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황제’의 수식어가 펠레에게만 붙는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독일의 프란츠 베켄바워(71)의 별명도 ‘카이저(Der Kaiser·황제)’다. 선수 시절의 화려함만 따진다면 펠레(브라질)나 마라도나(아르헨티나)에 비해 다소 떨어진다. 하지만 곧잘 ‘헛다리 예측’으로 비웃음을 사는 펠레나 마약 복용 등으로 망가진 마라도나에 견줄 수 없다. 선수와 감독으로 월드컵을 제패했고, 바이에른 뮌헨에서 유러피언 3연패를 이룬 유일한 축구인이다. 2006 독일 월드컵 조직위원장 등 축구행정가로도 이름을 떨쳤다. ‘레전드 업계’에도 급이 있다면 베켄바워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야 할 것이다.

‘리베로(자유인) 시스템’을 완성한 전술혁명가로도 유명하다. 리베로 시스템의 원조는 1960년대 이탈리아 인터밀란의 왼쪽 수비수였던 자친토 파케티다. 파케티는 공격과 수비수의 업무 분담이 확실했던 시대에 왼쪽 측면에서 공격에 적극 가담하는 전술을 시도했다. 파케티의 플레이에 감명을 받은 베켄바워는 중앙수비수인 자신에게 이 전술을 적용했다. 만약 중앙수비수가 쏜살같이 공격에 가담하면 어떨까. 중앙수비수의 공격을 상상도 하지 못한 시대였으니 전담 마크맨을 붙이지 않은 상대는 혼란에 빠질 것이 분명했다. 베켄바워가 재창조하고 스스로 소화한 전술혁명은 1974년 서독의 월드컵 우승으로 꽃을 피웠다. 이 전술은 1980년대 3-5-2시스템으로 진화하면서 세계 축구의 주전술이 됐다. 오만하기까지 한 카리스마 역시 베켄바워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늘 명령하는 듯한 표정과 몸짓…. 올드팬이라면 이탈리아와의 1970년 멕시코 월드컵 4강전에서 쇄골이 부러졌음에도 투혼을 불사르던 베켄바워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독일대표팀과 바이에른 뮌헨팀을 ‘카이저가 조종하는 꼭두각시 팀’이라고 표현했다.

기자회견 갖는 베켄바워 월드컵 조직위원장 _연합뉴스

이렇게 평생을 ‘카이저’로 승승장구하던 베켄바워가 궁지에 몰렸다. 2006 독일 월드컵 유치과정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들을 매수한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아트사커의 창시자’인 미셸 플라티니 유럽축구연맹회장이 몰락한 것이 엊그제다. 팬들의 존경을 받아온 레전드가 비리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꼴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기환 논설위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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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한 지 4주째로 접어들었다. 겨우내 썰렁했던 교정에 학생들이 바쁘게 오가고 따스한 햇살에 봄바람까지 부니 학교가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선거 관련 일들로, 또 아동 학대 사건들로 사회가 어수선하지만, 봄이 오고 학생들을 다시 만나니 괜히 기분이 좋다. 하지만 그런 기분도 잠시, 학교 곳곳에서 만나는 여러 장면들에 마음이 금세 불편해진다.

장면 하나. 지난 월요일이었다. 수업하러 강의실에 들어갔더니 그 따뜻한 날씨에도 학생들이 온도를 24도에 맞추고 난방기를 틀고 있었다. 한 학생은 겉옷을 입고 있기가 거북했는지 겉옷을 벗은 채 반팔 차림이었다. 수강생들끼리 아직 잘 몰라 더워도 끄자는 말을 못했을 것이다.

장면 둘. 건물 에너지 소비 저감에 관한 세미나가 열렸던 강의실,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데 관심 가진 이들이 모였건만 자연 채광을 이용할 생각은 않고 블라인드를 내린 채 전등을 켜고 세미나가 진행되었다. 그때 그곳만이 아니다. 직사광선이 아니라면 굳이 블라인드로 가릴 필요가 없는데, 강의실 블라인드를 걷을 생각도 않고 으레 모든 전등을 켜는 일이 예사다.

장면 셋. 출근길에 종종 들르는 학교 안 카페가 있다. 그 카페 건물 바깥쪽엔 언제나 조명등 수십개가 켜져 있다. 장식용 조명등은 물론이고 이미 해가 떠서 환한데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의자와 테이블 위 외부로 뻗어나온 천장에도 조명등 스무 개 정도가 하릴없이 켜져 있다.

장면 넷. 식당 창가 쪽 식탁 위 전등 수십개와 대낮이라 장식효과도 없는 장식 조명등 10여개가 아무 필요도 없이 켜져 있다. 새로 단장해서 호텔처럼 멋들어진 식당엔 전등 수백개가 대낮에도 창가건 현관이건 가리지 않고 켜져 있다. 조명은 우리나라 전력소비의 17.3%나 되기에 결코 하찮지 않다. LED 등 교체보다 필요하지 않은 전등 끄기가 더 중요하다.

에너지시민연대회원들이 6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앞에서 종이로 만든 에어컨 모형을 들고 에너지절약 캠페인을 하고 있다._박민규기자

두어 해 전엔 이런 일도 있었다. 교내 특강 행사에 참가했는데 양팔을 책상 위에 올린 채 강의를 듣다 팔꿈치가 뜨듯해지는 걸 느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살펴보니 컴퓨터 모니터가 켜진 채로 접혀 있었고 책상 아래 컴퓨터 본체도 켜진 채로 있었다. 그 자리만이 아니었다. 단과대 컴퓨터실이었던 그 방 안의 100대가 넘는 컴퓨터 본체도, 접혀진 모니터도 모두 그랬다.

이런 장면들이 다가 아니다.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사용하지 않는 기기의 플러그가 1년내내 꽂혀 있고 아직도 비데 변좌가 켜진 곳이 다수다. 그리 높지 않은 건물에서도 엘리베이터를 타는 게 오히려 기본이다. 빔 프로젝터나 자연 채광을 고려해서 전등 배선을 하지 않은 곳이 숱하게 많다. 어느 전등 스위치가 어느 열이나 줄인지 몰라 껐다 켰다를 반복하기 일쑤다.

서울대가 기관별 전력 소비에서 전국 1위인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비단 서울대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대학에는 대형 건물이 많고 연구설비와 실험 기기들이 많은 데다 냉난방을 주로 전기로 하기에 전기 소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서울 소재 54개 대학 중 39%인 21개 대학이 에너지 다소비 건물에 속한다. 전력요금을 줄여 학생 복지나 장학에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게다가 오늘 우리가 줄이지 않으면 늘어난 수요가 기준이 되어 앞으로 더 늘어날 수요에 맞춘다는 명목으로 계속해서 석탄화력발전소나 원자력발전소를 지어나갈 것이다.

기후변화와 대기오염 같은 환경문제, 원전 가동 위험이나 사용후 핵연료 처리문제, 송발전 설비 입지를 둘러싼 사회갈등을 생각할 때 전력 소비를 점점 줄이지 않으면 안된다. 줄이면 더 지을 필요가 없다. 그린캠퍼스운동이 한창 진행 중이지만 아직 할 일이 너무나 많다. 대학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자.


윤순진 |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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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 대결 이후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정부는 인공지능 기술을 창조경제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겠다 등 인공지능 관련,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자녀를 바둑학원에 보내려는 학부모들의 문의가 급증하는 가운데 초·중등학교 국가교육과정에 이미 도입된 컴퓨터 소프트웨어 교육뿐 아니라 코딩 교육도 필수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교육계에 확산되고 있다.

인공지능과 바둑 대결을 벌인 이세돌은 온 국민의 열광적인 응원과 사랑을 받았다. 엄청난 양의 수치화된 정보를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해 순식간에 계산하는 냉혹한 인공지능을 상대로 체력적 한계와 감정적 동요를 극복하고 거둔 1승은 이세돌의 인간 승리였다. 이번 대국은 결과에 상관없이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용기와 열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특히 최선을 다한 실패가 창출할 수 있는 다양한 의미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된 바둑 대결로 구글은 엄청난 홍보 효과와 함께 주가 상승의 보너스를 챙겼고, 알파고 개발자 데미스 허사비스는 스타급 CEO로 급부상했다. 1976년 런던에서 태어난 허사비스는 체스 영재였는데, 17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컴퓨터게임 회사를 차렸다. 10대 시절 만든 시뮬레이션 게임을 수백만 개 파는 데 성공한 ‘게임 보이’는 다양한 장소를 넘나들며 인생의 경로를 바꾸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보수적인 분위기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며 학문적 기초를 닦은 후에는 어린 시절 추억이 가득한 런던으로 다시 돌아왔다. 창조적 인재가 몰리는 세계 도시 한복판에 있는 UCL에서 인지신경과학 분야 박사학위를 딴 그는 다시 대서양을 건너 미국 동부의 MIT와 하버드에서 박사후 연구 과정을 밟는다. 이후 미국 서부의 실리콘밸리로 이동한 허사비스는 자신이 창업한 ‘딥마인드’를 6000억원에 인수한 구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한 단계 더 도약해 ‘알파고의 아버지’가 되었다.

이번 알파고와의 대국으로 서울은 단번에 인공지능 기술이 아닌 ‘담론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기술의 위력에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암울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에 빠졌다. 바둑판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벗어난 인공지능이 현실 세계의 다양한 영역으로 그 세력을 확장했을 때 얼마나 많은 인간 고유의 영역이 침범당하게 될지 모두가 불안한 상황이다. 앞으로 바둑기사나 평범한 직장인뿐 아니라 의사, 교수, 법률가, 금융인 등 고액 연봉을 받는 전문가들, 고급 지식노동자들조차 기존의 패러다임을 계속 고수한다면 인공지능과의 생존 경쟁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다. 수능처럼 정답이 분명한 시험이나 암기력과 논리적 사고가 중시되는 고시를 거쳐 선발된 ‘알파고형 인재’들이 더 이상 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든 세상이 갑자기 와버린 것이다.

