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에 해당되는 글 1406건

  1. 2015.08.23 [여적]안셀 아담스
  2. 2015.08.23 [사설]인성함양도 나라사랑도 의무교육하라는 정부
  3. 2015.08.20 [기고]죽음으로 일깨운 대학 민주주의
  4. 2015.08.20 [정동칼럼]‘창조’ 원한다면 자유를 허하라
  5. 2015.08.20 [시대의 창]임금피크제와 청년실업, 재벌대기업
  6. 2015.08.20 [로그인]‘우리들’끼리의 싸움
  7. 2015.08.19 [사설]재벌의 잇단 청년 채용계획 발표, 박수만 칠 일인가
  8. 2015.08.19 [녹색세상]또 다른 밀양, 군산
  9. 2015.08.19 [기고]위기의 시대, 산림복지로 회복력을 높인다
  10. 2015.08.19 [기고]‘인터넷 미래’에 아·태 국가도 관심을
  11. 2015.08.18 [사설]대학 통제 정책이 교수의 투신 불렀다
  12. 2015.08.18 [여적]톈진과 보팔화학물질 사고는 가공할 피해와 공포를 낳는다. 대표적인 예가 보팔 참사다. 1984년 12월3일 한밤중에 인도 보팔시 외곽의 유니언카바이드사 공장에서 화학물질 저장 탱크가 ..
  13. 2015.08.17 [사설]정부, 노사정 타협 걸림돌 자처하나
  14. 2015.08.17 [정윤수의 오프사이드]‘한국 스포츠 70년사’ 문제적 해석의 필요성
  15. 2015.08.16 [사설]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필요한가
  16. 2015.08.14 [조운찬의 들숨날숨]‘녹색평론’을 읽는 사람들
  17. 2015.08.14 [조운찬의 들숨날숨]‘녹색평론’을 읽는 사람들
  18. 2015.08.13 [정동칼럼]‘노동 가치’ 복원이 먼저다
  19. 2015.08.12 [사설]현대차 노조, 임금피크제 무조건 거부가 능사는 아니다
  20. 2015.08.11 [정동칼럼]미래 상실의 시대

바가지를 반으로 자른 모양의 거대한 암벽, 그 위로 아득히 달이 기울고 있다. 미국 사진작가 안셀 아담스의 대표작 ‘달과 하프돔’의 환상적인 장면이다. 등산용품업체 노스페이스의 로고가 바로 요세미티의 상징인 이 하프돔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요세미티의 자연은 풍경사진의 거장이자 ‘요세미티의 사진가’로 불리는 그의 사진으로 경이로움을 더했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그의 작품을 보면 두 번 압도된다. 처음에는 자연의 경이로운 모습에, 다음에는 그것을 더욱 경이롭게 표현한 사진예술의 위대함에.

요세미티가 오늘날 세계적 국립공원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두 명의 걸출한 환경운동가 덕이다. ‘국립공원의 아버지’ 존 뮤어가 그 앞자리에 있다. 1868년 요세미티를 처음 방문하고 시에라네바다 일대의 자연에 매료된 그가 그곳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시작한 것이 국립공원운동이다. 대통령을 설득하고 의회에 탄원하는 등 그의 끈질긴 노력으로 1890년 요세미티가 국립공원이 됐다. 세계 최대 민간 환경단체 시에라클럽도 그가 1892년 창설한 것이다.

존 뮤어가 국립공원 지정으로 요세미티의 자연 파괴를 막았다면 안셀 아담스는 그 아름다움을 세상에 알려 개발로부터 지켜냈다. 뮤어가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지난 1916년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14세 소년 아담스는 요세미티를 방문한 뒤 열렬한 자연주의자가 된다. 18세 때 시에라클럽의 요세미티 자연감시원으로 첫발을 내디딘 그는 평생 요세미티의 아름다움을 흑백사진으로 기록한다. 모두에게 아름다운 것은 사유화하거나 파괴하기 어렵다. 그것이 예술의 힘이다. 동강댐 백지화도 그 비경을 세상에 알린 ‘한국의 안셀 아담스’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반대_경향DB



공교롭게도 안셀 아담스 사진전이 열리는 세종문화회관 건너편에서 환경단체가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농성을 벌이고 있다. 요세미티와 설악산은 화강암 침식으로 만들어진 경관이 빼어나다는 점에서 닮았다. 한국인의 요세미티 여행 후기에는 ‘미국의 설악산’이라는 표현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아담스가 살아 있다면 ‘한국의 요세미티’가 처한 현실을 어떤 눈으로 지켜볼까.


신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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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인성교육에 이어 나라사랑교육을 강화하는 이른바 ‘애국교육법’ 제정을 적극 추진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1일 한국통일교육학회가 주최한 ‘나라사랑교육 발전을 위한 학술회의’에서 국가보훈처와 교육부 관계자의 입을 통해서다. 이들은 학교 교육을 통한 나라사랑교육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올해 (가칭)나라사랑교육지원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기획재정부와 협조가 잘 되어 내년 예산이 획기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했다.

나라사랑교육지원법은 2012년 9월 정부 입법으로 국회에 제출돼 현재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인 법안이다. 논란 속에 제정돼 지난 7월2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인성교육진흥법과 틀이 흡사하다. 유·초·중·고생을 대상으로 하고, 정부가 5년마다 기본 계획을 세우며, 민간단체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런 셈이다. 법으로 인성교육을 진흥하려던 발상이 어떤 부작용과 논란을 낳았는지 벌써 잊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교육부가 인성 평가를 대학입시에 반영하려다가 학원마다 인성면접 대비반이 생기고 인성교육 수료증을 발급하는 단체가 250여개나 세워지자 이를 백지화하는 소동까지 빚지 않았는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_경향DB



인성과 마찬가지로 나라사랑하는 마음도 법으로 진흥되는 게 아니다. 태극기와 청와대, 국회의사당 등을 그려보는 따위의 체험 프로그램으로 청소년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겠다는 발상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유신시대로 퇴행하고 있다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애국심은 주입과 강요에 의한 획일적 교육이 아니라 민주적 시민교육 과정에서 스스로 배양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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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요지부동이었다. 단식 12일째, 탈진한 교수들이 병원에 실려 가고 메아리 없는 농성장은 공허한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한 교수가 본관 건물 옥상에 오르더니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곧 ‘카톡’에 교수 투신을 알리는 문자가 떴고, 현장에 몰려든 교수들은 나뒹구는 유서를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현실은 이틀 만에 바뀌었다. 부산대 본부와 교수회는 “총장 직선제를 실현하기 위한 적법한 절차를 밟기로 합의했다”는 합의문을 발표하였다. 이렇게 간단한 일에 두 자녀의 아버지이자 한 여인의 남편을 앗아가야 했던가?

교육부는 그동안 모든 국립대의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고 간선제로 전환할 것을 강요했다. 전국 40개 국립대 중 39개 대학이 이미 간선제로 바꿨다. 부산대는 국립대 중 유일하게 총장 직선제를 고집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대학역량강화사업에서 탈락, 60억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없게 됐다. 반면 교육부의 요구를 잘 따르는 대학들은 사업신청을 줄줄이 따내는 행운을 누렸다.

현 부산대 총장(사의를 표명한 상태)이 문제였다. 그는 직선제 고수를 공약으로 당선됐는데, 공약을 뒤집은 것이다. 이에 교수들은 반발했고 교수회장은 단식으로 약속이행을 요구했다. 그러나 단식기간 12일 동안 총장은 휴가라면서 한 번도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간선제와 직선제의 차이는 무엇인가? 사실 교육부의 요구는 간선제만이 아니다. 간선제로 총장 선출을 한 3개 대학(경북대, 공주대, 한국방송통신대)이 있지만 교육부가 제청을 하지 않아 현재 총장을 임용해 달라는 내용의 재판이 대법원까지 올라간 상태다. 간선제는 하나의 핑계일 뿐이고 교육부의 입맛에 맞는 인사가 중요하다는 것을 교육부 스스로 입증한 것이다.



국립대 선진화 방안 중 교육부가 밝힌 총장 직선제의 장단점_경향DB



직선 총장제, 간선 총장제 두 제도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을 것이다. 다만 교육부가 국립대학을 확실하게 길들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간선제가 편하다. 간선제가 정착되면 교육부 퇴직 관리를 원하는 대학들이 줄을 이을 것이다. 현재도 교육부 퇴직 관리가 총장으로 가 있는 대학이 적지 않다. 이는 전관예우의 덕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군사정권의 탄압에도 지금의 대학들과 같은 일사불란한 굴종은 없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무서운 세상이 됐다.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권이 법률에 보장돼 있지만 이것은 무늬에 불과하다. 실제로 국립대의 재정을 주무르는 교육부의 공문 한 장이면 법은 멀기만 하다. 대학의 경쟁력 제고라는 구실로 예산을 균등하게 배분하지 않고, 여러 사업으로 쪼개 대학의 신청을 받는다. 이런 현실에 맞서야 하는 총장들의 고민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교육부는 또 행정 편의를 위해 대학의 모든 것을 계량화해 점수로 나타낸다. 가령 교수 업적에서 10편의 논문은 무조건 9편보다 우수한 점수를 받는다. 이러한 숫자 경쟁의 구도에서는 학문은 사라지고 부정과 사기꾼이 판치게 된다. 장관에 발탁되면 거의 모두가 논문표절 문제를 달고 오지 않는가? 한평생 한두 가지의 주제로 아무도 보지 않는 수십 편의 논문을 제조하는 것이 교육부가 만들어 놓은 전공학문의 실체다.

