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자본주의의 모순을 역사만화로 표현하는 게 쉽지 않다”

1980년대와 1990년대 노동운동 쪽 전단과 인쇄물 속의 삽화와 만화를 도맡다시피 했던 만화가 이은홍은 지금 충북 제천 월악산 아래 시골 마을에서 산다. 농사를 짓지 않고 어린이 역사만화 작업을 하며 살지만 동네사람들과 아주 사이가 좋다. 인터뷰하러 간 날은 마침 ‘영화 감상회’ 날이었다. 이은홍은 한 달에 한 번 DVD를 고르고 프로젝터를 빌려서 동네사람들과 영화를 보고 논다. 그는 그의 말마따나 “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마을에 빌붙어” 잘살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 “수천년간의 역사가 극소수 지배계급과 대다수 사람들로 구분
어떻게 서로 도우며 살아갈수 있을지 고민… 그런 과정이 역사다”

김규항 = ‘깡순이’ 캐릭터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노동운동 만화 작업을 꽤 오래 했다.

이은홍 =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1984년에 노동현장에 들어갔다. 거창한 노동운동을 계획한 건 아니고 공장 노동자로 살면 적어도 현실 앞에 부끄럽진 않을 것 같았다. 공장에 다니다 발을 다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서노련에서 만화 청탁이 왔다. 보람도 있고 재미도 있었다. 그것 때문에 보안사에 끌려가 당하기도 하고 ‘노동’이 붙은 온갖 곳과 작업을 했다. 2000년에 그만두었으니 15년가량 한 셈이다.

김규항 = 그만둔 이유는 무엇인가.

이은홍 = 민주화가 되고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고 세상이 달라졌다고들 하는데 노동자 입장에선 대통령 얼굴만 바뀌었지 다른 게 없었다. 만화의 내용도 같을 수밖에 없었다. 삐라 한 장만 갖고 있어도 잡혀가던 시절엔 그걸 그리는 나도 의미가 컸는데 대공장은 얼마, 작은 노조는 얼마, 원고료나 따지고 있자니 이건 운동도 아니고 예술도 아니구나 싶었다.

김규항 = 운동인가 아닌가는 운동의 모양이 아니라 사회에 영향을 주는가의 문제이니 지칠 만도 했다. 이젠 아이들을 위한 역사만화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데.

이은홍 = 1995년에 사계절출판사의 ‘역사신문’ 작업에 참여하게 되어 선사시대부터 작업을 해나가는데 역사라는 게 참 재미있는 거더라. 역사란 결국 사람들이 먹고살아온 이야기 아닌가. 그 시스템이 몇 천년 동안 소수의 지배계급과 대다수의 사람들로 나뉘어 근본적으로 변화가 없었다는 건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김규항 = 역사를 공부한다는 건 역사의 정보나 지식을 아는 게 아니라 역사의식을 갖는 것이다. 아이들과는 역사에 대해 어떻게 소통하는가.

이은홍 = 아이들 상대로 역사 강연 같은 걸 하면 ‘너희들이 알고 있는 역사 속 인물을 말해보라’고 한다. 태정태세문단세부터 시작해 연속극에서 본 인물들 하며 대략 150명이 쏟아져 나온다. 그걸 칠판에 받아 적고 아이들과 분류를 한다. 왕이 70~80명, 장군이나 관료가 30~40명, 학자와 문화예술인 몇 명. 150명 중 120~130명이 지배계급인 것이다. 그리고 남녀를 갈라보면 모조리 남자다. 아이들은 놀란다. 그러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착하게 나눠먹으며 살아갈 수 있는가.’ ‘민주주의와 평등이 중요하고 역사란 그걸 위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김규항 = 역사만화 작업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뭔가.

이은홍 = 돈에 대해, 화폐에 대해선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데 돈이 자본이 되고 자본주의가 되는 데 이르면 쉽지가 않다. 아이들에게 자본주의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가 큰 숙제다. 아이들에게 되도록 선을 가르치고 싶은데 자본주의는 선이 아니라 악이다. 부모들이 이미 몸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자본주의란 경쟁 속에서 개별화되어 남을 파괴하고 나도 파괴되는 체제라는 걸. 그런 걸 아이들에게 잘 설명하려면 공부도 더 해야 하는데 워낙 게으르게 사니 자꾸만 미루어진다.

김규항 = 지난 역사를 파악하는 건 쉽지만 현재 역사를 파악하는 건 어려운 법이다. 시민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을 자기동일시하고 모든 문제를 이명박에게 돌리기 시작한 이후 우리 사회의 역사의식은 마비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은홍 = 노동자 민중 입장에서 노무현이 이명박보다 덜하지 않았다는 사실들을 애써 외면하고 덮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참 안타깝다. 체제와 시스템을 보지 않고 인물만 보려 하는 건 역사의식이 아니라 팬덤현상이다. 노동자 민중이 잘 먹고 살아가는가가 역사의 핵심이고 현실의 핵심이다. 성숙한 시민이란 내가 살아가는 사회가 어떻게 하면 더 고루 잘 먹고사는가를 고민하며 함께 나아가는 사람이다.

김규항 = 평범한 시민이 건강한 역사의식을 갖기엔 이 체제가 주는 불안감이 너무 크다. 

이은홍 = 진보적인 지식인과 언론이라도 그런 고민을 하고 담론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거의 안 보인다. 우리 역사는 어두운 셈이다.

김규항 = 촛불집회 같은 걸 보면 어떤가.

이은홍 = 도시에 살고 있으면 자주 나갔겠지만 그게 어려우니 인터넷으로 본다. 보고 있으면 미안하고 눈물이 난다. 그래서 차마 끄질 못하고 밤을 새워 본다. 그런데 촛불을 든 사람들을 온전히 믿진 않는다. 특정한 정치인에 대한 인격적 사랑이나 모독으로 체제에 대한 고민을 치환해버리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안하고 눈물나고.

김규항 = 말씀대로 지식인과 언론의 책임이 크다. 귀촌한 지 9년째인데.

이은홍 = 지금 스무살인 아들이 ‘똥을 퍼도 좋으니까 시골에서 학교 다니고 싶다’고 한 게 시작이었다. 아내는 드물게 단단한 사람인데도 도시에서 정상적으로 아이 교육을 하며 살아갈 자신이 없다고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아파트에서 10여년을 살았는데 나랑 마주치면 장난치고 인사하던 똘망똘망한 아이들이 고학년 되고 중학생 되면 하나같이 동태처럼 되어버렸다. 늦은 밤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큰 가방 메고 눈은 게슴츠레해가지고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내 아이도 저렇게 되는구나 싶어 앞이 캄캄했다.

김규항 =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은홍 = 내가 누렸던 10대의 즐거움과 행복을 적어도 그만큼은 주고 싶었는데 핵심은 시간이었다. 뭔 짓을 하든 제 몫으로 쓰는 시간을 보장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내려가 살 곳을 알아보러 다니던 어느 날 시골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비가 왔다. 아이가 지붕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을 종이컵에 받아가면서 그렇게 즐겁고 행복한 얼굴로 노는 거였다. ‘저거다. 종이컵 하나만 있으면 저렇게 놀 수 있구나.’

김규항 = 시골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아이들을 도시로 보내려 애쓰는 게 현실이다. 

이은홍 = 이 동네의 내 또래들이, 말하자면 마지막 농부들인데 요즘은 소농은 다 죽고 정부 정책도 대농 위주라 수입이 도시 사람들 부럽지 않은 경우도 꽤 있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일해 번 돈이 아이들 도시로 보내는 데 다 들어간다. 술자리에서 아이들 걱정을 같이한다. 그런데 난 ‘너희 아이들의 미래가 밝지 못하다, 졸업하고 대부분 비정규직이 되는 암울한 현실이다’ 이렇게 차마 말을 못하겠다. 오히려 동네 친구들이 우리 아들 걱정을 스스럼없이 한다. ‘대학도 안 가고 어떻게 사냐’고. 

김규항 = 그런 불안감은 정도 차이일 뿐 대안교육을 하고 대학입시에 올인하지 않는 부모들도 다를 바 없는데 정말 불안하지 않은가. 

이은홍 = 작년엔가 다들 하도 불안해하니 나도 불안해해야 하는 건가 싶어서 내 아들이 가진 스펙을 정리해봤다. 그야말로 엄청났다. 나보다 기타 잘 치지, 컴퓨터도 도사지, 좋은 친구 내 10대 때보다 더 많지, 주변에 좋은 어른들 많지. 내가 걔보다 나은 건 현찰을 좀 더 갖고 있는 것 하나더라. 그리고 아들이 음악을 하겠다는 게 정해져 있어서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으니 도대체 내가 뭘 불안해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

김규항 = 스펙을 그렇게 정리한다면 생각들이 달라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스펙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이은홍 = 그런 스펙이 문제라기보다 그런 스펙을 쌓는 이유가 문제다. 경쟁하기 위해서 아닌가. 내 친구와 내 이웃과 경쟁하기 위해서. 99%가 서로 연대하고 돕는 시스템을 궁리해도 모자랄 판에 상대를 죽이고 내가 사는 시스템으로 가면 어떡하나.

김규항 = 아이를 경쟁에 밀어넣는 게 잘못된 것이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편한 얼굴도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이젠 교실에서도 집에서도 경쟁은 그저 선이다. 그걸 수용하지 않는 ‘고래가 그랬어’도 종종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충고를 듣곤 한다. 

이은홍 = 경쟁이 사회 원리라면 굳이 인간 사회라고 할 게 있는가. 짐승들의 사회도 그보단 낫다. 불안을 없애려면 체제에 대한 고민을 함께해야 한다. 계급에 대한 고민이라든지 지배체제의 변화라든지. 그런 고민을 하지 않고 인물만 보면서 개별 차원으로 해결하려 하니 불안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김규항 = 아들이 홍대 인디씬에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는데 만일 자리 못 잡고 몇 년 후에 시골집으로 돌아오면 어떨까. 실패했다고 말할 사람도 많을 텐데.

이은홍 = 성공인가 실패인가의 기준은 내가 행복한가이다. 음악으로 뜨고 대박나서 돈 많이 벌고 유명해져도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꽝이다. 만일 도시에서 활동을 접고 오면 밥값은 하게 해야지. 이 동네엔 일손이 부족해서 밥값 할 것 많다. 나머지는 아들이 알아서 할 문제다. 친구들과 술먹고 놀면서 가끔 당구도 치고 그렇게 살면 된다. 사실 나는 은근히 그런 상상을 한다. 아들이 면사무소 옆에 작은 가게라도 하나 열어서 기타작업도 하고 노래도 만들고 아이들도 가르치고 하는 모습. 부담이 될까 싶어 한번도 말한 적은 없지만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김규항 = 불안한 게 아무것도 없나. 

이은홍 = 얘가 밥먹고 뒷자리를 깔끔하게 처리 안 한다든가 제 옷가지나 잠자리를 정리 잘 안 한다든지 하는 것들이 불안하다. 남하고 어울려 살면서 남에게 피해주고 욕을 먹을 수도 있기 때문에 잔소리를 해서 가르쳐야 하는데 잔소리하면 싫어하니 어떻게 해야 하나 싶고. 

김규항 = 대학 진학은 고려한 적이 없나.

이은홍 = 권유한 적이 있다. 아이가 공식 학력은 중졸인데 ‘검정고시 보고 대학에 가는 것 고려해봐라, 아빠 고향 친구들 보면 대학 안 나왔다고 평생 열등감 갖는 경우도 있더라.’ 그랬더니 아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고,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나중에라도 자기가 대학 가겠다면 당연히 존중할 것이다. 중요한 건 자기 필요와 판단이다.

김규항 = 마을 사람들과 참 좋아 보인다. 귀농이나 귀촌한 사람들 중엔 마을과 겉도는 경우도 많다. 손님은 거의 외지 사람들이고 만날 자기들끼리 어울려 어려운 말로 대화하고.

이은홍 = 집단의 이념이나 공동체성 내세워서 끼리끼리 귀농·귀촌하는 건 뉴타운과 다를 바 없다. 나도 오래전엔 그런 식의 생각을 했지만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지 깨닫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농촌 마을이라는 게 크든 작든 적어도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새로 들어오는 사람은 일단 마을에 빌붙어 산다는 생각을 하는 게 마땅하다. 마을을 위해서 뭔가를 하겠다, 바꾸어보겠다는 생각은 그 자체로 제국주의고 이명박이다. 1000년 이상의 역사 속에 나를 살게 해주었으니 내가 마을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부터 궁리해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살면 동네사람들과 안 좋을 일이 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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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ㆍ“자본주의는 룰이 깨진 경쟁… 다른 세상 상상하는 건 상식적”

구도자, 은둔자, 고독한 음유시인. 김두수를 수식하는 말들은 그가 범접하기 어려운 기인일 거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의 음악에서 나오는 신비스러운 기운은 그가 ‘필시 약쟁이일 거’라는 맹랑한 소문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음악가들 중에서도 드물게 온후한 사람이다. 자본주의가 극단화할수록 자본주의를 부인하는 말과 부인해 보이는 일의 거리는 멀어진다. 하고많은 좌파들이 자본주의에 일상을 사로잡혀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말할 때 조용히 자본주의의 율법과 그물망을 비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렇게 살아내 보임으로써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 속삭임으로써 자본주의에 균열을 낸다. 김두수도 그런 사람이다. 그는 경쟁과 불안감에 사로잡혀 옴짝달싹 못하는 사람들 곁에서 온후한 얼굴로 노래하고 술 마시며 천천히 여행한다.

 

출처 ; 경향DB



▲ “사람은 가진 게 적을수록 자유로워
훌쩍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없다면 성공한 삶이 아니라 노예의 삶
대중음악 개탄하지만 그 역시 한국 사회 축소판일 뿐”


김규항 = 초등학생 김두수가 궁금하다.

김두수 = 학교 다니고 어울리고 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다. 학교가는 길에 개천이 있었는데 쪼그리고 앉아 햇살에 비친 물을 바라보곤 했던 기억이 난다.

김규항 = 문제가 있었던 건가.

김두수 = 겉으로 볼 땐 문제가 없었다. 성적도 좋은 편이었고 특별히 말썽을 일으키지도 않았으니. 다만 사람들이, 어른들이 권하는 것들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출세주의적인 가치들, 장래희망 대통령, 의사, 판검사 뭐 이런 것들에 왜 연연해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6학년 때 담임이 음악선생이었는데 집에 찾아와서 이 아이는 음악을 시켜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가 워낙 보수적인 분이라 음악은 광대짓이라 생각해서 라디오도 못 켜는 집이었으니 소용없는 일이었지만.

김규항 = 선생의 기타 주법은 독특하고 연주 실력도 정평이 있다. 기타를 처음 만진 건 언제인가.

김두수 = 중학교 다닐 때 처음 만져보긴 했지만 코드 몇 개 치는 정도였고 제대로 배우진 않았다. 가톨릭회관에서 독창을 해서 골목에서 여학생들이 기다리는 에피소드도 있었지만 특별히 음악에 심취한 건 아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역시 겉으로 볼 땐 문제가 없었는데 어울리긴 말썽꾸러기들하고만 어울렸다. 우등생들보다는 그런 친구들이 좋았다. 대구 지역에서 유명한 건달의 아들이고 자신도 건달로 성장한 친구가 있는데 여전히 가장 가까운 친구다.

김규항 = 그런 친구들이 세상에 대한 의문을 해소해주진 않았을 텐데.

김두수 = 물론 번민은 계속되었다. 구도의 길을 가려고 절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구도를 하는 종교 조직도 결국 세상의 축소판이라는 걸 알게 된 게 유일한 소득이었다. 종교에도 사회의 시스템과 계급도 있고 또 그런 걸 유지하기 위한 생리가 있고. 종교적인 건 좋지만 종교는 그런 것 같다.

김규항 = 대개의 종교는 종교적이지 않고, 그게 종교의 문제다. 1970년대 말의 대학은 저항적이었고 대학문화도 활발했는데.

김두수 = 학생이었지만 학생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도 관심 밖이고 늘 혼자였고 급우들과 섞이지도 섞일 기회도 없었다. 아버지가 원하는 삶을 살 생각이 없는데 아버지에게 기대어 생활하는 게 불편했다. 1981년 겨울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려고 명동 피제이클럽이나 쉘부르 같은 곳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외엔 만날 어릴 적 친구들과 술을 먹고 이리저리 도보 여행을 다녔다. 

김규항 =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이다. ‘시대는 전사를 거두지 않는다’는 그와 관련한 노래인가.

김두수 = 노랫말을 그리 잘 쓴 것 같지 않아서 불편한 마음이 있지만 좋은 사회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게 바치는 꽃다발 같은 노래다. 나도 잘못된 걸 보고 눈 감는 스타일은 아니니까 기회가 닿았다면 당연히 싸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방인으로 어울리지 않고 살다보니 그렇지 못했다. 그 시절에 저항의 대열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지금 다 존경스럽게 살고 있는 건 아니겠지만 이름없이 스러져간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존경하고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걸 생각한다. 

