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칠곡에서 발생한 계모의 8살 어린이 학대 살해 사건이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친아버지도 수년간 지속된 학대에 공범으로 가담했고, 피해 어린이가 사망하자 같은 피해자인 12살 언니로 하여금 ‘동생을 때려서 죽게 했다’는 ‘허위 자백’을 하게 했다는 사실이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그동안 피해 어린이의 멍과 상처를 보다 못한 선생님과 사회복지사가 수차례 신고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국가와 관련 기관이 이 끔찍한 살인을 막지 않았다는 사실을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어린이를 부모의 소유물로 보는 전근대적 인식과 사회에 만연한 폭력 등의 근본적 원인과 함께 학계와 시민사회의 오랜 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동학대 방지법’ 등 꼭 필요한 법과 제도적 장치를 갖추지 않은 정부와 국회의 잘못도 따져 물어야 한다. 여전히 ‘부모의 체벌’을 당연한 권리로 인식해 아동학대 범죄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의 무지 역시 질타받아야 한다.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 지존파. 한국사회를 충격에 빠트린 연쇄살인범들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아동학대’ 피해자들이다. 이들뿐인가? 웬만한 강력범죄자들은 물론이고 세상과 사람들을 아프고 슬프게 만드는 나쁜 권력자들 중에 아동학대 피해자 아닌 자가 거의 없다. 다 이유가 있다. 눈에 띄는 신체적 학대뿐 아니라 마음을 멍들게 하는 정신적, 정서적 학대와 언어적 학대가 지속되면 피해 아동의 대뇌 전두엽 발달에 지장을 준다.

2013년 11월 미국 위스콘신대학 연구팀은 아동 학대 피해아동들과 학대를 당하지 않은 아동들의 대뇌 영상 촬영 결과 비교 연구에서 충격적인 차이를 확인했다. 학대 피해 아동들의 대뇌는 전두엽과 해마 영역간 연결이 손상되어 있었고, 그 결과 장기적으로 ‘불안’과 ‘공포’ 감정을 조절하는 데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이었다. 성인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의 대부분이 아동학대 피해 경험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근거다.

1991년 마르고 리베라의 ‘다중인격장애’ 연구에서는 총 185명의 다중인격장애 환자 중 98%가 어린 시절 아동학대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보고서는 부모를 살해한 존속살해범 300명 중 90%가 아동학대 피해자였고, 피학대 후유증이 살인의 원인이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정도면 아동학대야말로 ‘사회악의 근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와 정부가 뒷짐 지고, 이웃과 학교가 눈 감는 가운데 우리 이웃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비명과 숨죽이는 울음소리는 바로 우리 사회가 썩고 병들어 가는 소리에 다름 아니다.

울산시청 앞에서 아동학대 신고의자를 처벌하지 않기로 한 울산시 규탄 집회가 열리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한국전쟁이 끝난 뒤 전쟁고아들의 ‘관리’를 위해 1961년에 제정했던 아동복리법을 개정한 아동복지법에 ‘아동학대’ 금지 및 처벌 규정을 끼워넣어 운영 중인 우리나라의 아동보호제도는 허술하다. 민간기관인 아동보호전문기관에 권한이나 집행력도 주지 않은 채 책임만 부여해 아동학대 문제를 전담시키고 있다. 심각한 학대가 확인돼도 대부분 친권과 양육권에 막혀 단기 보호밖에 제공할 수 없다.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라며 세계 최초로 어린이날을 제정한 소파 방정환 선생의 나라가 맞는지 의심스럽다.

1979년 스웨덴에서 부모의 자녀 체벌을 ‘범죄’로 규정하고 법으로 금지했을 때 국민의 70%가 이 법에 반대했다. 하지만, 35년이 지난 오늘 90%의 스웨덴 국민이 체벌금지법을 지지한다. 스웨덴의 사례를 따라 프랑스를 제외한 모든 유럽연합(EU) 국가에서 부모의 자녀체벌을 법으로 금지했다.

스웨덴 국민들이 우리에게 충고하는 듯하다 “2014년 대한민국은 1979년 스웨덴과 비슷하군요. 강력한 아동학대 처벌법부터 제정하고 튼튼한 제도부터 구축하세요. 부모의 인식은 그 뒤 35년간 천천히 바뀔 것입니다”.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없는 어린이들을 잔혹한 학대자들의 손아귀에 방치하는 나라, 선진국을 운운하지 마라.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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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두 아이가 공평하게 빵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좋은 방법이 있다. 한 아이는 빵을 자르고 다른 아이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차이 나게 자르면 상대방이 더 큰 것을 가져갈 것을 알기에 똑같이 둘로 나누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이기적인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서 ‘정의’를 구현하는 필수조건이다. 법을 만드는 자와 집행하는 자, 다툼이 생겼을 때 판단하는 자를 나누는 ‘3권 분립’ 원칙이 민주주의의 기본이 된 이유다. 또 하나의 방법은 이해관계 없는 제3자가 빵을 자르고 나눠주는 것이다. 오래된 자연법 원칙인 ‘누구도 자신의 사건에서 심판자가 될 수 없다’의 취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빵을 자르는 자가 선택도 하겠다면 어떻게 될까? 조작된 ‘유우성 간첩사건’에 대한 국정원 수사를 지휘하고 그 기소를 주도한 검사들의 불법행위 혐의에 대해 동료 검사가 조사하고 판단해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징계는 하겠다며 선심을 쓴다. 어디 이번뿐인가? 그랜저 검사, 스폰서 검사, 떡값 검사, 성추행 검사 등등 고위 검사들 혹은 권력과 연계된 검사들의 범죄 혐의에 대해 검찰이 수사 내지 조사하고 검찰 스스로 불기소 처분하는 것은 ‘상식’이 된 지 오래다. 그 상대방인 피해자들의 심경은 어떨까? 빵을 자르거나 두 개 중 하나를 선택할 권리는 물론, 제3자에게 잘라 달라고 부탁할 권리도 박탈당한 그 심정 말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수사권 검찰 독점’의 혜택을 함께 누리는 자들이 있다. 검찰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정치권력과 검사들의 퇴임 이후 생활을 보장하는 재벌, 그리고 그들에게 주어지는 ‘전관예우’를 이용해 막대한 돈을 버는 ‘로펌’이 그들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4년 3월14일 (출처 :경향DB)


국무총리와 법무부 장관 모두 고위 검사로 권력을 휘두른 뒤 로펌에서 거액을 받다가 다시 정부 권력자로 복귀해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검사 마피아의 대부’다. 5·16 군사 쿠데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참가해 유신헌법 제정을 주도하면서 ‘검사의 영장청구 독점권’을 헌법에 우겨넣은 장본인이다. 이후 승승장구해 국회의원, 변호사, 공기업 사장 등 ‘누릴 것 다 누리고’ 다시 ‘대원군’ 노릇을 하고 있다. 검사들이 어떻게 살아야 출세하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교과서’다.

경찰, 국정원, 정부부처, 지자체의 ‘특별사법경찰관리’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며 스스로 별도의 수사관들을 두고 직접 수사까지 행하는 검찰. 범죄혐의가 확인되면 기소할지 말지 마음대로 결정할 ‘기소재량권’을 쥐고 흔드는 검찰. 판결이 내려진 뒤엔 그 형의 집행권을 독점해 휘두르는 검찰. 대한민국은 검사와 검사의 친구들에게는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 수 있는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범죄를 마음대로 저질러도 되고, 설사 수사를 받아도 불구속, 기소유예 혹은 불기소 처분을 받으면 된다. 여론에 밀려 기소되더라도 소극적인 공소유지와 낮은 구형량을 기대할 수 있다. 너무 큰 죄를 짓고 피해자들이 증거를 찾아와 어쩔 수 없이 중형을 선고받으면 다시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초호화 병실에서 요양하며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전경환이 그랬고, 여대생 청부살인범 윤길자가 그랬고, 대부분의 재벌들과 권력자들, 그리고 범죄를 저지른 검사들이 누린 혜택들이다. 물론, 채동욱이나 윤석열처럼 권력에 대드는 검사들은 예외다. 특권을 쥐여준 은혜를 잊고 주인을 물려고 하는 배은망덕으로 낙인찍혀 패가망신하게 된다. ‘보수 정권’만의 문제는 아니다. 소위 ‘민주 정권’ 10년 동안에도 검찰의 수사권 독점 제도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됐다. 검사들에게 ‘자신의 사건에서 심판관이 될 특권’을 쥐여주는 대가로, 검찰을 이용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는 특권층이 지배하는 대한민국. ‘공평하게 빵을 나누는’ 평범한 원칙이 상식이 되는 날은 언제나 오게 될까?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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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프로파일링 교과서’는 1487년 독일의 가톨릭 신부 하인리히 크레이머와 자콥 스프렝거가 출간한 <마녀 망치(Malleus Maleficarum)>라고 할 수 있다. 주술이나 마술을 믿는 민속 신앙은 있지만 실제 ‘마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세상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수사관들과 판사들이 마녀를 쉽게 구분하고 취조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쓴 책이다. 악마에게 몸을 바친 대가로 마법의 힘을 얻고, 아기를 살해하고 인육을 먹으며 남성의 성기를 절단해 소유하는 ‘마녀’가 실제로 있다고 주장하는 <마녀 망치>는 구체적인 ‘마녀 식별법’, 즉 ‘마녀 프로파일링’을 제시한다. “혼자 살고, 성격이 강하며, 관습을 잘 따르지 않고, 여성스럽지 않고, 몸에 악마의 흔적인 문신이나 흉터가 있으며, 조사나 취조를 당해도 울지 않는다”면 일단 마녀로 의심해야 하고, 이들에 대해서는 가혹한 고문을 가해 자백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마녀 망치>는 주장한다.

<마녀 망치>는 1490년 교황청, 그리고 1538년 종교재판 본부에서 ‘오류’라는 공식 비난 입장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에 힘입어 182년간 총 36번의 개정판을 찍어 내며 유럽 전역에 배포되었다. 중세 유럽에서 <마녀 망치>의 엉터리 프로파일링은 숱한 여성들을 가혹한 고문과 끔찍한 화형 혹은 참수의 형장으로 내몰았다. <마녀 망치> 득세의 이면에는 정치적 이익을 위해 묵인하고 방조한 교회와 세속 권력이 도사리고 있었다. 기나긴 십자군전쟁의 패배로 혼란과 분열, 왕권에 대한 불만과 불신에 휩싸인 유럽 사회의 위기를 타개할 ‘희생양’이 필요했던 권력, 그리고 종교개혁의 열풍과 극심한 갈등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상대를 ‘신앙의 적’으로 몰아갈 필요성이 있었던 교회가 그들이다. 하지만 중세의 몰락과 함께 폐기된 줄 알았던 ‘마녀 망치’는 히틀러 나치의 ‘우생학’, 일제의 ‘불령선인’, 미국 자경단 KKK, 그리고 용공몰이 ‘매카시즘’, 구소련 지역과 아프리카 등에서 벌어진 인종학살 등 근현대에도 변장과 성형을 거쳐 발호, 암약, 득세하고 있다.

