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알을 낳는 거위가 있었다. 매일 하나씩 낳던 황금알에 성이 차지 않은 주인이 거위의 배를 갈랐다. 거위는 죽었고, 더 이상 황금은 없었다. 오래된 우화이다. 오래된 이야기가 폐기되지 않고 변함없이 울림을 준다면, 여전히 그 세대가 그 이야기로부터 배울 것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배를 가른 뒤에는 무엇이 남을까. 이명박 정부 시절 강을 망가뜨린 결과를 우리 모두가 참담하게 경험하고 있다. 강이 병들고, 물고기가 죽고, 땅이 타들어가고, 농민이 울부짖는다.

강으로 향했던 포클레인을 박근혜 정부는 산으로 돌리고 있다. 규제완화와 관광활성화를 이유로 전국의 산지를 위기로 몰고 있다. 개발로부터 이곳만은 지키자고 국민과 약속한 마지막 보루인 국립공원마저도 개발 대상에 포함시켰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설악산은 우리나라 대표 국립공원인 것은 물론 천연보호구역,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백두대간보호지역 등 5개 보호구역이다. 이렇게 겹겹으로 설악산이 보호받는 이유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설악산은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인 산양을 비롯하여 담비, 삵, 하늘다람쥐 등 수많은 멸종위기종의 서식지이며, 생태와 경관 가치가 탁월하다. 설악산은 DMZ, 울진삼척지역과 함께 남한에 3곳만 남은 산양 집단 서식지이다. 남한 땅에 남은 산양은 겨우 800여마리로 추정된다. 위태로운 숫자이다. 이미 설악산에는 권금성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수십년째 운행되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양양군과 정부는 대청봉 바로 코앞까지 케이블카를 놓으려 하고 있다.

사회 각계 인사들이 2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설악산 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_ 경향DB


이미 2012년과 2013년에 국립공원위원회가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는 불가능하다고 불허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럼에도 강원도 양양군은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한 볼거리’ 지시에 힘입어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위한 공원계획변경 승인신청을 환경부에 또다시 제출했다. 이번 양양군의 사업계획은 문제가 많다.

첫번째 문제. 양양군은 “이번 노선은 산양의 주요 서식지가 아닌 이동경로”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주장하는 양양군 관계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집 안에서만 사나요? 직장까지 다니는 경로와, 장보기를 위해 다니는 경로,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다니는 경로는 다 제외하고 오로지 집 안 면적만 당신의 ‘서식지’인가요?” 산양이 이동한 곳이 주 서식지가 아니라는 양양군의 주장은 그 자체가 궤변이다. 멸종위기종이 많이 ‘이동’하는 곳이라면 그 자체가 서식지이다. 설악산 전체가 멸종위기1급 산양의 서식지인 것이다.

두번째 문제. 양양군은 케이블카 설치 근거 중 하나로 사회적 약자(장애인, 노인, 어린아이)를 위한 배려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이는 핑계일 뿐이다. ‘교통약자 이동 증진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됐지만, 장애인이 탈 수 있는 저상버스는 정부가 약속한 100% 도입은커녕 16.4%에 불과하다(2013년 기준). 시외이동 저상버스는 단 한 대도 없다. 얼마 전 정부는 복지재정 3조원을 절감하겠다고 발표했다. 정작 필요한 일상적인 교통복지는 뒷전이면서 고작 한두 대의 케이블카 설치를 위해 450억원이나 되는 예산을 쏟아붓는 것이다. 세번째 문제.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을 검토하는 환경부 민간전문위원에 부적격 인사가 포함돼 있다. 민간전문위원에는 양양군 측 조사용역에 참여했던 사람뿐 아니라, 삭도(케이블카) 협회 관계자까지 포함돼 있다. 공정성 확보에 크게 어긋나는 일이다.

황금알을 탐해 거위 배를 가를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기억하라. 케이블카 사업은 황금알도 아니다. 전국의 관광용 케이블카는 20곳. 이 가운데 3곳을 제외하곤 적자에 허덕인다. 황금알이 탐난다면, 오히려 설악산을 그대로 둘 일이다. 산양이 뛰노는 아름다운 설악산은 우리 후손들을 대대손손 먹여 살릴 위대한 자산이다.


황윤 |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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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만나기 위한 여정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여러 경로를 통해 어렵게 얻은 정보로 그를 찾아갔다. 그를 만난 건 일반인들이 찾기 힘든 음지의 지하 사이트였다. 화면에는 커다란 첨탑 위에 두 개의 십자가가 달린 중세의 성당 그림이 나타났다. 그 옆에는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듯한 말을 탄 기병이 포효하고 있었다. 필자는 말을 탄 기병의 오른쪽 눈을 클릭했다. 그제서야 화면이 바뀌었다. 필자는 여러 경로를 통해 오게 된 사연을 간단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현실세계에서 지독한 왕따였다. 하지만 현실과 일상에 존재하는 모든 한계를 그는 인터넷상에서 극복하고, 전혀 다른 인물로 거듭났다. 그는 매매 사이트에 해킹툴이나 바이러스 등을 판매하는 실력파 해커로 애송이들과는 달랐다.

필요할 때는 직접 해킹을 시도한다. 초창기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선마이크로시스템 등에 침입해 취약점을 관리자에게 알려주기도 했으나, 오히려 불쾌한 협박성 e메일을 받은 후부터 화이트해커 역할을 접었다. 그는 중요 시스템에 들어갈 때 입력감지기로부터 입력값을 가로채고 거짓 입력데이터를 계속 송출, 시스템에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한 뒤 시스템 안으로 숨어 들어갈 수 있는 고난도의 해킹 실력을 갖추고 있다. 이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감시카메라에 이미 녹화된 필름을 돌아가게 만들어놓고 유유하게 원하는 물건을 빼내오는 수법과 유사하다. 그는 자신을 어렵게 찾아온 필자를 반갑고 솔직하게 대해주었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는 복제한 신용카드로 수차례 돈을 뽑았고 100만달러가 넘는다고 말했다. 또 보유 중인 수십만개의 좀비PC로 디도스공격과 바이러스 판매 등을 통해 통장에 잔액이 170만달러 정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목표 금액만큼 모은 뒤에는 경찰의 눈을 피해 남미에 정착, 인생을 즐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 정도 실력이면 사회나 국가를 위해 활동해도 적지 않은 수입이 보장되지 않느냐”고 묻자 “조직생활은 견딜 수 없다. 자유롭게 살겠다”고 했다. “실력 있는 해커로서 의미 있게 사는 것은 어떠냐. 어쨌든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은 법을 어기고 있는 거 아니냐”는 질문에, 화를 내면서 “스파이냐”며 돌연 온라인에서 사라졌고, 필자는 사이트에서 튕겨졌다. 그가 인증한 157만3000달러가 찍힌 통장 잔액만이 잔상에 남아 있었다.

며칠 전 한 중학생 해커가 600여개의 좀비PC를 이용, 디도스공격을 감행했다. 또 은행 최고정보관리책임자이자 국내 1호 해커였던 이가 납품업체로부터 금품을 챙겨 실형을 선고받았다. 한 보안전문가는 10억원을 받는 대가로 경쟁사 도박사이트에 디도스공격을 가했다.

최근 해킹범죄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이버범죄의 형태를 닮아가고 있다. 사실 우리가 두려워하고 우려하는 파국은 폭력적인 범죄나 현실 속에서 악의 세력이 획책하는 계책 따위가 아니다. 중학생이 좀비PC를 이용해 디도스공격을 하고, 보안전문가가 오히려 사이버공격을 감행하는 작고 사소한 움직임들이다.

작은 파도와 잔물결 같은 이런 움직임이 네트워크 사회를 정지시키고, 한 도시와 국가를 삼켜버리는 쓰나미가 되어 파국으로 몰아가는 나비효과를 일으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해커였던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설립하는 등 모든 일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늘 질문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그는 애플을 상장한 23세 때 백만장자 반열에 들어섰고, 24세 때 1000만달러, 25세 때 1억달러가 넘는 자산가가 되었다. 그는 당시에 “내게 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내가 만든 회사, 제품, 직원들, 그리고 내가 만든 제품이 사람들에게 어떤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다”고 말했다. 인간과 신이 사라진 테크놀로지는 우리를 가짜 세계에 가두어놓고, 감정과 오감을 마비시킨 채 돈의 노예로 전락시키고 있다.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스티브 잡스가 주는 교훈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해커집단인 어나니머스는 돈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두둔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진실한 저항의 소리라 자처하며 정치적인 동기로 움직인다고 밝혔다. 최소한 어나니머스처럼 자신들이 왜 그 일을 하는지에 대한 명분이라도 있어야 한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해킹 사건들을 굳이 예를 들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해커들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사이버공격, 해킹을 한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매일 20만대 이상이 추가적으로 봇넷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있고, 1억대 이상의 봇넷이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사이트에서 해킹 프로그램이나 툴, 바이러스를 사서 돈을 버는 별 볼일 없는 스트립트 키드 수준의 해커가 아니라면, 이 시대에 진정 무엇으로 살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기억과 체험이 조작되고 통제되는 한여름밤의 꿈 같은 터무니없는 매트릭스의 가상세계에 살고 있는 게 아니다. 나아가 버그가 생겨 오작동을 반복하는 별 볼일 없는 컴퓨터 같은 존재는 더더욱 아니다. 필자는 그때 홀연히 사라져 버린 해커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잊지 않고 해줄 말이 있다. 당신같이 뛰어난 해커는 원래 의미의 해커로 돌아가, 디지털시대의 주인이자 파수꾼 역할을 해야 한다고. 당신이 선택한 길이 겉으로는 화려하고 지름길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결국 고통과 비참함의 세계를 선택한 것이라고. 그 대가는 처절하게 치르게 될 것이다.

