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기로에 선 신자유주의'에 해당되는 글 140건

  1. 2009.09.08 5부-(2)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넘어: “투기성 외환거래에 세금물려 빈국 돕자” (2)
  2. 2009.09.08 5부-(2)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넘어: 세계 무역을 바꿔라 (2)
  3. 2009.09.08 5부-(2)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넘어: IMF식 처방 문제점 (2)
  4. 2009.09.08 5부-(2)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넘어: 국제 금융기구를 개혁하라
  5. 2009.09.08 5부-(2)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넘어: 대안적 세계화·민주적 사회주의를 주목하라 (2)
  6. 2009.09.03 5부-(1)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넘어: 미국에 대항… 독자의 길 찾는 ‘브릭스’ (2)
  7. 2009.09.03 5부-(1)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넘어: 금융위기 1년 (2)
  8. 2009.09.03 5부-(1)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넘어: ‘위안화의 도전’ 앞에 작아지는 달러화
  9. 2009.08.31 4부-(10)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몸이 불편해도 행복하게 살아요 (2)
  10. 2009.08.27 4부-(9)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티펨진료소 스칸츠 소장
  11. 2009.08.27 4부-(9)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병나면 부축해주는 나라
  12. 2009.08.16 4부-(8)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싱가포르 ‘주택보급 112%’ 비결
  13. 2009.08.16 4부-(8)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네덜란드 600여개 비영리 공익 법인이 공급 주도
  14. 2009.08.16 4부-(8)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네덜란드 임대료 못내도 입주할 수 있어”
  15. 2009.08.16 4부-(8)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집에서 해방된 삶
  16. 2009.08.11 4부-(7)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전일제 보육시설·양육수당 … 여성 노동권 최우선”
  17. 2009.08.11 4부-(7)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아이는 사회가 키운다
  18. 2009.08.11 4부-(7)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코펜하겐 통합보육시설 ‘마리아가든’
  19. 2009.08.09 4부-(6)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배우고 즐기는 노년
  20. 2009.08.04 4부-(5)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교사들에게 맡겨라
유희진기자 worldhj@kyunghyang.com

ㆍ토빈세 논의 이끈 NGO ‘아탁’


시민단체 아탁 회원들이 2002년 9월 독일 쾰른에서 열린 반전시위 도중 대형 플래카드를 펼쳐 보이고 있다. 쾰른 | AP연합뉴스



프랑스의 대표 지식인 이냐시오 라모네는 1997년 자신이 발행인으로 있던 시사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시장을 무장해제하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그는 “금융 세계화가 아시아 화폐시장을 강타하며 시민들의 삶을 불안하게 만들었다”면서 “자본의 이동을 규제하기 위해 토빈세 과세연합이라는 새로운 NGO를 만드는 게 왜 안 되느냐”고 주장했다. 라모네의 사설을 본 독자들이 편집진에게 보낸 편지만 5000통이 넘었다. ‘국제금융시장의 톱니바퀴에 약간의 모래를 뿌려보자’고 뜻이 모아지면서 ‘시민 지원을 위한 국제금융거래과세연합’, 즉 아탁(ATTAC)이 탄생했다. 참여가 확산되면서 전 세계 50여개국에 ‘아탁 독일’ ‘아탁 재팬’ 등의 이름으로 지부가 설립됐고, 9만여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아탁 회원들은 위계 없이 동등한 의사결정권을 가진다. 독립성을 위해 회원들의 회비만으로 단체 운영자금 90%를 조달하고, 여름에 각 대학에 강좌를 개설해 나오는 수익 등으로 나머지 자금을 마련한다.

아탁의 출발점이자 핵심 주장은 미국 경제학자 제임스 토빈이 주장했던 단기성 외환거래에 세금을 부여하는 ‘토빈세’ 도입이다. ‘투기자본의 횡포에 대항해 외환거래에 1%의 세금을 물려 제3세계 개발원조에 투입하자’는 주장이다. 아탁이 ‘토빈세’를 주요 의제로 삼은 후 유럽 각국에서는 ‘토빈세’ 도입을 논의해왔고, 지난해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도 뜨거운 논란거리로 부상했다. 지난달 로드 터너 영국 금융감독청(FSA) 청장이 “금융회사의 과도한 보너스 관행을 막기 위해 모든 금융거래에 토빈세를 도입하자”고 제안하면서 국제사회에서 토빈세는 다시 주요 안건으로 떠올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월 하순 미국에서 열릴 G20 정상회의에서 토빈세 문제가 핵심 안건으로 다뤄질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아탁 활동의 가장 큰 성과는 2005년 5월 프랑스 국민투표에서 신자유주의적인 내용을 강화하는 내용의 ‘유럽 헌법’ 부결을 이끌어낸 것이다. 프랑스 국민의 54.87%가 반대인 ‘Non’을 찍어 하나를 향해 달리던 유럽연합 열차에 제동을 걸었다. 아탁 활동가들은 프랑스 각지에서 교육캠페인을 벌이며 유럽헌법 반대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프랑스 전국에서 주최한 모임과 토론회 횟수는 무려 1000회에 달했다. 유럽헌법 안의 사회보장이나 교육 부문을 사유화해 시장 논리에 맡기자는 주장이 개개인에게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알리고 설득해 나갔다. 또한 유럽헌법 반대운동 기간에 법조계·정계에서 일하던 아탁 회원들은 유럽헌법의 내용을 요약하고, 반대 논리까지 단 안내책자도 만들었다. 초반 40%에 불과하던 반대 여론은 점점 힘을 얻었다.


아탁은 지속적으로 대안 세계화운동을 전개해나가며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1999년 시애틀에서 세계무역기구(WTO) 반대 시위를 벌였고, 2001년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글귀가 새겨진 어깨띠를 두르고 약 20만명의 아탁 활동가들이 제노바에서 열린 G8 반대 시위에 나섰다. 독일에서는 공공재 민영화에 반대하는 활동을 벌여 철도 민영화를 막아냈다. 전 세계에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10월27일에는 방문객으로 위장하고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에서 항의 행동을 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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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

ㆍ자본가에겐 천국의 문, 빈곤 세계화 첨병
 

인도네시아 시위대가 지난 6월8일 수도 자카르타의 무역부 앞에서
세계무역기구와 자유무역에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자카르타 | AFP연합뉴스



세계적으로 ‘대유행’ 단계에 들어선 신종플루를 일컬어 ‘나프타플루’라고도 한다. 나프타(NAFTA), 곧 북미자유무역협정으로 각종 공중위생, 환경규제가 느슨해진 것을 틈타 미국계 농기업이 멕시코에 축산공장을 이전하였고, 여기가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 곧 신종플루의 발생지가 되었음을 빗댄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훨씬 엄격해진 나프타의 지적재산권 조항을 통해 미국계를 비롯한 초국적 제약회사가 신종플루를 통해 떼돈을 번다.

세계무역기구(WTO),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을 일컬어 ‘트리니티’ 삼위일체라 부른다. 성스러워 그 이름조차 함부로 부르기 어렵다. 이 중 WTO는 삼위일체 중 으뜸이다. 그러나 WTO는 우리 농민은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 빈자들에게 성스럽기는커녕 지옥의 부름이다. WTO가 생긴 이래 전 세계의 양극화는 훨씬 심화되었다. 모든 것을 돈벌이, 곧 교역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특히 ‘무역관련(trade-related)’란 개념으로 말이다. 세상에 무역과 무관한 것이 뭐가 있나. 신종플루 때문에 타미플루 교역량이 증가하면 그것이 바로 자유무역이다. 그래서 그것은 어떤 차별도, 어떤 규제도 없어야 한다. 신종플루 백신이 절대부족해도 정부는 함부로 그 특허권을 침해해선 안 된다.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협정(TRIPS)’이란 ‘보호주의’가 엉뚱하게도 WTO에 들어가면서 지재권은 신성불가침이 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다. ‘무역 관련 투자조치협정(TRIMS)’으로 지상의 ‘투자자’, 곧 자본가에게 천국의 문이 열렸다. 여기에 ‘서비스무역일반협정(GATS)’도 빠지지 않는다. 글로벌 양극화의 첨병이다. 그러나 지금 WTO의 몰골은 초라하다. 미국과 더불어 최근엔 유럽연합(EU)이 자유무역협정(FTA) 경쟁에 뛰어들면서 할 일이 없다. 되는 일도 없다. 자유무역이란 이름으로 빈곤의 세계화만 키울 따름이다.


초국적 기업에 유리한 통상환경

수출로 먹고산다는 대한민국에서 자유무역은 건드려선 안 될 일종의 성역이다. 그리고 대다수는 자유무역을 여전히 자유롭게 무역하자는 얘기 정도로 알아듣는다. 그러나 이른바 자유무역협정문을 한 번이라도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속셈이 딴 데 있다는 걸 말이다. 관세 철폐나 축소만을 위한 그런 고리타분한 자유무역협정은 사라진 지 오래다. 대신 ‘비관세장벽’이란 이름으로 서비스산업, 투자금융, 지적재산권, 행정절차 등 온갖 규제와 장벽을 철폐해 자국의 초국적 기업에 유리한 통상환경을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그래서 지금의 자유무역은 신자유주의와 불가분의 관계다. 공정무역은 바로 이 신자유주의 자유무역에 대한 대안으로 제기되고 있으며, 그러는 한 유의미하다. 여기에는 여러 흐름과 경향들이 혼재되어 있다.


소비자운동으로서의 공정 무역

첫째, 소비자운동으로서 공정무역이 있다. ‘착한 소비’ ‘윤리적 소비’ 등과도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예컨대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는 제3세계 커피농가와의 직거래를 통해 생산비를 보전해주고, 선진국 소비자들은 좋은 품질의 커피를 마시고 덤으로 윤리적 만족감도 얻는다. 지난 발렌타인데이 때 공정무역 초콜릿이 히트상품이었다니, 무언가 바뀐 세상을 실감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것도 아직 걸음마단계이다. 물론 이런 소비자운동만을 놓고 이것이 신자유주의 자유무역에 대한 대안이며, 또 이를 통해 자유무역의 폐단이 정정될 것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과도하다.

현재 전 세계 교역량의 0.01% 정도가 공정무역으로 분류된다. 말하자면 양만 놓고 보면 자유무역에 ‘새발의 피’도 안 된다. 그나마 그것도 65%가량이 유럽연합 국가에서 소비된다. 그래서 최근 유럽연합 집행위가 지속가능 개발에 있어 공정무역, 특히 정부를 비롯한 지자체의 공공조달에서 공정무역의 중요성을 인정한 것은 나름대로 의미있는 진전이라 하겠다. 이는 한국 공정무역 소비자운동의 미래와 관련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FTA대안으로서의 중남미 PTA

둘째, 베네수엘라, 쿠바, 볼리비아, 니카라과 등에서 현재 시행 중인 ‘민중형 무역협정(PTA)’을 들 수 있다. 이는 조지 부시 미국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던 ‘전미자유무역협정(FTAA)’, 곧 신자유주의 지역통합에 대한 대안적 지역통합전략으로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이 추진한 ALBA, 즉 ‘볼리바리안 아메리카 연합’ 구상의 일환이기도 하다. PTA 역시 회원국 간 관세·비관세 장벽의 철폐를 목표로 설립되었다. 하지만 그 내용과 운영방식은 신자유주의 FTA와 비교해 하늘과 땅 차이다. FTA가 이윤 극대화를 목표로 한다면, PTA는 회원국 주민의 공공서비스 질 향상이 목표이다.

예컨대 산유국 베네수엘라의 석유와 그 가격만큼 쿠바의 공공의료 서비스가 교환되는 교역방식이다. 쿠바의 안과 기술이 세계 수준인 만큼 베네수엘라 주민은 무료로 백내장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통상이 단순 돈벌이 수단만이 아니라, 정부의 공공서비스 향상의 지렛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분명 세계경제사에 새로운 시도임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대안적 지역통합 및 발전전략은 중남미라고 하는 공통의 역사적 배경, 식민경험 그리고 무엇보다 베네수엘라의 석유라고 하는 구체적인 동력이 존재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미국의 깨달음’ 신통상법

공정무역과 관련된 세번째 가시적인 흐름은 미국의 신통상법이다. 신자유주의 자유무역, 미국형 FTA의 본 고장에서 등장한 공정무역의 새로운 경향은 그 자체로 주목할 만하다. 왜냐하면 미국의 통상규범과 체계가 대체로 세계통상규범이 되어 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미국 통상법상에서 ‘공정무역’이란 개념은 이미 1980년대 레이건 시절부터 사용되어 왔다. 대개 상대국의 각종 규제장벽을 해체하기 위해 동원된 말이었다. 하지만 북미자유무역협정 10년을 전후해, 신자유주의 자유무역의 결과 얻은 것은 없고 자기 일자리는 사라졌다는 점에 대한 대중적 공감이 확산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오바마도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공정무역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아직도 FTA가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는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우리 실정에서 보자면 그래서 미국은 ‘선진적’이다.

미국의 공정무역론은 한·미 FTA라는 구체적 맥락에서 보면 사실상 미국 자동차의 의무구매를 요구하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고전적 보호주의가 이 경우 미 자동차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의 공정무역은 미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해 통상정책이 동원된다는 차이를 보인다.

아무튼 이번 회기의 신통상법은 약 110명의 의원이 발의자로 서명한 가운데 이전 회기보다 훨씬 넓은 지지기반을 확보했다. 법안 내용만 놓고 본다면 아주 혁신적인 내용도 포함한다. 기존의 모든 FTA를 재심의해 재협상한다든지, 저 악명높은 투자자-정부소송제와 네거티브 리스트를 배제한다든지, 식품 안전과 소비자 보호를 대폭 강화한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만일 원안대로 법안이 이번 회기에 통과된다면 어떤 형태로든 한·미 FTA를 비롯해 WTO 체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임이 분명하다.



정당성 잃은 자유무역

미국형 혹은 유럽연합의 신모델 FTA를 통해 표현되는 신자유주의 자유무역은 신성한 것도, 변경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대안의 실현 가능성은 지금의 소매상형 공정무역이 정부 조달 시장에 도달할 정도로 성장하고, ALBA형 지역통합전략의 안정성이 검증되고, 미국 신통상법의 의회 통과 여부와 연동되어 있다고 하겠다. 신자유주의 자유무역은 이미 그 정당성을 잃은 지 오래이며, 그 효율성 역시 지난 경제위기 과정에서 보듯 의문시되고 있다. 한국 경제의 특성상 미래의 발전전략은 새로운 통상전략과 분리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이제는 ‘새로운 사고’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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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사기자 ro@kyunghyang.com

ㆍ중남미·아시아 망친 초긴축 프로그램
ㆍ동유럽에도 요구

1990년대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은 ‘선진국 금융자본을 위해 빚을 받아오는 대행업체’란 오명을 썼다. 구제금융국에 대한 고금리와 재정긴축, 시장 전면개방 등 혹독한 요구조건 탓이었다.

외환위기는 94년 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들을 시작으로, 97년 한국을 포함해 인도네시아·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로 옮아갔다. 이후 98년 러시아·동유럽 국가들로 이어졌고, 99년엔 브라질을 강타했다. IMF의 판박이식 처방의 결과는 대체로 참담했다. 고금리로 내수기반이 붕괴했다. 국내 기업들이 초국적 투기 자본들에 헐값 매각되는 일이 속출했다. 예외없이 농민·빈곤층·노동자는 고통을 받았으며 사회 양극화가 심화됐다.


중남미 국가들에선 80년대 초 IMF 프로그램이 적용되면서 ‘신자유주의 실험’이 시작됐다. 이후 이들은 ‘잃어버린 10년’의 성장을 만회하기 위해 지금도 고전 중이다. 아르헨티나는 95년 이래 꾸준히 두 자리 수준의 실업률을 벗지 못 하고 있으며 2002년 또다시 디폴트(채무불이행)로 국가부도사태를 맞았다. 멕시코에선 농민반란이 일어나는 등 정치·사회적 불안으로 큰 비용을 치러야 했다. 계속되는 금융 불안으로 지난 4월 또다시 47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동아시아의 경우 중남미와는 달랐다. 외환위기 당시 이들의 거시경제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흑자재정에 인플레이션 수준도 낮았다. 아시아의 위기는 높은 단기외채 비율, 국제적인 환투기에 의한 것이었다. 국가채무가 없는 이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 그런데도 초긴축 프로그램이 강요됐다. 기업부채 비율이 높았는데도 초고금리 정책을 추진해 기업들이 줄줄이 파산했다. 은행들이 부실채권을 떠안아 문을 닫는 일이 속출했다. 인도네시아에선 석유에 대한 정부 보조금 폐지로 폭동이 일어났고, 태국 바트화 환율은 IMF의 호언장담과 달리 심각한 폭락을 거듭했다. 반면 서방의 금융기관들은 부실 기업들을 매각·분할하면서 큰 이득을 봤다. 오히려 같은 위기 상황에서 IMF 프로그램을 거부한 말레이시아는 신속한 경제회복세를 보였다.


최근 또다시 신흥국들의 IMF행이 이어지고 있다.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상당수 동유럽 국가들이 구제금융을 신청한 상태다. 많은 이들이 현재 동유럽의 위기가 과거 동아시아 위기와 흡사하다고 지적한다.


10년 만에 수면 위로 떠오른 IMF는 ‘가진 자만을 위한 조직’이란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제스처도 보이고 있다. 지난 3월엔 ‘신축적 신용공여제도’를 도입했다. 일시적 유동성 위기에 빠진 우량 회원국에 까다로운 조건없이 자금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지난달엔 루마니아에 대한 지원 조건으로 내걸었던 재정적자 목표를 대폭 높여주기도 했다. 합의 당시 IMF가 예상했던 루마니아의 경제성장률이 크게 빗나간 탓이다. 그러나 강도 높은 긴축재정 요구 등 기본 기조는 그대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는 지난 4월 한 인터뷰에서 “IMF는 ‘우리가 동아시아 금융위기 때 배워서 달라졌다’고 주장하지만 최근 동유럽 국가들과 체결한 조약들로 미뤄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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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 경제평론가

ㆍ강대국 이익 앞에 멈춰선 새 통화체제 만들기 지역통화로 극복하라
 


한 여성이 지난달 24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의 한 철교 아래 쌓여 있는 중고품들 사이에 앉아 있다. 세르비아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은 세계금융위기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줄줄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있다. 베오그라드 | AP연합뉴스



G20의 어정쩡한 결과

경향신문의 ‘신자유주의 시리즈’에서 나는 현재의 금융위기를 “3중의 위기”라고 진단하고 파생상품 규제, 시장만능론의 폐기와 새로운 경제이론(예컨대 칼 폴라니에 입각한 경제이론), 글로벌 불균형의 제도적 시정을 해법으로 제시했다(1월12일자 참조). 지난 4월 기대를 모았던 주요 20개국(G20)은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기껏 조세천국의 규제와 헤지펀드의 감독, 특별인출권(SDR)의 확대와 국제통화기금(IMF) 강화, 5조달러 규모의 경제부양을 약속했을 뿐이다.

영국 브라운 총리,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이 포스트 브레턴우즈 체제를 내걸었고 G20 회의를 앞두고 3월에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 총재가 SDR 초국가 준비통화론(SDR로 기축통화를 삼자는 것)을 제시한 것은 사실 포스트 브레턴우즈 체제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었다. 반면 오바마·가이트너는 선거 기간 중에 그리고 취임사에서 중국이 환율을 조작했기 때문에 현재의 글로벌 불균형이 야기됐다고 주장해 격렬한 대립을 예고했다. 하지만 미국은 시뇨리지의 이익을, 중국은 수출주도 성장의 이익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급격한 변화를 피하려 했다. 양국은 결국 SDR 확대로 미봉했고 흑자국의 재정확대 정책과 미국의 저축률 상승 등으로 정책 공조를 약속한 셈이다.

물론 전 세계가 이런 엄청난 규모의 유동성 공급(통화주의의 대부 밀턴 프리드먼의 말대로)과 재정 확대(케인스의 말대로)를 동시에 신속하게 실시한 사례는 없다. 동아시아 외환위기 때 재정긴축과 고금리 정책 등 ‘돌팔이 처방’(조지프 스티글리츠)을 강요한 것과는 정반대다. 1980년대 후반 워싱턴 컨센서스가 확립되면서 IMF는 협약을 개정해 구조조정을 새로운 목표로 삼았으며 그 결과 IMF 조건을 받아들인 나라는 예외없이 심각한 국내 위기를 겪었다.

미국 스스로 위기를 당하자 미 정부는 정반대의 ‘위선적’(스티글리츠) 정책으로, 즉 대량 수혈로 최악의 사태를 막은 것이다. 또한 중국의 주장을 따라 IMF가 채권을 발행하는 방식으로 SDR를 확대한 것도 문제를 약간 덜 심각하게 만들 것이다. 흑자국들이 미국 재무부 증권을 IMF 채권으로 바꿀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이 지나치게 많이 가지고 있는 의결권(심지어 미국은 사실상의 거부권도 가지고 있다) 역시 어느 정도 조정될 예정이다. 그동안 IMF가 고금리와 긴축재정을 통한 구조조정을 강요해 결국 선진국의 금융대자본가들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반영해 온 것도 어느 정도는 시정될지 모른다. 스티글리츠는 IMF가 각국 재무부 장관들과 중앙은행의 견해만 반영하는 것도 고쳐야 하며 IMF의 경제학자들이 온통 시장만능론자로 채워져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금융자본의 이익만 반영하는 이들이 밀실에서 정책을 결정함으로써 후진국의 이해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G20에서는 통화체제 개혁은 물론 이런 거버넌스 문제에도 거의 손을 대지 못했다.

스티글리츠의 “국제통화 개혁”이나 데이빗슨의 “국제통화청산단위(International Money Clearing Unit)”와 같은 케인스주의 구상이 제도화하지 않는다면 위기 상황은 언젠가 다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금융 불안정성 때문에 더욱 많은 외환보유액을 쌓은 나라들이 자신의 자산이 달러 가치 하락으로 반토막 나는 것을 눈 뜨고 볼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구상이 채택되지 않는 진정한 이유는 이들 개혁안이 자본시장의 통제와 고정환율제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데 있다. 월 스트리트의 금융자본이 지난 20여년 마음껏 누린 투기적 이익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기실 루스벨트가 1929년 대공황이 잠깐 진정된 뒤(이후 3년간 5번의 주가 급등이 있었다) 32년에 은행 파산으로 악화된 이후에 뉴딜을 들고 나온 것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금융대자본과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바마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루스벨트의 브레턴우즈 체제는 달러 기축통화를 확정하는 것이었던 데 비해 이번의 개혁은 기축통화를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케인스 때의 영국 정치가들이 그랬듯 미국 대통령이 선뜻 선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속수무책, 아무 일도 못하는 건 아니다. 80년대 플라자협정이나 루브르협정과 같은 국제공조(실상은 환율 전쟁과 금리 전쟁 속에서 일본이 굴복한 것이다)의 움직임과 함께 지역화(regionalization)의 경향도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총리가 될 것이 확실한 하토야마는 최근의 기고문에서 미국식 세계화를 거부하고 AMF-아쿠(ACU, Asian Current Unit)에 의한 동아시아공동체 형성의 뜻을 밝혔다. 이는 저우샤오촨 총재의 제안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고 금융위기를 계기로 강화된 치앙마이협약에 한층 더 힘을 실어주는 제안이다.

케인스나 스티글리츠 역시 각국의 이해가 격렬하게 맞부딪치는 현실을 반영하여 새로운 통화체제에 찬성하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회원제 형식으로 시작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다행히 중국-일본-한국-아세안은 서로 물고 물리면서 경상수지가 심각한 불균형 상태에 있지 않다. 만일 동아시아 국가들이 공동의 이익을 기초로, 그 무엇보다 금융위기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케인스형 지역통화체제를 만든다면 이미 비슷한 제안을 한 러시아의 메드베데프 대통령도 솔깃해할 것이다.

