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기로에 선 신자유주의'에 해당되는 글 140건

  1. 2008.12.23 1부-(5) 금융자본의 위험한 게임(上) 파생상품: ‘안전성 99% 확률’만 믿고 ‘위험’을 팔고 샀다
  2. 2008.12.23 1부-(5) 금융자본의 위험한 게임(上) 파생상품: 수학공식으로 만든 ‘AAA’에 발등 찍힌 월가
  3. 2008.12.14 1부-(4) 금융위기에 접속된 나: 순박한 북극마을 홀린 달콤한 고수익의 꾀임
  4. 2008.12.14 1부-(4) 금융위기에 접속된 나: “투자 한푼 안한 우리 서민들은 무슨 죄인가”
  5. 2008.12.14 1부-(4) 금융위기에 접속된 나: “나라 망하지 않는 한 원금 안까먹는다더니”
  6. 2008.12.14 1부-(4) 금융위기에 접속된 나: 태평양 건너 투자금과 빚… ‘금융 블랙홀’서 만나다
  7. 2008.12.07 1부-(3) 런던 과일노점상 “매출 60% 줄어… 끔찍하다”
  8. 2008.12.07 1부-(3) 파리 공장노동자 “하루 임금 35유로나 깎여”
  9. 2008.12.07 1부-(3) 자본시장 지나친 팽창…투기거래 맞물려 재앙 (2)
  10. 2008.12.07 1부-(3) 세계 자본시장 통합이 초래한 ‘불황의 공포’
  11. 2008.12.07 1부-(3) ‘세계를 뒤흔든 9일’
  12. 2008.11.30 1부-(2) 미국을 가다: 파생상품 판매인 코그네티의 증언 (2)
  13. 2008.11.30 1부-(2) 미국을 가다: 가난한 자의 꿈을 이용한 ‘약탈적 머니게임’
  14. 2008.11.30 1부-(2) 미국을 가다: 이래저래 회사 눈치…“붙어 있어야죠”
  15. 2008.11.30 1부-(2) 미국을 가다: “월가는 오만했고, 똑똑하기보다 비열했다” (2)
  16. 2008.11.30 1부-(2) 미국을 가다: 2008년 11월 14일 뉴욕풍경
  17. 2008.11.30 1부-(2) 미국을 가다: 금융위기 진원지 월가·LA를 가다 (2)
  18. 2008.11.27 1부-(1) 아이슬란드를 가다: 아이슬란드가 문제? 제어할 시스템 부재로 몰락
  19. 2008.11.26 1부-(1) 아이슬란드를 가다: “뭐든 대출로 살수 있었다 이젠 평생 빚갚아야 할판”
  20. 2008.11.26 1부-(1) 아이슬란드를 가다: 공포로 변해버린 ‘금융허브의 꿈’ (2)

1부-(5) 금융자본의 위험한 게임 (上) 파생상품-금융수학 시뮬레이션
송윤경기자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생상품의 특징은 위험이라도 돈받고 팔아 넘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위험을 사고 파는 행위는 위험은 측정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다는 전제 때문에 가능하다. 그러면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경향신문은 파생상품 평가에 쓰이는 확률 모형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을 적용, 위험을 계산해 봤다.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은 몬테카를로 카지노에서 벌이는 주사위 게임과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 시뮬레이션 적용은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박사과정 황근호씨의 도움을 받았다.

1. 위험맞춤형 상품, 부채담보부증권(CDO) 만들기

돈 빌린 사람의 과거 기록 수집




시뮬레이션을 위해 ㄱ은행이 집을 담보로 저소득층 100명에게 1억원씩 빌려줬다고 가정했다. 돈을 빌린 사람들은 원금과 이자를 5년 간 나누어 갚기로 하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차용증서를 작성했다고 상정했다. ㄱ은행이 이 차용증서 묶음을 투자은행에 팔면, 투자은행은 이 차용증서 묶음을 담보로 파생상품(CDO)을 만들 수 있다.

이제 차용증서 묶음을 사들인 투자은행이 이 묶음으로 어떻게 파생상품 CDO를 만드는지 살펴보자. 가장 중요한 것은 위험도 계산이다. 이들 100명이 5년 동안 원리금을 얼마나 갚을지를 예측해야 한다. 이 예측을 위해서는 돈을 빌려간 사람들의 과거 대출기록, 소득, 주거지, 주택유형 등 각종 정보가 필요하다. 이 정보를 다 얻었다고 치자.

이 정보들을 토대로 돈을 빌려간 사람이 1년 내에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할 확률(연간 부도율), 돈을 빌려간 사람이 돈을 떼어먹을 경우 집을 경매에 부쳐 원리금을 돌려받을 있는 비율(회수율)을 구해야 한다.

또 돈을 빌려간 사람들이 얼마나 동시 다발적으로 돈을 떼어먹는지를 보여주는 ‘부도 상관계수’가 필요하다. 상관계수란 돈 빌린 이가 돈을 못 갚을 경우, 다른 대출자도 똑같이 갚지 않을 확률에 관한 값이다. 상관계수가 높다는 것은 다같이 갚거나, 다같이 못 갚을 확률이 높은 경우를 말하는 것이고, 상관계수가 낮다는 것은 돈빌린 이들이 갚거나 안갚는 등 서로 반대되는 행동을 할 가능성이 큰 것을 뜻한다.

세가지 값을 구하는 과정은 간단한 동시에 복잡하다. 100명의 정보를 수학모델에 따라 컴퓨터에 입력하고 결과를 기다리면 된다. 수학모델 속에서 계산이 이뤄지는 과정은 금융공학 전공자들도 짧은 시간 내에 설명하길 꺼릴 정도로 대단히 복잡하다.

그러나 핵심은 ‘과거 유사 조건을 가진 대출자들의 행동’을 바탕으로 한 확률 계산이다.




경우의 수 10만개 구하기

이번 시뮬레이션에서는 돈을 빌려간 이들에 대한 정보가 없는 관계로, 다음과 같이 임의로 정해 놓았다. 즉 1년 이내에 돈을 빌려간 이들이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할 확률인 연 부도율은 5%로 모두 동일하다고 가정했고, 상관계수는 10%라고 봤다. 상관계수 10%는 한 사람이 돈을 못갚을 때 나머지도 동시에 못 갚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리 높지 않고, 역시 돈을 갚을 때 나머지도 동시에 갚을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은 상태이다.

또한 돈을 빌려간 사람들이 돈을 갚지 못할 경우 돈 빌린 사람의 집을 팔아 원금을 돌려 받을 수 있는 금액의 비율은 0%로 가정했다. 즉 빌려준 돈 1억원을 전부 손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세 가지 확률의 값을 정하고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을 실시했다. 세 가지의 확률을 바탕으로 100개의 차용증서 묶음을 갖고 있을 때 얼마나 손실을 볼 수 있는지 ‘경우의 수’를 구하는 것이다.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은 빠른 시간 안에 대량으로 ‘경우의 수’를 구해주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여기서는 ‘경우의 수’ 10만개를 구해 보기로 했다.





시뮬레이션 결과, <그림-1>과 같은 그래프가 나타났다. 이 그래프는 X축에 해당하는 돈을 잃는 ‘상황’이 10만번 중에 몇 번이나 나왔는지(Y축)를 보여준다. 100억원을 모두 못 받는 경우는 0번 나왔고, 99억원을 못 받는 경우는 0번…70억원을 못 받는 경우는 1번…18억원을 못받는 경우는 4000번…전혀 떼이지 않고 모두 받을 확률은 1번 나왔다. 즉 이 그래프는 이 차용증서 묶음의 위험도를 보여준다.

위험도 다른 파생상품 만들기

이렇게 위험도가 드러났으니 이제부터는 위험도가 다른 파생상품들을 만들 차례다.

가장 안전한 파생상품부터 만들어 보기로 했다. 우선 최악의 ‘경우의 수’ 1000개(10만개 중 1%)를 가려냈다. 최악의 상황 1000가지를 살펴보니, 잃는 돈은 최소 51억원부터 최대 100억원까지였다. 그래프에서 가장 진하게 표시된 부분이 최악의 경우 1000가지를 나타낸 것이다.

이를 뒤집어서 생각하면 9만9000가지의 ‘경우의 수’(99%) 내에서는 차용증서 묶음의 손실이 전체 100억원 가운데 51억원을 초과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즉 차용증서 묶음 전체에 손실이 나더라도 99%내에서 49억원은 안전한 것이다.

ㄱ은행은 CDO 증서를 만들어 ‘원금은 49억원이며 5년 만기로 원금과 이자를 받는다’고 쓰고, ‘연부도율 5%, 상관계수 10%, 회수율 0%일 때 전체 차용증서 묶음에 손실이 생기더라도 이 증서소유자는 약속한 만큼의 돈을 99%의 확률로 받을 수 있다’라는 내용을 붙인다. 그러면 이 파생상품은 신용평가회사의 검증을 거쳐 AAA 등급이 매겨질 가능성이 크다.


피라미드형으로 위험 수준을 구분

같은 방법으로 나머지 묶음 가운데 다시 최악의 ‘경우의 수’를 뽑아내 증서를 쓰고 등급을 받아낸다. 물론 안전성과 등급은 점차 낮아진다. 이렇게 해 보니, 100억원 가운데 49억원어치를 최상급으로 만들어 팔 수 있었다. 이 경우 원리금 보전 확률이 99%이다. 그 다음으로 위험도가 낮은 상품은 9억원어치를 팔 수 있다. 이 경우 원리금 보전 확률은 95%로 낮아진다. 위험도가 더 낮은 상품은 8억원어치(원금보전확률 85%)다. 나머지 34억원어치는 원금보전확률을 따로 계산할 수 없다. 가장 위험한 상품인 것이다.

그러나 가장 위험한 상품도 ‘기대손실액’을 근거로 안전성을 따질 수는 있다. 기대손실액이란 원리금 손실 ‘경우의 수’를 등급별로 합산해 평균을 낸 것이다. 마지막 등급의 34억원어치의 기대손실액은 21억6400만원이었다. 최상등급 기대손실액은 500만원이었고 그 아래 등급은 차례로 2300만원, 7200만원이었다.

이렇게 쪼갠 파생상품은 차용증서 묶음에서 손실이 나면 가장 아래 등급부터 손실 금액을 흡수하게 되는 구조가 된다. 대신 안전성이 낮은 등급의 상품들은 위험이 큰 만큼 이자를 듬뿍 얹어준다. 상품별로 이자를 얼마나 얹어줘야 하는지도 수학모델을 통해 구한다. 투자자들은 위험도와 수익률을 고려하면서 자기 입맛에 따라 상품을 골라 살 수 있다.

이를테면 마지막 등급과 같이 가장 위험한 상품들은 차용증서 전체 묶음의 손실을 그대로 흡수한다. 그러나 차용증서 전체 묶음에서 손실이 별로 생기지 않을 경우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




잘 팔리는 위험상품은 위험이 준다?

이같은 고위험 상품은 별 인기를 끌지 못했을 것 같지만 교토대 명예교수인 모토야마 요시히코에 따르면 반대현상이 일어났다. 그는 저서 <금융권력>을 통해 “종류가 많고 잘 팔리는 정크본드(위험도가 매우 높은 상품)는 그 위험도가 AAA등급과 같은 정도로 작아진다고 하는 히크만의 투자이론이 투자가들로 하여금 ‘고위험·고보상’의 금융상품에 투자하도록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주로 고수익을 노리는 헤지펀드들이 이런 상품에 많이 투자했다.

위험도 계산의 핵심은 ‘가정의 현실성’이다. 이 모든 계산은 맨 처음 구했던 ‘연간 부도율, 상관관계가 현실에 부합한다면’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연간 부도율과 상관관계가 가정과 다르게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그림-2>는 연간 부도율을 5%가 아닌 10%로, 상관관계를 10%가 아닌 30%로 놓고 다시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다. 한눈에 봐도 앞서 구한 <그림-1>과 차이가 크다. 최상위 등급 49억원어치는 99%였던 원금보전확률이 67.7%로 떨어졌다. AAA 등급은 박탈될 가능성이 높다. 그 아래 등급도 원금보전확률은 95%에서 54.8%로, 그 다음 등급은 85%에서 42.3%로 떨어졌다. 이것이 각 투자은행들이 처한 ‘모기지 파생상품의 부실화’ 원리다.

2. 위험 제거용 상품, 신용부도스와프(CDS) 만들기

‘동전의 양면’을 분리하는 기술 개발

앞서 만든 CDO 상품에서 위험도와 수익률은 동전의 양면이다. 위험이 크면 수익도 크다. 그러나 CDS는 이 ‘동전의 양면’을 떼어낼 수 있다고 말하는 파생상품이다. ‘당신이 갖고 있는 금융 상품이 만약 부실화할 경우 보상해줄 테니 대신 내게 정기적으로 수수료를 내라’는 것이 CDS 상품의 핵심 아이디어다. 1998년 투자은행 JP모건의 젊은 금융공학자가 고안해냈다.

만약 CDS 발행자가 혹시라도 대규모 보상요구를 받게 된다면? 월가의 투자은행들은 이런 걱정을 별로 하지 않았다. CDS의 대상이 되는 파생상품이 손실이 날 가능성을 계산해 그보다 웃돈을 얹어 수수료를 올려 받으면 수익이 생긴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었다.

투자은행들이 CDS를 발행할 때 어떤 계산을 했는지 그 원리를 적용해 봤다. 앞에서 제시한 대로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 은행은 100개의 차용증서를 통째로 담보로 잡아 하나의 증서를 만들어 팔 수 있다. 이것이 모기지담보채권(MBS)다. 이 파생상품을 사들인 은행이 이 상품에 담겨있는 위험에 대한 일종의 보험을 ㄴ은행에게 들려고 한다. 이때의 보험상품이 CDS다.


경우의 수에 바탕한 계산





그러면 ㄴ은행은 어떤 계산으로 이 상품의 위험도를 평가해 CDS를 발행할까.

먼저 채권의 바탕이 되는 차용증서 묶음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연간부도율 5%, 상관관계 10% 등 앞에서와 같은 조건이라고 해두자. 회수율은 80%로 상정했다. 이 세 가지 값을 바탕으로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을 했더니 <그림-3>과 같이 나타났다. 이번에도 경우의 수 10만개를 구했다.

5년 동안 손실을 전혀보지 않는 경우는 0번, 손실을 2억원 정도 보는 경우는 1800번…손실을 10억원 보는 경우는 200번…손실을 20억원 보는 경우는 0번 나왔다. 회수율을 80%로 맞췄으므로, 최대 손실은 전체의 20%를 넘지 않았다. 즉 손실이 20억을 넘어가는 ‘경우의 수’는 나오지 않는 것이다.

경우의 수 10만개를 놓고 손실액 평균을 따져보니 약 4억5000만원이었다. ㄴ은행은 이 예상 손실액 평균을 근거로 ‘우리가 유사시 줘야 할 돈은 4억5000만원 수준이니까 채권 만기일까지 이보다 더 받아내면 우리가 이익’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ㄴ은행이 조심성이 많으면 예상 손실액을 평균보다 더 높여서 잡을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의 수’ 1000개(1%)를 살펴보니 12억원부터 20억원까지 잃을 수 있었다. ㄷ은행은 이 것을 기준으로 해서 예상가능 손실액을 12억원으로 잡고, ㄴ은행으로부터 만기 5년 내 받아야할 보험료를 12억원 이상으로 살짝 올려 잡으면 된다. 이렇게 되면 ㄴ은행은 12억~20억원 손실을 보상해줄 가능성 1%를 뺀 99%의 가능성으로 대비를 철저히 한 셈이다. 물론 세 가지 확률값, 즉 연간부도율 5%, 회수율 80%, 상관관계 10% 아래서의 얘기다.


가정은 실제와 다르다는 평범한 진리

그러나 가정과 달리 실제로는 연부도율이 10%, 회수율이 50%, 상관계수가 30%로 나타났다고 보자. 이 경우로 시뮬레이션을 해 보니 <그림-4>와 같았다.

앞서 ㄴ은행은 99%의 가능성 내에서는 이 MBS의 12억원 이상 손실에 대해 보상해 줄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MBS가 12억원 이상 손실볼 확률은 이 경우 절반을 넘었다.

만약 ㄴ은행이 다른 은행과 CDS계약을 할 때 실제 손실이 난 경우에만 그만큼을 보전해주기로 한 것이 아니라, 부도율이 일정하게 높아질 때, 혹은 그에 따라 등급이 낮아질 때도 이와 연동해 보상액을 지급하기로 했다면, ㄴ은행은 큰 손실을 보게 된다.

CDS사업을 한 AIG가 MBS와 같은 파생상품의 손실률이 높아지면서 투자은행들로부터 대규모 ‘보상액’ 지급 요청에 시달린 것은 바로 이런 원리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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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1부-(5) 금융자본의 위험한 게임 (上) 파생상품-금융수학 논리와 허점
송윤경기자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신용도가 낮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대출상품이다. 이들의 빚을 가지고 만든 금융상품이 위험하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하지만 월가의 ‘금융공학’은 상식을 뒤집어줄 만큼의 힘이 있었다. 금융회사는 금융공학을 통해서라면 미래에 닥칠 위험을 측정해 가격을 매겨 팔 수 있었다고 믿었다. 미래 손실도 예측할 수 있다고 자부했다.






“우리 모델은 손실 없이 돈 벌 수 있다.”
“우리의 모델은 매우 안전합니다. 모델에 기반하지 않는 어떤 거래도 승인하지 않습니다.”


지난해 12월 AIG의 CEO 마틴 설리번이 투자자들에게 한 말이다. ‘모델’이란 금융공학자 게리 고튼이 설계한 수학모형을 말한다. AIG는 이 모형을 통해 손해 보지 않을 만큼만 신용부도스와프(CDS·파생상품의 일종)를 팔았다고 자부해 왔다. 일부 경영진은 “고튼 모델이면 손실 없이 돈을 벌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4000억달러 규모의 CDS를 팔았던 AIG는 천문학적인 손실에 시달리다 지난 9월 정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지금까지 미국 정부는 AIG에 1500억달러를 쏟아부었다. 믿고 있던 ‘수학모델’에 발등을 찍힌 곳은 AIG뿐만이 아니었다.



“AAA 등급의 가격이 1% 이상 떨어질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어떤 부도 위험도 없는데 자산 가격이 20% 떨어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미국의 한 투자은행 위험관리 담당자는 지난 8월 ‘이코노미스트’에 이렇게 고백했다. “매우 낮은 위험의 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줄 알았는데, 모두 고위험자산이었음이 판명됐습니다.”



스위스금융그룹(UBS)의 사례도 비슷하다. 이 은행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생상품 중 AAA 등급을 주로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와 올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생상품으로 인해 380억달러를 날렸다. 이 중 75%가 AAA 등급 파생상품으로 인한 손실이었다.



금융공학은 어떻게 위험한 재료(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안전한 자산(파생상품)을 만들 수 있었을까. 파생상품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몇 단계로 나뉜다.



먼저 은행이 주택담보대출을 하면 ‘대출채권’이 생긴다. 이 채권은 은행이 원리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권리다. 투자은행 등은 은행으로부터 이런 대출채권 수 천개를 사들여 이를 담보로 하나의 증서를 만든 뒤 다시 잘게 쪼개 판다. 이것이 모기지 담보채권(MBS)이다.



MBS에는 위험분산효과가 있는데, 이런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각각의 컵에 얼마나 채워졌는지 알 수 없는 자판기 커피 1000잔을 하나의 양동이 속에 모두 붓는다. 그리고 양동이에 든 커피를 다시 더 큰 컵 100잔으로 나누어 붓는다. 만일 자판기가 고장나 처음의 1000잔 중 50잔이 빈 것이라고 해도 그 ‘손실’은 100잔에 고루 퍼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같은 위험분산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처음의 커피 1000잔에 얼마나 채워졌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투자를 꺼리게 된다. 따라서 처음의 커피 1000잔에 커피가 어느 정도로 채워졌는지 안다면 투자 결정에 도움이 된다. 이런 상황을 알려주는 것이 신용등급이다.



