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진보신당 정책위원장을 하는 이재영과 나는 아주 오래된 꿈이 있다. 언젠가 한국에 공산당을 만드는 게 그 꿈이다. 일본이나 유럽에는 공산당이 있는 게 상식이지만, 그 상식이 현실이 되는 것을 우리가 살아서 볼지는 아직 모르겠다. 사민주의 정당이 생기고, 그 정당이 집권하고, 그게 부패해서 녹색당이 생기면, 그때쯤 한국에도 공산당이 생길지 모르겠다. 어쨌든 현실에서 공산당이 극좌에 있다면, 그것보다 오른쪽에 사회당 혹은 노동당의 이름으로 불리는 사민주의 정당이 있고, 이렇게 해서 좌파 블록이 형성된다.

쉽게 설명하면, 자본가들이 만든 정당, 그야말로 한나라당 같은 정당이 있고, 노동자들이 만든 정당이 있는 셈이다. 20세기의 현대 정치는 결국은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싸움을 어떻게 자본주의 내부에서 체제화시킬 것인가, 그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고전적인 도식에 80년대를 거치면서 새로 생긴 정당이 두 가지가 더 있다. 프랑스의 국민전선, 스위스의 중앙민주연합. 이런 극우파 정당은 자본과 민족주의가 결합되어 생긴 정당이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극우파 지도자 르팡이 대통령 결선 투표에 올라간 적도 있었다.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고, 동시에 요상한(!)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한나라당은 유럽 기준으로는 극우파 정당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민족주의가 요상한 것은, 프랑스의 ‘콜라보’ 즉 독일 부역분자들이 한 번은 정리된 것과는 달리, 우리는 친일파들이 그냥 집권해서 그 자식들을 친미파로 만든 나라라서, 정부가 직접 쓰는 문건에도 영어 약자 찍찍 쓰는 지경까지 온 것이다.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만들었던 ‘하이서울 페스티벌’, 오세훈 시장의 ‘휴먼 타운’, 전형적인 친미형 민족주의자들이다. 워낙 한나라당이 극우파 성격이 강하니, 유럽식 극우파로 치고 나온 이회창이 설 공간이 없다.

또 다른 최신 정당이 바로 녹색당이다. 사민당 혹은 사회당이 부패하면서 새로 생긴 의제, 즉 생태, 여성, 풀뿌리, 이런 가치들을 가지고 시민사회가 별도로 정당을 꾸리게 되었는데, 이게 최근 독일 등에서 1당의 자리로 진입하는 것을 앞두고 있는 녹색당이다.
순서대로 하면 자본가들의 정당, 노동자들의 정당 그리고 시민들의 정당과 극우파당, 요렇게 4개 정도가 생겨나는 게 일반적이다. 미국이야 워낙 정치 후진국이니까 4개씩 계급이나 계층이 분화하지 못했지만, 가까운 일본만 해도 이런 구도이다.

민주 정당, 개혁 정당 이런 요상한 말은 한국에만 있는 말이다. 선진국에는 20세기에 군사정권이 이런 식으로 존재하지는 않았고, 사실상 식민지의 총독부 역할을 맡은 정당은 더더군다나 존재한 적이 없다. 왜 우리는 이런 정상적인 정당의 분화를 못했고, 노동자 정당도 이렇게 변변치 못할까?
박정희·전두환 때는 군바리 때문이었고, 김대중 때는 김대중 때문이었고, 노무현 때는 노무현 때문이라고 말해왔다. 지금은? 역시 대통령 때문인가?

한국에는 노동자 세력도, 시민 세력도 정상적으로 자리를 잡아본 역사가 없다. 자, 노무현 정부는 민주정부이고, 그들은 개혁을 했는가? 생각을 해보자. 노무현 인수위원회에 삼성 자료를 가져다주고, ‘샌드위치론’ ‘2만달러 경제’ 등 이건희 회장의 평소 소신을 대통령에게 전달한 사람은 이광재다. 한나라당은 자본가 정당이고, 미국에 대한 총독부 정치를 했다.
한·미 FTA는, 열린우리당이 “우리도 자본가 정당할 수 있고, 총독부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한 사건 아닌가? 그렇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 대신 삼성과 손잡고 미국 총독부 노릇을 하고 싶었던 정당이다. 그러다 망한 거 아닌가?

노동자도, 시민도 대변하지 않는 현재의 민주당. 보궐선거 이기자마자 한나라당과 한·EU FTA 통과를 합의해주었다. 당연하다. 국회 열어주면 날치기 할 것 몰랐겠는가? 두 정당 모두 유럽식 시각으로는 자본가를 대변해주는 정당인데, 한나라당은 중앙의 대기업과 영남 자본, 민주당은 호남 자본을 대변하는 자본가들의 정당이라는 게 기본이다.
이걸 제어하는 게 시민단체가 해야 할 일인데, 있지도 않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기보다는 청와대가 마련해주는 자리를 탐하면서 민주당 비밀당원 노릇하면서 나라가 망한 거 아닌가?

일부에서는 민주당 중심으로 합당하라고 한다. 원칙만을 따지면, 지금이라도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합당하는 게 한국의 생존과 정치의 발전을 위해서 맞는 거 아닌가? 박지원 원내대표와 함께, 우리는 두 당이 합당하고, 정상적인 노동자의 정당과 시민의 정당이 생겨나는 게 옳은 것 같다.
어차피 미국 정부의 총독부 노릇하겠다고 서로 경쟁하는 두 개의 자본가들의 정당, 그게 한국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후보로 나선 강봉균, 김진표. 도대체 한나라당과 뭐가 다른 점이 한 개라도 있는가? 그냥 합당하라. 어차피 모피아들, FTA 신봉자들, 그리고 원전 예찬론자들. 이렇게 해서는 누가 해도 다음 대선은 총독부 선거가 된다.

※ 우석훈의 ‘시민운동 몇 어찌’는 신라 향가 해석으로 유명한 양주동 박사의 ‘몇 어찌(幾何)’라는 수필에서 인용한 단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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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바로 단체 내의 비밀당원이라는 문제이다. 시민운동 내에 존재하는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크게 보면 운동을 부드럽게 만든다는 장점과 부문운동의 대상을 넓힌다는 장점이 있다. 세상 일이라는 게 자기 편의 힘만 모은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고, 자신과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에게도 공감을 이끌어내는 일이 중요할 수 있다.