네트워크가 방어능력 이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공격의 복잡성이 증가하고 있기에 당신 같은 유능한 해커에게는 아직까지 문이 열려 있다는 것까지.


최희원 | ‘해커묵시록’ 작가·인터넷진흥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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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SW) 산업은 관광 산업과 마찬가지로 부가가치가 매우 높은 굴뚝 없는 산업이다. 현재 세계 SW 시장 규모는 약 1000조원에 육박해 휴대폰 시장의 10배가 넘고, 메모리와 비메모리를 합친 반도체 시장보다 4배나 더 크다. 오늘날 세계 경제는 SW가 강한 나라가 지배하고 있다. 세계 SW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구글 등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SW 산업 현실은 SW 산업이 없다는 말이 입에 자주 오르내릴 정도로 대단히 미미하다. 국내 SW 시장 규모는 20조원 정도로 세계 시장 점유율에서 2%가 채 안된다. 또한 임베디드 SW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패키지 SW도 해외 기업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75%에 이른다. 세계 SW 시장에서 대한민국의 정보기술(IT) 강국으로서의 위상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9개국 중 14위로 하위권이다. IT 강국임을 자처하면서도 그동안 SW 교육에 무관심했던 정부가 SW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정책을 수립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스럽다. 그런데 2020년까지 영국은 30만명, 유럽은 100만명, 미국은 140만명의 IT 기술직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미래의 일자리 창출 핵심을 SW 교육으로 인식하고 미래 기술 노동력을 선점하기 위해 SW 교육 강화로 눈을 돌린 셈이다.


세계IT산업 시장규모_경향DB


지난해 7월 발표한 정부의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르면 초등학교의 경우 2017년부터 연차적으로 SW 교육을 실시하고 2019년에는 초등학교 전 학년이 SW 교육을 받도록 돼 있다. 중·고등학교 역시 2017년부터 SW 교육을 실시하고 2020년에는 전 학년 학생들에게 SW 교육을 한다. 그러나 문제는 SW를 제대로 알고 가르칠 교사 확보 대책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정부는 초등학교는 담임교사가, 중·고등학교는 컴퓨터·정보 관련 교직 전문가에게 SW 교육을 전담시킨다는 방안을 갖고 있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중등과정 컴퓨터·정보 교사 임용 통계를 보면 그야말로 참담하다. 2010학년도 5명, 2011학년도 3명, 그리고 2012학년도와 2013학년도에는 아예 한 명도 없다. 교육대학을 중심으로 매년 250명 정도의 컴퓨터 교육학 전공자들이 배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보면 거론하기조차 부끄러운 교사 임용 숫자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반 대학 컴퓨터 관련 학과의 경우 초창기에는 학과 정원의 30%까지 교직을 이수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10%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SW 교육 정책이 창조경제를 위해 포장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따라서 SW 교육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SW를 가르칠 수 있는 전문 교사 확보가 급선무다. 이를 위해 교육대학 컴퓨터 관련 유관학과는 물론 일반 대학 컴퓨터 관련학과의 교직 이수 정원을 대폭 늘리고 이들이 초·중등학교의 SW 교육을 전담하도록 하는 제도적·법적 장치가 필요하다. 과거처럼 컴퓨터 비전공자들에게 적당히 일반 연수를 시켜 SW 교육을 담당토록 해서는 성공을 기대할 수 없다. 특히 정부에서 추구하고 있는 SW 교육 목적이 프로그래밍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SW를 이해하고 논리적인 사고를 기르도록 하는 데 집중된다면 SW 교육은 무늬만 SW 교육일 뿐이다. SW의 기본은 ‘프로그래밍’이기 때문이다.

물론 SW 교육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전 세계적인 IT 재편과 트렌드 변화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IT 산업이 ‘외화내빈’에서 벗어나 선진국으로의 조기 진입을 위해서는 SW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SW 교육 활성화를 위해서는 수능에 SW 과목을 추가하고 SW 전문 싱크탱크를 설립하는 등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이 있어야 한다. SW 산업이 현재대로라면 우리나라 경제의 미래는 물론 21세기 먹거리도 기대할 수 없는 까닭이다.


이윤배 | 조선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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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법인 상지학원이 학내 분규를 촉발한 김문기 총장을 해임했다고 밝혔다. 잇단 김 총장 해임 요구에도 버티기로 일관하던 상지대가 오는 15일까지 해임하지 않으면 이사 8명 모두를 해임하겠다는 교육부의 최후통첩에 손을 든 것이다. 앞서 상지대는 교육부의 김 총장 해임 요구에 정직 1개월, 재차 요구에는 정직 2개월 징계 처분을 내리면서 시간을 끌었다.

교육부는 이사회 결정에 법적 하자가 없다면 상지대 사태가 일단락되는 것 아니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매우 순진한 생각이다. 20여년간 학내 분규로 학교 구성원 간 갈등이 극에 달했고, 학교 운영이 파행을 겪어온 상지대 사태가 김 총장 한 사람의 퇴진으로 곧바로 해결될 리 만무하다. 무엇보다 김 총장의 장남이 상지학원 이사로 있는 것을 비롯해 김 총장 세력이 여전히 학교 운영을 좌우하는 현실을 무시해선 안된다. 자리에서 물러나든 말든 김 총장이 얼마든지 마음대로 학교를 운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상지대 이사회가 교육부의 임시이사 파견을 막아보려고 임시방편으로 김 총장 해임을 결정한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상지대가 김 총장 해임을 계기로 학교 운영을 정상화하고 학내 갈등 해소에 나설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상지대 이사회가 김 총장 해임을 결정한 날 비리재단 복귀에 반대해온 교수협의회 전·현 대표 3명을 해임한 것만 봐도 정당한 사태 해결의 의지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문기 상지대학교 총장이_연합뉴스


김 총장은 15년간 이사회를 단 한 번조차 열지 않고도 마치 이사회를 통해 합법적으로 학교를 운영한 것처럼 꾸민 사실이 적발됐고, 1994년엔 부정입학 등 사학비리로 실형을 선고받고 학교를 떠났다가 지난해 총장으로 복귀했다. 도덕성과 자질, 운영능력 등 어느 모로 보나 교육자로서 학교 운영을 해서는 안되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학교로 복귀하고 상지대 사태가 악화된 데는 교육부의 책임이 크다.지대는 김 총장이 구속된 후 한때 임시이사 파견으로 정상화의 길을 걸었으나 교육부가 김 총장 측근들의 이사회 진출을 승인하고, 그의 총장 취임마저 허용해 갈등을 심화시켰다. 교육부는 결자해지의 자세로 상지대를 정상화할 의무가 있다. 김 총장 해임에 그치지 말고 김 총장의 친위대 격인 현 이사진을 해체하고, 대학 구성원과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인사들로 임시이사진을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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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수서역과 평택의 지제역을 연결하는 수도권 고속철도 율현터널이 3년5개월의 공사 끝에 지난달 개통됐다. 길이가 50㎞로 국내에서 가장 긴 터널인 만큼 관통식도 비교적 성대하게 치러졌고 국토교통부 장관 등 100여명의 내빈이 참석했다. 그런데 그 행사장에 정작 그동안 작업해온 일선 인부들은 보이지 않았다. 조선일보 6월29일자 보도에 따르면 “전날 밤 퇴근할 때 현장사무소에서 ‘장관님을 비롯해 높으신 분들이 오시니 내일 오전엔 출근하지 말고 현장 주변에 얼씬거리지도 말라’고 했다”고 한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추구한다. 많은 경우 그것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확인된다.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칭찬을 듣거나 은연중에 선망의 시선을 받으면서 행복감을 느낀다. 문제는 타인의 비천함을 드러내면서 자신의 존귀함을 보여주는 경우다.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부류의 인간이 있어야 비로소 자아정체성이 확인되는 것이다. 마음이 부실하고 삶이 빈곤할수록 구별짓기에 매달린다. 내면이 허약한 사람들이 권력과 지위를 갖게 될 때, 그 힘을 남용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무력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런 역학이 작동하는 배경에는 사회적으로 널리 공유되는 신분관념이 있다. 신분제도가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여러 기준으로 사람들을 위아래로 나누는 서열의식이 남아 있는 것이다. 직업의 귀천을 구별하는 가치관이 그 한 가지 핵심을 이루는데, 육체노동의 극심한 비하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단순노무직이나 판매직, 농어업 종사자들에 대한 부정적 묘사가 많고, 심지어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의 그림과 함께 ‘중학교밖에 못 나왔으니 이런 일밖에 못하네’라는 말이 붙어 있다. 또 경찰청이 만든 수배전단에는 범죄자의 인상착의가 ‘노동자풍’이라고 버젓이 쓰여 있다.

