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기로에 선 신자유주의'에 해당되는 글 140건

  1. 2009.08.04 4부-(5)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경쟁 대신 협동’ 사회적 합의로 이룬 30년 교육개혁
  2. 2009.07.30 4부-(4)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학원·독서실요? 공부는 학교서 열심히 하면 돼요”
  3. 2009.07.30 4부-(4)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왜 죽어라 공부해요?
  4. 2009.07.30 4부-(3)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9년제 종합학교 졸업후 40%는 직업학교 선택
  5. 2009.07.28 4부-(3)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비정규직을 왜 차별해요?
  6. 2009.07.28 4부-(2) 고용기적이룬 네덜란드식 유연안정성 모델
  7. 2009.07.28 4부-(2)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시간제 노동자 10명중 7명이 여성
  8. 2009.07.26 4부-(2)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공무원·학자·의사 모두가 노조원…편견 없어”
  9. 2009.07.26 4부-(2)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교육통해 사양산업 노동자가 성장산업으로
  10. 2009.07.26 4부-(2)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해고 쉬운대신 4년간 실업급여 주며 보호
  11. 2009.07.26 4부-(2)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실업수당으로 다섯식구 생활…재취업 걱정 안해” (2)
  12. 2009.07.20 4부-(1)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한국 배관공 “자식교육·여가·노후준비 꿈도 못 꿉니다” (2)
  13. 2009.05.12 3부-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⑦ 인간성의 파괴 (2)
  14. 2009.05.05 3부-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⑥ 빈곤의 심화와 양극화: GDP는 10배, 노동자 연봉은 4만5000달러 (1)
  15. 2009.05.05 3부-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⑥ 빈곤의 심화와 양극화: “민영화로 국가 근간까지 흔들” (2)
  16. 2009.05.05 3부-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⑥ 빈곤의 심화와 양극화: 한국 소득 불평등 98년이후 두드러져
  17. 2009.05.05 3부-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⑥ 빈곤의 심화와 양극화
  18. 2009.04.26 3부-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⑤ 공공사업의 사유화: 마닐라 수도 민영화…“10년전보다 더 나빠졌어요”
  19. 2009.04.26 3부-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⑤ 공공사업의 사유화: 개도국, 민영화·규제 완화 확산
  20. 2009.04.26 3부-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⑤ 공공사업의 사유화

헬싱키(핀란드) | 홍진수기자 soo43@kyunghyang.com

ㆍ심상정 前진보신당대표-에리키 아호 前핀란드국가교육청장 대담


에리키 아호 전 핀란드 국가교육청장과 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가 지난 6월1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만나 교육에 대해 대담을 하고 있다. 아호는 20년간 핀란드 국가교육청장으로 재직하면서 ‘교육개혁’을 이끌었다.


에리키 아호 전 핀란드 국가교육청장(72)은 ‘핀란드 교육개혁의 살아 있는 역사’로 불린다. 아호는 1972년부터 91년까지 20년간 국가교육청장으로 재직하면서 핀란드 교육에 ‘경쟁’ 대신 ‘평등과 협동’을 도입한 핀란드 교육개혁의 상징이다. 아호의 교육개혁은 한때 많은 반대에 부딪혔지만 21세기 들어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핀란드는 2000년부터 실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3회 연속 최상위권 성적을 내면서 ‘평등이 효율을 낳는다’는 사실을 입증해냈다.

최근 교육문제에 천착하고 있는 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가 지난 6월1일 핀란드를 방문, 아호를 만나 대담을 나눴다. 아호는 “학교는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한 교양을 쌓는 과정이고 사회통합의 기초를 만든다”며 “경쟁은 좋은 시민이 된 다음의 일”이라고 말했다.


심상정 = 한국도 PISA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현재의 ‘경쟁 모델’은 앞으로 지속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핀란드 학생에 비해 2배 가까이 긴 한국의 학습시간과 주입식 교육은 아이들의 창의력과 사고력을 저해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육의 근본적 개혁이 시급하다. 극단적인 경쟁교육이 양극화를 촉진하고 있는 한국 상황에서 핀란드식 교육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60년대 말부터 30여년간 집요하게 추진된 핀란드 교육개혁의 성공사례는 한국의 교육개혁을 위한 훌륭한 안내서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당신은 핀란드 성공의 첫째 비결로 장기 비전을 들었고, 둘째로 전향적인 개혁, 즉 꾸준한 변화를 꼽았다. 수많은 반대에 부딪혔을 텐데 어떻게 극복했는가.

아호 = 20년 동안 종합교육(1~9년차로 한국의 초등·중등학교에 해당) 개혁을 했고 이어서 고등교육(10~12년차로 한국의 고등학교에 해당) 개혁을 추진했다. 청장을 오래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젊었기 때문이고(웃음) 중요한 것은 정치적 결정권자들, 즉 정치가들이 우리를 믿었다는 사실이다. 90년대 들어서면서 정권이 바뀌었을 때 젊은 사람들이 개혁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자리에서 물러났다. 60년대 말과 70년대 초에는 재계와 수도권을 중심으로 반대가 심했다. 평등교육이 전체적인 교육 수준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였다. 또 너무나 어려운 사명이라서 교사와 학부형 사이에도 회의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평등한 기회 제공·다양성에 초점

심상정 = 그만큼 교육개혁 과정이 가시밭길이었다는 뜻인데, 단기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장기 비전을 설득해서 개혁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어떻게 설득했나.

아호 = 당시 우리 모두에게는 꿈이 있었다. 모든 아이들에게 질 높은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라는 우리의 믿음 말이다. 출신지역이나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관계없이 모든 아이들에게 평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위해 새로운 커리큘럼을 만드는 일이 필요했다. 그것은 하나하나 아이들이 자기 개성을 최대한 발현시킬 수 있도록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어 준비되었다. 예컨대 장애인들도 같은 학급에서 잠재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음악, 스포츠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 스스로 인격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모든 사람들을 설득했다.



교사 자율·책임교육 확립이 중요

심상정 = 교육개혁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는 누구였나. 교사양성 제도의 개혁도 매우 중요한 과제였고, 교원노조도 초기에는 반대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교사들과 어떻게 파트너십을 형성할 수 있었나.

아호 = 선생님이야말로 교육개혁의 주도자이기 때문에 교사들과의 합의가 가장 중요했다. 당시 사립학교와 공립학교를 합쳐 종합학교로 통합하면서 교사들은 두 가지 도전에 직면했다. 이질적인 학생들을 함께 가르치는 일과 그에 걸맞은 새로운 교과내용을 개발하는 일이었다. 이들이 교육개혁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시험이나 재교육없이 그대로 선생님으로 채용했고 더 많은 월급을 약속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교사들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형성시킴으로써 자율과 책임교육을 확립하는 일이었다. 교재 선택과 커리큘럼 구성에 관해서 교사들이 자율적인 교육방침을 가지고 교육목표를 스스로 향상시켜 나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핀란드는 교사들이 석사학위 이상을 따도록 지원했다. 이를 통해 교사들에 대한 신뢰는 공고해졌다.

다음으로 중요한 개혁의 파트너는 지방자치단체다. 500여개 지방자치단체의 교육 담당자들이 개혁 의지를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계획은 중앙에서 만들지만 실행주체는 지자체이기 때문이다. 핀란드 교육개혁의 성공은 수천명의 교육 관련자들의 합의가 선행된 덕분이었다.


심상정 = 한국에서는 ‘평준화는 곧 하향 평준화를 낳는다’ ‘우열반 형성 등 능력별 교육을 해야 한다’ ‘1명이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등 경쟁을 강화하고 엘리트 교육을 강조한다. 핀란드에서는 그런 주장이 없었는가.

아호 = 바로 그것이 교육개혁 과정에서 가장 치열한 논쟁거리였다. 종합학교 시스템은 만들어졌지만 학교 안에 있는 능력별 그룹을 없애도록 설득해야 했다. 경쟁은 경쟁을 낳아서 결국 유치원생까지 경쟁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게 할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학생들 간의 경쟁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자신과 싸우고 자신을 개발해 스스로의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다. 종합학교 과정의 핵심은 어렸을 때 친구들과 사귀고 협동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는 것이다. 즉 종합학교는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한 교양을 쌓는 과정이며 사회통합의 기초를 만든다. 경쟁은 좋은 시민이 된 다음의 일이다.



정권 바뀌어도 정책은 그대로

심상정 = 교육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는 정치권의 지원이 필수적인데, 다양한 노선과 정략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정당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게 한국의 경우를 보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정권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30년 동안 일관된 개혁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경이롭다. 어떻게 가능했나.

아호 = 맞는 말이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일관된 기조를 유지할 수 있느냐가 교육개혁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관건이다. 장기 비전과 명확한 실행계획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지속적 교육개혁이 핀란드 사회의 정신적·물질적 발전의 기초라는 데 모든 정당이 합의했다. 60~70년대 핀란드는 의료개혁, 보육개혁, 노동권의 확립 등 전 분야의 사회개혁이 추진되고 있었다. 교육은 경제와 사회, 문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교육개혁은 이런 사회 전 분야의 개혁을 선도한 추진력이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사회민주당은 일찍부터 교육개혁에 찬성했지만 당시 농촌에 기반을 두고 있던 보수당과 중도당은 반대했다. 63년에 역사적인 결정이 이뤄졌다. 당시 정치지도자였던 공산당의 리사 티에스코, 사민당의 R H 오이티넨, 중도당의 요하네스 비롤라이넨이 큰 틀의 합의를 이뤄냈고 보수당 내에서도 찬성하는 의원이 많아졌다. 의원 200명 중 175명이 찬성했으니 절대적인 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어도 사소한 변화는 있었지만 커다란 흐름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또 장기 비전 아래 명확한 세부계획을 제출하는 것이 합의를 지속시키는 데 매우 중요하다. 72년까지 10년 동안의 실행계획을 세웠고 인구가 적은 북쪽지방에서 남쪽지방으로 점차 종합교육을 확대했다. 핀란드에서는 5년마다 교육발전계획 초안을 만든 후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계획을 수정하는 합의과정을 거친다. 2011년에 정권이 바뀌어도 내용은 그다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심상정 = 장기 비전의 실현은 역시 정치를 제어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형성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제도적 장치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아호 = 장기개혁을 추진하려면 두 개의 다리가 필요하다. 정권이 바뀌어도 교육정책이 바뀌지 않는 수직적 다리(시간을 이어주는 합의)와 노조-기업-학교 간의 수평적 다리(사회를 이어주는 합의)다. 핀란드 최초의 사회적 협약(국가소득정책협약)은 68년에 이뤄졌다. 노조도 단순히 임금 수준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작업장 환경 등 노동조건, 가족의 보육, 문화, 환경 등 모든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 협약은 5년마다 개정되는데 교육도 이 가운데 한 분야로 포함돼 있다. 교육부, 교육청, 교원노조,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참여해 교육부문의 발전계획 초안을 만든다. 교육개혁이 성공함으로써 다양한 분야의 사회적 합의도 촉진됐다. 개혁을 뒷받침하는 두 개의 다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심상정 = 직업학교 개혁 등 2차 교육개혁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아호 = 제2차 개혁의 목표는 직업교육의 향상이었다. 당시에는 666개의 직업교육이 분야마다 각 부처의 관할하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이것을 66년에 교육부로 통합하고 74년까지 24개 주요 분야로 묶었다. 24개 분야마다 노동자와 사용자, 연구자, 교사, 그리고 각 부처 담당자로 구성되는 특별위원회가 커리큘럼을 개발한다. 직업교육의 내용이 알차고 사회의 요구에 부합하게 된다. 또 직업학교의 학생들이 폴리테크닉(4년제 기능대학)과 일반 대학교 양쪽 모두로 갈 수 있도록 길을 개방했다. 핀란드에서 학생들은 언제나 새로운 진로를 택할 수 있고 또 되돌아올 수도 있다.



기업들도 이젠 ‘협동 모델’ 지지

심상정 = 직업학교의 성공은 기업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기업도 처음부터 교육개혁에 찬성했는가.

아호 = 기업은 초기 종합교육개혁에 반대했다. 그들은 기업에 필요한 특수훈련을 요구했지만 종합교육은 포괄적인 교양을 쌓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의 태도도 80년대에 변화했다. 왜냐하면 급속도로 변화하는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적응 능력이지 특수한 기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노키아의 성공사례는 이런 교육이 한 사회를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노키아가 목재부문을 주력으로 삼다가 정보·기술(IT) 기업으로 변신한 데는 교육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 핀란드는 교육계획을 세울 때 핀란드 사회의 변화, 북유럽 국가들의 변화, 유럽연합(EU)의 변화, 세계의 변화를 반영한다. 80년대에 노키아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다. 우리는 IT가 중요하다는 데 합의했고 그의 의견에 따라 종합교육과정에 IT 분야를 배치했다. 그들이 돈과 시설을 지원했고 우리는 미래의 IT 노동자를 길러냈다. 특히 종합학교의 협동식 교육은 단순히 IT 기술만 제공한 것이 아니라 정보사회에서 해법을 찾아내는 데 필수적인 공동체적 협력과 창의성을 길러준 것이다. 교육은 외부충격에 대해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게 만든다. 핀란드에서는 제2의 노키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지금도 많이 한다.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교육도 변화해야 한다. 이제는 기업도 계속 발전하기 위해서 경쟁모델보다 핀란드식 협동모델을 지지하고 있다.

심상정 = 마지막으로 대학교육과정의 개혁이 남았다. 이제 직접 관여하고 있지는 않겠지만 어떻게 보고 있는가.

아호 = 두 방향이 동시에 논의되고 있다. 하나는 대학의 자율성을 더욱 늘리는 것이고, 둘째는 외부사회와의 연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자율권을 늘리는 것은 핀란드 교육개혁의 핵심이고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물론 외부사회와의 연관도 사회의 요구에 부응한다는 면에서 바람직하지만, 만일 이것이 기업이 대학에 자금을 대고 이에 따라 기업이 교육 내용의 결정권을 가지게 되는 것이라면 커다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지금 토론을 많이 하고 있는데 문제는 돈이다.

핀란드 대학은 각각 특성화되어 있어서 입시경쟁의 문제는 아직 별로 없다. 그러나 따뜻하고 소득이 높은 남쪽으로 인구가 집중하면서 북쪽 학교의 학생 수가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는 정부에서 더 많은 보조금을 주고 지자체들이 연합해서 대응하고 있다. 고령화 사회는 아이들과 노인들이 일정한 재원을 놓고 서로 경쟁하는 불행한 상황을 낳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핀란드가 교육을 희생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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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살로(핀란드) | 글·사진 홍진수기자 soo43@kyunghyang.com

ㆍ핀란드 고3 요한나 - 한국의 고3 이지영

“정말 이상하게 들리는데요.”

핀란드 살로고등학교 3학년 요한나 투오미넨(18)의 눈이 커졌다. 기자가 “한국의 네 또래 고등학생들은 방과후에 학원과 독서실에서 새벽까지 공부를 한다”고 전했을 때 요한나의 첫 반응이 그랬다. 요한나는 되물었다. “왜 그래야만 하나요.”



요한나는 핀란드의 고등학교 3학년이다.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100㎞ 정도 떨어진 소도시 살로에서 살고 있다. ‘언어치료사’가 되기 위해 대학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종합대학인 투르크대학과 폴리테크닉(기능대학)에 입학지원서를 넣었다.

지난 5월29일 집으로 요한나를 찾아갔다. 투르크대학 공대 교수인 아버지 알루이스 투오미넨이 함께 기자를 맞이했다. 알루이스는 “핀란드의 교육을 취재하러 왔다니 기쁘다”며 “핀란드 교육은 자율과 평등이 특징이고 강점”이라고 한마디로 정리했다.

지난 2000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3년에 1번씩 각국 15세 학생(한국은 고등학교 1학년)들의 학력을 비교 평가하고 있다.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다. 한국은 2000년, 2003년, 2006년 세 차례 모두 상위권에 올랐다. ‘전 세계에서 공부를 가장 많이 하는’ 한국 학생들로서는 당연한 성취였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공부를 가장 잘하는 학생’이란 영예는 핀란드에 돌아갔다. 핀란드는 3회 동안 단 1항목에서도 4위 밖으로 밀려나지 않았다.


기자는 요한나에게 “핀란드 고3의 생활을 알고 싶다”고 말을 꺼냈다. 요한나는 “고3이라고 다를 것이 없을 텐데 무슨 얘기를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알루이스는 “한국 학생들도 공부를 잘한다고 들었는데 핀란드와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물었다.

요한나는 지난해 8월부터 졸업식이 있었던 지난 5월30일까지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그것도 대학입학을 준비해야 하는 인문계 고3이었다. 그러나 요한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나 3학년 때나 다른 점이 거의 없었다”며 “대학입시 준비라고 해봐야 5월15일 치른 ‘대학입학자격시험’이고, 그것도 2주 전부터 수학 공부를 조금 더한 정도”라고 했다.



요한나를 인터뷰한 지 열흘 뒤에 서울에서 ‘한국의 고3생’ 이지영양(18·가명)을 만났다. 지영이는 서울 강북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다. 지영이와 함께 나온 교사는 “성적만 놓고보면 전국에서 딱 중간 정도 되는 학교”라고 설명했다.

지영이의 성적은 반에서 1등이다. 3학년이 된 뒤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단다. 그러나 지영이는 여전히 조바심을 냈다. 지영이는 “외고나 과학고 애들에 비하면 바닥을 기는 수준”이라며 “1등을 해도 성적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지영이는 올해 3월에 고3이 됐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다. 지영이는 1년 전에도, 2년 전에도 고3이나 마찬가지였다. 지영이는 “사실 대학입시준비는 중학교 때부터 시작하는 것 아니냐”며 “고등학교 1학년 때도 고3과 똑같은 스케줄로 공부를 했다”고 말했다.



흥미와 따분함

요한나는 오전 8시30분까지 학교에 간다. 보통 95분짜리 수업 4개를 듣는다. 수업마다 숙제가 딸려 나온다. 대부분의 숙제는 에세이 형식이다. 줄줄 외운 지식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적어내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요한나는 “생물학을 특히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기자가 “혹시 의대 진학에 관심이 있느냐”고 물었다. 요한나는 “그럴 생각이었으면 화학이나 물리를 먼저 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생물학도 약간 도움이 되긴 했겠지만 그보다는 흥미가 있고 재미가 있어서 더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학교수업은 오후 3시30분이면 끝난다. 이는 이날 해야 할 공부도 함께 끝난다는 의미이다. 요한나는 “집에 가서 또 공부를 한다는 것은 학교에서 그만큼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면서 “숙제는 하지만 별도로 학교 밖에서 더 공부를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동갑내기 지영이는 오전 6시30분이면 잠을 깬다. 7시40분까지 학교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씻고 아침밥 먹기에도 빠듯한 시간이지만 지영이는 어머니가 식사준비를 하는 동안 틈틈이 영어단어를 외운다. 학교 수업은 8시10분부터 시작된다. 그 전에는 자습시간이다. 보통 문제집을 풀며 시간을 보낸다.

정규수업은 오후 4시면 끝이 난다. 그러나 하교는 아직 이르다.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방과후 보충수업이 있다. 물론 모두 대학입시와 관련된 과목들이다. 지영이는 가장 취약한 논술과 수학을 선택했다. 단 하루도 수업을 빼먹은 적은 없다.



여유와 속박

기자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보통 무엇을 하며 지내느냐”고 물었다. 요한나는 “먼저 숙제를 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집 청소를 할 때도 있고, 강아지랑 산책을 한다”고 말했다. 요한나는 “언어에 관심이 많아 시에서 운영하는 문화센터로 가서 세계 각국의 언어들을 배우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인데 공부를 더하지는 않냐”고 물었다. 요한나는 잠시 생각하더니 “아… 마테오란 이탈리아 친구가 우리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며 “마테오에게 영어와 핀란드어를 가르쳐주고 이탈리아어를 배운다”고 말했다.

요한나에게 조심스럽게 반 등수를 물었다. 요한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단 한 번도 석차를 들어본 적이 없고, 알고 싶어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대신 “언어와 생물학을 잘하고, 수학을 못한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고 있다”고 했다. 핀란드 학교에서는 각 과목을 4~10점으로 평가한 뒤 학생들에게 성적을 알려준다. 4점이면 낙제다. 요한나는 “2학년 때까지 수학성적이 좋지 않았다”며 “올해에는 수학공부에 조금 더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요한나는 성적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학교는 생활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한 번 실패하더라도 다른 길이 있고, 또 되돌아갈 여유가 있다. 기자를 만난 날 요한나에게 가장 급한 일은 ‘졸업파티’ 준비였다. 그리고 올해의 숙제는 무엇보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었다.


비슷한 시간, 지영이는 정신 없이 학교를 나와 집으로 가고 있었다. 수학과 영어 과외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수학은 지영이가 제일 자신 없어하는 과목이다. 지영이는 “중학교 때 뉴질랜드로 2년 동안 유학을 다녀왔다”며 “서울에 있는 친구들 대부분이 선행학습을 했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온 뒤 수학 진도를 따라가는 데 엄청나게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영어 과외시간에는 토플과 텝스를 공부한다. 지영이는 “영어는 제일 자신 있는 과목”이라면서도 “대학입학 원서를 쓸 때 외부조건으로 토플과 텝스 점수가 필요한 경우도 많기 때문에 따로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과외수업이 없는 날에는 학원에서 언어영역 수업을 듣는다”고 했다.

과외와 학원수업은 오후 9시가 돼서야 끝난다. 다음 코스는 독서실. 매일 새벽 1시까지 독서실에서 공부를 한다. 하루에 잠자는 시간은 많아야 5시간.

주말이 되어도 지영이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학교를 쉬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오전 8시까지 독서실로 간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평일과 같다. 지영이는 “오전 8시에 (늦게) 가는 이유는, 그 시간이 되기 전에는 독서실이 문을 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영이는 집에서 정기적으로 용돈을 받지 않는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돈을 쓸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지영이는 “참고서 등이 필요할 때만 따로 타서 쓴다”며 “고등학교 1~2학년 때는 시험 끝난 날, 소풍가는 날에는 그래도 하루 정도 놀았는데 고3 들어서는 한시도 그럴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지영이에게는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라면 하나씩 갖고 있는 인터넷 미니홈피도 없다.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될 것 같아” 일찌감치 폐쇄했다.

지영이는 사실 성적 말고는 고민이 없다. 이성에 대한 생각도, 사회에 대한 관심도 없는 편이다. 모든 고민과 잡생각은 명문대학 입학 뒤로 유예돼 있기 때문이다. 지영이는 “대학에 가도 천국이 펼쳐져 있지 않으리란 사실은 잘 안다”면서도 “그래도 지금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희망과 두려움

요한나가 되고 싶어하는 언어치료사는 핀란드에서도 생소한 직업이다. 요한나는 “작년에 학교에서 우연히 언어치료사란 직업이 있다는 말을 듣고 관심을 갖게 됐다”며 “원래 다양한 언어에 관심이 많아 나에게 적합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진로를 결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함께 상담을 한 부모와 선생님 모두 요한나의 결정을 존중했다. 아버지 알루이스는 “자신의 선택과 만족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딸이 ‘내가 뭘하고 싶은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 같아 격려를 해줬다”고 말했다. 또 “만약 지금의 결정을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돌아나올 방법은 많다”며 “핀란드의 대학에서 학생이 전공을 바꾸는 것은 아주 쉽고, 또 일반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요한나는 재수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요한나는 “시험성적이 기대만큼 잘 나올 것 같지는 않다”며 “(대학에 떨어지면) 1년 뒤에 다시 시험을 치르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서 “(대학입시학원은 없지만) 집과 도서관에서 공부하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떨어진다’란 말이 나올 때 아버지의 인상이 잠시 찡그려졌다. 알루이스는 “네가 공부를 조금 더 열심히 했으면 좋았잖아”라며 딸의 얼굴을 흘겨봤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알루이스는 “앞으로도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많다”고 말했다.

