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최근 배우자가 장래에 받게 될 퇴직금, 연금 등도 이혼할 때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되는지 여부를 놓고 공개변론을 열었다. 재산분할 대상으로 봐야 한다는 측은 부부는 결혼생활 동안 소득과 소비를 공유하며 함께 노후를 준비하는 경제생활을 했기 때문에 ‘연기된 임금’의 성격을 갖는 퇴직금도 나눠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측은 의무가입대상인 퇴직·사학연금 등은 사적 재산권의 성격보다 최소한의 노후생활 보장을 위해 국가가 강행법규로 제정한 공공적 성격이 커 재산분할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 퇴직금은 ‘연기된 임금’… 배우자의 기여 인정해야


부부는 통상 소득과 소비를 공유한다. 그리고 소비 후 남는 소득을 저축하여 함께 노후에 대비한다. 그러나 이혼과 동시에 이와 같은 공동의 경제생활은 와해된다. 스스로의 소득에 기초하여 새로운 재정계획을 짜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 봉착한 각 배우자는 앞으로의 삶에 기초자산이 될 재산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아직 회사에서 지급받지도 않았고, 지급을 청구할 수도 없는 장래의 퇴직금을 재산분할 대상으로 삼아 달라는 주장은 이런 절박함에 기초하고 있다.


법원은 왜 이 같은 절박한 목소리에 응답하지 않을 수 없는가. 이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공평의 이념이 요구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현행 민법은 혼인기간에 당사자 쌍방의 협력에 의해 이룩된 재산을 분할 대상으로 삼는다. 그리고 장래의 퇴직금은 분명 당사자 쌍방의 협력에 의해 이룩된 재산이다. 퇴직금은 근로자가 근로관계의 종료와 동시에 사용자로부터 지급받는 일종의 연기(延期)된 임금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그 연기된 임금을 받기 위해 근로자는 사용자에게 종속되어 일정 시간 이상의 근무를 하여야 한다. 근무시간 동안 그가 하지 못하는 가사노동·양육 등 가정생활 유지를 위해 필요한 각종 행위는 다른 일방이 노무(전업주부) 또는 금전(맞벌이)의 형태로 보충 내지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장래의 퇴직금을 재산분할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그 이익을 근로자 본인만 향유할 수 있도록 한다면, 그 퇴직금에 터 잡아 노후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혼인생활의 유지를 위해 스스로 근로의 기회를 포기한 배우자 또는 그러한 기대에 기초하여 공동 생활비용을 지출해 온 배우자로서는 예상치 못한 희생을 강요당하게 된다. 물론 현재 재산분할의 실무는 이러한 희생을 다소간 전보해 주기 위해 장래의 퇴직금을 ‘기타 사정’으로 고려하여 재산분할의 비율을 약간 상향조정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장래 지급받을 퇴직금 외에 번듯한 재산을 가지고 있지 못한 대부분의 소시민에게 이러한 법원의 배려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혼 당시 분할 대상이 되는 재산이 0원인 경우에는 애초부터 재산분할을 청구하는 것이 봉쇄되기 때문이다.


미국·영국·독일 등 대부분의 선진적 입법례가 장래의 퇴직금을 재산분할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까닭에 연유한다. 장래의 퇴직금을 분할해 주어야 하는 상대방 배우자로서는 이러한 결론을 감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다행히 우리의 실무는 재산분할의 액수나 방법을 결정함에 있어서 법관의 재량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으므로, 상대방 배우자에게 장래 퇴직금을 지급받지 못하거나 그 액수가 줄어들 개연성이 있음이 증명된 때에는 이를 ‘기타 사정’으로 참작하여 분할의 액수나 비율을 적절히 조정하면 될 일이다.


이혼은 장려될 만한 사회현상이 아니다. 하지만 한 가정의 유지를 위해 오랜 기간 쏟아 부은 노고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 그 결과 이혼 후 경제적 자립을 위태롭게 하는 것, 그 때문에 이혼을 포기하게 하고 한 사람의 인생을 비탄에 잠기게 만드는 것, 결국 돈에 의해 인간의 존엄이 훼손되는 결과를 방치하는 것 역시 자랑할 만한 시스템이 아니다. 따라서 장래의 퇴직금은 재산분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현소혜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혼.사별 여성 노동자의 사회보험 가입 실태


■ 미·영도 의무가입 연금은 재산분할 대상으로 안 봐


헤겔은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고,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라고 했다. 제도의 이성적 측면을 유지하고, 비이성적인 측면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취지다. 국민연금법의 분할연금제도와 유사하게, 장래 취득할 사학연금, 공무원연금, 퇴직금도 이혼할 당시 재산분할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이런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다. 이들은 ‘사학연금 등은 후불임금인데, 임금이 부부의 공동협력으로 이룩한 재산인 이상 재산분할대상이 되어야 한다’거나, ‘미국·영국 등도 이혼할 때 연금을 분할대상에 포함시킨다’는 근거를 제시한다. 필자는 이런 주장에 반대한다. 첫째, 미국·영국도 사적으로 가입한 노령연금은 재산분할대상으로 삼지만, 의무 가입대상인 노령·퇴직연금은 제외한다. 연방 사회보장법에 따라 피용자의 기준월소득액의 12.4%가 본인 기여금과 사용주 부담금으로 납입되는 미국 퇴직연금이 그 예다. 기준월소득의 25.8%가 본인기여금과 사용자부담금으로 납입되는 영국 국민연금법상의 노령연금도 재산분할대상이 아니다. 이런 의무적 노령·퇴직연금은 노후 최소한의 생활보장을 위해 국가가 강행법규로 도입한 제도다. 사적 재산권의 성격이 약해 상속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납입금 비율, 지급 액수와 지급 대상은 ‘사회연대’의 정신에 입각해 법률로 정한다. 재산분할의 대상으로 삼기에 부적절한 것이다.


둘째, 퇴직금 취득에 가사활동 배우자가 기여했으므로 이혼할 때 재산분할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부부별산제나 부부공동재산제 중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옳을 수도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부부별산제 법제에서는 부부는 각자 근로로 번 임금으로 생활비를 지출하고 가사활동을 함으로써 가정이라는 공동생활을 유지할 의무가 있다. 외벌이 가정의 경우, 소득활동 배우자가 자신, 가사활동 배우자, 그 밖의 피부양자의 부양비를 지급할 법적 의무가 있다. 양성평등을 고려하면, 가사활동과 소득활동은 동일한 가치가 있다. 이때 가사활동과 생활비지출은 부부가 부담하는 동등한 의무로 상호 맞비길 수 있다. 가사활동 덕분에 임금이나 장래 퇴직금을 취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셋째, 가사활동 배우자의 기여가 있으니 사학연금 등도 분할이 필요하다는 논리라면, 장애, 질병 등으로 가사활동을 제대로 못했던 배우자들은 아무 권리도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런 결론에 찬성할 수 없다. 기여와 무관하게 혼인 중 형성된 의무적 노령·퇴직연금에 대해 이혼배우자도 권리를 가져야 한다. 재산분할 때문에 이런 권리가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노령·퇴직연금은 사회연대, 가족 연대의 정신하에 부부의 노후 최저생활보장을 목적으로 납입했기 때문이다. 권리의 내용과 행사방법도 이런 목적을 감안해 결정해야 한다. 혼인기간, 이혼 후의 재혼 여부, 자신도 노령·퇴직연금을 수령하는지 등이 주요 고려요소다. 무엇을 중시할지는 시대마다 다르다. 정책목적에 따라 권리내용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사학연금 등에는 이혼 배우자의 권리를 정한 법률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법원이 재산분할시 이런 사정을 참작해야 한다. 현재의 대법원 판결을 유지하되, 장래 취득할 사학연금 등을 어떻게 참작할지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현실적이자 이성적인 조치다.


<제철웅 |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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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군복무 기간을 대학 학점으로 인정하거나 기업체의 호봉 산정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키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대학 재학 중 입대한 군인이 일정 시간과 형식을 갖춘 교육훈련 또는 부대활동을 이수하면 학점으로 인정해 주겠다는 것이다. 국방부가 내놓은 방안에 대해 “고교만 졸업한 군복무자와는 형평에 맞지 않고, 1999년 폐지된 군 가산점제도가 사실상 부활하는 것”이라는 의견과, “군인에게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보상이어서 시행해야 한다”는 견해가 맞서고 있다.

■ 대학 안 다닌 8만 장병들과 차별

지난 9일 국방부는 ‘군복무 학점 인정제’ 도입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결한 군가산점제를 부활시키려는 꼼수이며, 대학을 진학하지 않은 8만 병사들에 대한 차별이다.

군가산점제는 군복무를 원천적으로 봉쇄당한 장애인과 여성에 대한 차별이기 때문에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전원 일치된 의견으로 위헌결정을 한 만큼 이를 재론하는 것은 반헌법적 발상이다.

국방부가 해마다 철 지난 군가산점제도를 부활시키려는 속내는 병사들에게 실질적 혜택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이다.

한정된 국방예산 내에서 병사들의 월급을 인상하기 위해서는 장군들의 월급과 품위유지비, 무기구입비 등을 삭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기 도입은 방위산업과 연결되어 있고, 방위산업은 퇴역 장군들의 고용 재창출이자 돈줄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군피아’들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불순한 의도이다.

우리 헌법 39조 2항은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지금 병사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9학점이 아니라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존엄성’과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권리’일 것이다.

브라질월드컵에서 러시아를 상대로 득점한 이근호 선수는 대한민국 국군체육부대 소속 병장이다. 고작 14만원의 월급을 받는 이근호와 같이 애국하는 40만 병사에게 필요한 것은 ‘군복무 학점 인정제’도 아니며, 러시아 골키퍼 아킨페예프처럼 300억원의 거액 연봉도 아니다. 지금 그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군 복무기간 가족에게 손 내밀지 않을 만큼의 월급일 것이다.

군인권센터가 휴가병사를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72%가 월급이 부족하여 집에서 용돈을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우리와 같이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는 대만(28만원)과 독일(39만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병사들의 급여가 과거에 비해 인상되었다고는 하지만 같은 시기 물가나 생활수준의 향상은 물론 장교나 부사관의 급여와 비교해서 보면 이는 인상이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로 2012년 국정감사 당시 국회 국방위원회 김재윤 의원에게 국방부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950년 창군 당시 이등병과 대장의 월급 차이는 30배였던 반면, 2012년 200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사 월급의 현실화와 관련해 국방부는 2006~2010년 ‘국방중기계획서’에 병영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비용을 보장하는 수준의 병사 월급을 반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병사 월급을 40만~50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하자 김관진 국방장관은 반대의견을 표명하였다. 이는 병사들의 인권을 앞장서서 책임져야 할 주무장관이 병사들의 사회권적 기본권에 대한 천박한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19대 국회는 병사 월급과 관련한 공청회나 토론회를 개최하지 않고 있으며, 예결위에서도 이러한 논의는 하지 않고 있다. 40만 병사들은 선거 시기에만 잠깐 유권자이고 선거가 끝나면 노예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고 있다.

병사들 월급 수준의 현실화는 과연 얼마까지 인상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예산편성문제, 그리고 의무병이라는 점 등을 충분히 고려하고 검토해서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검토와 고려만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제라도 재정현실과 경제상황, 물가와 생활수준 등 최소한의 필요를 반영한 월급 인상을 해야 할 것이다.

정부당국은 허울뿐인 ‘군복무 학점 인정제’ 도입이 아니라 실질적인 월급 인상을 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을 시급히 강구해야 한다.


<임태훈 | 군인권센터 소장>


■ 공정한 시스템 갖추면 도입 가능

군 복무 경험을 학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국방부 방안이 사회적 차별을 야기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17년 말 시행을 목표로 추진하는 이 방안은 평생학습시대의 학습관리체제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우선 바라볼 필요가 있다. 현행 고등교육법 제23조는 개별 대학이 학점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경우를 여섯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그중 다섯 가지는 대학 수준의 강의를 수강한 경우들로 전형적인 학교교육의 학습관리 방식이다. 나머지 하나는 강의 수강과 무관하게 학점을 인정하는 경우이다. 즉, 다른 학교나 연구기관 또는 산업체 등에서 학습, 연구, 실습한 사실 또는 산업체에서 근무한 사실을 학점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를 선행경험 학습인정이라고 하는데 서구에서는 오래전부터 실시하고 있다. 주로 직업 생활을 통해 학습한 결과를 평가해 학점 등으로 인정하는데 미국에서는 제대 장병들의 사회 복귀를 지원하는 데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개인이 학교 등 형식교육 기관 외부에서 경험을 통해 학습한 결과를 평가해 인정하는 것은 두 가지 의의가 있다. 첫째는 현장의 경험 학습 결과를 자격이나 학력과 연계하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3년 이상 직업 생활에 종사한 개인은 누구든지 직업 경험을 통해 학습한 결과가 대학 졸업9생과 동등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인정받으면 별도의 강의 수강 없이 학위를 받을 수 있다.

물론 희망자는 경험 학습의 결과로 갖춘 역량을 포트폴리오로 작성해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학사는 물론 석사와 박사 학위도 받는다. 미국과 캐나다의 대학들은 주로 관련 과목의 학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둘째, 선행경험 학습의 인정을 통해 개인이 그동안 직업생활 등을 통해 학습한 결과로 갖춘 역량이 무엇인지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원하는 경력 전환을 위해 더 필요한 공부가 무엇인지를 안내받을 수 있다.

인생 이모작, 삼모작이 일반화되면서 전직과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만약 개인이 그동안 직업생활을 통해 학습한 결과로 갖추게 된 역량과 희망하는 직업 분야에서 요구하는 역량을 비교 확인할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개인이 경험을 통해 학습하는 것과 대학 강의실에서 학습하는 것은 그 차원이 다르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학 강의실에서 배우든 현장에서 경험을 통해 배우든 중요한 것은 학습자가 배움의 결과로 필요한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이다. 대학 강의실에 앉아 있었지만 무엇을 배웠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와 현장에서 일하며 학습한 결과를 사회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형태로 제시하는 경우 중 어느 편이 인정받을 만한지는 자명하다.

이 제도는 장병들이 군 복무를 통해 학습한 결과를 공정하게 기록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 기록이 대학 강의의 교육목표, 각종 자격의 요구 역량, 기업의 직무 능력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자료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이 신뢰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면 소위 ‘인플레 학점’이 기록된 대학의 성적증명서보다 인재를 선별하는 데 더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다. 제대 장병들은 특정 강의가 교육목표로 삼고 있는 지식과 기술 등을 군 복무 중에 충분히 학습했다며 대학에 학점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평생학습 시대에는 누구나 언제 어디서 학습한 것이든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학습관리체제를 필요로 한다. 선행경험 학습인정은 그 핵심 제도이다.

국방부가 장병 개개인 별로 복무 경험을 통해 학습한 결과를 공정하게 기록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사회 각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능력중심 사회의 실현도 크게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강대중 |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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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 2월 발표한 주택 임대차 시장 선진화방안의 핵심은 전세와 월세 임대소득에 소득세를 매긴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후 시장에서 임대소득 과세에 대한 부담으로 거래가 위축되면서 정부와 여당은 영세 임대소득자에게 분리과세를 확대하고, 과세 유예기간을 늘리는 등의 과세 완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에 대해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 원래 과세 방안대로 가야 한다는 의견과 시장에 적응할 시간을 주기 위해 과세를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 세입자에게 전가되고 거래도 급감… 설익은 정책

의식주(衣食住)와 밀접한 부동산시장의 새로운 정책과 제도는, 그 파급효과가 민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측면에서 신중하게 검토돼야 한다. 소득세법 등 임대소득 과세 정비와 월세소득공제 실효성을 확보할 법 개정 추진이 6월 국회에서 최종 판가름 날 예정이다. 하지만 세금을 내는 것에 대한 집주인의 부담감은 이미 다양한 방법으로 세입자에게 전가되며, 주택시장 거래에 백태를 양산하고 있고, 회복되던 거래시장도 다시 빠르게 냉각되는 모양새다.

주택매매시장의 거래동결 우려는 이미 현실화됐다. 연초 수도권 주택시장은 거래량과 가격 상승으로 응답하며 매매 회복세에 힘이 실린 낙관적 분위기였다. 하지만 임대소득 과세 방침이 논란으로 떠오르며 설익은 정책설계는 구매시장 혼선으로 이어졌고 수요자들의 심리위축과 거래관망 움직임을 불러왔다. 서울시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6044건으로 4월 8536건에 비해 29% 급감했다. 3월 거래량 9485건과 비교하면 더 큰 폭(-36%)으로 준 셈이다. 계절적 비수기인 6~8월 거래도 주춤할 것으로 보여 당분간 매매시장 침체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소득집계의 투명화로 과세형평을 바로잡겠다는 순기능보다는 국세청 과세자료 활용에 대한 우려감과 소득 노출로 인한 준조세(국민연금, 건강보험료 등) 인상을 꺼리는 목소리가 높아지며 주택구입을 유보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임대소득 과세는 세입자의 조세 전가로 이어질 것이. 임대주택 공급부족이 만성화된 수도권 도심 일부는 집주인이 과세분을 임대료 및 관리비 상승분에 포함시키거나, 연말정산 경정청구로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을 알면서도 일단 월세세액(소득)공제를 신청하지 않는 조건의 임대차 계약을 세입자에게 요구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봉급생활자보다 근로소득과 무관한 자영업자나 과세미달자, 월세소득공제 대상이 아닌 총급여 7000만원 이상 고소득자를 우선해 임대차하겠다는 집주인도 있다고 한다. 향후 부과될 세금 부담을 감안해 세액공제 신청을 안 해도 될 세입자만 가려서 받겠다는 뜻이다.

주택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은 정부가 임대소득 과세의 투명성을 강조한 측면에서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 하지만 급작스러운 세원 양성화와 어떻게 활용할지 모르는 과세자료 노출에 불안해하는 유주택자들의 심리를 헤아리지 못했다.

이미 부동산시장은 주택가격 상승으로 큰 자본이득을 기대하기 어려운 저성장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국지적인 전세난과 공공 임대주택의 재고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다주택자들을 임대주택 공급자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 은퇴자 또는 생계형주택 소유자의 임대소득에 대해선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유연한 과세제도 개선이 수반돼야 한다.

6월 본격적인 소득세법 개정 이전인 이제부터라도 시장의 고통을 해소해야 한다. 시장 충격을 고려해 소규모 영세 임대인의 임대소득 비과세기간을 2년 유예에서 3~4년 유예 등으로 늘리든지, 2000만원 이하로 책정된 분리과세 기준도 3000만원 이상으로 올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부분이 어렵다면 종합소득 분리과세 단일세율(14%)을 소득세 최저세율인 6% 수준으로 낮추는 방향도 고려할 만하다. 특히 임차인의 전세물량 선호를 고려할 때 2주택자 전세 간주임대료에 대한 과세는 실효성이 빈약하다고 본다. 설익은 정책설계는 부동산시장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경제 전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시장의 목소리에 좀 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함영진 |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

주택임대소득자 분리과세


■ 주택임대시장 양성화가 관건… 흔들리지 말고 추진

최근 주택임대소득 과세 완화 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주택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에 이어 후속대책이 발표된 지도 3개월이나 지났지만 유독 이 부분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지난 3·5 보완대책만으로도 혜택이 엄청나다는 생각이 들지만 모두가 내 맘 같지는 않은 것 같다. 국토교통부 장관의 과세 완화 검토 발언을 접하고 3·5 보완대책을 다시 살펴봤다. 여기에 따르면 연간 월세 임대소득 2000만원 이하의 2주택 보유자는 앞으로 2년 동안 세금과 건강보험료를 물지 않아도 된다. 또한 2016년부터 과세하되 필요경비공제율을 최초 45%에서 60%까지 올렸고, 14%의 세율로 분리과세를 약속했다. 여기에 과거에 탈세한 세금도 묻지 않겠단다. 이만하면 과세보다는 혜택에 가깝다.

일각에서는 주택임대소득 과세로 인한 세 부담이 ‘주택시장을 침체시킬 만큼 과하다’고 한다. 정말 그러한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난 3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임대소득 과세원안을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다른 소득이 2000만원 이하이면서 월세 임대소득이 1000만원(월 최대 83만원) 이하인 2주택 보유자의 경우 필요경비공제(최대 600만원)와 기본공제(400만원)가 많아 사실상 임대소득세 부담이 없다. 다른 소득이 2000만원 이하이면서 월세 임대소득이 1000만~2000만원(월 최대 166만원)인 경우에도 역시 필요경비공제(600만~1200만원)와 기본공제(400만원)로 실효세율은 3% 내외다. 다른 소득이 2000만원 이상이면서 월세 임대소득은 2000만원 이하인 경우도 기본공제는 받지 못하지만 필요경비로 최대 1200만원까지 공제되기 때문에 실효세율은 최대 6.16%에 불과했다. 앞서 나열한 혜택에 그리 높지 않은 실효세율까지, 세 부담은 결코 과하지 않았다.

