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친구와 오후 3시에 시청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모바일 앱을 켜고 버스 위치와 소요시간을 확인하니 집에서 떠나야 할 시간이 예상된다. 늦지 않고 약속장소에 잘 도착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겐 일상화된 일이지만 신호등도 없는 남아시아의 작은 나라 부탄에서는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부탄 수도 팀푸시에는 56대의 버스가 다니고 있으나 배차시간이 길고 배차간격이 일정하지 않아 시민들은 버스 이용을 포기하고 걸어다니거나 좁은 도로에 너도나도 자가용을 끌고 나오기 일쑤이며, 이로 인한 교통체증과 배기가스 배출 증가는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부탄은 산림에 의한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배출량보다 높은 전 세계 몇 안 되는 탄소중립국 중 하나이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한 빙하호 붕괴 홍수에 노출되어 있으며, 최근 산업공정과 교통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어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 이를 해결하고 전 지구적 문제인 기후변화에 대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능형 교통시스템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부탄이 최우선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는 기술 중 하나이다.

비단 부탄만이 아니다. 2020년 이후 도래할 신기후체제에서는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도국에도 온실가스 감축의무가 부여됨에 따라, 많은 개도국들이 자국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제사회에 기술과 재정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도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특히 과기정통부는 2015년 12월 유엔의 기후기술협력 국가창구(NDE)로 지정된 이래로 개도국들의 기술지원 요청에 부응하고 우리나라의 우수한 기후기술과 기업들을 해외에 알리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오고 있다.

먼저, 유엔의 개도국 기술지원 사업을 선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유엔의 개도국 기술지원 사업은 회원기관으로 가입해야 참여가 가능한데, 우리나라의 경우 48개 산학연 기관이 회원기관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이다.

또한 개도국 기술지원에 더욱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올해부터 ‘기후기술현지화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여기에 참여 중인 정부출연연구소와 기업들은 기후기술 협력 프로젝트를 개도국 현지에서 직접 발굴하고 국내 기후기술이 개도국 현지에 적용될 수 있도록 기술실증 등을 추진한다.

그뿐만 아니라 과기정통부는 이렇게 추진된 기술협력 사업들이 국내외 다양한 기후재원들과 연계되어 확장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올해 ‘기후기술현지화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부탄 팀푸시의 2개 버스노선에 버스정보시스템 실증시설을 구축했다. 향후 국내외 기후재원과 연계해 부탄 팀푸시 전역에 버스정보시스템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지능형 교통시스템을 도입하고자 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이 시스템이 부탄에 정착했을 때 인도 등 인접 국가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중소기업 등 민간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될 것이며, 우리나라의 위상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정병선 과기정통부 연구개발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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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모 일간지가 청와대 비서실장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방문을 두고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UAE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꼼수 조치였다는 추측성 보도를 한 뒤, 이를 정치권 일각에서 정부 비판으로 확대재생산하는 양상이다.

그러나 정작 UAE 원전사업의 향방은 대통령비서실장이 짧은 며칠간의 일정 동안 UAE에서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UAE의 원자력안전규제기관(FANR)의 결정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빠진 채 엉뚱한 문제로 핵심적인 이슈가 묻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애초 한전과 UAE 당국의 계획에 따르면 바라카 원전 1호기는 지난해 말 운전허가를 받았어야 했다. 그러나 바라카 원전 예비 운전원들의 실습훈련 대상인 참조 원전 신고리 3호기의 준공이 당초 예정됐던 2013년에서 케이블 시험성적서 조작 스캔들로 3년 후인 2016년 말로 지연되면서 운전원들의 숙련도 미비가 심각한 문제로 불거졌다.

이에 UAE 원자력안전규제기관은 지난 5월 바라카 1·2호기의 운전허가를 한 차례 불허한 바 있다. 국내 원자력계는 언론을 통해 올해 12월이면 운전허가를 받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국제원자력계 전문지들에 따르면 이미 내년으로 미뤄진 상황이다. 지난 10월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18일간 바라카 현장을 방문해 예비 운전원들의 숙련도를 점검했다.

IAEA는 자체 평가결과를 연말까지 UAE 안전규제기관에 통보할 예정이다. 하지만 IAEA가 이미 2015년에 바라카 원전 예비 운전원들의 사고 대응능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한 바 있어, 불과 2년 만에 바라카 원전 운전허가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의견을 바꿀지 의문이다.

이처럼 신고리 3·4호기의 비리 스캔들과 그에 따른 바라카 원전 운전원들의 훈련 부족 문제가 국제사회와 UAE 안전규제기관에서 심각한 안전문제로 부각된 상황이다.

UAE 당국으로서는 일사천리로 운전허가를 내주었다가 훈련이 부족한 운전원들이 혹여라도 인적 실수로 사건·사고를 일으킬 경우 규제기관으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어서 운전허가를 쉽게 내주기 어려운 상황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미 수개월 전 국내 언론에 알려진 것처럼 바라카 원전 준공 지연으로 하루 60만달러씩 지체보상금을 지불해야 하고, 2만명이 넘는 건설인력 중 상당수가 철수하지 못하고 현지에서 1년을 더 체류하게 되면 당연히 인건비, 관리비 등 막대한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한전과 한수원은 민간이 아닌 공기업이라는 점에서 향후 발생하게 될 비용은 결국 국민의 몫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트집잡는 일부 언론과 정치권의 태도는 생뚱맞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을 오도하는 행위이다.

이 시점에서 정작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은 왜 이런 사태까지 왔는지 차분히 돌아보며 향후 국내 원전 안전규제체계의 근본적 개선방안 등에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닐까? 사실 신고리 3·4호기 제어케이블의 시험성적서 조작 스캔들은 과거 국내 관행을 돌아볼 때 후쿠시마 원전 사고 여파만 없었다면 외부에 공개되지도 않은 채 묻혔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조작행위가 은폐되지 않고 밝혀진 것은 천만다행이지만, 국내 원자력계가 이 사건 이후 충분히 개선되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원전 수출 드라이브’와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부각시키는 언론의 보도행태는 그만큼 국내 원자력계 안전 개선에 대한 경각심을 감쇄시키는 치명적인 독이 된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국내에는 여전히 24기의 원전이 남아있고 향후 4기가 더 추가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석광훈 녹색연합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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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에너지 전환시대로 접어든 걸까? 에너지 전환은 이제 문재인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다. 에너지 전환이 무슨 의미고 왜 필요한지 알고 싶다면 정부가 만든 에너지전환정보센터(www.etrans.go.kr)를 방문해보라. 이런 자료를 정부가 제공하다니 참으로 큰 변화다.

그렇지만 벌써부터, 또 갈수록, 에너지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뜨겁다. 다양한 목소리들이 분출하고 있다. 산업화 과정을 지원해왔고 이미 적지 않은 일자리나 지역의 이해와 연결되어 있는 기존 에너지 체계를 바꾸려 하기에 당연한 일이다. 정부의 에너지 전환 의지를 담은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둘러싸고도 지지와 반대, 보다 적극적인 대응 요구 등 다양한 의견이 개진될 것이다. 에너지 체계를 둘러싸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존재하고 그들이 자신들의 이해나 가치를 중심으로 목소리를 활발하게 내는 건 우리 사회가 그만큼 건강하다는 증거다.

그런데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고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제시된 모든 의견이 다 옳은 건 아니다. 각자의 위치와 상황에 따라 달리 보일 수는 있겠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국전력공사가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권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다. 이를 두고 벌써 원전 수출에 성공했다는 식의 보도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면서 탈원전·원전 수출 구도의 모순으로 국내 탈원전정책이 해외 수출의 걸림돌이 되었다는 날 선 비판이 드세다.

하지만 정작 영국과 협상했던 조환익 전 한전 사장은 탈원전정책이 원전 수출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국내 원전정책은 경제성, 환경성, 안전성 등의 가치 판단에 따라 결정되는 데 비해 해외 원전 수출은 “시장과 산업” 문제로 해당 수입국이 결정한 원전 건설 요구에 맞추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한국은 원전 밀집도와 소수 지역의 다수호기 집중도, 원전 밀집지 주변 지역 인구 규모에서 세계 최고인 데다 최근엔 지진 위험까지 더해져, 국내 원전의 단계적 축소는 정당성을 가지기에 산업으로서의 원전 수출이 별개로 진행될 수 있다. 물론 위험기술의 해외 수출을 윤리적으로 문제 삼을 수는 있지만 말이다.

더군다나 환경운동연합이 성명서에서 지적하듯 영국 무어사이드 신규 원전 건설 건은 ‘투자사업’이다. 일본 도시바가 포기한 원전 사업권을 인수, 한전이 비용을 조달해서 APR 1400 두 기를 건설한 후 향후 60여년간 전기 판매 이익을 남겨 투자금을 회수해 오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도시바가 기술이 부족해서 포기했을까? 문제는 건설 금융 조달과 투자금 회수 가능성이다. 영국에서는 최근 승인된 해상풍력 발전사업의 전기 판매가격이 ㎿h(메가와트시)당 58파운드 아래로, 힝클리포인트 C 원전 2기의 향후 35년간 고정 판매가격인 92.50파운드보다 낮았다. 이런 상황에서 판매가격을 충분히 보장하는 계약을 맺지 못하면 한전이 수익은커녕 투자금을 온전히 회수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투자 실패 시 공기업인 한전 손실은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된다. 그야말로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의견과 사실이 이렇게 다르다.

