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1호기 수명연장 처분을 취소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난 지 1년이 되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1심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한수원도 2심 소송에 피고참가인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월성 1호기 폐로를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정부가 지난해 12월 국회에 보고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전체 발전용량 중 월성 1호기를 제외하고, 올해 상반기 중 경제성 등 계속 가동에 대한 타당성을 평가하여 폐쇄 시기를 결정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경제성 평가는 이미 나와 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014년 월성 1호기 수명연장의 경제성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상당한 적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산정됐다. 문 대통령이 월성 1호기 폐로를 공약했던 것도 경제성이 없는 것은 물론 안전성이 크게 문제 되었기 때문이다.

출처: 경향신문DB

월성 1호기 1심 판결은 ①수명연장에 관한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적법한 심의 및 의결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원자로 등 수명연장을 위한 설비교체에 대한 허가가 과장 전결로 이루어졌으며, ②당시 원자력안전위원장 등 결격사유가 있어 당연퇴직하여야 하는 위원이 월성 1호기 심의, 의결에 관여하였고, ③핵발전소 수명연장을 위한 안전성 평가를 할 때 평가기준일 당시의 국내외 최신 기술기준이 모두 적용되어야 하나 월성 2·3·4호기에 적용된 R-7 등 기술기준이 월성 1호기 수명연장 안전성 평가에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 등이 위법하다고 판시하였다. 따라서 정부로서는 경제성 평가가 아니라 법원이 판시한 월성 1호기 수명연장의 안전성 평가 등의 위법사항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재판 과정에서 원고들이 월성 1호기 최종안전성분석보고서 열람을 신청하여 지난 1월 말 허용되었으나, 그동안 적극적 정보공개를 공언했던 한수원은 열람기간도 겨우 3일에 목차만 메모할 수 있게 하고 복사·촬영을 불허하였다. 열람에 참여하였던 전문가들은 월성 1호기 수명연장에 적용한 안전설계기준이 30년 전 내용을 개정 없이 그대로 적용하였고, 기계부품규격도 1971년 규정을 적용하는 등 안전성 평가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안전보조계통의 상당수가 내지진검증이 되어 있지 않아 지진이 발생하면 안전설비가 작동되지 않을 수 있어서 중대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도 밝혀졌다. 중수로인 월성 1호기 원자로는 20㎏짜리 핵연료 12개가 내장된 6m 길이의 두께 수㎜ 압력관 양단에 2.5m의 종단이음관이 연결된 11m 길이의 수평 배관 380개로 구성되어 있어 지진 충격에 상당히 취약한 구조이다.  더군다나 사고 시 중앙제어실이 방사선 오염을 막을 수가 없어서 운전원들이 거주할 수 없기 때문에 사고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놀라운 사실을 확인하였다.

법원의 판결로 이미 확인된 문제점을 정부가 조사해야 하는 이유는,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한수원이 1심 판결에 불복하여 다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월성 1호기 폐로의 정당성을 확인하고, 월성 1호기 수명연장 과정의 문제점과 위법사항은 국내 다른 핵발전소에도 마찬가지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월성 1호기 수명연장 과정에서 드러난 규제의 문제점은 빙산의 일각으로 나머지 국내 핵발전소 인허가 과정과 안전규제의 위법사항에 대해 전면적으로 되돌아보게 만들 중요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고 적폐를 청산한다는 것을 넘어, 재발방지와 사고방지라는 국가 안보적 측면에서도 너무도 중요한 일인 것이다.

<김영희 | 변호사·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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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하키에서 가장 불쌍한 포지션이라면 역시 ‘골리(골키퍼)’를 꼽을 수 있다.

두께 2.54cm, 지름 7.62cm의 원형압축고무를 얼려 만든 무게 150~170g의 퍽이 시속 160~180㎞의 총알속도로 날아오는데, 이것을 온몸으로 막아야 한다. 1950년대 말까지만 해도 아이스하키 골리는 맨 얼굴로 경기에 나섰다. 1927년 여자선수인 엘리자베스 타일러(퀸즈대)가 치아보호를 위해, 1930년 클린트 베네딕트가 부러진 코를 보호하려고 각각 마스크를 썼다. 그러나 부상에서 회복된 후에는 곧바로 마스크를 벗어던졌다. 시야를 가리는 그 무엇을 얼굴에 단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상대와 당당히 맞서야 할 선수가 얼굴을 가리고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이거야말로 불성실한 겁쟁이 아닌가.

8일 인천 선학국제빙상장에서 열린 남자아이스하키 국가대표 평가전 한국과 슬로베니아의 경기. 1피리어드 한국 대표팀 골리 맷 달튼(왼쪽 사진)의 마스크에 이순신 장군 그림이 지워져 있다. 오른쪽 사진은 3일 열린 카자흐스탄과의 평가전에서 이순신 장군 그림이 그려진 마스크를 착용한 맷 달튼 모습. _사진출처 : 연합뉴스

 

그러던 1959년 11월1일 사건이 일어난다. NHL(북미하키리그) 몬트리올 캐나디언의 골리인 자크 플랑트(1929~1986)가 뉴욕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상대방이 날린 퍽을 얼굴에 맞았다. 겨우 상처를 꿰맨 플랑트는 “시야를 가린다”고 반대하는 코치에게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경기에 나서지 않겠다”고 고집했다.

당시 NHL팀에는 백업 골리가 없었으므로 플랑트가 출전을 거부하면 팀은 몰수패 할 수밖에 없었다. 코치는 할 수 없이 플랑트의 마스크 착용을 허용했다. 이후 골리 마스크를 쓴 플랑트의 팀은 연전연승했다. 당시 플랑트가 마스크를 벗고 출전한 경기가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경기에서 패했다. 이후 플랑트의 얼굴은 늘 골리마스크로 가려져 있었다. 골리마스크는 NHL의 시대조류가 되었다. 물론 앤디 브라운 같은 골리는 ‘맨얼굴이야말로 용감함의 상징’이라며 1977년 은퇴할 때까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은 무시무시한 형태의 마스크(헬멧)로 전의를 불태웠다. 보호장구를 착용하자 골리들은 얼굴에 퍽을 맞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났다. 낮은 자세로 수비할 수 있으니 더 부담없이 몸을 던질 수 있었다. 비겁이 아니라 오히려 용감의 상징이 된 것이다. 상대방과의 기싸움에서 이기고, 혹은 패션피플로서의 개성을 표출하려는 매개의 역할도 했다.

한국대표팀의 귀화골리인 맷 달튼(32·캐나다 출신)은 특별히 이순신 장군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이순신 장군처럼 대한민국의 수호신이 되겠다면서 마스크에 장군의 동상 그림을 새겨달라고 특별히 요청했다. 귀화선수지만 ‘대한민국 대표로 뛴다’는 각오를 표하고, 각종 대회마다 애국가를 따라 부르는 달튼이 아니었던가.

그런 달튼이 최근 낙담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마스크에 새긴 이순신 장군 그림을 ‘정치적’이라며 불허했기 때문이다. IOC는 오스트리아의 로빈후드, 체코의 개국공신, 이스라엘의 삼손, 그리고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그림도 불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공식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마스크(헬멧)를 봐야 ‘IOC의 저울’이 정말 공평했는지를 알 수 있다. 2012년 욱일승천기의 이미지를 새긴 유니폼을 입고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일본 체조팀을 징계하지 않은 사례도 있다. 물론 어떤 경우든 공연히 책잡힐 필요는 없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축구에서 동메달을 따고 독도세리머니를 했다가 곤욕을 치른 박종우가 좋은 예다. 이순신 장군의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명언을 가슴에 담고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란다.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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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6일이 설날입니다. 그리고 한 해의 마지막 달이 섣달이고 달의 마지막 날이 그믐이니 15일은 섣달그믐입니다. 지금이야 양력으로 살아서 의미 없지만, 음력으로 살던 사람들은 섣달그믐밤이 되면 참 싱숭생숭했을 겁니다. 한 해가 또 가거든요.

만혼이 흔한 요즘에야 실감이 안 나겠지만, 몇 십 년 전만 해도 여자 나이 서른 되기 전에 결혼해야 한다고 20대 후반이면 몰아쳐 결혼하느라 그 나이 대끼리는 그 무렵 무척 분주했습니다.

더 옛날에도 그랬습니다. ‘혼기가 꽉 찼다’거나 ‘과년한…’이란 말들을 흔히 썼으니까요. 시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옛 여성의 혼인 적령기는 아마 스무 살 안팎이었을 겁니다. 혼기 지난 여성이 혼처가 나오지 않거나 집안이 혼사를 치를 여력이 없다면 애써 참아도 무진 애가 탔겠지요. 남들 다 할 때 하는 걸 못해서 어쩐지 뒤처지고 못난 것 같은 초조함과 자괴감으로 말입니다.

섣달그믐 저녁, 개밥 주러 나온 나이 찬 처녀는 개밥그릇에 잔반 퍼주며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나이나 먹는 심란함에 울컥하겠지요. “그래 나 한 살 더 먹는다. 너도 밥 처먹어라!” 이렇게 대충 마구 콱콱 퍼주던 모습에서 만들어진 속담이 ‘섣달그믐날 개밥 퍼주듯’입니다. 늘 그렇듯 격렬한 행동은 격심한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아주 오래된 노래들이 있습니다.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히스테리가 이만저만~’ ‘개구리 노총각이 살았는데, 아하! 사십이 다 되도록 장가를 못 가~’ 요새 노총각, 노처녀라는 말은 잘 쓰지 않습니다. 무례한 표현이기도 하고 예전 기준으로 치면 지금 미혼자들 상당수가 거기에 해당되니까요.

