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몸 중에서 가장 부드러운 부분이 어디일까. 주먹 쥐면 묏잔등처럼 불룩 솟아나는 손등일까. 그곳의 솜털은 잔디처럼 송송하니 부드럽긴 부드럽겠다. 의자와 접촉하여 말랑말랑해진 엉덩이일까. 노을빛이 훑고가는 목덜미일까. 앵두 같은 입술도 그 누군가에게는 벙그는 꽃잎처럼 참 부드럽겠다. 첫사랑 떠올리면 슬쩍 붉어지는 볼우물은 그 아니 부드러울까. 최근에 알았다. 내 몸에서 또 하나 부드러운 부위를. 일상생활에서 그곳은 늘 숨어 있었다. 그래서 내 몸이었지만 이토록 늦게 발견된 모양이다. 어느 토요일 아침. 간밤의 숙취에서 괴롭게 눈을 떴다. 부글거리는 배가 몹시 소란스러웠다. 윗몸을 일으켜 다리는 벌리고 발을 모은 뒤 꼬리뼈를 축으로 허리를 바짝 접었다. 자동으로 양 발바닥의 오목한 부분이 서로 맞닿으면서 옴방한 공간이 생기고 내 얼굴은 그곳에 포개졌다. 비교적 쉬운 난이도의 요가 동작과 비슷했다. 그리고 간밤 술자리의 부끄러운 기억도 지울 겸 발바닥으로 뺨을 문질러보았다. 그때 느낀 것이었다. 내 발바닥의 한없이 부드럽고 부드러움을!


올해 1월 셋째 일요일, 새벽에 일어나 서울역으로 갔다. 대구야생화연구회를 따라 팔공산으로 나무의 겨울눈을 공부하러 가는 길이었다. 밤기차를 타고 새벽에 도착한 적은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새벽 첫 기차를 탄 적은 일생을 통틀어 처음이었다.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었지 새벽과 첫차가 주는 즐거움이 많았다. 앞, 뒤, 옆, 건너 자리가 비었다. 천안역을 지날 무렵 <부처님, 그분>(삐야닷시 스님 지음, 고요한소리 발행)을 접고 의자를 뒤로 조금 젖혔다. 그리고 등산화를 벗고 가부좌를 취했다. 사람의 몸을 연꽃처럼 만들어준다는 이 자세가 주는 편안함은 여러 가지다. 흔들리는 진동에 몸을 맡기고 있으니 생각들도 반죽이 잘되는 것 같았다. 가부좌. 그것은 양말을 뒤집듯 내 몸이 하늘을 향해 한번 홀랑 뒤집어지는 것이다. 늘 짓눌리던 두 발바닥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것은 이 동작을 취할 때뿐이다. 우리는 죽어서 흙으로 간다는데 그렇다면 이 발바닥은 늘 죽음의 입구를 경계하는 셈이 아닌가. 몸의 대표선수로서 도처에 잠복한 죽음의 사신(使臣)을 만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발바닥이 아닌가. 나뭇가지마다 가장 높은 곳에 달리는 겨울눈을 관찰하러 가는 길에 몸의 가장 밑에 달린 것에 관한 작은 발견을 한 셈이었다. 대전을 지날 때까지 간지러운 발바닥을 쓰다듬어 주었다.


홍산문화지역에서 출토된 여신상 (출처: 경향DB)

큰스님 입적하시고 1주기가 되었다는 뉴스를 보는데 그 스님께서 이승과 작별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스님의 법구는 제자들에 의해 운구되어 다비식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스님은 제자들의 어깨 높이에 편안히 누워 있었다. 이제 스님은 얼굴 대신 발바닥으로 무언의 마지막 법문을 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드물게 좌탈입망(坐脫入忘)을 한다고도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누운 채 숨을 거두고 누워서 저세상으로 간다. 얼굴 들고 가는 게 아니라 발바닥을 들고 가는 것이다. 그러니 그곳에서는 망자의 얼굴이 아니라 발바닥을 가장 먼저 보게 되지 않을까. 피둥피둥한 살집이나 조각 같은 몸매는 거들떠도 아니 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물을 것 같다. 그대는 과연 얼마만큼 그대의 세상을 돌아다녔는가?


올림픽 중계방송. 팽팽한 승부가 이어지는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텔레비전에는 선수들의 환호와 좌절은 물론 관중석의 열광과 탄식이 몽땅 들어 있었다. 예전의 몰입과 흥분은 이제 아이들의 몫으로 넘겨주고 조금은 차분하게 경기를 지켜보았다. 그러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선수들은 신체의 어느 부위를 가장 많이 사용할까. 경기에 따라 조금씩의 차이는 있겠다. 종목에 따라 운동화를 신거나 맨발로 하는 경기도 있었지만 모두 발바닥이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발바닥에 유의하면서 보니 이내 다음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메달의 색깔은 다르고 선수들의 피부색은 다들 다르다. 하지만 넘어지고 구르고 메칠 때 어김없이 드러나는 선수들의 발바닥 피부는 똑같았다. 우리나라는 물론 프랑스, 쿠바의 흑인 유도선수의 발바닥은 너무나 뽀얗게 빛났다! 이제 런던 스타디움의 성화도 꺼졌다. 올림픽 특수를 겨냥해서 이런 광고가 있었다. “원빈씨, 오늘 경기 어떻게 보십니까?” “예. 쓰리디로 봅니다.”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예. 선수들의 땀으로 말갛게 씻긴 하얀 발바닥을 보았습니다.”


부처님의 몸을 밝히던 불이 꺼지고 적멸의 순간이 왔다. 열반에 들기 직전, 부처님은 슬피 우는 제자들에게 관(棺) 밖으로 슬쩍 발을 내밀었다고 한다. 평생의 구도행으로 편평해진 평발이었다. 부처님이 보여주려는 게 그냥 단순한 발만이었을까. 혹 발 중에서도 가장 아래인 발바닥을 보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미리 경험하는 잠깐의 죽음처럼 매일 잠자기 위해 누우면 비로소 동굴처럼 환히 드러나는 발바닥. 그 안에 인생의 비의(秘意)가 숨어 있다는 가르침을 전하려는 부처님의 마지막 동작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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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광석 | 전농강진군정책실장


‘낮은 목소리’와 인연을 맺은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시골 강진에서 서울의 유력 중앙지에 글을 쓴다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요, 마을사에 남을 화젯거리였습니다. 땅 파먹고 사는 농민의 글에 대해 ‘어쭈 제법 쓰네’ 칭찬을 받기도 했고 같이 운동하는 활동가들 사이에선 ‘어째 글이 밋밋하고 힘알탱이가 없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글을 썼고 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얼추 70차례가 넘는 것 같습니다. 중간에 몇몇 출판사에서 책으로 엮어보자는 과분한 제안을 받았고 저 같은 사람의 글이 경향에 실리기에 경향이 ‘경향스럽다’는 편지를 여러 편 받았습니다.

고향이 남쪽인 외지분들은 바깥 소식을 전해주셨고 사는 곳이 남쪽인 분들은 좋은 소재거리를 제안해 주셨습니다. 대전에 사시는 어떤 분은 팬이라고 찾아와 기능성 천연 농약의 현지 판매 담당 직원이 될 것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지역에선 난데없이 문학회회원이 되었습니다. 시골의 다방 종업원을 미화해 성을 상품화했다는 여성단체의 항의를 받고 사과문을 개재하기도 했습니다. 근거로 제시한 농업관련 수치가 틀려 농촌경제연구원과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제가 아끼는 트랙터 이야기를 쓰고 농기계회사의 격려전화를 받기도 했습니다. 제 글 때문에 속상한 분들, 힘을 받은 분들, 추억에 잠긴 분들께 이해와 용서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사색의 자갈밭에서 마감시간에 쫓겨 ‘쌩얼굴’ 내민 글들이 저를 비웃고 덜컹덜컹 지나갑니다. 제가 쓴 문장 몇 개가 누구의 블로그와 카페에 명언처럼 카피되어 있는 것을 보고 설레기도 했습니다. 농번기 한낮, 세상이 요동치며 흘러갈 때 ‘오늘이 마감이에요’라는 말 한마디에 시간을 양보해준 어머니께 감사드립니다. 


봄기운이 가득한 전남 강진의 들판 (출처: 경향DB)

원고료라고 보내준, 저에게 과분한 대가가 제가 한 달에 버는 돈의 전부인 때가 많았습니다. 경향은 휴대폰요금이 밀려있을 때마다 마치 팀을 구하러 올라온 구원투수처럼 어김없이 저를 위기에서 구해주었습니다. 혹시 신문사가 철지난 옷을 걸치고 있는 것처럼, 오래 쓰던 물건이 아까워 버리지 못하고 저를 붙들고 있지나 않은지, 세월의 관성과 정에 대한 의무감 때문에 저를 내치지 않는지 몇 번 생각했습니다. 그만두어야 한다고 그게 도리라고 생각하면서도 현장의 목소리, 중앙일간지에 버젓이 농민회 아무개가 쓰는 글이 실리도록 해야 한다는 객기 비슷한 책임감이 저를 여기까지 오게 했습니다.

따뜻하게 그러나 낭만적이지 않게, 치열하게 그러나 딱딱하지 않게 사람과 그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삶과, 그 삶이 버무려지는 사회와 그 사회를 살면서 마시는 술과 애틋한 사랑과 흘리는 눈물을 쓰고자 했습니다. 더러 신파극처럼 각색이 분명해 보이는 글, 외국의 권위있는 교수의 발언을 인용한 건방진 글, 금방이라도 피 터질 것 같은 구호로 점철된 글들이 부끄런 낯짝을 붉히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7년 기간에 저는 결혼을 해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마을에 고속도로가 뚫렸고 정권이 두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집 앞의 논은 밭이 되었습니다. 살림집을 새로 지었고 운명같은 비닐하우스 농사를 그만두었습니다. 저의 30~40대를 관통했던 농민회와 비닐하우스와 한글학교와 경향신문이 어떤 것은 비스듬히 누워, 어떤 것은 똑바로 서서 저를 응시합니다. 낮은 목소리로 농민의 삶을 전하고자 했던 경향이 이제 제 인생의 한쪽 벽에 고흐의 초상화처럼 걸릴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도 추억과 감동은 쉬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얼마 전부터 서울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한강 가까이 너른 터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이 생활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지만 강진으로 되돌아가는 그 시간까지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고자 합니다. 수확이 가능한지, 무엇을 뿌릴 수 있을지 안갯속이지만 뿌린 대로 반드시 거둔다는 농민 어르신들의 가르침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겠습니다.

7월24일 경북 칠곡에서 폭염주의보 속에서 농작업을 하던 노부부가 돌아가셨습니다. 40도가 훌쩍 넘는 비닐하우스에서 참외를 따다 결국 일사병으로 운명을 달리한 70대 노부부의 헉헉거리는 숨소리를 아프게 기억하겠습니다. 이 땅에서 책에나 나오는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평생 담당하다 그 흔한 직불제 한 푼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들의 들숨과 날숨을 제 폐 속 깊이 부적처럼 간직하겠습니다. 아프게 살되 웃으며 가겠습니다. 진심이 깊으면 결국 통한다는 믿음이 현실이 되는 그날까지, 경향신문이 정권과 친한 신문이 되는 그날까지 같은 곳을 바라보겠습니다. 도대체 그동안 ‘저 인간이 경향과 무슨 관계를 맺고 살았는지 알 수 없다’는 분들에게는 이 글이 상당히 불편하실 줄 압니다만 나름대로 인사를 전하고 각오를 밝히는 것이 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 대한 도리라 생각해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마지막 지면을 할애해준 경향신문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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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 소설가


대전 계족산을 다녀왔다. 계족산 황톳길은 총 14㎞다. 강화에서 서울까지 시멘트길은 고무타이어 바퀴를 타고 가고, 서울에서 대전까지 철로 된 길은 빠른 쇠바퀴를 타고 갔다. 이어 지인의 자동차를 타고 닭다리산 들목까지 가 바퀴를 벗었다. 그제야 황톳길을 만나 내 몸을 담고 다니던 신발에서 내려섰다. 바짓가랑이를 걷고 양말도 벗었다.

맨발. 흙을 밟으며 괜히 쑥스러워졌다. 집에서는 늘 맨발로 생활하면서도 별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길에서는 달랐다. 숫기 없는 사내애처럼 발이 수줍음을 타며 허공에서 멈칫거렸다. 평소와 달리, 길의 맨살을 맨살로 만나자, 발이 길을 낯설어 해서 그런 것 같았다. 또 길은 늘 맨살이었고 나만 늘 신발을 신은 채였구나, 하는 작은 깨달음 뒤에 오는 미안한 맘의 영향도 있는 듯했다. 엄밀히 생각해보면 길도 늘 맨살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 대부분 길은 타의에 의해 시멘트를 입고 있었고, 그런 길을 나는 신을 신고 만났던 것 아닌가. 길은 시멘트를 벗고 나는 신발을 벗고 맨살 대 맨살로 우리는 서로를 조심스럽게 느끼며 통성명을 나눴다.

