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급속한 경제 발전에 힘입어 에너지 수급체계를 지속적으로 선진화시켜 왔다. 그렇지만 북한은 일제강점기의 전력공급체계를 아직까지 상당 부분 답습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전력난도 심각한 상황이다. 북한은 에너지 공급의 90% 이상을 수력과 석탄 발전에 의존하고 있으며, 송배전 전압이 일제강점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전력설비 역시 구 소련의 원조를 받았던 시기와 거의 비슷해 매우 후진적인 구조이다.

발전량이 국가경제의 동력이며 경제성장의 밀접한 요소임을 고려할 때, 중공업 의존도가 높은 북한의 경우 발전량 부족이 경제 악순환을 겪고 주민 삶의 질이 개선되지 못하는 핵심 원인으로 생각된다.

1994년 1차 핵실험에 의해 만들어진 ‘북·미 제네바 회담’에서 200만㎾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원전사업이 합의되어 착수된 적이 있으며, 2000년 초에는 북한이 ‘단기 50만㎾, 장기 200만㎾’ 규모의 대북 송전 지원을 요청한 바 있다. 이렇듯 북한은 심각한 전력난을 타개하기 위해 남북 및 북·미 협상 테이블을 활용해 왔으나, 남북 전력 협력사업은 소규모인 10만㎾ 정도의 개성공단 전력공급에 머물러 있었고 이마저 현재는 중단된 상태이다.

남북관계가 경색과 해빙을 반복해 온 지난 70년을 돌이켜볼 때,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처럼 경색된 지금이 오히려 새로운 남북한 협력을 모색할 수 있는 때라고 생각한다. 핵동결을 전제로 한 현 정부의 남북한 대화 재개 노력에 따라 남북한 전력 협력이 다시 논의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관련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북한은 협상의 대가로 최우선적으로 전력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면밀한 대비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남북한 에너지부문 통합에 대비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남북한 전력 협력은 사업 측면에서 볼 때 대북 직접 송전, 북한지역 발전소 건설 및 공동 활용, 발전연료 지원, 전력설비 공급과 인력·기술 지원 및 신재생에너지 등 다양하게 구현될 수 있다.        

협력 규모와 투자비 관점에서는 시범사업과 남북 경협사업, 북한 주민 지원사업 및 본격 인프라 투자사업 등이 있으며 장·단기 계획을 세워 단계별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민간 차원의 소규모 시범사업으로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단지를 조성하여 북한 주민 생활의 안정에 기여하고, 북한의 기존 수력·화력 발전소 리모델링을 통한 남북한 경제협력 활성화와 북한 에너지 자원 개발 촉진 등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한 협력에는 다양한 분야가 있으며 제각기 중요성을 가지겠지만, 산업의 동력원이자 민생을 안정시키는 존재로서 전기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남북한 전력 협력을 어떻게 준비하고 실행하느냐는 미래 북한의 에너지 공급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의 회생 여부를 좌우하여 향후 통일비용을 절감시키는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전력 및 에너지 분야의 입지, 환경, 기술 개발, 인력 활용 등의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다.

나아가 남한의 기술과 자본력, 북한의 노동력을 결합하여 동북아 에너지 허브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최근 한국·중국, 한국·일본, 한국·러시아 등 남북한을 둘러싼 동북아 에너지 연계망이 활발히 거론되고 있다. 이는 국가 간 전력망뿐만 아니라 가스, 송유 및 철도, 도로 등 모든 네트워크 연계망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동북아의 중심이므로 남북한 전력 협력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에너지 네트워크의 허브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국제정세가 어지럽게 얽혀 있지만, 정부 당국과 관련 공기업, 민간단체가 한반도가 동북아시아 허브국가로 나갈 수 있다는 적극적 의지를 가지고 실천에 옮긴다면, 남북 긴장을 푸는 동시에 통일을 준비하며 민족의 원대한 미래를 꿈꾸는 일이 될 것이다.

<구자윤 | 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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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다시 시작된 개학 후, 매 수업시간 교실에 들어서기 전 심호흡을 한 번 한다. 이번 수업시간엔 학생들과 어떤 대화를 할지, 학생들이 잘 배울지 그리며 잠시 긴장을 늦추는 순간이다. 중·고등학교 교과수업은 학급 분위기와 학생들의 구성에 따라 같은 수업디자인도 학급마다 배움의 몰입의 결이 다르다. 여러 학급을 담당하다 보면 유독 수업이 힘든 학급이 있다. 모둠별 협력학습이 잘 되지 않는 학급이다. 또 한 학급에서도 수업시간에 눈에 띄게 무기력하거나 힘들어하는 학생이 있다. 전자나 후자의 경우 모두 복합적인 요인이 있다. 그래서 여러 교사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면 어려움을 덜어줄 방법이 한결 쉽게 나온다. 모둠별 협력학습이 잘 되지 않는 학급은 학생들 간 관계가 원만하지 않거나 학급공동체 분위기가 잘 만들어지지 않아서인 경우다. 그럼 교과교사는 담임교사와 상의해야 방법이 나온다. 무기력한 학생은 존중받지 못한 경험이나 일시적 가정불화와 같은 배경적 요인이나 학습부진 등 다양한 요인이 있다. 이 경우도 여러 교과수업마다 수업참여 자세가 다르다. 여러 교과교사가 함께 논의하면 학습자의 특성이 좀 더 잘 보이고 학습자에게 맞는 좀 더 효과적인 교육적 방법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의학드라마를 보면 의사들은 한 환자를 치료할 최적의 방법을 결정하기 위해 여러 분야 의료진이 모여 숙의한다. 마찬가지로 교사들은 수업 중 배움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를 함께 논의한다. 이게 교사들의 전문적 학습공동체이다. 한 달에 한 번 방과후 2시간 동안 학년별 교사들이 모인다. 한 학급의 수업을 1시간 동안 참관하고, 수업시간 아이들의 배움에 대해 관찰한 것을 나눈다. 담임교사에게는 학급아이들의 관계가 잘 보이고 다른 교과교사들의 눈에는 낯선 아이들이 어떻게 배우는지가 보인다. 이런 교사들의 배움이 이후 수업디자인이나 아이들을 만나는 마음가짐에 시나브로 녹여난다.

학생들에게 맞는 교육과정을 새롭게 벌일 때도 동료성에 바탕을 둔 집단지성의 힘을 발휘한다. 중등에서 한 주제를 정해서 공동의 작업을 하는 교과통합교육과정을 운영하기도 한다. 국어, 사회, 영어교과가 민주시민을 주제로 연극프로젝트를 할 때, 처음엔 학교예산이 있을 경우 연극강사를 초빙해 수업지원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예산이 없어도 지속가능한 교육과정을 위해 교사가 연극연수를 받고 직접 수업하는 것을 지향한다. 여러 교과가 함께 진도계획을 세우고 국어는 글쓰기, 사회는 민주시민 수업, 영어에서 연극 준비 등을 함께하며 깊이 있고 통합적인 교육을 진행한다.

교육개혁은 ‘학생교육’을 중심에 두는 학교 만들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모든 교사는 수업을 잘하고 싶다. 수업이 잘되면 행복하다. 교사들이 동료와 함께 교육 전문성을 키우고 나누는 전문적 학습공동체가 살아있기 위해서는 수업과 교육과정을 함께 연구하는 문화와 학생상담, 수업 및 교육과정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틀의 변화가 같이 시작되어야 한다. 학생과 상담하고 수업 및 교육과정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틀의 변화는 교사들의 행정업무 경감과 불필요한 관행 탈피를 시행하는 것이다. 교사들이 주로 무엇에 대해 대화하는 학교인가. 단적으로 교사들의 대화가 ‘공문 제출 마감’이 아니라 ‘학생들이 어떻게 잘 배울 것인가’와 ‘우리 학생들이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고 있는가’로 풍성한 학교는 수업이 살아있고 학생들도 잘 배운다.

<손민아 | 경기 전곡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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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인 지난 20일 경남 창원의 STX조선해양에서 건조 중인 석유화학제품 운반선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근로자 4명이 숨졌다. 지난 근로자의 날에는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크레인 충돌로 인하여 6명이 죽고 25명의 근로자가 크게 다쳤다. 두 사고 모두 변을 당한 것은 하청업체 근로자들이고, 또 다른 공통점은 수주한 선박의 납기를 맞추기 위하여 법정 휴일에 나와 일하다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지난 7월6일 국내 대형 조선소 10개사의 경영진과 함께 조선업 사망재해 및 대형사고 예방을 위한 ‘조선업 안전보건 리더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자리에 STX조선해양, 삼성중공업 관계자가 참석했음은 물론이다. 이름만 근사한 이런 행사는, 조선업의 제도와 관행을 획기적으로 바꾸기 전에는, 백번을 해도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이다.

20일 오전 11시 37분께 경남 창원시 진해구 STX조선해양에서 화물운반선 내 RO탱크가 폭발했다. 현장에서 소방본부 대원들이 사고 수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의 산업안전이나 산재보험 법제는 조선이나 건설 산업같이 동일한 장소에서 모회사와 협력업체 근로자가 혼재되어 일할 때의 책임 소재가 기본적으로 갑을관계로 되어 있다. 즉 안전관리와 산재보험 처리를 모회사가 아닌 협력업체가 도맡아 하도록 되어 있다. 도급사업의 안전조치라고 하여 산업안전보건법(29조)에 도급사업자와 수급사업자의 협력을 규정하고 있으나 하늘과 땅 같은 갑을관계에서 제대로 이행될 수 없는 종이 위의 규정일 따름이다. 요컨대 ‘을’인 협력업체는 ‘갑’인 원청의 납기 독촉과 단가 후려치기에 옴짝달싹할 수 없는 것이 현장의 모습이다.