직업과 재산을 기준으로 인간의 격(格)을 매기는 의식구조는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절대빈곤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의지만이 아니라, 사람대접 좀 받고 싶다는 열망이 악착같이 공부하고 일하는 동기가 됐기 때문이다. 맹렬한 성취의욕은 상당 부분 결실로 이어졌다. 하지만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어서는 득보다 실이 많아진다. 자존감의 획득이 제로섬 게임으로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아니 그 이상인지 모른다. 나의 자부심을 위해 여러 사람들이 모멸감을 맛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경제적인 상승 이동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모든 영역이 공급과잉이고, 지구생태계의 에너지와 자원소비도 억제해야 하는 형편이다. 이제 일의 목적과 의미를 다르게 배치해야 한다. 오로지 돈벌이 수단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즐거움의 원천이 될 수 있도록 변환해가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우선 노동을 통해 인간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기본소득이 보장돼야 한다. 아울러 일을 통해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는 존중과 관련이 있다. 노동에 대한 사회적 피드백이 원활하게 이뤄져야 하고, 더 근본적으로 노동의 맥락을 새롭게 설정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훈데르트 바서_경향DB


오스트리아의 화가이자 건축가인 훈데르트 바서의 시도는 한 가지 사례로 언급된다. 그는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을 지을 때 노동자들이 단순히 시키는 대로 일하지 말고 디자인의 공동 주체로 참여해 달라고 제안했다. 그는 진짜 문맹은 창조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창조성은 자기의 일을 귀하게 여길 때 발현된다. 그래서 바서는 일요일에 노동자들이 자기 가족들을 초대해서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도록 했다. 과업 지시에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의 주인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랐다.

공사장 인부에게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어떤 이는 그냥 벽돌을 쌓고 있다고, 어떤 이는 돈벌이를 하고 있다고, 그리고 어떤 이는 성당을 건축하고 있는 중이라고 대답한다는 비유가 있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거기에서 얻는 보람은 전혀 다를 것이다. 그런데 그 의의는 당사자의 행복감에 그치지 않는다. 일에 대한 정성은 곧 그 결과물의 질로 직결된다. 완공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보도블록의 곳곳이 꺼지고 건물의 벽과 바닥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흔히 목격한다. 그런 부실함으로 인해 치르는 대가는 적지 않다.

인간은 무엇인가에 최선을 기울여 완성을 하는 데서 기쁨을 느낀다. 그러한 제작 본능과 장인정신을 방해하는 요인들이 우리 사회엔 너무 많다. 노동자를 천민 취급하는 풍조도 그 가운데 하나다. 터널의 준공식에 인부들의 접근을 금지시키는 발상은 천박한 권위주의의 병적 징후다. 우리는 그 비루한 근성을 떨쳐낼 수 있는가. 노동은 존엄해질 수 있는가.

김찬호 | 성공회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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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계에서 틈만 나면 참새들의 입방아거리로 오르는 주제가 하나 있다. 다른 종목에서는 두각을 나타내는 흑인들이 왜 유독 수영에서만은 약할까 하는 궁금증이다.

다른 인종에 비해 물갈퀴가 짧다느니, 땀구멍이 너무 커서 물을 많이 품기 때문이라느니 하는 별의별 근거없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그 가운데서도 메이저리그 LA다저스 단장을 지낸 알 캄파니스의 해석이 즐겨 인용된다. 그는 1987년 “흑인들은 부력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등의 인종차별적인 발언으로 단장직에서 쫓겨난 바 있다. 흑인들은 근육이 많은 대신 체지방이 적어 물에 잠기는 부분이 많다는 말이다. 물론 모두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한 이야기이다. 이는 1988년 9월21일 서울올림픽 수영 접영 100m에서 입증됐다. 수리남의 앤서니 네스티가 7관왕을 노리던 매트 비욘디(미국)와 미하엘 그로스(독일)를 제치고 금메달을 딴 것이다. 이후 앤서니 어빈과 컬렌 존스(이상 미국) 등 흑인계가 올림픽에서 금메달 행진을 이어갔다. 흑인이 수영과는 맞지 않는 인종이라는 편견이 깨진 것이다. 그렇다면 흑인스타가 수영에 유독 적은 이유는 뭘까. 환경의 차이일 가능성이 높다. 수영은 축구나 야구, 육상 등 다른 스포츠와 달리 첨단 시설과 장비, 그리고 체계적인 개인교습이 필요한 종목이다. 흑인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네스티도 미국에서 엘리트 수영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아프리카 저개발국가나 서구의 저소득층에 속한 흑인들이 출세를 겨냥해서 승부를 걸 수 있는 종목이 아니다.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 감비아 선수로 유일하게 출전한 수영 대표 팝 종가(오른쪽)와 아르팡 조브 코치가 8일 광주 유대회 선수촌에서 감비아 국기를 펼치고 활짝 웃고 있다. -경향DB


그런 면에서 2015 광주 유니버시아드에 출전한 감비아의 수영청년 파프 종가(17)의 도전은 박수받을 만하다. 50m 규격 풀은 구경도 못한 채 위험한 감비아 강에서 훈련을 받아온 청년이다. 접영 세계기록(26.67초)보다 13초 이상 늦은 기록(40초04)으로 조예선 꼴찌에 머물렀다. 그러면 어떠랴. 유니버시아드 시상식에서 국가 대신 부르는 공식노래가 있다. ‘그러므로 즐깁시다!(Gaudeamus igitur)’이다. 그 다음의 가사가 더 멋지다. ‘아직 젊을 때에(juvenes dum sumus)…’이다. 17살 종가 청년이 부를 만한 안성맞춤의 ‘청춘송가’이다.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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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처에서 팽팽한 협상과 줄다리기가 펼쳐지는 요즘, 나 역시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상대는 딸아이, 안건은 여름방학 용돈 규모다. 고등학생이 되어 첫 방학을 맞는 아이는 집에서 좀 떨어진, 공부가 잘된다는 프리미엄 독서실에서 여름방학을 보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독서실 비용이 만만찮다. 부족하다고 느낀 몇몇 과목을 보충하기 위해 인터넷 강의와 각종 교재도 신청했다. 그것도 모아보니 목돈이 들어간다. 꽤 부담스럽다 싶은, 주부로서의 마음이 스멀거리고 올라오는데 이내 강한 학부모 정신이 이를 찍어누른다. 그래, 네가 공부하겠다는데 뭘 못해주겠냐, 기백만원 드는 고액과외 시켜주는 것도 아니면서….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점심과 간식은 도시락을 싸주기로 했지만 저녁은 사먹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한 끼에 6000원 정도 하면 되지 않나? 독서실 앞에 짬뽕집이랑 김치찌개집 보니 그 정도면 되겠던데….” “장난해? 밥만 먹고 아이스크림 하나도 사먹지 말라는 거야? 그리고 매일 김치찌개랑 짬뽕만 먹어?” “근처에 김밥집도 있고 닭강정 파는 데도 있고….” “그집 김밥 한 줄에 4500원이야. 거기다 물만 마시라고?” 저녁값뿐만이 아니다. 친구들과 수영장 한번, 노래방 한번씩 가기로 했단다. 꼭 보고 싶은 영화도 최소 2편이다. 생일 돌아오는 친구는 또 왜 그리 많은지. 아, 지하철과 마을버스비도 포함해야 한다.