“맨발로 들길, 산길, 냇가를 뛰어다녔던 어린 시절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고무신에 땀이 나면 미끄러워 그냥 맨발로 다니는 게 더 편하기도 했지요. 그 당시는 신발을 신은 것보다 맨발로 다니는 게 더 익숙했으니까요. 발이 내디딜 수 있는 길의 지점들을 기억하고 있어 다칠 염려도 없었고요. 또 신발을 아끼려고 일부러 맨발로 다니기도 했지요. 장마 뒤 세어진 물살에 물을 건너다가, 신발을 놓쳐 떠내려가는 신발을 찾으려다 죽은 친구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지요. 물살에 휩쓸린 시신을 찾고 보니까 고무신을 움켜쥐고 죽었다는 이야기였죠. 세월이 참 빠르게도 흘러, 그때와 달리 현대인들의 발은 대부분 신발 속에 갇혀 삽니다. 그동안 답답했을 발이 황톳길을 만나니, 그동안 참았던 숨을 토하는 것인지 안도의 숨을 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야 숨을 제대로 쉬는 것 같네요.

 

대전 대덕구 장동 계족산 황톳길을 찾은 시민들 ㅣ 출처:경향DB

학습독서 공동체 ‘백북스’가 개최한 계족산 북콘서트 시낭송에 참가한 나는 잠시 지역신문 기자와 황톳길 위에서 맨발로 길을 걷는 소감에 대해 인터뷰를 했다. 길이 초입부터 시원한 나무 그늘길이라, 여름에도 걷기 좋은 길이라는 이야기를 나눌 때, 맑은 하늘에서 소나기가 쏟아졌다. 신발을 보관할 수 있는 신발장, 발 세척장, 발을 말릴 수 있는 에어콤프레서가 설치되어 있는 곳을 지나자, 길은 완만한 경사로 내 발을 읽기 시작했다.

바닷가에 살아 갯벌을 맨발로 걸어보기는 했으나 산길을 맨발로 올라보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소나기에 젖은 황톳길이 미끄러움으로 몸을 흔들어주며 잊고 살았던 몸의 균형감각을 일깨워줬다. 산속으로 올라온 피아노가 있고 연미복을 입은 성악가들이 공연 준비를 하고 있는 무대를 지나고도 행사시간이 남아 계속 길을 올랐다. 길가 나무에는 사람 발자국 형상의 설치물들이 나무를 오르고 있기도 했다. 나를 비켜 가며 맨발로 산을 오르고 내려오는 사람들은 마치 무슨 경건한 의식을 치르고 있는 것처럼 진지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부활절에 새 신발을 맞추어 드렸습니다. 도화지 위에 한센인의 발을 올려 놓고 연필로 그어서 발 모양들을 떴는데, 발가락이 없거나 뒤틀려 있어 감자 모양, 계란 모양, 가지 모양 등등의 해괴망측한 발들을 처음으로 보고 마음이 아팠던 기억도 있습니다. 착화식 날 생전 처음으로 신어보는 신발을 신고 덩실덩실 춤을 추고 박수치며 노래하던 한센인의 환한 얼굴들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태석 신부의 글이 떠올랐다. 남수단 톤즈에서 한센인들과 함께 생활하던 이태석 신부가, 통증을 잘 못 느끼는 그들이 맨발로 생활하다가 발을 쉽게 다쳐 살이 썩어들어 가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신발을 맞춰줬다는 글이다. <울지마 톤즈, 그후…선물>이라는 책에는 한센인들의 발을 대고 그린 그림을 찍어 놓은 사진이 있다. 나는 그 사진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그림 하나를 만났다. 어찌 그 그림이 단선이고 단색이랴. 그 그림을 그리며 오갔을 이태석 신부의 만감, 얼마나 깊고 푸르렀겠는가.

고라니가, 산새가, 소나기가, 진달래꽃잎이 맨발로 지났을 황톳길을 걸었다. 흙에 박혀 흙으로 돌아가고 있는 낙엽에 내 삶을 달아보며 걸었다. 내 발의 감각이 살아나 흙에 내려앉은 나무들 그림자의 감촉, 나무 그림자마다 다 다르게 느낄 수 있는 날 올 수 있었으면, 희망하며 걸었다.

한 독지가가 있어, 피아노를 산으로 끌어올리고, 시멘트길에 황토를 깔아 놓아, 그동안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을 길을 만나보았다. 시멘트길 위에 황토를 깔아 놓은 사람의 마음도, 톤즈의 한센인 발에 신발을 선물했던 이태석 신부의 마음처럼 아름답고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문명의 신발을 너무 오래 신고 살아, 마음이 다치는 것도 모르고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마음의 신발을 한번 벗어보라고, 저리 붉은 황톳길을 깔아 놓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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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극심한 가뭄이었다. 눈이 종적을 감춘 이후 계절의 순서에 의해 봄이 오고 비가 몇 번 내렸다. 여름의 기미가 도래했지만 비다운 비가 오지 않았다. 100년 만의 가뭄이라고 했다. 특히 농민들의 인내심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이 갈증이 지속된다면 사람들의 가슴에서는 마음의 세굴(洗掘) 현상이 일어나고 머리에서는 이성의 보(洑)가 붕괴될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4대강으로 가뭄과 홍수를 극복했다고 흰소리를 늘어놓았다. 고인 강물을 찡그린 채 바라보아야 하는 흰 구름이 들었다면 기가 찰 노릇이었다.

지난달 마지막 주말을 이용해 강원, 경북 일대의 산림문화 생태답사에 참가했다. 원주 신림(神林)의 성황림, 예천의 회룡포를 둘러보고 금당실 전통마을에 하룻밤의 여장을 풀었다. 저녁을 먹고 주막 마당에서 전통산림 지식에 관한 세미나가 열렸다. 서울대 환경대학원의 교수님이 ‘조상들의 빗물 관리 지혜’에 관해 짧은 강의를 해주셨다.

전통마을의 구조와 그 마을을 유지하는 생태계의 순환에 관한 한 문외한이었지만 몇 가지 생각을 가다듬어 보았다. 물 문제는 결국 비의 문제이다. 지구는 새로운 물을 독자적으로 생산할 수가 없다. 식물들이 잎을 넓게 벌려 이슬을 만든다지만 그것은 한줌에 불과하고 햇빛이 들기 무섭게 금방 스러지고 만다. 결국은 하늘에서 공급돼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빗물을 여하히 오래 머물게 하면서 이를 이용할 것인가가 관건인 셈이다. 이번 가뭄을 해결한 것도 결국은 하늘이었다. 사실 물은 가급적 지상에 오래 머물려고 하는 성질이 있다. 자연의 강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고 굽이굽이 곡선으로 천천히 흐른다. 그래서 사람의 마을을 빠짐없이 들렀다 간다. 비오는 날 처마 끝에 맺히는 물방울을 보라. 그것은 최대한 늦게 떨어지려고 안간힘을 다해 몸을 웅크리지 않는가.

 

단비 머금은 논 ㅣ 출처:경향DB

토론이 끝나고 막걸리, 마른안주, 수박으로 뒤풀이 자리를 준비하는 동안 하늘을 바라보았다. 먹구름 사이로 달이 숨바꼭질하고 있었다. 내일이면 그렇게 고대하던 비가 오긴 올 모양이었다. 널찍한 평상에 벌렁 드러누웠다. 재미있는 생각 두 가지가 슬며시 떠올랐다.

나는 여름 과일 중에서 수박을 몹시 좋아한다. 왜 그럴까? 어느 날 어머니께서 쉽게 답을 주셨더랬다. ‘그해가 몹시 더웠는데, 니가 참 안 나오더니만, 느그 아부지가 수박을 큰 거 사와서, 그걸 먹고 잤는데, 새벽에 쑥 나왔다 아이가.’ 아마 그날 나는 수박의 기운을 두르고 조금은 벌겋게 상기된 채 이 세상으로 나왔던 모양이다. 이런 연유로 나와 수박은 궁합이 잘 맞는구나. 그렇게 믿기로 했다.

그리고 또 하나. 너무 많이 내리는 폭우는 곤란하지만 나는 비를 무척 좋아한다. 나만 비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비도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궁리 식구들과 강원도로 여행을 몇 번 떠난 적이 있다. 신통하게도 그때마다 비가 와 주었다. 우중(雨中)의 강원도에 있으면 산수화 속을 거니는 기분이었다.

나는 왜 비가 좋을까. 인체의 70%가 물이라는 것, 생명이 바다에서 왔다는 것도 한 이유는 될 것이다. 또한 나는 어머니 배 안에 있는 동안 양수(羊水)에서 헤엄치며 놀았다. 하지만 이는 비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공히 해당하는 사항이다. 나의 이름에 수(洙)자가 있는 것? 물하고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은 항렬이다. 흔쾌히 납득하기엔 아무래도 2%가 부족했다.

오리는 태어날 때 처음 본 움직이는 대상을 어미로 알고 쫄쫄쫄 따라다닌다고 한다. 이른바 각인효과라는 것이다. 내가 비를 좋아하는 것, 이 또한 각인효과의 일종은 아닐까. 문득 내가 태어난 날의 날씨가 궁금해졌다. 기상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더니 1960년 이후부터의 기상 상황이 정리돼 있었다. 민원실로 직접 전화했다. “1959년 8월○○일 부산의 날씨가 어땠나요? 비가 왔나요?”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대답과 함께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빗소리처럼 수화기 너머에서 희미하게 건너왔다.

내가 이 세상에 처음 도착한 그날. 오리의 새끼와 사람의 자식이 실상 뭐 그리 다르겠는가. 이제 갑각류처럼 굳어진 오늘의 나와는 달리 그날 그 녀석은 피부호흡도 했을 것이다. 정수리 뚜껑도 열려 있었을 것이다. 포대기에 싸여 있어도 창밖의 기미는 쉽게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젠 돌이킬 수 없는 나의 첫 생일. 그날의 맑고 흐림, 그날의 비 소식이 뭐 그리 대수랴. 하지만 잠시 기다리는 동안 가슴이 몹시 두근거렸다. 이윽고 토닥토닥 빗소리 같던 자판기 소리가 끊기고 대답이 날아들었다. “왔습니다. 영점사미리가 왔습니다!”

아, 0.4㎜의 비! 내 작은 발바닥에 찰랑대는 깊이 영점사밀리미터의 비! 내 달콤한 몸뚱아리를 충분히 적시고도 남을 단비가 왔단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손가락 끝에서 야호 소리가 터져나올 것 같았다. 내 인생에서 무슨 큰 상(賞)이라도 받은 듯 기분이 몹시 우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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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국민’학교 2학년 때였던가, 어머니는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종이뭉치를 받아와 집에서 봉투를 접었다. 종이를 재단하고 밀가루 풀을 쑤어 봉투를 만들면, 이것으로 싸전에선 쌀을 담고, 구멍가게에선 과일을 담았다. 요즘이라면 인형에 눈알을 박거나 구슬을 꿰는 일처럼 장당 얼마씩 수공을 받았다. 동네 아이들은 학교를 파하면 우리 집 마루에 앉아 옥수수 얻어먹을 요량으로 봉투를 붙이고, 여름에도 군불을 지피고 방바닥에 봉투를 깔아 말렸다. 풀이 잘 마른 봉투의 수량을 세어 100장씩 끈으로 묶는 일은 내 몫이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유신헌법’ 홍보물을 주었다. 십년 후에는 ‘100억불 수출, 1000불 소득’과 더불어 마이카 시대가 열린다는 복음을 알리는 리플렛인데, 문화공보부에서 신동우 화백에게 그림을 맡겼다.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라는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우며 초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애국자’가 되고 싶었을까? 아무도 시킨 사람이 없었건만, 그날부터 옆집 3학년 형과 신동우 화백의 그림을 도화지에 베끼기 시작했다. 그림에 재간이 있던 나는 포스터를 만들고, 10월유신을 찬양하는 표어도 숱하게 만들었다. 집에는 종이도 많았고, 포스터와 표어를 붙일 풀은 언제나 잔뜩 남아 있었다.

수줍은 탓이었을까, 아님 자랑하지 말고 숨어서 기도하라는 성경 말씀 때문이었을까, 그 ‘장한’ 일을 숨어서 하느라 밤에만 동네 골목을 누볐다. 손으로 풀을 집어 남몰래 포스터와 표어를 붙이면서 얼마나 가슴이 조이면서도 설레었는지. 그러나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우리를 잘살게 해준다는 ‘미신’을 신앙처럼 간직했다. 그러나 우리 집 살림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고, 그게 독재정권의 시작임을 나는 몰랐다.

 

헌법재판소가 유신헌법 긴급조치 조항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공개변론을 하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이른바 ‘유신헌법’은 일본 메이지유신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3분의 1과 모든 법관을 임명하고, 긴급조치권과 국회 해산권을 가지며, 임기 6년에 연임할 수 있으며, 대통령도 국민투표가 아니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뽑는다는 내용이었다. 행정·입법·사법권을 모두 대통령에게 집중시킨 독재정권을 허용하는 법이었다. 유신헌법 아래서 중학교에 진학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했던 내게 성당에서는 ‘괴담’ 같은 다른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문학의 밤’이라 해서 가톨릭센터에 갔다가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시를 처음 접하고 무서워하던 중학생이었고, 주보와 함께 성당 입구에서 나눠주던 ‘가톨릭농민회 오원춘 사건’에 대한 등사본 유인물을 받아들고 경악하던 고등학생이었다.