정부에서는 사고 원인을 밝힌다고 하지만 법적인 책임은 사업으로 이익을 챙기는 원청이 아닌 협력업체가 지게 된다. 법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고가 발생하면 그 책임이 하청에 있는 것으로 전제하면서, 예외적으로나 원청의 책임을 묻게 되어 있다. 산재보험법에서도 하수급인 보험가입 인정제도나 별도 가입을 통하여 명문으로 하청업체가 보험가입자가 되는 것으로 하고 있다. 결국 근로자 안전관리의 책임에서 원청인 모회사는 빠져나가게 되어 있는 셈이다. 사업에서 발생하는 이익의 주된 수취자는 원청인데도 말이다. 위험 작업은 외주로 돌리도록 조장하고 있는 꼴이다. 그런 연유로 조선업 사망 사고의 80% 이상이 협력업체 근로자들이다.

최근에 정부에서는 법을 개정하여 내년 하반기부터 산재 사망사고 때 안전조치 미이행 사실이 드러나면 원청업체도 하청업체와 똑같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겠다고 한다. 이것은 근본적인 대책이 못된다. 지금의 규정으로도 원청을 처벌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규정의 미비로 처벌할 수 없는 예외가 일반화되어 있는 것이 현실일 따름이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 책임을 원청이 지게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산재보험법상으로도 하수급인에게 독립적으로 보험에 들 수 있는 길을 열어둘 것이 아니라 원청이 하청 근로자 몫까지 보험에 들게 하여야 한다.

정부 감독에도 문제가 많다. 안전감독의 본령은 예방감독이다. 사고가 발생한 연후에 요란하게 수사하라는 것이 산업안전보건법의 취지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위험요소를 발굴하여 시정하게 하는 것, 그래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하는 것이 법의 취지이자 정부의 역할이다. 서른명 넘는 근로자가 희생된 연후에 야단법석을 떠는 정부의 감독은 희생자에 대한 진혼(鎭魂) 이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가.

더욱이 사고에 대한 처벌 강도도 미약하기 짝이 없다. 근로자가 희생되어도 그때나 요란하지 처벌 내용은 그저 소액의 벌금이나 과태료로 마감된다.

처벌 방법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여 사고의 대가로 막대한 금전적 손해를 부담하게 하여야 하며, 원청의 최고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부 감독은 사전 예방감독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원·하청 관계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의 책임을 원청이 지는 것으로 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이번과 같은 하청 근로자들의 희생은 언제고 다시 발생할 것이다.

<김윤배 | 한국교통대 안전공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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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교육부는 현재 절대평가로 치르는 영어와 한국사를 포함해 통합사회·과학, 제2외국어 등 4과목을 절대평가하는 ‘1안’, 국어·수학까지 전 과목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2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방침이다. 또 특목고 입시 등을 고려할 때 개편안은 오는 31일 확정 발표하기로 했다.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들이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정책의 흔들림 없는 추진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촉구하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측은 학교 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부담완화 등을 위해 수능 절대평가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수능 개편은 교육과정 개정에 따른 후속조치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중3 학생들은 내년부터 고교에서 문·이과 구분 없이 국어·수학·영어·통합사회·통합과학·한국사·과학실험탐구 등 7개 과목을 공통으로 배우게 된다. 융합형 인재 육성이라는 개정 교육과정의 취지를 살리려면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가 맞는 방향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대입 환경에서 수능 전 과목을 절대평가하면 대학들이 변별력 약화를 이유로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선발 인원을 늘리거나 내신 반영 비중을 높일 수 있다. 그렇잖아도 ‘금수저 전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학종이 확대되면 부모 경제력에 의한 교육 불평등이 더욱 심화될 우려가 있다. 내신 비중이 커지면 학생들은 학교에서 0.1점을 놓고 비인간적인 경쟁을 해야 한다. 4과목 절대평가는 문제가 더 많다. 문재인 대통령의 교육 공약과도 거리가 멀다. 절대평가에서 제외된 국어와 수학 과목의 중요도가 비정상적으로 커져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부작용이 예상된다.

현재의 수능에 만족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수능 개편은 신중해야 한다. 최소한 수능의 상위 영역인 대입 제도와 수능의 보완재 성격인 학종의 불공정성을 개선할 수 있는 대책이 함께 나와야 한다. 교육부의 이번 수능 개편안은 향후 책임 소재를 가리기도 힘들다. 문재인 정부가 발표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사실상 입안하고 추진했기 때문이다. 수능 개편은 파급력과 휘발성이 매우 크다. 게다가 수능은 교육이론상 평가의 한 영역에 불과하지만 초·중·고교 교육과정뿐 아니라 한국 교육의 거의 모든 것을 실질적으로 규정한다. 혼란과 부작용이 뻔히 보이는데도 교육부가 2개 안 가운데 하나로 결정하겠다는 것은 학생과 학부모들을 압박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교육부는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설익은 수능 개편안을 내놓을 것인가. 아니면 1년 미루더라도 국가대계를 바로잡을 대입 제도를 마련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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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문제로 ‘환경영향평가’ 제도가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토지를 포함한 환경은 공공재로서 이것을 이용해 내가 이익을 보려 하면 불특정 다수가 손해를 보게 되며, 반대로 나의 헌신으로 인한 환경 개선은 불특정 다수의 이익으로 보상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내가 얻는 이익보다 불특정 다수가 받는 총손해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크다는 것이며, 반대로 불특정 다수가 얻는 총이익은 내가 감내해야만 하는 손해보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것이다. 이것이 유엔이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개발의 핵심인 ‘생태계서비스’ 개념이기도 하다.

낙동강 페놀 방류 사건으로 특정 기업이 얻은 이익은 수많은 주민이 짊어져야 할 총손해에 비해 형편없이 미미한 것이며, 4대강 사업으로 기업이 얻은 이익에 비해 우리 국민이 평생을 두고 지불해야만 하는 손해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하다. 반대로 벌거벗은 선산을 힘들게 녹화한 비용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주변 사람들이 얻는 총이익에 비해 역시 미미한 수준이다. 여기에는 또 다른 함정이 있는데, 환경을 오염시킨 악덕기업은 막대한 돈을 벌었다는 것이며, 선산을 복원한 종손은 이익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막기 위해 선진화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국민을 동등하게 존중하는 ‘정부다운 정부’가 존재하는 것이다.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 참관 등을 위해 방한한 미국 새뮤얼 그리브스 미사일방어청장(왼쪽부터), 존 하이튼 전략사령관,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 해리 해리스 태평양사령관 등이 지난 22일 경북 성주 사드기지를 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개발행위로 인해 발생하는 이익이 개발자에게 돌아가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언뜻 당연하다. 그러나 현대경제학에서 계산하지 못하는 환경비용은 고스란히 개인들이 메워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부자에게 쥐여주는 꼴이 되는 것이다. 환경영향평가 제도는 각종 개발행위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환경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만든 장치로 엄격할수록 개발과 관계없는 주변 개인의 손해는 적어진다. 국민이 고르게 잘사는 사회를 만드는 책무를 지닌 대한민국 정부가 유독 자연환경 분야만큼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고 있다. 생선을 맡긴 사람은 이미 고양이가 취할 행동을 뻔히 알고 있다. 현재의 ‘환경영향평가’ 제도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준 꼴이다. 현재 이 제도는 은행이 대출 신청자에게 본인의 신용평가를 하라는 것이며, 판사가 재판을 받는 자에게 자신의 죄를 목록별로 정리해서 달라는 격이다. 은행이 파산하고 범죄자가 사회를 활보하게 되는 것이 뻔한 것 아닌가?

환경영향평가는 해당 개발과 이해관계가 없는 제3의 기관이 진행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당연한 것이 지켜지지 않는 나라가 현재의 대한민국이다. 환경영향평가를 개발하고자 하는 자가 작성하는 우스꽝스러운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승용차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의 양은 극히 미미하여 없다고 계산하면 그만이고, 멸종위기 야생동물은 어딘지 모를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잘 살 것이라고 기술하면 그만이다.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4대강이나 케이블카, 최근 불거진 사드 부지와 같이 정부가 하고자 하는 일들 또한 이렇게 진행된다. 이미 문제가 없다는 답을 내어놓고 시작하는 것이다. 이 제도 하나만으로도 왜 우리나라가 전 세계 자연환경평가 꼴찌 수준에 맴돌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미세먼지가 세계 최고 수준이고, 온난화는 지구 평균의 두 배에 육박한 것이 개인의 잘못이며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문제인가?

