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순진 |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11월11일, 지난해 3월11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탈핵에너지교수모임이 창립한 지 꼭 한 해가 된 날이었다. 국내외 1052명의 교수들은 ‘탈핵선언문’을 통해 원자력 발전은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을 통제한다”는 모순된 논리에 기초해 있으며 “미래세대, 미래의 생명을 죽음과 파멸로 몰아가는 폭력행위”임을 분명히 했다. 


이어진 그린피스의 인터넷 브리핑을 통해 한국과 아랍에미리트, 브라질, 남아공을 제외한 대다수 원전 운영국들이 원전 비중을 축소하거나 신규 원전 건설을 연기 또는 취소하는 가운데 다수 유럽 국가들과 일본은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재생가능에너지를 늘려가면서 탈핵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위험하고 폭력적인 에너지 너머’, 그것은 미래가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이다.


원전 미검증품 설치 현황 (경향신문DB)


 하지만 우리 사회는 탈핵과 에너지 전환 행보에 여전히 소극적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에도 정부는 원전 확대정책 유지를 천명했다. 하지만 사용후 핵연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분명하지 않은데다 최근 들어 원전들의 잦은 고장과 납품 비리, 불시 정지 사태가 이어지고 최근 영광3호기에서는 국내 원전 사상 처음으로 노심과 연결된 제어봉 안내관이라는 핵심 시설에 균열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사태로 원전에 대한 시민들의 의구심과 불안감이 커지고 있기는 하나 문제의 심각성에 비추어 지금의 사회적 반응은 미지근한 편이다. 이런 반응에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 최근의 원전 관련 사태에 대한 언론 보도를 보면 이런 일들로 원전사고가 일어나 우리의 생존 자체가 위태로워질 뻔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기보다 가동 중단으로 전력대란이 일어날 것을 더 걱정하고 있다.


원전은 한 기당 200만개에서 250만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전은 너무나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이들 부품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서 한 군데서라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면 연쇄적으로 상호작용을 일으켜 어마어마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페로라는 사회학자는 사고 원인이 이런 복잡하고 꽉 짜인 체계 자체에 내재해 있다고 해서 이런 사고를 ‘체계사고’라고 부르기도 하고 복잡한 체계의 일상적인 작동 과정에서 이런 사고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정상사고’라 부르기도 한다. 즉, 원전사고는 원전을 가동하는 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페로는 이런 특성을 지닌 기술은 폐기만이 해답이라고 단언했다. 


그동안 심각한 원전사고가 일어난 미국, 구소련, 일본이 원전기술 선진국이란 사실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현재 세계 5대 원전대국 중 중대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나라는 이들 3개국을 제외한 프랑스와 한국뿐이다. 사고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잠재해 있는 원전에 대해 짝퉁 부품을 쓰고 점검까지 소홀히 하며 정보공개도 하지 않고 있으니, 한국이 그 다음 사고국이 되지나 않을까 불안할 따름이다.


원전은 우리의 생명을 담보로 한 위험한 에너지다. 미래세대도 문제지만 일상적인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어 현 세대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 어떤 삶을 원하는가? 안전을 담보로 위험을 감내하며 편리함만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약간의 불편을 감내하더라도 안전하고 윤리적인 삶을 살아갈 것인가? 


에너지 전환은 가능하다. 우리의 인식을 바꾸고 제도를 바꿔 나가면 소망은 현실이 된다. 12월19일, 우린 새로운 국가 지도자를 뽑는다. 국가 지도자가 원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원전을 넘어 어떤 에너지 미래를 열어가려 하는지, 꼭 살펴볼 일이다. 


우리의 귀한 한 표, 환경을 살리고 안전하며 평화로운 에너지를 지향하는 후보에게 던져야 하지 않을까? 나와 우리 아이들의 건강하고 안전한 미래가 내 한 표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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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형림 |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기후변화 캠페이너


 

지난 5일 지식경제부는 한국수력원자력이 원전 부품 납품업체로부터 제출받은 해외 검증기관의 10년치 검증서를 조사한 결과 총 60건의 검증서가 위조됐다고 밝혔다. 또한 위조된 부품 7682개 중 5233개가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영광 5, 6호기는 부품교체가 완료될 때까지 가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홍석우 지경부 장관은 “이번에 확인된 부품은 핵심 설비에 사용될 수 없는 부품”이라며 원전 안전 문제와는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람의 작은 실수와 부품의 오작동 등이 맞물려 대형 원전사고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원전 반경 30㎞ 내 거주 인구수가 402만명에 달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의 허술한 원전관리는 국민을 더욱더 불안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럼에도 지경부는 국민의 안전에 대한 우려보다는 갑작스러운 영광 5, 6호기의 가동 중단이 가져올 수 있는 전력수급 대란에 더 큰 우려를 표했다. ‘전력난’을 핑계로 원전의 중요성만을 강조하면서, 오히려 원전 확대정책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원전 반대 신문고 (경향신문DB)


현재 문제가 되는 두 원자로의 전력생산량은 총 200만㎾로 우리나라 전체 전력생산량의 3~4%에 이른다. 물론 예비전력량이 크게 부족한 한국의 경우, 갑작스러운 대형 발전소 2기의 중단은 정전대란(블랙아웃)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전대란은 정부의 전력공급 유연성의 부족과 시스템 관리의 미흡함에 더 많은 이유를 둔다. 지금까지 정부는 전력공급 효율성을 강화하고, 유동적인 예비 발전설비를 갖추는 대신, 전력공급 유연성이 떨어지는 원자력, 화력과 같은 대형 발전소 등의 확대에만 초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이와 같은 전력난 우려는 그동안 정부가 내세우던 “원자력발전은 안정적 전력공급원이다”는 주장과도 상충된다. 정부는 서둘러 원전을 재가동하는 대신, 일본의 선례를 따라 국민의식 교육, 대기업 에너지 사용의 관리 등을 통해 전력난을 극복하고, 장기적으로는 위험하고 비경제적이고 불안정한 원자력 중심의 에너지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한 전력공급의 유연성과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재생가능 에너지를 확대하고 고효율 에너지 제품 산업에 대한 지원도 늘려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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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원자력발전소 5·6호기가 어제부터 전면 가동 중단에 들어갔다. 원전부품 공급업체 8개사가 미국 품질검증기관 품질검증서를 위조해 공급한 부품이 영광 원전에 집중적으로 들어간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관련 부품을 진짜 부품으로 바꾸기 위해 연말까지 원전 가동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품질보증을 받지 않은 부품을 공급받아 원전을 가동했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경향신문DB)


한국수력원자력 감사실 조사 결과 이들 납품업체는 2003년부터 최근까지 9년 동안 총 237개 품목, 7682개 제품, 8억2000만원어치를 공급하면서 60건의 품질검증서를 가짜로 만들어 제출했다. 외부 제보가 없었더라면 원전은 계속 가짜 부품을 공급받아 가동할 뻔했다. 한수원은 이번에 문제가 된 제품이 퓨즈, 스위치와 같은 일반 범용제품이어서 원전 안전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해명했다. 올 들어 원전 고장을 일으킨 95개 부품 가운데는 이번에 문제가 된 부품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원전 불신은 이미 최고조에 달해 있다. 한수원은 납품업체가 가짜 품질검증서를 내도 육안으로 식별할 길이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원전 부품 관리가 너무나 허술하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태의 1차적인 책임은 건당 300만원씩인 품질검증서 신청 대금을 아끼려고 눈속임을 한 납품업체들에 있지만, 가짜 부품을 공급받아도 까맣게 몰랐던 한수원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이제 검찰로 공이 넘어갔다. 한수원 직원들이 품질검증서가 가짜임을 알고도 일부러 눈을 감았는지도 검찰이 추가로 밝혀내야 할 대목이다. 한수원을 관리감독해야 할 지경부, 원자력안전위원회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문제는 원전 가동 중단이 예고하고 있는 전력난이다. 영광 원전 2기가 제때 재가동을 못하면 우리 예비전력은 30만㎾로 떨어진다. 지난해 9월15일 전국적인 블랙아웃(대정전)이 일어날 당시와 비슷한 예비전력 수준이다. 더욱이 올겨울은 유난히 예년보다 춥고, 추위가 길다고 한다. 전력대란이 걱정스러운 상황에서도 과감하게 원전가동을 중단시킬 수밖에 없었던 정부의 고충도 이해된다. 하지만 문제가 된 부품을 서둘러 교체해야 한다. 현재 한수원은 본부장급 간부를 미국에 보내 교체할 부품을 사들이고 있다고 한다. 부품을 사서, 이것을 품질보증기관에서 보증받는 데만 1개월에서 2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최악의 사태만은 막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원전은 부품이 10만개가 넘는 만큼 언제든 고장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런 만큼 원전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원전 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을 덜기 위해 한수원과 지경부는 지금과 같은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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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20기 이상의 원자로를 가동하는 국가 가운데 원전용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연료봉 재활용 권한이 없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2014년 3월 만료되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협상에서 한국의 안정적인 핵연료 확보를 위해 농축 및 재활용 권한을 되찾는 문제가 양대 쟁점이 된 까닭이다. 양국이 2년째 머리를 맞대고 있는 개정협상에서는 한국이 농축·재활용 권한을 되찾되 핵 비확산 우려를 불식시키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는 보도다. 한국이 다국적 기업이 미국 내에 보유한 상업용 농축우라늄 시설의 투자지분을 확보함으로써 핵연료를 안정적으로 제공받는다는 것이다. 원자력협정 개정은 올해 말 등장할 한·미 양국의 새 정권이 내년 벽두부터 떠안아야 할 최대 현안인 만큼 큰 틀에서나마 합의를 찾아가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연료봉 재활용과 관련해서는 양국이 개정협상 초기에 이미 잠정적인 해법에 뜻을 모은 바 있다.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하지 않고, 원전용 핵연료만 얻을 수도 있는 파이로프로세싱(사용후 핵연료 건식처리) 기법을 향후 10년간 공동연구하면서 그 결과를 협정문에 반영키로 했다. 원자력협정 개정협상에 임하는 양국 대표들은 한국이 권한은 되찾되, 그 행사는 잠정적으로 유보하는 방식에 공감대를 모으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핵확산금지조약이 이미 허용하고 있는 ‘평화적 핵이용권’을 협정문에 명시하되, 그 완전한 권리행사는 유예할 필요가 있다.