요한나는 기자를 만난 다음날인 5월30일 살로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여학생들은 화려한 드레스를, 남학생들은 깔끔한 정장을 입고 졸업식장에 모여들었다. 교장이 100여명의 졸업생을 한명씩 단상으로 불러냈다. 대부분의 졸업생 가족들이 참석해서 강당이 비좁았다. 뒤늦게 온 가족과 친구들은 강당 밖에서 스크린을 통해 졸업식을 지켜봤다.

대학 합격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지만 요한나의 가족들은 졸업식을 마친 뒤 이웃들을 집으로 초대해 조촐한 축하파티를 벌였다. 다시 만난 요한나는 밝은 표정으로 “어차피 대학에 들어가서 석사과정까지 공부할 계획이기 때문에 (떨어져도) 미리 기초를 탄탄히 만들고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요한나의 가족들은 6월이 되자 함께 여름휴가를 떠났다. 알루이스는 “앞으로 한 달은 전화도 받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영이는 영어교육과 진학이 목표다. 영어는 “잘하고, 또 좋아하는 과목”이라며 “교직이 주는 보장성과 안정성이 가장 좋아 보인다”고 말했다. 또 “지금보다 성적이 더 올라가면 법대 진학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영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재수다. 지영이는 “대학에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란 생각에 매일같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특별히 해소를 한다기보다는 ‘나는 할 수 있다’란 자기위안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지영이의 올 여름방학 일정은 이미 정해져 있다. 지영이는 “수능시험이 너무 급박하게 다가오고 있어 도저히 놀 생각이 나지 않는다”며 “점수가 만족스럽지 않은 사회탐구영역을 학원에서 보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영이에게 “고등학교 생활이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다. 지영이는 “그래도 나는 공부가 ‘죽도록 싫어서 못하겠다’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바람이 있다면 일주일에 단 몇시간이라도 학교에서 성적과 상관없는 수업을 듣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비 없고 등수 없고…핀란드 학업성취도 ‘최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int Assessment)’를 실시한 적이 있다.

각국의 만 15세(한국은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학력과 학습배경(생활실태) 등을 조사하는 사업이다. 한국도 3번 모두 참가해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3회에 걸친 평가에서 가장 뛰어난 국가는 핀란드였다. 2000년 첫번째 평가에서 읽기 소양 1위, 수학적 소양 2위, 과학적 소양 3위에 올랐던 핀란드는 3년 뒤에는 읽기와 과학 1위, 수학 2위, 문제해결 능력 3위를 차지했다. 이후 전 세계적으로 핀란드 교육제도를 연구하는 붐이 일었다. 핀란드는 가장 최근에 평가가 이뤄진 2006년에도 과학적 소양 1위, 읽기와 수학적 소양에서 2위에 올라, ‘세계 최고의 교육강국’임을 증명했다.

세계 각국에서 문의가 잇따르자 핀란드 국가교육청은 2004년 ‘핀란드가 PISA에서 성공한 배경’이란 공식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가정, 성별, 경제상황, 모국어와 관계없이 교육 기회를 평등하게 할 것 ②지역에 관계없이 교육하고 성별에 따른 분리와 차별을 부정할 것 ③모든 교육을 무상으로 할 것 ④선별하지 않은 기초 교육을 실시할 것 ⑤모든 교육단계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협동하며 활동할 것. ⑥시험과 성적에 의한 등수 제도를 없애고 발달 시점에 서서 학생을 평가할 것 ⑦교사는 고도의 전문성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행동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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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르벤파·에스포(핀란드) | 홍진수기자 soo43@kyunghyang.com

ㆍ4부-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ㆍ핀란드 야르벤파 고교 - 옴니아 직업학교 가보니
ㆍ무학년 고교 “좋아하는 역사과목만 먼저 골라 들었어요” 
ㆍ직업 학교 “건축 배우는 학생은 아예 집을 지어 팔죠”

지난 5월27일은 핀란드 야르벤파 고등학교의 기말시험기간이었다. 1주일 동안 전교생이 1년 동안 자신이 이수한 과목에 대해서 시험을 치르고 있었다. 아무리 경쟁을 중시하지 않는다지만, 어쨌든 시험은 시험이다. 기자는 조심조심 학교 주차장으로 차를 몰았다.



학교에 들어섰을 때 가장 눈에 띈 광경은 수십대의 오토바이였다. 각양각색의 스쿠터들이 나무 밑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학생들은 자전거뿐만 아니라 오토바이를 타고 자유롭게 학교 안으로 들어왔다. 건물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1층 로비에 수백벌의 옷을 걸 수 있는 옷걸이가 보였다. 오토바이를 타고 등교한 학생들이 헬멧과 두꺼운 겉옷을 보관하는 장소다.

야르벤파 고등학교의 건물은 방사형 구조다. 가운데가 뻥 뚫려있어 여름에는 하루종일 실내로 햇빛이 들어온다. 건물 어디에서도 다른 층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웬만한 대학교 건물 못지 않게 웅장하다. 5년 전에 건물 설계를 시작할 때부터 교사들의 의견이 대폭 반영된 결과다.


학년도 학급도 없는 고등학교

상담교사인 산나 알란코와 파비 바르비넨이 1층으로 마중을 나왔다. 알란코는 “방학을 1주일 앞두고 있어 등교한 학생들이 그리 많지는 않다”며 “먼저 학교에 대해 대략적인 설명을 하고 시설을 둘러보자”고 제의했다.

학교 안내를 맡은 교사 뒤에는 라미 페나넨(17) 등 1학년 학생 4명이 기자를 돕는다며 동행했다. 이 1학년 학생들 역시 시험을 치르는 중이었다. 페나넨은 “아직 4과목 시험이 남아있다”며 “평소 수업시간에 잘 들어뒀기 때문에 따로 공부를 하지 않아도 시험을 치르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1학년생인 페나넨은 소속된 학년도, 학급도 없다. 야르벤파 고등학교는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20㎞ 정도 떨어진 야르벤파시에 있는 ‘무학년 학교’다. 페나넨을 담당하고 있는 담임교사도 없다. 핀란드에 있는 400여개 고등학교 중 2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야르벤파는 핀란드에서도 ‘실험성’이 있는 학교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8월 야르벤파에 입학한 페나넨은 우선 수업 시간표부터 짜야 했다. 처음에는 앞이 캄캄했다. 야르벤파에서 제공하는 수업은 총 300여 코스다. 도대체 어떤 수업부터 들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도움을 준 사람이 파비 바르비넨 선생이다. 야르벤파는 담임교사 대신 상담교사를 두고 있다. 상담교사는 신입생 등의 학교 적응을 돕고 학부모 상담도 맡는다.

페나넨은 우선 1학기 동안 7코스씩 듣기로 결정했다. 가장 일반적인 패턴이다. 1년 5학기제인 야르벤파에서는 총 75코스를 들으면 졸업할 수 있다. 이 중 47~51코스는 의무과목이다. 바르비넨 선생은 “국어(핀란드어), 영어, 수학뿐만 아니라 역사, 체육, 음악, 미술 등에서도 일정한 학점을 따야 한다”며 “나머지 코스는 자유롭게 선택해 들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페나넨은 지난 1년 동안 역사 과목만 5코스를 들었다. 1학기에 1코스씩 들은 셈이다. 역사분야 의무학점은 7코스다. 1년 만에 70% 이상을 채웠다. 페나넨은 “역사에 흥미가 많아서 핀란드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 경제사 등도 고루고루 공부했다”고 말했다.

페나넨의 집은 야르벤파에서 버스로 1시간이나 떨어진 곳에 있다. 일반적으로 집에서 가까운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핀란드에서는 이례적인 경우다. 페나넨은 “시설이 훌륭하고 축구, 농구, 음악 등의 특별과정이 개설돼 있어 야르벤파에 지원했다”며 “무학년제도 시스템도 마음에 들었다”고 밝혔다.


빈 교실에서 대략적인 학교 설명을 들은 뒤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겨 ‘학교구경’에 나섰다. 아무래도 시험기간이니 만큼 학생들이 예민해져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는 기우였다. 얼핏 봐서는 시험을 보고 있는지, 친구들과 모여 공부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행히 학생들은 외부인들의 방문에 익숙한 듯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과학실이든, 미술실이든 학생들은 모두 시험지 옆에 책을 펴놓고 있었다. 바르비넨 선생은 “핀란드의 시험은 대부분 에세이로 치러진다”며 “수학도 수준이 올라가면 문제풀이 대신 에세이를 쓴다”고 설명했다.

방학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교실보다는 로비에 학생들이 더 많았다. 소파에서 책을 보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인터넷을 하거나 친구들과 수다 떨기에 열중했다. 시험기간이었지만 건물 3층 중간에 있는 도서관에서 학생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말 그대로 도서관은 ‘책을 빌려보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도서관처럼 시험공부에 열중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핀란드의 고등학교는 일반고와 직업학교(한국의 전문계 고교)로 구분된다. 일반고로 진학한 학생들은 대부분 ‘공부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페나넨 역시 마찬가지였다. 페나넨은 “관심있는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 즐겁다”며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시험 스트레스도 거의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부를 너무 좋아해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학생들이 학교를 너무 오래 다닌다는 것이다. 핀란드에서는 고등학교를 2~4년 다닐 수 있다. 전체 고등학생의 10%가량이 ‘고등학교 4학년’을 택한다. 이들은 ‘낙제생’이 아니라 ‘모범생’들이다. 바르비넨 선생은 “대학갈 친구들은 한국과 달리 ‘고등학교에서 기초를 튼튼히 해둬야 한다’는 생각으로 수업을 들어 4년 만에 졸업하는 학생도 많다”고 설명했다.

일반 고등학교에서는 ‘공부를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수업시간이 대폭 늘어난다. 야르벤파의 수업시간은 75분이다. 종합학교(45분)에 비해 30분이 길다. 산나 알란코 선생은 “수업이 짧으면 하루에 들어야 하는 수업 개수만 많아지고, 이는 곧 숙제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몇 년 동안 같은 반에서 지내기도 하던 종합학교 때와 달리 무학년 제도하에서는 친구들 얼굴을 꾸준히 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학기 초에는 친구를 사귀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 페나넨은 “(반이 정해져 있는 학교에서는)한번 따돌림을 받기 시작하면 오래 시달리게 되는 단점도 있다”며 “이곳에서는 수업시간마다 다양한 친구들을 사귈 수 있어 훨씬 더 좋다”고 말했다.



청소년·성인 함께 받는 직업교육

5월28일. 약속시간을 10분이나 넘긴 뒤에 옴니아 직업전문학교의 입구를 간신히 찾을 수 있었다. 핀란드에서 유명한 학교였지만 입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지도에 나온 대로 길을 들어서자 주변에 있는 모든 간판이 ‘옴니아’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건물에는 다 ‘옴니아’란 단어가 붙어있었다. 라틴어로 ‘모두’란 뜻을 가진 이 거대한 직업교육 기관에서는 청소년과 성인을 합쳐 7000여명이 교육을 받고 있다.

직업학교로 들어가서 가장 먼저 눈에 보인 것은 상점이었다. 옴니아 직업학교에서 국제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안네 켐파이넨은 “모자, 티셔츠, 액세서리, 드레스 등 이 상점에서 파는 모든 물건은 학생들이 직접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켐파이넨은 옴니아 직업학교를 단 한 문장으로 소개했다. “모든 길은 옴니아로 통한다(All roads lead to Omnia).” 켐파이넨이 기자를 안내한 곳은 모두 ‘현장’이었다. 목공이든, 건축이든, 조경이든 모든 실습장에는 현장이 완벽하게 재현돼 있었다. 그는 “건축을 배우는 학생들은 아예 집을 만들어 분양한다”며 “간단한 목재창고는 학교에서 만들어 1500유로(265만원)에 판매하고 지난해에는 학교에서 마련한 부지에 정원이 딸린 50만유로(8억8000만원)짜리 집을 지어 팔았다”고 말했다 또 “조만간 학교 시설을 리모델링할 예정인데, 대부분 학생들의 손에 맡길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학생들이 지어 판 건물은 학교가 10년 동안 보증을 해 준다.

옴니아를 통하면 누구라도 새로운 기술을 익혀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 옴니아에는 직업학교 외에도 성인교육센터, 도제훈련센터, 청소년워크숍 등이 있다. 에스포시를 비롯한 3개 지자체에서 투자해 설립했다. 직업학교에만 학생 2000명이 있고, 성인교육센터에서는 1500명이 다시 기술을 익히고 있다. 스스로 원해서 들어오기도 하고, 회사에서 위탁교육을 맡기기도 한다.

옴니아 직업학교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나라 전체에 ‘직업의 평등’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하 페카 사리넨 교장은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이 대학을 나왔든, 박사학위를 갖고 있든 상관없이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며 “보통 회사는 배관공 등 육체노동자에게 더 많은 돈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교장은 “모든 핀란드인은 직업을 가질 권리가 있고 단 한명도 일할 권리에서 소외돼선 안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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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진수기자

ㆍ핀란드의 자유로운 학제

핀란드의 학교제도는 종합학교, 고등학교·직업학교, 폴리테크닉(기능대학)·대학교로 이루어져 있다. 종합학교(의무교육)는 기본 9년제다.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합쳐진 형태다. 일부 지역에는 6년제 초등학교와 6년제(중학교+고등학교) 중학교가 운영되고 있기도 하다.

종합학교의 학년 스케줄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연간수업일수는 190일이다. 이를 2~5학기로 쪼갠다.

기초학교에 입학하는 시기는 7세가 된 8월이다. 사유가 있으면 6세나 8세에도 가능하다. 6세에 입학하는 대부분의 경우는 지역에 보육원이 없어, 초등학교에 부속된 ‘취학전 클래스’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2007년 통계에 따르면 핀란드 6세 아동의 99%는 ‘취학전 교육’을 받는다.

핀란드에서는 학생 대부분이 지역 내 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러나 다른 지역의 학교를 선택하는 것도 가능하다. 통학거리가 멀어지면 정부에서 학생들의 ‘교통비’를 별도로 지급한다.

종합학교를 졸업하면 고등학교 또는 직업학교(전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할 수 있다. 입학하려는 학교에서 ‘경쟁’이 발생하면 종합학교 학과 성적으로 입학 여부가 결정된다. 또 종합학교 성적이 좋지 않으면 ‘10학년’으로 진학해 1년간 보충교육을 더 받는 것도 가능하다. 10학년 전용 커리큘럼과 교과서도 마련돼 있다. 10학년에 진학한다고 해서 1년을 ‘까먹는’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와 직업학교에서 1년을 월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6년 핀란드 국가교육청의 자료에 따르면 종합학교 졸업생의 90%가 바로 상위학교로 진학했다. 50%는 고등학교로, 40%는 직업학교를 선택했다. 직업학교 진학률은 최근 들어 계속 증가하고 있다.

고등학교 간 격차가 거의 없기 때문에 학생 대부분이 출신지역의 학교로 진학한다. 고등학교의 1년은 5~6학기로 나뉘어 있다. 학년 구분은 없다. 학생들은 선택한 교과의 단위(학점)를 취득하면 된다.

대학입시 자격위원회가 주관하는 대학입학자격시험은 매년 봄, 가을 실시된다. 연속 3차례의 시험에서 지정된 4과목(모국어, 영어, 수학+선택과목)에 합격하면 자격이 주어진다. 이를 바탕으로 인터뷰 등의 대학별 입학시험을 별도로 치를 수도 있다.

대학입학자격시험 문제는 전부 기술식이다. 배운 지식을 어떻게 응용하는지가 관건이다. 이미 정해져 있는 ‘채점기준’을 사용해 해당 고교의 교사들이 A~D 단계로 평가를 내린다. 다음에 교육청 ‘시험위원회’에서 다시 평가한다. 2개 성적이 모두 일치하면 점수가 인정된다. 양쪽의 점수가 다르면 최종적으로 ‘검토위원회’에서 점수를 확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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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덴마크)|이로사기자 ro@kyunghyang.com

ㆍ4부 -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ㆍ“시급·보너스·휴일… 시간제라고 다른 건 없어요”

정규직 같은 비정규직의 나라 네덜란드

# 1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사는 프란시스카 쿤스트(50대·여)는 30년 경력의 간제 산후조리사다. 그는 말했다. “비정규직이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것도 아니잖아요. 우리는 일한 만큼 돈을 받을 뿐이고, 복지도 정규직과 똑같아요. 비정규직이라는 사실도 별로 느끼지 못하고 살아요.”


비정규직 없는 나라 덴마크

# 2 덴마크 코펜하겐의 매스 아스무슨(21)은 8주째 보험회사에서 우편물을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3개월 기간제로 계약을 했다. 유급휴가자의 빈 자리에 실업자를 대체 채용하는 ‘직장순환제’의 일환으로 이곳에 들어왔다. 그의 동료 중엔 비정규직이 거의 없다. 그는 “이 회사엔 비정규직이 전체의 4% 정도”라며 “급여나 복지에서 정규직과 차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해법 대 덴마크 해법

네덜란드와 덴마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숫자만 비교해봐도 그렇다. 네덜란드의 비정규직 비율은 상당히 높다. 임시직 비중의 경우, 2006년 기준으로 네덜란드는 15.4%에 이르는 반면 덴마크는 8.9%에 불과하다. 파견직의 비중도 (2004년 기준) 네덜란드는 2.5%를 상회하는 반면 덴마크는 1.5%를 밑돈다.

네덜란드는 특히 시간제 노동의 대표적 국가로 불린다. 시간제 노동을 통해 같은 수의 일자리를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도록 하고 있다. 이 같은 방법으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고 일자리를 늘림으로써 80년대 고실업률을 극복했다. 네덜란드에선 전체 노동자들의 3분의 1 이상이 주 37시간 이하의 시간제 노동을 한다. 여성의 경우 4분의 3 정도가 시간제로 일한다. 그러나 이 같은 높은 비정규직 비율이 사회적 문제로 비화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해서 정규직과 다른 대우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일하는 시간과 계약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 급여·복지는 정규직과 같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이 철저하다.

매스 아스무슨이 사는 덴마크의 경우 전체 노동자 중 임시직 비율이 9%가 채 안 된다. 그야말로 ‘비정규직 없는 나라’라 할 만하다. 정규직의 해고가 수월한 탓이다. 정규직을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으니 굳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채용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물론 실업급여와 재취업 기회 제공 등 소득안정성의 보장을 통해 노동자를 보호한다(4부 2회 참조). 즉 네덜란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해소를 통해, 덴마크는 정규직의 노동 유연성을 통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엔 어떨까. 2007년 기준 한국의 임시·일용직 등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전체 노동자의 54%(민주노총 추산)에 이르렀다. 정부 추산으로도 36%에 이른다. OECD 통계로 봐도 마찬가지. 미국이 4%, 비정규직 비율이 높다는 독일과 일본도 15% 미만이다. 한국의 경우 30%에 이르렀다. OECD 30개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대비 월평균 임금 총액은 절반가량에 불과하다. 계약 해지로 하루 아침에 생계수단을 잃는 노동자들이 속출하고, 용역·하청 등 간접고용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지난 2007년 7월 비정규직 보호법이 제정되고, 지난달부터 2년 고용 제한이 적용되기 시작했지만, 비정규직을 보호하진 못하고 있다. 더구나 정부와 여당은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더 연장하거나 적용 기간을 유예하자고 주장해왔다. 여야 합의처리가 무산되자 현재는 현행법 틀 내에서 보완책을 마련하겠다며 한발 물러선 상태. 그러나 비정규직 차별 해소, 고용사유 제한 등 근원적 처방은 여전히 쉽지 않을 전망이다.


비정규직 차별 없는 나라, 네덜란드

지난 6월29일, 네덜란드의 쿤스트는 얼마 전 만난 한 산모 얘기를 꺼냈다.

“산고를 아주 심하게 했어요. 안 되겠다 싶어 앰뷸런스를 불렀죠. 사실 병원에 가면 제 역할은 끝나는 거예요. 그런데 산모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더라고요. 다음날 회사로 전화했죠. 산모는 안전하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다른 산후조리사를 산모에게 보낸다기에 제가 그 산모를 맡겠다고 했어요.”



쿤스트는 산후조리원 ‘진’에 고용된 파트타임 산후조리사다. 30년 넘는 경력만큼 책임감이 강하다. 회사의 신뢰를 얻어 지금은 월 시간제로 계약하고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그의 일은 산모의 출산을 돕는 산파 역할을 포함해 출산 후 회복할 때까지 8일 간의 산후조리를 돕는 것이다. 보통 산후 관리 일을 할 때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하루 5시간 일한다. 그러나 산파 일을 할 때는 대중없다. 근무시간이 불규칙적이다.

“아기가 언제 나온다고 예정하고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어떨 때는 한밤중에도 일어나서 나가야 하고, 주말에도 일해야 하죠.”

그렇다고 시간대에 관계없이 과잉 노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한 달 간 일해야 하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 회사가 사정이 급하다고 해서 계약된 시간을 초과해 일을 맡길 수는 없다. 계약 시간을 초과하면 시급의 150%가량 추가 근무수당을 지불해야 한다. 쿤스트의 경우 보통 월 70~100시간을 일한다. 한 달 동안 이 시간만 채우면 나머지는 휴일이 되는 셈이다.

이렇게 일해서 버는 돈은 시간당 21유로. 전일제 정규직 노동자들과 같다. 다만, 쿤스트는 주 20~25시간만 일하니 그 시간만큼만 급여를 받을 뿐이다. 월 2100유로(약 370만원) 정도를 번다. 어쩔 수 없이 주말이나 야간에 일해야 할 때는 40%의 초과수당을 받는다.

“차별금지법이 있어요. 근로시간 차이 때문에 고용계약을 할 때 차별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이죠. 임금, 보너스, 수당, 훈련, 휴가 등 모든 부분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을 두지 못해요. 안 지키면 법적 제재를 받으니까.”

남편은 소방관. 함께 영구임대주택에 살고 있다. 20대 초 결혼했으니, 결혼에 즈음해 이 일을 시작한 셈이다. 네덜란드의 여성고용률은 70%에 달하며, 이들 대부분은 시간제로 일하고 있다. 쿤스트가 이 일을 시작할 당시엔 네덜란드의 산업구조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이동하던 때였다. 이 때부터 아이를 키우면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기혼여성들이 많아졌다. 특히 여성 노동자의 고용비중이 높은 탁아업 등 가정관련 서비스업이 성장했다. 쿤스트는 그러한 서비스업 성장의 복판에 있었던 셈이다. 이는 일자리 재분배의 중요한 발판이 됐다.

“아이들과 시간을 가지면서 일도 할 수 있었죠. 자기 사정에 맞게 일할 수 있어서 편했어요. 풀타임에 비해 버는 돈은 좀 적지요. 그만큼 적게 일하니까요.”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노동자 중 여성이 많은 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진 산후조리원’에서 일하는 직원 중 정규직은 너덧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쿤스트와 같은 파트타임 비정규직이다. 대부분 여성들이다.

“육아를 여성들이 주로 맡으니까요, 파트타임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좋은 점은 계약 조건이 다양하단 거죠. 자기 조건에 맞게 주 4일만 일하기도 하고 3일만 하기도 하고, 일하는 시간을 정할 수 있어요.”

네덜란드에선 특히 다른 나라와 달리 ‘자발적 파트타임’의 비중이 높다. 2005년 네덜란드의 파트타임 노동자 중 비자발적 파트타임은 유럽 중 가장 낮은 3.8%로 나타났다. 쿤스트도 과거엔 필요에 따라 풀타임 노동 시간의 50%를 파트타임으로 일하기도 했고, 80%를 일하기도 했다. 그 때마다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았을 뿐이다. 50%만 일할 때는 풀타임 노동자 급여의 절반을, 80% 일할 때는 정확히 80%의 급여를 받았다. 그 외 다른 조건은 상용 정규직과 동일했다. 법정 휴가 일수를 어긴 일도 없고, 4대 보험 적용에서도 불이익을 받은 적이 없다.