게다가 최근 한수원 노조에서는 탈원전 목소리를 내온 교수와 시민단체 활동가, 변호사,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등에 대해 대대적인 고소·고발에 들어갈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의견이 다를 경우 법적 다툼이 아니라 각자 주장의 근거를 제시하며 토론하고 소통하는 게 필요하다. 의견 차이와 갈등은 회피할 게 아니고 직시하고 대면해서 상생을 지향하며 풀어가야 한다. 엇갈리고 대립되는 목소리를 누르기보다 드러내고 다퉈야 한다. 그렇기에 에너지 전환은 에너지원만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 사회 에너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이기도 하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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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전력공급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한국전력에서 담당한다. 전기사업법에는 주무부처 장관의 허가를 받으면 전기판매 사업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지만, 한국전력 이외의 전기판매 사업자는 사실상 없다. 지난 수십년 동안 작은 도시 하나만 대상으로 전기판매를 해보겠다고 나선 업체도 전혀 없었다. 아마 전기판매는 한국전력에서 독점해야 한다는 선입견에 붙잡혀서 그런 생각조차 못했거나, 신청해도 주무 부처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을 것이라 지레 짐작하고 포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는 전국의 송전망과 배전망을 소유한 한국전력에서 전력망 사용을 허락하지 않으면 사업이 무산된다는 판단을 했을지 모른다. 전력시장을 거의 완전하게 독점 지배하는 한국전력은 정부를 등에 업고 또는 정부의 간섭을 받으며 독점적 지위를 확장하거나 지키려는 사업들을 벌이고 있다. 작년부터 시작한 에너지 프로슈머 사업이나 햇빛새싹발전소 사업이 바로 그런 것에 속한다. 에너지 프로슈머 사업은 재생가능 전기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거래하도록 연결해준다는 명목으로 언젠가 도입될 재생가능전기판매 사업을 독점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고, 햇빛새싹발전소는 학교와 같은 공공건물 지붕의 태양광발전소 건설을 독점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햇빛새싹발전소는 한국전력과 자회사들이 4000억원을 출자해서 만든 특수목적법인이다. 이 회사의 특수목적이란 2020년까지 전국 2000개 학교에 총 200㎿ 규모의 옥상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이다. 1㎾에 대략 200만원의 건설비가 들어가는 셈인데, 학교 지붕을 확보하기 위해서 이 법인에서는 전국 시·도의 교육청과 업무협약을 맺고 있다. 이미 서울, 대전, 경남, 경북 교육청 등이 협약을 맺고 학교 지붕을 내어주기로 했다. 1㎾에 200만원씩 들여서 건설할 경우 현재의 전력판매단가로는 수지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햇빛새싹발전소에서는 대기업 수준의 연봉을 주는 직원들을 채용하면서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시민들이 만든 협동조합이나 개인사업자는 적자 때문에 엄두도 못낼 이런 식의 사업이 가능한 이유는 한전이 철저하게 뒤를 봐주기 때문이다. 학교 지붕을 조사할 때는 한전사업소 직원이 동행하고, 회사의 간부직원들도 한전에서 파견해준다. 게다가 정부산하기관인 에너지공단도 학교장을 모아놓고 회사 홍보를 해주니 수지타산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일이 가능한 이유는 모두 한국전력이 거대 독점(공)기업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한전과 햇빛새싹발전소의 이러한 공정경쟁 저해행위를 방치하고 있다. 아마 정부의 2030년 재생가능 전기 20% 목표달성과 에너지전환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매우 기능주의적인 접근인데, 박근혜 정권에나 어울리지 촛불혁명의 결과로 탄생한 현 정부에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에너지전환은 단순히 원전을 줄이고 재생가능 전기를 크게 늘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것은 시민들이 자기 지역에서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해서 주고받는 에너지 민주주의의 정신을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는 촛불혁명의 정신과 상통하는데, 정부에서는 이 점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에너지전환을 추진하려는 것 같다.

에너지전환은 국가와 대자본의 주도로도, 시민과 공동체의 주도로도 이루어질 수 있다. 국가를 등에 업은 대자본이 주도하면 에너지전환은 민주주의와 촛불혁명의 정신이라는 알맹이가 빠진 껍데기가 된다. 촛불혁명의 정신에 부합하는 에너지전환은 시민과 공동체가 주도해야만 가능해진다. 정부는 이 점을 명심하여 독점(공)기업 한국전력이나 대자본에 의존해서 단순히 재생가능 에너지의 비중만 높이려는 유혹을 버려야 한다. 그 대신 시민과 공동체를 에너지전환으로 움직여가도록 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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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겨울의 연례행사처럼 전북 고창과 전남 순천만에서 고병원성 AI(조류인플루엔자)가 검출됐다. 비상상태에 들어간 방역당국은 순천만 전면 폐쇄와 심각 수준의 방역 실시라는 선제적 조치를 취했다. 가장 극단적인 선제적 조치는 물론 AI의 숙주 자체를 제거하는 ‘살처분’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둔 강원도는 소규모 농가의 닭과 오리를 수매해 도태시키기로 했다. 소규모지만, 살처분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살처분의 끔찍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난겨울 AI로 3000만마리의 닭과 오리가, 2010년엔 구제역으로 300만마리의 소와 돼지가 살처분당했다. 상당수는 생매장되었다. 그런데도 AI나 구제역의 창궐과 대규모 살처분의 근원으로 꼽히는 공장식 축산은 요지부동이다.

지난 11월, 제주시의 한 공장에서 현장실습 중이던 고교생이 프레스에 눌리는 사고를 당해 사망했다, 18번째 생일을 나흘 남긴 채. 지난 1월 전주의 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서 현장실습 나온 여고생이 목숨을 끊었다, ‘콜수’를 못 채웠다는 문자를 남긴 채. 지난해 서울 구의역에선 스크린도어 수리를 하던 현장실습생이 전동차에 치여 사망했다, 뜯지 못한 컵라면과 숟가락을 가방에 남긴 채. 매년 6만여명의 고교생들이 ‘산업체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현장에 배치된다. “꿈을 키울 수 있는 현장실습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학생들의 호소와 요구의 정당성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학생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노동현장의 환경은 변할 줄 모른다.

무엇이든 돈으로 환산해 가격을 매기고 매매가 이뤄지는 곳이 시장이라면,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이 시장으로 변한 지 이미 오래다. 생명도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신격화된 시장의 이익 앞에서”(프란치스코 교종 <복음의 기쁨>) 약자의 절규와 호소는 들리지 않는다. 공장식 축산이 더 많은 이윤을 보장하는 한, 엄청난 규모의 살처분을 하더라도 변화는 없다.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현장이 더 많은 이윤을 보장하는 한, 인명피해가 반복되어도 변화는 없다.

돈과 시장의 압도적 우위는 우리 사회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에서 시민참여단은 원전 2기의 증가를 뜻하는 ‘공사 재개’와 ‘원전 축소’를 선택했다. 일부 언론은 절묘한 선택이라며 치켜세웠지만, 분명히 모순된 선택이다. 여기엔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매몰비용’이라는 시장 논리가 안전, 환경, 지역주민의 피해 같은 의제들을 압도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24일, 문화재청은 문화재위원회가 두 번이나 부결시킨 설악산 오색케이블카사업을 조건부 승인했다. 연간 365만명, 하루 평균 1만명의 탐방객으로 몸살을 앓는 설악산이지만, 아직도 활용이 부족하다고 한다. 자연공원 내 케이블카 금지를 위한 법률 개정이 진행 중인데 정부는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놓겠다고 한다. 시장 논리 외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시장이 사회를 지배하면서, 돈이 ‘신’으로 등극했다.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맘몬(물신)을 섬기는 시대다. 맘몬의 시대에는 언제나 수많은 약자들이 희생 제물로 내몰린다. 그러나 약자를 배제하고 강자만을 위하는 것은 실패한 사회다. “소수는 다수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웬델 베리 <생활의 조건>) 약자의 권리가 인정되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어야 한다.

지난 정부에서 일어났던 불행한 일들이 새 정부에서도 계속되고, 지난 정권이 시작한 불의한 일을 새 정권이 이어받는 걸 보는 건 허탈한 일이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아직 세상은 바뀌지 않았음을 받아들이는 건 힘든 일이다. 세상을 변화시킬 만큼 사람들이 변하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건 아픈 일이다. 강자만이 아니라 약자들도 존중받는 사회로 가는 길은 아직도 멀고 험하다. 여전히 촛불을 들고 거리에 서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아직, 추운 겨울이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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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오후 2시29분에 규모 5.4의 강한 지진이 경북 포항시 흥해읍 지역에서 발생했다. 이번 지진은 지표로부터 깊이 5㎞ 부근에 위치한, 북서쪽으로 약 30도 기운 가로 6㎞·세로 3㎞가량의 단층면이 비스듬히 어긋나며 발생했다. 지난해 9월 발생한 규모 5.8의 경주 지진 때와 마찬가지로 지표에서는 확인된 바 없는 지하에 숨겨진 단층에서 발생한 이번 지진은 주향이동단층 운동 성분과 역단층 운동 성분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생한 여진들을 분석해 보면 본진보다 깊은 곳에서 발생한 지진은 역단층 지진이고, 본진보다 얕은 곳에서 발생하는 여진은 주향이동단층 지진이다.