원자력협정 개정협상은 주권과 현실이 충돌한다는 점에서 최근의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협상과 맥을 같이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미사일 능력과 핵 능력이 현실 국제정치에서 갖는 함의는 하늘과 땅 차이다. 우라늄 농축 및 연료봉 재활용 기술은 원전의 핵연료는 물론, 핵무기 제조에도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핵주권을 확보하되, 잠정적으로 영토 밖에 두는 것은 남북이 합의한 한반도비핵화선언의 이행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한국마저 핵무기 개발능력을 국내에 둔다면 평화로운 해법을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내 일각에서는 북한 핵실험을 빌미로 우라늄의 농축·사용·재활용 등 핵연료 주기를 완성해야 한다는 무책임한 주장을 하고 있다. 주권과 평화적 핵이용권에 기대 핵개발을 추진하면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대표적인 나라가 북한과 이란이다. 반면교사로 삼아도 부족할 상황에 이들 국가를 모델로 삼겠다는 발상이나 다름없다. 


이란 경찰이 폭탄테러로 숨진 나탄즈 우라늄 농축시설 부소장 무스타파 아마디 로샨의 자동차를 견인하고 있다. (경향신문DB)


우리는 ‘핵무기 없는 한반도’는 물론, 궁극적으로 ‘핵에너지 없는 한반도’ 역시 실현가능하다고 믿는다. 단계적인 원전 폐쇄와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로 2050년까지 전체 에너지 수요의 6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할 수 있다는 합리적 분석까지 나와 있다. 그때까지 원전에 쓰이는 핵연료의 안정적 공급이 필요할 뿐이다. 원자력협정 개정협상이 ‘선’을 넘지 않으면서 국익을 극대화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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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욱 | 일본 마쓰야마대 교수


 

올 들어 부쩍 늘어난 원자력추진파의 모임들이 국민 혈세와 전기요금으로 벌이는 일방적인 홍보활동을 보고 있자니 이들이 과연 ‘국민을 위한 과학’의 기본자세를 견지하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원자력추진파들은 국민을 과학에 무지몽매한 집단으로 보고 그저 계몽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절대적인 안전성을 보장하는 기술은 없다’. 인류의 오랜 경험에서 나온 이런 보편적 인식이 과학실험보다 실증성이 높을 수 있다는 점도 완전히 무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1953년 말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유엔에서 핵의 평화적 이용을 제창한 후, 금융자본을 앞세운 미국은 세계전략 속에서 동맹국의 젊은 과학자들을 초청해 대학과 연구소에서 원자력 교육을 실시했다. 전략의 주요 목표는 핵산업의 확대·육성뿐만 아니라 당시에 이뤄진 대기권 핵실험의 방사능 피해에 대한 반발을 완화시키려는 데도 있었다. 


얼굴에 원자력 로고와 원전 반대 구호를 적은 일본 여성 (경향신문DB)


처음 원자력을 접한 동맹국 과학자들은 핵무기의 엄청난 파괴력과 핵분열 에너지 밀도를 마치 절대적인 힘의 원천으로 오인했다. 그래서 원자력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미신에 빠지게 되었다.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이 미신은 원자력추진파들 안에서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원자력이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유일한 학문처럼 주장하는 관련학자 중에는 원자력이 응용과학으로서 순수과학의 발전에 의지하고 있다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망각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자신들이 좁은 실험실에서 행한 매우 단편적인 결과를 근거로 원자력의 모든 것에 통달한 전문가의 얼굴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원전은 100만여개의 부품을 사용하는 복잡한 시스템인 만큼, 전기·금속·기계 등 여러 분야의 기술자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일·독을 비롯한 전쟁 당사국에서는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 논쟁이 오랫동안 계속됐다. 과학이 인류의 행복과 발전을 위하기보다는 전쟁 수행을 위한 도구로써, 결과적으로는 원자폭탄 형태로 시민의 대량학살을 가져온 점에 대한 반성이 주요 계기였다. 세계대전 동안, 1942년 말 페르미가 개발한 원자로가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의 생산장치로 이용되는 등 과학의 군사적인 이용으로 잃어버렸던 ‘과학의 투명성’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었다.


학문의 근본적인 정신은 ‘자유’라고 한다. 학자는 오직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어떠한 이념이나 물질적인 유혹에도 타협하지 않는 연구자세가 불가결하다. 어떤 이해관계에 얽매여 학문의 자유를 잃는다면 자멸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런데 최근 막대한 연구비 확보 또는 사회적 지위의 획득 등을 이유로 학문의 자유를 버린 채, 기업논리에서 과학적 연구를 진행하는 학자가 부쩍 늘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이들은 원전의 안전성같이 사회적 대립이 심한 논쟁이 벌어지면 과학이라는 권위를 내세워 반대파를 과학의 문외한으로 몰아세우는 작태까지 보인다. 반대로, 원전사고로 방사능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단지 과학의 진화 과정의 시행착오로 돌리면서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학에는 문제가 없고, 현장기술자의 잘못만으로 돌린다.


얼마 전에 유명을 달리한, 수은 중독 미나마타병의 세계적 권위자인 하라다 마사쓰미 교수는 대학원생 시절부터 50년을 오직 피해자 구제에 바친 의학자로서 일본 과학자의 양심으로 불렸다. 그는 전문학자가 열악한 입장의 피해자 편에 서 있을 때야말로 ‘학문의 중립’이 가능하다는 지론을 펼쳤다. 지금이야말로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 및 학문의 중립성을 성찰하는 이성의 회복이 필요할 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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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화 논설위원



중국 후한시대를 담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의 등장인물 가운데 최고령은 105세에 조비에 의해 처형된 장천이라고 한다. 그 다음은 90대인 내민과 여대의 순이다. 그들은 노령에도 명을 다할 때까지 전장을 누빈 명장들이었다. 


어느 시대건 노장의 투혼은 아름답다. 미국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령 감독은 1956년 94세의 나이로 작고한 코니 맥이다. 50년 동안 지휘봉을 잡은 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를 떠날 때 그는 88세였다. 맥 감독은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승인 3731승을 이루었다. 두번째 고령인 잭 매키언은 지난해 만 81세에 플로리다 말린스 사령탑을 맡았다.  


명장 김응용 감독(71)이 8년 만에 현장으로 돌아왔다. 최고령 거물 감독의 귀환은 40대의 젊은 감독이 대세인 우리 야구계에 화제가 아닐 수 없다. 2004년 삼성 감독을 마지막으로 현장을 떠났던 김 감독은 삼성 라이온즈 구단 사장 역임 후 2년 만에 한화이글스 감독으로 귀환했다. 


