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친했던 네 명의 친구, 소위 사총사 중에서 가장 결혼을 빨리할 것 같았던 친구 두 명은 아직까지 독신가구이다. 나의 친한 친구 중 절반이 1인가구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결혼 안 한 두 명 중 한 친구는 결혼을 ‘못한’ 미혼이고, 또 다른 친구 한 명은 결혼 자체에 관심이 없는 ‘비혼’이다. 미·비혼 친구 두 명은 집에서 독립하여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름 재미나게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나이 50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미혼인 친구는 “주은아, 나 아직 결혼 포기한 것 아니야.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라는 말을 곧잘 하곤 한다.


최근의 <2010 인구주택총조사>에 의하면 총 가구 중에서 1인가구의 비율은 23.9%를 차지하고 있다. 조만간 1인가구가 주된 가구유형으로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남성 1인가구와 여성 1인가구의 증가 모두 미혼 독신가구의 증대가 가장 큰 영향요인으로 나타났다. 우리의 이웃 네 집 중 한 집은 나홀로 가구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홀로 가구의 성(性)에 따라 처해 있는 상황은 매우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여성 혼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주인 없는 사람’으로 취급을 받기도 하고 각종 성범죄에 노출되기도 쉬운 상황이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1인가구 골드미스는 ‘여성 혼자 사는 집’일 수 있다는 선입견을 불식시키고자 원룸 오피스텔이 아닌 큰 평수의 아파트를 선택하기도 한다. 실제로 1인가구인 여성 후배는 집에서 부득이하게 자장면을 배달시켜 먹을 때 1인분이 아니라 2인분을 배달시킨다. 다른 1인가구인 여성 후배는 현관 입구에 남자 구두를 가지런하게 갖다 놓았다. 남겨져서 음식물쓰레기가 되는 자장면, 주인이 없는 남자 구두는 ‘두 명이 사는 집, 남성이 거주하는 집’이라는 표징이다.



우리 사회는 자녀가 있는 기혼 중심의 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성애 관계의 기혼자는 중심에 있고 독신가구는 주변부에 머물게 된다. 그러다보니 혼인하지 않은 가구는 늘 주변의 ‘호기심 천국’이 된다. “왜 결혼 안 하셨어요(‘그럼 너는 결혼 왜 했느냐?’)” “왜 애인 없으세요?(‘없는 거 알면 소개 좀 해주든가?’)” “왜 아이가 없으세요?(‘너는 어쩌다가 애를 다 낳게 되었니?’)”라는 말은 1인가구의 허파를 뒤집게 하는, 잘못된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기혼자, 즉 중심에 있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상황이 ‘정상’이기 때문에 “왜 결혼했는지?” “왜 애를 다 낳게 되었는지?”라는 물음은 제기되지 않는다. 사실은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도대체 기혼들은 왜, 어쩌다가 결혼했는가!”


고령화에 따른 1인가구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1인가구는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정부에 각종 세금을 가장 많이 내지만 세액공제, 주거 지원 등에서는 거의 혜택이 없다. 국가를 위하여 세금을 가장 많이 낸 만큼 각종 범죄로부터 안전한 보호를 받고 있지도 않다. 가끔 속 뒤집는 질문을 받는 것에서 더 나아가, 국가의 재생산을 위협한다고까지 평가받는 ‘초저출산’까지 겹치니 가끔은 ‘매국노’와 비슷한 취급을 받기도 한다. 주변의 독신가구의 잠재적 공포는 ‘DKNY(독거노인)’와 ‘고독사’이다. 가정의 달에 소외될 수 있는 1인가구의 생존분투기와 잠재적 공포를 이해하고 가족 구성의 다양성에 눈을 돌릴 때이다. “근데 미혼 친구들아. 이제 내 주변에서 괜찮다 싶은 남자는 게이 아니면 유부남인 걸 어떡하냐. 이제 내가 놀아주고 돌봐 줄게."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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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에 당시 남녀공학 중학교에 다니던 딸이 남자친구를 본격적으로 사귀면서 연애질을 시작하였다. 남자 중학교, 남자 고등학교에 다니던 큰아이는 나에게 여동생의 연애상황에 대하여 시기심과 분기탱천에 기반하여 실시간 목격담을 보고하였다. 사실 당시 나의 걱정은 딱 하나였다. ‘아직 아이들한테 콘돔 사용법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런 고민을 하다가 시간은 흘러갔다. 지난 주말에 둘째가 나에게 발칙한 투고를 해왔다. 


