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그라’는 지난 한 주간 트위터상에서 가장 뜨거운 단어가 됐다.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키워드가 6주째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트위터코리아가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와 함께 21일부터 27일까지 트위터상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들 중 주목할 만한 단어를 분석해 29일 발표했다.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는 ‘비아그라’였다. 청와대가 세금으로 비아그라와 미용 주사제 등을 대량 구입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은 “수행원 고산병 때문에 비아그라를 구입했다”고 해명했지만, 청와대가 고산병 치료제를 별도로 구입한 사실도 드러나면서 논란이 지속됐다.

전국에서 190만명이 모인 26일 ‘촛불집회’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트위터에서는 광화문광장에 모인 150만 인파의 촛불 파도타기,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의미로 시작된 1분 소등 퍼포먼스, 가수 양희은과 150만명의 ‘아침이슬’ 합창 장면 등이 주로 공유됐다. 촛불집회가 처음 시작된 9월27일부터 이달 26일까지 ‘최순실 게이트’ 관련 키워드는 약 1600만건에 달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2일 국무회의에 참석해 국무위원 전원 사퇴를 주장하면서 ‘국무회의’ 역시 핫 키워드가 됐다. 박 시장은 트위터를 통해 “무력감과 분노감으로 국무회의장을 박차고 나왔습니다”라며 “대통령의 즉각 하야를 주장하는 국민의 뜻을 분명 전했습니다”라고 전했다.

검찰이 삼성 미래전략실과 국민연금관리공단을 압수수색하면서 ‘국민연금’에 대한 언급량도 급증했다. 검찰은 국민연금이 손실을 감수하면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하는 대가로 정권 및 최순실씨가 이익을 취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후쿠시마’가 최순실 게이트와 무관한 키워드로는 유일하게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22일 새벽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규모 7.4의 강진이 일어났지만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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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가 다니고 있는, 면사무소 옆 초등학교에는 딸린 논이 있다. 지금껏 남아 있는 것이 두 도가리(배미). 서로 다른 마을에 있다. 학교에서는 제법 떨어져 있어서 어느 쪽이든 아이들 걸음으로 가자면 한 시간은 걸린다. 초등학교 재산 목록에 논이라니. “요즘이야 학교에 보탠다고 하면 장학금이니 지원금이니 돈으로 내지만, 예전에는 좀 여유있게 사는 집에서 땅을 내놓고는 했어요. 그러면 그 땅에서 나는 곡식으로 해마다 학교 살림을 살았지요.” 그렇게 해서 학교 땅이 된 논밭이 아직 남아 있기도 하다는 것. 이제는 농사지어서 거둘 수 있는 돈이라는 게 아주 형편없거니와, 땅을 빌려준다고 해도 마땅히 부쳐서 농사지을 사람도 없어서 아예 땅을 처분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마을에서 그런 땅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동사(마을회관)를 지은 땅은 어느 집안에서 내어 놓은 땅이고, 할매들 여름날 더위 피하는 정자는 어느 집 몇 대 어른이 한 것이고, 지금도 여전히 온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며 콩단을 세워 말리고, 오가는 차를 세워 두고 하는 땅은 지지난 이장을 하셨던 분의 땅이다. 마을 소유의 산도 있어서 그것은 해마다 누군가에게 빌려 주고 돈을 받아서 마을 살림에 보탠다.

예전부터 학교 땅이든, 마을 땅이든 다같이 쓰자고 재산을 내어 놓을 때에는 학교와 마을 살림이 짜임새 있게 굴러갈 수 있을 만한 것을 내어 놓았다. 그래야, 결국은 없이 사는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곤궁함을 덜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전통이 아직 살아 있었던 수십년 전에도, “민정당 시절에 불우이웃 돕는다고 빈 라면박스를 어른 키만큼 쌓아 놓고 사진 찍던 것들” 또한 있었다고는 하지만.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100년쯤 되었다. 100년을 버텨오던 그 사이에 이런 식으로 살림 밑천을 마련해서 학교를 꾸려왔을 것이다. 누구는 땅을 내어 놓고, 누구는 손공을 보태고 하던 그 방식은 마을 살림을 꾸려왔던 경험 그대로다. 지금도 여전히 마을마다 대동회를 하는데, 거기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물론 돈 얘기다. 마을 재산이 있고, 마을 살림이 있어서, 그것을 한 해 동안 어떻게 꾸려왔는지 하는 것을 더할 수 없이 격렬하게 논의한다. 마을 일에 쓸 것으로 새로 숟가락, 젓가락, 냄비, 그릇 따위를 마련했던 해에는 어느 집 물건이 싸니, 그것보다는 돈을 조금 더 주더라도 그 건너 집에서 사야 좋은 것을 오래 쓴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한창이었다. 덕분에 읍내 그릇가게들이 어떻게 장사하는지도 알게 되었고. 마을 살림살이를 넣어 둘 새 창고를 지을 때는 그야말로 몇 백만원 하는 돈을 이리 쪼개고 저리 쪼개서 지을 수 있는 숱한 창고들이 사람들 이야기 속에서 지어졌다 헐리기를 되풀이했다. 마을에 재산을 내놓는 것이야 형편에 따라 다르지만, 살림을 사는 일에서는 너나없이 제집 살림처럼 달려든다. 땅이든 돈이든 많이 내어 놓았다고 유세를 떠는 일도 쉽게 보기 어렵다. 어쨌거나 마을 사람 모두가, 어디 허투루 돈 쓰인 데가 없는지 돋보기를 들이대고 내역서를 한 줄 한 줄 짚는 것이다. 그 와중에 무슨 일이든 혹여 어느 집에 손해가 가는 일이 없는지, 혼자 사는 할매, 형편 어려운 살림을 돌보지 않는 일이 없는지 따위를 살피는 것은 누구나 마음을 썼다.

지난 이화여대의 길고도 단호했던 싸움을 시작으로 온 나라가 촛불의 나라가 되었다. 읍내 터미널 앞 로터리에도 촛불을 든 손길이 있다. 거기에는 여러 바람들이 있겠지만, 마을 사람들이 마을 살림을 꾸려가는 것처럼, 나랏돈을 쓰는 살림이 허투루 돌아가지 않도록 하겠다는 바람도 있을 것이다.

부디, 이 모든 것들이 나랏돈을 제 돈처럼 쓰는 것에 익숙한 오래 묵은 모리배와 기업들을 단죄하기를 바라는 이 마음은, 결국에 숟가락을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죽어가는 젊은이가 없게 하고, 검은 바다에 빠진 아이들에게 진실을 들려주어 위로하고, 트랙터를 끌고 온 나라를 떠도는 농민들이 제 땅에서 농사짓는 것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전광진 | 상추쌈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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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잡다’는 접두사 ‘겉’과 동사 ‘잡다’가 결합해 만들어진 말이다.

‘겉잡다’에서 ‘겉’은 양이나 정도를 나타내는 단어 앞에 붙어 ‘겉으로만 보아 대강한다’는 뜻을 더하는 말이다. ‘겉가량, 겉대중, 겉어림, 겉짐작’의 ‘겉’이다. 이들은 모두 ‘겉잡다’와 의미가 상통한다. ‘겉’은 일부 명사나 용언 앞에 붙어 실속과는 달리 ‘겉으로만 그러하다’는 뜻을 더하기도 한다. ‘겉멋, 겉치레, 겉핥다’의 ‘겉’이 그러하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동사 ‘잡다’는 ‘어림하거나 짐작하여 헤아리다’란 뜻을 갖고 있다. “이 책들을 권당 5000원으로 잡아도 100권이면 50만원이다”에서 쓰인 ‘잡아도’가 ‘잡다’의 활용형이다. 해서 ‘겉잡다’는 ‘겉으로 보고 대강 짐작하여 헤아리다’란 의미다. ‘겉잡다’는 주로 ‘겉잡아도’ ‘겉잡아서’ 꼴로 쓰인다.

한데 소리가 ‘걷짭따’로 같아서인지 ‘겉잡다’를 ‘걷잡을 수 없는 사태’에서의 ‘걷잡다’와 혼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걷잡다’는 ‘거두어 잡다’의 줄임말로, ‘잘못 치닫거나 기우는 형세 따위를 바로잡다’ ‘마음을 진정하거나 억제하다’라는 뜻이다. ‘걷잡다’의 첫 받침에 ‘ㄷ’을 쓰는 것은 ‘거두어’에서 쓰인 ‘ㄷ’ 받침에서 비롯되었다. ‘걷잡다’는 주로 부정형으로 쓰인다. 따라서 단독으로 사용되기보다는 ‘걷잡을 수 없는’에서 보듯 ‘없다’와 잘 어울리는 말이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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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민심과 국민 여론은 거듭 대통령의 하야다. 하지만 대통령은 꿈적도 하지 않는다. 헌법을 무기로 대통령이 국민을 이기겠다고 작정했다는 뜻이다. 선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마지막 가능성으로 남았던 대통령의 정치는 완료됐으며 명예혁명과 망명을 운운했던 일각의 로망은 소멸했다. 남은 것은 국회의 정치와 시민의 정치다. 국회의 정치는 이제 외길로 보인다. 탄핵을 가결하고 헌법재판소로 가는 길, 대통령의 헌법과 국회의 헌법이 맞붙는 막다른 길이다. 반면 시민의 정치는 이 길과 함께 또 다른 길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의 사문화된 원칙을 되살려 엘리트 독과점 정치의 대의 민주제를 넘어서겠다는 국민혁명의 길이다.

