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인 | 에세이스트


 

아기가 잠잘 때를 틈타 동요를 다운받았다. 아기는 귀가 트인 이래로 ‘코끼리 아저씨’를 좋아했고 ‘떴다떴다 비행기’나 ‘송아지’ 같은 노래를 불러주면 웃었다. 어느 정도 성장한 요즘 허밍으로 ‘산토끼’를 부르면서 돌아다닌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수준 높은 동요를 불러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고음불가라서 한계를 느낀다. 그래서 신중하게 선별해 20곡 정도를 받았다.


관찰 결과 아기는 멜로디가 단순하고 반복적이며 이왕이면 된소리가 들어가는 동요를 좋아한다. 그러니까 아직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조금 더 크면 노래를 따라 부르고 나아가 가사를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확립해 나가리라 믿는다. 그러자면 동요 가사에 따라 신중하게 들려주어야 하는데, 특히 인상 깊은 동요가 몇 곡 있다.


(경향신문DB)


 우선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요~” 하는 유명한 ‘고기잡이’란 곡이다. 이 노래의 2절 가사는 이렇다. “선생님 모시고 가고 싶지마는/ 하는 수 있나요 우리만 가야지/ 하는 수 있나요 우리만 가야지/ 라라라라라라라라 간다나.” 어린이가 옆에서 “하는 수 있나요 우리만 가야지” 하고 반복적으로 중얼거리는데 같이 안 가는 선생님도 독하다. 그럼에도 어린이는 3절에 이르러 쏴쏴쏴 쉬쉬쉬 고기를 몰아서 결국 선생님한테로 가지고 온다. 선생님이 존경받던 시절의 노래라 그런가보다. 어쨌든 능청스러운 2절 때문에 고기잡이는 애창곡이 될 것 같다. 나중에 애가 커서 “저도 커피가 먹고 싶지마는 하는 수 있나요 우유나 먹어야지” 등의 대사를 할 수 있을 때까지 불러줄 생각이다.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모두가 힘들잖아요” 하는 노래도 있다. 예전에 남편이 이 노래를 흥얼거리기에, 가사 바꿔 부르지 좀 말라고 일갈했는데 이번에 들어보니 진짜 가사였다. ‘사는 건 다 힘드니 얼굴 좀 피시라’고 풀이되는데, 동요 가사가 너무 성숙하지 않은가. 설마 ‘네 찌푸린 얼굴 보는 게 힘들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건 너무 불손하니까. 나중에 “우리 가는 길이 결코 쉽진 않을 거예요 때로는 모진 시련에 좌절도 하겠지만”이란 가사가 나오는 걸 봐서 전자가 확실한 듯하다. 가사가 실존적이다. 


‘작은 동물원’이란 노래도 인상적이다. “삐약삐약 병아리~” 하면서 시작하는 이 노래에는 차례로 송아지, 물오리, 개구리, 가재, 물풀, 그리고 소라가 나온다. 동물원이라고 하면 사자와 코끼리가 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물풀과 소라가 나오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약자인 생물들에게 관심을 가진 동요가 내 어릴 적에도 있었던가. 왠지 이 동요의 작사가는 좌파일 것 같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코끼리와 거미줄’이다. 가사는 이렇다. “한 마리 코끼리가 거미줄에 걸렸네/ 신나게 그네를 탄다네/ 너무너무 재미가 좋아좋아 랄랄라/ 다른 친구 코끼리를 불렀네.” 이 코끼리는 친구 코끼리를 네 마리 더 부른다. 그러므로 최종적으로 다섯 마리 코끼리가 그네를 타다가 결국 거미줄이 끊어지면서 끝이 난다. 남편은 노래를 듣더니 “거미줄이란 난관에 부딪혀도 그네 타기로 승화시키는 낙천적인 코끼리들을 보라”며 “이 시대 놀이가 된 집회문화와 새로운 연대의식을 표현한 동요”라고 흥분과 감탄을 감추지 않았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코끼리도 걸리게 만드는 거미줄을 뽑아낸 거미에 대해서도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요라고 다 재밌지는 않다. 많은 노래가 노골적으로 계몽적이다. “제일 먼저 이를 닦자 윗니 아랫니 닦자” 또는 “건너가는 길을 건널 때 빨간불 안돼요” 하는 노래들이 그렇다. 어린이들을 교화시켜 보려는 심산인 것이다. 물론 이런 노래도 다운받았다. 작품성은 좀 떨어지지만 그 실용성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는 실존주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 연대의식과 같은 것만 안다고 밥 먹여주는 세상이 아니니까. 


그러고 보니 장마철 놀이터에 가자고 조르는 아기에게 유용한 “아기돼지 바깥으로 나가자고 꿀꿀꿀~” 하는 노래를 빼먹었다. 뭐, 하는 수 있나요. 다음에 받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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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숙 소설가


 

매일 가던 지하철역이 어느 날 잘나가는 여배우의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한 면 전체에 실물보다 큰 크기의 사진이 붙었으니 ‘도배’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또 다른 역에서는 밖으로 나가는 계단 옆면마다 시트지가 붙어 있다. 뭔가 해서 거리를 두고 다시 봤더니 은행 로고다. 지하철에 타도 마찬가지다. 선반 위, 출입문 양옆은 모두 광고를 위한 자리다. 바닥에는 파도그림이 승객들의 발밑에서 넘실거린다. 휴가철을 겨냥한 여행사의 광고다. 눈의 피로감에 못 이겨 출입구 유리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집중하려던 찰나, 유리창에 붙은 광고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 기대지 마세요. 이곳에 광고하세요. 광고 게재 원하시는 분은….”


 걸어가는 곳마다 광고가 보인다. 요즘에는 눈과 귀가 피곤한 정도를 넘어서 엄연한 피해라는 생각마저 든다. 건물이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타면 쉴 새 없이 영상광고가 나오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없던 마케팅 방법이다. 거의 모든 공간은 사실 광고를 위해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셈이다.


(경향신문DB)


광고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기분에 이어폰으로 귀를 막아보기도 한다. 하지만 시각적 효과까지 차단할 수는 없다. 사실 광고에 시선을 뺏기는 건 참 피하기 힘든 일이다.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있다. 2004년 광화문 촛불집회 때 일이다. 사람들이 모여 구호에 따라 박수도 치고 노래도 불렀다. 그런데 가끔 구호가 끊긴다거나 무료해진 틈에 사람들의 고개가 한쪽으로 일사불란하게 향하는 것을 보았다. 시선이 향한 곳은 회사건물 위에 있는 옥외광고 스크린이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이미지들을 외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쩐지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영화를 한 편 보려고 해도 십분 이상의 광고를 보아야 한다. 씨네큐브처럼 정책적으로 광고를 받지 않는 곳을 제외하면 영화를 보기 전 지루한 시간을 참아내야 한다. 요즘에는 일부러 십분쯤 늦게 상영관에 들어가고는 하는데 어두워진 상영관에서 사람들의 발을 밟아가며 자리를 찾아가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그러다 팝콘이라도 엎지르면 좋은 기분으로 영화를 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인터넷 기사를 볼 때면 각종 팝업창과 광고창이 업보나 되는 양 나의 시선을 따라다닌다. 기사를 보는 건지 광고를 보는 건지 모르겠다. 귀퉁이에 있는 것도 모자라서 본문을 덮는 건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이제 광고의 영역, 비광고의 영역이 구분조차 되지 않는다.


선택할 수 없기에, 피할 수도 없기에 광고는 때로 더욱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특히 간접광고는 정교하게 진화하고 있다. 드라마 속의 간접광고(PPL)는 은근하게 일상의 틈을 파고드는 광고방법이다. 드라마 속 배우들이 어떤 차를 타고 어떤 상품을 이용하는지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드라마 속 중후한 매력을 발산하는 남자배우의 면도 모습에 감탄하기 전에, 나는 의심한다. 대체 왜 저 장면에서 굳이 면도를 해야 하는 걸까. 그것도 면도기가 아주 잘 보이는 각도로 말이다. 스토리에 필요치 않은데도 협찬 때문에 넣은 게 분명한 장면 앞에서 나는 불편하고 불쾌해진다.