달러-ACU-유로의 삼각 바스켓에 의한 환율 조정, 그리고 과감한 자본통제와 금융규제가 현재로서는 유일한 현실적 대안이다. 또한 전 세계가 동시에 상당한 비율의 토빈세와 케인스세(증권거래세) 및 탄소세를 부과하고 그 수입으로 지구온난화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즉 글로벌 공공재를 공급하는 데 사용한다면 이 세상은 훨씬 살 만한 곳이 될 것이다. 미국과 금융자본이 끝까지 기득권을 주장한다면 아시아에서 먼저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 칼 폴라니(1886~1964) : 헝가리 출신의 유대계 경제학자로 1944년 그의 저서 <거대한 전환>이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맞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그는 “시장경제란 도달할 수 없는 적나라한 유토피아”라고 주장했다.

■ 포스트 브레턴우즈 체제 : 2차 세계대전 이후 정립된 국제통화기금(IMF) 중심의 브레턴우즈 체제를 개혁하자는 것. 브레턴우즈 체제는 2차 대전 이후 혼란스러웠던 각국의 경제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로 한 국제통화제도.

■ 시뇨리지 : 국가가 화폐 발행으로 얻게 되는 이득. 주로 미국이 세계 기축통화 발행국으로서 챙기는 화폐 발행 수익을 일컫는다.

■ 워싱턴 컨센서스 : 1990년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가 남미 국가들의 경제위기 해법으로 제시한 세제 개혁, 무역·투자 자유화, 탈규제화 등 10가지 정책으로 미국식 시장경제체제가 주요 골자다.

■ 국제통화청산단위 : 최종 지불 청산이 국내 통화를 통해 중앙은행에서 이루어지는 방식을 세계적 범위로 확대한 것. 즉 각국의 중앙은행만이 보유하는 국제청산통화의 태환성을 세계은행이 보장하는 방식이다. 달러체제 극복을 위한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 치앙마이협약 : 2000년 5월 태국 치앙마이에서 열린 ‘아세안(ASEAN)+3 재무장관회의’ 때 합의된 역내자금지원제도. 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개별 국가 차원으로 현 국제금융시장의 상황에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데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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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환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 

 경제위기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된다. 기업의 이윤추구 경쟁이 과잉투자와 과잉생산을 초래하고 노동자들의 임금과 소비를 제약하면서 공황을 낳게 된다. 산업자본 중심으로 경제가 운영되었던 과거에는 10년 주기로 경제위기가 반복되었지만 기술발전이 빠르고 금융이 발달한 최근에 와서는 주기가 단축되고 더욱 불규칙하게 되었다.



국제투기·금융위기 부른 세계화

1920년대 대공황과 이번의 세계 경제위기 등 대규모적이고 장기적인 공황이 발생하는 원인은 첫째 독점자본의 지배, 둘째 금융의 발전과 투기화, 셋째 소득분배 불평등, 넷째 경제활동의 세계화다. 독점자본이 경제를 지배할수록 독점가격을 기초로 과잉시설을 확대하는 경향이 있다. 금융이 발전할수록 대출로 과잉생산을 부추기고 투기는 부동산과 금융자산 거품을 초래한다. 대기업과 금융기관, 부유층에 돈이 몰리면서 대중은 소비를 줄이거나 채무에 기반한 소비를 하게 된다.

세계화는 국민경제의 개방과 자본 활동의 자유화를 의미한다. 문제는 개방과 자유화와 그것을 규율하는 게임규칙이 강자, 즉 독점자본과 선진국,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경제기구들에 의해 외부적으로 강제된다는 것이다.

세계화는 자본 간의 경쟁을 격화시키고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키며, 금융자본의 세계적 이동은 국제적 투기와 금융위기를 야기한다.

29년 대공황에 대해 케인스주의가 대안으로 등장한 바 있다.

그러나 재정금융정책을 통해 유효수요를 늘리고 사회보장정책으로 소득 재분배를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공황을 극복할 수 없었다. 70년대 초에 닥친 경기침체와 물가 인상, 즉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해 케인스주의는 무력했고, 대신 신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신자유주의의 몰락을 목격하고 있다. 케인스주의든 신자유주의든 경제위기를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케인스주의 정책 처방의 한계

현재의 세계 경제위기에 대한 케인스주의 정책 처방은 재정지출 확대와 이자율 인하로 위기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케인스주의는 과잉생산과 과잉투자의 근본 원인, 즉 기업의 투자활동이 사적 자본의 주도에 맡겨져 있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경제체제란 생산수단을 누가 소유하느냐, 생산량과 가격을 어떻게 결정하는가, 각 경제단위의 통제는 어떻게 하느냐로 구분된다. 자본주의의 특징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시장에 의한 조절, 기업경영의 자본가적 독점이다. 자본주의는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데는 효과가 있었지만 분배 불평등, 경제위기, 대량 실업, 세계전쟁 등의 문제를 초래했다. 대안체제의 기준은 경제성장(효율), 분배의 형평성, 경제안정, 환경보전을 얼마나 잘 달성할 수 있는가인데 오늘날은 경제성장보다 평등, 경제안정과 환경보전 등이 더욱 중요한 가치로 등장하고 있다. 자본주의적 모순을 극복하고 인간의 전면적 계발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민주적 사회주의의 경제체제를 수립해야 한다.

민주적 사회주의의 핵심은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 노동자 간의 협력과 연대에 의한 생산, 공동체적 요구와 목적의 충족이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2005년 1월 브라질 세계사회포럼에서 선언하고 현재 추진 중인 ‘21세기 사회주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차베스 정부 경제자문으로 활동하고 있는 레보위츠는 지역사회와 국영기업에서의 공동경영과 같은 작업장 현장에서의 민중의 자기 조직화에 의한 주체적 민주주의를 21세기 사회주의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동구권 국가들과 중국 등에서 실패한 국가사회주의의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중의 인간적 발전을 목적으로 하고 사회의 운영에서 민중의 민주적 주도를 확립해야 한다.

반복되는 경제위기에서 근원적으로 벗어나려면 케인스주의 복지국가 모델에 기업과 금융의 민주적 소유와 통제를 결합할 필요가 있다. 재정민주주의와 금융민주주의, 기업민주주의를 동시에 실천해야 한다. 노동자와 채권자, 협력업체, 정부 대표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금융의 사회적 책임을 강제할 필요도 있고 이를 위해 금융기관은 모두 국유화해야 한다. 또한 노동자 기금을 조성해 주요 기업의 사회적 소유를 확대해야 한다.

현재 대세인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외에 대안적 세계화를 모색해야 한다. 이는 유무상통, 호혜의 원리를 적용하는 것이다. ‘아메리카 민중을 위한 볼리바르 동맹’(ALBA)과 공정무역 등이 중요한 사례다.

차베스 대통령과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에 의해 2004년 12월 결성돼 2006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ALBA는 미국 주도의 미주 자유무역지대 안을 거부하고 유무상통을 위한 교역을 목표로 한다.


자본주의적 모순 축적된 한국

우리나라는 압축적 경제성장을 달성한 후 케인스주의 복지국가를 거치지 않고 80년대에 개방과 자유화의 신자유주의 단계로 직행했다. 그 결과 자본주의적 모순이 압축적으로 축적되었다. 외환위기 후의 극단적 양극화가 그것을 말해준다. 누적된 모순에서도 압축적 해결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자본주의 극복 노력의 실패 경험들을 깊이 연구하면 새로운 사회경제 모델과 이것을 실현할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우리 국민 대다수는 그동안 양극화 속에서 사회적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려고 발버둥치는 등 체제에 순응해왔다. 그러나 경제위기를 맞이하면서 그것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다른 돌파구로 체제의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혁명적 변화를 추구하는 힘을 강화하는 것이 변화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다. 국민의 저항이 거세지고 차기 집권이 불안하게 되면 정부 정책 노선도 변화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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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수기자 soo43@kyunghyang.com

ㆍIMF개혁·달러 대체 기축통화 등… 경제력 바탕 영향력 확대


지난 6월16일 러시아에서 사상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가진 '브릭스 4국' 정상들. 사진 왼쪽부터 브라질 대통령 룰라 다 실바,
러시아 대통령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중국 국가주석 후진타오, 인도 수상 만모한 싱. |AP연합뉴스



글로벌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 체제뿐만 아니라, 그 선두에 서 있던 미국의 위상에도 흠집을 냈다. 미국 주도의 세계 경제체제 안에서 기죽어 지내던 국가들이 미국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부정하지는 않으면서, 국제금융시장의 구조조정 필요성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국가는 이른바 브릭스(BRICs)라 불리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이다. 이들 국가의 정상들은 지난 6월16일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사상 처음으로 정상회의를 갖고 경제 현안과 협력 강화방안을 논의했다.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논의된 의제들은 모두 미국이 관심을 가질 만한 사안들이다. 외신에 따르면 루이스 이냐시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만모한 싱 인도 총리,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정상회의에서 △국제통화기금(IMF) 개혁을 비롯한 국제금융질서 재편방안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한 공동 대응방안 △G20의 위상 강화방안 △달러화를 대체할 기축통화 도입 문제 등을 논의했다.

특히 미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IMF의 현행 의결권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혁하는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브릭스 국가들의 의결권은 4개국을 모두 합쳐도 9.9%에 불과하다. 경제규모로 세계 3위인 중국이 3.7%이고 브라질은 1.38%를 갖고 있다. 반면 미국은 16.77%나 된다.


IMF가 기금 확충을 위해 최초로 채권 발행 계획을 내놓자 중국은 500억달러, 러시아와 브라질은 100억달러씩 매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물론 IMF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이다.

굳이 IMF 개혁을 통하지 않아도 브릭스 국가들의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증가할 전망이다.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올 상반기에 2조달러를 돌파했다. 세계 1위다. 러시아도 4000억달러로 중국, 일본에 이어 3위에 올라있다. 미국이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위치다. 또 브릭스 국가들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세계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4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16%에서 현재 22%로 늘어났다.

물론 브릭스 국가들이 현재의 협조체제를 언제까지나 유지할 수는 없다. 러시아와 브라질은 에너지 수출국이고, 중국과 인도는 수입국이다. 국제 원자재가격의 동향에 4개국은 항상 다른 입장을 보일 수밖에 없다. 또 기축통화 등 미국에 대한 접근방식에서도 러시아와 달리 중국, 브라질은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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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수기자 soo43@kyunghyang.com

미국도 IMF도 일본도 각성… ‘신자유’ 무너졌나

지난해 9월 전 세계에 몰아친 금융위기는 공고하던 신자유주의 체제에도 균열을 냈다. ‘시장만능’을 외치는 목소리가 잦아든 대신, ‘규제 강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신자유주의를 주도하던 서방 선진국 정상들은 머리를 맞대고 규제방안을 논의해야 했다. ‘규제 철폐’를 소리높여 주장하던 전문가들은 ‘반성문’을 제출했다.

사진 왼쪽부터 조지 W 부시 전 미국대통령, 고든 브라운 영국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총리, 앨런 그린스펀 전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그러나 금융위기 1년을 맞은 신자유주의 시스템은 일부의 예상처럼 무너지지 않았다. 시장에 대한 ‘반성’과 ‘질타’가 쏟아져 나왔지만 아직까지는 ‘구호’에 불과하다. 오히려 미국에서는 ‘역풍’이 불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의료보험개혁 시도는 정부에 대한 지지율을 하락시켰다. 추락했던 경제지표가 조금씩 상승하면서 ‘시장에 대한 맹신’ 역시 되살아나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장의 패배 인정한 G20·다보스 포럼

지난해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G20 정상회의를 마친 각국 정상들은 ‘금융시장 규제·감독을 강화하고 경기부양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금융자본주의의 폐해를 인정하고 시장에 규제를 가한다는 데 합의한 것이다. 이와 함께 세계 금융관리시스템을 새로 만들고 경기침체에 공동 대응한다는 데도 의견을 모았다.

정상들은 선언문을 통해 △국제통화기금(IMF)과 금융안정화포럼(FSF) 등 금융관리기구들을 개혁해 시장 감독을 강화하고 △거대 금융회사와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규제 기준을 만들어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며 △각국 금융관리 당국의 상시적 공조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여전히 “자유시장과 자본주의만이 성장으로 가는 길”이라는 입장을 고집했지만 유럽과 개도국들의 강력한 규제 강화론에 밀렸다.

G20 정상들은 올해 4월2일 영국 런던에서 다시 모였다. 이들은 회의를 마친 뒤 지난해의 선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구체적인 ‘규제방안’을 내놓았다. 먼저 전 세계 금융시장을 교란하는 헤지펀드에 대해 처음으로 세계적 차원의 규제를 가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조세 회피 지역을 찾아다니는 ‘검은돈’에 대한 통제도 강화하기로 합의했고 금융기업의 과도한 보수체계가 금융시장의 위험을 키워왔다는 판단 아래 최고경영진의 급여도 통제하기로 했다.

제2차 G20 정상회의에 앞서 1월28일부터 2월1일까지 열린 ‘서방 선진국들의 클럽’ 다보스 포럼에서도 ‘시장에 대한 규제’가 논의됐다. 토론에 참석한 상당수의 사람들은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시장의 자정기능 과신’을 꼽았다. ‘시장 규제를 위해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토론자들은 “금융시장을 작동시키는 시장기능을 바로잡으려면 3∼5년은 걸릴 듯하다”며 “미래의 은행은 레버리지 등에서 적절한 규제를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줄어드는 미국의 목소리

경제위기와 함께 신자유주의를 이끌던 G8(서방 선진 7개국+러시아) 국가들의 위상은 추락했다. 경제위기의 진원지이자 피해자인 G8은 위기를 타개할 능력도, 자격도 없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내가 해야 할 첫 번째 결정은 누가 회의에 참여하느냐는 것이었다”며 “G8도, G13도 아닌 G20였다”고 말했다.

대조적으로 G20 순회의장국을 맡은 브라질의 루이스 이냐시우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은 “G8은 친목단체가 됐다”며 “G20 없이 정치·경제적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상회의 진행에서도 미국의 목소리는 먹히지 않았다. 미국은 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규제 강화보다는 경기부양에 무게를 두고 싶어했다. 자본시장에 대해 규제를 강화한다는 것은 미국이 주도해온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의 재정지출 확대로 경제위기를 극복하자고 각국에 제안했다.

그러나 프랑스, 독일 등 유럽국가들은 재정지출보다는 금융규제를 강화하는 쪽에 초점을 맞췄다. 결국 회의 결과 재정지출 확대보다는 규제 강화에 무게가 실렸다.

IMF 등 미국과 선진국 주도의 세계 경제기구를 재편하려는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그동안 미국은 IMF 내에서 17%가량의 발언권을 가지면서 유일하게 핵심 사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였다. 회담에서는 IMF의 구조와 기능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 신흥국들의 입장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은 IMF의 서방편향적인 의사결정구조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고,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도 “세계은행과 IMF는 지난 60여년 동안 미국과 유럽에서 대표를 나눠 갖는 암묵적인 형태로 전 세계 금융질서를 좌우해 왔다”며 “다음 세계은행 총재가 미국인이어야 할 이유가 없고, IMF 총재 역시 유럽에서 인선돼야 할 까닭이 없다”고 말했다.

회담에서는 2011년까지 IMF의 의결권을 조정하기로 합의했다. 의결권 조정이 이루어질 경우 미국의 지분은 점차 줄어들고 중국 등 신흥경제국의 지분은 증가할 전망이다. 이와 함께 IMF 총재와 세계은행 총재 선출 방식도 전환키로 했다. 기존에 유럽과 미국에서 IMF 총재와 세계은행 총재를 나누어 가지던 방식에서 공개적 절차를 통해 선출하기로 합의했다.



대가들의 고해성사

2007년 8월 영국 총리직에 오른 고든 브라운은 전임자인 토니 블레어 밑에서 10여년간 재무장관을 지냈다. 이 때문에 영국의 가디언은 미국처럼 영국에서도 은행들이 줄줄이 도산위기에 빠진 것은 브라운의 책임이라고 비판했다. 야당인 보수당은 금융위기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노동당 정부를 향해 국민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브라운은 지난 3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블레어 정부의 재무장관으로 재임할 때) 금융시장을 보다 더 강력히 규제·관리하지 않은 사실”에 유감을 표해야 했다. 그는 “아마도 1990년대 아시아의 금융위기가 지나간 뒤, 우리는 더 강력한 시장 감독을 실시했어야 했다”며 “경제적 자유방임주의는 과거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시장의 문제를 알면서도 제대로 규제하지 않아 위기를 자초했다’는 고해성사나 다름없다. 브라운 총리는 이어 “워싱턴 컨센서스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적 신념은 종말을 맞이했다”며 “무엇보다 강력한 금융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IMF도 ‘반성문’을 썼다. IMF는 지난 3월 내놓은 ‘위기로부터 얻은 교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금융위기 가능성을 제때에 알리지 못했다며 자성했다. IMF는 보고서에서 “통제되지 않은 감시체계와 효과적이지 못한 메시지가 맞물리면서 세계 금융시장의 호황속에 내재된 위험을 제때 알리지 못했다”며 “결국 세계 경제가 수십년 만에 침체를 겪게 됐다”고 지적했다. IMF는 “IMF를 포함한 세계의 주요 시장 감독기구들이 각국 정부의 정책 결정자들에게 보낸 메시지들이 모호하면서도 산만해 금융위기의 조기 진화에 실패했다”며 “이 같은 실수 재발을 막기 위해 국제사회의 최고 의사결정자들이 구속력 있는 포럼을 창설해 세계 경제의 위험 요인을 짚어내는 한편 국경을 넘어 이뤄지는 금융 거래에 대한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18년 이상 ‘세계 경제대통령’ 소리를 들어왔던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지난해 10월 워싱턴에서 열린 주택위원회 청문회에서 “파생상품 규제에 반대한 것은 잘못이었다”고 인정했다.

또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잭 웰치도 지난 3월12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주주 가치는 세계에서 가장 어리석은 아이디어”라며 자본주의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했다.


벽에 부딪힌 오바마 분배개혁… ‘신자유’ 살아나나

 


G8 정상들의 탈을 쓴 시위대가 지난 7월10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임신부 복장을 한 채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이들은 G8 국가들의 해외원조 약속 등이 구호에만 그치고 있다며 즉각적인 실행을 요구했다. 로마|AP연합뉴스




시장을 배신한 국유화와 구제금융

금융위기가 터지자 미국은 먼저 중앙은행을 앞세워 유동성 공급과 금리 인하를 시작했다. 단기간에 신용경색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효과가 신통치 않자 다시 은행 간 인수·합병을 지원하고 은행 부실을 직접 구제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직접 구제의 정점은 은행 국유화였다. 미국은 올 7월27일 지속적인 위기설에 시달려온 씨티그룹의 우선주 36%를 보통주로 전환하는 방식에 합의, 사실상 이를 국유화했다. 미 최대 보험사인 AIG도 수차례에 걸쳐 대규모 구제금융을 받아 사실상 국유화됐다. 이에 앞서 지난해 9월 국책 모기지업체 패니매·프레디맥도 수백억달러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았다.


유럽은 미국보다 한 발 먼저 시작했다. 영국은 지난해 10월 500억파운드를 투입해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스탠더드차터드 등 8개 주요 은행을 부분 국유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올 2월에도 부실이 늘어나자 추가 자금 투입을 결정했다.

국가 전체가 부도위기를 맞은 아이슬란드는 최대 은행인 카우프싱을 비롯해 란즈방키·글리트니르 등 상위 3대 은행을 국유화했고 스웨덴 정부는 지난해 11월 북유럽지역 최대 투자은행인 카네기은행을 국유화했다.

제조업체에도 대규모 구제금융이 실시됐다. 지난 6월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인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GM)는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채권단은 272억달러에 달하는 채무를 탕감하는 대신 10%의 지분을 갖고 차후에 주식 15%를 추가로 매입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받았다. 미국과 캐나다 정부가 500억달러에 이르는 구조조정 자금을 지원하고 전체 지분의 72.5%를 보유하게 되면서 GM은 사실상 국영기업이 됐다. 나머지 지분 17.5%는 미국 자동차 노조인 UAW의 퇴직자 건강보험기금인 VEBA로 돌아갔다. 이런 조치들은 모두 시장의 힘을 믿는 신자유주의 ‘원칙’에 위배되는 일들이었다.



일본 유권자들의 ‘각성’

일본의 유권자들은 8·30 총선에서 54년 만에 민주당을 선택했다. 사실상 전후(戰後) 최초의 정권교체였다. 집권당이던 자민당의 의석은 300석에서 119석으로 줄어들었다.


선거를 통한 자민당에 대한 ‘심판’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거부의사’로도 해석될 수 있다. 2005년 총선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는 우정분야 민영화 등 각종 신자유주의 조치를 내걸어 승리했다. 이 선거에서 여당은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확보했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가 내건 신자유주의 정책은 나중에 독이 되어 돌아왔다. 소득·도농간 격차 확대, 비정규직 양산 및 고용불안, 연간 2200억엔의 사회보장 축소 등 구조개혁의 문제점은 지난해 가을 이후 전 세계에 불어닥친 경기불황 여파를 타고 자민당 지지층은 물론 무당파 유권자의 이탈을 가져왔다. 이 때문에 아소 다로 총리는 지난 18일 선거공고 첫 유세부터 “지나친 시장원리주의로 도농간 격차가 발생했다”면서 ‘사죄’를 되풀이해야 했다.


반면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는 선거기간 내내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비판하고 “동아시아 공동체를 창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토야마 대표는 지난달 27일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에 기고한 글 ‘일본을 위한 새로운 길’을 통해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의 시장만능주의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졌다”며 “지금 직면한 과제는 우리의 삶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규제되지 않는 시장근본주의와 금융자본주의를 어떻게 끝낼 수 있을 것인가”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에 대해서도 다른 목소리를 냈다. 하토야마는 “(나의 핵심 정치철학인)우애는 환경과 같은 비경제적 가치를 고려하지 않으며 과도하게 진행된 세계화를 바로잡고, 오랜 역사를 통해 형성된 지역 공동체를 되살리는 것”이라면서 “우애의 원칙에 따라 농업, 환경, 의료와 같이 인간의 삶과 직결된 분야는 세계화의 손에 넘기지 않을 것이며 세계화의 이름으로 그동안 내팽개쳐졌던 공동체 회복, 복지와 의료체계 정비, 양질의 교육·보육서비스 제공, 빈부격차 해소 등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우애의 정신에서 나온 또 다른 목표로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도 제시했다. 하토야마는 “물론 일본과 미국의 안보협약은 계속 일본 외교정책의 핵심이 될 것이지만, 동시에 일본의 기본적 존재 영역은 동아시아라는 정체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융위기와 이라크전쟁 실패 등을 볼 때 미국식의 세계화는 이미 끝났으며 중국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면서 “이런 과정에서 어떻게 정치·경제적 독립을 추구할 것인지는 일본뿐 아니라 다른 아시아 중·소 국가들도 가진 과제”라고 말했다.



아직 견고한 신자유주의 기둥

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폐해는 과도한 경쟁이 초래하는 양극화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의료보험제도다.

미국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지면 의료혜택도 받기 힘들다. 정부에서 노인과 극빈층을 구제하고 있다고 하지만, 4000만명 이상의 국민이 의료보험제도 밖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병이 나거나 다치면 바로 극빈층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정권교체를 이뤄낸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경쟁’보다 ‘분배’를 경제정책의 기조로 내걸었다. 금융위기는 ‘위기’이자 ‘기회’였다. 오바마 정부는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료보험에 손을 댔다. 의료보험 개혁에만 향후 10년 동안 6340억달러를 투입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재원은 중산층 이상의 세금을 올려 충당하기로 했다.