“엄마, 그냥 깔끔하게 하루 만원으로 하자. 어때?” “제정신이야? 지금 너한테 들어가는 돈이 얼만데. 한달 밥값으로 30만원을 내놓으라는 거야? 땅 파면 돈 나오는 줄 알아?” “누가 만원짜리 밥먹겠대? 그 정도는 있어야 밥먹고 용돈하고 교통비 쓰지. 아님 맨날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랑 라면으로 때우는 수밖에 더 있어?” 몇천원 더 깎아 보려던 궁색한 내 논리는 막혔고 우리 모녀는 아직 합의점을 못 찾았다. 부모와 함께 사는 평범한 고등학생의 한달 살림살이도 이럴진대 거처까지 해결해야 하는 성인이라면 최소한 한달에 얼마를 쥐어야 하나. 하물며 가족까지 부양해야 할 처지라면.



9일 새벽, 내년 최저임금 시급이 6030원으로 결정됐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126만원이라는데, 그것도 최저 시급을 맞춰주는 양심적 업주를 만난다는 가정하에 나오는 계산이다. 그 돈으로 어떻게 한달을 꾸려볼까 하고 머릿속으로 계산하며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훑어 보는데 좀 황당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혜택을 입게 된’ 저소득 근로자가 수백만명이라는 문장에서다. ‘혜택’이라는 단어는 사전적으로 은혜와 덕택을 아울러 이른다. 통용되는 의미에는 대가 없이 거저 얻거나 풍성하게 누린다는 느낌도 포함된다. 장난하나? 한달에 100만원 좀 넘게 받는 노동자들에게 푼돈 던져주며 혜택 운운하다니.

더 가관인 것은 재계의 반응이다. 한목소리로 “소상공인의 절박함을 외면했다”고 야단이다. 소상공인들이 아르바이트생 시급 올려줘야 하는 게 걱정돼 견딜 수 없나보다. 그렇다면 그 수많은 소상공인은 누가 만들었나. 머리가 희끗해질 때까지 밤낮없이 일하던 이들에게 어느날 갑자기 몇 푼 쥐여주고는 나가란다. 회사 경영이 힘들어졌다는 게 이유다. 수천억원 회사 돈을 회장님이 제 쌈짓돈처럼 쓰다 회사가 어려워져도 책임은 엉뚱한 이들이 진다. 그렇게 내몰린 채 알뜰살뜰 모은 돈으로 치킨집, 분식점, 카페, 호프집 등을 차린다. 기껏 새출발하려는데 대기업들이 나서서 커피며 빵, 치킨, 맥주, 피자까지 판다.

아무리 생각해도 곡절을 모르겠다. 어떻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최저임금이 월 120만원 안팎 수준인지. 청초하고 기품있는 얼굴에 깔끔한 명품 차림, 하지만 설정은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아르바이트생인, TV속 우리의 여주인공. 정부며 정치권, 재계 관계자들이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박경은 대중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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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탈원전을 당론으로 확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제 당 부설 민주정책연구원이 주최한 김익중 원자력안전위원회 비상임위원의 ‘한국 원자력의 미래’ 강연에서 “탈원전이 우리 당의 당론인지 애매하다”며 “빨리 당론으로 정립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 대표의 이 발언으로 탈원전 당론화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탈원전은 새정치연합이 이미 지지해왔던 에너지 정책 기조였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나섰던 문 대표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당시 공약의 주요 내용은 신규 원전 백지화를 비롯해 수명이 종료된 원전 가동 중단 및 폐로 절차 추진, 안전에 문제가 있는 원자로의 조기 폐쇄 등을 강구하고 대체에너지 개발을 통해 원전 의존도를 단계적으로 줄여나간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탈원전 정책 기조는 새정치연합으로 이어져 강령과 정책 등에 반영됐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이 그동안 탈원전 문제에 일관성과 책임성을 갖고 정면으로 대응해 왔다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문 대표도 지적했듯이 당내 원전대책특위나 탈핵의원모임 등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의원 간에 상당한 온도 차가 있었고, 원전 관련 주요 현안을 놓고도 당 차원의 집중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문 대표도 인정했듯이 탈원전 문제를 한번도 당의 주요 정책결정 기구에서 논의한 적이 없다. 겨우 특별위원회라는 주목받지 못하는 기구에 미뤄두었을 뿐이다. 비록 늦었지만 문 대표가 “이제는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한다”며 당내 논의를 공식화할 뜻을 밝힌 것은 다행한 일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_경향DB


제1야당이 탈원전 문제에 정면으로 마주하겠다는 것은 국가 에너지 정책이나 기후변화 대응 등과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비롯해 신규 원전 건설을 둘러싼 논란, 송전탑 갈등, 사용후핵연료 처리 방안, 신기후체제 대비 등 대형 현안에 대한 기존 논의에 근본적으로 달리 접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정책의 근저에 정부의 원전 의존 에너지 정책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탈원전이 그저 듣기 좋은 정치 구호가 아닌 실천적 과제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과 연구가 필요하다. 원전이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고 신재생에너지가 대안이라는 막연한 주장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안전성과 경제성, 지속가능성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근거를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 장·단기 전력 수급이나 에너지 계획 전반에 관한 정교한 대안을 제시할 능력까지도 갖춰야 한다. 이를테면 탈원전을 위해 불가피한 전기요금 인상을 주도할 의향이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신재생에너지 확충을 위한 투자 재원을 얼마나 어떻게 마련할지도 구체적으로 따져야 한다. 신기후체제를 위한 최소한의 요구에도 반발하는 산업계를 설복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폐로 기술 확보나 사용후핵연료 처리 방안을 찾는 것도 큰 숙제다.런 모든 난제를 풀 수 있을 정도의 현실적인 정책 수단을 내놔야 탈원전 당론의 의미가 온전히 부각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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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탈원전’을 당론으로 정하자는 언급을 했다고 한다. 대단히 중요한 제안이지만, 당론으로 정하기 전에 기초 지식을 단단히 쌓아놓지 않으면 반대자들의 공격 앞에 맥없이 무너지고 공염불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서 ‘탈원전’이 되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원자력발전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니다. 일반인은 말할 것도 없고, 정책 담당자들조차 원자력이 위험하고 문제가 많다는 것은 인정한다.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이 원자력을 고집하는 이유는 주판알을 튕겼을 때 원자력이 값쌀 뿐만 아니라 외환수지에 크게 유리하다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원자력발전소는 건설비가 많이 든다. 반면에 연료비로 나가는 돈은 아주 적다. 이에 비해 가스나 석탄 발전소는 건설비는 적게 들지만 연료비로는 아주 많은 돈이 지출된다. 발전소 건설은 나라 안에서 이루어지고 설비의 상당 부분은 국내에서 조달된다. 그러나 연료는 거의 모두 해외에서 들어온다. 외화를 지불하고 사와야만 하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_경향DB


2013년에 원자력발전에서 사용한 우라늄 수입을 위해 해외에 지불한 돈은 10억달러 정도였다. 천연가스 수입을 위해 사용한 돈은 306억달러에 달했다. 30배 이상의 돈이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원자력에서는 우리가 1년 동안 사용한 전체 에너지의 10.4%를 얻었지만, 가스에서는 그 2배도 안되는 18.7%밖에 얻지 못했다. 30배 이상의 돈을 주고 2배의 효과밖에 끌어내지 못했다면 아주 비효율적으로 돈을 쓴 것이다. 천연가스가 반드시 필요한 곳이 있다. 발전 부문에서는 전기소비의 변동이 심할 때 가스발전소가 반드시 돌아가야만 전기공급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원자력발전이 할 수 있는 역할이 거의 없다. 물론 가스는 원자력을 대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원자력이 공급하던 전기를 모두 가스로 공급하면 전기요금은 올라가고 외환수지도 크게 나빠질 것이다.