직선제가 꼭 좋은 선거방식은 아니다. 다만 교육부가 대학과 학문을 통치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그나마 직선제가 대학을 권력으로부터 보호하는 민주적 수단이 될 수 있다. 교육부는 이 나라의 교육을 책임지는 행정부의 조직이다. 그러나 교육현장은 교육부를 공공의 적으로, 때로는 타도의 대상으로 규정하기도 하는 현실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휴대폰에 문자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희생을 감당한 고현철 교수의 숭고한 뜻을 이어받아 우리의 무뎌진 의식을 일깨워 권력의 횡포로부터 교육과 학문을 보호해야 할 것이다.”


김세환 | 부산대 교수·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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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기업 애플 창업자로 유명한 스티브 잡스는 창조는 “새로운 연결”이라고 하였다. 기존에 서로 상관없어 보이던 것들을 새롭게 연결하는 작업이 창조를 낳는다는 것인데, 예컨대 애플의 스마트폰의 경우, 흩어져 있었던 사진기와 컴퓨터와 전화기와 MP3 플레이어 등을 플랫폼이라는 개념으로 하나로 연결하여 새로운 창조를 해낸 것이다. 인류의 위대한 창조들은 모두 이러한 새로운 연결을 할 수 있는 사람에 의해서 이어져 왔다. 손으로 하던 작업을 도구로 하기 시작한 것도 작업과 도구의 새로운 연결이고, 증기기관의 발명, 내연 자동차, 전기자동차 등의 발명, 컴퓨터의 발명, 인터넷의 발명 등 인류의 창조는 모두 기존에 흩어져 있던 것들을 새롭게 연결하면서 생겨났다.

이러한 새로운 물건의 창조뿐만 아니라 학문적인 영역에서도 소위 독창적인 업적이라고 하는 것들은 아이디어와 발견의 새로운 연결들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흩어져 있는 생물들을 연결하는 창조적 시각이고, 근대 경제학은 수요와 공급과 가격이라는 변수들을 통합적으로 연결하고 있다.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_경향DB



학문뿐만 아니라 사회적 실험들도 마찬가지다. 유럽에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연결하여 복지국가라는 새로운 실험을 성공시켰고,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동성결혼도 절대로 연결시키면 안 된다는 기존의 사회적 관념을 깨고 새로운 연결을 허용한 사회적 실험이다. 우버나 에어비앤비 같은 공유경제 발상도 소비자와 서비스 생산자를 컴퓨터 앱을 통하여 직접 연결시키는 새로운 실험이고, 시야를 크게 넓혀서 유럽 통합은 근대국가와 근대국가를 연결하는 새로운 정치사회적 실험이다. 아파트의 발명도 거주 형태에 있어서 애플의 스마트폰과 같은 플랫폼에 의거한 새로운 연결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대가족 제도에서 떨어져 나와 핵가족 제도를 만든 것은 연결이 아니라 분리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역시 가족관계에 있어서 새로운 방식의 연결을 시도한 획기적인 사회적 실험이다.

이렇게 장황하게 창조에 대한 얘기를 한 이유는 바로 사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실험의 자유를 얘기하기 위해서이고, 결국은 현 정부가 말하는 창조경제 및 모든 창조가 이름에 들어가는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나라는 후발국이라는 이유로 새로운 창조를 하기보다는 선발국이 만들어 놓은 창조를 재빠르게 카피하여 추격하는 형태로 발전을 해왔다.


광복 70주년을 얘기하지만, 광복 이후 정부 수립도 남의 것을 베낀 것이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를 얘기하지만 경제발전 모델도 남의 것을 베낀 것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기업의 구조나 물건 그 자체도 선진국에서 만든 것을 베껴서 만든 것이고, 학문도 수입학문에 의존하였다. 학교 교육은 외국의 정답을 수입하여 외우는 것이었고, 특정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학생들에게 주입하려 하였다. 사회적 실험도 외국 것을 가져다 베꼈고, 또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가져다 베낄 수 있는 선진국의 실험도 대부분 미국식 자본주의로 한정하였기 때문에 다양한 사회적 실험의 재료가 허용되지 않았다. 창조를 하려는 여유도 없었지만, 그러한 시도 자체가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또 외교적으로 금기시돼 왔다.

경제도, 정치도, 사회적 실험도, 학문도 모든 창조는 우리에게 유용한 새로운 연결과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어야 가능하고, 또 과거의 연결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비판적 사고와 비판적 표현의 자유가 주어져야 가능하다. 사회가 경직되어 있고, 조직이 경직되어 있고, 보수적으로 기존의 것을 지키려고만 한다면 창조라는 새로운 연결이 가능하지 않다. 지금의 한국은 더 이상 선진국의 것을 효율적으로 베끼기만 해서는 경제뿐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소위 중진국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선도적으로 창조하고, 세계적인 표준도 만들고, 우리에게 맞는 사회적 실험도 하여 우리가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한국을 다이내믹 코리아라고 부르지만 가장 역동적이었던 시기는 사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넓게 허용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였고, 지난 정부부터 한국의 역동성이 사라진 것은 단순히 우연이거나 세계경제의 침체 때문만이 아니다.

사고와 표현의 자유, 비판의 자유와 실험의 자유를 억압하고, 기존의 것을 지키려고만 한 정부와 기득권의 정책이 역동성을 죽이고, 소수에게만 자유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고 있다. 창조경제든 무엇이든 창조적인 것은 보수의 절대적인 가치인 “자유”가 있어야 가능하다. 자유라는 면에서 아직 우리에게는 완전한 광복이 오지 않았다. 답답하다.


이근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싱크탱크 미래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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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피크제와 관련한 논쟁이 뜨겁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일 직접 나서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청년고용절벽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며 청년실업자들을 위해 임금피크제 도입 강행을 시사했다. 예상대로 노동계의 반발도 거세다. 공공부문과 일부 민간대기업에 한정된 임금피크제 도입이 청년일자리 창출과 직결된다는 것도 근거가 희박하거니와 백번 양보해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노사 간 자율로 처리하면 될 문제를 제도를 변경해 오히려 다른 부작용까지 낳을 수 있다는 것이 주장의 요지다.

10년 넘게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청년실업을 해결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중차대한 과제라는 것에는 여야와 입장을 떠나서 모두가 동의하고 있는 듯하다. 각자의 해법에서 차이가 있는 것은 이견의 존재를 기본으로 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해법에 차이가 있어 진지한 토론과 논쟁을 통해서 타협지점을 찾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문제설정 자체를 잘 못했을 때는 토론도 타협도 불가해지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혹여 청년실업과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논란이 그렇게 잘못된 문제설정은 아닌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현실에서 청년실업자는 어떤 노동도 하지 않고 방구석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백수’가 아니다. 다수의 청년실업자들은 생계유지와 취업준비를 위해 몇 개월마다 저임금 계약직, 취업준비생, 초단시간 노동자 등으로 그 정체성을 번갈아가며 살아가고 있다. 고시원 생활을 하며 편의점에서 시간제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틈틈이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청년실업자’이자 ‘노동자’이며 ‘취업준비생’이기도 한 그 청년에게 도대체 ‘임금피크제’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실상 그의 임금에는 도달할 피크가 존재하지 않는다. 매년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최저임금이 결정되면 그것이 본인이 받는 임금의 전부가 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이 하락하지 않는 한 그의 임금은 매년 피크에 도달한다. 그리고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약 200만명의 또 다른 저임금 노동자들에게는 다시 최저임금 그 자체가 도달해야 하는 피크가 된다. 누군가는 정년에 다다른 고령자의 생산성과 숙련도의 복잡한 함수를 이야기할지 모른다. 하지만 다수의 청년과 저임금 노동자에게는 숙련도를 반영할 임금체계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수십년 후의 정년이 아니라 당장 몇 달 후의 계약만료가 중요한 문제다.



최저임금 시급 및 인상률 추이_경향DB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하기 바로 전날인 8월5일, 고용노동부 장관은 내년도 최저임금을 고시했다. 정작 정부가 청년들의 일자리와 삶의 질을 진지하게 고민했다면 이전에 약속한 대로 최저임금의 획기적인 인상을 결단했어야 한다. 하지만 경제부총리까지 나서서 최저임금 인상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잔뜩 폼만 재고는 결국 예년과 다르지 않은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수많은 청년들을 실망케 한 바로 다음날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청년들의 삶을 걱정하며 근거가 부족한 임금피크제로 청년실업을 해결하겠다는 모양새는 누가 보아도 어색하고 또 민망하기까지 하다.

임금피크제가 청년일자리 창출과 연결되지 않으며 필요한 것은 고용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는 노동계의 주장은 분명 합리적이다.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청년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비단 노동계만의 주장도 아니다. 그러나 주장의 합리성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청년세대가 임금피크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본다는 여론조사가 여럿이다. 이들이 모두 자본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인가? 혹여 세대 간 상생과 주변부 노동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책임 있는 자세와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결과는 아닌지, 노동계와 진보진영은 깊고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

이렇게 노동계와 정부가 뜨거운 논란을 벌이는 와중에 정작 재벌대기업들은 청년고용을 확대하겠다고 나섰다. 주로 경영권 승계나 비리로 논란에 휘말리거나 총수가 구속된 기업인 경우가 많다. 실제 발표된 숫자만큼 제대로 된 일자리에 청년들을 고용하겠다는 것인지 꼼꼼히 따져볼 필요도 있고, 그 목적이 국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덮기 위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도 그간 청년고용에 소극적이었던 재벌대기업들이 자세를 바꾸었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경제 주체들의 대화와 타협을 통해 탄생해야 할 일자리가 정부의 몽둥이를 피하기 위해 늘어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총수 일가의 신변문제가 터질 때만 실천된다면, 민주주의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지적대로 이제 대한민국에서 청년일자리를 늘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노동개혁이 아니라 바로 비리를 저지른 재벌총수를 구속하고 다시 사면하는 것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조성주 | 정치발전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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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릿적 유머 하나. 전쟁통에서 보급품이 끊겨 곤란을 겪고 있는 병사들에게 보급품 장교가 나타나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하나씩 전한다. 좋은 소식은 드디어 팬티를 갈아입을 수 있게 됐다는 것, 나쁜 소식은 옆사람과 팬티를 바꿔 입으라는 것이다.

