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2012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가 끝났다. 이제 상위 네 팀의 가을야구가 시작된다. 일컬어 ‘가을 잔치’라던가, 그래서 하는 말이다. 잔치에 가보면 모두들 덕담을 나눈다. 신랑은 훤칠하고 신부는 참하고, 뭐 그런 얘기 말이다. 그러나 속으로 걱정이 없는 게 아니다. 집안 내력을 아는 사람이나 신랑·신부의 지인이라면 이들의 앞날을 진심으로 축하하되 한두 가지 걱정과 근심도 없지 않은 것이다. 그런 심정으로 올해 시즌을 돌아본다.


700만 관중 돌파부터 생각해보자. 정규시즌 총관중 715만6157명. 대기록이다. 2006년 304만명, 2008년 525만명, 2010년 592만명 등 해마다 100만명을 추가하는 기록을 세운 프로야구는 지난해 681만명을 기록하며 꿈의 700만명을 예고했는데, 불과 1년 만에 715만명으로 프로 스포츠 최대의 흥행을 기록했다.



(경향신문DB)


 몇 가지 이유가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 등 눈부신 외적 성취로 확인되듯이 한국 야구가 일정하게 성장한 것이 관중 증가의 원동력이다. 각 구단이 팬을 중심으로 한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친 것도 중요하다. 야구장에 가보면 해가 지기 전부터 몰려든 관중과 이를 맞이한 팀의 선수들과 프런트에 의하여 야구장은 일찌감치 이 헛헛한 대도시의 오아시스로 변해 있다. 한국 야구만의 독특한 열정과 광기의 스탠드에서는 누구도 홀로 외로이 앉아 있을 수 없게 된다.


종합 스포츠 채널이면서도 사실상 ‘야구 전문 방송’이 되다시피 한 케이블 방송의 중계 수준이 향상된 점도 있다. 야구는 다른 종목에 비해 일시적인 휴지부가 많다. 투수와 타자의 일구일타, 적시타 이후의 숨가쁜 작전 상황, 스리아웃 이후의 공수교대 등 이렇게 전술상의 휴지부가 발생했을 때 경기장 곳곳에 포진한 중계 카메라는 여러 각도에서 선수와 감독을 클로즈업한다. 긴장해 있거나 환호하는 관중까지 포착한다. 연출자는 이 모든 장면을 단순히 순서대로 나열하지 않고 드라마화, 스펙터클화, 캐릭터화한다. 이 순간, 야구에 관심이 없던 시청자도 투수의 땀방울과 감독의 검은 선글라스와 관중의 간절한 기도에 감정을 몰입한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전반기는 넥센이 분위기를 이끌었고 후반기는 롯데가 가을야구로 직진했으며 박찬호, 이승엽, 김태균, 김병현 등의 해외파와 더불어 류현진이나 오승환이 강력한 티켓파워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덕담은 이 정도로 줄이자. 냉정하게 말하여 올 시즌 프로야구가 700만이라는 숫자에 걸맞은 높은 수준의 야구를 보여줬는가 하는 질문이 필요하다. 올해는 그 어느 시즌보다 실수가 많았다. 기록상의 숫자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경기 흐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실수 말이다. 실수로 인하여 경기 흐름이 바뀌고 승패에도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인 실수가 자주 눈에 띄는 시즌이었다. 


거꾸로 말하여 ‘명승부’라고 부를 만한 경기도 드물었다. 물론 지난 8월의 경기들은 무더위와 장대비와 올림픽이라는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인상 깊은 장면들이 많았다. 2위에서 4위까지 순위가 경기 하나로 뒤바뀌는 상황에서 피 말리는 한 점 차 승부나 통렬한 끝내기 홈런은 한국 야구의 일정한 수준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실수가 많았고 이를 만회하려는 팽팽한 긴장의 밀도는 예년에 비하여 옅어졌다.


실수가 많다는 것은 팀마다 고유했던 개성이나 색채가 옅어진 것과 비례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다. 30여년의 역사를 써오는 과정에서 각 구단은 저마다의 지역성이나 선수층이나 역대 감독의 이력에 의하여 독특한 개성을 유지해왔다. 그랬던 것이 올해는 전체적으로 흐려졌다. 비범한 식견과 날카로운 직관으로 공 하나에 생의 전체를 거는 듯한 ‘작전 야구’가 8개 구단 전체에 걸쳐 전반적으로 무난한 스타일로 마모되었다. 서로 다른 철학과 개성이 용접기계의 스파크처럼 충돌하는 승부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경기를 유지하려는 흐름이 지배적이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각 팀 감독의 일반적인 스타일에 더하여 그야말로 파리 목숨으로 불리는 불안한 위상도 악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시즌 도중에 두 명의 감독이 경질되었다. 선수나 감독이 저마다의 실력과 철학으로 야구장에 들어서는 게 아니라 저 본부석 상단의 구단주를 의식하는 문화가 지배적이라고 한다면, 야심만만한 도전과 실험은 실종되고 만다.


내 작업실 근처에는 식당이 몇 군데 없다. 그나마도 이렇다 할 맛은 없는, 그저 그런 식당이다. 그중 한 군데를 자주 간다. 친절하고 깨끗한 식당이지만 맛은 신통치 않다. 가장 가까운 곳이라서 갈 뿐이다. 혹시 프로야구 700만 관중 돌파도 이런 맥락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먹고살 만한 사회가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 다채로운 여가문화나 그 시간, 그 콘텐츠가 충분한 사회는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프로야구가 마땅히 즐길 게 없는 관중의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롯데와 두산의 준플레이오프로 가을 야구가 시작되었다. 페넌트레이스보다는 훨씬 더 예리하고 감각적이며 야구의 모든 요소가 중층적으로 결합된 작전의 야구가 펼쳐지기를 기대해본다. 마침 한화의 새 사령탑으로 김응용 감독이 선임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700만 시대에 걸맞은 수준 높은 새 시즌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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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발전소가 또다시 발칵 뒤집히는 일이 일어났다. 원전 안전을 담당하는 직원들이 마약을 한 혐의가 발각된 것이다. 부산지검 강력부는 어제 고리원전 재난안전팀 소속 직원 2명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다른 직원들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속된 두 사람은 고리원전 주변을 무대로 활동하는 폭력조직으로부터 ‘필로폰’을 입수해 사무실 등지에서 이를 상습적으로 투약해왔다고 한다.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히기 이전에 소름부터 돋는다. 고리원전은 이미 수명이 다한 고리1호기가 가동되고 있어 전 국민의 이목이 쏠려 있는 곳이다. 지난 2월의 정전사태와 이를 한 달 동안이나 은폐한 사건만으로 국민은 충분히 놀랄 만큼 놀랐다. 이로 인해 김종신 당시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도 했다.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지난 7월에는 대규모 납품비리 사건이 터져 직원들이 무더기로 구속됐다. 당시 한수원은 임직원 일동 명의로 신문 광고를 통해 환골탈태를 다짐했고, 그런 각오를 담아 지난 5일 김균섭 사장이 강도 높은 쇄신책으로 ‘국민 불신 해소 및 경영난국 타개를 위한 경영혁신 종합대책’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고리원전 인근 지역 주민들이 원전 폐쇄를 요구하고 있다. (경향신문DB)


안전 불감증과 근무기강 해이가 이렇게 바닥도 없이 꼬리를 물고 드러나는데 어떻게 원전이 안전하다고 주민을 설득할 수 있겠는가. 고리원전 반경 30㎞ 이내 주민의 74%가 노후원전인 고리1호기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들먹이는 것조차 이제는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원전이 터져봐야 죽기밖에 더 하겠느냐”고 했다던 주민의 말이 오히려 더 실감나게 들릴 지경이다.


이번 사건은 정부와 한수원이 원전 안전 문제를 책임질 자격과 능력이 있는지 다시 한번 의심케 했다. 우리가 수없이 지적했듯이 원전의 안전과 그에 대한 신뢰는 투명한 운영과 주민 참여, 정보 공개가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담보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백번의 다짐과 환골탈태 약속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이런 투명성과 신뢰성을 제도적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원자력안전위원회를 국회·시민단체 등이 추천한 다양한 전문가로 구성하도록 하는 것이라든가 지방자치단체가 원전 건설과 가동, 수명 연장 등의 의사결정 구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원자력안전법, 원자력안전위원회설치법, 원자력손해배상법, 방사성폐기물관리법 등 관련 법을 개정하는 작업에 국회가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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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문로에 있는 경찰박물관 건물 벽면에 경찰관이 ‘빵셔틀 운행중지!’라고 크게 쓴 광고판을 들고 있는 설치물이 있다. 그 안에 ‘학교폭력 상담/신고 117’이라는 안내문이 작은 글씨로 적혀 있다. 학교폭력 문제 개선에 경찰까지 나섰음을 보여주는 이 대형 광고물은 정부가 국무총리와 10개 관련 부처·기관의 장을 포함한 학교폭력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내놓는 등 이 문제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던 지난 3월 등장한 것이다.