오랜만의 인사치레마냥 무심히 던지던 ‘왜’ ‘아직’이란 말. 이번 설, 아랫사람들이 정말 듣고 싶던 말은 시쳇말 같은 빈 관심이 아니라 어쩌면, 윗사람다운 말없이 든든한 나잇값, 그 모습 아닐까요?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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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4등급을 받은 학생이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예외적인 경우겠으나 절대평가인 영어에서 4등급을 받은 학생이 서울대에 들어간다는 사실은 국민들이 수용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한국 사회 구성원 대부분은 노력에 상응한 결과라는 가치관으로 치열한 한국 입시를 수용한다. 이런 점에서 세계화 시대 필수 조건인 영어구사력이 입시 기여도에서 배제되는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교육부 장관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를 두고 ‘오히려 영어를 못해도 서울대를 갈 수 있으니 건설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럼에도 ‘영어 4등급도 서울대 가능’이라는 독특한 사례는 몇 가지 이유로 현행 입시 제도를 더욱 불신하는 분위기를 확산시킬 것이다.

첫째, 절대평가 대상으로 영어의 적절성 문제이다. 지난 세기말 불어닥친 세계화는 이미 일상용어가 되었다. 특히 과거 수동적 교류에서 ‘한류’의 활성화로 세계화를 주도하는 국가로 나아가는 지금 영어 절대평가는 시행 효과에서 회의적 반응을 얻을 수밖에 없다. 충분한 영어실력 없이 대학에 입학한다면 원서강독이나 영어강의 수강, 영어토론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한국 고교생의 입시 위주 학습을 전제하면 양질의 수업으로 절대평가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는 어렵다. 이미 고교생 다수가 내신 성적 외에는 영어를 신경 쓰지 않는다.

가뜩이나 제2외국어 역시 소외와 파행을 통해 ‘아랍어’로 통일되는 기현상을 빚는 현실에서 영어마저 탐구 과목 하나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다면 인재육성의 사회적 취지와는 동떨어진 결과를 낳을 것이다.

둘째, 계층 간 영어 실력 격차라는 불공정성의 문제이다. 대학 입시에서 영어가 소외되면 영어구사력 차이는 개인의 환경이라는 외적 변수로 결정된다. 어린 시절 영어 사용국가에 거주했거나, 양질의 영어 사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상위 계층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충분한 영어 사용능력을 갖춰 공교육 과정을 실용적으로 이수한 평범한 다수와 현격한 차이를 낼 것이다. 평등이 약자에게 불리한 역설이 현실인 셈이다.

셋째, 영어 절대평가로 인한 부정적 파급효과이다. 2018년도 입시에서 수험생들은 국어와 탐구 과목 난도 상승으로 인해 낭패를 겪었다. 영어 절대평가의 보상이 다른 과목 난도 상승으로 철저히 상쇄된 셈이다. 그 결과 이번 겨울방학 대치동에는 ‘국어 1타 강사 수업 2번 듣기’가 유행이며 문과 학생들은 사회 탐구에, 이과 학생들은 과학 탐구에 공을 들인다. 당연히 수학을 위해 영어가 빠진 시간 일부를 몰아넣어 공부한다. 안타깝지만 영어 변별력 약화와 고교 수업 정상화, 혹은 학생의 학습량 감소, 대학 서열화 완화는 아무 관련이 없다. 짓누른 풍선처럼 다른 과목으로 부풀어 오를 뿐이다.

영어 절대평가라는 제도 하나만 봐도 시행 취지의 정당성은 약하고 기대효과는 낮다. 실망은 대한민국 교육 제도가 마주한 벽이다. 한국의 교육 제도는 이전 제도가 지닌 부작용만 본 뒤 이를 해결하는 데 급급했으며, 국민들은 소멸한 제도가 남긴 불만이 여전한 상황에서 새로운 불만까지 맞이해 불만족의 총량은 증가했다. 이런 악순환을 막기 위해 제도 변화의 취지를 면밀히 검토하고 예상 가능한 부정적인 결과를 철저히 감안한 뒤 단계적으로 시도하는 교육부의 주도면밀함이 절실하다.

<정주현 | 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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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이탈리아 폼페이에서 발굴, 복원된 검투사 경기장을 봤다. 영화 &lt;쿼바디스&gt;나 &lt;글래디에이터&gt;에서 본 거대한 원형 경기장과는 달리, 지름 10m 정도밖에 안 되는 반원형 광장 주위에 관중석을 둘러 세운 형태였다. 광장과 바로 맞닿은 곳에는 귀족들을 위해 특별히 길게 만든 돌 침상(寢牀)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당대 귀족들은 이 자리에 모로 누워 음식을 먹으면서 경기를 관람했다. 먹다가 배가 부르면 새의 깃털을 목구멍에 쑤셔 넣어 토해내고 다시 먹으면서, 사람끼리 서로 칼로 베고, 창으로 찌르며, 도끼로 찍고, 철퇴로 치다가 피 흘리며 죽어가는 장면을 ‘관람’했을 또 다른 사람들을 상상하니, 절로 몸에 한기가 들었다.

그런데 인간 행위에 관한 현대의 분류법을 적용하면 저런 행위는 어디에 속할까? 살인과 살인방조? 아니면 스포츠와 스포츠 관람?

 

1903년 정월 대보름 무렵, 서울 만리재에서 예년과 다름없이 돌싸움이 벌어졌다. 남대문 동대문 서대문 밖 사람들이 한패가 되고, 애오개 마포 용산 사람들이 또 한패가 되어 맞붙었는데, 석전꾼(石戰軍)만 9000여 명, 구경꾼은 2만여 명에 달했다. 구경꾼 중에는 구미인들도 섞여 있었다. 피와 살이 튀는 격렬한 경기를 보다가 저도 모르게 흥분했던지, 운산금광의 미국인 직원 클레어 헤스(Clare W. Hess)는 가까이에 떨어진 돌을 집어 경기장 안으로 힘껏 던졌다. 석전꾼 한 명이 그 돌에 맞아 즉사했다. 옆에 있던 구미인들은 한국인들에게 보복당할까 봐 새파랗게 질렸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매년 서울에서만 돌싸움으로 수십 명에서 수백 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했기에, 왕조 정부도 여러 차례 금령(禁令)을 발했다. 그러나 이 세시풍속에는 비상시를 대비한 군사훈련의 성격이 강했고 참가자도 너무 많았기 때문에, 단속 효과는 없었다.

서울에서 돌싸움이 사라진 것은 일본 헌병이 치안권을 장악한 1908년 이후였지만, 1920년대 중반까지도 뛰어난 선수와 흥행사 등 경기 관계자들의 이름이 인구에 회자되었다. 이 돌싸움은 또 어떤 인간 행위로 분류해야 할까?

구기와 체조 등 일부 종목을 제외하면, 스포츠는 본래 모의전투다. 근대 스포츠가 고대와 중세의 스포츠와 다른 점은 살상력을 제거하거나 극소화했다는 점뿐이다. 인류는 동종(同種)끼리 서로 살육하는 습성을 가진 유일한 동물이다. 모의전투인 스포츠는 인간으로 하여금 개체의 전투력을 향상시키면서도 살육 욕구를 다른 방향으로 분출할 수 있도록 했다. 사람들에게 전쟁 중의 광기(狂氣)와 유사한 느낌을 갖게 하면서도, 아무것도 파괴하거나 살상하지 않는 것이 스포츠의 힘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올림픽을 창설하여 1000여 년간 지속했던 것도, 유럽의 명사들이 프랑스인 쿠베르탱의 제창에 호응하여 올림픽 부활을 선언하고 1896년부터 근대 올림픽을 개최한 것도, 스포츠의 이런 힘을 알았기 때문이다.

올림픽은 개인 단위, 또는 분대(팀) 단위로 벌어지던 모의전투를 국가 간의 모의 전쟁으로 확대한 것이다. 스포츠가 선수들에게 요구한 덕목은 중세 유럽의 기사도와 유사한 스포츠맨십이었다. 규칙을 지키며 공정하게 경쟁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것. 전력을 다해 싸우되 상대를 해치지 않는 것 등. 그런데 전투는 군사(軍事)지만 전쟁은 정치다. 올림픽은 스포츠맨십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그보다 훨씬 더 확장된 미덕을 요구했다. 올림픽 창설자들은 각국이 서로 경쟁하나 전쟁하지 않는 세계, 전쟁과 살육의 욕구를 건강하게 해소하는 세계를 꿈꿨다. 올림픽은 살육과 파괴가 없는 모의 세계대전이며, 그래서 올림픽 정신의 요체는 첫째도 평화, 둘째도 평화, 셋째도 평화다.

한국인들이 올림픽에 관한 정보를 언제 처음 입수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1909년 개성시내 각 학교 연합운동회장에 만국기가 걸렸는데, 스포츠를 세계와 연관 지은 것으로 보아 이때쯤에는 올림픽에 대해 알았을 것이다. 1913년에는 일본, 필리핀, 대만, 태국, 말레이시아, 홍콩을 회원국으로 하여 제1회 극동올림픽이 개최되었다. 한국인이 극동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것은 1921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제5회 대회로서, 일본 선수단이 아니라 재(在) 상하이 조선인 체육협회 소속으로 출전했다. 한국인 선수가 올림픽 무대를 처음 밟은 것은 1932년 LA 올림픽이며,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손기정이 마라톤 금메달을 획득했다. 정부 수립 전에 열린 1948년 런던 올림픽에는 KOREA라는 국호로 참가했다.

