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스포츠와 세상'에 해당되는 글 188건

  1. 2013.12.09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즐기고 나누고 공부하는’ 축구를 위하여
  2. 2013.11.18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서투른 스포츠계
  3. 2013.10.28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이천수, ‘탕자 강박증’을 버려라
  4. 2013.10.07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우상의 눈물’ 흘릴까 두렵다
  5. 2013.09.16 [정윤수의 오프사이드]모자를 벗으시오, 천재가 오고 있소
  6. 2013.08.27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지단과 펠레의 장외 투쟁
  7. 2013.07.31 [사설]우려스러운 한·일전 축구장의 민족주의
  8. 2013.07.16 [정윤수의 오프사이드]‘문제’는 언론이다
  9. 2013.06.25 [정윤수의 오프사이드]부탁해, 홍명보
  10. 2013.06.04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인종차별의 ‘위험한 불장난’
  11. 2013.05.14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신화를 남기고 아내 곁으로 돌아간 ‘퍼기’
  12. 2013.04.23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손흥민을 위한 ‘조언’
  13. 2013.04.01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선수는 ‘마라도나’
  14. 2013.03.08 [사설]프로스포츠 승부조작 단속 서둘러야
  15. 2013.03.04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아름다운 교체, 씁쓸한 교체
  16. 2013.02.11 [정윤수의 오프사이드]박지성을 위한 설 덕담
  17. 2012.11.26 [정윤수의 오프사이드]그래도 ‘갑’이 풀어야 한다
  18. 2012.11.05 [정윤수의 오프사이드]홍명보,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19. 2012.10.30 [사설]금품거래 만연한 아마 농구, 이게 스포츠인가
  20. 2012.10.08 [정윤수의 오프사이드]‘과분한 사랑’의 프로야구

축구협회가 지난 11월22일 비전 선포식을 가졌다. 창립 80주년의 일환으로 지금 선 자리에서 앞으로 지향해야 할 자리를 살핀 행사다. 이를 위해 축구협회 미래기획단이 ‘30대 실천과제’를 제시했다. 창립 100주년이 되는 2033년까지 ‘꿈꾸고, 즐기고, 나누며’라는 3대 핵심 가치 아래 경쟁력 강화, 인재 육성, 열린 행정 구현, 축구산업 확대, 새로운 문화 조성 등 5대 추진 목표도 밝혔다.


이러한 비전이나 목표는 실천 의지와 현실성이라는 구체적인 힘이 결여되면 공허한 외침이 되기 쉽다. 일단 의욕적으로 새로 출범한 정몽규 회장 체제와 축구계 안팎에서 신망을 얻고 있는 이용수 미래기획단장이라는 조건에서 보면 이 비전과 목표가 탁상 위의 공론이 될 가능성은 비교적 작다. 그럼에도 몇 가지 짚어보고 싶다.


U-20 월드컵 8강 이라크전에 출전한 이광훈이 태극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출처 :경향DB)


축구협회가 제시한 창대한 미래 비전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최고 수준의 경기력으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0위 안에 진입하고 나아가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겠다는 목표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 실천을 위해 유소년에서 프로 리그에 이르는, 한국 축구의 발전적 피라미드 모델의 안착이 시급하다. 이 구조 없이 특별하게 가려뽑은 대표선수들만의 우승 헹가래는 공허하다.


현재 각각의 연맹이나 축구협회 바깥의 단체가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프로, 실업, 생활축구 등을 장차 협회가 컨트롤타워가 되어 모든 리그를 통합 운영한다고 밝혔는데, 이것의 현실화에는 꽤 진통이 따를 것이다. 유일무이한 길이라면 강력한 의지와 소통의 기술이 필요하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또 다른 해법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내 관점에서 더 중요한 것은 ‘즐기고’와 ‘나누며’이다. 현재 한국 축구는, 대표팀을 제외하고 보면, 즐기거나 나눌 수 있는 형편이 못되며 그런 인식조차 희미한 상황이다. 프로 선수를 꿈꾸는 중·고교 선수들에게 ‘즐기면서 하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선수, 학부모, 지도자 등이 이를 내면화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즐기는 축구’를 하면서도 얼마든지 직업 선수가 되거나 사회에 진출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 것을 축구협회가 현실로든 논리로든 입증해야 한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경기에 교체 투입되는 선수에게 부담을 줄여주려고 “즐기면서 해, 괜찮아!” 하고 격려하는 것은 아름답지만, 구조적으로나 산업적으로 도저히 ‘즐기면서’ 축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이는 그저 화려한 구호에 불과하다. 선포식 자료에는 그 해법이 단지 선언적이다.


‘나누며’는 오히려 역설의 상상력이 필요한 대목이다. 선포식 자료에는 축구가 지닌 가치를 사회에 전파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쓰여 있다. 나는 오히려 축구계가 사회로부터 더 많이 배우고 흡수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부분적으로 오늘의 사회 상황이 퇴행 징후를 보이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는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발전하고 있다. 이 발전 속도에 비해 축구의 발전 속도는 더딘 편이다.


우선 우리 사회의 경제 수준에 비해 대다수 축구인들은 힘겹게 살고 있다. 우리 눈에는 유명 스타와 적지 않은 연봉의 지도자들이 보이지만 그보다 더 많은 선수와 지도자들은 어려운 형편에 놓여 있다. 해마다 많은 유소년 선수들이 장래의 꿈을 포기하는 실정이다. 협회가 축구산업을 다각도로 발전시켜야 할 의무가 여기에 있다.


다음으로 우리 사회의 일반적 노동조건에 비해 축구계는 아직 뒤처진 상황이다. 예컨대 지금 당장 몇몇 선수들이 ‘선수노조’를 결성한다고 해보자. 당치 않은 소리라는 말부터 나올 것이다. 굳이 이런 수준이 아니라 해도 과연 선수들이 자신들의 억울한 상황을 개선하거나 의견이라도 낼 수 있는 창구가 있는가 생각해 보자. 개인적인 고충뿐만 아니라 선수들이 축구계의 각종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낼 수 있는 단위는 거의 없다.


이 사회의 전반적인 상식 수준의 발전에 비해 축구계는 여전히 채워야 할 부분이 많다. ‘공부하는 축구선수’ 같은 긍정적이며 미래적인 계획이 늦게나마 ‘시범’ 실시된 것도 2011년이다. 그 이전까지 축구선수는 거의 공부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회의 평균적 상식의 발전과 동떨어져 있었다.


공을 차는 것 말고는 제대로 익힌 것이 없어서 불가피하게 공을 그만 차게 되었을 때, 선수들과 가족들이 겪는 현실적 고통과 공포는 상당하다. 점점 더 세계가 좁아지면서 앞으로 수많은 선수들이 해외에 나가게 되고 또 그만큼의 외국인 선수들이 들어오게 된다. 이렇게 복잡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문화적, 인종적, 사상적 갈등을 기본적으로 공부하고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나는 이러한 점이 충족되었을 때를 상상하고 싶다. 우리 대표팀이 장차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것도 꿈꾸지만 동시에 나는 수많은 선수들이 축구를 했다는 것을 당당하게 여기는 미래를 꿈꾸고 싶다. 축구를 했다는 것이 공부를 못했다거나 맞으면서 컸다는 식으로 오해되는 게 아니라 성장기를 매우 아름답고 늠름하게 보냈음이 입증되는 미래 말이다.


이영표,"축구즐겼다"(출처 :연합뉴스)


축구를 했기 때문에 다양한 세계를 일찍 경험할 수 있었고 수많은 사람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웠고 때로는 불의에 맞서는 힘도 배웠고 그 어떤 종교, 인종, 사상과도 어울릴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미래를 나는 꿈꾼다. “아, ‘뽈’ 좀 찼어? 어쩐지 멋있다 했지.” 이런 말을 듣는 미래 말이다. 협회의 자료에는 축구인의 사회적 자존감을 드높이는 실질적인 과제는 거의 빠져 있다. 이 점, 너무 아쉽다.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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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감수성이란 말이 있다. 개인이나 집단의 사회 행위에서 상당히 불합리하거나 부조리한 인권침해 상황이 벌어졌음에도 이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전혀 의식하지 못할 경우, 해당 개인이나 집단의 인권 감수성은 취약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침해 당사자는 대체로 관행이라니 농담이라느니 제도가 불비해서 어쩔 수 없다느니 하는 말을 한다. 스포츠계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최근 여자실업축구(WK리그) 6개 구단 감독들이 서울시청 소속의 박은선 선수에 대해 ‘성별 의혹’을 제기한 적이 있다. 이 폭력적 인권침해에 대해 비판 여론이 형성되자 감독들은 ‘농담’이었다고 변명하다가 결국 수원FMC의 이성균 감독, 고양 대교의 유동관 감독이 사퇴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여성적 외모’라는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기준이 문제다. 주디스 버틀러가 언급했듯이 이른바 ‘여성다움’이란 정치적·문화적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남성 권력의 판별식이다. ‘소녀’ ‘섹시’ ‘팜므 파탈’ 같은 말들, 심지어 ‘여성 전사’처럼 얼핏 보기에 여성의 강인함을 드러내는 표현조차도 실은 남성 권력의 문화적 프레임이다. 남성 권력은 필요에 따라 여성들을 이 다양한 프레임으로 ‘호명’한다. 육체적인 힘의 특성이 필요한 스포츠계에서 놀랍게도 ‘여성적인 외모’ 운운하며 박은선 선수의 ‘성별’을 폭력적으로 논의한 것은 그들이 이러한 맥락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서울시청 여자축구부 관계자들이 박은선 선수 성별 논란에 관한 기자설명회를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또한 중요한 것은 사건의 초반에 그들이 취한 심리적 반응이 ‘농담’이었다는 말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는 남성이 주도하는 이 사회의 수많은 공적·사적 영역에서 쉽게 발견되는 현상이다. 나름대로 심각하게 논의를 했으면서 사태가 불거지자 ‘농담’이라는 어리석은 위장막 뒤로 숨으려는 양태를 우리는 수없이 목격해왔다. ‘농담’은 이제 ‘비겁한 변명’이란 속뜻을 갖게 되었다.


지난 4월, 포항스틸러스의 노병준 선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베이징 궈안 소속의 카누테 선수를 인종차별적으로 모욕하는 글을 올렸다가 급히 내렸다. 비난 여론 때문이었다. “한번 물어버릴까, 새까매서 별 맛 없을 듯한데”라는 말이었는데, 더 심각한 것은 급히 내린 후에 올린 ‘사과글’이었다. 그는 “웃자고 던진 말에 죽자고 덤비면… 아무튼 뭐 오해의 소지가 있다니 삭제는 해야겠네요”라고 올렸다. 이는 변명도 아니고 해명도 아니다. 그의 놀라운 축구 실력에 비해 사회적 상식은 너무 낮았다.


그뿐인가. 지난 6월에는 한화 이글스 김태균 선수가 롯데 자이언츠의 셰인 유먼 선수의 피부색에 대해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한 적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한국야구위원회(KBO)와 각 구단에 재발 방지를 요청할 정도로 중대한 일이었다. 롯데 팬들도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할 정도였다. 이에 김태균 선수와 구단이 사과를 했지만 그 문장과 뉘앙스는 내키지 않은 변명에 가까웠다. 그것도 아주 간단하고 사무적인 용어로 말이다. 당시 유먼 선수는 “나에게 직접 사과를 하거나 사과 제스처조차 취하지 않았다”고 밝힌 적 있다. 허공에 뿌리는 사과성 발표는 진정한 사과와 거리가 멀다.


사안마다 경우가 다르고, 운동 하는 사람들끼리의 친밀성이 조금 과하게 표현된 경우도 없지 않지만, 이 모든 사안들은 우리 스포츠계의 인권 감수성, 아니 그런 용어가 아닐지라도, 이를테면 사회적 상식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말해준다. 왕년의 백전노장 선수들이 텔레비전에서 출연해 “그때는 정말 심하게 맞으면서 운동했다. 그래도 서로 의지가 되고 때리고 맞으면서도 끈끈한 정도 느꼈는데, 요즘 선수들은 너무 유약하다”는 식의 말을 천연덕스럽게 하는 풍토가 여전히 지배적이다.


신생구단 KT의 조범현 감독이 지난주에 한 발언도 신중하지 못한 것이었다. 신인 선수들이 시험 때문에 훈련을 받지 못한다는 보고를 받은 그는 “요즘 아이들이 너무 힘들게 산다.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해 큰일”이라고 말했다. 감독으로서 당연한 의사 표현이고 그 핵심 역시 “너무 힘들게 산다”는 안타까움을 드러낸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래도 어쩌겠나. 아직 학생들이니 시험은 봐야지”라는 말로 이어졌어야 했다.


KT 선수들 중 절반이 아직 학생 신분이다. 구단은 본격적으로 훈련에 돌입하면서 각 학교에 양해를 구해 선수들을 훈련시키는 중이다. 그런데 대학생 선수들은 졸업 시험을 봐야 하고 고등학생 선수들은 기말고사를 봐야 한다. 조 감독은 “훈련을 하려고 하면, 시험이 있다고 빠지는데 중간고사, 기말고사, 졸업시험, 졸업평가도 있더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중요한 사실을 뒤집어버린 것이다.


물론 우리는 현실을 살아간다. 운동선수들에게, 프로 직행이 결정된 선수들에게 일일이 교실에 들어가 앉아 있으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최소한 시험은 봐야 하는 것이다. 여느 학생들처럼 공부할 기회는 주지 못하더라도 시험은 보게 해야 한다. 시험 기간 중에 저 멀리 남해에 훈련 캠프를 차려 놓은 것은 구단과 감독의 실책이다.


그동안 스포츠계는 이 사회의 일반적인 변화 양상이나 사회적 상식의 건강한 변화 속도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 변화 속도 역시 ‘스포츠’라는 특성을 앞세워 너무 느리게 과거의 시간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보니 인권 감수성이나 사회적 상식의 체득이 지체되고 말았다. 그랬는데, 이제는 사회 전체가 퇴행을 하고 있으니 스포츠계가 과거의 관행, 언행, 제도에 영영 속박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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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을 빛낸 두 명의 축구 스타가 다시 한번, 오랜만에, 팬들의 관심을 끌었다. 한 사람은 누구라도 듣고 싶은 소식으로 전해왔고 다른 한 사람은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소동으로 전해왔다. 이영표와 이천수, 두 사람이다.