중세 마녀사냥에 의해 잡혀온 여성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 (출처: 경향DB)


그동안 대한민국은 ‘종북 몰이’라는 마녀사냥이 정상적인 정치 절차를 방해하고, 민심을 왜곡하고, 사회를 분열시켜 극심한 적대감과 대결의 광란으로 내몰았다. 무수한 사람들이 ‘종북’이라는 ‘현대판 마녀’로 몰려 고통받고 피해입고 매장당했다. 탈북 화교 출신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 유우성씨가 가장 최근 사례일 것이다. 그를 간첩으로 몰았던 국정원과 검찰이 사용한 ‘마녀 망치’는 합리적, 과학적 근거가 없는 ‘미신적 확신’이었다. 고문과 조작을 통해 여동생과 다른 탈북자들의 진술을 거짓으로 확보하고, 중국의 출입경기록과 그 기록에 대한 확인서까지 조작, 위조해 법정에 제출했던 국정원과 검찰. 그들 중 일부는 여전히 “증거 위조는 했지만, 유우성씨는 간첩이라고 확신한다”는 섬뜩한 주장을 내뱉고 있다.

새누리당 국회의원과 방송에 출연하는 인사들, 인터넷에 글을 올려대는 시민들까지 여전히 마녀사냥에 열중이다. 그 피해자가 겪어야 할 회복될 수 없는 고통과 피해에는 전혀 관심도 이해도 공감도 하지 못하는 그들이 오히려 중세의 마녀사냥꾼들과 히틀러 나치, 일제 순사와 헌병과 731부대 연구자들처럼 ‘살아있는 악마’들이 아닐까? 사법부가 ‘근거없이 종북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범죄’라는 판결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체제가 좋아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종북’, 그러므로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면 종북’이라는 해괴한 ‘마녀 망치’를 휘두르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마녀 망치’를 휘두르는 이들의 배경에는 중세처럼, ‘집권세력의 정치적 이익’이 도사리고 있는 듯하다. 위기에 몰린 국정원과 집권세력, 치졸한 마녀사냥을 멈추고 과거 잘못에 대한 반성과 사죄, 진정한 개혁으로 정정당당하게 국민 앞에 나서라.


표창원 | 범죄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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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엄을 못 치지만 강을 건너야 하는 전갈이 개구리를 불렀다. “날 업고 강을 건너줘, 부탁할게.” 개구리가 답했다. “전갈아, 네 독은 너무 강하고 넌 누구나 독침으로 찌르잖아. 어떻게 널 등에 업고 강을 건널 수 있겠니?” 전갈이 말했다. “널 독침으로 찌르면 나도 물에 빠져 죽을 텐데 어떻게 널 독침으로 찌를 수 있겠니?” 듣고 보니 그럴 듯했다. 개구리는 전갈을 등에 업고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중간쯤 왔을 때 전갈은 개구리 옆구리를 독침으로 찔렀다. 개구리가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전갈을 돌아봤다. “개구리야 미안.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난 전갈이잖아.” 전갈과 개구리는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기원전 3세기 고대 인도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전파된 우화의 내용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바뀌지 않는 ‘본질적 속성’의 무서움을 알려준다.

세계 주요국 정상의 통신을 도청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미국의 국가안보국(NSA), 20세기 중반 말을 안 듣는 외국 지도자들을 암살한 중앙정보국(CIA), 1994년까지 존재 자체가 비밀이었던 영국의 MI6…. 오직 ‘국익’을 위해 살인과 납치, 고문, 폭파는 물론 도청과 조작까지 서슴지 않는 각국 첩보기관의 모습이다. 법과 절차를 다 지키고 활동내역이나 예산 용처를 투명하게 공개했다가는 적국 첩보기관의 밥이 될 수밖에 없는, 냉혹한 첩보세계의 현실이다. 공식적으론 존재하지 않거나 다른 신분을 유지하는 요원의 정체가 드러나거나 불법 행위가 적발되면, 군사력을 동원해서라도 구조해내거나 자살을 택하거나 신분을 감춘 채 형사처벌을 받는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선 다른 나라와 달리 이런 첩보기관이 법과 절차를 철저히 준수해야 하는 ‘범죄 수사’를 담당한다. 그리고 ‘국내 정보’라는 명목으로 정치와 사회에 개입한다. 신분과 기관을 공개하며 정부 보안 관리와 사이버 안전 관리, 국제 대테러 협상 책임자로 군림한다.

악수 청하는 남재준 국정원장 (출처 :경향DB)


새누리당 의원들은 “국가기관이 증거를 조작할 리가 있느냐”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하는 말도 안되는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 “안보 중추기관을 약화시키면 안된다”며 전갈을 등에 업은 개구리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1987년 정치깡패 ‘용팔이’를 동원해 통일민주당의 창당을 폭력으로 봉쇄한 사건과 홍콩에서 남편에게 살해당한 불쌍한 여인 ‘수지 김’을 간첩으로 조작한 사건이 터졌을 때도 당시 여당 의원들은 똑같은 소리를 읊어대며 경찰의 수사 자체를 봉쇄했다. 결국 정권이 바뀐 뒤 장세동 안기부장의 정치공작이었음이 밝혀진 뒤에야 이들은 대국민사과를 하고 ‘안기부’의 이름을 ‘국정원’으로 변경했다. 김영삼의 민주정부,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 노무현의 참여정부에서조차 “널 찌르면 나도 빠져 죽을텐데 설마 그러겠니”라는 전갈, 국정원의 말을 믿었다. 국내 정보와 범죄수사권을 그대로 손에 쥐어주고 정부기관들과 지자체, 언론과 기업, 대학과 연구기관 등 국가와 사회 전반을 통제하고 주무르게 해준 것이다.

결국 21세기 대한민국은 국정원이 자행한 불법 정치개입과 대선개입, 종북몰이와 지역감정 조장, 북방한계선(NLL) 회의록 파문, 채동욱 검찰총장 음해공작, 탈북 서울시 공무원 간첩 의혹 사건 증거조작 등 무수한 독침을 옆구리에 얻어맞고 가라앉는 중이다. 국정원이 저지른 명백한 불법과 탈법의 증거 앞에서도 검찰은 주춤거리고 대통령은 침묵하고 총리와 법무장관은 새누리당 의원들과 함께 국정원을 위한 잔다르크 노릇을 하고 있다. 개구리가 된 대한민국이 살 길은 하나다. 전갈인 첩보기관 국정원의 독침을 북한과 잠재적 적국을 향해서만 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국내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게 하고, 범죄 수사를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특검을 통한 진상규명이며 개혁입법이다.


표창원 | 범죄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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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나치 전범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이 열리며 반인륜 범죄에 동원된 군인과 공무원 등 보통 사람이, ‘상관이 시킨다고 고문과 학살을 자행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제기됐다. 예일대 심리학과 밀그램 교수는 답을 찾기위해 ‘기억력 향상에 관한 실험 참가자에게 1시간에 4달러를 드립니다’란 공고를 냈다. 참가자에게 ‘교사’ 역을 맡기고 ‘학생’ 역을 맡은 조교가 틀린 답을 말할 때마다 전기충격이 점점 심해지도록 했다. 실험실에는 엄숙한 표정의 ‘통제관’이 앉아 있었고 ‘교사’는 ‘통제관’의 지시를 따라야 했다. 실험은 ‘교사’가 스스로 중단하거나 최고한도인 450V를 눌렀을 때 중단하도록 설계됐다.


전기충격 때문에 ‘학생’이 고통을 못이겨 비명을 지르는 상황에 죄책감을 느낀 ‘교사’가 의문이나 항의를 제기할 때마다 ‘통제관’은 “계속하십시오” “실험규칙에 따라 계속 진행해야 합니다” “당신이 계속 진행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반드시 실험을 계속 진행해야 합니다”라고 ‘권위적인’ 응답과 지시를 했다. 이런 4단계의 ‘권위적 지시’에도 불구하고 ‘교사’가 실험 중단 의사를 밝힐 경우 실험은 종료됐다. ‘교사’가 ‘통제관’에게 안전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 통제관은 “비록 고통스럽긴 하지만 근섬유에 항구적인 손상을 유발하진 않습니다”라는 모호한 답변을 주었다.


실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전기충격의 강도가 높아지고 ‘학생’의 고통스러운 반응이 심해질수록 ‘교사’들의 주저와 항의가 제기됐지만, 이를 ‘통제관’의 권위적인 지시가 무력화시켰다. 실험 대상자 40명 중 26명, 65%가 마지막 450V 버튼을 눌렀다. 14명은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해 ‘통제관’의 권위에 항거하며 4달러의 참가 대가를 포기하고 실험을 중단했다.


밀그램의 두 번째 실험에서는 ‘교사’ 옆에 다른 ‘참가자’를 동참시켰다. 그러자 실험을 중단하는 참가자의 수가 40명 중 36명으로 대폭 증가했다. 혼자라면 감히 권위에 도전하지 못할 사람들이 ‘함께하는 동료’가 있다는 것을 알면 권위에 항거할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밀그램의 실험은 나치나 일제의 만행에 참가한 ‘보통 사람’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지만, 여전히 ‘선택은 본인의 몫’이라는 상식도 확인해 주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출입경기록 조사결과’ 문건.(출처: 연합뉴스)


이후 많은 나라에서 ‘권위에 대한 복종’이 만연하지 않게 법과 제도, 교육을 완비해오는 한편, 전범이나 조직범죄자에게 ‘권위에 복종했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검찰은 정반대의 길을 걸어오고 있다. ‘검사동일체의 원칙’이라는 권위적 지배를 법으로 규정해 오다 2004년 이를 폐지한 이후에도, 여전히 같은 문화와 관행을 유지해 오고 있다. 인혁당사건, 부림사건, 서울대 의대 간첩사건 등 재심을 통해 무죄가 입증된 과거 ‘공안 조작 사건’은 물론, 지금도 ‘서울시 탈북 공무원 간첩사건’에서 조작된 중국 출입경기록을 법정에 제시해 사법체계를 뒤흔들고 있다.


정권이나 국정원 등 밀그램의 실험에서 ‘통제자’ 역할을 맡은 권위적 존재들의 지시에 따라 마구 전기충격 버튼을 눌러대는 ‘교사’의 모습이다. 동병상련일까.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선 ‘상명하복 조직에서 지시에 따랐다’는 이유로 범죄행위를 한 국정원 직원과 경찰관들을 불기소 처분했다. 그 ‘선처’를 받은 자들이 법정에서 검찰에 맞서 싸우고 있다. 김용판 재판에선 검찰이 이들의 진술 앞에 처참한 패배를 떠안았다. ‘밀그램의 덫’에 빠진 검찰을 이대로 둬도 될까. 권위에 저항하던 윤석열, 박형철이 찍혀 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보는 검찰, ‘권력의 도구’ 외의 의미는 없어진 듯하다. 기소만 하는 영국 검찰, 법원에 소속돼 자체 조직이 없는 독일 검찰, 직선으로 검사장을 뽑는 미국 검찰의 사례를 눈여겨볼 때다.


