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표창원 칼럼'에 해당되는 글 62건

  1. 2015.01.06 [표창원의 단도직입]새해엔 ‘억울함을 없게 하라’
  2. 2014.12.23 [표창원의 단도직입]공직 기강, 이대로는 안된다
  3. 2014.12.09 [표창원의 단도직입]‘성 후진국’ 대한민국
  4. 2014.11.25 [표창원의 단도직입]‘희망 FC’에 희망을
  5. 2014.11.11 [표창원의 단도직입]어린이가 불행한 나라엔 희망이 없다
  6. 2014.10.28 [표창원의 단도직입]‘의인’을 보호해야 군이 산다
  7. 2014.10.14 [표창원의 단도직입]해경 해체, 다시 생각해야
  8. 2014.09.30 [표창원의 단도직입]‘세월호특별법 합의’의 의미
  9. 2014.09.16 ‘성(性) 갑질’을 멈추게 하라
  10. 2014.09.02 [표창원의 단도직입]가해자가 된 피해자들
  11. 2014.08.19 [표창원의 단도직입]‘사회적 프로파일링’
  12. 2014.08.05 [표창원의 단도직입]과학수사 체제의 혁신이 시급하다
  13. 2014.07.22 [표창원의 단도직입]유병언 사망, 후속조치가 긴요
  14. 2014.07.08 [표창원의 단도직입]특정 강력범죄, 시효 없애야
  15. 2014.06.24 정치군인 벌해야 병사가 산다
  16. 2014.06.10 세월호 ‘독립조사위’ 설치를
  17. 2014.05.27 [표창원의 단도직입]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사회
  18. 2014.05.13 [표창원의 단도직입]‘세월호 특별법’ 제정 시급
  19. 2014.04.29 [표창원의 단도직입]치유 출발점은 ‘진실과 정의’
  20. 2014.04.15 [표창원의 단도직입]남재준은 ‘한국의 모리아티’?

조선의 세 성군 세종과 영조, 그리고 정조는 죽임을 당한 백성들이 억울함을 남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법의학 교과서이자 범죄 수사 및 재판의 기본과 원칙을 정한 <신주무원록> <증수무원록> 및 <증수무원록대전>과 그 언해본을 연이어 만들었다. 그 원전은 중국 원나라 때 왕여가 쓴 <무원록(無寃錄)>으로, 고려말에 유입되었다가 1796년(정조 20년)에 많은 오류가 수정되고 개선된 한글판으로 완성된 것이다. 서양 ‘형법학의 시조’ 베카리아가 일반적인 형사법의 원칙을 주장한 <범죄와 형벌>을 쓴 것이 1764년, ‘범죄학의 아버지’ 롬브로조가 단순한 범죄자들의 외형관찰을 기록한 범죄인류학 저작들을 출간한 것이 1890년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인체의 세밀한 구조와 사망의 다양한 원인에 따른 사후 변화와 경과시간들이 포함된 <증수무원록>이 18세기 조선에서 나왔다는 것은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그 이면엔, 주로 살인 등 강력사건의 피해자가 되는 약하고 힘없는 민초 한 명 한 명의 억울함이 조정과 임금의 무거운 책임으로 남는다는 우리 세 성군들의 어질고 따뜻한 헤아림과 공감이 있었다.

그 후예들인 우리 대한민국에서 지난해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295명의 참혹한 죽음과 9명의 오랜 실종 상태가 남긴 원과 한, 억울함이 여전히 온 하늘을 뒤덮고 있다. 김훈 중위와 허원근 일병 등 아직 명확한 죽음의 원인과 책임이 밝혀지지 않은 군 의문사의 억울함도 구천을 떠돌고 있다. 그 외에도 화성 연쇄살인 사건 피해자들, 유괴살해당한 이형호군, 포천에서 피살된 여중생 엄양, 서울 노들길에서 살해된 20대 여성 진씨, 화성에서 살해된 노양, 대구 황산테러 피해자 김태완군, 대구 달성군에서 납치살해된 허은정양, 대구 ‘개구리 소년’ 사건 피해 어린이들, 충북 영동에서 손목이 잘린 채 살해된 정소윤양 등 20건이 넘는 중요 미제 살인사건들이 공소시효가 지났거나 지나가면서 ‘영원한 억울함’으로 남고 있다.

경제, 산업, 노동, 복지, 교육, 국방, 문화, 건설교통, 환경…, 어디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있을까마는 사람들이 사는 인간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생명’이 이유도 모른 채 갑작스럽게 파괴되는 것만큼 중요한 문제는 있을 수 없다. ‘사람들’로 이루어진 국가가 그 ‘사람들’에게서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위에 열거한 국가기능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는 것도 만고불변의 진리다. 오죽했으면 1776년에 독립국가를 세운 미국의 연방정부 법무부 청사에는 ‘오직 정의만이 사회를 지탱한다(Justice Alone Sustains Society)’라는 글이 새겨져 있겠는가?

서북청년단의 세월호 반대 집회에 참가했던 노병만씨가 8일 서울시청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를 찾아 자신의 행동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각종 의문사와 미해결 살인사건, 세월호 참사 등을 자꾸 ‘잊자’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국가의 존립 이유와 정부 역할의 본질, 국민의 기본 권리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거나 애써 모른 척하는 사람들이다. 세종과 영조와 정조 세 분 훌륭한 임금님들의 뜻을 거스르는 불충을 하는 역적들이다. 기껏 5년 집권하다가 역사 속 먼지가 되어 사라질 정권이나 그 정권의 핵심을 차지하는 몇 개인들의 안위를 위해 ‘나라와 백성의 억울함’을 모른 체하고 덮고 잊자는 자들이 있다면 발본색원하여 가장 무거운 벌로 처단해야 국가기강이 바로 선다. 반대로, 그 엄중한 ‘억울함을 없애는’ 국가적 대의를 개인이나 당파 혹은 집단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거나 악용하고 선동하는 무리들이 있다면 역시 철퇴를 내려야 할 것이다. 진실규명 노력 못지않게 살인, 어린이 유괴, 성폭행 등 ‘특정 반인권 범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입법과 죽음의 원인을 조사하고 결정하는 ‘검시권’을 의학적 문외한인 검사에게서 전문가인 법의관에게로 이관하는 ‘검시제도’의 확립 역시 긴요하다. 새해에는 부디, 새로운 억울함이 남지 않고, 쌓인 억울함들이 풀리길 간절히 소망한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소위 ‘땅콩 회항’ 사건 피해자 박창진 사무장에 대한 정부, 국토교통부의 조사과정에서 ‘가해 혐의업체’인 대한항공의 여모 상무가 19분간 동석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은폐와 왜곡을 시도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국토부 조사관은 마치 사전 협의와 각본이 마련된 듯 이를 방조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여 상무 등 대한항공 임직원들은 승무원들에게 거짓 진술을 강요하고 e메일 등 증거 인멸을 지시하는 등 조직적으로 국가행정과 사법작용을 방해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그런가 하면, 문화체육관광부는 아무런 공직도, 관련 법적 지위도 없는 일개 사인인 정윤회씨 딸에 대한 승마대회 판정 시비 조사 문제로 국장과 과장이 좌천되고, 장관이 물러나는 한심한 소동의 후폭풍에 휩싸여 있다. 청와대 비서실은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논란에 대한 감찰과 조사, 그리고 그에 대한 보복 인사 논란 끝에 한 경찰관이 자살하고 다른 경찰관은 구속됐다.

언론과 여론은 정윤회-박지만-김기춘 3인 간의 권력다툼과 이들 실세들에게 줄을 선 공직자들의 부당하고 불법한 행동들이 국정을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방부는 통영함 등 방산비리와 잇따른 장성들의 일탈과 부당하고 편파적인 군사법정 운영, 북한군의 침입과 농락에는 무능력하면서 소중한 병사들의 자유와 권리는 강하게 짓밟는 모순에 대한 질타에 흔들리고 있다. 게다가 전쟁보다 무서운 ‘원전 사고’의 위험 요인들을 방치하고 유발해 온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총체적 비리와 무능, 비효율 문제는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사회 정의와 공직기강을 바로잡는 것이 직무인 검찰은 제 식구 감싸기와 권력의 집사 노릇, 퇴직 후 거대 로펌이나 대기업 취업 논란으로 불신을 받고 있다.

지금 당장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만 짚어봐도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다양한 원인과 문제가 있겠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총체적인 공직기강 붕괴’의 공통적이며 핵심적인 원인은 ‘권력이나 돈을 가진 특정인에 대한 사적인 충성’이다. 국가와 공직자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우리 헌법 제7조는 공무원이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가공무원법 등 공직자의 의무와 윤리를 규정한 법들은 보다 구체적인 규준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실상은 공직자들이 특정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 권력자 혹은 그들의 친·인척이나 지인들 및 기업이나 재력가에게 ‘줄’을 대고 있다. 이러한 유착관계에 빠진 공직자들이 직무를 이용해 특정 대상에게 부당한 편익을 주고, 그 대가로 승진이나 보직 등 인사상 이익이나 금전적인 이득, 혹은 퇴직 이후 자리 보장 등을 받는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으로 지적된 ‘적폐’가 바로 이런 것이고 국민적 분노와 사회적 갈등 끝에 탄생한 진상조사위원회와 특검이 내놓을 결론도 구체적으로 누가 어떻게 ‘적폐’를 만들어 왔는지에 대한 답이어야 한다.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3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시로 작성되었다는 승마협회 살생부라는 문건을 들어보이며 김종덕 장관에게 질의를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소위 ‘관피아’ 문제 등 구조와 제도, 법, 관행 등을 고쳐 나가야 할 지난한 노력은 물론이거니와, 지금 당장 정부와 공직자들이 저지르는 잘못과 사고로 사회가 혼란해지고 나라가 위태로워지는 상황을 막아야 할 ‘기강 확립’의 응급조치가 긴요하다. ‘기강 확립’의 방법은 ‘솔선수범’과 ‘읍참마속’, ‘신상필벌’이다. 대통령부터 스스로를 둘러싼 음험한 의혹의 진상을,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방법과 정도로, 진솔하게 밝히고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와 불법행위부터 엄하게 단죄해야 한다. 그 후에 정치적 성향이나 친소관계 등과 무관하게, 잘잘못을 명확하게 가려 잘한 사람에게는 상을, 못한 사람에게는 벌을 내려야 한다. 그것이 ‘용기’이며 오직 용기 있는 지도자만이 국가와 국민을 위기에서 구하고 안전과 행복, 복지로 이끌 수 있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1994년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형법상 ‘강간’ 및 ‘강제추행’ 등의 범죄를 더 이상 ‘정조에 관한 죄’로 부르지 않게 되면서 대한민국에서 ‘정조’ 개념은 법적으로 폐기됐다. 구시대적인 ‘정조’ 대신 ‘성적 자기결정권’ 개념이 도입된 것이다. 삼국시대 ‘삼종지도’로부터 시작되고 유교에 의해 강화된 ‘정조’ 개념은 성을 본인,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가족과 가문의 ‘재산’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반인권적’이다. 지금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 혼외 성관계를 가진 여성을 아버지나 오빠가 살해하는 ‘명예살인’이 대표적인 예다.