이번 포항 지진은 한반도에서 언제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깨우치는 국민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되고 있다. 과거의 한반도는 지진 발생빈도가 낮고, 발생하는 지진 규모 역시 작은 지역에 속했다.

포항 지진 발생 사흘째인 17일 교육부 민관합동점검단원들이 포항시 북구 흥해초등학교의 내부 균열 등 지진 피해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이석우 기자

이러한 한반도에 심상치 않은 조짐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나타나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은 한반도 동해안 연안 지역을 일본 열도 방향으로 5㎝가량 이동시키고, 한반도 서쪽 해안 지역은 2㎝가량 이동시켰다. 결과적으로 3㎝가량 동서 방향으로 확장된 한반도 지각은 동일본 대지진 이전보다 약한 강도를 보이게 된다. 실제 한반도 지각 내 지진파의 속도가 동일본 대지진 직후 약 3% 감소한 것으로 측정되기도 했다. 약화된 한반도 지각은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서서히 회복 중이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약화된 지각에서는 지진 발생빈도와 지진 규모가 크게 증가했다. 한반도에서 지진 관측이 시작된 1978년 이후 동일본 대지진 이전까지 33년 동안 총 5회에 불과하던 규모 5.0 이상의 지진이, 동일본 대지진 후 6년5개월 동안 5차례나 발생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9월12일에 발생한 규모 5.8의 경주 지진이 포항 지역에 많은 힘을 가해 이번 포항 지진을 유발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하 11㎞에서 발생한 경주 지진은 단층에 누적하고 있던 많은 에너지를 포항 지역을 포함한 북동 지역과 남서 지역에 추가했다. 이렇게 지진에너지가 추가된 지역에서는 많은 여진들이 이어졌다.

결국 경주 지진이 난 지 14개월 만에 포항 지진이 발생했다. 이번 포항 지진이 발생한 흥해읍 일대는 경주 지진 이전까지는 규모 2.0 이상의 눈에 띄는 지진 발생이 없었던 곳이다.

이번 포항 지진은 경주 지진과 몇 가지 다른 점을 보이고 있다. 경주 지진은 포항 지진에 비해 1~10㎐ 사이 고주파수 대역의 지진파 에너지가 높은 데 반해, 포항 지진은 0.6㎐ 이하의 주파수 대역에서 경주 지진보다 높은 에너지를 보였다. 포항 지진에 의해 건축물이 많은 피해를 본 이유는 낮은 진원 깊이, 분지형 퇴적층으로 이뤄진 표층에서의 지진파 증폭, 건물에 영향을 주는 저주파수 대역에서의 많은 에너지로 파악되고 있다. 또한 포항 일대의 표층을 구성하는 퇴적층 내에 포함되어 있던 많은 물들이 강한 지진동 때문에 지표로 배출되는 액상화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규모 6 이상의 강한 지진에서 주로 관측되는 이런 액상화 현상이 이번 포항 지진 이후 관측된 점은 분지형 지질구조에서 보이는 지진파 증폭 현상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이제껏 겪어보지 못했던 위협적인 자연재해를 경험하고 있다. 특히 일각에서는 포항 지진 촉발 원인으로 지열발전소를 새롭게 지목하고 있다. 지열발전소는 포항 지진 진앙과 1㎞ 남짓 가깝게 위치해 있고, 물 주입 시기에 미소 지진이 발생해 이번 포항 지진의 원인으로 의심을 받고 있다. 2016년 1월부터 주입된 물의 총 누적량은 약 1만2000㎥에 이르고, 다시 배출된 물의 양을 고려하면, 순수하게 지중에 남아 있는 물의 양은 약 5000㎥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주입된 물의 양과 주입 기간, 지열발전소 가동 방식이 규모 5.4라는 큰 지진을 유발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특히 중대형 지진이 발생하기 전에 흔히 보이는 수천회에 달하는 미소 지진과 수많은 중소형 지진들이 거의 관측되지 않았던 점도 지적되고 있다. 신속하게 정부 차원의 조사가 이뤄지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루빨리 조사가 완료되어 국민 불안이 해소되길 기대한다.

지진 원인 규명과 함께 포항 지진 영향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이번 포항 지진 발생으로 주변 지역에는 포항 지진으로부터 전이된 지진에너지가 새롭게 축적되었다. 포항 지진 진앙지로부터 북동쪽과 남서쪽 방향으로 응력이 증가되어, 한반도 남동부 지역에는 매우 복잡한 응력 환경이 형성되었다. 특히 경주와 포항 사이 지역과 포항과 영덕 사이 앞바다 지역의 지진에너지 증가가 눈에 띈다.

이번 포항 지진의 여진은 빈발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나 6개월 이상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추가된 지진에너지가 해소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세심한 지진 대비가 필요하다. 한반도가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란 점은 이제 재론의 여지가 없다. 지진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많은 기초 정보 구축이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지하에 숨겨진 활성단층에 대한 조사가 절실하다. 2007년 규모 4.8 오대산 지진, 지난해 경주 지진, 올해 포항 지진 등 내륙에서 발생한 주요 지진들이 모두 지하의 숨은 단층에서 발생했다. 한반도에서 지진을 유발하는 단층은 지표에서 관측되지 않는 단층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해역 지역 단층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원자력발전소 등 사회 기간 시설들이 위치해 있는 해안 지역은 강한 지진파와 지진해일을 동반하는 해역지진에 취약할 수 있다. 하나씩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면 안전한 대한민국이 보다 가까워질 것으로 확신한다.

<홍태경 |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지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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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경주 지진에 이어 포항 지진까지 발생하면서 국내 일반 건축물은 물론 원전 안전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과거에는 지진의 단순 규모만 논란이 됐으나 이번에는 건축물 진동 효과를 보여주는 지표인 최대지반가속도 문제가 제기되면서 논란의 수준도 진전했다.

최대지반가속도 기준으로 월성원전은 0.18g, 기타 가동 중인 원전은 0.2g, 신고리 3호기부터는 0.3g까지 버티도록 설계됐으나, 포항 지진 당시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관측소에서 0.58g까지 측정된 만큼 특단의 안전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물론 원자력계는 포항의 지반 조건으로 지반가속도의 증폭효과가 컸지만, 암반에 입지한 원전의 경우 증폭효과가 낮으니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반박한다. 원자력계의 주장 중 지반 조건에 따라 증폭효과가 달라진다는 것 자체는 지질학계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포항 지진 발생 이후 포항시 북구 장량동 한 빌라에서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직원들이 지진 충격으로 철근이 드러난 필로티건물 기둥을 살펴보고 있다. 이석우 기자

그러나 문제는 국내 지진 관련 학계나 연구기관들도 국내 원전 부지의 심지층, 부지 주변, 해양단층까지 세부조건이 어떤 상황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는 그간 국내 원자력산업과 지진 연구조사에 대한 투자가 비대칭적으로 이뤄진 결과로, 더 많은 조사·연구가 필요한 영역이다. 원자력업계는 원자로 노심과 증기배관의 안전을 전공한 것이지, 지진을 전공한 것이 아니다.

중세의 세계관과 과학의 결정적 차이는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을 구분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하는 데에 있다. 행성들의 운동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던 중세시대 종교학자들이 성경의 권위를 빌려 천동설을 믿도록 강요했지만, 천문학자들이 체계적 관측과 합리적 추론을 통해 거짓이라는 것을 밝혔다. 혹시 국내 원자력계도 박정희 시대 형성된 ‘원자력 신화’의 권위를 빌려 모르는 것을 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닌지 자성이 필요하다.

자신이 모르는 사항이라면 전공학계에 문의해야 하고, 전공자들도 조사를 못해 모른다면 그들이 답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원칙일 것이다. 만약 이미 공기업의 투자가 진행돼 기다릴 수 없다면 최소한 사전예방의 원칙이라도 지켜야 할 것이다.

우리와 가장 유사한 해외 사례로 미국의 노스 안나(North Anna) 원전을 보자. 지진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여겨져온 미국 중동부 지역의 암반 부지에 입지한 버지니아주 노스 안나 1·2호기의 경우 최대 규모 6.2, 최대지반가속도 0.12g의 내진설계를 구축해 운영해왔다. 그러나 2011년 원전으로부터 18㎞ 떨어진 진앙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 미국 지질조사국 지역측정소에서 최대지반가속도 0.26g(원전 건물 측정치 0.12g)가 측정된 바 있다. 이 지진 이후 미국 지질조사국과 전력연구소는 해당 지역의 예상 최대 지진규모를 평균 기준 7.2로 상향조정했다. 이에 따라 전기사업자인 도미니언사도 노스 안나 3호기 신규 원전 건설계획의 허가심사를 받기 위해 내진설계를 기존 원전의 4배가 넘는 0.54g로 상향조정해 신청한 바 있다. 신규 원전이 건설될지 여부는 별개의 이야기다.