자기 편들만 모여 있으면 편할 것 같지만, 세상이 그렇게 좋아지는 것은 아닐 성싶다. 정치적 견해의 차이, 생활로 돌아오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곰곰 생각해보자. 부모는 보수, 자식은 진보 혹은 좌파 자식의 우파 부모들, 이게 아주 전형적인 우리 시대의 공식 아닌가? 나 역시 평생 조선일보만 보신 부모와 장인·장모, 그 속에서 살아간다. 밥상머리에서 티격태격하는 삶, 마흔 너머서도 그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생협운동에서 학교급식 운동이 등장하던 그즈음의 일이다. 친부모 혹은 주변 사람에게도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하지 못하면서 과연 내가 어떻게 세상 사람들에게 “이 일이 맞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민중단체 일을 하던 시절, 나는 부모와의 갈등으로 집을 나왔고, 부모와는 어떠한 정치적 견해나 사회적 주제도 나누려 하지 않았다. 2006년부터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연재했으니, 벌써 6년째이다. 어지간한 부모 같으면 큰 아들이 연재하는 신문 정도는 보실 듯하지만, 그러지 않으신다. 시사인에 주간 연재를 할 때도, 그리고 이번의 경향신문 연재도 마찬가지다. 그 대신 조선일보 몇 달치를 모아다 집에다 가져다 주시고는, 제발 사회와 불화하지 말라고 하신다. 내게 한나라당과의 동거는 그런 의미이다.
시민단체 내에서 한나라당 성향의 회원들과 일을 같이 하면서, 오히려 나는 조선일보만 평생 보신 부모와 화해하는 법을 배운 것 같다. 정치적 신념이 같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얘기는 있고, 서로 다른 정당을 지지하더라도 같이 캠페인을 벌일 수 있는 영역들이 있다.




나는 진보정당이 한나라당 의원들과는 얘기하지 않더라도 한나라당 지지자들에게서도 지지를 얻을 정도로 보편적 상식 위에 서 있기를 바란다.
물론 현실에서는 한나라당 의원들과는 종종 밥을 먹어도 한나라당 지지자들과는 얼굴 붉히지 않고 대화하는 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시민단체는, 그 안에 조선일보파도 많고, 한나라당 지지자들도 많아서, 어쨌든 이런 동거에는 문화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좀 익숙해졌다. 지방단체로 내려가면, 역시 지역 유지가 지도부를 맡게 되니까, 서울에서 그런 것처럼 지지정당도 잘 갈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어느 고등학교를 나왔는지가 더 중요하다. 제주도에서는 입도 몇 대인가, 즉 조상이 섬에 들어온 게 언제인가, 그런 게 시민운동에서 지지 정당이나 정치적 성향보다도 더 중요한 걸 본 적이 있다. ‘뭍의 것’이 어찌 섬의 일을 말하리요!

90년대 중후반, 환경운동을 비롯해서 수많은 전문 운동들이 이렇게 보수 쪽 흐름과도 공존하면서 새로운 운동을 열었다. 전향한 진보 쪽 인사들을 대거 받아들이면서 판세를 불린 것은 뉴라이트도 마찬가지였다. 노회찬이 인민노련 조직부장하던 시절 같이 일하던 신지호 의원이 대표적이다. 차이점이라면, 뉴라이트와 달리 진보계열 시민단체들은 전향을 강요하지는 않았다는 점 정도?

그러나 이런 동거가 문제를 일으킨 것은, 주로 단체 내부정관 등으로 ‘정치적 중립’을 명문화하고, 이걸 기정사실화했던 순간부터 벌어진다. 시민단체의 정치적 중립? 공무원을 제외한 우리나라의 어떤 사람도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할 의무는 없다. 선진국의 경우는 언론도 차라리 명목적으로 자신들이 지지할 정치적 후보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시민단체의 정치적 중립은 우스운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회원을 받으면서, 회원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였다.
DJ 시절의 시민단체 혹은 노무현 시절의 시민단체가 정치적 중립이었다고? 낮에는 중립이었을지 모르지만, 밤에 술자리에서는 진짜 다 같은 편이었다. 오죽했으면 시민단체에서 대통령 비판하면 청와대에서 “동지의 등에 칼을 꽂느냐”는 말이 튀어나왔겠는가? 지금 관변단체로 변해가는-혹은 그러기를 원하는-뉴라이트에게 정치적 결탁이라고 말 할 처지가 아니다. ‘가재는 게편’이라고, 공기업 감사 자리에 시민단체 출신들이 청와대 티오로 꿰차고 들어앉은 것은 문제다. 있지도 않은 중립!

그런 외형적 중립 규정 속에서, 정작 시민사회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테이블 위에 올라와보지도 못했다. 겉과 속이 다르면 결탁이 생기고 부패가 생긴다. 공무원 중에 ‘한나라당 비밀당원’이 암약한다면, 시민단체 속에는 ‘민주당 비밀당원’이 암약했다. 참여정부의 실패는, 형식적으로는 정치적 중립, 현실적으로는 비밀당원, 그 구조도 한 가지 이유이다. 지체된 정치세력화, 그 얘기를 다음 주에 본격 풀어보자.

 

 ※ 우석훈의 ‘시민운동 몇 어찌’는 신라 향가 해석으로 유명한 양주동 박사의 ‘몇 어찌(幾何)’라는 수필에서 인용한 단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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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 시민이 등장한 계기를 보았다. 촛불집회에 민주시민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 속에는 한나라당 시민도 있다. 이번 주에는 그걸 살펴보자.

동네에서 만나는 한나라당은 진짜 할아버지당이나, 부자정당 혹은 토호세력 연합에 가깝다. 북한 콤플렉스가 없었다면 정당 축에도 못낄 희한한 정당이 김일성 부자 덕분에 여당 노릇한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보수정당 지지자들을 드골주의자라고 하는데, 아마 한나라당 사람들 사이에 드골파가 있었다면 ‘빨갱이’ 혹은 ‘골수좌익’, 그렇게 몰렸을 것 같다. 어쩌다 그런 극우파 할아버지들의 복덕방파에게 나라를 빼앗긴 것인지! 국민 개그맨 안상수, 가끔 보온병 동영상을 보는데, 이게 은근 중독성이 있다. 복덕방 주인들을 모아서 대통령 뽑으라고 하면, 딱 안상수 같은 재미나는 분을 뽑을 것 같다.

시민단체에는 한나라당 당원이나 지지자들이 있다. 그야말로 ‘우리 안의 한나라당’인 셈이다. 불의의 사고로 작고하신 임길진 환경운동연합 대표를 회상하면 정말 만감이 교차한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환경단체가 한겨울에 펼쳐놓은 농성장에서 당신을 뵈었다.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소주나 한잔 하시자고 하셨는데 “저 바빠요”하고 냉랭하게 돌아선 기억이,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평소에 아주 존경하는 분이었는데 그날 따라 왜 그리 쌀쌀하게 대했는지! 에코페미니즘의 길을 열었고, 가장 강력한 녹색당 창당파였던 문순홍 박사, 임길진 교수, 거기에 정운영 선생까지 며칠 사이로 중요하신 분들이 줄줄이 돌아가셨던 적이 있었다. 임길진 교수가 대표적으로 한나라당 성향의 시민운동 지도자였다.

민중단체에는 한나라당 당원이 없고, 민주당에도 없고, 진보정당에도 한나라당 당원은 없다. 그러나 시민단체에는 있다. 회원으로도 있고 지도부에도 있다. 환경운동하는데 여야가 어디 있느냐, 그런 취지인데 이게 두고두고 발목을 잡는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환경운동연합의 상당히 높은 간부였고, 그런 연유로 초선시절 서울시 인수위원장을 최열 대표가 맡았다. 좋아진 거? 없다.