지난 18일 충남 공주에서 고등학생이 또 자살했다는 충격적 소식이다. ‘카카오톡’ 그룹채팅방에 친구 20명을 초대해 작별 메시지를 보낸 뒤 아파트 23층에서 투신했다고 한다. 휴대전화에는 자신을 괴롭힌 친구들과 나눈 대화 내용과 집단폭행을 당해 생긴 상처를 찍은 사진 등을 남겼다. 중학교 때 집단따돌림(왕따)을 당했던 과거가 친구들에게 알려지면서 다시 왕따와 폭력에 시달린 정황도 발견됐다. 학교 차원을 넘어 국가적 차원에서 초고강도 대책을 시행하는 와중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참으로 개탄할 노릇이다.


학교폭력으로 목숨을 끊은 대구의 중학생 이모군 책상 위에 국화가 놓여 있다. (출처 :경향DB)


그동안 정부는 학교폭력 문제를 다루면서 공권력이나 행정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테면 현재 14세 이상인 형사처벌 가능 연령대를 12세로 낮춘다든가, 학교폭력 사실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도록 한다든가, 폭력 학생을 강제전학시킨다든가 하는 등이다. 그러나 이런 처벌 중심의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이번 사건이 보여주었다.


숨진 박모군의 자살 징후는 여러 경로에서 탐지할 수 있었다. 중학교 시절에도 자살 시도가 있었는데 학교 측은 이를 전혀 알지 못했고, ‘정서행동검사’에서도 2차 검사 대상자인 고위험군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담임교사는 지난 1학기에 박군이 친구들로부터 폭행을 당한 사실을 듣고도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박군이 직접 자신의 상처를 찍어 카카오톡을 통해 친구들에게 알리기도 했다. 학교 안의 현실이 이런데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나 ‘117 신고 전화’가 얼마만큼 실효가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와 교육 당국은 불도저식·여론몰이식·단기적·전시적 정책에만 연연할 게 아니라 학교 현장의 실상과 문제의 본질부터 인식했으면 한다. 누차 지적했듯이 단기적으로는 심리·상담 전문가의 학교 배치를 늘리고 중장기적으로 입시 중심 교육과 경쟁·불통의 학교 문화를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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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 | 소비자시민모임 기획처장


 

올 여름 기록적인 폭염으로 전력수요가 급증하면서 전력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아울러 정부는 ‘국민발전소’라는 신개념 에너지절약 캠페인을 통해 국민들에게 절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민발전소란 국민이 전기절약을 하면 발전소 하나를 짓는 것과 맞먹는 효과는 갖는다는 개념의 전기절약 캠페인이다. 지식경제부는 6월부터 매달 한 주씩 국민발전소 주간을 진행하고 있다.


플러글 뽑아 전기를 아끼자 (경향신문DB)


금년 여름의 전력수급 위기상황은 지나갔지만, 그렇다고 전력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발전설비의 예기치 못한 고장이나 이상기후 등으로 계절에 무관하게 전기 부족사태가 발생할 소지도 있다. 이런 것을 감안할 때 전기에너지 과소비에 대한 주의가 어느때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의 전기 절약 실천이 부족하다는 것은 에너지관리공단에서 실시한 조사에서도 알 수 있다. 조사 결과, 국민 10명 중 9명은 우리나라 전력부족 문제가 ‘심각하다’고 응답했고, 응답자의 97.4%가 전기절약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반면, 전기절약을 실천하고 있지 않다는 응답이 65.4%에 달했다. 국민들은 전기절약의 필요성은 인식하지만, 실행으로 옮기는 부분은 미흡하다는 것이다.


공급위주의 에너지정책은 에너지 사용자인 소비자를 소외시켰다. 전기는 당연히 정부가 공급해주는 것으로만 생각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소비자들이 전력수급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행동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소비자의 전기절약은 가정에서 사용하는 기기의 효율, 사용방법, 생활습관이나 에너지절약 의식 등에 따라 그 성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소비자의 인식과 행동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에너지 절약은 특정한 날에만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 생활에서 실천해야 한다. 


생활 속에서 전기를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리고 전기를 절약하려면 일상생활의 편안함을 조금씩 포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귀찮다고 컴퓨터의 플러그를 뽑지 않는 것, 가격이 비싸다고 해서 에너지소비효율등급 1등급 가전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것은 전기를 비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에너지효율이 낮은 오래된 가전제품을 고효율 제품으로 교체하는 것만으로도 전기를 절약하는 데 큰 효과가 있다. 전기에너지 사용에 있어 제5의 에너지라고 불리는 에너지절약이 절실한 때이다. 대한민국 곳곳에 국민발전소가 세워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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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 | 칼럼니스트


 

얼마 전 시골의 작은 집으로 이사하며 대형 카우치 가죽 소파를 버렸다. 정확히 버린 것은 아니고 새로 이사 들어오는 가족이 사용하겠다고 해서 예전에 살던 집에 그냥 남겨두고 왔다.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 같으면 소파를 놓을 거실의 한 벽에 그림을 걸고 커다란 나무 테이블을 놓았다. 책상의 각도는 정확히 거실창을 통해 테라스와 이웃의 더덕밭과 산과 하늘을 감상할 수 있는 위치다. 아침이면 그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 다음 뉴스를 보며 아침식사까지 하고 작은 방에서 사무용 나무 의자와 노트북을 가져다 방금 식사를 마친 자리에 놓으면 그 순간부터 재택 근무가 시작된다. 그러다 저녁이 되면 간단한 한 접시 요리와 와인이나 막걸리를 내놓고 음악과 촛불을 켠다. 그러면 하루 종일 식탁이며 책상으로 쓰였던 테이블이 다시 한번 분위기를 전환하여 근사한 카페 기능까지 하게 된다. 심지어 별과 은하수가 춤추는 밤이면 집안의 모든 불을 끄고 테이블과 거실 창 사이에 러그를 깔고 눕는다. 그러면 우리가 한낱 소파 위가 아니라 이 지구의 대지 위에서, 찬란한 우주 속에서 살고 있구나 하는 감격에 찬 소속감마저 느끼게 된다.


 예전에는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소파가 필요하고, 그걸 놓고도 여유가 있을 만큼 널찍한 거실도 필수다. 거실과 주방은 반드시 분리돼 있어야 하고 그 중간쯤 식탁을 놓을 수 있는 다이닝룸 성격의 공간도 필요하다. 책이 많고 집에서도 일을 해야 하므로 서재도 필수다. 그런데 작은 집에 이사해 나름대로 고육책으로 그걸 하나로 통합하니 오히려 훨씬 더 기능적이기도 하거니와 미학적으로도 더 낫다는 걸 알게 됐다. 보통 자기 집에서 제일 좋은 자리를 몸집 큰 소파가 차지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거기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지 모르겠지만 내 경우는 하루 1시간도 안됐다. 그러니까 소파가 사람 대신 하루 종일 거실 창을 통해 해가 뜨고 구름이 지나가고 바람이 불고 밤이 되어 달이 뜨는 풍광을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대신 사람은 답답한 사무실과 서재, 비좁은 주방, 갑갑한 침실 사이를 왔다갔다 종종걸음치며 살고. 


작고하신 건축가 정기용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낯선 가구들 틈새에서 가구들이 군림하도록 우리는 작아져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셨는데 소파를 버리고 이제야 그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게 됐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사람은 나날이 왜소해지고 건축은 나날이 비대해지는 가운데 정기용 같은 건축가가 있었다는 건 우리에겐 여전히 감사한 일이다. ‘흙집 연구’와 ‘기적의 도서관’으로 유명한 건축가였지만 그 유명세에 비해 가장 가난한 축에 드는 건축가였다. 자타가 공인하는 ‘건축계의 공익요원’이니 오죽했을까? 


하지만 그는 “나의 집은 백만평”이라며 호기를 부리는 분이기도 했다. 실제로 오랜 세월 명륜동의 한 허름한 다가구주택에서 거주하셨지만 그에게 안팎의 경계는 무의미했다. 집 밖에서도 거주하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마다 창밖으로 바라보는 명륜동 일대의 풍경은 그의 집 일부가 되고,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성균관 앞마당은 자신의 정원이라 여기며 새벽이든 낮이든 조금만 여유가 있어도 그곳의 500년 된 은행나무 밑에 앉아 있곤 하던 분이다. 지금도 눈에 선하게 생각난다. 소파도 TV도 없는 텅 빈 거실에 작은 좌식 탁자와 두서없이 쌓아올린 책 무더기만 있던 풍경이…. “10년을 경영하여 무옥을 지었는데 반은 청풍이요 반은 명월이로다. 강산을 들일 것이 없으니 둘러치고 보리라”는 시구를 떠올리게 하는 그런 분이었다.