러나 분배를 위한 개혁은 시작부터 엄청난 벽에 부딪히고 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장을 지켜내기 위해 미국 도처에서 반대 시위가 열렸다. 심지어 오바마를 ‘사회주의자’, 더 나아가 ‘히틀러’에 비유하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이 때문에 출범 초기 70%에 육박했던 오바마의 지지율은 40%대까지 추락했다.

지난 7월31일 미국 하원 에너지통상위원회는 의료보험개혁안을 찬성 31, 반대 28로 간신히 통과시켰다. 공화당원들은 모두 반대표를 던졌다. 당내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당초 법안의 개혁적 성격을 약간 수정했지만 민주당내 보수파인 이른바 ‘블루독’ 의원 5명도 반대했다. 새로운 의료보험제도 출범은 당초 예정됐던 올해 10월에서 기약없이 늦어지고 있다. 오바마가 계획했던 법안대로 처리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신자유주의?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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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우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ㆍ미국 금융지배력 약화로 기축통화 지위 흔들려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이 빠르게 수습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미 달러화에 대한 유동성 부족문제로부터 발생된 달러화의 일시적인 강세 추세가 종결되고 미국의 금융지배력 약화에 따른 달러화의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 이러한 우려가 반영된 결과, 주요국 통화에 대해 미 달러화의 가치가 약세로 전환되었다. 올해 3월초 이래 달러화는 유로화에 대해 약 15% 절하되었고 엔화에 대해서도 6% 절하되었다. 한편 이러한 추세하에서 국제적으로 위상이 확대된 중국이 달러화 체제에 도전하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를 지배해 온 달러화 중심의 국제통화체제를 위협하고 있다.



러화의 기축통화 역할은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기축통화의 최대 요건은 가치의 안정성이다. 그러나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미국의 경상적자는 달러가 향후 제 가치를 유지할지에 대해 오래전부터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2008년 말 현재 약 7000억달러를 기록하였는데 이 수치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5%를 초과하는 규모이다. 뿐만 아니라 국제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급속히 재정지출을 늘리면서 미국의 재정수지도 급속히 악화되었다. 올해 미국의 재정적자는 1조85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미국 GDP의 13%에 해당한다. 이를 메우기 위해 미국은 달러화를 발행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달러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

미국은 이처럼 달러화를 찍어 내게 된 반면,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경상수지 흑자를 바탕으로 달러화 최대보유국으로 등장했다. 특히 중국 경제가 부상하기 시작하면서 중국의 막대한 무역흑자는 아시아 국가들의 달러화 축적 추세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현재 중국은 전 세계 외환보유액의 약 27%에 해당하는 2조달러 이상을 보유한 세계 제일의 외환보유국이다. 이와 같이 아시아 제국이 막대한 달러 준비금을 보유하면서 이들 국가의 달러화 수요가 미 달러화의 가치를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세계 최대의 외환을 보유한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 달러화를 투매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달러화 체제는 붕괴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시아 제국도 달러화 체제의 붕괴가 자국 경제에 유리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투매의 가능성은 높지 않다. 특히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수출지향적인 발전전략을 채택해 왔기 때문에 이들 국가에 달러화 체제의 붕괴는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미국도 달러화 투매의 위험성을 잘 인식하고 있다. 과거 미국이 압도적인 경제력과 정치력을 모두 가지고 있을 때 이러한 투매의 가능성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경제력이 약화되고 중국이 세계 최대의 공적 준비금(외환보유액) 보유국가로 등장하면서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수 있을지가 불분명해졌다. 달러화의 장래가 불안해진 것이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실제 중국은 국제금융체제의 개편을 요구했다. 특히 지난 3월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 총재는 달러화를 대체할 슈퍼 통화로서 IMF가 발행하는 특별인출권(SDR) 활용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SDR와 같은 바스켓통화가 국제통화로 사용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확실하지 않다. SDR가 도입된 지 40년 가까이 되지만 제대로 활용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로화나 엔화, 위안화와 같은 국민통화가 국제통화로서 달러화를 대체할 수 있을까? 우선 유로화의 경우를 살펴보면 1999년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가입국이 확대되어 미국에 버금가는 경제규모를 갖추었기 때문에 달러화에 대해 잠재적으로 가장 큰 경쟁자라 할 만하다. 특히 영국이 가입할 경우 엄청난 파급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그러나 단일 금융감독기관이 존재하지 않고 정치적 통일성도 결여되어 미국 달러화를 대체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따라서 유로화는 당분간 유럽 경제권을 대표하는 지역통화로 기능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엔화의 경우는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와 낙후된 금융시장으로 인해 그 위치가 계속 약화되고 있어 달러화를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한편 중국 위안화의 경우 무한한 성장 잠재력과 강력한 군사력으로 달러화와의 경쟁에서 유로화보다 유리한 점이 많다. 특히 중국이 2030년 세계 1위의 경제대국으로 등장한다면 위안화의 위치도 그에 걸맞게 조정될 것이 확실하다.

실제 중국은 홍콩 등과 달러 대신 위안화 결제를 허용하고 아시아 제국 및 러시아 등과의 거래에서 위안화 사용을 확대하는 등 위안화의 국제화를 위한 조치를 가속화하고 있다. 그러나 후진적인 각종 정치·경제·금융 시스템은 위안화가 국제통화로 기능하는 데 큰 걸림돌로 남아 있다.

이렇게 본다면 결국 국제준비자산으로서 달러화의 위상은 향후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달러화의 위상이 유지된다고 해서 달러화의 가치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국제수지 불균형이 어느 정도 해소되지 않는 한 달러화의 약세 추세는 피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특별인출권(SDR·Special Drawing Rights) = 국제통화기금(IMF) 가맹국이 국제수지 악화 때 담보 없이 필요한 만큼의 외화를 인출할 수 있는 권리 또는 통화. 가맹국은 국제수지가 악화되었을 때 IMF로부터 무담보로 외화를 인출할 수 있다.

바스켓통화 = 여러 통화를 조합하여 새로운 합성통화단위를 만드는 방식. SDR, 유럽 계산단위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참가국의 통화 중 어느 한 나라의 대외적 상대가치가 저하되어도 다른 통화의 상대적 가치가 상승하기 때문에 단위의 가치가 비교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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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스톡홀름) | 유희진기자 worldhj@kyunghyang.com

ㆍ스웨덴과 한국의 장애인복지 

◆ “학교·이사갈 집마다 저를 위해 공사를 해줘요” 스웨덴의 베른트

스웨덴 스톡홀름시 시청 공무원인 멀린 베른트(36·여)는 태어날 때부터 다리에 장애가 있었다. 걷지 못한다. 한국에서 장애여성네트워크 기획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박현희씨(30·여)도 베른트처럼 다리가 불편한 신체 장애인이다. 7년 전 사고로 그녀의 다리는 그녀의 몸무게를 지탱할 힘을 잃었다.


베른트와 박씨는 멀리 떨어진 대륙에서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지만, 이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 모두 30대 여성이다. 다리가 불편한 신체장애인이기도 하다. 신체적 장애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 열정적으로 매진하는 모습도 닮았다. 대화를 시작한 지 10분도 안돼 사람을 사로잡는 카리스마도 비슷하다. 이들의 긍정적인 생각과 열정적인 태도는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을 단박에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강인하게 만들었을까.

“장애인으로 살면서 어려움도 많았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밝고 열정적인 성격을 가질 수 있었냐”는 질문에 스웨덴의 베른트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대답했다.

“지금까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으니까요. 공부도 마음껏 했고, 18살이 됐을 때는 다른 친구들처럼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자유로운 삶을 영위했어요. 의미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서 보람도 있죠. 물론 다리가 불편한 만큼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런데 나라에서 그 불편한 부분을 채워주었기 때문에 금방 적응하고 새로운 도전을 해나갈 수 있었어요.”


반면 한국의 박씨는 “나는 조금 특이한 경우에 해당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위에서 저에 대해 특이한 경우라고 이야기해요. 먼저 장애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매우 빨랐어요. 3년밖에 걸리지 않았거든요. 또 밝고 명랑한 성격도 도움이 많이 됐어요. 타고난 성격이죠. 사고 후에 3년 가까이 집에서 고립돼 생활하다가 그 고립을 벗어던지자고 결심했을 때 마침 장애여성네트워크라는 좋은 단체를 만나 도움을 많이 받았죠. 하고 싶은 일을 금방 찾았어요. 보통은 이렇지 않아요. 워낙 한국은 장애인이 살기 힘든 나라니까요.”

베른트의 ‘열정’과 ‘긍정적인 생각’은 사회적인 시스템이 뒷받침된 결과다. 그러나 박씨의 ‘열정’과 ‘긍정적인 생각’은 온전히 그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박씨 표현대로 그녀는 잘 타고났다.



스톡홀름-“이동에 불편했던 적 없어요”

지난 6월3일 오후 2시. 베른트는 스웨덴 스톡홀름시 시청 정문 앞에서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짧은 인사, 따뜻한 포옹을 나눈 후 베른트는 휠체어 바퀴를 밀며 “사무실로 가자”며 앞장섰다. 시청 정문에서 3층에 있는 베른트의 사무실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2분. 그 시간 동안 휠체어를 탄 베른트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 한 번의 덜컹거림도 없이 미끄러지듯 흘러갔다. 시청 건물 바닥은 휠체어가 부드럽게 지나갈 수 있도록 잘 닦여 있었다. 건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장애인들에게 이동권 문제는 생활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죠. 저는 이동권 문제로 고생해 본 기억이 없어요. 지금도 스톡홀름시는 더 좋아지고 있거든요. 스톡홀름시에서 장애인들이 좀 더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더 좋게 만들고 있어요.”

베른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그녀가 입학하기로 예정된 초등학교는 분주해졌다. 그녀가 불편함 없이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대대적인 공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층계로 되어 있던 통행로에 새로운 휠체어 길을 만들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녀가 다닌 학교에서는 그녀를 위해 엘리베이터와 휠체어 길을 미리 만들어놓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저도 제가 일반 학생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그러나 차별 없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어서 기뻤죠. 40년 전만 해도 장애인들은 연수원 같은 기관에서 따로 교육을 받았다고 해요.”


고등학교 졸업 후 운전면허를 딴 뒤부터는 좀 더 수월해졌다.

“저희 같은 신체 장애인들이 자동차 연수를 받는 특별운전학교가 있어요. 연수받는 비용은 무료예요. 손으로 작동할 수 있게 특수 제작된 자동차로 연수를 받아서 면허를 땄죠. 4주 만에 운전면허를 따고 새 차를 살 때도 나라에서 보조금이 나왔고, 그 차를 제 신체적 조건에 맞게 개조하는 비용도 나라에서 대줬어요.”

베른트는 다른 친구들처럼 18살이 되던 해에 부모님 집에서 독립해 나왔다. 부모님이 “우리끼리 살면 쓸쓸한데 계속 같이 살면 안되겠냐”고 말렸지만 혼자 사는 삶을 만끽해보고 싶었다. 그녀가 이사갈 주택을 고르자 지방정부는 그 집을 그녀가 살기 편하게 고쳐주었다. 집 입구 쪽에 있던 층계 두 개를 없애고, 평평한 휠체어 길로 바꿔주었다. 화장실도 전부 개조했다. 싱크대는 그녀의 높이에 맞춰졌고, 주방 찬장도 자유자재로 높이 조절이 가능해 그녀가 혼자서 장을 보고 음식을 조리하는 데 지장이 없다.

“장애인들은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붙어 지낼 수밖에 없죠. 부모님들이 옆에서 돌봐줘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고맙고 미안하지만, 답답한 것도 있어요. 그래서 혼자 살아보고 싶었어요. 부모님 집과는 약 300m 떨어져 있어요. 제가 부모님 집에 놀러가기도 하고, 부모님이 제 집으로 놀러오시기도 해요.”

베른트의 취미는 ‘여행 다니기’다. 지금까지 약 15개국을 여행했다. 베른트는 동행인이 필요 없어서 혼자 여행을 다니지만, 장애인에게 돌봐줄 동행인이 필요하면 나라에서 동행인의 비행기표 값을 다 지불해준다. 그녀는 가장 인상 깊은 여행지로 하와이의 조그만 섬을 꼽았다.

“정말 환상적인 섬이었어요. 한 번 가보면 좋을 텐데….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이동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었던 나라는 없었어요. 언젠가 서울도 꼭 한 번 가보고 싶어요. 서울은 어떤가요? 제가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데 어려움은 없나요?”



서울-“밖에 나가기가 무서워요”

베른트가 환하게 웃으며 던졌던 질문에 대한 대답을 그로부터 2주 후인 6월18일 서울 여의도에서 박현희씨로부터 들었다.


“혼자서 밖에 나가면 사방에서 저를 공격하는 것 같아요. 혼자서 밖에 나가기 무섭죠. 직접 저랑 함께 보실래요?”


여의나루역 근처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박씨는 전동 스쿠터에 몸을 싣고 여의나루역을 향해 앞장섰다. 카페에서 여의나루역까지는 약 10분 거리. 카페 건물을 나서자마자 험난한 여정이 시작됐다. 울퉁불퉁한 길 때문에 박씨의 몸은 전동 스쿠터 위에서 끊임없이 흔들렸다. 경사진 길에서 박씨의 몸이 한쪽으로 쏠릴 때마다 잡아줘야 할 것만 같아 무의식중에 두 팔이 자꾸만 뻗어 나갔다. 길에는 온갖 턱이 있었다. 턱 높이 규정은 2㎝지만 그 기준에 맞는 턱은 하나도 없다. 거의 5㎝를 훌쩍 넘는다. 이 때문에 턱을 지나갈 때마다 박씨의 몸이 전동 스쿠터 위에서 폴짝 솟아오른다. 그 모습에 깜짝 놀라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데 박씨가 뒤돌아보며 묻는다.


“방금 봤어요? 몸 솟은 거 봤어요? 매일 이렇다니까요. 이렇게 머리가 계속 흔들리니까 집에 가면 두통 생기고 머리가 어지러워 책 한 장 읽기 힘들어요.”


경사가 심한 길을 지나 이제 괜찮은가 싶으면 길 곳곳에 세워져 있는 자동차 차단봉이 전동 스쿠터를 막는다. 좁은 폭으로 세워져 있어 사람 한 명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정도다. 우여곡절 끝에 여의나루역에 도착해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그러나 고생이 끝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장애인 박씨가 있는지 없는지 신경쓰지 않았다. 사람들이 우르르 먼저 타면 박씨는 다음 엘리베이터를 기다려야 한다.


“늘 있는 일이에요. 아침 출근시간 때는 사람들이 먼저 앞으로 나가 타면서 저한테 그래요. ‘아가씨는 나중에 타요.’”


그녀의 집은 인천, 직장은 서울 대방동이다. 일주일에 3번 출근하는 길은 고행길이다. 남들은 40분이면 갈 수 있지만 박씨는 2배 걸린다.

“그것도 제가 시간을 단축하려고 노력을 많이 한 결과예요. 이를테면 사무실이 있는 대방역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전화해요. 10분 뒤에 도착하니까 미리 리프트 준비해놓으라고 말하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대방역에 도착해 직원을 호출하는 데 한참 걸리고, 그들이 리프트 내려서 준비하는 데 또 한참 걸려서 대방역에서 지상으로 나오는 데만 30분이 넘게 걸리거든요.”

지난 2월에는 대방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한다는 이유로 사전 공지 없이 리프트를 철거해 대방역 측과 긴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어느날 전화했는데 엘리베이터 설치할 때까지 6개월 넘게 리프트가 없으니까 신길역에서 내려서 가라는 거예요. 신길역에서 사무실까지는 길이 너무 위험해서 코레일 서부지사에 ‘대안 마련하라’고 항의했어요. 처음에는 안전바도 없는 임시 휠체어 리프트를 타라고 해서 내가 ‘위험해서 안된다’고 하자 2번 정도 공익요원 4명이 저를 들어서 올리고, 그러고 나서야 장애인용 리프트를 다른 곳에 설치해줬어요.”

장애인들을 위한 저상버스도 장애인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박씨는 “저상버스의 배차 간격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버스 운전기사들은 “슬로프가 고장났으니 다음 버스를 타라”며 그냥 지나쳐버리기 일쑤다. 심지어 저상버스를 몰면서 슬로프를 내리는 방법을 몰라 쩔쩔매는 운전기사들도 있다.



◆ 한국의 박현희씨 “사고 후 대학도 포기… 3년간 집에서만 지냈죠”

교육과 취업의 높은 벽

장애인들에게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권리까지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게 교육권과 노동권이다. 베른트는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시청 체육과 공무원으로 취업했다. 그녀도 직업을 선택할 때 걱정과 고민이 있었다. 교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사범대학에 진학했지만, 막상 교사가 될 생각을 하니 현실적인 벽이 느껴졌다. 마음껏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를 포기하는 대신 대안적인 직업을 선택했다. 그녀가 하는 일은 아동과 청소년들이 여가시간을 더 잘 보낼 수 있도록 ‘신체를 활용한 여가시간 보내기’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이다. 신체가 불편한 아동들에게 신체활동의 중요성을 알리고 독려하는 일도 맡고 있다. 그녀는 신체 부자유가 일에 지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장애인 수당을 받지 않고, 공무원 월급을 받아서 생활한다.


“직업 구할 때 장애인들은 일을 잘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편견에 가로막힌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박씨는 23살 때 사고를 당하고, 신체 장애 판정을 받자마자 다니던 대학을 그만뒀다. 학교에 장애인이 다닐 만한 시설이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않을뿐더러 박씨를 따라다니며 수발해줄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장애여성네트워크에서 자긍심이 낮아 표현이 서툰 장애인들이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도 하고 있다. 박씨는 “학원 강사를 하는 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데 내 월급과 동생 월급으로 월세를 내고 생활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월급으로 한 달에 10만원쯤 들어가는 진통제와 약값도 충당하고 있다.



그러나 박씨가 강조했던 것처럼 한국 사회에서 박씨의 삶은 예외적인 경우다. 한국에서 많은 장애인들은 자신들의 노동권과 교육권을 박탈당한 채 살아가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08년 장애인 실태조사 보고서’의 장애인 교육정도에 따르면 등록 장애인 기준으로 초등학교를 다닌 장애인은 83.8%이지만 졸업자는 33%에 불과하다. 중학교 졸업자는 15.9%, 고등학교 졸업자는 24.4%, 대학교까지 마친 사람은 10.2%밖에 안된다. 학교를 다니지 않은 ‘무학’층도 16.5%나 된다. 학년이 올라가며 학업을 포기하는 비율이 높다. 이들이 중도에 학업을 포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중학교 과정을 포기한 장애인들 중 75%는 ‘경제적으로 어려워 학업을 중도 포기했다’고 답했다.

대부분의 스웨덴 대학생들은 18살 때 부모로부터 독립하면서 경제적 독립도 한다. 이 때문에 대학생들은 보통 등록금 대출을 받아 학비를 해결한다. 하지만 베른트는 무상으로 대학교육까지 마쳤다. 많은 신체장애인들이 직업을 얻는 데 어려움을 겪자 ‘더 많이 공부해서 취업 기회를 더 넓히라’는 취지로 1992년부터 장애인 대학생 무상 교육제도를 실시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장애인들의 취업 현실은 암담하다. 15세 이상 장애인의 경제활동참가율은 41.1%에 불과하다. 특히 여성장애인들의 취업률은 인구대비 23.7%밖에 안된다. 취업을 했다고 해도 이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취업 장애인의 45.5%는 어려운 점으로 생활 유지가 힘든 ‘낮은 수입’을 꼽았다.


박씨는 이에 대해 “한국은 일을 하고자 하는 장애인들의 의지를 꺾는 구조로 되어 있다”고 말했다.

“보통 취업한 장애인들은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경우가 많아요. 80여만원을 받죠. 그런데 장애인들은 아픈 사람들이 많잖아요. 80여만원 벌어서 40만원을 병원비로 쓰고 10만원쯤을 약값으로 쓰죠. 그런데 1급 장애인이 일을 안하면 기초생활수급비에 1급 장애인 수당까지 약 60만원을 벌거든요. 그러니까 직장에 나가는 비용 등까지 생각하면 차라리 집에서 노는 게 남는 거예요.”

박씨는 “사고가 나고 3년간 집에서만 지냈다”면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일을 갖지 못한 장애인들은 집에서 고독하게 시간을 보낸다”고 씁쓸해했다.

“그러다보면 점점 더 자신을 외부에 내보이는 게 어색해지고, 가족들도 그들을 내보이는 것을 꺼리죠. 그렇게 장애인들은 이 나라에서 없는 사람들이 되어가는 거예요”



장애인 없는 한국?

장애인들이 숨어 사는 나라 한국. 한국에서 국제장애인대회 같은 것을 하면 외국인들이 꼭 물어보는 말이 있단다. “한국에는 장애인이 별로 없나 봐요?” 박씨는 “장애인들이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의 차별적인 시선”이라고 말했다.

박씨의 전동 스쿠터 앞에는 경고문이 하나 붙어 있다. ‘가격 묻지 마라, 짜증난다.’ 그녀의 고통을 한 번에 보여주는 구절이다.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이 전동 스쿠터를 만지면서 ‘이런 거 얼마나 하냐, 얼마 주면 살 수 있냐’고 거리낌 없이 물어보거든요. 나를 너무 쉽게 보는 것 같아 화가 나죠. 그뿐 아니라 제가 항상 척추 교정기를 하고 있는데 제 몸도 함부로 만지고 그래요. ‘이건 뭐냐’ 이러면서. 그래서 세게 나가기로 했죠. 이렇게 붙인 후로는 가격을 물어보는 사람이 없어요.”

사람들의 차별적인 행동 속에서 그녀는 자신을 더욱 강하게 단련하고 있는 듯 보였다.



스웨덴은 어떨까. 6월6일은 스웨덴의 ‘국기의 날’로 국경일이었다. 행사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스톡홀름 시내로 몰려나왔다. 대형 쇼핑몰도 휴일을 맞아 쇼핑을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사람들을 피해 지나가던 순간 한국에서는 거의 보지 못했던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한 의류매장에서 휠체어에 앉은 장애인이 쇼핑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은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었다. 그녀 옆에는 그녀를 도와주는 두 여성이 서 있었다. 한 여성이 그녀를 향해 회색 티셔츠를 들어올렸다. 그녀가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거렸다. 티셔츠는 쇼핑 바구니로 직행했다. 옆에서 다른 여성이 그녀를 향해 줄무늬 블라우스를 보였다. 휠체어에 앉아있던 그녀가 블라우스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외면해버린다. 선택받지 못한 블라우스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시내를 돌아다니다보면 적어도 20분에 한 번은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장애인들을 마주친다. 버스를 타기 위해 휠체어에 앉아 기다리는 장애인들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고, 한적한 바닷가에서 산책을 즐기는 모습도 눈에 많이 띈다. 이 도시에는 장애인들이 왜 이렇게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나 한국의 번화가에서는 장애인을 보기 어렵다. 박씨와 여의도에서 인터뷰를 하고 종로로 돌아오던 길. 박씨와 나눈 대화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아 머리 속의 절반은 ‘한국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생각으로 차 있었다. 부지런히 주변을 눈여겨봤다. 수많은 사람들과 맞닥뜨렸지만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장애인은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었다.


베른트는 “장애인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차별이 100% 해소됐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거의 없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제가 대학교까지 일반학교를 다녔는데요. 스웨덴의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장애인과 함께 생활을 하면 자신의 아이가 더 많이 배우고, 같이 어울려 살면서 삶이 더 풍부해진다고 생각해요. 학교를 다니면서는 당연히 차별을 느껴본 적이 없죠. 한국에서는 장애인 형제를 둔 사람이 결혼을 하는 데도 어려운 점이 있다고 들었어요. 스웨덴은 확실히 그 단계는 지난 것 같아요. 제가 장애인이란 사실을 부끄럽게 여길 만한 일도 아직까지 경험하지 못했어요.”


