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기로에 선 신자유주의'에 해당되는 글 140건

  1. 2009.04.19 3부-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④ 환경파괴: 그 끝은 삶의 터전 파괴
  2. 2009.04.19 3부-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④ 환경파괴: “지난 8년 부시행정부 고의적으로 환경 무시”
  3. 2009.04.19 3부-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④ 환경파괴:
  4. 2009.04.16 3부-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③ 지구적 식량공급 체계: “쌀자급률 100% 아이티, 세계은행·IMF 정책탓 파탄”
  5. 2009.04.16 3부-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③ 지구적 식량공급 체계: ‘종자에서 식탁까지’ 초국적 자본이 지배
  6. 2009.04.16 3부-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③ 지구적 식량공급 체계: 몬산토·신젠타 등 국내 종자시장 40% 이상 잠식
  7. 2009.04.13 3부-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② 노동 유연화 Ⅲ: 실업자 양산과 격차 확대하는 ‘노동유연화’
  8. 2009.04.12 3부-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② 노동 유연화 Ⅲ: 비정규직에 대한 일본의 두 시선
  9. 2009.04.12 3부-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② 노동 유연화 Ⅲ: 카르도수 ‘노동법 개악’으로 국민이 정권교체
  10. 2009.04.12 3부-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② 노동 유연화 Ⅱ: “90년대 말 규제완화가 비정규직 양산 주범”
  11. 2009.04.12 3부-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② 노동 유연화 Ⅰ: 일본에선 왜 노동 빈곤층이 늘었을까 (2)
  12. 2009.04.09 3부-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② 저임금 → 해고 → 저임금… 노동 유연화는 ‘불안전 고용’
  13. 2009.04.09 3부-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② 1만 3000명 해고 ‘항공관제사 사건’ 노조붕괴 신호탄
  14. 2009.04.09 3부-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② ‘미국 대표기업’ 월마트 노동자들은 저소득층
  15. 2009.04.03 3부-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① “병원이 수익경쟁 시장터로… 저소득층 감당 못해”
  16. 2009.04.02 3부-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① 영리병원의 목적은 이윤 창출
  17. 2009.04.02 3부-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① “미국 큰언니 출산때 하룻밤 진료비 2000만원”
  18. 2009.03.29 2부-(9) 폭주 기관차에 올라탄 한국, 아담 쉐보르스키에게 듣는다: "민주주의에 균열 생기면, 갈등은 거리로 분출"
  19. 2009.03.26 2부-(8) 폭주 기관차에 올라탄 한국…새로운 우상, 민영화: 재벌의 공공서비스 사유화도 ‘선진화’라 부르나
  20. 2009.03.26 2부-(8) 폭주 기관차에 올라탄 한국…새로운 우상, 규제 완화: 모든 규제를 惡으로 치부…‘새로운 신앙’으로 부상 (1)
 조명래 | 단국대 교수

ㆍ환경규제 완화…환경의 상품화…소비의 세계화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자원을 채취해 먹고 살아 간다. 먹고 살아가는 것과 자연의 관계는 곧 경제와 환경의 관계를 말한다. 인류역사는 먹고 살아가는 방식, 즉 경제의 진화로 집약된다. 이는 환경에 대한 지배와 착취의 진화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경제는 전에 없이 고도화되어 선진국의 물질적 풍요는 차고 넘친다. 그에 비례하여 환경도 전에 없는 고도의 착취 대상이 되어 더 이상 스스로를 지탱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21세기인 지금, 서구 선진국을 중심으로 꾸려지는 경제하는 방식을 흔히 ‘신자유주의’라 부른다. 지구 온난화 등으로 나타나는 지구적 환경위기는 이 신자유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되살아난 시장자유주의를 말한다. 자본주의 초기의 방임적 자유주의가 1970년대 하이에크를 추종하는 자들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다가 80년대 미국의 레이건 정부와 영국의 대처 정부 정책으로 되살아났다. (신)자유주의는 국가로부터 간섭받지 않을 때 인간은 자유의지와 이성적 능력을 발휘해 경제적 가치를 최대한 실현한다는 믿음 그 자체다. 그래서 국가 대신 개인 간의 거래가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시장에 대한 강한 신뢰를 표방한다.

신자유주의는 국가가 나서서 경제를 포함한 사회전반을 간섭하고 규율하는 각종 제도의 철폐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탈규제, 민영화, 자율화 등은 바로 신자유주의의 화신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은 국가가 지켜 온 공동체의 복지영역에 대한 빗장을 풀고 그 구성원의 생존을 시장경쟁에 맡기는 데 있다. 여기엔 온 생명이 더불어 살아가는 터전으로 환경도 포함된다.


환경 규제를 푸는 신자유주의

통상적인 환경정책은 보전을 위한 규제를 중심으로 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도래로 환경기준, 환경평가절차, 환경세제, 환경오염에 대한 책임 등의 규제가 전반적으로 완화되는 추세다. 규제 완화는 직접적이라기보다 투자나 생산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에 포함된 유인책이나 예외 규정 등을 통해 주로 이루어진다. 또한 많은 경우 시장원리에 따라 오염자나 수혜자에게 비용과 부담을 부과하는 세제(예, 탄소세)의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 경제를 위해 환경 이용이 극대화되어야 하지만 훼손이 불가피할 경우 시장원리에 따라 비용만 부담하면 된다는 것이 신자유주의식 환경 규제의 논리다.

신자유주의식 환경 규제 완화의 구실은 이렇듯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돕는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이는 환경의 외양을 바꾸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속살마저 신자유주의에 물들도록 바꾼다. 신자유주의는 가격으로 환산해 시장에서 거래하게 함으로써 환경을 돈과 상품의 거래영역으로 끌어들인다. 규제 완화에 의해 빗장이 풀린 환경 속으로 침투한 돈과 상품의 촉수가 곧 신자유주의 하에서 환경이 전면적으로 파괴되는 단초가 된다. 상품화되고 자본화된 환경은 가치생산의 극대화를 위해 지속적이면서 파괴적인 개발의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을 수 없다.


전지구적인 시장논리의 환경 분야 침투

문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상품 및 시장논리의 환경 분야 침투는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고삐 풀린 기업 활동의 초국경적인 팽창과 함께 지구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오늘날 환경문제가 전 지구적으로 나타나는 뒤엔 바로 ‘신자유주의식 세계화’란 거대한 힘의 작용이 있다. 신자유주의식 세계화를 이끄는 것은 일단의 초국적 기업들이다. 세계 전역으로 뻗어있는 생산 및 유통 네트워크를 통해 이들은 오늘날 지구촌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 이 네트워크는 자원과 에너지를 채취하고 이를 이용한 상품을 대량으로 생산해 유통·소비시키는 순환망을 말한다.

이 순환망은 지구의 모든 후미진 곳까지 파고든다. 이 순환망을 통해 그곳의 환경은 돈이 되는 상품으로 바뀌고, 그러는 동안 지역 생태계는 광범위한 파괴와 교란을 겪는다. 가령, 순환망을 통해 자원생산을 늘리도록 강제 받는 개발도상국은 환경이 외연적으로 광범위하게 파괴되는 것을 경험한다. 반면 대량 생산과 소비를 이끄는 선진국은 환경의 내부가 심대하게 교란되는 것을 겪는다. 환경문제의 지구적 확산 속에서도 환경협정 등을 통해 환경의 편익은 선진국으로 집중하고 있지만, 그 비용(오염 및 그 피해)은 힘 없는 개도국으로 전가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초래한 지구적 환경 불평등은 환경 자원의 불공평한 배분과 활용을 촉진해 환경문제를 범지구적으로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소비의 세계화가 세계적 환경 교란 불러

신자유주의 시대 환경을 일상적으로 파괴하는 핵심 기제는 ‘소비의 세계화’다. 이는 환경이 자본과 상품의 순환망 속으로 말려든 것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모습이다. 개방화와 자유화로 상품의 초국경적 교역이 급속히 팽창하면서 일상소비는 세계 전역에서 생산된 저렴한 상품들로 채워지고 있다. 자유 교역의 확장으로 인해 상품에 대한 지구적 수요는 가히 폭발적이다. 이는 곧 원료, 중간재, 최종재 등을 생산하는 세계 각 지역의 환경에 대한 훼손과 교란의 압력을 높이는 자극이 된다.

소비의 세계화가 초래하는 환경파괴는 소비의 결과로 발생한 노폐물(예, 전자폐기물)이 세계 전역으로 확산되는 것에 의해 더욱 광범위하게 발생한다. 노폐물은 환경시장을 통해 제3세계로 흘러들어간다는 점에서 그 피해가 가난한 지역과 사람들에게로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노폐물이 가지고 있는 유독물질이 생태계의 흐름을 타고 무차별적으로 확산된다는 점에선 지구상의 모든 지역과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 지구 온난화는 소비자로서 우리 모두가 원인 제공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임을 보여주는 신자유주의식 환경 문제의 대표적인 예다.

신자유주의는 지구촌 사람들이 꾸려가는 보편적인 경제활동의 방식이자 그 이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실제의 경제활동으로 조직되고 지역 특유의 환경 문제로 구현되는 방식은 나라에 따라 다르다. 한국의 경우, 신자유주의는 성장이란 이름으로 국토환경에 대한 규제를 풀고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대상으로 바꾸는 정책으로 나타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성향의 이명박 정부 국정 과제들이 대규모 토건적 개발 사업을 우선으로 하는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토 환경의 상품화 부추기는 한국의 신개발주의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이렇듯 개발주의와 결합된 신개발주의로 그 구체적 모습을 하고 있다. 정책으로서 신자유주의는 일반적으로 ‘비즈니스 프렌들리’ 시장 환경을 조성하는 데 역점을 둔다. 이에 견주어 개발주의와 결합된 한국적 신자유주의, 즉 신개발주의는 환경 속으로 시장논리를 침투시켜 상품으로 바꾸고(예, 자연의 물길을 운하나 관광지로 개조하기), 이를 통해 국토 전역에 다양한 투기적 경제활동을 조장하는 데 역점을 둔다. 그 결과 선진국과 달리 토건경제가 국민경제의 중심을 이루게 된다.

신개발주의는 ‘국토환경의 상품화’를 대대적으로 부추김에 따라 생명의 터전으로서 국토환경 전반이 전에 없는 파괴적 개발의 높은 압력을 받게 된다. 이로써 한반도에서 억겁의 세월 동안 꾸려온 민족의 생태 문화적 삶이 단절되고 한국사회가 경쟁력 있는 녹색사회로 발전해갈 가능성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우리의 자각의식은 놀라울 정도로 약하다. 이는 우리의 녹색 자의식이 집권세력이 유포하는 신자유주의 성장담론의 포로가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녹색성장이 새로운 지배담론이 되면서 신개발주의가 불러올 환경 파괴의 위험은 더욱 가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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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애기자 glaukus@kyunghyang.com

ㆍ러브조이 美하인즈센터 前소장 인터뷰

토머스 러브조이 미 하인즈 센터 전 소장은 경향신문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고의적으로 환경을 무시한 부시 행정부의 지난 8년이 미국을 세계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국으로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러브조이 전 소장은 세계은행 환경 고문, 세계야생동물기금 부총재 등을 지낸 기후변화·생물다양성 전문가로 하인즈 센터 소장을 거쳐 현재 하인즈센터 생물다양성 부문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인즈센터는 미국의 대표적인 환경정책 연구 기관이다.



- 하인즈센터는 미국 환경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영향 아래 놓인 지난 20여년간 미국의 환경 변화를 평가해 주십시오.

“1990년 청정대기법이 황 사용을 규제하면서 산성비의 산성도는 놀라울 만큼 내려갔습니다. 그래서 산성비는 개선됐지만 종 다양성, 수질 등 다른 생체 지표들은 추락했지요.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는 종의 숫자와 속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수질 오염도 늘었습니다. 미시시피강의 수량이 줄어들면서 멕시코만에는 ‘죽어가는 땅’이 늘어나고 있어요. 기후 변화의 영향도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미 서부의 침엽수림이 말라 죽어가고 있고, 산불은 빈번해졌습니다. 여름이 길어지고 겨울이 따뜻해지면서 소나무좀이 늘어나 소나무숲도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 규제 완화, 민영화를 골자로 하는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이 결국 환경 파괴를 불러온 것이라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규제 완화, 단기 이익 추구 경향 등이 환경의 가치 하락을 불러왔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반(反)환경주의 측에서는 고의적으로 환경을 무시해왔죠. 바로 이것이 지난 8년간 미국을 기후 변화 이슈로부터 한발짝 물러나게 한 가장 큰 요인입니다.”


- 미국에 신자유주의를 본격 도입한 레이건 정부 전후로 미국 환경 정책이 크게 변했습니까.

“레이건 이전 닉슨 대통령, 포드 부통령 시절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강력하고 선진적인 환경 정책들을 편 시기였죠. 백악관에 ‘환경의 질 위원회’를 설치하고, 미국 환경청을 세웠습니다. 환경정책법, 멸종위기종법, 수질법, 대기법 등의 환경 관련 주요 법안들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죠. (포드가 자동차 산업 대부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레이건 시대의 개막과 함께 미국의 환경문제는 당파적 쟁점이 되었습니다. 레이건-아버지 부시-아들 부시로 이어지는 공화당의 환경 정책은 진보와 후퇴를 반복하다 부시 대통령, 체니 부통령 시절 명백히 반(反) 환경주의로 돌아섰습니다.”


- 지난 20여년간 미국은 세계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국이 됐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무엇입니까.

“값싼 에너지 때문입니다. 미국의 에너지 가격이 매우 저렴한 것이 근본 원인이죠. (한국석유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휘발유 ℓ당 소비자 가격은 미국이 870원으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가입 국가 중 멕시코 647원에 이어 두번째로 낮았다. 독일·영국의 2115원, 2141원의 3분의 1 수준이며, 한국의 1670원의 절반도 못 미쳤다.) 연간 배출량은 오랫동안 세계 1위였으나 이제는 중국이 더 많습니다. 그래도 온실가스 배출량 총합으로는 미국이 세계 최대입니다.”


- 부시 행정부의 기후 변화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부시의 대선 캠페인에 청정 대기법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시 정부 출범 첫 달에 이 공약은 흐지부지됐죠. 엄밀히 말하자면 거꾸로 갔어요. 부시 집권기 내내 기후 과학자들은 압력을 받거나 무시당했습니다. 심지어 미 야생동물보호국의 멸종위기종 연구 결과를 정부가 인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이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 정부가 기후변화 이슈에 소극적인 것은 석유 기업의 로비 때문입니까.

“석유와 석탄 업체의 로비가 매우 강력한 것은 사실입니다. 백악관이 이 문제에 대해 리더십을 행사하지 못하고, 나아가 개선 노력을 억압해왔습니다. 2001년에는 교토 의정서에서 탈퇴했습니다. 이 문제를 놓고 벌어진 의회 투표에서 탈퇴 여론이 더 강했기 때문입니다.”


- 부시 정부는 지구 온난화의 원인은 인간이 아니라고 주장해왔습니다. 지구 온난화를 일으킨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인간 활동입니다. 화석 연료 사용, 열대 우림 파괴, 인구 증가, 소비 확대 등이 지구를 데우고 있어요. 반(反)환경주의와 반(反)환경적 정책들 때문에 지구 온난화를 저지하는 행동들이 늦어졌고, 지구는 더 더워졌습니다.”


- 최근 오바마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미국의 기후 변화 정책이 달라질 것으로 기대합니까.

“오바마는 기후변화 이슈에 대해 알고 있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려 합니다. 국가 차원의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도입될 것입니다. 올해 말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기후변화협약 회의에서 미국이 주도적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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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애기자 glaukus@kyunghyang.com

ㆍ‘석유맨’ 넘치던 부시 내각 “지구온난화 근거없다” 주장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 ‘오명’

2005년 6월 백악관이 발칵 뒤집혔다. 부시 행정부의 백악관 환경담당보좌관인 필립 쿠니가 지난 5년간 환경청 발간 보고서들을 검열하고 멋대로 편집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쿠니는 2001년부터 수차례에 걸쳐 환경청의 연례 환경보고서와 대기오염 보고서에 손을 댔다. ‘굴뚝이나 파이프 등의 배출가스가 부분적으로나마 지구 온난화에 기여했다’는 문장은 ‘과학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로 바뀌었다. ‘지구 온난화가 건강과 생태계를 위협할 수 있다’는 내용은 이해할 수 없다며 잘라냈다. 2003년 크리스티 휘트먼 환경청장은 쿠니의 이런 검열에 대해 “반쪽짜리 진실을 전달하느니 내용 자체를 없애는 것이 낫다”며 기후변화에 관한 장 전체를 통째로 덜어내고 연례 환경보고서를 출간한 뒤 사직했다. 이에 쿠니는 “환경청장의 사임과 보고서 문제는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곧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미국은 다시 한 번 놀랐다. 쿠니가 백악관을 떠나 새로 얻은 일자리는 엑손 모빌사였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표적 석유 업체인 엑손 모빌은 지구 온난화를 부정하기 위해 관련 업체들과 로비 단체를 조직하고 정부와 학계에 압력을 행사해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구 온난화는 자연적인 현상이며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는 쿠니의 검열 원칙은 엑손 모빌의 주장과 다를 바가 없었다. 쿠니가 백악관 입성 전 미국석유협회 기후팀장 및 로비스트로 활동해 왔다는 사실도 새로 드러났다. 그런 그가 2001년부터 부시의 지근거리에서 환경정책을 자문해왔던 것이다.

쿠니뿐만이 아니었다. 부시 내각의 요직은 석유 기업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우선 부시 자신이 석유 기업인 출신이었다. 부시의 아버지 조지 H 부시 전 대통령은 ‘사파타 페트롤리엄’이라는 석유 기업을 세운 석유 사업가이며, 부시 본인도 작은 석유 업체를 운영했다. 텍사스 주지사에 이어 대통령이 되기까지 그의 정치 후원금은 텍사코, 엑손 등 거대 석유 기업들로부터 나왔다. 영국 옵서버지에 따르면 2000년 대선 당시 석유·가스 기업들은 1000만달러의 정치자금을 부시의 공화당에 기부했다.

부통령 딕 체니는 석유 서비스 기업 핼리버튼을 세우고 걸프전 당시 전쟁 물자를 보급해 돈을 벌었다. 부시의 경제비서관 돈 에번스는 작은 석유회사의 간부였으며, 그의 부친은 다국적 석유 기업 쉘에서 근무했다. 주영대사 덕 패리시의 조부는 훗날 엑손으로 합병되는 험블 오일의 창업자였고, 중동정책을 자문하던 리처드 하스는 산타페 국제석유회사의 이사였다. 옵서버 칼럼니스트 에드 불리아미는 “부시 행정부의 혈관과 근육 구석구석에는 석유가 흐른다”고 했다. 석유 기업의 걸림돌인 ‘지구 온난화’는 부시 행정부의 걸림돌이기도 했다.


거꾸로 갔던 기후 변화 정책

부시도 2000년 대선 때 ‘이산화탄소 감축’을 공약했다. 그 역시 대세를 거스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선 직후 그는 석유가격 상승을 이유로 이 공약을 취소했다. 이어 3월에는 전격적으로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했다. 교토의정서대로 감축할 경우 매년 5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이유였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중국·인도 등이 감축 의무를 지지 않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명분에도 의존했다. 교토의정서에 따르면 미국은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2012년까지 1990년 대비 7% 감축해야 했다. 2005년 현재 미국의 이산화탄소 발생량은 90년 대비 19.9% 늘어났다.

