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이던 린든 존슨은 암살당한 존 F 케네디의 후광에 힘입어 대승을 거두었다. 선거 기간 중 존슨은 공화당 후보 배리 골드워터 상원의원이 당선되면 베트남에서 전쟁을 크게 벌일 것이라고 공세를 퍼부어서 재미를 보았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존슨은 베트남 전쟁에 본격적으로 개입했다. 많은 전사자를 내고 엄청난 돈을 퍼부었음에도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존슨은 지독한 마이크로 관리자(micro manager), 즉 만기친람(萬機親覽)형 대통령이었다. 그는 북 베트남에 대한 폭격지점과 공습 규모를 직접 정하는 등 합동참모본부의 영역인 작전에도 일일이 간여했다. 합참 지휘부부터 현지 중대장까지 백악관을 욕했으니, 그 전쟁이 잘 될 수가 없었다. 존슨은 재선을 포기함으로써 자신이 실패한 대통령임을 인정해야만 했다.

1968년 대선에서 당선된 리처드 닉슨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확실히 알고 있던 ‘준비된 대통령’이었다. 닉슨은 하버드대학의 정치학자 헨리 키신저를 기용해서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베트남 전쟁을 종식시켰다. 하지만 닉슨은 언론을 기피하고 남을 의심하는 피해망상 증상이 있었다. 그는 자신을 오랫동안 보좌해 온 밥 할데먼, 존 얼릭먼 등 캘리포니아 출신 핵심 측근들만 신뢰했다. 자연히 백악관에는 ‘인(人)의 장막’이 생겼고, 공작정치의 음습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 결과는 워터게이트 스캔들이었다. 민주당 선거대책본부인 워터게이트 빌딩에 침입한 괴한들의 배후가 백악관이고, 백악관이 사건 은폐를 지시했음이 밝혀지자 닉슨에 대한 탄핵 절차가 개시됐고 닉슨은 사임해야만 했다.

닉슨의 실패에 진저리 친 미국 유권자들은 워싱턴 정치와 무관한 지미 카터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카터는 검증된 사람들을 각료로 기용했고 저명한 국제정치학자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를 안보보좌관으로 영입했다. 하지만 카터는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전력이 있는 시어도어 소렌슨을 CIA 국장으로, 그리고 국제관계에 문외한인 흑인민권운동가 앤드루 영을 유엔 주재 대사로 임명했다. 파격적 인사를 통해 변화를 추구하려 했겠지만 이것이 문제가 됐다.

소렌슨은 청문회가 열리기 전에 사퇴했고, 어렵게 대사가 된 앤드루 영은 구설수나 일으키다가 사임해서 카터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

해밀턴 조던 비서실장 등 카터를 따라서 백악관에 입성한 조지아 출신 참모들은 워싱턴 정치에 미숙했고, 코카인 흡입 의혹 등 쓸데없는 말썽을 일으켰다. 카터 자신도 아마추어같이 말하고 행동해서 대통령직의 권위를 추락시켰다. 핵물리학을 공부한 해군 장교 출신답게 매사에 너무 꼼꼼한 카터는 전형적인 마이크로 관리자였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혼자 짊어지고 고민한 그는 인플레이션과 유류파동 등 경제난국을 풀지 못했고 대외정책에도 실패했다. 카터는 1980년 선거에서 로널드 레이건에게 참패했다. 카터 행정부 4년의 실패가 공화당 12년 치세를 불러 온 셈이다.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인터뷰 중인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출처: AP연합)


1960~1970년대 미국 대통령의 ‘실패 스토리’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우리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닉슨의 ‘캘리포니아 사단’과 카터의 ‘조지아 마피아’의 경우에서 보듯이 특정한 인맥이 대통령 주위에 들어서서 장막을 치는 정권은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다. 요즘 박근혜 대통령 주변의 몇몇 측근이 정권의 ‘실세’라는 보도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데, 이런 현상은 매우 불길하다. 워터게이트 같은 음습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매사를 자기가 챙기고 결정하려는 만기친람형 대통령은 100% 실패하게 되어 있다. 대통령은 유능하면서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기용하고, 이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참모와 각료는 대통령이 지시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참모와 각료는 함께 토론하고 결론을 도출하라고 있는 것이다. 닉슨은 또한 언론을 회피하고 언론에 대해 피해의식을 갖는 대통령의 취약함을 잘 보여주었다.