프로야구 삼성 선동열 감독과 김응용 사장 (경향신문DB)


키 185㎝, 체중 95㎏에 300㎜의 신발을 신는 등 큰 체격으로 ‘코감독(코끼리 감독)’이란 애칭이 붙은 그는 한국시리즈에서 10번의 우승을 기록한 백전노장이다. 김 감독이 22번의 프로야구 시즌 동안 기록한 통산 2653경기 출장과 1463승은 역대 감독 최다 출장과 역대 감독 최다승이다. 1983~2000년 해태 타이거즈를 이끌며 한국시리즈에서 9차례 우승했고, 2001년 삼성 감독이 된 뒤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10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당시 해태 타이거즈 때문에 한국시리즈에서 번번이 패했던 삼성이 천적의 두목을 영입한 결단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김 감독의 특기는 무뚝뚝한 리더십이다. 경기장에서 침묵을 지키다가도 선수가 실수하면 아무리 스타 선수여도 거칠게 꾸짖고, 훈련중에 선수들의 연습이 부진하면 야구방망이나 발로 벽을 때리고 사라진 뒤 선수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전략으로 ‘우승 청부사’가 됐다. 김봉연·선동열·이종범 등 스타 선수들을 휘어잡은 냉정과 열정의 ‘코끼리’는 선수들의 마음을 날카롭게 읽어내는 ‘여우’이기도 했다. 


‘훈련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며 선수들에게 ‘자율 야구’를 외치던 노장. 얼마 전까지 “늙은 나를 누가 찾겠냐”며 뒷전에 있던 그가 나섰다. 만년 하위 구단 한화를 “최강으로 만들겠다”는 ‘김응용의 묘수’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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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발전소가 또다시 발칵 뒤집히는 일이 일어났다. 원전 안전을 담당하는 직원들이 마약을 한 혐의가 발각된 것이다. 부산지검 강력부는 어제 고리원전 재난안전팀 소속 직원 2명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다른 직원들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속된 두 사람은 고리원전 주변을 무대로 활동하는 폭력조직으로부터 ‘필로폰’을 입수해 사무실 등지에서 이를 상습적으로 투약해왔다고 한다.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히기 이전에 소름부터 돋는다. 고리원전은 이미 수명이 다한 고리1호기가 가동되고 있어 전 국민의 이목이 쏠려 있는 곳이다. 지난 2월의 정전사태와 이를 한 달 동안이나 은폐한 사건만으로 국민은 충분히 놀랄 만큼 놀랐다. 이로 인해 김종신 당시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도 했다.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지난 7월에는 대규모 납품비리 사건이 터져 직원들이 무더기로 구속됐다. 당시 한수원은 임직원 일동 명의로 신문 광고를 통해 환골탈태를 다짐했고, 그런 각오를 담아 지난 5일 김균섭 사장이 강도 높은 쇄신책으로 ‘국민 불신 해소 및 경영난국 타개를 위한 경영혁신 종합대책’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고리원전 인근 지역 주민들이 원전 폐쇄를 요구하고 있다. (경향신문DB)


안전 불감증과 근무기강 해이가 이렇게 바닥도 없이 꼬리를 물고 드러나는데 어떻게 원전이 안전하다고 주민을 설득할 수 있겠는가. 고리원전 반경 30㎞ 이내 주민의 74%가 노후원전인 고리1호기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들먹이는 것조차 이제는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원전이 터져봐야 죽기밖에 더 하겠느냐”고 했다던 주민의 말이 오히려 더 실감나게 들릴 지경이다.


이번 사건은 정부와 한수원이 원전 안전 문제를 책임질 자격과 능력이 있는지 다시 한번 의심케 했다. 우리가 수없이 지적했듯이 원전의 안전과 그에 대한 신뢰는 투명한 운영과 주민 참여, 정보 공개가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담보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백번의 다짐과 환골탈태 약속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이런 투명성과 신뢰성을 제도적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원자력안전위원회를 국회·시민단체 등이 추천한 다양한 전문가로 구성하도록 하는 것이라든가 지방자치단체가 원전 건설과 가동, 수명 연장 등의 의사결정 구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원자력안전법, 원자력안전위원회설치법, 원자력손해배상법, 방사성폐기물관리법 등 관련 법을 개정하는 작업에 국회가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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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 | 소비자시민모임 기획처장


 

올 여름 기록적인 폭염으로 전력수요가 급증하면서 전력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아울러 정부는 ‘국민발전소’라는 신개념 에너지절약 캠페인을 통해 국민들에게 절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민발전소란 국민이 전기절약을 하면 발전소 하나를 짓는 것과 맞먹는 효과는 갖는다는 개념의 전기절약 캠페인이다. 지식경제부는 6월부터 매달 한 주씩 국민발전소 주간을 진행하고 있다.


플러글 뽑아 전기를 아끼자 (경향신문DB)


금년 여름의 전력수급 위기상황은 지나갔지만, 그렇다고 전력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발전설비의 예기치 못한 고장이나 이상기후 등으로 계절에 무관하게 전기 부족사태가 발생할 소지도 있다. 이런 것을 감안할 때 전기에너지 과소비에 대한 주의가 어느때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의 전기 절약 실천이 부족하다는 것은 에너지관리공단에서 실시한 조사에서도 알 수 있다. 조사 결과, 국민 10명 중 9명은 우리나라 전력부족 문제가 ‘심각하다’고 응답했고, 응답자의 97.4%가 전기절약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반면, 전기절약을 실천하고 있지 않다는 응답이 65.4%에 달했다. 국민들은 전기절약의 필요성은 인식하지만, 실행으로 옮기는 부분은 미흡하다는 것이다.


공급위주의 에너지정책은 에너지 사용자인 소비자를 소외시켰다. 전기는 당연히 정부가 공급해주는 것으로만 생각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소비자들이 전력수급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행동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소비자의 전기절약은 가정에서 사용하는 기기의 효율, 사용방법, 생활습관이나 에너지절약 의식 등에 따라 그 성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소비자의 인식과 행동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에너지 절약은 특정한 날에만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 생활에서 실천해야 한다. 


생활 속에서 전기를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리고 전기를 절약하려면 일상생활의 편안함을 조금씩 포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귀찮다고 컴퓨터의 플러그를 뽑지 않는 것, 가격이 비싸다고 해서 에너지소비효율등급 1등급 가전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것은 전기를 비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에너지효율이 낮은 오래된 가전제품을 고효율 제품으로 교체하는 것만으로도 전기를 절약하는 데 큰 효과가 있다. 전기에너지 사용에 있어 제5의 에너지라고 불리는 에너지절약이 절실한 때이다. 대한민국 곳곳에 국민발전소가 세워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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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권 | ‘야생초 편지’ 저자


 

참으로 답답하고 우울하다. 지난달 이곳 칼럼 ‘녹색세상’에서 원전민간감시기구가 ‘무늬만 민간기구’라며 위원장만이라도 민간인으로 바꾸자는 글을 썼다. 그 뒤로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다가 어제 지역의 탈핵운동가들과 원전민간감시기구의 운영위원들이 조촐한 간담회를 가졌다. 영광지역에 감시기구가 뜬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어색하고 긴장된 초반이 지나자 슬슬 입이 풀린 운영위원들이 자기 변호인지 아니면 자탄인지 모를 고백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내가 10년 넘게 감시위원으로 있지만 어떤 때는 정부의 홍보위원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도대체 우리가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어요. 모든 정보를 저쪽에서 틀어쥐고 사고가 난 후에야 통보해주는 식이니. 그것도 뉴스에 공개되는 정보에 한해서 알려줍니다. 그러니 사고가 나더라도 지역주민에게 먼저 통보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진 겁니다. 초창기엔 감시위원들조차 사고현장에 접근도 못했어요. 원전 관련 법규를 고치지 않는 한 이 상황은 개선되기 어렵다고 봅니다.”


 사실 그동안에 문제가 되었던 원전사고들은 거의가 뉴스를 통하거나 아니면 원전 내부에서 일하는 사람들과의 사적 접촉을 통해 밖으로 알려진 것이다. 이렇게 원천적으로 감시기능이 마비되어 있는 원전감시기구를 왜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10여년 전 치열한 반핵투쟁의 성과물이자 타협물로 얻어낸 민간감시기구건만 당시의 반핵진영에서 감시기구의 내용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은 탓이 크다. 물론 전혀 관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일부 활동가들이 내부에 들어가 나름 치열하게 싸웠으나 자금과 행정력을 쥐고 있는 정부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정부가 원하는 대로 고착되고 말았다. 