일본 가나가와 마나즈루의 토이하우스 '투명 요새'의 3층 침실 (경향신문DB)


최근 들어 일본에서는 1952년에 지어진 마쓰자와 주택을 리메이크한 9평 하우스가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여러 건축가들에 의해 새롭게 재현된 마쓰자와의 9평 하우스는 정확히 1층 9평, 2층 6평인 작은 집에서 현대의 4인가족이 어떻게 충분히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예로 <9평 하우스>라는 책으로도 만들어졌다. ‘집이 넓어야 지내기 편하다’는 우리의 통념을 깨는 책이랄까? 심지어 편안함에 대한 생각을 조금 포기할 경우, 작은 집이 고층건물 옥상의 아주 넓고 값비싼 집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100년 전 버트런드 러셀이 취향에 대해 했던 이런 말을 상기하게 만드는 예라고 할까? “고상한 취향을 가로막는 최대 방해꾼 하나. 썰렁함에 대한 두려움과 여기에서 유래하는 충동, 방 안 구석구석을 가득 채우고 여기저기에 양탄자를 깔고 한 치도 남기지 않고 모든 공간을 활용하려는 충동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의 혐오감을 일깨우는 집은 집주인의 미적 감각의 결여를 값비싼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 가구와 잡다한 전자제품을 통해 상쇄할 수 있다고 믿는 집이다.” 작은 집이 더 아름답고 우아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는 말이다.


덕분에 내 손으로 그 작은 집을 좀 더 살기 편하고 개성적으로 개조하고 싶다는 모험심까지 갖게 만들고. 뭐 못할 것도 없다. 우리 집 같은 경우 거실과 주방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게 최대 불만인데 그것부터 해치우자. 슬라이딩 레일 도어 스타일의 움직이는 가벽을 만드는 거다. 그럼 혹시 다음 테마는 ‘셀프 인테리어 도전기’에 대한 것이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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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광 | 운문사 스님


 

작열하던 폭염도 어느새 스러져 가고, 산사에는 벌써 가을색이 역력하다. 소나무 숲속에서는 가을벌레들이 추추히 울고, 파아란 하늘을 뒷배경으로 흰 구름이 산마루에 걸려 있다. 


운문사 개학날, 여름방학을 마치고 다시 운문사에 돌아온 학인스님들과 함께 새벽예불을 올렸다. ‘지심귀명례….’ 법당에서 울려퍼지는 200여 학인스님들의 청아하면서도 장엄한 염불소리에 마음이 맑아진다.


 볼라벤과 덴빈 두 태풍이 연달아 휘몰아쳐 전국 곳곳에 많은 피해를 입힌 바로 그때 나는 제주도에 있었다. 치료하러 갔다가 태풍을 만나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였다. 섬에서 태풍의 위력을 제대로 실감했다. 밖을 내다보니 가로수가 뿌리째 뽑히고, 유리 창문이 깨지고, 네거리 신호등이 쓰러지고, 길 건너편 상점의 간판은 대롱대롱 위험하게 매달려 있었다. 지붕이 날아가기도 하고, 배들이 부딪쳐 파손되기도 했다고 한다. 가뜩이나 힘든 시기에 피해를 당한 이웃들의 시름이 깊다. 부디 마음만은 상처가 깊지 않기를 기도한다. 


폭풍이 자연에만 부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도 수시로 몰아친다. 몸과 마음에 폭풍이 몰아치고 그 속에 우리 삶이 매몰되기도 하고 파괴되기도 한다. 자연에 부는 폭풍만큼 상처가 깊다. 눈에 보이는 자연의 폭풍은 몇 번 겪다보면 예보도 가능하고 대비책을 세워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마음의 폭풍은 몇 번을 겪어도 대비하기가 쉽지 않다. 대비는커녕 폭풍이 남겨 놓은 파괴의 흔적을 무기력하게 방치하여 상처를 더 악화시키기도 한다. 그 결과 개인적으로는 우울증이나 주의력 결핍, 정서 불안 등 수많은 마음의 고통을 안고 산다. 


뿐만 아니라 이 마음의 폭풍은 개인에게만 그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요즘 언론에 주요 기사로 등장하는 성폭력 사건이나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묻지마 폭력, 절망 살인 등의 문제가 생겨나는 것이다. 모두 이 마음의 폭풍이 원인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힐링(마음 치유)’이란 말이 트렌드가 된 것 같다.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불선한 마음인 탐욕, 분노, 어리석음, 좌절, 공포, 절망의 폭풍을 어떻게 그치게 할 수 있을까. 그치게 할 수나 있는 걸까. 


흙탕물을 한 번 들여다보자. 이 흙탕물 속의 흙먼지를 다 걷어내면 맑은 물이 될 수 있을까. 과연 어느 세월에 그 많은 흙먼지를 제거할 수 있을까. 


만약 흙탕물을 휘젓지 않고 가만히 지켜볼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기신론(起信論)>에서는 우리 마음을 진심(眞心)과 망심(妄心)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진심은 진여의 마음으로 깨끗하고 투명한 청정한 물에 비유할 수 있고, 망심은 생멸하는 마음으로 흐린 흙탕물에 비유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청정한 물은 진실하고 선한 마음이요. 흙탕물은 진실하지 못한 불선한 마음이다. 선한 마음은 바람조차 없는 고요한 마음이요. 불선한 마음은 폭풍우에 날뛰는 마음이다. 그러니 우리는 살면서 늘 불선한 마음의 폭풍우와 대면할 수밖에 없다. 회피하고 도망치려고 애써봐야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그 불선한 마음도 우리 본래 마음의 한 측면이므로. 


그 불선한 마음의 폭풍들을 낱낱이 다 제거할 수 없다면, 그 폭풍에 덜 휩쓸리도록 대비를 단단히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건 없다고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마주보며 그 성질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마음의 폭풍이 어떤 내용인지, 왜 일어났는지, 그 속도·세기·성질을 잘 살펴 진단할 수 있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부처님은 ‘마음을 치료하는 의왕(醫王)’이라고 했다. 그 분 말씀에 의하면, 이 청정한 물과 흙탕물은 다른 물이 아니다. 맑은 물에 폭풍이 치면 흙탕물이 되어 들끓다가, 폭풍이 그치면 다시 흙은 가라앉고 맑은 청정한 물이 된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폭풍도 마찬가지다. 불선한 마음의 폭풍이 그치면 본래의 맑고 선한 마음이 된다. 물 자체는 늘 여여한 그 모습이다. 흙탕물이든 깨끗한 물이든 물이라는 본래 성품은 그대로이다. 


‘운거운래천본정(雲去雲來天本靜)이요. 화개화락수상한(花開花落樹常閑)이라.’


구름이 일어났다 사라져도 하늘은 본래 고요하고, 꽃이 피고 지지만 나무는 항상 한가하다는 말이다. 아무리 폭풍이 치고 흙탕물이 되어도 우리의 진실된 마음은 늘 그대로이다.


인생을 살면서 어찌 폭풍우 치는 날이 없으랴. 산전, 수전, 공중전 다 겪는다 해도 ‘심전’에서 이기는 것이 가장 위대한 승리자요, 지혜로운 자다. 수행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불선한 마음의 폭풍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일어났다면 제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또 선한 마음이 계속해서 일어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이미 선한 마음을 일으켰다면 더 넓히고 키우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본래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하여 밖의 백만 적군을 이기는 것보다도, 내 마음의 폭풍에 흔들리지 않고 잘 다스려 승리한 자가 진정한 승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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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권 | ‘야생초 편지’ 저자


 

참으로 답답하고 우울하다. 지난달 이곳 칼럼 ‘녹색세상’에서 원전민간감시기구가 ‘무늬만 민간기구’라며 위원장만이라도 민간인으로 바꾸자는 글을 썼다. 그 뒤로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다가 어제 지역의 탈핵운동가들과 원전민간감시기구의 운영위원들이 조촐한 간담회를 가졌다. 영광지역에 감시기구가 뜬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어색하고 긴장된 초반이 지나자 슬슬 입이 풀린 운영위원들이 자기 변호인지 아니면 자탄인지 모를 고백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내가 10년 넘게 감시위원으로 있지만 어떤 때는 정부의 홍보위원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도대체 우리가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어요. 모든 정보를 저쪽에서 틀어쥐고 사고가 난 후에야 통보해주는 식이니. 그것도 뉴스에 공개되는 정보에 한해서 알려줍니다. 그러니 사고가 나더라도 지역주민에게 먼저 통보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진 겁니다. 초창기엔 감시위원들조차 사고현장에 접근도 못했어요. 원전 관련 법규를 고치지 않는 한 이 상황은 개선되기 어렵다고 봅니다.”


 사실 그동안에 문제가 되었던 원전사고들은 거의가 뉴스를 통하거나 아니면 원전 내부에서 일하는 사람들과의 사적 접촉을 통해 밖으로 알려진 것이다. 이렇게 원천적으로 감시기능이 마비되어 있는 원전감시기구를 왜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10여년 전 치열한 반핵투쟁의 성과물이자 타협물로 얻어낸 민간감시기구건만 당시의 반핵진영에서 감시기구의 내용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은 탓이 크다. 물론 전혀 관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일부 활동가들이 내부에 들어가 나름 치열하게 싸웠으나 자금과 행정력을 쥐고 있는 정부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정부가 원하는 대로 고착되고 말았다. 