‘성적 자기결정권’의 또 다른 측면은 ‘성 미성년자’ 개념이다. 즉, 아직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질 만한 연령에 도달하지 못한 미성년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개념이 아직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우리 사회는 성인이 14세 미만 어린이와 성관계를 가질 경우에만 ‘의제 강간’이라는 용어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이마저도 ‘동의’가 있다면 형을 줄여준다. ‘성적 자기결정권’ 개념을 도입한 많은 나라에서 ‘성적 미성년자’ 연령은 결혼을 할 수 있는 나이와 유사하다. 벨기에, 스위스,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등 많은 국가에서 16세 미만을 ‘성 미성년자’ 연령으로 두고 있다. 우리가 외신으로 접하는 ‘제자와 성관계를 가진 교사 체포’의 근거다. 성인이 16세 미만 ‘성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가지면,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성범죄로 처벌받는 것이다.

우리도 물론 ‘아동 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에서 위력이나 위계 혹은 금품 등 대가를 사용해 미성년자의 성을 착취할 경우 처벌하도록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16세’가 되면 부모의 허락 하에 결혼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18세’에 이르러야 부모 동의 없이 결혼할 수 있도록 한 민법의 입장과 달리 ‘14세 미만’을 ‘성 미성년자’로 규정하고 있는 우리 형사법 체계는 15~18세 청소년들을 ‘성적 대상물’, ‘성 사냥감’으로 내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세 이상 성인이 사회경험과 경제력의 차이 등에 기반을 둔 부당하고 불순한 유혹이나 감언이설을 통해 ‘동의’만 이끌어낸다면, 14세 이상 청소년과의 성관계가 ‘합법’으로 인정받아 단속이나 수사, 처벌을 받지 않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10월에 있었던 사단장 성추행 사건 (출처 : 경향DB)



사법부의 태도는 더욱 심각하다. 최근 대법원은 40대 연예기획사 대표가 15세 여중생 연예인 지망생을 오랫동안 성적으로 유린하고 착취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두 사람 간 주고받은 휴대전화 메시지에서 애정과 동의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무죄”라며 그나마 실낱같은 청소년 성 보호 장치인 ‘아동 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의 취지마저 짓밟아버렸다.

전 법무차관, 전 국회의장, 전 검찰총장이 딸이나 손녀 같은 여성들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유린해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도록 파괴해도, 현직 제주지검장이 늦은 밤 공공장소, 귀가하던 여고생 앞에서 음란행위를 해도 기소나 처벌을 하지 않는 대한민국 검찰과 사법부의 ‘후진적 성 인식’은 쉽게 변하지 않을 듯하다.

대한민국에서는 힘이나 돈을 가진 자들이 뭇 여성들을 ‘성적 대상’, ‘성 상품’으로 쳐다보며 쇼핑하듯 상대를 골라 마음껏 유린해도, 소설 <로리타>의 낭만적인 로맨스로 미화되거나 과도한 스트레스 등으로 ‘몹쓸 병’에 걸린 동정의 대상이 되어 보호된다. 그들이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권력의 집사 역할을 해주는 대가로 실정법과 그 입법 취지를 무시하고 파괴할 수 있는 ‘절대 반지’를 움켜쥔 판검사들이거나, 이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만큼의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성폭력 등 ‘4대 악 척결’을 부르짖는 근엄한 얼굴의 이면에는 어린 여성을 대상으로 성매매와 성착취를 일삼는 주지육림의 추악한 모습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성 후진국’ 대한민국, 이대로는 안된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6년 전, 경남지역 보육원에 있는 고아 소년들이 모여 유소년 축구팀을 만들었다. 축구로 희망을 일군다는 뜻에서 ‘희망 FC’라 이름붙인 이 팀은 곧 해체되고야 만다. 돈이 없으면 운동을 계속할 수 없는 현실에서, 어차피 꺾일 ‘헛된 꿈’을 꾸면 안된다는 보육원들의 반대 때문이었다.

사교육 열풍 속에 공부로는 희망을 찾을 길 없는 가난한 아이들, 오직 공 하나만 있으면 되는 축구에서 희망을 찾자는 이 작은 움직임은 지역아동센터로 옮겨갔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저소득층 자녀들로 구성된 새로운 ‘희망 FC’는 박지성, 손흥민 같은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일념하에 구슬땀을 흘렸다. 경남도민 축구단이 유니폼을 지원해주고, 단장이 사비를 털어 훈련용품과 대회 참가비용을 마련했다. 감독도 아이들의 ‘꿈’을 위해 스스로의 이익을 포기한 채 함께 구슬땀을 흘렸다. 불우한 환경 탓에 우울하고, 소극적이고, 사회성이 부족하거나 폭력적이던 아이들이 축구를 통해 절제와 인내와 협동과 우정을 배워나가는 과정은 감동적이었다. 꼭 축구선수가 되지 못한다 해도, ‘희망’을 품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며 친구들과 함께 고락을 나누는 그 경험은, 어린이라면 ‘누구에게나’ 제공되어야 할 기본적인 권리다. 6년간의 혼란과 시행착오를 거쳐 실력이 향상된 지난해, 이제 ‘희망 FC’ 선수들이 중학교 축구팀들의 스카우트 대상이 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그때, 재정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외부 지원 없이는 더 이상 팀을 운영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오직 기댈 것은 지역 리그 우승팀들만 출전할 수 있는 ‘전국 왕중왕전’ 진출로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2위로 마감된 리그를 끝으로 ‘희망 FC’는 해체되고 만다.

영화 <누구에게나 찬란한>의 한 장면 (출처 : 경향DB)


지금 잔잔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누구에게나 찬란한>이 전하는 내용이다. 스포츠 분야뿐 아니라 음악과 미술, 춤과 노래, 연기 등 대중예술에 이르기까지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꿈’과 ‘희망’의 길은 막히고 끊긴 지 오래다. 각종 학원과 클럽에서 비싼 비용을 주고 교습을 받지 않으면 자신의 재능과 노력을 인정받을 기회조차 부여받을 수 없다. 그 ‘기회’들의 상당 부분은 실제로 그 길을 갈 생각도 없는, 있는 집 아이들의 취미나 ‘스펙’을 위한 도구로 점유당하고 있다. 소수의 부자가 사회적 부의 상당 부분을 독점하고 다수의 노동자가 그 나머지를 분배받는 ‘불평등한’ 자본주의가 유지되는 이유는, ‘기회의 균등’과 ‘복지’ 두 가지일 것이다. 부모의 재산이나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동등한 기회’가 부여되고, 노력과 재능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는 공정함. 그리고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들이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향유할 수 있는 ‘복지’. 이 두 가지 자본주의의 미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면 다수 노동계층의 분노와 불만이 극대화할 수밖에 없고, 군대와 경찰 등 ‘제도의 폭력’과 언론과 방송을 통한 ‘상징과 여론 조작’에 의존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다. 전체적인 경제규모는 세계 10위권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이 분열과 갈등과 혼란으로 점철되는 근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권력자와 부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오래 유지하고 싶다면, 비극으로 치닫는 지름길인 ‘제도의 폭력과 여론조작’에 의존하면 안된다. 자연스러운 신분상승과 자기실현의 기회 분배가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대중예술 각 분야의 일정한 비율은 노동자 계층과 저소득층과 고아들과 장애인 등 소수자, 사회적 약자의 자녀들이 담당할 수 있는 사회 설계를 해야 한다.

우선 ‘희망 FC’를 살려야 한다. 각 지역에 그 지역 ‘희망 FC’들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보육원과 지역아동센터와 그룹홈에 있는, 각 분야 소질과 꿈을 가진 아이들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기회’를 부여받게 해줘야 한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1957년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등 4개 부처 장관이 공동으로 9개 항의 ‘어린이 헌장’을 발표했다. 한국 동화작가협회 발표 내용을 보완한 뒤 공식화한 것이다. 그 3항은 “어린이에게는 마음껏 놀고 공부할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4항은 “어린이는 공부나 일이 몸과 마음에 짐이 되지 않아야 한다”였다. 1988년 개정되면서 표현이 다소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어린이 정책의 핵심이다. 그런데, 2009년부터 올해까지 ‘어린이 행복지수’가 6년째 내리 ‘OECD 국가 중 꼴찌’를 기록하고 있고, 그 주된 이유로 성적 압박과 학습 부담, 그리고 ‘부모와의 관계’가 꼽히고 있다.

지난주 목요일 서울에서 12세 초등학생이 골목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자살 가능성을 높게 둔 채 수사를 진행 중이다. 학교폭력 피해 등 뚜렷한 동기가 발견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지나친 학원 과외와 성적 압박 등 ‘학업 스트레스’가 원인일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시되고 있다.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어린이·청소년의 40%가 한 번은 자살을 생각하고, 9%는 실제로 자살 시도를 해본 경험이 있는데 그 이유로는 ‘성적과 진학 문제’가 53.4%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꼭 ‘성적이 나빠서’만이 아니다. 늘 1등을 달리던 청소년도 다른 친구에게 뒤처질까봐, 그리고 너무 힘들어서, 목숨을 끊고 있다.

그동안 역대 정부와 교육계, 그리고 부모들은 대한민국의 어린이 관련 공식 철학이고 정책인 ‘어린이 헌장’을 정면으로 위반해 온 것이다. 록 어린이 헌장에 강제력이나 법적 구속력이 없으니 처벌을 할 수는 없지만, 국가와 사회가 규범과 의무, 책임을 위반해 온 것이다. 아직 선거권도 없고, 독립을 하지 못한 상태라는 어린이들의 약점을 악용해, 육체적 감정적으로 착취하고 학대해 온 것이다.