문재인 대표는 태양광이 원자력을 대신해줄 것으로 믿는 것 같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태양광발전 방식으로는 원자력을 몰아내기 어렵다. 태양광발전은 변동이 심하다. 해가 좋으면 전기가 많이 나오지만, 흐리면 얼마 안 나온다. 밤에는 전기를 조금도 내놓지 못한다. 아무리 많이 태양광발전소를 만들어 놓아도 밤에 사용할 전기를 위해서는 원자력이나 화력 발전이 필요하다. 태양광발전소의 발전용량이 현재 원자력발전소의 발전용량보다 훨씬 더 커지더라도 밤에 필요한 전기공급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탈원전’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태양광발전이 늘어도 가스발전소를 유지해야 한다면, 전기 생산비용이 높아지고 요금이 크게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손정의는 아시아 슈퍼그리드를 제안했다. 일본, 한반도, 중국, 몽골의 태양광발전소와 풍력발전소를 연결하면, 어느 한 지역의 날씨가 안 좋아도 서로 전기를 주고받을 수 있으니 백업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슈퍼그리드는 태양광발전의 근본 성격과 잘 맞는 것이 아니다. 태양광발전이 미래를 열어줄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는 그것이 민주주의적인 에너지 생산을 가능하게 하고 지역을 살린다는 것 때문이다. 작지만 수많은 태양광발전은 거대 에너지자본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슈퍼그리드는 대규모 태양광발전소와 거대 송전선로를 전제한다. 이를 위해 당연히 대자본과 중앙의 권력이 동원돼야 한다. 자칫하면 비리로 얼룩진 자주개발 사업 같은 것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이미 한국에서는 대자본이 태양광산업의 주요 플레이어 역할을 하고 있다. 한화, 현대, 삼성, LG 같은 재벌들과 한국전력이 시장을 장악해가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탈원전’을 당론으로 정하기에 앞서 이런 상황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필렬 | 방송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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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전 9시16분께 울산 남구 여천동 한화케미칼 울산2공장에서 폭발 사고로 노동자 6명이 숨졌다. 사망자는 모두 협력업체 직원으로 그 가운데는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20대 취업 준비생도 있었다. 이들은 폐수처리장 저장조 상부에서 배관 작업을 하던 중 폐수 잔류 가스가 용접 불티와 접촉해 폭발하는 바람에 참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기업이 또 후진적인 산업재해 사고를 낸 것이다. 애석하고 기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가스 누출에 의한 폭발이나 질식 사고가 대기업 사업장에서 일상사처럼 반복되고 있다. 2013년 3월 전남 여수 대림산업 사일로 폭발 사고에서 지난 1월 경기 파주 LG디스플레이 공장 질소가스 질식 사고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열거하자면 한이 없을 정도다. 지난 4월에도 경기 이천 SK하이닉스 공장에서 질소 질식 사고로 3명이 사망했다. 어김없이 똑같은 유형의 사고가 되풀이되고 있다. 사고 발생 장소는 대기업 사업장, 사고 희생자는 하청업체 노동자, 사고 원인은 안전관리 소홀로 인한 인재(人災)라는 점에서 다를 게 하나도 없다. 한화케미칼 측은 현장 주변의 인화성 가스 농도를 측정하고 작업자들이 장구를 갖췄는지 등을 확인한 뒤 안전허가서를 발행했다고 하지만 제대로 했는지는 의문이다.



석유화학 공단은 폭발이나 질식 사고 우려가 높은 곳이다. 그래서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체, 고용노동부, 안전공단 등은 사고 예방을 위한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모양이다. 그런데 똑같은 유형의 사고가 반복되는 것을 보면 이런 노력이 별로 효과가 없다는 게 분명해진다.

한국의 산업재해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산재 사망자만 연평균 2422명에 이른다. 산재 다발국이란 오명의 상당 부분은 대기업의 후진적 산재가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와 대기업은 사고가 날 때마다 재발방지책을 세운다고 하지만 시늉에 그치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반복되는 사고에 속수무책인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다. 이제 근본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사고 원인은 위험 외주화와 솜방망이 처벌에 있다. 정부는 유해·위험 업무의 사내하청을 제한해야 한다. 그리고 원청 책임을 더욱 무겁게 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또 다른 노동자가 희생되기 전에 서두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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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상을 한번 해보자. 대학의 체육학과에서 야구와 관련된 수업을 열심히 듣고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학생이 있다. 유명한 프로야구 구단이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이 학생이 야구를 잘할 것으로 생각하고 스카우트를 했다. 그런데 막상 경기를 시켜보니 잘못 뽑은 것이다. 야구에 대한 지식은 많고, 과학적인 분석도 잘하는데 막상 야구를 잘하지는 못한다. 구단은 대학에 불평을 늘어놓는다. 도대체 대학에서 교육을 어떻게 시키기에 뽑아서 바로 써먹을 인재가 안 나오느냐고.

하지만 체육학과는 억울하다. 그게 체육학과의 존재 이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체육학과 교수들은 체육학이라는 학문에 정통한 박사들이지 야구의 실기에 정통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도 체육학이라는 학문이지 실전 야구가 아니다. 실전 야구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현장에 있는 야구 코치와 감독이다. 그렇다고 체육학과 교수를 학문을 한 박사가 아니라 야구 선수나 감독으로 대체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야구단을 만드는 것과 다름이 없고, 어쩌면 프로야구단에 가기 위한 예비 야구반을 만드는 것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런 상상은 절대로 현실이 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체육학과의 우수한 졸업생이 실전에서 프로급의 실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물론 체육학과 졸업생이 일반인들보다 운동을 잘할 가능성은 크다.

그 이유는 체육학과에서 운동과 관련된 것을 많이 배우고, 또 실기도 어느 정도 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운동을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이 체육학과에 지망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정치학과를 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정치학과 출신이 정치와 관련된 직종을 택할 확률은 높지만 정치학과를 나왔다고 정치 현장에 바로 투입하면 정치를 잘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정치에 대해서 “학문적으로” 잘 아는 것과 “현장에서” 잘 아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장에서의 재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요즘 기업에서는 학생들이 관련 전공학과를 나오면 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인재를 만들어 달라고 대학에 요구한다. 현장 전문가가 아닌 학문 전문가인 교수들에게 학문이 아니라 현장을 가르치라고 한다. 마치 체육학과 교수에게 관련 학문을 가르치지 말고 바로 야구를 가르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다 해당 분야의 학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교수들이다. 교수들은 고도의 학문적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훈련을 수십년 받아온 사람들이지 실기에 정통한 사람들이 아니다.

물론 실기를 분석하기는 하지만 실기를 분석하여 추상화, 개념화, 이론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학생들에게도 실기가 아니라 추상적이고, 개념적이고, 이론적인 학문을 가르친다. 그리고 대학에서 학년이 올라갈수록 배우는 것의 추상화, 개념화, 이론화의 정도는 더욱 높아만 간다. 어떤 의미에서는 현장지식에서 더욱 멀어진다는 얘기다. 당연히 그런 교육을 받고 대학을 졸업하는 졸업생들은 현장에 바로 투입될 훈련을 받고 졸업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대한 추상적이고, 개념적이고, 이론적인 지식을 교육받고 현장에 나가게 된다.

대학 정문에서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는 글귀가 적힌 종이를 손바닥에 펴 보이고 있_경향DB


문제는 기업과 대학 간에 이러한 수급 불일치가 생기니까 학생들은 취직을 위해 대학 정규과정과는 상관없이 따로 취업 준비를 하고 취업 관련 수강을 듣는다. 기업은 신입사원의 재교육 비용을 대학에 떠넘기려 하고, 대학은 기업이 필요한 맞춤형 교육을 할 수 없으니까, 취업준비생들이 기업 재교육 비용의 상당 부분을 자비로 부담하는 불상사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을 제대로 취직시키는 교육을 못하는 대학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와 답이 있지만, 일단 대학은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곳이다. 문제를 이해하고,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고, 창조적 대안을 찾아내는 힘을 길러주는 곳이다. 기업이 재교육 비용을 절감하기 위하여 대학에 할 수 없는 것을 자꾸 요구하게 되면 대학도 죽고, 학생도 죽는다.

반면 대학은 학생들에게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해력과 사고력을 증진시키는 21세기에 맞는 생각하는 교육을 시켜야 한다. 대학 개혁은 절실한 문제이지만 개혁의 방향이 현장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교육으로 향할 수 있는지는 기업이 스스로 자문해보길 바란다.
이근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싱크탱크 미래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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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생각에 가장 좋은 국가는 어디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란 쉽지 않다. 부를 축적한 나라, 풍광이 아름다운 나라, 첨단기술을 가진 나라, 그 어느 것도 좋은 국가로 부르기에는 마뜩지 않게 느껴진다. 중동의 산유국들은 부자 나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을 좋은 국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처럼 아름다운 자연을 갖고 있다 해서 자동적으로 좋은 국가가 되는 건 아니다. 미국은 첨단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나라지만 좋은 국가로 부르는 데는 주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국가 브랜드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 사이먼 앤홀트는 ‘좋은 국가’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질 것을 제안한다. 그의 질문은 이런 것이다. 기후변화, 인권, 테러리즘 등 세계화가 수반하는 엄청난 도전들에 대한 국가들의 반응속도는 왜 이토록 느릴까. 그는 70억명이 살고 있는 세계의 조직 방식, 다시 말해 국가와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에서 그 답을 찾아냈다. 개별 국가를 지배하는 법률과 정치인들의 시야가 영토라는 협소한 울타리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든 국가는 마치 외딴섬이라도 되는 것처럼 국경 바깥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이 국내 문제에 매몰되어 지구적인 문제의 해결에 무관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앤홀트는, 첫째 그들을 뽑은 대다수의 국민들이 그것을 원하고, 둘째 정치인들의 상당수가 공감 능력이 부족한 문화적 정신질환자들이며, 셋째 국내 문제와 국제 문제가 양립할 수 없을 것이라고 믿는 바보 같은 생각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따라서 정치인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은 국내 문제를 국제적인 시각으로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좋은 국가’의 기준은 한 나라가 자국민이 아닌 나머지 인류에게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이다. 이 기준은 수억개의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세계 시민들이 어떤 국가에 호감을 가지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 추적한 결과에 근거한다. 사람들은 부자 나라라고 해서, 군사력이 강해서, 첨단기술을 갖췄다 해서 동경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좋은 국가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 나라가 실제로 ‘좋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좋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세상을 안전하고 풍요로우며 공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테이블마운틴_경향DB