김규항 = 시스템 안에서 무리지어 살아가는 사람들은 시스템 밖에서 살아가는 소수의 사람에 대해 예민하고 때론 공격적이다. 특별히 갈등을 빚은 기억은 없나.

김두수 = 내가 살아가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건 좋아하지 않지만 그런 일이 없진 않다. 1988년 두 번째 앨범을 냈을 때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이 잡혔다. 방송사 스튜디오에 들어서는데 처음 보는 피디가 나에게 다짜고짜 반말을 하더라. 돌아서서 와버렸다. 회사에선 난리가 났지만 그게 방송과는 마지막이었다. 그 피디는 아마 지금까지도 내가 왜 가버렸는지 모를 것이다. 

김규항 = 초면의 사람에게 반말을 하는 건 말도 안되는 무례지만 사람이란 그런 게 관행이 되면 별 저항 없이 따르기도 한다. 어릴 적부터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관조해왔는데 인간이란 어떤 존재라 생각하나.

김두수 = 난 그저 시스템 밖이 편했을 뿐이다. 굳이 답을 하자면 우주가 존재하는 데는 어떤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인간도 우주와 같은 존재이니 나름의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잘 순환하고 성장해야 하는 존재라는 건 분명한데 그 정확한 방향이 어딘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인간은 그걸 알아가는 도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김규항 = 대개는 사람들이 삶에 어떤 기준을 두고 잘산다 못 산다 구분한다. 그리고 더 잘살기 위해 혹은 잘살지 못할까 두려워 시스템의 중심에 근접하려고 발버둥치며 살아간다. 선생은 잘산다 못 산다의 기준 자체를 달리하는데.

김두수 = 욕망 덩어리로서의 삶. 욕망이라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닌데 삶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무한한데 그걸 개척하지 않고 남 따라서 더 높아지고 더 많이 가지려는 삶.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좋은 것들은 다 가라앉아 버리고 물질적인 것들만 눈앞에 떠 있다. 그런 세계에 있다는 게 아쉽고 불편하다.

김규항 = 사람들이 왜 그렇게 살아간다고 생각하나.

김두수 = 삶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김규항 = ‘저 사람은 너무 현실적이야’라는 말이 있었다. 낭만도 없고 이상도 없고 오로지 실익만 따지고 당장의 실현 가능성만 따지는 사람을 좋지 않게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말이 사라져버렸다. 누구나 그렇기 때문이다. 우스운 건 그렇게 현실적이 된 사람들이 만들어낸 세상은 지상의 지옥이다.

김두수 = 옛날에 학원 가는 아이가 없을 때도, 동네에 부잣집 아이 한두 명이나 과외할 때도 학교 가기 싫었는데 지금 아이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생각하면 지옥이라는 말이 지나치지 않다. 출산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고 아이들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 들었다. 아이들이 그렇게 많이 죽어간다는데 왜 멈추려 하지 않을까. 왕따라는 것도 결국 아이들이 사는 게 고통스러우니까 해소할 먹잇감을 찾는 것인데.

김규항 = 아이가 행복하려면 행복의 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조건을 마련하느라 아이들을 몰아붙여 아이들이 그렇게 많이 죽어가지만 그 대열에서 빠져나갈 생각을 못한다. 아이들은 왕따로 다른 아이를 괴롭혀서 그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면 어른들은 이명박처럼 나보다 현격하게 추악하게 살아가는 대상을 조롱함으로써 그걸 해소한다.

김두수 = 만석꾼에겐 만 가지 걱정이 있다고 했다. 아이가 물질적으로 궁핍하지 않게 살길 바라는 거야 이해가 가지만 아이가 잘살길 바란다면 사람이란 가진 게 적을수록 자유롭다는 사실도 잊어선 안 된다. 가진 게 많으면 떠날 수 없다. 훌쩍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없다면 성공한 삶이 아니라 노예의 삶이다

김규항 = 자신을 대중음악계의 일원이라고 생각하는가.

김두수 = 노래를 만들고 음반을 내고 공연을 하고 그걸로 적게나마 수입을 얻으니 주업이긴 하다. 

김규항 =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대중음악계에 대해 개탄한다. 

김두수 = 물론 대중음악에 지나친 예술적인 기대를 해선 안 된다. 유명해지고 부자가 되고 싶은 아이들이 하는 음악은 당연히 한계가 있다. 대놓고 장사를 목적으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예전에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스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음악이 좋아서 하는 좋은 음악가들이 있었고 그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린 그게 다 사라진 걸 개탄하지만 역시 한국 사회의 축소판일 뿐이다. 대중음악의 모습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김규항 = 기억나는 좋은 음악가들은.

김두수 = 정태춘 선배처럼 여전히 활동하는 분도 있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좋은 음악가들이 참 많았다. 요즘 젊은 인디음악인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많이 들어보질 않아서 잘 모른다.

김규항 = 선생의 음악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강력한 소구력을 갖는다. 보헤미안 같은 곡은 처음 나왔을 때 그걸 듣고 삶을 포기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풍문이 돌았다는데.

김두수 = 그런 풍문도 있었고 목숨을 버리려던 사람이 그 노래를 듣고 마음을 고쳐먹었다는 풍문도 있었는데 어쨌거나 나로서도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삶을 부정하는 메시지를 담은 곡이 아닌데 내가 온몸에 결핵이 퍼져 의사도 포기한 상태였다가 살아나 회복 중일 때 만든 노래라 그런 느낌이 들어간 게 아닌가 싶다. 오해를 줄이고 싶어서 다음 버전에선 가사를 조금 바꾸었다. 

김규항 = 불안감에 매어 살아가다보니 나타나는 현상 중의 하나는 존재의 심연을 들여다보길 꺼려 하는 것이다. 스스로도 그걸 꺼려 하고 또 그걸 꺼려 하는 걸 서로 미화해준다. ‘긍정적 사고’니 ‘칭찬의 힘’이니 하는 말들로.

김두수 = 그런 심연을 가지지 않고 사는 삶은 얼마나 가볍겠나. 불편하더라도 내 안을 들여다보면서 찾는 기쁨이 진짜 기쁨일 거다. 부흥회 같은데서 “행복하세요!” 막 박수치고 그런 게 인간의 기쁨은 아니지 않은가. 사람들은 그런 정도는 유치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도 그리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은 잘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자기 존재의 이유가 더 모호해지고 그만큼 더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김규항 = 세태의 변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의 변화를 이야기했지만 갈수록 극단화하는 자본주의 세상이 우리를 더 그렇게 만드는 건 사실이다. 자본주의를 극복한다는 건 단지 경제문제나 분배의 모순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인간성 자체를 회복하는 노력이기도 한데.

김두수 = 자본주의는 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체제라고 하는데 실은 룰이 깨진 경쟁이라 사람들의 상태를 최악으로 만든다. 자본주의가 인간을 훌륭하게 만드는 사회 체제가 아니라는 것과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건 적극적인 좌파가 아니더라도 상식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어쨌거나 그런 체제 속에서 살아간다는 건 불쌍한 일이고 한편으론 그런 체제 속에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참 존경스럽다.

김규항 = 어떻게 그 불쌍함을 벗어날 수 있을까.

김두수 = 여러 형태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결국 내 문제다. 우린 참 귀한 존재들인데 물신에나 휘둘리는 그런 존재들이 아닌데 우리 자신을 낮은 존재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말이다. 내가 귀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 계기는 남에게 맡길 수 없다.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예수나 부처가 2000년이 넘게 설파해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암흑세계에 있는 거다.

김규항 = 선생의 음악엔 그런 메시지들이 그득하다. 사람들이 그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다는 서운함은 없는가. 

김두수 = 만일 그렇다면 내 탓이지 내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탓은 아니다. 내가 덜 노래했기 때문이고 내가 서툰 탓이다. 한편으론 가면 갈수록 말의 값들도 떨어져서 말로는 교감도 설득도 잘 안 되는 것도 사실이다. 진실이라는 말은 더 이상 진실로 들리지 않는다.

김규항 = 선생의 노랫말처럼 정제된 말도 오염된다면 말이라는 게 이젠 뭔가 싶은 생각이 든다.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김두수 = 내 경우는 곡을 만들거나 공연을 하는 시간이 아니라 가만히 있는 시간이다. 인간이라는 게 생활하기 위해 일을 할 때 생업에 종사할 때는 그다지 뇌를 고양시키지도 않고 영적으로 열려 있진 않다. 가만히 있을 때 깊고 새로운 사유를 하고 영적인 교감을 한다.

김규항 = 자본주의는 가만히 있는 걸 악덕으로 여긴다.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 영어 점수 올리고 하다 못해 배에다 식스팩이라도 만들고. 가만히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부러 되새기지 않으면 영영 확보하기 어렵다. 선생에게 음악이란 무엇인가.

김두수 = 인생이란 여행이다. 음악은 그 여행과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동반하는 일이다.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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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이길 가능성 없음에도 옳으니까 싸우는 비정규직들 존경한다”

문래역 근처 골목의 허름한 건물 한 층은 언제나 밤늦도록 불이 환하다. 지난 10년 동안 비정규직 노동 문제에서 가장 활발하고 의미있는 활동을 해온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사무실이다. 1998년 정리해고와 파견법이 도입되면서 본격화한 비정규직 노동 문제는 이제 가장 보편적인 노동문제이자 정직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대다수의 삶에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 문제는 여전히 특정한 사람들의 문제로 여겨지며, 그 문제를 둘러싼 자본과 정부의 거짓과 기만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한다. 김혜진과 동료들은 밤낮없이 바쁘다.

▲혼자 살려다 함께 무너지는 게 아니라 함께 권리 찾아야
투쟁은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한 고민, 더 이상 굴종하지 않겠다는 자기 표현
전에 없이 극단에 와 있는 노동자들… 그들의 고민이 희망이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의 김혜진 활동가는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노동권이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한다. (경향신문 DB)

 

김규항 = 비정규 노동운동을 하게 된 계기는. 

김혜진 = 노동운동을 한 지는 20년쯤 되었는데 원래부터 대공장 쪽보다는 변두리 쪽의 중소 영세사업장에 관심이 있었다. IMF(외환위기)가 터져 굉장히 많은 중소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비정규 운동에 집중하게 되었다.

김규항 =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죽어간 게 박정희 군사독재가 한창이던 1970년인데, 정리해고와 파견제법이 생기면서 법에 의해 비정규 노동자의 권리가 인정되지 않게 된 건 민주화 정권인 김대중 정권에서였다. 노동자들에게 역사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간 셈이다.

김혜진 = 그런 점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비정규직이라고 하는 특정한 고용 형태를 가진 노동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전반적으로 노동권이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임을 되새기고 싶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확대되면 정규직 노동자들도 그만큼 고용에 대한 불안감으로 기업의 통제에 순응하게 되고 노동권 전반이 하락하는 결과를 낳는다. 비정규직은 특정한 사회적 약자의 문제도 아니다. 이미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섰고 연구직이나 대학의 비정규 교수들 같은 엘리트라고 하는 곳에서부터 청소노동자에 이르기까지 전 영역에 다양하게 퍼져 있는 고용 형태다. 

김규항 = 지배계급은 언제나 피지배계급을 분리해서 지배하려 한다. 서로 위계를 만들고 반목하게 만들면 지배하기가 손쉬워지기 때문이다. 군사독재 세력이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 차별을 통해 인민들을 매우 효과적으로 분리지배해온 역사가 있다. 비정규직은 자본독재시대의 분리지배 전략인 셈인데.

김혜진 =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리뿐 아니라 비정규직 내부에서도 분리가 심하다. 직무별로 워낙 고용 형태가 다양하고 임금체계가 다르니까 이 직무의 노동자와 저 직무의 노동자가 마치 서로 완전하게 다른 노동자인 것처럼 여겨지는 구조다. 단시간 노동자도 있고 용역도 있고 파견도 있고 호출도 있고 기간제도 있고, 그런 식으로 비정규직을 굉장히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노동자들을 최대한 갈기갈기 찢어 놓는다.

김규항 = 정말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제다. 대공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을 이야기하자면 대공장 비정규직보다 더 힘든 조건에 놓여 있는 2차 하청, 3차 하청 비정규 노동자들은 배제되기도 하고.

김혜진 = 그래서 우리의 고민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뿐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이 공동의 가치를 가지고 공동의 적과 투쟁하는 데 있다. 혼자 살아남으려다 함께 무너져 내리는 게 아니라 함께 우리의 권리를 찾는 것. 법에 규정되어 있다 아니다, 누가 누가 차별받고 있다가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권리, 노동하는 자들의 보편적 권리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조직해야 한다.

김규항 =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노동자들이 갈기갈기 찢어져 제 앞가림에 매달리는 상황에선 지나친 원칙론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김혜진 = ‘밑에서부터 조직하여 발언하게 한다’는 우리의 전략은 사실 어려움이 많다. 정규직에 동정과 시혜를 기대하는 방향으로 했으면 오히려 훨씬 더 분위기 좋게 잘 만들어졌을 무언가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하고 투쟁함으로써 대립과 갈등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대립과 갈등을 두려워하지 말고 끊임없이 부딪치며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김규항 = 그런 대립과 갈등이 분리지배의 결과라는 점에서도 반드시 넘어서야 하는 어려움이다. 막막해 보이지만 이미 그런 어려움을 넘어선 사례도 종종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기 잔업 특근 포기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한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사례라든가. 

김혜진 = 그렇게 된 원인을 분석하면서 인상적이었던 건 투쟁에 대한 대의가 살아있다는 점이었다. 대의원들은 그간의 활동에서 노동자들의 깊은 신뢰를 확보하고 있었는데 인상적이었던 건 ‘이렇게 하면 우리 임금이 올라간다’ ‘이렇게 하면 뭐가 더 좋아진다’를 넘어 ‘이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다’ ‘이렇게 해야 우리가 함께 산다’고 지속적으로 말해온 것이었다.

김규항 = 대의가 살아있다는 건 우리가 인간임을 잊지 않는 것이다. 

김혜진 = 정규직 노동자들에겐 두 가지 마음이 있다. 하나는 불안하니까 비정규직을 안전판으로 삼고 싶은 마음이고, 또 하나는 인간이 이렇게 살면 안된다, 함께 살아야 된다는 마음이다. 우리의 운동은 그 두 마음 사이에서 출발한다. 더 잘 먹고 잘살아야 된다, 임금과 노동 조건이 좋아야 된다는 좁은 방식으로만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활동해왔다면 그런 순간에 노동자들을 제대로 조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 다른 현실이 가능하다는 것, 우리가 함께 살 수 있고 변화할 수 있고 희망이 있고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김규항 = 노동운동을 넘어 인간의 모든 해방투쟁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게 단지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존중을 얻는 것, 연대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라는 것. 그런 점에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도 마찬가지 아닌가.

김혜진 = 항상 놀라는 게 그거다. 내 경우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왜 투쟁하게 되었는지 꼭 물어본다. 열악한 상황에 있으니 필시 임금과 노동 조건 때문일 거라 생각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자존심이 상해서이거나 정말 이렇게 사는 건 아닌 것 같아서가 대부분이다. 투쟁이라는 게 인간으로서의 내 삶에 대한 고민, 이제는 굴종하지 않겠다는 자기 표현인 것이다. 임금과 노동 조건보다 더 중요한 건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는 인간다움에 대한 욕망이 있다는 사실이다.

김규항 =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동정과 시혜의 관점 역시 넘어서야 할 벽이다.

김혜진 = 홍익대 청소노동자들 싸움 때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굉장히 많은 사람이 연대했는데 극단적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연대의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시혜적 마음이 병존했다. 그런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투쟁쯤 되면 그런 시혜의 마음이 작동하기보다는 불편한 마음으로 반전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귀족 노동자가 되려 한다는 식으로.

김규항 = 시혜적 마음은 그 자체론 아름다운 것이지만 나와 현격한 거리가 있는, 내가 동정심을 베풀 수 있는 불쌍한 대상에 한정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김혜진 = 지금 같은 극단적인 경쟁사회에서 현대자동차 정규직이 된다는 건 신분 상승이다. 이 사람들이 그 투쟁을 통해 나보다 훨씬 더 높은 신분에 간다는 건 어떤 사람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연대를 사회적으로 요청할 때 ‘이 사람들이 이렇게 처절하게 투쟁하니까 도와주세요’ ‘이 사람들이 이렇게 어려우니까 도와주세요’라고 이야기하는 게 당장의 효과는 있다 해도 지양해야 한다. 