현재 주택시장의 상황은 어떠한가. 지난달 15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주택거래량 자료에 따르면 4월의 주택매매건수는 9만2691건으로, 전년 동월 대비 16.6% 늘었고, 5년간 평균치보다 21%나 높다. 정부가 주택임대소득 과세 방침을 발표한 이후에도 꾸준히 늘어나 3·4월 거래량은 7만4575건으로 전체 80%가 넘는다. 2월26일을 전후한 3개월 전국 아파트 가격 상승률도 각각 1.11%, 0.37%로 침체와는 거리가 있었다. 결국 과도한 세 부담도, 주택시장의 침체도 없었으니 둘 사이의 상관관계 역시 희박하다고 봐야 한다. 임대소득 과세 부담으로 인해 주택시장이 침체되니 과세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2주택자 집에 세들어 살면서 월세를 내는 근로자들에게는 소득공제 축소를 비롯한 각종 과세 강화 조치를 펼치면서 이보다 형편이 나은 집주인들에게는 엄청난 세금지원책을 내미는 게 옳은지 말이다. 그리고 묻고 싶다. 과연 그들이 세금을 줄여주면서까지 우리 사회에서 보호받아야 할 계층인지, 이마저도 부족하니 혜택을 확대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펼치는 정부를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말이다.

주택임대차 선진화 방안의 핵심은 민간임대시장 양성화다. 주택임대소득 과세 방침을 견고히 유지하면서 다주택 소유자들을 매입임대나 준공공임대 사업자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주택임대소득 과세 방침을 경기 대책 수단으로 사용할 게 아니라 어떻게 주택임대시장을 양성화할 것인지 인식할 수 있는 전체 로드맵을 고민해야 한다. 더 이상 흔들리지 말고 발표한 대로 추진해주길 바란다.

<신원기 |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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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는 잊을 수가 없다. 온 국민의 가슴에 든 멍울이 채 가시지 않은 가운데 브라질월드컵 개막이 성큼 다가왔다. 한국 축구의 명물이 된 월드컵 거리응원을 두고 얘기들이 분분하다. “국가의 상중에 거리응원이란 이름으로 축제판을 벌이는 것은 우려스럽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힘든 만큼 일상도 소중하다”며 “응원을 통해 다시 힘을 낼 수 있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마음은 한결같지만 거리응원을 바라보는 시각은 조금 다른 것 같다.

■ 힘든 만큼 일상도 소중… 응원 통해 힘을 낼 수 있다

초기의 거리응원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조별예선 첫 경기 멕시코전을 앞두고 ‘붉은 악마’ 회원들이 광화문 사거리에 모인 게 거리응원의 시초입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경기장에 못 간 시민들이 서울광장에 자발적으로 모인 것을 계기로 전국으로 확산됐고 이후 축구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벌어지는 국가대표 경기 때 자연스럽게 거리응원이 진행되면서 하나의 문화로 성장했습니다.

처음에 자발적으로 모여 시작된 거리응원이 규모가 커지자 국제축구연맹(FIFA)은 규정까지 만들어 ‘공개 장소 시청권’(Public Viewing)이라는 명목으로 수수료를 받고 판매하고 있습니다. 물론 FIFA 후원사 보호라는 명분입니다. 문제는 돈만 내면 어떤 기업이든 거리응원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겁니다. 2006년, 2010년 전국적으로 기업의 상업적 거리응원이 극에 달했습니다. 결국 2010년 서울광장을 선점한 대기업 때문에 붉은 악마는 서울광장 거리응원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서울시의 중재로 서울광장은 ‘노브랜딩’이 됐고 ‘비상업적’을 전제로 서울광장 거리응원이 진행됐습니다. 올해도 서울시와 비상업적인 서울광장 거리응원에 대한 협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4월16일 세월호의 아픔이 발생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너무나 가슴이 아픈 세월호 말입니다. 같이 월드컵을 즐겼을 세월호의 아이들.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많은 분들은 ‘시끄러운’ 거리응원을 걱정하십니다. 상업적 이벤트 공간에서 술먹고 춤추는 놀자판 거리응원에 익숙해져 있으니 그런 걱정은 당연한 것인지 모릅니다. 술에 취한 젊은이들, 연예인 지망생들의 튀기 위한 노출 경쟁 등…. 어딜 봐도 지금 분위기 속에서는 달갑게 보이지 않습니다.

붉은 악마는 치유의 거리응원을 생각해봤습니다. 왜 거리응원이 시끄러워야 하는가. 차분한 거리응원, 시민들과 함께하는 조용한 거리응원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2002년 전 세계는 우리의 거리응원을 보면서 성숙한 시민 의식에 놀라워했습니다.

잊혀질까 두렵습니까?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월드컵이 시작되면 세월호는 묻힌다고…, 잊혀진다고…. 월드컵이 끝나면 아시안게임 같은 큰 이슈들은 계속 생깁니다. 그렇다고 여러분들은 세월호를 잊을 수 있습니까? 과거 백화점이 무너지고, 한강 다리가 끊어질 때도 우린 지금처럼 분노하고 슬퍼했습니다. 한데 우린 분노하고 슬퍼만 했지 잊어먹는 우를 범했습니다. 이제는 성숙해질 때라고 생각합니다. 혹자는 이야기합니다. 대한민국을 외치기 부끄럽다고. 저는 감히 말합니다. 대한민국은 잘못이 없다고. 오히려 대한민국에 부끄럽습니다. 붉은 악마 응원의 상징인 “대한민국” 구호에는 선창이 있습니다.

“작지만 강한 나라, 자랑스러운 나의 조국” “대!한!민!국!”

무엇이 강한 나라일까요? 우리에게 대한민국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욕하고만 있을 순 없습니다. 일상생활에서의 강함이 국민의 무서움이고 국가의 힘이 됩니다. 그것이 강한 나라, ‘선진국’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저의 사랑하는 아들 민재에게 그런 ‘대한민국’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거리응원의 창작자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IMF 시절 금융위기를 겨우 벗어나며 심신이 지쳐 있던 국민들은 2002년 거리응원을 통해 잠시 쉬고 있던 심장을 다시 뛰게 했고 남녀노소 구분 없이 “대한민국”을 외쳤습니다. 2002년 이후 잠시 정체성을 잃었던 거리응원 문화.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전 국민이 우울해하고 지쳐 있는 지금 치유의 거리응원이 될 수는 없을까요. 전 국민이 모여 기쁨을 나눴듯이 슬픔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붉은 악마는 조심스럽게 ‘치유’로서의 거리응원을 국민들에게 제안해 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염원을 담아 우리 대표팀도 힘을 내주길 바랍니다.

<정기현 | ‘붉은 악마’ 대외협력팀장>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D-100 대한민국 응원 출정식’


■ 단원고 아이들의 희생 ‘함께 기억하는 자리’ 돼야

안타까운 세월호 참사 후 계절은 훌쩍 봄을 건너뛰었고 벌써 때이른 여름에 접어들었다. 며칠 전에는 어린 혼들을 기리는 49재가 있었다. 어렵사리 부모와 친지 곁으로 돌아온 수백명의 억울한 주검 앞에 온 국민이 참담한 가운데 아직도 여러 아이들이 차가운 바닷물 속에 갇혀 있고, 진도 팽목항 언저리에서 이들을 찾는 부모의 애절한 외침이 메아리처럼 귓전을 울리고 있다. 소설가 박완서는 멀쩡하기만 했던 청년의 아들을 창졸간에 교통사고로 잃고 그 애통한 심정을 참척(慘慽)의 고통과 슬픔으로 절절히 넋두리하면서, 당시 88올림픽이 여전히 열리리라는 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기에 사랑하는 친구들, 선생님과 함께 즐거운 수학여행 길에 나섰던 수백명의 안산 단원고 아이들을 더는 웃으며 가슴에 품을 수 없는 부모와 친지의 애통한 마음이야 그 무엇으로도 헤아릴 길이 없다. 그 분들의 바람대로 나 또한 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앞으로도 잊지 않고 내내 기억하려 한다.

많은 아이들이 여태 배 안에 갇혀 있고 유족들은 물론 온 국민의 슬픔이 여전한 와중에 뜬금없이 소비심리 위축과 경제위기를 언급하면서 국면 전환을 꾀하고자 했던 대통령에게 여론은 공감 능력의 부족을 질타했는데, 정치권과 사회 일각에서도 이제는 슬픔을 거두고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한편 일리가 있고 맞는 말이다. 가족의 불운한 일을 겪은 어릿광대가 북받치는 슬픔을 참으면서 무대에 올라 자신이 맡은 공연을 끝마쳐야 하는 장면에서 비롯된 말이 세간에 자주 회자되는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이다. 해리 골든이 쓴 유명한 에세이의 내용이다.

그렇다. 이 슬픈 상황에서도 우리는 할 일을 해야 한다. 집에서 웃으며 아이들을 돌봐야 하고, 직장에서 맡은 일을 해내야 하고, 책임이 있는 정부는 죄인의 심정으로 이 같은 참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환골탈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때마침 공교롭게도 4년마다 돌아오는 월드컵 경기가 성큼 눈앞에 다가서 있다. 유가족들에게는 참척의 슬픔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데도 참으로 속절없는 것이 시간의 흐름이다. 여느 사람들에게는 축구 국가대표팀이 어렵사리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쾌거를 이뤄낸 이번 월드컵 경기가 남다른 축제이자 이벤트일 것이다. 또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국정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정부와 여당에는 국면 전환을 꾀하기에 좋은 계기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마냥 들뜨고 흥분된 기분으로 경기를 지켜볼 수만은 없을 성싶다.

그렇다고 해서 다양한 차림새로 한껏 멋내고 길거리응원에 나설 많은 이들을 그저 야속하다며 타박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번 참사로 인해 세상을 등진 많은 단원고 아이들 역시 그간 우리 국가대표팀이 치러온 여러 월드컵 예선전 경기를 친구들과 함께 지켜보면서 열두번째 태극전사로 신나게 응원했을 모습이 선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응원을 해야 한다면 지금 비록 우리와는 세상을 달리하지만 여느 축구 팬들 못지않게 열심이었을 단원고 아이들을 기억하면서, 이들과 함께 응원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는 과문한 탓에 당장 마땅한 해법이 떠오르질 않는다. 이는 길거리응원을 주관하는 측에서 보다 진지하게 논의해 좋은 대안을 마련해 주었으면 한다.

붉은 악마 측에서 세월호 참사를 고려해 서울광장에서 대규모 거리응원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름 속깊은 배려에 반갑고 고마웠다. 문제만 던지고 해법은 정작 숙제로 미루어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이종수 |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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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 23일 차관회의를 열어 공무원 5급 공채(옛 행정고시) 선발규모를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축소해 2017년까지 50%로 줄이고, 50%는 민간경력자를 채용하기로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민관 유착 등 이른바 ‘관피아(관료+마피아)’로 대변되는 공직사회의 문제가 대두되면서 나온 조치다. 획일적인 공무원 선발 방식을 개선하고 공무원의 직무능력과 전문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제도 개선의 취지대로 공직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공채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과 고시 축소가 ‘관피아’ 문제의 해법이 될 수는 없다는 의견이 공존한다. 서로 다른 시각에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 암기 위주 필기시험 공직수행능력 제대로 판별 못해

최근의 안타까운 사고로 행정고시제도가 존폐의 도마에 올라 있다. 정부는 5급 공무원 선발을 ‘5급 공개경쟁 채용제도(공채, 필기와 면접)’와 ‘5급 민간경력자 채용제도(민경채, 서류와 면접)’로 운영하고 있다. 공채 폐지 논리는 행정고시 출신 공무원들이 관료사회를 지배하면서 최종적으로는 산하기관에 낙하산으로 내려가 ‘관피아’로 근무하면서 공직사회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한다는 것이다. 반면, 제도를 유지(축소)하자는 쪽은 기회균등 및 선발의 공정성·객관성 담보 문제와 함께 경력자 채용제도로 자칫 ‘스펙’ 중심의 특정 계층이 다수 진출해 공직사회가 부와 권력을 가진 집단의 ‘전유물’이 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논리로 현재의 공채제도를 상당 부분 축소하고 민간공채를 확대하자는 입장이다. 첫째로 공채제도는 지나치게 암기능력을 중시하는 필기 시험제도다. 복잡성과 전문성을 특징으로 현대행정은 공무원들에게 전문가적 능력을 요구하고 있으나, 현재의 필기시험은 5급 감독자 직위에 맞는 전문성과 기획·분석능력을 측정하지 못한다. 둘째로 현재의 필기시험은 공직수행능력을 제대로 판별하지 못하고 있다. 시험성적과 근무성적 간의 상관성이 높지 못한 것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셋째로 고시출신들은 동기, 선·후배 간의 집단적 사고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정책 구상이나 활발한 토론, 비판적 논의를 제약한다. 넷째로 고시제도는 능력보다 기수로 승진하는 문화를 가져온다. 그래서 우수한 공무원이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터부시하고, 자기 능력의 70%정도만 발휘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신인 것처럼 여겨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고시 서열로 인해 퇴직 후 선배를 밀어주고 후배를 끌어주는 봐주기 문화가 소위 관피아로 변질될 가능성을 높게 한다.

그러나 하나의 제도가 모든 문제를 해소하지는 않으며, 모든 제도는 양날의 칼처럼 사용하는 자에 따라 그 효과는 천양지차다. 하나의 제도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제도의 장점을 융합하는 지혜가 중요하다. 따라서 민간경력자채용을 확대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제도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직렬별로 다양한 분야의 경력자나 전문가를 상시적으로 선발해야 유능한 민간인들이 공무원으로 근무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둘째, 단지 학위나 자격증 같은 화려한 스펙이 아니라 채용 분야에서 근무한 실적과 능력을 엄정하게 평가해 선발하고, 능력에 따른 승진과 신분보장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민경채와 유사한 개방형 공모직위제도는 폐지하거나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무늬만 화려한 제도가 아니라 유능한 공무원이든 민간인이든 능력으로 경쟁해 채용되고 근무할 수 있는 제도로 거듭나야 한다.

다만, 나름의 장점을 지닌 공채제도를 완전히 폐지하는 것은 곤란하다. 화려한 스펙을 쌓아 공직에 진출하는 것이 불가능한 소외된 계층에게도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필기시험의 과목과 출제 내용을 개선해 부분적으로 유지한다면 우수한 능력을 가진 다양한 계층에게 고위공직 진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이제 기수나 서열이 아닌 보다 엄정한 근무성적평가로 능력과 실적을 평가받아 우수한 공무원이 승진하는 공직사회로 변모시켜야 한다. 생활급이 아닌 능력급을 확대해 능력있는 공무원에게 보상을 확대하고 정년 보장 등의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 정치적 영향을 받지 않고 공무원의 채용, 임용, 훈련, 평가, 순환배치, 퇴직 등을 장기적으로 연구하고 운영할 수 있는 가칭 ‘국가인재관리위원회’의 설립·운영을 제안한다.

<백종섭|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한 고시생이 고시학원 광고를 보고 있다.


■ 전관예우가 ‘관피아’ 양산… 공직자 윤리정책 개혁부터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정부는 최근 정부조직 개편과 공무원 채용방식의 변화 등 관료사회의 개혁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많은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은 행정고시, 좀 더 정확히 말하면 ‘5급 국가직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의 폐지 혹은 축소론이다. 이러한 정부방침은 마치 관피아 문제 등 공직사회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 줄 묘수인 것처럼 회자되고 있다.

이른바 ‘관피아’ 문제는 5급 공채 출신 엘리트 관료들이 현직에서 고위 공직을 독점하고, 퇴직 후 준정부기관이나 공기업, 민간기업·협회 등에 광범위하게 재취업함으로써 민관 유착과 관료부패를 양산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5급 공채를 폐지하거나 채용규모를 대폭 줄여서 민간경력자로 대체하면 이런 관피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정부안의 논리이다. 더하여 정부는 민간경력자 채용의 확대가 공무원의 부족한 전문성 문제도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첫째, 관피아가 발생하게 된 원인이 5급 공채 때문이라는 주장의 오류이다. 관피아의 원인은 주로 민간기업이나 이익집단, 심지어 사립대학들까지도 자신들의 업무영역에 규제와 감독을 행사하는 정부 부처 퇴직공무원을 임원이나 협회장, 총장 등으로 영입하여 사실상 로비스트로 쓰려는 의도와 전·현직 고위공무원들의 집단화된 이기주의가 결합한 결과이다. 따라서 5급 공채 자리를 7급 공채 출신이나 민간경력자로 대체하더라도 그들이 고위공무원이 된다면 여전히 관피아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관피아 문제는 고위공무원들이 자신이 갖고 있던 권한을 퇴직 후에도 전관예우로 보상받으려는 심리를 민간기업이나 이익집단들이 교묘하게 활용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고위공무원으로 성장한 민간경력자 출신이 도덕성이 결여되어 있다면 공채 출신보다 더 심한 관피아의 폐해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관피아 문제의 해법은 고위공무원들이 공익을 위해 제대로 사용해야 할 정당한 정부규제나 감독 권한을 개인의 이익을 위해 부당하게 사용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전관예우 관행을 척결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런 관행이 발붙이지 못한다면 민간기업이 독과점 규제를 피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 출신 공무원을 영입하지 않을 것이고, 사립대학들이 교육부 관료를 총장으로 모셔가지도 않을 것이다.

둘째, 민간경력자 채용을 확대하면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공무원의 전문성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의 허구성이다. 공무원의 전문성이 축적되지 않는 것은 공채나 특채 어떤 경로로 채용되더라도 전문성을 계속 축적하고 업무에 활용할 수 없게 하는 폭넓은 순환전보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점과 같은 직급의 전보 대상 직위 간 권한 차이가 매우 크다는 점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는 이런 순환전보시스템을 없애기 위해 현행의 계급제적 인사행정체제를 직위분류제적 인사행정체제로 변경하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수십만개에 이르는 정부 전체 직위에 대한 전면적인 직무 분석과 평가가 선행돼야 하기에 직위분류제를 도입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른바 관피아로 통칭되는 관료사회의 집단적 이익추구행위와 공무원의 전문성 부족 문제가 5급 공채제도에서 비롯됐다는 진단은 잘못됐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관료집단이 사적 이익추구에 사용하도록 방치하는 공직자 윤리정책의 근본적 개혁과 관련 법령의 정비에 먼저 나서야 한다.

<진재구 | 한국인사행정학회장(청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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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축산식품부가 ‘2013년 동물보호 및 복지 실태 조사 결과’를 최근 공개했다. 지난해 버려진 애완동물은 9만7000마리로 이 중 절반이 열흘 내 ‘안락사’되거나 ‘폐사’했다. 농식품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은 동물보호센터의 수용 능력에 한계가 있어, 예산이 늘지 않는 한 안락사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동물보호시민단체는 농식품부가 유기동물 살처분을 줄이려는 근본적 대책 없이 안락사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유기동물 안락사를 바라보는 양측 주장을 들어봤다.

■ 동물 상태·관리 여력 따라 불가피한 면 있어

반려동물 산업이 발전하면서 유기동물이라는 사회적 문제도 동시에 생기게 됐다. 한때는 주인의 사랑을 받으며 지낸 동물이 주인의 사정으로 버림받고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동물보호소라는 낯선 환경에 보내지게 된다. 새로운 좋은 주인을 만날 수도 있지만 질병으로 죽거나 안락사를 당하는 상황도 생기게 된다.

유기동물하면 떠오르는 단어 중 하나가 안락사이다. 생명을 죽이는데 찬성·반대를 논한다는 것이 이상할 수도 있지만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하고 향후 개선점에 대해 고민해 본다면 좋은 논쟁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지금 동물병원에서 수의사로 근무하고 있지만 수년간 동물보호소 수의사로도 일했다. 열악한 상황을 바꿔보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지만 현실은 그리 쉽지 않았다. 많은 생명에게 기회를 주기도 했지만 내 손으로 안락사를 한 동물도 많았다. 생명을 끊기 위해 들어간 곳이 아니라서 한동안 정신적으로 힘든 날을 보냈다.

길에서 만난 새끼 고양이나 유기견을 동물보호소에 신고하면 향후 어떤 조치를 받게 되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다. “혹시 안락사되는 거 아니에요?”라는 물음이 가장 많았는데 필자는 이에 대해 “좋은 상황이 될 수도 있고 안 좋은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해주곤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다시 동물을 데리고 가는 사람도 있었고, 그중에는 유기동물의 실제 주인인 경우도 있었다. 본인이 데리고 온 동물이 안락사 조치가 된 사실을 알고 오열하며 항의한 경우도 있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동물보호소는 공간과 예산이 한정되어 있는데 신고로 들어오는 개체는 매일 발생한다. 건강한 동물이 대부분이지만 교통사고 당해서 골절상을 입은 동물, 전염병에 걸려서 들어오는 동물, 임신과 분만을 해서 들어오는 동물, 심장질환과 백내장 등이 있는 동물 등 관리가 쉽지 않은 경우도 많다. 모두 잘 관리되어 새 주인을 만나게 해주면 좋겠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동물보호소는 대부분 적은 인력으로 많은 개체를 관리하고 있으며 질병관리 등이 취약하다. 물론 최선을 다해서 좋은 상황을 만들려고 하지만 안락사라는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다.

안락사보다 더 주목받아야 하는 부분은 자연사라 불리는 병사이. 보호소에 들어오는 동물은 심한 환경 스트레스와 함께 전염성 질환에 취약한 상태이다. 입소 10일쯤 호흡기 질환이나 다른 전염성 질환에 걸려 치료를 받다가 병사하거나 안락사를 당하는 상황이 된다. 병사는 동물보호소가 얼마나 질병관리를 잘하고 있는지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로 활용돼야 한다.

