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제 | 바다녹색산업연구소 소장


우리나라 갯벌은 그동안의 무분별한 개발행위로 어민의 문전옥답이었던 대규모의 양식장이 상실되고 갯벌생물의 대량폐사가 상습화되고 있다. 이에 더해 금후에 불어닥칠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등 국가 간의 FTA가 체결되면 농산물과 같이 수산물도 무기화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선진국처럼 기술과 자본을 투자하여 갯벌로부터 현재보다 10배 이상의 고부가가치 친환경 수산물을 대량 생산·수출하여 고령화된 어촌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정부의 ‘갯벌양식어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과 ‘수산업법’ 일부 개정안은 모든 갯벌에 적용하도록 강제하는 법률이 아니며 어민들 스스로 생산성을 높이면서 생존권 회복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외부 자본 및 신기술을 도입할 수 있도록 어민에게 자율권을 부여하는 법률이다. 이를 통해 갯벌 수산물을 차세대의 수출산업(현재의 갯벌생산 3000억원→2020년 4조원)으로 육성하려는 것이다.


‘생태지평연구소’가 제기한 것처럼 어촌계 소유의 갯벌 면허어장은 수산업법에 따라 어업인의 소유로 되어 있고, 타인 지배가 금지되어 있어 ‘갯벌양식 민영화’ 또는 ‘외부 자본에 의한 임대차와 사유화’ 운운은 납득하기 어렵다. 어민들은 현재의 갯벌관리 방식을 개선하여 적정한 기술과 자본이 어촌에 진입될 수 있도록 생존권 차원에서 정부에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과 외부 자본이 어촌에 유입되면 갯벌이 사유화되고 어촌공동체가 붕괴된다고 하는 환경단체의 주장은 수십만 어민들의 요구를 외면한 주장이다.


마을양식장은 갯벌습지 지정 이전의 수백년 동안 자율적으로 생계를 유지해온 독점적 공동체 지위의 생활공간이다. 우리 어민은 대기업의 투자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마을 공동체의 자금이 부족할 때 외부로부터 일부 투자지원을 받는 정도에 그치는 것을 침소봉대해선 안된다. 특히 어민이 관리하고 있는 마을어장은 지속적 생산을 위해 환경수용능력 범위 안에서 스스로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다. 갯벌 생태계 훼손은 극히 적은 면적의 마을 갯벌어장 탓이 아니라 생태지평연구소의 말처럼 연간 700만명의 갯벌방문객 때문임을 명심하고 확실한 근거를 갖고 어민들과 대화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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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원 | 서울시립대 교수·철학


자연을 어떻게 볼 것인가? 자연에 대한 이해는 오늘날 자연과학의 핵심 테마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과학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가령 오늘날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인 환경문제만 보더라도 그것이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와 깊은 관련을 갖기 때문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자연을 하나의 거대 기계로 보는 기계론적 관점과 하나의 유기체적 생명체로 보는 유기체적 관점으로 크게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기계론적 자연관은 16세기 이후의 과학혁명(가령 역학, 천문학, 화학 등에서의 혁명)과 데카르트적인 합리주의 전통에서 유래한다. 과학혁명의 과정은 자연을 보는 관점을 급격히 바꾸어 놓았는데 전통적인 신 중심의 자연관, 즉 자연은 신의 의도에 따라 설계되고 신의 행동과 목적에 따라 움직인다는 생각이 포기되었다. 대신 자연은 시계 태엽처럼 지극히 단순한 기계적 힘에 의해 작동되는 정교하게 구성된 자동기계와 같고, 이 기계의 작동과정은 수학과 실험을 통해 충분히 이해될 수 있고 그 결과는 예측될 수 있으며, 한 발 더 나아가 인간에 의해 조절 또는 조작될 수 있다.

 

서울 일자산 자연공원 영농체험장에서 어린이들이 벼 수확 체험을 하고 있다. l 출처:경향DB

 이러한 생각은 데카르트적인 합리주의 전통을 통해 한층 강화된다. 데카르트는 물질과 정신을 서로 다른 실체로 철저하게 구분했다. 특히 물질은 기하학적 연장성을 속성으로 갖고, 정신은 생각함을 속성으로 갖는 실체로 보았다. 이러한 구분은 중요한 함축을 내포하고 있는데, 하나는 근대과학의 원리들이 정신이 배제된 물질세계에 국한하여 적용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기하학적 연장성을 본성으로 하는 물질세계에 대한 양적·기계론적 사고다. 정신으로부터 분리된 물질세계가 외연적 연장성을 본성으로 갖는다는 것은, 물질세계를 질적인 것이 아니라 양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뜻한다. 또한 이는 물질세계가 수학적이고 양적인 어떤 기계적 법칙에 의해 작동함을 함축한다. 결국 자연을 기계적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로 보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인간에 대해선 생각함을 속성으로 갖는 정신 또는 영혼과 연장성을 속성으로 하는 물질로서의 육체로 구분되어 있고, 정신은 육체가 사라진 뒤에도 존재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인간의 정신은 자연의 다른 모든 물질적 존재자들에 비해 우월하고 자유로운 위치에 있으며, 자연의 어떤 기계적인 법칙에 의해서도 지배되지 않게 된다. 오히려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이다.

 한편 유기체적 자연관은 자연을 기계 대신 하나의 생명체와 유사한 것으로 본다. 인간을 포함하여 자연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마치 생명체의 각 기관들이 각자의 존재적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긴밀하게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듯이, 하나의 통일적 전체를 이루고 있다. 이는 19세기 유럽의 낭만주의적 전통 및 생물과학(가령 다윈이론, 생태학 등)의 발달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낭만주의적 전통은 어떤 하나의 보편적인 원리나 완벽한 형태를 추구하기보다는 개별자들의 다양성과 상이함을 추구하는데, 그러한 의미에서 이는 생명체 각각의 존재성과 상대적인 자율성을 승인하는 유기체적 자연관을 지지해 준다.

 여기에 생태학의 발전은 자연을 구성하는 이러한 생명체들 사이에, 생명체와 무생명체 사이에, 나아가 이들과 물리·화학적 환경 사이에 유기적인 상호 의존성이 존재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 가운데에서 하나의 고리라도 위협을 받게 되면 그 영향이 유기체 전체로 확산됨을 말해 주고 있다. 인간 역시 유기체적 자연의 한 부분이기에, 인간의 행위 또한 유기체적 질서를 깨트리지 않도록 행해져야 한다. 생태학은 생명체와 비생명체로 구성된 전형적인 복잡계인 생태계의 원리와 기작(메커니즘)을 탐구하는 과학이다. 이에 따르면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진화과정의 결과로 복잡한 인과 연쇄 곧 유기적 연관성을 지니고 있고 자연은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균형과 조화, 자기 조절 능력을 갖춘 복잡한 시스템이며, 한 부분의 이상은 다른 부분에로 그 영향이 크고 멀리까지 미치고 오래 지속됨을 강조한다.

 이는 자연을 단순히 인간의 욕구 충족을 위한 자원으로 파악하고 목적의식적인 개조 대상으로 보는 기계론적 관점을 거부하고, 자연을 인간을 탄생시킨 존재 그 자체로 보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새롭게 재구성한다.

 어떤 관점이 실재하는 자연을 더 잘 그려낼까. 그것이 무엇이든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러한 자연관과 관련하여 의미있는 화두가 있다면, 자연 안에서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혹은 자연은 인간에게 어떤 존재인가이다. 어떤 결론을 내리는가에 따라 자연에 대한 인간의 행위와 가치는 달라질 것이며, 인간의 삶 자체 또한 근원적으로 재정립될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참된 인간의 모습을 찾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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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섭 | 생태지평연구소 부소장

연간 700만명 방문! 국민들 대다수가 한 번쯤 갯벌을 찾는다. 살아 있는 대자연의 생태학습장으로서 갯벌만큼 역동적인 생태계를 만날 수 있는 곳은 없다. 이런 갯벌도 과거에는 쓸모없는 땅이라고 여겨져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사라지던 비극의 시대가 있었다. 시화 갯벌이나 새만금 갯벌이 대표적이다.

최근 들어 대규모 간척 논란이 잠잠해지나 싶더니 ‘갯벌양식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갯벌의 수난이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정부입법이 아니라 절차가 간단한 의원입법 형식을 빌려서 ‘수산업법’ 개정과 ‘갯벌양식어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 제정을 추진하고 나선 것이다.

이 법안의 주된 내용은 기업과 외부 자본이 갯벌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대폭 완화하고, 마을 어장의 어업권을 기업에 넘겨주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외부 자본참여 지분을 50%까지 허용한 ‘어업회사법인’에는 어업권 임대차를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애초에는 외부 자본참여 비율을 90%까지 계획했다가 반대에 부딪히자 부랴부랴 50%로 수정했지만 큰 의미는 없다. 기업의 자본 유입을 허용하겠다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며 외부 지분 참여비율은 언제든지 올릴 수 있다. 이러다가 국민의 공공자산인 갯벌이 기업의 사유재산처럼 이용되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여수 가막만 갯벌 ㅣ 출처:경향DB

농수산식품부는 어촌이 고령화되고 어장이 황폐화되어 민영화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마을어장이 기업과 외부자본에 임대차된다면, 갯벌에서 어패류를 채취하여 경제적 소득을 올리며 살아가는 고령의 맨손어업 종사 어민들은 일자리가 사라지게 된다. 갯벌 민영화는 흡사, 대형마트가 골목 상권을 장악해 중소상인들을 거리로 내모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사실 갯벌은 수질정화, 여가 공간, 서식지 제공, 재해방지 등 다양한 생태적·경제적 가치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이러한 공적인 공간에 기업의 이윤확대를 위해 과도한 양식업이 성행하고 특정 양식품종에 집중한다면, 갯벌 생태계는 단순화되고 생태계 교란을 불러올 것이다. 또한 국가적으로 보전가치를 인정받은 습지보호지역이나 해안 및 해상국립공원지역과 같은 보호지역 생태계 및 관련 제도도 위협받게 될 것이다.