지난 4월30일 안동교구 정호경 신부의 장례미사에서 만났던 오원춘씨의 모습은 그야말로 ‘착하고 선량한 농부’였다. 내가 ‘애국심’을 발휘했던 나라는 선량한 백성을 고문하고 회유하고 다시 협박하는 나라였다. ‘대통령을 반대하면 나라를 배신하는 것’이라고 강요하는 나라였다. 엄마 등에 업혀서 성당에 다니던 내게는 ‘주교님도 삐끗하면 감옥에 보내는’ 나라였다. 초등학교도 아닌 ‘국민’학교에 다니면서 10월유신 포스터를 붙이던 것은 ‘독재에 대한 예방주사’였을까, 그 뒤로 ‘애국가’와 ‘국민교육헌장’과 ‘국기에 대한 맹세’에 담긴 국가주의를 체질적으로 거부하기 시작했다. 광주항쟁 이후에 대학생이 되고나서는 ‘준법정신’이라는 말이 제일 싫었다. 그래서 교통신호를 일부러 어기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10월유신이 예방주사라면 그리스도교 신앙은 내게 ‘국가주의에 대한 백신’으로 작동했다. 부족동맹의 자유롭고 평등한 삶에 익숙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주변국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했을 때 사무엘 선지자는 “왕이 너희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지 알려주겠다”며 자녀들을 군대에 동원하고 “너희마저도 종으로 삼으리라”고 전한다. 그때에 가서 “스스로 뽑아 세운 왕에게 등을 돌리고 울부짖겠지만” 하느님은 들은 체도 하지 않을 것이라 전했다. 예수도 이른바 ‘국가보안법’에 걸려 십자가에서 죽어야 했으니, 이처럼 국가권력에 의해 밀려난 백성들에게 마음을 두는 게 예수의 제자 된 도리다.

황지우 시인은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라는 시에서 예전에 영화관에서 듣던 ‘애국가’ 감상문을 적었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날아가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가는데,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고 했다. 여전히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뭔데?” 하고 묻는 이들이 많은데도, 30년 이상 시공을 넘어서 또다시 박정희 시대를 사모하는 이들이 출몰하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다. 그나저나 국책사업으로 해군기지를 만든다고 나서는 바람에, 제주 강정 바닷가를 떠나지 못하시는 문정현 신부님의 안부가 궁금하다. 장마전선이 예고되고 태풍이 불현듯 엄습하는 제주에서 부디 안녕하시라 여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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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광석 | 전농 강진군농민회 정책실장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합니다. 변하지 않는 진리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진리뿐이라 배웠습니다. 신념을 지키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킨다는 건 중심을 갈무리하고 의지의 곁가지를 실천의 힘으로 키워나간다는 걸 의미합니다. 신념의 강자는 주변의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황소처럼 뚜벅뚜벅 천리를 갑니다. 신념의 강자는 신념을 키우는 강자입니다. 사색과 공부를 늦추는 법이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충고를 겉귀로 듣지 않습니다.

사람들 대하는 데 진지하고 실천에서는 물러서지 않으며 학습목표에 철저한 사람은 어지간한 바람에 흔들림이 없습니다. 옳고 정당한 일을 한다는 자기긍정과 헌신과 실천으로 세상을 떠밀고 간다는 자긍심이 없으면 가족들의 고생과 생활능력이 없다는 주변의 비아냥을 참고 견디며 자신의 길을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신념의 강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듣기 거북한 말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적으로 너는 나쁜 놈이라는 비판입니다. 인간적으로 나쁜 놈은 뭘 해도 정당한 방법으로 하지 않습니다. 전체의 이익보단 자신의 이익을 추구합니다. 언제나 꼼수를 쓰고 사람들의 이해를 구하기보다 자기 편의 이해에 충실합니다. 통합진보당 사태의 발단은 이것이었습니다. 선거가 총체적 부실·부정이었고 이렇게 당선된 사람은 다 사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다 나쁜 놈들입니다. 대의는 없고 출세만 있는, 목표를 위해서는 부정을 가리지 않는 집단과 사람으로 낙인되었습니다.

 

종북 백과사전 들어보이는 이한구 ㅣ 출처:경향DB

‘내 정녕 서서 죽더라도 무릎 꿇고 구걸하지 않겠다’는 기개와 의지는 한 방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짧게는 10년 많게는 30년 이상의 세월이 단칼에 허공에 사라졌습니다. 맞아죽을 각오, 굶어죽을 각오, 얼어죽을 각오로 살았던 인생의 신념이 한순간 부정한 것이 되었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했어야 합니다. 나도 이런 잘못을 했다, 선거시스템이 이런 문제가 있었다, 인터넷투표의 근본적 한계는 이런 것이다라고. 서로 잘못을 인정하고 당 체제를 개선할 것을 논의했으면, 그 과정에서 책임이 나오고 그 방법이 사퇴였으면 문제가 이렇게까지 커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나는 부정이 없는데 사퇴한다, 너는 총체적 부정의 당사자인데 왜 사퇴하지 않느냐 이렇게 접근한 겁니다. 흔히 당권파라는 이름으로 한 물의 한 고기로 싸잡아 도매금으로 팔았습니다. 신념을 밥처럼 먹고사는 사람은 인간적으로 나쁜 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죽음이 필요하다면 주저하지 않습니다. 박영재 당원이 그렇게 죽었습니다.

두 번째 참기 힘든 비판은 너는 머리가 없는 놈이라는 비판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자신의 머리로 판단하며 자신의 몸으로 노동합니다. 나라가 사대를 하면 식민지가 되고 개인이 사대를 하면 머저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큰 나라에 자신의 운명을 기대고 이전에 고루한 이론과 논리를 비판 없이 따라하는 것을 사대와 교조라고 합니다. 종북이라는 말은 사대와 교조를 한다는 것입니다. 꼭두각시처럼 종처럼 산다는 겁니다. 나쁜 것도 북한이 시키면 해야 되고 좋은 것도 북한이 시키지 않으면 하지 않아야 된다는 논리와 같습니다. 종북은 무뇌아의 다른 표현입니다.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북한과 같은 말입니다. 이것이 종북입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면 종북입니다. 이명박 정부에 6·15 선언을 준수하라고 말하면 종북입니다. 북한의 인권, 핵무기 개발, 권력승계에 대해 일본의 산케이신문이나 한국의 조선일보처럼 말하지 않으면 종북입니다.

종북이라는 말의 폭력성은 상대방을 바보로 만듦과 동시에 그 반대편의 줄에 서지 않으면, 내가 당신 편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다 척결대상이 되는 집단 이성의 마비에 있습니다. 농협 비료창고에 가서 남들이 한 배미에 비료를 몇 포대 뿌리느냐고 직원에게 묻고 그것대로 사가서 그것대로 뿌리는 농부는 바보입니다. 모내기한 시기가 다르고 흙의 성질이 다르고 품종이 다르고 밑거름이 다른데 남들 하는 것처럼 하면 농사를 망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방법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해외 건설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 거리 청소를 하시는 미화원들도 다 애국자입니다. 최전방 철책선에서 근무하는 군인도 남도 끝자락 강진에서 고추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들도 애국자입니다. 강진 성전면 청년회에서는 월례회의 때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합니다. 그것도 애국입니다. 성전면 농민회에서 영농발대식을 할 때는 ‘농민들의 영원한 애국가’ 농민가를 부릅니다. 그것도 애국입니다. 장차관들이 국무회의때 부르는 애국가는 애국이고 공무원 노동자가 행사 때 ‘임을 위한 행진곡’를 부르는 게 반국가적 행위라고 헌법에 나온 것은 아닙니다. 나라사랑하는 방법까지 내 방식과 관점이 아니면 다 틀리다고 말하는 것은 독재적 발상입니다. ‘이 글을 보니 당신도 당권파군’, 누군가 말하면 저는 당권파임을 자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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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시인


야구를 하다가 코와 눈을 심하게 다쳤다. 윤동주문학상 시상식에 작년도 수상자로 참가했었다. 행사장은 인왕산에 자리 잡은 윤동주언덕이었다. 윤동주를 사랑하는 일본사람 10여명을 비롯하여 꽤 많은 문인들이 참가했다. 행사 중에는 전년도 수상자가 금년도 수상자에게 선물을 주는 순서도 있었다. 나는 연필 모양의 젓가락을 선물로 준비했다. 시인의 영혼의 젓가락은 연필 아닌가, 하는 발상이 떠올라서였다. 행사가 끝나고 뒤풀이가 이어졌다. 반가운 사람들이 많았다. 자리를 옮기며 술자리가 길어졌다. 마지막 술자리 끝에 깜박 잠이 들었다 깨어나 보니 새벽이었다. 택시를 타고 오던 중 김포에서 글을 쓰고 있는 후배 작업실이 생각났고 그 후배의 작업실로 갔다.

작업실에는 그 후배와 다른 후배가 있었다. 그들은 글 쓰는 사람들의 야구 모임 회원들이었는데 전날 시합을 하고 와서 야구복을 입은 채 잠을 자고 있었다. 야구복을 보자 고향에서 초·중학교 때 야구하던 일이 생각나 왕년에 야구를 좀 했었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분당의 한 초등학교에서 초등학생들이 운동장에서 야구를 하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날이 밝고 후배들을 선동해 인근 야구연습장이 있는 학교로 향했다. 한 후배가 포수를 보고 내가 투수 역할을 했다. 다른 한 후배는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고 있었다. 공 던지기가 좀 나아질 때쯤 포수 보는 후배가 던진 공에 얼굴을 정면으로 맞았다. 공이 날아왔고 나는 적시에 장갑을 움켜쥐었는데 이상했다. 내가 전에 한쪽 눈을 다쳐 원근감이 살아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 순간이 바로 공을 받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후에, 후배가 찍은 동영상을 보고 너무나 어이없었다. 공을 당연히 잡을 수 있는 것처럼 태연하게 장갑을 접고 난 후 공이 날아와 눈과 코를 때렸다. 흠칫 놀라 몸을 조금만 움츠렸어도 공 부딪치는 소리가 그리 크게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흉하게 부어오른 얼굴로 전날 만났던 일본 손님들을 맞았다. 바다와 절을 안내하고 어판장에서 회를 먹으며 윤동주 이야기를 나눴다. 올봄 나는 윤동주를 사랑하는 일본 사람들의 모임에 초청을 받아 일본에 갔었다. 도쿄에 있는 릿쿄대학에서 행사를 했는데 일본 사람들의 윤동주에 대한 사랑은 예상보다 더 열광적이었다. 행사 중에 지진이 일어나 강당이 흔들리는데도 어느 한 사람도 동요하지 않고 행사에 집중했다. 불안한 마음이 일던 나는 그들의 진지함에 내심 부끄러워지기까지 했었다.

손님들이 돌아간 후 읍내에 잘 알고 있는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공에 맞아서 코뼈가 함몰되었는데 그냥 내버려둬도 다시 솟아오르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는 일요일이라 병원이 쉬니까 일단 내일 와보라고 했다.

“몸이 많이 마른 노인들 내시경할 때는, 뱃가죽이 얇아 불빛이 바깥으로 비쳐 렌즈가 어디까지 들어가 있는지 알 수도 있어요. 하도 내시경을 많이 하다 보니까, 어떤 사람은 그가 누군지 떠오르지는 않다가, 그의 내장 건강 상태가 먼저 떠오르고 나서, 그 사람이 누구라는 사실을 알기도 하죠.”

한 시인이 내시경을 하고 나서 ‘너 내장 속에 불 켜본 적 있니?’라고 노래한 시 구절이 있다고 하자 의사인 그가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내시경을 꽤 여러 번 했다. 내시경을 할 때마다 나는 수면내시경을 하지 않았다. 마취가 두렵기도 했고 친분관계가 있는 그가 내시경을 하며, 이 부위는 어디고 상태는 어떻다고 설명해주는 것을 듣는 게 좋아서였다.

