‘전시권’이라는 개념까지 고안하여 월드컵이 열리는 기간 동안 자신들의 허락을 받지 않은 공간에서 다중이 월드컵을 함께 보거나 응원하는 것조차 제어하고 있는 중이다. 도심지의 드넓은 광장에 임의의 공간을 확정하여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응원이나 촬영은 모조리 자신들의 허락을 받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기들에게 천문학적인 후원금을 낸 기업이나 방송사만이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우리의 폭발적인 광장 문화 및 후원사가 아닌 기업들이 이른바 ‘매복 마케팅’을 통해 큰 이익을 챙기는 것을 보고 FIFA와 후원 기업들은 2006 독일월드컵 때부터 전시권 개념을 현실화하였다.

선수들의 드높은 경기력과 후원사의 정교한 마케팅, 전 세계를 암울하게 만드는 신민족주의의 창궐로 인하여 올해 월드컵 역시 장외에서는 뜨거운 혈전이 벌어질 것이다. 벌써부터 주요 방송사는 월드컵 관련 프로그램을 편성하면서 예열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 핵심은 시청률이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은 각 방송사로서는 가히 사활을 건 시청률의 격전장이다. 드라마나 예능의 경우 서로 다른 줄거리나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비록 같은 시간대에 편성된다 해도 기계적인 비교 평가를 하기 어렵다. 그러나 대규모 스포츠 대회는 다르다. 우선 콘텐츠가 동일하다. 비중 있는 큰 경기는 물론이고 기본적으로 한국 대표팀의 경기는 방송사 모두가 동시 중계를 하기 때문에 시청률 및 그에 따른 수익과 이미지 제고에 있어 장외 전쟁이 벌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월드컵, 스포츠 넘어 거대 시장
방송사들 중계·현장 경험보다
대중적 인기·예능감 앞세워
시청률 경쟁에만 몰두 아쉬워


최근 벌어진 ‘전현무 캐스팅 논란’은 이런 배경 속에서 터진 일이다. KBS는 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대중적인 인기와 뛰어난 예능 감각을 지닌 전현무씨를 월드컵 전문 캐스터로 영입하려고 했다. 이에 KBS 아나운서 및 노조가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시위를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KBS가 무리를 해서라도 전현무씨를 캐스팅하려 한 것은 그의 뛰어난 진행 능력을 통해 지난 소치올림픽 때 주요 종목에서 패했던 시청률 전쟁을 만회해 보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2008년 12월 ‘직원의 프리랜서 전환 이후 3년간 KBS 프로그램 참여를 금지’하기로 한 노사 합의가 발목을 잡았다.

논란은 일단락되었지만, 문제의 본질은 해결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 심화될 것이라는 게 내 판단이다. 스포츠를 두고 흔히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실제 경기의 예측 불가능성과 수많은 변수들을 두고 하는 말일 뿐, 실제로 스포츠에는 근대 이후 인간의 역사라는 드라마가 곳곳에 배어 있다. 희비극이 교차하는 현대사의 수많은 사건과 상처들 위로 스포츠의 역사가 피어올랐으며 월드컵이나 올림픽은 이렇게 응축된 다양한 이념과 감정이 폭발하는 장이 된다. 따라서 제대로 스포츠를 전달하고자 한다면 이를 다채롭게 공부하고 살펴서 다양하게 제공해야 한다.

그런 점이 결여되다 보니 어이없는 실수가 벌어진다. 2012 런던올림픽 개막식의 경우, 근대 산업혁명기의 슬픔과 분노가 펼쳐지고 있음에도 한국의 방송사들은 ‘산업 발달의 역동적인 모습’이 펼쳐진다고 했다. 2014 소치동계올림픽 개막식의 경우, 꼼꼼하게 준비한 SBS를 제외하고는 한결같이 좋은 세상 만나서 너무 좋다는 식의 호들갑스러운 코멘트의 나열이었다. 월드컵이든 올림픽이든 아프리카 선수들을 소개할 때면 어김없이 ‘탄력 있는 구릿빛 피부’라거나 ‘넘치는 힘’ 하면서 인종차별적 발언도 쉽게들 한다. 그들도 작전이 있고 전술이 있으며 무엇보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유럽 빅리그에서 뛰고 있는데도 말이다.

왜 이런 얘기를 하는가 하면, 각 방송사들이 오랫동안 누적된 중계 경험과 노련한 현장 대처 능력, 다양한 정보의 공유를 통해 월드컵을 준비하기보다는 오로지 대중적인 인기와 순발력 넘치는 예능감으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깊이와 넓이를 지닌 스포츠 전문 캐스터를 길러내고 그 능력과 정보를 후배 캐스터들에게 공유하고 전수하는 풍토는 사라지고 두세 달 반짝 시청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도만 찾는 듯 보인다.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축구를 공부하고 각국의 선수들 정보를 모으고 여러 대륙의 스포츠 문화를 탐구하는, 그런 캐스터를 길러내는 일은 무망해 보인다. 시청률에 사로잡혀 긴급히 외부 수혈로 채우다 보면 축구공의 무게 450g보다 가벼운 말들이 넘쳐나는, 경쾌한 것이 아니라 경박한, 그런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게 된다.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지만, 역시 우리나라의 스포츠를 주도하는 정념은 국가주의와 가족주의다. 국가주의가 힘차게 펄럭이는 깃발로 드러났다면 가족주의는 섬세하고 끈끈한 힘으로 나타났다. 이 두 가지 감정은 동전의 양면처럼 맞붙은 채 소치의 상공을 선회하다가 특정한 국면에 따라 번갈아 등장하기도 하고 한 몸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를테면 김연아 선수를 ‘대한민국의 딸’ 혹은 ‘우리 연아’라고 호명할 때, 국가주의와 가족주의는 한 몸이었다.

대 규모 국가대항전인 올림픽에서 이러한 감정 상태는 비단 우리만의 경우는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차르 푸틴’이 이끌었던 러시아 대표팀의 성과는, 올림픽 기간에 불거진 우크라이나 사태와 맞물리면서, 거대한 ‘유라시아주의’의 전리품이 되었다. 다른 나라 선수들 역시 자국 국기를 몸에 감거나 동료들과 얼싸안기도 했으니 국가주의와 가족주의의 결합이 우리만의 독특하거나 왜곡된 정념이라고 잘라서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기는 해도, 우리에게 그 정념이 과도했던 것도 사실이다.

개인의 행위와 태도 결정에서 가족을 제일의 기준으로 삼는 것을 가족주의라고 한다. 이 건조한 설명을 좀 더 냉정한 현실에 대입해 보면,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상태에서 개인의 생활과 생존이 오직 가족 집단의 헌신과 희생에 의해 유지되는 상황을 가리킬 수 있다.

피상적인 관찰로 보면, 이러한 성격의 가족주의는 전통 농업사회의 유습처럼 보이기도 하고 급격한 산업화에 따라 형성된 핵가족의 지나친 응집력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사물의 표면을 스케이팅한 것에 불과하다. 문학평론가 권명아씨는 한국전쟁 이후의 공포스러운 무사회(無社會) 상황에 따른 불안한 생존게임을 가족주의의 원인으로 꼽는다. 사회가 완전히 파괴된 상태에서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공동체는 가족밖에 없었던 상황 말이다. 그 무사회 상태를 대체한 것이 박정희 군사정권이 되는데, 이때 국가는 확대된 가족이 된다. 독재자는 지엄한 아버지가 되었고 대통령 부인은 자애로운 어머니가 되었다. 그 시절의 잔영이 지금까지 일렁거릴 정도로, 막강한 국가주의와 섬세한 가족주의가 결합했다. 이때, 개인은 충용스러운 국민이자 말 잘 듣는 자식이어야 했으며 그때 비로소 최소한의 생존이 가능했다.