“엄마, 오빠 여자친구 사귀는 거 알아요?” “어휴, 근데 그 언니 있잖아. 얼굴이… (어쩌구 저쩌구).” 이제 대입수능시험을 앞두고 있는 고3수험생이 웬 이성친구냐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나는 ‘부족한 내 아이를 부탁드리옵나이다’라며 그 여학생에게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고보니 완전범죄가 안되는지라 책상 위에는 2명이 함께 본 영화관 티켓과 음료 영수증이 참고서와 함께 어지럽게 뒹굴고 있다. 대입 수능을 앞두고 긴장되고 불안한 상황에서 자기를 생각해주는, 가끔 만나서 즐거움을 느끼게 해줄 여자친구와의 소중하고 귀한 순간을 빼앗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이렇듯 사랑은 가족 밖에서 싹트고 있다.



위험한 현대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항시적인 불안에 시달린다. 불확실하고 위험천만한 사회에서 개인들은 소위 살아남기 위하여 나름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사람들은 모순될 수 있지만 구속감과 자유로움을 동시에 갈구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자신과 상대방을 묶어주는 단단한 끈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갖고 있으면서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는 것이다. 불안한 만큼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쏟아주고 지지해주는 존재에 대한 욕망도 크다. 따라서 이제 고등학생들은 물론 유치원생조차도 관심을 갖는 ‘연애에 대한 열망’은 그것이 타인과 자신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끈이라고 여기기 때문일 수 있다.


불안하고 위험천만한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친밀함(intimacy)에 대한 강한 욕구를 갖고 있다. 공적이라고 여겨지는 세상이 거칠고 험하다고 느낄수록 ‘아늑하고 안전한 가정’을 꿈꾸게 되기 쉽다. 그러나 가정 안에서 가족관계가 거칠고 험하다고 여겨지면 당연히 사랑은 가족 밖에서 갈구하기 쉽다. 가족은 점점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의 공간이 되어가고 있고, 사랑은 거리에서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을 정도로 많은, 대한민국 사회 수많은 거리의 모텔. 그 공간에서 수많은 계층, 혼인관련 다양한 신분을 갖고 있는 연인들은 사랑을 나누고 있다.


5월은 가족 간 만남이 잦은 달이고 가족들 간 “사랑해요”라는 말과 글을 가장 많이 나누게 되는 때이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처럼 5월5일(어린이날), 5월8일(어버이날), 5월21일(부부의날) 등 부부관계, 부모자녀관계 등과 관련하여 특정 일자를 국가 기념일로 지정한 나라를 찾아보기 어렵다. 어쩌면 이것은 어린이가 평상시에 학대당하고 어버이가 무시당하며 부부관계의 친밀성이 의심받고 있다는 것을 국가가 스스로 인정하는 것 아닐까? 오죽하면 온 국민이 자주 사용하는 제품의 CF 가사가 “조강지처가 좋더라~”일까? ‘가족 밖’ 사랑 경험 후 돌아온 탕자의 고백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그만큼 주변의 아파하는 조강지처들을 많이 보아서일까? 가족 밖에서 번성하는 사랑이 가족 안에서도 열매 맺을 수 있기 위해서는 개인들의 주택과 교육비 등으로 인한 경제적 고통, 건강과 안전에 대한 불안과 위험이 조금씩 감소되어야만 가능하다.


더 이상 부부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파탄한 관계는 혼인관계를 청산할 수 있도록 현행 이혼제도의 변화도 수반되어야 하고 이혼 후 생계와 자녀부양이 보장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책도 마련되어야 한다. 더 큰 사회와 국가가 가족관계에 부여하는 무거운 의미와 가치를 상호 공유할 수 있을 때 부부관계, 부모-자녀관계도 애정에 기반하여 서로를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그나저나 우리집 두 고등학생 남매의 커플들을 언제쯤 우리집에 불러모아 피임실습을 해야 한다나?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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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연애도 몇 번 해봤죠. 근데 있잖아요. 어쩜 그렇게 끝이 똑같은지 모르겠어요. 딱 2년 되는 순간에요… 저한테 뭐라고 하냐면, ‘돈 빌려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헤어지고 또 괜찮은 사람을 만나 데이트도 하고 골프도 치고 잘 만나요. 근데 만난 지 2년만 되면 또 똑같은 말을 해요.” 