언제부턴가 옷에 새겨진 로고도 모자이크로 지워버린다. 광고비를 내고 간접광고를 하는 업체에 혜택을 주기 위해서이다. 모자이크가 있어도, 없어도 시청자인 내가 거슬리는 건 마찬가지다. 모자이크가 있으면 오히려 모자이크만 보여 불편하고, 모자이크가 없으면 분명 협찬일 것이다, 라는 생각이 자동으로 떠올라 불쾌하다. 예전에는 우리 아빠는 프로그램 사이사이에 나오는 광고가 싫어서 채널을 이리저리 정신없이 바꾸며 TV를 보곤 했는데, 이제는 통째로 광고인 셈이다. 요즘 광고의 습격에서 소비자가 주권을 찾기란 이다지도 힘들다.


광고비가 절실한 수입원인 소규모 미디어일수록 노출은 더욱 노골적이다. 광고주를 ‘주님’(광고주님)이라고 부른다는, 홍보 쪽에서 일하는 친구의 말이 농담은 아닌 것 같다. 광고 포화 상황에 다다라 더욱 요란해지는 상황에 광고 규제를 외치는 건 요원한 일일까. 하지만 난무하는 광고는 미디어와 광고 모두에 해가 될 수 있다. 화려한 간판으로 도배된 곳은 오히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불쾌감만 주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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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교 | 한예종 영상원생


 

지난 주말 나는 고교시절의 수학여행 이후 처음으로 경주엘 갔었다. 그곳에서 열린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아침부터 땀을 뻘뻘 흘리며 KTX에 올라탔다. 그 열차는 결혼식에 참석하는 하객들로만 가득 찬 신기한 열차였다. 서울에서 올 하객들을 위해 통째로 빌린 모양이었다. 몇 년 만에 보는 동기, 후배들, 처음 본 신부 측 사람들 모두 번듯한 정장 차림이었지만 나는 달랑 티셔츠에 청바지, 싸구려 운동화, 그리고 작은 우산뿐이었다. 평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잘도 살아왔건만 경주로 내려가는 내내 내 처지가 너무 초라하다고 느꼈다. 바보 같은 생각임에 틀림없었다. 동대구역을 지나고 나서야 나는 차창 너머에 펼쳐진 초록 들판의 풍경에 간신히 몰입할 수 있었다.



(경향신문DB)



 결혼한 내 친구는 나와 대학 동기로 이라크전쟁 반대시위에 가거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며 함께 활동했었다. 우리는 우리가 알던 세계가 어딘가 거짓투성이임을, 그리고 노동자와 도시빈민들에게는 더더욱 착취를 강요하고 있음을 느끼며 대학시절을 보냈다. 그 환희와 격정, 슬픔, 고독, 불안, 조급함에 사로잡혀 있던 시간을 잊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 종종 윗세대 어른들이 품는 그런 얄궂은 낭만에 빠지기 위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온 후 느낀 어떤 두려움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다.


언젠가 나는 기성세대가 겪는 온갖 풍파, 불화들, 권태로운 표정을 보며, 그리고 그네들이 스스로 희생과 단념으로 얼룩진 지난날의 결정들에 대해 후회의 말을 뱉는 걸 들으며 그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결심했었다. 내게 그렇게 할 수 있는 충분한 용기가 지속되기를 희망하며 말이다.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할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온 나는 여전히도 고졸이다. 이렇다 할 자격증도 없으며, 통장 잔액은 매일 0원을 향해 달린다. 내가 별다를 것 없이 세속적인 인간임을 확인하게 되는 것은 이런 사소한 순간마다 추락하는 내 마음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어떤 두려움을 확인하게 될 때마다 자신이 끊임없이 왜소해지는 걸 느끼지 않던가. 직장을 얻을 수 있을까? 편안하고 따뜻한 집에서 살 수 있을까? 밥은 굶지 않으며 살 수 있을까?


서울에 돌아와 소문난 감자탕 집엘 갔다. 제각각 어리바리한 신입사원, 앞날이 막막한 대학원생, 비영리단체 활동을 마치고 곧 다른 직장에 출근할 직장인, 영화란 걸 한답시고 아직도 빌빌거리며 대학에 다니는 답답한 놈인 우리들은 소주를 마시며 각자가 지닌 불안과 초조에 대해 이야기했다. 회계법인에서 일하는 사회초년생 친구는 월요일이 되면 다시 출근해야 하는 삶이 끔찍하게 싫다고 했다. 자신이 마주한 더러운 꼴들에 대해서 나지막이 말하면서 말이다.


다음날 나는 도심 한복판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혐오감을 내뿜는 황당무계한 극우 인종주의 기자회견을 목격했다. 세종로 곳곳마다 “종북 빨갱이 척결”을 외치는 현수막들이 걸려있었고, 새로 세워진 서울시청의 쓰나미와 같은 형상은 우리를 모두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이틀 만에 찾은 쌍용차 해고노동자 분향소에선 두 죽음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지난 6월27일에는 미국계 신문용지 제조업체인 보워터코리아의 한 해고노동자의 아내가 자살을 했다고 한다. 지난해 말 신문지상에서 신나게 임원 감축 등을 통해 경영난을 극복했다며 상찬했던 바로 그 회사였다. 또 당일 아침에는 한 택시운전사가 사장과의 면담 끝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분신, 끝내 세상을 떠났다. 다음날 아침 어느 신문도 이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분향소 앞에서 듣는 죽음의 전갈들이 무기력한 마음에 빠지게 만들었다. 세상 모든 풍경이 폐허처럼 다가왔다. 


분향소 앞에서 마침 꽃다지의 공연이 있었다. 도심에서 울린 ‘노래의 꿈’들은 내게 상실된 용기를 되찾게 하는 에너지가 되었다. 두려움을 넘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말이다. 공연이 끝나도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세상엔 모두 험악하고 두려운 일들뿐인데 오직 그 외딴섬 같은 자리만이 우리들의 갈 길을 안내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가 이 ‘노래의 꿈’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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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섭|성공회대 대학원 박사과정


여기 두 개의 문이 있다. 하나의 문은 농성자들이 화염병을 던지며 저항하고 있는 망루로 통한다. 다른 하나는 막혀 있다. 경찰은 우왕좌왕했다. 어느 문이 망루로 통하는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9년 1월20일 새벽 용산4구역 남일당건물, 세입자들과 전국철거민연합의 회원들이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벌인 점거농성이 시작된 지 하루가 조금 지났을 때였다. 급작스레 들이닥친 경찰의 강경진압은 농성자 5명과 경찰관 1명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대법원은 경찰에게는 무죄를, 농성자들에게는 4~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두 개의 문>은 집요한 영화다. 농성자들이 건물을 점거하고 망루를 짓기 시작한 때부터, 그 망루가 검은 연기에 휩싸이며 불에 타오를 때까지의 경과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그러나 이 추적에서 감독들은 농성자의 시선이 아니라 경찰의 시선을 쫓는다. 크레인 기사가 잠적하는 바람에 두 대가 필요한 컨테이너는 한 대만 올라가고, 건물의 구조를 설명받지 못해 두 개의 문 앞에서 우왕좌왕하며, 몇 층으로 되어 있고 어떤 인화물질들이 있는지, 몇 명이 어떤 태세로 있는지 모르는 채 파란색 망루로 무작정 밀려들어가는 진압대원들의 증언과 기록이다.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두개의 문>. ㅣ 출처:경향DB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경찰특공대원들은 그날의 망루를 생지옥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위험을 느꼈지만 이것을 멈추어야 한다고 얘기할 순 없었고, 자신들은 오로지 진압을 할 뿐 그 이외의 권한은 없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그들은 불에 타는 망루 속에서 들렸던 “다 죽어!”라는 의문의 외침이 위협이 아니라 경고였다고 고백하기도 하고, 그날의 참상을 떠올리며 머뭇거리기도 한다. 이런 대원들에게 검사는 국가의 이름으로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고 강조하며 난데없는 사상검증을 벌인다.