그 견고한 결합이 느슨하게나마 해체된 사건이 1997년의 외환위기다. 국가와 가족이 견고하게 결합해온 한국 사회가 이 사태에 이르러 붕괴의 조짐을 보인 것이다. 국가와 거대 회사는 자신들의 위기를 개인에게 전가함으로써 ‘평생 가족’이라는 신화를 스스로 박살냈다.

만약 이 사태 이후 우리 사회가 좀 더 우애로운 연대의 길을 모색했더라면 오히려 쓰디쓴 약이라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공습과 허약한 사회안전망, 그리고 중산층 문턱에서 좌절해버린 박탈감이 뒤엉키면서 가족주의는 더욱 폐쇄적인 형태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위험천만한 야만 상태로 언제든지 추방당할 수 있다는 공포의식이 지난 10여년 동안 우리를 사로잡았다. 우애와 연대의 길은 가로막혔고 온 가족이 수색 정찰의 일상을 살게 되었다. 과잉된 교육열은, 그 결과가 우선 중요하지만, 내가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했다는 심리적 만족을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부풀어올랐다.


소치 올림픽 때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를 응원하고 있는 가족과 시민들.(출처:경향DB)




▲ 소치서 메달을 딸 때마다
TV는 가족들을 비춰준다
먹먹한 눈으로 울음을 참는 그들
이는 곧 우리 모두의 초상이다


이러한 사회 정서가 스포츠에서도 나타났다. 아니, 사회의 일반적 규범이나 시스템에 비해 대단히 폐쇄적이고 허약한 스포츠에서는 더 강렬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골프 대디’나 ‘사커 맘’ 같은 말이 성공한 선수들의 부모들을 가리키며 쓰여지기 시작했는데, 사실 유명 스타는 물론이고 무명의 선수들 역시 온 가족의 처절한 희생 속에서 운동을 해왔다. 성공한 선수들 뒤에는 어김없이 만사를 제쳐두고 운동하는 자식 뒷바라지에 나선 부모가 있었다.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박승희 선수가 소속된 화성시청 빙상팀의 터무니없는 사건에서 보듯이, 가족이 나서 장비를 구입하고 훈련을 해결하는데 조직은 꼼수를 부려가며 선수들의 땀으로 빚어진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곤 했으니, 어쩌겠는가, 믿을 것은 역시 가족밖에 없었다.

스포츠계에서 유독 두드러진 현상이 우리 사회 전반에도 엇비슷하게 나타난다. 국가도 조직도 동료도 믿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가족만이 만경창파의 일엽편주 위에 불안하게 있는 상황이다. 향약이니 두레니 하는 공동체의 규약이나 우애는 완전히 사라졌고 아예 마을이니 이웃이니 하는 말도 현실성이 없어진 지 오래다. 생활, 복지, 교육, 인권 등 마땅히 국가가 책임지거나 사회가 함께 맡아야 할 일을 오로지 가족이 부둥켜안고 전전긍긍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소치 올림픽을 보았다.

화면에서는 연신 국가주의와 가족주의가 결합된 말들이 쏟아진다. 이는 비단 게으르기 이를 데 없는 방송 관계자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딸’ ‘맏형 리더십’ ‘우리 연아’ ‘막내답게’ 같은 말들은 한 세대 동안 전승되어온 스포츠 국가주의의 잔영이자 최근 10여년 동안 거칠게 경험한 가족주의의 파생물이다.

소 치에서 메달 소식이 들려온다. ‘우리 자식들의 쾌거’다. 화면은 가족들을 비춰준다. 열악한 환경에다 온갖 비리와 파벌, 부상과 슬럼프의 고통을 함께 치른 부모들이 먹먹한 눈빛으로 울음을 겨우 참는다. 이는 곧 우리 모두의 초상화다.

이번 올림픽에서 많은 사람들이 빛바랜 국가주의 구호와는 서서히 작별을 하면서도 여전히 애틋한 마음으로 밤새 경기들을 지켜봤던 것은, 그 선수와 가족들이 겪었을 고통이나 외로움을 우리 모두가 이 잔인한 사회에서 10여년 동안 겪어왔기 때문이다.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2011년 1월, 박지성이 대표팀 은퇴를 발표했을 때 나는 그 이유와 소신을 지지하는 글을 몇 차례 썼다. 왜 몇 번이나 썼느냐 하면 축구협회 일각에서 ‘너의 몸은 국가의 것’이라거나 ‘그쪽에서 다른 생각이 있나 알아보겠다’는 식의 반응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력한 축구인사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차범근 해설위원이 박지성의 몸 상태와 정신적 고통을 깊이 공감하며 은퇴 의사를 존중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로부터 3년이나 지난 지금 박지성은 ‘은퇴 복귀’ 논란의 중심에 있다.

사실 시간이 별로 없다. 6월13일에 브라질 월드컵 개막식이 열린다. 한국팀의 첫 경기는 18일이다. 역산을 해보면 6월2일까지 국제축구연맹(FIFA)에 23명의 최종 엔트리를 제출해야 한다. 30명의 예비 엔트리는 5월13일까지 제출해야 한다. 검산해보면, 실질적으로 브라질 월드컵은 4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지금 홍명보호는 불안정하다. 브라질 이구아수로 훈련을 떠난 선수단은 일주일 정도 현지 적응 훈련을 한 후 미국으로 가서 평가전을 갖는다. 이 평가전에는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은 불참한다. 국내와 아시아에서 뛰는 선수들이 주축이다. 분파주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냉혹하고도 실질적인 의미에서, 이른바 ‘유럽파’가 대부분 엔트리에 포함되고 주전으로 활약하리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들은 지금 유럽 리그를 뛰고 있다. 가능한 자원 모두가 함께 훈련할 시간은 3월 초순와 5월 중순, 두 번뿐이다.

대표팀은 아직 완전체에 이르지 못했다. 축구를 약분하면 개인기다. 기성용에서 손흥민까지 각 포지션마다 탈아시아급 선수들이 포진해 있다. 다행이다. 그러나 축구를 통분하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완전체다. 이 점이 더 중요하다.

11명은 정해진 위치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심판의 휘슬이 울리자마자 바람이 적당히 들어간 풍선처럼 의미 있는 공간으로 일제히 수렴되었다가 순식간에 확산된다. 이때 그라운드 안에서 전체적인 전략 판단을 이끌어내는 선수가 필요하다. 실전에서는 감독의 작전 지시가 거의 들리지 않을 지경이다. 직접 잔디를 밟으면서 팀을 조율하는 선수가 반드시 필요하다. 개활지의 전략적 상태를 일순간에 판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저 어깨를 한번 툭 쳐주는 것만으로도 갑자기 힘이 솟게 만드는 소대장 말이다.

홍명보 감독이 박지성의 대표팀 복귀 가능성을 내비친 것은 이 때문이다. 매우 현실적인 판단이다. ‘유종의 미’라든가 ‘화려한 은퇴식’ 같은 것은 다 수사일 뿐이다. 지난 6개월여의 기간 동안 홍명보 감독은 그라운드 안의 독전관이 부재한 상황을 거듭 확인했다. 몇 차례의 평가전에서 주목할 만한 선수를 점검했고 믿을 만한 선수를 확인했다. 그러나 10여년 전, 그 자신이 그라운드 안에서 했던, 11명의 선수를 유기적인 완전체로 결합시키는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해줄 선수는 얻지 못했다. 전역한 소대장이라도 다시 불러와야 할 상황이다.