부시의 등장으로 미국의 기후 변화 정책은 빠른 속도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클린턴-앨 고어 시절만 해도 미국의 정치와 산업 사이에는 기후 변화를 놓고 약간의 긴장감이 감돌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원의 거부로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클린턴은 교토의정서의 비준을 추진했다. 앨 고어는 알려져 있다시피 ‘기후 변화의 전도사’로 변신, 미국인들에게 ‘불편한 진실’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부시는 교토의정서에 이어 ‘청정대기법’에 손을 댔다. 99년 제정된 청정대기법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환경청이 산업체의 배출 규모를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부시는 “환경청은 자동차의 배출가스를 조절할 권리가 없다”며 청정대기법 무력화에 나섰다. 캘리포니아 등 12개 주와 13개 환경단체가 즉각 반발해 부시 행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듬해에는 “노후 산업체가 장비를 업그레이드할 경우 대기 배출 규제를 제외시켜 준다”는 청정대기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가디언은 이 법으로 1만7000개 업체가 대기 배출 규제를 면제받았다고 보도했다.


부시는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66% 감축하자는 조지프 리버먼 상원의원과 존 워너 의원의 ‘리버먼·워너 법안’에도 적극 반대했다. 부시는 이 법안이 상원에 상정되자마자 “6조달러의 막대한 경제적 비용이 든다”며 “온실가스 감축은 배출 규제 대신 산업계의 자발적 감축과 기술 혁신으로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2008년 상원은 결국 이 법안을 부결시켰다. 대신 부시 행정부 8년 동안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의 해법으로 제시한 것은 ‘자발적 감축’이었다.

부시의 이런 태도로 그의 집권 기간 동안 미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꾸준히 늘어났다. 2000년 58억6000만t이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05년 59억9000만t으로 증가했다. 미국의 석유가 줄기 시작한다는 ‘석유정점론’이 대두되자 부시는 이를 “국가적 위기”로 선언하고 알래스카 북부에서 석유를 찾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마지막 대자연, 연방 야생동물보호지역으로 수십년간 보호해온 지역이었다.


지구 온난화의 논리를 깨라

신자유주의의 수혜자인 기업은 지구 온난화에 의문을 표하고, 그 책임을 부정하는 일에 집중했다. 지구 온난화라는 현상 자체를 인정하는 것은 곧 굴뚝과 공장의 수 축소를 초래할 배출가스 규제의 수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엑손 모빌·포드·텍사코 등 석유·철강·에너지 기업들이 지구 온난화 부정을 위한 로비단체 ‘세계기후연맹(Global Climate Coalition)’을 결성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기후 변화 위기가 전 세계로 타전되기도 전인 89년의 일이었다.

세계기후연맹의 최우선 과제는 ‘지구 온난화는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이론에 불과하다’고 연구해 줄 과학자를 찾는 것이었다. MIT 공대의 리처드 린젠, 버지니아 대학의 패트릭 마이클 교수가 이에 응답했고, 보수 싱크탱크인 ‘마셜기구’가 손을 내밀었다. 린젠 교수는 사이언티픽 어메리칸 매거진에 “지구 온난화의 근거가 없다, (따라서 온난화 주장에는) 도덕적인 거부감이 든다”고 기고했다. 마이클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 “기후 변화는 마르크시즘 이후 최고의 새로운 종교”라고 강조했다. 마이클 교수는 뉴스레터 형식의 ‘세계 기후 리포트’라는 정기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뉴스위크에 따르면 이 보고서는 석탄 업체들의 모임인 ‘서부연료연맹’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으며, 마이클 교수는 업체들로부터 95년까지 16만5000달러를 받았다.

이들 과학자는 “지구 온난화의 위험성이 과장됐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과학계의 입장은 아직까지 불명확하다” “기온 상승은 사실이지만 지구 온난화가 아니라 도시화 때문이다” “지구 온도 상승은 자연적 현상이다”와 같은 회의론을 쏟아냈다. 이런 상황에서 하버드대 천문학자들이 “위성 추적 결과 명백한 온난화의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연구를 발표, 온난화 회의론을 뒷받침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연구는 세계기후연맹과 연대하고 있는 ‘마셜기구’의 지원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론자들은 97년 교토 회의가 열리기 직전 ‘지구 기후 변화에 대한 라이프치히 선언문’을 발표하고 “기후 재난은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으로 우리는 동의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자신들을 대기 과학자라고 했지만, 110여명 가운데 25명은 텔레비전 기상 캐스터였다.

미국이 이같이 지구 온난화 여부를 놓고 논쟁을 벌이던 10여년 동안 전 세계의 기온은 빠르게 상승했다. 2003년 여름엔 사상 최악의 열파가 닥쳐 유럽에서만 3만5000여명이 사망했다. 유엔 산하의 국제기구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은 2003년 3차 보고서를 발간하고 “90년대는 역사상 가장 더운 10년이었으며, 최근 기후 변화는 부분적으로 인간 활동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 세계 2000여명의 과학자가 참여하고 있는 IPCC의 결론이 미국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같은해 미 상원은 기후 변화에 대한 법안을 표결 끝에 43 대 55로 부결시켰다. 기후 변화의 가장 큰 피해자로 지목되는 알래스카를 대표하는 테드 스티븐슨 의원도 반대표를 던졌다. “알래스카가 더워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 활동 때문인지 자연적인 현상인지 확실치 않다”는 이유였다.


“미국이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은 매년 60여억t의 이산화탄소를 뿜어대는 세계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국이다. 전 세계 인구의 5%가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1%를 배출한다. 배출량뿐 아니라 배출 증가량 또한 세계 최대다. 80년 47억8865만t이던 미국의 온실가스는 2005년 59억9429만t으로 증가했다. 25.1% 늘어난 셈이다. 같은 기간 영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5.2% 감소했고, 독일의 배출량은 90년 대비 -15.9%다. 전 세계가 온실가스 감축에 들어간 지난 20년 동안에도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꾸준히 늘어났다.

미국의 1인당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9.76t이다. 우리나라의 1인당 배출량 10.53t의 2배가량이며 세계 평균 4.48t의 4배다. 1인당 석유 소비량은 약 25배럴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이 보유하는 자동차는 2억2600만대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 1인당 연간 주행거리는 2만2000㎞로 세계에서 가장 길고, 전체 차량의 52%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이다. 세계자원연구소에 따르면 산업화가 시작된 1850년 이후 미국이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양은 3246억t이다. 미국이 “최대의 이산화탄소 배출국”으로 중국을 꼽지만, 과거 총 배출량으로는 미국이 중국(892억t)의 약 4배다.

그러나 미국인들의 지구 온난화에 대한 경각심은 놀라울 만큼 낮다. 뉴스위크에 따르면 2006년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서 미국인의 64%가 ‘지구 온난화는 과학적인 근거가 불확실하다’고 응답했다. 지난해 한국의 한 설문조사에서 95.0%가 지구 온난화 현상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94.6%가 국가 감축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과 대조적이다. 지구 온난화의 과학적 불확실성을 강조해 온 미국 정부 및 기업들의 20여년에 걸친 노력이 성과를 거둔 셈이다.

미국이 주도한 지구 온난화는 남태평양의 섬나라들에 가장 먼저 피해를 입히고 있다. 키리바시, 투발루, 카트렛 제도와 같은 남태평양의 섬나라들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가 물에 잠길 위기에 처했다. 산불 발생이 빈번해지거나 소나무 재선충이 늘어났다는 미국과는 차원이 다른 피해다.

2007년 12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제13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카트렛 제도의 우르슐라 라코바는 “우리 섬에는 자동차도,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없다. 그렇지만 자꾸만 바닷물이 차올라 민물 대신 코코넛을 마신다”고 증언했다. 키리바시의 아노테 통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키리바시에서 가장 높은 지역은 해발 2m에 불과해 기후 변화로 키리바시가 바닷속에 잠기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라며 “호주와 뉴질랜드가 환경 난민 문제를 검토해 달라”고 말했다. 키리바시가 2005년 한 해 동안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양은 4만t이었다. 미국의 한 해 배출량의 14만9857분의 1이다.

브레이크를 잃은 미국의 욕망이 가난한 나라들을 파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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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 배준범 통신원

ㆍ3부 - 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3)지구적 식량공급 체계
ㆍ‘푸드 퍼스트’ 운동 라즈 파텔 인터뷰

미국의 ‘푸드 퍼스트’(Food First)로 잘 알려진 비영리연구교육기관인 ‘식량과 발전정책 연구소’의 연구원인 라즈 파텔 박사는 다국적 기업이 장악한 지구적 식량 공급 체계의 위험성을 경고해온 활동가이자 연구자이다. 세계적인 농민단체인 비아 캄페시나(Via Campesina)와 함께 활동하는 것은 물론 도시빈곤문제에도 관여하고 있다. 그는 1999년 세계무역기구(WTO) 회의가 열린 미국 시애틀에서 식량주권을 지지하는 시위를 조직하기도 했다. 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 콰줄루 나탈 대학 국제개발학 연구소 특별연구원으로도 일하고 있다. 세계은행(World Bank), 세계무역기구(WTO), 국제연합(UN) 등에서도 일했던 그는 온라인 진보 웹진인 ‘거북이의 소리’(The Voice of the Turtle) 공동 편집자이기도 하다.

경향신문은 파텔 박사가 지난 2월23일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대학(UCLA)에서 이 대학의 비교사회연구소 주최로 개최된 세계 식량위기에 대한 토론회를 마친 후 만났다. 토론회 사회를 맡았던 이 대학 역사학과 교수이자 자본주의 이행 과정에 대한 ‘브레너 논쟁’의 한 당사자인 로버트 브레너 교수는 “나 자신을 비롯해 자본주의를 연구하는 사람 대다수가 자본주의로의 이행 과정상의 농업문제에만 관심을 가졌지, 산업화 이후는 등한시했다”면서 “그러나 이제는 농업과 환경이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도래했다”고 지적했다.


-세계 경제위기가 세계 식량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십니까?



“당연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굶을 것입니다. 굶주리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경제위기 속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 사람들의 다수 역시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올해 10억명이 굶주림에 시달릴 것입니다.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음식을 살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많은 사람이 모르고 있어요. 이 문제를 보도하는 언론이 많지 않기 때문이죠. 식량가격이 문제라기보다는, 부유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 사이의 격차가 문제입니다. 특히 여성들이 더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굶주리는 사람들의 60%가 여성입니다.”


-가난해질수록 반환경적으로 생산된 값싼 음식에 의존하게 됩니다. 더구나 요즘 같은 경제위기 상황이라면, 지속 가능한 농업으로 전환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는 것이 아닐까요. 더 비싼 값을 지불하고 음식을 사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선생님의 주장이 여기서는 공감을 얻을 수 있어도 쉽게 실현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경제위기 속에서 해결책이 어려워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일자리의 문제와 노동조건과 연관해서 사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현재 유일하게 늘고 있는 일자리가 맥도널드의 임시직 일자리들이에요.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일자리들인가요? 이런 종류의 고용은 적정 임금을 받는 일자리가 아닙니다. 생활임금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죠. 어제(2월22일자) 파이낸셜 타임스를 보세요.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해 임금경직성을 다시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실렸어요. 노동 및 임금의 유연화가 디플레이션을 유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에요. 보수적 경제신문조차 이런 얘기를 하는 상황입니다.”


-세계 농업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과정을 설명해주십시오.

“그것은 국제무역 및 경제기구들의 정책에서 비롯됐습니다. 사실, 세계은행도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70년대에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 국방부 장관이었던 맥나마라가 퇴임한 후 세계은행 총재가 됐을 때만 해도 세계은행은 농업에 거의 관여하지 않는 기구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농업 관련 정책들을 도입하긴 했지만, 그중에서는 지금 보면 꽤나 유용한 정책이 많았어요. 식량 비축 제도나 농민들에 대한 최소 지원 정책 등이 그 예입니다. 하지만 80년대 신자유주의의 등장과 함께 이 모든 것이 변했어요. 곡물 매입과 저장소 운영이 중단되고, 농업시장조절 제도에 대한 지원이 끊기고, 가격 안정화 장치는 해체되었죠. 그 자리에 구조조정 프로그램들이 도입되었고, 결과는 재앙이었습니다. 정책 입안자들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할 것이라고 얘기했지만, 지금까지도 그 손은 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보고된 세계은행 내부평가서도 80년대 대아프리카 농업정책을 혹평하고 있습니다. 최근 사례로는 작년에 식량부족으로 폭동이 일어났던 아이티가 있습니다. 굶주린 이들이 허기를 달래기 위해서 흙을 케이크로 구워 먹는 지경까지 갔어요.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8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아이티는 쌀 자급률이 100%에 가까운 나라였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두 번 겪고 나서는 쌀 부문이 몰락했고, 그 이후 미국 쌀 수입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쌀산업에 미국 정부가 수십억달러를 보조해왔습니다. 미 케이토 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한 해에만 쌀산업에 대한 보조금이 10억달러에 달했습니다.”


-미국의 농업과 농촌의 현실은 어떠습니까.



“미국 농촌지역 여성들의 기대 수명이 줄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안전한 먹거리의 문제입니다. 미국에서는 역설적으로 농촌지역에서 안전한 음식을 사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식량생산은 거대기업화되었지만, 대부분이 사료용이거나 아니면 가공 식품용으로 생산되다 보니, 농촌지역에서도 외부에서 가져온 안 좋은 음식들을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 지역의 소득은 평균에 미치지 못하고 그래서 건강상의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죠. 이러한 질 낮은 음식을 먹다 보니 당뇨와 같이 나쁜 식사에서 유래하는 질병이 많이 나타나고 수명이 줄고 있는 것입니다. 소농들은 미국에서도 항상 어려웠고, 최근에는 더욱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농업 보조금의 액수는 엄청나지만, 거대기업들이 보조금의 대부분을 가져가기 때문에 이들은 혜택을 많이 보지 못합니다.”



-먹거리 문제와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인들도 많이 인식하고 있지만, 당장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쾌하지 않은 측면이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대형 슈퍼에 가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대형 유통 체인점들은 지금 현재 식량과 환경 위기의 핵입니다. 유기농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대안적 먹거리들이 있습니다. 이를 사면서 유기농 음식을 생산하는 사람들과 알며 지내는 것도 어렵지 않은 실천입니다. 다른 먹거리를 생산해내는 사람들과 연결되고 그들끼리 연결시키는 것, 그것이 새로운 관계의 시작입니다. 더 나아간다면, 식량 주권을 법에 명문화하는 것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먼 얘기처럼 들릴 수 있으나, 얼마 전에 최초로 에콰도르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식량 주권뿐만이 아니라, 농업과 환경의 조화 그리고 토지개혁까지 포괄하는 법이었습니다.”


-식량산업이 어디까지 왔는가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한국의 대우가 마다가스카르의 농경지 개발에 뛰어든 것이 언급되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사실 황당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한국에서 아무도 농사를 짓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농촌에서 고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재벌이 마다가스카르까지 가는 것이 사업상 합리적인 계산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미국에서는 조금씩 상황이 바뀌고 있어요. 부모가 농사를 짓지 않는데도 농촌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죠. 이러한 흐름들을 강화할 필요가 있어요. 농업에 새로운 가치가 부여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국에도 가봤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좋은 음식을 한국인들은 누리고 있습니다. 그것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 시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강기갑 의원은 잘 지내고 있는가 모르겠습니다(웃음). 그러한 집회와 저항들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정부가 미국에 이미 그렇게 많이 양보를 한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량 주권과 양질의 먹거리를 위한 한국인들의 투쟁은 매우 고귀한 것이고 많은 이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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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병선 | 건국대 사회과학부 경제학 교수


ㆍ3부 - 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3)지구적 식량공급 체계


광우병, 멜라민 파동… 끝없는 식탁 위협

그 어떤 위기가 닥치더라도 튼실한 알곡으로 채워진 곳간만 있다면 두려움이 덜 할 텐데, 지구적 금융위기가 휩쓸면서 먹거리의 안정적인 확보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줄어드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지난해 초만 하더라도 국제곡물가격의 폭등으로 세계 많은 지역에서 당장의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배급소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모습이 신문지상에 등장했고, 봄에는 미국산 광우병 의심 쇠고기 수입문제로 촛불문화제가 이어졌다. 그리고 가을에는 중국발 멜라민 파동으로 한국 사회가 시끄러웠다. 식량위기와 광우병 의심 쇠고기, 멜라민 파동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현재의 농업문제와 먹거리문제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사건들이다.

시장경제에 기반하는 자본주의체제를 성립할 수 있게 만들어 준 터전은 농사였지만, 산업혁명 이후 공업이 지배하는 사회로 전환되면서 농사는 이윤을 얻기 위한 산업인 농업으로 변질되었다. 농업을 통해 만들어진 농산물도 교역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농산물 시장이 확대될수록 농사의 주체였던 농민의 역할은 더욱 축소되었고, 대신 그 자리는 농업을 통해서 이윤을 얻고자 하는 자본들로 채워졌다. “종자에서 식탁까지” 이르는 거의 전 과정이 거대자본들에 장악되면서 농민들조차 자신들이 소비하는 먹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가공되는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곡물가격 상승은 초국적 농식품복합체만 배불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한 국가나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농식품체계를 국경을 넘어서 이루어지는 ‘지구적 농식품체계’로 더욱 강고하게 만들었고, 이를 카길, 콘아그라, ADM, 몬산토와 같은 초국적 농식품복합체가 주도했다. 일례로 1986년에 시작된 우루과이라운드 농업협상에서 미국이 제안한 내용의 대부분은 카길의 전 부사장인 암스튜츠에 의해 작성되었는데, 그 주요 내용은 농가에 대한 보조 삭감과 생산조절의 폐지였다. 미국 곡물유통의 80%를 카길을 비롯한 4개 업체가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제안이었다. 이들이 최근의 식량위기를 계기로 막대한 이득을 챙겼음은 물론이다. 특히 카길의 자회사이면서 비료를 생산하는 모자익은 전년 대비 10배의 순익을 올렸다.

이러다보니 곡물가격의 상승이 소수 대규모 농기업의 수익 증가로 연결되었을 뿐, 대다수의 농민은 오히려 고통을 받았다. 저개발국의 70% 정도가 곡물 수입국이고, 전 세계에서 굶주리고 있는 8억5000만명 가운데 80%는 농민이기 때문이다. 곡물가격 상승이 농민들을 더욱 압박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재의 농식품체계이다. 이는 자국의 농민을 보호하고 식량자급을 달성하기 위한 생산 지원과 보조를 금지시킨 신자유주의 농업구조정책이 낳은 필연적 결과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자본의 활동영역이 확대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무역 관련 지적소유권 협정(TRIPs)’은 초국적 농식품복합체들이 농업을 완전하게 지배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종자 관련 특허권을 중심의제로 한 이 협상의 외피는 ‘자유화’라는 틀 속에서 진행되었지만, 실제로는 자본에 대한 이윤의 ‘보호’가 핵심이었다. 이 때문에 자유무역을 철저하게 옹호해 왔던 바그와티조차 세계무역기구(WTO)가 ‘로열티 수금원’으로 전락했다며 비판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적 재화로서 남아 있어야 했던 인류공동의 자산인 유전자원이 상품의 형태로 농민들에게 도달함으로써 종자가 이제는 농민 스스로에 의한 재생산 과정에서 분리된 채 종자업체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는 유전자 조작 종자의 개발과 확산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 결과는 몬산토가 유전자 조작 종자의 90% 이상을 지배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몬산토를 비롯한 바이오메이저들은 식량위기를 계기로 유전자 조작 쌀과 밀의 확산을 꾀하고 있다.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먹거리의 식탁 점령작전은 이미 시작됐다.