존슨, 닉슨, 그리고 카터가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이들이 임명한 장관들은 대부분 괜찮은 인물들이었다. 문제는 대통령 자신과 백악관 참모에게 있었다. 우리의 경우는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도 그렇지만 총리와 내각은 아예 존재감이 없어서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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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선전을 해서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하는 ‘국가개조’가 일단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국가개조’라는 이름하에 논의되고 있는 개혁은 ‘관피아’ 척결과 공무원 충원방식 개선, 그리고 안전행정 체계 강화다. 앞으로 여야 간 협의와 공론화 절차를 거쳐야겠지만, 부정청탁 금지와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를 강화한 ‘김영란법’ 제정과 국가안전처 설치 등 정부조직 개편이 골자를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세월호 참사는 이 같은 개혁이 시급함을 보여주었지만 이는 필요한 개혁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우선 ‘국가개조’라는 용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말이 ‘국가개조’이지 그 실질적 내용은 ‘공공분야 개혁’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시작하는 개혁 작업은 공무원 조직과 공공기관 전체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을 포함해야 할 것이다. 퇴직 관료가 민간분야에 취직해서 정부를 상대로 비정상적인 로비 활동을 하는 현상은 대단히 병적이기에 당연히 타파돼야 한다. 그러나 퇴직 관료의 취업을 제한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수많은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이 과연 제 구실을 하는지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최빈국이던 우리나라가 경제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데는 관료들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관료가 국가발전의 주역이던 시절은 1960~1980년대다. 1990년대 들어서 공공분야가 민간분야에 뒤지기 시작했고, 괴물처럼 커버린 관료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많은 국민들을 절망에 빠뜨린 1997년 경제위기도 관료제의 실패가 크게 기여했다. 김대중 정권 들어서 금융계 등 전반에 걸쳐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있었지만 관료제는 그 폭풍을 피해갔다. 관료제는 노무현 정권 및 이명박 정권과도 적당히 타협해서 살아남았다. 박근혜 정부는 관료와 관변학자들을 대거 기용해서 ‘관료의, 관료에 의한, 관료를 위한 정부’와 ‘공무원이 행복한 나라’를 초래했다. 그러던 중 세월호 참사가 발생해서 관료들은 그들의 추악한 생얼굴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요즘같이 급변하는 세상에선 행정고시에 붙고 나서 타성적으로 공무원 생활을 오래 해온 관료들은 능력과 역할에서 한계가 있다. 이들이 정책을 개발하는 능력을 상실한 지는 이미 오래됐다. 정부 정책은 용역 연구와 위원회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고, 관료들의 일은 고작해야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위원회 회의를 소집하는 등 관리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변화에 반대하는 논리를 만들어서 자기들 조직을 보전하고, 정치적으로 결정된 바를 적당히 합리화하는 데는 탁월하다.

박대통령 "공공부문 개혁 저항 책임물을것"


사정이 이렇다면 거대한 관료집단을 유지해야 할 이유가 없다. 더 늦기 전에 각 부처의 조직과 기능을 원점에서 검토해서 과연 그 조직이 필요한지를 판단한 후에 존재 이유를 상실한 조직은 과감하게 혁파하는 등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조직을 존치하는 경우에도 책상에 앉아서 결재나 하는 관리직은 과감하게 줄이고 그 대신 민생경찰과 소방대원을 확충해서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

공기업 등 공공기관도 그 조직이 과연 필요한지를 검토한 후에 불필요한 기관은 혁파하거나 통폐합해야 한다. 금융 마피아, 토건 마피아 등 관업(官業)유착이 심한 부처부터 손보아야 한다. 관료들이 퇴직 후에 산하 공공기관에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서 몇 년을 버틴 후에 또다시 관련 이익단체에 취직해서 후배 관료들을 상대로 로비를 하는 퇴폐적 현상이 심한 곳이 이런 부처들이다.