생뚱맞게도 이 이야기가 불쑥 생각난 것은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혁안’ 때문이었다. 개혁안의 핵심은 기성세대 정규직들이 양보해서 청년들 일자리를 만들어주자는 것이다. 일견 합리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너희들끼리 덜 먹고 아껴서 해결하라는 황당한 이야기다.

슬프고 끔찍한 건, 팬티를 서로 바꿔 입는 수준이면 그나마 낫다는 점이다. 지금 돌아가는 양상은 옆사람을 죽이고 그가 입은 팬티를 벗겨내라는 식이다. 이 심상찮은 조짐은 예상됐다. 그리고 대통령이 나서서 기성세대의 양보를 역설할 때부터 그 조짐은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개혁안에 반대하는 이는 고임금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파렴치범이 되고 있는 분위기다. 여당 대표에 이어 재계, 각종 경제단체 등의 비난과 지적질이 이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화살이 향하는 곳은 노동계다. 그들을 싸잡아 슈퍼갑이니 귀족노조니 하며 몰아세우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저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한 수준의 노동자일 뿐이다. 월급 받아 자식들 뒷바라지하고, 주택담보대출금 갚고, 한번씩 오리고기나 돼지갈비집에서 외식하고, 가끔 친구들 만나 곱창에 소주 한잔 걸치는 그런 이웃들이다.


‘너희들끼리 싸워라.’ 갈등을 해결하고 책임져야 할 주체는 빠지고 국민들끼리 싸우게 하는 전략은 기득권층에 의해 반복적으로 사용돼왔다. 권위주의적인 정권일수록 이 같은 기술을 자주 동원했고 역사는 그만큼 퇴행했다. 망국적 지역감정 역시 그 결과다. 지금도 이 기술은 반복적으로 먹혀들고 있다. 기성세대를 향해 ‘좋은 일자리 독점하지 말고 나눠달라’는 청년들의 손팻말이 거리에 등장했고, 인터넷에는 “먹을 만큼 먹은 꼰대들”이라는 날선 외침이 횡행한다. ‘5포’세대로 불리는 청년들의 절망을 철저히 이용한 결과다. 그 ‘꼰대’들이 사라지면 청년세대의 르네상스가 시작되는 걸까.





영화 <베테랑>에는 안하무인 재벌 3세 조태오가 임금체불과 일방적 해고에 항의하는 노동자를 관리자와 투견하듯 맞붙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알량한 돈 몇 푼 던져 주고 서로 물어뜯게 만드는 현 기득권층의 통치기술은 이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더 슬프고 끔찍한 것은 이 기술이 먹힘으로써 ‘우리들’ 사이에 혐오와 분노가 창궐한다는 것이다. 세대갈등, 노노갈등, 지역갈등, 성별갈등. 어느 집단 간이나 갈등은 벌어지게 마련이지만 이를 해결하는 방식은 소통과 토론이 아닌 폭력과 파괴다. 만만해서, 여자라서, 특정 지역 출신이라서, 못사는 나라 사람이라서, 재수없어서, 유난 떨어서, 빨갱이라서(이는 나랑 생각이 다르다는 것의 과격한 표현이다) 등 말도 안되는 이유들로 혐오를 정당화한다. 점점 더 버티기 힘들어지는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약자들이 다른 약자를 짓밟는 동안, 입만 열면 국민을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얼마 전 ‘불금’에 힘겹게 택시를 잡았다. 내가 사는 서울의 동북쪽 끝 변두리를 목적지로 말하자 기사 아저씨는 짜증 섞인 한숨을 쉬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다행히 내리라고는 하지 않았다. 속에서 뭔가가 끓어올랐지만 꾹 누르고 “후진 동네 살아 죄송하다”고 했다. 얼마쯤 가니 아저씨는 “미안하다”며 “없는 사람끼리 돕고 살아야 하는데 참…” 하고 말꼬리를 흐렸다.

예전부터 ‘없는 사람끼리 돕고 살자’는 말은 ‘있는 사람이 더하다’는 이야기와 함께 바늘과 실처럼 서로를 따라다녔다. 그런데 지금, 있는 사람이 더한 건 여전한데 없는 사람은 누구를 돕고 있나.


박경은 대중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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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삼성, 현대차, SK, 한화 등 재벌들이 경쟁적으로 청년 채용을 대폭 늘리겠다고 발표하고 있지만 마냥 박수만 칠 일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노동계에 노사정위원회 복귀와 임금피크제 도입을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재벌들이 속속 신규 채용 확대를 발표하고 있는 배경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재벌들 입장에서는 현재 노동개혁이 노동자들의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하고 임금피크제가 청년취업 증가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비판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대기업 총수 17명을 불러 청년 채용 확대를 당부한 데 이어 지난 6일 대국민담화에서 강도 높게 노동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재계도 뭔가 화답을 내놔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주요 그룹별 계획을 들여다보면 이들이 과연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고통분담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올 1분기 5대 그룹의 사내유보금은 503조원에 달한다. 이 중 약 1%인 5조원만 써도 1인당 인건비 5000만원 기준 10만명을 채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발표한 10대 그룹의 신규 채용 계획은 올해부터 향후 2~3년간 8만명 정도다. 재벌들이 청년에게 희망을 줬다고 평가할 만한 규모는 아니다. 10대 그룹 대졸공채는 2012년 3만2440명, 2013년 3만400명, 2014년 2만2400명이었다. 이런 추세에서 2~3년간 8만명 정도면 예년에 비해 채용 규모가 엄청나게 늘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경총은 정년연장으로 향후 5년간 증가되는 대기업 부담을 37조원으로 추정하고 향후 2년간 임금피크제 도입으로만 창출 가능한 청년일자리를 8만1000개로 예상한 바 있다. 사내유보금에 손을 대지 않고 임금피크제로 절약한 임금만으로도 10대 그룹이 공언한 고용창출은 가능한 셈이다.



작년(2014) 주요 대기업 하반기 채용 계획_경향DB


더구나 주요 그룹 고용계획에는 인턴, 취업경험 기회제공 등 임시직이나 협력사를 통한 간접고용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삼성의 3만명 고용확대 계획 중 직접고용은 1만명 수준이다. 역대 최대로 자랑한 현대자동차의 올해 채용 계획 9500명도 지난해보다 400명 늘어난 정도다. 삼성과 SK가 협력사 직원들의 직업훈련 기간에 월 15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것은 현행법상 불법파견에 해당할 가능성도 있다.

재벌의 청년 채용 계획이 임금피크제 과실만 취하고 고용확대는 피해 가려는 꼼수가 아니기를 바란다. 청년취업 문제의 핵심은 일자리의 양이 아니라 질이다. 그러므로 진정 청년일자리를 늘리겠다면 임금피크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사내유보금을 재원으로 직접고용을 늘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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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볕더위가 정점으로 치달아가는 8월18일 낮 12시. 밀양 주민 20여명이 전북 군산시 산북동 송전탑 공사 현장에 도착했다. 고압 송전탑 건설에 저항하는 군산 주민들을 응원하기 위해 밀양 할매들이 밥을 싣고 먼 길을 달려온 것이다. 밀양과 군산의 농민들이 모여 앉은 바로 뒤에서는 쉬지 않고 중장비가 굉음을 내며 송전탑 공사를 하고 있었다.

밀양, 청도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군산 주민들은 345㎸ ‘새만금 송전선로’를 막기 위해 거대 기업 한전에 대항해 2008년 말부터 7년째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옥구읍의 한 할아버지는 머슴살이 때부터 평생 모은 8개 논 한복판으로 송전탑이 지나가게 되자, 분을 삭이지 못하다가 끝내 간암으로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

밀양과 마찬가지로 군산에서도 한전은 농민들을 물리적인 힘으로 제압하며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2012년 4월에는 용역 150명을 3일간 동원하여 철탑 공사를 강행했고, 주민들이 이를 막는 과정에서 폭행을 당해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 충돌로 공사가 3년간 중지됐으나, 지난 5월12일 바쁜 농번기에 사전 통보 원칙도 무시하고 기습적으로 새벽에 철탑 공사를 재개했다. 이때부터 현장은 극도의 갈등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농민들은 농번기에 일도 못하고 뙤약볕 밑에서 한전 직원들 및 경찰들과 대치하고 있다. 대부분 60대부터 80대까지 고령의 농민들이다. 한전 중부건설처는 철탑 공사 현장인 보리밭에 트럭으로 흙을 부었고, 농민 50여명은 1주일 후면 수확이 가능한 보리밭을 망친 행위에 분노해 반대농성을 벌였다. 공사 현장에서는 연이어 부상 주민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 5일에는 농성 중인 40대 주민이 한전 직원의 차에 치여 뇌출혈 증상을 보였다.

주민들이 강하게 저항하는 이유는 송전선로 건설의 타당성을 한전과 군산시가 입증하지 않은 채 공사를 강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주장은 첫째, 군산산업단지의 전력이 결코 부족하지 않아 송전탑 건설이 필요하지 않다. 둘째, 국회 진상규명을 하고 그 결과 만약 한전의 주장대로 전력이 모자란다면 대안노선으로 건설하자는 것이다.