한나라당 성향으로만 보면 경실련이 가장 높다는 게 중평이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캠프에 경실련 출신들이 좀 있었다. 일부는 전향한 거고, 일부는 “그래도 나같이 얘기하는 사람이 좀 있어야 할 것 같아서”라고 MB 캠프로 가기도 했다. 환경운동연합은 중간 정도 되고, 참여연대에는 한나라당 성향의 회원들은 거의 없지만 자문역할을 하는 전문가와 교수들 중에는 좀 있는 걸로 한다. 시민단체이면서 민중 성향이 가장 높은 곳은 문화연대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시민단체에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들어오는 것은 세 가지 경로가 된다. 진짜 일반 시민, 그러나 환경운동·여성운동 등 분야운동의 뜻에 동감해서 참여한 정말 순수한 동기.
두 번째는 역전향파들, 직장인들이나 전문가들 중에서 뒤늦게 생태운동이나 문화운동의 중요성을 생각해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는 다르지만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새만금 때 가장 많이 도움을 주었던 정치인은 내 기억으로는 민주당 의원들이 아니라 전재희 장관이었다. 어떻게 한나라당 사람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느냐고 하지만, 하다 보면 그런 일이 생기기도 한다.
세 번째 부류는 보험파라고 부를 수 있다. 민주당 10년 정권이 들어오면서 한나라당 계열의 전문가들이 보험용으로 시민단체에 자문역할 등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나쁘게 보면 박쥐 같은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출발하던 당시의 시민운동 역시 전문가들의 지원이 절실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들의 지원이 필요했던 측면도 있다.

뉴라이트 단체에 민주당 지지자나 진보정당 당원이 있을까? 그런 곳은 전향하고 가는 데고, 반대로 한나라당 지지자가 진보정당 근처에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시민운동에는 단체마다 비율은 좀 다르겠지만 극좌부터 극우까지, 예를 들면 녹색교통 운동 시절의 택시 운전수처럼 다양한 성향의 시민들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우리 안의 한나라당’, 이것이 시민운동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회원가입란에 지지정당을 밝히게 하고 심사해서 회원을 받는다? 이것도 현실적이지는 않고, 그게 꼭 옳다고 보기도 어렵다. 소신파·보험파·순수파, 이런 시민들이 모여서 얼키설키 부문 운동이라는 게 시작되었다. 촛불 시민의 구성이 이런 시민단체의 구성과 유사하다. 민주당이나 극좌들만 그 자리에 있었을 것 같지만, 이명박을 지지했지만 이건 아니다는 한나라당 당원, 이회창 쪽 지지자, 그런 사람들도 촛불을 들고 현장에 있었다.
내가 직접 확인한 사람만 해도 수 십명이고, 나와 같이 깃발을 들었던 사람 중에 정말 한나라당 사람도 있었다. 한나라당 당원은 시민 아닌가? 물론 그렇다. 그러나 이런 복잡한 ‘우리 안의 한나라당’이 시민단체 내부에서 결정적으로 일으킨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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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이라는 이름이 몇 년째 뜨거운 감자다.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아주 독특한 성격의 정치인인데, 가끔 그가 너무 외로워 보이고 또한 측은해 보이기도 한다. 욕망보다는 이성이라는 이름에 더 어울릴 듯한 성공한 저자로서 그리고 대중적인 경제학자로서 그가 이름을 남길 수 있기를 바랐지만, 그는 정치인으로 더 남고 싶어하는 것 같다.
어쨌든 그의 부모가 이름 하나는 기막히게 지어주셨는데, 발음 그대로만 들으면 ‘시민이 있다.’ 진짜 21세기에 어울릴 법한 이름이다. 그가 이번 김해 보궐선거 중간에 “능력 없는 시민단체는 그만 빠져라”는 말을 했다. 자칫했으면 ‘무시민’이 될 뻔했는데, 어쨌든 당분간은 유시민으로 남게 되었다. 그를 위해서는 다행이다.

‘무시민’은 시민단체 내부에서도, 시민단체 외부에서도 가장 자주 지적되는 한국 시민단체의 문제점 중 하나이다. 시민단체가 작동되는 경제적 기본 원리는 시민들이 월 1만원 정도의 회비를 내는 회원으로 가입하고, 그렇게 해서 활동비와 사업비를 마련해서 움직이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100명 정도의 시민이 활동가 한 명을 책임지는 셈이다.
환경운동연합이 한창 많을 때 5만명 정도, 참여연대가 1만명 정도의 회원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이래저래 합치면 20만명 정도의 시민회원이 한국에 존재한다. 회원과는 조금 다른 ‘조합원’으로 불리는 생활협동조합이 30만명 조금 넘어간다. 중복 계산이 있을 수 있지만, 이래저래 50만명 정도가 회원 혹은 조합원으로 시민사회단체를 경제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시민들의 후원으로 움직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점점 일의 규모가 커지면서 연구 프로젝트나 정부 위탁사업 등 정부 지원금도 받게 되고 기업 후원도 받는다. 외부에서 보면 참여연대가 상당히 강성으로 보일 것인데, 다른 단체와 달리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다. 사실 세상에 공짜라는 것은 없으니, 어떻게든 돈을 받다 보면 눈치를 보게 된다. 돈은 받아도 통제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들 했는데, 세상이 어디 그렇게만 돌아갈 수 있겠는가?



원칙대로 하면 시민들의 후원과 사회적 기금 같은 돈으로 시민단체가 운영되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회비만큼의 규모로 활동할 것인가 아니면 회비 이상의 규모로 키울 것인가? 참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회적 활동이 사실 정상적으로 자신의 지지자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었던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경제만큼이나 압축성장을 하다보니 실제 지지기반이 약하다.
정당도 정상적인 당원 구조와 적절한 규모를 가지고 있지 못해서 만날 ‘진성당원’ 같은 문제가 나오게 된다. 노동자들 역시 노조 조직률이 워낙 낮고 계속해서 떨어지다 보니, 기본적으로는 불균형 문제를 가지게 된다. 한국에서 사람을 동원하는 데 성공한 곳은, 따져보면 강남 대형교회를 비롯한 보수주의 교회 외에 또 있는가?

사실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너무 바빴고, 사회적 문제에 눈을 돌리기에는 마음의 여유가 너무 없었다. 지금 집권당인 한나라당 역시 제대로 된 당원 모임 한 번 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닌 듯하다. 최대 야당인 민주당, 여기서 당원 모임이 뭐가 제대로 된 게 있는가? 그렇다면 민중들의 정당을 표방하는 진보정당들에는 민중들이 구름처럼 모여드는가? 활동가들만 잔뜩 있고, 사실상 강남좌파와 도시빈민, 요렇게 두 집단이 본진을 형성하는 것 아닌가?