공공개혁을 미룰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우리나라의 공공부채는 위험수위를 넘었으며, 특히 공기업 부채는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 근래에 공기업들이 자산 매각 등을 통해 부채를 줄이고 있지만 그 효과는 제한적이다. 더 이상 존치할 필요가 없는 공공기관은 과감하게 정리하고, 공기업 부채를 폭증시킨 4대강 사업, 해외자원개발 등 전 정권에서 있었던 각종 의혹도 이번에 해소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성패는 오직 공공개혁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공개혁에 성공하지 못하면 정권이 실패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국가가 실패할 것이다. 국가가 사실상 파산한 그리스는 말할 것도 없고, 파산위기에 처해 있는 캘리포니아 등 미국의 많은 주(州)와 지방정부가 공공부채로 인해 이 지경에 이르렀음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공공개혁은 국민적 공감대가 없이는 성공할 수 없으며, 특히 야당의 협조가 없이는 시작도 하기 어렵다. 공무원 사회의 저항과 공공기관 노조의 반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야당과의 공조는 필수적이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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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로 인해 박근혜 정부가 심각한 위기상황에 빠졌다. 청와대는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인 유병언씨에 대한 사법처리와 관료 마피아 근절을 위주로 한 대책으로 사태를 수습하려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정도 대책으로 민심이 수습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참사에 대해 청와대와 내각이 대응을 잘못해서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고 보는 것도 정확한 진단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신뢰는 내리막길을 가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낮은 응답률 등으로 신뢰도가 떨어지는 여론조사에 나타난 박 대통령 지지도보다 피부로 느끼는 민심이 나빠진 지는 오래됐다. 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마저 몇몇 퇴행적인 인사(人事)와 존재감 없는 내각에 대해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진보매체, 보수매체를 따질 것 없이 여권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이런 정부는 도대체 처음 본다”고 이야기한 지는 제법 됐다. ‘받아쓰기 하는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이라는 보도를 할 때 언론은 이 정부가 위기에 무력할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지만 정작 청와대는 그런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국민대통합, 경제민주화, 정치쇄신 등 변화를 내걸고 당선됐지만 취임 후에는 다른 길을 갔다. 그래도 처음 몇 달은 대선 때 내건 약속을 시행에 옮기려 했지만 김기춘씨가 비서실장이 된 후에 공약은 아예 사라져버렸다.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토대로 전 정권에 있었던 비리 의혹을 파헤치는 것 같더니만 김기춘 실장이 등장한 후에는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지난 1년 동안 새누리당 원내대표단이 이룩한 가장 큰 공적은 국가정보원을 감싼 일이다. 이명박 정권 말기에 있었던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 그리고 이어서 불거진 국정원의 증거조작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야당의 특검과 국정조사를 무력화시킨 것이 새누리당 원내 사령탑의 업적이었다. 그러나 검찰의 미온적인 수사로도 국정원과 국군 사이버사령부가 댓글과 SNS 공작으로 대선에 개입했고, 국정원이 법원에 제출할 증거를 조작했음이 밝혀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21회 국무회의에서 국민의례를 마친 후 자리로 돌아서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4.5.13 한경 강은구(출처 :경향DB)


한편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해 온 굵직한 정책은 추동력을 잃어버렸다. 정부조직까지 바꾸어서 시작한 ‘창조경제’는 증발돼 버렸고, 경제를 살리겠다며 추진한 ‘규제 완화’는 세월호 참사 후에는 말도 못 꺼내게 됐다. ‘통일대박’을 추구하는 드레스덴 구상의 처지도 크게 다를 바 없고, 자체가 개혁대상인 관료와 관변학자로 구성된 내각이 추진하는 ‘공기업 개혁’은 애당초 가능하지가 않았다.