한정된 사고의 틀 속에서 정답을 골라내는 기술을 연마해 진학과 취업에 성공하고 사랑과 결혼도 조건과 점수에 맞춰 과학적으로(?) 하는 데 익숙한 이들은 이미 알파고의 세계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알파고를 이기려면 이세돌이 쓴 책의 제목처럼 ‘판을 엎어라’ 전략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세돌은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의 특별한 교육철학에 따라 자연에서 뛰어놀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10대에 아버지를 여의고 객지생활을 할 때는 오락실에서 게임만 하던 ‘방황의 시기’도 거쳤다. 실제로 창조경제 중심지인 영국에서는 디지털 기기의 사용도 장려하지만, 야외에서 지도와 나침반을 들고 탐사하며 공간적 의사결정을 배우는 활동, 오감을 열어 다양한 세상을 체험하고 감성과 상상력을 기르는 창의성 교육도 여전히 중시된다.

하루 종일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며 사이버 공간에 갇혀 인공지능과 씨름하는 직종보다는 농부·시인·정원사·예술가·탐험가 등 컴퓨터와 별 상관이 없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급변하는 기술과는 상관없이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장인들의 직업 전망이 오히려 밝을 수 있다. 알파고의 시대에 적응하고 살아남으려면 컴퓨터와 경쟁이 불가능한 아날로그적 장소와 상상력의 세계를 확장해 나가고, 자연 속에서 오감을 열어 체험하는 방법을 가르치며 다양한 환경에서 감성과 창의성을 기르는 교육활동이 더 장려돼야 하지 않을까?

■지리 꿀팁

어려서부터 지리답사와 야외활동을 통해 모험심을 기르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는 영국은 세계 지리교육의 중심지다. 수백년 역사를 지닌 영국의 이튼·킹스 등 사립학교에서 지리는 필수과목이었고, 지금도 옥스퍼드·케임브리지 등 영국 대학에서 지리학은 문·이과를 연계하고 통섭을 주도하는 융합 전공이다. 독일·프랑스 등 유럽의 대학에서도 지리학은 세상이 변화하는 현장으로 달려가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는 학문으로 인식되지만 세계 최강으로 알려진 미국 명문대학에서 지리학의 위상은 의외로 낮다. 사회과 교육의 일부로 지리를 실내에서 대충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미국과 한국은 세계에서 학교 지리교육이 가장 약한 나라에 속한다.

김이재 | 문화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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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정보를 훔치는 해커다. 고용인의 정보를 훔치던 그는 배신의 대가로 신경계가 손상된 채 무력한 날들을 보낸다. 그러던 중 그에게 아미티지라는 미지의 인물이 나타나 신경접합수술을 지원하고 자신의 명령을 따라줄 것을 요구한다. 그는 새로운 고용관계를 맺고 다시 해커로 활동하게 된다. 그는 의문의 고용인이 재벌이 만든 두 개의 인공지능, 뉴로맨서와 윈터뮤트의 명령을 받는 또 다른 인공지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윌리엄 깁슨의 21세기 기념비적인 소설 <뉴로맨서> 줄거리의 일부다.

소설에 나오는 두 개의 인공지능, 뉴로맨서와 윈터뮤트는 실재와 가상세계, 영혼과 육체의 총체 등을 상징하는 매트릭스로 완성된다. 최근 인공지능 알파고 열풍은 깁슨의 소설 <뉴로맨서>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인공지능은 제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이다. 이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것은 프로그래밍이며, 이는 프로그래머가 컴퓨터언어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는 어려서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즐겼다. 구글의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그리고 마크 저커버그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프로그래머인 동시에 원래 의미로서의 해커였다.

얼마 전 다음카카오에서 김기사라는 내비게이션 프로그램을 626억원에 인수했다. 창의적인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 시장은 언제나 호응한다. 잡스는 “모든 사람들이 어린 시절부터 프로그래밍언어를 배워야 한다”면서 “프로그래밍이 생각하는 법을 알려주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페이스북의 전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싸이월드나 아이러브스쿨 같은 사이트는 충분한 저력을 가졌음에도 결국 문을 닫았다. 세계 최초의 사회관계망서비스였지만, 비즈니스 모델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했을뿐더러 서버자원 구축 등 서비스의 불안정성이 실패요인이었다. 하지만 가장 큰 요인은 그 어디에도 없는 서비스를 개발했지만 어떻게 이끌어나가야 할지 개발자조차 알지 못했다는 거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잡스가 지적한 사고하는 법을 제대로 몰랐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미국, 영국, 핀란드 등 선진국들은 소프트웨어 교육에 미래를 걸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고등학교 컴퓨터 프로그래밍 수업 의무화로 청소년 컴퓨터 프로그래밍 교육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 이행 중이다. 현재 우리나라도 중요성을 깨닫고 향후 프로그래밍 수업을 진행할 계획이었지만 구체적 이행방법에서 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당국에서 하루빨리 교통정리에 나서 프로그래밍 교육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우리는 장시간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한 관심을 잃었고, 이에 대한 소홀한 정부 대책으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고 가용 인력조차 부족하다는 것이 업계의 진단이다.

애플 CEO 스티브 잡스가 '맥월드 컨퍼런스 엑스포'에서 아이폰을 발표하고 있다._연합뉴스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치우기 시작하면서 프로그래머들이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음악에서는 아이튠스, 판도라, 심지어는 애니메이션의 픽사를 비롯한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업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지 10여년이 지났고 그 흐름은 계속됐다.

최근 사람들의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은 대부분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할 수 있다는 디스토피아적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수십년 동안 인공지능은 체스에서 인간에게 패배를 안겨줬고, 심지어 퀴즈쇼에서도 인간에게 승리했다. 이길 수 없다던 바둑에서조차 4승1패로 인간을 넘어섰다. 그렇다고 해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지배할 수 있다는 가설은 아직 시기상조다. 인공지능은 우리의 노력과 땀이 이룬 성과이지 싸움 상대가 아니다. 우리는 인공지능과의 공존을 도모하는 것은 물론 삶의 파트너로 받아들여야 한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전 이후 정부는 향후 5년간 3조5000억원을 투자해 인공지능 5개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지능정보산업 발전 전략’을 내놨다. 잘한 일이지만, 꼭 이벤트가 있어야 이 같은 갑작스러운 투자와 전략을 내놓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 일상에 파고들었다. 무인자동차, 로봇청소기, 번역기, 드론 등은 생활용품으로, 로봇인형이나 로봇애완동물 등은 인간의 파트너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 정도 속도라면 의학, 금융, 구조 등에서 10년 내에 상용화가 가능한 인공지능로봇이 눈앞에 선보일 것이다. 혁신과 창의적 사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의 “전 국민의 프로그래밍 스터디”를 명심해야 한다. 그는 또 죽음을 앞두고 “개발은 머릿속에 담긴 수천가지 개념들을 원하는 결과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새롭고 다른 방식으로 끼워맞추기를 하는 것”이라면서 “이것은 삶의 끊임없는 과정과 다를 게 없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최희원 | ‘해커묵시록’ 작가·인터넷진흥원 수석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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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계신 분들도 현대중공업에 근무를 한다면 24시간 감시의 대상이 됩니다. 무서운 조직입니다.” 2011년까지 현대중공업에서 운영과장(노무 담당)을 지낸 이재림씨의 얘기이다.

민주노조가 들어서지 못하도록 대의원 선거를 통제하고 민주 성향 조합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 왔다는 것.

“집에 가서 씻을 때까지 추적, 감시합니다. 어디에 가서 누구를 만나고 소주는 얼마를 마셨는지.” 이런 행태가 최근까지 이어져 왔다는 사실이 엊그제 추가로 폭로되었다. 현대중공업 노조와 사내하청지회가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중공업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문서를 공개한 것. 이 문서는 작년 대의원 선거에 출마한 조합원들을 R(레드=민주), Y(옐로=중도), G(그린=사측)로 분류하고 있다.

“신규노조 가입 인원이 최근 1주일간 1명도 없는데 어떠한 활동을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점검하라. … 9월20일까지 220명, 9월30일 250명, 10월10일 290명 목표로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1명도 없는 이유가 뭔지 강하게 전달하라.” 현대자동차 최모 이사대우가 부하 직원들에게 보낸 ‘유성동향 일일보고(9월19일)’라는 제목의 e메일 내용이다. 금속노조에서 탈퇴해 기업노조로 새로 가입하는 노동자가 적다고 지적한 e메일 내용을 보면, 현대차가 부품사인 유성기업에 조직된 민주노조 파괴를 위해 매우 구체적인 지시를 해 왔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부품사에 대한 노무관리가 이 정도라면 직접 고용한 노동자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현대차를 판매하는 영업노동자에 대해 국내영업본부 인사실 차원에서 지속적인 미행과 감시가 진행된 바 있다. 업무시간에 동호회에 참석하거나 당구장 또는 PC방에 있었다며 해고하는 사건이 줄을 이었다. 영업노동자의 경우 다양한 판촉 활동을 펼치기 때문에 위의 사실관계만으로 근무태도를 평가할 수 없음에도, 조합원의 일거수일투족을 미행·감시해 왔던 것이다. 최근에 같은 현대차그룹에 속한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도 노조 간부에 대한 사찰 문건이 폭로된 바 있다.

현대차그룹과 현대중공업, 한국 재벌 순위 각각 2위와 7위를 차지하는 대기업들에서 미행·감시·사찰 관련 사건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 그룹에서 최근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대강의 전모를 알 수 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재작년부터 사무일반직과 고졸 여사원 수천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이라는 형식으로 인위적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퇴직을 거부한 과장급 직원 1000여명에 대해 원격지 발령, 업무용 PC 치우기, 경고장 발송을 남발했고, 끝까지 버티는 직원들에게는 ‘업무향상교육(PIP)’을 일방적으로 시행하며 사실상 퇴직을 종용한 바 있다. 박근혜 정권이 밀어붙이는 ‘저성과자 해고’ 프로세스를 그대로 밟았던 것이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소속인 영업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최근 저성과자 해고 문제가 전면화되고 있다. 지난 3월8일 열린 노사협의회 상견례 자리에서 현대차 사측이 17명의 조합원들을 저성과자라며 징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미 현대차는 66명의 조합원들에게 저성과자라는 핑계로 경고서한을 발송한 바 있으며, 생산성 향상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통보했다. 현대중공업에서 벌어진 일들을 똑같이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3월17일에는 유성기업의 민주노조 탄압에 시달리던 한 조합원이 목을 매 자결하는 비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배후에는 유성기업의 원청인 현대차의 지휘가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같은 날 현대차 노사협의회 상견례 자리에서 회사 측은 임금피크제 시행 확대를 들고나왔다.