앤홀트가 만든 ‘좋은 국가 지수’는 과학기술, 문화, 국제평화와 안보, 국제질서, 기후변화와 환경, 번영과 평등, 건강과 웰빙이라는 7개의 항목별로 각각 5개의 지표를 적용하고 있다. 최근의 평가 결과를 보면 한국은 47위이다. 과학기술과 문화는 30위권에 들었지만, 국제평화와 안보는 119위, 기후변화와 환경은 71위로 성적이 아주 나쁜 편에 속한다. 케냐, 과테말라, 가나 등이 한국보다 좋은 국가로 평가되었다는 사실은 좋은 국가란 돈이 아니라 품격의 문제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 제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 확정안 발표를 들으며 새삼 국가의 품격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린 기후불량국가라는 오명이 두려워서만은 아니다. ‘법의 지배’를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할 정부가 거리낌없이 법을 어기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자각 때문도 아니다. 국가의 품격을 가장 심각하게 훼손한 것은 정부의 정직하지 못한 태도였다. 대통령이 했던 말을 ‘헛소리’로 만드는 안을 확정하면서 국무총리는 “의욕적인 감축목표 제출로 정부의 저탄소 경제 지향을 국제사회에 천명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한다. 이건 한국에서나 가능한 코미디다.

기후변화라는 위기 앞에서 모든 국가는 자국의 영토, 국민, 산업만을 고려하는 편협한 사고에서 탈피해야 한다. 모두가 ‘좋은 국가’라고 생각하는 곳에서 오는 물건, 사람들, 문화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세계 시민들의 공통적인 인식이다.


안병옥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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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통상자원부는 7월1일부터 서민층의 전기요금 부담 경감을 위해서 여름 한철 전기요금을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돈 적게 낸다니 반가운 소식인 것 같은데 전기요금 인하가 환영할 만한 일일까?

우선, 서민층 전기요금 부담 경감이란 정부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전기요금 인하가 적용되는 구간은 한 달에 301㎾h에서 600㎾h를 사용하는 가구에 해당된다. 주택용 전기요금 체계는 6단계 누진제로 되어 있는데 92%의 대부분 가구들은 4구간 이하에 해당되는 전기 소비, 즉 400㎾h 이하를 쓴다. 301㎾h부터 400㎾h를 쓰는 가구는 전체 가구의 25% 정도이고 400㎾h를 초과해서 쓰는 가구는 전체 가구의 8%밖에 되지 않는다.

싼 전기요금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은 더 많은 전기를 소비하는 행태의 변화로 이어진다. 여름철 에어컨 전기 소비량을 더 늘려도 된다는 신호를 준 것이다.

전기 소비는 일정치 않다. 많이 쓸 때도 있고 적게 쓸 때도 있다. 주말 저녁과 같이 전기를 적게 쓸 때는 원전 설비로 따지면 50개 분량의 발전소가 쉬어도 될 정도이고 주중 한파가 몰아치거나 뜨거운 여름에는 순식간에 모든 발전소를 가동해야 하는 상황이 올 때도 있다. 그때가 최대전력소비를 기록한다. 소위 ‘피크’라고 불린다. 피크타임 때 전기가 모자라게 되면 정전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전력당국은 최대전력소비가 얼마가 될지를 예상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최대전력소비에 만약에 발생할 수 있는 발전소 고장까지 고려한 설비예비율을 감안해서 전력 공급을 위한 발전소 건설 계획을 2년마다 세우는 것이 전력수급기본계획이다.


가구 전력소비량별 여름철 전기요금 감소액_경향DB



우리나라는 어느 때부터인가 전기 소비가 급증했다. 경제규모 대비 우리보다 1인당 전기 소비가 많은 나라는 거의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 그 대부분이 전기로 열을 만들어 쓰는 낭비적인 구조가 정착된 때문인데 전기난방과 전기냉방이 많이 보급된 결과다. 그래서 피크는 겨울과 여름에 발생한다.

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할 때 이미 석탄이나, 석유, 가스를 태워 우라늄으로 핵을 분열해 열을 만들어서 이 중 30~40% 정도만 전기로 바뀌는데 이 전기로 다시 열을 만들어 쓴다는 것은 너무나 낭비적이다. 전기냉방에서도 열이 쓰이는 원리는 마찬가지다. 전기난방이든 전기냉방이든 모두 전기 열소비의 한 형태이다.

싼 전기요금 때문이었다. 1980년대 발전설비가 10기 중 6기 이상이 여유분이었던 시절, 전기요금을 9차례나 인하했고 전기요금은 너무나 싸서 가스로 난방하기보다 가스로 전기를 만들어 그 전기로 난방하는 게 더 싸게 된 것이다. 그 이후 비정상적인 전기수요 급증은 물론 여름과 겨울철의 전기냉난방으로 인한 최대전력소비 급증의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전력당국은 이 문제점을 잘 알고 있어서 최대전력소비, 즉 피크를 관리하는 정책을 주요 목표로 삼았다. 최대전력소비를 다른 시간대로 분산시키면 굳이 발전소를 더 지을 필요가 없으니 효율적인 전력수급 관리가 되고 국가적으로도 이익이고 발전소 건설에 따른 여러 피해를 줄일 수도 있다.

피크를 관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이웃 일본처럼 상가나 가구와 계약을 맺어서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때에 전기냉방기를 10분 정도씩 원격 조정해서 끄도록 하는 방법도 있고 시장원리를 이용해 피크 때의 전기요금을 올리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정부는 갑자기 올여름 전력 소비를 더 하라고, 최대전력소비를 더 끌어올리는 전기요금 인하 시책을 발표했다. 곧 확정될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줄어들고 있는 전력 소비 증가율을 다시 높게 잡으면서 신규 원전 2기 추가 건설 계획이 들어 있다. 줄어들고 있는 전기 소비를 늘리는 목적이 신규 원전 추가 건설을 위한 것일까.
이번 전기요금 인하가 정말 반갑지 않은 이유다.

양이원영 | 환경운동연합 탈핵에너지팀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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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비정규직의 증가가 몰고 올 암울한 미래상을 보여주는 지표들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지난 29일 한국은행은 65세 이상 고령층을 제외한 생산가능인구가 2017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서 2020년부터 취업자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또 정규· 비정규직 간 극심한 격차가 지속될 경우 청년층의 경제참여를 위축시켜 고용여건은 더욱 나빠진다고 진단했다.

30일 고용노동부의 상시고용 300인 이상 대기업의 고용형태 공시 결과 발표도 이 한은의 경고를 뒷받침하고 있다.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 비율이 20%로 지난해보다 0.1%포인트 높아졌고 기간제 비율까지 합치면 대기업 노동자 10명 중 4명은 비정규직이었다. 기아차 모닝 생산공장이나 롯데 영등포역 백화점처럼 운영 인력이 100% 간접고용이지만 정규직이 워낙 적어 공시에서 제외된 기업까지 포함하면 이미 비정규직 비율은 절반을 넘어섰다고 봐야 한다. 한은 조사에 따르면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급여는 49% 수준이다. 청년들의 구직 욕구가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대로 가면 청년실업이 아니라 일시 취업과 해고를 반복하며 숙련 형성 기회에서 영구적으로 배제되는 ‘청년 낭인’의 문제를 고민해야 할지도 모른다.

영화 <카트>의 실제 주인공들인 비정규직 당사자들이 12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정부의 대책을 반대하며 행동계획을 발표하고 있다._경향DB

 


하지만 대기업들은 비정규직 비중을 낮추고 고용 안정과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청년들의 취업 욕구를 높이기 위한 사회적 책임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전경련 이승철 부회장은 “ ‘베이비부머 세대’는 자녀세대에게 안정된 미래를 물려줄 책임이 있다”며 청년실업 문제를 세대갈등의 문제로 접근했다. 기업의 책임은 외면한 것이다. 대한상의도 ‘청년실업 전망과 대책’ 보고서에서 20년 전 ‘대학정원 자율화’를 원망할 뿐 고학력 실업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활용하는 기업의 노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도 사용자위원들은 시종 ‘최저임금을 동결하지 않으면 고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급기야 법정활동 마감시한인 지난 29일에는 최저임금을 시급·월급제로 병행 표기하자는 제안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회의를 거부했다.