“아프다고 해고할 수 없어요”

지난 6월30일 만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또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 시브란트 더 하안(36)은 수술 후 집에서 요양 중이었다. 2주 전, 집 옥상에 올라 집기를 고치다 실족했다. 골반 뼈가 골절돼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는 지난 5월부터 암스테르담의 한 광고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6개월 계약에 파트타임직이다. 일한 지 불과 한 달째. 재계약을 해야 하는 오는 9월 말까지 몸이 회복될지도 장담할 수 없다. 계약기간 동안 일을 전혀 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한국이었다면 충분한 해고 사유다. 하안은 걱정하지 않았다.

“병가로 쉬고 있으면 해고를 못 합니다. 급여도 70%를 지불해야 하고요. 아픈 몸 때문에 그 때까지도 일을 못하면, 계약은 자동 연장돼요. 그리고 또 6개월 후에 재계약을 하게 되죠.”

하안은 풀타임(주 37.5시간)의 90%를 일한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30분 퇴근한다. 금요일도 격주로 쉰다. 한 주는 주 5일, 한 주는 4일을 일한다. 주당 33.75시간이다. 급여는 세전 2400유로. 약 430만원이다. 여기에 연봉의 8% 정도가 여름 휴가비로 지급되고, 연말 보너스도 100% 지급된다. 휴가는 연 21일. 하안은 6개월 계약이라 정확히 절반인 10.5일이다. 급여와 보너스, 휴일 모두 시간에 비례해 정규직과 같은 수준이다.

“원하면 더 사용할 수 있어요. 대신 정해진 휴가 일수보다 더 쓰면 월급이 그만큼 깎이죠. 그래도 저는 이번 여름에 여자친구와 함께 15일(3주) 동안 휴가를 갈 계획을 해놨어요. 지금은 몸을 다쳐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후후.”

물론 하안도 해고에 대한 부담은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경기가 안 좋아지면 가장 먼저 타격받는 것은 아무래도 임시직, 계약직, 시간제 노동자들이다. 직장마다 비정규직 비율이 워낙 높다. 현재 하안이 다니는 회사도 5명만이 정규직이고 나머지 12명은 모두 비정규직이다. 하안 역시 지난해 말 이전 직장에서 해고된 경험이 있다. 해고 당시를 떠올리자 잠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경기가 어려워지면 계약 연장을 안 하고 자르는 경우가 있죠. 그렇지만 실업수당이 기존 월급의 70% 정도 나와요. 조금 생활이 쪼들리긴 해도 다른 직업을 구할 때까지 충분히 먹고살 순 있지요.”

그는 8년간 광고 업계에서 기간제 계약직으로 일했다. 8년간 5개 회사를 거쳤다. 직장을 잃어도 막막하진 않았다. 새로운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역시 항상 갖고 있었다고 했다. 실제로 2007년 네덜란드 노동자 9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일자리를 잃게 될 경우 6개월 이내 다른 직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노동자들이 약 77%였다. 같거나 비슷한 직종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 노동자들도 약 70%가량으로 나타났다. 하안은 말했다.

“네덜란드에선 비정규직이 일반적이에요. 직장 자체가 얼마나 안정돼 있느냐의 차이는 있겠죠. 그렇지만 정규직과의 차별 같은 건 잘 모르겠습니다. ”


비정규직 찾기 힘든 나라, 덴마크

덴마크 코펜하겐의 아스무슨은 원래 목공 기술을 가진 목수다. 직업학교를 나와 건축, 인테리어 업체 등에서 일했다. 이전 직장에선 경기불황 탓에 3개월 전쯤 해고됐다. 지난 5월25일 코펜하겐의 대형 보험회사 ‘코단’에서 만난 그는 새로 도착한 우편물에 도장을 찍고 있었다. 한창 새로운 일에 적응 중이다.



“우편물을 정리하는 일이에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서 그렇게 어렵진 않습니다. 함께 일하는 분들이 친절해서 좋아요.”

해고된 뒤 고용 센터가 ‘직장순환제’의 일환으로 이곳을 소개해줬다. 직장순환제는 유급휴가자의 빈 자리에 실업자를 대체 채용하는 제도다.

“원래 이 자리에서 일하던 분은 석달간 병가를 갔어요. 제 계약기간이 3개월인 이유도 그 때문이죠.”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3시30분에 퇴근하는 주 37.5시간 근무제다. 요즘은 오후 3시에 퇴근한다. 코단에선 햇빛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름엔 하루 7시간만 일한다고 했다. 급여는 세전 월 2만1000크로네(약 500만원). 정규직의 최하 월급과 동일하다. 코단의 인사관리 담당자 헬레 피더슨이 말했다. “임시직은 항상 같은 직종에서 일하는 정규직의 초봉으로 시작합니다. 경력이 다르기 때문이죠. 6년간 일한 사람 자리에 초보자가 갔는데, 같은 월급을 받을 순 없는 거잖아요?”

무엇보다 덴마크에선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 자체를 찾아보기 힘들다. 코단의 비정규직 비율은 4.3%에 불과하다. 전체 직원 1400명 중 60명 정도뿐이다. 그렇다고 비정규직을 보호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피더슨은 “정규직에 대한 해고가 자유롭기 때문에 굳이 비정규직을 채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면서 “또 기간제 계약을 한 직원들도 모두 노사 단체협약의 보호 아래 있기 때문에 처우에선 정규직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아스무슨이 일하는 부서에는 비정규직이 몇 명 있느냐고 물었다. 아스무슨은 반백의 여성을 가리키며 “저 분과 저, 두 명뿐”이라고 말했다. 그가 가리킨 여성은 울라 트랍(63·여). 역시 3개월 정도 실업수당을 받고 있던 중 ‘직장순환제’를 통해 이곳에서 일하게 됐다. 지난 3월부터 일을 시작했다. 계약 기간은 6개월이다.

트랍은 평생을 기후연구소에서 일했다. 1969년에 입사해 2005년에 퇴직했다. 60대에 새로운 일을 찾는 게 쉬운 것은 아니다. 퇴직 이후에는 이 같은 임시직을 주로 찾고 있다.

“제 나이면 모두 일할 나이죠. 적어도 65세 연금 받기 전까진 다들 일합니다. 저는 계약기간이 끝나는 6개월 이후에도 계속 이런 식으로 일을 찾아야 해요. 원래 하던 일과 비슷한 일을 계속할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안 되면 다른 일을 찾아야지 할 수 없잖아요.”

트랍은 기회가 되면 이곳에서 정규직으로 일하고 싶은 희망이 있다. 피더슨에 따르면 일을 그만 두더라도, 기간제로 일한 경험이 있는 이들은 후에 다시 정규직으로 고용되기 수월하다. 트랍이 말했다.

“일한 지 두 달 남짓됐는데, 동료들이 좋아요. 일도 그런 대로 재미있고, 급여도 괜찮은 것 같고요. 다음에 여기 자리가 나면 정규직으로 지원을 할 생각입니다.”

아스무슨은 계약기간이 끝나는 3개월 후엔 2년 반 과정의 건축기술 교육을 추가로 더 받을 생각이다. 지금 일은 말 그대로 임시직이다. 덴마크의 임시직 가운데는 이러한 퇴직자들, 혹은 직업을 찾는 과정에 있는 이들이 많다는 게 아스무슨의 설명이다.

비정규직 차별에 대해 물었더니, 아스무슨과 트랍 둘 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 고개를 세게 가로젓는다. 아스무슨은 “비정규직이라고 해서 차별대우하면 덴마크에선 제대로 기업활동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기업은 소문이 나죠. 재판에서도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특히 정부 일자리 센터에서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기업에 대해선 구인을 안해 줍니다. 그건 기업에 굉장한 불이익입니다.”


<암스테르담(네덜란드) | 장광렬 통신원>

▲특별취재팀
<서의동 경제부 차장/ 조찬제 국제부 차장/ 김재중 문화부 기자/ 장관순·홍진수·송윤경 정치부 기자/ 이로사·유희진 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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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사기자 ro@kyunghyang.com

ㆍ‘안전한 파트타임’ 법적 보장 실업률 14%에서 4%대로


‘네덜란드 병’이란 말이 유행했다. 1980년대 초반이었다. 당시 네덜란드의 실업자수는 80만명에 이르렀다. 경제활동 인구의 14%에 해당하는 엄청난 숫자였다. 사회복지 의존율이 자연히 높아졌다. 일하는 사람은 줄고, 복지 비용은 과도했다. 복지사회 위기론이 비등했다.

그러나 불과 10년 후 네덜란드는 또다시 주목을 받게 된다. 이번엔 ‘병’이 아니라 ‘기적’이란 별칭을 얻었다. 83년 14%에 달했던 실업률이 97년 6%가량으로 낮아졌다. 유럽연합 회원국 가운데 그즈음 10년간 실업률을 떨어뜨린 국가는 네덜란드뿐이었다. 이후 네덜란드의 노동과 경제시장은 호황기로 접어들었다. 그 기조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08년 현재 네덜란드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5만여달러. 실업률도 2009년 4월 현재 4.6%에 불과하다. 고용률 역시 70%를 상회한다. 무엇이 네덜란드를 세계 각국이 주목하는 ‘우량 국가’로 만들었을까.

네덜란드에서 시간제 근무는 일반적 고용형태다. 시간제 노동자들의 수는 압도적이다. 2009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연보에 따르면 네덜란드의 시간제 노동비율은 36%에 이른다. 시간제 노동비율이 높다고 알려진 미국(12.6%), 일본(18.9%)보다도 월등히 많다. OECD 국가 중 단연 1위다.

80년대 초반 네덜란드는 강력한 고용증가 정책을 실시했다. 초점은 같은 수의 일자리를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일자리 재분배였다. 시간제 노동은 이러한 일자리 재분배에 기여했다. 시간제 노동의 비율은 79년 16.6%에서 96년 36.5%로 급격히 높아졌다.

여기엔 96년부터 시행된 ‘근로시간에 따른 차별 금지법’이 큰 역할을 했다. 이 법은 사용자가 차별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당한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 한 근로시간의 차이로 고용계약의 체결·연장·해지 때 차별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 또 상용 노동자와 시간·기간제 노동자 간 급여·보너스·휴가·훈련 등의 차별도 두지 못하게 했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일하는 시간의 차이에 따라 급여의 차이는 생기지만, 그 외엔 정규직 노동자와 동등한 권리를 얻게 됐다.

2000년엔 ‘근로시간 조정법’이 도입됐다. 노동자가 근로시간 단축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 내용이다. 특정조건 아래 기존 고용계약의 조건도 일방적으로 변경할 수 있다. 이는 2001년 발효된 ‘일과 가정 양립법’의 일부로, 특히 남성 노동자들의 시간제 노동 증가에 한몫했다. 이 같은 법의 제정으로 네덜란드의 시간제 노동자는 지속적으로 많아지는 추세다.

네덜란드 모델 역시 덴마크와 같이 ‘유연 안정성’ 모델로 불린다. 덴마크와 다른 점은 정규직의 해고가 쉽지 않은 대신 비정규직의 노동권을 정규직과 같은 위치로 상승시켜 노동시장의 안정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확보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정규직 고용보호 수준은 전통적으로 높았다. OECD에서 발표하는 고용보호 지수를 보면 정규직의 경우 90년대 초반부터 2008년까지 3점에 가까웠다. 덴마크의 경우 그 절반인 1.6점 정도에 불과하다. 고실업과 저성장의 위기 속에서 네덜란드는 정규직 해고에 관한 노동법 개정은 하지 못했다. 반대에 부딪힌 탓이다. 대신 비정규직의 고용을 더욱 원활하게 하고 노동법과 사회보장법 개혁을 통해 비정규직의 보호를 강화했다.

이는 사회보장제도가 잘 갖춰져 있기에 가능하다. 기초적인 소득 보장수준이 높다는 이야기이다. 네덜란드 역시 덴마크와 같이 실업급여가 높다. 일할 때의 70%를 받는다. 실업자의 소득보장을 위한 정부지출 또한 2005년 기준 유럽 27개국 가운데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많다.

80년대 위기 이후 형성된 ‘유연 안정성’에 대한 사회 파트너 간 신뢰와 대타협, 탄탄한 노사관계도 필수적 조건이다. 대타협은 네덜란드 노사가 82년 11월 헤이그 근교의 바세나르 시에서 맺은 ‘바세나르 협약’에서 비롯한다. 바세나르 협약은 노사가 자율적으로 협조적 노사관계를 구축한 최초의 협약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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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사기자

ㆍ경제활동 ‘성과’·성별분업엔 ‘비판’


네덜란드 시간제 노동자의 74%는 여성이다. 이것은 전략적 선택의 결과다. 출산 후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어려웠던 많은 여성들은 전일제 노동 대신 파트타임을 택했다. 파트타임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에 획기적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1970년대 초만 해도 네덜란드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0%대에 불과했다. 네덜란드는 전통적으로 탁아시설, 가족친화 등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가 발달하지 않았다. 여성들이 결혼 후, 특히 출산 후에도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란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80년대 노동력 공급이 부족해졌고, 이와함께 여성고용률이 급증했다. 아이를 키우는 여성의 취업에 대한 사회적 관념자체가 바뀌었다. 82년 18~37세 여성들 중 57%는 6세 미만의 자녀 육아와 취업을 병행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93년에는 달랐다. 26%로 줄었다. 많은 여성들은 일자리를 포기하기보다 근로시간 단축을 선호했다. 이렇게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출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90년대 초반 네덜란드의 여성고용률은 유럽연합 국가들의 평균과 비슷한 50% 수준이었다. 유럽연합은 아직 58%가량이다. 반면 네덜란드는 70%에 가깝다. 상당한 성과다.

80년대 서비스 업종의 확대 역시 여성인력 유입의 계기가 되었다. 75년 이후 일하는 여성의 절반가량이 소매업·의료·교육·사회 서비스 등 분야에 고용됐다. 특히 기혼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75년 15%에서 94년 42%로 크게 증가했다. ‘워킹맘’이 많아지자 여성노동자의 고용비중이 높은 탁아업 등 가정 관련 서비스업도 함께 성장했다.

일각에선 성별 분업이 풀타임, 파트타임으로 나누어진 나라라는 비판도 나온다. 여성의 경력축적 기회를 제한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 때문에 여성의 노동시간 늘리기는 네덜란드가 풀어야 할 과제의 하나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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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덴마크) | 글·사진 이로사기자 ro@kyunghyang.com

ㆍ4부 -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 덴마크 노조총연맹 와이스 고문 인터뷰
ㆍ100년 전통 ‘조합주의’ 확립…노사합의로 노동시장 규율

“여기가 신생 부촌이에요. 경치도 좋고 땅값도 비싸죠. 노조가 이런데 있으면 한국 같으면 ‘귀족 노조’라고 손가락질하기 십상이겠죠?”

지난 5월27일, 덴마크 코펜하겐의 덴마크노동조합총연맹(LO)을 찾아가는 길, 동행한 가이드가 말했다. 노조는 운하를 면한 코펜하겐의 신생 부촌 이스랜드 브리게에 위치하고 있었다. 현대 미술관을 연상케 하는 으리으리한 건물이었다. 건물 안에선 창 밖으로 운하길이 내려다보였다. 운하를 접한 고가의 ‘워터 프론트’ 아파트들이 즐비했다.


“덴마크에서 노조는 생활입니다. 육체노동자도 경제학자·의사·공무원도 다 노조원이에요. 모두가 노조원인데 무슨 편견이 있겠습니까.”


LO의 국제고문 크리스티앙 와이스(사진)가 말했다. 현재 덴마크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75%에 달한다. 노동활동이 활발한 유럽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주로 숙련 및 미숙련 육체노동자들로 조직된 LO는 산하에 18개 산별 노조가 가입돼 있다. 조합원 수만 130만명에 달하는 덴마크 최대 노조다. 덴마크에는 LO를 포함해 사무직·공무원연맹(FTF), 대학졸업자연맹(AC) 등 3개의 중앙 조직이 있다. 사용자 단체 역시 조직률이 높다. 대표적으로 사용자연합(DA)을 비롯해 금융부문사용자연합(FA), 농업부문사용자연합(ALA) 등 3개의 상급조직으로 이뤄져 있다.

노조와 사용자단체는 2~4년 단위로 모여 사회협약을 도출한다. 입법보다 자율적 노사 간 합의에 의해 노동시장을 규율한다. 노동시장을 규율하는 규범 형태에는 법규, 단체협약, 개별 고용계약 등이 있지만 실제론 75%가 단체협약에 의해 결정된다. 정부는 최소한만 개입한다. 노사 협의가 결렬되거나 갈등이 생겼을 때 제한적으로 중재·권고의 역할만 할 뿐이다.

“정권은 바뀌지만 조합주의를 배척하는 정부는 없습니다. 오히려 노조에 가입하도록 권장하죠. 회원비도 세금 공제를 해줍니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덴마크노동조합총연맹(LO), 현대 미술관을 연상케 하는 건물은 운하를 면한 코펜하겐의 신생 부촌 이스랜드 브리게에 위치하고 있다.

덴마크 돼지고기 가공업체 데니시 크라운의 도축장에서 일하는 초븐 렝스의 말이 떠오른다. “고용주와 나의 관계는 ‘파트너 관계’다.” 렝스에 따르면 작업장 내 환경 문제 등을 노조에서 제기하면 사측에서 흘려 듣는 법이 없단다. 적극적으로 함께 해결책을 찾는다. 이는 오랜 기간 구축된 노사 간 신뢰에서 비롯됐다.

“이른 시간 안에 이뤄진 게 아니에요. 100년간의 발달사를 함께 봐야 합니다. 1899년 ‘9월 타협’ 이후 노사 간의 사회적 합의주의적 전통이 확립됐습니다. 법으로 노동시장을 조정하는 것보다 두 파트너가 신뢰를 갖고 대화하는 것이 더 효율성이 있다는 경험을 쌓은 것이죠.”

덴마크의 노사는 일반적으로 ‘대화가 최선의 길’이란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노사 간 신뢰가 높아 파업 등 쟁의는 잦지 않다. 대규모 파업이나 집회는 1년에 한두 번 정도다. 가장 최근의 대규모 파업은 지난해 경찰·간호사 등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 파업이었다.

“민간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금 상승률이 낮았어요. 그런데 정부에선 공공부문의 높은 임금인상은 경쟁력 약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반대했어요. 협상은 결렬됐고 대규모 파업이 일어났죠.”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밥그릇 지키기요? 하하 그런 반응은 없어요. 그저 ‘해야 하니까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 밥그릇을 지키는 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육체노동자들에 대한 사회 일반의 인식도 한국과 많이 다르다. 와이스는 이렇게 설명했다. “육체노동자들도 보통 단체협약 과정에 평등하게 참여해요. 급여 등에서 차이가 없습니다. 또 덴마크에선 평생 교육으로 높은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었어요.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든 거죠. 자동차 엔지니어링 기술자 친구가 있는데, 지금 정부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더 많이 벌어요. 자부심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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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하겐 | 이로사기자

ㆍ덴마크의 직업교육훈련제도
ㆍ실업·재직자 손쉽게 역량강화…평생교육으로 고용안정 도모

독일의 칼 베텔스만 재단은 1988년 이래 매년 ‘칼 베텔스만상’을 시상한다. 교육·대학·고용·보건 등 다양한 영역에서 한 해 가장 창조적인 활동을 한 단체나 제도에 대해 상을 수여한다. 99년 주제는 ‘미래의 직업교육’. 수상은 덴마크의 직업교육훈련제도에 돌아갔다.

“덴마크는 평생교육체제입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어떤 단계든 교육 받을 수 있죠. 실직하면 새로운 기술을 교육받을 수 있게 도와줍니다. 재직자들도 직무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교육을 언제든 받을 수 있고요.”

 
코펜하겐 기술교육대학(TEC)의 교육실습 모습. 덴마크에는 115개의 기술대학과 경영대학이 청소년·성인에 대한 직업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TEC는 기술대학 중 하나로 코펜하겐 지역 내 5개의 캠퍼스를 갖고 있다.



지난 5월27일 만난 코펜하겐 기술교육대학(TEC)의 성인교육 컨설턴트 예트 노셀이 말했다. 덴마크의 직업교육제도는 실업·재직노동자들의 노동시장 역량 강화를 통해 양질의 고용안정성을 달성하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덴마크의 직업교육은 직업대학이 담당한다. 전국 115개의 기술대학과 경영대학이 청소년·성인에 대한 직업교육을 함께 실시하고 있다. TEC는 기술대학 중 하나. 코펜하겐 지역 내 5개의 캠퍼스를 갖고 있다. 한 해 약 5000명의 학생들이 이곳에서 교육을 받는다. 직업교육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청소년들 대상의 ‘초기 직업교육 훈련’과 성인들 대상의 ‘계속 직업교육 훈련’. ‘초기 직업교육 훈련’은 9년(혹은 10년)의 의무교육을 받은 후 직업적 기술을 배우기를 원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 대비 비율은 절반 정도다. TEC에선 자동차, 전기, 도자채색, 간판기술 등 30여개의 과정을 가르친다. 대학에서만 공부하는 것은 아니다. 20주의 1단계 프로그램을 마치면, 대학과 계약을 맺은 기업에 2년 반에서 4년간 실습을 나간다. 이 과정을 거치면 ‘숙련 기술자 자격증’을 발급받는다.

‘계속 직업교육 훈련’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노동시장 훈련’이다. 주로 실업자·재직자·미숙련 노동자 등 성인을 대상으로 한다. 기간은 1일~6주 정도로 짧지만 프로그램은 2200여개로 다양하다. 덴마크의 계속 직업교육 훈련 참가율은 58.5%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예트 노셀은 말했다.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위함이죠. 기술이 없거나 낡은 기술만 가진 미숙련 노동자들은 장기 실업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요즘과 같은 경제 위기에서는요. 계속해서 직업 교육을 해서 새로운 직업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예요.” 이 때문에 덴마크에선 고령의 노동자들이 분야를 바꿔 재교육을 받는 경우도 흔하다.

학생들이 내는 비용은 거의 없다. 교육부는 직업 대학에 학생수에 따라 재정을 지원한다. 기업이 훈련생에게 수당을 지급한다. 성인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참가자에게 생계비를 지원한다. 재직자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경우엔 기업에도 지원금이 나간다. 이 지원금은 ‘노동시장훈련기금’에서 나오는데, 이는 기업들이 상용노동자수에 비례해 내는 분담금을 모아 만든 기금이다. 노사가 공동관리한다. 노동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직업교육에서도 사회적 파트너들간의 협력관계가 긴밀히 돌아가는 셈이다.

특히 업종별로 노사 양자로만 구성되는 업종위원회가 큰 역할을 담당한다. 교육 제도의 틀은 교육부에서 마련한다. 그러나 세세한 교육 내용에 있어선 노사 파트너들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예트 노셀은 “59개의 업종위원회가 기술 교육과정의 목표, 교육방법 등을 함께 논의해 프로그램을 만든다”며 “특히 지금 환경 변화에 따라 이 사회에 어떤 직업이 필요한지, 어느 수준의 교육을 시켜야 할지 등을 상세히 논의한다”고 말했다.

시장 상황에 따라 교육 분야도 수시로 바뀐다. 최근엔 각 분야의 ‘최첨단 기술’에 중점을 두고 있다.

“어떤 분야에서 실업자가 늘면, 그 분야를 찾는 학생들도 적어져요. 또 학생들이 많이 찾는 분야는 최근 각광 받는 산업이라는 의미예요. 그럼 그 분야를 더 중점적으로 개설하는 식이죠. 교육을 통해 자연스럽게 취약한 산업의 노동자들을 새로운 산업으로 이동시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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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덴마크) | 이로사기자 ro@kyunghyang.com


ㆍ4부-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 “고용 기적은 노동자 삶 보장될 때 가능” 
ㆍ(2) 실업? 불안하지 않아요 덴마크 황금 삼각형 모델

지난 5월25일 만난 덴마크 고용부 노동청의 선임 국제고문 라이프 한슨은 말했다.

“여기선 직업을 잃는다는 게 당장 길거리에 나앉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국가에서 실업수당이 제공되죠. 그 전의 삶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요. 수당을 받으면서 직업을 찾으면 됩니다. 취업 알선, 교육 프로그램이 모두 갖춰져 있으니까요.”