이 등급을 매길 때도 수학이 동원된다. 돈을 빌려간 사람들의 소득, 지역, 주택유형, 주택가격, 시중금리, 주택경매 시 받을 수 있는 가격 등 각종 요소들을 수학모델에 따라 컴퓨터에 입력하면 ‘얼마나, 어느 정도의 확률로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지’ 확률 분포가 나온다. 이는 과거기록을 토대로 한 수치다.



신용평가회사 또한 ‘과거기록’과 ‘확률’에 의해 파생상품을 검증하고 등급을 매긴다. 무디스의 자산담보부 책임자인 클레어 로빈슨은 “우리의 전문분야는 통계”라면서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과거의 실적을 기반으로 1000명 중 몇 %가 대출금을 갚을지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뉴욕타임스, 로저 로웬스타인, 4월27일자)




CDO는 여러가지를 섞은 소시지 증권


MBS란 파생상품은 다른 파생상품을 낳을 수 있다. 다른 종류의 채권까지 함께 섞은 뒤 잘게 쪼갠 부채담보부 증권(CDO)이 그것이다. 전남대 이채언 교수는 “신용카드채권, 자동차채권 등은 일반 소비자의 경기까지 고려하므로 좀더 나은 등급의 평가를 받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고 지적한다.



CDO는 ‘소시지 증권’으로 불린다. 맛없는 고기라도 당근이나 양파를 섞어 맛깔나는 소시지로 탈바꿈시킨 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별칭이다. CDO 상품은 여러 종류의 상품으로 재가공할 수 있다. 1000잔의 커피를 양동이에 부었다가 다시 100잔으로 나눌 때, 커피를 동시에 고루 나누는 것이 아니라 차등을 두면 된다. 종이컵을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아서 커피를 부으면 맨 윗줄의 컵이 모두 채워지고 넘치면 아랫줄의 컵이 채워지는 식이다.


만약 자판기가 고장나 처음의 1000잔 중 10잔이 비어있었다면 피라미드의 100잔 가운데 가장 아랫줄에서 1잔은 완전히 비게 될 것이다. 거꾸로 처음의 1000잔 중 900잔이 비었더라도, 맨 윗줄의 10잔은 가득 채울 수 있으므로 안전하다. 이런 원리로 위험을 맨 아랫줄의 종이컵에 몰리게 한다.


만약 나누기 전의 CDO가 BBB 등급이었다고 해도 피라미드 상의 선순위(윗자리) 상품으로만 묶으면 AAA 등급을 받게 된다. 대신 선순위 상품은 값이 비싸고 수익도 작다. 후순위 상품은 값이 싸고 그만큼 수익도 크다. 이러한 과정이 모두 고도의 수학적 계산을 통해 이루어진다.



파생상품은 같은 재료를 가지고 반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앞서 커피가 채워진 종이컵 피라미드 중에서 가운데 세 줄의 종이컵들만 빼낸다. 이 종이컵에 들어있는 커피를 다시 양동이에 부은 다음, 이번엔 다른 종류의 종이컵 피라미드에 따른다. 이것이 CDO2이다. 같은 방식으로 CDO3도 만들 수 있다.



눈앞의 이익 좇아 무리수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생상품은 높은 수익률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2006년 미국에 들어온 자금의 60%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생상품에 몰렸을 정도다. 모건스탠리에 의하면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만든 CDO의 판매금액은 2003년 990억달러에서 2006년 5000억달러로 뛰었다.



수요가 많으면 공급도 늘어나는 법. 월가는 ‘눈앞의 이익’을 위해 기초자산(대출채권)의 안정성을 흔들었다. 파생상품의 기초재료인 대출채권을 늘리기 위해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대출을 해 준 것이다. 태풍의 씨앗이 자라나고 있었다.


게다가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자 CDO2, CDO3, 합성CDO 등 각종 변종 상품을 만들어 팔았다. 한국의 한 금융공학자의 표현대로 “금융수학이 현실에 맞게 제대로 계산하고 있는지 확인할 틈도 없이 계산은 계속됐다.”



신용평가회사 피치의 자회사인 한국기업평가의 한 관계자는 “1차 유동화 파생상품(MBS)의 경우 기초자산인 대출채권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어서 투자자가 수학계산 결과에만 의존하지 않고 복합적 판단을 할 수 있었지만 2, 3차 파생상품의 경우 오로지 수학계산 결과에만 의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용평가회사도 이 게임의 당사자이다. 신용평가회사는 투자은행의 파생상품 ‘제조과정’을 검증한 다음 등급을 매긴다. 말하자면 금융감독기능을 갖고 있는 사기업들이다.



그런데 투자은행이 발행한 CDO 대부분이 최상위 등급인 AAA를 받았다. 신용평가회사들은 파생상품 발행자로부터 평가비를 받는데 이 금액은 높은 등급이 매겨질수록 오른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이 붐일 때 2002년부터 2006년까지 무디스의 수익은 거의 3배가 됐다. 국내의 한 신용평가회사 관계자는 “신용평가사는 ‘최종거래’가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평가를 해야만 돈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무디스, 피치, S&P 등 미 신용평가회사 3사는 불공정한 등급산정 문제로 기소된 상태다.



컴퓨터가 말해주는 ‘부실 가능성’



대출채권을 담보로 만든 파생상품의 거래가 늘면서 덩달아 늘어난 것이 CDS다. ‘당신이 갖고 있는 CDO, MBS 등의 파생상품이 부실화되면 원금을 모두 보상해줄 테니 대신 정기적으로 일정한 보험료를 달라’는 게 이 파생상품의 핵심 개념이다.



이 상품을 판 회사는 ‘보험’의 대상이 되는 파생상품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경우 앉아서 보험료를 번다. 그렇지만 보험대상이 된 CDO, MBS 등에 문제가 생기면 원금을 다 보상해줘야 하니 매우 위험하다. 그러나 보험 대상 파생상품이 부실화할 가능성만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면 돈 버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이 부실화 가능성을 알려주는 ‘수학모델’의 하나가 바로 AIG의 게리 고튼이 고안한 모델이다. 그는 과거의 방대한 기록으로 AIG가 유사시 보험액을 지급키로 한 CDO, MBS 등의 부도가능성을 확률적으로 분석했다.



CDS를 판매하는 투자은행은 수학모델을 이런 방식으로 활용한다. 돈을 빌려간 이들의 각종 정보를 바탕으로 수학계산을 거쳐 부도가능성에 관한 확률을 따진다. 이때에도 손실액은 극단적으로 크되, 현실화될 가능성이 낮은 쪽은 제쳐둔다. 주로 예상 손실액의 평균이 기준이 된다. 이 기준으로 따져서 예상손실액이 작거나, AIG가 받는 보험료로 이익을 남길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 계약을 체결한다.



현재 미국 금융기관이 발행한 CDS가 보장하는 채권은 62조달러에 이른다. 신용평가회사 피치에 따르면 2002년 CDS가 보장한 채권 가운데 부실화한 것은 10.7%였지만 2007년 7월 현재 40%를 웃돈다.




과거기록에 의존한 미래 예측의 결함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생상품이 인기를 얻었던 것은 미래의 위험을 측정해 떼어 버리거나 적절한 값을 매겨 팔아버릴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위험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을 때만 통하는 얘기다. 대표적인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가 등급을 매겼던 파생상품들의 시장 가치는 반 이상 폭락했다. 이미 신용평가회사 3사는 지난해 여름 수백억달러어치의 CDO 등급을 떨어뜨렸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먼저 과거기록에 근거한 확률계산의 한계를 들 수 있다. 금융공학의 수학모델은 그 자체로는 복잡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유사한 조건을 가진 과거기록을 통해 미래를 예측한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은 2002년 3.4%에서 2006년 13.7%로 커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이 이렇게 커진 것은 처음이다. 시장이 이같이 커지면 상환불능 가능성도 높아지지만, 예측 모델은 이런 상황이 반영되지 않은 과거 기록으로 현재와 미래를 예측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미국 투자컨설턴트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지금의 상황을 ‘극단의 왕국’에 비유한다. 그는 ‘전문가가 계산한 확률 바깥에 존재하는,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았던 사건’을 무시할 때의 위험을 경고한 책 <블랙스완>의 저자다.



그는 “대사건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 ‘평범의 왕국’에서는 과거의 경험에 의존한 판단이 법칙을 구성한다”며 “그러나 ‘평범의 왕국’에서 통하던 것이 ‘극단의 왕국’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흰 백조’밖에 없다고 믿는 세상에서 나온 경험치로 아무리 계산을 해 봐야 ‘검은 백조’가 등장했을 때의 경험을 미리 예측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금융공학은 ‘주술’과 같았다. 금융공학은 이성적 사고의 결과였지만, 이 무기를 쥔 월가의 탐욕은 비이성적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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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4) 금융위기에 접속된 나
김재중기자



ㆍ노르웨이 나르비크에 무슨일이



1만8000여명이 사는 노르웨이의 작은 항구도시 나르비크. 나르비크는 지난 9월8일 노르웨이 최대은행 DnB에 지고 있는 빚 5200만 크로네(현재 환율로 약 107억원)를 갚지 못하겠다고 발표했다. DnB은행은 즉각 반발하며 법정에서 문제를 해결하자고 맞섰다.




북극권(북극 주변의 북위 66도 33분 지점을 빙 둘러 이은 선. 이 지점에선 하지에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고, 동지에 하루 종일 해가 뜨지 않음)보다 200여㎞ 북쪽에 자리잡고 있어 겨울이면 신비로운 오로라(북극광)를 볼 수 있는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마을 사람들이 지난해부터 경험하고 있는 일들은 금융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거품과 파생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금융기관, 고수익이라는 달콤한 꼬임에 넘어간 순박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블랙 코미디에 다름 아니다. 이 사태 역시 겨울철 온도가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나르비크가 온화한 기후의 전혀 다른 먼 곳인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연결된 결과였다.

나르비크는 지난 2001년 주요 수입원인 수력발전소에서 향후 들어올 수익금을 담보로 은행에서 자금을 빌렸다. 노르웨이 테라증권이 소개한 펀드에 투자하기 위해서였다. 투자금 가운데는 공무원들에게 월급을 지급하기 위해 따로 떼어놓은 돈도 일부 포함돼 있었다. 이 펀드는 미국의 거대 금융회사인 씨티은행이 고안한 것이라고 했다. 나르비크가 투자한 금액은 총 5200만 크로네. 나르비크 1년 예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지난해 여름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이따금씩 1~2%의 수익금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불거지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테라증권 측에서 투자금의 55%나 손실됐다고 통지한 것이다.


여러 지자체에서 비슷한 사태가 벌어지자 진상조사에 나섰던 노르웨이 금융당국 역시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 테라증권이 안전하다고 다짐했던 상품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기반으로 파생된 부채담보부증권(CDO)이었다. 구조 자체가 극도로 복잡하고 위험성도 매우 높은 상품이었다. 더구나 상품설명서에는 여러가지 복잡한 옵션들이 부대조건으로 달려 있어 최악의 경우 투자한 만큼 돈을 더 물어줘야 하는 구조였다.


조사 결과 테라증권이 각 도시에 상품설명서를 보내면서 씨티은행의 상품설명서가 기술한 위험성을 고의적으로 뺀 사실이 밝혀졌고, 테라증권은 지난해 11월 영업허가가 취소됐다. 테라증권은 다음날 파산했다.



테라증권의 파산으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씨티은행은 자신들에겐 책임이 없다며 일찌감치 발을 뺐고, 노르웨이 정부도 구제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미래’를 담보로 이뤄진 투자가 한순간에 휴지로 변한 대신 은행에서 빌린 돈은 고스란히 남았다.



외신들은 이번 사태가 시 예산에 악영향을 미쳐 공공서비스 위축을 가져오고 있다고 전한다. 나르비크의 시의원인 토르게이르 트랠달은 지난 6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소방서, 의료, 학교, 노인복지, 청소년 클럽 등 문화 및 복지예산 축소가 불가피하다”면서 “사람들은 미국에서 벌어진 위기가 어떻게 이런 결과를 가져왔는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화를 입은 소도시는 나르비크뿐 아니다. 하트피엘달·라나·헴네스 등 8곳에 이른다. 이 소도시들은 ‘테라스캔들’로 명명된 이번 사태의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돈을 빌려준 DnB은행에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박노자 교수는 “노르웨이에선 지자체가 빌린 돈으로 주식투자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은행이 이를 알고도 돈을 빌려줬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만약 은행이 소송에서 이길 경우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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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4) 금융위기에 접속된 나
장관순·송윤경기자


월가의 위험한 금융 게임이 펼친 숫자 놀음은 금융 자유화에 노출된 사람이면 누구나 예외없이 공격을 했다. 이 게임에 참여한 사람이건 아니건, 금융 자유화를 원했든 아니든, 상관없다. 펀드·주식에 투자하지 않은 서민들의 삶도 흔들 만큼 돈장난의 파급효과는 깊고, 치밀하고 집요하다.

“처음에는 TV에서 미국 금융위기 이야기가 나올 때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 했어요. 그런 얘기는 그냥 뉴스일 뿐이고, 배운 것 없이 그저 몸으로 때워서 먹고 사는 우리 같은 사람은 신경쓸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이게 뭡니까.”

■ 일용직 노동자 정영태씨

서울 북창동의 한 인력소개소에서 지난 11일 만난 정영태씨(가명·52)는 “올해 같은 때는 없었다”고 푸념했다. 35년째 중국음식점 일용직으로 생계를 잇는 그는 이틀째 일을 못했다. 정씨는 “원래 연말연시에는 음식점이 호황이지만 올해는 10월 들어 경기가 죽더니 살아날 기미가 없다”며 “지난해만 해도 일주일 내내 일할 수 있었는데 올해는 한 주에 2~3일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다른 동료들과 함께 하루 종일 일거리를 기다렸지만 소개소에서 일손을 보내달라는 전화 한통 받지 못했다. 정씨의 하루벌이는 7만원 남짓. 봉제공장 직원인 그의 부인은 월 120만원 정도 벌지만, 그걸로 살기 빠듯해서 고3 수험생 딸까지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외환위기 때는 오히려 지금보다 나았어요. 다들 명퇴당하고 먹는 장사에 나섰을 정도로 이 나라는 요식업이 안된 적이 없었는데.”

인력소개소 관계자는 “서울 어디를 가도 새벽 인력시장마다 수백명이 몰려 들지만 일거리 찾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말했다. 통계청의 ‘11월 고용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임시직 10만3000개, 일용직 5만6000개의 일자리가 줄었다. 건설 부문 일용직들은 일당이 깎이는 경우도 있다. 경기 부천시의 한 아파트 시공사는 “회사 사정이 어렵다”며 40여명의 현장 노동자 일당을 최고 1만원씩 깎았다.

■ 현대차 하청 노동자 원문숙씨

현대차 아산공장의 사내 하청업체 노동자 원문숙씨(31·여)는 3년간 행정적, 법적 투쟁 끝에 사측의 복직 결정을 받아냈다. 2005년 노조 활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뒤 원씨는 부모와 아들 등 4가족의 생계를 어머니(55)에게 의존했다. 아버지가 지병으로 몸져 누워 남편 대신 보험 일을 시작한 것이다. 월수입 100여만원. 그것이 원씨 가족의 유일한 수입이었다.

이런 사정이라 복직 소식이 너무 반가웠지만, 회사에서 아직 연락이 없다. 원씨는 현대차가 공장별 감산에 들어가 당장 일자리가 없다는 이야기를 사측을 통해 들었다고 한다. 원씨는 “최근 불경기 때문에 보험해약 사례가 늘어 어머니 벌이도 한창 때(170만원)에 못미친다”면서 “초등 3년생 아들은 형편을 잘 아는지 뭘 사달라고 조르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금융위기가 부른 한파는 투자와는 거리가 멀었던 삶을 산 원씨의 3학년짜리 아들에게조차 장난감과 군것질을 포기토록 강요하고 있다.

현대차는 이달부터 잔업을 없앴고, 쌍용차는 지난달부터 순환휴직중이다. GM대우차는 이달 들어 공장별로 최장 1개월 조업중단을 진행중이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자동차 조립라인은 매일 2시간 잔업에 주말 1일 특근을 꽉 채워야 월급 150만원 정도 손에 쥐지만, 감산하면 100만원선으로 준다”고 설명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박동 연구위원은 “정부는 청년실업률을 6%대로 집계하지만 순수취업률은 42%라 청년 100만명이 실업자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금융 위기로 국내 미국 자본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돈이 궁한 국내 은행들이 기업을 상대로 자금을 회수하고 있다”면서 “그러면 중소기업들은 도산하지 않을 수 없고, 당연히 일자리도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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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4) 금융위기에 접속된 나…투자자와 비투자자
김재중·유희진기자



고수익의 유혹은 달콤했다. 은행 직원들은 상냥했고 믿음직스러웠다. 그들은 “요즘 펀드 하나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바보”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원금은 까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정기저축과 다름없다던 그들의 말을 믿고 묻어뒀던 목돈은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피 같은 돈이 사라져 버린 공간엔 두세배로 커져버린 삶의 무게가 자리잡았다.




■ 부부 생이별한 오원금씨(가명·56)

오씨는 지난 9월26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아내를 미국으로 떠나보냈다. 아내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처제의 갈비집에 허드렛일을 하기 위해 먼 길을 나선 것이다. 몇년째 좌골신경통과 퇴행성 관절염을 앓고 있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이던 그도 2시간 뒤 이란 건설현장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980년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아부다비 방파제 토목공사를 시작으로 28년 동안 중동과 아프리카 건설현장을 들락거렸던 오씨지만 이처럼 중동행 비행기를 다시 타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오씨는 2005년 12월 퇴직금으로 생각하고 모아뒀던 1억원을 들고 우리은행을 찾아갔다. 우리은행이 ‘우리파워인컴’ 펀드를 대대적으로 광고할 때였다. 그는 5000만원씩 쪼개 자신과 아내 명의로 우리파워인컴에 가입했다. 한달 뒤 나온 통장에는 ‘펀드’ ‘파생상품’ 같은 단어가 찍혀 있었다. 평생 주식이나 펀드투자를 해본 적이 없던 오씨가 이 단어의 뜻을 묻자 은행 직원은 “그냥 상품 명칭일 뿐이고 3개월마다 고정이자가 지급되며, 무디스가 평가한 신용등급 AAA 채권에 투자하므로 아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단다. 이 직원도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는 한 절대 안전한 정기예금과 같은 상품”이라고 장담했다. 그 뒤로 3개월마다 원금의 6.4%에 해당하는 돈이 ‘예금이자’라며 통장에 찍혀 나왔다. 당시 시중은행 정기저축 예금 이자보다 1%포인트가량 높은 수준이었다.

대학을 나오고도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하는 아들(30)과 딸(25)이 걱정이긴 했지만 오씨에겐 은행에서 차곡차곡 몸을 불려가고 있는 1억원이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이 돈은 오씨 부부의 노후자금이자 자녀들의 결혼자금이기도 했다.

지난 8월말 은행에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은행 부지점장은 오씨 부부가 묻어뒀던 원금의 평가액이 마이너스 81%로 깎였다고 했다. 1억원이 2년9개월 만에 1900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는 얘기였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놀란 오씨가 은행으로 달려갔지만 황당한 이야기는 계속됐다. 예금보다 더 안전하다는 말만 믿고 투자했던 돈이 고위험 파생상품에 투자됐던 것이다. 3개월마다 통장에 찍혔던 예금이자는 원금을 조금씩 쪼개 지급됐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은행에 돈을 맡길 당시엔 펀드라는 말이 뭔지도 몰랐고, 파생상품이란 말은 더더욱 몰랐어요. 그런데 은행은 가입 때도 우리를 속였고, 손실도 제때 알리지 않아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기회조차 빼앗았어요.”