언제나처럼 영리하고 빠르게 그라운드를 누빌 것 같았던 이영표 선수는 지난 28일, 소속팀 밴쿠버 화이트캡스의 홈구장에 들어섰다. 밴쿠버는 경기 전체를 이영표에게 헌정했다. 티켓은 이영표의 사진으로 인쇄되었고 경기장에는 이영표를 기리는 영상이 흘렀으며 수많은 팬들이 이영표의 유니폼을 입었다.


한편 이영표와 더불어 두 차례의 월드컵을 함께했던 이천수는 우울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폭행 사건이 있었고 경찰의 조사를 받았으며 구단의 중징계까지 내려졌다. ‘아내를 보호하려 했다’는 말이 거짓으로 밝혀지면서 마지막까지 그를 믿으려 했던 팬들마저 돌아섰다.


성실하고 착한 이미지의 ‘초롱이’ 이영표와 악동의 대명사 이천수. 엇비슷한 나이와 환경에서 성장한 두 선수는 어떻게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되었을까. 인간의 내면세계를 핀셋으로 꼭 끄집어내어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지만, 그동안 축구장이나 언론을 통해 비친 것으로 가늠해 보건대, 두 선수의 ‘성찰성’의 차이가 정반대의 길을 예고한 듯 보인다.


한국-이탈리아전에서 승리한 한국팀의 이천수가 이영표를 얼싸안고 환호 (출처 :연합뉴스)


이영표는 뛰어난 선수이자 신앙심이 깊은 기독교 신자다. 그런데 막무가내로 종교적 신념을 강요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전도 퍼포먼스를 벌이는 게 아니라 겸손과 모범을 실천하는 쪽이다.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재철 목사(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에 따르면 이영표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기도한다. 크게 외치기보다 무릎으로 기도한다. 종교가 없는 나로서는 ‘무릎으로 기도한다’는 비유의 참뜻을 짐작으로 되새길 수밖에 없는데, 아마도 겸손한 자세로 묵묵히 실천한다는 뜻일 것이다. 일부러 그러는 척하는 게 아니라 종교적 성찰이 몸에 배어 있다는 뜻이리라.


아쉽게도 이천수는, 이영표에게는 넘쳐나는 덕목을, 많이 갖지는 못한 듯하다. 물론 이 점만으로 두 선수의 인간적 면모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될 것이다. 나 역시 이영표보다는 이천수 쪽에 더 가까운, 결함투성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천수에게 마음이 간다.


이천수의 애창곡은 임재범의 ‘비상’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순간이 있지. 그렇지만 나는 제자리로 오지 못했어”라고 시작한다. 공교롭게도 독일 월드컵 이후 그는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는 “되돌아 나오는 길”을 몰랐다.


국내 리그를 벗어나 낯선 곳을 너무 오랫동안 유랑해야만 했던 이천수는 이윽고 올해부터 인천에 안착하여 K-리그를 뛰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이후로 이천수가 언론과 가진 인터뷰를 빼놓지 않고 읽었다. 어느 일간지에는 일종의 ‘자전 수기’가 연재된 적도 있다. 아쉽게도 그 내용들은 너무 형식적인 ‘반성문’이었다. 빈곤한 어휘, 틀에 박힌 반성, 설익은 다짐이 뒤섞여 있었기 때문에 좀처럼 믿기 어려웠다. 이는 글쓰기 능력과 무관하다. ‘개과천선’한 모습을 너무 일찍 보여주려는 이천수의 조급증과 ‘돌아온 탕자의 수기’를 급조라도 하여 게재하려는 언론의 과욕들이 문제였다.


폭행 사건에 휘말린 이천수가 인천 남동경찰서에 출석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이천수는 언론과 세상이 원하는 ‘돌아온 탕자’의 이미지를 너무 의식했다. 그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억지로 세상이 원하는 이미지에 맞춰 윤색했다. 아마도 그것이 그의 진짜 내면을 억눌렀을 것이다. 세상도 그를 그런 이미지에 가두려 했다. 그가 반칙을 하거나 심판에게 항의라도 하면 어김없이 ‘이천수 또 반항?’ 같은 기사가 터져나왔다. 그런 정도는 이영표도 하는 것이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자연스럽게 팬들과 접점을 넓혀 나가는 것이 중요했으나 이천수와 언론의 ‘기이한 공생 관계’는 깊이 있는 성찰의 시간 대신 조급하고 초조한 시간을 급조해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분노의 주먹>은 어느 권투선수의 흥망성쇠를 통해 겉으로는 강한 척해도 속으로는 한없이 불안하고 여린 인간의 내면을 탐문한다. 주인공 라모타는 선수로서나 개인적인 삶으로서나 거듭 실패한다. 어떻게든 재기하려 했으나 번번이 실수하고 좌절한다. 그러던 중에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는 일까지 발생한다. 그 유명한 장면에서, 라모타는 유치장의 벽을 제 주먹으로 치면서 울부짖는다. “왜? 왜? 왜?” 하는 외침이 공허하게 울려퍼진다.


그렇게 지독한 과정을 거친 끝에 라모타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 바로 자신에게 있음을 인정한다. 이천수도 그렇고 실수투성이고 모순덩어리인 우리 모두에게도 강력한 교훈이 되는 장면이다. 이천수가 좋아하는 노래 ‘비상’은 이렇게 끝난다. 


힘겨웠던 방황이 결국 “이 세상 견뎌낼 그 힘이 되어준 거야”. 언젠가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란다. 바라건대, 나는 그런 날이 조금은 늦게 오기를 바란다. 이것은 비난이 아니라 권유다. 너무 요란하게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할 게 아니다. 긴 시간을 들여서 자신과 가족과 팬과 축구장을 거듭 생각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그가 돌아오게 될 때, 우리 같은 나약하고 흠집 많은 인간들은 진심으로 그에게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의 진퇴양난이 곧 우리 모두의 모습이므로.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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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대표팀이 12일과 15일 브라질과 말리를 상대로 평가전을 치른다. 이를 위해 기성용 선수가 입국했다. 그러나 먼저 “최강희 감독님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부터 해야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고 그래야만 했다. “진작 사과를 드렸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를 ‘변명’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상식적인 수준에서 볼 때 스물네 살이라면 사랑을 고백하거나 사과를 하는 일의 타이밍을 놓칠 수도 있다. 독자들 중에는 기성용보다 훨씬 연륜이 있음에도 ‘타이밍’을 놓친 바람에 평생 후회되는 일을 겪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한번 타이밍을 놓치면 그 어떤 묘법을 써도 구차한 변명이 되거나 불필요한 오해만 낳게 된다. 마음은 검게 타들어가도 차라리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을까 하며 차일피일 미룬 경험, 누구나 겪어 본 일이다.


물론 지난 7월 불거진 ‘SNS 파문’은 일차적으로 기성용에게 책임이 있다. 근거와 절차가 구비된 하소연이나 비판이 아니라 조롱과 비난이었다. ‘해외파’ 운운한 것은 스타의식이나 파벌의식 같은 조짐으로도 보였다. 그래서인지 입국장의 기성용은 시종 어두웠다. 나는, 기성용 선수가 너무 경솔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한 선수가 모든 비난과 멍에를 뒤집어 쓰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 의심스럽다.


홍명보 국가대표 감독(왼쪽)과 기성용 선수(출처 : 경향DB)


최강희 감독을 비롯한 당시의 대다수 코치진과 선수들이 그 흔한 표현대로 ‘한 마음 한 뜻’으로 잘 굴러가던 대표팀이었는데 ‘선후배 위계 질서’도 모르는 기성용이라는 평지돌출의 철부지가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일’이었는가. 혹시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고 성적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따라서 브라질행 본선 티켓도 겨우 따낼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팀 전체의 모순과 문제점이 기성용 선수의 경솔한 ‘SNS 문구’라는 ‘약한 고리’를 통해 터져버린 것이 아닌가. 


그 과정에서 기성용을 코칭스태프가 제대로 이끌거나 제어했는가. 선수가 팀 전체 분위기나 감독의 지도를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면 감독 또한 팀 상황을 완전히 숙지하고 통제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는가. 솔직히 말해 나는 이제 와서 이런 모든 질문이 재론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브라질행 티켓을 따낸 최강희 감독은 정신적 고향이랄 수 있는 전북 현대로 돌아가 다시금 K-리그 최고 수준의 팀으로 이끌고 있다. 대표팀도 홍명보 감독이 새로 부임하며 벌써 여러 차례 중요 경기를 소화한 다음이다. 기성용 선수도 새로 바뀐 팀에서 주전 경쟁에 몰입하는 중이다.


최강희 감독.(출처 : 경향DB)


말하자면 판이 바뀐 것이다. 그럼에도 기성용 ‘사과’ 및 그것의 진정성 문제가 재론되는 것은 아슬아슬하다. 이미 이심전심으로 확인된 것을 ‘위계질서’ 차원에서 정리하는 방향으로까지 전개된다면 이는 너무 위험하다. 만약 이를 재론하고자 한다면 기성용을 포함한 관계자 전원의 ‘신앙 고백’ 수준의 말들이 필요한데, 누구도 그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을 겪을 때마다 생각나는 소설이 있다.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이다. 1970년대의 어느 고등학교 교실을 무대로 하는 이 소설의 빛나는 가치는, 소설 속 상황이 다양한 가치와 욕망이 교집하는 인간 사회 어디에서나 비슷하게 나타난다는 점을 묘파해낸다는 것이다. 나는 이천수 파동을 비롯해 스포츠계에서 벌어진 여러 ‘윤리적’인 문제를 검토할 때마다 이 소설을 거듭 인용했다. 그래서 한번 더 생각해보고 싶다.


임권택 감독이 영화로도 만들었는데, 줄거리는 이렇다. 어느 학교에 ‘문제아’가 있고 열정적인 교사가 있다. 이 교사의 인생 목표는 학생들을 대학에 진학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가르친다. 성적이 뛰어난 학생뿐만 아니라 처지는 학생들도 열성으로 가르친다. 집에까지 데려가서 밤늦도록 가르친다. 누구도 그의 열성과 선의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최기표가 문제다. 기표는 이러한 학급 분위기를 망치는 학생이다. 최고의 진학률을 자랑하는 학급인데 기표 때문에 위기가 닥친다. 그래서 선의와 열성을 가진 교사와 우등생들이 기표를 돕기 시작한다. 중요한 시험 때는 몰래 답안지를 돌리기까지 한다. 어느덧 기표는 ‘착한 학생’이 된다. 방송국에서 찾아올 정도로 전국적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기표는 결국 선한 자들의 울타리를 벗어나 제 갈 길을 간다. 기표는 ‘착한 사람’들의 기대를 배반하고 학교를 도망친다. 그가 남긴 쪽지에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고 적혀 있다. ‘선의’ 자체가 누구나 만족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유일무이한 최선의 방법이 아님을 이 작품은 말해준다.


홍명보 감독은 고심 끝에 현재의 상황을 수습하고 극복할 ‘중재자’가 되어 최강희 감독과 기성용 선수의 만남을 갖고자 했다. 그 충정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최강희 감독은 기성용 선수가 사과하러 올 필요까지는 없다고 했다. 다 지난 일이니 경기장에서 실력으로 보답하라고 했다. 그 와중에 기성용은 입국장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사과를 했다. 자, 여기까지다. 귀가 있고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세 사람이 복잡한 갈등 상황에서 저마다 최선을 다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게 되면 ‘우상의 눈물’이 될 수 있다. 왜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마음의 병은 세월이 약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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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모자를 벗으시오. 저기 천재가 들어오고 있소.”


1832년, 슈만이 동년배 피아니스트인 쇼팽을 독일 음악계에 소개하는 유명한 평론에서 한 말이다. 그 자신이 뛰어난 작곡가이자 영향력 있는 비평가였던 슈만의 단호하면서도 품격 있는 이 말은, 그 후 예술계에서 진실로 격찬할 만한 천재를 널리 알릴 때 재인용되곤 한다. 이는 신예 작가 도스토옙스키에 대해 당대의 비평가이자 사상가인 벨린스키가 다급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새로운 고골이 탄생했소’라고 외쳤던 사건만큼이나 예술사의 극적인 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여적]쇼팽의 음악 (출처: 경향DB)



나도 슈만의 이 열렬한 문장을 슬쩍 옮겨 써본 적 있다. 2005년의 일이다. 예술계의 신예 천재를 향한 격찬은 아니었고, 어느 축구 유망주를 위해서였다. 박주영이 그 주인공이다.


고교 시절에 이미 초특급 공격수로 주목을 받았던 박주영은 2005년 FC서울에 입단해 새로운 스타에 목말라 하던 K리그를 미증유의 신드롬으로 몰아넣었다. 그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축구장을 찾았다. 그가 출전하는 경기는 프로축구 생중계에 인색했던 공중파로서도 매력적인 콘텐츠였다. 비록 청소년 대표팀에서 큰 활약은 했지만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지도 않은 ‘유망주’가 전국적인 흥행 아이콘으로 떠오른 사례는 박주영 이전에는 없었고 이후에도 아직 없다.


그 무렵 어느 도시에서 벌어진 K리그 한 장면을 기억한다.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는 그 구단은 관중을 모으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도모했는데, 그 하나의 방법으로 내걸었던 인상적인 현수막이 기억난다. 신생 구단이라 전국구 스타가 없었기 때문에 고심하던 그 구단은 마침내 이런 문구를 시내 곳곳에 내걸었다. “박주영, 너를 기다렸다.”


그러나 당시 대표팀을 이끌던 조 본프레레 감독은 “바람이 불면 쓰러질 것 같은 선수”라고 저평가했다. 대다수의 축구 전문가와 팬들의 생각과는 거리가 먼 판단이었다. 독일월드컵 최종예선 2차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완패하자 박주영을 선발하라는 여론이 크게 일었다. 바로 그 순간 나는 박주영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슈만의 문장을 인용했던 것이다. “모자를 벗으시오. 저기 천재가 들어오고 있소.”