최근 세계 노동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유연성’의 증대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불안하다. 사회보장 제도에 대한 지출도 줄어든다. 노동시장에서도, 사회보장 구조 안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양산되고 있다. 자연히 노동자들의 ‘안정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덴마크는 유연성과 안정성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노동 정책들을 펼쳐왔다. 그 결과 노동자 보호는 물론 견실한 경제 지표도 얻을 수 있었다.



몇 가지 수치들을 보자. 덴마크의 1인당 GDP는 5만달러를 넘어섰다. 세계경제 포럼(WEF)이 발표하는 세계경쟁력 순위에서도 미국, 스위스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GDP 대비 조세 부담률이 50%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숫자다. 가장 경이로운 것은 실업률. 2009년 4월 현재 3.3%에 불과하다. 고용률도 77%에 이른다. ‘고용 기적’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치다.

라이프 한슨은 덧붙였다. “많은 나라에서 이 모델을 배우러 옵니다. 대부분이 관심 있어 하는 건 ‘해고를 자유로이 할 수 있다는 점’이죠. 그러나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겁니다. 덴마크 모델이 다른 점은 자유로운 해고와 더불어 노동자들의 삶의 안정성이 보장된다는 것이에요. 그 둘이 함께 가야 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칼스버그, 레고, 그리고 유연 안정성 모델

유럽 연합은 2006년 유연 안정성 모델을 새로운 사회경제 패러다임이자 정책 모델로 채택했다. 유럽뿐 아니다. 세계 많은 국가가 이 모델을 주목하고 있다. 지난 3월 AP통신은 “덴마크의 노동시장 모델은 칼스 버그 맥주, 장난감 레고와 함께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가장 유명한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고 보도했다. 덴마크 모델이 이렇게 ‘잘 팔리는’ 이유는 뭘까.

라이프 한슨은 “영·미식 신자유주의 경제구조조정에 반하는 새로운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덴마크 모델은 ‘유연 안정성 모델’로 통칭된다. 노동자와 자본 간 관계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유연성과 안정성의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정책이다. 신자유주의식 구조조정이 자본의 요구에는 대응하나 노동자들의 상대적 위치를 약화시켜 균형을 깨뜨리는 것과 다르다.

라이프 한슨은 칠판에 세 개의 동그라미를 그렸다. 각 동그라미는 정삼각형의 꼭짓점에 위치해 있다. 각 동그라미 안에 ‘유연한 노동시장’ ‘사회보장’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라고 적었다. 이른바 덴마크 모델의 ‘황금 삼각형’이다.

“이 세 가지가 유기적으로 결합했을 때 덴마크 모델이 가능합니다. 해고와 채용을 쉽게 해 기업이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적응하기 쉽도록 하는 거죠. 대신 실업자를 위한 종합적인 사회안전망을 제공해요. 또 이들이 다시 일자리를 갖게 해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취업알선·직업훈련 등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해고도 채용도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

덴마크에선 해고가 쉽다. 성·종교·임신 등 사회적 차별을 제외하고는 어떤 이유에 의해서든 해고가 가능하다. 해고 예고기간도 1개월에서 6개월 정도로 짧다. 근속 9개월 이하의 생산직 노동자는 해고예고 없이도 해고가 가능하다. 법적인 고용보호 수준은 2004년 기준으로 미국·영국·캐나다 등 영·미권 국가에 이어 7번째로 낮았다. 영·미권 국가는 전통적으로 고용보호가 취약하다.

덴마크 돼지고기가공업체 ‘데니시 크라운’의 인적자원디렉터 얀 윈터는 지난 3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채용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시장 상황이 안 좋아지면 언제든 해고할 수 있고, 대신 정부가 그들을 보호해 주리란 걸 알기 때문이죠.”


ㆍ기업은 구조조정후 일자리 재창출
ㆍ노동자는 수당 받으며 재취업 노력


일자리도 빠르게 소멸하고, 만들어진다. 기업이 변화하는 상황에 신축적으로 대응하는 과정에서 매년 전체 일자리의 10% 이상(약 30만개)이 사라지면서 해고된다. 이와 동시에 비슷한 수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돼 채용기회를 제공한다.

자연히 직장 이동률도 높을 수밖에 없다. 매년 전체 노동인구의 29%가량이 직장을 옮긴다. 그중 70% 이상이 실업을 경험한 이들이다. 대부분은 짧은 구직 과정을 거쳐서 재취업한다. 장기 실업자로 남는 건 일부다. 평균 동일직장 근속기간은 8년. EU의 10.6년보다 짧다.

이는 노사 간의 자율적 합의에 의해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덴마크의 오랜 역사와 관련이 있다. 덴마크에선 노동법규보다 노사 간 단체 협약이 훨씬 큰 효력을 갖는다. 환경 변화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다.

덴마크노동조합총연맹(LO)의 국제고문 크리스티앙 와이스는 “노·사·정 모두 이 모델이 주는 이점에 대한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며 “사회적 파트너들 간의 상호신뢰가 없다면 불가능한 모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자리 보호가 아닌 사람 보호

해고가 쉬우면 노동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덴마크 노동자들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직장 불안정성은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 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소득 보장이다. 덴마크의 실업수당 수급 기간은 4년이다. 세계에서 가장 길다. 실업 수당의 수준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대신 재취업 의무를 전제로 한다. 실직자의 대부분은 자발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데 성공하고 있다. 2004년 덴마크 전체 실업에서 12개월 이상의 장기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2.6%에 불과했다. 덴마크 실업자의 80%가량이 1년 미만의 단기 실업자인 셈이다. 반면 EU 15개국의 장기실업 비중은 평균 42.4%로 덴마크의 두 배에 가까웠다.

‘새로운 일자리 찾기’가 단시간 안에 가능한 것은 덴마크 정부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덕분이다. 덴마크는 94년부터 대대적인 노동시장 개혁을 단행했다. 90년대 초반, 9%를 상회하던 고실업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덴마크의 실업수당 기간은 9년에 달했다. 이를 7년으로 단축했다. 또 ‘이중 수급기간제’를 도입해 수급기간을 ‘소극적 기간’과 ‘적극화 기간’으로 구분했다. 직장순환제도 활성화했다. 직장순환제는 재직자의 휴가로 비워진 자리에 실업자를 한시적으로 대체 고용하는 제도. 이를 위해 육아, 교육훈련휴가 등 유급휴가제를 도입했다.


ㆍ직장 순환·유급휴가 등 다양한 정책
ㆍ10명중 8명이 1년내 새 일자리 찾아


“덴마크의 사례가 ‘고용 기적’으로 불리는 이유는 이때의 고실업을 잘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9~10%대의 실업률이 3~5%대로 안정화됐으니까요. 또 단순히 실직자를 단시일 안에 노동시장에 내보내는 정책보다 교육과 훈련을 강조했어요. 실업자 개개인의 사회적 배제를 방지하려고 했던 것이죠. 그게 생산성에도 도움이 된다고 믿었고요.”

이때 정착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실직 2년차부터는 정부에서 제공하는 취업 프로그램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고용센터와 취업계획을 정하고 이를 지켜야 하며, 직업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 또 일정 기간이 되면 고용센터에서 정해주는 직장에서 근무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엔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서 ‘교육’을 더 강조하고 있다. 라이프 한슨은 “재취업 노력은 않고 교육만 받으려는 이들을 우려해 6주의 교육제한 기간을 두었다”며 “그러나 오는 8월부터는 미숙련자나 이미 낡은 기술이 돼 버린 직업인 경우 기간 제한 없이 교육받을 수 있게 완화했다”고 말했다.


땅벌은 과학적으로 날 수 없지만

 기술교육대학에서 전기 기술 교육을 받고 있는 덴마크 코펜하겐 시민들. /코펜하겐 | 이로사기자



라이프 한슨은 ‘땅벌’ 이야기를 꺼냈다. 많은 이들이 덴마크 모델을 몸집이 커 날 수 없을 것 같은데 잘 날고 있는 ‘땅벌’에 비유했다. “땅벌은 (몸집이 커) 과학적으로 날 수 없어요. 그러나 시행착오 끝에 실제로 날게 됐죠. 이와 마찬가지로 전통적 경제이론에 있어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고용 안정성은 상호 모순입니다. 함께 작동할 수 없다는 게 상식이에요. 그 상식을 덴마크의 사례가 깼습니다.”

모순을 극복할 수 있었던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전통적으로 사회복지제도가 잘 구축돼 있었다. 노사관계 역시 높은 조직률을 기반으로 오랜 사회적 합의주의의 역사를 갖고 있다. 사회적 파트너들 간의 신뢰도도 높다. 라이프 한슨은 말한다.

“오랫동안 역사적인 경험에 의해 구축된 모델이란 점을 상기해야 합니다. 어떤 계획에 의해 한 번에 이뤄진 게 아니란 거죠.”

오랜 역사적 노력의 결과인 만큼 세계적 경제 위기 속에서도 그 기조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덴마크에선 ‘일자리 보호’가 아닌 ‘사람 보호’를 통해서만 고용증대가 가능하다는 인식을 노·사·정 3자가 공유하고 있다. 기업은 해고 부담 없이 경쟁력이 약화된 부분을 구조조정하고, 장기적으로 더 경쟁력 있는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노동자는 실업급여와 정부 프로그램을 통해 경제적 어려움 없이 훈련 및 재취업 노력을 거쳐 노동시장에 복귀한다. 이 과정은 자기계발의 계기로도 활용된다. 덴마크 사회는 이 모델을 통해 ‘취약부문의 실업증가’라는 세계화의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시키고 있다고 평가된다.

라이프 한슨은 한 공장의 예를 들었다.

“얼마 전 경제 위기를 맞아 제가 사는 지역의 한 공장에서 600여명 중 90명을 해고했습니다. 그리고 14명을 채용했어요. 숫자로 보면 적은 것 같죠. 하지만 이게 큰 의미를 갖습니다. 유연 안정성 모델에 대한 합의가 없었다면 이들은 해고만 시키고 (남은 사람들에게) 일을 더 하라고 하지 채용을 하진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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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덴마크) | 글·사진 이로사기자 ro@kyunghyang.com

ㆍ4부 -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2) 실업? 불안하지 않아요
ㆍ덴마크 실레의 경우


실레 리네가 호이루프가 덴마크 코펜하겐 반료세 지역에 위치한 자신의 집 정원에서 11개월 난 셋째아이를 안고 있다.



“아니, 그럼 가족 중 돈을 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에요?”

실레 리네가 호이루프(34·여)는 겸연쩍은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5월29일 덴마크 코펜하겐 반료세 지역 실레의 집을 찾았다. 실레는 11개월난 막내 아이를 유모차에 눕혀 재우고 있었다. 유모차는 집밖 정원의 잔디 위에 있었다. 그는 아이에게 덮어준 이불을 정성스레 매만졌다. “덴마크에선 신선한 공기를 쐬면서 자야 한다고 아이를 밖에서 재우는 전통이 있어요. 집으로 들어가시죠.” 아이는 파란 하늘 아래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다.

실레는 실업자다. 수입은 0원이다. 남편 역시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물론 그의 수입도 0원이다. 정원이 딸린 집은 총 650㎡(196평). 10살, 2살, 11개월짜리 아이도 셋이나 있다.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까.



“실업수당을 받고 있어요.”

실업수당은 한국에도 있다. ‘구직 급여’다. 고용보험 가입 기간에 따라 최소 90일에서 최대 240일까지 받을 수 있다. 1일 4만원으로 최고액이 정해져 있긴 하지만 통상 퇴직 전 평균 임금의 50%를 받는다. 길어야 8개월, 다섯 식구가 그 돈으로 부족함 없이 먹고 산다? 무리다. 실레의 경우를 들어보자.

“제가 받는 실업수당 외에 남편 앞으로 나오는 ‘교육 지원 수당’이 있어요. 집에 수입이 없는데 교육을 받을 경우 제공되는 수당이죠. 아이가 있으면 또 돈이 좀더 붙어요. 그거랑, 은행에서 생활비용으로 돈을 조금 빌렸어요. 그걸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 살고 있어요. 하하하. 절약하면서 살면 되죠.”

실레의 실업 수당은 월 1만크로네(약 240만원) 정도. 종전 월급의 85%가 조금 안된다. 가장 낮은 단계의 수당이지만 한국의 최대 실업수당 수급액보다 2배 이상 많다. 남편의 교육 지원 수당은 월 3500~5000크로네다. 원화로 85만~120만원가량이다.

덴마크의 실업수당 수급 기간은 4년이다. 저소득층이 일할 때 받을 수 있는 돈의 90%에 이른다. 하루 지급상한선 적용으로 고소득자의 경우 50% 정도. 평균적으로는 60% 정도다. 실레는 “나는 짧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고, 일한 기간이 길지 않아 제일 낮은 단계의 수당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요컨대 실레는 ‘수당’만으로 아이 셋을 키우며 살고 있는 것이다.


실업요? 다시 취직하면 되죠

실레는 지난 1999년 첫째 아이를 낳고, 2000년 의상실에서 디자이너 보조로 일했다. 2002년엔 한 의류업체 매장에서 점원으로 일했다. 그러나 경기불황으로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자 1년 만에 해고됐다. 이런 갑작스러운 해고는 한국에서라면 청천벽력과 같은 상황이다. 실레는 달랐다.

“인생의 좌절이라든지 하는 걱정은 전혀 안했어요. 실업보험기금연합(AK-Samvirke)에 가입이 돼 있거든요. 가입한 지 1년만 되면 수당을 받을 수 있죠. 단지 내가 어느 정도의 수당을 받을지가 불확실해서 그건 신경이 쓰였어요. 직장이야 또 구하면 되니까.”

실레가 갖고 있는 기술은 2년간 받은 직업교육으로 얻은 재단 기술뿐이었다. 학력도 변변찮다. 고등학교는 1년반 다니다 중퇴했고, 이후 직업교육을 2년간 받은 것이 전부다. 고등학교 중퇴 후 치과 보조원 일과 연극 프로젝트 활동을 하긴 했다. 내세울 만한 경력은 아니다. 그건 물론 한국 기준에서 하는 얘기다. 학벌이나 높은 학점, 공인영어성적, 인턴십 경력 등 ‘스펙’은 그에게 중요치 않아 보였다. 실레는 초조해 하지 않았다. 수당받은뒤 열심히 구직…정부선 직업훈련 권장
기술 취업생 원하지만 안되면 교육대학서 공부

당시 실레는 기존 월급의 80% 정도를 실업수당으로 받았다. 수당으로 생활하면서 구직 활동을 했다. 고용센터에 이력서를 계속 보냈다. 의상 디자인 회사들은 경기에 예민한 편이라, 수월친 않았다. 고용센터에선 최대한 실레에게 맞는 직업을 찾아줬다. 고용센터에서 제공하는 짧은 코스의 성인 직업 기본 교육도 받았다. 그렇게 5개월 만인 2003년 4월 유치원 보조교사로 취직할 수 있었다.

“아이를 좋아해서 저에게 잘 맞는 일이었어요. 그러나 중퇴한 고등학교를 다시 다니려고 그만두게 됐죠.”

이후엔 일을 하지 못했다. 2004년 다 마치지 못한 고등학교를 다시 다녔다. 2006년에 둘째를, 지난해 6월엔 셋째를 낳았다. 지난 3월에는 결혼식도 했다. 한숨 돌린 올해 본격적으로 다시 일자리를 찾고 있다.

“너무 오랫동안 나라에서 수당만 받으면서 살았어요. 이제 일을 해야죠. 얼른 직업을 찾으려고 이력서를 일주일에 4개 이상씩 고용센터에 내고 있어요.”

아이를 낳으면 양육수당을 받았고, 양육수당 기간이 끝나면 실업수당을 받았다. 그렇게 수당만으로 살아온 지 5년이다. 한국에서라면 ‘낙오자’ 취급받기 십상이다.

5년째 구직 중이라는 한국의 고모씨(36)는 말했다. “이미 나이 때문에 웬만한 기업에선 저를 뽑지 않아요. 집에서도 ‘쟤는 틀렸다’고 포기한 눈치고요. 결혼도 못 했죠. 처음엔 좀더 좋은 직장을 구하려고 일을 그만뒀어요. 이제는 아무 데나 가려고 하는데도 쉽지가 않네요. 과연 제가 원하는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요? 별로 희망적이진 않아요.” 그는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배제됐다고 느낀다”고 했다.



일주일에 4개 이상의 이력서

실업급여만 받고도 살 수 있다면 누가 다시 취업을 하려 할까? 실레가 말했다.

“그런 부분도 없지 않죠. 그렇지만 일단 실업수당을 받기 시작하면 열심히 구직을 해야 해요. 고용센터와 실업보험기금연합에 직업을 활발히 찾고 있다는 증거를 계속 보여줘야 하죠. 안 그러면 심사에 의해 실업수당을 받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는 서랍장에서 종이를 하나 꺼내 왔다. ‘실업 카드’라고 써 있다. 카드에는 항목별로 ‘이력서 내역’ ‘실업기간’ 등을 표시하도록 돼 있다.

“이거요? 제가 어떻게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지 기록하는 카드예요. 고용센터에 4~5주에 한 번씩 들고가서 확인을 받아야 하죠.”

실레는 양육수당 기간이 끝난 후, 실업보험기금에 구직등록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력서를 ‘이력서 은행(CV Bank)’에 내놨다. 이 이력서는 고용센터와 공유하게 된다. 고용센터는 고용부 산하의 직업소개상담기관. 지자체 단위로 광범하게 퍼져있다. 고용센터는 그때부터 실레의 취업알선계획을 시작한다. 해고가 자유로운 대신 재취업을 쉽게 해 노동자를 보호하는, 덴마크의 적극적 노동정책이다.

“이력서를 내놓으면 고용센터에서 연락이 와요. ‘이런 이런 일자리가 있는데, 가서 면접을 한 번 보라’ 하는 식으로요. 보통 임금수준이나 출퇴근 거리, 개인의 특정 기술 같은 걸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소개해 줘요.”


한국에도 고용지원센터가 있다. 그러나 덴마크 같지는 않다. 취업 상담은 보통 3~5분이면 끝난다. 본인의 이력을 써 내고 담당자로부터 구인 업체를 소개받는 게 전부다. 2006년 정부에서 제공하는 고용지원센터와 워크넷 서비스를 통한 취업은 전체의 3.7%에 불과했다. 직원 1명이 담당하는 경제활동인구도 8199명에 이르고 있다. 박명수 연구개발본부장은 지난 4월 고용정보원 심포지엄에서 “적합한 인력과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구인업체와 구직자 양쪽에서 모두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레는 요즘 하루 종일 노트북 앞에 앉아 일할 만한 곳을 찾는다. 아이를 돌보는 것 외엔 구직 활동이 하는 일의 전부다. 일주일에 4개 이상의 이력서를 넣고 있다. 그게 규정이다. 적어도 3개월에 한 번씩은 고용센터의 담당 상담자를 만나야 한다. 몇 개의 이력서를 넣었는지, 어디 어디 면접을 봤는지부터 개인의 신상에 관한 문제까지 자세히 이야기한다. 매주 고용센터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자신이 ‘구직 상태’라는 확인도 해야 한다.

식탁에 앉아 있던 실레가 일어섰다. “아이 좀 보고 올게요.” 그는 곧 잠에서 막 깬 아이를 안고 들어왔다. 재단 기술을 이용해 직접 만든 옷을 입혀놨다. 아이는 일자리가 생기는 대로 근처 공공 탁아소에 맡길 생각이다. 이미 탁아소 등록도 마친 상태다.

“직업을 구하는 동안엔 여행 같은 것은 못 가죠. 정기적으로 증명해야 할 것도 많고, 직업이 구해지면 바로 가서 일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고용센터에선 취업알선을 하기 전에 미리 아이들 보낼 탁아소, 유치원 등이 모두 갖춰져 있는지 확인해요.”

처음부터 실직자들을 압박하는 건 아니다. 30~60세 실직자들의 경우 9개월 동안은 조건 없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단, 실업급여 수급기간 4년 중 첫 1년을 제외한 나머지 3년은 정부에서 제공하는 직업훈련 등 적극적인 재취업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 재취업 노력을 하지 않으려는 이들이 많아질 것을 우려한 정책이다.

실레는 아직 실업급여를 신청한 지 일주일 정도밖에 안 됐다. 크게 압력을 받는 기간은 아니다. 그러나 실레는 더욱 적극적으로 정부의 직업알선이나 훈련에 참여하려 하고 있다. 얼른 일하고 싶기 때문이다.



취업으로 향하는 수많은 선택지

실레는 전형적인 미숙련 노동자다. 재단 기술이 있긴 하다. 하지만 지금은 낡은 기술이다. 필요로 하는 곳이 많지 않다.

“요즘은 다 기계화돼서 제가 예전에 하던 그런 일들이 없어지는 추세예요.”

그럼 어떤 일을 찾고 있을까.

“그렇다고 무조건 슈퍼마켓 캐시어, 식당 서빙 같은 미숙련 직업만 찾진 않아요. 그런 일이라면 벌써 취업이 됐겠죠. 저에게 직업 경험으로 의미가 있는 일들을 찾고 있어요. 유치원 보조교사나 부티크 점원 같은 일들이오. 방송국의 조사 보조원 같은 일도 시도해보고 있어요.”

그가 생각하는 최선은 실습생으로 기업에 들어가는 것이다. 거기서 월급을 받으면서 일도 배우고 싶다. 그렇게 경력이 쌓이다 보면 승진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며칠 전엔 한 디자이너 브랜드 매장의 점원으로 면접을 봤다. “실습생으로 시작하는 사람 치고 나이가 너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결국 떨어졌다.

“계속 해 볼 거예요. 그래도 안 되면 기술교육대학에서 교육을 받을 겁니다. 교육이오? 무료죠. 고용센터와 얘기가 잘되면 실업수당을 받으면서 교육받을 수 있어요. 방법은 많아요.”

재취업 노력도 중요하지만 직업교육·훈련은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바다. 실업수당을 받으면서 교육도 받을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실레는 기업실습생으로 취업이 안 되면 기술교육대학(TEC)에서 새로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안 되면 옷을 다루는 새로운 기술을 배워볼까 해요. 신소재 기술도 있을 거고, 마케팅 분야도 있을 거예요. 특히 재단사처럼 사양길에 든 기술자의 경우 다른 교육을 받도록 권장하는 편이죠.”

덴마크 최대 고용지원센터의 옌스 시베르슨은 “실직자들을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로 보낼 필요가 있다”며 “실직자들과 상담할 때 주로 그런 영역의 기술을 훈련받게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유도하는 편”이라고 말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덴마크에는 TEC와 같이 정부에서 운영하는 직업훈련·교육 기관이 있는가 하면, 기업에서의 실습 프로그램도 있다. 또 기업에 대한 임금보조를 통해 채용을 장려하기도 한다. 주로 장기 실업자가 대상이다. 공기업에서 실업자를 채용하면 1년간 실업급여 상당의 임금을 보조해준다. 민간기업의 경우엔 기업과의 계약에 따라 임금의 약 50% 정도를 보조한다. 아니면 ‘직장순환제’와 같은 프로그램도 있다. 육아·병가·교육 휴가 등 유급휴가로 잠시 자리를 비운 노동자의 자리에 단기로 실업자들을 채용하는 제도다. 실레에겐 취업으로 향하는 수많은 선택지가 있다.

실레는 불안해 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 시작할 삶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는 “이제 낳을 아이도 다 낳았고, 취업을 위한 마음의 준비도 확실히 됐다”며 웃었다.

“전에도 제가 하고 싶은 직업은 항상 찾았어요. 지금도 꼭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또 알아요? 이 기사가 나올 때쯤 제가 벌써 취직해서 일하고 있을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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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스테드(덴마크) | 글·사진 이로사기자 ro@kyunghyang.com

ㆍ4부 -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1) 일의 즐거움, 노동의 존엄성
ㆍ덴마크 도축공, “땀 흘린 만큼 벌고 가족과의 삶 즐겨요”

5월29일 덴마크 링스테드시. ‘데니시 크라운’ 도축장 출구가 갑자기 부산해졌다. 오후 2시55분이었다. “무슨 일이 났나요?” 기자가 물었다. 도축공 초븐 렝스(43)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퇴근시간이잖아요.”