■ 콩나물값 깎아 모은 돈이 허공으로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40대 주부 김은희씨(가명)는 요즘 남편과 자식들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김씨는 지난해 10월 은행에서 펀드에 들었다. 아파트를 사면서 대출받아 남은 돈 3000만원과 그간 푼푼이 모아뒀던 여윳돈 2200만원이었다. 은행에 갈 때마다 직원은 “아이고 사모님 이 돈을 왜 그냥 묵혀두나요”라며 투자를 권유했다. 깨알같은 글씨가 적힌 상품설명서를 받기는 했지만 그냥 일반적인 펀드인 줄로만 알았다.

지난 10월 3000만원짜리 펀드를 강제 환매당했다. 김씨의 손엔 300만원이 쥐여졌다. 김씨가 가입한 펀드는 1년 만기 선물환 옵션이 걸려 있었지만 김씨는 이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김씨가 환손실분을 추가로 내지 않자 은행 측이 강제로 환매하고 상품 계약을 종결시켜 버렸다. 그나마 2200만원짜리 펀드는 200만원만 깎였다. 펀드 가입을 권했던 은행직원은 이미 다른 지점으로 옮겨 자취를 감췄다.

여름부터 장사가 안돼 수입이 거의 없는 김씨의 남편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냥 은행에 예금으로 넣어둔 줄로만 안다. 매달 주택담보대출 이자로만 150만원씩 나가고 있고, 재수생인 아들의 학원비로도 100만원씩 나가고 있다. 당장 생계비가 걱정이다. 김씨의 하소연을 들은 친정 언니가 자기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작년에 아파트를 사면서 이미 3억원을 대출 받은 터라 돈을 또 빌리기가 겁이 난다.

김씨는 “대형마트에 가면 100~200원씩 깎아주는 쿠폰을 잔뜩 들고 갈 때 눈물이 왈칵 났다”면서 “애들 결혼자금, 우리 부부 노후자금이었는데 남편에게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가끔은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고픈 충동이 생긴다”며 울먹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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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4) 금융위기에 접속된 나…안산의 고대영씨와 LA의 루세로
유희진 기자


ㆍ경기 안산시 성포동의 한 도로변. 고대영씨가 운영하는 동물병원은 한적하고 조용한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미미, 앉아! 앉아!”


정적을 깨는 다급한 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 주인을 찾으며 사납게 짖어대는 강아지 한 마리를 잠재우기 위해 고대영씨(40)는 끙끙대고 있었다. 10분간의 실랑이 끝에 겨우 강아지를 치료하고 나서야 고씨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재테크요? 그저 가진 돈을 안정적으로 꾸려가고 싶었습니다. 펀드 같은 건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5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 병원 분점도 낼 정도로 의욕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사업 확장에 부담을 느꼈다. 욕심 부리다가 화를 부를까 꺼려졌다.

고씨의 병원에서 불과 몇 분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우리은행이 있었다. 평소 거래가 있던 은행은 고씨에게 여유 자금이 있다는 것을 알고 빈번하게 그에게 ‘우리파워인컴’ 펀드에 가입할 것을 권했다.

“원금을 잃을 가능성이 대한민국이 부도날 확률과 비슷하다고 하니까 솔깃했죠. 예금과 같이 한달에 한번 꼬박 꼬박 이자도 나온다고 했어요. 제가 자꾸 의심하면서 이것 저것 캐물으니까 은행에서는 쉽게 설명하겠다며 '은행 예금이나 다름없다'고 설명을 하더군요.”

그가 우리파워인컴의 가입 서류에 사인할 때까지 그는 은행원으로부터 '펀드'란 말은 단 한번도 듣지 못했다.






# 2005년 11월18일 고씨, 세계 금융 게임에 접속


‘은행 예금’이라는 말은 결정적이었다. 고씨는 가입 서류를 작성한 뒤 가지고 있던 돈 4500만원을 ‘우리파워인컴’ 펀드에 넣었다. 2005년 11월18일. 가입 신청서 사인으로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세계 금융의 위험한 게임에 편입된 것이다. 그가 이 게임에 접속한 곳은 안산 성포동의 우리은행 지점.


“왜 나 같은 사람이 미국의 모기지 업체가 망한다는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합니까?” 그가 펀드에 가입한 후 3년.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촘촘하게 짜여진 세계 금융의 네트워크와 연결되었고, 그 촉수는 태평양 건너 미국의 한 서민과도 닿아 있었다.


 
# 2004년 8월 루세로, 집을 사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살던 루세로는 동네에 있는 주택담보대출 은행을 통해 담보 맡긴 집값의 100%를 대출받았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루세로에게 사려는 집의 가치를 전액 빌려주다니. 그러나 은행은 자신 있었다. 집값은 계속 오를 것이기 때문에 빚진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은행이 루세로 같은 사람들에게 돈을 대출해준 후 “루세로에게 돈을 빌려줬다”는 차용증서를 바탕으로 대출 채권을 만들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이 채권을 사갔다.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미국 정부가 보증을 서는 준정부기관이다. 은행으로서는 안정성을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은행은 두 국책 모기지기관에 채권을 팔고나면 다시 자금이 생겼다. 그 돈으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신규 대출을 해줬다. 예상대로 집값이 올랐고, 오른 만큼 대출 채권의 가격도 올랐다.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은행의 주택담보 대출은 계속됐다.
 


# 루세로의 부채, 국책 모기지기관으로 유입


루세로의 빚진 돈은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서도 유용하게 쓰였다. 두 모기지기관은 은행과 모기지 대출업체들로부터 산 주택담보대출 채권 자산을 담보로 잡아 이것을 주식시장에서 팔 수 있도록 증권으로 만들었다. 루세로처럼 집을 사기 위해 대출받은 것만을 모아 담보로 잡은 후 발행한 증권이 ‘거주용 담보부증권(RMBS)’이다. 루세로가 돈을 빌려간 사실을 일종의 무형의 재산적 가치로 평가해 그 재산에 대한 권리를 증서로 표시한 것이다. 프레디맥과 패니메이가 자금을 융통하는 방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RMBS를 가지고 또 한번의 게임판을 벌인다. 이번엔 자신들이 발행한 증서 RMBS를 담보로 잡고 또 다시 증권을 발행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채담보부증권(CDO)이다. 빚을 채권으로 만들고, 그 채권을 주식시장 거래가 가능한 증권으로 만들고, 그 증권을 담보로 또다른 증권을 만드는 빚잔치의 릴레이였다.

CDO를 만들 때 패니메이는 고민을 한다. 돈을 못갚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의 대출로 증권을 만들었기 때문에 제 값을 못받을 것에 대한 우려였다. 그래서 이들은 마술을 부린다. 안전한 자산과 다소 위험성이 있는 자산, 매우 위험한 자산을 약 7 대 2 대 1 비율로 섞어 하나의 증권을 만든 것이다. 이 증권에는 루세로와 같은 개인뿐만 아니라 탄탄한 기업들의 담보 대출까지 다 섞여 들어갔다. 아무도 사려 하지 않았던 불량 채권들은 우량 채권들 틈에 숨어 모습을 감췄다. CDO는 여러 새들의 화려한 깃털들로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춘 까마귀의 모습이었다. 여기에 'MBIA'나 '암박'과 같은 채권보증업체(모노라인)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은 패니메이가 지급 능력이 없을 때 그것을 대신 갚아주는 보증 회사다. 이렇게 보증업체들이 보증까지 서면 패니메이가 발행한 증권은 신용등급이 올라갔다.

이렇게 루세로가 돈을 빌려갔다는 그 무형의 가치는 RMBS로 멋지게 그 형태를 바꾸고, 나아가 CDO로 섞여 우량 기업들의 대출 속으로 숨었다. 그리고 좋은 등급을 받았다. 루세로의 무리하게 빌린 돈의 실체는 이렇게 잠시 모두의 머리 속에서 잊혀졌다.

# 루세로의 부채, 세계 금융 엘리트들의 손에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은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서 만든 RMBS와 CDO상품의 1등 구매자였다. 세계 금융 천재들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이것을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월가 투자은행들은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서 사들인 파생상품 이외에도 이렇게 채권을 증권으로 만드는 유동화회사로부터 파생상품을 사들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루세로의 빚의 존재를 더 확실히 감추기 위해 다른 상품들과 섞은 후에 다시 한 덩어리로 만들어 쪼갰다. 루세로가 대출을 받은 은행에서부터 월가의 투자은행에 도달하기까지 '돈을 빌렸다는 사실'은 이렇게 무한증식하는 과정을 거쳐 '파생상품'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달고 재탄생했다.

월가 투자은행들은 모기지 관련 파생상품들을 팔기 위해 여러 수법을 동원한다. 그중의 하나가 이름만 있는 종이회사를 세워 자산 일부를 이 종이회사에 떠넘기는 것이다. 이렇게 별도 회사를 세워 거래를 하면 모(母)회사의 대차대조표에는 표시되지 않는 장외거래가 가능하다. 설사 이 종이회사를 통한 거래가 부도가 나도 모회사는 안전하다. 월가의 투자은행들은 부실 위험이 높은 ‘위험 상품’을 취급할 때 주로 이런 종이회사를 만드는 방법을 이용했다.

월가의 한 투자은행은 ‘CEDO Plc’라는 종이회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서 발행한 주택담보대출 관련 합성 CDO의 한 종류인 자산부채담보부증권(CEDO)을 발행한다. CEDO는 채권의 신용위험에 따라서만 수익률이 결정되는 CDO와 달리 신용도에 주가지수 영향까지 받는다. 주가지수를 수익률과 연동한 주가연계증권(ELS) 형태를 띠고 있다. 즉 상장된 주식이 폭락하면 꼼짝 없이 수익률도 하락한다. 원금은 당연히 보장되지 않는다. 루세로의 빚은 이렇게 금융 연금술사들에 의해 CEDO라는 이름으로 또 한번 위장된다.


 

# 2005년 11월 안산의 고대영씨와 LA의 루세로 만나다


LA에 사는 루세로의 빚이 CEDO로 변모되기까지의 과정은 안산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고대영씨와는 전혀 무관해 보였다. 그러나 고씨의 돈도 결국 CEDO로 흘러들어갔다.

우리은행을 통해 들어간 고씨의 투자금은 우리은행의 자회사인 우리CS자산운용이 자금 운용을 맡았다. 그리고 우리CS자산운용은 투자 경험이 많은 크레디트 스위스 증권사의 자회사인 투자은행 CDFB에 이 자금의 운용을 위탁한다. CDFB는 우리파워인컴에 투자된 돈을 모아 월가의 파생상품인 CEDO에 70%를 투자했다. 안산에서 고씨가 힘들게 번 돈과 미국에서 루세로가 빌린 집의 가치는 이렇게 몇 단계 건너, 태평양을 넘어 스위스계 증권사의 손을 통해 만났다.

2005년 11월 초 판매를 시작한 우리파워인컴 펀드는 순식간에 1100여억원의 투자금이 몰리면서 판매가 조기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우리은행 직원들은 안정적으로 자산을 운용하고 싶어하는 은퇴자나 노년층에게 펀드 가입을 권유했다. 하지만 펀드 설정 3년이 지난 2008년 12월 기준 이 펀드는 마이너스 83%의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원금 손실이 없는 정기 예금에 비유하며 마치 예금처럼 속인 결과였다.


 
# 2007년 2월, 루세로 대출금 갚기 허덕


2007년 LA에서 서브프라임모기지로 집을 샀던 루세로는 집값이 40% 이상 하락하면서 빌린 돈을 갚는 데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삼촌에게 돈을 빌려 근근이 대출금을 갚아 나갔다. 루세로는 그나마 상황이 나았다. 같은 동네 사람들은 이미 대출 상환금을 3개월 이상 연체하고 집을 빼앗겼다. 미국 전역에서 집을 가압류당한 사람이 늘어났다. 이들이 대출금을 갚지 못하자 자금난에 처한 소규모 은행부터 파산하기 시작했다. 2007년 3월에는 주택담보대출 업계 2위였던 '뉴센추리파이낸셜'이 계속된 연체로 자금을 융통하지 못해 결국 파산선언을 했다.
 

# 루세로 집 가치 하락, 패니메이 넘어 월가 공격


서브프라임모기지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약 1년여의 시간을 끌며 서서히 무너져갔다. 버틸 때까지 버티다 집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전역에서 집을 가압류당한 사람이 100만명이 넘어가자 모기지 대출 관련 업체들은 가속도를 내며 빠르게 연쇄 부도를 일으켰다.

최초 주택담보 대출을 담보로 했던 RMBS, CDO는 다른 파생상품으로 둔갑해 세계 곳곳의 금융기관으로 팔렸다. 이 파생상품의 줄기를 타고 미국 전역은 그리고 전 세계의 금융 기관들은 거미줄처럼 엮이고 또 엮였다. 동반 추락이 불가피했다. 투자은행도 개인들의 가압류 사태 속으로 함께 빨려 들어갔다.

CDO에 숨어 없는 것처럼 취급되었던 루세로의 빚은 루세로의 집값이 40% 이상 하락한 순간부터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다. 먼저 자신의 모습을 감쪽같이 숨겨주었던 CDO부터 공격했다. 루세로의 빚이 편입된 CDO가 집값 하락으로 부실화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다시 그 상품을 만든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망가뜨리고 나아가 월가의 투자은행들도 위협했다.

전 세계를 무대로 파생상품을 만들었던 투자은행이 나가떨어지기 시작하면서 투자자들은 그때서야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위험성을 실감하고 자기 돈을 다 빼기 시작했다. 패니메이와 프레디맥도 예외가 아니었다.

투자자들이 프레디맥과 패니메이의 RMBS에 대해 한꺼번에 지급 요청을 하면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두 모기지업체는 결국 2008년 7월 유동성 위기 사태에 직면한다. 이들이 RMBS 보증액수에 물려있던 금액은 무려 5조달러. 이것이 터지면 초우량 신용등급을 자랑하는 미국의 위상이 추락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선택의 여지 없이 2000억달러를 투입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지분을 국유화한다. 그렇게 해서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살아났지만, 후폭풍은 계속되고 있다. 두 회사가 발행한 파생상품의 안정성을 믿고 전 세계 금융회사가 대량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우리CS자산운용의 우리파워인컴펀드는 그 수많은 투자자 중 하나였다.


 
# 루세로는 집 포기, 고대영씨는 펀드 가입 해지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패니메이는 2008년 8월18일 기준으로 무려 주가가 마이너스 81.48포인트를 기록하고 프레디맥은 마이너스 90.62포인트인 5.9로 폭락한다. 대출금을 갚지 못해 집을 가압류당한 루세로의 힘이었다. 제2, 제3의 루세로가 계속 나타난 결과였다. 우리은행이 집중 투자한 CEDO는 주가와 움직임을 같이 하는 ELS형태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충격은 더 컸다. 수익률은 폭락했다.
 

우리은행이 수선스럽게 홍보하던 CEDO A3등급도 2007년 12월24일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결과 신용 등급 BBB3로 내려갔다. CEDO는 미국뿐 아니라 유럽·아시아 등에 상장된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상품에도 투자됐다. 그러나 분산 효과는 거의 없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퍼지며 동조화 현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유럽 역시 미국과 약간의 시간차를 보였을 뿐 미국처럼 모기지 부실이 급속도로 드러났다. 파생상품이 전 세계로 뻗어나갔듯 위험도 전 세계를 넘나들었다.

이때 엄청난 하락률을 견디지 못한 우리은행은 고대영씨에게 펀드가 마이너스 45% 수익률을 내 원금이 전부 사라질 수도 있으니 펀드를 중도 해지할지 결정해 달라고 통보한다. 결국 그는 4500만원에서 남은 2000만원이라도 건져야겠다는 생각에 펀드 가입을 해지한다.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살고 있던 중산층 고대영씨는 LA의 루세로와 서로 존재도 몰랐지만, 금융 세계화의 시스템 안에서 함께 만났고 휩쓸렸다. 인터넷을 통해 뉴욕에 앉아 전 세계 금융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금융자본의 수도 월가의 견제받지 않은 탐욕은 경기도 조용한 곳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던 이와 LA 외곽에서 우편 포장 일을 하던 이를 연결하고, 그렇게 연결된 수 많은 사람을 동시에 불행으로 인도할 만큼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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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 런던에서 - 공공재 민영화 탓 서민들 더 압박
런던 | 김은정 통신원


지난달 1일 부슬비가 내린 런던 근교 도시 스테인스. 주말마다 이곳에서 과일과 잡화를 좌판에 펼친다는 한 중년 남성에게 요새 장사가 잘되는지 물었다. “끔찍하다(It’s a Shit).” 가판 뒤편에 앉아 있는 그의 부인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목요일과 토요일에는 스테인스에서, 다른 요일에는 근방의 다른 도시에서 열리는 간이시장에서 장사를 한다는 이 부부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들이 지갑을 열지 않는 통에 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60%가량 줄었어요. 하지만 가스·수도·전기 요금이 지난해보다 50% 인상되고 물가는 치솟았지 뭐요. 정말 쓰레기 같아요.” 그는 격앙되어 있었다.





고급 대형할인 매장인 막스 앤 스펜서(M&S)의 식료품 매대 일부. 불황에 따라 반값 할인(1/2 price)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4인가족 기준 분기당 400파운드(약 87만원) 정도인 가스·전기 요금 고지서는 요즘같은 불황에 서민가계를 크게 압박한다. 몇달마다 10~30%씩 인상해왔지만, 불황인 지금 더 오를 기세다. 상하수도와 전기, 가스 등 공공재를 민영화한 영국의 단면이다.

은퇴 후 연금과 자기 집의 방 몇 개를 임대해 얻는 수입으로 살아가는 전형적 연금 생활자인 전직 엔지니어 라이오넬(68)도 그 문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세든 사람들이) 다들 가난한 학생인데 방세를 올려받을 수는 없지요. 그런데 물·가스·전기요금은 미친듯이 오르고 있어요.”

그는 이런 공공재 민영화에 불황이 겹쳐 업체들간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전화를 수도 없이 걸어서는 ‘우리 회사 물값이 더 싸다’고 유인하죠. 정작 문서로 내용을 확인하자고 하면 꽁무니를 빼요. 거짓말인 거죠. 이런 홍보전은 지금같은 때 훨씬 심해요.”

불황은 중산층의 소비 패턴도 바꾼다. 영국생활 10년째인 중산층 교포 강영숙씨(40)는 그동안 써온 값비싼 유기농 식재료를 포기했다. 비유기농 제품을 주로 쓰고, 대량구입하던 화장지나 세제 등은 필요할 때 조금씩 산다.

올초 78펜스였던 유기농 양파 한 묶음 값이 1파운드20펜스로, 89펜스였던 식빵은 1파운드40펜스로 펄쩍 뛰었다. 물가 급등으로 막스 앤 스펜서(M&S), 웨이트로즈 등 고가 대형 마켓의 매출도 줄었다. 강씨는 “점심시간 뒤 테스코(중저가 대형마트)에 가보면 물건이 별로 없다”며 “M&S나 웨이트로즈 가던 사람들이 테스코에 몰린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M&S 매장에서 이전에 찾아보기 힘든 저가상품이 눈에 잘 띄는 매대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집값도 크게 떨어졌다. 지난 10월 말 기준 영국 주택가격은 전년 대비 약 15% 하락했다. 34년 만의 최대 하락폭이다. 주택담보대출 상환을 제때 못해 집을 압류당한 가구는 지난 2분기 1만1054가구로 지난해보다 71%나 늘었다.