 


▲ 그라운드 조율할 선수 부재에 홍명보 감독의 ‘현실적 판단’
합류 여부 지체되면 혼란만 지속… 자칫 ‘중심’ 없이 브라질 갈 수도

일각에서는 박주영의 부재 때문에 박지성의 복귀를 검토한 게 아니냐고 분석한다. 그러나 별개 사안이다. 박주영은 박주영대로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지금 박주영은 아스널의 연습구장 잔디만 밟고 있다. 그가 만약 실전에 복귀한다 해도 90분 내내 골을 노려야 하는 최전방의 공격수다. 팀 전체의 물러섬과 나아감을 맡길 수는 없다. 10여년 전, 그 화룡점정의 위치에 황선홍이 있었는데, 홍명보가 뒤에서 받쳐줬기 때문에 오직 골문을 응시할 수 있었다. 박지성 카드는, 박주영의 실전 복귀와 무관한, 완전히 독립된 과제다.

문제는 이미 박지성이 대표팀 은퇴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다는 점이다. 조광래, 최강희, 홍명보 감독 등이 박지성을 고려할 수 없는 상태에서 대표팀을 운영해왔다. 예비 엔트리에 이름을 올릴 만한 선수들도 박지성이라는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고 달려왔다. 박지성이 복귀한다면 최소한 1명은 브라질로 가지 못한다. 그 경우, 관계자 전원에게 매우 인간적인 고뇌가 따르겠지만 그라운드의 온도는 언제나 냉정하다.

중요한 것은 박지성의 복귀가 당장의 월드컵 대비와 향후 한국 축구의 발전에 전략적으로 반드시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축구 100년사 동안 그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그의 경험과 경기력이 온전히 그라운드를 적시고 그 피를 젊은 선수들이 나눠 마시는 일이 되어야 한다. 몇 경기 뛰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를 넘는 사안이다.


그러니 복귀에 관한 결론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박지성은 거칠고 빠른 네덜란드 리그를 온전히 소화할 수 있는 경기력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20일 새벽, 아약스와의 원정경기에 선발출전해 80분 넘게 뛰었다. 홍 감독은 그를 2월 중에 만날 예정이라고 했다. 바로 그 자리에서 결론이 나고 공인되어야 한다.

박지성이 복귀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자신의 치명적인 무릎 부상과 후배 선수들에 대한 배려 그리고 이제까지 박지성 없는 대표팀을 조련해온 과정을 검토해 고사할 수도 있다. 우리는 3년 전처럼 그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일단 점화된 얘기이니만치 박지성도 가급적 일찍 그리고 분명하게 의사를 표시해야 한다. 그가 합류해도 4개월은 부족하다. 합류 여부가 지체되다가 무위로 그치면 문제는 더 커진다. ‘중심 없는 팀’이라는 혼란만 지속되고 급기야 ‘중심’ 없이 브라질에 가는 팀처럼 된다. 이는 홍 감독이나 박지성 모두 원치 않는 일이다.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축구는 놀라운 단순성에 의하여 일찌감치 세계화되었다. 우선 장비가 단순하다. 정규 경기가 아닌 이상 공 말고는 장비가 없어도 무방하다. 지금 이 순간 지구 어디선가 공을 차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면 아마도 고급 축구화나 정강이 보호대 같은 장비 없이 공을 쫓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기후의 장애도 거의 받지 않는다. 추운 곳에서나 더운 곳에서나 공을 찬다. 규칙도 단순하다. 꼬마 아이들도 손으로 공을 건드리면 안된다는 것쯤은 잘 안다.


축구 규칙은 17조에 불과하다. 절반은 축구장 규격이나 선수단 구성 같은 것이다. 나머지도 선수와 심판이 아닌 이상 몰라도 축구를 즐기는 데 어려움이 없다. 일종의 제도와 자유의 모순 관계랄까, 규칙이 많아지면 그만큼 억제되는 측면이 많다. 규칙이 단순하고 그것마저도 심판의 재량으로 신축적이라서 축구의 원시적 에너지는 비등점을 향해 펄펄 끓는다.


그래서 한번 상상해본다. 만약 국제축구연맹(FIFA)이 나더러 축구 규칙 가운데 어느 하나를 자유롭게 적용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상의 탈의 위반’을 느슨하게 하고 싶다. 축구장 규격 같은 형식이나 오프사이드 같은 내용은 축구의 본질과 관련된 것이므로 먼 훗날 은하계 리그가 벌어지거나 리플리컨트(복제인간)의 월드컵 참가가 허용될 때까지는 지켜야 한다. 그러나 골을 넣은 감격에 못 이겨 상의를 잠깐 벗는 정도는 유연하게 해도 좋지 않을까.


현재는 상의를 가슴께까지 들어올려 펄럭이는 정도만 허락된다. 머리를 완전히 감싸거나 아예 벗어버리는 것은 경고를 받는다. 


그럼에도 선수들은 종종 상의를 벗어던진다. 골을 넣은 기쁨! 그 애틋하고 간절한 열정이 이성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 상의를 벗어던지며 발산된다. 특히 경기 막판에 터진 결정적인 골을 터트렸을 때 그의 자아는 완전한 해방에 이른다. 그 경기를 마지막으로 리그나 대회가 끝나는 것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김보경(카디프 시티)과 기성용(선덜랜드)이 그런 세리머니를 한 적 있다. 지난 11월25일, 김보경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후반 46분에 동점골을 넣은 후 상의를 벗어버렸다. 12월18일에는 선덜랜드의 기성용이 캐피털원컵 8강전에서 첼시의 막강 수비진을 흔들면서 종료 직전에 골을 터트린 후 유니폼을 벗어버렸다. 두 선수 모두 경고를 받았지만, 온몸의 세포가 완전히 분해되었다가 재조립되는 순간에 ‘아, 상의를 벗으면 경고를 받지’ 하고 차분해진다면 그는 차라리 인간이 아닐 것이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12월6일, 터키의 축구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터키 명문 갈라타사라이에서 뛰고 있는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공격수 디디에 드로그바가 상의를 벗어버렸다. 동료 에마뉘엘 에보우에와 함께했다. 경기가 다 끝난 후에 벌어진 일이다. 안에 입은 셔츠에는 넬슨 만델라에 대한 추모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드로그바는 ‘고맙습니다 마디바(만델라 존칭)’라고 썼고 에보우에는 ‘편안히 잠드세요 넬슨 만델라’라고 적었다. 이를 본 수아트 킬리치 터키 체육부 장관은 “터키의 대외적 이미지와 표현의 자유라는 면에서 건전한 선택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고 이에 터키축구협회는 두 선수에 대해 징계를 하겠다고 말했다.


리버풀에 승리한 첼시의 드로그바가 유니폼 상의를 벗은채 환호하고 있다,(출처 :AFP연합뉴스)


세계 축구계의 비판에 못 이겨 결국 철회하긴 했지만 터키의 체육부 장관과 축구협회는 두 가지 점에서 오히려 축구 규칙과 정신을 위반했다. 첫째는 설령 경기 후에도 상의 탈의 금지 규칙이 적용된다 해도 그것은 심판의 몫이다. 심판의 권한은 90분의 경기뿐만 아니라 그 전후 과정에도 관여한다. 그러니까 경기 후에 누군가 상의를 벗었고 그 안에 어떤 문구가 적혀 있어서 이를 문제 삼고자 한다면 경고, 즉 옐로카드를 주면 될 일이다. 둘째는 그들의 행위가 과연 징계를 받을 만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면 땀에 전 유니폼을 벗는다. 상대 선수들끼리 기념으로 나눠갖기도 한다. 게다가 그 안의 셔츠에 적혀 있는 문구는 정치적인 표현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다.


전 세계가 만델라를 추모하는 분위기 아니었던가. 심지어 만델라의 정신에 어긋나는 신념을 가진 정치 지도자들도 하나같이 거인의 삶을 추모하는 상황이었다. 드로그바는 잔인한 내전을 겪고 있는 조국 코트디부아르에서 대표팀 경기가 열릴 때면 “제발 이 기간만이라도 총을 내려놓자”고 호소한다. 실제로 몇 해 전에는 휴전이 된 일도 있다. 만델라의 유언을 축구장에서 실현하고 있는 선수 가운데 한 명이다.