날마다 특종과 속보와 가십성 뉴스가 홍수를 이루지만 국민은 허우적거리며 떠내려가지 않는다. 대통령의 하야를 마땅하게 여기는 민심은 하야한들 지난한 탄핵으로 간들 그다음이 마땅치 못한 이 난국을 냉정하고 차분하게 직시하고 있다. 국민은 마음속에서 대통령을 지웠기 때문이다. 진상 규명과 처벌은 응당한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누가 무엇을 위해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만들 것인가이다. 초겨울의 주말문화이자 저녁문화가 된 광장 행렬이 100만 촛불을 켜면 때맞춰 청와대 실내등이 꺼지고 경복궁과 북악산이 깜깜해지는 광경은 우연이 아니다. 낮과 밤, 평일과 주말을 교차하는 이 빛과 어둠의 대비는 국민 저마다의 간절한 ‘보디 퍼포먼스’가 어우러진 거대한 ‘미디어 아트’다.

이 ‘국민예술’이 열망하는 국회의 정치는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 평화통일’의 4대 국정과제를 사사로운 먹잇감으로 갈취한 ‘비선 실세’의 공범들과 이들을 공권력으로 뒷바라지한 국가 시스템의 적폐를 대청소하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민 대표성이 현저히 떨어진 국회를 정당득표 연동 비례대표제를 통해 일신하라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탄핵 정국을 경과하는 동안 국회의 정치가 보여줘야 할 기본이다. 이것을 실천하지 않고 대통령 선거로 가서 차기정부가 하겠노라 공약한들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민심은 안다. 51%로 당선된 대통령을 95%가 마음에서 버리게 된 국민의 자괴감은 더 이상 무력감이나 패배감이 아니라 새 판 짜기를 시작해야겠다는 집단지성의 장기전으로 가고 있다.

이 점에서 민심의 향배를 요약하면 이렇지 않을까 한다. 못 볼 것의 끝을 끝내 보았다, 돌이킬 수 없고 돌아갈 수 없는 데까지 왔다, 그리고 이 몹쓸 사태를 단숨에 정리할 방법을 그 누구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국회는 죄인의 심정으로 탄핵의 외길에서 입법, 행정, 사법, 헌법재판, 선거관리에 이르는 헌법기관 전체의 정상화를 위한 대장정에 그 어떤 지름길도 샛길도 없음을 직시하고 국가 대개조의 가시밭길을 정직하게 걸어가라고 말이다. 이렇게 국민과 소통하며 탄핵 정국이 일단락되어야 대통령 선거가 의미를 갖는다.

시민의 정치는 국회의 정치를 견인하되 따로 가야 할 길이 있다. 그것은 100만 촛불이 부른 그 노래의 후렴구 그대로다. “후회 없이 꿈을 꾸겠다 말해요”이고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이다. 이 꿈을 계속 꾸고 싶어서 소설가 부희령은 “오래오래 광장을 지킬 수 있으면 되는 거”라 믿지만 그러기 위해선 “촛불이 꺼지면 언제든지 옆 사람에게 붙여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강풍이 불고 한파가 와도 모일 수 있는 공간을 국민과 함께 만들 공적 주체는 누구일까. 이 난국에도 국민의 일상과 안전을 책임지는 최후의 헌법기관, 바로 전국 17개 광역 지방정부와 의회이며 228개 기초 지방정부와 의회다.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국민은 경험했다. 중앙권력의 갑질 횡포에 위축된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지만 주민자치를 위해 깨알같이 많은 일을 해 왔으며 특히 위기 때 국민이 믿고 의지할 언덕이 되었던 공공이 누구였는지 말이다. 그 지방정부와 의회가 전국 각지에 한겨울의 촛불 민심을 환대하는 공간을 마련한다면, 시민의 정치는 겨울밤 내내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천일야화를 이어갈 것이다. 이 천일야화를 통해 헌법을 공부하고 민주주의 교과서를 집필하며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행복한 나라를 후회 없이 꿈꿀 수 있어야 한다. 대중문화 평론가 황진미의 통찰대로 “허깨비가 사라진 이후의 세계를 적극적으로 꿈꾸는 것”이야말로 시민의 정치가 갖는 힘이자 국민혁명을 만들어가는 길이다.

새로운 민주공화국이라면 국회의 정치와 시민의 정치를 연결하는 플랫폼은 대통령이나 중앙정부가 아니라 충분한 권력을 가진 지방자치의 각양각색 정치여야 할 것이다.

내년이면 6월 국민항쟁 30년이다. 그 사이에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까지 여섯 명의 대통령을 뽑았다. 국민이 원하는 바는 일곱번째 대통령을 뽑기 전에 헌법 제1조의 원칙이 살아 숨 쉬는 민주공화국을 맘껏 꿈꾸는 일이다.

김종휘 성북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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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을 다룬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지난 한 주 트위터 사용자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촛불 여론을 폄훼한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에 대한 분노도 높았다.

트위터코리아가 다음소프트와 함께 지난 14일부터 20일까지 트위터상에서 가장 이슈가 된 핫 키워드들 중 주목할 만한 단어를 분석해 22일 발표했다.

지난 한 주간 언급량이 가장 많았던 단어는 <그것이 알고 싶다>였다. 19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는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이 밝혀지지 않은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을 다루며 19%에 달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트위터 이용자들은 주요 방송 내용을 공유하며 줄기세포 시술 의혹과 7시간의 행적이 철저히 밝혀지기를 촉구했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의 이름은 두번째로 많이 언급됐다. 김 의원은 지난 17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촛불은 촛불일 뿐이지 바람이 불면 꺼지게 돼 있다”고 발언해 시민들의 공분을 샀다. 김 의원의 지역구인 춘천 트위터 이용자들을 중심으로 의원직 사퇴를 촉구하는 트윗이 급증하기도 했다.

올해 첫 가요계 시상식인 ‘멜론뮤직어워드’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미국 대선’ 이슈를 제외하면 비정치적인 키워드가 순위에 이름을 올린 것은 처음이다. 트위터 내에서 평소 인기가 높은 엑소, 방탄소년단, 트와이스 등 인기 뮤지션들이 주요 부문에서의 수상을 위해 참석하면서 젊은층 이용자들의 트윗이 집중됐다.

정부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강행도 주요 이슈였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성남시장 등 야권 인사들은 트위터를 통해 정부의 독단적인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일반 이용자들은 국방부 대변인실 계정을 언급한 비판 글을 다수 게재하기도 했다.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도 자주 언급됐다. 많은 이용자들은 상식을 벗어난 맹목적인 지지를 멈춰야 한다고 비판했으나, 일부는 이들의 정치적 견해 표명 역시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논쟁을 벌였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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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을 떠나기로 했던 지난 11월4일 싸뒀던 여행 가방을 풀고 노숙 가방을 싸서 광화문광장으로 나와 텐트 노숙을 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에 의해 블랙리스트로 찍힌 문화예술인 7500명이 시국선언을 하던 날이었다. 첫날 텐트 20여 동을 모두 경찰에게 빼앗기고 광장에서 맨몸으로 자야 했던 때가 어제인 듯한데 벌써 20일째다. 처음엔 문화예술인들과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사람들 몇이 시작했던 작은 텐트촌이 이젠 60여 동의 다양한 개인 단체들의 텐트와 마을창고, 마을회관 등이 들어선 작은 마을이 되었다.