런던 등 동남부 지역보다 못사는 북부 지역의 경우 불황의 그림자가 먼저 내리깔렸다. 북동부 도시 선더랜드에서는 최근 닛산자동차의 감산체제 돌입으로 노동자 800명이 해고위기에 놓였다. 이곳에서는 이미 노던락의 콜센터 직원 1300명이 실직했다.

인디펜던트는 지난달 초 대니 도링 교수의 말을 인용, “북부지역에는 주로 콜센터, 물류창고, 본부 아닌 지점 등 ‘쉽게 없앨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보도했다.

불황은 이제 영국전역에 만연하다. 혼다·포드 등 자동차 업계가 뒤따라 감산 및 해고계획을 밝혔다. 철강업체 코러스도 400명을 해고키로 했다. 최근 BBC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기업주 20%가 “65세 이상 노동자 해고시 경영 상의 이유를 대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을 십분 활용하겠다고 답했다. 이는 고령 노동자에 대한 ‘손쉬운’ 해고가 남발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오래 일해 연금을 보전하겠다’는 노동자들의 소망도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얘기다.



청년실업도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생물학 전공자 플로렌틴(29)은 지난 8월까지 1년간 P&G의 유아용품 관련 연구원으로 일하다 실직했다. 여러 회사에 입사지원을 하고 있지만 불황은 구직자를 환영하지 않는다. 그는 “몇달 전 구인광고를 내던 회사들도 모집 계획을 취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분야는 금융권이다. 연금펀드(Pension Fund)에 근무하는 테드(32·가명)는 “시티(런던 금융가)가 긴장하고 있다”면서 금융권의 구조조정 분위기를 전했다. “로이즈TSB와 HBOS가 합병되면 많이 잘리겠죠. 이렇게 큰 합병뿐 아니라, 크고 작은 합병들이 굉장히 많이 있을 겁니다. 1991년 금융위기 때 그랬듯이 말입니다. 영국은 최근 5년, 10년간 경제성장의 많은 부분을 금융부문의 성장에 기대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금융위기에서 다른 나라보다 훨씬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그의 계획을 물었다. “잘리면 어디로 가느냐고요? 글쎄요. 아무리 아는 게 많고, 좋은 교육을 받았어도 한동안 금융가에서는 직장을 찾기 어려우니 당분간 저축한 걸로 먹고 그 이후에는 정부 보조금에 의지해야죠.”

◇ 도쿄에서 - 호텔 총지배인 “저금 털어서 생계”
도쿄 | 조홍민특파원

“설마 이런 조그만 호텔에서 일하고 있는 나를 세계 금융위기가 직격할 줄은 상상도 못했죠.”

 
도쿄 게이힌 호텔의 도미타 데쓰히로 전 총지배인이 지난 1일 프론트에서 직원들의 업무를 도와주고 있다. 해고된 직원들이 자주영업을 하고 있는 호텔 프론트 앞에 ‘카드 이용이 안 된다’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지난 1일 만난 도미타 데쓰히로(58)는 불과 한 달여 전만해도 137년 역사를 자랑하는 도쿄 시나가와의 게이힌(京品) 호텔의 총지배인이었다. 그러나 이젠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실업자 신세나 다름없다. 지난 9월 파산한 리먼 브라더스의 일본 법인 자회사에 진 빚 60여억엔을 갚기 위해 호텔 측이 토지 등을 매각하고 10월20일자로 폐업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 호텔의 고바야시 마코토 사장은 버블기에 사업다각화를 하면서 호텔 건물 등을 담보로 리먼 브라더스 계열 ‘논뱅크’(융자전문 금융회사)인 선라이즈 파이낸스에 거액의 빚을 냈다. 리먼이 파산하자 그 여파로 선라이즈 파이낸스는 지난 9월 도쿄지법에 파산보호를 신청했고, 채권 회수가 시작되면서 호텔로 불똥이 튀었다.

호텔에 근무하던 131명은 살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고 이제 40여명만이 남아 호텔을 지키고 있다. 회사의 해고 통보에 맞서 고용 승계 등을 요구하며 ‘자주영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측은 이들을 몰아내기 위해 퇴거 요구 소송을 제기했고, 직원들은 가처분 소송을 내 맞서고 있다. 이들은 과거 호텔이 직영했던 구내 레스토랑과 이자카야 등 3개 점포를 직접 운영한다. 객실 손님도 받지만 관리 직원이 없어 20개까지만 개방하고 있다. 물론 아침식사도 제공이 안 되고, 카드도 이용할 수 없다. 연말이면 송년회 등으로 북적거리던 2층 연회장엔 냉기가 가득하다.

“솔직히 리먼 브라더스가 어떤 회사인지 잘 모르지만 원망이 많습니다.”

도미타는 고향인 가고시마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상경해 작은 직장 두 곳을 거친 뒤 1975년 게이힌 호텔에 입사했다. 주방 막일, 프론트 보조 등 밑바닥에서 출발해 96년에는 총지배인직에 올랐다. 흔히 말하는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이 유서깊은 호텔(도쿄 미나토구 지정 역사적 건조물)에 바친 33년은 도미타 인생의 전부였다. 경기가 좋을 때는 전체 객실이 꽉 들어찼다. 하루 70명 이상 묵을 때도 있었다. 시나가와역에 신칸센이 정차하면서 평소 때도 객실 가동률은 80%에 달했다.

그러나 폐업을 발표한 10월 말 이후 직원들의 형편은 180도 바뀌었다. 도미타만 해도 한 달 평균 40여만엔이던 수입이 바로 끊겼다. 지금은 자주영업을 통해 얻는 수익금을 직원끼리 나눠 ‘조합활동비’ 조로 받아간다. 손에 쥐는 금액은 10만엔 안팎.

“생활은 전혀 안 되죠. 기본적으로 내는 국민연금, 주민세, 보험료 등만 해도 10만엔 가까이 됩니다. 그걸 내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어요.”

그는 그동안 모아둔 저축에서 생활비를 충당하지만 불투명한 미래를 생각하면 지금도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고 말한다. 정년인 60세까지 연금을 납부하고 남은 노후를 15만엔가량 받는 연금으로 조용히 보내겠다는 계획도 물거품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나마 본인은 하나 있는 장성한 아들이 독립해 나갔기 때문에 부담이 덜하지만, 젊은 직원들의 장래를 생각하면 “남의 일 같지 않아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조리방에서 일하던 27세 직원은 지난달 둘째 아이를 출산했는데 일거리를 찾겠다고 떠났어요. 참 막막하더군요. 남은 직원들도 언제 떠나갈지 몰라 안타깝습니다.” 떠나는 사람이나, 남는 직원이나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그는 요즘도 전철로 1시간30분 거리의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에서 매일 출근한다. 오전 9시에 집에서 나와 오후 10시30분까지 호텔 일에 매달린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사측의 불법성을 홍보하는 일, 노조활동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별히 지정된 업무는 없다. 일손이 부족한 곳이면 주방 일이든, 음식 서빙이든 해서 힘을 보태야 한다.

하루 12시간 노동으로 인한 육체적 피로보다 정신적인 고통이 더욱 견디기 힘들다고 한다. 폐업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기에 아직은 버틸만하지만 ‘이런 생활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나,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하는 불안감이 그를 떠나지 않고 있다.

“내년 6월까지는 저금한 돈으로 그럭저럭 생계가 유지될 것 같아요. 그 이후는 모르죠. 갑갑합니다.”




◇ 베이징에서 - 구직자 “위기, 내 일이 될줄 몰랐다”
베이징 | 조운찬특파원

지난 2일 베이징시 차오양구 샤오윈루에 위치한 차오양구 노동·사회보장국. 한국의 지방노동청에 해당하는 이곳의 직업소개소에는 오전 11시가 되자 구직신청서를 접수하려는 행렬이 20m가량 이어졌다. 4평 남짓한 접수처에는 신청서를 작성하는 실업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구직신청자가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접수처의 남자 직원은 접수 대장을 보여주며 “벌써 150명을 넘어섰다. 이대로라면 오늘은 400명을 채울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는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지난달부터 구직신청자가 조금씩 늘고 있다”면서 “실업자 증가보다 일자리가 줄고 있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차오양구의 동쪽 둥바에 사는 왕즈강(王志剛·32·가명·사진)도 아침 일찍 이곳을 찾았다. 그러나 그는 구직 행렬에 서지 않았다. 아니 설 필요가 없었다. 그는 이미 두 달 전에 구직신청서를 접수했다. 그런데도 매일같이 이곳을 찾는 것은 혹시 새로운 구직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구직정보는 인터넷에도 많습니다. 그러나 매일 집에서 구직 사이트를 서핑하자니 뭔가 허전해요. 마음에 드는 일자리도 없고, 답답하기도 하고. 그래서 거의 매일 직업소개소를 찾지요.”

왕즈강이 찾는 곳은 차오양취 노동·사회보장국만이 아니다. 매주 수·금·토에는 인력시장이 열리는 산위안챠오에 들르고 간간이 베이징시 중심가 용허궁의 직업소개소를 찾기도 한다. 국제전람중심, 농업전람중심 등에서 개최되는 취업박람회도 그가 놓치지 않는 곳이다.

지금은 이렇게 직업소개소를 전전하는 신세이지만 두 달 전까지만 해도 그는 당당한 사무직 직원이었다.

2001년 후베이성 우한이공대학을 졸업한 그는 7년 동안 건설회사, 보험회사, 페인트대리점 등 여러 회사를 거쳤다. 대학에서 물류학을 공부한 터라 보험판매를 제외하고는 대개 유통업, 창고업 등 전공과 연관된 분야에서 일했다. 그러나 저임금 때문에 직장을 그만뒀다. 그의 월급은 1500위안(약 30만원) 정도.

지난 6월 그는 집에서 멀지 않은 베이징 시내의 한 호텔에 다시 취직했다. 월급이 1700위안으로 조금 나아졌고, 업무도 물품관리여서 흥미가 있었다.

그러나 네 달 만인 10월 초 회사를 떠나야 했다. 베이징올림픽 이후 손님이 급감한 데다 금융위기설까지 돌자 호텔에서 직원을 감축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얘기를 들으면서 그게 나의 일이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직장을 자주 옮겨 두려움은 없지만 이제 두 달이 되어가니 걱정이 쌓이네요.”

베이징에 일자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단순 생산직이 대부분이다. 그는 “어쩌다 사무직 일자리가 나오긴 하지만 대졸자의 임금이 농민공의 월수입과 별 차이가 없어 지원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왕즈강은 금융위기라 단기간에 원하는 직장을 찾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물류업 관리직 분야 취업이 목표인 그가 장기적인 구직전쟁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내핍생활. 그는 식비, 교통비 등 하루 생활비로 30~40위안(6000~8000원)을 쓴다. 보통 한끼 식사값도 안 된다. 점심식사를 하는 날보다 거르는 날이 더 많다.

“그래도 나는 베이징 사람이어서 2개월은 버틸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퇴직수당을 받고 있으니, 저 혼자만 감당하면 되니까요. 지방출신이 실직하면 방세 때문에도 베이징에서 한 달 버티기도 힘듭니다.”

그의 금융위기에 대한 생각은 소박하고 낙관적이었다. “엔진이 너무 빨리 돌면 과열돼 고장이 나는 것처럼 세계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문제가 생긴 것 아니겠느냐”면서 “회복될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사회보장국의 앞 마당에서 한 시간가량 이야기를 한 왕즈강이 ‘직업정보센터’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직업정보센터’의 대형 전광판에는 구직정보가 실시간으로 제공되고 있었다. ‘청소원 모집, 18~40세, 800~1000위안/ 타자공, 18~30세, 1200~1500위안/ 택배원, 남자 18~30세, 1000~1400위안/ 화물차 기사, 1000~2000위안…’. 한참 동안 전광판을 주시하던 있던 그은 용허궁 쪽으로 가봐야겠다며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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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는 이 지구에 사는 거의 모든 시민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크든 작든 사람들은 금융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럴듯한 금융회사에 다니며 남부럽지 않게 살던 이뿐이 아니다. 유럽의 이름 모를 소도시에 사는 평범한 시민들, 파리 외곽의 자동차공장 노동자들, 런던 교외의 노점상, 도쿄 시내 조그만 호텔에서 일하던 직원들, 일자리를 찾은 베이징의 젊은이도 사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들은 왜 그런지 알지 못한다. 뉴스에 등장하는 낯선 숫자들이 어떻게 자기 인생을 힘들게 할 수 있는 건지, 그 숫자가 왜 자기와 상관이 있다는 건지.

◇ 파리에서 - 연금생활자 “무보수 봉사 않고 개인 교습”
파리 | 박지연 통신원


지난달 7일 오전 파리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인 르아브르 시내 한 카페에서 근심이 가득한 얼굴의 파브리스 르베르(37)를 만났다. 평소라면 그는 공장에 있을 시간이었다. 인근 상두빌의 르노자동차 공장에서 8년째 일해온 르베르는 지난 9월 일찌감치 위기를 실감했다. 일하는 날이 절반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 주 근무하면, 다음주는 쉰다. 순환휴직제가 도입된 것이다. “입사 초 임금이 월 평균 1500유로(약 278만원)였는데 지금은 하루 35유로 정도 삭감됐습니다. 그런데 물가는 오르더군요.”



르노 공장 앞에서 시위 중인 파브리스 르베르(왼쪽에서 두번째).




매달 200유로의 할부금도 부담스러워져 최근 새 차를 팔고 중고차로 바꿨다. “2년 전부터 회사 상황이 나빠지더니 올 초부터 토요일 오전에 무임금 노동을 몇 번 했죠.” BMW의 프랑스 내 판매율이 지난해 10월 대비 16.6% 하락하고, 르노뿐 아니라 푸조자동차도 순환휴직제를 시행하는 등 자동차 업계 전반이 흉흉하다.
 

호세 리베로(48)는 파리 근교에서 부인 및 세 자녀와 함께 사는 평범한 건설 노동자이다. 27년 동안 이 일자리를 지켜왔던 그도 한달 전 갑작스러운 변화에 직면했다. 건설 공사 건수가 급감한 것이다. “건설사들은 아파트 분양 후 공사에 들어가는데, 아파트가 안팔려요. 공사가 중단될 수밖에 없죠. 이쪽 일 시작한 이래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공사 건수가 줄면 저희 같은 시급 노동자 수입은 덩달아 줄어요. 이달 보너스는 딱 절반만 나왔는데, 다음달은 아예 없을 겁니다.” 리베로는 “업계 대부분이 순환휴직 상태인데 법적으로 1년에 150시간 이상 못 쉬게 돼 있으니, 건설사들이 곧 해고 절차에 들어갈 것”이라고 비관했다.


40세까지 건설 노동자로 일하다 프랑스의 최대 노동단체인 노동조합총연맹(CGT)의 상근자로 있는 벨라야 벤야이아(60)는 비정규직의 피해를 걱정했다. “5년 전만 해도 건설 분야는 최대 호황이었기 때문에 요즘 같은 날은 상상도 못했어요. 지금 공공 부문 건설이 30% 미만이고, 개인 소유 건축은 28%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개보수 수준입니다. 이런 불황에 처한 건설업계의 첫 희생양은 비정규직이 될 겁니다. 어떤 건설사는 1100명의 비정규직을 배제한 채 정규직 450명만으로 공사를 느릿느릿 진행하고 있어요”.


벤야이아는 지난 10월 사르코지 정부의 3600억유로 규모 구제금융을 비판했다. “국고가 비었다더니 도대체 3600억유로가 어디서 나온단 말입니까. 사회보장제도와 고용안정 등 사회적 비용 지출에는 ‘돈 없다’고 내치던 사르코지가 금융가 친구들을 위해서는 큰돈을 빨리도 마련했네요”.


파리 시내의 조그만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는 프랑스와 라몽드(72)는 은퇴자이다. 라몽드는 프랑스어 교사로 재직하면서 터키·멕시코·스페인 등지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쳤고 당시의 법대로 55세에 일찍 퇴직하고 연금을 받으면서 나름 여유 있는 퇴직생활을 즐겼다. 비교적 이른 퇴직이라 전공을 살려서 여러 단체에서 외국인을 위한 불어 교사로서 무보수 봉사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점점 상황이 안 좋아졌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장을 보러 가는데, 특히 지난 2년부터는 물가 상승을 피부로 직접 느껴요. 매달 받는 연금은 똑같은데 물가는 같지 않아요. 그래서 무보수 봉사활동은 잠시 접고, 봉사활동 때 알게 된 외국인들에게 불어 개인교습을 해주고 있어요.” 그는 지금 개인연금 중 50%를 집세로 내고 있다.

파리의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바스티유동네에 직장을 찾고 있는 세 젊은이가 월세 680유로의 28㎡짜리 좁은 아파트에 모여 살게 된 이유를 들려주었다. 혼자 살기에 적당한 이 아파트는 원래 아메드 에짐(30)이 2년 전 파리에 일자리를 구하러 오면서 임대한 것이다. 미술학교에서 그래픽을 전공한 에짐은 어렵게 디자인회사에 자리를 구했으나 최근 해고된 상태다.



고향 친구인 스테판 카이에(30)도 올해 초 파리로 직장을 구하러 오면서 비싼 임대료를 절약하고자 둘이 함께 지내게 되었다. 카이에는 법학과 박사준비과정을 수료하고 다시 영화과 석사과정을 마쳤다.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열정만으로 법학을 포기하고 영화를 공부했어요. 내 학위로 충분히 파리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지요. 그런데 갑자기 불어 닥친 경기침체로 모든 게 불안해졌어요. 이력서를 200군데에 보냈지만 긍정적인 답변을 얻은 곳이 없습니다.”

 

비좁은 아파트에 함께 살고 있는 아메드 에짐(왼쪽)과 스테판 카이에(오른쪽). 등 뒤로 다트 게임용으로 붙여 놓은 사르코지 대통령 사진이 보인다.



에짐은 “처음 1년간은 한 번도 채용된 적 없는 이들을 위한 무직수당인 RMI 400유로, 주택보조금 200유로로 생활했습니다. 지금은 그래도 6개월간 회사생활 경력으로 RMI보다 더 받을 수 있는 실업수당을 신청해 놓은 상태죠.”


반면 카이에는 저녁마다 4시간씩 설문조사 회사인 TNS 소레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ANPE에는 등록하지 않았다. “언론은 실업자가 200만명이라고 하지만 실제 더 많아요.” 이런 상황에 한 달 전부터 고향 친구인 샤샤(31)가 또 직장을 구하러 파리로 올라오면서 이 아파트의 식구가 셋으로 불어났다.


이 세 젊은이는 자동차회사 푸조의 최대 생산라인이 있는 스위스 국경지역 소쇼, 물루즈 지역이 고향이다. “저희 세 사람의 부모님과 카이에 형제 4명 전부 푸조공장에서 일해요. 하지만 지금은 모두 잠정 실업상태에 있어요.” 샤샤의 말이다. 샤샤의 고향과 같은 사례는 많다. 지난달 6일 미국자본의 몰렉스 공장이 철수키로 한 피레네산맥 근처의 소도시 빌뮈르의 경우도 그렇다. 이곳 경제활동인구의 대부분이 이 공장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공장철수는 이 도시 전체의 재앙이나 다름없다. 전 주민 6000명 중 3000명이 폐업반대 시위에 참가한 것이 이상하지 않다. 이날을 ‘죽은 도시의 날’로 선포하고 시위를 주도한 이는 다름 아닌 빌뮈르 시장이었다.


샤샤는 계속 말했다. “저요? 글쎄요, 파리에는 일자리가 있을 것 같아 올라오긴 했지만….” 카이에가 끼어들었다. “지금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는 것도 조심스럽기만 해요. 박물관과 미술관도 매월 무료 개방되는 첫 일요일에 몰아서 방문하고 있어요.”