농수산식품부는 2007년 발생한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서해안 어촌 주민들을 위해 불가피한 법이라고 생색을 내고 있지만, 제대로 된 정부라면 가해자가 충분한 보상과 복원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정부가 ‘허베이 스피리트호 피해주민 지원 특별법’을 제정하고도 가해자인 대기업 삼성에는 아무런 요구도 못하면서, 일반법인 갯벌 민영화법으로 주민을 지원하겠다는 것은 지역주민을 우롱하는 일이다.

이 법률 제·개정안은 18대 국회에서 사실상 입법추진의 주체인 농림수산식품부는 뒤로 숨은 채 민주당의 몇몇 의원을 앞세워 의원입법을 시도하다가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의 반대에 부딪혀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에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법을 18대 국회 회기 내에 반드시 처리하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는 소문이 들린다. 그러나 18대 국회는 종료되었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민영화는 만능이 아니다. 만일 갯벌 민영화의 끝이 수산물 가격상승으로 이어진다면 그 피해자는 고스란히 국민이 될 것이다.

여의도 30배 면적(4만100ha)의 새만금 갯벌을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하고, 주요 어장을 파괴해 어민들을 삶의 터전에서 몰아냈던 농림수산식품부가 또다시 갯벌 파괴에 앞장서고 어민들을 울리면서 어촌회생을 이야기하는 것은 기가 막힐 일이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훼손된 습지 복원, 민주통합당은 습지보전법 강화, 통합진보당은 공유수면매립법 폐지를 공약으로 각각 제시하면서 갯벌보전 의지를 보였다. 이제, 국민과 약속한 공약을 지켜야 한다. 공공의 자산인 갯벌보전을 저해하는 갯벌민영화법을 즉각 폐기하는 것이 그 첫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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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권 ‘야생초 편지’ 저자

얼마 전 지방의 한 군립도서관에서 인문학 초청강연이 있어 다녀왔다. 청중의 면면을 보니 토박이뿐 아니라 도시에서 갓 이주한 귀농인도 꽤 눈에 띄었다. 강연 후 페이스북에 이런 감상문이 올라왔다. “요즘 같은 초스피드 시대에 한마디 하고 3초씩 쉬며 파워포인트나 동영상 자료도 없는 강의를 듣고 있으니 세월을 거스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문맥으로 보아 강연자를 폄훼하려는 의도가 조금도 없다는 것을 알지만 내가 의도적으로 했던 이야기식 강연이 잘 먹혀들지 않은 것 같아 조금은 씁쓸했다.

한 번은 서울의 한 대학에서 요즘 최고로 잘나가는 인기강사의 대중강연을 참관한 적이 있다. 무대가 TV 쇼프로그램처럼 화려했다. 나 역시 그 무대에 서는 강연진의 일부였지만 왠지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강사는 각종 영상자료를 동원해 속도감 있게 강연을 이끌었다. 같은 강연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화면의 이동 속도와 말 사이에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나온 듯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난 지금 머릿속에 몇 가지 영상만이 오락가락할 뿐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이와 정반대되는 강연도 있었다. 미국 유학시절 뉴욕에서 스리 친모이라는 유명한 구루의 명상강의를 들었다. 무대 한가운데에 펑퍼짐한 의자가 하나 놓여 있을 뿐 아무런 장식도 없었다. 이윽고 강의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강사가 느릿한 걸음으로 들어와 의자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는 인사말도 없이 눈을 반쯤 감고 명상에 잠기는 듯했다. 수백명의 청중도 자세를 고쳐 잡고 무대 위를 바라보며 이제나 저제나 강사가 말을 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린 지 30분이나 지났을까 종소리가 울리더니 강의가 끝났다고 한다. 세상에나! 말 한마디 없는 강의를 들은 것이다. 청중은 수군대며 정말 명강의였다고 감탄을 했다.

 

생태운동가 황대권 l 출처:경향DB

얼핏 사기를 당한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침묵의 강연’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처음에는 강사가 의당 말을 하려니 하고 기대를 했기 때문에 침묵상태가 몹시 불편했다. 시간이 흘러 침묵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니까 이제는 말로 인해 그 상태가 깨지는 것이 두려워졌다. 결국 말 없는 강연은 말 많은 이 세상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체험적으로 보여주었다. 반면에 한국 대학의 명강사는 영상과 말을 속도감 있게 펼쳐냄으로써 청중으로 하여금 시간가는 줄 모르게 했으나 마음속의 울림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두 극단의 경우에서 보듯 말과 침묵의 적절한 조화는 명강의의 요체라고 말할 수 있다.

교육방법론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가장 훌륭한 교육방법의 하나로 ‘이야기’를 꼽는다. 지금 대한민국 50대 이상 성인의 어린 시절 교육은 어른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루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들으면 터무니없이 느리고 허술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스릴있고 재미있었다. 무엇보다도 말하는 사람의 호흡과 몸짓이 극적인 효과를 더해 주었다. 이를 현대의 교실에서 재현하려는 많은 노력이 있지만 그 옛날처럼 효과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여기에는 이야기가 행해지는 무대의 세팅과 인간관계가 중요하다. 청중과 강사 사이에 찬바람이 불 정도로 멀리 떨어진 무대 위에서 소곤소곤 ‘이야기’를 해봐야 청중에게 내밀한 감정의 떨림이 전해질 리 없다.

디지털 문화와 대형 공연장에 익숙하지 않은 나 같은 사람에겐 사랑방 좌담회가 딱이다. 그런 사람을 번쩍거리는 대형 공간에 불러내 감동을 주길 기대하는 것은 애초 무리다. 화자와 청중의 교감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작은 공간에서는 어눌함과 침묵조차도 때론 감동으로 다가온다. 청중이 강사의 그런 행동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 그런 행동은 용납되지 않는다. 계산된 속도와 소리의 강약, 시각의 변화무쌍함이 청중을 사로잡지 않으면 명강의가 될 수 없다. 서글프다. 우리는 기계가 감동을 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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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 | 귀농본부 텃밭보급소장

옛날 농부님들은 콩을 세 알씩 심었다. 한 알은 하늘의 새가 먹고, 한 알은 땅 속의 벌레가 먹고, 비로소 남은 한 알로 농부가 콩을 키워 먹었던 것이다. 사람 먹을 것도 귀한 때 미물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었으니 그 측은지심이야말로 성인군자나 다름없다. 그러나 콩 세 알을 심은 진짜 이유는 새, 벌레를 위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이 먹을 한 알을 확실하게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그만한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보는 게 옳다.

 

산골마을 소 쟁기질하는 농부 I 출처:경향DB

아마존 밀림 가운데 원주민들의 농경지가 자그만치 12%나 됐다고 한다. 그 넓은 면적에서 농사를 지었음에도 그들의 농경지는 외부인의 눈에 쉽게 띄지 않았다. 왜? 숲을 파괴하지 않고 숲 그대로에 맞게 농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곳에는 음지 작물을 심고, 습한 곳에는 습지에 맞는 것을 재배했다. 이렇게 자연을 지키며 먹을 것을 얻었던 아마존 원주민 또한 성인군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밀림을 파괴해 농사를 짓는 것보다 밀림을 보호하며 농사를 짓는 것이 그들에게 유익함을 몸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환경운동 단체들이 북극 이누이트인을 찾아가 물개를 잡아먹지 말라고 설득했다. 물개는 보호종이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그런데 이누이트인들은 이렇게 말했다. “몇 천년 물개를 잡아먹어 왔지만 우리는 결코 물개를 멸종시키지 않았다”고.

생명을 먹어온 인간은 먹는 행위로 그 생명과 먹지 않는 다른 생명까지 지켜왔다. 그게 어쩌면 진정한 공생의 삶이자 공생의 철학일 것이다. 성인군자나 고귀한 학자들만이 공생의 철학을 얘기하면 그것은 죽은 철학에 불과할 뿐이다. 철학은 하찮은 민초들의 삶으로 구현될 때 진정 살아있는 철학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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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 | 굿네이버스 말라위 지부장

인류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는 질병은 무엇일까? 보통 암이나 에이즈 등 인류가 아직 정복하지 못한 질병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해마다 전 세계적으로 100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고 2억건 이상의 발병률을 보이는 공포의 질병은 바로 말라리아다. 우리가 말라리아를 심각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이른바 잘 사는 나라들에서는 말라리아가 그리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 아프리카 말라위 지역 주민들에게 장례식은 일상이다. 일주일에 한 두 번씩 말라리아로 사람이 죽어나간다. 대부분의 장례식은 아동들의 장례식이다. 지역을 조사하며 이 지역 5세 이하 유아 사망률이 30%에 육박한다는 것과 대부분의 사망원인이 말라리아라는 것을 알게 됐다. 산술적으로 계산할 때 아이를 4~8명씩 낳는 이곳의 어머니들은 1~2명씩 아이를 잃어본 경험이 있다는 이야기다.

 

아프리카에 모기장 보내기 운동을 벌이는 한남대생들 I 출처:경향DB

사실 말라리아는 말라리아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모기장을 치거나 주위 환경을 위생적으로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또 감염됐다 하더라도 빠른 시일 내에 치료를 받으면 회복 가능한 병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말라리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아 모르는 상태에서 병을 키우거나, 악령이 아동에게 붙어있다고 생각해 마을 곳곳에 있는 주술사집을 찾아가 병을 치료받고 있었다.