그런 우여곡절 끝에 박주영은 대표팀에 선발됐고 우즈베키스탄전에 출전해 A매치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터트렸다. 경기 종료 직전에 성공시킨 영양가 높은 동점골이었다. 닷새 후에도 박주영은 쿠웨이트 원정을 가서 왼발 선제골을 작렬시켰다.


그 후의 희로애락은 우리 모두가 목격한 바와 같다. 우리 모두는 박주영으로 인해 몇 년 동안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많이 갖게 됐다. 특히 2012 런던올림픽 한·일전에서 성공시킨 골은 요즘 흔히 쓰는 말대로 박주영이 왜 박주영인지를 증명한 골이었다. 그와 동시에 우울한 나날도 꽤 길어지고 있다. 최근 들려오는 뉴스는 그가 소속팀 아스널에서 부활의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고 하는데, 아직 이렇다 할 소식은 없다. 프랑스, 잉글랜드, 스페인 등을 전전하면서 그가 치른 고생과 수모는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골을 성공시킨 박주영이 특유의 ‘날개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박주영을 대표팀에 기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속속 제기되고 있다. 극심한 골 가뭄 때문이다. 홍명보 감독도 이청용, 기성용, 지동원, 김보경 등과 아울러 특히 박주영의 상태를 판단하기 위해 잉글랜드로 날아갔다. 그 모든 선수들이 최고 수준을 유지한다면 잉글랜드 무대는 물론 한국 대표팀에 엄청난 효과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특히 박주영의 기량 회복은, 예측을 불허하는 그의 공간 상상력에 의해 대표팀 공격 전개의 수많은 옵션을 가능케 할 것이다. 좌측면에서 기회를 엿보던 박주영이 수비수 두세 명을 뒤흔들면서 대각선으로 질주하기만 해도 그 순간 한국의 공격형 미드필더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공격 옵션은 최소한 세 가지 이상 발생한다. 그 자신이 골을 넣거나 예리하게 패스를 하거나 헝클어진 수비라인 배후에서 구자철이나 지동원이 슛을 날리는 모습은, 우리가 금세 상상할 수 있는 장면이다.


이런 선수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과거에 차범근이 있었고 황선홍이 있었다면 여전히 우리에게는 박주영이 있다. 한 세대에 한 명 정도 나타나는 천재다. 이들의 골 감각이나 공격 본능은 그야말로 천부적인 감각이며 태어나면서부터 그들의 몸속에 내장된 것이다. 가르쳐서 될 일이 아니며 노력한다 해서 습득될 일도 아니다.


물론 일종의 천재주의 혹은 영웅주의에 대해 나는 비판적이다. 전체로서의 역사도 그렇고 각 부분의 일도 그렇고, 소수의 천재나 영웅이 모순과 아비규환을 끝장낸다는 식의 발상은 위험하다.


그럼에도 나는 박주영이 대표팀에 발탁된다면 망설임 없이 모자를 벗을 것이다. 스포츠라는 비적대적인 공간에서 비범한 선수가 천부적인 상상력과 놀라운 몸놀림으로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노력해서 도달할 수 있는 한계를 뛰어넘어 누구도 밟아보지 못한 지평을 펼쳐내는 것은 지극히 아름다운 일이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초월의 환영을 보게 된다. 박주영이 그런 모습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면 박주영 개인에게나 한국 대표팀 전체에나, 그리고 지루하고 남루한 일상에 지친 우리 모두에게 짜릿한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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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5월, 지네딘 지단이 수원에 왔다.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한국과 프랑스가 평가전을 치른 것이다. 그날 지단은 지쳐 있었다. 더욱이 맞상대는 김남일. 이 진공청소기는 지단의 기운을 다 빨아들였다. 지단은 제 뜻을 다 펴보지 못하고 벤치를 향해 교체 사인을 보냈다.


다음 날, 대개의 스포츠 기사들은 지단이 교체된 것을 두고 세 가지 정도의 추측성 기사를 내보냈다. 노쇠했다는 추측이 첫 번째였다. 그러나 그는 2002는 물론 2006월드컵까지 치렀다. 고액 연봉을 받는 스타가 평가전을 우습게 여겼다는 추측도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 대표팀으로서는 마지막 평가전이었다. 지단 같은 선수가 이를 가벼이 여겼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유럽 리그가 너무 늦게 끝나서 컨디션을 회복할 여유가 없었다는 추측이 있었다.


프랑스와 한국과의 평가전에서 그라운드에 넘어진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 (경향DB)


이 세 번째가 그나마 현실성이 있었다. 유럽의 빅리그는 8월 중순에 시작해서 5월 하순에 끝난다. 월드컵이 열리는 해에는 다소 앞당겨지긴 한다. 그래도 5월 초까지 박빙의 리그를 뛰어야 한다. 게다가 지단은 레알 마드리드 소속이었는데 이런 은하계 최고의 팀은 거의 모든 대회의 막판까지 뛰게 된다. 그런 후에 수원으로 왔으니 지단의 몸은 균형 잃은 팽이와도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지단이 축구 인생 전부를 걸고 치러야 했던 경기가 또 하나 있었다. 당시 프랑스는 극우 정당 국민전선(FN)의 장 마리 르펜 때문에 20세기적인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그는 이민자와 유색인에 대한 증오 발언을 일삼았는데 이 파괴적인 선동이 인기를 끌었다. 르펜은 ‘온갖 유색인종이 뒤섞인 대표팀은 순수한 프랑스가 아니다’라며 극우적인 드리블 돌파를 감행했다.


극우파 대선 후보 르펜에 반대하는 농성을 벌이고 있는 프랑스의 젊은 학생들 (연합뉴스)


지단은 이 파괴적인 준동에 태클을 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르펜과 국민전선의 반인륜적인 인종차별 선동에 맞서 싸웠고 성명서를 통해 강력한 백태클을 걸었다. ‘지단이냐 르펜이냐, 진정한 프랑스인이라면 현명하게 선택하라.’ 그제야 프랑스가 제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지단은 그렇게 장외 혈전을 치르고 나서 수원으로 왔다. 개인 컨디션 회복이나 팀 훈련 같은 것을 할 만한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별로 없었다.


페인트 등으로 훼손돼 우스꽝스런 모습을 하고 있는 장 마리 르펜 당수의 선거포스터 (연합뉴스)


이러한 사실은 그 당시 신문이나 방송의 외신 뉴스만 훑어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문제는 우리의 스포츠 저널리즘이 경기 결과나 이적 소식 말고는 거의 무관심하다는 점이다. 유명 선수일수록 그 사회의 압력을 더 많이 받는다. 그래서 그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우리의 스포츠 저널리즘은 그러한 일에 거의 무관심하거나 무지하다. ‘운동 선수가 뭘 안다고’ 하는 근거 없는 편견도 얼마쯤은 작동할 것이다. 선수들이 사회의 평균적인 상식이나 변화와는 무관하게 ‘운동 기계’처럼 성장되는 우리의 현실이 그런 무지와 편견을 증폭시켰을 것이다.


한 사람 더 살펴보자. 펠레! 이 이름을 듣는 순간 어떤 느낌부터 드는가. 축구 황제라는 말부터 떠오른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축구를 알리는 친선대사 같은 느낌도 난다. ‘펠레의 저주’라고 해서 묘하게도 우승 팀을 제대로 맞히지 못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브라질 '축구황제' 펠레가 머리에 공을 올려놓고 컨트롤하는 묘기 (연합뉴스)


그렇다면 이런 얘기는 어떠한가. 브라질은 20세기 대부분을 잔혹한 군부 독재 치하에서 살았다. 그때 축구가 있었고 펠레가 있었다. 세계 최강의 브라질 축구와 은하계 극강의 펠레 같은 스타는 군부 독재의 어릿광대가 되기 쉽다. 그런데 펠레는 그 요구를 한사코 외면했다. 그래서 미움을 받았다.


브라질에는 독재 정권보다 더 강력한 또 하나의 정부가 있다. 바로 브라질축구협회다. 축구라는 브라질 최고의 산업과 절대적인 영혼을 거머쥔 이 제국의 통치자가 주앙 아벨란제 전 FIFA 회장이다. 그는 사반세기 동안 FIFA 회장을 지내면서 브라질 축구를 움켜쥐었고 반세기 가까이 IOC 위원을 지내면서 세계 스포츠계를 쥐락펴락했다.


그가 거느리고 있는 브라질 축구 마피아를 ‘큰 모자 형님들’이라고 부른다. 이 형님들을 골치 아프게 한 인물이 펠레다. 펠레는 그들의 어릿광대 노릇을 거절했다. 그래서 브라질보다는 해외로 나가서 활동했는데 어떤 점에서는 떠돌이 신세였다. 그는 부패한 큰 모자 형님들이 수많은 무명 선수들과 가난한 아이들의 꿈을 가로채고 있다고 비판했다.


펠레가 한때 체육부 장관을 한 적 있다. 독재 정권이 종식되고 개혁 세력이 정권을 잡은 후 체육부 장관으로 펠레를 초빙했다. 나라 밖으로 떠돌던 펠레는 모처럼 개혁의 기회를 맞아 축구협회 개혁에 나섰다. 물론 그의 시도는 좌초됐다. 아직까지도 브라질 정부의 개혁성은 유지되고 있지만 축구협회만큼은 무소불위의 철옹성이었다. 아벨란제의 사위가 ‘대권’을 이어받았고 그들은 또 하나의 정부처럼 움직였다. 펠레의 개혁 시도는 물거품이 됐고, 월드컵 명예 대사라는 직함으로 세계를 떠돌고 있다.


브라질의 펠레가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우승을 결정지은 뒤 팬들에게 축하받고 있다.


지난 4월, 외신은 펠레가 독재 정권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감시당했다고 보도했다. 상파울루 주정부가 1964년에서 1985년까지의 군부 독재 비밀기록 2만여 건을 공개했는데 그 가운데 펠레 파일이 있었다. 우리가 경기 내용이나 그 결과에만 주목할 게 아니라 경기장 바깥까지 두루 살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포츠는 순백의 진공 상태가 아니라 그 사회의 긴장과 욕망이 뒤엉키는 공간이고 선수들은 그 중심에서 늘 선택의 강요를 받는다. 이를 깊이 헤아릴 때, 스포츠도 발전하고 사회도 성숙한다. 아니 그런 말 이전에 선수들의 처지와 고뇌를 이해하게 된다. 그게 우리의 스포츠 문화가 나가야 할 방향이다.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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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한·일전에서 한국 측 응원단이 펼친 대형 현수막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들은 이순신 장군과 안중근 의사가 그려진 현수막도 내걸었다.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비판한 것이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이에 “극도로 유감”이라며 “국제축구연맹(FIFA) 규약에 근거해 적절히 대응하겠다”고 말해 자칫 국가 간 갈등으로 비화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 의사 표현은 스포츠 정신보다 앞선다는 믿음이 만들어낸 이런 사건들은 한국적 국가주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국제 경기에서 메달을 따면 군대를 면제해주고 연금을 지급해 특정 선수의 스포츠 실적을 국가 위신을 높이는 위업으로 간주해왔다. 지난해 런던올림픽 한·일전에서도 한 선수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쓴 카드를 흔들어 FIFA로부터 제재를 받은 적이 있다. 그때도 이를 애국적 행동으로 받아들이고 면죄받아야 한다는 온정주의가 만연했다. 물론 일부 일본 관중도 축구장에서 우리에게 군국주의 상징으로 인식돼온 ‘욱일승천기’를 흔드는 등 종종 민족주의적 표현을 했다. 일본 역시 한·일전을 민족 대결로 몰아가는 데 일조를 한 것이다. 



한·일 두 나라 축구팬들은 축구장을 정치대결의 장처럼 여겼다. 특히 한국 응원단은 불특정 다수를 향해 증오를 표출했다. 응원단을 한민족의 대표자로 자처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축구장은 아베 정권의 과거사 부정에 대해 책임을 묻는 심판장이 아니다. 그걸 표현하고 싶으면 축구장 밖에서 하면 된다. 축구는 축구이고 스포츠는 스포츠이다. 선수가 정해진 규칙에 따라 땀흘리며 경쟁하는 멋진 광경을 즐기기 위해 사람들은 경기장을 찾는다. 선수들은 국가나 소속팀을 대표해 자신의 명예를 걸고 각자의 기량을 뽐내기 위해 나온다. 적을 무찌르고 국가의 영광을 실현하기 위한 전사가 아니다. 그러므로 축구장에서 상대를 정치적으로 공격하거나 자극하는 일을 할 이유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그것은 스포츠 정신을 훼손하고 국제규범을 어기는 행위이다.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축구장에는 국가의 대표자나 국가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자유로운 시민으로 찾아가는 것이다. 그들 사이의 관계는 한·일 국가관계가 아니라, 축구를 즐기는 시민 대 시민의 관계이다. 증오를 부추기는 민족주의를 비판하고 그런 행태를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성숙한 사회라면 그래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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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홍명보의 아이들’이 대표팀에 발탁됐다. 지난 11일 홍명보 대표팀 감독이 동아시안컵 대회 참가 명단을 발표하자 언론이 일제히 표현한 문구다. 그래서 따옴표를 쳐봤다. ‘홍명보의 아이들’ 말이다. 어떤 언론은 ‘대거 발탁’이라고도 썼다.


런던올림픽 참가를 기준으로 보면 정확히 7명이다. 최종 엔트리 23명 중 7명이면 ‘대거 발탁’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조금 범위를 넓혀 홍 감독이 올림픽 팀을 맡았을 때 합류했던 선수들을 더해보면 15명이다. 이 정도면 ‘대거 발탁’이라고 부를 수 있으나 맥락을 보면 반드시 ‘홍명보의 아이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다.


홍 감독은 “예비 40명 중 브라질월드컵에서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판단되는 선수들 위주로 선발했다”고 말했다. 행간의 의미는 분명하다. 이미 기량이 검증된 선수는 선발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번 대회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정한 공식 A매치에 포함되지 않는다. 유럽 구단의 차출 의무가 없다. 그러다 보니 국내에서 뛰는 15명, 일본에 진출한 7명 그리고 중국에 진출한 김영권(광저우)으로 구성됐다.