환경조사자료는 그 특성상 개발자가 숨기고자 하면 알아내기 매우 어렵다. 4대강 사업과 현재 진행 중인 오색케이블카 사업 등 대표적 정부 사업에서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가 이루어졌다면 대다수 국민은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막대한 비용을 아낄 수 있었을 것이다. 국민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 객관성과 공정성이 담보된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는 날이 대한민국 ‘환경적폐’ 청산의 시작일 것이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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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개편 시안이 발표되었다. 확정안을 두고 여론 수렴 절차가 진행 중인데 정부가 제시한 두 가지 시안을 둘러싼 논쟁 역시 뜨겁다. 입시 개편안을 두고 이렇게 여론이 끓어오르는 나라도 드문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건설적인 논쟁은 기대하기 어렵다. 교육 주체 간 이해관계가 첨예한데다 입시제도의 반복적인 실패로 기대치도 낮기 때문이다. 그 동안 입시 개편안은 급조된 후 실패하는 악순환을 거듭했다. 정부는 시험의 교육적 가치와 선발 기능이 지닌 사회적 의미를 우리 실정에 맞게 제도화하기보다 가시적 성과를 향해 밀어붙이기 일쑤였다. 그러다보니 속된 표현으로 ‘약빨’이 통하지 않으면 그 정책은 표류하다 파기되었다. 실패가 거듭되면서 교육제도를 바라보는 시민의 기대치도 낮다. 이런 악순환을 막으려면 한국 현실에 맞는 입시 모델을 지속적으로 다듬어 나감과 동시에 정부의 방안에 맞게 교육주체를 설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국 교육정책 가운데 가장 큰 비극은 ‘열린교육’이었다. 획일적 입시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창의성을 고양시키고자 도입된 혁신적인 방안이었으나 정작 시민사회에 전달된 설득의 논리는 ‘한 과목만 잘 해도 대학에 갈 수 있다’였다. 열린교육을 주도한 장관조차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음에도 자극적인 헤드라인의 파급효과는 컸다. 학습 부담을 급감시킬 수 있다는 기대와 한국의 입시 현실과 맞지 않다는 우려가 맞서며 여론은 충돌을 거듭했다. 안타깝지만 우려가 현실화되었다. 자율학습 폐지는 학습 부담을 경감시키기는커녕 부모의 사교육비만 늘렸고, 쉽게 내겠다던 수능은 해마다 난이도 조절에 실패해 불신을 심화시켰다. 다양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해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완화하고 학교와 지역 사이 벽을 허물어 교육기회를 확충함으로써 계층 간 차이를 완화하려 했던 취지 역시 사라졌다. 이런 실패가 일부 언론의 가짜 뉴스에 의해 빚어진 것은 아니다. 정치인과 관료들이 성과에 집착, 영국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한 교육방법을 한국적 배양 기간 없이 들여온 성급함이 원인이었다.

입시 흑역사에서 입학사정관제 역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학생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보고 선발한다는 도입 취지는 고액 캠프 활동, 자기소개서 미화를 위한 대필, 미신적인 입시 컨설팅 제도 등으로 이어졌다. 미국 대학입시 모델을 단순 번역하다시피 들여온 이 제도는 아직도 학생부 종합 전형 어딘가에 숨어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출범 초기, “미국 갔더니 오렌지(orange)를 ‘아륀지’로 읽더라”는 인수위원장의 발언이 구설에 오른 정권다운 제도였다. 유럽식 글쓰기를 교과 과정과 연계 없이 들여와 사교육비 상승의 주범으로 몰린 논술전형이나, 미국 수능처럼 절대평가를 시도하는 현 정권의 입시 개편 방안 역시 선진국의 제도를 추종하는 퇴행적 사고가 낳은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과거와 큰 차이는 없다. 학생들에게 창의성을 요구하면서 어른들은 외국 제도를 급하게 베껴온 셈이다.

지난 실패들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선진국 입시라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육열이 높고 입시 경쟁이 치열한 한국 상황에 맞는 입시를 위해 우리만의 새로운 길을 걸어야 한다. 현실은 어렵다. 수능 난이도를 높여 변별력을 확보하라는 주장에 국민 70%가 동의한다. 성인교육에서도 성찰의 반례는 존재한다. 의학전문대학원은 이공계 학부의 의전원화라는 부작용으로 폐지되었고, 사법시험 역시 존치 여론이 만만치 않다. 이런 정서를 무시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다. 앞으로 나아가되 뒤에서 머뭇거리는 다수를 기다리는 신중함이 요구된다. 돌아가자는 이들에게 올바른 뜻으로 오라고 설득해 함께 앞으로 나가야 한다.

정주현 | 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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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하다. 연이어 터져 나온 고교 교사들의 학생 성추행 소식. 어느 사안에서는 학내 성폭력 예방업무를 담당했던 자가 가해자였다고도 하니, 이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 둔 격이 아닌가. 아직 드러나지 않은 피해가 더 클지 모른다. 이번 일을 계기로 초·중·고 교원 성폭력을 철저하게 뿌리 뽑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초·중·고 교원에 의해 학생에게 발생하는 성폭력 사안에 관해서는 독특한 점이 있다. 공동체 특성상 그 폐쇄성이 크며, 피해자가 미성년이므로 보호와 조력의 필요성 역시 매우 크다. 따라서 적극적 외부 개입과 관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확립된 제도를 갖추어야 한다.

현행법은 교원의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범죄 또는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범죄에 관해서는 매우 엄격하다. 형의 경중을 가리지 아니하고 유죄로 인정되기만 하면 당연 퇴직 사유가 된다. 일반적인 직장 내 성희롱은 형사범죄가 아니지만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희롱 등 성적 학대행위는 성범죄로 다루어지므로 규율의 공백도 거의 없다. 어떠한 잘못도 저지르지 말라는 이야기다. 법이 미비해서 학생에 대한 교원 성폭력이 반복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신고 등 문제제기가 즉각 용이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면 상황이 심각해지기 전에 적절한 대처방안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 못한 데에 학내 성폭력이 반복되는 원인이 있는 듯하다. 신고 등을 가로막는 요인으로는 은폐 시도나 묵살, 회유나 불이익 조치와 같은 2차 피해 가능성을 들 수 있다. 피해자 또는 그 피해를 아는 학생이 2차 피해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고 문제제기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갖추어 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양성평등기본법은 2차 피해에 대처하기 위한 규정을 두고 있다. 여성가족부 장관이 성희롱 은폐 등 2차 피해 발생을 국가인권위원회나 검찰·경찰 등을 통해서 확인하게 되면 관련자의 징계 등을 관련자 소속 기관장에게 요청할 수 있다. 여가부 장관의 요청이 없는 한, 국가인권위원회 등의 각 기관이 업무와 관련하여 확인한 2차 피해 발생 사실을 여가부 장관에게 꼭 통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사 등 과정에서 2차 피해 발생을 인지했다면 반드시 이를 여가부 장관에게 통보하는 관행을 정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본다.

법은 신고가 이미 접수된 사건을 수사하는 동안 발견한 2차 피해만을 통보 대상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학교전담경찰관 제도를 2차 피해에 대한 예방적 점검이나 사후적 추적조사 등에 전향적으로 활용한다면 2차 피해 발생 가능성을 더 경감할 수 있을 것이다.

징계 등 조치 또한 중요하다. 은폐나 묵살, 회유와 불이익 조치 등을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하도록, 2차 피해를 유발한 자에게는 강력한 제재가 내려질 수 있어야 한다. 여가부 장관이 관련자 징계를 요청할 수 있으나, 현행 규정상 징계양정 등에 관해서 여가부 장관이 구체적으로 의견을 밝힐 수 있다고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적정 수준의 징계가 내려지지 않은 경우에 대해서도 법은 침묵한다. ‘솜방망이 징계’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조속한 개선이 요구된다. 성폭력은 사람의 영혼을 파괴하는 죄악이다. 어느 누구도 ‘성추행을 당하기 위해’ 학교에 가지 않는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일이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박찬성 | 변호사·포항공대 상담센터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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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 절대평가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교육의 당위를 생각하면 절대평가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입시의 현실을 생각하면 상대평가의 손을 들어줘야 할 것 같다. 당위와 현실의 충돌,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 어려운 문제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논의 구도 자체가 불만스럽다. 어째서 절대평가 논의의 주된 대상이 수능이란 말인가?

대학입시에는 세 개의 중요한 시험이 있다. 학교시험, 수능시험, 대학별시험이다. 현재로선 세 개의 시험이 모두 상대평가다. 세 시험 모두 당위보다 현실을 우선시했다. 균형추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기울었다. 당위와 현실 사이의 균형을 찾기 위해 절대평가제를 도입한다면 어떤 시험에 먼저 적용해야 할까? 전부 도입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한 개의 시험에만 도입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시험이어야 할까? 두말할 나위 없이 그것은 대다수 아이들의 삶과 가장 가까운 시험이어야 한다.

입시 경쟁 중 어떤 경쟁이 가장 비교육적일까? 학교 친구들 간의 경쟁인 내신 경쟁이다. 그것이 경쟁의 범위가 좁아 가장 고통스럽다. 현재의 상대평가제에서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어떻게 될까? 경쟁의 범위가 훨씬 더 좁아진다. 동일한 수업을 신청한 더 가까운 친구들이 치열한 경쟁자가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교실혁명으로 교육혁명을 이루겠다고 공약했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교실을 열겠다고 했다. 어떻게 가능할까? 고교학점제 공약을 시행하면 된다. 고등학교의 경우 학점제만이 교실혁명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중에 혁명적 공약이 있다면 그것은 단연코 고교학점제 공약이다. 교육선진국의 보편적 제도라지만 우리나라에선 이렇게 대단한 공약이다. 그런데 내신 절대평가제의 전면화 없이 고교학점제를 추진하면 어떻게 될까? 강하게 추진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해 결국은 시늉만 내다 말 것이다. 그러나 혹시 물정 모르고 강력하게 추진한다면? 문재인 정부는 교실혁명이 아닌 교실지옥을 이룬 정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냉혹한 줄세우기는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현실이 그것을 강요한다면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다. 어쨌든 현실은 현실이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그 현실에 저항해야 할 자는 누구인가? 수능 출제자인가? 대학별시험 출제자인가? 아니다, 학교의 교사이다. 그것이 교육의 당위이고 거기에 교육의 살 길이 있다.