인구고령화는 당장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대기업의 저임·비정규직 남용은 막아야 한다. 이대로 방치하면 심각한 고용지체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계속 대기업들의 ‘이기적 고용’에 끌려다닐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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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오는 12월 신기후체제 협상에 내놓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어제 확정했다. 2030년 온실가스 배출전망치의 37%를 감축한다는 내용이다. 일견 6월11일 제시한 4가지 감축 시나리오(14.7%, 19.2%, 25.7%, 31.3%)보다 강화된 목표로 보인다. 정부는 한국의 국제적 책임과 그동안 쌓아온 기후변화 대응 리더십을 고려하고 에너지 신산업 및 제조업 혁신의 기회로 삼기 위해 목표 수준을 상향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지는 의심스러운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2030년 배출전망치 대비 37% 감축(5억3500여만tCO2-e 배출) 목표는 지난해 12월 페루 리마에서 채택된 ‘후퇴 금지 원칙’을 겨우 충족하는 것이다. 2009년 한국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2020년 배출전망치 대비 30% 감축(5억4300만tCO2-e 배출) 목표를 고작 700여만tCO2-e 줄이는 정도다. 10년 동안 거의 줄이지 않을 것이며 2020년 감축 약속도 사실상 포기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게다가 37% 감축 목표마저 배출권이라는 국제탄소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한 국외 감축분 11.3%포인트를 포함하고 있다. 이는 감축분의 거의 3분의 1을, 남의 나라가 온실가스를 감축하면서 확보한 배출권을 돈주고 사는 것으로 메우겠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국내 감축 목표를 25.7%로 잡으면 사실상 기존 제3안을 채택하는 것에 불과하다.

 

정부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시나리오,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 전망치_경향DB



산업 부문의 감축률을 12%로 낮춘 것도 정부의 감축 의지를 의심케 한다. 정부는 산업계가 14.7%를 줄이는 1안조차 부담스럽다며 강하게 반발하자 전체적인 감축률은 상향 조정하는 대신 산업 부문 감축률은 대폭 낮췄다. 온실가스 배출 비중이 가장 높은 산업 부문이 채우지 못한 감축 부담은 결국 국민 몫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게 됐다. 정부는 원자력발전소 추가 건설이나 수송·건물 등에서 추가적 감축 여력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한다. 온실가스 포집 및 저장 기술 등 신기술에 기대를 걸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위험하고 비싼 감축 수단이 기후변화 대책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은 온실가스 배출 세계 7위국이다. 누적배출량에서도 16위를 차지한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며 주요 20개국(G20)의 일원이다. 유엔 사무총장 배출국이자 녹색기후기금 유치국이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의장 도전국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적 책임을 다해야 할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기후변화에 이렇게 소극적인 대응을 한다면 기후 의제를 주도하는 국가의 위상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산업계와 정부의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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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한화의 최진행 선수가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실시한 도핑테스트에서 금지약물(스타노졸롤) 양성반응을 보여 30경기 출장정지 처분을 받았다. 스타노졸롤은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지정한 제1종 상시 금지약물이다.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하고 간이 손상되는 등 심각한 부작용이 일어난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 출전한 육상스타 벤 존슨(캐나다)이 이 성분 때문에 금메달이 박탈된 바 있다. 이번에 최 선수는 “체력이 떨어져 지인이 권유한 영양보충제였다”며 “금지약물인지 몰랐다”고 해명했다. “고의성이 없었다”는 말을 100% 믿더라도 구단 트레이너에게조차 한마디 묻지도 않고 이 같은 위험한 성분을 복용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는 최 선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두산 투수 이용찬 선수에 이어 올해 수영스타 박태환, 프로축구 제주 강수일, 프로배구 흥국생명 곽유화 선수 등이 줄줄이 도핑테스트에서 약물성분이 검출돼 출전정지 처분을 받았다. 프로야구·축구·배구 등 프로 스포츠에까지 약물 복용이 폭넓게 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도 올림픽·아시안게임과 같은 종합스포츠 대회에 참가하는 아마추어 스포츠의 경우엔 검사도, 처벌기준도 엄격하다. 박태환 선수의 경우 세계반도핑기구의 불시 도핑테스트에서 적발돼 징계를 받았다. 배드민턴 이용대 선수도 불시 도핑테스트를 위한 일정관리 시스템을 잘못 이해했다는 이유만으로 징계 처리됐다가 겨우 취소되기도 했다. 반면 프로 스포츠계의 경우 세계반도핑기구의 규정이 아닌 자체 도핑 규정에 따라 처벌한다. 따라서 처벌의 수위가 낮을 수밖에 없다. 이는 약물에 대한 무지와 불감증을 더 부추기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최근 적발된 선수들이 ‘콧수염용 연고를 발랐을 뿐’이라든가, ‘다이어트 약을 먹었을 뿐’이라고 해명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약물에 특히 민감해야 할 선수들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수영선수 박태환이 27일 서울 송파 잠실관광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금지약물 양성반응에 관해 설명하고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있다._경향DB



각 구단, 감독, KBO와 같은 스포츠 기구도 선수의 부주의 탓으로 책임을 돌려서는 안된다. 하루하루 승패에만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선수들이 복용하는 모든 약물을 수시로 체크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수 개개인의 마음가짐이다. 떨어지는 체력을 일거에 끌어올리는 약은 금지약물밖에 없다. 그리고 그 약물은 선수 개인은 물론 스포츠를 파멸로 몰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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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25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일자리 확대를 위한 각종 정책을 백화점식으로 쏟아냈다. 대책은 주로 내년부터 정년 60세 법안의 시행을 앞두고 예상되는 청년고용 절벽 해소에 맞춰졌다. 청년고용 증가 기업에 대한 세액공제와 임금피크제 도입 기업에 청년과 장년 노동자 1쌍당 연간 1080만원을 2년간 지원하겠다는 게 골자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언 발에 오줌 누기’식 고용보조금 정책으로 44만명(4월 기준)이 넘는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정부는 지난해도 청년 취업아카데미, 중소기업 청년취업 인턴제, 스펙초월 채용 시스템 구축 등 청년고용지원 사업에 상당한 예산을 투입했지만 청년 실업률은 지난해 7월 8.9%에서 올 2월 15년 만에 최고치인 11.1%까지 치솟았다. 특히 사용자에 대한 고용보조금 정책은 노동자에게 직접 지원하는 것보다 고용창출효과가 떨어진다는 연구조사 결과가 이미 많이 나와 있다. 임금피크제 지원금 역시 어차피 신입사원을 뽑을 계획이 있는 기업에만 이중으로 혜택을 줄 뿐 별다른 고용 유인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OECD 주요국 청년실업률 비율_경향DB

 


정부 고용대책의 실효성이 의심되는 이유는 청년실업 문제의 번지수를 잘못 짚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는 주로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정규직에 집중돼 있지만 대기업 등은 갈수록 고용을 기피하고 있다. 대기업은 경기 변동 위험을 협력업체에 분산시키고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상시필요 인력까지 외주화를 통한 간접고용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말 10대 그룹 96개 상장사 사내유보금이 500조원이 넘는데도 고용사정은 변함없고 저임금의 주변부 일자리만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경향신문의 500대 기업 노동소득분배율(2012년 기준) 조사결과에서도 기업 규모가 클수록 노동소득분배에 인색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정부가 할 일은 고용보조금 확대가 아니라 고용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고 있는 대기업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거나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해 이중노동시장 구조를 완화하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중소협력업체가 아니라 원청인 대기업이 지게 하는 것도 정부가 해야 할 몫이다. 그래야 청년들의 중소기업 기피현상이 완화되고 대기업이 외주화를 줄여 직접고용의 유인이 증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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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노동조합을 설립하거나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근로자로서의 법적 지위가 인정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어제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조가 서울지방노동청을 상대로 낸 노조설립신고서 반려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타인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 등을 받아 생활하는 사람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며 거기에는 취업 자격이 없는 외국인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다. 국적과 신분을 뛰어넘어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헌법상 노동기본권을 인정한 사법부의 첫 판단으로서 의미가 있다.