하지만 결국 토해내듯 이 사건의 책임을 농성자들에게로 돌리는 대원의 목소리는 그다지 단호하지 못했다. 영화는 관객들을 용산참사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화급하게 사건에 대한 진실을 결정지어버린 국가를 대신하여, 감독들은 우리에게 묻는다. 그 불길은 무엇이었는가,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지만 영화는 대체 누가 이 진압을 이토록 서둘러 밀어붙였는지, 이 사건은 왜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을 얻지 못했는지, 대체 무엇 때문에 이 일이 벌어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물론 이것은 그날의 진실에 집중하기 위한 영화의 전략일 것이다. 그러나 영화도, 그리고 그것을 보는 우리도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우리는 다만 두렵거나, 불안하거나, 주어진 삶을 헤쳐나가는 것에도 너무 벅찬 나머지 차마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못했던 것이리라.

지난 몇 년간 ‘뉴타운’ ‘디자인 서울’ ‘재개발’ ‘재건축’ 같은 단어들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단어들은 그 사람들을 밖으로 몰아대기 시작했다. 자본과 국가권력은 서울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복잡하게 얽힌 삶의 장소들을 유리와 대리석과 콘크리트와 ‘친환경’ LED로 뒤덮인 반듯한 공간으로 만들려고 했다. 대통령이 와서 풀빵을 굽던 노점에서부터 사람들이 멀쩡히 살아가던 주택들과 한때 근대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구시가지에 이르는 광범위한 구역이 그 대상이었다. 이들은 편리하게도 아웃소싱된 공권력인 용역으로 사람들을 괴롭혔고, 매수와 회유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 불신을 심었으며, 법과 질서를 돈으로 물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용산의 불길이 지나간 다음에도 이들은 반성하지 않았다. 두리반과 마리에서, 그리고 북아현동과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곳에서 이들은 여전히 같은 짓을 반복 중이다. 그럴 때마다 두 개의 문은 조용하게 나타나 그 그림자를 드리운다. 얼마나 더 많은 불길이, 얼마나 더 많은 주검이 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용산은 우리가 수십년간 에둘러서 중산층이라고 부르며 동일시해왔던 무언가가 찢어지고 있음을 알리는 거대한 파열음이었다. 그 불길한 소음은 쌓여가는 가계빚과 밀려나는 사람들 속에서 더욱 커지는 중이다. 용산은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누구도 이 불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시대를 알리는 사건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집값을 떨어뜨리는 이웃이 아니라 진짜 맞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있다. 그 불타는 물음에 대하여 우리는 스크린 밖에서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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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인 | 에세이스트

 

내가 엄마에게 선사한 최초의 감정은 실망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이제서야 했다. 얼마 전 나는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엄마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산부인과 검진갔다가 성별을 알아왔더니 엄마는 흥분해서 나오다가 데리고 있던 내 첫째딸을 밀어 넘어뜨렸다. 이후 태어난 아기는 첫째와 똑같이 생기기만 했는데 엄마는 계속 동생이 훨씬 잘생겼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기 기저귀를 가는, 성별의 징표가 명백히 드러나는 최초의 순간 엄마의 얼굴은 약간 상기되었던 것 같다.

우리 엄마가 이토록 남아를 선호할 줄 몰랐다. 모를 수밖에. 우리 집엔 아들이 없다. 난 딸 둘인 집의 둘째다. 하지만 내가 뭐 잘못했나? 아빠가 Y염색체를 안 준 것뿐인데. 게다가 우리 아빠는 5남 2녀 중 막내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아빠의 형님들이 아들 자손을 많이 두어 유씨 집안의 명맥은 충분히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 내 성별에 대해 아쉬움 따위를 느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한데 엄마가 그랬던 모양이다. 내가 태어나던 해는 1980년대 초반이다. 아들딸 구별 말고 딱 둘만 낳아 잘 살자고 계몽했어야 할 만큼, 세상은 노골적으로 아들을 좋아했다. 우리 엄마도 이왕이면 아들 가진 엄마이자 손자 낳은 며느리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그건 약간의 신분상승 같은 의미였다.

그러나 내게는 고추가 없었다. 엄마에게 물어봤다. “실망 많이 했겠네?” 말줄임표 반 개 정도로 표현할 만한 짧은 침묵이 스쳐가고 대답이 돌아왔다. “네 할머니가 얼마나 현명하신 분이냐. 너 낳고 누워있으니 내 손을 꼭 잡으시면서 딸은 더 잘 키워야 한다고 하시더라.” “그럼 외할아버지는?” “아들 낳겠다고 애 또 낳을 거면 친정에 오지도 말라고 하시더라.” 나는 내 조부모님의 선진적 마인드에 감탄하기보다, 엄마가 얼마나 실망하고 미안해하고 있었으면 그런 얘기들을 해주셨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산부인과 신생아실 풍경. ㅣ출처:경향DB

요새도 그럴까? 적어도 내 주위에 직접적으로 아들 낳길 강요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런 얘기들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아들을 낳으라 해서 딸 둘을 낳고 또 임신했는데 딸 쌍둥이더라, 며느리가 아들을 가졌다고 알려오자 아이고 부처님 하면서 감사기도를 올리더라, 할머니가 손주 보러 놀러와서 고추 한번 보면 안되겠냐고 묻더라, 이런 식의 이야기들 말이다. 아니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이러시는가. 주먹도끼를 들고 멧돼지라도 잡아와야 일가족이 먹고살던 시절도 지났는데 아들만 낳아서 뭐에 쓰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변명한다. “얘, 그래도 네 신랑이 장손인데 아들 못 낳으면 엄마 닮아서 그렇다고 할 게 아니니.” 진심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신생아에게 쏟아내는 찬사로 미루어봐서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우리 엄마도 만약 며느리가 있었으면 아들 손주 바라는 시어머니였겠구나 싶다.

그렇다고 서운하다는 건 아니다. 전통적인 사고방식 속에서 어쨌거나 엄마는 피해자다. 그렇지 않은가. 왜 이 나라의 며느리들은 자식의 성별을 그토록 걱정해야 하는가. 왜 아들을 낳지 못하면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가. 왜 딸들은 부모에게 실망을 안겨주며 태어나야 하는가. 왜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 때문에 가장 축복받아야 할 순간에 눈물을 뿌려야 하는가. 사람들은 그렇게 쓸데없는 인습과 편견으로 스스로의 삶을 슬픔에 빠트린다. 그냥 살아도 충분히 행복하지는 않은 세상인데.

그래도 세상은 변하고 있다. 내가 할머니가 될 때쯤이면 손주의 고추를 확인하고 즐거워하는 이들은 많이 사라지리라 믿는다. 산부인과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딸을 선호하는 사람이 더 많더라는 기사도 봤다. 물론 완벽하게 달라지려면 여전히 만연한 남과 여의 차별이 해소되어야 할 것이지만 말이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동물학자 콘라트 로렌츠는 개를 기르더라도 이왕이면 암놈으로 기를 것을 권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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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숙 | 소설가 angryinch@naver.com

 

지난주에 상도역 부근에 있는 희망식당 ‘하루’에 갔다. 쌍용자동차에서 해고당한 분이 운영하고 자원봉사하는 분들이 요리나 서빙을 도왔다. 수익금은 파업기금으로 쓰인다고 했다. 친구가 그날 자원봉사를 한다고 해서 응원차 간 길이었다.