◇ 독일에서 - 벤츠 판매직원 “주문 50% 급감”

하네스 모슬러 통신원


베를린 시내의 약국을 운영하는 안네 헤롤트(63·여)는 경기침체는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시내는 여전히 붐비고 사람들 쇼핑백도 빵빵해요.” 도선사(導船士)인 토비아스 디어베르크(39)도 “수송 물량이 줄어 독일-스칸디나비아 왕복 선박을 30~40%로 인하된 가격에 빌려주기도 했다”면서 “그러나 해운업 자체가 침체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동차업체나 금융권은 다르다. 수출에 의존하거나 세계시장과 맞물리려 독일에서 세계 금융위기를 가장 먼저, 그리고 민감하게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니더작센 주의 소도시에서 벤츠자동차 판매업체 판매원으로 18년간 일해왔던 베안드 나돌니(42)의 말을 들어보자. “신차 판매량은 작년과 같지만, 중고차 구매가 줄어 수지가 나빠졌습니다. 방문 고객이나 전화 문의 고객 모두 50% 선으로 줄어들었어요. 매장을 찾아오는 고객도 25%만이 차를 구입할 뿐이지요”.



자동차 부품 납품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포 2세 윤성현씨(31)는 “쾰른의 포드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은 벌써 해고될까 걱정하고 있다”며 “우리처럼 공구를 공급하는 업체의 노동자 대부분이 이미 기간제 노동자로 전환되거나 해고한 상태”라고 전했다. 자동차업체가 처한 상황을 묻자 그는 말을 쏟아냈다. “요즘 들어 주문이 30~40%로 줄었어요. 최근 심지어 고객 중에는 창고비용을 아끼려고 이미 받은 제품을 반송한 경우도 있어요. ‘내년에 다시 보내달라’는 뜻이죠”.



경기침체에 따른 판매량 감소 탓에 BMW사는 올해 무려 5500명의 기간제 노동자와 정규직 직원 3600명을 해고했다. 폭스바겐사와 다임러는 성탄절 휴가를 5주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자동차 업계에서만 앞으로 5만~10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독일 노동부는 2009년 전체 실업자가 13만명 증가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OECD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까지 독일 실업자 수는 70만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독일 주식지수 DAX는 지난 12개월간 거의 반토막이 났다. 독일 주립은행 4개는 파산위기를 면하기 위해 정부에 구제 금융을 요청한 상태다. 최근 바이에른 주립은행은 주정부로부터 10억유로의 구제금을 받고, 전체 직원 4분의 1인 5600명을 해고해 투자은행 업무를 완전히 포기했다. 금융위기의 공포는 서서히 독일을 휩싸고 있다.



독일 서비스공공노조(Verdi) 바이에른주 위원장 요세프 팔비조너는 구제금융 조치 및 5600명 해고 대책을 내놓은 주정부를 비난했다. “우리가 가장 우려했던 게 현실이 됐다. 전례 없는 혼란을 일으킨 정치가와 은행 경영진 등 책임자들이 회의실의 푹신한 의자에 앉아 있을 때, 직원들은 이번 문제의 책임을 떠안도록 강요당한 채 존재 위협을 받고 있다. 구제대책은 모든 직원들에게까지 확대돼야 한다.”



◇ 중남미에서 - 멕시코 제1철강사, 1만여명 실직

박정훈 |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



지난 10월 말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북쪽 과나화토에서 정치인과 기업가들의 비공식 모임이 열렸다. 미국발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늘 팽팽한 설전을 벌이던 참석자들이 이날은 보기 드물게 만장일치의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모두 경제학 교과서의 상투적인 주장과 달리 국제적 금융위기를 불러일으킨 미국으로 오히려 투자자들이 몰려들고, 달러가 받아야 할 벌을 자국 통화가 받고 있는 현실에 분개했다.


현지 언론에 실린 이 일화는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멕시코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알려준다. 멕시코 페소화 가치는 지난 8월4일부터 10월23일까지 38.74%나 하락했다. 멕시코 금융시장의 80%를 지배하고 있는 씨티그룹·HSBC 등의 외국계 금융자본은 자산을 매각해 달러를 본국으로 보내느라 환율폭등을 더욱 부채질했다. 결국 멕시코는 미국과 통화스와프(맞교환) 협정을 맺고 나서야 환율시장 동요를 잠시나마 진정시켰다.


그러나 미국발 위기의 여파는 확산되고 있다. 국제파생상품시장에 뛰어들었다 큰 손실을 입은 대표적인 토종 유통업체 ‘코메르시알 메히카나’가 10월 말 채무지불중단을 선언했다. 이달 초 멕시코 제1의 철강회사 ‘알토스 오르노스’는 국제 철강 수요 하락과 신용 경색으로 각종 사업을 줄줄이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이로 인해 1만2000명이 일자리를 잃게 됐다.



저명한 민간연구기관인 멕시코금융경영연구소(IMEF)는 최근 멕시코에서 이미 경기침체가 시작되었다고 진단했다. 11월 멕시코 제조업·비제조업 지수들이 모두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현저히 하락한 것이다. 페데리코 우르키사 연구소장의 발언은 더욱 비관적이다. “문제는 이 침체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지, 침체의 늪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경기 침체에 대한 공포는 라틴아메리카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불과 몇달 전만해도 중남미 대륙은 낙관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다. 2003년부터 올해까지 평균 5%를 넘는 경제성장이 지속됐다. 40년 만에 찾아온 호황이었다.


하지만 경제성장의 우호적인 조건들은 동시에 찾아왔다가 한꺼번에 사라지고 말았다. 자원 부국 중남미 국가들에 넉넉한 외화 수입을 안겨주었던 국제원자재 가격의 고공행진은 끝났고, 낮은 이자율과 충분한 유동성으로 중남미 신흥국에 자금을 융통해주던 국제금융시장도 급속히 얼어붙었다.


미국경제의 일시적 호황으로 급증했던 중남미계 이민자들의 모국 송금액도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민자의 송금액이 석유수출에 이어 외화소득의 두 번째 원천인 멕시코의 충격은 더욱 크다.


브라질의 저명 경제연구기관인 제툴리우 바르가스 재단은 2008년 3·4분기 라틴아메리카의 경제활동 상태를 보여주는 경기지수가 1997년 통계 집계 이래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국제기구들도 비관적인 분석에 합세했다. 중남미 대륙이 올해는 4.5% 성장으로 선방하겠지만 내년에는 3%대 혹은 그 이하로 하락하고 특히 미국경제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멕시코는 0.4~1%에 불과할 것이란 분석이다.


경기침체는 이 대륙이 최근 수년간 축적해온 사회분야의 성과를 수포로 돌릴지 모른다. 중남미 대륙이 최근 성장기 동안 이룩한 9%(44%→35%)의 빈곤율 감소의 성과도 무의미해질 상황에 처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제 식료품 가격 인상까지 겹쳐 빈민들의 삶은 더욱 궁핍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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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복현 |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



이번 세계 금융위기는 금융시장에서의 투기적 거래와 신용의 과잉팽창으로부터 발생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금융위기들과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이 금융위기가 더욱 발달된 자본시장과 고도화된 금융세계화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특성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1929년 대공황이나 80년대 이후의 여러 금융위기들은 모두 금융시장에서의 투기적 행동이나 과도한 신용팽창에 기초해 발생했다. 그리고 그러한 금융행동은 대부분 자유방임적 경제사조에 힘입어 증대될 수 있었다. 1920년 대공황 직전까지 미국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금융시장은 자유방임의 사고 하에서 아무런 규제나 감독도 없이 시장자율에 따라 자유롭게 작동하고 있었다.

또한 80년대 이후에도 세계 각국에서 다시 금융자유화가 전개되면서 금융활동이 자유와 시장자율에 따라 수행되었다. 그러나 자유방임과 시장자율 하에서의 금융활동은 1929년 미국에서나 80년대 이후 남미와 동아시아에서와 같이 투기적 행동과 과도한 신용팽창을 가져와 결국은 금융시장을 마비시키고 금융기관을 파산시키는 금융위기를 초래했다.

이번 금융위기도 신자유주의적 경제사조 속에서 시장 자율과 자유경쟁만을 강조한 자본시장 발전과 금융세계화 진전이 결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나 이에 기초한 자산유동화 증권과 같은 고위험의 투기적 금융거래를 과도하게 팽창하도록 만든 데서 발생했다. 따라서 이번 금융위기도 이전의 금융위기와 유사하게 기본적으로는 투기적 거래와 신용의 과잉 팽창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금융위기는 이전의 금융위기들과 또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가장 선진화된 금융기법과 가장 발달된 금융시스템을 갖는 미국에서 위기가 시작되었다는 점, 은행의 대출채권 부실이 아니라 자본시장의 유동화증권 등 유가증권 부실에 위기의 핵심이 있다는 점, 그리고 위기가 급속히 세계적 성격을 띠면서 세계화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1929년 대공황의 경우 금융활동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주식시장에 대한 규율 미비, 중앙은행의 잘못된 긴축정책, 예금보험제도의 결여 등이 금융위기를 발생시키고 또 확대시켰다. 80년대 이후 남미나 동아시아의 금융위기는 위험관리 기법과 효율적인 감독체제의 부족 등으로 인해 은행의 도덕적 해이를 막지 못한 결과 금융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번 금융위기는 이전처럼 금융시장에 대한 무지나 금융시스템의 낙후, 또는 위험관리 기법과 감독체제의 미비 때문에 투기적 거래나 과잉팽창을 막지 못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금융부문 전반의 발달이 투기적 거래와 과잉팽창을 부추긴 것이다. MBS, CDO 발행과 같은 유동화 기법의 발전과 CDS와 같은 보험상품의 발전, 그리고 자본시장을 통한 수시의 시장평가가 스스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과잉과 같은 투기와 팽창을 낳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자본시장의 유가증권 부실을 초래한 것이다.

또한 이전의 금융위기들과 달리 이번 금융위기는 한 국가나 특정 지역에 머무르지 않고 급속히 전 세계로 확산되었는데 이것 또한 고도화된 금융세계화의 산물이다. 1929년 대공황 때에도 공황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기는 했지만, 그때는 미국의 긴축정책과 국제적 금본위제도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금융위기의 확산은 금융세계화 속에서 전 세계의 자본시장이 연계되고 통합된 결과이다.

이와 같은 이번 금융위기의 특성은 선진 금융기법이나 효율적인 감독체제라 할지라도 자유방임과 시장경쟁 속에서는 금융의 본성인 투기적 거래와 금융팽창을 억제할 수 없고, 금융위기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자유방임과 시장경쟁 대신 금융안정과 경제발전을 더 잘 보장할 수 있는 질서와 공존에 바탕을 둔 새로운 경제질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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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순기자


ㆍ하나의 불씨가 세계를 불사르다 - 미국발 금융위기의 특징
ㆍ개인들도 금융버블 가담
ㆍ빠르고 광범위하게 확산

‘그날’이 오기 전 우리는 금융거품과 부동산거품이 두텁게 깔린 소파의 푹신함을 즐기고 있었다. 컴퓨터 마우스 클릭 한번으로 지구 반대편에서 주식을 사고 팔 수 있게 해준 금융세계화의 신속성, ‘선진금융기법’이 약속한 장기호황의 기대감은 우리를 매료시켰다. 우리가 달콤함에 취해있는 사이 ‘서브 프라임 모기지’라는 바람은 우리의 집과 직장, 재산을 쉽게 불에 탈 수 있게 바짝 말려가고 있었다. 대지가 건조해지면 단비가 내리는 게 시장의 원리라던 신자유주의자들의 외침과 달리 바짝 마른 대지 위에 마른 번개가 내리 꽂혔다. 2008년 9월15일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한 것이다. 리먼이란 불씨는 순식간에 세계 금융의 심장부 월가를 집어삼켰고, 그 불길은 다시 전세계를 불태우고 있다. 지구에 발딪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도 이 불길을 피해갈 수 없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과거의 금융위기에 비해 확산의 속도 및 범위, 부실규모가 빠르고 넓으며 크다.

확산 양상은 1930년대 대공황에 비해 즉각적이며, 90년대 아시아 등지의 금융위기에 비해 포괄적이다. 대공황은 1939년 2차대전이 발발하기까지 영국·프랑스·독일 등 제국주의 열강에 서서히 영향을 끼쳤다. 이 열강은 그 위기에 식민지 수탈 강화로 대응함에 따라 그 부정적 여파는 세계적 규모로 확산되었다. 선진국에서 발화된 위기가 전 세계를 위기에 몰아넣는 위험한 것이라면, 개발도상국발 위기는 개도국으로 그친다는 점에서 덜 위험하다. 역내 인접 국가로만 퍼졌던 90년대 아시아 금융위기가 좋은 예이다. 한성대 무역학과 김상조 교수는 “아시아 금융위기는 2년에 걸쳐 아시아 지역에만 확산됐지 미국 등 선진국에는 닿지도 않았다”며 “반면 이번 금융위기는 불과 수개월 만에 전 세계 누구를 가릴 것 없이 ‘금융버블’에 가담한 모든 사람에게 파급됐다”고 말했다.

 

지난 9월 리먼 브라더스 파산의 충격은 2개월 만에 오일 달러가 풍부한 중동 바레인의 아랍뱅킹에까지 미쳐 이 은행에 12억달러의 손실을 입혔다. 투자손실뿐 아니다. 각국은 수개월 만에 세계 금융시장 경색에 따른 외자 이탈(환율 급등), 경기 침체에 따른 수출 타격을 받았다. 지난 10월 말 세계 주요 주식시장 53곳은 지난해 말 대비 28조9527억달러(시가총액 합산)를 허공에 날렸다.






대공황 때 주요 피해 계층은 1차대전 이후 급등한 곡물가로 떼돈 벌었다 주식투자로 파산한 미국 농민 대다수, 경기불황으로 일자리를 잃은 전 세계 노동자들이다. 이번에는 서민들의 ‘금융시장 적극 가담’에 따른 직접 피해가 많다. 인하대 경제학과 김진방 교수는 “인터넷 등 정보기술 발달, 각국의 개개인들까지 역외 금융상품에 직접 가담할 정도로 전 세계가 금융자유화한 점 등이 과거와 다르다”고 말했다.

규모면에서 미국내 최대 3조달러(약 4426조원)로 추산되는 전체 금융기관의 부실자산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외환위기 때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등으로부터 빌려 메운 부실(583억달러)이나 미국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 파산 때 부실규모(1000억달러) 등 10년 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금융위기의 지속기간을 과거와 비교하기는 아직 이르다. 위기 해소 기준점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점도 있지만, 이번 금융위기가 언제까지 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서울대에서 열린 한 경제토론회에서 서울대 사회학과 최갑수 교수는 청중인 학생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이번 위기는 자본주의 경제체제 차원의 문제로 대공황 때보다 심각하다. (1929년 시작된) 대공황은 1945년 제2차대전이 끝나서야 사라졌다. 즉 이번 위기는 15년 이상 진행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여러분들 청춘이 다 지나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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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찬제기자


지난 9월12일 금요일 오후 6시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 회의실.


씨티그룹의 비크람 팬딧,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디먼, 골드만삭스의 로이드 블랭크페인, 메릴린치의 존 테인 등 월스트리트의 내로라하는 최고경영자(CEO) 30여명이 무거운 표정으로 앉아 있다. 헨리 폴슨 재무장관,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위원회(FRB) 의장, 크리스토퍼 콕스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 티머시 가이트너 뉴욕연방준비은행장 등 최고위급 금융당국자들도 참석했다.

가이트너 은행장이 입을 열었다. “정부는 구제금융을 할 의사가 없습니다. 내일 아침 다시 올 때 뭔가(공동 대응 방안)를 준비해 주십시오.” 위기에 빠진 리먼 브라더스와 메릴린치에 대해 한 말이다. 두 회사는 이제 백척간두에 서게 되었다. 누가 벼랑 끝에 서 있는 이 회사를 인수할 것인가. 폴슨도 “모두가 리먼 브라더스에 노출돼 있다”면서 금융회사가 자구책을 내놓으라고 다그쳤다. 이날 두 회사에 대한 구제금융 불가 선언은 리먼의 몰락을 재촉하는 불씨가 되었다. 그 불씨는 조만간 리먼을 삼키고 전세계 금융시장을 불태우게 될 것이다. CEO들은 오후 8시가 조금 지나 무거운 발검음을 돌렸다. 이로써 ‘월스트리트 역사상 가장 긴박한 주말’이 시작되었다.


 
9월13일 오전 9시 같은 회의실.


CEO들이 다시 모였다. 리먼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세계 최대 보험사인 AIG, 미 최대 저축은행 워싱턴뮤추얼 처리도 안건으로 올랐다. 모건스탠리의 존 맥 CEO는 답답한 나머지 아무도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 “이 끝은 어디입니까.” 리먼 인수에 관심이 있었던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정오가 다 될 때 쯤 인수 포기 결정을 내렸다.


 
9월14일 같은 회의실.

리먼 인수가 가능한 곳으로 영국의 바클레이즈만 남았다. 그러나 미 정부가 외국 은행에 돈을 대줄 리 없다고 판단한, 바클레이즈는 이날 오후 리먼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폴슨과 가이트너, 콕스는 남은 10여명의 CEO들에게도 “리먼 구제에 한 푼의 돈도 쓰지 않겠다”고 했다. 월스트리트의 터줏대감인 리먼의 리처드 풀드 CEO는 백방으로 뛰었지만, 결국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렸다.


 

9월15일 오전 1시 뉴욕의 리먼 본사.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리먼은 파산 보호 신청을 한다는 성명을 냈다. 158년 역사의 투자은행은 이렇게 사라졌다. 구제금융 불가 통보 30시간 만이다. 리먼의 몰락은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위기로 잠재하던 세계 금융위기에 불을 댕겼다. 미국·유럽·아시아·중남미 증시가 즉각 반응했다. 뉴욕증시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최대 폭락을 기록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성명을 냈다. “유로 금융시장 안정 유지를 위해 노력할 준비가 됐습니다.” 그리고 300억유로를 투입했다. 영국의 잉글랜드은행(BOE)은 50억파운드를 쏟아부었다.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성명을 냈다. “미 금융시작의 혼란은 미 경제에 중대한 위협이 될 것입니다.”

 
 




9월16일 일본, 유럽, 미국

일본은행은 1조5000억엔을 단기 금융시장에 긴급 수혈했다. 시라카와 마사아키 총재는 “적절한 금융시장 조절 등을 통한 원활한 자금결제와 금융시장 안정 확보에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라고 밝혔다. FRB도 AIG에 85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결정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금융시장 정상화 워킹그룹을 긴급 소집했다.


 
9월 18~20일

미국 등 6개 중앙은행은 18일 긴급 유동성 지원공조에 합의했다. 부시 대통령은 18, 19, 20일 연속 대국민성명을 내고 기자회견을 하며 7000억달러 구제금융안을 발표했지만, 불길은 이미 대륙을 넘은 뒤였다.
 


그후.