미국 지질조사국처럼 체계적 지진 연구기반이 부실한 국내에서 노스 안나 사례를 그대로 따라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국민적 관심을 받으며 공론화까지 진행한 마당에 신규 원전 건설이 불가피하다면, 조사가 부족한 만큼 원자력계와 규제기관은 신규 원전과 밀집해 가동 중인 원전들에 대해 대폭 강화된 내진설계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

<석광훈 | 녹색연합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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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인플루엔자(AI)가 또다시 기승을 부릴 조짐이다. 전북 고창의 오리농가에서 고병원성 AI 바이러스 H5N6형이 검출된 데 이어 20일에는 전남 순천만의 철새 분변에서 검출된 AI 바이러스가 H5N6형으로 확진됐다. 전남도는 올겨울 들어 처음으로 철새 분변에서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검출된 순천만을 21일부터 전면 폐쇄하고 습지 관광도 금지하기로 했다. 고병원성 AI 확진으로 지난달 13일 어렵게 회복했던 ‘AI 청정국 지위’를 잃게 돼 가금류 수출에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더 큰 걱정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80여일 앞두고 고병원성 AI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AI가 발생하면 가금류 농가에 이동중지명령이 내려지고, 전국 주요 고속도로에는 통제초소가 설치된다. 올림픽 기간에는 80여개국의 선수와 취재진을 포함해 40여만명이 한국을 찾을 예정이다. AI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 농가 피해는 물론이고 올림픽에 심각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고병원성 AI는 2014년부터 연례행사처럼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AI가 전국 50개 시·군으로 번져 사상 최대의 피해가 발생했다. 농가 900여곳에서 닭·오리 등 가금류 3787만마리가 살처분됐다. 피해농가에 지급한 살처분 보상금만 3084억원에 달했고, 계란값 폭등과 관련 산업 위축 등 간접 피해도 컸다. 우려스러운 것은 올해도 지난해 겨울과 유사한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에는 11월11일 야생조류 분변에서 AI 확진 판정이 났고, 닷새 뒤인 16일 전남과 충북의 가금류 농가에서 AI가 발생하면서 전국으로 확산됐다. 올해도 야생조류 분변에서 AI 항원이 잇달아 검출된 데 이어 지난해와 비슷한 시점에 가금류 농장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AI 바이러스 유형도 전염성이 강하고 폐사율이 높은 H5N6형으로 똑같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방역당국의 대응이 지난해보다 신속해졌다는 점이다. 올해는 전북 고창의 농가에서 키우던 오리 1만2300마리를 살처분하면서 AI 위기경보를 ‘주의’에서 최고단계인 ‘심각’으로 올렸다. 지난해에는 1783만여마리를 살처분한 뒤에야 ‘심각’으로 격상했다. 지난해 AI 재앙이 초래된 것은 방역당국이 초동대처에 실패하고 뒷북 대응으로 일관한 탓이 크다. 그런 측면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초동방역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과감하고 신속해야 한다”고 지시하고, ‘범정부 AI 수습본부’를 설치한 것은 적절하고도 바람직한 조치다. 정부와 지자체는 지난해의 시행착오를 반면교사 삼아 AI 조기 차단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허술한 방역체계와 어설픈 대응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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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7일자 지면기사-

경주지진에 이어 1년여 만에 포항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전국에서 지진동을 느꼈다. 집이 무너지고 길이 갈라지고 자동차가 파손되고 사람들이 다쳤다. 잘 수습되고 더 큰 피해가 없기를 바라는데, 이 일대 활성단층들이 활동기에 들어갔으니 학교 등 다중 이용시설과 주요 산업시설의 안전 점검이 시급하다.

한반도 동남부 양산단층대에는 국내 원전 18기가 운영 중이고 5기의 원전이 건설 중이다. 인근의 부산, 울산, 대구, 경주 등 주요 대도시에는 수백만명의 인구가 밀집해 지진과 함께 원전사고까지 이어진다면 나라의 운명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양산단층대에는 육지에서만 230㎞에 이르는 양산단층을 중심으로 월성·신월성 원전 주변에 있는 울산단층, 고리·신고리 원전 주변의 일광단층, 동래단층, 밀양단층 등 발견된 것만 60여개가 넘는 활성단층들이 분포하고 있다. 지난 수천만년 동안 최소 4번의 활동 시기가 있었고 활동 시기에 들어서면 수백년 이상 지각활동이 이어졌다. 작년 경주지진에 이은 640회의 여진 그리고 15일 포항지진과 이후 하루 동안 30회가 넘는 여진은 양산단층대가 다시 활동 시기에 돌입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미 지질학자들은 양산단층대의 재활성을 경고해왔다. 양산단층대 일대에 지진 규모 7.0이 넘는 대규모 지진이 수백년의 주기를 두고 발생했던 기록이 역사서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마지막 대규모 지진 발생 후 500여년이 지난 지금이 대규모 지진이 다시 발생할 수 있는 시기라는 경고가 있었지만 정부 당국은 안일했다.

포항지진은 경주지진보다 규모가 작지만 피해는 더 컸다. 진원지 깊이가 더 낮고 도시 인근이라 피해가 더 컸다. 지진 위험을 단순히 지진 규모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포항지진은 포항분지의 퇴적층과 화강암의 북쪽 경계단층에서 발생했다. 연약지반인 퇴적층은 포항지진을 더 증폭시켰다. 규모 5.4인 포항지진 진앙에서 2.6㎞ 떨어진 가스공사 흥해관리소의 지진계는 0.58g(중력가속도)의 최대지반가속도를 기록했다. 중력가속도 g의 0.58배의 힘으로 좌우로 흔들린 것이다.

이 일대에 운영 중인 원전 17기의 내진설계는 0.2g에 불과하다. 신고리 3호기와 건설 중인 원전 5기의 내진설계 역시 0.3g밖에 되지 않는다. 포항지진으로 0.58g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는데 원전 내진설계는 여기에 한참 낮은 수준이다. 지금은 진앙이 원전에서 떨어져 있어서 안전하지만 다음 지진이 원전 인근에서 일어난다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포항분지의 남쪽 경계단층은 월성원전 인근이다.

지진으로 인해 땅이 흔들릴 때 돔 형태의 콘크리트 건물이 지진에 견딘다고 원전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원전은 배관 연결 길이만 170㎞에 달하고, 케이블 연결 길이는 1700㎞이다. 지진이 일어나면 배관이 파손될 수 있고 용접부위가 갈라질 수 있고 밸브가 틀어질 수 있으며 화재가 발생해 케이블이 녹아내릴 수 있다. 17개 원전의 케이블은 내연 케이블이 아니라서 화재가 나면 원전 전체가 먹통이 될 수 있다. 파손된 배관으로 인해 원전 냉각이 실패하면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같은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지진으로 도로가 끊겨서 외부 지원도 불가능해지고 산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 방사성물질이라도 방출되는 날에는 수백만명의 인구가 도대체 어디로 피난을 간다는 말인가.

지금은 전기 공급이 충분해서 봄가을에는 원전 40개, 여름·겨울에는 원전 20개 이상의 발전설비가 남는 상황이다. 앞으로도 전기 소비는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는 예측인데 신규 발전소는 늘어나고 있다. 위험을 무릅쓰고 원전 가동과 건설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 설계상 내진설계 강화가 될 수 없는 중수로 원전인 월성원전 1~4호기부터 폐쇄해야 한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상향된 원전안전기준으로 안전성을 재검증하기 위해 50개의 가동 중인 원전을 모두 중단했다. 내진설계를 강화하고 지진 안전성을 투명하게 확인하기 전까지 원전 가동과 건설을 전면 중단해야 한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국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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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7일자 지면기사-

지난해 9월 경주지진에 이어 1년2개월 만에 포항지진이 일어남으로써 한반도가 더는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님이 재확인됐다. 두 번의 강진은 한반도 동남부를 가로지르는 활성단층대를 진앙으로 두고 있다. 이 일대에는 월성 6기, 한울 6기, 고리 6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고, 5기가 건설 중이다. 원전지뢰밭이라 할 수 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이번 지진에도 불구하고 가동 중인 전국의 원전 24기가 모두 정상운영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지진 안전지대라던 동남부 지역에서 강진이 단기간에 두 번이나 이어졌다는 것은 이 일대 단층이 본격 활성화 단계에 돌입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지진의 진원지(9㎞)가 지난해 경주지진(11~15㎞)에 비해 얕아져서 체감위험도가 훨씬 커졌다는 사실도 심상치 않다. 그럼에도 지하의 지질구조를 분석한 ‘단층지도’는 아직 없다. 이 때문에 한반도에 엄습한 수상한 지질현상을 파악할 수 없다. 지진이 잦았던 17세기 이후 400년 동안 지하 어디엔가 축적된 응력이 경주·포항지진으로 나타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축적 응력이 지하 몇 ㎞ 깊이에서, 혹은 어느 원전 밀집지역에서 지진으로 표출될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지진이 일상의 공포로 다가온 것이다. 문제는 가동 원전 24기 중 23기의 내진설계가 규모 6.5에 해당되는 최대지반가속도 0.2g에 맞춰졌다는 것이다. 한수원은 이미 규모 7.0에도 견딜 수 있도록 21기의 내진보강을 마쳤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본설계는 그대로 둔 채 주변 구조물 등을 보강해봐야 한계가 있다. 특히 얇은 압력관이 380개나 설치된 중수로 원전(월성 1~4호기)의 경우 내진보강이 사실상 어렵다. 지진으로 압력관이 터지면 백혈병과 암을 유발하는 삼중수소가 대량으로 유출될 수 있다.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려면 당연히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해야 한다. 공포감을 고취하려는 게 아니다. 다가올지 모를 비극에 대한 올바른 대처법이다. ‘원전사고는 1억년에 한번 나올 법하다’고 큰소리치던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원전가동을 중단해서라도 원전구조의 안전성을 점검하고 기존 원전들의 내진설계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2022년으로 예정된 월성 1호기 폐로를 비롯하여 내진보강이 어려운 노후원전들을 차례로 정리해야 한다.