각각의 텐트에는 입구마다 주인의 성격을 보여주는 개성 있는 현판들이 달렸다. 이제 작은 마을 하나를 이루었지만 전국의 수많은 거리와 광장과 함께 연계해 2011년 9월 세계 경제의 중심인 뉴욕 월가를 점령하고 ‘1%에 맞선 99%의 항쟁’을 꿈꾸었던 즈카티 공원이나, 같은 해 ‘아랍의 봄’을 이끌었던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처럼 넓혀 갈 꿈을 꿔본다. 그렇게 광장과 거리로 모인 노동자 민중시민들의 직접 민주주의만이 박근혜 정권을 제대로 심판하고, 한국사회를 새로운 민주주의의 단계로 진전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정무직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실제로도 그렇다. 11월12일 100만이 모인 거리와 광장이 있고 나서야 머뭇거리던 야권은 박근혜 퇴진 당론으로 슬며시 입장을 바꾸었다. 해체가 정답일 새누리당 내에서도 탄핵 주장이 나오고, 법원은 청와대 앞 도로에 대한 합법적인 행진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간 권력의 하수인 역할에 충실했던 검찰 역시 최순실과 안종범·정호성의 공소장을 통해 부족하나마 ‘거의 모든 혐의에 대하여 기소된 3인이 대통령과 공모 관계’였음을 적시하였다. 검찰 역시 박근혜씨가 더 이상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니라 주범인 ‘피의자 박근혜’에 불과함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피의자 박근혜’가 아직도 국사를 보고받고, 국정에 대한 결정들을 내리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 단 하루도 재앙이며 악몽이 아닐 수 없다. 그런 ‘피의자 박근혜’에게 ‘영수회담’을 제안하고, ‘질서 있는 2선 후퇴’를 위해 거국중립내각을 얘기하는 야권도 악몽이 아닐 수 없다. 국민들의 비판으로 영수회담의 기회를 잃은 야당 대표가 ‘피의자 박근혜’가 ‘계엄령’을 선포할 수도 있다며 자신의 행보를 변호한다. 만약 실제로 그런 사람이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면 더더욱 ‘즉각 퇴진’을 요구해야 하지 않는가.

그 힘을 만들 수 있는 ‘거리와 광장’을 꿈꾼다. ‘피의자 박근혜’와 그 부역자들에 대한 개인적인 심판을 넘어,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한국사회의 새로운 내일을 만들어 나가는 새로운 가치관의 혁명, 노동자시민 항쟁을 꿈꾼다. ‘안될 거야’, ‘어려울 거야’라고 제풀에 접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래, 우리 모두가 새로워지는 그 사회로 이제 그만 넘어가자’는 새로운 윤리의 혁명이 되기를 바라본다. 이 겨울이 가기 전에, 새로운 시대의 봄을 꿈꿔본다.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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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하야하라.” 서울 도심에서만 100만여명!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월드컵 때도,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때도 이렇게 많지는 않았다. 비폭력으로 평화롭게 진행한 집회였다.

짱돌과 최루탄과 쇠몽둥이가 난무하던 1980년대 집회 광경이 생각난다. 나는 그때 서울에서 333번 시내버스 운전 일을 하고 있었다. 거리엔 늘 데모대와 경찰이 대치했다.

내가 봤던 경험으로만 보면 데모가 가장 심했던 때는 1987년 6월이었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체육관에서 간접으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4·13 호헌조치’를 선언한 뒤, 각지에서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시위가 잇따랐고 6·10항쟁으로 이어졌다. 시민과 학생들은 백골단에 몽둥이로 맞아 머리가 터지고 피를 흘려도 항거를 멈추지 않았다.

지난 19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4차 범국민행동’에 참가한 시민들이 ‘박근혜 즉각 퇴진’ ‘박근혜는 하야하라’고 쓰인 손팻말과 플래시를 켠 스마트폰, 촛불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지윤 기자

전국 37개 도시에서 100여만명이 데모한 6월26일이 아니었나 싶다. 버스 운행을 하다 데모 때문에 길이 막혀 서울역 정류장에 서 있었다. 버스 안에 있던 손님들이 다 내리고 한 명도 없었다. 서울역 광장에도, 서울역 고가도로 위에도 데모대가 꽉 차 있었다.

그때였다. 서울역 광장 쪽에서 대학생 한무리가 백골단에 쫓겨 내가 서 있는 버스 쪽으로 도망쳐 오고 있었다. 얼른 차 문을 열었다. 최루탄 냄새를 훅 풍기면서 학생들이 타는데, 이게 웬일인가? 학생들이 주머니에서 회수권(당시의 학생들 버스 요금)을 하나씩 꺼내서 요금통에 넣으면서 올라오는 게 아닌가. “빨리 타! 빨리!” 하고 소리 지르니 학생들은 그때서야 부리나케 버스로 올라온다. 다 탄 뒤 얼른 문을 닫았다. 아슬아슬했다. 뒤이어 백골단 열댓 명이 쫓아왔다. 그중 몇 놈이 문을 두드렸다. 난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백골단은 열이 받아 몽둥이로 버스 문과 유리창을 두드렸다.

그때 남대문 쪽에서 또 다른 시위대가 내가 탄 버스 주변에 있는 백골단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손에는 보도블록을 깬 돌을 쥐고 있었다. 결국 백골단은 도망갔다. 버스 문을 열어 줬더니 학생들이 “고맙습니다!” 하면서 우르르 내렸다. 학생들은 길에서 돌멩이를 집어 들고 다시 시청 앞으로 행진하면서 소리쳤다. “호헌 철폐, 독재 타도!”

6월29일, 전두환은 4·13 호헌조치를 철회하고 민정당 대표 노태우가 6·29선언을 발표하면서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와 야당의 직선제 개헌을 수락했다. 민중의 힘으로 얻은 값진 승리였다. 비록 그 뒤에 노태우가 다시 정권을 잡았지만, 그때 쟁취한 직선제는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로 갈 수 있는 토대가 됐다.

2016년. 이젠 시위 현상이 많이 바뀌었다. 쇠몽둥이를 휘두르던 백골단도 해체됐고 최루탄과 짱돌도 사라졌다. 시위대는 청와대 400m 앞 효자동, 폴리스라인과 차벽 앞에서 ‘박근혜 하야’를 외쳤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전히 국정을 운영하면서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무슨 폭력? 세월호가 침몰하는데 구조는커녕 진상규명조차 안 하는 것, 백남기 농민을 물대포로 죽게 하고 책임자 처벌을 안 하는 것, 자본이 노동자들을 비정규직 노예로 만드는 것, 약점이 있는 기업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 최순실에게 갖다 바친 것, 사드 배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맺는 것 등은 모두 당장 내 목숨을 빼앗는 폭력이다.

누군가 내 목을 조르고 있다면 손가락이라도 꺾어야 한다. 1987년 백골단에 쫓겨 내 버스를 타면서, 회수권을 내던 착한 학생들이 짱돌을 던진 행위는 목을 조르는 자의 손가락을 꺾는 행위다. 지금 박근혜·최순실 사태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때보다 결코 가볍지가 않다.

국가 수장으로서 자격을 잃은 박근혜 정권과 부패한 지배층, 그리고 수구 언론은 민중에게 선진국처럼 ‘폴리스라인까지만’ 합법집회, 평화시위를 하라고 ‘애원’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합법집회, 평화시위’를 하는 선진국은 대체 어느 나라인가? 선진국엔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져도 폭동이 일어난다. 하물며 나라를 말아먹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젠 깨달을 때도 되지 않았나? 계속 그렇게 민중들의 목을 조르면 손가락이 부러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안건모 | ‘작은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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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위가 만들어내는 감동적인 장면들의 한 주인공은 10대들이다. 그들은 이번 시위에서 최초이자 거의 유일하게 ‘혁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급진적인 성인들도 꺼렸을 단어를 그들은 거리낌없이 내걸었고, 이 싸움이 박근혜 퇴진을 넘어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임을 환기했다. 아무래도 우리는 감동할 것 하나를 빠트린 듯하다. 우리는 그들에게 그런 걸 거의 가르치지 않았다. 우리가 가르친 건 이 고약한 자본 체제에서 나만 살아남는 법이었고, 그들의 미래를 위한 최선이라 믿었다. 그런데 혁명이라니, 세상에. 나는 잠시 어쭙잖은 감회에 젖는다.