(경향DB)


이미 기량이 검증된 선수들 대신 젊은 선수들로 구성하다 보니 평균 연령도 24.7세로 낮아졌다. 전임 최강희 감독이 처음 꾸렸던 대표팀보다 4살가량 낮아졌다. 이 연령에 해당하는 손흥민, 기성용, 구자철, 윤석영 등이 제외된 것까지 고려하면 홍 감독이 동아시안컵 대회를 ‘검증’의 기회로 삼겠다는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지금 누가 새로 감독이 됐다 해도 이렇게 선발했을 것이다. 굳이 해외에 진출한 선수들이나 실력이 검증된 국내의 중고참 선수들을 불러모을 까닭이 없다. 주로 20대 초반의 선수들로 구성할 수밖에 없으며 또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선수들은 대개 런던올림픽에 이름을 올렸었다. 이를 ‘홍명보의 아이들 대거 발탁’ 이렇게 표현하면 마치 모든 것이 가능한 조건에서 일부러 런던올림픽 선수들만 뽑은 듯한 인상을 준다.


언론의 이런 호명은 위험하다. 23명 중 7명을 특정해 ‘홍명보의 아이들’이라고 부르게 되면 이제 동아시안컵 대회는 이 프레임으로 판단하게 된다. 23명 가운데 선발 11명이 뽑힐 텐데 그중 몇 명이 ‘홍명보의 아이들’인지부터 따질 것이다. 각 포지션마다 한두 명 정도는 런던올림픽에 출전했던 선수가 뛸 텐데 그 활약 여부를 두고 ‘홍명보의 아이들, 쾌속 질주’ 혹은 ‘홍명보의 아이들, 스타의식에 젖어’ 식의 기사가 나올 수도 있다.


‘기성용 파문’ 때도 언론은 낡은 프레임에 스스로 갇혔었다. 세상사는 다양한 원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하나의 문제가 된다. 그러나 <정치경제학 비판 서문>의 저자가 말했듯이 ‘인류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만을 자기에게 제기한다.’ 다시 말해 어떤 문제는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이미 안고 발생한다.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그 사태 안에 잠복돼 있는 열쇠를 찾아내야 한다. 사태의 진면목이 무엇인가를 성찰해야 그 희미한 틈새가 보인다.


이런 복잡한 일 대신 단순하게 접근하는 법도 있다. 흑백논리가 그것이다. 이 시선으로 보면 세상사가 양편으로 확연히 갈라진다. 이어 찬반양론이 들이닥친다. 이제 사유는 금지되고 흑백 혹은 찬반의 칼날이 춤을 춘다. ‘기성용 파문’은 이렇게 하여 금세 여론재판대 위로 올라갔다. 그리하여 선수도 지탄을 받았고 감독도 비난을 받았으며 축구협회도 원성을 받았다. 명확한 책임자가 거론되지 않는 상황에서 ‘협회’라는 큰 덩어리 전체를 거론하는 것은 아무런 비판을 하지 않는 셈이지만 어쨌든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언론만 제외하고 말이다.


출국하는 기성용 (경향DB)


과연 이런 사태에 관해 언론은 책임이 없는가. ‘해외파’와 ‘국내파’라는 표현이 활동하는 지역을 말해주는 단순한 분류표를 넘어서 이제는 보이지 않는 ‘세력’처럼 됐다. 이 ‘세력’을 만든 것은 언론 아닌가. ‘이번에는 해외파가 총출동했다’고 누가 말했던가. 협회가? 감독이? 선수가? 아니다. 큰 대회가 있을 때마다 언론이 우선 대서특필해 눈길을 끌고자 하는 욕망을 제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론은 낡은 언어를 자주 쓴다. ‘천금 같은 결승골’, ‘벼락같은 중거리슛’, ‘왼발의 달인’ 등 이런 진부한 표현들은 단지 어휘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사유의 부족을 드러낸다. 외국인 선수를 ‘용병’이라고 쓰거나 아프리카 쪽 팀이나 선수들을 ‘탄력 넘치는 에너지’ 같은 육체적 수사로 한정하는 것도 그렇다. 아프리카 감독이나 선수들에 대해 ‘지략가’나 ‘지능적인 플레이’ 같은 말로 표현하는 것은 매우 드물다. 과연 그들은 머리를 헤딩할 때만 쓴단 말인가.


세대의 감성 변화, 애국주의와 대중 스포츠, 세계화와 인종주의, 미디어의 재현 방식과 오리엔탈리즘, 스포츠와 팬덤 현상 등에 대해 제대로 사유하지 않은 언어들이 언론에 넘쳐나다 보니 ‘기성용 파문’에 대한 언론의 충고 또한 ‘일벌백계’, ‘기강해이’, ‘위계질서’ 같은 20세기 중엽으로 되돌아갔다. 이는 그토록 뜨거웠던 그 문제에 내장돼 있는 해결의 열쇠가 결코 아니다. 그리고 이제는 ‘홍명보의 아이들’까지 등장했다. 이 프레임은 위험하다. 언론이 또 하나의 분파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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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년 계약’으로 결론이 났다. 새로 축구대표팀을 맡게 된 홍명보 감독 얘기다. 지난주에 이미 허정무 부회장은 홍 감독과 ‘교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 후 며칠 동안 아마도 ‘밀당’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의미 있는 밀당 말이다. 차기 감독의 ‘임기 보장’은 중요한 지렛대다. 히딩크 이후로 수많은 감독들이 선수 파악과 전술 운영을 몇 차례 하다가 중도에 그만두었다.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홍 감독으로서는 브라질월드컵으로 끝나는 단기 계약이 아니라 최소 3년 이상의 임기를 원했을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자리 욕심이 아니라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고자 하는 ‘밀당’이다.


2010 남아공 이전의 역사는 거론할 필요도 없이 전임 조광래, 최강희 두 감독의 경우만 봐도 ‘임기 보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당장은 브라질에서의 승전보가 중요하다. 그러나 2014년 이후에도 인류는 축구를 한다. 1년 후에 또 다른 누군가가 원점에서 신인을 찾고 해외파와 국내파를 조율하고 프로축구 구단들과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면 꼭 그만큼 시간과 노력이 허비되는 것이다. 이번에는 협회가 결심을 했고 홍 감독은 이에 부응했다. 이에 몇 가지 당부를 하고 싶다.


홍명보 올림픽팀 감독 기자회견 (경향DB)


무엇보다 2012 런던올림픽의 영광을 말끔히 잊어야 한다.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동메달은 축구사의 전설이 됐고 ‘애국가’의 자료 화면이 돼도 좋을 만큼 역사가 됐다. 그 주인공인 홍 감독으로서는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이겠지만, 지금 그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월드컵 대표팀을 맡은 신인 감독이다. “우승은 어제 내린 눈일 뿐”이라는 토털 사커의 창시자 리누스 미헬스 감독의 명언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지 각오를 새롭게 하자는 권유가 아니다. 올림픽에서 함께 뛴 선수들과 그렇지 않은 선수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유리벽부터 철거해야 한다. 월드컵에는 나이 제한이 없다. 가뜩이나 그라운드 안에서 중심을 잡아줄 선수가 없다는 얘기가 들리는 판인데 10대 후반의 유망주부터 30대의 관록 있는 선수들까지 운집할 월드컵 대표팀에서 올림픽 멤버가 별도의 행성처럼 움직여서는 안된다.


다음으로 시스템을 생각하고 싶다. 1년밖에 남지 않았지만 아직 1년이나 남은 상태다. 국내파 감독, 특히 홍 감독을 사람들이 주목했던 것은 선수를 파악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이점 때문이다. 누군가 한국의 선수들에 대해 물어보면 홍 감독은 수십 명의 선수들의 경기력이나 장단점, 성격이나 취향, 연애 비사 등을 막힘없이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는 대표팀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시간적 여유를 벌게 됐다. 시스템이라는 측면에서 한국 축구는 히딩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그는 그때까지는 생소했던 피지컬 트레이너, 비디오 분석관, 언론 담당관 같은 전문가들로 구성된 시스템으로 2002년을 역사책에 밀어넣었다. 그 이후 이제는 웬만한 프로구단도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수많은 경질 파문에 따라 대표팀의 형식적 시스템은 구축되었으나 그 내실이 여의치 않고 축적된 정보나 노하우가 새 팀의 자산이 되지는 못했다. 홍명보 감독은 선수와 전문가들이 결합된 ‘하나의 팀’을 구축해야 하고 이 힘으로 브라질의 승전보와 그 이후의 축구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주변의 유혹을 거절해야 한다. 이는 경기 외적인 당부다. 항간에는 여전히 한국 축구에 인맥, 학연이 작동한다고 하지만 적어도 대표팀을 구성하는 데 있어 그런 폐단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2002 월드컵을 계기로 사라졌다고 나는 판단한다. 프로축구의 활성화에 따라 축구로 유명한 대학은커녕 고교도 거치지 않고 프로 무대로 직행하는 스타들이 늘고 있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경기 외적인 유혹이다. 나는 역대 대표팀 감독 중에서 딕 아드보카트 감독을 최악으로 꼽는다. 그는 이재에 밝았다. 2002 월드컵의 엄청난 영향력, 그러니까 축구대표팀과 그 감독이라는 엄청난 ‘브랜드 효과’에 놀란 기업들은 2006 월드컵의 아드보카트 감독을 ‘제2의 히딩크’처럼 띄웠다. 굴지의 전자회사와 카드회사의 모델까지 한 아드보카트 감독은 순전히 한국에서만 출간된 자서전까지 남기고 그 어떤 흔적도 없이 떠나버렸다. 아마도 많은 기업들은 홍명보라는 이름의 브랜드 가치를 분주히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 축구의 레전드, 올림픽 동메달의 상징, 든든한 멘토이자 맏형 등의 광휘를 지닌 ‘홍명보’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엄청난 광고 효과를 지니고 있다. 그가 모든 제안을 거절할 수는 없겠지만 ‘대표팀 감독’의 품격에 맞는 절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2006년 현대카드 광고


고대 로마 시절, 원정에서 승전보를 들고 장군이 개선할 때 반드시 ‘메멘토 모리’를 반복해서 말하는 하인이 있었다. 모두가 영웅으로 칭송하며 환호할 때 그 하인은 “장군도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죽음’이란 반드시 자연사적인 운명만 가리키는 게 아니라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패배와 시련도 포함한다. 그러한 각오, 그러한 자세, 그러한 눈빛으로 모든 것을 원점에서 새로 시작할 때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그야말로 올림픽 동메달은 어제 내린 눈일 뿐이다. 모든 게 원점에서 시작돼야 한다. 사실상 그렇지 않아도 원점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지만 말이다.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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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탈리아 축구는 홍역을 앓고 있다. 1980년대만 해도 유럽의 축구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자전했으며 1990년대 이후에도 세계적인 스타들은 반드시 이탈리아를 최종 목적지로 삼았다. 그랬는데, 지금은 경유지 정도로 여긴다. 우선 2006년에 터진 ‘칼치오폴리’, 즉 이탈리아 프로축구 최상위 팀들이 연루된 승부조작, 뇌물, 부패 사건의 후폭풍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역대 최강자인 유벤투스가 하위 리그로 강제 추방당했고 승부조작에 연루된 감독·심판·단장 등이 대거 유죄 판결을 받았다. 정치학자 최장집 교수는 일부 관계자들의 우발적인 모의가 아니라 이탈리아 사회 특유의 얽히고설킨 ‘유사 가족주의’가 낳은 구조적인 사건이라고 말한다.


일부 선수는 감독만 바라보고 감독은 비굴한 표정으로 심판을 바라보고 심판은 의미심장한 미소로 단장을 바라보고 단장은 구걸하듯이 구단주를 바라보는, 그 누구도 팬을 의식하지 않는 이 거대한 ‘유사 가족주의’는 이탈리아 현대사의 헝클어진 실뭉치다. 


창단 초기부터 이탈리아 축구를 주도해온 유벤투스는 조반니 아넬리로 비롯되는 거대 자동차그룹 피아트와 역사를 같이한다. 그는 파시스트가 아니었지만, 그리고 미국의 자동차 회사와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복지 정책을 토리노 공장에 실시했지만, 무솔리니 정권과 동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유벤투스는 전무후무의 승전보를 기록했으며 무솔리니 몰락 이후에도 이탈리아 축구를 지배했다. 축구와 정치의 검은 거래를 추적해 온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의 저자 프랭클린 포어는 “유벤투스는 아넬리 집안의 장난감”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아넬리 가문의 ‘축구 통치’에 도전한 것이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AC밀란을 통한 ‘축구 정치’다. 이탈리아 여론을 한순간에 좌우할 정도로 막강한 미디어 재벌이었던 그는 1986년 AC밀란을 거머쥔다. 베를루스코니는 이 명문 클럽을 이끌고 정치의 핵심으로 돌진했다. 축구장의 익숙한 구호에서 따온 ‘전진 이탈리아’라는 정치 세력을 통해 그는 세 번이나 총리 권력을 누렸다. 


AS 로마와 AC 밀란전에서 AS 로마 팬들이 인종차별 응원가를 불러 경기가 잠시 중단되고 있다. (AP연합)


베를루스코니에 의하여 미디어와 축구와 권력이 정교한 패스워크를 벌이자 이번에는 승부조작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생겨났다. 인종차별이 그것이다. 그 이전만 해도 축구장에서의 인종차별은 비판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극우파 정치인의 미디어는 파시스트들에게 축구장의 문을 열어주었다. 때마침 유럽을 강타하고 있는 경제위기는 이탈리아 축구장을 인종차별의 콜로세움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하여 지금 이탈리아 축구장은 승부조작의 여파와 극심한 인종차별의 수렁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우리의 스포츠 현장은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아직 자유롭다. 그러나 ‘아직’ 그렇다는 것이지 이 같은 위험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2년 전, 프로 스포츠 전체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승부조작 파문이 완전히 근절되지는 않았다. 축구협회는 지난 2년 동안 경기국 직원 및 경호업체 직원까지 각급 리그 현장에 파견해 불법 베팅을 막고 있다. 불법 베팅은 승부조작과 직결되는 사안인데 그동안 20명 가까이 적발돼 경찰에 넘겨졌고 최근에도 챌린저스리그(4부리그)에서 무려 5명이나 현장에서 적발됐다. 지난달 말에는 인천의 어느 태권도 인사가 편파판정과 승부조작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목숨을 끊는 일까지 있었다.