김규항 = 재능교육 노동자들이 참 존경스럽다. 자신들만 생각했다면 이미 몇 번의 타결 기회가 있었지만 특수고용 노동자 전체의 대의에 입각해서 전원 복직을 내걸고 1500일째 비타협적으로 거리에서 싸우고 있다. 가장 곤란한 처지에 있지만 오늘 우리 사회에서 가장 기품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김혜진 = 하루이틀 보는 일이 아닌데도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깊은 존경심을 갖게 된다. 비정규직은 법으로 노동권이 부정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길 가능성이 없다. 그런데 싸운다. 왜 싸우는가, 이게 옳으니까 싸운다는 거다. 내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니까 싸운다는 거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7년 싸웠다. 많은 사람이 7년 싸워서 이기면 도대체 누가 싸우려 하겠냐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에겐 이기고 지고를 넘어 싸우는 행위 자체가 주는 의미가 있었다. 법적으로도 질 수밖에 없고, 제도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자본과의 관계에서도 힘이 없지만 내가 옳으니까 싸운다면서 버티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김규항 = 사회운동에서 현실성을 갖는 건 매우 중요하지만 현실성이 운동의 전부가 되어버리면, 대의에 입각한 비현실적인 투쟁이 아예 사라져버리면 운동 자체가 무너지게 된다. 운동이 무너지면 현실이 무너지게 된다. 우리 사회에 희망을 심어준 사람들은 지난 10여년 동안 소외와 몰이해 속에서 자본의 공세에 맞서 싸워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김혜진 = 그런 사실이 사회적으로 제대로 이해되고 있지 않는 데는 언론의 책임도 크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요청해서 정보나 자료를 주면 ‘이 분들 임금이 이렇게 높아요?’ ‘좀 더 임금 낮은 분들 없어요?’란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뭔가 자극적이고 극단에 있는 사람들, 머리를 조아리는 불쌍한 사람들을 기삿거리라고 생각하니까. 그러다보니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이해가 낮아져서 ‘무기계약직’처럼 가장 첨단의 비정규 노동 형태가 정부나 자본의 선전 그대로 아름다운 정규직화의 사례로 기사화되기도 한다. 

김규항 = 조·중·동이 아니라면, 경향이나 한겨레라면 노력이 필요하다. 고만고만한 정치인들의 동정은 현미경처럼 다루면서 시민들의 보편적인 삶을 좌우하는 문제에 그런 식이라면 말이 되는가. 물론 비정규직 문제가 워낙 복잡하긴 하다. 비정규직은 기간제, 간접고용, 특수고용으로 나뉘지만 그런 모든 게 노동자들을 더욱 무력하게 만들려는 자본의 전략이다 보니 계속 세분화하고 시시각각 더 특수한 경우가 만들어진다. 주류사회의 최고 전문역량이 총동원되는 것인데 그에 대응하는 활동이 쉬운 일은 아니지 싶다. 

김혜진 = 비정규직 문제가 김대중 정권 이래 정부가 직접 통제에 나서다 보니 단순한 노사관계가 아니라 온갖 법률적 문제로 전환되어 버렸다. 상근을 시작한 활동가들이 처음 1년 정도는 관련 용어들을 파악하는 것도 힘들어할 정도다. 대응이 쉽지 않고, 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법률위원회와 정책위원회를 두고 있다. 법률위원회는 매달 워크숍을 연다. 변호사들, 노무사들, 노동법학자들, 활동가들이 모여서 판례를 검토하고 비정규직법과 관련한 주요 쟁점도 검토하는데 이번에 100차 워크숍을 연다.

김규항 = 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파견철폐공대위로 시작해서 출범한 지 10년이 되었다. 특별한 계획이 있는가.

김혜진 = 가을에 비정규노동자 정치대회를 열려고 한다. 정치대회라면 대선 관련인가 오해할 사람도 있겠지만 진짜 정치대회를 하려는 것이다. 투쟁하는 비정규 노동자들과 비정규 노동자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돌아가며 발언도 하고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과제들을 놓고 함께 이야기도 하는, 지난 1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10년을 생각하는 자리를 마련하려 한다.

김규항 = 양대 선거도 있고, 그 방향이나 내용이 옳은가 그른가를 떠나, 어쨌거나 대중의 변화에 대한 열망이 뜨겁다.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김혜진 = 진짜 사람들이 극단에 와 있구나 하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중소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 같은 걸 해보면 전에 없이 적극적이다. 활동가들도 힘을 많이 받는다.

김규항 =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사람은 극단적 상황이 되면 오히려 변화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거나 스스로 왜곡되는 경우도 많은데.

김혜진 = 여러 이유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이명박의 공이 아닌가 싶다. 이명박을 욕하고 거부하는 분위기가 거대한 벽이나 권력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노동자들을 움직이게 하는 면이 있다. 물론 그런 에너지가 단지 이 정권이 저 정권으로 바뀌는 차원으로 왜곡되어 드러나고 있어서 1987년 민주화 투쟁 이후에 노동자 대투쟁이 벌어진 것 같은 국면이 열리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변화에 대한 열망과 정말로 변화가 될까 하는 고민이 활발하게 부딪치고 있다는 건 희망이 아닐까. 앞으로의 10년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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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자본주의는 이미 위기, 복지국가보다는 사회주의가 대안”

옥중시인 송경동씨가 최근 펴낸 산문집 말미엔 김진숙씨가 크레인에서 내려오던 날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묵묵히 일한 활동가들이 아니라 정치인과 유명인들을 비추는 풍경이 적혀 있다. 제도정치가 아니라 운동정치가 사회변화를 주도해온 한국 사회에는 이름이 드러나지 않은 헌신적인 활동가들이 참 많다. 그들이 바로 지배체제의 폭압으로부터 정직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버텨낸다. 이종회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지난 35년 동안 활동가로 살아왔다. 

김규항=2008년 미국발 공황 이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의 물결이 거세다.

이종회=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운동은 1999년 WTO(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를 저지한 ‘시애틀 전투’와 이라크 전쟁 반전 투쟁이 물려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한풀 꺾이는 모습이었다. 2008년 공황으로 다양한 흐름들이 생겨나고 있다. 유럽에서 노동자의 임금을 인하하고 연금과 같은 복지를 삭감하려는 정책에 반대하는 급진주의적인 흐름이 살아나고, 아랍에서도 민주주의와 생존권을 요구하는 저항이 거세고, 미국의 월가 싸움이 있고.

 
김규항=미국에서의 반자본주의 구호는 고목나무에 핀 꽃처럼 보인다. 미국의 좌파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비판적 지지’와 ‘선거연합’을 통해 대부분 민주당으로 흡수되어 버린 상태 아닌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둘러싸고 우리에게도 그런 변화의 자극이 되는 것 같다.

이종회=미국의 변화는 그만큼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에 이르렀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자본 운동의 국제무역과 관련해 본다면 2차 세계대전 이후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에서 시작해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가 합의되면서 WTO 체제로 가는데, 이게 참가국가(153개국) 만장일치 체제라 합의가 어려워지면서 FTA가 힘을 얻기 시작한다. WTO나 FTA에서 일반 공산품은 핵심이 아니다. 일상적인 식량, 서비스 부문, 즉 공공정책, 복지, 의료, 교육, 교통, 통신 등에다 지적재산권 같은 것들에 대한 교역, 즉 수탈이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다.


[##_1C|cfile25.uf@170361414F03FA511BF8CD.jpg|width="400" height="240" alt="" filename="cfile25.uf@170361414F03FA511BF8CD.jpg" filemime=""|좀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활동가 이종회 대표가 지난달 15일 진보네트워크센터 사무실에서 카메라 앞에 섰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_##]


김규항=삼성이 한·미 FTA의 기획자 노릇을 하고 의료민영화 계획에 투자해온 것도 바로 그런 맥락인 셈이다. 한·미 FTA는 보수가 아니라 자유주의 세력이 기틀을 만들고 주도해왔는데.

이종회=김대중이 ASEAN(동남아국가연합)+3으로 갔다면 노무현은 미국과의 FTA를 중심으로 동시다발적인 FTA로 가면서 자본의 진로를 열어주었다. 한편 시민운동은 주주자본주의를 대중화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그런 흐름을 지원했다.

김규항=그럼에도 그들은 진보세력으로 미화되곤 한다. 그들은 이명박과 적대적이지만 이명박의 가장 큰 수혜자다.

이종회=이명박이 나쁜 놈인 건 분명하다. 그러나 이명박 경제정책이 노무현과 다른 건 하나도 없다. 4대강 이야기하지만 노무현은 새만금, 부안 핵폐기장을 마무리했다. 제주도 해군기지도 용산도 노무현이 시작했다. 이명박이 폭압적이라고 하지만 노무현은 평택 대추리에 군대를 투입했고 한·미 FTA 반대 시위를 하는 농민 두 분이 사망할 만큼 저항에 관한 한 폭압적이었다.
연금·복지와 관련된 체계를 시장화한 것도 유시민이었고 자본시장 통합법도 노무현이 만들어서 이명박에게 선물한 거다. 분명한 차이라면 북한과의 관계일 텐데 그것도 양면이 있다. 남한은 한·미 FTA에서 개성공단 생산 상품에 ‘Made in Korea’를 붙이고 싶어 한다. 햇볕정책은 평화를 내걸고 있지만 북한을 남한 자본시장에 하위 배치하는 데만 중심을 둔다면 문제다.

김규항=그런 맥락에서 이명박 정권은 더 열심히 햇볕정책을 해야 하는데 워낙 막돼먹은 극우 습성 때문에 북한과 틀어져버렸다. 자본의 하수인이 자본 운동을 훼방하는 코미디랄까. 어쨌거나 김대중·노무현 같은 자유주의 정치세력이나 이명박 같은 보수 정치세력이나 사회경제의 면에선 다를 바 없음을 들춰내기에 불편한 배경은 있는 것 같다. 워낙 극우 독재기간이 길고 그 잔재세력들이 엄존한다.

이종회=유럽 사람들은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같은 전쟁이 자본주의가 세계적인 공황을 극복하는 방법이었음을 어지간히 안다. 예를 들면 영국 BBC에서 공황 이후 여론 조사를 한 걸 보면 대안체제로 사회주의를 거론한 사람이 60%를 넘는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전쟁은 이념 전쟁이었다. 그 왜곡된 상처와 잔재가 우리에게 내면화·구조화되어서 내려오고 있고 국가보안법이라든지 억압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김규항=진보라는 사람들 상당수가 이명박 정권교체에 올인하는 모습은 결국 우리가 국가보안법에 반대한다면서 실은 국가보안법 체제에 스스로 사로잡혀 있음을 드러낸다. 

이종회=2008년 공황 직후에 WTO 전 사무총장 파스칼 라미가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앞두고 ‘보호무역으로 가면 전쟁 난다’고 했다. 사실 공황은 자본 스스로 해결 방법이 없다. 결국은 사회주의를 얘기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지금의 경제적 고통을 넘어서고 전쟁의 참화를 막을 수 있다.

김규항=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과잉투자, 과잉축적 속성이 이윤율 저하를 부르고 결국 공황으로 터진다고 했는데 2008년 상황도 그대로다. 주류경제학은 공황을 예측조차 못하는 철저하게 무능한 모습을 보였는데 한국에선 주류경제학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만 꺼내면 매우 비현실적인 좌파 꼴통으로 치부된다.

이종회=반MB전선에서 ‘나꼼수’에 열광하고 문재인이나 안철수 대통령을 기대하는 대중들이 사회주의 쪽 이야기에 거부감을 갖는 건 아쉬운 일이지만 이해가 간다. 문제는 지식인, 학자들이다. 사회주의 이야기에 꼴통 좌파라는 식으로 대중들의 거부감을 부추기는 말만 할 게 아니라 사회주의가 아니면 어떤 대안이 있는지 진지한 논의를 해야 한다. 

김규항=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청년 시절에 풍찬노숙하며 운동했지만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중산층으로 자리잡은 사람들이라 이명박 정권만 교체하면 정말 세상이 바뀌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주장은 진지한 견해라기보다는 그런 욕망에 기초한 경우가 많다. 그런 몰지각한 사람들은 차치하고 장하준처럼 케인스주의의 복원이나 유럽식 복지사회를 고민하는 경우는 어떻게 보나.

이종회=지금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통화정책을 비롯해 케인스주의 정책을 다 써봐도 백약이 무효인 게 확인되고 있다. 복지 이야기는 지난 지자체 선거에서 위력을 보인 무상급식이 씨앗이 되었는데 생존권의 또 다른 표현으로 제기된 게 정책처럼 되어버렸다.
복지는 분배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은 생산체계와 연계된 문제다. 현재 자본주의는 공공부문과 복지부문을 시장화하지 않고는 살아남지 못할 정도의 위기상황이어서 이를 없애가면서 형성된 신자유주의이고 그래서 유럽도 복지가 무너지고 있는 판인데 한국이 복지사회로 간다는 건 이치에 안 맞는 이야기다. 

김규항=세계적으로 청년들의 저항이 거센 건 공황 이후 선진국에서도 30~40%에 이르는 실업률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높은 실업률은 노동운동의 연대나 투쟁력을 위축시키는 점도 있지 않은가. 우리의 경우 핵심은 역시 비정규 문제인데. 

이종회=찰리 채플린 영화를 보면 공황 시대에 실업자들이 배급을 타려고 줄 서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이면엔 AFL-CIO(미국노동총연맹 산업별조합회의)를 체제내화시키려는 전략이 있었다. 한국 사회도 김대중이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관리체제를 근거로 정리해고와 파견제를 도입하고, 노무현이 비정규직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노동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리가 된다. 기존에 민주 노동운동의 구심이었던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 되거나 해고될까봐 잔뜩 겁을 먹게 되었다. 비정규직은 생존 자체에 매달려야 하고 학생들은 학생운동이고 뭐고 학교 들어가면 취업 준비에 매달리고. 

김규항=근래 민주노총의 모습을 봐도 그렇고, 정규직 남성 대공장 노동자들이 구심이 되는 노동운동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이종회=계급운동이 새로 서는 노동운동, 불안정 노동자들의 정치적 조직화가 숙제다. 기존의 정규직은 생산 수단에 안정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형태라 군대적 편제에 따른 총파업 등의 정규전이었다면, 비정규직·실업을 포함한 불안정 노동의 조직 방식이나 투쟁 방식은 비정규전이고 게릴라전일 수밖에 없다. 그 정확한 형태와 방식은 좀 더 고민이 필요한 상태다. 촛불, 희망버스에 대한 성찰적 연구도 필요하고. 

김규항=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일부가 유시민과 통합진보당을 만들었다. 여러 의견들이 있는데 진중권 같은 사람은 통합을 거부한 사람들을 ‘좌익소아병’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종회=노동자가 노동자의 삶을 대변하지 않는 자유주의 정치에 의존하지 않고 정치세력화하려고 만든 게 민주노동당이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반MB’라는 몰개념적 정치공학으로 그 오랜 노력이 물거품이 될 지경에 처해 있고 진보신당 정도가 그 깃발을 부여잡고 있다. 그런 안타까움에 낯선 사람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죽음을 넘나드는 사람들의 피눈물을 느끼지 못하는 건 오히려 당연한 일 아닐까. 

김규항=선생은 진보신당보다 급진적인 사회주의자인데 이념적 지향으로서 사회주의인가, 현실적 대안으로서 사회주의인가.

이종회=둘 다이고 현실적으로는 후자다. 2008년 공황은 자본주의의 일시적 위기가 아니라 바닥을 드러낸 사건이다. 대안도 해결책도 없이 환율정책, FTA와 같은 특정한 지역의 극단적인 시장확장 정책 등으로 파산 위기에 몰린 거대기업들을 구제하기 위한 정책들만 난무하면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1%의 부자들은 오히려 더 부자가 되고 청년실업, 정리해고, 비정규직이 상시적인 형태가 되었다. 이윤을 위한 무차별한 생태계의 파괴로 후세의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과 유럽, 아랍 등지에서 99%가 거리에 나서게 되고 ‘고장난 자본주의’ ‘자본주의 이제 그만’ ‘문제는 자본주의다’라고 하는 구호들이 제기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자본은 1, 2차 세계대전이 그랬듯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도 높다. 인류와 지구의 위기 속에서 사회주의는 매우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기된다.

김규항=‘닥치고 정권 교체’에 대한 이의 제기가 오히려 노동자와 서민의 고통을 외면하고 교조적 이상만 좇는 행위라 여겨진다. 한국 사회는 마치 최면에라도 빠진 듯하다.

이종회=신자유주의적인 자본축적 전략의 폐기 없는 대안, 그리고 이미 시효가 지난 케인스주의를 기반으로 한 대안은 단지 집권을 위한 술수일 뿐이다. 정권이 바뀌면 정치적 보수주의는 개선되겠지만 사회경제적 변화는 없을 것이고 모순이 깊어지면서 노동자와 서민의 고통은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규항=국가보안법 이야기도 했지만 사회주의를 말하자면 역시 현실 사회주의의 상처가 큰 벽이다. 현실 사회주의가 사회주의였다고 생각하나. 