소비자 지출 식료품비의 7%만 농민에게 돌아가

‘위생 및 식물 검역의 조치에 관한 협정’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각국의 자주적인 판단에 의해 이루어졌던 안전성 검사나 표시 등도 무역장벽을 제거한다는 빌미로 규제가 대폭 완화됐다. 동물의 질병과 관련된 국제조직인 국제수역사무국도 축산물 수출국과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에 의해 주도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제시하는 기준도 점차 완화되고 있다. 가축의 질병을 통제하던 기구가 안전하지 못한 축산물의 교역을 부추기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적 농식품체계에서는 농산물 수출국의 농민조차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의 지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표적인 농식품 수출국인 미국의 경우도 농식품복합체의 지배 강화와 맞물려 가족농의 궤멸과 대규모 기업농의 급성장으로 생산의 특화가 심화되고 있다. 상위 2%의 농가가 전체 판매액의 50% 이상을 생산하고 있으며, 하위 73%의 가족농은 단지 10% 미만의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다. 수없이 많은 농민들이 시장에서의 경쟁으로 내몰리면서 소비자가 지출한 식료품비의 7%만이 농민으로 돌아갈 뿐이다. 이 몫은 식품포장업자가 가져가는 몫보다 작다. 이 때문에 농사짓는 사람이 감옥에 수감된 사람보다 적은 것이 미국 농업의 현실이다.


상추 운송 에너지 비용, 상추 먹고 얻는 에너지의 36배

초국적 농식품복합체가 지배하는 지구적 농식품체계는 먹거리의 생산과 소비 사이의 공간적·시간적·사회적 괴리를 인위적으로 확대함으로써 자신들의 활동영역을 넓혀왔다. 우선 먹거리의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기까지의 거리인 ‘푸드마일’이 점차 늘어났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에서 재배된 상추를 뉴욕까지 운송하는 데 소요되는 에너지가 상추를 인간이 먹었을 때 얻는 에너지보다 36배나 많다. 농업생산에 사용되는 에너지가 농산물의 포장과 운송에 사용되는 에너지의 양과 같다.

또한 먹거리가 생산된 시점과 소비되는 시점 사이의 괴리가 확대됨에 따라 수확 후 농약 살포가 빈번해지고, 완숙 전에 수확을 하기 때문에 영양도 저하된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먹거리의 품질이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화학물질의 첨가로 이어졌다. 또한 먹거리의 지역성이나 계절성이 무시된 값싼 농산물이나 냉동식품이 대량으로 수입되어 안전성이 의심되는 먹거리가 시장을 석권하고, 잔류농약이나 식품첨가물로 오염된 먹거리가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다.


다양한 농산품, 실제로는 소수 대자본의 브랜드

경제의 세계화가 먹거리의 세계화를 촉진하면서 먹거리도 균일화되고 있다. 대형 마트에서 보는 엄청나게 다양한 제품들은 여러 가지 선택을 가능하게 하지만, 이는 농업의 다양성 때문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브랜드에 불과하다. 상이한 지역 작물들을 생산하는 수많은 농민들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소수의 초국적 농식품복합체들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표준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외견상 식탁의 다양화와는 정반대로 극히 제한된 생물종과 품종에 의존하는 체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최근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의 지배로 인해 확대된 먹거리의 생산과 소비 사이의 괴리를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지구적 농식품체계에 대항해 지역 농식품체계를 만들고자 하는 지역 식량(로컬 푸드)운동이다. 지역 농식품체계란 일정한 지리적 거리 안에서 먹거리의 생산과 가공, 소비와 폐기가 이루어지는 순환시스템을 말하며, 로컬푸드운동은 지역 농산물의 소비를 통해 이 체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지역 식량 운동이 대안

일본에서는 지산지소(地産地消·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것)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농민장터, 학교 급식, 지역사회 지원농업 등의 형태로 로컬푸드운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역 먹거리체계는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지역사회의 유지·발전이나 농민들의 안정적 생활, 지역경제의 다양화, 대안시장의 창조에 기여한다.

사회적으로는 지역내 관계의 복원과 신뢰 구축을 가져오며, 생태적으로는 외부 자원에 대한 의존 감소, 지역 내 자원에 대한 의존 증대와 자원의 절약 등을 들 수 있다. 세계 각지의 농민과 소비자들이 실천하고 있는 로컬푸드운동은 우리가 해야 할 고민의 상당 부분을 이미 해결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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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순기자 quansoon@kyanghyang.com

ㆍ합병·기술제휴 등 다양한 공세

캐나다에 본부를 두고 카길·몬산토 등 초국적자본의 세계 농업 잠식 감시활동을 하는 국제 환경·인권단체 ETC그룹(www.etcgroup.org)이 지난해 11월 ‘누가 자연을 소유하는가’(Who Owns Nature?)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인류의 농경문화가 초국적자본에 의해 어떻게 위협받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전 세계의 상품 종자 82%는 특허로 묶여 있으며, 이 중 67%를 10대 종자회사가 점유하고 있다. 반면 세계 농부의 75%가 각지 토산물을 생산하고 그 종자를 저장하며, 14억 농민이 이렇게 저장된 종자로 경작한다. 100대 식료품 도매업체가 전 세계 식료도매업 시장의 35%를 장악하고 있다.

이에 반해 세계 각지에서 생산된 먹거리의 85%는 해당 지역과 인근에서만 소비되고, 이 중 대부분이 시장을 통하지 않는다. 전 세계의 먹거리 관련 기업체들의 연구 주제의 80%는 운송·저장 및 시장 확대에 관한 기술이다. 하지만 전 세계 농부들은 오로지 생산성과 영양가, 환경보존에 관해 고민할 뿐이다.”

초국적자본은 일찌감치 한국에도 진출해 있다. 세계 최대의 곡물 유통업체인 카길은 국내 곡물수입량의 60%를 장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ETC그룹에 따르면 이 회사는 2007년 전 세계에서 883억달러(약 123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회사는 카길코리아, 사료업체 퓨리나코리아, 미국 쇠고기 유통업체인 엑셀코리아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세계 최대의 종자업체 몬산토도 국내에 세미니스코리아를 두고 있으며 국내 종자시장의 20%를 점하고 있다. 몬산토는 2007년 종자부문에서만 49억64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린 거대 자본이다.

업계는 신젠타종묘 등 다른 외국계 업체까지 포함해 외국 종자업체의 국내 시장점유율이 40%를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7대 농약업체 가운데 2곳, 6대 사료업체 가운데 1곳 역시 초국적 자본이다. 이들은 지난해 3·4분기 현재 각각 약 18%와 12%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초국적 자본은 이밖에도 국내 기업체와의 기술 제휴나 판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초국적자본은 금융 등 다른 업계와 마찬가지로 외환위기 이후 국내시장 잠식을 시작했다.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흥농종묘 등 토종자본 3개사가 한국 종자 시장을 60% 이상 점유했으나 그 이후 모두 초국적자본에 합병됐다.

그 사이 우리 농업은 산업화와 세계화 명분에 밀려 위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농가 평균소득이 1986년까지 도시근로자 가구 소득보다 연 30만~80만원 높았으나, 87년부터 역전됐다. 우루과이라운드 이후인 95년부터는 해마다 100만원 이상 격차를 보였다. 2007년 현재 도·농 간 연소득차는 1213만원이나 된다.

농민이 농촌을 떠나면서 전체 인구 대비 농업가구 인구 비중은 94년 11.6%에서 2006년 7.1%로 감소했다. 같은 이유로 1인당 경지면적은 94년 3667㎡에서 2002년 4872㎡로 32%나 늘었다.


식량주권도 위협받고 있다. 쌀을 제외하면 국내의 식량자급률은 매우 낮은 편이다. 2006년 현재 콩류는 14.2%, 곡류는 27.8% 등으로 80년(각각 40.1%, 53.3%)에 비해 급감했다. 80년대 중반까지 전체 50% 수준이던 식량자급률이 농산물 시장 개방 확대로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90% 이상의 자급률을 보이는 쌀 역시 2014년 시장 개방을 앞두고 있는 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비준을 앞두고 있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이런 한국에서 초국적 자본은 무엇을 하게 될까. ETC그룹 보고서 뒷부분에는 이런 경고가 있다.

“초국적자본은 사회·경제·무역 체제를 만드는 압도적 국제 권력이다. 이들은 전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는 물론 환경·민주주의·인권 측면에도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초국적자본의 활동을 감시할 국제기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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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쓰기(일본 가나가와현)/조홍민특파원 dury129@kyunghyang.com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몰고온 폐해, 글로벌 자본주의의 그늘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일본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한 실업자 양산과 격차확대는 일본에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1990년대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의 규제를 완화했고, 그 결과 2003년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체 고용노동자의 30%를 넘어서게 됐다
. 일본노동자총연합(렌고)의 추산에 따르면 전체 5000여만명의 고용 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은 1700만~1800만에 이른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양산은 격차확대와 함께 연봉 2000만엔 이하의 노동자인 이른바 '워킹 푸어(Working Poor)'를 양산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지난해 가을 이후 전세계를 휩쓴 금융위기의 칼바람은 사회적 약자인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먼저 불어닥쳤다. 후생노동성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하켄기리(파견 해제)'로 일자리를 잃은 비정규직 실직자 수가 15만7806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가운데는 머물고 있던 회사 기숙사에서 쫓겨나 네트카페(PC방)를 전전하거나 노숙자로 전락한 사람도 적지 않다.


지난 3일 일본 가나가와현 아쓰기(厚木) 역에서 만난 마쓰모토 신이치(41)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지난해 10월 마지막 직장에서 해고를 당한 뒤 4개월간 노숙자 생활을 경험한 적이 있는 그는 아직도 일자리를 찾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가 들고온 가방 속에는 지하철 역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취업정보지가 잔뜩 들어 있었다.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40분간 버스를 타고 아쓰기 시내로 나왔지만 오늘도 허탕치기는 마찬가지였다.

"요즘엔 그나마 비를 피할 거처가 있어서 낫습니다.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돼 약간의 돈도 받을 수 있구요."

잿빛 하늘에서 가끔씩 흩뿌리는 진눈깨비를 피해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덥수룩한 수염에 거뭇거뭇 때가 낀 회색 점퍼 차림이 못내 어색한지 처음엔 들어가기를 주저했지만 자리에 앉자 담담하게 그동안 생활을 털어놓았다.

교토에서 태어난 그는 트럭운전사인 아버지를 따라 이곳저곳을 전전했다. 이시카와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미에현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마쓰모토는 86년 학교를 졸업한 직후 어려운 집안형편 탓에 곧바로 취업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직장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먼저 운전면허를 땄다. 첫 직장은 운송회사. 10 트럭을 운전하며 화물을 일본 전역에 나르는 일이었다. 비록 비정규직이었지만 그 때만해도 사정이 괜찮았다. 손에 쥐는 돈도 꽤 짭짤했다. 열심히 뛰면 한 달에 25만엔 가량은 벌 수 있었다. 닛산자동차 요코하마 공장 등의 부품을 나르기도 하고 건설현장의 자재 운송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루 18시간이 넘는 장거리 운전에 따른 피로와 지병 때문에 이 일도 오래하지 못했다. 직장을 옮겨 기계제작업체 보쉬의 사이타마 공장, 이스즈자동차 도치기 공장을 전전하면서 부품 가공일 등을 했다. 그러나 이 곳에서도 정착하진 못했다. 어느 공장도 그를 정사원으로 승격시켜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1년이 조금 지나면 나가달라는 통보만이 그에게 날아들었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군마현의 한 자동차 부품하청공장. 하지만 이곳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10월 또다시 그는 거리로 쫓겨났다.

"처음엔 막막하더라구요. 그나마 예전엔 해고통보를 받아도 이직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받아주질 않아요. 나이도 많은데다, 정식 자격증이 없다는 이유죠. 어떤 곳에서는 생긴 게 마음에 안든다고 면접에서 퇴짜를 놓는 곳도 있었어요."

가지고 있던 돈마저 떨어진 그는 할 수 없이 도쿄 이케부쿠로의 공원 등을 전전하며 노숙자로 전락했다. 2~3일에 컵라면 1개로 끼니를 때우고, 상점에서 버린 빈 상자를 모아 잠자리를 만들었다. 이래선 안되겠다는 생각에 일자리를 구하려 무진 애를 썼지만 모두 허사였다. 경기 악화로 감원의 칼바람이 불어닥친 데다 연말인 탓에 사람을 쓰는 곳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일용직 자리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후생노동성이 마련한 일자리 알선창구(헬로 워크)에서는 주소가 없다는 이유로 상담조차 할 수 없었다.

"이렇게 살다간 언제 죽을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더라구요. 세상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그러던 중 지난해 12월31일 마쓰모토는 일본 시민단체가 연합해 히비야공원에 마련한 '파견캠프'를 찾아가게 됐다. 같이 노숙생활을 하던 사람이 그런 행사가 있다고 귀띔하는 것을 듣고 단숨에 달려갔다. 그곳에서 맛본 흰 주먹밥과 따뜻한 국물에 눈물이 날 정도였다고 했다. 지요다구청과 초등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잠자리에서 모처럼 깊은 잠도 청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소득은 시민단체의 주선을 통해 생활보호대상자 신청도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지요다 구청에 신청해 8만엔의 거금을 손에 쥐고, 지난 1월 중순에는 가나가와현 아이카와마치에 있는 고용촉진주택에 들어갈 수도 있게 됐다. 말이 주택이지 3평짜리 방 하나에 간신히 몸을 추스릴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재기의 의욕을 다질 수 있어 무엇보다도 좋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 달에 나오는 8만엔 가운데 집세 1만7000엔을 내고 남은 돈으로 살아야 하지만 그나마 노숙자 생활에 비하면 사정이 나은 편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마냥 있을 수 있는 곳은 아니다.

"7월초에는 이곳을 나가야 합니다. 그 때까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자리를 구해야하는 데 아직 막막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이곳저곳 일자리를 알아보는 게 요즘 마쓰모토의 하루 일과 대부분을 차지한다.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취업정보지를 뒤져 전화로 상담한 뒤 운이 좋으면 면접까지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그 게 끝이다. 조금이라도 돈을 덜 쓰기 위해 요즘에는 하루 한 끼로 식사를 해결한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밤 9시 동네 슈퍼마켓에 가면 팔다 남은 물건을 반액에 팝니다. 먹을만 합니다. 밥은 밤에 몰아서 한 번에 해결합니다."

그는 시간이 갈수록 초조하다는 생각만 든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탈출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끝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새로운 일에 도전할 의욕도 잃어간다는 게 그의 하소연이었다.

"도대체 정부는 무얼하는 지 모르겠어요. 일단 살아야하니까 뭔가는 해야하는 데…. 희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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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경기자 kyung@kyunghyang.com

#1. “퇴근시간 이후의 업무지시는 계약사항에 없습니다! 그럼 전 이만.”

오후 6시를 갓 넘긴 시각, 이 한마디를 남기고 회사 문을 나서는 파견사원이 있다. 야근 및 회식 사절, 시급 3000엔 이하의 계약도 사절. 상사 눈치를 봐야 하는 다른 비정규직과는 차원이 다르다.

#2. 1920년대 캄차카 반도 부근의 차가운 바다. 게를 잡아 통조림으로 가공하는 ‘게공선’에서 한 남성이 시신으로 발견된다. 감독이 게으르다는 이유로 며칠 동안 화장실에 가둬놓은 노동자였다.

게공선 노동자들은 폭풍우 속에서 “하반신이 없다”고 느낄 만큼 오래도록 서서 일해야 했다. 분노가 극에 달한 이들은 파업을 감행하지만, 일본제국의 해군에 의해 간단히 진압된다. “우리에겐 우리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느낀 노동자들은 다시 저항하기로 마음먹는다.


자기 책임이다, 사회 책임이다

파견직의 삶을 주제로 한 TV드라마가 히트를 치고, ‘파견’이란 말은 나오지도 않지만 지금의 파견직 이야기나 다름없다며 80년 전의 소설에 열광한다. 비정규직이 넘쳐 나는 일본사회의 단면이다.

첫 번째는 2007년 방영된 TV드라마 <파견의 품격>이고, 두 번째는 지난해 55만부가 팔리면서 ‘게공선 현상’까지 불러온 소설 <게공선>의 일부 내용이다. 두 작품은 비정규직의 고달픈 현실을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두 가지 마음’을 보여준다. < 위 # 1, # 2 참조 >

TV드라마 <파견의 품격>은 평균시청률 20.1%를 기록하는 등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인기 요인은 판타지와 사실성의 묘한 조합에 있었다.

정리해고를 당한 뒤 파견사원이 되어 10년 동안 열심히 일한 덕에 ‘슈퍼 파견’에 이른 주인공 하루코의 이야기는 판타지에 가깝다. 하지만 고용불안에 떨며 주인공을 부러워하는 ‘후배’의 이야기는 ‘리얼‘하다.

이 드라마는 ‘노력하면 하루코처럼 될 수 있다’는 논리를 주입한다는 점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사회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임을 암시한다. ‘노력만 한다면 곤궁한 처지를 극복할 수 있으며, 현재의 빈곤은 노력을 덜한 탓’이라는 자기책임론이 일본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게공선에는 자기 책임론이 없다는 점에서 비정규직 사회를 보는 일본인의 다른 시선이 드러난다. ‘워킹푸어, 이거 혹시 게공선 이야기 아닌가요’. 도쿄의 한 서점 점원이 서가 한쪽에 꽂아둔 작은 광고팻말의 힘은 셌다. ‘현재의 워킹푸어 이야기와 닮았다’는 입소문을 타고 게공선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2차대전 무렵 쓰여진, 읽기 힘든 ‘프롤레타리아 문학’이었는데도 그랬다.

게공선 속 노동자들은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고된 노동에 시달리지만 저항할 생각을 쉽사리 못한다. 찢어지게 가난한 현실은, 그들을 게공선 속으로 자꾸 밀어 넣는다. 이를 두고 일본인들은 ‘열심히 일하지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동시에 저항할 힘조차 갖지 못한 현재의 워킹푸어’와 닮았다고 느낀 것이다.

소설에 담긴 사회구조에 대한 문제의식과 ‘연대해 저항하자’는 메시지는 자기책임론·자기계발론에 익숙했던 일본인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왔고 곧 열광으로 이어졌다. 일본인들은 게공선 독후감을 모은 책 <우리는 어떻게 게공선을 읽었나>까지 베스트 셀러로 만들었다. 저자 고바야시 다키지가 소속됐던 공산당의 청년층 가입자는 게공선 붐 이후 1만명이나 늘었다.