7일 서울숲 체육공원에서 열린 어린이 인라인 스케이트 대회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힘차게 스케이팅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칠곡과 울산 사건처럼 신체적 폭력으로 죽여야만 ‘아동학대 살인’이 아니다. 모든 어린이가 타고 태어난 ‘맘껏 뛰어놀 권리’, ‘친구들과 격의없이 우정을 나눌 권리’, ‘사랑과 관심, 보호를 받을 권리’를 무자비하게 빼앗고, 미래의 직업과 돈벌이, 그리고 부모의 만족과 자부심 혹은 한풀이를 위해 친구를 경쟁자로 삼은 채, 오직 ‘공부’에만 매진하도록 내몰아 결국 영혼이 꺼지도록 만든 것도 ‘아동학대 살인’이다. 그 배경에는 ‘갑질’이 도사리고 있다. 힘이나 돈, 지위가 있는 자들이 약하고 낮은 자들을 짓밟고 괴롭히고 착취해 대니 사회 전체가 ‘한’과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내 자식은 절대로 무시, 천대받지 않게 하겠다’, ‘지금 죽어라 공부하지 않으면 사람 취급 못 받는 낮은 지위, 천한 직업을 갖게 된다’. 그런데, 이런 ‘공포’는 갑질하는 기득권층도 가지고 있다. 혹시나 내 자식이 낮은 지위로 떨어져 지금 자신들이 하는 갑질의 대상으로 전락할까봐 두려운 것이다. 혹여나 ‘개천에서 난 용’이 강한 힘을 가지고 모든 것을 바꾸고 복수를 할까봐 겁이 난다. 그래서 ‘사교육 광란’으로 철옹성 같은 ‘진입장벽’을 구축하고, 입시와 채용, 승진과 출세 등 ‘신분상승의 기회’를 독점하고 차단하려 애쓴다. 부자들이 몰려 사는 강남이 ‘사교육 지옥’이 된 이유다. 그중에서도, 아직 자녀를 위해 확실한 경제적, 신분적 안전을 확보하지 못한 중산층의 상승 욕구와 하락에 대한 공포가 가장 크다. 최근 발표된 현대경제연구원의 ‘우리나라 가계의 엔젤계수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중산층의 교육비 지출비율(엔젤계수)이 18.6%로 가장 높게 나타난 이유다. 그만큼 그 자녀들의 고통과 스트레스도 크다.

해마다 5월이면 대통령과 정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앵무새처럼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 ‘미래의 희망’이라고 읊어댄다. 그리고 뒤에선 그 ‘보배’와 ‘희망’들을 학대하고 목 조이는 모순과 불합리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과연 대한민국에 미래가 있을까? 더 늦기 전에, 올바른 현실 인식과 각성을 기초로 한 변화와 행동이 필요하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군 기지 안에서 발생한 불법행위에 대해 제보를 하려던 병사가 수사관을 만나기 전에 기합을 받던 중 사망한다. 군은 사건을 원만하게 해결해 달라며 ‘합의 전문 변호사’에게 의뢰한다. 헌병대 여 수사관과 사건을 조사해 나가던 변호사는 결국 군 내부 고위층의 뿌리 깊은 불법과 인권침해 인식과 관행을 발견하고 법정에서 그들 스스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교사’ 혐의를 실토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한다.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거쳤지만, 결국 ‘몇 사람의 의인’들의 용기와 헌신, 노력에 의해 진실이 밝혀지고 정의가 실현된다. 1992년에 개봉했던 할리우드 영화 <어퓨굿맨>(몇 사람의 의인들) 이야기다. 미국 해병대에서 발생했던 실제 사건을 극화한 것이다.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의인’들이 보복과 불이익에 내몰리고 ‘악인’들은 영광과 명예, 평안을 누리고 있다. 사관학교 입학부터 중령에 진급할 때까지 모든 교육과정을 수석이나 차석으로 졸업하고, 중요 요직을 거치며 촉망받던 육군 헌병 황모 중령 이야기다. 언론에 따르면 2010년, 당시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단장으로 재직 중이던 이모 준장이 부하들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며 5000만원에 이르는 공금을 횡령해온 사실을 발견한 황 중령은 고심을 거듭한 끝에 육군 중앙수사단장에게 익명으로 편지를 써 이를 알렸다. 하지만 그는 결국 ‘복무규율 위반’ 및 ‘보안규정 위반’ 등의 사유로 감봉 3개월이라는 중징계와 따돌림의 대상으로 전락하고야 말았다. 황 중령의 제보 편지를 받은 육군과 국방부는 ‘장성 비리 의혹 수사’보다는 ‘제보자 색출’에 전력을 기울였고, 결국 그의 신원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2011년 4월, 언론에 해당 의혹이 보도됐고, 그로부터 2개월 후인 6월, 국방부 검찰단이 “의혹이 제기된 횡령 대부분이 사실임을 확인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미 전역한 이 준장에 대한 수사를 민간 검찰에 의뢰했다. 하지만 검찰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내사종결’ 처리를 했다.

병사들이 먹을 빵 구입비와 방탄헬멧 도색비 등 총 5000여만원을 횡령한 ‘악인’은 장성에게 지급되는 모든 영전과 영예를 누리며 전역한 반면, 군 내부가 썩어들어가는 비리를 목격하고도 모른 척 눈감았다면 승승장구 권력과 지위가 보장됐을 엘리트 장교는 ‘의인’ 노릇을 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이제 49세가 된 황 중령은 4년 뒤면 곧 청춘을 다 바쳤던 군에서 쓸쓸히 퇴장해야 할 위기에 직면해 있다. 각 계급별 승진 시한 내에 승진하지 못하면 ‘계급정년’에 걸려 퇴직해야 하는 군 인사규정의 특성 때문이다.

비리, 날조, 성 군기 문란, 병영 가혹행위 등으로 한국 군대는 얼룩져만 간다. (출처 : 경향DB)


최근 우리 군은 총체적 위기 상황에 봉착해 있다. 세월호 참사 구조 실패의 한 축을 담당하는 해군 ‘통영함’의 수중음파탐지기 비리 의혹은 국민적 분노를 일으키고 있고, K-11 소총 격발 결함, 이지스함 소음 문제 및 구축함 전투체계 노후화 등 전반적인 ‘방산 비리’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잇따른 병영 내 가혹행위와 성 군기 문란 사고, 총기 난사 사건 및 의문사 등 병영문화의 후진성과 인권유린 상황에 대한 질타도 쏟아지고 있다. 급기야 대통령까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며 특단의 조치를 당부했다. 이런 상황에서 예상되는 군의 대응은 법과 제도 개선, 예산 증액, 뼈를 깎는 노력 다짐, 일부 문제 관계자 문책 등이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꺼내는 ‘해묵은 레퍼토리’다.

오래된 구조와 관행이 낳은 ‘군 적폐’들의 일부가 되어 비리 행위에 가담했거나, 문제제기를 하면 자신의 진급 등 영달에 지장을 초래할까봐 눈감고 귀막는 방관자였던 이들이 장관과 총장과 사령관들이 되어 있는데, 어찌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수 있을까? 황 중령 같은 ‘의인’들을 보호하고, 청년 군인들에게 황 중령 같은 참군인이 되라고 교육해야 군 비리가 척결되고 튼튼한 국방을 이룰 수 있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지난 10일 발생한 ‘중국 어선 선장 사망사건’에 대한 항의 표시로 중국 외교부가 주중 한국 대사를 초치했다. 우리 국격과 국위가 어이없이 손상당하는 순간이다. 대한민국 해경은 적법하고 정당한 공무집행을 했다. 작은 도발로도 치명적인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바다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해상 법집행에 대한 폭력적인 저항은 결코 보호받을 수 없다. 이미 2008년과 2011년 불법조업 중국 선원이 휘두른 둔기와 흉기에 맞은 박경조 경위와 이청호 경장이 사망하는 등 비극적인 사건들이 있었다. 연간 20만척이 넘는 중국 어선이 우리 해역을 침범해 불법조업을 하고 있는데, 단속 건수는 연간 500건을 밑돌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올해는 현재까지 122건에 불과하다. 촘촘한 그물로 해저를 쓸고 다니는 중국 어선들의 무자비한 싹쓸이 불법조업 앞에서 생계의 터전을 강탈당하는 우리 어민의 피해와 어렵게 보호해온 어족자원의 파괴 상황을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이뿐만이 아니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한 집이 있는 동네는 다른 유리창들도 깨지고 범죄도 늘어난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은 바다에도 적용된다. 무더기 불법조업이 방치되는 작금의 상황은 해상국경이 수시로 침탈당하는 해양주권의 유린을 의미하며 이는 곧 안보위협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밀수와 밀입국 및 중요 범죄자들의 밀항 통로로 이용되는 해상치안 파괴 상태를 의미한다.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범’ 조희팔이 바로 이런 ‘불법조업 중국 어선을 이용한 밀항’으로 국가사법체계를 통째로 유린했다. 구원파 실질적 교주 유병언의 사망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의심도 허술한 우리 서해 경비망에서 기인한 바 크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은 대형함정 7척과 중형함정 10척, 항공기 3대 등으로 편대를 구성해 군산과 태안 광역, 목포 광역 등 3개 구역에서 15일부터 3일간 불법조업 외국어선에 대한 특별단속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출처 : 경향DB)


북방한계선(NLL)을 사수하겠다는 정부 당국, ‘북한이탈주민’들을 수개월 동안 격리조사하며 간첩을 잡으려다 증거조작과 인권유린 시비에 휘말린 국가정보원, ‘안보 위해사범’을 잡겠다며 통신업체들을 ‘온라인 사찰’에 동원하고 무리한 ‘사이버 명예훼손 수사’에 나서는 검찰이 독재의 우려를 낳는 나라에서 물리적 안보의 최일선인 바다를 이렇게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은 경악스럽다. 게다가 열악한 장비와 국가적 무관심 속에서 최소한의 해상안보와 해양주권을 지켜오던 해양경찰청은 해체의 위기 앞에 놓여 있다. 범죄수사와 정보 업무는 경찰청으로 이관하고, 해상경계활동과 구조업무에 전념하는 ‘해안경비대(가칭)’를 창설하겠다는 것이 청와대의 의중이라고 한다. 해경 해체로 인한 해상 치안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 청와대는 ‘오히려 해상 보안을 강화하는 개혁’이라고 반박한다. 문제는, 해경 해체 계획이 세월호 참사 발생 원인과 구조 실패에 분노하는 국민 여론을 달래기 위한 ‘분풀이성 희생양 찾기’의 성격이 짙다는 점이다. 충분한 조사와 분석 끝에 나온 결론이 아닌, 즉흥적인 충격요법 제시라는 절차와 과정도 문제다.

법과 외교문제 등으로 해군의 해상 치안활동이 제약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해상 치안-경비-구난 조직의 역량은 해상주권의 핵심이다. 미국과 일본이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해 일본 경찰과 해상방위청이 추가로 참여하는 ‘외교-국방-경찰 상설협의체’를 구축하겠다는 이유다. 중국과 영토분쟁을 불사하며 일본이 실효지배 중인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에 중국 어민이 상륙하는 등의 ‘회색지대 사태’(경찰과 자위대 출동의 경계에 있는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서로 다른 것 같지만, 해상 경계 경비와 정보, 수사 및 구호구난은 연계성과 상승효과를 통한 시너지를 발휘한다. 서로 다른 조직으로 분리한 협력 시스템보다 한 조직 내에서의 유기성이 더 효율적이다. 세월호 참사를 야기한 부패와 유착, 구조 실패를 부른 무능과 비효율을 철저히 규명해 엄중한 처벌과 구조와 관행 혁신을 하되, 해양치안 역량의 저하를 초래해서는 안된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세월호 참사 167일째인 어젯밤, 특별법 제정안에 대한 여야 대표 간 합의가 비로소 이루어졌다. 여전히 10명의 실종자는 돌아오지 못하고 있고, 유가족은 심리적 치료와 치유 과정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농성 중인 참담한 상황에서 기대와 희망을 주는 소식이다.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도대체 왜 300명이 넘는 생명이 그렇게 허망하게 스러져가야 했는지에 대한 진실 발견과, 책임 있는 자들에 대한 단죄와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시작조차 못하고 있었다. 아직 대표 간 합의에 대해 양당 의총을 거쳐야 하는 등 절차적 문제가 남아 있지만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진정한 첫발’을 이제 겨우 내디뎠다고 볼 수 있다.