올림픽은 세계 평화에 대한 지향과는 별도로 민족주의를 고취하고 국민통합을 강화하는 힘으로도 작용했다. 올림픽은 스포츠를 ‘국민 만들기’라는 정치행위의 핵심 요소로 만들었고, ‘체력은 국력’이라는 구호 아래 국가가 국민을 훈육할 수 있도록 했다. 초등학교 운동회장에까지 걸린 만국기는 스포츠와 국가와 세계 사이의 관계를 직관적으로 가르쳤다. 올림픽 기간 중에는 세계 각국 사람들이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었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공동 입장과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결성을 두고 ‘정치적 의도에 따라 올림픽 정신을 훼손한 처사’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스포츠맨십과 올림픽 정신을 혼동한 탓이다. 남북 간의 적대감을 줄이는 것, 전쟁 위험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것, 무엇보다도 세계를 향해 ‘우리는 본래 떨어질 수 없는 하나’라고 선언하는 것이야말로, 올림픽 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일이다. IOC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이번 평창 올림픽을 한민족 화합의 무대이자 전쟁 위험을 줄이는 계기로 삼기 위해 애쓰는 중에도, 정작 한국에서는 평양 올림픽이니 뭐니 하며 남북 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적대감을 고취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는다.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짓이며, 부끄럽고 한심한 짓이다.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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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경북 김천 수도산에 반달가슴곰 한 마리가 나타나 큰 화제를 모았다. 지리산에서 진행되고 있던 멸종위기 야생생물 복원사업으로 탄생한 반달가슴곰이 서식지를 벗어나 직선거리로만 무려 80㎞가 떨어진 경북 김천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이 곰은 2015년 2월에 출생하고, 그해 가을 지리산에 방사된 세 살짜리 수컷으로, 원거리 이동에도 불구하고 포획 당시 체중 56㎏의 건강한 상태였다.

이 곰은 수도산에서 발견된 지 한 달 후인 지난해 7월, 또다시 김천 수도산으로 이동했다가 포획돼 지리산에 재방사됐다. 이러한 현상은 환경부가 2004년부터 시작한 반달가슴곰 복원사업 등 각종 멸종위기 야생생물 복원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복원된 반달가슴곰이 먹이활동은 물론 자연 번식, 이동권 확보까지 생물종의 생존에 필요한 적응력을 갖춘 것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애기뿔소똥구리 _ 사진출처 : 경향신문 DB아카이브

 

2014년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지구의 생물종 멸종이 인류가 지구에 나타나기 이전보다 1000배가량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각종 개발과 경제 성장 과정에서 개체수가 현저하게 감소한 야생 동식물이 크게 늘어났다. 국내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된 종수는 1989년 92종에서 2012년 246종, 2017년 12월 267종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우리에게 친근하게 알려진 호랑이, 두루미, 장수하늘소, 미호종개, 광릉요강꽃 등 멸종위기 야생생물들이 안타깝게도 서서히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환경부는 그동안 우리나라 생물다양성을 높이고 생태계 건전성을 되살리기 위한 방안으로 이들 멸종위기 야생생물에 대한 증식·복원사업에 주력해 왔다. 지리산 반달가슴곰, 소백산 여우, 월악산 산양, 창원 따오기 복원사업이 대표적인 예이다. 지리산 반달가슴곰은 현재 47마리가 살고 있어 지속적으로 생존 가능한 최소 개체수인 50마리를 조만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또 월악산 산양도 77마리가 살고 있어 100마리 목표를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생물을 복원하는 작업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원래의 종을 확보하여야 하고, 이를 증식시켜야 하며, 이후에는 원래의 서식지를 되살리는 일련의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때마침 경북 영양군에 ‘국립멸종위기종복원센터’가 올 하반기 개관되어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된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복원센터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멸종위기 야생생물 증식·복원 연구를 통해 사라져 가는 한반도의 고유생물들을 체계적으로 보전하고 되살려내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다. 아울러 핵심종 확보, 학계나 민간 연구소 등 기존 멸종위기 야생생물 복원기관과의 협업에 이르기까지 종 복원과 관련된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도 하게 된다.

국립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우리에게 친숙하였지만 지금은 사라져 가는 소똥구리, 사향노루, 스라소니, 두루미 등 총 43종의 멸종위기 야생생물을 대상으로 원래의 종 확보 및 종 복원 사업을 우선 추진하게 된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사라져 가던 우리나라 고유의 야생생물이 우리 곁으로 되돌아와 우리 국토의 생물다양성을 증진시키고, 우리 후손이 살아가는 환경이 더욱 풍성하고 자연과 잘 어우러지길 기대해 본다.

<김은경 | 환경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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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하기 힘들다고 우는 소리를 낼 때면 요즘 애들은 엄살이 심하다는 비아냥을 듣곤 했다. 그렇다 해도 ‘투정부리지 말라’ ‘잘하면 어련히 알아서 뽑을 텐데 무얼 불평하느냐’ ‘좀 더 노력해보고 그런 소리 하라’는 등 듣기는 싫어도 십분 이해할 수 있는 얘기들이었다. 공정한 절차와 시스템이 존재하는 한 개인의 노력만큼 결과가 따라줄 테고 그로 인한 결과의 책임은 온전히 개인의 몫인 것 또한 분명했다. 청년실업률 9.9%, 평균 취업 준비기간 1년, 첫 직장 재직기간 15개월이라는 지표가 우리네 삶의 고단함을 증명할 때에도 사회를 탓할 수는 없었다. 그러한 사회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무능한 청년이란 딱지만큼은 떼고 싶었다. 적어도 그 과정이 공정할 것이라는 믿음이 깨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공공기관 1190곳 중 946곳이 채용 과정에서 부당한 권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감사원을 통해 드러났다. 80%에 달하는 수치다. 강원랜드의 합격자 전원이 부정 청탁을 통해 입사했고, 한식진흥원에서는 서류조차 제출하지 않은 이를 특별 채용하기도 했다. 4500여명이 지원한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는 2299등인 지원자가 36등으로 합격했다. 심지어 가스안전공사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합격 통보를 하기도 했다. 금융권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하나은행에서는 소위 말하는 SKY대학 출신을 뽑기 위해 면접 점수를 조작하고 합격권에 있던 7명의 응시자들을 떨어뜨렸다. 국민은행은 추천인과 요청 사항을 정리한 VIP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고 있었다.

그러니 청년은 더 이상 노력할 수 없다. 기회는 불평등했고 과정은 불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지 않았다. 청년에게 부족한 것은 노력이 아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초월 스펙이 부족했기에 취업할 수 없었을 뿐이다. 초월 스펙은 SKY대학 출신이었고, 생물학적 남성이었고, 금수저였다. 이렇게 학벌주의와 성차별, 지연과 혈연이라는 연고주의의 민낯이 가장 솔직하고도 추악하게 드러났을 때에도 청년은 스스로를 탓하고 검열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일자리 하나 물어다줄 인맥 하나 없는 부모님을 만난 내가 잘못이며 잠도 덜 자고 밥도 덜 먹어가며 공부해서 SKY대학에 진학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내 노력의 부족 때문이었다. 취업 실패의 원인은 갈수록 개인화되고 내밀해진다. 이것이 채용비리 사건이 더 무섭게 다가오는 이유다. 본인의 능력 부족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물증이 없다면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들은 자신의 무능을 반복적으로 탓하고 학습하기에 이른다.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엄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기본이나, 불합리하게 떨어진 서류 지원자와 점수 조작으로 인해 합격권에서 굴러 떨어진 응시자를 구제할 수 없다면 이 피해를 완전히 복구할 수 없다.

일자리위원회가 백날 들여다보는 청년실업률에 청년고용의 해답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들이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은 이미 사회에 만연해 있는 학벌주의와 성차별, 연고주의에 따른 불법 채용이고 열악한 업무환경을 방치하는 조직의 무능이다. 채용비리를 근절하지 않고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은 허상에 불과하다. 정부는 다시 응답하라.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 그리고 결과의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고. 오로지 ‘노력’ 하나로 적자생존하는 청년들의 공정을 향한 갈증을 해소하겠다고 말이다.

<민선영 | 청년참여연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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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청년, 취업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9일 개회식과 함께 17일간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대회에는 사상 최대 규모인 92개국 3000명의 선수가 참가한다. 이번 대회는 특히 올림픽의 지고지순한 가치인 ‘평화와 화해’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 정세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로 전쟁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고, 미국 등 일부 국가의 올림픽 참가마저 불투명하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그러나 북한의 참가가 결정되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져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구성되는 등 단박에 ‘올림픽 평화무드’가 조성됐다. 전쟁으로 인한 공멸을 피하려고 고심 끝에 4년 간격의 올림픽 제전을 마련한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정신을 구현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두 개의 대표단이 한반도기 아래 함께 행진하고 단일팀으로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스포츠가 가르쳐주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올림픽 한번 연다고 금방 평화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기간만이라도 갈등과 반목을 잠시 멈추고 화합의 실마리를 모색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가치있는 일이다. 당초 우려와 달리 “남북 선수들의 케미스트리가 좋고 소통도 잘되어 마치 한가족 같다”고 만족감을 드러낸 아이스하키 단일팀 세라 머리 감독의 평가가 가슴에 와닿는다. 먼저 소통하고 신뢰가 쌓이면 전쟁도 막을 수 있다. 이제 어렵사리 마련된 평화와 화합의 토대에서 그동안 흘려온 땀의 결과를 즐길 때가 됐다.