지진으로 인한 원전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길은 딱 하나, 탈원전이다. 한반도를 강타한 지진이 그 사실을 일러주고 있다. 16일 ‘월성 1호기 폐로’를 논의한 한수원 이사회가 탈원전의 본격적인 첫걸음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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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7일자 지면기사-

나라 밖 지진 소식이 들릴 때면 우리나라에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하곤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가 달라지고 있다. 아니, 사실은 오랜 역사 동안 지진이 발생했지만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이 기억하는 한 지진 때문에 큰 피해가 발생한 경우가 없었기에 우리나라를 지진 안전지대인 양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적어도 작년 9월12일의 경주지진이나 이틀 전인 11월15일 포항지진이 발생하기 이전까진 말이다. 한반도에서 얼마나 많은 지진이 발생했는지, 그 지진이 얼마나 강력했는지에 대해선 이미 역사적인 기록들이 있는데도 말이다. <조선왕조실록>에만 441건이 기록되어 있고 ‘세종실록’에도 심지어 <삼국사기>에도 기록되어 있다. 2012년 기상청에서 발간한 <한반도 역사지진 기록>을 보면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지진이 총 2161회고, 그중 진도 8~9(규모로는 6.7로 추정)의 강진이 15회(0.7%) 정도였다고 한다.

지난해부터 지진이 발생하고 있는 경주와 포항, 울산 인근에는 원전이 입지해 있다. 무려 18기가 가동 중이고 5기가 건설 중이다. 다행히 아직까지 전국 24기 원전엔 이상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 다시 더 강력한 지진에 노출될지 알 수 없기에 참으로 불안하기 짝이 없다.

작년 규모 5.8의 경주지진 발생 후 진원지가 월성원전에서 28㎞ 떨어진 지점이라 원전 안전성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수 시민들은 그 사실을 잊어버렸다. 너무나 쉽게 말이다. 이번처럼 또 지진이 발생하면 그제야 다시 원전 안전을 염려하지만 또다시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이래서는 안되지 않을까? 안전은 안전할 때 지켜야 한다. 원전사고는 너무나 치명적이어서 단 한 번의 사고라도 일어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만 잠시 경각심이 살아나선 곤란하다.

신고리 5·6호기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건설을 재개하기로 했다. 원전 위험을 우려하는 필자로선 참 아쉬운 대목이지만 이미 내려진 결정이기에 안전에 만전을 기하길 기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원자력계도 인정하듯이 신고리 5·6호기가 기존 원전보다 안전성이 한층 강화된 거라면, 기존 원전은 안전 수준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현재 가동 중인 원전 24기는 신고리 3호기를 제외하면 모두 규모 6.5까지만 견디도록 설계되어 있다.

지질학계에 따르면, 단층구조상 우리나라에선 최대 규모 6.5~7.0의 초대형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기존 원전의 내진 성능을 7.0까지 강화한다고 하지만 이미 지어진 구조물의 내진 성능이 정말 안전하게 보강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설계와 실제 성능은 다를 수 있어서 더욱 그렇다. 망치와 환형 구멍이 발견된 한빛 4호기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시공과 관리 부실은 또 다른 암초다. 충분한 안전 여력을 확보할 수 없다면 설계수명 이전 폐쇄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사고가 난 후는 이미 늦다.

이제 우리나라는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 다행히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결정에도 불구하고 시민참여단의 과반수(53.2%)는 원전축소정책을 지지했다. 정부의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 정책은 재론의 여지 없이 유지되어야 한다.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문제를 고려할 때 탈석탄정책도 흔들림 없이 추진되어야 한다. 이런 정책이 제대로 가려면 전력 소비에 낭비가 있어서는 곤란하다. 위험하고 깨끗하지 않은 발전소를 자꾸 지어서 싸고 풍족하게 전기를 쓸 생각을 이젠 과감히 버려야 한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 시민 한 사람 한 사람, 기업 하나하나가 더 이상 소비자로만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이제 누구나 전력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 이미 기술은 우리 곁에 있다. (미니) 태양광발전부터 시작해보자. 이게 지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자 경고에 대한 답이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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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건강 피해자 수가 5000명을 넘었지만 우리나라 공중 보건망은 개선된 것이 없다. 속칭 햄버거병, 계란 살충제 오염, 생리대 화학물질 등 일상생활에서 소비하는 수많은 생활용품과 식료품이 초래하는 위험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는 계속되지만 (화학)물질 중독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는 거의 없다. 또 다른 특정 제품, 특정 화학물질로 인한 건강영향 사고는 계속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고의 공통점을 보면 정부가 허가한 제품을 소비자가 사용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입었고, 정부가 피해 위험을 먼저 알아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소비자 개인이 알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는 위험들이다. 이들 사고는 제품 사용으로 인한 소비자의 피해 사례를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이나 조직이 없는 데에서 오는 일련의 사고다.

가습기 살균제, 살충제 계란, 생리대, 휴대폰 케이스…. 생활 속에서 흔히 먹거나 쓰는 것에 유해한 독성물질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 속속 이어져 시민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화학물질 위험은 표준적인 동물실험만으로 충분히 알아낼 수 없다. 모든 화학물질은 동물실험에서 발견하지 못한 치명적인 건강 영향을 사용자가 제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입는다.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DDT의 암과 생식 독성, 탈리도마이드의 태아 기형은 동물실험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다. PHMG, PGH, CMIT, MIT에 의한 폐 손상, 천식 등도 우리나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대부분의 화학물질 독성은 해당 물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경험하지 않고는 알아낼 길이 없다.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감시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화학물질이 들어 있는 제품을 사용할 때 입은 피해사례를 모으고 감시하는 국가 조직은 물론 감시망이 없다.

미국에는 소비자의 안전을 책임지는 정부 조직인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가 있다. 이 위원회는 1990년에 가습기 사용으로 인한 호흡기 건강영향 위험을 알렸고, 가습기에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미국에는 소비자가 입은 작은 사고나 건강영향을 모니터링하는 56개의 물질중독센터(Poison Center)도 있다. 누구나 경제 소비 활동에서 입은 사고, 불편, 중독 경험을 자유롭게 신고할 수 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CDC)는 실시간으로 물질중독센터의 자료를 종합, 분석하여 피해 사례의 원인 규명, 추가 확산 차단은 물론 치료에도 활용한다. 예측하지 못한 사고 등을 사용과정에서 모니터링하고 신속하게 대응하는 공중 보건망이다. OECD 모든 나라와 WHO 회원국의 50%에 달하는 나라에도 이러한 목적의 물질중독센터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물질중독을 감시하는 체계가 없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과학기술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위험을 직접 통제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했다. 이 말은 화학물질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4만종이 넘는 화학물질을 다양한 환경에서 사용하고, 지금도 인공 화학물질이 우리 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을 것이다. 정부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화학물질이 들어있는 제품의 위험을 모두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업으로 하여금 가능하면 안전한 제품을 만들도록 억지하는 것이 화학물질이 야기하는 건강 피해 예방의 첩경이다. (화학)물질이 일으키는 건강영향 사고를 차단하고 기업으로 하여금 위험을 스스로 관리하게 할 수 있는 정부 감시 체계를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국민들이 물질중독으로 피해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해 전국에 퍼진 주요 지역 보건소와 병원을 연결하는 가칭 ‘물질중독정보센터’로 공중 보건망을 짜자. 물질중독정보센터 설립 및 신고된 피해사례 통계만으로도 기업의 악의적인 위험관리 방기를 억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물실험에서 발견하지 못한 위험도 알 수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강력하게 작동할 수 있게 된다.

<박동욱 | 한국방송통신대 교수·환경보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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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영국과 독일은 여러 면에서 대조되는 나라다. 산업에서 영국은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히든 챔피언’이 100개에도 못미치지만, 독일은 1300개에 달한다. 정치에서 영국은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지만, 독일은 패자도 종종 꽤 큰 몫을 가져간다. 교육에서도 영국은 엘리트 중심이지만, 독일에선 엘리트라는 말도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원자력 정책에서는 두 나라가 유럽의 양극단을 대표한다. 영국은 원자력을 크게 늘리려 하지만, 독일은 없애가고 있다. 20년 후에 영국에서는 지금보다 두 배 많은 원자력 발전소가 전기를 생산하게 된다. 반면에 독일에서는 5년만 지나면 원전이 모두 사라진다. 영국 정부는 원자력이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값이 싸다고 주장한다. 반면 독일 총리는 원전사고는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영역에 속한다고 말한다.