현대차 노사관계가 가진 파급력을 감안할 때, 이는 부품사를 비롯한 자동차산업 전반으로 확대하겠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즉, 현대차그룹과 현대중공업에서 폭로되고 있는 미행·감시·사찰 사건들의 종착역에는 임금피크제, 저성과자 해고 등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노동개악이 놓여 있다. 민주노조가 서 있는 사업장들에서 폭로되는 내용이 이 정도일진대, 노조조차 없는 다른 사업장들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이 2개 그룹이 아닌 다른 재벌사들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공정해고.’ 박근혜 정부가 행정지침으로 발표한 저성과자 해고에 대해 노동자들이 ‘쉬운 해고’라는 딱지를 붙이자 이렇게 말을 바꿨는데 표현이 참으로 얄궂다. 공정한 해고라니? “해고는 살인”이라는 익숙한 슬로건을 떠올린다면 공정한 살인도 가능하단 말인가. 이런 표현을 정부가 사용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저임금과 비정규직, 실업에 허덕이는 청년들의 분노가 ‘불공정’이라는 말에 꽂히고 있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정해진다는 흙수저·금수저, 청년에겐 이미 이 나라가 지옥이나 다름없다는 ‘헬조선’ 등의 말에는 한국 사회의 불공정 행태에 대한 분노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하지만 이른바 ‘공정해고’를 밀어붙이는 재벌들의 행태야말로 공정함과는 전혀 인연이 없다. 공정한 해고가 아니라 조합원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꼬투리를 잡는 등 ‘해고 공정’을 밟고 있을 뿐이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 최대 수혜자가 재벌이라는 사실이 입증되는 대목이다. 재벌들이 노동개악을 밀어붙이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수백조원의 사내유보금을 갖고 있는 재벌들이 이 정도라면 대부분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을 청년들을 고용한 사업주들은 어떠할까.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이 있었던 것처럼 총선을 앞두고 ‘공정함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전 사회적 토론이 필요하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금호아시아나 재벌이 아시아나 기내 청소노동자들이 만든 노조에 ‘아시아나’라는 말을 쓰지 말라는 거액의 손배소송(갑질 소송)을 제기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공정한 사회를 위해 노동개혁이 필요한가 재벌개혁이 필요한가.


오민규 |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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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에 봄기운이 가득하다. 굳고, 단단하고, 추웠던 겨울을 거두어 내는 것이 이 부드러운 봄이라니…. 겨울을 견뎌내고 딱딱한 땅을 뚫고 나오는 풀들도, 굳은 나뭇가지에서 견고한 겨울눈의 껍질 속에 드러나는 것도 보드랍고 야들야들한 새싹이라는 것이 참으로 신비스럽다. 이른 봄의 야생화들은 더없이 작고 여리며 곱고 아름답다. 남들보다 한발 먼저 꽃을 피우느라 굳고 큰 줄기를 만들 새도 없이 땅 위에 올망졸망 올라온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는 나태주 시인의 ‘들꽃’이라는 짧은 시처럼 너무 작고 귀해서 몸도 낮추고, 한껏 마음을 열고 숲속이나 들판을 찾아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소중한 봄꽃들이 이 봄에 지천이다. 봄꽃들은 한번 눈과 마음에 들어오면 세상의 행복을 만끽하게 해준다. 많은 이들은 여리지만 강한 봄꽃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그래서 이즈음이면 사람들은 봄꽃에 대해 얘기한다.

이 봄에 내 마음을 붙잡고 있는 것은 복수초도, 제비꽃도, 별꽃도 아닌 소나무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늘 푸른 소나무 말이다.

소나무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프고 답답해진다. 수십, 수백년간 모진 어려움을 견뎌내고, 푸르름을 간직하며 강건한 기상으로 우리 민족에게 자긍심을 주던 소나무들이 지금 큰 어려움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는 수난을 많이 당한 우리 민족과 닮았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숱한 나무들이 베어졌다. 송충이라 부르는 솔나방의 애벌레에 잎이 갉아 먹혔고, 솔잎혹파리의 피해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소나무는 이를 잘 견뎌냈다.

하지만 지금 온 나라의 소나무들에게 위협을 주는, 소나무재선충병은 예사롭지 않다. 소나무재선충병은 일단 감염되면 치료가 불가능한 무서운 병이다. 1905년 처음 발견된 일본도, 1985년에 알려진 대만도 대부분의 소나무를 잃고 포기한 상태다. 우리나라에는 1988년 금정산에서 처음 발견됐다. 금강공원에 일본원숭이를 들여올 때 이용한 소나무 상자를 통해 소나무재선충이 옮겨졌다고 알려져 있다.

소나무재선충은 길이가 1㎜ 정도의 실처럼 가늘고 작은 선충의 한 종류이다. 순식간에 번식해 양분과 수분이 이동하는 통로를 막아버린다. 감염된 소나무는 6일 만에 잎이 처지고, 20일이 되면 시든다. 30일이 되면 소나무를 고사시킨다. 소나무에 침입한 작은 선충들은 스스로 옆으로 확산하지는 못한다. 이 일을 하는 매개충은 솔수염하늘소이다. 솔수염하늘소는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의 새로 난 잎을 먹으면서 옮겨붙는다.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는 천적 등을 활용해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30년간 연구해 온 일본에서도 아직까지 확실한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다만 병에 걸리기 전에 예방하는 방법과 감염된 나무를 격리해 확산되지 못하도록 처리하는 방법이 있다. 전자는 모든 소나무에 예방주사를 놓아야 하기 때문에 비용과 인력이 많이 들어간다. 게다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도 있다. 그래서 문화재처럼 보전해야 할 가치가 있는 소나무들은 예방조치가 최선이다. 병든 나무를 찾아내 베어낸 뒤 훈증처리제를 뿌리고, 비닐로 완전히 덮어 유충이 탈출하기 전에 죽도록 하는 것이다.

산림당국은 현재 100만본이 넘는 소나무에 재선충병 방제작업을 했다. 생나무 한 토막도 들기 어려울 만큼 무거운데 기계조차 쓸 수 없는 비탈진 산지에서 방제작업을 하고 있는 분들의 노고로 청정지역이 된 곳도 있다. 하지만 소나무재선충병이 확산된 곳도 적지 않다.

철저함과 소홀함이 소나무의 생사를 가른다. 병든 나무를 몰래 가져다 쓰거나, 병이 발생한 곳에서 소나무를 옮겨 가거나, 붉게 죽은 나무들을 제대로 찾아내지 않거나, 덮어준 비닐을 만나도 그냥 지나치는 우리들의 무신경이 소나무를 살리기 위한 노고를 헛되게 하고 있다. 솔수염하늘소가 성충이 돼 선충을 옮기기 전에 소나무 살리기 작업을 끝내야 한다.

소나무의 푸르름을 지켜내기 위한 국민운동이라도 전개했으면 한다. 등산 모임들은 산림당국과 함께 붉게 죽어가는 소나무를 찾아내는 모니터링에 참여하고, 소나무를 몰래 옮기려는 사람들을 신고해줬으면 한다. 특히 방제를 소홀히 해 재선충병이 퍼져나가는 원인을 만든 곳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책임을 지고 관리해야 한다.

이 땅의 소나무들은 기후변화나 숲의 천이로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겪어내야 할 어려움도 많다. 자연적인 현상은 어찌할 수 없더라도 무관심으로 소나무들이 죽어가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재선충병으로부터 소나무의 푸르름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두고두고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소나무 파이팅!!


이유미 |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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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일본 정부가 고등학교 사회과 교과서 검정결과를 발표했다. 사회과 검정교과서 35종(윤리 제외) 중 77%에 해당하는 27종에 독도가 기술됐다. 그중에서도 모든 지리, 일본사, 현대사회, 정치경제 교과서에 독도를 기술했다. 내용 면에서도 이전 2012년 검정교과서에 비해 악화되었는데, ‘일본 고유의 영토’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기술한 교과서도 다수다. 심지어 한국이 독도를 ‘무력 점령’하고 있다고 서술한 교과서도 있다.

몇몇 지리 교과서의 경우,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라는 논거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는데, 다음 3가지 논거를 들고 있다. ‘첫째, 일본은 17세기 에도(江戶) 시대에 독도에 관한 영유권을 확립하였다(논거 ①). 둘째, 1905년 시마네현 편입조치를 통해 영유의사를 재확인하였다(논거 ②). 셋째, 1951년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도 독도가 일본의 영역에서 배제되지 않았으므로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가 확인되었다(논거 ③)’는 것이다. 이는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 게시돼 있는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를 그대로 답습한 것으로, 향후 일본의 독도 교육도 이에 기초해 이루어질 것이다.

일본이 제시하는 3가지 논거가 나름 논리 체계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일본의 3가지 논거가 ‘태정관 지령’이라는 단 하나의 문건에 의해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독도를 조선 영토로 인정한 태정관 지령문 내용. `일본해내 다케시마외일도(竹島外一島)를 판도외(版圖外)로 정한다' 는 제목이 눈에 띈다" 이 공문서는 일본 도쿄의 국립공문서관에 소장돼 있다._연합뉴스

1877년 일본 메이지(明治) 정부의 최고 행정기관인 태정관은 “울릉도 외 1도(독도)는 일본과 관계없다는 것을 명심하라”는 지령을 하급기관에 시달했다. 이를 ‘태정관 지령’이라고 하는데, 일본 메이지 정부의 공문서에 기록돼 있다. 이 지령은 17세기 이후 울릉도(독도) 영유를 둘러싼 조선과 일본 정부 간 외교 교섭의 역사, 과거 일본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문서 등을 기초로 내려진 결정으로, 1877년 이전 어느 시기에도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확립한 적이 없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이 17세기 에도 시대에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확립했다는 첫째 논거(①)는 거짓이다.