15년 전 어느 날, 불현듯 나는 한국의 아이들이 전에 없던 특별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발견했다. 동네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일제히 사라졌다는 것과 함께 늘 이어오던 중요한 가르침이 일제히 중단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하지만 공부만 잘한다고 훌륭한 사람 되는 건 아니다.’ ‘돈 많이 벌면 좋지. 하지만 사람이 돈만 알면 죄 받는 법이란다.’ 상하좌우를 막론하고 제정신을 가진 어른이라면 으레 아이에게 거듭하던 가르침이었다. 한국 교육이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가 아니라 ‘얼마짜리가 되는가’에 관한 일이 되면서 가르침은 사라졌다.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죄책감을 물리치기 어려웠고, 어린이 책 출판과는 전혀 무관하던 나는 ‘고래가그랬어’를 만들게 되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2014년 ‘고그’(아이들은 ‘고래가그랬어’를 이렇게 부른다)의 지면 개편은 전에 없이 심각했다. 고그는 ‘어린이 교양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음에도 아이들에게 직접 강의하는 방식의 콘텐츠는 지양해왔다. 학과 공부에 짓눌린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공부거리를 만들어줄 게 아니라, 함께 놀며 느끼는 동무가 되어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세월호 참사는 이 원칙을 재고하게 했다. 동료들과 나는 ‘그들은 왜 가만있었을까’라는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즈음 방한한 놀이터 연구가 귄터 벨치히는 우리에게 ‘독일 학생들이라면 절대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고, 대부분 생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의 실종이 아이들의 목숨마저 위협하는 긴급한 현실에서 고그의 원칙은 지나치게 낭만적이었다. 아이들에게 조기 교육을 해야 할 건 영어도 수학도 아닌 민주주의였다. 사회, 경제, 역사, 과학, 생태 등 전문가들의 흔쾌한 참여로 ‘아삭아삭 민주주의 학교’라는 이름의 지면 강의 섹션이 생겨났다.

옛 혁명가들이 파업을 ‘노동자의 정치학교’라 일컬었듯, 시위는 ‘시민의 민주주의 학교’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순간 전국 도처의 공간에서 각양각색의 시민들이 만들어내는 자치적 민주주의 학교를 목격한다. 이번 시위는 고질적인 진영 논리를 넘어서 합리적 성향의 보수 시민들까지 참여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늘 시민들의 일반적 의식 수준과는 워낙 동떨어진 1970년대의 망령이 부활한 사건이다 보니 생긴 역설적 현상이다. 덕분에 시위는 왕의 목을 잘라본 경험이 없고, 스스로 공화정을 만들지 못한 탓에 살아남아 내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전근대적 병증들을 치유하는 학교 노릇을 하게 되었다.

이 시위가 갖는 또 하나 각별한 의미는 ‘아이들이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태어나 거의 처음으로 무기력한 각자도생의 태도를 벗어난 어른들을, 나와 내 새끼를 넘어 ‘사회’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며 함께 싸우는 어른들을 보고 있다. 시민의 민주주의 학교는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민주주의 학교가 되고 있다. 이 귀한 사실 앞에서 우리는 좀 더 긴장하고 좀 더 성찰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우리는 교육에 대한 전향적 태도 변화를, 교육을 아이가 ‘얼마짜리가 되는가’에 관한 일에서 ‘어떤 사람이 되는가’에 관한 일로 바로잡는 일을 피할 수 없다.

또한 우리는 이 시위에서 갖는 자부와 희열만큼이나, 이 시위가 배제한 시위와 배제된 사람들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한 주요한 노동 의제를 가진 시위에 우리는 얼마나 연대하고 참여했던가. 우리는 단지 불행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동정하지 않은 게 아니라, 대다수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싸움을 외면해왔다. 우리는 시위의 방식을 누구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외면했다. 가장 간절하게 평화 시위를 원하는 사람들은 까마득한 고공이나 길바닥에서 몇달 몇년을 먹고 자며 싸워야만 하는 사람들과, ‘폭력적’이라 손가락질받으면서도 공권력과 격렬히 충돌해야만 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외면해왔다. 10대들은 이미 ‘비폭력 프레임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시위는 시민의 민주주의 학교이자 아이들의 민주주의 학교가 되었다. 그러나 민주주의 학교는 시위의 시간을 넘어 지속되어야 한다. 민주주의 학교는 상당 기간 사회와 사회 성원의 가장 중요한 일이자 사명이어야 한다. 민주주의 학교는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나아가 그들이 원하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힘과 지혜를 기르도록 도와야 한다. 민주주의 학교는 가급적 평화로워야 한다. 그러나 평화의 진열이 민주주의 학교의 목적은 아니다. 민주주의 학교의 목적은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 혁명이어야 한다.

김규항 |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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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 한 마리 놓고 딴전 본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하고 있는 일과는 상관없는 엉뚱한 일을 함을 이르는 말이다. ‘딴전’은 ‘부리다’ ‘피우다’와도 짝을 잘 이룬다. ‘딴전 보다’ 대신 ‘딴전 부리다’ ‘딴전 피우다’로 바꾸어 써도 의미가 상통한다.

‘딴전’은 순우리말이 아니다. ‘딴전’의 ‘딴’은 ‘다른’의 옛말이다. ‘딴마음, 딴사람, 딴살림, 딴판’의 ‘딴’과 같다. ‘전’은 한자어로 가게 전(廛)을 쓴다. 물건을 사고파는 가게를 말한다. 쌀과 그 밖의 곡식을 파는 가게를 이르는 ‘싸전’, 생선 따위의 어물을 파는 가게를 의미하는 ‘어물전’의 ‘전’이다. 허가 없이 길에 함부로 벌여 놓은 가게를 가리키는 조선시대 ‘난전’의 ‘전’도 마찬가지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곧 ‘딴전’은 ‘다른(딴) 가게(전)’라는 의미다. 주된 가게 외에 별도로 마련해 놓은 가게, 본래의 가게와 비교하면 덜 중요한 가게를 가리킨다. 여기서 ‘어떤 일을 하는 데 그 일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나 행동’이라는 뜻이 생겨났다.

‘딴전’과 같은 의미로 ‘딴청’이라는 표현도 널리 쓰인다. ‘딴청’은 주로 ‘부리다’ ‘피우다’ ‘하다’와 어울린다. ‘한 가지 의미를 나타내는 형태 몇 가지가 널리 쓰이며 표준어 규정에 맞으면, 그 모두를 표준어로 삼는다’는 규정 덕에 둘 다 사전에 올라 있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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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코리아가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와 함께 지난 7일부터 13일까지 트위터에서 가장 이슈가 된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 ‘2016 민중총궐기대회’와 미국 대통령 선거 관련 이슈가 가장 많은 대화를 생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주 트위터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는 ‘민중총궐기’다. 지난 12일부터 15일까지 트위터 내에서 관련 트윗이 총 130만건 생성됐다. 집회 당일인 12일 오후 10시30분쯤에는 광화문광장 주변 빌딩 옥상에서 촬영해 광장을 가득 메운 집회 사진 등의 트윗이 분당 1200여건 발생할 정도로 현장 분위기를 전달하는 트윗량이 폭증했다. 주최 측 추산 100만명(경찰 추산 26만명)이 광화문광장에 모여 ‘박근혜 하야’를 외치며 촛불 파도타기를 하는 영상은 1만2000번 이상 리트윗됐다. 해시태그 ‘#내려와라 박근혜’, ‘#박근혜 하야’ 등을 포함한 현장 영상과 사진들도 수만건 올랐다.

대통령 해외 순방에 동행한 최순실씨의 단골 성형외과가 연간 9000명이 사용할 수 있는 양의 프로포폴을 구입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트위터상에서 ‘프로포폴’이 많이 언급됐다. ‘최순실 사단’으로 알려진 비선 조직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해당 키워드의 언급량도 급증했다. 최씨가 2012년 대선 때부터 운영했던 비선 조직이 인수위를 거쳐 청와대까지 들어가서 이른바 극우 정치 성향의 글들을 실시간 보고하고, 야당 정치인과 관련한 SNS 동향을 감시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자 트위터에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예측을 벗어난 제45대 미국 대통령 선거도 국내 트위터를 뜨겁게 달궜다. 뉴욕타임스에서 대선 승리 후보를 점치는 그래프인 ‘포어캐스트’가 트럼프의 당선 확률이 더 높다는 방향으로 예측을 바꾸는 순간 트위터에는 ‘도널드 트럼프’ 이름 언급량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대선에서 패배한 ‘힐러리 클린턴’ 역시 주목받았다. 특히 패배 연설에서 미국 역사상 최초로 여성 대통령이 되리라 점쳐졌던 후보로서 여성들에게 “언젠가 곧 누군가가 유리천장을 깨길 바란다”고 말한 부분이 많이 공유됐다.

목정민 기자 mo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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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나라가 시끄럽다. 물론 이번엔 사안의 심각성과 스케일이 다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이 땅에서 바람 잘 날이 아예 사라져 버린 듯하다. 오늘은 어떤 뉴스가 이 나라를 흔드느냐가 문제이지, 오늘도 엄청난 소식이 있을지 없을지는 관건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소용돌이는 생활이 되고, 진짜 생활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말이야 민생이 먼저라지만 당장 눈앞의 불끄기 바쁜 것이 거의 1년에 365일이다. 인간의 삶과 생활도 이런 취급을 받는데, 그렇다면 다른 생물들은? 자연은? 이들에게도 관심의 차례는 과연 돌아올까?