물론 입시는 현실이다. 내신 절대평가제는 수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무엇보다 입시불평등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대학입시가 특목고, 자사고, 강남권 학교에 현저히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 역시 입시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현실에 저항하고 교육의 당위를 부여잡아야 할 시험은 다른 시험이 아닌 학교시험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것만이 학교교육을 살려 입시불평등을 완화할 올바른 길이다.

수능과 대학별시험 출제자들은 자신이 출제한 시험으로 경쟁하는 아이들과 삶을 함께하지 않는다. 그러나 학교시험 출제자인 교사는 자신이 출제한 시험으로 경쟁하는 아이들과 삶을 함께하며 그 아이들을 교육한다. 그런데 그런 존재가 어쩌면 수능이 했던 줄세우기 역할까지 넘겨받아 아이들을 더 강력하게 줄세워야 할지 모른다. 나에겐 이것이 현실에 가장 강력히 저항해야 할 존재를 현실에 가장 심하게 굴종하는 존재로 만드는 참혹한 일로만 여겨진다.

<이기정 | 서울 미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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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은 근로자에게는 생계를 넘어 생존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이런 임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가 증가하고 있어 문제이다. 2016년을 기준으로 고용노동부에 임금체불을 진정한 건수는 21만 건, 체불액은 1조4000억원을 넘고 있다. 이는 근로자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가 될 수 있다.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근로자의 권리의식 향상과 정보통신의 발달로 근로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도 많이 있다.

임금체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이다. 비용, 처리절차, 처리기간 등의 문제로 대부분의 근로자는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근로자의 권리를 지켜주고 해결해 주어야 할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행정 업무는 수십 년째 같은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어 역량과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결국 근로자들의 권리도 원활하게 해결해 주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근로자의 임금을 책임져야 하는 근로감독관은 고용노동부의 일반행정직 공무원 중 일부를 사법경찰관 또는 사법경찰리로 임명하여 4주 정도의 교육을 하여 직무를 수행하게 하고 있다.

근로감독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한 근로감독관이 업무를 수행하다 보니 최근 보도에 의하면 근로감독관이 근로기준법 제55조의 유급주휴일이 상시근로자수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노동행정 현장에 있는 필자의 경험으로도 해고예고의 방법을 모른다든지 임금채권의 최우선변제 범위, 더 나아가서 법원의 판례는 차지하더라도 고용노동부 지침과 행정해석을 모르는 근로감독관을 보면 이 보도가 단순히 일부 근로감독관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는 단순한 임금체불을 해결해 달라는 진정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경험이 없는 근로감독관도 업무수행에 크게 문제가 없었으나 현재는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임금체불 사건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근로감독관의 전문성 향상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4주 교육을 받고 바로 임명된 근로감독관과 10년 이상 경력을 가진 근로감독관이 동일한 수준의 임금체불 사건을 처리한다는 사실이다. 경력 근로감독관과 초임 근로감독관과는 임금체불을 해결하는 능력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을 필자는 수없이 많이 경험했다.

동일한 임금체불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근로감독관을 만나느냐에 따라 해결 가능성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것은 임금이 체불된 근로자에게는 불행한 일이다.

근로자가 임금체불 진정에서 가장 억울해하는 부분 중 하나는 근로감독관의 결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현재 시스템에서는 근로감독관이 임금체불에 대해 어떤 결정을 하면 이에 대해 불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용자를 고소하여 검사의 판단을 받는 것인데 임금체불 사건을 담당하는 검사의 업무폭주, 노동법에 대한 무관심 등으로 인하여 이의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근로감독관이 한번 잘못된 결정을 하면 사실상 번복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노동현실은 날로 급변하고 있고 복잡해지고 있다. 근로자의 요구수준은 계속 높아지고 있는데 이를 해결해야 할 근로감독행정은 수십 년째 같은 시스템을 답습하고 있다.

단순히 근로감독관을 증원한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근로감독관의 양성시스템과 역량강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리고 근로감독행정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개선하여 억울한 근로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새 정부에서는 근로감독청 신설과 근로감독관 증원 등 근로자의 임금체불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물론 이런 방안들도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방안만으로 근로자의 임금체불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고 근로자의 요구수준을 만족시킬 수 없다. 더 이상 억울한 근로자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근로감독관의 역량강화 및 근로감독행정시스템의 전면적인 개선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석진 | 공인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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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는 지난 토요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가 배치된 성주기지에서 전자파, 소음 측정을 강행하였다. 대구지방환경청에 접수된 사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한 전문가 현장 확인을 위해서였다. 현장 확인 직후, 국방부는 사드 전자파는 인체 허용 기준 200분의 1에도 못 미쳐 안전하다고 발표하였다. 이로써 환경영향평가는 ‘탄력’받고, 사드 배치는 확정적인 분위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드 배치에 대해 국내법에 따라 ‘절차적 정당성을 밟아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서 절차적 정당성이란 첫째 환경영향평가는 제대로 하고, 둘째 사드 공론화는 충분히 갖는다는 것. 미국도 이해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통령은 4기의 발사대가 비밀리에 추가 반입된 경위와 전략환경영향평가 회피 의혹에 대한 국방부 진상조사를 직접 지시하였다. 국민은 국가가 제안한 ‘절차적 정당성’을 믿었다.

잘 지켜지고 있을까. 아니다. 안보 논리에 밀려 절차적 민주주의는 상실된 듯하다. 대통령이 직접 사드 발사대 4기를 추가 배치하라고 지시하였다. 국내에 반입된 사실이 보고되지 않아 격노했던 바로 그 발사대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중국 외교부장에게 사드 배치의 필요성을 설명하였다. 미국에도 ‘배치 이상 무’라는 메시지를 지속해서 보내고 있다. 지금의 정부는 사드 배치는 확정된 것이지만 환경영향평가는 철저히 하겠다고 한다. 이 무슨 궤변인가. ‘선 사드 배치, 후 환경영향평가’는 환경영향평가법을 위반한 절차상 불법이다. 환경부 장관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과 행정부 수장이 초법, 불법의 제일 앞줄에 서 있다.

국방부와 환경부가 추진 중인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는 그 자체로 불법이다. 지난 6월 청와대가 확인했듯이, 국방부는 미군에 공여할 부지 70만㎡를 둘로 쪼개면서 1단계 공여 부지는 33만㎡ 미만으로 지정하였다. 이는 전략환경영향평가 대신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하기 위한 불법 ‘부지 쪼개기’이다. 국방부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사드 2기 불법 반입과 가동, 주변 보완공사 등 사전공사 금지를 위반하였다. 이것도 사법 처리의 대상이다. 사드 배치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폐기하고 사드 장비 가동을 중단, 철수한 후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는 게 순서다. 국방부의 불법을 투명하게 조사하는 게 먼저다. 환경영향평가법은 투명한 정보 공개와 민주적 의사 수렴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그런데 사드 배치 과정의 각종 자료는 모두 한·미 2급 비밀로 묶여 있다. 공동실무단 운영결과보고서, 사드 배치 군사적 효용성 근거 자료 등은 확인할 길이 없다. 심지어 사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서도 3급 군사비밀 문서로 비공개 사항이다. 이번 전자파, 소음 측정에도 거리 정보 외에는 레이더 출력과 주파수 정보가 공개되지 않았다. 사드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주민설명회, 공청회도 없다. 절차적 정당성의 두 번째인 ‘사드 공론화’는 어디에도 없다.

공론화의 공간을 열어야 한다. 어려운가. 그렇다면 차라리 절차적 정당성을 포기하는 게 현명하다. 국방부 장관과 환경부 장관이 협의해 환경영향평가를 생략하는 게 더 낫다. 치욕의 끝을 보는 것보다 사드 환경영향평가를 포기하는 것이, 사드 공론화 방침을 철회하는 것이 덜 비참할 것이다.

윤상훈 |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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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잠수함’은 원자력을 이용해서 움직이는 잠수함이다. 그 속에는 원자로, 증기발생기, 압력용기, 증기터빈, 발전기, 냉각기가 들어 있다. 모두 크기만 작을 뿐 울진이나 고리 원자력 발전소에 있는 것과 똑같은 장치들이다. 그런데 방사능을 내뿜는 물질의 양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잠수함의 원자로 속에서 연료로 사용되는 핵분열 우라늄의 밀도가 육지 원자로의 10배나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원자력 잠수함은 원자력 발전소를 싣고 다니는 잠수함이라고 할 수 있다.

원자력 발전소에서는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사고 같은 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원자력 잠수함에서도 사고가 일어날 수 있고, 실제 큰 사고가 여러번 있었다. 1985년에는 당시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 근처 해군기지에 정박해 있던 잠수함에서 원자로가 폭발하여 10명이 사망하고, 49명이 방사능 피폭으로 부상당하고, 수백명이 상당량의 방사능을 피폭당하는 재난이 발생한 일이 있다. 주변 지역과 바다도 방사능에 오염되었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방사성 폐기물이 생성되듯이 원자력 잠수함에서도 방사성 폐기물이 만들어진다. 여기에도 치명적인 방사능을 내뿜는 물질들이 가득 들어 있어 안전하게 처분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리고 발전소와 마찬가지로 잠수함 속의 원자로도 사용연한이 채워지면 해체해야 하고, 방사능 덩어리이기 때문에 영구히 격리처분해야 한다.

원자력 사용이 위험하고 방사성 폐기물의 영구 처분이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탈원전을 선언했고 그 첫걸음으로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중단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육지에서는 탈원전을 하겠다고 하면서 바다에서 원전을 건설하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것은 육지에 지으려던 것을 규모를 줄여 바닷속으로 옮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모순도 이만저만한 모순이 아니다.