‘아직’ 축구장을 오염시킬 정도는 아니지만 인종차별 행위도 더러 보인다. 포항의 어느 선수는 베이징에서 뛰고 있는 흑인 선수에 대한 모욕적인 표현을 했다가 급히 철회한 적 있고 국내의 어느 축구팬도 잉글랜드 리그에서 뛰는 선수의 트위터에 모욕적인 표현을 썼다가 거듭 사과한 적 있다. 미디어의 오랜 언어 관습도 여전하다. 외국인 선수를 ‘용병’이라고 표현하거나 ‘흑인 특유의 탄력’이라는 식의 차별적이고 위험한 표현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만약 우리 사회가 동아시아의 경제 중심으로 급변하게 되고 나아가 북한의 다양한 변화 혹은 위기까지 겹치게 되면 장차 우리의 축구장에서 이 같은 현상이 더욱 두드러질 것은 자명하다. 


사회의 경제위기나 복합적인 상황은 축구장의 온도를 급속히 끓어오르게 한다. 여기에 이념, 아니 이념 수준에도 이르지 못하는 파괴적인 정념이 뛰어들면 그 순간 축구장은 극우적 감정이나 야만적 인종차별의 화약고로 변하게 된다. 사회 내부의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축구장, 아니 사회 전체가 이성의 작동이 중지된 야만의 공격 상태로 급변하는 것이다.


정대세 (경향DB)


어느 논객의 무분별한 촉발로 인해 수원 삼성에서 뛰고 있는 정대세 선수가 ‘북한 공작원’이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어찌 보면 작은 소동이다. 그러나 축구협회와 프로축구연맹 그리고 소속 구단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더 큰 문제로 비화할 수도 있다. 정대세를 보호하는 것은 이념 수준에도 이르지 못한 낡고 닳은 ‘종북좌빨’ 표적놀이로부터 축구장을 보호하는 것이다. 사회 내부의 갈등과 위기를 외부인을 겨냥해 발산하는 것은 파시즘의 흔한 징후다. 장차 발생할 수도 있는 이념 투쟁, 지역 갈등 혹은 인종차별의 위험한 사냥놀이로부터 축구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협회와 연맹과 구단은 이 위험한 불장난을 막아야만 한다.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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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영원하고 감독은 경질된다고 하더니 이런 속설을 비범한 경지로 무너뜨린 사람이 있다. 엊그제 마지막 홈 경기를 치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이다. 이 경기는 리그 우승 20회를 자축하는 경기이자 무엇보다 1993년에 맨유 유소년 클럽에 입단하여 20년 넘게 이 팀에서만 공을 찬 폴 스콜스의 은퇴 경기라는 점에서도 각별했다. 퍼거슨은 스콜스에 대해 “가정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조용히 사는 걸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요즘 선수들 중에 그것만으로 만족하는 선수는 극히 드물다”고 말한 적 있다.


영국 축구 알렉스 퍼거슨 감독 (로이터 연합뉴스)


홈구장 올드 트래퍼드는 26년 동안 자신을 영광의 그라운드로 만들어준 노장을 위한 감사의 인사말로 넘쳐났다. 맨유를 후원하는 어느 기업은 ‘투 비 컨티뉴드’라는 문구를 90분 동안 쉬지 않고 내보냈다. 어느 팬은 ‘불멸의 인물’이라는 문구를 흔들었다. 상대팀 스완지시티의 선수들마저 도열하여 그의 마지막 홈 경기 입장을 지켜보았다. 그는 그들을 2-1로 눌렀다. 10년 넘게 자기 팀의 수비를 맡았던 리오 퍼디난드가 승리를 확정짓는 결승골을 터트렸을 때 퍼거슨은 26년 동안 늘 그랬듯이 두 손을 치켜들며 펄쩍 일어나 뛰었다. 골! 이 한마디에 평생을 걸었던 축구인의 순정한 표정이었다. 


경기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지난 연말에 은퇴를 결심했다고 한다. 처제가 세상을 떠났고 그 때문에 아내가 외롭게 지냈으니 이제는 그라운드를 떠나 사랑하는 아내 곁으로 가서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내겠노라고 71살의 할아버지 퍼거슨은 말했다. 그가 그런 결심을 하던 지난해 11월24일, 맨유의 전설들이 올드 트래퍼드에 모인 적 있다. 저 60년대 이후로 맨유의 살아 있는 전설이 된 노장 보비 찰튼을 비롯, 에릭 칸토나, 페테르 슈마이헬, 드와이트 요크, 군나르 숄샤르, 반 니스텔루이 그리고 박지성까지 참석했던 퍼거슨 동상 제막식 행사였다. 퍼거슨 감독은 사랑하는 아내 캐시와 데이비드 길 단장 그리고 조각가 필립 잭슨과 함께 자기 자신을 1.5배쯤 확대한 동상을 바라보았다. 팔짱을 낀 채 그라운드에 바짝 붙어서서 초조하게 골을 기다리는 모습을 형상화한 2.7m의 동상, 바로 그 주인공은 1986년 11월22일 맨유의 감독이 된 이래 프리미어리그, UEFA 챔피언스리그, FA컵 등의 대회에서 무려 38차례나 우승했다. 한 팀에서 26년 동안이나 감독직을 맡은 것도 대단하지만 여러 차례의 위기와 갈등에도 불구하고 한 명의 감독에게 사반세기 동안 팀을 맡긴 구단도 기억할 만하다. 


이탈리아의 명문 클럽 인테르 밀란은 지난 20여 년 동안 18명의 감독을 교체했다. 트라파토니, 리피, 만치니, 무리뉴, 베니테스 등 최고의 명장들이 다녀갔다.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도 발다노, 카펠로, 카마초, 델 보스케, 슈스터 등 무려 24명이 거쳐갔다. 잉글랜드의 첼시도 포터필드, 호들, 훌리트, 스콜라리, 히딩크, 안젤로티 등 천하의 명장 14명이 스쳐지나갔다. 그렇게 하여 우승을 거두기도 했고 감독이나 선수들 모두 치명상을 입기도 했다. 


맨유와 퍼거슨도 그랬다. 우승도 많이 했고 그 과정에서 구단과 감독과 선수들이 서로의 마음에 찰과상을 입히기도 했다. 그래도 사반세기를 버텼다. 그래서 역사가 되었다. 이러한 사례는 어쩌면 21세기의 축구사 100년 동안에도 다시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퍼거슨이 꽃마차를 타고 맨유에 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가 맨유를 맡기로 한 80년대 중반에 맨유는 중하위권에 주저앉은 상태였다. 연전연승의 리버풀이 잉글랜드 축구를 이끌던 시대였다. 퍼거슨의 첫 시즌 성적은 11위였다. 1990년에는 해임설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퍼거슨에게는 한두 시즌의 반짝 승리보다는 팀의 장구한 생명력을 위한 과감한 전략이 있었다. 그것은 미래의 맨유를 책임질 유소년을 선발하여 자신이 추구하는 축구 철학에 접목시키는 것이었다. 물론 당장의 현역은 필요했다. 에릭 칸토나, 테디 셰링엄, 폴 인스 등이 팀의 주력을 맡았고 그 아래로 이제 막 사춘기에서 벗어난 선수들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라이언 긱스를 시작으로 니키 버트, 폴 스콜스, 게리 네빌, 데이비드 베컴 같은 어린 선수들이 21세기의 맨유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경향DB)


퍼거슨은 유망주 스카우터를 무려 17명이나 배치했다. 한 팀의 숫자보다 더 많은 스카우터들이 전 세계를 돌면서 뛰어난 선수들을 발굴했다. 박지성 선수가 그들의 눈에 띄었을 때, 그리하여 아인트호벤에서 맨체스터로 거주지를 옮겼을 때, 오직 이 퍼거슨 시스템에 무지한 사람들만이 ‘티셔츠 판매용’이라고 비난했을 뿐이다. 박지성은 퍼거슨과 함께 7년 동안 그라운드를 누볐다. 


퍼거슨의 영광은 98-99 시즌이었다. 그때 그는 트레블, 즉 3관왕의 신화를 썼다. 그후 팀이 어수선해졌다. 구단의 주인이 바뀌었다. 그것도 미국 자본의 수중에 넘어가자 맨유의 순혈주의자들은 통곡까지 했다. 그러나 그들도 퍼거슨의 위상을 흔들지는 못했다. 퍼거슨은 오히려 강력한 리더십을 요구했다. 구단 수뇌부의 그 누구도 라커룸에는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선수에 관한 모든 것은 곧 감독의 모든 것이 되었다. 야프 스탐과 데이비드 베컴과 로이 킨을 떠난 자리를 퍼거슨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웨인 루니, 네마냐 비디치, 파트리스 에브라, 마이클 캐릭 그리고 박지성 같은 선수들로 채웠다. 그리하여 맨유는 전설에서 신화의 단계로 비약했다. 그의 사반세기는 어쩌다 세월을 보내다 보니 저절로 얻어진 ‘퍼기 타임’이 아니었다.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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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함부르크 SV에서 활약하고 있는 손흥민의 이적설이 불거지고 있다. 여러 차례 러브콜을 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상위권 팀들을 제치고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다. 만약 도르트문트로 이적하게 된다면 그는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그 지역의 유명한 더비(지역 간 라이벌 경기)에도 출전하게 될 것이다. 바로 독일 근대 산업 혁명의 중추가 되는 유서 깊은 루르 지역의 라이벌 도르트문트와 샬케04의 경기다. 일컬어 레비어 더비라고 부른다.


이 레비어 더비의 한 축인 도르트문트는 1909년에 창단되었다. 이 팀은 히틀러 파시즘 때 큰 수난을 겪었다. 각 지역의 유명 클럽들은 히틀러의 광기에 동참해야 했으나 당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회장은 나치당 입당을 거부했고 이로써 팀은 해체 직전까지 내몰렸다. 반면 같은 지역의 샬케04는 히틀러 시절, 불운하게도 ‘제국’의 힘을 상징하는 팀이 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잠수함 수병들의 적막한 고독과 허망한 죽음을 그린 영화 <특전 U보트>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라디오로 중계를 듣던 갑판장이 수병들에게 말한다. “나쁜 소식이 하나 있네. 샬케04가 0-5로 패했어. 결승에는 올라가지 못할 것 같군.”


이러한 역사적 ‘오점’에도 불구하고 샬케04는 산업 혁명의 기관이었던 루르 지역의 상징으로 꼽힌다. 샬케04의 팬들은 대부분 해당 지역의 노동자계급이었고 선수들 또한 이 팬들의 지역성, 역사성, 계급성의 기반 위에서 공을 찼다. 노동자들이 실업 위기에 몰리거나 그 때문에 파업을 할 경우 선수들 또한 행렬에 동참하기도 했다.


그런 역사를 지닌 도르트문트와 샬케04가 맞붙을 때, 즉 레비어 더비가 열릴 때 가히 전쟁 상태를 방불케 하는 긴장과 충돌이 빚어지고 이 때문에 지역 경찰이 대거 투입되어 불상사 예방에 나서는 모습은 축구가 지닌 또 다른 의외성과 비일상성을 생각하게 한다.


함부르크 손흥민이 마인츠전에서 골을 넣고 환호하고 있다.



손흥민의 이적설을 접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까닭은, 우리 선수들이 해외에 진출했을 때, 적어도 그 도시와 해당 팀의 역사와 당대성에 대해 충분히 알고 뛰는 것이 좋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천수가 한창 시절에 스페인의 레알 소시에다드로 진출한 바 있다. 그러나 ‘스페인에 진출’했다고 썼지만 바스크 분리독립 운동의 진원지가 되는 도시의 팀을 그저 ‘스페인 전통 클럽’이라고만 써서는 곤란하다. 지동원 선수가 한때 몸담았던 잉글랜드의 선덜랜드도 마찬가지다. 지금 선덜랜드는 신임 디 카니오 감독 때문에 홍역을 앓고 있다. 디 카니오는 파격적인 공격축구로 침체에 빠진 선덜랜드를 구해내고 있다. 뉴캐슬을 3-0으로 대파하면서 1부 리그 잔류의 불씨를 되살렸다. 그러나 영국 노동운동의 근거지이며 선수와 팬과 구단 모두가 노동자계급의 역사성 위에 존재하고 있는 선덜랜드로서는 ‘파시스트 경례’ 등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그 자신이 파시스트임을 인정하기도 한, 디 카니오 감독을 한편으로는 씁쓸하게 여기고 있다. 급진 정치학자 랠프 밀리밴드의 아들로 영국 노동당 소속 의원이기도 했던 데이비드 밀리밴드 부회장이 디 카니오의 선임을 비판하며 부회장직을 사퇴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손흥민이나 지동원은 역사학도가 아니라 축구 선수다. 최선의 기량으로 아름다운 골을 터트리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팬들의 함성을 얼마든지 독차지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이왕이면 그 지역의 역사와 해당 클럽의 당대성을 미리 알고 그들의 자랑스러운 그라운드에서 뛰면 더 낫지 않을까. 더욱이 유럽에서 축구가 지닌 엄청난 파괴력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지난 런던 올림픽 때의 ‘박종우 독도 세리머니’ 사건 이후 이 같은 역사성의 이해는 더 필요해졌다.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꽤 많은 선수들이 해외로 진출한다. 사전에 대한축구협회와 에이전트 회사가 해당 지역과 클럽의 역사를 충분히 알려준다면 해외파 선수들의 현지 적응은 훨씬 빨리, 우호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다음으로 대표팀 경기를 뛸 때, 특히 원정경기를 갔을 때, 상대 국가의 문화와 관습을 미리 파악해 놓는다면 예기치 못한 문화적 충돌도 피할 수 있고 더욱이 ‘독도 세리머니’ 같은 일을 막을 수도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박종우에 대한 징계 결정을 내리면서 대한체육회로 하여금 선수들에게 재발 방지를 위한 교육 계획을 수립하라는 권고까지 내렸다. 대한체육회나 대한축구협회가 이러한 권고 지시에 따라 얼마나 수준 높은 교육 내용을 만들어 각급 대표팀 경기 전에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있는지 의문이다.