국정농단 사건으로 온 나라가 난리통을 겪는 동안, 한반도로부터 아주 먼 곳에서, 오늘의 핫이슈와 아주 먼 문제로 전 세계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가 있었다. 바로 제66회 국제포경위원회(IWC)가 슬로베니아 포트로즈에서 10월20일부터 10월28일까지 개최된 것이다. 이 판국에 웬 고래? 그렇다. 이 판국에야말로 고래다. 어차피 이대로라면 고래를 생각하는, 아니 자연과 생명에 눈을 돌리는 ‘판국’이란 도무지 생겨나질 않는다. 오히려 ‘판’이 만들어지지 않는 문제들, 언론과 대중이 놓치고 있지만 엄연히 중차대한 이슈들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논의하는 것이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국제포경위원회의 이름은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킨다. 결국 고래 잡자는 모임인가? 1946년 설립된 이 위원회는 고래의 보전을 주목적으로 하며 효과적 보전을 바탕으로 한 엄중한 관리하의 포경만 허락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1982년 모든 상업적 포경을 전면 금지한 것이 가장 주된 업적이다. 고등영장류와 비견될 정도로 지능이 높고, 정교한 사회구조를 이루며, 감정과 이타심을 가지고, 뭍에서 물로 돌아간 독특한 포유류인 고래를 살리자는 취지로 세계가 모인 자리다. 우리나라도 1978년부터 회원국이다. 그러나  이번 연례회의에서도 한국이 보여준 자세는 고래를 보호하자는 쪽과 거리가 멀다. 아니 올해도 국제포경사회에서 악명 높은 일본의 들러리 역할만 하고 있다.

일본은 그동안 ‘과학적 포경’이라는 해괴한 명분으로 매년 고래 수백마리를 잡아 국제적 원성을 샀는데 이런 고래잡이 과정을 엄격히 규제하는 결의안이 이번 회의에서 통과되었다. 물론 일본은 반대표를 던졌고, 우리 대표단은 기권했다. 또 남대서양에 인도와 러시아를 합친 면적의 고래보호구역을 만들자는 제안이 발의되었는데 이 역시 일본을 비롯한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 포경 국가들의 반대에 의해 무산되었다. 만약 조금만 더 득표했다면 이미 조성된 인도양과 남대양 보호구역과 함께 실로 엄청난 규모의 안전한 고래 서식지가 만들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한국은? 떡하니 반대표를 던졌다.         

실제로 해당 바다와 해안선이 인접한 나라들인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가봉, 남아공이 발의를 하고 지지한 반면, 한국을 포함하여 이곳으로부터 수천㎞ 떨어진 국가들이 막은 것이다. 우리 대표단의 발언은 더욱 가관이다. 보호지역 설정을 열렬히 찬성한다는 호주 다음 차례에 기껏 한다는 말이, 보호지역이 어떻게 고래잡이를 허용할 것인지 근거가 충분치 않아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보호하자는 곳에서 고래잡이 방안을 강구하라? 대체 무슨 희한한 모순어법인지.

동물원에서 지내다 고향 제주도 앞바다로 돌아간 제돌이. 불행히도 이는 한국이 고래를 대하는 자세의 상징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극단적으로 예외적인 케이스에 해당된다. 한국은 일본과 함께 고래가 어망에 ‘우연히’ 걸리는 수가 다른 나라의 10배에 달하는 나라다. 이렇게 ‘우연히’ 잡힌 고래는 해경이 검사해서 작살 등에 의한 외상이 없는 경우 유통이 된다. 전국 50개에 달하는 고래식당들이 모두 이런 불확실한 납품 경로에 의존한다고 누가 믿겠는가? 실제로 지난 5월 밍크고래를 불법 포획·유통한 일당이 검거되고 40억원어치의 고래가 압수되었다. 작살은 의도이고 망은 우연이라는 이 단순하고 해괴한 논리가 아직도 유효하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한국의 고래 혼획이 우연인가 의도인가를 조사한 거의 유일한 연구에 의하면 혼획 중 의도된 포획이 분명히 존재하며 이와 함께 일본에서 불법 포획된 고기도 수입된다고 한다.        

법에 저촉되는지가 전부는 아니다. 울산의 고래관광 프로그램은 살아 있는 고래를 보러 나갔다가 뭍으로 돌아와 여지없이 고래고기를 먹는 것으로 귀결된다. 횟집 앞 어항을 보면서 식당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모양새인데, 고래관광이 고래 포획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국제적 관행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형국이다. 일본이라면 신경을 곤두세우는 한국이, 일본이 국제사회로부터 가장 많은 비난을 받는 사안 중 하나인 고래에 관해서는 거의 한패로 묶인다는 사실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우연히’ 망에 걸려 식탁에 오르는 다음 고래가 제돌이는 아닐지, 야생학교는 불안하다.

김산하 | 영장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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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만에 돌아온 집과 농장은 참 고요했다. 가을색은 더 깊어져 있어서 곱게 늙어가는 귀인처럼 애잔해 보였다.

서울에서 가장 크게 기억에 남는 것은 12일 밤 11시쯤 광화문광장 주무대에서 진행된 ‘시민자유발언’ 시간이었다. 전혀 가공되지 않은 생목소리들에 나는 압도당했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던 것으로 보이는 여성 연극인이 무대에 섰다. 주어진 3분 동안에 쏟아낼 말들은 너무 많았고 쌓인 울분은 산을 이루었다. 작품과 공연이 거부되었던 그 예술인의 피를 토하는 울부짖음은 얼굴 전체를 큰 눈물덩어리로 보이게 했다. 예술인들의 자유혼을 짓누르고 고통을 기획한 당사자들을 지목했다. 조윤선 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직접 거명했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노동자가 올랐다. 민주노총 조합원으로 보였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작년 이맘때 같은 취지로 열린 민중총궐기 행사로 5년 징역을 산다면서, 한상균이 5년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은 500년도 모자랄 거라고 했다. 그 노동자의 바위 같은 결기와 노한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아홉 살 어린 나이에 형제복지원에 끌려가 살아야 했다는 중년 아저씨가 농민들 시위 현장에 등장하는 마대 자루 옷을 뒤집어 입고 올라왔다. 12년 동안 513명이 사망한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 달라고 부르짖었다.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에 만들어져 1987년 처음으로 세상에 폭로된 형제복지원 사망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다 보니 장애인시설 인강원 사건과 노숙인 복지시설인 대구희망원 사건 같은 것이 줄을 잇는다고 규탄했다. 이화여대생은 최근의 이대사태에 대한 해결책을 요구했고, 고등학생도 나서서 앳된 목소리로 정국을 규탄했다.

아는 선배 수행자가 쓴 시가 인터넷에 올라왔다. 그는 “우리가 정녕 바꾸어야 하는 것은 이 체제, 이 구조, 우리가 살아오면서 길들여진 그 모든 가치관과 삶의 방식”이라고 했다.

그렇다. 권력을 규탄하며 스스로가 권력화되는 것을 경계하고 부정과 비리를 지적하며 자신의 부정과 비리에 면죄부를 주지 않을 자각이 필요할 것이다.

선배의 글은 ‘(혁명은) 지금 여기서 개벽된 그 세상을 사는 것’이라고 했지만, 같이 글을 읽은 곁의 후배는 ‘지금은 분노와 저항을 조직할 때’라고 반발했다.

3일 동안 나는 ‘한살림 30주년 기념 대화마당’에 가서는 행사 주제처럼 ‘성장을 넘어 성숙의 사회로’ 가자면서 죽임의 세상에서 살림운동의 새로운 모색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민중총궐기 대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외쳤고, 그 주변 공모자들의 동반 퇴진과 처벌을 요구했다. 내 출판기념회에 가서는 ‘유쾌한 소농 이야기’를 했다.

도심 행진과 구호, 부족한 잠 때문에 두 눈은 뻑뻑하고 충혈되어갔다. 거울 속 내 모습도 몇 년 늙어 보였다. 서울의 밤과 낮은 참으로 격동의 연속이었고 내내 소란했다. 도심의 불빛이 소음과 뒤얽힌 기묘한 동거를 목격했다.

먼발치로 은행나무가 부푼 풍선처럼 서 있다. 그 위로 가을 찬비가 내린다. 바람이 살짝이라도 일면 빗방울 머금은 샛노란 은행잎은 한꺼번에 떨어질 판이다. 바람이 아니어도 산골의 정적을 깨고 까마귀 울음이라도 들린다면 우수수 떨어져버릴 듯 아슬아슬하다.

새로운 계절을 맞는 자연의 채비는 엄숙하다. 바람결과 빗방울 하나에도 자신을 하나씩 떨구어낸다. 추위가 몰려오는데도 껴입지 않고 도리어 한 꺼풀씩 벗는다. 엄한 겨울을 견뎌야 할 자연의 겨울채비는 실은 봄채비다. 꽃피울 새봄을 위해 벗고 버리는 것이다. 비상시국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자연의 가르침을 구한다.