냉정하게 바라보자. 왜 이렇게 늦어졌으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은 하나다. ‘정치적 계산’을 빼면 된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뒤 우리 모두는 분노와 참담함에 치를 떨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분노와 위로의 공감대’는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대통령의 책임’ 문제가 중심에 떠오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한쪽에서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자는 주장과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 심지어 고통 속에 빠져 있는 유가족을 ‘대통령 공격하는 매국노’라며 비난한다. 다른 쪽에서는 ‘대통령이 세월호를 침몰시켰고, 구조하지 못하게 한 주범’이라며 퇴진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가장 큰 책임은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 그리고 여당이 져야 한다. 초기에 제대로 대응하고, 미진하고 부족한 부분은 인정하고 사과하면서 유가족의 분노와 울분을 이해하며 감싸 안아주었다면 이렇게 사태가 악화되었을 리 없다. 두 번째 큰 책임은 야당에 있다. 당내 분열과 다툼으로 인한 지지율 하락 등 내홍을 겪던 야당은 정부·여당 못지않게 갈피를 잡지 못했다. 사고 초기엔 철저한 무기력과 침묵으로, 대중의 질타를 받은 뒤엔 정치적 투쟁으로, 세월호 못지않은 ‘급변침’의 모습을 보였다. ‘수사권과 기소권’,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대통령의 7시간’을 둘러싼 싸움이 세월호 참사의 총체적 진실규명보다 더 중요한 것일까? 지난 반년간의 줄다리기 중에 사라져버린 증거들과 심경이 변화된 참고인들, 서로 공모·결탁해 말을 맞춰버린 관계자들로 인해 진실 발견의 ‘골든타임’을 놓친 것보다 더 중요할까?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절차가 시작되면 ‘야당은 대통령과 정부에 치명적인 흠집을 내고 끌어내리려 할 것’이라는 청와대와 여당의 불안과 공포, 쉽게 합의해 원만하게 진상조사가 이루어져 ‘대통령과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면 지지율이 올라갈 것’이라는 야당의 두려움과 공포가 만나 이 상황을 초래한 것은 아닐까?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 원내지도부가 30일 저녁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세월호 특별법 협상 여야 합의사항을 책상 위에 놓은 채 밝은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반면(사진 위쪽) 새정치연합 문희상 비대위원장과 원내지도부는 굳은 표정으로 본회의장에 앉아 있다. (출처 : 경향DB)


이 두 공포가 만들어낸 ‘세월호 정치’는 ‘적폐’의 일부인 해운비리 관련 정치인과 역대 정권 고위 공직자들에게 면책과 도피 공간을 마련해주고 있다. 반면에, 졸지에 참극을 겪은 피해자 가족에겐 ‘지옥’에 갇힌 시간을 계속 연장시키고 있다. 가족의 억울하고 참혹한 죽음 앞에서 어떤 일이라도 해보겠다는 단식이 정치행위로 오인받고, 폭식 퍼포먼스라는 치졸한 조롱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정치인이 마련한 술자리 끝에 또 다른 약자인 대리기사와 행인을 폭행한 ‘범죄 혐의자’로 전락되고 있다. 무엇보다, ‘단원고 유가족’과 소위 ‘일반인 유가족’ 간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반년간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 여당 그리고 야당의 책임자들과 의원들은 ‘가해자’였다. 이제 더 시간을 끌면 ‘역사의 죄인’이 될 수도 있다. 양측 모두 대립과 공격의 관행을 내려놓는 용기와 겸허함을 보여야 한다. ‘정치적 계산’을 내려놓고,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국민의 대표자’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지지세력의 비난과 찬사 앞에 비겁한 동조와 연기를 보이던 습관을 거두어야 한다. 분명히 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은 그 전과 달라져야 한다. 대통령을 둘러싼 공방보다, ‘세월호의 진실’이 우리에겐 더 중요하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TAG 특별법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골프장 경기진행요원(속칭 캐디) 성추행’ 사건은 우리 사회의 부끄럽고 참담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박 전 의장의 지위가 특별히 높고, 그의 가해 행동이 지나치게 심각하며, 피해자가 남다른 용기를 발휘해 고소했기 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주변에서는 유사한 피해 상황이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여군 장교가 상관의 성추행을 견디기 힘들어 자살하고, 여교사들을 상습 성추행한 교장은 경징계를 받고 만다. 검사는 여자 피의자를 성추행하고, 항공사는 승무원 대상 성추행과 성희롱 승객들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도 교수의 제자 성추행과 성희롱이 심각한 문제고, 회식 자리 성추행 사건은 점심시간 직장인들의 단골 화젯거리가 된 지 오래다.

왜 이 지경일까? 일부 주장처럼 ‘남자의 성 욕구는 본능적’이고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강해서’일까? 그렇다면 그 본능적 욕구는 왜 늘 높고 강한 사람이 낮고 약한 사람을 대할 때만 발동할까? 한국 남자들이 다른 인종이나 민족의 남자들보다 진화가 덜 된 미개한 인종집단일까? 게다가, 최근엔 여성 상관이나 직장 상사, 혹은 교사들이 남자 신입사원이나 학생들을 성추행하는 사건들도 늘고 있다. 지위가 높아지면 여성 성호르몬이 남성 성호르몬으로 바뀌고 남성적 성 욕구가 생기는 놀라운 ‘생물학적 변화’가 발생하는 것일까? 의학적, 심리학적으로 ‘성(性·sex)’은 대뇌 ‘성 중추’에 의해 통제된다. 발정기에만 성 욕구가 생기는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언제든지 인지와 의식, 상상 등의 작용으로 성 중추가 자극되어 성 욕구가 발동될 수 있다. 심지어 노령, 질병, 거세 등으로 인해 기능적으로 ‘성불능’ 상태인 사람도 성적인 환상을 즐기고 다른 사람에게 성적인 가해 행위를 할 수 있다. 심지어 동유럽 체코 공화국에선 물리적 거세를 당한 성범죄 전과자가 연쇄성폭행을 저지르다 검거되기도 했다. 물론,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등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충동과 욕구를 통제하지 못해 성범죄를 저지르는 ‘성도착 환자’들도 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4년 9월 14일 (출처 : 경향DB)


하지만, 권력자 혹은 상급자나 고객 등 소위 ‘갑’의 위치에 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소위 ‘을’에게 저지르는 성희롱과 성추행은 모두 철저히 합리적 선택에 의해 저지르는 범죄들이다. 즉, 개인적으로는 ‘본능’이 아닌 인지와 사고 등 ‘생각’과 ‘습관’이 문제고, 사회적으로는 문화와 관행이 원인이다. 그동안 대기업의 중소기업 혹은 대리점 대상 횡포, 지위가 높거나 많이 가진 자들이 상대적으로 약한 자들을 괴롭히고 착취하거나 폭행하는 소위 ‘갑질’ 논란의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 있다. ‘성(性) 갑질’이라 할 만하다. ‘성(性) 갑질’이 더 문제인 이유는, 가해 행위가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피해자는 극도로 수치심을 느껴 큰 충격과 긴 후유증에 시달리는 데 반해 신고나 항의 혹은 피해구제 노력을 하기 어렵다는 특성 때문이다. 만약 ‘성(性) 갑질’ 피해 사실을 알리거나 신고할 경우 피해자들을 도와야 할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오히려 숨기고 무마하려 애쓰거나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가하기도 한다. 가해자들은 이런 피해자들의 약점을 너무 잘 알고, 서로 공유하거나 학습하면서 ‘성(性) 갑질’을 상습적으로 저질러왔다.

이제는 멈춰야 한다. 부끄럽고 안타깝게도 누이와 딸과 손녀를 생각하라며 ‘갑들에게 반성과 자각’을 호소해 봐야 효과가 없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을 고소한 용감한 골프장 경기진행요원 같은 ‘을’들의 자기 권리 찾기 노력과 이들의 용기와 노력을 지키고 보호하고 북돋워 주는 국가와 사회의 시스템이 ‘성(性) 갑질’을 멈추게 해야 한다. ‘발본색원’ ‘4대 악 척결’ 같은 용어는 ‘성(性) 갑질’에 적용되어야 한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범죄 현장에서 발견하는 가장 슬픈 모습은 ‘피해자’였던 자가 다른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로 변해 있는 상황이다. 어린 시절 이웃집 아저씨에게 성폭행당한 후 학교폭력과 군대 내 따돌림을 차례로 겪으며 영혼이 황폐해진 정남규가 선택한 복수극은 아무 죄 없는 여성들을 향한 잔혹한 연쇄살인이었다. 국내외 대부분 연쇄살인범의 과거에는 유사한 학대와 폭력 피해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국민적 분노를 야기한 ‘28사단 윤 일병 사건’의 주범 이모 병장 역시 후임병 때는 스스로 병영 내 따돌림과 가혹행위의 피해자였다고 주장한다. 우리 옛말에도 ‘구박받은 며느리 엄한 시어머니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난 8월22일, 네덜란드 국적의 유대인 하요 메이어가 9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저명한 학자도 정치인도 부자도 아닌,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그의 삶과 죽음이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서는 이유는 바로 “인종학살,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였던 유대인들이 지금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는 가해자로 변해 있다”고 비판하며 ‘시오니즘 반대 운동’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는 생전에 이스라엘 극우 정치인들이 홀로코스트 피해를 이스라엘 영토 확장과 팔레스타인 축출의 명분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메이어의 생전 주장들은 일제강점 피해와 처참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대한민국의 오늘을 돌아보게 한다. 외국인 이주민들에 대한 학대와 착취,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 대한 막말과 비하와 조롱, 군대와 학교 등 각종 ‘조직’에서 일상화되어 있는 권력적 폭력과 가혹행위들, 그리고 만연한 아동학대와 가정폭력. 언제든 누구든 ‘우리와 다르다’는 것이 확인되면, 그리고 특성이나 행동의 어떤 측면에서든 비난할 여지만 발견된다면, 기다렸다는 듯 모든 공격과 폭력을 퍼부어대는 우리들은 이스라엘 유대인들을 많이 닮아 있다. ‘홀로코스트 피해자에서 학살자로 변한 시오니스트’의 모습 말이다. 물론 아무 죄 없는 이스라엘 청소년을 납치해 끔찍하게 살해한, 하마스로 대표되는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의 테러와 범죄는 처벌받아야 한다. 시리아와 이라크 등에서 극단적인 가학적 살인행각을 저지르는 ‘이슬람 국가(IS)’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 또한 이스라엘과 미국 등 서방 측의 가해와 침략과 탈취와 핍박 ‘피해’를 내세우며 무고한 약자들을 대상으로 ‘가해’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군 사망사고 피해자 유가족들이 병영폭력을 규탄하고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중 사망한 피해자의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출처 : 경향DB)


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해서 모두 가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 중에서 폭력 반대 혹은 추방 운동에 나서는 이들도 많다. 그 스스로 나치에 의해 납치된 후 아우슈비츠 집단 수용소에 갇혀 부모가 학살되는 참상을 목격하는 고통스러운 피해 경험을 했던 메이어가 대표적이다. 그가 택한 길은 다른 피해자를 찾아 분노를 쏟아내는 ‘시오니스트 복수극’이 아니라, ‘절대로 되풀이돼선 안된다(Never Again)’는 외침이었다. 나치 범죄의 가해자들을 찾아 법과 절차에 따라 처벌하며 정의를 구현하는 것과 홀로코스트 피해 경험을 내세워 다른 대상에게 똑같은 가해 행위를 하는 것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는 이성의 고백이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쉽고 편한 집단주의적 삶이 아니라, 동족인 유대인 시오니스트들을 강하게 비판하는 자기 반성의 ‘피곤한 삶’이었다.