금융강국이라는 아이슬란드에서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가 발생했다. 게이르 하르데 총리는 10월 7일 국가부도 가능성을 경고했다. 8일 선진 주요국 10개 중앙은행은 이자 인하를 발표했고, 10일에는 G7이 고강도 금융안정대책을 발표했다. 10월 말 아이슬란드·파키스탄·우크라이나·헝가리·벨로루시 5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월스트리트에서 발화한 불씨는 이제 전세계를 태우고 있다. 신흥경제국과 개발도상국, 동유럽, 중동, 중남미를 가리지 않는다. 세계 경제 성장동력인 중국의 성장률은 7년 만에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아르헨티나는 민간연금을 국유화하고, 브라질과 멕시코의 기업 가치는 50% 하락하고 칠레는 통화가치의 3분의 1이 사라졌다. 금융시장이 발달하지 않은 아프리카는 선진국의 원조 감소로 허덕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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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2) 미국을 가다
로스앤젤레스 | 유희진기자


ㆍ“전 세계가 탐욕에 눈멀어 빚잔치를 벌였다”
ㆍ과도한 차입 의존 투자방식이 화근…“시스템의 위기”
ㆍ사무실 대출 등 터질 문제 많아…‘L자형 침체’ 예상


월가 생활 7년째인 코그네티(37)는 서브프라임 문제가 터지기 직전까지 그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미 국내 최대 규모로 꼽히는 은행의 판매부서가 그의 자리였다. 부서 내의 트레이더들이 주택저당증권(MBS)을 사들여 그것을 섞고 짜깁기해(구조화) 상품을 만들면, 그 상품을 투자자들에게 팔았다. 모기지 부실이 드러나며 일하던 회사의 부서가 구조조정돼 없어질 때까지 계속됐다.





월가를 나와 새출발을 한 그는 적응이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아온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다고 생각하면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금융위기의 진원지를 미국과 월가로 몰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부채담보부증권(CDO)의 경우만 해도 그렇죠. 월가에서 이것을 만들고 팔았지만, 누가 사갔습니까. 전 세계 사람들이 사갔거든요. 그들도 이게 위험자산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월가 사람들처럼 많은 돈을 벌고 싶어했습니다. 그런 욕심이 모이다 보니 전 세계에서 위험한 금융자산의 비율은 점점 더 커져간 거죠.”


이번 금융위기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탐욕에 빠진 결과라고 그는 강조했다. “월가 밖의 사람들도 빚을 내서 투자를 하는 것에 대해 겁을 내지 않았습니다. 만약 월가 사람들의 탐욕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저 역시 세계 각지의 사람들도 탐욕스러웠다고 말하고 싶네요.”


“그동안 월가에 있는 사람들이 많은 돈을 벌었죠. 저 역시도 1년에 20만달러 이상의 돈을 받는 것에 대해 한번도 이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특권을 누리고 살았어요. 하지만 월가의 금융회사는 살아남기 힘들 정도로 치열했어요.”



 


월가에 켜진 ‘빨간불’ 지난 14일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 있는 횡단보도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 세계 금융의 심장부로 호황을 누리던 월스트리트는 전 세계 금융위기의 진원지로 전락하면서 금융기관들이 연이어 파산하고 있다. 뉴욕 | 유희진기자


밥먹을 틈도 없이 일했던 당시의 상황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했다. “서로 경쟁하면서 많은 수익을 내려고 하다보니 스트레스가 심했죠. 저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곤 했죠. 개인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제가 겪은 월가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이 위기를 초래한 것은 월가 사람이라기보다 시스템이라고 생각해요. 과도한 레버리지(leverage·차입)에 의존한 투자방식이 문제였죠.”


그는 위험하게 질주하는 월가를 보며 “언젠가는 위기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그동안의 월가는 돈 놓고 돈 먹는 카지노 판이나 다름없었어요.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레버리지를 활용해 공격적으로 투자했죠. 월가에서는 레버리지로 돈을 버는 게 투자의 정석처럼 여겨지고 있었어요. 너도 나도 빚잔치에 뛰어들었습니다. 심지어 자본력이 약한 사람들조차 빚을 내서 돈을 벌려고 했어요.”


막상 문제가 터지자 정신이 없었다. 그는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고, 나에게 이렇게 빨리 그 불똥이 튈 줄은 더더욱 몰랐다”고 했다. “올해 초 회사에서 근무하던 부서가 구조조정으로 없어지고, 최종적으로는 그 거대한 금융회사가 다른 회사로 넘어가는 것까지 보면서 한동안 공황상태에 빠져 있었어요. 넋놓고 며칠을 보내다가 어떻게든 다시 직장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올해 3월 그는 부동산 관련 회사에 다시 직장을 잡았다. 그는 “지금도 사실 적응 중이어서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털어놓았다.


“별 수 있나요. 이제는 일한 만큼 버는 것에 익숙해지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는 지금의 경제 상황에 대해 낙관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직도 터질 게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모기지 관련 파생상품을 직접 팔았고, 또 그 규모가 얼마나 어마어마했는지도 잘 알고 있어요. 내가 취급했던 그 상품들이 다 드러났나 하고 생각해보면 아직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주택 외에도 사무실 대출이 남아 있다는 것도 알아야죠.”


한창 이야기를 하던 그는 갑자기 손가락으로 공중에 영어 알파벳 L자를 그렸다. “보통 U자형을 이야기하죠. 바닥을 찍었다가 회복세를 보인다고. 하지만 저는 이번 위기는 L자형 침체의 지속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물론 대공황까지의 위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주 긴 시간 동안 고통스럽게 진행이 될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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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2) 미국을 가다
로스앤젤레스 | 유희진기자


ㆍ‘모기지 피해자’ LA서민 루세로 이야기

# 빚내서 산 집들, 화재로 타 버려

로스앤젤레스의 국제공항에 도착했던 지난 15일 밤 9시. 백발의 택시 운전기사는 “좋지 않은 시기에 LA를 찾았다”며 “경제도 좋지 않은데 북쪽 지역에 큰 불이 나서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고 화재 소식부터 전했다.

플로리다, 네바다주 등과 더불어 미국 전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이 가장 많았던 곳으로 꼽히는 캘리포니아주. 뉴욕 월가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기반으로 한 복잡한 파생상품을 만들어 돈을 버는 동안 이곳의 많은 가난한 이들은 다른 꿈을 키웠다. 돈이 별로 없어도 내집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것이다. 그러나 월가가 몰락하자 그 알량한 집은 빚더미로 변했고, 길거리로 쫓겨나야 할 판이 되었다.

한인타운까지 가는 약 15분 동안 택시 기사는 “불이 난 지 벌써 3일째인데 불길이 쉬이 잡히지 않고 오히려 번져가고 있다”며 뉴스를 전해주었다. 속수무책으로 가치가 하락해 주인들의 가슴을 까맣게 태우던 집들. 그 집들이 화마로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설상가상이었다.




‘압류’ 딱지 붙은 채 방치 미국 로스앤젤레스 외곽 신도시 란초쿠카몬가의 한 주택이 지난 17일 은행의 ‘압류’ 간판이 세워진 채 방치돼 있다. 이 지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했던 사람들이 대출금을 갚지 못한 채 떠나면서 빈집들이 속출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 유희진기자>

# 저소득층 거주지가 바로 금융자본의 표적

16일 ‘뉴 스타’ 부동산의 중개인을 만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피해 현장을 묻자 몇군데를 꼽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인한 부실은 복잡한 파생상품 시장 구조와 맞물리며 전세계에 금융 위기를 몰고 온 근원으로 지목됐지만 피해 지역은 제한적이었다.

뉴 스타의 남문기 회장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자체가 소득이 적고 신용이 나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대출이지 않았느냐”며 “예외가 있겠지만 대부분은 저소득층들이 특히 많이 모여 살던 지역에서 문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17일 찾은 캘리포니아 남부에 위치한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의 란초쿠몬가(Rancho Cucamonga)시.

이곳은 남 회장이 지적한 ‘저소득층이 많이 살았던 지역 중의 하나’이자 일본의 저널리스트 쓰쓰미미카가 그의 책 <빈곤대국 아메리카>에서 말한 ‘과격한 시장 원리로 경제적 약자가 희생당한 지역’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뜨고 지는 동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손해를 보더라도 끝까지 자신의 집을 지켰지만, 경제적 약자들은 3~4년의 단꿈 끝에 영원히 희망을 잃었다.



# 희망이 꺾인 자리, 황량한 ‘신도시’

동네 입구 쪽에 위치한 2층 집 앞 잔디는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누렇게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나무들은 제멋대로 뻗었다. 시들어버린 잔디밭 위로 솟은 집 세일 광고판만이 바람에 흔들리며 빈집을 지키고 있었다. 광고판에는 은행의 전화번호가 선명했다. 부동산 중개인 주디 현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집을 샀던 사람이 은행에 대출금을 내지 못해 압류 압박에 시달리다가 결국 집을 포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에 살고 있던 사람이 포기를 선언하면, 집은 대출을 해줬던 은행으로 넘어간다.

이 동네에 이런 식으로 은행차압매물(REO·은행소유집)이 매물로 나와있는 게 약 7채 중 하나 꼴이었다. 그는 “은행집으로 나와있는 빈집이 이 동네에만 무려 250채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빈집이 많은 동네는 사람 냄새보다는 냉기가 돌았다. 동네를 돌아보는 동안 5분 단위로 집을 내놓은 은행의 광고판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런 집들은 전부 빈집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여전히 새집 냄새가 채 빠지지 않은 집의 유리창이 깨져 있기도 했다. 그는 “비싸게 산 집을 뺏기고 나가니까 화가 난 사람들이 분을 삭이지 못해 유리창을 깨거나 집을 부수고 나간다”고 설명했다.




# 말 한 마디 걸기 힘든 냉랭한 동네

오가는 사람들은 말 한 마디 걸어보기 힘들 정도로 냉랭했다. 겨우 한마디 나눌 수 있었던 동네 주민 얄루(43·여)는 “지나가다가 잔디가 죽어서 누렇게 된 집을 보면 자연스럽게 저 집도 버티지 못하고 어디론가 쫓겨났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며 “이 집도 은행집, 저 집도 은행집, 이렇게 늘어나는 은행집들을 보다보면 서브프라임 대상이 아닌데도 대출을 끼고 집을 산 나까지 불안해진다”고 말했다.

빈집 내부는 더욱 엉망이었다. 벽면 가득 써 있는 알아보기 힘든 낙서들. 주먹으로 몇번이나 내려쳤는지 우그러져 있는 곳곳의 벽면. 이사가는 사람들이 붙박이 형태로 되어 있는 에어컨과 가스 오븐레인지를 억지로 떼어가 칠이 벗겨진 벽도 흉하게 드러났다.

란초쿠카몬가는 본격적으로 주택 공급이 시작된 지 10년도 되지 않은 신도시다. 로스앤젤레스 도심부에서 약 한 시간가량 떨어져 있어 도심에 비해 집값이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됐다. 게다가 대량으로 주택이 한꺼번에 공급되자 이 주변의 집들은 30만달러에서 50만달러 사이의 비교적 저렴한 수준에서 거래가 이루어졌다.

한창 미국 주택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던 2004년. 은행은 앞다투어 사람들에게 이 집들을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이용해 팔았다. 란초쿠카몬가뿐만이 아니었다. 로스앤젤레스 외곽 지역의 팜데일·코로나·폰타나 등의 신도시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주택들이 완공되어 매물로 나왔다. 은행은 주택 공급은 계속되는데 집을 살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중산층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자 자연히 집 없는 저소득층을 향해 공격적인 영업을 하기 시작했다. 많은 이민자와 저소득층 미국 시민들은 생애 첫 주택의 꿈을 이곳에서 이뤘다. 이들은 저소득층이 밀집해 살던 도시를 탈출해 이 신도시에 새 집을 얻었고, 안전을 얻고, 자녀들은 좋은 학군을 얻었다. 한때나마 신도시들은 환희가 가득하던 땅이었다.






# 그것은 꿈이었을까

마리사츠 루세로(37·여)도 그 중 한사람이었다. 팜데일에 처음 집을 사던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녀는 띄엄 띄엄 행복했던 시간을 회상했다. “행복했고…흥분됐고…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죠.”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조차 버거운지 처음 몇분 동안 루세로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마리사츠는 1989년 남편과 과테말라에서 이민왔다. 가진 돈이 없었던 그녀는 15년 가까이 월 1500달러에서 2000달러 되는 월세 집을 전전했다. “미국에 이민와서 살면서 내 집을 갖는다는 것은 ‘꿈’ 그 자체였어요. 삶을 살아가는 최종 목표이기도 했죠. 그런데 4년 전에 저처럼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는 거예요. 나도 가능할까? 은행에 문의를 해봤죠.” 조바심을 냈던 것과 달리 은행에서는 빠르게 서류 작업을 끝냈다. 마침내 35만달러짜리 집을 샀다. “정말 꿈이 이루어지던 순간이었어요.”



# 가난한 자의 꿈을 이용한 약탈적 금융

은행과 모기지 업체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저소득층에게 팔면서 집요하게 그들의 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들이 집을 사는 꿈을 포기할 수 없도록 유혹하기 위해 사려는 집의 담보 가치를 100%로 잡아 대출을 해주는가 하면 처음 2년 간은 획기적으로 낮은 이자율을 매겼다. 대출 불가능한 요소들은 모두 없앴다. 저소득층을 겨냥한 약탈적 금융 게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한달에 1000달러 안팎의 돈을 지불하면 됐어요. 은행에서는 집 값이 오르면 그 오른 돈으로 대출이 가능하니까 제 사업도 더 잘될 거라고 격려했어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는데….”

루세로와 남편은 집을 산 후 수입의 절반을 대출금으로 냈다. 다행히 페인트 칠을 하며 집 리모델링 일을 하던 남편은 주택 경기 붐을 타고 호황을 맞았다. 우편물을 포장해 보내는 일을 하는 루세로의 수입도 나쁘지 않았다. 평생 살 내 집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돈을 아끼고 아껴 정원을 꾸미고 아이들 놀이방도 만들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7년초부터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2005년 정점을 찍은 집 값은 서서히 하락세를 보였고 늘어난 대출금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둘 집을 포기하고 사라졌다. 루세로도 대출 상환 압박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집 값이 하락하면서 은행은 기존에 내던 대출금보다 더 많은 돈을 요구했다. “한달간 남편과 벌어들이는 돈을 고스란히 대출금으로 내야 하는 상황이 오자 생활이 불가능해졌어요. 우리도 먹고 살아야 했고, 세 아이들의 교육비도 만만치 않았는데 말이죠.”


# 친철하던 은행이 느닷없이 집을 가압류

주택경기 침체는 남편의 수입에도 영향을 미쳤다. 결국 2008년 1월부터 4개월 동안 대출금을 내지 못했다.

“제일 화가 나는 건 은행의 태도였습니다. 처음 대출을 받을 때는 집값은 계속 오를 테니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확신을 심어주었죠. 아무것도 몰랐으니 믿었지요. 아니 믿고 싶었습니다. 수입이 줄어 한달에 1000달러씩 내는 게 힘들다고 하니까 500달러로 낮추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한달에 500달러 지불로 서류 작업까지 끝냈는데 느닷없이 2주 후에 집은 가압류될 테니 나가라고 했어요. 은행은 더 이상 저에게 친절하지 않았습니다.”

집을 포기할 수 없었던 루세로는 그 때부터 필사적으로 대출금 막기를 시작했다. 카드로 돌려막기를 하며 임시변통을 했다. 카드에서 더 이상 돈을 뺄 수 없을 때가 됐을 때는 삼촌에게 돈을 빌리며 버텼다. 그러나 이미 집은 루세로로부터 멀어져가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사람들이 은행에 집을 빼앗기고 떠났다. 설상가상으로 빨리 집을 팔려는 은행이 집 가격을 낮춰 급매물로 내놓으면서 동네 집값은 평균적으로 40%나 떨어졌다.


# 눈물로 기도하던 나날들

“모든 것이 잘 될 거라고 매일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다섯이나 되는 가족들이 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더 필사적으로 버텼죠. 남편과 저는 열심히 일했고, 집에도 계속 정성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하늘은 제편이 아니었어요. 사람들이 집을 떠나고 분위기가 뒤숭숭해지면서 동네에 도둑이 들끓었습니다. 한번 도둑 맞았을 때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두번째 도둑이 들어 집이 엉망이 됐습니다. 그 때 확실히 알았어요. 이제 집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떠날 때라는 것을.”

그렇게 루세로는 올해 초 집에 대한 포기를 선언했다. 집은 은행 소유로 넘어갔다.

전미 모기지은행가협회(MBA)는 2007년 말 기준으로 주택소유자 중 300만명가량이 대출을 연체 중이며 마리사츠의 경우처럼 주택을 가압류당한 경우는 100만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올해는 전년에 비해 가압류 당한 수가 50%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캘리포니아주는 주택 242가구 가운데 1가구 꼴로 가압류 절차가 진행중이다. 10월20일 발행된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는 이렇게 쫓겨난 이들이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온타리오 텐트촌에서 텐트를 치고 난민처럼 살며 1930년대의 대공황 풍경을 재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 다른 사람처럼 길거리 쫓겨나지 않아 다행

루세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제가 가족들을 데리고 나와 사무실에 딸린 방에서 몰래 살고 있을 때 건물 주인이 그 사실을 알고 도움을 줬어요. 미국에서는 가족 다섯명이서 한 방에 살 수 없게 금지하고 있거든요. 지금은 외곽 지역에 월 1300달러의 집을 얻어서 살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처럼 길거리로 나앉지 않았죠. 우리 사랑하는 아이들과 헤어지지도 않았어요. 그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해요.” 그러나 앞으로는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이제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다시 집을 살 수는 없겠죠. 제 신용은 이제 엉망이거든요. 하지만 그 건 당장 큰 걱정이 아니에요. 크리스마스가 오고 연말이 오면 제가 하는 우편물 사업은 더 잘 될 텐데 빈털터리가 된 저는 당장 사무실을 얻을 돈도 없네요.”

이야기를 마친 후 루세로는 한참을 망설이는 듯하더니 운을 뗐다. “당신은 한국인이죠. 한국인은 똑똑한 것 같아서 부러워요. 이곳에 이민와서도 다들 좋은 집을 사서 잘 살아요. 그런데 우리 같은 사람은 왜 그렇게 안될까요. 열심히 살아도 안좋은 일만 따라다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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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2) 미국을 가다
뉴욕 | 유희진기자


ㆍ재취업한 코그네티 ‘침체기의 지혜’ 강조
ㆍ뒷모습 촬영도 거절…연방 찬물 들이켜


코그네티를 만난 곳은 뉴욕 42번가의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시간은 오후 5시를 막 넘어서고 있었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정신이 멍할 정도였다. 사람들 틈을 뚫고 터미널 한구석에 위치한 미니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얀 얼굴에 갈색 머리, 푸른 빛이 감도는 눈동자의 그는 “멀리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겠다”며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건넸다. 코그네티를 소개해 준 지인에게서 “너무 개인적인 것들에 대해 물어보면 안 된다”고 사전에 주의를 받아뒀던 터였다. 그로부터 듣고 싶은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자신의 중간이름(미들네임) 외엔 모든 정보를 숨겨달라고 했다. 뒷모습이라도 찍으면 안 되겠냐는 요청에 그는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회사에서 모든 언론과의 접촉을 하지 않겠다는 계약서에 서명을 했거든요. 누가 알아보면 어떡해요. 혹시라도 문제될 수 있는 것은 안하고 싶네요. 한 번 해고된 것에 대한 후유증이 큰가봐요. 너무 소심해졌어요.”


경기가 어려울 때 재취업을 했기 때문에 이래저래 회사 눈치를 많이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제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한가지 뿐이에요. 이 침체기가 길어질 것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침체기를 사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테면 이 회사에서 절대 해고되지 않는 것이 그 지혜 가운데 하나겠죠.” 이야기를 하는 내내 그는 연방 속이 타는지 계속해서 찬물을 들이켰다. 블랙베리(휴대전화)를 꼭 움켜진 손은 마치 중요한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디 연락올 데가 있나봐요”라고 묻는 기자에게 그는 검정색 블랙베리폰을 들여다보이며 “한때 월가에서 세일즈를 할 때는 블랙베리로 e메일을 확인하는 게 정말 중요한 일이었거든요. 언제, 어디에 있든 수시로 확인을 했어요. 그 습관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 이 직업병도 사라지지 않겠어요?”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처음 맞는 최악의 경제위기 한가운데 있는 코그네티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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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2) 미국을 가다
뉴욕 | 유희진기자


부동산 파생상품 트레이더 김항주씨의 고백

# 속도에 목숨을 건다

미국 최대 저축은행 워싱턴 뮤추얼에서 일했던 재미교포 김항주씨(34·사진). 지난 8년간 외환 전문 헤지펀드
QFS, 얼라이언스캐피털, 구겐하임파트너스 등 월가의 여러 회사를 거치며 월가의 흥망성쇠를 경험한 부동산 파생상품 트레이더(설계인)다.