아프리카 저개발국들은 부족한 의료시설로 인해 병원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유엔이나 국제기구들이 많은 돈을 들여 모기장을 공급하는 노력을 기울이기는 하나 물량이 턱없이 모자라는 상황이다. 주민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모기장을 잘못 사용하거나 그물 대용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굿네이버스 말라위 지부에서는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지난 2010년부터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함께 살충모기장 배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치오자 건강센터(Chiwoza Health Center)’ 병원도 건립 중이다. 주민들 스스로 모기장 사용법에 대한 연극을 만들어 보건교육을 진행하는가 하면, 모기장 사용 권고로 대부분의 주민이 모기장을 설치하게 됐다.

오는 4월 25일 ‘세계 말라리아의 날’을 맞이하여 말라리아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의 좋은 이웃, 착한 사람들이 더 많은 후원과 관심을 갖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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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조 | 환경과학원 기후대기연구부장

언제부턴가 봄이 되면 ‘불청객 황사’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다. 황사는 발원지의 기온, 기압 배치 등 기상 상태에 의해 발생빈도 및 강도가 좌우되는 자연현상이다.

2000년 이후 황사 발생 시 서울에서 관측된 미세먼지(PM10)의 최고 농도가 3311㎍/㎥까지 나타났다. 특히 2010년에는 1354㎍/㎥였는데, 이는 2011년 서울의 먼지 평균농도인 47㎍/㎥와 비교하면 얼마나 높은 것인지 알 수 있다.

황사는 농도도 중요하지만 더 큰 문제는 황사 입자의 크기가 일반 미세먼지보다 작은 3~6㎛에 집중돼 있으며, 또 그 입자 중에 많은 유해물질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다. 유해물질의 포함 여부는 발원지에서 발생한 황사가 어느 경로를 통해 우리나라에 도달하는지에 따라서 달라진다. 즉, 고비사막이나 네이멍구 지역에서 발생된 황사는 중국의 동부 공업지역을 통과할 때 유해물질 농도가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기류의 이동 속도가 빠르면 공업지역의 오염물질을 더 많이 포함하기 때문에 유해물질 농도가 더욱 높아지게 된다.

 

황사로 인해 서울 남산N타워에서 바라본 서울시내가 뿌옇다. I 출처:DB

이와 같이 발원지에서 발생한 황사가 중국의 공업지역을 통과해 우리나라에 유입되는 황사를 이른바 ‘오염 황사’라고 한다. 오염 황사는 유해 중금속인 납, 비소 등의 농도가 일반 황사에 비해 2~3배 높게 나타난다. 황사가 건강이나 산업 부문 등 여러 방면에 걸쳐 피해를 준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실제 황사 발생일부터 2일 후까지 천식에 의한 병원 입원건수는 평소에 비해 약 5%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비닐하우스의 투광률 저하로 작물의 생산성 하락 등 경제적 피해만도 4조~7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기상청은 황사 강도를 2단계로 분류해 400㎍/㎥ 이상일 때 황사 주의보를, 800㎍/㎥ 이상일 때 경보를 발효한다. 발원지에서의 황사발생을 억제하기 위해 그동안 많은 노력을 했지만 단 시간에 결과를 얻기는 어렵다. 사막화 방지 등 보다 강화된 전 지구적 국제협력을 바탕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발원지 지역을 중심으로 산림 식재뿐만 아니라 인공 강우나 관개시설 설치 등 근원적 문제 해결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그동안 범정부적으로 황사 방지 대책을 추진해 왔지만, 내년부터 시작되는 2차 황사 정부 종합 대책에서는 인체 건강 및 경제적 피해 방지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또한 유해한 황사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외출을 삼가는 등 환경부가 제시한 ‘황사 피해 줄이기 생활수칙’을 준수해 건강을 지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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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재 | 언론인

봄볕 따가운 4월 중순 천관산 자락, 이름 높은 ‘장흥표고’ 농장이다. 버섯 종균을 참나무 토막에 삽입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캡슐 모양의 종균을 참나무 구멍에 넣는 할머니들의 손길이 번개처럼 움직인다. 일흔네 살 ‘능주댁’이나 팔순 ‘운봉댁’의 잽싼 손길에서 나이를 가늠할 길이 없다. 아침 8시 시작된 작업은 오후 6시까지 계속된다. 일손은 하루 두 차례 새참과 점심 때 잠시 멈출 뿐이다.

할머니들 솜씨는 한 치 오차 없이 움직이는 고성능 전동 로봇의 그것 그대로다. 옆에서 지켜보노라면 신통할 따름이다. 그 나이에 그 기력, 그 솜씨가 놀랍다. 칠순 팔순 할머니들의 손놀림에서 강건한 힘을 느낀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들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건강하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온몸이 성한 데가 없는 게 그들이다. 농촌 마을 고샅에선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들을 흔히 만난다. 그 허리, 그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는 수십 년 인고의 세월을 살아온 인생 역정의 흔적일 따름이다. 젊은 사람 못잖은 일솜씨를 자랑하는 능주댁도 60년 농사일에 무릎 연골이 닳아 없어진 지 오래다. 몇년 전 인공관절 수술까지 받았다. 걸음걸이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요즘은 전동휠체어를 타고 논밭을 드나드는 형편이다. 그러나 밭일을 아직 멈추지 않고 있다. 엉덩이에 붙인 채 쪼그리고 앉아 일할 수 있게 만들어진 5000원짜리 농사용 방석이 단짝이다.

 

표고버섯 수확 I 출처:경향DB

▲ “농촌의 해체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의 실종
외국 농산물이 식탁을 꾸리는 비용을 줄여줄 수는 있다
그러나 농촌 아낙의 조건 없는 헌신을 어찌 대신할 수 있겠는가”

농촌 아낙에게 극한의 노동은 숙명이다. 농사일이라는 게 하늘, 그리고 시간과의 싸움이다. 변덕 날씨를 탓할 수도, 때를 놓치면 작물을 제대로 거둘 수도 없다. 젊은 축에 끼는 육십객 ‘화뱅이댁’의 꾸부정한 허리가 안쓰럽다. 가녀린 몸매의 그녀는 일 앞에서 당차고 욕심도 많다. 그는 한참 일이 밀어닥칠 땐 달빛을 등불 삼아 밤이 이슥하도록 밭일에 매달린 후유증을 피하지 못했다.

문명의 혜택도 농촌 남정네와 아낙 사이에 불공정하다. 농기구 기계화가 농촌 일손을 획기적으로 줄여주고 있다. 영산강 유역에선 수십만 평 규모의 기업형 농장도 더러 눈에 띈다. 수십 사람 몫의 일을 단숨에 해치우는 트랙터와 콤바인, 이앙기, 포클레인 등 중장비 덕분이다. 문제는 그 기계화의 혜택이 남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로부터 쟁기질과 논일은 남자 몫, 밭일은 여자 몫이었다. 땅을 갈아엎거나 벼를 재배하고 수확하는 기계는 잇달아 상용화돼 남자들의 일손을 획기적으로 줄여놓았다. 그러나 씨 뿌리고 모종을 옮기고, 김매고, 밭작물을 수확하는 기계의 개발은 더디고 더디다. 섬세한 여인의 손길이 필요한 구석은 아직 넓은 셈이다.

밭일은 아낙들의 차지다. 불볕더위 속 콩밭 매는 일은 가히 ‘고문’이다. 7월의 무성한 콩밭은 한증막이다. 그 속에 웅크린 채 김매는 작업은 극한의 지구력과 인내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 여름 하루 종일 허리를 구부린 채 고추 따는 일도 마찬가지다.

‘남산댁’도 대단위 농장의 단골 일꾼이다. 그의 출근 시간은 새벽 다섯 시 반이다. 마을을 순회하며 인부들을 실어 나르는 봉고차가 도착하는 시간이다. 영암의 농장까지는 백리 넘는 길이다. 일을 끝내고 다시 그 봉고차를 타고 집에 도착하면 어둠이 짙은 밤이다. 별을 보고 일터로 나가 별을 보고 집에 돌아온다. 그의 남편이 부르는 그녀의 별칭은 ‘새벽반’이다.

기업형 농장인 만큼 사시사철 쉬지 않고 갖가지 작물을 재배한다. 남산댁은 한 달에 보름 이상 일한다. 벌써 6~7년째다. 그녀에게는 매운 중노동도 즐겁다. 노동의 대가로 집안 살림에 보태고 병환에 시달리는 친정아버지에게도 작은 도움을 줄 수 있게 된 터다. 그동안 맏아들은 대학을 나와 취업했고, 졸업을 앞둔 둘째도 일자리가 보장돼 있다.

게다가 농촌 아낙들은 두겹 노동에 시달려야 한다. 고된 농사일에 밥상 차리기, 빨래, 청소 따위 집안일도 대부분 아낙 몫이다. 그나마 세탁기가 있어 다행인가. 농민들의 입성이 예전과 달리 말끔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늘에 감사하는 농민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지난해 양파 풍작으로 값이 폭락해도 누구를 탓하지 않았다. 배추 값이 곤두박질해 그대로 갈아엎을지언정 하늘을 원망한들 무슨 소용인가. 두어 달 전까지 겨우내 추위에 떨던 배추들의 그 앙상한 몰골이 황량한 들판에 가득했다. 그래도 올해 다시 양파를 파종하고 가을엔 김장용 배추를 키울 것이다.