감정대로, 집단 이기의 편리함 속에 숨어, 다른 대상에게 마구 분노를 표출하며 사는 것은 너무 쉬운 삶이다. 대한민국, 보수 혹은 진보, 경상도 또는 전라도, 남자나 여자, 조직이나 집단 등의 울타리와 동질감 속에서 충성과 동료애로 자신이나 같은 편의 잘못과 가해 행위를 묻고 감추며 책임을 회피하는 삶은 너무 편안한 삶이다. 하지만 그 쉽고 편한 삶은 결코 ‘왜 사는지’, ‘왜 사람인지’에 대한 답을 주지 않는다. ‘삶의 가치’를 만들어주지 않는다. 지금 나는, 우리는, 어떤 모습인지 돌아보아야 할 때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인류는 오래전부터 ‘범죄자는 일반인과 다르다’는 착각 속에 살아왔다.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동생을 살해한 뒤 쫓겨난 ‘카인의 후예’들이나 악마에게 영혼을 사로잡힌 마녀나 이교도들이 범죄를 저지른다고 믿고 종교재판을 열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처형했다. 19세기 범죄학자 롬브로조는 ‘격세유전으로 원시인의 특성을 타고 태어난 자들’이 범죄자들이며 외모부터 일반인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반면 그의 제자 가로팔로는 ‘외모가 아닌 심리적 돌연변이’들이 범죄자인데 이들은 유색인종과 집시 등 ‘열등한 집단이나 민족’에게서 많이 발견된다고 주장했다. 무솔리니와 히틀러 등이 자행한 끔찍한 인종학살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것이다.

이후 현대과학은 이런 통념들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범죄자들의 조상과 가계를 조사하고, 호르몬과 성염색체, 쌍둥이와 입양아를 대상으로 한 수많은 연구들이 내린 결론은 ‘범죄자가 일반인과 다르다는 과학적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영철이나 정남규, 강호순 등 연쇄살인범 중에서 그의 부모나 조부모가 살인범이었던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다. 반면에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 재벌, 대학교수나 의사, 법조인 등 높은 신분이나 ‘고결한 외형’을 갖춘 자들 중에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일들이 왕왕 발생한다. 빌렘 봉거는 사회 상층부에 있는 자들이 오히려 ‘도덕·윤리적으로 타락’할 가능성이 높고 ‘범죄를 저지를 기회와 시간, 능력’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이 가진 권력과 돈, 그리고 신분이 낮고 가난한 자들을 주 대상으로 삼는 편향된 사법제도 때문에 이들 ‘사회 상층부 범죄자’들은 쉽게 적발되지 않거나, 적발되더라도 법망을 빠져나가 범죄통계에는 잘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 <프로파일링> (출처 : 경향DB)


1990년대 뉴욕 시경(NYPD)의 ‘무관용 원칙’의 성공이후 미국 경찰에 유행처럼 번졌던 현상이 ‘인종적 프로파일링(Racial Profiling)’이었다. 즉 범죄통계를 보니 가장 많은 강력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10~30대 유색인종 남성이라는 점에 착안, 이들에 대한 검문검색을 강화해 ‘예비적인 단속’을 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인종적 프로파일링’은 경찰의 검문에 불응한 흑인 청년이 거리에서 경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거나 경찰봉이나 손전등으로 구타당하는 비극으로 이어지고 급기야 이에 반발하는 인종 폭동을 촉발했다. 결국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인종적 프로파일링’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금지하는 ‘대통령령’을 제정해 공표했다. 이후 클린턴은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추문 사건에 대한 경찰과 특별검사의 수사를 받는 ‘모범’을 보였고, ‘세계 경제 대통령’이라 불리는 IMF 총재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역시 투숙 중이던 호텔의 여성 청소원을 성폭행하려 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체포돼 성범죄자 전용 유치장에 구금된 채 재판을 받았다.

빈부나 사회적 신분과 상관없이 ‘누구나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현대과학의 상식과 ‘범죄 앞에 귀천이 없다’는 ‘법 앞의 평등’ 원칙이 지켜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마녀사냥’ 시대의 인습과 ‘사회적 프로파일링’이 통용된다. 범죄는 사회적 신분이 낮은 사람만 저지른다는 ‘제도적 착각’이 지배하고 있다. 검사와 검사를 지배하는 자들은 어떤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법망을 피하고 처벌에서 자유롭다. 윤창중, 김학의, 김수창, 그 외 수많은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들, 그들도 보통 시민, 서민과 다름없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인격적, 상황적 특성과 조건 앞에 던져진 ‘사람’들이다. 혐의가 발견되거나 신고 혹은 고소·고발의 대상이 된다면, 철저한 수사와 엄정한 기소, 공평하고 공개된 재판을 받아야 한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된 이후, 부패된 시신의 신원확인과 사인, 사망시간 추정 등을 둘러 싼 논란이 식을 줄 모르고 확산되고 있다. 그 와중에 포천의 한 다세대 주택 안에서 발견된 두 남자의 시신 역시 부패된 상태였으며, 그 중 피의자의 남편으로 확인된 시신의 사망 시기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렇듯 세간의 관심을 많이 받는 사건 뿐 아니라 미제 사건으로 남거나 사건의 진실을 둘러 싼 법정 공방으로 이어지는 사건들의 배경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초동조치의 실패’와 ‘증거 불충분’의 문제다. 유병언 전 회장 시신 문제 역시 정부와 권력에 대한 불신 등 ‘정치적’인 문제가 가장 크게 자리잡고 있긴 하지만 변사체가 발견되었던 당시 초기에 경찰이 현장을 통제하고 보존한 뒤 시신 및 주변에 대한 철저한 현장 과학수사를 실시해 제3자의 족적과 유류물, 미세증거 및 DNA를 추출할 수 있는 체세포의 존재 여부를 밝혔더라면 ‘국과수의 신뢰위기’로까지 이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더 나아가 현장이 훼손되기 전에 시신으로부터 송치재 별장에 이르는 추정 이동경로에 대한 철저한 과학수사가 이루어졌었더라면 족적과 사라진 안경 및 이동흔적의 발견 등을 통해 ‘사건의 재구성’이 가능했을 수도 있었다.
 
다른 사건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런 ‘치부’가 드러날 때 마다 경찰이나 검찰, 그리고 정부와 국가는 ‘관련자 문책’이라는 미봉책과 대증요법으로 상처를 숨겨왔다피부 안쪽에선 곪고 썩어문드러지고 있는데, 표면에 피부색의 반창고를 붙여 감추고 아프지 않은 체를 해 온 것이다.

최초 현장에 출동하는 순찰 경찰관들부터 과학수사의 기본과 현장 보존 및 기록 조치를 정확하고 숙지하고 있어야 하며, 두 번 생각할 필요없이 행동으로 옮겨지도록 훈련이 돼 있어야 하고, 필요한 장비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경찰서 단위의 과학수사 요원과 지방경찰청 단위의 과학수사 요원의 자격과 교육 및 장비는 물론, 이들이 적절한 교대와 휴식 및 연수와 학습을 해 ‘최선의 상태, 최신 기술’을 유지하고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작년 한림대학교 사회경영1관 사회심리실험실에서 열린 제1회 과학수사(CSI) 경진대회에서 대학생들이 모의 범죄현장을 관찰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2009년 미국 범죄 수사 및 법조계는 ‘미국 과학회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의 과학수사제도 분석 보고서(NAS Report)로 인해 발칵 뒤집힌적이 있다. 유전자(DNA) 감식 분야를 제외한 모든 과학수사 분야에 심각한 문제가 있고, 과학수사 요원의 자격과 훈련, 업무 체제 및 사용 장비와 기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이후 미국 연방정부와 국회는 과학수사 제도의 문제점 개선과 발전을 위한 개혁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동안 대한민국 과학수사 요원과 국과수 법의관, 법과학자들은 ‘열악한 여건’하에서도 최선을 다해 범죄사건의 진실을 밝혀내 오고 있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열악한 환경’에서 희생하는 개인들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다. 경찰과 검찰, 군 수사기관 및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과학수사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이고 근본적인 조사와 문제점 및 그 원인들을 밝혀낸 뒤 개혁하고 개선하고 지원하고 발전시키는 국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형 NAS Report’ 가 나와야 한다.

마치 ‘양치기 소년’같은 모습이 되어버린 채, 가장 중요한 ‘신뢰’를 잃어버린 대한민국 과학수사 시스템은 국가적 비용과 혼란, 국론의 분열을 야기하는 주범이 되고 있다.

김훈 중위 사망 등 군 의문사 사건들과 천안함 침몰 등 국가적 사건, 세월호 침몰이나 유병언 전 회장 사망 등 정치적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는 사건들은 물론, 미궁에 빠지고 미제사건으로 남거나, 엉뚱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웠다는 논란에 휩싸이고, 심증은 분명한데 물증이 없다는 고전적 대사만 읊조리는 안타까운 사건들의 원인으로 작용한 ‘과학수사 시스템’의 문제, 증상의 일부가 발견돼 관심을 받고있는 지금 해결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오랫동안 치료받지 못한 채 병이 깊어지기만 하는, 난치병이 될 수도 있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소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지난달 12일 전남 순천에서 발견되었던 시신이 유병언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시신의 모계 DNA가 유병언의 친형 유병일의 모계 DNA와 일치해 ‘같은 어머니’를 두고 있음이 확인됐고, 추가 실시된 정밀 과학수사로 시신의 지문을 확보해 주민등록 데이터베이스에 보관 중인 유병언의 지문과 대조한 결과 역시 일치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고 다양한 음모론이 번지고 있다. 그동안 수사당국이 여러 정치적 사건과 권력형 범죄들의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정직하지 못한 모습과 조작의 유산이 명백한 증거마저도 의심하게 만드는 ‘불신 사회’를 조장한 탓이다. 법과학적 증거의 수집과 분석, 대조 과정 등의 오류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아닌, 무분별한 의혹과 음모론 제기는 바람직하지 않다. 유병언이 핵심이 아니라, 세월호 침몰의 책임소재 규명과 처벌 및 배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신을 화장해 DNA 검사조차 불가능하게 한 조희팔과 달리, 얼마든지 제3의 전문가에 의한 검증이 가능한 유병언의 시신은 조작이나 음모의 가능성을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줄이고 있다.