실제 시민단체 내에는 회원은 있어도 시민은 없다. 그런데 정확히 얘기하면, 원래 우리나라에는 시민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회적으로 없었다. 시민단체가 시민을 만들면서 스스로를 형성시킨, 그야말로 공진화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정당 역사는 시민단체의 역사보다 길지만, 당원은 못 만들고 향우회만 잔뜩 만든 것과 비교하면, 짧은 기간 동안 시민단체들이 역사의 주체로서 시민이라는 개념의 골격이라도 만든 것은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 뉴 라이트와는 그래서 좀 다르다. 우파와 극우파, 이런 사람은 한국에는 많다. 그들이 실체이고, 그 실체가 있으므로 뉴 라이트는 짧은 기간에 단체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실체가 없는 곳에서 출발했으나, 지금은 어느 정도의 실체 비슷한 거라도 형성한 상태이다. 한국 사회 전체로 본다면, 시민단체는 자신의 실체를 만드는 데 짧은 기간 동안에 성공한 편이다.
지금 뉴 라이트와 비교해보자. 정부의 든든한 후원과 부자들의 재정적 지원을 받으면서 몇 배로 성공했어야 할 텐데, 짧은 기간 조직의 기반 자체가 와해되는 중 아닌가? 시민단체는 민주당 집권기에도 버텼고, 한나라당 집권기에도 어렵지만 버티는 중이다. 시민 ‘없던’ 시민운동으로 시작했지만, 지금도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정말 그랬다면, 벌써 망했을 것이다. 이건 뉴 라이트가 좀 배워야 한다. 

 

※우석훈의 ‘시민운동 몇 어찌’는 신라 향가 해석으로 유명한 양주동 박사의 ‘몇 어찌(幾何)’라는 수필에서 인용한 단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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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법 스님이 세간에 알려진 것은 1998년도 조계종 법난 때 사태 수습을 총지휘하면서부터이다.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니까 ‘생명파’라는 야유를 듣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불교계 내의 운동권을 민중파와 생명파로 크게 나누는데, 민중파는 다들 알다시피 불교를 통한 빈민 운동에 앞장선 그룹이고, 생명파 혹은 생명평화파는 삼보일배와 4대강 반대운동 등 환경운동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그룹이다. 도법, 수경 이런 분들이 생명파를 이끌어왔다. 깡패들, 이판승, 정치승, 이런 손가락질 받는 ‘땡중’들만 있는 게 아니라 시민운동과 사회운동을 폭넓게 이끄는 스님들도 계시다.

이런 도법 스님에게 어느 날 세무서에서 전화가 왔다. 별 소득은 없지만, 어쨌든 대표를 맡고 있는 회사가 아주 많으니까 세무서 입장으로 보면 재벌쯤 되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당시에는 고만고만했던 단체들이지만 지리산의 실상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작은 조직들이 인드라망, 불교생협, 지리산 생명평화연대 등 도법 스님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다. 규모는 작아도 총수 중심의 재벌식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세무서에서 보기에 도대체 이게 뭐하는 곳들인지, 어지간히 궁금했던 모양이다. 일종의 진법인데, 작은 단체들이 혼자 있으면 아무 힘도 없기 때문에 연대를 하게 되기도 하지만, 20대 때 도법 스님과 같이 활동하던 실무 활동가들이 30~40대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조직이 분화된 것이기도 하다. 규모는 작아도 재벌처럼 움직인다는 얘기를 했더니 도법 스님이 크게 웃으셨다. 돈 좀 있었으면 좋겠고, 활동가들 나이 먹어서 너무 쪼들리고 사는 게 마음이 아프시다는….



시민운동의 분화는 한편으로는 전문 영역이 늘어나는 것도 한 이유이지만,
90년대 20대였던 활동가들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언제까지나 실무 활동가만 할 수는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독립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과정이 인드라망 그룹처럼 부드럽고 마찰 없이 진행된 것만은 아니다.

창립그룹에 해당하는 왕당파들이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되었고, 노무현 정권 초기 이 왕당파들과 평간사 혹은 주부 활동가 사이의 마찰이 극도로 팽팽해지게 된다.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이렇게 눈에 띄는 곳에서도 조직 내부의 문제가 심각해지게 되었지만, 한살림같이 그런 내부 문제가 없을 것 같은 곳에서도 조직 문제는 심각했다. “생협에서도 조직 문제가 있어” 이럴 듯 싶지만, 생협이야말로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왕당파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50대 남성 엘리트들이 한국에서 생활협동조합이라는 운동을 처음 띄운 주력 그룹이다. 실무 활동가들인 상근자들은 아마 한국 사회운동조직에서 가장 높은 임금을 받는 사람들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비유를 들자면 경향신문, 한겨레 기자보다 두 배 정도 많이 받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그들의 연봉을 알면 한살림 같은 곳에서 상근하고 싶다는 대학생들이 줄을 설 것이다. 삼성이나 현대 정도 가지 않을 거라면 한살림은 아주 좋은 선택이다. 환경운동연합보다는 세 배 정도 받는다. 중견 활동가들이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키우면서 현실적으로 생협 같은 곳으로 옮겨가는 경우가 이렇게 설명이 된다.
그러나 생협에서 일하는 사람이 이런 상근 활동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이 생명운동하는 사람들 특히 주부들이 자원봉사 형식으로 아주 박봉을 받으면서 같이 일을 한다. 같이 가난할 때에는 문제가 없는데, 이제 좀 넉넉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면 이건 언제든 조직 내의 시한폭탄처럼 된다.
같은 생협이지만 도법 스님이 이끄는 인드라망에서는 그런 문제가 잘 안 생기는 게, 여긴 워낙 공평하게 가난해서 그런 것 같다. 그 대신에 누가 주도권을 쥘 것인가, 그런 문제가 생겨난다.

환경운동연합의 위기는 왕당파의 문제는 아니고, 왕당파 그 이후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최열 사무총장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난 다음, 진짜 위기는 그 다음에 왔다. 왕이 빠진 자리에서 누가 왕을 할 것인가, 그 왕당파 내부의 갈등, 그게 2000년대 중반에 한국의 시민단체가 위기를 겪게 된 근본 이유로 볼 수 있다. 큰 단체든, 작은 단체든 그렇게 내부 문제로 끙끙 앓고 있는 동안에 열린우리당은 급격하게 쇠약해져 갔고, 시민운동을 모방한 뉴라이트의 등장으로 다음 정권이 밑바닥에서 준비되고 있었다.
시민운동의 힘을 한 축으로 집권한 노무현 계열은 자신들의 최대의 우군인 시민단체들이 어떤 문제로 위기를 겪고 있는지 낌새도 못 챘다. 왕당파의 위기, 그게 정권이 넘어간 진짜 이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 위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 우석훈의 ‘시민운동 몇 어찌’는 신라 향가 해석으로 유명한 양주동 박사의 ‘몇 어찌(幾何)’라는 수필에서 인용한 단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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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은 제정 러시아 말기에 차르를 지지하는 왕당파들이 상징으로 사용하였던 색깔이다. 왕이 과연 자본주의에 존재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을 해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많은 국가는 입헌군주제 형태로 왕조 자체를 유지하는 공화국 형태를 가지고 있다. 시민운동이 만난 가장 큰 조직의 위기는 왕당파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조직은 공무원을 빼면 대부분 왕과 왕당파가 존재한다. 아무리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한국의 대기업은 왕과 왕당파의 조직, 그게 조직론의 거의 전부다. 오너가 존재하고, 2세 심지어는 3세 승계까지 이루어지는 이 상황에서 왕당파가 되는 길만이 40대 조기 퇴직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아니겠는가?