표창원 | 범죄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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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5년 11월25일, 통나무를 가득 싣고 항해하던 ‘프랜시스 스패이트’호가 풍랑을 맞아 좌초했다. 다행히 화물칸에 가득 찬 통나무의 부력으로 가라앉지 않은 채 표류하던 선체에는 18명의 선원이 생존해 있었다. 식량도 바닥나고, 빗물을 받아 겨우 연명하길 13일째, 그동안 어떤 배도 지나지 않아 구조의 희망은 희미해져 있었다. 모두가 굶어 죽을 것이라는 극한의 공포에 내몰렸을 때, 선장이 제안을 한다. “오지 않는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다 모두가 굶어 죽기보다는, 소수를 희생해 다수가 사는 길을 택하자.” 제비뽑기를 통해 한 명을 고른 뒤 그의 고기를 먹자는 얘기였다. 격론이 벌어졌지만, 선장을 비롯해 나이와 경험이 많은 고참 선원들의 주도로 결국 그 제안을 받아들이자는 만장일치에 도달했다.


그 결과 가장 어린 15세의 수습 선원 ‘오브라이언’이 뽑혔다. 소년은 죽음을 받아들였고, 나머지 선원들은 영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모두 3명이 희생된 뒤 ‘프랜시스 스패이트’호는 인근을 지나던 배에 발견되어 구조되었다. 선장과 선원들은 모두 살인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지만 길고 격렬한 법정공방 끝에 더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공리주의’적 논리와 피해 당사자들이 ‘동의’했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져 무죄 판결을 받게 된다.


코스타 콩코르디아호가 암초에 좌초돼 옆으로 기울어져 있다.(출처: AP연합)


법적으론 합리화, 정당화되었지만 윤리적 철학적 논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생명은 무엇보다 소중하며, 다수의 생명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소수의 생명을 희생하라고 요구할 수 없다는 ‘인본주의’ 사상에 반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일부 선원이 지인에게 ‘사실 제비뽑기는 선장과 고참 선원들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비밀을 털어놓은 것이다. 자신이 희생당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주도한 ‘다수를 위한 소수 희생 합의’는 공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의 기자 겸 작가였던 잭 런던에 의해 소설로도 쓰인 ‘프랜시스 스패이트’ 이야기는 오늘 한국사회를 많이 닮아 있다.


‘북한과 공산주의 위협’ 앞에서 안보가 위협받는다는 이유로 정치인과 비판적 지식인과 시민들을 ‘종북’으로 몰아 ‘희생’시키고 있고, 용산지역 개발을 통해 다수에게 경제적 이익을 안겨 주어야 한다는 명분이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의 죽음을 불러온 ‘희생’을 강요했다. 수도권과 영남 대도시 시민들에게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고 국가산업 진흥을 도모해야 한다는 필요가 밀양 주민들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들과 열악한 근로조건 및 실직의 위험 속에 노출된 청소 노동자들 역시 ‘15세 소년 선원 오브라이언’ 같은 입장에 놓여 있다. 그 ‘다수를 위해 희생해야 할 소수’가 선정된 과정, 혹은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결론 도출 과정 자체가 ‘불공정’했다는 것도 확인되거나 의심받고 있다. 더구나 이들이 ‘희생’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나 당사자의 ‘동의’에 이르지도 않았다. 권력이나 다수 여론의 힘으로 ‘밀어붙였다’. ‘프랜시스 스패이트’호 관련 판례나 기사, 혹은 잭 런던의 소설을 읽으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자신이 그 상황에 처해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결국 부정한 방법에 의해 생존을 보장받고 약자의 고기를 뜯어먹는 불의하고 잔혹한 ‘다수’에 속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반대로 ‘15세 소년 오브라이언’의 입장에 처하게 되었을까를 상상해 보게 되기 때문이다. 당사자가 아니라 해서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정치와 선거개입, 6명의 희생을 부른 뒤 주차장만 덩그러니 남긴 용산 철거, 2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 추운 겨울 찬 바닥에 몸을 내맡기며 항거하는 밀양 할매 할배, 인간다운 대접을 요구하며 눈물짓는 청소 노동자들을 모른 체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우리는, ‘프랜시스 스패이트’호를 닮은 대한민국을 자손에게 물려주어도 괜찮은 걸까?


표창원 | 범죄심리학자·프로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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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을 저지르거나 위기상황에 봉착한 사람이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본능적으로 선택하게 되는 무의식적인 자기보호 행동을 ‘방어기제’라고 부른다. 합리적인 사고나 감정을 스스로 차단하고 왜곡·거부해 ‘안전감’을 찾으려 하거나 희생양을 찾아 화풀이를 하는 등의 행동이다. 때로 지나친 불안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습관화된 방어기제의 발동은 문제를 직시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노력을 봉쇄해 버린다. 특히 어린이의 본능적인 거짓말이 방치되고 조장될 경우 성인이 되어 문제나 갈등상황에 봉착할 때마다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고 그로 인한 다른 사람의 피해는 무시하거나 합리화하는 ‘반사회성 인격장애’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지난 대선 기간에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이 불거지자 대선 패배라는 감당하지 못할 결과에 두려움을 느낀 새누리 정권은 ‘경찰의 허위 중간수사결과 발표’라는 상황 왜곡과 ‘종북척결을 위한 정당한 대북 심리전’이라는 합리화, ‘대선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인지 왜곡, ‘NLL 대화록 파동이나 이석기 내란음모, 채동욱 혼외자’ 등 희생양에게 비난의 화살을 투사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 1년이 지난 지금은 ‘지방선거’라는 새로운 대상으로 관심을 집중시켜 ‘대선 부정’이라는 골치아픈 문제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대선 1년, 박 대통령 사과 요구하는 시민사회종교계 (출처: 경향DB)

합리적으로 판단해 현실을 직시하고 잘못을 인정한 뒤 용서와 선처를 구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며 사태를 수습하고 교훈을 얻어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을 모두 거부한 것이다. 거짓말을 또 다른 거짓말로 막으려는 어린이들의 시도가 대부분 실패로 끝나 더 큰 꾸지람으로 이어지고, 성추행 범죄를 감추려던 고려대 의대생들의 피해자 공격이나 만삭 아내 살인을 덮으려던 의사의 집요한 거짓말이 긴 재판 끝에 비극으로 끝난 것처럼 자기보호를 위한 본능적 ‘방어기제’에 습관적으로 의존한 정권의 끝은 결코 좋을 수 없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역대 독재 정권에서 반복된 현상이다.

지금 세상을 장악한 권력의 힘으로 경찰과 검찰, 심지어 법원의 일부 기능과 언론을 장악해 우리 사회에서 발생한 사실과 감정을 억압하고 거부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5년을 지나갈 수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방어기제로 억압된 인간의 욕구와 감정은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속에 축적되어 성격과 정서에 영향을 끼치듯, 권력의 힘으로 억압한 사실들과 국민의 감정과 욕구는 어떤 형태로든 드러나고 분출되게 마련이다. 결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사라지거나 잊혀지는 것이 아니다.


개봉 32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한국 영화 역사에 새 이정표를 세우고 있는 <변호인>이 하나의 증거다. 독일에서는 이미 70년이 넘은 나치 인권유린 범죄 피의자들을 수배하는 전단이 거리에 나붙고 임종 직전의 전범이 체포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친일정권에 의해 폐지되고 군사 독재정권이 이어지며 식민사관 추종자들에 의해 역사마저 왜곡되어 왔지만, 3·1운동과 4·19혁명, 5·18 민주화 항쟁과 6월 시민항쟁을 잇는 시민들의 촛불과 학자들의 양심과 법조인들의 소신과 공직자들의 독립 의지와 언론인의 사명감은 진실과 감정들을 기억하며 후손들에게 이어주고 있다.

국정원과 사이버사령부 그리고 경찰의 정치와 선거개입 범죄, 김무성·정문헌·남재준 등의 국가기밀 유출 정치 이용 범죄, 청와대와 국정원이 주도한 11살 채군의 개인정보 불법유출 및 이용 범죄는 행여 이 정권에서 전모가 다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언젠가는 모두 드러나게 되어 있다. 더 늦기 전에 ‘방어기제’의 강한 유혹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대응책을 찾는 ‘성숙한 정권’이 되기 바란다.

 

표창원 | 범죄심리학자·프로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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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라 꼴이 이 모양인데”라는 말이 유행이다. 한 아나운서가 자신의 열애설을 부인하며 언급한 말이다. 검찰 수사 및 국회 국정조사와 국정감사, 그리고 언론 탐사보도를 통해 드러난 사실만 보더라도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새누리당 권력은 국가정보원과 국방부, 보훈처, 재향군인회 등 국가기관과 관변단체를 총동원해 부정선거를 자행했고 그 꼬리가 밟히자 경찰을 동원해 사건을 은폐하고 되레 야당을 ‘사건조작, 흑색선전 사범’으로 몰아붙여 대선 승리를 거머쥐었다. 심지어 법무장관을 동원한 사건 축소 압력에도 검찰이 저항하며 선거법을 적용하자 검찰총장을 석연치 않은 의혹 속에 내쫓았고, 5만여건의 트위터 증거를 찾아내 국정원 직원들을 체포하고 공소장 변경 신청을 한 윤석열 수사팀장을 직무에서 배제해 버렸다. 그 과정에서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국가기밀인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그것도 보안유지가 생명인 국정원에서, 공개 유포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3년 10월 22일 (출처: 경향DB)



그뿐인가? 정권을 지키기 위해 야당과 비판적 지식인들에게 ‘종북’ 딱지를 붙이며 마녀사냥을 자행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마치 ‘히틀러 유겐트’ 같은 온라인 전사들을 양성해 온 의혹을 받고 있다. 참다 못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집결해 ‘박근혜 사퇴’를 외치며 야당의 미온적인 대처를 질타하자 새누리당 관계자들은 ‘대선불복이냐?’ ‘박근혜를 흔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등의 협박을 자행하고 있다. 삼천리 금수강산을 처참하게 훼손한 4대강 사기극과 국가안전을 위협하는 원전비리, 처음부터 실행 의지나 재원이 없었던 선심성 공약의 남발과 폐기, 망국적인 역사왜곡 시도 역시 국민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100여명이 모여 황당한 전쟁대비, 통신회사와 유류고 파괴와 공격을 언급한 이석기 무리 때문에 통합진보당을 해체해야 한다면, 그보다 훨씬 더 엄중한 헌법 파괴, 국가기관 사유화, 환경 및 국가안보 위해를 야기하는 새누리당은 훨씬 더 먼저 해체되어야 한다. 자신들의 범죄를 감추고, 그 알량한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성실하고 양심적인 경찰과 검사들의 인격을 살해하고,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며 권력의 불법과 부정을 비판하는 국민과 지식인들을 ‘종북’으로 내몰아 국론을 분열하는 패악을 서슴지 않는 새누리 권력,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과거 국민께 석고대죄하고 당사를 팔고 당명을 바꾼 한나라당의 ‘차떼기’ 비리보다 몇 만배 더 엄중한 잘못이 행해지고 있다. 새마을운동, 박정희 향수를 아무리 뿌려도 덮을 수 없고 감출 수 없다. 