이종회=냉정하게 말해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문제는 현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와 경쟁하면서 스스로 사회주의의 이상으로부터 멀어져 간 것이다. 생산력을 모든 것의 우위에 두고 인민 대중을 그 동원 체계로 배치하는 억압적 관료체제가 되면서 사회주의적 가치관이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김규항=‘자유로운 생산자연합’이라는 사회주의의 본색은 현실 사회주의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프롤레타리아독재에 대한 오해나 오용도 심각한데.

이종회=현실 사회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독재는 당 관료들의 독재로 왜곡되었고 오늘 대개 그렇게들 알고 있지만 실은 노동자 민주주의의 개념이다. 자본주의의 잔재를 척결하고 자유로운 생산자연합을 건설하기 위한 민주주의의 전면화인 것이다. 토론을 통하여 의견을 모아나가는 과정은 사실 효율성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인내심과 존중심을 필요로 하는 그런 지난한 과정이야말로 노동자 민주주의다. 

김규항=1980년대엔 청년 사회주의자들이 많았다.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민주화가 되면서 대부분 체제 안으로 들어갔는데 선생은 오히려 사회진보연대, 비정규직 철폐연대, 진보넷, 참세상 등을 꾸리며 운동진영의 살림꾼으로 살아왔다. 떠나지 않은 비결은.

이종회=지키고 싶은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존재조건이 가치를 규정하는 속성이 있다. 대중성을 위해서, 현실성을 위해서, 여러 명분과 핑계들이 있지만 떠나면 내 의지와 무관하게 가치를 재구성하게 된다. 그걸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김규항=그 가치는 뭔가.

이종회=없는 자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의리. 사회주의자는 눈물이 많다고 했던가. 35년 동안 수많은 동료들이 떠나갔고 배신감도 들었지만 후회는 없다. 경제적 문제라든가 불편한 점이 있지만 그 가치를 포기했다면 나는 불편해진 게 아니라 불행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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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민중의 싸움터에 힘을 주는, 나는 파견 미술가”

경기 안성시 보개면 시골마을에 이윤엽의 소박하지만 멋스러운 작업실 겸 집이 있다. 다 쓰러진 폐가를 이윤엽이 8개월이나 손수 매달려 살려낼 때 동네 사람들은 ‘밀고 다시 지으면 될 걸 왜 사서 고생을 해’라며 혀를 찼다. 그가 밖을 돌아다니다 눈에 띈, 온갖 버려진 물건들을 실어다 마당에 쌓아놓자 사람들은 그를 동네에서 내쫓을 걸 고민했다.
언제나 노동자와 농민을 그리는, 평택 대추리에 용산에 한진중공업에 이 나라 민중의 싸움터엔 어김없이 자신을 ‘파견’하는 그는 민중미술의 영락없는 계승자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는 민중미술에 대해, 민중에 대해 끝없이 회의하고 질문한다. 목판화를 닮은 묘한 얼굴로.

[##_1C|cfile23.uf@134686444EDF098B28C367.jpg|width="520" height="210" alt="" filename="cfile23.uf@134686444EDF098B28C367.jpg" filemime=""|판화가 이윤엽씨가 지난달 28일 경기 안성의 작업실에서 용산참사 등을 소재로 한 작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_##]


▲ “민중이 특별히 건강하다 생각해본 적 없어”
▲ “민중이든 지배계급이든 어느 한쪽만 일방적으로 선하다는 생각은 억지”
▲ “현장이 내 그림의 힘… 나도 현장에 힘을 준다”

김규항 = 작업 환경 때문에 일부러 시골을 선택한 건가.

이윤엽 = 아니다. 짐은 많은데 돈은 없고 해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작업 환경 때문에 시골을 선택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내 경우는 그런 이유라면 오히려 도시 변두리 같은 데, 시장이나 사창가 같은 게 남아 있는 곳으로 가면 좋겠다. 근래 작가들이 노동자 정년 나이쯤 되면 시골로 오는 게 법칙처럼 되었는데 나는 그 나이가 되면 거꾸로 도시 변두리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김규항 = 창작의 현장성이 연령대에 따라 일원화하는 건 그리 좋은 현상이 아닐 것이다. 요즘에야 시골 사람들도 다 주변화한 도시인처럼 되어버렸지만 시골 노인들에게 그나마 농적(農的) 삶의 흔적 같은 게 보이지 않나.

이윤엽 = 대화하다 보면 순간 찡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아까도 요 밑에 사는 할머니가 파를 뽑고 있기에 “지금 파를 왜 뽑으세요, 팔 거예요?” 그러니까 “아니 파는 게 아니라 날이 더 추워지면 파를 뽑을 때 딱딱 부러져. 그래서 미리 장갑도 손도 다 젖었지만 지금 뽑아야 해. 파 좀 가져가라” 하시는데 참.

김규항 = 옛 민중미술에서 말하는 ‘민중의 건강성’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이윤엽 = 난 민중이라는 사람들이 특별히 건강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내가 목판화를 하고 노동자를 그리고 농사꾼을 그리니까 사람들은 나더러 민중미술 한다고 하는데 민중미술이 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한창 때 민중미술에 대해 어떤 회의 같은 것도 있다. 민중에 대해 정말 고민했다면 머리에다 빨간 띠 씌우고 주먹 불끈 쥐는 식의 상투적 형상화는 아니지 않았을까 싶은 거다. 이름 없는 분들 중에도 훌륭한 민중미술가들이 있었다는 것도 되새기고 싶다.
언젠가 1980년대 목판화들을 복사본으로 다 모아봤는데, 나도 이걸 하다 보니 정말 진정성 있게 했구나 싶은 분들은 느껴지는데, 그런 분들이 많더라.

김규항 = 그런 분들도 있고 몇몇 작가들은 민주화 이후에 미술시장에서 ‘민중미술’이라는 장르로 수집가들의 선택 목록이 되기도 했다. 역사란 늘 그런 것 같다. 진보적인 인텔리들은 자신의 사회적 관념을 민중에게 투사하려는 속성이 있고 1980년대 민중문화운동에선 그게 폭발했다. 건강하고 순박하기만 한 민중. 그렇게 민중을 미화하다가 시간이 흘러 관심이 바뀌면 민중을 언급하는 것조차 낡고 촌스럽게 여긴다. 우스운 일이지만 결국 같은 모습이다.

이윤엽 = 이해가 잘 안 간다. 그런 행태 이전에 민중이든 지배계급이든 어느 한쪽의 인간들이 일방적으로 건강하고 선하다는 생각부터가 억지스럽다. 사람에겐 사람으로 살아가는 공통된 속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미화할 것도, 무시할 것도 없다.

김규항 = 지배와 피지배, 착취와 억압의 관계에서 사회적 선악을 말하는 것과 인간 개인의 선악을 말하는 건 차원이 다른데 혼동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민중의 대상화와 미화도 결국 그런 맥락에서고. 애초에 미술을 하게 된 사연은 뭔가.

이윤엽 =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어릴 땐 사람이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갈지 사회가 다 정해주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 뭘 하며 살아야 할지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른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는 줄창 놀다가 극장 간판 몇 년 하다가 건축현장에서 막노동을 몇 년 했다. 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뒤늦게 미대에 갔다. 주변이 민중미술을 하는 선배들이 많았는데 그들의 작업이나 분위기에 선뜻 공감하기 어려운 데가 많았다. 그런데 그림만 그리면 나도 모르게 비슷한 걸 그리게 되더라. 그럴 순 없다고 생각했다.

김규항 = 민중미술의 대의에 대한 거부감이었나.

이윤엽 = ‘노동해방’이나 ‘민중해방’ 같은 구호에 쉽게 동화되지 않았다. 동화되지 않는데 그런 그림이 그려지는 게 너무 괴로워서 그림을 포기했다. 그러다 IMF 사태(외환위기) 때 전통찻집을 몇 년 했다. 개량 한복 입고 앉아서 안에다 개 한 마리 풀어놓고. 손님 적을 때 간간이 목판화를 하기 시작했는데 2002년에 우연찮게 개인전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벽에 걸린 내 그림에 내가 ‘뻑갔다’.

김규항 = 정말 말 그대로 뻑갔나.

이윤엽 = 재수 없게 들려도 할 수 없는데 정말 뻑갔다. 좋다, 이젠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김규항 = 그림을 포기할 때도 민중미술이었고 지금도 노동자와 농부를 그린다.

이윤엽 = 예술은 낚시 같은 거라 생각한다. 물론 1년이 걸리든 2년이 걸리든 해야 되겠다는 작업도 있지만 결국 그것도 어느 찰나에 딱 낚이는 이미지들이 있다. 그게 도대체 왜 낚이는가 생각해보면 살아온 건 어쩔 수 없구나 싶다. 노동자와 농사꾼을 그리게 되는 건 내 부모와 이웃과 나 스스로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김규항 = 예술가란 자신이 체험하지 않은 걸 그려내는 상상력의 존재이기도 하지 않은가.

이윤엽 = 재능이 좋은 분들이고, 난 내가 보고 겪은 것들 안에서만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러니 그런 것만 그리게 된다. 물론 상상력이라는 게 있지만 그 상상력의 범주 역시 어떤 수준을 넘어서진 못하는 것 같다. 내 한계라고 할까.

김규항 = 나는 내가 느끼고 본 것만 그린다, 나는 리얼리스트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는데 굳이 한계라고 하는 건 예술가 특유의 자의식으로 느껴진다. 선생 그림에선 어린 시절을 건강하게 보낸 사람만의 기운이 느껴진다는 사람들이 있다. 어땠나.

이윤엽 = 정말 끝내줬다. 나를 키워준 팔할은 우리 동네에 있던 저수지와 냇가, 그리고 동무들이었다. 늘 거기에서 놀았다.

김규항 = 가난했나.

이윤엽 = 엄청 가난했다. 아버지는 실직자였는데 이따금 일용직 일 가시고 어머니는 닥치는 대로 일했다. 우리 집만 가난한 게 아니라 그 동네가 ‘하꼬방 동네’였다. 수원 시내에서 밀려난 사람들, 근처 삼성전자의 ‘공돌이 공순이들’이 방 한 칸씩 다닥다닥 붙어사는 동네였다. 그러나 내 어린 시절은 완벽했다. 마음껏 놀았으니. 요즘 애들 정말 어떻게 사는 건지 모르겠다. 가난해도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다는 걸 부모들이 잊은 것 같다.

김규항 = 대추리 싸움 때 2년 들어가 살았고 용산에도 결합했고 언제나 투쟁 현장과 결합한다. 그런 현장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작가로서 감정선은 어떻게 조우하는가.

이윤엽 = 물론 슬프다. 그런데 그 슬픔이 지나치게 적다는 생각이 들어서 힘들 때가 있다. 사람들이 나를 껴안고 막 우는데 난 눈물이 안 나올 때 난 왜 이럴까 사이코패스인가 숨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문정현 신부님 보면 울고 화내고 뒤집어지고 하시는데 조금도 과장이 없다. 나도 저럴 수 있다면 저렇게 한번 갈 수 있다면 끝내주는 작품이 나올 것 같은데 싶을 때가 많다.

김규항 = 선생의 작품들에 그려진 현장의 슬픔과 분노는 전혀 밋밋하지 않다. 작가에겐 여느 사람보다 대상에 온전히 스며드는 감성도 필요하지만 작가적 관점을 유지하는 거리두기의 힘도 필요하다. 민중을 대상화하지도, 미화하지도, 슬픔과 분노를 과장하지도 않는 것은 슬픔과 분노를 온전히 형상화해내는 힘일 수 있지 않을까.

이윤엽 = 동감하지만 나에겐 그런 열등감이 있다. 창작이란 일종의 오버이기도 하니까.

김규항 = 사람들은 선생이 그 현장의 슬픔과 분노에 누구보다 불타올라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불타오르지 않고는 그렇게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결합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니라면 그런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동력은 뭔가.

이윤엽 = 재미와 즐거움. 현장은 물론 슬픈 일투성이지만 내가 뜨면 사람들이 좋아하고 그러면 나도 좋다. 현장이 내 그림에 힘을 주고 내가 현장의 사람들에게 힘을 준다. ‘내가 뜨면 싸움은 이겨’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떠벌리고 다닌다. 요즘 싸움이라는 게 이겼다고 해도 애매한 절충과 타결인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파견 미술가들이 싸움의 에너지를 만들어낸다는 게 난 좋다.

김규항 = ‘파견 미술가’는 파견 노동자에서 따온 말인가.

이윤엽 = 용산 싸움 할 때 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몇 년째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 따지고 보니 제일 어렵게 사는 건 미술가들이더라. 용산 유족 분들도 큰 가게를 했던 분들이고 대공장 비정규직도 우리보단 낫고. 비정규직 가운데서도 가장 열악한 게 파견 노동자더라. 그래서 농담삼아 ‘우리는 파견 미술가네’ 한 게 우리 이름이 되고 활동이 되었다. 파견 미술가라는 게 투명 자동차 같은 거다. 탑승자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미술가가 아닌 사람들도 있고 누가 한 사람 올라타면 시간이 되는 사람들 함께 타고 가서 리본도 묶고 그림 설치도 하고.

김규항 = 공공미술은 미술가들이 그룹을 만들어 지자체나 기업과 결합해서 체제 내적인 활동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파견 미술팀이야말로 공공미술의 본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생계는 어떻게 해결하는가.

이윤엽 = 열심히 뭐든 한다. 결혼을 늦게 했는데 아내가 내가 생활 문제에 예상보다 엄청 투철해서 좋다고 하더라. 벽화고 삽화고 다 해서 살 것 사고 카드 값도 막고 그렇게 남들과 다름없이 살림을 꾸려간다. 그래도 요즘은 출판 쪽 일이 많아져서 밖에서 험하게 일하는 경우가 조금은 적어졌다. 사무직 노동자들도 참 힘들게 사는구나 새삼 배우게 되었고.

김규항 = 요즘 사람들이 살아가는 걸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이윤엽 =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물론 소수의 부자들이 아니라면 산다는 건 언제나 힘들고 만만치 않다. 그러나 행복이라는 건 큰 게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있다가 밖에 나갔는데 바람이 쫙 불고 뭐가 팔랑팔랑 움직이는 거 보면 불현듯 ‘행복하다’는 느낌이 드는 그런 게 아닐까. 나는 어릴 때도 가난했지만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한 걸 보면 훨씬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김규항 = 행복이란 선생이 말한 그런 것일 텐데 이젠 기억하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 끝없이 경쟁하고 불안해함으로써, 경쟁과 물적 축적 속에서 행복을 향해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세상이랄까. 물론 그건 개인의 타락이나 속물화가 아니라 자본의 지배방식이니 간단치는 않은 문제다. 민중미술 이야기를 마무리해보자. 민중미술에 대한 선생의 회의와 질문은 결국 민중미술에 대한 열망 아닌가. 혹시 진행 중인 나름의 구상 같은 게 있는가.

이윤엽 = 후진 예술이라는 게 있다면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기를 드러낸 예술치고 민중미술 아닌 게 어디 있는가. 주먹 불끈 쥐고 머리에 띠 두른 것 말고 정말 민중이라는 걸 형상화해 보고 싶다.
이 이야기를 하는 순간 옆집 할머니, 할아버지의 방이 떠오른다. 이쪽에 손주 사진 액자 붙여놓고 모조 꽃 이만하게 담아놓고 저쪽에 단지 놓고 하는 그들 나름의 인테리어. 농사꾼들이 방에 바람막이로 사료 부대나 비료 부대를 붙이는데 아무렇게나 붙이지 않는다. 사료 부대 여기다 붙이고 비료 부대 저기다 붙이고 또 임시로 붙여놓고선 멀리 떨어져서 보고 다시 고쳐 붙인다. 그런 미의식을 추적하다 보면 뭔가 근사한 게 나오지 않을까.

김규항 = 이미 추적의 흥겨움이 느껴진다.

이윤엽 = 민중미술에는 많은 훌륭한 선배들이 있었고 이제 민중미술은 저수지다. 예술은 수만가지의 형식과 방법이 있고 그 모든 예술을 다 존중한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예술은 고여 있지 않은 것, 작게라도 졸졸 흐르는 것이다. 나는 강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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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MB만 넘으면 된다’는 생각이 자본이 바라는 상태 아닐까

재능교육 해고노동자들의 농성투쟁이 1500일을 앞두고 있다. 그들은 이른바 ‘특수고용’ 노동자들로서 사측과 정부에선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라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노동자라는 것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열명 남짓의 노동자들이 벌이는 외로운 싸움은 우리의 삶에 어떤 것일까. 그리고 그 선두에 선 사람의 속내는 무엇일까. 학습지노조 재능교육 지부장 유명자씨를 서울시청 앞 농성장에서 만났다.


▲노동자의 현실에선 노무현 정권도 잔혹

김규항 = 1500일이 되어간다.