(경향신문DB)


지금도 아쉬운 것은 그때에 왜 반핵진영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는가이다. 영광에 민간감시기구가 만들어지고 나서 원전이 있는 다른 4곳의 지역에도 영광을 모델로 하여 감시기구가 속속 들어서고 이들 사이에 협의체도 만들어졌다. 이렇듯 민간감시기구가 만들어진 과정이나 운영방식을 보면 전형적인 정부 기구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원래 민간 차원에서 시작되었으나 그것의 대중적 영향력을 고려하여 정부에 의해 제도화된 기구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국가인권위원회와 자활센터 등이 그렇다. 그러나 원전민간감시기구의 경우는 성격이 아주 고약하다. 군사시설 이상으로 엄격히 보안화되어 있는 원전시설에 민간인이 들어가서 마음대로 감시한다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불가능한데도 이를 투쟁의 성과물로 제시하고 받아들인 것이 잘못이었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지나간 일을 탓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제한된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주어진 조건과 역량 안에서 최대한 노력하여 주민의 입장에서 원전사고에 대처할 수 있는 매뉴얼과 방법을 개발해 끊임없이 정부를 자극하고 압박해야 한다.


간담회를 마치고 행여 탈핵활동가나 주민들이 감시위원회를 정부의 들러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백안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분들은 어쩔 수 없는 틀에 갇혀 있을 뿐이지 탈핵과 핵 안전성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향후 잦은 만남과 교류를 통해 주민 입장에서 감시기구의 위상을 높이고 그 역할을 규정하기 위해 힘을 모으자고 입을 모았다.


대체로 개성이 강한 활동가들은 이러한 상황에 처하면 ‘중이 절을 떠나듯’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결국 주민들을 위한 기구는 온전히 정부 몫이 되고, 주민과 정부 사이에 제도적인 소통구조가 없어지고 만다. 독립성이 요구되지만 태생적 한계로 인해 어정쩡한 중간지대에 있는 정부 기구들을 민간 차원에서 어떻게 접근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원전민간감시기구는 하나의 시금석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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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대학 수시 1차 모집 마감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학교폭력 가해 사실의 학생부 기재’를 둘러싼 교육계의 갈등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학생부 기재 방침을 고수하는 교육과학기술부와 이에 반대하는 일부 진보성향의 교육감이 팽팽히 맞서 첨예한 논란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교육시민단체와 정치권도 찬반 입장으로 갈려 가세하고 있다. 수험생과 학부모는 물론 대학도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학교폭력을 줄여 보려는 교과부의 취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번 사안은 교과부가 한 발 양보해 서둘러 타협점을 도출해야 한다. 눈앞에 닥친 대입 전형에서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일 뿐 아니라 학생의 인권 보호나 교육적 차원에서도 그렇다.


교장이 학생부를 승인하는 최종 시한인 지난 7일까지 학생부 기재를 거부한 학교는 전북 16곳과 경기 6곳 등 22곳으로 나타났다. 전국 2303개 고교의 약 1%로 많지는 않다. 교과부가 학생부 기재 방침을 거부한 교장과 교감, 교원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고 징계를 하겠다고 강하게 압박한 결과다. 문제는 일부 학교라도 학생부 기재를 거부하면 눈앞에 닥친 대입 전형, 특히 입학사정관제 전형에서 큰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이런 혼란도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밝힌 대로 학생부 기재를 거부한 학교 명단을 각 대학에 통보해 폭력 사실 여부를 직접 확인토록 하면 없앨 수는 있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학교폭력 해결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출처: 경향DB)


대입 전형 과정에서 나타날 혼란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학생부 기재 자체에 있다. 교과부는 학생부 기재로 학교폭력이 대학 진학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도록 하면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2월 발표한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에서 핵심 대책의 하나로 포함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의 지적대로 한 순간의 실수까지 학생부에 5년간이나 ‘주홍글씨’처럼 기재하는 것은 인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지나치게 가혹하고 비교육적인 처사다. 더욱이 학생부 기재는 법적 근거가 미비하고, 입소 경력을 학생부에 기재하지 않는 소년원법 등 소년보호 사건과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는 터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8월 교과부의 학생부 기재 방침은 인권 침해 가능성이 있으므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졸업 전 삭제 심의제도’나 ‘중간 삭제 제도’의 도입을 권고한 것이다. 그러나 교과부는 인권위의 권고안 수용을 거부하고 기존 방침을 몰아붙이고 있다. 학교폭력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최대 현안의 하나다. 그러나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학생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큰 비교육적인 제도까지 도입하는 일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교과부는 지금이라도 학생부 기재에 관한 기존 방침에서 물러나 바람직한 대안을 찾길 바란다. 자존심이나 감정에 치우쳐 고집을 부릴 사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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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대 | 전문상담교사·중앙대 교육대학원 교수


‘왕따’ ‘자살’ ‘비행’ 등 아동·청소년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여기에 우울, 강박, 불안 등 스트레스로 말미암은 정신건강의 문제도 크게 증대하고 있다. 이런 다양한 문제가 모두 나타나는 대표적인 곳이 학교 현장이다.


정부가 이들 문제의 해결책으로 2005년 지역교육청에 전문상담순회교사를, 2007년부터는 학교에 전문상담교사를 배치하기 시작해 현재 883명이 학교와 교육청에서 학교상담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하고 있다. 


 지난해 대구, 광주, 대전 등에서 학교폭력 피해학생의 연이은 자살사건을 계기로 학교폭력의 심각성이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부각되어 올 2학기에는 500명의 전문상담교사가 학교에 추가 배치되고 내년에는 1000명이 충원될 예정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상담교사. 학생들과 대화 시간을 갖고 있다. (출처; 경향DB)


이는 학교에 전문상담 인력의 배치가 아동·청소년 문제의 근본 해결책임을 인식하고 학교교육의 본질을 회복하고자 노력하였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된다. 


그러나 전문상담교사를 단기간에 대폭 충원함으로써 학교상담의 질적 저하와 정부의 상담인력 수급정책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키고 있다.


학교에는 교과교사 이외에 보건, 사서, 영양, 진로진학 교사 등 다양한 인력이 활동하고 있고, 이들의 직무수행을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이 제정돼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학교상담 인력에 대한 법적 규정은 학교폭력법과 그 시행령에 짤막한 문구로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현재 학교상담의 운용에는 상담 인력의 역할과 직무가 명시된 법적 규정이 없고, 인사나 복무 등의 규정도 지역에 따라 들쭉날쭉해 관리자의 자의적 판단이나 해석에 의해 운용되고 있다 


학교상담법안은 지난 국회에서 발의돼 논의되다가 이해집단의 갈등으로 계류 중 폐기됐다. 제정될 학교상담법에는 학교상담의 목적, 인력, 역할, 조직, 지원조건 등이 명시되고 장기적인 상담 인력의 양성, 배치, 임용, 연수 등의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 학교상담은 비정상화된 학교 교육을 ‘인간중심’ ‘행복중심’인 학교 교육의 본질을 회복할 수 있는 기능을 수행한다. 학교상담이 교육 본연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학교상담법 제정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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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 | 부산대 교수·한문학


나는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다. 1993년도 부임한 이래 돌아가면서 맡는 학과장을 제외하고는 어떤 보직도 맡아본 적이 없다. 내가 아니라도 능력 있는 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또 대학 내 최대의 정치행사인 총장 선거에서는 어떤 진영에도 속한 적이 없다. 그저 선거 날 내가 좋다고 판단한 후보에게 한 표를 던졌을 뿐이다. 이렇게 해서 20년 동안 아침 일찍 연구실에 나와 저녁 때까지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부산대 총장실에서 9일째 잠을 자고 있다. 부산대 총장이 원래 직선제를 고수하기로 한 자신의 공약을 뒤엎고 교수들의 중의를 무시하며, 총장 직선제를 폐기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항의하고 있는 것이다. 


 총장 직선제는 1953년부터 시행되다가 61년에 폐지됐고 91년부터 다시 시행됐다. 다시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현재 시행착오의 과정을 겪고 있는 중이다. 그러기에 대학 총장 선거 과정에서 일부 총장직에 눈이 먼 후보자가 돈을 쓰고 패거리를 만드는 등 적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내가 직접 한 일도 아니고 관계되지도 않았지만, 다른 곳보다 더욱 깨끗해야 할 대학 선거가 혼탁했던 것에 대해, 나는 대학 구성원으로서 우리 사회에 사과해 마지않는다. 하지만 직선제에 문제가 있다 해서 대학의 민주주의를 없앨 수는 없지 않은가. 만약 총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부정과 비리가 있다면 해당자를 법에 따라 처벌하고, 대학 구성원이 스스로 자정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또 들어보니, 대학 총장 직선제를 폐기하게 된 이유도 참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총장을 찾아가 공약을 뒤집고 교수들의 중의를 무시하며 직선제를 폐기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교육부가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지 않으면 부산대학이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위협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총장과 보직 교수들은 교과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재정적으로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재정을 미끼로 목적을 달성하려는 교과부의 행태는 참으로 야비하지 않은가. 교과부가 아무리 아니라고 변명해도, 이것은 부산대학교 교수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강명관 부산대 교수 (출처: 경향DB)


지난 20년 동안 나는 총장 직선제 하에서도 아무런 문제없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연구할 수 있었다. 그리 게으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99%의 교수들 역시 직선제 하에서도 자신이 할 일을 하고 지냈다. 대학에 있는 나로서는 직선제가 대학 발전을 저해한다는 근거를 찾을 수가 없다. 