국내팬들은 단일팀이 1승 이상의 성적과, 한국 선수단의 금 8개 획득과 종합 4위 달성 등을 응원할 것이다. ‘보다 빨리, 보다 높이, 보다 강하게’가 올림픽 표어인 만큼 최고를 갈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더 높은 가치는 열정과 노력 그 자체이다. 이번 대회에는 난민 출신인 섀넌 아베다(에리트레아)와 벤스니크 소콜리(코소보·이상 알파인스키), 아프리카판 ‘쿨러링’인 나이지리아 봅슬레이팀, 역시 겨울이 없는 싱가포르(쇼트트랙)와 말레이시아(알파인스키·피겨) 선수들이 나온다. 이 밖에 45세의 빙상선수(클라우디아 페히슈타인·독일)도, 청각장애 봅슬레이 선수(김동현) 등도 출전한다. 팬들은 이들의 당찬 도전에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것이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약물 복용 전력이 드러난 러시아 선수들이 대거 출전정지 처분을 받았다. 평창은 덕분에 약물에 의존하지 않는 선수들의 첫 번째 대회로 올림픽 역사에 남을 수 있다. ‘가장 깨끗한 선수들의 가장 깨끗한 경쟁’이 펼쳐지기를 성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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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만 쓰이는 영어, 즉 콩글리시의 대표선수가 파이팅(fighting)이다. 핸드폰(cell phone)과 더불어 이제는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까지 이 말을 따라 쓴다. 영어의 동사 ‘fight(싸우다)’의 명사형인 이 말에는 응원이나 격려한다는 의미가 없다. 한국인들이 쓰는 대로 ‘최선을 다하자’는 뜻에 해당하는 영어 표현은 ‘고(Go·가자!)’다. ‘한국, 파이팅’은 ‘Korea, Fighting’이 아니라 ‘Go, Korea’라고 해야 맞다.

표준국어대사전도 ‘파이팅’을 등재하면서 ‘운동 경기에서 선수들끼리 잘 싸우자는 뜻으로 외치는 소리. 또는 응원하는 사람이 선수에게 잘 싸우라는 뜻으로 외치는 소리’라고 소개한 뒤 ‘힘내자로 순화한다’고 부연하고 있다. 싸운다는 뜻만 들어 있는 만큼 외국인, 특히 영어를 쓰는 상대팀에 적대감을 심어준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게다가 결혼식장은 물론 찬송가를 부를 때도 파이팅을 외친다.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전의를 불태우는 한국은 ‘전사의 나라’인가? 국립국어원이 ‘아자’라고 했다 다시 ‘힘내자’로 순화했지만 한국인들은 여전히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가 이번 대회의 구호를 ‘아리아리’로 정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5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등에게 “새롭게 미래를 만든다는 뜻을 담고 있는 순우리말”이라고 소개한 뒤 아리아리를 제창했다. 아리아리는 평생 우리 민중의 정서를 담은 말을 찾아내 복원하고 있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수십년 동안 써온 말이다. 백 소장은 ‘길이 없으면 찾아가고, 그래도 길이 없을 것이면 길을 내자’는 말로 아리아리의 뜻을 푼다. 백 소장은 모임 끝자락에 “쳐라쳐라 이어차~” “질라라비 훨~훨~”과 함께 아리아리를 불림(구호)으로 외치는데, 그때마다 좌중의 흥이 파도처럼 일어난다. 아리랑의 고장 강원도 정선의 작은영화관 이름에도 ‘아리아리’가 붙어 있다. 이만하면 ‘파이팅’인지 ‘화이팅’인지도 헷갈리는 외래어를 대체할 만하지 않은가. 

30년 만에 한반도에서 다시 한번 인류의 제전이 펼쳐진다. 남북이 한반도 깃발 아래에서 함께 아리랑을 부르고 아리아리를 목청껏 외치는 모습이 벌써부터 그려진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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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 참으로 추웠다. 살을 에는 추위가 이런 거구나 싶을 정도로. 올겨울 한파는 바로 기후변화 탓이다. 북극이 따뜻해지면서 제트기류가 약화된 탓에 북극의 찬 공기가 한국이 속한 중위도 지역으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의 역설이다. 한파가 말해주듯 기후변화는 먼 미래의 일, 북극곰이 사는 저기 먼 곳의 일만이 아니라, 현재 여기서 일어나는 우리 문제다. 최근 들어 부상한 심각한 환경문제는 미세먼지다. 일상에서 직접 체감하는 미세먼지는 훨씬 우려스러운 문제로 다가온다.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이 두 문제의 발생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건 바로 화석연료다. 기후변화는 화석연료를 태울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가 주된 원인물질이고 미세먼지도 화력발전이나 차량 운행에서 상당 부분 기인하기 때문이다. 특히 석탄화력발전과 경유 연소가 주요 원인이다. 두 문제 모두 절약과 효율 향상으로 에너지 소비를 줄이면서 재생가능에너지 이용을 늘려나가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렵다.

전기나 도시가스, 자동차 연료 형태로 에너지를 직접 소비하기도 하지만 모든 물건이나 먹거리를 만들고 수송할 때, 또 소비하고 남은 쓰레기를 처리할 때도 에너지가 필요하니 우리 삶은 에너지 소비와 떼려야 뗄 수가 없다. 다른 환경문제와 달리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문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부 산업시설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 전체가 발생원이란 점도 닮았다. 해결을 위해서는 에너지 소비를 포함해서 소비 규모를 줄이며 스스로 재생가능에너지 생산을 늘려야만 한다.

무엇보다 정부 정책이 중요하다. 직접 규제도 필요하고, 사회·환경비용을 반영한 세금 부과와 시간·계절에 따라 차등을 두는 계시별 요금제 도입 등 전기요금체계 개편도 필요하며, 휘발유와 경유의 상대가격 조정을 위한 유류세 개편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개개인의 실천도 중요하다. 효율 높은 제품을 사용해서 서비스 질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도 있지만 작은 관심과 실천만으로 바로 줄일 수 있는 에너지 소비도 적지 않다.

생활 속 사례, 하나: 요즘은 가는 곳마다 화장실에 비데용 변기가 설치되어 있기 일쑤다. 대개 변좌도 온수도 온도가 ‘고’로 맞춰져 있다. 우리나라의 모든 비데용 변기 플러그를 사용하지 않을 때 뽑든지 절전형 스위치를 연결해서 꺼두거나, 적어도 온도를 ‘저’로 낮춘다면? 아낄 수 있는 전력이 적지 않을 것이다. 둘: 나는 직업상 회의 참석이 많다. 언제부턴가 회의와 세미나, 토론회 등에 가면 생수병에 항상 종이컵을 얹어서 내놓는다. 그렇게 해야 예의 있는 차림인 것처럼. 종이컵을 쓰더라도 두고 온 생수병에 남은 물은 모두 버리는데도. 종이컵만 줄여도 생활폐기물 발생이 확 줄 것이다. 셋: 올겨울 한파에도 불구하고, 실내 온도가 높아 여기저기서 땀을 흘릴 지경이었다. 내복을 입은 이에겐 불편을 넘어 불쾌할 정도로.

넷: 심지어 전문가들도 실천에 인색한 경우들이 있다. 기후변화나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은 대중교통보다 자가용 운전을 선호하고 연비 낮은 큰 차나 경유차를 모는 전문가도 있으니까. 대중교통은 누구더러 타란 건지.

어디 이뿐이랴? 지면상 다 나열하기 힘들다. 아마 독자 여러분들도 덧붙일 만한 사례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해결을 위한 비용은 지불할 생각도 없이 전기요금 정상화나 경유세 인상에 반대한다면, 낭비가 되든 말든 그냥 예전 그대로 편하고 편리하게 살기만 바란다면, 이 문제들은 누가 어떻게 풀어야 할까? 제도와 정책 모두 제대로 바뀌어야 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이 바뀌지 않으면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문제 그 어느 것도 해결하기 어렵지 않을까?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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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사피엔스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탈출한 이후에도 싸움이 그친 적은 한 번도 없다. 인류의 먼 조상으로 동물에 가까웠던 구 인류뿐 아니라 현생 인류도 폭력성을 버리지 못했다. 그들도 관용을 몰랐다.

인간은 왜 싸우는가. 토머스 홉스는 인간의 자연상태를 ‘만인 대 만인의 투쟁’으로 보았다. 따라서 강제적인 수단으로 국가가 내부 평화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홉스는 호모사피엔스의 본성이 동물과 다르지 않다고 본 것이다. 반면 장 자크 루소는 인간 자연상태가 평화롭고 조화로웠으나 점차 인구가 성장하고 사유재산, 계급분화가 나타나면서 전쟁과 각종 병폐가 출현했다고 했다. 따라서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그러면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이 둘은 시계추처럼 시대에 따라 한쪽이 설득력을 얻었다가 다시 잃기를 반복하고 있다.