 



올해 초 워싱턴 뮤추얼에서 근무하고 있던 부서가 없어지면서 월가를 나오게 된 그는 현재 알파리서치캐피털이라는 금융 부티크 회사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요즘 하는 일이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예전에는 월가에서 고공행진하는 부동산을 가지고 파생상품을 만들어 장사를 했는데 지금은 가치가 떨어진 부동산을 가지고 거래를 연결해주는 고물 장사를 하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지난 13일 뉴욕 맨해튼 32번가의 한 찻집에서 만난 그는 남방에 편안한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분주했다. 그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일”이라며 “중간 중간 휴대전화로 거래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끊어질 수 있으니 이해해달라”고 양해를 구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국으로 이민오기 전 서울 매봉역 앞 비닐하우스에서 어렵게 살았다는 그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월가에 진출했다고 말했다.

“1992년 조지 소로스가 영국에서 환투기를 해서 1조원을 벌었다는 것을 신문에서 봤어요. 돈을 이렇게도 벌 수 있구나라고 깨달았죠. 새로운 세계가 보였습니다. 그 때 이쪽 분야로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인생은 계획대로 순조롭게 흘러갔다. 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튼스쿨에 진학해 금융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컬럼비아대학 대학원에서 금융을 전공했다. 졸업 후 월가에 첫발을 내디딘 후 2005년 월가의 마지막 직장인 워싱턴 뮤추얼에서 본격적으로 모기지 파생상품 일을 시작했다.

모기지 대출회사에서 주택담보부채권(MBS)을 사들여 그 것을 패키지화하고 구조화하는 작업을 해서 기관투자가들에게 팔았다. 혼자 한 달에 1조달러 규모의 거래를 했다.

# 한달 100만달러 거래는 보통

“월가의 금융회사들은 효율성과 속도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에요. 한 개인에게 1조달러 정도 맡기는 건 예사죠. 안에서 일하다보면 이게 참 모순이 많아요.” 그는 프랑스의 한 투자은행의 사례를 들었다.

 

“올해 초 프랑스의 한 투자은행이 7조원의 손실을 보았는데 이 손실을 나게 한 장본인은 서른살 먹은 트레이더였어요. 이 사람이 선물시장에서 매도할 것을 매수한 거죠. 이렇게 포지션을 반대로 해서 7조5000억원을 까먹었는데 그 사람 연봉이 3억원에서 5억원 사이예요. 의사 결정 과정이 너무 복잡한 것도 좋지 않지만, 월가는 효율성을 위해 그 많은 과정을 생략하다 보니 이런 일들이 생겨나는 거죠.”

그는 월가 내부의 모습을 묘사하며 시종일관 전쟁터에 비유했다.

“월가에서는 연구원들을 영입해 모델을 개발하게 하죠. 이게 파생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는 거예요. 위험을 분산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그는 연구원들을 전쟁터에서 쓸 무기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복잡한 수학 공식이 이 무기를 만드는 데 필요해요. 그런데 이 연구 개발자들이 무기를 만들면서 너무 복잡하게 만들려다보니 한 가지를 빼먹었어요. 계산을 해보면 최종적으로는 이 무기가 아군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한 거죠.” 그는 바로 여기에서 위험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트레이더인 저는 그 무기를 받아 들고 옮겨요. 전쟁터에서 저는 그 무기를 들고 싸우는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그 무기가 쉽게 부서지지 않도록 그 사이에 보호장치를 이것 저것 집어 넣습니다. 금융용어로 위험 헤지(방지 혹은 분산)를 한다고 하죠. 구조화를 하고, 묶는 것(패키지)이 바로 이런 작업들이에요. 그런데 여기서도 오류가 났어요.”

# 월가 사람, 능력 과신으로 기차와 함께 추락

연구원들이 아군도 죽일 수 있는 수학식을 만드는 실수를 했다면 트레이더들의 실수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어떤 것도 다 헤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 맹목적인 믿음”이라고 했다.

“부동산시장 전체 가격이 떨어지는 것처럼 시장 전체가 망가지는 위험은 절대 없앨 수 없는 것인데, 없앨 수 있다고 믿은 거예요.”

그는 월가 사람들이 “오만했다”고 평가했다. “얼마나 똑똑한 사람들인데 집값이 언젠가는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왜 몰랐겠어요? 다만 자신의 머리와 능력을 너무 과신해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기 직전까지만 장사를 한 후에 기차에서 뛰어내리겠다고 생각한 거죠. 근데 너무 욕심을 부리다가 기차에 탄 채 함께 추락한 겁니다. 심지어 이 떨어지는 기차에 가속도까지 붙었어요.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 거죠.”

# 월가 사람들에 대한 편견

그는 월가 사람들이 다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건 환상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투자은행 1위인 골드만삭스가 돈 버는 방법을 보면 똑똑한 게 아니라 비열해요. 기름을 잔뜩 사놓고 시장에 소문을 퍼뜨립니다. ‘오일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그럼 시장에서는 소문이 퍼지고 자기실현적 예언으로 발전해 시장이 반응을 합니다. 상상이 가시죠?” 가격이 오를 때 골드만삭스는 미리 사두었던 기름을 풀어 돈을 번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파워가 있었으니 그렇게 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힘들겠죠.”

월가가 벌여놓은 일들을 풀어나가는 일은 훨씬 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것 또한 월가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월가는 인적 자원에 의해 돌아가는 동네예요. 복잡한 파생상품을 만들 줄 아는 고도의 전문직들이 모여 있었죠.” 그는 만화에서 흔히 묘사되는 소림사 무술 배우기에 비유해서 설명했다. “소림사에서 3년 동안 밥하고 빨래 해준 후 무술을 배우면 천하를 제패할 수 있듯이 월가가 그랬어요. 학벌과 실력을 가진 사람이 월가라는 동네에서 3~4년 고생하며 기술을 배워요. 위험을 헤지하는 것, 투자자들 입맛에 맞게 상품을 짜는 것 등을 배우죠. 그러면 세계 금융계를 좌우할 수 있었죠.”

# 월가 안에서만 돌고 도는 금융기술

그렇게 해서 배운 기술들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았다. 월가 안에서 돌고 돌았다. 그래서 밖에서는 들여다볼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세계로 만들어 놓았다.

그 대가로 월가 사람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인해 부실이 터져나오기 전까지 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월가 생활 10년차를 눈앞에 두고 있던 그는 1년에 약 3억원에서 5억원 정도의 연봉을 받았다. 월가의 관례로 10년차가 넘으면 통상 연봉이 수직 상승한다. 말하자면, 그는 고액 연봉을 코앞에 두고 좌절한 것이다.

“지금까지 모든 면에서 잘나갔는데 중간에 꺾여버리니까 막막하고 허탈감이 밀려왔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두려움이 밀려왔어요.”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내가 한 일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을 벌고 너무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했다.

“과연 월가는 정당했을까 생각했더니, 아니었어요. 월가는 방종으로 흘렀어요. 사람들 또한 고액 연봉만을 바라보며 미친 듯이 질주하며 달렸죠. 1년에 적어도 4번은 호화 해외 여행을 다니고, 별장을 사고, 아이들도 고급 사립학교에 보냈죠. 요즘 그런 사람들 중 해고된 후 잠못이루는 사람 많을 겁니다. 월가는 현재 금융회사의 무덤이 되고 있어요.”

# 투자은행 설립은 망하는 지름길

투자은행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에 “망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일단 한국은 투자은행에 대해 너무 모릅니다. 월가의 투자은행은 의사결정 단계가 매우 짧고 빠르게 움직이죠. 가장 높은 사람까지 가는 데 두 단계밖에 안걸려요. 하지만 한국은 위계질서가 얼마나 분명한가요.” 그는 한국의 최고경영자(CEO)들이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직원들에게 수조원을 다루도록 허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환경도 좋지 않아요. 미국은 처음에 따로 시작했다가 금융상품이 엮이기 시작하면서 위에서 꼬여 상황이 악화됐죠. 한국은 어떤가요. 이미 계열사끼리 얽히고 설켜 있어서 기본부터가 꼬여 있어요. 여기에 금융상품까지 얽히기 시작하면 정말 대책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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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2) 미국을 가다
뉴욕 | 유희진기자



ㆍ선진금융의 고향… 자부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14일 모건스탠리 본사 건물. 전광판에서 당일의 증시 상황이 실시간 중계되고 있다. <뉴욕/유희진기자>



지금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금융위기의 진원지 뉴욕. 아이러니하게도 전 세계에 금융폭탄을 터뜨린 뉴욕은 경제위기에 가장 느리게 반응하고 있었다. 막 쇼핑을 끝낸 여성들은 큰 쇼핑백 두세개씩은 들고 다녔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3명 중 한 명꼴로 스타벅스 커피를 손에 들었다. 겉으로 보기에 뉴욕은 여전히 흥청망청인듯 보였다. 그러나 뉴욕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구석구석을 돌아다닐수록 뉴욕에도 균열이 시작되고 있음이 감지되었다.

10:40 타임스퀘어

두달 전 파산한 리먼 브라더스 본사 건물이 있던 곳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은 길을 묻기 위해 48번가의 조그만 편의점으로 들어섰다. 아르바이트생 카마라(29)는 길을 묻는 기자에게 바로 건너편에 있는 745번지를 가리키며 그 날을 떠올렸다. “이 주변은 항상 혼잡하지만 리먼의 마지막 모습을 찍기 위해 전 세계에서 취재진들이 몰려든 그 때의 타임스퀘어 주변은 정말 발디딜 틈도 없을 만큼 붐볐지요.” 본사 정문 앞에 설치된 수많은 언론사의 카메라들은 짐을 싸서 나오는 직원들의 모습을 담았다. 인터뷰를 피해 도망가는 사람들을 쫓아가 끝내 마이크를 들이대는 모습을 잠시 구경하던 카마라는 그 때 ‘회사 하나 망한 게 그렇게 큰일인가’ 싶어 별 생각 없이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맨해튼 중심부인 49번가 745번지. 화려한 3단의 전광판을 앞세운 34층의 고층 빌딩에는 불과 두달 전만 해도 ‘리먼 브라더스’라는 금색의 글자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이제는 ‘바클레이즈 캐피털(BARCLAYS CAPITAL)’로 바뀐 건물을 바라보며 카마라는 “당시에는 취재진들이 모여 짐을 싸서 나가는 리먼 직원들의 모습을 찍어가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요즘 내가 해고 걱정으로 잠을 설치면서 그 의미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인근에서는 ‘모건 스탠리’가 그 날의 증시를 전광판에 중계하며 여전한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11:30 우리아메리카 은행 맨해튼 지점

이병웅 이사는 “우리아메리카은행은 다행히 예금을 초과해 대출을 하지 않아 경제위기 속에서도 큰 어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뉴욕의 호텔비에 혀를 내두르는 기자에게 “뉴욕의 살인적인 물가는 나이와 경력에 비해 과도하게 돈을 벌어 흥청망청 썼던 월가 사람들의 사치가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1년에 억 단위의 보너스를 받는 30대 초반의 월가 금융인들은 보너스를 받을 때마다 아파트의 평수를 늘렸고 고급 식당에서 고급 술을 마셨다. 그들의 씀씀이에 맞추어 고급 호화 식당들이 속속 들어섰고 다른 가게들까지 그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자연히 월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붕괴는 동시에 월가를 겨냥해 만들어진 고급 식당·명품점들에도 직격타였다. 그는 “지금 당장의 뉴욕은 괜찮아 보이지만 월가에 해고 바람이 불고 있는 이상 서서히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12:30 택시안에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로 뉴욕은 대낮부터 어둠이 짙게 깔렸다. 거리에 앉아 구걸을 하던 노숙자들은 비를 피해 건물 사이 사이로 파고들었다. 월가에 가기 위해 올라탄 택시. 택시 운전사 콴(38)은 “경기침체 취재를 위해 월가에 간다”는 기자의 말에, “나도 경제위기의 피해자”라고 응수했다. 그는 “요즘은 직장에서 해고된 젊은 사람들이 단기 아르바이트 삼아 택시 쪽으로 많이 밀려오고 있다”며 “승용차로 불법 택시 영업을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 전보다 수입이 절반은 줄어들었다”고 불평했다. 차가 막혀 20분 정도 지나서야 택시는 세계 금융위기의 진원지이자 택시 기사의 수입을 절반이나 갉아먹은 월가에 도착했다.

13:00 골드만삭스 앞

 


파산한 리먼 브라더스 본사 건물. 지난 14일 이 건물 간판은 ‘바클레이즈 캐피털’로 바뀌어 있었다. <뉴욕/유희진기자>



30층은 족히 되어 보이는 붉은색 건물 어디에도 세계 1위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를 상징하는 간판은 없었다. 오가는 직원들을 상대로 취재하려는 기자에게 건물 경비원으로 보이는 사람은 “민감한 시기에 민감한 이슈로 어떤 이야기도 나눌 수 없고 사진도 찍을 수 없다”며 모든 취재를 원천봉쇄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비밀 클럽을 연상케 하는 철저한 보안이었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경비 태세에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14:40 뉴욕 증권 거래소

폐장시간을 1시간20분 남겨둔 뉴욕 증권거래소 앞에는 불안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선진 금융의 상징이지만 이날따라 그 자부심은 느껴지지 않았다. 가슴 한 쪽에 명찰을 단 다섯명의 직원은 따로 떨어져 각각 건물에 기대고 서서 담배를 피웠다. 그들 사이에는 어떤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들어갔다 싶으면 10분 뒤에 다시 나와 초조한 얼굴로 건물 앞을 서성거렸다. 다음날 뉴욕 타임스는 14일 다우증시가 330포인트의 낙폭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15:30 JP 모건 체이스 은행

월가로 가는 입구에 위치한 이 은행 직원 4명이 모여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시름 깊은 얼굴이었다. 넥타이를 풀어 헤친 루이스 도슨(33)은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지만 곧 감원이 시작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은 다들 아침에 30분씩 일찍 출근해 일을 시작한다”며 “모두들 자신이 해고 대상이 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16:40 월가 피트니스 클럽

월가 모퉁이에 있는 한 피트니스 클럽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중년 남자 1명만이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기를 하며 땀을 흘리는 모습이 보였다. 피트니스 클럽의 주인은 “월가 사람들은 건강이나 몸매 관리에도 철저해 주식시장 폐장 시간이나 퇴근 전에 들러 운동을 하고 간다”고 전했다. 그는 “그러나 월가에 해고 바람이 불기 시작한 후에는 회원 수가 30% 이상 줄었다”며 “등록되어 있는 회원들도 시간을 내기 힘든지 뜸하게 오거나, 오더라도 운동을 즐기지 못한다”고 말했다.

17:30 부동산 에이전트 크리스퍼 김

부동산 중개업자 김씨는 “월가가 한창 호황일 때는 그들의 수입에 힘입어 맨해튼 주변의 평균 아파트 가격이 11억원에서 13억원대에 이르렀다”고 했다. 이들 아파트 가격이 월가의 해고 바람으로 조금씩 빠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올해 월가에 보너스 잔치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아마도 감당하기 힘든 고가의 아파트를 팔고 싼 아파트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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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2) 미국을 가다
뉴욕·LA | 유희진기자


ㆍ금융인·서민 ‘몰락의 두 얼굴’
ㆍ월가 구직시장 썰렁해도 “아직 버틸만”…LA선 집 가압류 사태속 ‘빈털터리’ 증가


뉴욕 월가와 로스앤젤레스는 신자유주의의 황혼에 물들어가는 2008년 11월의 미국을 상징한다. 월가 금융인의 추락, 그들의 자본 놀음에 이용당한 서민의 절망을 말하기 위해서는 두 도시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뉴욕 맨해튼의 99센트숍은 13일 밤 늦게까지 손님들로 북적였다. 금융위기가 시작된 이후 고가의 상품을 파는 백화점 매출은 줄었지만 반대로 99센트숍의 손님은 두배 이상 늘었다. 뉴욕 | 유희진기자



두 도시는 대륙의 동과 서로 떨어져 있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라는 폭탄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2000년 초반에 시작됐던 빚잔치를 끝내가고 있었다. 그 파티에는 너나 없이 초대받았고, 모두 힘들어졌다. 그러나 이 파멸의 기획자와 피해자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7년 가까이 월가에서 모기지 채권 파생상품 판매를 담당하던 코그네티(33)는 금융위기가 시작되던 올 초 구조조정으로 자기 부서가 없어지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동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전같으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오는 순간부터 헤드헌터들이 일자리 제의를 하며 몰려들었을 테지만, 이번엔 썰렁하다. 그래도 그는 매를 먼저 맞아 나은 경우였다. 비교적 일찍 해고됨으로써 구직 시장이 달아오르기 전에 부동산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회사에서도 경제위기로 끊임없이 해고 위협을 받는 상황이라 이 자리도 그렇게 안정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아직은 버틸 만하다.


100년 동안 세계 금융의 심장이었던 월가.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세계 경제 대국 미국에서도 명실상부한 상류층을 차지하고 있다. 미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내 금융산업 종사자 중 평균 소득 수준이 가장 높은 곳은 이 월가가 위치한 뉴욕주였다. 뉴욕주 금융업계 종사자의 평균 임금은 13만1660달러(약 1억5000만원)에 달했다.


그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주저앉게 됐지만, 그동안 자기가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위험이 있었는지도 분명히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고액 연봉의 대가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의 교육을 받았고 똑똑한 사람들이다. 코그네티처럼 인생에서 한번 실패를 맛보았다 해도 새로운 길을 찾아 갈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



그러나 저소득층은 아무 것도 몰랐고, 그리고 가진 것을 다 잃었다. 금융 자본은 마리사츠 루세로(37·여) 같은 가난한 자를 위험한 돈놀이 게임에 끌어들여 엄청난 이윤을 챙기고는 빚쟁이로 전락시켜 길거리로 내팽개쳤다. 이제 다 끝난 마당인데 돈이 없어도 내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미끼에 걸려든 루세로의 고통을 누가 알아주기나 할 것인가.

LA카운티 남부 란초쿠카몬가시에 사는 루세로는 생애 처음 가졌던 집에서 단 4년을 살고난 후 은행의 가압류에 밀려 쫓겨났다. 2004년 집값 100%를 은행 대출로 받아 집을 샀다가 상환액이 4개월 밀리면서 신용이 엉망이 되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함께 죽을 고생을 하면서 모았던 금쪽 같은 그 모든 돈들이 집과 함께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는 빈털터리가 되었다.



미국에서 루세로처럼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집을 샀다가 가압류당한 주택은 2007년 한해 동안만 100만채가 넘는다. 가압류 주택의 수는 올해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남편과 맞벌이를 해서 월 2500달러 정도를 벌고 있는데 한달에 월세로 1300달러를 내고 있어요. 남은 돈으로 다섯 식구가 먹고 사는 빠듯한 생활을 하고 있죠. 가족들과 뿔뿔이 흩어져 길거리에 나앉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그는 왜 이렇게 됐는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지금까지 밤낮으로 일하며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걸까요. 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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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1) 아이슬란드를 가다
레이캬비크(아이슬란드) | 김재중 기자



미국식 금융자본주의 모델의 모범생 아이슬란드는 한때 그 놀라운 성장으로, 이제는 붕괴의 깊이와 속도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지난해에도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4위를 기록하고, 유엔 주도 설문에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꼽히면서 부러움 섞인 시선을 받았지만 이번은 사정이 다르다. 아이슬란드는 ‘1976년 영국 이후 최초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신청한 서방국가’라는 치욕적인 ‘가시 면류관’을 쓰게 됐다.