그녀에게도 고민은 있을까. 베른트는 “있다”고 말했다.

“연애를 하게 되면 어떻게 할까. 그런 고민해요. ‘애정’ 문제에 대한 게 가장 큰 고민인 것 같네요.”



임종까지 책임지는 보호시설

베른트는 다리만 불편할 뿐 생활하는 데 문제가 없기 때문에 혼자 생활할 수 있지만, 혼자 생활하기 힘든 정신 및 지체장애인들은 보호시설에서 생활한다. 보통 보호시설에 입소하면 집세로 평균 월 2500크로나(약 40만1750원)를 지불해야 하지만 중증 장애인들은 사회보장사무소로부터 장애수당과 장애인복지서비스수당 등을 받기 때문에 그 돈으로 집세를 해결한다.

6월3일 오후 1시쯤 정신 및 지체장애인 4명이 함께 거주하고 있는 그룹홈(group home)을 찾았다. 그룹홈은 녹색 평원이 펼쳐진 그린벨트 인접 지역 주택가에 있었다. 그룹홈 측에서 “중증 장애인들이라 인터뷰나 접촉은 힘들다”고 난색을 표해온 터라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들이 직업 활동을 하러 나간 시간에 맞춰 그룹홈을 방문했다. 중증 장애인이라도 사회활동을 하는 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들은 하루에 몇시간씩 장애인 작업장에서 일을 한다. 이곳에서 장애인들을 돌보고 있는 마리 일데린이 기자를 맞았다. 이곳에는 일데린을 포함해 6명의 직원들이 그룹홈에 상주하며 장애인들을 돌보고 있다. 그룹홈이 공립시설이기 때문에 이들은 모두 공무원이다.

“늘 저희들이 옆에 붙어서 보살펴줘야 하는 사람들이죠. 판단력이 부족하거든요. ‘설거지를 하세요’라고 하면 설거지를 해요. 그런데 한 번 시작하면 멈출 줄 몰라요. 씻은 걸 또 씻고 그러죠. 설거지가 언제 끝나나 살펴보다가 ‘이제 다 했으니까 그만해도 됩니다’라고 이야기를 해주는 거예요.”

그룹홈은 질서정연한 모습이었다. 4명이 사용하는 독립된 방, 넓은 거실과 휴게실, 세탁실과 주방이 있었다. 그룹홈에는 인지 능력이 부족한 장애인들을 위해 몇가지 규칙이 있었다. 예를 들면 이 공간에서 ‘월요일’을 가리키는 상징은 ‘초록색’이고, 파랑색은 화요일을 상징한다. 선명한 색깔은 기억하기 쉽기 때문이다.

일데린의 안내에 따라 한 지체·정신 장애가 있는 남성의 방에 들어갔다. 방 주인은 헨케(47)였다. 50㎡(15평)의 공간에는 침실과 주방, 작은 공부방까지 있었다. 그의 일주일 시간표가 그림으로 그려 벽에 붙여져 있어 일주일 생활 패턴이 훤히 보였다. 방은 깔끔하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일데린은 “우리와 함께 방을 청소하거나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헨케의 어머니가 와서 청소를 해주고 간다”고 설명했다. 방은 그를 위한 맞춤형 공간이었다. 몸이 불편한 그가 편히 사용할 수 있도록 침대는 리모컨으로 올리고 내리고 하는 조정이 가능했다. 뒤처리가 어려운 그를 위해 화장실 변기에는 비데가 설치돼 있었고, 안전바도 그의 동선을 고려해 곳곳에 설치돼 있었다. 일데린은 “그의 신체적 조건을 고려해 만든 방”이라면서 “침대 옆에 있는 전등 하나도 그가 자다가 손으로 밀어서 다치는 일이 없도록 거리를 조정해 배치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함께 게임도 하고 요리도 하고, 직원들과 함께 장도 보러 가면서 하루를 보내요. 집 앞에 씨를 심고 식물을 기르기도 하죠. 자신들이 심은 씨앗에서 식물이 나는 것을 지켜볼 때 제일 기뻐하는 것 같아요.”

이들은 한 번 그룹홈에 들어오면 이곳 직원들과 다른 장애인들을 인생의 동반자 삼아 살아간다.

“거의 형제 남매처럼 지내는 거죠. 서로 의지하면서. 한 번 들어오면 주욱 이곳에서 지내니까 그 사이 부모님이 돌아가시기도 하고, 혼자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우리 직원들이 이 장애인들의 부모가 되는 거예요. 죽을 때 우리가 지켜봐주는 거죠.”

스웨덴의 그룹홈 이야기를 듣던 박씨가 “나도 집에서 도와주고 보살펴줄 사람이 없어 그룹홈에서 지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억하고 싶지도 않아요. 지적 장애인 등 5명이 함께 지내는 곳이었는데 말 통하는 사람이 없어서 답답하고, 특정 종교를 믿으라고 강요하고, 심지어 장애인 그룹홈인데 화장실에 안전바도 없었어요. 보통 한국의 이런 곳들은 예산이 부족하고 영세하니까 그래요. 그래서 결국 나와서 혼자 살 길을 다시 찾아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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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스웨덴) | 유희진기자

ㆍ“환자 수만큼 국가가 운영비 지원 ‘제한된 민영화’로 서비스 질 높여”

스웨덴의 의료서비스는 주로 세금으로 재원이 조달되는 국가보건서비스(NHS·National Health Service) 방식을 취하고 있다. 연대의 원칙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벌어 세금을 많이 낸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의료서비스가 필요할 때는 적은 비용으로 동등한 치료를 받는다.

주요 국가들의 보건의료체계 성과지표 평가에서 1, 2위를 다투는 스웨덴의 의료서비스. 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의료진들은 어떤 신념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까. 지난 6월3일 스웨덴의 1차 진료소 티펨(Tippem)의 모니카 스칸츠(Monica Skantze·여·사진) 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스웨덴의 의료서비스는 모두에게 동등한 혜택을 주고 있을 뿐 아니라 서비스의 질도 높아요. 일하면서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스칸츠 소장은 1980년대 이후 스웨덴에 불었던 신자유주의에 따라 각 기관에 추진된 민영화에 대한 외부의 시선에 대해서도 인식하고 있었다. “놀라운 사실 하나 알려드릴까요. 환자들은 의료부문에 민영화가 도입된 지도 몰라요. 그들이 받고 있는 의료서비스 혜택은 전과 비교해서 큰 차이가 없거든요. 제가 생각하고 있는 ‘민영화’와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민영화’의 개념에는 큰 차이가 있을 거예요.”


그녀는 ‘차이’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스웨덴에서 쓰이는 ‘민영화’는 개인에게 완전히 다 내주는 ‘자율’의 개념이 아니다. 철저히 정부의 관리 아래 놓여 있는 ‘제한된 민영화’다. 스칸츠 소장이 있는 티펨 진료소는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스톡홀름시의 관리를 받고 나라 세금을 받아 운영된다. 민영 의료기관의 방식은 조금 다르다.


“관리는 민영에서 해요. 하지만 운영은 결국 세금으로 하거든요. 민영기관에서 환자를 받고 진료를 하면 환자 1인당 일정 금액을 나라에서 받는 거죠. 저는 일정 월급이 정해져 있지만 민영기관은 환자를 더 많이 받아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잖아요. 그래서 환자를 많이 유치하려고 서비스 경쟁을 치열하게 벌여요. 서비스가 좋다고 소문이 나야 환자들이 더 많이 찾아오니까요. 그러면 저희도 밀리지 않는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신경을 많이 쓰죠. 오히려 민영화로 좋아진 점이 있어요. 경쟁이 가져다주는 장점, 아시잖아요?”


민영화를 추진하는 당국에서는 민영기관 선발 공고를 낸다. 그러나 요구사항이 매우 까다롭고 규정도 많아 선발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스칸츠 소장은 매우 두꺼운 서류철 하나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게 다 지켜야 하는 규정들에 대해 설명해놓은 거예요. 환자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해주기 위해 철저히 관리하려는 거죠. 제대로 할 거 아니면 신청조차 하지 말아야 해요.”


스칸츠 소장은 ‘미국의 의료문제’에 대해서도 똑부러지게 답했다.

“미국이 의료 민영화 때문에 부작용이 심각하잖아요. 오바마 대통령이 그것을 되돌리려고 하는데 쉽지 않을 거예요. 이미 제약회사들과 의료기관들이 결탁하고 있기 때문이죠. 스웨덴에서 제약회사와 우리 같은 진료소가 검은 거래를 한다는 건 불가능해요. 어떤 치료에 무슨 약이 제일 싼지 가격 정보나 다른 정보에 대해 소비자들에게 다 공개해놓거든요.” 그녀는 진료소 문 앞에 비치되어 있는 빨간색의 약제 정보 자료집을 흔들어보였다. “이게 소비자들을 위한 약 정보 자료집이에요. 저희 같은 전문가들은 더 자세한 정보집을 봐요.” 그녀는 다른 손으로 똑같은 규격에 좀 더 두꺼운 주황색 표지를 한 전문가용 약제 정보집을 내보였다.


최고의 서비스 이면에 숨겨진 긴 대기시간, 응급환자에 대한 순발력 대처 미흡과 같은 의료서비스 한계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도 스칸츠 소장은 “스웨덴 의료제도 역시 사람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부족한 점이 있다”고 했다.

“그래도 지금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놨기 때문에 많이 개선됐어요. 이를테면 이런 규정이 있어요. 응급환자는 당장 진료를 받아야 하고, 1차 진료는 그 날 안에 도움을 받아야 하고, 한 달 안에 전공의를 만나야 하고, 수술은 3개월 이내에 해야 된다는 것들이죠. 이런 규정을 못 지킬 여건이라면 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알아내 환자를 그쪽으로 인계해요. 유럽 동맹국들과도 논의 중에 있어요. 어떤 환자가 신장 이식을 받아야 하는데 스웨덴에서 받지 못하면 핀란드의 헬싱키에 있는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한다든지 하는 거죠.”


의료 분쟁이 발생했을 때 환자는 직접 소송 준비를 하지 않는다. 그 환자가 속한 시의 복지사회부에서 환자의 권리를 위임받아 진행한다. 소송이 진료기관 대 복지사회부의 싸움이기 때문에 한국처럼 의료 사고가 발생하면 흔히 다윗(환자·보호자)과 골리앗(진료기관)의 싸움으로 표현되곤 하는 힘의 불균형 문제는 없다.

“만약 어떤 환자가 병원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면 그 환자를 맡은 간호사는 빨리 상부에 보고를 해요. 그리고 바로 대책을 세우죠. 먼저 환자가 다치지 않았는지 살피고, 치료가 필요하면 치료를 해요. 그 다음에는 재발 방지에 들어가요. 환자에게 미끄럼 방지 양말을 신기고, 바닥에는 미끄럼 방지용 장판을 깔아요. 우리도 사람이다, 그러니까 다 드러내놓고 같이 개선해나가자는 의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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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스웨덴) | 유희진기자 worldhj@kyunghyang.com


ㆍ스웨덴과 한국의 의료서비스 

⊙ 간암치료 스웨덴 박정식씨 “골수이식·간이식 두번 대수술에 43만원 냈어요”


스웨덴에 살고 있는 교민 박정식씨(63)는 2006년 간암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암 말기로 간 이식수술만 받으면 재발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골수 이식까지 받아야 한다”고 권했다. 그는 이후 투병생활을 통해 병마는 물론 시시때때로 엄습해오는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 했다. 다행히 박씨는 두 차례의 대수술을 잘 견뎌냈다. ‘살았구나’ 하는 희망이 생겼다.


한국에 살고 있는 박진석씨(36)는 2004년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치사율이 높은 질병이어서 절망감이 엄습했다. 고된 항암치료 과정을 견디면서 그 역시 스웨덴의 박정식씨처럼 병마와 싸우고, 죽음에 대한 공포에 맞섰다. 그러나 박씨에게는 한 가지 더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바로 돈 문제였다. 아내와 세 아이를 둔 가장으로 자신의 치료비에만 돈을 쏟아부을 수는 없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그는 냉정을 유지하며 자신의 치료비에 쓸 돈의 한계를 정해야 했다. ‘5000만원 이상을 치료비에 쓰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박씨에게 ‘살아야겠다’는 의미는 두 가지였다. 생명을 유지하는 일이 첫번째 의미였다면, 경제적으로 몰락하지 않고 생활을 유지하는 게 두번째 의미였다. 두 가지 터널을 무사히 통과했다고 느꼈을 때 박씨는 비로소 ‘살았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이 중병을 대하는 이 같은 다른 태도는 개인적인 성격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니다. 스웨덴과 한국의 서로 다른 의료제도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스웨덴에서 암 극복하기

지난 6월5일 스웨덴 스톡홀름시 박정식씨의 집. “스웨덴까지 오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냐”며 인사를 건네는 박씨의 얼굴은 건강해 보였다.

“수술한 지 2년 정도 지나 위험한 시기는 넘겼어요. 예후가 아주 나쁜 건 아니지만 ‘좋다’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조심스러워요. 그래도 산책을 다닐 수 있을 정도가 됐으니 많이 좋아진 거죠.”

박씨는 2006년 ‘간에 큰 암 덩어리가 4개 정도 있다’는 ‘간암 말기’ 최종 판정을 받았다. 담당의사는 박씨에게 “암 덩어리가 너무 크고, 진행이 많이 돼 간 이식과 골수 이식 수술을 다 받아야 재발 위험이 없을 것 같다”면서 “두 가지 수술을 다 받는 것은 일반적인 치료법이 아니라 실험적인 케이스가 될 것”이라는 무겁고 절망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빨리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박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름 휴가철을 맞이한 스웨덴은 한가로운 풍경이었다. 의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많은 의사들이 휴가를 떠난 상태였고, 남아 있는 의사들도 기본적인 업무만 수행했다. 혼자서 ‘살 길’을 찾아 고군분투하다 보니 야속한 생각이 들었다.

“저는 당장 내일이라도 죽을 것 같아 속이 타는데 의사들은 여유롭게 움직이는 것을 보니 못믿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랴부랴 한국에 있는 사람에게 연락을 했죠. 친구의 처남이 한국의 대형 병원에 있었거든요. 치료 받을 자리 좀 마련해달라고 했어요.”

보험도 없고, 모아둔 돈도 많지 않아 병원비 걱정이 되긴 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서울에 있는 병원에 보내기 위해 병원으로 가서 진료기록을 떼는 절차를 밟았다. 그를 진료하던 의사는 의아한 듯 박씨에게 물었다. “왜 이 병원 기록이 필요한 거죠?”

박씨는 “마음이 급한데 의사들은 휴가철이라고 여유를 부려서 병이 더 악화되기 전에 한국에 나가서 치료를 받을 계획”이라고 답했다. 박씨의 이야기를 들은 의사는 뜻밖에 박씨를 만류하기 시작했다. 의사는 먼저 “치료해야 할 환자 1순위에 올려놓을 테니 걱정말라”고 설득했다. 그래도 박씨가 망설이자 “한국에서 대수술을 받으려면 돈이 정말 많이 들 텐데 그러지 말라”며 재차 만류했다.

“저도 이왕이면 돈 걱정 안하고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싶었죠. 일단 빨리 치료를 받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휴가철이 끝나는 8월 이후에 당장 수술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어요. 의사가 걱정말라면서 그렇게 해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때부터 박씨는 수술을 받기 위한 몸 상태 점검에 들어갔다. 암이 간에서 다른 장기로 전이됐는지, 다른 장기 건강 상태가 큰 수술을 견딜 수 있는지에 대한 정밀검사를 받았다. 동시에 골수가 일치할 확률이 높은 형제가 박씨에게는 없었기 때문에 전 세계 기증자를 상대로 골수 이식자를 찾았다. 골수 이식을 하겠다고 등록한 6000만명 가운데 그와 골수가 맞는 사람이 독일에 있다는 연락이 왔다.



스웨덴의 감동 서비스

박씨는 2006년 12월 간 이식수술을 받고 다시 수술할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든 후 2개월 지난 2007년 2월 골수 이식수술을 받았다. 그가 수술을 받고, 회복기를 거치는 동안 스웨덴 의료 시스템은 그에게 ‘감동 서비스’를 제공했다.

“의사들은 이보다 더 친절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세심하고 친절하게 제가 궁금한 것들에 대해 답해주고 치료를 해주었어요. 수술 날짜 결정도 일방적으로 하지 않았어요. 제 의견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죠. 궁금한 게 있으면 의사도 곧바로 만날 수 있고, 충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어요. 저는 스웨덴에서 산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통역이 필요 없었지만 언어가 서툰 사람들에게는 병원에서 통역 서비스까지 제공해줘요. 개개인 모두가 차별받지 않고 안정적인 상태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모든 배려를 다 해주는 거죠.”

병원에서 제공해준 정신상담사의 상담도 박씨에게 큰 도움이 됐다. 수술 결과가 성공적이었다고 해도 박씨는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쉽게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옆 병동에서 아프다고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던 사람이 조용해지면 그 다음날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곤 했다.


“왜 이렇게 빨리 내 병이 안낫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면 그 상담사가 ‘너만 불안한 게 아니다’라면서 위로를 해줘요. 그리고 ‘너보다 훨씬 더 힘든 사람들도 많다’면서 다른 환자들의 이야기를 해주죠. 저는 마음속에 있는 말들을 털어놓아 시원하고, 상담사가 전해주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위안도 얻었어요.”


한국에서 백혈병 이겨내기

한국에 있는 박진석씨 역시 스웨덴의 박정식씨처럼 극적으로 죽음의 고비를 넘겼지만 그 투병기는 사뭇 다르다. 지난 7월14일 서울 여의도의 ‘한국백혈병환우회’ 사무실에서 박진석씨를 만났다. 항암치료를 끝낸 지 채 5년이 되지 않았는데도 박씨에게서는 건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박씨는 2004년 11월 개인 건강검진에서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대기업에 다니다 아는 선배와 함께 컴퓨터 판매·서비스 사업을 시작한 후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던 때였다. 외환위기 후폭풍으로 사업이 쉽지 않았지만 ‘어려운 시기만 지나가면 괜찮아진다’는 믿음 때문에 월급 100만원도 안되는 돈으로 버틸 때였다. 너무 무리한 걸까. 결국 그의 몸은 그의 의지를 감당하지 못했다.


“제가 병 진단을 받았을 때 막내인 셋째가 생후 8개월이었어요. 저만 살겠다고 돈을 병원비로 다 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제가 정보를 검색하고 알아보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백혈병 진단을 받자마자 사전 조사에 들어갔어요. 내가 받을 수 있는 국가 혜택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계산을 해 나갔죠. 주위에서 저보고 ‘독특하다’고 했어요. 당장 죽게 생겼는데 돈 계산 한다고.”

정보를 모으고, 자격이 되겠다고 판단한 후 충혈되어 잘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동사무소에 찾아가서 ‘기초생활수급자’ 신청부터 했다. 미리 준비한 덕택에 1차 치료비부터 수급자 혜택을 보았다. 치료과정은 쉽지 않았다. 치료가 거듭될수록 힘겨웠고, 2차 치료가 끝났을 때는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있었다. 급기야 3차 치료를 앞두고 박씨는 기로에 섰다. 비싼 병원비 때문이었다. 골수 이식을 하려고 하는데 여동생 유전자와 하나가 달라 당시만 해도 보험 적용이 안됐다. 병원에서 “최소 7000만원에서 1억원이 든다”고 한 순간 그는 병원 측에 “그렇게 돈이 많이 드는 거면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치료 거부를 선언했다.


⊙ 백혈병치료 한국 박진석씨 “저만 살겠다고 비싼 골수이식 받을 순 없었죠”

“병원에 이야기했죠. ‘돈도 없고, 계속 치료를 진행할 형편이 안된다. 보험이 되는 것으로만 치료를 해달라.’ 그랬더니 의사가 골수 이식이 아니라 항암치료 방법도 있다는 거예요. 완치율이 얼마냐고 했더니 10~12%래요. 12% 안에 들어가면 되니까 항암치료로 가자고 했죠.”

3차 치료를 마칠 때까지 총 4000만원 정도가 들어갔다. 병원에서 최소 비용으로 잡았던 비용보다 3000만원이나 적었다. 박씨는 보험료로 받은 돈에 친구들이 1일호프를 통해 모아준 돈, 형제들이 도와준 돈을 보태 병원비를 해결할 수 있었다.

“사실 저도 그때 모르는 게 많아서 비싸게 낸 거예요. 지금은 의학이 발달해 가격은 더 내려갔어요. 생활에 여유가 많이 없으니까 보험도 안 들었거든요. 운전자 보험 하나 들어뒀는데 더 좋은 혜택 있는 게 나와서 해지하려고 했어요. 보험회사에서 해지하는 대신 운전자보험을 종신보험으로 바꿔준다고 하는 거예요. 금액이 제일 낮은 것으로 들라고 추천했어요. 암 진단이나 백혈병 같은 중병에 걸리면 2000만원이 지급된다고. 그래서 중간에 종신보험으로 갈아 탔는데 갈아탄 지 2년2개월 만에 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거기에서 보험료를 받아 치료비에 보탰어요. 제가 여러모로 운도 좋았죠.”



9개월간 의사 설명 제대로 듣지 못해

지금은 지나간 이야기라 웃으면서 한다지만 생사의 기로에서 무서울 정도로 냉정함을 유지했던 이야기를 듣다보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어떻게 그렇게 담대할 수 있었냐”는 질문에 “원래 성격이 아버지를 닮아 긍정적이기도 했고, 한 집의 가장이기 때문에 무겁고,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고 답했다.


“저한테 한심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돈 빌리고 그랬으면 병원비 1억원은 모을 수 있었죠. 그런데 제가 죽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잖아요. 돈 빌려서 치료 받았는데 제가 죽으면 가족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아내가 아이 셋 데리고 막막하죠. 잘 사는 사람들에게는 1억원이나 4000만원이나 큰 차이 없겠지만 저에게는 차이가 컸어요. 현실은 현실이니까요.”


비싼 병원비만 그를 서럽게 한 건 아니었다. 약 9개월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그는 한 번도 속시원하게 의사의 설명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의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도 아침 회진시간 때 겨우 잠깐 봐요.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도 의사가 시간이 없으니 답답하죠. 회진 때까지 기다려 겨우 의사를 만나도 충분한 설명은커녕 ‘그런 것까지 알아서 뭐하냐’는 핀잔이 돌아올 때도 있었어요. 의사분들이 바쁜 건 알지만 아픈 사람들은 얼마나 궁금한 게 많습니까?”

치료 방법도 일방적이었다. 박씨는 “내가 의료진의 결정에 따라가지 못하겠다고 하면 그들은 더 이상 내 의견을 더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면서 “이런 식으로 하면 치료할 수 없다는 말이 되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강한 사람이었다. 병마와 죽음의 공포, 돈의 3중고에 시달리면서도 강인하게 견딘 그는 결국 하늘이 준 선물을 받았다. 박씨는 현재 백혈병환우회에서 대외협력팀장을 맡아 활발하게 일할 정도로 건강을 되찾았다. 따로 복용하는 약도 없다. 지금은 환자들의 투병 상담을 해주고, 내부가 무균실인 ‘클린카’ 운행을 하며 환자들의 이동도 도와준다.

“죽음의 언덕을 넘어서면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많이 보죠. 전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수많은 헌혈자들로 인해 살았고, 친구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어요. 봉사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찾아다니다가 이곳까지 왔네요.”