인식변화의 원동력은 비정규직 현실의 변화였다. 1999년 정규직에 버금갔던 비정규직의 업무 만족도가 10년 사이 크게 떨어지고 있었다. 후생노동성의 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업무내용, 보람’ 등의 만족도가 1999년엔 50.1%였다가 2003년엔 49.1%로, 2006년엔 22.2%로 떨어졌다. 임금만족도는 1999년 정규직보다 약 10% 높았지만 2006년엔 정규직보다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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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돈문 |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3부. 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2. 노동 유연화 <Ⅲ>브라질

중남미 국가들은 1980년대 급증하는 외채와 만성적 인플레이션으로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타개책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도입, 경제위기를 벗어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10년을 버티지 못하고 분노하는 시민들의 저항에 직면하게 되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1989년 2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봉기가 수도 카라카스에서 시작하여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300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갔다. 멕시코에서는 북미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는 1994년 1월 시작된 사파티스타 농민군의 무장투쟁이 국민적 지지를 받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중남미 국가들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10년은 시민들의 저항 앞에 무너지며 좌파정당 집권 붐을 가져왔다.



국영기업 사유화·사회부문 예산 축소

중남미 국가들 가운데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워싱턴 컨센서스’에 입각하여 가장 충실하게 집행된 것은 카르도수 시기(1995~2002) 브라질이었다. 카르도수는 재무장관 시절 10여년간 연 평균 1000%에 달하던 인플레이션을 제압함으로써 압도적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공약한 바대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거침없이 펼쳐나갔다.

사유화 대상을 제조업뿐만 아니라 광산업과 공익사업들로 확대하여 전화통신, 전력, 철도, 도로 부문 등의 거대 국유기업들을 사유화했다. 내수시장 부양과 산업 보호를 포기하며 비관세장벽을 철폐하고 관세를 대폭 인하하여 상품시장을 급격하게 개방하는 한편 자본시장 개방도 적극 추진하였다. 또한 교육, 보건, 위생, 사회보장, 빈곤퇴치, 주거, 도시개발 등 사회부문의 예산지출을 20% 이상 삭감하며 국기기능을 축소했다.


일시해고 허용등 노동법 개악

노동정책에도 큰 변화가 왔다. 카르도수 집권 첫 해 석유산업 공기업 페트로브라스 노동자들은 반년 전 전임 대통령의 개입으로 합의된 임금조정액에 대해 정부가 지급을 거부하자 파업투쟁에 돌입하였다. 파업이 한 달을 넘어설 무렵 정부는 노동법정으로 하여금 “불법 파업”을 선언케 하고 노조에 10만달러의 벌금형을 부과하도록 한 다음 경찰력을 투입하여 파업을 진압하고 노조지도자들을 포함하여 100여명을 해고하였다. 뒤이어 노동의 유연화를 위한 노동관련 법규 개정을 추진하여,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는 경우 2~5개월의 일시해고를 허용하며 임금은 물론 납세 의무도 면제하도록 하였고,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 노동력을 보다 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법규정을 개정하였다. 이러한 카르도수 정부의 정책 방향에 맞추어 기업들도 자의적 해고, 노동법규 위반, 단체협약 무력화 및 노동조건 개악 등 노동자들에 대한 공세를 전개했다.


실업자는 들끓고 노동자는 들볶이고

정부와 자본의 공세 속에서 노동자들 삶의 조건은 크게 악화되었다. 사유화 전후 국유기업의 구조조정과 급격한 시장개방으로 제조업이 위축돼 실업률은 크게 상승했고, 남은 일자리들도 빠르게 비정규직으로 교체되어 갔다. 당시 상파울루 지역 금속산업 공장에서 실직한 노동자 마리아 주제는 “옛날이 좋았다… 일자리 찾으러 나가면 서너개씩 있었고, 가장 조건이 좋은 곳을 선택했다. 거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바로 다른 공장으로 옮기곤 했다…. (카르도수 시기에는) 실업자가 넘쳐났다. 그래서 회사가 노동자들을 들들 볶아댈 수 있었다”며 분노했다. 노조 활동가들은 “기업들이 노동자들을 해고한 다음 그들을 하청노동자로 계속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지적한다. 그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실질임금도 카르도수 재임 8년 동안 연평균 1%씩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사회부문 예산 지출이 대폭 삭감된 것을 고려하면 삶의 조건 악화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가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중남미 전역 좌파정권 집권 붐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분노는 노동자들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1996년과 2001년에는 카르도수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맞서 “전국적 투쟁의 날(dia nacional de luta)”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이 여타 사회운동 세력들 및 일반 시민들과 함께 전국적 수준의 연대투쟁을 전개했다. 카르도수는 임기 마지막 해인 2002년 3월 가족 농장이 무토지농업노동자운동 구성원들에 의해 무단침입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노동자들을 포함한 시민들의 분노는 결국 노동자당 룰라의 선택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카르도수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었다. 2002년 말 브라질 룰라의 대선 승리에 이어 좌파집권은 우루과이, 볼리비아, 칠레, 엘살바도르 등 중남미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신자유주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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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 조홍민특파원 dury129@kyunghyang.com

ㆍ3부 - 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2) 노동 유연화 Ⅱ- 일본

“일본의 고용환경 악화는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근본 원인입니다. 비정규직에 대한 규제를 완화한 결과입니다.”

일본의 비정규직 노동조합인 ‘파견유니온’의 세키네 슈이치로(關根秀一郞) 서기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90년대 중반 이후 고삐풀린 규제완화가 비정규직 양산의 주범”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단기적 이익만을 최고선으로 추구하는 경영자들의 자세”를 지적하며 “정규사원 위주의 고용·노동정책은 변혁과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파견유니온은 일용 노동 금지, 파견사원의 권익 옹호 등을 내걸고 2005년 비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결성된 소규모 노조로, 현재 30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일본에서 비정규직이란 어떤 존재입니까.

“전후 일본에서는 노동자 파견, 중간 착취 등을 법률로 규정해 전면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 고도성장기에 편승해 간접고용 알선 사업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죠. 세계적인 파견회사(고용알선업체)인 미국의 ‘맨파워’가 일본에 상륙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72~73년 ‘맨파워’를 모방한 파견업체들이 속속 생겨난 것이죠. 현재 일본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 5400만명의 3분의 1이니까 1800만명 정도입니다. 3월까지 10여만명의 비정규직 근로자가 해고됐죠.”

-고용환경 악화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법적 규제 완화입니다. 90년대초 버블 붕괴 이후 실적이 악화된 기업들은 눈 앞의 이익, 주가 등에만 관심을 쏟았습니다. 노동력은 싼 게 좋은 것이란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입니다. 95년 당시 닛게이렌(日經聯·일본경영자단체 연맹, 현 게이단렌·經團聯)은 신시대 일본의 경영이란 미명하에 언제든지 구조조정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96년과 99년에 제조업 파견사원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는 등 규제완화가 이뤄지면서 사실상 비정규직 고용이 자유화됐죠.”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원인이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보십니까.

“그렇습니다. 쓰고 버리는 노동력이 가능토록 한 고용의 유연화는 바로 그 때문입니다.”


-일본 정부의 비정규직 노동자 정책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안전망 자체가 불충분합니다. 노동자를 위한 여러 안전망을 갖췄다고 하지만 모두 정사원 중심의 제도입니다. 급속히 증가하는 비정규 노동자에 대해서는 기존 안전망으로 구제할 수 없게 되어 있어요. 제도의 변혁,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경우인가요.

“비정규직의 경우, 고용보험을 받기 힘들어요. 비정규직은 일자리를 잃으면 한 달간 고용보험 신청을 할 수 없게 돼 있는 반면 정규직은 실직 1주일 이내에 고용보험 신청을 할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다른 일을 찾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죠. 실직하고 1개월 간이 가장 어려운 시기인데도 비정규직은 고용보험을 신청할 수 없는 겁니다.”


-비정규직이 실직한 뒤에는 무엇이 필요한가요.

“실직 후에는 이른 시일 내에 다른 일을 찾을 수 있도록 연결망을 강화해 줘야 합니다. 실업 대책 사업을 늘리라는 얘기입니다. 예를 들면 환경, 복지 등 노동력이 부족한 부문이 많습니다. 이런 공공사업을 늘려 이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헬로 워크’(정부가 운영하는 무료직업안내소)는 효과가 없습니까.

“별 도움이 안됩니다. 예를 들면 비정규직 실직자들은 어느날 갑자기 해고되기 때문에 기숙사에서도 쫓겨나고 PC방을 전전하게 됩니다. 일부는 노숙자로 전락합니다. 이들은 거처도 없고 가진 돈도 적습니다. 최소한 머무를 수 있는 곳이 보장되는 직장, 또 그날 그날 급료를 지급받을 수 있는 직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조건에 맞는 일이 헬로 워크에는 거의 없습니다.”


-일본에서도 노동자간 격차가 점차 확대되고 있지요.

“그렇습니다. 우선 노동자에 대해 ‘동일 노동, 동일 급여’와 같은 균등한 대우가 필요합니다. 기간을 정한 뒤 고용하는 ‘기간 고용’도 규제해야 합니다. 독일 등 유럽국가에서는 합리적인 이유없는 기간제 고용이 금지돼 있어요. 몇 달 일 시키고 해고하고, 또 다시 몇 달 계약하고 고용하는 게 사라져야 합니다. 하청이나 중간착취도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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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라시 진 | 호세이대 오하라사회문제연구소 교수

ㆍ산업 요구따라 임시·파견직 확대…연수입 200만엔 이하만 1000만명

보통 워킹푸어(working poor)란 일을 하는데도 생활이 불가능한 노동자를 뜻한다. 일단 연수입 200만엔 이하의 고용자를 기준으로 삼는데, 2006년에는 이런 사람들이 1000만명 이상이었다. 적은 소득인 채,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알 수 없는 처지인 파견노동자가 늘어난 까닭이다.

파견이란 것은 필요한 때, 필요한 업무의 노동자를 일시적, 임시적으로 고용하는 것이다. 이런 노동 방식은, 그렇게 살아가야만 하는 노동자에 한하는 예외적인 것이어야만 한다. 띄엄띄엄 이어지는 고용을 통해 생활이 이뤄질 수는 없다. 기한 규정이 없는 고용 쪽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 간접고용인 까닭에 중간 공백이 생긴다. 즉 실제 노동자를 지휘하고 명령하는 사용자의 책임이 애매해진 것이다. 노동에서 안전·위생의 확보, 기술·기능의 전승 및 축적의 측면에서도 많은 문제를 낳는다. 일에 대한 의욕, 성과 측면에서도 마이너스이다. 실제로 일하고 있는 기업에 의한 직접고용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것은 바로 이런 문제들 때문이다.

게다가 전쟁 전 일본에서는 취업알선업자나 중개꾼에 의한 ‘삥땅’(수입 가로채기)이 횡행했다. 인신매매와 같은 인권침해에 해당하는 문제가 벌어지는 등 씁쓸한 경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직업안정법 제44조 등에 의해, 전후 일본에서는 노동자 파견이 원칙적으로 금지됐다. 본래 노동은 직접고용으로 기간의 규정이 없는 것이어야만 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상 파견노동은 잔존했고, 80년대 들어 확대 조짐을 보였다. 사용하기 쉬운 노동력을 요구하는 산업계의 요망, 법망을 씌워 규제하는 방법이 좋다는 의견 등도 있어, 1985년에 노동자파견법이 제정돼 일부 업무에 한해 파견이 인정됐다.

그 후 99년에는 반대로 일부 업무를 제외하고, 파견 금지가 해제된다. 이게 포지티브 리스트로부터 네거티브 리스트로의 역전인데, 파견노동 확대의 계기가 됐다. 2004년에는 이때 금지되던 제조업에 대한 파견까지 해금돼 한층 더 파견은 확대된다. 이에 따라 96년 72만명에 지나지 않던 파견노동자는 03년 3배 이상인 236만명이 됐다. 더욱이 07년에는 384만명이 되면서 04년과 비교할 때, 불과 3년 새 157만명이나 증가했다. 산업계의 요망이나 노동조합의 대응에 잘못이 있었던 것이다. 1995년 5월 당시 닛게이렌(日經聯·일본경영자단체연맹, 현 經團聯)은 ‘신시대의 일본식 경영’을 발표해 고용의 유연화를 강조했다. 노동조합의 최대 전국조직인 ‘렌고’도 같은 해 12월 ‘규제완화 추진에 관한 요청’을 내고 규제완화를 요구했다. 이런 ‘시대 분위기’도 있어서 99년의 파견법 개정에 즈음해서는, 일본공산당 이외의 모든 정당이 찬성으로 돌아섰다.

파견노동의 재규제를 겨냥한 이번 파견법 개정에도 렌고는 소극적이었다. 그것은 렌고 회장 출신의 노조이자 민간 산별 단일조합 최대 세력을 가진 UI젠센동맹에, 파견 회사의 노동조합인 인재 서비스 제너럴 유니온(JSGU)이 가맹해 있기 때문이다. 기업별 조합과 그 연합체인 렌고의 약점이 여기서 드러난다.

정부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개정안은, 일용 파견(날마다 또는 30일 이내의 기한을 정해 고용)의 원칙 금지가 포함돼있지만 등록형 파견은 그대로다. 사전 면접이나 고용신청 의무의 규제완화 등도 있다. ‘약’뿐 아니라 ‘독’도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독은 넣지 않고, 적어도 등록형 파견 원칙 금지, 마진율의 상한 규제, 제조업체 파견 금지 등의 약을 더 늘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병’ 치료에 도움이 안될 뿐 아니라, 증상을 악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임금인상 등 파견 노동자와 정규 노동자와의 균등 대우, 파견이 중지됐을 경우 다음 일자리 소개 의무 등도 필요하다. 여야 정당 간 협의에 의해, 노동자 보호 측면에서 좀더 실효성 높은 법개정을 실현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워킹푸어 증가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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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경기자 kyung@kyunghyang.com

ㆍ3부 - 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2) 노동 유연화 - 미국
ㆍ마이클 예이츠 ‘먼슬리 리뷰’ 편집인 인터뷰

 

마이클 예이츠 전 피츠버그대 존스타운 캠퍼스 경제학 교수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적 학술지인 ‘먼슬리 리뷰’의 공동편집자인 마이클 예이츠 전 피츠버그대 존스타운 캠퍼스 경제학 교수는 대학을 은퇴한 뒤 요즘 미국 각지를 돌아다니고 있다. 평생 노동문제와 씨름해온 그였지만, 이변 여행에서도 노동은 여전히 주요 주제였다. 이를테면 국립공원의 아름다운 풍광 앞에서도 공원 노동자의 진한 고통을 느끼고, 캘리포니아 드넓은 들판에서 착취당하는 이민노동자를 생각한다. 그와의 e메일 인터뷰를 통해 미국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다른 나라들에) 미국이 하라는 것과 반대로 하라고 충고하고 싶다”고 말했다.


- 미국 저임금노동자의 현실이 가장 심각해 보입니다. 부지런히 일해도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1년 동안 쉬지 않고 일해서 4인 가족을 부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 봅시다. 2007년의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이 사람은 시간당 10달러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2007년 전국민 중 26.4%(흑인 34%, 히스패닉 41.8%)가 이만큼 받지 못했습니다. 특히 이민자들은 최저생계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임금으로 가족을 부양해야 합니다. 뉴욕 차이나타운 식당 노동자들은 대개 1주일에 100시간 일하고 시간당 2달러를 받습니다. 심지어 임금을 제대로 못 받을 때도 있어요. 제 아들처럼 말이지요. (식당 관리자의 주기적인 컴퓨터 조작으로 직원 근무시간을 줄여버리는 탓에 요리사 아들이 임금을 제대로 못받는 것을 말함) 사용자의 ‘임금도둑질’은 미국에 널리 퍼져 있어요. 최근엔 그와 관련한 책 <미국의 임금도둑, 김보보>도 나왔지요.”


- 선생님은 1979년부터 2000년 사이 생산된 ‘소득 증가분’ 가운데 가장 부유한 1%가 38.4%를 가져간 반면 가장 가난한 20%는 0.8%만을 차지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이 시기는 로널드 레이건 정부 출범과 함께 신자유주의가 진행된 때입니다. 신자유주의가 빈곤 노동자를 증가시켰다고 보십니까.

“신자유주의의 최대 목표는 노동자들이 싸워서 얻어낸 ‘보호망’, 이를테면 의료보험, 상당한 수준의 임금, 고용안정, 연금 등을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보호망이 없어지니까 노동자들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와 관계없이 점점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지요.”
 

- 미국 저임금 노동자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것 중 하나가 주거문제입니다. 임차료 벌기가 어려워 싸구려 모텔을 전전하는 이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뉴욕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임대료 보조제도가 있지만 엉뚱하게도 이 혜택이 대개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지적도 하셨는데요.

“뉴욕 여행 도중 ‘정치성향이 진보적’이라는 지식인 부부가 살림이 넉넉한데도 단지 금전적 이득 때문에 임차료 보조제도의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정말 아연실색할 일입니다. 그들이 옹호하는 빈곤층들은 벌레와 쥐가 들끓는 높은 임차료의 아파트에 사는 동안 그 제도의 혜택을 받아 뉴욕에 아파트 두 채를 갖고 있는 것이죠. 이 혜택은 다음 세대에도 이어지기 때문에 그들의 2세도 벌이에 관계없이 그 행운을 누릴 겁니다. 임차료 보조금 제도는 뉴욕의 노조들이 큰 힘이 있던 때 도입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여러 산업체들이 뉴욕 바깥으로 빠져나가면서 노동자도 빠져나가야 했고 노조도 힘을 잃었습니다. 게다가 노조들은 타락한 정치세력에 휩쓸렸고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사실 저임금 노동자들을 위한, 작고 실용적인 집을 짓는 일은 어려운 게 아닙니다. 하지만 개인 사업가들은 이걸 방해하려 하고, 노조는 여기에 관심이 없죠.”


- 버락 오바마 정부는 이들 저임금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지난해 노조들이 오바마를 여러 가지로 지원했습니다만, 금전 지원의 규모는 부자들보다 작았지요. 오바마도 재계, 특히 월가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재계는 노동자들이 나아지길 바라지 않습니다. 가난하고 불안정한 노동자들이 착취하기가 더 쉽기 때문입니다. 미 노조들은 영향력이 작기 때문에 미 정부에 뭔가 요구를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닙니다. 노조들은 다만 오바마가 입법을 추진 중인 노동자유선택법(Employee Free Choice Act)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노조를 만들기가 더욱 쉬워지는 법인데, 사용자들이 입법을 막으려 노력할 것입니다. 오바마가 얼마나 맞서 싸울지 지켜볼 겁니다. 그는 경제팀에 단 한 명의 노동자도 포함시키지 않았어요. 노동자에게는 좋지 않은 징조입니다.”
 

- 국립공원 호텔에서 저임금 노동자로 일할 당시 열악한 노동조건을 두고 ‘이곳에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달랐을 것’이라고 하셨는데요, 실제로 노동조합의 유무가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칩니까? 미국에서 이들을 위한 노조가 잘 조직된 곳이 있는지요.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 통조림 공장 노동자 등은 힘을 합해 ‘인터내셔널 롱 쇼어’ 노동조합을 만들어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이 노조는 하와이를 미국에서 가장 민주적인 주로 만드는 데 한몫했습니다. 그밖에 라스베이거스, 호놀룰루, 네바다, (예전보다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뉴욕 등에서 저임금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률이 높습니다. 이들 지역 노동자의 생활은 노조가 힘을 얻기 전보다 훨씬 나아졌습니다. 노동자를 착취하는 사용자를 엄하게 다루는 풍토가 만들어졌고 이민자 차별도 다른 곳보다 덜합니다.”