전희식 | 농부·‘삶을 일깨우는 시골살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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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동안 너를 기다렸다.” 여기서 ‘한참’은 ‘시간이 상당히 지나는 동안’이란 의미다. 꽤 오랫동안을 뜻하는 ‘한동안’과 한뜻이다.

‘한참’의 ‘참’은 한자로 참(站)이다. 이 ‘참’은 ‘역참(驛站)’의 준말이다. 역참은 중앙 관아의 공문을 지방 관아에 전달하거나 벼슬아치가 여행이나 부임을 할 때 말을 공급하던 곳을 말한다. 요즘처럼 교통이 발달하기 전엔 공문을 전달할 때 말을 이용했다. 이때 지친 말을 새로운 말로 갈아타거나 사람들이 잠깐 동안 머물러 쉴 수 있도록 일정한 거리마다 마련하여 놓은 장소가 바로 역참이다. 지금의 기차역이나 고속도로 휴게소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곳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그리고 ‘한참’의 ‘한’은 하나를 뜻한다. 해서 ‘한참’은 글자 그대로 하나의 역참을 말한다. 공무로 여행하는 사람을 위해 역참은 대개 25리, 약 10㎞마다 하나씩 설치되어 있었다. ‘한참’은 바로 이 역참과 역참 사이의 한 단위 거리(25리)를 뜻하는 말이다. 이게 ‘한참’의 본뜻이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한 역참에서 다음 역참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라는 뜻으로 의미가 변했다. 역참과 역참 사이의 거리가 상당히 멀기 때문에 말을 타고 가더라도 역참 사이를 오가는 시간이 제법 많이 걸렸다. 해서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린다’는 의미가 새로 생겨났다. 공간·거리 개념이 시간 개념으로 바뀐 것이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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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가 지난주에도 트위터를 달궜다. 박근혜 정권의 비선 실세 최순실씨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했고, 대통령은 사태 발생 이후 두 번째 사과했다. 주말에는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트위터코리아가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와 함께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6일까지 트위터에서 가장 이슈가 된 핫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 1~5위가 모두 최순실 게이트 관련 키워드였다.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화한 3주 전부터 현재까지 트위터 내에서 오간 관련 대화는 500만건을 돌파했다.

지난주 트위터에서 가장 언급량이 많았던 키워드는 ‘직권남용’이다. 검찰이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뇌물혐의 대신 직권남용죄를 적용했다는 언론보도 직후 언급 횟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일부 트위터 사용자들은 직권남용죄가 뇌물수수에 비해 형량이 가벼울 뿐 아니라 최씨와 박 대통령이 모두 빠져나갈 수 있는 ‘묘수’라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의 첫 번째 대국민 사과문을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작성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민정수석’ 언급량이 크게 늘었다. 해당 키워드는 신임 민정수석에 대검찰청 중수부장 출신 최재경 변호사가 임명되며 다시 주목받았고, 6일에는 우 전 수석이 검찰에 출석하며 취재진을 노려본 장면이 화제가 되며 언급량이 폭증했다.

지난달 31일 김재원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청와대를 떠나면서 “외롭고 슬픈 우리 대통령님 도와달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자 ‘슬픈 대통령’ 키워드가 급증했다.

박 대통령의 2차 대국민담화가 있었던 지난 4일에는 ‘대국민담화’ 키워드가 주목받았다. 생방송으로 담화가 진행되는 동안 관련 트윗양은 분당 1000건에 달할 정도로 폭증했다.

5일 서울 광화문에서 주최 측 추산 20만여명의 시민이 운집해 열린 ‘촛불집회’는 트위터에서도 반응이 뜨거웠다. 일부 트위터 사용자는 현장을 중계하기도 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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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통이 터져 집에서 TV만 보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대통령과 비선 실세들이 국가를 자기 집 곳간 정도로 여기며 나랏돈을 빼먹고, 아무런 위임도 없는 사인들이 국가 기밀과 국정 운영 핵심과 인사에 관여하고, 지시까지 내렸다는 이 황당한 상황. 국민의 80%가 하야하라는 의견을 밝히며, 이미 위임된 권력을 회수했지만 모르쇠로 일관하며 얼굴 바꾸기 놀음만 하고 있는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현행범 박근혜. 스스로 범죄 행위를 시인하며 검찰 조사와 특검까지 받겠다면서도 대통령직은 유지하겠다는 그 뻔뻔함이 어디서 나올 수 있을까. 이런 거대한 불의와 국가 전체가 침몰한 상태에서도 ‘혼란’을 이유로 정략적 이해관계만 저울질하는 야권의 행태도 두고 볼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역사의 고비마다 정의를 바로잡아온 이들은 노동자 민중, 시민들의 직접 행동이었음을 상기했다. 새로운 법과 정치와 주체와 체제는 늘 거리와 광장에서 태어났다는 교훈을 떠올렸다. 주권자들의 ‘항쟁’에 의해, ‘혁명’에 의해 달성되었음을 되돌아 보았다. 그래서 몇 달 동안 준비해온 일본 여행을 떠나야 하는 날 아침, 여행 가방을 풀고 노숙 가방을 싸서 집을 나섰다. 아내에게는 고3 수험생 아이가 있다는 따위의 말은 절대 하지 말라고 했다. 재판 중인 것만 해도 몇 갠데 하는 걱정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때의 교훈을 잊지 않고 싶었다.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진정으로 백남기 농민을 추모하는 길은 그 분이 노구를 이끌고 섰던 그 민주주의의 거리, 최전선에 다시 서는 일일 거라 생각했다. 1200만 비정규직을 포함한 2000만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벼랑으로 내몰기 위해 노동법 전면 개악과 공공부문 사영화에 나서는 이 정권에 대한 분노, 사드 배치로 한반도를 다시 전쟁기지화하고, 역사를 자신의 가족사라도 되는 양 국정교과서로 통일시키겠다는 위험한 군주를 이번엔 끌어내려야 한다는 분노도 있었다.

동료 문화예술인들, 시민들, 노동자들과 함께 광화문광장에 ‘박근혜 퇴진 캠핑촌’을 꾸렸다. 박근혜 정권은 대한민국 예술인 1만명을 블랙리스트로 작성해 탄압해 왔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인 조윤선이 청와대 정무수석 때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 한 가지만으로도 박근혜는 더 이상 이 나라의 대통령일 수 없다. 분노한 문화예술계 전체가 나서고 있다. 어제는 캠핑촌에서 음악인 2000명이 시국선언에 나섰다. 건국 이래 음악인 2000명이 시국선언에 나선 건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12일에는 수백만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선다.

박근혜 퇴진은 이제 기본 상식이다. 나아가 이참에 한국 사회 운영 전반이 바뀌어야 한다. 얼굴과 당만 바뀌는 정계개편, 거국중립내각은 안된다.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 핵 없는 나라, 한반도의 실질적 평화, 국가보안법 철폐를 통한 표현과 사상의 자유, 1% 기득권만의 무한한 행복과 자유와 독점이 규제되는 사회. 세월호법 재개정,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특검. 2000만 노동자 대표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즉각 석방 등. 새로운 가치관이 이 사회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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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 아침, 늘 다니던 등굣길이 아니라 조금은 낯선 출근길에 마음 바쁠 네게 편지를 쓴다. 어느새 고3이 되었나 싶었는데 벌써 그 시간 끝자락에 섰구나. 얼마 전 네가 전화로 취업 소식을 전했지. 몇 차례 면접을 본 뒤라 전화기 저편 목소리가 밝더구나. 내 휴대전화기에 뜨는 네 이름 뒤에는 ‘○○중3’이 덧붙어 있어. 네가 중3이었을 때 처음 만난 게지. 이제 더는 중학생이 아니니 지워야지 생각하면서도 편집 단추를 누르고 삭제 단추를 누르는 일을 자꾸 미룬다.

지난해 봄, 우연히 너와 밥을 먹고 차를 마신 날이 있었지. 식당을 향해 나란히 걷는 길에서도,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면서도 너는 내 옆에서, 내 앞에서 뭔가 혼자 계속 망설이더구나. 무척 말하고 싶으면서 동시에 절대 말하기 싫은 마음이 입으로, 눈으로 불쑥불쑥 삐져나왔지. 어떤 말은 밖으로 나오기까지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해. 남에게는 심각하지 않아도 단 한 사람 자신에게는 무겁고 아프고 절실한 말.