메뉴는 비빔밥. 반찬도 푸짐했다. 식사 5000원이 꽤 저렴하다 느꼈는데 술 두 병을 사갔더니 안주하라고 제육볶음과 부침개가 끝없이 나왔다. (술을 판매하지 않으나 한 명당 1병까지는 들고올 수 있다.) 내고 온 돈은 기부금이 아니라 안주 값이 되어버릴 정도였다. 친구는 두부샐러드를 만들었다. 두부가 썰린 모양이나 소스의 양을 트집 잡아가며 친구를 놀렸지만 사실 맛이 괜찮았다. 한쪽에는 파업을 지지하는 손님들의 글이 가득한 노트가 있었다. 그곳은 밥맛 좋고 저렴한 식당인 한편 파업현장이기도 했다.

내가 처음 파업현장에 가본 것은 대학 학보사에서 일할 때였다. 파업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나는 항상 움츠러들었다. 점잖게 넥타이 매고 출근하던 분들의 파격적인 변신이 낯설었고, 그들이 무수히 거듭되는 패배를 반복하다가 상황이 더 나빠질까봐 두려웠다. 노동자의 입장에 서보지 않아 한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파업에 대해서 내가 무언가 진심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은 내 자신이 노동자가 된 뒤부터였다. 한때 몸담았던 작은 회사에서 6개월에 네 명이 그만두는 것을 목도한 적이 있다. 그만둔 이유는 인턴기간이 턱없이 길어서, 늘어가는 겸업에 지쳐서, 구두로 약속했던 연봉보다 턱없이 낮은 돈을 주어서 등이었다. 공통점은 애초에 사장이 계약사항을 지키지 않은 것이었다. 사장은 회사가 어려우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이것도 많이 주는 거라고, 사장님들의 고정 멘트를 했다.

 

쌍용차 노숙 천막 철거 l 출처:경향DB

직원들은 처음에는 사장에게 항의했다. 돈을 주지 않으려는 자와 약속했던 돈을 받으려는 자의 신경전이 좁은 사무실 안에서 벌어졌다. 하지만 결국은 노동자 측이 협상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만두었다. 대기업이었다면 파업을 도모해볼 수도 있었을까. 5명이 내근하는 작은 회사에서 파업이란, 개그에 가까웠다. 사표를 내고 나가는 직원의 뒤통수가 안 보이자마자 사장은 다른 직원에게 취업사이트에 모집공고를 올리라고 지시했다. 한 번 모집할 때마다 열 명이 넘는 지원자가 들어왔고, 인력은 쉽게 대체되었다. 문제는 새로운 사람을 뽑아도 그만두기를 반복한다는 점이었다. 그런 회사가 탄탄하게 유지될 리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대체될 수 없는 존재이기를 바란다. 직장을 그만둔 사람들은 자신 없이도 회사가 잘 돌아간다는 사실에 얼마간은 서운함을 느끼고는 한다. 그건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존재감을 갖고 싶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가 노동자를 대체할 수 없는 인력으로 생각하고 소중히 하면, 노동자는 더욱 소속감을 갖고 일할 수 있다. 그런 기업이 장기적인 경쟁력을 갖는 건 당연한 일이다.

희망식당을 찾기 일주일 전쯤, 쌍용 희생자 22명의 분향소가 강제 철거되는 일이 있었다. 현장을 보지 못한 나는 검색을 해보려고 했지만 쌍용 렉서스에 대한 기사만 떴다. 노동자들이 죽어도, 애도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데도 회사는 건재하다는 건가. 대체될 수 없는 그들 한 명 한 명의 목숨이 아까울 뿐이었다.

4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MBC 파업도 마찬가지다. 공영방송사의 유례없이 긴 파업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멤버들과 프리랜서 아나운서, 외주 업체를 고용해가며 애써 괜찮은 척을 하고 있다. 파업을 하고 있는 수십 명의 언론 노동자들에게 해고·대기발령 등 중징계도 내렸다. 하지만 누군가를 그 자리에 채워 넣는다고 해도, 노동자를 언제든 대체가능한 부품으로 보는 시선을 가진 회사라면 한계가 불을 보듯 뻔하다.

파업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는 행동이기를 넘어서 노동자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행위이기도 하다. 같은 노동자로서 지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인 내 친구는 희망식당에서 서빙을 하고, 파업 현장에 들러 1~2시간 그저 서 있기라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노동자인 나는 희망식당을 나오며 응원을 보내는 눈빛을 쏘며 최대한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나온 것이다. 물론 밥이 정말 맛있기도 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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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교 | 한예종 영상원생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었다. 한 달 동안 끔찍한 일들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사태와 연이어 벌어진 중앙위원회에서의 폭력 사태, 한 당원의 분신, 검찰의 당원명부 압수수색과 이번 사태들과는 아무런 연계가 없는 몇몇 사회주의 단체들에게 가해진 공안 탄압, 그리고 덕수궁 앞에 차려진 쌍용차 22명의 희생자들의 분향소가 폭력적으로 철거된 일까지. ‘지옥’이란 게 달리 특별한 고통이 있어서 지옥인 게 아니라면 단체로 ‘멘붕’에 빠진 오늘날의 진보세력이야말로 지옥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사태를 초래한 데에 일차적 책임이 있는 구당권파는 사태의 본질을 ‘마녀사냥’이나 ‘정치공작’으로 치부하면서 맞불을 놓고 버틸 뿐, 자신들이 초래한 파국적 사태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려 하지 않는다. 진실공방으로 논점을 흐리며 일정한 정치적 명분을 확보한 뒤 시간을 벌려는 조야한 출구전략을 갖고 있을 뿐이다.

 

통진당 중앙위 결과발표 ㅣ 출처:경향DB

한편 반대편에선 “우린 경기동부가 아니”라며 이 사태가 어떤 악마적 행위들에 의해 벌어진 것이라고 힐난하는 데 열심이지만, 그것은 허울 좋은 알리바이에 불과하다. 그들은 그저 이 끔찍한 시간이 어서 지나가기만 바라며 변변찮은 제스처를 보일 뿐이다. 이를테면 애국가를 부르겠다든지, 미군철수 요구를 재검토하겠다든지 말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애초에 이 사태를 불러일으킨 원인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오히려 이 사태를 활용해 노선의 우경화를 강제하는 공안당국의 입맛을 채워줄 뿐이다. “국회에서 왜 애국가를 꼭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다”던 유시민이 정반대편에 서서 ‘빨갱이 사냥’에 나선 것은 오늘날 ‘진보’가 얼마나 모순적이며 우스꽝스러운 파국에 처했는지 잘 보여준다.

소위 진보정치 세력이 집단적으로 멍 때리고 있는 동안, 덕수궁 대한문 앞에 차려져 있던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분향소는 이른 아침 경찰에 의해 폭력적으로 철거되었다. 영정이나 모금함까지 가릴 것 없이 죄다 쓰레기차에 실려 사라졌다. “그것은 쓰레기가 아니다!”라고 절규했지만 돌아온 것은 폭력적 연행뿐이었다.

우리가 진보의 위기를 돌파하고 ‘진보’의 새로운 이름과 자리를 찾으려면 이 사태를 오늘날 진보세력 전반이 처한 오류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 통합진보당은 비례대표 부정경선 말고도 야권단일화 경선 여론조작, 성폭력 은폐 의혹을 받고 있는 정진후의 비례대표 공천, 성추행 전력 후보에 대한 부실 검증, 현직 지방의원의 사퇴 후 총선 출마 등 진보를 자처하는 정당으로서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치부를 드러냈다.

이것은 과거 민주노동당이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보다는 의회에 대한 물신적인 태도를 강화하면서 점점 극심해진 경향이다. 국회의원 몇 자리 생긴 이후 인력과 재정의 배치가 의정지원에 편중되었고, 당이 품을 정치적 상상력을 키우고 사회운동을 활성화하는 데 무게중심을 두기보다는 스타정치인들의 의정활동에 주력하면서 그들이 전면에 나서는 경향도 두드러졌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국회의원 당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정파 간 경쟁도 격화되었다. 활동의 초점이 대안 이념이나 운동이 아니라 당권 장악과 공직 진출에 맞춰지게 된 것이다.