한국의 민중단체에는 왕이 없다. 진보신당의 얼굴로 간주되는 노·심, 즉 노회찬과 심상정도 왕은 아니다. 왕 대신에 파벌이 있고, 계열이 있다. 민주노총에 한창 계열이 많을 때에는 30개도 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념과 사상이 그런 계열을 만들지만, 좀 지나다보면 친분과 작전 관계 같은 것으로 인하여 수도 없이 분화한다. 중앙파, 국민파, 여기에 한때 민주노동당에 있었던 일명 런던파까지. 꽤 긴 시간을 현장 운동하던 나도 알아듣지도 못할 만큼 많은 계열이 있었다. NL·PD, 요런 건 애교 수준이다.
왕은 없지만, 그 안에서 섭정관이 생겨난다. 왕도 없고 계열도 없는 진보신당과 달리, 민주노동당의 내부 조직은 섭정관 모델에 가깝다. 계열을 이끌어나가는 김창현 같은, 지금의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섭정관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권력은 강하지만 섭정관의 권력이 승계되지는 않는다. 이런 데에서는 경쟁이라기보다는 ‘옹립’이라고 하는 방식으로 리더를 선출한다. 지방선거 등 출마 후보도 옹립된다. 대중 검증은 내부 검증으로 생략된다. 80년대 대학교의 총학생회장이 이런 방식으로 선출되었고, 취임식을 실제로 ‘옹립식’이라고 불렀다.
옹립과 민주주의, 참으로 연결되지 않는 조합이지만 우리는 군사독재와 그런 식으로 싸웠다. 사실상 비밀조직인데, 리더를 그렇게 선출하지 않기도 쉽지 않았다.



시민단체가 생겨날 때, ‘명망가 방식’이라는 재야운동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이런이런 사람들이 하니까, 믿고 같이 하십시다, 그런 게 시작이다. 그리고 현장에서 그런 과정을 총지휘한 사람들이 최열, 박원순으로 대표되는 바로 그 1세대들이다. 농구로 비교하면 일종의 플레잉 코치였던 셈인데, 실무도 하고 또 현장에서 직접 활동도 하였다.

당시의 20대 활동가 즉 김기식으로 대표되는 2세대와 1세대 사이에 사실상 권력의 위계 관계는 없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누가 누구를 시키는가, 그런 문제는 아니고, 의사결정 과정에는 사무총장급과 실무간사들이 같이 참여하였다. 기업식으로 말하자면, 회장님과 사원·대리가 같은 테이블에서 서로 농담 따먹기 하고, ‘쫑코’도 주면서 같이 토론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한국의 시민단체가 짧은 시간에 사회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조직적 특성이 있었던 것이다.
지도부가 있어서 여기서 뭔가 많은 것을 결정할 것 같지만, 운영위원회 같은 상위 조직에서는 전체의 방향만 정했다. 시민단체에서 평간사들은 한국의 어느 실무자들도 갖지 못한 절대적인 권한을 가졌다. 정부의 사무관들과 형식적으로는 유사하지만, 과장이나 국장은 사무관 평가와 함께 지휘권을 갖는다.
국장 눈치 안 보고 정책을 기안할 수 있는 사무관이 우리나라에 있는가? 그러나 시민단체에는 있었다. 민중단체에서도 그 정도의 권한을 실무자들이 가지지는 못했었다.

내용만으로만 보자면, 한국에서 평직원에게 절대권한을 준 것은 시민단체가 처음이다. 그게 2000년 초반까지의 시민단체 모습이었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는 법. 같은 사람이 사무총장을 오래하다 보니, 왕당파라는 게 생겨나게 되었다.
게다가 2003년 노무현 정부의 출범과 함께, 시민단체의 리더들에게는 정부와 교섭하거나 협의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 생겨났다.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는 왕당파라는 게 고난만 있고 실익은 없는 것이었는데, 노무현과 함께 이제는 밀려 들어오는 평간사들에게 실무는 넘기고 편의와 혜택만 따먹을 수 있는 왕당파가 생겨나기 딱 좋은 조건이 되었다.
그나마 사무총장 등 명목적 지도부는 책임을 지지만, 어느덧 원로급으로, 아무도 선출되지 않은 이상한 옹립을 거친 ‘선배’, 이런 왕당파들과 함께 시민단체는 급격히 위기 국면으로 들어간다. 공기업 간사로 간 왕당파들, 잠시 운동을 했었다는 이유로 장관급 자리를 꿰찬 사람들, 아니면 고만고만한 자리 하나씩. 이들과 함께 왕당파는 더더욱 공고해졌다. 그러나 운동은? 일단 망했다.

시민운동의 내부에 성공 요소가 있었던 것처럼 위기의 요소 역시 내부에 있었다는 게 내 진단이다. 시민들의 민주 의식이 없거나 시민 의식이 결여되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다. (다음 주에 왕당파 얘기를 좀 더 해볼까 한다)

※ 우석훈의 ‘시민운동 몇 어찌’는 신라 향가 해석으로 유명한 양주동 박사의 ‘몇 어찌(幾何)’라는 수필에서 인용한 단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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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노련과 관련된 책을 2년 전부터 준비하는 중이다. 처음 작업은 학부학생들과 같이 시작했는데, 그들은 ‘인민’이 민중보다 센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아, 인민? 그들은 북한과 관련된 단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인민노련은 ‘반북 좌파’에 가깝다.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을 줄인 말인데, 2010년대의 대학생들에게 이 단어는 인민, 민중, 그렇게 보이는 것 같다.
80년대에 많은 대학생들이 학교를 중퇴하거나 휴학하고 노조를 만들겠다고 당시에 공장이 많던 인천으로 떠났고, 그들이 모여서 만든 단체가 바로 인민노련이다. 지금 진보신당의 정책위원장인 이재영이 그 때 대학을 중퇴하고 인민노련 조직원이 되었고, 그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인민노련을 조직론적으로 분석하면서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은, 한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이 조직이 자기네 조직원이 무슨 학교를 나왔는지, 몇 학번인지, 그런 걸 전혀 따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에 지하조직이나 공개조직 중에서 이런 특수한 문화를 가진 건 인민노련이 거의 유일한 것 같다. 선후배, 출신, 진짜 지겨운데, 운동권 내에서도 이런 데서 자유로운 건 인민노련이 처음일 것 같다. 대학 따지고, 학번 따지고, 출신 따지고….  
내가 생태운동에서 한 발 뺀 이유는, 거기서도 대학 시절 동아리 얘기 엄청 하는 걸 보고, 확 질려버려서 그렇다. 아니, 서울대 아니면 운동도 하지 말란 얘기야? 이런 학벌·학번, 그런 게 없는 운동조직은 인민노련에서 한 번 그리고 환경운동연합에서 한 번 보았다.