영국에서 원전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영국과 독일의 이러한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지 꽤나 궁금해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영국 서섹스대학 과학정책연구소의 학자들이 두 나라의 차이에 대해 탐구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여기에서 그들은 산업이나 전력수급에서 원자력발전이 차지하는 무게로 볼 때 영국이 독일보다 훨씬 가볍고, 따라서 원전 포기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은데도 원전 확대를 선택한 이유로 두 가지를 든다. 하나는 영국은 원자력의 군사적 이용에 대한 관심이 강하지만 독일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 또 하나는 영국의 민주주의의 질적 수준이 독일에 비해 상당히 낮다는 것이다.

영국은 원자탄과 수소탄을 수백개 보유하고 있다. 핵추진 잠수함도 10개 이상 가지고 있고, 퇴역 핵잠수함 27개의 원자로는 해체를 기다리는 중이다. 영국의 이름난 기업들은 이들 군사적 핵기술에 깊숙이 관여되어 있다. 고급 자동차회사로 널리 알려진 롤스로이스는 핵잠수함의 원자로 관련 설계, 제작, 운영 분야에서 세계적 선도기업이다. 반면에 독일은 원자탄은 물론 핵잠수함도 없다. 원자력 산업 부문에서는 지멘스가 세계 여러 나라에 원전을 수출하며 오랫동안 시장을 주름잡았지만, 2011년 후쿠시마 사고와 독일의 원자력 포기 결정 후에는 원자력사업에서 손을 뗀다고 선언했다. 지금은 원자력 대신 해상 풍력발전에 집중하고 있다.

영국과 독일은 ‘군사적 이용에 대한 강한 관심-원전 확대’ ‘군사적 이용에 대한 관심 없음-원전 포기’라는 명확하고 이해가능한 태도를 보여준다. 이에 비해 원자력발전을 없애 가겠다면서 핵잠수함을 건조하고 원전을 수출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행보는 좀처럼 이해가 안된다. 도널드 트럼프가 왔다 간 후 핵잠수함 건조는 거의 기정사실이 되었다. 한·미원자력협정도 핵잠수함 건조를 가능하게 하는 방향으로 개정될 것이고, 이에 따라 20%에 달하는 고농축 우라늄 확보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20% 농축우라늄을 사용하는 원자력발전소를 품고 있는 핵잠수함을 제작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선언과도 모순이지만, 한반도 비핵화정책과도 모순이다. 20% 농축우라늄으로도 원자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원자탄은 우라늄 농축도가 90% 이상이어야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농축도가 높을수록 우라늄의 양이 적어질 뿐이다. 100%의 농축우라늄은 임계질량이 47.5㎏이고, 20% 농축우라늄의 임계질량은 750㎏이다. 따라서 750㎏이 두 개로 나뉘어 있다가 폭발 순간 합쳐지는 ‘건 타입(Gun Type)’ 원자탄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핵잠수함 제작과 탈원전이 드러내는 모순은 한반도의 분단이라는 모순에 기인한다. 10월20일 국민 다수가 탈원전을 원한다는 것이 드러났지만, 분단체제가 지속되는 한 이 같은 모순도 풀리기 어렵다. 그러므로 분단 모순의 극복 없이는 독일이 보여주는 것과 같은 진정한 탈원전은 불가능하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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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공사재개’라는 권고안을 발표했다. 청와대는 활짝 웃었고, 문재인 대통령은 “지혜롭고 현명한 답” “숙의민주주의의 모범” “통합과 상생의 정신”이라는 말로 화답했다. 그러나 닷새째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기원 108배를 마치고 오신 밀양 송전탑 피해 주민들은 울고 계셨다. 볕에 잔뜩 그을린 피곤한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보며, 내 머릿속은 백지장처럼 하얘져갔다.

공론화위원회의 보고서를 살펴보면서 밀양 주민들의 눈물이 떠올랐고, 깨달았다. 보고서에 ‘숫자’는 있었지만 ‘사람’이 없었다. 시민참여단에 제공된, 객관성 담보를 위해 최대한 수치화된 자료에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핵발전소로 삶이 해체된 사람들, 송전탑으로 삶이 뽑혀버린 사람들, 현장에서 피폭노동을 감내하는 하청업체의 사람들의 아픔과 애환은 숙의의 중심에 들어가지 못했다. 전력수급 전망과 전기요금 인상분은 열띤 논의 대상이 되지만, 핵발전소의 전기는 피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아픈 진실은 매몰비용이란 거대한 숫자 앞에서 쉽게 매몰된다. 일단 짓기 시작했으니 계속 지어야 한다는 완고한 경제 논리 앞에서 희생을 강요당하고 고통을 감내해온 사람들의 아픔과 애환에 대한 공감은 감상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효율과 경쟁의 시대, 진실과 공감을 위한 자리는 줄어들고, 구석에서 숨죽여 흐느끼는 사람들은 늘어만 간다.

경제를 앞세운 개발 논리 앞에선 자연도 온전하기 힘들다. 지난 6월,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문화재위원회가 설악산오색케이블카 사업과 관련해 문화재현상변경신청을 부결 처리한 것이 잘못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문화 향유권’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지난 10월25일, 문화재위원회는 문화 향유권을 포함해 재심의를 했고, 다시 한 번 부결로 처리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문화재청이 행정심판의 기속력을 들먹이며 조건부 허가 처분을 하겠다고 나섰다. 재작년에는 국립공원을 지켜야 할 환경부가 국립공원위원회의 거수기 판결을 통해 설악산 개발에 앞장서더니, 이번에는 천연보호구역을 보존해야 할 문화재청이 문화재위원회의 부결 판결에도 불구하고 설악산을 다시 개발의 늪으로 몰아넣으려 한다.

문화재청의 입장에는 규정은 있지만, 문화재청에 걸맞은 아름다움과 생명의 경이로움에 대한 공감이 없다. 정당한 절차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절차적 정당성은 법대로 했다고 무조건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법을 상식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할 때에만 정당성이 확보된다. 행정심판의 기속력을 들먹일수록, 문화재위원회가 안건을 다시 심의하도록 한 문화재청의 의도는 더욱 알 수 없게 된다. 법(法)의 해석과 적용은 물(水) 흐르듯(去) 자연스러워야 한다. 그러나 재작년 국립공원위원회의 결정, 지난번 중앙행정심판위원회의 판결과 이어지는 문화재청의 움직임은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다. 물의 흐름을 거스르려는 보이지 않는, 아니 차마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힘이 작용한다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 문재인 정부가 청산에 여념이 없는 ‘적폐’가 여기서 다시 쌓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천주교 사제인 문정현 신부님은 요즘 미 대사관 건너편 광화문광장에서 하루 종일 온몸으로 나무판에 평화를 새기신다. 전쟁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진 이 땅에 평화가 찾아오길 간절히 바라는 기도를 온몸으로 바치신다. 신부님이 새기고 계신 나무판의 글자에는 ‘사람’이 들어 있다. 국가 안보나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희생과 고통을 강요당한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짙은 공감이 배어 있다.

구원은 어디서 오는가? 힘없는 사람과 말 못하는 자연을 보듬는 것은 결국 힘센 국가가 아니라 함께 처지를 공감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밀양과 설악산과 광화문에서 새삼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가장 불행한 이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할 뿐”이라는 조그만 나라 부탄이 새삼 크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조현철 신부 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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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해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0%까지 확대하는 정책(신재생에너지 3020)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전력생산의 10%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서부발전은 발전공기업으로서 정부 정책에 발맞춰 ‘신재생에너지 3020’ 로드맵을 확정하여 개발 중이다.

그러나 걸림돌이 많다. 국토의 약 70%가 산지로 구성되어 있는 국내 현실에서는 태양광에너지 확장이 쉽지 않다. 풍력발전 역시 풍황이 우수한 곳은 대부분 생태지역 1등급이거나 백두대간이라서 설치가 어렵다.

그래서 무엇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서부발전은 우선 국토의 효율적 개발과 주민수용성 제고를 위해 지역 맞춤형 대규모 수상태양광과 해상풍력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진도군과 100㎿ 수상태양광, 완도군과 150㎿ 해상풍력 개발 MOU를 체결하는 등 여러 지자체와 신재생사업 공동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 신사업개발 조직과 인력도 기존 화력발전보다 신재생에너지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8월 신재생사업처를 신설하였고 사업소에도 신재생개발 TF를 운영하는 등 신재생 분야에 모든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 서부발전은 2030년까지 총 6조원 이상을 투자, 4268㎿의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확보할 예정이다. 매년 약 5000억원 내외의 사업비가 예상되나 회사 내부자금으로 충분히 조달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서부발전은 본사가 위치한 충남 태안군과의 상생협력을 위해 태안발전본부 인근 이원호에 45㎿ 수상태양광을, 이원간척지에는 360㎿의 대규모 주민참여형 태양광사업을 개발하고 있다. 이원간척지의 경우 염도가 높아 벼농사가 곤란한 지역으로 태안군과 협력하여 어패류 양식을 병행한 신재생에너지파크로 조성, 태안지역의 관광 랜드마크로 개발할 계획이다.