(경향신문DB)


지금도 아쉬운 것은 그때에 왜 반핵진영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는가이다. 영광에 민간감시기구가 만들어지고 나서 원전이 있는 다른 4곳의 지역에도 영광을 모델로 하여 감시기구가 속속 들어서고 이들 사이에 협의체도 만들어졌다. 이렇듯 민간감시기구가 만들어진 과정이나 운영방식을 보면 전형적인 정부 기구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원래 민간 차원에서 시작되었으나 그것의 대중적 영향력을 고려하여 정부에 의해 제도화된 기구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국가인권위원회와 자활센터 등이 그렇다. 그러나 원전민간감시기구의 경우는 성격이 아주 고약하다. 군사시설 이상으로 엄격히 보안화되어 있는 원전시설에 민간인이 들어가서 마음대로 감시한다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불가능한데도 이를 투쟁의 성과물로 제시하고 받아들인 것이 잘못이었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지나간 일을 탓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제한된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주어진 조건과 역량 안에서 최대한 노력하여 주민의 입장에서 원전사고에 대처할 수 있는 매뉴얼과 방법을 개발해 끊임없이 정부를 자극하고 압박해야 한다.


간담회를 마치고 행여 탈핵활동가나 주민들이 감시위원회를 정부의 들러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백안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분들은 어쩔 수 없는 틀에 갇혀 있을 뿐이지 탈핵과 핵 안전성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향후 잦은 만남과 교류를 통해 주민 입장에서 감시기구의 위상을 높이고 그 역할을 규정하기 위해 힘을 모으자고 입을 모았다.


대체로 개성이 강한 활동가들은 이러한 상황에 처하면 ‘중이 절을 떠나듯’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결국 주민들을 위한 기구는 온전히 정부 몫이 되고, 주민과 정부 사이에 제도적인 소통구조가 없어지고 만다. 독립성이 요구되지만 태생적 한계로 인해 어정쩡한 중간지대에 있는 정부 기구들을 민간 차원에서 어떻게 접근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원전민간감시기구는 하나의 시금석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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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떡을 잘 먹는 떡보도 있고, 술을 잘 마시는 술꾼도 있고, 밥을 잘 먹는 먹보도 있다.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교사나 박사도 있지만 법을 잘 다루는 판검사나 변호사도 있다. 그런데 우리땅걷기모임의 도반 중에 제일 이색적인 별칭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사람이 있다. 


여자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명예퇴직을 하신 광주의 서화자 선생님이다. 이분은 자신을 교사도 박사도 아닌 ‘밥사’라 칭하며 만날 때마다 밥을 사 주신다. 연금을 너무 많이 받아 쓸 데가 없다고 말하지만, 어디 연금이 많아서겠는가. “마음으로 통하는 으뜸가는 길은 밥통이다”라는 속담처럼 그분은 밥으로 보시를 하며 사람을 맞는다. 


한 포장마차에서 친구들이 새해 덕담을 하며 술을 마시고 있다 (출처: 경향DB)


<해동잡록> 제4권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세 유생이 모여 책을 읽는데, 어떤 사람이 쌀을 보내왔다. 한 사람은 술을 좋아하고, 한 사람은 밥을 좋아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떡을 좋아했다. 세 사람이 글을 지어 승부를 가리기로 했다. 


떡을 좋아하는 사람은 “사온 술은 먹지 않고 밥은 때 아니면 먹지 않는다”고 하고, 밥을 좋아하는 사람은 “술은 위의(威儀)를 손상시키며 떡은 배를 채울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말했다. “어린애가 떡 달라 울고, 굶주린 사람이 밥을 찾는다. 옛날 요 임금은 천 사발의 술을 마셨고, 순 임금은 백 잔의 술을 마셨으며, 우 임금은 그 술을 마시고 달다 했고, 고종은 단술을 만들도록 명령했으며, 강숙(주공의 동생)은 덕이 커서 취하지 않았다. 공자는 유주무량(有酒無量)이고, 진나라 평공은 술잔을 날랐으며, 위나라 문제(조비)는 벌주를 마셨으며, 백륜(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유영의 자)은 주덕송을 지었으며, 낙천(백거이)은 술의 공을 찬양하고, 초화는 주보를 지었으며, 서막은 성(성은 청주, 현은 탁주)을 말했다. 뿐만 아니라 하늘에는 주성이 있고, 땅에는 주천(酒泉)이 있으며, 고을에 주향이 있고, 신선에 주선(酒仙)이 있으니 예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모두 술을 찬양했지, 떡과 밥에 관한 말은 한마디도 없다.” 


그러고는 술을 사 좋아하니, 떡을 좋아하는 사람은 냄새만 맡고 취했으며, 밥을 좋아하는 사람은 잔을 잡더니 쓰러지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가득 찬 잔을 당겨 술기운이 오르도록 마시며 몹시 즐거워했다.


요즘 세태는 어떤가. 여기저기 술집이 즐비하지만, 술을 사는 ‘술사(酒士)’는 드물고, 땅을 보는 ‘술사(術士)’만 넘쳐난다. 서화자 선생님 같은 ‘밥사’가 더욱 그리운 것은 세상이 너무도 각박하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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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 변호사


2009년 8월 일본 중의원선거에서 자민당이 여당 자리를 잃고 민주당이 집권을 했다. 자민당이 제2당으로 밀려난 것은 1955년 이후 처음이었다. 당시에 민주당은 ‘콘크리트에서 사람으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큰 호응을 얻었다. ‘콘크리트’는 일본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토건사업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세금도 낭비하고 환경도 파괴하는 토건사업의 고리를 끊겠다는 민주당의 공약은 자민당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만들었다. 


일본형 토건사업의 대표적인 예는 바로 댐이었다. 댐이 좋은 시설이라고 알고 있는 시민들이 많지만, 사실 댐건설은 폐해가 더 큰 토건사업이다. 많은 땅이 수몰될 뿐만 아니라, 주변지역에 안개가 발생하는 등 기상이 변화해서 농업에 피해를 입히고 생태계를 교란한다. 사업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마련이어서 많은 세금이 낭비된다. 한마디로 건설업자에게만 좋은 일을 시켜주는 사업이다.


 그래서 일본 민주당 정권은 집권 초기에 건설 중이던 댐을 백지화하고 낡은 댐을 해체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물론 중간에 기득권층의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실제로 댐건설을 철회하고 댐을 해체한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최소한 일본에서 새로운 댐을 건설하겠다는 것은 사회적 동의를 얻기 어렵게 되었다.


경북 영덕군 달산면 주민들 달산댐 건설 반대집회 (출처: 경향DB)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댐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현 정부는 4대강에 거대한 ‘보’들을 건설해서 녹조로 강을 뒤덮더니, 그것으로 모자라 영양댐, 영주댐, 지리산댐 같은 대규모 댐들을 곳곳에서 추진하고 있다. 경북 영양군 수비면 일대에 추진 중인 영양댐은 처음에는 구미산업단지에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필요하다며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중간에 경산산업단지에 용수를 공급하는 것으로 목적이 바뀌었다. 목적도 불분명한 댐인 것이다. 수요가 분명해서 댐을 건설한다기보다는 댐을 건설해야 하니까 수요를 끼워 맞춘다는 의혹을 가지게 하는 대목이다. 더구나 예비타당성조사를 해 보니 댐건설은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도 영양댐은 계속 추진되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내년 예산에 본타당성조사 용역예산 24억원을 집어넣으려 하고 있다.


10여년 전에 폐기됐던 지리산댐 건설계획도 슬그머니 부활했다. 지리산 계곡에 높이 140m가 넘는 댐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리산댐은 홍수조절용 댐이라는 이유로 예비타당성조사 같은 최소한의 절차도 생략하고 있다. 사업비 500억원 이상인 경우에는 예비타당성조사를 받아야 하지만, 재해예방 목적인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는 허술한 법조항을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내성천은 강변 전체가 모래톱으로 되어 있어 생태적 가치가 높은 낙동강 지류이다. 그런데 내성천 일대를 수몰시키는 영주댐 공사가 진행 중이다. 서울 여의도보다 넓은 땅이 물에 잠길 뿐만 아니라, 하류 마을에서는 아름다운 모래톱이 사라지는 등 추가적인 환경피해도 발생하고 있다. 


댐건설은 대규모 공사인 만큼 이권도 크다. 영양댐의 사업비는 3139억원, 지리산댐의 사업비는 9897억원, 영주댐의 사업비는 8797억원에 달한다. 물론 공사는 대형건설업체들이 수주한다. 입찰담합 의혹도 제기된다. 영주댐 공사와 관련해서는 삼성물산과 대우건설 간에 담합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문제가 많고 타당성도 의심스러운 댐건설은 중단돼야 한다. 이미 미국이나 프랑스는 댐이 인간에게 주는 이익보다 생태계를 교란함으로써 발생시키는 문제가 더 크다고 판단해서 낡은 댐들을 해체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댐을 짓겠다고 난리다. 