최근 31세에 이혼해 어린 두 아이를 키우며 생활하다가 지금은 크게 성공한 여성 사업가와 술 한잔 마시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이런저런 살아온 이야기 중 연애 이야기를 하다가 2년이 되는 순간의 씁쓸함에 대해 토로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의 씁쓸함’을 둘러싼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결론은 2년이 되는 순간에 “돈 빌려달라”는 제안을 한 남성이 여성 사업가의 재물에 탐이 나서 접근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자연스러운 제안이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이 없으면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해결되지 않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우 안정적인 직업에 종사하지 않는 한 종종 경제적인 곤궁함에 처하게 된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지인으로부터 약간의 도움을 받아 큰 위기를 모면하게 되는 것을 종종 경험하게 된다. “아는 사람끼리 돈거래하지 말라”는 말은 진실이 아니다. 문제는 돈을 제대로 갚지 않아서 사람 잃고 돈 잃는 불행이 이어진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현실적으로 나를 신뢰해주는, 아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만난 여성 사업가에게 씁쓸함을 안겨준 남성이 돈을 빌렸다가 약속한 시기에 부채를 상환하고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가 한결같았다면, 아마도 두 사람의 친밀성은 더욱 높아지지 않았을까?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의 달’이 명실상부하게 유지되려면 가정을 위해 지출할 돈이 많아져야 한다. 어린이날에 “애들아.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니?”라면서 뽀로로 편지지에 100장의 편지를 쓰고 선물이 없다면 아이들은 편지의 장수만큼이나 큰 실망감에 떼굴떼굴 바닥에서 구를지도 모르겠다. 어버이날에 “어머니, 아버지. 늘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라고 인사만 한다면 어버이의 마음에 큰 서운함을 안겨드릴 가능성이 크다.


민주적인 열린 공동체, 복지국가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할 수 있는 ‘가족주의’의 근원에는 가족의 경제적 부양이 자리 잡고 있다. 가족은 이해관계가 없는 순수함으로 유지되는 듯하지만, 실상은 경제적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집단이다. 흔히 법전에서 ‘가족법’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민법>의 ‘제4편 친족, 제5편 상속’인 것을 보더라도, 가족의 절반은 ‘상속’이라는 돈의 흐름으로 구성되고 있는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가족의 경제적 지원이 없으면 학업, 혼인, 직업, 주택, 건강 등이 유지되지 않는 상황에서 가족에 대한 의존이 ‘가족애’라는 말로 포장되기 쉽다. 친구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 사회변혁 운동에 빠져서 가족에게 소홀했던 사람들이 가족으로부터 흔히 듣는 말이 “친구가 밥 먹여주냐. 동지가 밥 먹여주냐”다. 


민주주의와 인권의식이 기반이 된 튼튼한 사회는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을 구비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상에서는 친구가 밥 먹여주고, 동지가 밥 먹여주는 사회다. 가족 안에서 배타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자원 흐름의 물꼬를 바꿔서 주변의 어려운 동료, 이웃, 친구들에게 베풀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이제 막 성공했지만 외로운 한부모 여성 사업가도 ‘2년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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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똥! 할 때요. 하루 중 가장 정신없는 때가 출근 전인 것 같아요. 아파트 15층에서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와서 유치원 차 기다리잖아요. 그런데 애가 느닷없이 ‘엄마 똥!’ 이러는 거예요.” 


“아이가 느닷없이 수족구병이 생기기라도 하면 미치는 거죠. 어린이집에서는 오지 말라고 하니까요.”


“생리통이 너무 심해서 도저히 수업시간에 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출석만 확인하고 나가서 쉬면 안될까요?”


최근 몇 년간 자녀가 있는 기혼여성이나 여대생들에게 들은 ‘시간’과 관련해 갈등을 겪은 이야기이다. 근대 자본주의사회의 특성 중 하나는 ‘정확함’에 기반을 둔 시간표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직장이 지정한 출근시간에 도착하여 퇴근시간 전까지 최대한의 실적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생산성이 높은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어린 자녀를 돌보는 책임을 갖고 있는 여성, 생리하는 몸을 가진 여성은 학교와 직장에서 요구하는 시간규범과 매우 갈등적일 수밖에 없다.



어린아이들은 쉽게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 몸이 원할 때 먹고, 자고, 싸는 것이 일상이다. 이러한 행위와 관련된 시간들은 통제의 영역 바깥에 있는 불규칙함을 속성으로 한다. 아이에게 소위 ‘똥 싸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고, 대소변과 관련된 생리적인 욕구를 조절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또한 아이들이 전염병에 걸리는 것도 예고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아이들이 느닷없이 전염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직장여성들은 “갑자기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직장에 휴가를 낼 것인가?”를 두고 심각한 고민에 휩싸인다.