농민들은 젖 달라고 보채거나 우는 데도 서툴다. 그 쪽에는 역시 대기업이나 강력한 조직을 갖춘 이익집단의 힘과 술수가 높다. 그래선지 올해 총선에서도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은 농민을 유혹하는 뾰족한 방책을 내놓지 않았다. 시늉만의, 구름 잡는 방책뿐이었다. 진지한 고뇌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숫자도 적고 힘도 약한 농민에 대한 무관심이 노골적이다. 밀가루에 고무신, 막걸리를 퍼붓던 박정희 시절의 추억을 자아낸다.

시장경제 체제는 농민들의 노동 강도를 한껏 높이고 있다. ‘농한기’는 진즉 사라졌다. ‘돈’의 흐름을 따라 작목이 바뀌고 다양화됐다. 비닐하우스는 겨울철에도 일손을 놀리지 않는다. 그러나 삶은 고단하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노예로 전락한 터다. 값이 오르면 값싼 중국산을 수입해 시장을 메우면 그만이다. 그러나 값이 폭락하면 그 희생은 고스란히 농민의 몫이다.

육신의 고통과 희생을 감내하는 농민, 특히 아낙의 힘이 오늘도 농촌을 지키고 있다. 그 조건 없는 헌신으로 자식들을 대학 보내고 나라의 인재로 키워낸다. 그 헌신은 또한 한국인 고유의 유전자, 고난을 헤쳐 가는 저력의 뿌리이기도 하다.

그 위대한 힘이 위기를 맞고 있다. ‘경쟁력’이라는 잣대에 밀려 농촌과 농업, 농민을 얕잡아 본 지 오래다. 농촌 해체의 그림자 속에는, 함께 사라지고 있는 값진 한국인의 유전인자가 숨어 있다. 한국 아줌마의 강인한 생명력이 그것이다.

농촌의 해체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의 실종을 의미한다. 외국 농산물이 식탁을 꾸리는 비용을 줄여줄 수는 있다. 그러나 농촌 아낙의 조건 없는 헌신, 하늘의 순리를 믿는 어머니의 마음을 어찌 대신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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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러미스 정치학자·오키나와 거주/ 번역 | 손제민 기자

1970년대 초반 일본 학생들의 미국 워싱턴주 핸포드 핵시설 견학을 주선한 바 있다. 견학 시점을 나가사키 원폭투하 기념일(8월9일)에 맞췄다. 이 때문에 견학 안내자는 당혹스러워했다. 자신들이 만든 플루토늄으로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기뻐하는 핸포드 핵시설 노동자들 사진 앞에 섰을 때 안내자의 목소리는 중얼거리듯 작아져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핸포드 핵시설이 얼마나 안전한지 설명하는 대목에서 그는 매우 활기를 띠었다. 그는 플루토늄 폐기물은 깊은 구덩이에 매립되며 누출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모니터된다고 말했다. 내가 질문했다. “플루토늄의 반감기가 2만4000년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누가 그렇게 오랫동안 모니터하게 되지요?” “미국 정부가 하지요.” “인류 역사를 통틀어 2만4000년이나 지속된 정부가 있나요?” 그는 대답하지 않고 경멸하듯 나를 쳐다봤다. 내가 애국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매우 똑똑하고 고도로 훈련된 기술자라도 바보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월성원전 앞바다에서 신규 원전 건설 반대 등을 주장하며 해상시위를 벌이고 있다. I 출처:경향DB

나의 전공인 정치학에서 나온 유일한 과학적 법칙이 있다면 바로 ‘권력은 부패한다’는 것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하지만 절대 권력에 가장 가까운 힘이 원자력이라는 사실을 간파한 정치학자들은 거의 없다. 원자력은 특유의 방식으로 그것을 맹신하는 사람들의 사고를 타락시킨다. 사람들은 원자력이 상식적 판단이 적용되지 않는 아주 높은 곳에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죽음의 방사능을 계속해서 내는 물질을 생산하는 것은 어리석다든지, 그럼으로써 수만년동안 그것을 모니터해야 한다든지 하는 상식적 판단들 말이다.


상식을 가진 나의 할머니는 “사고란 일어나기 마련”이라고 말하곤 했다. ‘사고’는 예기치 못한, 계획하지 않은 그 무언가를 의미한다. 위험한 활동들을 할 때 우리는 위험을 수용한다. 우리는 자동차 사고나 비행기 추락 확률이 매우 낮게 유지되는 한 그리 걱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원자로는 확률이 ‘낮다’는 말로 충분하지 않다. 원자로의 완전 용융이 가져올 결과는 너무도 끔찍해 원자로 건설을 정당화하려면 사고가 전혀 없을 거라는 확신을 줘야 한다. 문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점 뿐만 아니라 핵기술자와 핵무기 추진론자들을 머릿속 그리고 표와 그래프에만 존재하는 ‘환상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점이다. 너무도 상식적이어서 진부하게 들리는 “사고는 일어나기 마련”이라는 말이 적용되지 않는 세계 말이다.

하지만 사고는 일어난다. 후쿠시마 원전을 관리했던 기술자들은 쓰나미가 덮쳐 원자로를 삼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맞다. 그게 바로 ‘사고’의 정확한 의미이다. 상상력을 넘어서는 일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비상 펌프에 연료를 넣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누군가 ‘사고로’ 발전소와 본사 사이의 전화선을 끊으리라는 것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바닷물이라도 끌어와 그 섬세한 기계에 물을 뿜어 적시기 시작했을 때 - 이 조치는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생각해낸 것 같다 - 바닷물의 소금기가 그 모든 계기판과 밸브, 펌프, 스위치 등에 끼칠 영향은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자로를 식히기 위해 투여한 바닷물이 다시 밖으로 흘러나오며 방사능까지 동반해서 나오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다.

원전 노동자들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그들은 인간일 뿐이다. 실수를 범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고장나지 않는 기계도 없다. 간단히 말해 사고 없는 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수십년간 이 얘기를 해왔다. 이제는 사람들이 이런 얘기에 지겨워할 정도가 됐다. 지겹든 그렇지 않든 그게 진실이다.

사람들은 “그러면 원자력에 대한 당신의 대안은 뭐냐”고 묻는다. 사실 나는 답을 알고 있다. 핵발전의 대안은 탈핵이다. 시한폭탄이 깔린 안락한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의 모습을 그려보자. 당신은 “당장 그 의자에서 벗어나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안락의자에 앉아있는 그 사람이 “그러면 대안이 뭐요?”라고 묻는다면? 물론, 대안은 그 의자에 앉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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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 변호사

나는 지난 주말에 불법을 저지르고 왔다. 나를 고발하라.

내가 저지른 불법은 밭에 감자를 심은 것이다. 땅콩도 심고, 호박도 심었다. 평화로운 강가의 밭에서 따스한 햇볕을 쬐며 일을 했다. 내 마음도 평화로웠고, 주위의 사람들도 평화로웠다. 자연은 편안하게 우리를 감싸주었다. 그러나 이런 행위가 불법이란다. 팔당 두물머리 이야기다.

현 정부는 4대강을 살린다면서 4대강을 파괴해 왔다. 거센 반대운동에도 불구하고 4대강 공사는 거의 마무리되었다. 그렇지만 마지막까지 저항하며 남아 있는 곳이 있다. 바로 팔당 두물머리이다. 정부는 수도권의 대표적인 유기농업 단지였던 이 지역에 자전거도로를 낸다는 어처구니없는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나 유기농업을 하던 두물머리 농민들이 이에 저항해 왔다. 단식도 하고 소송도 하고 집회도 했다. 시민사회단체뿐만 아니라 종교계까지 반대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정부와 경기도, 양평군은 아랑곳없이 밀어붙였다.

지금은 떠날 사람들은 떠나고 4가구가 남았다. 그런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남아있는 농민들을 몰아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경작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고, 농사를 짓는 것에 대해 형사고발을 하고 있다.

 

경기 양평군 팔당 두물머리 농민들이 수확한 감자를 보여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 I 출처:경향DB

농사를 지어오던 땅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불법이 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봄은 왔는데 씨앗을 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런 상황에서 선택한 방법이 ‘불법경작 운동’이다. 일종의 시민불복종 운동인 셈이다.

지금은 시민불복종 운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사실 이번 총선에 많은 기대가 있었다.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바로잡고 두물머리 농지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국회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다수당을 차지했고, 두물머리 공사를 국회를 통해 중단시키기는 어렵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인류 역사를 보면, 잘못된 법과 정책에 대해 시민의 상식으로 맞서는 마지막 수단은 시민불복종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간디가 했던 소금행진이다. 1930년 영국은 식민지였던 인도에서의 소금생산을 통제하고 높은 세금을 부과했다. 여기에 저항하기 위해 간디는 24일을 걸어 바닷가로 갔다. 간디의 이 행동에는 초기에 70명 정도가 동참했지만, 행진이 진행되는 동안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났다. 바닷가에 도착한 간디는 주전자에 바닷물을 넣고 끓여 소금을 만들었다. 이것이 간디가 한 유일한 행동이었지만, 간디는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그러나 간디의 이 행동에는 수천명이 참여했고, 영국정부의 부당한 정책은 세계에 알려졌다. 대표적인 시민불복종의 사례이다.

물론 당시의 인도 상황과 지금의 우리 상황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권력이 부당하게 사람들의 삶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보면, 본질은 똑같다. 인도의 바닷물을 사용해서 인도사람들이 소금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것과 성실하게 유기농업을 가꿔 온 농민들에게 농사를 짓지 못하게 하는 것이 뭐가 다른가?