 


조직론이라는 눈으로 보면 다른 얘기는 다 ‘허당’이고, 한국의 모든 조직들은 학벌 하나로 50% 이상 설명이 되는 것 같다. 40대들이 만든 전국 조직의 상층부는 서울대가 50% 이상, 연·고대 합쳐서 30~40% 그리고 기타 등등. 50대로 올라가면 고등학교가 제일 큰 설명 변수가 된다.
경기고가 늘 두목이고, 그 밑에 경복고, 서울고의 라이벌 관계. 할아버지들의 조직은 고등학교로, 아저씨들의 조직은 대학교로, 그건 좌우 혹은 진보·보수와 아무 상관없다. 정책적인 측면에서는 모르겠지만, 이런 위계 관계에서 상고출신 노무현은 정말 특별했다. 만약 한국이 정말로 발전한다면, 공고 출신 엔지니어 혹은 상고 출신 여성, 그런 사람들이 대통령 될 것이다.
지방으로 눈을 돌리면, 여기는 아직도 고등학교 얘기가 제일 큰 이야기이다. 당장 지방선거의 최문순과 엄기영을 보더라도, 고등학교를 어디 나왔느냐, 이게 제일 큰 변수 아닌가? 민중운동이나 시민운동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인민노련과 환경운동연합이 학벌 문제에서는 가장 자유로운 조직이다.

한편으로는 군부독재로부터의 해방 혹은 민주화 등 거창한 구호를 내걸었지만, 지난 20년 동안 우리는 학벌 사회에서 한 발도 더 나아가지를 못했다. 군사정권과 싸우는 동안에 서울대 지하서클에서 문건을 만들면, 이걸 연·고대가 받고, 다시 전국에 뿌리는 방식으로 우리는 운동을 했다.
문제가 있는 줄은 분명 알면서도. 그리고 그런 문건이 실제로는 서울대에서 나온 게 아니라 그들의 선배들이 만들어준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위계를 따랐다. 시민운동으로 전환되면서 학벌 위계는 좀 완화된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워낙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뭘 만들었어야 했기 때문에, 결국은 명망가들을 얼굴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 명망가라는 게 다른 운동이나 사연으로 스타가 된 사람 아니면 결국은 상징적 자본을 가진 학벌, 이 정도 아니겠는가? 이대 트로이카, 듣기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지만 그런 말이 여성 운동 내에 진짜 있다.

왜 대학생들이 민중운동이든 시민운동이든, 활동가로서의 삶을 대안으로 선택하지 않는가, 그런 고민을 할 때가 되었다. 어차피 ‘스카이’ 출신 아니고, 서울대 출신 아니면 운동권에서도 찬밥이라는 게 현실이다.
그들 입에서도 ‘스카이’, ‘인서울’, 이런 단어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이런 개떡 같은 사회가 우리들이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놓은 한국이다. 그러니, 당신들도 같이 운동합시다, 이런 얘기가 입에서 떨어지지가 않는다. 당장 시민단체에서 활동가를 뽑을 때도 학교 따지고, 학벌 따지고, 후배라고 귀여워하고,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인민노련은 왜 했고, 참여연대는 왜 못 했는가? 그리고 환경운동연합에는 왜 학벌이 두드러지게 드러나지 않았을까? 물론 인민노련이든 환경운동연합이든, 스카이 출신이 없는 게 아니다.
정책으로 보면 각 단체가 내건 대안들을 중심으로 분석하게 되지만, 조직론으로 보면 결국에는 위계관계, 학벌, 의사결정 과정, 회원들과의 관계, 그런 것만 남는다. 정말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우리부터 ‘학벌 없는 사회’를 내걸어야 한다. 중앙주의, 학벌주의, 이런 걸 해체하지 못하면, 정권 몇 번을 더 잡아도 세상은 하나도 좋아지지 않는다. 평등? 너네끼리부터 평등해라, 이런 민중들의 소리가 정말 따갑다.
 


※우석훈의 ‘시민운동 몇 어찌’는 신라 향가 해석으로 유명한 양주동 박사의 ‘몇 어찌(幾何)’라는 수필에서 인용한 단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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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택시를 타면 기사와 수다를 떠는 경우가 많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야 워낙 수다라서, 누구와도…. 나와 대화한 택시기사들은 대부분 순수한 사람들이지만 정치적으로는 극우파에 가깝다.
그거야 워낙 익숙한 일이니까, 투표하는 순간이 아니라면 일상에서 그런 사람들하고 싸울 일도 없고, 재밌게 들어주려고 하는 편이다. 실제, 재밌다. 우리나라의 민중단체나 시민단체의 지도자 중에서 택시기사들이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아마도 환경재단의 최열 대표가 아닐까 싶다.
그분들이 최열에게 붙여주는 사회적 호칭은 ‘새끼’이다. 한때 환경운동연합이 환경 모니터링 요원으로 택시기사들과 캠페인을 오래해서 그렇기도 하고, 보수 신문이 ‘대표 빨갱이’로 딱지를 턱하니 붙여주어서 그렇기도 한 것 같다. 박원순은 변호사라서 그런지 좀 두려워하는 눈치일 때가 많고, 노회찬에 대해서는 아무 느낌 없는 것 같다.

90년대라는 공간에서 한국의 민중단체는 그때 막 합법의 장으로 나오기 시작한 노조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활동을 전개했고, 같은 시기에 자신의 모습을 형성시킨 시민단체는 노조가 아닌 곳, 그곳이 주 활동 무대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말만 그렇다. 사회운동하는 사람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서 80년대에는 노동운동하던 사람들이 90년대에는 시민운동으로 옷을 갈아입은 게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90년대 혹은 2000년대에 새롭게 시민운동에 합류한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사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왕년에 자본론 한 번 안 사본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그런 게 현실이다.




이렇게 사람이 얽혀 있다 보니 민중단체는 시민단체에 적지 않은 견제를 했고, 시민단체도 초창기에는 “노조에 먹히면 안된다”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민중단체를 견제했다. ‘부르주아 운동’, ‘프티 운동’ 등 지금 들으면 유치찬란한 원색적 표현을 서로 써가면서 아픈 구석을 콕콕 찔러댔다.
‘귀족 노조’ 등 사실 한국적 맥락에서는 잘 맞지도 않는 표현을 쓰거나 “너는 노빠야”, 이렇게 긴장관계를 넘어서 진짜 서로 아프게 했었다. 그게 90년대, 시민운동 1세대들의 모습이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막 시작한 새로운 운동이 자리 잡는 과정에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 같다. 2000년대 중후반이 되면서 이런 긴장이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가게 된다.
민중운동, 그런 걸 경험해보지 않은, 그런 게 있는지도 잘 모르는 전혀 새로운 청년들이 시민운동의 실무자가 되었다. 시간이 가니까 당연한 일이다. 의식적으로 민중단체를 견제해야 할 필요도, 이유도 느끼지 못하는 신입 간사들은 도대체 자기네 지도자들이 왜 민중단체와 굳이 금을 긋는지, 어색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등장한 것 같다.