2012년 한 해 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개혁적인 아젠다를 갖고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했다. 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많은 유권자들은 새 정부가 이명박 정권과는 다를 것이며, 4대강 사업 같은 의혹을 정리할 것을 기대했다. 박 대통령을 도와 총선과 당내 경선, 그리고 대선을 치른 김종인 박사와 나도 같은 생각이었고, 대선 과정에 합류한 안대희 전 대법관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내가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은 각기 다른 이유로 실패했기에 이들 정권하에서 야당 대표와 여당 속 야당이었던 박 대통령이 나라를 제대로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국가안보와 시장경제를 존중하는 보수 정치인이지만 ‘통합의 정치’를 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대선 과정에서 NLL 공방 등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겪으면서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선거가 끝난 후의 이야기는 다 아는 일이다. 사사(私事)에 이르지만, 그해 10월 대학에 명예퇴직원을 낸 나는 대선 후 두 달 동안 30년간의 교수생활을 정리하고 있었다. 당시 김종인 전 장관과 안대희 전 대법관의 거취는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윤창중으로 시작된 인사 참사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이 새 정부 첫 한 해를 괴롭혔다. 금년 들어서 공기업개혁, 규제완화 등 무언가 일을 벌이는 것 같더니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이제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박근혜 정부를 보는 민심은 싸늘하다 못해 험악하다. 박영선 의원이 실질적으로 야당을 이끌게 됨에 따라 그간 여권을 도와주었던 야권의 지리멸렬 상태도 끝이 났다. 세월호 사건이 없더라도 새누리당 내부의 친박 세력은 이미 쇠락했고, 지자체는 ‘비박 전성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기로에 선 박 대통령이 ‘국민만 보고 가겠습니다’라고 했던 ‘2012년 초심’을 되살려서 국정을 쇄신했으면 한다. 또 한 정부의 실패를 볼 정도로 우리는 여유롭지 않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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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5년 임기의 3분의 1이 지나가고 있다. 돌이켜 보면 여권에는 악재가 끊이지 않았다. 국정원 등 국가기관이 지난 대선에 개입했음이 밝혀졌고, 국정원이 간첩사건에서 증거를 조작했음이 드러났다. 증거조작은 현 정권 들어 생긴 일이니 변명할 여지가 없다. 이 정도 사안이면 정권을 흔들기에 충분하겠지만 박 대통령의 지지도는 60% 선을 유지하고 있다. 대통령이 향유하고 있는 개인적 지지도가 탄탄한 데다가 야권이 지리멸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권에 유리한 지형이 지속될지는 의문이다. 6월 지방선거가 끝나면 미니총선 같은 7월 재·보선이 이어질 것이다. 지방선거에선 새누리당이 승리하겠지만, 야당이 기초단체 공천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얻어낸 승리는 독(毒)이 될 수 있다. 여당은 공천을 하고 야당은 공천을 하지 않는 불공정한 게임에서 여당이 대승을 거둔다면 그 결과에 대해 견제심리가 작동할 것이다. 7월 재·보선에서 그런 심리가 나타나면 새누리당은 원내 과반수 의석을 상실할 수도 있다.

6월 지방선거에서의 승리가 박근혜 정부의 승리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정몽준 의원이 경선에서 승리하고 서울시장에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정 의원 개인의 승리일 뿐이다. 정 의원은 4·11 총선 때 새누리당 열세 지역구에서 혼자 힘으로 당선되는 저력을 과시했지만, 그는 원래 박 대통령과 거리가 있다. 재선에 나서는 홍준표 경남지사와 경기지사 선거에 나서는 남경필 의원도 박 대통령과 거리를 두고 있는 인물이다. 유정복 의원이 인천 시장에 당선된다면 그는 유일한 친박 출신 광역단체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방선거 후 열리게 될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선 서청원 의원과 김무성 의원이 당 대표로 나선다는데, 누가 대표가 되어도 지금의 지도부 같지는 않을 것이다. 7월 재·보선에선 김문수 경기지사,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오세훈 전 서울시장, 나경원 전 의원 등 이명박 정부의 간판인물들이 대거 출마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역시 박 대통령과 같이 가기가 어려운 사람들이다. 반면 ‘친박 핵심’으로 불리는 인물들로 구성된 새누리당 지도부는 지난 한 해 동안 국정원을 감싸다가 함께 좌초한 형상이다.