- 현재 미국의 노동운동은 크게 쇠퇴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용자들이 공장을 노조의 근거지로부터 먼 교외로 옮겼는데, 그곳에서 인종차별 문제를 풀지 못했습니다. 인종 및 민족 분열이 실패 원인의 가장 핵심입니다. 더 많은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고 사용자들과도 쉽게 타협했지요. 그리고 ‘노동자 중심의 이념’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노동자 중심의 이념은 노동자인 자기 자신을, 그리고 세상일을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이러한 ‘나침반’을 제공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 당대 최고의 노동조합들이 1950년대 초의 반공주의 마녀사냥 때문에 산업별 노동조합회의(CIO)에서 퇴출당한 뒤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진보적인 노동조합들은 노동자 권리 쟁취 면에서나 노조 내 민주성 면에서도 월등했습니다. 50년대에 그들이 방출되면서 노동운동 진영에는 보수적이고 비민주적 지도자들만 남았습니다. 이들은 특히 7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대한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아 정부와 사용자에게 끌려 다녔지요. 이런 상태는 95년 미국의 가장 큰 노조인 AFL-CIO 지도자들에 대한 저항이 있기 전까지 계속돼 왔습니다. 하지만 저항 이후로도 노동계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수의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노조원들이 버는 것의 몇 곱절에 해당하는 돈을 받습니다. 이는 노동자들에게 수치입니다. 또 미국 내 몇몇 부패한 노조들은 지역 갱들과 결탁돼 있기도 합니다.”


-미국은 신자유주의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를 통해 다른 국가들에 ‘노동유연성’을 도입하면 경제가 발전한다는 논리를 퍼뜨렸습니다. 그런 미국의 논리가 결국 입증되었습니까.

“사용자가 필요할 때만 노동자들을 쓸 수 있도록 한 것이 노동유연성입니다. 고용주들은 작업장 구조를 소수의 기술자들에게만 필요하게끔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업무 파트들은 하도급 업체들을 썼지요. 그러면 하도급 업체들은 파트타임 노동자와 임시직 노동자들을 고용합니다. 업체들은 이들 노동자에게 아무런 의무가 없습니다. 사업이 잘 될 때는 많이 고용해놓고 사업이 잘 안될 때는 노동자들을 자릅니다. 이런 시스템은 사업을 더 ‘유연’하게 만들지만, 노동자들에게는 심한 불안과 낮은 임금을 안겨줍니다. 미국이 서유럽보다 낮은 실업률을 유지했던 것은 이 같은 불안정 고용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미국 노동자들이 치른 대가는 너무 큽니다. 실업률도 이제 이곳 미국에서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다른 국가들에 하고 싶은 충고는 바로 이겁니다. 미국이 하라는 것을, 반대로 하십시오!”


- 한국은 87년 군부 독재에 맞서 민주화를 이뤄냈고 그와 동시에 노동운동도 획기적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진행되면서 노동, 노동조합, 노동운동, 파업 등의 단어는 냉대를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신자유주의와 관련이 있습니까.

“신자유주의 하에서 불안정해진 노동자들은 일종의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사용자들은 이들의 공포감을 노조, 파업, 시위를 배척하는 프로파간다를 만드는 데 이용합니다. 금융회사들을 망하게 한 것은 노동자들이 아니었잖습니까. 문제의 원인은 항상 부자들, 힘 있는 자들이었는데도, 재계와 정부는 늘 파업 시위 노조가 문제를 일으킨다고 말합니다. ‘미디어 프로파간다’들은 ‘노조는 그저 특정 이해집단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대중의 대다수가 노동자들이므로 노조가 ‘특정 이해집단’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절대 언급되지 않습니다. 만약 이번 위기가 심화되면, 노동자들이 두려움을 잃고 정부와 사용자들이 바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압박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 봅니다.”


-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섰지만 한국 노조들은 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피부에 와 닿는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동 유연성이 강한 미국에서는 어떻습니까.

“미국 노조들도 임시직 등 불안정 노동 문제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파견 회사를 통해 고용됐을 경우 누가 진짜 사용자인지를 가리는 문제, 법적으로는 ‘개인 사업자’인 택시운전사 등이 노동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문제 등이 있는데도 말이지요. 뉴욕의 ‘노동자센터’와 같은 새로운 타입의 조직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뉴욕에 갔을 때 ‘노동자센터’에서 택시운전사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뉴욕의 택시운전사들은 대부분 남아시아에서 온 이민자들이지요. 사실 예전에 뉴욕에는 남동부 유럽에서 온 진보적 이민자들이 탄생시킨 위대한 노동운동이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약해졌지요. 오늘날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온 이민자들이 뉴욕의 노동운동을 재건하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심각한 착취에 시달리는 캘리포니아 농장 노동자들의 기대 수명이 49세라는 점은 충격적입니다.

“70년대에는 농장 노동자들을 위한 미국 농장 노조가 그들을 위한 활발한 활동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농장주와 정부의 공격, 그리고 내부 분쟁 때문에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노조는 여전히 있지만 예전과 비교하면 빈껍데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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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경기자


ㆍ레이건정부 이후 노동 악화 지속

지난 30년간 미국 노동자의 삶을 악화시킨 가장 큰 요인으로 노동조합의 약화를 들 수 있다.

1950~60년대 미국 사회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던 노동조합의 힘은 7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기울기 시작한다. 기점은 도널드 레이건 취임 첫해의 항공관제사 사건이었다.


80년 8월 연방정부 소속 항공관제사 노동조합은 임금 인상을 놓고 정부와 협상을 벌이다 결렬되자 전면파업에 들어간다. 노조원의 대부분(1만3000명)이 파업에 참여하자 레이건 대통령은 이들을 모두 해고하고, 정부기관 재취업 길도 막아놓았다.


80년대에 미 코넬대에서 노사관계를 전공한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 교수는 “이 사건 이후 기업들의 본격적인 노조 공격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 사건의 의미는 단지 ‘정부의 태도 변화’만이 아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노동조합과 노동권을 존중하는 사회규범이 깨지기 시작했다.


여기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70년대부터 미국은 오일 쇼크와 물가상승, 생산성 하락 등으로 인한 경제위기를 맞고 있었다. ‘일단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는 국민정서가 비등하고 있었다. 약 10년 전의 일이기는 하지만 전미 트럭노조 위원장 지미 호파의 부패 스캔들은 노조의 이미지를 ‘거대한 이해집단’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상태였다.



기업들의 노조 공격은 주로 노조 설립을 방해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일부 기업은 북부 도시에 있던 공장을 정서상 노조 설립이 어려운 남부 교외로 옮겼다.


미국에서는 노조 설립을 위해서 전체 직원의 비밀투표가 있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사측의 방해가 빈번했다. 때로는 ‘직원 절반이 찬성하면 이미 설립된 노조라도 해체시킬 수 있다’는 법을 이용해 이미 활동 중인 노조를 없애기도 했다.


문제는 ‘급한 불을 끈 후’에도 노조의 힘은 지속적으로 약화됐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경제는 70년대 후반 잠깐의 위기를 넘긴 후 상승세를 이어왔지만 노조는 계속 약화돼 왔다. 미국 노동자의 임금 수준도 노조조직률과 같은 궤도를 그리며 추락했다. 폴 크루그먼은 “80년대 들어서면서 위기는 지나갔지만 경제적 이득을 모든 국민이 공유하는 시대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조의 약화는 정부의 ‘노동자 보호 의지’ 약화로 이어졌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최저임금이다.


2000년 물가를 기준으로 환산해보면, 연방정부의 최저임금은 60년대 말에는 7달러까지 올랐다가 노조 세력이 크게 약화된 레이건 집권기에 4달러대로 떨어졌다. 이후 법 개정이 이뤄진 지난해까지 약 30년간 4~5달러 사이에 묶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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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경기자 kyung@kyunghyang.com·LA | 이찬행 통신원·뉴욕 | 진숙경 통신원


ㆍ3부 - 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2)노동 유연화 - 미국
ㆍ덜 받고, 쉽게 잘리는 ‘나쁜 일자리’ 악순환


월 600달러로 살아가는 올슨

미국 캘리포니아주 휘티어에 사는 스캇 올슨(43)은 한 달에 600달러를 번다. 이탈리아 식당 주방에서 하루 4~5시간 동안 청소와 설거지를 한 대가이다. 이 식당일은 지난해 말 어렵게 구한 것이다. 그는 “지난 2월엔 밸런타인데이가 있어서 오래 일할 수 있었고, 그 덕에 800달러나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빨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곳으로 옮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올슨은 가난과 극도의 스트레스로 얼룩진 생을 살았다.

“아버지는 미장이 기술을 가진 일용직 노동자였는데 제가 클수록 돈 문제가 심각해졌죠. 일감이 계속 떨어졌으니까요. 저희 집만 특별한 게 아니었어요. 저희 동네는 슬럼가가 아니었는데도 다들 점점 더 살기가 힘들어지더군요.”


올슨의 청년 시절인 1980년대 캘리포니아주 LA는 탈산업화의 극심한 후유증을 겪고 있었다. 40~50년대 공장들이 속속 들어섰고 이때 흑인과 저소득층 노동자가 대거 모여들었다. 그러나 80년대 세계화의 바람이 몰아쳤고, 공장들은 인건비가 싼 제3세계로 옮겨가거나 아예 문을 닫았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기댈 곳 없이 시장에 내던져졌다.

올슨은 20대 중반에 잠시 항공운수물자를 만드는 공장에 다녔지만 하루 12시간의 고된 노동에 질려 그만뒀다. 그는 술과 마약에 더 빠져들었다. 약 20년간의 길고긴 노숙생활. 지금 노숙생활은 청산했지만 집이 없어 휘티어 노숙자를 거처로 삼고 있다.

“그래도 지난해에 이 보호소로 온 건 큰 행운이에요. 지금은 대기자 명단만 세 페이지라고 들었어요.”

그는 지난해 말부터 약 반 년 가까이 일을 하며 돈을 모았다. 그러나 독립할 형편까지는 안된다.

“가장 허름한 아파트라 해도 한 달 임차료가 족히 800달러는 돼요. 560달러짜리도 있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부엌과 화장실을 같이 써야 하죠. 무척 더럽고요.” 그는 앞으로 3년은 보호소에 머물며 돈을 모을 생각이다. 가장 큰 걱정은 건강이다. 탈장과 간염을 방치한 지 오래됐다. 지금의 수입으로 의료보험은 그림의 떡이다.

“만약 가정을 꾸려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는 저나 제 아버지처럼 저임금 노동자가 되지는 않았으면 해요. 그렇지만 미국에선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면 좋은 기회를 얻지 못하고 결국 가난한 사람으로 크는 것 같습니다.”


미국 저임금 노동자 비율 세계 2위

국민 총소득 세계 1위 미국, 세계 최고의 부자나라 미국에서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통계는 스캇 올슨이 겪은 비극이 올슨의 문제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미 전체 노동자를 임금 순으로 한 줄로 세운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한가운데 있는 노동자의 임금을 중위임금이라고 부른다. 중위임금의 3분의 2 이하를 버는 노동자를 OECD는 저소득 노동자로 분류한다.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기에 적절하지 않은 임금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에는 이 같은 저임금 노동자가 네 명 중 한 명꼴(24.2%)이다. OECD 국가 중 두번째로 높은 비율이다. 1위는 한국이다.

저임금 노동자의 비율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나쁜 일자리’가 많다는 뜻이다. 미 노동시장의 덕목으로 꼽히는 ‘낮은 실업률’은 이런 ‘나쁜 일자리’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정이환 서울산업대 교수는 “실업률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저임금이라도 벌지 않으면 안되는 계층이 많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미국이 본래 나쁜 일자리가 많았던 것은 아니다. 73년으로 시계를 돌려, 다시 임금 순으로 노동자를 줄 세운다고 치자.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끝에서부터 10%는 2003년보다 매 시간 0.39달러를, 20%는 0.71달러를 더 받았다. 최하위 노동자들이 전반적으로 지금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았던 것이다. 저임금 노동자의 증가는 노동자 전반의 추락과 맞물려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말한다.

“(1950년 즈음의) 노사관계와 현재의 노사관계가 얼마나 다른지 알아보려면, 대표적인 두 기업을 비교하면 된다. 과거와 현재의 기업 말이다.”

크루그먼이 말하는 과거 대표기업은 GM, 현재의 대표기업은 월마트다. 50년 전엔 GM이, 지금은 월마트가 미국에서 가장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기업이다. 그에 따르면 물가상승을 고려할 때, 월마트 노동자는 35년 전 GM 노동자가 받은 연봉의 절반도 안되는 돈을 받고 일한다. 즉, 40년쯤 전엔 ‘미 대표기업 노동자’는 곧 중산층이었지만, 지금의 ‘미 대표기업 노동자’는 저소득층인 것이다. 30~40년 사이, 미 노동시장엔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노조의 약화, 고도의 노동 유연화. 여기에 비밀이 있다.



일시 해고에서 영구적 해고로

“미국 기업은 위기가 닥치면 바로 해고하지만 노동자들의 저항은 없습니다. 경제가 좋아지면 다시 써주겠지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 우리 노사관계는 대단히 경직되어 있는데 이번 위기를 유연화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이 2월13일 ‘최고경영자 연찬회 특강’에서 한 말이다. 노동 유연성이 높은 미국에선 노동자가 해고돼도 곧 복직할 수 있으므로 유연화에 순순히 따르고 있으니 우리도 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불황일 때 노동자를 잘랐다가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부르는 ‘일시 해고’가 미국에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해고를 당한 노동자들도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돌아올 거라는 기대로 짐을 쌌다. 그러나 이는 주로 80년대 전반의 일이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피터 카펠리 교수는 “80년대 후반~90년대부터는 (일시 해고가 아닌) 인원 감축(다운사이징), 비정규직 활용 등 기업의 경영전략으로 인한 실직이 급격히 증가했다”고 지적한다. ‘다시 고용하지 않는’ 해고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이 같은 변화는 ‘노조 약화현상’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미국 법은 인종, 성, 노조가입 등을 이유로 한 차별적인 해고만 아니라면 해고가 자유롭다.

사실상 해고규제가 없는 선진국은 미국이 유일하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노조와 기업 간 단체협약을 통해 해고남용으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했다. 일시해고 관행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도 노동자들이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돌아올 권리’를 단체협약을 통해 확보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노조세력이 약해지다 보니, 노동자들의 안전판은 사라졌고, 결국 기업의 해고 칼날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금융부문의 팽창도 인원감축을 유행으로 만들었다. 기업들은 투자자(주주)를 모으기 위해 단기수익을 올리는 데 몰두했다. 이때 주로 활용된 것이 바로 인원감축이었다. 이러한 ‘신경영기법’으로 이름을 날린 이가 바로 GE의 CEO 잭 웰치다. 만약 인원감축으로 회사를 떠난다 해도, 괜찮은 일자리를 다시 구할 수 있다면 큰 문제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일자리 구하는 경우는 학력별로 큰 차이가 있었다. 윤진호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에 따르면 99~2001년 미국 실직자 중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이들의 경우 70% 이상 재취업하는 반면, 고졸 미만은 재취업률이 50%에 불과했다. 재취업의 양극화 현상이다.

사실 인원감축의 유행이 불기 전에도, 노동자들 모두가 ‘일시 해고’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저학력 육체노동자들은 유연화의 바람을 가장 먼저 맞았다. 아시아 등으로부터 섬유·전자제품 수입이 늘자 미 기업들 상당수가 인건비 절감을 이유로 공장들을 제3세계로 옮긴 것이다. 이때 실직한 저학력 육체노동자들 상당수가 ‘괜찮은 일자리’를 다시 구하지 못했지만 정부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노조 세력이 약한 서비스업종이었다.


월 900달러로 살아가는 살라자

멕시코에 살던 클레오틸데 살라자(29)는 2004년 8월 미국 땅을 밟았다. 그는 불법체류자였다. 미국에서 그가 처음 얻은 일자리는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뉴저지의 큰 슈퍼마켓. 그는 시간당 임금 4~5달러를 받고 매일 12시간씩 일했다. 식사시간은 단 15분. 그녀는 “고된 노동에 지쳐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후 살라자는 인력파견업체를 통해 책 제본공장에 들어가 2년간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한 채 잘렸다. 지금은 파견업체에서 소개해준 의료장비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한 달 수입은 900달러. 일단 500달러는 집세와 관리비로 나간다. 그의 방 3개짜리 아파트에는 세 식구 9명이 살고 있다.

“한 달 식비는 200달러, 교통비는 160달러 정도 돼요. 7개월 된 딸아이가 있기 때문에, 옆방 시누이에게 아이를 돌봐주는 대가로 한 달에 240달러씩 주고 있어요. 아무리 아껴도 이렇게 한 달에 1000달러는 써요.” 매달 적자였다. 그는 “아프게 되는 것이 가장 두렵다”며 “죽어야 할 상황이면 죽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막스밀리아노도 멕시코에서 온 불법이민자다. 그는 파견업체를 통해 제조업체의 창고에서 일하다 팔이 부러지고 눈이 찢어졌다. 그때 사측은 응급차를 불러주지 않았다. ‘당신은 파견업체 소속이니 파견업체가 알아서 할 것’이라는 이유였다. 파견업체는 ‘2시간30분 뒤에 일이 끝나니 그때 데리러 가겠다’고 했다. 결국 2시간이 지나 병원에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병원비가 문제다. 제조업체와 파견업체 모두 자기가 부담할 일이 아니라고 한다.


시급 7.44달러 받는 스미스

워싱턴주 마운트 버논에 사는 조시 스미스는 얼마 전까지 월마트에서 시간당 임금 7.44달러를 받고 일했다. 그는 정규직을 원했다. 그러나 그의 일자리는 1주일에 33시간씩만 일하는 파트타임이었다. 그는 “그 돈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다. 미네소타주 프리들리에 사는 다나 라자이는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그는 월마트 창고에서 5년간 고된 노동을 해왔다. 덕분에 다른 노동자들보다 좀더 많은 시급 11.29달러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형편으로는 월마트가 제공하는 의료보험의 보험료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월마트는 미취학 아동이 의무적으로 맞아야 하는 몇 가지 백신주사도 적용되지 않는 “비효율적”인 의료보험을 제공하고 있었다. 다행히 지금은 미네소타주에서 제공하는 빈곤층 대상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고 있다. 그는 월마트 일을 쉬는 주말에는 주유소에서 일을 한다. 월마트의 노동착취 행위를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이트 ‘정신차려 월마트’에 월마트 노동자들이 직접 올린 이야기다.