총선과 대선이 몰린 시기 선거공학에 따라 무원칙한 합종연횡과 권력분점을 시도한 산물이 바로 오늘의 통합진보당이다. 이런 한계 속에서 정파들 간의 지분 안배와 당직·공직 진출은 처음부터 첨예한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통합 이후 대의기구 지분 분할과 비례대표 선출을 둘러싸고 지난한 논쟁과 치열한 경쟁이 발생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결국 당권파로 새로이 등극한 심상정을 위시로 한 세력이 자유주의 세력과 통합하고 민주통합당과 야권연대를 추진한 통합진보당의 노선을 변경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 사이 진보 고유의 대안적이며 급진적인 가능성들은 점차 소멸되어 갈 공산이 크다.

지난 한 달 우리가 목격해온 것이 ‘지옥’이라면, 우리는 이 지옥에서의 악전고투를 거듭할 게 아니라, 이 모든 것을 끝내고 다시 신발끈 동여맬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그 자리가 소위 진보세력이 허우적거리던 그 순간에도 묵묵히 존재를 위한 저항을 이어온 쌍용차 해고노동자,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비롯한 인간답게 살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자리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통합진보당은 민주당 옆자리 어디쯤, 정권교체 후 꿰찰 장관 자리 하나쯤이 자신들이 갈 길이라고 횡설수설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는 앞선 세대의 과오를 반복하는 그런 미래는 거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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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섭 | 성공회대 대학원 박사과정 curse13@nate.com

 

통합진보당 사태가 검찰수사를 기점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검찰은 입장발표를 통해 ‘야권 단일화 관련 여론조작 의혹’ ‘핵심 인사들의 각종 금품 관련 의혹’ ‘중앙위원회 폭력 사태’ ‘야권 단일화 관련 여론조작 의혹’ 등을 수사의 대상으로 삼겠다고 공언했다. 이로써 통합진보당 사태의 ‘정치적 해결’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되었다.

사태는 어쩌면 통합진보당의 탄생에서부터 예견돼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 한번 커다란 충돌과 분리를 겪었던 두 세력과, 이 두 세력에 표를 주는 것을 “사표”라고 주장했던 이를 중심으로 하는 세력이 선거를 위해서 ‘급만남’을 가진 정당이니 말이다. 놀라운 지점은 그 파열이 벌어지는 시점과 양상이지, 파열 자체는 아니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해도 폭력 사태와 그 이후에 벌어진 사퇴거부 러시를 보고 있자면, 밀려드는 황당함과 허망함까지를 막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이 사태는 단지 통합진보당의 미래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어쩌면 지난 4·11총선에서부터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한국사회에서의 ‘민주화’라는 하나의 역사가 닫히는 순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1987년 이후로 끊임없이 자행되어온 ‘민주화’의 ‘사유화’가 있다. 가령 ‘민주주의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민주화세력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많은 이들은 은연중에 그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여겨왔다.

 

임정혁 대검찰청 공안부장 통합진보당 압수수색 브리핑 ㅣ 출처:경향DB

 이들은 자신들의 영웅적인 행적을 끊임없이 자랑하고 과시했다. 논공행상을 거행하고, 다른 이들의 입을 막았다. 덕분에 이들은 자신이 사회의 어엿한 주류이자 기성세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스로와 민주주의를 동일시하는 우를 범한다. 그래서 이들을 악독한 사장님으로, 체벌하는 선생님으로, 부패한 정치인으로, 권위주의적인 어른으로, 가부장적인 남성으로 마주하게 되는 이들의 수많은 민주주의는 이들의 세계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진보정치라고 사정이 딱히 다르지는 않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것은 이번 사태다. 우리 앞에서는 이제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정당에 부재하는 ‘민주주의’와 ‘정치’라는 역설만이 던져져 있다. 경기동부를 비롯한 구당권파들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이 그 어떤 결과를 무릅쓰고서라도 존재해야만 한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것을 위해 어떤 설득과 소통의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대신 조직의 힘으로 장악했다.

많은 시간 동안 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극우반공세력과 국가보안법의 탄압을 자신들의 정당성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그것은 진보정당에 투표한 유권자들에게 들려줄 적합한 대답이 결코 아니다. 이들은 진보정치와, 그에 대한 대중의 지지와, 진보운동진영이 쌓아올린 여러 가지 성취와 미덕들을, 오로지 자신들의 조직을 지키기 위해 한순간에 말아먹었다. 적어도 정당정치라는 게임에 참가하고자 했다면, 그에 걸맞은 최소한의 상식정도는 판돈으로 지참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정치의 룰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의 근간이 되는 대중의 목소리도 무시했다. 여기에는 이미 정치가 없다. 다만 추하게 말라붙은 이념과 괴물이 되어버린 조직이 있을 뿐이다. 하나의 역사적 서사로서의 ‘민주화’는 그것이 표방하는 민주주의가 더 이상 밖을 향하지 않을 때 멈춘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것은 어떤 한계지점이다.

민주화로부터 추동되었던 힘은 몇몇 전유자들에 의해 ‘그들만의 역사’로 쪼그라들었다. 대중의 새로운 열망들을 담을 그릇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고, 박정희와 노무현, 안철수와 박근혜 같은 어긋난 대립들이 빈자리를 점유하고 있다.

새로운 진보에게 필요한 것은 손에 들고 있는 한줌을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서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진보는 과감하게 바깥을 향해야 하고, 더 많은 민주주의를 향해야 한다. 잔치는 끝났다. 더 크고 어려운 싸움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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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교 | 한예종 영상원생

언젠가 나는 노동절의 의미를 알리는 활동을 할 때, 애써 그날을 ‘메이데이’라고 표기하곤 했다. 사람들이 ‘노동’이라는 단어에 질색한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메이데이보단 노동절이란 이름이 그날의 역사적·정치적·사회적 의미를 보다 쉽게 이해하게끔 하지만, 우리의 삶을 덧씌우는 이데올로기라는 장막 때문에 제대로 전달되기 쉽지 않다. ‘노동’을 나와는 무관하고, 끔찍이 고단하며 천박한 무엇쯤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크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그날이 북한의 명절 아니냐고 묻기도 한다. ‘노동’이란 것이 얼마나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언어의 장과 동떨어진 채 존재하는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인간의 ‘노동’을 통해 가치를 창출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의 실질적 중대함을 간과한 채 사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하다. 아무리 고귀한 지적 창달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일종의 지적 ‘노동’에 종사하며 살아간다. 따라서 우리는 이 ‘노동’이란 문제에 대해 보다 면밀히 살펴보고 고민할 필요가 있다.

사실 우리는 이미 무수히 많은 노동을 해왔다. 가사노동, 아르바이트, 수습, 인턴 등 다양한 자리에서 ‘노동(일)’을 하며, 그것의 의미와 가치, 존재 조건을 피부로 느껴왔다. 각자 다른 체험을 하면서도 노동의 보편적 특질에 대해 직관적으로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것은 이미 ‘고용주’와 임금노동의 관계를 체결한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소외의 심연에 빠지는 시스템 그 자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속성을 들여다볼 수 있다.

 

한국노총 조합원들이 ‘5·1절 전국노동자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l 출처:경향DB

그런데 우리는 언젠가부터 노동이 ‘심미적인 것’이 되는 풍경을 목격하고 있다. 어느 강연에서 한 사회학자가 말한 바대로 이제 어느 곳에서도 ‘노동자’는 찾기 힘들다. 오직 예술가, 아티스트라는 이름으로 심미화된 개별적 주체들이 있을 뿐이다. 제빵공이 있는 게 아니라 파티셰가 있고, 레스토랑 주방에서 일하는 요리노동자가 있는 게 아니라 셰프가, 철가방이 있는 게 아니라 롯데리아 라이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비정규직이 된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예술가들처럼 월급이 아닌 ‘연봉’을 받고, 이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이제 우리는 노동이 사라지고 예술가들의 유희로 가치를 생산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것인가?