동물보호소는 유기동물에 인도적인 처리, 동물보호교육 등을 할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지만 유기동물 문제를 전부 해결할 수는 없다. 유기동물 문제 해결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LES(Legislation·법령, Education·교육, Sterilization·개체수 조절) 개념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강력하고 체계적인 동물보호법 운영, 동물등록제, 인도적인 동물보호소 운영, 동물 관련인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동물보호교육 활성화, 중성화 수술 홍보, 판매업과 번식업 등의 규제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순간에 좋아질 수 없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유기동물 문제뿐 아니라 반려동물 산업 발전을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부분은 개의 법적인 지위를 통일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개는 반려동물로 보호를 받는 개와 축산 농민의 수익 창출을 위한 개로 구분되어 있으며 동물과 관련된 정책도 이를 구분하고 있다. 식용 목적의 개농장, 비인도적인 번식업자, 사설 동물보호소 등 모두 불법적인 요소가 비슷한 상황이며 생계와 동물보호 부분이 여기서도 충돌하고 있다. 생존권 부분은 고려하되 지속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 정부나 지자체, 민간에서 유기동물 문제를 떠안을 수 있는 역량은 부족하지만 각자 역할을 충실히 하면 유기동물 안락사 문제를 좀더 발전적으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명보영 | 버려진 동물을 위한 수의사회 회원·광주 주주동물병원 원장>


■ ‘어쩔 수 없다’는 핑계… 생명경시 풍조 없애야

“일하면 자유를 얻을 것이다.(Arbeit macht Frei)”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에 써 있는 기만적인 문구이다. ‘보호센터’의 이름 아래 유기동물의 47.4%를 10일 만에 죽이는 우리 사회 유기동물보호소의 기만과 닮았다. 유기동물이 극도의 공포와 위험에서 벗어나 ‘보호’되어야 할 쉼터는 거꾸로 ‘죽으러’ 들어가는 곳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15일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작년 유기동물의 수는 9만7197마리고, 이 중에 건강하게 들어왔다 스트레스와 병에 걸려 죽는 수가 2만2204마리, 유예기간 10일이 지나도 가족이나 입양자가 나타나지 않아 ‘안락사’ 혹은 ‘인도적 처리’란 이름으로 ‘고통사’, ‘살처분’ 되는 수가 2만3911마리이다. 연간 110억원을 쓰면서 하는 ‘보호’ 활동이 절반에 가까운 동물을 죽이는 일이다. 그럼에도 농식품부는 ‘동물복지 의식 높아지고 있다’는 제목으로 자료를 발표했다. 전년에 비해 유기동물 수가 2% 감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총수는 감소했어도 폐사와 살처분의 비율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안락사는 0.1%포인트 늘었다. 이로써 안락사를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매우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자료의 제목은 시민의 ‘동물복지 의식은 높아지고 있지만 국가 정책은 역행하고 있다’로 나왔어야 했다.

전국의 유기동물보호센터는 361개, 수용능력은 약 5만마리이다. 수용능력의 배에 이르는 유기동물이 발생하는 것이 현실이다. 세월호 사태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는 오늘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가슴을 후벼파듯이, ‘어쩔 수 없다’는 말이 동물의 생명을 짓누른다. 정말 어쩔 수 없는가?

시설 부족은 안락사 불가피론의 이유가 될 수 없다. 왜 시설확충 대신 살처분을 택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한 마리당 10만원씩 지급되는 지원금은 시설 규모에 맞게 동물들을 보호하기보다 새로운 ‘10만원’을 위해 이미 수용된 동물을 밀어내도록 부추긴다. 그 돈으로는 건강검진도 어려워 수용된 유기동물은 방치되고, 10일 후 살처분 정책이 죽음의 콘베이어벨트를 돌린다. ‘이윤보다 생명’을 외치는 오늘날 이윤, 효율 앞에 생명이 어떻게 발가벗겨지는지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태도에서 투명하게 드러난다.

보호소의 빈자리를 채우는 수원지는 번식장과 경매장이다. 이곳을 통해 최소 연 24만마리의 반려동물이 쏟아져 나온다. 반려인구가 18%에서 주춤하고, 개의 총수가 줄어드는 추세에서 과잉생산과 대량공급은 동물유기의 최초이자 근원적인 이유이다. 어디서나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한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소비문화를 바꾸지 못한다. 생산과 공급을 통제하는 정책으로 유기동물 발생을 줄이고, 사지 않고 입양하는 문화를 넓히고, 새끼만 낳다 죽어가는 동물을 없애는 게 절실하다. 그 위에 ‘No Kill’ 정책이 채택되어야 한다.

미국에서 노킬운동을 촉발한 에드 더빈은 “유기동물보호소는 집 없는 동물의 마지막 방어선이다. 만일 보호소가 유기동물을 대신해서 싸워 주지 못한다면 보호소라고 부르면 안된다. 보호소는 안전한 피난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빈의 노력으로 미국의 동물보호단체는 노킬정책을 수용하고 있으며, 2020년 안락사 종식을 목표로 활동 중이다.

독일 노킬정책의 성공 뒤에는 우리와 다른 동물의 법적 지위가 바탕에 있다. 독일 동물보호법 제1조 1항은 ‘동물과 인간은 이 세상의 동등한 창조물이다’. 따라서 ‘합리적 이유 없이 동물을 해할 권리가 인간에게 없다’로 시작한다. 이 정신을 바탕으로 대량생산과 판매를 규제하고 있다. 즉 독일에는 ‘애견숍’이 없다. 보호소에서는 중성화 수술을 의무적으로 실시한다. 개의 반려인은 그에 따른 세금을 기꺼이 내고, 이 돈은 보호소 운영비용으로 사용된다.

다른 생명을 대하는 태도는 인간 생명을 대하는 태도와 연결된다. 폭력이 대상의 타자화에서 시작되듯이 동물은 인간중심주의 질서 속에서 타자로 구성된다. 동물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것은 결코 동물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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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가 최근 민간사업자가 보유하고 있는 과밀억제구역의 택지에서 주택을 건설할 때 전용면적 60㎡ 이하 소형주택을 일정 비율 이상 건설하게 한 의무 조항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국토부는 이미 주택시장에서 소형주택의 수요가 많아 의무로 하지 않아도 충분히 공급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도시의 균형 발전과 서민형 주택 보급을 위해 여전히 소형주택 의무 건설이 필요하다는 반론도 나온다. 국토부의 소형주택 건설 의무 폐지를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의 대표적인 전문가에게 주장의 근거를 들어봤다.

■ 주택시장 상황 변화… 민간부문 자율성 보장을

정 부는 민간사업자가 보유하고 있는 택지에서 건설하는 주택(재건축·재개발사업으로 건설되는 주택 제외)에 대해 소형주택 건설 의무를 폐지하는 내용의 ‘주택조합 등에 대한 주택규모별 공급비율에 관한 지침’ 개정안을 마련해 시행할 예정이다. 당초 소형주택 건설 의무제도의 도입은 민간시장에 자율적으로 맡길 경우 중대형 위주의 주택만 과도하게 건설해 주택수급의 왜곡을 초래하고, 서민주거 불안정을 야기한다는 우려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정부는 주택시장의 여건 변화로 이 제도의 유지에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소형주택은 공공부문에서 공급하고 있고, 민간부문에서는 시장의 수요 특성에 따라 자율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 러한 조치에 대해 일부에서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60㎡ 이하 소형주택 공급이 크게 줄어 서민의 주거불안정을 확대시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상황을 고려할 때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 민간부문뿐 아니라 공공부문 등 모든 영역에서 폐지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으나 민간부문, 특히 자체 사업을 위한 택지에만 적용하는 것이어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소형주택 건설 의무제도의 폐지는 당연한 수순이다. 첫째, 중대형 주택에 대한 선호는 주택경기 활황기에 뚜렷하게 나타난다. 중대형 주택일수록 매매차익이 커 부담능력에 관계없이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향후 주택시장에 과거와 같이 활황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의견을 보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주택시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실수요에 기반한 안정적 단계에 진입했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주택가격이 오른다고 해도 급격한 상승은 없을 것이며, 거래와 가격의 안정적 유지 또는 증가가 예상된다. 실수요를 근거한 시장구조 아래서는 지불능력을 넘는 주택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의 주택시장 상황을 보면 소형주택은 선호가 늘고, 수요의 증가에 따라 가격도 중대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르는 경향을 보이며 공급량도 늘고 있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60㎡ 이하 주택의 인허가 비중은 2007년 26.2%에서 2010년 32.0%, 2012년 41.2%로 커졌다.

둘째, 소형주택의 선호도 증가는 가구구조의 변화에 기인한다. 1~2 인 가구의 증가는 소형주택 선호시장을 꾸준히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1~2인 가구 비중은 2012년 50.5%에서 2014년 52.7%, 2020년 58.5%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1~2인 가구의 증가는 소형주택 수요를 늘릴 것이고, 이에 따라 소형주택 의무비율 없이도 소형주택 공급은 자연스럽게 뒤따를 것이다. 셋째, 중소형 주택의 ㎡당 가격이 대형주택 가격보다 높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는 모든 지역에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 하위시장의 특성에 따라 소형주택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이 늘고 있다. 사업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지역에서 중소형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사업성이 높기 때문에 정부가 규제하지 않아도 중소형 주택을 더 많이 공급하게 된다.

넷째, 그동안 소형주택 건설 의무비율은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에만 적용해왔다. 2008 년 금융위기 이후 주택시장을 보면 수도권은 침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반면 지방은 주택시장이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였다. 이러한 여건에서도 지방 주택시장은 소형주택 건설 의무비율 규정 없이도 자율적으로 균형을 유지했다. 5대 광역시의 사례를 보면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주택규모별 증가율이 소형은 268%, 중형은 53.6% 각각 늘어난 반면 대형은 50.1% 감소했다. 규제 없이도 시장여건에 따라 수급이 이뤄진 것이다. 따라서 가구소득과 가구 구성, 주택시장 여건 변화에 따라 주택규모에 대한 선호가 달라지므로 주택 규모를 지역시장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 제적으로도 주택정책을 통해 공급되는 주택 규모 자체를 통제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도 이제 민간부문은 시장에 맡길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다만 모니터링은 필요하며, 일률적 규제가 아닌 인센티브를 통해 소형을 공급하도록 유도해 최소한의 우려를 줄여야 할 것이다.

<김태섭 | 주택산업연구원 정책연구실장>


■ 재건축 활성화 노린 것… 지자체에 결정 맡겨야

최 근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기업의 이윤 극대화를 위한 무분별한 규제 완화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목격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물결을 타고 안전, 위생, 도시, 건축 등 인간의 생명과 삶의 질을 결정하는 부문에까지 규제 완화의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 규제 완화는 경쟁력 제고, 민간 자율성 증대, 일자리 창출 등과 같은 선의의 목표를 전면에 내세우기 때문에 엄청난 부작용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본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국토교통부는 부작용이 예상되는 또 하나의 규제 완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국토부가 지난 4월29일 ‘도시정비법’ 시행령안으로 입법예고한 재건축사업의 소형주택 의무화 비율 완화 조치가 그것이다. 그 동안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주택정책 중에는 목돈 안 드는 전세주택, 월세 세액공제 등과 같이 현실과 동떨어진다고 비판을 받거나 후속 수정대책을 발표한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실패한 정책의 목록에 또 하나를 추가하려고 한다.

국 토부는 지난 2월 올해 업무계획 보고를 통해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폐지와 함께 재건축사업에서의 소형주택 의무비율 규제 완화 조치를 부동산 시장 ‘정상화 조치’의 일환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과밀억제권역에서 300가구 이상의 주택단지를 재건축하는 사업 시행자는 정비사업으로 공급하는 전용면적 85㎡ 이하의 주택을 전체 주택 중 60%까지만 공급하면 된다. 그동안 서울시와 경기도가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조례를 통해 60㎡ 이하의 소형주택을 20%까지 건설하도록 했던 근거조항 자체를 삭제해버렸다.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소형주택에 대한 수요가 증대하고 있어 소형주택의 건설을 의무화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주택건설업계가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위해 줄기차게 주장해온 것이었다. 결국 이 규제를 폐지해 재건축사업의 수익성을 높이고, 재건축사업을 활성화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 렇다면 소형주택 의무화 비율의 폐지가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닌지를 따져봐야 한다. 우선, 소형주택의 부족이 우려된다. 정부는 60㎡ 이하 소형주택의 공급비율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 중 대부분이 도시형 생활주택처럼 초소형 주택이다. 재건축사업을 통해서라도 2~3인 가구가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을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 둘째, 강남·강북 지역 간의 주택가격 격차는 더욱 확대될 것이고, 강남지역은 ‘그들만의’ 최고급 주거지가 될 것이다. 강북지역의 경우 중대형 주택에 대한 수요도 적고 소형주택의 면적당 가격이 오히려 더 비싸기 때문에 이번 조치가 별로 영향이 없을 수 있다. 반면, 강남지역에서는 중대형 주택의 면적당 가격이 훨씬 높기 때문에 중대형 주택만 집중 공급될 수 있다.

셋째, 소형주택의 비율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조례 위임의 근거를 없애버림으로써 지자체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크다. 이번 조치로 가장 영향을 받게 될 서울시는 지난 3월20일 소형주택 의무화 비율 완화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반대의견을 밝혔다. 다 양한 주택수요를 반영하고 기존 주거지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에 중앙정부는 누구를 위해 주택정책을 추진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넷째, 이번 조치로 재건축사업의 불확실성은 커질 것이다. 60㎡ 이하의 소형주택 비율에 대한 조례 기준이 없기 때문에 소형주택의 적정한 비율을 재건축단지별로 정비계획 수립이나 심의 과정에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현재 강남지역에서 사업을 추진 중인 13개 재건축구역에는 전체가구의 약 70%인 1만2000여가구가 60㎡ 이하의 소형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2030년 서울의 1~2인 가구 비중은 6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소형주택 의무 공급 규정은 규제 완화라는 정책목표 달성이나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명분으로 폐기할 것이 아니다. 도시의 다양성 확보와 지속가능한 주거지 관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앞으로 지자체가 소형주택의 공급비율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조례의 위임규정을 유지하도록 시행령 개정안을 철회해야 한다.

<변창흠 | 세종대 교수·한국도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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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사고를 통해 재난에 대비하는 정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재난·안전의 컨트롤타워에 대해서는 전담부처를 설치해 효율적이고 강력한 통합 재난대응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국무총리 산하에 국가안전처(가칭)를 신설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국가안전처 신설을 놓고 명령체계가 다른 여러 부처와 기관들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하기 위해 ‘격상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입장과 ‘세월호 참사가 빚어진 철저한 원인 규명이 없이 조직개편으로 해결하려는 탁상공론’이라는 지적이 엇갈리고 있다.

■ ‘5분 대기조’같이 즉시 출동 가능한 전문가 집단 필요

우리는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지는 대형 재난을 수없이 경험했으면서도, 또 여객선 참사라는 비극을 맞았다. 세월호 참사는 과거 양적 성장지상주의 경제정책에 밀려 안전과 같은 질적 성장을 소홀히 한 결과다. 숱한 재난사고 때마다 책임자 처벌로 얼버무리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하는 식의 사후대책이 얼마나 큰 화를 불러 오는지 이번 사고가 여실히 입증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민 행복의 필수요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기존의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이름까지 바꿨다. 그런데도 또 대형 참사다. 이번 참사 역시 인재(人災)요, 관재(官災)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대한민국 안전 관련 시스템을 새로 짜야 한다. 정부에도 재난·안전 관련 부처가 있긴 하다. 그러나 엇박자 소리만 요란할 뿐 시스템이 도통 작동하지 않아 그런 부처가 있어봐야 무용지물이다. 실종자 수색 과정에서 안행부와 국방부, 해양수산부, 교육부, 소방방재청, 해양경찰청이 보여준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국민 모두를 분노케 했다. 정부는 서둘러 범부처 사고대책본부를 꾸렸지만 총괄사령탑은 국무총리에서 해수부 장관으로 갈팡질팡했다. 또 사고가 발생하자 해수부, 안행부, 교육부, 해경, 지자체 등이 별도 사고대책본부를 차리는 등 대책본부만 10여개에 달했다. 그럼에도 컨트롤타워는 없었다.

재난 발생 시 초동대응은 필수다. 명령체계가 서로 다른 이질적인 부처 사람들에게는 체계적이고 일사불란한 지휘체계가 먹힐 리 만무하다. 정부의 종합적인 재난 관리와 감독기능을 위해 보다 격상된 국가 종합재난안전관리기구가 필요한 때다. 필자는 정부의 재난에 대한 혼선과 무능력한 대응을 보면서 국가 차원의 재난 대응 시스템을 전면 재구축하기 위해 총리실 산하 ‘국가재난안전관리처’ 신설을 정부와 정치권에서 가장 먼저 제안한 바 있다. 비록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소를 잃더라도 외양간을 고쳐야 또 다른 소를 잃는 우는 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침 박근혜 대통령도 ‘국가안전처’ 신설을 약속했다. 적극 환영한다. 그런데 정부는 안행부 등 기존 부처의 재난·안전 관리 기능을 떼어내 국가안전처 산하로 일원화시키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그런 식이어서는 안된다. 각 부처에 있는 기존 재난·안전 관리 기능의 근간을 흔들면 또 다른 혼선이 빚어진다. 손을 대더라도 그것은 최소 수준이어야 한다.

우리에게 기구가 없어서 재난 관리를 못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 분야에 대한 전문가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난 발생 시 현장을 일사불란하게 진두지휘하는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것이다. 각 부처 재난 관리 기능을 떼어내 국가안전처로 모아두면 소속 부처끼리 뭉치는 또 다른 ‘관피아’를 싹틔우는 토양이 될 수 있다.

국가안전처는 재난이 발생하면 군의 ‘5분 대기조’와 같이 즉시 출동이 가능한 전문가 집단이 되어야 한다. 사고별로 유형화해 특공대처럼 상시 반복훈련을 하는 등 현장 대응력을 키워야 한다. 세월호 사고 당시 침몰하는 배의 창을 부수고 선내에 진입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그 ‘천추의 한’은 이런 전문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워싱턴에 연방재난관리청(FEMA) 본부를 두고 권역별 10개의 지방사무소와 재난 발생 후 즉각 투입할 수 있는 5000여명의 상시재난 구조 지원 요원을 두고 있다.

지금 우리 정부가 추진 중인 여러 부처의 재난 및 안전 관리 기능을 떼어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 기능의 일부는 두고 상시 출동 가능한 기동타격대 또는 군의 특공대 성격의 특수조직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어야 한다. 미국의 FEMA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또 재난이 발생하면 국가안전처장의 요청으로 경찰과 육·해·공군, 그리고 전문가들이 분야를 나눠 입체적인 작전을 펼치되 그 작전권은 국가안전처장으로 일원화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이철우 | 새누리당 의원>


굳은 표정의 안전행정위 전체회의 (출처 :경향DB)


■ 철저한 원인규명을 통해 시스템이 작동케 해야

박근혜 대통령이 4월29일 국무회의에서 국가적 재난 관리를 총괄 지휘할 가칭 ‘국가안전처’ 신설 계획을 밝혔다. 세월호 침몰사고 구조 과정에서 컨트롤타워 부재로 안전행정부, 해양수산부, 해양경찰청 등 관련 부처 간 공조가 이루어지지 않아 체계적이지 못한 대응이 부른 세월호 참사에 대한 사후 대책이다. 박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 야심차게 정부 부처를 개편하면서 ‘행정안전부’ 명칭을 ‘안전행정부’로 바꾸고,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개정하면서까지 안전 관리를 강조했다. 그리고 사회 재난 관리는 안행부 장관이, 자연 재난 관리는 소방방재청장이 관장하는 이원화 체계를 만들었다. 또 새로운 정부 운영 패러다임을 내세우며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 ‘국민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겠다’며 정부 3.0 정책도 내놓았다.

결과는 모두 탁상공론이었다. 세월호 침몰사고 초기 안행부 장관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두고 총괄토록 했으나 사고 관련 주무부처인 해수부와의 공조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다. 사고대책에 한계가 노출되자 이틀 만에 대책본부장이 총리로 격상됐고, 얼마 되지 않아 다시 해수부 장관으로 교체됐다. 사고 대응과정을 보면 정부 간 개방, 공유, 소통, 협력 어느 것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민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는 공허하기만 했다. 급기야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정부 대책으로 ‘국가안전처’ 신설을 들고 나온 것이다. 사고 발생 13일 만에 대통령이 서둘러 밝힌 대책이다. 원인 분석을 제대로 하고 내놓은 대책이 아니다. 신뢰성에 의문이 드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이번 정부의 구조 대응 실패의 근본 원인은 재난 관리 비전문가로 구성된 안행부에 컨트롤타워를 설치한 박근혜 정부의 조직개편, 해양경찰청의 직무 태만, 현장을 주도해야 할 해수부의 무능으로 요약된다. 이번 참사에서 드러난 문제는 재난 대응 기관과 시스템이 부재한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작동될 수 있도록 준비하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재난 상황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해결책은 재난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대응 시스템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만약 해경, 해수부가 본연의 업무에만 충실했다면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무능한 정부의 능력이 도마에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사고만 나면 새로운 기구를 만든다. 그리고 그뿐이다.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실전 시스템을 검증하기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의 근본 원인부터 차근차근 규명해야 한다. 이론적으로 아무리 좋은 시스템이라도 현실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근본 원인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고려해야 할 사항은 오랜 관행으로 굳어져 있는 공무원 조직의 체계와 문화다. 아무리 좋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구축해도 입력은 사람이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결재·보고 과정에 시간을 허비하고, 책임을 회피하려고 선행조치를 하지 않으며, 공적이 누구 몫이 될까를 먼저 고민하고 행동하는 관료 조직 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한 아무리 좋은 시스템이라도 문제점은 드러날 수밖에 없다.