다음날 병원에 들렀다. 엑스레이를 판독해 본 그가 소견서를 써주며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큰 병원에서 CT 촬영을 하고 눈 검사를 했다. 다행히 눈 밑에 있는 뼈는 괜찮아, 코뼈 세우는 수술만 하면 된다고 했다. 병원에 입원하러 가는 날 잠이 오지 않았다. 전신마취를 한다는데 혹 깨어나지 못하면 어떡하지, 걱정이 되어서였다. 집사람 모르게 컴퓨터에 간단하게 유서라도 써 놓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방정맞은 생각 같아 그리 하지는 않았다. 수술이 끝나고 의식은 돌아왔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 환자 왜 이렇게 깨어나지 않지, 하며 의사들이 몸을 흔들었다. 의식은 돌아왔다고, 최선을 다해 신호라도 보내보려고, 눈이라도 껌벅거려보려고 해도 이도 말을 듣지 않았다. 몸과 의식의 단절이 불안하고 두려웠다. 다음날 퇴원을 하며 담배를 한 대 피워보았다. 양 코를 틀어막아서 냄새를 맡을 수 없으니까 담배 맛도 없었다. 코를 막고 입으로만 숨을 쉬니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전신마취를 통해 나는 몸과 정신의 분리를 경험했다. 정신이 몸의 멈춤을 허락한 사실에 몸은 얼마나 실망했을까. 배신감을 느꼈을 몸이 예전처럼 정신을 따르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원근감의 상실로 나는 야구공에 맞았고 자유로운 호흡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체득했다. 멀리 내다보지 못함이 우리 생활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가를 되새겨보는 계기도 되었다. 내일이면 긴긴 가뭄이 끝나고 비가 온다고 한다. 우리가 멀리 내다보지 못해 이 땅에 민주정신이 가뭄 들은 지도 벌써 5년이 다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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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곱고 고운 하늘이라지만 마냥 인자한 것만은 아니다. 따뜻한 햇빛을 무량하게 보내주지만 천둥과 날벼락을 숨겨두기도 한다. 요즘 날씨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지지난달 강원, 경북 일부 지역에는 느닷없이 동전만한 우박이 농작물을 급습해 농민들의 가슴팍을 후려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심한 가뭄이다. 한편 올여름엔 우기가 아주 길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하늘에서는 시시각각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최근 한반도 하늘에서 발생한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을 시간 역순으로 네 가지만 꼽아본다.


2012년 6월6일. 금성이 태양면을 지나가는 금성일식이 펼쳐졌다. 태양과 금성, 지구가 일직선상에 놓이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금성일식은 이날 오전 7시9분38초부터 시작돼 오후 1시49분35초까지 진행됐다. 나는 그 아름답다는 장관을 직접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남이 전해주는 뉴스를 뒤늦게 보는 데 그치고 말았다.



구름 속 금성 일식 (경향신문DB)



 2012년 5월22일. 한반도 전역에서 부분일식이 관측됐다. 태양의 최대 80%가 가려졌으며 오전 6시23분부터 8시48분까지 이어졌다. 나는 출근길에 잠깐 육안으로 일식을 보려는 무모한 시도를 해보았다. 하지만 빛은 너무나 강렬했다. 태양에 제대로 맞서지도 못한 채 눈을 찡그리고 손으로 눈두덩을 오래 주물러야 했다. 그래도 순간적이나마 망막 뒤로 얼핏 호미 같은 검은 그림자가 맺혔다. 그게 일식을 본 것인지 일시적인 맹점을 본 것인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2012년 3월26일. 귀가하는데 문자 하나가 들어왔다. “지금 밤하늘을 보세요. 금성, 달, 목성이 일직선. 맨 위 왕별이 금성. 초승달이 너무 아름다워요. 요즘 서쪽 밤하늘이 이 친구들로 장관. 지금은 금성이 연중 가장 밝은 시기. 오늘 밤 별 시간표. 서쪽하늘 9:45 목성 지고 10:44 금성 지고. 동쪽 하늘 8:22 토성 뜨고. 목성 금성 질 무렵 머리 꼭대기에 붉은 화성.” 


2011년 12월10일. 월식이 일어났다. 태양-지구-달이 일직선상에 나란히 정렬한 것이다. ‘月蝕’이라는 한자에는 달을 베어먹는 곤충(?)이 들어 있다. 저 아름다운 달을 파먹는 곤충은 누구일까. 그것은 바로 지구이다. 월식이란 말을 요즘에 만든다면 어떤 한자를 쓸까. 그냥 무지막지한 잡식성 문명이니 그 ‘창백하고 푸른’ 곤충을 없애고 그냥 월식(月食)이라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겠다.


일식과 달리 월식은 맨눈으로 충분히 볼 수가 있다. 그날 밤. 나는 저녁을 먹은 뒤부터 계속 달의 동태를 살폈다. 해질녘 아차산 위로 고소하게 떠오른 보름달은 밤이 깊어지면서 대모산 능선 위를 건너가고 있었다. 고도가 그만큼 높아서일까. 색깔도 노란색에서 처연하게 흰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월식은 밤 9시께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그러나 맑은 밤하늘이 아니었다. 창문 너머 목을 길게 빼고 보자니 얇게 풀어진 수제비 같은 구름이 마구 흘러가고 있었다. 달이 구름에 들락날락거리듯 나의 고개도 계속 창문을 들락날락거렸다. 하지만 10시를 넘으면서 아예 구름이 온통 하늘을 점령해 버렸다. 달에 비친 지구의 그림자는커녕 달마저 볼 수가 없었다.


10년 만에 찾아온 월식을 구경하는 게 수포로 돌아가나 했는데 밤 11시께 밖을 보니 아연 구름이 깨끗이 걷히지 않았겠는가. 급히 카메라를 들고 바깥으로 뛰었다. 언제 또 구름이 달을 덮칠지 모를 일이었다. 화단을 넘어 가급적 불빛이 적은 곳을 찾아 고개를 뒤로 한껏 젖히고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카메라는 육안에 비해 그 성능이 형편없었다. 안경 너머로는 잘 보이는데 카메라로 찍으면 네온사인 불빛 같은 이상한 무늬만 나왔다.


하지만 마냥 카메라 탓만 할 수 없어서 단박에 결정을 내렸다. 지금은 좋은 사진 찍겠다고 앙앙불락할 때가 아니다. 그냥 눈을 감으면 깜깜하다가 눈을 뜨면 밤하늘이 환히 보이는 이 사실. 고개를 숙이면 달을 파먹는 곤충인 지구가 보이다가도 이마를 조금만 젖히면 곤충한테 파먹히는 달이 보이는 이 현상. 더구나 아무런 매개물 없이 저 먼 곳의 달과 이 지상의 몸이 직방으로 대응되는 이 관계. 이런 중첩된 여러 신비를 만끽하자! 나는 허리를 ‘자빵하게’ 젖히며 아들과 함께 오래 상처난 달을 우러러보았다.


일식이든 월식이든 그것은 지구와 태양과 달이 일직선으로 놓일 때 일어난다. 가장 최근에 벌어진 금성일식은 태양, 금성, 지구가 나란히 정렬한 현상이었다. 이 소식을 전하면서 언론은 ‘오늘을 놓치면 105년 후에나 본다’며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그러나 이 현상을 목격하면서 정말로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아득한 하늘로 쫓아간 나의 시선을 휙 구부리면 가장 가까운 곳, 발밑에서부터 뻗어나오는 게 보인다. 그것은 바로 그림자이다. 나의 그림자는 지구, 나, 태양(달)이 일직선으로 놓였을 때 비로소 일어나는 현상이다. 심술궂은 구름이 훼방을 놓아 끼어들면 그림자는 속절없이 파먹히고 만다. 이 현상은 살아있는 동안 늘 일어나기에 아무도 주목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말고 대저 어디에서 신비와 경이, 엄숙과 위대를 운위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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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 순교복자수도회 신부 kangsj319@hanmail.net

 

6월의 어느 더운 날 저녁, 책상 앞에 앉아 진땀을 빼며 이것저것 일을 하면서도, 유난히 맥주가 생각났습니다. ‘아, 오늘 같은 날, 누가 맥주 한잔 먹자 하면 좋겠는데….’ 그런데 이런 나의 바람을 알기나 한 것일까, 내가 사는 수도원 근처에 있는 교구 동창 신부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야, 뭐하냐! 맥주나 한잔하자. 빨리 나와….” 순간, ‘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 히죽 웃으며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한 후 주섬주섬 차려입고 대문을 나서 맥줏집으로 갔습니다. 그날따라 약속한 맥줏집은 사람이 왜 그리 많은지, 평소보다 많은 손님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먼저 도착한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동창 신부님도 어느 형제님과 함께 나타났습니다. ‘앗, 저분도 맥주 생각이!

그런데 알고 보니, 그분은 동창 신부님의 출신 본당 후배였습니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가슴까지 시원한 맥주를 마셨고, 노가리를 뜯으며, 잡다한 사는 이야기들을 노가리 뜯듯 풀었습니다. 그렇게 두어 잔을 마시다보니, 그분과 동창 신부님 사이에서 조금은 심각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이야기인 즉, 그분은 어느 대학에 있으면서 학회 일을 맡고 있었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학회를 무사히 잘 끝냈는데, 준비 과정에서 속상했던 이야기를 털어 놓았습니다.

자신이 올해 처음 학회 외부강사 섭외를 맡았고, 좀 잘해보고자 주제에 맞게 꽤 괜찮은 강사들을 섭외했는데, 섭외된 분들 중에 A라는 분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분이 평소에는 모시기 어려운 그 분야의 권위 있는 교수님과 자신이 잘 알고 지내니, 이번에는 그분을 모시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아주 잘되었다며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왠지 이번 학회가 잘될 것 같은 기분에 들떴답니다. 그래서 A라는 분과 함께 권위 있다는 그 교수님을 만나뵙고, 정말 사력을 다해 그분을 모시는 데 성공을 했다는 것입니다.

 

수도원 주변 하늘을 날고 있는 독수리 ㅣ 출처:경향DB

그렇게 모든 강사들의 섭외가 다 끝나고, 외부 일정 조정이 마무리되어 가는 즈음, 권위 있는 교수님을 모시자고 제안을 했던 그분이 느닷없이 학회의 모든 일정을 그 교수님에게 맞추자면서 발표 시간이나 여러 일정에 관해 무척이나 부담스러운 요구를 해 오더라는 것입니다. 학회를 취소하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지만 날짜는 거의 임박했고 학회는 마쳐야 했기에, 치밀어오르는 화를 속으로 꾸-욱 누르고, 생고생을 한 끝에 학회를 제 날짜에 잘 마쳤답니다.

그런데 동창 신부님의 후배는 그 일을 겪은 후로 사람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은 다 자기 잇속이 있다. A라는 교수는 손에 물 하나 묻히지 않으면서 자기 이익과 생색을 다 냈다. 꽤 괜찮은 제안 속에는 분명히 어떤 꼼수가 있다. 학문적으로는 훌륭한 사람의 인간성이 그 정도였다. 속상함 때문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학회는 예전에 끝났지만 마음속에 남은 인간에 대한 상처가 무척 커 보였습니다.

‘아, 많이 속상했겠다! 그런 일을 당하면 꽤나 마음이 쓰리고 아프지!’ 가만히 듣고 있자니 나도 힘들어하는 그분 이야기에 공감이 갔습니다. 노가리 한 마리를 잡아서 머리부터 꼬리까지 질근질근 씹었습니다. 그러자 동창 신부님이 맥주 한 잔을 쭈~욱 들이켜더니, 그 후배의 어깨를 토닥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대뜸 “야, 사람들은 다 그렇게 자신들이 얻고자 하는 것을 얻으려 하잖아. 어디 한번 따져볼까. 네가 소속된 학회는 모시기 어려운 교수를 모셔서 빛났을 테고, 그 교수는 너희 학회에서 발표를 해서 권위를 더 드러냈을 테고, A라는 교수는 자신이랑 가까운 그분을 자기 덕에 모셨다면서 원하는 만큼의 생색을 냈을 거 아냐. 그리고 야, 너도 이번 일을 통해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큰 교훈을 얻었잖아!”라고 했습니다.

‘에-엥, 교훈을 얻었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영화에서 극적인 반전 상황을 볼 때의 기분이 들었습니다. 전혀 생각지 못한 말을 들어서 그랬는지 놀라기까지 했습니다. 동창 신부님은 힘들다는 후배에게 질질 끌려가는 위로나 억지스러운 공감을 준 것이 아니라 상황 전체를 한 번에 직면하게 해주었습니다.

황당한 사건 하나가 다양한 목적을 가진 사람의 본성을 알게 해주었고, 좀 더 현명하게 상황을 파악하는 훈련을 시켜 주었고, 내면으로는 자신의 현재와 한계상황을 깊게 들여다보게 해주었고, 결국은 자신을 성장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과정을 배우게 해준 것이었습니다.

‘교훈을 얻었다’는 한마디 긍정의 말이 과거의 복합적인 고통을 반복하거나 재현하지 않게 해주었고, 그렇다고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지도 않았으며, 짜증을 멈추게 하고, 스스로의 감정에 생채기 주는 것을 그치게 해주었습니다. ‘그래, 그게 교훈이었구나!’ 그 후배가 웃으며 심각한 마음을 훌훌 털어버리자 나도 덩달아 마음이 가뿐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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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광석 | 전농 강진군정책실장


 

늦은 시간, 자신은 부정하지만 약간 술기운이 있는 목소리로 안부를 전한 후배 녀석은 국어 선생님입니다. “형, 시 한번 들어보세요. 윤도현 것인데요….” 전화 건너편 한 인간의 언어가 귓속을 지나 인중을 타고 들숨 날숨과 섞이더니 이내 가슴에 무거운 돌로 박혔습니다.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연탄 한 장 되는 것인데요. 하염없이 뜨거워졌다가 으깨어져 찬 겨울, 산산이 부서져 누군가가 마음 놓고 걸어갈 길의 일부가 되는 것인데요. 요즘은 연탄 보기도 귀한데, 근데 형은 누구의 연탄입니까?” 