1905년 시마네현 편입조치와 관련된 둘째 논거(②)도 거짓인데, 영유권 확립은 고사하고 ‘태정관 지령’을 통해 영유의사마저 포기한 독도에 대해 영유의사를 재확인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독도는 일본과 관계없다는 것을 명심하라’는 태정관의 준엄한 지령이 있었기 때문에, 1905년 이전에 발간된 일본의 어느 관찬 지도나 문헌에서도 ‘일본령으로 표기된 독도’를 찾을 수 없다. 아울러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관련된 셋째 논거(③)도 그 기반이 되는 첫째 논거(①)와 둘째 논거(②)가 거짓이고 어불성설이기 때문에 저절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1905년 이후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태정관 지령’의 존재를 애써 은폐 또는 외면해오고 있다.

독도가 일본이 아닌 한국의 고유영토라는 증거는 1877년 ‘태정관 지령’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독도를 울릉군수의 관할구역으로 규정한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비롯해 독도를 일본의 통치영역에서 제외한 1946년 연합국최고사령관 각서(SCAPIN) 제677호 등 분명한 증거들이 존재하고 있다. 일본의 독도 왜곡 교육에 대응해, 우리의 독도 교육 현실을 재점검해야 할 때이다.


홍성근 |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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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컨설팅이 개입한 노조파괴 논란으로 극심한 노사갈등을 빚고 있는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 조합원 한모씨가 어제 숨진 채 발견됐다. 한씨는 2011년 유성기업에서 노사분규가 발생할 당시 대의원으로 활동했으며, 최근까지 조합원들에 대한 각종 징계와 해고, 손해배상 청구 등을 지켜보면서 극심한 심적 고통에 시달려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씨는 정신건강 실태조사에서 고위험 우울증 의심 판정을 받아 요주의가 필요한 상태였으나 사측은 아랑곳하지 않고 문자로 징계 절차 개시를 통보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 볼 때 한씨의 죽음은 단지 개인적 일로 치부하기 어렵다. 특히 지난해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43%가 심각한 고위험 우울증에 노출돼 있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됐음에도 아무런 배려 없이 징계절차를 강행해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측은 무한책임을 느껴야 한다.

유성기업에서는 2012년에도 노조파괴 과정에서 노동자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2011년 11월 1일 유성기업 간부가 심종두 창조컨설팅 대표에게 보낸 e메일. 현대차가 유성노조(기업노조) 신규가입자를 70~80% 선까지 확보하라고 강요한다는 내용이다._금속노조 제공


검찰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검찰은 2012년 국회에서 창조컨설팅의 조언을 받은 사측이 직장폐쇄와 용역투입 등을 통해 노조를 파괴한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2년간이나 수사결과 발표를 미루다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검찰이 사건 초기에 신속하게 수사해 부당노동행위를 단호하게 처벌했다면 안타까운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측의 노조파괴 문건이 발견됐는데도 조합원 징계를 남발하고, 대법원의 부당해고 판정까지 받은 조합원들을 다시 해고할 수 있었던 것도 검찰의 소극적 수사 태도와 무관치 않다고 할 수 있다. 검찰은 원청인 현대자동차 임원진이 노조파괴를 지시했음을 입증할 e메일을 확보하고도 불기소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한씨의 죽음에는 ‘더 이상 법이 우리 편이 아니다’라는 깊은 무력감이 깔려 있다. 실제로 검찰이 최근 5년간 부당노동행위로 구속 기소한 경우는 단 1건도 없다. 검찰은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적절한 형벌권이 행사되고 있는지 냉철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노동자들은 끝까지 연대를 통한 희망을 놓지 말기 바란다. 극단적 선택은 문제 해결 방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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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관료는 퇴임 후 인생이 더 찬란하다. 2008년 이후 고위 퇴직자 중 69%가 대학총장, 주요 보직교수로 재취업했다. 가령 2014년에 차관이 우석대 총장으로 취임했고, 2012년에는 차관이 동명대 총장으로, 기획조정실장이 국제대 총장으로 갔다. ‘전관예우 로비스트’ 치고는 명예롭기 그지없다. 수명도 꽤 길다. 바로 ‘불사조 김문기’가 서식할 만한 환경이다. 수원대 비리에 대한 교육부의 솜방망이 감사도 그런 이유 때문일까?

이런 교육부가 얼마 전 수상한 입법예고를 했다. ‘학교법인이 벌이는 소송에 교비를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시행령이다. 교비는 곧 등록금이다. 사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송은 대개 교수를 탄압하고 비리를 감추는 일인데, 그런 일에 학부모들의 피같은 등록금을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놀란 입을 다물 수 없다.

대법원은 ‘소송비용의 교비회계 지출은 횡령행위’라고 작년 3월에 판결을 내렸다. “용도가 엄격히 제한된 자금을 그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불법영득의 의사를 실현한 것이 돼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한 것이다. 교육부는 이런 판례도 무시하고, “관계법령에 규정이 없고, 회계운용의 합리성 확보를 위해서”라고 이유를 댔다.

하지만 그동안 교육부는 이런 경우 예외없이 경고와 시정명령을 해왔다. 갑자기 자기모순에 빠진 것이다. 더욱 용감무쌍한 것은, 사립학교법 제29조의 ‘교비회계의 수입은 다른 회계로 전출할 수 없다’는 상위법을 바로 이번 시행령으로 무시하려는 ‘초법’을 감행한 것이다. 무식하면 용감해도 되나?


서울시립대·4년제 대학 연간 등록금 비교_경향DB

‘대학구조 개혁’만 해도 그렇다. 학령인구의 감소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의 정규교원 확보율을 개선할 호기로 삼는 것이 상식이거늘, ‘등급 매기기’라는 칼자루에만 매몰되어 있다. ‘등급에 따른 장학금 제한’에 민감한 학생들에게 이런 ‘반교육적인 망치’로 가슴을 멍들게 하고 있다. 이게 ‘교육’부라니! 이번 입법예고의 기괴한 발상도 이해가 된다.

교육부의 무능은 등록금 회계의 투명성조차 제대로 확립하지 못하는 데 이르고 있다. 우리 등록금은 OECD 최고 수준이다. 등록금을 받아 제때 쓰지 않고 십수년간 쌓아놓은 수원대의 45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적립금은 도대체 어찌해서 가능했는가? 누가 이렇게 방치했는가? 바로 교육부의 무능을 웅변한다. 학부모는 쓰라린 가슴과 허탈만이 남는다.

수원대 학생들의 등록금 환불 1심 승소는 ‘등불’이 되었다. 등록금에 비해 턱없이 적은 교육비 지출을 통해 이월 적립금을 발생시킨다면 그것은 ‘영리’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런 대학이 한두 군데가 아닌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반값등록금 공약’을 그토록 쉽게 파기했다. 누가 그 ‘파기’의 근거를 제공했을까?

교육부부터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 대안도 좋은 게 나오고 있다. ‘교육자치’와 ‘국가교육위원회’라는 이원적 체제가 그것이다. 지금 웬만한 일은 선출직 지방교육감이 맡고 있는데 대학도 지방마다 정체성 차이가 있으므로 위임하는 게 맞다. 독일은 모든 대학이 국공립임에도 지방정부가 관할한다. 미국도 연방정부가 아니라 주정부에서 대학을 관할한다.

그런 후 유럽처럼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국가교육위원회’를 그 상부에 설치하면 된다. ‘국회와 교육단체 및 교육감들의 추천’으로 구성된 중장기적 위원회 체제라면, 헌법이 명시한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보다 온전하게 구현할 토대가 될 만하다.

‘백년대계’가 제대로 나오려면 이런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의 ‘교육부’는 이름을 없애고 기능도 대폭 줄여서, 위원회를 지원하는 실무직으로 들어가면 된다.


이원영 | 수원대 교수·한국대학학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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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팀 모두 실수가 없다면 그 경기는 무승부일 것이다’ 히딩크 감독의 명언이다. 이 말은 주석이 필요하다. ‘실수하면 용서치 않겠다, 낙오자는 버리고 간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히딩크는, 감독도 선수도 심판도 실수할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이다, 그것을 줄여가기 위해 노력하고 격려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타박하지 않고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내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반면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실수하면 낙오자로 만들고 패잔병으로 만들어버린다. 대통령은 임기 내내 노기 띤 얼굴로 국민을 타박한다. 그리하여 이 도시의 일상이 움직이는 시한폭탄으로 가득차 있다. 실수하면 분노하는 세상이다.

그런 상황에서 벌어진 이세돌 대 알파고의 대결. 이를 ‘기계 대 인간’의 대립보다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이세돌은 스포츠의 위엄 있는 가치를 온몸으로, 바들바들 떨면서 증명했다. 모든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3번의 초읽기 기회를 모두 사용하고 겨우 남은 1초 안에 돌을 놓았다. 우리가 본 이세돌은 ‘기계에 맞선 의연한 인간’이자 동시에 좌절하고 괴로워하는 나약한 인간의 간절한 몸부림이었다.

‘resign’, 즉 ‘물러나다’ ‘포기하다’란 뜻이다. 예상 승률 10% 이하로 떨어질 때 나타나는 단어다. 알파고는 180수 만에 이 단어를 ‘던지며’ 불계패를 인정했다. 단순하지만 의미 있는 장면이다. 그 표현 방식을 보자. 구글은 유머 감각이 풍부한 회사다.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는 디지털 최강자의 이미지로 항상 미래를 여는 ‘창’을 보여준다. 스티브 잡스의 유훈이 서려 있는 애플은 극단적 미니멀리즘으로 격렬한 팬심을 이끈다. 반면 다국적 글로벌 인재들의 혼합체인 구글은, 비록 모니터 뒤에는 엄청난 데이터베이스와 경악할 만한 기술을 숨겨놓고 있지만 그 일부가 사용자의 모니터에 나타날 때는 독특한 유머를 사용한다. ‘구글 플레이’, 즉 감각적인 즐거움을 가리키는 다양한 이모티콘과 농담 섞인 설명, 심지어 약간 비틀린 블랙유머까지 볼 수 있다.