최근 현존하는 수렵채집인이나 과거 서구인이 관찰한 수렵채집인들에 대한 연구, 선사시대 수렵채집인들의 생활에 대한 발견, 그리고 진화론을 바탕으로 고찰한 한 연구는 인간의 자연상태를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결론내렸다. 인간의 자연상태가 루소가 말했던 평화로운 상태가 아니라 치열한 생존경쟁의 싸움터였다는 것이다. 아자 가트는 &lt;문명과 전쟁&gt;에서 “인간의 자연상태는 동물사회와 다를 것이 없는 투쟁이 지배했으며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인간의 노력에 따라 달렸다”고 결론지었다. 인류에게 평화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폭력적인 본성을 억제한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리스에서 도시국가 간 전쟁에 지친 이들은 평화를 찾을 방안을 모색했다. 올림픽은 안전을 희구하는 그리스인들이 만들어낸 발명품이다.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반도 북서쪽에 위치한 도시국가 엘리스의 왕 이피토스는 전쟁과 전염병까지 액운이 휩쓸자 신에게서 신탁을 받았다. ‘전쟁을 일으키지 말고 해마다 제전을 열어 우정을 두텁게 하라’는 신탁을 받아든 그는 그동안 중단되었던 경기를 다시 열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주변국과 조약을 맺었다. 올림피아는 성지이며 여기에 무력으로 발을 들여놓는 자는 신성을 모독하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올림피아 휴전기간 중에 엘리스의 영토에서는 어느 누구도 몸에 무기를 지니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경기가 열리기 몇 달 전부터 그리스 본토와 해외지역의 모든 도시국가에 전령이 파견되었다. 신성한 휴전기간이 선포되었고 모든 그리스 시민들은 올림피아에 초대되었다. 이 기간 동안 자유로운 여행이 보장됐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올림피아 제전뿐만 아니라 유사한 제전들이 그리스 전역에서 열렸다. 델피의 파티아 제전, 아르골리스의 네미아 제전, 코린트의 이스트미아 제전 등이 4년 또는 2년 주기로 열렸다. 물론 제전이 열리는 시기는 휴전기간이었다.

올림피아 제전은 도시국가 간 맺은 동맹과 조약을 다른 도시국가에 공표하는 기회로 이용되기도 했다. 아테네와 아르고스 등은 올림피아 축제를 이용해 동맹조약을 기념하는 청동기둥을 세우기도 했다. 또한 휴전기간에 다른 도시국가를 공격했을 경우에는 올림피아 법에 따른 처벌이 뒤따랐다. 벌금은 물론 올림피아 제전에 참여도 불허했다. 그러나 평화를 위한 노력의 산물인 올림피아 제전의 전통은 오랫동안 끊어졌다.

수천 년간 사람들은 타자를 잠재적인 적으로 여기고 자신을 공격해 올 것에 대비하는 방어기제를 발달시켜왔다. 상대방이 적의가 있든 없든 두려움, 의심, 불안을 지우지 못했다. 때론 그 의심은 선제공격으로 이어졌다. 안보딜레마라는 악순환의 늪으로 빠져든 것이다. 전쟁은 자기충족적인 예언이 되고 전쟁의 공포가 전쟁을 낳는 파국의 연속이었다. 19세기 말 올림픽 부활의 논의가 있었고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 다시 살아났다. 올림픽은 세계인들이 함께하는 축제이며 평화의 제전이다. 하지만 그동안 두 번의 세계대전이 있었고 분쟁은 끊이지 않는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9일 개막한다. 남한과 북한, 미국 일본과 중국 러시아, 진보와 보수 간 셈법이 다르다. 북한의 참가를 두고 평화를 위한 한 걸음이라는 평가와 ‘위장 평화’와 ‘시간 벌기’라는 시선이 교차한다.

그리스인들이 올림피아 제전으로 평화를 찾았다고 하는 것은 신화이자 미신이다. 올림피아 제전이 전쟁을 막지 못했다. 그들은 평화조약을 맺고 파기하고 또 맺었다. 그들은 전쟁의 와중에 올림피아 제전을 열면서 평화를 모색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그들의 평화를 향한 노력이다. 싸움 유전자를 가진 호모사피엔스에게 평화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평창 올림픽이 평화올림픽이 되길 기원한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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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형 교장공모제의 확대 방침이 발표된 이후로 곳곳에서 찬반 의견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그동안 내부형 교장공모제가 극히 제한적으로 시행되어서인지, 그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막연한 주장을 펼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논란에 작은 도움이 되고자 내부형 공모교장과 실제로 근무했던 경험을 나누어보려고 한다.

우리 학교는 2014년 내부형 교장공모제 학교로 지정되었다. 내부형 교장공모제는 교장자격증이 없는 평교사가 곧바로 교장이 되는 제도이다.

얼핏 생각하면 능력도 없고 경험도 없는 교사가 교장이 되어 학교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는 상황을 상상할 수도 있지만, 사실 교장공모의 절차가 그렇게 허술하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먼저 교장공모제 학교로 지정되려면 교사와 학부모가 모두 높은 비율로 찬성해야 한다. 교육경력 15년이 넘으면 교장자격증 소지자와 미소지자 모두 후보자가 될 수 있고, 선정 과정에서 교사와 학부모들에게 교육철학과 가치관, 학교 운영 계획 등을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후보자별 점수가 교육청에 보고되면 최종 검증을 거쳐 비로소 교장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교사와 학부모가 학교 운영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다. 우리 학교에 적합한 교장의 역할이 무엇인지 스스로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교장이 학교를 알아서 잘 운영하기를 바라면서 따르기만 했다면, 교장공모제에서는 학교구성원이 심리적으로 소외되지 않기 때문에 학교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주인의식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반면에 기존 승진제도에서는 힘든 행정업무에 대한 보상이나 단순한 변별력을 위한 가산점 등 교육의 본질과 상관없는 부분에서 많은 점수를 따야 교장이 될 수 있다. 그렇게 교장이 된 후에는 모르는 학교에 무작위로 발령받게 되고, 학교구성원들은 생각과 능력을 전혀 알 수 없는 교장과 덜컥 만나게 된다. 그에 비하면, 교장공모제는 학교구성원들이 교장의 능력을 훨씬 철저하게 직접 검증할 수 있는 제도이다.

또한 교장공모제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평교사가 교장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우리 학교에서는 이전까지 함께 근무하던 동료 교사가 갑자기 교장이 되는 일을 겪었다. 물론 처음엔 약간의 혼란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학교구성원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고 학교 운영의 동반자로 존중하는 민주적인 교장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학교의 책임자로서 교장이 가지는 법적 권한은 당연히 보장받아야 한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그것을 넘어서 학교구성원을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독선적인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이러한 불필요한 권위의식을 걷어내면, 교장의 진정한 권위는 교장자격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성품과 능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부형 공모교장과 함께한 지난 4년 동안 우리 학교의 문화는 민주성과 공동체성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꾸준히 나아갔다. 물론 교장공모제에도 보완할 점이 있을 것이다. 공모교장은 모두 훌륭하고 기존의 교장은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여러 학교에 교장공모제가 시행되면, 학교 현장에 민주주의가 확대되어 교육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 환경이 정착될 것으로 확신한다.

<천지용 남양주 월문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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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사관’은 보고를 모두 마쳤다. 그리고 카메라를 통해 탁자 주변에 앉아 있는 네 사람의 얼굴 표정을 분석해 보았다. 평균적인 감정 상태는 안도 60퍼센트, 기쁨 56퍼센트, 슬픔 5퍼센트, 무관심 20퍼센트였다. 네 사람은 사관이 정리한 결과를 두고 여섯 시간에 걸쳐 토의한 다음 10퍼센트가량 더 안도하고, 기뻐하고 있었다.

넷 중 세 사람이 회의실을 나갔다. 인공지능 모더레이터인 이수현만이 회의실에 남았다. 그는 ‘사관’의 눈 역할을 하고 있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사관은 이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과 뉴스와 정보를 모으고, 분류하고, 변별성 있는 항목으로 정리해 빅데이터에서 스몰 뷰를 생성하는 게 사관의 임무였다. 하지만 사관은 사람들이 스몰 뷰를 받아 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아직 추론할 수 없었다. 인공지능 모더레이터가 바로 인공지능 재학습을 책임지는 직책이었다. 이수현이 사관에게 말했다. “이제 질문해도 돼.” 사관은 질문을 문장으로 정리한 다음 음성 파일로 만들어 내보냈다. “결과 보고를 듣고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당연히 기뻤지. 네가 오늘 보고한 건 지난 이백년 동안 인류에게 중요했던 여러 수치를 종합하고 정리한 결과야. 기후 변화, 대기 오염, 자원 활용 분포부터 시작해서 인재 발생률, 범죄율뿐 아니라 네트워크상에서 생산되고 쓰이는 언어의 분석에 이르기까지… 한마디로 인류 이백년사를 데이터로 정리한 거야.” “단순히 데이터화했다는 걸로 기쁠 리는 없잖습니까? 기뻤던 이유는 뭔가요?”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야. 인간의 욕망에 대해서는 지난번에 학습했지? 욕망은 장기적인 안목과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다고 했잖아? 그 결과 어리석은 행동도 불사하는 게 사람이야. 폐암 발병률을 높인다는 통계치를 발표해도 담배를 끊지 않는 게 사람이고, 도박에서 큰 돈을 딸 확률이 얼마나 낮은지 수없이 알려줘도 재산을 탕진하는 게 사람이지.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인류 전체가 눈을 가리고 절벽으로 달려간다면 어떻게 될까? 비록 말을 하진 않아도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엔 그런 공포가 늘 남아 있었어.” “공포와 희망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아직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수현이 사관의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니 지금까지 가르친 보람이 있네. 그와 동시에 네가 아직 데이터와 세상을 제대로 연결짓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너와 내가 다루는 데이터는 어느 한 순간만 모아서는 의미가 없어. 최소한 백년 단위로 데이터를 모아서 비교하는 것도 그 때문이야. 인간은 생물학적인 한계 때문에 학습하고 변화하기 위해서 긴 시간이 필요해. 수억명이 변화하려면 더욱 긴 시간이 필요하고. 물론 변화하지 못할 수도 있지.” “이제 희망을 품은 이유를 말씀해주시죠.” “일곱 가지 수치가 안정적으로 변했어.