댐을 지어서 이익을 보는 것은 건설업체들뿐이다. 그리고 토건사업을 벌여야만 자기 조직을 유지·강화할 수 있는 건설관료들과 수자원공사뿐이다. 반면에 피해를 보는 것은 주변 농민들과 미래세대에 넘겨줘야 할 아름다운 자연이다. 소중하게 쓰여야 할 공적인 재원이 낭비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국민 모두가 피해자일 수 있다. 이제 돈은 콘크리트에 쏟아붓지 말아야 하고, 강은 흐르게 놔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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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렬 | 방송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1차 세계대전 후 독일은 베르사유조약에 의해 영토를 일부 빼앗긴 뒤 다시 폴란드와 영토분쟁을 겪었다. 폴란드는 동프로이센에 속한 슐레지엔 중에서 현재의 카토비체 인근 땅이 오래전에 자기네가 지배했고 자국민들도 살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소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곳 폴란드인들이 여러 차례 폭동도 일으켰다. 이 분쟁은 1921년 주민투표를 통해 해소됐다. 투표권을 가진 주민 98%가 참가한 투표에서 60%는 독일, 40%는 폴란드에 표를 던졌다. 이에 따라 그 땅은 3등분되어 3분의 2는 독일 소속, 3분의 1은 폴란드 소속으로 결정됐다. 1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서는 이런 식의 투표가 몇 번 더 있었다.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던 자르 지역은 1차 세계대전 후 15년간 국제연맹의 신탁통치를 받다가 주민투표를 통해 독일로 편입됐다. 2차 세계대전 후에는 1956년까지 프랑스의 보호령 상태로 있다가 주민투표 결과 다시 독일연방의 주로 들어갔다.


 슐레지엔은 2차 세계대전 후 폴란드가 점령했고, 1000만명이 넘는 그곳 독일인들은 추방당해 서쪽으로 넘어왔다. 폴란드는 그곳을 자국 영토로 선포했고, 모든 지역의 이름도 자기식으로 바꾸고 자국민들을 이주시켰다. 물론 독일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1960년대까지도 독일 지도에 지금 폴란드 땅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이 지역이 독일 영토로 나왔다. 이 넓은 땅은 1990년 동독과 서독 의회가 통일과정에서 “독일과 폴란드의 국경은 현재의 국경이 최종적인 것이다. 독일은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영토 주장을 하지 않는다”고 결의함으로써 완전한 폴란드 영토로 인정받았다.


중부 유럽에서는 자칫 큰 싸움으로 번질 수 있었던 영토분쟁이 주민투표와 독일의 양보로 평화롭게 해결되었는데,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간 분쟁은 출구가 없어 보인다. 원래 무인도였으니 투표에 참여할 주민도 없고, 일본 의회에서는 한국의 독도 불법점거를 중단하라는 결의나 하는 형편이다.



(경향신문DB)



독도에 주민은 없었지만, 거기에 생명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00년대 초까지도 수만마리의 강치가 살고 있었다고 하니 생명활동이 매우 활발했던 곳이다. 우리가 독도 같은 무인도가 누구의 것이 돼야 하는지 결정할 때는 이 점이 중요한 고려사항이 돼야 한다. 독도 강치는 오래전부터 그곳에 터잡고 번성하며 살아왔다. 이들은 지금 거의 사라졌는데, 이유는 100년 전쯤 일본 어부들이 모두 죽여 없앴기 때문이다. 그후 일본이 섬을 점령했고, 일본의 패망 후에는 한국이 지배하고 있다. 강치의 시각에서 보면 자기들 땅을 일본과 한국이 빼앗아가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독도의 임자가 누구인지는 분명해진다. 바로 100년쯤 전까지 그곳에서 평화롭게 살던 강치와 같은 생명체들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활동에 의해 자연이 훼손되고 기후변화로 지구 생태계 전체가 흔들리게 됐다고 걱정한다. 인간중심주의의 결과라는 반성의 목소리도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국민의 70%가 원자력을 반대하고, 그동안 원전 건설을 찬성했던 것을 후회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인간이 독도에서 원래 주인들에게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인간만이 중심이고, 나머지는 모두 인간이 마음대로 부수거나 죽여도 좋은 하찮은 것이 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도를 폭파해 없애버리려 했다는 보도를 접했을 때, 작은 무인도를 놓고 계속 싸우는 것보다 차라리 폭파하는 게 낫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이 또한 독도의 원주인을 완전히 무시하는 인간중심적인 아주 오만한 발상이다. 독도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이러한 인간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만 가능하다. 인간이 씨를 말려버린 강치와 그 친구들에게 사죄하고, 한국과 일본은 독도를 그대로 내버려둠으로써 세월이 흐른 후 그들에게 저절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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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원자력협력협정 협상이 지지부진하다. 2014년 3월 협정 만료를 앞두고 양국 정부 협상대표들 간 치열하게 밀고 당기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양국 실무협의를 내달 미국에서 열기로 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2010년 3월부터 시작된 협상은 이미 물 건너갔다는 다소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토록 협상을 더디게 하고 있는 것일까.


첫째,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문제가 가로놓여 있다. 원자로 가동 후 타고 남는 사용후 핵연료가 매년 약 700t에 달한다. 2024년 이후 추정되는 미래 시점에 이를 저장할 장소가 마땅치 않을 경우를 대비해 우리로서는 이를 계속해서 재활용(재처리)해야 한다. 그럴 경우 사용후 핵연료에서 핵무기 제조 원료로 사용할 수 있는 플루토늄이 분리되어 ‘핵 없는 세상’을 주창해 온 오바마 미 행정부가 이를 수용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에 반해, 한국은 파이로프로세싱 공법을 통하면 플루토늄이 분리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미국 핵 비확산론자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현재처럼 수조에 담가 보관하기보다는 금속용기인 드라이 캐스크에 넣어 지하 500m 깊은 땅속에 보관하면 훨씬 안전하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비용 대비 효과 분석 연구를 더 해봐야 알겠지만 드라이 캐스크 방식에 찬성하는 국내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어떤 방식을 택하든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하기 위한 처분장 부지 확보는 불가피하다. 



둘째, 우라늄 농축 문제이다. 한국은 현재 가동 중인 원자로의 안정적인 원료 공급을 위해 저농축 우라늄을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미국 측에 요구해 놓은 상태이다. 하지만 미국은 핵 비확산 정책의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저농축에서 고농축 기술로 전환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 우라늄 정광을 매년 약 4000t 구매하며, 3~5년 단위로 미국·프랑스·러시아·영국에 이의 농축을 위탁하고 있다. 위탁 농축에만 매년 6000억원이 소요된다. 


현재 가동 중인 22기 원자로를 포함해 미래 가동 예정인 원자로까지 감안한다면 이제는 자체 농축의 경제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원전 수입국들이 농축 우라늄의 안정적 공급을 요구할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농축의 경제성에 대해서는 학계와 산업계의 의견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정부 부처 내에서도 미묘한 입장차가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 협상대표를 맡고 있는 외교통상부의 조정 및 컨트롤 타워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이른바 핵 오리엔탈리즘(nuclear orientalism)을 슬기롭게 극복해주기를 기대한다. 이를테면 한국의 농축과 재처리가 미국이 주도하는 비확산체제의 태내(胎內)에서 성장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 비확산체제하에서 ‘의미심장한 타자(the significant other)’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미국 중심의 비확산체제가 야기하는 문제점들에 대해 불만이 있어도 그것들을 ‘다소 불편한 점’이나 ‘불가피한 부작용 정도’로, 아니면 ‘극복할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동시에 비확산과 수출통제, 핵폐기물 관리 등과 관련이 있는 국내 법령들을 적극 재정비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현명한 협상 전략이 될 수 있다.


더불어 우리 내부의 사분오열된 의견을 하나로 수렴하고 동시에 설익은 민족주의를 교묘하게 자극해 핵무장 주장과 같은 시대착오적 발언은 삼가야 한다. 워싱턴에 포진한 비확산주의자들은 여전히 한국을 미국 주도 세계 핵 비확산의 치어리더가 아닌, 양의 탈을 쓴 늑대라고 보고 있다. 이런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더욱 그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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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재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목초지와 가든. 지난 여름 영국에서 나를 사로잡은 것이다. 마침 올림픽 기간과 겹쳐서 지인들에게 영국에 다녀온다는 말을 꺼내기가 거북했다. 영국의 ‘영’자만 나와도 올림픽과 연관시키는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스포츠광이라고 해도, 런던까지 날아가 응원할 정도는 아니었다. 초청장을 받았다고 해도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다. 아들녀석이 종교 관련단체가 주관하는 행사에 참가하는데, 미성년자는 보호자가 동행해야 한대서 마지못해 따라나선 것이었다.


말이 보호자지 나는 영락없는 짐꾼이었다. 게다가 짐도 많았다. 빚 중에 만만한 것이 없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고약한 축에 드는 것이 ‘글빚’이다. 갚지 않고서는 배겨내기가 힘들다. 부자지간의 첫 외국여행이라는 미명하에, 밀린 글빚을 탕감하기로 했다. 노트북에다 책과 자료, 교정지가 가방 하나를 가득 채웠다. 올림픽이 안중에 있을 리 만무했다.