여성들의 몸과 관련된 시간들은 통제된 공간에서 시간규범에 입각하여 행동하는 것과 갈등적이기 쉽다. 여성들이 경험하는 생리통의 정도는 매우 다양하다. 가령 앉아 있기도 힘들 정도로 극심한 생리통을 경험하는 여성들은 편안한 곳에서 휴식을 취해야 한다. 따라서 생리통을 경험하는 여성들에게 수업시간 내내 바른 자세로 앉아 교수의 말에 경청해야 하는 시간, 직장에서 정해놓은 출근시간에 도착하여 정해진 업무를 해야 하는 시간은 몸과 관련된 시간과 외부의 시간 사이에서 심각한 갈등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현대인들은 가족을 포함하여 자신의 일상을 계획하고 관리하며 살아가고 있다. 새벽녘에 잠이 깨면 시계부터 찾아 시간을 확인하고 또다시 이불을 끌어당겨 잠을 청한다. 우리들은 하루에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수없이 시계를 보며 활동의 완급을 조절하고 있다. 남성들은 주로 일 중심의 활동 속에서 시계를 바라본다. 여성들은 몸, 생로병사, 돌봄과 관련된 야성의 시간과 고도통제사회의 문명화된 시간규범과의 충돌, 그에 따른 갈등을 경험한다. 같은 공간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듯하지만 남성과 여성은 매우 다른 시간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가정 내 욕실에서 볼 수 있는 벽걸이 시계. 생리적인 행위도 단위시간 안에 맞춰야 하는 사회가 되어 남녀 공히 똥도 잘라가며 누는 것은 공통점이라고 해야 할까?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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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던 사건, 나는 2년여 전에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다. 갑상선암 수술은 나에게 여러 가지 의미에서 유·무형의 선물을 가져다주었다. 암 중에서는 가장 예후가 좋다고 이야기되지만 그럼에도 ‘암’자가 붙은 수술을 받고 나니 인생의 가치관이 전환되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세상에 두려울 게 없는 대한민국 아줌마가 진도를 더 나가게 되었다. “인생 한방이다” “내일은 없다. 그냥 주어진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자” 등이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작년 어느 날 당시 고등학생, 중학생이던 두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우리는 아무리 조심해도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하고 위험한 사회에 살고 있어. 엄마가 갑자기 어떻게 될지도 모르니까 내 미리 유언을 남기마.”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을 향하여 사뭇 진지하게 “결혼하지 말거라”라고 말하였다. 물론 덧붙이기는 하였다. “연애만 평생 하면서 살아. 그리고 아이를 키우고 싶으면 굳이 결혼하지 않아도 아이를 낳을 수 있고, 아니면 입양하는 방법도 있어.” 내 말을 들은 아이들의 반응이 다르다. 고등학생인 아들의 반응 “저는 결혼할 거예요. 왜 결혼하지 말라고 강요하세요?” 중학생인 딸의 반응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어요.” 


롯데호텔서울의 웨딩홀에서 꽃가루를 맞으며 결혼식 행진을 하고 있는 커플 (경향DB)


비록 미성년인 두 아이의 반응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결혼은 남성들에게 여전히 꽤 매력적인 제도이고 여성들에겐 그렇지 않은 측면이 크다. 아무리 세상이 성평등하게 바뀌었다고 하지만 결혼을 하는 순간 남성들은 자신의 아이를 임신·출산해줄 아이의 엄마이자 자신들의 조력자가 되어줄 여성들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대신 여성들은 결혼제도로 들어오는 순간 ‘무수리’ 인생을 각오해야 한다. 결혼했으니 ‘아이의 엄마’가 되어야 하고 남편을 어떤 식으로든 보살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압력에 직면하게 된다. 결혼하면 남성들의 용모는 나날이 반짝반짝해지고, 여성들은 1년 뒤 집안과의 갈등조정자, 가사노동자로서의 과중한 역할에 얼굴에 다크서클이 입까지 내려오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결혼제도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는 비혼여성들이 증가하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교에 진학하는 비율을 살펴보면, 2009년 이후 여성이 남성보다 5%가량 많다. 그러나 졸업 후 취업문은 여성에게 상대적으로 굳게 닫혀 있는 상황이고 여성들의 경제적 독립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여성이 대화라도 통하는 남성을 만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여성에게 여전히 의무를 짊어지우는 결혼제도로 들어가게 되는 결심을 하게 되기는 더더욱 쉽지 않으리라. 여성들의 학업적 성취와 평등의식이 높아지는 속도에 비하면 남성들은 여전히 더디다. 심각한 문화적 지체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OECD 회원국 중에서 여성자살률 1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는 것은 동일한 사회·문화적 원인을 갖고 있다. 여성이 집안일과 육아에 대하여 일차적인 책임이 있고 취업 문턱은 높고 유리천장이 존재하며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각종 폭력이 난무하는 한, 여성들의 집단적 우울감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며 여성들의 결혼기피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어이, 아들. 뭐 결혼을 꼭 할 것이고 엄마 같은 여자랑 결혼하고 싶다고 했지?” 아들에게 일침을 가하며 나의 유언 전달식은 마무리되었다. “너는 결혼하지 못할 것 같다.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남자가 ‘엄마 같은 여자’ 타령하는 남자거든. 호호호.”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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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분명 성장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사람일 거야.”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대화를 나누기에 피곤하고 부담스러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일단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점이다. 늘 지루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심지어 자신을 공주나 왕자, 혹은 영웅의 자리에 위치시키며 떠들어댄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슬슬 그 자리를 피하고 싶어진다. 공주(왕자)나 영웅을 들먹이는 것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열등감의 다른 표현이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향하여 너무 쉽게 말을 뱉어대곤 한다. “성장과정에 문제가 있었을 거야”라고.