선수가 해당 지역과 클럽의 역사성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세 번째 이유는 국내 축구문화의 발전 때문이다. K-리그 클래식에는 무려 14개 팀이 있다. 팀마다 고유한 역사가 있고 팬들의 구성도 다르다. 똑같은 항구도시라도 부산의 기질이 다르고 인천의 공기가 다르다. 대기업이 주도한다 해도 수원의 열정이 다르고 울산의 함성이 다르다. 동일한 모기업을 두고 있지만 포항의 강건함과 전남의 강렬함에는 미세한 차이가 있다. 


그런 역사, 그런 문화, 그런 기질의 섬세한 차이를 충분히 숙지한 상태에서 그 지역의 팬들과 만나는 것이 진정한 프로다. 그렇게 될 경우, 그 지역 팬들은 한두 해 머물다 떠나갈 선수가 아니라 오직 자신들을 위해 공을 차려는 선수로 열렬히 환영하게 된다. 축구 선수가 축구 외적인 것에 깊은 관심을 기울일 때 모두가 공생하게 된다.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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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1990년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에릭 칸토나는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알쏭달쏭한 말로 유명하다. “갈매기가 고깃배를 따르는 까닭은 정어리가 곧 바다에 빠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같은 말이 그렇다. “생각의 질서를 타파해야 한다. 기존의 틀을 자유롭게 깨버려야 해” 같은 말도 칸토나가 자주 쓰는 말이다. 우리의 스포츠 저널리즘은 감독이나 선수들의 말을 ‘받아쓰기’ 하는 데 반해 유럽에서는 밤 늦도록 날선 토론을 하는 문화라서 이런 발언이 가능한 점도 있다.


아무튼 국내 팬들에게 칸토나는 ‘쿵후 킥’으로 유명하다. 1995년 1월, 그는 자신에게 욕설을 퍼붓는 크리스털팰리스의 팬 매튜 심슨을 ‘응징’하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가 쿵후 킥을 날렸다. 그 대가로 2만파운드 벌금, 징역 2주, 사회봉사 120시간, 9개월간 대표팀 및 소속팀 출전 금지 등의 처분을 받았다. 그럼에도 칸토나는 전혀 ‘반성’하지 않는다. “강펀치를 날리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워. 더 강하게 한 방 먹였어야 하는데 말이야”라고 그는 축구 전문지 ‘포포투’ 2008년 11월호 인터뷰에서 말한다. 


그의 발언을 더 들어보자. “나는 그저 축구선수일 뿐이고 그 이전에 한 명의 남자라고. 내가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부류의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해. 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행동해야 해’라고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야.”


만약 국내 선수가 이같이 발언했다면 어떻게 될까. 소속 구단에서는 사과성명을 내고 안티팬들은 융단 폭격을 가하고 축구협회에서도 ‘엄벌’에 처하지 않을까.


마침내 이천수가 돌아왔다. 무려 1381일 만의 일이다. 2009년 6월20일 전북과의 경기 이후 국내외로 전전한 끝에 인천 유니폼을 입고 K-리그 클래식 그라운드를 다시 밟았다. 지난달 31일 인천 축구전용구장에서 열린 인천-대전의 4라운드 홈경기에서 그는 후반 7분에 교체 투입돼 남은 시간을 달렸다. 아쉽게도 1 대 2로 팀이 패배했지만, 이천수는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조금씩 웃음도 띠었다. 후반 11분, 상대 수비수로부터 뒤통수를 맞았는데, 잠시 항의하는 듯하더니 이내 경기에 몰입했다. 경기 후 이천수는 “예전 같았으면 성질도 났었겠지만 이제는 운동장에서 화를 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축구 경기에서 울산 이천수가 레드카드를 받고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 (2006년자료) :경향DB


이천수가 국내 리그에 복귀할 수 있게 된 것은, 그 자신의 노력도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 전 소속 구단인 전남의 고심에 찬 결단 덕분이었다. 구단의 권위와 지도자의 명예를 뒤흔들어버린 선수이기는 했지만 끝내 주소지 불명으로 이리저리 떠돌다가 축구화를 벗게 되는 비극만은 막기 위해 전남이 용단을 내렸다. 인천도 큰일을 했다. 김봉길 감독을 비롯해 김남일, 설기현 같은 선배들이 이천수를 품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했다.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전남 구단의 깊은 배려와 이천수의 회심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마무리가 되기를 충언해온 나로서도 그의 복귀로 마음 한구석이 울컥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볼 문제가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틀림없이 이천수는 전남 구단과 당시 박항서 감독이나 하석주 코치에게 잘못했다. 이후의 과정도 매끄럽지 않았다. 그러나 이참에 우리나라 스포츠 문화가 바람직한 선수상으로 여기는 정형화된 모습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극단적인 사례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라이언 긱스가 있다. 그의 동생 로드리는 긱스를 두고 “벌레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2010년, 영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긱스 불륜’ 파문 때 일이다. 긱스가 동생 부인과 8년 넘게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왔다. 이 일로 라이언 긱스의 체면은 쓰다 버린 이면지처럼 구겨졌지만, 경기 출전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전적으로 ‘그들의 사생활’이라는 게 현지의 반응이다.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 역시 어김없이 긱스를 맨 앞에 내세운다. 2012년 10월에는 레알 마드리드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미국의 연예 스타 패리스 힐튼과 함께한 클럽 영상이 유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호날두 역시 건재하다.


멘체스터 유나이티드 긱스의 불륜사실을 폭로한 영국의 한 일간지 (경향DB)


나는 지금 이천수를 두둔하려는 게 아니다. 긱스나 칸토나처럼 경기장 안팎에서 크고 작은 ‘사고’를 치는 것이 ‘상남자’다운 행동이라고 강변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국내 스포츠 문화의 전형적인 이미지, 즉 ‘근면성실하고 타의 모범이 되며 겸손하고 봉사활동’도 잘하는 선수라는 이미지를 생각해 보고 싶다. 한 개인으로서 그 같은 능력과 덕성을 갖췄다면 더 바랄 게 없지만 그 정형화된 모습이 다양한 개성과 성향을 지닌 선수들을 옥죄는 그물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특히 위계질서가 엄격한 스포츠 문화에서 ‘타의 모범’이라는 말은 순응이나 굴종의 다른 표현이 될 수도 있다. 스포츠나 연예계에 과도한 도덕성의 올가미를 씌워 ‘국민을 순치’시키려는 지배문화의 문화지배 방식도 염려스럽다. 


선수에게 필요 이상의 과도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분위기에 대해 나는 “경기장을 더럽히지는 않았다”는 마라도나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펠레가 최고냐, 마라도나가 최고냐 하는 논쟁에 대해 언젠가 마라도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저녁 10시만 되면 잠자리에 드는 사람이지만, 나는 새벽 5시까지 유흥을 벌인다는 점이 큰 차이다.” 나는 역설적인 의미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선수는 마라도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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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마저 승부조작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 스포츠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의정부지검은 어제 프로농구 원주 동부의 강동희 감독을 소환조사한 뒤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는 브로커에게 4700만원을 받고 4차례에 걸쳐 승부조작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승부조작의 무풍지대였던 프로농구가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4대 프로스포츠가 모두 비리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현직 감독이 승부조작에 직접 가담한 것은 처음이다. 한국 농구계를 대표하는 스타 출신인 강 감독의 비리 의혹은 농구계는 물론 스포츠팬들에게도 큰 충격이다.


출두하는 강동희 감독 (경향신문DB)


승부조작은 스포츠계의 고질적인 문제다. 2011년 국가대표를 포함한 51명의 프로축구 선수가 승부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나 축구계가 발칵 뒤집혔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일부 선수가 자살하는 소동을 빚었다. 지난해에는 프로배구·야구 선수들이 브로커에게 뒷돈을 받았다가 문제가 됐다. 농구계도 드러나지만 않았을 뿐 징후는 농후했다. 그러나 농구연맹은 뒷짐만 지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강 감독은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비리 혐의에 연루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선수들의 승부조작을 감시해야 할 지도자가 직접 비리에 가담했다는 의혹은 변명의 여지가 별로 없다.


우선 불법 스포츠도박에 대한 강력한 단속이 선행돼야 한다. 현재 1000여개 사이트가 성업 중인 불법 스포츠도박 시장은 연간 10조원 규모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수와 지도자 및 협회 간에 학·지연으로 엮여 있는 스포츠계의 현실을 감안하면 정신무장만으로 브로커의 농간을 차단하기가 쉽지 않다. 스포츠계의 해묵은 ‘져주기 의혹’도 손볼 때다. 플레이오프 진출 순위가 확정된 뒤 상대하기 편한 팀을 고르기 위해 고의로 승리를 헌납하는 구태가 횡행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상위 지명권을 얻을 목적으로 시즌 막판 경기를 포기하는 관행도 문제다. 이 같은 행태도 사실상 승부조작이나 다름없다. 나아가 경기장을 찾는 관객이나 스포츠에 대한 모독이다. 거대한 둑이 무너지는 것도 알고 보면 실구멍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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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2007년 3월21일. 터키 출신의 명장 세놀 귀네슈가 FC서울 감독을 맡았을 때 풍경이다. FC서울은 라이벌 수원 삼성을 홈에서 맞이해 4-1로 대파했다. 이날 박주영이 해트트릭을 했고 정조국이 쓰러져가는 수원이라는 거함에 화룡점정의 포화를 한방 더 날렸다. 


종료 직전, 3만5000여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귀네슈 감독은 선수 교체를 단행했다. 곧 종료 휘슬이 울리면 홈팬들은 선수단 전체에게 박수 갈채를 보낼 게 뻔한 상황. 감독은 해트트릭을 포함해 시종일관 경기를 주도한 박주영이 홈팬들의 박수 갈채를 홀로 받을 수 있는 시간을 선물했다. 


그런데 조금 매끄럽지는 못했다. 기립박수로 환호하는 홈팬에게 박주영은 답례를 해야 했는데 이것이 심판의 눈에는 지나치게 시간을 끄는 것으로 비쳤다. 심판은 빨리 나가라고 지시했고 그리하여 영광의 순간은 조금은 일찍 끝났다.


물론 대패 직전의 수원 선수들 입장을 생각한다면 대승을 앞둔 팀이 선수 교체로 시간을 끄는 게 마뜩잖은 풍경일 수 있다. 그러나 홈경기에서 해트트릭을 한 선수가 팬들의 열광적인 박수를 받으며 그라운드를 물러나는 풍경은 자주 벌어지지 않는다. 경기 도중에 선수 교체를 다 해버려서 ‘단독 샷’의 기회를 주려고 해도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이런 점을 두루 고려하여 박주영에게 ‘단독 샷’의 기회를 제공한 귀네슈는 축구와 그 문화의 인간적 측면을 잘 알고 있던 감독이었다. 


최근 보았던 아름다운 교체 풍경은 기성용이 활약하는 영국 웨일스의 스완지였다. 스완지는 지난 2월25일, 2012∼2013시즌 캐피털 원컵 결승전에서 브래드퍼드를 5-0으로 완파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날 경기에서 기성용은 중앙수비를 맡아 창단 101년 역사의 스완지가 사상 처음 메이저대회 우승을 차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날 기성용은 후반 18분에 개리 몽크와 교체되어 나갔다. 4-0으로 앞선 상황이므로 팀의 간판이 된 기성용의 체력 안배를 위한 교체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미카엘 라우드럽 감독은 수비수 개리 몽크를 위한 시간까지 안배했던 것이다. 몽크는 스완지가 지금보다 더 허약했을 때부터 팀에 합류해 10년 가까이 하위 리그에서 프리미어리그까지 그리고 메이저대회 우승까지 스완지의 오욕과 영광을 함께한 노장이었다. 라우드럽 감독은 몽크 같은 스완지의 오랜 노장 선수가 직접 그라운드를 밟으면서 우승컵을 들어올릴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교체해 그 우승 순간의 잔디를 밟게 했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의 선수 교체도 기억할 만하다. 2002 한·일월드컵 16강전 때 기억 말이다. 이탈리아에 0-1로 끌려가던 상황에서 히딩크 감독은 김남일을 빼고 황선홍을 넣었다. 김태영을 빼고 이천수를 넣었다. 홍명보를 빼고 차두리를 넣었다. 이렇게 하여 설기현과 안정환을 포함해 무려 5명이 최전방 공격을 맡는 희대의 상황이 연출되었다.


선수 교체 상황은 실로 수십가지다. 감독은 승패, 득점, 부상, 상대 진영의 변수, 앞으로의 리그 상황 등을 순식간에 고려해 판단을 내린다. 절묘한 ‘신의 한 수’는 오랜 훈련과 직관이 스파크를 일으킬 때 성공한다.


당시 코치 신분으로 긴급한 상황의 연습과 작전의 모든 것을 기록했던 최진한 경남FC 감독은 “이탈리아전을 앞두고 선수 교체 작전의 수많은 경우를 검토하고 연습”했다고 기억한다. 4년 뒤, 호주 대표팀을 맡은 히딩크 감독은 4명의 공격수를 투입하는 교체 작전을 써서 일본을 대파했다. 당시 외신은 히딩크가 ‘위험한 갬블러였다’고까지 표현했다.


씁쓸한 교체 상황도 있다. 승리를 눈앞에 둔 팀이 시간 끌기 삼아서 늑장을 부리며 선수 교체를 할 때는 설령 저 지구 반대편의 나와 무관한 클럽 경기라 해도 그 선수가 안쓰러워 보인다. 패전 처리용으로 교체될 때는 더 마음이 아프다.