(경향신문DB)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했습니다. ‘가수 윤도현이 아니고 안도현 거야’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습니다. 농촌에 사는 것이 연탄의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농사 말고는 다른 일을 해 본 적 없는 것을 마치 훈장처럼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경제적으로 최저생계비를 벌지 못하는 이들과, 교육·문화·의료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농민들과 부대끼고 아픔을 같이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낮은 포복으로 운동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어느덧 켜켜이 쌓인 책 위의 먼지처럼 나이가 굵어지고부터 사람에 감동하고 작은 것을 아끼며 분노할 것에 의당 분노하는 모습을 잃어갔습니다. 오솔길을 걸으며 사색하는 시간이 없어지고, 같이 활동하는 동지의 작은 모범을 따라 배우자는 겸손함도 없어졌습니다. 회원들 간에 강하게 비판해야 될 일도 대충 기분 나쁘지 않게 충고하고 말지, 정말 그 잘못을 고치도록 시간을 갖고 살피지 않습니다. 한·중 FTA가 체결된대도 감각이 없고 농협이 합병을 한다 해도 불구경하고 있습니다. 여유와 세월이라는 이름으로 감각이 무뎌지고 잘 닦여진 신작로처럼 매일 준비된 일상이 기다리고 그 일상 따라 눈을 감고 가도 넘어지지 않는 시간이 반복됩니다. 


누군가의 연탄이 되기 위해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내가 왜 살고 있는지를 하루라도 잊으면 장마에 습기 찬 연탄처럼 제 불꽃을 피우지 못합니다.


자신의 일부를 바쳐 사랑하는 것, 아파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경쟁에 치이고 목표 달성이 지상명령이 된 세상에선 자신의 것 이외의 가치와 보람에 눈을 돌리는 일은 어렵고 고단합니다. 수고로움을 자처하는 것이야말로 연탄되기의 시작입니다. 한참 모내기철입니다. 산비탈 다랑치 수렁논을 도맡아 모내기 하는 아저씨가 우리 동네의 연탄입니다. 영업의 관점으로 보면 빵점이지요. 어른들의 무거운 못자리 모판을 날라다 논에 가지런히 놓아 주는 장가 못간 총각 형님이 우리 동네 연탄입니다. 소주 한잔이 품삯입니다. 노인 일자리에 참여하시는 어른들을 몸 상할세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면직원이 우리 면의 연탄입니다. 소리 소문 없이 보호시설 학생들에게 해마다 쌀을 기부하는 익명의 기부자가 강진의 연탄입니다. 아침을 먹지 않는 아들을 위해 날마다 검은깨와 콩가루를 꿀에 타주는 어머니는 저의 연탄입니다. 그 어머니를 위해 자신의 역할 일부를 내주는 아내는 어머니의 연탄입니다. 딱 그들의 체온만큼 세상이 따뜻합니다.


누군가의 ‘연탄 한 장’ 되기 위해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의 아픔에 눈물 흘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과학적으로 보는 것보다 그것이 훨씬 중요하지요. 더 좋은 세상을 향해 싸우고 협력하며 헌신과 용기의 실천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것을 철학보다 먼저 배워야 합니다. 한 달에 한 번 쉬고 날마다 12시간 넘게 일하는 식당 아주머니들이 받는 월급이 4대 보험도 없이 고작 130만원 안팎이라는 것에 분노해야 합니다. 부모 없이 할머니와 살던 학생이 결국 학업을 포기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고 우는 후배 녀석처럼 눈물이 흔한 것이어야 합니다. 2월부터 10월 말까지 고추 300평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약통을 팔순 노모가 100번 넘게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 앞에 잠을 뒤척여야 합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가 더 이상 희생되어서는 안된다고 교회에서 절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합니다. ‘잡상인’을 ‘이동 상인’이라고 이름을 바꾸어 부르기로 했다는 서울시의 마음이 사람들의 밤거리에 가로등을 켭니다.


나도, 다른 사람도 다 자신의 어깨 넓이만큼의 아픔을 짊어지고 산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하고 보듬는 것으로 연탄의 삶이 시작됩니다. 이념의 과잉시대에, 당리당략을 위한 논리놀음의 첫 자리에 사람을 넣자면 너무 낭만적입니까? 비오는 날 연탄구이집에서 최근에 어머니를 떠나보낸 선배와 소주 한잔 마시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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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 시인


 

찔레꽃 필 때는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하더니, 정말 비가 오지 않았다. 기상청 예보로는 전국적으로 소나기가 온다고 했는데 날씨만 좋았다. 요즘은 날씨가 너무 좋아 탈이다.


일주일 전, 동네 형 차를 탔다. 동네 형은 논에 물을 대려고 100m짜리 비닐호스 다섯 타래를 샀다. 들판 길을 달리며 저수지에 물이 말라들어가 걱정이라고 했다. 물을 미리 받아놓은 아랫다랑논에서 윗다랑논까지 물 호스 까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 먼저 펌프를 설치하고 작동시켜 보았다. 펌프 출구에 호스를 끼우고 타이어 쪼갠 고무줄로 친친 감아 묶었다. 동네 형은 말라붙은 물도랑으로 호스가 꼬이지 않게 조심조심 펼쳐 나갔다. 한 타래를 다 펼쳐 놓고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왔다. 자신은 호스에 물이 차 나가는 것을 보며 따라가야 하니까, 전봇대에 설치되어 있는 펌프 스위치를 올리라고 하면 올리고 내리라고 하면 즉시 내리라고 했다. 무슨 폭발물이라도 설치하듯 나는 바싹 긴장해 그의 지시를 따랐다. 



(경향신문DB)



 호스 한 타래 펼쳐 놓기가 끝나면 호스에 플라스틱 파이프 토막을 박고 다시 호스를 연결해 나갔다. 세 타래째부터는 그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내 동작이 늦어지자, 그는 손동작으로 나를 지시했다. 가뭄이 든 들판을 가로지르며, 허리를 구부린 채 붉은 호스를 정맥처럼 끌고 가는 농부의 모습이 가물가물 멀어졌다. 농부들의 모든 일의 시작은 흙을 향해 허리를 굽히는 것이다, 라고 언젠가 썼던 내 글귀를 떠올려 보았다.


“논으로 물 대는 물꼬싸움에 살인 난다고 하지 않았어요?”


“응, 물꼬싸움을 해야 그때서 비가 온다고도 했지.” 


“가물에 바다도 영향을 받지요?”


“아무래도 염도 낮은 물 좋아하는 고기나 새우는 덜 잡히지.”


일을 마치고 돌아오다 병어잡이 나갈 준비를 하는 뱃사람 집에 들러 말린 꽃새우 안주에 막걸리를 마셨다. 저수지도 없어 관정을 뚫고 농사를 지을 때 가뭄이 들면 2000평 논에서 쌀을 한 가마니밖에 추수하지 못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주 더 가물 때는 벼가 다 쭉정이라 베지 못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개펄을 간척해 만든 논이라 가물면 염기가 땅에서 올라와 논이 허옇게 된 적도 있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산에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는데 그 울음소리도 파삭파삭 건조했다.


다음날은 스프링클러를 고구마밭에 설치한다고 해서 따라가 보았다. 밭두렁에 심어져 있는 고구마 싹들이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이제나저제나 비가 오기를 기다리다 할 수 없이 스프링클러를 사왔다고 했다. 밭에 들어서자 먼지가 분가루처럼 폭삭폭삭 날아올랐다. 찻길 밑 복개된 물도랑으로 호스를 힘들게 통과시켜 연결했다. 스프링클러가 물을 뿜으며 돌아갔다. 


스프링클러는 물줄기를 세 가닥으로 내뿜으며 돌아갔다. 물줄기를 내뿜는 거리가 셋 다 달라 물이 골고루 뿌려졌다. 물을 맞고 흙먼지를 피워 올리던 밭고랑이 서서히 젖으며 둥글게 젖은 원을 그렸다. 누가 알랴, 가뭄에 목말라하던 곡식들이 물을 빨아들이며 푸르게 생기 되찾는 것 바라보는 마음을. 잘됐어! 하며 박수치는 농부의 얼굴에 안도의 마음이 촉촉이 번졌다.


그제는 모를 낸다고 해 논으로 나가보았다. 이앙기가 녹색줄을 그으며 오갔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백로 한 마리가 긴 목을 연방 주억거리며 녹색줄 친 노트에 무엇인가를 쓰고 있었다. 이웃동네 이장은 가뭄이 오래갈 것 같다며, 비료를 주면 염기가 배가 될 것 같아, 밑거름 비료를 주지 않았다는데…, 걱정하며 농부는 논을 바라다보았다. 논에 심어지고 있는 벼 포기마다 농부의 근심도 함께 심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이천평, 열마지기 농사를 지으면 돈이 얼마나 나와요?”


“기계삯 주고 나면 잘돼야 사오백만원 될라나.”


물걱정은 되지만 농사짓는 일 중에 제일 큰일을 마쳤다고 한턱내는 막걸리를 마셨다. 술을 마시며 25%에 불과한 우리나라 곡물 자급률을 걱정하고,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과 식량식민지화를 걱정했다. 이러다가 큰 흉년이 들어 엄청난 기근이 찾아오면 어찌할까, 앞바다에 조력발전소가 들어서면 어떤 영향이 있을까….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의 가뭄도 화제가 되었다.


술을 마시다가 생각난 듯 동네 형은 스프링클러 노즐 뭉치를 가져와 고쳐보려고 이리저리 살폈다. 밭에 논물을 주다보니 이물질이 많아 스프링클러가 자주 고장이 나 벌써 두 개를 새로 사와 바꿔 설치했다고 한다. 기계 뭉치에 기름칠 하는 것을 보며 머릿속에 한 생각이 떠올랐다. 가뭄, 폭우, 폭설 이 모든 것은 우주의, 자연의 스프링클러가 고장이 나서인 것 아닌가. 우주의 스프링클러를 고장 낸 것도 지구인이고 고칠 이도 지구인이다. 지구인들이 각성하지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생각도 하지 않는다면, 우주의 스프링클러는 영원히 고장 나고 말 것이다. 그때는 이 지구에 비도, 눈도, 별빛도, 구름도 뿌려지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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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궁리출판 대표


나이가 오십에 진입하면서, 해묵은 숙제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런 와중에 일 하나를 저지르고 말았다. 철이 완전히 들었다면 그런 짓을 아니했을 터인데, 철이 들려다 만 모양이다. 일 년 동안 사무실 근처의 인왕산을 관찰하면서 내 고민의 일단을 드러내는 어설픈 책 한 권을 낸 것이다. 그 책에 그 숙제도 수록됐다. <생각의 주인을 찾아서>란 제목의 짧은 글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인왕산을 보고 인왕은 나를 본다. 그러니 나는 나를 못 본다. 인왕도 나처럼 그럴까. 인왕의 그 사정을 나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나를 볼 수가 없다. 이는 틀림없는 객관적 사실이다. 이 말이 굉장히 중요해서 진종일 염두에 둔다면 어쩌면 한 소식 들을 수도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그만 금방 잊어버린다. 아무리 노력해도 단 오 분도 계속해서 이 생각을 붙들 수가 없다. 왜일까? 나는 나를 까맣게 잊고 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인왕산이 흙, 바위, 나무들의 집합이듯 나의 생각 또한 온갖 자질구레한 것들의 모듬이다. 더구나 뿌리 없는 나는 한곳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의 생각만을 계속 하기란 내가 나무 밑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불가능한 것일 테다. 거기에 나무가 있고 저기에 꽃이 있고 여기에 너가 있다. 내가 차례로 시선을 던졌을 때, 나무며 꽃이며 너는 내게로 들어온다. 나의 생각도 그런 것 같다. 애시당초 내 머리 속에 있는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무, 꽃, 너처럼 외부에 흩어져 있다가 불각시에 나한테 오는 것 같았다. 시간이 시계 안에 들어 있는 게 아닌 것처럼. 그렇다면 도대체 내 생각의 주인은 누구란 말인가!

 

서울 성북구 백악마루에서 바라본 인왕산 성곽길

마흔다섯은 귀신이 와 서는 것이 보이는 나이라 했다(미당 서정주). 하지만 거기에 다섯을 더 얹어도 귀신은커녕 한숨만 늘었다. 나는 생각의 성질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들>이란 제목으로 한 편을 더 작성했다.

피투성(被投性)이라는 말이 있다. 투수가 공을 던지듯 그 누가 아무런 영문도 모르는 나를 이 세상으로 집어던졌다는 것이다. 나는 그냥 피투성이로 내동댕이쳐졌다. 야구공은 던지면 글러브 속으로 빨려들고 때리면 빨랫줄처럼 뻗어나간다. 야구공은 그 어떤 관중보다도 바쁘고 그 어떤 선수보다도 많이 돌아다닌다. 하지만 정작 시합에서 누가 이기고 지는 줄을 모르는 것은 야구공뿐이다. 지금 이 세상에서 나의 신세가 꼭 이 야구공 같지 않겠는가. 그 야구공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두 개의 눈이 있어 그것으로 나는 인왕산을 본다. 나의 눈알과 저 인왕산 사이에 어떤 섬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직진하는 시선을 중간에 끊을 수가 없다. 도무지 시선의 길이를 조절할 수가 없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도무지 생각의 방향을 조절할 수가 없다. 생각하고 싶은 생각은 생각나지 않고 생각하기 싫은 생각만 자꾸 생각난다. 만나고 싶은 이는 만나지 못하고 만나기 싫은 이를 만나는 것과 어쩌면 그리 똑같은 이치인가. 이러니 태어나다, 보다, 생각하다는 그 작동 원리가 같지 않겠는가.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점에서!