물론 문제가 발생하면 대응책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충분한 검토와 원인 규명이 전제돼야 한다. 국정조사가 필요한 이유다. 세월호 참사로 불거진, 국가 재난안전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은 문제에 대한 개선을 또다시 조직개편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면 1년 전 정부의 탁상공론을 되풀이하는 것에 불과하다. 더불어 대책 마련을 정부가 독단적으로 주도해서도 안된다. 적어도 이번 대응책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와 전문가들도 함께 참여해 공론화해야 한다. 그래야 정부안의 단점을 최대한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성난 민심부터 수습하자는 식의 급조된 일방적 대응책은 국민을 안심시키지도, 실질적 효과를 담보하지도 못할 것이다.

<이찬열 |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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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 세월호 참사로 교육부가 전국 초·중·고교의 1학기 수학여행을 전면 중지시키면서 수학여행의 존폐 논란이 뜨겁다. 수학여행을 없애자는 쪽에서는 현실적인 위험 요소가 있고, 사회·교육적인 환경이 크게 변했으며, 여행이 일상화된 시대에 수학여행의 교육적 수명이 다했다고 말한다. 반대로 수학여행 자체를 없애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것으로, 체험활동 확대라는 시대적 추세에서 더욱 안전하고 교육적 효과도 높은 수학여행 개선책을 만드는 쪽으로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 여행·체험학습 일상화로 교육적 수명 다해… 위험요소도 늘어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했던가. 이번 세월호 참사가 그런 경우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수백명의 학생들이 진도 앞바다에서 선박 침몰로 희생됐다. 그동안 크고 작은 수학여행 사고가 있었지만 이번이 가장 큰 사고다. 비극 중의 비극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안전시스템 확인은 물론 현재 관성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수학여행 폐지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교육적 수명을 다했다는 점에서다.

첫째, 사회·교육적 환경이 크게 변했다. 오늘날에는 과거와 달리 교통수단의 발달로 여행이 일상화되었다. ‘대여행의 시대(grand tour)’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고 있다. 현재 국내 여행만 해도 매년 4000만명 정도가 여행에 나선다. 국외 여행객 수도 1500만명을 넘어섰다. 주말과 방학을 이용한 교육여행도 보편화된 지 오래다. 가족여행은 아이들을 위한 ‘교육여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행의 효과도 수학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것 이상이다. 이 정도면 ‘학교에서 이론적으로 공부한 내용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으며 체험한다’는 수학여행의 본질적 교육효과를 충분히 충족하고도 남는다. 과거와는 달리 사회적 인프라 시설 미비로 인한 장애가 이미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현재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체험학습만으로도 수학여행의 효과를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다. 학교에서는 다양한 현장 체험학습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프로그램 역시 균형 잡힌 지·덕·체 활동을 통해 인격도야를 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들이다. 바로 이런 체험활동을 통해 이미 수학여행의 교육목적을 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체험학습은 수학여행과 달리 비교적 소규모로 이루어지는 활동임을 감안할 때, 대규모 이동에 따른 학생들의 안전문제 해소와 교육적 효과를 동시에 거둘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수학여행 유지론자들은 ‘수학여행을 통해 추억과 우정을 쌓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체험학습 활동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추억을 만들고 우정을 쌓을 수 있다.

셋째, 수학여행에 따른 현실적인 위험요소를 통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사회가 발전하고 복잡해질수록, 위험요소도 비례해 늘어나게 된다. 과거 농경사회와 현대사회를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속에서 위험요소를 적극 통제해야 하는 개인의 책임도 커지게 된다. 사회 전반의 시스템이 정교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건 더 큰 위험으로 나타난다. 이번 수학여행 참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위험요소에 대한 선장의 통제 실패가 결과적으로 침몰이라는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이 같은 경우는 이번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수없이 발생한 수학여행 사고들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수학여행의 존폐가 거론되었던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그동안에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지만 교육현장에서는 별 고민 없이 관성적으로 실시해왔다. 사실, 이쯤 되면 ‘철지난 낡은 옷을 버리지 못하고 곰팡이만 피게 하는 꼴’이 아닌가. 일부에서 주장하듯 사고가 두려워 혹은 사고가 날 가능성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이번 사고는 단순히 계기를 제공했을 뿐이다. 이미 사회·경제적으로 수학여행을 폐지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지금의 수학여행은 전근대적인 ‘집체교육(集體敎育)’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교육적 수명을 다한 수학여행을 이번 기회에 폐지해야 한다.

<한병선 | 교육평론가(문학박사)>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로 탄천주차장에는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다. (출처: 경향DB)


■ 학년 단위 대규모 수학여행, 안전하고 교육적으로 개선해야

학교 현장은 제자들과 동료, 선배 교사를 잃은 비통함에 수업 등 교육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다보니 아이들은 우울증을 보이거나 눈물을 흘리는 경우까지 있어 제자들을 위로하거나 상처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고 제자들도 큰 충격과 상처를 입게 되어 안타까울 뿐이다. 교육부의 1학기 수학여행 전면 중단조치 전후에 교육계 안팎에서 수학여행 존폐 논란이 일고 있다. 수학여행길에 올랐던 단원고 학생들의 희생이 큰 만큼 ‘수학여행이 과연 교육적으로, 사회적으로 필요한가’에 대해 진지한 논의는 필요하다. 또 “학생 안전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는 진리처럼 학생들의 학교 밖 교육활동이 점차 늘어가는 상황에서 앞으로 학생들의 안전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임도 맞다. 문제는 수학여행의 잠정 중단이 당면한 우리 사회의 잘못과 학생의 안전을 보장하는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는 데 있다. 현재 학교는 수학여행뿐만 아니라 예정되어 있던 소풍, 어린이날 행사, 창의적 체험활동도 거의 취소하거나 연기하고 있다. 아이들은 손꼽아 기다려왔는데 “갑자기 안 하겠다”고 하니 입이 삐죽 나온 상태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잘못한 걸 왜 우리가 피해를 봐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선생님들은 이런저런 말로 위로도 하고 설득도 하고 있지만 교사로서 제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큰 참사에 따른 불안심리, 과거와 달리 여행이 활성화되었다는 시대변화를 감안하더라도 수학여행 자체를 없애는 것은 본질을 호도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선장 및 선원의 직업윤리 부재와 낮은 책임감, 우리 사회의 총체적 안전사고 불감증과 재난대응 시스템 부족이다. 사고 발생을 염두에 두고 수학여행이나 체험활동 자체를 아예 없애자고 하는 것은 학생들을 교실에만 둬야 한다는 얘기밖에 안된다. 창의적 체험활동은 ‘창의성과 인성을 겸비한 미래지향적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기존의 특별활동 및 재량활동을 통합해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 새롭게 도입된 교과외 교육과정이다. 중학교의 경우 체험활동(자율, 동아리, 봉사, 진로)으로 3년간 306시간을 운영하도록 되어 있다. 또 현 정부 들어 시범운영하고 있는 자유학기제에서도 진로탐색 활동 등 다양한 체험활동을 권장하고 있다. 그간 역대 정부가 학생들의 학교 밖 활동을 적극 권장하는 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학교와 교사는 늘 학생 안전사고에 대한 부담과 불안감을 늘 가져왔다. 이번 참사와 같이 큰 재해나 안전사고 대응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교사 입장에서는 안전사고 매뉴얼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이제 수학여행 존폐 논란보다는 수학여행을 안전하며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관습적으로 이루어져온 학년 단위의 대규모 수학여행 방식 개선은 필요하다. 최근 교총이 256명의 초·중·고 교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학년 단위의 대규모 수학여행 폐지에 대해 64.7%가 찬성했다. 그렇다면 학급별, 주제별 소규모 수학여행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교육부도 이미 4학급 또는 150명 이하 소규모 단위의 테마형 수학여행을 권장해왔고, 일부 학교는 그렇게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수학여행의 비용 증가, 수학여행지 숙소 및 교통편 선정 등 준비과정의 어려움 및 교사 업무 증가, 다른 날짜·장소로 할 경우 학사일정 조정의 어려움, 면학 분위기 저해, 인솔교사가 적어 학생 안전사고 예방의 부담감 가중 등으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교사가 수업을 하면서 교육적 효과가 큰 장소와 숙박지 선정과 안전문제, 계약 등을 모두 책임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결국 이는 시·도교육청이나 교육지원청이 나서 지자체와 협의해 다양한 테마여행지를 선정하고, 지자체는 안전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때 활성화될 수 있다. 이번 기회에 교외 교육활동을 비롯한 국가 전체의 안전대책이 범국가적 차원에서 마련되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최대욱 | 한국교총 부회장(전남 장흥용산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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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둘러싼 논란으로 또다시 반쪽짜리 기념식을 치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5·18 관련 단체와 유족들은 1997년 기념일 지정 이후 줄곧 대통령까지 참석해 함께 불러온 이 노래를 2009년부터 갑자기 부르지 못하게 한 것은 국가보훈처의 억지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보훈처는 대한민국 및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가사의 노래를 어떻게 정부가 주관하는 기념식 기념노래로 지정할 수 있느냐는 보수단체들의 반대를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 민주화운동의 진실 담은 노래… 공식 지정은 국민들의 요구

5·18민주화운동 기념행사가 시작되는 5월을 불과 보름 앞두고 ‘임을 위한 행진곡’에 또다시 국민의 눈과 귀가 집중되고 있다. 왠가?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신속하게 기념곡으로 공식 지정하겠다던 국회에서의 답변은 ‘빈 말’이 되었다. 5·18의 진실을 인정하기 싫거나 종북몰이에 재미를 느낀 사람들의 반대 의견이 국민여론으로 둔갑되고 있는 탓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가 전남도청 진압작전에 희생된 윤상원씨와 노동야학 활동가로서 유명을 달리한 박기순씨의 영혼결혼식을 위한 노래극인 ‘빛의 결혼식’ 중 마지막 합창곡으로 작곡되었다. 1981년 이 노래의 작곡자인 김종률씨는 요즈음 보수세력의 종북공세와 색깔 시비에 참담한 심경을 감추지 못하고 비방광고를 게재한 단체를 고소하는 문제를 두고 변호사와 협의 중이라 한다. 우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공식기념곡 지정을 왜 요구하는가.

첫째, 이 노래는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야만적인 군사독재의 폭압을 끝내고 자유와 민주의 대동세상이 올 때까지 희생된 영령의 뜻을 받들어 투쟁할 것을 결의하고 있다. 동서고금에 희생과 투쟁 없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역사는 없었다. 둘째, 이 노래는 5·18민주화운동의 역사 그 자체이다. 신군부에게 처참하게 진압된 5·18 이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15년간의 투쟁 과정에서 전 국민이 애창했던 노래다. 그리하여 5·18특별법이 제정되는 등 승리한 민주화운동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 당시 불렸던 ‘라 마르세예즈’를 프랑스 국가로 지정하여 당시의 의미를 현재까지 계승하는 것이 남의 일만은 아니다.

셋째, 정부의 태도가 돌변했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1983년부터 5·18기념식 등에서 제창되어 왔고, 1997년부터 2008년까지 정부주관 공식기념식에서도 제창됐다. 2009년부터 5·18 왜곡 공세에 국가보훈처가 물러서서 합창은 가능하되 제창은 불가하다거나, 새 노래 제정을 위한 예산 편성을 하는 방식 등으로 꼬이기 시작했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부가 문제를 만들고 있는 형국이다. 넷째, 공식기념곡 지정은 국민적 요구다. 지난해 6월 국회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5·18기념곡 지정촉구결의안’이 여야 의원 158명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지난 2월 전국시·도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와 지난달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등 민의 대변기관인 국회와 기초·광역의회 모두가 기념곡으로 원하는 노래다.

다섯째, 한류 민중가요를 우리가 부정하고 있다. 이 노래는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아시아의 여러 국가에서 불리고 있다. 홍콩은 ‘사랑의 행진곡’, 대만은 ‘노동투쟁가’, 태국은 ‘솔리대러티’ 등으로 번안하여 애창하고 있다. 티베트,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지의 민주·인권을 요구하는 현장에서도 여전히 불리며 감동을 주고 있다. 여섯째, 국가보훈처 소관 기념일 8개 가운데 5·18민주화운동만 기념곡이 없다. 3·15의거, 4·13임시정부수립일, 4·19혁명기념일, 현충일, 6·25, 10·8재향군인의 날, 11·7순국선열의날은 기념노래가 있다. 반대 의견이 높아 국론분열 우려가 높아서라고 한다. 정부는 이미 국가기념일, 국립묘지, 유공자예우, 가해자 사법처리, 세계기록유산 등재 등 법적·제도적으로 확립된 5·18민주화운동의 갈등을 관리하고자 하는 것인가, 갈등 조장을 하고자 하는 것인가. 국민여론을 수렴하는 것인가, 반대의견을 수집하여 홍보하는 것인가.

독일은 국민 선동죄를 적용해 유대인 학살과 아우슈비츠의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사람에게 최고 5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하고 있다. 유네스코가 ‘민주주의와 인권분야’의 기록유산으로 5·18기록물의 등재를 받아들이며 “한국 민주화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한 것은 물론, 필리핀과 베트남 등 동아시아의 국가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냉전종식에도 기여했다”고 평가한 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에게도 역사에 대한 존중과 예의가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음해와 왜곡이 끊이지 않더라도 ‘임을 위한 행진곡’은 계속 제창될 것이다.

<송선태 | 5·18기념재단 상임이사>

묘역 나서며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하는 집회참가자들(출처 :경향DB)


■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적 메시지 담아 안돼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정부가 주관하는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의 기념곡으로 지정되어서는 안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노래의 가사에 대한민국 및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노래의 가사를 정리하면 “새날(새로운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다가 먼저 죽은 동지의 뜻을 받들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고 목숨 걸고 투쟁하자”가 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새날’, 즉 새로운 세상의 의미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1980년대 이 나라 운동권이 선창하고 대중이 무심코 따라 부를 때의 새날은 운동권에게는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혁명이 성공한 세상’이고 대중에게는 ‘민주화된 세상’을 의미했다. 자유민주주의가 높은 수준으로 실현된 현시점에서 그 노래를 부르면 그 노래가 말하는 ‘새날’은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과 판이한 세상’을 의미하게 된다.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과 판이한 세상’은 운동권에게는 여전히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혁명이 성공한 세상’이다. 대중에게는 막연하지만 ‘대한민국의 현존 체제와 다른 체제가 지배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운동권이 생각하는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이 성공한 세상’과 대중이 생각하는 ‘대한민국 현존 체제와 다른 체제가 지배하는 세상’은 차이가 있겠지만, 대한민국의 기존 국가상황과 다르고 자유민주주의와는 다른 체제가 지배하는 세상이란 점에서는 공통된다. 따라서 새로운 세상이 실현될 때까지 흔들리지 말고 목숨 걸고 투쟁하자는 것은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부정적 메시지임이 분명하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에 내포된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메시지는 그 가사를 빌려온 모시(母詩) ‘묏비나리’를 분석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는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 중의 일부를 떼어온 것이다. ‘묏비나리’가 독자에게 주는 메시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남한 청년 운동가들은 처음부터 목숨을 던질 각오를 하고 운동에 나서서 살인마 구조인 남한 사회구조를 뒤엎어야 한다. ②혁명투쟁을 하다가 죽는 것을 두려워 말고 죽더라도 부활하여 민중의 혁명의지를 격발시켜 분단의 벽과 미제국주의를 무너뜨리고 죽어야 한다. ③투쟁하다가 죽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향해 새로운 세상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고 목숨 걸고 투쟁하라는 호소가 된다. ④혁명이 일어나면 민중과 힘을 합쳐 가진 자들과 이 세상의 껍질을 깨버리고 해방 세상을 이뤄내야 한다.

‘묏비나리’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③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혁명투쟁을 하다가 먼저 죽은 선배 투사의 영혼이 후배 투사에게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고 목숨 걸고 투쟁하라”고 촉구하는 대목이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과 ‘묏비나리’가 전달하려는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메시지는 대한민국의 상황과 통일에 대한 백기완의 생각을 들어보면 한층 더 분명해진다. 백기완은 그의 저서 <백기완의 통일 이야기>에서 대한민국을 ‘온갖 나쁜 짓을 해서라도 돈만 거머쥐면 왕이 되는 사회’요, ‘남의 나라 군대가 지배하는 창피하고 더러운 식민지’라고 주장하고, 자본가들을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존재로 비난했다. 통일에 관해서는 ‘우리들의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장애는 주한미군이다. 통일을 하려면 주한미군부터 몰아내야 한다’ ‘우리의 통일은 일하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백기완 같은 사람이 작성한,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체제에 부정적 메시지가 담긴 가사의 노래를 어떻게 정부 주관 기념식의 기념곡으로 지정할 수 있겠는가?

<양동안 |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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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법 개정으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국내 기업의 등기임원 연봉이 올해 처음 공개됐다. 그러나 일부 재벌 총수들은 연봉 공개를 피하기 위해 등기임원직을 내려놓는 등 제도의 취지가 훼손되고 있어 이를 보완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개 대상을 비등기임원으로 확대하고, 연봉 지급 기준 등도 밝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계를 중심으로 연봉 공개에 반대하는 여론 또한 만만찮다. 보수 공개를 통해 얻는 국가경제적 실익이 없고, 마녀사냥식 신상털기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국민 세금으로 월급 받는 공무원도 아닌데 민간기업 대주주의 소득을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억지라고 주장한다.

■ 보수 공개 대상 확대 필요… 산정 기준·방법 공시해야

지난달 31일까지 12월 결산법인들이 사업보고서를 제출함에 따라 개별임원 보수 공개가 최초로 이뤄졌다. 이는 지난해 5월 개정된 자본시장법에 따른 것이다. 개별임원 보수 공시제도는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시행하고 있는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국제 표준)’로 늦었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개별임원 보수를 공시하는 취지는 임원의 성과에 따른 적절한 보상이 책정되는지 여부를 판단하고, 임원의 유인 구조를 회사 전체의 이익과 일치되도록 하는 데 있다. 특히 그룹 단위로 운영되는 한국 대규모 기업집단의 경우 개별기업의 성과가 아닌 그룹의 성과 내지 총수일가에 대한 충성도에 따라 보수가 책정되는 사례가 많았는데 개별임원 보수가 공시되면 이러한 문제점을 일부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기대가 컸던 것일까. 사업보고서 제출 직후 경제개혁연구소가 상장회사 전체의 보수현황을 분석한 결과, 대상 상장회사 1666개사 중 개별임원 보수를 공개한 회사는 418개사였고, 연간 보수액이 5억원을 넘어 보수를 공개한 임원은 전체 8579명 중 640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회사 수로 보면 25.1%, 임원 수로 보면 7.46%만이 개별임원 보수 공시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는 반대로 전체 상장기업의 75%와 임원의 92.5%는 보수 공시 대상에서 제외돼 있음을 의미한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법에서 임원 보수의 공시 방식을 임원별로 하도록 변경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위기업 중 일부 임원에 대해서만 공시가 이뤄진다면 이는 규제로 인식될 것이며, 이를 회피할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위한 손질이 시급하다.

첫째, 미등기임원 중 보수액 상위자 일부를 포함하는 등 공시 대상의 확대가 필요하다. 현재 보수액이 공시되고 있는 재벌 총수일가는 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되는데, 최근 국회에서 자본시장법 개정이 심도 있게 논의되자 상당수 총수일가는 자신들의 보수가 공개될 것을 우려해 등기이사직에서 사퇴하고 미등기임원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개별임원 보수 공시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이 보수액을 기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미국과 같이 최고경영자의 등기 여부를 불문하고 보수액 상위 3인 등 최소 5인 이상의 보수를 공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둘째, 개별임원 보수의 구체적인 산정 기준과 방법에 대한 공시가 이뤄져야 한다. 개정된 자본시장법에서는 개별임원 보수를 공시하는 경우 보수 산정의 기준 및 방법에 대해서도 아울러 공시하도록 했으나 이를 제대로 지킨 회사는 찾아볼 수 없다. 정부에서 시행 방안을 논의하면서 보수 산정의 기준과 방법에 대한 공시를 기업의 자율에 맡겼기 때문이다.