저임, 저숙련, 해고를 낳는 노동 유연화

유통업체, 청소·경비업 외주업체 등 서비스업종은 노조세력이 약하고 유연화는 강화되던 시기에 값싼 일자리를 양산했다. 그 때문에 유연성의 수준 역시 가장 높은 업종이라는 금메달을 땄다. ‘자르기 쉬운’ 파트타임 노동자, 파견 노동자 고용률은 최고 수준인 반면 임금과 복지혜택(임금 유연성)은 최저수준이다. 노동조합 설립이 가장 어려운 업종이기도 하다. 기업체 서비스 노동자의 상황은 지역 서비스 노동자(소매점, 식당, 병원 등)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 일종의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홍종학 경원대 경제학 교수는 “제조업 쇠퇴 이후 부상한 서비스업은 고소득 전문직의 서비스업과 저소득층들의 하위 서비스업으로 양극화됐다”며 “하위 서비스업 노동자들을 위한 제도적 보호망이 없어 이들 노동자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노동 유연화는 제조업 노동자들의 상황도 악화시켰다. 미국의 생산직 노동자는 독일이나 일본보다 숙련도(기술수준)가 낮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카펠리 교수는 ‘단기적 고용관계’를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미국에 장기적 고용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아 그 노동자가 기업에 장기간 머물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면서 “그 때문에 기업이 노동자 훈련에 투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장은 이런 저숙련 노동자의 가격을 높게 쳐줄 리 없다. 따라서 이들은 저임금 노동자가 되고, 이들의 저숙련 때문에 기업은 이들을 부담 없이 해고할 수 있게 되며, 그 자리는 다시 자르기 쉬운 저숙련 저임금 노동자로 채우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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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진기자 worldhj@kyunghyang.com

ㆍ3부 - 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1) 의료 민영화
ㆍ렐만 하버드의대 명예교수 인터뷰


아널드 S 렐만 미국 하버드대 의과대학 명예교수(86·사진)는 의사이자 의학잡지 편집인으로서 민영화된 미국 의료 체계의 근본적 개혁을 위해 다양한 사회활동을 해온 활동가이기도 하다. 1946년 컬럼비아 의과대학 졸업 후 보스턴 의대와 펜실베이니아 의대, 하버드 의대 교수를 지냈다. 77년 세계적으로 저명한 의학잡지인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의 편집장을 역임하면서 본격적으로 미국의료제도의 개혁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캐나다 상원의 사회·과학·기술위원회에서 영리의료체제 도입의 문제점에 관해 증언하는 등 미국의 전국민 의료보험제 도입과 상업적 의료제도의 개혁을 위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그의 저서 <시장과 이윤을 넘어선 미국의 전국민 의료보장을 위한 계획>이 국내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는 경향신문과의 e메일 인터뷰를 통해 미국 의료체계의 위험성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 교수님께서는 미국 의료 민영화 정책을 수정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왜 그런 활동을 하게 됐습니까.


“77년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 편집장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투자자들로 구성된 민간 기업이 비영리 공공 의료 기관을 대체하거나 공적 기관과의 경쟁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건의료체계가 환자의 진료에 전념하는 전문적 서비스에서 수지 맞는 경쟁시장으로 변하고 있었던 거죠. 이로 인해 미국의 의료 보험료가 늘 것은 자명했고 의료 기관의 서비스 또한 줄어들 것이 분명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이런 현상에 대해 공공연하게 의견을 제시한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나라도 대중과 의료계에 이 사실을 주지시켜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미국 의료 민영화의 폐해 중 가장 큰 문제로 꼽는 것은 무엇입니까.

“시장 논리에 따라 운영이 되기 때문에 의료 서비스가 너무 비싸고 비효율적입니다. 돈이 없는 빈곤층에게는 불공정한 일이죠. 의료 민영화 체제에서는 의료진이 환자의 건강과 안정을 우선시한다기보다는 경제적인 이익을 우선합니다. 의료업 종사자들의 윤리적인 기준을 무너뜨린다는 점도 심각한 일입니다.”


- 미국의 의료보험 민영화에서 이익을 보는 쪽은 누구인가요.

“의료보험이 단순히 시장 소비재가 되면서 돈있는 사람들만 의료 서비스를 누릴 수 있습니다. 대신 돈 없는 사람들은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점점 더 많은 부분에서 민영화가 됐는데 그 사이 의료보험 없는 사람들의 수도 늘어났습니다. 비싼 돈을 내고 개인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사람들조차 어려움을 겪었죠. 민간 보험회사들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보험 가입자들이 비싼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꼭 필요한 수술이나 약인데도 막았던 거죠. 수술 비용이 비싸면 그 수술을 못받도록 갖은 수를 썼어요. 당연히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사람들의 병은 더 악화됐죠.”


- 왜 그런 문제 많은 의료 민영화를 하게 된 걸까요.

“투자자들은 미국 의료 민영화라는 대안이 나왔을 당시 이익을 챙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민영화가 됐을 때 보험 업계에 엄청난 돈이 들어오리라는 것을 알고 그것을 좋은 기회로 봤던 거죠. 바로 이들이 의료 민영화를 주도했습니다. 정부의 수동적인 대응은 의료보험이 민간 산업으로 전환되는 상황을 더욱 부추겼습니다. 당시 민영화에 반대한 이들은 나를 포함해 소수였어요. 반면 자유 시장 논리에 따라 의료 서비스업계를 지지한 쪽은 정부를 포함해 기업, 경제 관계자 등으로 훨씬 많았습니다. 수적으로 대항할 수 없었죠.”




- 민영화 이후의 미국 의료제도는 아파도 비싼 의료비 때문에 병원에 못가고, 의료비 때문에 파산하는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이것을 바로잡지 못하는 걸까요.

“현 미국 의료 민영화 시스템에서 국민들은 피해를 보고 있지만 보험회사와 제약회사들은 많은 이익을 내고 있습니다. 이들이 지속적으로 로비 등의 활동을 통해 미국 정부가 현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것을 막고 있기 때문이죠.”


- 그러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런 의료보험 체계를 개혁할 수 있을까요.

“오바마 대통령은 지금도 의료보험이 필요한 사람들을 지원할 재정을 마련하자고 의회를 설득하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개혁 방향은 높은 의료비를 규제하고 의료보험 및 의료 서비스 전달 체계를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둘 것입니다. 하지만 의료 민영화로 이익을 얻는 집단이 가진 경제적인 힘이 막강하기 때문에 개혁이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나는 전국민 의료보험 제도가 뿌리내릴 수 있다고 믿어요.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미 의회와 오바마 대통령 행정부의 결단이 있으면 가능한 일입니다.”


- 미국 의료 서비스는 어떻게 바뀌는 게 좋은가요.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의료비를 지원하는 ‘통합된 국가적 보험 계획’입니다. 빈곤층에는 정부 보조금으로 의료비를 지원해야 해요. 의료진은 1차 진료 서비스 공급자 및 전문가와 함께 다양한 의료 분야 전문가로 이루어진 비영리 그룹으로 조직되어야 합니다. 임금도 이 그룹을 통해 지급받아야 해요. 병원 및 외래 환자용 시설은 의사 그룹에 할당된 기금으로 운영하고 서비스 비용은 정부가 맡도록 하는 겁니다. 요양 기관이나 만성 질병 또는 재활 병원과 같은 장기 서비스 제공 기관은 정부 예산으로 운영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의료 시설은 비영리 기관이 되는 겁니다.”


- 한국은 최근 미국 모델을 따라 의료보험 민영화가 추진되고 있습니다.

“여러 심층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민간 의료보험 및 의료 서비스는 공공 또는 비영리 민간 기관에 비해 비용이 더 비싸면서 서비스 질은 그에 부응하지 못합니다. 의료 서비스 질을 조사해본 결과 민간 영리 시설은 비영리 기관의 시설보다 우수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더 낮은 경우도 있었어요. 의료 민영화가 더 큰 의료 혜택을 가져다 준다는 논리는 증명된 바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민간 의료보험 기업은 자신들의 이윤을 추구하는 데 골몰하고, 서비스에서 파생되는 더 비싼 행정 비용은 국민에게 떠넘겨지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 국민이 제대로 된 의료 혜택을 입을 수 있겠습니까. 의료 보험 민영화 추진은 절대 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특별 취재팀]

서의동 경제부 차장
조찬제 국제부 차장
김재중 문화부 기자
장관순·홍진수·송윤경 정치부 기자
이로사·유희진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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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준 울산대의대 교수


ㆍ이명박 정부 ‘의료 선진화’ 논리의 허구성
ㆍ인력 줄여 의료서비스 질 저하

한국 정부는 지난 3월13일 ‘의료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위한 토론회’를 열고 의료 민영화 재추진 의사를 명확히 했다. 의료 민영화는 다음의 두 가지 내용을 포함한다. 하나는 현재 비영리인 병원을 주식회사형의 영리병원으로 전환하는 것, 다른 하나는 현재 건강보험의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고 있는 민간의료보험의 역할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다.



정부가 의료 민영화의 추진 명분으로 삼고 있는 논리는 의료기관에 대한 민간투자 활성화 및 고용창출, 경쟁을 통한 의료서비스의 질 개선, 해외원정 진료 감소 및 해외환자 유치와 의료비 절감 등이다. ‘삽질’ 말고는 달리 새로운 투자처를 찾지 못한 이 정부에 병원은 좋은 투자처로 보일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병원은 모두 ‘비영리’이다. 많은 병원이 ‘돈벌이’를 하고 있는데 이를 ‘비영리’라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지 모른다. 여기서 영리성을 나누는 기준은 영리적 행위 여부가 아니라, 발생한 이윤을 병원의 외부로 유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병원은 돈을 벌 수는 있지만 이를 외부로 가지고 갈 수는 없고, 병원에 재투자를 해야 한다. 영리병원이 되면 외부 자본이 이윤을 목적으로 투자될 수 있고, 병원은 환자의 건강보다는 투자자의 이윤 창출에 우선순위를 두게 되는 것이다.

미국을 보자. 병원의 응급실 기능은 지역사회 건강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미국 영리병원은 이윤이 남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경우 응급실을 닫기도 한다.

영리병원이 된다고 고용이 늘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이 더 높다. 영리병원은 기본적으로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지출을 최소화하려 한다. 병원 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인건비이기 때문에 인건비를 줄이지 않고는 지출을 줄일 수 없다. 실제 미국 비영리병원의 100병상 당 의료인력은 522명으로 영리병원의 352명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영리병원은 특히 진료와 관련된 인력(간호사, 의사 등)을 줄이기 때문에 이는 의료서비스의 질적 저하를 초래한다. 영리병원에서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의 질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 미국의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의 질에 관한 연구를 종합한 한 연구에 의하면 영리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비영리병원에 입원한 환자에 비해 사망률이 2% 더 높았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영리기관에서 인공신장투석을 받는 만성신부전 환자의 사망률이 비영리기관에 비해 20%가 높았다. 영리병원에서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의 질이 나쁘다는 연구 결과는 이외에도 수 없이 많다.

영리병원 도입으로 해외로 유출되는 진료를 줄일 수 있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정부가 추산한 해외의료비 적자는 약 6000만달러(당시 기준 665억원)이다. 이는 국민의료비 54.5조원의 약 0.12%에 불과하다. 더구나 해외원정의료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원정출산이나 부유층의 해외 의료 이용이 영리병원 도입으로 크게 줄어들 가능성은 없다. 정부의 주장 중 가장 황당한 것은 의료 민영화로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의료기관간 경쟁이 심해지면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일반론만 되뇌고 있다. 환자가 병에 걸리면 환자가 아닌 의사가 환자의 대리인으로 의료서비스의 내용을 결정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시장원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병원간 경쟁이 심하다고 가격이 내려가지는 않는다. 영리병원은 멋있는 인테리어 등으로 환자를 ‘유인’해서 높은 진료비를 물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영리병원 도입은 악화되고 있는 건강 불평등을 더 악화시킬 것이다. 영리병원의 높은 진료비 부담은 저소득층 환자가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심각한 장벽이 되기 때문이다.

의료 민영화의 다른 한 축인 민간 의료보험 활성화는 어떤 영향을 줄까. 현재 민간 의료보험의 건강보장의 핵심적 역할을 하는 미국은 전 국민의 16%인 4700만명이 건강보장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일은 전국민건강보험을 가진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민간보험의 역할을 대폭 확대해서 현재의 건강보험을 대체하도록 하면, 건강보험은 현재보다 대폭 축소될 것이며 일부 저소득층은 ‘실질적으로’ 건강보장을 못하는 상태가 될 수도 있다. 민간보험은 환자진료에 필요한 진료비(민간보험회사는 이를 ‘의료적 손실’이라고 한다)는 가능한 한 줄이지만 행정비용은 훨씬 더 많이 지출한다. 캐나다 공공 의료보험인 메디케어는 가입자 1만명당 직원이 1.2명인 데 비해 미국 최대 민간보험사인 에트나는 20배인 20.8명에 달한다.

의료 민영화는 국가경제에도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최근 거의 부도 상태에 빠진 GM 자동차가 경쟁력을 상실한 이유 중의 하나는 직원과 은퇴자에 대한 과도한 의료비 부담 때문이다. 미국 GM의 경우 자동차 1대를 만드는 데 1525달러를 지출하는 데 비해 캐나다 GM은 187달러, 일본 도요타는 97달러를 지출했을 뿐이다.

주식회사형 영리병원 허용과 민간 의료보험 활성화는 의료부문을 자본의 ‘놀이터’로 만들 것이다. 이제 병원은 국민의 건강이 아닌 투자자의 이윤 극대화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자본은 의료정책의 결정과정에도 깊숙이 관여할 것이며 이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취약계층의 접근성 축소와 건강 불평등의 심화로 나타날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정책변화가 한 번 이루어지면 뒤로 무를 수 없다는 데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다시 건강보험체제로 돌아올 수 없다. 경제자유구역에는 래칫조항(다시 돌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이 적용되고, 그 외의 지역에는 투자자국가제소조항이 기다리고 있다.

의료서비스의 선진화는 의료 민영화로 달성할 수 없다. 의료기관에 대한 공적 자본 투입 확대,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와 함께 의료기관의 역할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올바른 대안이다.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을 확대하거나(예를 들어 보건소 방문간호 서비스 확대 등) 민간의료기관의 공공적 역할에 대해 정부의 지원을 강화하면(보호자 없는 병원에 대한 재정 지원 등) 질 좋은 일자리를 훨씬 더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 정부는 의료를 시장에 맡기면 문제가 모두 해결될 것이라는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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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진기자 worldhj@kyunghyang.com

ㆍ3부 - 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1) 의료민영화 韓·美·伊 세자매경험으로 본 실태
ㆍ“예방접종도 수십만원…가족 아프면 파산해요”

서울 종로 3가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혜영씨(40)의 세 자매는 우연히도 10년 전 같은 시기에 서로 다른 3 대륙에서 첫 아이를 낳았다. 김씨는 서울에서, 큰 언니는 미국에서, 작은 언니는 이탈리아에서 각각 출산을 했다.

“큰 언니는 미국 동포와 결혼해서 미국으로 떠났고, 둘째 언니는 이탈리아에 유학 갔다가 그곳에서 이탈리아인과 결혼했어요. 저는 한국에서 결혼했고요. 세 자매가 미국, 유럽, 한국으로 흩어지게 된거지요.”

1997년 세 자매는 좋은 소식을 들었다. 6개월 사이에 순차적으로 임신을 한 것이다. 김씨가 한국에서 6월 첫 아이를 가졌고, 약 20일 뒤에 큰 언니가 미국에서 둘째 아이를 가졌다. 그리고 6개월 후에는 작은 언니가 이탈리아에서 첫 아이를 임신했다.

“임신을 하게 되면 궁금한 게 많잖아요. 특히 저랑 작은 언니는 첫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소한 것까지 서로 물어보면서 대답해주고 그랬어요. 초음파 검사 및 각종 검진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각 국의 의료시스템에 대해서도 알게 되더군요.”



이탈리아에서 공짜로 아이 낳은 작은언니

세 자매 가운데 의료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린 사람은 이탈리아에 있는 작은 언니었다. 임신 사실을 확인한 후 산모 등록을 하자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정기 검진비부터 출산 전후로 4박5일 동안 병원에 머무른 비용, 심지어 출산 후에 아기가 잘 크는지 확인하는 사후 관리 비용까지 전부 무료였다.

“무료라고 하니까 왠지 진료의 질이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병원 시설도 훌륭하고, 입원해 있는 동안 모유 수유 전문가가 와서 수유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간호사들은 아기 목욕시키는 방법을 알려줬다고 해요. 이 정도면 월급의 절반 가까이를 세금으로 낼 가치가 있지 않나요?”

당시 화장품 회사에 다니고 있던 작은 형부는 월급 중 약 40%는 세금으로 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첫 아이를 출산했던 김씨는 어땠을까.

“저도 작은 언니처럼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녔어요. 병원에서 권유하는 피검사, 초음파 검사 등은 다 받았죠. 검사는 작은 언니보다 더 많이 받았어요. 검사 비용은 비싸야 10만원대였고, 진료비는 2만원 정도였어요. 출산 때는 여성 전문병원의 1인실에 4박5일 동안 입원했는데 병원비는 36만원 정도 나왔어요. 병원비가 전액 무료인 작은 언니에 비하면 비싼 것 같지만, 제가 낸 보험료에 비하면 충분히 감당할 만한 금액이라고 생각했어요.”

김씨는 월 27만원 정도를 의료보험료로 납부하고 있다고 했다.

“저는 남편과 함께 식당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두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죠. 제가 내는 의료보험료가 비싼 건 아닌가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미국의 큰 언니 가족이 내는 민영 의료보험료와 비교하면 제가 내는 보험료는 합리적이라고 느껴져요.”



미국에서 출산비용 2000만원 쓴 큰언니

미국에서 출산한 큰언니가 가입한 의료 보험은 임신과 출산 비용 혜택이 제외된 것이었다. 이렇게 보험 없이 치른 출산의 대가는 컸다. “큰 언니는 검사 비용이 너무 비싸서 저나 작은 언니처럼 검사도 제대로 못받았어요. 기형아 검사 같은 건 꿈도 못꾸었고, 산모와 아이 건강 체크하는 검사만 겨우 받았죠. 병원비가 비싸니까요. 진통이 시작되고 출산이 임박해서야 겨우 병원에 입원하고, 다음날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퇴원했어요. 산후조리는 언니의 시어머니가 맡으셨죠. 병원은 호텔처럼 으리으리했대요. 하지만 그 호텔에서 1박2일 머문 대가가 2000만원이었어요. 그뿐만 아니에요. 출산 후에 아이에게 맞혀야 하는 예방접종 때도 한번 맞을 때마다 수십만원씩을 내더군요.”

미국의 큰 언니 가족은 매년 초에 의료 보험료로 약 250만원 상당을 한꺼번에 내고 가족 의료 보험에 가입한다. 그렇게 많은 돈을 내고 보험 가입을 하고도 큰 언니는 한국에 나올 때마다 습관처럼 아이들과 병원 순례를 한다. 민영 보험에 가입해도 미국의 진료비는 본인 부담이 높아 한국에서 병원을 다녀 오는 게 훨씬 싸기 때문이다.


‘식코’는 영화가 아니라 미국의 일반적 현실

미국에 살고 있는 큰언니가 다른 두 동생과 달리 높은 출산 비용을 내야 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에는 전 국민을 포괄하는 공공보험이 없다. 미국 전체 인구의 4분의 1 정도는 공공보험인 노인의료보험(메디케어)과 저소득층 및 장애인 의료보험(메디케이드)에 가입돼 정부의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인구의 약 67.5%는 민영 의료보험에 의존한다.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돈이 없어 민영 의료보험에 가입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의료서비스의 사각지대에 놓여 위태롭게 살아갈 각오를 해야 한다.