도축장 안쪽 인부들은 손질된 돼지고기를 정리하며 바닥을 청소하고 있었다. “자. 집에들 가자고! 휴일을 즐겨야지!” 퇴근 준비를 마친 초븐이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월요일은 ‘예수승천일’로 공휴일이다. 긴 연휴가 시작되는 금요일 퇴근시간이다. 초븐을 따라 공장 밖으로 나왔다. 100여명의 도축 노동자들이 출퇴근 카드를 찍으며 주차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주차장은 차량 2000여대는 족히 세울 만큼 넓었다. 중동·동유럽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아직 해는 하늘 한 가운데 있었다.


같은 시간 한국의 건설노동자 박상익씨(50·가명)는 서울 중구의 한 주상복합아파트 건설현장에 있었다. 가장 힘든 시간이다. 꼬박 8시간째다. 아직 퇴근까지는 3시간 남짓 남았다. 아침 체조시간은 오전 6시50분인데 이 때까지 도착하려면 적어도 5시에는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점심 식사 후 쉴 겨를도 없이 일하다 보니 졸음이 몰려왔다. 현장 한쪽에서 잠시 한숨 돌리려 했다. 그러나 이내 재촉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이 박씨, 밥값은 해야지.” 퇴근시간인 오후 6시. 아직 박씨가 맡은 층의 보일러 배관 마무리 작업이 조금 남았다. 현장 관리자는 “웬만하면 빨리 진행하자”고 했다. 다 마치고 나니 오후 7시. 머리와 옷에 쌓인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옷을 갈아입었다. “술이나 한잔 하지.” 그는 동료들과 근처 포장마차로 발걸음을 옮겼다.





#“힘든 일한 만큼 보상받아야죠 ”

초븐은 도축공이다. 한국의 박씨와 같은 육체 노동자다. 경력도 비슷하다. 박씨는 1991년부터 18년째 건설현장 배관공으로 일하고 있다. 초븐은 93년부터 16년 동안 돼지고기 가공업체 ‘데니시 크라운’의 도축장에서 일했다. 입사 이후 10여년간 도축된 돼지의 배를 갈라 내장을 분리하는 일만 했다. 경력이 쌓여 최근 5년 동안 도축장 기계 관리직으로 일하고 있다. 육체 노동자라 해도 초븐과 박씨의 노동조건과 삶의 질은 다르다.


초븐이 살고 있는 덴마크의 연간 근로시간은 1577시간(2007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최하위권이다. 한국보다 700시간 이상 짧다. 빈곤율은 0.05로 30개국 중 가장 낮고, 지니계수는 0.23으로 빈부격차가 가장 적다. 출산율은 2006년 기준 1.85명으로 유럽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삶에 대한 만족도는 76.8점으로 30개국 중 5위이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 노동자들의 연간 근로시간은 2316시간이다. 2006년에 이어 부동의 1위를 지켰다. 2위인 헝가리(1986시간)와 300시간 이상의 격차다. OECD 국가들의 평균 근로시간 1768시간을 한참 웃돈다. 가난한 사람은 30개국 중 6번째로 많다. 빈곤율은 0.15. OECD 30개국 중 6위다.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18.7명으로 3위. 아이 키우기가 힘들어 합계 출산율은 2006년 기준 1.13명. 2년 연속 30개국 중 최하위다. 여가 시간은 주당 30.7시간으로 세계 평균(39.2시간)을 밑돈다. 평균 수면 시간은 하루 470분(7.8시간)으로 잠을 가장 적게 잔다.

삶에 대한 만족도 조사에서 한국은 100점 만점에 23.1점으로 OECD 30개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인 24위이다. 한해 동안 겪은 고통, 우울, 슬픔 등을 나타내는 부정적인 경험 수치도 61.5점으로 OECD 평균인 35.6점보다 훨씬 높다. 요컨대 한국은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적게 자지만, 가난한 사람은 많고 자살률은 높은 병든 사회일
뿐 아니라 삶의 질은 최하 수준의 행복하지 않은 사회이다.


지난달 11일 만난 박씨는 땀을 훔치며 말했다. “요즘 과연 일을 계속 해야 할지 망설여져요.” 일이 고된 건 말할 수 없지만, 문제는 그렇게 고된 일을 하는데도 생활 유지가 어렵다는 점이다.

“건설 현장에 20년 있었지만 변한 게 없어요. 사람들이 ‘노가다’ ‘날품팔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건 변하지 않았어요. 거기다 임금은 안 오르고, 물가는 오르고. 뭘 먹고 살 수도 없는데 자식들 가르치고 이런 건 엄두도 못 내는 겁니다.”


박씨는 일용직이다. 아침 7시에 일을 시작해 오후 6시에 끝난다. 평균 10시간, 주 60시간 이상 일을 한다. 공사기간이 촉박해지면 일요일도 없다. 야간·연장근무도 다반사다. 수당을 제대로 쳐 주는 때는 거의 없다. 명절이나 공휴일엔 오히려 일거리만 늘어난다. “임금 체불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죠.” 그렇게 고생하면 한 달에 150만~180만원 정도 번다. 고 3인 아들과 아내의 생활비와 학비 대기에도 벅차다. 여가나 노후 준비는 생각도 할 수 없다. 박씨의 시간과 몸값은 이렇게 싸다. 삶의 절반 넘게 오롯이 일에 투자했는데도 사는 모양이 이렇다.

그러나 초븐은 “하는 일에 만족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 “너무 너무 만족해요. 무엇보다 급여에 만족합니다. 일한 양만큼 정확히 보상을 받기 때문입니다.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보상도 더 받는 것이죠.”

초븐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40시간을 일한다. 오전 7시에 출근해서 오후 3시에 퇴근. 박씨와 출근 시간은 같지만 3시간 먼저 퇴근한다. 물론 주말과 공휴일엔 쉰다. 그는 “데니시 크라운은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실시하고 있다”며 “오전 6시에 출근해서 낮 2시에 퇴근하는 사람도 있고, 야간 근무를 하는 이들도 있다. 공정에 따라 주 37~40시간으로 조금씩 다르지만 받는 돈은 일한 시간만큼 동일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일해서 초븐은 세전 월 3만 크로네를 번다. 원화로 700만원 정도다. 박씨에 비해 노동시간은 주 20시간 이상 적은 반면 급여는 4~4.5배 많다. 초븐은 수입의 약 40%가량을 세금으로 내지만 연금·의료·교육·보육 등을 모두 국가 공공서비스로 해결해 주기 때문에 불만은 없다고 했다.


#“너무 일 많이 하면 조사받아요”

븐은 깔끔한 하늘색 작업복과 흰 위생모, 나무로 만들어진 딱딱한 위생화 차림이었다. “도축장을 좀 둘러 보자”는 요구에 흔쾌히 앞장섰다. 그가 바람을 가를 때마다 돼지 생육(生肉) 냄새가 비릿했다.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선 외부인도 일회용 위생점프 슈트와 모자, 신발을 착용해야 한다. 출입구에서 3단계 자동 소독장치에 손과 발을 소독했다.

도축장 내부는 어둡지도, 축축하지도 않았다. 핏덩이가 말라붙은 낡은 갈고리도, 혐오스럽게 진동하는 피비린내도 없었다. 공산품을 생산하는 신설 공장 분위기에 가까웠다. 현대적이고 쾌적했다. 줄줄이 기계에 매달린 도축된 돼지들은 깔끔했다. 각 공정에 따라 점차 ‘돼지고기’의 형태를 띄어가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초븐과 같은 복장으로 일렬로 늘어선 돼지들 사이에 서서 배를 가르거나, 뼈를 분리하거나, 부위별로 고기를 잘랐다. 초븐은 내장을 분리하는 파트 앞에 서더니 “이게 내가 10년간 하던 일”이라며 포즈를 취했다.

돼지고기에서 빠진 핏물이 흘러 내려가는 수로 옆으로 노란 띠를 팔뚝에 두른 이들이 눈에 띄었다. ‘안전관리감독관’이다. 1200여명이 일 하는 이 공장에만 17명이 있다. 직원들의 안전 상태를 점검한다. 그 중 한 명인 헨릭 베렌디가 말했다. “현재 안전사고는 1년에 50건 정도뿐이에요. 처음에 노조의 직업환경 분야 담당팀이 문제제기를 했죠. 그래서 고용주와 함께 해결책을 찾아 지난 5년 동안 80%를 줄인 결과예요.”

그리고 그는 말했다. “칼로 인한 사고는 많이 줄었어요. 최근엔 소음 관리를 위해 현황 파악 조사를 했습니다. 소음 감소와 직원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사측과 함께 고민 중입니다.”

데니시 크라운 도축장에서 재해가 발생하면 산재보험 적용은 물론 나머지 치료비 전액도 회사에서 부담한다. 치료 기간엔 월급 전액이 지급된다. ‘과잉노동’ 금지 규정도 엄격하다. 헨릭은 말했다. “1시간 동안 고기 자르는 양이 정해져 있어요. 과도하게 어기면 직장안전관리청에 보고를 하게 돼 있고, 경찰·직장안전관리청에서 나와 조사를 하지요.”


박씨는 지난 1996년의 사고를 떠올렸다. 디디고 있던 파이프의 볼트가 빠지면서 3층 높이에서 추락했다. 코가 부러지고 가슴에 타박상을 입었다. 회사는 산재 처리를 거부했다. 직접처리(공상처리)를 고집했다. 산재 처리를 많이 하면 회사의 산재보험료율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산재 다발업체’ 이미지는 공사 입찰에 지장을 준다. 때문에 많은 국내 업체들이 산재 처리를 꺼린다. 이건 위법이다.

“업체와 한 달 동안 싸워서 겨우 산재로 60% 보상만 받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회사가 하자는 대로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건설 현장에서 1년에 700명 이상이 죽어요. 매일 2~3명이 죽는 겁니다. 사고가 아니라 죽는 게 그 정도입니다.”

작업 환경은 열악하다. “바닥과 천장엔 암면 가루투성이입니다. 환기가 안돼요. 밀폐돼 있거든요. 일하다보면 숨쉬기가 힘들어요. 목이 칼칼해서…. 보안경을 지급하긴 하죠. 며칠 쓰고 나면 하얗게 돼서 보이질 않아요. 교체해달라고 해봐야 안 들어줘요. 샤워시설 같은 게 어딨대요.”

박씨는 이어 말했다. “잠깐 짬이 나 쉬기만 해도 눈치를 줘요. 그러다 찍혀서 ‘나가라’고 하면 나가는 수밖에요. 회사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안중에도 없겠죠.” 그는 스스로를 ‘파리 목숨’이라고 말했다.



#“도축장 일한다고 무시당하진 않아요”

초븐과 박씨의 차이는 육체 노동자에 대한 사회 인식에서도 나타난다. 박씨는 아들이 가져온 가정환경조사서 직업란에 ‘건설업’이라고 쓰곤 했다. “건설업이라고 얼버무리고 마는 거죠. ‘너희 아버지 노가다 하고 다니냐’ 하면 애 한테 창피스러운 일이잖아요. 건설현장에서 배관 설비 일을 한다고 떳떳하게 얘기를 못하는 거예요.” 박씨는 덧붙였다. “나도 현장에선 내 기술에 자부심이 있어요. 하지만 아들은 나같이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반면 도축공인 초븐은 자신의 직업에 대해 단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한국에선 종종 ‘백정’이란 말로 폄훼되곤 하는 직업이다. 도축공으로 살면서 차별적 인식 탓에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을까. 그는 그런 질문 자체에 놀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똑같이 땀흘려 일하는데, 아니요, 아니요 그럴 순 없습니다. 물론 여기서도 의사나 교수는 존경을 받습니다. 하지만 도축장에서 일한다고 남에게 무시당하진 않아요. 저는 여기서 15년 이상 일했습니다. 도축 분야에서는 고등교육을 받은 어느 누구보다 전문가예요.”

초븐은 대학에 가지 않았다. 고등학교에도 안 갔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받은 교육은 9년간의 초등의무교육이 전부다.

“초등교육을 마치고 농업에 종사하려고 농업 직업교육을 받긴 했죠. 여기선 월급을 받으면서 일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삶에 크게 부족한 게 없었어요. 더 교육받을 생각은 안 해봤는데…. 언제든 원하면 필요한 분야를 찾아서 배우면 됩니다. 교육은 언제나 무료이거나 저렴하고 평생교육체제라 나이에 관계 없이 배울 수 있어요.”

덴마크의 성인교육 참여율은 58.5%에 이른다. 26.7%인 한국의 두 배 이상이다. 언제나 교육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 대학 진학에 대한 강박도 없다. 9~10년의 의무교육 이수 이후 인문계 고등학교 혹은 직업학교에 진학하고 이 중 일부만이 대학에 진학한다. 코펜하겐 직업훈련센터 TEC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는 예트 노셀은 말했다. “직장에 취업할 생각이면 직업학교를 선택하는 게 흔한 일입니다. 9학년 학생의 절반 정도가 직업학교에 가죠. 대학은 정말 학문적으로 ‘공부’하려고 가는 곳이에요.”


#“퇴근하면 가족과 함께 시간 보내야죠”

오후 3시 초븐이 2인승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집에 가서 더 이야기하죠.” 기자는 택시를 잡아 탔다. 선글라스를 낀 젊은 택시기사는 “여기는 인건비가 워낙 비싸 택시비도 비싸다”고 설명했다. 초븐의 집까지 택시 요금은 600크로네(약 14만원)가량 나왔다. 과연 고임금의 나라였다. 초븐의 집은 링스테드시 카라 벡스미네의 한적한 농촌의 주택가에 위치해 있다. 회사로부터 35㎞가량 떨어져 있다. 결혼한 지 4년 만에 350만크로네(약 8억2000만원)짜리 집을 30년 장기융자로 마련했다. 덴마크에선 보통 30년간 저리로 빌려주는 은행 주택 융자로 주택을 구입한다고 했다. 아내는 파트타임 간호사, 아들은 셋이다. 차고엔 초븐이 타고온 2인승 차량 외에 한 대가 더 있었다. “한 대는 가족을 위한 차죠.” 잔디 정원은 넓었다. 아이들을 위한 미끄럼틀과 그네, 시소가 놓여 있다. 함께 간 가이드는 “이 정도면 덴마크에서도 무척 좋은 집에 속한다”고 귀띔했다.

이미 귀가한 아내와 아이들이 그를 맞았다. 오후 3시40분이었다. 아내 메톨리는 식탁에 앉아 동료에게 줄 카드를 쓰고 있었다. 저녁 땐 동료의 송별 파티를 하러 나간다고 했다.

“매일 이 시간이면 초븐이 회사에서 돌아와요. 퇴근 후에요? 가족과 함께해야죠. 저녁을 먹으면서 오늘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고, 아이들과 놀고, TV를 보거나 책도 읽고 그런 평범한 일상이요. 오늘처럼 외출하는 경우가 자주 있는 편은 아니죠.” 메톨리가 말했다.

초븐과 아이들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커피와 데니시 페스트리가 접시 위에 놓였다. 초븐은 기자와 공장에서 있었던 일을 늘어놓았고, 메톨리는 병원에 들어온 어린 환자 얘기를 했다. 9살 맏이는 오늘 학교에서 배웠는지 ‘덴마크 왕정’에 대해 줄줄이 설명했다. 사진에 담기 위해 퇴근 후 지내는 평소 모습을 보여 달라고 했더니, 9살 꼬마가 “이런 게 평소 모습인데요?” 했다.

주말엔 정원을 가꾸거나 친구 가족들과 모여서 가든 파티를 한다. “퇴근 후 직원들과 회식 같은 건 안 하나요”라고 물었더니 회식이 뭐냐고 되묻는다. “그런 건 없어요. 음…1년에 한 번 크리스마스 런치 정도? 하하하. 퇴근하면 모두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집에 갑니다. 남아서 술 같은 건 잘 안 마셔요.”

메톨리가 외출 준비를 마치고 나왔다. 이날 저녁시간의 아이들 돌보기는 초븐의 몫이었다. 식사를 준비하는 초븐의 손길이 자연스러웠다.


박씨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산다. 1990년 결혼한 이듬해에 장만한 33평짜리 다가구 연립주택이다. 낡은 집이지만 비용 문제 때문에 이사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 퇴근 후엔 대부분 잠을 잔다.

“새벽에 일 나가야 하고 일 하면서도 잘 쉬지 못하니 많이 피곤하죠. 일요일엔 등산을 가기도 하지만 거의 잠을 잡니다. 여가시간은 생각하기 힘들어요. 또 비가 오거나 자재가 안 들어오면 그 날 일은 허탕이잖아요? 그럴 땐 현장 동료들과 낮부터 술 한잔 하죠. 그게 아니라도 현장에 있으면 기분 나쁜 일이 많습니다. 임금을 떼이는 경우도 많고 업체 쪽 젊은 대리들이 막 대하거나, 자재 안 들어온 것에 대한 책임을 일 하는 사람들에게 전가하거나…. 그러면 또 그거 풀려고 술 마시고 그러죠.”

박씨의 아내는 이번 달부터 ‘희망근로 프로젝트’를 통해 일을 시작했다. 두 사람의 소득을 합하면 190만~220만원 정도. 고3인 아들을 학원에 보낼 여유는 없다. 생활비, 학비 대기에도 빠듯하다.

“아이를 한 번도 학원에 못 보내줬습니다. 아이도 나름대로 대학은 가야지, 학원은 안 보내주지, 답답하죠. 부모 입장에서 자식이 원하면 다 해주고 싶은데 미안한 마음이 많아요. 그래서 이해 좀 해 달라, 그 대신 대학에 들어가면 노력해서 가르치겠다 얘기했어요. 아이도 현실을 아니까 수긍해주더라고요. 고맙게 생각해요.”

저축은 생각지도 못 한다. 노후 대책을 물었다. “건설 현장 들어오기 전에 잠깐 제화 공장 사업을 했어요. 다행히 그때 나랑 집사람, 아들 앞으로 연금 보험을 들어 놓은 게 있어요. 그때 해 놨으니 망정이지. 일단 아이 대학까지 가르치고, 나와서 직장이나 다니면 우리 두 부부가 빠듯하게 생활할 수 있는 정도는 되지 않겠느냐 생각은 하지만, 사실 막막합니다.”


#“저축은 노후 아닌, 휴가 여행 위한 것”

초븐 부부의 총소득은 세전 연 70만크로네(약 1억6300만원)이다. 파트타임 간호사로 일하는 부인과 맞벌이로 어린 아들 셋을 키우지만 크게 힘들지 않다. 질 좋은 공공 보육시설에서 아이를 맡아준다. 비용도 저렴하다. 2살 막내는 공공탁아소에, 5살 둘째는 공공유치원에 맡긴다. 9살 맏이는 학교가 끝나면 학교에서 마련한 방과후교실에 간다.

“세 아이를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은 월 1만크로네(약 230만원) 정도면 충분해요. 보육시설 비용 외엔 아이들 취미생활로 승마, 축구 클럽 등에 보내는 비용이 들 뿐이에요. 학교는 물론 무료이고요. 아플 때도 병원이 무료니까 따로 돈 드는 건 없죠. 학원요? 따로 학교 공부를 위해 보내는 학원 같은 건 없는데요.”

노후를 위한 저축도 필요 없다. 연금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저축은 “휴가 때 여행가려고 가끔 하는 단기 저축 정도”와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자기 기반을 시작하는 데 도움을 주려고 들어둔 어린이 저축”이 전부다. 버는 돈은 모두 현재의 윤택한 삶을 위해 쓰는 셈이다.

“지출은 아무래도 세금이 제일 많죠. 그 외엔 주택 융자 상환으로 내는 돈이 좀 많아요. 최근 몇 년 사이 집값 폭등으로 상환액이 늘어나서 예전보다 좀더 부담스럽죠. 그래도 연금이나 애들 보육·교육·의료 등 나머지는 세금만 내면 국가에서 다 해 주니까. 개인적으로 보험을 든 건 개인 생명보험 정도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부부 중 한 명이 죽어도 지금과 똑같은 수준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들어둔 거예요.”


#“도대체 6시 이후에 무슨 일을 하나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초븐은 기자에게 ‘당신은 얼마나 일하고 얼마를 버는가’를 물었다. 대답을 듣더니 깜짝 놀란다. “아니, 오후 6시 이후에 도대체 무슨 할 일이 있어요?”

초븐은 하루 8시간 이상 일하지 않는다. 퇴근은 이른 오후다. 오후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초븐에게 최고의 가치는 ‘가족과의 삶’이다. 가족과의 시간을 즐긴다. 자녀 교육이나 보육·노후 때문에 결코 현재를 희생하지도 않고, 그럴 이유도 없다.

그러나 한국 박씨의 삶은 너무 피곤하다. 하루 10시간 이상 일한다. 그렇게 일해도 저축은커녕 아이 학원 보낼 여유조차 없다. 여가는 낯선 단어다. 퇴근 후엔 부족한 잠 자기에 바쁘다. 세 식구가 저녁 식탁에 모여 대화를 나눈 것이 언제였는지도 까마득하다.

초븐이 말했다.

“저는 로또에 당첨되어도 일을 그만둘 생각이 없습니다. 저에게 직장은 돈을 버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큰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니까요. 고용주와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저는 고용주를 문제가 생기면 함께 해결책을 찾는 파트너 관계라고 생각해요. 회사에서도 저를 소모품으로 여긴다고 느끼지 않아요. 그렇다고 더 오래 일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 가족과 보낼 시간이 줄고 내 삶의 질이 떨어진단 걸 잘 알아요. 전, 지금 아주 만족합니다.”



◇ 특별취재팀

서의동 경제부 차장·조찬제 국제부 차장·김재중 문화부 기자·장관순·홍진수·송윤경 정치부 기자·이로사·유희진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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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ㆍ3부 - 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 (7) 인간성의 파괴

신자유주의 시대라 함은 시장의 시대 또는 경쟁의 시대를 뜻한다. 시장의 시대에는 경쟁력 제고가 모든 사회적 제도와 개인적 삶의 최고 목표가 된다.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을 물론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경쟁력의 제고는 사회에 제공되는 상품 및 서비스 질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쟁은 결론을 미리 갖고 있지 않다. 경쟁 게임의 마지막에 가서야 승자가 나타나듯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지난 20세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체제 대립에서 자본주의가 우위를 보인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자본주의에 내재된 경쟁 메커니즘의 덕분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경쟁의 그늘이다. 사회는 시장만으로 이뤄져 있지 않다. 국가와 시민사회는 사회의 또 다른 영역이다. 이 국가와 시민사회 영역은 경쟁이 아니라 권력과 연대의 조정 원리에 의해 생산·재생산된다. 신자유주의가 갖는 문제는 경쟁의 원리가 과도해지면서 그것이 권력의 원리를 대체하며 연대의 원리를 훼손한다는 점에 있다. 다시 말해 사회 제도의 수준에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끝없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이뤄지며, 생활세계의 차원에서 대다수 시민들이 경쟁력 강화에 헌신하게 된다. 경쟁의 강화가 시민사회의 연대적 자원을 고갈시킴으로써 사회 전체를 황폐화할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것은 신자유주의가 갖는 또 하나의 딜레마다.


뉴요커의 미국, 월마트 노동자의 미국

지난해 9월 금융위기로 촉발돼 현재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 모델은 바로 이 신자유주의를 대표해 왔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가 융성하기 시작한 이래 미국식 신자유주의 모델에 대한 평가는 꾸준히 진행돼 왔다.

먼저 이념적인 평가가 아니라 실제적인 통계를 보자. 부시 정부가 집권하던 2006년 미국 주간지 ‘퍼레이드’는 ‘통계로 본 미국의 명암’을 소개해 관심을 끈 바 있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국내총생산(GDP), 군사비 지출, 석유 소비, 노벨상 수상자에서 세계 1위인 동시에 국가채무, 무역적자, 의료비 지출, 교도소 수감률에서도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정치·경제·군사력의 측면에서 미국은 분명 세계 최강국이다. 하지만 의료·환경·안전 등 삶의 질 영역에서는 더 이상 선진국이라고 보기 어렵다. 소득불평등 확대는 이를 무엇보다 증거한다. 한 자료에 따르면, 1930년대에는 국민의 50%가, 60년대에는 30%가 전체 국가의 부를 통제했지만, 최근에는 국민의 10%가 국부(國富)를 좌지우지한다.