새만금 송전선로 건설을 둘러싸고 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2008년 초 OCI(주)라는 화학회사가 생산공장 증설을 위해 대용량 전력을 요청하자, 군산시가 한전과 전력공급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송전탑 건설이 시작됐다. 1872억원을 들여 군산변전소~새만금변전소 구간(30.6㎞)에 345㎸ 송전탑 88기를 건설하는 사업으로, 한전은 마을과 논밭을 지나는 31㎞ 구간에 65m(아파트 22층 높이) 정도 되는 철탑을 88개 세우겠다고 나섰다. 임피·대야·회현면 14.3㎞ 구간에 송전탑 42기가 세워졌고, 46개 철탑은 주민들의 저항에 부딪혀 2011년 공사가 중지됐다가 3년여 만에 재개됐다.

주민들이 한전의 주장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전력수요량을 한전이 발표할 때마다 바꾸었기 때문이다. 한전은 군산시 전력이 부족하다고 주장하지만, ‘새만금송전철탑 반대 공동대책위원회’는 한전과 군산시청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자료들만 갖고 따져볼 때도 전력이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군산지역 열병합발전소의 전력생산량이 급증했고 군산복합화력발전소가 준공됐기 때문에 군산시는 2017년부터는 거의 자체 생산량만으로도 전력 충당이 가능할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애초에 새만금 송전선로 건설의 원인이 되었던 OCI 공장 증설이 중단되어 송전탑을 세울 이유가 사라진 상황이다. 이런데도 추가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고압 송전탑 건설을 강행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한전과 군산시는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공사 강행을 멈추고 우선 진상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 8월19일에는 89세의 농민 조모씨가 건설 현장에서 폭행을 당해 병원으로 실려갔다. 이날은 공사 중지를 요구하는 주민 집회 100일째다.


황윤 |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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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할 수 없는 재난과 위기가 발생하는 시대에 우리 국민이 굳건히 버티거나 대응할 수 있기 위해서는 ‘회복하는 힘’(resilience·회복력)’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양한 분야에서 들리고 있다. 특히 세계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침체와 고용 부진, 심각한 사회 갈등과 불신 등의 문제들은 국민 스스로 회복력을 갖추고자 하는 힐링에 대한 욕구를 만들었다.

숲은 그런 의미에서 성별, 종교, 사회적 지위를 막론하고 평등하게 국민의 지친 삶과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해 줄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산림복지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는 이러한 부분은, 산림청 발표에 따르면 산림복지서비스를 이용하는 국민수가 2012년 대비 73% 성장한 1692만명(2014년 말 기준)으로 숲에서 회복력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국민의 수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산림청은 60년 이상 가꾸어낸 숲을 통해 모든 국민들이 신체적, 사회적 건강성을 증진할 수 있도록 맞춤형 방식으로 생애주기별 산림복지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태아기를 위한 숲태교프로그램, 유아기를 위한 유아숲체험원의 운영, 청소년기를 위한 산림교육센터의 운영과 학교숲 조성, 성인기를 위한 산악레포츠, 치유의 숲 운영과 도시숲 조성, 회년기를 위한 수목장림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산림복지서비스의 제공은 신체적·정신적 회복력의 향상과 생태적 순환성 강화의 기반이 되고 있다.


서울대공원 '치유의 숲'을 찾은 시민들_경향DB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적 관점에서 소외계층에 대한 산림복지서비스 지원도 확대할 예정이다. 한국산림복지재단은 2005년부터 녹색자금이나 기업의 사회공헌사업을 통해 연간 3만6000여명의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산림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2016년에는 산림복지소외자를 대상으로 한 산림복지 바우처제도가 산림청에 의해 도입될 예정이다.

2015년 3월 ‘산림복지 진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우리 사회는 보다 적극적으로 숲을 통해 국민 개개인과 사회의 회복력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런 기조에 맞춰, 서울시는 2018년까지 생애주기별 테마숲 90곳을 조성할 계획을 발표했다. 이렇듯 숲의 활용범위가 복지분야까지 확대되면서 생태적 기능뿐만 아니라 사회적 기능이 창출 및 확산되고 있다. 2016년은 앞서 제정됐던 산림복지법이 시행되고 한국산림복지진흥원이라는 전문기관이 신설되는 해이다. 보다 전문화된 산림복지서비스의 개발과 창출을 통해 우리 사회의 회복력이 보다 향상되고 다양한 사회문제와 위기상황에 대응해나가는 힘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최종수 | 한국산림복지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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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이제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됐다. 수돗물처럼 꼭지를 틀면 언제나 사용 가능하기 때문에 인터넷 이용자들은 평상시 인터넷의 거버넌스 이슈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몇 년 전 한국의 네트워크가 대규모 디도스 공격을 당해 서비스가 중단됐던 것처럼, 인터넷에 문제가 생겼을 때에야 비로소 인터넷은 그냥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인터넷 거버넌스는 사이버공간에서 상호 간 인터넷을 통해 연결해 주는 기술 이슈에서부터 출발한다. 예컨대 세계 어느 곳에서라도 특정 웹 주소(예: www.icann.org)를 입력하면, 특정 IP주소(예: 192.0.32.7)를 가진 사이트로 연결된다. 이렇게 특정 IP주소와 웹 주소를 연결시키는 시스템을 ‘도메인 네임 시스템’(DNS)이라 부르는데, 이는 현재 미국 정부와의 계약하에 국제인터넷주소기구인 ICANN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 계약을 통해 그간 미국 정부는 인터넷의 유일한 식별자인 DNS를 관리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1년 전 미국 정부가 이 관리권한을 전 세계의 커뮤니티에 이양하겠다고 했다. 이 발표후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발적으로 인터넷이 계속 개방적이고 안정적이며, 통일을 기할 수 있으려면 DNS에 대한 관리권한을 어디로, 어떻게 이양해야 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토론하며 제안서 방향을 만들어갔다.

1년 이상의 토론과 협업 이후에 하나의 통합된 제안서가 지난 7월31일 전 세계에 공개됐다. 이 제안서는 오는 9월8일까지 약 40일 동안 전 세계로부터 공개적인 의견수렴을 거쳐 최종 정리된 것이 미국 정부에 제출된다. 미국 정부는 이를 검토해 타당성을 확인한 후 자신들의 권한을 전 세계 커뮤니티에 이양하는 데 최종 승인하게 될 것이다. 2016년 9월, 우리는 인터넷이 더 이상 정부에 의해 관리되지 않고, ‘민영화’되는 역사적 순간을 마무리 짓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터넷 거버넌스 논의에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이슈와 주제는 무엇일까. 첫째, 인터넷은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그로 인한 혜택 또한 커져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인터넷과 관련된 모든 이해관계자는 정부건 개인이건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상호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우리는 모두 인터넷의 미래에 대해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거버넌스에 관련된 논의들은 모든 이해관계자가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도록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 인터넷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이 논의에 얼마나 많이 참여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우리 지역의 이해관계자들은 대체로 한국을 포함한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이 인터넷 거버넌스 논의에 활발히 참여하지 않고 결정된 정책에 따르기만 하는 ‘가격 수용자’(price taker)의 역할에 머무르고 있다.




우리가 거버넌스 정책 결정에 관심도 없고 참여하지도 않는다면, 미래의 인터넷이 여전히 개방적이고 안전할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한국은 10명 중 9명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거의 모든 휴대전화 가입자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주요한 인터넷 이용 국가이다. 한국이 인터넷 거버넌스 논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이유인 셈이다. ICANN 아·태 지역 허브사무소는 이러한 거버넌스 논의에 아·태 지역의 활발한 참여를 돕기 위해 다양한 웨비나(Webinar: 웹과 세미나의 합성어)와 워크숍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는 동시에, 여러 나라의 각각 다른 이해관계자들과 교류하며 협업하고 있다.

인터넷 거버넌스의 본질은 작은 당신의 목소리 하나하나를 듣는 것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인터넷의 미래에 아·태 지역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려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인터넷 거버넌스 논의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기여해야 한다.


지아롱 | 아이칸 싱가포르사무소 정책협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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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교수가 투신해 숨진 사건은 정부가 국공립 대학의 자율성을 얼마나 심각하게 침해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외형상 총장과 교수회 간 대립으로 나타난 이 사건의 본질은 총장 직선제 폐지 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정부의 부당한 통제와 간섭이라고 할 수 있다. 총장 직선제가 대학 교육을 위한 최선의 제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제도 폐지를 위해 정부가 이만한 정력과 비용을 들이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총장 직선제 폐지는 대학 자율성을 명시한 헌법에 위배되고, 현행 법률도 어기는 행위다. 교육공무원법은 대학 총장 후보 선출 방식은 학내 구성원들의 뜻을 따르도록 돼 있다. 정부가 이 제도가 마음에 안 든다면 먼저 헌법과 법을 바꾸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재정지원과 구조조정 권한을 무기로 집요하게 대학을 압박해왔다. 부산대에서도 교육부 지침에 따라 김 모 총장이 총장 간선제로 학칙 개정을 추진하면서 대립이 시작됐다. 교수들의 장기 농성이 이어지면서 총장은 간선제 추진과 번복을 되풀이했고, 급기야는 학칙 개정의 효력을 둘러싼 소송도 벌어졌다. 교육부는 총장이 간선제 방침을 번복할 때마다 정부 지원사업을 배제하는 압박 카드를 동원했다.