정부에서 원자력 잠수함 건조 의지를 드러내자 탈원전을 반대하는 보수진영이 크게 반색하며 기뻐하는 것 같다. 보수언론들은 원자력 잠수함 건조를 서로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것이 탈원전과 모순이고, 따라서 탈원전이 무산될 수 있다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인 것 같다. 반면에 탈원전을 찬성하는 진보진영과 진보언론은 한결같이 침묵으로 일관한다.

탈원전을 무산시키고 한반도 비핵화협정을 폐기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를 더 멀리 밀어놓을 수도 있는 대단히 중대한 사안인데도 침묵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우리 정부에서 진정으로 탈원전을 하겠다면 원자력 잠수함 건조와 탈원전의 모순을 먼저 해소해야 한다. 원자력 잠수함이 필요하다는 말은 했지만 여러 사정을 고려할 때 건조는 어렵다고 하든지, 반대로 원자력 잠수함이 필요해서 건조계획을 추진하려 한다면 탈원전이란 말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육지에 더는 원전을 건설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시행한다 정도에 머무르고,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재생가능 에너지 확대와 전기소비 감소를 추진해야 한다. 여기에 구호가 붙지 않아서 아쉽다면 에너지전환이라는 구호를 붙이고 재생가능 에너지를 앞세우면 된다.

원자력 잠수함을 건조하지 않고 탈원전을 추진하더라도, 60년 이상 걸리는 이 계획의 성공 가능성은 크게 광고한다고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조용히 추진할 때 더 높아질 수 있고, 그래야 탈원전이 잘 안될 때 입게 될 상처도 줄일 수 있다. 60년이란 세월은 세대가 두 번 가까이 바뀌는 긴 시간이다. 그때쯤이면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의 아이들이 사회의 중추가 된다. 그때까지 우리 사회가 어떤 일을 겪을지 어떻게 요동칠지 모른다. 물론 미래세대를 위해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는 일에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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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10일 현재 중학교 3학년이 치를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시안을 발표했다. 2021학년도 수능에서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통합사회·통합과학 과목이 신설된다. 탐구영역 선택과목 수는 2과목에서 1과목으로 줄어든다. 이번 개편시안의 핵심은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도입 여부다. 교육부는 ‘일부 과목 절대평가’와 ‘전 과목 절대평가’라는 2개 시안을 제시했다. 1안은 현재 절대평가를 하고 있는 한국사와 영어에 더해 ‘통합사회·통합과학’ ‘제2외국어·한문’ 등 4개 과목을 절대평가하고 국어·수학·탐구 과목은 제외하는 방안이다. 2안은 7개 과목 모두를 절대평가하는 방안이다. 교육부는 여론수렴 절차를 거쳐 31일 최종안을 확정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대입제도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혼선을 우려해 ‘일부 과목 절대평가’에 무게를 싣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가 수능 개편 시안을 발표한 10일 오후 서울 대치동 학원거리에서 학생이 바삐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교육부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존 영어, 한국사 외에 통합사회·통합과학, 제2외국어/한문 등 4개 과목에 한해 절대평가를 실시하는 '1안', 7개 과목 모두 절대평가하는 '2안'을 놓고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줄세우기식 과도한 입시경쟁을 완화하려면 ‘전 과목 절대평가’를 시행하는 게 옳다. 4개 과목만 절대평가하면 국어·수학 등의 비중이 커지면서 사교육 풍선효과가 나타날 게 뻔하다. 대학들이 입시에서 국어와 수학의 반영 비율을 높일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또 상대 평가과목으로의 쏠림 현상으로 학교 현장에서 다양한 수업 진행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단계적으로 절대평가 과목을 확대하면 앞으로도 여러 차례 수능을 개편해야 한다. 이럴 경우 수능 개편 때마다 교육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대입제도의 안정성도 해치게 된다. 한마디로 게도 잃고, 구럭도 잃게 되는 것이다.

전 과목 절대평가의 단점으로는 변별력 약화로 수능 중심의 정시 전형 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 꼽힌다. 하지만 동점자에 한해 대학에 원점수를 제공하거나 고교 2·3학년 선택과목 중 전공 적합성에 맞는 과목의 내신을 반영하도록 하면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대학들이 수시전형에서 ‘현대판 음서제’로 불리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늘리는 것도 차단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학생부에 사교육을 유발하는 소논문이나 에세이 작성실적 등을 기재하지 못하도록 하고, 학종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교육부는 전 과목 절대평가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보완책 마련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수능 개편과는 별개로 공교육 수업의 질을 높이는 대책 마련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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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의 할머니들>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말 그대로 체르노빌에서 살고 있는 할머니들에 관한 필름이다.

1986년의 원전 사고 이후, 체르노빌은 사고 발생 지역을 중심으로 30㎞ 반경까지 폐쇄지역이 되었다. 그 후 3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이 폐쇄지역에서는 방사능이 검출되고 있고, 그 지역의 모든 것들은 방사능에 오염되어 있는 상태이다. 물론 이 폐쇄지역도 관리는 필요한 터라 그곳에서 ‘거주’하는 근무자들이 있다. 이 근무자들에게는 모든 안전조치가 취해지는데, 그중 하나가 최대 2주 동안 연속으로 그곳에 머물지 못한다는 규정이다.

그런데, 이런 곳에 할머니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자기 집에서, 농사를 짓고, 산나물을 뜯고, 물고기를 잡고, 닭과 돼지도 길러가며.

이 할머니들은 원전 사고 당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 지역에서 소개가 되었던 사람들이다. 하루아침에 살던 곳을 버리고 낯선 곳으로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삶이 평탄했을 리 없다.

다큐멘터리 <체르노빌의 할머니들>

그들은 새로 이주한 지역에서 환영받지 못했고, 당연히 잘 적응하기도 힘들었다. 절망에 빠지는 사람들이 생겼고, 향수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죽어도 자기 집에서 죽어야겠다는 사람들이 생겼다. 이 할머니들은 그래서 돌아온 사람들이다. 몇십㎞를 걸어걸어, 금지구역 철조망을 억지로 넘어, 방사능으로 범벅이 된, 그러나 자기 집으로.

30년 전 사고가 날 당시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체르노빌의 풍경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다. 숲과 강과 들판 중 그 어느 것도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버섯을 따고 물고기를 잡고 밭일을 하는 할머니들은 오히려 건강하고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방사능 측정기가 아무리 위협적으로 경고음을 울려도 할머니들의 삶은 보통의 삶에 비해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다큐멘터리에서는 한 할머니의 몸에 축적된 방사능을 측정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그 지수가 매우 높기는 하지만 정상범위 안에는 있다고 했다. 그 테스트를 진행했던 의료요원의 말에 의하면, 금지지역으로 돌아와 자기 집에서 살고 있는 할머니들의 수명이 강제이주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더 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했다. 우울과 절망과 고독이 방사능보다 더 치명적이라는 소리다. 옆길로 새는 말이기는 하지만, 할머니들과 함께 자기 집으로 돌아왔던 할아버지들이 할머니들보다 다들 먼저 세상을 뜬 이유도 역시 방사능과는 상관이 없다. 할아버지들이 할머니들보다 단명한 이유는 평생을 술과 담배로 찌들어 살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연구결과가 방사능의 위험을 축소하는 것은 아니다. 이 다큐멘터리의 목적도 그런 것일 리 없다. 다큐멘터리 속 할머니들이 보여주는 것은 원전 사고가 파괴한 삶, 그리고 그들이 그 삶 속에서 누렸어야 할, 그러나 사라져버린 평화다. 대부분 80세가 넘은 할머니들은 전쟁을 겪었고, 기근을 겪었고, 혁명을 겪었던 사람들이다. 스탈린 시대를 겪었으니, 그중에는 소수민족들에게 행해졌던 강제이주 경험이 있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어쨌든 살아남았고, 돌아왔고, 자기 집을 짓고, 그곳에서 자식을 낳았다. 아무리 힘들거나 아무리 멀리 떠났어도 돌아갈 집이 있어서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이다. 원전 사고는 그 모든 걸 파괴했다.

최근에는 체르노빌 지역을 관광하는 상품도 있는 모양이다. 30년 동안이나 완벽하게 버려져 있던 지역을 돌아보면서 관광객들이 느낄 감정을 짐작해본다.

지나간 일에 대한 한탄도 있겠지만,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것이다.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처럼 버려진 지구를 보는 듯한.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놓고 논란이 많다. 그중 경제성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원전을 유지할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가 다양한 경제적 수치로 제시된다. 나로서는 그 전문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해가 금방 되는 것은 탈원전을 할 경우 증가하게 될 전기료를 수치로 제시해놓은 경우다.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한테는 약간의 세금 증가도 무서운 게 사실이다. 전기처럼, 없어서는 살아갈 수가 없는 것에 관해서라면 더욱 그렇다. 며칠 전, 폭염에 전기가 나간 적이 있었다. 에어컨 못 켜고 선풍기 못 켤 것은 알았지만, 전기가 나가면서 가스 센서도 나가고 물 센서도 나갈 것은 알지 못했었다. 이사온 지 얼마 안된 집이기 때문이다. 밥 한 끼 해먹기 위해 휴대용 버너를 꺼내고 화장실에서 물을 길어야 했다. 그러고도 전기가 안 들어와 한전에 문의를 해보고 싶은데, 미리미리 충전해놓지 않았던 전화기에 배터리도 나가버린 상태였다. 전기라는 게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머리로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몸으로는 그렇지 못했던 모양이다.

고작 몇시간 동안의 일인데 폭염에 숨이 막히고, 그 와중에 밥은 먹겠다고 온갖 법석을 떨고, 전화가 안되니 난데없이 고립된 기분이기까지 했다.