그동안 ‘단도직입’은 박근혜 정권의 성공과 국민통합을 위해 절제된 비판과 충심어린 조언을 해 왔다. 하지만 더 이상 감쌀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제대로 된 민주국가라면, 권은희 경정의 양심선언이 나왔을 때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황교안 법무장관과 채동욱 총장의 보름간 줄다리기 끝에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6월14일은 두 번째 사과 기회였다. 국정조사에서 서울경찰청 CCTV가 공개된 순간은 세 번째, 그리고 마지막 사과 기회였다. 이제 더 이상 ‘사과’ 및 ‘재발 방지 개혁’으로 매듭지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국민세금으로 선발된 정예 국정원 요원들이 썼다는 트위터 글 들을 읽는 순간, 구토가 치민다. 국방부는 국정원 사건의 학습효과를 활용, 서둘러 인정하고 개인 행위로 축소하며 꼬리 자르기를 시도한다. 아무리 뒤져도 혼외자 의혹을 갖다 붙일 수 없는 윤석열 검사에게는 조상의 고향과 임용시기를 들이대며 ‘노무현 사람’이라는 떼를 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3년 10월 23일(출처 :경향DB)


1972년 미국의 워터게이트는 이렇게까지 추잡한 ‘총체적 범죄’가 아니었다. 공화당이 공범을 자처하며 뻔뻔하고 치졸한 은폐와 역공과 변호를 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닉슨 당시 대통령은 탄핵 위기에 몰리자 자진 사퇴를 하고 사면을 받았다. 지금 이곳은, 21세기 대한민국이다. 헌법 전문에서 3·1운동과 4·19혁명을 국가의 정신적 모태로 삼는 ‘민주공화국’이다. ‘단도직입’을 마치며 마지막으로 촉구한다. 새누리 권력은 그간의 범죄에 대해 국민에게 사죄하고 권력을 놓은 뒤, 거국내각을 구성하고 특검을 통해 ‘전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협조하라. 그리고 밝혀진 ‘진실’의 무게에 맞는 처벌을 받으라. 그것만이 대한민국을 살리는 길이다.


표창원 | 범죄심리학자·프로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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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가 있는 의혹이 제기될 때 우리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는 속담을 떠올린다. 반면에, 어이없는 날벼락의 불운을 당할 때 서양에서는 ‘파란 얼음(Blue Ice)’을 맞았다고 한다. 파란 얼음은 사실 항공기에서 변기 속 오물을 냉동시켜 ‘일부러’ 방출하는 단단한 덩어리다. 과거 보행자가 파란 얼음을 맞고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고, 방출된 파란 얼음이 항공기 엔진 속으로 빨려들어가 큰 위험을 초래한 적도 있어서 지금은 여러 나라가 항공규정에 금지하고 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의혹, 어떤 경우일까? 물론 임모 여인의 황당한 거짓말과 그녀에게 한을 품은 가정부의 오해로 인한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이라는 ‘제3의 가능성’도 열려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과 ‘정치’는 세상을 달구는 뜨거운 소재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 형제의 여성 편력과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의 혼외자 문제는 특히 화제의 대상이었다. 그 뒤엔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 인턴 여직원 모니카 르윈스키의 부적절한 관계가 특검의 수사대상이 되기도 했고, 늘 성스캔들을 달고 다니던 국제통화기금(IMF) 전 총재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은 미국과 프랑스에서의 잇따른 성범죄 사건으로 파국을 맞았다.

 

(경향DB)

 

한국에서도 박정희, 전두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둘러싼 성추문이나 혼외자 의혹이 끊이지 않았고 정치인과 고위 관료 다수가 성추문으로 망신을 당하거나 공직 생명이 끊기기도 했다. 그 중에는 사실임이 밝혀진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모든 성추문 의혹에는 그럴듯한 ‘정황’과 ‘폭로 진술’들이 뒤따른다. 그 중에서 ‘연기 나는 굴뚝’과 ‘파란 얼음’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하고 일반적인 기준은 ‘상황’과 ‘맥락’의 개연성, ‘증거’의 유무다.

채동욱 혼외자 의혹은 조선일보와 TV조선을 통해 충분한 정황과 폭로 진술이 제기되었고, 결국 채 총장의 사퇴와 인격 및 명예의 파괴로 이어졌다. 그의 가족과 열한 살 어린이의 삶 역시 회복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다. ‘연기 나는 굴뚝’이었다면 솔솔 피어나는 연기를 거짓말로 감추려 했던 채 전 총장의 책임이 될 것이고, ‘파란 얼음’이었다면 규정을 어기고 불법적으로 오물을 몰래 버린 정권과 조선일보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두 여인의 거짓말과 오해에 따른 해프닝이라면 이들과 이들의 말에만 의존해 엄청난 국가적 혼란을 일으킨 조선일보가 책임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상황’과 ‘맥락’은 ‘파란 얼음’일 가능성을 크고 강하게 제시하고 있다. 정권의 말을 듣지 않고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사건 수사 및 기소를 강행하는 등 ‘지나치게 무거운 부담’이 된 채동욱 전 총장이 정권의 입장에서는 ‘버리고 싶은’ 존재였다는 ‘상황’과 다른 혼외자 추문과 달리 친자확인 소송이나 양육비 다툼 등 자연스러운 ‘연기’가 전혀 나지 않던 상황에서 갑자기 터져나온 ‘맥락’이 그렇다.

 

채동욱 " 부끄럽지 않은 남편과 아빠로 살았다" (경향DB)

게다가 이 ‘파란 얼음’ 같은 혼외자 의혹의 ‘정황’으로 제기된 내용 중에는 관련 공직자만 알 수 있고, 결코 법원의 영장 없이는 다른 기관에 제공해서는 안될 민감한 ‘개인 정보’들이 포함되어 있다. 결국 채 전 총장을 음해하기 위해 정부와 조선일보가 징역 5년 이하의 처벌 대상인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시민단체가 형사고발까지 한 상태다.

채 전 총장은 이번 혼외자 의혹으로 인해 25년 공직생활의 성과와 명예, 국가 사정기관 최고위 지휘자로서의 지위와 권한, 검찰 조직과 국민의 존경과 신뢰 및 가족의 행복 등 모든 것을 잃었다. 정권과 조선일보가 성실하고 무고한 공직자를 잔혹하게 음해하고 파괴하는 ‘파란 얼음’을 방출했다는 세간의 비난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유전자 검사를 통한 ‘증거’의 확보다. 채 전 총장이 자신의 명예와 가정의 행복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 역시 유전자 검사를 통한 ‘증거’의 확보다. 혼외자 여부의 진실과는 별도로,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에게 제기된 ‘혼외자 친자 확인 소송’ 당시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의 예를 들며 ‘직무와 관련없는 사생활에 관심을 끊으라’던 조선일보의 이중잣대와 황색언론적 보도행태 및 권력과의 유착 문제는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 언론보도 윤리 차원에서 심각한 논의와 대응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엄중한 숙제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표창원 | 범죄심리학자·프로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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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 범죄심리학자·프로파일러


전체주의자들의 광기어린 침략에 함께 맞선 2차 세계대전 연합국들은 종전과 함께 이념 문제로 대립하게 됐다. ‘냉전(cold war)’이 시작된 것이다. ‘자유 민주’ 진영의 맹주인 미국과 영국은 ‘공산주의’ 진영의 본산인 소련과 치열한 ‘정보전쟁’과 ‘심리전’을 벌여 나가야 했다. 아시아와 중남미 등 신흥 독립국이 많은 곳에서는 자기 진영에 속하는 정부가 들어설 수 있도록 지원과 공작,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한반도 역시 치열한 이념전쟁의 장이었고, 승패가 나지 않아 반으로 갈린 ‘분단’ 상태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냉전시대에 가장 무서운 존재는 ‘내부의 적’이었다. 가장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것이 영국의 정치, 외교, 첩보 분야에 깊숙이 잠입해 국가기밀을 소련에 넘겨준 5명의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 공산주의자들, ‘케임브리지 5인방’ 사건이다. 대학시절부터 공산주의 사상을 학습하고 유럽 공산주의자들과 연대해 왔던 이들은 학력과 실력을 활용해 2차 세계대전의 혼란기에 정부 중요부서에 ‘진출’할 수 있었다. 특히 최고의 정보기관인 MI6 방첩국장 지위에까지 오른 킴 필비가 한국전쟁을 포함한 영국과 미국의 국가기밀을 소련에 넘겨준 사건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영국 해외정보국(MI6) <연합뉴스>


의혹과 수사, 재판이 이어진 뒤 결국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정보기관에서 해임된 필비는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하지만 그 뒤에도 언론기관 등에 재직하며 간첩활동을 지속하던 끝에 1963년, 소련으로 망명한 뒤 비밀첩보국인 국가보안위원회(KGB) 고위간부가 된다.


킴 필비 사건은 영화 ‘007 시리즈’에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다.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자신감이 확고한 영국에서 이 사건은 ‘공안몰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첩보기관과 정부에서 긴장과 경계 수위를 높이고 제도와 기능을 강화하는 노력으로 이어졌을 뿐이다.


하지만 유사한 시기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던 미국에서는 공화당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이 주도한 ‘공산주의자 색출’ 운동이 일어나 4년간 정치와 사회를 꽁꽁 얼어붙게 만든다. 결국 공산당으로 의심받던 1만여명이 직장을 잃고 수백명이 강도높은 수사와 조사를 당하지만 간첩으로 확인된 사람은 없었다. 