아이슬란드의 급속한 도약, 그 도약보다 더 급속한 추락은 지난 30여년간 ‘시대정신’으로 군림해오다 그 지위를 도전받고 있는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위험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모순을 이처럼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를 찾기 어렵다. 아이슬란드는 수산자원과 전력자원, 온천과 간헐천, 빙하를 중심으로 한 관광자원 외엔 이렇다할 자원이 없는 나라였다. 대부분의 공산품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물가상승이 항상 골칫거리였고, 정부는 금융을 철저히 통제해 왔다.

그러나 90년대 다비드 오드손 총리 주도의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 도입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현재 아이슬란드 중앙은행장인 그는 91년부터 14년 동안 총리로 재임하면서 공격적인 금융 자유화를 추진했다.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각종 규제를 완화했다. 법인세도 순차적으로 내려 90년대까지 50%였던 법인소득세율이 현재는 18%다. 97년부터는 정부 소유 대규모 은행의 지분매각이 시작됐다. 총리실이 진두지휘한 주요 은행들의 민영화는 2003년 완료됐다. 세계 각지에서 높은 이자율을 쫓아 돈이 몰려들었다. 외국자본이 넘쳐났고, 아이슬란드 크로나화는 강세를 보였다.

민영화된 은행들은 아이슬란드 내부 시장이 너무 작아 성장에 한계를 느끼자 영국·네덜란드·노르웨이 등 유럽으로 나가 몸집을 키워나갔다. 정부는 사실상 투기에 가까운 은행들의 영업행태를 용인했다. 카우프싱·란츠방키·글리트니르 등 3대 은행의 자산규모는 아이슬란드 국내총생산(GDP)의 12배가량에 달했다. 그러나 이 중 70%는 해외 자산이었다.

하지만 국내 제조업 기반이 낮은 아이슬란드는 경상수지 적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아이슬란드의 2008년 2·4분기 대외채무는 약 1205억달러로 GDP의 7.3배를 기록했으나 외환보유액은 36억7000만달러(9월말 기준)에 불과했다.

결국 아이슬란드 은행들은 자신들이 복제했던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쓰러지기 시작하자 자금 회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한순간에 무너졌다. 토르올브르 마티아손 아이슬란드 국립대학 교수는 “아이슬란드 위기는 금융 자유화에 따른 은행의 과잉성장과 그것을 제어할 시스템의 부재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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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1) 아이슬란드를 가다
레이캬비크(아이슬란드) | 김재중 기자



ㆍ국가부도 위기 아이슬란드 - 보험판매원 올라프스도티르


잉기비요르크 올라프스도티르(49·여)는 요즘 시간이 나는 대로 전에 일하던 레스토랑 몇 곳에 전화를 걸어본다. 주말 파트타임 자리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보험판매원인 그는 최근 남편이 다니던 건설회사의 부도로 실직하자 생계 유지를 위해 일을 하나 더 찾기로 결심했다. 지난 12일 자신이 일하는 보험회사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올라프스도티르는 “한달 수입이 약 65만크로나(금융위기 전 환율로 1200만원가량)였는데 남편이 얼마전 일자리를 잃으면서 약 30만크로나(현 환율로 300만원가량)로 줄었다”고 말했다.


아이슬란드에 무슨 일이 있었나. 아이슬란드는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6만달러를 넘는 유럽의 금융허브였다. 지난해 유엔 설문에서 가장 살고 싶은 나라로 꼽힌 ‘지상의 천국’이었다. 올라프스도티르는 이 꿈의 나라의 전형적인 중산층이었다. “금융위기 전만 해도 뭐든지 대출로 살 수 있었어요. 저 역시 외국 돈을 빌려 집을 샀죠. 차도 대출받아 산 거예요.”

방 4개가 딸린 110㎡ 아파트에 사는 그는 부부가 각각 4륜구동 SUV를 굴리고 있다. 최근 몇년간은 크리스마스 시즌이 돌아오면 가족들과 함께 런던으로 쇼핑여행을 갔었다. “전에도 크리스마스 쇼핑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5년 전쯤부터 해외여행이 흔해졌어요. 우리는 소비를 즐겼죠. 아이슬란드 크로나화가 강세였고 돈이 넘쳐났으니까요.”


이미 1987년에 1인당 GDP가 2만달러를 넘었지만, 대체로 검소하게 살던 아이슬란드인들은 2000년대 들면서 금융자유화의 바람을 타고 국민소득이 수직상승하자 씀씀이가 커졌다. 금융 중심의 팽창을 거듭하면서 비린내 나는 ‘수산대국’이란 별명 대신 ‘금융허브’라는 근사한 이름을 얻었다. 외국 돈이 쏟아져 들어왔고, 그 돈을 누구나 싸게 빌릴 수 있었다. “보통사람들도 전엔 럭셔리카라고 불리던 차들을 탈 수 있게 됐어요. 저만해도 중고차를 주로 탔는데 2004년 제너럴모터스의 신차를 샀으니까요.”


그러나 실물 경제의 기반없이 빚더미 위에 세워진 ‘북유럽 강소국’이라는 아이슬란드의 명성은 미국 금융위기에 가장 빨리, 가장 쉽게 무너져 내렸다.


지난 7~14일 방문한 아이슬란드에서 만난 사람들은 자신들이 디디고 있는 땅이 얼마나 허약한 것이었는지를 뼈를 깎는 고통과 함께 깨닫고 있었다. 크로나화는 10월에 전년 대비 82.7%까지 폭락, 세계 최고를 기록했다.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은 10월 이후에만 80%가 사라졌다. 한때 1% 정도였던 실업률은 내년 5.7%로 급등할 것이라고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마이너스 9.6%이다. 결국 국가부도 위기를 맞은 아이슬란드는 지난 20일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IMF로부터 21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다.


“차를 살 때 200만크로나를 대출받았는데 4년 뒤인 지금 380만크로나로 늘어났습니다. 전에는 은행에 월 5만크로나를 냈는데 지금은 9만크로나가 넘어요.”


그는 이것이 고통의 시작이라는 것을 안다고 했다. “우리처럼 작은 나라가 어마어마한 빚을 갚는다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합니다. 다음 세대는 평생을 살면서 빚을 갚아야 할 겁니다.”


올해 크리스마스 해외여행은 엄두도 못낸다. 남편의 실직으로 수입이 절반 이하로 준 것도 그렇지만,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의류비·식비 등 생활비를 절반 정도 줄여야 한다.


“우리도 언제부턴가 거품이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고, 꺼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러나 이처럼 파국적일 줄 몰랐어요. 우리는 생선처럼 무언가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니라 증권과 종이 위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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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1) 아이슬란드를 가다
레이캬비크(아이슬란드) | 김재중 기자


싼이자로 빌린 외국돈이 재앙의 부메랑으로

건설업체 줄도산 신축건물 대부분 공사중단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 북쪽의 항구 근처에서 지난 12일 바라본 대규모 빌딩 건설 현장. 아이슬란드는 지난 몇년간 부동산 거품을 타고 주택과 빌딩 신축이 활발했으나 국가부도 직전까지 내몰리면서 곳곳에서 공사가 중단된 건물을 쉽게 볼 수 있다. <레이캬비크(아이슬란드) | 김재중기자>



지난 7일 자정 무렵 아이슬란드 유일의 국제공항 케플라비크 공항에 도착한 기자를 차에 태운 현지 가이드는 “상황이 어떠냐”는 첫 질문에 “엉망이죠”라고 짧게 답하고 시동을 걸었다. 수도 레이캬비크로 향하는 왕복 4차선 고속도로는 부슬비에 젖어 가로등 불빛을 튕겨내고 있었다. 출발하기 전 외신을 통해 아이슬란드 주민들이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선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취재일정 중 그런 곳을 찾을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가이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환율이 폭등하면서 물가가 엄청나게 뛰었지만 아직 그렇지는 않아요. 하지만 외국 돈을 빌려 집을 산 사람들과 부동산 업자들은 다 죽게 생겼습니다.”


레이캬비크 외곽지역의 한 쇼핑몰에서 전자제품 액세서리 가게를 하고 있는 피욜라(37·여).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남편과 그는 지난 4월 큰 맘먹고 2400만 크로나(당시 환율로 약 4억8000만원)를 대출 받아 집을 샀다.


실제로는 크로나화가 아닌 미국 달러, 일본 엔, 스위스 프랑, 유로 등 네가지 외국 돈을 섞어서 받았다. “1년 전부터 집 살 돈을 빌리기 위해 은행을 찾아가 상담을 하기 시작했는데 외국 돈을 빌리는 것이 훨씬 더 저렴하다고 조언을 해줬어요. 크로나화는 금리가 무척 비쌌지만 이자율이 싼 외국 돈들을 소개해줬죠.”


대화 도중 손님이 찾아오자 상냥한 미소로 맞이하던 그녀는 손님이 나가자 이내 심각해졌다. “그런데 지금 집을 판다고 해도 처음 대출 받았던 금액은 그대로 남아요.” 두딸을 키우고 있는 피욜라가 갚아야 할 대출금은 현재 4100만 크로나로 부풀었다. 거의 두배가 된 것이다. 매달 상환할 대출금도 두배가 됐다. 그러나 4000만 크로나에 산 집의 가격은 40% 가까이 떨어졌다. “일단 생활비를 4분의 1로 줄이기로 했어요. 처음엔 될까 했는데 어떻게 살아지긴 하더군요. 하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북유럽 민족 특유의 회색 섞인 푸른 눈동자가 흔들렸다.


환율! 환율!


금융위기 이후 아이슬란드는 순식간에 반토막이 돼 버린 크로나화 가치의 공포에 몸서리치고 있었다. 누구든지 몇마디만 나누면 환율과 통화 이야기부터 했다. 금융위기 이전 1달러 당 65크로나 정도 하던 환율이 순식간에 137크로나로 폭등했기 때문이다. 아이슬란드 중앙은행에 따르면 2008년 4월 현재 아이슬란드 가계부채의 23~24%가 외환대출이다. 금융위기 이전 2100억 크로나이던 아이슬란드 전체 가계의 외환대출 규모도 현재 3300억~3500억 크로나가 됐다.


금융위기전 아이슬란드에서는 집값의 100%까지 가능했던 은행돈을 빌려 새 집을 짓거나 사는 게 유행이었다. 레이캬비크 외곽의 경우 고급주택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부촌’으로 지도가 바뀌었고, 시내 중심가 곳곳에는 사무용 빌딩 신축 붐이 일었다. 레이캬비크에서 3개의 호텔을 경영하고 있다는 올라브르 토르파손(57)은 “당시 20년도 안 된 집을 허물고 더 고급스러운 집을 짓는 게 유행이었어요. 미친 짓이었죠”라고 말했다. “하기야 당시엔 그게 미친 짓이 아니었어요. 2004년부터 레이캬비크의 주택가격은 매년 20~30%씩 뛰어올랐으니까요.” 주택뿐 아니다. 대학이나 동네마다 있는 실내체육관 건물도 지어진 지 2~3년밖에 되지 않은 새 건물 냄새가 났다.


아이슬란드 중앙은행 이사인 에르나 지슬라도티르는 “건설업계는 모두 끝났고, 다른 기업들도 절반이 살아남는다면 천만다행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내 곳곳에는 타워크레인이 우뚝한 건물 신축 현장이 쉽게 눈에 띄었다. 물론 대부분 공사를 중단한 상태다.


10일 초저녁 레이캬비크 중심가 레이가베구르 거리의 한 레스토랑 앞에서 독일인 모녀 관광객 2명이 메뉴판을 살펴보고 있었다. ‘아이슬란딕 퓨전 메뉴’라는 부제가 달린 메뉴판을 꼼꼼히 살펴보던 이들은 “생각보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며 어깨를 으쓱인 뒤 길 반대편 레스토랑 쪽으로 사라졌다. “크로나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관광객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는 하지만, 지금 전세계가 위기인 상황이라 그리 만만할 것 같지는 않다”라는 토르파손의 말이 생각났다.


전통적으로 실업률이 1%대에 머물던 아이슬란드에서 실업의 공포는 서서히 검은 심연을 드러내고 있다.


시장점유율 12%의 자동차 수입회사 ‘비앤엘(B&L)’의 현대차 담당 매니저 브자르니 시구르드손을 11일 만났다.


시민 쇼핑카트엔 우유만 두팩뿐

실업 대란 예고 전국민의 1% 실업자 될판
살인적 물가에 “자본주의 끝났다” 탄식도


그는 컴퓨터 마우스를 몇번 클릭하더니 모니터를 보여줬다. 현대차 판매 추이였다. 모니터 중간쯤에 그어졌던 선이 10월을 기점으로 곤두박질쳤다. “현대차를 한달에 60~100대가량 팔았지만 지난달엔 겨우 16대가 나갔습니다. 회사는 40% 감원계획을 세웠습니다.”



회사를 그만둔 사람들은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일까. 시구르드손은 대답 대신 사무실 유리창 너머 번쩍이는 새차들로 가득차 있는 매장으로 시선을 보내며 잠시 침묵에 잠겼다. “우리와 비슷한 규모의 회사 80여곳에서만 모두 3000명을 감원한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노동인구가 아닌) 아이슬란드 전체 인구의 1%가 거의 동시에 실업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이슬란드 노동법은 해고전 3개월의 여유를 주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나 내년 초쯤 되면 실업자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란 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의 사무실을 나오자 지난달 국유화된 글리트니르 은행의 지점이 눈에 띄었다. 창구에 있는 중년의 여직원에게 은행 내부 사진을 찍을 수 없겠느냐고 물었더니 상냥했던 그녀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노”라는 답이 돌아왔다. 일주일 내내 은행 관계자들을 만나기 위해 애를 썼지만 매번 이런 식이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들 기자와는 대화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한때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은행과 은행 경영진들, 정치인들은 금융위기를 불러온 주범으로 낙인찍혀 있었다.


중앙은행의 지슬라도티르 이사가 말했다. “금융은 아이슬란드의 문화를 바꿔 놓았습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비린내 나는 수산업을 과소평가하는 대신 높은 임금을 주고 깨끗한 사무실에서 일할 수 있는 은행들을 칭송했죠. 이제는 사고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이 깨달음이 한발 늦기는 했지만요.”


아이리쿠르 다그비아르트손(43)은 레이캬비크 남서쪽에 있는 조그만 수산도시 그린다빅에서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수산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이 회사는 아이슬란드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든다. 그는 6년 전까지 선장으로 배를 탔었다. “수산업계는 지난 10~15년간 작은 업체들을 사들이며 외국 돈을 빌려다 썼고 그 결과 우리의 재무구조도 은행과 비슷해졌습니다.”


12일 퇴근길에 대형매장 ‘보누스’를 찾은 오타 오스프 욘스도티르(40·여)는 두바퀴째 돌았는데도 쇼핑 카트에는 우유만 두 팩뿐이다. 그는 과일 코너를 가리키더니 “두 달 전까지만 해도 1㎏에 150크로나였던 사과가 359크로나, 159크로나였던 바나나가 268크로나가 됐어요”라며 도리질을 했다. 그를 따라 매장을 한 바퀴 도는 동안 계란, 통조림, 밀가루 등 순식간에 올라버린 식료품 값에 대한 ‘증언’이 계속됐다. 그는 268크로나 하는 밀가루 봉지를 보더니 “저게 전에는 100크로나였어요”라고 말했다. 현재 아이슬란드 물가는 연초 대비 15~20% 올랐지만 중앙은행은 최대 30%까지 뛸 것으로 보고 있다.


골프용품점을 운영하는 시구르 기슬리(57)는 매장 뒤편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고 있었다. 그는 인터뷰 요청에 “그 재미난 얘기를 들으러 왔습니까”라고 농담을 하더니 커피를 권했다. 그의 둘째 아들은 노르웨이의 대학에서 유학중이다. “한달에 9만크로나를 부치고 있는데 내가 보내는 돈은 그대로이지만 애가 받는 돈은 반토막이 됐습니다. 애가 일자리를 구해본다고 하는데, 안되면 잠시 들어와 있으라고 할 생각입니다.”


기슬리는 점원 야콥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 친구 주장처럼 이제 자본주의가 끝난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련 공산주의가 끝나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나는 자유시장경제가 맞다고 봐요. 그렇지만 이전과 같은 모습은 안됩니다. 뭐랄까, ‘규제되는 자본주의’여야 한다는 거죠”라고 말했다.


아이슬란드를 떠나기 전날인 13일 기자를 저녁식사에 초대한 구드문드손은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아이슬란드의 온천이나 자연경관에 대한 사진이 필요하면 언제든 e메일로 요청하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는 명예한국총영사다. 관광지 사진 얘기를 몇차례 더 하기에 “취재목적이 관광지 소개가 아닌 줄 아시지 않습니까”라고 정중하게 말했다. 그는 밍크고래 고기 한 조각을 집으며 말했다. “잘 압니다. 하지만 당장 아이슬란드가 기댈 곳은 수산업과 관광산업입니다.” 이것이 금융 허브의 신기루가 사라진 아이슬란드의 알몸이었다.

아이슬란드 경제의 몰락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이슬란드 경제학자들은 감시·감독 없는 금융의 과대성장을 경제붕괴의 원인으로 꼽았다. 그들은 “이 위기가 언제 끝날 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환율·금리 정책실패가 위기의 원인”


■ 토르올브르 마티아손
아이슬란드 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위기의 시발점은 어디인가.


“1996~2003년 은행들이 차례로 민영화됐다. 2001년엔 변동환율제로 전환했다. 중앙은행은 물가가 목표치보다 높을 경우 이자율을 올렸다. 이자율이 오르자 일본 엔화를 비롯한 외국 자본들이 몰려왔고 크로나화가 강세를 띤 게 위기의 시작이다.”


- 현재 외환시장 상황은 어떤가.


“외환거래가 매우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다. 금융허브로 불리던 아이슬란드가 외환거래에 있어 북한과 비슷한 처지가 돼버린 것이다.”


-한국 정부도 금융허브를 지향하고 있다.


“한국이 자국 통화 대신 일본 엔화를 선택할 수 있겠나. 그게 아니라면, 엄청나게 많은 외환을 축적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허브를 시도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작은 규모의 통화를 가지고 금융부문이 과대성장하면 결국 붕괴한다.”


“이 위기는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몰라”


■ 올라브르 이슬레이프손
레이캬비크 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 왜 은행을 민영화했나.


“정부가 은행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논리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에서는 은행이 민영화될 당시 큰 비난을 받았다. 정치권에 연고가 있는 사람들에게 은행이 넘어갔고, 은행 경영이 전문성이 없는 젊은 사람들에게 맡겨졌기 때문이다.”


-과도한 금융자유화가 문제라고 지적되고 있다.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특히 은행소유주와 관련이 있는 기업들에 많은 돈이 대출되면서 은행을 약화시켰다.”


- 위기가 언제 끝날까.


“반대로 내가 물어보자. 세계적인 위기가 언제 끝날 것인가. 현재로선 세계적인 위기가 언제 끝날 지 전혀 실마리를 찾을 수 없지 않은가. 아이슬란드도 오히려 위기가 심화되는 조짐만 보이는 상황이다.”


-금융허브의 꿈은 살아날 수 있을까.


“금융허브의 꿈은 악몽으로 끝났다. 그 대가는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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