스웨덴의 모든 치료비는 1년에 43만3500원

스웨덴의 박정식씨에게는 없지만 한국의 박진석씨에게는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돈 걱정이다. 그렇다면 박정식씨는 골수이식 수술과 간 이식 수술을 받는 데 얼마가 들었을까. 박씨는 두 번에 걸친 대수술뿐만 아니라 각종 MRI 검사부터 초음파 검사, 수술 후 맞고 있는 항생제, 복용하고 있는 비싼 약까지 엄청난 의료서비스를 받았다. 그러나 박씨가 1년에 지불한 비용은 2700크로나(약 43만3500원)에 불과하다.

스웨덴에서는 돈이 없어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거나 의료비로 인해 가정 경제가 파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연간 의료비 상한제’를 시행하고 있다. 의료비 상한제 규정에 따라 총 병원비 중 개인이 부담하는 본인부담금은 최초 진료일부터 1년 안에 최대 900크로나(약 14만4500원)로 제한된다. 이를 초과하는 돈은 광역자치단체가 부담한다. 약값 역시 본인부담액 한도가 정해져 있다. 약값은 연간 1800크로나(28만9000원)까지만 부담하고 초과분은 광역자치단체가 지불한다. 진료비나 약값이 상한액에 도달하면 그 환자는 그 때부터 ‘무료 진료카드’를 받아 무료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제가 입원했던 병원의 입원비가 하루에 80크로나였어요. 입원한 날은 세기도 힘들 정도로 많았죠. 그런데 이미 저는 입원하기 전에 받았던 MRI 검사, 초음파 검사 등으로 상한액에 다 도달했어요. 수술비도 공짜였던 셈이고, 이후 맞았던 혈관주사도 다 공짜였던 거죠. 퇴원 후에도 병원의 가정치료팀이 하루에 세 번씩 집에 와서 약을 놔주고 갔어요. 제가 검사를 받으러 갈 때는 교통비도 지급돼요.”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한국에도 의료 복지제도가 있다. 꽤 탄탄하다. 특히 박진석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인정받아 각종 진료비에서 자기부담액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그런데도 박씨는 왜 4000만원이라는 고액의 병원비가 들었을까. 심지어 그 돈도 박씨가 비용을 줄이고 줄인 결과다.

“한국은 의료 선진국이죠. 아이러니하게도 이 의료 선진국이란 특징 때문에 돈 없는 사람들은 치료 받기가 힘들어요. 의료 선진국이다보니 각종 최신 의료기술이나 최신 약 등이 잘 도입되는데 이는 보험 적용이 안되는 ‘비급여’거든요. 저 역시 비급여 항목으로 진료비를 거의 다 지출했다고 보면 돼요. 암 수술을 한다고 할 때 의사들은 로봇 수술을 권해요. 최신 방식이죠. 그건 비급여 항목으로 보험 적용이 안돼 가격이 껑충 뛰어요. 대신 의사가 직접 칼을 들고 수술하면 보험 적용이 되기 때문에 가격이 싸요. 저는 의사가 최신 방식을 권해도 ‘싫다’고 거부하면서 무조건 보험이 되는 방식만 고집했어요. 많이 공부를 하고 갔기 때문에 비싼 의료비에서 비켜갈 수 있었던 거죠.”



병마 앞에서 가장 역할 걱정

2007년에 한국에서는 “당신의 보장자산은 얼마입니까?”라는 한 보험회사 광고 문구가 큰 인기를 끌었다. 이 광고 때문에 당시 개념조차 생소했던 ‘보장자산’이란 말이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보장자산이란 가정의 주 소득을 책임지던 가장(家長)의 사망이나 질병 사고가 발생할 때 가족이 받을 수 있는 자산을 말한다. 가장의 소득이 가구 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해 가장이 쓰러지면 곧바로 가정이 쓰러지기 쉬운 한국에서 보장자산 상품은 큰 성공을 거뒀다. 보장자산이 화제가 되면서 많은 가장들은 보장자산에 따른 스트레스를 토로하기도 했다. “보장자산을 준비 못한 가장은 마치 무책임한 것처럼 표현하고 있잖아요.”


박진석씨 역시 이 가장의 무게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그가 죽음의 공포로 정신을 차리기 힘든 와중에서도 철저하게 예산 계획을 세웠던 이유도 바로 가장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제가 환우회에서 일하면서 받는 월급과 아내가 받는 월급, 기초생활 보조금에 형제들이 십시일반 도와주는 돈으로 여유있는 생활은 아니지만 세 아이 키우면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고마운 마음이 크니까 사실 ‘돈’보다 더 의미있고 중요한 게 많다고 느껴요.”


박정식씨 역시 스웨덴에서 장모와 아내, 두 자녀를 둔 가장이다. 그러나 그가 암 진단을 받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도 그의 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상병수당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에릭슨이라는 대형 전자회사에 다녔거든요. 2006년 병 진단을 받았을 때 제 연봉이 약 2만9000크로나였어요. 제가 암으로 불가피하게 직장에 못나가게 된 거라서 처음 14일간은 회사에서 현재 소득의 80%를 지급했고, 그 이후 200일 동안은 사회보험에서 일하는 날을 따져서 월급의 80%가 나왔습니다. 그 기간이 지나면 70%의 월급이 나와요. 직장에 못나간 지 3년 이후부터는 64%의 월급이 나옵니다. 은퇴 나이인 65세가 지나면 연금으로 전환되지요. 생계나 이런 걱정 없이 건강 회복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거죠.”



아파도 계층 하락 없는 나라

박진석씨는 “한국 의료보험제도에 부족한 점이 많지만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조금만 더 공공성을 높여 중병에 걸려도 계층 하락이 안됐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한국에서 큰 병에 한 번 걸리면 중층이 하층 되고, 하층은 빈민층이 되기 쉬운 구조거든요.”


스웨덴은 박진석씨가 꿈꾸는 것처럼 아파도 계층 하락이 없는 나라다. 의사와 환자가 ‘돈’의 이해관계를 둘러싼 긴장관계에 놓이지 않기 때문에 심리적인 거리도 훨씬 가깝다.

지난 6월2일 찾았던 스웨덴의 나카 노인전문병원. 병원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기자를 마주칠 때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손을 흔들며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그들의 얼굴이 담긴 큰 사진이 이름과 함께 액자에 끼워져 층마다 복도에 걸려 있었다. 환자들이 의료진의 이름과 얼굴을 쉽게 익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노인성 질환은 젊은 사람들과 달리 복합적인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 치료도 보완적으로 이뤄져야 효과적이다. 입원 치료 기간이 길어지는 경우도 많다. 일반 병원에서 장기 입원을 하는 노인 환자가 많아지면 응급환자를 받을 병실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고자 노인전문병원들이 생겨났다.

환자들이 머물고 있는 병실은 온기가 느껴졌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구부리고 바닥에 쪼그려 앉아 환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진료가 끝난 후에도 병실을 떠나지 않고 환자의 농담까지 다 들어주면서 같이 웃어주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기자에게 병실을 안내해주던 간호사는 “의사나 간호사들이 진료하면서 ‘할머니는 나이를 먹어도 소녀같이 예쁘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늠름하고 멋있다’ 이런 말들을 많이 해주니까 병원 안에 공주병, 왕자병에 걸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다”며 웃었다.


병원은 1인실에서 4인실까지 총 91개의 병상을 가지고 있지만 1인실과 4인실의 구분은 한국처럼 ‘돈’의 개념이 아니다.

1인실은 감염성이 있어 격리 수용이 필요하거나 소음을 일으켜 다른 환자들에게 피해가 될 수 있는 환자에게 제공된다. 환자의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 의료시설 이용이 결정되는 게 아니라 환자의 필요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스웨덴의 의료서비스 체험을 한 박정식씨는 “국가와 병원에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처음에 회사에 다니면서 일할 때는 원망도 많이 했거든요. 세금을 많이 떼가니까. 직장 안다니는 사람들도 잘 먹고 잘 사는데 내가 힘들게 번 돈으로 세금을 내는 게 아까웠어요. 지금은 당연히 그런 생각 안해요. 제가 국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가 되어보니까 저절로 알게 되던데요. 한국에서 제가 이렇게 회사 다니다가 아팠으면 당연히 망했을 거란 생각 많이 해요. 병원비를 감당해야 하고, 직장에 못다니니까 돈도 못벌잖아요. 스웨덴은 능력이 있든 없든, 돈이 있든 없든 한 개인 개인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대우해주는 나라예요.”

고통의 터널을 지나 서서히 다시 삶의 빛을 찾아가고 있는 박씨는 인터뷰 내내 “감사하다”는 말을 유독 자주 했다.

“정말 고마운데 제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그래서 병원 병동에 빵 같은 것 돌려요. 고맙다고 말하면서. 의사들이나 간호사들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건데 왜 빵까지 주느냐고 의아한 반응을 보여요. 그러면서도 저의 고마운 마음을 느끼고 다른 환자들에게 더 잘해주려고 노력해요. 이런 관계를 두고 윈·윈이라고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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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수기자 soo43@kyunghyang.com

ㆍ국유지에 건물 짓고→국민연금 중간인출→10명 중 9명 ‘내집’


싱가포르의 주택보급률은 1990년대 이미 100%를 넘어섰다. 2000년 말에는 112.6%에 달했으며 인구 1000명당 주택수는 259호다.

이 가운데 자가점유율은 무려 92%다. 국민 10명 중 9명은 ‘내집’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그 비결은 싱가포르만의 독특한 주택정책 덕분이다. 싱가포르는 미국이나 유럽 국가와도 다른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주택정책의 유일한 목표는 ‘자가소유 촉진’이다.

싱가포르의 공공주택공급은 1960년 설립된 국가개발부 산하의 주택개발청이 전담하고 있다. 주택개발청은 공공주택의 계획, 건설, 공급을 수행하며 이를 위해 국유지 판매, 임대, 관리, 철거 등의 토지 관련 업무, 주택금융업무, 주택중개업무, 도시정비(재개발, 재건축, 리모델링) 업무까지 맡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공공주택’은 주택개발청이 공급하는 ‘자가소유형 분양주택’을 의미한다. 나라 전체의 주택재고 중 주택개발청을 통해 국가가 직접 건설한 공공주택의 비율이 82%에 달한다. 나머지 18%는 민간부문이다.

공공주택은 분양이 우선 목적이다. 민간주택에 비해 가격이 훨씬 저렴하고, 규모와 형태도 다양하다.


토지에 대한 소유권은 국가가 보유하고 건물만을 분양하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이 가능하다. 이른바 ‘토지임대부 주택’과 유사한 형태다. 이는 국유지 비율이 90%에 달하는 싱가포르의 ‘특수한 상황’ 덕분이기도 하다.

주택개발청이 공급하는 신규 공공주택은 평생에 2번까지만 분양 받을 수 있다. 공통적으로 규정된 자격조건은 싱가포르 시민권 소유자, 21세 이상, 주택개발청이 정한 가족구성 조건 충족 등이다. 또 구입조건에 따라 소득기준, 재구매 유무, 의무거주기간 등이 차등 적용된다.


공공주택을 신규 분양 받은 사람은 기본적으로 5년 이상 거주를 해야 한다. 이후에는 재판매가 가능하다. 재판매 공공주택을 구매하는 경우에도 의무거주기간 2.5년이 적용된다.

주택개발청이 주로 공급하는 주택은 중대형이다. 주택개발청 홈페이지에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05년을 기준으로 3~5실형 주택이 75만4555호로 전체 공급주택 82만9463호의 91%에 달했다. 5실형보다 더 크고 호화스러운 주택을 원하는 부자들은 싱가포르인들이 ‘콘도’라고 부르는 민간분양주택을 자유롭게 살 수 있다. 단 민간주택의 분양가는 주택개발청 주택보다 3~4배 정도 비싸다.


싱가포르는 한국의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CPF(Central Provident Funds) 자금을 주택정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중간인출이 불가능한 CPF의 인출을 주택개발청 주택 구매 시에는 허용하는 방식이다.

싱가포르 국민들은 주택을 구입할 때 먼저 자신의 CPF 기금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나머지 부족분은 은행융자로 해결한다.


주택개발청의 가장 큰 목표는 ‘자가소유촉진’이지만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제도도 함께 시행하고 있다.

주택개발청은 월소득이 2000SGD(싱가포르달러/175만원) 미만인 가구에는 공공주택의 임대료를 시세의 20~30% 정도 할인해준다.

예를 들어 월소득이 800SGD(70만원)~1500SGD(131만원)인 가족이 45㎡(13평)짜리 2실형 공공임대 아파트에 입주할 경우, 월 임대료로 123SGD(10만8000원)~165SGD(14만5000원) 정도만 내면 된다. 물론 가구 수입이 증가하면 임대료도 시장가격에 가깝게 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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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수기자 soo43@kyunghyang.com

ㆍ임차인 동의없이 임대료 못올리고 주거 수준·환경에 따라 가격 결정


네덜란드는 1901년 주택법 제정 이후 비영리 공익법인인 ‘주택조합’이 임대주택 공급을 주도하고 있다. 네덜란드에는 기초지방자치단체 수준에 최소 2~3개 이상, 전국적으로는 600여개의 주택조합이 있다. 이들이 공급하는 사회임대주택은 네덜란드 주택의 36%(250만호)를 차지하고 있다. 민간임대주택을 포함한 전체 임대주택 중 사회임대주택 비율은 75%에 이른다.

주택조합은 대규모로 임대주택을 지어 임대·관리한다. 목적은 영리행위가 아니라 ‘적절한 주택을 싼값에 공급하고 유지하는’ 일이다. 사기업보다는 공기업 성격을 더 많이 갖고 있다. 주택조합은 저렴한 임대료를 받지만 사회임대주택은 민간업체가 공급하는 주택과 비교해도 품질에서 뒤지지 않는다.


물론 사회임대주택의 주고객은 저소득층이다. 그러나 한국처럼 사회적 낙인이 찍히거나, 고립되는 일은 없다. 노동자의 주거 안정이 곧 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임금인상 요인의 제거로 이어지는 만큼 각 기업들의 참여와 협조도 활발한 편이다.


주택조합은 신규주택의 건설과 관리, 낡은 주택의 철거와 재개발 같은 모든 사업을 자치정부와 협의해서 진행한다. 임대주택에 입주하려면 자치단체에 임대주택 신청을 하면 된다. 신청자들은 매년 12.5유로의 회비를 납부하면서 자신의 순서가 오길 기다린다. 대기기간은 지역마다 다르다. 암스테르담 같은 대도시에서는 3년이 걸리기도 한다.


사회임대주택의 평균 임대료는 2008년을 기준으로 월 350유로(63만원)다. 또 소득 수준에 따라 임대료의 일부를 국가로부터 지원받을 수도 있다. 네덜란드의 각종 사회보장제도까지 감안해본다면 실질 소득 대비 임대료는 매우 저렴한 수준이다.


임대료 인상폭도 낮다. 네덜란드 정부는 사회임대주택뿐만 아니라 민간임대주택의 임대료 인상률을 규제한다. 또 집주인이라 하더라도 임차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임대료를 올릴 수 없다. 임차인이 임대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면 해당 기관의 결정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독립기관인 임대료위원회의 결정도 ‘주택등급제도’라는 객관적인 지표에 따라 결정된다. 주변 시세와 상관없이 실질적인 주거 수준과 환경에 따른다. 주택의 공간, 난방 방식, 위생 상태, 노후 정도, 주거 서비스 등을 100점 만점 기준으로 환산해 최대 공정 임대료를 산출한다. 이와 같은 지표들은 오래된 건물일수록 낮아진다. 따라서 임대료를 낮춰야 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사회임대주택을 신청하려면 해당 지역에 일자리 또는 사회적 네트워크가 있거나 거주 경험이 있어야 한다. 즉 실거주자에 한해서만 입주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모든 사회임대주택에는 부엌, 화장실, 샤워 시설을 갖춰야 하는 등 까다로운 품질 요건이 적용된다. 평균적인 주택 규모는 약 61㎡(18.45평) 정도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은 단독주택 형태다. 또 주택협회에는 임차인 조직의 참여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임차인들은 주택협회에 주택에 대한 불만사항을 얼마든지 얘기할 수 있다. 의견이 반영되지 않으면 역시 임대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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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수기자

ㆍ네덜란드 주택연구 아우버한트 “임대주택 거주 40%가 고소득층”

안드레 아우버한트는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산하기관인 OTB 주택·도시·교통연구소 연구원이다. 사회임대주택 정책을 연구해온 그는 경향신문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네덜란드에서는 사회임대주택에 사는 일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적합한 주택에 살고 있느냐란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 한국의 사회임대주택에는 주로 저소득 계층이 살고 있다. 따라서 사회임대주택에 산다는 것은 곧 ‘사회적 낙인‘이 된다. 네덜란드에서는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네덜란드 사회임대주택에 사는 가족의 40~45%는 고소득층에 속한다. 네덜란드의 전체 주택 중에서 36%가 사회 임대주택이다. 엄청난 분량이다. 따라서 사회임대주택에 사는 것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어떻게 사회임대주택인데도 저소득층만 사는 ‘게토’가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사회임대주택은 주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제도지만, 고소득 가구도 주택협회의 대상으로서 일정 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많은 자치단체들이 사회임대주택의 배분에 소득기준을 적용한다. 그러나 일단 임차인이 주택을 임차하게 되면 차후에 소득이 변화하더라도 임대기간은 유지된다. 또 임차계약서는 거의 모든 경우에 기간과 상관없이 유효하다. 만약 임차인의 소득이 상승했는데도 이사할 의향이 없을 경우, 주거를 옮겨야 할 어떤 법적인 강제성도 없다.”


-한국에서는 임대주택만으로 이뤄진 아파트 동이 있다. 네덜란드에도 사회임대주택만으로 이뤄진 주택단지가 있는가.

“간단하게 얘기하면 ‘그렇지 않다’. 사회임대주택이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지역이 많기는 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도심 재건축 작업으로 그런 지역들의 비율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네덜란드 사회임대주택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인가

“세입자들에게 사회적 낙인이 찍히지 않도록 한다는 사실이 네덜란드 주택시스템의 가장 큰 자산이다”


-사회임대주택을 배분할 때, 가장 먼저 중점을 둬야 할 기준은 무엇인가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적합한 주택을 나눠주는 것이다.”

-네덜란드 사회임대주택의 월 평균 임대료는 어느 정도인가. 또 명확한 시설기준은 있나

“최소한의 소득이 있다면 월 350유로(62만7000원) 정도를 낸다. 모자란 차액은 임대 수당에서 지급된다. 시설기준은 시대마다 달라지고 있다. 전쟁 직후에는 대량공급을 해야 했기 때문에 기능적이지만 간소한 주택이 많았다. 현재는 4개의 방이 있는 60㎡짜리 방도 사람들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주택협회는 비영리기관이다. 그렇다면 운영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나?

“임대료를 받는 것으로 충분하다. 세입자들은 임대료를 적게 내지만 국가에서 주는 보조금까지 합하면 주택협회를 운영하고, 다음 사업을 이어가는 데 충분한 금액이 된다.”

-임대료를 낼 수 없는 사람들도 사회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나

“물론이다. 임대료를 낼 수 없으면 주택임대 수당을 신청해서 받으면 된다.”

- 사회임대주택제도가 다른 나라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네덜란드 주택협회의 모습은 사회주택에 관한 유일한 모델이 아니라 하나의 모델이다. 사회·경제·정치적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하게 다른 나라에 바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를 다른 나라에 그대로 옮기지는 못하겠지만 이를 통해 사회주택 구축에 관련된 사항을 배울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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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 강민정 통신원·네덜란드 | 박소희 통신원

◇ 싱가포르 “3000만원으로 2억대 신혼집… 땅 빼고 집만 사요” - 집이란, 필요하면 사는 것


싱가포르에 사는 키니스 챈(38)은 지난해 11월 독립을 결심했다. 부모님집에서 여자친구 샤론 완(27)과 함께 사는 것도 괜찮았지만, “이제는 정식으로 결혼을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독립을 위해서는 우선 집이 필요했다. 신부가 될 완과 함께 통장 잔액을 점검했다.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했지만 모아둔 돈은 그리 많지 않았다. 탈탈 털어봐도 3만5000싱가포르달러(SGD) 정도. 한국 원화로 환산하면 3000만원이 약간 넘는 금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챈은 ‘독립 의지’를 접지 않았다. 그는 말했다. “싱가포르에서는 집값의 10분의 1만 갖고 있어도 내집 마련이 가능해요.” ‘땅은 빼고 집만 사면’ 되기 때문이다.



국가가 서민·신혼부부에 보조금

지난 3월 정식으로 분가한 챈과 완은 지금 싱가포르 시내 근처, 퀸즈타운에 있는 29만5000SGD(2억5780만원)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다. 임대가 아니라 챈과 완의 집이다. 챈은 지난해 말 완과 상의 끝에 싱가포르 주택개발청이 지어 분양한 아파트를 사기로 결심했다. 챈은 “민간업자가 지은 ‘콘도’가 시설과 환경 면에서 더 좋지만 가격 차이가 어마어마하다”며 “싱가포르에서 신혼부부가 주택청 주택에 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이 주택청 아파트를 쉽게 구입할 수 있게 정부는 적지 않은 보조를 해준다. 집을 살 때 보조금은 물론 한국의 국민연금과 유사한 지원도 있다. 은행은 주택청 아파트 구입자를 위해 장기저리 대출을 해준다. 내집 마련은 내가 아니라 나라가 해주는 셈이다.


챈과 완은 먼저 보조금 자격조건이 되는지 살펴봤다. 정부보조금은 ‘부자’에게는 나오지 않는다. 월 수입 기준이 부부합계 8000SGD(699만원) 이하로 제한돼 있다. 챈과 완의 월 수입은 합쳐서 6000SGD(524만원) 정도였다.

자격을 확인한 이들은 한달 넘도록 주택청이 주최하는 각종 세미나에 참석해 정보를 모았다. 세미나에서는 주택청 주택을 구입하기 위한 조건, 혜택 등을 상세하게 알려줬다. 챈과 완이 갖고 있는 조건을 대입해 보고 구입할 수 있는 최상의 주택을 찾는 일도 가능했다.


‘사전 학습’을 끝낸 부부는 시내와 가까운 퀸즈타운을 새 보금자리로 점 찍었다. 챈은 “교외지역에 있는 아파트보다 가격이 조금 더 비싸기는 했지만 출퇴근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부모님집과도 가깝다는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들 커플은 요모조모 알아본 끝에 ‘신규분양 아파트’보다는 ‘재판매 아파트’ 구입이 더 유리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챈은 “신규분양을 받으려면 신청에서 입주까지 3년 정도가 걸린다”며 “이에 비해 ‘재판매 아파트’는 주택청 산정가격에 프리미엄을 얹어주면 바로 입주해 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프리미엄도 주택청 산정가격의 10% 내외 수준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프리미엄은 집주인에게 돌아가는 몫이다.

챈과 완은 수차례 발품을 판 끝에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다. 방 2개와 화장실 1개가 있는 70.6㎡(21평)짜리 아파트였다. 아직 아기가 없기 때문에 두 사람이 살기에는 충분했다. 주택청이 산정한 이 집의 가격은 29만5000SGD(2억5780만원). 부부가 처음에 계획했던 예산 25만SGD(2억1845만원)보다 비쌌고, 프리미엄도 3만5000SGD(3067만원)나 됐지만 챈과 완은 한번 눈에 들어온 집을 포기할 수 없었다.



대출금은 2.6% 금리로 30년간 상환

챈과 완은 우선 집주인에게 가계약금으로 5000SGD(437만원)를 지불한 뒤 주택청에 상담 신청을 했다. 신청자가 많아 1개월이 지나서야 상담순서가 돌아왔다. 기다리는 동안 챈은 주택청에 제출할 각종 서류를 준비했다. 싱가포르에서는 개인 간의 거래일지라도 그 대상이 주택청 주택이면 사전에 승인을 받아야 한다. 챈과 완은 주택청과 상담할 때 대출을 신청했다. 연 2.6% 조건이었다. 상환기관은 최대 30년이다. 싱가포르 정부가 지원하기 때문에 국민연금 일반계좌로도 상환이 가능하다.