그처럼 성장과정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는 핵심에는 ‘그 사람이 태어나고 성장한 가족’에 대한 비난이 자리잡고 있다. “어느 순간 부모님 중 한 분이 계시지 않아서 한쪽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지 않았을까?”라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완벽한 것처럼 여겨지는, 양부모 가족에서 성장한 사람의 성격이 가장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 사람도 반드시 자기성찰의 과정을 거쳐야 성장하고 성숙해질 수 있다. 한부모 가족에서 성장한 사람은 부모의 부재 자체보다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상처받았을 수 있다. 



대부분의 한부모 가족은 경제적 곤궁을 겪을 수 있지만 가족관계에 흐르는 기본적인 특성은 ‘평화’이다. 반면에 핵가족은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안정을 가질 수는 있지만 가족관계에 흐르는 특성은 ‘갈등과 폭력’이다.


부모 사이의 관계에 내재되어 있는 성 역할, 성별 권력관계를 일상적으로 목격하며 성장한 사람은 어머니의 희생, 양보에 따른 분노에 더 많이 노출된다. 남성성에 자리잡고 있는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침묵(silence), (여성의 요구에 대한) 무관심(indifference), 버럭 내는 화(anger)에 대해서는 모순되게도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매력을 느끼고 어머니를 향한 비난에 친숙해지기도 한다. 남녀 간 갈등의 극적인 표현인 부부 폭력도 핵가족에서만 발생한다.


단언하건대, 우리 모두는 어떠한 형태의 가족에서 성장하였든 가족으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고 성장하였음을 인정해야 한다. 사람들은 가족 안에서 성장과정에 문제를 일으킬 만한 일들을 경험한다. 인격적 성숙도는 그러한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고 자기성찰의 도구로 삼느냐에 달려 있다. 부모님과 함께 성장하였다는 자부심만으로 “그 사람은 분명 성장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사람일 거야”라고 타인에게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이제 자신의 성장과정을 아프게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4차원 공주(왕자)도 가족이라는 왕궁 속에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왕비의 아픔을 이해하고 인간의 세상으로 하강하기를.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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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


 

“어휴, 남편은 그냥 월급날 담장 너머로 월급봉투만 던져주고 갔으면 좋겠어.” 


“1대가 덕을 쌓아야 주말부부가 되고, 3대가 덕을 쌓아야 격월부부가 된다는데 조상이 원망스럽다.” 


이제 쉰 살이 가까워지니까 그동안 아이들을 키우느라 관계가 소원했던 옛 친구들과의 만남이 최근들어 시작되었다. 일찍 결혼한 친구가 자식을 대학교 보낸 비법에서 시작해 남편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수다 보따리가 풍성하게 펼쳐진다. 다들 결혼생활 15년차를 넘고, 이혼율이 가장 높은 40대 초반을 훌쩍 넘어서다 보니 자포자기 상태에서 남편과 살아가는, ‘괴담(怪談)’ 수준의 이야기들도 터져나온다.