비록 철회하긴 했지만 터키 당국과 축구협회는 두 선수의 행위가 무서웠던 것은 아닐까, 만델라라는 이름이 두려웠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결국 만델라의 힘에 의하여 철회된 것은 아닐까, 그런 상상을 해본다.


축구장이 현실 정치와 날선 이념의 격전장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 어떤 기준으로 봐도 마땅히 기억하고 지켜야 할 가치를 최소한 존중이라도 할 수 있는 장소가 되면 안되는 것일까. 그 정도의 존중도 두려워하는 곳이 있다면 오히려 상의 탈의 규칙을 좀 더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세계가 축구를 할 때만이라도 자유와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잠깐이나마 생각해보면 좋지 않을까. 그 어느 때보다 어두운 표정으로 쓸쓸하게 저물어가는, 저 공을 닮은 해를 보며, 그런 상상을 해본다.


정윤수 스포츠칼럼니스트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축구협회가 지난 11월22일 비전 선포식을 가졌다. 창립 80주년의 일환으로 지금 선 자리에서 앞으로 지향해야 할 자리를 살핀 행사다. 이를 위해 축구협회 미래기획단이 ‘30대 실천과제’를 제시했다. 창립 100주년이 되는 2033년까지 ‘꿈꾸고, 즐기고, 나누며’라는 3대 핵심 가치 아래 경쟁력 강화, 인재 육성, 열린 행정 구현, 축구산업 확대, 새로운 문화 조성 등 5대 추진 목표도 밝혔다.


이러한 비전이나 목표는 실천 의지와 현실성이라는 구체적인 힘이 결여되면 공허한 외침이 되기 쉽다. 일단 의욕적으로 새로 출범한 정몽규 회장 체제와 축구계 안팎에서 신망을 얻고 있는 이용수 미래기획단장이라는 조건에서 보면 이 비전과 목표가 탁상 위의 공론이 될 가능성은 비교적 작다. 그럼에도 몇 가지 짚어보고 싶다.


U-20 월드컵 8강 이라크전에 출전한 이광훈이 태극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출처 :경향DB)


축구협회가 제시한 창대한 미래 비전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최고 수준의 경기력으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0위 안에 진입하고 나아가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겠다는 목표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 실천을 위해 유소년에서 프로 리그에 이르는, 한국 축구의 발전적 피라미드 모델의 안착이 시급하다. 이 구조 없이 특별하게 가려뽑은 대표선수들만의 우승 헹가래는 공허하다.


현재 각각의 연맹이나 축구협회 바깥의 단체가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프로, 실업, 생활축구 등을 장차 협회가 컨트롤타워가 되어 모든 리그를 통합 운영한다고 밝혔는데, 이것의 현실화에는 꽤 진통이 따를 것이다. 유일무이한 길이라면 강력한 의지와 소통의 기술이 필요하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또 다른 해법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내 관점에서 더 중요한 것은 ‘즐기고’와 ‘나누며’이다. 현재 한국 축구는, 대표팀을 제외하고 보면, 즐기거나 나눌 수 있는 형편이 못되며 그런 인식조차 희미한 상황이다. 프로 선수를 꿈꾸는 중·고교 선수들에게 ‘즐기면서 하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선수, 학부모, 지도자 등이 이를 내면화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즐기는 축구’를 하면서도 얼마든지 직업 선수가 되거나 사회에 진출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 것을 축구협회가 현실로든 논리로든 입증해야 한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경기에 교체 투입되는 선수에게 부담을 줄여주려고 “즐기면서 해, 괜찮아!” 하고 격려하는 것은 아름답지만, 구조적으로나 산업적으로 도저히 ‘즐기면서’ 축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이는 그저 화려한 구호에 불과하다. 선포식 자료에는 그 해법이 단지 선언적이다.


‘나누며’는 오히려 역설의 상상력이 필요한 대목이다. 선포식 자료에는 축구가 지닌 가치를 사회에 전파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쓰여 있다. 나는 오히려 축구계가 사회로부터 더 많이 배우고 흡수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부분적으로 오늘의 사회 상황이 퇴행 징후를 보이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는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발전하고 있다. 이 발전 속도에 비해 축구의 발전 속도는 더딘 편이다.


우선 우리 사회의 경제 수준에 비해 대다수 축구인들은 힘겹게 살고 있다. 우리 눈에는 유명 스타와 적지 않은 연봉의 지도자들이 보이지만 그보다 더 많은 선수와 지도자들은 어려운 형편에 놓여 있다. 해마다 많은 유소년 선수들이 장래의 꿈을 포기하는 실정이다. 협회가 축구산업을 다각도로 발전시켜야 할 의무가 여기에 있다.


다음으로 우리 사회의 일반적 노동조건에 비해 축구계는 아직 뒤처진 상황이다. 예컨대 지금 당장 몇몇 선수들이 ‘선수노조’를 결성한다고 해보자. 당치 않은 소리라는 말부터 나올 것이다. 굳이 이런 수준이 아니라 해도 과연 선수들이 자신들의 억울한 상황을 개선하거나 의견이라도 낼 수 있는 창구가 있는가 생각해 보자. 개인적인 고충뿐만 아니라 선수들이 축구계의 각종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낼 수 있는 단위는 거의 없다.


이 사회의 전반적인 상식 수준의 발전에 비해 축구계는 여전히 채워야 할 부분이 많다. ‘공부하는 축구선수’ 같은 긍정적이며 미래적인 계획이 늦게나마 ‘시범’ 실시된 것도 2011년이다. 그 이전까지 축구선수는 거의 공부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회의 평균적 상식의 발전과 동떨어져 있었다.


공을 차는 것 말고는 제대로 익힌 것이 없어서 불가피하게 공을 그만 차게 되었을 때, 선수들과 가족들이 겪는 현실적 고통과 공포는 상당하다. 점점 더 세계가 좁아지면서 앞으로 수많은 선수들이 해외에 나가게 되고 또 그만큼의 외국인 선수들이 들어오게 된다. 이렇게 복잡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문화적, 인종적, 사상적 갈등을 기본적으로 공부하고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나는 이러한 점이 충족되었을 때를 상상하고 싶다. 우리 대표팀이 장차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것도 꿈꾸지만 동시에 나는 수많은 선수들이 축구를 했다는 것을 당당하게 여기는 미래를 꿈꾸고 싶다. 축구를 했다는 것이 공부를 못했다거나 맞으면서 컸다는 식으로 오해되는 게 아니라 성장기를 매우 아름답고 늠름하게 보냈음이 입증되는 미래 말이다.