주택 매매 승인에 또 한달 반가량이 걸렸다. 챈과 완은 승인이 떨어지자마자 주택청과의 상담 자리에서 바로 매매계약서를 작성했다. 이미 건넨 5000SGD(437만원)에 더해 현금 3만SGD(2621만원)를 추가로 지불했다. 프리미엄이 3만5000SGD인 셈이다. 집값의 10%인 계약금 2만9500SGD(2578만원)는 국민연금에서 인출했고 잔금 26만5500SGD(2억3260만원)는 모두 주택청 대출로 해결했다. 챈은 “이 돈은 30년 동안 천천히 갚아나가면 된다”며 “완과 함께 버는 고정수입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고 말했다.


챈과 완이 신혼집을 마련하는 데는 정확히 4개월이 걸렸다. 지난해 11월에 시작해 올해 3월에 마무리됐다. 챈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기는 했지만, 여러가지 혜택을 생각하면 시간을 들일 이유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부부는 처음 마련한 집에 대해 만족스러워했다. 챈은 “콘도처럼 여러가지 편의시설이 있지는 않지만, 위치가 좋고, 콘도보다는 훨씬 더 저렴한 가격과 조건으로 집을 장만할 수 있었다”며 “4~5년 뒤에 아이가 생기면 조금 더 큰 집으로 옮길 생각”이라고 말했다.

완은 “요즘같이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프리미엄이 아예 안 붙은 집도 있어 가계약금 정도만 가지고도 집을 살 수 있다”며 “부부에게는 보조금 3만SGD(2621만원)가 지원되고, 또 부모님과 가까이 살면 보조금 1만SGD(874만원)가 추가로 나오기 때문에 신혼부부는 더 쉽게 집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 결혼을 앞둔 한국의 박용택씨(32·가명·회사원)도 신혼집을 구하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었다.


서울에선 다세대주택 전세도 힘겨워

2004년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한 박씨는 신부와 함께 결혼 전에 함께 6500만원가량을 모았다. 우선 결혼비용으로 2000만원 정도를 책정하고, 나머지 돈과 은행대출로 전셋집을 마련하기로 했다. 4500만원이면 싱가포르의 챈과 완 커플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손에 쥐고 시장에 나간 것이다. 그러나 이 돈으로는 서울시내에서 전셋집을 얻기가 부족하다.

박씨는 먼저 직장에서 가까운 서울 양재동으로 살 지역을 결정했다. 다세대 주택을 중심으로 찾았지만 방 2개, 욕실 1개가 있는 집의 전세보증금은 1억원 수준이었다. 부모님 도움 없이 결혼생활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터라 은행 빚으로만 6000만원가량이 필요했다. 한달가량 부지런히 발품을 판 끝에 박씨 부부는 8200만원짜리 전셋집을 구할 수 있었다. 43㎡(13평)짜리로 방이 2개 있는 다세대 주택이다.




◇ 네덜란드 “10곳중 4곳이 임대주택… 평생 저렴하게 살죠” - 집이란, 취향에 맞춰 빌리는 것

 

네덜란드의 코리 후프만 할머니가 사는 사회임대주택. ‘특별 건강관리’를 받는 노인전용 사회임대주택이지만 일반 주택가와 이웃하고 있어 입주자들은 손쉽게 쇼핑센터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 네덜란드 | 박소희 통신원



연봉이 3000만원 미만인 박씨는 은행에서 ‘근로자·서민주택전세자금 대출’로 4000만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율은 연 4.6% 수준이다.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이율(5.4~14%)에 비하면 싼 편이지만 상환조건은 만만치 않다. 6년 안에 원리금을 모두 상환해야 하고, 2년 동안 원금의 20%를 갚지 못하면 이율이 상향조정된다.

박씨는 “그나마 서민주택전세자금 대출조건에 부합되었기에 모자란 전세보증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며 “회사나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전무한 상황에서는 부모님에게 기대거나, 신용대출을 받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10년 후 내집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다. 해마다 2000만원씩 저축을 한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현재의 수입과 물가인상을 고려할 때 이 목표가 달성될지는 미지수다. 일단 대출금 상환부터 준비해야 하고 전세계약이 만료되는 2년 뒤에는 이사 걱정을 다시 해야 한다. 박씨는 “목표를 세워놓기는 했지만 현재의 부동산 가격으로 볼 때 내 힘만으로 집을 살 수 있는 날이 올까싶다”며 “정부가 특단의 조치를 내놓지 않는 이상 서민들의 내집 마련 꿈은 더 멀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알크마르시에 거주하는 페트라 후프만(36)은 1주일에 3일간만 건설회사에 출근하는 ‘시간제 노동자(파트타이머)’다.

그러나 후프만은 정원이 딸린 70㎡(21평)짜리 집에서 ‘독신’의 삶을 만끽하고 있다. 그의 집에는 정원뿐만 아니라 침실 2개와 부엌, 거실, 주방, 욕실이 모두 갖춰져 있다. 후프만이 사는 집은 네덜란드 전체 주택의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사회임대주택’이다.

덜란드의 코리 후프만 할머니가 사는 사회임대주택의 내부. 네덜란드 | 박소희 통신원

이 집은 후프만의 ‘2번째 임대주택’이다. 10년 전 학업을 마치고 바로 임대주택으로 독립한 후프만은 7년 정도 살다가 현재의 집으로 옮겼다. 정원이 딸린 집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원이 딸린 집을 구하는 절차는 간단하다. 후프만은 먼저 지역 임대주택 회사에 12.5유로(2만2000원)를 내고 회원등록을 했다. 연간수입과 개인정보가 담긴 서류를 제출하는 것으로 등록 절차는 끝났다.

회원 등록이 끝나자 2주일에 한번씩 회사에서 발행하는 주택정보 신문이 집으로 배달됐다. 물론 회사의 인터넷 사이트를 살펴보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후프만은 시장에 나온 주택 3곳을 골라 입찰했다. 네덜란드의 사회임대주택은 가격이 저렴한 대신 입찰자가 많기 때문에 매주 추첨을 통해 입주자를 결정한다. 마음에 두고 있던 지역과 원하는 주택이 완전히 일치될 때까지 후프만은 입찰을 계속했다. 그는 회원 등록한 지 꼭 6개월 만에 마음에 드는 주택을 구할 수 있었다.


후프만이 ‘당첨’된 주택은 연수입이 3만8050유로(6770만원) 이하인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주택이었다. 파트타이머인 후프만의 자격은 충분했다. 후프만이 부담해야 하는 월세는 420유로(74만7000원). 그러나 정부에서 임대주택 보조비로 85유로(15만1200원)를 달마다 주기 때문에 실질적인 부담액은 335유로(59만5800원)로 줄어든다. 임대주택 보조비는 연수입이 2만975유로(3731만원) 이하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다.

후프만은 “주택임대료로 월 수입의 30%가량을 지불하고 있다”며 “비슷한 규모의 주택을 민간 임대업체에서 빌리면 지금보다 2~3배 정도의 금액을 내야 하니 사실상 입주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대단위 주택단지가 건설될 때 판매용주택과 함께 지어졌기 때문에 겉으로 봐서는 임대주택인지도 알 수 없다”며 “결혼 같은 개인신상에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앞으로 이사할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후프만의 할머니 코리 후프만도 사회임대주택에서 산다. 30년 전 남편과 사별한 코리 후프만(81)은 10년 뒤 큰 아들이 살고 있는 알크마르시의 임대아파트로 이사왔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코리 후프만의 2번째 임대아파트다. 18년 동안 산 임대아파트가 시의 도시계획변경에 따라 철거되면서 현재의 아파트로 옮겼다.

물론 코리 후프만 할머니는 아파트가 철거되기 1년 전에 통보를 받았다. 코리 후프만 할머니는 먼저 시에서 일하는 복지사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동네 슈퍼마켓에 배포된 임대주택 신문에서 적당한 위치와 가격의 아파트가 눈에 띄면 복지사와 함께 직접 집을 보러 다녔다. 시에서는 코리 후프만 할머니에게 이사 비용으로 900유로(160만원)를 지급했다.




코리 후프만 할머니는 몇 달 만에 마음에 꼭 드는 아파트를 찾을 수 있었다. 침실 2개와 욕실, 주방, 거실, 발코니를 포함하면 80㎡(24평)에 이르는 65세 이상 노인 전용 임대아파트였다.

월 임대료가 520유로(92만5000원)로 비싼 편이지만 코리 후프만 할머니의 고정수입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코리 후프만 할머니는 매달 956유로(170만원)의 은퇴연금에 임대 보조비로 270유로(48만원)씩을 받고 있다. 임대보조비 지급 대상은 65세 이상 노인 중 연수입이 1만9800유로(3522만원) 이하인 사람이다.

코리 후프만 할머니는 “상점이 가깝고 대중 교통을 이용하기 편리한 자리에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며 “무엇보다 양로원처럼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왜 그는 양로원 대신 홀로 사는 쪽을 택했을까. “혼자 살 수 있도록 기반이 다 마련되어 있어요. 그런데 일부러 심심한 양로원으로 들어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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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덴마크) | 이로사기자


ㆍ예스퍼 피셔 덴마크 복지부 팀장


통합보육시설 ‘마리아 가든’의 한 보육교사가 막 잠에서 깬 아이를 돌보고 있다. 덴마크에선 신선한 바람을 맞으라고 아이를 밖에서 재우는 전통이 있다. 실외 발코니에 아이들의 이름표가 붙은 유모차들이 늘어서 있다.


덴마크 보육 정책의 목표는 여성을 ‘일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동을 부모 자신이 양육하도록 하는 ‘부모권’보다 여성의 고용상태를 지속시키는 ‘노동권’을 중시한다. 상대적으로 휴직제도보다 보육 시설 서비스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이유다. 덴마크의 보육 서비스는 양질의 시설과 80% 이상의 높은 등록률로 유명하다. 지난 5월25일 만난 덴마크 복지부 팀장 예스퍼 피셔는 “여성들이 가족 관련한 문제 때문에 노동시장에 참여하는데 진입 장벽을 갖지 않도록 최대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 출산율이 1.9명에 이릅니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데요.

“지금 인구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의 고령화가 큰 사회·경제적 문제예요.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저희의 목표는 합계 출산율을 2.1명으로 높이는 것입니다.”



- 어떤 가족친화 정책을 펴고 계십니까.

“우선 양육수당이 있습니다. 부모 수입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1년에 4번 제공됩니다. 한부모 가정, 저임금 가정에는 추가로 지원되고요. 예전에는 세금 공제를 해주었으나 이제는 현금으로 줍니다. 가장 중요한 복지제도는 ‘전일제 보육시설’입니다. 덴마크에서 2~6살 어린이들은 거의 100%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이민자, 저소득층 아이들은 추가 지원금이 있습니다. 덕분에 여성 경제활동참여율이 75%에 이릅니다. 유럽에서 가장 높죠. 이밖에도 부모 휴가, 직장에서의 가족친화정책 등 다양한 정책이 있습니다.”


- 공공부문 예산이 많이 드는 정책모델입니다. 금융위기 속, 반대의 목소리는 없나요.

“큰 영향은 없어요. 일단 덴마크에도 경제위기가 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그렇게 피해가 크진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경제구조가 매우 견고하죠. 실업률이 증가하고는 있지만 상대적으로는 매우 낮은 편입니다. 또 현재의 정책은 컨센서스가 이뤄진 부분입니다. 다들 큰 만족도를 갖고 있죠. 정치적 논쟁은 있을 수 있습니다. 있다 해도 더 가족친화적인 정책을 펴자는 쪽이지, 예산을 줄이자는 의견은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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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덴마크) | 글·사진 이로사기자 ro@kyunghyang.com

ㆍ덴마크와 한국의 보육환경
ㆍ“월급은 고스란히 양육비로 … 8년다닌 직장 포기”


지난 5월25일 오전 8시쯤, 덴마크 코펜하겐시에 사는 마리안 하이둠(32·여)은 출근 중이었다. 한 살 배기 아이는 하이둠의 자전거 앞에 설치된 거치대에 앉아 연방 다리를 흔들흔들 했다. 7살과 8살 아이들은 책가방을 메고 각자의 자전거에 올랐다. “자, 이제 공공탁아소에 들러서 작은아이를 맡기고, 큰 두 아이는 학교까지 데려다 줘야죠. 그리고 회사로 가는 거예요.” 아침에 데려다 주는 일은 하이둠, 퇴근 후 데리고 오는 일은 남편 몫이다. 출근 길 차도 한쪽에 마련된 자전거 도로에는 하이둠 같은 엄마·아빠들이 넘쳐났다. 자전거 앞 뒤에 아이용 거치대를 매단 것은 기본. 유모차를 자전거 앞에 매달기도 하고, 아이 둘을 실은 수레를 뒤에 매달고 페달을 밟는 아빠도 눈에 띄었다. 하이둠이 말했다. “시내에선 주로 자전거를 이용해요. 다들 일하면서 아이 둘 셋은 기본으로 키우니까, 이런 풍경은 흔하죠.”



지난 6월12일 오후 3시 경기 성남시. 김동은씨(가명 32·여)는 집에서 아이를 재우고 있었다. 요즘 하루는 곧 아이의 하루와 같다. 아이가 일어날 때 일어난다. 아이가 놀 때 함께 놀고, 밥먹을 때 같이 먹는다. 김씨는 6개월된 쌍둥이 엄마다. “나머지 하나요? 아래층에서 시어머니가 봐주세요. 쌍둥이 둘을 혼자 보는 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에요.” 그는 최근 8년 넘게 다니던 직장에서 권고사직 당했다. 산후 휴가에서 돌아오니 대대적인 인원 감축이 있었다. 김씨가 있던 부서 자체가 사라졌다. “안 그래도 육아비 부담이 너무 커서 그만둘까 말까 심각하게 고민을 하던 차였어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타이밍이 맞았던 거죠.” 한낮의 햇살이 집안을 뜨겁게 데웠다. 아이는 자꾸 칭얼댔다. 김씨는 ‘전업주부’로 살 줄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고 했다.


일하는 엄마, 아이 키우는 엄마

덴마크의 하이둠과 한국의 김동은씨는 둘다 대학을 졸업한 30대 초반의 ‘고학력 여성’이다. 그 세대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렇듯, 결혼 후에도 ‘당연히’ 직장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이둠은 소음·진동 계측 분석 장비회사 브루엘 앤 케어(Bruel & kjaer)에서 브랜드 매니저로 4년째 근무 중이다. 김씨의 경우 서울의 한 대형 출판사에서 8년4개월간 일했다. 일한 기간은 조금 다르지만, 이들은 큰 불만 없이 자신의 일에서 경력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출산 후 이들 삶의 궤적은 달라졌다.

하이둠은 대학을 다니면서 첫 두 아이를 낳았다. 셋째 아이를 낳은 것은 1년 전. 현재 직장에서 일하던 중이었다. 망설임은 없었을까.

“왜 망설여요?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공 보육시설이 있는데요. 대부분 일하는 엄마들이 이걸 이용해요. 출퇴근하면서 남편과 번갈아서 아이를 맡기고 데려오기만 하면 되는데, 고민할 이유가 없잖아요. 이미 앞서 두 아이도 대학 공부하면서 그렇게 키웠고요.”

아이가 셋이다. 30대 초반의 여성이 아이 셋을 낳아 키우는 것 자체가 한국에선 낯선 풍경이다. 게다가 일하는 여성이다. 낯설기보다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이둠은 싱긋 웃으며 “덴마크에선 흔한 일”이라고 말했다.

현재 한 살 배기 막내는 공공 탁아소에, 7살·8살 아이들은 방과 후 보육시설에 보내고 있다. 모두 집에서 자전거로 10분 이내 거리에 있다. 오후엔 4시쯤 먼저 퇴근하는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온다. 비만 오지 않으면, 역시 출근 때와 마찬가지로 자전거를 이용한다. 드는 비용은 총 월 4000크로네, 한국 돈으로 96만원 정도다.

“제일 많이 드는 건 막내 탁아소 비용이에요. 오전 7시~오후 5시 전일제로 운영하니 아무래도 그렇죠. 월 2000~2500크로네(약 48만~60만원) 정도 돼요. 기저귀, 식사 등등 모두 포함돼 있으니까 비싼 건 아니에요. 방과 후 시설도 형제가 함께 있으면 반값 정도로 깎아 주고요.”

하이둠의 수입은 세 전 월 3만8000크로네(약 920만원)다. 수입 중 순수 보육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10분의 1가량에 불과한 셈이다. 맞벌이하는 남편의 수입까지 합하면 30분의 1 정도다.



덴마크에선 ‘아이는 사회가 키운다’는 생각이 보편적이다. 지자체마다 연령대별 공공 보육시설이 충분히 갖춰져 있다. 6개월~2살 영유아를 돌보는 탁아소부터 3~6살 아동을 맡는 유치원, 생후 6개월~6살(혹은 14살) 아이들을 관리하는 연령통합 보육시설까지 단계별로 다양하다. 취학 아동들을 위한 방과 후 보육시설, 학교 여가시간 시설 등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비용은 지방정부가 75%를 부담한다. 이용자가 내는 비율은 25% 정도다.

저렴한 비용이라면 질적으로 떨어지지는 않을까. 하이둠은 아니라고 했다.

“부모들의 이사회가 있어요. 최소한 두 달에 한 번은 이사회가 보육시설 측과 만남을 가져요. 영향력이 아주 크죠. 음식이 좋지 않다거나, 아이 생활의 질이 떨어진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향상시키도록 해요. 지금까지요? 실제로 그런 적은 없어요. 문제될 만한 게 전혀 없었어요.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언제든 알 수 있고, 음식도 잘 제공되고 있다는 걸 부모들이 알고 있어요. 저는 아주 만족하고 있어요.”

이 같은 신뢰도 때문일까. 덴마크에선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는 게 일반화돼 있다. 3세 미만 영유아의 공공보육기관 등록률이 80%를 웃돌 정도다(2006년 기준). 하이둠 역시 “세 아이 모두를 생후 6개월부터 탁아소에 맡겼다”고 했다.



시댁이냐, 친정이냐

한국의 김동은씨는 불과 두 달 전 회사 다니던 때를 떠올렸다. “그땐 거의 아이를 못 봤죠.”

현재 사는 곳은 시댁. 2층짜리 양옥집이다. 1층은 시댁 식구가, 2층은 김씨 가족이 사용하고 있다. 원래 2층은 전세를 놨던 곳이다. 남편과 오붓하게 살던 집을 떠나 시어머니에게 전세금을 내고 이곳에 들어왔다. 지난해 10월, 아이 낳기 두 달쯤 전이었다. 상황은 절박했다.

“주변에서 시댁으로 들어가는 걸 많이 말렸어요. 괜한 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요. 그렇지만 방법이 없었어요. 시어머니가 ‘왜 들어와, 귀찮아’ 하시는 걸 저희가 밀고 들어왔죠.”

물론 몇 가지 선택지는 있었다. 탁아소? 아니다. 그건 “생각도 안 했다”.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도 단체로 있는데 전염병 같은 거 옮지 않을까 공포가 컸는데요. 탁아소는 시설도 미비할 텐데 더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탁아소… 그건 정말 이도 저도 할 수 없을 때 최후의 선택 아닐까요. 몇 개월밖에 안 된 아이를 그런 데 맡길 거면 아마 복직 안 했을 것 같아요.”

김씨가 생각한 첫번째 선택지는 시어머니냐, 친정 어머니냐였다. 친정어머니는 김씨 부부가 이전에 살던 곳과 가까운 데 살았다. 그러나 친정어머니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만두고 돌봐주겠다고 했지만, 손자 때문에 일까지 그만두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포기했다.

두 번째는 시댁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 시댁 ‘근처로 이사가는 것’이었다. 여기에도 방법은 여러 개다. 아이를 매일 아침 저녁으로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거나, 아이를 붙박이로 시댁에 두고 김씨 부부가 주말에만 데려가거나, 아니면 시어머니가 집에 와 아이를 보게 하거나 등등. 그러나 모두 여의치 않았다.

“문제는, 쌍둥이가 나왔다는 사실이에요. 누구든 혼자 아이 둘을 보는 것은 벅찬 일이죠. 시댁에 들어가는 것에 더해 육아 도우미까지 쓸 수밖에 없었어요.”

비용이 만만찮았다. 도우미 비용이 월 150만원, 시어머니에게도 매달 80만원씩 드렸다. 또 쌍둥이인지라 분유, 기저귀, 유아 목욕용품 등 필수품들에 대한 지출도 배로 나갔다. 김씨의 당시 총 육아비는 월 260만원 정도. 남편과 맞벌이로 버는데도 수입의 40% 이상이 순수 육아비로 나갔다.

“육아비 부담이 너무 컸어요. 저축할 돈도 없었죠. 거의 제가 버는 돈은 고스란히 육아비로 나갔다고 보면 돼요. 이럴 바에야 남의 손에 아이를 맡기는 것보다 내가 그만두고 키우는 게 낫겠다 싶어 고민을 했지요.”

그렇게 결국 8년간 정든 회사를 떠났다. 김씨는 씁쓸한 듯 말했다.

“구조조정에 의한 권고사직이었지만 아이가 아니었다면 새로운 일자리를 구했을 거예요. 근데 회사를 다녀도 육아비 지출이 너무 많으니까 ‘똔똔’인 거예요. 시어머니께도 죄송스럽고,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삼중고에 시달리다 결국 일 대신 아이를 택한 거죠.”





워킹맘 vs 워킹맘

오전 8시30분 하이둠의 자전거가 코펜하겐 브루엘 앤 케어 앞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그는 자전거를 회사 앞 주차장에 대고 자물쇠를 채웠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하다. 벌써 자전거 주차장엔 수많은 자전거가 늘어서 있다.

“바로 오면 10분 걸리는데, 아이들 다 데려다 주고 오면 20분쯤 걸려요. 이제 일해야죠.”

하이둠의 출근시간은 오전 9시. 퇴근은 오후 5시라고 했다. 그런데 공공보육시설들도 대개 오후 5시면 문을 닫는다. 주말에도 운영하지 않는다. 불편한 점은 없을까.

“문제 없어요. 지금의 출퇴근 시간은 제가 선택한 거예요. 남편이 오후 4시에 끝나고 아이들을 데리러 갈 수 있으니까요.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시간을 조정했을 거예요. 주말에는 일 안하니까 당연히 저희가 보는 거고요.”



“맞벌이 수입 3%만 보육비로 … 하나 더 낳을 생각” 

하이둠이 다니는 브루엘 앤 케어는 탄력적 근무시간제를 시행하고 있다. 주 37시간만 채우면, 그 안에서 출퇴근시간 조정이 자유롭다. 브루엘 앤 케어뿐 아니라 덴마크 대부분의 사업장들이 그렇다. 일과 가족의 양립을 위해서다. 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도 일상적 권리일 뿐이다.

“눈치 같은 거 안 봐요. 기업들이 감히 그렇게 못 해요. 다만 저희 회사의 경우 육아휴직하는 기간에는 월급의 60% 정도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그걸 대비해서 미리 절약을 해 놓긴 했어요.”

덴마크의 육아 관련 휴가제도를 보자. 산전후 휴가는 출산 전 4주, 출산 후 14주 해서 총 18주(126일)다. 이때 소득 대체율은 사업장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100%다. 육아휴직(부모 휴가)은 아이가 8살 때까지 최대 50주다. 산전·산후 휴가와 중복되는 기간을 제외하면 32주. 유급휴가다. 금액은 사업장별로 다른데 월급의 60~100% 정도가 지급된다.