부산대학교의 한 교수가 17일 총장 직선제 폐지에 반발해 대학 본관 건물에서 투신해 숨진 뒤 동료 교수들이 헌화하며 명복을 빌고 있다._연합뉴스



교육부의 무리한 총장 직선제 폐지 정책은 부산대만이 아니라 38개 국공립대 전체에서 큰 부작용을 낳고 있다. 경북대와 공주대, 한국방송통신대에서는 교육부의 방침대로 간선제로 총장 후보자를 뽑았으나 교육부가 아무런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대통령에게 임용제청하는 절차를 밟지 않아 1년 넘게 총장이 공석인 비정상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체대에서는 급기야 체육 분야에 문외한인 친박 정치인이 임용되는 일도 벌어졌다. 이는 정부의 의도가 직선제 폐지를 통해 정권 입맛에 맞는 사람을 국공립대 총장으로 앉혀 대학을 장악하려는 데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교육부의 총장 직선제 폐지 정책은 2012년 발표한 ‘국립대 선진화 방안’의 하나다. 그러나 정책 시행과정에서 대학은 선진화하기는커녕 갈등과 대립 속에 지성의 전당이라는 본연의 모습마저 잃을 위기에 처했다. 교육부는 이처럼 대학의 정신인 자유를 억압하고, 법에 저촉되고, 실효성도 의심스러운 직선제 폐지 강행 정책을 재검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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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물질 사고는 가공할 피해와 공포를 낳는다. 대표적인 예가 보팔 참사다. 1984년 12월3일 한밤중에 인도 보팔시 외곽의 유니언카바이드사 공장에서 화학물질 저장 탱크가 폭발했다. 농약 원료로 사용되는 메틸이소시안염(MIC)이 약 2시간 동안 36t가량 누출됐을 뿐이지만 결과는 끔찍했다. 인명피해를 정확히 집계할 수조차 없었다. 약 3만명이 사망하고 50만명 이상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추산할 뿐이다. 피해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사고 현장은 방치되고 피해 보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2세에게 기형이 발생하는 등 후유증까지 나타나고 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화학물질 사고로 꼽히는 보팔 참사의 악몽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톈진(天津) 폭발 사고다. 지난 12일 오후 11시36분경 중국 톈진 빈하이신구 탕구항 국제물류구역의 화학물질 물류창고가 폭발하면서 이제까지 파악된 사망·실종자만 200여명에 이르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공포감도 확산됐다. 물류창고에 보관하던 맹독성 물질인 시안화나트륨 700t이 폭발과 함께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800㎞ 떨어진 국내까지 ‘시안화나트륨에 오염된 비를 맞지 말라’는 등의 괴담이 번졌다.


폭발사고로 중국 톈진 탕구항 야적장에 보관중이던 신차들이 심하게 훼손된 모습_경향DB



톈진 폭발 사고는 우리에게도 두 가지 점에서 경종이 되고 있다. 먼저 2012년 9월 발생한 경북 구미공단 불산 누출 사고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라고 해서 화학물질 사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당시 불산 8t 누출로 5명이 사망했고 1만1300명이 병원 치료를 받았으며 농작물 피해도 212㏊(64만평)에 이르렀다. 이런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유독물질 대량 취급 업소가 3000곳이나 되고 울산·여천·대산 등 화학단지에 40년 넘은 노후 설비가 즐비한 게 우리 현실이다.

다른 하나는 이번 폭발 사고에서 보듯 우리 의지와 무관한 위협이다. 중국이 건설 중인 원자력발전소 31기 가운데 28기가 한반도와 마주한 황해 연안에 있다는 점이다. 2011년 3월10일 도쿄전력 사장은 다음날 후쿠시마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톈진 폭발 사고를 촉발한 물류회사 사장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신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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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이 18일 중앙집행위를 열어 노사정위원회 복귀 여부를 최종 결정하기로 했지만 아직까지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노동계로서는 노동자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노사정위 협상 재개 자체가 마뜩잖을 수밖에 없다. 당장 한국노총 내부에서도 격렬한 반대의 목소리가 예상된다. 협상이라는 것이 주고받는 것이지만 이번 협상에서는 노동계가 얻을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내년 정년 60세 적용에 따른 임금피크제만 해도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해서 청년고용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재계의 상응하는 고통 분담은 보이지 않는다. 임금피크제로 인한 임금삭감은 당장 효력이 발생하지만 신규 고용 확대는 기업의 자발적 선택에 맡겨져 있는 것이라 불균형적이다.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고 55세 이상 노동자 파견 허용 범위를 전 업종으로 확산시키는 것 역시 고용불안정을 심화시킬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재계가 노동계에 내놓을 게 없다면 최소한 노동계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협상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필요하다. 한국노총이 노사정위 복귀 조건으로 저성과자 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요건 완화 2가지 부분을 의제에서 제외시켜 달라고 요구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노총 지도부가 내부 반발에도 노사정위 복귀를 결심한 데는 김동만 위원장과 김대환 노사정위원장 면담 때 이 부분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이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문제는 노동부의 태도에 있다. 2가지 의제를 이번 협상에서 다루지 않고 중장기 과제로 연기하기로 했다는 보도에 대해 노동부는 ‘노사정위 복귀 후 논의할 문제’라며 종전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기권 노동부 장관은 저성과자 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요건 완화에 대해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기존 제도를 명확히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단지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이 맞다면 굳이 노동계가 반대하는 의제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2가지 의제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일수록 정부가 쉬운 해고와 일방적 임금삭감을 노리고 있다는 의구심만 커지게 만들 뿐이다. 정부가 노사정 대화의 중재자가 아니라 장애물이 되고 있는 셈이다. 노동계를 압박하기 위해 정부가 겉으로만 종전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지금 정부가 할 일은 압박이 아니라 대화 복귀를 위해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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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을 맞아 여러 분야의 70년 역사를 정리하는 일들이 많았다. 나는 지난주 KBS에 가서 광복 70주년 특집의 하나로 한국 스포츠 70년사를 기억하는 데 동참했는데, 방송이라는 특성 때문에 다 못한 얘기가 있어 여기에 몇 자 적는다.

우선, 누가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하는 점이다. 역사는 복잡다단한 수많은 요소와 사건들이 당대의 상황이나 구조적인 힘과 맞물리면서 격렬하게 흘러간다. 그중 어느 것을 특별히 선정하고 기억한다는 것은 중립적일 수가 없다. 물론 사건의 측면에서, 손기정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이나 88 서울올림픽 등을 빼놓을 수는 없다. 이렇게 선택하다 보면 생략되거나 삭제되는 사건도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사건과 인물들에 대한 해석이다. 모든 사건과 인물을 다 기억할 수 없다면, 특정한 사건과 인물에 대한 해석을 통해 그 당대를 회복하는 것이다. 해석이 결핍된 사건 나열은 주관적인 스토리텔링을 낳는다. 그것은 대체로 왜곡의 위험성을 내포한다. 개인과 당대 사회가 서로 밀고 당기는 힘의 관계를 검토하지 않고 한 인간이 자의적이며 선구적으로 결연히 마음먹자마자 곧장 실행했다는 식의 의지의 기억으로 역사를 심각하게 왜곡하는 스토리텔링 말이다.

과거 공안검사들이 개인사의 조각들을 억지로 짜맞춘 후 아예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자에 대해 적개심’을 품고 살아온 것처럼 단죄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금 당장 국회의원들의 홈페이지를 가보라.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들은 성장기나 청년기의 파편들을 나열하면서 “그리하여 국민에게 봉사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노라는 식의 스토리텔링을 자랑하고 있다.

스포츠 70년사도 마찬가지다. 흔히 일제강점기 이후 지금에 이르는, 굵직한 사건들과 그 주인공들은 오직 ‘조국 광복’이나 ‘경제 도약’이나 ‘세계 속의 한국인’이 되기 위해 운동을 시작한 것처럼 묘사된다. 대한축구협회가 2005년 발간한 ‘한국 축구 7인의 영웅들’이 꼭 그랬다.

물론 이 거창한 말들에 전혀 진실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당대의 집합적 감수성은 개인의 내면에 강렬한 화인을 찍게 마련이고 따라서 그는 자신의 선택과 행위에 대해 시대적인 당위성을 부여받고자 한다. 한·일전에 임하는 선수들, 해외 무대에 진출한 선수들, 올림픽에 나선 선수들. 그들의 내면에 흔히 ‘애국심’으로 요약되는 당대의 집합적 감수성이 묻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 감정이 뛰어난 성취를 추동케 한 힘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힘의 사회적 의미, 그 의미가 개인에게 끼친 육체적·심리적 작용들은 더욱더 많은 해석을 요구한다.

가령 1960~1970년대에 많은 사람들이 김일의 프로레슬링에 열광했던 기억을 단지 ‘반칙 많이 하는 일본 선수를 응징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만 요약할 수는 없다. 김일은 물론이고 권투의 김기수·홍수환 등에 대한 열광이란 정든 시골을 등지고 도시로 몰려든 뿌리 뽑힌 사람들의 처절한 생존 감정과 결착된 것이다.

역사의 전면에서 단 한 번도 주역으로 호명된 적이 없는 무명소졸들이었기에 자신들의 마음속에서 터져나오는 강렬한 감정을 달리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 다만 ‘애국심’이라는 용광로에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 강렬한 감정이란, 냉혹한 대도시에서 육체적 시련과 정신적 수모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처절한 생존 게임을 벌여야만 했던, 다름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열광이었다.