이 전기, 이런 전기가 안전하고, 무해하고, 경제적이기까지 바란다면 그게 욕심인가. 욕심은 아니겠으나 현실성은 고려해야 할 것이다. 다큐멘터리에서 체르노빌의 할머니 한 분이 하는 말이 있다. 방사능보다 더 무서운 건 굶주림이라고. 이 말은 단순히 경제적 빈곤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강제이주 지역에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심리적 박탈감이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 방사능보다 더 무서운 건, 사실 사라진 미래인 것이다.

탈원전이 하루아침에 결정되고, 하루아침에 시행될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에 비해 재난은 순식간에 온다. 누군가의 미래가 바뀌는 것도 순식간이다.

체르노빌의 30년, 그리고 바로 옆나라의 후쿠시마, 그 엄청난 재난의 교훈을 돌아보면, 힘겨워도 지불해야 할 비용은 있지 않을까, 그게 사소한 것이든 아니든, 미래를 위해 우리가 당연히 치러야 할 비용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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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 13년 만에 전 세계 이용자 19억명을 돌파한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공유경제라는 혁신적인 가치를 활용해 세계 최대 숙박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에어비앤비의 창업자 브라이언 체스키, 검색 엔진을 바탕으로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기업으로 성장한 구글의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등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는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20대에 창업했다는 점이다.

어쩌면 20대에 창업해 성공한 그들의 스토리는 언젠가부터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시절은 끝났다”라는 말이 익숙한 우리에게 조금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도 전 세계의 청년들은 창의적인 발상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도전해 각자의 분야에서 혁신적인 성과를 달성하고 있다. 심지어 대부분 변변한 자본 없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만을 통해 사회 혁신의 주체로 자리 잡았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지난 4월 18일 새너제이에서 개막한 페이스북 개발자회의 기조연설에서 증강현실(AR) 카메라 플랫폼을 설명하고 있다. 새너제이 _ AP연합뉴스

저커버그와 체스키, 브린은 대체 어떻게 전 세계를 움직이는 젊은 창업가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문화, 역사, 사회 등 다양한 환경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지만 무엇보다 교육 환경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미국, 유럽 등의 교육 시스템은 스스로 목표를 결정할 수 있도록 사고하는 방법을 키워주는 열린 교육을 지향한다. 이러한 열린 교육 시스템 속에서 성장한 청년들은 사회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고유한 개성과 창의력을 꾸준하게 키워 나가게 되고 결국 이를 바탕으로 도전해 사회 변화를 이끄는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생각했을 때 우리나라의 교육 환경은 사회 혁신을 주도하는 청년들을 양성하기에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 모두에게 대학 입시와 취업 등 동일한 목표를 제시하고 같은 교육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고를 확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열린 교육이 아닌 일방적인 교육은 청년들의 개성과 창의력을 일반화해 혁신적인 사고와 행동에 제약을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청년들의 건강한 성장을 유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최근 청년 성장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이 점차 확산되며 다양한 개선 방안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예로 필자가 몸담고 있는 행복나눔재단에서는 청년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열린 교육 환경을 지향하며 청년 협업 혁신 프로그램 ‘루키’를 운영하고 있다. 대학생들이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실행력을 겸비하고 기업가 정신을 함양할 수 있도록 열린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아직 우리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보다 열린 교육 환경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창의력과 실행력으로 혁신을 일궈내는 청년들을 양성하는 것. 그리고 그 청년들이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사회 혁신의 주체가 되는 것. 지금이 바로 청년 사회 혁신가 육성을 위한 다양한 지원과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희선 | 행복나눔재단 청년인재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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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가 베이징에서 화석연료 택시 사용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고 전기차를 대대적으로 도입한다는 정책 발표를 했다. 그러나 이 뉴스는 북한 핵무기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에 묻히고 말았다.

<!--imgtbl_start_1--><table border=0 cellspacing=2 cellpadding=2 align=RIGHT width=200><tr><td><!--imgsrc_start_1--><img src=http://img.khan.co.kr/news/2017/08/07/l_2017080801000860200071111.jpg width=200 hspace=1 vspace=1><!--imgsrc_end_1--></td></tr><tr><td><font style=font-size:9pt;line-height:130% color=616588><!--cap_start_1--><!--cap_end_1--></font></td></tr></table><!--imgtbl_end_1-->한국과학기술원(KAIST) 행정동 앞에 수년간 쓸쓸하게 서 있던 전기차 1대가 생각난다. 한국은 아직도 전기차 전면 도입을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한국인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관계를 걱정하는 동안, 중국은 2020년까지 재생가능 에너지 3600억달러 투자를 공표하고, 태양에너지·풍력 발전 및 개발산업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달려가는 중이다.

한국에서는 스마트폰 생산과 자동차 수출만 늘리면 경제가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지금 경제·기술 분야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그야말로 기념비적이다. 한국이 이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게 아닐까 걱정된다. 안이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미디어 또한 솔직하지 못하며 무책임하기까지 하다.

일단 역사적 시각에서 지금의 경제 전환을 살펴보자. 역사적으로, 대영제국에 무역대국의 자리를 물려주기 전만 해도 경제 규모나 수준에서 가장 앞섰던 국가는 중국이었다. 중국의 번영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주효했던 요소는 대규모 식량의 효율적 생산이었다. 1830년대 이전만 해도 각국이 활용 가능했던 에너지는 사람과 동물의 육체노동뿐이었다. 다시 말해, 광합성으로 전환된 태양에너지는 식량의 농업적 생산을 통해서만 얻어낼 수 있었다.

중국은 장기적 농업정책에서도 크게 앞서 있었다. 전국적 수리(水理) 관개(灌漑) 제도 확충과 노련한 운용 정책은 그중에서도 최고였다. 그러나 19세기 영국(을 선두로 프랑스와 독일 등)에서 석탄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경제가 시작됐다. 석탄은 목재나 육체노동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제공했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공장을 가동시켰다. 중국의 에너지 시스템은 경쟁 상대가 되지 않았다. 석탄으로 얻은 화력이 군수산업에 도입되면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은 아편전쟁에서 능욕을 당하는 처지가 됐다.

그러나 대영제국의 석탄경제 또한 영원할 수는 없었다. 20세기 초반 석탄보다 훨씬 효율적인 또 다른 화석연료, 석유가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이때 석유 기반 경제를 구축하기 위해 기민하게 인프라 건설에 나선 국가가 미국이다. 미국은 초반부터 석유경제를 수용했다. 제도적 유연성을 갖추고 있었고, 영국만큼 석탄경제에 몰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국은 자동차 산업을 선도하며 신(新) 글로벌경제의 중심에 자리잡았다.

그러나 게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중국이 태양에너지와 풍력 효율성 제고 기술을 적극 활용하며 세계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잘만 활용하면 ‘화석연료 제로’ 경제도 가능한 기술이다. 재생가능 에너지 혁신은 19세기 전 세계를 발칵 뒤집은 영국과 독일의 증기기관 혁신과 맞먹는 잠재력을 가진다.

이대로만 진행된다면 중국은 값비싼 화석연료를 전혀 수입할 필요 없는 신(新) 에너지 패러다임을 장악할 수 있다. 석유 확보를 위해 뼈아픈 전쟁을 치를 필요가 사라지는 건 물론이다. 중국은 태양에너지 및 풍력 기술을 장악하고 생산을 통제하며, 직전의 역사적 이동과 동일한 글로벌경제의 근본적 전환을 이루어낼 것이다. 이에 동참하고자 독일 또한 재생에너지에 전력 투자하기 시작했다.

한국이 석유 기반 경제구조를 깨지 못하고, 경제를 바라보는 방식에 있어서도 근본적 진전을 이루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중동과 미국의 오일머니 중독에서 벗어나겠단 의지를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럼 19세기 중국, 20세기 대영제국과 마찬가지로 ‘한물간’ 경제구조에 갇혀 다른 국가와 함께 쇠락의 길을 걸을 것이다. 신(新) 에너지 패러다임을 위해서는 깊고 강력한 변화가 필요하다. 오로지 수출을 통해 선진국 반열에 오르겠다는 꿈에서 깨어나 한국 경제의 근간을 냉철히 분석할 때다.

이만열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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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평론가 강헌씨가 재즈를 설명하면서 ‘흑인 특유의 폐활량과 두툼한 입술’이라고 표현한 적 있다. 이에 음악평론가 서정민갑씨는 ‘인종주의적 표현이 아닌가’ 하고 우려한 적 있다. 물론 강헌씨는 재즈를 신체적 특징으로만 설명하지 않았다. 19세기 노예 무역과 남북전쟁, 철도와 시카고, 2차 세계대전과 뉴욕, 1960년대 정체성의 미학과 민권운동 등을 두루 언급하였다. 서정민갑씨의 우려도 조잡한 비난은 아니다. 신체적 특징에 대한 과도한 표현이 복합적인 음악 세계를 일거에 덮어버릴 수 있음을 걱정한 것이다.

이처럼 특정 예술 분야를 그 인종적이고 신체적인 특징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조심스럽다. 그러나 거부하기 어려운 심미적 풍경도 있다.