남성들의 출산 휴가 권리도 명시돼 있다. ‘배우자 휴가’다. 출산 후 첫 14주 이내에 2주 동안 사용가능하다. 소득대체율은 역시 100%. 육아휴직은 ‘부모휴가’라고 부른다. 아버지에게도 똑같은 권리와 의무가 있다. 덴마크에서 육아휴직 하는 남성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이둠의 남편도 지난 여름, 3주간 부모휴가를 냈다. 휴가 사용에도 유연성이 크다. 32주 중 일부만 사용해도 나머지는 필요한 때 사용이 가능하다.

“아이들 학교 여름방학 때 기간을 맞췄어요. 특별히 어디 놀러 가진 않았고요, 아이들과 시간을 더 보내려고요. 제가 막내 아기 보는 대신 남편이 큰 애들 둘을 봐 줬죠.”



한국과 비교해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한국의 산전·산후 휴가는 총 90일이며 이 중 산후 휴가가 45일 이상이어야 한다. 최초 60일은 유급으로 회사에서 지급한다. 그 뒤 30일은 근로기준법상 통상임금액이 지급된다. 최대가 135만원이고, 최저는 최저임금액이다. 육아휴직도 있다. 생후 3년 미만의 아이가 있을 경우 1년이다. 고용보험기금에서 고정적으로 월 50만원이 지급된다.

일단 급여액수와 기간에서 상당한 차이가 난다. 보육비는 훨씬 더 많이 드는 반면, 휴가급여는 적다. 더 큰 문제는, 한국에선 육아휴직이 법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사문화된, 유명무실한 법 말이다.

김씨가 잠든 아이를 조심스레 요에 눕히며 말했다.

“육아휴직이오? 당연히 못했죠. 저희 회사 같은 경우 육아휴직은 기본적으로 ‘없다’고 보면 돼요. 쓰는 경우는 거의 못봤는데요. 그런 분위기에서 눈치 보여서 어떻게 사용해요. 남편 육아휴직은 뭐, 농담조로 ‘오빠가 애 봐, 내가 돈 벌테니’ 하고 말지요. 실제로는 생각 안 해봤어요.”

최근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육아휴직 사용가능 유무’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2.5%가 ‘직장에서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육아휴직 사용률은 2007년 기준 35.8%에 불과했다. 남성의 경우 2% 미만이다.


직장 내 분위기도 덴마크와 판이하다. 김씨는 “눈물 겨운 사연을 가진 엄마들이 많다”고 했다.

“오후 6시가 되면 총알같이 나가야 하는 엄마들이 많죠. 10분이라도 넘으면 육아 도우미 아주머니들이 추가비용을 받아요. 시집이나 친정에 아이 데리러 가야 하는 경우도 많고. 근데 또 일이 오후 6시에 딱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발만 동동 구르는 거죠. 아이가 아플 때도요. 특별히 휴가 내지마 하는 건 아닌데 눈치가 엄청 보여요. 그럴 때 정말 서럽죠.”



1.9와 1.13의 차이

현재 덴마크의 합계 출산율은 1.9명. 한국은 불과 1.13명이다. 덴마크는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 역시 70%를 웃돈다. 꾸준히 높은 출산율과 경제활동참여율을 유지하는 데는 잘 갖춰진 공공보육시설, 휴가제도, 직장 내 가족친화적 분위기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하이둠과 함께 일하는 샤네트 불텀슨(41·여)은 ‘양육 수당’을 꼽았다. 불텀슨은 싱글맘이다. 두 번의 이혼 끝에 혼자 세 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이들은 10살, 13살, 17살이다. 아직 엄마의 손길을 떠나기엔 이른 나이다.

“수입에 관계없이 모두가 똑같은 수준의 양육수당을 받아요. 3개월에 한 번씩, 1년에 4번이요. 대신 저처럼 부모가 하나인 가정에는 추가로 혜택을 더 줘요.”

금액은 아이들의 연령에 따라 달라진다. 0~3살은 4107크로네(약 98만원), 3~7살은 3251크로네(78만원), 7~18살은 2558크로네(61만원)다. 이 금액을 매년, 1년에 4번씩 받는 것이다. 불텀슨은 싱글맘이라 보통 아이들보다 1500크로네(약 36만원)가량씩 더 받는다. 이 같은 혜택은 일정 수준 이하의 저소득 가정에도 주어진다. 쌍둥이, 장애아를 가진 가정에는 가정 도우미 비용도 지원된다.


불텀슨은 지난 5년간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 크게 힘든 점은 없었다고 했다. 다만 최근엔 걱정이 조금 생겼다.

“방과 후 보육시설에선 한 부모 가정의 아이는 무료였어요. 이제 애들이 커서 ‘클럽’에 가야 해요. 방과 후에 운동도 하고 취미활동도 하는 곳이죠. 거긴 비용이 좀 들거든요. 그리고 아이들이 커갈수록 나라에서 주는 혜택이 줄어드니까, 경제적으로 좀 어려운 점은 있죠.”

덴마크에선 출산 비용도 0원이다. 물론 이 모든 서비스는 40% 이상 고율의 세금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불텀슨이 말했다.

“의료비는 모두 무료이니까 출산비용도 무료고요. 출산 전에도 간호사들이 집에 와서 정기적으로 체크해줘요. 병원에서 얼른 내보내려는 경향은 있지만, 개인적으로 드는 비용은 전혀 없어요.”



반면 한국의 김씨는 출산 비용으로 총 600만원가량을 지출했다. 산후조리원, 수술·입원비, 산후도우미 비용 등을 모두 합한 금액이다.

“임신 막달쯤 ‘고운맘 바우처 제도’라는 게 생겼어요. 20만원 주대요. 그걸로 병원 몇 번이나 갈 수 있을까요?”

김씨는 ‘수당’ 이야기가 나오자 겨우 잠든 아이가 깰까봐 조심스러워하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선(성남시) 둘째까진 땡전 한푼 없고 셋째 낳으면 100만원이 나온대요. 그것도 맞벌이는 해당사항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강남구인가 어디선 셋째 낳으면 1000만원 준다고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대요? 엄마들이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닌데….”

그는 다소 흥분한 채 말을 이었다.

“뉴스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저출산 얘기가 나와요. 대책이라고 나오는 게 몇 째 출산하면 얼마 준다는 금전적 지원, 바우처 제도가 대부분이죠. 육아라는 게 금전도 많이 필요하지만, 엄마들이 가장 원하는 건 믿을 수 있는 양육자, 양육 시설이에요. 엄마가 아이 낳고 사회에 복귀하려면 결국 그런 게 필요하잖아요. 괜찮은 양육자를 못 찾아 퇴사한 사람 여럿 봤어요. 돈 조금 주면 된다? 정말 얄팍하고 단순한 생각이죠.”


김씨는 요즘 틈틈이 교육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아이가 좀 크고 한 숨 돌리면 교사임용시험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출산 계획은 없다.

“한 아이만 낳았으면 둘째 출산에 대해 정말 깊게 고민했을 거예요. 비용도 그렇고, 예전처럼 아이 키우는 문제가 간단치 않잖아요. 앞으로 교육비도 엄청 들테고요. 한꺼번에 둘이 나왔으니 더 생각할 것도 없죠.”

오후 5시, 하이둠은 퇴근 준비를 했다. 집에 가면 다같이 저녁 식사를 한 후, 8시30분이면 아이들을 재운다. 이후엔 시내에 나가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저녁 늦게 시장을 봐서 집에 돌아온다고 했다. 하이둠은 특유의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아이들이 북적거리는 게 좋아요. 세 명이 좀 많은가요? 하하. 앞으로 적어도 한 명쯤은 더 가질 생각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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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덴마크) | 이로사기자


ㆍ아이 89명에 교사 23명… 예산 75% 지자체 지원

ㆍ법으로 부모 참여 보장


지난 5월28일 덴마크 코펜하겐시 프레데릭스 베아 지역의 통합보육시설 ‘마리아 가든’ 앞. 자전거와 자동차, 유모차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오후 4시 퇴근 시간이다. 조용했던 동네가 조금 분주해졌다.

“소나기가 내려서요, 오늘은 부모님들이 대부분 차를 갖고 오거나 걸어들 오셨네요.”

마리아 가든의 보육교사 하이디 라슨이 말했다. 마리아 가든은 생후 6개월~6살 아동이 이용하는 ‘통합 보육시설’이다. 두 개의 연결된 건물로 한 쪽은 0~2살 영아들을 돌봐주는 탁아소, 한 쪽은 3~6살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으로 나뉘어 있다. 하이디는 아이를 데리러 온 부모들의 이름을 부르며 친근하게 인사를 나눴다.

눈에 띄는 것은 아빠들이었다. 작은 아이를 품에 안고, 큰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니콜라이 메츠도프(38)는 “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는 것은 매일 내 몫”이라며 웃었다. “아이 엄마가 먼저 9개월의 출산 휴가를 보내고 직장에 나갔어요. 대신 제가 10주의 육아 휴직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있죠.” 메츠도프 외에도 이날 아이들을 데리러 온 이들의 절반 이상이 남성이었다. 이곳은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전일제로 운영된다. 오전 7시부터 1시간가량은 탁아소, 유치원 아이들이 모두 함께 아침 식사를 한다.

“이 시간에 오는 아이들은 보통 바빠서 집에서 아침을 못 먹고 와요. 그래서 촛불도 켜놓고 집에서 먹는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죠.”


원장 리타 엘베아슨(사진)이 말했다. 오전 9시에는 다같이 모여서 노래하는 시간이다. 이후에는 탁아소와 유치원 아이들이 분리된다.

“우리 재량껏 커리큘럼을 만들지만 기본적으로 언어 발달, 사회성, 문화성 발달 등 가르쳐야 할 분야가 정해져 있어요. 요즘은 외국 이민 자녀들도 많고 해서 다문화 관련 문화성을 길러주려고 노력합니다.”



 
“아이 데리러 오는 건 제몫이죠” 지난 5월28일 오후 니콜라이 메츠도프(38)가 종일 보육시설에 맡겨뒀던 두 아이들을 데리고 귀가하고 있다. 메츠도프는 “출산 휴가를 끝내고 복직한 아내를 대신해 육아 휴직을 내고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며 환하게 웃었다.


75% 이상의 예산이 지자체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 외에도 따라야 할 지침이 많다. 현재 마리아 가든에는 89명의 아이들이 있다. 탁아소 아동은 3㎡, 유치원 아이는 2㎡당 1명으로 면적당 인원이 정해져 있다. 교사는 23명. 이 중 12명은 전문 교육을 받은 이들이다. 엘베아슨 원장은 “대체로 탁아소 아동의 경우 한 교사당 10시간, 유치원 어린이는 5시간 정도가 필수적으로 주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공공보육시설이라고 해서 경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마리아 가든은 나무도 많고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해 있다. 다른 붐비는 거리에 있는 보육시설보다 인기가 좋은 편이다. 보육시설들은 ‘좋은 이미지’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아이들 숫자에 따라 예산 지원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한 지역 내에서는 보육시설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요. 그러니 아무래도 더 좋은 데를 가려고 하죠. 정부에서 경쟁하라고 압력을 주는 건 아니에요. 그저 우리 시설이 좋다고 소문이 나면, 아이들이 많아지는 것은 물론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에게도 좋은 일이잖아요?”

이 때문인지 이들은 최대한 부모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쓴다고 했다. 부모 이사회는 1년에 4번 모이고 부모들과 연 2회 이상 만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그 외에는 여름에 가든 파티, 가을에 페스티벌, 겨울엔 크리스마스 파티 등을 연다. 사고가 났을 경우엔 지방정부가 모두 보상해준다.

딸 아이의 손을 잡고 유치원 문을 나오던 아네 메테(36·여)는 “수시로 부모들이 와서 참여할 수 있게 문이 열려 있기 때문에 마음놓고 아이를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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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스웨덴) | 유희진기자 worldhj@kyunghyang.com

ㆍ“1평 쪽방…복지관 도시락이 유일한 즐거움” 한국의 독거노인
ㆍ스웨덴과 한국의 경우


스톡홀름 닐손의 행복

지난 6월2일 스웨덴 ‘밍크 실버타운’을 찾았다. 스톡홀름시 나카구(區) 구역 주택가 한가운데였다. 한국이었다면 주택가 중심에 노인들이 모여 사는 ‘실버타운’이 가능했을까. 특히 실버타운이 위치한 나카구의 집값은 스톡홀름 상위 20% 안에 드는 지역이다. 실버타운 인접지역에 살고 있는 가이드에게 “동네에 실버타운이 있으면 주민들이 반대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실버타운이 들어와도 우리가 피해를 입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다”고 했다.



실버타운에 들어서자 싱그러운 꽃과 나무들로 가득한 정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매일같이 정성스러운 사람의 손길을 받은 모양새였다. 이곳에 살면서 입주자 대표를 맡고 있는 비욘 닐손(75)이 정원을 쳐다보며 말했다.

“날씨가 화창하면 정원에 나와서 꽃과 나무를 가꾸면서 이야기를 해요. 이거 전부 우리가 직접 가꾼 거예요.”

건물 두 동으로 이루어진 ‘밍크 실버타운’은 스웨덴의 주택공사가 지어 55세 이상 시민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한 소형 아파트다. 활동하는 데 불편이 없는 비교적 건강한 노인들이 살고 있다. 닐손은 5년 전 실버타운의 50㎡(15평) 아파트를 구입해 이사왔다. 동거녀와 자식들이 있지만 같이 살지는 않는다. “혼자 단독주택에 사는 게 더 편할 텐데 왜 실버타운으로 들어왔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닐손은 “외로워서”라고 말했다.

“혼자 살다보니까 이야기 나눌 사람도 없고 고독하더군요. 그러나 여기는 또래 친구들이 많아 외롭지 않아요. 함께 어울리다보면 하루가 정말 빨리 지나갑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것도 마음에 들어요.”



서울 종로구 박선호씨의 우울

6월16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 박선호씨(가명·71)는 고불고불한 골목길을 따라 서울 종로구의 쪽방으로 향하며 기자에게 몇번이나 신신당부했다.

“나 한 명 겨우 누워서 잘 수 있는 방이에요. 웃으면 안됩니다. 이렇게 산다고 웃으면 안돼….”

3.3㎡(1평) 남짓한 비좁은 공간에서 박씨는 힘겹게 더운 여름을 맞이하고 있었다. 박씨는 “주전자로 물을 끓이면 방 전체가 찜통처럼 더워져 차 한 잔 준비하지 못했다”며 미안해했다. 엉거주춤 서 있는 기자에게 앉을 자리를 권하며 박씨가 말했다.

“이렇게 사는 꼴 아무한테도 보여주기는 싫지. 왜 취재와도 괜찮느냐고 했냐면, 외로워서 그래. 나이 먹으니까 가장 치명적인 적(敵)이 외로움이야. 내가 말이 많지? 오늘 이렇게 이야기 하고 가면 앞으로 1주일은 우울해하지 않고 버틸 수 있어.”

박씨와 같이 우울하게 노년을 보내고 있는 또 다른 노인들이 넘쳐나고 있는 한국. 국민건강보험공단 산하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은 “매년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노인들도 증가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70대 이상 우울증 진료 환자는 7만8291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11% 이상 증가했다.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인구 10만명 당 자살자)도 1998년 38.0명에서 2007년 73.6명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닐손의 짧은 하루

훼테판 양로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프리스크(왼쪽)와 그녀를 돌보는 양로원 원장 필리포빅. 프리스크는 거동이 불편해 양로원에서 직원들의 24시간 보살핌을 받고 있다. 방값과 식비는 두 자녀가, 수발비용은 국가가 지불한다. 기타 생활비는 연금으로 해결한다.


닐손은 실버타운에서 취미 활동을 하는 방들을 하나 하나 보여주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통유리를 통해 환한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큰 식당이었다.

“이곳에서 한달에 2~3번 다 같이 모여 만찬을 즐기면서 공연을 보거나 강의를 들어요. 강의 주제는 다양한데 최근에는 기후 변화에 대한 강의를 들었어요. 그 방면의 전문가를 초청하는거죠. 저는 사실 강의보다는 공연을 더 좋아해요. 그래서 음악가나 배우들이 와서 공연할 때를 더 기다리죠.” 닐손이 웃으며 말했다.

다양한 취미 활동은 그들이 얼마나 즐겁게 노후를 보내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날이 추워져 바깥 활동이 힘들면 여자들은 주로 ‘베틀이 있는 방’에 모여 다양한 용도의 천을 짜고, 남자들은 주로 각종 공구들이 구비되어 있는 방에서 가구를 만든다. 베틀실에서 할아버지들이 천을 잡아주고, 그것을 풀고 있는 할머니들의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점심을 먹고 나면 오후에는 미니 도서관에 모여 책을 읽거나 휴게실에서 함께 텔레비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휴식을 취하는 방의 선반에는 다양한 보드게임을 할 수 있는 게임판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닐손의 50㎡(15평) 아파트에는 침실과 널찍한 거실, 주방과 화장실, 베란다가 오밀조밀 들어서 있었다. 그의 거실 벽면은 딸들의 사진과 손자·손녀들의 사진으로 가득했고, 인테리어들은 꽤 세련되어 보였다. 거실에 있는 오디오에서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요리를 즐겨하는 닐손이 특히 좋아하는 공간은 주방이다. 진한 빨간색의 커튼, 검정 줄무늬의 벽은 서로 잘 어우러져 정열적인 느낌을 냈다. “주방이 예쁘다”는 말에 닐손은 흡족해했다.

“내 솜씨는 아니에요. 바이올리니스트인 딸이 꾸며주고 간 겁니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일과를 설명해줄 수 있느냐는 물음에 닐손은 간단하게 답하기 어렵다는 듯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어갔다.

“하루에 너무 많은 일들을 하니까 설명하기 쉽지 않네요. 음악도 듣고, 날씨가 좋으면 시내에 나가서 영화를 보고, 클럽 같은 데 가서 술마시며 춤도 춰요. 카페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이 앞에 있는 쇼핑몰에 가보셨어요? 거기 돌아다니면서 쇼핑하는 것도 좋아해요. 요즘엔 낚시에 취미를 붙여서 바닷가에 나가서 청어를 많이 잡아와요. 제가 요리해서 먹기도 하고 많이 잡으면 이웃집에도 나눠줍니다. 인터넷도 하고…. 여기 사는 친구들과 게임도 해요.”

닐손에게서 느껴지는 에너지는 흔히 연상되는 ‘노인’의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노쇠, 병약함보다는 활력과 건강함이, 수동성보다는 능동적인 느낌이 더 강했다.



박씨의 긴 하루

박씨의 하루 가운데 유일한 즐거움은 아침에 복지관에서 배달해주는 도시락이다. 그나마도 배달 시간이 매일 조금씩 늦어지고 있어 아침마다 마음이 상한다.

“하루에 제대로된 식사 그거 한번 먹는거야. 아침에 눈뜨자마자 도시락 올 시간을 계속 기다리지. 오늘 아침처럼 오전 11시 넘어서 가져오면 먹어도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 너무 배고파서 허기져 있으니까 물 말아서 허겁지겁 먹어버려.”

박씨는 퇴행성 관절염을 앓고 있어 걷는 게 편치 않다. 지팡이를 짚고 겨우 걷는다. 다리가 불편한 그는 하루 대부분을 쪽방에서 보낸다. 오전은 배달올 도시락을 기다리며 버틴다. 그 도시락을 먹고난 후부터 그의 힘겨운 하루 보내기가 시작된다. 박씨는 손때 묻은 성경책을 내보이며 말했다.

“이걸 내가 이 쪽방으로 들어온 이후 읽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약 500번을 읽었어. 이거 보여요? 내가 읽을 때마다 점으로 찍어서 표시한거야.”

도시락이 배달되지 않는 주말은 지옥같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쪽방. 우울한 기운을 이겨내지 못할 때는 고혈압 때문에 자제하고 있던 술을 잔뜩 마시고 취해버린다. 술 기운에 의지해 도시락이 오는 월요일 아침까지 버티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책꽂이가 눈에 들어왔다. 기자의 눈길을 따라 고개를 돌리던 박씨가 말을 이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책 읽는 겁니다. 다 읽고 나면 인상 깊은 구절 적어놓고,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해주고 그래. 그 다음 좋아하는 게 클래식 음악 듣는 거야. 오페라 보는 것도 좋아해.”

박씨를 돌봐주고 있는 복지관에서는 가끔씩 박씨에게 연극표와 클래식 음악 공연 표를 가져다준다. 박씨는 “내 인생이 더 연극 같기 때문에 연극은 시시하고, 클래식 음악 공연은 좋아하기 때문에 꼭 찾아가서 본다”고 했다.

박씨가 클래식 음악 공연을 보러 가기 위한 여정은 힘겹지만, 그래도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기어코 가고야 만다. 그것은 매일 쪽방에 갇혀있다시피하는 생활에 활력을 가져다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클래식 음악 연주를 듣고 오면 “가슴이 촉촉해진다”고 했다.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하는 날에는 힘들게 지하철 3호선을 타고 남부터미널역에서 내립니다. 그러면 그 지하철 역에서 예술의전당까지 거리가 650m야. 왕복이면 얼마야. 1300m지? 마을버스비 아끼려고 이 다리로 예술의전당까지 걸어가. 그날 공연을 상상해보면서 걷는거지. 아낀 버스비에 돈 좀 더 보태서 공연 팸플릿을 사서 봐. 연주자가 누구인지 정도는 알고 있는 게 음악을 듣는 사람의 예의라고 생각하거든”



노후 준비는 젊은 시절 열심히 일한 게 전부

닐손과 박씨는 모두 70대. 그러나 그들의 생활은 천양지차다. 닐손은 돈 걱정 없이 취미 생활을 하면서 여생을 즐기고 있지만 박씨는 자존심을 팔아 “도와달라”고 요청하지 않으면 하루 끼니 챙겨먹는 것조차 힘겹다. 박씨의 방 한구석에는 햇반 다섯개가 쌓여 있었다. 박씨는 햇반을 가리키며 “비상식량”이라고 말했다.

“복지관에서 다 먹고 나면 연락하라고 하거든. 그런데 매일 부탁하고, 손내미는 게 쉽지 않아. 내가 아껴 먹는 게 마음이 훨씬 편해. 주위에서 ‘할아버지는 자존심 때문에 안된다’고 뭐라고 하는데 나도 지키고 싶은 게 있지.”

한국에서는 궁핍한 노후를 보내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자업자득 아니냐는 것이다. 젊은 시절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닐손의 ‘편안한 노후’는 젊을 때 치밀하고 악착같이 대비한 결과가 결코 아니다.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일 뿐이다. 돈이 많지 않아도, 몸이 아프거나 불편해도 예외는 없다.

닐손은 은퇴하기 전까지 용접기능공으로 일했다. 30년 넘게 건축 현장을 누볐다. 닐손은 “많은 돈을 번 건 아니었지만 두 아이를 키우고 생활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65살에 은퇴했다. 미래를 위한 저축은 따로 하지 않았다. 그가 노후를 위해 한 일은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 것, 그게 전부다.

그는 현재 월 1만1000크로나(약 181만9400원)의 연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이 돈에서 월 4500크로나를 현재 살고 있는 실버단지내 아파트 상환금으로 내고 나머지 돈으로 부족함 없이 살아간다.


“도심 실버타운서 요리·쇼핑… 하루가 짧아요” 스웨덴 독거노인

박씨는 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해 “앞만 보고 달린 시절”이라고 표현했다. 박씨는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유명 사립대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 당시에는 ‘생산’보다는 ‘유통’ 쪽이 더 돈이 되겠다 싶어 유통관련 사업을 시작했다. 잘나갈 때는 전국에 6개 지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제품 수입을 위해 독일과 미국 등으로 해외 출장을 다닐 때만 해도 이런 인생은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위기는 1997년 2월 회사 문을 닫으면서 한꺼번에 몰려왔다.