최근 수행과 관련해서 놓아버리기, 생각 버리기, 내려놓기 등의 말이 많이 오르내린다. 그 중에는 ‘알아차림’이라는 말도 있다. 여기,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알아차리고 한 생각에 집중하면 고요한 평정을 얻게 되고 이를 계속 훈련하면 선정의 단계에도 이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매 순간순간을 알아차린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알아차리겠다고 마음먹지만 알아차리고 보면 어느새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게 보통의 일상이다.

몇 해 전 성철 스님의 생가에 세워진 겁외사 주지 스님한테 들은 이야기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세상은 한 호흡 간에 있습니다. 정신을 인중에 올려놓고 들숨과 날숨을 가만히 관찰해 보세요. 평정심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얼마 전 서울로 거처를 옮긴 그 스님으로부터 ‘이해하고 내려놓기’에 대한 법문을 들었다. “우리 주위에는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온갖 생각들이 일어납니다. 벌어지고 일어나는 것은 사실 내가 관리하고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일과 그 생각이 나에게 왔다는 것은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본인이 하기 나름인 것입니다.”

이것도 기별이라면 한 기별일까. 적어도 나한테는 큰 충격으로 그 말씀이 다가왔다. 알아차림이란 단순히 ‘내가 알아차렸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다’의 문제가 아니었다. 관찰해 보니 그것은 내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야 마음대로 할 수 없다지만 알아차림은 전적으로 나의 소관사항이 아닌가. 그것만이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아닌가. 인간으로 있는 동안 이것이야말로 나만의 고유한 권리로구나! 하는 자각이 문득 들었다.

도대체 내 생각의 주인은 누구인가. 나의 생각도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인가. 그렇게 탄식만 하던 한 철없는 인간에게, 불확실한 이 세계와 대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교두보로서 ‘알아차림’이란 말이 불현듯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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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광석|전농 강진군 정책실장


통합진보당 내분 사태의 불똥이 이곳 남도땅 강진까지 튀었습니다. 지난 4·11 총선 국회의원 비례대표 경선을 관리했던 간부들이 부정선거 책임자로 몰리고 있습니다. 강진군 통합진보당 당원은 몸을 쓰는 노동자, 농민이 많습니다. 이분들이 생활을 하시면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당 사무실이기에 같은 컴퓨터로 투표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농민들은 집에 컴퓨터가 있어도 나름 복잡한 인터넷 투표를 직접 하기가 약간 ‘거시기’한 분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같이 나와 투표하셨습니다. 당 실무를 하는 일꾼들은 투표를 할 때마다 곤혹스럽습니다. 단독 후보인 경우에도 기어이 찬반을 물어야 하는 당 규정상 50% 투표 참여는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역 총선 후보를 뽑는데도 형님, 동생 부르며 “막걸리 살 테니 나오라”고 소리치면서 투표했습니다.

같은 컴퓨터에서 무더기 투표 행위가 진행됐다는 것은 적어도 이곳 강진 상황에서는 실제로 큰 문제가 아닙니다. “큰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더 큰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저 같은 사람을 부정 불감증 환자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강진군 농민회는 간부가 어느 정당이든 당원이 되거나 공직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선 일정한 승인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농민회 간부인 저는 후원당원이었습니다. 당비는 내지만 당원은 아닌, 당권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비례대표 후보 선거를 할 권한이 없습니다.

농민회 간부 일을 놓고 당에 입당하기 위해 원서를 냈습니다. 그런데 글쎄 제가 당원이라고 뜨는 겁니다. 조금 이상했지만 비례대표 투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진보당 혁신비대위 회의 ㅣ 출처:경향DB

합당 전 후원당원은 합당 후 어떤 신분인지 누구 하나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당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든지, 아니면 내용을 제가 몰랐든지 둘 중에 하나겠지요. 투표권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쳤을 수 있지만 투표를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각자 상황은 조금 다르겠지만, 저 같은 사람들이 한통속으로 ‘유령 당원’이 되었습니다. 당원이 아닌 사람이 부정하게 투표했고, 실제 선거인명부상 투표권자보다 투표한 사람 수가 많은 일이 벌어졌다고 발표되었습니다.

세상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진보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역사상 남한 사회에서 진보정당이 제3당이 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이토록 많은 사람이 많은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진보정당을 조명한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쓰나미는 순식간에 왔고, 괴로운 긴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일이 벌어진 후 제일 서글픈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함부로 정치적 감투를 씌운다는 겁니다. 출세주의자, 패권주의자, 조직이기주의자 등 어려운 말이 판을 칩니다.

“오야, 자네는 무슨 파인가”라 묻는 상용직 노동자 당원의 질문을 받고 할 말을 잃었습니다. “저는 쪽파를 심었습니다만…”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난감했습니다.

농촌에선 조생종 양파값이 폭락하고 대파를 갈아엎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 세상은 온통 ‘파’잔치뿐입니다. 인근 지역 친구는 무슨 파일까? 의심하면서 서로들 말을 하지 않습니다. 평소에 친한 선후배들이 안부를 묻는 전화를 해도 가슴이 뜨끔뜨끔하고 의견 하나 내는 것도 부담스러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간의 단절을 믿음과 의리로 회복하는 일이 비대위를 만들어 당을 혁신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과 사람을 하나로 연결해야 할 정치가 사람이 사람을 치는 정치가 되었습니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계기로 서울에서 한참 먼 강진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강진에 ‘늦봄 문익환학교’가 있습니다. 대안학교입니다. 이 학교가 갑자기 불순세력이 불순분자를 양성하는 주사파 학교로 지명되었습니다. 통일기행, 강정마을 평화기행이 색깔로 덧칠되고 연좌제를 적용할 기세로 부모의 과거를 공개하고 선생님을 친북으로 몰아갑니다.

이 나라를 뒤흔들 만큼 힘있는 일간지가 작은 대안학교까지 들여다보자고 나선 이유는 이 나라 전체가 썩었다고 경고하고 싶었거나 이 학교의 명예이사인 민주통합당 문성근 최고위원을 겨냥해 사상검증을 하겠다는 것, 둘 중에 하나일 겁니다.

이제 종점이 멀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이 마지막 결론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부정선거에서 조직이기주의로, 주사파에서 야권연대로, 결국 정권 재창출을 위한 보수세력의 결집으로 마무리되는 한 편의 잘 짜여진 드라마가 마지막 회를 앞두고 시청률을 조율하고 있습니다.

통합진보당이 어떻게 될 것인지 시골 촌놈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건 압니다.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기를 원합니다.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누구는 목숨을 걸기도 합니다. 그게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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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시인


 

일요일마다 나는 한 모임에 나간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관광지다. 일요일은 다른 날보다 이 고장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장사를 하는 나로서는 일요일에 가게를 떠나는 게 망설여질 수밖에 없다. 집사람이 가게를 보니까 가게를 완전히 닫는 것도 아니지만, 가끔 나를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어 그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집단상가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데, 어떤 날은 관광버스가 두세 대씩 한꺼번에 몰려오기도 한다. 그럴 때는 물건을 팔든 못 팔든 나와 같이 있는 것이 집사람은 든든한가보다. 


한창 바쁜 시간에 모임에 간다고 빠져나올 때, 흔쾌하게 잘 다녀오라고 하는 집사람의 말을 들으면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이런 사정을 헤아려 내가 가급적 오래 가게에서 머물 수 있게 멀리서 차를 몰고 나를 데리러 오는 지인도 있다. 나는 늘 그 사람에게 감사하며 달가운 마음으로 모임에 나간다.


 우리는 북녘땅이 보이는 곳에 모여 남북 평화통일을 기원하며 묵상기도를 한다. 이 기도가 끝나면 평화통일을 주제로 쓴 시인들의 시를 낭송하기도 하고 각자 책을 읽으며 본 평화에 관계된 글들을 발췌해와 읽기도 한다. 그리고 주위에 핀 꽃들이나 철책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새들에 대한 감상을 나누기도 한다. 들판길을 같이 걷기도 하고 저녁식사를 같이하며 서로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이 모임에서 나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이가 어려 많은 것들을 배우고 공부해야 할 여러 분야를 깨닫는다.


2000년도다. 나는 3개월 동안 교회에 나갔다. 내가 살고 있던 동네 교회에 젊은 사람들이 별로 없다며 교회에 나와 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듣고, 2000년이 되면 나가겠다고 가볍게 말했다. 정말 시간이 흘러 2000년이 왔고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도 없고 해서, 신앙심도 없이 교회에 나갔다. 교회에 나가니까 무엇보다도 반듯하게 두 시간 정도 앉아 있는 게 좋았다. 직장을 그만둔 지도 오래됐고, 하는 일이 혼자서 하는 일이라 평소 반듯하게 앉아 있을 일이 별로 없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경향신문DB)



또 기도시간에 구체적으로 기도를 하게 되는 것도 좋은 점 중 하나였다. 가령 혼자서 기도를 할 때는 우리 가족, 우리 사회가 평화로웠으면 좋겠다고 뭉뚱그려 하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남들과 같이 긴 시간 기도를 할 때는 달랐다. 교통사고를 당해 뇌를 다친 형은 기억력 되찾기를, 느타리버섯 농사 짓는 친구는 버섯이 잘되기를, 구조조정으로 해직당한 친구가 빨리 직장 잡기를…, 구체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일요일 모임에 나가 평화통일 염원 기도를 하면서도 생각들이 조금씩 변했다. 이 시대에 평화통일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아니, 폭을 좁혀, 평화로운 마음을 갖고 평화로운 삶을 살기 위해, 한 개인으로서 나는 무엇부터 실천해야 하는가 하는, 구체적인 고민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런 고민을 하다보니까 그동안 피상적으로 대해 막연하게만 바라다보이던 민족의 분단현실이 더 세분화되며 강렬하게 다가왔다.


이 모임을 처음 주창한 분의 뜻처럼 ‘남북 평화통일을 기도하고, 평화통일을 맞을 준비를 하고, 평화통일과 그 이후 사회를 위해 일할 피스메이커를 키우는 일에 동참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평화의 씨앗이다’ 각성하고 일상의 자리에서 꾸준하게 평화를 위한 일을 실천할 때 평화의 씨앗들은 씨앗을 증식하며 더 큰 힘을 일궈나갈 수 있다는데….


(그래, 가게 비우는 걱정이나 하고 있는 일개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씨앗의 정신마저 모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씨앗은 얼마나 단호하고 희생적인가. 살아오며 품었던 살을 버려, 우주를 살로 바꿔놓고 마는 게 씨앗이 아닌가. 제 살을 버리고 우주의 씨앗이 되는 게 씨앗들 아닌가. 보라, 한강과 임진강과 예성강이 만나 큰물 이루며 바다로 나아가는 것을. 철책으로 가둬놓은들, 어디 저 물의 정신이 변하더냐. 서로서로 평등하게 몸 섞으며 더 푸르러지는 저 빛깔의 말을 들어라. 저곳이 비무장지대라는 말은, 저곳만이 비무장지대라는 말은, 너무도 가당치 않은 말 아닌가. 우리 한반도에서 저곳만큼만이 비무장지대라면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한반도 전체가 비무장지대여야 옳겠지만, 세계가 온통 비무장지대여야 되겠지만, 당장은 그런 세상이 힘들다면, 아 차라리 바꿔라도 보았으면. 한반도에서 저 비무장지대만큼만 무장지대가 되도록 바꿔보았으면. 그것도 무장지대를 어쩔 수 없는 국경으로, 국경선으로 내보냈으면. 그리 되라고 그리 될 날 꼭 올 것이라고 마음만으로라도 기도해보는 지금 나는 불온한 씨앗이더냐.)


남북한 사이에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는 마음에 격한 기도가 일어나기도 했고 기도 끝에 마음은 한결 후련해지기도 했다. 마치 철책에 갇혀 오갈 데 없는 갈대를 통과한 바람이 가슴속을 쓸어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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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아침에 일어나 샤워하고 물기 꼭꼭 닦은 뒤 올라가는 곳이 있다. 몸무게를 좀 줄이고 싶은 건 내 오래된 희망 중의 하나이다. 어제 점심시간에는 인왕산 허리의 산책로를 걸었다. 그러니 눈금도 정상을 참작해주지 않을까. 그런 얄팍한 기대감으로 거실 한편의 체중계, 간이저울로 올라가는 것이다.



(경향신문DB)



그러나 나의 기대가 문제였지 바늘이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저울은 야윈 손으로 내심 지목한 숫자의 바깥을 태연히 가리켰다. 쥐꼬리만큼 운동하고 맛난 것 찾아 포식한 결과는 냉정했다. 하지만 내 머리는 좀전의 실망을 금방 잊었나 보다. 버릇대로 밥을 잔뜩 먹은 것이다. 거북한 배를 안고 문을 나섰다.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가 알아들었다고 외눈을 껌뻑거렸다. 