김황식 전 총리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서고 박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이성헌 전 의원이 선대본부장을 맡은 것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김 전 총리는 감사원장을 지낼 때 4대강 사업을 감싸는 부실한 감사 결과를 내놓아서 빈축을 샀고, 총리 시절에는 4대강 사업을 옹호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지금도 4대강 사업이 정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 때 한나라당 내 소수파였던 친박은 4대강 사업에 부정적이거나 냉소적이었음은 세상이 아는 일이다. 김 전 총리가 항간의 소문대로 ‘친박’의 지지를 받아서 서울시장에 도전하고 있다면 정치집단으로서 ‘친박’은 정체성을 상실하고 만다.

환하게 웃는 박근혜 후보와 전 친박좌장 (출처 :경향DB)


이처럼 전 정권 인사들이 재등장하는 현상은 박근혜 정부에 좋지 않다. 전 정권을 상징했던 인물들이 일선에 복귀하면 박근혜 정부가 전 정권 시절에 있었던 의혹을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국민들은 현 정부를 불신의 눈초리로 볼 것이다. 반면 현 정권의 철학과 정책을 대변하고 또 실천해 나갈 집권세력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과거 정권에선 볼 수 없었던 현상인데, 많은 일을 직접 챙기는 박근혜 대통령의 업무 스타일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 한 해 동안 여당은 야당과 대화하거나 협력하기를 거부했고, 그런 연유로 국회는 기능적으로 마비돼 있다. 물론 매사를 현안에 결부시켜 투쟁하는 야당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지만, 여야 대치에 대해선 여당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런 판국에 여권의 유력 정치인들이 저마다 마이웨이를 선언한다면 대통령의 리더십은 손상될 것이며, 레임덕 현상마저 생겨날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대책이 있을까?

필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약속했던 국민대통합, 경제민주화, 검찰개혁 등 개혁과제를 어느 정도라도 이행하고, 이명박 정권 시절에 있었던 4대강 사업, 해외자원 개발 등 대형의혹을 규명하고 청산해야 한다고 믿는다. 어느 나라에서나 국민들은 권력집단이 저지른 비리와 부정을 척결하는 지도자에게 높은 지지를 보낸다. 김영삼 대통령은 12·12와 5·18 책임자들을 법의 심판대에 올렸을 때 가장 높은 지지를 얻었다.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세움은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가장 올바른 일이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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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의원이 신당 창당을 접고 민주당과 합쳐 새로운 정당을 만들기로 함에 따라 6·4 지방선거 판세가 급물결을 타고 있다. 안 의원이 100년 정당이라면서 호기있게 추진하던 ‘새정치연합’은 발기 선언을 하자마자 깃발을 내렸으니, 싱겁고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안 의원이 이와 같은 결정을 하게 된 동기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창당은 돈도 제법 많이 드는 작업인데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고, 당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출마하려고 줄을 서지도 않았다. 모이는 사람은 많았지만, 좋은 사람은 별로 없어 이 사람 저 사람 만나 입당을 부탁하는 것이 그간의 모습이었다. 신당을 만들어 선거에 참여한들 새누리당에 좋은 일만 할 것임이 분명해 혹시 민주당을 주적(主敵)으로 상정하고 탈레반 전술을 쓰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자아냈다.

‘새정치’를 하기 위해 정당을 만든다는 발상은 아름답고 숭고하다. 하지만 그 이상(理想)이 아무리 훌륭해도 소선구제를 채택한 한국에서 제3당이 성공하기는 어렵다. 김종필 전 총리의 자민련과 이회창 전 총리의 선진당은 지역기반을 갖고도 10년과 5년을 버티다 문을 닫았다. 좋은 꿈만 가지고 의기투합해 만들었던 고만고만한 정당들의 행로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정당과 선거라는 현실의 벽이 만만치 않음을 뒤늦게 깨달은 안 의원이 역부족을 느끼고 민주당과 합치기로 결심한 것이며, 야권 분열로 인한 선거 참패를 눈앞에 두고 고민하던 김한길 대표 역시 현실적 판단이 앞섰을 것이다.