석 달이 지나면 대통령 선거가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에게 감히 묻고 싶다. 유독 박근혜 후보인 것은, 지금 유일하게 공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 박 후보는 직선제에 의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예정이다. 대통령 직선제란 것이 과거 얼마나 문제가 많았는가. 금전과 관권, 지역감정 등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는 문제가 즐비하였다. 지금도 일부 문제는 남아 있지만, 그래도 과거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한 선거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가. 


초등학교 반장,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 국회의원, 대통령 모두 직접 유권자들이 표를 던져 뽑는데, 어떻게 대학교수만은 총장을 직선으로 뽑을 수 없단 말인가? 홀대 받는 지방 사람으로, 지방대학 교수로서 물어보고 싶다. 인재와 일자리를 수탈당하고 있는 지방에는 명문대학이 있으면 안 된단 말인가. 지방국립대학을 명문대학으로 성장시키는 데 대해 어떤 정책을 갖고 있는지 묻고 싶다. 아울러 제발 교육부가 돈을 수단으로 대학의 자율성을 박탈하고자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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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 서평가·필명 ‘로쟈’


초등학교 때의 일로 기억한다. 학교에서 속독법 특강이 있었다. 속독의 필요성과 요령에 대한 내용이었다. 비슷한 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TV프로그램에서도 속독술을 ‘묘기’로 보여주기도 했다. 몇십 초 만에 책 한 권을 다 읽고 질문을 알아맞혔다. 속독술은 진기한 기술이면서 부러운 능력이었다. 


한창 책을 많이 읽고 독서에 대한 욕심도 컸기에 <기적의 속독법> 같은 책을 구해서 연습을 해보기도 했다. 안구운동법과 함께 지금도 생각나는 요령은 독서의 단위를 단어에서 문장, 문단으로 점차 확장해나가는 것, 대각선으로 읽어 내려가는 것 등이다. 크게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연습량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었겠지만 시집을 읽게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두툼한 소설책이라면 속독이 요긴하겠지만 음미하면서 읽어야 할 얇은 시집을 속독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속독이 만능은 아니란 생각에 속독에 대한 열의도 좀 시들해졌다. 빨리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잘 읽는 것일 테니까. 


 

(출처 : 경향DB)



무엇이 잘 읽는 것인가. 최근에 읽은 한 사례가 인상적이다. 일본인 저자가 쓴 <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이란 책은 하시모토 다케시라는 한 국어교사 이야기다. 원제는 <기적의 교실>이다. 올해 7월에 100살이 된 하시모토는 인생의 절반 동안 고베 시의 사립 나다중·고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쳤다. 이 학교는 굴지의 입시명문고로 유명한데, 1968년엔 도쿄대학 최다 합격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어떤 비결이 있었던 것일까.


놀랍게도 하시모토의 교수법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파격적이다. 나카 간스케란 일본 작가의 자전적 소설 <은수저>를 3년 동안 읽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교과서가 따로 없었다. 학생들은 교사가 직접 만든 학습교재를 통해서 작품과 관련한 여러 가지 정보를 습득하고 조별로 토론하고 자기 생각을 글로 썼다. 국어가 모든 공부의 기본이고 국어 실력이 살아가는 힘이라는 자신의 지론을 실천하는 방식이 하시모토에게는 ‘슬로 리딩’이었다. “모르는 것 전혀 없이 완전히 이해하는 경지에 이르도록 책 한 권을 철저하게 음미하는” 지독(遲讀)과 미독(味讀)이 바로 슬로 리딩이다. 


빨리 읽는 속독이 아니라 느리게 음미하면서 읽는 미독이 아이들의 미래를 바꾸는 가장 효과적인 독서법이었다는 사실은 음미해볼 만하다. <독서법>의 저자이기도 한 사이토 다카시는 이 슬로 리딩에 대해서 ‘걸어서 가는 소풍 같은 것’이라고 평한다. 버스를 타고 휙 지나가버리는 게 아니라 길가에 꽃들에도 눈길을 주어가며 한 발짝 두 발짝 걸음을 옮기는 산책 같은 소풍이 오히려 기억에 오래 남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라는 것이다. “빨리 달리는 사람은 넘어진다”는 셰익스피어의 경구는 독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읽어야 할 책은 너무 많고, 그 책들을 모두 슬로 리딩으로 읽을 수는 없다. 하지만 슬로 리딩을 통한 배움의 경험이 없다면, 독서는 후딱 지나가버린 인생만큼이나 빈곤할 듯싶다. 독서의 목적이 ‘읽어치우는 것’은 아니잖은가.


대학원 시절에 내가 들은 놀라운 수업 중의 하나는 만델슈탐이라는 러시아 시인의 4행짜리 시 읽기였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열매의/ 조심스럽고 둔탁한 소리/ 숲 속 깊은 정적의/ 연이어 들려오는 선율 사이로…”가 시의 전문이다. 하지만 이 시에 반영된 시인의 시학을 포함하여 시의 이모저모를 철저하게 읽어나가는 데 세 시간이 넘게 걸렸다. 옆길로 새는 것도 권장한 하시모토식 수업과는 달리 오직 이 한 편의 시에만 집중한 슬로 리딩 강의였다.


진정한 배움은 그런 수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 우리의 교육현장에서 슬로 리딩, ‘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을 더 많이 가르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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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떡을 잘 먹는 떡보도 있고, 술을 잘 마시는 술꾼도 있고, 밥을 잘 먹는 먹보도 있다.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교사나 박사도 있지만 법을 잘 다루는 판검사나 변호사도 있다. 그런데 우리땅걷기모임의 도반 중에 제일 이색적인 별칭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사람이 있다. 


여자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명예퇴직을 하신 광주의 서화자 선생님이다. 이분은 자신을 교사도 박사도 아닌 ‘밥사’라 칭하며 만날 때마다 밥을 사 주신다. 연금을 너무 많이 받아 쓸 데가 없다고 말하지만, 어디 연금이 많아서겠는가. “마음으로 통하는 으뜸가는 길은 밥통이다”라는 속담처럼 그분은 밥으로 보시를 하며 사람을 맞는다. 


한 포장마차에서 친구들이 새해 덕담을 하며 술을 마시고 있다 (출처: 경향DB)


<해동잡록> 제4권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세 유생이 모여 책을 읽는데, 어떤 사람이 쌀을 보내왔다. 한 사람은 술을 좋아하고, 한 사람은 밥을 좋아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떡을 좋아했다. 세 사람이 글을 지어 승부를 가리기로 했다. 


떡을 좋아하는 사람은 “사온 술은 먹지 않고 밥은 때 아니면 먹지 않는다”고 하고, 밥을 좋아하는 사람은 “술은 위의(威儀)를 손상시키며 떡은 배를 채울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말했다. “어린애가 떡 달라 울고, 굶주린 사람이 밥을 찾는다. 옛날 요 임금은 천 사발의 술을 마셨고, 순 임금은 백 잔의 술을 마셨으며, 우 임금은 그 술을 마시고 달다 했고, 고종은 단술을 만들도록 명령했으며, 강숙(주공의 동생)은 덕이 커서 취하지 않았다. 공자는 유주무량(有酒無量)이고, 진나라 평공은 술잔을 날랐으며, 위나라 문제(조비)는 벌주를 마셨으며, 백륜(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유영의 자)은 주덕송을 지었으며, 낙천(백거이)은 술의 공을 찬양하고, 초화는 주보를 지었으며, 서막은 성(성은 청주, 현은 탁주)을 말했다. 뿐만 아니라 하늘에는 주성이 있고, 땅에는 주천(酒泉)이 있으며, 고을에 주향이 있고, 신선에 주선(酒仙)이 있으니 예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모두 술을 찬양했지, 떡과 밥에 관한 말은 한마디도 없다.” 


그러고는 술을 사 좋아하니, 떡을 좋아하는 사람은 냄새만 맡고 취했으며, 밥을 좋아하는 사람은 잔을 잡더니 쓰러지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가득 찬 잔을 당겨 술기운이 오르도록 마시며 몹시 즐거워했다.