2004년 민주노동당이 최초로 원내 진출을 하면서 생겨난 어색함이 그런 긴장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다. 1세대들은 노조가 먼저 정치세력화하면서 원내에 진출하는 것에 위기감을 느꼈고, 민중단체 지도자들은 “이제 시민단체들도 우리한테 와서 줄 서라”, 그런 약간은 고압적 자세를 연출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더 시민단체는 ‘현실적 이유’라며 민주당 쪽으로 더 가려고 했고, 민중단체들은 “그러니까 너희들이 노빠인 거야”, 요렇게 ‘드립’들을 날려주셨다. 민중단체와 시민단체 사이에 긴장감은 필연적일 수 있지만, 실제 선거지평 내에서 자신들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좀 심하다 싶게 ‘갈굼질’들을 했었다.
국면만 보면, 운영위원급들은 당시의 민주노동당에 견제가 급했고, 실무진은 아주 호의적이었다. 현실적으로는 정책 대안이나 자료를 민주당에 먼저 줄 거냐 아니면 민주노동당에 먼저 줄 거냐, 그런 걸 선택했어야 했다.

‘시민 없는 시민단체’라는 불만이 막 터져나온 게 그 시점이기도 하다. 이 긴장관계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한명숙을 밀 거냐, 노회찬을 밀 거냐, 아니면 단일화를 밀 거냐로 단체 사이에서, 단체 내부에서 싸늘하게 입장이 갈렸다. 당시 나는 노회찬 쪽 후원회장을 맡게 되었는데, 아마 선거 막판과 직후에 평생 얻어먹은 욕보다 더 많은 욕을 얻어먹은 것 같다.
당시 민중단체는 노회찬을 밀었고 시민단체는 한명숙을 밀었다. 정책대안 혹은 정책능력 그런 건 페이퍼에만 있는 말이고, 90년대 중반부터 오래된 긴장관계가 선거라는 단일 국면에서 터져나온 셈이다. 2012년 대선을 놓고 두 진영이 협력할 것인가 아니면 각자의 길을 갈 것인가.
요게 지금 초미의 관심사 아니겠는가? 현실적 힘은 시간 속에서 시민단체 쪽으로 간 건 맞는데, 민중단체의 지원과 협력 없이 독자적으로 승리할 가능성은 없다. 2%, 안 필요해? 카드는 민중단체가 쥔 셈인데, 아쉽게도 요게 좀 ‘뻥카’에 가깝다.

지방선거와 달리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민중단체 쪽 활동가들도 막상 자기 쪽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판때기’는 펼쳐졌는데, 선수는 없고 감독만 잔뜩 있는 상황. 그러니 차라리 조국이 나가라,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조국 교수는 양쪽 진영에 모두 속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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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후반, 군부독재 아래에서 전국민중연합 등 민중단체를 만드는 게 유행했다. 목숨 거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감옥 가는 정도는 각오를 해야 하는, 나름 비장미 있던 시절이다.
같은 기간, 인천 지역을 출발점으로 한 인민노련, 서울을 중심으로 한 서노련 그리고 사노맹 같은 지하 조직들도 활발히 움직였었다. 지금은 이 나라의 주인임을 자처하는 듯한 이재오가 서울민중연합의 대표였고, 조국 교수는 사노맹 출신, 진보신당의 노회찬은 인민노련, 그런 곳들이 역사의 주체이던 시절이 있었다.

지난 지방선거의 TV 토론회에서 김문수와 심상정이 맞붙을 때, 마주 선 두 사람 사이에 묘한 애절함이 느껴졌던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그들은 한때 서노련에서 핵심 지도부로 같이 활동하던 동지였다.
이재오가 운영하던 서노련에서 비상근 간사로 단체 생활을 처음 시작한 나는 지금 이재오를 보면 정말로 만감이 교차한다.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이어지던 그 시절, 우리는 군부독재를 종결시키는 것이 시대의 사명 같은 것으로 느껴졌고, 그 시절에 뭔가 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사회주의 붕괴 이후 제각각 흩어지면서 90년대라는 독특한 공간이 열리게 된 것 같다.




당시 40대 기수론을 내걸었던 3명의 핵심 지도자가 김근태, 이재오, 이부영이었는데, 한국 사회운동이 젊은 리더십을 가지고 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40대 기수가 거의 없고, 할아버지들만 넘쳐난다.

이런 민중단체의 시대보다 약간 뒤늦게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경실련 같은 단체들이 역사의 주무대에 등장하고, 아마 가장 오래된 조직이라고 할 수 있을 YMCA 같은 곳도 시민단체의 한 축으로 자기 역할을 재정립하게 된다. 좀 넓게 보면 한살림 등으로 대표되는 생협운동도 그즈음 어느 정도는 자기 형태를 갖추게 된다. 생협은 생명운동 등으로 시민운동과는 좀 다른 범주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2011년의 눈으로 본다면 넓게 시민운동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정치적으로 본다면, 유럽의 경우는 민중운동이 사민당 혹은 사회당 등의 이름으로 정치 세력화를 이루고, 시민운동이 녹색당 혹은 무지개연합 같은 방식으로 정치 세력화를 이루었다. 좌파도 장기간 집권하면 부패하기 시작하는데, 독일·프랑스에서 녹색당이 별도로 생겨난 것은 그런 좌파의 부패와 아주 무관하지는 않다. 일본 역시 유사한 문제점이 생겼고, 지역당 형태로 가나가와 네트워크가 등장하게 된다.
어쨌든 한국 경제가 압축성장을 이루는 동안에, 우리의 정치도 압축적으로 전개되어서 현실적으로 민주당을 중심으로 정치참여를 할 거냐, 아니면 별도의 민중정당을 만들어 진보정당 노선을 할 거냐, 이게 87년 대선 이후 20년이 넘도록 운동 단체의 정치참여에 대한 핵심 논쟁거리다. 핵심은 민주당을 더 왼쪽으로 데리고 와서 좌파들도 지지할 거냐, 민주당은 도저히 곤란하니까 별도의 정당을 만들어야 하는 거냐, 그 문제다.

단체라는 눈으로만 생각해보자. 민중단체가 만들어지면서 군사정권은 결국 물러섰다. 시민운동이 만들어지면서 보수주의자들에게서 정권을 찾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여전히 실체를 의심하지만, 뉴라이트가 생기면서 10년 만에 다시 정권을 가져가게 되었다. 정치라는 게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고, 가장 많은 ‘혁신’이 일어나는 것은 단체가 생겨날 때 벌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자, 그렇다면 그 다음 운동은?

규모와는 상관없이 최근에 새로 생겨난 단체들을 주체의 관점으로 보면 세 개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촛불 시민. 주체 없는 주체 혹은 탈권위주의 시대의 신주체라고 할 수 있는 흐름이 분명 하나 생겨났고, 문성근의 민란 운동 역시 넓게 보면 이런 범주로 생각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청년 운동. 청년 유니온이 대표적이지만, 그렇게 드러나지 않는 작은 흐름들이 새롭게 생겨나는 중이다. 세 번째는 아줌마들이 본진을 형성하는 흐름.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같은 것이 대표적인데, 40~50대 남성 혹은 명망가 중심으로 전개되던 기존의 운동 흐름과는 분명히 다르다. 여성들이 많이 참여하지만, 페미니즘과는 약간 목표가 다른 새로운 운동, 이것은 분명 새로운 흐름이다.