유명자 학습지노조 재능교육 지부장이 15일 서울 중구 재능교육 을지로 사옥 앞에 설치된 농성장에 섰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유명자 = 곰도 100일 동안 쑥과 마늘만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데 우리 노동자들은 곰보다 못한 처지인 모양이다. 1500일이 돌이켜보면 참 길지만 하루하루 동지들과 함께할 일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김규항 = 재능노조가 만들어진 게 1999년이고 한때 노조원이 3000명에 달했다. 이젠 열명 남짓이 싸우고 있고 특수고용 노동자는 노동자라는 것조차 인정받지 못한다.

유명자 = 특고(특수고용 노동자)라는 말이 우리가 99년에 단체협상하고 노조 인정받으면서 생겨났다. 그 이듬해부터 보험 모집인, 건설 레미콘, 덤프, 경기 보조원 이런 데들이 막 조직화되기 시작했다. 정부와 자본 측에선 그 흐름에 긴장했고 노조 방해공작과 법적 차단에 들어갔다.
노동자임을 인정하지 않고 공식적인 이름도 특수고용 노동자가 아니라 ‘특수 형태 근로 종사자’다. ‘너희는 노동자가 아니라 사장들이다. 자신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 잘 살 수 있다’는 선전이 일반 시민들에게도 깊이 심어졌다.

김규항 = 대부분 여성들이라 장기 농성에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유명자 = 거리에서 하는 농성이라 여성 건강에 더 치명적이다. 돌아가면서 병에 안 걸린 사람이 없다. 남성 위주 공장 같은 데는 사수대도 있고 용역깡패가 들어와도 맞짱 뜨고 싸우고 한다지만 우린 용역들이 들어왔을 때 훨씬 무력하다. 용역들의 행태도 많이 다르다. 성적 수치심이나 신변의 위협들, ‘너희 집 가봤는데 집 앞에 자전거 좋더라. 네 새끼 거냐’는 식의 협박들. 불면증, 정신적인 쇠약에 정말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다.

김규항 = 이명박 정권 이후 노동운동 진영 전체가 갖는 흐름이 있고 그런 것에서 속앓이는 없는가.

유명자 = 언제쯤이면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한번 할 수 있을지. 생각이 다른 건 좋은데 비판과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는 게 문제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도 민주노총에서 너무 심하게 박원순 일변도로 몰아붙여서 회의 때 한 번 토해낸 적 있다. 분위기 싸해지고. 나는 어느 정파의 이해관계에서 말하려는 게 아니라 노동자로서, 계급의식 속에서 토론하고 판단하자는 건데 그런 논쟁이 어렵다. 이명박만 넘어서면 된다는 생각에 모두 빠져있는 거야말로 자본이 바라는 상태 아닐까.

김규항 = 한국의 자본과 지배계급은 갈수록 철저한 계급의식을 갖고 행동하는데 운동진영은 여전히 윤리로 세상을 보는 경향이 있다. 어떤 계급의 편인가가 아니라 나쁜 사람인가 좋은 사람인가가 주제가 되면 그들을 넘어설 방법이 없다.

유명자 =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진보적인 경향의 인사들이 ‘이 정도면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우리로선 ‘별다를 게 없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노동자의 현실에선 이명박 정권보다 노무현 정권이 더 잔혹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체험한 일인데 다들 너무 쉽게 잊는다.

김규항 = 신자유주의 시대라는 게 노동이나 경제만 양극화되는 게 아니라 사회문화의 모든 부분이 양극화한다. 소설 같은 것도 신경숙 공지영은 뭘 내도 몇십만부 팔리지만 여타의 의미있는 작품들은 아예 독자들의 눈 밖인 경우가 많다. 재능투쟁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 그런 면이 있는데.

유명자 = 많은 분들이 왜 재능지부 싸움이 그렇게 이슈화나 쟁점이 안 될까 궁금해 한다. 그렇게 부각되지 않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학습지 산업 자체가 산업적인 파괴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수고용 노동자 문제라는 게 입법하고 정부 측이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 실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레미콘이나 덤프처럼 조직화된 수만명 조합원이 있는 곳도 많이 싸웠지만 아직 해결이 안 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겪는 어려움이 전체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어려움으로 생각하고 전체 노동자계급의 싸움으로 생각하게 된다.

김규항 = 자신들의 문제 해결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인데 노동자 계급의 문제로 사고한다니 존중심이 든다. 사실 학습지 노동자들의 싸움은 한국의 서민부모들이 공분할 문제다. 재능교육 사주는 타워팰리스에 살지만 이미 부자의 아이들은 학습지로 공부하지 않는다. 학습지라는 것은 돈이 성적을 만드는 한국의 교육현실 속에서 서민들이 선택하는 경쟁 방법이다. 그렇게 서민의 돈을 우려 부자가 된 사람들이 학습지 교사의 노동자성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

유명자 = 처음에 노동조합을 만들고 파업할 때 그런 점에서 부모들과 공감대가 형성되었었다. 내 아이 가르치는 선생이 이렇게 열악한 상황이구나, 이게 개선이 되어야만 내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겠구나 하는 생각들이 있었다. 한달 넘게 파업을 했는데 그렇게 교육열이 높은 엄마들이, 돈 생각 나고 아이들 교재 한 권 안하면 그렇게 아깝고 뭔가 뒤처진다고 조바심내는 엄마들이 90%가 넘게 우리를 기다려줬다.
그 힘을 받아서 2001년도에는 회비 인상 저지 투쟁도 했다. 우린 회비에 따라서 몇 퍼센트를 받기 때문에 회비가 오르면 임금이 오른다. 그러나 IMF 이후 실직하거나 어렵게 된 가정을 생각해서 회비 인상을 반대했던 것이다.

김규항 = 내가 발행인 노릇을 하고 있는 ‘고래가그랬어’의 기본적인 편집 철학이 ‘우리 아이들은 대부분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미래의 노동자들이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자랐으면 하는가.

유명자 = 말씀대로 아이들의 99%는 노동자로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부모들은 아이가 노동자로 살길 바라지 않으니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가치관이 형성될 여지가 없다.
국어 논술 교재에 ‘아이아코카의 선택’이라고 해서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온다. 아이들이 열에 아홉은 그런다. ‘회사 살리려면 당연하지요.’ ‘그러면 아빠가 그렇게 잘리면 어떻게 해?’ 하면 다들 ‘우리 아빠는 그런 일 하는 사람 아니에요’ 말한다. 아이들은 공장에서 기름 묻히고 일하는 사람만 노동자라 생각한다. 부모들의 변화가 중요하다.

김규항 = 고래가그랬어도 결국 부모 문제라는 생각에서 부모서명운동과, 다른 고민을 하는 부모들의 전국적인 커뮤니티를 준비하고 있다. 교육 문제를 보면 사실 보수진보가 없다. 진보교육을 말하고 진보교육감 말하는 사람들도 제 아이는 일찌감치 외국에 보내거나 적어도 외고엔 보낸다.

유명자 = 일제 고사 반대할 때 전교조 조합원들 10퍼센트만 참여해도 일제고사를 없앴을 것 아닌가. 상급 노동운동가 중에도 알게 모르게 기러기아빠들이 있다. 불안감에 내몰리는 서민 부모들 앞에서 너무들 하는구나 싶을 때가 많다. 그런 사람들이 계급적 관점을 가질 수 있을까.

김규항 = 부모들 강연 가면 말하곤 한다. ‘지금 이 자리엔 여럿인 것 같지만 동네로 돌아가면 다들 혼자시죠?’ 그럼 다들 씁쓸하게 웃는다. 교육문제든 노동문제든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연대다. 어떤 사람들은 서유럽이나 북유럽의 자본이나 지배자들은 톨레랑스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넘쳐서 노동자들에게 잘 대해주는 것처럼 하는데 까르푸 자본이 한국 노동자와 프랑스 노동자에게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것에서 보듯 자본이나 지배 계급의 습성은 기본적으로 똑같다. 다른 건 그곳 노동자들은 노동자의 문제에 연대하고 우린 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본이 하는 것의 반의 반만 연대해도 노동자 투쟁 승산

유명자 = 우리 싸움에 연대해온 대학생들에게 항상 이야기한다. ‘연대해 주러 온다’고 생각하면 오지 마라, 너희가 시간되고 사회의식이 있어서 불쌍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 싸우는데 와서 힘이 되어준다고 생각하면 오지 마라. 너희들도 노동자로 살아갈 것인데 자본과 어떻게 싸우고 대응하고 어떤 원칙을 갖는 게 바람직하다는 걸 배우길 바란다.
청소노동자들에게 대학생들이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 호칭엔 연대하고 함께 싸우는 노동자가 아니라 가르치고 도와주어야 할 불쌍한 대상의 의미가 느껴진다.

김규항 = 참 중요한 말이다. 연대와 불우이웃 돕기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함께 되새겼으면 좋겠다. 물론 그런 관점으로 사람들의 선의를 재단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지만 구분되지 않으면 그런 싸움을 지지하는 체하면서 그런 싸움을 낳은 구조를 챙기는 사람들에게 악용될 수밖에 없다. 청년들과 시민들의 의식이 놀라운 속도로 진전하고 있으니 나아질 거라 본다. 김진숙씨가 309일 만에 무사히 내려왔다.

유명자 = 한진 싸움도 희망버스가 뜨기 전까지 굉장히 외롭고 된 상태였지 않은가. 김진숙씨가 처음 올라갔을 때 운동진영에서조차 영웅주의니 해가면서 비판들이 있었고. 희망버스가 이렇게 세상을 들썩이게 할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참 큰일을 했다. 그러나 그만큼 희망버스에는 거품도 많았다. 한진 싸움이 일단 권고안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싸움은 이제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다.

김규항 = 김진숙은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역할 이상을 충분히 했으니 이젠 우리가 할 일이 남은 셈이다.

유명자 = 민주노조를 지키면서 합의안이 이행되도록 싸워나가야 하는데 쉽지만은 않은 싸움이다. 조남호는 쌍용차 이상의 짓을 하고도 남을 사람이고 ‘1년 유예’라는 조건 자체가 그 준비 기간인 셈이다.

김규항 = 진보정당도 아닌 정동영씨가 그만큼 애를 쓴 것, 김여진씨의 인간적 진정성은 그 자체로 상찬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승리의 축제 분위기에서 희망버스 활동가들은 오히려 생각이 많아 보이더라.

유명자 = 무대 뒤에서 묵묵히 일해온 사람들, 김진숙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면서 김진숙을 만들어낸 구조를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 김진숙의 생환을 기뻐하면서 승리감에 취하지 않고 본격적인 싸움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김규항 = 선생 역시 생각이 많아 보인다. 재능 투쟁과 결부지어 좀더 듣고 싶다.

유명자 = 사실 많이 걱정된다. 근래 몇 년 동안 투쟁 사업장 하나하나 합의되고 마무리될 때마다 자본은 거의 업종과 산업을 넘어 똑같은 합의안을 제시하고 있다. 소수 몇 명을 일시에 복직시킨다고 해서 큰 비용이 나가는 것도 아닌데 1년, 2년, 3년씩 유예 기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조금씩 들여보내선 현장에서 고립시켜서 빼내고 고립시켜서 빼내고 해서 결국 고사시킨다. 우리는 지금 ‘열두명 전원의 유예없는 일시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저 꼴통들 힘도 제일 없는 것들이 쪽수도 제일 안 되는 것들이 답답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우리도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일단 그렇게 내걸고 그것에 맞춰서 투쟁해야 한다. 그리고 툴툴 거릴 게 아니라 자본이 연대하는 것의 반의반이라도 연대하면 분명히 그렇게 풀린다. 불가능한 싸움은 없다.

김규항 = 열번 백번 생각해도 결국은 연대다. 1500일 안에 승리하기 위해 ‘100일 집중투쟁’을 벌이고 있고 ‘시민 1500인 선언’도 조직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연대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참 힘든 상황인데 이렇게 살아온 걸 후회하는가.

유명자 = 오히려 감사할 뿐이다. 나는 원래 운동권도 아니었고 학습지 교사 노릇하다가 ‘이건 아니구나’ 생각하게 되면서 노조에 참여하고 현장 간부하고 중앙간부하고 투쟁 사업장의 지부장까지 하면서 인간과 세상에 대해 많은 걸 배웠고 성장했다. 노동자로서의 계급의식과 세상을 보는 관점을 책이 아니라 현장에서 체득한 것도 스스로 대견하다. 이렇게 살지 않았으면 투쟁하지 않았으면 조금은 편하게 살 수 있었겠지만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볼 수 있었을까. 이명박보단 노무현이 훌륭하고 나경원보단 박원순이 훌륭하다는 생각 말고 뭘 할 수 있었을까.

김규항 = 마치 성공한 부자의 말처럼 들린다.

유명자 = (전화기를 들어 보이며) 난 정말 부자다. 투쟁으로 만난 이 소중한 인연들, 나를 위로하고 내 삶을 정화시켜주는 이 사람들이 얼마나 큰 재산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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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도가니? 장애인이 갇혀 사는 것에 대한 담론이 없었다

박경석은 스물다섯 살 때 행글라이더 사고를 당했다. 의식을 되찾았을 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지만 장애인으로 살 거라곤, 더구나 장애인 운동가로 살 거라곤 상상하지 않았다. 1980년대 초에 대학을 다니면서 데모 한번 안한 ‘제법 놀 줄 아는 날라리’였던 그는 철로에 쇠사슬로 몸을 묶고, 청와대 행사에서 대통령과 언쟁을 벌이다 들려나오고, 국회의원 자리마저 고사하는 비타협적인 투사로 변신했다. 그러나 25일 혜화동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만난 그는 누구보다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다.

김규항 = 장애인 운동에 굳이 ‘진보적’이라는 말을 붙이는 이유가 뭔가.

박경석 = 장애인의 문제에 대한 다양한 접근과 시각들이 있는데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비장애인과 사회로부터 눈물을 자아내게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이 주류다. 진보적 장애인 운동은 장애인들의 권리가 보장되고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지난달 25일 인터뷰 도중 휠체어를 탄 채 서울 혜화동 대학로 거리로 나왔다. 이곳에는 그가 진보적 장애인 운동의 실천 공간으로 삼고 있는 노들장애인야학이 있다.


김규항 = 동정과 시혜의 관점은 장애인 운동의 주류이자 사회적 시선의 주류이기도 한데.

박경석 = 우리 사회는 장애인 문제에 대해 시혜와 동정, 불쌍하다 이상의 생각은 찾아보기 어렵다. 근래 <도가니>라는 영화가 화제인데 영화가 나오기 십년 전부터 피터지게 싸웠고 묻혔었다. <도가니>가 문제를 환기한 건 고마운 일이지만 그 영화를 둘러싼 시선과 관심 역시 주류의 틀을 넘어서진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김규항 = <도가니>는 이른바 시설의 문제를 다룬 영화다. 틀을 넘어선다는 건 무엇보다 시설을 넘어선다는 건가.

박경석 = 그렇다. 장애인이 시설에 갇혀 살아가게 하는 것 자체가 인권침해임을 기억해야 한다. 장애인이 시설이 아니라 지역 사회에서 동네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주거도 인정해주고 활동 보조가 필요한 사람은 활동보조자를 24시간 두고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설에 들어가는 돈과 지원을 지역 사회로 돌리면 가능하다. 그게 안 되는 건 시설, 즉 사회복지 법인들이 사유화된 기업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그걸 해결하려는 장치가 공익 이사제인데 사유재산 침해라는 주장에 밀려 버렸다. 따지고 보면 자본주의와 닿아 있다.

김규항 = 신자유주의적 흐름은 문제를 좀더 심각하게 만들 수밖에 없겠다.

박경석 = 신자유주의의 가속화는 바로 사회복지의 신자유주의화 시장화로 이어진다. 복지 법인을 하는 사람은 성장할 수 있지만 장애인의 권리는 후퇴하거나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김규항 = 근대 이전에 장애인은 본인이나 부모가 죄를 지어서 신의 벌을 받는 죄인으로 취급되었는데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장애인은 죄인인 것 같다.

박경석 = 자본주의는 경쟁과 속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뒤처지는 사람은 죄인 취급을 받으니 장애인은 용서받지 못할 죄인인 셈이다. 뒤처지는 게 죄가 아니라 하나의 정체성으로 인정받는 세상으로 가는 운동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본주의 체제와 반목할 수밖에 없다.

김규항 = 외국의 경우는 어떤가.

박경석 = 일본의 경우를 보면 예전엔 <도가니> 같은 인권 유린이 있었고 그걸 해결하려는 사회적 움직임이 있었다. 그리고 시설을 극복하려고 ‘내 신체성이 자본주의 거부한다’는 구호를 내건 급진적인 장애인 운동이 활발했는데 이젠 대부분 사업 기관으로 흡수되어 버린 상태다.

김규항 = <도가니> 같은 인권유린도 문제지만 장애인운동이 체제 내로 흡수되어 사멸하는 상황도 참 무서운 것이다. 이명박과 수구 세력을 극복하는 게 진보운동의 유일한 목적이 되면 진보운동이 자유주의 세력에 흡수되어 힘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인데, 운동의 하한선을 정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박원순씨가 “이명박 정부 들어 정부와 대기업의 발길이 뚝 끊겼다”고 기자들 앞에서 하소연하는 걸 보며 민망했다.