요즘 세태는 어떤가. 여기저기 술집이 즐비하지만, 술을 사는 ‘술사(酒士)’는 드물고, 땅을 보는 ‘술사(術士)’만 넘쳐난다. 서화자 선생님 같은 ‘밥사’가 더욱 그리운 것은 세상이 너무도 각박하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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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 사회부 차장


<괴짜경제학(Freakonomics)>이란 책이 있다. 2005년 상당히 인기 있었던 책이다.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과 스티븐 레빗 교수와 저널리스트인 스티븐 더브너가 함께 썼다. 이 책은 일상생활 속에 숨겨진 어두운 이면을 다루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학교의 시험이다.


미국 시카고의 공립학교들은 1996년 ‘고부담’ 시험 제도를 도입했다. 시험점수가 낮은 학교는 교육당국의 엄한 관리를 받게 되고, 교사들은 스스로 물러나야 하거나 해고되기 때문에 ‘고부담’ 시험이다. 학생들이 다음 학년으로 진급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교사들은 더 열심히 가르치도록 하고, 학생들은 더 열심히 공부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책 안에 정확한 수치는 없지만 시카고 공립학교들의 성적은 올랐던 것 같다. 그런데 성적이 오른 이면에는 제도를 도입한 취지와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어떤 교사는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에게 정답의 힌트를 줬다. 시간을 더 주는 교사도 있었다. 심지어는 학생들의 시험지를 고친 교사들도 있었다. 부정행위를 한 것이다.


결국 2002년 12명의 교사들이 해고됐고, 이보다 훨씬 많은 교사들이 경고 조치를 받았다. 부정행위를 통해 오른 점수를 빼면 실제 이 제도의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6월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 때다. 충북의 한 여중에서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 문제지에 답을 커다랗게 써서 다른 학생들이 받아쓰도록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시험 감독을 맡은 교사는 모른 척했다고 한다.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을 짝짓는 식으로 자리를 배치했다고 한다. 의도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시험 감독을 맡은 담임교사가 힌트를 줘 시험을 쉽게 봤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런 일이 벌어진 배경은 시카고와 다를 게 없다. 현 정부 출범 뒤 교육과학기술부는 학력이 부진한 학생에게는 보충지도를 실시하고, 우수 학생에게는 성취동기를 부여하겠다며 일제고사를 부활시켰다. 일제고사가 교과부의 기대처럼 학생들의 학습 효과를 높였다는 객관적인 근거는 아직 없다. 단지 부정행위 사례들만 확인되고 있을 뿐이다.


정부는 일이 생기면 새로운 정책들을 내놓는다. 어떤 정책은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급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 만들어진다. 어떤 정책은 나라의 수준을 보다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정부가 내놓는 정책 중에서 의도가 나쁜 것은 사실 없다. 어느 누가 나라 잘못 되게 하려는 마음에서 정책을 내놓겠는가. 하지만 의도가 좋다고 해서 항상 결과도 좋은 것은 아니다. 정책을 결정할 때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물론 이런 과정을 거쳐 내놓은 정책도 부작용이 나타나 고쳐야 할 때가 많다.


학생들과 이야기 나누는 이주호 장관 (출처: 경향DB)



요즘 학교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으로 징계를 받은 학생의 조치 사항을 기재토록 한 교과부의 지침 때문에 교육계가 시끄럽다. 형사처벌 기록도 학생부에 남기지 않는 것과 비교해 형평성에 어긋나고, 사소한 잘못에도 가혹한 낙인을 찍어 학생들의 재활 기회를 막는다며 상당수의 시·도 교육청이 이 지침을 거부하고 있어서다.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하다는 데 이견이 있는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폭력을 막아야 한다는 데 반대하는 국민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학생부에 그 사실을 기록하는 방법이 유일한 대책인가. 그것 말고도 모두가 찬성하는 방법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나왔다. 왜 이주호 장관은 효과도 검증되지 않았고, 반대도 많은 이 제도를 밀어붙이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대선이 불과 3개월 남았다. 많은 논의가 필요한 정책은 다음 정권이 들어선 뒤 시행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막판에 서두르다가 일만 복잡하게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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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 변호사


2009년 8월 일본 중의원선거에서 자민당이 여당 자리를 잃고 민주당이 집권을 했다. 자민당이 제2당으로 밀려난 것은 1955년 이후 처음이었다. 당시에 민주당은 ‘콘크리트에서 사람으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큰 호응을 얻었다. ‘콘크리트’는 일본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토건사업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세금도 낭비하고 환경도 파괴하는 토건사업의 고리를 끊겠다는 민주당의 공약은 자민당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만들었다. 


일본형 토건사업의 대표적인 예는 바로 댐이었다. 댐이 좋은 시설이라고 알고 있는 시민들이 많지만, 사실 댐건설은 폐해가 더 큰 토건사업이다. 많은 땅이 수몰될 뿐만 아니라, 주변지역에 안개가 발생하는 등 기상이 변화해서 농업에 피해를 입히고 생태계를 교란한다. 사업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마련이어서 많은 세금이 낭비된다. 한마디로 건설업자에게만 좋은 일을 시켜주는 사업이다.


 그래서 일본 민주당 정권은 집권 초기에 건설 중이던 댐을 백지화하고 낡은 댐을 해체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물론 중간에 기득권층의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실제로 댐건설을 철회하고 댐을 해체한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최소한 일본에서 새로운 댐을 건설하겠다는 것은 사회적 동의를 얻기 어렵게 되었다.


경북 영덕군 달산면 주민들 달산댐 건설 반대집회 (출처: 경향DB)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댐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현 정부는 4대강에 거대한 ‘보’들을 건설해서 녹조로 강을 뒤덮더니, 그것으로 모자라 영양댐, 영주댐, 지리산댐 같은 대규모 댐들을 곳곳에서 추진하고 있다. 경북 영양군 수비면 일대에 추진 중인 영양댐은 처음에는 구미산업단지에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필요하다며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중간에 경산산업단지에 용수를 공급하는 것으로 목적이 바뀌었다. 목적도 불분명한 댐인 것이다. 수요가 분명해서 댐을 건설한다기보다는 댐을 건설해야 하니까 수요를 끼워 맞춘다는 의혹을 가지게 하는 대목이다. 더구나 예비타당성조사를 해 보니 댐건설은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도 영양댐은 계속 추진되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내년 예산에 본타당성조사 용역예산 24억원을 집어넣으려 하고 있다.


10여년 전에 폐기됐던 지리산댐 건설계획도 슬그머니 부활했다. 지리산 계곡에 높이 140m가 넘는 댐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리산댐은 홍수조절용 댐이라는 이유로 예비타당성조사 같은 최소한의 절차도 생략하고 있다. 사업비 500억원 이상인 경우에는 예비타당성조사를 받아야 하지만, 재해예방 목적인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는 허술한 법조항을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내성천은 강변 전체가 모래톱으로 되어 있어 생태적 가치가 높은 낙동강 지류이다. 그런데 내성천 일대를 수몰시키는 영주댐 공사가 진행 중이다. 서울 여의도보다 넓은 땅이 물에 잠길 뿐만 아니라, 하류 마을에서는 아름다운 모래톱이 사라지는 등 추가적인 환경피해도 발생하고 있다. 


댐건설은 대규모 공사인 만큼 이권도 크다. 영양댐의 사업비는 3139억원, 지리산댐의 사업비는 9897억원, 영주댐의 사업비는 8797억원에 달한다. 물론 공사는 대형건설업체들이 수주한다. 입찰담합 의혹도 제기된다. 영주댐 공사와 관련해서는 삼성물산과 대우건설 간에 담합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문제가 많고 타당성도 의심스러운 댐건설은 중단돼야 한다. 이미 미국이나 프랑스는 댐이 인간에게 주는 이익보다 생태계를 교란함으로써 발생시키는 문제가 더 크다고 판단해서 낡은 댐들을 해체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댐을 짓겠다고 난리다. 


댐을 지어서 이익을 보는 것은 건설업체들뿐이다. 그리고 토건사업을 벌여야만 자기 조직을 유지·강화할 수 있는 건설관료들과 수자원공사뿐이다. 반면에 피해를 보는 것은 주변 농민들과 미래세대에 넘겨줘야 할 아름다운 자연이다. 소중하게 쓰여야 할 공적인 재원이 낭비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국민 모두가 피해자일 수 있다. 이제 돈은 콘크리트에 쏟아붓지 말아야 하고, 강은 흐르게 놔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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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훈 | 건축가


학교에서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가르치지만, 가진 사람 밑에 없는 사람이 눌려 있고, 직업은 사람의 귀천을 가르는 잣대가 된다. 교육이란 이름으로 현실과 전혀 다른 무망(誣罔)을 가르치는 시절이 씁쓸하다. 