기업들로 하여금 보수 산정 기준, 방법 및 절차를 마련하도록 의무화하고, 몇 가지 주요 사항에 대하여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기업공시서식 작성 기준을 개정해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개별임원 보수 공시는 임원의 성과에 따른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고, 임원들로 하여금 지배주주가 아닌 회사에 충성하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으며, 더 나아가 주주와 투자자들의 회사에 대한 경영판단의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어렵게 도입된 제도인 만큼 그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보완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강정민 |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원>



■ 민간기업 임원 보수 공개 실익 없어… 공기업에 한정해야

지난해 5월 개정된 자본시장법에 따라 올해부터 연봉 5억원 이상인 등기임원의 보수가 사업보고서를 통해 공개됐다. 예상했던 대로 임원 보수액 과다를 두고 논란이 과열되고 있다. 심지어 미등기임원의 보수와 보수산정 기준을 법으로 공개하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요구도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보수 공개를 통해 얻는 국가경제적 실익이 무엇인지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단지, 기업 경영 투명성 제고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사실 경영 투명성 제고란 영업비밀을 최대한 노출시키라는 것인데, 영업비밀을 가능한 한 노출하지 않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는 유리할 수 있다. 따라서 최근 상장사 임원 보수 공개 확대와 관련해서는 최소한 투자자와 채권자 보호를 위한 순기능 중심의 검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최근 논의는 이보다는 오히려 국민의 알권리만 충족시키려는 정치적 선전으로 변질되는 듯해 안타깝다.

이러한 우려가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외국 법제와 비교해 볼 때 합리성이 결여된 ‘묻지마식 폭로’로 우리 사회가 사분오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원 보수 공개 입법안이 처음 나왔을 때 논거는 미국이 이미 1934년 증권거래법을 제정할 당시부터 상장사 임원 보수를 공개해왔으며, 심지어 2008년부터는 임원 보수를 제한하는 입법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일본은 물론 독일 등 유럽 국가도 연봉 상위 임원의 보수를 공개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국가들이 연봉을 구체적으로 공개한 데는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즉 이들 국가 중 그 어느 나라도 주주들이 임원의 보수를 제한하는 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1934년부터 임원의 보수를 공개하도록 했지만, 사실상 이사회만이 보수를 정하도록 돼 있어 주주들이 임원 보수를 통제할 방법이 없었다.

심지어 2007년 미국 금융위기 당시 정부 구제기금 수혜액 기준 상위 10대 그룹 최고경영자(CEO)의 평균연봉이 2500만달러에 달하는 등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오바마 정부가 2008년 공적자금을 투입받는 기업들에 한해 CEO 연봉은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도록 법을 제정한 것이다. 유럽 국가들 역시 임원의 보수는 이사회의 권한 사항이므로 이를 통제하는 차원에서 임원의 보수를 공개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상법 최초 제정 당시인 1962년부터 이사의 보수는 주주총회에서 정하도록 했있다(상법 제388조). 즉 미국이 2008년에 부실기업 CEO들의 도덕적 해이를 차단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를 우리는 이미 50여년 이전부터 시행해왔던 것이다.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최대 흑자기업인 삼성전자 CEO의 연봉이 미국 부실기업 CEO 연봉의 5분의 1에 불과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서는 등기임원이 아닌 5억원 이상 수입자들의 소득도 공개하는 입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중에는 회사로부터 보수를 받지 않고 이익배당과 기타소득만 발생한 주주들도 있을 것이다.

국민 세금으로 월급 받는 공무원도 아닌데, 민간기업 대주주들의 소득이 5억원을 넘었다고 공개하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아무래도 억지스럽다. 그럼에도 공개해야 한다면, 공적자금을 받는 기업들에 한해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전삼현 | 숭실대 법학과 교수기업법률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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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발생 1위인 갑상샘암을 둘러싸고 과잉진료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굳이 눈에 보이지 않는 암까지 진단해서 암환자를 양산하고, 불필요한 수술까지 받게 하는 것은 큰 문제라는 주장에 대해 작은 암이라도 조기에 진단해서 빨리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갑상샘암은 완치율(5년 생존율)이 99%에 이르고 있지만 치료 과정에서 환자들이 겪는 스트레스와 고통은 심각한 수준이다. 주요 대학병원에는 갑상샘암 확진을 위한 검사와 수술을 받으려는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 국민 4만명을 매년 ‘암 환자’로 만들어 공포 속에 살게 할 텐가

28세 여성이 결혼을 앞두고 건강검진을 하던 중 갑상샘 초음파검사에서 0.9㎝ 크기의 혹이 발견되었다. 세포검사 결과 암으로 판정되었고, 건강했던 예비 신부는 순식간에 ‘암환자’가 되어 본인과 예비 신랑, 가족들은 엄청난 고민에 빠졌다.

최근 검진기술의 발전으로 작은 종양도 쉽게 진단할 수 있게 되면서, 갑상샘암 환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 2011년 기준 4만명 이상의 국민이 갑상샘암으로 새로 진단받고 위와 유사한 고민을 경험하고 있다. 2001년도 갑상샘암 발생자가 4410명이었던 점과 비교하면 10년 사이에 거의 10배 증가했다. 한국 여성 10만명당 96.8명인 갑상샘암 발생률은 세계 1위이며, 세계 2위인 미국 여성(20.0명)의 5배, 우리나라와 환경이 비슷한 인접국가인 일본(6.5명)의 15배이다. 세계보건기구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매년 새로 진단되는 갑상샘암 환자의 수는 체르노빌 원전사고 인접지역에서 갑상샘암 환자가 최고로 발생했던 해와 비교해도 3배가 넘는다.

갑상샘암에 대한 가족력이 있거나, 목 주위에 혹이 만져지는 경우 등의 고위험군이 아니면 갑상샘암 검진을 추천하지 않는 영국에서는 지난 10년간 갑상샘암 발생률이 2배도 증가하지 않았다. 영국 여성 10만명당 발생자 수가 6명 미만이고, 전체 인구 대비 사망률도 한국과 비슷하다. 이 통계자료는 조기검진이 갑상샘암 환자 수를 늘리는 데만 기여했을 뿐, 조기 검진을 통한 수술이 실제적인 사망자 수를 줄이지 못했다는 가설에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암 검진의 목적은 암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여, 완치율을 높이고 사망률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자궁경부암, 대장암, 유방암, 위암 등에서는 조기 검진 후 사망률이 감소하기 때문에 선진국에서도 조기검진을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갑상샘암의 경우, 적극적으로 조기검진과 치료를 해온 한국에서 미세 갑상샘암의 진단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수술받은 환자의 완치율은 개선된 것처럼 보이지만, 갑상샘암으로 사망한 국민의 수는 2000년 266명에서 2010년 356명으로 호전되지 않고 있다(통계청). 세계보건기구 자료상 2012년 한국인 갑상샘암의 연령표준화 사망률은 10만명당 0.5명으로 미국(0.3명), 일본(0.4명)과 유사하다.

양성종양과 유사한 성질을 가지는 갑상샘암은 대부분 생명을 위협하지 않으며, 다른 질환으로 사망하여 부검을 받은 사람 중 3분의 1에서 크고 작은 갑상샘암이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갑상샘암이 발견되면, 단지 ‘암’이라는 이유 때문에 92%가 수술을 받고 있으며, 수술을 받은 환자의 12.2%에서 부갑상샘기능저하증이나 성대마비 등의 부작용이 발생했다(한국보건의료연구원). 증상이 없는 사람에서 시행되는 갑상샘암 조기검진은 얻는 이득은 명확하지 않으나, 수술합병증과 평생 호르몬 약에 의존해야 하는 등 손해는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어느 나라도 갑상샘암 조기검진을 추천하지 않고 있다.

갑상샘암 조기검진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특별한 치료 없이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국민 4만명을 매년 암환자로 만들어 ‘암의 공포’ 속에서 살게 만든다는 것이다. 첨단 검진기기를 이용한 조기 검진이 일부 질병의 예방에 기여하고 있으나, 특정 질병에서는 건강한 사람들을 하루아침에 환자로 만드는 과잉진단의 위험을 안고 있으며 갑상샘암 조기검진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2㎝ 이하의 저위험 갑상샘암은 진단명에서 ‘암’이라는 명칭을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서두에 언급한 예비신부는 갑상샘암 초음파 검사를 반드시 받아야 했을까?

10배로 늘어난 갑상샘암 환자, 그리고 100%에 가까운 갑상샘암 완치율 이면에는 과잉진단으로 갑자기 ‘암환자’가 되어, 받지 않아도 될 고통을 받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허대석 | 서울대 의대 교수·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이대목동병원에서 가동 중인 최첨단 방사선 암치료기 '트릴로지' (출처 :경향DB)


■ 조기 진단·치료 중요한 ‘생명’을 ‘비용’ 문제로 접근하면 안돼

갑상샘암 진단 논란의 시초는 ‘갑상샘암을 과도하게 진단해서 암 환자가 급증하고, 불필요한 치료를 받게 함으로써 환자들에게 피해를 주며 경제적인 해악을 초래한다’는 일부의 주장에서 비롯되었다. 사회적으로는 큰 관심을 불러일으켜 마치 집단이기주의를 고발하는 양심선언처럼 포장되었다. 그들은 30년 전과 비교하여 갑상샘암이 30배가 넘는 발생률을 보이는 반면, 사망률은 거의 변화가 없으므로 이것은 전형적인 과잉진단에 해당한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30년 전 한국은 갑상샘암이건 다른 암이건 진단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었다. 초음파 기계는 아직 정밀하지 못했고, 갑상샘암의 진단기준도 제대로 없었다. 최근에 초음파 검사가 정교해지고, 검사 자체가 저렴해졌으며, 국민들의 관심도가 증가하여 진단이 많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들은 또 ‘요즘 갑상샘암이 과잉진단된 까닭에 불필요한 수술을 받게 된다’고 한다. 더욱이 ‘갑상샘암은 소위 순한 암이라 가만히 두어도 되고 증상이 생긴다면 그때 가서 검사해도 늦지 않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초음파 없이 증상이 발생했을 때 검사를 하고 치료를 받았던 과거의 치료율이나 사망률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영국은 의료에 관한 한 철저한 사회주의 국가로 적극적인 진단, 소위 과잉진단을 하지 않는 나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 나라의 ‘캔서 리서치(Cancer Research) UK’란 공식기구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1981∼1985년까지 갑상샘암 5년 생존율은 남자가 59.1%, 여자가 62%밖에 되지 않는다. 현재 99%를 상회하는 한국의 갑상샘암 5년 생존율과 비교할 때 한참 낮은 결과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자료가 발표된 것이 있다. 서울대에서 30년간 갑상샘암을 관찰한 결과 1990년대 이전, 1990년대, 1999년 이후의 기간으로 나누었을 때 10년 재발률은 각각 36%, 29.5%, 7.6%로 나타났다. 이것은 초음파를 이용한 조기 진단이 이뤄지기 시작한 1999년 이후 치료성적이 급격히 좋아졌음을 보여준다. 2013년 미국암협회에서 발표한 갑상샘암 5년 치료성적자료에서는 1기와 2기는 100% 치료율을 보인 반면, 3기는 93%, 4기는 51%로 감소한다. 이 자료는 초기에 치료를 하면 성적이 우수하지만 늦게 진단되어 병기가 높아지면 고치기 어렵다는 것을 말해준다. 초음파를 이용한 조기진단이 이루어짐으로써 최근의 높은 생존율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란 얘기다.

‘증상이 있는 경우에나 검사하면 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까지 든다. 갑상샘암은 대부분 특유의 증상이 없고, 아주 많이 커져서 주변에 있는 기도나 식도, 성대신경을 침범했을 때에야 비로소 증상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이미 너무 늦어서 치료가 아주 힘들고 성공률도 매우 낮아지는 위험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더욱이 급속히 자라고 난치성 갑상샘암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조기에 치료를 하면 아무 문제없이 잘 치료될 수 있는 병을 상황을 악화시킨 다음에 치료하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모든 암에서 조기 진단과 초기치료가 가장 우수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어떤 의료를 받고자 하는 것은 국민들이 스스로의 건강을 지키고자 하는 기본 권리에 해당한다. 경제·사회적인 문제로만 접근하여 비용을 따지는 이런 논리가 과연 타당한 것인가? 의학은 인간의 생명을 근본으로 생각해야 하는 학문이다. 아무리 통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타당해 보인다 하더라도 단 한명이라도 불리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 일은 비윤리적이라 규정하고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배웠으며 오늘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장항석 | 연세대 의대 교수·대한갑상선내분비외과학회 학술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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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가 지난 19일 내놓은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은 근속기간이 길수록 임금이 높아지는 연공급 대신 직무·직능급과 성과급을 늘려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40세 중반 이후 생산성이 떨어지므로 임금 상승을 억제해야 60세 정년제 도입과 고령화 추세에 비춰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연공급이 기업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시각이다. 노동계는 강하게 반발한다. 직무·직능급을 도입하면 회사 측이 자의적으로 임금을 정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지고, 경쟁을 빌미로 전반적인 임금의 하향 평준화와 극심한 노동자 차별을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 변동 상여금 늘리고 임금피크제 도입, 인건비 절감 속셈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의 핵심은 현재 연공급 임금체계에 문제가 많으니 직능급, 직무급으로 개편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최근 대법원에서 연장·야간·휴일근무에 대한 가산임금의 지급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과 여러 수당이 포함된다는 판결이 있었다. 그리고 고령화에 대한 대응으로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박근혜 두 유력 후보가 ‘정년 60세’ 공약을 들고나왔고 이 내용이 법으로 통과되어 2016년부터 시행에 들어가기로 되어 있다. 이번 임금체계 개편 캠페인은 이런 사정 변화에 대한 대응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포함된다는 대법원 판결도 예정되어 있는데, 이것까지 포함하면 기업들의 임금 부담 축소를 위한 임금체계 변경의 아우성은 더욱 커진다. 불법적인 관행의 뒤늦은 시정과 여야 정치인들의 사회변화에 대한 최소한의 조처를 견딜 수 없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다음의 명분을 들이민다. 즉 생산직 근로자의 근속연수별 임금 격차(초임 대비 30년 이상)는 3.3배로 세계 최고 수준이고 이를 줄여야 한다, 한국은 연간 2000시간이 넘는 장시간 근로 국가인데 임금체계 변경으로 이를 줄일 수 있다, 제도적 정년은 60세로 의무화되나 현재 체감 정년은 53세일 뿐이어서 정년 연장을 실질적으로 이뤄내자 등등. 일견 타당해 보인다.

좀 자세히 들여다보자. 우선 임금 격차에 대해서. 노동부가 제시하는 3.3배라는 통계치는 기업 내 임금 격차의 평균이 아니라 10인 이상 사업체 전 노동자의 임금을 근속연수별로 늘어놓아 비교한 것이다. 즉 기업규모별 격차, 정규직·비정규직 격차 등이 전부 반영되어 있다. 다른 나라도 동일한 기준 아닌가? 다른 나라는 기업규모별 격차와 정규직·비정규직 사이의 임금 격차가 한국보다 심하지 않다. 임금 격차 축소가 필요한 대목이다. 산업별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하겠다면 적극 동의한다. 법 제도도 바꾸거나 새로 정비하고 비정규직과 젊은 노동자들의 임금도 인상하고.

그러면 정작 생산직의 기업 내 임금 격차는 어느 정도일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제조업체인 현대자동차의 경우 고졸 신입사원의 시급에 비한 30년 근속 노동자의 시급은 1.7배다. 노동부와 현대차 자본은 이 정도도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해결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젊었을 때 연공급 아래에서 희생한 중고령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을 게 아니라 현행 연공급 아래에서 지나치게 낮은 초임을 노동부가 주장하는 대로 직무가치를 반영하여 인상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임금 수준을 근로시간이 아닌 생산성 또는 성과에 따라 산정하면 임금이 상승하여 근로시간이 줄어들까? 임금체계 변경이 요술방망이라도 되는가? 그렇게 생산성 또는 성과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그래서 노동자들이 높아진 임금을 받게 되어서 자발적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게 될까? 부정적이다. 법정노동시간과 연장근로에 제한을 두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직능급, 직무급하에서 실질적으로 정년이 연장될까? 그보다는 직능 등급과 직무 수행 평가 과정에서 강화될 인사고과나 차별적인 승호 승급이 퇴직을 유도하는 기제로 작동할 것으로 본다.

사실 1990년대 초중반부터 임금체계를 바꾸자는 캠페인은 정부와 자본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있었다. 그런데 이때는 짐짓 능력 있고 성과를 많이 내는 사람들을 보다 잘 대우해 주겠노라고 시늉도 하고 설득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임금체계를 변경하고 변동상여금을 늘리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인건비를 절감하자고 노골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조삼모사(朝三暮四)도 아니고 조삼모삼(朝三暮三)이다. 어느 노동자가 동의할 수 있겠는가?

<박하순 |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 브리핑 (출처: 경향DB)


■ ‘호봉·직무급’ 현 체계 사회 갈등 조장·생산성 향상 저해

최근 노동정책 환경의 빅뱅(big bang)을 맞아 이제 임금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더라도 개별 기업들이, 그리고 노사가 자율적으로 이런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그런데 개별적으로, 자율적으로 알아서 하도록 방치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임금체계 문제다. 바로 합리성과 공정성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임금체계는 저 사람은 얼마 정도를 받는 것이 합리적인가? 또는 공정한 것인가를 기본적으로 설정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

개별 노사가 임금체계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합리적이고 공정한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되어 있다. 또 노사 간 입장차가 커서 자극이 없다면 아무 변화도 시도하지 않을 수 있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발표한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은 비합리적이고 불공정한 측면의 임금체계를 보다 합리화시키자는 의도를 담고 있다. 합리화는 결국 상식에 맞으면서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해 보이고 집단 간 차별을 축소하는 방향을 포함한다. 이런 방향에서 제시되는 합리화의 내용은 기본급을 늘려서 근로자들의 생활 안정과 격차 축소를 도모하고, 기본급이 작동하는 원리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 달리 적용하는 호봉급이 아니라 업종 내에서 객관적이고 투명한 직무와 직능급 요소를 늘려 시장 공정임금을 지향한다. 또 기본급 비중이 늘면서 상여금은 비중이 줄어드는 반면에 기업 안에서는 생산성 촉진을 위해 기업실적이나 근로자 평가와 상여금 수준을 연계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기업들이 호봉급에 의존하는 내부적 이유와 판단을 일방적으로 매도할 수는 없고 또한 호봉급으로부터의 탈출을 강제할 방안도 없다. 기업별로 노사가 선택할 문제다. 다만 전체 노동시장이나 사회적으로 중도퇴직이나 해고로 이어지는 중고령자 고용불안정의 원인이 되는 인건비의 경직적 상승 및 생산성과의 괴리를 줄이고, 협력업체, 하청업체, 동종의 중소기업 근로자와의 임금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임금체계의 이중화 문제는 개별 기업 안에서만 기준이 통하는 연공급 질서하에서 바로잡을 수 없다.

원청은 호봉급, 하청은 직무급(사실 2차 하청에 가면 최저임금 대비 얼마를 더 주는 원시적 임금체계인 경우도 많다)으로 이원화되어 유사한 일을 하지만 임금은 격차가 벌어지는 문제는 기업은 물론 노조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산업 생태계를 파괴하고 사회 갈등을 조장하고 원청이나 하청 근로자 모두에게 생산성 향상의 필요성을 저해하는 불합리한 보상체계 문제는 결국 임금체계가 사회적 선택이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엇이 동일가치 노동, 동일 임금 기준에 비추어 합리적 임금체계인가? 개별 기업을 넘어서는 기준을 세우고 근로자 간 임금수준을 비교할 수 있는 임금체계는 직무급과 직능 내지 숙련급이다. 사람의 특성을 중시하는 속인주의가 아니라 속직주의의 입장에서 동일가치 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과 조응하면서도 학력주의가 아닌 능력과 실력 위주의 인적 자원 육성 차원에서 집중 개발 중인 국가직무능력표준과 병행 발전이 가능한 시장 임금체계는 직무급이라고 할 수 있다.

업종별로 노사정이 시장 표준적인 직무가치를 반영하는 기본급 비중을 크게 늘리고 직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숙련이나 직능 등급별로 추가적 임금상승이 이루어지는 결합방식이 바람직하다. 업종별 합의가 어려우면 우선적으로는 업종별 직무 분류 및 등급과 이에 대응하는 시장임금 자료를 노사정위원회에서 마련해서 노사가 자발적으로 활용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제 새로운 임금체계를 위해서는 최저임금만이 아닌 모든 수준에서 공정임금이 논의되어야 하고 공정거래위원회에 버금가는 공정임금위원회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이장원 |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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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017년 폐지될 예정인 사법시험을 그대로 유지하자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되면서 사법시험 존폐 논란이 다시 일고있다. 사법시험 존치를 주장하는 측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으로 인해 경제적 약자들이 법조인이 될 기회를 상실했다고 주장한다. 사법시험으로 배출된 법조인도 사후 교육을 통해 다양한 전문성을 기를 수 있다고 말한다. 반면 사법시험 폐지를 주장하는 측은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데도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더 이상 가난한 사람들의 사다리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변호사라는 전문가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단 한번의 시험이 아니라 로스쿨 같은 정규 교육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 로스쿨에 막대한 비용… 경제적 약자 법조인 될 기회 차단

서민의 법조계 진출을 위한 희망의 사다리가 필요하므로 로스쿨 제도와 병행해 사법시험을 계속 실시하자는 여론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사법시험 존치 또는 예비시험제도에 대한 국회 차원의 공청회와 토론회가 여러 차례 있었고 현재 예비시험법안과 사법시험존치법안이 각각 발의된 상태다. 이에 로스쿨제도를 실시한 이상 그 제도를 개선 보완하면 되지 ‘왜 굳이 다른 제도가 필요한가’라는 지적이 있다.