물론 아내를 ‘공주마마’ 모시 듯하며 살아가는 남성들이 들으면 다소 억울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을 수 있겠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가족 안에서 여성이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담당하는 데서 생겨나는 중년 이후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남성은 가족의 생계를, 여성은 가사노동과 자녀양육을 담당하는 것으로 역할 기대를 한다. 역설적이게도 성별에 따라 다른 역할이 기대되면서 남성은 ‘가사노동과 자녀양육을 안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여성은 남성들이 안 하는 이 모든 역할을 하면서 가족의 생계까지 책임지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가족의 생계를 여성이 책임지는 여성가구주의 비율은 4가구 중 1가구에 달하고 있고, 경제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여성들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부부의 애정을 깊게 하고 더욱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서로의 역할에 따른 경계를 지우는 것이 필요하다. 집이 쉼터일 수 있는 남성이 부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는 같이 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매우 구체적인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메뉴에 대한 고민, 장보기, 밥하는 노동을 함께하지 않는 존재를 위해 대신 노동을 짊어져야 하는 자는 상대방과 함께하는 시간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주 인용되는 통계청의 발표를 보더라도 맞벌이 여성의 유급노동시간이 남성보다 1시간20분가량 짧다. 그에 반해 여성의 하루 가사노동시간은 2시간38분인데 남성은 19분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부부의 대화시간이 30분 이내인 것, 즉 대화시간 부족이 부부갈등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기도 하고, 부부의 대화방법이 부부갈등 치유 프로그램의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작금의 상황에 대한 변화 없이 부부의 대화시간이 길어진다면 오히려 부부갈등만 더욱 부추기게 될 것이다. 나아가 이혼율을 더욱 높일 우려도 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남편의 부재에서 휴식과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기혼 여성들의 존재는 대한민국의 부부관계, 가족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주말이 다가오고 있다. 당신은 휴식이 있는 주말이 기다려지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누군가의 노동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여가가 배어 있는 주말을 남녀 똑같이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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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의 일이다. 학력고사를 마치고 미팅에서 만난 한 남학생과 아주 짧은 기간 교유하였던 적이 있다. 좋았던 감정도 잠시, 결국 헤어지자는 편지를 보냈다. 연습장에 미리 편지 내용의 초고를 작성했다. 그리고 하얀색 편지지에 한자 한자 정성껏 연습장의 초고를 참고하여 편지를 써내려갔다. 무려 10장으로 마무리된 편지를 하얀색 편지봉투에 우표를 붙여 빨간색 우체통에 넣었다. 이별의 편지를 보낸 후 답장을 받기까지 꼬박 한 달이 걸렸다. 당시에는 기다림이란 당연히 ‘견뎌내야 하는 시간’의 다른 말이었다.


최근 10여년 동안 사람들의 일상, 일터와 가족생활에 가장 극적인 변화를 가져온 요인 중의 하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이다. 이제는 변화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일상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은 사람들의 관계 맺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가끔 텔레비전을 시청하다보면 연예인들이 “애인으로부터 문자메시지로 이별 통보를 받았다”며 서운함을 표현하는 경우를 본다. 


e메일이나 문자메시지를 통해 사람들의 관계가 하루 만에 종료되기도 한다. 20여년 전에는 한 달이 소요되었던 관계단절 의식이 이제는 하루 만에 이루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의식하지 못해서 그렇지 우리의 일상은 어떤 면에서 한 달을 하루로 압축하여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다리는 시간은 불필요한 시간으로 간주된 지 오래다.


현대인들은 “바쁘다, 바빠”를 입에 달고 살아간다. 이처럼 분주해지고 바빠진 이유 중의 하나는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한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편화 때문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특성은 “빠른 답변요구”를 특징으로 한다. 누군가가 내게 보낸 휴대폰이나 카카오톡의 문자메시지에 대하여 수분 안에 답신을 보내지 않으면 나의 요구를 무시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하는 속전속결의 사회이다. 답장과 e메일을 보내야 할 것들을 기억해야 하는 현대인들의 머리와 손은 점점 복잡하고 빨라져야만 적응이 가능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소위 속도사회에서 시간과 장소의 경계가 해체되어가는 과정을 가장 역동적으로, 온몸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일하는 어머니들이다. 자녀양육과 가사노동, 친족관리 노동의 책임까지 떠맡느라 여가시간이 부족한 여성들에겐 승용차로 출퇴근하는 이동시간이 유일한 ‘나만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자녀가 다니는 학교와 학원 등으로부터 쉴 새 없이 휴대폰 문자메시지가 날아온다. 그 문자메시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자녀의 상황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얻는다. 



그렇다면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통해 잠시 자녀의 학교와 유치원 홈페이지를 들여다보는 시간은 과연 근무시간일까, 가족시간일까? 참으로 경계짓기 어려운 시간이다. 이처럼 경계짓기 애매한 시간들이 늘어나면서 일하는 여성들은 더욱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고 있다. 휴대폰을 통해 자녀와 가족구성원에 대해 원격관리가 가능해진 사회. 축복일까, 불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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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

 

“성공한 남성의 뒤에는 아내가 있고, 성공한 여성의 뒤에는 나이든 여성 혹은 이주여성이 있다.” 


여성가족부 장관이 올해 하반기부터 손자녀를 기르는 할머니들에게 월 40만원씩 현금을 주는 ‘손주 돌보미 사업’ 실시를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각계의 반응이 뜨겁다. 