박경석 = 결벽증이라 오해할 분들도 있겠지만 그런 돈을 받으면 운동을 압박하고 종속해서 결국 체제 내적인 운동이 될 수밖에 없다. 극우세력이 ‘좌빨’이라고 해준다고 진보운동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도 어렵다고 하니 시민들의 후원이 전부인 우린 좀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500일 농성’까지 해가며 10여년을 뼈빠지게 투쟁했는데 먹고사는 문제와 미래 문제로 고민하는 걸 보면 마음이 많이 아프다.

김규항 = 시민들의 대가 없는 후원이 많아져야겠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이자 ‘노들장애인야학’의 교장인데 두 활동을 조화시키는 게 어렵진 않은가.

박경석 = 같이 잘 하려고 한다. 노들장애인야학은 교육 적령기를 놓친 장애인들이 오는데 기본적인 학과공부도 하지만 장애인 문제에 대해 같이 이야기하고 교육받고 함께 실천하는 공간이기도 해서 운동과 분리되지 않는다.

김규항 = 학생들이 그런 지향이나 정체성을 공감하기까진 갈등도 있겠다.

박경석 = ‘1 더하기 1은 2’를 배우러 왔는데 갑자기 데모를 하니 의구심이나 갈등도 많다. 그러나 곧 ‘나를 위해 너무나 당연한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교사들도 운동이 아니라 그냥 가르치고 싶어 들어오는 경우도 많다. 노들야학의 지향점을 놓고 토론이나 논쟁이 아주 많다. 모든 학생과 교사가 조금은 다르면서도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나아가는 상태가 된다. 이 공간을 통해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노들’이라는 말 그대로, 노란 들판에서 평등하게 함께 나누는 삶을 꿈꾸게 된다.

서울 노들야학 불수레반에서 장애인들이 국사 수업을 듣고 있다.


김규항 =
노들야학에서도 검정고시 공부를 하는데 그런 공부와 철학과 세계관을 형성하는 공부는 어떻게 병행되나.

박경석 = 둘을 한데 녹여내려 한다. 한글을 못 쓰는 장애인들에게 ‘철수야 영희야’ 가르치는 것하고 ‘활동 보조’ ‘이동권 권리’ 같은 단어를 써서 가르치는 것하고는 전혀 다르다.

김규항 = 순진한 장애인을 의식화하려는 게 아니라 장애인들의 실제 일상의 언어일 뿐이다.

박경석 = 일반 교과서는 장애인 자신의 삶과 관련된 단어는 없다.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교육, 훈시적 교육이 아니라 주체들이 대상들이 함께 동참하는 교육이어야 하고 그에 따른 교육 과정, 교재를 만들어가고 있다.

김규항 = 내 살림 챙기기도 어려운데 다른 진보운동과 노동 운동에 적극적으로 연대하려는 태도가 인상적이다.

박경석 = 결국 하나이기 때문이다. 노동자 계급의 문제가 풀리면 장애인 운동이 자동으로 풀리는 건 아니지만 노동자의 문제 해결 없이 장애인 문제만 풀릴 수도 없다. 설사 풀린다고 해도 올바르게 풀리는 게 아니라 망해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자본과 노동의 계급 갈등과 차별은 그대로 존재하는데 장애인이 행복할 수 있는 건 자본주의 체제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치장거리로 이용하는 경우일 가능성이 높다. 장애인을 내세우면 얼마나 생색내기 좋은가.

김규항 =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 행사에서 대통령과 언쟁을 벌이다 경호원들에게 들려나온 사건이 떠오른다.

박경석 = 장애인 차별 금지법이 제정되고 노무현 정부의 치적을 자축하는 자리였다. 장애인 차별 금지법을 만든 건 물론 잘했지만, 장애인 부모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단식 농성하고 있었고 사회복지 시설 비리 때문에 계속 투쟁하고 있었고 그리고 활동보조인 서비스의 시장화 정책에 대해서 반대하고 있었다.
나는 장애인 차별 금지법을 대통령이 서명하기 전에 우리 장애인들이 밥을 굶으며 투쟁하고 있는 문제를 먼저 알고 서명했으면 좋겠다, 대통령을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말했는데 대통령은 ‘장애인 차별 금지법을 만들었으니 우리나라 좋은 나라’ 이런 이야기만 하고 싶어 했다. 결국 대통령의 지시로 들려 나갔다.

김규항 = 당시 복지부 장관이 유시민씨였는데 복지를 모조리 시장주의 원칙으로 설계하는 바람에 지금도 애를 먹고 있는데.

박경석 = 이를 테면 활동보조인 서비스 자부담률이 4만원에서 8만원으로 올랐다가 이젠 몇십만원으로 올라버렸는데 그 때 유시민 복지부 장관이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시장주의 원칙이 아니라 복지원칙으로 만들어놓았으면 이명박 정권도 함부로 건드릴 순 없었다.

김규항 = 2004년 총선에 민주노동당 장애인 비례대표로 추천받았었는데 고사했다. 당시 순위로 볼 때 수락했으면 국회의원이 되었을 것이다. 국회의원이 되면 장애인 운동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의견도 많았을 텐데. 옛날에 단병호 선생도 ‘노동자 국회위원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탄한 적이 있고 스스로 하기도 했다.

박경석 = 당시 장애인 문제에 대해 현실적 판단으로 따지면 국회의원이 되는 게 좋다는 의견도 많았다. 그런데 사회변화라는 게 아래로부터의 든든한 기초, 사회 운동, 투쟁을 잘 할 수 있는 대중적인 조직, 건강한 소통 이런 활동들이 더 중요한 것이지 제도 하나 바꾼다고 그래서 예산이 조금 더 늘어난다고 바뀌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4년을 싸워서 ‘교통약자 편의증진법’을 만들었는데 예산이 없다고 안하는 걸 보면서 법 하나 만들었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구나, 단체 예산 따는 거, 운영비 예산 따는 건 잘 할 수 있겠지만 보편적인 권리를 만드는 투쟁은 제도 하나 가지고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생각했다. 제도가 주는 함정도 경계해야 하고.

김규항 = 자칫하면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세상을 본다거나 교조주의적이고 독불장군이라고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데 사실 우리 사회의 주요한 사회변화는 4·19부터 민주화, 촛불시위까지 의회정치가 아니라 시민들의 직접 행동을 통해서 다 이루어졌다.
그런데 선거 때만 되면 ‘최악은 막아야 된다’느니 ‘현실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느니 해서 국회의원이 몇 명이 되느냐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전부 쓰나미처럼 휩쓸려가 버리는 게 사회 진보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런 면에서 열악한 장애인 운동의 중견 활동가가 그런 결정을 했다는 건 참 소중한 일이었다.

박경석 = 그때 국회의원이 되었다면 나는 그걸로 끝났을 것 같다. 노년은 좀 편안히 보낼 수 있었겠지만.

김규항 = 제일 힘 빠질 때는 어떤 때인가.

박경석 = 싸움의 대상이 강해서 이명박 정부가 너무 탄압하기 때문에 힘이 빠지진 않는다. 오히려 힘이 나고 운동을 즐겁게 만들기도 한다. 정말 힘이 빠지는 건 지난 10여년의 활동에 대해, 직접행동의 투쟁 방식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낡았다고 충고할 때다. ‘몸으로 부딪히고 천막치고 농성하는 것 가지고는 요즘 씨알도 안 먹힌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 무너지는 느낌이 든다.

김규항 =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시위의 방식을 언제나 선택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촛불 들고 평화 행진하고 기자회견하는 것만으로 할 수 있다면 안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없는 형편에 벌금 받고 영장받고 하는 걸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굳이 길에서 싸우고 천막치고 농성하지 않으면 꿈쩍도 안하는 주제가 있는 건데 구경하는 사람들은 ‘구시대적 방식’이니 한다.

박경석 = 안타깝다. 사실 몸을 쓰는 싸움은 우리 싸움의 일부일 뿐이다. 트위터도 하고 토론도 하고 문화제도 하고 기자회견도 하고 할 수 있는 건 다 한다. 가능한 한 부드럽고 온건한 방식을 선택하려 해도 몸으로 할 수밖에 없는 싸움도 있다는 걸 함께 인정하면 참 좋겠다.

김규항 = 가장 행복할 때, 이렇게 살기를 잘했다 싶을 때는 언제인가.

박경석 = 노들야학에서 학생들과 이야기할 때가 가장 재미있고 행복하다. 나는 해병대 출신에 1980년대 그 엄혹한 시절에 대학을 다니면서 데모 한번 안한 날라리였다. 그게 정상적인 삶인 줄만 알았던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노들야학 덕이고 동지들 덕이다.

김규항 = 행복해 보인다. 10여년 전 처음 만났을 때 오랜 농성으로 심한 욕창에 걸린 상태였지만 그때도 지금처럼 행복해보였다. 선생의 삶과 선택들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행복에 대해 생각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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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가난한 아이들 최면거는 ‘거짓 희망’ 대신 ‘아픈 현실’ 일깨워 줘”

김중미씨(48)는 1987년 빈민운동을 하기 위해 인천 동구 만석동에 들어갔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동 현장과 ‘민중의 삶’의 현장으로 투신했던 수많은 청년들처럼 말이다. 그로부터 25년, 대개의 청년들은 돌아와 중산층 시민으로 살아가거나 수구기득권 세력과 정권, 사회적 헤게모니를 두고 경쟁하는 또 하나의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 하지만 김중미씨는 여전히 그곳에 있다. 김중미씨는 누구보다 행복한 얼굴을 한 채 ‘어릴 적 꿈을 이루었다’고 말한다.

김규항 = 1987년에 만석동에 들어왔으니 25년째다. 운동의 의미를 넘어 여기서 계속 살 만한 어떤 가치가 발생했다는 건데.

김중미 = 처음 들어올 생각을 할 때 빈민운동 쪽 선배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네가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까지 빈민으로 만들 자신이 있으면 가라.” 당연히 “네”라고 했는데 그게 내내 화두가 되고 세월이 되었다.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 ‘기찻길 옆 작은학교’에서 ‘큰이모’로 불리는 김중미씨가 지난 8일 인천 만석동의 학교 건물 앞에서 인터뷰 도중 웃고 있다. 벽화는 공부방 아이들이 그린 것이다.


김규항 = 1987년의 운동권은 곧 혁명이 다가올 것만 같은, 한창 긴박한 분위기였는데.

김중미 = 선배들이 거기서 그러고 있지 말고 서울로 올라오라고 여러 번 했는데 도저히 못 가겠더라. 1988년에 공부방을 시작했다. 굉장히 힘들었지만 어머니들이 믿어 주고 ‘쟤네들 뭐지’ 하며 신기해하면서 기대기도 하고 자신들의 삶을 나눠주고 하는 것들이 나를 붙들었다.
빈민운동을 하러 들어왔으니 처음엔 빨리 조직을 만들어야 하고 뭔가 가시화된 걸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제대로 된 운동권 출신이 아닌 건지 내가 위에 서서 주민을 조직하고 공부방을 열자마자 부모회를 만들고 하진 않았다. 아이들과 여름캠프 간다고 어머니들과 모이고 ‘성탄잔치 해요, 우리’ 하면서 모이고 하다 보니 어머니들도 덜 긴장했다.
그리고 같이 들어온 후배들도 가난하게 자란 과거가 있거나 뭔가 상처가 있는 친구들이 남게 되고, 별로 잘난 것도 특출난 것도 없는 사람들끼리 활동하다 보니 오래 가게 된 것 같다.

김규항 = 그 세월 동안 ‘절대빈곤’은 많이 가셨지만 가난의 의미, 가난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많이 변했다. 옛날엔 가난한 축에 들면서도 이웃과 함께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이젠 가난한 사람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길 것을 강요당한다.

김중미 = 예전에는 가난한 동네가 굉장히 생명력이 있었다. 이 동네도 전과자들도 많고 마약하는 사람들까지 있어서 경찰차가 만날 상주할 정도였고 굶는 사람도 있었지만 사람들에게선 삶의 에너지가 있었다.
그런데 IMF를 기점으로 신자유주의가 본격화하면서 많이 변했다.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도시빈민 지역도 그냥 중산층 시민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소비하는 거다. 이 사회에서 내가 뒤처지지 않게 사는 방법은 남들이 가진 걸 갖는 것이니까. 그런데 이게 물 위에 켜놓은 양초처럼, 위는 화려하지만 밑은 뿌리도 없다. 다들 빚더미에 눌려 살아간다. 우리가 처음 왔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가난이다. 우리는 사라져버린 뿌리를 다시 심는 싸움을 하는 셈이다. 더 지루하고 더 지난한 과정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더 가난한 사람들을 포기할 수 없다.

김규항 = 가난이라는 게 그 방향에 따라 의미가 전혀 다르지 않은가. 사회구조에 의한 가난은 부수어야 할 악이지만 ‘자발적 가난’이나 무소유 정신은 인간의 가장 품격 있는 태도인데, 이젠 돈 귀신이 들린 세상에서 어지간히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사람들조차 가난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에 쩔쩔매며 살아간다.

김중미 = 우리도 이제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고 그런 상황 앞에서 막막할 때가 있다. 그렇지만 이걸 포기하면 내가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람답게 존재감을 갖고 사는 세상이 올 거라는 우리의 처음 희망도 버릴 수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에겐 가난하기 때문에 지켜지는 게 있다. 함께할 수 있는 힘.

김규항 = 부자에겐 없는 힘이다. 공부방 아이들도 많은 변화가 보일 텐데.

김중미 = 가난한 아이들이 처한 상황이 부초다. 어떤 때는 정말 풀풀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예전에는 어머니들도 다 몸을 써서 살았던 분들이고 아이들도 그걸 보고 자랐기 때문에 가난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고 오히려 공동체성이 살아있고 이랬는데 이젠 아이들의 성장이나 교육이 돈 있는 사람들과 없는 사람들로 딱 갈라져서 규정되어 버렸고 가난한 아이들의 뿌리를 앗아가 버렸다.
하지만 그런 무기력함 속에서도 아주 잠깐씩 반짝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 반짝이는 순간을 보는 것, 그 순간을 조금씩 늘려가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다.

김규항 = 처음 공부방에서 지내던 아이들은 이제 서른, 마흔이 되었다. 당신들과 공부방이 없었다면 그들의 삶은 달랐을까.

김중미 = ‘우리가 뭘 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서른다섯 된 친구가 ‘공부방 때문에 나쁜 짓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하더라. 이젠 멀리 떠나 뭣도 없고 몸뚱이밖에 없는 놈들이 세상을 헤쳐 나가야 하는데, 결혼해서 애도 낳고 식구도 먹여 살려야 하는데, 멈칫하는 순간이 있다는 거다. 또 그 아내 되는 사람이 그러더라. 남편이 만석동에 오는 건 두 가지다. 뭔가 자랑할 게 있거나 좋아서 나누고 싶을 때, 아니면 너무 힘들 때다. ‘세상은 다 변하는데 여기만 안 변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가끔 한다.

김규항 = 이 인터뷰에 응하는 것도 전체 회의를 통해 결정했다고 들었는데 모든 문제들을 그렇게 결정하나.

김중미 = 매주 목요일 회의에서, 모이기 어려운 사람은 전화로라도 참여하여 결정한다. 사실 생각들이 비슷해서 큰 의견 차이는 없는 편이다. 이를테면 희망버스 문제라 할 때, 다들 타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의견이 부딪히는 거의 유일한 경우는 공연 준비할 때다.


김규항 =
창작 작업이니 당연하다. 매해 열리는 기찻길 옆 작은학교 공연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근래에는 인형극 공연으로 더 유명하다. 내용도 좋고 기량도 빼어난 편인데.

김중미 =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00년 즈음인데, 처음에는 그냥 아이들하고 노는 거였다. 연극 같은 건 쑥스러워 하니까 인형을 내세워서 하게 되면 애들이 좀 더 자기 이야기를 수월하게 하고, 노래라든가 춤이나 다양한 걸 섞어서 정말 버라이어티하게 보여줄 수 있었다. 인형을 만들고 조작하고 무대에 올리기까지 여러 사람이 협동해야 하는 작업이라는 것도 우리와 맞았다.
춘천 인형극제에서 상도 받고 거기에서 전문 인형극단과 견주어도 주제나 기술이나 뒤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서 아이들이 자부심도 갖게 되었다. 우리 눈에 ‘이 녀석은 딱 이게 맞아’ 이런 애들도 생기고 아이들이 자기들이 갖고 있는 가치를 나눌 수 있는 게 참 좋다.

김규항 = 아이들이 같이 창작하고 공연도 많이 하러 다니는데 삶의 치유효과 같은 게 있지 않을까.