더 있다. ‘승리보다 참가에, 성공보다 노력에 의의가 있다’는 올림픽의 이상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하는 거짓말, 세상은 오로지 금메달에만 몰두한다. 진정 스포츠를 이해·사랑하는 사회라면 금메달을 따도 보상과 특혜가 없고 꼴찌에게도 애정어린 박수를 보내야 한다. 그것이 명예를 존중하는 스포츠정신, 나아가 건강한 시민의식 아닌가.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는 스포츠정신을 고양하자는 말이지 경기에서 패배한 보다 느리고, 보다 낮고, 보다 약한 존재를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2012 런던패럴림픽이 열리고 있다. 몸이 성치 않은 이들의 경기는 승패나 기록과 관계없이 그 자체가 감동이다. 육체의 불편을 극복하려는 의지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느낀다. 패럴림픽은 올림픽 뒤에 열린다. 반드시 그래야 할까. 패럴림픽을 올림픽 전에 열면 어떨까. 우리가 개최하는 각종 국제대회에서 시도해보자. 큰 대회에 앞서 언제나 장애인대회가 먼저 열리는 코리아를 기획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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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올림픽은 끝났지만 그 후유증은 더 깊어지고 있다. 9월2일 밤, KBS 1TV의 스포츠 프로그램 <운동화>는 여자 펜싱 신아람 선수의 오심 문제를 다뤘다. 석연치 않은 판정 상황이 발생했을 때 선수와 코치와 대한체육회가 어떻게 대처를 했느냐 하는 점이었다.


여러 차례 보도된 바와 같이 대한체육회 박용성 회장은 “규정에 따라 선수가 심판에게 직접 항의해야 하는데 언어 문제가 있어 제대로 못했고 지도자가 항의하다가 시간을 허송했다”고 누차 강조해왔다. 8월19일, KBS 1TV <일요진단>에 출연해서는 코치가 “이성을 잃어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잊어버렸다”고도 했다. 


 <운동화>에 출연한 여자 펜싱의 심재성 코치는 석연치 않은 판정이 있을 때 코치도 항의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영어, 불어, 독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줄 아는 심 코치는 현장에서 정확하게 1초의 오심을 거론했다. 국제펜싱연맹 심판진이 심 코치를 경기장 밖으로 쫓아내지 않고 30분 가까이 비디오 판독을 한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신아람이 런던올림픽 펜싱 에페 준결승에서 패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경향신문DB)


박 회장은 체육회가 각 종목 선수단에 오심이나 불리한 판정 발생 시 대처하는 요령이나 항의하는 방법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고 교육까지 시켰다고 했지만 <일요진단>에 함께 출연했던 양궁의 기보배 선수는 “그런 교육을 받은 일이 없다”고도 했다. 선수들은 훈련에만 매진하고 코치들이나 연맹 관계자들이 그런 교육을 받았을 수도 있는데, 어쨌든 박 회장이 체육회가 모든 것을 제공했는데 선수는 ‘언어에 문제’가 있었고 코치는 ‘이성을 잃어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잊어버렸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은 상황의 심각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발언이다. 런던에서 박 회장은 “누구와 토론해도 좋다. 공부를 제대로 하고 나와야 할 것”이라고까지 말했는데, 그가 언급한 항의하는 절차와 방법에 관한 책자의 펜싱 부문을 쓴 사람이 바로 심재성 코치다.


박종우 선수의 ‘독도 세리머니’ 건이 불거졌을 때도 체육회는 그와 관련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교육을 시켰으나 축구 대표팀은 태릉선수촌 바깥에서 훈련했기 때문에 전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체육회가 이런 식으로 우리는 할 일을 다했으니 선수나 코치 개인의 문제라는 식으로 술잔을 계속 돌리기만 한다면 끝내는 술상을 엎어버리게 되는 진실게임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 후유증을 지켜보면서 내가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대한체육회나 축구협회가 사람 귀한 줄 정말 모른다는 점이다. 뛰어난 선수와 노련한 지도자와 유능한 스포츠 외교 전문가는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다. 사람 귀한 줄 아는 조직은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당사자의 의견을 신중하게 청취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존중한다. 그런데 상황은 정반대다. 펜싱의 심재성 코치와 축구의 김주성 사무총장은 해당 종목에서 선수, 지도자, 국제무대 등 3박자를 고루 갖춘 인재들인데 박 회장은 심 코치를 ‘이성을 잃고 자기 할 일을 잊어버린’ 사람으로 간주했고, 축구협회는 사무총장을 평지풍파의 방패막이로 쓰고 있다.


심재성 코치는 선수생활을 마친 후 펜싱 종주국 프랑스로 건너가 국내 최초로 프랑스 국립 펜싱 지도자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 체육청소년부의 국가지도자 자격증까지 취득한 인물이다. 뛰어난 외국어 실력으로 대한펜싱협회의 국제업무와 해외전지훈련을 담당해왔으며 수많은 대회의 경기 임원이나 심판을 맡아왔고 지금도 국제펜싱연맹 규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 사람을 두고 규정도 모르고 이성을 잃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는 체육회장으로서의 엄중한 질책이 아니라 거의 명예훼손에 가까운 비난이 된다.


축구협회의 김주성 사무총장도 같은 맥락이다. 당시로서는 역대 최연소로 대표팀에 선발되어 월드컵을 세 차례나 뛰었으며 ‘아시아 최고 선수상’을 3년 연속으로 수상한 인물이다. 1997년 K-리그 우승과 MVP까지 성취한 후 은퇴한 김주성은 경성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마쳤고 국제축구연맹이 주관하는 국제축구행정 프로그램까지 이수했다. 그 이후 축구협회의 국제부장을 지내면서 국내외에 폭넓은 네트워크를 확보해왔다. 


이런 인재가 박종우 독도 세리머니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물론 김 총장의 과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무총장이란 자리가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항변할 수 있는 가벼운 자리도 아니다. 일정하게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뛰어난 선수 경력에 국제스포츠 업무 경력과 다양한 네트워크를 갖춘 인물이 귀한 상황에서 김주성 같은 인재가 최고위층이 책임져야 할 일을 다 떠안고 사라진다면 그것은 너무나 큰 상실이다. 


큰 대회가 끝나면 꼭 나오는 얘기가 ‘스포츠 외교 전문가 양성’이다. 런던올림픽 이후에도, 다름 아닌 박 회장의 입에서 그런 얘기가 나왔다. 선수나 지도자 경력을 가진 사람을 국제스포츠 무대로 진출시켜서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하자는 얘기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인재의 유무가 아니다. 우리처럼 엘리트스포츠에 올인한 나라에서 인재가 왜 없겠는가. 선수 출신이 아니면서 스포츠 행정 및 외교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해외에서 학위를 마치고 돌아온 사람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심 코치를 대하는 박 회장의 태도나 김주성 총장을 방패막이로 사용하는 축구협회 수뇌부의 태도로 보건대, 진실로 문제는 인재를 장기판의 졸로 여기는 스포츠 권력의 무책임함이다. 인재는 많다. 그러나 스포츠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찬란하게 빛내줄 메달리스트나 상명하복의 부품만 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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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관 | 서울 배재중학교 교사


 

최근 헌법재판소는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위헌 판결을 내렸다. 2007년 인터넷 실명제가 도입된 이유는 인터넷을 통한 악성 루머, 인신공격, 사생활 침해 등의 부작용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인터넷에 의견을 게시할 때, 이용자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해 인터넷의 역기능을 해소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공익의 효과가 명백하지 않고, 그 실효성도 부족하다고 보았다. 


헌법재판관들이 ‘인터넷 실명제’ 위헌 결정 등을 내리기 위해 앉아 있다. (경향신문DB)


 헌법재판소의 인터넷 실명제 위헌 판결은 인터넷 이용자를 자율의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이제 그 어떤 제도적 조치보다 선행돼야 할 것은 인터넷 이용자들의 자발적인 자정 노력이다. 네티즌 스스로가 건전한 윤리 의식을 가질 때, 비로소 성숙한 인터넷 문화를 정착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문화의 정착을 위해서는 초등 및 중학교 때부터 인터넷 예절에 대한 교육이 더욱 더 절실해 보인다.


현재 각급 학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미래엔(구 대한교과서)의 중학교 도덕교과서를 보면, 인터넷 윤리와 예절을 주요 단원으로 설정해 인터넷 예절에 대한 교육과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인터넷 공간의 특성을 이해시키고, 사생활 존중과 보호 방법을 찾아보게 하며, 인터넷 공간에서 지켜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는 익명성에 대한 이해이다. 익명성은 인터넷 속에서 자유롭고 활발한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악플로 인한 자살’ ‘신상 정보 밝히기’ 등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인터넷 공간에서는 누구든 자신을 숨긴 채 다른 사람에게 해악을 끼칠 수 있다. 그러므로 인터넷 공간에서 도덕적 책임을 강조해야 한다. 또한 인터넷 공간을 이용하고 관계를 맺는 대상은 나와 같이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쓸 때, 인터넷 게임을 할 때 다른 사람과의 교류라는 것을 인지하고 현실 공간과 마찬가지로 기본적 예절을 갖춰야 한다. 우리는 인터넷 공간의 특성을 긍정적으로 활용해 도덕적 실천의 장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예를 들어,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네티즌 운동, 선한 댓글 달기 운동, 사이버 기부 등을 통해 소외된 이웃을 돕고 나눔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네티즌은 단순히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람직한 인터넷 문화를 만들고, 인터넷 공동체를 꾸려 나갈 때, 진정한 의미의 네티즌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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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영남 유학의 산실을 두고 ‘좌 안동’ ‘우 함양’이라고 부른다. 