여성가족부의 발표 내용을 분석하는 것은 뒤로 하고, 실제로 맞벌이 가족에서 어린 자녀를 할머니에게 맡기고 있는 현실을 정확히 짚어낸 것으로 보인다. 


무한경쟁사회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직장에 바치며 살아가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상을 관리해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고 있다. 돌봄노동과 가사노동에서 면제되어야 직장에서의 헌신이 가능한 과로사회에서 성공한 남성들은 아내의 내조에 기대고 있고, 성공한 여성은 할머니 혹은 이주여성들의 돌봄노동에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라. 일하는 딸이나 혹은 며느리를 대신하여 손주들을 돌봐주는 할머니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소위 할머니들도 ‘괜찮은 직업’을 가진, 혹은 ‘괜찮은 직업을 가질 가능성이 있는’ 딸의 자녀를 돌봐주고 있다는 점이다. 


놀랍게도 비정규직의 고용형태로 임금과 처우가 불안정한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대신해서 손자녀를 돌봐주는 할머니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대한민국의 가족 안에서는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노인복지와 아동복지가 가족 안에서 실현되고 있는 현실이다. 가족은 계산하지 않는 순수한 사랑만으로 구성될 것 같지만 가족 안에서만큼 손익계산을 치밀하게 하는 관계도 없다. 별다른 노후대비책 없이 자녀를 위하여 헌신하였던 노인들은 ‘괜찮은 직업’을 가진 자식의 뒷바라지를 해주고 받는 용돈으로 생활해가는 경우가 많다. 치아에 문제가 생기거나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손주를 맡긴 자식들이 병원비를 지원해 주게 된다. 자녀들은 이 험난한 세상에서 믿을 곳은 가족뿐이라는 가족주의에 기반을 둬 어린아이의 양육을 부모에게 맡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가 민주적인 열린 공동체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 중의 하나가 가족이기주의이다. 부실하기 짝이 없는 영아보육, 믿고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의 부재, 엄마의 돌봄을 전제로 운영되는 학교, 안전하지 않은 지역사회, 늙어서 아파도 돈이 없으면 치료할 도리가 없는 사회와 결합한 가족이기주의는 국가를 향한 아동복지와 노인복지의 강화 요구를 소극적으로 하도록 만든다. 


직장인들은 흔히 책상 위에 가족사진을 올려 놓는다. 가족주의에 입각한 일종의 가족애 전시행위이다.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영아보육시설이 곳곳에 생겨나고, 어르신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고 운영되는 노인복지관과 야외에서 노후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런 사회가 되어야 직장인들이 책상 위에 올려 놓는 사진이 가족사진에서 동료들과 친구들의 사진으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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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


 

“주은아, 나 어떡하니. 우리 애 회장 됐어.” 업무 중 친구로부터 받은 카카오톡 메시지의 내용은 펑펑 울고 있는 이모티콘도 함께 나에게 전송되었다. 12년, 9년 동안 학교 다니면서 회장은커녕 줄반장 한 번도 못해본 아이 둘을 둔 나 같은 엄마에게 그런 문자내용은 일종의 ‘자랑질’에 해당할 수 있으리라. 그렇지만 나는 그 친구의 문자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리고 만다.


성격이 적극적이고 또래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자녀를 둔 부모는 얼마나 행복하랴마는 그것조차 요즘에는 고민이 되는 부모들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힘든 가족은 한부모 가족이 아닐까 싶다. 2010년 기준 전체 가족형태 중에서 한부모 가족은 9.2%나 된다. 


서울 충무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손팻말을 들고 학생회장 및 부회장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DB)


그럼에도 우리 학교사회는 ‘모든 학생들은 양부모가 있는 핵가족을 구성하며 살아가고 있고, 엄마는 전업주부이며, 엄마들은 자녀를 위하여 24시간 대기하고 있는 존재’라는 잘못된 전제를 갖고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전제의 바깥에 있는 한부모 가족, 직장맘은 물론 대한민국의 어머니들 모두의 눈에 피눈물이 맺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힘겹게 혼자서 키운 자식이 급우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회장이 됐다면 뛸 듯이 기뻐할 일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학교가 회장의 어머니에게 요구하는 시간과 경제력이 지나쳐서, 하루하루를 쫓기듯 살아가는 빈곤한 한부모에게 기쁨보다는 부담을 안겨주는 슬픈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근무를 해야 할 시간일 수 있는 평일 낮시간에 소집하는 학교의 학부모 총회. 교실에서 담임선생님이 인사를 마치면 각종 학부모 조직들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진다. 아이들 등교 때 교통지도를 하는 일명 ‘녹색어머니회’는 신청자가 없는 편이기 때문에 통상 회장 엄마가 자원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어머니들은 어렵게 시간을 내서 아이가 공부하는 교실도 둘러보고, 담임선생님과 면담도 하기 위하여 참석한 학부모 총회에 다녀온 후 “다음부터는 절대로 학부모 총회에 참석하지 말아야지”라고 결심하기도 한다.