따라서, 역사 일반이 그렇듯이, 한국의 스포츠 역사를 일별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대의 집합적 감수성이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축구에 대해 대한체육회나 대한축구협회의 기록들은 대체로 “나라 잃은 설움을 운동장에서 거침없이 표출했다”는 애국주의의 수사들뿐이다. 반면 1920~1930년대의 신문 기사들은, 잉글랜드의 리버풀이나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가 그렇듯이, 이미 인천이나 원산 같은 항만 공단 지역에서 축구가 산업도시의 노동자 문화로 자리 잡았음을 잘 보여준다. 그 일상 문화로서의 스포츠에 대한 확인과 그 감정들의 해석이 필요한 것이다. 2002년의 월드컵 4강도 ‘애국심의 표출’만이 아니라 정치 민주화, 경제 성장, 문화 다양성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감각이 동원된 광장의 열병식이 아니라 문화적 광장의 축제로 드러났음을 읽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역사의 사건들, 그 함성들, 그 상흔들마저 해명될 수 있다. 영문학자 테리 이글튼이 “역사는 기승전결의 드라마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 의미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역사를 돌아보는 이유가 그렇듯이, 당대의 어떤 문제가 해결되었고 또 어떤 문제는 왜 미완인 채로 다음 시대의 충격적인 과제로 던져졌는가 하는 질문이다. 질문을 동반하지 않는 역사 돌아보기는 관계자들끼리 모여 추억의 후일담을 나누는 일밖에 되지 못한다.

예컨대 1970년대 스포츠 정책을 살펴보자. 강압적인 국민 동원 체제 아래에서 스포츠는, 선수에게나 일반인에게나, 국가가 신체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구조의 결정판이었다. 태릉선수촌이나 새마을운동은, 그 일정한 의미와 성과에도 불구하고, 권력이 일상을 비정상적인 동원 체제로 구축한 사례다. 88올림픽의 ‘공적인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민·관·군이 ‘혼연일체’된 국가의 스펙터클 문화 통치였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 이후, 한국 사회는 그 상태를 극복했는가. 이에 대해 우리는 마땅한 답을 찾기 어렵다. 스포츠의 즐거움, 그 미학, 그 공동체적 열망 대신 강력한 ‘애국주의’가 여전히 압도한다.

그리하여 어떤 상황인가. 몇몇 대표 선수나 프로 선수들을 제외하고 보면, 우리의 스포츠는 여전히 상명하복의 강압적 질서와 여타의 산업에 비교할 수도 없는 위태로운 비정규직 저임금 상태에 놓여 있다. 운동을 하다 중도 포기하면 도저히 제2의 인생을 계획할 수 없는 형편이다. 강력한 위계질서에 의한 신체 통제도 여전히 작동한다. 선수들에 대한 오해와 편견도 극심하다. 운동 경력이 리더십이나 인격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오히려 운동을 했다는 것이 뭔가 거칠고 결핍된 과정을 거쳐온 것처럼 오해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스포츠 역사 70년은 찬란하게 묘사되는 몇몇 사건과 인물의 위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격다짐의 전근대성과 유무형의 폭력성을 벗어나지 못한 게 아닌가. 운동을 열심히 하면, 비록 대표나 프로가 못되더라도, 이 사회에서 정상적인 직업으로 평가받고 적절하게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오늘날의 스포츠 권력과 그 단체 지도자들은 이 최소한의 조건도 마련하지 못한 채 ‘70년 영광의 드라마’를 내내 우려먹는다. 이 현실 인식 위에서, 한국 스포츠 70년사를 문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문제 안에 숨어 있다’는 경구를 깊이 새기면서 말이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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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말 승인 여부를 결정할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설치를 놓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케이블카 설치 구역이 산양 등 멸종위기 야생동식물의 서식지라는 주장에 이어 최근에는 경제성 검증 보고서가 조작됐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지난 11일 환경단체가 설악산 오색탐방로 입구에서 대청봉까지 케이블카 반대를 위해 오체투지를 하고, 13일 강원 양양군 일부 주민이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청와대까지 케이블카 설치를 염원하는 삼보일배에 나서는 등 찬반 양측의 행동도 격화하고 있다.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업은 이미 2012년과 2013년 두 차례에 걸쳐 국립공원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거부됐던 사안이다. 환경성·공익성·기술성 등 모든 점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그럼에도 강원도와 양양군은 상부 정류장 위치를 대청봉에서 끝청봉으로 변경해 지난 4월 세 번째 사업 신청을 밀어붙였다. 지역경제 활성화 명분과 정부의 산지관광정책에 편승하기 위한 것이다.


사회 각계 인사들이 2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설악산 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_경향DB


국립공원은 놀이공원이 아니다. ‘자연생태계나 자연 및 문화 경관을 대표할 만한 지역’이다. 잘 보존해 후세에게 물려주어야 할 자연유산이다. 케이블카 설치가 환경을 오히려 덜 훼손한다는 주장이나 노인·아동·장애인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 등은 억지일 뿐이다. 설악산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천연보호구역, 백두대간보호지역이기도 하다. 여기에 왜 케이블카를 설치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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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잡지가 있다. 모두가 돈 버는 법을 외칠 때, 고르게 가난해지는 법을 얘기하는 잡지다. 다들 성장과 개발로 내달릴 때, 줄이고 놔두고 나누라고 한다. … 그런데 이런 괴상한 잡지가 나의 생활을 바꾼다. 아주 천천히, 기분 좋게.”

‘녹색평론’에 대한 어느 독자의 글이다. 독자의 얘기처럼 이 잡지는 다르다. 격월간이라는 간행 주기, 재생지 사용, 매번 비슷한 표지 디자인 등은 자본의 논리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정기 간행물이라는 잡지의 속성을 벗어나 시의성과는 동떨어진 글을 싣기도 한다. 때로는 기존 저서에 들어 있는 내용을 발췌해 소개한다. 그런데도 정글 같은 출판시장에서 굳건히 버티고 있다. 그것도 25년간 한번도 결호를 내지 않고 말이다. 정기 독자만 5000명이 넘는다. ‘문단권력’으로 군림하는 문학 계간지들도 따르지 못하는 수치다.

녹색평론이 지향하는 가치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이 잡지는 대통령궁을 노숙인 쉼터로 내준 우루과이의 ‘가난한 대통령’ 호세 무히카를 소개해 화제를 일으켰다. 언론에서 무히카를 주목한 것은 한참 뒤였다. 함석헌의 시를 4회에 걸쳐 조명한 윤영천 교수의 논문은 함석헌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최근호(7~8월호)에는 1986년에 이루어진 교육철학자 이반 일리치와 생태작가 이시무레 미치코의 대담이 실렸다. 근 30년이 지난 것이지만, 곱씹어볼 대목이 많다. 이처럼 이 잡지의 가치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에 있다.

이 잡지의 가장 괴상한 점은 ‘녹색평론 읽기 모임’이다. 종교 서적도 아닌데, 전국에서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정기적으로 읽고 토론한다. 최근호 말미에 소개된 ‘읽기 모임’은 45개나 된다. 독일 뮌헨처럼 해외 독자모임도 있다. 이 잡지의 독자이면서도 경건함이나 치열함을 갖추지 못한 나는 오래전부터 이들 모임이 궁금했다. 그들은 왜 녹색평론을 읽는가. 그리고 무엇을 하려 하는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중랑지역 녹색평론 독자모임을 찾았다. 중랑희망연대가 매달 마련하는 이 모임에는 희망연대 회원뿐 아니라 녹색당원, 지역주민들이 참여한다고 한다. 전체 읽기 회원은 10여명이다. 이날 면목동 소나무휴카페에서 열린 8월 모임에는 5명이 나왔다. 토론할 내용은 특집 ‘해방 70주년을 되돌아본다’와 메르스와 히로시마 원전을 다룬 평론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불청객이 끼어들면서 ‘읽기 모임’이 화제에 올랐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_경향DB


장애 청년을 아들로 둔 이경애씨(협동조합 마을카페 대표)가 말문을 열었다. “늘 아들과 함께 다니면서 책 읽는 습관이 들었지요. 녹색평론 읽기 모임도 아들을 통해 알게 됐고요. 모임을 통해 그간 지나쳤던 환경이나 지역 문제를 주목하게 됐습니다.” 모임을 이끄는 김봉구 중랑희망연대 대표(녹색병원 원장)는 “2011년 중랑희망연대 창립 이후 소모임 차원에서 시작했다”며 “자본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율적 생태공동체가 대안이라고 생각하던 차에 법정 스님의 책을 통해 녹색평론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에서 녹색평론을 ‘성장이 멈췄다. 우리 모두 춤을 추자’고 소개한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법정 스님 이외에 작고한 소설가 박경리, 박완서 선생도 이 책의 애독자였다. 작가 권정생 선생은 생전에 녹색평론의 원고료를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리어 후원금을 보냈다. 지난해 지리산의 사찰 ‘고요한 소리’를 찾았을 때, 10여년치의 녹색평론 과월호가 빠짐없이 책장에 꽂혀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이 사찰의 활성 스님 역시 열성 독자다.

요양보호사 유제봉씨는 “근육병 환자, 고관절퇴행 환자, 알코올중독 환자 등과 대화하다 보면 녹색평론의 시각이 도움이 된다”며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삶의 균형을 잡아갈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김형국 중랑희망연대 운영위원은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녹색평론에 눈을 떴다”며 “삶을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1970년대의


‘사상계’나 ‘씨알의 소리’와 유사하다”고 말했다. 여성환경연대 공동대표이자 중랑희망연대 운영위원장인 장이정수씨는 이 잡지를 ‘지역운동의 살아 움직이는 텍스트’라고 평가했다. 그는 “녹색의 가치를 공유하면서 좋은 동네를 만들어가자는 생각들이 읽기모임을 이끌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70주년 광복절이다. 도심 빌딩에 대형 태극기가 경쟁적으로 내걸리고, 방송에서는 ‘국민대합창’이 울려퍼지고 있다. 정부와 기업, 단체들은 저마다 미래로 도약하자고 외친다. 그들의 담론은 여전히 성장과 발전이다. 과거에 대한 성찰이나 미래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성장과 도약의 구호에 따라 춤만 추면 되는 걸까. “성장이 멈췄다. 우리 모두 춤을 추자”고 한 법정 스님의 말이 귓전을 맴돈다.