김중미 =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아이들이 몸이 반응하고 일어나는 걸 본다. 연습하려면 힘들고 함께하면서 갈등도 있고 투덜거리지만 천천히 일어난다. 아이들이 그런 에너지를 일상 속에서 지속하는 건 쉽지 않지만 공연을 할 때마다 ‘이런 거였지’ 하고 몸을 일으켜서 멋지게 공연을 끝낸다. 그게 거듭되면서 아이들의 성장에 거름 역할을 하면 좋겠다.

김규항 = 한국 교육은 아이들이 대학입시를 통해 아이가 얼마짜리 인간인가를 평가하는 19년 동안의 과정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부자들이 고도로 발전한 사교육을 통해 자기 아이들의 성적을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려서 전처럼 가난한 집 아이가 열심히 공부한다고 따라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런 경쟁에서 가난한 아이들은 절망적인 상황인데.

김중미 = 안타까운 건 가난한 아이들이 사회로 나가기 전에는 그걸 모른다는 거다. 어떻게 보면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심리도 있고. 요즘은 소비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는 시절이니 아이들도 내가 공부를 못해도 우리집이 가난해도 노스페이스 점퍼 24만원짜리를 입고 있으면 다른 사람과 똑같아진다고 생각을 한다.
자기의 열등감이나 자괴감은 너무나 깊은 곳에 꾹꾹 눌려 있기 때문에 예전에는 공부 못하고 뭣도 없는 놈들이 깡이라도 있고 여차 하고 부딪쳐 보려는 거라도 있었는데 이젠 없다. 그걸 우리는 잔인하게 일깨워주는 입장이 되어야 한다.

김규항 = 워낙에 불공정한 현실이 압도적인 상황이다보니 ‘긍정의 힘’이니 뭐니 하는 식의 거짓 희망으로 사회구조에 의해 짓눌리고 배제되는 사람들을 최면에 빠뜨리는 이야기들도 많다. 현실을 일깨워주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힘을 만들어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김중미 = 아이들이 그런 최면에 사로잡혀 살아가길 바라지 않는데 학교에서도 어디에서도 해주지 않는다. 그렇게 현실을 직면하게 하는 거랑, 어차피 가난한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 살아야 하니까 혼자 사는 방법을 이야기해주는 거랑. 나는 아이들이 열등감이나 자괴감을 자각하고 살면 참 좋겠다. 그러면 뭔가 오기라도 있을 텐데, 우리 사회는 그 오기마저 못 갖게 하고 그렇게 계속 마취시킨다.

김규항 = 사악한 사회다. 공부방 이모·삼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나 방식도 아이들에겐 참고가 될 텐데.

김중미 = 아이들이 우리 사는 걸 봐왔으니 우리 이야기도 한다. “이모·삼촌들이 ‘찌질하게’ 살지만 함께 살면 이렇게도 갈 수 있어.” 그러면 “난 ‘찌질하게’ 살고 싶지 않아요” 하고 야무지게 이야기하는 아이들도 있다. 후배 아이가 서울의 어느 교육 공간에 참여도 하고 그러는데 그쪽 선생들이 그러더란다. ‘여기 수업 말고도 훌륭한 분들 많이 들락거리시니까 아무 때나 와서 이야기도 하고 듣고 그래라.’ 자기는 속으로 그랬다고 하더라구요. ‘우리 공부방 이모·삼촌들이 이름도 없지만 누구보다 더 훌륭한 사람들인데.’ 어느 쪽이든 현실에 대한 그런 야무진 자각이 좋다.

김규항 = 아이들에게 어떤 의식을 심어주거나 하진 않지만 공부방과 이모·삼촌들이 간직한 가치들이 아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지 않는가.

김중미 = 아이들은 대학에 가거나 진로를 정할 때 참 희한하게도 특수교육과나 사회복지학과, 유아교육과 같은 데를 선택한다. 아이들이 장래희망 같은 게 얼핏 보기엔 요즘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아 보이는데 좀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면 ‘사람에 관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김규항 = ‘사람에 관한 일’이라. 아이들로선 그런 일들이 옳다, 그르다 판단하기 이전에 멋져 보인다는 건데.

김중미 = 예를 들어서 1차 희망버스 때 우리 아이들이 갔는데 그때 영도조선소 담장을 넘지 않았나. 아이들에겐 그 상황이 너무 멋있었단다. 그런 체험이나 느낌들이 쌓이면서 막연하지만 ‘사람에 관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김규항 = 25년 전 수많은 청년들이 노동현장과 ‘민중의 현장’에 투신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돌아갔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새로운 기득권 세력이 된 사람들이 있다. 남은 사람으로서 그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김중미 = 어린이 책 관련해서나 지역에 강의 같은 데 가서 비슷한 또래들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청년 시절에 가졌던 가치를 소박하고 겸손하게 자신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구현하려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사람들 보면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고 희망도 느낀다.
그러나 그런 운동의 이력을 기반으로 정치를 하거나 진보교수나 진보지식인으로 행세하면서 ‘세상이 변했다’느니 ‘계급은 철 지난 이야기’라느니 강변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많이 불편하다. 정치를 하든 지식인 활동을 하든 자신의 기반이 된 사람들, 민중들의 손을 놓으면 스스로 끝 아닌가. 그런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나는 걸 넘어 불쌍하기만 하다.

김규항 = 이명박과 수구세력은 더 이상 우리를 현혹할 수 없으니 그들이야말로 가난한 사람들의 적인지도 모른다. 모든 책임을 이명박이나 수구세력에게 돌리며 ‘진보개혁세력’이라 불리는 또 하나의 기득권 세력. 당신과 동료들은 그런 기득권을 갖지 않았기에 진정 자유로운 게 아닐까. 25년의 선택을 반추한다면.

김중미 = 힘들고 불편한 일도 많았고 여전히 그렇기도 하지만 참 좋았다. 어릴 때 가난하게 살았지만 집이 문학적인 분위기가 있었고 학교 가기 싫을 때는 아버지가 나 데리고 휙 소풍을 가기도 하고 이웃 사람들과 잘 지내고 주인집 아줌마랑 옆집 아줌마한테 재미있는 이야기도 듣고 하는 그런 게 너무나 좋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작은 집에서 가난한 사람들끼리 모여 살아가야지 꿈꾸곤 했다. 난 어릴 적 꿈을 이룬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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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나만이라도 래디컬의 하한선을 지키겠다”

1970년대 이후 40여년을 한결같이 억압받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해온 ‘길위의 신부’ 문정현. 한국 사회운동의 산증인이자 가장 열정적인 현역 활동가이다. 제주 강정마을에서 주민들과 함께 해군기지 반대 싸움을 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인터뷰하고 돌아온 지 이틀 뒤 그가 경찰에 연행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규항(이하 김)=부모님이 늘 순교자 정신을 가르치셨다고 들었다.

문정현(이하 문)=활동하다가 사제들 중에 구속이 되었을 때 그 부모님들이 동료 사제를 원망하고 감옥간 아들 원망하고 하는 걸 보면서 우리 부모님이 다르다는 걸 절감했다. 난 도리어 ‘흔들리지 말라고 대건 순교자처럼 의연하라’는 응원을 받곤 했다.

김=어릴 적 일상에서는 어떠한 가르침을 주셨나.

문=‘정직하고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 ‘가난한 이웃을 생각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가르치셨다. 먹을 게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는데도 더 못한 이웃에 쌀을 갖다주라고 ‘솥뚜껑 열고 넣어놓고 오라’고 방법까지 알려주며 시키셨다. 돌이켜보면 그런 가르침들이 나라는 사람의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고등학교부터 신학교 생활을 했지만 내 공부의 절반은 부모님의 가르침이다. 일흔이 넘었지만 그분들이 그립다. 

김=신부님의 부모님은 더 특별한 경우지만, 그래도 전에는 여느 부모들도 아이에게 인간의 기본 꼴을 만드는 교육은 했던 것 같다. 공부 잘하라고 하면서도 공부가 다는 아니라고 가르치고 지나치게 욕심 부리면 죄받는다고 동무에게 양보할 줄 알아야 사람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이젠 좌파 부모도 그렇게 가르치길 두려워한다. 

문=사람을 키우는 건지 서커스단의 동물로 훈련을 시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아이들을 이렇게 키워서 인간성이 형성될 리 만무하다. 우리 사회의 미래가 정말이지 너무나 걱정이다. 앞이 캄캄하다. 

김=신자유주의 이야기를 많이들 하지만 가장 큰 재앙은 교육의 목표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에서 ‘얼마짜리가 되는가’로 바뀌어버린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가면 ‘공멸’인데 너나없이 돈에 대한 탐욕이나 불안감에 사로잡혀있는 시절이다. 예수는 ‘하느님과 마몬을 동시에 섬길 순 없다’고 말했는데.

문=그런 변화는 우리 사제들에게까지도 스며들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사제들이 가난하게 지냈다. 민주화운동 한다고 전주에서 서울 오갈 때 여비가 없어서 애를 먹곤 했다. 80년대 지나면서부터 윤택해지더라. 그리고 많은 게 변했다. 모두가 더 잘살기를 바라는 한 미래가 없다. ‘더불어 가난한 사회’가 살길이다. 식구들(군산 ‘평화바람’ 식구들)과 내 벌이로 함께 살며 공부하고 있다.

김=명동성당에서 농성할 때 형편이 좋지 않아 보였다. 

문=용산에서 나와 4대강 단식농성을 하러 들어갔었는데 명동성당이 민주화의 성지, 약자의 피신처라는 건 다 옛날이야기라는 걸 절감했다. 교구청 관리국장이라는 사람이 ‘영업방해’라는 언사를 사용하질 않나. 명동성당이 아니라 명동주식회사구나 싶더라. .추기경이나 본당신부나 후배들인데 아무리 생각이 다르더라도 천막도 없이 노숙하며 단식농성하는 사람한테 이럴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성 후에 군산에 돌아왔다가 다시 명동성당에 들어갔다. 그 즈음 서각을 시작했다. 오전에 기도하고 묵상하며 말씀을 새겼다가 오후에 그걸 팠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분노가 나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오더라. ‘내가 저 사람들 원망할 수 있는가, 나는 저 사람들 욕할 만큼 제대로 사는가, 저 사람들 욕하기 앞서서 나부터 제대로 살아보이자.’ 그 뒤론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김=그런 성찰과 용서를 가능하게 하는 영성이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여느 활동가들과 다르게 만들어주는 지점일 것이다. 그리고 강정으로 왔는데.

문=강정이 자꾸 떠올랐다. 용산에 있을 때부터 요청이 있기도 했고 명동에서 나오게 되니 자연스럽게 오게 되더라. 처음엔 혼자 왔는데 얼굴을 못 들겠더라. 미안하기도 하고 착잡하기도 하고. 하룻밤 자고 돌아가서 괴로워하다가 평화바람 식구 중 둘이 ‘같이 갑시다. 뭘 할 수 있을지 가서 봅시다’. 따라 나서서 와서 살게 되었다. 와서 보니 돈이 너무 없어서 ‘평화상단’을 만들어서 재정 사업을 시작했다. 강동균 마을회장 얼굴을 보며 살았다. 저 얼굴이 마을 사람의 얼굴이라는 마음으로. 마을 사람 이상도 이하도 아닌 마을 사람으로 살자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김=강정 싸움은 특별한 데가 있다. 해군기지가 들어선다고 대추리처럼 집도 뺏기고 땅도 뺏기고 하는 게 아닌데 마을 사람들이 결사적으로 저항하는 모습은 요즘 같은 시류에선 보기 드문 모습이다.

문=왜 이 사람들이 이렇게 결사적으로 싸우는 걸까. 나는 구럼비에 와보고 금세 알 수 있었다. 구럼비와 그 앞바다엔 어떤 거역할 수 없는 기운이 있다. 사람을 한없이 품는다. 말로 설명하긴 힘든 그러나 누구나 그곳에 잠시 머물기만 해도 이건 해쳐선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김=나 역시 처음 구럼비에 갔을 때 그걸 느꼈다. 문제는 그런 가치가 설득력을 갖기 힘든 세상이라는 건데.

문=안타까운 일이다. 그런 가치를 접고라도 강정 해군기지의 진행과정 자체가 헤아릴 수 없는 탈법과 부정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걸 하나라도 제대로 따지면 공사는 즉각 중단되는 게 옳다. 9월6일엔 이곳에서 선사시대부터 조선 유물까지 주르룩 나왔다. 문화재청에서 녹색 표시를 했는데 녹색은 그 어떤 공사나 개발도 못하는 곳이다. 헌법보다 위라고 한다. 그걸 무시하고 구럼비를 파괴하고 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 보전지역’이기도 하다. 

김=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문=이기고 지고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김=예수는 십자가에 처형당했는데 ‘십자가의 승리’라고 말하는 건 그 실패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사랑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사회적 싸움에서 이겼다 졌다 하는 건 역사의 맥락에서 보면 무망한 일인 경우도 많다. 이겼지만 결국 진 싸움도 있고 졌지만 이긴 싸움도 있는데.

문=물론 당장으로야 지는 것보다 이기면 좋겠지만 이렇게 압살당하다시피 하는 사람들을 보고 어떻게 지나갈 수 있나. 나에겐 이기고 지고보다 그게 더 중요하다. 나중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면 되고 지금은 주민들을 도와 열심히 싸우는 게 내 일이라 생각한다. 


문정현 신부가 지난 8월 중순 제주 해군기지 건설 예정지인 강정마을 구럼비해안 앞에서 노동운동가 한상욱씨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있다. 사진은 해군이 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이들을 막으려고 펜스를 설치하기 전에 촬영했다. | 천주교 인권위원회 제공
 

김=모든 게 경제적 계산으로 돌아가는 신자유주의 시절의 반영이겠지만 요즘은 사회운동도 ‘현실적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건 아예 생각조차 안하려고 하는 경향이 많다. 70년대부터 활동해온 사회운동의 산 증인이자 현역으로서 어떤 생각이 드나.

문=오래 전 목숨 걸고 함께 하던 사람들 가운데 남은 사람이 거의 없다. 남았다고 해도 제대로 남은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할까.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더 그렇게 되어버렸다. ‘현실적 가능성’이라는 게 늘 덫이다. 

김=현실은 오로지 비현실적인 상상력으로만 바뀌는 법이라는 점에서 ‘현실적 가능성’에 대한 집착이야말로 변화의 걸림돌인 셈이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듣고 싶다.

문=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분들이었지만 대통령으로선 전혀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이었다. 나는 IMF 때 김대중씨가 국민들에게 허리띠 졸라매고 갑시다, 우리 힘으로 일어서봅시다 하길 기대했는데 그렇게 안하더라. 있는 놈들한테 문 활짝 열어줘 버리고 무릎을 꿇더라. 그게 신자유주의 세상의 시작이고 결국 이런 세상이 되어버렸다. 노무현은 허망해서 말할 게 없다. 이명박은 그 시절을 토대로 집권하고 살고 있다. 

김=두 분에게 투표했었나.

문=하지 않았다. ‘비판적 지지’는 김영삼 때부터 나온 이야기다. 좀 더 현실적인 선택이라고들 했는데 그게 우리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고 뒷걸음질인지 깨달았다. 비판적 지지는 한번으로 족했다.

김=지금도 이명박 정권 교체를 위한 비판적 지지 바람이 거세다. 20여년째인데.

문=대중들이 당장 눈앞의 상황에 휩쓸리고 그걸 좀더 현실적인 선택이라 여기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나 자신은 래디컬의 하한선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경험으로는 그런 바람에 앞장서는 사람들은 언제나 ‘기득권’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나 역시 두 정권 때 이런저런 유혹도 많았다. 

김=기득권이 단지 돈이나 이권만이 아니라 문화권력 차원까지 포함한다고 할 때 두 정권을 거치면서 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일들도 관변이 되고 체제 내의 일이 되었다. 신부님이 그런 데 관여했다면 하고많은 민주인사들처럼 되었을까.

문=그걸로 나는 끝났을 것이다. 내가 래디컬의 하한선을 지키는 이유는 예수 때문이다. 예수가 가난한 이웃, 고통 받는 이웃들과 함께 하라고 가르쳤고 내가 동의했는데 민주화 운동이든 반이명박이든 무슨 이름을 달았건 이웃과 함께하는 삶을 거스른다면 나를 구분지을 수밖에 없다.

김=결국 ‘길 위의 신부’일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다.(웃음)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인데 누가 지었는가.