그래서 두물머리 농민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두물머리 밭전(田)위원회’를 만들어서 불법경작 운동을 시작했다. 농사를 짓는 것이 죄라면 나부터 고발하라는 운동이다. 고발하기 좋게 증거도 남겨 놓고 있다. 불법경작에 참여한 기념으로 컨테이너에 이름을 써 놓고 있는 것이다. 고발하고 기소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모르고 한 일은 아니다. 나는 명백하게 불법인 것을 알고 했다. 고의는 확실하다.

그러나 나는 두물머리에서 농사짓는 것을 불법으로 몰아붙인 권력에 굴종할 생각은 없다. 4대강 사업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수도 없다. 두물머리 농민들을 쫓아내는 장면을 두고 볼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권력에 불복종한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불복종에 참여하기를 권한다. 힘없는 농민들이 농사짓는 것을 처벌하는 게 법이라면, 간디의 말처럼 “우리는 이 법의 준수를 정중하게 거부할 것이라고 엄숙하게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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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장근 aT농식품유통교육원 원장

농식품 분야는 최근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연평균 3.3%씩 꾸준한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는 세계 식품시장은 2020년에는 6조4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적 식품기업인 네슬레는 지난 매출액이 1120억달러, 우리 돈으로 약 126조5000억원에 이른다. 이렇다보니 세계 각국이 농식품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중요한 정책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국내 식품산업 역시 2001년 70조원 규모이던 것이 2009년에는 131조원으로 2배 가까이 성장했다. 이러한 상승세를 바탕으로 우리나라도 농식품 산업을 2017년까지 245조원 규모로 성장시키기 위해 식품산업진흥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적극적인 지원정책을 펼치고 있다.

농식품 산업도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농수산물 유통, 수출, 마케팅, 가공, 외식 등 농식품 분야별 전문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교육시스템이 필요하다.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상인들이 낙찰받은 배추를 옮겨 싣고 있다. I 출처:경향DB


첫째, 교육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현장교육 위주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론 주입식 교육은 실질적인 교육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둘째, 정보화 시대에 언제 어디서나 학습이 가능한 상시 학습체계(온라인 교육)를 구축해야 한다. 셋째, 농식품 유통교육을 규모화해야 한다. 국내 농식품 산업 종사자는 약 180만명에 이른다. 이들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위해서는 현재의 농식품유통교육원을 유통대학으로 규모화·전문화해 교육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켜야 한다. 넷째, 교육 인프라가 소프트웨어 못지않게 중요하다. 직장인이 현업을 하면서 수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단기집중 교육을 위한 숙박시설 등이 매우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역점을 두어 추진해야 할 것이 전문가 양성이다. 세계시장과 경쟁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aT농식품유통교육원은 식품인력교육운영 총괄기관으로서 2017년까지 식품전문인력 10만명을 양성할 계획이다. 4월부터는 도매시장 종사자, 식품산업 종사자 등을 위한 사이버교육도 첫선을 보였다.

미국, EU 등 주요 해외시장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확대되면서 우리 농식품 산업도 많은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보화시대에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자본이 아니라 지식이다.

자본은 양적 팽창을 낳지만 교육은 기회를 창조한다. 우리나라 농식품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농식품 교육에 보다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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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렬 | 방송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30년쯤 전에 독일에 유학갔을 때 나는 생수를 사서 먹을 돈이 없어 수돗물을 마셨다. 그때 선배 유학생들은 독일의 물에는 석회가 많기 때문에 반드시 끓여 먹어야 한다고 권했다. 한국의 물이 훨씬 좋다는 말을 곁들이면서. 당시에 나는 그 말을 믿었다. 물을 끓이거나 설거지를 하고 나면 주전자나 그릇에 부옇게 석회가 끼는 것이 찜찜해서 물을 팔팔 끓여 석회를 제거한 후 차를 만들어 마셨다. 수돗물을 받아서 그대로 마신 적은 거의 없다. 유학가기 전 여름에 목이 마를 때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차가운 물을 먹던 버릇도 완전히 없어졌다.


이제는 정반대가 되었다. 독일에 가면 수돗물을 그냥 마신다. 차를 끓이는 게 번거롭기도 하지만, 염소가 들어있지 않은 수돗물 맛이 꽤 괜찮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속에 석회성분이 들어있지만 그게 몸속에 쌓여서 말썽을 피우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항상 생수를 마신다. 차도 생수로 만든다. 음식을 만들 때만 수돗물을 끓여서 사용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수돗물은 소독이 아주 잘되어 그냥 마셔도 탈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그냥 마시지는 않는다. 이유는 수돗물 속의 염소가 물맛을 버려놓기 때문이다. 30년 전에 비해 물에 대한 감각은 더 예민해졌는지 정수기를 통과한 물이라도 염소맛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입과 코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난 3월 말 서울시에서는 아리수 음용행사를 열었다. 시장이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아리수를 마시는 장면도 보도되었다. 수돗물을 마신 후 박원순 시장은 아리수의 질이 세계 최고 수준이고 맛도 좋은데, 시민들이 마시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아리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때문일 것이라는 이유도 제시했다.

 

지하철 서울역사에 설치된 '아리수 음료대'. ㅣ출처:경향DB

서울시민들이 아리수를 마시지 않는 이유가 막연한 불안감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사실은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아리수에는 생수와 달리 염소가 들어있고, 생수에 비해 맛이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서울시에서는 이런 아리수를 병에 담아 판매할 수 있을 정도로 질을 높이기 위해 막대한 세금을 투입했다. 결과는 지극히 초라하다. 시민의 1% 정도만 아리수를 그냥 마실 뿐이다.

서울시에서 시민들의 막연한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홍보활동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아리수를 직접 마시는 시민이 수년 안에 크게 늘어날 것 같지는 않다.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에 염소가 들어있는 한 그 맛은 좋지 않을 것이고, 그동안 미각이 예민해진 대다수 시민은 생수를 선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시에서는 아리수를 판매하기 위해 투입한 돈이 아까운지 병에 넣은 아리수를 해외 판매나 원조용으로 사용하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한다. 5000억원 가까운 세금을 아리수를 위해 썼으니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막대한 돈을 투입한 이유는 그걸 위한 것이 아니었다. 아리수를 서울시민이 아무 고민 없이 마시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전임 시장 때 아리수를 페트병에 넣어서 여러 행사 때 나누어준 이유도 판매 홍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생수나 다를 바 없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시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해진다. 페트병 아리수 판매계획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수돗물의 맛을 높이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이는 것이다. 관건은 수돗물 속의 염소를 없애는 데 있다. 수돗물이 아무리 깨끗하다고 해도 염소가 들어있으면 시민들은 외면한다. 물론 수돗물에 염소를 넣지 않으면 오염이 발생할 수 있다. 수도관을 통과하는 동안 병원균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걸 막는 게 앞으로 서울시에서 해야 할 일이다. 낡은 수도관과 물탱크를 모두 교체하고 세심하게 관리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다행히 서울시에서는 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려는 것 같다. 하지만 염소 소독을 중단하지 않으면 아리수 음용률은 올라가지 않을 것이고, 그 노력도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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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점석 | 비교문학자

지난 주말에 강아지 한 마리를 들여와 키우고 있다. 작고 앙증맞아 노리개 삼아 안고 뒹굴 수 있는 애완견이 아니다. 어미는 진돗개 잡종이고 아비는 사냥감을 잘 회수한다는 리트리버다. 덩치로 보나 넘치는 기운을 해소하려는 활력으로 보나 아파트에서 키운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낼 녀석이다. 또한 평소에 공동주택에서 들리는 과도한 개 짖음이 이웃을 곤혹스럽게 한다는 것을 경험하기에 많이 망설였지만, 텃밭에서 키울 요량으로 데리고 왔다. 종의 경계를 넘어 사람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는 요즘의 개를, 주마다 두세 번 가는 정성으로 키우겠다는 심산이 통할지 문제다.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굳이 그 개를 키우려는 까닭이 있다. 어미는 ‘삼발이’라는 이름으로 짐작하겠지만 사고로 앞발을 하나 잃어 다리가 셋뿐이다. 만삭이 되어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출산을 준비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다. 더하여 2월 기후로 가장 추웠다는 지난 입춘 무렵에 새끼들을 낳고, 혹시 그 어린것들이 얼어 죽을까 염려해 사흘 동안 식음까지 전폐하며 꼼짝 않고 새끼들을 품었다는 주인의 말을 듣고 감동으로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어미의 강인한 생명력과, 서울의 아파트에서 연천의 변방으로 밀려나 한동안 우울해하다가 ‘삼발이’를 만나 활기를 되찾은 아비 리트리버의 귀공자다운 품격을 물려받았을 강아지와 인연을 맺고 싶었다.


그 강아지와의 만남은 더 큰 인연의 곁가지일 뿐이다. 사실인즉슨 사경을 헤맨 ‘삼발이’를 거두어 윤기가 자르르하게 키워 어엿한 어미노릇을 하게 한 주인을 십수년 동안 만나며 신뢰하게 되어 그분 말만을 믿고 키우게 된 것이다.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 흐르는 옛 고구려의 당포성이 있는 지점에서, 그분은 순댓국집을 운영하며 농사도 짓고 학업도 병행한다.

아침에 준비한 그날 분량이 다 팔리면 즉시 문을 닫고 농부로 변신해 논밭으로 향하는 것이 그분의 일상이다. 도축장에서 직접 고른 재료를 사용하고 직접 기른 무·배추로 김치를 담그기에, 그분의 가게에서는 속아서 찜찜한 것을 먹을 일이 없다. 그런 사람이기에 지난번 구제역이 창궐하던 시기엔 석 달 동안이나 문을 닫고 장기휴업을 해도 손님들의 이해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두세 겹으로 아름답게 얽힌 인연의 소산인 강아지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 아직까지 나는 강아지가 풍기는 비릿한 냄새에 익숙하지 못하고, 수시로 제 몸을 발로 긁어대는 걸로 보아 털에 벼룩이 있을 것 같아 선뜻 껴안지도 못한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강아지와 놀 때는 장갑을 끼는 것이다.