22일 오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전남 순천시에서 사체로 발견됐다는 TV 뉴스를 보고 있다. _ 연합뉴스

그렇다면 남은 일은 무엇일까? 유병언 사망 논란으로 인해 세월호 침몰의 경영책임과 뇌물 및 청탁으로 얼룩진 정·관계 부패고리를 밝혀내는 작업이 중단되거나 늦춰져서는 안된다. 특히 누구에게도 이로울 리 없는 음모론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검찰과 경찰은 ‘진실’과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관련 사실을 있는 그대로 숨김없이 내놓고, 실수나 잘못이 있었다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아울러 유병언 일족으로부터 지원과 뇌물, 향응 등을 받은 정·관계 인사들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밝혀내 처벌해야 한다. 유병언이 수배와 수색의 대상이 된 주된 이유도, 그 자신의 개인적 범행 때문이 아니었다. 그를 중심으로 한 인적 연결고리가 대통령도 직접 언급한 ‘적폐’의 실체를 밝혀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유병언 추정 시신의 정확한 신원확인과는 별개로, 진상규명과 수사가 철저하고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만일 수사당국이 유병언의 사망을 핑계 삼아 ‘꼬리가 잘렸다’, ‘벽에 부딪혔다’는 등의 변명을 내어 놓는다면, 의혹과 음모론을 부추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전방 GOP 김훈 중위 사망사건, 허원근 일병 사망사건, 천안함 침몰, 국가기관 선거개입 등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사회적 갈등이 야기되고, 음모론이 난무한 반면, ‘진실’에 대한 사회적 동의와 수긍을 통한 ‘통합’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분명히 시신이나 선체 등 ‘물리적 증거’가 명확하게 남겨져 있어 ‘과학의 힘’으로 객관적인 사실을 드러내고, ‘분석’을 통해 진실을 추단해낼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우리 모두는 늘 패배해 왔다.

가장 큰 책임은 ‘나쁜 권력’이 져야 한다. 자신들의 이익, 눈앞의 승리를 위해 수사기관과 사법기관 등 ‘진실의 보루’여야 할 기관과 기능들을 사적으로 운용하고 이용해 ‘불신의 습관’을 조장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 책임은 수사기관과 사법기관 스스로에 있다. 어떤 압력과 유혹 앞에서도 ‘오직 진실’만을 위해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켜내려는 노력과 의지가 부족했다. 강자 앞에서 약하고, 안보나 정권의 안정 혹은 자신의 조직과 제 식구 지키기 등 ‘명분’이 있다면, 거짓과 조작과 은폐도 할 수 있다는 ‘의심’을 키워왔다. 덧붙여 시민들의 의심과 의혹을 먹이로 삼고 음모론을 생산해 이익이나 영향력을 지키고 확장해온 일부 사이비 전문가들과 정치몰이배들의 책임도 크다. 시민들은 이들 세 부류가 만들어 낸 ‘의심의 여지’와 이를 틈탄 ‘음모론’의 피해자들이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고질병을 고쳐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국회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세월호특별법’의 입법과 유병언 사망의 후속조치가 그 출발점이 돼야 한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대구 황산테러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 3일 전에 극적으로 중단됐다. 피해자 태완군(사고 당시 6세) 부모가 용의자로 지목해 고소한 이웃주민에 대해 검찰이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을 내리자 다시 법원에 ‘재정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3개월 동안 법원이 이 사건에 대해 공소제기 결정을 내릴지 살펴보게 되고 경찰은 마지막 수사활동을 통해 증거확보를 시도하게 된다. 하지만 피해자 태완군이 병상에서 남긴 육성 진술 외에는 증거가 없다. 사건 초기에 현장과 용의자 거주지 등에서 확보한 ‘물증’이 남겨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15년 전 대구에서 발생한 의문의 여대생 사망사건의 공소시효가 지난 뒤 스리랑카인에 대한 기소가 이뤄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이형호군 유괴살인사건 등 수많은 강력사건이 공소시효의 벽 앞에서 산산이 부서져 영구미제의 늪으로 사라져갔다. 반면 지난 5월5일 미국 워체스터 카운티 검찰이 40년 전에 발생한 성폭행 살인사건의 용의자 론조 구스리 주니어를 체포해 기소하는 등 영국과 미국 등에선 심심찮게 30~40년 전 살인사건 해결 소식이 들려온다. 국가가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국민의 생명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를 극명하게 대비해 보여주는 사례다.

공소시효는 비단 ‘시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공소시효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수사의지를 약화시키고 증거보관 체제의 미비를 초래한다. 사건해결이 가장 용이한 발생 초기에 용의자 특정과 증거확보가 안될 경우, ‘미제 사건’으로 분류돼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어차피 공소시효 지나면 수사할 수 없는 사건’이라는 낙인이 찍히면서 서류창고의 먼지 속으로 들어가버리게 된다. 1970~1980년대에 발생한 사건의 상당수는 현장에 범인의 체액이나 모발 등이 남겨져 있었다. 하지만 당시는 DNA 신원확인 기법이 등장하기 전이었기에 그것만으로는 범인을 알 수 없었다. 만약 그 증거가 냉장 보관돼 있었다면 1980년대 후반 이후 널리 보급된 DNA기법을 통해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소시효’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폐기될 사건들의 증거를 장기간 보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수사당국은 ‘증거물 장기보관 시스템’을 마련해 두지 않았고,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물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다음커뮤니케이션과 어린이재단이 진행하는 아동 성범죄 공소시효 폐지를 위한 100만 서명 캠페인 (출처: 경향DB)


지금 발생하고 있는 사건들도 마찬가지다. 공소시효를 염두에 둔 채 ‘강력사건 증거 영구보존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지금 해결하지 못하는 사건은 앞으로 어떤 과학수사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해결할 수 없다. 물론 공소시효 제도의 필요성과 유용성은 분명히 있다. 예를 들어 이웃집 남자가 20년 전 절도사건의 범인 같다고 신고하는 등 오랜 시간이 흘러 목격자 등 관련자들의 기억도 흐려지고, 물적 증거도 분명치 않은 수많은 사건을 고소하고 기소할 수 있게 한다면, 그로 인해 시민의 일상생활이 위협받고 괴로움이 초래돼 ‘법적 안정성’이 흔들리고 사회불안이 야기될 수 있다. 수사력 등 국가비용 낭비도 심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극히 제한된, 반드시 필요한 ‘특정 범죄’에 한해 공소시효를 폐지해 ‘진실과 정의를 향한 실효성’을 담보하되 불필요한 혼란과 사회적 비용은 막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우리 사회가 ‘내란 및 외환의 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폐지하고, 어린이 대상 성범죄의 공소시효를 피해자가 성인이 될 때까지 중단시키는 것을 입법화한 것은 중요한 발걸음이었다. 한 발 앞으로 더 나가야 한다. 그동안 우리가 뒤따라간 일본 역시 최근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했다. ‘특정 강력범죄의 공소시효 폐지’는 예방 노력 부족으로 범죄피해를 막지 못한 국가가 피해 국민에게 해야 할 최소한의 예우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전방부대 총기사고, 천안함 폭침, 군부대 내 자살과 의문사…. 끝없이 이어지는 안타까운 생명의 손상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도대체 왜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우린 병역의무를 ‘신성하다’고 부른다. 대한민국 국적의 성인 남자라면 누구나 치러야 하는 ‘헌법적 의무’이기도 하거니와 가족과 이웃, 민족과 국가를 지키는 숭고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 숭고함은 입영대상인 국민에게만 적용되는 ‘일방향 의무’가 아니다. 국가는 각 가정의 소중한 자녀들을 병역의무 기간 중 안전하고 건강하게 보호하고, 군 복무를 통해 더 자신있고 당당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군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병사들이 괴롭힘과 학대, 심지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장병들의 안전과 전투력 향상, 안보체제 확립을 위해 부여한 지휘권과 통제권, 인사권 및 징계권 등이 악용·남용되고, 특수한 군 문화에 적응하기 힘든 특성을 안고 있는 병사들을 잘못 배치하고 방치해 병영갈등이 유발된 것이 근본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 이면에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병영관리와 안보역량 강화가 아닌, 일신의 안녕과 출세를 위해 권력과 정치권에 줄을 대느라 부패하고 무능한 자들의 득세가 도사리고 있다.

국방장관이 되기 위해 대통령 부모의 사진을 휴대폰에 걸고 다니고, 국군사이버사령부를 정당의 선거운동 조직으로 운용하느라 정신없던 이들이 출세해 왔다. 내란살인죄 유죄판결을 받은 범죄자 전두환을 육군사관학교 공식행사에 귀빈으로 당당히 모신 이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의 농간이 아니라면, 총기사고가 발생한 부대마다 어떻게 한결같이 서민 자녀들로 채워져 있고, ‘관심병사’들이 몰려 있는 ‘우연’이 계속 반복될까? 천안함과 참수리호 순직 장병들 역시 그랬고, 힘들고 어렵다는 최전방과 오지 근무자 중 군 장성과 권력자, 정치인들의 자녀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병역의무를 회피하고 면탈하는 자들 역시 고위 공직자와 부유층에만 몰려있다. ‘국민개병제’를 유지하는 대한민국에서 병역의무의 불법 면탈은 국민의 ‘평등권’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반헌법적 범죄다. 입대한다 하더라도 군 내 권력자의 농간으로 불평등한 보직과 근무지 배치가 이루어진다면, 역시 간과해서는 안될 범죄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이 사이버사령부 댓글의혹 사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번 동부전선 일반전초(GOP) 총기사고의 원인이 ‘전방근무 병사의 부족’으로 인한 ‘관심병사’ 등급 변경과 배치라고 한다. 심신이 건강하고 가정환경이 좋은, 그래서 긴장과 스트레스의 연속인 전방근무를 잘 해낼 수 있는 ‘양질의 자원’들이 모두 이런저런 배경과 연줄을 동원해 대체복무와 후방으로 도망가 있는 상황이니 이런 문제가 생긴 것 아닌가?