의료보험의 민영화 폐해를 신랄하게 파헤쳐 화제가 되었던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는 미국이 최고 부자나라라는 이미지 때문에 ‘과장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사는 경우가 많다. ‘식코’는 과연 미국 의료보험 민영화의 극단적인 사례만을 부각시킨 것일까. 김씨는 단연코 아니라고 답한다.

“큰언니뿐만이 아니에요. 7년 전쯤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던 막내 남동생이 교통사고가 나서 새끼발가락이 부러졌는데 그냥 참고 다니는거예요. 몸이 중요하지 돈이 더 중요하냐 싶어 병원에 가라고 했더니 의료보험이 안돼서 병원비 감당이 안된대요. 차라도 팔아야 하는데 학교에 다니려면 차는 꼭 필요하다고 했어요. 그때 제대로 치료를 못받아서 지금도 발가락 모양이 기형이에요.”

김씨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미국에서는 아기 출산에 2000만원, 예방접종비는 수십만원, 부러진 새끼발가락 치료비는 중고 승용차 한 대 값이다. 각종 자료들을 봐도 미국의 의료비용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1인당 진료비는 6401달러로 OECD 국가들의 평균(2759달러)보다 2배 이상 높고, 한국(1318달러)의 5배와 맞먹는다. 높은 의료비 부담을 피하고자 각자 민영 의료보험에 가입하지만 모든 질병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의료보험 가입 시 지정해 놓았던 질병에 대해서만 의료보험 회사에서 진료비를 대줄 뿐이다. 다른 질병은 전액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이런 사정 때문에 미국에서 아프다는 것은 파산으로 가는 고속열차를 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버드대 의과대학 힘멜스타인 교수는 2005년 “미국 내에서 파산 신고를 하는 사람 가운데 50%에 달하는 200만명은 의료비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충격을 준 바 있다.

미국 캔자스주 위치타의 세인트 조지프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재미 동포 도미틸라 수녀는 누구보다 미국 의료체계의 현실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미국에서 중산층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려면 한가지 꼭 필요한 조건이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바로 ‘절대로 아프면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환자 보호자가 있어요. 아널드 돌셋이라는 분인데, 연 수입이 7만달러가 넘는 회사원이었습니다. 교외에 본인 소유의 집까지 있었던 전형적인 중산층이었죠. 부인, 세 자녀와 함께 꾸려가던 화목한 가정에 먹구름이 끼게 된 건 아들 재커리가 아프면서부터였습니다. 재커리가 8살 때 면역체계 기능장애 판정을 받았거든요. 그 때부터 돌셋 가족의 의료보험비는 천정부지로 오르게 됐죠. 의료보험은 재커리의 병원비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결국 3만달러가 넘는 카드 빚을 지게 되고 자동차 할부금이나 주택 대출금을 상환하는 것도 어려워졌어요. 돌셋에게 남은 선택은 파산 신고 뿐이었죠. 돌셋은 결국 파산하게 되면서 단순히 돈만 잃은 게 아니라고 했어요. 파산 신고를 하는 순간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인생에 대한 자부심을 잃었다고 했죠.”

그는 의료 민영화가 환자들의 병을 더 악화시킨다고 말했다.

“보험회사는 환자의 상태에 상관없이 병원에 입원할 수 있는 날을 제한해요. 보험회사가 지정한 규칙에 따라 심장질환이 있는 환자들은 며칠만 머물고 집에 돌아갑니다. 그러면 며칠 후에 같은 증상으로 병원에 또 와요. 지속적인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의 상태는 당연히 훨씬 악화되죠. 보험회사 때문에 환자들은 점점 병을 키워가는거예요.”


약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의 의료 민영화 체제에서는 환자들이 먹는 약값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미국 뉴욕주의 한 대형 약국에서 약사로 일하고 있는 이현호씨(28)는 “약값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것을 약국에서는 매일 경험한다”고 말했다.

“손님들이 처방전을 가지고 약을 지으러 왔다가 처방전을 그냥 돌려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너무 화가 나서 제 앞에서 그 처방전을 찢어버리는 사람도 있죠. 보험이 없으면 약값은 비싸거든요. 약 보험이 있어도 환자 본인 부담액이 높으면 약을 포기하죠. 수많은 약들 중 브랜드가 있는 약은 한알에 1~5달러이고, 심지어 한알에 50달러짜리도 있어요. 이렇게 제약회사들이 비싼 값에 당당히 약을 내놓는 이유는 민영화된 의료보험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한 제약회사가 고혈압 약을 팔아요. 다른 경쟁사들도 고혈압 약을 팔죠. 가격이 더 싼 카피약도 있을 겁니다. 제약회사는 보험회사와의 계약을 통해 보험회사 고객들이 약값이 비싸도 자신의 회사 제품을 구입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 때문에 이씨는 “미국의 의료 민영화 체제에서 환자는 의사가 추천해준 약을 사먹을 선택권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의사가 환자한테 혈압약 ㄱ을 처방해요. 그런데 ㄱ이 브랜드 제품이라 약값이 비싸요. 보험회사에서는 선뜻 보험 처리를 해주지 않죠. 손해보는 장사는 절대 안하거든요. 그러면 가격이 싼 카피약을 쓰게 하든지 아니면 자기들과 유리한 계약을 맺은 제약회사에서 만든 ㄴ제품을 쓰게 해요.”

이씨는 “미국인들이 취업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값비싼 의료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서”라고 했다.

“미국에서는 병원비, 약, 안과 보험, 치과 보험 등을 다 따로 들어야 해요. 저는 제가 일하고 있는 약국에서 의사, 병원, 약, 치과 보험을 제공해줍니다. 이 보험비를 제가 다 지불하려면 1년에 2000달러를 넘게 내야 하지만, 회사에서 대부분 부담을 하기 때문에 1년에 520달러만 내는 보험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해고된 뒤 병나면 인생 끝장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이씨처럼 회사를 다니면서 의료보험 지불비용을 낮춘다. 통상 회사는 직원들의 의료보험비 70% 이상을 부담한다. 이 때문에 경기침체로 회사에서 해고 당한 후 병이라도 걸린다면, 그 인생에는 미래가 없다. 힘멜스타인 하버드 의대 교수의 말이다. “어떤 사람이 병에 걸려 회사에 못나가게 됩니다. 해고되면 회사가 지불하는 보험도 없어지죠. 보험도 없고 돈도 없는 그 사람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이게 바로 ‘생산력 없는 사람은 바로 폐기처분된다’는 신자유주의의 핵심입니다.”

이씨는 “의료보험이 민영화되면 경쟁을 통해 더 좋은 서비스들을 싼 값에 제공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말했다.

“의료 민영화를 하면 가격 경쟁을 하게 되고, 그럼 서비스가 더 좋아진다고요? 제가 미국에서 약사를 하면서 경험하기로는 오히려 그 반대예요. 예를 들어 한 대형 보험회사가 특정 의료 서비스나 약들을 보험 가능한 항목에서 빼요. 그러면 다른 보험회사들도 기다렸다는 듯 역시 다 같이 그 보험 항목을 포기해버립니다. 돈이 안되기 때문이죠. 물론 보험액은 내리지 않아요. 결국 그 비용을 다 부담해야 하는 환자들만 피해를 입죠.”

이씨는 최근 로스쿨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약사를 하면서 겪은 미국 의료보험제가 그의 인생행로를 바꾸게 된 것이다.

“2010년도부터는 뉴욕 맨해튼에 있는 포드햄 대학교의 로스쿨에서 공부를 하게 돼요. 의료보험 관련 법률을 공부한 뒤 억울하게 피해를 보는 사람들을 도울 겁니다. 보세요. 미국의 의료보험 민영화 제도는 대실패였어요. 미국은 이제 와서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발버둥치고 있는데 한국은 왜 그런 모습을 닮아가려고 하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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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2부-(9) 폭주 기관차에 올라탄 한국 아담 쉐보르스키에게 듣는다


김재중기자




‘민주주의는 왜 시장의 난폭한 질주를 통제하는 데 실패했나.’ 이런 의문은 미국은 물론 한국에 대해서도 제기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시장의 실패를 목격하고도 질주를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미국의 저명한 민주주의 이론가인 아담 쉐보르스키 뉴욕대 교수와의 e메일 인터뷰를 통해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민주주의는 시장경제와 함께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하고 움직이는 핵심축이다.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세계적인 경제위기는 자본주의(시장)와 민주주의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어떤 문제를 암시하고 있는가.

“돈이 정치에 영향을 미치도록 허용하거나 거대기업이 정치를 점령했을 때 민주주의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이번 위기의 가장 중요한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규제의 실패는 규제를 받아야 할 산업들이 오히려 규제기관들을 점령한 데에서 기인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중반 이후 90년대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각종 권위주의 체제들이 퇴조하고 민주화의 물결이 휩쓸었다. 거의 동시적으로 사회주의, 케인스주의, 발전국가가 퇴조하고 시장주의의 물결이 거세게 밀려왔다. 이중적 전환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였다. 결과적으로 이 두 개의 물결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맺기보다는 충돌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의 승리는 대체로 미국과 영국 정부, 그리고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들이 상호 조율된 정치적 운동을 펼쳤기 때문에 가능했다. 여러 국가가 친시장적 정책들을 도입한 것은 이런 정책들이 실제로 효과적으로 작동한다는 증거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압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정책들은 매우 인기가 없다는 것이 판명됐고, 대중적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민주주의는 시장이 작동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해주고, 시장의 사회적 영향을 조절해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오늘날 시장의 실패는 민주주의의 실패라고 말할 수 있다. 민주주의가 시장을 조절하고 그것의 파괴적 영향력을 완화시키는 데 무기력했기 때문 아닌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들에는 한계가 있다. 모든 정치 체제들은 나름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민주주의가 전반적으로 실패했다고 보지 않는다. 미국에서 실패했을 뿐이다. 더구나 위기를 심화시킨 원인 가운데 하나는 국제적 차원에서 실질적 규제가 없었다는 점이다. 국제적 차원은 민주적이지 않다.”

-민주주의가 시장과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만큼 강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는가.

“민주주의시스템은 로비, 정치자금 모금, (규제대상의) 규제기관 점령 등 돈이 정치에 접근하는 것을 좀더 철저하게 통제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투명성 또한 매우 중요한데 오늘날은 정보기술의 발달로 투명성을 확보하기가 과거보다 쉬워졌다.”

-당신은 민주주의를 ‘경쟁의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제도화된 정치체제’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주로 선거경쟁의 제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최소강령적 민주주의론으로는 시장주의의 범람에서 발생하는 사회양극화 문제와 사회양극화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시민권의 황폐화 문제에 대처하기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민주주의는 규칙에 따라 갈등하는 메커니즘이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가치와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이 서로 대립하는 가운데 결론에 도달하고 이 결론이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구조에 불과하다. 규칙이 중요하긴 하지만 민주적 절차에 따른 결과물은 투입물에 의존한다. 한 사회 안에서 발생하는 갈등이 제도적인 통로로 흡수되고 이러한 갈등들이 규칙에 따라 전개될 때 민주주의는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그 결과물이 경제적 평등이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인가 아닌가는 정치적으로 조직된 집단이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사회적 혹은 경제적 결과물들을 만들어내는 주체는 민주주의 자체가 아니라 민주적 제도 안에서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한국에서는 민주화 이행 이후 수평적인 정권교체가 연속해서 일어났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민주주의가 더욱 공고화되는 현상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거경쟁에서 승리한 한국의 현 정부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사회갈등을 더욱 격화시킨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당신이 펼쳐온 절차적 민주주의론의 맹점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아니다. 그것은 절차가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좋은 절차는 갈등을 제도적인 경쟁의 장 안에 머물게 하고 민주적 과정을 거쳐 도달한 결정에 대한 순응을 만들어 낸다. 갈등이 거리로 분출한다는 것은 제도적 시스템이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정부가 임의적이고 권위적인 방식으로 행동하면 민주적 제도들은 약화된다.”

-2008년 봄 한국에서는 독단적으로 이루어진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에 항의해 100만명 이상의 군중이 동시에 촛불시위를 벌였다. 그들의 행동은 매우 평화적이고, 이성적이었다. 그리고 사회적 이슈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통해 사회적 공감대를 도출해 나가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직접 참여의 강화는 민주주의를 더욱 증대시킬 수 있는 대안인가.

“그것은 나를 포함한 정치학자들이 아직 명백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이슈라고 생각한다. 정당하게 선출된 정부가 정해진 규칙에 따라 결정을 내렸다면 우리가 그 결정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정부는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올 때마다 자신의 결정을 바꿔야 하는가? 나는 정부가 나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정한다. 하지만 초점은 나쁜 결정이라 할지라도 적법하게 내려졌다면 우리가 그것을 따라야 하는가, 그렇지 않아도 되는가이다. 결국 민주주의하에서 우리는 선거를 통해 정부를 교체할 수 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가장 큰 미덕이다.”

-여러 학자가 현대 민주주의의 기능부전은 정당정치의 쇠퇴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은 세계적인 현상인 것 같다. 정당의 기능은 대표와 대변인데, 정당의 이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시장에 대한 합리적 규제는 더욱 더 어려워진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대의기제인 정당의 쇠퇴가 현대 민주주의 약화의 주요한 원인이라는 지적에 동의한다. 그러나 정당이 시민·사회운동이나 비정부기구 혹은 다른 것으로 대체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민주주의의 핵심적 제도는 선거다. 선거는 어떤 사람들이 지배하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또한 많은 제약에도 불구하고 선거는 우리가 정책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평등한 메커니즘이다. 따라서 갈등은 선거에서 경쟁하는 조직들에 의해 진행되어야 한다. 이 조직이 바로 정당이다. 해법은 정당을 강화시키는 것이어야지 이들을 대체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미국식 신자유주의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였는가. 버락 오바마의 당선으로 미국식 신자유주의에 커다란 변화가 올 것으로 보는가. 그것은 미국 민주주의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

“앞서 한 가지를 언급했다. 바로 규제시스템이 (규제를 받아야 할 주체들에 의해) 점령됐다는 점이다. 투자, 고용, 사회 서비스에서 국가 역할의 한계와 공적 제도의 약화도 이에 포함된다. 그러나 나는 버락 오바마 정부에 대해선 매우 긍정적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국가 역할의 근본적 개혁에 대한 신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현재의 위기는 이러한 개혁을 실행하기 위한 전대미문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지구상에는 몇 가지 특징적인 경제발전모형이 있다. 예를 들어 미국식 자본주의, 유럽식 자본주의, 동아시아형(일본식) 자본주의 등이 그것이다. 이번 경제위기사태로 유럽식 혹은 일본식 자본주의 모형이 우월한 대안으로 각광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앞서 규제에 관한 국가의 역할, 공공 서비스, 투자조정의 확대를 통해 미국 경제가 개혁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암시한 바 있다. 따라서 미국은 유럽과 일본 모델에 근접할 것이다. 그러나 유럽과 일본 모델도 자체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들은 더 많은 (사회)보장을 제공하고 경기순환을 완화하는 데에는 유능하지만 사적 영역의 비효율성을 보호할 뿐 아니라 혁신을 증진시키기 위한 역동성이 부족하다. 우리는 경제적 보장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사적 영역의 혁신을 독려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러나 슘페터적인 ‘창조적 파괴’는 (사회)보장을 허물기 때문에 둘을 조화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 아마도 현재의 위기는 우리를 더 나은 해결책으로 인도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좌파에게는 정돈된 개혁 아젠다가 없다. (현재 이뤄지고 있는) 모든 케인스주의적 조치들이 자본주의의 구조를 개혁하기보다는 과거의 모습만 복원하는 데 그친다면 위험하다.”

△아담 쉐보르스키 교수
아담 쉐보르스키 뉴욕대 교수(69)는 민주주의의 본질, 민주화 이행의 조건, 민주주의와 시장의 관계 등에 관한 중요저작들을 발표한 저명한 정치학자로서 국내 학계에서도 흔히 인용되고 있다. <민주주의와 시장> <자본주의 사회의 국가와 경제> <지속가능한 민주주의>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등이 국내에 소개돼 있다. 임혁백 고려대 교수가 인터뷰를 주선했으며, 고원 상지대 학술연구교수가 인터뷰 질문 구성에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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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2부-(8) 폭주 기관차에 올라탄 한국…새로운 우상 : 민영화

박재현기자

이명박 정부만 공기업 때리기 한다?





한국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의 통합을 반대하는 현수막으로 뒤덮여 있는 경기 성남시 한국토지공사 입구. <김기남기자>




아니다. 공기업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입장을 잘 대변하는 글을 보자.

“시장경제 체제의 성숙과 함께 공공사업 부문에 대한 기능 재조정의 여건이 갖춰졌음에도 공공기관은 지속적으로 비대해지고 방만해지면서 국가경제의 효율적 작동을 어렵게 하고 있다. 현재 예산규모로 국내총생산(GDP)의 33.6%를 차지하고 있는 공공부문에 대한 개혁 없이는 대한민국이 선진화 단계로 도약하기 어렵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특히 공공기관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서 보듯이, 많은 공공기관이 경영 실적과 상관없이 고액연봉과 성과금을 보장하고, 낮은 생산성에 비례해 쌓여가는 적자를 고스란히 국민 세금으로 메워나가는 비정상적 운영으로 ‘신이 내린 직장’이란 국민적 질타를 받고 있다.”(문화체육관광부 <대한민국 정책 포털>, ‘공공기관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는 이명박 정부만 이런 시선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신자유주의 논리가 이 사회에 확산된 이래 공기업 때리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이명박 정부가 공기업을 사회악처럼 취급하는 정도가 좀더 심한 것일 뿐, 이미 한국 사회는 이런 공기업 인식을 광범위하게 공유하고 있다.

그 결과 공기업은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개혁 대상으로, 곧 대자본이 사유화해도 괜찮은 것으로 당연시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공공 서비스를 재벌이 맡아도, 그걸 개혁, 혹은 선진화라고 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다.

공기업은 방만하고 효율성이 떨어진다?

아니다. 미래경영개발원이 기획재정부에 지난해 3월 제출한 ‘공기업 재무현황 분석’ 보고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다르게 공기업들의 경영성과는 우수한 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1996~2006년 10년 동안 성장성을 보여주는 매출액 증가율을 보면 21개 국내 공기업이 11.9%였다. 글로벌 500대 기업(9.2%), 국내 500대 기업(10.1%)보다 높았다. 특히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 포스코, KT 등 국내 5대 기업의 0.7%보다 높았다. 매출액 순이익률은 평균 7.2%로 글로벌 500대 기업 6.1%, 국내 500대 기업 5.6%보다 높고 국내 5대 기업의 11.1%에 비해서는 다소 낮았다. 안정성을 나타내는 부채비율은 국내 21개 공기업이 104.9%로 글로벌 500대 기업(205.0%), 국내 500대 기업(140.5%)에 비해 낮았다. 반면 96년 7만8205명이던 종업원수는 2006년 5만4324명으로 줄었다. 이에 따라 1인당 당기순익은 2000년 800만원에서 2006년 8500만원에 달했다.