첫 도착지는 웨일스 래널리. 한밤중에 런던에서 서쪽으로 네 시간 이상 달렸다. 도착하자마자 숙소로 향했다. 경비를 최소화한 행사여서 일반 참가자는 관련 기관에서 합숙을 하고, 우리 부자만 민박을 했다. 북아프리카에서 이주해온 흑인 자매의 작은 집. 오전에 아들을 행사장에 데려다주고 나는 근처 카페에 들어가 노트북을 켰다. 그러기를 일주일. 나는 웨일스에 있었지만 애써 웨일스를 외면했다.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보았다. 우리로 치면 광주에서 서울까지 가는 거리와 맞먹었는데, 고속도로 양편이 온통 목초지였다. 산은커녕 높은 언덕조차 보이지 않았다. 망망대해 같은 준평원이었다. 영국은 농업국가였다. 런던에서는 외곽 주택가에서 사흘을 묵었다. 그때 ‘영국의 뒤뜰’을 처음 보았다. 우리의 텃밭이 영국에서는 뒤뜰이었다. 런던에서 다시 웨일스의 소도시 브리젠드로 향했다. 거기서도 전형적인 영국 도시주택에서 민박을 했는데, 역시 작은 뒤뜰이 있었다. 영국은 도시농업 국가였다.


영국은 시민농원의 발상지다. 엔클로저(enclosure)와 함께 시작된 강제적 산업화, 도시화는 그 여파를 잠재우기 위해 도시노동자들에게 ‘얼롯먼트(allotment) 가든’을 제공했다. 16세기와 18세기에 각각 한 번씩 영국의 도시는 시민들에게 소규모 경작지를 할당했다. 영국이 도시농업의 진가를 확인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와중이었다. 독일 잠수함이 식량수송선을 공격하자 대기근 사태에 직면한 영국은 공원은 물론 학교 운동장까지 경작지로 전환시켰다. 전 국민이 농사를 배웠다. 현재 영국의 얼롯먼트 가든은 25만개에 이르고, 식량자급률은 125%에 달한다. 영국은 농업국가였다.


영국 남동부 빌러리케이 인근 농장에서 열린 ‘증기기관 박람회’ (출처: 경향DB)


우리는 정반대였다. 영국과 비슷한 시기, 해방과 전쟁을 겪은 한국은 국가 주도의 근대화 시기로 진입하면서 농업, 농민, 농촌을 버리기 시작했다. ‘단군 이래 최대의 풍요’는 농업을 적극적으로 폐기한 결과다. 또 대선 정국이 돌아왔다.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후보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선진국 진입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이 모두 농업국가라는 엄연한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영국뿐만이 아니다. 선진국은 농업국가다. 프랑스의 식량자급률은 무려 329%에 이르고, 독일도 147%다. 미국과 캐나다, 호주도 100%를 훌쩍 뛰어넘는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25%. 그것도 쌀을 제외하면 4%대다. OECD 31개국 중 28위다. 기상이변으로 세계 곡물가가 연일 급등하고 있다. 오일피크 이후 원유가격이 급상승하면 현재와 같은 방식의 ‘산업농’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식량 무기화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도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우리의 정치인들께서는 농업의 ‘농’자도 꺼내지 않는다. 식량에 관한 정책이 없는 미래비전은 허구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아들이 물었다. “아빠는 보수예요, 진보예요?” “난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 난 뿌리를 생각하는 녹색이다.” “그럼 이번에 누굴 찍을 거예요?” “농업, 농민, 농촌을 살리겠다는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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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화 |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명예교수


필자의 전공이 생활주변 식물을 조사하고 종자를 수집하는 것이어서 30년간 약 4000일의 현장조사에서 자연환경 오염이 심화되고 있음을 생생하게 체험했다. 이번 피서철에도 어김없이 쓰레기를 계곡과 강, 산속과 도로변의 덩굴식물 속으로 버리는 비양심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이 버린 생활폐기물과 농어촌의 버려진 폐자재 및 생활하수와 공장폐수, 축산폐수 등으로 전 국토의 도랑, 개천, 지천, 강, 바다 등이 부영양화와 중금속으로 오염되고 있고, 토양은 썩어간다. 거의 모든 마을 앞에 있는 도랑의 바닥을 파보면 대부분이 썩어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생활방식과 국토관리방식으로는 국토 오염과 그 후유증이 해가 갈수록 늘어날 게 뻔하다. 4대강 사업 초기부터 자연환경의 보존과 물 관리는 상류부터 정화·정비사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 줄기차게 나왔지만, 지금부터라도 마을 앞 도랑의 정화사업을 서둘러 시작해야 한다.


 

강원도 강릉 경포해변에 버려진 쓰레기 (출처: 경향DB)

기상이변이 잦아지면서 농업환경이 변화해 식량생산의 지속성이 위협받고 있고, 세계적으로는 애그플레이션의 도래가 우려된다. 국내외에서 녹색성장이 지구를 구하는 방법이라며 화석연료의 절약과 대체에너지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으나 나무와 풀, 작물의 광합성 증가로 탄산가스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하는 녹색환경을 조성해 녹색생활에 역점을 둬야 한다. 


우리나라는 기후변화 영향으로 여름을 전후한 광합성 기간의 증가와 겨울을 전후한 저온성 기간의 감소로 식물의 생육환경이 시나브로 변하여 식물다양성이 위협받고 있다. 자연환경에 관심이 있는 국민이라면 휴가지를 오가면서 도로변, 강변, 자전거길, 농촌 주변 등 온 국토가 덩굴식물로 덮여 있는 경관을 보았을 것이다. 3년 전 고려대에서 ‘덩굴식물의 재앙’이라는 토론회를 개최했으나 관계당국도 환경전문가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올해 말 4대강 정비사업이 완공되고 지속적으로 강변의 식생관리를 하지 않으면 10년 후에는 덩굴식물로 덮여 생물다양성이 감소할 게 분명하다. 


필자가 28년간 특성과 용도를 조사한 식물이 3626종이다. 그중 6%인 218종이 다른 식물의 발생과 생육을 방해하며 자기 생활영역을 넓혀 가는 덩굴식물이다. 특히 가시박, 칡, 환삼덩굴, 나팔꽃류 등을 비롯한 덩굴성식물은 광선을 받기 위해 다른 식물이나 물체에 붙거나 감아 오르는 성질이 있고 넓은 면적을 덮어 다른 식물의 발생과 생육을 억압해 종다양성을 감소시킨다. 가장 문제가 되는 외래식물인 가시박의 종자는 강을 따라 상류에서 하류로 분포가 확산되고 종자가 휴면성이 있어서 땅에 떨어진 후 오랫동안 죽지 않으며, 다시 싹을 틔우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된다. 


가시박은 하천변과 강변뿐만 아니라 철로변, 도로변, 주택가의 공한지 등에도 많이 자라면서 분포가 확산되고 있으며, 다른 식생을 파괴하고, 가시로 인해 인체에 피해를 주는 ‘식물계의 공룡’이 되고 있기 때문에 분포확산을 방치한다면 국가적인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로움보다 해로움이 많은 식물’을 잡초라고 부르며 방제하고 있다. 논과 밭에서 자라 해로움을 주는 잡초는 농민들이 방제하지만, 가시박이나 환삼덩굴 같이 생활 주변의 자연환경에서 발생해 식물종다양성을 감소시키고 인체에도 해를 끼치는 식물은 국가 차원에서 방제해야 한다.


여야 대선 후보들의 선거공약에는 보이지 않지만, 자연환경의 정화와 보존사업을 위해 국토를 청정하게 관리해야 한다. 특히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시박은 올해라도 종자가 성숙하기 전에 전 국토에서 제거해 생물다양성의 감소를 막아야 한다. 경제적으로 풍요하고 스포츠가 강한 나라가 선진국이 아니라 국토가 깨끗하게 유지되고 식량자급률이 높은 나라가 선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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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훈 | 건축가


 



붐비던 공원에 비가 오면 눌려 지내던 벤치도 허리를 펴고 밟히던 잔디도 숨을 고른다. 사람이 드무니 쓰레기통도 쉰다. 재활용을 위해 종류별로 마련한 비닐봉투에 깡통 대신 빗물이 고여 있다. 장마 때는 모르다가 가뭄이 들면 세상에 중한 게 빗물이다. 세상이 타들어갈 때는 돈 주고도 못 산다. 목 탈 때 오는 비를 오죽 달콤하면 단비라 하겠는가. 하지만 대지를 적신 단물은 곧바로 하천으로 흘러가니 아깝기 그지없다. 