그런데 불계패를 인정하는 팝업창은 단순하다. 구글이 이 대결을 엄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과학철학자 문송천 교수는 철저하게 통제된 회사 내부가 아니라 그 밖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소프트웨어 성능 시험을 하는 것은 “인간 존엄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는데, 그 점을 구글 딥마인드도 어느 정도 숙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도에 따르면, 3연패로 숨막히는 긴장에 빠져 있던 지난 12일은 이세돌 선수의 결혼 10주년 기념일이었다고 한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파티를 할 수도 없는 노릇. 그때 호텔 직원이 꽃과 샴페인과 축하 카드를 전달했다고 한다. 이세돌 부부의 결혼 10주년을 축하하는 데미스 허사비스 알파고 CEO의 선물이었다. 알파고의 대리인으로 이세돌과 마주앉은 구글의 아자황 연구원은 5시간 가까이 겸손한 자세를 견지한다. 아마도 허사비스는 ‘빅 브러더’는 아닌 듯하다.

알파고는 측량할 수 없는 연산 능력으로 이세돌을 학습했듯이 이세돌 또한 학습했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해부했듯이 이세돌 또한 알파고를 해부했다. 알파고가 이세돌의 모든 기보를 습득해 해부한 반면 이세돌에게 제공된 정보는 판후이 2단과 치른 몇 장의 기보뿐이었다. 그래서 두면 둘수록 알파고가 강해지는 게 아니라 이세돌이 현묘해졌다. 그리고 우리 모두 이 시대의 문명을 공부했다. ‘기계 대 인간’의 싸움에서 아직 인간의 멸종을 논할 단계는 아니라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얘기 말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세돌의 모습에서 스포츠에 내재된 가치, 나아가 인류의 기억에 배어 있는 견실한 의미가 뜨겁게 확인됐다는 점이다. 이세돌은 긴장했고 주저했고 번민했다. 이런 면모는 기계인 알파고에게 없는 것이라고, 그러니 인간이 더 ‘인간적’이라고 단정하지 말라. 나는 지금 알파고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상실된 그 무엇을 말하려는 중이다.

오늘의 사회는 번민하는 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과연 ‘인간적’인가. 이세돌은 실수했고 좌절했고 괴로워했다. 기계에겐 그런 감정이 없다고, 그래서 인간은 아직 우월하다는 식의 서푼어치 감상을 주장하지 말라. 오늘의 사회는 감정을 포기하도록, 단일한 감정만을 갖도록, 인간을 의미 있는 ‘개인’으로 만드는 다양한 감정을 박스에 싸서 수신자를 알 수 없는 곳으로 택배로 부쳐버린다. 그곳에서 우리의 사생활은 완벽하게 해부당한다.

나는 지금 우리가 상실하고 있는 감정들을 말하는 중이다. 불안하고 초조한 감정, 외롭고 슬픈 감정, 나약하고 박약한 감정, 쓸쓸하여 비틀거리는 감정 말이다. 여느 종목과 달리 바둑 기사는 홀로 네댓 시간을 반상 앞에 앉아서 견딘다. 축구라면 하프타임이 있고 야구라면 더그아웃에서 수시로 대화할 수 있다. 거의 모든 종목에서 동료가 있어 패스를 주고받을 수 있다. 부담을 나눠 지고 실수의 책임을 나눠 안을 수 있다. 그러나 바둑은 그렇지 않다. 오로지 단독자로 앉아서 견딘다. 더욱이 알파고라니! 앞에 보이지도 않는 상대, 분명히 존재하지만 실체를 느낄 수 없는 거벽 뒤의 장대한 기계들에 맞서 이세돌은 고독을 견디고 외로움을 이기며 실수를 줄이고자 피 말리는 초읽기를 거듭했다.

그것을 보면서 우리는 성원했다. 얼핏 보기에 ‘기계에 맞선 인간’을 성원하는 것이지만 그 집합 열정 안에는 오늘의 극단적 상황에 몰린 우리들을 향한 성원이다. 이세돌의 외로움은 우리 모두의 것이었고 그의 분투 또한 우리 모두의 박수였다. 이 사회가 버리라고 강요한 마지막 한 줌의 인간성!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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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지나고 경칩도 지나 이제 춘분을 앞두고 있습니다. 춘분은 음과 양의 기운이 서로 반씩이어서 밤과 낮의 길이가 똑같고, 춥고 더운 정도 또한 같다는 날입니다. 봄이지요. 긴 겨울 맞으며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에 설렘과 술렁임이 돌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절기도 시간에 가만히 얹혀 순순히 따라오는 것만은 아닙니다. 꽃눈과 잎눈이 터지는 것을 샘내는 추위를 한두 차례 더 지내야 할 터이니, 제대로 봄이 오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더군다나 숲의 모습은 여전히 겨울 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잎 하나 내지 못한 채 빈 몸으로 무뚝뚝하게 서 있는 나무가 그러합니다. 숲 바닥으로 녹색이 번지고는 있으나 갈색은 녹색에게 제 자리를 다 내줄 마음이 아직 없어 보입니다. 숲 이곳저곳을 오래도록 지켜보아도 움직이는 무엇이 없습니다. 아, 하나 있습니다. 나비입니다.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 오너라/ 노랑나비 흰나비 춤을 추며 오너라/ 봄바람의 꽃잎도 방긋방긋 웃으며/ 참새도 짹짹짹 노래하며 춤춘다’

동요 ‘나비야’의 노랫말입니다. 어릴 때 많이 불렀고, 지금도 나비를 마주하면 자연스럽게 떠올라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입니다. 하지만 봄날 즈음 학교 울타리를 넘으며 맑고 곱게 울려퍼졌던 이 아름다운 노래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은 지 오래입니다. 교과서가 이리저리 바뀌면서 결국 찢겨나간 지 오래이기 때문입니다. 새롭고 더 좋은 동요로 채워졌으리라 믿지만 안타까움은 남습니다. 그런데 책에서 사라진 것 말고도 안타까운 것이 또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나비야’를 엄마에게 직접 배워 부른다 하더라도 이리 날아와 줄 만큼 노랑나비와 흰나비가 가까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파, 폭설, 폭염, 폭염으로 인한 산불, 열대야, 집중호우, 폭우, 홍수, 가뭄….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며, 남의 나라 이야기만도 아닙니다.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한 해를 나는 것이 녹록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자료들이 구체적으로 말해주고 있지만 몸으로 직접 느끼기에도 지구온난화는 현실이며, 우리나라의 기후가 아열대로 기울고 있다는 현실 또한 부인할 수 없겠습니다.

더군다나 여름, 정말 덥고 후텁지근합니다. 작년 여름도, 재작년 여름도, 그 전 여름도 그랬으며 해를 거듭할수록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내 몸만 뜨거워지면 그렇다 치겠는데 도시 전체가 열로 달궈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주변보다 도심 지역의 기온이 높게 나타나 도심이 하나의 뜨거운 섬이 되는 현상을 ‘열섬효과(heat island effect)’고 합니다. 물론 열섬효과는 자연 본래의 모습을 제거하고 그 위에 건물을 세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공들여 세운 건물을 무너뜨려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묘책들이 제시되고 있는데, 그 중 자연 본래의 모습과 닮아가는 방법으로 근래 친환경 녹색도시 조성을 위한 ‘옥상녹화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노랑나비


옥상녹화 사업은 말 그대로 옥상에 식물을 식재해 옥상을 푸르게 하는 사업을 말합니다. 그런데 식재를 하려면 식물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깊이의 흙이 필요하며, 게다가 비가 오면 흙은 빗물을 붙들고 있으므로 옥상녹화 사업은 무엇보다 건물이 그 총체적 하중을 단단히 버텨낼 수 있는 범위에서 시행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따라서 옥상녹화 사업은 건물의 규모와 형편을 고려해 달리해야 합니다. 어떠한 형태든 도심에서의 녹지 확보를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는 옥상녹화는 다양한 힘을 발휘합니다.

우선 강한 자외선과 열 그리고 산성비로부터 건물 자체를 보호함은 물론 열섬효과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열섬효과의 저감은 냉난방 비용의 절감과 직결되어 귀중한 에너지를 절약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녹지공간의 확대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줄이고 산소의 양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으니 지구온난화를 저지 또는 지연시키는 길이기도 합니다.

또한 빗물을 저장함으로써 홍수를 예방하고 가뭄을 극복하는 데 작은 도움이나마 보탤 수 있습니다. 도시 소음의 흡수 기능 또한 무시할 수 없으며, 도시의 경관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기쁨에 해당합니다. 뿐만 아니라 옥상녹화는 생태학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도심의 규모만큼 생태계가 단절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콘크리트로만 덮여 있는 도심의 건물은 대부분의 생물이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차단벽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옥상의 녹화는 다양한 생물들이 도심과 주변의 자연 사이를 오갈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제가 어제 아닌 듯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꿈에서나 그려 보았던, 아니 꿈에서조차 떠올릴 수 없었던 일들이 바로 눈앞에서 날마다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롭게 펼쳐지는 신기한 세상에 넋이 나간 사이, 우리 곁에 꼭 있어야 하고 그래서 우리가 진정 소중하게 지켜야 하는 것들마저 잊거나, 잃거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맞겠습니다. 하지만 다 잊어도, 다 잃어도, 다 버려도 우리 곁에서 나비마저 그리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먼 숲으로 숨어든 나비가 다시 도심으로 돌아오기에는 길이 너무나 멀고 험합니다. 징검다리가 필요합니다. 우리 집, 우리 학교, 우리 직장의 옥상과 빈 공간을 형편에 따라 푸르게 가꿔 그 하나하나가 단절된 허공을 딛고 넘어올 수 있는 나비의 징검다리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우리 또한 옳게 숨쉬는 길이며, 나비가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이기도 할 것입니다.

긴 겨울 지나 이제 봄의 문턱을 넘으려 합니다. 하지만 이 봄이 나비조차 만날 수 없는 봄이라면 우리 자신의 모습이, 더군다나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안쓰럽습니다. 자연은 봄부터 여름을 준비합니다.