오늘날 미국은 ‘하나의 국가’로 존재하지 않는다. 공화당의 미국과 민주당의 미국, 워런 버핏의 미국과 노엄 촘스키의 미국, 월 스트리트를 활보하는 여피 뉴요커의 미국과 시간당 8달러 급여를 받는 월마트 노동자의 미국이 공존하는 것이 미국 사회의 현주소다.


주목해야 할 것은 신자유주의가 바로 이런 ‘두 개의 미국’을 강화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인간성의 상실이 진행돼 왔다는 점이다. 이에 연관해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은 <인격의 부식>(The Corrosion of Character, 우리말로는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로 번역돼 있음)에서 미국식 자본주의가 문화와 인성에 결코 작지 않은 영향을 미쳐 왔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신자유주의가 강화되면서 효율적인 미래지향적 인간형만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요란한 선전이 이뤄져 왔지만, 정작 대다수 중산층은 자신의 삶이 부초처럼 정처 없이 표류한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최근 세넷은 <새로운 자본주의의 문화>(The Culture of New Capitalism, 우리말로는 ‘뉴캐피털리즘’으로 번역돼 있음)에서 신자유주의적 문화의 양면성을 다시 한 번 부각시킨다. 그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는 공격적으로 사업을 벌이고 기꺼이 경쟁에 뛰어들게 하는 능력주의를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경쟁에서 탈락할지도 모른다는 ‘퇴출의 공포’, 주어진 현실을 체념한 채 그냥 받아들이는 수동적 심리상태 또는 자유의 상실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세넷이 제시하는 이런 문화적 풍경이야말로 다름 아닌 미국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자화상이다. 신자유주의의 대변자들은 자신의 자유롭고 유동적인 삶이 미래의 생활양식이라고 대중에게 속삭이지만 기실 그것은 소수의 그룹에만 허용된 것이다. 정작 다수의 시민은 인간적인 삶을 자유롭게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공동체적 연대로부터 갈수록 멀어지는 소외를 크게 경험하고 있다.


경쟁에 의한, 경쟁을 위한, 경쟁의 한국사회

이런 미국의 풍경은 다름 아닌 우리 사회의 현실이기도 하다. 소수의 승자들 뒤편에 다수의 패자들이 놓인 ‘20 대 80의 사회’가 강화되면서 ‘경쟁에 의한, 경쟁을 위한, 경쟁의 사회’가 새로운 문화적 코드로 자리잡아 왔다. 돌아보면 산업화 시대에는 국가에 의한 ‘시민사회의 식민화’가 문제였다면, 오늘날 세계화 시대에는 시장에 의한 시민사회의 식민화가 문제다. 경쟁력을 갖춘 사회적 강자들은 전 지구를 무대로 삶의 여유를 누리고 있지만, 다수의 사회적 약자들은 삶 전체를 신자유주의가 강제하는 경쟁력 증진에 헌신해야 한다. 일상화된 구조조정에 따른 고용 불안, 자녀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사교육비 증가, 변화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무엇이든 배워야 한다는 적응 압박 등은 시민사회 내 까닭 모를 불안감 또는 열패감을 안겨주고 있다. 이른바 대박주의, 영웅주의의 등장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경쟁의 사다리를 단숨에 올라설 수 있는 대박에의 꿈, 곤궁한 현실을 일거에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영웅에의 기대가 일상 문화의 또 하나의 코드를 이루고 있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 가야 할 직장이 없어도 빼곡히 스펙을 늘려야 하는 청년세대,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퇴출의 불안을 안고 있는 30대, 그리고 마흔이 넘어서도 영어학원 문턱을 들락거려야 하는 장년세대의 삶은 바로 우리 문화의 현주소를,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인간적인 삶의 상실을 여과없이 증거하고 있다. 이런 현실이 과연 우리 사회가 꿈꿔 온 미래였는가를 다시 한 번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신자유주의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략이 동시에 요청된다. 먼저 신자유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적 발전모델이 모색돼야 한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경쟁의 원리, 다시 말해 시장의 원리를 어떻게 적절히 제어할 것인가에 있다. 시장의 원리만이 강조될 경우 ‘승자 독식의 사회’가 강화되며, 바로 이 점에서 시장의 원리가 갖는 장점은 살리되, 그 단점을 극소화하는 새로운 정치적 기획이 요구된다.

시장에 대한 새로운 거버넌스(governance)와 시장의 폐해를 제어할 수 있는 복지제도의 강화가 요청되는 것은 이런 맥락이다. 경쟁이 가져오는 효율성은 높이되, 경쟁이 낳은 불평등을 최소화하는 거버넌스와 사회복지를 새롭게 구축하는 것에 우리 사회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봐야 한다.


경쟁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와 결별해야

더불어 의식적 차원에서 새로운 연대의 문화가 요구된다. 우리사회에서는 시장이 강제하는 경쟁의 원리가 시민사회를 관통하여 ‘이기적 시민사회’를 재생산해 왔다. 이기적 시민사회란 극단적인 자기중심주의를 바탕으로 개인적, 사회적 활동이 무엇보다 개인 및 소속집단을 위한 화폐와 권력을 획득하는 것에 1차적 목표를 두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의 사회를 말한다.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사회에서는 경쟁이 극단화함으로써 사회통합이 약화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해체 경향이 나타난다.

경쟁에 맞설 수 있는 연대의 문화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다시 두 가지 과제가 요구된다. 첫째,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할 수 있는 패자부활전과 이를 위한 문화적 지반이 마련돼야 한다. 타자 또는 다른 집단에 대한 배려의 문화가 부재한다면 제도가 아무리 그럴싸해도 경쟁의 강화를 제어하기는 어렵다.

둘째, 신자유주의 문화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이뤄져야 한다.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가, 인간적인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적 계몽이 부재하는 사회는 기실 죽어 있는 사회다. 사회가 존재하는 이유도 다름 아닌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적 연대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삶을 누리게 하기 위한 것에 있지 않은가.

우리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경쟁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를 정직하게 응시하고 그것과 과감하게 결별하고자 하는 의지 없이는 신자유주의를 결코 극복할 수 없다.


<3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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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순기자·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채플힐|이기수·박경은기자

ㆍ3부 - 6. 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 미국의 빈곤과 양극화
ㆍ상위 10%가 부의 70% 독점
ㆍ죽을때까지 일해도 궁핍한 생활
ㆍ중산층 몰락은 민주주의 위기


실직한 뒤 낡은 모텔에 사는 폴라이트 가족

폴라이트(44) 가족은 지난해 말부터 미국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의 한 1950년대식 허름한 모텔에 살고 있다. 부인(31)과 아들(6)·딸(12)은 가장인 폴라이트가 실직한 뒤 살던 집을 잃고 이렇게 반(半)노숙 중이다. 가구는 금이 가고 칠이 벗겨져 있다. 가재도구는 쓰레기 봉지에 담아 방구석에 둔다. 식사 때 쓰는 포크는 ‘맥도날드’에서 얻어온 플라스틱이다.

폴라이트는 지난해 가을 창고 관리직에서 해고됐고, 부인도 비슷한 시기 병원 일자리를 잃었다. 자녀 교육을 위해 뉴욕, 브루클린으로 이사 다니며 수입의 대부분을 썼던 부부였다. 그런 부부의 연수입 6만달러(약 9000만원)가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실직한 그들은 친척 집에서 한달간 얹혀 살고, 구입한 지 6년 된 차 안과 노숙자 응급 보호소에서 며칠을 지내다 여기까지 왔다. 담당 관청은 보호소에 빈자리가 날 때까지 이들에게 숙박비 조로 하루에 65달러를 지원한다.

졸지에 빈곤층으로 전락한 자신의 처지에 부인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정신을 차리는 데만 2주가 걸렸다. 나는 열심히 일했고 일을 좋아했다. 지금 벌어진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집세 못내 아파트에서 쫓겨난 산타나

보스턴에 사는 산타나(30·여)는 지난해 경기 침체로 벼랑끝에 몰렸다. 아이 셋이 딸린 미혼모인 그는 전산 데이터 입력하는 일을 하다 경기침체 이후 지난해에만 3차례 실직했다. 아직 실업자인 그는 집세를 못 내 살던 아파트에서 쫓겨나 보스턴 인근 모텔을 전전하고 있다. 요즘 산타나의 주요 일과는 정부지원금 신청서를 내러 관청에 가는 것이다. 수년간 빈곤가정 보호소에서 지내다 마침내 자신의 셋방을 얻은 것은 2007년 말이었다. 그것도 고작 몇개월이었다. 경기침체로 수입도 줄어 계속 그곳에 살 수 없었다. 그는 “보호소를 떠날 때 집도 주식도 없었기에 ‘모기지와 주식시장이 위기’라는 뉴스는 먼나라 얘기였다. 하지만 지금 그 먼나라 얘기를 절감한다”고 말했다.


티파니가 방과후 활동 싫어하는 이유

미국에서 ‘집 없는 사람’(the homeless)이란 거리에서 살면서 행인의 푼돈을 구걸하는 노숙자이다. 그러나 노숙은 아니더라도 최근 보호소에서 사는, 집 없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들은 바로 실직으로 집세를 밀리거나, 대출금을 갚지 못한 사람, 혹은 저임금 노동자들이다.

댈러스 생활기금 보호소에서 거주하는 여중생 티파니(14). 그는 어머니가 실직한 뒤 어머니·언니와 함께 이곳으로 왔다. 티파니는 학교의 방과후 활동이 싫다. 보호소에서 주는 저녁끼니를 걸러야 하기 때문이다. 언니 코트니(15)는 학교 농구부를 그만뒀다. 해가 져야 끝나는 운동 연습이 문제였다. 연습 뒤 외진 곳에 있는 보호소까지의 늦은 귀갓길이 위험했기 때문이다.

댈러스 지역은 빈곤 학생수가 학교별로 전년 대비 86~185% 증가했다. 한 고교 관계자는 “가난한 사람들만의 일이 아니다. 집을 잃거나 집을 내놓고 친척 집에서 지내는 중산층도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그는 또 “집 없는 아이는 항상 옮겨다니는 부모를 따라 전학을 자주 다니게 되는데, 전학할 때마다 또래에 비해 6주 정도 학습이 뒤처진다”고 밝혔다.

미국 의회에 제출된 무주택자(주로 노숙자) 관련 여러 보고서 중 최신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노숙자는 2007년 1월 현재 67만1888명으로 추산된다. 2005년 1월 76만3010명, 2006년 1월 75만9101명 등에 비춰보면 금융위기 본격화 이전 무주택자 수는 감소세였다. 그러나 시민단체 ‘노숙 종식을 위한 전국 연합’은 “통계치가 최근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향후 2년내 효과적 정책이 집행되지 않으면 150만명의 추가 노숙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달 미국 시장(市長)협의회가 25개 도시를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19개 시에서 전년대비 평균 12% 노숙자 수의 증가가 보고됐다.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왜 은퇴할 수 없는 거냐”

그러나 살 집이 있다고 빈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하이오에 사는 카포치(63)는 현재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운다.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다. 건설업체에서 30여년간 일한 그는 지난해 가을 퇴직했다. 유유자적한 은퇴 생활을 기대했지만, 그 꿈은 경제위기와 함께 사라졌다. 건설 시황이 좋지 않으면서, 경기에 연동된 그의 퇴직연금도 쪼그라들었다. 카포치는 6개월째 구직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나는 뼈 빠지게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아직도 은퇴를 못하겠다. 퇴직연금은 40%가 삭감됐고, 내가 가진 집값도 떨어져버렸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냐”고 한탄했다. 미국 은퇴자협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퇴직연금을 잃은 57%의 미국 노년층이 일자리를 찾고 있거나, 퇴직을 미뤄야 할 처지다. 52%는 음식·약품·연료 비용을 대는 것조차 힘들다.

노스캐롤라이나 더램 시에 사는 독거노인 아이린 스탠리(68·여)는 월 1500달러의 연금만으로 산다. 이 중 집세(585달러)와 병원비·약값(300달러 정도)만 900달러 정도 매달 나간다. 고혈압과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그는 나이가 들수록 의료비 지출이 점점 더 늘 것을 걱정하다 최근 3개월간 가망 없는 구직에 나서보기도 했다. 지난 1~2월 난방비를 아끼려고 보일러마저 끄고 살았다. 그는 결국 빡빡한 생활비와 의료비 부담 때문에 오는 6월 저소득층 밀집지역의 월세 340달러짜리 집으로 이사할 예정이다. 스탠리는 “뉴멕시코, 펜실베이니아에 각각 살고 있는 오빠와 남동생이 보고 싶지만 비행기 삯이 너무 비싸 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인근 채플힐에 사는 클레어(63·여)는 피부암으로 의심되는 증상을 앓고 있지만 “병원에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손사래쳤다. 의료보험이 없는 그에게 한 차례 진료란 200달러, 정밀검사란 2000달러의 지출을 각각 의미한다. 이혼한 딸과 근근이 살고 있는 그는 “암이면 그냥 죽어야지 별 수 없다. 여기서는 그렇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전세기 이용하는 부자들은 오히려 증가

최근 미국 연방정부가 제공하는 푸드스탬프(빈곤층 대상 식품구입권) 수혜자 수는 날로 늘고 있다. 미국 농무부 자료를 보면 수혜자 수가 2007년 말 2756만여명에서 지난해 말 3178만여명으로 15.32% 늘었다. 연도별 월평균 수혜자 수는 2006년(2667만여명)에서 2007년(2646만여명)까지는 감소하다 지난해 들어 매달 2840만여명으로 증가했다.

하버드 로스쿨의 엘리자베스 워런 교수는 물가를 감안한 현재의 가구당 소득이 8년 전에 비해 1175달러 감소한 반면, 평균적으로 지출하는 기초생활비가 4600달러 이상 올랐다고 지적한다. 워런 교수는 “그 어떤 방식으로 계산하더라도 부유층 아닌 사람들이 버텨나갈 기반이 사라지고 있다. 경제정책이 변하지 않는 한 미국 경제의 근간이었던 강력한 중산층이 몰락할 것이고, 이는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부자들 상황은 다르다. 미국의 빈곤·납세 관련 시민단체들은 수년 전부터 민간 제트여객기를 빈부격차의 지표로 지적해왔다. 미국내 부유층이 이용하는 전세 제트기는 비행시간당 최고 1만달러의 요금을 받는다. 공항 보안검색대 앞에서 신발 벗고 기다리지 않는 대가다. 전세 제트기는 LA~뉴욕 5시간 비행에 무려 7000만원이 드는 반면 일반 여객기 삯은 최저 300달러 정도다. 500억달러의 구제금융 지원을 받게 되는 씨티그룹에서 최근 5000만달러짜리 프랑스산 호화 제트기를 구입하려다 의회와 대통령으로부터 핀잔을 듣고 철회하기도 했다.

실제로 2006년 출범한 민간 전세기 회사 XO제트사는 경기침체와 무관하게 승승장구하고 있다. 2007년과 지난해 잇따라 전년대비 각각 80%, 66%의 순익 신장을 했다. 지난해 이 회사의 순이익은 6억258만달러에 달했다. 2007년 1500명이던 고객 수도 지난해는 2500명으로 늘었다. 회사는 2012년까지 현행 50대의 비행기를 127대까지 확충할 방침이다.


20여년간 부자 재산 늘었지만, 서민 재산은 줄어

미국은 1980년대 이래 부자 재산이 늘고, 서민 재산이 주는 사회를 만들어왔다. 뉴욕대 경제학과 에드워드 울프 교수의 최근 논문에 따르면 2004년 현재 미국 재산의 70% 이상이 상위 10% 부자들에게 몰려 있다. 소득하위 90% 사람들이 미국의 28.7% 재산을 나눠갖는 동안 상위 1%가 34.3%, 1~10%가 37.0%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소득상위 20%의 사람들이 가진 전체 재산은 83년 81.3%에서 2004년 84.7%로 늘었다. 같은 기간 소득하위 40%가 가진 재산은 0.9%에서 0.2%로 4분의 1 이상 줄었다. 미국의 부가 계속 늘었지만 서민들에게는 돌아가지 않은 셈이다.

울프 교수는 “2000년대 들어 20년 전에 비해 중산층의 부채비율이 눈에 띄게 치솟는다. 동시에 중산층이 옅어지는 현상도 분명해진다”고 밝혔다.

노동자의 소득은 국부가 크게 늘어도 제자리걸음이다. 정규직 남성 노동자의 연간 중위소득은 73년 4만6659달러 이래 2007년(4만5113달러)에 이르기까지 4만5000달러 선에서 미동하고 있다. 노동자 수입은 제자리였지만 미국 국내총생산(GDP)은 70년(1조396억달러)에 비해 2005년(12조4339억달러)에는 10배 이상 늘었다.


신자유주의는 부자 재산 늘려주고 세금 혜택 주기

반면 주요 기업체 최고경영자(CEO)들은 일반노동자들이 1년간 벌어야 할 돈을 거의 하루 만에 벌어들였다. 미국 정책연구협회(Inst itute for Policy Studies)에 따르면 2007년 500대 대기업체 CEO들의 평균임금은 1054만4470달러로 미국 노동자 평균수입(3만617달러)의 344배에 달했다. 조사를 담당한 로즈마리 스코트는 “30년 전 CEO들의 수입은 평균노동자들의 30~40배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며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이런 회사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세법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결국 서민의 혈세를 다시 CEO들에게 돌려 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신자유주의 미국은 부자들에게 재산을 몰아주되 세금은 깎아주는 체제였다. 미의회 예산처에 따르면 상위 1% 부유층에 대한 연방정부 평균세율은 80년 34.6%였지만 레이건 취임 이후 86년 25.5%에 이르기까지 급락했다. 이후에도 미국은 공화당이 정권을 잡으면 부자·대기업 대상 감세가 빈번했다.



빌 클린턴 정부 말 GDP 대비 2%대 흑자였던 재정이 조지 부시 정부 말기 GDP 대비 3%를 넘는 약 5000억달러 적자로 돌아섰다. 컬럼비아대 스티글리츠 교수는 “부시 정부의 ‘부자 감세’ 정책이 경제위기를 야기했다”고 밝힌 바 있다.

런던대 조지 어빈 교수는 신자유주의에 따른 사회 불평등은 사회에 심각한 손상을 입힌다고 했다. 그는 2007년 ‘신자유주의 핵심국가 내에서의 양극화’란 논문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레이건-대처 시대 미국과 영국은 기업하기 좋은 세상을 만든 것 같지만, 사실 산업구조는 개선이 아니라 악화됐고 금융은 과도 팽창했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됐지만, 중산층은 자신이 딛는 발판이 튼튼하다는 확신을 잃었다. 특히 노동자들에 있어 ‘신경제’란 말은 가족부양과 노후보장을 위해 훨씬 많이 일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미국은 전세계 GDP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부자지만, 미국의 서민들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미국은 본래 그런 나라였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이 모두 신자유주의 정책도입 이후의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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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순기자·유희진기자 quansoon@kyunghyang.com

ㆍ“악몽으로 변한 아메리칸 드림”
ㆍ‘빈곤대국 아메리카’ 저자 쓰쓰미 미카 인터뷰

일본인 저널리스트 쓰쓰미 미카(堤未果)는 의료보험 부재로 고통받는 노동자, 몰락하는 중산층, 거리로 내몰리는 저소득층 등 미국의 빈곤 문제에 천착해온 저술가이다. 현지 취재를 바탕으로 생생하게 현실을 전한다는 점에서 저널리스트로 불리기도 한다. 유엔, 앰네스티 등 국제기구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뉴욕과 도쿄를 오가며 활발히 집필과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경향신문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이번 세계 경제위기는 시장원리가 만능이 아님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 당신의 책 <빈곤대국 아메리카>가 한국에도 번역돼 출간되었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9·11 동시테러가 일어났을 때 미국 노무라 증권에 근무하고 있던 나는 세계무역센터 바로 옆 세계금융센터 빌딩에서 일하고 있었다. 참사 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가 보장됐다는 미국의 미디어가 내보인 것이라고는 테러리스트의 신상 명세와 타들어가는 빌딩 영상뿐이었다. 대통령과 식자층은 “범인은 중동의 테러리스트로, 이성이 통하지 않는 그들과는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없다”며 “미국의 국민을 지키려면 당하기 전에 공격하는 수밖에 없다”고 반복할 뿐이었다. 미디어의 이 같은 선동에 휩쓸려 비이성적 공포에 지배당한 나라가 전쟁을 향해 돌진해가는, 이런 상황이 너무 무서웠다. 미디어가 입을 다문다면 스스로 진실을 찾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취재를 시작했다. 저널리스트라는 직함은 이후 자연히 붙었다.”


- 미국은 어떤 나라라고 규정할 수 있겠는가.

“내가 유학한 1990년대 미국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다. 누구에게든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져 있고, 누구나 자유란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회. 이런 이미지를 동경했다. 하지만 책을 쓰는 동안 눈앞의 미국은 9·11 이후 뿌려진 ‘테러와의 전쟁’이란 말에 순식간에 압도돼 있었다. 미디어가 사실을 말하지 않는 동안 ‘안보’를 빌미로 감시사회화가 지속되고 격차가 급격히 확대돼 갔다. 이에 따라 국가의 근간까지 시장원리가 삼켜버리고, 전쟁마저 민영화해 버렸다.”


- 미국 내 빈곤층이 겪는 고통을 직접 목격하니 어떤가.

“서브프라임론은 미국의 금융공학이란 개념이 만들어낸 최악의 ‘빈곤 비즈니스’다. 내가 취재한 스톡턴이라는 마을은 마치 유령도시 같았다. 덩그러니 버려진 그 동네의 집 한 채 한 채가, 미국 빈곤층이 꿨던 아메리칸 드림이다. ‘당신도 꿈을 이룰 가치가 있다’는 감언이설에 혹해 담보대출을 한 사람들이 희생당했다. 그들에게 대출을 유도한 금융회사의 죄는 추궁당하지 않았다. 게다가 정부가 들일 공적자금은 금융위기 구제용일 뿐, 차압당해 무주택자·노숙자가 된 사람들에게는 닿지도 않는다. 거대한 도박으로 돈 번 사람들은 위험해지면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구해준다. 이 도박에서 최대의 희생양이 된 것은 보통의 빈곤층이다.”


- 과거와 비교해 지금의 미국 극빈층은 더 어려워졌나.

“중간층이 빈곤층으로, 빈곤층이 극빈층으로 전락해가는 게 지금의 미국이다. 가장 큰 문제는 아래로 아래로 떨어져가는 사람들에 대한 구제책이 없을 뿐 아니라 사회안전망이란 게 자꾸자꾸 해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미국 사회는 그래도 기독교 정신이라는 게 전통으로 있었다. 누구든 굶어죽을 것 같아도 교회에 뛰어들면 밥을 얻어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부시 정권 하에서는 노숙자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행위를 위법으로 규정한 법률이 통과됐다. 이에 따라 무료급식 행사는 연 2회, 즉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에만 열리게 돼 있다. 겨울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뉴욕에서는 빈곤층 대상 난방지원 예산이 삭감됐다. 심각한 전쟁 후유증을 안은 채 대부분 노숙자로 전락하는 퇴역군인 대상 의료보장 예산도 연 30억달러나 삭감됐다. 의료혜택이나 음식을 얻지 못하고 길거리에 내버려지는 극빈층이 급증하고 있다. 이들에게 탈출구가 있기는 하다. 살아남기 위한 선택지는 2개다. 정식으로 입대해 병사로서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 가든지, 민간 회사의 파견사원이나 용병이 돼 같은 곳에 가는 것이다. ‘민영화된 전쟁’은 결국 ‘정책’이 양산한 빈곤층의 지탱에 힘입어 대기업이 자사 주가를 올리는 구조다.”