오래전, 그때 일흔이었던 한 어르신을 만난 일이 있어. 그분한테 돌아가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러 간 자리였어. 이야기가 몇 고개를 넘다 막다른 곳에서 당신이 60여년간 숨겨둔 이야기가 툭 튀어나왔어. 병든 어머니가 혼자 산막에서 돌아가셨대. 이렇게 말하면 아무렇지도 않지? 하지만 열두 살 어린 여자아이는 그 일을 가슴에 콱 묻어두고 한 번도 꺼내지 않았어. 커가면서 알게 된 친구에게도 함께 살림을 꾸린 남편에게도 착하디착한 자식들에게도. 차마 가보지도 못하고 외할머니께 전해들은 어머니의 죽음을 말할 수가 없었어. 그렇게 많은 해가 지나도 바로 어제 일인 듯 눈물을 쏟으셨어. ‘마음이 아프다’는 게 기분이 아니라 통증이라는 걸 그날 알았어. 가슴 한복판이 쑤시고 아려 주먹으로 쳐대고 손바닥으로 문지르는데 밤새 가라앉질 않았어. 60년 된 이야기, 그 무게를 어떻게 감당해.

지난해 봄 네가 처음 꺼냈다가 올가을에 이어서 해준 이야기. 네게도 10년이 된 이야기가 있더구나. 어느 일요일 아침, 네가 울린 전화. 만나고 싶다는 네 말에 언제 만날까 달력에서 날짜와 요일을 헤아리다 갑자기 이게 아니지 싶었어. 네가 전화한 건 ‘지금’이 필요해서일 텐데 싶어 당장 그날 만났지. 네가 그렇게 말을 많이 하는 건 처음 봤어. 그 봄에는 울었는데 이 가을에는 울지 않고 이야기를 했지. 말하고 나니 시원하다며 웃었지. 돌아서면, 혼자 있으면 다시 아플지 몰라도 웅크렸던 몸과 마음을 네 스스로 활짝 폈지.

취직을 축하한다 말했지만, 사실 걱정이 앞서. 회사가 근로기준법은 제대로 지킬지, 함께 일할 선임들은 공명정대할지, 성차별에 성희롱·성폭력이 아무렇지 않게, 은밀하게 벌어지는 건 아닐지.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지는 않을지, 어엿한 동료 노동자로 인정하며 대우해줄지, 네가 한 사람으로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는 곳인지. 잘못되고 부당한 것에 기죽지 말고 “안돼!”라는 말을 네 있는 힘껏 소리치기를,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들어줄 누군가가 있을 거라 믿는 수밖에.

그런 모든 걱정을 안고서도 축하해. 네 생활을 스스로 꾸려나가는 첫 발걸음을 무엇으로 축하해줄까 생각하다 선물을 하나 마련했어. 여성의 삶과 노동에 집중해 여러 글을 쓴 작가 안미선씨가 얼마 전에 낸 <모퉁이 책 읽기>(이매진)라는 책이야. 글 마흔 편에 책 마흔한 권을 소개했어. 그런데 읽다 보면 글 안에 새로운 책이 더 많이 나와. 두고두고 읽을 책이 생기는 거지. 어디서 쉽게 구하지 못할 목록이 될 거야. 책 이야기만큼 마음이 가는 게 있는데 바로 사람 이야기야. 삶의 여러 모퉁이에 서 있었던 작가와 작가의 친구들, 작가가 만난 사람들과 세상, 그리고 소개하는 책 안에서 숨 쉬는 여자들을 만날 거야. 네가 아직 겪지 않은 시간, 가보지 않은 길 위에 먼저 섰던 여자들이 네게 친구가 되어줄 거야. 마음결이 섬세한 작가가 세밀하게 펼쳐 놓은 글에서 너는 힘을 얻을 거야. ‘저래서 여자는 안돼’라는 맥락 없는 말이 흉기가 되어 버젓이 판치는 세상에서 네가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시간을 북돋아 줄 거야.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 그 뒤를 이어 네 이야기를 써보렴. 책 속 여자들과 책 속의 책 속 여자들이 함께 기뻐할 거야. 곧 만나자.

박수정 | 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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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은 이제 시간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 현실이 호락호락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대통령에게 쏠려 있는 시선 덕분에 정작 중요한 문제가 부각되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 사태의 원인은 대통령 자신이다. 그러나 내가 흥미로웠던 것은 지금까지 대통령의 문제를 까맣게 몰랐다는 듯이 구는 보수 언론들이다. 반추해보면, 이상 징후는 취임 초기부터 감지되고 있었다. 인수위 시절부터 엇박자가 빈번했고, 외교 분야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세월호 정국에서 드러난 무능이나 대북정책에서 보여준 모순은 이 정부에 문제가 있고, 그 원인이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장관과 수석비서관들이 대통령을 독대한 적이 없다는 발언은 충격적이라기보다 어이없는 일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적어도 이 정부를 구성했던 각료들은 대통령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인지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침묵했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역시 마찬가지였다. 직접적으로 몰랐다고 하더라도 어렴풋이 짐작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만일 지금 앞다투어 고백하듯이 진짜 이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면 그 또한 책임 방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방치한 셈이다.

한때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면서 ‘좌파정부’가 망친 대한민국을 다시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던 보수들이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를 탄생시켰다는 사실은 결코 망각의 강을 건널 수 없다. 말하자면, 지금 이 위기는 단순히 대통령 하나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보수정권 재창출이라는 명분으로 대통령과 관련한 문제를 축소 또는 억압했다는 사실이 더욱 심각한 것이라고 하겠다.

대통령 일인의 권력에 국정이 좌우되는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개헌 논의가 나오는 배경도 이 때문이다. 대통령이 국민을 대표하고 의회가 경제적 이익집단을 대변하는 기이한 제도는 87년 체제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또한 한국 정치 발전의 질곡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는 사태를 보고 있으면, 과연 개헌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을 믿을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역설적으로 대통령 일인이 국정을 좌지우지하게 만들어온 주역이 정치인들 자신이 아닌지 되물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순실이라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농락당했다는 억울함이 압도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조차 독대할 수 없는 장관과 수석비서관들이 침묵을 유지했던 배경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이 임명한 각료들과 국정을 논하지 않는 대통령의 행태가 ‘독특한 국정 스타일’로 여겨졌던 것일까. 오히려 그렇게 대통령이 무엇을 하든 자신들의 자리만 보전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이런 복지부동이 지금 사태를 만들어낸 복합적인 원인은 아닌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이 모든 것은 보수 정치 자체에 대한 근본적 불신을 유발한다. 그렇게 모든 것을 바꾸고, 대한민국 경제를 발전시키겠다고 큰소리를 쳤던 보수 정치인들이 사실상 최순실 게이트를 막지 못했거나 오히려 방조했다는 사실에 대한 뼈저린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대통령 퇴진에 미온적이었던 야당 정치인들 역시 책임을 벗어나긴 어렵다.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기보다 정치공학적인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보는 답답함은 여전하다는 생각이다. 어떤 이들은 ‘혁명’이니 ‘봉기’를 소리 높여 외치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생각이다. 물론 새로운 정치세력은 쉽게 출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금 필요한 것은 대통령 퇴진과 집권전략이라는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 전망이다.

이 전망은 그냥 얻어진다기보다, 사태를 사태 그대로 받아들이는 개방성을 통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우화가 떠오른다. 서로 권력에 아부하던 그 신하들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한 어린이의 솔직함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정치인의 권위는 진실에 대한 솔직한 태도에서 발생한다. 지금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대통령도 한때는 진솔한 태도로 인해 카리스마를 얻기도 했다.

분출하고 있는 시민의 요구가 또 다른 권력엘리트의 자리이동에 머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자유민주주의’라는 표상으로 굳어져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를 더욱 발본적으로 주장할 필요가 있다. 급진화된 시민의 주장만이 보수 정치의 한계를 넘어갈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전망을 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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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소리’는 이치에 맞지 않은 서툰 말을 의미한다. 엉뚱한 말을 일컫는 ‘생(生)소리’와 뜻이 비슷하다. ‘선소리’의 ‘선’은 ‘선무당’ ‘선밥’ ‘선웃음’ ‘선잠’의 ‘선’과 같은 뜻이다. ‘선’은 ‘익숙하지 못하다’ ‘빈틈이 있고 서투르다’를 뜻하는 ‘설다’에서 왔다. ‘설다’의 관형형인 ‘선’이 접두사가 된 것이다. ‘선’은 ‘서툰’ 또는 ‘충분치 않은’의 뜻을 더한다.