공산주의자 마녀사냥을 주도한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 (출처 :경향DB)


결국 같은 공화당 의원들이 무분별한 색깔론인 ‘매카시즘’을 비판하며 “자유는 결코 독재의 방법으로 지킬 수 없다”는 내용의 양심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방송과 언론에서도 매카시즘의 허구성과 근거부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연이은 재판에서 매카시의 주장이 틀렸다는 판결이 이어졌다. 결국 상원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매카시 상원의원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나 증거를 내놓지 못하며 ‘허위사실’을 유포해 나라 전체를 마녀사냥의 광풍으로 내몰았다는 비판에 내몰리며 몰락하게 된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킴 필비와 매카시즘의 망령이 부활하고 있다. 한국의 킴 필비는 국회의원 이석기로, 매카시는 국정원 원세훈 전 원장으로 서로 역할을 바꾸었다. 다만, 원세훈이 매카시 못지않은 광풍으로 대한민국을 냉전시대로 되돌려 정치와 여론, 지식사회를 핏빛 전쟁터로 만드는 데 성공한 반면 늘 의심과 경계를 받아오던 이석기는 국회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국방 기밀자료를 요청하다가 번번히 거절당하고, 실현 가능성에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내란 모의를 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이석기와 북한의 연계성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이석기는 ‘한국판 킴 필비’가 아닌 시대착오적인 ‘자생적 반미 혁명 선동가’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매카시즘 효과’를 이용해 선거에 개입한 ‘실질적 쿠데타 사범’인 원세훈의 국정원은 원장이 바뀐 뒤에도 이석기 사건의 혐의를 극단적으로 과장하고 그 공개 시기를 조절해 ‘한국판 킴 필비’ 사건으로 비화시킴으로써 스스로의 잘못을 합리화하고 죄책을 벗으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재판 결과에 따라 원세훈과 이석기 사건의 의미가 가려지겠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하고 은밀하게 국가안보와 국익을 지켜내야 할’ 국정원이 수년간 전면에 나서 정치와 선거에 개입하고, 국민 여론을 좌우하며 국가 전체를 뒤흔들었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와 문화 각 방면에서 세계 수준에 도달한 21세기 대한민국이 오직 ‘정치’ 분야만 1950년대 냉전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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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상자를 열었더니 썩은 사과가 있어서 과일가게로 도로 가져갔다. A과일가게 주인은 “맨 위에 있는 사과가 썩었다면 밑에 깔린 사과들도 썩었을 수 있다”며 썩은 사과를 판 것을 인정하고 사과한 뒤 새 사과상자를 열어 썩은 사과가 없는지 일일이 확인한 후 손님에게 내줬다. B과일가게 주인은 “어쩌다 썩은 사과 한 개가 잘못 들어갔다”며 사과한 뒤 눈에 보이는 썩은 사과 하나만 다른 사과로 교환해줬다. C과일가게 주인은 “그 썩은 사과가 내가 판 사과상자에서 나왔는지 어떻게 아나? 그리고 원래 썩은 사과 한두 개 들어가야 맛있는 것”이라며 사과 및 교환을 거부하고 손님에게 되레 화를 냈다. 앞으로 당신은 어떤 과일가게를 찾을 것인가? 어떤 과일가게 주인이 ‘상도’에 부합하는 것은 물론, 고객들의 신뢰를 얻어 번창할까? 대부분 A를 꼽을 것이다.


문제가 발견된 제품 전량을 리콜하는 기업들의 태도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그런 기본적인 신뢰 구축하에 블랙컨슈머(상습적 혹은 허위로 제품 하자 등을 주장하는 고객)를 적발해 강력하게 의법조치하는 것이 기업 보호 전략이다. C를 택할 경우 당장 사과 몇 개 값의 이익을 지킬지는 모르나 입소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동네 주민의 불신으로 이어져 매출 하락에 이은 경영난에 봉착할 것이다. 


이를 막으려고 관련글을 쓰거나 옮기는 주민을 고소할 경우 역풍은 더 거세진다. 그런데 국가정보원은 가장 하수인 C과일가게 주인의 방법을 택하고 있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국회 국정조사 기관보고에서, 이미 경찰과 검찰 수사를 통해 수년에 걸친 불법 정치개입과 지난 대선 과정에서의 불법 선거개입 증거가 발견된 ‘썩은 사과’인 ‘심리전단’의 활동을 ‘정당한 대북 심리전’이라며 옹호하고 나선 것이다. 


일반 국민이 소통하는 장소인 포털과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 일방적으로 대통령과 정부 정책, 여당 후보 등을 칭송하거나 옹호하고, 야당 정치인이나 비판적 지식인 및 야당 대선 후보 등을 공격하거나 비방·모욕하는 글을 집중 게시하거나 찬반 클릭을 하는 활동을 ‘정당한 대북 심리전’이라고 강변한 것이다. 경찰 수사를 통해 국정원 여직원 김모씨와 공범관계인 민간인 ‘이모씨’가 9000여만원의 현금을 국정원으로부터 지급받은 것으로 드러났고 검찰 수사에서는 김씨 외에도 여러 국정원 직원과 그들의 ‘민간인 협력자’들이 같은 활동을 한 사실이 확인됐다. 국정원이 이런 ‘정치놀음’ 하느라 한눈파는 사이 북한은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아댔다. 고발기사와 비판이 이어지고 국민은 촛불을 들고 규탄의 목소리를 높인다. 국정원의 대응은 비판기사를 쓴 기자와 비판을 제기한 지식인 및 정치인들을 무차별적으로 고소하는 한편, 국가기밀인 전직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불법적으로 공개하는 ‘이적행위’를 하는 것이었다.


(경향DB)


공범관계로 의심받는 새누리당의 전폭적인 지원과 보호로 ‘위기’를 넘길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의존하는 작금의 이런 저급한 대응은 결국 비극적 종말을 맞은 중앙정보부와 안전기획부의 전철을 밟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미 일부 국민은 정보기관의 새로운 명칭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든 정권이 교체돼 지금의 공범관계가 힘을 잃으면 국정원은 ‘이름을 바꾸는’ 정도의 변신만으로 기존 권력을 유지한 채 존속할 수 없을 것이다. 



프랑스나 독일, 일본 등 여러 나라에는 아예 별도의 정보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경찰, 헌법수호청, 군 등 기존 법집행 기관에서 정보 수집, 분석, 배포 기능 및 보안 방첩 업무를 분담하고 있다. 국정원이 국민으로부터 존재 이유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은 딱 하나다. 정보 업무에 무지한 낙하산 원장을 앞세워 주인과 고객을 속이는 작태를 멈추고, ‘썩은 사과’가 발견된 사실을 인정하고, 더 많은 ‘썩은 사과들’이 있음을 스스로 드러내고 그 원인과 과정을 있는 그대로 밝힌 뒤 관련자와 책임자 모두 처벌받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회 등 외부에 전면적인 조직 개혁을 맡기는 것이다. 과연 국정원이 용기있는 신뢰 회복의 길을 택할지, 아니면 ‘당장 이익 보고 영원히 망하는’ 기만과 술수의 꼼수를 택할지 국민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경향DB)




표창원 | 범죄심리학자·프로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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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영국에서는 토니 블레어 총리가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그가 당수로 있던 시절 총선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비밀 대출을 받았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1998년 미국에서는 빌 클린턴 대통령이 인턴 여직원과의 성추문 의혹으로 특별검사의 수사를 받았다. 유럽 국가에선 교통법규를 어긴 국회의원이나 판사가 경찰에 단속당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보도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법 앞의 평등’ 원칙이란 것을 확인해 주는 사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과 권력, 명예 등 모든 가치가 불평등하게 나뉘고 계층 간 벽을 뛰어넘기 어렵지만, ‘법’만큼은 신분이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된다는 상식이 대다수 서민과 사회적 약자들의 체제 순응을 담보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민주 국가에서 경찰과 법에 대한 신뢰와 권위는 철저하게 지켜진다. 대통령이나 총리, 국회의원이 물러나면 다시 선출하면 된다. 하지만 경찰과 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추락하면 사회 통합과 응집력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추락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최고위 경찰 간부인 서울경찰청장이 대통령 선거에 개입하며 증거를 조작하고 허위 발표를 한 혐의로 기소된 것도 모자라 경찰청 국장급 간부가 식사자리에서 여당 국회의원에게 폭행당했다는 기사가 언론에 보도된 뒤 진실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정확한 사실은 당사자와 현장 참석자들만 알 수 있는 상황에서 보도 매체에 따라, 그리고 여야에 따라 말이 다르다. 실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와는 별개로, 언론이나 국민 여론이 ‘여당 국회의원과 경찰 최고위 간부 사이가 갑을 관계이며 폭행이 발생할 수 있는 분위기’라고 믿는 상황 자체가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의 굴곡과 함께해 온 대한민국 경찰은 그동안 ‘권력의 하수인’이라는 과거의 오명을 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특히,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자랑스러운 ‘민중의 지팡이’가 된 신세대 경찰관들의 자부심과 사명감은 세계 어느 경찰 못지않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과거사 때문에, 그리고 고위 경찰 간부들의 정치적 줄타기 의혹 사건 때문에 거리에서 시민들로부터 불신받고 저항당하는 치욕을 겪으면서 사기가 꺾이고 있다. 


얘기하는 김태환 의원 (경향DB)


법규 위반이나 단속 현장에서 ‘왜 나만’ ‘힘센 나쁜 놈들한테는 꼼짝 못하면서’라는 흥분한 시민의 볼멘소리 앞에서 이를 악물 뿐이다. “우리는 정의의 이름으로 진실을 추구하며 어떤 불법과도 타협하지 않는…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오직 양심에 따라 법을 집행하는 의로운 경찰이다”라는 경찰헌장 내용이 입안에서 맴돌 뿐이다. 문제는, 이러한 ‘슈퍼갑의 횡포’가 실제로 발생하고 허용된다면 비단 경찰의 권위와 자존심을 짓밟는 것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이웃 사람들이 차례로 유태인, 동성애자, 정신질환자,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나치 게슈타포에게 잡혀가자 ‘나는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하던 독일인 역시 ‘이웃에 유태인이 사는데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잡혀가게 되자 불의에 침묵했던 자신을 반성하게 됐다는 일화가 있다. 



정의가 무너지고 불의가 판치면 언젠가는, 다음번에는 나와 내 가족 혹은 자손이 부당하고 억울한 ‘갑의 횡포’ 앞에 무너질 수 있다는 자각이 필요한 때다. 해당 국회의원 개인의 문제가 아닌, 권력을 틀어쥔 극소수의 ‘슈퍼갑’은 경찰의 뺨을 때리고 헌법을 유린하고 법과 제도를 짓밟고 있다고 언론과 일부 국민이 믿고 있는 ‘망국적 법치 붕괴’의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 


권력이나 돈을 가진 ‘사회적 갑’들의 이익보다 헌법과 법제도, 그리고 ‘사회정의 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표창원 | 범죄심리학자·프로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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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여야 원내대표가 국정원 국정조사 계획안 마련 등 구체적인 일정에 합의했다. 국정조사 실시를 요구하는 국민 여론과 서명, 학생들의 시국선언을 외면하지 않은 ‘바람직한 정치’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국정조사를 미루었다면 우리 사회는 극심한 국론 분열과 1980년대식 거리투쟁으로 홍역을 치러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더 중요하다. 국정조사를 통해 검찰 수사가 다 밝히지 못한 진실을 드러내고 국민이 납득할 만한 대책을 도출해내야 한다. 국정조사에 임하는 정당과 의원들은, 당리와 당략에 매몰되어 국정조사를 ‘정쟁의 장’으로 오염시킨다면, ‘국가의 법과 제도 자체에 대한 뿌리깊은 국민적 불신’을 만들어내는 역사적 죄를 짓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여야 합의로 국정원 댓글 사건 국정조사요구서 제출 (경향DB)


국정조사를 통해 국회가 밝혀야 할 가장 중요한 4가지 과제가 있다. 첫째, 원세훈 전 원장 재임기간에 국정원에서 ‘심리전’이라는 이름으로 누구에 의해 어떤 일이 어떻게 행해졌는지 ‘숨김없는 진실’을 밝혀야 한다. 둘째, 지난해 12월11일 국정원 직원 김모씨의 신원이 드러난 뒤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때까지 경찰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한 점 의혹없이’ 밝혀야 한다. 셋째, 검찰에서 원세훈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배후에 대해 전혀 수사를 하지 않은 이유와 범죄행위자 전원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하고 국헌 유린의 중범죄자인 두 사람을 불구속 기소한 이유와 배경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넷째, 소위 ‘MBC 2580 국정원 사건 통편집’과 ‘YTN 국정원 트위터 분석 특종 자진포기’ 사건 등 방송과 언론이 국정원 사건을 무시, 축소 혹은 왜곡 보도한 배경을 규명해야 한다.