가뭄이 들면 농촌만이 아니라 도시도 탄다. 가로수를 살리려 물주머니를 매달고 거리청소를 하느라 비싼 수돗물을 뿌려댄다. 그럴 때 공짜로 얻는 빗물을 모았다가 사용한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빗물저장탱크는 설치 공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아 가정집의 호응이 적지만 공공시설·대형 상업건물·대규모 주거단지·공원·광장 등에는 적극 설치해야 한다. 


자원 재활용의 자세는 한 번 쓸 것 여러 번 쓰고 무엇보다 쓸 수 있는 것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분리 배출과 수거를 아무리 잘해도 아끼는 것만 못하다. 뭐든 적게 버려 쓰레기통을 배고프게 하는 것이 알뜰한 정신이다. 가정과 나라 살림 다 마찬가지, 장마 질 때 삽질하지 말고 닥쳐올 가뭄을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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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규 사회부장


최병렬 전 서울시장은 별명이 ‘최틀러’다. 밀어붙이는 힘이 탁월하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17년 전인 1995년의 일이다. 최 시장은 단국대 풍치지구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서울시 간부에게 풍치지구 해제를 검토하라고 지시한 게 발단이 됐다. 풍치지구는 산림의 상태가 좋거나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제하는 일종의 안전장치다. 단국대는 학교 캠퍼스를 둘러싼 울창한 숲 때문에 풍치지구로 지정돼 개발이 제한돼 있었다. 서울 캠퍼스 땅을 팔아 지방 이전계획을 세웠지만 풍치지구 때문에 제값을 받지 못하자 서울시에 풍치지구를 해제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단국대 총장은 최 시장과 막역한 김학준씨였다. 


 최 시장은 단국대 이전이 수도권 과밀현상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풍치지구가 갖는 상징성은 잘 알지 못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진 뒤 여론이 들끓었다. 시민단체와 서울시의회를 중심으로 “서울시민의 허파를 도려낼 심산이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풍치지구는 다른 어떤 명분과 맞바꿀 수 없는 보존의 대상이었다. 최 시장은 여론을 설득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풍치지구 해제 계획을 철회했다. 서울의 자연경관을 보호해야 한다는 심리적인 규제장치가 작동한 것이다.


최근 중부지방에 내린 집중호우 탓에 서울에 물난리가 났다. 지난 15일 서울에 하루 동안 약 152㎜의 비가 쏟아졌다. 이 바람에 서울 강남대로에 물이 무릎높이까지 차오르면서 도로 기능이 마비됐다. 전형적인 계획도시인 서울 강남이 비만 내리면 물에 잠기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침수피해는 한꺼번에 비가 집중된 데다 지대가 낮은 지형여건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노후한 배수시설도 한몫을 했다.


강남역 인근 도로가 침수돼 차들이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고 있다. (출처: 경향DB)


그러나 강남 침수의 이면에는 개발의 어두운 그림자가 자리 잡고 있다. 콘크리트와 대리석으로 치장한 강남의 개발 후유증이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얘기다. 서울시 조사결과를 보면 도시화 이전인 1962년 서울시의 빗물 침투율(전체 강수량 중 땅속으로 스며드는 비율)은 47%에 달했다. 그러나 2010년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된 뒤 우수 침투율은 26%로 급감했다. 대신 강으로 흘러드는 빗물은 1962년 전체 강수량의 11%에 그쳤지만 2010년에는 49%로 급격히 높아졌다. 콘크리트에 막힌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한 채 그대로 흘러 넘치면서 비 피해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강남의 침수 피해를 ‘자연의 역습’으로 보는 시각은 이 때문이다. 무분별한 개발로 산사태가 나면서 인명과 재산피해를 키운 우면산 산사태도 같은 이치다.


이번 비 피해를 계기로 콘크리트 일색의 서울 도시문화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시점이 됐다. 서울은 도시화로 이미 몸살을 앓고 있다. 한강과 도시 외곽의 주요 산을 제외한 서울 도심의 불투수포장비율(빗물이 스며들지 않는 포장 면적의 비율)은 무려 63.7%에 달한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와 하노버는 각 42%와 47%다. 개발논리에 밀린 자연환경을 원상태로 돌려놓고 녹색공간을 확보하는 게 그 해답일 수 있다. 녹색이 사라진 도시는 정서적인 삭막함뿐 아니라 자연재해에 취약하다는 사실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입증됐다.


서울은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자연조건 때문에 상대적으로 녹지가 풍부한 편이다. 이를 제외하면 실생활권 공원 면적은 열악하다. 2009년 서울의 인구 1인당 공원 면적은 5.46㎡로 뉴욕(10.27㎡), 런던(24.15㎡), 파리(10.35㎡)에 비해 턱없이 낮다. 서울시도 한때 녹지공간 확보에 열을 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1997년 서울 여의도 5·16 광장의 콘크리트를 걷어낸 뒤 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은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군(軍)과 여의도광장 상인들의 거센 반발을 뚫고 만든 여의도공원은 시민들의 친숙한 공간으로 새로 태어났다.


녹지공간 확보는 전시성 개발사업에 목말라하는 민선 서울시장에게는 그리 매력적인 사업이 아닐 수 있다. 청계천이나 광화문광장 같은 폼 나는 사업에 자신의 이름 석자를 붙이고 싶어한다. 하지만 화려함 뒤에는 또 다른 자연의 역습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수차례 경험한 바 있다.


서울시는 지금도 도심 녹지축 복원을 비롯한 수많은 녹지확충 계획을 갖고 있지만 모두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다. 역대 시장이 별로 내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 굳이 여의도공원같이 대규모 공원이 아니라도 좋다. 동네 어귀의 자투리 땅 몇십평을 작은 공원으로 만든 뒤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것은 폼은 나지 않을지 몰라도 시민들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공원을 만든다고 반대하는 사람은 별로 본 적이 없다. 풍치지구로 둘러싼 숲의 나무 한 그루가 어떤 개발명분과 맞바꿀 수 없는 서울의 허파로 인식된 1995년의 서울 풍경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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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 | 귀농본부 텃밭보급소장


옛말에 하농(下農)은 게을러 풀만 키우고, 중농(中農)은 부지런하여 수확을 잘 거두고, 참농부인 상농(上農)은 흙을 살린다고 했다. 친환경 유기농사의 근본은 흙을 살리는 데 있다. 흙 1g에는 미생물이 1억마리 이상 산다고 한다. 살아있는 흙일수록 좋은 미생물이 많이 산다. 그들이 생명활동을 하며 뿜어내는 냄새가 바로 천연 항생물질이다. 이 냄새 때문에 나쁜 바이러스와 해충이 잘 오지 않는다. 사서 쓰는 거름에선 암모니아 냄새가 많이 난다. 이런 걸 미숙 퇴비라 하는데 벌레나 바이러스도 좋아해 친환경 유기농사를 방해한다.


몇 년 전 중국 배추에서 해충알이 나와 난리가 난 적이 있다. 인분을 거름으로 써서 그렇다고 했다. 똑같이 인분으로 농사짓는 필자 얘기를 듣고 국내 유명한 한 유기농 연구소에서 내 흙과 배추를 가져가 분석을 해봤다. 결과는 예상한 대로 전혀 문제점이 없었다. 인분을 제대로 숙성시켜 썼기 때문이다. 나는 인분이든 음식물이든 완전히 흙냄새가 날 정도로 숙성시켜 쓴다. 완숙된 퇴비에는 좋은 미생물이 많이 증식되어 해충알은 물론 바이러스도 오지 못한다. 흙 관리를 잘하면 농약은커녕 천연 생물농약도 필요없다. 도시농부들을 특히 괴롭히는 것 중 하나가 병해충이다. 그런데 농약이 필요없는 흙살리기를 잘 모르는데다 알아도 즉각 효과가 나오질 않으니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벌레가 꼴 보기 싫다고 살충제를 뿌리면 벌레들이 점점 더 꼬인다. 벌레를 잡아먹는 천적도 죽기 때문이다. 