가족형태는 더욱 다양해지고 있고,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학교사회가 일부 어머니들의 노동력으로 유지되고 있는 도서관 사서, 시험감독원, 급식 도우미, 환경미화원, 교통경찰, 학교행사 도우미 등에 대해서 인원 충원을 하면 안될까?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질까? 또 얼마나 많은 어머니들이 학교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자기 일에 집중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한부모의 자녀들이 한부모를 결핍으로 느끼지 않게 될까? 자녀의 회장 당선을 부담이 아닌 보람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학교가 투명하고 민주적인 사회로 하루속히 정착될 수 있기를. 다양한 가족형태의 어머니들이 신바람나게 살아갈 수 있기를. 


그럼에도 난 자식이 회장이 된 그 친구가 부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친구야, 부럽다. 더 잘될 거다. 걱정하지 말고.” “큰애야. 너는 끝끝내 회장 한번 못 해보고 졸업하겠네, 사랑하는 원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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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


“지금이 몇 시인 줄 알아?”

“아… 진짜… 알아요. 알아.”

“쾅!(진도 2를 방불케 하는 강한 진동을 동반하며 강하게 문을 닫는 소리가 남)”

“쾅!(또 한번의 여진을 동반하며 화장실 들어가는 소리)”

(20분 동안 샤워기에서 씻는 행동은 전혀 없는 듯 물 쏟아지는 소리만 지속됨.)

“(화장실 문을 격하게 두드리며) 물만 틀어놓고 자고 있는 거지! 이제 그만 나와.”


2년 전 큰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해 등교전쟁을 치르던 몇 달간의 끔찍했던 상황이다. 주말에 친구들과 축구할 때는 새벽 6시에 일어나는 것을 보면 학교가 재미없으니까 시간 맞춰 등교하기 싫었으리라. 어쨌든 모자간에 최소한의 교양을 벗어던진 채 날선 명령과 거친 반응을 주고받았던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바야흐로 입학의 계절이다. 올해 나는 고3, 고1 두 명의 고등학생의 엄마가 되었다. “고3 입시생의 학부모로서 얼마나 긴장될까?” 걱정스러울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미성년자 보호자로서의 최소한의 의무에서 벗어나 조만간 ‘자유부인’이 될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설레고 있다. 2년 전 요맘때 치른 등교전쟁에서도 “아이를 이겨야겠다”는 생각을 내려놓는 순간 나의 마음과 가족에게 평화가 찾아왔다.


근대사회는 엄격한 시간규범을 특징으로 하고 있고, 학교는 시간규범에 따른 규율권력으로 인간을 훈육하는 사회다. 학생들은 계속적으로 시계를 쳐다보며 분 단위로 쪼개진 특정한 시간 안에 자신의 동작을 조절·관리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그러한 학교는 어머니들의 노동이 이루어지는 시간을 식민화하며 운영되고 있다. 여성들은 막 입학한 자녀들을 등교시간에 맞추는 과업 수행 속에서 심각한 시간갈등과 시간전쟁을 경험하기도 한다.


일하는 어머니들에게 시간을 둘러싼 갈등이 가장 심각하게 인식되는 시기는 초등학교 자녀를 입학시킨 요맘때가 아닐까? 일하는 엄마들의 직장 시간표와 학교 시간표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보통 오후 1시 정도면 학교 일정이 끝나기 때문에 일하는 엄마들에게 방과 후 발생할 수 있는 돌봄의 공백은 “일이냐, 아이냐”를 두고 갈등하도록 하고 있다.



학교사회와 정부는 아무런 대책 없이 학생들을 오후 1시에 하교시키고 있고, 이러한 현실은 모성이데올로기와 맞물려 일하는 어머니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우리나라는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 대비 고용률이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일하는 어머니들로 하여금 일터를 떠나게 만들고 어머니들의 시간갈등을 부추기는 학교 현실은 하루속히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출근시간과 아이의 등교시간이 일치하지 않는 집에는 도우미가 방문해서 아이의 등교를 도와주고 방과 후 돌봄·보육이 강화되는 것. 안전하고 신바람 나는 학교를 만들어 학생이 있는 집에서 오전 7시를 넘은 시간에 가끔 들을 수 있는 괴성이 사라질 수 있기를. 하루속히 상상이 현실로 이어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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