김성호 | 서남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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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의 성과는 인류의 승리다. 인공지능은 인간 지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경기의 승패와 관계없이, 이번 대국 그 자체가 인류 역사에서 커다란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인류가 생각을 담을 수 있는 컴퓨터를 발명한 것이 어언 70년. 이후 꾸준히 발전한 컴퓨터과학은 인간 최고수를 능가하는 바둑 프로그램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많은 가능성을 순식간에 검토해 최적의 한 수를 찾아내는 능력은 계산 속도에 의한다고 하더라도 기보를 통해서 수를 배우고, 프로그램끼리 스스로 두는 바둑에서 좋은 수를 더하는 학습능력이 놀랍지 아니한가? 아, 알파고 프로그램은 예술이다.

컴퓨터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이다. 사람의 생각을 옮겨서 자동화하는 기계이기 때문이다. 사측계산과 비교하는 능력뿐인 이 기계에 일을 시키는 것은 사람이 작성한 프로그램, 즉 소프트웨어다. 소프트웨어의 명령에 따라 컴퓨터는 빠른 속도로 지시된 작업을 수행한다.

그런데 큰 사건이 일어났다. 컴퓨터가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법을 인간이 터득한 것이다. 여러 학자들의 연구를 통한 점진적 발전으로 얻어진 것이지만 그 결과는 충격적이다.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라는 격언을 실현한 것이다.

컴퓨터는 이제 사람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데이터로부터 학습해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생겼다. 18년 전 서양 장기에서 인간 고수를 물리친 딥블루도 사람이 만든 프로그램이 판단은 했었지만, 이번 알파고는 기보로부터 배운 능력과, 또 자기들끼리의 대국에서 스스로 깨우친 능력으로 대국에 임했다. 기계학습의 가공할 능력을 전 세계인이 같이 본 것이다. 개발자들도 그 능력에 놀랐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로봇이 인간을 공격하는 공상과학영화를 연상하고 불안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인공지능은 지시하면 학습하고 사람의 지능을 따라하는 능력은 있으나 의지를 갖고 목표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충실한 하인이 글자를 깨쳐서 더욱 똑똑해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자아의식이 있고, 사랑이나 증오 등의 감정을 느끼고, 스스로 의지를 불태우는 인공지능은 지금으로서는 가능하지 않다.

소프트웨어, 특히 인공지능은 우리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다. 이 변화의 규모와 범위는 이전에 인류가 경험했던 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깊고 광범위할 것이다. 소프트웨어가 광범위하게 사용돼 창조적 혁신이 일상적으로 일어나 풍요롭고, 해결책이 풍부해진다. 또한 많은 사회 기능이 소프트웨어에 의존한다. 이런 세상에서는 소프트웨어 능력이 개인, 기업, 국가의 경쟁력이 된다. 알파고의 승리는 우리가 이미 소프트웨어 중심의 사회에 와 있다는 것을 각인시켜주었다.

이세돌-알파고 제2 대국._한국기원 제공

인공지능이 확산되면 사람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10년에서 20년 사이에 지금 일자리의 63%가 없어지거나 직업의 내용이 바뀔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이다.

지금과 같은 교육 내용과 방법으로는 미래세대를 육성할 수 없다. 이제는 과학기술을 이해하고,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한 명의 천재가 만 명을 먹여살린다. 지금 세계는 인재전쟁이고 교육전쟁 중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도 2018년부터 초·중·고 정규교육에 소프트웨어를 포함하기로 했다. 알파고 승리를 보면서 이 정책 결정이 참 잘된 것이었다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

육체노동만이 아니라 정신노동까지 자동화되면서 모든 분야에서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다. 향상된 생산성으로 전 인류가 풍요를 같이 누릴 수 있다. 인류가 지구상에 생겨난 이래 생존하기 위하여 일했다면 이제부터는 더 이상 생존을 위한 일은 안 해도 된다. 일은 기계에 시키고 인간은 더욱 많은 시간을 인간답게 사는 데 사용할 수 있다. 문화예술이 크게 신장될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의 능력을 인류가 공통으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생산성만큼의 기본적 복지를 보장하되, 창조적 혁신이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역동적이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세상에서는 자본보다는 지식이 더 큰 가치를 창출한다. 지식은 공개, 공유, 협동으로 가치를 더할 수 있다. 알파고를 학습시킨 소프트웨어가 공개 소프트웨어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도 기술 발전에 동참하면서 사회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알파고와의 대국은 소프트웨어 중심 사회 진입을 알리는 팡파르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교육이, 정치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기를 기대한다.


김진형 | 카이스트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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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창조컨설팅에 의한 노조파괴 사업장 중 하나인 상신브레이크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지난 11일 유죄를 인정했다. 2012년 국회에서 창조컨설팅식 노조파괴 공작이 폭로된 후 창조컨설팅이 개입한 사업장에서 발생한 부당노동행위가 최고법원에서 유죄로 인정된 것은 처음이다. 창조컨설팅식 노조파괴는 복수노조 출범 후 사용자들이 친사용자 노조를 교섭대표노조로 만들기 위해 무리하게 산별노조를 기업별노조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발생했다. 단체협약 이행을 고의로 위반하거나 교섭요구를 계속 무시해 조합원들이 파업을 벌이면 직장폐쇄를 단행한 후 선별적으로 조합원들의 사업장 복귀를 받아줌으로써 노조의 조직력을 와해시키는 방식이다.

특히 상신브레이크 사건은 직장폐쇄 기간 중 일어난 사용자 개입뿐 아니라 금속노조 탈퇴도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창조컨설팅이 개입해 금속노조에서 기업별노조로 전환한 다른 사업장의 조직형태 변경 역시 무효로 판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지난달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내려졌던 발레오만도 노조의 조직형태 변경결의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즉 산별노조 지부가 사용자의 영향을 받는 단체라면 민법상 비법인 사단여부를 따질 것 없이 그 조직형태 변경결의는 효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번 판결은 사용자가 산별노조 지부의 조합원들을 매수해 기업별노조로 전환하는 창조컨설팅 방식의 노조파괴에 대해 확실히 쐐기를 박았다고 할 수 있다.


창조컨설팅 노조파괴 프로그램의 주요 고소내용과 검찰 불기소 이유_경향DB


다만 헌법상 단결권을 침해한 부당노동행위 범죄의 형량이 고작 벌금 200만원이라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부당노동행위로 조합원수 380명에 달하던 노조가 졸지에 5명밖에 남지 않았고 5명의 노동자가 부당해고 후 겪은 6년간의 고초를 생각한다면 벌금 200만원은 사법적 정의를 실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단체협약 위반이나 부당노동행위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조합원들의 사업장 점거를 유죄로 인정하고 사용자와 동일한 액수의 벌금형을 선고한 것도 공정한 양형으로 보기 어렵다. 노동3권이 헌법뿐 아니라 노동자의 일상적 권리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부당한 개입에 대해 단호한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 반면 부당노동행위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충돌에 대해서는 정당방위 인정 범위가 좀 더 넓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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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10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노동조건 격차, 즉 이중노동시장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상생고용촉진대책을 발표했다. 대기업 정규직을 기준으로 중소기업 정규직 임금은 52.3%, 비정규직은 34.6%에 불과하고 갈수록 그 격차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대·중소기업 간 이중노동시장을 개선한다는 취지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대기업이 하청·협력업체를 선정할 때 파견노동자 사용비율 등 고용구조를 고려하도록 하는 방안도 원칙적으로 옳은 방향이다.

하지만 정부는 노동조건 격차 문제의 핵심을 외면하고 있다. 정부는 격차의 원인을 대기업 정규직의 과보호에서만 찾을 뿐 중소하청·협력업체 노동자의 저임금 구조에 안주하고 있는 대기업의 고용구조 개선에는 여전히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현재 중소기업이 파견노동에 의존하고 있는 이유는 대기업들이 경기변동성에 대한 부담을 중소기업에 떠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의 파견사용을 줄이려면 대기업이 상시 필요 인력은 직접고용으로 흡수하거나 경기변동성 부담을 스스로 지도록 해야 한다. 하청·협력업체에 일정기간 안정된 물량을 보장해주고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숙련향상을 통해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해낼 수 있는 인력으로 성장할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대기업이 원·하청계약을 체결할 때 파견비율을 계약조건으로 고려하도록 압박해봐야 대기업의 ‘갑질’만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정규직 전환지원금 적용 대상을 기간제와 파견근로자 외에 사내하청과 특수형태 종사자까지 확대하는 방안 역시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정규직 전환지원금은 지난해에도 예산 집행률이 0.7%에 불과할 정도로 이미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난 바 있다. 정부는 정규직 전환에 따른 임금 상승분의 70%를 1년간 지원해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대기업은 임금 100%를 보전해주더라도 직접고용에 따른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간접고용을 더 선호할 수밖에 없다.

결국은 대기업이 비용이나 경기변동성, 직접고용에 따른 부담 회피 등의 이유로 손쉽게 파견이나 사내하청에 의존하는 관행에 제동을 거는 것이 이중노동시장대책의 핵심이 돼야 한다. 이 점에서 경기변동 부담을 하청·협력업체에 떠넘기고 실질 고용주로서 의무를 하지 않는 대기업 원청에 사용자로서 의무를 강화하는 방안부터 강구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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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하늘의 푸른 솔과 대지에 일어선 높은 산을! (중략) 우리 조선사회에 개개의 운동단체가 없음은 아니나 이를 후원하며 장려하여 조선인민의 생명을 원숙창달하는 사회적 통일적 기관이 없음은 실로 유감이고 또한 민족의 수치로다. 우리는 이에 뜻한 바 있어 조선체육회를 발기하노니 조선사회의 동지들은 모두 와서 찬양할진저.’

1920년 7월13일 오후 8시 서울 인사동 중앙예배당에서 발족한 조선체육회의 창립취지서다. 1919년 2월 조선총독부 산하 어용단체로 조선체육협회가 출범한 데 반발해 1년여 뒤 친일인사를 배제한 사회 각계 지도층 인사 96명이 모여 만든 자주적 체육단체가 현 대한체육회의 전신인 조선체육회다. 창립 이념은 그래서 ‘건민’과 ‘저항’이다.

스포츠를 통해 민족 자긍심을 키우고, 항일투쟁을 펼치던 조선체육회는 1938년 7월4일 조선체육협회에 강제 통합돼 해산되고 만다. 조선체육회는 1945년 광복 후 민족지도자 여운형 회장을 중심으로 부활한 뒤 1948년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부 수립 혼란기에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있자 조선체육회는 정치적 불편부당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성명으로 결기를 토하기도 했다.