“공기업들은 외환위기 이후 30% 정도 인력구조조정을 단행했습니다. 이후 2001년까지 신규채용이 없었습니다. 저희 공사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렇지만 성과는 좋았습니다. 공기업 고용이 과다하거나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을 일반화시킬 수는 없단 얘기죠. 인력채용은 공사가 하고 싶다고 해서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한명 한명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공기업 운영이 방만하다고 하는 정부가 공기업을 관리·감독하고 있고 매년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공기업이 방만하다면 정부의 책임이 더 큽니다.” 한 공기업 간부의 말이다.

민영화 원칙에 일관성이 있다?

아니다. 흔히 공기업은 망하지 않기 때문에 비효율적으로 운영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비효율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민간기업이 뒤떨어지지 않는다. 정부는 비효율적인 민간기업이라 해도 고용 규모가 크거나 국가경제에 영향을 크게 미칠 경우 재정지원을 통해 죽이지 않고 살리고 있다. 민간기업이라고 해도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바로 퇴출되지는 않는다. 신자유주의의 본토인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 재무부는 자동차 빅3 중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에 대한 구제자금 지원을 지난해 말부터 단행했다. 6조원짜리 초대형 인수·합병 기업으로 관심을 모았던 대우조선해양도 외환위기 시절 정부가 국유화시켜 살려낸 기업이다.

김용구 미래경영개발연구원장은 “ ‘공기업은 방만하고 이에 따라 민영화해야 한다’는 단순논리는 국민적 카타르시스를 충족시킬지 몰라도 거대한 후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면서 “자본주의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최근 같은 경제 위기일수록 보편적 사회서비스는 강화돼야 하고 오히려 없던 공기업도 만들어서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효율성을 우선한다?

아니다. 정부 지분이 하나도 없는 포스코는 여전히 정치권과 정부의 입김에 흔들려 왔다.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내년 2월까지 임기가 남아있지만 ‘노무현 정부 사람’으로 찍혀 새정부 출범 때부터 사퇴압력을 받다 결국 사퇴했다. 이 회장은 경제악화 속에서도 지난해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한 인물이다. 이명박 정부가 겉으로 내세우는 대로 공기업을 경영실적과 효율성의 잣대로만 바라보지 않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영화된 KT의 사장에는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낙하산으로 임명했다. 관료 출신이 KT 사장으로 임명되기는 2002년 민영화 이후 처음이다. 조폐공사 사장에는 천안에서 낙선한 전용학 전 한나라당 의원이 임명됐다. 공천에서 탈락한 안택수 전 의원은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에 앉았다. 정광윤 가스공사 감사, 이이재 광해관리공단 이사장, 김주완 한국전력기술 감사는 모두 한나라당 출신이다. 토지공사 사장에는 현대건설 출신으로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도시계획국장 등을 역임한 이종상씨가 임명됐다. 주택공사 사장에는 영남 출신인 최재덕 전 대통령직 인수위 경제2분과위원이 앉았다. 철도공사 사장 자리는 허준영 전 경찰청장이 차지했다.

공기업 선진화는 사유화와 무관하다?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초기 ‘공기업 민영화’를 내세웠지만, 지금은 선진화로 간판을 바꿨다. 지난해 ‘촛불집회’ 이후 공기업 민영화의 결과로 수도·전기·가스 요금 인상 우려가 높아지자 정부는 네트워크 산업의 민영화는 없다고 천명한 뒤였다. 그러나 선진화는 민영화의 다른 이름이다.

예를 들어보자. 정부는 지난해 10월 ‘제3차 공기업 선진화 계획’을 발표하면서 2010년부터 발전용 가스 도입, 도매 시장에 민간 참여를 허용하고 점차적으로 산업용 가스 도입 경쟁 범위를 확대시킬 것이라고 발표했다. 공기업을 매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민영화’가 아닌 ‘선진화’라는 것이다. 해당 공기업 노조는 이를 민영화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금은 가스를 공공재로 인정해 한국가스공사가 필요한 물량을 전부 통합 구매해 왔는데, 앞으로는 민간기업들도 이 권한을 갖게 된다. 그러나 세계 가스 시장이 공급자 위주여서 수입 사업자가 많아진다면 결국 공급자가 가격 주도권을 쥐게 되고 도입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 배분 과정에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현행 가스요금은 시장 원리가 아닌 사회적 원리에 따라 가격이 책정된다. 실제 비용을 반영하면 주택난방용을 더 비싸게 받아야 하지만 발전용과 산업용에서 얻는 수익으로 주택난방용 가격을 낮추는 ‘교차보조’로 형평성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종훈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은 선진화 계획에 따르면 이런 공공요금체계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결국 발전용·산업용 가격은 소폭 낮아지겠지만 서민용 가스요금은 2배 인상이 불가피합니다. 결국 선진화의 실체는 가스 도입권을 민간에게 허용하는 민영화입니다. 참여할 민간기업이래봐야 SK와 GS, 포스코 정도의 재벌 대기업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누구를 위한 조치인지 뻔하지 않습니까.” 공기업 선진화는 결국 재벌 사유화일 수밖에 없다.

물 관리 민영화해도 물값 안 오른다?

아니다. 공기업은 자본이나 시장논리로 해결할 수 없는 공익성 때문에 존재한다. 수자원개발이나 물 관리 등을 공공이 운영하고 있는 우리나라 상수도 요금은 1t에 577원 정도다. 이는 물산업이 완전히 민영화된 영국(1820원), 수도운영에 민간기업이 참여하는 프랑스(1579원)보다 3배 정도 싸다. 이것이 민영화의 실상이다.

볼리비아는 98년 세계은행(IBRD)으로부터 수도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한 차관을 받는 대가로 사업을 민간기업에 팔기로 했다. 이후 3대 도시 중 하나인 코차밤바시의 수도서비스 부문을 99년 미국 벡텔이 구성한 컨소시엄에 넘겼다. 그러나 민영화 직후인 2000년 1월 수도요금이 35% 올랐다. 요금은 인상과 함께 제한급수가 풀리자 물 사용량은 늘었다. 일부는 소득의 3분의 1을 물값으로 써야 했다. 결국 2003년 대통령은 하야했고, 2004년 벡텔과의 계약은 취소됐다. 볼리비아뿐 아니라 수도 운영을 민영화하거나, 민간기업을 참여시킨 영국·프랑스·이탈리아·아르헨티나·우루과이·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도 각종 문제가 발생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물 관리를 민간에게 맡겨도 물값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수자원공사 관계자는 “민간기업의 수자원 관리는 투자는 저조한 반면 운영수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물값을 인상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수도 관리를 완전히 민영화한 영국에서는 재작년부터 공공의 역할을 확대하려는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의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높다. 지난 1월15일 ‘제5차 공공기관 선진화 추진계획’을 통해 공공기관 출자회사에 대한 대대적인 매각과 청산, 통·폐합 방침을 밝힐 정도다.

민간기업은 항상 효율적이다?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한편에서는 공기업 민영화를 주장하면서 다른 편에서는 공기업의 역할을 강화하는 모순적 행동을 하고 있다. 정부가 주공과 합치기로 한 한국토지공사와 민영화하기로 한 대한주택보증이 건설업체 살리기에 나서는 게 대표적 사례다. 토공은 정부의 10·21 건설대책에 따라 주택건설업체가 보유한 토지를 사주고 있다. 주택보증은 지방의 미분양주택을 매입하고 있다. 유동성 위기를 맞은 건설업체를 지원한다는 이유였다. 토지공사와 주택보증이 투입할 자금 7조원 규모는 10·21 대책으로 정부가 투입할 자금 9조2000억원의 76%에 해당한다.

이명박 정부는 공기업 개혁 능력이 있다?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공기업 개혁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토공 부채는 34조원 정도이고 주공 부채가 52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통합 후 2010년부터 영업이익으로도 이자를 갚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는 분석도 나왔다. 또 통합공사가 발행해야 할 채권 규모는 매년 20조원 이상인데, 이는 전체 공사채 발행 규모(35조원)의 절반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토지공사의 한 관계자는 말했다. “누가 이렇게 부실한 공기업의 채권을 사려고 하겠습니까. 통합을 하더라도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구조조정이 선행되고, 통합된 조직원들이 화합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추진해야 합니다. 일단 통합부터 시키겠다는 것은 부작용이 너무 큽니다.”

참여정부 때 전력산업구조개편을 위해 조직된 공동연구단에 중립 인사로 참여했던 중앙대 이병훈 교수는 “당시 정부는 연구단에 노조 측 인사도 정부 측 인원과 동수로 참여시켜 배전분할에 대한 설득과 이해의 폭을 넓히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참여 주체들의 합의는 도출하지 못했지만, 연구단의 결과를 수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공기업 민영화와 같은 사회적 합의나 중요한 사항은 일방적으로 추진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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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2부 - (8) 폭주 기관차에 올라탄 한국…새로운 우상 : 규제 완화

박재현기자

김대중 정부는 1999년 1월 아파트 분양가 규제조치를 전면 해제했다. 전국의 모든 아파트의 분양가는 건설사 마음대로 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외환위기가 터지자 시중 여유자금을 주택시장에 흘러들게 해 수요를 늘려 경기부양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같은해 3월에는 수도권 분양권 전매 규제도 풀었다. 소형주택 의무건설비율, 재당첨 금지제한 기간도 사라졌다. 1가구 2주택에 대한 양도소득세도 일시 면제했다.



정부는 이런 조치로 아파트 물량공급이 늘어나 장기적으로 주택시장이 안정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그해 여름부터 서울 강남과 분당신도시 등을 중심으로 전셋값이 급등했다. 많은 지역에서 아파트 매매·전셋값이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올랐다. 98년 이전 3.3㎡당 500만~600만원인 분양가는 2003년 1000만원(1129만원)을 넘어섰고, 매년 10% 안팎 올랐다. 지방에도 3.3㎡당 3000만원대 아파트가 등장했다. 분양가 상승은 주변집 값을 올렸고, 이는 다시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분양권 전매제한이 사라지면서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세력은 모델하우스로 몰렸다. 그러는 동안 평생 내집마련이 꿈이었던 서민들의 한숨은 깊어갔다.

김헌동 경실련 아파트값거품빼기운동본부장이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시민단체 활동을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98년부터 여유시간을 활용해 시민단체 활동을 하던 그는 2000년 전업 활동가로 변신했다. 김 본부장은 건설회사에 근무했던 지식과 경험으로 분양가 거품 구조를 밝히고, 분양원가 공개 운동을 전개했다. 시민사회의 요구가 커지고 집값 폭등이 계속되자 노무현 정부는 2007년 11월부터 민간택지에도 분양가상한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경기가 침체되자 이명박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이를 폐지하기로 했다.

신앙이 된 규제 완화

전국민을 신용불량자로 만들 뻔했던 김대중 정부의 카드사태 역시 규제완화가 부른 후폭풍이었다. 신용카드사에 대출업무를 허용하고, 현금서비스 비중 등의 제한이 풀리면서 카드사들은 길거리 카드모집에 나섰고 학생과 실업자들도 여러 장의 신용카드를 발급받았다.

한 대형 카드회사 관계자는 “금융기관도 수익을 쫓는 기업이기 때문에 고삐를 풀어놓으면 시장질서가 혼탁해지기 쉽다. 일정부분 감독과 통제가 필요하다”면서 “현금서비스 한도를 없앤 이후 무분별한 대출을 억제할 수 있는 보완장치가 뒤따라야 했다”고 말했다.

“경제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규제완화는 이제 신앙이 됐다.”(세종대 김수현 교수) 그 이유는 뭘까. “공장의 신·증설이나 투자기회를 규제 때문에 놓치는 경우가 많다.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해 시장기능을 활성화시키고 기업간 경쟁을 촉진시키는 것은 사회전체적인 이익으로 돌아온다”(대한상의 규제개혁단 관계자)는 게 주요한 이유다. 특히 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규제완화가 더욱 필요하다고 한다.

규제완화는 더 큰 규제완화를 초래





이런 탈규제 논리에 따르면, 규제완화의 결과로 기업 활동이 증진되고 투자가 일어나야 한다. 기업에 대한 각종 혜택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까지 가해진다면 분명 눈에 띄는 성과가 나와야 한다. 기업도시 정책을 예로 들어 볼 수 있다. 2004년 말 노무현 정부의 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은 기자실에 들러 이례적인 조치를 발표했다. 강 장관은 “기업도시는 기업이 주축이 되는 사업인 만큼 기업도시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제정할 때 기업의 실무자들을 대거 참여시켜 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기업도시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기는 했지만 정부가 법안 제정 과정에 기업 관계자들을 참여시키기로 한 것은 처음이었다. 기업도시는 계속 하락하고 있는 국가잠재성장력을 높인다는 이유로 도입됐다. 전경련은 지역 개발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업이 생산시설을 중심으로 연구·개발센터와 주거 등을 종합적으로 건설하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노무현 정부는 규제완화와 세제지원책을 내놓는 등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일본 도요타시 등 해외 성공사례가 대대적으로 홍보됐다.

이를 위해 정부의 고유한 토지수용권을 민간 기업에도 허용하는 등 기업도시에 쏟아붓는 열정은 대단했다. 토지수용권이란 개인의 의사에 반하더라도 공공의 목적을 위해 재산을 강제로 수용할 수 있는 권리이기 때문에 민간이 이를 행사하는 것은 특권 중의 특권이었다. 이런 특혜 속에 2005년 7월 충남 태안 등 전국 6개 지역이 기업도시 시범지구로 지정됐지만, 현재까지 기업도시 건설은 지지부진하다. 무주 기업도시는 사업자인 대한전선이 투자연기로 사실상 중단된 상태이고, 전남 영암·해남기업도시도 개발계획 승인절차가 지연되고 있다.

전경련은 “기업도시 인프라에 대한 정부지원 미흡과 개발비용 증가 때문에 기업도시 추진이 지지부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공공성을 해칠 정도의 무리한 요구를 모두 들어줄 수 없다”며 의견차를 보이고 있다. 이 사례는 정부의 규제완화와 지원이 반드시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규제완화는 더 큰 규제완화를 요구한다는 악순환의 논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규제완화는 善? 좋은 규제가 있어야

기업이 원하는 규제 완화는 어느 수준일까. 이명박 정부 출범 두 달 뒤인 지난해 4월 전경련 등 경제 5단체는 지식경제부에 규제개혁 과제 267건을 제출했다. 지식경제부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퇴직금과 적극적 고용조치 제도를 없애고, 고령자와 장애인 고용의무 및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이 주였다. 산재유해요인 조사, 사업주 벌칙조항 완화 등 산업재해를 막는 장치도 풀 것으로 요구했다. 육아휴직에 대한 거부권 및 직장 보육시설 설치 의무 완화도 요구했다. 직장내 성희롱에 대한 벌칙 규정도 풀라고 했다.

만일 재계가 요구한 규제완화가 모두 이뤄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미 외환위기 이후 기업규제 완화라는 명분으로 각종 산업안전규정을 완화시킨 바 있다. 그 결과 98년 0.68%까지 떨어졌던 산업재해율이 2007년 0.72%로 다시 증가했다. 기업이윤 창출을 위해 노동자의 생명을 담보로 하겠다는 발상과 다르지 않다. 증권선물거래소 분석결과 546개 상장기업이 내부에 쌓아둔 현금성 자산은 2007년 말 현재 약 63조원으로 1년 전보다 20%나 늘어났다. 이 중 10대 그룹이 쌓아둔 돈이 33조5000억원으로 절반을 넘는다. 500명 이상 기업 소속 노동자 수는 93년 210만명에서 2005년 131만명으로 줄어든 반면, 정규직 임금의 절반 정도를 받는 비정규직은 전체 임금노동자의 56% 규모로 커졌다. 대기업의 투자가 고용 창출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은행 조사국 한성훈 과장은 “제조업의 경우 규제완화의 효과가 서비스업보다는 높지 않다”면서 “제조업의 효율성은 연구개발(R&D)이 크게 좌우한다”고 말했다. 규제의 특성과 산업별 모형을 토대로 ‘규제완화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이란 보고서를 낸 그는 규제를 10%만 완화해도 0.3%포인트의 총요소생산성이 증대하는 등 경제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규제는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로 나뉠 수 있습니다. 규제는 환경·노동 등 사회적 목적 달성을 위한 ‘사회적 규제’, 경제활동의 진입과 가격 등에 개입하는 ‘경제적 규제’, 행정일반을 다룬 ‘행정적 규제’로 나뉩니다. 규제의 강도는 사회적 규제보다는 경제적 규제가 훨씬 셉니다. 또 사회적 규제는 기업의 편의 때문에 훼손될 수 있는 소비자나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바람직한 규제’라고 할 수 있지요. 따라서 규제완화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경제적 규제에 초점을 맞춰야 해요.”

규제완화의 혜택은 부자들에게만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경제적 규제 완화뿐 아니라 사회적 규제 완화까지 전방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거나 산업자본의 금융업 진출을 위한 금산분리 완화도 추진되고 있다. 분양가상한제 폐지,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3구의 투기지역 해제, 재건축시 소형·임대주택 의무건설 완화 등 ‘부동산 핵심 3대 규제’도 조만간 폐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부동산 규제는 투기를 막고 서민의 주거안정을 위한 최소한의 방패막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부동산 규제를 경기활성화의 장애물로만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 규제완화의 혜택은 누구에게 돌아갈까요. 서민이 아니라 부동산 부자와 건설업체들이 독차지한다는 것입니다. 한나라당과 정부가 추진한 종합부동산세와 고가주택에 대한 양도소득세 감면 등의 혜택도 서민들과는 상관없는 일입니다.”(경실련 윤순철 시민감시국장)

94년 그룹의 신격호 회장 구상으로 추진됐으나 국방부 등의 반대로 무산됐던 ‘제2 롯데월드’ 신축 허가의 수혜자가 누구인지 물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수도권 규제완화는 수도권 차원에서는 성장의 문제이지만, 지방에서는 생존이 걸린 문제라는 점에서 수혜자와 피해자의 격차는 심각하다.

“수도권 규제는 어느 정부에서나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그러나 글로벌 경제위기가 확산되는 시기여서 기업들의 투자가 급속도로 냉각된 상태였기 때문에 규제완화가 힘이 될 것이라고 봤죠. 특히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5+2 광역경제권’이란 균형발전의 틀을 제시했고, 지난해 7월과 9월 연이어 지방발전 대책을 내놓았기 때문에 10월30일 수도권 규제완화 조치가 발표되더라도 충분히 지방의 이해와 설득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지방의 반발은 예상 외로 강했습니다. 이에 정부도 새로운 지방발전 구상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국토해양부 관계자)

신자유주의 성공 위해서도 규제는 필요

본래 법률과 제도를 통한 규제는 시장의 자율에 맡길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독·과점 현상을 막고, 소수만 혜택을 보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권위주의 정권은 거대한 독과점 재벌의 사익을 늘리기 위해 진입장벽을 치는 수단으로 규제를 이용했다. 행정당국의 편의주의적 발상에 따른 이런 규제는 당연히 비효율성을 낳았다. 규제개혁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바로 이런 부문들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이런 권위주의 정권의 잘못된 규제를 빌미로 모든 규제를 악으로 치부하며 ‘무조건 규제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센터장은 “일정한 규제와 룰을 만들어주는 게 오히려 시장의 안정을 높인다”고 말했다. 미국식 신자유주의 모델을 실현하려는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도 아이러니하지만 규제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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