(출처: 경향DB)



완숙 퇴비를 만드는 데는 발효도 중요하지만 어떤 재료를 선택하느냐도 중요하다. 제일 좋은 재료는 역시 내 몸에서 나오는 배설물이다. 먹다 남은 음식물쓰레기도 좋다. 옛말에 내 똥 3년 이상 먹지 않으면 큰 탈 난다고 했다. 순환을 말하는 것인데 그 핵심은 똥이라는 뜻이다. 사람은 가축과 달리 항생제나 예방약을 일상적으로 먹지 않기 때문에 인분이야말로 축산분뇨로 만든 퇴비보다 훨씬 양질의 거름 재료다. 이걸로 거름을 만들면 환경에도 도움이 되고 내 몸에도 도움이 되니 일석이조다. 도시농부의 첫걸음은 바로 내 몸에서 나오는 배설물로 거름을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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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권 |‘야생초 편지’ 저자


얼마 전 우리 농장에서 방사능 측정에 관해 의미있는 모임을 가졌다. 영광의 원전6호기가 고장으로 멈춰 섰다는 뉴스를 접한 서울의 한 회원이 자신이 알고 지내는 우크라이나 핵물리학 박사의 사위를 데려와 방사능 측정을 하고 싶으니 이쪽에서도 준비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영광지역 탈핵공동행동이라는 민간조직의 상임이사로 원전6호기 사건과 관련하여 이미 군수와 원전감시센터의 소장을 만난 바 있어 이참에 내가 사는 지역의 방사능 측정을 해보는 것도 좋은 듯 싶었다. 


약속한 날이 되자 우크라이나 핵물리학 박사의 사위는 우크라이나에서 제조한 방사능 측정기를 들고 오고, 영광원전민간감시기구에서는 자기네가 보유하고 있는 미국제 측정기를 들고 나타났다. 모두 네 종류의 기기를 가동했는데 측정결과는 대동소이했다. 다만 이곳이 산속이라 고도가 높아서 평지보다 측정치가 다소 높게 나왔는데 이는 자연방사능 수치라고 한다. 우크라이나는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겪은 뒤 국가차원에서 간편한 방사능 측정기를 만들어 저렴한 가격으로 민간에 보급하고 있었다. 이날 온 분은 그 제품을 소개하고자 이 먼 곳까지 온 것이다. 잘은 모르지만 기기를 가까이서 살펴본 결과 비싼 미국제보다 우크라이나 제품이 값도 싸고 성능도 훨씬 좋아 보였다.


고리원전 재가동 반대하는 녹색당 (출처 :경향DB)


 그동안 원전사고가 나면 국민들은 뭐가 어찌 돌아가는 줄 몰라 앉아서 정부의 발표만 듣고 있었으나 작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스스로 안전을 챙기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100% 안전하다는 정부말만 믿고 있다가 어이없는 사고를 당하고 나니 더 이상 정부를 신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전문연구기관에서나 찾던 방사능 측정기에 대한 수요가 민간인 사이에서도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이번에 우크라이나 제품이 한국에 온 것도 그러한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 아직은 규모가 큰 환경단체에서 한두 대 구입하여 운용하고 있는 정도이나 가격이 좀 더 내려가면 누구든지 손에 들고 다니면서 방사능 측정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반 국민이 스스로 방사능 측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원전의 안전문제가 더 이상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님을 말해 준다. 사실 방사능이란 것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데다 피폭의 증상이 서서히 나타나기 때문에 특별히 예민한 사람이 아니면 알 도리가 없다. 게다가 원전은 군사시설 이상으로 엄격히 통제관리되고 있어 민간인의 접근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곳이다. 그러나 잇단 원전 고장과 방사능 누출 사고로 불안해 하던 영광 군민들은 지난한 반핵투쟁을 통해 1999년에 ‘영광원전민간감시기구’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낸다. 이후로 원전이 있는 다른 네 곳의 지자체에도 비슷한 민간감시기구가 속속 들어선다. 하지만 위원장과 운영위원장이 군수와 군의회 의원으로 되어있어 이름만 민간감시기구이지 정부의 직접 통제 아래에 있는 정부기관이나 다름이 없다. 


물론 모든 예산이 정부에서 나오니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정부돈이란 것이 결국은 국민의 세금 아닌가? 정부가 다 알아서 한다면 굳이 민간감시기구 같은 것을 만들 이유도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해 위원장인 군수와 감시센터 소장은 정부와 주민의 중간에 끼여 곤란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고충을 토로한다. 감시기구에서 실시하는 대민홍보와 교육이란 것도 대체로 공기관의 업무달성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직의 상부를 공무원이 장악하고 있는 기구에서 주민친화적인 사업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우리는 감시기구의 위원장만은 자격 있는 민간인이 맡도록 조례를 개정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한다. 그리고 운영위원도 지방의 유지들이 돌려먹기 식으로 하지 말고 진정으로 원전의 안전에 관심을 갖고 있는 지역인사들을 골고루 참여시켜야 한다. 그렇게 못하겠다면 이름에서 ‘민간’을 떼어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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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중 | 동국대 의대 교수


 

탈 많고 말 많은 고리 1호기가 재가동되었다. 4년 전 수명연장 당시부터 말이 많았다. 원자로 건전성에 관한 직접 검사방법인 파괴검사에서 불합격을 받았음에도 보조적인 조사방법인 비-파괴검사에서의 합격을 이유로 수명연장이 허가됐다. 또한 수명연장 당시 안전성 조사 보고서가 수년간 공개되지 않아서 비밀주의 논란이 있었다. 결국은 복사도 하지 말고, 노트필기도 하지 말고 수천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그냥 와서 보기만 하라는 방식으로 공개됐다. 이렇게 부당한 방법으로 수명연장이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짝퉁 중고부품 납품문제가 불거졌고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이것을 국산화라고 미화하여 유야무야 넘어갔다. 이후 납품비리 사건이 터졌다. 불량한 부품을 뒷돈을 받고 구입해주는 전형적인 비리였다. 결국 한수원 간부 22명을 포함해 총 31명이 구속되고 이 사건은 마무리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기점검 중이던 지난 2월9일, 고리 1호기의 전원이 상실되어 냉각수 공급이 되지 않아 원자로의 온도가 올라가는 중대사고가 발생했다. 비상발전기도 가동되지 않아 외부에서 전원을 끌어와서 냉각수 펌프에 전원을 연결했던 것이다. 자칫하면 후쿠시마와 같은 노심용융으로 갈 수도 있는 사고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고리본부장과 발전소장들의 공모하에 은폐됐고, 부산시의원의 폭로로 한 달 후인 3월13일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고리원전 본부장과 발전소장 등 5명이 구속됐고 모두 실형을 선고받았다. 


(경향신문DB)


이후 한수원은 고리 1호기 재가동의 명분을 얻기 위해서 8명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요원들을 초청해 고리 1호기 안전점검을 요청했고, 이들은 8일간의 현장조사 끝에 보고서를 내놓았다. 그 보고서에는 6개의 잘한 점과 6개의 문제점이 적혀 있었다. 한수원은 이 보고서에 적시된 잘한 점 중 하나를 제목으로 뽑아 마치 IAEA 검증단이 고리 1호기가 안전하다고 발표한 것처럼 보도자료를 냈고,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하였다. 완전한 사기극이었다. 


원자로의 건전성과 관련된 이른바 ‘취성천이온도’의 문제가 제기됐다. 원자로의 온도가 급하게 변화될 경우 원자로가 유리처럼 깨질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수원은 이에 대해 설득력있는 공학적 설명을 하는 대신, 주민들이 추천한 7인의 민간 전문가와 한수원이 추천한 전문가 3인으로 TF를 구성했다. 이들은 4일 동안 원자로의 안전성에 관해 전체적인 조사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사 기간도 너무 짧았을 뿐 아니라 그 과정도 주민추천 전문가들이 한수원 측 전문가의 설명을 듣는 형태로 진행됐다고 한다. 도저히 안전성 조사과정이라고 볼 수 없는 4일간의 일정 이후 이 TF는 고리 1호기의 안전에 이상이 없다고 발표했고, 정부는 이를 근거로 재가동에 들어갔다.


재가동을 하기 위한 전 과정에서 ‘민간 전문가 활용방식’이 사용됐다. 소정의 연구비를 받은 민간 전문가들은 며칠 만에 원자로의 안전성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경주에서 있었던 방폐장 안전성에 관한 민간 점검단이 보여준 행태 그대로다. IAEA 전문가들의 안전점검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민간 전문가 활용방식은 핵산업계의 여론무마 방식 중 가장 높은 빈도로 사용된다.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해운대해수욕장 백사장에서 고리원전 1호기 폐쇄를 요구하며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경향신문DB)


이와 함께 흔히 사용되는 수법이 ‘보도자료 왜곡’이다. 한수원은 이번에 IAEA 검증단이 내놓은 보고서 중 일부만 선택해 결론을 왜곡한 후 보도자료를 내놓았는데, 이 방식은 방폐장 안전성 점검, 원전 주변 주민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발표에서도 사용됐었다. 그래서 본론과 결론이 서로 다른 괴상한 보고서가 나왔고, IAEA의 경우에는 IAEA 보고서와 한수원의 보도자료 내용이 서로 달랐다. 고리 1호기는 결국 어떤 정당성도 갖추지 않은 채 재가동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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