울산 태화시장에서 마를 고르고 있는 박근혜 선대위원장 I 출처:경향DB

 

참으로 한심한 요즘의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가 손에 붕대를 감고 건성으로 악수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이 있어 야릇한 동병상련을 느꼈다. 자기의 이름을 걸고 지역구에서 후회 없는 한판을 벌여야 할 건장한 남성 후보자들이 박근혜라는 얼굴을 내세우고 자기들은 강아지마냥 졸졸 따라다니기만 하니 연약한 여자의 손이 남아나지 않는 것 아닌가? 박근혜도 그렇다. 한번 도와주기로 작심했으면 붕대를 풀고 손이 으스러지고 팔이 찌릿찌릿하도록 진정으로 악수하고 시장 바닥의 사람들을 끌어들여야 한순간이나마 그들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대권가도를 탄탄히 다지는 전초작업이기도 할 테니까.

박근혜와 그녀를 따르는 무리의 가장행렬을 보면서 개운치 않았던 까닭은, 손에 두른 붕대가 상징하는 막의 의미 때문이다. 장갑은 단순히 자신의 손만을 보호하지 않고 타인의 땀과 체취를 차단하는 역할도 한다. 상대의 실체를 오롯이 인정할 수 없다는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자기가 아쉬워 손을 내밀 때도 그렇게 오만한데 최고의 권력을 쟁취하면 어떨까. 그녀의 악수 퍼포먼스에서 박정희의 그림자를 읽는다. 박근혜의 손에 감은 붕대의 불통이 이명박 대통령의 철판을 깐 불통을 닮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투표를 통한 빨간 동그라미의 혁명을 펼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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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재 | 시인

 
큰소리를 쳤지만 내심 걱정이었다. 담당자는 강좌 제목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나를 위한 글쓰기’라니, 흡인력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밀고 나가기로 했다. 시 창작이라면 몰라도, 나는 일반인을 위한 글쓰기 전문가가 아니었다. 특별한 목표를 성취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었다. 시민들을 대면해본다는 데 의미를 두었다. 10명 미만이면 강좌를 개설하지 않기로 했다.

23명이 모였다. 일단 안심이었다. 자기소개는 시키지 않았다. 서로 글을 접하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글쓰기의 필요성, 목표, 방법 등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한 다음, 엄포를 놓았다. “8주 뒤, 여기 앉은 분들 중 절반이 남아 있으면 기적입니다.” 나는 태반이 중도에 탈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누구에게도 꺼내지 않았던 속내 이야기를 끄집어내야 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자아존중감을 회복하고, 관계의 재발견을 통해 새로운 ‘나’로 거듭나기. 그리하여 지금보다 나은 삶과 사회 추구하기. 이것이 ‘나를 위한 글쓰기’의 전략이자 목표다. 3~4주가 지나면서 ‘저자’들의 성장 환경, 직업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의사, 은퇴한 교수, 교사, 출판편집자, 공무원, 정보기술(IT) 업계 직장인, 소설가 지망생, 대학생, 드라마작가. 생각보다 열의가 대단했다. 17명이 8주 수업을 마치고 수료증을 받았다. 나로서는 기적이었다.

초반부에는 자존감을 되찾기 위해 ‘생애 최고의 순간’을 주제로 글을 쓴다. 그런데 대부분이 생애 최고의 순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당혹스러워한다. 연령과 직업을 가리지 않고 털어놓는 말이 또 있다. “지금까지 나를 위해 글을 써 본 적이 없네요.” 누가 칭찬을 하면 선뜻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 다른 사람의 글은 정확하게 분석하면서도 자기 글은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는 것도 매번 확인하는 공통점이다.

심리학을 대중적으로 풀어쓴 책을 읽다 보면, 한국인은 자존감이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을 자주 접한다. 낮은 자존감은 승자독식사회, 성과중심사회가 만들어낸 ‘한국병’이다. 자기계발(서) 붐도 자존감을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자존감을 회복하지 않는 한 글쓰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본질적으로 삶쓰기다. 자신의 느낌과 생각, 경험과 꿈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글을 쓰기가 어렵고, 발표는 더더욱 어렵다.

경향신문DB

 

자존감을 되찾는 방법 중 하나가 ‘나’를 주어로 한 글쓰기다. 잊지 못할 장소, 잊을 수 없는 음식 등을 주제로 글을 쓰면서 수강생들은 자신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짧은 자서전을 쓰면서 자신감을 키워나간다. 또 다른 수확이 있다. 서로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글쓰기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나는 이야기를 공유하는 공동체만큼 아름다운 공동체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 1년여 동안, 글쓰기 강의실에서 새삼 확인한 것이다(나는 이 강좌에서 얻은 경험의 일부를 대학 교양 글쓰기 교재에 접목시켰다).

사회적 갈등과 분열이 끊이지 않는 근본 이유 중 하나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강의 때마다 늘 강조하는 경구가 있다. ‘생각하지 않고서도 말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하지 않고서는 글을 쓸 수가 없다.’ 말만 무성한 사회, 말로만 이루어지는 사회는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선거철을 앞두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나의 희망사항은 하나다. 이 놀라운 뉴미디어가 ‘말하기’가 아니고 부디 ‘글쓰기’의 차원에서 변화를 일으키길 바란다. 감동적인 이야기, 멋진 이야기를 탄생시키는 집단지성의 힘을 상상하는 것이다.

“우리, 글쓰는 사회 만들기 시민행동을 출범시키면 어떨까요.” 강의가 후반부로 접어들 때면 내가 농반진반으로 던지는 제안이다. 그러면 ‘이것이 나를 분노하게 한다’를 글쓰기 과제로 받아든 수강생 중 몇몇이 눈을 반짝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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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렬 | 방송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내가 굴업도라는 섬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1994년 문민정부의 핵폐기장 건설계획 발표를 통해서였다. 안면도에 핵폐기장을 건설하려다 주민들의 격렬한 저항을 겪은 정부는 몇 년 후, 무인도나 다름없는 굴업도를 후보지로 선정하였다. 이유는 그 섬이 핵폐기물 처분에 가장 적합한 곳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저항이 없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모섬인 덕적도 주민들이 일제히 반대운동에 나섰고, 덕적도가 속해 있는 인천에서도 호응이 크게 일어났다. 싸움은 1년 이상 지속되었고, 김영삼 정부는 결국 활성단층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구실로 굴업도 핵폐기장 건설 계획을 포기했다.

굴업도 전경 (경향신문DB)


그토록 어렵게 지켜낸 이 섬의 대부분을 몇 년 전부터 어떤 재벌이 사들여 골프장과 관광위락단지 조성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았기에 때묻지 않은 섬의 자연을 상품으로 가공해 팔면 큰돈을 벌 것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도 반대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인천에서 시민들이 모였고, 전국의 문화예술인들도 나섰다. 그러나 덕적도 주민들 중 상당수는 핵폐기장 건설발표 때와 달리 위락단지 건설을 찬성한다. 뭔가 경제적 이득이 돌아올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국가 권력의 강압적 계획에는 저항했지만, 자본과는 한편이 된 셈이다.

최열 환경재단 대표, 이수용 우이령보존회 전 회장, 이승기 한국녹색회 정책실장 등 환경탐사팀이 개머리억새 군락지 능선을 오르고 있다. (경향신문DB)


이 와중에 한국녹색회 이승기 정책실장이 일년에 며칠밖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산호초를 찍으려다 바다에 빠져 숨졌다. 그와 나는 수십년 전부터 잘 아는 사이다.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겹치고, 신앙도 같기에 가깝게 지냈다. 그러나 그는 나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나는 외국에 나가 공부를 하고 대학에 자리를 얻었지만, 그는 외교학 박사과정을 마치고도 도무지 그런 경력을 쌓으려 하지 않았다. 환경운동 경력이 정치권 진입의 발판이 되는 세상이지만 그는 그런 것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때묻지 않은 자연을 가까이 하고 지키는 일이 그의 첫번째 관심사였다. 틈틈이 글을 쓰는 것은 그의 취미였다. 이호철 선생에게 소설을 배워 몇 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했지만, 문인 행세를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가 2003년과 2004년에 녹색평론에 실은 글에는 자연을 향한 그의 순수하고 부드러운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깊은 산의 중턱을 깎아내고 도로를 내는 사업을 비판하면서도 그곳의 바위와 이슬이란 존재의 의미에 대해 노래함으로써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그의 글이었다. 

그런 사람이기에 그는 강원도의 산이나 제주도의 들판에 풍력발전기를 세우는 일도 적극 반대했다. 평온했던 자연 속에 갑자기 높은 기둥과 거대한 날개가 들어서서 소리내며 돌아가는 것을 상상하는 게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원자력과 화석연료를 뛰어넘는 에너지전환이 시급하다고 보는 나와는 이로 인해 의견 충돌도 있었지만, 자연을 대하는 눈이 나보다 순수한 그로서는 아주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를 마지막 본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그때 그는 굴업도 이야기만 했다. 섬을 지키기 위해 여러 궁리를 하는 것 같았다. 아마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굴업도를 지키겠다고 결심했던 것 같다. 그러던 그가 굴업도에서 숨졌다. 자본 권력에 맞서서 싸우다가 죽음을 맞은 셈이다.