신기후체제의 등장과 함께 저탄소·고효율 구조로의 에너지전환은 돌이킬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그러나 신재생에너지 3020은 발전공기업만의 노력으로 달성될 순 없다. 그리고 신재생에너지만 확충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분산형 전원 구축 및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전환과 함께 규제완화 등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지원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신재생에너지 분야 R&D 확대를 통한 창의적인 에너지 신산업 창출이 절실하다. 그래야만 에너지 신산업이 새로운 국가성장 동력으로, 에너지전환은 국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정영철 | 한국서부발전 사장 직무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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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들 즈음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히지만, 올해 여름도 어김없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웠다. 우리나라 온도관측 사상 가장 뜨거웠던 해는 2016년이었다. 작년까지는 2015년이었고, 재작년까지는 2014년이었다. 아마 올해가 지나면 또 기록을 경신하지 않을까 한다. 돈을 조금 더 벌기 위해 갈수록 악화되는 폭염과 각종 기후변화는 감내해야만 하는 고통일까? 짚어봐야 할 것은 우리나라 평균온도 상승이 지구 전체 그것의 두 배나 높다는 것이며, 앞으로도 이 추이는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온도상승 억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효과적 방법은 에너지 절약인데, 사회구조적 체질개선이 요구되니 이 주장은 공허할 뿐이리라. 차선으로 온도저감과 동시에 배출된 탄소의 저장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인 숲의 조성과 보호를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후 지금까지 산림관리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으며, 훌륭한 성과를 얻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숲이 차지하는 면적이 전체 국토의 60%를 훌쩍 넘고, ‘숲가꾸기’ 사업에 매년 수천억원이 투입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앞서 설명한 한반도 온도의 급상승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숲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숲가꾸기’라는 이름의 사업은 대부분 큰 나무를 키우기 위한 솎아베기 사업이 차지한다. 환경적 공익과 공공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목으로 효과의 검증 없이 매년 수천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인데, 최근 국내에서 검증된 모든 결과를 종합하여 솎아베기 이후 탄소저장량의 변화를 분석한 연구결과는 자못 충격적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숲을 40% 수준으로 간벌했을 경우 이듬해에는 총 탄소저장기능이 3분의 2 수준으로 줄어든다. 간벌의 효과를 홍보하는 측에서는 남겨진 수목들이 훨씬 건강하고 활발하게 생장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연간 탄소저장량이 간벌하지 않은 숲과 같아지기까지 무려 38년이나 걸리며, 이때까지 줄어든 탄소저장량은 연간 흡수량의 650%나 된다. 이 감소된 저장량을 회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다시 37년이 필요하다는 예측이다. 즉, 75년 이후에나 조금씩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또한 남겨놓은 수목이 100살이 넘어서도 젊을 때와 같이 왕성한 생장이 지속된다고 가정해야만 하며, 작업을 위한 탄소소비활동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 더해 베어진 나무의 대부분은 숲속에 남겨져 이전까지 열심히 저장한 탄소를 다시 고스란히 배출하게 되는데, 이 또한 계산에서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100년이 지나도 한번 솎아베기 한 숲은 전혀 환경적 이익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숲가꾸기는 혹여 100년 이후에나 우연히 생길지도 모를 이익을 가정한 정책일까? 과연 나무나이 100년이 넘도록 왕성하게 생장하는 숲은 있는가? 사업 이후 70년 이상 온전히 보전될 숲은 있는가? 현재 제도로는 한번 간벌 후 5년이 지나면 다시 간벌사업을 할 수 있다. 대부분 숲은 70년이 지나기 훨씬 이전 또다시 간벌사업이 진행되거나 모두베기된다. 수많은 숲은 아예 다른 용도로 전환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솎아베기로 대표되는 숲가꾸기를 통한 산림관리는 고스란히 우리나라 숲의 탄소저장기능 감소로 이어졌다고 봐야만 한다. 한반도 온도상승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우리는 현재 매년 수천억원의 세금을 들여 숲의 공익적 기능을 악화시키고 있으며, 이로 인해 한반도 온도상승을 초래하고 있고, 고스란히 사회적 약자들에 더 큰 직간접적 피해를 주고 있다. 숲가꾸기가 단지 탄소저장만을 위해 행하는 것이 아님을 항변하지만, 다른 홍보하는 효과들 또한 좋아진다는 연구결과는 찾아보기 어렵다.

열대야를 참아내기 어려운, 기후변화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대다수의 소시민을 위해 숲 관련 공공정책은 새로운 시각에서 완전히 새롭게 전환되어야만 한다.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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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원전기술이라고 알려진 ‘한국형 원전’ APR-1400이 실제로는 독자적인 수출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 박재호 의원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회조사국(CRS) 에너지 전문가인 마크 홀트 박사는 2010년과 2013년 “미국의 설계에 기반을 둔 한국형 원전은 여전히 웨스팅하우스의 라이선스 제품이라 미국의 수출규제가 적용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만일 수출이 성사되어도 미국 측에 거액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한국형 원전을 독자수출하면 원천기술을 제공한 미국 측의 소송을 야기할 수도 있다. 원전이 30년간 300조~600조원의 수출을 보장하는 ‘대박 사업’이라는 원전론자들의 주장은 터무니없이 과장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아랍에미리트연합 원전 수출 이후 2012년까지 10기의 추가 원전 수출을 장담했다. 해마다 수십조원의 수출이 보장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 8년간 수출 실적은 ‘0’이었다. ‘탈원전 정책’을 가시화한 이제 와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 운운은 어불성설이다.

원전 산업은 한국 측의 입맛대로 수출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신규 건설되는 원전의 대다수는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중국·러시아 등의 물량이다. 굳이 남의 원전을 수입할 필요가 없는 나라들이다. 또 국제사회에서 원전 수출은 정치적인 거래 성격이 강하다. 가령 러시아와 천연가스 공급 문제가 걸려 있는 동구권의 경우 러시아의 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또 원전 수출을 하려면 수입국에 거액의 금융지원까지 해줘야 한다. 한국도 아랍에미리트연합 원전 수출 때 28년 상환조건의 12조원을 지원해준다는 비공개 계약을 맺은 바 있다. 유력한 수출대상국으로 꼽히는 영국은 21조원을 투자한 뒤 60년 운영으로 그 투자금을 회수해가는 지분인수 사업자를 원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수출하는 문제도 이스라엘 등 다른 중동국가들의 견제를 넘어서야 가능하다. ‘한국형 원전’이 파고들 원전시장이 매우 좁다는 얘기다.

반면 신재생에너지의 국경은 없다. 무엇보다 원천기술의 이전 같은 골치 아픈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전 세계 재생에너지에 투자된 돈은 2016년 한 해 277조원에 이른다. 원자력의 8배에 해당된다.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글로벌 기업이 106개나 된다. 이 대열에 한국 기업은 없다. 더 이상 원전론자들의 근거 없는 ‘수출 대박 타령’에 발목 잡힐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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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14년 가을, 라인강 원전 밀집지역에 있는 칼스루에대학(KIT)의 젊은 연구원 마틴 브란다우어는 대형 실험실의 육중한 대문을 열고 스위치를 올렸다. 그러자 원격장치가 대형 금속체의 껍질을 얇게 벗겨내기 시작한다. “원전 해체 시 표면에 집중되어 있는 방사능을 잘 벗기면 고준위폐기물을 소량화할 수 있지요.”

주임교수인 사샤 겐테스는 이 연구실에서 기업도 공동연구와 훈련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안전공학 엔지니어 출신으로, 과거 대만에 가서 고속철도가 지진에 견디는 안전장치를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이처럼 독일은 안전공학 기술자가 원전 해체에서도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3년 전 지진 이야기를, 지난 7월 생명·탈핵실크로드(생명로드) 대만 순례 때 실감했다. 대만은 1999년 진도 7.6의 큰 지진으로 수천명이 희생됐고, 작년에도 진도 6.4의 지진이 발생해 140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이런 지진 때문에 대만의 탈원전 결정은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다. 올해 5월에도 진도 5.0의 큰 지진이 있었던 남부지역을 걸으면서 겐테스 교수를 떠올렸다. 우리도 지난해 진도 5.8의 경주 지진 위력을 온 국민이 체험한 터이다.

지난달 라오스에서 만난 학생들 질문에 답한 기억이 난다. “핵무기는 사람이 통제할 수 있지만, 핵발전소는 통제할 수 없다”고. ‘지진이나 테러에 속수무책’이라고. 더 이상 짓지 말고, 해체하고 폐기하는 일은 이제 지상명령이다. 그리고 엄청난 블루오션이기도 하다. 세계적 회계법인 딜로이트는 재작년에 “현재 전 세계 588개 원전 중 영구정지된 것은 150기다. 이 중 19기만 해체가 완료되었고, 2020년대 183기, 2030년대 이후 216기 등 해체 수요가 크게 증가하는데, 해체에 소요되는 비용은 총 440조원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원전 해체 기술은 안전과 안심을 견인하는 사회적 부가가치가 큰 기술이다. 기술의 촘촘한 이행에 대한 관심은 클 수밖에 없다.