노동권은 국적이나 인종에 관계없이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보장돼야 하는 당연한 권리다. 미국·일본과 독일·프랑스·영국 등 유럽연합 국가의 사례라든가 유엔과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일종의 국제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법적 결론을 내리기까지 무려 8년4개월이나 걸렸으니 그동안 이주노동자가 겪은 피해와 고초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이주노동조합 합법화 대법원 승소 판결이 나온 25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소속 노동자들이 만세를 부르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이번 판결이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환기와 정책 변화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이 법적으로는 보장된다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사업장 이동을 제한하는 고용허가제라든가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 등 사실상 노동권을 제한하는 정책이 엄연히 시행되고 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과 탄압에 치중한 정부의 태도도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사회적으로도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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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의무화한 정년연장법 시행을 몇 달 앞두고 노정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내년부터 60세 이상 정년이 의무화되므로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연공형 임금체계를 바꿔야 하고, 임금체계 개편이 당장 어렵다면 임금피크제라도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노동계는 정부 주장이 현실과 동떨어진 책상머리 정책이라 비판한다. 노동자의 평균 근속연수가 5.3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짧고, 안정된 일자리의 대명사인 100대 기업의 평균 근속연수도 12년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임금피크제는 임금삭감 정책이라며 반발한다. 이 와중에 경영계는 희망퇴직을 남발하며 고령인력 줄이기에 혈안이 돼있다. 현대중공업, KB국민은행 등 유수의 대기업에서 지난 2년 동안 없어진 양질의 일자리만 3만개에 달한다.

정년연장은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국가들이 예외 없이 실시하는 정책이다. 일본과 대다수 유럽 국가들의 정년은 65세이다. 정년연장은 노동자에게만 유리한 제도가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한 사회적 합의이다.

특히 국민연금 지급 개시 연령이 2013년부터 5년에 1세씩 낮춰져 1969년 이후 출생자는 만 65세에 처음 연금을 수령한다. 국민연금 수급연령이 65세로 늦춰진 상황에서 고령 노동자의 일자리 유지가 무엇보다 필요했던 것이다. 중고령자의 재취업이 쉽지 않고 노후생활보장제도가 미흡한 상태에서 조기퇴직은 고령자들을 빈곤의 구렁텅이로 내모는 처사이다.

그런데 정부와 경영계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임금피크제를 청년고용의 해법으로 둔갑시켰다. 청년고용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정책도 논의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부모세대의 임금을 깎아 그것을 청년고용의 재원으로 사용하자는 것이다. 군불을 지핀 것은 경총이며, 정부는 이 논리를 확대재생산한다. 임금피크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청년실업을 외면하는 파렴치범으로 몰아붙인다.

과연 임금피크제는 청년고용의 돌파구가 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임금피크제는 청년고용의 해법이 아니다. 경총은 “모든 기업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경우 여기서 발생하는 재원으로 2016년에서 2019년까지 18만2000여개의 청년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가정은 전제부터 엉터리다. 임금피크제가 도입되더라도 신규인력이 필요 없는 곳은 사람을 뽑지 않을 것이고, 임금피크제가 시행되지 않더라도 생산량 증가가 예상되는 사업장은 인력을 충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임금피크제가 청년 일자리 창출 제도라는 논리는 경총이 퍼뜨린 거짓 주장에 불과하며, 세대 간 고용대체가설은 성립하지 않는다. 임금피크제가 도입될 때 청년고용이 늘어날 수 있는 곳은 신규 채용을 정부가 강제할 수 있는 공공부문이다. 하지만 공무원은 2013년부터 임금피크제 도입 없이 60세 정년을 실시하고 있다. 공무원의 정년연장 시 고령자의 생산성 논란은 없었으며, 임금피크제 도입은 아예 논의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에 모든 공공기관에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제하고 있어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임금피크제 (출처 : 경향DB)


우리나라 노동자의 평균 퇴직연령은 52.6세이다. 짧은 근속연수는 비정규직의 확대, 정리해고와 명예퇴직의 결과이다. 법 제정 당시 경영계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법에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회는 임금피크제가 임금 삭감의 악용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로 수용하지 않았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임금피크제 도입이 진정 필요하다면, 노사 간 자율교섭을 보장하고, 임금피크제의 다양한 유형을 논의하고 사회적 합의를 모색하자.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쓸 수는 없다.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보다 근본적이고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정년연장이 베이붐세대들의 복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면, 청년 일자리 창출 방안은 별도의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OECD 가입 국가 중 청년 복지 지출은 최하위 수준이고, 정규직 일자리는 계속 줄고 있다. 청년들에게 눈높이를 낮춰 중소기업에 도전하라고 하지만, 중소기업의 열악한 임금과 근로조건에는 눈감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청년 고용 해법은 근로시간 단축,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대, 고용 친화적 산업정책에서 찾아야 한다. 더 이상 노동자들에게만 양보와 희생을 강요하지 마라. 경제를 움직이는 대기업과 정부는 경제 회생과 청년 고용을 위해 무엇을 양보하고 있는가? 현장의 노동자들이 그들에게 답을 요구하고 있다.


노광표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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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의 신문·방송에서는 하버드대학과 스탠퍼드대학에 동시 입학 허가를 받았다는 ‘천재 수학소녀’ 김모양 소식이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김양’의 이야기에서는 처음부터 수상한 냄새가 났다. 평범한 사람들 눈으로 봐도 뭔가가 미심쩍었다. 하지만 김양과 그 가족을 향해 왜 우리를 속였느냐고 꾸짖을 게 아니라, 말도 안되는 그런 판타지 같은 이야기를 믿고 싶어했던 우리 자신을 탓해야 할 때다.
 
외국인 기자로서 나는 한국 뉴스를 들여다보면서 영어권 독자들에게 전해줄 만한 이야기를 고르는데, 이번 사건은 믿기엔 너무 터무니없었다.

내가 알기로 하버드대나 스탠퍼드대는 내로라하는 영재들에게도 입학 허가를 내주지 않은 적이 많았다. 제아무리 수학 신동인들 자기만을 위한 개별화된 프로그램을 만들라고 그 대학들을 납득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애초에 보도된 내용들이 엉성했다. 김양의 아버지가 내놓은 성명, 대학으로부터 받았다는 편지는 구식이었다. 그런데도 성급하게 입학 허가의 증거처럼 받아들여졌다. 하버드나 스탠퍼드는 김양의 스토리를 개별적으로 확인해주지 않았다. 대학들은 개인의 입학과 관련해서는 보통 코멘트하지 않는다. 이런 특수한 상황에서는 누가 공공연하게 주장하면 개연성이 있는 것으로 돼버린다.
 
하지만 김양은 더 큰 사회적인 문제의 희생양이기도 하다. 브랜드 네임과 성공신화에 대한 열망이 자명한 사실보다도 우위에 섰다는 점이다. 경향신문을 비롯해, 이번 사건의 진실을 폭로한 기자들은 성공신화에 대한 사회적 상찬을 끊고 팩트를 밝히는 큰일을 해냈다. 반면, 숱한 기자들이 그 작업에 실패했다.
 
김양의 아버지는 자세한 내용은 설명하지 않은 채 사과를 했다. 그러니 이 위조사건 뒤에 정확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러므로 김양과 그 가족들에게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그들이 희생자였음이 드러날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속일 목적으로 서명을 위조하는 것은 범죄다. 그러나 하버드와 스탠퍼드가 이 문제를 놓고 법적 조치를 밟을 것 같지는 않다.


 
고맙게도 이 사건은 작은 뉴스에 불과하다. 더 큰 피해를 입히는, 언제든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눈을 번쩍 뜨고 있어야 하는 일들이 많이 있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속임수를 폭로한 내부고발자 유영준씨는 국가를 위해 큰일을 했지만 대중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혀 분노를 샀다.

또 많은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힘 있는 자리에 거의 다가갔다가 논문을 표절했다는 등 비난을 받고 물러났다. 미국에서도 데니스 해스터트라는 유명한 정치인이 지난달 불법 현금 인출 혐의로 기소되는 일이 있었다. 해스터트는 고등학교 남학생들에 대한 성적 학대 등 자신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들’을 감추려고 누군가를 입막음하기 위해 돈을 빼냈다가 들켰다.
 
김양은 18살 나이에 경력에 금이 가게 됐다. 나중에 취직을 하려 해도 고용주들이 네이버나 구글에서 김양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들을 읽을 것이고, 좋은 대학들은 아마도 그를 받아주길 꺼릴 것이다. 김양은 대가를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를 손가락질하는 것은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거울을 들여다봐야 한다.

 

대학거부선언자 3명이 포함된 대학입시거부로 삶을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 회원들이 13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대학거부선언 기자회견을 마친 후 가방끈을 자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출처_경향DB>

이 사건이 비춰주는 것은 단지 한국 사회의 가련한 면만이 아니다. 한국 사람들 중에도 학벌만 좇는 것을 거부하면서 삶을 즐기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하버드나 예일, 그리고 소위 ‘SKY’로 불리는 한국의 명문대에 들어가는 것만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깨닫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정직은 좋은 성격을 뜻하며, 좋은 성격은 학위 한 장보다 훨씬 가치 있는 특권의 표식이다.

제프리 케인 | 글로벌포스트 한국 수석특파원

<번역 | 구정은 기자 ttalgi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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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