각 로스쿨별로 입학전형 방식이 다르고 구체적 내용을 공개하지 않으며 대부분의 로스쿨이 일정한 사회적 스펙을 갖춘 학생들의 개인적 경험이나 영어 성적 등을 참작하고, 학부 성적·법학적성시험 성적·면접 성적 등을 주요 요소로 신입생을 선발해 객관성과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점은 앞으로 개선해 나가면 해결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로스쿨제도 자체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는 다른 대안으로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다. 로스쿨 1년 학비가 국립대 1052만원, 사립대 2075만원이고 그 외 교재비, 숙식비 등을 포함하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전부를 학비에 들여야 할 정도로 큰 액수다. 또 법학전문대학원 출신만이 법조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학력 차별이다.

학력과 경제적 이유 등으로 로스쿨에 진학할 수 없는 사람들도 법조인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몇 명이 선발되느냐의 숫자 문제 이전에 공정하고 열린 통로가 있어야 한다는 차원에서 사회 어느 분야든 계층 이동을 위한 사다리가 필요하다. 누구나 원하면 도전할 수 있다는 사다리의 존재만으로도 이 사회가 열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국민들은 사다리를 통해 올라가는 사람들을 보고 싶어 하며 거기에 열광하고 힘을 얻기 때문이다.

경제적 약자를 위해 장학금 등 혜택을 계속 늘릴 수는 없으므로 로스쿨 입장에서도 대안이 필요하다고 본다. 최근 서울 소재 모 로스쿨에서 장학금 지급을 줄인다고 발표해 논란이 됐는데 로스쿨이 속한 각 대학에서도 로스쿨에만 장학금과 교원 수, 시설 등에 특혜를 주어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처럼 로스쿨을 보완할 대안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바로 사법시험 존치다.

로스쿨을 탄생하게 한 사법시험제도의 문제점이었던 과소 선발, 장기간의 시험 준비에 따르는 개인적·사회적 비용의 문제, 인재들의 사법시험 쏠림현상으로 인한 인적자원의 왜곡, 대학에서 정상적 법학 교육의 어려움 등의 보완책으로 응시횟수의 제한, 선발인원의 증원, 일정한 법학 과목의 이수 의무화, 사법연수의 전문성 강화 등이 이미 시행되고 있다. 사법시험은 수십년간 공정성이 검증되고 단점도 보완된 제도인 것이다. 원로 사학자인 한용우 교수는 2013년 1월 출간한 <과거, 출세의 사다리: 태조-선조>라는 책에서 조선왕조가 500년 이상 장수한 비결은 지배 엘리트인 관료직을 세습하지 않고, 능력을 존중하는 시험제도인 과거로 하층 사회에서 인재를 충원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교수는 노비를 제외한 평민들은 어느 벼슬길에도 제한이 없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탄력적인 사회를 유지하려 했던 것이라고 결론을 맺으며 사법시험의 사회통합적 기능을 대변했다.

2009년 당시 충분한 논의나 여론수렴 없이 여야의 사학법 개정협상과 맞물려 전격적으로 통과된 로스쿨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반성적 고려에서도 2017년 사법시험 폐지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로스쿨제도와 병행해 실시할 대안적 선발제도는 새로 만드는 것보다는 사법시험을 존치하는 것이 일본처럼 새로운 제도 시행으로 인한 부작용을 막고 위험부담을 줄이는 길이다. 성급하게 결정된 사법시험 폐지의 동일한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희망의 사다리인 사법시험을 폐지하는 것은 분명히 시기상조다.

<이정호 | 대한변호사협회 부회장>

법연수원 수료식 자료사진(출처 :경향DB)


■ 전문 변호사 배출 위해선 로스쿨 같은 정규 교육과정 필요

몇몇 사람이 사법시험제도의 존치를 집요하게 주장했지만 조만간 사그라지겠거니 생각했는데, 오히려 급기야는 사법시험의 존치를 담은 법안이 국회에 상정되기에 이르렀다.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다. 무엇보다 사법시험제도는 변호사라는 전문직업인의 배출에 적합한 제도가 아니다. 의사, 약사의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각각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정규교육 없이 시험만 합격한 사람에게 자격을 주자고 한다면 납득할 수 있겠는가. 많은 선진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주기 전에 시험을 치르게 하지만, 적어도 그 전제로 정규교육을 요구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교육이야말로 전문직을 만드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정규교육 없이 시험으로 변호사를 선발하겠다는 발상은 원칙의 차원에서 결코 수용될 수 없는 접근법이다.

다음으로 지적할 것은 사법시험제도를 주장하는 핵심적 근거다. 사법시험 존치론자들은 로스쿨제도의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로스쿨제도는 고비용의 구조여서 경제적 약자에게 변호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실질적으로 봉쇄한다고 주장하고, 따라서 경제적 약자에게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사법시험제도를 존치해야 한다고 한다. 로스쿨제도에 그러한 부정적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무엇보다 등록금이 비싸고 학생 구성에서도 학벌 좋고 돈 많은 자제의 비율이 높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법시험제도를 통해 이 문제가 해소될 수 있는지는 크게 의문이다.

그들이 말하는 경제적 약자는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아마도 기초생활수급권자 내지 차상위자이겠지만 널리 장애인, 국가유공자, 새터민, 다문화자녀도 포함될 것이다. 그런데 사법시험은 과연 이들에게 얼마만한 기회를 열어줄 것인가.

사법시험이 존치되면 전국의 모든 법대생, 빨리 변호사가 되고 싶은 유능한 일류대 학생들, 달리 가진 것은 없지만 시험이라면 도전의식을 느끼는 수많은 사람들이 달려들 것이다. 경험에 비추어볼 때 경제적 약자가 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사법시험은 많은 돈과 지적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300명 정원이면 많아야 5~10명 미만이 위에서 말한 경제적 약자에 속할 것이다. 혹자는 설사 이들이 합격을 못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기회는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소연한다. 호소력이 작지 않다. 하지만 기껏 이걸 위해 사법시험을 존치해야 하는가. 그 정도는 이미 로스쿨이 잘하고 있다.

이들 사법시험 합격자에게 사법연수원의 무상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난센스이며 불합리한 차별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예비 판검사로서 선발된 사람도 아니고, 더구나 경제적 약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비용을 받는다면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로스쿨을 하나 더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게다가 사법시험의 폐해는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는가. 사법시험은 또다시 대학교육을 피폐화시키고, 개인적 및 국가적 차원에서 엄청난 자원의 낭비를 낳을 것이다. 특히 법학 교육의 정상화를 저해할 부정적 영향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

경제적 약자는 배려되어야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로스쿨제도는 매년 100명 이상의 경제적 약자에게 무상으로 변호사가 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래도 부족하다면 늘리면 된다. 경제적 약자를 위한 로스쿨을 국립(예컨대 한국방송통신대학)으로 설치하고, 경제적 약자 중에서 국민이 원하는 만큼(예컨대 300명 또는 500명) 신입생으로 선발해 무상 또는 극히 저비용으로 변호사가 될 기회를 제공하는 방법은 어떤가. 이런 배려 없이 경제적 약자에게 그 맹렬한 사법시험에 알아서 합격하라고 하는 것은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만큼이나 무의미하고 잔인한 것이다. 결국 사법시험의 존치는 경제적 약자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면서, 수많은 부작용을 낳는 최악의 선택이 될 것이다.

<이상수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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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인 지난달 25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합리화를 거론했다. DTI는 대출 원리금 상환액이 연간 소득의 50~60%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다. LTV는 집값에서 대출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40~60% 이하로 막는 제도다. LTV나 DTI 규제를 완화하면 주택시장 활성화에는 도움이 되지만 가계부채에는 악영향을 끼친다. 금융권은 가계부채 뇌관 폭발과 금융기관 건전성 추락을 막기 위한 마지막 빗장이라며 규제 완화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반면 부동산업계는 규제를 다소 풀 필요가 있다고 맞서고 있다.

■ 달라진 주택시장… 대출 푼다고 집값 뛸 상황 아니다

얼마 전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를 두고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의 갈등이 표출됐다. 부동산시장 과열기에 도입된 금융규제가 시장 상황이 바뀐 현재와는 맞지 않다는 기재부의 입장과 경기대책이나 주택정책보다는 금융소비자 보호와 가계부채의 안정적 관리 측면에서 필요하다는 금융위의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금융규제를 완화해도 주택구입 수요가 증가하지 않으므로 가계부채 문제는 없다는 것이 기재부의 논리다. 금융위는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시장에 대출을 권장하는 듯한 잘못된 시그널을 주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주택시장을 보는 눈이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금융기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자본주의 시장 질서를 유지시키는 자금순환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은행은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대형화해 몸집이 커졌다. 금융위의 예상대로 가계부채가 금융부실로 이어지면 큰일이다. 그 큰 몸집이 무너지면 국가 경제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 정말 문제가 많은지 금융규제와 관련된 의문을 하나씩 풀어보자.

금융규제가 완화되면, 은행은 마구잡이로 가계대출을 증가시킬까?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그럴 가능성은 없다. 부실 가능성을 감내하면서 무리하게 대출을 늘리는 은행은 없다. 위기 과정을 겪으면서 은행은 몸집뿐 아니라 위험관리 측면에서도 많이 선진화됐다. 금융위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 설혹 금융규제가 없더라도 은행은 적절하게 위험을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간의 대형화, 선진화는 이러한 상황에 대비한 것이 아니었나? 정부 규제를 통해 인위적으로 보호하는 것보단 은행이 스스로 대출위험을 통제할 수 있도록 내성을 키우고,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도입 목적에 따라 금융규제는 가계대출을 안정적으로 관리했는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3년까지 가계대출 잔액은 연간 많게는 67조원에서 적게는 44조원 정도 증가했다. 주택담보대출 순증은 감소한데 반해 전체 가계대출 규모는 증가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금융규제로 주택담보대출은 줄일 수 있었으나, 가계대출 전체를 억제할 순 없었다. 반면 은행 등 예금취급기관의 주택담보대출 감소분은 고스란히 공공부문과 2금융권의 대출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공공부문은 금융규제에서 제외되므로 가계대출 관리와는 관련이 없고, 높은 금리를 부담해야 하는 2금융권 대출이 많아져 오히려 가계상환 위험은 높아졌다. 결과적으로 가계대출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당초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고, 가계상환 위험만 높인 꼴이 됐다. 금융규제 유무에 관계없이 가계부채는 계속 증가했다.

금융당국이 걱정하는 대로, 금융규제가 풀리면 주택가격이 다시 상승할까?

지금 주택시장 상황에서 구매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할 것이라 전망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전세가가 매매가 수준에 가까워져, 주택의 사용가치가 교환가치를 따라 잡았다. 과거의 주택가격 변동 패턴으로 봐서 교환가치는 이제 상승해야 하나, 매매가격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패러다임 변화를 얘기하는 전문가 의견이 없어도, 금융규제 완화가 매매가 급등으로 이어질 것을 얘기하는 사람은 이제 없다.

가계대출이 억제되어 매매가가 안정된 것이라는 주장은 일견 틀리지 않다. 다만, 가격을 안정시킨 많은 변수 중 금융규제는 그저 하나였을 뿐이다. LTV와 DTI의 금융규제는 시장 상황이 변하면서 실효성을 잃어 버렸다. 계속 규제를 유지해야 할 이유는 없는 듯하다. 규제를 벗어나 금융게임의 법칙을 체득하도록 은행에 공을 넘겨야 할 때이다. 그것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시장 상황과 맞아떨어지는 금융정책이고 금융기관의 선진화를 앞당기는 길일 것이다.

<권주안 | 주택산업연구원 금융경제연구실장>

정부의 DTI와 LTV 규제 일지 (출처 :경향DB)


■ 규제 풀면 가계부채의 질 악화… 금융 안정성 해칠 것

최근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대책이 발표되면서,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지속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LTV 및 DTI 규제가 도입된 배경은 국내 주택시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00년대 들어 주택시장이 지나치게 과열되면서 2002년 9월 LTV 규제가 전격 도입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하면서 가계의 채무부담능력이 약화되고, 이에 따라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성이 높아지면서 2006년 3월 DTI 규제가 추가적으로 도입됐다. 비록 LTV와 DTI 규제가 직접적으로는 주택시장 과열을 막기 위해 도입됐지만, 실질적으로는 가계부채 팽창 억제와 금융시스템 안정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 가계부채 총액이 이미 1000조원(1,000,000,000,000,000원)이라는 상징적인 숫자를 넘어선 가운데 더 이상 가계부채가 증가한다면 한국 경제가 스스로를 지탱하기 어려운 지경이 될 수 있다. 가계부채 증가로 인해 원리금 상환부담이 늘어나면 전체적으로 국내 가계의 소비여력이 위축되고, 이는 궁극적으로 국내 경제 활성화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사실 국내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우려는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최근에는 학계, 한국은행, 정책당국까지도 상황의 심각성을 경고하고 있다. LTV·DTI 규제를 완화하면 직접적으로 가계부채가 큰 폭으로 증가한다는 점은 이미 학계의 많은 실증분석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

혹시라도 LTV·DTI 규제의 완화로 담보능력, 상환능력이 떨어지는 대출이 증가해 가계부채의 질이 악화되면, 이는 은행 등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위협하게 된다. 만일 국내 금융회사의 건전성이 악화되면 대외적으로 국내 금융시스템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돼 국내 금융시장 및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신흥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 금융시장은 작은 충격에도 빠르고 크게 반응하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LTV·DTI 규제 완화로 국내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이 위협받으면 국내 경제 전반의 안정성에도 상당한 위협이 된다.

지금까지 LTV·DTI 규제는 가계부채의 증가 억제, 금융회사의 건전성 확보, 주택시장의 안정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국내 가계부채 문제가 질적으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으로 평가했는데, 이러한 평가가 나오게 된 핵심은 LTV·DTI 규제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LTV·DTI 규제가 도입된 이래, 규제의 수준이 주택시장의 경기 상황에 따라 다소 강화 또는 완화돼 왔지만 큰 틀은 유지됐다. 지금까지 LTV·DTI 규제가 국내 경제에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 상당기간 국내외 경제와 금융환경은 LTV와 DTI 규제 완화를 고려할 정도로 호의적인 상황으로 변하기 어렵다고 보인다. 따라서 현행대로 LTV·DTI 규제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미시적인 제도 개선 정도는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 금융당국은 젊은 세대들의 금융 제약을 합리적으로 완화시켜주기 위해 이들 대상의 DTI 산정방식을 일부 개선하는 등의 노력을 펼쳐 왔다. 이렇듯 추가적으로 불합리한 부분이 있다면 부분적인 개선안은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LTV와 DTI 규제 완화를 통해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이끌어내고, 더 나아가 경제의 활력을 얻고자 하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국내 경제의 잠재 위험을 현실화시켜 궁극적으로 향후 경제 전반에 독(毒)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혹시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할 가능성은 없는지 돌아볼 때이다.

<김영도 | 한국금융연구원 자본시장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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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학기부터 선행교육 금지법이 시행된다. 법안은 학교 시험과 학교별 입학전형에서 학생들이 배운 교육과정의 수준·범위를 벗어난 내용을 출제하지 못하게 하고, 논술·면접 등 대학 입학전형도 고교 교육과정 수준을 벗어난 내용의 출제를 금지토록 했다. 평가는 엇갈린다. 윤유진 성균관대 사교육정책중점연구소 교수는 “선행학습 내용을 학교 시험에서 출제하지 않으면 사교육의 필요성은 줄어든다”며 긍정적 효과를 주목했고, 하병수 전교조 대변인은 “반 배치고사 등 일부 관행만 해결할 수 있을 뿐, 사교육 시장으로 몰리는 원인에 대한 대책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 공교육 살리는 첫걸음 될 것… 학부모들도 환영


지난 20일 한국교육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선행학습 금지법 즉,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이다. 학교 정규 교육과정에 앞서는 교육과 평가를 일제히 금지하는 이 법안은 현 정부 출범과 동시에 활발하게 논의되었고 거의 1년 만에 통과되었다. 그러나 본 법안이 공교육의 선행학습만을 규제하고 학원 등 사교육 기관에 대해서는 광고금지만을 담고 있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등 교육계의 반응은 냉랭하다.


청와대는 이어 지난 25일,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취업할 수 있고, 취업 후에도 원하는 대학에 가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을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담아 발표했다. 일과 학습을 병행하는 제도를 도입하여 선취업·후진학을 정착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학벌보다 능력이 중시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은 비단 현 정부만이 아니었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취업에 불이익이 없기 위해서는 뿌리 깊은 학벌 중심의 사회문화적 환경변화가 선행조건이 돼야 한다.


학부모들은 원칙적으로 선행학습 금지 법안에 지지를 보낸다. 선행학습 없이 자녀를 중·고등학교에 보냈다가 낭패를 본 학부모들은 더욱 그러하다. 한 학부모는 자녀가 고등학교에 합격한 후 치른 기숙사 입사 선발시험에 나온 수학문제가 대부분 중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고등학교 문제였다고 했다. 집에 와서 우는 아이를 보고 속상했다는 얘기다. 공교육이 선행학습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이다. 공교육에서 먼저 선행학습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교육정책중점연구소의 보고서에 의하면 초·중·고 학생의 10명 중 1명은 영어와 수학에서 각각 공교육 선행학습을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입시준비를 이유로 3년의 교육과정을 2년에 마치거나 1~2주에 마쳐야 하는 단원을 심지어 10분에 끝내기도 한다. 그리고 학생 4명 중 1명은 선행학습을 위하여 사교육으로 내몰리고 있다. 


6개월 후 법률이 시행되면 초·중·고교 정규 교육과정과 방과후학교에서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교육과정 운영과 평가가 전면적으로 금지된다. 정부와 교육청은 고교 및 대학의 입학전형에서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시험 출제를 제한함은 물론 이를 위반할 경우 제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었다. 학교의 정상화 측면뿐 아니라 학생의 발달적 측면에서 선행학습 유발을 방지하는 법률은 충분히 타당하다. 독일과 프랑스 등 서방의 교육선진국에서도 선행학습을 비교육적 행위로 보고 이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교권침해이며 다른 아이들이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 때문이다.


본 법안이 갖는 긍정적 의미도 적지 않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선행학습내용을 학교시험에 출제하지 않으면, 선행학습을 위한 사교육의 필요성은 줄고 학습부담도 덜게 된다. 교사가 선행학습을 한 학생을 기준으로 진도를 나가지 않고 원리부터 차근차근 지도하게 되면 선행학습이 무익하게 될 것이다. 학부모들의 선행교육 요구를 물리칠 수 있는 근거도 된다. 


학부모들은 ‘취업에 출신 대학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리고 ‘특목고, 대학 등 주요 입시에서 점수 위주로 학생을 선발하기 때문에’ 사교육을 시킨다고 응답하고 있다. 공교육 선행학습 금지와 더불어 사교육문제 해결에 대한 적절한 규제와 후속 조치도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이다. 학부모들이 자녀 사교육의 늪에서 벗어나고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교육 문제 역시 해결되어야 한다. 본 법안이 선행학습과 사교육으로 피로해진 대한민국 학부모와 학생에게 행복한 교육으로 인도하는 등대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윤유진 | 연구교수·성균관대학교 사교육정책중점연구>


영어전문학원에서 사교육 선행학습을 하는 아이들을 풍자한 삽화(일러스트 : 사교육없는세상)


■ 입시 개혁·학원 규제 없이 학교만 단속은 한계


11월 수능 일정상, 학교는 3학년 1학기까지는 모든 수업 진도를 마쳐야 한다. 수학의 경우, 빠르면 2학년 2학기에 진도를 끝낸다. 고등학교에서 관행화되어 있는 ‘수업 당기기’ ‘수능문제풀이 수업’ 등 파행수업은 수능입시가 만들어낸 산물일 뿐이다. 교사와 학생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수능체제가 강요한 것이다. 불안 심리를 제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고등학교의 수능준비에 일정한 제약을 둔다면 학생들은 사교육에 더 많은 눈을 돌리게 될 우려가 있다. 이번 법안은 ‘학교선행시험금지법’ 정도로 불리는 것이 적합해 보인다. 예비고교신입생 대상의 방학 중 수업과 교육과정에서 벗어난 반 배치고사의 관행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법의 취지대로 결과를 기대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해 보인다. 오히려 정권의 공약이행과 공교육정상화를 끌어냈다는 국정 홍보라는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되거나 본질적인 교육개혁을 가로막는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도 있다.