이영표,"축구즐겼다"(출처 :연합뉴스)


축구를 했기 때문에 다양한 세계를 일찍 경험할 수 있었고 수많은 사람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웠고 때로는 불의에 맞서는 힘도 배웠고 그 어떤 종교, 인종, 사상과도 어울릴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미래를 나는 꿈꾼다. “아, ‘뽈’ 좀 찼어? 어쩐지 멋있다 했지.” 이런 말을 듣는 미래 말이다. 협회의 자료에는 축구인의 사회적 자존감을 드높이는 실질적인 과제는 거의 빠져 있다. 이 점, 너무 아쉽다.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인권 감수성이란 말이 있다. 개인이나 집단의 사회 행위에서 상당히 불합리하거나 부조리한 인권침해 상황이 벌어졌음에도 이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전혀 의식하지 못할 경우, 해당 개인이나 집단의 인권 감수성은 취약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침해 당사자는 대체로 관행이라니 농담이라느니 제도가 불비해서 어쩔 수 없다느니 하는 말을 한다. 스포츠계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최근 여자실업축구(WK리그) 6개 구단 감독들이 서울시청 소속의 박은선 선수에 대해 ‘성별 의혹’을 제기한 적이 있다. 이 폭력적 인권침해에 대해 비판 여론이 형성되자 감독들은 ‘농담’이었다고 변명하다가 결국 수원FMC의 이성균 감독, 고양 대교의 유동관 감독이 사퇴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여성적 외모’라는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기준이 문제다. 주디스 버틀러가 언급했듯이 이른바 ‘여성다움’이란 정치적·문화적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남성 권력의 판별식이다. ‘소녀’ ‘섹시’ ‘팜므 파탈’ 같은 말들, 심지어 ‘여성 전사’처럼 얼핏 보기에 여성의 강인함을 드러내는 표현조차도 실은 남성 권력의 문화적 프레임이다. 남성 권력은 필요에 따라 여성들을 이 다양한 프레임으로 ‘호명’한다. 육체적인 힘의 특성이 필요한 스포츠계에서 놀랍게도 ‘여성적인 외모’ 운운하며 박은선 선수의 ‘성별’을 폭력적으로 논의한 것은 그들이 이러한 맥락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서울시청 여자축구부 관계자들이 박은선 선수 성별 논란에 관한 기자설명회를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또한 중요한 것은 사건의 초반에 그들이 취한 심리적 반응이 ‘농담’이었다는 말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는 남성이 주도하는 이 사회의 수많은 공적·사적 영역에서 쉽게 발견되는 현상이다. 나름대로 심각하게 논의를 했으면서 사태가 불거지자 ‘농담’이라는 어리석은 위장막 뒤로 숨으려는 양태를 우리는 수없이 목격해왔다. ‘농담’은 이제 ‘비겁한 변명’이란 속뜻을 갖게 되었다.


지난 4월, 포항스틸러스의 노병준 선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베이징 궈안 소속의 카누테 선수를 인종차별적으로 모욕하는 글을 올렸다가 급히 내렸다. 비난 여론 때문이었다. “한번 물어버릴까, 새까매서 별 맛 없을 듯한데”라는 말이었는데, 더 심각한 것은 급히 내린 후에 올린 ‘사과글’이었다. 그는 “웃자고 던진 말에 죽자고 덤비면… 아무튼 뭐 오해의 소지가 있다니 삭제는 해야겠네요”라고 올렸다. 이는 변명도 아니고 해명도 아니다. 그의 놀라운 축구 실력에 비해 사회적 상식은 너무 낮았다.


그뿐인가. 지난 6월에는 한화 이글스 김태균 선수가 롯데 자이언츠의 셰인 유먼 선수의 피부색에 대해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한 적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한국야구위원회(KBO)와 각 구단에 재발 방지를 요청할 정도로 중대한 일이었다. 롯데 팬들도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할 정도였다. 이에 김태균 선수와 구단이 사과를 했지만 그 문장과 뉘앙스는 내키지 않은 변명에 가까웠다. 그것도 아주 간단하고 사무적인 용어로 말이다. 당시 유먼 선수는 “나에게 직접 사과를 하거나 사과 제스처조차 취하지 않았다”고 밝힌 적 있다. 허공에 뿌리는 사과성 발표는 진정한 사과와 거리가 멀다.


사안마다 경우가 다르고, 운동 하는 사람들끼리의 친밀성이 조금 과하게 표현된 경우도 없지 않지만, 이 모든 사안들은 우리 스포츠계의 인권 감수성, 아니 그런 용어가 아닐지라도, 이를테면 사회적 상식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말해준다. 왕년의 백전노장 선수들이 텔레비전에서 출연해 “그때는 정말 심하게 맞으면서 운동했다. 그래도 서로 의지가 되고 때리고 맞으면서도 끈끈한 정도 느꼈는데, 요즘 선수들은 너무 유약하다”는 식의 말을 천연덕스럽게 하는 풍토가 여전히 지배적이다.


신생구단 KT의 조범현 감독이 지난주에 한 발언도 신중하지 못한 것이었다. 신인 선수들이 시험 때문에 훈련을 받지 못한다는 보고를 받은 그는 “요즘 아이들이 너무 힘들게 산다.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해 큰일”이라고 말했다. 감독으로서 당연한 의사 표현이고 그 핵심 역시 “너무 힘들게 산다”는 안타까움을 드러낸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래도 어쩌겠나. 아직 학생들이니 시험은 봐야지”라는 말로 이어졌어야 했다.


KT 선수들 중 절반이 아직 학생 신분이다. 구단은 본격적으로 훈련에 돌입하면서 각 학교에 양해를 구해 선수들을 훈련시키는 중이다. 그런데 대학생 선수들은 졸업 시험을 봐야 하고 고등학생 선수들은 기말고사를 봐야 한다. 조 감독은 “훈련을 하려고 하면, 시험이 있다고 빠지는데 중간고사, 기말고사, 졸업시험, 졸업평가도 있더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중요한 사실을 뒤집어버린 것이다.


물론 우리는 현실을 살아간다. 운동선수들에게, 프로 직행이 결정된 선수들에게 일일이 교실에 들어가 앉아 있으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최소한 시험은 봐야 하는 것이다. 여느 학생들처럼 공부할 기회는 주지 못하더라도 시험은 보게 해야 한다. 시험 기간 중에 저 멀리 남해에 훈련 캠프를 차려 놓은 것은 구단과 감독의 실책이다.


그동안 스포츠계는 이 사회의 일반적인 변화 양상이나 사회적 상식의 건강한 변화 속도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 변화 속도 역시 ‘스포츠’라는 특성을 앞세워 너무 느리게 과거의 시간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보니 인권 감수성이나 사회적 상식의 체득이 지체되고 말았다. 그랬는데, 이제는 사회 전체가 퇴행을 하고 있으니 스포츠계가 과거의 관행, 언행, 제도에 영영 속박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2002년을 빛낸 두 명의 축구 스타가 다시 한번, 오랜만에, 팬들의 관심을 끌었다. 한 사람은 누구라도 듣고 싶은 소식으로 전해왔고 다른 한 사람은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소동으로 전해왔다. 이영표와 이천수, 두 사람이다.


언제나처럼 영리하고 빠르게 그라운드를 누빌 것 같았던 이영표 선수는 지난 28일, 소속팀 밴쿠버 화이트캡스의 홈구장에 들어섰다. 밴쿠버는 경기 전체를 이영표에게 헌정했다. 티켓은 이영표의 사진으로 인쇄되었고 경기장에는 이영표를 기리는 영상이 흘렀으며 수많은 팬들이 이영표의 유니폼을 입었다.


한편 이영표와 더불어 두 차례의 월드컵을 함께했던 이천수는 우울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폭행 사건이 있었고 경찰의 조사를 받았으며 구단의 중징계까지 내려졌다. ‘아내를 보호하려 했다’는 말이 거짓으로 밝혀지면서 마지막까지 그를 믿으려 했던 팬들마저 돌아섰다.


성실하고 착한 이미지의 ‘초롱이’ 이영표와 악동의 대명사 이천수. 엇비슷한 나이와 환경에서 성장한 두 선수는 어떻게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되었을까. 인간의 내면세계를 핀셋으로 꼭 끄집어내어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지만, 그동안 축구장이나 언론을 통해 비친 것으로 가늠해 보건대, 두 선수의 ‘성찰성’의 차이가 정반대의 길을 예고한 듯 보인다.