‘선소리’는 ‘쓸데없는 소리’와 의미가 상통하는 면이 있다. ‘듣기에 거슬리는 소리’나 ‘쓸데없는 소리’ 하면 ‘신소리’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신소리’는 상대편의 말을 슬쩍 받아 엉뚱한 말로 재치 있게 넘기는 말을 가리킨다. 나쁜 의미보다는 좋은 뜻을 지닌 말인 셈이다. 듣기에는 거슬리지만 도움이 되는 말은 ‘쓴소리’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재치 있게 받아넘기는 말과 달리 터무니없는 자랑으로 떠벌리거나 허풍을 떠는 말을 ‘흰소리’라고 한다. ‘흰소리’는 그런 의미에서 ‘헛소리’와 뜻이 서로 통한다. ‘헛소리’는 실속이 없고 미덥지 아니한 말을 뜻한다. 즉 실체가 없는 허황된 소리를 가리킨다.

참, 잘못을 했을 때 흔히 ‘한소리 듣겠다’고 하는데, 이때 ‘한소리’는 ‘큰 소리’를 말한다. ‘한’에는 ‘크다’라는 뜻이 있다. ‘한소리’는 곧 ‘크게 나무라는 말’이란 의미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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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잠든 밤 영화에 빠진 내게 아내는 불쑥 노트북을 내밀었다. 뭐야, 했는데 아내의 눈시울이 뜨거웠다. 시작 버튼을 누르자 동영상에선 “해방이화, 총장퇴진”의 앳된 함성이 울려퍼졌다. 학생은 죄 얼굴을 가렸는데 옷차림은 발랄했고 합창곡은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였다. 다른 동영상에선 녹색 머플러를 두른 교수와 복면을 쓴 학생이 이산가족처럼 포옹하고 있었다. 그들 중 보라색 염색을 하고 눈가를 닦는 교수를 가리키며 아내는 울먹였다. “저분이 내 은사야.” 86일간의 이대 본관 점거농성은 그렇게 꼬리로 몸통을 흔들었다. “최순실 딸 부정입학 및 학사특혜 규탄”은 최순실 게이트의 뇌관으로 전 국민의 공분을 깨웠다.

아울러 이대 학생 시위는 ‘느린 민주주의’라는 쟁점을 남겼다. 이 작명은 시위대가 학교나 기자와 소통할 때 지도부나 대변인 없이 참여자의 전체 토론인 ‘만민공동회’의 서면 문답을 고수하면서 비롯됐다. 이 때문에 주류 언론과 일부 전문가는 ‘느린 민주주의’를 “지도부 부재 난맥상”과 “타협점 못 찾고 표류”로 표현하며 사태 해결의 걸림돌로 비판했다.

하나 ‘느린 민주주의’는 그 어떤 대의제도 못했던 ‘민주주의의 빠른 해결’을 경험했다. 미래라이프대학 추진은 폐지됐고 총장은 사퇴했으며 최순실은 국민 앞에 섰다. 이 과정에서 학생 시위대의 ‘외부세력 배제’가 사회적 연대의 포기냐 새로운 운동 전략의 성공이냐라는 논쟁이 뒤따랐다. 나는 이런 양도일단의 해석이 과도하다고 생각한다. 시민 시위를 ‘불순분자의 사주’로 몰아 탄압하고 민형사 소송을 남발하는 공권력에 맞서 어떤 방어 수단을 선택할지가 이대 학생 시위의 고민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시위자의 개인 신상이 털리지 않게 보호하여 다수의 참여를 유지하려는 선택과, 희생을 감수하는 소수의 선도적 행동으로 저만치 대오 앞으로 나아가는 제의(祭儀)적 선택은 다른 방식을 낳는다. 뒤의 선택이 각성된 정치적 주체에 의해 사회적 구조를 한꺼번에 문제로 삼는 선동의 언어이자 외부적 목표 지향이라면, 앞의 선택은 시위 참여자의 집단 무의식을 사회심리적 구조로 묶어내는 공감의 언어이자 내부적 응집 지향이다.

이 점에서 이대 사태는 정당성의 문제로 촉발됐지만 학생 시위의 조직화는 동기상의 문제로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즉 이대 사태의 구조적 해법을 찾는 변증법적 사고와 이대 학생 시위대가 선택한 자급자족의 심리는 연결돼 있지만 따로 읽어야 한다. 후자에 주목한다면 이대 학생 시위가 던진 질문은 다른 것이다. 그것은 민주주의로 선출된 대표가 도리어 선출한 국민을 무시하는 실태에 대한 부정이다. 51%가 49%를 배제하는 현실에 대한 반대다. 또한 그 민주주의가 위촉한 전문가의 위선에 대한 불신이다. 4대강과 가습기살균제와 농민 백남기 사망진단서까지 엄청난 결과를 불러내고도 그 폐해와 무관하게 고결한 전문가로 사는 그들에 대한 거부다.

이것이 우리가 물려준 대의 민주주의라면 이대 학생 시위는 무엇을 포기했거나 어떤 전략을 성공시켰기보다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직접 민주주의를 시행과 착오로 되풀이하면서 미완의 질문을 남긴 것이다. 이 질문은 ‘민주주의를 민주화하기’라고 할 수 있다.

이진순 선생의 신간 <듣도 보도 못한 정치>가 소개한 직접 민주주의의 사례들에 86일간의 이대 학생 시위를 추가해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우리의 생활 민주주의를 탐구하고 실험해야 할 때다. 특히나 이대 학생 시위는 ‘경쟁을 내면화한 각자도생의 수저 세대’로 대상화됐던 청년의 몸부림이었기에 여기에 응답하는 일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영욕을 누리고 있는 기성세대에게 부채이자 의무다.

그날 밤 나는 영화 <아수라>를 보고 있었다. 정치인과 검찰과 경찰과 조폭과 용병이 서로 물고 뜯다가 장례식장에 모여 모두가 죽는 결말을 보긴 했지만 중간에 아내가 들이민 동영상을 보느라 나중에 다시 봤다. 작금의 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나기 시작한 그들의 물고 뜯는 아수라장을 보면서 영화보다 더 소름이 끼쳤지만, ‘기승전검찰’로 귀결되는 이 나라의 대의 민주주의가 또 얼마나 허망할지를 지켜보는 시청자 국민의 노릇은 무엇이 되어야 할지 고스란히 숙제로 남는다. 이제라도 ‘민주화’ 훈장부터 떼고 ‘산업화’ 훈장도 마저 떼놓고 ‘듣도 보도 못한 민주주의’에 착수해야 내 앞에 놓인 그 숙제를 비로소 풀 수 있을 것 같다.

내 청춘의 한때 ‘한 사람의 열 걸음’과 ‘열 사람의 한 걸음’을 놓고 친구들과 갑론을박을 벌였던 적이 있다. 어느샌가 ‘한 사람의 열 걸음’은 선한 의지든 악한 음모든 그것이 돈으로든 권력으로든 명예로든 기어코 나쁜 세상을 만든다고 알게 됐지만, 나는 여전히 착한 대표자와 봉사하는 전문가가 그래도 세상을 좋게 만든다고 여겼던 편이다.

그러나 정말로 그게 아니었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을 위한 직접 민주주의를 시행도 착오도 해본 적 없이 ‘한 사람의 열 걸음’에 기대 묻어가려는 심보로는 이 아수라장을 벗어날 수 없다.

김종휘 성북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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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나쁜 대통령”,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 박근혜 대통령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파문이 한국 사회 전체를 집어삼켰다. 박 대통령의 관련 발언들도 재차 화제와 검증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트위터코리아가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와 함께 지난달 24~30일 트위터상에서 가장 이슈가 된 핫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 상위 5개 키워드가 모두 최순실 게이트 관련 단어였다.

한 주간 언급량이 가장 많았던 단어는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나쁜 대통령’이었다. 지난달 24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임기 내 개헌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힌 뒤 트위터에는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개헌을 제안하자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전 대표가 “대통령 눈에는 선거밖에 안 보이느냐”며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한 발언이 주목을 받은 영향이다. 이 때문에 최순실 비리 의혹을 무마하기 위해 개헌론을 들고 나왔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최순실씨의 국정개입 의혹에 대한 결정적 단서가 된 태블릿PC가 세상 밖으로 나온 뒤 박 대통령은 최씨의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 국민에게 사과하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 끼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 드린 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트위터에는 해시태그 ‘#순수한마음’이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 오르고 “순수한 마음으로 하야를 요구한다” 등의 비난 글이 다수 게시됐다.

또 박 대통령이 최순실씨가 연설문 등을 미리 봤다는 사실을 인정한 뒤 청와대가 검찰의 압수수색을 거부하다가 박스 7개 분량의 자료를 임의제출했다는 소식에 ‘압수수색’도 언급량이 늘었다. 주말이었던 지난달 29일 서울 청계광장 일대에서 민중총궐기 집회가 열리면서 ‘청계광장’ 키워드도 트위터 내에서 급증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트위터를 통해 “이제 국민이 퇴진투쟁에 나설 때다. 저부터 행동하겠다”고 글을 올린 후 직접 집회에 참여했다.

이윤주 기자 run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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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