군은 그동안 ‘의무복무제로 인해 입영대상자가 너무 많다’며 다양한 대체복무 제도를 도입했다. 그런데 ‘사람이 부족해 전방근무 부적합자를 전방에 배치할 수밖에 없고, 장기간 교대없이 전방에 묶어둘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현재의 야당 역시 군이 이렇게 썩어 문드러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노무현 정권 첫 내각의 20%와 그들의 아들 9.5%가 병역면제자였다. 이명박 정권, 박근혜 정권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군 인사의 지역편중을 해소했을진 모르지만, 군 내 비리와 불합리, 무능의 근본 문제는 해결하지 않았다. 집권당과 상관없이 ‘정치 군인’들이 권력자들과 여론주도층 자녀의 ‘병역 편의’를 조건으로 사익을 도모해 온 정황이 줄곧 이어져 왔다. 총기난사한 병사 한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더 이상은 안된다. 정치군인들을 모두 찾아내 철저히 벌하고 다시는 이런 사람들이 군을 장악해 망치지 않게 해야 병사들이 허무하고 무의미한 죽음과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의 문제다. 정치색과 이념을 떠나 국민의 관심과 힘으로 반드시 고쳐야 한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은 물론, 국민 모두가 분노와 절실함을 담아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진실’을 요구하고 있다. 이미 ‘살인죄’로 기소된 선장과 선원들, 그리고 도주극을 벌이고 있는 유병언의 구체적인 범죄 행위는 물론, ‘적폐’로 불리는 정·관·산 부패 연결 고리의 실체, 그리고 법과 제도, 관행과 문화의 문제를 규명해 내라는 것이 상처 입은 사람들 모두의 정당한 요구다. 이미 정부, 여야 정당들과 사회 각계각층은 ‘진실 규명’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합의했다. 검찰의 수사에 이은 재판과 국회 국정조사는 그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천방안으로 들어가면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검찰 수사는 이미 여러 차례 ‘권력지향성’에 대한 비판과 의문의 대상이 되면서 ‘성역 보호’와 ‘제 식구 감싸기’, ‘꼬리 자르기’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법원 역시 검찰이 제출한 공소장의 한계와 범위를 넘어서는 진실 발견은 아예 자신들의 역할로 인지하지 않고 있다. 국회 또한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국정조사’에서 보인 어처구니없는 모습으로 ‘진상규명 의지와 능력’에 대한 신뢰를 잃은 상태다. 권력다툼과 정쟁이 습관화된 대한민국 정치권에 객관과 진실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른다. 이대로라면 ‘진상규명’이 아니라 ‘의혹과 정쟁, 분열의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여론을 의식한 정부와 국회에서는 ‘민관합동 진상조사단’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절대로 안될 일이다. 이미 천안함 사건에서 경험한 ‘철저한 실패작’이다. 이런저런 대표자들과 자천타천 전문가들이 모이는 무질서하고 무책임한 모임에서 의미와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수많은 증거와 자료를 열람할 경우, 각자의 목적과 의도 혹은 선입견에 맞는 것만 발췌해 주장하고 이용하는 ‘대혼란’만 초래될 뿐이다.

세월호 승무원 15명 법정에 (출처 :경향DB)


그럼 대안이 무엇일까? 이미 많은 나라에서 실효성이 검증된 ‘독립 조사위원회’ 방식이 답이다. 영연방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운영하는 ‘왕립조사위원회’나 미국의 사안별 독립위원회가 대표적이다. 모두 대법관 출신 등 정치권과 사회 및 학계의 신뢰를 받는 원로 법조인을 위원장으로 임명해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걸고 진실을 밝히도록 한다. 1년 이상의 장기간 조사를 진행하며 특별법을 제정해 검찰이나 국세청 등 모든 기관의 권한을 포괄한 강한 힘을 부여한다. 인력과 예산 역시 충분히 지원된다. 런던과 뉴욕을 충격에 빠뜨린 총체적인 경찰부패 문제나 안보와 인권 사이 갈등과 국론 분열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던 중앙정보국(CIA)의 불법 문제를 해결하고 국가 수준을 업그레이드한 주역들이다. 우리나라 역시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와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를 통해 묻혀있던 진실을 드러내고 피해자들의 한을 풀어 준 사례가 있다.

하지만 천안함 사건 등 의혹과 갈등의 대상이 된 대형 사건의 진실이 속 시원하게 밝혀진 사례를 찾기 어렵다. 과거와 현재의 권력, 혹은 관련 당사자들의 이해와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래서 그 조사 결과에 대해 광범위한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독립된 전문 조사기구의 부재 탓이다. 속칭 ‘김영란 법’으로 알려진 고위공직자 부패방지법을 제안한 김영란 전 대법관은 부패방지를 총괄하는 국민권익위원장을 역임했고 노무현, 이명박 두 정권에서 공히 인정과 신임을 받았으며, 현 정부의 총리 후보로 거명된 사람이다. 정파를 초월한 지지와 피해자 가족을 포함한 국민 다수의 신뢰를 받을 수 있으며, 수사와 조사의 전문성까지 갖춘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김영란 전 대법관이 주도하고 책임지는 ‘독립 조사위원회’라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혀 피해자와 가족들의 원과 한을 풀어 주고, 확고한 재발방지 개혁 방안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독립된 ‘김영란 조사위원회’ 설치를 촉구한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범죄나 사고 자체보다 주변인들의 부적절하거나 몰지각한 언행 때문에 발생하는 ‘2차 피해’, 혹은 ‘2차 트라우마’가 더 심각할 수 있다. ‘2차 피해’는 피해자나 유가족에게 일어나는 독특한 심리적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최초의 충격 이후 피해자들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것은 ‘도대체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겼지?’라는 ‘의문’이다. 그런데 이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조사나 수사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피의자나 관계자들은 숨기고 감추고 회피하기 일쑤기 때문이다. 이는 곧 피해자의 ‘분노’ 감정을 촉발시킨다. 특히 분노를 쏟아부을 특정 대상이 확실하지 않은 경우 이 분노는 ‘모두’를 향하고, 때로 예상치 못한 방법과 상황에서 돌출하기도 한다.

분노와 거의 동시에 엄습하는 것이 ‘의심과 경계’다. 경찰이나 언론, 심지어 자원봉사자까지 모든 사람이 ‘가해자 편’ 같아 보인다. 이와 함께 ‘다 내탓이야’라는 불합리한 자책감이 발생한다. 이러한 복잡한 심리가 뒤섞이며 피해자들은 돌발적인 감정표출을 하다가 침울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겉으로 공격성과 분노를 보이는 피해자들의 내면은 무척 불안하고 취약하다. 피부를 모두 벗겨낸 생살처럼 아주 작은 접촉에도 심한 상처를 입거나 치명적인 감염을 당하기 쉽다. 복잡하고 독특한 ‘피해자화 현상’은 1940년대 독일에서 ‘멘델슨’과 ‘헨티히’의 연구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50년대엔 영국의 ‘프라이’에 의해 국가적인 대책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후 여러 나라에서 피해자보호법과 피해자헌장 등을 제정했고 1980년대에 이르러 유엔에서도 결의안이 채택된다.

풍경 걸린 팽목항 방파제 (출처 :경향DB)


우리나라 역시 일본의 뒤를 따라 피해자보호 제도를 도입했지만 형식에 불과했다. 오히려 피해자의 상처에 소금을 뿌려대는 ‘2차 가해’ 언행들이 끊이질 않는다. 성폭행 등 사건에서 종종 나타났지만, 세월호 참사나 5·18 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들에게서 두드러진다. 피해자를 괴롭히며 ‘2차 피해’를 유발하는 가해자들에겐 ‘공감능력 부족’이란 질타가 쏟아지지만 이들의 이면에 있는 심리적 원인을 이해하지 못하면 ‘피해자를 두번 죽이는’ 사회현상은 고칠 수 없다. 집단적으로 피해자와 소수자 등 약자를 괴롭히는 이면에는 ‘가해자와의 동일시’ 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뿌려진 이 ‘악의 씨’는 당하기만 하는 피해자의 모습과 동일시할 때 엄습하는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퍼지기 시작했다. ‘나쁘지만 강한’ 가해자인 일제와 자신을 동일시할 때 ‘생존’과 ‘안전’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지는 집단적 경험을 했다. 그 경험은 전쟁과 군사독재를 거치며 거듭 ‘강화’되어 ‘내면화 과정’을 겪게 된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강한 가해자와 동일시’하라고 가르치는 ‘이상하고 잔인한 사회’가 되었던 것이다. 국회의원, 교수, 목사, 고위 관료 및 대학생 등 배울 만큼 배우고 알 만큼 아는 사람들마저 무심결에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2차 피해’를 야기하는 이면에 숨어있는 ‘집단적 정신 병리’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개별적인 ‘2차 피해’ 유발 가해자들에 대한 엄격한 처벌과 제재, 법과 제도의 개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국가적 태도와 합의’다. 독일이 가장 좋은 예다. 역대 총리들이 끊임없이 히틀러 나치의 범죄와 가해에 대해 사죄하고 히틀러와 나치 찬양을 범죄화하면서 ‘강한 가해자와의 동일시’ 그 자체를 금지하고 통제한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국가적으로 ‘강한 가해자’ 일제, 그리고 군사독재를 인정하고 찬양하고 지지해 온 모든 역사, 정치, 법, 경제, 사회적 제도와 관행을 뜯어 고쳐야 한다. 헌법 혹은 국가보안법을 개정해서라도 일제강점과 친일, 군사독재 찬양을 금지하고 범죄화해야 한다. 이러한 국가적 기조와 태도의 변화가 전제되어야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괴물 같은 우리 사회가 ‘정상화’되는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300명이 넘는 사망자와 실종자, 발생 원인부터 구조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는 ‘총체적 국가 실패’, 선장 및 선원과 해운사는 물론 정·관계와 업계 간의 비리커넥션, 그리고 정신건강 ‘고위험군’으로 진단된 피해자 가족들과 생존자, 자원봉사자들. 그런데 이 복잡하고 엄청난 문제해결 과정을 주도해야 할 정부는 불신과 비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국회는 선거 유불리와 정쟁의 욕구를 억누른 채 여론의 눈치만 보고 있으며, 시민사회는 애도와 분노 외에는 힘을 보탤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언론과 방송은 불신을 넘어 지탄의 대상이 됐다. 더 늦기 전에 위기극복과 문제해결을 위한 절차가 시작돼야 한다. 그 절차는, 피해자 가족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대통령의 진솔하고 구체적인 책임 인정과 정부가 저지른 실수와 패착에 대한 반성과 함께 확실하고 신뢰할 만한 대책 제시로 시작돼야 한다.

시민사회는 피해자 가족의 뜻을 존중하고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책 마련을 위한 범국가적 노력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역사와 세계 앞에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 우리 세대가 반드시 달성해야 할 어려운 과제다. 특히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으며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범죄에서부터 간첩조작사건, 그리고 지속된 ‘종북몰이 메카시즘 여론조작 의혹’ 및 방송과 언론 통제 문제에 이르기까지 친정부 세력과 정부 비판 시민사회 간의 반목과 적대감이 극에 달한 우리 실정을 생각한다면, 가히 ‘미션 임파서블(불가능한 임무)’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우리는 일제강점, 한국전쟁, 군사독재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극복해낸 민족이고 시민이다.