“외환 위기가 닥치기 전부터, 사업하는 사람들은 이미 그 징후를 감지하고 있었어. 곪아가고 있던 때지. 점점 유통쪽도 경쟁이 치열해지고 수익이 많이 안 나면서 다른 사업을 시작하려고 문을 닫았어. 그때 가족들하고 또 큰 문제가 생겨서 그때 이후로 나는 주욱 혼자야. 가족 이야기는 묻지 말아. 다른 사람에게 한번도 이야기 한 적 없어”

이후에 가족들과 등 돌리고 혼자 살면서 오토바이 서류 택배 사업을 시작했지만 연이은 오토바이 사고로 사업을 접어야 했다. 추락하는 박씨의 인생에 날개는 없었다. 잇단 사업 실패로 가진 돈도 떨어지면서 여관을 전전하다가 급기야는 현재 살고 있는 쪽방으로 흘러들어 왔다. 박씨는 자식들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 수급자 자격이 안된다. 대신 주위 사람들의 ‘온정’에 기대어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처음 쪽방에 들어올 때는 돈이 조금 있어서 스스로 쪽방 월세를 해결했지만, 지금은 그 돈마저 떨어져 월세 24만원을 박씨를 후원해주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내고 있다.

“왜 수급자 기준을 ‘결과’만 가지고 따지는지 모르겠어. 자식이 있어도 부양하기 힘든 경우가 있는데 말야. 어떤 부모가 자식이 어렵게 겨우 겨우 살아가는데 거기에 짐이 되겠어. 차라리 나와서 고생하더라도 이렇게 사는 걸 택하지.”

박씨는 자신의 인생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모른다. ‘업보’라고 생각하려고 아무리 잘못했던 일을 떠올려봐도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한다.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가서 눈물을 쏟으며 하늘에 묻고 또 물었다.

“원망스러운거지.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기에 이렇게 됐을까. 한 순간에 내리막길을 탔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어. 왜 이렇게 된 건지, 아무리 물어보고, 물어보고 되짚어봐도 모르겠어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으면 옆에 있던 사람이 몰래 휴지를 놓고 가고 그랬어. 그러면 마음이 좀 괜찮아지기도 했지. 지금은 다리가 아파서 교회도 못나가.”



열심히 살았지만, 나를 돌보기도 힘들어

박씨는 궁핍과 질병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 류마티스에 퇴행성 관절염으로 발가락이 점점 오그라들고 있다. 걷는 것조차 힘든 박씨에게 혼자 생활하는 삶은 쉬운 게 하나도 없다. 손가락도 저리고 힘이 없다. 얼마 전에는 단 하나 있던 머그컵마저 깨뜨려 커피를 타마시며 느꼈던 ‘행복’을 잃었다. 복지관에서 쌀을 받는다고 해도 혼자 쌀 씻는 것조차 힘겨워 이내 밥짓는 것을 포기하고 만다. 박씨에게 ‘스웨덴의 노후복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는 “그런 꿈 같은 이야기는 바라지도 않는다”며 “수급자가 돼서 월 얼마 정도만 받아도 좋겠다”고 했다.

아무리 ‘꿈 같은 이야기’라지만 상상해볼 수는 있다. 만약 박씨가 스웨덴에서 살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박씨는 당장 사회보장 사무소로부터 세금 5%를 제한 최저보장연금 6795크로나(약 111만 9000원)를 매월 받을 수 있다. 박씨를 부양할 자식이 있다는 것은 별개다. 박씨가 사업을 하면서 세금을 냈던 게 인정되면 받을 수 있는 연금이 더 높아질 수 있다. 박씨는 혼자서 생활하기에는 관절염으로 불편함이 많기 때문에 공립 양로원에서 생활할 확률이 높다. 공립 양로원 집세와 식비로 약 5600크로나(약 91만 8792원)를 내고 나머지는 생활비로 쓰면 된다. 만약 남은 돈으로 생활이 힘들면 기초자치단체가 공공부조로 보충해준다. 또한 활동하는 데 장애가 있기 때문에 수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수발 비용 역시 기초자치단체가 지급한다.



지난 6월4일 박씨처럼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모여 살고 있는 스웨덴 스톡홀름시 나카구에 위치한 훼테판 공립 양로원을 찾았다. 공립기관이기 때문에 세금으로 운영된다. 이곳에 살고 있는 노인들은 집세와 식비를 지불한다. 양로원이 그들의 수발비용과 인건비, 각종 공과금을 집세 수입과 같이 계산해 지방정부에 청구하면 지방정부가 필요한 운영비를 지급하는 형식이다.

훼테판 양로원은 경치 좋은 호수와 숲에 둘러싸여 있었다. 스웨덴에서는 주로 장애인들이나 노인들을 위한 시설 기관은 그린벨트 인접 지역과 같이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한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공기좋은 주변 지역을 편하게 산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훼테판 양로원은 총 57개의 소형 아파트 형태로 이루어져 있어 이 시설에 들어온 노인들이 각자의 방에서 생활한다. 이들을 돌보는 직원들은 24시간 배치되어 있다. 치매 노인들이 있는 곳에는 치매노인 1명당 간호사 1명이 1 대 1로 배정돼 있다.

양로원의 카리나 필리포빅 원장은 “귀여운 할머니 한분을 만나보자”며 2층의 한 방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이 방의 주인은 섀스틴 프리스크. 97살의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곱고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는 백발의 할머니였다. 15년 전에 남편과 사별하고 재가복지사의 도움을 받으며 혼자 살았지만, 넘어져서 대퇴부가 골절된 이후 이 양로원에 들어왔다. 프리스크는 “이곳의 생활이 무척 마음에 든다”고 했다.

“나이 들면 밤에 화장실을 많이 가요. 혼자 살 때는 재가복지사가 낮에 와서 도와줬는데 혼자 있는 밤이 되면 화장실 가는 것도 막막하거든요. 이곳에는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도와줄 사람이 있어서 안전해요. 여기 들어오니까 친구들도 있고, 주말이면 딸들과 손자·손녀, 증손자들이 놀러와서 예쁜 꽃들로 방 장식도 해주고 가요.”

프리스크의 방은 프리스크 생활에 맞게 설계돼 있다. 양로원 직원들이 프리스크를 쉽게 이동시킬 수 있도록 침대에 공중 이동식 장치를 설치했다. 화장실도 프리스크가 사용하기 쉽게 장애인 화장실처럼 곳곳에 안전바를 설치했다. 프리스크가 휠체어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50㎡(15평)의 공간에는 턱이 없다. 만약 프리스크가 돌발적으로 쓰러지거나 넘어지면 자동 경보가 울린다.


스웨덴 나카구의 구청 직원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스웨덴은 몸이 건강하든, 불편하든 ‘살려고 하는 의지’만 있으면 누구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입니다.”

프리스크가 생활하고 있는 방은 불편함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맞춤 설계된 듯한 환상적인 시설이었다. 이런 곳에서 생활하려면 도대체 얼마가 드는 걸까. 아무리 시설이 좋아도 돈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아닐까. 플리포빅 원장이 답했다.

“돈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노인이 여기에 들어오겠다는 신청을 하면 그 사람에 대한 기본 정보 파악을 하죠. 이곳 방값을 감당할 만한 돈이 있는지에 대해서도요. 본인이 경제적 능력이 있거나 자식들이 지불할 능력이 되면 그렇게 해요. 그럴 형편이 안되는 노인은 집값을 보조 받을 수 있어요. 그와 반대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분들은 나라에서 대주는 간호비까지 자신이 지불해요.”

프리스크의 경우에는 두 자녀가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 방값과 식비로 월 6000크로나(약 99만4019원)를 지불하고 있다. 수발 비용은 국가가 지불한다. 다른 기타 생활비는 그녀의 연금으로 해결한다. 결혼하기 전에 잠깐 식품점에서 일했던 게 전부인 프리스크는 최저연금 6795크로나를 받는다.

프리스크는 “나는 이제 돈관리 할 능력이 안되기 때문에 은행과 자식들에게 맡겼다”고 했다. 그녀가 하루에 가장 집중할 때는 이곳에 살고 있는 다른 노인들과 빙고게임을 할 때다.

“움직이고, 많이 생각하는 건 이제 너무 힘들어요. 바깥 활동도 어려워서 산책도 가끔씩 겨우 할 수 있어요.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일이 많은 힘이 들어가지 않는 빙고게임이죠.”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필리포빅 원장이 갑자기 “인근 유치원에서 유치원생들이 공연하러 왔으니 같이 1층으로 내려가자”고 했다.

오전 11시. 훼테판 양로원 1층 식당에 휠체어를 탄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속속 모여 들었다. 서로 키가 엇비슷한 8명의 귀여운 유치원 생들이 수줍은 듯 저마다 땅을 쳐다보며, 허공을 바라보며 서 있다. 기타 반주가 흘러나오자 열심히 율동을 하며 노래를 하기 시작한다.

한 곡 한 곡이 끝날 때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마치 자신의 손자·손녀인 듯 애정이 듬뿍 담긴 눈빛으로 열렬하게 박수를 보냈다. 옆에서 유치원생들이 부르는 노래 가사를 통역해주던 가이드가 귓가에 속삭였다. “나이 먹어서 병들고 힘들면 딱 이곳, 이 자리에 와 있었으면 좋겠다 싶죠?”



세금 잘 내야 좋은 사회 만들어

국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에 살고 있는 박씨가 상황이 나빠질 때마다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이 없었다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흘러갔을지 모른다.

“아파도 견디다보면 어느날 뭐 봉사하는 의사들이 방문하고 그래. 내가 고혈압이 있거든. 의사가 진찰하고 약주면, 그 약 먹지. 평소에는 나쁘면 나빠지는 대로 좋으면 좋아지는 대로 두는거야”

그러나 6월2일 나카 노인전문병원에서 만난 메르타 요한슨(88)의 삶은 박씨와 다르다. 그녀는 현재 병원에서 심장병으로 치료 받다가 유방암까지 발견되면서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다. 그녀는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를 “성인이 돼서 직장을 구할 때까지”라고 답했다.

“시골의 가난한 집에서 9남매의 넷째로 태어났어요. 원래 14남매인데 5명은 낳자마자 죽었어요. 형제가 많으니까 아무래도 집안 형편이 더 어려워졌죠. 18살 때 독립해서 스톡홀름 시내로 왔어요. 일하며 돈벌기 시작하면서 형편이 조금씩 괜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제일 먼저 시작했던 일이 가정 도우미 일이었어요. 그 집에 들어가서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그 집 일 도와주는 일이었죠.”

가정도우미로 일하던 중 요한슨은 중간에 재가복지사로 직업을 바꿨다. 몸이 불편한 노인들 집에 가서 매일 장봐주고 청소 해주고 빨래도 해주는 일이었다.

“돈버는 일이기도 했지만 의미있는 일이기도 했어요.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즐겁잖아요. 내가 맡은 할머니 모시고 공기 좋은 곳으로 산책도 나가고, 쾌적하게 지내시라고 청소도 말끔하게 해요. 재미있는 이야기도 해드려요. 할머니들이 즐거워하면 보람을 느끼면서 더 열심히 일했던 기억이 납니다.”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인데 많은 돈을 세금으로 내는 게 아깝지 않았냐”는 질문에 요한슨의 눈빛이 차가워진다.

“그런 생각은 하면 안돼요. 젊었을 때는 내가 재가복지사로 일하며 노인들을 도왔지만, 지금은 내가 그 수발을 받는 늙은이가 됐잖아요. 젊을 땐 내가 세금을 냈지만 지금은 연금을 받고, 이렇게 수발까지 받고 있잖아요. 내가 죽을 때까지 치료비는 공짜죠. 물론 젊을 때 이렇게 혜택을 입을 생각을 하고 세금을 낸 건 아닙니다. 그러나 늙으면서 세금을 잘 내야 사회가 잘 유지된다는 걸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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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싱키·살로(핀란드) | 홍진수기자 soo43@kyunghyang.com

ㆍ핀란드의 교육 “교사가 가장 잘 가르친다”… 신뢰가 키운 경쟁력

학교수업을 포함해 주 30시간밖에 공부하지 않는 핀란드 학생들은 왜 공부를 잘할까. 핀란드 교육성공의 ‘비결’을 찾기 위해 기자는 지난 5월 일주일가량 현지에 머물렀다. 먼저 학생을 만나고, 교사를 만나고, 교육 공무원들을 만났다. 핀란드 교육을 연구하고 있는 현지 학자와 인터뷰도 했다. 그런 노력 끝에 단서를 발견했다. “핀란드에는 좋은 선생님이 많다.” 학생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기자는 “선생님들이 엄청나게 노력을 하는구나. 뭔가 특별한 수업방식이 있겠구나”란 생각을 했다. 그러나 핀란드 교사들은 특출나지 않았다. 대신 교사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이에 부응하는 교사들이 있을 뿐이었다.


“학생들 상태를 보면서 개선할 곳 찾죠”

핀란드 소도시 살로의 바스키오 초등학교에서 1학년생을 가르치고 있는 민나 테라바이넨(27)은 일주일에 24시간만 수업을 한다. 어떤 날은 4시간 수업으로 일과가 끝난다. 2006년 투르크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교사자격을 받은 민나는 이제 4년차 교사다. 경제불황의 여파로 민나는 아직 정규직 교사가 되지는 못했다. 바스키오 초등학교는 계약직 교사인 민나의 세번째 직장이다.

철든 이후 교사가 되기만을 희망해왔다는 민나는 계약직 교사지만 현재 직장에 만족하고 있었다. 월 급여는 2400유로(약 430만원)로 핀란드 평균수준. 민나는 “가까운 이웃들 간에도 급여공개를 꺼리기 때문에 내가 적게 받는 건지, 많이 받는 건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민나가 교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자유롭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민나는 바스키오 초등학교 1~6년 중에서 주로 1학년 학생들을 가르친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고 졸업 뒤에 종교교육학으로 예술교육 석사학위도 받았다.

민나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다. 시험성적 결과를 놓고 따지는 사람도 없다. 자신의 수업에 대해 외부로부터 평가를 받아본 적도 없다.

“교사를 평가하는 어떤 시스템도 없는데 혹시 게을러지지 않으냐”고 물었다. 민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대답했다. “굳이 다른 사람이 나를 평가해 점수를 매겨줄 필요가 있나요. 학생들을 보면 금방 내가 알 수 있잖아요. 잘 가르치고 있는지, 못 하고 있는지 아이들의 상태를 보면 바로 나오잖아요.”



민나는 평가를 낯설어 했다. “학생들이 시험을 봤는데 내가 가르친 내용에 대해 대다수가 답을 하지 못했다면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뻔히 알 수 있는 것 아닌가요”라며 “그럴 때는 교사 스스로 학생, 학부모와 대화를 통해 문제점을 찾아내고 수정할 부분을 수정하는 게 순서”라고 말했다.

그는 외부로부터의 평가는 필요없다고 자신했다. “선생님이 되기 위해 사범대에 들어가는 것이 매우 어려워요. 또 졸업 뒤에 자격조건을 충족시키는 것도 무척 까다로워요. 그렇기 때문에 임용이후 평가제도가 전혀 필요 없어요.” 그는 “평가가 아니라 ‘가르치는 기술’을 개선하기 위해 1년에 2번 정도 교육학 전문가들을 초빙해 선생님들이 교육을 받고, 1년에 두 차례씩 모든 학부모들을 1시간 동안 면담한다”고 말했다.


“학교에서부터 경쟁할 필요 있나요”

5월29일 만난 툴리키 투오미넨(46)은 살로 케스쿠스탄 종합학교에서 ‘학습부진아’들을 담당하고 있었다. 지적 장애는 없으나 수업내용을 잘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 10명이 툴리키의 제자들이다.

툴리키는 23살때 교사로 임용돼 20년 넘게 교단에 서고 있다. 첫 임용 뒤 5~6년 동안에는 초등학교에서 일반학생들을 가르치다가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을 위한 과정을 따로 이수했다. 툴리키는 “장애학생을 위한 선생님은 따로 있다”며 “나 같은 특수교육 선생은 ‘조금 뒤떨어지는 학생’들을 위해 일한다”고 설명했다.

학습부진아라고 하지만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45분 수업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다른 아이들이 이미 배웠던 것을 다시 가르치는 것뿐이다. 그러나 가르치는 툴루키나 배우는 학생들이나 아무도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툴리키는 “나이도 차이가 있고, 학습능력도 차이가 있지만 그게 문제가 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며 “예전에는 아이들이 뒤떨어지는 몇몇 과목만 가르치다 요즘은 아예 전과목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학습부진아들을 가르치는 툴리키에게 ‘경쟁’은 아주 이상한 이야기로 들린다. 툴리키는 “사회에서 경쟁은 어느 정도 필요하겠지만 그것을 학교에서부터 할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다.

툴리키가 ‘학습부진아’들을 가르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이 학생이 무엇을 알고 있는가’이다. 툴리키는 “일단 학기 초에 커리큘럼을 정할 때 학생들이 얼마나 알고 있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면밀하게 점검한 뒤에 어떻게 아이들에게 부족한 것을 가르칠지 결정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진도 나가기도 바빠요”

한국으로 돌아온 지난달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6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서모 교사(49)를 만났다. 그는 올해로 27년째 교단에 서고 있다. 그러나 평생의 절반 이상을 학교에서 보낸 서 교사나 이제 처음 교단에 선 햇병아리 교사나 마음먹은 대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

서 교사는 지난 1월 동료교사들과 함께 핀란드를 탐방하고 돌아왔다. “세계 최고의 교육강국이라는 핀란드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겉보기에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서 교사는 “핀란드 교사들은 모두 석사학위를 갖고 있어 학력이 상당히 높은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 교사들의 학력도 그에 못지 않다”며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핀란드 사회전체가 교사들을 신뢰하고 자율성을 심어준 것이 가장 큰 성공요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솔직히 말해 핀란드 교사들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면, 한국의 교사들은 국정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 교사가 지난 5월에 교내 메신저 프로그램을 통해 받은 ‘공문’은 100통이 넘는다. 대부분 행정업무에 관련된 공문이다. 6학년 부장을 맡고 있는 서 교사는 수업 외에도 방과 후 교육 관리, 수학여행 답사, 졸업앨범 작업, 학생 외부 생활지도 등을 해야 한다. 서 교사는 “공무처리에 바쁜 교사는 학생들에게 소홀해지고, 따라서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소외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핀란드 교사와 한국 교사들의 수업 여건을 다시 비교해봤다. 한국 교사들의 상황도 나쁘지는 않았다. 서 교사의 하루 수업시간은 평균 5시간 정도다. 오전 8시30분 정도에 출근해 늦어도 오후 5시면 퇴근한다. 연간 수업일수도 205일이다. 190일인 핀란드보다 보름이 길다. 초등학교는 방학 중 보충수업이 없기 때문에 여름과 겨울방학 때는 3~4일 정도만 출근한다.

뭐가 다른 걸까? 서 교사는 “수업외 업무도 부담스럽지만 교사들을 억누르는 가장 큰 요소는 시수와 진도”라고 말했다. 틀에 박힌 수업시간표와 이에 따른 진도 나가기 때문에 창의적인 수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 교사는 “한국 초임 교사들은 수업이 아니라 행정을 배우면서 성장한다”며 “시수지키고, 진도나가고, 시험점수 올리는 것이 교육의 중심이 된 상태에서 창의적인 수업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이런 시스템 아래에서는 자신에게 온 업무를 빨리 처리해서 넘기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시킨 범위 내에서 실적만을 챙길 수밖에 없다”며 “간단히 얘기하면 ‘가르치는 일’이 처리해서 넘겨야 하는 업무의 일환으로 취급된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서 교사는 인터뷰 도중 기자에게 아이들의 성적기록을 꺼내 보여줬다. 반 아이 30명이 최근에 치른 국어, 수학, 자연, 사회 등 4과목의 점수가 차곡차곡 기록돼 있었다. 이 중 몇몇의 이름에는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서 교사는 “이 아이들은 아주 열심히 해도 성적이 안 나오는 학생들”이라며 “1~3학년 때 부진아 지도를 제대로 받지 못해 6학년이 되도록 아직 문제 이해를 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학년때부터 수업 ‘진도빼기’와 당장 성적 올리기에 급급하다 보면 이런 아이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부랴부랴 독서지도를 다시 하고 있지만 6학년이 되어서 ‘사후약방문’을 하고 있는 꼴”이라고 말했다.


“신뢰와 자율성 주면 교사 스스로 노력”

핀란드에서 만난 학생, 학부모, 교사, 교육 공무원, 교육학 전문가 모두는 한결같이 “교사를 믿어라. 그들이 알아서 하도록 두면 된다”고 말했다. ‘사교육의 힘을 빌리는 사람은 없느냐’는 질문에 “현재 핀란드에서는 학교의 교사만큼 잘 가르치는 사람이 없다”고 단언했다.

핀란드 교원노조(OAJ)는 “ ‘핀란드 사회의 교사에 대한 신뢰’가 가장 큰 힘”이라고 설명했다. 교원노조 마르자타 멜토 특별고문은 “학교에서는 교사에게 더 많은 자율성을 주려고 하고, 또 신뢰를 보낸다”며 “교사가 아무에게도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가르칠 수 있게 되면, 더 연구를 하고, 스트레스 없이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교사에 대한 사회적 존경이 높아지면서, 석사자격이 필요하지 않은 유치원 교사와 성인대상 야간학교 교사도 석사과정을 스스로 공부한다”고 말했다.

‘신뢰가 있을 뿐 교사에 대한 평가가 필요없다’는 의견은 교원노조의 ‘반대편’에 있는 국가교육청도 마찬가지였다. 핀란드 국가교육청 선임고문 에바 카이사 린나는 “교사를 직접 평가하지는 않는다”면서 “1999년부터 각 학교단위로 자체평가나 외부평가를 하는데 이는 학교 서열을 매기기 위한 일이 아니라 학교 커리큘럼이나 방향성을 제대로 정립하고 있는지 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국가교육청이 하는 일은 통제가 아니라 지원”이라며 “교사에게 전문직으로서의 긍지와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평가와 감시로는 좋은 학교·교사 안나와”

핀란드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 관련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핀란드 이베스킬라대학 교육연구소 요우니 발리예르비 소장은 “스웨덴에서는 교육도 민영화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지만 핀란드에서는 보수당도 이에 반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5월29일 핀란드 헬싱키의 한 카페에서 기자를 만난 발리예르비 소장은 “지난 1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학교가 상당히 경쟁에 치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밤에 공부를 따로 하고, 또 과외까지 받는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고 말했다.


발리예르비 소장은 “핀란드에도 한때 학교 감독 시스템이 있었지만 교육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95년 폐지했다”며 “외부 시선으로 하는 평가는 어떤 경우에도 좋은 학교, 좋은 교사를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발리예르비 소장은 “핀란드에서는 전국 어디서나 모든 사람이 동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며 “이제는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지역에 따른 교육격차도 대부분 해소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비용이 얼마가 들더라도 원하는 모든 사람이 낙오없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사회적 낙오자가 생기면 나중에 사회적 비용이 더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발리예르비 소장은 인터뷰를 마치면서 자율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했다. 그는 “핀란드는 지방자치단체에 교육예산을 맡기고 있는데 이는 더 많은 자유를 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예산이 필요한 곳은 교사들이 제일 잘 알고, 적절하게 돈을 쓸 것이란 믿음이 깔려있습니다. 이런 예산의 자율성 결과 학교와 학급의 질이 높아지고, 교사는 더 독립적으로 변했습니다. 자율과 독립성을 보장해 주면 한국에서도 교사들의 역량은 더욱 강화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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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