이걸 민중운동, 시민운동과 대별되는 제3의 운동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기존의 시민운동의 연장선에서 보아야 할지는 아직 더 지켜보아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분명히 진보 혹은 좌파 쪽에서는 고통스럽던 이명박 정권을 버티면서 작지만 의미 있는 흐름을 만들어낸 것은 사실이다.
보수에는 없는 절박함이 분명 이 시대에 생겨났고, 제3의 힘이 향후 한국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가 생겼다. 청년, 아줌마, 이들이 새로운 역사적 주체로 등장하는 중이다. 우파에는 그런 절박함이 없지만, 우리에게는 절박함이 있다. 폭풍을 만들 뜨거운 수증기가 태평양에서 만들어지듯이, 새로운 흐름이 속속 등장하는 중이다. 그게 내가 다음 대선은 우리가 이긴다고 보는 두 번째 이유이다.


※우석훈의 ‘시민운동 몇 어찌’는 신라 향가 해석으로 유명한 양주동 박사의 ‘몇 어찌(幾何)’라는 수필에서 인용한 단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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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니 별꼴을 다 본다는 말이 있는데, 요즘 내가 딱 그렇다. 지난 수년 동안 입이 닳도록 하던 게 “땅 투기 하지 마라, 부동산 투기 하지 마라” 그런 얘기였다. 그리고 올해 특히 신경 써서 하려는 얘기가 조기 유학 문제와 우리 말로 글 쓰기, 이런 주제이다. 기관 혹은 회사마다 매년 중점추진사업이라는 게 있는데, 자식을 조기 유학 보낸 사람들은 최소한 장관이나 차관 그런 고위 공직에는 나오지 말게 하자, 그런 게 나의 중점추진 과제인 셈이다.
작년 말에 민주당의 개혁특위를 맡은 천정배 의원에게 그런 고민을 얘기했더니, 이 양반이 내가 다 민망하게 한숨만 푹푹 쉬면서 민주당 의원들에게도 입이 안 떨어진다는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부터 조기 유학 안 보내겠다는 선언 같은 거 해보라고 말했었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던 중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금 내가 좌파인가, 우파인가, 뭔가 뒤집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빡 하고 때리고 갔다. 90년대 미테랑 후반기, 우파들의 총선 승리로 대통령은 좌파, 총리는 우파인 동거정부가 펼쳐진 적이 있다.
사회당의 기세를 뚫고 승기를 잡은 프랑스 우파들이 내각을 잡고 제일 처음 한 조치들이 불어 교육을 강화하고, 라디오에서 프랑스 음악 의무 송출비율을 정하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보수주의자들은 자기네 나라 교육을 강화시키고, 자기 말을 더 쓰도록 하고, 보건을 강화하는 게 기본이라고 알고 있다. 프랑스 보수는 진짜 무서운 보수이고, 기 소르망같이 정말 책 하나는 엄청나게 읽어서 할 말이 없게 만든다.
그럼 미국 보수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청년들 체력이 약해서 전쟁하느라고 엄청 애먹었다고, 보수주의자들이 나서서 미국의 급식 체계를 만든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보수는, 도대체 이게 뭐냐? 뭐가 바뀌어도 단단히 바뀌었다.



신라 향가를 해석한 걸로 유명해진 양주동 선생의 ‘몇 어찌’라는 수필에는 기하학을 도저히 한문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절감하면서, 신학문을 배워서 나라를 되찾겠다는 결심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라의 기본은 우파들이 지키고, 좌파들은 생기발랄하게 뛰어놀면서 그 권위주의 내에 균열을 만들고 새로운 생각을 만드는 나라, 그런 나라가 잘 사는 나라인데, 한국은 뭐가 많이 이상해졌다. 좌파들이 정색을 하고 아이들 밥 먹이자, 조기 유학 그만 보내자, 투기 그만 좀 해라, 이게 뭔 꼴인지 모르겠다. 꼭 시어머니 된 것 같다.

하여간 이런 상황을 보면서, 한국에서 진보가 별 거 없지만, 다음 번 대선에는 우파들한테서 정권을 찾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실력으로 보면, ‘쨉’도 안된다. 한국은 좌파냐고 물으면 3%, 진보라고 물으면 30% 정도가 그렇다고 대답하는 나라이다.
그리고 나머지 국민은 우파 아니면 극우파, 그래서 절대적으로 우파들이 필승하는 구조이다. 근데, 우리나라 대선은 누가 뭘 잘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뭘 못해서 결정되는 나라인 것 같고,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IMF 사태로 정권을 넘겨준 이후로, 실정이 더 큰 기준이 된 나라이다. 현 정권도 자기들이 뭘 잘해서가 아니라 전 정권에 너무 실망한 국민들 덕분에 길 가다 나라 꿀꺽 삼킨 거 아닌가?

이게 기본인데, 더 근본적으로는 한국 우파들이 요즘 기러기 아빠 등으로 미국 보낸 자식에게 송금하느라고 뼛골이 빠져서 정권 지킬 여력이 없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요즘은 누가 조기 유학에 대해서 물어보면, “그냥 보내세요, 우리도 집권 좀 해보게요”, 이렇게 대답한다. 지려야 질 수 없는 게임!

그러나 우리에게도 고민이 있다. 80년대에 결성된 민중단체 그리고 90년대 중후반에 출발한 시민단체, 이런 데들이 정권 받아오기에는 여전히 취약할뿐더러, 조직 내부에 깊은 내상들이 있다. 다음 대선 때에는 우리가 뭘 잘해서가 아니라 우파들이 조기 유학으로 정신없어서 이기기는 할 것 같은데, 그 다음이 문제다. 이번에 정권 받아오면, 김대중-노무현 때처럼 어영부영 뺏기기는 싫고, 한 20년 정도 지키면서 정말 좋은 나라를 같이 만들어보고 싶다. 

앞으로 50주, 위기의 시민운동 내부 문제를 조직론의 시각으로 같이 살펴보면서 ‘지지 않는 대선’ 그리고 ‘지지 않는 정권’을 같이 만들어보고 싶다. 어쨌든 우리 팀에서는 시민단체들이 주력군인데, 뉴라이트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최열, 박원순 얘기 등 좀 쓴 얘기도 있을 거고, 우리 내부의 부패나 무능에 대한 얘기도 할 생각이다. 기분 나쁠 수도 있겠지만, 기러기 아빠 군단들한테 대선에서 지면 그땐 진짜 기분 나쁘지 않겠는가?
투기꾼, 경제 잡범 장관, 기러기 아빠, 어떻게 이런 사람들에게 질 수가 있는가? 좌파는 분열로 망하고 우파는 부패로 망한다는데, 요즘 한국 우파는 조기 유학에 자금을 대다 망한다. 그래서 완벽한 승리를 위해, 지금은 우리 스스로를 좀 돌아볼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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