며칠 전 유튜브로 현존 최고의 재즈 아티스트 허비 행콕을 위한 헌정 공연을 보았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까지 참석한 기념비적인 공연이다. 평생의 ‘지음’인 웨인 쇼터를 비롯하여 칙 코리아, 잭 디조넷, 마커스 밀러 등이 무대를 채웠으며 힙합의 절대지존 스눕 독까지 등장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나는 한쪽 눈으로는 온갖 악기들을 윷놀이 하듯 다루는 최고 명인들의 공연을 보면서도 다른 눈으로는 관객들의 반응을 보았다. 흑인이나 히스패닉 관중들의 몸짓은, 그루브를 타고 비트를 즐기는 것이었고 그에 비하여 백인 관중들의 몸짓은 간소했다. 이때, 약간의 인종적 특성과 문화적 감수성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차이’다. 특정 예술이 특정 피부색과 반드시 직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쇼미더머니 6>의 ‘N분의 1’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조우찬은 13살, 초등학생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까닭은 우사인 볼트 때문이다. 그가 마지막 레이스를 펼쳤다. 100m 마지막 기록은 9초95로 3위. 하지만 그의 위업은 찬란하다. 그가 이룩한 기록과 성적을 일일이 적는다면 이 지면으로도 모자랄 것이다. 그러니 개틀린처럼, 볼트라는 이름 앞에 경의를 표할 뿐, 나는 다른 얘기를 하고 싶다.

볼트를 말하면서 대개 자메이카를 동시에 언급한다. 면적은 한반도의 20분의 1에 불과하고 인구는 대구광역시 정도로 260만여명이며 국내총생산(GDP)은 143억달러로 세계 118위의 가난한 나라다. 볼트를 비롯하여 아사다 파웰, 일레인 톰슨 같은 선수들이 성장기만이 아니라 전성기 시절에도 잔디가 듬성듬성 나 있는 트랙에서 훈련할 정도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 작고 가난한 나라가 육상의 강자가 되었을까. 1988년 서울 올림픽의 벤 존슨(캐나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린퍼드 크리스티(영국),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의 도노반 베일리(캐나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의 멀린 오티(슬로베니아) 등이 자메이카 출신이다.

자메이카의 육상을 설명하면서 쉽게 떠올리는 것이 그 유전자와 토종 음식이다. 글래스고대학과 서인도대학이 200명 이상 자메이카 육상 선수들을 조사했더니 ‘액티넨 A’라는 특이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다. 근육 수축와 이완을 빨리 일으키는 유전자라고 한다. 자메이카 사람들이 즐겨 먹는 참마가 선수들의 스피드를 배가시키는 데 효험이 있다는 얘기도 한다. 이러한 설명은 재즈와 흑인의 폐활량처럼, 물리적인 요인으로는 충분히 거론할 만하다.

그러나 이런 유전자적 특징과 풍토적인 속성이 절대적인 이유처럼 표현되어서는 곤란하다.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국내 방송사는 줄곧 아프리카 선수들을 ‘흑인 특유의 파워’라는 말로 묘사했다. 이러한 표현은 그들이 전략이나 전술 없이 힘으로 밀어붙인다는 인상을 준다. 그 밖의 더 중요한 요인들은 이러한 오해와 편견 아래 묻혀 버린다. 나아가 제3세계의 당대적 삶 자체가 소멸된다.

다시 자메이카 얘기를 해보자. ‘타고난 기질’ 말고 그들이 이뤄낸 20세기적 성취 말이다. 자메이카 출신의 하버드대 사회학과 교수 올란도 패터슨은 특정 종목과 인종의 관련성을 의심한다. 오래전 자메이카인들은 서아프리카에서 건너왔다. 오늘날 서아프리카는 케냐 같은 동아프리카에 비해 육상을 잘하지는 않는다. 산악지대가 많은 자연 환경에서 ‘거침없이’ 달리다 보니 잘 달리게 되었다는 원시적인 해석도 거부한다.

대신 패터슨 교수는 공중보건과 사회체육을 거론한다. 20세기 초엽, 제3세계 여러 나라들은 미국의 록펠러 재단 같은 곳의 원조를 받으면서 자국의 질병 퇴치와 보건위생 개선을 시도했다. 이 사업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선진국 의료봉사단의 능력과 헌신만이 아니라 해당 국가의 재원이 필요하다. 재정이 열악한 자메이카는 주거환경의 개선과 사회 체육의 확산을 통해 가난과 질병에서 벗어나려 했다. 상대적으로 재원이 덜 드는 달리기는 최고의 사회 재생과 활력의 수단이었다.

특히 1960년대에 들어 자메이카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극대화되는 ‘라스파타리아니즘’의 분위기 속에서, 자메이카는 달리기를 통한 개인 건강 도모와 사회적 활력 신장에 집중하게 된다. 동네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달렸고 정기적으로 대회가 열렸으며 그 탄탄한 저변 속에서 곳곳에서 우사인 볼트 같은 선수가 속출했다. 이런 자메이카 육상의 핵심이 자메이카 공과대학이다. 이 학교는 ‘육상학교’를 모태로 출발하여 1960년대에 선진적인 스포츠과학을 접목하였으며 오늘날 세계 육상의 모범으로 꼽히고 있다. 이처럼 자메이카 육상은 타고난 인종적 특징이나 신토불이 음식의 성과가 아니라, 가난과 비위생의 생존 조건을 벗어나려는 자메이카의 ‘현대적 삶’의 성취다.

솔직히 여기에 밥 말리의 저항적인 레게 문화 운동까지 덧붙이고 싶으나 그 또한 과잉 해석인 듯하여 자제한다. 다만 2012년 남아공 월드컵 폐막식에서 울려 퍼졌던 밥 말리의 노래들 그리고 2006년에 맨체스터에서 직접 보았던 수많은 자메이카 축구팬들의 레게 응원이 단순히 그들의 신체적 특징이 넘실댔던 장면이 아니라, 식민과 가난의 일그러진 현대성을 저항하고 극복하려는 몸짓이었음을 기억하고 싶다. 우사인 볼트의 달리기 그리고 그의 유쾌하고도 의미 있는 세리머니 또한 그러하다. 그는 단순히 세상에서 가장 빨리 달리고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 사람이 아니다.

정윤수 | 스포츠 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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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자 정부에서는 서울 등 몇몇 지역을 투기과열지구 등으로 지정했다. 그러자 지정지역이 아닌 곳의 부동산들이 들썩이고 있다는 뉴스가 급하게 전해졌는데, 이런 현상을 풍선효과라고 부른다. 이것은 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불거져 나오는 것처럼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생겨나는 현상을 말한다. 

사창가의 성매매를 강력하게 단속하자 주택가의 오피스텔을 중심으로 유사성매매 업소들이 늘어난다거나, 파견노동과 기간제 근로를 규제하자 도급이나 용역이 늘어나는 현상이 대표적인 풍선효과라고 할 수 있다.

풍선효과가 자주 나타나는 분야가 교육이다. 이전 정부에서 사교육을 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능 영어 과목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것이 논의되자 사교육의 수요가 수학과목으로 몰리는 풍선효과가 실제로 나타나기도 했고, 선행학습 금지법이 국회에서 한창 논의될 때 ‘공교육만 선행학습을 금지하면 풍선효과로 사교육이 더 성행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전교조나 한국교총 등 교원단체들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요즘 들어 새로운 풍선효과에 대한 이야기가 무성하다. 대통령 공약이었던 자사고와 외고, 국제고의 일반고 전환 정책에 대해 많은 학부모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그 대안으로 비평준화 지역 명문고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사고 등과 같이 일정수준의 학생들이 선발되어 학습 분위기가 좋았던 학교들이 배정방식의 일반고로 전환되면 대입에서 힘을 쓰지 못하게 된다는 걱정에 비평준화 명문고라는 탈출구를 찾게 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비평준화 지역의 학교 서열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온 현상이다. 더구나 중학교 성적을 평가하여 학생들을 선발하는 방식이라면 수시 전형 중심이라는 대입 변화의 물결에 쉽게 적응하기 어렵다. 일반고에서라면 상위권 내신성적의 학생들이나 받을 수 있는 높은 수능 등급을 받은 지역 명문고의 중위권 학생이 막상 그런 수능 성적으로도 원하는 대학에 도전하기 힘들다는 것을 학부모들이 알아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자녀를 둔 학부모들을 상담하다보면 수능 고득점을 위한 선행학습의 실효성에 대해 고민하는 경우를 많이 만난다. 수능 고득점을 받는 것보다 내신성적을 잘 받는 것이 더 효율적인 입시 준비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반고의 학습 분위기와 일반고 선생님들이 수시중심의 입시에 제대로 된 도움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한 믿음이 약하다는 것 때문에 고민을 하게 마련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어쩌면 우리 교육에 희망이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됐다. 과거 같으면 대학입시를 위해서는 선행학습이라는 학교 밖 사교육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학교가 조금만 더 신뢰를 얻으면 된다는 희망을 갖게 된 것이 아닌가?

학력의 수준에 상관없이 누구나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좋은 일자리가 더 늘어나기 전에는 지금의 과열 입시경쟁은 근원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 어떤 정책을 동원해봐야 끊임없는 풍선효과만 나타날 뿐이다. 우선 일선 학교의 선생님들이 힘을 내주기를 바란다. 그래야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로서의 학교 밖 교육도 제자리를 찾아갈 테니까 말이다.

한왕근 | 교육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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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임금 격차 해소는 지구촌 많은 국가들이 집중하는 국정과제다. 2017년은 특히 관심이 집중되는 해이다. 지난 3월 아이슬란드는 세계 최초로 모든 기업이 남녀 간 임금 차별이 없다는 사실을 의무적으로 증명하도록 하는 법을 추진했다. 2018년부터 대기업과 정부기관들이 임금 평등규정 준수 확인증을 받아야 하고, 직원 25명 이상인 기업은 2022년부터 적용된다. 200명 이상 고용 기업 직원들이 동료직원 최소 5명의 평균임금 정보를 회사에 요청할 수 있는 독일의 임금공개법도 7월부터 시행됐다. 영국의 성별임금 격차 의무 보고도 2018년 4월까지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250인 이상 기업이 대상이다.