대한체육회 기획실장 정성환 _경향DB


대한체육회는 이달 말 두 번째 ‘통합’을 앞두고 있다. 1991년 대한체육회에서 떨어져나가 정치적 비호 속에 성장한 국민생활체육회와 25년 만에 다시 합치게 된 것이다. 통합을 못 박은 법정시한에 따라 지난 7일 통합체육회 발기인대회가 열렸고, 27일이면 새 출범을 한다. 두 단체가 통합하니 ‘한국체육회’ ‘대한민국체육회’ 등 새 이름을 짓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명칭은 격론 끝에 ‘대한체육회’를 유지하기로 했다. 조선체육회로부터 비롯된 100년의 역사와 전통, 얼이 온전히 담긴 이름을 지키자는 체육인들의 뜻이 반영된 것이다.

명칭은 겨우 지켰지만 새 대한체육회가 자율성과 독립성도 지켜나갈 수 있을까. 그게 벌써부터 쉽지 않아 보인다. 대한체육회가 정부가 주도한 체육단체 통합안에 그토록 저항했던 가장 큰 이유도 그것이었다.


김경호 선임기자 jero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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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9일은 인류사에 ‘기계(인공지능)가 인간을 넘어선 날’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세계 최강의 바둑기사 이세돌이 구글사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인 알파고와의 첫 대결에서 패배한 바둑 역사상, 아니 과학 역사상 최대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약 12억원의 상금을 걸고 총 5번기로 벌어지는 이 대국은 인간과 기계의 대결이라는 점 때문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진행됐다.

“해는 져서 어두워지는데 갈 길은 멀고 보따리는 무겁기만 하다.” 흔히 바둑을 두다가 비세에 몰렸을 때의 심정을 표현하는 말이다. 인간 대표로 알파고를 마주한 이세돌 바둑기사의 심정이 이러했으리라! 그리고 결국 이세돌은 어두워지는 들판에서 속절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대국 시작 전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인간의 승리를 예상했다. 그러나 형세가 불리해지자 마치 사람처럼 승부수를 던져 판세를 뒤집는 알파고의 응수에 이세돌은 186수 만에 돌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해설자들은 물론 생중계로 세기적 대결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본래 바둑은 가장 창의적이고 직관적이며 심오한 영역으로서 인정돼 왔다. 1997년 IBM이 개발한 컴퓨터 체스프로그램이 체스 세계챔피언을 이길 때도 바둑기사들은 별로 괘념치 않았다. 아무리 컴퓨터 프로그램이 발전한다 해도 가로 19줄, 세로 19줄의 바둑판에서 일어나는 천변만화의 복잡성과 의외성을 따라잡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바둑에는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만큼 수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그뿐만 아니라 바둑의 승부에는 직관성과 창의성 등 정신적인 요소가 크게 차지하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넘볼 수 없는 영역이라고 여겨왔다. 바둑의 용어를 살펴보면 그 미세함과 복잡성을 알 수 있다. 예컨대 ‘두텁다’와 ‘무겁다’는 형태적으로 유사하지만, 전자는 긍정적인 의미이고 후자는 부정적인 의미이다. 이에 상응하는 개념으로는 ‘가볍다’와 ‘엷다’가 있다. 마찬가지로 둘 다 형태적으로는 비슷하나 가벼운 돌은 유리하나 엷은 돌은 불리하다. 이러한 가치는 부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상대방의 주변 돌의 배치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한다.

이세돌 알파고와 두번째 대국_구글제공

오래전 ‘돌부처’ 이창호 기사가 십대의 나이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뚜벅뚜벅 돌을 놓으며 강호의 고수들을 모두 쓰러뜨리고 세계 바둑계를 평정했을 때, 일부 애호가들은 바둑에 대한 회의를 표현하기도 했다. 이들은 “바둑이란 모름지기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믿어왔는데, 아직 인생을 알지 못하는 홍안의 소년이 바둑의 최고봉에 올라섰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의 회의는 다소 낭만적인 투정처럼 느껴진다. 아직 5번기의 승부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인공지능이 세계 최고수에게 한 판을 빼앗은 것만으로도 그 충격과 함축성은 매우 심오하다.

미래에 기계가 인류를 지배하는 시나리오는 SF영화를 통해 많이 알려져 왔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영역을 차지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현시점에서 인간이 기계의 노예가 될지, 아니면 기계가 인간을 전쟁과 질병과 노동에서 해방시켜줄지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설령 기계가 인간의 온갖 종류의 오류를 수정해주고 마침내 우리에게 파라다이스를 만들어준다 해도, 과연 그러한 세상이 정말로 인간이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가 든다.

기계에 인간이 패배한 날, 착잡한 심정을 억누를 길 없다. 이미 우리는 거대 자본에 일상을 지배당하고 있다.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이 자본과 결합하는 일은 불 보듯 뻔하다. 게다가 테러방지법이 시행되면 혹시 국가정보기관이 슈퍼컴퓨터를 통해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을 들여다보면서 개인의 모든 것을 예측하고 통제하는 ‘빅 브러더’의 세상이 현실화되는 것이 아닌가 두렵기만 하다.


김기석 |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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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골퍼 타이거 우즈는 지난해 투어 상금이 44만8598달러(약 5억4000만원)였다. 상금 랭킹은 한국의 최경주보다 한 계단 아래인 162위지만 우즈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지난해 선수 브랜드가치 1위에 올랐다. ‘황제’ 명성이 많이 퇴색하기는 했어도 그의 가치는 상금의 70배 가까운 3000만달러였다. 우즈는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대가로 나이키골프·롤렉스 등과 거액의 스폰서 계약을 맺고 있다. 퍼블리시티권(right of publicity)은 운동선수나 배우, 가수 등 유명인의 이름이나 초상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권리이다. 우즈가 나이키골프로부터 받는 수천만달러는 자신을 모델로 광고할 권리를 판 대가이다. 우리말로 풀면 ‘초상사용권’ 또는 ‘초상재산권’이라고 할 수 있으나, 적확한 표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초상권은 자신의 모습이 촬영되거나 공표되지 않을 권리인 인격권이다. 하지만 퍼블리시티권은 타인에게 양도·상속할 수 있는 재산권으로 분류된다.

미국은 1950년대부터 퍼블리시티권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는 물권과 유사한 독점배타적 재산권인 퍼블리시티권을 명시한 법이 없어 분쟁 때마다 혼란이 빚어진다. 민법 제185조는 “물권은 법률 또는 관습법에 의하는 외에는 임의로 창설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미국 배우 제임스 딘의 퍼블리시티권을 상속받았다는 그의 친척은 ‘제임스 딘’ 상표를 쓴 개그맨 주병진씨와 속옷 회사 ‘좋은사람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그러나 재판부는 “퍼블리시티권은 우리나라의 성문법상 권리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타이거우즈와 로리 매킬로이_AP연합뉴스

국내에서도 유명 연예인 관련 퍼블리시티권 분쟁이 늘면서 관련 입법 움직임도 구체화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자본이 이익만을 위해 과도하게 퍼블리시티권을 주장한다는 부정적인 여론도 만만치 않다. 연예인의 인기는 대중이 시간을 투자하고 여론을 형성한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이익의 원천을 따져본다면 대중의 기여도가 적지 않은데, 연예인 개인이 이익을 독식하려는 것은 지나치다. 퍼블리시티의 원래 뜻은 유료 광고와 달리 대중매체에 무료로 배포하는 판촉 활동이다.


안호기 논설위원 haho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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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앤 포시. 르완다에서 산악고릴라의 생태를 연구하며 밀렵 근절운동을 벌인 동물학자. 1985년 크리스마스 다음날 캠프 숙소에서 살해당했다. 손도끼로 얼굴을 난자당한 끔찍한 죽음이었다. 이 사건은 아직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다.

조지 애덤슨. ‘사자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야생동물 보호운동가이자 작가. 아내 조이와 함께 펴낸 책 <본 프리>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돼 영화 <야성의 엘자>로 만들어졌다. 1989년 8월20일 케냐 코라 국립공원 캠프 인근에서 소말리아 산적들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치코 멘데스. 고무 수액 채취노동자 출신 환경운동가이며 브라질 아마존 보호운동의 상징적인 인물. 1989년 12월22일 그가 고소하려 했던 축산업자에 의해 자택에서 살해당했다. 그해 브라질에서 살해된 운동가 가운데 19번째 희생자였다.

켄 사로위와. 나이지리아 오고니족 출신으로 작가이자 인권·환경운동가. 석유 다국적기업 로열더치셸과 정부에 맞서 토양오염과 수질오염 실태를 폭로했다. 8명의 활동가와 함께 체포됐는데, 변호사도 없이 진행된 특별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95년 11월10일 교수형당했다.

제인 팁슨. 영국 남서부 데본 출신의 여성 동물복지운동가. 카리브제도 세인트 루시아에 살면서 오랫동안 고래보호운동을 펼쳤다. 관광용 돌고래전시관 건설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다 2003년 9월17일 새벽 살인청부업자들의 총에 맞아 숨졌다.

산악고릴라 연구가인 다이앤 포시가 산악고릴라와 함께 있는 모습_경향DB


도로시 스탱 수녀. 브라질에서 아마존 파괴에 항거하는 환경운동과 원주민 자활운동을 펼친 아마존의 성녀. 2005년 2월12일 대농장주와 벌목꾼들이 원주민들을 쫓아내기 위해 숲에 불을 지르자, 이 문제를 해결하러 가는 길에 두 명의 사내에게 살해됐다.

게리 오르테가. 필리핀 팔라완의 수의과 의사이자 라디오 진행자. 팔라완 광산 개발 저지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2011년 1월24일 광산개발금지법 제정 1000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하려고 마닐라로 향하다 괴한이 발사한 총탄을 머리에 맞고 숨을 거두었다.