학교교육을 왜곡할 뿐 아니라 거대 사교육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대학별 논술고사는 폐지해야 한다는 현장 여론이 높다. 하지만 법안으로 명시된 고교과정 내 논술 출제 규제는 지극히 당연한 조치지만, 사교육을 줄이는 데 있어서 실효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대학별 논술 폐지라는 교육개혁 방향을 왜곡할 우려가 있다. 현행 논술시험은 대학별 본고사로 평가받으며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전형으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대학들은 어떻게 해서든 고교수준으로 판단되는 교과서 밖 서적, 기사, 고전, 문헌 등 다양한 지문을 활용한 어려운 논술을 통해 변별력을 확보할 것이다. 학교는 일부학생들이 보는 논술전형보다는 대다수가 보게 될 수능에 맞춰 수업을 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번 법안으로 학생들의 학원행을 막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학교로 시선을 돌리게 하려면 논술준비가 가능한 학교라는 기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를 위한 유일한 방법은 대학별 논술을 폐지하고 현행 수능시험을 자격고사로 전환하고 국가차원의 논술시험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또, 고교선발전형에 경시대회 등 각종 학교 밖 스펙반영을 금지하도록 했다. 그러나 특목고에 대한 사교육수요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영어(외고), 수학, 과학(과학고)시험에서 1등급을 놓쳐서는 안되고, 당락 결정의 주요변수인 면접전형을 학원에서 집중적으로 해줄 수 있다는 기대감, 특목고 합격 후에도 공부 잘하는 학생들과 경쟁하며 특목고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따라가기 위함이다. 일반고의 50%가량의 교육과정 자율권을 가지고 있는 특목고의 경우 철저히 입시위주의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심지어 표면적인 교육과정과 달리 전공영역을 축소하고 국, 영, 수 위주의 교육과정을 편법 운영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번 금지법은 이러한 거대 현실 앞에 초라한 법안일 뿐이다. 중학교 선행학습과 일반고 슬럼화의 주범이면서, 특권층을 위한 입시교육전문기관으로 전락해 있는 특목고, 자사고를 폐지하는 것이 선행학습금지법 취지에 부합하는 가장 기초적인 조치일 것이다. 실효성이 떨어지면서 본질적인 교육개혁까지 왜곡한다면, 오히려 최악일 수도 있다.


법안에 사실상 선행학습을 주도하는 학원규제가 빠졌다는 지적에 한결같이 위헌성 때문이라 말한다. 하지만 이제껏 교육주체들이 주장해온 것은 학원규제가 아니라, 선행학습을 위해 학원에 가지 않아도 되는 대책마련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번 법안의 취지만 홍보할 것이 아니라, 취지에 걸맞은 내용으로 승부하길 바란다. 그것이 국정홍보를 위해서도, 이를 위해 애써온 시민사회단체들에도, 교육주체들에게도 인정받는 길이다.


<하병수 | 전교조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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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수씨(29·러시아명 빅토르 안)가 올림픽 무대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는 지난 15일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6년 토리노 대회 3관왕 이후 8년 만에 올림픽 정상을 밟은 그는 러시아 국기를 들고 트랙을 돌았다. 시상대 위에서는 러시아 국가를 따라 불렀다. 태극기 대신 러시아 삼색기를 가슴에 단 ‘빅토르 안’에게 팬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피나는 노력 끝에 재기에 성공한 그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들이 많다. 국가보다 개인의 꿈을 우선시하는 쪽으로 한국 사회의 가치관이 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빅토르 안은 우리 모두의 비극’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가 한국을 떠나야 했던 이유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얘기다.


■ ‘빅토르 안’ 현상은 러시아를 뺀 모두에게 결국 비극


이유야 어찌됐든 지지난 올림픽에서 조국인 대한민국에 금메달 3개를 선사했던 쇼트트랙 선수 안현수를 우리는 더 이상 안현수라 부르지 못한다. 이제 그는 러시아 사람 빅토르 안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러시아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인동포 카레예츠 19만명 중 한 명이고 지금쯤 아마도 가장 유명한 고려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새 조국 러시아에 쇼트트랙 최초의 메달을 선사했고 환호하는 자국민을 위해 러시아 국기를 흔들며 링크를 돌았다. 금메달 시상대 위에선 러시아 국가를 따라 부르며 조국 러시아의 위대함을 전 세계에 알렸다.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 선수라 칭송받던 그가 지난 올림픽에선 국가대표팀에 들지도 못하고 소속팀조차 문을 닫아 갈 데 없는 무연고자가 돼 버렸다. 선수폭행, 짬짜미, 성추행에 파벌싸움으로 지겹게 이어지는 ‘겨울왕국’ 빙상연맹의 전횡에 지쳐 마음 편하게 운동만 할 수 있다면 어디든 가겠다던 빅토르 안은 결국 권력과 자본이 완벽하게 결합한 러시아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러시아는 이미 남는 장사를 했다. 어차피 여러 민족이 연합을 해 만들어진 러시아에서 짜릿한 메달의 기쁨을 선사하는 스포츠 영웅의 과거가 그리 중요치 않으리라. 수많은 러시아 인민은 빅토르 안으로 인해 경기장에서 올라가는 자국 국기를 바라보며 꿈틀대는 위대한 대국 러시아의 국가주의를 경험할 것이고 이 모든 것의 최종 수혜자인 유도 선수 출신 푸틴 대통령은 표정관리 중이시다.


더구나 빅토르 안의 옛 조국 대한민국에서 나오는 그에 대한 쿨한 반응은 예상 밖이다. 2002년 유도 선수 추성훈(지금은 사랑이 아빠로 더 유명한!)이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아키야마 요시히로라는 이름의 일본 대표로 금메달을 따고 ‘조국을 메쳤다’는 비난을 받았던 걸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빅토르 안에 대한 전 국민적 지지가 놀라울 따름이다. 혹자는 우리나라 국민의 수준이 국가주의를 넘어설 정도로 성숙해진 증거라고 자찬을 하지만 내 보기엔 업그레이드된 고도의 민족주의에 다름 아니다. 이제 국가라는 찌질한 간판보다는 피가 중요하다는! 거기에 후안무치한 빙상연맹에 대한 국민의 공분이 더해져 빅토르 안의 메달은 비리와 부조리로 찌든 겨울왕국을 향한 통쾌한 한 방으로 해석되고 있다.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안현수) 동메달(출처: AP연합뉴스)


탁월함을 갖춘 한 개인이 세계를 무대로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는 모습은 그의 가슴에 어느 나라 국기가 박혀있든지 아름다울 수 있다. 이미 여러 분야에서 대한민국의 최고들이 그들의 탁월함을 인정해 주는 곳에서 그들의 탁월함에 걸맞은 대접을 받기 위해 조국을 떠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금메달을 들고 행복한 모습으로 여친과 셀카를 찍는 빅토르 안을 보는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착잡하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로 돌아갈 메달 몇 개가 다른 나라로 갔다는 게 착잡함의 이유는 아닐 것이다. 안현수로 겪어야 했던 그의 아픔과 빅토르 안으로 겪어야 할 쓸쓸함이 그의 환한 웃음 뒤에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2014년 러시아 소치에서 벌어진 빅토르 안이라는 현상은 결국 모두에게 비극이다. 빅토르 안과 함께 경쟁을 해야 하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그들을 지켜보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그리고 지금은 기뻐하고 있지만 자신의 조국에게 버림받고 새로운 조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빅토르 안에게도. 러시아를 뺀 모두에게 비극이 된 이번 올림픽을 통해 얻은 한 가지 희망은 그나마 그동안 꽁꽁 얼어붙어 있던 겨울왕국 빙상연맹이 바뀌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점이다.


견고한 얼음은 정과 망치로 깨지거나 따뜻한 햇살에 녹아내리게 될 것이다. 후자가 순리에 맞고 근원적이다. 그런데 한국 엘리트 스포츠계는 언제쯤 따뜻한 봄날을 만나게 될까. 


<정용철 |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 국민 70% 가까이 “이해”… 고질병 앓는 체육계에 경종을


‘안현수 현상’이 발생했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69%가 안현수의 러시아 귀화를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고 응답했다. 우리 모두 한국 선수도 응원하고 안현수도 성원했다. 십수 년 전이라면 ‘매국노’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많았을 텐데 말이다. 우선 스포츠 바깥으로 시야를 넓혀보면 국가 혹은 조직에 대한 인식 변화가 이러한 현상을 낳았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때 모두가 체험학습했듯이 국가·조직·회사는 위기가 닥쳤을 때 스스로의 개혁보다는 일부 구성원을 호되게 내치는 방식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크고 작은 사건들이 터졌을 때마다 희생양이 도드라져 보였고 검은 악령의 그림자는 건드리지도 못했다.


안현수에 대한 이해와 지지는 이러한 사회적 박탈감의 한 표현이다. 글로벌 시대에 나고 자란 젊은 세대의 변화된 감수성도 작동했다. 더 넓은 세계로 나가 마음껏 꿈을 펼치자는 얘기를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젊은 세대로서는 정확히 그렇게 행동한 안현수를 지지하고 성원한다.


사건의 표면은 단순하다. 세계 최고 실력의 선수가 빙상계의 파벌 구조와 비합리적인 견제, 그리고 부상 악재에 따라 올림픽에 나설 수 없게 되자 귀화해 소치의 링크를 질주했다. 딱 여기까지라면 안현수에 대한 관심과 지지 정도로 그쳤을 것이다. 그런데 안현수는 1500m에서 동메달을 따고 1000m에서는 금메달까지 땄다. 이때부터 ‘안현수 현상’은 크게 불거졌다. 만약 그가 메달을 따지 못했거나 한국 선수들이 안현수보다 더 높은 시상대에 올라갔더라면 ‘안현수 현상’은 지금처럼 크게 불거지지 않았을 것이다. 스포츠계의 오랜 병폐들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잠복했을 것이다.


한국 스포츠계는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그것은 안현수와 한국 선수들의 ‘성적’과 무관하게 늘 있어왔던 일이다. 빙상뿐만 아니라 여러 종목에서 파벌과 폭력이 상존해왔다. 지난해 5월 어느 태권도 선수의 아버지는 심판의 편파판정에 항의하며 유서를 쓰고 자살까지 했다. 파벌과 폭력과 인권 유린은 몇몇 지도자의 불찰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병폐로 굳어져 왔다.


우리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그 사회의 일반적인 관계나 정서로부터 이탈당한 채 합숙소와 전지 훈련장에서 성장한다. 이 사회의 일상 민주주의 발전에 따른 상식과 정서를 교감할 만한 기회가 전혀 없다. 그 폐쇄된 섬 안에서 금품 수수와 폭력 같은 일마저 발생한다. 연줄이나 파벌은 익숙한 삶의 조건이 돼버렸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스포츠인권 가이드라인’까지 수립했지만 관계 부처와 대한체육회의 일정한 무관심과 배척으로 효력 없는 문서로 그쳤다.


선수 구타 사과하는 신영철.문용관 감독(출처: 연합뉴스)


이렇게 늘 검토되고 개혁되어야 할 사안이 지체되거나 제압당해오면서 한국 스포츠는 메달 지상주의, 즉 메달만 따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극단으로 치닫고 말았는데 이것이 이번에 ‘안현수 현상’으로 부각된 것이다. 나는 안현수에 의하여 예리하게 부각됐다가 올림픽이 끝나고 나면 사그라진 성화 불꽃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일로 되는 것을 우려한다.


이렇게 쓰고 있는 순간 ‘복사 학위 파문’의 당사자인 문대성 의원이 새누리당으로 복당했다. 농구 코트에서는 작전 타임 시간에 감독이 선수에게 입을 테이프로 막으라고 했다. 문제가 되자 ‘우리끼리는 별일도 아닌데…’라는 변명도 들려왔다. 그런 인식이 더 큰 문제다. 그러한 일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게 되면 스포츠계라는 고립된 섬에서는 ‘선수들 잘되라고 매를 들었다’는 극단적인 일이 발생한다. 그러다가 우승을 하면 학교를 빛내서 용서되고 금메달을 따면 국위선양을 해서 용서되는, 심지어 ‘영웅의 귀환’이 되는, 이 구조적인 병폐를 이제는 끊어야 되지 않겠는가. 따라서 ‘안현수 현상’으로 인해 불거진 한국 스포츠계의 고질적인 병폐가 몇몇 선수들의 빛나는 성취로 인하여 유야무야되지 않기를 바란다. 마침 박근혜 대통령의 특별한 언급이 있었고 문화체육관광부 김종 제2차관은 이 문제를 오래 걱정해왔으니, 과감한 결단이 있기를 바란다.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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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으로 애국가 작사자는 ‘미상’이지만 독립운동을 하다 친일파로 변절한 윤치호가 유력한 작사자로 거론돼 왔다. 집단창작설이란 주장도 나왔다. 그런데 지난해 6월 흥사단에서 안창호 선생이 애국가의 작사자라는 주장을 내놓으면서 논쟁이 새로 가열됐다. 윤치호 유족은 미 애틀란타 에모리대학에 기증한 애국가 친필본을 유력한 증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내년 해방 70주년을 앞두고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안민석 의원과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혜문 스님 등은 최근 미국을 방문해 관련 증거를 살펴보았다. 윤치호 설을 지지하는 혜문 스님과 안창호 설을 주장하는 오동춘 흥사단 애국가작사자규명위원장의 글을 싣는다.

■ 1907년 안창호가 영감 떠올라 지은 ‘애국찬미가’가 원형
순국 애국자 도산 안창호(1878~1938)는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 흥사단이 지난해 창립 100주년을 앞두고 4년간 연구한 결과 1955년 이후 논란이 많은 애국가 작사자는 육십 평생 독립운동만 하다 순국한 도산 안창호임이 바로 진리요. 정의임을 알 수 있었다.


1904년 8월22일 우리나라에 고문정치, 보호정치를 펴는 제1차 한일협약에 일본공사 하야시와 당시 외무대신 서리였던 친일인사 윤치호가 함께 서명하고, 이듬해 11월 이토 히로부미는 을사늑약을 체결했다. 이를 본 도산은 나라의 위기를 느끼고 1907년 2월20일 신민회를 조직하기 위해 귀국했다. 이어 3월 경칩 무렵 찾아간 선천교회에서 부르는 찬미가 소리를 듣는 순간 시의 영감이 떠올라 그길로 평양으로 올라가 이틀간 금식기도를 하며 사철을 배경으로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되는 애국찬미가를 지어 선천교회에 보냈다. 영국 민요곡에 얹어 부르는 이 애국찬미가는 교회는 물론 선천 일대 애창곡이 되었고 오늘의 애국가 원형이다. 도산 안창호가 애국가를 지은 사실은 1907년 3월20일 대한매일신보에도 보도되어 있다.

미국 뉴욕공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던 대한제국 애국가 악보와 가사(출처: 경향DB)


애국가는 한 편의 시이므로 작가의 생애와 창작 동기 및 배경 그리고 정서와 사상을 문학 비평방법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도산의 애국가 창작 동기와 배경은 선천교회 김정수 권사의 목격증언과 도산의 독립운동을 상하이에서 도운 윤형갑의 직접청취증언이 뒷받침해 준다. 그리고 상하이에서 도산 비서로 3년간 함께 지낸 구익균도 동아일보 대담(2011년 10월25일자)에서 “빙그레 웃음 띤 도산이 애국가는 내가 지었다고 하신 말씀을 직접 들었다”고 증언했다. 윤형갑에게 도산은 “내가 애국가 작사자임을 당분간 밝히지 말라. 이 노래가 미국 민요 ‘클레멘타인’처럼 널리 불릴 때까지 가사도 고치지 말고 가만두어라”면서 함구령을 내렸다고 한다.

도산이 지은 애국가는 도산의 인격과 애국사상이 담긴 주권재민 혁명가다. 그러나 윤치호는 도산의 애국가 가사를 변조해 1908년 6월25일 역술 재판 찬미가에 황제충성가로 옮겨놓았다. 도산은 황제시대에 반역에 해당되는 애국가 작사 기록을 문헌으로 남기지 않았다. 그나마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윤치호의 황제충성가는 생명을 잃었다.

도산의 애국가 작사설 증거를 더 살펴보면 이광수 부인 허영숙도 자유신문(1955년 4월20일자)에 도산이 애국가 작사자라고 밝혔고, 충북 세광중학교 황진섭 선생이 1950년대 만든 음악교본에도 애국가 작사자를 안창호로 기록해 1988년 3·1절 특집 방송을 하던 KBS에서 찾아가 확인하기도 했다. 이밖에 도산을 존경하는 이광수, 주요한, 강재환, 이흥호, 장리욱, 정영모 등이 도산의 인격과 생애에 비추어 애국가 작사자가 도산임을 밝혔다. 

도산은 21세 때 그가 세운 점진학교 교가 점진가를 지었고 이어 거국가, 학도가, 애국가 등 30편에 가까운 노래가사를 지었다. 1908년 도산이 세운 대성학교를 비롯해 흥사단, 상하이임시정부 등에서 애국가를 우렁차게 앞서 부르며 애국가 보급에도 앞장섰다. 

1955년 정부는 미 대사관 요청에 애국가 작사자 안창호, 작곡자 안익태로 통보하려다 언론에 흘려 시끄러운 논란을 지금까지 빚고 있다. 이제 정부는 흥사단이 발표한 논문(2012년 8월22일 한국프레스센터)과 흥사단이 2013년 3월 발행한 저서 <애국가와 안창호> 등을 잘 살펴본 후 2015년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대한민국 애국가 작사자가 남북 칠천만 겨레의 스승 도산 안창호임을 공식 발표해 주길 바란다.

<오동춘 | 흥사단 애국가작사자규명위원회 위원장·시인>

■ 윤치호 스스로 작사자라고 밝힌 ‘친필본’ 면밀한 검증 우선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는 애국가 작사가 확정을 위한 심의를 진행했다. 당시 국편의 심의 결과 윤치호 작사설이 11 대 2로 우세했으나 만장일치가 아니란 이유로 부결돼 현재까지 ‘작사가 미상’ 상태로 남아 있다. 그 당시 보고서를 살펴보니 “1907년 윤치호 작이 위조가 아니라면 윤치호 작이라 해도 무방하다”는 최남선 위원장의 언급을 남긴 채 종결됐다. 윤치호가 자신이 작사가라고 밝힌 친필본은 1990년대 유족들이 에모리 대학에 기증했다. 그렇다면 애국가 작사가의 규명을 위해서는 윤치호 친필본 확인과 친필 여부 검증을 가장 우선해야 하지 않을까? 지난 1월31일 오후 2시 에모리 대학이 소장한 윤치호의 친필본을 열람한 것은 그런 취지에서 추진되었다.

유족들의 동의하에 원본을 열람하면서 사실 좀 놀랐다. 윤치호 친필본에는 이른바 노익장이라고 할 만큼 힘이 담긴 글씨가 기괴하고 원숙한 필체로 구불구불 숨 고르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개성이 묻어나는 작품을 누군가가 대신 작성한 위조라고 말할 수는 없을 듯했다.

친필본 뒷면에는 “1945년 9월 아버지께서 친희(친히) 써주신 것”이라는 기록이 적혀 있었다. 이것을 두고 1907년이 아니라 1945년 쓰여진 기록이므로 위작이거나 가치가 없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 문서가 갖는 사료적 가치는 작성 시점이 1907년이냐 1945년이냐가 아니라, 자신이 애국가 작사가라고 밝혔다는 점에 있으므로 작성 시기의 문제는 일단 고려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 윤치호 친필본의 위작 논란은 윤치호의 친필 여부에 초점이 모아져야 다음 단계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공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던 대한제국 애국가 악보와 가사(출처 :경향DB)


에모리 대학에서 1908년 윤치호 역술 <찬미가>의 원본도 확인할 수 있었다. 윤치호는 1908년 <찬미가>라는 교회 찬송가집을 번역 출판했는데 <찬미가>의 14장에 현행 애국가 가사와 후렴이 거의 그대로 수록되어 있었다. <찬미가>는 ‘윤치호 작’이 아니라 윤치호 역술(譯述)이므로 작사가라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대를 살았던 유길준이 <서유견문록>을 저술할 때 ‘집술’이라고 기재한 것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개화기의 지식인들은 ‘역술’ ‘집술’ 같은 언어로 자신들의 저작물을 남기는 풍조가 있었던 듯하다. 게다가 1908년 윤치호 역술이란 표기가 지닌 부족함은 1907년 윤치호 작이란 친필본의 존재로 보완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1910년 신한민보에 윤치호 작 ‘국민가’란 제목으로 애국가 가사가 수록된 기사도 에모리 대학에 보관되어 있었다. 이런 문헌기록을 토대로 볼 때 애국가와 윤치호가 지닌 연관성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할 것이다.

윤치호 친필본 열람을 놓고 일부 사람들은 ‘윤치호 작사설’을 주장하기 위한 행보가 아니냐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친필본을 열람하는 것은 애국가 작사가 규명을 위한 증거들을 확인하기 위한 과정일 뿐 윤치호를 옹호하거나 안창호 작사설을 부정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윤치호, 안창호를 비롯한 다수의 사람들이 창작하고 보급했던 민족의 노래라고 생각한다. 주요 작사가가 친일파란 이유로 애국가 작사가란 사실이 부정되거나 ‘작가 미상’ 상태로 남겨두려 해서도 안된다. 사실은 사실로서 충분히 규명되어야 할 당위성이 있기 때문이다. 일제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난 지 7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민족의 노래가 된 애국가를 언제까지 작가 미상의 상태로 방치할 것인가. 정부는 광복 70주년을 맞는 2015년 8월15일까지 애국가 작사가를 규명하기 위해 즉각 심의기구를 설치하기를 다시 한번 촉구한다.