오늘날 노동절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노동’마저 심미적인 것이 돼 애써 그 이면의 모순과 불협화음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조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어쩌면 계약직이나 알바생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이런 ‘조화’야말로 우리의 삶의 문제를 감추고 억누르는 가장 위선적인 형태가 아닐 수 없다. 삶-노동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공분(共憤)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1995년 즈음 나는 벤츠를 타고 다니는 목사와 BMW를 타는 비구니가 부자들의 시주를 받는, 그리고 어딘가에 감춰진 낡은 건물엔 넝마주이들이 사는 이상한 부조화의 동네에 살고 있었다. 학교가 파하면 나는 운전사가 마중 오는 친구들과 헤어지고 한참을 걸어 집으로 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봄날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는 풍경을 목격했다. 호화빌라 건설현장의 20m가 넘는 틀비계 꼭대기에 한 일용직 노동자가 올라가 울부짖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넉 달이나 밀린 자신의 임금을 당장 주지 않으면 뛰어내리겠다고 했다. 동네 사람들, 출동한 경찰, 현장소장, 만류하는 동료들, 그리고 13살의 꼬마였던 내가 저 아래에서 벼랑 끝의 남자를 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어서 그가 내려오기를, 그리고 이 문제가 부디 이 동네의 부정적 모습을 드러내는 사건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가 땅에 내려온다고 해서 그런 문제들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126년 전 시카고 헤이마켓 광장에서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을 외치며 저항할 때에도, 쌍용차와 재능교육과 전북고속의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싸우고 있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는 ‘계급투쟁’의 연속이다. 어쩌면 배달 아르바이트생의 이름을 ‘라이더’로 바꿈으로써 저임금 노동의 고된 시간을 감당할 자신감을 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만인의 삶을 구획하는 노동과 착취의 문제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노동절이 벼랑 끝에 섰던 무수한 노동자들의 저항으로 만들어진 날임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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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섭 | 성공회대 대학원 박사과정

세 사람이 법 앞에 서있다. 첫 번째 사람은 굴지의 재벌그룹 회장이다. 그는 자신에게 뒤늦게 1조원가량의 유산반환청구소송을 건 형과 누나에게 맞서고 있다. 그는 이 소송에 대해 “대법원 아니라 헌법재판소까지라도 갈 것”이라며 단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그가 말하는 법은 그의 손안에 있는 법이다. 그는 사법계와 법조계에 수많은 ‘장학생’들을 심어두고, 떡값이나 용돈을 주며 키웠다. 그 결과 엄청난 규모의 재산은닉과 탈세, 경영권의 불법세습 같은 죄목들을 두고 대한민국과 벌인 재판에서 승소를 거두었다. 비록 잠깐의 옥살이를 하는 고초를 겪었으나 곧바로 사면을 받았고, 다시 회장님이 되어 당당하게 개선했다. 그렇게 한국사회의 끝판 왕으로 거듭난 그는 고작 그의 가족사와 상속권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헌법재판소’를 들먹일 수 있었다. 물론 헌법재판소가 그의 고충을 처리해주기는 어렵겠지만, 그의 생각에 대한민국의 법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얼마든지 뒤흔들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기만 한다면, 법원인지, 검찰인지, 헌법재판소인지는 알 바가 아닌 것이다.

 

헌법재판소 ㅣ 출처:경향DB

두 번째 사람은 서울시의 교육감이다. 법학자인 그는 교육감에 당선된 후 자신과의 단일화를 위해 사퇴한 다른 후보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과 그 후보의 선거운동원들끼리 선거비용을 보전해 주겠다는 이면합의를 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고심하던 그는 선거가 끝나고 9개월이 지난 어느 날 제3자를 통해 그 후보에게 2억원이라는 큰돈을 건넸다. 그리고 그는 ‘사후 매수죄’라는 죄명으로 구속되어 첫 재판에서는 벌금 3000만원을, 두 번째 재판에서는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어려운 사람을 돕는 선의의 발로일 뿐 그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가 이토록 자신 있고 강경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법학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수많은 판례들, 법조문들, 사법계가 돌아가는 방식들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그 모든 것을 고려하며 조심스럽게 선의를 베풀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아직도 법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그토록 잘 아는 법이 자신의 예상과는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그를 어느 정도 당혹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또 그의 설명은 2억원이라는 돈이 그렇게 쉽게 오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통념’을 가진 이들에게는 어딘가 부족하다. 그가 2억원을 주고 구했다고 소리 높여 주장하는 또 다른 사람은 그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받고 감옥 안에 있다.

세 번째 사람은 어느 대학생이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선거사무소에서 일하고 130만원의 임금을 받은 그는, 선거사무소의 실수로 선거운동원 명단에 누락되었다.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은 그는 불법선거자금을 받은 혐의로 대법원에서 벌금 100만원에 추징금 130만원을 확정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다른 이들의 실수로 발생한 일이 평생의 낙인이 된 것과, 후보자와 그 측근들이 고액을 주고 변호사를 선임해 자신들의 면피에 급급한 것에 분노한다. 그는 고개를 떨구며 “선거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이 합법적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결국 평생 전과자로 낙인찍혔다”며 “현행 법률을 모르고 일한 것이 너무나 후회가 된다. 앞으로 나와 같은 전과자가 다시는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누군가의 실수 때문에 빚어진 일이지만 법은 칼날 같았고, 이 사람은 2016년까지 투표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누군가는 어마어마한 재력으로 법을 포위하고 스스로를 치외법권으로 만들었다. 누군가는 법에 맞설 수 있는 지식과 자원을 갖고 소리 높여 자신의 선의와 결백함을 주장한다. 그리고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에 가까울 누군가는, 감히 법을 알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실수를 방기한 죄로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는다. “악법도 법”이라며 공손히 받아 마시기에는 내 손에 들린 이 잔이 너무나도 부조리하여, 나는 이 잔을 차라리 내려놓아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소박한 의문을 갖는다. 라일락 이파리라도 씹은 것 마냥 입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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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인 에세이스트

봄이 오면 꼭 아기와 동물원에 놀러가야지 겨우내 벼르고 있었다. 4월이 되었고, 드디어 실행할 때가 온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호랑이란 어떤 의미일 것인가! 아기가 신기해할 것을 생각하니 내가 다 설레었다. 포근한 휴일 아침, 아기를 데리고 동물원에 갔다. 그런데 아기의 반응은 생각보다 폭발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딴청을 부렸다. 사자를 앞에 두고 나무 위 까치를 가리켰고, 매점에서 키우는 고양이만 보겠다는 걸 잡아다 낙타 앞에 데려다놓았더니 소리치며 반항했다.

사실 그럴 만했다. 동물원의 동물들은 하나같이 무기력했다. 사자나 호랑이는 드러누워 잠만 잤다. 코끼리는 넋을 놓고 서 있었다. 실망하며 유인원관에 갔더니 애잔한 마음까지 일었다. 그럴 수밖에. 동물원이란 무엇인가. 동물들을 가둬놓고 전시하는 곳이다. 그들이 활력에 넘칠 리가 없다. 다른 종으로부터 자유를 박탈당한, 좌절감을 안고 사는 존재들.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존 버거는 “왜 동물을 구경하는가”라는 글에서 이 상황을 설명했다. “제 아무리 당신이 동물들을 자세히 본다 하더라도 당신은 철저히 무시되어 주변으로 밀려난 어떤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며, 당신이 짜낼 수 있는 모든 집중력을 있는 대로 다 짜낸다 하더라도 그것을 다시 중심에 자리 잡도록 만들기에는 결코 충분치 못할 것이다”라고.