그 깨끗한 굴업도에서 골프장과 위락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중장비들이 산봉우리와 해안의 커다란 바위들을 잘라내고 파손하는 광경을 상상하면서 그의 심정이라면 어땠을지 생각해본다. 바위와 이슬을 친구처럼 생각했던 그의 감수성이라면 견딜 수 없었겠지. 그래도 그는 크게 성내는 대신 산호초에 매료되어 굴업도에 그렇게 아름다운 존재가 있음을 알리려 했는데, 많은 사람이 자신과 같이 산호가 거기 있음에 감동하게 되면 골프 정도는 얼마든지 무시하고 멀리하고 내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 그러면 자연히 골프장 같은 것도 굴업도에 들어서지 못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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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진 녹색연합 녹색에너지 디자인 팀장 

지난달 요코하마에서 열린 탈원전세계대회는 일본의 반핵운동이 환경단체를 넘어 대중운동으로 확산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등록을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은 인기가수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고, 생활협동조합, 학생조직, 아이를 둔 엄마들, 아이돌 스타 등 1만여명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 유럽의회 의원, 요르단 국회의원, 호주 녹색당 의원과 세계 원전전문가 등 국외 참가자들의 면면도 화려했다. 

지속가능에너지정책연구소의 이이다 데쓰나리는 개막 연설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통해 ‘벌거벗은 임금’ 원자력 마피아(원자력 관련 이익집단)의 실체와 마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 후 후쿠시마 지역민들은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고 있고, 일본 전역에 퍼진 방사성물질은 땅과 강, 바다, 먹을거리를 오염시켰다. 그러나 정치인과 핵산업계, 전력기업, 어용학자, 관료, 미디어로 구성된 원자력 마피아들은 여전히 ‘안전’하니 ‘안심’하라고 떠든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원전이 없으면 전력공급이 끊길 것 같이 위협했지만 54개 원전 중 51개가 멈춰도 일본은 잘만 돌아간다. 원자력 마피아들의 거짓말이 드러난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탈원전 정치가 확산되고 있다. 레베카 함즈 유럽의회 위원은 후쿠시마 사고가 유럽의 탈원전 사회를 앞당겼다고 전한다. 독일에서는 녹색당이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으면서 2022년 탈원전 선언을 이끌어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프랑스도 사회당과 녹색당이 연합해 현재 75%인 원전 비중을 50%로 줄일 것을 발표했다. 

일본 후쿠시마 어린이들이 탈원전 집회에 참가한 뒤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l 출처 : 경향DB


대회에서는 무엇보다 에너지정책 전환을 촉구하는 지역공동체의 힘이 돋보였다. 일본 지자체장들은 스트레스 테스트가 끝나도 원전 재가동을 허가하지 않을 것이고, 탈원전 지자체장들의 네트워크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우리나라에도 ‘벌거벗은 임금’이 있다. 원자력산업계 사외이사로 일했던 학자가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지식경제부 차관은 ‘월성1호기 수명연장’을 주문하며 대놓고 원자력을 옹호하고 있다. 원자력산업계 이해당사자들이 에너지정책을 휘어잡고, 원자력발전 확대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탈원전세계대회 폐막식에 에너지소비를 줄여 원전1기를 없애겠다는 박원순 시장의 영상메시지가 전달됐다. 반응이 뜨거웠다. 일본 그린액션 대표 아이린 스미스는 “도쿄도지사가 해야 할 일을 서울시장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 탈핵에너지교수모임, 반핵의사회, 탈핵법률가모임, 녹색당 등 우리 사회에 원자력에너지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단체들이 속속 출범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후쿠시마 같은 재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벌거벗은 임금’ 원자력 마피아의 실체를 밝히는 집단지성의 힘, 시민의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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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대권 | ‘야생초 편지’ 저자 

학창 시절 함께 그림을 그렸던 친구로부터 서울 북촌에 있는 아트선재센터에서 도자기기획전을 열고 있으니 와보라는 연락이 왔다. 친구는 지난해에 경기도 이천에서 열리는 국제도자비엔날레의 총감독을 맡았으나 출품작의 예술적 의미보다 정치적 전시효과에 더 신경을 쓰는 주최 측과 갈등을 빚다가 도중에 사퇴한 바 있다. 이 전시회는 말하자면 그때에 자신이 직접 섭외한 작가들을 따로 모아 뒤늦게 여는 것인 셈이다. 처음엔 그렇고 그런 아방가르드 기획전이려니 하고 들어섰다가 예상치 않은 충격과 감동을 먹고 평소 함부로 불렀던 친구를 새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지난해에 친구의 의도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공무원들 가운데 이 칼럼을 읽는 이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전시장엘 꼭 가보시길 바란다. 

사실 이 전시회는 도자기라 하면 대갓집 안방에 고이 모셔있는 값비싼 백자항아리나 각종 다기류만을 생각하는 일반인들이 보기에 다소 난해할 수도 있다. 전통적 의미의 도자기라곤 전시장 초입에 늘어놓은 몇 점의 백자항아리밖에 없고 나머지는 모두 난해한 현대미술처럼 보인다. 그러나 작가의 창작 동기나 기획자의 설명을 들어보면 도자기라는 물성의 다양함에 놀라게 되고, 또한 허를 찌르는 작가의 상상력을 찬탄하게 된다. 가령 맹인들이 손으로 더듬어가며 만들어낸 코끼리상이나 비누로 만든 도자기는 그야말로 고정관념을 벗어나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작가의 코너에 가니 도자기는 없고 흰 벽에 동영상만이 무한 반복되고 있었다. 그는 새하얀 도자타일로 뒤덮인 자기집 욕실을 산산이 부숴 그 조각들을 세숫대야에 가지런히 담아놓았다. 동영상으로만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모더니즘의 비인간성과 그 해체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누군가가 구워놓은 맛있는 빵이 있기에 아무 생각 없이 집어 먹었는데 그것 또한 작품의 일부였다는 것을 알고 몹시 놀랐다. 제1차 세계대전 때 폭격 연습을 위해 만든 세라믹폭탄을 이용해 그 안에 밀가루 반죽을 넣고 빵을 구워낸 것이다. 작가는 빵 말고도 그 안에 각종 씨앗을 넣어 공중에서 투하하는 작업을 통해 폭력의 도구가 살림과 평화의 도구로 쓰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16명의 작가와 5개의 프로젝트 그룹이 참여한 이 전시회에서 나의 시선을 가장 끈 작품은 경기도 팔당에 있는 한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만들어 전시한 20여개의 두상이다. 그 교장선생님은 해마다 졸업하는 학생들의 두상을 직접 만들어 졸업식 때 나누어 준다고 한다. 과연 두상의 뒷면에는 학생들의 이름과 장래 희망이 새겨져 있었다. 아이들의 올망졸망한 눈초리와 제각각인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작가의 행복어린 제작과정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성지중고 개화캠퍼스에서 열린 ‘제자사랑 세족식’ l 출처 : 경향DB


작품을 보는 순간 나는 학교폭력과 집단따돌림(왕따)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교육현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초등학교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문제는 선생님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벌어진다. 적어도 두상을 만들려면 교장선생님이 학생들을 일일이 만나 이리저리 살펴보고 얘기를 나누어야 한다. 아무리 창작열이 넘친다 해도 제자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없으면 가능한 일이 아니다. 

깊은 감동에 젖어 미술관을 나서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이 나라의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재능을 이용해 우리 아이들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선물을 하나씩 해준다면 아마 그 기억 때문에라도 커가면서 잘못된 길로 빠질 확률이 훨씬 낮아지지 않을까 하는. 선물은 조각처럼 전문적인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어도 좋다. 음미할 만한 명구를 손수 적어 작은 액자에 담아 주어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아이뿐 아니라 선생님 자신에게도 큰 선물이 될 것이다. 주는 것이든 받는 것이든 사랑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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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텃밭이 진짜 강의실이다
이문재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창밖 옥상을 볼 때마다 맥박이 빨라졌다. 지난해 여름 방수공사를 마치고 초록색 칠을 해놓은 뒤로 부쩍 심해졌다. 문전옥상을 문전옥답으로 만들어야지. 4층 복도에서 내다보이는 3층 옥상은 어릴 적 내 고향집 텃밭보다 두 배는 컸다. 1층에 실내 농구코트가 있으니, 80평은 족히 넘을 것이다. 저기에 흙을 덮든지 화분을 갖다놓으면 그대로 밭이 될 텐데…. 옥상을 마주할 때마다 입안에 단침이 고였다.

 

경향신문 DB


녹지 비율이 국내에서 가장 높은 캠퍼스. 설립자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에도 정성을 쏟았다고 한다. 그 사이 새 건물이 들어서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60년 넘은 소나무가 그대로 서 있다. 교시탑의 목련도 30년 전 그대로였고, 내가 시를 쓰던 본관 뒤 연못과 숲도 여전했다. 그린, 에코 캠퍼스라고 명명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3년 전 모교로 올 때, 물오르는 신록을 보면서 반갑기 그지없었지만, 안타깝기도 했다. 텃밭이 없었다. 

도시농업, 도시경작이란 표현이 낯설지 않다. 멀리 쿠바와 북미, 북유럽 사례도 자주 소개된다. 국내에서도 도시농사꾼이 등장했고, 대안학교와 의료 분야에서까지 텃밭 가꾸기를 활용한다. 도로와 빌딩 틈바구니에서 땅을 일구다 보면 예상 밖의 수확을 얻는다. 믿고 먹을 수 있는 채소와 과일을 거두는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도시 텃밭은 장소다. 익명으로 존재하던 도시인들이 텃밭을 가꾸면서 서로 이름을 부른다. 텃밭에서 형성되는 인간과 자연(생명) 사이의 관계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로 번진다. 텃밭이 공동체를 위한 장소로 거듭나는 것이다.