‘좌 안동’의 기틀을 세운 퇴계 이황은 조선의 대유학자다. 그에 대한 일화들이 <퇴계집>에 많이 실려 있다. 한편 한편의 글이 다 사람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면서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 한번은 퇴계 선생을 모시고 산당(山堂)에 앉아 있는데, 앞들에 말을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산당을 지키는 중이 “그 사람 참 괴이하다. 진사(進士) 앞을 지나가면서 말에서 내리지 않다니” 하자, 퇴계 선생이 하는 말이 “말 탄 사람이 그림 속의 사람같이 하나의 좋은 경치를 더해주는데 허물할 것이 무엇인가”라고 했다. 


(경향신문DB)


퇴계의 제자인 학봉 김성일이 증언하기를, 퇴계 이황은 손님에게 밥상을 차릴 때에 반드시 집에 있고 없는 것에 맞추어 차리도록 했고, 귀한 손님이라 해서 성찬을 차리지 않도록 했으며, 또 비천한 사람이나 어린이라고 해서 소홀히 하지 않게 했다고 한다. 


또한 퇴계의 제자인 이덕홍이 구술하기를, 퇴계는 산수가 아름답거나 폭포수가 쏟아지는 곳이 있으면, 간혹 몸을 빼내어 홀로 가서 즐기며 시를 읊조리다가 돌아오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덕홍은 퇴계의 임종을 두고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8일에는 아침에 화분의 매화에 물을 주라고 했다. 이날은 개었는데 유시(酉時)에 이르자 갑자기 흰구름이 지붕 위에 모이고, 눈이 내려 한 치쯤 쌓였다. 조금 있다가 선생이 몸을 바르게 앉혀달라고 명하므로 붙들어 일으키자, 앉은 채로 돌아가셨다. 그러자 구름은 흩어지고 눈은 개었다.”


한 번 살다 가는 인생을 이렇게 살다 가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오고 가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인생을 두고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결국 돌아갈 때는 누구의 인생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인생을 너무 거창한 것으로 여기며 살고 있는 게 아닌지.


그리스의 작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영혼의 자서전>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주 고상한 노래를 하나 부르자. 똥 싸고, 먹고, 방귀뀌고, 마시는 게 인생이라네.”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피타고라스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냐.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하는 지혜를 가르쳐 주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대문호 괴테는 “어지러운 인생도 그림에서는 아름다워 보이느니”라고 평했다. 


아주 하찮은 것이 인생일 수도 있고, 아주 지고지순할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다. 당신은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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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렬 | 방송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1차 세계대전 후 독일은 베르사유조약에 의해 영토를 일부 빼앗긴 뒤 다시 폴란드와 영토분쟁을 겪었다. 폴란드는 동프로이센에 속한 슐레지엔 중에서 현재의 카토비체 인근 땅이 오래전에 자기네가 지배했고 자국민들도 살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소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곳 폴란드인들이 여러 차례 폭동도 일으켰다. 이 분쟁은 1921년 주민투표를 통해 해소됐다. 투표권을 가진 주민 98%가 참가한 투표에서 60%는 독일, 40%는 폴란드에 표를 던졌다. 이에 따라 그 땅은 3등분되어 3분의 2는 독일 소속, 3분의 1은 폴란드 소속으로 결정됐다. 1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서는 이런 식의 투표가 몇 번 더 있었다.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던 자르 지역은 1차 세계대전 후 15년간 국제연맹의 신탁통치를 받다가 주민투표를 통해 독일로 편입됐다. 2차 세계대전 후에는 1956년까지 프랑스의 보호령 상태로 있다가 주민투표 결과 다시 독일연방의 주로 들어갔다.


 슐레지엔은 2차 세계대전 후 폴란드가 점령했고, 1000만명이 넘는 그곳 독일인들은 추방당해 서쪽으로 넘어왔다. 폴란드는 그곳을 자국 영토로 선포했고, 모든 지역의 이름도 자기식으로 바꾸고 자국민들을 이주시켰다. 물론 독일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1960년대까지도 독일 지도에 지금 폴란드 땅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이 지역이 독일 영토로 나왔다. 이 넓은 땅은 1990년 동독과 서독 의회가 통일과정에서 “독일과 폴란드의 국경은 현재의 국경이 최종적인 것이다. 독일은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영토 주장을 하지 않는다”고 결의함으로써 완전한 폴란드 영토로 인정받았다.


중부 유럽에서는 자칫 큰 싸움으로 번질 수 있었던 영토분쟁이 주민투표와 독일의 양보로 평화롭게 해결되었는데,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간 분쟁은 출구가 없어 보인다. 원래 무인도였으니 투표에 참여할 주민도 없고, 일본 의회에서는 한국의 독도 불법점거를 중단하라는 결의나 하는 형편이다.



(경향신문DB)



독도에 주민은 없었지만, 거기에 생명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00년대 초까지도 수만마리의 강치가 살고 있었다고 하니 생명활동이 매우 활발했던 곳이다. 우리가 독도 같은 무인도가 누구의 것이 돼야 하는지 결정할 때는 이 점이 중요한 고려사항이 돼야 한다. 독도 강치는 오래전부터 그곳에 터잡고 번성하며 살아왔다. 이들은 지금 거의 사라졌는데, 이유는 100년 전쯤 일본 어부들이 모두 죽여 없앴기 때문이다. 그후 일본이 섬을 점령했고, 일본의 패망 후에는 한국이 지배하고 있다. 강치의 시각에서 보면 자기들 땅을 일본과 한국이 빼앗아가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독도의 임자가 누구인지는 분명해진다. 바로 100년쯤 전까지 그곳에서 평화롭게 살던 강치와 같은 생명체들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활동에 의해 자연이 훼손되고 기후변화로 지구 생태계 전체가 흔들리게 됐다고 걱정한다. 인간중심주의의 결과라는 반성의 목소리도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국민의 70%가 원자력을 반대하고, 그동안 원전 건설을 찬성했던 것을 후회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인간이 독도에서 원래 주인들에게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인간만이 중심이고, 나머지는 모두 인간이 마음대로 부수거나 죽여도 좋은 하찮은 것이 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도를 폭파해 없애버리려 했다는 보도를 접했을 때, 작은 무인도를 놓고 계속 싸우는 것보다 차라리 폭파하는 게 낫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이 또한 독도의 원주인을 완전히 무시하는 인간중심적인 아주 오만한 발상이다. 독도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이러한 인간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만 가능하다. 인간이 씨를 말려버린 강치와 그 친구들에게 사죄하고, 한국과 일본은 독도를 그대로 내버려둠으로써 세월이 흐른 후 그들에게 저절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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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지난 8월14일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한 여고생은 카카오톡을 통해 친구로부터 언어폭력 등 집단따돌림을 당한 것으로 드러나 적잖은 충격을 줬다. 


사이버공간을 이용한 따돌림이나 괴롭힘은 시간·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고 일어나며 그것이 미치는 영향력이나 파급효과가 크다는 면에서 전통적인 괴롭힘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또한 사이버따돌림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목격되고 사이버공간에 보다 오래 남기 때문에 그 부정적 효과가 매우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최근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사이버따돌림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주의와 환기가 필요하다. 특히 스마트폰의 확산과 더불어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등 SNS를 이용하는 청소년들이 급증함에 따라 사이버따돌림은 향후 중요한 청소년문제로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괴롭힘과는 여러 면에서 구별되는 사이버따돌림의 심각성을 학생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며, 아울러 사이버따돌림을 당했을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교육을 시급히 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사이버불링 리서치 센터(www.cyberbullying.us)에 의하면, 2012년 6월 현재 미국 50개주 중 49개주가 따돌림과 관련된 법안을 가지고 있고 전체 50개주 가운데 14개주(캘리포니아, 하와이, 오리건주 등)는 사이버따돌림에 관한 내용을 따돌림법안에 포함시키고 있다. 가령, 하와이주는 자녀가 불링이나 사이버따돌림을 저지르게 되면, 그 자녀와 부모는 100달러에 해당하는 벌금을 물게 돼 있다. 이처럼 미국은 사이버따돌림에도 무관용원칙을 적용해 엄하게 처벌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2년 3월 학교폭력예방및대책에관한법률이 개정되면서 사이버따돌림이 처음으로 학교폭력의 한 유형에 포함됐다. 하지만 사이버따돌림의 실태 파악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등 후속 대책이 미흡한 실정이다. 또한 일선 학교에서는 사이버따돌림의 심각성에 대한 교육을 소홀히 하고, 처벌규정이나 예방안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사이버따돌림을 당했을 경우 증거자료를 어떻게 모아야 하는지, 피해사실을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 등 기본적인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이버따돌림을 당했을 경우 기초적인 대응방안을 학생들에게 주지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하루빨리 사이버따돌림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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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