한국-이탈리아전에서 승리한 한국팀의 이천수가 이영표를 얼싸안고 환호 (출처 :연합뉴스)


이영표는 뛰어난 선수이자 신앙심이 깊은 기독교 신자다. 그런데 막무가내로 종교적 신념을 강요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전도 퍼포먼스를 벌이는 게 아니라 겸손과 모범을 실천하는 쪽이다.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재철 목사(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에 따르면 이영표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기도한다. 크게 외치기보다 무릎으로 기도한다. 종교가 없는 나로서는 ‘무릎으로 기도한다’는 비유의 참뜻을 짐작으로 되새길 수밖에 없는데, 아마도 겸손한 자세로 묵묵히 실천한다는 뜻일 것이다. 일부러 그러는 척하는 게 아니라 종교적 성찰이 몸에 배어 있다는 뜻이리라.


아쉽게도 이천수는, 이영표에게는 넘쳐나는 덕목을, 많이 갖지는 못한 듯하다. 물론 이 점만으로 두 선수의 인간적 면모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될 것이다. 나 역시 이영표보다는 이천수 쪽에 더 가까운, 결함투성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천수에게 마음이 간다.


이천수의 애창곡은 임재범의 ‘비상’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순간이 있지. 그렇지만 나는 제자리로 오지 못했어”라고 시작한다. 공교롭게도 독일 월드컵 이후 그는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는 “되돌아 나오는 길”을 몰랐다.


국내 리그를 벗어나 낯선 곳을 너무 오랫동안 유랑해야만 했던 이천수는 이윽고 올해부터 인천에 안착하여 K-리그를 뛰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이후로 이천수가 언론과 가진 인터뷰를 빼놓지 않고 읽었다. 어느 일간지에는 일종의 ‘자전 수기’가 연재된 적도 있다. 아쉽게도 그 내용들은 너무 형식적인 ‘반성문’이었다. 빈곤한 어휘, 틀에 박힌 반성, 설익은 다짐이 뒤섞여 있었기 때문에 좀처럼 믿기 어려웠다. 이는 글쓰기 능력과 무관하다. ‘개과천선’한 모습을 너무 일찍 보여주려는 이천수의 조급증과 ‘돌아온 탕자의 수기’를 급조라도 하여 게재하려는 언론의 과욕들이 문제였다.


폭행 사건에 휘말린 이천수가 인천 남동경찰서에 출석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이천수는 언론과 세상이 원하는 ‘돌아온 탕자’의 이미지를 너무 의식했다. 그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억지로 세상이 원하는 이미지에 맞춰 윤색했다. 아마도 그것이 그의 진짜 내면을 억눌렀을 것이다. 세상도 그를 그런 이미지에 가두려 했다. 그가 반칙을 하거나 심판에게 항의라도 하면 어김없이 ‘이천수 또 반항?’ 같은 기사가 터져나왔다. 그런 정도는 이영표도 하는 것이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자연스럽게 팬들과 접점을 넓혀 나가는 것이 중요했으나 이천수와 언론의 ‘기이한 공생 관계’는 깊이 있는 성찰의 시간 대신 조급하고 초조한 시간을 급조해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분노의 주먹>은 어느 권투선수의 흥망성쇠를 통해 겉으로는 강한 척해도 속으로는 한없이 불안하고 여린 인간의 내면을 탐문한다. 주인공 라모타는 선수로서나 개인적인 삶으로서나 거듭 실패한다. 어떻게든 재기하려 했으나 번번이 실수하고 좌절한다. 그러던 중에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는 일까지 발생한다. 그 유명한 장면에서, 라모타는 유치장의 벽을 제 주먹으로 치면서 울부짖는다. “왜? 왜? 왜?” 하는 외침이 공허하게 울려퍼진다.


그렇게 지독한 과정을 거친 끝에 라모타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 바로 자신에게 있음을 인정한다. 이천수도 그렇고 실수투성이고 모순덩어리인 우리 모두에게도 강력한 교훈이 되는 장면이다. 이천수가 좋아하는 노래 ‘비상’은 이렇게 끝난다. 


힘겨웠던 방황이 결국 “이 세상 견뎌낼 그 힘이 되어준 거야”. 언젠가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란다. 바라건대, 나는 그런 날이 조금은 늦게 오기를 바란다. 이것은 비난이 아니라 권유다. 너무 요란하게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할 게 아니다. 긴 시간을 들여서 자신과 가족과 팬과 축구장을 거듭 생각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그가 돌아오게 될 때, 우리 같은 나약하고 흠집 많은 인간들은 진심으로 그에게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의 진퇴양난이 곧 우리 모두의 모습이므로.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축구대표팀이 12일과 15일 브라질과 말리를 상대로 평가전을 치른다. 이를 위해 기성용 선수가 입국했다. 그러나 먼저 “최강희 감독님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부터 해야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고 그래야만 했다. “진작 사과를 드렸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를 ‘변명’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상식적인 수준에서 볼 때 스물네 살이라면 사랑을 고백하거나 사과를 하는 일의 타이밍을 놓칠 수도 있다. 독자들 중에는 기성용보다 훨씬 연륜이 있음에도 ‘타이밍’을 놓친 바람에 평생 후회되는 일을 겪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한번 타이밍을 놓치면 그 어떤 묘법을 써도 구차한 변명이 되거나 불필요한 오해만 낳게 된다. 마음은 검게 타들어가도 차라리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을까 하며 차일피일 미룬 경험, 누구나 겪어 본 일이다.


물론 지난 7월 불거진 ‘SNS 파문’은 일차적으로 기성용에게 책임이 있다. 근거와 절차가 구비된 하소연이나 비판이 아니라 조롱과 비난이었다. ‘해외파’ 운운한 것은 스타의식이나 파벌의식 같은 조짐으로도 보였다. 그래서인지 입국장의 기성용은 시종 어두웠다. 나는, 기성용 선수가 너무 경솔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한 선수가 모든 비난과 멍에를 뒤집어 쓰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 의심스럽다.


홍명보 국가대표 감독(왼쪽)과 기성용 선수(출처 : 경향DB)


최강희 감독을 비롯한 당시의 대다수 코치진과 선수들이 그 흔한 표현대로 ‘한 마음 한 뜻’으로 잘 굴러가던 대표팀이었는데 ‘선후배 위계 질서’도 모르는 기성용이라는 평지돌출의 철부지가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일’이었는가. 혹시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고 성적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따라서 브라질행 본선 티켓도 겨우 따낼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팀 전체의 모순과 문제점이 기성용 선수의 경솔한 ‘SNS 문구’라는 ‘약한 고리’를 통해 터져버린 것이 아닌가. 


그 과정에서 기성용을 코칭스태프가 제대로 이끌거나 제어했는가. 선수가 팀 전체 분위기나 감독의 지도를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면 감독 또한 팀 상황을 완전히 숙지하고 통제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는가. 솔직히 말해 나는 이제 와서 이런 모든 질문이 재론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브라질행 티켓을 따낸 최강희 감독은 정신적 고향이랄 수 있는 전북 현대로 돌아가 다시금 K-리그 최고 수준의 팀으로 이끌고 있다. 대표팀도 홍명보 감독이 새로 부임하며 벌써 여러 차례 중요 경기를 소화한 다음이다. 기성용 선수도 새로 바뀐 팀에서 주전 경쟁에 몰입하는 중이다.


최강희 감독.(출처 : 경향DB)


말하자면 판이 바뀐 것이다. 그럼에도 기성용 ‘사과’ 및 그것의 진정성 문제가 재론되는 것은 아슬아슬하다. 이미 이심전심으로 확인된 것을 ‘위계질서’ 차원에서 정리하는 방향으로까지 전개된다면 이는 너무 위험하다. 만약 이를 재론하고자 한다면 기성용을 포함한 관계자 전원의 ‘신앙 고백’ 수준의 말들이 필요한데, 누구도 그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을 겪을 때마다 생각나는 소설이 있다.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이다. 1970년대의 어느 고등학교 교실을 무대로 하는 이 소설의 빛나는 가치는, 소설 속 상황이 다양한 가치와 욕망이 교집하는 인간 사회 어디에서나 비슷하게 나타난다는 점을 묘파해낸다는 것이다. 나는 이천수 파동을 비롯해 스포츠계에서 벌어진 여러 ‘윤리적’인 문제를 검토할 때마다 이 소설을 거듭 인용했다. 그래서 한번 더 생각해보고 싶다.