오존층 회복률, 기후 안정도, 범죄 감소율, 대기 오염 감소율, 증오 어휘 감소율, 복지 분배율, 자살 감소율. 물론 그 밖에도 여러 수치들이 있지만, 이 결과를 발표하면 인간이 눈가리개를 풀고 제 힘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모두 깨닫게 될 거야.” “논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군요. 지금 하신 말씀에 따르면 그 사실을 깨닫기 전부터 노력을 해왔다는 얘기잖습니까?” 이수현은 들릴 듯 말 듯 한숨을 쉬고 말했다.

“세상은 욕망과 손익이 뒤엉킨 복잡계라 쉽게 변하지 않거든. 그런데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고 싶다는 사람들의 소망이 그렇게 복잡한 시스템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꿨잖아. 그게 바로 희망을 품은 이유야.” 사관은 아직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수현 모더레이터는 인간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으면 늘 복잡계라는 용어를 끄집어냈다. 욕망, 소망, 희망이란 단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 이수현의 표정엔 기쁨, 안도, 흥분이라는 감정이 각각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관은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고, 이수현이 그런 감정을 만끽하도록 내버려 두면서 그와 나눈 대화를 학습 데이터베이스의 ‘인간’ 항목에 추가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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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상공의 오존층에는 커다란 구멍이 있다. 인간이 만들어냈던 염화불화탄소가 이 구멍을 만드는 주요 촉매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난 뒤, 각국은 염화불화탄소의 생성과 사용을 규제한다는 몬트리올 의정서를 체결했다. 몬트리올 의정서는 1989년에 발효되었다.

나사 고다드 우주비행 센터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염소 화합물 농도는 매년 0.8퍼센트씩 감소했고, 현재는 2005년도 측정치보다 20퍼센트가 감소한 상태라고 한다. 이 수치는 인류의 노력으로 오존층이 회복되고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인 셈이다. 수많은 디스토피아 소설과 재난 소설이 악화일로를 걷는 인류의 미래를 그리고 있지만 오히려 현실의 우리는 세계를 회복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끊임없는 관심과 다수의 노력이 없었다면 이런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비단 환경 문제만이 아니다. 평등, 자유, 정의와 같은 무형의 가치도 마찬가지다.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면 더 나은 미래는 유토피아 소설이 아니라 현실에서 우리를 맞이할 것이다. <김창규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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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시종일관 스피디하고 격렬한 몸싸움이 전개되는 ‘긴박한 재미’에 빨려들었다. 올림픽 사상 최초의 남북 단일팀.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펼치는 첫 경기, 그 현장이 그랬다.

사실 아이스하키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출전 선수가 몇 명인지도 몰랐다. 외국 영화에서 본 게 전부였다. 정몽원 대한아이스하키협회 회장이 “아주 재미있다”며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 때 아이스하키 경기를 보라고 권했다. 정 회장은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이 그동안의 방침을 바꿔 한국 남녀 대표팀에 올림픽 개최국 자동 출전권을 주는 결단을 내리도록 만든 일등공신이다. 정 회장은 아이스하키가 동계올림픽의 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단일팀 구성 논란이 우리 사회 핫이슈로 떠올랐다. 이래저래 경기를 직접 보고 싶었다.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과 여자 단일팀의 평가전이 펼쳐진 인천 선학국제빙상장을 이틀 연속 찾은 이유이다.

단일팀의 평가전 상대는 세계랭킹 5위의 스웨덴이었다. 파워·스피드·테크닉 모든 면에서 한 수 위였다. 그러나 단일팀도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쳤다. 관중들은 단일팀이 초반 2골을 연속 내주자 “괜찮아, 괜찮아”를 연호하며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주장 박종아가 멋지게 첫 골을 성공시키자 3000여명의 관중이 일제히 일어나 기립 박수로 감격의 순간을 함께했다.

비록 경기는 1-3으로 패했지만, 2~3피리어드를 무실점으로 버티며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시간이 갈수록 더 좋아질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경기 후 전문가와 언론의 반응도 남북 선수가 첫 합동훈련으로 손발을 맞춘 지 일주일밖에 안된 점을 감안하면, 경기력과 팀워크가 생각보다 괜찮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세라 머리 감독도 “북한 선수들이 우리 시스템에 빠르게 녹아들고 있다”면서 “지난해 스웨덴과의 평가전에서는 압도적으로 밀린 경기를 했지만, 오늘은 괜찮았다”며 만족해했다고 한다.

가장 신선하게 느꼈던 장면은 아이스하키는 출전 엔트리 전원이 2~3분 간격으로 무제한으로 선수를 교체한다는 점이었다. 체력 소모가 극심하기 때문이다. 대개 주전 선수가 경기를 풀로 뛰는 축구·농구·배구 등 다른 종목과 크게 다른 점이었다. 단일팀 구성으로 한국 선수의 출전 시간이 다소 줄겠지만, 평창 올림픽 본선에서 최소 5경기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선수가 올림픽 무대를 밟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언론 보도가 맞다고 생각되었다. 남과 북의 젊은 선수들이 첫 만남부터 보여준 훈훈함과 ‘원팀(One team)’이 되기 위한 노력들도 경기장에 그대로 묻어났다.

공정성 논란으로 상처를 입은 선수들을 생각해서라도 단일팀이 꼭 성공적인 결말을 맺었으면 한다. 다행히 단일팀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고조되면서 국내 첫 여자 아이스하키 실업팀이 창단된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왔다. 이는 선수들의 오랜 꿈이자 ‘절실함’ 그 자체다. 단일팀이 성공해야 올림픽 이후 창단 작업에도 탄력이 붙을 수 있다.

단일팀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의 불참, 러시아 선수들의 개별적 참가로 흥행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에서 효녀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취재 열기도 엄청나다. 지난 4일 단일팀 평가전은 만원 관중을 넘어 통로까지 서 있는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하루 전날 열린 남자 아이스하키 경기보다 훨씬 큰 열기를 뿜어냈다.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와 단일팀 구성은 한반도의 불안감을 완화시키고, 올림픽 기간만큼은 안심해도 된다는 신호를 전 세계에 보내는 등대와도 같다. 또한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상쇄하고 한국 경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손실을 보는 것을 막아주는 경제적 이득으로도 연결된다. 단기적으로는 평창 올림픽의 흥행과 성공에 기여하고, 궁극적으로는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북핵 문제 해결과 북방 경제의 활로를 뚫는 모멘텀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보수와 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고 우리는 주요 국제대회 때마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와 단일팀 구성을 공들여 추진해왔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는 군 출신이 주도한 보수정권이었지만, ‘남북 분산 개최’라는 파격적인 안까지 북한에 제시하기도 했다. 남북 단일팀은 30년 전의 그 이유와 지금의 이유가 큰 틀에서 다르지 않다. 평창 올림픽 아이스하키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단일팀의 선전을 기대한다.

<임종인 | 변호사·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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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대 규모로 치러질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코앞에 다가왔다. 역대 대회 중 참가 국가와 메달의 수가 가장 많고, 200만명 이상이 한국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두 번째 올림픽 준비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만큼 국격이 높아진 것을 실감하고 있다.

동계올림픽의 경기종목은 얼음 위의 빙상(氷上) 경기와 눈 위에서 치르는 설상(雪上) 경기, 그리고 트랙 위에서 미끄러지는 슬라이딩 경기로 나눠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53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는데, 그 전부가 빙상경기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모굴스키의 최재우 선수와 스노보드의 이상호, 스켈레톤의 윤성빈 선수와 같은 유망주가 있어 전망이 밝다. 포스트 김연아로 불리는 최다빈 선수의 활약도 기대된다.

선수들이 제 실력을 발휘하려면 최상의 설질(雪質)과 빙질(氷質)을 유지하는 게 필수다. 이상적인 설상경기장은 자연설과 인공설을 3 대 7의 비율로 섞어야 하는데, 그 작업에는 엄청난 장비와 노력이 들어간다. 정선 알파인스키 경기장의 경우 120대의 제설기와 16대의 중장비가 밤낮없이 동원됐다. 아마 사용될 전력량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빙상경기는 종목마다 요구되는 빙질이 다르다. 한국의 메달 텃밭인 ‘쇼트트랙’ 경기장은 빙판 두께 3㎝, 영하 7도 이하가 최적의 환경이다. 김연아 선수가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피겨스케이팅’의 경우 최적의 얼음 두께는 5㎝다. 경기장에 물을 한 번 뿌려 얼리면 0.2㎜라고 하니까, 어림잡아 이 작업을 250번은 반복한다는 말이다.

가장 예민한 종목은 ‘컬링’인데, 경기장 실내온도를 12도, 얼음온도를 영하 4도로 유지해야 한다. 전기가 없다면, 이렇게 까다로운 조건을 일일이 다 맞추고 제대로 관리할 수 없다.