세월호 침몰 참사 28일째인 13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실종자 학생의 부모가 가져다 놓은 신발과 운동복 위에 편지가 적혀 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그동안 국가와 민족의 모든 위기는 권력과 지배층의 무능과 부패 때문에 초래됐고, 그 극복은 민초와 시민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가능했다. 이제 권력과 지배층이 나설 때다.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참사 극복의 공과가 누구에게로 돌아가게 될지 계산하지 말고, 오직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그리고 피해자 치유와 회복이라는 ‘본질’에만 집중해야 한다. 위대한 이 땅의 주인, 시민들은 당연히 상처 입은 이웃을 위해 발벗고 나설 것이다. 방법은 하나다. 여야 합의로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피해자 지원 및 재발방지 등을 위한 특별법(가칭)’을 제정해 충분한 재원을 마련하고 범국가적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진실규명부터 피해자 치료와 지원 및 기념일 제정과 기념사업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책임지게 하는 것이다. 피해자 가족들과 여야 정치권, 그리고 시민사회 모두가 신뢰할 만한 독립적인 특별위원회가 세월호 참사의 문제해결을 전담하게 되면, 6·4 지방선거도 세월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치를 수 있고, 정부도 제 역할과 기능을 다할 수 있으며, 피해자 가족들과 이웃, 학교와 친구들도 불신과 분노를 떨치고 치료와 회복을 위한 전문적인 치유과정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문제 해결과정은 결코 ‘박근혜 대통령의 업적’이 돼서는 안되며, 반대로 세월호 참사가 ‘박근혜 퇴진’의 수단으로 이용돼서도 안된다. 만약 지금처럼 수백명이 참담하게 손상당한 이 역사적 비극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지키겠다’거나 혹은 ‘몰아내겠다’는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말이나 행동을 하는 자가 있다면, 공감능력이 결여된 ‘반사회성 인격장애자’라는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세월호 참사의 해결은 ‘박근혜를 잊을 때’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300여 원혼이 아직 부모와 가족을 떠나지 못하고 진도 앞바다 하늘 어딘가를 떠돌고 있다. 정쟁과 분열을 극복하고 진실규명과 처벌, 치유와 회복, 그리고 재발방지를 이뤄내 그 영령들의 삶과 이름들을 의미있고 고마운 존재로 영원히 우리 역사 속에 기억될 수 있도록 만드는 일, 산 자들에게 주어진 엄중한 의무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부모를 잃으면 ‘천붕(天崩)’, 자식을 잃으면 ‘참척(慘慽)’이라고 하는데 참척의 고통이 훨씬 크다고 한다. 범죄나 사고에서 살아남은 피해 생존자의 고통 역시 마찬가지다. 그 충격과 고통을 치유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피해자학에선 ‘책임소재의 명확한 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엄정한 처벌’과 함께 ‘전문적, 체계적 치료’가 뒤따르면 치유와 회복이 가능하다고 본다. 반면에, 거액의 보상이나 전문적인 치료 혹은 많은 사람의 위로가 뒤따른다고 해도 ‘누구 책임인지’에 대한 명확한 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납득할 만한 처벌’이 뒤따르지 않을 경우 오랜 시간이 흘러도 상처는 낫지 않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증상으로 끔찍한 고통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가장 큰 문제는 ‘내 탓이야’라는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인 ‘죄책감’이다. 책임자가 분명하지 않고 그에 따른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누구라도 탓해야 하고,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추궁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와 사회는 ‘전체적인, 그리고 철저한 진실 규명’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고 협력해야 한다. 정부나 기업의 안정과 이익 등 어떤 다른 요인이나 계산도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그 ‘진실규명’ 과정이 의혹 없이 엄정하게 진행되면, 그 과정 자체가 훌륭한 ‘치료약’ 역할을 한다. 진실규명이 제대로 된다면, 처벌과 책임의 무게만큼 배상하게 하는 과정 역시 정상적일 가능성이 높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신체적 정신적 ‘응급 치료’는 필수적이다.

세월호 침몰사고 전문가 대책회의 (출처 :경향DB)


하지만 자신의 안위를 걱정할 여유가 없는 피해자 가족과 생존 피해자에게 ‘절대적 안정’이 필요한 본격적인 치료는 ‘진실과 정의’ 이후로 미뤄질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이웃이나 국가, 사회의 공감과 지지는 큰 힘이 되긴 하지만, ‘진실과 정의’ 과정을 대체할 수는 없으며, 형식적이거나 지나칠 경우, 피해자 가족과 생존자는 오히려 ‘진실과 정의’가 덮이고 잊힐 것이라는 불안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 성급한 모금과 성금, 위로 분위기 조성을 삼가야 하는 이유다. 피해자의 치료와 치유, 회복에 가장 방해가 되는 태도 역시 진실을 덮고 책임소재를 분산시키려는 태도다.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이미 지난 일 따져서 뭐하겠니’, ‘당신 자신을 위해, 그리고 남은 가족을 위해, 앞으로 살아가야 할 미래를 위해’ 등을 내세우며 사건을 빨리 잊으라는 권고는 피해자 가족과 생존자를 두 번 죽이는 ‘보이지 않는 비수’다. 세월호 참사는 피해자의 수가 많아 국가와 사회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지만, 실종과 성폭력 및 교통사고 등 다른 ‘개인적 피해’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번 세월호 참사의 ‘진실과 책임자’는 어떻게 밝히고 벌해야 할까? 청해진해운 실소유주 유병언이 한강유람선 사업을 시작한 1986년 5공화국부터 세월호에서 생존 승객들을 구조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 마지막 시점까지 발생한 모든 관련 사실들이 밝혀져야 한다. 그 조사과정과 결과를 피해자 가족들과 생존자들이 ‘납득’해야 한다. 전·현직 대통령과 국회의원, 장차관 및 관련 공무원 어느 누구도 조사과정에서 예외가 되어서는 안되고 ‘성역’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동안 우리 검찰이 보여 온 ‘성역 보호’와 ‘선별적 수사’ 및 ‘정치적 결정’, 그리고 ‘공범자적 태도’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결코 피해자 가족들과 생존자들을 ‘납득’시킬 수 없을 것이다. 책임자와 그 책임의 정도가 밝혀진다면, 처벌 역시 냉철하고 엄정해야 한다. ‘일당 5억원 황제 노역’ 같은, 어떤 배려나 특혜의 ‘의심’도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만약, 대한민국의 ‘진실과 정의’ 구현 과정과 결과에 대해 세월호 피해자 가족과 생존자들이 납득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헌법은 종이 그 이상이 아니며, 대한민국은 국가라고 할 수 없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인기리에 방영 중인 영국 BBC 드라마 <셜록(Sherlock)>에는 악의 화신, ‘모리아티’가 등장한다. 납치, 살인, 폭파, 위조 등 온갖 범죄를 저지르지만 사법체계를 농락하며 유유히 활보한다. 셜록 홈스에게 붙잡혀 감옥에 갇혀도 보기 좋게 탈옥하며 공개 테러를 감행한다. 모리아티는 ‘프리메이슨(Freemasonry)’ 권력자들의 비호를 받는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개인 비리와 대선개입 범죄 혐의로 기소된 전임 원세훈에 이어 국가정보원장으로 임명된 남재준. 그의 등장과 함께 대한민국은 분열과 갈등과 혼란의 나락으로 빠져든다.

2013년 6월24일, 한국전쟁 기념일 하루 전에 느닷없이 국가기밀인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하며 소위 ‘노무현 NLL 포기발언’이라는 정쟁의 불에 휘발유를 끼얹은 것이 시작이었다. 그의 이런 무책임한 행동은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 범죄라는 지적과 고발이 뒤따랐고,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은 ‘한국은 정보기관이 국가기밀 유출자’라는 조롱을 퍼부었다. 이에 앞선 6월11일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청와대와 법무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원세훈, 김용판 두 피의자에 대해 공직선거법을 적용해 기소할 방침을 굳히자 남 원장의 부하가 학교와 구청을 통해 채 전 총장의 ‘혼외자’ 의혹을 받던 12살 어린이의 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유출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청와대 각 비서관실에서도 유사한 시도를 했다. 이러한 시도로부터 3개월 뒤, 조선일보는 1면에 채 전 총장의 혼외자 의혹을 대서특필했다. 이 사건 역시 고발에 이어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잠시 후 국정원의 지난 대선 불법개입 사건 수사과정에서 윤석열 검사가 용의자 4명에 대한 체포 및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자 남재준 원장이 ‘대로’해 검찰 고위층에 호통을 쳤고, 그 결과 윤석열 검사가 징계 및 좌천을 당하는 황당한 상황이 빚어졌다. 정치권과 여론은 들끓었고 지난 대선 불법개입 범죄 문제 해결을 위해 구성된 국회 ‘국정원 개혁 특위’에 대한 기대와 요구도 거세졌다. 하지만 남 원장은 ‘개혁 요구’를 비웃으며 휴대전화 감청권 신설 등 권한강화 요구를 했다. 그 와중에 불거진 것이 ‘유우성 간첩증거조작 사건’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4년 4월 16일(출처 :경향DB)


중국 국적의 탈북자로 우리 정부의 탈북자 지원금을 노리고 ‘북한 국적’으로 신분을 세탁해 입국한 유씨는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 수용되어 집중조사를 받고 ‘탈북 한국인’ 신분을 부여받게 된다. 이후 국정원의 관리를 받아온 유씨는 2006년 북한에 남아있던 모친이 사망하자 숨겨둔 중국 신분증을 이용해 북한에 다녀오기도 하고, 다른 탈북자들의 돈을 북한으로 보내주고 수수료를 받는 일명 ‘프로돈’이라는 불법행위로 돈을 벌기도 했다. 그러다 오세훈 전 시장 시절인 2011년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되어 복지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을 국정원이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유씨가 간첩혐의로 체포되는 과정 역시 유씨 스스로 국정원 담당자에게 자신의 누이 가려씨가 자신과 같은 방법으로 입국하니 ‘잘 봐달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면서 시작되었다.

강압수사를 통해 확보한 가려씨의 자백에만 의존해 유씨를 간첩죄로 기소했던 국정원과 검찰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하자 2006년 유씨의 북한 출입경 기록을 위조해 항소심 법정에 제출했다가 적발당했다. 그 뒤에도 조작 사실을 숨기려 거짓과 회유와 탈북자 이용 여론몰이와 자살극 등을 벌이다 최근에서야 백기를 들었다. 이 조직적 범죄가 남재준 모르게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정말 몰랐다면, 그의 ‘무능’은 과연 용서받을 수 있을까? 재임 1년여 만에 사법절차와 안보체계의 신뢰성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며 국가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남재준, 그가 이번에도 2차장을 포함한 부하 직원들만 희생시키고 권력을 유지한다면, 단언컨대, 그는 ‘한국의 모리아티’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