김한길-안철수의 첫 만남 (출처: 경향DB)


안 의원 측과 합류하게 된 민주당은 지방선거 참패라는 악몽에서는 벗어났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민주당 지지율이 이렇게 저조한 데는 지도부의 리더십 문제도 있지만, 친노니 뭐니 하는 파벌 이미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민주당이 신당 창당을 기회로 삼아 쇄신을 한다면 낡은 이미지를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당장 큰 문제는 기초자치단체 선거에 공천을 하지 않겠다고 한 김한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의 약속이 불러올 파장이다.

2012년 대선 때 경쟁적으로 나온 정치쇄신 공약은 현실을 도외시한 측면이 없지 않은데, 기초단체 공천 폐지도 그러하다. 필자는 대선 때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위원으로 정치쇄신 공약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필자는 인구가 적은 시·군과 구의 경우는 몰라도 인구가 수십만명에서 100만명에 이르는 시도 공천을 폐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문재인 후보 측과 안철수 후보 측에서 모두 공천 폐지를 내걸었기 때문에 우리도 따라가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기초단체 공천이 문제라고 보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시·군·구는 주민 살림을 책임지는 행정단위이기 때문에 구태여 정당이 간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구 10만명 미만의 군이면 모르되 수십만 인구를 가지고 있는 시에 대해 그런 논리를 적용할 수는 없다. 둘째, 시장·군수·기초의원 후보 공천을 해당 지역 국회의원이 사실상 좌우하기 때문에 아예 공천을 없애야 국회의원이 지방행정을 좌우하는 폐해를 없앨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영·호남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공천이 곧 당선이기 때문에 기초단체 후보 공천과정에 비리가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국회의원 지역구가 3~4개 군을 포함하는 경우라면 특히 그러하다. 그러나 인구가 100만명 되는 수원시나 성남시 같은 경우라면 그런 우려는 현저하게 줄어든다.

기초단체 후보 공천을 없애면 가뜩이나 하부가 취약한 한국 정당의 구조가 더욱 취약해질 수 있다. 정당은 공직선거에 후보자를 내는 것이 기본 목적이고, 기초의원은 정당의 풀뿌리 조직이기 때문이다. 새로 태어날 신당은 새누리당과 무관하게 기초선거에 공천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런 방식으로 선거를 치를 경우 큰 혼란이 생길 것으로 우려된다. 공직선거법이 무소속 출마자는 당적을 가질 수 없도록 하고 있어 민주당은 풀뿌리 조직이 와해될 수도 있다.

소망스러운 것은 지금이라도 새누리당이 이 문제에 대해 야당과 대화를 하는 것이다. 기초단체 공천 폐지는 대선 공약이었는데, 새누리당은 원내대표가 간단하게 폐기했으니 그것부터가 상식을 벗어난다. 신당 추진 측도 우선 군과 자치구 선거부터 공천을 폐지하는 안을 갖고 새누리당과 협상을 시도해야 한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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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지방선거가 조기에 과열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변수는 ‘새 정치’를 내건 안철수 신당이다. 신당의 폭발력이 얼마나 되며, 그것이 새누리당을 향하는지 아니면 민주당을 향하는지에 따라 향후 정국은 큰 영향을 받게 된다. 과거에 있었던 제3당과 달리 지역에 기반을 두지 않은 안철수 신당에 지방선거는 유리한 지형이 아니다.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띠게 마련인 지방선거에서 안철수 바람이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안철수 의원이 말하는 ‘새 정치’가 내용이 없다고 하지만, ‘새 정치’가 무엇인지는 대체로 답이 나와 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는 매우 유사한 정치쇄신 공약을 내걸었다. 두 후보는 또한 강도 높은 검찰개혁안을 내걸었다. 이 같은 개혁과 쇄신이 바로 ‘새 정치’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새 정치’를 내세운 안철수 신당이 창당도 하기 전에 높은 지지를 얻는 이상한 현상은 기성 정치권이 초래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1년 12월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구태정치 척결’을 내걸고 ‘쇄신’을 추진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된 후에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총선과 대선 과정을 통해 국민에게 약속한 ‘쇄신’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과거 모습으로 돌아갔다. 박 대통령이 정치쇄신 등 국민과의 약속을 지켰다면 ‘안철수 현상 시즌2’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안철수 신당이 실물정치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벽이 한둘이 아니다. 정치적 이념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결사체인 정당은 선거에 후보를 내는 것이 주된 목적이고 기능이다. ‘새 정치’도 결국에는 실천이 관건이기에 신당은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인물을 내놓아야 한다. 아직은 신당이 지향하는 가치가 중도 보수인지, 중도 진보인지도 모호한 상태라서 곧 발표될 신당의 정강·정책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보수정권 출신인 윤여준 전 장관이 신당에 가담함으로써 신당은 그 정체성을 분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정당으로서 지향하는 가치와 이념도 불분명한 상태에서 신당이 후보 영입에 열을 올리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국민의 눈으로 보겠다고 다짐하는 안철수 의원(출처: 경향DB)