찰나를 기록하고 승부를 판독하는 데에도 최첨단장비가 필요하다. 수많은 조명과 카메라가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고, 전 세계 스포츠팬들은 모바일과 TV로 그 광경을 생생하게 시청한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바로 ‘전기’다. 이뿐 아니라, 선수들의 숙식과 안전을 보장하고, 관람객들에게 세심한 편의를 제공하는 모든 과정에도 전기가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필자가 몸담은 한국전력은 지난 3년간 누구보다 바쁜 시간을 보냈다. 전력설비 인프라 구축사업을 잘 마무리했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이중전원 상시 공급체계도 구축했다. 한전이 이렇게 신경을 쓰는 건,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의 많은 부분이 바로 전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한전은 국제 대회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 역할을 묵묵하게 해왔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세계인들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최고의 동계올림픽으로 손꼽을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힘을 모을 때다.

<김시호 | 한국전력공사 사장 직무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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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부끄러운 고백을 하겠다. 난 내가 평소 맛있게 먹었던 한우가, 삼겹살이 당연한 줄 알았다. 먹을 줄만 알았지 축산농가들이 평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들게 가축을 키우고 고생하는 줄 몰랐다. 가격 폭락이나 축사 문제로 힘들다는 기사를 봤을 때도 별 생각이 없었다. 사회에 무관심한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랬다. 이 자리를 빌려 축산농민들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먼저 전한다.

평창 한우버거가 소위 ‘대박’이 났다는 기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과연 다음 올림픽 때도, 월드컵 때도 우리 축산물이, 우리 축산물로 만든 음식들이 국민들에게 사랑받을까?

현재 상황이라면 안심할 수 없다. 현재 축산농가의 최대 화두인 미허가 축사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축산의 기반이 흔들릴 것이다.

소고기의 경우 자급률이 40% 내외를 유지하고 있으나, 앞으로 더욱 떨어져 식량안보를 위협할 것이다.

축산농가들이 말하는 바는 명확하다. ‘가축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가축분뇨법)에 따라 올해 3월24일까지 적법화를 하지 않는다면 미허가 축사 4만6211곳 중 20.4%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축산을 접어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 정부로부터 가축분뇨법을 포함하여 26개 법률의 규제를 받는 축산업 허가 또는 등록을 완료하고, 가축분뇨처리시설을 갖춘 대다수 농가가 위헌의 소지가 많은 개정 법률에 의해 새로이 허가 대상이 된 것이다. ‘축산대란’이라는 말도, ‘축산붕괴’라는 말도 부족하지 않은 수치다. 이제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축산농가들은 지금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런 대란을 막고자 노력 중이다. 여의도에서 1만여 농가가 모여 억울함을 호소했으며, 지금도 이 추위에 환경부와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도 벌이고 있다. 이런 문제를 일으킨 근원인 가축분뇨법의 위헌 여부 심판도 지난 2일 헌법재판소에 청구했다.

변호사로서 필자가 보기에 가축분뇨법은 여러 문제가 있다.

먼저, 개정 법률의 배출시설에 대한 거리 제한은 기본권의 본질적 사항인데도 법률로 규정하지 않고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백지위임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법률유보의 원칙 위배이다.

두 번째, 기존에 축산업을 합법적으로 영위하고 있던 농가까지 2015년 가축분뇨법 개정으로 가축분뇨법에 따른 허가·신고를 하도록 하여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배했다. 법 개정의 기초가 된 정부 연구용역은 대부분 환경 관련 연구기관만 참여했으며, 직접적 이해관계자인 축산농가의 의견은 충분히 듣지도 않았고 기본권 침해가 명백함에도 충분한 설명 절차도 생략했다. 법률적인 관점으로 바라본 문제점이 이 정도니 축산농가들이 억울하지 않을 리가 없다.

입법을 포함한 국가의 모든 작용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법률이 공익을 위하여 기본권을 부득이하게 제한할 때도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은 침해해서는 안되고 제한을 하더라도 여러 이익을 정당하게 형량하여 필요한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축산농가들의 수고로움으로 국내산 축산물을 안전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지금은 우리 헌법이, 그리고 우리 국민이 축산농가들에 응답해야 할 때이다.

<한경주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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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내 성폭력을 고발한 서지현 검사가 소설처럼 쓴 글을 보면서 가슴에 와 박혔던 구절은 ‘아버지가 나빴다’ ‘어머니가 나빴다’라는 것이었다. 그는 검찰 통신망에 올린 글에서 “모든 게 아빠 때문이었다. 이 땅에서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는 여자를 착하고 예쁜 딸로 키워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 어떠한 불의도 참아내지 말라고, 그 어떠한 부당함에도 입 다물지 말라고, 욕설을 하고 소리를 질러대며 절대로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네 멋대로 살아가라고 가르쳐줬어야 했다. 이 모든 게 엄마 때문이다. 이 땅에서 여자를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는 참고 또 참는 모습을 보여주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 어떤 불합리도 참아내지 말라고, 여성이라고 무시하거나 업수이 여기는 것은 더더욱 참아내서는 안된다고, 멱살을 휘어잡고 주먹을 휘둘러줘야 한다고 가르쳐줬어야 했다”고 썼다.

그의 글을 읽고 비슷했던 경험을 떠올리면서, 내가 그동안 살면서 가족과 윗 세대와 학교에서 듣고 배운 것들과 못 배운 것들을 되짚는다. 누구든 다 비슷했겠지만 차별은 늘 있었고, 노골적인 무시와 구조적인 억압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여자애가 고기를 잘 먹는다”고 타박하던 외할머니, 초등학교 5학년 성교육 시간에 “여자들은 통닭과 같다. 누가 먹고 싶어 먹었다면 그 사람을 욕할 수는 없다”던 선생님. 최근 ‘황태자’가 풀려난 대기업의 ‘여비서’ 공개채용 시험을 본 기억도 떠올렸다. 토론 면접에서 나름 선방했다며 안심하고 있던 내게 “말은 조리있게 하는데, 어디 회사 오래 다니겠느냐”고 한 사장님. 어쨌든 시험에 붙었고, 3박4일 직원 연수에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다. 연수 프로그램이 ‘녹차 끓여내는 법’이라는 걸 보고 어쩐지 허망해졌다.

결국 그 회사에 가지 않았고 기자가 됐다. 업종이 다르고 회사가 달라도 차별은 늘 있었다. 그럭저럭 대응하며 살아온 것 같다. 하지만 과연 잘 살았을까? 때로는 내가 어쩔 수 없는 마이너리티임을 자각했고, 때로는 감각이 없는 사람처럼 그냥 넘어갔다. “블루스 추자”는 취재원들, ‘이쁜 여자’ 타령하는 남자에게 똑같이 성차별적인 언사를 섞어 능글맞게 대처했던 것은 고육책이었을 뿐이다. 싫어요! 미쳤어요? 왜 성희롱이야! 하면서 맞서지 못한 나같은 이들이 지금까지 계속되는 성적 괴롭힘의 바탕이 됐다는 죄책감이 크다.

서 검사의 글을 보면서 눈물이 났던 것은 성적 괴롭힘들이 줄줄이 적혀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와중에 아이를 키워야 하고, 무신경한 남편의 대꾸에 혼자 실망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부여잡고 있는 자신을 보며 자괴감을 느끼는 그 모든 과정은 여성들에겐 너무나도 보편적인 것이었다. 학교에선 가르쳐주지 않았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은밀하게 때론 노골적으로 닥쳐오는 공격을 어떻게 맞받아쳐야 하는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다양성도, 기후변화도, 인권도, 노동자의 권리도, 모두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그 시절엔 그런 화두가 없었다는 이유를 붙이자니 좀 우습다. 성차별도, 인권 침해도, 노동자 착취와 탄압도, 환경 파괴도, 모두 그 시절에 더 심했으면 심했지 지금보다 나았을 리 없으니까. 이제라도 사회 전체가 이런 고민에 맞부딪쳤다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세상이 좀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뜻일까. 5일자와 6일자 신문에 노동 문제를 가르치지 않는 교육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여전히 우리가 배우는 것들엔 살면서 꼭 필요한 무언가가 빠져 있다. 평등과 정의가 비어 있다. 내가 어릴 적에 배우지 못했던 것은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 말하는 용기, 안되는 것은 안된다고 말하는 자신감이었다. 이제라도 서 검사와 용기 있는 이들을 보며 배운다.

초·중·고교 페미니즘 교육을 의무화하자는 청와대 청원에 20만명 넘는 이들이 서명을 했다. 이 소식을 전한 포털 기사에는 이례적으로 여성들이 댓글을 많이 달았다. 온라인 전체가 ‘남초’이다시피 한 상황에서 응원글이 많이 보이니 반갑다. 그런데도 답답한 마음이 든다. 학교야말로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며, 대다수 여성들이 성차별과 성희롱을 경험하는 ‘첫번째 사회’가 아니던가. 그러나 배우는 사람뿐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도 함께 바뀌고 커 나가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좀 더 근본적인 의문도 있다. 학교에서의 제도교육을 통해 개개인과 사회를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한참 앞서 나갔다는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저성장과 취업난 속에 인권과 평등과 평화와 환경과 다양성의 가치에 반하는 일들이 고개를 드는 시대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최소한 몇 명이라도 옳게 말하고 용기있게 행동할 수 있게 되면 세상이 바뀐다. ‘몇 명’의 목소리가 역사를 바꾼 사례는 얼마나 많았던가. 성평등,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 인간에 대한 예의, 범죄와 폭력에 맞선 저항, 권위주의를 거부하는 열린 자세 모두 배워야 한다. 페미니즘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 모든 정책에 ‘젠더 평등 의식’이 녹아들게 해야 한다.