임권택 감독이 영화로도 만들었는데, 줄거리는 이렇다. 어느 학교에 ‘문제아’가 있고 열정적인 교사가 있다. 이 교사의 인생 목표는 학생들을 대학에 진학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가르친다. 성적이 뛰어난 학생뿐만 아니라 처지는 학생들도 열성으로 가르친다. 집에까지 데려가서 밤늦도록 가르친다. 누구도 그의 열성과 선의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최기표가 문제다. 기표는 이러한 학급 분위기를 망치는 학생이다. 최고의 진학률을 자랑하는 학급인데 기표 때문에 위기가 닥친다. 그래서 선의와 열성을 가진 교사와 우등생들이 기표를 돕기 시작한다. 중요한 시험 때는 몰래 답안지를 돌리기까지 한다. 어느덧 기표는 ‘착한 학생’이 된다. 방송국에서 찾아올 정도로 전국적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기표는 결국 선한 자들의 울타리를 벗어나 제 갈 길을 간다. 기표는 ‘착한 사람’들의 기대를 배반하고 학교를 도망친다. 그가 남긴 쪽지에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고 적혀 있다. ‘선의’ 자체가 누구나 만족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유일무이한 최선의 방법이 아님을 이 작품은 말해준다.


홍명보 감독은 고심 끝에 현재의 상황을 수습하고 극복할 ‘중재자’가 되어 최강희 감독과 기성용 선수의 만남을 갖고자 했다. 그 충정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최강희 감독은 기성용 선수가 사과하러 올 필요까지는 없다고 했다. 다 지난 일이니 경기장에서 실력으로 보답하라고 했다. 그 와중에 기성용은 입국장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사과를 했다. 자, 여기까지다. 귀가 있고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세 사람이 복잡한 갈등 상황에서 저마다 최선을 다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게 되면 ‘우상의 눈물’이 될 수 있다. 왜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마음의 병은 세월이 약이 될 수 있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여러분, 모자를 벗으시오. 저기 천재가 들어오고 있소.”


1832년, 슈만이 동년배 피아니스트인 쇼팽을 독일 음악계에 소개하는 유명한 평론에서 한 말이다. 그 자신이 뛰어난 작곡가이자 영향력 있는 비평가였던 슈만의 단호하면서도 품격 있는 이 말은, 그 후 예술계에서 진실로 격찬할 만한 천재를 널리 알릴 때 재인용되곤 한다. 이는 신예 작가 도스토옙스키에 대해 당대의 비평가이자 사상가인 벨린스키가 다급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새로운 고골이 탄생했소’라고 외쳤던 사건만큼이나 예술사의 극적인 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여적]쇼팽의 음악 (출처: 경향DB)



나도 슈만의 이 열렬한 문장을 슬쩍 옮겨 써본 적 있다. 2005년의 일이다. 예술계의 신예 천재를 향한 격찬은 아니었고, 어느 축구 유망주를 위해서였다. 박주영이 그 주인공이다.


고교 시절에 이미 초특급 공격수로 주목을 받았던 박주영은 2005년 FC서울에 입단해 새로운 스타에 목말라 하던 K리그를 미증유의 신드롬으로 몰아넣었다. 그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축구장을 찾았다. 그가 출전하는 경기는 프로축구 생중계에 인색했던 공중파로서도 매력적인 콘텐츠였다. 비록 청소년 대표팀에서 큰 활약은 했지만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지도 않은 ‘유망주’가 전국적인 흥행 아이콘으로 떠오른 사례는 박주영 이전에는 없었고 이후에도 아직 없다.


그 무렵 어느 도시에서 벌어진 K리그 한 장면을 기억한다.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는 그 구단은 관중을 모으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도모했는데, 그 하나의 방법으로 내걸었던 인상적인 현수막이 기억난다. 신생 구단이라 전국구 스타가 없었기 때문에 고심하던 그 구단은 마침내 이런 문구를 시내 곳곳에 내걸었다. “박주영, 너를 기다렸다.”


그러나 당시 대표팀을 이끌던 조 본프레레 감독은 “바람이 불면 쓰러질 것 같은 선수”라고 저평가했다. 대다수의 축구 전문가와 팬들의 생각과는 거리가 먼 판단이었다. 독일월드컵 최종예선 2차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완패하자 박주영을 선발하라는 여론이 크게 일었다. 바로 그 순간 나는 박주영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슈만의 문장을 인용했던 것이다. “모자를 벗으시오. 저기 천재가 들어오고 있소.”


그런 우여곡절 끝에 박주영은 대표팀에 선발됐고 우즈베키스탄전에 출전해 A매치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터트렸다. 경기 종료 직전에 성공시킨 영양가 높은 동점골이었다. 닷새 후에도 박주영은 쿠웨이트 원정을 가서 왼발 선제골을 작렬시켰다.


그 후의 희로애락은 우리 모두가 목격한 바와 같다. 우리 모두는 박주영으로 인해 몇 년 동안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많이 갖게 됐다. 특히 2012 런던올림픽 한·일전에서 성공시킨 골은 요즘 흔히 쓰는 말대로 박주영이 왜 박주영인지를 증명한 골이었다. 그와 동시에 우울한 나날도 꽤 길어지고 있다. 최근 들려오는 뉴스는 그가 소속팀 아스널에서 부활의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고 하는데, 아직 이렇다 할 소식은 없다. 프랑스, 잉글랜드, 스페인 등을 전전하면서 그가 치른 고생과 수모는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골을 성공시킨 박주영이 특유의 ‘날개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박주영을 대표팀에 기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속속 제기되고 있다. 극심한 골 가뭄 때문이다. 홍명보 감독도 이청용, 기성용, 지동원, 김보경 등과 아울러 특히 박주영의 상태를 판단하기 위해 잉글랜드로 날아갔다. 그 모든 선수들이 최고 수준을 유지한다면 잉글랜드 무대는 물론 한국 대표팀에 엄청난 효과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특히 박주영의 기량 회복은, 예측을 불허하는 그의 공간 상상력에 의해 대표팀 공격 전개의 수많은 옵션을 가능케 할 것이다. 좌측면에서 기회를 엿보던 박주영이 수비수 두세 명을 뒤흔들면서 대각선으로 질주하기만 해도 그 순간 한국의 공격형 미드필더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공격 옵션은 최소한 세 가지 이상 발생한다. 그 자신이 골을 넣거나 예리하게 패스를 하거나 헝클어진 수비라인 배후에서 구자철이나 지동원이 슛을 날리는 모습은, 우리가 금세 상상할 수 있는 장면이다.


이런 선수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과거에 차범근이 있었고 황선홍이 있었다면 여전히 우리에게는 박주영이 있다. 한 세대에 한 명 정도 나타나는 천재다. 이들의 골 감각이나 공격 본능은 그야말로 천부적인 감각이며 태어나면서부터 그들의 몸속에 내장된 것이다. 가르쳐서 될 일이 아니며 노력한다 해서 습득될 일도 아니다.


물론 일종의 천재주의 혹은 영웅주의에 대해 나는 비판적이다. 전체로서의 역사도 그렇고 각 부분의 일도 그렇고, 소수의 천재나 영웅이 모순과 아비규환을 끝장낸다는 식의 발상은 위험하다.