-미국의 중산층과 서민층에게 경제위기가 얼마나 영향을 끼치고 있나.

“많은 사람들이 하룻밤에 거의 모든 재산을 잃고 하위 계층으로 전락했다. 금융에 투자하던 사람뿐 아니라 잇따라 도산하는 금융기업 종업원도 노동시장에 내던져지고 있다. 지금 노동현장의 상황이 이례적으로 어려워 재취업은 난망하다. 장년 직원보다는 젊고 말 잘 듣는 사람이 필요한 단순노동 쪽 수요가 오히려 많은 까닭이다. 회사가 파탄하면 일자리뿐 아니라 의료보험이나 연금도 바닥나버리는데, 이 탓에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돈벌이를 위한 금융이나 부동산) ‘투자’라는 개념은 미국이란 나라를 지탱해 온 핵심이었다. 하지만 이 ‘도박’에서 지면 모두 자기책임이 된다. 국가는 개인을 지원하지 않고 사회안전망도 찾아볼 수 없다. 지금 미국인들은 단번에 이런 상황까지 떨어져 버렸다.”


-어떤 사회적 합의와 대안이 자본자유화와 경쟁지상주의가 야기한 부작용을 막을 수 있겠나.

“일찍이 시장원리는 꿈 같은 미래를 가져온다는 믿음이 있어왔지만 그게 꼭 만능이 아니라는 게 이번에 증명됐다. 미국뿐 아니라 이 모델로 파탄한 나라는 많다. ‘금융입국’이라 언급된 아이슬란드도 붕괴했고, 일본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의구심이 급증하고 있다. 식량위기로 폭동이 난 아이티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이 강요한 신자유주의 정책 탓에 국내 농업이 박살난 데 대해 반성하고 있다. 남미 여러 나라에서도 좌파정권의 등장 및 대 IMF 독립선언이 동시 출현한다. 미국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정말로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거냐 아니냐, 국가의 역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증폭된다. 도대체 시장원리에 맡겨도 되는 영역과, 국가가 국민을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영역의 구분이란 것은 어디까지인가. 새로운 제3의 경제모델을 전 세계 차원에서 구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국제사회는 한 나라나 열강의 주도가 아닌, 전체 국가들에 동등한 발언권을 부여한 ‘국제통치 체제’가 해결책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공정 무역이나 지속가능한 환경, 인권 등에 대해 결정해 나갈 수 있다. 국제사회든, 개별 국가든 1개국과 1개 정당의 지배가 아니라 참여형 민주주의가 최선이라고 깨닫는 게 중요하다.”


- 미국 오바마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변화시킬 것으로 보는가.

“지난 대선에서 단 하나 훌륭한 점은 인종차별 역사를 지닌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이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빈곤대란을 낳는 것은 ‘전쟁 경제정책’과 신자유주의다. 미국의 올해 군사 예산은 6000억달러나 된다. 오바마는 군수산업으로부터도 월가로부터도 제약회사로부터도 막대한 정치자금을 받는 데다, 참모진 역시 신자유주의 신봉자가 넘쳐난다. 부시 정권 때의 조건이 변하지 않았다. 부시는 방대한 방위비 충당을 위해 사회보장비를 삭감했다. 이로써 빈곤층의 생계를 위해 입대나 파견등록을 유도해 이라크에서의 전쟁 동력을 확보했다. 이 구조를 깨는 데는 전쟁 경제정책과 신자유주의에서의 큰 방향전환이 불가결하다. 하지만 지금의 환경 속에서 오바마가 얼마나 변화를 시도할지는 의문스럽다. 미국의 변화는 대통령의 피부색이 아니라, 국가가 국민의 생존권을 지키는 사회보장 시스템 강화 및 이를 위한 방위비 삭감을 통해야만 가능하다.”


- 한국은 미국 따라하기에 전념하고 있다. 교육 비평준화 시도, 공공 서비스의 민영화 등 경쟁 체제를 답습하는한국을 어떻게 보는가.

“대단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일본도 똑같이 미국의 뒤를 쫓았고 그 때문에 많은 문제를 낳았기 때문이다. 일본도 생명과 교육,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관여되는 부분까지 민영화를 추진했다. 이 같은 경쟁 속에서 분절당한 사람들의 발언권이 약화되면서 격차가 확대됐다. 그 결과 의료난민과 실업자가 급증하고, 교육격차가 노동격차를 가중시키고 있다. 시장원리와 경쟁은 동기 부여, 서비스의 질 개선, 경쟁력 증대 등의 장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현재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듯, 미국형 경제 모델이란 브레이크 조절을 제대로 못하면 국가의 토대가 무너질 위험성이 있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이런 점을 판별해내는 게 중요하다.”


- 민영화의 가장 큰 폐단은 무엇인가.

“미국뿐 아니라 이미 일본에서도 민영화에 따르는 사회문제가 심각하다. 전기, 가스, 물 등 생존에 관련된 인프라를 민간에 위임함으로써 국민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남미 여러 나라에서 발생한 폭동을 봐도 알 수 있다. 가스 역시 사고 발생시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기에 민간에 위임하는 것은 위험이 따른다. 민영화의 가장 큰 단점은 ‘책임의 소재’를 알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일본은 국가가 관할하는 영역의 사업자가 심각한 사고를 내면 국회에서 추궁할 수 있지만 민간기업의 경우는 책임이 애매해져 버린다. 법원이 유죄를 선고한다 해도 해당 업체가 도산하면 벌금이든, 피해자에 대한 배상금이든 강제할 수 없게 된다. 업체 사장이 TV에 나와 머리 숙이면 그걸로 끝이다. 국민의 생명은 국가가 책임질 영역이다. 국민은 그것을 위해 세금을 내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소리높여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
미국 모델을 도입한 일본의 현실은 어떻게 변했나.

“일본이 미국의 뒤를 쫓고 있는 가장 심각한 영역의 하나가 바로 의료 부문이다. 비정규 고용이 급증하면서 건강보험료 체납도 늘고 있다. 이에 따라 보험증을 몰수당하는 젊은이나 고령자, 워킹푸어(근로빈민)도 급증 추세다. 동시에 외국 자본의 민간보험이 급격히 침투하고 있는데, 이는 상당히 위험한 징조다. 일본은 많은 병원이 경영난에 빠져있다. 정부는 의료비의 국고부담을 올리는 대신 고령자에게 별도 보험료를 징수하는 법을 제정한다거나, ‘효율이 좋은’ 주식회사식 경영을 병원에 권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강요된 경쟁, 인력 부족, 과잉 노동으로 많은 의사들이 힘겨워하고 있다. 덩달아 의료사고라든가 ‘임산부 떠넘기기’ 같은 진료거부 사건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의료 부문을 민영화하면 의료행위는 ‘상품’이 되고, 생명 자체에 격차가 생기고 만다.”


- 미국모델 도입 이후 일본의 안전 신화도 무너지는 것 아닌가.

“워킹푸어는 단순히 노동 상황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이는 아무리 노동해도 괴로운 생활로부터 벗어날 전망은 없고, 한 번 병에 걸리면 일자리를 잃는 데다 만족스러운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도 없는 처지를 뜻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은 목이 잘리지 않는가 하는 불안에 떨며 하루하루를 산다. 지나친 시장원리 속에서 인간이 ‘일회용’이 되는 것이다. 이름이 있고 가족도 있는, 또 살아온 역사나 장래의 꿈도 가진 하나의 인격체가 단지 ‘값싼 노동력’이란 상품으로 취급된다. 이런 사회에서 사람은 절망할 수밖에 없다. 최근 증가하는 일본 내 엽기적 살인사건에서 ‘대상이 누구든 상관없었다’고 말하는 범인이 많다는 게 주목된다. 일본은 옛날처럼 안전한 사회가 아니다. 많은 국민이 불안을 품은 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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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순기자


한국에도 신자유주의 이념이 지배한 이래 통계수치상의 소득불평등이 두드러진다. 통계청 자료상 대략 1998년을 기준으로 소득분배 관련 지표가 현저히 나빠지고 있다. 이때는 외환위기 직후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신탁 통치 아래 신자유주의 체제를 강화해 나간 시점이다. 소득5분위 배율, 지니계수 등 통계청의 분배 관련 지표를 보면 한국의 분배가 지속적으로 불평등해졌음이 드러난다.


소득5분위 배율은 소득상위 20%의 소득을 소득하위 20%의 소득으로 나눈 비율로, 숫자가 클수록 분배불평등을, 1에 가까울수록 평등을 뜻한다. 이 지표는 90~97년 약 4배 정도에 머무르다 98년 4.94배로 급등한 뒤 지난해 6.2배에 이르는 등 증가세다.

지니계수(2인 이상 도시가구, 시장소득 기준)는 92년 0.256으로 최저치에 머물다 97년 0.268까지 약간 상승했다. 하지만 외환위기로 불황이던 이듬해에는 전년 대비 10% 오른 0.295를 기록했다.

지니계수 상승은 2006~2007년 또다시 급증해 지난해 현재 0.325에 다다랐다.


한편 가처분소득 지니계수와의 연도별 차이는 2000년 이전 0.008 정도로 미미하다 2000년부터 0.014~0.027의 격차를 보인다. 2000년부터 정책상의 소득재분배 효과가 나타난 셈이다.

상위 10%의 소득점유율은 85년 24.85%에서 97년 22.25%로 지속적인 감소세였으나 이 역시 외환위기 이후 상승선을 그린다. 점유율은 98년 24.83%로 급등한 뒤 점차 감소해 지난해 현재 24.03%이다. 소득상위 10%그룹은 나머지 그룹의 98년 연소득이 전년 대비 6~22% 감소하는 동안 유일하게 4%대의 소득 증가를 보였다. 소득최하위 10% 계층에 비해 이들이 1년에 벌어들이는 소득은 80년대 8배 정도였다 90년대 들어 외환위기 전까지는 7배 정도로 줄었지만, 외환위기 이후 격차가 벌어져 9배 수준에 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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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순기자


ㆍ3부 - 6. 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 빈곤의 심화와 양극화
ㆍ노르웨이·프랑스도 90년대 분배불평등 심화

신자유주의 나라 미국의 분배구조가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를 시행한 나라들보다 훨씬 불평등하다. 이는 노조를 중시하는 전통적 조합주의(코포라티즘) 체제의 프랑스,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인 노르웨이와 수십년간의 분배 지표를 비교하면 분명해진다. 미국, 영국에서 신자유주의 경제가 고착화한 1980년대 이래의 국민 1인당 생산성을 따져도 미국이 절대 우월하지 않다. 다만 프랑스와 노르웨이라 해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한 뒤에는 분배 불평등이 나타나고 있다.



각국의 분배구조는 지니계수로도 드러난다. 지니계수는 0에 가까울수록 그 나라의 소득분배 구조가 평등하고,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하다는 의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80년대 중반부터 20여년간 미국·노르웨이는 ‘시장소득’ 지니계수가 상승하고, 프랑스는 하락했다. 8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계수의 추이만 놓고 비교하면 프랑스만 소득분배 구조가 개선(0.04포인트 하락)됐고 미국과 노르웨이는 악화(각각 0.06, 0.08포인트 상승)됐다. 시장소득 지니계수의 추이말고 절대치를 비교하면 미국(0.40~0.46)이 프랑스(0.48~0.52)보다 분배 상황이 좋아 보인다. 하지만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로 따지면 프랑스의 분배구조가 미국보다 훨씬 평등하다.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는 연금 등 사회보장 비용, 세금 등을 지출한 뒤 ‘실제 개인이 쓸 수 있는 소득’에 대한 지니계수다. 시장소득 지니계수와 가처분소득 지니계수의 격차가 클수록 그 나라의 조세 및 사회보장제도가 소득 재분배 기능을 잘한다는 뜻이다.

미국의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는 80년대 중반 0.34에서 2000년대 중반 0.38로 0.04 상승했다. 영국도 같은 기간 미국과 같이 0.043 상승(0.280→0.323)했다. 노르웨이는 0.05 상승(0.23→0.28)했고, 프랑스만 0.03 하락(0.31→0.28)했다.

부자나라 미국의 높은 빈곤율

미국은 빈곤율도 가장 높다. 프랑스나 노르웨이가 한자릿수의 빈곤율을 보이는 데 비해 미국은 수십년간 10%를 상회한다. 국가간 빈곤율의 비교에는 상대빈곤율 개념을 사용한다. 보통 그 나라 중위소득(median income)의 50% 미만 소득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쓴다. 중위소득이란 최고소득자부터 최저소득자까지 국민 전체를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정중앙에 서 있는 사람의 소득을 뜻한다. 미국 상무부 인구조사국 통계는 미국의 상대빈곤율이 80년대 초 급등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69년부터 약 10년간 11%대에 머무르던 빈곤율은 80년(13.0%) 급등한 뒤 최근까지 비슷한 수준이다. 영국은 미국보다 낮다. OECD 통계상 75년 6.4%에서 90년 14.2%까지 줄곧 상승했지만 2005년(8.3%)까지 하락세다.

노르웨이나 프랑스의 빈곤율은 6~7%대에 불과하다. OECD나 룩셈부르크 인컴스터디(LIS) 자료에 따르면 노르웨이의 상대빈곤율은 80년대 중반 이래 20여년간 최고치가 7.1~7.2%다. 프랑스 통계청이 산출한 상대빈곤율은 70년 12.0%에서 2007년 6.2%까지 하향세가 뚜렷하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대략 프랑스의 6배, 노르웨이의 40배에 달한다. 국토 면적이나 인구를 감안하면 당연한 수치다. 반면 ‘1인당’ 국내총생산과 국민총소득(GNI)의 증가세를 놓고 비교하면 3개국 가운데 미국이 가장 낮은 수준이다.

각국 통계청이 집계한 70년 현재 1인당 GDP는 미국 4934.28달러(약 756만원), 프랑스 2397.40유로(약 464만원, 프랑을 유로로 환산), 노르웨이 2만3505크로네(약 516만원)다. 이를 기준으로 2007년까지의 증가율을 따지면 노르웨이가 2057.22%(48만3550크로네)로 가장 높았다. 프랑스는 1241.56%(2만9765.10유로)였고, 미국은 923.06%(4만5546.36달러)로 가장 낮았다. 1인당 GNI의 경우 79년을 기준으로 3개국을 비교했을 때도 같은 결과다.

한성대 김상조 교수는 “경제성장 측면에서 90년대 클린턴 행정부 때 미국이 ‘나홀로 호황’을 구가하던 시절에도 유럽 강소국들은 경제적 성과나 안정성이 미국에 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전통적 사회민주주의 국가가 성장 측면에서는 좋은 점수를 얻지 못하는 게 사실”이라면서 “북구 사민주의 3개국 가운데 노르웨이는 다른 나라와 달리 유전 개발의 이익을 크게 봤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프랑스·노르웨이도 신자유주의 도입 후 빈부격차

미국·영국 경제에 비해 시장주의 정도가 덜한 프랑스와 노르웨이이지만, 이들도 신자유주의와 단절하지 못했고, 그 결과 90년대 이래 이들 나라에도 분배 불평등 현상이 나타났다.

70년대 잇단 오일쇼크와 스태그플레이션 등 경제위기를 맞은 미·영 두 나라는 80년 무렵 집권한 레이건과 대처 때 신자유주의 노선을 강화했다. 취임연설에서 “정부는 위기의 해결책이 아니다”라며 시장 우위를 주창한 레이건, “파업으로부터 국가 경제를 구하겠다”며 노조에 선전포고한 대처는 복지예산 삭감 및 감세, 공기업 민영화 및 작은 정부, 노조 활동 규제 등을 착착 이행했다.

반면 80년대 초 “삶의 방식을 바꾸자”는 구호를 들고 나와 프랑스 사상 최초의 좌파 대통령으로 집권한 미테랑은 정반대 정책을 폈다. 복지와 형평성을 중시한 사회당 정부는 집권 초 기업 국유화 단행, 사양산업과 성장산업 동시 지원, 부자 증세 등 사회주의적 통제경제 정책을 폈다. 그러나 결국 프랑스도 인플레이션 심화 등의 문제에 부딪혀 80년대 말 자유시장 경제체제로 전환했다.

95년 ‘성장 우선’을 내건 우익 시라크 정권에 이어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도입되면서 사회갈등도 잦아졌다. 2005년 프랑스 통계청이 집계한 지니계수가 전년 대비 0.021포인트, 빈곤율은 0.9%포인트 각각 올라간 뒤 이후 상승세다. 2005년에는 이민자 폭동 등 프랑스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국민 저항이 가장 심했다. 하지만 노조를 국가운영의 주체로 여기는 조합주의 전통 및 좌·우 동거정부의 존재로 인해 극단적인 분배구조 악화는 막고 있다.

노르웨이도 미국처럼 80년대 초 경제위기를 기회로 우파정권이 노동당 정권을 대체하고 감세와 규제 완화 등을 시도했다. 이 기조는 86년 정권 탈환에 성공한 노동당에 의해서도 상당 부분 계승됐다. 특히 90년대 말 사민주의적 모델 자체도 변형됐다. ‘과세를 통한 재분배’ 기조는 유지됐지만 국영 석유회사, 우체국 등 공기업을 민영화한 것이다. 그 사이 ‘주식 부자’들도 늘어나면서 분배구조가 달라졌다. 소득상위 1%의 소득점유율 통계도 92년(5.47%)부터 급등해 2005년 16.78%까지 치솟는다.

주 노르웨이대사관 홍상우 참사관은 “노르웨이는 80년대 말 부실은행 연쇄도산에 따른 경제위기를 이유로 자본소득세 12.5%포인트 삭감 등 기업·자본에 유리한 세제개혁을 폈다”고 전했다. 오슬로 국립대 박노자 교수는 “신자유주의가 노르웨이에 끼친 해악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면서 “지나치게 부유해진 상위 5%와 눈에 띄게 가난한 하위 5%의 존재는 사회에서 위화감을 조성한다”고 설명했다.



신자유주의 도입으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

미국은 부유층의 ‘부의 편중’ 현상이 80년대 이후 심화되고 있다. 학자들은 이를 미국이 신자유주의를 적극 실천한 이래 생긴 변화로 본다. 노르웨이는 미국보다 10년 정도 뒤진 90년대부터 비슷한 현상을 보인다. 프랑스만 지난 20여년간 부의 편중이 약하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 주립대(UC버클리) 에마뉴엘 사에즈 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논문에서 “2차대전 후 미국 부유층의 소득점유율은 안정돼 있었지만 2006년까지 최근 25년여간 극적으로 증가했다. 이 수준은 주식시장 거품이 치솟던 1920년대와 같다. 소득상위 1% 계층의 점유율이 유독 급증했는데 이는 분배 불평등의 주요인이 된다”고 밝혔다. 논문에 따르면 ‘소득상위 1% 계층’이 미국민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0년대 이후 9%선이었다 80년대 초부터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린다. 서브프라임 위기론이 대두되기 시작한 2006년(20.02%)은 대공황 직전(21.09%) 수준이다.

프랑스에서는 파리경제학교 토머스 피케티 교수(1901~98년), 파리1대학 카미유 랑데 교수(1998~2005년)가 비슷한 연구를 했다. 프랑스의 소득 상위 1% 계층의 점유율은 2차대전 뒤인 46년(9.22%)부터 2005년(8.20%)까지 6.99~9.88% 구간에서 급등락 없이 안정적이다. 피케티 교수는 논문에서 “70년대 이래 미국은 프랑스와 달리 부유층의 소득점유율이 급증한다. 이는 임원에 대한 보수 등이 늘고 부자 감세가 대규모로 시행된 까닭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노르웨이 통계청 롤프 아베리에 박사도 지난해 유사한 논문을 내놨다. 그의 논문에 따르면 상위 1% 부자들의 소득점유율은 미국보다 절대적으로 낮다. 점유율은 38년(12.72%)에서 91년(4.45%)까지 50여년간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인다. 다만 92년부터는 급등세다.

영국, 스웨덴, 일본에도 동일한 연구가 있다. 영국은 80년 6%대에 이르기까지 줄곧 하락하다 이후 2000년(13%)까지 상승세로 반전, 미국과 유사하다. 스웨덴은 82년 4%대의 저점을 찍은 뒤 이후 2002년 7%대가 될 때까지 증가세다. 이는 노르웨이보다 시기적으로 10년쯤 앞서는 급반등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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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 | 정법모 통신원

ㆍ3부-미국 모델, 그 파국적 종말 (5) 공공사업의 사유화
ㆍ한달 27만원 버는데 수도 설치비가 20만원
ㆍ사용료는 10년동안 10배까지 뛰고
ㆍ하수도 설비 안돼 수질은 엉망
ㆍ지하수로 빨래하고 빗물로 목욕하고…수돗물 공급 못받는 시민만 270만명

비가 오는 날이면 필리핀 빈민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있다. 비누칠을 하고 나와 빗물에 샤워를 하는 아이들, 집 앞에서 옷 속으로 손을 넣어가며 씻고 있는 여자들, 빨래에 쓸 물을 통에 담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아낙네, 빗물을 받아 동생을 씻기고 집안일을 위해서 빗물을 받고 있는 소녀.

세계자원연구소(World Resources Institute)에 따르면 필리핀은 1인당 연평균 물 사용량이 6093m3로 중동을 제외한 다른 아시아 지역 평균의 2배다. 하지만 2007년 필리핀 지역수도관리국 자료에 의하면 전체 국민의 24.1%만이 상수도를 이용하고, 하수관이 연결된 곳은 3%에 불과하다. 상수도 보급률이 이처럼 저조하다 보니 지표수나 지하수 의존율이 높게 마련이지만, 하수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그 수질도 보장할 수 없게 된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의 빈민가에서 소년들이 물통을 줄지어 놓은 채 수동 펌프로 지하수를 길어올리고 있다.

 

민영화로 껑충 뛴 물값…물값에 시달리는 월마

필리핀의 수도인 메트로 마닐라 저소득층 지역에 살고 있는 윌마(30). 초등학교 2학년 아들과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딸을 두고 있는 주부다. 16살 때부터 가사도우미 일을 하고 있는 그녀는 현재 월 9000페소(약 27만원)를 번다. 비슷한 직종의 다른 여성들보다 훨씬 많은 수입이다.

그녀는 7남매의 다섯째로 현재 오빠 한 명을 제외하곤 모든 가족이 모여 살고 있다. 부모님과 출가한 남매의 자녀들까지 합하면 전체 가족수가 38명에 이른다. 윌마의 언니와 여동생은 모두 가사도우미 일을 하면서 한 달에 각각 2500페소와 6000페소를 받는다. 아버지는 초등학교의 통학차량 기사를 했으나 2년 전부터는 일이 없어 쉬고 있다.

그리고 남자 형제 3명은 모두 목수로 일을 하는데, 하루에 450페소까지 받지만 계속 일이 있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특히 첫째 오빠네는 자녀가 9명이며, 작년에 14살 된 딸은 아이를 낳기도 했다. 계속 늘어나는 식구 문제가 윌마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많은 가족이 자신을 가장 안정적으로 돈을 벌고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전기와 수도는 윌마네 이름으로 가설됐고, 모든 친족이 공동으로 이용하고 있다.

다섯 가구가 사용하는 수도요금은 한 달에 1600페소(4만8000원) 정도. 가구당 나눠 부담하면 한 가구에 320페소가량이 된다. 수도요금은 누진세가 적용되기 때문에 가정마다 미터기를 달면 그만큼 수도요금이 적어지겠지만 수도를 연결할 때 3700페소를 내야 했기 때문에 하나만을 달았다. 그나마 윌마가 수도를 처음 연결한 이후 수도 연결비는 2003년 4246페소, 2008년 7186페소로 올라 이제는 따로 수도를 연결할 엄두를 내기조차 힘들다.