어쩌다 큰 빌딩에 갈 때 엘리베이터 때문에 난감할 때가 있다. 그냥 계단을 이용하기도 한다. 내 몸피와 무게를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서로 덜렁 몸을 실었다가 삐익, 소리를 들었던 적이 여러 번이다. 민망해진 나를 배제한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슬며시 웃음이 번졌을 것이다. 소심한 나는 인생에서 무슨 반칙이라도 저지른 양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었다. 그럴 때 엘리베이터는 승객의 무게를 단체로 재는 저울이었다.


 


나 혼자를 태우고 엘리베이터는 사뿐히 1층에 도착한다. 나는 아무런 가속도도 느끼지 않은 채 땅을 밟는다. 그리고 중력을 이기며 버스정류장으로 부지런히 발을 옮긴다. 정류장에는 횡단보도가 있고 바로 그 길목에는 택시들이 대기하고 있다.


얼마 전의 일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중년의 신사가 택시로 가는 것을 보았다. 그가 뒷문을 열고 몸을 집어넣었을 때 차체가 꿀렁, 내려앉았다. 아마 진동을 흡수하는 차체의 스프링이 무게를 감당하면서 진저리를 한번 쳐보는 것일 테다. 뒤이어 젊은 아가씨가 다음 택시를 탔다. 이번에는 차체가 아주 조금 귀엽게 흔들렸다. 그 광경을 보면서 나는 새롭게 알았다. 자동차 또한 손님의 무게를 재는 저울이란 것을.


오늘은 좀 늦은 바람에 택시를 타기로 했다. 정류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같은 정류장에 있어도 사람들의 시선은 각각 다르다. 혹 그중 누군가에게 내 무게가 들킬 것 같아 아주 조심스러워졌다. 뒷자리에 사뿐히 앉는다고 무게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겠지만 최대한 얌전하게 두 발을 저울에 올리는 동시에 문을 닫는다.


그 순간부터 이젠 또 다른 저울이 작동된다. 일본의 여행가인 후지와라 신야의 <동양기행>(청어람미디어 발행)에 이런 대목이 있다. “티베트에는 신이 하늘에서 천칭으로 이 세상을 저울질한다는 미신이 있다. 천칭의 양쪽 끝 받침접시에는 행운과 불운이 올려져 있는데, 불운이 무거워지면 균형을 맞추기 위해 신은 행운의 받침접시에 돌을 올려놓는다는 것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나는 이것이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원리를 자세히 관찰한 후 터득한 하나의 명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렇게 상상해볼 수도 있겠다. 이 택시 안도 하나의 작은 세상이고 차체는 잘잘못을 재는 하나의 천칭 저울이다. 앞에서는 운전사가 핸들을 잡은 채 전방을 보고 있다. 뒤에서는 한 뚱뚱한 승객이 신문을 읽고 있다. 그러면서 서로 저울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글쎄 이 좁은 택시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운전사가 잘못을 저지른다면 얼마나 저지를까. 촘촘한 교통법규와 사방에서 번뜩이는 교통경찰의 매서운 눈초리 속에서 큰 사고는 아주 드문 일이고 그저 과속이거나 신호, 차선, 주정차 위반 정도가 아닐까.


그러나 주로 뒷좌석에 앉았다가 세상으로 바삐 뛰쳐나가는 자들. 지금 뒷좌석에 펼쳐진 신문의 앞뒷면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 그들이 잘못을 저지른다면 정말 큰 잘못일 테다. 그러니 내친김에 좀 더 고약한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만약 굳이 선악(善惡)의 편을 가른다면 어떻게 될까? 운전석이 선의 편이고 뒷좌석은 그 반대편이 아닐까? 실제로 운전사가 전방을 주시하면서 조용히 일하는 동안 뒷좌석에서는 끊임없이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그건 내면의 어떤 불안을 감추려는 행동원리가 아닐까? 


이윽고 사무실이 자리한 인왕산 아래의 옥인파출소 앞에 도착했다. 출입문 옆 게시판에 주요 지명수배자들의 전단이 보였다. 바로 이웃한 담벼락에도 큰 얼굴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큰일을 하겠다고 국회의원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이었다. 정치인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거니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아마 그들 중에서 한 사람이 뽑혀 그곳으로 올라갈 것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지만 들고나는 자리인 내 궁둥이 아래는 더 깜깜하다. 저울에서 내리면서 맡겨두었던 무게를 고스란히 돌려받자 나는 또 무거워졌다. 그런 나를 길거리에 물끄러미 세워놓고 택시는 떠나갔다. 제법 근수가 나가는 나를 벗어놓은 택시는 한결 홀가분해졌나. 미끈한 차의 엉덩이가 땅에서부터 적어도 내 발등만큼 더 높아진 것 같았다. 지금껏 내 몸에 쌓인 잘못의 무게와 그 높이가 전혀 무관치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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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 스님


가는 봄을 붙잡고자 푸른 솔 향이 좋은 숲길을 걷고 있다. 언제나 걸어도 좋은 길. 그 길을 알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세상 어디에 있든, 생의 어느 시간에 있든 여유와 평화로움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정리할 일이 생기면 걷는 게 습관이 되었다. 소중했던 출발의 시간을 떠올리며 마무리를 신선하고 긴장되게 한다. 사실 ‘지금’이란 늘 마무리이면서 출발점인데, 무기(無記)의 시간으로 보내고 있을 때가 많다. 천천히 걸으면서 처음으로 돌아가 자신을 살펴보는 것은 좋은 일인 것 같다.



 여기저기 떠돌다가도 가야산 숲길을 생각하면 행복하다. 싱그러운 초심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수행을 향한 도반들의 맑은 눈빛이 있다. 그때는 몰랐다. 시간이 지나고 지금에야 이렇게 그리워할 줄을. 


그 길을 걸으면서 “부초심지인(夫初心之人)은 수원리악우(須遠離惡友)하고 친근현선(親近賢善)하야 수오계십계등(受五戒十戒等)하야…”하며 ‘초심’을 외우고 있노라면 새들이 시끄럽다고 얼마나 하소연을 해댔는지. 이 대목, 시작의 첫 구절부터 도반들 사이에서는 “초발심자도 부처님의 제자인데 어떻게 나쁜 친구를 멀리하고 좋은 친구만을 사귀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렇게 시작부터 시비를 했으니 어찌 하루하루가 아무 일 없이 지나갔겠는가. 당연히 선배 스님들로부터 지적받아 참회의 절을 참 많이도 했다. 아마 졸업 때까지 4년을 헤아리면 수십만 배는 족히 될 것이다. 그때는 그 구절을 이렇게 이해하고 지나갔다. ‘수행에 도움 되는 벗과 도움 되지 않는 벗을 초심 때는 잘 가려야 한다’고 말이다. 


어른 스님들께서는 승려생활 한참 하다보면 다시 ‘초심’을 읽게 된다고 하셨으나, 우린 언제 이 과목을 끝낼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아직 승가의 단체생활이 몸에 배지 않기도 하였거니와 설익은 ‘도(道)’ 타령으로 선배들의 눈 푸른 납자 풍모를 흉내 내려는 마음이 앞선 탓이었다. 


승가도 하나의 사회이고 보면 이러저러한 인연에 따른 삶이 있다.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에도 그 눈빛이 성성한 도반들도 있지만 오늘 나의 눈빛과 몸짓은 비 맞은 풀옷과 같다. 그래도 가끔씩 도반들을 만나면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을 보는데, 그 참회했던 절 세례의 기운이 아직 남아 있는가 보다.


얼마 전 처사님 몇 분이 <초발심자경문>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그때 가슴속에서 찬 기운이 도는 것을 느꼈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기운인가. 흐릿했던 눈빛은 다시 긴장감이 돌았다. 아! 선지식이 따로 없구나. 가르쳐준다는 생각 없이 다시 배우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처음 발심한 사람은 반드시 나쁜 벗을 멀리하고 어질고 착한 이를 가까이 하여….” 조금씩 공부에 참여하는 이들이 늘어나 법당이 채워졌다.


다시 흐릿한 눈을 뜨고 시비를 시작한다. “내 육근의 경계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려놓은 세계입니다. 그러면 선우나 악우도 내가 그려 놓은 벗입니다. 따라서 어떤 벗도 선하거나 악한 이는 없습니다. 여기서의 분별은 ‘나에게 맞다, 안 맞다’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분별을 일으키는 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나에게 악우가 생겼다면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한 분인 장로 수보리존자처럼 다툼 없는 삼매(無諍三昧)를 얻게 해줄 선지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즉 나에게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깨닫게 해줄 벗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뒤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선지지범개차(善知持犯開遮)’를 잘할 수 있게 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수행을 향한 간절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언제쯤이나 저 가야산 푸른 숲을 닮아 ‘지킬 때, 범할 때 그리고 열고 닫을 때’를 알게 될 것인가. 시비하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아는 지혜로운 삶의 모습. 그래도 이렇게 다시 책장을 넘길 수 있는 것은 그 시절 작은 인연의 씨앗이 발아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는 조금 타인의 삶이 이해되지 않는 게 없는 듯하다. 삶이 무뎌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행복이란 생각의 시침이 앞보다 과거를 추억하는 데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 시절 그렇게 불편했던 도반까지도 궁금하고 그리운 때가 되었다.


“옥토끼(달)가 뜨고 지니 사람이 늙고 /금까마귀(해) 오르내리니 세월만 가네. /명예와 재물은 아침 이슬 같고/ 괴롭고 영화로운 일 저녁하늘 연기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는데, “도가 사람을 멀리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멀리한다”는 <초발심자경문>의 마지막 간절한 말씀이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그 시절 그 가야산 숲길은 아니지만, 봄 햇살 고운 날에 솔숲을 걸으며 읊조려 본다. “부초심지인은 수원리악우하고 친근현선하야….” 


초심은 묵은 마음을 잘 정리하는 데 있다. 이렇게 끝나지 않는 길을 하염없이 걸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도반들도 함께 걸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아쉬운 대로 새들이 시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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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광석 | 전농 강진군 정책실장 suam585@hanmail.net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매일 기도한 사람은 사랑하는 이의 아픔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자식이 가고 싶어 하는 대학의 마크를 1년 동안 양복 안주머니에 가지고 다녔다는 아버지야말로 아이의 합격에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걸어본 사람만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기뻐하고 아파할 수 있습니다.

선거가 끝났습니다. 마을회관에 있던 벽보가 없어지고 바람이 다르고, 사람이 다르고, 시대가 바뀌었다고 펄럭이던 플래카드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단 하루 만에 모든 잔치가 끝났고, 세상은 전과 같이 조용합니다.


당선만 되면 코빼기도 안 보인다는 정치인은 ‘고맙다’는 당선 인사 플래카드를 걸고 코빼기도 안 보이고, 낙선한 후보는 관청마다 거리마다 인사를 다니며 권토중래를 다짐하는가 봅니다.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단과 19대 총선 당선자들 상견례 I 출처:경향DB

아내에게 큰 꾸중을 듣고 반성하는 척이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관계 회복이 안될 것 같은 상황에서 아이들을 방패삼아 교회에 나가보는 저는, 선거 전 일요일, 코가 책상에 닿도록 오랫동안 한번도 내 마음속에 임하지 않은 하나님에게 기도했습니다.

‘민중이 승리하길, 진실이 승리하길, 눈물 말고 아무것도 없는 통합진보당이 승리하길 바라며 주 예수의 전지전능한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한동안 일어나지 못하는 저를 보고 사모님이 눈물을 훔쳤던 것 같습니다. 일부러 큰소리로 “안녕하세요, 통합진보당 기호 4번 강광석입니다”라고 인사드렸습니다. 성가대를 마치고 나오는 아내에게 얼굴도장을 찍지 못하고 방송차를 몰고 나왔습니다.

장흥·강진·영암 지역구에 출마한 우리 후보는 공무원노조 출신 해고노동자입니다. 어떤 후보는 8년 전부터 준비했다는 선거를 그이는 선거 40일을 남기고 결의했습니다. 진보정치의 끈을 이어야 한다는, 누군가는 하나의 밀알이 되어야 한다는 각오로 출마했습니다. 조직도 없고, 경험도 없고, 선거본부도 제대로 없는 상황에서 삽 하나로 논 전체를 쟁기질하는 심정으로 시작했습니다.

강진의 어떤 형님은 직장을 그만두고 사무국장이 되었고, 영암의 노동자 친구도 직장을 그만두고 선거상황실장을 맡았습니다. 장흥의 선배·후배들도 농사를 작파하고 가정을 뒤로하고 선거에 결합했습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했고 우리는 5명이 출마한 선거에서 3등을 했습니다.