최근 들어 가장 가슴 아픈 선수 교체는 퀸스파크 레인저스의 박지성이다. 지난 1월30일, 런던 로프터스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맨시티와의 홈경기에서 박지성은 후반 43분께 투입됐다. 강호를 만나 무승부 직전까지 갔으니 선수 교체를 통해 단 몇 십초라도 시간을 벌기 위한 해리 레드냅 감독의 ‘작전’이었다. 박지성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홈팬의 야유를 받으며 그라운드에 들어섰다. 혹시라도 박지성이 공을 받으면 팬들의 야유를 더 받을 수 있다고 여겨서인지 동료들도 패스를 자제하는 편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그라운드 바깥에서도 ‘선수 교체’ 상황이 발생했다. 근래 보기 드문 경기력을 보여준 선수(노회찬)가 심판의 석연찮은 판정 때문에 경기장 바깥으로 나와야 했고 그 공백을 누군가 교체 투입돼 메워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단 한번도 경기를 뛴 적은 없지만 그러나 누구보다 파괴력이 높을 것으로 짐작되는 선수(안철수)가 직접 경기를 뛰겠다고 밝혔다. 어느 정도 연고가 있는 부산 쪽에도 선수 교체 상황이 발생했는데 이왕이면 그쪽 그라운드에 출전해 본인의 경기력도 증명하고 야권 전체의 열패감도 씻어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어느 경우가 아름다운 선수 교체인지, 사뭇 궁금해지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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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이번 설 민심은 씁쓸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박지성 얘기다. 차례 지내고 둘러앉아 새 정부며 부동산이며 애들 크는 얘기 다한 후에 자연스레 축구 얘기로 이어졌는데, 아쉽게도 박지성에 대한 가족 친지들의 논평은 예전만 못했다. 몇 해 전이었더라면, 그러니까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던 때의 설 민심은 이렇지 않았다. 뿌듯해서 할 얘기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 설은 씁쓸했다. 


박지성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 마치 지구 반대편의 설을 축하하기 위한 이벤트인 듯, 이번 연휴 때 스완지시티와 퀸스파크 레인저스(QPR)가 맞붙었으나 기성용이 탄탄한 수비력으로 활약하는 동안 박지성의 이름은 계속 대기 명단에 머물러 있었다. 7년 동안 은하계 극강의 팀 맨유에서 주전급 선수로 활약했던 박지성이 리그 최하위 QPR에서는 축구화 끈을 조여보지도 못하고 라커룸으로 돌아갔다. 우리로서는 익숙지 않은 풍경이다. 


감독님 저는 언제 나가죠 (경향신문DB)


며칠 전에도 그랬다. 지난 6일 런던에서 열린 한국과 크로아티아의 대표팀 평가전 때 박지성은 QPR의 수석코치 케빈 본드와 함께 관중석에 앉아 경기를 보았다.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지 2년 남짓 지났으므로 그가 다시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설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관중석에 앉아 있는 박지성의 모습은 우리로서는 익숙지 않은 모습이다. 


팀 상황부터 여의치 않다. QPR의 해리 레드냅 감독은 전임 마크 휴즈가 영입한 그라네로 선수와 보싱와 그리고 박지성에게 벤치를 따뜻하게 하는 역할만 부여하고 있다. 홈팬들의 격렬한 야유도 좀처럼 칭찬의 함성으로 변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29일 맨체스터시티와의 홈경기 때 레드냅 감독은 박지성을 후반 43분에 교체 투입했다. 홈팬들에게 화풀이할 먹잇감을 던져준 듯했다. 엄청난 야유 속에 잔디를 밟긴 했으나 박지성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QPR 동료들은 일부러 패스를 하지 않았다. 박지성이 공을 잡으면 홈팬들의 야유가 더욱 거세질 것을 우려한 동료들의 배려라고 나는 생각한다. 


박지성은 올해 32살이다. 아직 현역 생활을 2~3년 더 소화할 수 있는 나이다. 대표팀 은퇴선언 이후 박지성은 프리미어리그에 집중했고, 비록 QPR로 이적한 후 시련을 겪고는 있으나 그렇다고 가까운 시일 안에 완전히 은퇴할 상태까지는 아니다. 아마도 이번 시즌을 끝으로 QPR 생활을 끝내고 다른 팀에서 한두 시즌 더 뛰게 될 것이다. 


그 이후, 박지성은 어떻게 될 것인가. 언젠가 은퇴할 것이다. 어쩌면 여러 상황 때문에 그 시기가 앞당겨질 수도 있다. 그의 무릎과 발목 상태는 오래전부터 악화되어 있었다. 그가 대표팀 은퇴를 결심한 데는 거의 시간 단위로 측정하고 분석한 맨유 의료진의 면밀한 데이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데이터는 QPR 이적이라는 야속한 결정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니 박지성이 언제까지 가히 육박전에 가까운 잉글랜드 축구의 한복판에 서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날이 온다고 해서, 나는 박지성이 완전 귀국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박지성이 오랫동안 잉글랜드를 중심으로 한 유럽 축구의 한복판에서 활동하기를 바란다. 물론 그는 지금 당장이라도 국내 프로팀의 코치로 크게 조력할 수 있고 조금 더 내실을 충만한 후 언젠가 대표팀을 지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가 국내로 복귀하는 것보다 유럽 축구의 한복판으로 계속 진입하기를 더 원한다. 


이동국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하던 시절의 박지성을 ‘여드름 자국이 남아 있는 아직 고교생 같은 선수’라고 기억한다. 당시 그는 ‘기량이 뛰어난 것 같지’ 않았고 ‘천재형 선수’가 아니었다고 한다. 다만 작은 패스 미스조차 없이 부지런히 공간을 찾아 움직이던 선수라고 그는 기억한다. 이동국에 따르면, 박지성은 묵묵히 자기 목표를 정해 정진하는 선수였고 일어와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기 위해 축구 훈련 이상으로 노력했으며 마침내 ‘성실함이라는 재능의 극한’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천성과 자질을 가진 박지성이라면 앞으로 유럽 축구의 한복판에서 충분히 활동할 수 있다. 언젠가 은퇴하게 되면 그는 높은 차원의 코칭스쿨을 연마할 필요가 있고 나아가 국제축구연맹이나 유럽축구연맹이 주관하는 고도의 스포츠 네트워킹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다. 그가 귀국해 프로팀을 맡거나 축구협회의 중책을 맡는 것도 아름답지만 유럽 현지의 프로리그 감독이 될 수도 있고 세계 축구 행정의 중심 기관에서 일할 수도 있다. 


박지성은 2002년 네덜란드의 PSV 에인트호벤을 시작으로 무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유럽 정상급 리그의 정상급 선수였다. 이런 능력과 경력의 현역 선수를 앞으로 우리는 좀처럼 갖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능력과 경력을 지닌 세계적인 선수들이 머지않아 세계 축구의 기술과 정책과 교육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현재 박지성의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현역 선수들 중에서 장차 베켄바워나 플라티니 같은 존경 받는 실력자들이 배출될 것이다. 박지성은 바로 그러한 그룹의 일원으로 충분히 활동할 수 있다. 


지금 박지성은 비록 QPR의 벤치에 앉아 있지만, 곧 털고 일어나 그라운드를 몇 차례 더 누빌 것이며 그 이후 그는 세계 축구의 중심적인 인물로 활약하게 될 것이다. 이런 얘기를 나는 이번 설에 벤치 신세가 된 박지성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조카들에게 웅변했다. 얘들아, 자고로 큰 고기는 큰 물에서 노는 법. 박지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더 큰 인물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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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올 시즌, 전남드래곤즈는 어느 때보다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 롤러코스터를 탄 시간이었다. 최하위까지 전락한 적도 있다. 급기야 정해성 감독이 물러나고 하석주 감독이 새로 팀을 맡았다. 


하석주 감독의 유일무이한 목표는 1부 리그 생존이었다. 하석주 감독은 지난 8월 중순,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올 시즌 끝날 때까지 지도자 인생을 걸겠다. 강등 탈출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목표를 위해 선수들을 독려하는 한편 자신의 미래를 위한 계획도 부분적으로 포기했다. 최고의 감독이 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국제축구연맹 P코스 연수 과정을 2년 후로 미룬 것이다. 이러한 자기 희생이 윤석영, 이종호, 박선용 같은 젊은 선수들을 펄펄 뛰게 만들었다. 다행히 지난 24일 성남 일화와 치른 홈경기에서 승리함으로써 1부 리그에 살아남게 되었다. 생존했다고는 하나 그 경쟁 상대들이 광주FC, 대전시티즌, 강원FC 등이었다. 구단의 역사로 보나 선수단의 면면으로 보나, 또 그 무엇보다 포스코라는 모기업의 위상으로 보나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성적이다. 


 대단히 합리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유럽에서도 하위 리그로 추락하게 되면 팀의 자존심, 경제적 이득, 선수 확보 등에 큰 차질이 생기는데 이제 승강제를 처음 도입하는 K-리그로서는 극단적인 경우 팀 해체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 극단적인 상황을 피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전남은 하석주 감독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이천수가 보고싶다(경향신문DB)


그런데 이제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가 남아 있다. 다름 아닌 이천수 문제다. 전남의 오랜 숙제이고 하석주 감독 역시 상당한 정신적 피해를 입은 당사자다. 지난 2009년, 이천수는 당시 박항서 감독과 하석주 수석코치 등에게 폭언과 폭행을 벌인 후 팀을 떠났다. 그러나 법적으로 완전히 떠나지는 못했다. 전남은 이천수를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했다. 전남이 임의탈퇴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이천수는 K-리그에서는 뛸 수가 없다. 그로부터 3년이 넘도록 이천수는 해외 리그를 전전하고 있다. 


거두절미, 이제는 이 악연을 풀어야 한다. 이천수는 올해 초부터 여러 방법으로 전남의 용서를 구했다. 지난 10월21일, 전남과 인천의 경기가 열리는 광양전용구장을 찾아 팬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러나 전남은 궁지에 몰린 이천수가 언론 플레이를 한다고 판단했다. ‘진정성을 담은 사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럴 만한 구석도 없지 않다. 갑자기 홈구장에 찾아와서 관중들에게 목례 인사를 여러 차례 하고 관중석에 앉아 경기 한 번 보았다고 해서 풀어질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구단을 먼저 방문하기보다는 그러한 행위를 언론을 통해 ‘노출’한 게 아니냐고 전남은 의심한다. 


그렇기는 해도 이제는 풀어야 한다. 특정한 사안을 통해 영혼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보니 해결의 선례도 없다. 구단으로서도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는 말 외에는 뾰족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거꾸로 생각하면 이천수 또한 사과의 방법을 못 찾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전남은 ‘이벤트성 사과가 아니라 구단과 지역에 대해 지속적인 사과’를 할 것을 주문했다. 그리하여 지난 24일, 이천수가 다시 광양을 찾았다. 하석주 감독과 그 선수들이 1부 리그 생존을 확정한 날이었다. 그 사이 이천수는 광양 지역의 아동센터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쳤다고 한다. 경기 당일에는 60명의 어린이들과 함께 축구장을 찾았다. 언론 인터뷰도 없었다. 그것이 진정으로 ‘진정성’ 있는 행동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 달 전 구단이 제시한 어떤 수순을 따르는 행동으로 보인다. 


이천수가 넘어야 할 산은 하나 더 있다. 바로 전남의 서포터스다. 감독이나 선수는 잠깐 들렀다 떠나는 존재다. 그러나 서포터스는 그 지역에서 뿌리내린 실질적인 주인들이다. 전남의 서포터스는 이천수가 구단을 모욕하고 나아가 팬들을 모욕했다고 생각한다. 이천수는 이들과도 대화를 해야 한다. 일부 서포터스는 이천수와 직접 만나 그의 마음속 이야기를 듣겠다고도 했다.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한 변화다. 이천수는 이러한 변화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어떤 점에서 구단은 짐짓 못 이기는 척 하면서 해법을 제시한 셈이다. 냉랭했던 서포터스도 이야기는 들어보자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마지막 기회다. 선수 생활뿐만 아니라 이후 한국 축구계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고자 한다면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임을 이천수는 깨달아야 한다. 


전남으로서도 퇴로를 만들 준비를 해야 한다. 어떤 점에서 이천수 같은 실력파가 3년 넘게 해외의 변변찮은 팀을 전전한 것만으로 충분한 형벌일 수 있다. 올해 벌써 31살이다. 현역 생활이 몇 해 남지도 않았다. 구단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한다 해도 포스코라는 세계적인 기업이 운영하는 구단이 한 선수의 현역 생활에 끝내는 사형 선고를 내리는 것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임의탈퇴를 철회한다 해도 어차피 이천수가 전남에서 계속 뛰기는 어렵다. 그를 원하는 다른 구단에서 현역의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게 낫다. 


배구의 김연경 선수 파문이나 이천수에 대한 전남의 임의탈퇴 조치를 보건대, 여러 사정에도 불구하고 역시 영원한 ‘갑’은 구단이다. ‘갑’이 대승적인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얽힌 실타래를 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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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박종우 선수가 ‘독도 세리머니’ 파문 때문에 환영 만찬에도 초청받지 못했을 때 홍명보 감독은 그에게 전화를 걸어 말끔히 차려입고 참석하라고 일렀다. 대표팀 감독으로서 마지막으로 내린 작전 지시였다. 홍명보는 “감독으로서 마지막까지 그 선수와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컸다.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만약 당신이 이런 보스를 만난다면 어떤 마음이겠는가. 아마도 평생을 함께하고 싶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리더십이 부재했다. ‘꼬리 자르기’란 말이 정치권에만 있는 게 아니다. 홍명보는 다르다. ‘내가 대신 군대에 가겠다’는 말로 그는 박주영을 둘러싼 병역 기피 논란을 일순간에 잠재웠다. 요즘 이런 리더십이란 흔치 않다.


 홍명보의 이러한 면모는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다. 젊은 팬들이 그에게 열광하는 것은 단지 그의 뛰어난 경기력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의 선수들에게 보여준 신뢰, 존중의 태도가 스승이 부재하고 선배가 부재한 젊은 세대의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사실 홍명보는 ‘예약된 영웅’이었다. 물론 그 절반은 그의 몫이다. 뛰어난 경기력과 단단한 내면의 힘으로 그는 선수에서 행정가를 거쳐 지도자에 이르는 동안 축구계 안팎에 확고한 신뢰의 거탑을 쌓았다.