경향신문 DB


대학은 오래된 장소다. 유례가 없는 압축 발전을 거듭해온 한국사회에서 대학이 간직하고 있는 ‘장소성(場所性)’은 더욱 각별하다. 서울만 해도 대학을 제외하면 오래된 서사를 간직하고 있는 랜드마크가 거의 없다. 온통 새로 지은 건물, 새로 뚫린 도로다. 하지만 대학이라고 해서 장소성이 제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은 학생들이 온전한 개인,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하는 총체적 장소가 아니다. 입시지옥을 통과해온 청춘들에게 요즘의 대학은 ‘불안한 미래’로 가는 열차를 기다리는 대합실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가 청춘들에게 ‘안전한 미래’를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초록색 페인트 칠을 해놓은 창밖 옥상부터 땅으로 바꿀 생각이다. 우선은 화분 몇 개에 대여섯명 규모로 출발할 작정이다. 고추 모종을 심으면서 지구온난화를 들먹거리지는 않을 것이다. 고구마를 캐면서 에너지와 식량 문제를 환기시키지도 않을 것이다. 오이를 가꾸는 학생이 하늘을 보며 ‘비가 오셔야 할 텐데’라고 중얼거리게 된다면, 도시는 농촌이 없으면 단 하루도 지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저절로 깨달을 것이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엄연한 진리를 스스로 각인할 것이다. 

대학 건물 옥상과 운동장 스탠드를 비롯해 교정 곳곳의 공터를 땅으로 바꾼다면,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잃어버린, 아니 빼앗긴 감성을 되찾을 것이다. 감성은 외부를 느끼고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공감, 연민, 나눔, 연대가 다 감성에서 비롯된다. 감성이 죽는 순간 ‘나’는 세계와 두절된다.
정보와 지식만을 편식해온 청년들이, 경제논리에 세뇌당한 학생들이 흙을 뚫고 솟아오르는 떡잎을 보면서, 아침이슬을 머금은 상춧잎을 따면서, 감성과 지성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온전한 개인으로 거듭날 것이다. 타자를 인정하고, 타자의 고통을 이해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개인으로 재탄생할 것이다. 대학 텃밭은 미성년이 성년으로 거듭나는 새로운 강의실이자, 다양하고도 건강한 관계가 형성되는 열린 캠퍼스다. 

장미꽃이 아름답지만 감자꽃 또한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상상한다. 대학마다 텃밭 강좌가 생겨나고, 청춘들이 도시농사꾼들과 어우러지는 날을. 그리하여 주말마다 대학 구내에 장터가 서고, 절기마다 도시텃밭 곳곳에서 동네잔치가 열리는 그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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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점석 | 비교문학자 

소한에서 대한으로 넘어가는 길목이다. 설을 쇠면 엄벙덤벙하는 사이에 입춘을 맞이할 거고, 이후엔 선량을 꿈꾸는 정치지망생들이 개구리보다 먼저 깨어나 왁자지껄 한바탕 한반도를 달굴 것이다. 지난해 이맘때와는 확연히 다른 날씨다. 얼추 삼한사온의 겨울철 냉온주기를 유지하고 있다. 북향의 그림자에 덮인 곳에서나 잔설을 볼 뿐, 눈발도 그리 흔치 않다. 예년의 동장군 위세에 비할 바 없이 다감한 이 겨울에 나는 철 이른 봄볕을 갈망한다.
 
추워서 그런 게 아니다. 언 땅을 녹이고 흙에 스민 생기와 햇볕이 피운 온기를 버무려 새싹을 틔워내는 대지의 활력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지난가을 느지막이 나는 이제껏 방치하다시피 한 텃밭에 중장비를 불러들여 ‘공사’를 벌였다. 비스듬한 밭둑에 직선의 콘크리트 옹벽을 쳐서 가시호박 넝쿨에 버려진 땅을 되찾았다. 해가 중천에 오르면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들을 동쪽으로 옮겨 작물의 생장에도 도움을 주는 작업이었다. 중장비의 위력을 실감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대략 20년을 자라 거목이 된 나무들을 재배치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당장 봄이 되면 겨우내 잠만 자고 있지는 않았음을 보여줄 고로쇠나무와 산수유나무는 뒤쪽으로, 내 키의 다섯배도 넘게 자란 목련은 전지하여 거의 몸통인 채로 동쪽으로 옮겼다. 어서 봄이 되어 이 녀석들이 훌훌 털고 일어나 새싹을 뿜어내는 걸 확인하고 싶다.

고백하건대 경칩 무렵이면 고로쇠나무 몸통에 빨대를 꽂아 받은 수액으로 우리 가족은 향연을 벌이곤 했다. 하룻밤을 새워 이틀 동안 한 나무에서 한 되쯤을 받아 모은 한 말 정도를 신의 음료인 넥타르 마시듯 한다는 게 처음엔 나무에게 미안하고 가소롭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가지끼리 부딪히거나 까치들이 부러뜨린 가지에서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수액을 까치들과 초파리 그리고 개미들이 포식하는 걸 보면서, 나무는 내가 심었는데 엉뚱한 녀석들이 단물을 즐긴다는 생각도 했다. 무엇보다도 고로쇠 수액을 빨아먹는다는 죄의식을 떨칠 수 있었던 까닭은, 한 해가 지나면 뚫은 흔적이 말끔히 지워진다는 사실이었다.
 

경기 남양주시 수동면 서리산 기슭에서 고로쇠마을 주민들이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고 있다. l 출처 : 경향DB


올 봄에는 고로쇠 수액을 받아먹지 않을 것이다. 산수유나무들이 시들한 꽃들을 피우고 조금은 기력이 부치더라도 그러려니 할 것이다. 꽃망울이 맺은 잔가지들을 잘라내고 몸통만을 이식한 목련이 올 봄엔 꽃을 피워내지 못할 것은 물론이려니와 생존 자체도 의심스럽다. 오로지 바라는 바는, 숲에 대한 안목이 없었던 내가 무턱대고 심어 서로의 생장을 방해했던 나무들이 이젠 옮겨온 땅에서 힘차게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속에 그린 숲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 드디어 사고의 전환이 이룬 일상의 혁명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또한 새 터전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의 생존을 확인할 즈음 4월의 총선에서, 즐겁게 참여한 조직된 시민의 힘이 수구세력의 역주행을 막고 갑남을녀의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드는, 다음과 같은 ‘제대로 된 혁명’의 완수를 확인하고 싶다. 

‘혁명을 하려면 웃고 즐기며 하라

소름끼치도록 심각하게는 하지 마라 

너무 진지하게도 하지 마라 

그저 재미로 하라 

사람들을 미워하기 때문에는 혁명에 가담하지 마라 

그저 원수들의 눈에 침이라도 한번 뱉기 위해서 하라


돈을 좇는 혁명은 하지 말고 

돈을 깡그리 비웃는 혁명을 하라 

획일을 추구하는 혁명은 하지 마라 

혁명은 우리의 산술적 평균을 깨는 결단이어야 한다 

사과 실린 수레를 뒤집고 사과가 어느 방향으로 

굴러가는가를 보는 짓이란 얼마나 가소로운가?…’

(D H 로런스의 ‘제대로 된 혁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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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황상규 | SR코리아 대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심의 중인 가운데,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제1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끝나기 무섭게 국내 항공사들이 유럽연합(EU) 배출권거래제에 편입되었다. 이번 조치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각각 205만t과 78만3000t의 온실가스를 할당받았는데, 2013~2020년에는 각각 194만t과 74만5000t으로 줄여야 한다. 만약 이를 초과하여 배출하게 되면 탄소배출권을 구매해 충당해야 한다. 한국교통연구원 분석에 의하면, 향후 국내 항공업계가 추가 부담하게 될 비용은 올해 60억원, 내년 12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일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이는 몇 년 전부터 예고된 일이었다. EU는 이미 2007년부터 역내에 취항하는 항공사들에 대해 배출권거래제 시행을 관보로 알린 바 있고, 2009년 8월 ‘온실가스 배출 규제 대상 항공업체 목록’을 통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삼성테크윈, 현대자동차, LG전자, SK텔레콤, 한화 등 국내 기업들이 배출권거래제에 적용된다고 통보한 바 있다. 

 


기후변화가 날로 심각해지면서 모든 나라들이 그 원인이 되는 온실가스와 에너지 사용을 줄이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각자 자기에게 유리한 계산만을 하고 있어 기후변화협약도 난관에 봉착해 있다. 

이번 사례는 유엔기후변화협약이 각 나라의 이해관계에 얽혀 합의가 되지 않아도 국지적으로 여러 가지 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 캐나다, 중국의 항공사들이 EU의 조치가 ‘국제민간항공협약’을 위반한 것이라며 제소했지만, 최근 유럽사법재판소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EU의 조치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기후변화에 근본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은 에너지를 절약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궁극적으로 온실가스 발생량을 줄이는 것이다. 국제적인 규제에 수동적으로만 대응하다 보면 더 많은 비용이 들고 시행착오를 겪게 되며, 기업의 이미지와 경쟁력 제고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항상 위기 속에는 새로운 기회가 함께 온다. 이미 많은 기업들은 기후변화라는 위기 속에서 지구생태계도 지키고 새로운 사업도 되는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이번 국내 항공사의 EU 배출권거래제 편입 사례는 앞으로 기후변화로부터 지구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하여 다자간 협약이 되지 않는다면, 양자간 협약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규제가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속가능한 발전의 관점에서 정부, 기업, 시민사회 차원의 지혜로운 대응 방안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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