(경향DB)


이 4가지 ‘진실’이 모두 밝혀진 뒤 관련자 모두에게, ‘성역없이’, 책임에 따른 처벌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국정조사 결과에 따라, 사퇴를 포함해 필요한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처럼, ‘전혀 몰랐고, 개입한 적도 없다’는 것이 밝혀지면 도의적 책임만 지면 될 것이다. 선거기간 중 국정원 사건과 관련해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에게 “허위사실을 주장하며 국정원까지 끌어들여 선거에 이용하고, 가녀린 여직원의 인권을 유린하고, 성폭행범이나 쓰는 방법을 쓴 데 대해 사과하라”고 공개적으로 발언하고 같은 내용을 선거유세에 활용했던 것에 대해 분명하게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김용판 전 청장이 주도한 경찰의 ‘거짓 수사결과 발표’가 크든 작든 대통령 선거에 임한 국민의 의사결정, ‘투표권’에 잘못된 영향을 끼쳤을 부분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무엇보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개혁방안’을 강구해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국정원 사건이 초래한 현 상황은 마치 ‘솔로몬의 판결’을 연상시킨다. 두 여인이 한 아기의 엄마라고 주장하자 한 팔씩 잡고 당겨서 이기는 사람이 엄마라는 솔로몬, 결국 아기가 다칠까봐 포기한 여인이 진짜 엄마임을 밝힌다. 정권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덮으려는 여당과 무조건 대선 결과를 뒤집어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겠다는 일부 야당 관계자와 시민들. 누가 진정한 대한민국의 ‘엄마’일까? 숨죽이며 지켜보는 다수 국민이 솔로몬이다. 새누리당이 당리당략이 아닌 국회와 의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지키며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 적극 임해준다면, 그래서 극심한 국론 분열과 대규모 거리투쟁의 위기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준다면, 국민은 새누리당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반대로, 야당과 집회 참가 시민들이 국정조사가 끝날 때까지 ‘대통령 사퇴’나 ‘국정원 해체’ 같은 극단적인 주장을 접고 진실발견 과정에 협조해 준다면, 국민은 이들의 손을 들어주고 합류할 것이다. 물론, 가장 바람직한 것은 양측 모두 서로의 이익이나 입장을 양보하고, 대한민국과 후손을 위해, 국정원 사건의 온전한 진실을 밝히고 엄정한 정의를 구현한 뒤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고 진정한 사과와 용서로 국민 통합을 이루는 것이다. 국정원 사건은 아직 채 성숙하지 않은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우리 모두의 정성과 협력으로 제자리를 잡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표창원 | 범죄심리학자·프로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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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11일 오피스텔 앞 대치상황에서 시작된 ‘국정원 게이트’가 6개월째를 맞고 있다. 40시간의 ‘잠금이냐, 감금이냐’ 논란 후 국정원 직원이 컴퓨터 2대를 임의제출하자 경찰은 ‘분석에 1주일 이상 걸린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12월16일 오후, 김무성 선대본부장 등 새누리당 관계자들이 기자간담회나 방송에서 ‘경찰이 수사결과를 내놓을 때가 됐다’는 이야기들을 흘렸고, 그날 저녁 대선 후보 제3차 TV토론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민주당이 증거도 없이… 감금하고… 성폭행범이나 쓰는 수법… 여직원 인권침해’를 주장하며 문재인 후보의 사과를 요구했다. 그 직후인 밤 11시, “경찰, 국정원 여직원 하드디스크에서 댓글흔적 발견 못해”라는 긴급 중간수사결과 발표 내용이 속보로 모든 TV 방송에 보도되었고 다음날 주요 일간지 1면 머리기사가 됐다.


(경향DB)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는 ‘민주당의 국정원 음해 흑색선전, 여직원 감금 등 인권침해’를 집중적으로 내세웠고,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선거 이후 진행된 검찰 수사로 경찰의 ‘중간수사결과 발표’는 김용판 당시 서울청장이 주도한 거짓말이었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주도한 조직적이고 대대적인 불법 여론조작 활동이 오랫동안 진행되어왔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이제 사실관계가 상당 부분 확인된 수사 막바지에 돌연 황교안 법무장관이 검찰에 ‘공직선거법’을 적용하지 말고 ‘불구속’ 수사하라는 압력을 넣고 있다는 보도로 파문이 일고 있다.


국민이 궁금한 건 두 가지다. 원세훈과 김용판의 배후엔 누가 있고,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검찰의 강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전 대통령과 새누리당 관계자 등 원세훈, 김용판의 배후에 대한 수사는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검찰에 압력을 넣고 있는 황교안 장관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인사청문회 당시 단 2건의 형식적인 사건 수임 대가로 로펌에서 16억원을 받아 ‘전관예우’ 논란을 일으키며 의원들로부터 부적격 판정을 받았던 황교안 장관이 ‘로펌 로비스트’ 역할을 하며 자신의 ‘고객’들을 무리하게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분노한 일부 시민은 ‘선거무효, 박근혜 사퇴’를 외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사건 최대 피해자인 문재인 의원이 밝혔듯 ‘국정원 게이트’가 사실로 드러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대통령과 정권의 정통성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야당의 의혹 제기가 허위, 흑색선전이라고 믿고’ 잘못된 발언을 했다면 박근혜 대통령 역시 이 사건 최대의 수혜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피해자답게’ 행동해야 한다. 자신을 속이고 망신시킨 범인들에게 분노해야 하고, 한 점 의혹 없이 진실이 드러나도록 행정수반으로서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국민과 야당, 문재인 의원에 대한 공개사과는 유죄판결 이후로 미룬다 해도, 황교안 장관의 축소압력 의혹에는 강하게 문책하고 본인의 뜻과 다름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관련성과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경향DB)


1972년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이 재현되는 수순이다. 재선을 노리던 닉슨 대통령은 민간인 5명이 야당 선거운동 사무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적발당하자 곤혹스러웠다. 무관함을 강하게 주장해 당선되었지만 이후 진행된 FBI 수사에서 CIA와 백악관, 선거운동본부 관계자들의 연루가 드러나기 시작하자 FBI에 압력을 넣어 수사를 무마하려고 했다. 결국 언론 보도로 사실이 드러나자 의회에서 대통령 탄핵이 추진되었고, 닉슨은 탄핵 직전에 사임하고 만다. ‘도청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 범죄행위 연루 의혹에 대해 ‘거짓말’을 했고 수사과정에 ‘압력’을 넣은 사실 때문이다. 


국민은 안보와 경제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의 하야나 정권의 불안을 원하지 않는다. 법절차와 정의가 지켜지고 진실이 드러나며 책임질 자들이 처벌받는 ‘정상적인 모습’을 원한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인간적인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고 다시는 이런 국헌문란 범죄행위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얻고 싶을 뿐이다. 대통령의 구국의 결단으로 정의가 구현되고 국민이 통합되길 진심으로 희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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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 범죄심리학자


 

5월15일 오후, 미국 뉴욕 소피텔 호텔 데스크에 한 여성이 울면서 성폭행 피해사실을 알렸다. 호텔 측은 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관들은 간단한 사실 확인과 현장 조사를 한 후 피해자를 피해자 보호 전문팀에 인계했다. 용의자는 숙박료만 하루 3000만원이 넘는 스위트룸에 머물던 외국 고위공무원이었다. 그가 짐을 황급히 챙겨 호텔을 빠져나간 정황을 파악한 경찰은 바로 공항 출국자 리스트를 확인했다. 잠시 후, 뉴욕 JFK 국제공항 활주로에서 비행기가 이륙하기 직전, 경찰관들이 기내로 들이닥쳤다. 경찰은 1등석에 앉아 있던 점잖은 노신사에게 다가가 신원을 확인한 후 미란다 고지를 한 다음 수갑을 채우고 비행기 밖으로 데려나왔다.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AP연합)

윤창중 이야기가 아니다. 정확하게 2년 전 발생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프랑스 국적의 세계 경제대통령 IMF(국제통화기금) 총재 이야기다. 그는 곧 성범죄자들과 흉악범들만 수용되는 악명높은 구치소에 구금되었고 온몸이 묶이는 ‘자살방지 프로그램’이 적용되었다. 유죄 확정도 안됐는데 수갑을 채운 모습이 여과 없이 보도되는 미국적 상황에 프랑스 여론이 반발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사법처리 과정에 국가적이거나 조직적인 방해 시도는 없었다. 나체 상태로 있다가 청소하러 들어 온 여종업원을 호텔 방 안에 감금한 채 성폭력을 했다는 최초 신고 내용은 윤창중의 혐의보다 엄중하다. 반면에 윤창중은 사실상의 ‘업무상 지배 관계’에 있는 어린 여학생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질렀고, 경찰수사를 피해 도피해 왔으며, 기자회견에서 일방적인 주장을 내세우며 피해 여학생에게 2차 피해를 야기했다는 점에서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스트로스칸의 범죄가 시종일관 ‘개인 문제’로 인식된 반면, 윤창중의 범행은 ‘국가적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외신은 윤창중 범행의 뒤엔 한국사회의 일상적인 ‘직장 내 성추행’ 관행이 자리잡고 있고, 한국 성평등 순위가 세계 135개국 중 108위에 그친다는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선출직인 IMF총재와 달리, 임명직인 청와대 대변인 자리의 특성을 들어 박 대통령이 ‘주로 도덕성에 문제가 많은 인물을 임명’해서 발생한 문제라는 지적도 제기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홀로 도주를 감행한 스트로스칸과 달리 윤창중의 도주에 청와대와 주미 한국문화원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는 부분이다. 한국 정부 혹은 공무원이 윤창중 도피를 도운 혐의로 사법방해죄 적용을 받는다면, 대한민국이 ‘범죄국가’가 되는 치욕이다. 다행스럽게 형사처벌을 피한다 해도 피해자 측이 민사소송을 제기한다면 같은 결과가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 국가망신을 피하기 위해 윤창중과 정부, 극우 논객들과 네티즌들이 무시하고 모욕한 피해자 가족의 애국심에 호소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과 측근들은 지난 대선과정에서 불거진 ‘국정원 사건’ 의혹의 경찰수사과정에 악영향을 미치는 잘못된 발언들을 공개적으로 했다. 김학의 법무장관 후보자의 성추문에 대한 경찰수사에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을 야기했다. 국정원게이트 등 권력형 사건에서는 단 한 명도 구속하지 않은 검찰이 대통령 동생 박지만씨의 살인사건 연루 의혹을 보도한 기자와 편집인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도 ‘박근혜 정부’다. ‘법과 질서’를 강조하며 ‘4대악 척결’을 내세워 학교 앞 문구점들과 노점상들에게 철퇴를 가하고 있는 정부가 ‘근본적 사회악’인 권력형 범죄와 부패 비리, 그리고 성폭력 사건 수사과정에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축소와 왜곡 압력 등 부정적 개입을 하고 있다는 의혹이 연이어 야기되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경향DB)