 

상원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야생방사 적응훈련에 들어가는 돌고래 ‘제돌이’에게 축하인사 I 출처:경향DB

뭐든 배워나가기 시작하는 아기에게 동물원도 하나의 학습 장소다. 한데 이것이 과연 좋은 경험일지 의문이 들었다. 지금 우리 아기는 생명과 무생물을 동일시하는 의식수준을 갖고 있다. 이를테면 헤어질 때 손을 흔드는데, 그 대상이 할머니이기도 하지만 어떨 땐 문지방한테도 인사를 하는 식이다. 문지방과 할머니가 다르다는 사실, 즉 생명에 대한 개념이야 자연스레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 생명을 대하는 태도는 아기가 앞으로 보고 듣는 것에 따라 다르게 형성될 터였다. ‘주변으로 밀려난 어떤 것’들을 전시하는 동물원이 올바른 생명관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까? 오히려 동물을 불행하게 만드는 동물원을 관람금지해야 하는 게 아닐까?


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오버한다 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동물의 권리를 사람이 주장하는 데 대해서 이 사회는 좀 냉정한 측면이 있다. 박원순 시장이 돌고래 제돌이를 제주도 앞바다에 풀어준다고 했을 때도 그랬다. 그 소식을 듣고 검색을 해보니, 비아냥부터 논리적인 반박까지 반대 의견이 많았다. 하긴 동물애호가라 할 수 있는 나도 바다로 복귀시키는데 드는 훈련비가 8억원이란 소리를 듣고 ‘뭘 그렇게까지…’하는 생각을 안한 게 아니다.

하지만 박 시장은 어느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제돌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문제”이고, “품격 있는 사회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이다. 그 말에 나는 퍽 공감했다. 누군가가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그보다 약한 생명 모두를 대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 대상은 물론 ‘사회적 약자’로 불리는 사람들을 포함해서다. 예전에 독일의 하겐베크 동물원에서는 동물 산업이 침체되자 스리랑카인 같이 낯선 이국인들을 잡아다가 ‘인간 전시’를 했다고 한다. 자신보다 약한 사람의 권리의 크기는 자신과 다르다고 생각한 것이다. 1870년대 즈음의 일이라고 하는데, 그 시대의 후진성이 놀랍지 않은가.

반대로 돌고래에게 빼앗겼던 행복권을 되돌려주기 위해 8억원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사회라면, 나를 위해서도 언젠가 그 이상을 해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겠다. 그게 박원순 시장이 말한 품격 있는 사회가 아닐까 싶고, 그 결정에 지지를 보낸다. 부디 ‘제돌이 귀향 프로젝트’가 성공하여 좋은 사례로 남았으면 한다. 더불어 동물원에 남아있는 동물들도 보다 행복해졌으면 좋겠는데, 그 방법도 강구해줄 것을 당부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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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숙 | 소설가

매일 아침, 지하철 2호선 사당에서 강남을 거쳐 삼성역까지 ‘마의 구간’에 탑승한다. 지하철 승객의 대부분은 회사원이다. 그중 많은 이들은 서울의 번화가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위안 삼다가도 내일 또 이 지하철을 타야 한다는 사실에 좌절할 것이다.

환승역 사당에 내리면, 일단 뛴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계단은 금세 피난행렬처럼 변하기 때문이다. 2호선을 향해 코너링을 할 때 홀로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앳된 여자가 보인다. 그녀가 들고 있는 피켓의 문구는 ‘구럼비를 살려주세요’. 구럼비에 대한 안타까움이 잠시 떠오르지만 속도를 늦출 수는 없다.


최선을 다해 뛰어도 2호선에는 이미 줄이 길다. 두 대는 보내야 탈 수 있다. 스크린도어가 닫히면 지하철을 탄 사람들의 안도와 타지 못한 사람들의 초조가 교차한다. 지하철에 몸을 욱여넣은 마지막 승객은 지하철 유리문에 손과 얼굴이 눌린 채 실려서 간다. 얼핏 보면 팬터마임을 하는 희극배우 같기도 하다.

 

폭우로 사당역 출입이 통제돼 지하철에서 내린 승객들이 역사 안에서 대기하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다시 지하철이 들어오면 이번에는 기필코 타겠다는 결의에 찬 사람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지하철로 돌진한다. 사람들은 똑바로 서지 못하고 팔과 허리가 꺾인 채 열차가 출발한다. 이때 자세를 잘못 잡으면 다음 역까지 곤란한 상황이 이어진다. 실수로 얼굴을 마주대고 선, 키까지 비슷한 두 남자가 얼굴을 떨어뜨리려고 안간힘을 쓴다. 지하철이 흔들릴 때마다 뽀뽀라도 할 것 같은 거리다. 뒤에 선 사람이 내게 몸을 붙이는 것 같아 불쾌해 하다가도, 잘 생각해보면 내 가슴팍은 앞에 선 사람의 등짝을 누르고 있다. 옆에 선 여자의 사각 핸드백이 내 옆구리를 찔러대지만, 한편으로는 내 발도 옆 사람의 발을 밟고 있다. 사람들은 서로 더운 숨결과 함께 무례와 불쾌감도 주고받는다.

요즘 민간인 불법사찰에 이어서 연예인 사찰까지 의혹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지하철이야말로 남의 개인정보 사찰하기에 최적의 장소가 아닌가 싶다. 아침의 2호선을 함께 타면 원치 않아도 서로의 사생활을 엿보게 된다. 좁은 공간에서 손에 들 수 있는 것은 휴대전화 정도. 워낙 가까이 있다보니 휴대전화의 비밀번호는 물론이고 친구, 애인과 나누는 문자 내용까지 무심코 보게 된다. 앞에 선 여자의 눈썹이 문신이라는 것과 옆에 선 남자의 왼쪽 볼에 점이 몇 개인지도 알 수 있다.

사람들 속에 파묻힌 유난히 왜소한 체구의 여자가 숨을 몰아쉬더니 실신한다. 주변 승객들의 도움으로 겨우 자리를 잡고 앉지만 연신 식은땀을 흘린다. 4월에는 사람이 더 많다. 소풍가는 학생들과 꽃놀이 가시는 어르신이 타기도 한다. 이번엔 등산 가방을 멘 어르신 몇 명이 지하철을 타러 왔다가 미처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라신 모양이다. 네 명의 어르신이 이산가족처럼 흩어져 목소리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한다.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른다. 하필 바쁜 시간에…. 누군가 자리를 양보하자 어르신이 곤란해 하며 말한다. 노인네들이 아침에 지하철을 타서 미안하다고.

지하철에서 내릴 즈음에는 다들 질렸다는 듯이, 진짜 지옥이라도 경험했다는 듯이 고개를 흔든다. 누군가 거친 욕설을 내뱉는다. 역에 설치된 대형 광고판에는 실시간 검색어 순위가 나오고 있다. 얼핏 본 검색어 1위는 ‘수원 토막살인 녹취록’. 한때 내가 살았던 동네에 일어난 사건에 몸이 떨린다. 하지만 일단 모든 추모와 분노는 저녁으로 미룬다. 그리고 지각하지 않기 위해서 달린다. 이 모든 일이 출근길 30분 동안에 일어난다. 회사에 도착했을 때의 나의 피로는, 단지 육체적인 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의 날선 목소리와 불쾌, 깊이 생각해보지 못하고 지나친 뉴스들, 앞으로 이 생활이 지속되리라는 걱정이 겹겹이 쌓여 있다.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4·11 국회의원 선거일이라 지하철을 타지 않는다. 내 글이 신문에 나올 즈음에는 총선의 결과가 나와 있을 것이다. 단 하루 지옥철을 안 탈 수 있다는 것, 주중에 하루의 휴일을 준 것. 그것이 국회의원들로 인해 생긴 처음이자 마지막 기쁜 일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구럼비와 어르신의 사과와 실신한 회사원. 그 문제 중 한 가지만큼은 변화하기를 바란다. 이제, 투표를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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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교 | 한예종 영상원생 daresay@naver.com

스물둘. 이렇게 어떤 수식어도 덧붙이지 않고 멀끔하게 숫자만 말하면 더 냉정해질 수 있을까?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논거로 이루어진 침착한 칼럼을 쓸 수 있을까? 망설여진다.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게. 빈센트 반 고흐가 스스로 목숨을 끊던 시대만 해도 자살이란 어디까지나 그들 스스로의 문제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의 자살에 대해서는 언제나 “타살이나 다름없다!”라는 격분과 통한이 뒤따른다.