(경향신문DB)


홍명보의 가치 실현은 축구장 밖에서도 뚜렷하다. 그는 이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다. 남들이 하니까, 유명한 사람이니까, 이 정도는 해야 근사해 보이니까 등의 저속한 현시욕으로 한 일이 아니었다. 홍명보의 사회복지 활동은 이미 1997년부터 시작됐다. 그때는 아직 서른이 안된, 20대 후반의 현역이었다. 그 시절 홍명보가 ‘장차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을 때 장학사업도 하는 지도자라면 더욱 근사해 보이겠지’ 하는 식의 저열한 인식을 했을 리가 없다. 요컨대 오늘의 ‘홍명보 신화’는 대부분 그 자신의 힘으로 쓰인 것이다.


한편 그 신화의 절반은 축구계의 여러 복잡한 상황이 쓴 것이기도 하다. 2002년 이후 한국 축구는 영웅 신화를 꿈꿨다. 거스 히딩크라는 낯선 자에 의해 환골탈태의 지평으로 올라섰지만, 그가 떠난 이후, 한국 축구는 난항을 겪었다. 대표팀 감독은 수없이 경질됐고 선수들은 숱하게 대표팀을 들락거렸다. 어수선한 상황이 지속되자 팬들은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렸다. 홍명보가 그 말을 타고 왔다. 한국 축구의 진정한 권력자 정몽준 명예회장의 역할도 컸다. 홍명보에게 많은 기회가 제공됐다.


그런 까닭인지 아쉽게도 이 신화에는 공백이 많이 있다. 이를테면 대표팀 감독들이 줄줄이 경질됐을 때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수년 동안 노출된 축구협회의 수많은 병폐에 대해서도 그는 발언을 삼갔다. 이른바 ‘수뇌부’로 표현되는 축구협회의 막후 권력 그룹이 절차와 원칙을 무시하고 종종 무리수를 뒀을 때 홍명보의 발언은 들리지 않았다.


외국의 경우, 인종 차별에 저항한 지네딘 지단이 있고 국제 축구계의 권력자들을 조롱하며 반세계화 운동에 가담한 마라도나가 있으며 그밖에도 수많은 스타들이 저마다 처한 사회적 상황에 저항하거나 적극적인 의견 표명을 해왔다. 그러나 선수들에게 ‘국위선양’만을 강요하는 문화가 지배적이라서 그런지 홍명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현실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란 자리가 그런 사안들에 대해 일일이 의견을 내는 자리는 아닐 것이다.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무조건 각을 세우며 대립하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의 과묵한 표정에는 이런 허약하고 모순에 가득찬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책이 담겨 있어야 한다. 지금 당장 발언을 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홍명보 정도의 ‘맨파워’라면 수십 년 동안 누적된 한국 축구의 온갖 문제가 다양한 형태로 터져나왔을 때, 틀림없이 어떤 판단을 했을 것이다. 그것을 차차 현실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비록 그 자신이 부정하거나 진실로 겸손하게 사양한다 하더라도, 명실상부한 한국 축구의 아이콘이다. 선수로서, 행정가로서, 지도자로서 그는 상당한 성취를 이뤘고 그로 인해 기나긴 신화의 여정에 오르고 있다. 언젠가 맡게 될 월드컵 대표팀 감독이나 장차 한국 축구 행정의 중추로 역할을 하게 되면 그의 신화는 최종적으로 완성될 것이다.


그 완성의 시점에서 홍명보가 한국 축구의 구조적인 모순과 한국 스포츠의 허약한 시스템을 모른 체하는 ‘영웅’이 된다면 그는 그저 우리 사회의 승리지상주의와 애국주의와 영웅 신드롬으로 만들어진 허명의 신화에 그칠 것이다. 그가 이런 성취에 만족하고 이런 식의 우상숭배식 거탑, 즉 무오류의 신화를 쌓는 데 몰두하는 순간 그 거탑은 무너질 것이다.


홍명보는 ‘국위선양’의 화신이며 ‘태극전사’의 아이콘이며 ‘멘토 시대’의 멘토이다. 그러나 이제 그 스스로 이 화려한 수사를 버리고 진실로 한국 축구의 체질을 강화하는 길이 무엇인지 고뇌해야 한다. 권위적인 위계질서에 의해 퇴행하고 있는 한국 축구의 낡은 시스템을 개혁하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자문해 볼 때가 됐다. 지금 한국 축구계에서 그만한 결단력과 능력과 영향력을 발휘할 사람은 홍명보 외에 달리 없다. 그것이 한국 축구의 불운이며 또한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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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으로만 떠돌던 아마추어 농구계의 검은돈 거래 실태가 경찰 수사로 드러났다. 대한농구협회 간부 4명은 2008년 1월부터 각종 대회에서 특정 심판 배정을 대가로 54개 농구팀 감독·코치들로부터 총 256회에 걸쳐 1억9000만원을 챙기고, 심판 16명은 유리한 판정 등을 구실로 155회에 걸쳐 5700만원의 금품을 받았다는 것이다. 비리에 연루된 심판은 협회 소속 전체 25명의 64%나 되고 돈을 상납한 농구팀은 전국 202개 팀의 27%에 이른다. 실업 농구팀은 물론 초·중·고·대학팀까지 포함돼 있다. 아마 농구계에 만연한 금품 거래 관행에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이래서는 스포츠라 할 수 없다. 비리 관련자들을 일벌백계로 엄히 다스리는 한편, 이 같은 비리가 재발하지 않도록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먼저 협회 간부들이 심판 배정 권한을 악용해 상습적으로 돈을 받은 것부터 큰 충격이다. 위에서부터 썩을 대로 썩은 것이다. 더욱이 일부 비리 심판의 행태를 보면 기가 차지 않을 수 없다. 경기 전후 농구팀 감독·코치에게 “주 공격수를 5반칙으로 퇴장시킬 수 있다”고 전화까지 해 금품 상납을 강요하다시피 했다. 농구는 심판 판정이 승부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감독·코치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돈을 바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아마 농구계에 금품 거래가 횡행하는 것은 심판의 열악한 처우가 큰 원인이라고 한다. 등급에 따라 월 40만~60만원의 기본급에 경기당 수당으로 2만5000~6만5000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금품 유혹에도 쉽게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심판의 금품 수수가 결코 정당화될 수는 없다.


비리를 저지른 협회 간부나 심판은 농구계에서 영원히 퇴출해야 할 것이다. 팀의 성적을 위해서라지만 심판에게 돈을 상납한 감독·코치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협회부터 환골탈태해야 한다. 돈으로 승부가 조작된다는 의혹을 불식시키지 않는 한 팬들의 발걸음은 멀어질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심판이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처우를 개선하는 일도 중요하다. 경찰의 농구계 비리 수사는 강요되는 상납금을 감당하지 못한 학부모의 제보로 시작됐다. 이번 농구계 비리를 보면서 다른 종목은 사정이 어떤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종목별 협회 차원의 점검과 함께 당국의 전반적인 수사가 요구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아마 스포츠가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선거 때면 늘 투표율을 높여야 한다는 얘기가 돈다. 덴마크 수준으로 투표율을 높이려면 ‘비겁한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 투표율을 높이려면 유권자들이 최대한 투표를 하기 쉽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사전투표제를 도입하지는 못할망정, 투표시간을 단 2시간 연장하는 문제도 새누리당이나 박근혜 후보는 소극적이다. 표를 먹고 산다는 정치인이 유권자들의 높은 투표참여를 바라지 않는 듯한 모습이다. 만약 낮은 투표율에 기대어 권력을 잡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정말 비겁한 발상이다.


투표하고 싶어요 (경향신문DB)


다른 정당들이라고 해서 비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기득권 정당들은 신생정당이 살아남을 수 없도록 선거제도를 만들어 왔다. 전두환 정권 때 국회의원 선거에서 2%를 넘지 못한 정당은 등록을 취소하고 그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는데, 민주화가 됐어도 이 조항은 삭제되지 않았다. 동일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부분만 1989년에 삭제됐다가, 그마저도 국회가 2002년에 슬그머니 부활시켰다. 그래서 지난 총선이 끝나고 녹색당, 진보신당 등은 등록취소가 되고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됐다.


그러나 새로운 정당이 자리를 잡으려면 여러 번의 선거를 거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한 번 선거에서 득표율 2%를 넘지 못했다고 정당 이름을 사용치 못하게 하는 법조항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이런 조항을 만들어 잠재적 경쟁자의 싹을 자르겠다는 것이 ‘비겁한’ 기득권 정당들의 모습이었다. 이제 이런 식의 비겁한 정치를 청산하고 정치제도부터 근본적으로 바꾸면 좋겠다. 그것이 진정한 정치혁신을 가능케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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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2012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가 끝났다. 이제 상위 네 팀의 가을야구가 시작된다. 일컬어 ‘가을 잔치’라던가, 그래서 하는 말이다. 잔치에 가보면 모두들 덕담을 나눈다. 신랑은 훤칠하고 신부는 참하고, 뭐 그런 얘기 말이다. 그러나 속으로 걱정이 없는 게 아니다. 집안 내력을 아는 사람이나 신랑·신부의 지인이라면 이들의 앞날을 진심으로 축하하되 한두 가지 걱정과 근심도 없지 않은 것이다. 그런 심정으로 올해 시즌을 돌아본다.


700만 관중 돌파부터 생각해보자. 정규시즌 총관중 715만6157명. 대기록이다. 2006년 304만명, 2008년 525만명, 2010년 592만명 등 해마다 100만명을 추가하는 기록을 세운 프로야구는 지난해 681만명을 기록하며 꿈의 700만명을 예고했는데, 불과 1년 만에 715만명으로 프로 스포츠 최대의 흥행을 기록했다.



(경향신문DB)


 몇 가지 이유가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 등 눈부신 외적 성취로 확인되듯이 한국 야구가 일정하게 성장한 것이 관중 증가의 원동력이다. 각 구단이 팬을 중심으로 한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친 것도 중요하다. 야구장에 가보면 해가 지기 전부터 몰려든 관중과 이를 맞이한 팀의 선수들과 프런트에 의하여 야구장은 일찌감치 이 헛헛한 대도시의 오아시스로 변해 있다. 한국 야구만의 독특한 열정과 광기의 스탠드에서는 누구도 홀로 외로이 앉아 있을 수 없게 된다.


종합 스포츠 채널이면서도 사실상 ‘야구 전문 방송’이 되다시피 한 케이블 방송의 중계 수준이 향상된 점도 있다. 야구는 다른 종목에 비해 일시적인 휴지부가 많다. 투수와 타자의 일구일타, 적시타 이후의 숨가쁜 작전 상황, 스리아웃 이후의 공수교대 등 이렇게 전술상의 휴지부가 발생했을 때 경기장 곳곳에 포진한 중계 카메라는 여러 각도에서 선수와 감독을 클로즈업한다. 긴장해 있거나 환호하는 관중까지 포착한다. 연출자는 이 모든 장면을 단순히 순서대로 나열하지 않고 드라마화, 스펙터클화, 캐릭터화한다. 이 순간, 야구에 관심이 없던 시청자도 투수의 땀방울과 감독의 검은 선글라스와 관중의 간절한 기도에 감정을 몰입한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전반기는 넥센이 분위기를 이끌었고 후반기는 롯데가 가을야구로 직진했으며 박찬호, 이승엽, 김태균, 김병현 등의 해외파와 더불어 류현진이나 오승환이 강력한 티켓파워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덕담은 이 정도로 줄이자. 냉정하게 말하여 올 시즌 프로야구가 700만이라는 숫자에 걸맞은 높은 수준의 야구를 보여줬는가 하는 질문이 필요하다. 올해는 그 어느 시즌보다 실수가 많았다. 기록상의 숫자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경기 흐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실수 말이다. 실수로 인하여 경기 흐름이 바뀌고 승패에도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인 실수가 자주 눈에 띄는 시즌이었다. 


거꾸로 말하여 ‘명승부’라고 부를 만한 경기도 드물었다. 물론 지난 8월의 경기들은 무더위와 장대비와 올림픽이라는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인상 깊은 장면들이 많았다. 2위에서 4위까지 순위가 경기 하나로 뒤바뀌는 상황에서 피 말리는 한 점 차 승부나 통렬한 끝내기 홈런은 한국 야구의 일정한 수준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실수가 많았고 이를 만회하려는 팽팽한 긴장의 밀도는 예년에 비하여 옅어졌다.


실수가 많다는 것은 팀마다 고유했던 개성이나 색채가 옅어진 것과 비례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다. 30여년의 역사를 써오는 과정에서 각 구단은 저마다의 지역성이나 선수층이나 역대 감독의 이력에 의하여 독특한 개성을 유지해왔다. 그랬던 것이 올해는 전체적으로 흐려졌다. 비범한 식견과 날카로운 직관으로 공 하나에 생의 전체를 거는 듯한 ‘작전 야구’가 8개 구단 전체에 걸쳐 전반적으로 무난한 스타일로 마모되었다. 서로 다른 철학과 개성이 용접기계의 스파크처럼 충돌하는 승부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경기를 유지하려는 흐름이 지배적이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각 팀 감독의 일반적인 스타일에 더하여 그야말로 파리 목숨으로 불리는 불안한 위상도 악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시즌 도중에 두 명의 감독이 경질되었다. 선수나 감독이 저마다의 실력과 철학으로 야구장에 들어서는 게 아니라 저 본부석 상단의 구단주를 의식하는 문화가 지배적이라고 한다면, 야심만만한 도전과 실험은 실종되고 만다.


내 작업실 근처에는 식당이 몇 군데 없다. 그나마도 이렇다 할 맛은 없는, 그저 그런 식당이다. 그중 한 군데를 자주 간다. 친절하고 깨끗한 식당이지만 맛은 신통치 않다. 가장 가까운 곳이라서 갈 뿐이다. 혹시 프로야구 700만 관중 돌파도 이런 맥락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먹고살 만한 사회가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 다채로운 여가문화나 그 시간, 그 콘텐츠가 충분한 사회는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프로야구가 마땅히 즐길 게 없는 관중의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롯데와 두산의 준플레이오프로 가을 야구가 시작되었다. 페넌트레이스보다는 훨씬 더 예리하고 감각적이며 야구의 모든 요소가 중층적으로 결합된 작전의 야구가 펼쳐지기를 기대해본다. 마침 한화의 새 사령탑으로 김응용 감독이 선임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700만 시대에 걸맞은 수준 높은 새 시즌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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