2013년 불교와 원불교가 공동주최한 ‘세계원전안전해체학회 준비세미나’에 왔던 KIT의 얀 브레머 박사는 “첫째, 완전 해체까지는 오래 걸린다. 당장 해체하는 경우와 20년 후 하는 경우 두 가지가 있는데, 둘 다 해체 후에도 핵폐기물의 보관이라는 근본 문제가 남는다. 둘째, 방사능 가득한 현장에서는 로봇공학기술이 중요하다. 셋째, 공정을 세분하고 각 단계마다 숙련 기술자의 처리작업이 진행되어야 하고 뒷받침하는 조직이 있어야 한다.”

이에 지난 정부가 큰돈 들여서 원전해체센터를 설립하고자 했다. 하지만 예비타당성을 따지다가 의사결정을 제때 못하는 바람에 예산 미집행 룰에 걸려서 작년에 무산되었다. 안전 문제는 그 가치를 제대로 셈할 수 없는 법인데, 숫자를 따지는 ‘타당성’을 관료적 면피의 근거로 삼다보니 함정에 빠진 것이다.

방향부터 잘못 잡았다. 해체는 경험이 중요한데 우리는 가르칠 사람이 없다. 원전 해체와 폐기를 제대로 해 본 나라는 미국, 독일에 불과하다. 제대로 하자면 기술자를 모셔와야 한다. 그리고 가르쳐야 한다. ‘사람’이 먼저다.

국내 원자력 관련 학과는 안전과 해체 부문이 미약하다. 9개 대학 모두 전공교수도 없고 교과과정도 빈약하다. 바꾸어야 한다. KIT는 본보기 교사다. 매년 배출되는 500여명의 원전공학도는 자산이다. 원전산업 종사자 3만5000명과 관련 업종 종사자까지. 탈원전은 이들 고용구조 전환까지 포함한다.

국가 원전 해체 기본계획도 수립해야 한다. 시나리오를 세워야 노후원전에 대한 안심도 확보할 수 있다. 계획은 전후방 경제효과나 안보정책과 직결된다. 세계시장에서 통하려면 장기 프로그램이 가동되어야 한다. 반도체와 정보기술(IT)처럼.

라오스 학생들에게 말했다. “시작은 우리가 하지만 마무리는 여러분 일이다. 100년 동안 해 나가야 할 일이니까.”

<이원영 수원대 교수·국토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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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참으로 역사적인 날이다. 지난 7월24일 출범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시민참여단의 최종 의견을 담은 대정부 권고안을 정부에 전달하고 3개월간의 활동을 공식적으로 마치는 날이기 때문이다. 지난 3개월간 진행된 공론화 과정은 에너지정책의 역사를 새로 쓴, 민주주의의 새로운 실험이었다. 이제껏 소수의 전문가와 기술관료들에게 맡겨져 있던 원전정책 결정 과정에 일반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창을 열었다.

오리엔테이션 95.6%, 합숙토론회 98.5%란 높은 참석률은 시민참여단의 높은 사명의식과 참여의지를 보여준다. 언론은 공론조사의 ‘후폭풍’을 우려하지만, 참여자들은 숙의 과정에 상당히 만족하면서 어떤 결론이 나든 치열한 학습과 토론의 결과인 만큼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시민으로서의 존재 가치와 의미를 다시금 느낀 것이리라. 참여와 숙의 과정으로 민주의식도 한층 자랐다. 이 공론화 과정은 시민참여단 선발과 숙의, 공론조사를 통해 원전 건설 중단 여부를 결정한 세계 최초 사례라 세계적 관심의 대상이다.

나는 이 역사적인 사건, 역사적인 과정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감사하다. 9월30일에 열렸던 미래세대 토론회에서 고등학생 106명을 대상으로 건설 중단 측 전문가로 강의하고 질문에 답했다. 신고리 5·6호기는 설계수명이 무려 60년이고 사용후핵연료를 10만년 이상 관리해야 하지만 공론화 과정에서는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는 물론, 현재를 살고 있는 만 19세 미만 청소년에게조차 의견을 개진할 기회가 닫혀 있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공론화위는 미래세대 토론회를 열어 숙의 과정을 진행하고 의견을 물은 후 시민참여단에 전하기로 했다. 정확한 사실을 알고 싶다는 열망으로 학생들의 눈빛은 반짝였고 누구보다 신중하고 치열했다.

미래세대 토론회 11개 조 가운데 5개 조가 중단, 또 5개 조가 기타의견, 나머지 1개 조만 재개로, 다수가 중단을 원했다. 기타의견에도 건설 중단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핵폐기물 처리 방법이 없고 한 번의 사고로도 치명적인 인명과 재산 피해가 우려된다고 했다. 이제까지 일방적으로 제공되어 온 원전 정보는 신뢰하기 어렵고, 원전 대신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더 현명하다는 의견도 상당히 많았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위험에 위험을 더할 뿐 아니라 입지지역 주민의 건강과 재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면서 차별을 심화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시민참여단에 보여준 5분짜리 영상에는 건설 중단, 재개, 기타의견이 하나씩 소개되었다. 미래세대 의견이 시민참여단 결정에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미래세대가 건설 중단을 더 원한다는 사실은 전달되지 않았다. 공론화위의 기계적 중립이 못내 안타까웠다.

이 칼럼을 쓰는 지금, 나는 시민참여단의 결정을 알지 못한다. 두렵고 겸허한 마음으로 시민참여단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는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의미 있는 첫걸음이었다. 어떤 쪽으로 결론이 나든 관계없이 말이다. 건설 중단 측은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우리의 선택이 가져올 변화”에 대해.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보자고, 생각의 틀을 바꾸자고, 한국을 넘어 세계적 흐름을 보자고. 중단 측 발표자와 토론자들은 원자핵공학, 경제학, 정책학 분야의 교수와 의사, 국내외 NGO 활동가, 국내외 민간연구소 연구원, 지역주민, 애널리스트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했다. 연령도 30대부터 60대에 이르렀고 여성도 여럿 있었다. 건설 재개 측이 의사 한 명 외에 대부분 원자력 학계와 업계에 소속된 원전 이해당사자들로 남자 일색이었던 것과 사뭇 달랐다. 건설 중단 측의 구성은 다양했지만 목소리는 한결같았다. 건설 중단 선택이 변화를 가져올 출발점이자 씨앗이 될 거라고. 내려진 결론과 상관없이, 공론화 그 자체가 이미 변화의 시작이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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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오늘 원전의 건설 여부를 가를 공론조사 결과를 담은 대정부 권고안을 발표한다. 정부는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안을 바탕으로 최종결정을 내릴 방침이다. 공론화 과정에서 종종 혼선과 잡음이 일기도 했지만 이번 권고안은 사회적인 갈등사안을 두고 전체 시민을 대표한 471명의 참여단이 숙의하고 토론한 뒤에 끌어낸 첫 번째 결과물이다. 어떤 경우든 시민참여단의 권고안은 존중되어야 한다.

이번 공론조사의 목적은 신고리 5·6호기의 공사 재개 여부를 가리는 것이다. 탈원전이냐, 원전 유지냐와 같이 한 나라의 원전 정책 일반을 판가름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정이 있는 구체적인 사안을 따지는 일이다. 신고리 5·6호기의 경우 공사진척률이 29%에 이르렀고, 비용도 1조6000억원이나 투입됐기 때문에 경제논리가 더 부각될 수 있는 사안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신고리 5·6호기의 운명과 탈원전 정책은 별개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따지고 보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로드맵은 ‘너무 느린’ 정책이다. 신고리 5·6호기 문제는 차치하고 이번 정부 임기 내에 신규 가동되는 원전이 3기나 된다. 신규 원전의 용량은 고리 1호기의 7배에 이를 정도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완성되는 시점은 2019년 신규 가동 예정인 신한울 2호기의 수명이 끝나는 2079년이다. 2022~2023년 예정대로 신고리 5·6호기가 가동된다면 ‘원전 0’ 시대는 지금부터 65년이나 뒤인 2082년의 일이 된다. 현 로드맵으로도 탈원전은 요원한 이야기이다. 신고리 5·6호기 공사가 중단되면 원전산업이 당장 몰락할 것처럼 과장하는 원전세력의 억지주장도 문제지만 정부도 그런 오해를 불식시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이미 원전은 채산성도, 안전도 담보할 수 없는 사양산업이 됐다. 최근 일본 오이(大飯) 원전 1, 2호기의 폐로가 결정됐는데, 그 이유가 채산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영국의 경우 신재생에너지의 단가가 건설 중인 신규 원전의 60% 수준으로 떨어졌고, 미국에서도 1년 사이 태양에너지 공급가격이 30%나 급감했다. 지난해 가동 중인 원전(디아블로)의 폐쇄를 결정한 미국 캘리포니아의 전력회사 피지앤이(PG&E)는 “원자력은 미래의 역동적인 캘리포니아 전력망과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미 구글, 애플, 페이스북, 나이키 등 글로벌 기업은 제품생산과 판매에 필요한 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더 이상 싸지도, 안전하지도 않은 구시대의 산물이 된 원전산업에 발목 잡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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