추트 우띠. 보호지역 숲에서 이루어지는 불법벌목과 이를 묵인하는 군부에 맞서 싸운 캄보디아의 환경운동가. 2012년 4월26일 신문기자 2명을 코콩 보호지역 숲으로 안내하는 과정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퍼윈 라멘. 파키스탄의 여성 사회운동가. 카라치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권과 안전한 물을 마실 권리 확보를 위해 헌신했다. 2013년 3월13일 무장괴한 네 명에게 살해당했다.

제이로 모라. 코스타리카 동물구조대 단원. 2013년 5월30일 밤 장수거북 알들의 도난을 막기 위해 해변을 순찰하다 복면 괴한들에게 납치·살해됐다.

베르타 카세레스. 온두라스의 환경운동가이자 원주민 인권운동가. 자연과 원주민 공동체를 파괴하는 수력발전소 건설 반대운동에 앞장섰다. 2016년 3월3일 라에스페란사에 있는 자택에 침입한 무장 괴한들의 총격으로 살해됐다. 그녀의 죽음은 힐러리 클린턴이 이끄는 미국 국무부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했던 2009년 군부쿠데타의 유산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들은 환경과 인권을 지키다 살해당한 수많은 사람들의 목록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2002년부터 2014년까지 피살된 환경운동가 수는 기록된 것만 991명이라고 한다. 살인자들은 처벌받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모든 생명이 존재할 가치가 있다면 호명되지 않았다 해서 죽음의 무게까지 달라지는 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슬픔과 분노만이 아니다. 우리 시대 환경운동가들의 숙명은 유독가스가 꽉 찼음을 말해주는 광산의 카나리아와 같다. 그들의 죽음은 곧 나의 죽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안병옥 | 기후변화행동연구소·시민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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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이세돌 대 알파고 대국을 보고

충격, 이세돌 불계패! 이렇게 느낌표를 붙여야 할 만한 사건이다. 드디어 기계가 인간을 압도하는 세상이 오는 것인가? 그러나 이를 ‘기계 대 인간’ ‘인류 문명의 위기’ 등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피상적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이러한 묵시록적 상황이나 이야기를 반복하여 만들어내면서 그 위기를 헤쳐왔다.

13세기 이탈리아의 단테가 쓴 <신곡>은 존재하지 않는 지옥을 상상하고 그 아래로 순례하는 인간을 통해 중세의 상황을 보여주었다. 17세기 영국의 밀턴, 그의 <실낙원>은 또 어떠한가? 신의 형벌, 추락한 천사, 지옥에서 복수의 성채를 쌓는 사탄. 실물로 존재하지 않으나 상상 속에서 가능한 이 묵시록을 통하여 밀턴은 당대의 황폐한 상황을 그렸다.

<터미네이터2>나 <매트릭스> 같은 영화 또한 표면적으로는 기계가 장악한 근미래의 암울한 상황을 그리고 있지만 그 속에는 오늘날의 인류가 겪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와 상황들을 투영한 것이다.

인공지능의 도래는 우리 삶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다. 그런데 이를 ‘기계의 지배’라는 식으로 묵시록적 기술주의로 봐서는 곤란하다. 대부분의 경우 그 기술들은 우리에게 편리와 즐거움을 제공할 것이다. 구글은 알파고뿐만 아니라 다양한 미래 기술에 투자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인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 개는 실제의 개와 다를 바 없이 달린다. 이 로봇 개를 마주한 실제 강아지가 컹컹 짖자 로봇 개는 무슨 까닭인지 호응하며 몸을 떠는 동영상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기술은 가까운 장래에 일상생활의 편리와 정보 처리 및 관계 강화에 기여할 것이다. 이 글을 읽을 독자 중에 상당수는 머지않아 로봇 개와 산책을 하고 대화도 할 것이다. 그 개는 아무 데나 용변을 보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고 택배를 대신 받을 것이다.

이날 대국의 하이라이트는 백102(붉은 원). 알파고는 이세돌 9단이 좌중앙에 큰 집을 만들며 형세를 유리하게 이끌자 우변 흑진에 침입, 우상귀의 흑 3점과 바꿔치기에 성공하면서 단숨에 형세를 뒤집었다._한국기원 제공


문제는 이 로봇 개를 전쟁이나 시위 진압이나 인간의 작업장에 배치하게 될 때이다. 카이스트의 정재승 교수는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그 기계를 지배한 인간이 나머지 인간을 보다 강력하게 지배하게 되는 상황을 우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그 점이다. 인간은 실수투성이에다 미묘한 감정의 동물이다. 왜 누군가를 사랑하고 미워하는지 인간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한다. 이게 인간의 한계지만 동시에 이 점이 인간의 장점이다.

연민과 애환, 슬픔과 사랑. 여기서 두 가지 뚜렷한 힘이 발생하여 인류를 여기까지 오게 하였다. 고결한 감정 상태, 즉 휴머니즘과 이를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방식, 즉 민주주의다. 이 휴머니즘과 민주주의가 미래에도 작동하게 하는 것, 그것이 묵시적 상황을 이겨내는 힘이다.

이세돌이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다. 원컨대 나머지 판을 다 이기기를 바란다. 그러나 졌다고 해서 기계의 승리와 지배가 예고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그렇듯이 가까운 미래에도 이러한 기계를 실제로 통제하는 힘이 무엇인가, 그것이 중요하다. 휴머니즘과 민주주의가 사라지고 강력한 권력과 자본이 이를 통제할 때, 그때가 비극의 시작이다.

우리는 알파고의 승리에 전율을 느끼면서 동시에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강력한 요청에도 굴하지 않는 애플사의 최고경영자 팀 쿡에게 성원을 보내고 있다. 여기가 핵심이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지배한 국가와 자본의 지배다.

미래의 묵시적 상황은 알파고나 로봇 개가 아니라 이를 실제로 지배하는 권력이다. 이를 경계하여 오늘의 상황에서 휴머니즘과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것이 미래의 비극을 막거나 최소한 지연시킨다.

만약 우리가 기계 통제에 의한 권력 지배를 이겨내거나 지연시킬 수 있다면 미래의 후손들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때 가서, 알파고 버전 7.0에 연패하여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우리가 단테와 밀턴을 기억하듯이, 후손들은 휴머니즘과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한 우리를 기억할 것이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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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남녘 바람이 살랑대며 봄을 실어 나르고 있다. 잦은 황사 때문에 예전만은 못하지만 꽃과 햇살이 어우러진 이 땅의 봄은 여전히 아름답다. 여인들의 화사한 옷차림이 거리를 물들이고 주말이면 상춘객들이 근교의 등산로를 가득 채운다. 울긋불긋한 모자와 등산복들이 어우러져 마치 거대한 화훼농장이 산길을 따라 이동하는 것만 같다. 그러나 봄을 맞이하는 심사가 마냥 즐거울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봄이면 으레 몇 번씩 접하게 되는 엘리엇의 시 ‘황무지’가 노래하듯이 봄은 잔인한 계절이다.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차라리 겨울에 우리는 따뜻했다. 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가냘픈 생명만 유지했으니….’ 수년 전 작고한 영문학자 장영희 교수는 이 시가 ‘계절의 순환 속에서 다시 봄이 되어 버거운 삶의 세계로 돌아와야 하는 모든 생명체의 고뇌를 묘사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차라리 겨울이, 죽어있을 때가 따뜻했다는 말인가? 봄비로 잠든 뿌리를 흔들어 생명을 일깨워야 하는 고통이라니….

우리는 다시 4·3 제주항쟁과 4·16 세월호 참사, 4·19 민주혁명, 5·16 쿠데타, 5·18 광주민주항쟁 등을 맞이해야 한다. 수많은, 비장한, 그리고 처참한 기념일들의 행렬은 우리의 봄이 아직은 결코 따스할 수 없다는 진실을 잔인하게 시위한다. 우리는 사실 아직까지 온전한 진실을 충분히 밝혀내지 못했고 혹독한 가해자들을 제대로 처벌하지도 못했으며, 그래서 희생자들을 위한 해원도 하지 못했고 과거와의 화해도 할 수 없었다. 차라리 ‘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가냘픈 생명만 유지했던’ 지난 겨울이 더 따뜻하게까지 느껴지는 이유이다. 이 처참한 기념일들이 상징하는 황무지를 딛고 일어서서 다시 꽃을 피우려면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민변 회원이 경찰에게 저지 당하고 있다._연합뉴스

최근의 현실은 우리가 진정한 봄을 맞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드 배치 문제로 분단된 남북관계는 최악의 위기에 봉착했으며, 정부는 테러방지법을 앞세워 국민감시체제를 구축하고 있고 야당은 야당대로 총선을 코앞에 두고 분열의 길을 태연하게 걸어가고 있다. 대화 부재의 분단논리, 절대적 감시와 통제, 정파간 대립과 분열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 오늘 이 땅의 현실인 것이다.

올 봄 다시 맞이하게 될 수많은 기념일들 사이에 4·13 총선이 우뚝 서 있다. 늦었지만 청년들을 비롯한 여러 신진세력이 이번 총선을 계기로 정치에 참여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들의 새로운 도전에서 희망을 읽고 싶다. 그리고 이들이 척박한 황무지에 봄을 불러오는 진정한 남녘바람들이 되기를 기원한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 앞에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뼛속까지 바꾸는 혁신이라고 이야기한다. 흑백의 분단논리, 일방적 감시와 통제, 대립과 분열을 완전히 털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는 강대국 사이에서 짓눌리고 핍박받는 과정에서 중립(中立)의 이상을 꿈꿔왔으며, 국민감시체제를 휘두른 군부독재가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는 것을 지켜보았고, 정파간 파벌싸움에 세월 가는 줄 모르다가 선거에 대패하는 역사를 반복적으로 목도했다,

그런데 어느새 이런 것들을 모두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때마저 있다. 모두가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나의 내면에 숨어있는 분단지향의 속성, 나의 속에 웅크리고 있는 독재와 식민지 지향의 근성, 파벌 근성 이런 것들을 부릅뜬 눈으로 응시하고 도려내지 않으면 변화는 불가능하다.

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지 참담한 현실에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지만, 변화는 내면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들어 생명의 새싹을 일깨워내기 위해서는 처연한 상처와 아픈 가슴들을 척박한 대지에 뿌리내려 우리 스스로 봄을 불러들여야 한다.


신좌섭 | 서울대 의대 교수·의학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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