더구나 수도요금을 한 달만 내지 못하면 수도 공급이 중단되고 다시 연결하려면 연결 비용을 또 내야 한다. 윌마네도 수도요금을 내지 못해 수도가 끊긴 적이 있었다. 식구들은 옆집에 1갤런(3.79ℓ)에 1페소를 주고 물을 길어다 사용했다. 이렇게 했더니 한 달에 물값으로 500페소 이상이 들었다고 한다. 윌마네는 평소 수돗물을 절약하기 위해 세탁에 쓰이는 물은 옆집에서 지하수를 길어다 쓴다. 냄새가 날 정도로 수질이 좋지 않지만 공짜로 얻을 수 있는 물이니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정부는 수인성 질환 및 지하수 고갈 문제 등을 이유로 지하수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윌마는 전기세로도 한 달에 1650페소 정도를 낸다. 그런데 이 액수도 다른 식구들이 윌마 집에서 끌어쓰던 전기를 모질게 끊어서 준 것이다. 이전에는 한 달에 3700페소까지 나왔다. 다른 식구들이 어려울 때는 1600페소 정도 되는 수도세까지 대신 내줘야 하므로 수도와 전기 요금으로 5000페소 정도가 들었다. 당시 윌마 월급은 월 6500페소였다. 미납액이 1만페소로 누적되자, 윌마가 식구들에게 더 이상 부담하기 힘들다고 했다. 생계비의 많은 비중을 전기와 수도요금으로 내야 하는 현실 때문에 괴롭다. 


                          필리핀 마닐라 빈민가에 있는 공동우물. 하수도 시설 미비 등으로 인해 악취가 풍기고 수질이 나쁘지만
                          아이들이 목욕을 하고 여성들이 빨래를 하고 있다.



국제금융기구 요구로 상수도 민영화

윌마가 사는 동네는 그나마 수도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수도가 공급되지 못하는 지역이 메트로 마닐라에만 212곳이나 된다. 1200만명의 시민 가운데 270만명 정도는 아직도 상수도 공급이 아예 안되는 동네에 살고 있는 셈이다. 수도 공급 문제는 필리핀의 오랜 과제였다.

장기독재를 누렸던 마르코스 대통령 시기에 수도 및 전기는 비리와 부정축재의 온상이었던 터라, 1997년 이루어진 상수도 민영화는 일정 정도 수도 공급의 효율성과 합리성을 높여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당시 메트로 마닐라의 수도 사업을 관할하던 도시상하수도공사는 평균적으로 메트로 마닐라 시민의 67%에게 하루 16시간 동안 물을 공급하고 있었다. 86년 집권한 아키노 대통령 시절부터 필리핀에서는 여러 국영사업을 민영화하겠다는 계획이 수립되었지만, 수도사업에 대한 본격적인 민영화는 95년 라모스 대통령이 ‘전국 물 위기법’을 공표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고질적인 물 공급시스템의 열악성,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과 부패, 엘니뇨로 인한 가뭄 등의 요인이 맞물려 수도민영화는 전기부문과 함께 탄력을 받게 되었다.

결국 126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필리핀 메트로 마닐라의 도시상하수도공사는 97년 세계은행의 지침을 받아 민영화되기에 이른다. 그때까지 정부는 수도 관련 시설 확충을 위해 아시아개발은행, 세계은행, 일본국제협력은행으로부터 8억달러의 외채를 차입하고 있었다. 아시아 외환위기와 맞물려 누적된 외채와 수도 공급의 비효율성을 타파하기 위해 국제금융기구들은 필리핀 정부에 상수도 사업을 민영화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1100만명에 달하는 메트로 마닐라 시민을 위한 물 공급 사업인데다 필요한 투자액이 75억달러였던 만큼, 이 민영화사업은 아시아에서 첫번째의 대규모 수도 민영화사업이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이를 두고 향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모범적인 민영화사업이 될 것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공개입찰 결과 메트로 마닐라를 동서로 양분해 97년부터 25년간 물을 공급할 사업자로, 마닐라워터와 마이닐라드가 각각 선정되었다. 마닐라워터는 필리핀의 아얄라 가문이 주축이 되어 아얄라사와 BPI 금융이 60% 정도 지분을 소유하고 있었다. 나머지 지분은 영국계 유나이티드 유틸리티와 일본의 미쓰비시사가 주주로 참여했다. 한편 민영화된 최대 전기회사의 주주인 로페스가는 마이닐라드의 지분 60%를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40%는 물 부문 최대 다국적 기업 중 하나인 프랑스계 수에즈가 갖게 되었다.

기존에 설치된 상수도관이 있는 지역을 승계한 마이닐라드는 입찰 조건으로 도시 상하수도가 안고 있던 부채를 90% 승계하기로 했고, 신규로 상수도를 확장해야 하는 마닐라워터는 10%의 부채를 승계해 상환하기로 하였다. 이 밖에도 이들은 인수조건으로 ① 수도요금 인하 ② 2000년까지 24시간 물 공급 체계 완성과 수압 증가 ③ 2000년까지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의 수질 달성 ④ 10년 안에 전 지역에 수도 공급 ⑤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누수로 버려지거나 도둑맞는 ‘비수익수량(non-revenue water)’ 축소 ⑥ 새로운 인프라 구축을 위한 75억달러 투자 ⑦ 15년 안에 하수도 설비 비율 60%로, 25년 안에 80%로 증가 등을 약속했다.


실패한 마닐라 수도 민영화

필리핀 소녀가 미리 설치해둔 천막을 타고 내리는 빗물을 받고 있다. <사진제공 천리>

10년이 지난 지금 이 수도 민영화사업은 어떠한 평가를 받고 있을까? 시민단체인 ‘부채로부터의 자유’에서 일하고 있는 다이안은 지난 10여년의 경과를 한마디로 “전적인 실패”라고 평가했다. 첫번째 이유는 여전히 물 공급을 받지 못하는 시민이 많다는 점이다. 당시 입찰에 참여한 두 수도회사, 마닐라워터와 마이닐라드는 2002년까지 모든 시민이 하루 24시간 수돗물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212개 지역은 수돗물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수도 공급을 위한 수도관 매설 및 연결 등의 비용이 사용자 부담이어서 저소득층이 살고 있는 동네에는 수도 확장이 안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근에 수도관이 설치되었다고 해도 한국 돈으로 20만원이 넘는 수도 연결비는 일반 가정에게 너무 큰 부담이다.

두번째는 수도 요금이 지난 10년간 지나치게 많이 올랐다. 입찰 당시 마닐라워터는 1m3 당 2.61페소, 마이닐라드는 4.86페소를 제시했었다. 10년이 지난 2008년 기준으로, 두 회사는 각각 26.98페소와 32.03페소의 요금을 받고 있다. 6~10배 오른 것이다. 이들은 입찰 당시 맺었던 계약과는 달리 사업권을 따내자마자 페소 가치 하락 및 수익률 저하를 이유로 지속적으로 가격 인상을 요구해 왔다. 최초 계약에는 없었던 여러 가지 항목이 요금에 부과되면서 수도요금은 전반적으로 급격히 오르게 되었다.

수도 민영화는 국영기업의 외채를 탕감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됐지만 이것도 형편없는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10년이 지난 지금 외채문제는 해소되기는커녕 더 증가했다. 당시 두 기업은 8억달러의 외채 변제를 약속했지만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특히 90%의 외채를 승계한 마이닐라드의 경우 2004년까지도 적자 누적을 이유로 변제하지 않았고, 정부를 상대로 가격인상을 위한 협상을 벌일 때 외채 변제 문제를 정부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 기업을 퇴출하는 대신 공적자금을 투여, 출자전환방식으로 마이닐라드의 지분을 사서 다른 주주들에게 매각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추가로 외채를 더 빌려야 했으며 일반 시민들의 세금 부담은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수익성 없다며 설비투자 안해 수질 악화

다이안은 민영화 이후 수도회사들이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못한 책임도 소비자에게 가격부담으로 돌아오고 있으며 ‘소비자 전액 부담원칙’ 때문에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역들은 수도회사들의 관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노후한 상수도관을 교체하는 일은 아직도 더디게 진행되고 있어 수도관을 통해 전달되는 물은 여전히 필리핀 정부가 정한 식수기준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한다. 사기업의 경영진 및 주주들은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설비투자나 낙후된 지역에는 시설 확장을 바라지 않게 마련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마닐라워터의 경우 약속한 대로는 아니지만 꾸준히 수도관을 신설하고 효율성을 늘리고 있지만, 마이닐라드는 만성적인 적자를 내는 바람에 2004년께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의 공적자금이 투여되는 상황까지 되었다.

마이닐라드가 담당하는 구역에만 250만명 이상의 시민들이 수도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마닐라워터의 경우 1년 안에 요금이 부과되지 않는 비중을 31%로 줄이기로 약속했으나 2005년에 가서야 이 수준을 달성했다. 마이닐라드의 경우 57.4%에서 2003년엔 오히려 69.5%로 증가했으며, 2007년엔 68%를 기록했다. 두 회사가 약속한 하수도 설비 비율은 현재까지도 4%를 넘지 못하고 있다.

70년 이후로 각종 법이 제정되어 하수도를 설치할 것을 국가가 규정하고 있으나 수도공급업체는 투자 대부분을 상수도 설치에 할애한다. 정부통계에 따르면 필리핀 전체적으로 상하수도 확충에 소요되는 예산 중 97%가 상수도 건설에, 3%만이 하수도 설비에 사용된다고 한다. 이러한 하수도 시설 미비는 바로 수질 악화로 이어져 수인성 질환을 만연시키는 요인을 제공한다. 마닐라워터의 경우 하수도가 설비된 지역은 상수도 사용요금의 60%만큼을 하수도 요금으로 별도 부과하고 있어 하수도 설비가 되면 시민들이 부담해야 할 수도세는 더 인상되게 된다.



2004년 전기 및 수도공급회사들은 자신들에게 부과되는 소득세를 소비자에게 부담하려고 시도했다. 필리핀 대법원은 ‘공공시설’이라는 이유로 반대 결정을 내렸다. 이 ‘공공시설’에 대한 해석을 놓고 거센 논쟁이 있었지만 도시상하수도공사는 마닐라워터와 마이닐라드는 단순한 계약자일 뿐 공공시설에 종사하는 업체가 아니라고 해석한 뒤 두 회사가 자신들에게 부과된 소득세를 소비자에게 부담하는 것을 허용했다. 다이안은 “물은 사유 재산이 아닌, 공기처럼 인간에게 필수적인 재화이자 곧 인권”이라며 “그러나 민영화 이후 물은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영국도 오래전에 수도가 민영화됐지만 수도요금을 내지 못하더라도 사는데 최소한의 필요한 물은 공급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필리핀에서는 직장을 잃으면 당장 수도와 전기가 끊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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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중기자

ㆍ요금 인상·서비스 악화 ‘아우성’



#1 미국 일리노이주의 주민들은 2007년 1월 전기와 가스요금 청구서를 받아들고 입이 딱 벌어졌다. 전달에 비해 요금이 2배, 많게는 3배 더 나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난방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난방을 포기하고 식료품을 살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불과 한 달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사태의 발단은 1997년 전기요금 경쟁 체제 도입이었다. ‘아메렌’과 ‘엑셀론’이라는 민간회사가 에너지를 공급해왔는데 상호 경쟁시키면 서비스가 좋아지고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대신 10년간 가격을 동결하는 유예 기간을 두었다. 10년의 시간이 흘렀고 아메렌은 굴레를 벗자마자 요금을 대폭 인상했다. 주정부와 의회에 비상이 걸렸다. 10억달러의 예산을 투입, 아메렌에 가격 인상분을 보전해주는 대신 아메렌이 소비자들에게 최대 85달러씩 환급해주는 고육책을 썼다. 그러나 지난해 일리노이주의 전기·가스요금은 또다시 20~30% 상승했다. 당시 일리노이주에 살고 있었던 윤대옥씨는 “나를 비롯해 상당수 미국인도 아메렌이 공기업이겠거니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2 아르헨티나는 지난해 7월 국적항공사인 ‘아르헨티나 항공’을 재국유화한다고 발표했다. 1989년 집권한 카를로스 메넴 정부가 임기 4년 만에 국가전략산업은 물론이고 전기·가스·상하수도·항공·우편 등 거의 모든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한 지 20년 만이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항공이 안고 있던 여러 문제는 민영화로 해결되지 않았다. 민영화 18년 동안 서비스의 질이 지속적으로 낮아졌고, 승객들은 외면했다.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항공기의 절반 이상이 노후화해 더 이상 비행하지 못할 형편이 됐다. 아르헨티나 항공은 당시 하루 1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대주주는 두 손을 들었고 국적 항공사의 침몰을 두고 볼 수 없는 정부가 나섰다. 아르헨티나는 이미 여론의 지지 속에 우정사업(2003년), 상수도사업(2006년)을 재국유화했다. 연금의 재국유화도 추진되고 있다.

모두 공공서비스 민영화와 규제완화가 낳은 풍경이다. 세계 여러 지역,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민영화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06년 48개 개발도상국이 1041억달러에 달하는 249건의 민영화를 단행했다. 세계은행은 2006년 트렌드를 분석하면서 “민영화가 둔화되고 있다는 일반의 인식과 달리 민영화는 여러 나라의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에서도 이명박 정부는 공공기관 선진화라는 이름 아래 129개 공공기관에서 2만2000여명의 인원을 감축하고, 인천공항공사를 비롯한 24개 공공기관을 민영화 또는 지분매각하거나, 주공과 토공의 통합 등 41개 기관을 16개 기관으로 통폐합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선진국에선 이미 가능한 분야의 민영화는 대부분 이루어졌다”면서 “2000년대 들어서는 새로운 민영화보다는 민영화된 기간산업의 규제문제가 초점으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앞서 소개된 미국 일리노이주의 전력산업 규제 완화 사례에서 보듯 정부가 민영화했다고 모든 것을 일시에 풀지는 않았다. 민영화한 기간산업이라 해도 나름의 규제를 해왔다. 그러나 규제완화와 경쟁확대라는 명분으로 이마저도 풀어버리는 것이 최근의 흐름이다. ‘민영화’(privatization)라는 용어는 영국의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가 1930년대 독일의 경제정책을 기술하면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80년대 초 영국에서 불기 시작한 민영화의 바람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등에 업고 전 세계를 휩쓸었다. 80년대 말~90년대 초에는 사회주의권이 붕괴되면서 국영기업들이 대대적으로 민영화되었다.

민영화 추진 방식과 운영방식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성공과 실패를 일률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민영화한 공공서비스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적지 않은 부작용이 드러났다. 대표적인 것이 요금 인상이다. 공공서비스는 소비자가 대체 공급자를 찾기 어려운 ‘자연독점’인 경우가 많아 요금 인상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영국의 철도산업 민영화는 널리 알려진 실패 사례다. 영국 정부는 철도 공사를 선로 소유, 열차 운행, 열차 수리, 차량 수리 등 기능별로 나눠 민영화 했다. 철도 선로 시설을 관리하는 회사인 레일트랙도 96년 민영화했다. 민영화 이후 영국 철도는 흑자를 기록했고 정부의 재정 지출도 없어졌다.

그러나 철도 사고가 빈번해지면서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다. 비용절감을 이유로 안전장치를 도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영국 정부는 2002년 10월 레일트랙을 다시 공기업으로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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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중기자 hermes@kyunghyang.com

ㆍ3부 (5) 공공사업의 사유화
ㆍ데이비드 홀 국제공공서비스연구소장 인터뷰

공공서비스 분야의 세계노조연합인 ‘공공서비스인터내셔널’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는 ‘국제공공서비스연구소(PSIRU)’는 민영화와 공공서비스, 세계화 문제에 대한 경험적인 연구로 잘 알려져 있는 연구기관이다. 영국 그리니치 대학교 비즈니스 스쿨에 본부를 두고 이 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데이비드 홀 소장(사진)은 상수도와 에너지, 보건·의료 분야의 전문가다. 경향신문은 홀 소장과 e메일 인터뷰를 통해 유럽의 공공서비스 민영화 현황과 쟁점, 전망 등을 들어봤다. 홀 소장은 “경제위기는 공공영역이 강력한 역할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도·전기 등 방만한 운영…영리주의로는 해결 안돼…공공참여로 투명성 높여야”

-나라마다 민영화 정도가 다릅니다. 영국이 가장 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각국의 민영화가 다르게 진행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민영화의 구체적인 패턴은 매우 다양해요. 프랑스에서 상수도는 대부분 민간부문이 담당하지만 전기는 대부분 공공영역이 맡고 있습니다. 전화는 공공과 민간이 섞여 있어요. 독일은 전기와 전화를 민간이 담당하지만 상수도는 거의 대부분 공공입니다. 영국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철도는 여전히 공공이 운영해요. 에스토니아는 철도 민영화가 실패로 드러나자 재국유화하기도 했죠. 지난해엔 민영화 속도가 느려졌는데 민간투자자들이 경제위기로 국영기업을 구매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부 정책, 특히 ‘시장’ 이데올로기와의 관계, 민영화를 감세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려는 경향의 차이 등이 국가 간 차이를 만드는 핵심 요인입니다. 서비스의 질은 별로 고려대상이 아니에요.민간투자자들은 효율적인 국영기업일수록 더 많은 돈을 주고 사려는 의향이 있어요. 따라서 좋은 공기업일수록 민영화될 가능성이 더 높아요.”


-현재 유럽에서 공공서비스의 민영화와 관련해 가장 큰 이슈는 무엇입니까.

“민영화가 가격과 수익, 투자,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주요한 이슈들입니다. 사기업들은 보통 민영화를 통해 극히 중요한 서비스 영역에서 독점 혹은 과점적 지위를 얻게 되는데 이들을 규제하기는 매우 어려워요. 예를 들어 유럽연합(EU)조차도 이동통신회사들이 부과하는 요금을 제한하기 위해 법령을 발표해야 했습니다. 유럽에서는 5개 주요 그룹이 대부분의 전력회사를 소유하고 있어요. 프랑스에선 수돗물 기업들의 시장 점유율이 지자체 공기업보다 15%가량 높습니다. 민영화된 공기업은 국가경제를 위해 필요한 수준보다 투자를 적게 하는 경향이 있어요. 일례로 영국의 브리티시텔레콤(BT)은 가정용 광케이블에 충분한 투자를 하지 않아요.”


-민영화는 공공서비스에 시장기업이 참여하는 것이므로 민영화에 대한 시민들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시민들은 기존 공공서비스 부문에 대해 불만이 없었습니까. 시장경쟁의 도입 필요성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았나요.

“많은 사람이 국영기업의 서비스에 불만을 품고 있어요. 그들이 시민의 요구에 충분히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효율성과 책임성 개선을 요구했습니다. 그렇다고 전기, 물, 철도, 전화와 같은 핵심적인 공공서비스가 민영화되기를 원했던 것은 아닙니다. 사기업이 소비자를 착취하지 않고 이런 서비스를 하리라고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대다수의 사람이 물과 철도를 국가가 소유하기를 원하고 있으며, 우정(郵政)사업을 민영화하자는 정부의 제안에도 반대하고 있습니다.”


-공공부문을 다시 강화하기 위해선 공공부문의 관료화, 비효율성 등을 극복할 방안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요.

“공공부문에는 세 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어요. 투명성과 책임성, 공공의 참여입니다. 투명성에는 부패와 비효율성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로서 시민에게 모든 서류를 볼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예를 들어 브라질에서는 많은 도시가 공공의 참여 과정을 거쳐 예산을 수립해요. 놀랍게도 민영화가 공공부문의 비효율성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진정한 경험적 증거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연구에서 공기업과 사기업이 효율성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 발견되지 않았어요. 각국의 통신사업에 관한 연구에서는 공공부문 통신회사들이 더 효율적이라는 사실이 발견되기도 했죠.”


-공공기업 노동조합의 민영화 반대 주장에 시민들은 얼마나 공감합니까. 공공부문 노조가 얼마나 신뢰를 얻고 있나요.

“노조의 민영화 반대 캠페인은 다양한 그룹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우파 성향의 신문들, 예를 들어 영국의 ‘데일리 메일’조차도 사기업이 너무 많은 이윤을 가져가고 가격을 높인다는 노조의 주장에 동의해요. 이 같은 사례는 독일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독일에서는 시민들이 서명운동을 통해 주요 공공부문의 민영화에 대한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요구할 수 있어요. 노조들은 라이프치히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전기, 물, 쓰레기 수거, 대중교통 등 지자체의 주요 서비스를 민영화하는 데 대한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성사시켰죠. 시민들은 예외 없이 민영화 반대에 표를 던져 이를 무산시켰습니다.”


-공공서비스가 확대·강화되려면 국가재정이 튼튼해야 하는데 최근 유럽국가 재정 상황은 어떻습니까.

“각국의 경제위기 대응방식을 보면 정부가 차입과 조세수입을 섞어 지출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재정을 마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소비자와 기업의 차입과 지출이 너무 많이 감소했기 때문에 정부의 차입과 지출이 상당히 많이 증가해야 합니다. 유럽 국가들은 분명히 이것을 감당할 수 있어요. 따라서 정부의 재정적자에 관한 EU의 규정이 바뀌어야 합니다.”(EU는 회원국들의 재정적자를 강력 규제하고 있다.)


-국가재정 강화를 위한 방안은 있습니까. 과연 납세자들이 더 세금을 내려 할까요.

“국가가 조세수입을 제대로 사용하고 모두가 공평하게 세금을 낸다는 확신만 있다면 사람들이 세금을 더 낼 의사가 있다는 증거는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보건·의료처럼 공공서비스가 민간시장보다 더 잘 작동하는 영역에 대해선 사람들이 종종 더 많은 세금을 내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더 나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기 때문이죠. 더 많은 공공지출과 높은 세금이 더 높은 경제성장으로 이어지고 삶의 질을 높여준다는 강력한 증거들이 있습니다.”


-국제적 감세 경쟁이 치열합니다. 공공부문 민영화는 감세를 위해 사용되는 고전적인 방식입니다. 어떻게 대응하는 게 좋다고 보십니까.

“기업을 유치하려면 법인세를 인하해야 한다고 과장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업들은 여러 조건을 따져 투자처를 결정해요. 세율은 대체로 가장 중요한 이슈가 아닙니다. 국제적으로 세금에 관한 두 가지 중요한 정책이 있는데 먼저 조세피난처를 완전히 없앰으로써 모든 기업들이 적당한 세금을 내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국가 간 금융거래에 대한 세금인 ‘토빈세’를 도입함으로써 국제금융거래를 제어하고 금융투자가 발전에 쓰이도록 해야 합니다.”


-공공서비스 민영화가 기존의 ‘매각’ 방식에서 ‘민간투자’(Public Private Partnership·PPP) 방식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한국에선 이것이 공공부문 외주화 혹은 BTL/BTO 민간투자사업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민간투자 방식이 등장한 배경은 무엇입니까.

“가장 큰 이유는 정부가 재정적자로 인해 반드시 해야 하는 사업에 제대로 투자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민간투자는 사기업이 돈을 빌려 공공사업을 하는 것처럼 가장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부가 모든 비용을 지불하므로 정부가 돈을 빌리는 것과 같아요.”


-정부 재정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민간투자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민간투자는 새롭게 자금을 추가해 주지 않습니다. 돈을 빌리기 위한 값비싼 방식일 뿐이죠. 세금으로 모두 메워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영국에는 의료분야에 너무도 많은 민간투자가 있어서 2030년엔 국내총생산(GDP)의 2%를 민간투자에 지불해야 한다는 추산이 나옵니다. 사기업은 정부에 비해 높은 이자를 물어야 하고 경제위기 때문에 그 차이는 더 커져서 민간투자는 비용이 매우 많이 드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위기를 맞아 공공서비스 역할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민간부문도 수익성에 대한 의구심 때문에 공공서비스 투자에 소극적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공부문을 다시 강화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경제위기는 공공영역이 강력한 역할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공공의 역할이 단순히 한시적인 조치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정부는 지금처럼 재정적자를 너무 제약해선 안됩니다. 그리고 세금과 투명성에 관해 개혁이 이뤄져야 해요. 조세피난처와 탈세는 추방되어야 합니다. 예산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공공의 참여도 필요해요. 경제위기 시에는 민영화 정책들이 줄어들고 많은 기업이 국유화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 국가와 시장의 상대적 역할을 완전히 재검토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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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