신당이 영입하려는 강봉균 전 장관, 신구범 전 지사, 류근찬 전 의원, 오거돈 전 장관 등의 면면을 보면 참신성은 물론 공유하고 있는 정체성이나 가치를 찾아보기 어렵다. 지지도가 높은 정당이라면 인재가 구름처럼 몰려와야 하는데 오히려 신당이 ‘올드 네임’을 찾아 헤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한 인물들을 모아서 기초단체장 후보로 낸다면 안철수 신당은 또 다른 ‘낙엽 정당’이 되고 말 것이다.


안철수 신당 측이 광역에서 한두 명 당선자를 내면 성공이라고 스스로 자세를 낮추고 있음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신당이 이번 선거에 중대한 변수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신당이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민의에 반하는 선거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다.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군소 후보가 대통령 당락을 좌우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녹색당 후보 랠프 네이더가 플로리다에서 민주당 후보 앨 고어에게 갈 표를 잠식해 공화당 후보 조지 W 부시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것이다. 사표(死票)가 되는 줄 알고 소비자운동가인 네이더를 찍은 진보 유권자들이 엉뚱하게 강경 보수정권을 탄생시킨 셈이다. 이번 선거에서 안철수 신당 후보가 이런 효과를 초래한다면 신당은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며칠 전 윤여준 새정추 의장이 ‘딜레마’라고 표현한 부분도 이런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생각된다.


안철수 신당이 광역 선거에 후보를 모두 내야 할 당위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윤여준 새정추 의장이 말한 바와 같이, 정당을 만들면서 서울시장 후보를 안 낸다는 것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 고려할 점은 새누리당이 김황식 전 총리를 서울시장 후보로 내세울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이명박 정권에서 감사원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김황식 전 총리는 완벽한 ‘MB맨’이다. 그는 감사원장으로서 감사원이 4대강 부실 허위 감사를 한 데 대해 책임이 있으며, 총리로서 해외자원 개발 등 전 정권 시절의 각종 비리와 의혹에 대해 책임을 피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안철수 신당이 여권의 김황식 카드에 대해 어떠한 대응을 하는지, 또 더 나아가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부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도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할 포인트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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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지 1년이 되어간다. 이명박 정부 5년이 지긋지긋했던 사람들은 누가 해도 그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을 것이다. 2012년 한 해 동안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서 총선과 대선을 치른 필자가 가졌던 기대는 그것 이상이었다. 나는 박 대통령이 노무현·이명박 정권 10년 동안 극심했던 우리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면서 이 시대에 필요한 개혁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박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도 박근혜 정부는 적어도 독선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소통’과 ‘대화’라는 시리즈를 통해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진영논리와 불통을 치유해보려 했던 경향신문도 그런 기대를 가졌을 것이다. 2011년 11월, 박 대통령은 김호기 교수와 필자가 진행한 ‘대화’ 시리즈에 마지막으로 등장했는데, 그때 이런 말을 했다. “정치를 너무 보수와 진보의 틀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매사를 진영논리로 풀어가는 우리 정치를 비판한 것으로 이해되는 대목이었다.