‘공직기강 확립’ 등 구태의연한 아랫사람 단속하기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과 그 측근들부터 ‘법과 원칙’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수립하고, 지금 당장은 불이익이 발생하더라도 투명하고 솔직하고 원칙적으로 대응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정의’는 그들의 권력보다 수천만 배 더 중요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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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밤 MBCTV <시사매거진 2580>이 방송한 ‘무기수 윤 여인의 이상한 형집행정지’의 고발 내용은 충격적이다. 부산지역에 거점을 둔 재벌 제분기업 회장 부인인 윤씨는 2002년 3월 발생한 ‘법대 여학생 청부살인 사건’의 주범이다. 윤씨는 자신의 판사 사위가 사촌 여동생과 부적절한 관계라는 엉뚱한 오해를 한 끝에 두 명의 남자에게 거액을 주고 살인을 교사했다. 그것도 얼굴과 머리 부위에 공기총을 6발 쏴 마치 처형하듯 처참하게 살해하는 방식이었다. 게다가 윤씨는 피살된 여학생의 아버지도 납치해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실이 밝혀졌고, 두 명의 살인범을 중국으로 도피시킨 뒤 북한으로 월북하라고 지시하기까지 했다.


여대생 하모씨 피살사건 용의자 윤모(왼쪽),김모씨가 인천공항을 거쳐 호송되고 있다. (경향DB)


경찰의 국제 수사공조로 도피한 살인범들이 붙잡힌 뒤 모든 진상이 밝혀졌는데도 윤씨는 끝까지 반성하지 않고 범행을 부인하던 끝에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확정판결을 받았다. 윤씨의 악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수감된 2명의 살인범과 그 가족을 압박해 ‘윤씨가 살인청부를 했다는 법정진술은 거짓, 위증이었다’고 허위 자백을 하게 만든 뒤 이들을 고발했다. 이들이 ‘위증죄’의 유죄판결을 받으면 자신의 살인교사 혐의가 벗겨져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살인범들의 ‘위증’ 자백은 무죄판결을 받음으로써 무위로 돌아가고 윤씨는 교도소에 무기한 머물게 되었다. 


그랬던 ‘악인 중의 악인’ 윤씨가 교도소에 없다. 대신 하루에 수백만원의 입원비를 내는 초호화 병실에서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2007년부터 거의 대부분 수감생활을 최고급 건강관리와 안락한 휴양을 하며 ‘벌 대신 상’을 받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와 해당분야 최고의 전문의들마저 윤씨의 형집행정지 사유가 된 의사의 소견서 내용과 그녀의 행동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며 고개를 젓는다.


‘형집행정지’는 수감자가 ‘심신의 장애로 의사능력이 없는 상태에 있을 때, 혹은 수감생활로 인해 현저히 건강을 해하거나 생명을 보전할 수 없을 때, 검사의 지휘에 의해 형의 집행을 정지’하는 제도로 형사소송법에 규정되어 있다. 의사의 소견서 등 근거가 있어야 하지만, 결국 판단과 결정은 ‘검사 마음대로’다. 엄연히 3권이 분립된 대한민국에서 사법부의 확정판결로 수감된 범죄자들을 행정부 공무원이 일시적이나마 ‘풀어주는’ 대단히 특별하고 예외적인 결정이어야 한다.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측근인 최시중, 천신일 등을 석방 혹은 복권한 ‘특별사면’ 못지않은 ‘특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알려진 형집행정지 사례를 보면 유독 권력자와 부자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그 기간도 ‘무기한’인 예가 많아 ‘법치주의’가 지켜지고 있는 것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5공 비리의 핵심’,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태광그룹 이선애 상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등이다.


전경환씨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입원 (경향DB)


전경환의 경우 2010년 5월 대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은 이후 현재까지 ‘3년여 동안 지속적 형집행정지’ 상태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그 소재조차 불분명하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지난해 8월에는 변호사가 ‘잘 아는 검사를 통해 형집행정지를 받게 해주겠다’며 수감자로부터 8600만원을 가로채 사기죄로 입건되기도 했다. 이대로는 안된다. 


검찰은 수년간 부당하게 초호화 요양을 즐기고 있는 전경환과 악질 청부살인범 윤씨를 당장 교도소로 돌려보내야 한다. 이들의 ‘무기한 형집행정지’ 과정에 개입한 검사와 검찰 관계자, 의사와 병원들의 혐의를 철저히 수사해 불법사실이 발견되면 처벌해야 한다.


마치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을 연상케 하는 검사의 ‘형집행정지’ 결정권한에 대한 사법적 혹은 민주적 통제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법 앞의 평등’이 보장되는 법치국가임을 국민 앞에 보여줘야 한다. 국가와 정부, 국민에게 큰 손실을 안기는 ‘신뢰의 위기’는 ‘사법 정의의 훼손’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표창원 | 범죄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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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 범죄심리학자




서울대 의대 출신의 엘리트,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한 천재, 사업에 크게 성공한 유능한 최고경영자(CEO), 전 국민에게 무료로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제공한 공익정신의 모범적 실천자. 그런 안철수가 전국을 돌며 토크콘서트를 열어 지치고 상처 입은 젊은이들을 위로하고 기성 정치인들에게 환멸을 느낀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 지역감정과 세대 간 갈등, 이념 간 대결의 ‘낡은 정치’를 타파하고 ‘새 정치’를 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국민들이 안철수에게 열광했다. 이른바 ‘안철수 현상’이다. 그는 열화와 같은 지지자들의 성원을 받아들여 정치활동 개시를 선언하면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다. 


그러나 여론조사에서 자신보다 현저히 뒤진 박원순 후보에게 양보하면서 후보 단일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국민들은 더 안철수에게 기대와 희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 운동이 시작된 뒤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의 야권 단일화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던 끝에 석연치 않은 뒤끝을 남기면서 ‘합의에 의한 단일화’도, ‘경선에 의한 단일화’도 아닌 일방적인 ‘후보 중도 사퇴’를 했다. ‘안철수 현상은 거품’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노무현·정몽준 두 후보 간의 ‘아름다운 단일화’로 극적인 반전을 이루었던 추억에 잠겨 있던 야권 지지자들은 혼란과 아쉬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에 보여준 안철수의 문재인 후보에 대한 ‘소극적인 지원’에 대해서도 해석이 분분했다. 절정은 12월19일 투표일 당일, 야구로 치자면 팽팽한 3대3 접전이 이루어지던 9회 말 공격 상황에서 4번 타자 경쟁에서 밀린 호타준족의 5번 타자가 더그아웃을 벗어난 뒤 경기장을 아예 빠져나가는 괴이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안철수가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떠났다. 


경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선수와 응원단은 아쉽고 황당하긴 했지만, 그에게 큰 관심을 줄 여유가 없었다. 경기에 진 선수와 응원단이 침통해하고 있던 그 긴 시간 동안에도 그는 침묵했다. 아니, 미국에서 영화 <레미제라블>과 <링컨>을 보고 독서를 즐기고 있었다. 


밝은 표정의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 (경향신문DB)


그런 그가 4월 국회의원 재·보선에 출마한다고 전격 선언하고 귀국했다. 그것도, 석연치 않은 ‘삼성 X파일 공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유죄 판결 때문에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전 의원의 지역구인 노원병을 콕 찍었다. 


국회의원 지역구가 특정인이나 특정 정당의 소유물은 아니다. 누구든 출마할 수 있고, 또 그런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냥 일개 후보가 아닌,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 가까운 사람에게 ‘새 정치’를 열 희망의 상징이며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자인 그라면 출마선언 전에 반드시 했어야 할 일들이 있다. 


그저 ‘새롭기만 한’ 정치인이 아닌, ‘새롭고 정의로운’ 정치인임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서. 먼저, 문재인 후보 측과의 단일화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왜 중도사퇴를 했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둘째, 왜 선거 당일 출국했으며 그 계획은 언제 세워진 것이었는지를 정확히 밝혀야 한다. 셋째, ‘노원병’이라는 선거구의 특성에 비추어, 자신이 노회찬 전 의원이 표방하는 ‘진보’ 정치인인지, 그래서 그를 대표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노 전 의원을 지지하지 않은 노원병 주민들의 보수적 기대와 열망에 부응하겠다는 것인지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지 않은 채 선거를 치르겠다면, 안철수는 ‘새 정치’를 열수 있을지는 몰라도 ‘정의로운 정치’를 열 수 있으리라고 믿을 수는 없다. 그저 ‘새로운 방법’을 사용해, 최대한 많은 표를 끌어모으겠다는 ‘구태의연한 정치인’이 또 한 명 나왔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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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 범죄심리학자



 

북한의 도발과 일본 극우세력의 준동이 심상찮다. 북한은 핵실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에 반발해 추가 도발을 예고하고 나섰고, 극우정권의 출범에 힘입은 일본 극우단체들은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승천기를 뒤흔들며 도쿄 한가운데에서 ‘한국인 물러가라’는 망동을 일삼고 있다. 독도와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쿠릴 등 한국, 중국, 러시아와의 영토분쟁에도 불을 붙이고 있다. 일본 극우세력의 지금 모습은 마치 20세기 초 내부 위기를 ‘정한론’으로 돌파하고, 제국주의적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 중일, 러일 전쟁을 일으키던 상황과 흡사하다. 


북한 역시 군, 행정, 정치 경험이 전무한 20대 세습 독재자의 위태로운 지위와 생활고에 시달리는 인민들의 반발을 타개하기 위한 벼랑끝 심리가 엿보인다. 기나긴 외세의 침탈과 암울한 독재의 그늘을 벗어나 탄탄한 경제적 기반 위에서 이제 막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려는 우리 대한민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이성과 합리성을 찾고, 열린 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구축하는 한편, 전문성과 체계적 전략으로 위기를 벗어나 기회를 창출해 내야 한다. 다시는 구한말 무능한 왕조와 나라 팔아 제 잇속 챙긴 친일파, 이성보다 감정으로 쇄국을 부르짖던 수구파의 전철이 재현되어서는 안된다. 