3년 전 쌍용자동차가 자행한 2646명의 정리해고 이후 22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세상을 떠났다. 하나같이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과 의문사였다. 정리해고가 그들에게 ‘살인’이나 다름없는 잔인한 조치였음을 방증하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없다. 무자비하게 노동자들을 진압한 경찰, 그것을 지휘한 정권, 정리해고를 종용한 자본 모두 대답이 없다. 외려 경찰은 당시의 끔찍한 폭력으로 얼룩진 진압작전이 ‘우수 진압 사례’였다고 자화자찬하기도 했다. 공권력이 어찌 이리도 잔인할 수 있는지 믿기지 않는다.


지난 3월31일.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아파트에서 투신해 세상을 떠났다. 이 소식이 알려진 것은 사흘 후다. 1월20일, 2월13일, 3월31일. 올해 들어서만 세 번째다. 이렇게 죽은 이들의 숫자를 세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저 절규에도 내내 묵묵부답인 자본과 정부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죽은 이들의 숫자에 비례해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의 총량이 상승할까? 확신이 들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점점 더 망설이고 뒷걸음질치며 더 큰 비관의 나락으로 빠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저 죽음들이 정권교체 따위가 이루어지면 완전히 해결될 수 있는 부차적인 사안이라고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보다 무감각해져서 죽은 이들을 헤아리며 당연한 풍경처럼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웃음과 망각의 책>에서 밀란 쿤데라는 “권력에 대한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형식논리학을 빌려 이 말의 대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권력에 복종하는 길밖에 없다고.

그러나 우리는 이 싸움을 지속할 자신감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그것을 용기라고 해도 좋다. 누군가는 그래서 “쫄지마 씨바”라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쌍용차 옥쇄파업 같은 실재적 폭력의 시간을 망각하지 않으며 ‘쫄지 않는다’는 것은 지독하게도 어렵고 괴로운 일이다. 그것을 트라우마로 남기지 않으면서도 유쾌하게 저항할 수 있도록 또렷한 정신을 지킨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총선이 코앞이다. 모두들 복지와 민생을 말하며 반성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대체 누굴 믿어야 할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민생파탄과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책임을 묻는 선거가 되어야겠지만 과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어떤 대안을 얻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지지율 2, 3위를 달리는 두 야당의 전반적인 정책들이 새누리당이 겉으로 표방하는 공약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여서다. 이런 상황에서 이전투구만 격화되고, 심지어 선거가 블랙홀처럼 느껴질 정도다.

 

현대자동차 하청 노동자에 대한 대법 판결에 환호하는 전국금속노동조합 노조원들 I 출처:경향DB

선거가 정말 민주주의의 장이라면 무엇보다 정리해고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전례 없이 이어지는 죽음의 행렬을 어떻게 멈출 수 있을지 논쟁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선거 모습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4년에 단 하루짜리 민주주의에 불과한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함께 행동하는 것만이 연이은 죽음의 행렬을 중단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노동자들과 청년들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대안일 게다. 그것은 정치인이나 당사자들만의 몫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 각자가 쌍용차 해고노동자, 전국 곳곳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주위의 노동조건을 돌아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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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훈 | 연세대 대학원생


넉 달 전 벌어졌던 고려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은 슬슬 정리되어 가는 것 같다. 이미 출교는 결정되었고, 법정공방만 남았다. 
법률적인 관계보다 흥미로운 것은 사건의 공판에서 등장한 어느 노부부의 발언이었다. “억울하다… 어디 세상에 가스나가 술 먹고…. 남자 앞길을 망치는… 금쪽같은….” 이 표현을 보면서 나는 좀 딴 걸 더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끔찍한 아들 사랑이 만들어낸 흥망성쇠에 대한 노스탤지어였다. 조선시대 이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만들어지고 나서도 공적 공간의 책임은 대체로 남자들의 몫이었다. ‘창창한 앞날’을 보장받은 아들이 있는 집안의 가족들은 그 덕택에 잘살았다. 
집안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남자 앞길’을 망치면 안 된다는 평범한 상식이 통했다. 더불어 엄마는 ‘금쪽같은 아들’을 입신양명시켜야만 했다. 아들을 과거에 급제시키기 위해서 기도를 올리고 맹모삼천지교를 실천한 신사임당 같은 과거의 ‘매니저 엄마’와, 학원과 교육 컨설팅 연구소를 다니면서 아이의 입시·취업·결혼까지 다 관리하는 현대의 ‘매니저 엄마’는 큰 차이가 없다. 아버지가 자본을 대고, 엄마가 온갖 정보력을 동원하고 관리해서 입신양명시키는 게 가족을 위한 ‘필승 전략’이다. “억울하다!” 금쪽같은 아들을 키워내 봤던 ‘노부부’의 절절한 외침이 들린다.

하지만 기성세대의 상식에 콧방귀도 안 뀌는 분위기가 연출되는 것은 바로 이 모델이 붕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교육 전략은 ‘아들 입신양명 프로젝트’의 초기비용을 엄청 높여버렸다. 아이의 ‘자기주도학습’을 위해서 영유아 시기부터 사설 교육 컨설팅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이미 오래전부터 딸 가진 엄마들도 아들 가진 엄마와 똑같이 ‘입신양명 리그’에서 뛴다. 아들 하나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입신양명 리그’의 경쟁률이 두 배로 뛰었다. ‘하우스푸어’들이 속출하면서 현금 자산이 묶이고 아이들의 ‘산출’이 시작되는 취업시장의 진입까지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교육 전략이 여전히 흥행하는 것은 애들이 계속 빌빌대면 자신들의 노후를 전혀 보장받을 수 없어 참담할 것 같기 때문이다. 빚을 내서라도 교육에 투자하는 방법으로 ‘불안’에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지금 젊은 남자들을 보라. ‘망칠 앞길’이 없다. 평생직장에 대한 기대는 현명한 직장인일수록 일찍 포기한다. ‘똑똑한 이직’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미래 보장은 보장성 종신보험이 대신한다. 
직장의 ‘착취’를 오매불망하며 구직하는 남자들은 엄마에게 밥을 얻어먹으며 버티거나, 시급 4320원짜리 알바로 하루하루를 비루하게 보내야 한다. ‘남자구실’은 뿌리부터 뽑혀버렸다. 권력과 돈, 둘 다 없으니 할 수 없는 노릇. ‘현시창’(현실은 시궁창)이다. 연애도 못하는 이들이 속출한다. 이러다보니 연애 못하는 남자들에 대한 대답이 유희열의 ‘ASKY’(안생겨요) 아닌가.

이러한 상황을 간파한 ‘팔불출’ 기혼 남자들은 “남편이 달라졌어요!”라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사내구실’ 말고 ‘공감’으로 여자들과 마주쳐야 한다는 걸 깨달은 젊은 남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고를 치거나 죄를 짓고 ‘남자니까’ 하고 얼렁뚱땅 때우는 게 통할 리 없다. 
지금까지 의대생으로 키워놓은 엄마는 피가 마르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노스탤지어에 빠진 어르신들은 ‘앞길 창창한’ 젊은 아들들에 대한 구태의연한 기대로 ‘가스나’ 탓을 해보지만 소통이 될 리 없다. 아직도 알량하게 오직 ‘사내구실’과 ‘언젠가 올 그날’의 로망을 꿈꾸며 엄마와 어르신들의 장단에 맞춰 춤추는 젊은 사내들이 여전히 있지만, 그것은 현실이 될 수 없는 꼭두각시춤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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