이상돈 위원과 악수하는 박근혜 후보(출처 :경향DB)



2012년 총선과 대선 과정에서 박 대통령은 ‘국민대통합’ ‘경제민주화·복지·일자리’ ‘투명하고 깨끗한 정부’를 ‘국민과의 약속’으로 내세웠다. 새누리당은 “보수가 바뀌면 나라가 바뀝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과거 한나라당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변신을 했고, 그 덕분에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대변인 임명부터 꼬이기 시작한 인사 난맥상이 새 정권의 발목을 잡았다. 그 후 한 해가 어떻게 흘러갔는가는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박 대통령은 거의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 대신 새누리당 원내대표단은 갈등과 분열을 확산하는 진영논리 메시지를 내보내는 데 몰두했다. 매사에 ‘종북 운운’하는 몇몇 의원들과 ‘불통’을 자랑하는 청와대 홍보수석이 좋은 이미지를 줬을 리가 없다. 문제는 이런 메시지의 배후가 박 대통령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는 데 있다.


집권 2년차에 들어선 오늘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은 도마에 올라 있다. 임기 초에 박 대통령은 개성공단 폐쇄 사태 등 사건·사고를 잘 처리해 40%대로 주저앉았던 지지율이 한때 60%대로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그렇게 내세웠던 ‘대통합’ ‘경제민주화’ ‘정치쇄신’이 집권 1년차를 거치면서 사라져 버렸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은 괴물처럼 커져서 정권의 정당성에도 흠집을 내고 있지만 그것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어느 언론인은 “대통령이 대선 전(前)과 후(後)에 다른 사람 같다”고 나에게 말하기도 했다. 어떤 이는 “무슨 조짐 같은 것을 느끼지 못했냐”고 물었다. 솔직히 말해, 대선 기간 중에 “이러면 안되는데” 하는 기분이 든 적이 몇 차례 있었다. 그래도 2008년 총선 때 친이계에게 배신당한 후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일갈(一喝)했던 박 대통령이지 않은가, 하고 기대를 걸었다. 박 대통령의 ‘신뢰’를 신뢰했던 것이다. 그리고 임기 첫 해가 덧없이 흘러갔다.


집권 1년차를 별반 소득 없이 보낸 가운데 우리나라는 거대한 ‘부채공화국’이 되고 말았다. 하버드 대학 니얼 퍼거슨 교수는 공공부채와 개인부채를 합친 총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250%에 달하는 국가엔 ‘거대한 쇠퇴’만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가 그런 형상이다. 막대한 공공부채의 과반이 공기업 부채이고, 그것의 절반이 이명박 정권 시절에 생긴 것이다. 이런 정권을 인수받고도 전 정권을 사정(司正)하지 않는 정부는 무능하거나 무지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그러던 중 박근혜 정부는 갑자기 코레일을 개혁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그 방법이 생뚱맞은 수서발 KTX 자회사다. 그리고 노사 간, 여야 간, 그리고 정부와 비판세력 간에 대(大)갈등이 폭발했다. 정부는 수서발 KTX 자회사가 공공부채 감축과 공기업 개혁의 첫 단추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겨우 수서에서 평택까지 철로를 새로 놓는 수서발 KTX를 자회사로 만들면 경쟁이 생겨서 철도사업이 정상화된다는 논리는 듣기에도 민망하다. 철도가 철도와 경쟁을 한다는 논리 자체가 거짓말이고, 코레일의 부채 14조원 중 10조원은 정책 실패로 인한 부채이기 때문이다.


사상 최장의 철도파업에 대처하는 총리, 부총리, 그리고 관계 장관들의 모습은 만화의 한 장면이었다. 평소 소신을 손바닥 뒤집듯 번복한 최연혜 코레일 사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김무성 의원이 막후에서 파업을 풀어냈으니, 무턱대고 강경한 발언을 쏟아낸 이들은 더욱 우습게 됐다. 공기업 개혁을 시작하기도 전에 정부의 논리와 능력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 셈이다. 어떤 개혁이든 개혁은 어렵다. 국민의 ‘신뢰’를 상실한 정부가 개혁을 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집권 2년차에 접어든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의 브랜드인 ‘신뢰’부터 회복해야 할 것 같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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