문=2002년에 MBC에서 나를 한달간 따라다니며 프로그램을 찍었다. 그걸 제목을 붙이는데 작가도 아니고 도와주는 젊은 친구가 편집 화면을 보다가 ‘길 위의 신부구만’ 했단다. 그 이름이 딱 마음에 박히더라. 그 후 내가 그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돈 받은 걸로 프로그램 제작진들 몽땅 밥을 샀다.(웃음) 

김=물론 농담이지만, 신부님의 삶이나 행동은 성격이나 기질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문=혈액형도 O형이고 체질도 태양이니 그럴지도 모른다.(웃음) 어디서 무슨 사건이 벌어지면 가만있질 못한다. 현장에 안가면 못살겠다. 같이 참여해야 하고 같이 얻어터져야 하고. 그러나 그 기반은 역시 신앙이다. 10·26 때 잡혀 들어가서 언제 끌려가 죽을지 모르는 판에 그런 기도가 나오더라. ‘지금 죽어도 좋으나 비굴하지 않게 죽게 해주십시오.’ 예수의 삶의 흔적, 예수와의 인격적인 만남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김=개인적으로 예수의 삶에서 가장 큰 공부가 된 것 중에 하나는 바리새인들과의 갈등과 반목이었다. 지금의 수구 보수세력에 해당하는 사두개나 지배세력과의 갈등이야 당시 의식있는 사람에겐 당연한 것이지만 바리새인은 이스라엘 사회의 변화를 위해 현실적인 노력을 했던, 지금으로 말하면 개혁세력이나 시민운동 세력에 해당하는 사람들 아닌가.

문=바리새인? 우리 주변에 쌓이고 쌓였다. 우리를 아예 둘러싸고 있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심지어 내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교황청에서조차 깊은 우려와 관심을 동시에 갖는 정의구현사제단에도 그런 경향들이 존재한다. 많은 경우에 우리 편이기도 하지만 래디컬의 하한선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그들이 바리새인들이고 우리의 싸움에 초를 치는 사람들이다. 선명해야 한다. 선명성이라는 건 복잡할 게 하나도 없다. 고통받고 내몰리는 사람들의 이웃이 되는 것. 누가 내 이웃인가를 분명히 하면 된다.

김=신부님이 사회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한 70년대 초반은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게 정의였지만 이젠 자본독재의 세상이 되었다. 그걸 잊으면 정의를 버리고 이웃을 외면하게 되는 셈이다. 신부님은 평화를 위해 싸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엔 평화에 대한 오해나 왜곡된 의식이 많다. 뭔가 조용하고 온화하기만 한 어떤 것으로 말이다. 평화란 흐트러지고 깨진 세상의 본디 조화를 회복하는 노력이니 때론 소란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문=이라크 파병에 즈음해서 전국 유랑을 두 번 하면서 평화가 뭔지를 몸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2004년 5월에 평택 평화대축제 연설에서 그걸 말했다.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 복직하는 것이 평화, 두꺼비 맹꽁이 도롱뇽이 서식처를 잃지 않는 것이 평화, 가고 싶은 곳을 장애인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평화, 이 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더 이상 빼앗기지 않는 것이 평화, 성매매 성폭력 성차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평화, 군대와 전쟁이 없는 세상 신나게 노래 부르는 것이 평화, 배고픔이 없는 세상 서러움이 없는 세상 쫓겨나지 않는 세상 군림하지 않는 세상이 평화다.’

김=강정에서 평화는 무엇인가.

문=있는 그대로 놔두는 게 평화다. 그러나 저절로 오는 평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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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희망은, 가진 자들이 만든 질서를 넘어서는 용기다

희망버스 기획하고 진행한 송경동 시인을 19일 서울 모처에서 만났다. 그는 현재 야간 시위를 주도했다는 혐으로 체포영장이 발부돼 수배자 생활을 하고 있다.


김규항 = 이곳에 갇혀 지낸 지 얼마나 되었나.

송경동 = 석 달쯤 지났다. 공식 수배 상태가 된 건 두 달 좀 지났다.


희망버스를 기획한 송경동 시인은 “비정규직이 900만명인 세상에 ‘운동’이 꿈과 이상, 그리고 다른 세상에 대한 확신을 접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김규항 = 어찌 보면 송경동이 갇혀 있는 건지, 세상이 갇혀 있는 건지 모르겠다. 송경동은 해방되어 있고 밖에서 자유롭게 활보하는 사람들이 자본의 감옥, 체제의 감옥에 갇혀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

송경동 =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말씀대로 많은 사람이 자본 감옥에 갇혀서 또 생존의 감옥에서 매달려 힘들게 살아간다. 이런 세상에서 육신은 좀 묶여 있을지 몰라도 심적으로나 양심적으로는 혼자 놓여나서 산다는 게 오히려 미안하고 과분하다는 생각을 한다. 

김규항 = 자본주의가 워낙 자기파괴적으로 가다보니 자본가들마저 자본의 감옥에 갇힌 시절이기도 하다. 인류 역사 내내 부자나 지배계급의 특징은 유한함이었는데, 이젠 새벽부터 밤늦도록 정신없이 바쁜 게 이른바 잘나가는 부자들의 상징처럼 되었다. 

송경동 = 더 많이 소외받은 사람들이다. 현실에서는 자본의 과실과 혜택을 거머쥐고 살지만, 그 때문에 공동체가 무엇인지, 사람들 간의 유대와 연대가 어떤 건지, 낮은 곳과 손잡는 연대가 얼마나 아름답고 가슴 뜨거운 것인지를 잃은 사람들이 아닌가. 부를 유지하려면 초인적으로 바쁘고 다른 사람들의 삶과 노동을 빼앗느라 폭력적이기까지 해야 하고. 

김규항 = 당신은 대학을 다니지 않았다. 한국의 진보운동은 전통적으로 학생운동을 기반으로 해왔는데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운동 엘리트들은 대부분 자유주의 진영으로 넘어간 반면 김진숙, 이갑용, 송경동을 비롯해 여전히 현실에 대한 지적 통찰력을 잃지 않고 활동하는 이들을 보면 오히려 대학을 다니지 않은 사람이 많다. 진정한 엘리트란 뭔가, 지성이라는 게 뭔가라는 질문을 해보게 된다.

송경동 = 난 거기에다 소년원 출신에 일용노동자 출신이니 운동진영뿐 아니라 사회 계급적으로도 가장 천한 사람인 셈이다. 그런 것들이 한때는 열등감이나 불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조건들이 오히려 나를 더 지혜로울 수 있게 했다. 인간의 모든 문명은 인간의 노동으로부터 만들어지고 노동 과정을 통해서 모든 경험이나 지혜가 나오는 것 아닌가.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노동은 삶에 대한 통찰, 인간 관계에 대한 통찰에서부터 사람을 지혜롭게 만드는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김규항 = 그런 조건이 실제 현실에서 열매 맺기는 쉽지 않은데.

송경동 = 노동하는 사람일수록 자본에 복속된 기계로, 시간 노예로 살아야 하는 사회다보니 자본이나 이데올로기의 억압 구조가 그런 지혜와 경험을 다 죽여버려서 실제론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나 학교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 아니라 노동하는 사람들이 유기적 지식인으로 성장해야 아름다운 사회가 된다고 생각한다.

김규항 = 그런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셈인데, 계기가 뭐라고 생각하나.

송경동 = 운동진영에서 꿈이나 이상, 다음 세계에 대한 확신 같은 게 사라져 버린 것에서 시작된 것 같다. 1980년대나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 사람만 만나도 혁명을 이야기하고 변혁을 이야기하고 전체 세계를 이야기하고 그랬잖은가.

그런데 1990년 동구가 몰락하면서 다음 사회에 대한 전망을 상실한 상층 활동가들에게 남은 건 작은 꿈뿐이었다. 예를 들어 민주노총이나 이런 곳들도 조합원 만들기만 남았다. 그러다보니 절차적 민주주의 내에서, 의회제도 내에서의 조그마한 지분 확보를 통한 뭐, 이런 꿈으로 자꾸 가다보니 사람들이 망가진다. 개개인의 진정성을 넘어 구조나 상황이 자꾸 그러니까 사람들이 작아지는 거다.

우리 정파가, 내 편이 어느 정도 지분을 가져야 하고 나는 어떤 자리 정도를 가질까, 이런 걸로 되다보니 사람들이 키워지고 길러지고 다시 재탄생되는 과정들이 없어져 버리고 관료적이고 기계적이고 수직적인 문화들만 남게 된다. 과거의 단병호 같은, 이갑용 같은 노동자 계급을 대변하는 노동운동가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이다. 

김규항 = 1990년대 이후 다른 세계에 대한 꿈이 사라지면서 꿈을 조정한 운동으로서 대형 시민운동이나 이런저런 개혁운동들이 각광을 받게 된다. 그런 운동에도 의미가 있고 달라진 현실에 운동이 조응하는 것도 당연하다. 문제는 꿈이나 이상을 달라진 현실에서 펼치는 게 아니라 꿈이나 이상을 폐기해 버리는 거다. 

송경동 = 어떤 때는 암적 존재로까지 이야기하더라. ‘1980년대 구좌파 아니냐, 돈키호테가 아니냐. 잘못된 입장과 세계관으로 사람과 세상을 망칠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나도 노동문학을 했지만 1990년 초반부터 노동문학이라는 말이 싹 사라진다. 노동문학이라는 말 자체가 살해당한 셈이다. 

김규항 = 꿈이나 이상을 가진 사람들은 배제되고 진보라 불리는 사람들이 진보를 막아서고 있는 형국이다. 

송경동 = 현실 사회주의 패망으로 인한 충격은 이해하지만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신자유주의 흐름이 본격 시작되고 민주화로 생긴 두 정권이 그에 앞장서면서 진실이 다 드러나지 않았는가. 우리 삶은 초국적 자본의 먹이로 그대로 노출되고, 노동 유연화니 뭐니 해서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가 900만명에 이르고, 이런 상황에서도 꿈이 사라진 운동을 말한다는 건 잘못이다. 그런 운동은 대안이 될 수가 없다. 자기 꿈의 한계 때문에 사회적 꿈을 제한하자고 주장하는 건 운동하는 사람으로서 양심적인 게 아니다.

김규항 = ‘야만의 시대에 맞선 송경동’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그런데 그 야만이 이명박 정권을 말한다면 당신을 제대로 이해한 걸까.

송경동 = 나는 한 대통령이나 정권하고 싸우고 있지 않다. 신자유주의 사회적 노선들과의 투쟁과 저항이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5년 단위의 정권으로 잘라서 대응해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문어발 하나 자른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우리가 싸워야 되는 건 하나의 정권이나 이명박이라는 대통령이 아니라 제도정치권에 광범위하게 그리고 한국 사회에 전반적으로 이식되어 있는 신자유주의 입장과 노선과 그 세력들이다.

김규항 = 희망버스는 특정한 정치운동이 아니어서 여러 사람들이 연대하게 된다. 신자유주의 매파는 없지만 신자유주의 비둘기파라 할 만한 사람들은 많이 참여하는데 불편한 마음은 없는지.

송경동 = 지금 희망버스에서 본질적인 질문을 내고 격화되면서 정치적 입장에 따라 빠질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리해고가 이렇게 자행되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900만명에 이르는 상황은 어느 당을 지지하는가 이전에 사회적 학살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이런 질문이나 문제가 사회화되는 순간 여기에 동승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이 있기 때문에 매번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편하게 생각한다.

김규항 = 전태일 이후 민주적 노동운동이 생존권 투쟁을 기반으로 발전해온 거는 당연한데 노동자 계급의 가치관이나 긍지 같은 게 형성 안 된 건 치명적인 문제다. 나 혼자 잘사는 것보다는 더불어 사는 게 더 멋진 거라는 생각, 우리가 자본가들보다 좀 어렵고 불편하지만 인간적 가치 면에선 월등하게, 훨씬 훌륭하게 살고 있다는 긍지 말이다. 그런 게 없다보니 최소한의 생존권을 넘어선 노동자들의 싸움도 여전히 임금투쟁에 집중되고 연대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노동운동이 세상을 바꾸는 운동으로서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셈인데.

송경동 = 어느 순간부터 경제적 관점에 다들 매몰되었다. 경제동물이 되었다고 욕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다 자기 삶 속에서 주체가 되고 다른 삶을 찾아나갈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에 집중하고 있지만, 동시에 정규와 비정규의 경제적 차이에 매몰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대안도 그렇게 매몰된다. 다른 운동이 필요하다. 자꾸 조합원만 만들려고 하지 말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세상을 이야기해 나가야 한다. 

김규항 = 그런 면에서 희망버스는 어떤 희망의 씨앗을 만들어내고 있다.

송경동 = 희망버스가 2차에서 합법주의의 틀을 넘었다. 어느 사업장에서든 노사가 도장찍고 나면 끝이다. 얼마 전 발레오공조 코리아도 합의서 쓰고 나니까 끝인 거다. 특이하게 그 벽을 희망버스가 넘었다. 이 합의는 사회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 재고되어야 한다.

많은 경우 불법주의, 비합법주의는 폭력투쟁을 하자는 걸로 이해되는데 합법주의를 넘어서야 된다는 건 자본의 법과 질서, 저들이 쳐놓은 상상력, 관습, 행동양식 이런 걸 넘어서는 거다. 모든 사고와 의식과 상상력과 문화와 행동 양식들까지, 예를 들어 사랑하는 방식까지. 이걸 넘는 상상력과 행동들, 당당함과 용기들. 변혁을 꿈꾼다면 그 벽은 늘 넘어서야 한다. 그게 변혁운동의 운명이기도 하고. 

김규항 = 자본진영은 최근 들어 거시적인 변화를 시작하고 있다. ‘안철수 현상’이라는 것도 기존의 보수가 수구나 꼴통보수라고 불리면서 청년이나 중간층 시민들에게 더 이상 소구력이 없다보니 합리적 보수로 변화하는 시대의 표징이기도 한데, 그런 큰 흐름에 대응하는 진보진영의 질적 변화가 필요하다.

송경동 = 나는 제도정치권 일에 많은 관심을 갖지 않는 편이다. 역사는 10년, 20년, 몇 십년 단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희일비하지 않는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이 필요하다. 그게 없으면 결국 차선과 차차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우리가 가져야 하는 건 스타 정치인 몇 명을 만들어내고 또 하나의 상징과 우상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각 개개인의 조화롭고 자유로운 발전과 개화 이런 것들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자유로우면서도 존경받는 개인들이 어떤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협동하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하는 고민과 실천이다. 그런 단단한 바닥이 있어야 흔들리지 않고 갈 수 있다. 

김규항 = 현실을 변화시킨다는 게 워낙 암담하게 느껴지니까 조바심이 나고, 또 전엔 꿈이나 이상을 가졌지만 이젠 적당히 체제 안에서 진보인사 행세를 하려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미혹시킨다. 그러다보니 사회진보에 대한 대중의 열망이 비판적 지지니 정권교체를 위한 연합이니 하는 걸로 해소되어 버린다. 실은 그거야말로 자본의 지배 전략인데 말이다.

그러나 그런 흐름에 휩쓸리지 않으며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으니 희망은 여전한 셈이다. 당신은 활동가이기 전에 빼어난 시인이기도 한데 근래엔 서정시는 쓰지 못하고 추모시를 도맡아 쓰고 있다. 참 힘든 일이기도 하고…. 일종의 굿을 하는 것인데.

송경동 = 추모시를 쓰면 앞뒤 일주일은 완전 망가진다. 일종의 무당이다. 시가 안풀리면 갑자기 괴팍해지고 곤두서거나 몸이 폐허가 될 정도로 만취하거나. 그런가 하면 때론 길거리에서 20분 만에 써내야 할 때도 있다. 추모시 읽다가 마이크를 두 번이나 집어던졌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나, 돌아가신 분 앞에서 분노한 얼굴로 시를 읽고 있는 나 자신이 참담한 거다. 투쟁의 목숨값은 분명히 했나, 그러지도 않고 나는 폼을 잡고 추모시라고 이런 걸 읽고 있나. 사람이 죽기 전에 더 싸워야지 이런 생각을 한다. 

김규항 = 사람들, 특히 진보적인 중간층 인텔리들은 어떤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소비’하기도 한다. 권정생 선생님 타계 후 ‘우리 곁에 살다간 성자’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여기엔) 저 사람은 성자고 나는 사람이니 저 사람처럼 살지 않겠다는 뜻과 그래도 나는 저런 사람을 존중하고 의미를 이해하는 교양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 함께 담겨 있다. 지금 당신은 원했든 안했든 저명한 인사가 되어가는 상황인데. 

송경동 = 나로선 굉장히 위험한 상태라고 본다. 예를 들면 내가 ‘현장에 있는 유일한 시인’ ‘노동운동과 결합하는 유일한 시인’이라는 말을 개인적으로 듣는 게 기분 좋아지는 순간, 아마 내가 썩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저명해져야 되는 사람들이 있다. 용산 싸움을 예로 들면 60여명이 망루에 올라갔는데 거기에는 자기 지역이 아닌데도 올라간 수많은 전철연의 철거민이 있었다. 그 새벽 망루에 올라갔던 평범한 사람들, 그 순간 인간적 연대와 유대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사람들. 저명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다.

김규항 = 우리가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새기고 존경할 줄 알 때 우리가 꿈꾸는 세상도 우리에게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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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