조운찬 | 경향후마니타스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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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잡지가 있다. 모두가 돈 버는 법을 외칠 때, 고르게 가난해지는 법을 얘기하는 잡지다. 다들 성장과 개발로 내달릴 때, 줄이고 놔두고 나누라고 한다. … 그런데 이런 괴상한 잡지가 나의 생활을 바꾼다. 아주 천천히, 기분 좋게.”

‘녹색평론’에 대한 어느 독자의 글이다. 독자의 얘기처럼 이 잡지는 다르다. 격월간이라는 간행 주기, 재생지 사용, 매번 비슷한 표지 디자인 등은 자본의 논리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정기 간행물이라는 잡지의 속성을 벗어나 시의성과는 동떨어진 글을 싣기도 한다. 때로는 기존 저서에 들어 있는 내용을 발췌해 소개한다. 그런데도 정글 같은 출판시장에서 굳건히 버티고 있다. 그것도 25년간 한번도 결호를 내지 않고 말이다. 정기 독자만 5000명이 넘는다. ‘문단권력’으로 군림하는 문학 계간지들도 따르지 못하는 수치다.

녹색평론이 지향하는 가치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이 잡지는 대통령궁을 노숙인 쉼터로 내준 우루과이의 ‘가난한 대통령’ 호세 무히카를 소개해 화제를 일으켰다. 언론에서 무히카를 주목한 것은 한참 뒤였다. 함석헌의 시를 4회에 걸쳐 조명한 윤영천 교수의 논문은 함석헌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최근호(7~8월호)에는 1986년에 이루어진 교육철학자 이반 일리치와 생태작가 이시무레 미치코의 대담이 실렸다. 근 30년이 지난 것이지만, 곱씹어볼 대목이 많다. 이처럼 이 잡지의 가치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에 있다.

이 잡지의 가장 괴상한 점은 ‘녹색평론 읽기 모임’이다. 종교 서적도 아닌데, 전국에서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정기적으로 읽고 토론한다. 최근호 말미에 소개된 ‘읽기 모임’은 45개나 된다. 독일 뮌헨처럼 해외 독자모임도 있다. 이 잡지의 독자이면서도 경건함이나 치열함을 갖추지 못한 나는 오래전부터 이들 모임이 궁금했다. 그들은 왜 녹색평론을 읽는가. 그리고 무엇을 하려 하는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중랑지역 녹색평론 독자모임을 찾았다. 중랑희망연대가 매달 마련하는 이 모임에는 희망연대 회원뿐 아니라 녹색당원, 지역주민들이 참여한다고 한다. 전체 읽기 회원은 10여명이다. 이날 면목동 소나무휴카페에서 열린 8월 모임에는 5명이 나왔다. 토론할 내용은 특집 ‘해방 70주년을 되돌아본다’와 메르스와 히로시마 원전을 다룬 평론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불청객이 끼어들면서 ‘읽기 모임’이 화제에 올랐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_경향DB


장애 청년을 아들로 둔 이경애씨(협동조합 마을카페 대표)가 말문을 열었다. “늘 아들과 함께 다니면서 책 읽는 습관이 들었지요. 녹색평론 읽기 모임도 아들을 통해 알게 됐고요. 모임을 통해 그간 지나쳤던 환경이나 지역 문제를 주목하게 됐습니다.” 모임을 이끄는 김봉구 중랑희망연대 대표(녹색병원 원장)는 “2011년 중랑희망연대 창립 이후 소모임 차원에서 시작했다”며 “자본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율적 생태공동체가 대안이라고 생각하던 차에 법정 스님의 책을 통해 녹색평론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에서 녹색평론을 ‘성장이 멈췄다. 우리 모두 춤을 추자’고 소개한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법정 스님 이외에 작고한 소설가 박경리, 박완서 선생도 이 책의 애독자였다. 작가 권정생 선생은 생전에 녹색평론의 원고료를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리어 후원금을 보냈다. 지난해 지리산의 사찰 ‘고요한 소리’를 찾았을 때, 10여년치의 녹색평론 과월호가 빠짐없이 책장에 꽂혀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이 사찰의 활성 스님 역시 열성 독자다.

요양보호사 유제봉씨는 “근육병 환자, 고관절퇴행 환자, 알코올중독 환자 등과 대화하다 보면 녹색평론의 시각이 도움이 된다”며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삶의 균형을 잡아갈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김형국 중랑희망연대 운영위원은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녹색평론에 눈을 떴다”며 “삶을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1970년대의


‘사상계’나 ‘씨알의 소리’와 유사하다”고 말했다. 여성환경연대 공동대표이자 중랑희망연대 운영위원장인 장이정수씨는 이 잡지를 ‘지역운동의 살아 움직이는 텍스트’라고 평가했다. 그는 “녹색의 가치를 공유하면서 좋은 동네를 만들어가자는 생각들이 읽기모임을 이끌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70주년 광복절이다. 도심 빌딩에 대형 태극기가 경쟁적으로 내걸리고, 방송에서는 ‘국민대합창’이 울려퍼지고 있다. 정부와 기업, 단체들은 저마다 미래로 도약하자고 외친다. 그들의 담론은 여전히 성장과 발전이다. 과거에 대한 성찰이나 미래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성장과 도약의 구호에 따라 춤만 추면 되는 걸까. “성장이 멈췄다. 우리 모두 춤을 추자”고 한 법정 스님의 말이 귓전을 맴돈다.


조운찬 | 경향후마니타스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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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노동개혁 드라이브가 거세다. 고용노동부의 1차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안 발표가 있은 후 당·정·청이 팔을 걷어붙이는 모양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공정한 인사평가에 기초한 합리적인 인사관리’라는 사실상의 해고 가이드라인을 들고 여기에 가세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손을 빌렸지만 실제로 정부안인 셈이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까지 보탰다. 핵심은 임금피크제와 취업규칙 개정이다. 청년층 고용 창출을 위한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골자인데, 노동자의 임금을 깎고 노조 동의 없는 근로조건 변경을 가능하게 해서 실업대책을 세우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더 적은 임금과 더 쉬운 해고’가 정부의 노동개혁 방향이다. 그런데 이러면 노동부문이 시대의 고통을 홀로 떠안는 게 되지 않는가? 왜 노동자만 그래야 하는가? 그리고 그 일을 왜 정부가 드러내 놓고 몰아붙이는가?

경북대 경제학과 이정우 교수는 최근 퇴임을 기념하는 한 강연을 ‘한국은 왜 살기 어려운 나라인가?’라는 제목으로 시작했다. 그는 한국이 살기 힘든 세 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로 ‘노동의 열위’를 들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자본은 노동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했다. 임금의 정체, 비정규직의 대폭 증가, 노동조합의 약화, 자본수익률과 이윤의 고공행진 등이 이를 입증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취업자 가운데 노동자의 비율이 약 70~80%에 이른다. 취업인구의 대부분이 노동자이고 노동의 지위가 점점 더 추락하게 되면 대부분 시민의 삶이 그만큼 팍팍해진다. 살기 어려운 나라가 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이번 노동개혁안은 가뜩이나 위축된 노동자들의 처지에 소금을 끼얹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정은 못할망정 쪽박까지 깨는 일이고 노동자들이 더 살기 어려운 나라로 가자는 것이다.

내일은 70주년을 맞는 광복절이다. 한일합방에서부터 해방까지를 흔히 일제 36년의 강점기라고 하니 올해 광복 70년은 해방 이후 두 번의 강점기만큼 시간이 흐른 셈이다. 일제가 강점했던 시간의 두 배가 더 흘렀는데도 우리는 왜 이렇게 살기가 어려운가? 광복 70년의 감회로 세상이 들썩이는데 나는 이번 70주년의 광복절이 우리 삶에 대한 진지한 집합적 성찰의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는 왜 좀 더 살기 편한 나라를 만들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았으면 좋겠다.


광복 70주년 특별 전시가 열리고 있는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을 찾은 어린이들이 박물관 입구에 마련된 대형 칠판에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며 글과 그림을 남기고 있다. _김영민 기자



우리는 너무 오래 국가와 정부와 정치가 시민의 삶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살기 좋은 세상은 시민의 삶이 공적 질서의 중심에 있는 세상이다. 시민의 삶을 유지하는 가장 근본적인 동력은 ‘노동’이다. 아무리 유연화되고 주변화되더라도 노동은 여전히 인간 삶의 원천이며 노동의 가치는 삶의 가장 근본가치다. 적어도 광복 70년의 노동개혁은 모든 공적 질서의 중심에 시민의 삶을 두고, 시민의 삶의 중심에 보편적 노동의 가치를 두는 그런 방향성을 가졌으면 하는 ‘무망한’ 바람을 가져본다.

내친김에 허망한 그림이라도 그려보자. 광복 70년에 정부가 지향하는 노동개혁은 위축된 노동의 현실과 변함없이 추구되어야 할 노동의 가치 사이에서 노동의 미래를 여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전망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도 좋겠다. 우리 시대 노동의 세계는 투쟁하는 계급의 가치가 아니라 생활하는 시민의 가치로 그 외연이 확장되어야 한다. 계급가치를 추구하는 노동의 시대를 넘어, 생활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노동계급’의 시대에서 ‘노동하는 시민’의 시대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노동의 가치를 보편화하고 ‘노동의 공공성’을 확장하는 길이다.