<구정은 정책사회부장 ttalgi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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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은혜를 입고도 도리어 그 사람을 나무라거나 원망한다는 속담으로 ‘물에 빠진 사람 건져 놓으니 망건값 내라 한다’가 있습니다. 물살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며 살려달라는 사람이 있어서 누군가 목숨 걸고 뛰어듭니다. 구조된 사람이 가쁜 숨을 쉬면서 죽을 뻔했다고 안도하며 여기저기 더듬어보니 이마에 두른 비싼 망건이 찢어져 있습니다. 물에서 끌어내다 망가진 것 같습니다. 머리나 목 말고 팔이나 허리 잡고 나왔으면 안 망가졌을 거 아니냐고, 이 망건 어쩔 거냐고 물어내랍니다.

같은 속담 ‘물에 빠진 사람 건져 놓으니 내 봇짐 내라 한다’도 이와 같습니다. 나는 건졌으면서 내 보따리는 왜 못 건졌냐고, 그게 어떤 보따린데 당장 찾아내라고, 아까는 그저 살려만 달라던 사람이 두 발 동동거리며 구조자를 원망으로 윽박지릅니다. 이런 황당한 경우가 오늘날에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소방관은 열쇠공도 아니면서 전문가를 불러 문 따는 기술을 배웁니다. 미국 등 선진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긴박한 상황으로 문 부수고 들어가도 소방관이 수리비를 물어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집 다 타겠다고 빨리 꺼달라 난리쳐서 문 부수고 들어가 번지는 불 잡아주면 고작 이만한 불로 문 망가뜨렸다고 변상하라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불가피한 경우라면 법적으로 면책되지만 그 불가피를 입증하기란 또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소방관이 사비로 보상하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목숨 걸고 화마와 싸우고 나서도 압수수색에 수사까지 받는 요즘입니다. 어쩌면 그 화재의 발단이 된 힘 있는 자들이 시선을 돌리고자 책임 전가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목숨에 이익까지 구하려는 배은망덕 물귀신들에게 사람 살리고 동네북으로 두드려 맞는, 땀보다 눈물로 더 젖는 우리 영웅들의 넓고 씁쓸한 등입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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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위주 교육을 저차원적 교육, 입시를 넘어선 교육을 고차원적 교육이라 거칠게 단순화해보자. 주입식·암기식 교육을 저차원 교육, 창의력·사고력을 기르는 교육을 고차원 교육이라 해보자. 저차원적 교육을 넘어 고차원적 교육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나에겐 이 당연한 과제가 사치스러운 일로만 여겨질 때가 많다. 학교의 현실 때문이다. 좀 심하게 단순화해 학교의 문제점을 드러내자면 학교는 교육기관이 아니다. 저차원적 교육에서 보든 고차원적 교육에서 보든 학교는 교육기관이라기보단 사무행정기관에 가깝다.

학교는 교육 그 자체보다 교육에서 파생하는 사무·행정적 업무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무엇보다 교육청과 교육부에서 내려 보내는 사업과 행정업무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단순히 중요하게 여기는 선에 그치는 게 아니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만들어서 하고, 간단하게 해도 될 일을 복잡하게 한다. 조금 복잡한 것은 매우 복잡하게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까지 만들어서 한다. 그래서 교육 그 자체로 향해야 할 교사의 관심과 에너지를 끝없이 소모하게 만든다. 교육부와 교육청의 관료주의적 행정이 이러한 폐단을 강요하고 있으며, 사무·행정업무 위주의 학교제도와 조직체계가 그 폐단을 일상화한다. 교육은 몸통이고 사무·행정업무는 꼬리에 불과한데 학교에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주객전도 현상이 뿌리 깊이 고착돼 있다.

이러한 폐단을 없애려면 교장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교장은 그 폐단에 눈을 감고 있다. 단순히 눈을 감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장서 그 폐단을 강화하고 심화시키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왜 그럴까? 교장자격증제도와 그에 연계된 교장승진제도의 필연적 귀결이다. 교장 자격증을 따기 위한 승진점수는 어떻게 쌓을 수 있나? 나에겐 복잡하고 어렵기만 한데, 분명한 것은 교육 그 자체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아무런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교육에 바쳐야 할 관심과 에너지를 빼내어 다른 곳에 돌릴수록 승진점수를 쌓고 교장 자격증을 받는 데 오히려 유리하다는 것이다. 자신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교사들까지 그렇게 만들어야 그 유리한 정도가 더 커진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눈곱만큼에 불과하지만 교육부가 비중을 확대하려는 ‘내부형 교장공모제’는 교장 자격증이 없는 교사도 교장이 될 수 있는 제도다. 극히 작은 변화임에도 불구하고 기존 승진제도를 옹호하는 세력의 반발이 거세다. 그들은 교장 자격증이 교장 자격을 증명하는 유일한 증표인 것처럼 말한다. 허황한 소리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오히려 진실에 더 가깝다. “교장 자격증은 교육자인 교사가 교육자로서의 영혼을 상실해간 증표에 불과하다.”

지금의 교장자격증제는 아이들과 함께 뒹굴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의 소중함을 모욕하고 훼손하는 제도다. 다른 전문직 그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기괴한 제도다. 병원장이 되기 위해 의사에게 또 다른 자격증이 필요하지 않고, 대학 총장이 되기 위해 교수에게 또 다른 자격증이 필요하지 않다. 경찰, 검찰, 법원 다 마찬가지다.

아주 조금에 불과하지만 내부형 교장공모제의 비중을 확대하려는 교육부는 칭찬받을 만한가? 방침 하나만 보면 분명히 그러하다. 그러나 교장자격증제도와 교장승진제도 전반을 사실상 지금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에 주목하면? 칭찬은커녕 혹독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이기정 | 서울 미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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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지구촌의 최대 겨울 축제인 평창 동계올림픽의 개막이 눈앞에 다가왔다. 12개 경기장의 준비가 끝났고 개·폐회식 연습도 한창이다. 선수들도 입국하기 시작했고 2만여명의 자원봉사자들도 현장에 배치됐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눈과 얼음과 함께하는 겨울 축제다. 눈 내린 대관령의 산악 풍경과 강릉의 겨울 바다를 함께 즐기며 겨울의 추위를 즐길 수 있는 세계인의 축제다. 이번 올림픽은 경기뿐 아니라 문화 행사, 강원도의 볼거리·먹거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올림픽은 무엇보다도 세계적 스포츠 스타들의 경연장이다. 스키의 린지 본, 남자 피겨의 하뉴, 여자 피겨의 메드베데바 같은 스타들의 경기를 볼 수 있다. 흑인 최초로 미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대표로 선발된 잭슨, 영화로 더 유명한 자메이카 봅슬레이팀, 전이경이 코치를 맡은 싱가포르 쇼트트랙 선수도 볼거리다. 세계 최강 아이스하키 팀의 경기, 새로 채택된 빅에어의 화려함, 150m 이상을 나는 스키점프대의 스릴도 함께 느껴볼 수 있다.

우리 선수를 응원하고 북한 팀을 지켜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금메달 8개로 종합 4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쇼트트랙의 심석희·최민정, 스피드스케이팅의 이상화·이승훈, 봅슬레이의 윤성빈 등이 금메달을 노리는 선수들이다.

또 북한의 참가로 다양한 볼거리가 생겼다.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과연 몇 승을 거둘지, 북한 선수들이 어느 정도 실력을 발휘할지 관심거리다. 이 밖에 북한 예술단과 태권도 시범단, 응원단의 공연과 응원을 지켜보는 것도 올림픽을 즐기는 새로운 맛이 아닐까 싶다.

평창에서는 문화올림픽의 향연도 펼쳐진다. 개회식에서는 ‘함께 만들어 가는 평화(Peace in motion)’, 폐회식에서는 ‘새로운 물결(New wave)’이라는 주제로 조화와 융합의 축제를 펼친다. 평창 문화올림픽은 ‘날마다 문화가 있고 축제가 되는 문화올림픽’이라는 주제로 마련됐다. 평창 올림픽플라자와 강릉 올림픽파크에서는 메달 수여식은 물론 K팝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벌어진다.

문화ICT관은 백남준 미디어 아트 작품 전시, 이우환 등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작품전, 동계종목 5G 체험 등이 가능하다. 또 강릉아트센터 등에서는 <안나 카레니나> <난타>, 대관령음악제, 강원비엔날레 등 각종 문화행사도 열린다. 코카콜라, 삼성, 알리바바, 현대자동차 등 글로벌 기업들의 대형 홍보관도 다양한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올림픽을 즐긴다는 것은 볼거리, 먹을거리와 밀접히 연결돼 있다. 강원도는 설악산, 대관령 등 천혜의 자원을 가지고 있다. 월정사와 낙산사 같은 고찰, 경포대나 정동진의 해맞이, 바다부채길 트레킹, 강릉째즈프레소의 커피축제의 맛을 느껴볼 수 있다. 평창에는 세계음식문화관이 생겨 강원도의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을 뿐 아니라 16개 대사관이 추천한 음식을 맛볼 수도 있다. 대관령 한우와 황태국, 오삼불고기, 동해바닷가 회를 맛보는 것도 스포츠를 통한 여행의 재미를 더한다.

서울 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은 세계인의 축제로 평창, 강릉, 정선에서 열리기 때문에 누구나 손쉽게 참여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기회다. 눈과 얼음 속에 펼쳐지는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들의 열정과 함성 속에 강원도의 겨울 맛과 멋을 즐겨보길 기대한다.

<김주호 |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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