그럼에도 나는 박주영이 대표팀에 발탁된다면 망설임 없이 모자를 벗을 것이다. 스포츠라는 비적대적인 공간에서 비범한 선수가 천부적인 상상력과 놀라운 몸놀림으로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노력해서 도달할 수 있는 한계를 뛰어넘어 누구도 밟아보지 못한 지평을 펼쳐내는 것은 지극히 아름다운 일이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초월의 환영을 보게 된다. 박주영이 그런 모습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면 박주영 개인에게나 한국 대표팀 전체에나, 그리고 지루하고 남루한 일상에 지친 우리 모두에게 짜릿한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2002년 5월, 지네딘 지단이 수원에 왔다.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한국과 프랑스가 평가전을 치른 것이다. 그날 지단은 지쳐 있었다. 더욱이 맞상대는 김남일. 이 진공청소기는 지단의 기운을 다 빨아들였다. 지단은 제 뜻을 다 펴보지 못하고 벤치를 향해 교체 사인을 보냈다.


다음 날, 대개의 스포츠 기사들은 지단이 교체된 것을 두고 세 가지 정도의 추측성 기사를 내보냈다. 노쇠했다는 추측이 첫 번째였다. 그러나 그는 2002는 물론 2006월드컵까지 치렀다. 고액 연봉을 받는 스타가 평가전을 우습게 여겼다는 추측도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 대표팀으로서는 마지막 평가전이었다. 지단 같은 선수가 이를 가벼이 여겼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유럽 리그가 너무 늦게 끝나서 컨디션을 회복할 여유가 없었다는 추측이 있었다.


프랑스와 한국과의 평가전에서 그라운드에 넘어진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 (경향DB)


이 세 번째가 그나마 현실성이 있었다. 유럽의 빅리그는 8월 중순에 시작해서 5월 하순에 끝난다. 월드컵이 열리는 해에는 다소 앞당겨지긴 한다. 그래도 5월 초까지 박빙의 리그를 뛰어야 한다. 게다가 지단은 레알 마드리드 소속이었는데 이런 은하계 최고의 팀은 거의 모든 대회의 막판까지 뛰게 된다. 그런 후에 수원으로 왔으니 지단의 몸은 균형 잃은 팽이와도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지단이 축구 인생 전부를 걸고 치러야 했던 경기가 또 하나 있었다. 당시 프랑스는 극우 정당 국민전선(FN)의 장 마리 르펜 때문에 20세기적인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그는 이민자와 유색인에 대한 증오 발언을 일삼았는데 이 파괴적인 선동이 인기를 끌었다. 르펜은 ‘온갖 유색인종이 뒤섞인 대표팀은 순수한 프랑스가 아니다’라며 극우적인 드리블 돌파를 감행했다.


극우파 대선 후보 르펜에 반대하는 농성을 벌이고 있는 프랑스의 젊은 학생들 (연합뉴스)


지단은 이 파괴적인 준동에 태클을 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르펜과 국민전선의 반인륜적인 인종차별 선동에 맞서 싸웠고 성명서를 통해 강력한 백태클을 걸었다. ‘지단이냐 르펜이냐, 진정한 프랑스인이라면 현명하게 선택하라.’ 그제야 프랑스가 제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지단은 그렇게 장외 혈전을 치르고 나서 수원으로 왔다. 개인 컨디션 회복이나 팀 훈련 같은 것을 할 만한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별로 없었다.


페인트 등으로 훼손돼 우스꽝스런 모습을 하고 있는 장 마리 르펜 당수의 선거포스터 (연합뉴스)


이러한 사실은 그 당시 신문이나 방송의 외신 뉴스만 훑어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문제는 우리의 스포츠 저널리즘이 경기 결과나 이적 소식 말고는 거의 무관심하다는 점이다. 유명 선수일수록 그 사회의 압력을 더 많이 받는다. 그래서 그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우리의 스포츠 저널리즘은 그러한 일에 거의 무관심하거나 무지하다. ‘운동 선수가 뭘 안다고’ 하는 근거 없는 편견도 얼마쯤은 작동할 것이다. 선수들이 사회의 평균적인 상식이나 변화와는 무관하게 ‘운동 기계’처럼 성장되는 우리의 현실이 그런 무지와 편견을 증폭시켰을 것이다.


한 사람 더 살펴보자. 펠레! 이 이름을 듣는 순간 어떤 느낌부터 드는가. 축구 황제라는 말부터 떠오른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축구를 알리는 친선대사 같은 느낌도 난다. ‘펠레의 저주’라고 해서 묘하게도 우승 팀을 제대로 맞히지 못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브라질 '축구황제' 펠레가 머리에 공을 올려놓고 컨트롤하는 묘기 (연합뉴스)


그렇다면 이런 얘기는 어떠한가. 브라질은 20세기 대부분을 잔혹한 군부 독재 치하에서 살았다. 그때 축구가 있었고 펠레가 있었다. 세계 최강의 브라질 축구와 은하계 극강의 펠레 같은 스타는 군부 독재의 어릿광대가 되기 쉽다. 그런데 펠레는 그 요구를 한사코 외면했다. 그래서 미움을 받았다.


브라질에는 독재 정권보다 더 강력한 또 하나의 정부가 있다. 바로 브라질축구협회다. 축구라는 브라질 최고의 산업과 절대적인 영혼을 거머쥔 이 제국의 통치자가 주앙 아벨란제 전 FIFA 회장이다. 그는 사반세기 동안 FIFA 회장을 지내면서 브라질 축구를 움켜쥐었고 반세기 가까이 IOC 위원을 지내면서 세계 스포츠계를 쥐락펴락했다.


그가 거느리고 있는 브라질 축구 마피아를 ‘큰 모자 형님들’이라고 부른다. 이 형님들을 골치 아프게 한 인물이 펠레다. 펠레는 그들의 어릿광대 노릇을 거절했다. 그래서 브라질보다는 해외로 나가서 활동했는데 어떤 점에서는 떠돌이 신세였다. 그는 부패한 큰 모자 형님들이 수많은 무명 선수들과 가난한 아이들의 꿈을 가로채고 있다고 비판했다.


펠레가 한때 체육부 장관을 한 적 있다. 독재 정권이 종식되고 개혁 세력이 정권을 잡은 후 체육부 장관으로 펠레를 초빙했다. 나라 밖으로 떠돌던 펠레는 모처럼 개혁의 기회를 맞아 축구협회 개혁에 나섰다. 물론 그의 시도는 좌초됐다. 아직까지도 브라질 정부의 개혁성은 유지되고 있지만 축구협회만큼은 무소불위의 철옹성이었다. 아벨란제의 사위가 ‘대권’을 이어받았고 그들은 또 하나의 정부처럼 움직였다. 펠레의 개혁 시도는 물거품이 됐고, 월드컵 명예 대사라는 직함으로 세계를 떠돌고 있다.


브라질의 펠레가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우승을 결정지은 뒤 팬들에게 축하받고 있다.


지난 4월, 외신은 펠레가 독재 정권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감시당했다고 보도했다. 상파울루 주정부가 1964년에서 1985년까지의 군부 독재 비밀기록 2만여 건을 공개했는데 그 가운데 펠레 파일이 있었다. 우리가 경기 내용이나 그 결과에만 주목할 게 아니라 경기장 바깥까지 두루 살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포츠는 순백의 진공 상태가 아니라 그 사회의 긴장과 욕망이 뒤엉키는 공간이고 선수들은 그 중심에서 늘 선택의 강요를 받는다. 이를 깊이 헤아릴 때, 스포츠도 발전하고 사회도 성숙한다. 아니 그런 말 이전에 선수들의 처지와 고뇌를 이해하게 된다. 그게 우리의 스포츠 문화가 나가야 할 방향이다.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