‘통합된 대한민국’을 어떻게 만들까? 무엇보다 새로 출범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일본 극우파와 북한처럼, 한쪽 극단을 치달리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 혹시라도, 선거에 이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색깔론과 이념적 편향성에 의존했다면, 집권자로서 정부를 운영할 땐 과감히 그 허물을 벗어던지고 모두의 대통령과 정부가 되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외세의 적대적 준동 앞에선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선거전쟁’에 동원되어 세대와 이념으로 편갈려 싸우게 된 국민들을 다시 가족, 동료, 친구, 친척 사이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골 깊은 지역감정 탓에 차라리 영(호)남 사람보다 미국, 일본이 낫다는 망국적 분열심리를 치유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통합’과 ‘화합’은 말로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반드시 전제돼야 하는 절차가 있다. 바로 ‘진실과 화해’다. 오랜 흑백 인종갈등을 극복하고 새 민주정부를 구성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과 화해위원회’가 좋은 예고, 분단으로 인한 극심한 분열과 갈등을 극복한 통일 독일의 성공 역시 마찬가지 원칙을 준수한 결과다. 북한과 일본의 비이성적인 망동 앞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가 반대진영의 공격과 비난 앞에서 ‘우리끼리’ 똘똘 뭉치고 방어 태세를 갖추어선 안된다. 장관 등 고위직부터 대탕평을 통해 결격사유가 없고 자질과 능력이 검증된 인사를 중용하고, 군사정권 독재 시절의 과오에 대한 사과부터 지난 대선 기간 횡행했던 불법적인 지역감정과 색깔론 공격의 실체와 구조, 책임자들을 가려내 단죄하는 작업까지 신속하게 마쳐야 한다. 

(경향신문DB)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진정성, 조국과 민족을 위한 충심이 확인되기만 한다면, 이 땅의 수많은 건전한 보수와 중도, 심지어 합리적 진보에 이르는 대다수 지식인과 국민들이 대통령과 정부를 지키고 보호해 줄 것이다. 그것이 5000년 역사 내내 보여줬던 한민족의 전통이며 민심이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주위에는 충신도 있겠지만, 구한말 이완용 못지않은 매국 간신배들도 있을 수 있다. 특히, 더 방어적으로 ‘우리끼리’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속삭이는 자는 간신배다. 대통령 당선인을 칭송하고 추앙하며 그 부모를 찬양하며 다가서는 자, 두 번 볼 것 없는 간신배다. 박근혜 당선인은 자신 주위에 몰려드는 파리떼 같은 간신배들에게 둘러싸여 반쪽 대통령으로 전락할 것인가, 아니면 반대편까지 아우르는 포용력으로 충신들을 삼고초려해 ‘하나된 대한민국’을 이끌어 내는 구국의 성군이 될 것인가? 국민은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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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 범죄학자·프로파일러


지난 단도직입 칼럼 ‘풍전등화 국정원’에 대해 국정원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이미 국정원이 박원순 서울시장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과 전 농림부 장관이 <PD수첩>에 대해 제기한 고소 사건 판결에서 법원이 “정부 또는 국가기관은 원칙적으로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 …정부 또는 국가기관의 정책 결정이나 업무수행과 관련된 사항은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적시한 내용을 국정원이 모를 리 없다. 


그런데 국정원은 왜 또다시 고소를 했을까? 우선 국정원의 불법 선거개입 의혹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자의 입을 막기 위해, 그리고 국민들을 겁주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국정원은 불법선거 개입 의혹에 추가해 형법상 무고죄라는 ‘또 하나의 범죄’ 혐의를 받는 셈이다. 


국정원 직원 경찰 출두 (출처: 경향DB)



더구나 일반적으로 명예훼손을 당한 경우. 따지고 감정을 드러낸 뒤 분을 참지 못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과 달리 국정원은 단도직입 칼럼이 게재된 이후 아무런 반응도 없다가 3주 가까이 지나서야 고소장을 냈다. 그만큼 전략적이고 기획적인 고소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 이면에는 무리한 고소를 해서라도 덮고 싶은 ‘불법선거 개입 의혹’이라는 ‘본질’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선관위와 경찰의 조사 요구에 불응하며 40시간 동안 대치해 ‘증거인멸’할 시간을 벌었다는 비판을 받은 뒤 휴대폰과 USB 저장장치 등을 제외하고 두 대의 컴퓨터만 제출했던 국정원 직원 김모씨. 경찰 수사를 통해 지난해 10월 이후 두 달 동안 하루 종일 오피스텔에서 16개의 서로 다른 ID를 이용해 ‘오늘의 유머’라는 진보성향 사이트 99개의 글에 ‘추천’ 혹은 ‘반대’를 눌러 특정 글을 베스트 목록에 올리거나 내리는 행위를 했고, 그 중 상당수가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하고 문재인 후보에게 불리한 결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정시간대에 ‘요리’나 ‘연예’ 등 사이트 성격에 맞지 않는 글들을 집중적으로 클릭해 다른 글들을 보이지 않는 위치로 밀어내렸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런데 이에 대해 국정원과 김씨는 ‘종북 성향 사이트와 네티즌들을 감시하는 통상적인 업무’라고 주장하며 글 게시자 역추적 내용을 제시했다. 대통령 후보 관련 글 ‘추천’ ‘반대’나 ‘요리’ ‘연예’ 글 추천행위는 ‘사적인 취미활동’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는 글 게시자의 IP를 역추적했더니 종북 성향 글을 올린 사람이었다”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이러한 주장들은 더 큰 의문을 불러 일으킨다. 우선 국정원의 통상업무가 ‘대통령이나 정부에 비판적인 글을 게시하는 사람들을 추적하고 감시하는 것’인가? 둘째, 대통령이나 정부에 비판적이면 ‘종북’인가? 그리고 합법적인 업무라면, 왜 IP 추적장비와 시스템이 갖춰진 국정원이 아닌 민간 오피스텔에 상주하며, 보안성이 취약한 무선통신 접속을 이용해 방첩업무를 수행했는가? 


아울러 모든 국가기관과 부처의 ‘보안 감사’ 담당인 국정원 직원이 사찰업무와 개인 취미활동을 같은 컴퓨터로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런 질문들의 뒤에는 더 큰 질문이 도사리고 있다. 김씨 같은 업무를 부여받은 사람이 모두 몇 명이고 각기 어떤 사이트들을 할당받았는지? 대선준비 시점인 지난해 10월, 이 ‘작전’을 기획하고 지시한 책임자는 누구인지? 마지막으로 국정원이 반드시 답해야 할 질문이 있다. 야당, 진보성향 지식인이나 시민단체관계자, 혹은 누리꾼과 인터넷 사이트를 ‘안보 위해 대상’ 혹은 ‘종북’으로 규정하고 감시해 왔는지? 그리고 이들을 ‘종북’ ‘좌빨’로 부르는 사람들 뒤에 국정원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인지? 그래서 ‘종북 좌빨론의 승리’라고 할 수 있는 2012 대통령 선거는 결국 ‘국정원의 승리’라고 할 수 있는지? 스스로가 답하지 않는다면 국정조사를 통해서라도 반드시 국민과 역사에 답을 들려줘야 할 질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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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 범죄학자



 

최근 재미있게 본 영화와 드라마 중에 <7급 공무원>과 <아이리스>가 있다. 모두 국정원 요원들의 활약상과 애환을 멋진 액션과 탄탄한 미스터리 구조 속에서 그려내 재미와 감동을 주었다. 아마 많은 청소년들이 ‘한국의 007’, 국정원 요원이 될 꿈을 가지게 해 주는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미국의 중앙정보국(CIA), 이스라엘의 모사드, 영국의 비밀첩보국(SIS, 일명 MI6)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최고의 전문가들. 나와 많은 청소년들이 기대하고 믿는 국정원의 모습이다.


실제로 내가 경찰관 생활을 하며 만났던 실무요원들의 모습은 영화나 드라마 속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1992년 대테러 종합 모의훈련을 함께하며 경찰 협상요원이었던 나와 1박2일간 두뇌싸움을 벌이며 테러범 역할을 담당했던 당시 안기부 ‘장 선생’이 대표적이다. 외국 테러범의 인질상황을 설정했던 모의훈련에서 협상은 모두 영어로만 진행됐다. 미군 CID의 협상교육을 받았고, 경찰에서 누구보다 영어는 잘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나였지만 유창함과 정확성은 물론이고 중동식 억양과 미국 본토 억양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장 선생 앞에서 난 ‘어린아이’ 같았다. 영어만이 아니었다. 협상과정에서의 심리전 능력 역시 탁월했고, 훈련 막바지 경찰특공대의 진입 상황에서의 무술실력 역시 뛰어났다. 내겐 ‘장 선생’이 영원한 국정원의 롤 모델이다.


오피스텔 빠져나가는 국정원 여직원 (경향신문DB)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장 선생’ 같은 전문 실무요원보다 ‘관계기관대책회의’ 같은 것을 주관하는 ‘국정원 관료’들을 접하면서 다른 모습들을 보게 되었다. ‘장 선생’ 같은 진짜 전문가들이 아닌 검찰 등 다른 행정기관 관료들이 낙하산처럼 고위직에 임명되는 소식들을 접할 때마다 안타까웠다. 중앙정보부, 안기부를 거쳐 국정원으로 여러 차례 간판을 바꿔 달 수밖에 없었던 ‘정치화’의 상처와 후유증은 일선 현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유능한 실무요원들이 점차 한직으로 밀려나고 ‘줄을 잘 선’ 관료들이 득세해 권력을 추구하는 모습들이 감지된 것이다. 그 결과 과거 ‘음지에서 일을 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모토를 가졌던 국정원이 2002 월드컵 등 국제행사의 ‘공식 보안책임기관’을 맡겠다며 경찰과 힘겨루기를 해 다른 나라 경찰 관계자들을 경악하게 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2011년엔 우리나라 무기를 구입하겠다며 방문한 인도네시아 사절단의 호텔방에 국정원 직원들이 숨어들어가 노트북을 훔쳐보다 호텔 직원에게 발각된 뒤 숨어있다가 경찰에 체포되는 어이없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번 2012 대선 ‘국정원 직원 사건’에서도 ‘불법 선거개입’ 논란은 차치하고서라도, 민간인에게 미행당해 숙소와 일과까지 몽땅 감지당하고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가 선관위와 경찰이 와 문을 열고 조사에 협조하라고 하자 오빠와 부모까지 불러 언론 앞에 노출시키는 이해 못할 행동을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도 국정원의 역량 약화를 보여준 단적인 예다. 바로 그 순간 북한에서는 미사일인지 인공위성인지를 쏘아댔지만 국정원에서는 전혀 알아채지 못해 정부가 공식적으로 ‘북한은 발사계획을 철회했다’고 발표해서 어처구니없는 망신을 당하게 했다. 유사한 시기, 태국에서 MBC 기자가 북한 김정은의 형 김정남을 만나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국정원은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몰랐을까, 아니면 대선에 이용하도록 방조한 것일까는 아직 미지수다.


국정원은 위기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원인은 둘 중 하나다. 첫째, 정치관료가 국정원을 장악해 정보와 예산, 인력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의도적 정치화가 아니라면 국제 첩보 세계에서 조롱거리가 될 정도로 무능화·무력화돼 있다. 어떤 경우든 대수술이 필요하다. 생명은 살리되 뇌 속 암세포는 제거하는 정밀하고 체계적인 대수술만이 국정원을 살려내 국민이 신뢰하는, ‘한국의 007’로서의 위상을 바로 세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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