노동이 생활시민의 가치라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재구성될 때 우리 시대 노동의 세계는 획기적으로 넓어지고 깊어질 수 있다. 그래서 무엇보다 광복 70주년의 노동개혁은 노동의 공공성을 확장하는 방향성을 갖고 노동의 가치를 더욱 보편화해야 한다. 여기에는 기업의 협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노동개혁은 반드시 재벌개혁과 병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 노사문제에 정부가 좀 덜 개입해야 한다. 스웨덴의 선진적 노사문화는 노사자율협상과 합의가 역사적으로 누적된 성과이다. 정부가 개입하는 개혁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필요하다면, 노동개혁은 무엇보다도 훼손된 노동의 가치를 복원시키는 일이 먼저다. “노동은 자본에 선행하며 독립적이다. 자본은 노동의 아들이며, 노동 없이는 애초에 존재하지조차 않을 것이다. 노동은 자본보다 우위이며, 더 우대받을 자격이 있다.”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이다.


조대엽 | 고려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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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그룹이 그제 보도자료를 통해 내년부터 전체 계열사의 정년을 60세로 연장하고 임금피크제를 실시하겠다고 했다. 취업규칙과 단협을 고쳐 정년 60세를 보장하는 대신 현재 정년인 57~58세가 되는 나이부터 임금을 10%씩 깎고 절약한 임금으로 청년 신규 채용을 1000여명 늘리겠다는 것이다. 현대차가 이같이 선전포고하듯 임금피크제 카드를 꺼내들면서 노동개혁의 방향을 놓고 정부·재계와 대립각을 세워온 노동계는 중대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임금피크제는 노동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미 정부가 노동개혁의 당위성을 홍보하고 대공장 노조를 압박하는 가장 효과적 무기가 되고 있다. 물론 임금피크제 효과가 대단히 제한적일 것이라는 노동계 주장은 옳다. 정년 60세를 채울 수 있는 공공부문과 일부 대기업 생산직은 전체 노동자의 8%도 안된다. 임금피크제를 한다고 재계가 청년고용을 늘릴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문제는 실질효과와 상관없이 임금피크제를 안 하면 청년고용대란이 벌어질 것이라는 ‘공포감’이 상당수 국민들에게 먹혀들고 있다는 데 있다. 그 때문에 현대차가 올해 임금 및 단협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노조에 일방통고하듯 임금피크제를 제안한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현대차는 정부 시책에 적극적으로 부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통상임금 범위와 임금체계 개편을 놓고 노조의 목소리를 잠재울 절호의 기회로 판단했을 것이다. 조합원 평균 연봉이 억대에 가까운 현대차 노조가 임금피크제를 거부할 경우 정부와 재계가 어떤 식의 반응을 보일지도 불을 보듯 뻔하다. 십중팔구 ‘대기업 정규직노조 이기주의’에 대한 부정적 여론몰이에 활용할 것이다. 또한 현대차 노조에 대한 반감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면 노조의 동의 없이도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 가능하다’는 가이드라인 제정을 정당화시키는 기회로도 삼을 것이다. 현대차 노조의 신중한 대응과 전략적 선택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인 것이다.


현대차 노조 이경훈 지부장_경향DB


그제 현대차 노조 이경훈 지부장은 여름휴가가 끝나고 재개된 16차 임금협상에서 일방적인 임금피크제 도입 발표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현대차 대표냐”며 강하게 항의했다고 한다. 노조 측도 “청년실업은 대기업이 투자를 안 해서 생긴 문제”라며 사측의 제의를 일축했다. 노조로서는 당연히 할 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무조건 임금피크제 논의를 거부하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노조 입장에서는 임금피크제를 수용, 사측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근거를 차단하고 절약된 임금이 실질적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나 처우 개선, 청년 신규 채용에 활용될 수 있도록 노사가 공동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제안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현대차는 내년부터 그룹 차원에서 임금피크제를 실시할 경우 600억원의 여유자금이 발생하고 이 돈으로 1000여명의 청년고용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노조에만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하고 사측은 아무런 부담도 지지 않으면서 생색만 내겠다는 발상이다. 더구나 사측은 내년부터 임금피크제 도입과 함께 신규 고용을 늘리면 1인당 540만원의 지원금과 250만원의 세제지원까지 받는다. 113조원의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 있는 현대차그룹이 노조에만 일방적으로 부담을 전가하고 덤까지 챙기는 임금피크제는 누가 봐도 공정하다고 할 수 없다. 노조 지적대로 현재 청년실업은 30대 그룹 기준 710조원의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도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않는 대기업들에 1차적 책임이 있다.

하지만 노조가 임금피크제 도입 논의를 거부하고 수세적 대응으로 일관할 경우 대기업의 책임이 가리고 노조가 청년실업의 주범처럼 비치는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럴 바에는 사측의 사내유보금 공동출연과 노조의 정당한 경영참여를 조건으로 임금피크제 도입을 논의하는 게 낫다. 노조가 노동개혁의 대상이 아닌 노동개혁의 주체로서 발상의 전환을 할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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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5일이면 광복 70주년을 맞는다. 1910년 8월29일부터 1945년 8월15일까지 35년을 일본 식민 치하에서 살았으니, 해방 이후 그보다 딱 곱절의 시간이 지난 셈이다. 다들 지난 70년의 세월을 돌아보고 각자의 시선으로 공과를 따지느라 분주하다. 6070세대는 산업화의 기억을 더듬으며 으쓱대고 4050세대는 민주화의 추억에 들썩인다. 그들에게 과거는 언제 돌아봐도 자랑스러운 역사다. 2030세대는 앞세대가 일구어온 산업화와 민주화의 자양분 위에 자랐다. 하지만, 그들의 기억 안에는 힘겨워하는 부모를 말없이 지켜봐야 했던 IMF 체제의 아픈 과거사가 똬리를 틀고 있다. 지금 그들은 패기 넘치는 신세대 젊은이가 아니라,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한 3포세대로 살아가고 있다. 오늘을 견뎌내며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삶을 산다. 과거를 소비할 시간도 여유도 없다. 2015년 대한민국의 구세대는 과거에 매몰되어 있고, 신세대는 미래 없는 오늘을 살고 있다.

역사는 미래로 나아가는 세대에게 갈 길을 열어주는 과거 속 ‘오래된 미래’, 바로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미래 세대가 공감하지 않는 역사는 죽은 역사다. 학기마다 강의 첫 시간에 역사 속에서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을 선정하여 이유를 써오는 과제를 내준다. 10년 가까이 꾸준히 실시한 덕에 신세대가 주목하는 역사 인물의 변천사를 목도하게 된다. 고대 인물에 대한 관심은 거의 사라졌다. 10년 전만 해도 곧잘 나오던 광개토대왕이나 김춘추, 김유신이 선정 인물에서 없어진 지 꽤 오래다. 고려시대 인물도 거의 없다. 조선시대 인물과 독립운동가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최근 몇 년간 새롭게 부상한 인물이 이회영과 전태일이다. 이회영은 나라가 망하자 전 재산을 처분하고 일가와 함께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전태일은 1970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외침을 남기고 분신자살한 노동운동가다. 두 사람에 대한 관심은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고착화되고 있는 현실의 반영물이다. 부를 거머쥔 자들의 탐욕과 질주를 목도하고 있는 청년에게 이회영은 드물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인물이다. 전태일은 부와 권력을 거머쥔 세력의 갑질에 온몸을 불살라 항거한 ‘을’을 상징한다. 인물 선정의 변화를 보면서 신세대가 먼 고대의 영광보다는 자신이 살아가는 오늘을 성찰하며 미래의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가까운 과거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우리’의 정체성을 고구려의 기상에서 찾고자 하는 과거회귀형의 구세대와 달리 미래추구형인 신세대는 ‘나’의 정체성을 근현대사의 맥락 안에서 찾고자 한다.


6형제가 만주로 망명을 떠나기 전 지도를 펴놓고 망명계획을 세우던 모습을 묘사한 그림으로 우당기념관에 전시돼 있다._경향DB



지금 세계 각국은 미래세대에게 근현대사 중심의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세계에는 고대사를 서술할 수 있는 긴 역사를 가진 나라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전근대사는 간략하게, 근현대사는 상세히 가르친다. 그렇다면, 각국 역사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한국인은 누구일까. 세종대왕도 이순신도 아니다. 케냐를 비롯한 여러 나라 교과서에는 반기문이 나온다. 러시아 교과서처럼 백남준이 서술되는 경우도 있다. 현대사에 비중을 둔 역사교육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한국사는 한국전쟁이다. 미국, 영국은 물론 대부분 나라 역사교과서에 나온다.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다룬 교과서들도 있다.

세계는 지금 영웅사관이나 민족사관에 매몰된 과거회귀형 역사교육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시민을 키워드로 근현대사를 가르치는 미래추구형 역사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서구의 시민 혁명 이래 최근의 ‘아랍의 봄’에 이르기까지 20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인류가 함께 피 흘리며 성취했으며 앞으로도 보존해야 할 민주주의 역사를 가르친다. 특정 국가나 공동체에 갇히지 않고 세계 시민과 소통하기 위한 역사교육을 도모하고 있다. 여러 출판사가 각축하며 만든 다채로운 역사교과서들로 가르치고 있다.

역사 교육과정 개정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고등학교 한국사의 경우, 근현대사 비중을 절반 이하로 낮추고 전근대사를 더 많이 가르칠 예정이라고 한다. 유신독재의 산물이라는 주홍글씨가 늘 따라붙는 국정화 카드도 여전히 살아 있는 듯하다. 과거회귀형 권력에 의해 미래 세대의 눈높이와 세계 보편의 안목은 온전히 무시될 태세다. 광복 100주년을 기념하는 주역이 될 미래 세대는 2015년 대한민국을 어떻게 기억할까. 부끄럽다.


김정인 | 춘천교대 교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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