3·8 세계여성의 날인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전국여성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성별에 따른 차별을 낳는 조직 내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깨자는 의미에서 '유리천장 OUT'이라고 적힌 투명우산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얼마 전 영국 BBC방송의 연례 보고서 공개로부터 촉발된 흐름도 주목할 만하다. 고소득 방송인 96명의 명단과 보수 내역이 공개됐는데 이를 통해 공영방송 BBC의 임금 성차별 사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BBC 여성방송인들은 “BBC의 여성들이 같은 일을 하는 남성에 비해 적은 돈을 받고 있다는 오랜 의혹이 입증됐다”고 공개 비판하며 즉각적인 시정을 촉구했다. 메이 영국 총리, 교육부 장관 등은 BBC의 임금 차별에 주목하며 개선을 요구했고, 노동당, 여성평등당 등 정당들도 가세했다. 또한 이 흐름 속에서 한 칼럼니스트는 해고됐다. 언론 매체에 ‘남성 방송인이 더 많은 수입을 올리는 이유는 더 열심히 일하고, 덜 아프고, 임신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임금 차별을 두둔하는 칼럼을 썼다는 이유다. 칼럼 삭제는 물론 다시는 그의 글을 싣지 않겠다는 편집장의 사과도 있었다. 열거된 일련의 흐름과 과정은 조직 내부구성원부터 정부, 정당, 언론, 시민사회까지 각각 역할을 통해 영국 사회는 더 이상 남녀 임금차별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성평등한 영국 사회에 대한 합의와 의지, 그것이 제도를 만든 힘이고, 성별임금 격차 해소 제도의 위력을 만들며 영국 사회의 변화를 이끈다.

2017년, 15년째 OECD 성별임금 격차 부동의 1위인 한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참다못한 여성들은 현실을 바꿔보자고 나섰다. 성평등 대한민국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성별임금 격차 해소’를 꼽고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7월19일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이 발표됐다. 5개년 계획에는 후보 시절 약속한 ‘성별임금 격차해소 5개년 계획’ 수립으로 남녀 간 임금 격차를 OECD 평균 수준인 15.3% 수준까지 완화하겠다는 내용은 쏙 빠졌고 ‘성평등 임금공시제’만 남았다. 그나마 ‘성평등 임금공시제’의 세부 내용이 없다. 최근 정춘숙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고용정책기본법 일부개정안’이 그 내용으로 예상되는데 적극적 개선조치제도 대상인 공공기관과 50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해 성별·고용형태별 고용현황과 평균임금을 공시하게 했다. 대통령이 후보시절 얘기한 300인 이상 사업장 의무화에서도 후퇴했다. 여성노동자 대다수는 중소영세 사업장에 근무한다. 실효성이 우려된다. 성별임금 격차 해소에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게 대상 규모를 더 낮추어야 한다. 또한 5개년 계획에 빠진 ‘성별임금 격차해소 5개년 계획’ 수립과 지표관리 계획은 반드시 보완, 포함되어야 한다. 여성들은 함께 변화를 만들 준비가 되었다. 좀 더 강력한 정부의 의지를 보고 싶다.

김민문정 |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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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법적, 사회적, 도의적 책임과 상관없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참사의 재발방지와 제대로 된 수습의 가장 큰 역할은 정부에 있다. 참사가 발생하기까지, 그리고 참사가 발생한 이후 수습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 중 여러 지점에서 국가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였다. 이들 중 특히 가습기 살균제 제품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국가가 이미 운영하고 있던 두 제도, 즉 화학물질관리와 심사등록에 대한 제도 그리고 환경분쟁 조정제도가 방기하였던 가습기 살균제 피해의 예방 및 그 수습에 대한 국가책임은 지금에라도 반드시 묻고 지나가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 원료로 가장 많이 쓰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제조와 관련하여 1996년 (주)유공이 제출한 신규물질 등록 신청에 대해 1997년 환경부는 “유독물에 해당 안됨”이라는 화학물질심사결과를 통보하였다. 구체적으로 화학물질에 대한 독성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단지 고분자물질이라는 점에 근거해 크로마토그래프 분석결과와 비점, 용해도, 분자량 1000 이하의 함량, 수평균분자량, 그리고 잔류단량체 함량 자료에 근거하여 위험물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다시 말해 분자량이 크면 세포독성을 일으키지 않아 위험하지 않다는 일반적인 기준을 따랐다는 것이다.

5월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관계자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가습기 살균제 참사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그러나 이는 당시 화학물질관리제도를 갖춘 국가들이 적용하고 있던 고분자물질 관리 및 허가 기준과 괘를 달리하는 판단이었다. 특히 1995년 개정된 미국 유해물질관리법상의 고분자물질 유해성심사 면제 기준인 저위험 고분자물질(PLC) 규정과도 맞지 않는 기준이었다. 즉 1995년 미국의 PLC 규정은, PHMG와 같이 용해도가 높으면서 물에 녹아 양이온을 띠면, 고분자물질이더라도 높은 세포독성 가능성 때문에 심사면제에서 제외토록 한 규정이었으나, 1997년 당시 환경부의 판단은 이를 고려하지 못한 잘못된 판단이었다.

한편 피해의 수습은 그 완벽함에 따라 크게 배상, 보상, 구제로 나누어지며, 일단 정부가 먼저 수습을 하고, 그 책임자를 찾는 경우 구상을 받아낼 수도 있다. 여기서 환경피해의 배상을 위한 사법제도가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분쟁조정과 같이 배상이나 보상이 아닌 구제 수준의 행정적 조치가 필요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특히 환경피해는 그 입증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점, 그리고 피해 입증의 사법적 판단 이전이더라도, 환경피해의 경우 그 광범위함이나 비가역성 등에 비추어 원인판단에 따라 우선적으로 그 피해를 시급히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 등에서 사법적 판단과 별도의 행정적 관리 필요성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8월9일부터 시행되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법’은 피해에 대해 국가 자신의 책임은 전혀 없으며, 단지 회사와 소비자 간의 문제라는 입장에서, 모든 구제조치는 회사로부터 구상해야 한다는 행정적 단서를 달아, 결과적으로 구제의 범위를 인과관계가 확실한 배상대상만으로 축소시킨 제도이다. 정부는 병원비와 일부 장례비 등 최소한의 비용만을 지원하면서 그 비용마저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로부터 확실히 받아낼 수 있는 피해대상만을 한정함으로써 제대로 된 구제가 아니라 사실상 부분배상을 국가가 대리하는 제도에 불과한 것이다. 즉 피해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폐손상 판정의 28%에 불과한 1·2단계만 구제대상으로 하고 나머지 72%는 구제에서 배제해 버린 것이다.

전문가위원회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구상이 전제되어 있는 국가 지원대상에 가습기 살균제 노출로 인한 천식 피해를 포함시킬 수 없다는 일부 환경부 관계자들의 주장 또한 정부가 담당해야 하는 역할을 단지 사법처리상의 환경피해인정 전단계로만 국한시키려는 매우 부적절한 판단이다. 지금이라도 구상이 전제되지 않은 구제가 되도록 피해구제 특별법의 규정을 개정하여, 3단계(가능성 있음) 환자들을 포함하여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의 가능성이 폭넓게 제대로 구제되는 제도를 시행하여야 한다. 국민 생명과 안전의 보호는 최소한의 국가 책임이다.

백도명 |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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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현재 중학교 3학년이 치를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 시안을 10일 발표한다. 이번 개편안의 핵심은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도입 여부다. 교육부는 개편 시안을 발표한 뒤 권역별 공청회를 거쳐 31일 수능 개편안을 확정한다. 이는 고교 문과와 이과의 구분을 없애 모든 학생이 공통과목을 배우고, 선택과목 중 원하는 과목을 골라 듣도록 한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것이다. 수능 절대평가는 일정 점수만 넘으면 똑같은 등급을 받는 평가방식이다.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90점 이상 얻은 모든 학생에게 1등급을 주고, 80~89점이면 2등급을 부여하는 식이다. 현행 수능은 영어와 한국사만 절대평가로 치르고, 나머지는 성적의 상대적 위치에 따라 등급을 정하는 상대평가제를 적용한다.

서울 이화여고 고3 학생들이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령시험을 대비해 공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는 줄세우기식 입시경쟁을 완화하고, 사교육비 경감과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바람직한 방향이다. 고교 교육을 수능 과목 중심이 아닌 다양한 교육과정을 통한 창의적 인재를 길러내는 쪽으로 바꾸려면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부작용을 우려해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변별력 약화가 우선 꼽힌다.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를 시행하면 동점자 수가 많아져 수능 중심의 정시 전형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학들은 수능 변별력 약화를 핑계로 면접이나 대학별 고사를 강화해 사교육을 부추길 가능성도 있다. 특히 수시 전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는 대입제도에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란 주장도 있다. 교육부가 지난 3일 수능개편 시안을 보고한 ‘국정현안 점검 조정회의’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와 일부 장차관들이 “대입제도는 때론 천천히 가야 한다”며 ‘신중 추진론’을 제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도입만으로 대입제도의 문제점이 한꺼번에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교육부는 제도 도입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과거에도 새로운 대입정책을 추진했지만 이해가 첨예하게 갈리는 교육현장의 벽을 넘지 못해 무산된 경우가 많았다. 교육부는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도입이 고교 교육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문제임을 명심하고, 수능 개편안에 부작용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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