시험을 본 학생이 매일 채점지를 보며 예상 점수를 맞추어 보듯, 우리는 선두권 3명이 혼전양상이 되면 당선될 수 있다는, 나름 계산서를 뽑아보며 자가발전·자체열광을 거듭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세뇌와 같은 것이어서 한 번 계산이 나오니 자꾸 그것이 현실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침 7시에 눈이 떠지던 것이 아침 6시에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가 승리합니다”라는 멘트가 “우리가 이기고 있습니다. 당선으로 보답하겠습니다”로 바뀌었습니다. 발은 더 빨라지고 목소리는 더 커지고 급기야 일망타진 작전이 나오게 됩니다. 어느 마을 싹쓸이, 어느 마을 50%. 이런 식으로 강진은 5000표 그래프를 만들었습니다. 밥먹는 시간이 아까웠습니다. 하루하루 다르게 변하는 유권자들의 반응을 보며 힘을 얻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것이 일종의 선거병이라는 건데, 학술적으로는 ‘낙관적 상황호도증’이라는 중증이랍니다. 모든 후보와 선거운동원들은 자신들의 표가 30%를 넘으면 당선을 확신하게 된다는 겁니다. 선거병 중에 가장 모진 병이 ‘내리먹임증후군’이라는 것입니다. 흔히 간부급에서 많이 발생하는 병인데, 받아들일 사람은 전혀 준비가 안되어 있는데 목표만 세워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립니다. 사람 각자의 처지와 상황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고 오직 숫자를 채우느냐 못 채우느냐만 중요한 것이 되어 버립니다. 과정은 없고 결과만 있고 사람의 존엄은 없고 그래프만 있습니다. 그 병을 앓다가 몇은 나갔다 돌아오지 않았고, 몇은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회계처리 몇 개만 끝나면 선거상황은 종료되지만 진심과 사랑, 애절함과 눈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근 40일 동안 묵묵히 자식과 남편의 무신경을 보아 넘겨준 어머니와 아내의 넉넉한 품이 남았습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진보당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되었다는 선거운동원들이 남았고, 자신의 것을 먼저 내던지면서 운동에 복무하는 주변분들의 헌신과 열정이 교훈으로 남았습니다.

선거 끝나고 방송차를 반납하러 장흥에 갔는데, 후보와 후보 배우자가 이 세상에 본 가장 아름다운 한복을 입고 거리에서 낙선인사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든 것을 걸어본 사람은 모든 것을 털고 다시 일어날 줄 압니다. 이긴 사람들은 미치도록 기뻐하고 진 사람들은 땅을 치고 통곡하는 것으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2012년 아직 절반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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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시인


 

마당에도 노란 민들레가 피어났다. 날이 흐려서인지 마음에 노란색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어서인지 그 빛이 예전만 못하다. 4·11 총선이 끝났다. 면 소재지에서 걸어서 15분 걸리는 내가 살고 있는 곳까지 들려오던 선거차량의 유세소리가 사라져 갑자기 동네가 다 고요하다. 스피커 소리에 놀라며 짖어대던 개들도 낮잠에 들어 동네가 온통 고자누룩해졌다. 주위가 고요해졌는데 나의 마음은 왜 이리 싱숭생숭 시끄러워지는 것일까. 



하늘공원에서 민들레 홀씨가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고 있다. (경향신문DB)



투표 전날 매화나무를 한 그루 샀다. 마당에 나무를 심으며 나무의 미래를 그려보았다. 나무가 커가며 공간의 풍경을 어떻게 바꿔갈 것인가. 계절에 따라 나무는 그림자를 어떤 방향에 내려놓을 것인가. 어떤 종류의 새들이 날아와 무슨 노래를 불러줄 것인가. 지나는 바람소리를 읽어줄, 흙에서 빛깔을 끌어올려 꽃을 피울, 나무에 대한 생각들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그 즐거운 마음속에서 이번 투표 결과를 미리 그려보기도 했다. 사필귀정이라 하지 않았는가. 분명 투표용지가 씨앗이 되어 정정당당 민심의 푸른 숲 밝게 그려줄 것이다. 그런데 이 어찌 된 일인가. 나의 믿음이 애초부터 잘못되었던 것인가. 



‘세계는 그 신비의 내밀성 속에서 정화의 운명을 바라고 있다. 인간이 보다 좋은 인간의 싹이며 노랗고 무거운 불꽃이 희고 가벼운 불꽃의 싹인 것과 같이 세계는 보다 나은 세계의 싹이다.’ 시인이며 철학자인 가스통 바슐라르의 글귀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마음에 의문형으로 변형되어 떠오른다. 정말 인간이 보다 좋은 인간의 싹이고 세계가 보다 좋은 세계의 싹인가. 세계는 진정 정화의 운명을 바라고 있는 것인가.


동네에 술을 잘하는, 건장한 몸을 가진 친구가 한 명 있다. 이 친구가 누이가 살고 있는 도시에 갔을 때다. 누이가 아침운동을 나가며 이 친구를 데리고 갔다. 안개가 자욱한 새벽이었다. 친구 누이는 달리기 운동을 나서고 친구는 숙취가 심해 공원 의자에 앉았다. 계곡으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가 있는 곳은 화장터가 있고 주위 산 전체가 공동묘지인 납골공원이었다. 취기가 남아있는데도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며 겁이 났다. 그때 안개 속에서 한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다. 분명 얼굴이 없는 사람이었다. 술이 덜 깨서 그런가. 친구는 세차게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분명 얼굴이 없었다. 얼굴 없는 사람. 친구는 그 사람의 발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겁에 질려 누이를 기다리는데 누이는 오지 않고 그 발소리가 되돌아 다가왔다. 역시 얼굴이 없었다. 친구는 용기를 내어 시선으로 힘들게 안개를 밀어내며 얼굴 없는 사람을 바라다보았다. 세상에! 그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의 뒤통수에 달려 있는 게 아닌가. 그 사람은 뒤로 걷기 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는 그제야 어이없는 웃음을 털었다. 자신이 납골공원에 있다는 선입관에 빠져, 지레짐작 겁을 먹고 있어 눈앞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위에 적어본 우스개 이야기처럼, 이번 선거에서 우리 유권자의 시선을 흐리게 하고 겁을 준 것은 없었을까. 북한의 미사일, 막말, 번복, 전 정권도 사찰, 이런 말들로 물타기를 해 유권자들의 판단을 흐려놓은 것은 아닐까. 방송 3사의 파업기간을 등에 업고 중요한 이슈나 정책보다 여당 지도자의 손에 감긴 하얀 붕대에 포커스를 맞추게 한 것은 아닐까. 


어쨌든 선거는 끝났다. 야당은 실패했다. 실패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기보단 내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여당이 이리할 것이란 것을 몰랐을 리 없고 몰랐어도 안된다. 그러나 패배야말로 얼마나 견고한 희망의 씨앗인가를 생각하면 소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오래전 대선 때의 일이다. 투표를 하러 가려 하는데 어머니가 농을 자꾸 뒤지며 따라나서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무엇을 찾고 있냐고 물어보았다. 도장을 찾는 중이라고 했다. 어머니 도장도 내가 챙겼다고 하자 보여 달라고 했다. 도장을 보여 주었더니 그 도장 말고 한자로 이름 새긴 나무도장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 도장은 고향에서 퇴거해올 때 실수로 면사무소에 놓고 왔다고 했다. 그러자 그 도장 꼭 찾아오라며 이렇게 말을 이으셨다.


‘그 도장은 6·25 때 북으로 끌려간 네 작은외삼촌이 새겨 준 거다. 나는 대통령 선거가 있을 때마다 통일을 바라는 마음으로 그 도장을 가져가 투표를 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꼭, 찾아와라.’


민들레꽃은 차다. 냉철하다. 민들레의 맛은 인내처럼 쓰고 생명은 질기다. 벌써 밭둑은 연초록 옷으로 갈아입었고 노란 민들레 단추를 달았다. 자연은 때가 되면 순리에 맞게 옷을 갈아입거늘, 어찌 사람들은 그리하지 못하는지. 한겨울 옷을 갈아입을 때 잠시 춥다고 하여 속옷을 갈아입지 않으면, 옷이 때에 절어 더 오래 추위에 떨어야 한다는 걸 모를 리 없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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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영어를 정식으로 배운 건 중학생 때부터이다. 겨우 알파벳만 떠듬거리며 첫시간을 맞았는데 미리 공부를 해온 친구들이 있었다. 고작 에그(egg), 스쿨(school), 애플(apple)을 발음하는 정도였지만 나는 주눅이 팍 들었다. 철조망 같은 줄이 그어진 펜먼십 노트에 철자 연습부터 시작했다. 영어를 잘해야 성공한다는 압력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나는 영어와는 그다지 친하지 못했고, 따라서 잘하지도 못했다. 지금도 영어에 능통한 이를 보면 부럽다는 감정보다도 신기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럭저럭 대학을 졸업하고 한 줄의 글이라도 끼적거리게 되었을 때 우리말을 제대로 쓰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통렬히 느꼈다.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빈약한 어휘는 금방 밑천이 바닥났다. 하는 수 없이 먼지 묻은 국어사전을 꺼냈다. 문득 초등학교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국어사전은 제대로 들춘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어사전은 손때를 많이 묻혔는데 정작 국어사전은 소홀히 대했다는 진한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만회라도 하듯 국어사전을 한동안 끼고 살았다. 작은 사전은 좋은 장난감이기도 했다. 특히 순우리말을 찾는 재미가 새록새록 생겨났다. 가령 발밤발밤이라는 우리말이 있다. 가는 곳을 정하지 않고 발길이 가는 대로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걷는 모양. 뜻을 새기며 입에 넣고 웅얼거리면 단침이 고였다. 환한 달밤이면 일부러 발밤발밤 거닐고 싶어졌다.


제대로 한번 공부해 보자, 작정하고 기역의 ‘가’부터 국어사전을 훑어나갔다. 순우리말은 따로 골라서 공책에 옮겨 적었다. 히읗의 ‘힝’까지 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비읍쯤에서 중단했다. 아뿔싸, 웬 여인한테 그만 눈이 삔 것이다. 그때 그 사전 그 공책, 지금은 모두 없다. 여인만 남았다. 하지만 이런 글이라도 끙끙거리며 쓸 때 맞춤한 단어들이 툭툭 튀어나와 주는 건 그 시절에 국어사전과 뒹군 덕분일 것이다. 


우연찮게 알게 된 영어 단어가 있다. four-letter word. 겉으로 드러나는 뜻은 ‘4글자 말’이지만 속으로는 욕 또는 육두문자라는 의미다. 어에서 천하고 상스러운 단어들이 대부분 4글자로 이루어져서 그런 뜻을 가졌다고 한다. 


좀 고약한 말들의 꾸러미를 그렇게 글자 수라는 공통점으로 묶어 표현한 숙어를 보니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우리말의 어휘에 대한 이런저런 궁금한 생각이 일어났다. 국립국어연구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을 분석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3권으로 된 이 방대한 사전의 주표제어는 44만594개이다. 웬만한 우리말은 다 들어있는 셈이다. 이 중 명사는 33만5057개(65%), 동사는 6만8394개(13%)이다. 그리고 2음절의 단어는 14만1675개, 3음절은 12만1368개, 4음절은 10만2895개로 이들이 전체 단어의 83%나 되었다. 


최근 거리를 걷다보면 기존의 간판을 제외하고도 갑자기 읽을거리가 많이 생겨났다. 그것은 담벼락에도 붙어 있고 현수막으로도 나부끼고 있다. 큰일을 하겠다고 나선 이들의 주장이 담겨 있는 글들이다. 아마도 그 83%는 틀림없이 2개, 3개, 4개의 음절로 된 단어들 중에서 골라 조립한 문장일 것이다.



서희환(1934~1995), '훈민정음서', 1988년, 개인 소장. (경향신문DB)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중요한 특징은 언어능력이다. 물론 언어는 고도로 발달한 뇌의 구조와 기능이 있기에 가능하다. 하지만 그와 함께 구강과 후두(, 설골이 진화해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구강과 관련된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이 인체 부위에 닿아있는 단어는 거의 한 글자로 된 어휘들이다. 보라. 직접적인 것은 입, 이, 혀. 그곳을 들락날락거리는 것은 침, 밥, 물, 술, 숨 그리고 말.


앞에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말에서 한 음절로 이루어진 단어는 6421개이다. 당장 몇 개를 읊어본다. 해, 달, 별, 산, 강, 일, 총, 균, 쇠, 불, 돈, 길, 글, 책, 너, 나.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처럼 한 음절의 글자들은 모두 강한 힘을 비축하고 있는 것 같다. 비록 어휘 수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이들을 죄 동원해 한 문장씩만 만들어도 오늘치 경향신문의 지면을 도배하고도 남을 것이다. 


재미있는 농담이 있다. 살아가는 동안 살까말까의 경우, 말다가 정답이란다. 갈까말까의 경우엔 간다가 정답이란다. 이는 경험칙으로도 맞는 말인 것 같다. 전자가 명사를 구한다면 후자는 동사를 부린다. 명사가 많은 곳은 고여 있는 사회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명사가 동사보다 5배나 많다. 동사를 많이 사용해야 살아 있는 사회일 것이다.


한 글자의 단어를 5개 더 사용하면서 이 칼럼을 마무리하자. 우리는 누구나 꿈을 가지고 산다. 혼자 꾸는 꿈도 있지만 함께 꾸는 꿈도 있다. 살맛나는 세상은 우리가 움직이면 그만큼 더 빨리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혹 투표장에 갈까말까 망설임의 순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땐 동사를 선택하자. 가자. 그리고 손으로 꾸욱 ‘한 표!’를 찍으면서 우리 각자는 힘이 대단히 세다는 것을 증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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