<혜문 |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조계종 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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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간판스타 박지성(33·PSV 에인트호번)의 대표팀 복귀 여부를 놓고 설왕설래가 계속되고 있다. 홍명보 대표팀 감독은 최근 “박지성을 직접 만나 생각을 들어보겠다”며 2014 브라질 월드컵에 나서는 대표팀의 ‘마지막 퍼즐’로 박지성을 지목했다. 이에 대해 어린 선수들이 대다수인 대표팀에 경험 많은 박지성이 합류하면 시너지 효과가 작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박지성은 지난 2011년 아시안컵을 마지막으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최근에도 여러 차례 복귀 의사가 없다고 명확히 밝혔다. 박지성 복귀를 찬성하는 쪽은 “선수 입장이 최우선”이라면서도 대표팀 전력을 위해 그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대쪽에서는 복귀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선수 개인 의견을 무시하는 압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 주전 경쟁력 여전… 벤치에 앉아 있어도 후배들에겐 큰 도움

박지성의 대표팀 복귀 문제가 다시 화제다. 대중의 관심이 이처럼 뜨거운 것은 박 선수가 21세기 한국 축구 최고의 스타이기 때문이다. 박지성은 2011년 1월 대표팀 은퇴 이후 지속적으로 ‘복귀 불가’ 뜻을 밝혀왔다. 여론은 박지성이 그간 대표팀에 기여한 공이 크고 부상 재발의 위험이 크다는 점을 인정해 은퇴 결정을 지지해왔다.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싶다는 박지성의 뜻도 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대표팀 분위기를 일소해야 한다는 주장과 만나 힘을 얻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개인적으로는 박지성이 ‘당연히’ 대표팀에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 전에 한 가지 되묻고 싶은 게 있다. 한 나라의 축구협회가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는 자국 최고 스타를 대표팀에 발탁하지 못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박지성은 은퇴 선언 당시 만 스물 아홉 살이었다. 프로축구 선수로 계속 활동하는 선수가 서른도 되기 전에 대표팀에서 은퇴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거의 없는 일이다. 대표팀 은퇴가 흔치 않은 국내 분위기까지 감안하면 분명 일종의 특별 대우를 받은 셈이다.

대표팀이 의무가 아닌 선택의 문제가 되기 시작하면 대표팀의 존재 이유가 위협받는다. 만일 또 다른 선수가 만 스물 아홉 살에 대표팀 소집을 사양한다면 그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따라서 홍명보 감독이 박지성의 대표팀 복귀 문제를 다시 거론한 것은 과욕으로 치부될 것이 아니라 그동안 누린 특혜를 잠시 양보해 달라는 요구로 이해돼야만 한다.

이러한 주장의 기저에는 박지성이 대표팀에 많은 보탬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자리한다. 박지성은 한국 나이로 올해 서른 네 살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선수였던 홍명보의 나이와 같고, 황선홍보다는 도리어 한 살이 적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유럽 최정상의 무대를 누비던 과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네덜란드 명문팀에서 지금도 꾸준히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다. 유럽 1부 리그의 명문 클럽이 급료를 지급하는 선수라는 것은 그의 기량이 크게 녹슬지 않았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간헐적인 부상으로 몸 상태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버겁고, 전성기에 비하면 기량이 저하됐다는 평가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그러나 그가 월드컵에 나설 수 없을 정도로 체력이나 기량이 하락한 것은 분명히 아니다.

박지성은 지난 세 차례의 월드컵 본선에 모두 출전했고 대회마다 골을 터뜨렸다. 이런 경험을 가진 현역 선수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20대 초중반 선수들이 주축인 홍명보호의 선수 구성을 떠올리면 베테랑 박지성의 존재는 더욱 돋보인다. 월드컵 본선처럼 모두가 완벽한 준비를 마치고 임하는 무대, 그것도 상상을 초월하는 압박감이 존재하는 대회에서 박지성 같은 초특급 베테랑 선수가 동료들에게 주는 위안이나 자신감은 관전자들이 느끼는 것을 훨씬 넘어선다. 서른 세 살에 프랑스 대표팀에서 은퇴했던 지네딘 지단은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서른 다섯 나이에 대표팀에 복귀해 월드컵 준우승을 이끌었다. 그 사실은 베테랑 스타 플레이어의 가세가 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말해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박지성이 뛰지 않고 벤치에만 앉아있을 경우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는 지적에도 공감할 수 없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박지성은 여전히 주전 경쟁력이 있는 선수다. 양쪽 측면 윙어뿐만 아니라 중앙 미드필더로도 대표팀에 실질적 보탬이 될 능력을 갖추고 있다. 둘째, 박지성은 타고난 팀 플레이어다. 설령 선발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더라도 팀 분위기를 해칠 인물이 아니다. 2010년 월드컵에서 주장을 맡았을 때 보여준 리더십이나, 현 소속팀 PSV 에인트호번에서 90년대생들이 대부분인 어린 동료들과 잘 어울리는 것은 박지성 대표팀 합류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을 희석시키는 요소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감독이 박지성을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팀 안팎의 분위기를 가장 잘 아는, 그리고 대표팀의 성적에 가장 크게 영향받게 될 당사자인 감독이 그를 필요로 한다면, 그 선택의 이유를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지성이 큰 부담을 질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한국 축구에서 박지성이 갖는 위상을 감안하면 그 정도의 부담은 제3자들이 지레 걱정해 조심스러워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결정은 박지성 본인의 몫이다. 이번에 그가 내릴 선택이 또 다른 소모적 논쟁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박지성이 어느 방향으로 결정을 내리든 나는 선택을 지지한다는 말을 미리 밝혀두고 싶다.

<서형욱 | tvN 축구해설위원·축구 매거진 풋볼리스트 대표>

 


■ 후배를 위해 떠난 박지성… 복귀 논란으로 팀 분위기만 해쳐

홍명보 감독은 기본적으로 박지성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의 마음을 돌리려는 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정확히 듣지 못했다”면서 “정확히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정확히 들어야” 한다고 연이어 주장하고 있다. ‘정확히’ 하겠다는 걸 탓할 건 아니지만 한국말이 좀 어렵다. 그러나 박지성은 이미 여러 번, 정확히 말했다. 11년간 대표팀에서 뛰며 월드컵에만 세 번 출전한 박지성은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 직후 국가대표 기자회견을 통해 은퇴를 선언했고 이후에도 수차에 걸쳐 같은 입장을 반복했으며 아버지까지 나서서 확인해줬다. 지난해 기자회견에선 “홍 감독이 요구하더라도 대표팀에 가지 않겠다”고까지 확인했다.

박지성은 더 이상 정확할 수 없을 만큼 정확하게 이야기했는데 홍 감독이 계속 박지성의 복귀를 흘리는 이유는 뭘까. 둘이 전화를 하든, 직접 만나든 하면 될 일을 왜 자꾸 언론에 흘려 논란거리로 키우는 것일까. 이는 결국 여론몰이를 해서 박지성을 압박하겠다는 것인데 이쯤 되면 홍 감독도 감독으로서의 권위와 체면 때문에라도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논란만 빚다가 박지성이 결국 거부하면 감독꼴은 뭐가 되겠는가. 물러설 수 없는 한 수를 던진 것이다.

그러나 박지성의 대표팀 복귀, 특히 그의 복귀 ‘논란’은 대표팀의 월드컵 준비에 오히려 부정적일 가능성이 더 크고 한국축구 발전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가 복귀해서 뛸 경우 좋은 기량을 선보여 한국팀이 선전할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대회 직전 부상이 재발하거나 예전같지 않은 기량으로 벤치만 지키다 결국 선수 엔트리 숫자 하나만 까먹을 수도 있다. 그가 경기력에 기여할지는 그야말로 동전 던지기와도 같은 도박이다.

많은 축구팬들은 그라운드에서의 박지성을 보고자 그의 복귀를 요구하지만 홍 감독이 그를 원하는 이유는 그의 존재감일 것이다. 그의 리더십 말이다. 특히 그의 국제무대 경험은 평균연령 25세인 한국팀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사실 홍 감독이 박지성에게 원하는 것은 플레잉코치 같은 역할이다. 그러나 이것도 위험한 구석이 있다. 박지성이 어린 선수들에게 경외의 대상인 것은 맞다. 그러나 박지성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래서 박지성 본인도 자신의 복귀는 후배들 자리 빼앗는 것이라며 월드컵 불참의사를 확실히 한 것이다.

게다가 축구대표선수들은 우리나라 모든 운동선수들 가운데 (좋게 표현해) 자존심이 가장 센 선수들이다. 기성용 선수의 SNS 파문에서 봤듯 이들은 왕년에 한가락 했다거나 고참이라고 해서, 심지어는 감독이라고 해서 대접해 주지 않는다. 스포츠에서 리더는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게 당연하다. 물론 박지성은 젊은 선수들의 존경의 대상이고 롤모델이다. 그러나 대회를 한두 달 앞두고 갑자기 들어와 그 때문에 이제까지 기성용, 구자철, 이청용 등 위주로 돌아가던 팀전술이 바뀌거나 측면공격수 경쟁이 복잡해지면 이에 따르는 혼선과 불만이 없을 수 없다. 1986년 월드컵 당시 유럽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이었던 차범근도 갑자기 월드컵에 합류하게 되면서 적응에 실패해 무기력한 경기를 한 사례가 있다.

특히 이러한 논란의 지속은 현 대표팀 선수들을 계속 동요하게 만든다. 지금 대표팀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부상의 위험까지 무릅쓰고 경쟁하는 상황이고, 따라서 팀워크가 바로 서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지성(에 더해 박주영)의 복귀 논란은 팀을 어수선하게 만든다. 게다가 박지성의 포지션은 다양하기 때문에 이 논란에 신경이 쓰일 선수들은 거의 절반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월이나 돼야 만날 것이라는데 그렇다면 더욱 문제가 된다.

이 시점에서의 박지성 복귀는 문제도 있지만 바람직하지도 않다. 우선 한국스포츠에서 선수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풍토는 없어져야 한다. 선수가 항상 협회와 감독의 무능과 어려움 때문에 ‘몸빵(몸으로 해결)’하고 결국 선수만 희생당하는 역사는 사라져야 한다. 특히 감독이 선수와 직접 대화해서 해결할 일을 여론몰이로 부담 줘서 해결하려는 것은 스포츠맨답지 않다.

사람들은 이번 월드컵 조편성이 ‘역대 최상’이라고 하는데, 한 축구인은 오히려 ‘역대 최악’이라고 한다. 1승을 노릴 만한 팀이 없다는 것이다. 엄청난 국민적 희망과 엄연한 현실의 간극 속에서 유례 없이 젊은 나이에 월드컵 감독이 된 홍 감독은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홍 감독과 지금의 대표팀이 젊은 만큼 우리는 새로운 축구를 보고 싶다. 히딩크로부터 벗어난 한국축구, 박지성 없이 젊은 그들 스스로 단결해 강팀에 도전하는 태극전사들을 보고 싶다.

이제는 홍명보의 시대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영웅을 요구한다.

<정희준 | 동아대 스포츠과학대학 생활체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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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회사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사회적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외촉법 개정안은 외국인 투자를 유치한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외국인과 합작할 경우 지분의 50%만 갖고도 증손회사를 만들 수 있도록 예외를 허용하는 것이 골자다. 현재 SK그룹과 GS그룹은 증손회사 규정 완화를 전제로 일본 기업과 합작해 총 2조3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재계와 여당에서는 “외국인 투자를 활성화시키고 저성장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당연한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소수 대기업에 특혜를 주는 개정안으로 외국인 투자 활성화와는 거리가 멀다”면서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이를 무기로 정부에 입법을 강요한 ‘배째라식’ 방법으로 법을 무시했다”고 맞서고 있다.

 

■ 외국인 투자 규제 푼 것… 합작회사 통한 경제 활성화 기대

1월1일 오전 국회는 지주회사 손자회사의 증손회사 합작투자를 허용하는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지주회사 손자회사의 지분이 합자회사 전체의 50% 이상이고 외국인 투자자 지분이 합자회사 전체의 30% 이상일 때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외국인과 함께 합자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최근 우리나라는 해외로 나가는 해외 직접투자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지만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인 직접투자는 정체되고 있다. 이것은 국내의 기업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을 늘리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려면 국내외 기업투자를 증대시키는 기업환경 개선이 필요하다.

기업규제의 증가, 노사관계의 악화, 반기업 정서의 팽배나 임금 경쟁력의 상대적 저하는 외국인 직접투자를 억제하는 요인이다. 국내의 설비 투자가 빠르게 증가하지 않고 있고 오히려 해외로 나가는 기업 수가 늘어나는 상황에서는 외국인 직접투자 촉진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는 선진국에는 없는 지주회사 규제가 많았다. 증손회사 보유에 대한 규제도 역시 유럽·미국·일본 등 다른 선진국에는 없는 규제다. 지주회사 손자회사의 증손회사 보유 규제로 합작 증손회사 설립을 통한 투자 유치가 불가능했고 손자회사 단계에서 전략적 제휴를 통한 지주회사의 경쟁력 강화가 어려웠다. 이번에 이러한 증손회사 보유 규제를 푼 것은 지주회사의 합작투자를 통한 경쟁력 향상이나 외국인 직접투자 확대를 위해 다행한 일이다.

더구나 이번에 통과된 법에서는 일반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합자회사의 주식을 소유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외국인 투자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 경우 산업자원부 장관은 손자회사와의 사업 관련성 및 합작주체로서의 적절성 여부 등에 대해 공정위의 사전 심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어 일각에서 우려하고 있는 순환출자를 통한 문어발식 투자 등 경제력 집중 심화를 억제하는 사전적인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외촉법 통과로 몇 가지 긍정적인 경제 파급효과가 기대된다. 우선 법 개정으로 당장 SK와 GS가 외국인 투자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은 물론 앞으로는 지주회사 형태의 중견·대기업들의 합작기업 설립도 가능해지는 효과가 있다. 외투합작 허용은 모든 손자회사에 적용되므로 기회만 주어지면 290여개 중견기업 등 손자회사 모두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최근 한 언론 조사에 따르면 이번 법 개정으로 장단기에 걸쳐 외국기업과의 합작투자를 고려하는 기업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주회사 규제로 합작투자 자체를 검토하지 않았던 지주회사 형태의 중견·대기업들이 외촉법 통과로 합작투자를 검토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둘째로 외국인 투자를 통한 합자회사 설립으로 고용이나 매출 증가 등 긍정적인 경제적 파급효과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외촉법 통과로 SK종합화학과 SK루브리컨츠가 각각 일본 JX에너지와 9600억원, 3100억원의 파라자일렌 생산공장 합작투자를, GS칼텍스 역시 일본 다이요오일·쇼와셀과 1조원 규모의 파라자일렌 합작투자가 가능해졌다. 이 같은 투자는 정부 발표에 따르면 연간 1만4000명의 직접 및 간접 고용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되고 투자된 석유화학공장이 완공되면 5조8000억원의 연간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로 이번 법 통과로 여수·울산 등의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까지 외국인 직접투자는 서울·경기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이번 외국인 직접투자는 울산·여수 등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대규모 외국인 투자라는 게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와 일본 기업의 파라자일렌 사업 합작투자가 가능해지면서 중국 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것은 중국 내 파라자일렌 시장을 우리나라 석유화학업계가 선점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합작투자 기회를 상실했다면 일본과 중국의 합작투자나 중국의 자급화로 우리 경제는 투자, 일자리 상실 및 산업 고도화 기회까지 상실할 뻔했다.

우리나라 경제는 기로에 서 있다. 향후 빠른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외국인 투자를 획기적으로 확대하기 위한 국내의 기업환경 개선이 필요하다. 아일랜드는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고용창출과 임금안정을 꾀하는 한편 법인세 대폭 인하를 통해 외국인 투자를 유인했다. 최근 들어서는 미국을 비롯해 선진국조차도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글로벌화된 경제환경에서 국내외 기업들이 마음놓고 투자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만 우리 경제의 미래 성장을 담보할 국내외 투자가 더욱 촉진되고 새로운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 창출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병기 |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 통과 (경향DB)

■ 재벌 ‘밀어붙이기’에 정부·여당 동조… 합리적 논의 사라져

정책에 대한 판단을 하다보면 찬반의견을 명확히 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이번 외국인투자촉진법(외촉법) 개정이 그런 사안이었다. 외국인투자를 쉽게 해주기 위해 법을 바꾸는 것이 좋을지, 가능하다면 법을 유지하는 것이 좋을지…. 그런데 이번 외촉법 개정은 법 자체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입법 논의과정, 즉 민주적 절차 무시와 과거로의 회귀에 대한 우려를 갖게 하는 과정이었다. 공정거래법에 지주회사 제도라는 것이 있는데, 기업집단이 지주회사 체제로 만들어지면 손자회사가 증손회사의 지분을 100% 보유하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규정한 이유는 출자단계가 내려갈수록 지주회사가 적은 지분으로 계열회사를 쉽게 지배하고 재벌에 경제력이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지주회사 체제인 SK그룹과 GS그룹이 각각 일본기업과 합작으로 파라자일렌을 만드는 화학회사를 증손회사로 만들려고 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즉 설립할 회사가 증손회사이므로 손자회사가 100%를 출자해야 하지만 합작회사라 그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이에 두 재벌은 법을 개정해달라고 정부와 정치권에 로비를 했다. 엄연히 존재하는 공정거래법을 어길 것이니 법을 바꿔달라는 것이다. 재벌이기에 가능한 해결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법 위에 군림하려는 재벌을 혼내지는 못할망정 주저하지 않고 법을 회피할 수단을 모색했다. 그 결과 공정거래법의 예외규정을 외촉법에 두게 했다. 세상에 이런 막무가내식 법이 어디 있을까?

문제는 결과만이 아니라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이다. 첫째, SK그룹과 GS그룹은 불법인 줄 알면서도 외국기업과 합작을 추진했다. 두 그룹은 증손회사가 아닌 손자회사 형태로 합작회사를 설립하는 방안도 강구할 수 있었을 텐데 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둘째, SK그룹은 합작 추진뿐만 아니라 아예 2012년부터 공장 건설을 진행해 완공을 목전에 두고 있으며 이를 무기로 정부를 더 압박했다. 속된 말로 “배째라”식의 방법으로 법을 무시했다.

셋째,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약 2조3000억원 규모의 투자와 1만4000여명의 일자리 창출효과를 언급하며 외촉법을 처리해줄 것을 호소했다. 그런데 투자금액 중 외국인 투자금액은 1조원가량으로 절반 수준이고, 야당에서는 고용창출 효과 역시 합작회사가 장치산업이라 직접 고용은 수십명에 불과하고 공장건설 등 일시적인 고용과 간접고용까지 감안해도 정부 주장보다 터무니없이 적다고 주장해 논란이 큰 상황이었다. 즉 정부가 정확한 정보에 근거해 정책판단을 하거나 국회를 설득하기보다는 경제효과를 부풀려 제대로 된 논의조차 회피했다.

넷째, 야당은 진작부터 외촉법이 아닌 공정거래법 개정 논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것을 주장했다. 막무가내식 법 개정이 아닌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 문제 등까지 고려해 제대로 된 입법논의를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오로지 청와대의 재촉에 목을 맬 뿐 법적 정합성 등은 고려하지 않았다. 그나마 지주회사의 합작투자에 대해 공정위의 사전심의를 받도록 하긴 했지만 이후에도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누구도 이번 외국인 투자를 반대한 사람은 없다. 다만 그 방법에 있어 공정거래법을 지킬 수 있으면 지키고, 정말 법에 문제가 있다면 정확한 정보와 효과에 근거해 민주적 절차를 통해 개정하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재벌이 보여준 행태는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정부와 새누리당은 그 장단에 춤추고, 문제를 치유하기보다는 일시 봉합하는 꼴이었다.

이번 외촉법 개정 과정은 매우 안 좋은 징조를 보여준다. ‘박근혜 정부도 밀면 밀린다’는 것을 재벌들이 깨닫게 해 준 것이다. 정권 초기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 기조하에 세무조사나 검찰수사, 일감몰아주기 입법 등 재벌개혁을 할 것으로 보였다. 이에 재벌은 정부의 눈치를 봐가며 정부정책에 호응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재벌은 이번에 정부가 밀리는 모습을 지켜봤고, 앞으로 남은 4년간 정부에 끌려다니기보다 정부를 끌고 갈 포석을 만들 것이고, 그리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며칠 전 박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는 고사하고 그런 의미의 언질조차 나오지 않았다. 오로지 창조경제만이 남았다. 하지만 경제생태계의 질서가 바로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중소·벤처기업을 통한 창조경제는 이뤄질 수 없다. 이미 이명박 정부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낙수효과는 기대할 수 없으며, 정부가 아무리 고용과 중소기업에 돈을 쏟아 부어도 이는 대기업에 흘러가는 역류효과만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재벌과의 관계설정 변화와 경제 민주화 공약 폐기는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고 사회적 갈등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이제 집권 1년이 지나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 진보정권에서도 못한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바라지 않는다. 앞으로 4년, 대통령도 누누이 강조하는 약속과 원칙이 지켜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채이배 |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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